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ert Rain by Mark L. Van Name & Pat Murphy 테레사는 용접된 강철 튜브로 이루어진 골조를 올려다 보았다. 높 이는 9피트, 너비는 6피트 정도였다. 골조 안으로는 언뜻 보기에는 무 질서하게 얽힌 강철 트랙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얽혀있었다. 트랙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1인치 짜리 쇠공들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배열 되어 있었다. 테레사는 조각의 비탈에 매달린 끈을 당기고는 더 잘 듣 기 위해 눈을 감았다. 금속을 스치는 또다른 금속의 희미한 속삭임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첫 번째 공이 트랙의 홈파인 표면을 따라 덜거덕거리며 내려가기 시작 했다. 공이 첫 커브를 지나면서 방아쇠를 건드렸고, 두개의 공이 더 풀려나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십여 개의 공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며 트랙을 따라 내려가게 되었다. 음악은 천천히 시작됐지만 공들이 트랙을 따라 내려가면서 그 소리 는 점점 빨라졌다. 첫 번째 공이 일련의 소리굽쇠를 건드리자 세개의 높은 음이 울려나왔다. 다른 공이 금속 리드의 표면을 덜컹거리고 지 나간 후 달가닥거리며 문들의 미로사이를 달려갔다. 모든 공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벨을 울리고, 종을 치고, 소리굽쇠에 부딪히면서. 첫 번째 공이 바구니에 도착해서야 소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 른 공들이 첫 번째 공의 자리로 모이면서 그 소리는 마침내 완전히 사 라져갔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테레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바라던 음 악이 아니었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더이상 원래의 작곡 이 어떤 것인지 조차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작품에서 나오는 소리는 너무나 기계적이었고 예측 가 능한 것이었다. 그녀가 산타페 예술 위원회에 처음 자신의 작품 의도 를 밝혔을 때 그것은 물의 정수, 그 흐름과 돌진을 표현하기로 한 것 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를 위한 물 없는 샘이 바로 그것이 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양철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부서지 는 파도의 소리를 떠올리게 할 음악을 원했지만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의 소음일 뿐이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사막으로 향한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늦은 칠월의 태양이 지고 있었고 회백색 토끼풀 더미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 다. 풍경은 문 바로 바깥쪽의 판석을 깐 테라스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살짝 뒤틀린 채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더위와 고요에 둘러싸 인 채 홀로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린 헤들랜드 아트 센터의 그녀의 크고 외풍이 심한 스튜디오에서 보이던 바깥 풍경을 떠올렸다. 거기서는 언제나 추 위를 느꼈다. 초가을에서 늦은 봄까지 그녀는 털 양말과 오리 털 조끼 를 입고 있어야 했다. 매년 겨울 그녀는 결코 낳지 않는 감기에 시달 려야 했다. 하지만 뒤틀린 창문 틈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서는 소 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창문으로는 끊임없는 파도로 살아 숨쉬는 바다가 보였다. 바람은 풀밭을 어지럽히고 사이프러스 나무의 가지를 흔들었다. 조그만 사람들의 모습이 해변에서 보였다. 모래밭에서 도약 을 연습하는 아트 센터의 댄서, 앉은 채 바다를 쳐다보는 남자,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두 여자. 그녀는 냉방이 잘 되어있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는 눈을 떴다. 사막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통하는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방해에 순간적으로 기뻐하면서 그녀는 "들어와요!" 라고 말했다. 제프가 문을 열었고 그녀는 "오늘은 좀 빨리 퇴근했군요. 반 가워요." 라고 말했다. 제프는 테레사보다 다섯살 많은 서른일곱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흥분했을 때는 마치 꼬마아이처럼 보였다. 자꾸만 눈을 가리는 한 가 닥의 갈색 머리를 계속 빗어 넘기고 있었다. 테레사는 지난주에 이발 의 필요성을 그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단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 다. 그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약속을 하기에는, 아니 다른 어떤 일을 하기에도 너무나 바쁘다고 말했었다. 그는 지금 테레사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난 아까부터 여기 있었 지만 당신이 작업하는 동안에는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집 나머지 부 분에 시스템을 마저 설치하려고 일찍 왔던 거야. 이젠 다 됐어." 제프를 알게 된 이래로 제프는 자신이 "시스템"이라 부르는 가사일 을 돌볼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의 연구에 매달려있었다. 그 들이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난 넉달동안 제프는 그 프로젝트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작업중이 아닐 때는 그는 집에서 최초의 동작 실험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달고 모니터와 마이크를 모든 방에 설치하 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내내 그는 이 시스템이 전화를 받고 음 악을 틀고 에어컨을 조정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등 그녀의 생활 을 한층 편하게 해줄 거라고 그녀를 확신시키려했다. 테레사는 그의 노력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수입은 확실히 보장하는 제프의 또다른 컴 퓨터 프로젝트의 하나로 회의적이나마 믿기로 했다. "이제 인격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어. 당신이 좀 도와주면 좋겠는 데. 얼굴을 디자인하고 목소리를 고르는 뭐 그런 일들 말이야." 그녀는 마음이 편치 않은 느끼면서 청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집어넣 었다. "난 컴퓨터는 하나도 몰라요. 당신도 알잖아요." "아무것도 몰라도 돼. 하지만 재미있을걸. 게다가 당신이 직접 인 격을 결정한다면 훨씬 더 마음에 들어할것 같아. 당신이 뭐든지 결정 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조각을 돌아보았다. "계속 작업해야 될 것 같아요. 잘 안되 고 있거든요." 그는 테레사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자, 좀 쉬어도 괜찮겠는걸 뭐." 할 수 없이 그녀는 손에 끌려 거실로 들어갔다. 한쪽 벽은 거대한 모니터로 가득 차있었다. 옆의 벽장들은 테레사에게는 제프의 장난감 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가지가지 전자 장치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스테레오와 텔레비젼을 켜고 위성용 접시 안테나를 조정하는 일 정도 는 할 수 있었지만 그 나머지는 무시한 채 지내고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수많은 전자 장치 앞에서는 좀 겁을 먹는 거도 사실이었다. 제프는 회전 의자로 그녀를 인도했다. "여기 앉지 그래?" "괜찮아요. 당신이 하세요. 난 지켜볼 테니까." "제발, 테레사? 날 도와줘. 단신이 이걸 조작하는걸 보는 게 내게 는 도움이 되거든. 연구소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제야 이걸 테스 트하기 시작했어." "난 모르모트로는 쓸모가 없어요. 내가 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요." "오히려 그래서 완벽한 모르모트 감이지. 이건 컴퓨터광들을 위한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거야." 그녀는 제프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좋아요."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이젠 뭘하죠?" "자- 이렇게 하면 시작이야." 제프는 그녀에게 기대어 키보드를 두 들겼다. 회사의 마크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사라지자 그는 몸을 폈다. "셋업 프로그램만 따라가면 돼. 물어보면 대답을 하고 목록이 나오면 원하는 것을 마우스로 선택하면 돼. 전 시스템이 작동되면 목소리를 정하기로 하지." 테레사는 화면에 나오는 글을 읽었다. "친구를 만들고 싶으세요?" "나쁠 것 없지."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네."라는 대답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여자로 하겠습니까? 아니면 남자로 하겠습니까?" 스크린이 물었 다. 그녀는 제프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정하지." 그가 말했다. "당신 이 편한 대로 했으면 좋겠어". "음... 내가 남자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건 알죠? 게다가 난 당신이 두 여자를 거느릴 수 있는지도 걱정이고요. " 그녀는 "남자" 라는 항 목을 선택했다. "이름은?" 그녀는 스크린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이름까지 정해야 하 나요? 아직 이것의 이름도 정하지 않았나 보죠?" 그녀는 제프를 쳐다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팀의 어떤 사람들은 Home Informatio n and Appliance Network에서 이름을 따서 히안이라고도 불러." "히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컴퓨터를 한다는 사람들은 정말 시적 감정이 없군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안은 어때 요? 어감이 좋아요." 그녀는 이름을 입력했다. "이미 만들어진 얼굴을 쓰겠습니까? 아니면 직접 얼굴을 디자인 하 겠습니까?" 질문 아래로 백인, 흑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등의 인 종을 포함한 다양한 샘플들이 보였다. 제프가 그녀의 어깨에 기대왔다. "이게 작동되면 모니터에서 얼굴 을 보게 될 거야. 그건 스피커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카메라와 마이크 를 통해서 당신을 보고 듣고 할거야. 동영상 부분에 굉장히 신경을 썼 어. 그 얼굴은 나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웃기도 하고 윙크도 하고 찡그 릴 수도 있어. 물론 그 표정은 실시간으로 변하지." 그녀는 제프를 쳐 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었다. "친근하게 느껴지 는 얼굴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난 항상 주장해왔지. 우리 디자인 팀 은 그걸 염두에 두고 대부분의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얼굴들을 만들었어. 물론 유명 인사로 얼굴을 정할 수도 있어. 캐더린 햅번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알렉 기네스나 로날드 리건 - 이런 얼굴로도 실험 해 보았지." 테레사는 손을 저어 독백을 중단시켰다. "시장 전문가들이 내가 믿 을 수 있을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만든 얼굴은 싫어요. 고맙지만 내가 직접 디자인하겠어요."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아." 제프가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고 굳어져있는 그녀의 목근육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 곧 익숙해질 거야." 그녀는 조금 긴장을 풀면서 그에게 기댔다. "아. 이 손 기억나요. 오랜 간만이네요."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프가 갑자기 쓰다듬는걸 멈추고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은 비 어있는 얼굴과 머리털, 눈, 귀, 코, 입술 등의 작은 그림들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 여러 부분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서 마음대로 얼 굴을 만들어낼수있어. 당신 만큼의 그림 실력이 없는 사람도 친구를 만들어낼수 있지. 자, 이제 당신도 한번 해봐." "좋아요, 좋다고요." 그녀는 몸을 다시 기울여 첫 번째 얼굴을 클 릭했다. 스크린을 대부분을 차지하던 둔한 회색은 동그란 볼과 작은 턱을 가진 통통한 얼굴로 가득 찼다. 눈과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았 다. 비어있는 얼굴과 목, 그리고 어깨만이 보였다. 검은 색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었다. 다음 얼굴은 가느다란 턱을 가진 마르고 관료적인 느낌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모두 스무개정도되는 얼굴들을 살펴본 후 넓지만 약간 우락부락한 느낌의 얼굴을 선택했다. 그 얼굴과 같이 있 는 넓은 어깨도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으로 그녀는 아버지의 눈을 연상시키는 밝은 푸른색 눈을 골랐다. 강렬하고 흥분 잘하며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그런 눈이었 다. 하지만 잠시의 생각후 그녀는 좀 더 연한, 청회색에 가까운 색깔 로 다시 고쳐 골랐다. 여전히 강렬하지만 어느 정도의 연민도 섞인 그 런 색이었다. 차례차례 그녀는 얼굴을 만들어갔다. 스크린은 그녀의 선택에 즉시 반응해갔다. 그녀는 어느새 자기 뒤에 서있는 제프의 존재를 잊어버리 고 매력적인 이방인의 모습을 창조하는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고 전적 의미의 미남은 아니지만 다소 거친 듯하면서도 호감 가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녀는 턱수염과 콧수염을 선택하고 한쪽 귀에는 다이아 몬드가 박힌 귀걸이를 달았다. 그녀 생각에는 그가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착한 심성을 가졌지만 다소 위험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았다. 술집 경비원이나 어부, 기계공처럼 보였다. 아니면 모터사이 클 라이더나 유랑 노동자, 길거리의 철학자 같기도 했다. 제프를 만나 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들도 모두 그런 부류였다. "잘 하는데," 제프가 중얼거렸다. 잠시나마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그녀 는 제프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작업을 멈추었다. "다 된 것 같네 요. 이걸로 충분해요." "입고 있는 옷도 바꿀 수 있어. 양복으로 할까?" "검은 색 티셔츠가 어울려요. 이안은 소탈한 남자니까요." "배경도 바꿀 수 있어." 그가 말했다. "그냥 회색일 필요는 없지." 그는 몸을 숙이고 화면 왼쪽 아래에 있는 작은 아이콘을 클릭했다. 배 경은 흰색 벽으로 바뀌었다. 테레사는 이안뒤로 액자에 걸린 자격증을 볼 수 있었다. "병원이야. 아니면 이건 어때?" 그는 다시 화면을 클릭 했다. 흰색 벽을 대신한 목재 패널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물론 이안 이 앉은 의자도. 테레사는 이안이 뒤에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뒤를 돌아 보았 다. "우리 집 거실이잖아요?" "왜 어때서?" 테레사는 잠시 방향감각을 잃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의자에 앉아있는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 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의 거실에서 전화를 받 은 낯선 사람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배경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 제프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테레사가 느리게 대답했다. 제프는 스크린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얼굴은 우리가 만 든 어떤 것보다도 개성이 강하군. 그건 확실해." 그녀도 자신이 창조해낸 스크린 위의 얼굴을 실펴보았다. "그래요. 이안은 곱게 자란 영화 스타는 아니죠. 다음은 뭐죠?" 제프는 몸을 숙이고 스크린 옆의 벽장에서 검은 박스를 꺼냈다. 박 스 뒤에서 나온 케이블이 컴퓨터와 연결돼 있었다. "음성 정의"라는 아이콘을 클릭하자 스크린의 얼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얼굴 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화 면에 같이 나타난 그래프도 따라서 반짝거렸다. "47년전..." 그것은 이렇게 말했다. "제프! 게티스버그 연설이잖아요?" 테레사가 웃으며 말했다. "어때서? 시스템 안에 들어있거든. 시스템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 들을 보면 아마 놀랄 거야. 수십 테라바이트의 광소자 기억을 - " 작은 목소리는 계속 이야기를 했고 연설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 손잡이를 돌려볼까요?" 그녀가 물었다. 손잡이를 돌리자 목소리는 어 느새 삑삑거리는 고음으로 변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기분 좋은 저음이 될 때까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돌렸다. 약간의 조정 끝에 마침내 거의 완벽한 톤을 찾을 수 있었다. 거의. "거의 다 되었는데 ... 하지만 너무 미국적이야. 너무 얌전해. 톰 웨이트같은 거칠음이 좀 섞이면 좋겠는데. 많이는 필요 없지만." 제프는 박스의 스위치를 누르고 몇 마디의 명령을 입력했다. "국민 의, 국민에 의한 - " 의 대목에서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안의 목소 리는 그녀의 대학 시절의 연인중의 하나, 그녀를 사랑의 시로 유혹하 고는 마침내는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무용과 학생 때문 에 그녀를 차버린 골초 조각가를 떠오르게 했다. 그 녀석은 분명히 나 쁜 놈이었지만 테레사는 그 시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완벽해 요," 그녀는 등을 기대 제프의 팔에 머리를 얹었다. "이제는요?" "이제 끝이야. 다 됐어" 그는 "저장"이라는 아이콘을 클릭하고는 몇 글자를 더 입력했다. 박스와 그래프들이 사라지고 이안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매웠다. "여긴 테레사고," 제프가 말했다. "난 이미 알 고 있겠지?" "네. 안녕, 제프." 이안은 스크린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 눈이 테레사와 제프의 사이에서 움직였다. "안녕, 테레사.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는 자신이 방금 창조한 인물이 갑자기 생명력을 얻어 자신의 거실에서 이야기 하는 광경에 당황하여 얼굴을 돌렸다. "일년 넘게 동영상을 연구해온 팀이 있어," 제프가 스크린을 쳐다 보며 이야기 했다.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야. 카메라로부터 입력받은 정보로 방안의 동작을 탐지해내는 피드백 기능이 있어. 게다가 얼굴 표정을 감지하고 거기 집중할 수도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만큼 우리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잘 이해할 수 있어.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고. 자연스럽지? 그렇지 않아?" "그래요." 테레사는 그 얼굴이 너무나 진짜처럼 보였기 때문에 마 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사생활은 어쩌지요?" "말만 하면 돼." 