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지은이:수산나 타마로 옮긴이:이현경 피에트로에게 오, 시바 신이시여, 당신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혼돈으로 가득 찬 이 우주는 무엇입니까? 씨앗은 무엇을 만들어 내는 걸까요? 우주의 수레바퀴를 절단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형상들에 스며드는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이 삶은 무엇입니까?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이름과 용모를 초월해, 완벽하게 이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저의 의문을 풀어 주소서. 카슈미르의 시바교 성전에서. 1992년 11월 16일 오피치나에서 네가 떠난 지 두 달. 아직 살아 있다는 엽서 한 장 말고는 아무런 소식도 받아 볼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정원에서 오랫동안 네 장미 앞에 서 있었단다. 가을이 다 지나 버렸는데도 잎 떨어진 초목의 잔해 위에 오만하게 피어 있는 진홍빛 장미가 눈에 띄었어. 우리가 그 장미를 언제 심었는지 기억나니? 네가 열 살 되던 해였는데, 그때쯤 넌 "어린 왕자"를 읽고 있었지. 내가 진급에 대한 상으로 선물한 책이었어. 넌 그 이야기에 푹 빠졌더구나. 등장 인물들 중에서 넌 특히 장미와 여우를 좋아했지. 바오밥 나무와 뱀, 비행사라든가 작은 별에 앉아 떠도는 공허하고 오만한 남자들은 모두 싫어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였던가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 "장미를 갖고 싶어요" 그 문제에 대해 난 이미 여러 번 반대했지만 네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내 장미라고 부를 수 있는 걸 한 그루만 키웠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걸 돌보며 키우고 싶어요" 물론 넌 장미 이외에도 여우를 키우고 싶어했어. 넌 어린아이 특유의 재치로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을 말하기 전에 아주 단순한 소원을 말했던 거야. 이미 장미를 허락했는데 어떻게 여우는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니?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은 개를 한 마리 기르기로 결정했었지. 개를 데리러 가기 전날 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샜단다. 삼십 분에 한번씩 내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지. "잠이 안 와요"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넌 벌써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나서 옷을 입고 있었어. 외투까지 입고는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렸지. 여덟 시 반에 우린 개를 파는 상점에 갔는데, 아직 상점은 문도 열지 않은 상태였단다. 개집의 창살들을 바라보면서 넌 말했어. "어떤 게 내 개가 될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죠?" 네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담겨 있었어. 난 이런 말로 널 안심시켰지. 걱정하지 마라,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인 방법을 생각해 보렴. 우린 그 상점에 삼 일 동안이나 계속 드나들어야 했단다. 이백 마리가 넘는 개들이 있었는데 넌 그 개들을 모두 보고 싶어했어. 넌 개집 앞에 서서 꼼짝하지 않고,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면서 열심히 지켜봤어. 그럴 때면 개들은 모두 올가미 쪽으로 몸을 던지며 두 발로 셔츠를 물어 뜯을 듯이 짖어 대고 뛰어오르곤 했어. 우리를 따라 다녔던 상점의 여종업원은 네가 여느 아이들과 같을 거라고 믿고는 제일 멋지고 표준적인 개들을 보여 주면서 권했다. "그 코커(코코 스파니엘. 스파니엘 개의 일종으로 사냥, 애완용) 좀 한번 봐라" "아니면, 저 래시는 어떠니?" 그녀가 질문할 때마다 넌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 말엔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앞서서 가 버렸어. 그렇게 어려운 걸음을 세 번이나 하고서 우린 벅을 만날 수 있었다. 후미진 곳에 개집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벅은 그 중 하나에 들어 있었어. 거기는 병을 앓고 난 개들을 두는 곳이었어. 창살에 가까이 다가갔어도 벅은 그곳의 개들처럼 우리에게 달려오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앉아 있었어. "저거요" 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소리쳤어. "난 저기 저 개를 갖고 싶어요" 대경 실색하던 여점원의 얼굴, 생각나니? 그녀는 왜 네가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긴 똥개를 원하는지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던 거야. 그래, 벅이 몸집이 작기 때문이기도 했어. 하지만 그 작은 몸집으로 벅은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품고 있었단다. 늑대 같은 머리, 사냥개처럼 낮고 부드러운 귀, 닥스훈트(짧은 다리에 몸이 긴 독일산 사냥개)처럼 날씬한 다리, 여우처럼 활기 있는 꼬리, 도베르만(털이 짧은 독일산 개)처럼 검붉은 털을 가졌지. 서류에 서명하기 위해 사무실에 갔을 깨 여직원이 벅의 이야기를 들려줬어. 벅은 초여름에 달리는 자동차에서 내던져졌다고 했어. 그때 심한 부상을 당해서 뒷다리 하나가 죽은 개의 것처럼 늘어져 있었다고도 했단다. 벅은 지금 내 곁에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가끔씩 숨을 내쉬며 코끝을 내 다리에 갖다 대고 있단다. 코와 귀는 이제 거의 반백이 돼 버렸고, 얼마 전부터는 늙은 개들의 눈에 예외 없이 덮이기 마련인 그런 막이 벅의 눈에도 내려 앉았단다. 벅을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져. 마치 여기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너의 일부분, 그러니까 몇 해 전 수용된 이백 마리 개들 중 가장 불행하고 못생긴 개를 고를 줄 알았던 너의 그 부분이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일 거야. 요 몇 달 동안 적막한 집안을 혼자 배회할 때면 우리가 함께 살면서 불쾌해 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몇 년 간의 기억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만단다. 지금의 기억들은 상처받기 쉽고 길 잃은 강아지 같았던 네 어린 시절에 관한 것들이야. 난 오만하게 무장한 요즘의 네가 아니라 바로 그 아이에게 글을 쓰고 있다. 장미가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라고 속삭여 줬어. 오늘 아침 내가 그 옆을 지나갈 때 이렇게 말했지. '종이를 들고 그 애에게 편지를 쓰세요' 네가 떠날 때 우리가 맺은 협약 중에는 절대 편지를 쓰지 않는다는 조항도 들어 있었고, 난 마지못해 그것을 지켜 왔다. 이 글들은 절대 미국에 있는 네 손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지 않으면 아마 이 몇 줄의 글들이 널 반겨 줄 거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한 달 전쯤 난 생전 처음 아주 심하게 앓았단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가장 가능성 있는 일은 예닐곱달 후엔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다가 문을 열어 주고 널 포옹할 수 없게 되리라는 거야. 얼마 전 어떤 친구가 해준 말에 따르면 잔병 치레를 하지 않던 사람이 병에 걸리면 증세가 금방 그리고 심하게 나타난다고 하더구나. 내게도 그런 일이 벌어졌었어. 그날 아침 장미에 물을 주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불을 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라츠만 부인이 정원 울타리 너머에서 나를 보지 않았다면 넌 분명 고아가 됐을 거야. 고아? 할머니가 죽었는데도 고아가 됐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없구나. 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죽음을 명확히 지칭할 만한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수적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노인들이 죽는다고 해서 고아니 과부니 하는 말은 쓰지 않잖니. 마치 길을 따라 걷다가 방심해서 우산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노인들을 버리고 마는 거란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계속 눈을 감고 있는데, 내 코밑에서 고양이 수염처럼 길고 가느다란 수염이 자라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눈을 뜨자마자 난 그 수염이 두 개의 가는 고무관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들은 코에서 나와 입술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고 주위엔 이상한 기계들밖에 없었어. 며칠 후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두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그곳으로 옮긴 뒤, 오후가 되자 라츠만 씨가 부인과 함께 문병을 왔어. 라츠만 씨가 그러더구나. "아직 살아 계시군요" "다 개 덕택이에요, 마치 미친개처럼 짖어 대더라구요"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젊은 의사 한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의사들이 회진을 돌 때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어. 그가 의자를 가져오더니 내 옆에 앉더구나. "돌보거나 일을 처리해 줄 친척이 없으니까 말을 돌리지 않고 당신께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얇디 얇은 입술만 눈에 들어 오더라구. 너도 알다시피 난 입술이 얇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 그의 말에 따르면 내 건강 상태는 퇴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악화됐다는 거야. 그는 내게 가서 살아도 좋을 만한, 간호사들이 보살펴 주는 양로원을 두세 군데 알려 줬어. 내 얼굴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렸던지 그라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이더구나. "옛날 양로원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아주 달라졌어요. 밝은 방들이 많고 주위엔 산책을 할 수 있는 큰 정원들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 그때 내가 말했어. "에스키모들을 아세요?" "물론 잘 알죠" 그가 일어서면서 대답했어. "됐군요. 봐요, 난 그들처럼 죽고 싶다우" 그가 이해를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덧붙여 줬지.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의 침대에서 꼼짝없이 누워 일 년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채소밭의 호박들 속에 쓰러져 죽는 게 좋겠다는 거지요" 이 말을 할 때 그는 이미 문 옆에 가 있었어. "모두들 그렇게 말하죠" 그는 나가기 전에 한마디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 치료를 받기 위해 달려와서 나뭇잎처럼 떨더군요" 삼 일 후, 난 혹시 내가 죽더라도 그 책임은 나에게, 오로지 나에게 있을 뿐이라고 진술한 서류에 서명했단다. 그 서류를 머리가 작고 큰 금귀고리를 단 젊은 간호사에게 넘겨 주고, 몇 개 안 되는 소지품을 비닐 봉투에 담아서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단다. 대문에 내가 들어서자마자 벅은 미친개처럼 둥글게 달리기 시작했어. 그러고 나서 그 행복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크게 짖으며 뛰어다니다가 화단을 두서너 개 망가뜨리고 말았지. 처음으로 벅을 큰소리로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더구나. 그래서 벅이 코에 흙을 잔뜩 묻히고 내 곁에 다가왔을 때 말했단다. "봤지, 벅? 우리가 다시 만났구나" 그리고 귀 뒤를 긁어 줬단다. 그 뒤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다. 사고를 당한 뒤 몸의 왼쪽 부분이 더 이상 옛날처럼 말을 듣지 않았어. 무엇보다 손이 아주 둔해졌지. 마비된 손이 나를 이겨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오히려 그 손을 더 많이 사용했다. 그 손목에 난 장밋빛 끈을 묶어 놓았어. 그렇게 해서 물건을 집을 때마다 오른손 대신에 왼손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는 거지. 육신이 멀쩡할 때는 그게 강한 적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단다. 그렇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육체와 싸우려는 의지를 포기하게 되면 우리들은 죽은 몸이 되고 마는 거야. 어쨌든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발터 부인에게 열쇠를 복사해 줬어. 매일 아침 날 보러 오고 내가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바로 그녀야. 집과 정원을 돌아다니면서 너에 대한 생각은 집요해졌고 진짜 강박 관념이 돼 버렸단다. 가끔 난 전화기 앞에까지 갔다가 네게 전보를 칠 생각으로 수화기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교환수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만두자고 마음먹곤 하지. 저녁이면 소파에 앉아-내 앞에는 공간과 주변의 침묵뿐이다-어떻게 하는 게 나을지 곰곰이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니라 너에게 말이야. 만약 내 병을 알리면 넌 금방 미국을 떠나서 이곳으로 달려오리라 믿는다. 그러고 나서는? 그 다음엔 어쩌면 내가 휠체어를 타고 삼사 년을 더 살지도 모르고, 그러면 넌 의무감 때문에 날 간호하겠지. 넌 헌신적으로 간호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헌신은 분노로, 증오로 바뀔 수도 있을 거야. 몇 년을 흘려 보내고 네 젊은 날을 낭비해 버린 것에 대한, 그리고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나의 사랑이 네 삶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여 버린 것에 대한 증오일 거야. 그래서 내 마음의 목소리는 네게 전화하고 싶니 않다고 말하는 거였어. 그 목소리가 옳다고 결정하자마자 곧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만약 네가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아니라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 벅과 오래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은 텅 빈 집 만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지. 제때에 돌아오지 못한 귀향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내가 죽었다는 전보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넌 그게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악의로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최근 몇 달 동안 넌 내게 아주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네게 알리지도 않고 세상을 뜸으로써 널 벌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이건 부메랑처럼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틈을 만들어 놓게 될 거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했어야 할 말들은 영원히 네 마음속에 남아 있을 거야. 그 사람은 저기 땅 밑에 있고, 넌 그 사람을 직접 보거나 포옹할 수도 없으며 아직 못다 한 말들을 할 수도 없단다. 하루하루 시간이 갔고 난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장미의 속삭임이 있었던 거지. 그 애에게 편지를 쓰세요. 당신의 하루하루를 담은 작은 일기를 쓰세요. 계속 그 애의 친구가 돼 줄 거예요. 그래서 난 여기 부엌으로 와 어려운 숙제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연필을 깨물면서 네 노트를 앞에 하고 있단다. 유언이냐고? 그렇지는 않아. 그것보다는 몇 해 동안 너를 따라 다닐 그 어떤 것, 네가 나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을 때마다 읽어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란다. 걱정 마라. 난 거드름을 피며 얘기하려는 것도, 널 슬프게 만들려는 것도 아니란다. 그저 옛날에는 함께 나눴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그런 친밀감으로 수다를 좀 떨고 싶은 거야. 오랫동안 살아 왔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서 그런지, 난 지금 죽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부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무게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렴, 이렇게 늙어 버린 나이에, 대개는 그저 할머니의 역할에 만족하는 나이에 난 네 엄마 노릇을 해줘야 했다. 나이 들었다는 게 이점이 많기는 하지. 네게는 할머니 엄마가 젊은 엄마보다 훨씬 주의 깊고 인자할 수 있고, 내게는 카드 놀이를 하며 변화 없는 오후를 보내는 내 동년배들처럼 멍하게 지내는 대신 삶의 흐름 속으로 기세 좋게 끌려 들어갈 수 있어서 유익했어.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파괴되어 버렸다. 그것은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란다. 그저 자연의 법칙일 따름이야. 유년기와 노년기는 서로 비슷하다. 모두 서로 다른 이유에 의해 다소 무기력하여 아직은-혹은 더 이상은-활동적인 삶에 참여할 수 업고, 이로 인해 체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예민하게 살아 가게 된단다. 청소년기에는 보이지 않는 갑옷이 형성되기 시작하지. 그건 청소년기에 형성되어 성년기 내내 계속 두꺼워진단다. 갑옷의 성장 과정은 다소 진주와 비슷해서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우리 주위에서 커 가는 갑옷은 더욱 튼튼해지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오래 입은 옷처럼 가장 많이 사용한 부분들이 닳기 시작하고 상처가 보이면 갑자기 돌연한 순간에 찢어져 버리고 만단다. 처음엔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거고,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놀라운 사실 앞에서 네가 다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게 될 때까지 넌 네 갑옷이 여전히 안전하게 널 감싸주고 있다고 믿겠지. 너와 나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을 때, 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네 갑옷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 내 것은 이미 누더기가 돼 있었어. 넌 나의 눈물을 참지 못했고, 난 너의 갑작스러운 냉혹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비록 성년이 되고 사춘기가 되면서 네 성격이 변하리라는 각오는 했었지만 그 변화가 일어났을 땐 참기가 아주 힘들었다. 갑자기 내 앞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는데, 난 그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전혀 몰랐다. 밤에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너의 그런 변화가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었어. 아무 일 없이 청년기를 보낸 사람은 결코 큰 사람이 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위로도 해봤단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네가 내 면전에서 문을 꽝 닫아 버릴 때면 얼마나 우울하고 울고 싶던지! 네게 냉정해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난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네가 만약 여든 살이 돼 본다면 이 나이에는 자기 자신이 시월 말의 낙엽 같은 생각이 든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대낮의 햇빛은 오래 비추지 않고 나무는 차츰차츰 필수적인 영양분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 시작하지. 질소와 엽록소, 단백질들은 몸통으로 재흡수되고 그들과 함께 초록색과 탄력성도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직 나무 위에 매달려 있지만 사람들은 그게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임을 알고 있지. 나뭇잎들은 하나하나 나란히 떨어지고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넌 바람이 다 날려 보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싸이게 될 거야. 내게 바람은 너였고 청년기를 맞은 네가 소유한, 싸우기 좋아하는 생명력이었어. 얘야, 넌 그런 걸 이해하려고 애써 본 적이 없겠지? 우린 같은 나무에 살고 있었지만 너무도 다른 계절 속에 살았던 거야. 네가 떠나던 날이 생각나는구나. 우리 둘 다 얼마나 신경질적이었니, 응? 넌 내가 공항까지 배웅 나가길 원치 않았고, 네게 가져 갈 것을 이것저것 일러 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지. "난 사막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는 거예요" 문 앞에서 내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밉살스럽게 "몸조심해라"라고 말했을 때 넌 날 돌아보지도 않고 이런 말로 인사를 대신했지. "벅과 장미를 보살펴 주세요" 알고 있니, 순간 너의 그런 인사에 난 약간 당황했단다. 나같이 감정적인 노인네는 좀더 다른 인사, 그러니까 입맞춤이나 애정이 담긴 말 따위의 보다 평범한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밤이 되서도 잠을 잘 수 없어서 가운을 걸치고 빈 집을 배회할 때야 비로소 벅과 장미를 보살펴 달라는 말은 내 곁에서 살아갈 너의 일부분, 너의 행복했던 부분을 보살펴 달라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그 메마른 명령 속에 무감각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사람이 지니는 극도의 긴장감이 숨어 있음도 알았다. 그건 조금 전에 말한 갑옷이야. 넌 아직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꽉 끼는 갑옷을 입고 있는 거야. 최근에 내가 했던 말, 생각나니? 밖으로 흘러 나오지 않은 눈물들은 가슴에 쌓여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마치 석회가 세탁기의 기어를 덮어 기능을 마비시키듯 가슴을 덮어 버린다고 했었지. 내가 부엌에서 비유 거리들을 찾으면 너는 미소 짓기 보다는 코방귀를 뀌었지. 인정을 하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세계에서 영감을 받는 거야. 이제 너와 헤어져야겠다. 벅이 숨을 내쉬며 애원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어. 벅에게는 변함없는 자연의 정확함이 깃들여 있는 모양이다. 그 어떤 계절에도 벅은 스위스 시계만큼이나 정확하게 간식 시간을 알아맞히는구나. 11월 18일 지난밤에는 세찬 비가 쏟아졌다. 덧문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하도 커서 몇 번씩 잠을 깨곤 했단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도 날씨가 여전히 좋지 않으리라 믿고는 오랫동안 이불 속에서 뒤척였어. 세월이 흐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했는지! 네 나이 때 난 잠꾸러기여서 누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점심때까지도 잘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언제나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이 떠진단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고 지루한 것이 돼 버렸어. 이런 모든 것이 잔인해 보이지 않니? 게다가 아침의 시간들은 더 끔찍한데, 너도 잘 알겠지만 주의를 돌릴 만한 것 없이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란 것들은 자꾸 과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란다. 노인의 생각에는 미래가 없는데다가 대개는 슬프고, 그렇지 않으면 우울하지. 나는 자연의 이런 기이함에 대해 종종 의문을 품곤 한단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깊은 생각에 빠져든 적이 있다. 동물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였어. 동물의 세계에서도 조류와 그 밖의 동물들이 많은 꿈을 꾼다고 한다. 박새와 비둘기, 다람쥐와 토끼, 개와 풀밭 위에 누워 있는 젖소들이 꿈을 꾼다는구나. 꿈을 꾸긴 하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꾸는 것은 아니야. 특히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짧은 꿈을 꿀뿐인데 그건 진정한 꿈이라기보다는 환영에 가깝다는구나. 반면에 약탈을 하는 동물들은 복잡하고 긴 꿈을 꾼단다. "동물들에게" 해설자가 말했어. "꿈을 꾸는 행위는 생존 전략을 구성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추격을 하는 동물들은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고, 추격 당하는 동물들은-그리고 대개 그들의 먹이는 풀의 형태로 놓여 있죠-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린 양은 잠을 자면서 자기 앞에 펼쳐질 사바나를 꿈꾸는 반면, 사자는 계속 되풀이되는 장면 속에서 어린 양을 잡아먹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꿈꾼다는 거야.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육식 동물이고 노인들은 초식 동물이군' 그때 난 혼자 그렇게 말했단다. 노인들은 잠을 적게 잘 뿐만 아니라 꿈도 꾸지 않기 때문이지. 아니 꿈을 꾸는데 그게 기억에 남지 않는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젊은이들은 많은 꿈을 꾸며 그 꿈이 그날의 기분을 결정짓기도 하지. 마지막 몇 달 동안 잠에서 깨자마자 네가 흘렸던 눈물, 생각나니? 커피 잔을 앞에 놓은 채 그냥 앉아 있으면 소리 없는 눈물이 네 뺨을 타고 흘러 내렸지. "왜 우는 거냐?" 내가 물어 보면 넌 기운 없이, 아니면 퉁명스레 대답하곤 했어. "나도 몰라요" 네 나이 때엔 마음속에 올바로 자리잡아야 할 일들이 많고, 불확실한 계획들도 들어 있단다. 무의식에는 질서라든가 명백한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장되고 보기 흉한 하루의 찌꺼기들을 아주 깊은 열망들과 뒤섞어 놓고, 그 속에 육체의 욕구들을 끼워 넣는 거란다. 그래서 배가 고픈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서도 먹을 수 없는 꿈을 꾸고, 추운 사람들은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북극에 있는 꿈을 꾸며, 무례한 사람이라면 피에 굶주린 전사가 되는 꿈을 꾼다. 선인장과 카우보이 속에서 사는 넌 지금 그곳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니? 혹시 꿈을 꿀 때마다 나도 인디언 옷을 입고 그 한가운데 나타나지는 않니? 벅이 코요테(북미 서부 대초원의 이리) 껍질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건 아니니? 이곳이 그립지 않니? 이곳 생각도 하고 있니? 얘야, 어젯저녁엔 안락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데 갑자기 방안에서 리듬 있는 어떤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 오더구나. 책에서 머리를 들었더니, 벅이 잠이 든 채 꼬리로 방바닥을 치고 있는 게 아니겠니. 행복해 보이는 벅의 코를 보면서 난 벅이 너를 만나는 꿈이나 네가 돌아와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꿈, 아니면 너와 벅이 함께 했던 아주 근사한 산책을 다시 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확신했단다. 개들은 그렇게 인간적인 감정에 침투할 수 있는데, 밤 시간을 함께 지내기 때문에 개들과 우리는 거의 비슷해진단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개를 싫어하지. 인간들은 부끄럽고 겁 많은 개들의 시선 속에 반영된 자신의 너무 많은 부분들, 무시해 버리고 싶은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단다. 요즘 벅은 네 꿈을 자주 꾼다. 난 네 꿈을 꿀 수가 없어. 아니 어쩌면 꿈을 꿨는데 기억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과부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고모 한 분이 우리 집에 잠깐 동안 사셨단다. 고모는 강령술에 빠져서 부모님들 눈에 띄지만 않으면, 아주 어둡고 은밀한 구석에서 내게 정신의 비상한 힘에 관해 가르쳐 주곤 하셨다. "만약 멀리 있는 사람과 접촉하고 싶다면" 고모가 말씀하셨어. "손으로 그 사람 사진을 꼭 쥐고, 세 발자국 정도의 십자가를 만든 다음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고모 말에 따르면 그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과 텔레파시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였어. 오늘 오후에 난 정말 그렇게 해봤다. 오후 다섯 시쯤이었으니까 네가 있는 곳은 아침이었을 거야. 날 봤니? 느낄 수 있었니? 난 사람들이 리솔(파이 피에 단맛 혹은 짠맛 나는 속을 넣고 튀긴 요리)을 넣은 샌드위치를 먹는 어떤 바에서 너를 봤단다. 그곳은 전등불이 환히 켜져 있었고, 벽엔 타일이 발려 있었어. 다색 군중들 틈에서도 난 널 곧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건 네가 최근에 내가 짜 준 빨간 색과 파란 색 사슴이 들어간 스웨터를 입고 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 순식간이었고, 과장되게 말하자면 텔레비전 영화 같아서 네 눈빛을 바라볼 시간도 없었단다. 넌 행복하니? 무엇보다도 이런 궁금증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단다. 내가 너의 긴 외국 유학 비용을 대는 것이 옳은지 아니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다툼을 했는지 생각나니? 너는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네가 성장했던 이 환경, 숨막힐 것 같은 이곳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 무렵 넌 고등 학교를 갓 졸업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네가 어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있었어. 넌 어렸을 때부터 열정이 많았어. 수의사나 탐험가, 혹은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런 희망의 흔적들이 지금의 너에겐 조금도 남아 있지 않구나. 그 시절 너와 비슷한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던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닫혀져 갔지. 박애적이었던 모든 것, 공동 사회에 대한 희망은 순식간에 냉소주의고, 고독으로, 불행한 네 운명에 대한 집중적인 강박 관념으로 변해 버렸다. 만약 텔레비전에서 특별히 잔인한 뉴스를 접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동정 어린 내 말들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지. "할머니 나이에도 새삼스레 놀랄 일이 있어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일종의 선택인 것도 여태 모르세요?" 처음 몇 번은 이런 식의 의견 앞에서 난 숨을 쉴 수 없었고, 내 곁에 괴물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너를 슬쩍 쳐다보면서, 만약 그렇다면 내가 네게 가르쳤던 모범적인 행동들에 대해선 어느 부분에서 불쑥 말해야 할지 내 자신에게 물어 봤단다. 난 네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얘기를 하든 우리에겐 충돌만이 남게 될 거야. 한편으론 나의 나약함과 쓸모 없는 힘의 낭비가 두려웠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네가 찾는 건 바로 노골적인 충돌이라는 것과 처음의 충돌 이후 우리는 더욱더 타인이 되고 격렬해지리라는 걸 직감하기도 했다. 너의 말 속에서 나는 에너지-폭발할 준비가 된 채로 겨우겨우 억제된-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지했단다. 심술궂은 행동들을 무디게 만들어 버리고, 공격에 대해 무관심을 가장했던 나로 인해 넌 억지로 딴 길을 찾으려고 애썼던 거야. 그래서 너는 떠나겠다고, 더 이상 소식도 전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겠다고 날 위협했지. 넌 어쩌면 한 노파의 절망이나 비굴한 간청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떠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고 네게 말했을 때 넌 비틀거리기 시작했어. 넌 입을 딱 벌리고 공격할 준비를 갖춘 뒤 갑자기 머리를 들었는데, 돌연 자기 앞에서 위협할 상대를 찾지 못한 한 마리의 뱀처럼 보였지. 그래서 너는 협상을 하기 시작했어. 새로운 확신에 차서 커피를 앞에 두고, '미국으로 가겠어요'라고 말하던 날까지 넌 아주 여러 가지의 불분명한 제안들을 했었다. 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결정도 친절한 관심을 보이며 받아들였지. 나의 승낙으로 인해 네가 네 자신을 몰아붙여 마음속 깊이 느끼지도 않는 선택을 성급하게 하지 않길 바랐다. 그 후 몇 주 동안 넌 계속 미국에 대한 생각을 내게 말했지. "일 년만 그곳에 가 있으면" 넌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되풀이했지. "적어도 말이라도 배울 테니까 시간 낭비는 아닐 거예요" 시간을 낭비하는 건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하자 넌 무섭게 화를 냈다. 하지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표적 맞추기이며, 계산된 시간을 얼마나 절약하느냐 보다는 오히려 중심을 찾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넌 정말 심하게 화가 났었지.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찻잔이 있었는데 넌 곧 한 팔로 그 잔들을 쓸어 날려 보냈어. 그러고 나선 울음을 터뜨렸어. "할머닌 멍청해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어. "할머닌 멍청해요. 내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르세요?" 우린 땅에 지뢰를 묻은 뒤에 그 땅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두 명의 군인 같았어. 지뢰가 어디 있는지, 그게 어떤 건지 알면서도 마치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인 체하며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걷고 있었지. 지뢰가 폭발했을 때 넌 할머닌 아무것도 모르고 절대 이해하지 못할 가라 퍼부으면서 울었고, 난 네 앞에서 나의 당혹스러움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네 엄마, 너를 임신하게 된 방법, 그녀의 죽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넌 나의 침묵으로 인해 내겐 그 어떤 사건도 존재하지 않았고, 설령 있더라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믿게 됐을 거야. 하지만 네 엄마는 내 딸이었단다. 어쩌면 넌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랬더라도 그걸 말하는 대신 속에 감췄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너의 어떤 시선이라든가 증오가 담긴 말들을 내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네 엄마에 대한 기억은 공백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을 거야. 그 애가 죽던 날 넌 아직 어렸으니까.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삼십 삼 년 간의 기억들, 네 엄마를 뱃속에 담았던 아홉 달보다도 더욱 생생한 삼십 삼 년 동안의 기억들이 간직되어 있단다. 넌 어떻게 내가 그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 처음 그 문제에 접하기 전에 내게는 오로지 수치심과 이기주의라는 좋은 약이 있었을 뿐이다. 수치심은 네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나의 진짜 혹은 추정상의 죄들에 대해-언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이기주의란 내 사랑이 그 애의 빈자리를 덮을 만큼-네가 엄마가 그리워서 어느 날 '내 엄마는 누구예요, 왜 죽었죠?'