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지은이:J.M.바스콘셀로스 출판사:동녘 제1부 1. 철드는 소년 우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또또까 형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 저것 가르쳐 주었다. 그런 형이 있어 나는 매우 기뻤다. 내가 사물을 깨닫게 된 것도 집 밖에서였다. 집에선 나 혼자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으므로 실수가 많았 고, 그런 날엔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날 때려 주 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자라자, 식구들은 내가 장난꾸러기라는 것을 알아차였 고, 그 후로 나는 항상 ‘개자식',‘말썽꾸러기',‘억센 털 달린 러시아 고양이' 라고 불렸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밖에 나가 놀지 않았더라면 노래부르는 것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노래란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또또까 형은 노래부르는 것 외에 것도 할 줄 알았는데, 그건 휘파람 불기였다. 나는 아무리 흉내를 내어도 소리를 낼 수가 없 었다. 형이 애써 가르쳐 주었지만, 입술을 나팔 모양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속으로 노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별난 것이었으나, 차츰 재미가 붙었다. 나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엄마가 부르시던 노래 하나늘 기억하고 있다. 엄 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채 우물가에 앉아 계셨다. 허리 에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몇시간이고 물에 손을 담가 비누 거품을 내셨다. 그리 곤 옷을 빨아 널고, 장대로 빨랫줄을 받쳐 올리셨다. 엄마믄 옷을 차레로 그렇게 너셨다. 그때 엄마는 집안 형편 때문에 파울랴베르 박사 댁의 빨래를 해 주고 계셨다. 엄마는 키가 크고 날씬한 미인이셨다. 까만 피부에, 검은 생머리를 부ㄲ 지 않고 늘어뜨리면 허리에까지 내려왔다. 그런 엄마의 모습도 예뻤지만, 노래를 부르실때의 엄마 모습만큼 아름다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종종 엄마 곁에 앉아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배웠다. 사공아,사공아, 야속한 뱃사공아, 당신 때문에 난 죽을 것만 같아. 파도는 출렁이고, 그 바다 속으로 내 사랑 뱃사공도 뱃사공도 떠나갔네. 뱃사공의 사랑은 한 시간도 못 간다네, 배가 닻을 올리면 뱃사공도 떠나가네, 파도는 출렁이고... 지금까지도 이 노래는 알 수 없는 슬픈 기분이 들게 한다. 또또까 형이 갑자기 나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 하니, 제제?” "아무 생각도 안 해. 노래하고 있었어.” "노래?” "응.”"그 러면, 내가 귀머기린다?” 아, 형은 아직 속으로 노래부르는 법을 모르고 있구 나! 난 입을 다물었다. 만일 형이 모른다면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우리는 리오- 상파울로 간선 도로변에 닿았다. 그곳에는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럭, 마차, 자전거 들이 다니고 있었다. "잘 봐, 제제! 이 일은 매우 중요해. 제일 중요한 건 이쪽저쪽 잘 살펴보는 거야. 이렇게 잘 둘러보고 ... 자! 건너자!” 우리는 찻길을 막 뛰어 건넜다. "무섭니?” 무서웠지만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다시 건너자. 그러고 나서 네가 잘하나 시험해 보겠어” 우리는 다시 원래 자리로 건너왔다. "자, 이젠 혼자 건너! 어른 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건너!” 나는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길을 뛰어 건넜다. 그리고 약간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형이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냈 다. "처음치"는 아주 좋았어, 그런데 너 한 가지 잊은 게 있어. 차가 오나 안 오 나 양쪽을 잘 살펴봐야지. 늘 내가 신호해 줄 수는 없잖아. 돌아오는 길에 더 연 습하지 뭐. 지금은 너랑 가 볼 데가 있거든.” 형은 내손을 꽉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갔다. 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또또까 형!” "응!” "철드은 게 굉장한 일이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니?” "에드문드 아저씨가 그러시던 데? 난 조숙해서 곧 이성을 갖는 나이에 들어간대. 그런데 난 하나도 달라진 것 같지 않거든.” "에드문드 아저씬 바보야. 머리에 복잡한 일만 잔뜩 집어넣고 사 셔.” "바보는 아니야. 아저씬 척척박사야. 나도 크면 척척박사가 될 거야. 시인 도 되고. 그래서 나도 나비넥타일 매고 다닐래. 언젠가는 나도 나비넥타일 매고 사진을 찍겠어.” "나비넥타이는 왜?” "나비넥타이를 안 맨 시인은 없거든. 에 드문드 아저씨가 잡지에 난 시인들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 모두 나비넥타일 매 고 있었어.” "제제,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걸 모두 믿진 마. 에드문드 아저씨는 얼간이 같은데다가 거짓말쟁이거든.” "그럼, 아저씬 갈보의 아들이야?” "야, 얘 좀 봐! 그런 말을 함부로 지껄이네! 에드문드 아저씬 갈보의 아들이 아냐. 난 다 만 얼간이 같다고 했어. 덜떨어진 사람 말야.”"형이 아저씨가 거짓말쟁이라고 했잖아?" ”그말하고 거짓말쟁이하고 무슨 상관 있니?" ”아냐, 상관 있어. 저번 날에 아버지가 쎄베리노 씨와 트럼프를 하셨는데, 쎄베리노 씨가 마닐라 여송연 을 피우면서 라본네 씨를 두고 ‘갈보의 아들 녀석이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고 하셨어. 그런데 아무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 어른들은 그런말을 해도 돼. 그런 말 해도 나쁘지 않아.” 얘기가 잠깐 끊어졌다. "에드문드 아저씬 아니 라고 ... 으 - 음... 그럼 언간인 뭐지, 또또까 형?” 형은 귀찮다는 듯이 손만 내 휘둘렀다. "아저씬 얼간이가 아냐, 얼마나 좋으시다구, 나한테 얼마나 많은 걸 가 르쳐 주셨는데. 여태껏 날 딱 한 번 때렸는데 그것도 세게 때리진 않으셨어.” 또또까 형은 깡충 뛰며 좋아했다. "아저씨가 널 때리셨니? 언제?”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글로리아 누나가 날 진지냐 할머니 댁에 보냈었어. 그 날 마침 아저씨 께서 신문을 읽으시려고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안 보였거든. 아저씬 막 찾으셨 어. 진지냐 할머니께 여쭤 보았지만 할머니도 모르실 수밖에. 두 분이서 이 구석 저 구석 찾아 헤매셨지. 그때 내가, 구슬을 사게 일 또스땅을 주시면 얘기해 드 리겠다고 말했지. 아저씨는 조끼 있는 곳으로 가서 일 또스땅을 가지고 오시더 니, ‘돈을 줬으니 찾아 봐라.'하셨어. 나는 빨래통으로 가 더러운 옷 속에서 안 경을 끄집어냈어. 그러자 아저씬 화를 내셨어. ‘네놈 짓이군, 이 불한당 녀석 아!' 하시며 내 볼기짝을 한 대 때리시곤 돈을 빼앗아 가셨어.” 또또까 형은 씩 웃었다. "매 좀 덜 맞을까 해서 거길 갔는데, 거기서도 매을 맞았구나. 좀 빨리 가나. 이러다간 영영 못 가"다.” 그래도 난 계속 에드문드 아저씨 생각을 했다. "또또까 형, 어린애들도 퇴직자야?”"무슨 소리야?” "에드문드 아저씨는 아무 일도 안 하시는데 돈을 버시잖아. 아무것도 안 하시는데 시청에선 매달 아저씨 께 돈을 드려.” "그래서?” "애들도 아무 일도 안 하고, 밥 먹고 잠만 자는데 부모들이 돈을 주잖아.” "퇴직자는 달라, 제제. 퇴직자는 에드문드 아저씨처럼 그 동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천천히 걸어 다녀야만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제제, 제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넌 아저씨한테 배우는 걸 좋아하니까, 아저씨께 가서 여쭤 봐. 나한테는 그런 걸 묻지 마. 넌 좀 다른 애들처럼 행동할 수 없니? 말을 함부로 하느 것까진 좋다고 치자, 하지만 고 작 은 머리에 복잡한 것들을 채우고 다니진 말아. 그게 싫다면 너하고 같이 다니지 않겠어.” 난 기분이 나빠져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노래부르고 싶은 생 각도 없었다. 내 마음 속에서 노래부르는 작은 새도 멀리 날아간 것 같았다. 걸 음을 멈추며 또또까 형이 어떤 집을 가리켰다."저 집이야, 어떠니?” 그저 평범 한 집이었다. 파란 색 창문이 달린 하얀 집이었다. 집은 모두 잠겨 있었고 조용 햇다. "맘에 들어. 그런데 왜 이리로 이사해야 하지?” "그건 여기로 이사하는 게 낫기 때문이야.” 울타리 너머로, 한구석에는 망고나무 한 그루가, 다른 쪽엔 따라린 두나무가 보였다. "넌 뭐든지 알고 싶어하는 애니까, 우리 집에 일어난 일들을 눈치챘겠지? 아빠는 그냥 놀고 계시잖아, 안 그래? 아빠가 스코트필드 씨랑 싸워서 쫓겨난 지가 여섯 달이 넘었던 말야. 랄라 누나가 공장에 나가는 것도 넌 모를 거야. 또 엄마가 시내에 있는 영국인 방직 공장에서 일하신다는 것도 넌 몰라. 안 그래, 이 바보야? 모두들 새집 세낼 돈을 모으려고 그러는 거란 말야. 지금 사는 집은 여덟 달 치나 세가 밀려 있어. 넌 너무 어려서 그런 슬픈 일들을 몰라. 난 집안을 돕기 위해 미사 돕는 일을 그만둘 거야."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또또까 형, 까만 표범하고 암사자 두 마리도 여기 가져 올 거야?” "물론 가져 와야지. 닭장을 뜯어 올 사람이 여기 있는 이 종놈말고 또 누가 있니?” 그리고 는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가 뜯어 가지고 와서 여기다 다시 만들어 줄게.” 나는 맘이 놓였다. 만약 그것이 없어진다면, 동생 루이스를 데리고 놀 거리를 만들기 위해 난 또 머리를 짜내야만 했을 테니까. "자, 봐, 제제. 내가 너 하고 얼마나 친하니? 그러니까 이젠 네가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 알려 주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얘기해 줄 만한데.” " 맹세해, 형. 정말 모르겠어. 난 모른단 말야.” "거짓말 마. 누군가 너한테 가르쳐 줬을 거야.” "진짜 배우지 않았어.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단 말야. 있다면 아마 잔디라 누나 말대고 내 대부인 악마가 내가 자는 동안 가르쳐 줬을 거야. ” 또또까 형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자백을 받으려고 내 머리에 알밤을 먹이기까지 했지만 난 애기하질 못했다. "혼자 그런 걸 터득할 사람은 없어.” 그러나 정말 아무도 내게 그 일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건 하나의 신비였다. 몇 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집 안이 온통 떠들썩했었다. 그 일은 내가 진지냐 할머니 댁에서 신문을 보고 계신 에드문드 아저씨 곁에 않아 있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저씨!” "뭐냐, 얘야?” 아저씨는 모든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안경을 코끝에 내려놓으셨다. "아저씨는 언제 읽는 걸 배우셨어요?” "아마 여섯 살, 아니 일곱 살이었을 게다.” "다섯 살에도 읽을 수 있나요?” "하려면 할 수 있겠지. 그래도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 다. 다섯 살은 너무 어리니까.”"어떻게 읽는 법을 배우셨어요?” "다른 사람들 처럼 마분지 글자판으로 배웠지. ‘기역(ㄱ)'에 ‘아(ㅏ)'를 더하면, ‘가'가 된 다. 이런 식으로.” "꼭 그렇게 해야만 배울 수 있나요?” "내가 알기로는 그런 데.” "그럼, 모든 사람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해요?” 아저씨는 화가 나셔서 날 쳐다 보셨다. "이것 봐라, 제제.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러니 이젠 신문 좀 보게 날 내버려다오. 뒤뜰에 고이아바가 있는지 가 봐라.” 그러시더니 안경 을 다시 당겨 올리고 계속 신문을 보셨다. 그래도 난 구석에 앉아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치! 속상애!” 그 소리를 어떻게나 크게 질렀는지, 아저씨는 다시 안경을 코끝에 내려놓으셨다. "네가 아무리 읽고 싶어해도 소용이 없을 게야.”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아저씨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집에서 여기까지 애써 걸 어왔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서 애기해 봐라.” "싫어요. 그냥 애기하긴 싫어 요. 우선 아저씨가 언제 연금을 타시는지 알아야겠어요.” "내일 모레다.” 아저 씨는 나를 훑어보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모레가 무슨 날이에요?” "금요일.” " 그럼, 금요일에 ‘달빛'을 시내에서 사다 주시겠어요?” "가만있어 봐라, 제제. 도대체 달빛이 뭐냐?” "영화에서 본 하얀 망아지예요. 그 망아지의 주인은 프레 드 톰프슨이에요. 길들인 망아지예요.” "바퀴 달린 망아지를 사 달라는 게냐?” "아녜요. 난 말고삐가 달리고 머리쪽이 까만 장난감 망아지를 갖고 싶어요. 손잡 이를 달아 달릴 수 있는 겅. 이담에 영화에 출연하려면 그걸 길들여 놔야 해요. ” 아저씨는 웃고 계셨다. "알겠다. 그걸 사다 주면 넌 아저씨한테 뭘 줄래?”" 아저씨를 위해 어떤 일을 해 보일게요.” "뽀뽀 말이냐?” "뽀뽀보다 더 좋은 거 요.” "그러면, 껴안아 줄 테냐?” 그러자,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가 무척 불쌍해 보였다. 내 마음속의 작은 새가 한 가지 이야길 기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은 아저씨께는 부인과 다섯명의 자식이 있지만 지금은 그들과 헤어져 홀로 사시 며, 아주 천천히 걸어 다니신다는,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다. 아저씨가 천천히 걸 어 다니시는 게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것을 누가 알까? 아저씨의 자식 들은 아저씨를 뵈러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탁자를 돌아가 아저씨의 목 을 꼭 껴안았다. 아저씨의 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스쳤다. "망아지 를 사 준신다기에 껴안는 게 아네요. 다른 걸 해 보일게요. 읽는 것 말이에요.” "제제,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글을 읽는단 말이냐? 누가 가르쳐 주었니?” "아 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나는 아저씨 곁에서 일어나 문지방을 나서며 말했 다."금요일 날 만약 제가 읽지 못하면 망아질 사 주지 않으셔도 좋아요.” 그 후, 전기세를 내지 않았다고 라이트 전기 회사가 전선을 끊어 갔기 때문에 밤마다 잔디라 누나는 등불을 켰다. 그래서 나는 ‘별'이란 신문을 보려고 발을 곧추세 웠어야만 했다. 그 신문에는 버이 하나 그려져 있었고, 바로 밑엔 집을 지켜 달 라는 기도문이 써 있었다. "잔디라 누나, 나 목마 좀 태워 줘. 이것 좀 읽게.”" 장난 그만해, 제제. 난 지금 굉장히 바빠.” "날 올려 주면 내가 읽는 것을 볼 텐 데.” "좋아, 너. 만약 날 놀리면 가만 안 둘 테야.” 누나는 나를 목마 태워서 문 뒤에 바짝 붙여 주었다. "자, 읽어 봐.” 난 기도문을 읽었다. 기도문은 가정 의 안녕과 축복을 빌고 악령을 쫓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잔디라 누나는 나를 바 닥에 내려놓더니,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제제, 너 이것 외웠구나. 넌 지금 날 놀리고 있어.” "잔디라 누나, 맹세하지만 난 뭐든지 다 읽을 수 있어.”"아무 도 배우지 않고는 읽을 수 없어. 에드문드 아저씨가 가르쳐 주셨니, 아니면 진지 냐 할머니시니?”"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누나는 다른 부분을 가리켰고, 나는 그것을 읽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러자 누나는 큰 소리로 글로리아 누나를 불렀고, 글로리아 누나는 흥분해서 알라이데를 불렀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이웃 사람 들이 웬 소동인가 하고 달려왔다. 지급 또또까 형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저씨가 미리 가르쳐 주시고 나서, 네가 읽을 수 있으면 망아질 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아냐,아니라니까.”"내가 아저씨께 여쭤 볼 건데? ”"그럼, 가서 여쭤 봐. 난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정말이야. 만약 내 가 알면 형한테 얘기했지.”"좋아. 두고 봐. 나한테 뭘 해 달라고 하기만 해 봐 라.” 형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날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복수할 거리가 뭐 없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아, 바보야. 넌 뭐든지 빨리 배우단 말 야. 그래서 넌 아마 2월엔 학교에 들어가야 할걸.” 이것은 잔디라 누나의 생각 이었다. 그렇게 하면 집안이 온종일 조용할 테고 학교에 가면 내가 얌전ㅎ지겠 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리오-상파울로 도로에서 연습하자. 학교 갈 띠마다 내가 종처럼 따라다니면석 건네줄 수는 없어. 넌 무척 영리하니까 이 일도 어련히 곧 배우시겠지만 말씀이야.” "옜다, 망아지. 이젠 나한테 보여 줘야지.” 아저씨는 신문을 펼쳐 내게 어떤 약 광고문의 한 구절을 가리키셨다. "이 약은 모든 약방과 약품을 취급하는 가" 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뒤뜰에 계신 진지나 할머니를 부르 셨다. "어머니, 애가 약방이란 말까지 정확히 읽었어요.” 두 분은 내게 다른 곳 을 가리켰고, 나는 모두 읽어 보였다. 그러자 할머니께선 세상이 뒤바뀌었다고 중얼거리셨다. 결국 난 망아질 얻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에드문드 아저씨를 껴안 아 드렸다. 아저씬 내 턱을 지그시 잡으시더니 감격하신 둣한 목소리로 말씀하 셨다. "넌 곧 크겠다, 요 장난꾸러기야. 널 조제라고 부른 것은 우연이 아니로구 나. 너는 우리 주변을 환히 비춰 줄 별과 태양이 될 게다.”난 무슨 말인지 몰라 아저씨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역시 얼간이라고 생각했다. "넌 이해하 지 못할 거야. 이건 이집트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란다. 네가 더 자라면 내가 한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겠지.” 난 이야기라면 반쯤 미쳤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이 야기라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내 망아지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고 나 서, 얼굴을 들어 에두문드 아저씨게 여쭤 보았다. "다음 주가 되면 아저씨는 내 가 많이 자랐다고 생각하시겠어요?” 2. 바로 그 라임오렌지나무 우리 집에서 각기 나이 많은 형이 어린 동생들을 돌봐 주었다. 잔디라 누나는 글로리아 누나와 또 북부에 양녀로 준 또 다른 누이를 돌봐 주었다. 안또니오(또 또까의 정식 이름)형은 잔디라 누나의 애호물이었다. 랄라 누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돌봐 주었다. 누나는 날 사랑하기까지 했었지만 점차 내게 시들해졌 는지, 아니면 통 넓은 바지에 짤막한 웃옷을 입은, 마치 극장 좌석 뒤에 받치는 방석같이 짜리몽땅한 애인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내게 소홀히 대했다. 우리가 일요일마다 역 광장으로 푸팅(footing, 랄 라 누나의 애인은 산책이라는 말을 꼭 이렇게 영어로 한다)하러 갈 때면 그는 내게 굉장히 맛있는 사탕과자를 사 주곤 했었다. 그것은 내 입을 막기 위한 수 단이었다.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미주알고주알 캐묻지 않는 한 결코 들통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두 동생은 아주 어렸을 때 죽었다. 그래서 난 애기로만 들 었을 뿐이다. 두 동생은 모두 피나제 족 인디언이었다고 한다. 둘 다 반짝이는 까만 생머리를 갖고 있었다. 여자애는 아라끼, 사내애는 주란디르라 불렀다고 한 다. 그 다음에 낳은 것이 내 동생 루이스였다. 루이스를 가장 많이 돌봐 준 사람 은 글로리아 누나였고, 그 후엔 내가 돌봐 주게 되었다. 사실 아무도 루이스를 보살펴 줄 필요는 없었다. 왜나하면 그 애는 너무 예쁘고 착해서, 있는지조차 모 를 정도로 매우 조용한 꼬마 녀석이었으니까... 그 애는 말할 때도 언제나 귀여 운 말만 골라 했는데 난 어떻게 하면 녀석을 떼어 놓고 나갈까 하는 궁리만 했 다. "제제 형, 동물원 놀이 해, 응?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어, 응?” 이 애 가 이제 익살을 제법 떠는데, 요 녀석도 곧 어른이 되겠어. 난 푸른 하늘을 올려 다보았다. 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때때로 거짓말을 할 기분이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쳤니, 루이스? 저기 폭풍이 다가오는 것 좀 봐!” 말은 그랬지만 동생의 손을 잡고 뒤뜰로 갔다. 뒤뜰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물원 그리 고 줄리뉴 씨 집 울타리 바로 옆이 유럽이었다. 왜 유럽이라고? 글쎄 내 맘속의 작은 새도 그것은 모른다. 거기에서 우리는 빵 데 아쑤까르의 케이블카 놀이를 하며 논다. 끈에 단추들을 끼워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끈을 줄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줄이라는 게 말인줄 알았다. 아무튼 우리는 끈의 한 끝 을 울타리에 매고 다른 한 끝은 루이스의 손에 동여매 거기에 단추들을 궤어선 하나씩 천천히 내려 보내는 것이다. 케이블카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을 잔 뜩 태우고 내려왔다. 우리는 내 깜둥이 친구 미리끼뉴의 케이블카도 갖고 있었 다. 이럴 때 다른 집 뒷마당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 니었다. "제제, 우리 집 울타릴 망가뜨리고 있는 거 아니냐?”"아네요, 디메린다 아줌마, 와 보세요.”"전 동생과 노는 중이에요. 얌전히 놀고 있어요.” 그러나 마음속에선 내 대부인 악마가 장난을 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없다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아줌마, 작년처럼 크리스마스 날에 달력을 주실래요?”"달 력으로 무얼 하게?”"보려고요. 빵바구니 위에 걸어 둘래요.”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며 약속했다. 그녀의 남편은 쉬코 프랑꼬 식료품 가"를 하고 있었다. 또 하 나의 장난감은 루씨아노였다. 처음에 루이스는 개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내 바지 를 잡아당기며 돌아가자고 조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루씨아노는 내 친구였다. 내 가 쳐다볼 때면 굉장히 큰 소리로 꽥꽥거렸다. 글로리아 누나는 갤 좋아하지 않 는지 박쥐는 흡혈귀라 애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말하곤 했다. "아니야, 고도이 아. 루씨아노는 안 그래. 내 친구야. 날 알아본단 말야.”"넌 벌레나 물건 같은 것들하고 얘기하는 나쁜 버릇이 있더라.” 루씨아노가 벌레가 아니라는 걸 납득 시키기는 어려웠다. 루씨아노는 알폰소스 들판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였다. "저것 봐! 루이스!” 루씨아노는 우리가 말하는 걸 알아듣는 듯 즐겁게 우리 주위를 뺑 뺑 돌았다. 물론 개는 알아듣는 것이다. "잰 비행기란 말야, 또 잰 뭘 하고 있는 데 ...” 나는 머뭇거렸다. 아저씨가 여러 번 가르쳐 주셨는데 까먹은 것이었다. 극예라고 했든가 곡예라고 했든가 아니면 곡례하고 하셨든가... 아무튼 그것들 중의 하난데,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쭤 봐야지. 동생한테 틀리게 가르쳐 줄 수는 없어. 다행히 루이스는 동물원 놀이를 하고 싶어했다. 우린 닭장 앞으로 갔다. 닭장 속에는 땅을 후비고 있는 흰 암탉 두 마리와 또 너무 순해서 우리가 볏을 긁어 주기도 한 검은 색 암탉 한 마리가 있었다. "우선 입장권을 사야지. 사람들 이 많으니까 잃어 버리지 않게 내 손 꼭 잡아. 일요일엔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아니?” 동생은 눈을 들어 사방을 훑어보더니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매표소에 서 난 배를 앞으로 불쑥 내밀며 기침 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그리곤 손을 주머 니에 찌른 채 판매원에" 물었다. "몇 살까지 돈을 안 내도 됩니까?”"다섯 살까 진데요.”"그럼 어른 표 하나 주시오.” 난 오렌지나무 잎 두 장을 입장권으로 따 가지고 들어갔다. "우선 얘야, 예쁜 새들을 보여 주마. 앵무새 좀 봐라. 저기 알록달록한 꼬마 새도 있구나. 저기 여러 가지 색 깃털이 달린 건 무지개빛 앵 무새란다.” 그러나 루이스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우리는 이것 저것 천천히 구경을 했다. 너무 속속들 이 봤는지 글로리아 누나와 랄라 누나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오렌지를 까 고 있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누나들이 만약 우리 말소리를 들었다면 이 동물원 놀이도 어떤 녀석의 엉덩이에 몽둥이찜질을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겠군. 하기야 그 어떤 녀석이란 늘 나지만 말씀이야. "제제 형, 이젠 뭘 보러 갈 거야?” 나는 목소리와 몸짓을 바꿨다. "자, 원숭이 울 앞으로 가자. 에드문드 아저씬 늘 고릴 라라고 하시더라만.” 우리는 바나나 몇개를 사서 원숭이에" 던져 주었다. 이런 짓이 금지된 일이란 걸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경비원들이 눈치 챌 수 있을라고. "너무 가까이 가지 마. 그 녀석들이 너한테 바나나 껍질을 던진 단 말야, 이 꼬맹아.”"난 사자가 보고 싶어.”"그럼 저리로 가 보자.” 난 오렌 지를 까고 있는 진짜 두 마라 원숭이들을 쳐다보았다. 누나들의 이야기 소리가 사자 울에까지 들렸다. "다 왔어.” 나는 아프리카산 순종인 노란 암사자 두 마 리를 가리켰다. 동생은 검은 표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였다. "무슨 짓이 야? 이 꼬맹아. 그 검은 표범은 이 동물원에서 제일 사나운 놈이란 말야. 그 녀 석은 조련사의 팔을 열여덟 개나 뜯어먹어서 이리로 보내진 거야.” 루이스는 깜짝 놀라며 팔을 뒤로 뺐다. "저게 서커스단에서 왔어?”"그래.”"무슨 서커스 단인데, 제제 형? 전엔 나한테 그런 말 안 했잖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 다. 내가 아는 서커스단이 뭐 있더라? "아! 로젬베르크 서커스단이야.”"그건 빵 집 이름 같은데?”요 녀석이 제법 영리해져서 속여먹기가 점점 힘들단 말씀이 야. "딴 이름이야. 이젠 좀 앉아서 간식을 먹는 게 좋겠다. 우린 너무 많이 걸었 더.” 우리는 앉아서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누이들이 얘기하는 데 가 있었다. "우린 그 앨 이해해 주어야만 해, 랄라. 저렇게 참을성 있게 동생과 놀아 주는 것 좀 봐.”"그렇긴 해. 하지만 그 애처럼 장난이 심한 애도 처음이야. 장난이 아니라 그 이상이란 말야.”"그 애 피 속엔 악마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해. 근데 참 희한해. 그렇게 망나닌데도 동네에선 그 앨 욕하는 사람이 없거든.”"집 에선 늘 슬리퍼로 매만 맞고. 언젠가 철이 들겠지.” 난 글로리아 누나에" 감사 의 눈길을 보냈다. 누나는 항상 날 구해 주었었다. 그리고 그럴 적마다 난 누나 에" 더 이상 장난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곤 했었다. "조금 있다 얘기하자. 지금은 안 되겠어. 쟤들이 너무 조용하잖니?” 누나는 벌써 눈치를 챈것 같았다. 내가 돌담을 넘어 셀리나 아주머니 댁 뒤뜰에 들어간 것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팔과 다리가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내겐 아주 신기했다. 그러 자 악마가 그걸 한꺼번에 떨어뜨려 보라고 부추겼다. 내 생각에도 무척 재미있 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흙담에서 아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집어 재빨리 오 렌지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곤 살짝 빨랫줄을 끊어 버렸다. 하마터면 나 도 함께 떨어질 뻔했다. 그때,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와 주세요. 빨랫줄이 끊어졌어요.”그러자, 어디선지 누가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 빠울로 씨의 아들, 그 악질놈이 틀림없어요. 그 녀석이 유리 조각을 들고 오렌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제가 봤어요.” "제제 형?”"응, 뭐라고 루이스?”"형은 어떻게 동물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알 아?”"많이 가 봤으니까.”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에드문드 아저씨께 들은 이야기였다. 아저씨는 내게 동물원에 데리고 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었다. 하지 만 정작 가" 된다 해도 아저씨의 걸음이 그렇게 느리니, 도착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게 뻔한 노릇이었다. 또또까 형은 아버지와 한 번 동물원에 간 적이 있 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아자벨 시의 바랑 남작 거리에 있는 동물원이 야. 바랑 남작 거리 넌 모르지? 모르는데 당연해. 그런 곳을 알기엔 넌 너무 어 리니까. 바랑 남작 같은 사람은 분명히 하느님의 친한 친구였을 거야. 하느님이 동물의 짝을 지어 주실 때 그분이 도와드렸을 거야. 그러니까 동물원도 만들었 게씨. 네가 조금 더 크면..” 누나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 내가 더 크면 어떻다고?”"고거 참, 귀찮게도 묻네. 네가 동물원에 가" 되면 내 가 짐승들을 세는 법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었어. 스물까지만. 스물에서 스물다 섯까진 암소,황소,곰,사슴,호랑이라는 것만 알아 둬. 그것들이 있는 델 정확히 몰 라서 그래. 너한테 틀리게 가르쳐 주고 싶진 않아.” 동생은 동물원 놀이에 싫증 이 난 것 갔았다. "제제 형! ‘작은 오두막집' 좀 불러 줘.”"여기 이 동물원에 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싫어. 벌써 다 가 버렸잖아?”"그 노랜 가사가 너 무 긴데. 네가 좋아하는 곳만 부를게. 응? 그게 매미가 나오는 부분이었지, 아 마? 그리곤 나는 가슴을 쭉 폈다. 당신은 내가 어디서 오는지 아시겠지요. 그곳은 작은 오두막집이랍니다. 곁에 는 과수원이 있는 아주 작은 오두막집이랍니다. 높은 산 언덕에 있어 멀리 바다 가 보인답니다... 난 여러 구절을 뛰어넘었다. 가느다란 야자나무 사이에서 매미들은 노래한답니 다. 황금빙 해가 서산에 질 때면 처마 끝으로 지평선이 보인답니다. 정원에는 분 수가 노래하고 분수가에 검은 새 한 마리 노래합니다... 노래를 끝냈을 때도 누나들은 계속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문득 좋은 생각 이 떠올랐다. 그건 노랠 부르면서 시간을 끌자는 생각이었다. 혹시 그때 가서 누 나들 맘이 변할지도 모른는 일이니까. 어떤 걸 부를까. 난 ‘작은 오두막집'을 전부 다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부르로 나서 ‘그대의 사랑스런 여행자들이 여'와 ‘라모나'까지 불렀다. 그리고 ‘라모나'의 두 줄에 다른 가사를 지어 부 르고 나니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오늘도 매를 맞고야 말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하는 수 없이 누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미 각오했어, 랄라 누나. 자 때려.”그리고 누나에" 등을 돌 렸다. 그래도 난 누나가 슬리퍼로 너무 세게 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꽉 물었다. 제안을 낸 사람은 엄마였다. "오늘은 모두 새집을 보러 가자.” 또또까 형은 날 한쪽으로 불러내 소곤거렸다."새집에 갔었다고 하면 가만 안 둘 테야. 반쯤 죽여 놓겠어.” 그러나 그런 생각을 난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새집을 향해 우리는 걸어갔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단 일 분이라도 떨어져선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난 다른 손으로 루이스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엄마, 언제 이사를 가야 해요?" 엄마는 어쩐지 슬픈 얼굴을 하며 말씀하셨다. ‘크리스 마스 이틀 후에. 물건들을 정리해야 할 거다.”엄마는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 말 씀하셨다. 엄마가 몹시 불쌍해 보였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만 하셨다. 공 장이 세워지던 여섯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셨단다. 사람들이 엄마를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엄만 너무 어려서 혼자 내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책상 위를 올려 놓으면 엄만 너무 어려서 혼자 내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책상 위를 걸레로 닦으셨단다. 그래서 학교에도 가 보지 못하셨고 읽기를 배운 적도 없으셨단다. 이 얘길 들었을때 난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서 내가 커서, 시인이 되고 척 척박사가 되면 내 시를 꼭 읽어 드리겠다고 맹세했었다. 상점들의 진열장과 잡 화상들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층 돋우어 주고 있었다. 유리 진열장이 있는 상 점들은 모두 산타클로스를 그려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날에는 복 잡하리라는 생각에서인지 미리 카드를 사러 온 사람들로 상점마다 붐볐다. 난 이번 크리스마스엔 꼭 하느님의 착한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하는 아련한 희망 을 갖고 있었다. 철이 들면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다 왔다.” 모두들 아했다. 지금 사는 집보다 약간 작은 집이었다. 또또까 형이 대문에 매인 철삿줄을 푸시 는 어머니를 도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뿌리치", 벌써 처녀가 다 됐다는 사실도 있은 채 몸을 흔들며 달려갔다. 그리곤 망고나무를 껴 안아다. "이 망고나무는 내 거야. 내가 제일 먼저 잡았으니까.” 안또니오 형도 따마린두나무 한 그루를 잡고 누나와 똑같은 짓을 했다. 날 위해 남은 건 하나 도 없었다. 난 울상을 지으며 글로리아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내 건, 고도이 아?”"저기 뒤쪽으로 가 봐. 나무가 더 있을 거야, 바보야.” 달려가 보았지만 거 기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풀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시가 잔뜩 난 늙은 오 렌지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흙담 곁으로 조그마한 라임오렌지 한 그루가 서 있 을 뿐이었다. 내가 시무룩해서 돌아와 보니, 모두들 침실을 둘러보며 각자 자기 방을 정하고 있었다. 난 글로리아 누나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없어.”" 네가 잘 찾아 보지 않아서 그래. 내가 찾아 줄테니 잠깐 기다려.” 잠시 후 누나 는 나와 함께 오렌지나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넌 저 나무가 싫으니? 얼마나 멋진 오렌지나무니?” 멋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전혀 맘에 들지 않았 다. 그 어느것도... 나무란 나무는 모두 가시만 잔뜩 돋아 있었다. "저런 흉한 것 들을 갖느니 꼬마 라임오렌지나무를 갖겠어.”"어디 있는데?” 우리는 라임오렌 지나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머나, 참 예쁜 라임오렌지나무로구나. 멀리서 봐도 라임오렌지나무란 걸 금방 알겠다. 내가 너만한 애라면 딴 나무는 바라지도 않 겠다, 애.” "그래도 난 아주 커다란 나무가 좋단 말야.”"잘 생각해 봐, 제제. 나 무는 아직 어리잖니? 이제 곧 커다란 나무가 될 거야. 너랑 같이 크는 거야. 그 럼 너희들은 형제처럼 사이가 좋을 거 아냐? 저 가지들 좀 봐. 그래, 이 나무밖 에 없는 건 사실이야. 그래도 네가 탈 수 있도록 만든 망아지 같지 않니?” 나 는 일생 최대의 불행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천사들이 그려져 있는 스코틀랜드 술병 생각이 났다. 그때도 랄라 누나느 "이게 나야”하고 말했지. 그 랬더니 글로리아 누나도, 또또까 형도 자기 걸 골랐어. 그런데 난 뭐람? 왜 내가 늘 꼴찌이어야만 하지? 날개도 없이 머리만 있는 네번째 천사가 내 것이람? 커 서 어디 두고 보라지. 아마조나스 정글과 하늘을 꿰뚫을 둣한 나무는 모두 내가 살 테야. 그러면 모두 내 것이 되겠지. 천사가 잔뜩 그려져 있는 술병으로 꽉 찬 가"를 사선 날개 한 조각도 안 주겠어. 나는 골이 잔뜩 나서 땅바닥에 주저앉았 다. 그래서 오렌지나무에 기대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글로리아 누나는 웃으며 가 버렸다. "그런 것 때문에 난 화는 오래"지 않아, 제제. 넌 내 말이 옳다는 걸 알 게 될 거야.” 나뭇가지로 땅을 파고 있자니 울음도 차츰 잦아들었다. 그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너의 누나가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해.”"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하지. 옳지 못한 건 늘 나뿐이야.”"그렇지 않 아. 네가 날 자세히 보면 달라질 거야.”