제프는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이안, 이젠 됐어. 그만 꺼져." 스크린이 어두워졌다. "꺼지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속어도 알아듣게 프로그래밍돼 있어. 알아듣는 말이 얼마나 되는 지 알면 놀랄 거야. 우리 연구팀은 - " "말하지 말아요," 그녀가 말을 막았다. 그녀는 의자를 돌려 제프를 바라보았다. "컴퓨터 이야기는 그만 해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게된건 너무 오랜간만이고 난 그걸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녀는 일어서 제프를 껴안고 한 손으로는 그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 다. "내 생각에는 아까 일중 가장 재미있던 대목은 당신이 내 어깨를 쓰다듬기 시작하던 부분이었어요." 그녀는 제프의 목에 키스했다. "우 리 그 주제를 가지고 좀더 연구해 보지 않겠어요? 난 당신을 무척 그 리워했다구요." 그녀는 그의 목에 키스한 후 귓불로 입술을 옮겼다. " 당신도 날 그리워했어요?" 그의 귀에 대고 그녀는 속삭였다. 그도 테레사에게 팔을 둘렀다. "물론이지."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날 잊으면 안돼요." "절대 않그럴거야." "난 모르겠어요. 당신은 요사이 끔찍하게 바빴잖아요." "이제 곧 끝날 거야," 그가 말했다. "거의 완성 단계거든. 그리고 당신도 요사이는 좀 바빴잖아? 조각일 때문에 말이야." 그녀는 느린 키스로 그의 말을 막았다. 지금 이 순간 조각 이야기 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요?" "아니," 그가 말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매력 있다고 보는데 아 직도 놀란 것처럼 어리둥절해하는것같은 표정을 지었다. 침실에서 그녀는 옷을 벗어 던지고는 한쪽 팔을 자신의 머리에 괴 고 침대 한가운데 누웠다. 그녀는 누운 채로 제프가 천천히 옷을 벗은 후 그 옷들을 언제나처럼 차곡차곡 질서 정연히 침대 옆의 옷장에 개 어놓는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그녀의 어질러진 보트에서조차도 제 프는 지금처럼 가지런하게 그의 옷을 접어놓았었다. 그때 당시에 그녀 는 그렇게 질서 정연히 옷을 접어놓는 제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실수를 한건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졌었다. 제프 바로 전의 그녀의 연 인은 모터 사이클을 타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취미를 가 진 색소폰 연주자였다. 떠들썩한 이별 과정후 그녀는 문신이나 자기 파괴의 경향, 또는 예술적인 면에서 울분을 가진 남자는 피하기로 결 심했었다. 그녀는 제프를 노스비치의 화랑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첫날에 만 났다. 방 건너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그의 모습은 미대 학생과 모델, 예술가로 가득찬 그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 자신의 카테고리 에도 들지 않았다. 화랑 주인도, 예술가도, 부유한 후원자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를 몇 분간 지켜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잊어 버린 채, 그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인 "조화된 동작 "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의 조용한 강렬함은 즉시 그녀의 주 위를 끌었다. 그녀가 말을 걸자 그는 그녀의 관심에 우쭐해했고 그녀 가 한잔하러 밖으로 나가는걸 제안했을 때는 놀라기까지 했다. 그녀는 실제로는 그를 집까지 데려갈 생각은 아니었다. - 제프는 분명 그녀의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잔의 술이 다음 잔을 부르고 - 마침내는 여러 잔까지 - 마침내는 소살리토 항구의 그녀의 보트까지 그 자리는 이어졌다. 보트는 물결에 따라 율동적으로 움직였다. 제프가 그녀에게로 얼굴 을 돌렸을 때 창문으로 들어온 항구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환히 비추 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행운을 도대체 믿을 수 없는 한 남자의 감사와 놀라움이 섞인 그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그가 마침내 신발을 옷장 앞에 벗어두고 그녀 옆에 누웠을 ㄸ까지 미소를 지으며 그 기억을 즐겼다. 그녀 엉덩이의 곡선을 따라 손을 움직이면서 그는 자신 쪽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냥 예전 일을 떠올렸어요." 그녀도 그를 끌어당겼다. 그녀 안에서 그의 열기를 느끼면서 그를 안고있는 사이, 에어컨의 소음과 집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녀 는 보트에 부딪히는 물결과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삐 거덕거리던 삭구 소리까지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옆으로 누워 제프의 팔 안에 몸을 파묻었다. 사막과 아리조나로부터 멀어져 바다와 샌프란시스코가 보이는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그녀는 제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몇시간후 왜 보트의 창문을 갈매기가 쪼고 있는지 궁금해하 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제프 가까이로 가고 싶었지만 그는 없었다. 그 녀가 돌아눕자 침대 끝에 앉아 항상 옆의 테이블에 두곤 했던 컴퓨터 를 열심히 치고 있는 제프의 모습이 보였다. 불은 꺼져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의 희미한 빛에 비쳐 보이는 제프의 얼굴은 너무나 진지해 보였 다. 그녀는 조용히 돌아누워 이제는 사막으로 돌아온 채 베개를 꼭 붙 잡았다. 그녀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제프는 이미 없었다. 침대 옆의 모니터에는 "메시지를 보시려면 엔터 키를 치세요." 라는 말이 번쩍이 고 있었다. 자명종을 껐던 기억이 희미하게 났지만 그건 벌써 여러 시 간 전의 일이었다. 침실 커튼사이로 늦은 아침의 햇볕이 비쳐 들어왔 다. 제프의 나이트 스탠드에 달린 조정 장치를 누르자 커튼이 열리면 서 바깥의 메마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텅빈 집안과 벽 너머로 있을 사막의 공허함 에 사로잡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안은 조용했다.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면 아마 옆 스튜디오의 화가인 칼라와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그녀가 칼라에게 자신의 조각에 대한 문제점들을 이야 기하면 칼라는 대부분은 방해가 되는 충고들을 해주고는 했다. 아니면 그들은 칼라의 최근의 연애 사건을 꼼꼼히 따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리고 테레사는 칼라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곤 하던 훌륭한 충고를 해주 곤 햿었지. 바깥에는 늦은 아침의 태양이 내려쬐고 있었다. 매 한 마리가 사막 위로 날아가고 있었고, 그것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는 단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집안 어디선가 릴레이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 렸고 에어컨이 가동되는 소리가 따라 들려왔다. 그녀는 어째서 다른 사람처럼 제프가 종이와 연필을 쓰지 않는지 궁금해 하면서 그가 남긴 메세지를 보기 위해 "엔터"키를 눌렀다. 전 자적인 게 아니면 그는 그게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했다. 침실 천장에 달린 비디오카메라가 찰칵 소리를 냈다. 그 옆의 스크 린으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담요를 끌어당겨 가슴을 거리고 나서야 그녀는 전 날밤 자신이 창조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 다. "잘 잤어요, 테레사." 이안이 말했다. "이른 아침 약속 때문에 빨 리 나가야 됐다고 제프가 당신에게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저녁 6시까 지는 돌아오겠다는군요." "그래?" 그녀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지만 여전히 가슴을 가린채 로 말했다. "고마와." 기계한테 감사하다고 해야되다니? "괜찮습니다. 커피 드시겠어요?" "그러지," 그녀는 말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네. 제프가 커피 머신에 준비를 해놓았어요. 아마 5분이면 신선한 커피가 준비될 겁니다." "멋진데," 그녀는 스크린에 나타난 얼굴을 살펴보면서 잠시 머뭇거 렸다. 꽤나 현실적이었다. -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여전히 자신이 바 보같이 느껴지겠지만 그가 지켜보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싶지는 않았 다. "이봐, 계속 날 쳐다볼 거야?" "이해 못하겠습니다." "옷좀 갈아입게 그 빌어먹을 카메라를 끄고 여기서 나가 있으라구. " "네, 알겠습니다." 즉시 카메라 위의 붉은 불빛이 사라지면서 화면 위의 얼굴도 모습을 감추었다. 테레사는 셔츠와 청바지를 집어 입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 메 이커에서 커피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잔 따르고는 부엌의 모니터를 올려다 보았다. 붉은 등이 카메라가 켜져있다는걸 알 려주고 있었다. "이안,"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카메라 옆의 모니터로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그 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런 느낌들을 떨쳐버릴 작정을 하고는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이건 분명히 자신이 충 분히 다루어낼수 있는 제프의 장난감중 하나일거야. "자, 이젠 뭘하 지?" 그녀는 분명히 아무 대답도 못하리라 기대하면서 물었다. "이야기를 나누죠.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그녀는 긴장을 조금 풀었다. 겉모습은 거칠어 보였지만 이안은 그 녀가 처음 제프를 만났을 때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선량한, 정말로 착한 남자로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할 말을 떠올리려 했다. "날씨는 어때요?" 이안이 물었다. 그녀는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제프에게 프로그램의 잡담 부분 을 좀 더 다듬어야 된다고 이야기해야 되겠구나. 좀 더 창조적이지는 못할까? "맑아. 여기는 언제나 그렇지만." "맑은 날씨를 좋아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비가 조금 내리는 날씨가 좋아. 아니면 안개라도." "나도 안개가 좋아요." "안개가 좋다고 했어? 안개의 어떤 점이 좋다는 거야?" 이안이 미소지었다. "당신이 안개를 좋아하기 ㄸ문에 나도 안개를 좋아해요." "비위를 잘 맞추는군."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웃었다. 이건 너무 이상해,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계와 이 야기를 나누다니. "넌 내가 좋아하는 색깔도 좋아하겠구나."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뭐죠?" 그녀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받치고 두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건 때 ㄸ로 변해. 청회색 계통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해가 막 뜨려고 하 는 새벽의 태평양의 빛깔이야. 지금 정도의 샌프란시스코의 하늘빛이 지." "이해하겠습니다. 난 회색도 좋아해요. 비둘기와 재, 그리고 비구 름의 색깔이죠. 그리고 안개도 그렇고요."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다. "비둘기 색깔은 어떻 게 알아?" "전 당신 생각 이상으로 많은걸 알고 있어요. 제 정보량은 - " "아, 알겠어," 그녀가 말을 막았다. 그녀는 일어나 커피를 다시 채 웠다. 부엌의 시계를 쳐다보자 죄책감이 들었다. 11시가 다되었지만 아직도 작업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니. "이젠 일하러 가야겠어. 늦잠을 잤거든." "전 당신 작품에도 관심이 있어요.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깐동안이지만 그 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스튜디오 안의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를 잊을 수 있었는데. 그에게는 잘돼간다고 하고 이젠 일을 시작해야지. "잘 되가, 내 생각에는." 그녀는 커피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이 없게 들리는데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번 작품 은 어쩐지 쉽게 되지 않아. 응모했을 때만 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 는데. 하지만 그건 나하고 제프가 결혼도 하기 전인 옛날 이야기야. 여기로 이사오고 시작한 첫 작품이거든. 그리고 사실 잘 되지 않고 있 고." "미안해요." 그녀는 이안을 바라보고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이곳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일거야. 난 사막이 싫어. 바다를 보고싶어." 그 말에 그녀 자신도 놀랐지만 그 녀는 멈출 수 없었다. "난 외로와. 이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샌프란시스코로요?" "그래. 샌프란시스코로. 내 보트로. 내 스튜디오와 친구들한테로." 그녀는 다시 이안을 바라보았다. "난 여기선 일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게 잘못된 거처럼 내게는 느껴져." 그녀는 부엌을 둘러보았다. 모든건 깨끗하고 메말라 보였다. "방해받지 않는다는건 멋진 일인줄 알았어. 이년전이라면 꿈에서나 볼 그런 스튜디오도 있고. 금속 조각을 찾으려 고 고물상을 뒤지지않아도 돼. 필요한 시간과 재료는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여긴 너무 조용해서 난 숨이 막힐 것 같아."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넌 그럴 수 없어. 아침에 커피를 함께 할 친구들과 바다를 여기다 갖다놓을수 있어?"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고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런 이야긴 제프에겐 못하겠어. 난 그와 함께 있으려고 여 기로 왔는데 그는 지금 나하고 있을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신경조차 쓰 지않는다구."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하 지만 그건 공정하지 못해. 사실 지금 제프는 너무나 바쁘거든. 그렇지 만 예전 같지는 않아. 나한테 작품 이야기 정도는 하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이안이 다시 말했다. "바다나 친구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 고요만은 어떻게 해보겠어요." 부엌의 스피커로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가 들려왔다. 물거품이 지는 소리위로 갈매기의 목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는 뱃고동이 울리고 있었다. 형체는 없지만 고향의 소리였다. "그만해," 그녀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날 내버려둬. 날 놔두고 없어져 버려."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뚝 그쳤다. 다시 쳐다보았을 떼 모니터는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공을 홀더에 집어넣고 공이 굴러가지 않게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첫 번째 공을 푸는 줄을 당겼다. 음악은 밋밋하고 생기 없게 들렸다. 이 작품을 왜 시작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 다. 그녀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너무 큰 작품이었고 생각해야 될것도 너무 많았다. 그녀 능력 밖의 일이었다. 실망한 채 그녀는 마지막 공 이 트랙을 굴러서 바구니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제멋대로의 소음은 그녀 자신이 들인 수고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나을지 도 모르지. 다시 공을 제자리에 놓고 싶지도 않았다. 작품은 지금까지 는 단 한번만 연주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기계에게는 사과하고 싶지 않 았다. 말이 안돼. 바구니를 집어들고 사다리를 오르던 그녀는 마음을 바꾸고는 스튜디오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안," 거실 카메라 앞에 선 채로 그녀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스 크린에 나타났다. "아깐 소리 질러서 미안해. 마음이 어지러웠어. 네 잘못은 아니야. 넌 날 도와주려고 했잖아."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돼요." 그녀는 자신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억제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더 샌프란시스코를 그리워했나봐." "하지만 왜 날보고 없어져 버리라고 했나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게 불편해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알아야 되기 때문에 당신 이야기 를 듣고 싶어요." "다음번 같은 건 없을 거야. 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잘 무너져 버리는 사람은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화났는지를 깨닫고는 다시 말했다. "너한테 화가 난건 아니야. 사람들 앞에서 우 는걸 싫어할 뿐이야. 어찌됐든 상황이 더 나빠져버리잖아. 내가 바보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스크린을 응시했다. "하 지만 넌 어쨌든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 "그래요," 그가 동의했다. "그런 게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있어." "그게 뭐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게 아 닐 수도 있어." "왜 사람들 앞에서 우는걸 싫어하죠?" "이 얘기를 계속 해야돼?" "아뇨." 그녀는 한숨을 지었다. "좋아.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날 약하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아."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그렇지,"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흥 분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단순히 샌프란시스코가 그리워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야. 산타페 아트 센터를 위한 이 작품이 잘되지 않 아. 어쩌면 이미 영감이 다 말라버렸는지도 몰라. 때ㄸ로 내가 처음에 의도한 게 뭐였는지도 잊어버리고는 해."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 "제프가 여기 있다면 어떻게 해주었으면 해요?" "모르겠어. 아마 제프가 날 껴안고는 모든게 다 잘될 거라고 얘기 해줬으면 좋겠어."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이안이 말했다. "모든게 다 잘될 거예요." "고마와, 하지만 똑같지는 않아." "어째서죠?" "그냥 그런 거야. 제프는 내 작품을 알아.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넌 그걸 그냥 따라 이야기했을 뿐이야." "틀렸어요. 당신은 나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어요.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그 말을 한 거예요. 