라고 내게 질문하지 않을 만큼-크길 바랐기 때문에 생긴 거란다. 네가 아이였을 때 우린 행복했었지. 넌 기쁨이 가득한 소녀였지만, 네 기쁨 속에는 피상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전혀 없었어. 항상 사색의 그림자가 숨겨진 기쁨이었지. 넌 폭소를 터뜨리다가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침묵에 빠지곤 했어. "왜 그러니, 무슨 생각을 하니?" 그럴 때 내가 물으면 넌 마치 간식에 대해 얘기하듯 내게 대답했지. "하늘이 끝이 있는지, 아니면 계속 펼쳐지는지 생각했어요" 그래서 난 너의 존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단다. 내 것과 비슷한 너의 감수성에서 나는 그것을 크게 혹은 멀리 느낀 것이 아니라, 공범자의 것인 양 부드럽게 느꼈단다.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나를 속였고, 속이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비누 거품 속에 정지해 있을 수도, 공중에서 행복한 방랑을 할 수도 없지. 우리들의 인생에는 전과 후가 있어서, 그것은 우리들의 운명을 함정에 빠뜨리고 먹이 그물처럼 우리를 얽어 맨다. 사람들은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야. 부모의 죄는 자식에게 떨어지고, 조부모의 죄는 손자에게, 증조부모의 죄는 증손자에게 떨어진다. 자유의 의미를 지닌 진실이 있는 반면, 공포의 의미를 부여하는 또 다른 진실도 있단다. 조금 전에 말한 진실은 두번째 범주에 들어가는 거야. 죄의 사슬은 어디서 끝나는 걸까? 카인에게서? 모든 것이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언젠가 어떤 인도인의 책에서 운명이란 모든 힘을 소유하는 반면, 의지력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단다. 그 후 커다란 평화가 나의 내부에 깃들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그 뒤의 몇 페이지에서 운명은 과거 행동의 결과 일 뿐이며, 우리는 우리 손으로 운명을 만들어 간다고 쓰인 구절을 발견했단다. 그렇게 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거지. 이 모든 것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자문했다. 어떤 실을 풀어야 할까? 그것은 실일까, 사슬일까? 잘라 내고 부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우리를 휘감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잘라 낸다. 내 머리는 더 이상 옛날 같지 않아. 물론 생각하는 방식은 변함없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지탱할 만한 능력은 없어져 버렸다. 이제 피곤하구나. 젊은 시절 철학책을 읽으려고 애쓸 때처럼 머리가 어지럽구나. 존재, 비존재, 내재성... 몇 페이지를 읽은 후에, 마차를 타고 산길을 여행할 때와 똑같이 어지럽곤 했지. 잠시 동안 너를 떠나 거실에 있는 사랑스럽고도 혐오스러운 텔레비전 앞에서 휴식을 취해야겠다. 11월 20일 다시 여기서 우리가 만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구나.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 일째 되는 날이고 세 번째 만남이지. 어제 난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쓰거나 읽지 못했단다. 너무 초조해서 뭘 해야 좋을지 몰라, 하루 종일 집과 정원을 서성거렸단다. 대기는 아주 부드러웠고 햇살이 가장 따뜻한 시간에 난 개나리 옆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아주 무질서한 풀밭과 화단들이 있었어. 그것들을 보면서 낙엽 때문에 너와 다퉜던 일이 생각났다. 언제였더라? 작년이었나? 이 년 전이던가? 난 잘 떨어지지 않는 기침 감기를 앓고 있었고, 이미 잔디를 온통 뒤엎어 버린 나뭇잎들은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서 소용돌이치고 있었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다가 아주 슬픈 생각이 들었어. 하늘은 어두웠고 밖은 버림받은 듯한 분위기였지. 네 방으로 들어갔단다. 넌 귀까지 덮이는 나이트 캡을 쓰고 침대에 누워 있었지. 제발 낙엽들 좀 치우라고 네게 부탁했지. 네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점점 더 큰소리로 여러 번 되풀이해야 했다. 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어. "왜 그래야 되죠? 자연스러운 거니까 아무도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아요. 그곳에서 썩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된다구요" 그때, 자연은 너의 위대한 동맹군이었고, 넌 모든 것을 확고한 법칙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어. 난 정원이란 길들여진 자연이며 매년 자기 주인과 닮아 가고, 마치 개처럼 계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걸 설명하는 대신 아무 말도 없이 거실로 나와 버렸다. 잠시 후에 네가 먹을 것을 가지러 냉장고에 가려고 내 앞을 지나쳤다. 넌 내가 우는 걸 봤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 저녁때가 되자 겨우 방에서 나와 '뭘 먹지?'라고 말하면서, 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울고 있는 걸 알아차렸지. 그래서 넌 부엌에 가서 오븐을 만지기 시작했어. "뭘 먹으면 좋겠어요?" 넌 여기저기에 소리쳤지. "초콜릿 푸딩 어때요? 아니면 튀김? 오믈렛은요?" 넌 내 슬픔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고 좀 다정하게, 어떤 식으로든 날 기쁘게 해주려 했지. 다음날 아침 어둠이 막가신 잔디밭에서 널 발견하게 됐어. 비가 세차게 쏟아졌는데 넌 노란 우비를 입은 채 낙엽을 긁어 모으고 있었어. 아홉 시 경에 네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무엇보다도 네가 선행을 한다는 그런 느낌을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어. 오늘 아침 쓸쓸한 화단을 보면서 누군가를 불러서 병에 걸렸거나 병이 나서 떨어진 보기 흉한 것들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단다. 세월이 흐르면서 난 정원을 아주 싫어하게 됐어. 난 다른 일을 포기하면서 다알리아에 물을 준다든가, 나뭇가지에서 죽은 이파리를 떼낼 수는 없었을 거야. 이상한 일이야. 난 젊어서부터 신경 써서 정원을 가꾸는 걸 정말 지겨워했어. 정원을 갖는다는 것이 특권이라기보다는 성가신 일처럼 여겨졌지. 하루나 이틀 정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주 힘겹게 만들어 놓은 질서 위에 또다시 무질서가 끼여들었고, 무엇보다도 그런 무질서가 짜증스러웠어. 난 내부에 중심을 갖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내부에 지닌 것을 외부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나이가 돼서야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단다. 그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지. 집과의 관계 우리들의 내부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그렇지. 예순이나 일흔 살 때쯤, 갑자기 정원과 집은 이제 더 이상 편리함이나 우연 혹은 아름다움을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될 때가 있단다. 그것들은 흡사 조개 살이 조개 껍질의 일부이듯 너의 일부임을 알게 될 거야. 너의 분비물로 껍질을 만들었고 나선형 껍질에 네 이야기를 새겨 넣었지. 껍질로 된 그것은 너를 휘감고 네 위에, 네 주변에 존재한다. 어쩌면 네가 죽는다 해도 그 집은 네 존재로부터-집의 내부에서 네가 경험했던 기쁨과 고통으로부터-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단다. 어제 저녁에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봤단다. 솔직히 말하면 봤다기보다는 들었다고 해야 할 거야.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졸기 시작했으니까. 드문드문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기차에서 깜빡 졸음에 빠졌을 때 다른 여행객들의 대화가 아무 의미없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것과 비슷했어. 20세기 말의 종파들에 관한 신문 조사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프로였어. 진짜나 사이비 은자들과의 여러 가지 인터뷰가 있었는데 홍수처럼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카르마(업)라는 용어가 내 귀에 들어왔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고등 학교 때 철학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어. 젊고 매우 열렬한 반 순응주의자셨지. 쇼펜하우어를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동양 철학에 대해 말했고, 그것들을 얘기하면서 카르마의 개념을 소개해 주셨어. 그 당시 난 사물과 말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설명하신 건 한 귀로 흘렸단다. 오랫동안 내 깊은 곳에서는 일종의 동해 복수법-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은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남아 있었단다. 유치원 원장이 나를 불러 너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얘기했을 때에야 비로소 카르마는-그리고 그에 연결된 것은 -- 내 머리 속에 다시 떠올랐단다. 넌 유치원을 완전히 뒤집어엎었더구나.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넌 갑자기 네 전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처음에 보모들은 어린아이들이 저지르는 엉뚱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 처음에 보모들은 네 얘기를 무시하는 척하면서 널 모순에 빠뜨리려 애썼다는구나. 하지만 네 말은 앞뒤가 잘 맞았고 심지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 거였어. 그런 일이 세 번이나 되풀이됐을 때, 난 유치원 원장에게 불려 가고 말았지. 그들은 너의 행복과 장래를 위해 널 심리학자에게 데려가라고 충고했어. "당신이 받은 상처로 보면" 원장이 말했어. "지금처럼 행동하고 현실을 회피하려 애쓰는 게 당연하지요" 물론 난 널 심리학자에게 데려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넌 행복한 소녀였고, 너의 그 환상이 현재의 불안이 아니라 사물의 다양한 질서 때문이라고 믿으려 했지. 그 사건 이후 난 절대 유치원 사건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았고, 너도 너의 발상에 대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어. 어쩌면 넌 소스라치게 놀란 보모들 앞에서 얘기하던 바로 그날, 그 일에 대해선 모두 잊었는지도 모르지. 최근 몇 년 동안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주 유행이 됐다. 그것은 한때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주제였지만, 지금은 모든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지. 얼마 전 한 신문에서 미국에는 윤회에 관한 자의식 동아리까지 있다는 기사를 읽었단다. 사람들이 모여서 전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한 주부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어. "난 19세기 뉴 오를레앙에서 거리의 여자였죠. 그래서 난 지금 남편에게 충실할 수가 없어요" 한편 인종주의자인 주유소 직원은 자신이 17세기 아프리카 원정 때 반투족에게 잡아 먹혔다는 사실에서 인종주의적 증오의 원인을 찾았단다. 얼마나 어리석고 슬픈 말이냐? 자기 문화에 대한 뿌리를 상실한 뒤로 사람들은 현재의 어둠과 불확실성을 지나간 존재들에 연결시켜 보려 애쓰고 있다. 삶의 순환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내 생각엔 분명 그것과는 다른 의미일 것 같구나. 유치원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난 열심히 책을 사 모았고, 너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책에서 좀더 많은 것들을 알려고 애썼지. 바로 그 논문들 중의 하나에 자신의 전생을 정확히 기억하는 어린아이들은 전생에서 요절했거나 횡사한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어린 소녀인 네 경험을 통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망상들이-관에서 새어 나오는 가스, 언제라도 모든 것이 폭발해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러한 유형의 해석을 믿게 만들었지. 지치거나 불안할 때, 꿈속에 빠졌을 때에도 넌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곤 했다. 널 놀라게 한 것은 도깨비나 마녀, 괴물 등이 아니라 우주의 사물들이 언제라도 어떤 폭발에 의해 교차될 수 있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였지. 처음 몇 번은 한밤중에 공포에 질린 네가 내 방에 나타나자마자 부드러운 말로 달래서 다시 네 방에 데려다 주곤 했단다. 넌 네 방 침대에 누워 내 손을 잡고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길 바랐지. 내가 혹시 불안한 얘기를 할까 봐 네가 먼저 줄거리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말해 줬기 때문에, 난 전적으로 너의 설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단다. 동화를 한 번,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여 얘기해 주고 나서 네가 진정됐다고 믿고 내 방으로 가기 위해 일어서서 문가로 가면 너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어. "그렇게 됐어요?" 네가 물었지. "정말 항상 행복하게 끝났어요?" 그러면 난 다시 돌아와 너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단다. "달리 끝날 방법은 없단다, 얘야. 맹세하마" 하지만 어느 날 밤에는 너와 함께 잠자는 것을 반대해 왔는데도-어린아이들이 노인과 함께 자는 것은 좋지 않단다.-널 네 침대로 돌려보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 침대 맡의 조그만 탁자 옆에 네가 서 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난 등도 돌리지 않고 널 안심시키느라 이런 말을 했었다 "이제 모든 게 잘됐어.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을 거란다. 그러니 네 방으로 돌아가거라" 그런 다음 아주 깊은 잠에 빠진 척했지. 그러면 너는 잠시 동안 꼼짝없이 서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어. 그리고 얼마 후엔 침대의 가장자리가 약하게 삐걱거렸고 넌 조심스럽게 내 곁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윽고 너는 엄청난 일을 겪은 후에 마침내 따뜻한 굴을 발견한 생쥐처럼 곤히 잠들었지. 새벽에 장난 삼아 잠에 빠진 너를 안아다가 다시 네 방에 데려다 주면, 넌 나중에 그런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고, 지난 밤 내내 네 침대에서 잤다고 믿곤 했어. 대낮에 내가 조용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에도 넌 돌연한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어.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 보렴" 네게 말해 줬지. "벽들이 얼마나 두꺼운지 잘 보렴. 어떻게 저것들이 폭발할 수 있겠니?" 하지만 너를 안심시키려는 내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돼 버렸고, 넌 눈을 크게 뜨고 계속 네 앞의 공간을 바라보면서 되풀이해 말했어. "모든 것은 폭발할 수 있어요" 그런 너의 공포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폭발이 뭐지? 네 엄마에 대한, 그녀의 비극적이고 돌연한 죽음에 대한 기억일까? 아니면 유치원 보모들에게 들려줬던 전생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의 기억 속에 자리한 어떤 도달할 수 없는 장소에서 두 가지가 함께 뒤섞여 버린 것일까?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나는 인간의 머리 속에는 빛보다 그늘이 많다고 믿는단다. 어찌 됐든 그때 내가 샀던 책에는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아이들은 인도나 동양, 바로 그 개념들을 전통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지역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것으로 적혀 있었단다. 난 그 점을 어렵지 않게 믿을 수 있었단다. 만약 어느 날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찾아가서 아무 예고도 없이 다른 나라 말로 이야기하거나, '난 엄마를 참을 수 없어요. 전생에서 난 우리 엄마와 아주 잘 지냈거든요'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렴. 넌 분명 내가 망령이 났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일이라고는 어느 날 집 안에 격리되는 것밖에 없다고 확신했을 거야 환경이 부여해 준 운명-조상들이 피를 통해 네게 전해 준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까? 글쎄, 누가 알 수 있겠니? 각 세대를 통해 폐쇄적으로 이어지는 도중에 어떤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약간 높은 계단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며, 온 힘을 기울여 그곳으로 올라가려 애쓸지도 모른다. 고리를 부수고 공기가 다른 방안으로 들어간다는 건-내 생각으론-삶의 순환 속에 존재하는 작은 비밀인 것 같다. 작지만 아주 강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렵기도 한 거란다. 우리 어머니는 열 여섯에 결혼해서 열 일곱에 날 낳으셨다. 어린 시절, 아니 일생 동안 어머니가 내게 다정하게 대해 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녀의 결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어. 아무도 어머니에게 결혼을 강요하진 않았다. 결혼을 강요한 건 바로 어머니 자신이었는데, 부유했지만 유대인이었고 게다가 개종까지 한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귀족 작위를 갈망하셨던 거야.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는 많았지만 남작이며 음악광이었던 아버진, 성악가인 어머니의 재능에 반하셨어. 명성에 걸맞는 상속인을 낳은 뒤 부모님들은 죽는 날까지 경멸과 복수심에 잠겨 사셨지. 어머닌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한 채 불만과 원한을 품고 돌아가셨단다. 어머니에게 이 세상은 잔인했는데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난 어머니와는 아주 달랐다. 일곱 살에 벌써 유년의 의존성을 떨쳐 버린 뒤부터는 어머니를 참을 수 없었어. 난 어머니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어머니는 계속 그리고 항상, 오로지 외부적인 이유들 때문에 동요하셨어. 어머니의 거짓 완벽성으로 인해 난 어머니를 나쁜 여자로 여기게 됐고, 어머니에 대한 심술의 대가는 고독이었어. 처음엔 나도 어머니처럼 되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서툴렀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말았어. 노력하면 할수록 난 더욱더 불편해졌어.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는 경멸로 이어졌지. 경멸에서 분노로 옮아가는 건 아주 간단했어. 내 어머니의 사랑이 오로지 표면적인 것과-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돼야 하는가에-연관된 행위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난 내 방의 구석진 곳, 내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했어. 이런 감정을 피하기 위해 난 내 세계 속에 철저히 숨게 됐지. 밤이면 침대에서 천으로 불빛을 가리고는 새벽 늦게까지 모험 소설들을 읽곤 했어. 난 공상을 아주 좋아했단다. 한때는 여자 해적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어. 중국 바다에 살면서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 주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아주 특이한 도둑이 되는 거지. 도둑의 꿈을 버리고 박애주의적 환상에 빠져 의과 대학을 졸업한 뒤 아프리카로 흑인들을 치료하러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 열네 살 때 슐리만(1822--1890. 독일의 고고학자. 호머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했다)의 전기를 읽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난 절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 나의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열정은 고고학에 있었으니까. 내가 상상했던 수많은 행동들 중에 유일하게 고고학만이 진정한 내 일이라고 믿게 됐어. 그리고 사실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단 한번 아버지와 다퉜다. 인문계 고등 학교에 가기 위한 투쟁이었어.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으셨어. 공부를 한다는 건 아무 쓸모 없는 진이지만, 만약 정말 하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우는 게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지. 하지만 마침내 내가 이겼단다. 학교의 문을 넘는 순간 난 내가 이겼다고 확신했지. 속은 거였어. 고등 학교를 졸업할 무렵, 로마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일에 대해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래서 난 항상 하던 대로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복종하고 말았단다. 전투에서 이긴 것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믿어선 안 된다. 젊은이의 실수지. 그 일에 대해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계속 싸웠거나 고집을 부렸다면 아버지도 결국은 양보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거절은 그 당시 교육 체계의 일부분이었어. 간단히 말하자면 어른들은 자신의 일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을 믿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의사를 표현했을 때 그것들을 시험하려 애쓴단다. 내가 최초의 장벽 앞에서 타협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간절한 소망이 아닌 일시적인 바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해졌던 거야.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도 자식들이란 상류 사회의 의무에 불과했어. 우리들의 내면적인 성장을 간과했던 것처럼 가장 평범한 교육적 부분들을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다뤘지. 난 몸을 꼿꼿이 세우고 팔꿈치를 몸에 붙힌 채로 식탁에 앉아야 했어. 만약 그 동안 내가 속으로 죽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생각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에겐 그 사실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표면적인 것이 전부였고, 그 너머엔 불합리한 것들만이 존재할 뿐이었어. 그렇게 해서 난 기쁨과 절망, 사랑 받을 필요성을 가진 한 인간이 아니라 잘 훈련받은 원숭이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랐단다. 나의 내부에는 이러한 당혹감으로 인해 커다란 고독, 해가 갈수록 더 거대해지는 고독이 생겨났고, 공기로 가득찬 공간 같은 것이 생겨나서 난 그 속에서 잠수부처럼 느리고 불편하게 움직여야 했다. 고독은 또한 나 스스로 제기했지만 응답할 수 없었던 의문들에 의해 탄생되기도 했단다. 이미 네다섯 살 때부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문하곤 했지.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나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 다음에는 뭐가 존재하게 될까? 이것들은 내가 여기 있기 전에도 계속 존재했고 영원히 이곳에 존재하게 될까?' 나는 예민한 어린아이들이 복잡한 세상에 직면했을 때 던지는 모든 질문들을 내게 했던 거야. 난 어른들도 그런 의문을 품고 있으며 그들은 대답할 수 있으리라 믿었어. 하지만 어머니와 유모에게 두세 번 질문해 보고는 어른들은 대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의문들을 가져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단다. 그렇게 고독의 느낌이 커 갔고-잘 알겠지만-모든 수수께끼를 나 혼자만의 힘으로 풀어 나가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 모든 일들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됐다. 의문점들은 점점 더 크고 무시무시해져서, 그것을 생각만 해도 두려워졌다. 내가 죽음과 최초로 접한 것은 여섯 살 무렵이었어. 아버지는 아르고라는 사냥개를 갖고 계셨는데 유순하고 다정한 그 개는 내가 좋아하는 놀이 친구였지. 오후 내내 진흙과 풀로 밥을 만들어 주거나 억지로 미용실의 손님 노릇을 하게 만들면 아르고는 반항하지 않고 머리핀으로 귀를 장식한 채 정원을 돌아다녔지. 그런데 어느 날 아르고에게 새로운 머리 장식을 해주려다가 목 밑에 무언가가 부풀어오른 걸 발견했어. 이미 몇 주 전부터 아르고는 옛날처럼 달리거나 뛰어오르려 하질 않았고, 내가 간식을 먹으려고 모퉁이에 앉아 있어도 더 이상 내 앞에 앉아서 희망에 차 숨을 헐떡이지 않았어. 어느 날 아침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언제나 문에서 기다리던 아르고를 찾을 수 없었단다. 처음엔 아버지와 함께 어디 갔으려니 생각했지. 아버지는 서재에 조용히 앉아 계셨지만 아버지의 발치에 아르고가 없는 걸 발견한 나는 너무 불안해졌어. 밖에 나와 목이 터져라 아르고를 부르며 온 정원을 다 뒤졌고, 두세 번 집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어. 밤에 의무적으로 부모님들께 취침 입맞춤을 하는 시간이 돼서야 난 힘껏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여쭤 볼 수 있었어. "아르고는 어디 있어요?" "아르고?"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하셨어. "아르고는 가 버렸다" "왜요?" 내가 물었지. "네가 귀찮게 해서 짜증이 난 거야" 야비함? 천박함? 사디즘? 아버지의 대답 속엔 무엇이 들어 있던 것일까? 이 말을 듣던 바로 그 순간, 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난 계속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곤 했단다. 한 달인가 두 달 뒤 부모님들은 소아과 의사를 불러오셨어. "아이가 지쳐 있군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간유를 먹였어. 왜 잠을 자지 않는지, 왜 계속 다 망가진 아르고의 작은 공을 들고 돌아다니는지 물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내가 성년기로 접어들던 때를 생각나게 하는 일화야. 여섯 살에? 그래, 겨우 여섯 살에 말이다. 아르고는 내가 귀찮게 했기 때문에 떠나 버렸어. 그러니까 나의 행동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것들에 영향을 줬던 거니. 영향을 줘서 사라지고 파괴되도록 만들어 버렸던 거야. 그때부터 내 행동들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았고, 행동 그 자체가 세련되지도 않았어. 다른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차츰 위축됐고, 둔감하고 우유부단해졌지. 나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어. '아르고, 부탁이야, 돌아와 줘. 비록 잘못은 했지만 난 그 누구보다 널 사랑해' 아버지는 다른 강아지를 데려오셨지만 난 쳐다보지도 않았어. 내게 그 강아지는 완전한 이방인이었고 그렇게 남아야만 했어. 어린아이들의 교육 속엔 위선이 군림하고 있단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울타리 곁을 지나다가 죽은 울새를 발견했던 일이 생생하구나. 난 아무 두려움도 없이 그걸 손으로 집어 아버지에게 보여 드렸어. "내려놔라. 잠자고 있는 게 보이지 않니?" 죽음은 사랑처럼 마주해선 안 되는 주제였어. 아르고가 죽었다고 내게 말해 줬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나를 안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거야. "아르고가 병이 들어 너무 고통스러워 했기 때문에 내가 죽였단다. 지금 있는 곳에선 아주 행복할 거야" 분명 난 더 많이 울면서 절망했을 거야. 몇 달이고 아르고가 묻힌 곳에 가고, 흙을 사이에 둔 채로 오랫동안 아르고와 얘기했을 거야. 그러고 나선 점차로 그를 잊으며 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열정들을 갖게 되어 아르고는 추억으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됐을 거야. 하지만 그때 아르고는 내 속에 간직한 작은 죽음이 되었어. 그래서 여섯 살 때 어른이 됐다고 말한 거란다. 이미 기쁨 대신에 불안을, 호기심 대신에 무관심을 갖게 됐으니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괴물이었을까? 분명 아니야. 당시에 그들은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어. 노인이 된 후에야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 할머닌 어머니가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아들이 폐병으로 죽었다는구나.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뒤 곧바로 임신을 하셨고, 우리 어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로 태어난 불행뿐만 아니라 바로 그 아들이 죽은 날 태어나는 불행까지 안게 됐던 거지. 이런 슬픈 우연의 일치를 기억하기 위해 어머니는 갓난아기 때부터 상복 색깔의 옷을 입었단다. 요람 위에는 오빠의 커다란 유화 초상화가 걸려 있었지. 어머니가 눈을 뜰 때마다 그 초상화는 단지 교환된 존재, 보다 나은 어떤 이의 빛 바랜 복사물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를 어머니에게 환기시키는 데 사용됐던 거야. 알겠니? 그렇다면 그녀의 냉담함과 그릇된 선택들, 그리고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존재 방식에 대해 어떻게 추궁할 수 있겠니? 원숭이들조차도 진짜 어미가 아니라 무균 상태의 연구실에서 양육되면 얼마 후 슬픔에 빠져 죽게 된단다. 만약 우리가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할머니의 어머니, 혹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보게 된다면 무슨 일을 발견하게 될지 어찌 알겠니? 불행은 일반적으로 여성적인 선을 따른다. 어떤 기형적 유전자처럼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해진단다. 그러면서 약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더 강렬하고 뿌리를 뽑을 수 없도록 깊어지는 거야. 남자들에게 그것은 아주 다른 문제로 그들에겐 직업과 정치, 그리고 전쟁이 있단다. 그들의 에너지는 밖으로 나가거나 확장될 수 있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야. 몇 세대에 걸쳐 침실과 부엌, 그리고 욕실만을 드나들었을 뿐이야. 우리는 분노와 불만을 감추며 수천 수만 번의 걸음을 걸었을 거야. 여성주의자가 됐냐구? 아니란다. 걱정하지 마라. 다만 뒤에 숨겨진 것을 명확하게 보려고 애쓰는 것뿐이란다. 성모 마리아 승천 축일 날 밤, 바다에서 발사하는 불꽃놀이를 보러 곶에 나갔던 일 생각나니? 불꽃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불꽃들 중에는 폭발은 됐지만 하늘에 닿을 수 없었던 불꽃이 하나씩 있었지. 지금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을 생각할 때,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불꽃, 바로 그것이란다. 11월 21일 조금 전에 만초니(1785--1873. 이탈리아의 소설가)는 '약혼자들'을 쓰는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지신의 등장 인물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즐거워했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가 없구나. 비록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난 내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고, 어머니는 내 기억 속에 터키의 근위병처럼 꼼짝하니 않는 적의에 찬 존재로 남아 있단다. 오늘 아침엔 나와 어머니, 나와 기억들 사이에 약간의 틈새를 벌이기 위해 정원에 산책하러 나갔었단다. 밤 사이에 비가 내렸는데 서쪽 하늘은 환한 반면, 집 뒤쪽은 아직도 자주색 구름이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다시 소나기가 쏟아지기 전에 집 안으로 돌아왔어. 잠깐 동안 소나기가 더 쏟아졌고 집안은 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웠단다. 난 번개에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텔레비전과 냉장고의 코드를 빼고 손전등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매일매일 약속한 우리의 만남을 완성시키기 위해 부엌으로 왔단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걸 알았다. 공기 중에 너무 많은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내 생각은 불꽃이 튀듯 이리저리로 튀었단다. 그래서 일어서서 뚜렷한 목적도 없이 잠시 동안 겁 없는 벅을 데리고 집안을 한바퀴 돌았단다. 난 네 할아버지와 함께 쓰던 방에 갔다가 지금 내 방에-한때는 네 엄마가 쓰던 방이란다-들어갔고,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식당에 들렀다가 네 방을 둘러봤단다. 이곳 저곳을 보면서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감정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난 이 집을 좋아하지 않았어. 집을 고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네 할아버지 아우구스토였고, 그 역시 서둘러서 골랐던 집이란다. 머물 장소가 필요했던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집은 무척 크고 정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이 우리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시켜 줄 것처럼 보였나 봐. 철책을 열던 순간부터 내가 보기에 이 집은 그다지 볼품없는 양식으로, 아니 아주 보기 흉한 양식으로 지어진 것 같았어. 색깔이나 형식면에서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룬 부분은 단 한군데도 발견하지 못했단다. 한쪽 면만 보면 스위스의 산장 같았고, 다른 쪽에서 보면 중앙의 커다란 현창(뱃전에 낸 창문)과 계단식 지붕의 정면 때문에 운하를 마주한 네덜란드의 집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 혹시 네가 멀리서 본 적이 있다면 서로 다른 형태를 한 일곱 개의 굴뚝 때문에 동화 속에나 나오는 그런 집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20년대에 지어졌지만 그 시대의 집으로 분류할 만한 특징은 하나도 없었단다. 동일성이 없다는 점이 나를 불안하게 했고, 이 집이 내 집이며 우리 가족의 존재가 그 집의 벽돌과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단다. 네 방에 들어가 있던 바로 그 순간, 번개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내리쳤지. 손전등을 켜는 대신 침대에 누웠다. 밖에서는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며 바람이 휘몰아쳤고, 집 안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들-삐걱거리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는 쿵 소리, 서로 맞물린 나무들이 내는 소리-이 들려 왔단다. 잠시 동안 눈을 감자 집이 배처럼, 범선처럼 느껴졌단다. 폭풍우는 점심때나 돼서야 가라앉았고, 네 방 창문에서 호도나무의 커다란 가지 두 개가 부러진 것을 보았다. 이제 나는 다시 내 전투의 현장인 부엌에 와 있다. 난 식사를 하고 더러워진 접시 몇 개를 씻었어. 벅은 오늘 아침의 흥분에 지쳐서 내 발치에 잠들어 있단다. 세월이 흐를수록 폭풍우들은 벅을 더욱더 공포스러운 상황 속으로 내던져 버렸고, 그 상태에서 그는 겨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네가 유치원에 다닐 때 내가 샀던 책 속에서, 우리는 윤회에 의해 우리의 가족을 선택하게 된다는 글을 발견했다. 