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 어린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모든 사물들과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그건 아마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미리 생각해 주는 내 맘속의 작은 새 덕분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바 로 네가 말을 하는 거니?”"듣고 있는 것도 나야.”"나무는 몸 전체로 얘기해. 잎으로도 하고, 가지랑 뿌리로도 한단다. 보고 싶니? 그럼 귀를 내 몸에 대 봐. 그러면 내 가슴이 뛰는 소릴 들을 수 있단 말야.” 난 약간 망설였지만, 나무가 나랑 비슷하게 작다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사라졌다. 귀를 대 보니 무언가 멀리 서 '탁탁‘하는 소리를 냈다. "들리지?”"딱 하나만 말해 줄래? 누구든 너하고 얘기할 수 있니?”"아니, 오직 너하고만.”"정말?”"맹세할 수 있어. 어떤 요정이 말해 줬는데 너같이 자그마한 아이랑 친구가 되면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아주 행복해질 거랬어.”"그럼 너 기다려 줄 수 있니?”"뭘?”"내가 이사올 때까지 말 야. 아직도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해. 그때 가서 네가 말하는 걸 잊어 버리면 어떻 하니?”"절대로 안 잊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너를 위해서만 그래.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시험해 볼래?”"어떻게?”"내 가지에 올라타 바.” 나는 그 애가 시 키는 대로 했다. "자, 이젠 약간 흔을어. 그리고 눈을 살짝 감아 봐.” 역시 나무 가 시키는 대로 나는 했다. "어때? 네가 태어나서 나보다 더 좋은 망아질 가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니?”"없어. 너무 재밌어. 내 달빛 망아질 동생에" 줘 버릴 테야. 너도 그 애를 좋아하게 될 거야, 알겠니?” 뿌듯한 기분으로 나는 라임오 렌지나무에서 내려왔다. "얘, 내가 약속할게. 이사오기 전이라도 가능하면 자주 올게. 이젠 그만 가야 해. 모두들 저기 나오고 있잖아.”"그래도 친구야, 이렇게 헤어지긴 싫어.”"쉬! 저기 누나가 와.” 내가 나무를 껴안고 있는 바로 그때 글 로리아 누나가 다가왔다. "잘 있어, 친구야! 넌 세상에서 제일 멋져.”"내가 그랬 잖니?”"그래, 누나 말이 맞아. 이젠 누나나 형이 망고나무나 따마린두나무랑 바 꾸자고 빌어도 안 바꾸겠어.” 누나는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요 조그만 머리, 귀여운 머리!...” 우리는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고도이아, 누나 는 누나 망고나무가 얼간이라고 생각지 않아?”"아직은 잘 모르겠어. 좀 그런 것 같기도 해.”"또또까 형 건?” "얘기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언젠가 누 나한테만은 이 기적을 얘기해 줄게, 고도이아.” 3. 가난에 찌든 손가락들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을 때, 아저씨께선 아주 진지하 게 대해 주셨다. "네가 염려하는 게 그거로구나?”"네, 아저씨. 우리가 이사갈 때 루씨아노가 함께 가지 않을까 봐 그래요.”"넌 그 박쥐가 널 굉장히 좋아한다고 생각하니?”"좋아해요.”"마음 속 깊이?”"틀림없어요.”"그렇다면 그 박쥐는 꼭 갈 게다. 늦게 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느 날엔가는 꼭 네 집을 찾아낼 거야.”" 우리가 살게 될 집 주소를 벌써 가르쳐 주었어요.”"그렇담 더욱 쉬운 일이구만. 만약 그 박쥐가 가지 않으면 그건 다른 약속이 있기 때문일 게야. 그럴 땐 자기 형제나 사촌들을 보낼 게다. 그래도 넌 그게 다른 박쥐란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 할 게야.” 그래도 걱정이 됐다. 만일 루씨아노가 글 읽는 걸 모른다면 집 주소 가 무슨 소용이 있담? 박쥐도 작은 새나 사마귀나 나비들에" 물어서 올 수 있을 까? "걱정 마라, 제제. 박쥐는 방향 감각이 있으니까.”"뭐가 있다고요, 아저씨? ” 아저씨는 방향 감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난 점점 더 아저씨의 지식에 경탄하게 되었다.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난 모두들 듣고 싶어하는 이사 얘기를 해 주러 거리로 나왔다. 어른들은 대부분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너희 이사한다며, 제제? 잘됐다. 다행이야. 한시름 놨겠구나.”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비리끼뉴 한 명뿐이었다. "다른 데로 이사사더라도 잘 지내자. 사이좋게 지내자, 응? 그런데 내가 말했던 거 생각해 봤니?” "언제지?”"내일 여덟시. 방구 오락 장 정문에서 있대. 들리는 말로는 주인이 장난감을 한 트럭 사 오라고 했대. 너 도 갈래?”"루이스를 데리고 갈게. 그런데 나도 얻을 수 있을까?”"그럼, 이렇게 작은데. 넌 네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비리끼뉴는 내게 다가와 섰다. 그래서 난 내가 아직도 작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걸. "정말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얻고 싶어. 내일 거기서 보자.” 난 집으로 돌아와 글로리아 누나 곁을 맴돌았다. "또 뭐니?”"누나가 우릴 좀 데려다 줘. 장난감을 잔뜩 실은 트럭이 시내에서 온대.”"이봐, 제제. 난 할 일이 태산 같아. 옷도 다려야 하고 잔디라 언니가 이삿짐 싸는 것도 도와줘야 해. 불 위에 올려 논 냄비도 봐야지...”"레알렝고 시에서 사관 생도 한 소대가 온대...” 누나는 자 기가 루디라고 부르는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의 사진을 노트에 모으는 것말 고도 사관 생도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아침 여덟시에 사관 생도들이 오는 걸 어디서 봤니? 날 바보로 만들려고 요것아! 나가 놀기나 해, 제 제!”난 나가지 않았다. "알잖아, 고도이아? 난 괜찮아. 하지만 루이스한테 데려 다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야. 그 앤 아직 어리잖아. 그 나이의 애들은 크리스마스 생각만 한단 말야.”"제제, 내가 못 간다고 몇 번 말했니? 게다가 그건 말뿐이지, 진짜 가" 싶은 건 너잖아. 살다 보면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있어.”"만일 죽게 된 다면?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못 받고 죽는 거야.”"넌 그렇게 일찍 죽 지 않아. 넌 아마 에드문드 아저씨나 베네딕투씨의 두 배는 더 살걸.자, 이젠 그 만 하고 나가 놀아.” 그래도 난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성가시게 굴었 다. 누나가 옷장에 무언가 가지러 가면 흔들의자에 앉아 애원하는 듯한 눈초리 로 바라보았다.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누나에" 큰 효과가 있기 때 문이었다. 누나는 물독에 물을 푸러 갔다. 그래서 나도 따라가 문지방에 앉아 쳐 다보았다. 또 빨랫감을 가지러 방으로 가길래 따라 들어가 턱을 손으로 받치" 침 대에 앉아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누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이것 봐 제제. 몇번이나 못 간다고 그랬니? 제발 약올리지 말고 나가 놀아!” 그래도 난 나가 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누나가 날 움켜쥐고 문 밖 으로 끌고 가서 뒤뜰에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누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부엌문과 방문을 닫아 걸었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누나 가 지나다니는 문과 창문 앞마다 쫓아다니며 앉아 있었다. 먼지를 털고 침대 정 리를 하다가 나를 본 누나는 창문마저 닫아 버렸다. 내가 볼 수 없도록 문이란 문은 온통 잠궈 버린 것이었다. "야, 이 악마야! 억센 털 달린 러시아 고양이야! 생전 사관 생도랑 결혼도 못 해라. 난 네가 가죽 장화를 닦을 여유도 없는 졸병 과 결혼하길 빌겠어.” 난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 다시 밖에 나가 놀기로 했다. 밖에는 나르디뉴가 장난을 치" 있었다. 그 애는 웅크리고 앉아 넋이 빠진 듯 땅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여태 내가 본 적이 없을 정도 로 큰 딱정벌레를 성냥갑에 묶어 수레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야---!”"굉장히 크 지. 안 그래?”"바꾸자. ”"뭐하고?”"그림 딱지하고.”"몇 장?”"두 장.”"야, 우습다, 우스워. 이런 딱정 벌레랑 딱지 두 장이라니.”"그까짓 딱정벌레는 우리 에드문드 아저씨네 담에도 잔뜩 있어.”"석 장 주면 바꾸겠어.”"좋아, 고르긴 없기다?”"그렇담 싫어. 최소 한 두 장은 골라야지 뭐.”"좋아.” 나는 여러 장 있는 ‘라우라 라 쁠란체'의 그림 딱지를 한 장 주었고 그 애는 ‘후드 기븐슨'과 ‘빠스머 루드밀러'를 골 랐다. 난 딱정벌레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났다. "빨리 해, 루이스. 글로리아 누나는 빵 사러 갔고, 잔디라 누나는 흔들의자에서 책 보고 있어.” 우리는 골마루를 뛰어나갔다. 난 동생이 오줌 누는 것을 도와주 었다. "실컷 눠. 대낮에 길에다 눌 수 없어.” 그리고 물독으로 가 그 애의 얼굴 을 씻겼다. 나도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엔 소리 없이 동생의 옷 을 갈아입혔다. 신발도 신겨 주었다. 양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어서 신길 필요가 없었다. 파란 양복의 단추를 채워 주고 빗을 찾아 머리도 빗겼다. 그래도 그 애 의 머리는 좀처럼 차분히 가라앉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야 할 것 같아 포마드 나 다른 기름을 찾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난 부엌으로 가 손끝에 돼지기 름을 약간 묻혀 왔다. 그리고 손바닥에 비벼선 바르기 전에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 내가 루이스 머리에 손을 문지르고 빗질을 하니 머리가 아주 단정해졌다. 조그만 머리통이 꼭 등에 양털을 뒤집어쓴 ‘성 조앙'처럼 보 였다. "헝클어지지 않게 가만히 서 있어. 나도 옷 입을께.” 바지와 흰 셔츠를 입 는 동안에도 난 동생만 바라보았다. "무지무지 귀엽다! 우리 방구 시에서 너만큼 예쁜 애는 없을 거야.” 나는 이듬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신어야 할 운동화를 신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루이스만 바라보았다. 아주 예쁘게 단장해 놓아서 그런 지 마치 어린 시절 예수의 모습과 혼동될 정도였다. 저 앤 선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장담할 수 있어. 그 앨 쳐다보는 사람들은... 나는 약간 가슴이 두근 거렸다. 글로리아 누나가 돌아와 상을 차리고 있었다. 빵을 사 온 날에는 포장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난 루이스의 손을 잡고 누나 앞으로 나갔다. "얘 아주 예쁘지, 고도이아? 내가 해 줬어.” 난 누나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누나 는 몸을 문에 기대고 위를 쳐다볼 뿐이었다. 누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 두 눈에 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너도 아주 예뻐.오, 제제!...” 누나는 무릎을 꿇고 내 머리를 가슴에 안아 주었다. "오! 산다는 게 어떤 이들에" 왜 이렇게 힘들기 만 할까?” 누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차림새를 고쳐 주었다. "너희들을 데 려다 줄 수 없다고 내가 말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제제. 난 할 일이 많아. 우 선 식사를 하면서 생각해 보자. 난 가" 싶어도 몸치장할 시간이 없어.” 누나는 손잡이 달린 컵을 갖다 놓은 다음 빵을 썰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애처로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까짓 고물을 얻자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하다니. 게다가 그 들이 가난뱅이에" 좋은 물건을 줄 리도 없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누나는 말했 다. "그래, 단 한 번의 기회일지도 몰라. 너희들이 간다니 말릴 수도 없고... 그런 데 어쩌지? 너희들은 너무 어려.” "내가 잘 데리고 갈게. 손 꼭 잡고 가면 되잖 아, 고도이아.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도 건널 필요가 없어.”"그래도 위험해.” "아냐, 괜찮아. 난 방향 감각이 있단 말야.”누나는 슬픈 속에서도 빙그레 웃었 다.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 주데?”"에드문드 아저씨께서, 아저씨 말씀에 루씨 아노는 방향 감각이 있대. 그리고 루씨아노가 작은 걸 갖고 있다면 난 더 큰 걸 갖고 있다고 하셨어.” "잔디라 언니랑 얘기해 볼게.”"시간 낭비야. 그냥 내버려 둬. 잔디라 누나는 소설만 보고, 애인 생각만 하며 지내는걸. 누나는 아무것도 상관하려 하지 않아.”"이렇게 하자.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만약 그쪽으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너희들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게.”그러나 늦을까 봐 빵도 먹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편 집배원 빠이샹 씨가 나 타난 것이었다. 그는 모자를 흔들어 보이며 누나에" 인사를 보냈다. 누나는 우릴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루이스에" 키스하고 내게도 키스해 주 었다. 누나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웃음을 띄운 채 말했다. "머리 까진 군인이랑 장화가 어떻다고...”"거짓말이었어. 진심이 아냐. 누나는 어깨에 별이 많이 달린 공군 소령과 결혼하게 될 거야.”"왜 너희들은 또또까하고 가지 않니?”"또또까 형은 거기 가기 싫대. 우리가 짐이 되니까 싫은 걸 거야.” 우리는 출발했다. 빠 이샹 씨는 우리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편지를 배달해 주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다다르자 그는 웃음 띤 얼굴로 말 했다. "얘들아, 난 매우 바쁘단다. 너희들 때문에 내 일이 자꾸 늦어져요. 이젠 위험한 길도 없으니까 너희들끼리 이쪽으로 쭉 가도록 해라.”그리곤 편지 보따 리를 둘러메고 급히 가 버렸다. 생각해 보니 화가 치밀었다. "바보 같은 녀석! 글로리아 누나에" 우릴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선 길거리에 두 어 린앨 내버 리고 가"다는 거야.” 나는 루이스의 손을 더 꽉 잡고 걸어갔다. 동생은 지친 것 같았다. 점점 걸음도 느려졌다. "가자, 루이스. 다 왔어. 장난감이 생기는 거야.” 좀 힘을 내는 것 같더니 루이스는 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다리 아파, 제제 형.” "조금만 업어 줄까, 응?” 루이스는 팔을 벌려 내게 업혔다. 마치 납덩이처럼 무 거웠다. 쁘로그레수 거리에 이르렀을 땐 오히려 내가 헐떡거렸다. "이젠 좀 걸 어.”교회의 종이 여덟시를 알리고 있었다. "어떻하지? 거기에 일곱시 삼십분까 지 가야 했는데. 하지만 걱정마. 사람이 많이 왔다고 해도 장난감은 남았을 거 야. 트럭으로 가득 가져 온다잖아.”"제제 형, 발이 아파.” 나는 동생의 발을 내 려다보았다. "신발 끈을 약간 느슨하게 하자.”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 다. 겨우 시장 근처에 다다랐다. 그리고 국민학교를 지나 방구 오락장으로 향했 다. 시간은 나는 둣이 흘러갔다. 우리가 거의 죽을 상이 되어 도착했을 땐, 거기 엔 아무것도 없었다. 장난감을 나눠 준 흔적조차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었다. 장난감을 쌌던 포장지만이 구겨진 채 길가에 널려 있었다. 길바닥은 찢어진 포 장지들로 지저분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우리는 오락장 문을 닫고 있는 꼬끼뉴 씨 앞으로 다가"다. 그리고 열에 들뜬 얼굴로 그 수위에" 물었 다. "꼬끼뉴 씨, 벌써 다 끝났어요?”"다 끝났다, 제제. 너무 늦게 왔구나. 사람이 홍수를 이뤘단다.” 그는 문을 절반쯤 닫더니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남 지 않았단다. 내 조카들 줄 것도 못 남겼어.”그리곤 문을 마저 닫고 길거리로 나왔다. "내년엔 좀더 일찍 오도록 해라. 요 잠꾸러기들아!”"걱정 마세요.”사실 은 걱정되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만 싶 었다. "여기 좀 앉자. 좀 쉬어야겠어.”"목말라, 제제 형.”"로젬베르크 씨 댁을 앞을 지날 때 물 한 컵 얻어 줄게. 한 컵으로도 둘이 실컷 마실 수 있어.” 그때 서야 동생은 모든 비극을 알아챈 듯했다. 말도 하지 않더니 입을 불쑥 내민 채 눈을 하얗게 뜨며 날 흘겨보았다. "걱정 마, 루이스. 너 내 달빛 망아지 알지? 내 가 또또까 형에" 손잡일 고쳐 달라고 부탁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 줄게.” 루 이스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울지 마, 울지 말아. 넌 왕이야. 아빠가 네게 루 이스란 세례명을 주신 건 그게 왕의 이름이기 때문이었어. 왕이 길바닥에세 울 수 있니? 더군다나 남들 앞에서, 응?” 나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꼬불꼬 불해진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이 다음에 크면,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 것처럼 멋진 차를 사줄게. 꼭 너만 갖게 하겠어. 자, 이젠, 왕들은 울지 않는 거 니까, 너도 울지 마, 응?” 내 가슴은 쓰라림으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꼭 사 준 다고 맹세할 게. 사람을 죽이거나 훔치지 않고...” 이런 얘길 하는 것은 내 맘속 의 작은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내 마음이 하는 소리였다. 왜 이래야만 할까? 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도 좋아하 면서, 왜 나만 싫어할까? 내가 악마 같은 아이라서 벌을 주는 건가? 만약 벌을 주는 거라면 왜 내 동생 루이스에" 선물을 주지 않는 거야? 이렇게 천사 같은 루이스에" 온당치 않은 일이잖아. 하늘에 사는 천사도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할 텐데... 그러자 바보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제 형, 울어?”"아냐, 그냥 나온 는 거야. 게다가 난 너처럼 왕도 아니잖아.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아무 데도 쓸모없는 아이잖아, 난 너무 나쁜 앤가 봐. 진짜 못된 애. 그래서 그래.” "또또까 형, 새집에 가 본 적 있어?”"아니 넌?”"틈나는 대로 자주 가.”"왜?”" 밍기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밍기뉴는 또 어떤 악마냐?”"내 라임오렌지나무 야.”"아주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냈구나. 넌 그런 데는 뭐가 있더라.” 형은 빙그 레 웃으며 ‘달빛'의 새로운 손잡이를 다듬질하고 있었다. "그래 어떻든?”"조금 도 자라지 않는 것 같아.”"그렇게 밤낮 쳐다보면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거야. 예 쁘게 됐지? 이런 손잡이를 만들어 달란 거지?”"응. 또또까 형은 뭐든지 잘 만들 잖아, 응? 형은 새장, 닭장, 울타리, 문까지 만들 수 있잖아.”"그건 누구나 다 나 비넥타일 맨 시인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야. 그래도 맘만 먹으면 너 도 배울 수 있어.”"난 못 할 거야. 그런 걸 하려면 ‘소질'이 있어야 해.” 형은 얘기를 잠깐 멈추고 에드문드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신 걸 부정하는 듯한 웃음 을 띠었다. 부엌에서는 진지냐 할머니가 포도주에 적신 빈대떡을 만들고 계셨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만찬이었다. 그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난 또또까 형에" 불평 했다."야, 그것마저 없을 뻔했어. 내일 점심에 과일 샐러드를 만들 돈을 주신 분 도 에드문드 아저씨란 말야.” 또또까 형은 방구 오락장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공짜로 내 일을 해 주었다. 최소한 루이스는 선물을 받을 수 있 는 것이었다. 낡고 쓰던 것이지만 내가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것ㅇㄹ. "또또까 형.”"말해 봐.”"크리스마스 날 정말 선물을 못 받을까?”"못 받을 거야.”"진짜 로 얘기해 봐. 형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그렇게 악질이라고 생각해?”"악질은 아냐. 문젠 네 피 속에 악마가 있다는 거야.”"이번 크리스마스엔 악마가 없어 지길 바래. 일생에 딱 한 번이라도 예전의 악마 소년 대신 착한 아기 예수가 태 어났으면 해.”"혹시 아니? 내년에는 태어날지. 뭐든지 알려고 하지 말고 나처럼 만 해”"어떻게?”"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잖아. 그래야 기분이 안 상해. 아기 예 수도 사람들 말같이 그렇게 좋은 애는 아냐. 신부님도 꼭 천주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하시진 않잖아?”형은 잠깐 말을 끊더니 자기 생각을 말해도 좋을지 망설 였다. "무슨 소리야?”"좋아. 얘기하지. 너는 아주 장난이 심해서 선물을 받을 만 한 자격이 없다고 치자. 그럼 루이스는?” "천사 같아.”"글로리아 누나는?”"마 찬가지야.”"그럼 난?”"좋아 근데 가끔 내 물건을 훔쳐 가. 그래도 착한 편이야. ”"랄라 누난?”"아주 세게 때려. 그렇지만 착해. 언젠가 내 나비넥타이를 만들 어 줄거야.”"잔디라 누난?”"그저 그래. 그래도 나쁘진 않아.”"엄만?”"아주 착 하셔. 날 때리실 때도 불쌍해서 살살 때리시거든.”"아빠는?”"응, 그건 모르겠 어. 아빠는 운이 없으셔. 내 생각엔 아빠도 나처럼 식구들 중에선 나쁜 사람인 것 같아.”"그러면 우리 식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잖아. 왜 그런데 아기 예수는 우리한테 잘해 주지 않느냔 말야? 파울랴베르 박사 댁엘 가 봐. 먹을 게 가득 찬 커다란 식탁이 있어. 빌라스보아스 댁도 그래. 라이문드빠스 박사 댁은 말도 마...” 난 또또까 형이 우는 걸 처음 보았다."그래서, 난 아기 예수가 가난한 사 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만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해. 자라선 소년 예수는 부자 들이 더 소용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젠 이런 얘기 그만두자. 이런 말 하면 죄가 된다.” 형은 풀이 죽어 더 이상 말도 못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망아지 만 쓰다듬었다. 얼마나 가슴 아픈 만찬이었던지 난 생각도 하기 싫었다. 모두들 말없이 식사 를 했고, 아빠는 빈대떡을 조금 맛만 보셨을 따름이었다. 아빠는 면도조차 하지 않으셨고, 새벽 미사에도 가지 않으셨다. 더 슬펐던 건 아무도 얘기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아기 예수의 탄생일이라기보다 추도식 날 같았다. 아빠는 모자를 집어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행복을 빈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나가 버리 셨다. 난 왜 아빠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못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지냐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에드문드 아저씨께 돌아가자고 말씀하셨 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또또까 형과 내게 오백 레이스짜리 은전을 쥐어 주셨다. 아마 더 주고 싶으신 데 돈이 없었던 같았다. 아니면 우리에" 주는 대신 그분 자 식들에" 주고 싶으셨는지도 몰랐다. 난 아저씨를 껴안아 드렸다. 그것이 크리스 마스 밤의 유일한 포옹이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숨어서 울고 계 시는 게 분명했다. 모두들 울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랄라 누나는 에드문드 아 저씨와 진지냐 할머니를 문까지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두 분이 천천히 걸어가 시는 걸 보고 중얼거렸다. "두 분 다 너무 늙으셔서 만사에 지쳐 버리신 것 같 아.” 제일 슬펐던 일은 교회의 종이 활기찬 소리로 밤을 가득 채워 주던 일이 었다. 게다가 몇 개의 폭죽이 이웃 사람들의 행복을 엿볼 수 있도록 하늘 높이 치솟아올랐던 일이었다.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접시를 닦고 있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울었는지 눈이 빨"져 있었다. 그래 도 우리에"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애들은 자야 할 시간이야.”그리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누나는 여기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슬픔을 맛 보아야만 하는 어른이었고 비 참한 사람들이었다. "이 불행의 원인은 아마 라이트 전기 회사가 불을 끊어 가, 대신 켜 놓은 등불이 죽어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래, 그래서 그럴 거야. 제일 행복한 사람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자는 꼬마 임금님이었다. 나는 그 애의 발끝 에 망아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난, 강물 이 흐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 귀여운 꼬마 녀석아..." 온 집안이 어둠에 잠겼을 때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빈대떡 맛있었지, 또또까 형?" ”모르겠어. 먹어 보지도 않았어." ”왜?"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아서 삼킬 수 가 없었어. 자자. 자고 나면 다 잊게 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스락거렸다. ”어디 가려고 그러니, 제제?" ”문밖에다 운동화 내놓으려고." ”내놓지도 마. 그게 차라리 나아." ”그래도 두고 올 테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또또까 형? 난 선물이 갖고 싶어. 딱 하나. 아주 새것으로 날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말야." 형은 내게 등을 보이며 베개 밑에 머리를 파묻어 버렸다. 잠을 깨자마자 난 또또까 형을 불렀다. "가 보고 올게. 무언가 있을 거야.”"난 가 보고 싶지도 않아.”"그래도 난 가 볼래.” 난 방문을 열어제쳤다. 그러나 기 대와는 달리 운동화는 텅 비어 있었다. 또또까 형이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내 가 뭐랬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 솟구쳤다. 저주인 것 같기도 하고, 반항심인 것 같기도 하고, 슬픔인 것 같기도 했다. 난 나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가난뱅이 아빨 갖고 있다는 건 굉장ㅎ 나쁜 일이야.” 그리고 운 동화 쪽으로 눈을 돌리다 슬리퍼를 발견했다. 아빠가 쳐다보며 서 계셨다. 아빠 의 눈은 슬픔으로 굉장히 커져 있었다. 눈이 얼마나 커졌는지 마치 방구 영화관 의 자막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너무나 슬퍼셔서 울 수조차 없으신 것 같았다. 아빠는 잠시 동안 그렇게 우리를 쳐다보시더니 조용히 지나가셨다. 우리는 말도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빠는 옷장 위에 놓인 모자를 움켜쥐고 또 나가 버리셨다. 그때서야 또또까 형이 내 팔을 때렸다."넌 나쁜 놈이야, 제제. 뱀 같은 녀석. 그러니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형은 입을 다물었다. "아빠가 거기 계신 줄 몰랐어.”"나쁜 녀석. 양심도 없는 녀석. 오래 전부터 아빠가 실업자라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서 난 어제 아빠 얼굴을 쳐다보며 음식을 삼킬 수 없었던 거야. 너도 이 다음에 아빠가 되면 이럴 때 얼마나 마음이 쓰라린지 알게 될 거 야.”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난 몰랐어, 형. 정말이야.”"내 곁에서 꺼져. 넌 역 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악질 녀석이야. 꺼져 버려!” 나는 길거리로 뛰어나가 아빠의 다리에 매달려 실컷 울고 싶었다. 내가 굉장히 잘못했으며, 난 역시 나쁜 애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난 계속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서 있었다. 잠시 후 난 침대에 앉아 여전히 비어 있는 운동화만 바라보았다. 운동화는 붕 떠 중심 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어휴! 하필이면 오늘, 왜 난 오늘따라 유난히 슬퍼하는 사람들에" 나쁜 짓을 했담? 점 심 식사 땐 무슨 염치로 아빠를 볼까? 난 과일 샐러드도 못 삼킬 거야.”아빠의 눈동자가 영화관의 자막처럼 공중에 매달려 날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 아도 그것은 점점 커져 나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팔꿈치에 구두닦이 상자가 닿 아서야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렇게 하면 아빠가 내 잘못을 용 서해 주실지도 몰라. 나는 구두통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 것은 다 써 버렸기 때 문에 형의 구두통을 열고 검정 구두약을 꺼내 내 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 에"도 얘기하지 않은 채 구두통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고 거리고 나섰다. 그건 마치 아빠의 눈을 아프게 하려고 아빠 눈 위를 걸어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른 새벽인데다가 자정 미사 때문에 어른들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는 아이들만이 장난감들을 비교하기도 하고, 자랑하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이런 일 들이 나를 더욱 풀죽게 했다. 저 애들은 모두들 착한 애들이겠지. 저 애들 중 아 무나 나 같은 짓을 한 애는 없을 거야. 나는 ‘재난과 굶주림' 상점에 단골 손님 들이 있나 보려고 다가"다. 이 상점은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열었다. 괜히 이런 가" 이름을 붙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곳에는 슬리퍼나 나막신을 신고 파자마 바람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구두를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침을 먹지 않았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괴로움에 비하면 배고픈 것은 아무것 도 아니었다. 난 쁘로그레수 거리로 나가 보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로젬베 르크 씨 댁 빵집 앞 인도에 앉아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은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난 아직 돈 한 푼 번 것이 없었다. 꼭 벌어야만 하는데 ... 더위는 점점 더 심해졌고 구구통 끈 때문에 어깨가 쓰라려 다른 쪽으로 바꿔 메야만 했다. 목도 타올라 시장에 있는 공동 수도로 가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 서 난 곧 내가 들어가" 될 국민학교 교문 계단에 주저않았다. 그리고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아니, 아예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이대 로 그냥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누군가 구두통을 특 치더니, 낯익은 목 소리로 불렀다. "이봐, 구두닦이! 잠자며 돈을 어떻게 번?” 난 믿을 수가 없어 얼굴을 들었다. 오락장의 수위 꼬끼뉴 씨였다. 그가 구두통에 발을 올려놓자, 난 우선 헝겊으로 문지르고 구두를 적셔 닦아 낸 후 구두약을 조심스레 바르기 시 작했다. "아저씨, 미안하지만 바지를 조금 들어올려 주세요.” 그는내 말대로 했 다. "오늘도 구두를 닦니, 제제?”"오늘처럼 돈이 필요해 본 적이 없어요.”"크리 스마스는 어떻게 지냈지?”" 그저 그랬어요.” 내가 구둣솔로 구두통을 두드리자 그는 발을 바꿔 올려놓았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다른 쪽을 마저 닦았다. 그리고 광을 냈다. 구두를 닦고 다 시 통을 때리자 그는 발을 내려놓았다. "얼마지, 제제?”"이백 레이스에요.”"왜 이백 레이스만 받아? 모두 사백 레이스를 받는데.”"일류 구두닦이가 되면 그렇 게 받겠어요. 그렇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못 받아요.” 그는 오백 레이스짜리를 꺼내 주었다. "아저씨, 나중에 주시겠어요? 거스름돈이 없는데요.”"거스름돈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너 가져라. 그럼 또 보자.” 그는 아마도 예전의 그 일 때 문에 내가 구두를 닦으러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자 다시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오후 두시가 넘으면서 오가는 사람도 많아 졌다. 그러나 돈은 더 벌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구두의 먼지를 털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누구 하나 돈 한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리오-상파울로 간 선 도로에 있는 전봇대에 기대서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가끔 외쳐 댔다. "구구 닦으세요. 손님!”"구두 닦으세요. 아저씨!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적선하세요.”멀리서 멋있는 차 한 대가 다가왔다. 나는 기대도 하지 않고 소리 쳤다. "이웃을 도우세요.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웁시다.” 잘 차려입은 부인과 어린애들이 차에서 내다보고 있었다. 부인은 동정하듯 말했다. "세상에 가엾어라. 저렇게 어린것이, 어쩜 저리 가난한 애가 있을까. 저 애한테 뭘 좀 주 세요. 아르뚜르.”그러나 남자는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훑어봤다. "저런 애들은 교활하고 나쁜 놈들이야. 저 녀석은 어리다는 것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하고 있어. ”"그래도 주고 싶어요. 이리 와라, 꼬마야.” 그리고 핸드백을 열어 창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고맙지만 싫습니다,부인. 전 거짓말하는 게 아녜요. 정말 돈이 필요해서 크리스마스 날 일하는 거예요.” 나는 구두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천천 히 걸어갔다. 오늘은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 차 문이 열리고 한 아 이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자 받아. 엄마가 갖다 주랬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믿으신대.” 그 애는 내 주머니에 오백 레이스짜리를 넣어 주고는 고맙다는 말 을 건넬 사이도 없이 가 버렸다. 단지 자동차가 부릉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네 시가 지나고 있었다. 아빠의 눈은 계속 나를 좇아다니며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십 또스땅을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 다. 어쩌면 ‘재난과 굶주림' 상점에서 싸게 해 줄지도 모르고, 나머지를 외상으 로 해 줄지도 몰랐다. 어느 집 울타리의 한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내 흥미를 끄 는 것이 있었다. 그건 구멍 난 여자용 검정 스타킹이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려 집어올렸다. 손아 감아 보니 무척 부드러웠다. 그래서 구두통에 집어 넣으며 이 렇게 생각했다. ‘뱀이 되기에 딱 알맞겠어.'그러나 난 나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다른 날 해야지. 오늘은 안 돼...' 빌라스보아스 댁 가까이 왔다. 그 집은 바닥 이 온통 시멘트로 되어 있고, 큰 정원도 있었다. 세르지뉴는 멋진 자전거를 타고 화단 사이를 돌고 있었다. 난 층층대에 얼굴을 내밀고 구경했다. 자전거는 붉은 색이었는데, 노랑과 하늘색이 케크로 된 부속들이 달려 있었다. 금속들은 눈시게 반짝거렸다. 세르지뉴는 날 보더니 자랑하듯 달리기도 하고, 커브도 돌고, 찍찍 소리가 나게 페달을 밟아 보였다. 그리곤 내게로 몰고 왔다. "맘에 드니?”"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 같아.”"자세히 보고 싶음 대문 가까이로 와.” 세르지뉴 는 또또까 형과 같은 학년으로 동갑내기였다. 그의 에나멜 구두와 흰 양말, 빨" 가죽 허리띠를 보니 맨발인 내가 무척 부끄러웠다. 게다가 구두는 모든 게 비칠 정도로 반짝거렸다. 그리고 아직도 아빠의 눈은 번뜩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 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왜 그러니, 제제? 너 이상하다.”"아냐. 가까이 가면 자전거는 더 예쁠거야. 형,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어?”"