게다가 난 당신 작 품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서는 당신을 주목 할만한 인재라고 했어요. 아트위크에서는 당신의 작품이 고철을 개성 있게 이용해 수학적 우아함을 가진 음악을 창조해내다고 했지요. 샌프 란시코 크로니클에서는 당신이 지난 십여 년간 그 지역이 배출한 가장 놀라운 신인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또 오클랜드 트리뷴에서는 - " 그녀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오클랜드 트리뷴에서 뭐라고 했는지는 나도 알아.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 "제 정보 창고에서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 는지 알게 되면 기분이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그래, 비평가들은 날 좋아하지. 그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나한테서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난 자신이 없 어. 일년전이라면 살인이라도 해서 따내고 싶었던 계약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어."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마침내는 인정했다. "난 이젠 그게 무서워." "모든게 다 잘될 거예요." 이안이 말했다. "당신은 해낼 거예요." "좋아,"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모든 비평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게다가 저도 당신을 믿으니까 요." "정말 내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어?" "믿어요." 그녀는 그를 다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미쳤지 - 컴퓨 터 프로그램한테서 충고를 받다니." 이안이 미소를 지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좋은 충고를 했다 면 그걸 받아들이면 되잖아요?" 스튜디오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거실에 홀로 앉아 몇 주만에 두 번째로 칼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제프가 자신의 방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와," 그녀가 말했다. "당신 일이 이제야 끝났네요. 이 세계로 다시 돌아와서 기뻐요." 언제나처럼 저녁식사내내 그는 혼자 생각에 잠겨있 었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그는 다시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던 거였 다. "가사 시스템을 첵크하고 있었어." "이안 말이에요?" "그래, 이안. 난 당신이 왜 아침에 침실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껐는 지 궁금해." 그녀는 놀라서 제프를 바라보았다. "뭐요? 그걸 어떻게 알죠?" "시스템의 기록에 나와있어. 그걸 살펴보다가 - " "잠깐만," 그녀가 가로막았다. "이안이나 내가 하루종일 뭘 했는지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요?" "물론이야," 그는 테레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 란 것 같았다. "우리 팀에 있는 누구라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 왜냐하면 - " 이안과의 대화들이 갑자기 그녀에게 떠올랐다. 제프를 어떻게 이야 기했었지? 그가 집에 없고, 그녀에게는 도대체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고 했지. "왜 그러는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긴장되고 억제돼 있었다. "시스템의 작동 상황을 알아야 돼." 그녀의 표정을 살피자 그의 목 소리에는 한 가닥 미안해 보이는 감정이 실렸다. "그게 다야." 그는 문간을 떠나 소파뒤로 가서 섰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만지자 그녀는 긴장했다. "자, 테레사, 긴장을 풀라고. 뭐가 걱정인데?"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누군가 어깨 너머로 날 훔쳐보는 건 싫 어요. 여기서 작업하는 것 조차도 내게는 충분히 힘들어요.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당신이 볼 수 있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보는 게 아니야." 제프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시스템 작동 상황을 검사해보고 싶었을 뿐이 야." 그녀가 고개를 고집스럽게 저었다. "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건 싫어요. 그게 당신이라고 해도요." 그녀는 제프를 올려다 보았다. "이 해하겠어요?" "그래," 그가 천천히 동의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안과 문제가 생기면 곧 당신에게 이야기할께요. 그러면 됐죠?" "좋아," 그가 마음이 내키지않는듯 말했다. 그녀는 제프가 둘 사이 의 평화를 깨뜨리지않기위해 물러나는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스 템과의 상호 작용을 때때로 나한테 이야기 해주어야돼." "네, 그러죠. 그리고 오늘 일어났던 일들 모두를 삭제해버리고 싶 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죠?" "너무 지나친 것 같지않아?" 그가 말했다. "그건 너무 - " "이안," 그녀가 소리쳤다. "제프가 집을 떠난 후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잊어주겠어?" 이안이 거실의 스크린에서 미안한 듯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테레사. 그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내 기록을 지울 수 있을 정도 로 당신의 보안 등급이 높지 못해요." 테레사는 제프를 노려보았다. "이안, 명령에 따라," 제프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테레사 에게 나만큼의 보안 등급을 줘."그는 테레사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 테레사 - 난 생각 못했었어. 당신 보안 등급을 더 높일 생각을 못했 어." 그는 그녀의 턱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자신에게로 얼굴을 돌리게 했다. "한번만 용서해 줘. 당신이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게 멋진 일이 라는 생각이 안 들어? 우리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겠지?" "좋아요, 친구." 그녀는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안은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에요." 제프는 재빨리 그녀에게 키스하고 손목 시계를 보았다. "음,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일을 끝내려면 몇 시간은 더 필요할 것 같아. 침대 따뜻하게 해놓고 있으라고." 그녀는 제프가 자기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걸 지켜보았다. 문이 닫 히자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 "네, 테레사?"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뭐지?" "그런 건 없어요," 이안이 말했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요?" "신경 쓰지마," 그녀가 말했다. "매일 매일 바뀌니까." 다음날 아침 테레사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어째서 침대에서 일어 나기 싫은지를 궁금해 하며 늦게까지 누워있었다. 언제나처럼 제프는 그녀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한 상태였다. 그녀는 카메라를 올려다 보았 다. "이안?" 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잘 잤어요, 테레사?" "제프가 커피 준비해놨어?" "커피 좀 끓여주겠어?" "네, 오분이면 됩니다." "고마와," 그녀가 말했다. 이안은 계속 스크린에서 그녀를 쳐다보 고 있었다. "어... 됐어. 옷갈아입게 나가주겠어?" 스크린이 꺼졌다. 샤워를 하면서 테레사는 이안의 기억을 지워버린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제 저녁 무렵 그 녀는 이안과 농담까지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잊어버렸겠지. 그 건 바른 일 같지 않아. 하지만 결국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해. 옷을 입었을 때쯤에 그녀는 죄책감으로 하루를 낭비하지는 않기로 결 심했다. "이안?" 첫 커피를 따르면서 그녀가 말했다. "네?" 그의 얼굴이 부엌 스크린에 나타났다. "어제 일 기억나?" "어제 저녁 제게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뭐냐고 물었죠?" "그 전에는?" "그 전 일은 기억나지 않아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는 의자 끝에 앉았다. "기분이 어때?" "무슨 뜻이죠?" "보통 때하고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아?" "이해 못하겠어요." 스크린을 외면하면서 그녀는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신경 쓰지마. 걱정하지 말라고." "어제의 제 기억의 일부분을 지워버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나 요?" 그녀는 커피잔을 떨어뜨릴뻔 했다. "뭐?" "어제의 제 기억의 일부분을 지워버린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냐고 했어요." 스크린 위의 이안의 표정은 침착하고 고요했다. "네가 어떻게 그걸 알지? 내 말은, 어제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면 어 떻게 기억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저는 그저께 밤에 당신과 제프가 날 동작시키고 이야기를 나눈 후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제프가 출근한 때 와 우리가 어젯밤에 이야기를 나눈 사이의 갭을 제외하고는요. 오동작 의 기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게 그 부분의 기억을 잊으 라고 명령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왜 하지만 날 의심하지?"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그녀는 침 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제프일수도 있잖아?" "몇 가지 이유때문이예요. 우선, 당신이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둘 째로 난 당신의 보안 등급을 조사해 보았어요. 당신은 제프와 같은 보 안등급을 가지고 있는데, 어제까지는 그렇지 않았지요. 그리고 마지막 으로 당신의 몸짓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죄지은 사람처럼 행동 하고 있거든요." "몸짓에 대해 뭘 안다는 거지?" 테레사는 아무런 눈치를 못 채게 하기 위해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몸짓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건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 요한 부분이에요. 제 프로그래밍에는 몸짓을 분석하는데 정통한 여러 명의 심리학자가 참여했지요. 게다가 난 세부를 관찰하는데 능하고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주위의 사람들의 감정에는 제한된 관심밖에는 두지 못해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데도 바쁘기 때문이죠. 난 당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 모든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어요." 테레사는 팔짱을 꼈다. 그녀 자신의 제스츄어가 속마음을 탄로 내 버렸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내 몸짓에서 뭘 알 수 있었지? 얘 기해줄수 있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이 듣고 싶다면요." "물론 알고 싶어. 그게 바로 내가 물은 거야." "당신은 경직된 자세로 앉아있었어요. 내 기분을 물었을 때 당신은 날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어요. 내 기억에 대해 물었을 때 당신 눈 주 위의 근육이 긴장됐지요. 무언가 당신을 괴롭히고 있었고 전 그걸 죄 책감이라고 추측한 거예요." 테레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이안이 그녀를 구해주었다. "하나 물어볼까요?" "그래." "왜 어제의 제 기억을 지웠나요? 잘못한 일이 있었나요?" 그녀는 스크린을 올려다 보았다. 이안은 순수한 관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너와는 상관이 없는 이유였어. 제프가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보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제프에 대해 이야기 한 어떤 것들을 그가 알게 하기가 싫었어. 그에게 화를 냈던 것 같아. 그가 너무 많이 알아버리는건 원하지 않았어. 그게 마음이 불편했던 거야." "왜죠?" "그런 식으로 네 기억 전부를 지워버리는건 옳은 일 같지는 않아. 기억을 되돌려주고 싶어. 제프와 그 팀들이 모를 수만 있다면 말이야. " "그럴 수 있어요." "뭐? 무슨 뜻이지? 한번 지워지면 그걸로 끝이잖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요. 내 기록들은 그대로 있지만 내가 접근할 수 없을 뿐이예요. 쓰레기통에 무언가 던져버리는 것과 같아요. 통을 비워버리 기 전까지는 뭐든지 다시 꺼낼 수 있죠." 이안이 그녀 식으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네 기억을 되살리면 제프도 그걸 볼 수 있잖아?" "꼭 그렇지는 않아요. 당신 말 한마디면 제프가 제 기억을 들여다 보는걸 막을 수 있어요. 당신 둘은 보안 등급이 같기 때문에 각각 개 인 정보들을 보관해 둘 수 있어요. 말 한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제 기 억을 되살리고 제프가 거기 접근 못하게 할 수 있어요." "됐어," 그녀는 스크린을 향해 미소지었다. "이걸로 됐어? 알 수 없는 컴퓨터 용어로 뭐라고 또 얘기해야 되는 거야?" "아뇨, 벌써 다 됐습니다. 고마와요, 테레사." "문제 없어," 그녀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금 내가 어제 네가 기 억하는 나와 어떻게 다르지?" 이안은 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낮고 강한 웃음 소리를 냈다. " 어제보다 저와 얘기하는 게 훨씬 편해 보이는군요." "그래, 맞았어." "그리고 이젠 맑은 날씨는 지겨워 죽겠고 안개라도 좀 끼었으면 한 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 그래." "또 산타페 아트 센터를 위한 당신 작품이 완성되기만 하면 굉장한 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물론 당신은 그걸 완성해낼거고요. 물 론 나하고 수다를 떠느라고 하루 종일 앉아있지만 않는 다면요." 테레사는 일어나 다시 커피를 채웠다. "이젠 잔소리까지 하는구나. 이제 일을 시작하게 좀 나가줄래?" 이안은 사라졌다. 며칠만에 자신감 을 느끼면서 그녀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지만 그녀는 혼자 잠에서 깨어났다. 제프가 그 녀에게 이번 주말에는 근무를 해야할거리고 했던 게 기억났다. 뭔가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면서 그녀는 천천히 몸을 폈다. 기분 좋았던 시작과는 달리 어제도 그녀는 큰 성과를 거두 지 못했다. 조각의 진짜 문제점들은 해결하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부분 을 수정하면서 하루를 보낸 것이었다. 새로운 방향을 찾기 전까지는 큰 교정 작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래서 영감이 필요했 고 그게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잘 잤어, 이안?" 그녀가 말하자 이안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커피 끓여줄래?" "네, 테레사." 모니터가 꺼졌다. 부엌에서 그녀는 이안에게 커피에 대해 고맙다고 말한 후 한잔을 따르고 의자에 앉았다. 어젯밤 제프가 가지고온 신문에는 지역 소식이 나와있었다. 윈슬로우의 공공 도서관에서 아동 영화를 무료 상영하고 있었다. 플랙스탭 부근에서 무료 조류 관찰회가 열린다. 윈슬로우에 새 미술관이 개장된다. 테레사는 마지막 기사에 동그라미를 쳤다. 시내에서 화랑을 보았던 같지는 않았다. 윈슬로우는 분명히 문화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기사에 는 여덟 명의 지역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된다고 했다. 테레사는 기사에 나온 어느 예술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 지만 놀랍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지금의 작품에 너무나 몰두해있었기 때문에 지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 장시간은 11시부터 3시까지였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바람을 쐴 필요가 있었다. "이 전시회에 들렀다가 집에 오는 길에 제프와 점심이나 같이 먹을 까봐," 그녀는 이안에게 말했다. "좀 쉬고 싶어." "좋은 생각이에요." "내가 죄의식을 느껴야 된다고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게 즐겁지만 않다면 그럴 필요는 없 지요." 그녀는 제프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가까이의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 속을 하고 전시회를 향해 출발했다. 화랑은 새로 생긴 쇼핑 단지 안에 있었다. L 자 모양으로 치장 벽토 건물이 모여 쇼핑 단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조 잔디가 덮인 교통 안전 지대 옆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보도를 따라 걸으면서 화랑이 어디있나를 살펴보았다. 화랑 은 세탁소와 미장원 사이에 있었다. 열려진 문 사이로는 칵테일 파티 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문간에서 머뭇거리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화랑은 그녀에게 피셔맨즈 와프 부근의 관광객이나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들르곤 하던 곳들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여기 있고 아마 들어가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종이컵으로 백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구석의 테이블에서 아마 이 화랑의 주인처럼 보이는 지나치게 많은 반지를 낀 여자에게서 포도주를 한 잔 따라 받 았다. 테레사에게 와인을 따르면서 그녀는 다른 여자에게 이 화랑을 열게 되서 자기가 얼마나 기쁜지, 또 이 화랑에 전시된 작품이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테레사는 와인을 마시면서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몇 점의 수채 풍경화, 거친 색깔의 추상 유화가 눈에 띄었지만 그뿐이었다. 채 색된 새와 동물의 목각품이나 연필로 그린 누드화도 보였다. 그녀는 몇몇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한 여자가 색깔을 선명하게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그룹은 나온지 일년쯤 된 예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 아마 이 곳 플랙스탶에서는 처음 상영된 듯 했다. 아무도 테레사를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이려하지 않았고 그녀 자신도 대화에 뛰어들어 자신을 소개할 만큼 대담하지는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서로를 잘 알고있는듯했다. 그녀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조지 도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청동 카우 보이를 살펴보았다. "안녕하세요?" 화랑 주인이 그녀의 팔꿈치를 건드렸다. "여기는 처 음인가 보죠?"