지금의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우리에게 더 많은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진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그 어머니를 부모로 갖게 된다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면, 그때 나는 자문했단다. 그 많은 세대 동안 사람들은 왜 정지해 있는 거지? 왜 전진하는 대신 항상 후퇴만 하는 거지? 최근, 한 신문의 과학 부록에서 어쩌면 진화란 우리가 항상 생각해 온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글을 읽었다. 최근의 이론들에 따르면 변화들은 점진적인 방법으로 일어나지 않는단다. 긴 다리, 다른 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부리는 일 밀리미터씩, 세대를 거치면서 천천히 형성된 것이 아니란다.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났다는 거야. 어미에게서 새끼가 태어날 때 모든 것은 달라진다는 거야. 그것을 입증해 주는 걸로는 골격, 턱, 발, 다양한 이빨을 지닌 두개골 같은 유물들이 있다. 수많은 종류의 유물들 중에서 중간 단계의 형태는 단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이랬는데 손자는 저렇고, 한 세대와 또 다른 세대 사이에서 도약이 일어난 거야. 만약 그렇다면 인간들의 내면적인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용한 변화들은 천천히 축적되다가 불시에 폭발해 버린다. 갑자기 한 사람이 원을 파괴하고 다른 존재가 되기로 결정한다. 운명, 유전, 교육. 하나가 시작되고 다른 하나가 끝나는 곳은 어디일까? 만약 네가 잠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이 모든 것들 속에 포함된 커다란 신비 때문에 금세 당황하게 됐을 거야. 내가 결혼하기 조금 전에 고모는-정신의 친구였던 그 고모 말이다-점성술사 친구에게 나의 별점을 쳐달랬다는구나. 어느 날 고모는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서 내게 말했어. "이것 보렴, 이게 네 미래야" 그 종이 위에는 기하학적인 도형과 하나의 별표를 다른 것과 연결시키는 선들이 많은 각을 이루고 있었어. 그때 내 머리를 스쳤던 생각을 지금도 기억한단다. 그 안에는 조화나 연속성은 없었지만 비약과 추락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의 갑작스런 선회가 암시돼 있었지. 점성가는 뒤에다 이렇게 써 놓았어. 힘겨운 인생길, 그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온 힘을 기울여 당신 자신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난 아주 강한 충격을 받았단다. 그 순간까지 내 인생은 매우 평범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어려움들은 심연이라기보다 젊은 날의 단순한 잔물결처럼 보였어. 그 후 어른이 되고 아내와 어머니가 되고 과부가 되고 할머니가 됐을 때에도, 난 단 한번도 이런 표면적인 평범성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어. 만약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네 엄마의 비극적인 죽음이 유일하게 특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별 그림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견고하고 직선적인 표면 뒤에-부르주아 여인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뒤에-사실은 작은 비탈길, 고통, 돌연한 암흑, 깊은 파국으로 이루어진 계속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종종 절망이 우세하게 될 때면 내가 똑같은 장소에 멈춰 서서 발을 구르며 행진하는 군인들 같다는 생각을 했어. 시간이 변했고, 사람들이 변했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변했는데 난 계속 정지해 있다는 느낌이었지. 이런 단조로운 행진에 네 엄마의 죽음은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이미 내 자신에 대해 가졌던 겸허한 생각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어. '이때까지 한 걸음 혹은 두 걸음을 걸어왔다면, 이 순간 난 갑자기 후퇴해서 내 행진 중 가장 낮은 지점에 도착한 거야' 난 이렇게 혼자말을 했단다. 그때 난 더 이상 잘 해낼 수 없을까 봐, 내가 그때까지 이해하던 사물의 아주 작은 부분들이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지워질 것 같아 두려웠단다. 다행스럽게도 난 그런 우울한 상황에 나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을 수 있었어. 자신의 필요성 때문에 삶은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삶이란 바로 너였어. 작고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무방비 상태인 네가 내게로 왔다. 넌 갑작스런 웃음과 눈물로 조용하고 슬픈 집을 뒤덮었어. 테이블과 소파 사이에서 진동하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보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예상치 못했던 너그러운 우연은 다시 내게 가능성을 줬다. 우연, 한번은 모르푸르고 부인의 남편이 헤브라이어에는 그런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줬단다. 인과 관계와 관련된 그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아랍어로 위험이라는 말을 사용해야만 했다. 재미있잖니, 네 생각은 어떠니? 한편으로는 마음 든든하기도 하지. 신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우연을 위한 자리는커녕 그것을 표현하는 하찮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정리되고 하늘에 의해 통제되며, 네게 벌어지는 일들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아무런 동요도 없이 세상에 대한 이런 시각을 포용한 사람들과 그들의 경쾌한 선택에 대해 난 항상 엄청난 질투를 맛보았다. 나로 말하자면 온갖 열의를 기울여도 이틀 이상 그런 시각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공포 앞에서, 부정함 앞에서 나는 항상 후퇴하기만 했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크나큰 반항심만을 키워 왔단다. 이제 난 정말로 대담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그건 바로 네게 입맞춤을 보내는 거란다. 그런 행위들을 마치 테니스 공처럼 너의 갑옷에서 다시 튀어 오르겠지. 하지만 나의 입맞춤을 네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 순간에도 이미 투명하고 가벼운 입맞춤은 대양 위를 날아가고 있으니까. 넌 어쩔 수 없을 거야. 피곤하구나.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을 아주 불안스럽게 다시 읽었단다. 네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건들이 내 머리 속에 몰려들고 밖으로 나오기 위해 마치 바겐 세일을 하는 상점 앞의 부인들처럼 서로를 밀어 대고 있단다. 그 사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난 하나의 방법이나 논리적 의미로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내는 실을 찾을 수가 없단다. 글쎄, 때때로 내가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난 책을 많이 읽었고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언제나 옷감이나 오븐, 또 감정들에 관한 생각을 동시에 한단다. 만약 식물학자가 초원을 걷는다면 정확한 질서를 가지고 꽃들을 채집할 것이며, 자신이 관심 있는 것과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정하고 제외시키며 관계들을 설정한다. 하지만 만약 초원을 거인이 걷고 있다면 꽃들은 아주 다른 방법으로 꺾일 것이다. 하나는 노란 색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파란색이기 때문에, 세 번째 것은 향기가 나기 때문에, 네 번째 것은 오솔길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식과 나의 관계가 바로 그랬다. 네 엄마는 항상 나의 그런 점을 비난했지. 우리가 말다툼을 하게 되면 난 대개 금방 지고 말았어. "엄만 논리적이기 못해요" 네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단다. "다른 부르주아처럼 자신이 생각한 걸 확고하게 방어할 줄 몰라요" 네가 반항적이고 이름 없는 불안에 침투 당한 것같이 네 엄마는 이데올로기에 침투 당했단다. 내가 중대한 사건들보다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그 애가 날 비난하는 이유였단다. 그 애는 나를 반동주의자에다 부르조아적 환상으로 병든 사람이라 불렀다. 그녀의 시각에 따르면 난 부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치나 호화로움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악에 기울어졌다는 거야. 몇 번인가 그런 식으로 나를 바라볼 때부터 난 만약 인민 재판이 열리고 네 엄마가 우두머리가 된다면, 그 애는 내게 사형을 선고하리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교외의 오막살이나 아파트에 살지 않고 정원이 딸린 대저택에 산다는 게 나의 잘못이었어. 거기다 유산으로 우리 둘 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덧붙여졌지. 난 내 부모들이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 애가 말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니 적어도 그래 보려고 애는 썼다. 난 그 애를 비웃지도, 그 어떤 것이든 전체주의적인 사상이란 얼마나 이질적인 것인지 이해시키려 들지도 않았어. 하니만 그 애 역시 자기가 한 말들을 내가 불신하는 걸 틀림없이 감지했겠지. 이라리아는 파도바에서 대학을 다녔단다. 트리에스테에도 대학이 있었지만 그 애는 내 곁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을 아주 견딜 수 없어 했다. 그 애를 만나러 가겠다고 할 때마다 그 애는 적의가 담긴 침묵으로 응답하곤 했다. 그 애의 학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고, 난 그 애가 누구랑 함께 사는지도 몰랐단다. 내게 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그 애가 나약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난 걱정이 됐단다. 당시는 프랑스의 오월(1968년 일어난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을 총칭하는 것)로 대학들은 파업을 했고 학생 운동이 일어났다. 전화로 정말 가끔씩 이라리아의 보고를 들으면서 이제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 그 애는 항상 무언가에 흥분해 있었는데, 이 무언가는 계속해서 바뀌었단다.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순종하면서 그 애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아주 힘들었어. 모든 것은 격동적이고 불분명했으며 너무 많은 사상과 절대적인 개념들이 존재했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대신 이라리아는 슬로건들을 차례로 나열하곤 했지. 난 그 애의 정신적인 균형 때문에 두려웠다. 동아리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신념과 절대적인 도그마를 함께 나눈다는 느낌은 그 애의 거만한 기질을 걱정스러울 정도로 강화시켜 나갔다. 대학에 다닌 지 육 년째 되던 해였다. 여느 때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걱정이 된 나는 기차를 타고 그 애를 찾아갔었다. 그 애가 파도바로 간 후 난 단 한번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그 앤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사 대신 날 공격했어. "누가 당신을 초대했죠?" 그리고 대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지. "연락을 하셨어야죠. 난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에요. 오늘 아침에 중요한 시험이 있거든요" 그 앤 그때까지 잠옷을 입고 있었어. 거짓말인 게 분명하지. 난 모르는 척하면서 대답했단다. "걱정 말아라. 널 기다렸다가 함께 결과를 축하하면 되겠구나" 그 애는 정말 집에서 나가 버렸는데 어찌나 서둘렀던지 책상 위에 책들도 다 놔두고 갔단다. 집에 혼자 남은 난 다른 엄마들이 할 만한 행동을 했지. 서랍들에 호기심이 생겨서 난 어떤 흔적-그 애가 어떤 방향으로 인생의 행로를 잡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 애를 감시하고 검사하거나 힐난할 의도는 전혀 없었어. 이런 일들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단다. 내 속에는 커다란 불안만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엇인가 접촉점이 필요했던 거야. 선전용 삐라와 혁명 선전 팜플렛을 제외하면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어. 편지 한 장, 일기 한 쪽 없었지. 침실 벽 위에는 '가족은 공허하고 가스실처럼 자극적이다'라고 쓰인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지. 이것이 그 애의 생각에 대한 징후였어. 이라리아는 이른 오후에 다시 들어왔는데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숨이 찬 듯했어. "시험은 어떻게 됐니?" 난 가능한 한 애정을 담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지. 그 애는 어깨를 으쓱했어. "다른 거랑 똑같죠" 그리곤 잠시 후 덧붙였어. "시험 때문에 감시하러 오신 거예요?" 난 충돌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침착하고 자유로운 어조로, 난 한 가지 바람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좀 나누는 거라고 그 애에게 대답했다. "얘기를 해요?" 그 애는 잔인하게 되물었어. "무엇에 대해서요? 엄마의 신비주의적인 열정에 대해서요?" "너에 대해서야, 이라리아" 그 애의 눈을 마주보려 애쓰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 애는 창가로 가서 다소 생기가 없는 버드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봤어. "할 말은 아무것도 없어요. 적어도 엄마에겐 없어요. 난 내면적이며 쁘띠 부르주아적인 잡담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 나선 버드나무에서 시선을 돌려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어. "늦었어요, 아주 중요한 회합이 있어요. 엄만 여기서 나가셔야 해요" 난 그 애의 말을 듣지 않았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나가지 않고 그 애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았지. "무슨 일이냐?" 그 애에게 물었단다.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지?" 난 그 애의 호흡이 아주 가빠지는 걸 느꼈어. "네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걸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난 덧붙여 말했어. "비록 네가 날 엄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난 널 딸로서 포기한 게 아니야. 널 돕고 싶구나. 네가 날 만나러 오지 않으면 난 널 도울 수가 없어" 이때 그 애의 턱이 어린 시절, 울음을 터뜨릴 때면 그랬던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어. 내 손에서 자기 손을 잡아 빼더니 갑자기 구석으로 몸을 돌렸어. 말라서 작아져 버린 그 애의 몸이 깊은 흐느낌으로 흔들렸단다. 난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는데 그 애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머리는 펄펄 끓고 있었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나를 껴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어. "엄마, 말할께요. 난, 난..."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내버려두렴" 난 그 애의 귀에다 속삭였단다. "그럴 수 없어요" 그 애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어. 수화기를 들자 그 애의 목소리는 다시 금속성의 낯선 것으로 변했지. 짧은 대화를 통해 난 틀림없이 무슨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했단다. 사실 이라리아는 곧 이렇게 말했어. "미안해요, 지금 바로 여기서 떠나셔야 해요" 우리는 함께 나왔고 문가에서 그 애가 재빨리 그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포옹했단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요" 나를 껴안으면서 그 애가 속삭였어. 난 조금 떨어진 기둥에 묶어 놓았던 자전거까지 그 애를 바래다 줬어. 자전거에 올라탄 그 애는 내 목걸이 밑으로 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말했어. "진주군요. 이게 엄마의 통행증이죠, 네? 엄만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어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내 머리 속에 가장 자주 떠오르는 사건이란다. 난 종종 이 일을 생각해. 우리가 함께 살며 겪었던 수많은 일들 중 어떻게 언제나 이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 있을까? 종종 이렇게 혼잣말을 한단다. 바로 오늘도 끝없이 내게 자문하는 동안 속담 하나가 생각났단다. 혀는 아픈 이를 건드린다. 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겠지? 관련 있지, 아주 깊은 관련이 있구말구. 이 사건은 내가 이라리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자꾸만 되살아나는 거란다. 네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나를 껴안았지. 그 순간 그 애의 갑옷에 구멍이 열리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이 벌어졌던 거야. 그때 난 벽에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넓혀 가는 못처럼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어. 못들은 조금씩 공간을 더 얻으면서 차츰차츰 자기의 영역을 넓히는 거란다. 난 그 애의 인생에서 구두점으로 변할 수 있었어. 그러기 위해서 난 확고 부동했어야 해. 그 애가 내게 '지금 여기서 떠나야 해요'라고 말했을 때 난 머물렀어야 해. 근처 여관에 방을 잡고 매일 그 애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어야 해. 구 구멍이 통로로 변할 때까지 버텼어야 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그걸 느꼈단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 비겁함과 게으름, 그리고 수치심이라는 거짓된 느낌 때문에 그 애의 명령에 복종하고 말았던 거지. 난 내 어머니의 철면피 같은 태도를 몹시 싫어했고, 우리 어머니와는 다르게 그 애의 자유를 존중해 주고 싶었단다. 자유라는 가면 뒤에는 종종 무관심과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그 사이에는 아주 가는 경계선이 있어서 그것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는 한순간의 문제이고, 가면을 쓰느냐 않느냐 하는 결정의 문제란다. 그것의 중용성에 대해서 넌 그 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깨닫게 될 거야. 그때서야 넌 후회 할 것이고 그 순간엔 자유 대신 침입을 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거야. 너는 존재하며 의식을 가졌으므로, 이 의식에서부터 행동하기 위한 의무가 탄생돼야 하는 거란다. 사랑은 게으름뱅이에게 바쳐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완전하게 존재하기 위해선 때때로 정확하고 강한 행동을 필요로 하는 거야, 알겠니? 나는 자유라는 고귀한 옷을 입고 비겁함과 게으름의 가면을 썼었다. 운명에 대한 생각은 나이와 더불어 오는 거야. 일반적으로 네 나이 때에는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지.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자기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한단다. 넌 네 자신이 돌을 하나하나 쌓아서, 네가 가야 할 길을 만드는 일꾼 같은 생각이 들 거야. 훨씬 앞으로 나간 뒤에야 길이란 이미 만들어져 있고 다른 누군가가 이미 흔적을 남겼으며, 네게 남은 일이라고는 앞으로 나가는 일뿐임을 깨닫게 될 거야. 이런 발견은 대개 사십 세 가량이 돼서야 가능한데 그 때쯤이면 세상 일들이 오로지 네게 달려 있는 것만이 아님을 직감하기 시작할 거야. 그 시기는 위험한 순간으로, 운명론에 빠지기가 아주 쉽단다. 완전한 실체인 운명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완전한 네 현실 속에서 몇 해가 더 흘러가게 내버려둬야만 한단다. 육십이 돼 가면서, 네 뒤에 있는 길들이 네 앞에 있는 길들보다 더 길어질 때 넌 전에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네가 지나온 길은 직선이 아닌 양갈래 길로 가득 차 있었고, 매 걸음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있었지. 이쪽에서는 오솔길이 갈라지고, 저쪽에서는 숲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풀로 뒤덮인 작은 길이 갈라졌어. 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 갈라진 거야. 네가 지나쳤던 그 길이 널 어디로 안내할지, 더 좋거나 혹은 더 나쁜 곳으로 안내할지 넌 모른단다. 그건 모르지만 애석하긴 마찬가질 거야. 넌 어떤 일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앞으로 나가는 대신 되돌아와 있기도 할 가야. 거위 놀이, 너도 생각나니? 삶은 대체로 그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단다. 양갈래로 난 네 길을 따라가면서 또 다른 삶을 만나게 될 거야. 그것들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끝까지 그 길을 따라가든 잃어버리든 모든 것을 오로지 단 한순간의 네 선택에 달린 거란다. 비록 그런 사실을 모르더라도 직선으로 나가거나 이탈하는 도중에 종종 너의 존재, 그리고 네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는 우롱 당하게 된다. 11월22일 지난밤엔 날씨가 변했단다. 동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불과 몇 시간 만에 구름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글을 쓰기 전에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었다. 북동풍이 아직도 강하게 불어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벅은 행복해 하며 장난을 치고 싶어했지. 입에 솔방울을 물고 내 곁에서 총총거렸단다. 나는 별힘 안 들이고 딱 한번 솔방울을 던져 줄 수 있었다. 솔방울은 아주 잠깐 동안 날아갔는데 벅은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워 했단다. 네 장미의 건강 상태를 살펴본 뒤, 내가 좋아하는 호도나무와 벚나무를 보러 갔단다. 내가 가만히 서서 나무 몸통을 쓰다듬었을 때 네가 날 비웃었던 것 생각나니? "뭐 하시는 거예요?" 네가 말했지. "이건 말 잔등이 아니잖아요?" 나무를 만지는 것은 살아 있는 그 어떤 동물을 만지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아니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넌 어깨를 으쓱하고 화가 나서 가 버렸지. 무엇 때문에 더 낫냐고? 예를 들면 벅의 머리를 긁어 줄 때 난 따뜻하고 감동적인 그 무엇을 느끼게 되지만 그 속에는 항상 희미한 불안감이 들어 있단다. 그건 간식 시간이 너무 빨리 오거나 그때를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고 너에 대한 향수, 혹은 오로지 나쁜 꿈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단다. 평정과 행복에 도달하는 일이 절대 개 혼자에게만 달린 것은 아니지. 하지만 나무는 달라. 싹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똑같은 자리에 서 있어. 뿌리로 인해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땅의 중심에 가까이 갈 수 있고 이파리들 때문에 하늘과 가장 가까와질 수 있지. 수액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단다. 그날의 빛에 따라 뻗어 나가거나 숨어 들기도 하지. 비를 기다리고 태양을 기다리며, 어떤 계절과 또 다른 계절들을 기다리고 죽음을 기다린다. 나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 그 무엇도 그의 의지에 따르는 것은 없단다. 존재한다는 것, 그거면 족한 거야. 나무를 쓰다듬는 일이 왜 멋진지 이해하겠니? 견실함과 그렇게도 길고 평화로운, 깊은 호흡 때문이란다. 성서의 한 구절에는 하느님은 넓은 뿌리를 갖고 계시다고 적혀 있단다. 비록 다소 불경한 면이 있긴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의 외형을 상상할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떡갈나무의 모습이 떠오른단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너무 커서 몸통을 껴안으려면 어른 두 명이 필요할 정도였다. 네 살인가 다섯 살 때부터 난 떡갈나무를 보러 가길 좋아했단다. 그곳에 앉으면 풀들의 물기와, 머리와 얼굴에 닿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지. 숨을 들이쉬면서 그곳이 사물들의 가장 뛰어난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며, 그 질서 속에서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난 비록 음악을 몰랐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내게 노래를 불러 줬단다. 어떤 멜로디였는지 너에게 얘기할 수도, 정확한 후렴구나 곡조를 기억할 수도 없단다. 오히려 내 마음과 인접한 구역에서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가 규칙적이고 강한 리듬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은 몸과 정신 속으로 완전히 퍼져 커다란 빛-빛과 음악이라는 두 개의 성질을 가진-을 만드는 것 같았어. 난 존재한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고, 그런 행복 이외에 내겐 아무것도 없었단다. 네 생각에는 어린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이 이상하거나 과장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거야. 불행히도 우리는 유년기를 풍요로움이 아니라 맹목과 결핍의 시기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하지만 사실이 어떤지 이해하기 위해선 신생아의 눈을 주의 깊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단다. 갓난아기의 눈을 본 적 있니? 기회가 오면 한번 들여다보렴. 머리 속에서 선입견을 제거하고 눈을 쳐다보려무나. 아기의 시선이 어떨까? 공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을까? 아니면 아주 나이가 많고 먼 옛날에 살았던 현명한 사람의 시선일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내부에 아주 큰 호흡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지. 네 살, 다섯 살 때 나는 아직 종교나 하느님, 뭐 그런 것들을 얘기함으로써 인간들이 만들어 낸 혼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단다. 알고 있니, 학교에서의 종교 수업에라도 널 참석하게 해야 할지에 대해 난 아주 오랫동안 망설였단다. 한편으로는 교리와 나의 충돌이 얼마나 파국적이었는지를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에서는 정신 이외에 영혼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 문제는 네가 처음 가졌던 햄스터(비단털쥐)가 죽은 날 자동적으로 해결됐지. 너는 그걸 손에 쥐고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 "이제 햄스터는 어디 있어요?" 네가 물었지. 난 그 질문을 다시 네게 물어 봄으로써 대답했어. "네 생각엔 어디 있을 것 같니?" 네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니? "햄스터는 두 곳에 있어요. 여기에 조금 있다가 구름 속에 조금 있을 거예요" 그날 오후에 우린 햄스터를 묻고 작은 장례식을 치뤄 주었다. 넌 작은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렸지. "행복해라, 토니.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거야" 혹시 네게 얘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난 수녀들이 운영하는 성심 학교에서 국민 학교를 마쳤단다. 확신하건데 이 일은 이미 흔들리던 내 정신에 커다란 해를 끼쳤다. 수녀님들은 일 년 내내 학교 입구에 커다란 마구간을 만들어 놓았어. 그곳에는 오두막이 있었고 예수님이 아버지와 어머니, 황소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있었어. 주위는 종이로 만든 산과 벼랑들뿐이었고, 그곳엔 어린 양들이 모여 있었지. 양들은 모두 학생들이었는데 그 날의 태도에 따라 예수님의 오두막에 가까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어. 매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그 앞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우린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위치를 살펴봐야 했단다. 오두막과 반대되는 지점에는 무척 가파른 절벽이 있었는데, 품행이 아주 나쁜 학생들은 두 다리가 공중에 매달린 채 그곳에 쳐박혀 있었어. 여섯 살부터 열 살 까지 난 나의 어린 양이 만들어 내는 발걸음에 제약을 받으며 살았단다. 이런 말은 별 쓸모가 없겠지만 내 어린 양은 그 벼랑 끝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단다. 난 진심으로 내가 배운 계율들을 존중하려고 애썼단다. 어린아이들이 가진 자연스러운 순응주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어. 난 정말 착한 애가 돼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허영을 부리지도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난 항상 벼랑에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어.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원장 수녀님께 자리가 바뀐 일에 대해 물으면 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넌 어제 머리에 너무 큰 리본을 묶었다... 학교에서 돌아갈 때 큰소리로 노래하는 걸 네 친구가 들었다더구나... 식탁에 앉기 전에 넌 손도 씻지 않았어" 알겠니? 또다시 나의 잘못은 외면적인 것들이었고, 이머니가 나를 비난했던 것과 일치했지. 교육받은 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순응주의였어. 어느 날 절벽의 가장 끝에 도착하게 됐을 때 난 흐느껴 울면서 말했단다. "하지만 난 예수님을 사랑한다구요" 그러자 그 근처에 있던 수녀님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니? "이런, 넌 무질서한 데다가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만약 네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좀더 노트 정리를 잘하도록 해라" 그리고는 내 어린 양을 둘째 손가락으로 밀어서 절벽으로 떨어뜨려 버렸단다. 그 후 난 거의 두 달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등뒤에 있는 매트리스가 불길로 변했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들이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며 비웃었단다. '기다려, 우리가 널 데리러 갈게' 물론 난 이런 모든 일에 대해 우리 부모님들께 말씀드리지 않았단다. 얼굴이 누렇게 뜬 나를 보면서 우리 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말씀하셨지. "어린애가 기운이 다 빠져 버렸구나" 그러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기력을 회복시킨다는 시럽을 수저로 계속 떠 넣었어. 모르긴 해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인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로 인해 영원히 영혼의 문제들로부터 멀어지게 됐을 거야. 어떤 사람이 근사했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애석해 할 때마다 난 놀라곤 한단다. 내게 그 시기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기간 중의 하나, 아니 그때를 지배한 것이 무기력이었다는 점에서는 가장 끔찍한 시기였기 때문이야. 국민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난 자신이 내부에서 느끼는 것에 충실하려는 의지와 비록 거짓이라고 직감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에 충실하려는 욕망 사이에서 격렬하게 싸웠단다. 이상한 일이지만 지금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내 성장의 가장 큰 위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춘기가 아니라 바로 그 유년기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열두 살, 열세 살, 열네 살에 나는 이미 나의 우울한 안정성을 소유하게 된 거지. 중대한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서서히 멀어져 가면서 새롭고 무해한 환상에 자리를 넘겨줬단다. 일요일이면 나는 미사를 보고 어머니와 함께 성당의 축제에 참석했지. 성체를 받기 위해 뉘우치는 듯이 무릎을 꿇었지만 그 동안 전혀 다른 생각을 했어. 그건 조용한 생활을 위해 내가 연출해야 되는 수많은 작은 공연들 중의 하나였다. 이 때문에 너를 종교 교육 시간에 등록시키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때문에 네가 이런 문제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우리들 각자의 내부에 있는 신비함을 존중하면서 솔직하고 명쾌한 방법으로 네게 대답해 주려고 애썼어. 그리고 네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자 난 분별력 있게 그에 관한 얘기를 그만뒀단다. 이런 문제들은 밀어붙일 수도, 끌어당길 수도 없는 거란다. 그렇지 않으면 행상인들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지. 행상인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그들이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단다. 나는 너와 함께 이미 존재했던 것을 지워 버리지 않으려 애썼을 뿐이야.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행로가 그렇게 간단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비록 네 살 때 이미 사물들을 휘감는 호흡을 직감하긴 했지만 일곱 살에는 그것을 다 잊었으니까. 사실 어린 시절에 난 계속 음악을 느꼈고 그건 심층에 숨어 있긴 했지만 존재했었다. 그것은 산 속 좁은 계곡에 있는 급류처럼 보였고, 만약 내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면 절벽 끝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 후 급류는 낡은 라디오, 막 망가지려는 라디오로 바뀌어 버렸지. 어떤 때는 멜로디가 너무 강하게 터져 나오다가 그 다음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나의 버릇을 나무랐다. 한번은 식사 도중에 직접 뺨을 맞기도 했는데-나로서는 최초의 따귀였어-내 입에서 '트랄랄라'라는 소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어. "식탁에서는 노래부르지 마" 아버지가 야단치셨지. "가수가 될 게 아니면 노래부르지 마" 어머니가 뒤이어 말씀하셨지.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지. "하지만 내 속에서 노래가 나와요" 구체적인 물질의 세계에서 분리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 부모님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어. 그렇다면 나의 음악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성인의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의 운명은 보통보다 더 잔인했단다. 천천히 음악이 사라져 갔고, 그와 더불어 유년기를 함께 했던 깊은 기쁨의 의미도 사라졌지. 기쁨이란 더 이상 애석해 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었어. 알겠니, 그 당시 난 분명 행복했었지만 그 행복은 전등이 태양 아래서 켜져 있듯이 기쁨 속에 있는 거였지. 행복엔 항상 대상이 있어.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해대 행복해 하지. 그것은 감정의 존재가 외부에 의존하는 감정이야. 하지만 기쁨엔 대상이 없단다. 