응.”더 자세히 얘기하려 고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와 대문을 열었다. "굉장히 많이 받았어. 전축 하나, 양 복 세 벌, 동화책 한 질, 색연필 한 다스, 또 장난감이 가득 든 큰 상자를 받았 다. 상자엔 프로펠러 달린 비행기도 있고, 하얀 돛단배도 있어...” 난 고개를 숙 인 채, 또또까 형 말대로 소년 예수는 부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니, 제제?”"아냐.”"참, 넌 많이 받았니?” 난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가로 저었다. "진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단 말야?”"우리 집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 아. 아빠가 아직도 실업자셔서.”"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넌 밤이나 개암나무 열 매, 포도주도 못 먹었단 말야?” "진지냐 할머니께서 해 주신 빈대떡과 커피만 마셨어.” 세르지뉴 는 한참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제제, 내가 만일 널 초대한다면 오겠니?” 나는 무슨 까닭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먹진 못했지만 맘이 내키지 않았 다. "들어가. 엄마가 한상 차려 주실 거야. 과자도 많아.”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벌써 너무 많이 괄시를 받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더러운 애를 집안에 들여선 안 된다.'"아냐, 고맙지만 싫어.”" 좋아. 그럼 내가 우리 엄마한테 밤이랑 과자랑 싸 달라고 할게, 동생 갖다 줄래? ” "아냐, 가져갈 수 없어. 난 일을 끝내야 해.” 세르지뉴는 그때서야 내가 깔고 앉은 것이 구두통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엔 구두를 닦을 사 람이 없을 텐데.”"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 겨우 십 또스땅 벌었어. 오백 레이스 는 동냥해서 얻은 거야. 아직 이 또스땅이 더 필요해.”"뭣에 쓰려고 그러니, 제 제?”"얘기할 수 없어. 근데 꼭 필요해.” 그는 빙그레 웃더니 아주 맘씨 좋은 생각을 해 냈다. "내 구두 닦아 줄래? 그럼 십 또스땅 줄게.”"그것도 곤란해. 난 친구한테는 돈을 안 받아.”"그런 내가 돈을 준다면 ... 응... 아니, 이백 레이스를 빌려 준다면?” "천천히 갚아도 돼?”"맘대로, 언제라도 좋아. 구슬로 갚아도 되 고.”"그렇다면 좋아.”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니켈 돈 두 닢을 꺼내 주었다. "난 돈이 많으니 걱정 마. 저금통에 꽉 차 있어.” 나는 자전거 바퀴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정말 멋있어!”"네가 커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태워 줄게. 좋지?” "응.”나는 구두통을 딸랑거리며 ‘재난과 굶주림' 상점으로 막 달 려갔다. 그리고 문을 닫을까 봐 돌풍처럼 날쌔게 뛰어 들어갔다. "아저씨, 고급 담배 남았어요?” 그는 내 손바닥에 놓인 돈을 보고 담배 두 갑을 집었다. "설 마, 네가 피려는 건 아니겠지, 제제?”뒤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소리야, 이렇게 어린 애한테...” 돌아보지도 않고 주인은 웃었다. "자네가 이 녀석을 몰라서 그래. 이 녀석은 못하는 짓이 없어.”"이건 우리 아빠 드릴 거 에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담뱃갑들을 굴려 보았다. "이게 좋을까요, 저게 좋 을까요?”"네 마움이지.”"아빠께 드리려고 하루종일 일했단 말예요.”"정말이냐, 제제? 아빠가 네게 뭘 해 주셨기에?”"가엾게도 못 해 주셨어요. 아빤 아직도 실 업자세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그는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아저씨께서 받으신다 면 어느 것이 좋겠어요?”"둘 다 좋을 거야. 이런 선물을 받는 아빠는 누구나 기 쁜 법이란다.”"그럼 이걸 싸 주세요.” 주인은 담배를 싸서 내게 주려다 머뭇거 렸다. 무슨 말인가 해 주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돈을 건네 주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고맙다, 제제.”"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 세요, 아저씨!”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부엌에선 희 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모두 외출했는지 아빠 혼자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계 셨다. 아빠는 턱을 괴고 식탁에 앉아 계셨다. "아빠!”"왜 그러니, 얘야?” 아빠 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어 보였다. "하루종일 어딜 갔었니?” 나는 구두 통을 아빠께 내보였다. 그리고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포장한 것 을 꺼냈다. "이것 보세요, 아빠. 아빠께 드리려고 아주 좋은 걸 샀어요.” 아빠는 그것이 얼마나 나가는지 아시는 듯 빙그레 웃으셨다. "맘에 드세요? 제일 좋은 거래요.” 아빠는 흡족한 얼굴로 담뱃갑을 뜯어 냄새를 맡으셨다. 그러나 피우려 하시진 않았다. "하나만 피워 보세요. 아빠.” 나는 성냥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 다. 그리고 성냥을 켜 아빠 입에 물린 담배에 갖다 대고, 아빠가 피우시는 걸 보 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분이 매우 착잡해졌다. 그래서 난 타다 남은 성냥개비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가슴도 쓰라 림으로 저며왔다. 온종일 날 애태우던 괴로움이 촉촉히 적셔 드는 것 같았다.나 는 수염이 난 아빠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단지... " 아빠... 아빠...!” 흐느낌으로 내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빠는 팔을 벌려 가 만히 날 껴안아 주셨다. "울지 마라, 얘야. 너 이렇게 마음이 약한 애여서야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날들이 한없이 많겠다.”"그게 아녜요. 아빠... 난 그런 뜻으로 말 한 게 아니었어요.” "안다. 알고 있어요. 잘 생각해 보니 네 말에도 일리가 있었 어. 그래서 화나지 않았다.” 아빤 날 약간 흔들어 주시고 식탁 저쪽에 있던 냅 킨으로 눈믈을 닦아 주셨다. "이렇게 하니까 훨씬 좋지?” 나는 손을 뻗어 아빵 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커다란 자막 같던 눈을 지워 버리듯 손가락으로 아빠의 눈을 가볍게 스쳤다. 만약 예전의 눈처럼 되지 않는다면 일생 동안 그 눈이 날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만 같았다. "자, 담배를 마저 피워야지.”"아빠... 아빠가 날 때리고 싶으시다면 난 반항하지 않겠어요. 막 때리셔도 좋아요.” 나 는 아직도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아니다. 괜찮다, 제제.” 아빠는 한숨을 쉬 시며 나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오셨다. "글로리 아 누나가 널 주려고 과일 샐러드를 남겨 두었구나.” 나는 좀체 삼킬 수가 없 었다. 아빠는 작은 숟가락으로 과일 샐러드를 먹여 주셨다. "괜찮지, 얘야?” 머 리를 끄덕였지만 처음 몇 숟가락은 쓴 맛이 나는 걱 같았다. 울음은 좀처럼 그 칠 수가 없었다. 4. 작은 새, 학교 그리고 꽃 새집과 새로운 생활, 작은 희망, 아주 소박한 희망. 화창한 어느 날, 이삿짐을 날라 주는 아리스띠데스 씨와 그의 조수가 이끄는 수레 꼭대기에 앉아 새집으로 향했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들어서자 기 분좋게 미끄러져 나갔다. 수레 곁으로 멋진 차가 지나갔다. "야, 포르투갈 인 마 누엘 발라다리스의 차가 지나가네.” 우리가 아스데스 거리를 가로지를 때 멀리 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아 리스띠데스 씨. 저기 망가라치바 열차가 가요.”"넌 별 걸 다 아는구나.”"기적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거리에는 따깍따깍 하는 말발굽 소리만이 들려 왔다. 난 이 수레가 새것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단단하고 값 이 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번 왔다갔다해야 이삿짐을 다 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나귀도 힘이 세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비위를 맞춰 주기로 했다. "굉 장히 좋은 수레를 갖고 계시네요. 아리스띠데스 씨.”"그저 쓸 만하지.”"당나귀 도 아주 예쁜데요. 이름이 뭐에요?”"씨가노.” 그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 았다. "오늘은 참 재수 좋은 날인가 봐요. 수레도 처음 타 보고, 포르투갈인 차도 봤고, 망가라치바의 기적 소리도 들었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리스띠데스 씨, 망가라치바가 브라질에서 제일 큰 기찬가요?”" 아니다. 그 노선에서만 제일 크단다.”그리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어른들을 이해 한다는 건 때때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 ... 새집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에" 열쇠를 넘겨 주었다. 그리고 되도록 공손하게 대하려고 애를 썼다. "아저씨, 제가 도와 드릴까요?”"우리 곁에 있으면 정신만 빼 놓을 게다. 가서 놀아라. 돌아갈 때 부 르마.” 나는 그의 말을 듣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밍기뉴, 이젠 늘 같이 있 게 됐어. 딴 나무는 네 발밑에도 못 따라올 만큼 예쁘게 해 줄게, 밍기뉴. 난 수 레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부드럽게 달리는지 꼭 영화에 나오는 포장마차를 탄 기분이었어. 밍기뉴,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얘기해 줄게, 응?”나는 흙담에 나 있는 잡초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저번 날 강 이름을 뭐라고 붙였지?”"아마조나스.”"아, 그래 아마조나스 저 강 하류엔 분명히 사나운 인디언이 잔뜩 탄 쪽배들이 많을 거야, 그렇지 밍기뉴?”"말도 마, 왜 아니겠어.” 겨우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아리스띠데스 씨가 문을 닫으며 나를 불렀다. "여기 있겠니, 아니면 같이 가"니?”"여기 있겠어요. 식구들도 저만 큼 오고 있을 거에요.”그리고 나서 나는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처음에는 체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웃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선지 난 점 잖게 행동했다. 하지만 어느 날 오후, 난 여자용 검정 스타킹을 다시 찾아냈다. 그리고 거기다 긴 끈을 연결해 늘어뜨렸다. 멀리서 줄을 잡아당기면 꼭 뱀 같았 다. 어두운 밤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에는 아무도 남의 일에 간섭 하는 사람이 없었다. 새집에서 새로 생긴 규칙이었다. 가족끼리 다정하게 지내던 일은 먼 옛날만 같았다. 나는 문 앞에 앉아 망을 봤다. 길에는 희미한 가로등불 이 비치" 있었고 커다란 상록수 울타리들이 구석구석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 다. 공장에는 밤일을 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었다. 그리고 밤일은 여덟시를 넘 긴 적이 없었다. 겨우 아홉시가 지났다. 난 잠시 공장 생각을 해 봤다. 새벽 다 섯시면 울리는 공장의 구슬픈 작업종 소리는 아침마다 내 기분을 망쳐 놓았었 다. 공장은 마치 아침에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밤에는 지친 사람들을 토해 내 는 괴물 같았다. 게다가 스코트필드 씨는 아빠를 쫓아내기까지 했으니 공장이 더더욱 싫었다. 기회다. 저기 어떤 여자가 오는데. 한 여자가 겨드랑이에 양산을 낀 채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뒤축을 튀겨 구두 소리 까지 들려주고 있었다. 나는 문 뒤로 달려가 숨었다. 그리고 뱀의 손잡이를 시험 해 보았다. 손잡이는 말을 잘 들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나는 그늘진 곳에 숨어 뱀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구두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가까워지 고, 가까워지고... 이때다! 나는 뱀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뱀은 천천히 길 한 복판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일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그 여자가 고함을 쳐 사람들을 깨워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핸드백과 양산을 집 어던지며 소리좌 낼 수 없다는 듯 배를 꽉 움켜잡았다. "악,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뱀이 나왔어요. 살려 주세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뛰어나왔다. 나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더러운 빨래들이 담긴 통 속 으로 들어가 안에서 뚜껑을 닫아 버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자의 비명 소리 도 계속 들려왔다. "오 세상에, 맙소사! 여섯 달 된 뱃속의 애기가 떨어지면 어 떡해요.” 난 놀란 상태를 넘어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계속 횡설수설하며 울고 있는 그녀를 안으로 데려왔다. "못 견디겠어요. 못 살 것 같 아요. 뱀을 보고 난 기절할 것만 같았어요.”"오렌지 잎을 담근 물을 좀 마셔 봐 요.” 좀 조용해진 것 같았다. 아니, 사람들이 몽둥이와 도끼 그리고 등불을 들 고 뱀을 쫓으러 갔기 때문에 조용해진 것이었다. 그까짓 헝겊으로 만든 작은 뱀 때문에 저렇게 법석을 떨고 야단이람? 불행하게도 우리 집의 잔디라 누나랑 엄 마랑 랄라 누나가 같이 간 것이었다. "뱁이 아닌데요, 여러분. 낡은 여자 스타킹 이에요.” 맙소사, 너무 당황해서 뱁을 끌어들이는 걸 잊어 버렸네. 이젠 녹초가 되겠군. 그러자 낯익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외쳤다. "바로 그 녀석 짓이 야.”이제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은 뱀이 아니었다. 그들은 침대 밑을 뒤져 보기 도 했으나 날 찾지 못했다. 그들이 내가 있는 곳을 스쳐갈 때, 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그들은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부엌에서 밖을 엿보기까지 했다. 그때 잔디라 누나가 뭔가를 생각해 낸 듯싶었다."나는 알겠어.” 누나는 결국 빨 래통 뚜껑을 열고 내 귀를 잡아올려 식당까지 끌고 갔다. 엄마는 이번엔 아주 세게 때리셨다. 마치 슬리퍼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맞는 횟수도 줄일 겸, 아픔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송아지처럼 소리를 질렀다."이 악마 같은 녀석아! 넌 여섯 달 된 애를 뱃속에 넣고 다는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랄라 누나는 비꼬는 투로 한마디 했다. "그런 각본을 짜시느라 길가에 오래 있었구만. ”"가서 자, 이 망할 놈아!”나는 엉덩이를 만지며 침대에 가 엎드렸다. 운 좋게 도 아빠는 카드 놀이 하러 나가시고 안 계셨다.. 나는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 데 는 역시 침대가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울음을 삭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나 살핀 후 뱀이 아직 그곳에 있으면 그걱 셔츠 밑에 숨 겨 올 작정이었다. 아직은 다른 곳에서 이용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뱀은 없었다. 그만큼 뱀과 똑같은 양말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진지냐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에드문드 아저씨와 할 얘기가 있었 다. 퇴직자에" 너무 이른 시각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할머니 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일찍 왔으니 아저씨는 트럼프 놀이를 하러 나가지도 않으셨을 테고, 소 변을 보러 나가지도 않으셨을 거야(아저씨는 늘 소변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신문을 사러 가지도 않으셨겠지. 아저씨는 응접실에서 카드로 새로운 재수패 떼 기를 하고 계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저씨?”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으셨다. 아니, 일부러 못 들은 척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선 누구나 말히기 싫을 땐 그렇게 한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어림도 없지. 아니, 게다가(난 이 게다가란 말이 참 좋다) 나하고 있을 땐 귀머거리 흉내란 어림도 없어. 난 아저 씨가 늘 하고 계신 흰색과 검정색 체크 멜빵이 드러나도록 아저씨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으응, 너 왔구나.” 아저씨는 나를 못 보셨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 아저씨, 이 점 이름이 뭐예요?”"시계떼기란다.”"아주 예쁜 이름인데요.” 나는 이미 카드 한 벌을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카드는 오직 (J)였다. 웬지 모르지만 잭크의 그림들은 왕의 종놈마냥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할 얘기가 있어요.”"다 끝나 같다. 조금만 기다려. 이걸 끝내고 얘기하자.”아저 씨는 카드를 자꾸 섞으셨다. "떨어졌어요?”"아니.” 아저씨는 카드를 높다랗게 쌓아 옆으로 밀어 놓으셨다. "자 됐다, 제제. 그래 할 얘기란 돈에 관한 거냐?” 아저씨는 손을 부비셨다. "구슬 살 돈 없으세요?”그러자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 셨다. "그럼 그렇지. 돈 한 푼이라, 어디 보자.”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말렸다. "농담이었어요, 아저씨. 그게 아녜요.”"그 럼?” 나는 예전부터 아저씨가 나의 조숙함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후에도 난 배우지 않고 더 많이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씬 노래부르지 않고도 노래하실 수 있으세요?”"잘 이해할 수가 없 는데?”"그러니까...”나는 ‘작은 오두막집' 한 소절을 불렀다. "그러니까 방금 노랠 불렀단 말이냐?”"그래요, 그거예요. 난 소리내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싱겁다는 듯이 웃으셨다. 그러나 난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궁금했다. "있잖아요, 아저씨. 제가 어렸을 땐 속으로 노래하고 생각하 는 건 내 마음속의 작은 새 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작은 새가 노래해 주는 거 라고요.”"네가 그런 새를 갖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데!”"아저씬 이해 못 하시는 군요. 근데 요즘은 약간 의심이 가요. 속으로 노래하고 볼 수 있는 때가 따로 있 나요?”아저씨는 내 얘기를 이해했는지 내가 아리송해 하는 것을 보고 웃으셨 다. "설명해 주마, 제제. 그게 뭔지 알겠니? 그건 네가 자랐다는 증거예요. 네가 더 크면 네가 말하고 보는 일들을 ‘생각'이라고 하게 된다. 네가 곧 들어간다고 했던 그 시기에는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생각'이다.” "철들 나이란 말씀이에 요?”"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땐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생각이 자라고 자 라서 네 머리와 가슴 전체를 돌보게 되는 거야. 그땐 눈이 다시 뜨여 인생을 아 주 새롭게 보게 될 게야.”"그 작은 새는 하느님이 어린애들에" 여러 가지 일들 을 알도록 도와주시려고 만드신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때는 그걸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해. 그러면 하느님은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름 꼬마에" 주시지. 아주 아름다운 일이지?”나는 내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해 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아름다운 일이에요. 이젠 가 볼게요.”"돈은?”"오늘 은 필요 없어요. 아주 바쁠 것 같아요.”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나는 거리로 나 왔다. 그때 아주 슬픈 옛일이 생각났다. 또또까 형은 굉장히 예쁜 참새를 갖고 있었다. 그 새는 어찌나 길이 잘 들었는지 형이 손바닥에 놓아 주면 손으로 올 라와 먹을 정도였다. 문을 열오 놓아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또또 까 형은 그 새를 햇볕에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는 내리쬐는 햇볕에 죽고 말았다. 또또까 형은 그 죽은 참새를 손에 올려놓고 얼굴을 비벼 대며 울 었다. 그러면서 형은 말했다. "난 다시는 새를 안 기를 테야.”나도 곁에 앉아 이 렇게 말했다. "또또까 형, 나도 안 기르겠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 곧장 밍기 뉴에"로 갔다. "슈르르까 , 뭘 좀 하려고 왔어.”"뭔데?”"잠깐만 기다려 봐.”"그래.”나는 밍기뉴의 허리 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우리가 뭘 기다리고 있지, 제제?” "구름이 한 점 지 나가기를.”"뭐 하려고?”"내 작은 새를 풀어 주려교”"그래, 그렇게 해. 새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우리는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어떠니, 밍기뉴?” 마 치 이파리처럼 들쭉날쭉한 흰 구름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밍기 뉴.”나는 흥분이 되어 벌떡 일어나 셔츠를 열어제쳤다. 그러자 내 메마른 가슴 으로부터 새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아라, 작은 새야. 높이 날아라. 훨훨 날아가 하느님 손끝에 앉아라. 하느님께서 널 다른 애한테 보내 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날 위해 그랬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야. 잘 가, 내 예쁜 자은 새야!” 웬지 가슴이 허전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 영영 가실 것 같지 않았다. "저것 봐, 제제. 새가 구름 가에 앉았어.”"나도 봤어.”나 는 머리를 밍기뉴 가슴에 기대고 구름이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작은 새와는 늘 친했는데...” 그리고 밍기뉴로부터 돌아섰다. "슈르르까.”"응?” "울면 흉해 보일까?”"우는 건 흉해, 바보야. 왜 그래?”"모르겠어.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봐. 가슴이 텅 빈 것 같애.” 글로리아 누나는 이른 새벽부터 나를 찾았다. "손톱 좀 보자.” 손톱을 보여 주 니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귀 좀 봐.” "아유 더러워, 제제.” 누나는 나를 물독 으로 데려가 수건에 비누를 적셔 깨끗이 닦아 주었다. "난 삐나제 족 인디언이 더럽게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자 이제 깨끗해졌으니 옷을 입자.” 누나 는 내 서랍을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헝클어뜨렸다. 그러나 마땅한 걸 골라내지 못했다. 뒤지면 뒤질수록 골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부 구멍이 났거나, 찢어졌고, 헝겊을 대지 않았으면 꿰맨 것들뿐이었다. "누구한테 물어 볼 필요도 없지. 이 서랍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지독한 장난꾸러긴가 알 수 있어. 이걸 입어 봐. 그래도 이게 제일 낫다.” 우리는 내가 앞으로 행하려는 기적들을 만나기 위 해 길을 떠났다. 국민학교에 가까이 가니, 많은 아이들이 등록을 하기 위해 엄마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제제, 앞으론 말썽부리지 마. 내가 한 말 꼭 명심해.” 우리가 들어간 교실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애들은 서로 바라보 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누나와 함께 교장실로 들어갔다. "아가씨 동생인가?”"네, 선생님. 어머니께선 시내에 일하러 가셔서 못 오셨어요. ” 여고장은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안경이 굉장히 두꺼워서 그런지 눈이 매 우 크고 까맣게 보였다. 우습게도 그녀의 얼굴에는 남자처럼 수염이 나 있었다. 그래서 교장이 됐는지도 몰랐다.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나이에 비해 허약해 서 그래요. 그래도 글은 썩 잘 읽어요.”"얘야, 너 몇 살이지?”"2월 26일이면 여 섯 살이돼요.”"그래. 고맙다. 카드를 작성해 볼까? 우선 부모님 성함을 말해 봐 요.” 글로리아 누나는 아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엄마 이름을 댈 때는 에스 떼파니아 데 바스콘셀로스라고만 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바로 잡았다. "에스떼 파니아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예요.”"뭐라고?”글로리아 누나는 얼굴이 빨"졌 다. "삐나제라고요. 어머니는 인디언의 딸이에요.” 나는 내가 이 학교에서 인디 언 이름을 가진 유일한 학생이 될 것이 자랑스러웠다. 글로리아 누나는 서명을 한 후에도 머뭇거렸다. "다른 할 얘기가 있나, 아가씨?”"저 교복에 관해 말씀드 릴 게 있어요...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실업자시고... 그래서 우린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교장이 내 키와 치수를 재 보기 위해 한 바퀴 돌아 보라고 했을 때 옷의 기운 부분이 드러나 가난은 여지없이 증명되 었다. 그녀는 종이에 치수를 적어 주며 에울라리아 여사를 찾아가 보라고 말했 다. 에울라리아 여사도 내 키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제일 작은 치수를 입혔는데 도 마치 털이 긴 병아리처럼 보였다. "이렇게 작은 애는 처음인데. 그러나 곧 크 겠지. 오, 아무튼 굉장히 작아.”"저희가 가져 가서 줄이겠어요.” 우리는 교복 두 벌을 선물로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봤을 때의 밍기뉴 얼굴을 상상해 보시라. 나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날마다 밍기 뉴에" 얘기해 주었다. "종소리가 얼마나 크다고. 그래도 교회 종소리만큼 크진 않아, 알겠니, 응? 애들이 전부 운동장에 모여 자기 선생님을 찾아가. 그러면 바 로 그 자리에 선생님은 우리를 네 줄로 서게 하시고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남기 고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그리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책상 앞에 앉지. 책상 엔 각자 소지품을 넣을 수 있어. 우리는 국가를 배운다. 왜냐하면 선생님 말씀이 조국의 국가를 알아야 훌륭한 브라질 국민이 되고 애국자가 될 수 있대. 노래를 완전히 다 배우면 불러 줄게, 밍기뉴, 응...?”매일 새로운 생활이었다. 싸움도 했 다. 그런 중에도 새로운 일들을 자꾸 알게 되었다. "얘, 그 꽃 갖고 어디 가니?” 그 앤 아주 깨끗한 여자애였다. 손에는 예쁘게 포장을 한 노트와 책이 들려 있 었다.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아 내렸다. "우리 선생님 갖다 드릴 거야.”"왜?”"선 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은 선생님께 꽃을 갖다 드리거든.” "남 자애도 그러니?”"선생님을 좋아한다면 그게 무슨 상관 있니?”"아하 그래?” " 응.” 그런데 우리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 꽃을 드리는 애는 하나도 없었다. 그 녀가 못생겼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팔뜨기만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못갱기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선생님은 점심 시간에 가끔 생과자를 사 먹으라고 내게 돈 울 주신 유일한 분이셨다. 유심히 다른 반을 살펴보았지만, 꽃병에 꽃이 없는 반 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우리 선생님 꽃병만 늘 비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큰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이것 봐, 밍기뉴, 오늘 난 박쥐를 붙들 었어.”"루씨아노라는 그 따위 것 말이니? 이 뒤뜰 구석에 와 살라고 네가 말했 던 박쥐 말야?”"아냐, 바보야. 굴러다니는 박쥐 말야. 난 말야, 차가 학교 근처 를 천천히 굴러갈 때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에 매달린단 말야. 그렇게 한참 달 리면 아주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 들어. 차가 모퉁이에서 다른 차가 오나 보려 고 천천히 가면 깡총 뛰어오르는 거야. 빨리 달릴 때 하면 엉덩이도 찌ㅊ고 팔 도 부러져.”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 노는 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계속 얘기해 주 었다. 내가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자 밍기뉴는 굉장한 자랑으로 한 껏 부풀어 있었다.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내가 글을 제일 잘 읽는 학생이라고 하셨다. 가장 우수한 학생! 그런데 난 덜컥 의심이 났다. 우선 에드문드 아저씨 께 내가 진짜 우수한 학생인가 여쭤 봐야지. "다시 박쥐 얘길 해 줄게, 밍기뉴. 얼마나 재미있냐 하면, 너를 말처럼 타고 달릴 때 같았어.” "하지만 나를 말로 탈 때는 위험하지 않잖아?”"진짜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야, 안그래? 넌 진짜로 미친 듯 서부를 달리며 물소와 들소 사냥을 하는 건 아니잖아, 잊었니?” 그 애 는 말로 날 당해 본 적이 없었고 말다툼을 할 재간도 없었기 때문에 내 말을 인 정해야만 했다. "한 가지 또 있는데, 밍기뉴. 애들이 넘보지 못하는 차가 하나 있 어. 뭔지 아니? 포르투갈 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차야. 넌 그렇게 흉측한 이름 을 들어 본 적이 있니? 아주 나쁜 이름이지? 마누엘 발라다리스...”"그래. 내게 도 생각이 있어.”"네가 생각한 게 뭔지 내가 모를 줄 아니? 나도 알고 있어. 하 지만 당분간은 안 돼. 조금 더 연습한 후에라야 해. 더 연습을 해야겠어.”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꽃을 들고 선생님 앞에 나타났다. 선생님은 기뻐하시며 날더러 기사님이라고 말해 주셨다. "밍기뉴,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기사란 왕자처럼 교육을 잘 받은 신사를 가리키는 말이야. ” 나는 수업에 점점 더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에선 날 욕하는 사 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글로리아 누나는 아마 내가 서랍 속에 악마를 가둬 버렸나 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딴 아이가 된 것 같다고 말해 주 었다. "너도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니, 밍기뉴?”"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해.”"그 래? 그렇다면 비밀 얘길 하려고 했는데 못 하겠군.” 나는 밍기뉴에" 화를 냈다. 그래도 내 화가 오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그 애는 신경조차 쓰지 않 았다. 비밀 얘기란 밤에 일어날 일이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들떠 있었따. 겨우 공장의 사이엔이 울리고 사람들이 나왔다. 여름날의 낮은, 밤을 천천히 끌고 오 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도 얼마나 늦게야 다가오는지 몰랐다. 나는 뱀 장 난도, 다른 장난도 칠 생강을 않고 문 앞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잔디라 누나 는 이상하게 생각되는지 녹색 풋과일을 먹어 배가 아프냐고 물어 보기까지 했 다. 엄마 얼굴이 길모퉁이에 나타났다. 분명 엄마셨다. 이 세상에서 엄마를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축복받으세요, 엄마.” 나는 엄마의 손에 키스했다. 거리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엄마의 피곤한 모습을 알 아볼 수 있었다. "많이 피곤하시죠, 엄마?”"그래 얘야, 기계가 어떻게나 더운 열 을 뿜어 대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도시락 바구니를 제게 주세요. 엄만 피곤하 시니까요.”나는 빈 도시락이 든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오늘도 장난 많이 쳤 니?”"조금밖에 안 쳤어요, 엄마.”"그런데, 왜 날 기다렸을까?” 엄마는 이미 눈 치를 채고 계셨다. "엄만, 엄만 그래도 조금은 날 사랑하시죠?” "다른 애들과 똑같이 너도 사랑한다. 그런데, 왜 그러니?”"엄만, 나르딘뉴 아시죠? 저,‘게발' 이라고 불리는 애 말예요.” 엄마는 빙그레 웃으셨다. "기억난다.”"됐어요, 엄마. 그 애 엄마가 그 애한테 새 양복을 하나 사 주셨거든요. 초록색에 흰 줄이 있는 거요. 그런데 목에 단추를 잠그게 돼 있는 조끼가 있잖아요, 그게 작아졌대요. 그렇지만 그걸 물려 입을 동생도 없잖아요. 그래서 그걸 팔려고 한대요. 엄마가 사 주시겠어요?”"한데, 얘야! 우리는 형편이 어렵잖니?”"그렇지만 두번에 나눠 서 지불해도 된대요. 그렇게 비싸지도 않잖아요. 장식 값은 안 받는 셈이에요.” 나는 기회주의자 야곱의 말을 자꾸 빌려 썼다. 엄마는 잠시 생각해 보시는 것 같았다. "엄마, 난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는 학생이에요. 선생님께서 저더 러 특출나게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사 주세요, 엄마. 새옷을 입어 본 게 얼마나 오래 전 일이라고요...”엄마가 계속 잠자코 있어서 나는 조바심이 났다. "엄마, 그 옷이 아니면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시인의 옷을 못 입어 볼 거예요. 그걸 사 주시면 랄라 누나가 비단 헝겊으로 큰 나비넥타일 만들어 줄 거예요.”"알았다, 얘야. 일주일 동안 밤일을 하고 사 주마.” 나는 엄마 손에 다시 키스했다. 그리 고 그 손에 내 얼굴을 댄 채 집까지 왔다. 이렇게 해서, 난 시인의 옷을 입게 되 었다. 어찌나 예뻤는지 에두문드 아저씨께서 사진을 찍으러 데려가 주시기까지 하셨다. 학교.꽃.한 송이 꽃. 학교... 모든일이 순조로웠다. 고도프레도가 우리 교실로 들 어와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 실례를 청하고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단지 병에 꽃힌 꽃을 가리킨 것뿐이었다. 그 가 돌아가자, 선생님께서는 슬픈 표정으로 날 쳐다보셨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 님은 나를 부르셨다. "할 얘기가 있다. 체체! 잠깐 기다려라.” 선생님께서는 어 떻게 말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는지 한없이 핸드백만 뒤적이셨다. 아마 핸드 백을 정리하는 척하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신 것 같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 신 듯했다. "고도프레도가 너에 대해 아주 나쁜 얘길 해 주었다. 제제, 그게 사실 이냐?”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꽃에 관한 얘기였죠? 그럴 거예요, 선생님.”"어 떻게 그런 짓을 했니?”"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리지뉴 씨 댁 정원ㅇ로 들어갔 어요. 대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재빨리 들어가 꽃을 땄어요. 하지만 꽃이 굉장히 많아서 표시도 안 났어요.”"그렇겠구나. 그래도 그건 옳은 일이 아니다. 그게 대 단한 일이 아니라 해도 도둑질인 건 사실이잖니?”"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세실 리아 선생님. 이 세상은 하느님 것 아녜요?” 이 세상 모든 게 하느님 것이잖아 요. 그러니까 그 꽃들도 역시 하느님 거예요." 선생님은 내 논리적인 말에 깜짝 놀라셨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 우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꽃 을 사려면 돈이 들고요... 그리고 난, 선생님 꽃병만 늘 비어 있는게 마음 아팠어 요." 선생님은 마른침을 삼키셨다. ”가끔, 선생님께선 제게 생과자를 사 먹으라 고 돈을 주시잖았어요. 그렇잖아요?..." ”매일 주고 싶었지만 네가 종종 숨어 버 렸어..." ”전 매일 받을 수가 없었어요." ”왜?" ”점심을 싸 오지 못하는 애가 또 있었어요." 선생님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슬쩍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은 ‘올빼미'를 아세요?" ”알겠다. 