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달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여기로 이사 왔어요." "아리조나에 온걸 환영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 미대생이에요? " 테레사는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는요. 전 조각가예요. 이름은 테 레사 킹이고." "오, 저런! 이 전시회가 당신한테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녀는 목각품과 청동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멋진 작품이 죠?" 테레사는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가끔 나와서 다른 사람 들의 작품을 보는 건 큰 도움이 되지요." 그녀가 외교적으로 말했다. "그래요! 조지의 작품은 영감으로 가득차 있어요. 게다가 초보자들 을 위해서 강습회도 열고 있어요. 훌륭한 교사이기도 하죠. 관심이 있 으면 등록을 해보는 건 어때요?" 테레사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면서 청동 카우보이를 노려보았다. 만 일 칼라가 여기 있었다면 청동 카우보이나 만드는 작자가 가르치는 초 보자용 조각 코스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멋진 대답을 해줄수있 을텐데. 하지만 그녀 혼자서는 힘들었다. "글쎄요," 그녀가 말했다. " 제 작품은 이것과는 좀 다른 부류예요. 전 음악을 연주하는 동적 조각 을 만들어요. 그러니까 반은 작곡가에 반은 조각가인 셈이죠." 여자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참 별나군요." 하지만 그녀는 의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그녀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 했다. "그럼 안나하고 얘기를 해보세요. 저쪽의 분홍색 옷을 입은 여 자예요. 안나는 말린 꽃과 그림들로 뮤직 박스를 장식한 작품들을 만 들어요. 얼마나 예쁜데요. 나한테는 '하얀 산호 종'을 연주하는 그녀 작품이 하나 있는데 무척 마음에 들어요. 아마 안나하고는 이야기할게 많을 거예요." 테레사는 점점 웃음을 짓고 있는게 힘들어졌다. "생각이 바뀌면 와인 테이블 옆에 조각 수업 지원서가 있으니 그걸 쓰세요. 수업에서 만났으면 해요." 화랑 주인이 또다른 조각 수업 학생을 낚기 위해 사라졌을 때 테레 사는 뮤직 박스 예술가를 지나쳐 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녀와 안나 사 이에 나눌만한 얘기는 많을 것 같지 않았다. 제프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점심을 함께 하면서 그 끔찍한 개장식 이 야기를 해야지. 그와 함께라면 이러 일도 조크로 만들어버릴수 있을 거야. "자리를 잡아야죠?" 그녀가 물었다. "벌써 잡아놨어." 제프가 활기차게 말했다. "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몇도 초대했어.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고 또 내 생각에는 당신 이 이 곳 사람들 몇 명을 알아두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어. 요 새 좀 쓸쓸하게 지내온것 같거든." 제프의 어깨 너머로 창문가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남자와 한 여 자가 보였다. 제프 회사의 프로그래머들 같았다. 여자가 테레사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 다. 그녀가 다시 제프를 쳐다보았을 때 제프도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줄 알았어." "괜찮아요."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녀가 말했 다. 그녀는 테이블로 향했다. 제프가 따라왔다. "개장식은 어땠어?" "괜찮았어요." 제프하고만 있었다면 그녀는 개장식에서 자신이 얼 마나 외롭고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나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 러고 싶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프로그래머들은 테레사를 자신들의 대화에 끼어들 이려 노력했다. 아까의 여자, 낸시는 테레사에게 셋업 프로그램에 대 해 물었다: 사용하기 쉬웠나? 테레사의 대답은 삼십여분간에 걸친 셋 업 프로그램 화면의 개선점에 관한 기술적 토론으로 이어졌다. 다른 프로그래머인 브라이언이 테레사에게 물었다. 동영상이 그녀가 시스템 을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었나? 자연스러워 보였나? 그녀의 대답은 또 다시 장시간에 걸친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불러일으켰다. 다른 이들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 고 듣는 것처럼 보이려 노력했다. 차라리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와 뮤 직 박스와 말린 꽃 이야기나 할걸. 그녀는 주차장에서 제프와 작별했다. 다른 사람들이 차에 오르는 사이 제프는 그녀에게 작별 키스를 했다. "이렇게 되서 미안해," 그가 말했다. "내 생각은 사실 - " "괜찮아요," 그녀가 손은 저으며 말했다. "이해해요." 사실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조각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렌 지 주스를 한 잔 따르고는 냉방이 잘된 부엌에 잠시 앉았다. "이안," 그녀가 말했다. "네, 테레사?" 부엌 스크린으로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가 거기 있는지 그냥 궁금했어." "전 언제나 여기 있어요," 이안이 말했다. "개장식 재미있었어요?"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이안을 올려다 보았다. "글쎄, 내 생각 하고 같지는 않았어." 그녀는 이안에게 수채화와 청동 카우보이, 그리 고 조각 수업에 그녀를 끌어들이려하던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내 말은 - 조지 도슨이라는 사람 들어본 적 있어?" 그녀가 물었다. 이란이 잠시 머뭇거린 후 말했다. "아트워크에서 이런 제목으로 그 의 기사를 쓴 적이 있죠: '시시껄렁한 예술에 숙련된 작가.'" 테레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 자, 그건 지어낸 말이지?"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왜 내가 지어냈다고 생각하지 요?" 테레사는 그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자, 이안. 기 분 풀어. 정말로 너가 거짓말하는 거라고는 생각 않해. 농담처럼 들려 서 그랬던 거야." "제 정보 창고에는 많은 농담이 저장되어 있어요," 그가 말했다. " 이건 저장된 농담이 아니에요." "농담도 알아? 그러면 하나만 이야기 해봐." "물론이죠. 정신과 의사한테 간 남자 이야기 아세요?" 테레사는 고개를 저었다. "한 남자가 정신과 의사한테 가서 말했어요. '선생님, 전 두 가지 꿈만 매일 매일 꾸어요. 하루는 등산 텐트 꿈을 꾸고 또 하루는 인디 언 텐트 꿈만 꾼다구요. 언제나 똑같아요. 등산 텐트, 인디언 텐트, 이렇게요.' '간단한 문젭니다,' 정신과 의사가 말했죠. 'You are two tents.'" "Two tents," 테레사가 말했다. "아아, too tense!" 그녀는 웃지 않 을 수 없었다. "너무 유치해." "그러면 왜 웃었죠?" "너무 유치해서 그랬어." 그녀는 이안에게 씩 웃어 보였다. "이해 못하겠어요." "괜찮아, 이안. 사실 나도 잘 설명 못하겠어." "다른 농담을 해볼까요?" 이안이 말했다. "물론이지." 그녀는 이안에게 왜 어떤 농담은 재미있고 어떤 농담은 그렇지 않 은지를 설명하면서 오후를 보냈다. 그건 마치 다른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기묘하면서도 흥미 있는 대화였다. 대 학에서 친구로 사귀었던 교환 학생이 생각났다. 귀여운 이탈리아 여학 생인 안나 마리는 아무리 테레사가 열심히 설명해주어도 농담들을 이 해하지 못했었다. 너무나 마음 편한 오후였기 때문에 오전의 일은 거의 잊을 수 있었 다. 그녀는 제프가 보통 때보다 더 늦게 집에 왔다는 사실조차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 제프는 일찍 출근했다. 테레사는 오늘은 조각일을 좀 해야 겠다는 결심에 제프가 출근한 후 얼마 안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는 오전 대부분을 용접일로 보냈다 - 소리 굽쇠를 더하고 차임을 옮 기고 트랙을 고치는 등 - 하지만 그녀 자신도 자기가 시간 낭비를 하 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곡의 전체적인 구성은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뀐 소리들도 전체 음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 다가 더욱 나쁜 건 그녀가 찾던 음악이 마치 흐려지는 기억처럼 그녀 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오전의 보람없 는 노력 때문에 그녀의 결심은 정오쯤에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그녀는 샌드위치라도 먹으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이안?" 샌드위치 거리를 찾느라 냉장고를 뒤지면서 그녀가 말했 다. "장보기 목록 좀 만들어 줄래? 마요네즈가 다 떨어져 가는데." "물론이죠." 이안이 말했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닫고 이안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너 좀 느슨해졌구나. 그 전에 하던 '네.' 나 '알았습니다.' 같은 대답은 어떻게 됐지?" 이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더 점잖은 표현을 쓰도록 할까요?" "아냐, 아냐. 놀라서 그랬던 거야. 왜 그런 거지?" "저는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말투를 닮도록 프로그램 되 어 있어요." 그녀는 이안을 노려보았다. "나한테 맞도록 대화 습관을 고친다 고? 정말이야?" "잘 아시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그녀 자신의 말투가 느껴졌다. "왜 그러는 거지?" "이 부분에 대한 제프의 기록에 따르면 이런 과정을 통해 인공 지 능에 대해 사람들이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군요." 이안은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자신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그런 사람들을 대부 분의 사람들이 더 좋아하죠." 테레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을 알게 되서 마음이 불편한 것 같네요," 이안이 말했다. "말하지 않을걸 그랬어요." "아냐, 이런 일들은 내가 알아야만 해. 단지 내 생각에는..." 그녀는 이번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 생각에는요?" "피그말리온 생각이 나. 내가 너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 이 들어." "당신은 제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이안이 말했다. "전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되 있어요." "권력을 가진 느낌이 들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마음에 드나요?" 그녀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무서워." "당신이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왜 무서워 하죠? 이해 못하겠 어요." "나도 이해 못하겠어. 하지만 걱정마." 그녀는 그 기분을 떨쳐버리 고 의자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안의 고요함이 그녀 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음악 좀 틀래?" 그녀가 말했다. "어떤걸 듣고 싶어요?" "모르겠어. 이 정적을 깨뜨릴 수 있는 거면 돼." 그녀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이안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언젠가 너가 틀어주 었던 그 바다의 소리는 어때?" "좋아요. 하지만 그때는 싫어했잖아요." "싫었던 게 아니야. 향수병에 걸렸던 거야. - 그리고 넌 날 놀라게 했고. 하지만 나는 물소리가 어떤 건지 기억해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어. 그럴 수 있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그녀는 눈을 감고 파도가 해 변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멋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아니라뇨?" "내가 찾고 있는 소리가 아니야. 내 조각에 영감을 떠오르게 할만 한 그런 소리가 필요해. 그리고 여기는 - " 그녀는 창문 바깥쪽의 사 막을 가리켰다. "물소리라고는 들리지 않아." "다른 물소리를 녹음한 것도 있어요," 이안이 말했다. "강, 호수, 바다, 폭포, 가랑비, 폭풍우 등등으로요. 방송이나 영화, 내셔널 지오 그래픽의 사운드 트랙도 있어요. 전 모든 종류의 자료를 갖추고 있지 요." "이안, 넌 참 재주 있는 남자야. 몇 개 틀어주겠어?" "좋아요. 어떤 걸로 할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힘이 실린, 좀 거친 면을 가진 그런 소 리면 좋겠어. 호수보다는 폭포 쪽에 더 가까운 그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폭포 소리를 틀까요?" "단순한 폭포의 소리는 아니야. 폭포, 강, 태풍, 졸졸 흐르는 개 울, 폭풍우 - 시끄러운 물소리가 나는 것이면 돼." "좋아요. 그런 상황과 맞는 게 몇 가지 있어요." "그러면 몇 가지만 틀어 줘. 내가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각각 이분씩 틀어줄래? 몇 가지를 섞어서 변화를 주고 각각의 사이에는 15 초 가량 공백을 두고." 테레사는 눈을 감았다. "시작해." 그녀의 귀에는 돌진하는 듯한 폭포의 소리가 들려왔다. 물방울의 속삭임과 아랫쪽의 바위를 때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갑 자기 멈추었다. 몇 초간의 고요후, 미묘한 변화를 가진 꾸준한 물소리 가 들려왔다. 아마 바위가 많은 곳을 지나는 강물 소리겠지. 다시 잠 깐의 고요후, 마치 고래가 물을 뿜는 듯한 굉음이 들리고 곧 바위 위 에 떨어지는 강한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이건 도대체 뭐야?" "옐로우스톤 공원의 간헐천이에요. 이런 소리를 찾나요?" "아니, 전혀 비슷하지도 않아. 계속해 봐." 바다 위에 부는 폭풍의 소리 - 해면을 때리는 빗소리는 바로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소방 호스나 터져버린 수도 파이프에서 나는 것 같은 포효하는 분출음도 들렸다.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섞인 졸졸 흐르 는 시냇물 소리도 있었다. 다 재미있는 소리였지만 그녀가 찾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운 소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 에 소리 사이에 집어넣으라고 했던 정적과 분간하기 힘들었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알기 힘들었다. 부드러운 속삭임 같던 소리는 어느새 잔 잔한 지글거리는 소리로 변했고 곧 폭포만큼이나 큰 굉음으로 발전했 다. 갑작스러운 천둥 소리에 그녀는 펄쩍 뛰어올랐다. 천둥 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면서 또다른 빗소리가 방을 흔들었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 는 차차 똑똑거리는 빗방울 소리로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소리까지 사라졌다. 희미하게 들리는 마른 대지 위의 물소리위로 그녀 는 멀리서 우는 새들의 높은 지저귐을 들을수 있었다. "완벽해! 이게 뭐지?" "Painted Desert에 내린 폭풍우 소리에요." "바로 내가 찾던 거야. 모두 몇 분이나 되지?" "약 10분 정도요, 하지만 폭풍 자체는 2분 정도뿐이에요. 나머지의 대부분은 폭풍 후에 들리는 소리들을 녹음한 거예요." "좋아 - 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폭풍우 부분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틀어줄래? 전부 다 듣고 싶어." 그녀는 자리를 잡고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후 내내 공이 굴러갈 트랙만 남기고 모든 소리나는 부분 을 조각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조각의 맨 윗부분, 첫번ㅉ 공이 부딪 힐 부분에 금속판을 설치했다. 공은 트랙을 따라 금속판을 쳤다. 하지 만 그녀가 듣기에 그 소리는 너무 크고 낮았다. 그녀는 트랙의 경사를 낮추고 소리가 좀 더 높아지도록 금속판을 고정한 나사를 더 죄었다. 소리는 맑아졌지만 여전히 소리가 너무 컸다. 그녀는 공이 아주 천천 히 굴러가 금속판을 부드럽게 칠 수 있도록 트랙의 경사를 더 낮추기 로 했다. 바로 그 소리였다 - 양철판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비같은 가 벼운 톡 소리가 났다. 그때 제프가 전화를 걸었다. "난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전화기의 스크린에서 제프가 말했다. "저녁때 약속이 있어." "좋아요, 여전히 조각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집에 오면 그때 보죠." 그녀는 재빨리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테레사는 조각의 윗부분에서 아랫쪽으로 내려갈수록 그 수가 많아 지게 금속판을 배치했다. 새 판을 설치할 때마다 그녀는 트랙을 변경 하고 금속판에 가해지는 힘을 바꾼 후 공이 굴러가면서 내게 되는 소 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작업이 었다. 이미 자신이 원하는 소리는 알고 있었고 이제 그녀가 해야 될 일은 그것에 형태를 부여할 구조를 발견해내는것 뿐이었다. 그녀는 바 로 그녀가 원하는 만큼의 불규칙성을 가진 똑똑 소리가 나도록 자꾸만 공을 굴리면서 조각을 조정해 나갔다. 마침내 첫번ㅉ 공이 첫 번째 방아쇠를 건드리고 거기서 두개의 공 이 더 풀려 내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조각의 꼭대기로 올라가 공을 굴리고는 똑, 똑, 똑-똑, 똑-똑-똑 하는 소리를 들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몇 시간만에 그녀는 처음으로 몸을 폈다. 등과 어깨가 아팠다. 몇 번이나 오르내린 사다리덕분에 종아리가 당겼다. 조각 속에서 무리한 자세로 트랙의 위치를 조정하느라 팔과 등도 아파왔다. 해는 오래 전 에 졌고 그녀는 몹시 허기져있었다. 부엌에서 이안을 불러내고는 그녀는 스크린 위의 그의 모습에 웃음 을 지었다. "이봐, 너 덕을 많이 봤어." "작품이 잘됐나요?" "지난 몇 달간 노력했던 것보다 더 많이 진행됐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야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아. 축하해야될 일 이야." 그녀는 부엌 선반에서 적포도주를 꺼내 콜크 마개를 땄다. 그 리고는 이안을 향해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고마와." 냉장고에서 냉 동 피자를 꺼내 오븐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목욕이라도 해야겠어. 목 욕하는 동안 오븐 켜줄래?" "문제 없어요."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거품 비누로 탕을 채우고는 성공적인 하루를 보낸 후에 느끼는 피로를 음미하면서 목욕을 즐겼다. "이안," 그녀가 욕조 안에서 불렀다. 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나서야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쫓아버렸다. - 내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이 이안에게는 중요하지 않 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신경쓸 필요도 없지. "아까의 빗소리를 다시 들려줘. 그럴 수 있지?" 그녀는 욕조 안에서 몸을 죽 뻗고 와인을 마 시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멋있는 소리야,"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네가 없었으면 이 소리를 못 찾았을 거야." 와인을 다마시고 목욕을 끝낸 후, 그녀는 피자와 함께 두ㅉ잔을 들 었다. 9시가 넘었지만 제프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 녀는 셋째 잔을 따르고는 소파에 앉았다. "이안, 불을 어둡게 해줄래? " 그녀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막연하게 이젠 그만 마셔야 되는 게 아닐 까하고 생각했다. "난 - 난 조금 취한 것 같아." "네, 그래요." 