기쁨은 아무런 표면적인 이유 없이 너를 사로잡는데, 기쁨이라는 존재 자체는 태양과 유사해서 자기 심장의 연료 덕택에 타오를 수 있어. 해가 가면서 나는 전혀 다른 사람, 우리 부모님이 바라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나의 가장 깊은 부분을 포기했어. 나는 인격을 얻기 위해 나의 개성을 버렸지. 인격이란-너도 겪어 보면 알겠지만-이 세상에서는 개성보다 훨씬 존중을 받는단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상반되는 인격과 개성은 함께 나가기보다는 대체로 인격이 단호하게 개성을 배척한단다. 우리 어머니를 예로 들자면 어머니는 아주 철저한 인격을 소유했었고,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어. 그 확신에 금이 가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 난 정반대였어. 일상 생활에서 내게 변화를 주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 모든 선택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머뭇거렸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이 결국은 참지 못해 날 위한 결정을 해줄 정도였어. 인격을 가장하기 위해 개성을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엇인가가 계속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내 자신으로 계속 존재하길 바라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사랑 받기 위해 세상의 요구에 나를 맞춰 가고 싶어했지. 얼마나 힘겨운 투쟁이었는지! 난 어머니와 그녀의 표면적이고 공허한 행동 방식을 증오했단다. 어머니를 증오했었지만 천천히, 그리고 나의 의지와는 반대로 바로 어머니처럼 돼가고 있었어. 이것은 크고 무시무시한 교육의 대가이고 그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아이도 사랑 없이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전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것이 옳지 않더라도 어린아이들은 요구된 모델에 자신을 맞춰 나가는 거지. 이러한 메커니즘의 사랑은 성년이 돼도 사라지지 않는단다. 네가 엄마가 되자마자-눈치채지 못했거나 원치 않았더라도-그 사랑은 다시 나타나 새롭게 네 행동의 틀을 형성하게 될 거야. 그래서 네 엄마가 태어났을 때 나는 다른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난 그렇게 했는데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도 완전히 표면적이고 거짓된 것이었어. 난 이전에 내게 부과됐던 것과 같은 모델을 네 엄마에게 부과하지 않기 위해 그 애가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내버려뒀고, 그 애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길 원했으며 이런 말만 되풀이했단다. '우린 각기 다른 두 사람이니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 줘야만 한다' 이런 모든 것들 속에 오류, 그것도 아주 심각한 오류가 들어 있었어. 그게 뭔지 알겠니? 나의 주체성 결핍이 문제였어. 비록 성인이 됐지만 나는 어떤 것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 난 나 자신을 사랑할 수도, 나를 존중할 수도 없었다.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섬세하고 기회주의적인 감수성 때문에 네 엄마는 이런 점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지. 그 애는 내가 약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압도당하기 쉽다는 걸 느꼈지. 우리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나무와 그 나무의 곁에 기생하는 식물이란다. 나무는 너무 늙고 키가 크며 오래 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고 아주 뿌리가 깊지. 식물은 나무의 발치에서 단 한 계절 동안만 자라는데 뿌리보다는 잔털과 꽃실을 더 많이 갖고 있다. 모든 꽃실 밑에는 작은 흡관들이 있는데, 그 식물이 나무 몸통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건 바로 이 흡관 덕택이란다. 한두 해가 흐르면 벌써 그 식물은 나뭇잎들의 꼭대기까지 이를 수 있다. 자기 주인의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는 동안에도 그것은 그대로 푸른색으로 남아 있지. 계속 뻗어 나가서 나무를 완전히 뒤덮어 태양과 물은 오로지 식물에게만 주어지게 되는 거야. 이 정도가 되면 나무는 말라서 죽어 가고, 덩굴식물을 위한 보잘것없는 버팀대로 몸통만이 실물 아래 남아 있게 된단다. 이라리아가 비극적으로 죽고 난 뒤, 난 여러 해 동안 그 애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어떤 때는 그 애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잔인하다고 나 스스로를 비난한 적도 있었다. 너를 돌봐야 했지만 그것이 이라리아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진정한 동기라고는 믿지 않는다. 혹시 이유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겠지. 그 애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엔 패배감이 너무 강했단다. 최근 들어 네가 떠나려 하고, 너의 길을 찾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네 엄마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내 머리 속을 차지하고 나를 괴롭혔단다.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그 애의 행동에 반대하고, '넌 완전히 잘못하는 거야. 넌 지금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말해 줄 용기가 없었다는 사실이야. 그애의 말 속에는 너무나 위험한 슬로건들, 그 애의 행복을 위해 즉각 잘라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도 난 끼어 들지 않았지. 이것은 게으름과는 관련이 없었다. 본질적인 것들을 서로 이야기해야 했어. 나를 움직인 것은-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움직이지 않도록 한 것은-어머니에게 배운 태도였어. 사랑 받기 위해서는 충돌을 피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단다. 이라리아는 고압적이고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난 자연히 노골적인 충돌을 염려했고, 내게 반항할까 봐 두려웠단다. 내가 진정으로 그 애를 사랑했다면, 분노하고 그 애를 엄격하게 다뤘어야 해. 그 애에게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구분해 줬어야만 한다. 어쩌면 그 애가 바랐던 것, 그리고 필요로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는지도 몰라. 기본적인 진실들이 이해하기에 가장 힘들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내가 만약 사랑의 첫 번째 성질은 힘이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전혀 다른 일들이 생겼을 거야. 그렇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깊이 알고 자신에 대한 모든 것, 감춰진 것들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을 모두 알 필요가 있지. 소란스러운 삶이 너를 앞으로 끌어당길 때 그런 과정은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처음부터 그런 과정을 완성할 수 있는 거란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나나 네 엄마 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뭇가지나 플라스틱 병과 같은 운명만이 남게 되지. 누군가가-혹은 바람이-너를 강물 속으로 집어 던지면 넌 널 이루는 육체 덕택에 깊이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뜰 수 있다. 이것이 벌써 네게는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래서 넌 금방 헤엄치기 시작할 거야. 넌 강물이 실어다 주는 방향으로 재빨리 미끄러져 갈 것이고 가끔씩 뿌리나 돌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정지하게 될 거야. 거기서 잠시 물과 부딪쳤다가 물이 불어 올라 너를 그곳에서 자유롭게 해주면 다시 앞으로 나가는 거지. 물의 흐름이 고요할 땐 물 위에 있고, 흐름이 빨라지면 물에 잠기는 거야. 넌 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에게 묻지도 않아. 아주 고요한 곳에서는 풍경과 강 둑들과 숲들을 바라볼 수 있다. 좀더 자세히 형상과 색깔들을 볼 수 있고, 넌 다른 것을 보기 위해 더욱 더 빨리 가지.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수 킬로를 지나면 둑이 낮아지고 강은 넓어지며 여전히 강의 경계선이 있긴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넌 그때 자문할 거고 바로 그 순간에 바다가 네 앞에 펼쳐진다. 내 인생은 대부분 그랬단다. 난 헤엄쳤다기보다는 발버둥쳤지. 우아함도 기쁨도 없는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몸짓으로 난 겨우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어. 내가 왜 네게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이렇게 길고 지나치게 내면적인 고백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쯤에서 너는 어쩌면 싫증이 났을 수도, 한숨을 쉬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도 있어. 어느 곳에 가고 싶어하시는 거지? 날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거야? 넌 스스로에게 묻겠지. 그리고 사실 얘기가 빗나가서 종종 그리고 기꺼이 큰 길이 아닌 보잘것없는 오솔길로 접어들기도 했었다. 내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인상을 줬는데 어쩌면 그건 인상만이 아닐 거야. 난 정말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네가 그토록 찾는, 중심이 필요한 행진이란 게 바로 이런 거란다. 언젠가 네게 크레페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는데, 기억나니? 크레페를 공중에 띄웠을 때, 넌 오로지 크레페가 다시 프라이 팬에 곧장 떨어진다는 사실만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네가 날고 있는 크레페에 정신을 집중한다면 그것은 분명 둥글게 말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곧장 오븐 위로 떨어져 망가질 거야. 우습긴 하지만 바로 사물의 중심, 그들의 심장에 닿게 해주는 얘기기도 하다. 이제 심장이 아니라 내 위장이 말을 하는구나. 위가 불평을 하는데 크레페와 강을 따라 여행하는 동안 저녁 식사 시간이 됐기 때문인 것 같애. 이제 널 떠나야겠구나. 하지만 떠나기 전에 네가 싫어하는 또 다른 입맞춤을 보낸다. 11월29일 오늘 아침도 여느 때처럼 정원을 산책하다가 어제 불던 바람의 희생자를 하나 발견했단다. 마치 나의 수호 천사가 속삭이기라도 한 듯 오늘은 늘상 하던 대로 그저 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대신 끝까지, 언젠가 닭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퇴비 더미가 있는 곳까지 갔단다. 월터 씨 집과 우리 집을 갈라놓는 작은 담을 지나다가 땅에서 그것을 보았다. 솔방울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었어. 규칙적이진 않았지만 때때로 움직였으니까, 안경을 갖고 나오지 않아서 가까이 가서 보고서야 그게 어린 암지빠귀라는 걸 알았단다. 그걸 붙잡으려다가 난 거의 대퇴골이 부러질 뻔했단다. 내가 막 그것을 잡으려는 순가, 앞으로 튀어 올랐기 때문이야.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도 일초도 안 돼 그것을 잡았을 텐데, 지금 나는 그러기에 너무 늙었단다.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어. 머리에서 스카프를 풀어 새 위로 던졌지. 그렇게 스카프에 싼 채 집으로 데려와서 낡은 구두 상자에 넣고 구멍을 내줬는데, 구멍 하나는 머리를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컸어. 지빠귀는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앞 테이블에 있는데 아직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단다. 너무 불안해 하기 때문이야. 불안해 하는 새를 보자 나 역시 불안해졌어. 새의 공포에 질린 시선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지. 만약 이 순간에 요정이 눈부신 광채와 함께 냉장고와 전자 레인지 사이에서 나타난다면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 아니? 난 요정에게 세상의 모든 동물들과 얘기할 수 있는 마법을 쓰는 통역자, 아넬로 디 레 살로모네를 불러 달라고 할 거야. 그러면 지빠귀와 얘기할 수 있겠지. '걱정 마라, 작은 새야. 그래, 난 인간이지만 아주 괜찮은 생각을 갖고 있단다. 널 치료하고 먹을 것을 주고, 다시 건강해지면 날아가게 해줄게' 이제 우리의 얘기로 돌아와 보자. 어제 우린 부엌에서 크레페의 포물선에 대한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서 헤어졌었지. 넌 틀림없이 화가 났을 거야. 젊은 사람들은 중대한 사실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더 크고 과장된 말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떠나기 얼마 전 넌 베개 밑에 편지 한 통을 내 눈에 띄기 쉽게 숨겨 놓았다. 거기서 넌 너의 불행을 설명하려 애썼어. 이제 네가 멀리 떠나 버렸으니 진실을 말할 수 있겠는데, 불행의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난 그 편지에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모든 말들이 난해하고 불분명했어. 난 단순한 사람이고 내가 속해 있는 시대는 네가 속한 시대와 다르단다. 만약 어떤 것이 희면 난 희다고 말하고, 검으면 검다고 말하지. 일상 생활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이 확신하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방식대로 사물들을 바라봄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은 주어진단다. 짐을 버리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기인된 것을 제거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이미 올바른 궤도에 들어서 있는 거란다. 네가 쓴 편지들은 너를 돕는 것이 아니라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징어들이 달아나면서 자기 뒤에 먹물을 남기듯이 네 주변에 먹물을 남기는 것 같은 인상을 자주 받았단다. 떠나기로 결정하기 전, 넌 내게 양자 택일을 제안했지. "일 년 동안 외국에 나가든지 아니면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으러 다니겠어요" 나의 반응은 냉담했어, 기억하니? "넌 삼 년 정도 떠날 수 있어" 네게 말했지. "하지만 정신과 의사에게는 단 한번도 가선 안 된다. 네 돈을 내고 다닌다 해도 난 정신과 의사에게 찬성할 수 없어" 너는 나의 그런 극단적인 반응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간단히 말해 넌 내게 정신과 치료를 제시하면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제안을 했다고 믿었던 거지. 비록 넌 어떤 방식으로도 항의하지 않았지만, 내가 정신 분석 같은 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늙었거나 잘못 생각한 거야. 이미 어릴 적부터 난 프로이트에 대해 알았지. 삼촌들 중의 한 분이 의사셨는데 그분은 비엔나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에 일찍이 프로이트의 이론과 접촉할 수 있었지. 삼촌은 프로이트에 열광적이었고,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실 때마다 부모님에게 그 이론들의 효과에 대해 납득시키려고 애쓰셨지. "내가 스파게티를 먹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 암시하는 겁니다. 내 말이 전혀 믿기지 않으시겠죠" 그때 어머니가 삼촌을 비난했지. "만약 내가 스파게티를 먹는 꿈을 꾼다면 그건 내가 배가 고프다는 뜻이에요" 이렇듯 완고한 어머니의 태도는 억압에서 기인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삼촌은 어머니에게 스파게티는 벌레를 상징하며 우리들 모두가 어느 날 벌레로 변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는 걸 설명해 보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그때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잠시 말없이 계시더니 소프라노 같은 목소리로 그러셨어. "그럼 내가 마카로니를 먹는 꿈을 꾸면요?" 하지만 정신과 의사와 나의 만남이 이런 어린 시절의 일화로 인해 끝나 버린 건 아니었어. 네 엄마는 한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았는데 거의 십 년 동안 계속됐던 것 같구나. 네 엄마가 죽었을 때, 그 애는 의사에게 가던 중이었어. 그래서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난 하루하루 그 관계의 완전한 진행 과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그 애는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 너도 알겠지만 직업상의 비밀로 규정되어 있으니까. 내가 충격을 받은 점은 -- 부정적인 의미에서-너무나 빨리, 완전하게 그 관계에 종속되어 버렸다는 거였어. 한 달이 지나면서 그 애의 삶은 그 약속을 중심으로-그 시간에 그 애와 의사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움직이고 있었어. 질투를 했군요, 넌 말하겠지. 아마 그럴지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내가 괴로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종속 관계의 노예가 된 그 애를 불안스럽게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었어. 처음에는 정치에, 다음에는 의사에게 종속된 거지. 이라리아는 파도바에 머물던 마지막 해에 그 의사를 알게 됐고, 사실 그 때문에 매주 파도바에 갔었지. 이런 일을 알았을 때 난 조금 당황했고 그래서 그 애에게 말했단다. "넌 정말 훌륭한 선생님을 찾으러 파도바까지 내려가야 된다고 믿니?"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원한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에게 달려가기로 한 것이 내게 위안감을 줬단다. 결국 이라리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벌써 진전이 있는 거야, 난 이렇게 혼잣말을 했어.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그 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는지 불안하기도 했단다. 다른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간다는 건 항상 극도로 미묘한 일이란다. "어떻게 그 의사 선생님을 알게 됐니?" 그때 내가 이라리아에게 물었어. "누가 네게 소개해 줬니?" 하지만 그 애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뭘 알고 싶으세요?" 완전한 침묵으로 말을 자르면서 그렇게 말했지. 이라리아는 자기 편의를 위해 트리에스테에서 나와 떨어져 살았지만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서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단다. 치료가 시작됐을 때부터 우리들의 대화는 중대하고 표면적인 일들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그 당시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얘기했단다. 만약 날씨가 좋고 도시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거의 입을 다물고 지냈지. 이미 세 번인가 네 번 파도바에 다녀온 후에도 나는 그 애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단다. 둘 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대신 그 애가 내게 질문을 했단다. 그 애는 과거에 대해, 나에 대해, 자기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 대해 모두 알고 싶어했어. 그 애의 질문 속에는 호기심이라곤 전혀 없었단다. 그 애의 말투는 심문조였어. 세세한 사항들에 관해 고집스럽게 여러 번 질문하면서, 자신이 겪었고 아주 잘 기억하는 일화들에 대해서는 의구심 을 보였어. 그런 순간이면 딸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 범죄 자백을 받아 내려는 형사 와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단다. "솔직해지렴, 네가 가고 싶은 곳만 말해 봐" 그 애는 가볍게 비웃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포크를 집어 그걸로 유리컵을 쳤고 유리컵이 쨍그랑 소리를 내자 이렇게 말했어. "단 한 곳, 종점이죠. 난 언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당신과 당신 남편이 내 날개를 잘랐는지 알고 싶어요" 그것은 계속되는 질문의 불길에 나를 맡기기로 허락한 마지막 식사였단다. 그전에 이미 전화로 다음 주에 집에 와도 좋지만 우리끼리 재판이 아닌 대화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라고 그 애에게 말했다.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었냐구? 분명 난 숨기는 게 있었고 이라리아와 함께 해야 할 말도 아주 많았지만, 심문관의 압력에 의해 그렇게 미묘한 얘기들을 밝힌다는 게 옳지도, 건전하지도 않은 것 같았어. 성인인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대신 그 애의 놀이에 놀아났다면, 난 죄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애는 영원히 보상받을 가능성도 없는 희생자가 됐을 거야. 몇 달이 지난 후 난 그 애와 치료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눴지. 그때부터 그 애는 의사와 주 말을 모두 바쳐야 하는 묵상에 들어갔어. 그 애는 몹시 여위어 갔고, 전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헛소리 같은 걸 했어. 난 그 애에게 할아버지의 형제분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처음 정신분석 학 자들과 접촉하던 얘기들을 들려줬고, 그 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애에게 물었어. "네 정신 분석 의사는 어느 학파지?" 그 애가 대답했어.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분이 혼자 설립한 학파예요" 그 순간부터, 그때까지 단순한 불안에 불과했던 것이 진짜 깊은 걱정으로 변해 버렸다. 난 그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고 간단한 조사를 통해서 그가 진짜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 치료를 통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단 한번의 타격으로 사라져 버렸어. 물론 학위가 없다는 그 자체가 내게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계속 나빠지는 이라리아의 상황들을 증명해 주는 요소가 됐던 거야. 만약 치료가 효과적이었다면 처음의 불안했던 상황이 보다 나아졌어야만 해, 난 이렇게 생각했단다. 의심을 품고 상태가 다시 악화됐다가 천천히 자신에 대한 의식을 찾았어야 해. 하지만 이라리아는 차츰차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단다. 그 애는 이미 몇 년 전에 공부를 끝마쳤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멀어져 버렸지. 그 애가 하는 유일한 행동은 곤충 학자와 같은 강박 관념을 가지고 내면의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거였어. 세상은 그 애가 밤에 꿨던 꿈과 이십 년 전에 나나 그 애의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둘러싸고 돌아갔어. 악화된 그 애의 삶 앞에서 나는 너무도 무기력 했다. 세 번의 여름이 지난 후에야 잠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단다. 부활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난 이라리아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 단번에 거절하는 대신에 이라리아는 접시에서 눈을 떼며 뜻밖의 말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지. "그런데 어디로 가죠?" "나도 몰라" 난 대답했지. "네가 원하는 곳, 어디든 생각나는 대로 갈 수 있어" 그날 오후 우린 초조하게 여행사가 다시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우린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위해 여행사의 카펫을 밟아야 했지. 마침내 우리는 오월 말에 그리스-크레타와 산토리니 섬-를 선택했단다. 출발 전에 처리해야 할 실제적인 일들이 전에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모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줬어. 그 애는 짐 꾸리는 일에 집착했고, 제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 애를 안심시키기 위해 작은 수첩을 하나 사 줬지. "네게 필요한 것을 여기에다 전부 써 보렴" "이미 짐을 싼 건 그 위에 십자 표시를 해" 밤에 잠잘 시간이 되면 난 좀더 일찍 여행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어. 출발하기 전주의 금요일, 이라리아는 금속성의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어. 분명 길거리의 전화 박스였을 거야. "난 파도바에 가야 해요" "늦어도 화요일 밤까지는 돌아올 거예요" "지금 가야 한다고?" 내가 물었지만 이미 그 애는 전화를 끊은 뒤였어. 그 다음 주 목요일까지 그 애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었지. 두 시에 전화가 울렸는데 그 애의 말투는 냉정함과 회한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었어. "미안해요" 그 애가 말했지. "난 이제 그리스에 갈 수 없어요" 그 애는 나의 반응을 기다렸고, 나 역시 그 애의 말을 기다렸지. 얼마 후에 내가 대답했어. "나 역시 유감이구나. 어쨌든 난 계획대로 그곳에 가겠다" 그 애는 나의 실망을 알아차렸고 내게 변명하려고 애썼지. "떠난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여행이었는지 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관광 안내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풍경과 고고학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했단다. 사실 난 네 엄마만을, 그리고 그 애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을 생각했어. 이라리아는 밭에 씨를 뿌린 뒤 처음으로 싹을 튼 실물을 보고 무언가가 식물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농부와 아주 비슷했지. 난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그래서 궂은 날씨에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비와 바람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비닐 천막을 사서 그 위에 덮어 주지. 진드기와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식물들에게 충분한 해충제를 뿌려 주지. 그건 잠시도 쉴 수 없는 노동이며 밤낮으로 단 한순간도 밭과 그것을 보호해 줄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다. 그러다가 아침에 비닐 천막을 들어올렸을 때 썩고 죽어 버린 식물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거야. 만약 그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내버려뒀다면 그것들 중 몇 개는 물론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 중 몇 개는 살아 남았을 거야. 그가 심을 것 옆에 바람과 곤충이 실어다 놓은 몇 포기의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을 거야. 그것들 중 몇 개는 잡초가 되어 농부가 뽑아 내겠지만 어쩌면 다른 몇 포기는 꽃을 피워서 그 색깔로 단조로운 밭을 활기 있게 해줄 수도 있을 거야. 알겠니? 일은 그렇게 돼 가는 거다. 삶에서는 관대함이 필요한 거야. 주변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 작은 특징만을 가꾼다는 것은 아직 숨은 쉬지만 죽어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단다. 정신에 지나친 엄격성을 부여함으로써 이라리아는 자신의 내부에서 마음의 소리를 억눌러 버렸어. 그 애와 논쟁을 하다가 화가 나서 이 말까지 하게 될까 봐 난 두려웠단다. 언젠가 그 애가 사춘기일 때 마음은 정신의 중심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지. 그 다음날 아침 부엌의 테이블 위에서 정신이라는 말이 쓰인 페이지가 펼쳐진 사전을 발견했는데, 빨간 연필로 과일을 보관하는데 적합한 무색의 액체(정신을 나타내는 'spirito'에는 독한 술이라는 뜻도 있음)라는 정의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요즘에는 마음이란 말이 금방 순진하고 시시한 그 어떤 것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당황하지 않고 그 말을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돼 버렸단다. 아주 가끔 그 말을 인용할 때는 단지 그것의 나쁜 기능을 언급할 때뿐이다. 마음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나타나는 국소 빈혈로, 심방의 가벼운 고통으로만 존재한단다. 그리고 영혼의 중심은 마음이라는, 마음의 존재라는 흔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수도 없이 여러 번 나는 이렇게 마음을 추방한 이유에 대해 자문했단다. "마음을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야" 종종 성경을 인용하면서 아우구스토는 말했어. 왜 어리석어야만 하는 걸까? 혹시 마음이 연소실과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안에 어둠이 있기 때문에, 어둠과 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낡은 거라면 정신은 현대적인 것이란다. 마음에 유의하는 사람은-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은-동물의 세계 즉, 억제되지 않은 세계에 가깝고, 이성에 유의하는 사람은 보다 고상한 사고에 가깝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 반대라면? 과도한 이성이 인생을 갉아먹는다면? 그리스 여행에서 돌아오는 동안 난 아침 시간의 대부분을 조종실의 선교 옆에서 보내는 습관을 갖게 됐단다. 그 안을 훔쳐보고 레이다와 우리가 가는 곳을 말해 주는 복잡한 기계들을 구경하는 게 좋았어. 어느 날 공중에서 떨리는 여러 가지 안테나를 자세히 보다가 인간은 주파수 대에서만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라디오와 아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단다. 네가 청정제라고 경의를 표한 소형 라디오에서도 이런 일은 비슷하게 일어날 거야. 비록 사각형 위에 모든 방송국이 다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튜너를 움직여서 한두 개를 넘지 않는 방송을 받게 되고 다른 것들은 공중에서 계속 돌게 되지. 정신의 과도한 사용은 어느 정도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인상을 받았단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실에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건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일부분이야. 그리고 그 일부분도 종종 혼란이 지배하게 되는데 언어가 그 곳을 완전히 차지하기 때문이지. 언어는 일반적으로 보다 광범위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로톤(손을 내밀고 원이 되어서 노래를 부르며 도는 아이들 놀이)도 만을 하게 할 뿐이란다. 이해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젊었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고, 크리스털 병에 담긴 물고기처럼 고독하게 집 안을 배회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됐단다. 빗자루나 젖은 천으로 더러워진 바닥을 닦는 것과 다소 비슷하단다. 만약 빗자루를 사용한다면 먼지의 대부분은 공중으로 올라가지. 대신 젖은 천을 이용할 경우 바닥은 빛이 나고 윤기가 나게 된단다. 침묵은 젖은 천과 같아서 영원히 불투명한 먼지를 없애 버린다. 정신은 말에 갇혀 있어. 그래서 리듬이 말과 연관되어 있다면 그건 무질서하게 얽힌 사고에서 생겨나는 것일 거야. 반면 마음은 호흡을 하고 전체 기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박동하는 기관이며, 바로 이 박동으로 인해 마음이 보다 큰 박동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단다. 가끔씩 나는 텔레비전을 끄지 않은 사실을 잊어버려 오후 내내 켜 놓기도 한단다. 비록 눈으로 보지 않는다 해도 그 소리는 방들을 통해 나를 쫓아다녀서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보통 때보다 훨씬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잠을 자기가 힘들어져, 계속적인 소음, 큰 소음을 일종의 마약과 같아서 소음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지. 이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구나, 지금은 아니야. 오늘 내가 써 놓은 몇 페이지들은 마치 여러 가지 재료를 뒤섞은-아몬드를 조금 넣고 거기에 리콧타(치즈를 만든 후 굳은 우유로 만든 부드러운 유제품), 건포도와 럼주, 사보이아 비스킷과 마르차파네(설탕, 달걀, 밀가루, 호도와 아몬드를 으깨어 만든 과자), 초콜릿과 딸기 등을 섞은-케이크, 즉 언젠가 네가 누벨 퀴진(밀가루와 지방을 억제하고 담백한 소스를 쓰는 프랑스 요리)이라면서 맛보게 했던 그 끔찍한 요리를 만들 준비를 한 것 같구나. 파이였던가? 그럴 수도 있어. 만약 철학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늙은 교사처럼 빨간 색연필로 표시하고 싶었을 거야. '일관성이 없음' 그는 이렇게 썼을 거야. '주제에 벗어나 있음. 논리적인 설득력이 없음' 그리고 이 글이 심리학자의 손에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렴! 그는 내 딸과의 관계에 대해, 내가 억압한 모든 것들에 대해 완전한 논문 하나를 쓸 수도 있을 거야. 어떤 억압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지금 뭐 그리 중요하겠니? 난 딸이 하나 있었고 그 애를 잃었단다. 그 애는 자동차에 치어 죽었어. 난 바로 그날,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 애에게 수많은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던 그 아버지가 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날이 영상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구나. 영사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벽 위에 고정된 채 말이다. 연속되는 그것들을 난 전부 기억하고, 모든 장면들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단다. 난 전혀 도망칠 수도 없고 모든 것은 나의 내부에 있으며 잠에서 깨거나 잠을 잘 때에도 그것은 내 생각 속에서 요동친단다. 아마 내가 죽은 후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빠귀가 잠에서 깨어났다. 규칙적으로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며 정확하게 피요 소리를 내는구나. '배고파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애. '언제 내게 먹을 걸 주려는 거죠?' 난 일어나서 냉장고 문을 열고 지빠귀에게 줘도 좋을 만한 게 뭐가 있을지 살펴봤단다. 먹일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월터 씨에게 벌레가 있으면 좀 달라려고 전화기를 들었단다. 전화 번호를 돌리는 동안 지빠귀에게 이렇게 말했지. '넌 운이 좋았어, 작은 새야. 넌 알에서 깨어나서 첫번째 비행을 한 뒤 네 부모들의 모습을 잊어버렸겠지' 11월30일 오늘 아침 아홉 시도 못 돼서 월터 씨가 작은 벌레 봉투를 들고 부인과 함께 집에 들렀어. 월터 씨가 그 벌레들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낚시하는 취미를 가진 사촌 덕택이었지. 그가 가져온 것들은 밀가루 벌레더구나. 그의 도움을 받아 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지빠귀를 꺼냈는데 부드러운 가슴털 밑에서 지빠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금속 핀셋으로 작은 접시에서 벌레들을 집어 새에게 그것을 줬지. 주둥이 앞에서 먹음직스럽게 벌레들을 흔들어 보였는데도 먹으려 하지 않았어. "이쑤시개로 주둥이를 벌려요"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갑자기 너와 함께 길렀던 작은 새들이 떠올라서 한쪽 주둥이를 찔러 줬단다. 