도로띨리아 말이구나." ”네, 선생 님. 도로띨리아는 저보다 더 가난해요. 다른 여자애들은, 그 애가 깜둥이에다 가 난뱅이라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앤 매일 구석에 혼자 웅크리 고 앉아 있기만 해요. 전 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산 생과자도 그 애하고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은 이번엔 아주 오랫동안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때로 저 대신에 그 애에" 돈을 주셔야 했어요. 그 애 엄마가 남의 빨래를 해 줘서 먹 고 살아요. 애들이 얼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모두 아직 어린애들이래요.우리 진지냐 할머니께서도 토요일마다 그 애 집에 쌀과 콩을 갖다 주세요. 그래서 저 도 엄마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과 나눠 먹으며 살려고 그 애와 나눠 먹은 거예 요." 선생님은 아예 눈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다. ”전 선생님께서 우시라고 그렇게 한 건 아니에요, 선생님. 더 이상 도둑질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겠어요, 선생님."”"그래서 우는 게 아니다. 제제, 그만 가 봐라. ” 그러시고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넌 아주 고운 마음씰ㄹ 가졌구나, 제제. 그 리고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 "맹세해요. 하지만 선생님을 속이고 싶진 않아요. 전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애가 아녜요. 선생님께서 집에서의 절 모르셔서 그래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내겐 네가 아주 고운 애란다. 앞으론 꽃을 가져 오지 않아도 된다. 네가 얻어 오는 거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약속하겟니?”"약속해요, 선생님. 하지만 꽃병은요? 늘 비어 있어야 하나요?”"이 꽃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을 거야. 난 꽃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게 꽃을 갖다 준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나 의 학생이었다고. 그럼 됐지?”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손을 놓아 주셨다. "잘 가 라, 황금의 마음씨를 가진 아이야...” 5. 네가 감옥에서 죽는 것을 보겠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중에 가장 쓸모있는 건 ‘요일'이었다. 요일들 중에서도 제일 기분 좋은 날은 ‘그'가 오는 화요일이었다. 나는 그가 한 주는 역 건너편 으로 가" 다음주 화요일에는 우리 동네로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난 화요일 마다 수업을 빼먹었다. 난 또또까 형이 눈치를 못채도록 아주 조심했다. 그러지 않으면, 집에다 일러바치지 않도록 구슬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의 종이 아홉시를 치" 나서야 나타나쏘, 난 일찍 나와야 했기 때문에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길에서는 눈에 뜨일 위험이 전혀 없었다. 난 우선 교회에 들 어가 성인들의 초상화를 구경했다. 촛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어서 그런지 벽에 걸린 그림들이 약간 무서워 보였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성인들도 번쩍거렸다. 나는 늘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하는 성인이 되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 었다. 내가 성녀들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자까리아스 씨가 촛대 위의 타다 남 은 초들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있었다. 그리고 타다 남은 초를 책상 위에 산 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까리아스 씨?” 그는 하던 일을 멈 추고 안경을 코끝에 내려놓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뒤돌아보았다. "잘 있었니, 얘 야!”"제가 도와드릴까요?” 나는 집어삼킬 듯 초들을 바라보았다. "방해만 될 게야. 오늘은 학교 안 가니?”"갔었어요. 근데 선생님께서 안 오셨어요. 이가 아 프시대요.”"아, 그래!” 그는 돌아서서 나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안경을 다시 콧등에 얹었다. "너 몇 살이냐, 얘야?”"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아니 여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이에요.”"그래, 다섯 살이냐 아니면 여섯 살이냐?” 난 학교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다. "여섯 살이에요.”"여섯 살이면 교리 문답 을 배울, 딱 알맞은 나이구나.”"저도 배울 수 있어요?”"그럼 왜 못 해? 매주 목요일 오후 세시에 오면 된다, 알겠니?”"글쎄요. 아저씨께서 타다 남은 초 도 막을 주신다면 오겠어요.”"그 도막난 초로 뭘 하게?” 악마가 또 날 충동질했 다. 그래서 난 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연줄에 칠하려고요. 그러면 줄이 강해 진대요.”"그럼 가져가"라.” 나는 초 도막들을 주워 모아 책과 구슬이 들어 있 는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웬지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됴, 자까리아스 씨.”"그 럼 오는 거다, 응? 목요일이다.” 나는 날 듯이 뛰어나갔다. 아직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 나는 오락장 앞으로 달려가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있는 힘을 다해 길바닥에 초를 칠했다. 그리고 오락장의 닫혀 있는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누가 제일 처음 넘어지나 보기 위해서였다. 한참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맥이 빠졌 다. 그런데 갑자기 철커덩 하는 소리가 났다.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꼬린냐 아 줌마였다. 한 손에 손수건을 쥐고,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문을 나선 그녀는 교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에구머니나!” 바로 그 아줌마는 엄마의 친구였고 아줌마의 딸 나난제니아는 글로리아 누나의 친한 친구였다. 나는 보고 싶은 생 각이 없어 길모퉁이로 달려갔다. 아줌마는 바닥에 뒹굴며 욕을 해댔다. 아줌마가 다쳤는가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줌마가 욕하는 것을 보니 조금 다 치기만 한 것 같았다. "이 주위를 쏘다니는 어떤 망나니 녀석 짓일 거예요.” 나 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뒤에서 어떤 손 하나가 내 바구니늘 꽉 붙 잡았다. "네 짓이지, 제제. 그렇지?” 불꽃처럼 빨" 머리를 한 오르란도 씨였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이웃에 산 사람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너냐, 아니냐?”"우리 집에 얘기하지 않으시겠죠?”"안 하마. 이미 와 봐라, 제제. 아직 초들이 남았으니 또 그런 짓을 할 테지. 다시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내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날 놓아 주었다. 나는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시장 근처를 돌아다녔다. 로 젬베르크 씨 댁 빵집 앞을 지날 때는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로젬베르크 씨?” 그는 단지 ‘안녕'하고 쌀쌀하게 말했다. 생과자도 주지 않았다. 망할놈의 자식! 랄라 누나와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아참, 벌써 그가 왔겠네.” 시계는 이미 아홉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어기는 일이 절대 없었다. 나는 발걸 음을 재촉했다. 그는 벌써 쁘로그레수 거리를 접어들어 모퉁이에 멈춰 섰다. 그 리고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고 왼쪽 어깨에 조끼를 젖혀 올렸다. 아, 멋있는 체크 셔츠를 입었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셔츠를 입어야지. 게다가 그는 목에 빨" 머플러를 매었다. 그는 모자를 뒤로 젖히더니 거리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만 한 굵은 목소리를 냈다. "오세요, 여러분! 새 소식이 왔습니다.!” 그 바이아 원 주민의 음성은 매우 아름다 웠다."금주의 히트 곡은 ‘클라우디오노르'!‘빼드랑'! 쉬꼬 비올라의 최신 곡도 있어요. 비센때 셀레스띠노의 최신곡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최신 음악을 배웁 싣.” 그의 말은 꼭 노래처럼 아름다워서 나는 황홀할 지경이었다. 내가 부르고 싶은 곡은 ‘화니'였다. 그가 부를 때 배운 곡이었다. ‘네가 감옥에서 죽는 것 을 보겠어' 하는 대목에 이르면 얼마나 멋있는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클라우디오노르'를 부르기 시작했다. 망고나무 언덕의 삼바 축제에 갔었네. 한 흑인 여인이 나를 유혹했지. 나는 갈 수 없어. 매맞을까 무서워. 당신 남편은 힘이 세니 날 죽일지도 몰라. 나는 클라 우디오노르처럼 그런 짓은 못 해요. 내 식구들을 위해 차라리 노동자가 되겠어 요. 그는 노래를 멈추고 다시 선전을 시작했다. "자! 일 또스땅에서 사백 레이스까지 나가는 팜플릿들이 있습니다! 육십 여 곡의 새 노래" 수록돼 있어요! 최신 히트 곡인 탱고도 있습니다.” 그린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니'를 부르기 시작했 다. 그녀가 혼자 있는 틈에 이웃을 부를 여유도 주지 않고 양심도 온정도 없는 너는 화니를 찔렀지. 그때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했는지 단단히 굳은 마음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운 마음씨의 가엾은 화니여... 나는 네가 고통을 받도록 하느님께 빌겠어. 나는 네가 감옥에서 죽는 것을 보겠어. 양심도 온정도 없는 너는 화니를 찔렀지. 고운 마음씨의 가엾은 화니여. 사람들은 뛰어나와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팸플릿을 사 갔다. 나는 팸플릿에 실린 ‘화니'의 사진 때문에 그의 곁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미 소를 함빡 띄운 채 나를 돌아다보았다. "하나 사겠니, 얘야?”"아뇨, 돈이 없어 요.”"다음에 또 오마.”그리고 보따리를 들고, 소리치며 걸어갔다. "‘뻬드랑'! 왈츠예요! ‘담배를 피우며 기다려'!도 있고 ‘잘 있게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최신 히트 곡 탱고 '왕의 밤'도 있습니다. 시내에선 이 노래를 많이 부른답니다.! '하늘의 빛'은 굉장히 아름다운 노랩니다. 가사도 멋있어요.!" 그는 가슴을 펴고 서 노래를 불렀다. 하늘의 빛을 그대 눈동자에 간직하고 있군요. 나도 좀 보여 줘요. 우주에 떠도는 별들의 반짝임을. 하느님께 맹세코, 그런 빛은 하늘에도 없답니다. 당신의 눈빛 만큼 황홀한 빛은 없답니다. 오, 그대 눈빛을 보니 옛일이 생각납니다. 달빛 파 도 속의 이루어진 사랑의 슬픈 이야기가. 축복만 보이는 눈동자여! 사랑하는 것 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말할 수가 없답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선전을 하며 팔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가까이 오 라고 손짓했다. "이리 와 봐라, 꼬맹아.”나는 빙그레 웃음을 띄우며 다가"다. " 날 따라다니겠지, 돌아가"니?” "따라다닐래요. 이 세상에서 아저씨처럼 노랠 잘 부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는 내가 아첨떤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날 때 리지는 않았다. 나는 잠시 그가 틈을 타 쉬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그 기회를 이 용하기로 했다. "넌 꼭 뱀처럼 따라다닌단 말씀이야.”"전 아저씨가 비센떼 셀레 스띠노나 쉬꼬 비올라처럼 잘 부르시나 듣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런데 역시 잘 부르세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니, 꼬맹아?”"네. 라이문드 빠스 박사 아들 집에서 축음기를 들었어요.”"그러면 그 축음기가 낡았 든지, 아니면 바늘이 못 쓰게 돼서 그랬을 게다.”"그렇지 않아요. 축음기는 새로 산 것이었어요. 사실은 아저씨가 잘 부르시는 거예요. 또 이런 생각도 했어요.”" 얘기해 봐가.”"제가 계속 아저씨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괜찮죠? 아저씨서 팸플 릿이 얼만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노랠 부르시고 팸플릿은 제가 파 는 거예요. 사람들은 어린애에" 사길 더 좋아하거든요.”"나쁜 생각은 아닌데, 꼬 맹아. 하지만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다. 네가 원하는 일이니까 좋다만 네게 줄 돈은 없단다.”"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그럼, 왜?”"노래부르는 게 좋아서 그래요. 배우고 싶고요. 전 이 세상에서 ‘화니'가 제일 멋진 것 같아요. 그러니 까 만약 아저씨께서 다 파시고,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낡은 팜플릿을 우리 누 나한테 갖다 줄 수 있도록 주시기만 하면 좋겠어요.”그는 머리털이 가라앉아 있는 머리를 긁었다. "제겐 글로리아라는, 처녀가 다 된 누가" 있어요. 누나에" 갖다 줄 수만 있다면 그만이에요.”"그럼, 같이 해 보자.” 그래서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며 팔게 되었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나는 배워 나갔다. 정오가 되 자, 그는 시름에 잠긴 모습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런데 넌 점심 먹으러 안 가 니?”"우리 일이 끝나면 갈 거예요.”그는 또 머리를 긁적거렸다. "날 따라와라. ” 우리는 세레스 거리에 있는 상점에 들어갔다. 그는 보따리 한구석에서 커다 란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리고 허리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칼을 꺼내 샌드위치를 잘라 한 쪽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술 한 모금을 마시고는 목을 축이기 위해 레 몬 주스를 샀다. 그는 그게 반주라고 말했다. 샌드위치를 먹는 그를 유심히 살펴 보니 아주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이봐, 꼬맹아. 넌 내게 아주 큰 행운을 안겨 주었어. 내겐 너 같은 배불뚝이 꼬마 친구가 많지만 너처럼 날 도와줄 생각을 한 꼬마는 없었단다.” 그는 레몬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너 몇 살이냐?”"다 섯 살, 아니 여섯 살, 아니 다섯...”"다섯 살이냐,여섯 살이냐?”"아직 여섯 살이 안 됐어요.”"하지만 넌 참 영리하고 착한 아이다.”"그럼 다음주 화요일에도 저 와 함께 일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원한다면.”"좋아요. 그래도 누나랑 의논해 보고요. 누나도 이해할 거예요.” 내가 가 본 적이 없는 역 건너편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신이 났다. "내가 그곳에 간다는 건 어떻 게 알았지?” "화요일마다 전 아저씨를 기다렸어요. 한 번은 오시고 한 번은 안 오셨어요. 그래서 아마 기찻길 건너편으로 가시나 보다 생각했죠.”"너 굉장한 아이로구나, 이름이 뭐냐?”"제제예요.”"난 아리오발도다. 잊지 마.”그는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되자면서 못박힌 굵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글로리아 누나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제제, 일주일에 하루, 수업은 어떡하니?" 나는 누나에게 노트를 보여 주었다. 내 노트는 깨끗이 정리되 어 있었다. 게다가 성적도 매우 좋았다. 산수 노트도 물론 잘 정리되어 있었다. " 그리고 읽기는, 고도이아, 내가 일등이야." 그런데도 누나는 결정을 못 내렸따. " 난 금방 배워. 바보 같은 애들이나 그걸 배우려고 시간을 많이 쓰지." 누나는 웃 었다. "그건 말뿐이야, 제제." "하지만 고도이아, 노래를 배우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어. 내가 얼마나 많을 걸 배웠나 볼 테야? 에드문드 아저씨도 나중에 가르쳐 주신걸, 자 봐. '짐 하역꾼''우주''항성''저주받다' 게다가 일주일에 팸플릿을 하 나씩 가져다 누나한테 세상에서 제일 멋진 노래를 가르쳐 줄 텐데." "그렇긴 해. 그래도 문제는 있어. 네가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을 먹으러 오지 않는 걸 아빠께 서 아시게 되면 어쩌지?" "아빠는 모르실 거야. 어짜다 물으시면 거짓말하지 뭐. 누나가, 진지냐 할머니 댁으로 점심 먹으러 갔다고 하든지 나난제니아한테 전할 게 있어 심부름시켰다고 해. 거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면 되잖아." 휴! 길바닥 에 초 칠한 게 나라는 걸 그 아줌마가 모르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지. 누나는 내 가 심한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허락했다. 만일 그렇게 생각지 않았으면 날 때려 주었을 것이다. 그 후부터 수요일이면 오렌지나무 밑에 앉아 노래부르는 것이 내 기쁜 일과였다. 화요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왔다. 화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왔다. 화요일이면 난 늘 역에서 아리오발도 씨를 기 다렸다. 기차를 놓치지 않는 한 그는 꼭 여덟시 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저곳 을 돌아다니며 가져온 것을 팔았다. 나는 빵집 앞을 지나는 것이 좋았고 역 층 층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곳은 구두닦기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러나 글로리아 누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뒤에서 순경 이 달려와 구두통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게다가 기차가 다녀서 위험했기 때문 이었다. 다리 위에 놓은 기찻길을 건너갈 때에 나는 늘 아리오발도 씨의 손을 잡고 건넜다. 그는 그곳에서 바삐 서둘렀다. 나는 '화니' 다음으로 사람들이 좋 아하는 곡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는 공장의 정원이 보이는 역의 담 옆에 앉았다. 거기서 그는 팸플릿을 펼치고 첫구절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좋지 않다 고 하면 그는 다른 곡으로 바꿨다. “이 곡은 신곡 '말괄량이'야.” 그는 새 노 래를 불러 보였다. “다시 한 번 불러 주세요.” 그는 마지막 소절을 다시 불렀 다. “이거예요. 아리오발도 씨. '화니'보다 더 좋아요. 이 탱고라면 몽땅 팔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햇빛과 먼지로 가득 찬 거리로 나섰다. 여름을 알리는 예 쁘고 작은 새들은 바로 우리 같았다. 이른 아침,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흘린 듯 여기저기서 창문들이 열렸다. “이번 주의, 이번 달의, 그리고 올해의 히트 곡이 될 노래는 쉬꼬 비올라의 '말괄량이'입니다.” 은빛 달이 떠오릅니다. 세레나데의 노랫가락은 창가를 스쳐 연인의 잠을 깨웁니 다. 정든 멜로디, 그 노랫가락을 낭랑한 기타 줄에 실어 그의 가슴속에 싹트는 마음 을 연인에게 고백합니다. 그가 잠시 노래를 멈추고 내게 머리를 두 번 흔들어 보이면 나는 가느다란 목소 리로 마저 불렀다. 나의 넋을 빼앗아 간 아름다운 여인이여. 아!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대를 제단 위에 받들어 모시리라. 그대는 내 꿈속의 영상이며 나의 등불입니다. 그대는 일 할 필요가 없는 말괄량이랍니다. 노래는 아주 그만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들 달려와 사 갔다. 나는 사 백 레이스와 오백 레이스짜리 팜플릿을 팔고 있었는데, 소녀들은 무슨 곡을 살 지 미리 알아차릴 정도였다. “아가씨, 잔돈 여기 있습니다.”“그건 너 사탕 사 먹어.” 나는 아리오발도 씨의 말투를 닮아 가고 있었다. 정오면 늘 그랬듯이, 우리는 제일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와 딸기 주스를 마셨 다. 나는 주머니에서 거스름돈을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여기 있어요. 아리 오발도 씨.” 그의 앞으로 은전을 밀어 놓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넌 멋있는 애로구나, 제제.” “아리오발도 씨, 왜 전엔 절 꼬맹이라고 부르셨 어요?” “내 고향 산따바이아에선 키 작고 조그만 아이를 그렇게 부른단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나서 트림을 하기 위해 입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내게 양해를 구하고 이쑤시개로 이를 쑤셨다. 그러나 돈은 여전히 집지 않았다. “내 가 생각해 봤는데, 제제. 오늘부터 거스름돈을 네가 가져라, 어차피 우린 듀엣이 니까.”“듀엣이 뭔데요?”“두 사람이 같이 노래하는 걸 말해.”“그럼 '마음좋 은 이'를 사도 돼요?”“돈은 당신 것이오, 알아서 하십시오.”“고맙소, 친구!” 내가 그의 흉내를 내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생과자를 먹으며 그를 쳐다보 았다. “진짜 제가 듀엣인가요?”“그래 진짜야.”“그럼 제가 '화니'의 마음 대 목을 부르게 해 주세요. 아저씨께서 앞 부분을 크게 부르시면 난 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목소리로 거기를 부를게요.”“별로 나쁜 생각은 아닌데. 그래라, 제제.”“그럼 점심 먹고 한 바퀴 돌아요.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 준 '화니'로 시 작해요.”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서서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그 사고가 났을 때도 우리는 '화니'를 부르고 있었다. 마리아 다 펜냐 아주머니가 하얗게 분칠한 얼굴을 양산으로 가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우리가 부르는 '화니'를 듣고 서 있었 다. 아리오발도 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걸으면서 부르자고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상관이람! 난 믿지 못할 화니의 마음 대목에 홀딱 반해 있었다. 마리아 다 펜냐 아주머니는 양산을 접어서 구두끝을 톡톡 쳤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화가 나서 찌푸린 얼굴로 소리쳤다. “잘한다, 잘해. 이런 부도덕한 노래 를 어린애가 잘도 부르는구나.”“부인, 이 일은 부도덕한 일이 아닙니다. 정직 한 일이기 때문에 한번도 부도덕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 까?” 나는 아리오발도 씨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녀 도 이미 싸울 각오가 돼 있는 것 같았다. “그 애가 당신 아들이오?” “불행하 게도 아닙니다, 부인.”“그럼 조카, 아니면 친척인가요?”“친척도 아닙니다.” “몇 살이죠?”“여섯 살입니다.”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내 키를 훑어보았 다. 그래도 그녀는 단념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린애를 착취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요?”“결코, 착취하는 게 아닙니다, 부인. 저 애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게다가 난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나는 머리를 끄덕 여 보였다. 나는 싸움 구경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내 생각 같아선 그녀의 배를 머리로 받아 바닥에 넘어뜨리고 싶었다. “그래도 무슨 조치를 취하겠어요. 신부 님께 말씀드리고, 소년 재판소와 경찰에 고발할 테니 명심하세요.” 그녀가 입을 다무는가 했더니 얼굴빛이 변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아리오발도 씨가 큰 칼을 뽑아 그녀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놀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가 보시지, 부인. 당장 꺼져 버려! 난 착한 사람이지만,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마녀 인형 같은 여자들의 혀를 자르는 나쁜 버릇이 좀 있다우.” 그녀 는 빗자루처럼 꼿꼿해진 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 가더니, 양산으로 우리 쪽을 가리켰다. “어디 두고 봐요!...”“이 수다쟁이 마녀 인형아, 꺼져 버려!” 그녀 는 양산을 펴 쓰고, 얼어붙은 듯 뻣뻣이 굳은 채 사라졌다. 해질 무렵, 아리오발도 씨는 이익금을 계산했다. “이게 전부다, 제제. 네 말이 맞았어. 넌 내게 행운을 안겨 줬어.” 나는 마리아 다 펜냐 아주머니 생각을 했 다. “그녀가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까요?”“아니, 제제. 기껏해야 신부님께 일 러바치겠지. 그러면 신부님은 이렇게 충고하실 게다.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겠 소. 마리아 여사. 북쪽 사람들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진 않아요'라고” 그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보따리를 둘둘 말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한 손을 바지 주 머니에 넣어 똘똘 말린 팸플릿을 꺼냈다. “이건 네 누나 글로리아 거다.” 그리 고 그는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아주 재수 좋은 날이었어.” 우리는 앉아서 휴 식을 취했다. “아리오발도 씨?” “응?”“마녀 인형이 뭐예요?”“낸들 아니, 얘야? 화날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야.” 그리고 희한하게 웃었다. “진짜 그렇게 하시려고 했나요?” “아니, 그냥 겁주려고 그랬어.”“진짜 찔렀더라면 창자가 튀어나왔는지, 인형 속에 든 더러운 헝겊이 나왔을 거예요.”그는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정답게 쓰다듬어 주었다.“한 가지 더 있다, 제제. 아마 똥물 도 나왔을 거야.”우리들은 마음껏 웃었다. “그러나, 걱정 마라. 난 사람을 죽이 지 않아. 병아리도 못 죽이는걸. 우리 여편네가 빗자루만 들고 덤벼도 무서워하 는 사람이야.” 우리는 일어나서 역으로 갔다. 역세서 그는 악수를 하며 말했다. “만일을 위해 이 거리를 한 번쯤 오지 말지 뭐.” 그리고 내 손을 더욱 꽉 잡 고 흔들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보자, 친구.”나는 그가 층계를 천천히 올라가 는 동안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계단을 다 올라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제제, 넌 천사야!”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천사요? 아저씨가 절 잘 모 르셔서 그래요... 제2부 슬픔 속에서 아기 예수는 탄생했다. 1. 박쥐 “빨리 해, 제제. 학교 늦겠다.”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와 마른 빵을 천천히 먹고 있었다. 늘 하던대로 식탁 위에 팔을 얹고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글로리아 누나는 몸이 달아 안달이었다. 아침에는, 사람을 조용히 내버려두는 일 이 좀체 없었다. “빨리 해, 이것아! 아니 여태 머리도 안 빗었구나! 넌 또또까처 럼 제시간에 준비할 수 없니?” 누나는 방에서 빗을 가지고 나와 나의 금발 머 리를 빗겨 주었다. “이런 억센 털 달린 러시아 고양이는 빗질할 필요도 없다니 까.” 나는 의장에서 일어나 내 몸을 훑어보았다. 옷이 깨끗한지 보기 위해서였 다. “이제 가자, 제제.” 또또까 형과 나는 손으로 짠 바구니에 책을 넣었다. 책 과 노트와 연필만을 챙겨 넣었다. 점심은 없었다. 점심 같은 건 다른 애들만을 위해 있는 것이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바구니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바구니 밑바닥이 구슬 때문에 묵직한 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우리는 손에 운동화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 가까이 있는 시장 근처에 갔을 때 신기 위해서였다. 도로변에 다다르기가 무섭게 또또까 형은 날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자 마음속의 악마가 나를 충동질했다. 아니, 악마보다 내가 더 심할 때도 있었다. 나를 유혹 하는 건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있었다. 그건 '박쥐'였다. 소리를 내며 달리 면 바람이 얼굴을 스치게 해 주는 자동차의 꽁무니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 일 은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로 애들이면 누구나 해 보고 싶어했다. 또또까 형은 뒤에 오는 차가 위험하니 꽉 잡으라고 천 번도 더 넘게 내게 일러 주었다. 그러 난 나는 점점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매달리기 힘든 차에도 달라붙었 다. 나는 ㄱ, 장난에 홀딱 빠져서 라디스라우 씨의 차에까지 매달려 보았었다. 아직 못 해 본 차는 단지 포르투갈 인의 차뿐이었따. 그 차는 아주 멋지게 잘 손질된 차였다. 바퀴들도 늘 새것같았고 게다가 차에 달린 쇠들도 사람을 비쳐 줄 정도로 윤이 잘 났다. 경적 소리도 아주 재미있었다. 마치 들판에 있는 소가 울부짖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멋진 차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늘 상을 찌푸리 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차에 매달릴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사람들을 때려 죽이고, 죽이기 전에는 목이 막 히도록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 그 차를 넘보는 애 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이 얘길 밍기뉴에게 했을 때였다. “아무도 못 했니, 제제?”“응, 아무도. 아무도 용기를 못 냈어.”나는 밍기뉴가 내 계획을 눈치채 고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넌 차에 매달리는 것에 미쳐 있잖아? ”“그건 그래. 내가 생각하는 건...”“네가 생각하는 게 뭔데?” 그러자 이번엔 내가 웃었다. “말해 줘.”“너도 미친 놈처럼 호기심이 많단 말야.”“넌 늘 말 했잖아. 말로만 그렇지, 난 실천을 못 한다고 했잖아. 나도 못 견디겠어”“좋아. 얘기해 줄게, 밍기뉴. 내가 일곱시에 나가잖아, 안 그래? 도로변에 닿으면 일곱 시 오분이야. 그런데 일곱시 십분에 포르투갈 인이 '재난과 굶주림' 상점에서 담배를 사려고 길모퉁이에 차를 세워 둔단 말야. 그래서 요즘 며칠 동안 시도해 볼까 하고 망보고 있는 중이야. 그러다가 ...”“넌 용기가 없잖아.”“내가 용기 가 없다구? 두고 봐.” 이제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차가 멈추더니 그가 내렸 다. 밍기뉴에게 장담을 했지만 아직도 망설여졌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난 식당을 돌아 길모퉁이에 몸을 절반쯤 내밀고 숨어 있 었다. 그리고 바구니에 신발을 집어넣었다. 가슴이 어떻게나 뛰는지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까 봐 걱정이 됐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나아서 차 문을 열었다. “지금 할까, 아니면 영영 못 하겠지, 밍기뉴!” 나는 팔짝 뛰어, 늘 두 렵기만 했던 그 차 뒤에 달린 스페어 바퀴에 힘껏 배달렸다. 학교까지는 꽤 거 리가 멀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친구들 앞을 승리에 들떠 달리고 있었따. “어리쿠!” 내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누가 차에 치었나 해서 사람들 이 상점 가까이 달려왔다. 내 몸은 땅 위로 50센티미터쯤 들어올려진 채 흔들거 렸다. 내 귀는 숯불처럼 활활 달아올랐다. 내 계획에서 한 가지 실패한 게 있었 던 것이다. 그건 너무 덤벙대다 보니 자동차의 시동이 걸려 있는지 확인하지 않 은 것이었다. 포르투갈 인의 얼굴은 굉장히 험악해져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불 꽃을 튕길 듯했다. “요렇게 간 큰 녀석이 있나. 네놈이로군. 요런 꼬마가 간덩 이 한번 크군.”그는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귀를 잡았던 손을 내려 내 얼굴을 잡고 소리쳤다. “이 녀석, 네가 내 차를 망보고 있던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어디 혼 좀 나 봐 라.” 나는 아픔보다는 모욕을 당하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큰 소리로 욕을 잔 뜩 퍼붓고 싶었다. 그는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을 알아챈 듯이 한 손으로 날 위협했다. “입이 있으면 말해 봐, 욕도 하고. 왜 아무 말도 못 하 지?” 내 눈에선 고통과 수치와, 이 광경을 고소하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눈물이 마구 솟았다. 포르투갈 인이 계속 내게 도전해 왔다. “이 꼬마 녀석아, 왜 욕도 못 하지?” 어떻게 분한지 나는 겨우 소리쳤다. “지 금은 말 못하겠어요. 하지만 생각중이에요... 이 다음에 커서 당신을 죽이겠어요. ” 그가 어찌나 크게 웃으을 터뜨렸는지 주위 사람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그 래 커 봐라. 꼬마 녀석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네 게 교훈을 주마.” 그는 내 귀를 놔 주더니 나를 자기 무릎에 엎어 놓았다. 그리 고 한 대 딱 때렸다. 딱 한 대를. 그러나 어찌나 아팠던지 나는 엉덩이가 창자에 붙어 버리는 줄만 알았다. 그때서야 그는 날 풀어 주었다. 나는 정신이 멍해져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왔을 때까지도 차가 오나 살펴볼 생각조차 못 하고 길을 건넜다. 그러나 충격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끔 손으로 엉덩이를 문질렀다. 망할 놈의 자식! 내가 복 수할 테니 두고 보자! 맹세하고 말고. 그러나 조롱하던 사람들 곁을 떠나니 아픈 것도 점점 가셨다. 그래도 학교 친구들이 봤을까 봐 걱정되었다. 밍기늉에겐 뭐 라고 하지? '재난과 굶주림' 상점 앞을 어떻게 지나다닌담? 일주일 동안은 일찍 나아 다른 길로 돌아다녔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장까지 걸어갔다. 그리 고 공동 수도로 가서 발과 운동화를 씻었다. 그곳에는 또또까 형이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실패담은 비치지도 말아야지.“제제, 나 좀 도와줘야겠어.”“뭘, 어떻게?”“너 비에 알지?”“그 까빠네마의 '황소' 말이 야?”“응, 그 녀석이 날 때리려고 그래. 네가 나 대신 싸워 주지 않겠니?” “ 하지만 그 애가 날 죽여 놓을 텐데.”“그렇지 않아. 넌 싸움도 잘하고 게다가 용감하잖아.”“좋아. 공부 끝나고 하는 거야?”“응, 끝나고.” 또또까 형은 늘 그렇게 싸움을 만들었고 그 함정에 빠지는 것은 또 늘 나였다. 그러나 마침 잘 된 일이었다. 나는 포르투갈 인에 대한 울분을 비에 녀석에게라도 풀고 싶었다. 사실 그날 나는 너무 많이 맞았다. 눈도 붓고 팔도 부었다. 또또까 형은 무릎 위 에 내 책과 자기 책을 얹어 놓고 다른 애들과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내 게 코치까지 해 주었다. “배에 박치기를 해, 제제. 그 녀석은 비계뿐이니까 물 어뜯어. 손톱으로 할퀴어.”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고 해도 빵집 주인 로젬베르크 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난 녹초가 되고 말았을 것이 다. 그는 발코니 뒤로 가서 비에의 칼라를 잡고 흔들어 댔다. “부끄럽지도 않 니? 다 큰 녀석이 저렇게 작은 애를 때리다니.” 로젬베르크 씨는 우리집 식구 들 말로는 랄라 누나를 사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랄라 누나와 있을 때면 늘 얼굴에 미소를 함빡 띄우고 생과자랑 사탕을 주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입 속의 금니도 번쩍였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밍기뉴에게 실패담을 얘기했다. 그토록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 로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내 모슴을 보시고 머리를 몇 대 때리 셨다. 또또까 형은 야단을 맞았다. 아버지는 절대로 형을 때리지 않으셨다. 단지 화의 근원이 나였기 때문에 나를 때리신 것이었다. 밍기뉴는 내 얘길 자세히 들 었다. 나는 그 애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 애는 화난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었다. “바보같이!”“싸운 건 별 거 아냐. 만일 네가 보았더라면...” 나는 '박쥐' 때문에 있었떤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밍 기뉴는 내가 그런 용기를 낸 데 놀랐는지 한마디 거들어 주기까지 했다. “복수 할 날이 꼭 올 거야.” “그래. 