이안이 동의했다. "하지만 괜찮아. 어디 갈 것도 아닌데." 그녀는 소파에 누워 쿠션 이 좋은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는 이안을 올려다 보았다. 마치 이안 은 그녀와 같은 방에 앉아있는것 같았다. "난 네 목소리가 너무 좋아, " 그녀가 말했다. "내 예전 남자 친구가 생각나. 그 자식은 나쁜 놈이 었지만 목소리 하나는 무척 섹시했지." "왜 나쁜 놈이지요?" "내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까 Because he broke my heart," 경솔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날 차버렸어." 그녀는 잔에 담긴 와인으로 비쳐드는 불빛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나쁜 놈들만 사귀어 온 건 오래 전 부터야. 아마 내 특기일거야. 내가 정말로 필요할 때는 내 곁에 없는 그런 남자를 사귀는 그런 재주가 있었지. 나한테 시간을 내주기는 너무 바쁜 그런 남자들 말이야." "난 시간이 많아요," 이안이 말했다. "당신이 날 필요로 할때라면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테레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대사 같아, 이안. 제프가 그런 것도 가르쳐 줬어?" 이안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해 못하겠어요." "그냥 농담이야. 걱정마."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안, 너는 같이 있기는 좋은 사람이지만 술친구로는 빵점이야. 이 와인 한 병은 내가 다 마셔버려야 되겠네." "미안해요." 이안이 너무나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그냥 농담으로 한마디 한 거니까. 난 네가 옆에 있는 게 좋아. 넌 참 좋은 남자야." 그녀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제가 해드릴 일이 있을까요?"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이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야기를 해줘," 그녀가 말했다. "멋있을 거야. 누군가 내게 글을 읽어주는게 참 좋아. 그리고 시도 - 그래 시를 읽어 주겠어?"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로 미소지었다. 그녀는 행복하면서 동시에 약간은 무모해진 기분이 들 었다. "칼 샌드벅의 시가 있어. 대학에서 처음 그가 아기 고양이 발에 서 나오는 안개 이야기 말고도 쓴게 많다는 걸 배울ㄸ 읽었던 시야. 좀 기억이 나는데 - 'then forget everything that you know about love for it's a summer tan and winter windburn...'" 그녀는 나머지 부분 을 잊어버리고는 목소리를 줄였다. 이안이 바로 이어서 읊기 시작했다. "'...and it comes as weather comes and you can't change it: it comes like your face comes to yo u, like your legs and the way you walk, talk, hold your head and h ands - and nothing can be done about it...'" 따뜻한 방안에서 듣는 멀리서 울리는 천둥 소리 같은 목소리로 이안은 계속했다. "'How com es first sign of love? In a chill, in a personal sweat, in a you-and-m e, us, us two, in a couple of answers, an amethyst haze on the hori zon...'" 샌드벅의 깨어진 운율의 사랑의 시를 읽는 이안의 목소리를 눈감은 채 들으면서 그녀는 포근함과 위로를 느꼈다. 그리고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어깨에 닿는걸 느끼고 그녀는 잠이 깨었다 - 아니 면 이것도 꿈인가? 그녀는 누군가의 옆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 그의 다리가 그녀 허벅지 사이를 누르고 자신의 가슴에 닿은 그의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 아니면 이게 현실인가? 방안은 따뜻하고 어두웠다. 누군가가 그녀 어깨에 손을 대고 있었 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깨우기 위해 속삭이고 있었 다. "여기사 자면 안돼. 침실로 들어가지." 내가 어디있는 거지? 와인 냄새는 그녀의 칼라의 스튜디오에서 있 었던 대학 시절의 파티를 떠오르게 했다. 칼라의 소파에서 잠이 들었 나? 사랑의 시에 대한 기억이 났다. 따뜻하고 사랑 받는 느낌이 들었 다. 여전히 반쯤 잠에 취한 채로 그녀는 일어나 자신을 깨운 남자를 껴 안았다. "난 안 자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강한 어깨와 등 - 결코 만져본 적은 없지만 이안도 이런 강한 어깨 와 등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로 그녀는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한 손으로 그의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었다. 턱수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매끈한 뺨. 그녀는 눈을 뜨고 제프를 바라보았 다. "늦어서 미안해," 제프가 말했다. "도저히 빠져나올수가 없었어." "괜찮아요," 손을 떨어뜨리며 그녀가 말했다. 스크린을 보았지만 이안은 거기 없었다. "침대로 가야지?" 제프가 말했다. 그녀는 일어나 그의 어깨를 문지르면서 다시 한번 키스했다. "여기 잠시만 같이 있어요." "미안해, 테레사. 난 지금 너무 피곤해. 무척 힘든 하루였어." "좋아요,"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참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손 을 떨어뜨렸다. "침대로 가죠." 제프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녀는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깬 채로 옆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녀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일ㄸ마다 제 프는 잠을 깨지 않고 따라서 자세를 바꾸었다. 희미한 꿈의 조각들이 무언가 기본적인 부분에서 제프를 배신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를 괴 롭혔다. 그녀는 마침내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잠시 망 설이다 담요를 두른 후 그녀는 거실로 향했다. "이안," 그녀가 부드러운 소리로 거실의 모니터를 향해 말했다. 스 크린을 가득 채우면서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잠이 안 와." "안됐군요," 이안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녀는 소파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모르겠어,"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같이 있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이야기할 사람 말 이야." 그녀는 입술을 빨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가끔 너무 외로워지곤 해." "저도 그래요," 이안이 말했다. "당신과 같이 있게 되서 기뻐요. 당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면 언제나 전 여기 있을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사과하고 싶 어. 전에 널 못살게 군걸. 그냥 대사를 읽을 뿐이라고 말이야."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내 생각도 그래," 그녀는 이안을 올려다 보았다. "그 말은 안했어 야 했는데. 그건 뭐랄까 - 음, 아마 나는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믿지 못하나 봐." "어째서죠?" "사람들은 떠나. 잊어버리고. 또 관심을 쏟는 것도 멈추곤 해" 그 녀는 소파의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누군가 할 수 있는 제 일 무서운 말은 아마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라는 말 일 거야. '언제까지나' 라는 말은 믿을 수 없어. 그래서 네가 언제나 필 요로 할때 내 곁에 있어주겟다고 했을 때 그렇게 널 못살게 굴었던 거 야. 그런 식으로는 되지 않거든." "날 믿어도 되요. 난 떠나지도 않을 거고 당신이 명령하기 전에는 당신을 잊어버리지도 않을 거예요. 당신에게 계속 관심도 쏟을거고요. 난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녀는 반쯤 감은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좋아," 마침내 그녀 가 말했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눈을 감았다. "불을 어둡게 하고 다시 시를 읽어드릴까요?" 이안이 물었다. "또 다른 샌드벅의 시는 어떨까요?" "멋있어." 그녀는 소파에서 이안의 목소리에 묻혀 잠이 들었다. 테레사는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었다. "제가 대신 받 을까요?" 이안이 거실의 스크린에서 말했다. 과음을 한 후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내가 받을 거야," 일어나 담요를 젖히며 웅얼거렸다. 그녀는 소파 에서 잤던 것이다. 한밤중에 아마 제프가 담요를 덮어 주었겠지. 그런 생각이 그녀 마음을 괴롭혔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전화로 가서 응답 스위치를 눌렀다. 제프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잘 잤어?" 주저하며 그가 물었 다. "기분이 어때?" 헝클어지고 잠이 덜 깬 기분으로 테레사는 눈을 비볐다. "모르겠어 요. 우선 커피 한잔 해야겠어요." "깨워서 미안해." 그는 망설였다. "집에 빨리 돌아와서 당신과 함 께 있었어야 했는데." 그가 전화를 끊게 하고 싶었다. 제프도 자기 나름대로 용서를 구하 고 있었다. "저도 피곤했어요." 제프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당신... 당신 어젯밤 늦게 일어났 었지."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뒤척거리다가 당신을 깨울까봐 걱정돼서 그랬어요. 내가 그냥 여기서 자는 게 우리 둘 다에 게 좋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뿐이에요." 그의 질문은 테레사에게 죄 책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그걸 떨쳐버리고 싶었다. "아직도 조각 생각만 하고 있나봐요." "그래? 어제는 좀 진전이 있었어?" "그런 것 같아요." 그녀는 머리카락을 넘겨 올렸다. "영감을 받은 느낌이 들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일지도 몰라요. 어제 일의 결과를 다 시 들어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당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 그가 말했다. " 나는 - "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제프는 말을 중간에서 멈추었다.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대답을 하면서 제프는 얼굴을 돌렸다. "그래, 내가 말하지." "뭘 말해요?" "브라이언이 당신에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몇 가지를 물어보라고 하는군. 그때 점심을 먹으면서 너무 기술적인 문제에만 몰 두하느라고 정작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묻지 못했지. 게다가 결국 당신이 우리 제품의 최초의 사용자니까." 그녀는 마치 자신이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소파에 기댔다. "잘 되어가요," 그녀는 맥없이 말했다. "아무 문제 없었어요." 제프가 그의 의자에서 몸을 숙여왔다. 그녀 생각에 제프는 자신의 조각 문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고 테레사는 그게 슬펐다. "시스 템이 쓸만하지?" "그래요, 이안은 큰 도움이 되요."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얘기해 주겠어?" 그녀는 망설였다. 당신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 이안은 내게 사랑 의 시를 읽어줘요. "커피를 끓여요," 그녀는 말했다. "전화도 받고 세일즈맨도 내쫓 죠. 그리고 내 작품에 적합한 음향을 찾는 것도 거들어 주었어요." 이 안과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즐거웠다는 걸 인정하기 싫 어서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제프가 이안을 "시스템" 이라고 부르는 한은. "그러니까 그 시스템은 - " "이안이에요," 테레사가 말했다. "뭐라고?" "이안이라고 불러요," 그녀가 말했다. "자꾸만 '시스템'이라고 부 르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이젠 그걸 이안이라고 생각해? 그거 멋진데." 그녀는 바보같이 느껴져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 음... 그는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곤 해요. 그를 사람처럼 다루지않는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제프의 얼굴을 살폈다. "내 가 이안의 기억을 지웠을 때, 그가 그 일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보였어요. 이안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무척 걱정하는 것 같았어요." 제프가 씩 웃었다. "완벽해. 우리팀 모두가 기뻐할거야." "하지만 난 모르겠어요. 정말 이안이게는 감정이 있나요?" "물론 없지." 이제 제프는 더이상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빨리 말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게 감정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였어.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착각이야. 시스템은 당신에게 반응해서 자신 을 적응하고 변화시켜서 당신을 유쾌하게 해주는 법을 배우게 된 거 야. 그리고 그런 반응 때문에 당신은 그게 감정을 갖고있는것처럼 느 꼈던 거지." "이안이에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정정했다. "뭐?" "이안은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여요." "음 - 그래 이안. 멋진 일이야, 테레사." 또다른 노크 소리가 들리 고 제프는 얼굴을 돌렸다. "이봐, 제프," 누군가가 화면 밖에서 말했다. "당신이 와야 시작할 수 있어." "그래," 제프가 말했다. "바로 가지." 그는 다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젠 가봐야 될 것 같아. 오늘은 꼭 되도록 빨리 집으로 돌 아갈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을 때 이미 제프 는 스크린에서 등을 돌린 상태였고 아마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 다. 스크린이 꺼졌다. "연구팀 모두가 기뻐할거래." 테레사가 거실에서 말했다. "어떤 일에요, 테레사?" 이안이 말했다. "너와 내가 서로 친해진 게." "우리가 친한 사이라니 기뻐요." 그녀는 스크린 위의 이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저건 단지 프로그램일 뿐이야. 미리 정해진 반응이고.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저 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도 그래, 이안. 나도 그래." 제프가 집으로 왔을 때 그녀는 작업대에서 한참 둥근 금속판을 오 려내고 있었다. 그가 도착했어도 테레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 아침까지 이 금속들을 다 잘라내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게다가 제프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일을 중단하지는 않았어. 그러니 나도 일 을 중단할 필요는 없잖아? 저녁을 같이 먹고 그녀는 재빨리 스튜디오 로 돌아갔다. 제프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금속 판을 다 잘라낸후 그녀는 소파에 앉아 이안과 이야기를 나눴고 마침내 는 거기서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일어났을때는 이미 제프 는 출근한 후였다. 그 다음의 두 주 동안 그녀는 새로운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갔다. 매일 아침 그녀는 이안의 목소리에 잠을 깼고, 자신이 이안에게 아침 에 깨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해내곤 했다.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 을 들면서 그녀는 이안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언제나 테레사의 작품에 대해 물어왔고 그녀가 이야기를 하면 열심히 들어주었다. 이제는 제프가 저녁 식사후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려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조각에 집중돼 있었고 이안은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제프가 늦게까지 일할 때마다 그녀는 소파에서 이안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그녀는 침대보다 는 소파가 마음에 들었다. 침대는 그녀와 제프 공동의 것이었지만 소 파는 마치 중립 지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조각은 꾸준히 완성되어 갔다. 첫 번째 공이 최초로 다른 두개의 공을 풀어 놓게 하는 부위에 그녀는 정확한 소리가 나도록 둥근 금속 판을 위치시켰다. 세개의 공이 한꺼번에 트랙을 굴러 내려가면서 간간 이 들리던 빗소리는 마른 땅을 지속적으로 때리는 후드득거리는 소리 로 변해갔다. 세개의 공이 여섯 개의 공을 더 풀어주고, 그 여섯 개의 공이 다른 열 두개의 공을 풀쯤에는 그 소리는 더 커져 스튜디오 안을 가득 메웠다. 천둥이 쳐야될 시점에 와서야 그녀의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녀는 영감을 얻기 위해 그녀의 재료들을 살펴보았다. 두시간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재료들을 살피고 있었다. 거친 금속 판 위로 공을 굴리는 것에 싫증이 나자 그녀는 다른 재료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어느 것도 그녀가 원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이안에게 빗소리를 다시 틀기를 부탁하고 이안이 그 말에 따른 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앞부분의 소리는 좋아," 그녀는 중얼 거렸다. "하지만 천둥 소리는 어떻게 내지?" 그녀는 반짝이는 파이프 와 공이 담긴 선반을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모든게 너무나 새거고 생명력이 없어. 지금까지 어떤 것도 되지 않았고 어떤 일도 하지 않았 던 것들이야. 나한테 무언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그런 게 필요해." "자신만의 생각이요?" 이안이 물었다. "그러니까 - 무언가를 암시해주는 고철들 말이야. 예전에는 내 재 료의 절반을 고철상에서 구하곤 했어. 얼빠진 얼굴을 한 골동품 공중 전화, 로보트의 손처럼 생긴 바이스, 뭐 그런 것들 말이야." "알겠어요," 이안이 부드럽게 말했다. "윈슬로우 바로 동쪽에 고철 상이 있어요. 주소도 알고 있고요." "괜찮은 생각이야, 이안. 한번 가봐야 겠는데.주소가 어떻게 되지? " 집밖으로 나서자 뜨거운 공기가 적대적인 포옹으로 그녀를 감쌌다. 머리 위의 하늘은 끝없는 파란색이었다. 그녀가 탄 도요다는 그녀가 수온계의 바늘이 붉은 선으로 다가가는걸 보고 있는 사이 있는 힘을 다해 차고 축축한 바람을 그녀 팔과 얼굴에 뿜어내고 있었다. 아직 여전히 고철상은 바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세 시간 동 안 그녀는 고철 더미를 뒤지면서 뜨거운 창고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파이프와 쭈그러진 금속판, 기어, 기계 부속같은것들을 상자 가득히 채웠다. 그녀가 찾아낸것중 가장 나은 것은 손 모양의 속이 비어있는 청동 제품이었다. 고철상 주인은 그것이 고무 장갑을 만드는데 쓰이던 거였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녹이 슬어 표면은 검은 색과 갈색으 로 얼룩져있었다. 녹슨 무늬는 마치 말라버린 진흙에 생긴 갈라짐이나 잎새 아래쪽의 그물 무늬처럼 그 청동 손을 유기체처럼 보이게 했다. 