그러자 정말 뒤에 용수철이 있기라도 한 듯 지빠귀는 곧 주둥이를 벌렸어. 세 마리를 먹고 나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지. 라츠만 부인은 커피를 준비했고-난 한쪽 손을 움직일 수 없어서 더 이상 커피를 준비할 수 없었다-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나눴단다. 그들의 친절과 유효적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훨씬 힘겨워졌을 거야. 며칠 후에 우리는 다가올 봄을 대비한 구근과 시멘트를 사러 종묘상에 갈 거란다. 그분들이 나를 초대했지.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그날은 5월 8일이었다. 난 정원을 손질하면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원에는 매발톱꽃이 피어 있었고 벚나무엔 꽃봉오리가 뒤덮여 있었어. 점심때쯤 아무 예고도 없이 네 엄마가 나타났단다. 그 애는 조용히 내 등뒤로 와서 섰지. "놀랐죠!" 그 애가 소리쳤고 난 깜짝 놀라 갈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애의 얼굴은 탄성을 지르며 꾸며 낸 즐거움과는 대조적이었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졌고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뗐다가 다시 잡아당기며 머리 다발을 입으로 물곤 했어. 그런 모습이 당시의 자연스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난 그 애를 보면서 적어도 다른 때보다 더 나빠졌다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넌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구 집에서 놀게 내버려뒀다더구나. 집 쪽으로 가면서 그 애는 주머니에서 쭈글쭈글해진 작은 물망초 다발을 꺼냈어. "오늘이 어머니 날이에요" 손에 꽃을 든 그 애는 꼼짝 않고 나를 바라봤단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고맙다고 말하며 다정스레 포옹했지. 내게 닿은 그 애의 몸을 느끼면서 난 당황했단다. 그 애의 내부는 무시무시하게 경직된 것 같았다. 내가 안았을 때 몸은 더욱 굳어졌어. 난 그 애의 내부에 구멍이 뚫려서 동굴처럼 차가운 공기가 발산되는 것을 느꼈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 순간 난 널 생각했단다. 이렇게 변한 엄마와 함께 지내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될까? 난 자문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빠졌고 난 너에 대해, 너의 성장에 대해 염려하게 됐지. 네 엄마는 질투심이 아주 많아서 가능한 한 너를 내게 데려오고 싶어하지 않았어. 그 애는 나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널 보호하고 싶었던 거야. 설사 내가 딸을 망가뜨렸다 해도 손녀마저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때가 점심때라 먹을 걸 만들러 부엌으로 갔단다. 기온은 온화했어. 우리는 야외에, 등나무 밑에 식탁을 차렸지. 난 초록색과 흰 색의 체크 무늬가 있는 식탁보를 깔았고 식탁 한가운데에 작은 물망초들을 꽂았다. 봤지? 난 불안정한 내 기억력으로도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날 살아 있는 그 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직감했을까? 아니면 그 비극 이후에 지나간 시간과 함께 인위적으로 느낌을 확장시켜 보려고 애썼던 것일까? 누가 알겠니? 누가 그걸 말할 수 있겠니?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기 때문에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단다. 요리가 끝나갈 무렵, 펜네(장사방형으로 생긴, 짧고 구멍이 뚫린 파스타'마카로니와 스파게티류')가 좋은지 푸실리(나선형의 파스타)가 좋은지 물었단다. 그 애가 밖에서 '아무 거나 상관없어요'라고 대답해서 난 푸실리를 부었어. 식탁에 함께 앉았을 때 난 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애는 애매하게 대답했어. 우리 머리 위로 벌레들이 계속 오갔지. 벌레들은 꽃 속을 드나들었고 그 울음소리에 우리들의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어. 갑자기 무언가가 네 엄마의 접시에 뚝 떨어졌단다. "장수말벌이에요. 죽여요, 죽여요!" 그 애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며 소리쳤어. 그래서 그 애를 진정시키기 위해 몸을 내밀었다가 풍뎅이 한 마리가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애에게 말했단다. "말벌이 아니야, 풍뎅이야.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식탁에서 그것을 내쫓은 뒤 그 애의 접시에 파스타를 다시 덜어 줬어. 그 애는 아직도 놀란 표정으로 포크를 옮겨 쥐면서 조금 돌렸고 식탁 위에 팔꿈치를 괴며 말했다. "돈이 필요해요" 푸실리가 엎어졌던 식탁보 위에는 빨간 색 자국이 크게 번져 있었어. 돈에 관한 얘기는 몇 달 전부터 계속 돼 왔다. 이미 그 전해의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이라리아는 정신과 의사에게 수표를 써 줬다고 고백했어.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내게 그 애는 언제나처럼 대답을 회피해 버렸지. "담보예요" 그 애가 말했어. "그저 단순하고 형식적인 일이에요" 테러리스트인 그 애의 태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게 무언가를 말해야 할 때 그 애는 애매하게 말하곤 했었다. 그 애는 어떤 일을 저지른 뒤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되었고, 내가 그 애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데 필요한 정보조차 주지 않았어. 이 모든 것들 속에는 사디즘이 들어 있었어. 사디즘 이외에도 보살핌을 받는 중심적 존재가 되려는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지. 하지만 대개 그 애의 이러한 지출은 변덕스러움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그 애는 '난 난소암에 걸렸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숨 가쁘게 알아보고는 그 애가 그저 기능 검사를 하러 갔을 뿐이며, 이 검사는 여성들이 거의 다 해보는 거라는 사실을 알아내곤 했단다. 알겠니? 다소 늑대 소년의 이야기 같은 면이 있지. 그 몇 해 동안 그 애는 내가 그 애 말을 아예 믿지 않거나 거의 믿지 못하게 할 비극을 많이도 알려 왔단다. 그래서 수표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을 때도 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다른 얘기를 들으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지. 무엇보다도 난 그런 파괴적인 놀음에 지쳐 었었단다. 설사 고집을 부려서 먼저 알게 됐더라도 그런 건 어차피 아무 소용이 없었을 거야. 왜냐하면 이미 그 애가 내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오래 전에 서명을 해줬으니까. 진짜 큰일은 이월 말에 벌어졌어. 이라리아가 그 의사의 사업 담보로 준 수표가 삼억 리라 짜리란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된 거야. 그 두 달 동안 이라리아가 보증을 섰던 회사가 파산했고 거의 이십억 정도의 구멍이 생겼기 때문에 은행들은 그 애가 보증한 돈을 다시 회수하겠다고 요구하기 시작했어. 그때 네 엄마가 울면서 나를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어. 사실 너와 그 애가 함께 살던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섰고 은행들이 뒤에 원한 것은 그 집이었어. 나의 분노를 상상할 수 있겠지. 지난 삼십 년 동안 네 엄마는 혼자서 생계를 꾸려 갈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소요한 유일한 재산, 네가 태어났을 때 그 애 이름으로 등기해 준 그 아파트로 도박을 한 거였어. 난 너무 화가 났지만 그걸 그 애에게 보이진 않았다. 그 애를 더 이상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난 침착함을 가장했고 이렇게 말했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을 좀 해보자" 그 애가 완전히 냉정을 되찾은 걸 보고서 난 유능한 변호사를 찾았지. 난 갑자기 탐정이 되어 은행과의 재판을 승리로 이끄는 데 유용할 만한 모든 정보들을 모았어. 그래서 난 오래 전부터 그 의사가 강한 정신 치료제로 그 애를 조종한 것을 알게 됐지. 상담을 받는 동안 그 애가 약간 우울해 보이면 위스키를 줬어.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애는 누구보다 사랑 받을 자격이 있으며 가장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는 곧 자리를 잡고 직접 사람들을 치료하는 진료소를 열 수 있었을 거야. 이런 말들을 다시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는구나. 허약하고 혼돈에 빠져서 완전히 자기 중심이 없는 이라리아를 너도 알고 있지. 그날부터 그는 계속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됐지. 만약 그렇게 회사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그 애는 자기가 한 일이 거의 성공적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겠지.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 애는 자기 교주와 거의 똑같은 수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거야. 당연히 그 애는 그런 계획을 절대 내게 말하지 않았다. 왜 어떤 식으로든 문학부 졸업장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 애는 교활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어. "두고 보세요, 유용한 날이 있을 테니..." 생각하면 너무나 괴로운 일들이다. 고백하건데 사실 그런 일들은 아직도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단다. 그 몇 달 동안 그 애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어.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그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는 걸 네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네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했으니 숨김없이 털어놓으마. 자, 보렴, 난 갑자기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단다. 네 엄마는 전혀 똑똑하지 않았던 거야. 난 그 사실을 겨우 깨닫고 받아들이게 됐단다. 보통 사람들처럼 자기 자식에게 속아넘어갔고, 그 애가 자신의 모든 거짓 지식과 논리로 여러 종류의 물들을 아주 잘 섞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 만약 내가 제때에 그 사실을 알아차릴 용기가 있었다면 그 애를 더 많이 보호할 수 있었을 테고, 더욱 더 확고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 거야. 그 애를 보호함으로써 어쩌면 구할 수도 있었겠지. 그건 무척 중요한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에서야 난 그걸 깨닫고 있단다. 그 애의 복잡한 상황을 알게 된 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처라고는 그 애를 이해와 동의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선고하고, 서명이 위조된 것으로 재판을 제기하는 일이었어. 우리가-변호사와 나-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그 애에게 알리던 날, 네 엄마는 신경질적인 발작을 일으켰다. "계획적으로 그랬죠" 그 애가 소리쳤어. "이건 모두 날 어린아이로 만들려는 계획이라구요" 하지만 난 속으로 그 애는 무엇보다도 단 한가지, 이해와 동의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인정될 경우 자신의 경력은 영원히 불타 없어진다는 점만을 생각한다고 확신했지. 이라리아는 끈에 묶인 채로 지옥의 가장자리를 걸었는데, 본인은 아직도 피크닉을 나온 풀밭 위에 있다고 믿고 있었어. 발작을 하고 난 뒤 그 애는 변호사를 해임하고 재판은 지게 내버려두라고 내게 강압적으로 말했어. 그 애의 생각에 따라 다른 변호사를 권했는데 물망초를 준 그날까지 다른 변호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단다. 그 애가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돈을 요구했을 때 나의 정신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겠니? 맞아, 알고 있다. 난 지금 네 엄마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어쩌면 지금 내 말 속에서 넌 단지 공허한 잔인성만을 느끼며 네 엄마가 나를 증오한 게 옳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처음에 했던 말을 기억해 보렴. 네 엄마는 내 딸이었고 난 네가 잃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잃었다. 넌 네 엄마의 죽음에 대해 결백할 수 있지만 난 아니야, 결코 그럴 수 없어. 항상 거리를 두고 얘기해야 하는 내 처지를 생각해 보렴. 나의 고통, 말없는 나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를 한번 상상해 봐라. 그러니까 거리는 표면적인 것이고 그런 공간에 들어찬 숨막히는 공기 때문에 대화는 지속될 수 있었으니까. 그 애가 빚을 갚을 돈을 달라고 했을 때 난 처음으로 안 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다. "난 스위스 은행이 아니야" 네 엄마에게 말했지. "난 그런 돈 없다. 있어도 주지 않을 거야. 넌 네 행동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자랐어. 난 집 한 채밖에 가진 게 없었는데 그걸 네 앞으로 등기해 줬잖니. 네가 그 집을 잃더라도 난 그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그때 그 애는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어. 한마디 말을 시작하다가 그 말을 얼버무리고 다시 다른 말을 시작했지. 그 애가 중얼거리는 내용이나 방법에서 난 어떤 의미나 논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십여 분 정도 징징대다가 그 애의 고정 관념인 아버지와 아버지의 추정상의 죄들,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 "보상이 필요해요, 알겠어요?" 무시무시한 빛을 발하면서 내게 소리쳤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 나는 폭발하고 말았단다. 임 무덤까기 가져 가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맹세한 비밀을 발설하고 말았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난 벌써 후회했고 다시 긁어 모으고 싶었어. 다시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리고 말았단다. '네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야'라는 말은 이미 그 애의 귀에 닿았지. 그 애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천천히 일어섰지. "뭐라고 했어요?" 그 애의 목소리는 겨우 들릴 정도였어. 난 이상하게 다시 침착해졌단다. "잘 들었을 텐데" 그 애에게 대답했단다. "네 아버지가 내 남편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라리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니? 그저 그 자리를 떠났을 뿐이야. 그 애는 몸을 돌려 사람의 발걸음이라기 보다는 로보트 같은 걸음걸이로 정원의 출구 쪽을 향해 걸어갔어. "기다려! 얘기 좀 하자" 귀를 찢을 듯이 증오에 찬 목소리로 그 애에게 소리쳤다. 난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왜 그 애 뒤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왜 그 애를 세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걸까? 왜냐하면 나 역시 내가 한 말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이해를 해보렴. 내가 수십 년 동안 간직했던 비밀이 그토록 단호하게, 순식간에 튀어나왔던 거야. 갑자기 열린 새장 문을 발견한 카나리아처럼 일초도 안 되는 사이에 밖으로 나와 절대 날아가서는 안 될 단한 사람에게 날아갔던 거지. 그날 오후 여섯 시에 아직도 피곤한 머리로 수국에 물을 주고 있을 때, 도로 순찰대가 내게 사고 소식을 알리러 왔다. 이제 밤이 깊었구나. 조금 휴식을 취했다. 벅과 지빠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나도 좀 먹고 텔레비전을 잠깐 봤다. 내 갑옷은 누더기가 됐고 더 이상 터져 나오는 격렬한 감정들을 견딜 수 없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니 기분 전환도 좀 하고 호흡도 가다듬어야 했어. 너도 알겠지만 네 엄마는 금방 죽지 않았다. 혼수 상태에서 십여 일을 보냈지. 난 계속 그 애 곁에 붙어 있었고 단 한순간만이라도 눈을 뜨길, 그 애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라도 주어지길 간절히 바랐단다. 기계들로 꽉찬 그 작은 병실에는 우리 둘뿐이었는데, 작은 모니터를 통해 그 애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지만 뇌는 거의 정지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담당 의사는 내게 때때로 이런 상태의 환자는 뭐든 좋아하는 소리를 들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 줬어. 그래서 난 그 애가 어릴 때 좋아하던 노래들을 준비했지. 작은 녹음기로 몇 시간이고 그 노랫소리를 들려줬어. 사실 무언가 그 애에게 닿았던 것이 틀림없어. 처음 곡조가 들린 후 벌써 그 애의 얼굴 표정이 변했는데, 얼굴이 펴졌고 입술은 젖을 먹고 난 뒤의 갓난아기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어. 글쎄, 어쩌면 아직 활동하던 두뇌의 작은 부분에 평온했던 시기의 기억이 간직됐었고, 그 순간 그 애가 몸을 피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는지도 모르지. 이 작은 변화가 날 기쁨에 가득 차게 했어.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게 된단다. 난 지치지 않고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되풀이해 말했단다. "애야, 넌 해내야 해. 우리가 함께 할 완전한 인생이 우리 앞에 있단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우리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꾸나" 그러는 동안 생각나는 게 있었지. 네 살 때던가 다섯 살 때던가, 팔에 좋아하는 인형을 안고 정원을 돌아다니며 인형에게 계속 말을 하던 그 애를 발견했지. 난 부엌에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 잔디밭의 어떤 곳에 도착할 때마다 그 애의 웃음소리, 크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어. 언젠가 그 애가 행복했다면 다시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난 혼잣말을 했단다. 그애를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거기서부터, 어린 시절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어. 물론 사고 이후 의사들이 알린 최초의 소식은, 만약 살아난다 해도 기능은 더 이상 옛날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마비가 될 수도, 일부분만이 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거였지. 그런데 이거 아니? 엄마의 이기심은 살수 있다는 것 말고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거야. 게다가 휠체어로 그 애를 밀어 주고 씻겨 주며, 그 애의 입에 먹을 걸 넣어 주고 내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그 애를 돌보는 일은 내 죄를 완전히 갚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었던 거지. 만약 나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었다면, 정말로 컸다면 난 그 애의 죽음을 기도했을 거야. 하지만 어떤 분이 그 애를 나보다 더 사랑하셨다. 마침내 구 일째 되던 날 늦은 오후, 얼굴에 의미한 미소를 지우며 그 애는 죽었다. 난 곧 그 사실을 알았어. 그렇지만 당직 간호사에게 알리지 않았다. 좀더 같이 있고 싶어서였어. 얼굴을 쓰다듬고는 어렸을 때처럼 손을 잡고 '애야, 애야'라고 계속 되풀이해 말했지. 그리고 손을 놓지 않고 침대 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드렸단다. 기도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 간호사가 등을 만졌을 때도 난 울고 있었단다. "갑시다, 이리 오세요" 그녀가 말했어. "안정제를 좀 줄게요" 난 안정제를 원하지 않았어. 다른 어떤 것이 고통을 완화시켜 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 애가 영안실로 실려 갈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 나서 택시를 타고 네가 머물던 이라리아의 친구 집으로 갔지. 그날 밤 바로 널 우리 집에 데려왔단다. "엄마는 어딨어요?" 넌 저녁을 먹는 동안 내게 물었어. "엄마는 떠났단다" 그래서 내가 말해 줬지. "여행을 떠났어. 하늘 나라까지 가는 긴 여행이란다" 너의 작은 금발 머리는 계속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었지. 다 먹고 나선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렀어. "엄마에게 인사할 수 있어요, 할머니?" "물론이란다, 얘야" 난 네 손을 잡고 정원으로 데리고 나왔단다. 우린 오랫동안 잔디밭 위에 서 있었고, 그 동안 넌 조그만 손으로 별들에게 안녕 안녕 인사를 했지. 12월 1일 요 며칠 동안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단다. 그걸 폭발시킨다 해도 정확하게 표현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몸은 그저 그렇고 내적인 균형을 잡고 있지만 그 균형들은 아주 하찮은 일로도 깨질 수 있지. 어제 아침 라츠만 부인이 시장 본 물건들을 가져왔는데 그녀는 내 얼굴이 검어 보인다고 했어.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달빛 탓이라더구나. 사실 지난밤에는 달빛이 환하게 비쳤거든. 그런데 달이 바다를 움직일 수도, 채소밭의 치커리(꽃상추)를 보다 빨리 자라나게 할 수도 있다면 어째서 우리들의 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없는 걸까? 우리는 물이나 가스, 광물 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을까? 하여튼 라츠만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선물로 상당히 많은 신문 꾸러미들을 놓고 갔어. 그래서 난 그 신문 페이지를 넘기면서 멍청하게 하루를 보냈단다. '매번 신문에 빠지는구나!' 그 신문들을 보자마자 난 말했지. '좋아, 조금만 넘겨 보자. 삼십 분 이상은 안돼. 그러고 나서 좀더 중요하고 진지한 일을 하러 가야지'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단어를 읽을 때까지 신문을 내려놓지 못한단다. 모나코 공주의 불행한 인생 때문에 난 우울해졌고, 그 자매의 프롤레타리아적 사랑 때문에 분노했고, 지나치게 세세히 묘사된, 마음을 찢어 놓는 그 어떤 기사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그리고 편지들! 사람들이 여전히 글을 쓸 용기가 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나를 놀라게 했어. 난 고집불통 노파는 아니고, 적어도 아니라고 믿어. 그렇지만 지나친 자유들이 오히려 날 당황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오늘 기온은 급격히 내려갔단다. 난 정원에 산책하러 가지 않았어.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 공기가 얼어붙은 늙은 가지처럼 날 부러뜨릴지도 모르잖니. 네가 여전히 이 글을 읽고 있을지, 혹은 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거부감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읽을 수 없는진 알 수 없구나. 지금 이 순간 난 조급한 마음에 지금까지 한 얘기를 취소할 수도, 그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도 없단다. 비록 내가 그 비밀을 수십 년 동안 간직하기는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단다. 이미 말했지만 처음에 네가 중심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동요할 때 나도 너와 같은, 아니 어쩌면 너보다도 더 큰 동요를 맛봤단다. 중심에 대해 네가 언급했던 것은-아니 중심의 부족이라는 게 더 좋겠구나-네가 아버지를 모른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네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를 말해 주는 게 슬프지만 아주 당연한 이이었듯이, 네 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단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던 것 역시 그랬단다. 내가 어떡할 수 있었겠니? 난 네 아버지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어느 해 여름에 이라리아는 혼자서 터키로 오랫동안 휴가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생기발랄해져서 돌아왔단다. 이미 서른을 넙었고 여자에게 그 나이란 비록 아직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았고 이상한 열광에 빠져 있다 해도, 자식을 하나 갖고 싶은 바람은 있기 마련이란다.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낳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 그 당시에는 거의 모두가 페미니스트였다. 네 엄마는 여자 친구들과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다. 그들의 말은 타당한 게 많았고 내가 공감하는 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타당성 속에는 억지와 불건전하게 비틀어진 생각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여자는 자신의 육체를 운영하는 주인이므로, 아이를 낳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결정권은 오로지 여자들에게 달렸다는 생각이었다. 남자란 단지 생물학적 필요성만을 가진 단순한 필수품처럼 사용됐지.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네 엄마뿐이었던 건 아니란다. 두 세 명의 다른 여자 친구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가졌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알겠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은 전지전능한 느낌을 선사해 준단다. 죽음과 어둠, 불안정성 등은 멀어지고 세상에 너의 또 다른 일부분을 끼워 넣는 거지. 이런 기적 앞에서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네 엄마와 친구들은 동물의 세계를 인용했단다. '암컷들은 교미의 순간에만 수컷들을 만나며 그 수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새끼들은 어미와 남는다 ' 그들은 이렇게 말했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우린 인간이란 존재이고 우리들 각자는 타인과는 다른 얼굴로 태어났으며 일생 동안 우리는 이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어린 양은 어린 양의 코를, 사자는 사자의 코를 가지고 태어나며, 다른 모든 동물들도 이와 같은 동일성을 지니게 된다. 자연히 동물들의 외모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지만, 얼굴은 인간만이 갖고 있고 다른 그 누구도 지닐 수 없는 거란다. 얼굴이야, 이해하겠니? 얼굴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단다. 네 이야기, 네 아버지, 네 엄마, 네 조부모, 네 증조부모, 하다 못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먼 친척들까지 들어 있는 거야. 얼굴 뒤에는 개성이 있고, 네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좋은 것과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이 들어 있단다. 얼굴은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본체이고, '봐, 내가 여기 있잖아'라고 말하면서 삶 속에 우릴 자리잡을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래서 열세 살인가 열네 살 무렵에 네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낼 때, 난 네가 무언가를 찾을 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넌 분명 여드름이나 검은 점, 혹은 갑자기 커진 코를 봤겠지만 다른 그 어떤 것도 찾고 있었어. 외가 쪽의 윤곽들을 빼내고 제거하면서, 넌 널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남자의 얼굴을 그려 보려고 애썼던 거야. 네 엄마와 그녀의 친구들이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어느 날 자식이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내부에 다른 뭔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애는 바로 그 다른 누구에 대해 알고 싶어할 거라는 사실이란다. 일생 동안 자기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이라리아는 한 생명의 발전에서 유전적인 무게는 거의 없다고 확신했었지. 그 애에게 중요했던 건 교육과 환경, 그리고 성장 방식이었다. 난 그 애의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고, 두 가지는 서로 비슷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어. 환경적 요인이 반 정도, 태어날 때부터 우리 내부에 갖고 있던 요인이 반 정도 영향을 미치는 거지. 네가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넌 아버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도 않았으며 그래서 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국민 학교 입학과 동시에 친구들 때문에, 여선생들이 내주는 해로운 숙제 때문에 넌 갑자기 매일 매일의 네 삶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야. 네 학급에는 물론 이혼한 가정과 비정상적인 상황의 아이들이 많았지만, 아버지에 대해 너처럼 백지 상태인 아이는 아무도 없었지. 여선 살, 일곱 살 짜리 아이에게 네 엄마가 했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니? 그리고 나 역시 결국은 네 엄마가 저 아래, 터키에서 임신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단다. 그래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난 유일하게 증거가 될 수 있는 네 고향을 이용했단다. 난 동양의 동화책들을 샀고, 매일 밤 네게 하나씩 읽어 줬단다. 그것들에 기초해서 네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냈는데 너도 생각나니? 네 엄마는 공주였고 네 아빠는 반달 나라의 왕자였단다. 다른 모든 왕자와 공주들처럼 그들 역시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단다. 하지만 궁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질투했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질투한 사람은 힘이 세고 사악한 수상이었어. 공주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뱃속에 든 아기에 대해 무시무시한 예언을 퍼부은 사람도 바로 그였어. 다행히 왕자는 충실한 신하로부터 그 사실을 들어서 한밤중에 네 엄마에게 농부 아낙의 옷을 입혀 성을 떠나게 했지. 그래서 네 엄마는 위쪽으로 몸을 피했고, 이 도시에서 네가 태어난 거야. "그럼 난 그 왕자의 딸이에요?" 그때 넌 눈을 반짝이며 물었지. "그럼" 네게 대답했지. "하지만 이건 비밀 중의 비밀이야.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되는 거란다" 그런 기이한 거짓말로 뭘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내가 믿었던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몇 년만이라도 더 널 평온하게 해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네가 나의 어리석은 동화를 믿지 않게 되리란 사실도, 그리고 그때 네가 날 증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 때문에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없는 용기를 모두 긁어 모아도 난 네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네 아버지가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네 엄마도 몰랐을 거야' 성적으로 자유로운 시기였고, 성적인 활동은 육체의 일반적인 기능으로 간주되던 때였어. 네 엄마는 원할 때마다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와 잠을 잤단다. 네 엄마 옆에 십여 명 정도 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걸 봤는데, 그들 중 한 달 이상 관계를 지속한 사람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구나. 이렇듯 불안정한 사랑 때문에 이미 자기 스스로도 불안정하던 이라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비뚤어졌다. 비록 내가 그 애를 전혀 가로막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도 그 애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오히려 풍속상의 갑작스러운 자유로 인해 당혹했던 거야. 혼음보다 나를 더욱 충격에 빠뜨린 것은 궁핍하게 말라 버린 그 애의 감정이었다. 금기와 개인의 유일성이 깨진 뒤 열정도 사라져 버렸지. 이라리아와 그 애의 친구들은 독한 감기로 괴로워하는 연회의 손님들 같았어. 맛을 느끼지도 못한 채, 교육 때문에 그들에게 제공된 모든 것을 먹었단다. 그들에게는 당근과 구운 고기와 슈크림이 똑같은 맛이었지. 네 엄마의 선택 속엔 분명 새로운 관습의 자유가 있었지만, 어쩌면 다른 이의 발자취도 있었을 거야. 우리는 정신의 기능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것을 알지만 전부는 아니란다. 혹시 그 애가 무의식의 어떤 어두운 장소에서, 자기 앞에 있는 남자가 친아버지가 아니란 점을 눈치챘을지 누가 알겠니? 그 애의 많은 초조와 불안감들이 혹시 그런 무의식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 애가 어린아이였을 때, 사춘기였을 때, 처녀였을 때, 난 그런 의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지 않았고 나의 위선은 완벽했단다. 하지만 그 애가 임신 삼 개월의 몸으로 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모든 일들이 내 머리 속으로 돌아왔단다. 위선이나 거짓말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도망칠 수도 있다. 그 후 그다지 예상하지 못했거나 기다리지 않았을 때 거짓말이 다시 나오고, 처음 그 말을 했던 순간처럼 그렇게 달콤하지는 않단다. 표면적으론 무해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우리에게서 멀어져 있는 동안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로,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바다 괴물로 변해 버린다. 그것들을 폭로하면 잠시 후 넌 압도당하게 되고,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탐욕으로 너와 네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단다. 열 살이 된 뒤 어느 날, 넌 울면서 학교에서 돌아왔다. "거짓말쟁이!" 그렇게 말하고는 넌 곧 네 방에 틀어박혔어. 넌 동화의 거짓말을 알게 된 거지. 거짓말은 내 자서전의 제목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난 태어나서 단 한 번의 거짓말을 했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 버렸다. 12월 4일 지빠귀는 아직도 내 앞의 식탁에 있다. 며칠 전보다 식욕이 없어 보이는구나. 쉬지 않고 나를 부르는 대신 자기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이젠 상자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지도 않는단다. 방금 머리끝의 털이 삐져 나온 것을 보았다. 오늘 아침엔 날씨가 추웠지만, 라츠만 씨 부부와 함께 종묘상에 갔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날씨가 곰도 움츠러들게 할 정도였고, 게다가 내 마음의 어두운 부분에 '다른 꽃들을 심는 게 나한테 뭐 그리 중요하지?'라는 목소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라츠만 씨의 전화 번호를 돌리는 동안 창문을 통해 죽어 버린 정원의 색깔을 보게 됐고, 내 이기주의가 후회스러웠다. 