꼭 복수하겠어. 난 톰 믹스에게 권총을 빌리고, 프레드 톰프슨의 달빛 망아질 빌려서 코만치 인디언처럼 무장을 하고 함정을 만 들겠어. 언제 될지 모르지만 꼭 그놈 머리를 대나무 가지에 꽂아 갖고 돌아올 테야.” 그러나 분노는 곧 사라지고, 우리는 딴 얘기를 했다. “슈르르까, 넌 모 르는 일이 한 가지 있어. 내가 지난주에 최우수 학생으로 뽑혀 '요술 장미'란 동 화책을 받았잖니, 기억나니?” 밍기뉴는 내가 슈르르까라고 불러 줄 때면 늘 행 복에 잠겼다. 지금도 그는 아직 내가 자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걸 알고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해 물론.”“근데 내가 그 책을 잃었다는 얘기는 안 했지? 그건 요정한테 붉은 요술 장미를 얻은 한 왕자에 관한 얘기였어. 그런 데 이 미친 놈의 왕자가 예쁜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세상을 온통 황금으로 만들 어 버렸대.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 자기 말도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고 모험을 하러 다녔대. 얼마나 위험한 일이니? 그는 요술 장미를 흔들고 다니며 이 세상 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미쳐 날뛰었어. 사실 말이야, 밍기뉴. 이런 얘기는 얼 마나 바보 같은 얘기니, 그렇지? 나 같으면 그 따위 모험은 하지도 않아. 난 톰 믹스나 벅 존스 아니면 프레드 톰프슨이나 리차드 탈마지 같은 모험을 했을 거 야. 그들은 막 치고 받고, 총도 쏘고 신나게 싸우잖아. 만약 그들 중에 누군가 위험이 닥쳤다고 해서 요술 장미를 쓴다면 얼마나 시시하겠니? 그렇게 생각지 않니?” “나도 재미없을 것 같아.”“근데 정말 궁금한 건 그게 아냐. 정말 장 미 한 송이가 그런 요술을 부릴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해.”“진짜 좀 이상하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애들은 뭐든지 믿는다고 생각하나 봐.”“그건 분명히 그 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루이스가 다가왔다. 동생은 점점 더 예뻐졌 다. 그 애는 울보도 싸움꾼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돌볼 의무가 있었고 나도 늘 기쁜 마음으로 놀아 주었다. 나는 밍기뉴에게 속삭였다. 나는 밍기뉴에 게 속삭였다. “딴 얘길 하자. 내가 이 얘길 동생한테 해 주면 재미있어 할거야. 그러니 우린 어린애한테서 환사을 빼앗아선 안 돼.”“제제 형, 같이 놀아 줘.” “지금 놀고 있잖아. 뭐 하고 놀까?” “동물원 놀이 하고 싶어.”나는 맥이 빠 져 검은 암탉 한 마리와 두 마리의 병아리가 있는 닭장을 바라보았다. “너무 늦었어. 사자들은 벌써 자러 갔고, 뱅갈 호랑이도 그런데. 이 시간엔 모두 다 닫 아. 입장권도 안 팔걸.”“그럼 유럽 여행을 해.” 요녀석은 모든 걸 다 아는데. 한 번 들은 건 척척 외운단 말야. 그렇지만 난 유럽 여행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난 계속 밍기뉴 곁에 있고 싶었다. 밍기뉴도 부어오른 내 얼굴을 못 본 척하며 부벼 대지도 않았다. 나는 동생 곁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잠깐 기다려. 내가 뭘 할까 생각해 볼게.”그때 한 행운의 여신이 비단 구름 속을 기어 들어가 나 뭇잎가 뜰의 잡초들을 흔들게 했고, 슈르르까의 가지를 흔들어 잎사귀 하나를 내 얼굴에 떨어뜨려 주었따. 그래서 나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그랬니, 밍기 뉴?”“아니.”“아, 기분 좋아. 그럼 바랍이 부는 시기가 된 거야.” 우리의 길 거리엔 여러 종류의 계절이 있었다. 구슬치기의 계절, 팽이의 계절, 그림 딱지를 모으는 계절, 그러나 가장 멋진 계절은 연 날리는 계절이었다. 그때는 하늘이 가 지각색의 연으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멋진 장신을 단 예쁜 연들도 있었다. 그것 은 마치 하늘에서의 공중전을 방불케 했다. 머리 치기, 줄로 끌어내리기, 줄 끊 기, 높이 날리기 등의 공중전이었다. 칼로 줄을 끊으면 연이 공중에서 빙빙 돌며 균형을 잃고 떨어지는 것까지 아름다웠다. 그때는 거리란 거리는 온통 아이들로 꽉 찼다. 거리는 아이들 세상이었다. 방구 시의 온 거리가 다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이 지나면 전깃줄에 연이 걸려 라이트 전기 회사가 전기를 보내는 데 방해 가 된다고 어른들은 화를 내곤 하였다. 그런데 바람이 부는 것이었다... 바람이... 바람이 불자 생각이 떠올랐다. “사냥 놀이 할까, 루이스?”“난 말을 탈 수가 없잖아?”“크면 탈 수 있어. 그러니 넌 여기 앉아서 어떻게 타는지 보란 말야.”그러자 밍기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 바람이 점점 세어지고 뒤뜰의 가냘픈 풀들도 거대한 녹 색의 대평원이 되었다. 내 카우보이 옷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가슴에는 보 안관 배지가 번쩍였다. “이랴, 가자! 달려라, 달려...” 따각,따각,따각. 이미 톰 믹스와 프레드 톰프슨이 와 있었다. 벅 존스는 이번에는 웬지 오려고 하지 않았 고 리쟈드 탈마지는 영화촬영 중이었다. “가자! 가자! 이랴. 달려라. 달려! 저기 아파치 족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구나!”따각,따각,따각. 인디언 기마 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달려라, 달려. 들판이 물소와 들소로 가득 찼네. 여보게들 총을 쏘게. 철컥,철컥,철컥. 탕,탕,탕. 위-잉, 위-잉,위-잉.” 창들 이 위잉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바람소리, 신나게 달리는 소리, 먼지가 구름처럼 이는 속에서 루이스가 소리치고 있었다. ‘제제 형! 제제 형!“ 나는 천천히 말 을 멈춰 민첩하게 뛰어내렸다. "무슨 일이야? 어떤 물소가 너한테 다가왔어?” “아니. 다른 놀이 해. 인디언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그렇지만 이 인디언들 은 아파치 족이야. 모두 친구란 말야.”“그래도 너무 많아서 무서워.” 2. 정복 처음 며칠 동안, 나는 담배를 사려고 차를 세워 두는 포르투갈 인과 마주치지 않도록 일찍 집을 나와야만 했다. 그러고도 반대편 길모퉁이에 붙어 걷는 등 조 심스럽게 다녔다. 거리에는 모든 집 앞에 연결되어 있는 상록수 울타리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도착했을 때에도 운동화를 손에 쥔 채 공장의 커다란 담에 딱 붙어서 길을 건너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 에 따라 이런 것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미 그 일을 잊어버렸 고 또 그 일 을 당한 아이가 빠울로 씨의 장난꾸러기 아들이었다는 것도 잊은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빠울로 씨의 아들이었어요. 빠울로 씨의 아들 그 미친 녀석 말입 니다. 빠울로 씨의 아들 바로 그 녀석 말이에요.”방구 시에서 안다라이가 매를 맞았을 때도 방구 시 사람들은 빠울로의 아들처럼 많이 맞는 아이는 없을 거라 고 떠들어 대기까지 했다. 때때로 나는 그 놈의 차가 길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마다 나는 포르투갈 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발을 멈추곤 했었다. 그는 세계 에서 가장 멋진 차의 주인이지만 내게 그런 난폭한 짓을 했으니 내가 커서 꼭 죽여 버릴 녀석이었다. 그가 며칠씩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참 다행스런 일이 었다. 아마 멀리 여행을 갔거나 며칠 휴가를 얻은 게 분명했다. 그럴 때에는 편 안한 마음으로 학교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를 죽여 버리는 것이 꼭 잘하는 일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 었다. 그것은 보통 운이 좋던 날 평범한 차에 매달렸을 때에는 맛보지 못했던 흥분과 귀가 확확 달아오르는 듯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 전히 길에 나가 놀았다. 연을 날리는 계절이 왔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길은 개방 되어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아름다운 색색의 별들이 낮에도 빛을 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밍기뉴를 생각할 틈도 없었고, 겨우 심한 매을 맞았을 때에 야 그 앨 찾아갔을 뿐이었다. 한 차례 매를 맞고 또 한 차례 매을 맞게 되면 어 찌나 아픈지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루이스 왕 과 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치장해 주러 갔다. 그 보답으 로 밍기뉴는 나를 위해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는 지 자꾸만 자랐다. 다른 오렌지나무는 아주 느릿느릿 자라는 듯했으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에 드문드 아저씨께서 나더러 조숙하다고 하셨던 것처럼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셨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먼저 일어 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긴 끈과 도막난 실로 구멍 뚫린 병 마개를 꿰어 밍기뉴의 몸에 달아 주었다. 그렇게 하니 밍기뉴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병마개끼리 부딪쳐 마치 프레드 톰프슨이 ' 달빛' 망아지를 타고 은빛 채찍을 흔들며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 생활은 대단 히 재미있었다. 나는 모든 국가를 다 외웠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의 노래' 였다. 내게도 그랬지만, 생각건대 톰 믹스도 역시 이 노래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 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사냥을 할 때면 그는 정중 히 내게 청하곤 했었으니까. "삐나제 인디언 투사. 자유의 노래를 불러 주시오." 그러면 나의 가느다란 목소리는 화요일마다 내가 조수로 일해 주는 아리오발도 씨의 노래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거대한 평원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화요일 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오는 내 친구 아리오발도 씨를 기다리기 위해 수업을 빼 먹곤 했었다. 가득 찬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손에 팸플릿을 흔들어 보이며 그는 역 층층대를 내려왔었다. 그는 언제나 거의 다 팔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늘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는 틈만 있으면 구슬치기를 했다. 나는 백발 백중 의 솜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구니에 거의 세 배 이상의 구슬을 흔들며 돌 아오지 않는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쥐새끼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대단히 기 뻤던 일은 우리 선생님인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 께 내가 동네에서 제일 못된 애라고 얘기해도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나 보다 더 욕을 잘 하는 아이도 없으며 나만큼 장난이 심한 아이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결코 믿지 않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천사였다.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더 작은 애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여선생님들의 귀여움 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계셨는지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점심 시간엔 마음 아파하시고 빵집에서 생과자를 사 먹도록 돈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선생님이 얼마나 다 정하신가를 생각할 때마다 실망을 들지 않기 위해 착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런데 갑자기 사태가 변하게 되었다.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를 늘 그렇듯 천천 히 지나고 있을 때 포르투갈 인의 차가 내 곁을 아주 천천히 지나간 것이었다. 자동차 경적이 세 번 울렸는가 했는데 아주 뚱뚱한 남자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것 이 보였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 올라 어른이 되면 꼭 죽여 버리고 말겠다는 생 각이 되살아났다. 나는 자존심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모른 체해 버렸다. "뭐라고 할까, 밍기뉴. 아무튼 운이 좋은 날이었어. 글쎄 그 사람이 내가 지나가 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지 않겠어. 세번이나 울렸단 말야. 어젠 나더러 잘 가라고까지 하잖아." "그래서 넌 어떻게 했니?" "모르는 체했어. 못 본 체했단 말야. 그 사람은 내가 무서워 보였을 거야. 보다시피 난 곧 여섯 살이 되고 또 어른이 될 거거든." "그럼, 넌 그 사람이 네가 무서워서 친구가 되 고 싶어한다는 거야?" "틀림없어. 잠깐만. 상자 찾아 올게." 밍기뉴는 굉장히 많 이 자란 것 같았다. 그래서 가지 위로 올라가려면 이젠 밑에 상자를 받쳐야만 했다. "됐어. 계속하지." 그 꼭대기에서는 세상이 넓다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었 다. 여기저기 풍경을 볼 수도 있었고 언덕의 풀 너머로 아기 새들과 멀리서 먹 이를 가져오는 어미 새도 보였다. 또 루씨아노도 마치 알폰소스 비행장에서 날 아온 비행기처럼 즐겁게 초저녁 하늘 밑 내 주위를 돌고 있었다. 처음엔 밍기뉴 도 대개 어린애들은 박쥐를 무서워하는데, 내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 라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루씨아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딴 곳을 찾은 것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봐, 밍기뉴. 아우제니아 아주머니 댁 고이아바 열매가 벌써 노랗게 익기 시작했어. 이제 고이아바의 계절이 되는가 봐. 근데 슬프게도 내 맘속의 악마가 그걱 훔쳐 먹으라고 하잖아. 밍기뉴, 문제는 난 벌써 세 번이 나 얻어맞았단 말야. 내가 여기에 올라왔다는 건 이미 벌을 받았다는 증거거든." 그러나 결국 악마가 나를 상록수 울타리까지 내려가게 만들었다. 오후의 산들바 람이 내 코에 고이아바 향기를 몰아오고 있었따.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냄시 가 나는 것 같았다. "이런 바보, 빨리 가지 않고 뭘 해!" 그리고 악마는 계속 속 삭였다. "뛰어가 바보야. 망보는 사람이 없는걸. 이 시각에 그 여자는 일본 여자 의 과일 가게에 갔단 말야. 베네딕투 씨? 무슨 소리야? 그는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반봉사인데다가 귀머거리잖아. 쓸데없는 걱정 마. 그가 알아채도 충 분히 도망갈 수 있어." 나는 언덕까지 울타리를 끼고 올라가선 맘을 굳게 먹었 다. 그리고 그 전에 밍기뉴에게 소리를 내지 않도록 신호를 보냈다. 가슴은 그 전부터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제니아 아주머니는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굉장한 수다쟁이었다. 내가 숨을 죽이고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 을 때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부엌 창문에서 들려왔다. "무슨 짓이냐?" 나는 공 을 주으러 왔다는 거짓말을 할 생각조차 못 하고 말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막 달려 언덕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 다른 것이 나를 기다리 고 있었다. 어찌나 아팠던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또 매를 맞 을 것이 분명했고 그 다음엔 남의 고이아바 열매를 훔치려 했기 때문에 맞을 것 이 틀림없었다. 결국 왼발에 유리 조각이 박히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아픈지 정 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뒤뜰의 더러운 개천물과 피가 섞이는 것을 보니 한 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한담?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유리를 빼내 었다. 그러나 피를 멈추게 할 방법은 없었다. 단지 아픔을 줄이기 위해 발뒤꿈치 를 꽉 잡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만 될 것 같았다. 이미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니 엄마, 아빠, 랄라 누나도 곧 돌아올 것이었다. 나를 발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날 때릴 거야. 셋이 번갈아 때릴지도 몰라. 나는 정신없이 한 발을 절뚝거리며 울타리를 따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까지 와서는 그 밑에 앉았다. 그러자 토하고 싶던 것이 가라앉았다. “잘 살펴 봐. 밍기뉴.” 밍기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그 애도 나만큼 피를 보는 게 싫은 것 같았다. “맙소사, 어떡하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또또까 형뿐인데, 형은 지금 어디를 쏘다니고 있는 걸까? 글로리아 누나도 있지. 글로 리아 누나는 부엌에 있을 거야. 그녀만이 나를 때리는 걸 미친 듯이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내 귀를 잡아달길지도 모르고 때리려 할지도 몰라. 하여튼 부딪쳐 봐야지. 나는 어떻게 하면 글로리아 누나가 날 때리지 않을 까 생각하며 부엌 문으로 왈칵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헝겊에 수를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여전히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데 이 번에는 신의 가호가 내린 것 같았다. 그녀가 머리를숙이고 있는 나를 바라본 것 이었다. 그리고 내가 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결 심한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엉엉 울었다. 그리곤 누나를 바라보 았다. 그러나 누나는 수틀에서 손을 떼었다,. “웬일니니? 제제.”“아무것도 아 니야. 고도이아...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지?”“네가 너무 장난꾸러기라서 그렇잖아.”“오늘은 벌써 세 차례나 맞은 걸.”“그래 안 맞을 걸 맞았단 말야?”“그런 게 아냐.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느냔 말야? 무조건 덮어좋고 때리느냔 말야?” 그러자 열다섯 살의 소녀 글로 리아는 감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그것을 이용했다. “난 차라리 내일 리 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 나가 차에 온몸이 가루가 되도록 치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그러자 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제제. 난 널 무척 좋아해.” “거짓말하지 마. 누군가 오늘 또 날 때리려 하면 그냥 내버려둘 텐데 뭘.”“이렇게 어두워졌으니 더 장난칠 수도 없고 그러면 더 맞을 필요도 없을 텐데?”“하지만 이미 저지른걸...” 누나는 수틀을 놓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내 발을 흠뻑 적시며 피가 솟는 곳을 보더니 소리를 꽥 질렀다. “맙소사! 아가, 이게 웬일이니?” 시작부터 승리한 거나 다름 없었다. 누나가 나를 ‘아가'하고 부를 때는 언제나 나를 구해 줬으니까.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걸상에 앉혔다. 그리고 소금물이 든 대야를 가지고 와 내 발치에 무릎 을 꿇고 앉았다. “많이 아프지, 제제.”“굉장히 아팠어.”“세상에! 손가락 세 개 합친 것만큼이나 베었어. 어쩌다 이랬니, 제제?”“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제발 고도이아.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할게. 매맞지 않게 해 줘.”“좋아, 얘 기 않을게. 근데 어떻하지? 식구들이 발이 헝겊에 싸여 있는 걸 볼 텐데. 그리고 내일 아침엔 학교도 가지 못할 거야. 그러면 다 알게 되잖아.”“학교엔 가겠어. 정말이야. 도로변까지 신발을 신고 가겠어. 그 다음엔 좀 쉬울 거야.”“그럼 가 서 자라. 발을 쭉 뻗고 자. 안 그러면 아파서 내일 걷지도 못할 거야.” 누나는 침대로 갈 수 있도록 절뚝거리는 나를 도와주었다. “딴 사람들이 오기 전에 먹 을 걸 좀 가져다 줄게.” 누나가 내게 음식을 가져왔을 때는 나는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일은 드문 일이었다. 모두들 돌오왔을 때 엄마는 내가 없다는 걸 알아채셨다. “제제는 어디 있니?” “자고 있어요. 머리가 아프다면서 일찍 자리에 들었어요.” 나는 상처가 후끈거 리는 것도 잊은 채 엿듣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대화중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 는 것을 좋아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편이 되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녀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왜 모두들 그 애만 때리고 그래요? 오늘은 아주 짓밟아 놓기 까지 하고, 세번씩이나 때리다니 너무하잖아요?”“하지만 그 녀석은 아주 못됐 잖아. 매나 맞아야 가만히 있고.”“너도 그 앨 때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니?” “난 웬만해선 때리지 않아요. 아주 장난이 심할 때야 그저 귀를 잡아당기는 정 도죠.” 글로리아 누나는 내 편을 계속 들었다. “끝으로 얘기하지만 그 앤 여섯 살도 채 못 됐어요. 장난이 좀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예요.”이 런 말을 들으니 나는 굉장히 기뻤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가 운동화 신는 것을 도와주면서도 무척 애처로워했다. “갈 수 있겠니?”“견딜 만헤.”“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서 바보짓하지 마.”“ 안 할게.”“어제 말한 건 정말이 아니지?”“응. 근데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나는 건 사실이야.” 누난 금발의 내 더벅머리를 쓸어 주곤 나를 내보내 주었다. 난 단지 길거리까지 나가는 것이 조 금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신발을 벗으면 아픔이 약간 가실 것 같았다. 그러나 발이 땅에 직접 닿았을 때는 공장 벽에 천천히 기대어 가야만 할 정도였다. 이 렇게 해선 도저히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자동 차의 경적이 세 번 울려왔던 것이다. 제기랄! 남은 아파 죽으려고 하는데 모욕을 주러 오다니... 차를 내 옆에 바싹 붙여 몰며 그는 몸을 내밀고 물었다. “꼬마 야, 발을 다친 거냐?” 나는 남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가 '요녀석'하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대꾸하지 않고 계속 오 미터쯤 걸어갔 다. 그러자 그는 발동을 걸어 내 곁을 지나 벽에 차를 붙여 버릴 듯 몰았다. 그 러더니 조금씩 앞으로 몰아 가며 내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문을 열 고 내렸다. 나는 그의 커다란 얼굴을 보자 몸을 움츠렸다. “무척 아픈가 보구 나, 꼬마야.” 나를 때렸던 사람이 그렇게 다정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을 난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아주 거리낌없이 뚱뚱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선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었는 데 어찌나 부드 럽게 보였는지 마치 구애를 하는 듯했다. “보아하니 심하게 다친 모양이구나. 어쩌다 그랬지?” 대답하기 전에 나는 약간 울먹였다. “유리 조각에요.”“깊이 박혔었니?” 나는 손가락으로 그 깊이를 가르쳐 주었다. “음, 그렇다면 중상인 데, 그런데 왜 집에 있지 않고? 가만 보니 학교에 가는가 본데, 안 그래?”“집 에선 아무도 다친 걸 몰라요. 만일 집에서 알게 되면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때릴 거예요.” “이리 온, 내 데려다 줄 테니.”“고맙지만 싫어요.”“왜?”“ 학교 애들은 저번에 있었던 일을 죄다 알고 있어요.”“하지만 이렇게 걸어갈 순 없잖아?” 그건 그렇다고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자칫하면 자존심 이 허물어져 버릴 것만 같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내 턱을 꼭 붙잡아 올렸다. “지난 일들은 잊어버리자. 차를 타 본 적이 있니?”“없어요.”“그러면 내가 태워 주마.”“그치만 탈 수 없어요. 우리는 원수지간이잖아요?”“그런 건 상관 없어. 난 그 따위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아. 만일 네가 부끄럽다면 학교 ㅈ금 못미 쳐서 내려 주마. 그러면 타겠니?” 나는 너무 고마워서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내 목을 끌어안더니 문을 열어 조심스레 나를 차에 태웠 다. 그리곤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발동을 걸기 전에 내게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젠 곧 좋아질 거야.” 달리는 자동차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몸 을 맡기며 눈을 감고 있으니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이건 프레드 톰프슨의 '달빛 '망아지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오래 그렇게 있을 수는 없 었다. 눈을 떠 보니 학교에 거의 다 와 버린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깜짝 놀라 의자 밑으로 숨었다. 그리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앞 조금 못미처서 내려 준다고 약속했잖아요.”“생각 을 바꿨다. 그런 발을 더 이상 그냥 버려둘 수는 없어. 파상풍을 일으킬 염려가 있어.” 그러나 난 어찌나 아팠던지 이 근사한 말이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가를 물을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가기 싫다고 떼쓰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차가 까지냐 거리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다시 제대로 앉았다. “내겐 네 가 아주 용감한 사나이같아 보이는데,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아마 너라면 그걸 증명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약방 정문에 차를 세우고 나를 안아올렸다. 라 이문드 빠스 박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을 때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는 공 장의 담당 의사였고 아빠와도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듯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해따. “너 빠울로 바스콘셀로스의 아들이지? 안 그러냐? 그 사람, 일자리는 얻었니?” 나는 포르투갈 인이 아빠가 실업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게 부끄러웠지만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구하 시는 중이에요. 여러 군데 말씀해 놓고 계셔요.”“자, 그러면 어디 한번 볼까? ” 그는 상처에 감긴 헝겊을 풀더니 놀랍다는 듯 '음'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나 는 울 듯이 입을 내밀었다. 그러자 포르투갈 인이 재빨리 달려 와 뒤에 잡아 주 었다. 그들은 나를 하야 시트가 깔린 책상 위에 앉혔다. 그리고 수술 기구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난 벌벌 떨었다. 그 러자 곧 포르투갈 인이 부드러운 얼굴로 내 등에 그의 가슴을 대 주었고, 내 어 깨를 두 손으로 힘차게 감싸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야. 치료가 끝나면 주스랑 과자를 사 주마. 그리고 울지 않는다면 영화 배우 사진이 인쇄된 카드도 사 주지.”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물이 나왔지만 꾹 참고 있었다. 무척 아팠다.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고 토하고 싶은 것까지도 참았다. 포르투갈 인이 마치 자신에게 아픔이 조금이나마 나누어 지기를 바라는 듯 나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땀에 흠뻑 젖은 얼굴과 머 리를 그의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영 끝날 것 같지 않았으나 치료는 곧 끝났 다. 나를 차로 데려갈 때에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내게 약속한 것 을 모두 사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와 의사가 내 발끝에서부터 온 정신을 쏙 뽑아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래 가지곤 학교에 갈 수 없다, 꼬마야.” 자동차 안에서 나는 그의 곁에 바싹 붙어앉아 그 의 팔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운전을 방해했다. “집에 데려다 주마. 아무 구실이 든 지어내면 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노는 시간에 다쳐서 선생님이 약방에 데려다 주셨다고 말야.”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용감한 사 내로구나, 꼬마야.” 무척 아팠지만 그래도 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픔 속에서 도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는 포르투갈 인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는 것을 말이다. 3.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얘, 밍기뉴. 난 다 알아냈어. 몽땅 다 말야. 그는 까빠네마 공작 거리 끝에 살고 있어, 맨 끄트머리에 말야. 그는 집 옆에 차를 세워 둔단다. 그리고 새장 도 두 개씩이나 있는데 하나는 카나리아를 넣어 두고 다른 하나엔 파랑새를 넣 어 둬.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이른 새벽에 구두통을 메고 가 봤거든. 얼마나 가 고 싶었는지 아니? 밍기뉴, 글쎄 구두통이 무것다는 것조차 몰랐지 뭐야. 가서 집을 자세히 살펴봤어. 혼자 살기엔 너무 큰 집 같았어. 그는 한쪽 구석에 있는 물탱크 옆에 있었어. 아마 면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손뼉을 쳤다. “ 구두 닦으세요.” 그가 비누를 묻힌 얼굴로 나왔다. 한쪽 볼은 벌써 밀어낸 것 같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 너였구나. 들어오렴, 꼬마야.”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금방 끝날 테니 기다렸다. 그는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 았다. "학교는? ”“오늘은 국경일이잖아요. 그래서 돈 벌려고 구두 닦으러 나온 거예요.”“아, 그렇군!” 그는 계속해서 수염을 깎았다. 그리고 물탱크에 몸을 구부려 얼굴을 씻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자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윤이 났 다.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미소를 보냈다. “커피 마실래?” 나는 마시고 싶었지 만 싫다고 말했다. “들어가자.” 난 단지, 밍기뉴,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었 고 깨끗했다는 걸 네가 알아 줬으면 해. 식탁에는 빨간 색의 체크 무늬가 있는 식탁보까지 덮여 있었어. 게다가 찻잔까지 있더라. 우리 집에 있는, 주석으로 된 손잡이 컵은 없었어. 그가 일하러 갈 때면 흑인 여자가 와서 늘 청소를 한다고 그가 말했단다. “너도 먹고 싶으면 나처럼 해 봐라. 커피에 빵을 담다. 하지만 삼킬 땐 소리를 내지 마라. 아주 듣기 흉하거든.” 나는 밍기뉴를 쳐다보았다. 그는 헝겊 인형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왜 그래?”“아냐, 듣고 있어.” “얘, 밍기뉴. 난 싸우긴 싫어. 그러니까 싫증이 났으면 당장 말해 주는 게 좋아. ”“넌 포르투갈 인과 그렇게 어울릴 수 있지만 난 그럴 수 없잖아.” 나는 생 각에 잠겼다. 그건 사실었다. 난 사실 밍기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틀 후에 우리 벅 존스를 만나러 가자. 또우로 센따도 족 추장을 통해서 내가 연락해 놓을게. 벅 존스는 멀리 사반나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거야. 밍기뉴, 내가 사반아라고 했니, 사만나라고 했니? 영화에서 보니까 뒤에 'ㄴ'이 붙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진지냐 할머니 댁에 갈 때 에드문 드 아저씨께 여쭤 봐야겠어.”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아까 어디서 얘기를 그쳤 지?”“빵에 커피를 담그는 데서.” 나는 한바탕 웃었다. “바보야, 빵에 커리를 담그는 게 아니라 커피에 빵을 담그는 거야. 하여튼 그때 난 잠자코 있었어. 그 런데 그가 날 한참 훑어보지 않겠어.”“넌 내가 사는 데를 알아내려고 꽤 애쓴 모양이구나.”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작정했다. “아저씨, 제가 얘기해도 화내시지 않겠죠?”“화내지 않으마. 친구 사이엔 비밀 이 없는 법이다.”“구두 닦으러 나온 것이 아녜요.”“짐작하고 있었지.”“굉 장히 오고 싶었어요. 이런 동네에선 먼지 때문에 아무도 구두룰 닦으려 하지 않 아요. 단지 리오-상파울로 거리에 사는 사람들만이 구두를 닦아요.”“이런 무거 운 통을 메지 않고도 올 수 있지 않니?”“하지만 이 통을 메지 않으면 집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겨우 집 근처에서만 놀 수 있거든요. 그러고도 가끔 집에 들 어가 얼굴은 보여 줘야 해요. 이해하시겠죠? 그래서 멀리 나갈 때는 돈 벌러 가 는 체해야 돼요.” 그는 내 논리적인 말에 빙그레 웃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돈 벌러 나갈 때는 장난을 치지 않는 줄로 생각해요. 나도 매맞는 것보다는 그 게 훨씬 좋거든요.”“나는 네가 그렇게 말썽꾸러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 나는 시무룩해졌다.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에요. 새끼 악마 같대요. 마음속에 악마가 있어서 크리스마스에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요. 페스트 균같이 지독한 악질이래요. 새끼 페스트 균 같다고들 해요. 개망나니인데다가 태어날 때 부터 불량배예요. 우리 누나 하나는 나처럼 못된 녀석은 애당초 태어나질 말았 어야 했다고 그랬어요...”그는 놀랍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난 주일에는 매만 잔뜩 맞았어요. 어떤 때는 굉장히 아팠어요. 그치만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로도 매를 맞았어요. 모든 잘못은 다 내 책임이 왜요. 우리 집 식구들은 습관처 럼 늘 날 때려요.”“그래,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 “아마 마음속에 악마가 있 기 때문일 거예요. 장난이 치고 싶으면 참을 수가 없거든요. 지난주엔 아우제니 아 아주머니 집 울타리에 불을 냈어요. 게다가 꼬르델리아 아주머니한테 게딱지 라고 불렀더니 그 여자는 맹수처럼 사납 게 날뛰었어요. 또 헝겊으로 된 공을 찼는데 그 바보 같은 공이 창문으로 날아 들어가 나르시자 아주머니네 큰 거울을 깨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새총으로 전등 을 세 개나 깼고, 아벨 씨네 아들의 머리에다 돌을 던졌어요.” 그는 웃음이 나 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또 있어요. 막 심어 놓은, 뗀떼나 아주머니 댁 묘목을 죄다 뽑아 버렸고요. 또 로제난 아줌마네 고양이에게 구슬 을 먹였어요.”“아하, 그건 못쓰겠는데. 나는 짐승을 학대하는 것이 제일 싫거 든.”“그치만 큰 구슬은 아니었어요. 아주 작은 거였어요. 사람들이 설사 약을 먹이니까 금방 나왔는걸요. 근데 사람들은 나한테 새 구슬을 사 주기는커녕 막 때리지 않겠어요. 가장 슬펐던 일은, 내가 잘 때 아빠께서 슬리퍼로 막 때리신 거예요. 나는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몰랐거든요.”“왜 맞았을까?” “애들끼리 몰 려서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 아주 요금이 싼 이등석으로 갔죠. 근데 난 오줌이 마려웠어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벽 모퉁이에 붙어서서 눠 버렸지요. 물줄기가 흘러내렸어요. 밖으로 나가서 오줌을 누면 영화의 한 장면을 놓치게 되잖아요.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에요? 아저씬 아이들이 어떻다는 건 잘 아실 거예요. 근 데 나 혼자만 그랬으면 괜찮았을 텐데 다른 애들도 다 오줌이 마려웠거든요. 