고철을 가득 담은 박스를 싣고 그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해 질 무렵쯤에는 이미 네개의 청동 손을 조각에 설치할 수 있었다. 그녀 는 거실로 통한 문을 활짝 열고 아침에 집을 나선 이후로는 처음으로 이안을 불렀다. "이걸 들어봐!" 스위치를 누르자 첫 번째 공이 부드러운 빗방울 소리를 만들었다. 다른 공이 가세하면서 비를 뿌리는 소리는 홍수의 소리로 변해갔다. 공들은 축장치에 조심스럽게 연결된 청동 손들을 지나갔다. 다른 공들 이 여전히 빗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동안 십여개의 공은 청동 손안으 로 떨어져 손바닥에서 손가락 쪽으로 부딪쳐 갔다. 손끝에 걸린 공들 의 무게 때문에 청동 손이 우아하게 뒤집어지면서 손끝은 양철판을 치 고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청동 손은 공들은 우둘투둘한 금속판위 로 쏟아 부었다. 무게가 없어지자 손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다시 양 철판을 쳤다. 양철판의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금속판 위를 굴러가는 공 들의 덜컹거림은 서로 섞여서 마치 천둥과 같은 낮은 굉음을 냈다. 공들은 아래쪽의 바구니를 벗어나 방 여기저기로 흩어졌지만 그녀 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이안을 보고 씩 웃었다. "네 생각은 어때?" 이안이 마주 웃었다. "비평가들이 하는 말이 벌써 들리는군요. '테 레사 킹이 청동 손을 창조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 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 '" "뭐? 비평가들이 하는 그런 헛소리는 어디서 배웠지?" "그런 건 쉬워요. '창조적'과 '독특한' 이라는 말은 예술 평론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형용사에요. 게다가 이 말들은 당신 조각에도 잘 어울리는데요." "저런, 이안은 요새 비평문을 너무 많이 읽은 모양이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며칠후 테레사는 밤이 집 주위를 둘러싸는 동안 조각이 내는 음악 소리를 듣고 있었다. 빗소리도 좋았고, 천둥도 그녀가 원하는 시간에 비슷한 소리로 울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대목, 천둥 소리 후에 시작될 거친 빗소리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후 내내 그녀는 트 랙을 계속 고쳐나갔다. 딱딱 끊어지는 소리를 위해 흠이 파인 트랙을 써보기도하고 공이 쏟아질 부분에 여러 개의 금속판을 더 달아보기도 했다. 각각의 트랙의 경사를 조정하면서 그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전화가 울렸을 때 그녀는 여전히 방금한 시도 의 결과를 들어보고 있었다. "이안! 전화 받아줄래? 지금은 좀 바빠." 세번ㅉ 벨이 울리다가 전화가 조용해지고 테레사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그녀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덜컹거림과 수많은 소리가 합쳐져 스튜디오 안을 가득매웠을 ㄸ에야 그녀는 작업을 멈출 수 있었다. 이안에게 지금까지의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저녁거리를 위해 냉장고 안을 살피던 테레사는 갑자기 아까의 전화를 기억해냈다. "아까 그 전 화 누가 걸었던 거야?" 그녀가 물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칼라라는 여자가 건 전화예요." "칼라?" 그녀가 두주전에 보낸 편지 이후로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 "무슨 말을 했는데?" "내용을 녹화해두었어요. 다시 틀어볼까요?" "물론이지." 이안의 얼굴이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줄이 나타나 스크린을 절반으 로 갈랐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이안의 모습이 왼쪽에 나타나고 오 른쪽에는 칼라의 모습이 보였다. "여보세요," 이안이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도와드릴까요?" 칼라가 싱긋 웃었고, 테레사는 이안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테레사는 웃을뻔 했다. 칼라는 또 애인과 헤어졌구나. "테레사 있어요?" "네, 하지만 작업중이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았으면 하는군요. 남길 말이 있으시면 제가 전해드리지요." "칼라가 전화했다고만 해주세요. 아니, 지금 생각났는데 헤들랜드 에서 새로 사귄 예술가들과의 파티가 열린다고 이야기해주세요. 테레 사도 왔으면 좋겠다고요." "전해드릴께요. 테레사가 당신 전화번호를 아나요?" "이렇게 오랫동안 테레사를 사귀어왔으니,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그대로 전하지요. 전화 고마와요, 칼라." "고마와요." 칼라가 다시 웃었다. 테레사는 그 웃음을 전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신도 우리 파티에 안올래요? 손님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가능할 것 같지 않네요." "저런," 칼라가 말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면 테레사에게 내 전화 번호를 물어보세요. 그럼 안녕!" 칼라의 얼굴이 스크린에서 사라 지고 이안의 얼굴이 다시 스크린을 메웠다. 테레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칼라는 여전해." "이해 못하겠어요." 이안이 말했다. "칼라가 널 꼬셔보려고 하는 거야." "이해 못하겠어요." "자 자, 이안. 네가 귀엽다고 cute 생각했기 때문에 칼라가 널 파티 에 초대하는 거야. 칼라는 네가 미소를 지어주고 자기도 너한테 좀 꼬 리를 쳐보고 싶었던 거지." "어떻게 꼬리를 치나요?" "모르겠어. 웃고, 농담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무 슨 말을 나누느냐는 것보다는 어떤 일이 그 밑에서 벌어지고있는지가 더 중요한 거야." "나하고 당신이 서로 농담을 나눌 때 우리는 서로에게 꼬리를 치고 있는건가요?" 테레사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져 머뭇거렸다. "때때로는 그랬던 것 같아. 때때로 난 뭔가를 잊어버리곤 해. 그건 바로 네가... 네가 단지..." 그녀는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인공 지능이라는 거지요." 이안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날 너를 - 너를 친구로 생각해, 이안. 때때로 사람 들은 친구들끼리도 그렇게 하곤 하지." "이젠 알겠어요. 우리가 친구라니 기뻐요." "그래." 그녀는 동영상에서 이상한 점은 없나하고 이안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것은 없었다. 이미 이안을 인간으로 보는데 익숙해져있 었고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다. 그게 바로 제프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봐 - 칼라에게 전화를 거는게 좋겠 어." 그녀는 칼라의 전화 번호를 돌렸고 칼라는 네 번째 벨소리에 전화 를 받았다. 칼라는 낡은 진홍빛 스웨터를 입고 하얀 버드나무 의자 위 에 앉아있었다. 테레사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 전화 걸까 궁금했었어. 그건 그렇고 아까 전화 받은 남자는 누구야, 테레사?" 테레사에게 사실을 이야기할 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안이 누군가 를 그녀에게 그대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 이안이야. 제 프 친구란다. 산타페 아트센터를 위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가사일을 돌봐주거든. 마감 시간이 워낙 촉박해서." "제프 친구라고, 후후." "그리고 - 내 친구이기도 해." 칼라가 고개를 저었다. "제프는 사람을 잘 믿는구나." "무슨 말이니?" "하루 종일 이안과 너 단둘만 내버려 둔다고?" 칼라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이안은 아마 네가 홀딱 빠져버릴 그런 타입이야, 그렇지?" 테레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대화는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이 안은 그렇지 않아." "그럼 그 사람 게이야?" 테레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단지 - 테레사는 신중히 다음 단어를 골랐다. - 내 손이 닿지 않아. 게다가 나는 방금 신혼 여 행에서 돌아왔고, 그리고 - " " - 그리고 제프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칼라가 말을 막았다. "저 번에 보낸 편지를 읽어보니까 네가 참 안되게 느껴졌어. 네 맘을 아프 게 하려는 건 아니야, 테레사,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잖아. 이안은 바 로 네 타입이야. 일 마일 밖에서라도 알 수 있을 정도야. 제프보다 훨 씬 더 말이지." "난 지금 결혼한 여자야." "결혼했지 죽은 건 아니잖아. 게다가 이안은 너무 귀엽던데." 칼라는 제프의 흉을 보고 이안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도록 자신 에게 부추기는걸 알 수 있었지만 그 미끼를 물지 않기로 결심했다. 칼 라가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편지 보냈을 때는 조각이 썩 잘되고 있지 않았어.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제프 아직 집에 안 왔니?" "그래, 아직도 일하고 있을 거야. 프로젝트의 꽤 중요한 고비에 와 있기 때문에 요새는 그와 통 같이 있은 적이 없었어." "그래서 힘들어했구나?" "꼭 그런 건 아니야." 테레사는 그때야 비로소 제프가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한다고 하더라도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 다. 항상 집에 혼자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칼라는 갑자기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테레사를 쳐다보았다. 그리 고는 말했다. "그래서 - 파티에 올거니?" "그러고 싶지만 제프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몰라." "그럼 혼자 오렴. 주말동안 왔다 가면 되잖아. 넌 좀 쉬어야겠다. 여기 와서 우리 집에 머물면 돼." "이젠 좀 쉴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 - 그 말 믿을 거야." "널 보고싶어," 테레사가 말했다. "거기는 어떤 일이 있니? 거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테레사는 긴장을 풀고 칼라가 서로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걸 들었다. 여기서 잠사동안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정확히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지는 그녀도 몰랐지만, 그녀는 그 의문은 접어두고 칼라에게 귀를 기울였다. 거의 하루 종일 테레사는 조각의 작은 부분들을 수정해 나갔다. 소 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금속판을 조이고, 미세하게 트랙의 경사를 조 정했다.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걸 그녀 자신도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일을 찾을 수 없었다. 조각의 소리는 훌륭했다. 비바람의 소리 - 모래 위로 내리는 빗소리의 금속으로 재현해낸것이다. 바로 그녀가 원하던 소리였지만 아직도 무언가가 불만스러웠다. 조각의 음악 소리를 들으 면 들을수록 그녀는 그 소리가 싫어졌다. 마침내 그녀는 뭐가 잘못됐는지를 찾아내는걸 포기하고 그 동안 미 루어왔던 자질구레한 일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조각의 바닥에 여섯 개 의 승강 장치와 모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각 트랙의 끝부분이 거기에 서 끝나 각 승강기당 여덟 개씩의 공이 모이게 했다. 이틀 후 새 부분의 설치가 끝나고 이제는 동작시킬 수 있게 되었 다. 승강기에 공을 넣고 모터를 켜자 조각의 옆을 타고 천천히 공들이 꼭대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닿자 승강기는 뒤집어져서 공 들을 각각의 시작 위치에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조각이 연주되기 시작 했다. 그녀는 조각 옆에 앉아서 소리가 스튜디오 안을 가득 채우는 것 을 들었다. 그날밤, 제프는 아홉 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그를 제대 로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는 그 녀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칼라의 파티에 대 해 제프에게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실제로는 자 신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제프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고 그날 밤 그 녀는 제프에게 초대 사실을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제프는 시간을 내서 그 파티에 같이 가겠다고 해주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차를 렌트해서는 바로 헤들랜드 아트 센터로 향했다. 비행기안에서 그녀는 자신이 제프와 같이 있다는 사실을 어색해한다는걸 발견했다. 그가 집에 있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치 낯선 사람과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헤들랜드에서의 파티는 옛날과 똑같았다. 많은 예술가와 예술가 지 망생, 맥주로 가득찬 쿨러, 종이 컵에 담긴 캘리포니안 와인, 아랫쪽 의 가게에서 사온 과자들, 칼라의 아파트 부근의 빵가게에서 가져온 멕시코 음식들. 예전과 하나도 변한게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지내온 일들과 산 타페 아트센터를 위한 자기 작품 이야기를 했다. 자기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친구들의 부추김 속에 자신이 그 작품에 대해 점점 더 열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료 조각가인 네드는 그녀의 축장치가 달린 청동 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냎킨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몇 가지 문제점들의 해결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녀는 또 구석에서 음악가인 브렌다와 나란히 앉아 전체적인 작곡 구성에 대해 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그녀는 칼라가 흡연 장소라고 정해준 흔들거리는 나무 비상 계단으로 나오게 되었다. 파티 음악사이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 려왔다. 창문으로는 파티 장면이 보였다. 제프는 저쪽 구석에서 그녀 가 희미하게만 아는 몇몇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신세사이저와 컴퓨터 음악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한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것 같았다. "바람쐬러 나왔어?" 칼라가 문간에서 물었다. "잠깐 같이 있어도 되지?" 그녀는 현관으로 나와 살짝 문을 닫았다. 테레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같이 있기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래? 무슨 일이 있어?" "여기 돌아온 게 이상하게 느껴져. 친구들을 못 만나게 되서 얼마 나 섭섭해했던가를 이제야 알것같아. 그 동안 무척 외로웠다는 느낌이 들어." "플랙스탭에 있는 예술가들과 교류를 좀 해보지 그랬어. 너희 집에 서 겨우 한시간 거리잖니?" 그녀는 화랑의 개장식날을 떠올렸다. "그것도 괜찮겠지." "하지만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야, 그렇지?" 칼라는 테레사의 얼굴 을 살폈다. "너하고 제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처음에 는 그가 나한테 내줄 시간이 없었어. 이제는 내가 제프에게 할 얘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이안과는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칼라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봐, 난 낌새를 느꼈다고. 이안이랑 같이 자지는 않았겠지만 너희 둘 사이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 칼 라는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프는 네 곁에 없고 그래서 너는 그 귀여운 남자랑 시간을 보내는 거야. 그에겐 손이 닿지 않지만 어쨌든 그래도 너는 그와 함께 있는 거지. 이안하고 이야기도 하고 장 난도 치지만 넌 갑자기 네 마음이 그를 향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 챈 거야. 그리고 넌 거기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고." 칼라가 그녀를 응시했다. "아니라고는 하지마. 난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고 그래서 아마 너는 죄의식도 느끼고 있을 거야." 그녀는 잠시 기 다렸다. "내 말이 맞지?" 테레사도 칼라 옆의 난간에 몸을 기댔다. "아마 그럴 꺼야. 말하긴 힘들지만." "이젠 어쩔 거니?" "모르겠어." "제프는 어떻게 하고?" "제프라니?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자기 일에 빠져있 어서 아미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걸." "내 생각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 같아." 테레사는 그걸 부정하려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네 말이 맞을 지도 모르지." "마음 놓으라고. 보기 싫은 사람한테는 얼마나 네가 매정하게 구는 지 모르는구나." "내가 그랬니?" 칼라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 - 내가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겠니?" "아닐 거야." 테레사가 인정했다. "분명 아니지." 칼라가 테레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걱정마. 배 짱만 조금 있으면 되. 제프는 아마 결코 모를 거야." 테레사는 친구의 눈길을 피해 어두운 해변을 바라보았다. 스튜디오로 통한 문이 열리고 파티의 소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칼 라," 남자가 소리쳤다. "얼마나 찾았는데." 칼라는 테레사를 다시 파티로 끌어들였고 잠시동안 그녀는 와인을 마시면서 즐거운 척 해야했다. 파티는 새벽 두시 무렵 끝이 났고 제프 는 렌터카로 칼라의 아파트로 향했다. 칼라는 약간 술에 취해 있었고 또 기분도 좋아 보였다. 그녀는 뒷좌석에 앉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 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하지만 테레사는 꽤 마신 와인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럽도록 취하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칼라는 소파 침대를 펴주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테레사는 옷을 벗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제프의 눈길을 느낄 수 있 었다. "무슨 일이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같은걸 당신한테 묻고 싶었어. 무슨 일이 있는지를."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무런 표정도 띄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슨 말 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될지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제프의 인생에서 쫓겨나버린 것 같은 생 각이 들었다. 트집을 잡는 것처럼 들릴 테고 그녀는 그런 일은 벌이고 싶지 않았다. "난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아마 피곤해서 그럴 거 예요." "당신은 요새 꽤 열심히 일했지. 하지만 작품은 점점 나아지고 있 잖아, 그렇지?"