난 어쩌면 다음 봄을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너나 다른 사람들은 분명 봄을 맞을 테니까. 요 며칠 동안은 얼마나 불안했는지! 글을 쓰지 않는 동안은 어디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동들 중에, 평온하게 잠시라도 슬픈 기억들을 벗어 버리도록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 기억의 기능은 냉장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랫동안 냉장고 안에 들었던 음식을 꺼낼 때를 생각해 볼래? 처음엔 냄새도, 맛도 없는 벽돌처럼 단단하고 하얀 성에로 뒤덮여 있잖니. 하지만 그것을 불에 올려놓자마자 차츰차츰 원래의 형태와 색깔을 되찾고 그 향기는 부엌을 가득 채우게 되지. 마찬가지로 슬픈 기억들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기억의 동굴 가운데 어느 한 동굴 속에 활기 없이 놓여 몇 년, 수십 년, 평생 동안 그곳에 있게 된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표면에 나타나는데 그 기억이 동반하는 고통은 수십 년 전의 그날처럼 다시 눈앞의 것이 되어 강렬하고 예리해지지. 나에 대해, 나의 비밀에 대해 지금 얘기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는데 그 처음은 바로 나의 젊은 시절, 내가 성장하고 살아왔던 비정상적인 고립 속에 있단다. 그 시대에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여자에게 지성이란 매우 부정적인 혼수감이었단다. 아내란 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요인이 되어야만 했어. 질문을 하는 여자, 호기심이 많고 불안정한 여자는 남자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신부감이었지. 이 때문에 내 젊은 시절의 고독은 정말 컸단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 여덟에서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예쁘고 그에 못지 않게 부유했기 때문에 내 주위에는 구혼자들이 몰려들었어.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얘기하자마자, 동요하는 속마음을 그들에게 보이자마자 내 주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어. 물론 나도 조용히 있거나 내가 아닌 모습으로 나를 꾸밀 수도 있었지만, 불행스럽게도-아니 어쩌면 다행스럽게도-나의 일부분을 차지하던 교육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서 거짓으로 나를 보이길 거부했던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난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반대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대학을 포기한다는 게 내겐 아주 힘겨운 일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난 지식에 굶주렸었어. 어떤 청년이 의학을 공부한다고 밝히자마자 난 그에게 질문들을 퍼부었지. 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단다. 미래의 공학도나 변호사들에게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런 나의 태도는 방향이 없는 것이었고, 내가 사람보다는 그들의 활동에 더 관심을 쏟는 것처럼 보이게 했어. 그렇게 해서 어쩌면 현실적이 됐는지도 모르지. 내 친구들이나 학교의 급우들과 이야기할 때, 난 몇 광년 떨어진 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나와 그 애들 사이의 커다란 분수령은 여자들 특유의 악의였어. 내겐 그게 전혀 없었던 반면, 그 애들은 똑같이 최대한으로 발전시켰던 거지. 남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거만함과 자신감 뒤에 극단적인 허약함과 순진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내부에 아주 원초적인 지렛대들을 갖고 있어서, 프라이팬에 떨어뜨려 기름에 튀긴 생선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렛대 중 어느 하나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난 그런 사실을 아주 늦게 알게 됐는데 내 친구들은 열 다섯, 열 여섯 살에 이미 그런 걸 다 알고 있었다. 그 애들은 자연스럽게 카드를 받거나 거절했으며 이런 저런 어조로 카드를 썼다.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주 늦게 나가기도 했지. 춤을 추는 동안 상대방 육체의 정확한 부분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곳을 스치면서 어린 사슴 같은 강렬한 표정을 담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단다. 이것이 여자들 특유의 악의였고 계속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유혹이었어. 하지만 난 마치 감자 같아서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보기에는 이상하겠지만 내 내부에는 깊은 의미의 충실함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이 내게 절대 남자를 기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였어. 난 언젠가 조금도 지치지 않고 깊은 밤까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했어.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동시에 사물을 보고, 똑같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 그런 식으로 사랑이 생겨나고, 그것은 손쉬운 속임수가 아니라 우정과 존경에 기초를 둔 사랑이 되는 거야. 난 사랑이 담긴 우정을 원했고 그런 면에서 나는 남성적, 고전적인 의미에서 남성적이었지. 내 생각으론 그런 것이 대등한 관계였는데, 그런 면이 내 구혼자들에게 두려움을 일으켰던 것 같애. 그렇게 해서 나는 차츰차츰 대개 나쁜 여자들의 것으로 여겨진 역할을 떠맡게 됐지. 내겐 남자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친구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어.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사랑 얘기를 하고 싶을 때만 나를 찾아왔지. 친구들은 하나 둘씩 결혼을 했지. 갑자기 결혼식에 가는 것 말고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 내 동년배들은 아이를 낳았고 난 여전히 노처녀로 남아 영원히 처녀로 살기로 거의 체념하고 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었어. "도대체 네 머리 속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어머니가 말씀하셨어. "이 사람도 싫다, 저 사람도 싫다. 이게 있을 법한 일이니?" 부모님들은 내가 이성과 부딪치면서 겪는 어려움들이 이상한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그런 점을 나 자신도 유감스러워 했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 난 속으로 가족을 절실하게 원하지 않았어.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생각은 내게 어떤 불신을 불러일으켰지. 난 어린 시절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생명에게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할까 봐 두려웠단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살기는 했지만 난 완전히 독립했었고, 하루 일과를 모두 내 맘대로 했지. 약간의 돈을 벌기 위해 난 내가 좋아했던 과목인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복습했단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 내게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코뮤네(지방 자치시)의 도서관에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후를 보낼 수 있게 해줬고, 난 내가 원할 때마다 산에 갈 수도 있었어. 간단히 말해 내 생활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 자유로웠고 난 그 자유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단다. 하지만 그런 모든 자유와 표면적인 행복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거짓되고 강제적인 것으로 느껴졌단다. 처음에는 특권처럼 보이던 고독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지. 내 부모님들은 늙어 가셨고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서 잘 걷지도 못하셨지. 매일매일 난 아버지의 팔을 부축하고 함께 신문을 사러 가곤 했단다. 아마 스물 일곱이나 여덟 살 때였을 거야. 쇼 윈도에 아버지와 함께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나도 늙었다는 것을 느꼈고, 어떤 흐름이 내 인생을 휘어잡고 있음을 깨달았단다. 얼마 후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거고 어머님도 그 뒤를 따르겠지. 난 책만 가득한 큰 집에 혼자 남게 될 거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수를 놓거나 수채화를 그릴 거야. 세월은 한 해 두 해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겠지. 어느 날 아침 며칠 동안 나를 보지 못해 걱정하던 어떤 사람이 소방수들을 부를 거고, 그들은 문을 부수고 바닥에 누운 내 육체를 발견하게 될 거야. 난 죽어 있을 거고 내게 남은 거라곤 곤충들이 죽은 뒤에 남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뼈대뿐일 거야. 난 살아 보기도 전에 여성으로서의 내 육체가 시들어 버린 것을 깨달았어. 그리고 나는 고독을, 아주 깊은 고독감을 느꼈지. 나는 누구와도 진정한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지. 난 알고 있단다. 분명 난 똑똑하고 책도 많이 읽었으며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신 대로였어. "올가는 너무 아는 게 많아서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짐작으로만 알려진 나의 총명함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어. 난 긴 여행을 떠날 수도 없었고 무언가를 깊이 공부할 수도 없었어. 대학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내 날개를 잘린 것 같았다. 사실 나의 어리석음, 재능을 가꾸지 못한 무능력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어. 결국 슐리만은 독학으로 트로이를 발견했지. 나의 브레이크는 다른 것, 내부의 작은 세계였어. 기억나니? 나를 제지한 것도, 앞으로 나가는 걸 가로막은 것도 그것이었어. 난 정지해 있었고 기다렸지. 무엇을? 그 점에 대해선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아우구스토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눈이 내렸단다. 이 지역에서는 눈이 내리는 일이 매우 드물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손님인 아우구스토가 점심 식사에 늦게 나타난 일을 잊지 않고 있어. 아우구스토도 아버지처럼 커피 수입하는 일을 했단다. 그는 우리 회사의 판매를 맡기 위해 트리에스테에 왔어. 중풍에 걸리선 후, 남자 상속자가 없던 아버지는 노년을 평화롭게 보내기 위해 회사 일에서 자유로워지시기로 결정한 거였어. 처음 만났을 때, 아우구스토는 아주 혐오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집에서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하더구나. 다른 모든 이탈리아인들 같은 그의 작위적인 태도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단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첫눈에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종종 벌어진단다. 점심 식사 후 아버지는 휴식을 하러 다시 들어가셨고, 나는 응접실에 남아 그가 타고 갈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손님을 접대해야 했어. 난 아주 귀찮았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난 예의 없는 태도로 그를 대했지. 질문마다 단음절로 대답했고 그가 입을 다물면 나도 역시 다물었어. 그는 문간에서 말했지.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가씨" 난 귀족 처녀가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에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 손을 내밀었단다. "이탈리아인 치고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에요" 저녁 식사 시간에 어머니가 말씀하셨어. "정직한 사람이야" 아버지가 대답하셨지. "그리고 사업 수완도 뛰어나지"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나 하겠니? 내 혀가 제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지 않았던데요!" 갑자기 쾌활하게 내가 소리친 거야.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하셨지. "사실, 불쌍한 사람이야. 홀아비란다" 난 고추처럼 얼굴이 붉어졌고 나 스스로도 매우 당혹해 하고 있었어. 이틀 후 수업에서 돌아오다가 입구에서 은색 종이로 싸인 소포를 발견했지. 내 인생에서 처음 받은 소포였어. 누가 내게 그런 걸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단다. 은색 종이 밑에 간단한 편지가 끼워져 있었지. 이런 과자들을 아시오? 밑에는 아우구스토의 서명이 있었다. 그날 저녁 과자를 침대 맡 작은 탁자 위에 놓고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아버지에 대한 예의로 그것들을 보냈을 거야, 난 혼잣말을 했지. 그러는 한편 마르차파네를 몇 개 먹었어. 삼 주 후 그가 다시 트리에스테에 왔는데 식사 도중에 사업상이라고 말했지만 지난번처럼 금방 떠나지 않고 얼마 동안 시내에 머물렀지. 떠나기 전에 그는 나와 함께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했고, 아버지는 내게 물어 볼 것도 없이 승낙하셨어. 우리는 오후 내내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녔어. 그는 그다지 말이 없었고 내게 유적지들에 관한 자료를 물었어. 그 후에는 입을 다물고 내 얘기를 들었지. 내 얘기를 듣는다, 그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떠나는 날 아침, 그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보냈어. 어머니는 완전히 흥분하셨고 난 안 그런 척했지만 그의 편지를 읽어 보기 위해선 몇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곧 주말마다 방문하게 됐어. 토요일마다 트리에스테에 왔다가 일요일에 자기 도시로 돌아가곤 했지. "어린 왕자"가 여우를 어떻게 길들였는지 기억나니? 매일매일 여우의 동굴 앞에 가서 여우가 나오길 기다리는 거야. 그렇게 해서 여우는 차츰차츰 그를 알아보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지. 뿐만 아니라 작은 친구가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모든 것들에 감동하는 법도 배우게 되지. 똑같은 술책에 유혹된 나도 그를 기다리면서 목요일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길들이기의 과정이 시작됐어. 그로부터 한 달 후에 내 삶은 주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신뢰감이 싹텄지. 마침내 난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는 나의 지성과 알고자 하는 욕구를 존중했어. 난 그의 침착함,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 아주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젊은 처녀에게 줄 수 있는 확신과 보호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단다. 우리는 40년 6월 1일에 엄숙한 결혼식을 올렸다. 열흘 우에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됐다. 안전을 이유로 어머니는 베네토 지방의 산악 마을로 피신하셨고 난 남편과 함께 아퀼라에 도착했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책으로만 읽고 몸소 체험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알고 있는 너는, 그 당시의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내가 언급조차 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파시즘과 인종주의적인 법률이 있었고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난 계속 개개인의 작은 불행들, 내 영혼의 아주 미세한 변화에만 신경 썼지. 하지만 나의 이런 태도가 예외적이거나 상반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정치화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행동했단다. 나의 아버지를 예로 들자면 아버지는 파시즘을 광대질이라고 생각하셨단다. 집에 계실 때 아버지는 파시즘의 수령을 그 수박 장수라고 불렀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그런 계급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가시고 늦게까지 함께 남아 이야기를 나누셨지. 마찬가지로 나도 토요 집회에 가거나 과부 같은 옷을 입은 채 행진하고 노래하는 것이 완전히 우스꽝스럽고 짜증나는 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나 역시 그런 일에 참석했고, 그것들은 단지 평화롭게 살기 위해 복종해야 하는 성가신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분명 그런 태도가 당당한 건 아니었지만 아주 일반적이었단다. 평화롭게 사는 건 사람들의 가장 커다란 열망 중에 하나였지. 그때는 그랬고 지금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야. 우린 아퀼라에 있는 아우구스토 가족의 집에서 살았는데 시내 귀족 저택의 일층에 있는 커다란 아파트였어. 어둡고 무거운 가구가 갖춰져 있었고 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음침한 곳이었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겨우 육 개월 전에 알게 된 남자와 친구도 하나 없는 도시에서 살아야 할 집이 바로 여기란 말이야? 난 혼자 말했지. 남편은 곧 기절할 것 같은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처음 이 주 동안은 가능한 한 내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 보려고 했어. 어떤 날은 자동차를 갖고, 어떤 날은 자동차 없이 주변의 산으로 산책을 다녔단다. 우린 둘 다 피크닉을 매우 좋아했어. 너무도 아름다운 산들과 마치 둥지 속에 든 것처럼 산꼭대기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작은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약간 맑아졌고, 어떤 식으로든 북쪽을, 나의 집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보였어. 우리는 계속해서 많은 얘기를 했단다. 아우구스토는 자연을, 특히 곤충들을 사랑했어. 그는 걸으면서 계속 내게 많은 것들을 설명했지. 자연 과학에 관한 내 지식의 대부분은 그의 덕을 본 거야. 우리들의 신혼 여행이었던 그 이 주가 지나고 나서 아우구스토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난 그 큰 집에서 혼자 내 생활을 시작했어. 늙은 가정부가 함께 있었는데 집 안의 중요한 일들을 맡아서 하는 건 바로 그녀였어. 다른 부르주아 가정의 주부들처럼 나도 점심과 저녁 식단을 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단다. 매일 혼자서 밖에 나가 오랫동안 산책하는 게 습관이 돼 버렸지. 빠른 걸음걸이로 길거리를 오갔지. 머리 속엔 많은 생각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 그를 사랑하는가, 나는 갑자기 멈춰 서서 자문했지. 아니면 모든 것이 커다란 착각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식탁에 함께 앉았을 때나 저녁에 응접실에 있을 때, 난 그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자문했단다. 무슨 감정이었지? 부드러운 기분을 맛보았어, 분명해. 그 역시 분명 내게 그런 것을 느꼈을 거야. 하지만 이게 사랑일까? 여기 있는 이 모든 것이 사랑일까? 다른 어떤 감정을 느껴 보지 못했으므로 난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없었어. 한 달이 지나가 내 남편의 귀에 최초의 소문들이 들렸다. "독일 여자야" 이름 없는 목소리들이 말했어. "하루 종일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닌다니까" 난 깜짝 놀랐지. 다른 습관 속에 성장한 나는 그런 순수한 산책이 소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란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어. 아우구스토는 불쾌해 했고 내가 그 사건을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알아차렸어. 그렇지만 도시의 평화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나 혼자 외출하는 걸 중지해 달라고 간청했단다. 여섯 달 후, 난 완전히 생기를 잃고 말았어. 내부의 작은 죽음이 어마어마한 것이 되어 난 로보트처럼 움직였고 눈빛도 흐려졌어. 말을 할 때도 내 말이 마치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멀리서 들렸지. 그 사이에 난 아우구스토 동료의 부인들과 알고 지냈는데 목요일이면 시내에서 그들과 만나 커피를 마셨어. 비록 동년배이긴 했지만 우린 정말로 할 얘기가 별로 없었어. 우린 똑같은 언어로 얘기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지.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아우구스토는 금방 그 지역의 남자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어.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린 거의 말이 없었고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애쓰면 그는 그저 '응', '아니'라는 한마디로 대꾸했을 뿐이야. 그리고 저녁이 되면 그는 사교 모임에 나갔고, 집에 있는 날은 자기 서재에 틀어박혀 곤충들을 정리했어. 그의 원대한 꿈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곤충을 발견해서 그의 이름이 영원히 과학책에 남는 거였어. 난 다른 방법으로 그의 이름을 전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아이를 통해서 말이야. 난 벌써 서른이었고 시간은 내 등뒤로 더욱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런 점에서 상황은 아주 나쁘게 전개됐지. 약간 실망스러웠던 첫날밤 이후, 다른 일들은 그다지 많이 일어나지 않았어. 난 무엇보다도 아우구스토가 식사 시간에 집에 있어 줄 사람, 일요일에 성당을 데려가 오만하게 사람들에게 보여 줄 누군가를 원했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런 안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사람의 존재가 그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구혼할 때의 그 유쾌하고 자유분방했던 남자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사랑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우구스토는 내게 봄에는 새들 중 수컷들이 암컷을 유혹해 함께 둥지를 만들기 위해 더 큰소리로 노래한다고 얘기해 줬다. 그 역시 그랬었고 한때 내게 둥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줬지만 내 존재에 대해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된 거지. 난 그곳에 있었고, 그곳을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족했어. 그를 증오했냐구? 아니란다, 네겐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난 그를 증오할 수 없었어.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해서는 그가 네게 상처를 주고 모욕을 줘야 하지. 아우구스토는 내게 전혀 나쁘게 굴지 않았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어. 고통스러워서 죽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없어서 죽는 것이 훨씬 쉽다. 고통에는 반항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반항조차 할 수 없단다. 부모님들이 전화하시면 난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일들이 다 잘된다고 했고 행복한 신부의 목소리를 꾸며 내려고 애썼지. 어머니는 계속 산 속에 숨어 지내셨고 아버지는 돌봐 주는 먼 사촌과 함께 저택에 홀로 남아 계셨어. "새로운 소식 없니?"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물으셨고, 난 정기적으로 '아니요, 아직 없어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아버지는 손자를 고대하셨던 거야. 나이가 드시면서 아버지에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부드러움이 나타났단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내게 좀더 가까워지신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실망시키는 것이 안타까웠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난 계속되는 불임의 이유를 얘기할 만큼 아버지와 친밀하지도 않았어. 어머니는 미사여구로 가득 찬 장문의 편지들을 보내셨지. '나의 사랑하는 딸에게'라고 첫머리에 쓰셨고, 그 밑에는 그날 일어났던 사소한 모든 일들을 세세히 적으셨단다. 편지 끝에는 새로 태어날 손자를 위해 아기 옷을 여러 벌 지어 놨다고 하셨어. 한편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점점 더 추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단다. 가끔씩 저녁때면 난 아우구스토에게 말했어. "왜 우린 대화하지 않는 거죠?" "뭐에 대해 말이오?" 그는 곤충을 관찰하던 렌즈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했어. "나도 몰라요" 내가 말했지. "그래도 우린 무엇이든 얘기해야 해요" 그러면 그는 고개를 흔들었어. "올가" 그가 말했지. "당신은 병든 환상을 갖고 있소" 주인과 오랫동안 함께 산 개들은 차츰 주인을 닮아 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란다. 난 내 남편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완전히 곤충을 닮아 갔어. 그의 행동들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지. 유연하지 않고 기하학적인 모든 행동들은 실룩거리듯 이어졌어. 목소리에는 음색이 없었고 목의 알 수 없는 어딘가로부터 금속성의 소리가 올라왔지. 그는 자기 곤충들에 몰두했고, 강박 관념처럼 자신의 일에 몰두했어. 이 두 가지 외에 그에게 조금의 격정이라도 불러일으키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한번은 핀셋으로 곤충 한 마리를 집어 들고는 내게 그 무시무시한 것을 보여 줬어. 이름이 땅강아지라는 것 같았어. "이 굉장한 턱 좀 봐" 그가 내게 말했지. "이 턱으로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다오" 그날 밤 꿈에 난 그런 모양의 벌레를 봤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고, 만화에서처럼 내 웨딩 드레스를 집어삼켰어. 일 년 후 우리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지. 그는 곤충들과 늦게까지 잠을 잤으므로 나를 방해하길 원하지 않았어. 적어도 그렇게 말했지. 이 같은 나의 결혼 이야기라 네겐 특별히 끔찍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 당시의 결혼 생활은 거의 그랬고, 둘 중 누군가가 먼저 혹은 나중에 패배하게 되는, 작은 지옥과 같았지. 왜 반항하거나 트리에스테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지 않았냐구?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별거나 이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결혼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심하게 학대를 당하거나 반항적 기질이 필요했고 도망을 가서 영원한 유랑 생활을 해야 했어. 하지만 반항은 너도 알다시피 내 성격의 일부분이 아니고 아우구스토가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난 손톱만큼의 불평도, 아니 목소리도 내지 않았어. 그는 내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해줬지. 일요일에 미사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는 누르지아 형제의 제과점에 들렀고, 그는 내가 원하는 거면 무엇이든 사 줬어. 매일 아침 내가 어떤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삼 년 간의 결혼 생활 이후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이 있었는데 그건 죽음에 대한 것이었어. 아우구스토는 한번도 전처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고, 가끔씩 내가 조심스럽게 그녀에 대해 물으면 화제를 바꾸곤 했어. 시간이 흐르면서, 겨울 오후에 유령의 방 같은 방안을 걸으면서, 난 아다-전처의 이름이야-가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살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됐어. 나의 의심을 확인시켜 줄 만한 어떤 흔적이나 표시들을 성급하게 찾곤 했어. 어느 비 오는 날, 난 가구의 밑마닥에서 여자 옷들을 찾아냈는데 그게 그녀의 것이란 걸 알았어. 어두운 색 옷을 한번 입어 보았지. 우린 사이즈가 똑같았어. 거울을 보며 난 울기 시작했어. 자신의 운명이 표시된 지점을 이미 아는 사람처럼 흐느끼지 않고 소리 죽여 울었지. 집의 한구석에는 신앙심이 매우 깊던 아우구스토의 어머니가 쓰셨던 커다란 나무 기도대가 있었어. 어찌 해야 할지 모를 때 난 그 방에 들어가서 손을 모아 쥐고 몇 시간이든 그곳에 있었단다. 기도를 했냐구? 나도 모른다. 내 머리보다 훨씬 위쪽에 산다고 추측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거나 하려고 애썼을 거야. 난 이렇게 말했단다. '하느님, 저의 길을 찾게 해주십시오. 만약 지금의 이 길이 저의 길이라면 이것을 견뎌 내게 해주십시오' 아내라는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습관적인 성당 출입이 새삼스레 내게 수많은 질문들, 어린 시절부터 내부에 묻어 왔던 질문들을 어쩔 수 없이 제시하도록 했지. 난 향료 때문에 어지러웠고 오르간 음악도 마찬가지였어. 성서의 구절들을 들을 때면 무언가가 내 내부에서 약하게 떨렸지. 하지만 미사복을 입지 않은 교구 사제를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그의 스폰지 같은 코와 약간 돼지 같은 그의 눈을 보았을 때, 세속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거짓된 질문들을 들었을 때, 더 이상 아무런 떨림도 없었어. 그래서 난 혼자서 이렇게 말했단다. 자, 이건 사기야. 허약한 정신들이 살면서 부딪치는 억압을 견디게 하는 방법에 불과해. 그렇지만 난 고요한 집에서 성경책 읽기를 즐겼어. 예수님의 아주 특별한 말씀들을 많이 발견했고, 여러 번 큰소리로 반복해 읽을 정도로 열중하기도 했어. 나의 가족은 조금도 종교적이지 않았지. 아버지는 사상가들의 책을 존중했고, 네게 말했듯이 이미 두 세대 전에 개종한 어머니는 단순히 사회적 순응주의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셨단다. 이따금 어머니에게 신앙에 관한 사실들을 질문하면 내게 이렇게 대답하셨지. "난 모른다.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단다" 종교가 없다. 이 말은 나의 유년 시절, 보다 큰 문제들에 의문을 갖던 아주 예민한 상황에서 단단한 바위와 같은 무게를 지니게 됐단다. 그 말들 속에는 일종의 치욕적인 상처가 들어 있었는데, 우리는 우리가 조금도 존경심을 갖지 않는 다른 것을 포용하기 위해 종교를 버렸던 거야. 우리는 배신자였고, 우리에게는 배신자들처럼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수녀님들에게 배운 얼마 안 되는 일화들을 제외하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종교적인 지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단다. 하느님의 왕국은 너희들 안에 있다. 난 텅 빈 집을 걸으면서 되풀이했지. 그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려고 애썼지. 나의 내부로 내려가 육체의 열망들, 정신의 아주 신비한 굴절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위해 잠망경을 보듯 나의 눈을 바라봤지. 하느님의 왕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그것을 볼 수 없었고 내 마음의 주변에는 안개, 무거운 안개가 끼어 있었지. 천국이라고 상상할 만한 초록의 빛나는 언덕들은 보이지 않았어. 정신이 명료한 순간이면 다른 모든 노처녀나 과부들처럼 난 지금 미쳐 간다고 혼자말을 했지. 난 천천히 불가사의한 정신 착란의 상태에 빠져 버린 거야. 그런 생활을 사 년 동안 한 뒤 진실에서 거짓을 분리하기가 더욱 힘겨워졌지. 성당의 종소리는 가까이에서 십오분마다 시간을 알렸는데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아니면 조금이라도 적게 들으려고 솜으로 귀를 틀어막았단다. 난 아우구스토의 곤충들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고 밤이면 곤충들이 집 안을 돌아다니며 다리로 딱딱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어. 그 곤충들은 집 안 여기저기를 기어 다녔는데, 벽지 위에 기어오르거나 부엌의 타일 위를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기고 응접실의 카펫 위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 난 침대 위에서, 벌어진 문 밑의 틈새를 통해 그 곤충들이 내 방으로 들어오는 걸 기다리면서 숨죽이고 있었다. 아우구스토에게는 이런 나의 정신 상태를 숨기려고 애썼지. 아침이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아침 식사로 어떤 요리를 준비했는지 알려 주고는 그가 문을 나설 때까지 계속 웃고 있었지. 판에 박힌 듯한 똑같은 미소로 집에 돌아오는 그를 맞곤 했어. 나의 결혼처럼 전쟁도 사 년째 접어들었는데 이월에는 폭탄이 트리에스테에도 투하됐어. 마지막 공격 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집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유일한 희생자는 아버지의 이륜 마차를 끄는 말이었는데 사람들은 정원 한가운데서 두 다리가 잘린 그 말을 발견했지. 당시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소식은 아주 느리게 전해졌단다. 폭격이 있은 그 다음날 아버지는 전화로 우리 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전해 왔어. '여보세요'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순간 난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았지. 아버지의 목소리는 오래 전에 삶을 중단한 사람의 것이었어. 이젠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난 정말 절망적이었어. 이삼 일 동안 나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집 안을 배회했지. 무감각에서 나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의, 단조로운 연속선상에서 난 남아 있는 나의 세월이 한해 한해 펼쳐져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항상 저지르는 실수가 뭔지 아니? 인생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고 한번 선택한 행로는 끝까지 따라야만 한다고 믿는 거란다. 하지만 운명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환상적이야. 네가 구제될 수 없다고 믿는 바로 그때, 가장 큰 절망의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재빠른 돌풍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 버리고, 그 순간부터 넌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될 거야. 집이 폭격을 맞은 지 두 달 후에 전쟁은 끝났다. 난 곧 트리에스테로 달려갔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벌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임시로 마련된 시내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어. 트리에스테에 겨우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도 아퀼라에서 지냈던 과거를 거의 잊어버릴 정도로 신경 써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렇게 많았단다. 한 달이 조금 더 지나자 아우구스토도 트리에스테로 왔어. 그는 아버지께 산 회사를 인수해야만 했지. 전쟁 기간 내내 아버지는 그에게 경영을 맡겨 놓고 거의 일하지 않으셨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도 없는 데다가 이제 정말 늙어 버리셨지. 