모 두들 그 구석에 가서 눠 버렸죠. 그러자 강처럼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결국 그 것이 빠울로 씨 아들의 짓이었다는 것이 들통났죠. 그래서 내게 방구 시 영화관 에서는 철이 들 때까지 일 년 동안 입장을 금지시켰어요. 밤에 극장 주인이 아 빠께 일러바쳤고 아빤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죠. 그래서는 ... 말 마 세요...”여기까지 얘기했을 때도 밍기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봐, 밍기뉴. 그럴 필요 없잖아? 그 사람은 내 가장 친한 친구란 말야. 그리고 루이스가 우리 형제 중에서 최고인 것처럼 너도 나무들 중에서는 왕이란 말야. 너는 내가 좋 아하는 거면 뭐든 다 좋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해.” 그래도 밍기뉴 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겠어, 밍기뉴. 구슬치기 하자. 아주 언짢아 보이 는구나.” 처음에는 나를 때린 사람의 차에 탔다는 것이 부끄러워 비밀을 지켰다. 그러나 그 후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신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비밀을 계속 지켰다. 게다가 포르투갈 인도 내 의견을 모두 들어 주었다. 우리는 아무도 우 리의 친분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죽음으로써 맹세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차에 탄 것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 아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 사람이 또또까 형일지라도 나는 얼굴을 숙여 버렸다. 게다가아무도 우리의 대화를 방해 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저씬 우리 엄마를 보신 적이 없으시 죠? 엄마는 인디언이세요. 그래서 저도 인디언의 아들이에요.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반 인디언이에요.”“그런데 어떻게 피부가 하얗지? 게다가 머리는 흰색에 가까운 금발인데?” “그건 포르투갈 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엄 만 인디언이세요. 아주 까만 생머리를 하고 계세요. 단지 글로리아 누나와 나만 이런 억센 러이사 고양이 같은 머리털을 갖고 태어났어요. 엄마는 집세를 벌기 위해 영국인 방직 공장에 다니세요. 저번엔 실타래를 메고 다니셔서 굉장히 아 프셔요. 그래서 의사한테 갔죠. 의사가 찢어진 곳에 부스럼이 날까 봐 붕대를 감 사 주셨어요. 엄마는 저한테 아주 잘해 주세요. 때리실 적에도 뒤뜰에 있는 접시 꽃 나무의 가느다란 가지로 종아리로 때리세요. 엄만 언제나 피곤하시기 때문 에 집에 돌아오면 얘기하실 기운조차 없으세요.” 그는 앞으로 차를 몰았고 나 도 계속 재잘거렸다. “제일 지독하게 구는 건 큰누나예요. 맨날 연애만 해요.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산보 나가라고 할 때면 윗길로 가지 말라고 꼭 다짐을 받 으세요. 왜냐하면 그 길모퉁이에 애인 녀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 서 우리가 아랫길로 내려가면 거기에도 딴 애인 녀석이 기다리고 있어요. 누나 가 맨날 연애 편지만 써 대기 때문에 연필은 남아나질 않아요.”“다 왔다.” 시 장 근처에 접어들자 그는 약속한 장소에 차를 세웠다. “내일 보자, 꼬마야.” 그는, 그가 차를 세워 두는 곳에 들러 주스도 마시고 딱지도 얻어갈 수 있는 구 실을 이미 내가 찾아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한가한 시간이 언제 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한 달, 아니 그 이상 계속되었다. 내가 크리스마스 날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난 그처럼 큰 어른이 어쩌면 그렇 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상사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눈에 눈물 까지 가득 고인 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절대로 다시는 크리스 마스에 선물을 얻으러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세월은 아주 천천 히 지나갔다. 게다가 아주 행복한 날들이었다. 우리 집에선 내가 변한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심한 장난도 치지 않았고 오직 뒷마당 구석의 내 세계 에서만 살았다. 때때로 악마가 내 마음을 정복할 때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심한 욕을 하지 않았고 이웃 사람들을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와 나는 늘 드라이브를 했다. 어느 날, 그는 차를 세우고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차로 드라이브하는 게 그렇게 좋으니?”“이게 제 것도 되나요?”“내 것도 모두 네 거다.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인데 뭘.” 나는 굉 장히 기분이 좋았다. 아, 이렇게 멋진 차의 절반이 내 거라니. 그걸 모든 사람들 에게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까지 됐으니 우리가 이젠 완전 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겠지?”“할 수 있어요.”“그렇담 한 가지 물어 볼 게 있는데?”“네, 좋아요.”“나 혼자 생각해 본 건데, 아직도 이다음에 커서 날 죽이고 싶니?”“그렇지 않아요. 절대로 그러지 않겠어요.”“그렇게 말했잖아, 안 그래?”“그땐 화가 나서 그랬어요. 난 절대 아무도 죽이지 못해요. 우리 집 에서 닭을 잡을 땐 쳐다보지도 못하는걸요. 게다가 얼마 후엔 아저씨가 사람들 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아저씨는 식인종도 아무것도 아 닌걸요.” 그는 깜짝 놀라 몸을 튕겼다. “뭐라고 그랬지?”“식인종이라고 했어 요.”“그게 무슨 말인지나 알고 있니?” “물론, 알죠. 에드문드 아저씨께서 가 르쳐 주셨어요. 아저씬 척척 박사세요. 어떤 사람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아저씰 초청해 가려고 시내에서 오기까지 했었어요. 오늘까지 내게 설명해 주시지 못한 건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건 탄화 규소라는 말이에요.”“넌 말머리를 돌리려 하는구나. 식인종이 뭔지 정확히 나한테 설명해 주어야지.”“식인종은 사람 고 기를 먹는 인디언이에요. 브라질 역사책에는, 먹으려고 포르투갈 인의 껍질을 벗 기고 있는 식인종의 사진이 있어요. 그들은 또 원수인 다른 종족들도 잡아 먹는 대요. 아프리카 식인종은 특히 수염이 긴 선교사들을 좋아 한대요.”그는 다른 브라질 사람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희한하게 웃었다. “굉장한 머리를 갖고 있는데, 꼬마야. 때론 날 놀라게까지 한단 말이야.” 그러 더니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말 좀 해 봐라, 꼬마야. 너 도대체 몇 살이냐? ”“거짓말 나이 말예요? 진짜 나이 말예요?” “물론 진짜 나이지. 난 거짓말 하는 친구는 싫어해.”“알았어요. 진짜 나이는 다섯 살이에요. 거짓말 나이는 여섯 살이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왜 그렇게 일찍 학교에 보내려고 했을까?”“생각해 보세요. 모두들 몇 시간만이라도 저한테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거든요. 아저씨, 아저씬 탄화 규소가 뭔지 아세요?”“그 말 을 어디서 들었지?” 나는 새총알로 쓰는 조약돌과 팽이줄, 구슬들이 들어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기서요.” 그리고 나는 인디언 얼굴이 새겨져 있는 메달을 꺼냈다. 그것은 머리에 깃털을 잔뜩 꽂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었다. 메달 뒷면에 그 글이 적혀 있었다. 그는 메달을 손에 올려놓고, 앞뒤로 돌려 보았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났지?”“아빠 시계에 붙어 있던 거예요. 바지 주머니에 달 수 있도록 줄이 달려 있었어요. 아빠 말씀이 그 시계는 저한 테 물려줄 거였대요. 근데 아빠가 돈이 필요하셔서 그 시계를 파셨어요. 아주 예 쁜 시계였어요. 아빤 내게 그 나버니 부속품을 주셨는데 그게 이거예요. 줄은 너 무 녹이 슬어 끊어졌어요.” 그는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넌 굉장히 복잡한 아이다. 하지만, 소릭히 말해 이 포르투갈 인의 낡은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기도 한다. 분명히 그래, 그렇고 말고. 계속 얘기할 게 있니?”“그럼요. 중요한 얘기를 할 게 있어요.”“얘기해 봐라.”“우린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친구가 된 거죠, 그렇죠?”“분명히 그래.”“차도 이미 절반은 제 거죠, 그렇죠?”“어느 날엔가 완전히 네 게 될 거다.”“그렇담...” 나는 좀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얘기해 봐. 왜 머뭇거리니? 넌 그런 애가 아닐 텐데...”“화 내시지 않죠?”“물론이지.”“우리가 사귀는 것 중에 제 맘에 들지 않는 두 가 지가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생각했던 대로 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뭔데? ”“첫째, 우리가 정말 친구라면 이때나 저때나 아저씨라고 해야 하나요?” 그 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아. 당신도 좋고 너도 좋고. ”“너는 안 돼요. 너무 어려워요. 게다가 밍기뉴에게 우리 얘길 들려 줘야 하거 든요. 근데 내가 '너'라고 하면 그 앤 자기를 말하는 줄로 잘 못 알 거예요. 차 라리 당신이 낫겠어요. 화내지 않으시죠?” “화를 낼 이유가 없잖아. 당연한 일 인걸. 그런데 밍기뉴는 처음 듣는데, 누구지?”“밍기뉴가 슈르르까예요. 그러니 까 슈르르까가 밍기뉴고, 밍기뉴가 슈르르까예요.” 나는 말을 되풀이했다. “밍 기뉴는 제 라임오렌지나무예요. 제가 굉장히 그 앨 사랑할 때는 슈르르까라고 불러요.”“그러니까 넌 밍기뉴란 이름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갖고 있다. 이거군. ”“그 앤 꽤 괴짜예요. 나랑 얘기도 하고, 말이 돼선 날 태우고 벅 존스나 톰 믹스, 프레드 톰프슨하고 나란히 달리기도 해요. 당신(처음으로 당신이라 부르려 니 힘이 들었다.)은 켄 마이나드를 좋아하세요?” 그는 카우보이 영화는 잘 모른 다는 듯한 몸짓을 해 보였다. “저번 날에 프레드 톰프슨이 나에게 그를 소개시 켜 주었어요. 난 그의 가죽 모자가 아주 맘에 들어요. 하지만 그는 잘 웃지 않는 그런 사람이에요.”“이제 그만 해라. 네 얘길 듣고 있으면 내 정신이 다 빠져 버린 듯 멍해진단 말씀이야. 그런데 또 한 가지는 뭐지?”“다른 한 가지는 더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제가 당신이라 불렀는데도 당신은 화내지 않으셨어요... 단 당신의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친구들 중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애가 많아서.”“맙소사, 그래서?”“제가 당신을 발라 다리스라고 부른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웃었 다. “사실 어감이 안 좋지.”“마누엘이란 이름도 난 싫어요. 아저씬, 우리 아빠 가 포르투갈 사람의 일화를 얘기해 주실 때 '그 애, 마누엘, 그런 쌍놈을 친구로 삼나 두고 봐라' 하실 때 제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르실 거예요.”“말 다했 니?”“아빠는 포르투갈 인 흉내를 내신 것뿐이에요.”“그래도 안 좋다. 듣기조 차 흉해.”“쌍놈이란 그렇게 흉한 거예요?”“그래.”“그렇담 그런 말 하지 말 아야지. 됐죠?” “그래, 어디 한번 물어 보자. 그래서 넌 어떤 결론을 니렸다는 거지? 날 바라다리스로 부르기도 싫고 마누엘은 더 더욱 싫다니...”“내 맘에 쏙 드는 이름이 하나 있어요.”“그게 뭔데?” 나는 그때 세상에서 가장 송구스 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디스라우 씨나 아니면 빵집에서 다른 어른들이 하듯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 그는 화가 난 것을 숨기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것처럼 내 손을 꽉 잡았다. “ 이봐, 넌 이 세상에서 제일 간이 큰 녀석이다. 날 뽀르뚜가라고 부르고 싶은 거 지, 안 그래?”“그래야 더욱 친해질 것 아녜요.”“그게 네가 바라던 전부냐? 그렇다면 그렇게 불러라. 자 이젠 그만 돌아가자, 됐지?” 그는 발동을 걸었고, 생각에 잠긴 채 차를 몰았다. 그러더니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차 문을 열고 소리쳤다. “내려라.” 나 는 그의 말에 따라 차에서 내려 차의 뒷부분까지 쫓아갔다. 그러자 그는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를 가리켰다. “자, 꽉 매달려라. 조심해!” 나는 기쁨에 넘쳐 박쥐처럼 꽉 매달렸다. 그는 차에 오르더니 천천히 차를 몰아 주었다. 오 분 정 도 지났을까, 그는 다시 차를 머무고 내게로 왔다. “기분 좋았니?”“꿈속 같았 어요.”“그럼 됐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지 돌아가야지.” 밤은 고요히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듯 멀리 가시나무 위에서 매미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자, 그럼 앞으로 그 일에 대해선 일 체 얘기 않기다. 알았지?”“알았어요.”“난 네가 우리 집에 와 이 얘기 저 얘 기 나누는 걸로 족하다. 그런데 식구들에겐 온종일 갔었다고 꾸며 댈 거니?”“ 벌써 생각해 두었어요. 오늘은 교리 문답에 갔었다고 말할 거예요. 오늘이 목요 일이잖아요.”“아무도 널 못 당하겠구나. 넌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내거 든.”나는 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아 그의 팔에 머리를 기대었다. “뽀르뚜가!” “음...?”“전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시죠?”“왜?”“왜냐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 곁에 앉아 '내 가슴속에 행복으 로 물든 즐거움의 햇빛이 있다'는 것을 누리고 있는 나를 아무도 흉보지 않을 거예요.” 4. 잊을 수 없는 두 차례의 매 “넌 여길 접어. 그리고 접은 자릴 칼로 똑바로 잘라.” 칼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종이를 가르고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엷게 풀을 칠해. 이렇게.” 또또까 형 곁에 앉아 나는 풍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풀을 다 붙인 후 또또까 형은 빨래집게로 풍선 주둥이를 집어 맸다. “잘 마른 다음에 입을 만들어야 해, 알겠니, 바보야?”“알겠어.” 우리는 문지방에 앉아서 풍선이 마르기를 기다렸 다. 풍선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또또까 형은 선생님처럼 자세히 설 명을 해 주곤 하였다. “땅제르식 풍선은 여러 번 연슴한 후에야 만들 수 있어. 처음 만드는 애들은 두 개의 깃이 달린 쉬운 것으로 해야 돼.”“또또까 형, 내 가 혼자 풍선을 만들게, 형이 입 부분을 만들어 줄래?” “글쎄, 생각해 볼까?” 형은 어떤 흥정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마 내 구슬이나 '아무도 어떻게 자랐 는지 몰랐다'라는 영화에 나온 배우가 그려진 딱지를 탐내는 것 같았다. “내 참, 또또까 형도. 형이 부탁해서 형 대신 싸워 주기까지 했잖아.”“좋아. 한 번 만 공짜로 해 주겠어. 하지만 네가 잘못 배웠을 때는 공짜로 안 해 줄 테야.”“ 좋아.” 그 순간 나는 잘 배워서 다음부턴 또또까 형이 손도 못 대게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러자 풍선 만들기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꼭 '나의 풍선'을 만들어야지. 뽀르뚜가에게 이런 얘길 하면 그가 얼마나 기뻐할까. 내 손 에서 흔들리는 풍선을 보면 슈르르까가 얼마나 놀랄까... 나는 그런 생각에 푹 빠져 주머니마다 배우 그림 딱지와 구슬을 가득 채워 넣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딱지와 구슬을 적어도 은종이 두 장을 살 수 있는 정도에서 되도록 싸게 팔 작 정이었다.“야! 얘들아, 구슬 사라. 일 또스땅에 구슬 다서 개 줄게. 방금 산 것 처럼 새거야.” 그러나 그걸 사려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일 또스땅에 딱지 열 장 줄게. 로따 아줌마네 가게에서도 이 정도로 싸게 살 순 없어.” 그래도 사는 아이가 없었다. 사실 돈을 갖고 있는 애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쁘로그레수 거리로, 까빠네마 남작 거리로 가 봤으나 헛수고였다. 진지냐 할머니 댁에 가 볼까? 혹시나 하고 갔었으나 할머니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셨다. “내겐 딱지 나 구슬 따위는 필요 없다. 네가 그대로 갖고 있는 편이 나아. 왠고 하니 내일이 면 나한테 찾아와서 그걸 도로 사겠다고 떼를 쓸 테니까.” 사실은 할머니도 돈이 없으셨던 것이다. 나는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내 두 다리는 먼지로 굉장히 더러워져 있었고 날은 벌써 저물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제제! 제제!” 비리끼뉴가 나를 부르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 “사방으로 널 찾아 다녔어. 너 뭐 팔고 있지? ” 나는 주머니를 흔들어 구슬이 찰랑거리도록 했다. “앉아 봐.”나는 땅바닥에 물건을 펼쳐 보였다. “얼마니?”“일 또스땅에 구슬은 다섯 개, 딱지는 열 장. ”“비싸다.” 이 못된 도둑놈이 날 귀찮게 구는군. 네 놈처럼 싸게만 사려는 녀 석에겐 비쌀 테지. 나는 전부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으려 하였다. “잠깐만, 골 라도 되니?”“얼마나 있는데?”“삼백 레이스. 이백 레이스 정도 쓸 수 있어.” “좋아, 그럼 구슬 여섯 개랑 딱지 열두 장 줄게.” 나는 '재난과 굶주림'상점으로 날듯이 뛰어 들어갔다. 뽀르뚜가와의 일을 기억 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오르란도 씨만이 카운터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공장의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이 나와서 뭘 마실 때에만 겨우 꽉 찰 정도로 늘 한산했다. “은종이 있어요?”“돈은 있니? 네 아버지 앞으론 더 이상 줄 수 없다.” 나는 화도 내지 않고 은전 두 개를 내보였다. “장미색과 호박색이 있다.”“그 색뿐이에요?”“연날리는 시기라 애들이 몽땅 사갔단다. 하지만 뭐 다를 게 있을까? 연은 무슨 색이든 올라가잖아, 안 그래?”“연을 만 들 게 아녜요. 풍선을 만들 거예요. 내 첫번째 풍선은 세상에서 제일 예뻐야 하 거든요.” 그러나 지체할 수가 없었다. 쉬코 프랑꼬 잡화상까지 뛰어가자면 시간 만 낭비할 것 같았다. “그걸로 주세요.” 이제는 입장이 달라졌따. 나는 책상 앞에 의자를 놓고 망을 보도록 루이스 왕을 올려놓았다. “조용히 해야 해, 약속 하지? 이 제제 형은 지금 아주 어려운 일을 하려 한단 말씀이야. 네가 크면 너 한텐 공짜로 가르쳐 줄게.” 꽤 빨리 날이 어두워졌고, 공장의 사이렌 소리도 울 렸다.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잔디라 누나는 벌써 식탁에 접시를 놓고 있었 다. 누나는 어른들을 성가시게 군다고 우리에게 먼저 저녁을 주었다. “제제! 루 이스!” 누나는 우리가 무룬드 거리에 나가 노는 것도 아닌데 크게 소릴 질렀다. 나는 루이스를 내려놓고 타일렀다. “먼저 가 있어. 곧 갈게.”“제제 형, 빨리 와. 안 그러면 또 때릴 거야.”“그래, 곧 갈게.” 저 마녀 같은 게 기분이 나쁜 가 보군. 애인 녀석들 중 누구랑 싸운 모양이야. 저 끝에 사는 것 아니면 첫번째 거리에 사는 녀석이겠지. 풀이 마르기 시작해, 일부러 그런 것처럼 손가락에 풀 이 붙어 만들기가 더 더디어졌다. 햇빛은 거의 스러져 가고 있었고 누나의 부르 는 소리도 점점 높아 졌다. “제-제! 제-제!” 볼장 다 봤군. 이젠 죽었어. 누나 는 약이 잔뜩 올라서 쫓아왔다. “넌 내가 식모인 줄 아니? 빨리 와서 먹어.” 누나는 방을 들어와 내 귀를 잡고 식당까지 끌고 가서 식탁 앞으로 확 밀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안 먹어. 안 먹겠단 말야. 난 내 풍선을 바저 끝낼 거야. ” 나는 발딱 일어나 아까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누나는 맹수처럼 날뛰 었다. 그녀는 내게로 오는 대신 책상 쪽으로 갔다. 그러자 모든 것이 정말 한낮 의 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누나는 내 풍선을 갈기갈기 찢은 것으로도 맘에 안 차는지(난 맥이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 내 팔과 다리를 잡고 식당 가운데로 날 던졌다. “말로 했을 때 좀 들어!” 그러자 악마가 다시 내 맘속에 되살아났 다. 반항심이 태풍처럼 나를 뒤흔들었다. 어쩌면 머리를 쥐어박는 정도로 끝났을 지도 몰랐다. “네가 뭔지 알아? 이 갈보야.” 누나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싹 갖다 대었다.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용기가 있으면 다시 말해 봐!” 나는 음절을 끊어 가며 다시 말했다. “갈, 보!” 그러자 그녀는 옷장 위 에 있던 가죽 장갑을 집어 정신없이 날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등을 돌려 손 사 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고통은 분노보다 덜했다. “갈, 보! 갈보야! 갈보 계집애!...” 누나는 쉬지 않고 계속 때렸다. 내 몸은 불덩이처럼 활활 타올라 쓰 라렸다. 바로 그때 안또니오 형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날 너무 때려 지치기 시작한 누나늘 돕느라 바빴다. “죽여라, 살인자야! 내 대신 복수하기 위해 감옥 이 널 기다린다.” 그려는 내가 무릎을 꿇고 거꾸로 쓰러질 때까지 마구 때렸다. 나는 옷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갈보! 갈보 계집애!” 또또까 형은 날 일으켜 앞으로 돌려세웠다. “입닥여, 제제! 누나한테 그런 욕을 할 수 있어?”“저년은 갈ㅂ야. 살인작. 갈보 계집애!” 그러자 형은 얼굴, 코, 입 할 것 없이 마구 때리 지 시작했다. 특히 입을 심하게 때렸다.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은 소리를 듣고 달 려온 글로리아 누나였다. 그녀는 로제나 아주머니 댁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가 날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마치 태풍처럼 방으로 뛰어들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피 에 흠뻑젖은 내 얼굴을 보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또까 형을 밀어젖혔 다. 그리고 잔디라 누나가 우리 집의 맏딸이라는 잊어버리고 잔디라 누나를 떠 밀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눈도 못 뜨고 겨우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침실로 날 데려갔다. 난 울지 않았으나 루이스 왕이 놀란 나머지 엄마 방에 숨어 엉엉 울고 있었다. 이유 없이 날 때리는 것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언젠가 너희들이 이 어린애를 죽일 거야. 두고 봐. 인정머리 없는 괴물 같으 니.” 그녀는 날 침대에 눕히고 소금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왔다. 또또까형이 슬 그머니 침실로 들어왔으나 누나가 그를 밀어냈다. “저리 나가 있어, 이 바보야!”“누난 제가 욕하는 소릴 못 들 어서 그래!”“ 이 얘는 아무 욕도 안 했어. 너희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을 거야. 내가 나갈 때만 해도 조용히 앉아서 자기 풍선을 만들고 있었어. 인정머리 없는 것들. 어떻게 자기 동생을 이토록 때릴 수가 있담?” 그녀가 내 피를 씻어 줄 때 나는 부러진 이빨 한 개를 뱉었다. 그러자 이것이 화산에 물을 지른 격이 되 었다. “자, 네가 무슨 짓을 했나 봐라. 이 겁쟁이 녀석아. 넌 싸움을 할 땐 무서 워서 이 애를 불러냈지? 이 겁쟁이 녀석아. 아홉 살씩 먹어 가지고 여태 침대에 다 오줌을 싸면서. 매일 아침 서랍 속에 숨겨 두는 오줌 싼 바지랑 침대 시트 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까?” 그녀는 방 밖으로 모두 쫓아내고 문을 잠가 버렸 다. 그리고 방이 어두워지자 등불을 켰다. 누나는 내 셔츠를 벗겨 때묻은 곳과 찢어진 상처를 닦아 주었다. “아프지, 아가?”“굉장히 아팠어.”“내가 잘 문 질러 줄게. 우리 심술궂은 장난꾸러기야. 마르게 잠깐 엎드려 있어. 그러지 않으 면 옷이 달라붙어 더 아플 거야.” 그러나 제일 아픈 곳은 얼굴이었다. 상처 때 문에 아프기도 했지만 이유 없이 얻어맞은 것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일이 잘돼 가느라고 그랬는지 누나는 내 옆에 누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 나도 알 거야, 고도이아.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내가 맞을 짓을 했다면 상관 안해.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안 했어.”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 풍선이 망가 져서 제일 슬퍼. 얼마나 예뻐지고 있었다고 루이스에게 물어 보면 알 거야.”“ 나도 알 것 같아. 아주 예뻤을 거야. 하지만 걱정 마. 내일 진지냐 할머니 댁으 로 가서 다시 종이를 사자.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풍선이 되도록 내가 도와줄 게. 너무 아름다워서 별들도 질투하게 될 거야.”“소용없어, 고도이아. 제일 첫 번 풍선만이 가장 아름다운 거야. 첫 풍선이 소용없게 되면 더 이상 만들고 싶 은 마음이 없어지는 거야.”“어느 날... 어느 날이건... 내가 이 집에서 멀리 떨 어진 곳으로 널 데리고 갈게. 거기서 함께 살자, 응?”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틀림없이 진지냐 할머니 댁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거기도 지옥같이 될 건 마찬가질 텐데 뭘. 내 라임오렌지나무와 내 환상의 세계에 누나가 직접 참가 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난 널 톰 믹스나 벅 존스가 있는 목장에서 살도 록 데리고 갈 테야.”“하지만 난 프레드 톰프슨을 더 좋아해.”“아무튼 그런 곳에 데려갈게.” 그리고 우리는 서글픈 마음에 나지막이 울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틀 동안 난 뽀르뚜가에게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도 식구들은 식구들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렇게 잔인스런 행동을 했다 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의 부기가 빠지고 상 처가 낫게 돼야 나는 예전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동생과 밍기뉴 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얘기할 기분이 안 들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빠 는 다시 누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없애 버리겠다고 다짐하셨다. 숨쉬기조차 두려웠다. 차라리 내 라임오렌지나무 그늘 속에 앉아 있는 것이 속 편했다. 거기 서 나는 뽀르뚜가가 사 준 딱지를 보며 루이스 왕에게 구슬치기를 가르쳐 주는 게 고작이었다. 동생은 아직 미숙했지만 운이 좋으면 언젠가 완전히 숙달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뽀르뚜가가 굉장히 보고 싶었다. 뽀르뚜가는 분명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겠지. 그가 만약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안다면 날 찾아오려고 할 텐데. 묵직하면서도 상냥하게 '너'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 말씀이 상대방에게 '너'라고 할 때는 문법(동사 활용)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의 갈색 얼굴, 깨끗하고 나무랄 데 없는 양복, 방금 서랍에서 꺼낸 것처럼 빳빳한 셔츠 칼라랑 체크 무 늬 조끼, 심지어 배의 닻 모양을 본뜬 고리 달린 커프스 단추까지 그리웠다. 뭘, 곧 낫겠지. '결혼하면 병이 낫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어린애들의 상처는 그보다 더 빨리 낫는다는데 뭘. 그날 밤 아빠는 외출하지 않으셨다. 집에는 자고 있는 루이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지금쯤 시내에서 돌아오고 계시겠지. 엄마 는 영국인 방직 공장에서 밤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와는 겨우 일요일에나 얼굴 을 마주할 뿐이었다. 나는 아빠 곁에 있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장난을 치지 않기로 예전에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흔들의자에 앉아 멍하니 벽만 바라 보고 계셨다. 아빠 얼굴은 면도를 안 해 항상 수염이 나 있었다. 옷도 늘 깨끗하 지 못하셨다. 돈이 없어서 트럼프 놀이도 못 하시는 것 같았다. 불쌍한 아빠! 엄 마가 집안을 돕기 위해 일하러 다니는 걸 아시고 얼마나 슬프셨을까. 게다가 랄 라 누나도 공장에 들어가야 했으니. 일자리를 얻기도 힘드셨을 거야. 게다가 ' 우린 좀더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실망에 차 돌아오셨 겠지. 나는 문지방에 앉아 벽으로 기어오르는 하얀 벌레를 헤아리며 가끔 아빠 를 바라보았다. 아빠의 얼굴은 크리스마스 날 내가 보았던 얼굴만큼이나 슬퍼 보였다. 내가 아빠를 위해 해 드릴 일이 없을까? 놀래를 불러 드리면 아빠 근심 이 조금은 사라질 거야. 나는 미리 속에 곡목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가장 최 근에 아리오발도 씨에게 배운 노래를 기억해 내었다. 그것은 탱고로 내가 들었 던 아름다운 노래들 중에 하나였다. 나는 낮게 시작했다.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밝은 달빛 아래서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제제!” “네, 아빠.”나는 긴장하며 일어났다. 아빠는 분명히 이 노래가 좋으신 거야. 날 보고 가까이 와서 불러 보라고 하실 거야. “무슨 노 래를 하고 있는 게냐?”나는 다시 불러 드렸다.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 누가 그런 노랠 가르쳐 줬지?” 아빠의 눈은 불꽃이 튕겨나올 듯 핏발이 서 있 었다. “아리오발도 씨요.”“그하고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지?” 아빠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나는 아빠가 내가 가수 보조자로 일하고 있는 사실 조차 모르시는 줄 알았다. “어디 다시 불러 봐라.”“요새 유행하는 탱고예요. ”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아빠는 내 뺨을 찰싹 때리셨다. “어디 다시 불 러 봐.”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아빠는 날 계속 때리셨다. 그러자 울고 싶지도 않았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디 계속해 봐라.” 나는 벌거벗 은 여자가 좋아... 내 얼굴은 거의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흐물흐물해졌다. 뺨을 맞을 때마다 그 충격으로 나의 눈을 떴다 감았다 해야만 했다. 난 아빠 말을 따 라야 하는 건지 노래를 그만 불러야 하는 건지를 몰랐다. 그러나 아픔 속에서도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것이 내가 맞는 마지막 매가 되도록 맞고 죽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아빠께서 매를 잠깐 멈추고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셨지만 난 부르 지 않았다. 그 대신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소리쳤다. “살인자! 날 단번에 죽여 라. 감옥이 내 대신 복수하려고 기다리고 있어.” 아빠는 굉장히 화가 나셔서 흔 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그리고 허리띠를 풀으셨다. 두 개의 쇠고리가 달린 허리띠였다. 아빠는 정신없이 욕을 하셨다. 개새끼, 쓰레기 같은 건달 녀석, 바 보. 아빠한테 난 이런 욕들을 잔뜩 해 주고 싶었다. 허리띠가 내 몸 위에서 윙윙 거렸다. 얼마나 세게 여기저기 때리는지 마치 몸 위에 천개의 손가락이 왔다갔 다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벽 한 모퉁이에 움츠리며 쓰러졌다. 나는 아빠가 지금 날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겨우 나를 구하러 들어온 글로리아 누나의 음 성을 들을 수 있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나와 닮은, 유일한 러시아 고양이의 털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었다. 글로리아 누나에겐 아무도 손을 못대었다. 누 나는 아빠의 손을 꽉 잡고 매을 중단시켰다. “아빠! 아빠! 제발 절 때리시고 이 애는 더 이상 때리지 마세요.” 아빠는 식탁 위에 허리띠를 던지셨다. 그리곤 손 으로 얼굴을 슬어올리셨다. 그러더니 울음을 터뜨리셨다. “내가 정신이 나갔지. 난 그 애가 날 놀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됐구나.” 글로리아 누나 가 나를 들어올렸을 때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는 열이 올라 온몸이 쿡쿡 쑤셨다. 응접실에선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진지냐 할머니까지 오신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이 내겐 더욱 마음 아팠다. 후에 의사를 불렀다는 사실도 나는 알았다. 그래도 몸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글 로리아 누나는 자기가 만든 수프를 갖고 와 내게 먹이려 애을 썼다. 그러나 마 시면 마실수록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독히 졸음만 오고 잠이 깨면 조금 덜 아 픈 것 같기도 했다. 글로리아 누나와 엄마는 계속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는 내 곁에서 밤을 보내셨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일하러 가실 준비를 하느라 일어나셨 다. 엄마가 작별 인사를 하러오셨을 때 나는 엄마의 목을 꼭 껴안았다. “별일 없을 게다, 아가. 내일이면 다 나을 거야.”“엄마.” 나는 일생에 가장 슬픈 일 을 당한 듯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난 태어날 필요가 없었던가 봐 요. 내 풍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 엄마는 쓸쓸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누구나 태어나는 것은 운명이란다. 너도 역시 그래. 단지 넌 가끔 지나치게 장 난이 심해요.” 5. 부드럽고 교묘한 간청 내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이제는 매맞아 아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잘 대해 주 었다. 그러나 나는 늘 허전했다.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게 해 주는 건 단지 사람 을 믿어야 하며 남의 선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늘 밍기뉴 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와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싫었다. 기껏해야 그의 곁 에 앉아 동생과 노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루이스가 좋아하고 아끼는 단추들을 온종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빵 데 아쑤까르 산의 케이블카 놀이을 하며 지냈다. 나는 무척 다정하게 루이스를 대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런 놀이를 좋아했을 때 는 나도 그 애처럼 어렸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내게 딱지 뭉치도 갖다 주 고 구슬 주머니도 갖다 주었다. 그러나 난 손도 대지 않았다. 영화 구경도, 구두 닦이도 시들했다. 내 가슴속에 슬픔이 커 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토록 작은 나를 그렇게 이유 없이 두들겨 패다니... 글로리아 누나는 내 환상의 세계 를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이제 없어. 모두 멀리 가 버렸어.” 누나는 때때로 프레드 톰프슨과 그 친구들 얘기도 걸어 왔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마음속에 일어난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누나는 내가 결 심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영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카우보이 영화 도 인디언 영화도 이젠 필요 없었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이 말하는 애정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이다. 키스하는 장면도 포옹하는 장면도 많은, 누구나 좋아하는 그 런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이다. 매만 맞고 사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난 뽀르뚜가가 일주일 동안 이나 '우리'차를 타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만나 고 싶을 때는 언제나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아 근심했을 게 틀림없 었다. 그러나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죽음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우정을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알아선 안 된다는 비밀을. 