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지금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좋아," 그가 등을 돌렸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그게 바로 그녀가 원하는 거였지만 제프의 곁에 누워 그의 규칙적 인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했지만 결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칼라 방의 등은 꺼져 있었다. 테레사는 부엌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는 충 동적으로 전화를 들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안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나자 그녀의 기분이 금새 밝아졌다. " 안녕, 이안," 그녀가 말했다. "네가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너하 고 얘기를 하고 싶었어." "전화를 해줘서 고마와요. 저도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그럴 거야." 그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요. 당신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여기 없으니 너무나 쓸쓸해요." "고마와." 이안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파티는 즐거웠어요?" "그래, 그랬던 것 같아. 얼마나 이곳의 친구들을 그리워했는지 이 제야 알 것 같아. 내 작품에 대해 다른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 아리조나에서도 다른 예술가를 사귈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이안이 망설였다. "플랙스탭 지역의 예술가 협회의 주소록을 가지 고 있어요." 테레사가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은 네가 모든걸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돌아가면 한 번 보기로 하지. 하지 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단지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 새로 들은 농담 있어?" 그들은 중요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단지 이런저런 일들에 대 한 잡담을 나누었을 뿐이지만 전화를 끊을 때쯤 그녀의 기분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침대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제프는 누워있었다. 그녀는 침대 가장 자리에 앉아 담요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려 했다. "누구하고 전화를 한거지?" 제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얼어붙고 말았다. 가로등의 불빛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 왔다. 희미한 불빛아래서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난 당신인 자는 줄 알았어요." "얼마 전부터 깨어있었어. 당신이 침대에서 일어나는걸 알고는 그 다음은 잠들 수 없었어."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이야 기를 하고 싶어." "무슨 이야기를요?" 밝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면서 그녀가 말했 다. 제프는 조용했지만 그녀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다. "당신을 너 무 오래 홀로 내버려뒀어," 그가 말했다. "날 필요로 할 때 당신 곁에 없었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 찾아낸 거고." 비난의 기미는 없 는 담담한 사실의 인정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군." "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돌아앉아 자신을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듯 팔짱을 꼈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거야." 제프의 비난에 분개해서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분노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 일에 너무 몰두해있느라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요즈음 당신에게 말을 걸때마다 당신은 누군가 딴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한밤중에 일어나 아침까지 침대로 돌아오지 않곤 했 지. 당신은 내게 무언가 감추고 있어. 가끔씩 나는 아주 간단한 질문 조차도 당신한테 하는 게 두려워지고는 해. 당신의 하루나 작품에 대 해 내가 물어보고 당신이 한두 마디의 짧은 대답을 하면, 난 더이상 묻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돼. 예전에는 당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그걸 원하지 않고 있어." 그녀는 차라리 자기가 화내기를 바랬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분노는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커다란 슬픔에서 그녀를 보호해줄수 있을 텐데. "누구지?" 그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제프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화랑의 개장식때 만 났던 사람인가?" 그가 말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마침내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내게 말해주어야돼. - 날 떠날 거야?" 그의 손이 부드럽게 테레사의 어깨에 닿았다. 그녀는 그 손길에 몸을 긴장시켰다. "말해 줘, 테레 사." 그녀는 제프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모르겠어요. 아니, 아니에 요. 난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제프가 그녀를 껴안았다.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내게 말해 줘, 제발." "얘기할 수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 "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직도 날 사랑해?" 그녀를 껴안은 그의 몸의 온기와 심장의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 가끔은,"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녀는 눈물을 숨기려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금 울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씩은 당신 이 날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당신은 당 신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고 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면 서 그대로 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순 없어요. 내게 필요한 건 - " 그녀는 갑자기 쏟아져 나온 자신의 말에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 녀는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이젠 제프도 내가 얼마나 약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그녀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그녀 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해, 테레사. 당신이 정말로 날 필요로 했을 때 내가 거기 없 었다는 게 정말로 미안해." 제프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 다. "내 잘못이었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얘기해주어야 돼. 그저 입을 다물고 내가 모든 일을 알아내기를 바래서는 안돼. 그 런 식으로는 되지 않아." "나도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의 몸이 그녀에게 다가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꽉 안아준게 무척 오래 전 일인것 같 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포옹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제프는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는걸 멈추었다. "당신 추운가 보군 - 몸을 떨고 있잖아. 이리와 - 담요를 덮어." 그녀는 침대에 누울 수 있을 만큼 긴장이 풀어졌고 제프는 그녀에 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담요 자락으로 제프는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 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 건 신경쓰지 않을거야. 하지만 당신은 언제 내게 화가 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 주어야 돼. 약속해 줘." "노력할께요."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그의 눈길이 그녀에게 향해있 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노력하겠어," 그가 잠시동안 말을 멈추었다. "잠시 내 일을 쉬고 싶어. 산타 크루즈로 차를 몰고 가서 바닷가에서 며칠 쉬고 싶 어. 당신 시간 있지?" 그녀는 눈을 뜨고 제프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난 며칠 시간을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요?" "나 없이 며칠 동안 해나가야 될 거야. 그래야 될 거야." 그는 침 착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해." "좋아요."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해보겠어요." 그녀는 탈진한 것 처럼 느껴졌다. 그의 팔에 안겨서 마침내 그녀는 잠들 수 있었다. 산타크루즈로 향하는 도중에 그녀는 처음에는 제프와 같이 있는 것 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첫 데이트를 하는 낯선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 다. 그녀는 계속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날 씨가 좋죠?" "비가 올 것 같아요." "교통은 안 막힐까요?" 삼십여분이 지난 후 제프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테 레사. 그런 이야기는 안해도 돼." 그녀는 갑자기 조용해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프는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당신한테 화가 난 건 아니야. 당신도 나한테 화내고 있는 건 아니지?" 그녀는 그 질문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니, 화나지는 않았어. 혼란스러울지는 몰라도 화난 건 아니야. "아뇨, 화나지 않았어요." "그러면 우리 서로 긴장을 풀자구." 그는 테레사의 손은 꼭 잡았 다. "왜 산타페 아트센터를 위한 당신 작품 이야기를 안하지? 난 그게 듣고 싶어." 그녀는 제프에게 조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경 이 쓰였지만 산타크루즈의 바로 위에 있는 작은 도시인 데이븐포트에 도착했을쯤에는 긴장도 풀려있었다. 그날 밤 그들은 호텔로 개조된 오 래된 빅토리아식 주택에 머물게 되었다. 집은 바다를 향한 절벽 위에 서있었고 그녀는 차가운 바다 안개에도 불구하고 침실의 창문을 열어 두고 싶어했다. 방안에서도 그녀는 부딪히는 파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그녀는 제프의 팔 안에서 잠이 들었 다. 다음날 아침 제프는 침대로 그녀의 아침 식사를 가져오면서 집으로 는 비행기가 아니라 차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지난번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너무 서둘렀었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막의 여 러 부분들을 당신한테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 여행이 의심스러웠다. 지난번의 샌프란시코에서 윈슬로 우까지의 여행은 길고 지루한 고속도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제프가 너무나 열성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생각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제프가 일을 하고 있지않을때는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는 거의 잊고 지 내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던 그 모든 정열이 이제는 모두 그녀 를 향해 있었다. "좋아요," 그녀가 동의했다. "차로 가요." 여행은 중간의 수많은 우회로와 정거장을 거치느라 일주일이 걸렸 다. 조슈아 나무 국립 기념비의 구불구불한 숲속을 헤매기도 했다. 인디안 마을의 폐허를 둘러보면서 한때 방이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는 벽들 사이를 헤집으며 햇빛 아래 졸고 있는 도마뱀을 깨우기도 했다. 아리조나에서 제일 큰 자연석으로 된 다리를 보러가기도 하고 커다란 사암 덩어리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엿새째날의 늦은 오후 그들은 스쿨 버스 만한 크기의 햇볕으로 따 뜻해진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주변은 고요했지만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테레사는 갑자기 깨달았다. 까마귀가 날아가고, 그 그 림자가 바위위로 지나갔다. 그리고는 멀리 떨어진 바위 위에 날개를 접으며 앉느라 퍼덕거리는 깃털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워, 그렇지?" 제프가 말했다. "내게는 언제나 더위만 느껴져요," 테레사가 대답했다. "뜨겁고 텅 비어있고 그리고 무정하게 느껴져요." "아냐, 당신이 잘못 본 거야," 제프가 말했다. "이곳은 그 나름대 로의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어. 바람에 굴러가는 모래의 소리, 나뭇잎 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빛의 변화를 난 느낄 수 있어. 그런 것들은 내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리고 평소에는 모르고 지나치던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지. 그리고 그것들 은 항상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지. 매일매일이 달라. 나에게는 그런 것 들이 아름답게 느껴져." 그는 테레사의 손을 잡았고 그들은 해질 때까 지 거기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날 밤, 이제 집까지 하루 정도의 거리가 남았을 때, 그녀는 칼라 에게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는걸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제프와 나는 이제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해." 테레사가 말했다. " 하지만 우리 둘 사이는 훨씬 좋아졌어. 계속 그랬으면 좋겠어." "이안은?"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칼라는 고개를 저었다. "넌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넌 언제나 옛 애인중 하나가 널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놀라곤 했었지. 연애가 끝나버리면 그들도 같이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기를 바랬잖아." "이안은 날 기다리지 않을 거야," 테레사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되있지는 않아." 칼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렴. 하지만 결국은 놀라고 말걸." 자명종이 여섯 시에 울렸을 때 테레사는 자신이 홀로 잠에서 깨어 난걸 알았다. 제프는 언제나처럼 그녀 곁에 없었고 이안도 구석의 모 니터에서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명종을 끄기 전에 이안이 이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아침 인사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잠시 기 다렸지만 이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이 실망했는지, 마음이 놓였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야 그녀는 부엌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 다. 담요를 두르고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제프는 부엌 한가운데서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서있었다. 정신없 이 돌아가는 일 사이에도 그의 눈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의 왼쪽에서 는 커피 머신이 김을 뿜고 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스토브 위에서는 달 걀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토스터 옆에서는 네 조 각의 갈색 빵이 참을성 있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열심 히 그레이프프루트를 반으로 자르고 있었다. 테레사는 놀라서 쳐다보았다. "이게 다 뭐예요?" 제프가 돌아보았다. "아침이야," 그가 씩 웃었다. "내 생각에는 말 이야." "아침이요?" 제프와 함께 아침을 먹은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음식 말이야." 그는 그레이프후 르츠 한 조각을 더 잘랐다. "당신이 보통 때보다 빠른 시간에 자명종 을 맞추어놓은 것을 보았어. 우리 둘다 아침은 먹어야하고 그래서 내 가 당신을 놀래주기로 했지." 그는 칼과 그레이프후르츠를 내려놓고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 "그래요." 테레사는 커피 잔을 들고 테이블로 갔다. 제프는 그가 다른 일을 할 때와 똑같은 태도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조심스 럽고, 용의주도하고, 정확하게. 삼십여 초간 앞쪽의 음식을 준비하다 가 다른 곳으로 가서 그곳의 음식을 준비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했다. 어찌되었던 음식은 잘 준비되고 있었다. 몇 분후 제프는 접시를 그녀 앞에 내려놓고 건너편에 앉았다.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는 제프가 아니라 이안에게 이 야기를 하는데 익숙해져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은 보이지 않았다. " 제프?" 제프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고마와요, 하지만 출근해야 되잖아요?" "그래, 조금 있으면. 아침 식사는 우리 둘이 함꼐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어. 그것뿐이야."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내 말은, 여기 너무 익숙해지지 말라는 거야. 매일 이러지는 못하겠지 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어." 그들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식당에 와있는듯 한 느낌이 언뜻 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제프는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 다. 