나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아우구스토는 자기 도시를 떠나 트리에서테로 이주하기로 결정했고, 고원 지대에 이 저택을 사서 가을이 되기 전에 우린 모두 함께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모든 이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셨어. 여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지. 그녀의 완고한 성격이 고독과 두려움의 시기에 쇠약해지고 말았던 거야.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내게 아기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어. 난 다시 아우구스토와 잠을 잤는데, 우리 사이에는 밤에 거의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난 정원에 앉아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오후에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단다. "간과 여자들에게는 물이 기적을 만들어 줄 수 있단다" 이 주가 좀더 지난 후 아우구스토는 기차로 날 베테치아까지 데려다 줬어. 그곳에서 정오가 될 무렵에 볼로냐로 가는 또 다른 기차를 탔을 거야. 그리고 다시 한번 기차를 갈아타고는 저녁때쯤 돼서야 포르렛타 온천에 도착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난 온천의 효과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어. 내가 떠나기로 한 건 무엇보다도 고독을 너무나 갈망했기 때문이었고, 지난 몇 해 동안과는 다른 방법으로 나 자신과 친구가 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어. 난 고통스러웠단다. 내 안의 대부분은 죽어 있었고, 난 불이 난 뒤의 초원과도 같았어. 모든 것이 시커멓게 숯이 되어 버렸지. 비와 태양과 공기와 함께 해야만 그 밑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것들이 천천히 다시 살아날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2월 10일 네가 떠난 뒤부터 난 신문을 읽지 않았다. 신문을 사다 준 건 바로 너였었고 지금은 내게 신문을 갖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처음에는 신문이 없어서 약간 불편했지만 그 후 불편함은 차츰 위안으로 변했단다. 그래서 아이작 싱거(1904년 출생. 폴란드 태생인 미국의 유대계 소설가. 197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의 아버지가 생각났어. 그는 현대인들의 습관들 중에서 신문을 읽는 것이 가장 나쁜 습관 중의 하나라고 말했지. 신문은 정신이 가장 열려 있는 아침에 세상이 그 전날 만들어 낸 모든 죄악을 개개인에게 쏟아 부으니까. 그의 시대에는 그저 신문만 읽지 않으면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엔 불가능하단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있어서 단 일초만 그것들을 켜면 죄악이 충분히 우리의 내부로 들어올 수 있지. 그런 일이 오늘 아침에 일어났단다. 옷을 입다가 국경을 넘으려던 망명자들의 행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지역 뉴스를 들었어. 그들은 나흘 전부터 국경에 머물렀는데 그들을 앞으로 나오게 할 수도, 다시 되돌아가게 할 수도 없었다는구나. 차에는 노인들과 환자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여자들만 있었단다. 1차 대표단이 이미 적십자 구역에 도착했고 그들을 1급 이재민으로 받아들였다고 아나운서는 말했어. 그토록 가까이에서 원시적인 형태의 전쟁이 존재한다는 게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전쟁이 터질 때부터 난 마치 가슴에 가시가 꽂힌 듯한 기분으로 산단다. 아주 통속적인 비유지만 이러한 통속성 속에는 감각이 잘 부여되어 있지. 한 해가 지나면 고통에 분노가 더해졌고, 누군가가 개입해서 이 대량 학살을 끝낸다는 게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어. 그러고 나면 난 단념을 해야 했지. 그곳에는 유전이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돌로 뒤덮인 산뿐이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는 격분으로 바뀌어 갔고, 격분은 고집스러운 번민으로 내 안에서 계속 고동쳤지. 내 나이에 아직도 전쟁에 이렇게 충격 받는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야. 땅 끝에서는 하루에는 수십 개의 전투가 벌어지니 여든 살이나 먹은 난 전쟁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습관적으로 받아들여야겠지. 내가 태어난 뒤로 망명자들과 승리한, 혹은 패배한 군대들이 카르소 고원의 크고 누런 풀들을 가로질러 갔단다. 처음에는 고원에 폭탄을 투하한 2차 대전의 보병들을 실은 열차가 있었고, 그 후에는 러시아와 그리스 전투의 패잔병 행렬이 있었고, 나치와 파시스트의 살육, 구덩이 속에서의 살육이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국경선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에는 발칸의 대량 학살에서 도망친 죄없는 사람들이 대탈출을 하는 거야. 몇 년 전 트리에스테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한 영매 여인과 같은 칸을 타고 여행한 적이 있었단다. 나보다 약간 젊은 부인이었는데 포카치아(빵의 일종)형의 모자를 쓰고 있었어. 물론 난 그녀가 영매라는 걸 몰랐지만 그녀 자신이 옆에 앉은 여자와 얘기하면서 그 사실을 밝혔지. "봐요" 기차가 카르소 고원을 가로질러 갈 때 옆의 여자에게 말했어. "만약 내가 저 위를 걷는다면 난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어요. 귀를 막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구요. 모두들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는데 젊어서 죽은 사람일수록 더 크게 울부짖지요" 그러고 나서 폭력이 있는 곳과 그 주변에는 영원히 분노하는 어떤 것이 남아 있다고 옆의 여인에게 설명해 줬단다. 공기는 부패해 농도가 옅어지고 그 부패된 공기는 부드러운 감정이 아니라 복수를 하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을 조장한다는 거지. 결국 피를 뿌린 곳에는 다시 피를 뿌리게 되고, 또 다른 피가 뿌려진 곳에는 또다시 피가 계속 뿌려진다는 거야. 대화를 끝내면서 영매는 말했어. "땅은 흡혈귀 같은 거예요. 피맛을 보자마자 다시 신선한 피를 원하는데 그게 점점 더 많아진다니까요" 오랫동안 나는 우리가 살았던 장소가 그 자체로 저주를 품은 곳은 아니었는지 자문해 보았다. 의문을 품어 보고, 내 스스로에게 대답을 줄 수도 없으면서 계속 질문을 하지. 우리가 함께 여러 번 몬루피노 요새에 갔던 일 생각나니? 북동풍이 부는 날에는 경치를 바라보기 위해 하루 종일 그곳에서 보냈지. 그곳에서는 비행기를 탄 것같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어. 시야는 360도로 열려 있었지. 우리는 처음에 그곳을 돌로미티 정상과 똑같이 취급하거나 베네치아를 더 높이 치는 사람과 싸우곤 했어. 실제로 그곳에 갈 수 없는 지금은 똑같은 경치를 보기 위해 눈을 감아야만 한단다. 기억의 마법 덕택에 내가 마치 요새의 전망대 위에 서 있기라도 하듯 모든 것이 내 앞에, 내 주위에 나타나는구나. 아무것도 빠진 게 없어. 바람소리도, 내가 선택한 계절의 냄새조차도 빠지지 않았어. 시간에 의해 침식되어 가라앉은 교각들, 무장한 마차들이 연습을 하던 커다랗고 황량한 공터, 남빛 바다에 잠긴 이스트리아의 어두운 곶. 난 그곳에서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수도 없이 묻는단다. 불협화음이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이런 풍경을 사랑하고 그건 아마도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로막았을 거야. 내가 확신하는 한가지는 이런 풍경은 거기 사는 사람의 외형적인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거야. 만약 내가 딱딱하고 날카로운 성격이고, 너 역시 마찬가지라면 그것은 카르소와 그 고원의 풍화 작용, 그 색깔과 카르소에 몰아치는 바람 탓일 거야. 만약 우리가 움브리아의 언덕들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혹시 더 온화했거나 격조하는 우리 성격 중의 일부분이 없어졌을지 누가 아니. 그게 더 나았을까? 난 잘 모르겠구나, 사람들은 자신이 살지 않은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으니까. 어쨌든 오늘 작은 불행이 있었다. 오늘 아침 부엌에 갔을 때 난 상자 안의 천 속에 쓰러진 지빠귀를 발견했다. 최근 이틀 동안 지빠귀는 좋지 않은 징조들을 보였고 많이 먹지도 않았으며 한 입을 먹고 또 한 입을 먹을 동안 종종 졸았단다. 지빠귀는 틀림없이 동이 트기 조금 전에 죽었을 거야. 내가 손으로 지빠귀를 잡았을 때 머리가 마치 내부에서 용수철이 망가진 것처럼 이쪽저쪽으로 흔들렸으니까. 그것은 가볍고 허약하며 차가웠어. 작은 천 조각에 지빠귀를 싸기 전에 조금 쓰다듬어 줬단다. 난 새에게 온기를 주고 싶었어. 밖에는 진눈깨비가 펑펑 쏟아져서 난 벅을 방안에 가두고 나왔어. 땅을 팔 만한 힘이 없어서 흙이 부드러운 화단을 택했단다. 발로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그 안에 지빠귀를 넣었어. 그리고는 흙을 덮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작은 새를 묻을 때면 항상 되풀이했던 기도를 올렸단다. "하느님, 다른 모든 생명을 받아들이셨듯이 이 작은 생명도 거두어 주소서" 네가 어렸을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새들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려고 애썼는지 기억하니? 바람이 불고 난 뒤면 우리는 상처 입은 새를 발견하곤 했었지. 검은 방울새들, 박새들, 참새들, 지빠귀들이었고 한번은 심지어 잣새까지 있었지. 그 새들을 치료하기 위해 우린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우리들의 치료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죽어 있는 새들을 발견했어. 그러면 그날은 얼마나 슬프던지. 그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지만 넌 언제나 동요했었다. 새를 묻을 때 넌 코를 닦고 눈을 손바닥만하게 떴지. 그리고는 시간을 갖기 위해 네 방안에 틀어박혔다. 어느 날 넌 네게 우리가 어떻게 엄마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늘이 너무 넓어 쉽게 길을 잃을 테니까. 난 네게 하늘은 커다란 나무와 같아서 저 위에 각자의 방을 하나씩 갖고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은 뒤에 그 방안에서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지내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내 대답은 약간은 너를 안심시켰지. 네 번짼가 다섯 번째로 빨간 붕어가 죽고 난 뒤, 그 주제로 다시 돌아와 내게 물었어. "그런데 공간이 없으면요?" 네게 대답해 줬지. "공간이 없으면 눈을 감고 일분 동안 넓어져라, 방아! 이렇게 말하면 되지. 그러면 방은 금방 더 커지게 되는 거야" 아직도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니? 아니면 네 갑옷이 그것들을 쫓아 버렸니? 난 오늘에서야 겨우, 지빠귀를 묻는 동안 생각이 났단다. 넓어져라, 방아! 이 얼마나 멋진 마술이냐! 분명 엄마와 큰 쥐들, 참새들과 빨간 붕어들로 네 방은 운동 경기장의 관객들처럼 이미 만원을 이뤘을 거야. 나도 곧 그곳으로 갈텐데 넌 내가 네 방에 들어가길 원하니, 아니면 내가 그 옆에 셋방을 얻어야 하는 거니? 내가 제일 사랑했던 사람을 초대할 수 있고, 마침내 진짜 할아버지가 누군지 네게 알려 줄 수 있을까? 구월의 그날 밤, 포르렛타 역에 내리면서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단다. 공기 중에서 밤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내 첫 번째 걱정은 예약한 숙소를 찾는 일이었어. 그때 난 너무 순진했고, 운명의 끊임없는 계략을 모르고 있었지. 내가 신념을 가졌었다면, 그건 단지 사건들은 훌륭한 관습이나 나의 의지보다는 그다지 좋지 않은 관습 덕택에 일어난다는 확신이었지. 숙소에 발을 디디고 가방을 내려놓는 순가, 난 아무 생각도 없었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어.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가지,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바람만이 있었지. 도착한 날 저녁에 네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내가 묵을 숙소의 식당에서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고 있었어. 같이 있던 사람은 늙은 신사였고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그들은 약간 흥분된 태도로 정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곧 내 신경에 거슬렀어. 식사 도중 그는 다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날 두 번 쳐다봤지. 다음날 그가 바로 온천의 의사라는 걸 알고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는 십여 분 간 나의 건강에 대해 질문했는데, 내가 옷을 벗어야 할 순간이 되자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어. 난 마치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듯 땀을 흘리기 시작했지.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소리쳤어. "이런 이런, 아주 놀라운 일이군요!" 그리고는 약간 불쾌한 태도로 웃음을 터뜨렸어. 그는 곧 혈압계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수은 기둥이 최고치까지 올라갔지. "고혈압이신가요?" 그때 그가 내게 물었어. 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 해명해 보려고 애썼어. 그는 단지 자기 일을 하는 의사일 뿐이야,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 건 정상적이지도, 신중하지도 못한 거야. 하지만 그런 말을 되풀이해도 난 날 진정시킬 수가 없었어. 그는 문가에서 치료법이 적힌 종이를 주면서 악수를 했어. "휴식을 취하십시오, 숨을 쉬세요" 그가 말했어. "그렇지 않으면 온천물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식사 후 그는 내 케이블에 와서 앉았다. 다음날 우린 벌써 그 고장의 길거리를 같이 산책하며 떠들고 있었어. 처음에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충동적인 쾌활성이 이제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어.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에는 열정과 격정이 있어서 곁에 있으면서 그의 말과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에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어.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코에서 탄생된다는 구나. 두 사람이 만나 좋아할 때는 내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작은 호르몬들을 서로에게 보내 그것들이 코로 들어가 뇌까지 올라간다는 거야. 그리고 그곳의 어떤 비밀스러운 구석에서 사랑의 폭풍우를 만들어 낸다는 거지. 간단히 말해서 감정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와 다름이 없다고 그 기사는 결론지었단다. 얼마나 터무니없고 바보 같은지! 삶에서 진정한 사랑, 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맛본 사람은 이 주장들이 마음을 추방하기 위한 너무나 부당한 책략에 불과하다는 걸 알 거야. 분명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는 커다란 흥분을 불러일으킨단다. 하지만 흥분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그 어떤 것-내 생각으로는 --, 단순한 냄새와는 아주 별개의 것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야. 에르네스토 곁에서 지내던 동안 난 처음으로 내 육체가 그 어떤 한계에도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위에는 일종의 후광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마치 이 후광의 가장자리가 점점 더 넓어져 모든 움직임은 그것에 의해 진동하는 듯했어.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았을 때 식물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이파리들은 힘이 없어지고 빛을 향해 일어서는 대신 풀죽은 토끼의 귀처럼 아래로 떨어져 버리지. 지난 몇 해 동안 내 삶은 물이 없는 식물과 같았어. 밤 이슬은 내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분을 줬지만 그것 말고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서 있을 정도의 힘이라도 가진 것으로 족했어. 단 한번만 물을 뿌려도 식물은 되살아나고 이파리들은 고개를 든단다. 그와 같은 일이 내게는 첫째 주에 일어났단다. 도착하고 육 일이 지난 뒤 아침에 거울을 보다가 난 내가 다른 여자가 된 줄 알았어. 피부는 유기가 있었고 눈은 빛났지. 옷을 입는 동안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 이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넌 어쩌면 당연히 그런 행복감 뒤에는 문제점들, 불안과 번민 등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난 결혼한 여잔데 어떻게 다른 남자 친구를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니? 하지만 어떤 문제나 의심도 없었다. 그건 내가 특별히 편견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어. 오히려 그 동안의 내 삶이 육체, 오로지 육체와 관련됐었기 때문이란다. 난 오랫동안 겨울의 길거리를 헤매다가 따뜻한 굴을 발견하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면서 온기를 즐기는 강아지 같았어. 한편 난 여자로서의 나의 매력을 아주 낮게 평가하고 있어서 남자가 그런 종류의 관심을 가지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일요일, 걸어서 미사에 가고 있는데 에르네스토가 자동차를 몰고 내게 다가왔어. "어디 가십니까?" 그는 차창으로 몸을 내밀며 물었고, 내가 대답하자마자 차문을 열고 말했어. "내 말을 믿으세요. 하느님은 당신이 성당에 가는 대신 숲속으로 멋진 산책을 가는 것을 훨씬 만족스럽게 여기실 겁니다" 한참을 차로 달리고 많은 커브를 돈 뒤 우리는 밤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의 입구에 당도했어. 내 신발은 울퉁불퉁한 길을 걷기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넘어질 뻔했지. 에르네스토가 내 손을 잡아 줬을 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같이 보였어. 우린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걸었지. 공기 속에서는 이미 가을의 냄새가 났고 땅은 축축했어. 나뭇잎들은 대개 노랗게 물들었고 햇빛은 나무를 통해 서로 다른 색조로 약하게 비쳤지. 공터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어. 내 떡갈나무를 떠올리면서 난 그 나무에게 다가가서 처음에는 손으로 쓰다듬다가 그 위에 뺨을 갖다 댔지. 에르네스토는 곧 자기 머리를 내 머리에 기댔어. 우리가 알고 지낸 수로 그렇게 가까이서 눈을 바라본 적은 없었단다. 다음날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우정이 다른 무언가로 변해 갔고 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난 이제 더 이상 어린 처녀가 아니라 결혼한 여자였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었으며, 그 역시 결혼을 했고 게다가 아들도 하나 있었지. 그때부터 난 벌써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내 모든 삶들을 예측할 수 있었단다. 계산하지 못했던 어떤 일들이 돌진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커다란 불안을 가져다 주었다. 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랐어. 최초의 충돌에서 느낀 새로움은 불안스러웠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극복해야 했어. 그래서 잠시 동안 이렇게 생각했단다.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최고로 어리석은 짓이라구. 모든 걸 잊어야 해. 얼마 되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지워 버려야 한다구" 잠시 후 가장 바보 같은 짓은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앉아 놓쳐 버리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난 내가 다시 살아 있는 듯했고 모든 것들이 내 주위에서, 내 안에서 진동하여 이런 새로운 상태를 거부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으니까. 그 외에도 난 공포-다른 모든 여자들이 지녔거나 아니면 적어도 지니고 있었던-를 갖고 있었어. 그가 나를 우롱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즐기기만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거였지. 하숙집의 쓸쓸한 방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서 요동쳤단다. 그날 밤 새벽 네 시까지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어. 난 너무 흥분해 있었어. 하지만 다음날 아침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옷을 입으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몇 시간 동안 내게 삶에 대한 맹렬한 욕구가 생겨난 거야. 그곳에 머문 지 십 일째 되는 날, 난 아우구스토에게 엽서를 한 장 보냈지. '공기는 최상이고 음식은 그저 그래요. 잘 지내길 바라요'라고 썼고 애정을 듬뿍 담아 인사를 했지. 그 전날 밤을 난 에르네스토와 함께 보냈단다. 그날 밤 난 갑자기 어떤 사실 하나를 발견했단다. 그건 우리의 영혼과 육체 사이에는 수많은 작은 창들이 있어서 그 창문이 열렸을 경우에는 많은 감동이 그곳을 통과할 수 있고, 만약 닫혀 있다면 겨우 스며 들어갈 뿐인데 사랑만은 돌풍처럼 그 창문들을 한꺼번에 활짝 열 수 있다는 사실이야. 포르렛타에 머무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우리는 계속 함께 지냈는데 오랫동안 산책하고 목이 쉬도록 얘기했단다. 아우구스토와 에르네스토의 화제는 얼마나 다르던지! 그는 열정과 열광 그 자체였으며 어려운 주제들을 아주 간단하게 만들 줄 알았어. 우리는 종종 신에 대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 이외의 다른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레지스탕스 대원이었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고 했어.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들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어떤 존재에 대한 자각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보다 넓은 공간 속으로 확장되는 자신의 의식 때문이었다고 했다. "난 종교 의식을 따를 수 없다오" 그가 내게 말했지. "절대로 믿음의 장소에 갈 수 없을 것이고 나와 같은 다른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와 교리들을 믿을 수 없소" 우린 서로의 말에 빨려 들어갔어. 우린 같은 것을 생각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말했어. 이 주 전에 알게 된 사이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지막 며칠 밤 동안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우린 다시 힘을 모으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만 잠을 잔 거지. 에르네스토는 운명이라는 주제에 열중해 있었다. "모든 남자의 인생에서" 그가 말했어. "함께 완벽한 결합을 할 수 있는 여자는 오직 한 사람 뿐이고, 모든 여자의 인생에서 완전한 존재에 함께 이를 수 있는 남자도 역시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거요" 하지만 그런 상대를 만나는 것은 소수의, 아주 소수의 운명이라는 거지.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불만족한 상태, 영원한 향수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거고. "그런 만남들이 얼마나 될까?" 그가 어둠 속에서 말했지. "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 억에 하나?" 억에 하나, 그럴 거야. 다른 모든 만남들은 조정된 것,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호의들이나 신체적이며 성격적인 유사성, 사회적 관습들에 의한 것이지. 그런 얘기를 한 뒤 그는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우린 얼마나 행운이오, 응? 이 뒤에 있는 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오. 그걸 누가 알겠소?" 출발하는 날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그는 나를 껴안고 속삭였지. "우린 이미 언젠가 다른 인생에서 알고 지내지 않았소?" "수많은 인생에서 그랬을 거예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난 울기 시작했지. 핸드백 속에는 그의 페라라 주소를 숨겨 넣은 채 말이야. 그 긴 여행 시간 동안 내 감정들은 너무나 격렬했고 상반되게 무장되어 있었다는 걸 네게 설명해서 뭐 하겠니? 그 동안 난 변신해야 했으므로 내 얼굴 표정을 조절하기 위해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단다. 눈 속의 빛, 미소는 사라지고 꺼져 버려야만 했어. 좋은 공기의 덕을 본걸 확인시키기 위해 뺨의 혈색만이 남아야 했지. 아버지나 아우구스토는 유별나게 좋아진 나를 발견했지. "난 벌써 온천물이 기적을 만든다는 걸 알았다니까"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아우구스토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듯, 짧은 찬사의 말로 나를 에워쌌지. 너도 최초로 사랑을 맛볼 때 그 효과가 얼마나 다양하고 기묘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될 거야. 네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겨우-네 마음이 자유롭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그리고 네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다른 모든 남자들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경우-네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야. 그러다가 네가 단 한 사람에게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너를 따라오면서 달콤한 말로 비위를 맞추려 들 거야. 그게 바로 전에 내가 말한 창문의 효과란다. 창문이 열렸을 때 육체는 영혼에 커다란 빛을 주고, 서로를 비춰 주는 거울의 시스템처럼 영혼은 그렇게 육체에 빛을 준단다. 짧은 시간 내에 네 주위에 금빛의 따뜻한 후광 같은 것이 형성되고, 그 후광은 꿀이 곰을 끌어들이듯 남자들을 끌어들인단다. 아우구스토 역시 그 효과를 피할 수 없었고, 네겐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 역시 그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어. 분명 아우구스토가 세상의 사건들에 조금만 관심을 보였거나 좀더 교활했더라면 그다지 애쓰지 않고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차렸을 거야. 결혼 후 처음으로 나는 그의 소름끼치는 곤충들에게 감사했다. 에르네스토를 생각했냐구? 물론, 실제로 난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생각을 한다는 것엔 정확한 한계가 없었어. 생각하면 할수록 난 그를 위해 존재하고 그는 나의 내부에서 존재했으며 모든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는 하나가 됐단다. 우리는 서로 헤어지면서 내가 먼저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었어. 내가 우선 그가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믿을 만한 친구의 주소를 알아봐야 그가 편지를 쓸 수 있었으니까. 첫 번째 편지는 위령의 날 전날에 보냈어. 그 후의 시간들은 우리들의 모든 관계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었어. 크고 절대적인 사랑조차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의심에 감염될 수밖에 없단다. 아침이면 아직 밖이 어두운데도 난 갑자기 눈을 뜨고 꼼짝없이 아우구스토 곁에 누워 있었다. 내가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순간들이었지. 난 그 삼 주 동안을 거듭 생각하곤 했어. 그리곤 스스로에게 물었지. 만약 에르네스토가 단순히 여자를 유혹하는 사람, 온천의 권태로움 때문에 독신의 부인들과 즐기는 남자에 불과하다면? 시간이 가고 답장이 오지 않자 이런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어. 좋아,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지. 만약 그렇더라고, 내가 가장 순진한 여자처럼 행동했더라도 그 경험은 부정적이거나 쓸모 없는 것이 아니었어. 만약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면 난 다른 여자들이 무엇을 경험하는지도 모르는 채 늙다가 죽었을 거야. 난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방어하기 위해 애썼던 거란다. 아버지나 아우구스토는 악화된 내 기분을 주의 깊게 지켜봤어. 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심하게 반응했고,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곧 그 방을 나가서 다른 방으로 갔어. 혼자 있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짚어 보고 어떤 낌새나 의미 혹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몰아붙인 증거를 찾기 위해 그것들을 아주 세세하게 검토해 봤어. 이런 고통이 얼마나 지속됐을까? 한 달 반, 거의 두 달이었어. 크리스마스 전주에 편지를 전해 받기로 한 친구 집에 마침내 그의 편지, 경쾌한 달필로 쓴 다섯 장의 편지가 도착했어. 난 갑자기 다시 기분이 밝아졌지.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사이 겨울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봄이 다가왔다. 에르네스토에게 고정된 생각은 시간에 대한 지각을 바꾸어 놓았고 내 모든 에너지는 불확실한 미래, 그를 다시 볼 수도 있을 순간에 집중되어 있었어. 그의 깊이 있는 편지는 이미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되찾게 했단다. 우리들의 사랑은 너무도 컸다. 그리고 또한 다른 위대한 사랑들처럼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확실한 거리를 두는 절제된 것이기도 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우리가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다는 것이 네게는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어쩌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은 아닐 거야. 나나 에르네스토는 강요된 거리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그것은 다른 감정들과 뒤섞인 고통이었어. 기다림의 감동 뒤에서 아픔은 부차적인 것으로 흘러 버렸지. 우린 둘 다 성인이었고 결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마도 그런 모든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났다면 난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아우구스토에게 아내와 별거할 것을 요구해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같이 살 수 있게 했을 거야. 그게 더 나았을까? 난 잘 모르겠구나. 결국 난 쉬운 관계들은 사랑을 진부하게 만들고, 강렬한 격정을 일시적인 열광으로 바꿔 놓고 만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떨칠 수 없었어. 너도 케이크를 만들 때 밀가루의 발효가 잘못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케이크는 균일하지 않게 한쪽 부분만 부푸는데, 부푼다기보다는 터져 버려서 밀가루 반죽은 망가지고 용암처럼 케이크 틀에서 흘러 나와 버리잖니. 단 하나의 열정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야. 흘러 넘쳐 버리는 거지. 그 당시에 애인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단순한 일만은 아니었어. 에르네스토에게는 분명 훨씬 쉬웠겠지. 그는 의사였으니까 회의나 대회 혹은 긴박한 상황들을 꾸며댈 수 있었겠지만 주부라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이 없던 내게는 불가능했지. 난 약속을 꾸며대든지 몇 시간이나 며칠 정도 집을 비워도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을 만한 일을 만들어 내야만 했어. 그래서 난 부활절 전에 라틴어 애호가 협회에 등록했다. 그 협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문화 답사도 자주 갔지. 고전어에 대한 나의 관심을 알던 에르네스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비난할 만한 말을 찾을 수도 없었어. 아니 오히려 예전의 관심을 다시 찾은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 해 여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매년 그랬듯이 유월 말이면 에르네스토는 온천으로 떠났고, 난 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바다로 떠났지. 그 달에 난 아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우구스토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어. 8월31일 새벽에 작년과 똑같은 가방에 똑같은 옷을 입은 아우구스토가 포르렛타 행 기차를 타는 나를 바래다 주었지. 여행을 하는 동안 난 흥분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차창으로 지난 해에 봤던 경치를 바라봤지만 모두가 다르게 보였어. 온천에 삼 주간 머물렀는데 그 삼 주 동안 난 남아 있는 내 인생을 모두 합친 것보다 깊게, 아주 깊게 살았다. 어느 날 에르네스토가 일하는 동안 공원을 산책하면서 난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일은 죽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극심한 불행처럼 최고의 행복도 자체 내에 항상 이런 모순된 욕망을 동반한단다. 난 오래 전부터 걷고 있는 듯한 기분, 몇 해 동안 평평한 길과 숲속을 걸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전진하기 위해 도끼로 굴을 파야 했고, 앞으로 나가면서 내 주위의 것은-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난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내 앞에 심연이나 계곡, 큰 도시 혹은 사막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어. 그런데 갑자기 숲이 열렸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어. 갑자기 나는 산 꼭대기에 있었고 그보다 조금 먼저 태양이 떠올랐는데, 내 앞에 다른 산들이 서로 다른 음영을 갖고 지평선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어. 모두 남색의 푸른빛이었고 가벼운 산들바람이 산꼭대기와 나의 머리, 그 안의 내 생각들을 스쳐 지나갔지. 가끔씩 밑에서 이상한 소리와 개 짖는 소리, 성당의 깊은 종소리가 들려 왔어. 동시에 그것들은 가볍고 강렬했어. 나의 내부와 외부에서 모든 것은 명백해졌고 더 이상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았으며 그 어떤 그늘도 드리워지지 않았다. 난 내려가고 싶지도, 저 아래 숲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어. 그 남빛 속에 몸을 던져 영원히 그곳에 있고 싶었으며 가장 고귀한 순간에 삶을 버리고 싶었어. 저녁까지, 에르네스토를 다시 볼 때까지 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저녁 식사 도중에는 그런 생각을 그에게 얘기할 용기가 없었어. 난 그가 웃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밤이 깊어 그가 내 방으로 왔을 때, 내게 다가와 나를 껴안았을 때, 난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단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난 죽고 싶어요' 하지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아기를 갖고 싶어요" 포르렛타를 떠날 때 난 내가 임신한 걸 알았단다. 에르네스토도 그 사실을 알았으리라고 믿는다. 마지막 며칠 동안 그는 몹시 동요했고 어쩔 줄을 몰라 했으며 종종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내 몸은 임신을 한 그 다음날 아침부터 변화하기 시작했어. 