역 맞은편에 있는 빵집 가까이 가니 그 멋진 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때서야 겨우 내 마음속에 한 줄기 행복의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리움으로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진 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역 입구로부터 멋진 기적 소리가 울려 와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것은 이 기찻길의 주인 격인 난폭하고도 거만한 망가 라치바 기차였다. 기차는 온몸을 멋지게 흔들어 보이며 나는 듯이 지나갔다. 창 문마다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 았다. 어렸을 적엔 이 망가라치바를 구경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차가 선로 끝으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계속 손을 흔들어 보냈었는데, 이제 그런 짓을 할 나이의 애는 루이스뿐이지. 빵집 탁자들 사이에서 나는 그를 찾아냈다. 그 는 사람들이 꽉 차도 찾을 수 있도록 마지막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들 이 꽉 차도 찾을 수 있도록 마지막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 멋진 체크 무늬 조 끼도 안 입고, 깨끗한 셔츠의 소맷자락도 잠그지 않은 채 등을 보이고 앉아 있 었다. 약간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의 등뒤로 다가갔다. 라디스 라우 씨가 그를 놀라게 해 주었다. “잘 봐, 뽀르뚜가. 누가 와 있는지 아나?” 그가 천천히 돌아섰을 때 나는 분명히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활짝 개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팔을 벌려 아주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다. "그래, 오늘은 네가 올 거라고 내 마음이 그러더라.“ 그리고 한동안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 런데, 이 도망자야, 어딜 그렇게 오랫동안 가 있었지?“ "굉장히 아팠어요." 그는 걸상을 끌어당겼다.”앉아라.“ 그리고 웨이터를 불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문 했다. 하지만 주스와 과자가 나왔을 때도 난 먹지 않았다. 나는 팔에 머리를 기 대고 앉아 있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기가 죽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 먹기 싫니?“ 대답을 안 하자 뽀르뚜가는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입술을 꽉 물 었으나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음, 이것 보라, 이게 무슨 짓이지, 꼬마 친구? 네 친구에게 속시원히 얘기해 봐.“ ”못하겠어요, 여기선 못 하겠어 요.“ 라이스라우 씨는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나는 한 가지만 말하기 로 결심했다. ”뽀르뚜가, 아직도 그 차가 우리 차인게 틀림없나요?“ ”그래. 뭐 의심스러운 게 있니?“ ”그럼 지금 저하고 드라이 브하러 가실 수 있어요?“ 내 간청을 듣고 그는 깜짝 놀랐다. ”네가 가고 싶다 면 가도록 하자.“ 그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나의 팔을 잡고 자동차가 세워 진 곳에 데려갔다. 그리곤 열려 있는 차 속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빵집에 돈을 지불하러 돌아갔다. 나는 그가 라디스라우 씨랑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 애 집에선 아무도 저 애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나도 저렇게 똑똑한 애는 처음 봤거든.“ ”솔직히 말해 봐, 뽀르뚜가. 자넨 저런 악 질 녀석을 정말 좋아한단 말인가?“ ”자네가 알고 있는 것은 저 애의 극히 일 부에 지나지 않아. 아주 영리하고 깜찍한 녀석이야.“ 그는 차에 돌아와서 자리 에 앉았다. ”어디로 갈까?“ ”아무 곳으로나요. 무룬두 거리도 좋고요. 거긴 가까우니까 휘발유도 적게 들 거예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어른들의 걱정을 알하 주는 걸 보니 넌 어린애가 아니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어 려서부터 뭐든지 절약하는 법을 배웠다. 돈이 많이 들면 너무 힘에 부치기 때문 이었다.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그는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좀 진정되도록 놔두는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스쳐가고 놀랍게도 녹색의 풀로 가득 찬 길로 차가 들어서자 그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늘 그렇듯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항상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그는 그렇게 가득 채워 주는 것이었다. "뻐르뚜가, 제 얼굴을 자세해 봐 주세요. 아니 얼굴말고 주둥이요. 우리 집에선 내가 사람이 아니라 삐나제 인디언인데다 짐승이고 악마의 새끼라 입이 아니라 주둥이를 가 졌대요.”“난 네 얼굴이 보고 싶은데.” “그치만 잘 보세요. 매을 맞아 아직도 부어 있는지 잘 봐 주세요.”뽀르뚜가의 눈은 놀람과 가여움으로 이상하게 변했 다. “왜 이토록 맞았지?” 난 모든 일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내가 얘기를 끝냈 을 때 그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작은 애에게 그토록 모진 매질을 하다니? 아직 여섯 살도 채 못 된 아이에게. 오, 맙 소사!”“왠지 난 알아요. 난 쓸모가 없는 애라서 그래요. 크리스마스에도 착한 아기 예수가 못 되고 악마 소년이 태어날 정도로 나쁜 애이기 때문이에요.”“ 바보 같은 소리. 넌 아직 천사 같은 꼬마야. 그래서 그런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 는 거야.” 그러나 난 이런 생각을 지워 버릴 수 없어 몹시 괴로웠다. “난 태어 나지 말았어야 할 악질이에요. 나도 그걸 저번에 엄마께 말씀드렸어요.” 그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런 말 해서는 안 돼.”“전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부탁드린 것뿐이에요. 저도 제가 나쁘다는 걸 잘 알아요. 아빠는 나이가 많으셔서 일자릴 얻지 못하셨던 거예요. 아빠가 얼마나 괴로워하시는지도 알고 있었어요. 엄마는 집안을 돕기 위해 새벽부터 영국인 방직 공장에 나가세요. 실 타래를 메고 다니셔서 곪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붕대를 매고 다니셨어요. 랄라 누나는 공부도 많이 한 처녀가 여공이 돼야만 했어요. 이런 일들이 아빠껜 모두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나를 그렇게 심하게 때리실 필 요가 없으셨어요. 지난번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께 날 때리셔도 좋다고 했었지만, 이번엔 너무하셨어요.” 그는 깜짝 놀라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 맙소사! 어떻게 너 같은 어린애가 어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가 있단 말이냐. 너 같은 꼬마는 처음 봤다.” 그는 약간 울먹였다. “우린 친구 사이다. 그렇지? 그 러니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얘기해 보자. 너와 얘길 하고 있으면 어떤 때는 두 렵기조차 하다. 하지만 잘해 보자. 아무튼 넌 누나에게 그런 욕까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욕하는 게 하니었어. 알겠니?”“하지만 전 이 렇게 어리잖아요. 말로라야 겨우 복수할 수 있거든요.”“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담 더 더둑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래선 안 되지.”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뽀루뚜가!”“응?”“당신은 제가 그런 욕 을 하는 게 싫으세요?”“덮어놓고 하는 건 싫다.”“그렇다면, 제가 죽지 않는 한 그런 욕을 않겠다고 맹세하겠어요.”“좋아. 그런데 죽는다니 무슨 소리지?” “잠시 후에 얘길 할게요.”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뽀르뚜가는 근심에 잠 겨 있었다. “내가 이미 널 믿고 있다는 걸 넌 명심해야 해. 그래 노래 얘기는 뭐지? 탱고라고 했던가? 넌 네가 어떤 노래를 부르로 있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당신에겐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전 정확히는 몰랐어요. 전 뭐든지 들으면 외우거든요. 게다가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웠다고요. 그 내용은 생각조차 안 해 봤어요. 그런데 절 막 때리잖아요. 뽀르뚜가, 걱정 마세요...” 나는 엉엉 소리내 어 울었다. “걱정 마세요. 난 그 를 죽여 버릴 테니까요.”“그게 무슨 소리냐? 너의 아빠를 죽이겠다고.”“그래 요. 전 이미 시작했는데요. 죽인다고 꼭 벅 존스의 권총을 빌려 빵 쏘아 죽이는 게 아녜요. 그게 아니란 말예요. 제 생각 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 만두는 거죠. 그렇게 되면 언젠가 완전히 죽게 되는 거예요.”“넌 굉장한 상상 력을 가졌구나.” 말은 그렇게 했으나 나는 그가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넌 나도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니?” “처음엔 그랬죠. 그 후에 반대로 죽였어오. 내 마음속에 당신이 다시 태어나도록 그렇게 죽였어요. 당신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뽀르뚜가, 당신은 저의 유일한 친구예요. 당신 이 제게 딱지랑 주스랑 사탕이랑 구슬 같은 것을 사 주셔서 그런 것이 아녜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모두가 널 사랑할 거야. 네 어머니나 아버지, 네 글로리아 누나랑 루이스 왕도. 넌 혹시 네 라임오렌지나무를 잊은 건 아니겠지? 밍기뉴라고 했지? 그리고 또 뭐더라?”“슈르르까요.”“응, 그래.” “지금은 달라요, 뽀르뚜가. 슈르르까는 단지 꽃 한 송이 피울 줄 모르는 단순한 오렌지나무예요. 그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안 그래요. 당신은 제 친구고, 그래서 전 얼마 안 가 당신 혼자만의 차가 될 우리 차로 드라이브하로 가자고 한 거예요. 전 당신께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예요.”“작별이라고?”“정말이에 요. 당신이 보다시피 난 아무데도 쓸모없는 아이잖아요. 게다가 나도 매맞고 구 박받는 데 지쳐 버렸어요. 더 이상 주둥이란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요.” 목이 메었지만 난 마저 다 얘기해 버리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도망치려고?”“아뇨. 이번 주 내내 생각했어요. 오늘 밤 망가라치바에 뛰어들기로요.” 그는 말없이 나를 팔로 꽉 껴안았다. 그리고 그만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그 러지 마라, 제발 그렇게 하지 마. 넌 앞으로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어요. 요 작은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이 들어 있었다니. 그런 말은 죄가 되지 꺼내지도 마. 난 네가 그런 맘을 먹는 게 싫다. 그럼 난 어떡하니? 넌 날 그렇게 사랑하지 않 는 것 같구나. 만약 네가 정말 나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는 내게서 떨어져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난 널 무척 사랑한다, 꼬마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 자, 이젠 웃어 봐야지.” 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겨우 웃어 보였다. “다 잊 게 될 거야. 넌 연날리기 챔피언도 되고, 구슬치기 왕도 될 거야. 게다가 벅 존 스처럼 훌륭한 카우보이도 될 거다. 참, 내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있다. 궁금하 지 않니?”“뭔데요?”“토요일에 난 인깐따도에 있는 내 딸을 보러 가지 않는 다. 그 앤 빠께따에서 자기 남편과 며칠 지낸다더라. 그래서 난 날씨가 좋으면 관두에 낚시를 하러 갈 생각이다. 그런데 갈 만한 친구가 없어 널 생각해 봤다. ”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 데리고 가 주시겠어요?”“그래, 너만 좋다면, 억지고 가자는 건 아니야.”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얼굴과 목을 끌어안고 면도한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비벼 댔다. 그와 함께 웃다 보니 모든 슬픔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름다운 곳이야. 점심을 싸 가지고 가자꾸나. 넌 뭘 제일 좋아하지? ”“당신은요, 뽀르뚜가.”“나는 소시지, 계란, 바나나.”“전 다 좋아해요. 우리 집에선 가려 먹으면 안 돼요.”“그럼 같이 가는 거다?”“이 일을 생각하면 잠 도 못 잘 거예요.” 그러나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하지만, 하루종일 나가 있을 텐데 집에서 아무 말씀 안 하실까?”“뭐든지 구실을 만들 어 내겠어요.”“나중에 매맞지 않겠니?”“이달 말일까지는 아무도 날 때리지 못해요. 글로리아 누나에게 약속했고, 게다가 글로리아 누나는 무섭거든요. 누나 만이 저와 닮은 유일한 러시아 암코양이예요.”“정말?”“네, 정말이에요. 때린 다 해도 제가 다 회복된 한 달 후에야 때릴 수 있어요.” 그는 발동을 걸어 차 를 돌렸다. “그 일은 더 얘기조차 하기 싫으니, 더 이상 꺼내지도 말자.”“그 일이라뇨?”“망가라치바 얘기.”“그런 일을 하려면 시간이 좀더 흘러야 할 것 같아요.”“그래. 좀 두고 보는 거야.” 그 후에 나는 라디스라우 씨를 통해 알 았다. 내가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뽀르뚜가는 망가라치바가 돌아가고 나서야 집에 돌아갔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깊은 밤에. 우리는 아름다운 딜을 따라 달렸다. 포장도 안 되어 있고 인도도 없는 좁은 길 이었지만 매우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멋진 길이었다. 하늘은 말할 나위 없이 푸르고 맑았다. 진지냐 할머니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 었다. ‘기쁨이란 마음속에 빛나는 태양이라고. 그리고 그 태양이 모든 행복을 비추어 주는 거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마음속의 태양이 모든 것을 아름답 게 비춰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가 천천히 달리는 동안, 우리는 이 얘기 저 얘 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열심히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런데, 나하고 있을 땐 넌 참 착하고 상냥한 아이란 말이야. 너희 선생님 성함이 뭐라고 했더 라?”“세실리아 빠임 여사요. 당신은 그분 눈 한쪽에 흰자위가 많은 걸 아시 죠?” 그는 빙그레 웃었다. “글쎄.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 얘기를 할 때 넌 그녀 가 수업 시간 이외의 너의 나쁜 행실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네 동생이나 글로 리아와 있을 때도 넌 아주 착한 애였어.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글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집에선 제가 좋은 일을 해도 나븐 일이 되어 버려요. 동네 사람들도 제가 나쁜 짓 한 것만 알고 있어요. 악마가 내 마음속에 바람을 불어 넣나 봐요. 그렇지 않음, 왜 제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그 따위 철없는 짓을 했겠 어요. 에드문드 아저씨께 했던 일 알고 계세요? 제가 절대 말씀드리지 않았을 텐데. 말씀드린 적 있었어요?”“없다.”“아마 여섯 달 전이었나 봐요. 아저씬 북부 지방에서 만든 그물 침대를 하나 선물로 받으셨어요. 그런데 굉장히 비싸 게 구시잖아요. 우리가 구 위에 올라가 놀지도 못하게 하시고, 내 원 참 더러워 서, 망할 놈의 자식...”“뭐라고?”“아, 아녜요. 악랄하게도 아저씬 그물을 걷어 옆구리에 끼고 가 버리는 거예요. 한 올이라도 제가 떼어 갈까봐 말이에요. 그런 데 어느 날 제가 할머니 댁에 갔었어요. 마침 할머니는 절 못 보셨어요. 제 생각 에 아저씨는 분명히 안경을 콧등 위에 올려놓고 신문 광고를 읽고 계시리라 생 각했죠. 그래서 뒤뜰로 가 보았어요 고이아바나무가 있는 곳을 살폈더니 아무도 없었어요. 아저씨는 오렌지나무와 울타리 사이에 그물 침대를 붙들어 매시고 코 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어요. 입을 반쯤 벌린 채 돼지처럼 킁킁대면서. 신문이 땅 에 떨어져 있더군요. 그러자 악마가 절 충동질했어요. 아저씨 주머니에 성냥과 다른 것들이 들어있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소리 없이 신문을 찢어선 조가 들을 주워 모사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였어요. 밑바닥에서 불꽃이 올라왔을 때... ” 나는 얘기를 멈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뽀르뚜가, 볼기짝이란 말 해도 왜요? ”“그래. 그래도 욕에 가까우니 자주 하면 안 된다.”“볼기짝이라고 말하고 싶 을 땐 어떻게 하죠?”“둔부라고 해라.”“뭐라고 그러셨어요? 꽤 어려운 것 같 은데요? 외워 두어야겠어요.” “둔-부.”“알았어요. 아저씨 둔부 아래서 불이 붙기 시작했을 때 난 막 달려가 문 뒤에 숨어 울타리를 통해 어떻게 될까 바라 보고 있었어요. 그러자 고함 소리가 들리고 아저씨는 껑충 뛰어올라 침대를 들 어올리고 야단이 났죠. 진지냐 할머니가 달려오셔서 아저씨게 호통을 치셨어요. ’담배를 문 채 자지 말라고 얼마나 그랬니, 이젠 그런 소리 하기에도 지쳤다.‘ 하시고 신문이 타는 걸 보시자 아직 읽지도 못하신 것이라고 화를 내셨어요.” 뽀르뚜가는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가 웃는 것을 보니 나도 흐뭇했다. “들키지 않았니?”“안 들켰어요. 슈르르까한테만 얘기한걸요. 만일 발각됐더라 면 제 주머니를 쓱싹해 버렸을 거예요.”“뭘 쓱싹해 버린다고?”“제 불알 말 이에요.” 그는 다시 한바탕 웃어 댔다. 우리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차가 지나온 길에서 노란 먼지가 일고 있었다. 나는 한 가지 석연치 않은 게 있었다. “뽀르 뚜가, 당신은 저한테 거짓말을 안 하시겠죠, 네?”“뭔데 그러니, 요 꼬마야?” “전 아직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둔부를 찬다는 말요. 당신은 들어 보셨 어요?” 그는 커다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한 녀석이군. 나도 들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할 수도 있지. 둔부란 말을 잊었을 때는 엉덩이라고 해라. 이 젠 이런 얘기는 드만 두자. 이러다간 네게 대꾸할 말조차 안 남아나겠다. 저기 큰 나무들이 보이지? 강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는 오른쪽을 살피더니 샛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동안 더 몰고 가더니 들판에 차를 멈췄다. 거기에는 아주 굵은 덩굴로 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좋아 했다. “야, 굉장히 멋있네! 굉장히 멋진 곳이에요. 제가 벅 존스와 만나기로 할 때 생각해 둔 평원이 있었는데 이곳에 비하면 반도 못 따라오겠어요.”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주 볼 수 있도 록 이렇게 데려다 주마. 늘 멋진 꿈만 꾸고 살아라. 잡생각일랑 다 잊고.” 차에 서 내려 나는 그를 도와 나무 그늘까지 짐들을 날랐다. “당신은 늘 여기에 혼 자 오시나요, 뽀르뚜가?”“거의 그렇지. 너 보이지? 나도 큰 나무를 갖고 있다 고.”“이 나무 이름이 뭐예요, 뽀르뚜가? 큰 어른들이 나무를 갖고 있으면 세례 명을 붙여 주던데요?” 그는 한참 생각해 보다가 내게 빙그레 웃어 보이고 또 생각했다. “이건 내 비밀인데, 그래 네게만 얘기해 주마. ’까르롯따 여왕’ 이 라고 부른단다.”“이 나무도 당신하고 말할 수 있어요?” “말은 못 하지. 왜나 면 여왕은 신하에게 말하듯 그렇게 내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야. 나를 아주 존중 해 주지.”“신하가 뭐예요?”“그건 여왕이 명령하는 대로 복종하는 사람을 말 하는 거야.”“그럼 전 당신의 신하인가요?” 그는 들판에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처럼 희한한 웃음 소리를 냈다. “아냐. 난 왕이 아니잖아. 난 명령을 하지 않고 너한테 부탁하지 않았니?”“하지만 당신은 왕이 될 수 있어요. 당신은 왕 이 될 만해요. 트럼프의 왕들도 당신처럼 뚱뚱하고 당신처럼 멋있게 치장하는걸 요, 뽀루뚜가.”“알았다. 그만 됐다, 됐어. 이제 슬슬 시작해 보자. 이러다간 낚 시를 해 보지도 못하겠다.” 그는 낚싯대와 지렁이가 잔뜩 든 깡통을 챙기더니 구두를 벗고 조끼도 벗었다. 조끼를 벗으니 더욱 뚱뚱해 보였다. 그는 강을 가리 키며 말했다. “넌 이쪽에서 놀고 있어라. 여긴 아주 얕으니까 괜찮을 게다. 다 른 곳은 꽤 깊으니 가지 말도록 하고. 난 저쪽에서 고기를 낚겠다. 내 곁에 있고 싶으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말을 하면 고기들이 달아나니까.” 나는 그를 따라 가지 않고 그곳에 앉아 물장난을 쳤다. 매우 아름다운 강이었다. 나는 물 속에 발을 담갔다. 흘러내리는 물줄기 속에 물기기 알이 그득히 쌓여 있는 것이 보였 다. 조약돌과 떠돌아다니는 낙엽들도 보였다. 난 글로리아 누나 생각을 했다. 꽃들이 속삭이는 호수가에 나를 내버려두세요. 나는 산 마을에서 태어났답니다. 나를 바다로 데려가지 마세요. 내가 가지를 흔들 때면 청초한 이슬들이 푸른하 늘에서 내려온답니다. 차가운 물방울들이 소곤대며 호수에 내려옵니다.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을 피게 한답니다. 글로리아 누나가 옳았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겠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섭섭했다. 그래. 삶의 아름다움이란 꽃과 같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져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낙엽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강물도, 이런 강물도 역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역시 아름다움이 아닐까? 뽀르뚜가에게 물어 보고 싶었지만 낚시 하는 것을 방해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겨우 피라미 두 마리밖에 잡지 못했는데 도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와 있었다. 내 얼굴은 지금까지 장난친 일, 여러 사람과의 대화중에 있었던 일 등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때 뽀르뚜가가 내 쪽을 바라보며 나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새끼 염소처럼 뛰어갔다. “많이 더러워졌구나, 요 꼬마야!”“정신없이 놀았어요. 물 속에도 들어갔었어요.”“점심을 먹도록 하자. 하지만 이렇게 돼지 새끼마냥 더 러워 가지고 야 어디 먹겠니? 자, 옷을 벗어라. 그리고 저기 얕은 물 속에 들어 갔다 나오도록 해라.” 그러나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머뭇거렸다. “전 헤엄 칠 줄 몰라요.”“헤엄칠 필요는 없다. 자, 내가 곁에 있으마.” 나는 계속 머뭇 거렸다. 나는 그에게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서 옷을 벗기가 부끄럽 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그래서 그런 게 아녜요.”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할수없이 등을 돌리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우선 셔츠를 벗고 그 다음엔 헝겊 멜빵이 달린 바지도 벗었다. 그리고 모두 땅바닥에 놓은 채 그를 향해 돌 아섰다. 내 몸을 보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의 눈이 너무 놀란 나머지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맞았을 때 생긴 자국과 흉터를 그 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단지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아프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이젠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우리는 계란, 바나나, 소시지, 빵, 마리올라를 먹었다. 그것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 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강물을 마시고 ‘까르롯따 여왕’밑으로 돌아왔다. 그는 먼저 주저앉아 잠깐 쉬자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손을 가슴에 대고 나무에게 경 의를 표하는 시늉을 했다. “여와이시어, 당신의 기사 마누엘 발라다리스는 삐나 제 인디언 중에서 가장 훌륭한 투사입니다. 우리는 당신 밑에서 잠시 쉬겠습니 다.”나는 웃으며 그의 곁에 앉았다. 그도 나를 따라 웃고 있었다. 뽀르뚜가는 바닥에 눕더니 나무 덩굴에 조끼를 깔아 주며 말했다. “자, 이제 한잠 자 볼까? ” “전 졸립지 않아요.” “그래도 할 수 없다. 너 같은 장난꾸러기를 저 강가 에 풀어 놓을 수는 없어.” 그는 내 가슴 위로 손을 뻗어 날 꼭 껴안았다. 우리 는 나무 덩쿨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는 구름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이때가 다시 없는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지금 얘기하지 못하면 영영 못 할 것 같았다. “뽀르뚜가!”“으음...”“주무세요?”“아직 안 잔다.”“빵집 에서 라디스라우 씨께 하신 말씀 진정이세요?”“글쎄, 빵집에서 라디스라우와 는 얘기한 적이 많은데.”“제 얘기 말이에요. 저도 차에서 들었단 말이에요.” “뭘 들었을까?”“당신이 절 굉장히 좋아한다는 거요.”“널 좋아하는 것은 사 실이야. 뭐가 잘못 됐니?” 나는 그의 팔에 안긴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 은 반쯤 잠겨 있었다. 얼굴도 더 커 보여서 더욱 왕의 얼굴 같아 보였다. “아 뇨, 그렇담 당신이 절 굉장히 좋아한다고 굳게 믿어도 돼요?”“그래, 바보야.”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 더 꽉 껴안았다. “전 오랫동안 생각해 봤어요. 당신은 단지 인낀따도에 딸 한 명이 있을 뿐이죠, 네?”“그래.”“당신 은 그 큰 집에서 두 개의 새장만 갖고 있을 뿐 혼자 사시죠, 네?” “그래.”“ 당신은 조카들도 없다고 그러셨죠, 네?”“그래.”“그리고 당신은 절 좋아하신 다고 그러셨죠, 네?”“그래.”“그런데 왜 우리 집에 오셔서 아빠에게 절 달라 고 하지 않으세요?” 그는 깜짝 놀라, 누운 채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넌 내 아들이 되고 싶니?”“태어나기 전엔 아버지를 선택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택하겠어요.”“정말이냐, 꼬마야?” “맹세할 수 있어요. 이다음엔 저도 먹고 살 만한 사람이 될 거예요. 욕도 안 하고 볼기짝이란 소리 도 안 할게요. 전 당신 구구도 닦겠어요. 새장 속의 새들도 돌보고요. 학교에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하겠어요. 모두 잘 할게요. 네?” 그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선 기쁘게 해 주 려고 하는 일도 전부 쓸모없게 돼요. 우리 집 부담도 덜어질 거예요. 글로리아 누나와 안또니오 형 사이에 누나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북부에 줘 버렸어요. 거기서 부자인 사촌 누나와 살며 공부도 하며 커 가고 있어요.” 그는 잠자코 있었으나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만약 주지 않겠다면 당신이 절 사 가세요. 아빤 돈이 한 푼도 없으시거든요. 아빠가 날 파실 거라는 보장할 수 있어요. 만약 돈을 많이 요구하면 야곱이 팔린 것처럼 나눠서 내도 될 거예요... ” 그가 계속 대답을 안 해 나는 다시 조금 전처럼 그의 품속에 가만히 있었다. 그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알았어요, 뽀르뚜가. 사시고 싶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전 당신이 우시는 것은 싫어요.” 그는 아주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 어 주었다. “그게 아니라, 얘야. 그게 아냐. 인생이란 그렇게 생각하듯 쉬운 일 이 아니야. 하지만 내 한 가지 약속하마. 너의 아빠한테서 널 데려올 수는 없다. 너희 집 식구들로부터도 안 돼.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 널 내 아들처럼 사랑해 주마. 친아들처럼 대해 주마.”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말이에요, 뽀르뚜가?”“네가 잘 쓰는 말 이지만, 맹세하마.” 나는 우리 가족 이외의 사람에겐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는 커다랗고 부드러운 그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6. 사랑의 단편들 "그런데 모든 나무가 다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당신도 그 나무를 망아지 로 생각하고 타실 수도 없죠, 뽀르뚜가?”"하려면 할 수도 있지.”"하지만 당신 은 어린애가 아니잖아요?”"그래. 하지만 어린애라고 모두 나무를 이해할 수 있 는 행복을 누리는 건 아니잖니? 그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나무들이 말하기를 좋 아하는 건 아니야.”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계속 말했다. "모든 나무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저 나무도 내가 너한테 설명해 주기 전에는 하나의 포도 넝쿨 에 불과하지 않았잖니? 포도 넝쿨이란 포도 나무를 말하는 거다. 포도가 열리는 나무. 저건 단지 굵은 넝쿨로만 자란다. 수확기가 되면 얼마나 멋있다구(그때 그 는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걸 짜면 포도주가 된단다.” 이런 식으로 그는(그는 다시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내 게 설명해 주었다. 에드문드 아저씨처럼. "더 얘기해 주세요.”"재미있니?”"굉장 히 재미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전 팔백오십이만 킬로미터를 계속 달리며 당신 과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휘발유가 많이 들 텐데?”"그래요, 그 게 문제예요.” 그리고 그는 풀들을 가리키며 이 풀들이 겨울엔 건초가 되고 치 즈를 만들게 해 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치즈’는 ‘치킨’이 아니라는 것이었 다. 그는 많은 단어들을 마치 노래하듯 아름답게 말해 주었는데 내겐 음악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그는 설명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곧 그곳으로 가야겠군. 늙은 여생을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보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뜨 라스우스 몬테스라는 곳의 몽레알 근방에서 낙엽처럼 지겠지.”그의 얼굴은 늘 윤이 나고 주름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아버지보다 훨씬더 늙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말 씀하시는 거예요?” 그제서야 그는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걱정 마라. 그건 훨씬 후의 일이니. 어쩌면 내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라.”"그 럼 저는요? 당신이 보고 싶을 때는 어떡해요?”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우리가 같은 소망을 가지면 되지 않겠니?”"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소망 속에 절 넣어 주시지 않는단 말씀이예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제 소망의 전부란, 뽀르뚜가, 저를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하는 거예요. 제가 톰 믹스나 프레드 톰프슨과 함께 푸른 평원에 나갈 때도 당신이 지치시지 않도록 역마차를 잡아 둔단 말예요. 제가 가는 곳에는 언제든지 당신이 계세요. 하지만 때때로 수업 시 간에 전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당신이 그곳에 와 제게 작별을 하리라고요.”"맙소사! 너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조그만 머리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걱정은 너무 마라, 알겠니?” 나는 밍기뉴에" 이런 얘기를 전부 해 주 었다. 밍기뉴는 나보다 더 심할 정도로 얘기에 미쳐 있었다. "그치만, 슈르르까. 우리 아빠가 된 그는 고지식한 양반이야.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뭐든지 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좋아졌다는 것하고는 다른 거야. 다른 사람들은 날 더러 옛날의 그 몹쓸 녀석은 사라졌다고들 해. 나쁜 버릇이 없어진 것 사실이니 만, 난 이 방구 시에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잖니?” 나는 밍기뉴를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에"도 내가 늘 심어주고 싶어했던 사랑이 있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예, 밍기뉴. 난 열두 명의 애들을 낳겠어. 거기다 또 열두 명을 더 낳겠 어. 알겠니? 우선 첫번째의 열두 아이가 전부 꼬마가 돼도 난 절대 때리지 않겠 어. 그리고 다른 애들도 어른이 되겠지. 그러면 나는 그 애들에" 이렇게 물어 볼 테야. 얘야, 넌 이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나무꾼? 그렇담, 여기 도끼와 체크 무늬 셔츠가 있다. 넌 서커스단의 훈련사가 되고 싶다고? 알겠다. 여기 채찍과 광대옷이 있다.”"그럼 크리스마스엔 그 애들에" 무엇을 해 줄 거니?” 밍기뉴도 이젠 제법이야, 요럴 땐 제법 말을 받을 줄 안단 말야. "크리스마스에 는 난 돈을 많이 벌겠어. 그래서 밤과 호도, 무화과랑 건포도랑 개암나무 열매가 잔뜩 든 상자를 사 주겠어. 게다가 다른 가난한 애들도 주고 또 빌려 줄 수 있 게 장난감도 많이 사 줄 테야.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복권 회사도 차리겠어..." 잠깐,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지? 나는 화가 나서 밍기뉴를 흘겨보 았다. 그리고 그가 말을 가로챈 것을 꾸짖었다. ”애들 얘기를 다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구서. 좀더 들어 봐. 좋아, 얘야 넌 카우보이가 되겠니? 여기 안장과 밧 줄이 있다. 넌 망가라치바호의 기관사가 되겠다고? 여기 모자와 경보기가 있..." ”경보기로 뭘 하게. 제제? 넌 그렇게 계속 지껄이다가 미쳐 버리겠다." 또또까 형이 가까이 다가와 내 곁에 앉 았다. 그리고 병뚜껑과 끈들로 장식된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아주 은근한 미소를 띄우며 훑어보았다. 그것은 무엇인가 내게 얻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제제, 사백 레이스만 꿔 줄래?" ”싫어." ”너 돈 있잖아, 응?" ”있긴 있어." ”근데 왜 꿔 주기 싫다는 거야?" ”뜨라스우스 몬테스에 여행하려면 돈을 모아야 해." ”그건 또 뭐 말라비틀어진 거니?" ”말할 수 없어." ”어차피 쓸 거잖아?" ”쓸 거야. 그래도 사백 레이스는 빌려 줄 수 없어." ”넌 뭐든지 잘 하잖아. 내일 구슬을 따서 팔면 돈이 금방 생길 거야. 그까짓 사백 레이스는 금방 채울 수 있어. 그런 데 왜 그러니?" ”그래도 난 빌려 주고 싶지 않아. 난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얌 전히 있으니까 나한테 싸움 걸지 마." ”나도 싸우는 건 싫어. 그치만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생이잖아. 그런데 넌 갑자기 감정도 없는 괴물이 되어 버렸어." ”괴물이 되어 가는 게 아냐. 난 지금 감정이 없는 혈거인이 되려는 거야." ”뭐 가 된다고?" ”혈거인. 에드문드 아저씨가 잡지에 난 사진을 보여 주셨어. 그는 손에 배나무 묘목을 든, 털이 긴 원숭이였어. 그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동굴에 살 았던 최초의 사람이래. 외국 사람인데 아주 이름이 어려워서 기억이 안 나." ” 에드문드 아저씬 머리 속에 지렁이 같은 것만 넣고 다니셔. 근데 너 빌려 줄 거 지?" ”난 내가 지렁이를 넣고 다닌다고 생각지 않아." ”그만둬, 제제. 우리가 두구 닦으로 나갔을 때 넌 몇 번이나 일을 못했는데, 내가 돈을 나눠 줬잖아. 게 다가 네가 지쳤을 때마다 네 구두통을 내가 들어 줬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또 또까 형은 가끔가다 내게 나쁜 짓을 했을 뿐이었다. 결국 난 빌려 주고 말 것 같았다. ”돈을 꿔 주면 두 가지 놀랄 만한 소식을 알려 줄게." 나는 잠자코 있 었다. ”내 따마린두나무보다 훨씬 예쁜 네 라임오렌지나무에 관한 얘기야." ” 예쁘다는 얘기?" ”그건 벌써 했잖아."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전을 흔들어 보았다. ”두 가지 얘기가 뭔데?" ”이봐, 제제.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돼. 아빠가 성알레이슈 공장의 지배인이 되셨어. 다시 부자가 되는 거야. 