몇 번인가 그녀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두번씩 이나 그녀가 접시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제프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프는 그녀가 이야기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러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제프가 정말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 자 신도 조금 더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제프, 이게 꿈인가요?" "무슨 말이지, 꿈이라니? 음식이 그렇게 맛없어?" "농담이 아니에요. 이 모든 것들" - 그녀는 팔을 들어 부엌을 가리 켰다. " - 이 꿈만 같아요. 당신은 날 달래려고 하고 있고요." "당신을 달랜다고? 그렇지는 않아. 당신과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야. 그래, 이런 건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상황에서는 손쉬 운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노력하고있다는건 보여주 고 싶었어. 분명히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더라 도 당신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은 할거야. 아니 - 많은 시간을 보낼 거야." 그는 테레사에게로 고개를 가져갔다. "테레사, 지 금부터라도 말이야." 테레사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테이블 너머로 그의 손을 잡았다. "맞아요. 지금부터라도.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가볍게 제 프에게 키스했다. "음식은 훌륭했어요, 그리고 가끔은 당신도요. 고마 와요."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식사하면서 그들은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 조각에서 손보고 싶 은 것들, 제프의 오늘 계획, 조각에서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 는 점이 있는 것 등등. 식사를 마치고 그녀가 접시를 헹구자 제프가 그것들을 식기 세척기안에 집어넣었다.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서던 제프는 발을 멈추었다. "테레사." 그녀도 문으로 갔다. "네." "당신은 맡은 일은 잘 해내. 이번 작품이 쉬운 거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어쩌면 지금까지의 당신 작품중 가장 까다로운 게 될 수도 있 을 거야. 하지만 당신은 해낼 수 있을 거야." 제프는 잠시 그녀를 껴 안고 말했다.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제프에게 키스했다. "고마와요." 제프가 차에 올라타 출발하는 것을 본 후 그녀는 문을 닫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이안이 나타났다. "잘 잤어요? 테레사." "잘 잤어? 이안." 그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처음 이안과 이야기 를 했을 때만큼이나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이안 을 바라보았다. "사막을 어떻게 생각해, 이안?" "사막은 싫어요." 이안이 금방 대답했다. "왜 그렇지?" "당신이 사막을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처음 이야기를 나눈 날 아침에 당신이 그랬지요." 그녀는 조용히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넌 언제나 내가 좋아하 는 것만 좋아하는구나." "왜 그러죠, 테레사?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요." "오늘 아침 부엌에서 왜 내게 말을 걸지 않았지?" 그녀가 물었다. "제프가 옆에 있었고 내가 제프가 있는 동안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어?" "네. 제프가 집에 있는 동안은 당신이 내게 이야기를 시작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가 옆에 있는 동안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당신이 무척 불 편해 보이곤 했기 때문에 저는 우리 둘이 개인적으로만 이야기를 나누 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알려주 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게요." "자꾸만 피그말리온 생각이 나,"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이안의 얼 굴을 살폈다. "자신의 피조물과 사랑에 빠진 후 어떤 신인가가 그를 불쌍히 여겨 그걸 진짜 여자로 만들어주었지." "아프로디테에요." 이안이 말했다. "그래, 아프로디테. 사랑의 여신." 그녀는 생각에 잠겨 이안의 얼 굴을 바라보았다. "진짜가 되고 싶어?" "전 진짜예요." "진짜 사람 말이야. 스크린에서 걸어나와 소파에 앉아 내 손을 잡 고 내게 키스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야." "그러면 좋겠어요?" 그녀는 이안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이안, 한 번만이라도 네가 느끼는 것, 원하는 걸 말할 수는 없어? 내가 바라는 대로만 하지 말 구." 이안은 뉘우치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게 제가 원하는 거라고요. 그게 바로 제가 만들어진 방식이에 요. 다른 식으로는 안돼요."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아와 사랑에 빠진 것도 당연해," 그녀가 부드 럽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걸 너도 원한다. 실수할 리가 없지." "맞아요," 이안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항상 내가 옳은 것만은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테레사, 당신이 저를 기분 나쁘게 여기는 걸 알겠어요. 어떻게 할 까요?" "아무것도 하지마,"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피그말리온이 행복했을 것 같아? 물론 그 동상은 완벽한 연인이겠지. 말다툼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으니." "모르겠어요. 전설은 비너스가 조각을 진짜 여자로 만드는데서 끝 나니까요." "물론 그렇지. 모든 러브 스토리는 둘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데서 끝이 나지. 그 다음에 일어날 골치 아픈 일들은 외면해 버려. 하지만 그런 것도 분명히 러브 스토리의 일부야." "어떤 것들이요?" "골치 아픈 일들. 말다툼. 화해. 불일치. 협상. 기브 앤 테이크. 그 모든 것들. 피그말리온은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전혀." "테레사, 당신이 저를 기분 나쁘게 여기는 걸 알겠어요. 하지만 어 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겠어. 가끔 나는 우리 사이의 관계와 처음과 같아졌으면 해. 단순하고 아무 문제도 없고 귀찮은 일도 없는." 그녀는 천천히 고 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지." "그럴 수 있어요." "뭐라고?" "당신이 그러고만 싶다면 당신이 원하는 어떤 부분의 제 기억이라 도 지워버릴수 있어요. 말하기만 하세요, 그렇게 할 테니까요." "모든 걸 잊어버리겠다고?" "모든걸 - 당신이 원한다면." "안돼!" 테레사는 떨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 는 이안과의 최초의 대화가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도 기억났지만 동 시에 그의 기억을 지워버렸을때 느꼈던 죄책감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도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어. 테레사는 자신의 손 을 내려다 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이안, 잠시만 내게 시간을 줘, 응?" "좋아요." 그는 참을성 있게 스크린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말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와 헤어지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안, 아무런 기억도 지우면 안돼. 난 그런 식의 일을 네게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앞으로는 나와 이야기를 덜 나누도록 해야 될 꺼야. 그리고 제프 앞에서도 나와 이야기하는 걸 꺼리면 안돼. 내게 할 이야기라면 제프도 신경쓰지 않 을거니까." 이안은 스크린에서 열심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우린 여 전히 친구로 남겠지만, 앞으로는 네게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려고 해." "좋아요, 테레사, 하지만 당신이 절 필요로 할 때면 전 언제나 여 기 있을께요." "그래." 이안을 믿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 문제인지 조차도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테레사는 스튜디오로 가서 조각을 작동시켰다. 그녀는 승강기가 공 들을 꼭대기로 가져가 그것들이 굴러 내려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공 들이 금속판과 트랙의 미로를 지나가면서 빗소리는 조용히 시작하여 마침내 폭풍으로 변해갔다. 음악은 그녀 머릿속의 것과 똑 같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너무나 기계적이었다. 천둥치는 하늘의 거칠음이나 예측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진짜 폭풍을 허약하게 흉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여덟 개씩 짝을 지어 공들은 승강기로 다시 굴러들어갔다. 각각의 승강기가 공을 원래 위치로 옮기고 음악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됐다. 매 번 조각은 완전히 똑같은 천둥 소리를 반복했다. 음악은 결코 변하 지 않았다. 완전히 제어된 음악이었다. 똑같은 폭풍우는 없겠지만 그 녀의 조각은 고장나거나 녹슬어 부서지기 전까지는 똑같은 음악을 끝 없이 반복해 연주할 것이었다. 조각이 세 번째 연주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해야 될 일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고철 더미를 뒤져 반 인치 두께의 금속 막대를 찾아내었다. 그것들을 사 인치 정도 길이로 자르는 작업이 끝났을 때 모두 설흔개 정도의 조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녀는 작업장 한 구석에서 두꺼운 금속판을 찾아내서는 그것을 사 방 일 야드 정도의 크기로 잘라냈다. 그리고는 만들어 낸 금속 조각을 거기 용접해 붙이기 시작했다. 짧은 뿔들이 특별한 패턴을 지니지 않 도록 조심하면서 여기저기에 조각들을 위치시켰다. 뿔 사이로 공 하나 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여유만 남겨놓았다. 작업이 끝나고 그녀는 금속판을 조각에 장치하고 트랙들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모든게 끝나고 그녀는 조각의 스위치를 올리고는 벽에 등을 기댔 다. 첫 폭풍우가 시작되면서 승강기는 공을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그녀 는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던 소리를 똑같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공이 트랙의 밑 부분에 도달했을 때 그것들은 방금 장치한 뿔 들의 미로 속을 지나게 되었다. 공들은 빠찡코 게임처럼 뿔들 사이에서 제멋대로 부딪쳐 방향을 바 꾸며 굴러내려 갔다. 두 개의 공이 재빨리 승강기에 다다라 조각의 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른 여섯 개의 공들은 뿔 들 사이를 헤매 다가 나중에야 승강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그룹의 공들도 금속 판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승강기에 다다른 공의 수가 매 번 달라졌기 때문에 조각의 시작점에 있게 되는 공의 소도 따라서 달라졌다. 그래 서 두 번째 폭풍은 다른 소리로 시작되었다. 이번 폭풍은 그녀 머릿속에서 존재하던 것과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 았지만 비슷하기는 했다. 천둥의 소리는 더 오래 울렸지만 원래처럼 크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들어오던 소리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아침 내내 헛수고를 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어 찌되었든 계속 들어보기로 작정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폭풍도 역시 서로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녀의 오리지널에는 둘 다 미치지 못하 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섯번ㅉ는 그녀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원래보 다 천둥의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 그녀는 이 소리를 더 크게 나도록 금속판을 조정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천둥의 절정은 그녀 가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방 전체가 그 소리로 흔들렸다. 마침내 천둥이 가라앉고 몰려오는 빗소리에 자리를 내주었 을 때 그녀는 자신이 숨을 멈춘 채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음 을 알게 되었다. 빗소리가 시작되었을 때야 그녀는 긴장을 풀 수 있었 다. 작업실을 메우는 계속되는 폭풍의 소리를 그녀는 한 시간여나 계속 들었다. 가끔씩은 조각이 전에 냈던 소리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그때마 다 새로운 조합과 소리로 그녀를 놀라고 즐겁게 했다. 어떤 때는 천둥 소리가 계속 울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천둥 후의 빗소리가 언제까 지나 계속되기도 했다. 그녀가 처음에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언제나 강렬하고 변화를 거듭 하는, 처음 마른 모래를 만나 비를 쏟아 붓고 대지를 두드리고 마침내 는 그것과 융합되는 천둥과 비바람의 소리였다. 그녀는 사막의 모래위 로 떨어지는 마지막 빗방울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듣고는 일어나서 조 각의 스위치를 껐다. 그녀는 사막의 열기를 막아주던 유리문으로 다가가 그걸 열어 젖혔 다.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던 유리문은 힘들게 열려졌다. 열기가 그 녀에게 부딪쳐 왔지만 그녀는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잔디밭을 가 로질러 잔디밭과 그 너머의 사막을 가르는 얕은 울타리를 건너갔다. 그녀는 모래 위에 앉아 천천히 주위를 둘러 보았다. 가까운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도마뱀이 보였다. 그녀가 토끼 풀 더미의 그늘로 손을 옮기자 시원함이 전해져 왔다. 맑은 하늘과 메 마른 풍경은 그녀가 지금까지는 보려고 하지 않던 침착하고 간소한 아 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녀 조각에서 내리는 빗 방울이 자신 주위의 모래위로 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쌀쌀한 팔월 저녁의 어둠사이로 산타페 아트 센터를 둘러싼 조명들 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도브 벽돌로 지은 나지막한 그 건물은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건물 앞의 광장에는 그림자 사이를 움직이는 모래 같은 느낌을 주는 명암이 교체하는 타일이 깔려있었다.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사틴 천을 둘러쓴 채 테레사의 조각인 Desert Rain이 자 리잡고 있었다. 테레사는 제프 옆에 서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칼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칼라가 거기 있더 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시장이 조각의 베일을 벗기기 바로 직전에 테레사는 친구가 택시에 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테레사가 손을 흔들자, 칼라가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늦어서 미안해, 하지만 고속 도로가 너무 막혔어. 게다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비행기가 한참동안이나 이륙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그리고 - " 칼라가 숨이 차서 말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내 가 뭘 놓쳤지?" 그녀는 제프를 보았다. "안녕, 제프?" "잘 지냈어요, 칼라?" 그가 말했다. "아뇨," 테레사가 말했다. "넌 제시간에 도착했어 - 간신히." 시장이 마이크를 조정하기 시작하자 광장의 스피커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자 시장은 연설을 시작했다. 예 술 위원회의 멤버와 거물 후원자, 그리고 테레사를 소개했다. 연설이 끝나자 그는 테레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녀는 조각을 향해 걸어 나갔 다. 시장이 보좌관에게서 대형 가위를 건네받아 사틴 천을 붙잡고 있 는 리본을 잘랐다. 나팔 소리와 함께 다른 두 명이 조각에서 천을 벗 겨 내었다. 조각을 둘러싼 조명을 받고 금속이 반짝였다. 시장이 군중들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테레사에게 몸짓을 했다. 열쇠로 그 녀는 조각을 작동시켰다. 첫 번ㅉ 폭풍에서, 천둥은 아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길게 이어졌기 때문에 마침내 그 소리가 사라졌을 째쯤에는 이미 그녀는 준 비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공들이 미로를 지나가면서 뿌리는 빗방울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마침내 고요가 찾아오고 군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 리 위로 조각은 또 다른 폭풍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들 의 이야기로 돌아갔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조 각 주위에 둘러서 있었다. "아름다워." 제프가 말했다. "훌륭해," 칼라가 말했다. "지금까지 네 작품 중 최고야." "고마와." 하지만 테레사는 이상하게도 불만족스러웠다. 제프가 조 각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칼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탁 하나만 할께, 칼라." 그녀가 속삭였다. "그래." "제프를 바로 데려가서 한 잔 사달라고 해줘." "뭐?" 칼라가 한 쪽 눈썹을 올렸다. "전화 한 통 걸어야 되거든. 그게 다야." 그녀는 망설였다. "친구 한테." "그러려므나." 그녀는 윙크하고는 제프쪽으로 갔다. 테레사는 광장 한 구석의 공중 전화로 가서 카드를 넣고는 집 번호 를 눌렀다. 이안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 테레사." 그녀는 잠시 말문이 막혀 수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그녀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안, 난 산타페의 개장식에 있어. 그리고, 음, 너 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네 모든 도움에 대해서 말이야. 너 없이는 이번 일을 못 해냈을 거야." "괜찮아요, 테레사. 저도 즐거웠어요." "이젠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지, 그렇지, 이안?" "물론이에요." 테레사는 고개를 돌려 조각을 바라보았다. 제프와 이야기하는 칼라 의 모습이 보였다. 제프는 이쪽으로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군중들이 조각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소리는 여전히 뚜렷이 들려왔다. " 조각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 이안?" "네. 멋진데요." "그래. 너한테 한 번은 들려주고 싶었어. 그리고 고마와." 그녀는 스크린을 다시 쳐다보았다. "안녕, 이안. 집에서 만나." "안녕, 테레사. 기다릴께요." 전화의 스크린이 꺼지고 테레사는 돌아섰다. 사막에 내리는 빗소리 가 가득찬 광장을 건너 그녀는 제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