넌 기쁘지 않니?" ”아빠를 위해선 잘된 일이야. 그치만 난 방구 시를 떠나기 싫 어. 난 진지냐 할머니 댁에서 살래. 여기서 살다가 뜨라우스 몬테스로 갈테야..." ”알겠어. 넌 진지냐 할머니 댁에 있으면서, 몇 달에 한 번씩 우리를 보러 오겠 다 이거지?" ”그래. 형은 그 이유를 모를 거야... 또 한 가지는 뭐야?" ”여기 선 얘기할 수 없어. 아무도 들으면 안 되는 게 있거든." 우리는 화장실 가까이 갔다. 그런데도 형은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너한테 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제. 네가 미리 알고 있는 게 나을 거야. 시청에서 길을 넓히기로 했대. 개천들을 메우고 모든 집들의 뒤뜰까지 넓힌대." ”그런데?" ”너처럼 영리한 애 가 그래도 모르겠니? 길을 포장하려고 저기까지 들어엎는대." 형은 내 라임오렌 지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나는 울 듯이 입을 쑥 내밀었다. ”거짓말이지, 그지. 또또까 형?" ”그렇게 울려고 할 것까진 없어. 아직 멀었으니까." 나는 신 경질적으로 주머니 속의 동전들을 주물럭거렸다. ”거짓말이야. 그지, 또또까 형?" ”아니, 사실이야. 하지만 넌 이제 어른이잖아." ”그건 그래." 그래도 눈물 이 얼굴에 흘러내렸다. 난 형의 배를 끌어안고 애원했다. ”또또까 형, 형은 내 편이 되어 줘, 응? 나하고 같이 싸워, 응? 아무도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말야." ”그래. 우리가 막자. 자, 그러니 이제 돈을 빌려 줘야지?" ”뭐 할 거야?" ”넌 방구 극장에 갈 수 없지? 거기서 ‘타잔’을 한대. 보고 와서 얘 기 해 줄게." 난 오백 레이스짜리 은전을 꺼내 셔츠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건 네 주었다. ”거스름돈은 형 가져, 구슬 사..." 그리고 내 라임오렌지나무 앞으로 다가"다. 그러나 말을 걸 기분이 안 들었다. 그래서 ‘타잔’ 생각을 했다. 난 벌 써 그 영화를 봤다. 뽀르뚜가에" 졸랐던 것이다. ”가" 싶니?"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전 방구 시 극장엔 들어갈 수 없는데요 뭘." 그는 내가 못 들어가는 이유를 생각해 내고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 머리로도 무슨 방도 를 못 구했단 말이냐?" ”못 했어요, 뽀르뚜가. 하지만 어른이 데리고 가면 괜찮 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해요." ”그 어른이 나라면... 네가 바라는 게 그거지?" 내 얼굴은 기쁨으로 활짝 개었다. ”하지만 난 일을 해야 하는데, 얘야." ”이런 시각엔 아무도 일하지 않잖아요? 차에서 얘기하시거나, 담배를 태우시는 대신 사자랑 호랑이랑 고릴라랑 싸우는 타잔을 보러 가요! 누가 나오는 줄 아세요? 프랑크 머릴이래요." 그래도 그는 약간 주저했다. ”넌 꼬마 도깨비인데다 매사 에 장난꾸러기 아니 냐..." ”딱 두 시간뿐인데요. 당신은 돈도 많이 버셨잖아요. 뽀르뚜가?" ”그래 가 보자. 하지만 걸어서 가는 거다. 차는 주차장에 세워 두고..." 우리는 극장으로 갔다. 그러나 매표소의 젊은 여자가 일 년의 금지 기한이 지나지 않는 한 들여 보낼 수 없다고 버티었다. ”제가 저 애를 책임지겠습니다. 게다가 그건 꽤 오래 전 일이잖습니까? 이제 저 애도 철이 들었고요." 매표원이 날 쳐다보았을 때 나 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키스를 하여 부추겨 주었다. ”명심해 라, 제제. 네가 장난을 치면 난 일자리를 잃게 돼." 밍기뉴에"는 이런 얘기를 해 주고 싶지 않았으나 오래 못 가서 하고 말았다. 7. 망가라치바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서 아무나 나와 칠판에 한 구절 적어 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작문이라 감히 나갈 생각을 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머 리에 좋은 말이 떠올라 나는 손을 들었다. "제제, 나와서 해 보겠니?” 나는 자 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칭찬에 기분이 으쓱해진 채 칠판 앞으로 나갔다. "여러 분들도 나와서 해 보세요! 그럼 곧 우등생이 될 거예요.” 난 칠판 앞으로 가 분 필을 집었다. 글짓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오래지 않아 방학이 시작됩니다.’ 틀린 곳이 없나 하여 나는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만족한 웃음을 띠며 탁자 위에 놓은 빈 꽃병을 쳐다보셨다. 빈 병. 하지만 그녀가 말했듯이 늘 장미 가 꽃혀 있는 빈 병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못생기지만 않았더라도 꽃을 가져오 는 학생이 그렇게 없진 않았을 것이었다. 난 내가 쓴 문장에 만족해서 자리로 돌아왔다. 며칠 후 방학이 시작되면 난 뽀드뚜가와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다. 그 후에도 아이들이 나와 글짓기를 했으나 주인공은 역시 나였다. 누군가" 지각을 하여 선생님의 허락을 얻고 들어왔다. 그것은 제로니모였다. 그 애는 비 비적거리며 들어와선 내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책을 올려놓더니 옆의 아이에" 얘기를 걸었다. 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학자 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의 소곤거리는 말 가운데 한마디가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것은 망가라치바에 관한 이야기였다. "차를 들이받았다고?” " 자동차야. 그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멋진 차 말야.” 난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 다. "뭐라고?” "망가라치바가 쉬따 건널목에서 포르투갈 인 차를 들이받았다고. 그래서 지각한 거야. 기차가 차를 박살냈단 말야. 차 속에 사람이 있었대. 레알 랭고 시의 소방대까지 왔어.”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제로 니모는 계속 아이들의 물음에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는 모르 겠어. 어린애들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어.” 난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 은땀이 온몸을 적셨고 자꾸 토하고 싶었다. 나는 책상을 떠나 교실문 쪽으로 다 가"다. 선생님이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셨으나 난 그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제제?” 그러나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눈에선 눈물이 솟 았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교실을 나가 교장실 앞이라는 것도 잊고 달 려갔다. 도로변에 다다랐을 때도, 리오-상파울로 간선 도로에서도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가슴이 위경련보다 더 심하게 쓰렸다. 까지냐 거리로 달려가 빵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제로니모의 말이 거짓이기를 빌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우리 차는 거기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달려가려고 할 때 라디스라우 씨의 팔이 세게 나를 낚아채었다. "어디 가 니, 제제?” 내 얼굴은 눈물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었다."거기에 갈래요!”"가면 안 된다.” 나는 미친 듯이 그를 발로 찼으나 그의 팔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 다. "진정해라, 얘야. 넌 가선 안 돼.”"그렇담 망가라치바가 그를 죽였군요.” " 아니, 구조대가 금방 왔다. 차는 많이 부서졌지만...” "아저씨는 거짓말을 하고 계세요, 라디스라우 씨.”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니? 기차가 차를 들이받았 다고 했잖아? 그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면 내가 널 병원에 데려다 주마. 약속할게. 자, 이젠 주스나 좀 마시자꾸나.”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주 었다. "토하고 싶어요.” 내가 벽에 기대자 그는 머리를 잡아 주었다. "이제 좀 괜찮니, 제제?” 나는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집에 데려다 줄까?” 난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정처없이 천천히 걸어나갔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 다. 망가라치바는 아무것도 용서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센 것이 기차였던 것이다. 나는 두세 번 토했다. 그러나 귀찮게 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마구 걸었다. 때때로 코를 훌쩍이며 교목 셔츠 끝에다 얼굴을 닦았다. 나의 뽀르뚜가를 이젠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더 이상. 그는 가 버린 것이었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리 고 그가 내게 뽀르뚜가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고 차에 매달리도록 해 준 곳까 지 걸어갔다. 그리고 나무 등걸에 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웅크렸다. 그러자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굉장히 화가 났다. "아기 예수, 넌 나빠. 난 이번엔 꼭 아기 예수가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네가 그렇게 해 줬니? 넌 왜 다른 애들처럼 날 좋아하지 않지? 난 아주 착해졌는데 싸움도 안 하고 욕도 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고, 볼기짝이란 말을 쓰지도 않았어. 그 런데 아기 예수, 왜 넌 날 도와주지 않니?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자른다고 했을 때도 화도 안 내고 잠깐 울었을 뿐이 었는데... 이젠 어떡하란 말이야... 이젠 어떡해?”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기 예수, 난 다시 뽀르뚜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네가 뽀르뚜가를 다시 데려다 줘야 해.”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마 내가 앉아 있는 나무의 친근한 목소리 같았다. "울지 마, 꼬마야. 그는 하늘 나라로 갔어.” 밤이 되었다. 기운이 없어서 더 이상 토하거나 울 수도 없었다. 그때 엘레나 빌라스보아스 아주머니 댁 현관 계단에 앉아 있는 또또까 형과 마 주쳤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걸었지만 난 신음 소리밖에 낼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니, 제제! 나한테 말해 봐.” 그러나 난 계속 신음 소리만 냈다. 그러자 또또 까 형은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굉장해, 무슨 일이니, 제제? 나하고 집에 가자. 내가 천천히 걷는 걸 도와줄게.” 흐느끼면서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내 버려둬 줘, 또또까 형. 난 더 이상 그런 집에 가기 싫어.” "자 가자. 이제 새로 운 집이야.” "거기엔 안 가"어. 모든 게 끝났어.” 형은 나를 일으키려 했으나 내가 기운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내 팔을 자기 목에 감고 잡아 일으 켰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가 나를 침대에다 쥐었다. "잔디라 누나! 글로리아 누 나! 어디들 있어요?” 형은 알라이데 집에 간 잔디라 누나를 데리러 갔다. "잔디 라 누나. 제제가 굉장히 아파.” 그녀는 중얼거리며 들어왔다. "또 시작이구나. 또 사랑의 매를 맞아야...” 그러자 또또까 형은 신경질을 부리며 침실로 들어왔 다. "아냐, 잔디라 누나. 이번엔 굉장히 아프단 말야. 죽을 것만 같아.”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열은 약간 내렸지만 조금만 마 셔도 곧바로 토했다. 그리고 점점 여위어 갔다. 게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렸고 알아들을 수도 있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하늘 나라로 가"만 싶었다. 글로리아 누나 는 아예 내 침실로 옮겨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불도 밤새도록 켜 두었다. 모 두들 내게 정성껏 대해 주었다. 진지냐 할머니까지도 우리 집에 오셔서 며칠 지 내셨다. 또또까 형은 나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내게 말했따. "거짓말 이었어, 제제. 날 믿어 줘. 내가 나빴어. 포장 공사는 하지도 않아. 길도 넓히지 않아.” 집안은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듯 조요했다.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모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밤을 내 곁에 계셨 다. 그래도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웃는 모습, 특이한 말소리, 면도할 때 쓰-윽, 쓰-윽 소리를 나게 하는 수염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게 고통이었다. 고통이란 것은 놀랐기 때문에 생 긴 것은 아니었다. 유리 조각에 찔려 그가 병원에 데려갔을 때 맛본 것 같은 것 이 아니었다. 아무에"도 비밀을 얘기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 고통이었다. 팔과 다리 심지어 베개에서 머리를 돌 리고 싶은 마음까지도 고통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사태는 더욱 나빠졌다. 내 몸 은 뼈가 드러나도록 앙상해졌다. 그래서 의사도 불러 왔다. 라울랴베르 박사가 나를 진찰해 주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진찰했다. "쇼크입니다. 정신 외상 이 아주 심한데요. 이 쇼크를 이겨내야만 살 수 있을 겁니다.” 글로리아 누나는 그를 배웅해 주며 말했다. "물론, 쇼크예요, 박사님. 저 앤ㄴ 자기 라임오렌지나 무가 잘린다는 얘길 듣고부터 저래요.” "그렇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야 해요.”"여러 가지로 타일러 봤지만 저 앤 믿으려 들지 않아요. 저 애에"는 오렌지나무 한 그루라도 사람과 같아요. 저 앤 매우 특별한 애예요. 굉장히 감수 성이 예민하고 조숙한 애거든요.” 모두 알아을을 수 있었으나, 나는 사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하늘 나라로 가"만 싶 었다. 약을 먹었으나 그래도 계속 토했다.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은 그 즈 음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날 문병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도 악질 이었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재난과 굶주림’ 상점 주인은 마리 아몰레라 는 과자를 갖다 주었고, 네가 에우제니아 아주머니는 계란을 갖고 와 토하지 않 도록 기도까지 해 주었다. "빠울로 씨의 아들이 죽어 가"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좋은 말만 해 주었다. "넌 곧 낫게 될 게다, 제제. 네가 나와 놀지 않으니 거리가 온통 슬픔에 잠긴 것 같단다.”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도 내 가방과 꽃을 사가지고 오셨다. 그것들을 보자 눈물이 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내 가 어떻게 뛰어 나갔는지를 설명하셨다. 그러나 선생님도 단지 그것밖에 모르셨 다. 아리오발도 씨가 찾아왔을 때도 난 슬픔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으나 잠자는 체하고 있었다. "그 애가 깰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시죠.” 그는 밖에 앉아 글로리아 누나에" 말했다. "잘 들어 봐요. 아가씨. 난 집집마다 물어 가며 여길 찾아온 거예요.” 그는 큰 소리로 킁킁거렸다. "내 어린 천사가 죽어선 안 돼요. 정말이에요. 아가씨, 저렇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아가씨한테 내 팸플릿을 가져다 준 것도 저 애가 아닙니까, 네?” 글로리아 누나는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슬픔에 빠졌다.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아가씨. 나을 거예요. 저 애 에" 몹쓸 일이 생긴다면, 이런 포장도 안 된 변두리에는 오지 않겠어요.” 그는 침실로 들어와 내 곁에 걸터앉고는 내 손을 자기 얼굴에 비벼댔다. "눈을 떠 봐. 제제, 넌 곧 나을 거야. 그래서 나보다 더 노래를 잘 하게 될걸. 난 하나도 팔 수 없게 될 거야. 모두들 이렇게 묻겠지. 어이, 아리오발도, 당신의 카나리아를 어디다 잃어버린 거요?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약속하지, 응?” 내가 계속 눈 을 감은 채 아무 반응을 안 보이자 글로리아 누나는 아리오발도 씨를 밖으로 데 리고 나갔다.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마실 수 있게 되었고 토하지도 않았다. 열도 내렸다. 그 를 생각할 때만 오한이 나고 토했다. 식구들은 살인자 망가라치바를 보러 가도 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난 아기 예수에" 그와의 추억을 잊지 않게 나도 기차에 치이게 해 달라고 빌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 었다. "울지 마, 아가. 다 잊게 돼. 너만 좋다면 내 망고나무를 줄게. 그건 아무도 자르지 않는단다.” 이유 없이 늙은 망고 나무를 준다니? 망고나무가 망고열매 를 많이 열게 해 준다는 것을 누나는 모르나? 하긴 내 라임오렌지나무도 곧 매 력을 잃게 되겠지. 그래서 다른 나무처럼 되고 말 거야. 그게 바로 빈곤의 시기 로 들어간다는 거야.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어. 어떤 사람에" 죽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이람? 몹쓸 기차가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하늘 나 라에 가는 것은 이다지 어렵지? 모두들 내가 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나 봐. 글 로리아 누나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나는 겨우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 다. 아빠도 밤에 외출하는 일을 그만 두셨다. 또또까 형은 가책 때문에 내 곁에 내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잔디라 누나가 가끔 얼굴을 내밀게 만들었다. "그만하 면 됐어. 안또니오.” "누난 내 입장을 몰라. 제제한테 얘기한 게 나란 말야. 난 아직도 마음이 아파, 심지어 잘 때도 저애의 우는 얼굴이 떠올라 미치"어.” "그 렇다고 너까지 울지는 마. 넌 이제 다 컸잖아. 그리고 저 앤 살아날 거야. 그러 니 그만하고 ‘재난과 굶주림’ 상점에 가서 우유 한 통만 사 와.” "알았어. 그 대신 돈을 줘야 해. 더 이상 아빠 앞으론 외상 주지 않는대.” 몸이 약해져서 그 런지 계속 잠만 왔다. 밤인지 낮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열은 조금씩 내렸고 오 한과 흥분도 점점 가라앉았다. 눈을 뜨자 어둑어둑한 속에서 글로리아 누나가 보였다. 피로에 지친 누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고도이아, 벌써 밤이 야?”"그럴걸 아마.”"창문 좀 열어 줄래?”"머리 아프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아.” 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피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 늘을 보니 다시 눈물이 솟았다. "왜 그러니, 제제! 하늘이 아주 멋있잖아. 아기 예수가 네 맘속에 태어날 수 있도록 저렇게 예쁘잖니? 아기 예수가 오늘 나한테 말했어...” 그녀는 하늘이 내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누나는 내 곁에 기대어 손을 잡고 다정하게 얘기를 걸어 왔다. 그녀의 얼굴은 야위고 지쳐 보였 다. "제제. 이제 곧 나을 거야. 그래서 연도 날리고 구슬도 산더미처럼 따고, 네 가 부르고 싶을 땐 노래도 부르고, 나한테 팜플릿도 갖다 줘. 모두 얼마나 멋진 일이니? 넌 동네 사람들이 슬픔에 잠긴 것도 모르지? 모두들 네가 나와 놀아야 거리가 기쁨으로 가득 찬대. 모두 그걸 바라고 있어. 넌 그렇게 해 줄 테지. 암 살아야지, 그럼 살아야 하고 말고.”"아냐, 고도이아. 난 더 살고 싶지 않아. 낫게 되더라도 다시 나쁜 아이가 될 거야. 누난 몰라. 누굴 위해 착해진단 말야?”"그 래도 넌 착해져야 해. 넌 늘 그랬듯이 어린 애이고 소년이기만 하면 된ㄴ 거야. ”"누굴 위해, 고도이아? 날 때리는 사람들을 위해? 날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 해?” 그녀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껴안고 굳게 맹세했다. "아가, 내가 약속할게. 네가 낫게 되면 아무도, 그 누구도, 하느님일지라도 너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하 게 할게. 내가 송장이 되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믿을 수 있어?” 나는 알았다는 듯 ‘음’했다. "송장이 뭐야?” 오랜만에 누나의 얼굴은 기쁨으로 활짝 개었다. 내가 다시 어려운 말들을 물어 보는 것은 다시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 하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빙그레 웃었다. "송장이란 죽은 몸, 그러니까 시체를 말 하는 거야. 근데 어려운 말이라 잘 쓰지 않아.” 물론 나는 나을 생각이었다. 그 러나 오랫동안 그가 송장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계속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난 그의 집에서 살던 두 마리의 새를 생각하고 있었다. 파랑새와 카나리아였다. 그 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빨" 머리의 오르란도 씨가 이사갈 때처럼 슬픔 때문에 죽었을지도 몰라. 아마 사람들이 새 장 문을 열고 풀어 줬을지도 몰라. 그 애들은 잘 날지도 못할텐데. 바보같이 오 렌지나무에 앉아 있다가 아이들한테 잡혔을 거야. 지꼬가 돈이 없이 띠에쌍귀 온실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문을 열어 보내 주었더니 얼마나 비 참했다고. 아마 애들 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었을 거야. 모든 일이 다시 정상 적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집 안 곳곳에서 떠들썩한 소리도 들려왔고 엄마도 일 하러 가셨다. 흔들의자도 응접실로 돌아갔다. 단지 글로리아 누나만이 여전히 남 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러나 나는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이 국물 좀 마셔 봐, 아가. 잔디라 누나가 너한테 이 닭고기 국을 만들어 주려고 검은 암탉을 잡았단다. 냄시가 참 좋지?” 숟가락에서 김이 올라왔따. ‘너도 먹고 싶으면 나처럼 해 봐라. 커피에 빵을 담가. 하지만 삼킬 땐 소리를 내지 마라. 아주 듣기 흉하거든.’"왜 그래, 아가? 죽은 까만 암탉 때문에? 그건 늙은 닭이야. 너무 늙어서 알도 못 낳는걸. ” ‘내가 사는 데를 알아내려고 꽤 애쓴 모양이구나.’"나도 그 닭이 너희들 동 물원놀이에선 검은 표범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검은 표범을 사지 뭐.” ‘그런데, 이 도망자야. 어딜 그렇게 오랫동안 가 있었지?’" 고도이아, 지금은 안 되겠어. 먹었다간 토할 것 같아.” "조금 후에 줄게, 먹을 래?” 그러자 걷잡을 수 없이 여러 가지 말들이 떠올랐다. ‘약속할게요. 아주 착해지고, 싸움도 안 하고, 욕도 안 하고, 볼기짝이란 말도 안 쓰겠어요... 그러니 늘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해 주세요.’ 식구들은 내가 다시 밍기뉴와 얘기하는 것 으로 생각했는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지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그것 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변했다. 잠시 후 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 다. "제제!”나는 몸을 일으켜 나무 창살에 기대었다. "누구니?”"나야, 문 열어. ” 나는 글로리아 누나를 깨우지 않도록 창살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어둠 속에 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훌륭하게 장식한 밍기뉴가, 빛을 번쩍이며 서 있었 던 것이다. "들어가도 돼?” "들어올 수 있으면 들어와. 하지만 소릴 내면 안 돼. 누나가 깰 거야.” "깨우지 않겠다고 약속할 게.” 그 앤 창문을 뛰어넘어 내 곁 으로 다가왔다. "내가 누굴 데려왔는지 잘 살펴봐. 그 애도 물론 방문객으로 변 장했어.” 밍기뉴가 팔을 앞으로 펼쳐 보였을 때 나는 까만 새가 안겨 있는 것 을 보았다. "잘 모르겠어, 밍기뉴.” "넌 굉장히 놀랄 거야. 단단히 마음먹고 있 어. 내가 얘를 까만 깃털로 장식해 줬어. 예쁘지?”"루씨아노! 굉장히 예뻐졌구 나. 아냐, 넌 늘 예뻤어. 난 ‘깔리파 스또르끄’ 얘기에 나오는 매인 줄 알았어. ” 나는 감격하여 그 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박쥐까지도 사랑으로 대해 주었던 것이다. "너는 다른 건 못 알아보는구나. 자세히 살펴봐.”"난 톰 믹스의 황금 박차로 장식했어. 켄 마이나드의 모자랑 프레드 톰프슨의 쌍권총, 리차드 탈마지의 허리띠랑 장화로 장식했단 말이야. 게다가 아리오발도 씨가 나한테 네 가 좋아하는 체크 무늬 셔츠도 빌려 주었어.”"그렇게 멋진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밍기뉴. 어떻게 그 많은 걸 다 빌렸니?”"네가 아프다는 걸 알고는 다 빌려 주더라.”"네가 늘 그렇게 차리고 있지 못하다는게 유감이야.” 나는 밍기 뉴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밍기뉴가 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그 애의 눈 속에 사랑과 성 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앤 내 눈앞으로 얼굴을 갖다 대었다. "왜 그 래, 슈르르까?” "슈르르까는 너야, 밍기뉴.” "그럼 너는 작은 슈르르까야. 난 더 이상 네가 날 사랑해 주지 않아도 좋아. 넌 내게 얼마나 잘해 주었다고.” " 그렇게 말하지 마. 의사가 울지도 말고 흥분하지도 말라고 했어.”"나도 그러는 건 싫어. 난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그리고 네가 다시 건강해져서 기뻐 하는 것을 보고 싶어. 사노라면 다 잊혀져. 산책하려고 왔는데, 가"니?”"난 굉장 히 허약해졌어.”"맑은 공기를 마시면 좋아질 거야. 내가 창문 넘는 걸 도와줄게. ”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운하로 가자.”"하지만 난 까빠네마 공작 거리로는 가" 싶지 않아. 거긴 영영 지나다지니 못할 것 같아.” "아수데스 거리로 해서 가지 뭐.” 그러자 밍기뉴는 우리의 카누 위에서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었다. 카누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올라 발바 닥을 간지럽혔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나는 약간 현기증이 났으나, 밍기뉴가 내가 회복되도록 애쓰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약간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들었니, 밍기뉴?”"멀리서 들리는 기 적 소리야.” 굉장한 소음이 들려오고 또 다시 기적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뜨 렸다. 두려운 생각이 왈칵 솟아올랐다. "바로 그 놈이야, 밍기뉴. 망가라치바. 살 인자 망가라치바.” 기찻길 위를 달려오는 소리가 날 더욱 두렵게 했다. "이리 올라와, 밍기뉴. 빨리, 밍기뉴.” 번쩍이는 황금 박차 때문에 밍기뉴는 카누로 오 르는 걸 힘겨워했다. "올라와, 밍기뉴. 내 손을 잡아. 그 놈이 널 죽일 거야. 그 악마가 널 죽이고 싶어해. 널 부셔 놓을 거야. 조각조각내 버릴 거야.” 간신히 밍기뉴가 카누에 올랐을 때 그 몹쓸 놈의 기차는 기적을 울리고 연기를 뿜으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살인자! 살인자야!” 그래도 기차는 계속 선로 위를 재빨 리 달려갔다. 그리고 기차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잘못이 아니었어. 내 잘못이 아니었어... 난 잘못이 없어... 난 잘못이 없어...” 집 안의 모든 등이 켜 지고 내 침실엔 잠이 덜 깬 얼굴들이 나타났다. "가위 눌렸구나.” 엄마는 날 가 슴에 대고 내 흐느낌을 눌러 주듯 꽉 껴안아 주셨다. "꿈을 꾸었구나. 아가, 가위 눌렸던 거야.” 글로리아 누나가 랄라 누나와 얘기하는 동안 나는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제제가 살인자라고 소리칠 때 나는 깼어. 죽일 거야. 부셔 놓을 거야. 조각낼 거야 하잖아. 맙소사! 언제나 이 일이 끝나지...”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끝났다. 난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글로리아 누나가 환 한 얼굴로 들어왔다. 난 침대에 앉아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삶에 대해 생각 하고 있었다. "이것 봐, 제제!” 누나의 손에는 흰 꽃송이가 들려 있었다. "밍기 뉴의 첫번째 꽃이야. 그 애도 어른 오렌지나무가 되고 있어. 곧 오렌지도 열리게 해 줄 거야.” 나는 누 나의 손을 쳐다보았다. 난 어떤 것을 보아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밍기뉴는 이 런 식으로 내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거야. 그애도 이제는 내 꿈속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가"지. "자, 이젠 아침을 먹고 어제 얘기한 대 로 집 밖을 돌아보자. 자, 자야지.”그때 루이스 왕이 내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 다. 식구들은 이제 그 애가 내 곁에 다가와도 내버려두었다. 전에는 날 흥분시킬 까 봐 못 오게 했었다. "제제 형?” "왜 그러십니까, 꼬마 임금님?” 사실 그 애 는 유일한 왕이었다. 트럼프에서 나오는 왕들처럼 손때 묻은 지저분한 그림이 아니라 진짜 왕다웠던 것이다. "제제 형, 난 형과 놀고 싶어.” "나도 그래, 루이 스.”"오늘은 나하고 놀아 줄 거야?”"그래, 함께 놀자. 뭐하고 놀까?” "난 동물 원 놀이 하고 싶어. 유럽에도 가" 싶고, 또 아마조나스 정글에 갈래. 그래서 밍기 뉴랑 놀 테야.”"내가 지치지만 않으면 모두 하도록 하자.” 글로리아 누나의 행 복한 미소 속에 우리는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뒤뜰로 나갔다. 글로리 아 누나는 힘없이 문에 기댄 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닭장에 이르기 전 나는 몸을 돌려 누나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의 눈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 었다. 보통 아이들보다 조숙했기 때문에 나는 누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소망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느님 부디 저 애가 다시 꿈의 세계를 되찾도록 축복을 내려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제제 형.” "응?” "검은 표범이 없어졌 어.” 믿지 않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 대로 말해 주고 싶었다. ‘바보야, 그건 표범이 아냐, 그건 단지 한 마리의 늙은 암탉에 지나지 않아, 내가 어저께 국으로 먹었던..." ”암사자 두 마리만 있구나. 루이스, 검은 표범은 아마조나스 정글로 휴가"나 봐." 환상에서나 가능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차라리 더 쉬웠다. 아주 어렸을 때 나도 그런 것들을 믿었으니 까. 어린 왕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기 저 정글로 말야?" ”겁먹을 필요 없어. 멀리 갔으니까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 거야."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조나 스 정글은 단지 여섯 그루의 가시덮인 오렌지나무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루 이스, 난 지금 굉장히 피곤해. 돌아가야겠어. 내일 놀자. 빵 데 아쑤까르 산의 케 이블카 놀이도 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은 전부 다 할게." 루이스는 순순히 내 말 을 따랐다. 우리는 천천히 돌아왔다. 그 앤 아직 현실을 알아채기에는 너무 어렸 다. 나는 개울 근처 아니, 아마조나스 강 근처에는 가" 싶지 않았다. 밍기뉴에 대 한 매력을 잃은 채 만나기도 싫었다. 루이스는 그 흰 꽃이 우리의 이별을 뜻한 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8. 늙어 가는 나무들 아직 밤이 되기 전이었다. 새로운 기운이 집안에 떠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평화의 기운이 우리 집, 우리 가족에" 돌아오고 있었다. 아빠는 모든 식구들 앞 에서 무릎 위에 앉히셨다. 그리고 내가 너무 흔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의자를 흔 드셨다. "다 잊었지, 얘야? 다 잊게 돼. 너도 언젠가 아빠가 될 테지. 그러면 어 른이 되면 너무도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끝없이 화만 나고 자포자기에 빠질 때가 있단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 다. 아빤 성 알레이슈 공장의 지배인이 됐어요. 이젠 절대로 크리스마스에 네 신 발이 비어 있게 하지 않으마.” 아빠는 잠깐 말씀을 멈추셨다. 아마 아빠도 살아 있는 한 그 일을 잊이 않으실 게 틀림없었다. "우리 여행도 많이 하자. 엄만 더 이상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누나도 그래. 너 아직 그 메달을 갖고 있니?” 나는 주머니를 뒤져 메달을 찾아냈다. "좋아, 새 시계를 사서 여기다 달자꾸나. 언젠가 네 것이 될 게다.” ‘뽀르뚜가, 당신은 탄화 규소가 뭔지 아세요?’ 아 빠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을 갖다 비비셨 다. 게다가 오래 입어 더러워지 셔츠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너무 싫어서 몸을 떼었다. 그리고 아빠 무릎에서 미끄러지듯 빠져 나와 부엌 문으로 갔다. 계단에 앉아 불이 꺼진 뒤뜰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 다시 분노가 일지는 않았으나 약 간 마음이 언짢았다. ‘저 사람은 뭣 때문에 날 무릎에 앉혔을까? 그는 우리 아 빠가 아냐. 우리 아빤 돌아가셨어. 망가라치바가 아빠를 죽였어.’ 아빠는 날 따 라 오셨다. 그리고 내 눈에 눈물이 솟은 것을 보시고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 며 내게 말씀하셨다. "울지 마라, 아가. 우리는 큰 집을 살 거야. 진짜 강이 뒤에 흐르고 있단다. 큰 나무들도 많이 있어. 그건 전부 네 것이 될 거야. 거기다 치 ㅏㅇ도 해 줄 수 있지 않니?” 아빠는 모르고 있었다. 아빠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 ‘까르롯따 여왕’만큼 멋있는 나무는 없었다. "네가 제일 먼저 고르게 해 주마.” 나는 그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슬리퍼 밖으로 발가락들 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도 칙칙한 덩굴들을 가진 늙은 나무였던 것이다. 아빠 나 무... 그러나 내겐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나무였던 것이다. "이다음에 많이 가질 수 있어. 그리고 네 라임오렌지나무도 그렇게 빨리 잘리진 않을 거야. 그게 잘릴 때쯤에 우린 멀리 이사가 있을 테고, 그러면 그 아픔도 그다지 느낄 수도 없게 돼.” 나는 아빠의 무릎을 잡고 흐느꼈다. "필요없어요, 아빠. 소용없어요.” 나 는, 나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아빠 얼굴울 쳐다보며 슬프게 속삭였다. "전 이미 잘랐어요, 아빠.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자른 지 일주일이 훨씬 지났어요.” 9. 마지막 이야기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로서 저는 마흔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때론 어린 시절이 계속되 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제게 딱지와 구슬을 주신 분은 당신이셨습니다. 사 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도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요즘도 전 가끔 아이들에" 딱지와 구슬을 나누어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인 생이란 별로 위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저는 제 자신의 사랑에 만 족합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그 시절엔 저는 몰랐습니다. 먼 옛날 깨끗한 마음의 어린 왕 자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제단 앞에 엎드려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 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도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안녕히! 우바뚜바에서 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