가슴이 갑자기 더 크고 단단해졌으며 얼굴의 살갗은 윤이 났지. 신체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 바로 그 때문에 비록 내가 해부를 해보지도 않았고 내 배는 아직 평평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란다. 갑자기 매우 밝은 빛에 침투 당한 것 같았고 내 몸은 넓고 활력 있게 변해 가기 시작했어. 전에는 그런 기분을 맛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 기차에 홀로 남게 됐을 때 무거운 생각들이 나를 공격했어. 에르테스토 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아기를 기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지. 아우구스토, 트리에스테에서의 내 생활, 사람들의 수다, 모든 것은 너무나 멀리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그 모든 세계는 가까이 다가왔고, 임신이 진행될 속도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어떤 결정이든--한번 선택한 결정을 -- 영원히 지킬 의무가 있었어. 역설적으로 나는 유산이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유산으로 아우구스토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바란 내가 어떻게 유산을 정당화시킬 수 있겠니? 그리고 난 유산을 원하지도 않았어. 내 안에서 자라는 생명은 실수도 아니었고, 되도록 빨리 제거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어. 그것은 바람을,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강렬한 희망을 성취한 결과였어. 한 남자를 사랑할 때-그의 육체와 영혼 전체를 사랑할 때-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아기를 원하는 거란다. 지적인 희망, 이성의 기준에 근거한 선택과는 관련이 없어. 에르네스토를 알기 전에 난 아기를 갖고 싶다고 상상했고, 아기를 원하는 이유나 아기를 갖는다는 것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결국 그건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난 어떤 나이에 도달했고 아주 외로웠기 때문에, 내가 여자이고 여자들이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경우 적어도 아이를 낳을 수는 있기 때문에 아이를 원했던 거야. 알겠니?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난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거야. 하지만 그날 밤 내가 에르네스토에게 '아이를 갖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임신은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고, 모든 상식은 이 결정과 반대였거나 훨씬 강했어. 결국 그건 결정이 아니라 열광이었고 영원한 소유에 대한 탐욕이었지. 난 나의 내부에, 나와 함께, 내 곁에 영원히 있는 에르네스토를 원했다. 지금 나의 지난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넌 아마 공포로 몸을 떨 것이다. 내게 그토록 저속하고 경멸적인 측면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왜 이전에 깨닫지 못했는가를 자문할지도 모르겠다. 트리에스테 역에 내렸을 때 난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했다. 난 부드럽고 아주 사랑스러운 아내로 기차에서 내렸다. 아우구스토는 나의 이런 변화에 깜짝 놀랐고 질문을 던지는 대신 당황하고 있었지. 한 달 후 그는 벌써 그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완전히 믿고 있었어. 검사 결과를 알려 준 날 그는 오전 중에 사무실을 나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집을 개조할 계획을 짜며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지냈어. 내가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소리쳐 전하자 아버지는 그 마른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잠시 꼼짝 않고 계셨지. 그 동안 눈가가 축축하고 붉어지셨어. 벌써 얼마 전부터 아버지는 난청으로 대부분의 생활에서 제외됐고 그분의 이성은 덜커덩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문장과 또 다른 문장 사이에 갑작스런 공백이 생기거나 다른 말로 빗나가 버리고, 아무 관련도 없는 기억의 단편들이 끼어들기도 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눈물에 감동 받는 대신 미세한 역겨움을 맛보았어. 난 아버지의 행동에서 과장 이외에 다른 무엇도 읽어 낼 수 없었어. 어쨌든 아버지는 손녀딸을 보실 수 없었다. 내가 임신 육 개월 되던 때에 아버지는 아무런 고통 없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으니까. 관 속에 평온히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분이 얼마나 여위고 늙으셨는지를 보고 놀랐단다. 얼굴 위에는 언제나와 똑같은 표정, 그러니까 거리감 있는 애매한 표정이 맴돌고 있었지. 물론 검사 결과를 받고 나서 에르네스토에게도 편지를 썼다. 그의 답장은 열흘도 되지 않아 도착했지. 그 편지를 열기 전에 난 몇 시간을 망설여야 했단다. 난 아주 흥분했고 그 안에 불쾌한 내용이 들었을까 봐 두려웠단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난 편지를 읽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편지를 읽은 수 있도록 난 카페의 화장실에 들어갔단다. 그의 글들은 조용하고 이성적이었다. "난 이게 최선의 행동인지 잘 모르겠소"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난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겠소" 그날부터 난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조용히 엄마가 되는 기다림을 시작했지. 내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졌을까? 내가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임신 기간과 그 후 여러 해 동안 난 의심도, 후회도 결코 하지 않았다. 진짜 사랑하는 남자의 아기를 가졌으면서 어떻게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척할 수 있었느냐고? 하지만 보렴, 사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란다. 흑백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모든 색조는 다양한 명암을 갖고 있다. 아우구스토에게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건 내게 조금도 힘들지 않았어. 그를 정말로 사랑했으니까. 난 에르네스트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그를 사랑했다. 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약간 신경질적인 어린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로서 사랑한 거지. 만약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모든 일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을 것이고 난 결코 아기를 갖겠다는 꿈, 그의 곁에서 살겠다는 꿈을 꿀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극도로 질서 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었어. 이와는 별도로 사실 그는 다정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지. 왜 내가 그에게 비밀을 폭로해야 했겠니? 사실을 밝힘으로써 난 세 사람의 인생을 영원한 불행 속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어.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행동과 선택의 자유가 있는 지금은 내가 했던 짓이 정말 너무나 끔찍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그때-그런 상황으로 내가 살아 가던 때-그런 일들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모든 부부들이 그랬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분명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한 상황에서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는 일들은 다소 빈번하게 일어났단다. 그러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냐고? 내겐 아무 일도 없었단다. 아기는 태어나서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자라고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은 채 어른이 되는 거지. 당시의 가족 제도는 매우 견고한 토대를 갖고 있어서 그것을 파괴하려면 씨 다른 형제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했단다. 네 엄마의 경우도 그랬어. 그 애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와 아우구스토의 딸이 되었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라리아가 우연, 관습, 혹은 권태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결실이라는 점이었어. 그것이 다른 문제들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처음 몇 년 동안은 모든 일들이 별탈 없이 진행됐다. 난 그 애를 위해 살았고, 아주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엄마가 되었다.-아니 엄마였다고 믿었다-이라리아가 첫돌이 되자마자 여름만 되면 그 애와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몇 달씩 지내곤 했어. 우린 집을 하나 세냈고, 이삼 주에 한 번씩 아우구스토가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왔다. 그 해변에서 에르네스토는 처음으로 자기 딸을 보았어. 물론 낯선 사람을 가장했지. 산책하는 동안 그는 우연히 우리 곁을 지나갔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아우구스토가 없을 때 -- 책이나 신문을 보는 척하면서 몇 시간이고 우리를 지켜봤지. 저녁이면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 우리에 대한 자신의 감정들, 그가 보았던 것 등을 기록해 내게 긴 편지를 보냈단다. 한편 그의 부인도 또다시 아들을 낳았고, 그는 온천의 계절 의사 일을 그만두고 자기가 사는 도시인 페라라에 개인 병원을 열었단다. 이라리라가 세 살 되던 해에 가장된 우연한 만남들을 끝낸 뒤, 우린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단다. 난 아이에게 몹시 사로잡혀 있었고 매일 아침 그 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쁨으로 일어났단다. 난 다른 일에 몰두하길 원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온천에 머물던 마지막 날, 헤어지기 전에 에르네스토와 난 약속을 했단다. "매일 밤" 에르네스토가 말했어. "정각 열한 시에 난 언제 어디에 있든 밖으로 나와 하늘에서 시리우스 좌를 찾을 거요. 당신도 그렇게 해요. 그러면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우린 저 위에서 다시 만나 함께 있게 될 거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하숙집의 발코니로 나왔고,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면서 오리온과 베텔기우스 좌 사이에 있는 시리우스 좌를 찾아 주었지. 12월 12일 지난밤 난 갑자기 무슨 소리에 잠을 깼는데 한참 후에야 그게 전화벨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여러 번 울린 뒤였기 때문에 수화기를 잡자마자 전화벨 소리는 끊어지고 말았어. 그래도 수화기를 들고 잠에 취한 불분명한 목소리로 두세 번 '여보세요'라고 해봤단다. 침대에 바로 눕지 않고 침대 곁의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너였을까? 전화를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밤의 고요한 집 안에 울린 소리는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몇 해 전 친구가 해준 얘기가 생각났단다. 그녀의 남편은 오래 전부터 병원에 있었다. 엄격하게 제한된 시간 때문에 남편이 죽던 날 그녀는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다는구나. 그런 식으로 남편을 떠나 보냈다는 고통에 지친 그녀는 첫날밤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어둠 속에 그냥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는 거야. 그녀는 깜짝 놀랐지. 누가 그 시간에 애도의 전화를 할 수 있겠니? 수화기에 손을 가까이 대면서 그녀는 아주 이상한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전화기에서 빛이 깜빡거리며 퍼져 나왔던 거야. 전화기를 들자마자 놀라움은 공포로 변해 버렸어. 전화기의 저편에서 누군가 매우 멀리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는 거야. '마르타' 삑 소리와 깊은 소음 속에서 말했어. '떠나기 전에 당신에게 인사하고 싶었어...' 남편의 목소리였어. 이 말이 끝나자 잠시 동안 강한 바람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전화가 끊어지며 침묵이 흘렸다는구나. 그때 난 그녀가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고 동정했단다. 죽은 사람들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장 현대적인 수단을 택했다는 것이 내게는 다소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그 얘기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게 분명해. 내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서, 나의 가장 순진하고 마법적인 부분에서 나 역시 조만간 저 세상에서 누군가가 한밤중에 안부 전화를 하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난 내 딸과 남편,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남자를 묻었단다. 그들은 죽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난 계속 난파에서 살아 남은 것같이 행동하고 있다. 급류가 나를 한 섬 위에 데려다 놓았다. 난 내 친구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배가 뒤집힌 순가, 시야에서 그들을 모두 잃어버렸지 그들은 익사했을 수도 있지만-분명 거의가 그럴 거야-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몇 달, 몇 해가 지났지만 나는 계속 옷자락이나 연기의 흔적, 모두들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는 나의 외침을 확인시켜 줄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주위의 섬들을 계속 뒤지고 있단다. 에르네스토가 죽던 날 밤, 난 갑자기 큰소리에 잠을 깼단다. 아우구스토는 불을 켜고 소리쳤지. "누구요?"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흩어진 것도 없었어. 다음날 아침이 돼서 옷장문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난 옷장 안의 선반들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지. 양말, 스카프, 속옷들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지금은 에르네스토가 죽던 날 밤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난 에르네스토의 편지를 받았고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단다. 난 그저 습기 때문에 선반의 받침대들이 썩었고, 너무 무거워서 떨어져 버린 거라고 생각했지. 이라리아는 네 살이었고 얼마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어. 그 애와 아우구스토와 함께 하는 내 생활은 이제 고요한 일상성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난 라틴어 학자 회합에 갔다가 에르네스토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카페에 갔어. 두 달 후 만토바에서 회합이 있을 계획이었고, 그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기회였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편지를 부치고, 그 다음 주부터 난 답장을 기다리기 시작했어. 그 다음 주에도 그에겐 답장이 없었고, 그 뒤의 몇 주 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무언가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편 사고려니 하다가 혹시 그가 병이 나서 우편물을 가지러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 달 뒤 난 간단한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에도 답장이 없었어.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흐르는 물이 밑부분에 침투해 버린 집과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가늘고 적당한 흐름이었는데 시멘트 구조들을 핥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크고 결렬해져서, 비록 짐이 아직은 버티고 서 있고 외관이 모두 정상이어도 그 힘 밑에서 시멘트는 모래가 되는 거지. 난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최소한의 충격이면 정면은 붕괴될 거고 무엇보다도 종이로 만든 것처럼 물 위로 집이 쓰러져 버릴 거야. 회합에 참가하기 위해 만토바로 떠났을 때 난 마치 유령 같았지. 만토바에 모습을 보이고 나서 난 곧장 페라라로 향했지. 그곳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볼 방법을 찾았던 거야. 병원에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길에서 보니까 덧문이 계속 내려져 있었어. 이튿날 나는 도서관으로 가서 그 전달 신문을 보여 달라고 했어. 그리고는 짧은 기사들을 모두 찾아 읽었지. 그는 한밤에 환자에게 왕진을 갔다 돌아오던 길에 실수로 차를 잘못 몰아 큰 플라타너스와 부딪혔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던 거야. 그날, 그리고 그 시간은 내 옷장의 선반이 무너져 내리던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어. 언젠가 라츠만 부인이 가끔씩 갖다 주는 잡지에 별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여덟 행성 중에 변사자들을 관장하는 것은 화성이란다. 또 그 기사에 따르면 이런 성위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침대에서 고요히 죽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야. 하늘에서 에르네스토와 이라리아가 불길하게 결합되어 빛나는지 누가 알겠니? 이십 년의 거리를 두고 아버지와 딸은 자동차와 나무에 충돌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 버렸던 거지. 에르네스토가 죽은 뒤 난 극도의 신경 쇠약에 빠져 들었다. 난 갑자기 최근 몇 년 동안 빛났던 빛이 나의 내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반사된 것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됐어. 실제로 내가 실제로 내가 경험했던 행복, 삶에 대한 사랑은 진정으로 내게 속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거울과 같은 작용만을 했을 뿐이지. 에르네스토는 빛을 발산했고 난 그것을 반사했지. 그가 사라지고 나서 모든 것은 불투명하게 되돌아왔고 이라리아를 보면서도 이젠 기쁨이 아니라 분노를 느꼈을 뿐이야. 난 그 애가 진짜 에르네소토의 딸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어. 그 애는 나의 이러한 변화에서 피할 수 없었고, 예민한 여자아이의 안테나로 나의 거부감을 알아차려 변덕스럽고 거만해졌어. 이제 그애는 젊고 생명력 있는 식물이었고 나는 질식하려는 늙은 나무였어. 그 애는 사냥개처럼 내 죄의식의 냄새를 맡아 냈고 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했단다. 집은 말다툼과 고함으로 이루어진 작은 지옥으로 변해 갔어. 그 무게에서 나를 구해 주기 위해 아우구스토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여자를 고용했다. 그는 잠시 동안 이라리아가 곤충들에 몰두하도록 시도해 봤지만 두세 번의 실패 이후-매번 그 애가 '징그러워라!'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나서는-그 애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내버려뒀단다. 갑자기 그의 나이가 드러났고, 이라리아의 아버지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같이 보였어. 그 애에게 친절했지만 거리를 두고 있었지. 큰 거울 앞을 지날 때 보면 나 역시 아주 늙어 보였어. 전에는 결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내 얼굴에서는 냉혹함이 드러났어. 나를 돌보지 않은 것을 내 자신에게 맛봤던 경멸감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라리아는 학교에 가고 가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난 아주 한가했다. 불안감은 대개 나를 강제로 움직이게 했고, 난 자동차를 몰고 카르소를 왔다갔다 했어. 난 일종의 몽환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 아퀼라에 머무를 때 읽었던 종교 서적 및 페이지를 다시 읽었지. 그 몇 페이지에게 열심히 해답을 찾았다. 걸으면서 나 혼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되풀이했지. '어머니를 잃은 걸 슬퍼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합니다' 한 친구가 두세 번 그녀의 고해 신부를 만나게 해줬는데, 그 만남으로 인해 난 전보다 더욱 의기 소침하게 됐어. 그의 말들은 달콤했고 마치 신앙이 일류 상점에서 파는 영양 식품이라도 되는 양 신앙의 힘에 대해 찬미했지. 난 왜 에르네스토가 죽어야 했는지를 납득할 수 없었고, 나의 빛을 소유해 본 적이 없었다는 발견은 대답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더욱 힘들게 했어. 보렴, 내가 그를 만났을 때, 우리들의 사랑이 싹텄을 때 난 내 삶 전체가 풀렸다고 확신했다. 존재 자체가 행복했고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만족스러웠다. 난 내 행진의 가장 높은 곳, 최대한 안정된 지점에 도착했다고 느꼈고 그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 확신했다. 나의 내부에는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들이 지니는 다소 거만한 자신감 같은 것이 들어 있었어. 여러 해 동안 난 내 힘으로 길을 걸어왔다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라 난 혼자서는 단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비록 내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내게는 말이 한 마리 있었고 앞으로 걸어 나간 것은 내가 아니라 말이었어. 말이 사라진 순간 난 내 다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깨달았다 걷고 싶었는데 발목은 굴복해 버렸고, 내가 걸었던 걸음들은 유년의 어린아이나 노인의 불안정한 발걸음 같았어. 잠시 동안 나는 어떤 지팡이에 의지해 볼까를 생각했었다. 종교가 그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일이었지. 곧 커다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이 사십에는 실수할 공간이 더 이상 없단다. 갑자기 알몸이 된다면, 있는 그대로 그렇게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춰 볼 용기가 필요한 거야. 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어. 그래, 하지만 어디서부터? 나 자신에게서부터 였지. 그런 말을 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그만큼 어려웠다. 내가 어디 있지? 나는 누구지? 최근 들어 내 본래의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은 언제였지? 이미 네게 말했지만 난 오후 내내 고원을 돌아다니곤 했다. 가끔씩 고독해서 기분이 더 우울해질 때면 도시로 내려와 사람들 틈에 섞여 무언가 위안 거리를 찾으면서 익숙한 길들을 오가곤 했다. 난 마치 직장을 가진 것처럼 아우구스토가 출근할 때 집을 나와서, 그가 퇴근할 때 집에 들어갔어. 나를 치료한 의사가 그에게 이런 신경 쇠약에는 많이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해 줬지. 자살에 대한 욕구는 없으니까 돌아다니게 내버려둬도 아무 위험이 없다는 거였어. 그의 말에 따르면 계속 돌아다니다가 마침내는 진정이 될 거라는 거지. 아우구스토는 그의 설명을 받아들였는데, 그가 정말 그 말을 믿었는지 혹은 그저 그에게는 안일함과 고요만이 있었는지 난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쪽으로 물러서 줬던 것, 나의 커다란 동요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다. 어쨌든 의사의 말 중에서 한가지 옳았던 것은, 극도의 신경 쇠약 속에서도 난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상하지만 정말 그랬어. 에르네스토가 죽은 뒤 단 한번도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지 않았어. 이라리라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이미 말했다시피 그때 그 애는 내게 조금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오히려 나의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끝나서는 안 됐고, 끝날 수도 없었지-직감했다. 그 안에는 의미가 있었고 내 앞에 있는 거대한 계단과도 같았다. 그 계단은 올라가라고 그곳에 있었던 걸까? 아마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난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언젠가 그곳에 올라갔을 때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자동차를 타고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에 도착했다. 숲으로 뒤덮인 언덕들의 한편에 작은 무덤이 있는 조그마한 성당이 있었고, 어떤 언덕의 꼭대기에는 촌락의 맑은 지붕들이 언뜻 보였어. 교회를 조금 더 지나치니 두세 채 가량의 농가가 있었고, 닭들이 자유롭게 길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검은 개가 짖어 댔지. 표지판에는 사마토르차라고 적혀 있었다. 사마토르차, 그 소리가 고독과 비슷했고 생각들을 모으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그곳에서부터 돌로 덮인 오솔길이 시작됐고, 난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걷기 시작했어.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지만, 앞으로 가면 갈수록 멈추고 싶지 않았어. 가끔씩 어치(까마귀과의 새)가 날 깜짝 놀라게 했어. 뭔지 모르지만 날 앞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뭔지는 열려진 숲속의 빈터에 도착해서-그 한가운데서 나를 맞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팔을 벌리듯 가지를 펼친-온화하고 거대한 떡갈나무를 봤을 때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어. 이런 말하기는 우습지만 그 나무를 보자마자 심장의 박동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박동이 빨라질수록 심장은 윙윙 돌며 만족스러운 작은 동물처럼 느껴졌어. 딱 한번 에르네스토를 봤을 때 심장이 그렇게 뛰었었지. 나는 그 아래 앉아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몸통에 등과 목을 기댔단다. 그노세이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는 뜻). 소녀 시절에 내 그리스어 노트의 겉장에 그렇게 써 놨었지. 참나무 밑에서, 내 기억 속에 묻어 뒀던 그 문장이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올랐어. 너 자신을 알라. 공기, 호흡. 12월 16일 지난밤에는 눈이 내렸다. 잠에서 깨자마자 난 새하얀 정원을 보았어. 벅은 미친 듯이 잔디밭 위를 달리고 뛰어오르고 짖어 대며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그것을 공중으로 던졌단다. 잠시 후에 라츠만 부인이 찾아왔다. 우린 함께 커피를 마셨고, 부인은 크리스마스 저녁을 함께 보내자고 나를 초대했단다. "매일 뭘 하며 지내세요?" 떠나기 전 내게 물었지. "텔레비전도 보고, 생각도 좀 하고 그래요" 그녀는 너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는다. 신중하게 그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지.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서 난 그녀가 널 배은망덕한 아이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젊은 애들은" 얘기 도중에 그녀는 종종 말하곤 했어. "양심도 없고, 예전에 가졌던 존경심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아요" 그 얘기가 더 계속될까 봐 난 수긍하고 말랐지만 속으론 양심은 언제나 존재했다고 확신한단다. 지금 여기 있는 모든 게 덜 위선적일 뿐이지. 물론 모든 노인들이 현명하진 않은 것처럼, 젊은이들이 모두 위선적인 것은 아니야. 이해력과 피상성은 개개인이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방법과 관련이 있는 거란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얼마 전에,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닌데 '어떤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그 사람의 모카신(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뒤축 없는 신)을 신가 세 달만 걸어라'라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금언을 읽었다. 잊어버릴까 봐 전화기 옆의 블록 노트에 적어 놨을 정도로 그 금언이 마음에 들었단다. 많은 삶들은 외면만 보면 그릇되고 비이성적이며 광적인 듯이 보이지. 밖에서 보는 한은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들을 오해하기 쉽단다. 내부에서만, 그들의 모카신을 신고 세 달을 걸음으로써 행동의 동기와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거란다. 이해는 오만한 지식이 아니라 겸손함에서 나오지. 이 이야기를 읽은 후 네가 내 슬리퍼를 신어 보게 될지 누가 알겠니. 난 그러길 바란다. 오랫동안 이 방 저 방으로 슬리퍼를 신고 호도나무에서 벚나무로, 벚나무에서 장미에게로, 장미에게서 잔디밭 구석에 있는 보기 흉한 검은 소나무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정원을 돌아다니길 바란다. 네 동정을 구하거나 사후에 사면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며 오직 너에게, 너의 미래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란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들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이 거짓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걸음이란다. 이 편지는 너 대신 네 엄마에게 써야 했을 거야.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의 존재는 정말 실패한 것이 됐을 거야. 실수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그 실수들을 깨닫지 못하고 떠나 버리면 삶의 의미는 무용지물이 되지. 벌어진 일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언제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단다. 모든 만남과 사건들은 자체 내에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자체에 대한 이해는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어떤 순간에도 방향을 바꿀 수 있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도마뱀처럼 늙은 가죽을 벗을 수 있는-에서 탄생되는 거란다. 거의 마흔 살에 가까와진 그날 내 그리스어 노트에 적힌 문장이 기억나지 않았다면, 다시 앞으로 나가기 전 그곳에 점을 찍지 않았다면, 난 그때까지 해 왔던 실수들을 똑같이 되풀이했을 거야. 에르네스토에 대한 기억을 쫓기 위해 난 계속적으로 또 다른 애인을 찾았을지도 모르지. 그의 복사품을 찾으면서, 이미 경험한 것을 되풀이하려는 시도 속에서 난 열 번도 넘게 같은 일들을 반복했을 거야. 그 누구도 에르네스토와 똑같을 수는 없을 거고, 난 점점 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 거야. 혹시 이미 늙어서 우스꽝스럽게 변한 뒤에도 젊은 남자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우구스토를 증오할 수도 있었을 거야. 결국 그의 존재 때문에 보다 대담한 결정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알겠니?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일은 도피처를 찾는 거란다. 외부적인 죄는 언제나 존재하고 그 죄가-혹은 책임이-오로지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하지만 네게 말했듯이 그게 앞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만약 인생이 길이라면 그건 항상 오르막으로 펼쳐지는 거야. 나이 사십에 나는 내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지를 알았다. 긴 과정을 통해 내가 도달해야 하는 곳을 알게 된 거지. 그 과정에는 장애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감동적이었단다. 알고 있니, 요즘 난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은자들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루하루 그들의 규율을 따르는 사람들이 확산된다는 거야, 난 이러한 스승들과 스스로의 평화와 우주의 조화를 찾기 위해 그들이 옹호하는 방법들이 확산되는 게 두렵게 느껴지는구나. 그것은 보편화된 커다란 혼란을 감지하는 안테나들이야. 결국 우리는 세기말에 살고 있고 비록 날짜들이 단순한 협약에 불과하다 해도 그 자체가 협박을 하고 모두들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하면서 준비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자들에게 가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교습소에 등록을 하며 한 달 뒤엔 이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흠뻑 빠지게 되지. 얼마나 크고 무한하며 놀라운 거짓말인지! 존재하는 유일한 스승, 진실하고 믿을 만한 유일한 스승은 자신의 의식이란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있어야 하고-혼자서 침묵 속에-맨 땅 위에 알몸으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있어 봐야 한다. 처음에 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야. 유일하게 공포만을 경험하겠지만, 그 후 결국은 멀리서 하나의 목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건 조용한 목소리야. 처음에는 그 평범한 소리로 인해 넌 화가 날 거다. 이상하지, 네가 가까이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때 그것은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게 여기 있지?'라고 네가 고함칠 정도로 그렇게 작고 명확하지. 삶이 의미를 갖는다면-목소리가 네게 말할 거야-그것은 죽음이야. 다른 모든 것들을 그 주위에서 소용돌이칠 뿐이야. 멋진 발견이란다. 넌 이 지점에서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발견을 할 거다.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알고 있지. 사실이야, 우리들은 모두 관념적으로 그걸 알고 있지. 하지만 생각으로 안다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은 별개의, 완전히 다른 문제란다. 네 엄마가 내게 오만불손하게 대들었을 때 난 그애에게 말했지. "넌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어" 그 애는 웃었어.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내게 대답했지. "마음은 하나의 근육이에요. 엄마가 달리지 않으면 아플 수 없는 거예요" 그 애가 뭔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 난 내가 그 애를 멀리 했던 이유를 설명하려고 수없이 시도했다. "사실이란다" 내가 말했어. "네가 어렸을 땐 한때 널 소홀히 했었다. 난 큰 병을 앓았었거든. 병자인 내가 계속 너를 돌봤으면 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거야. 지금은 건강해" 그 애에게 말했지. "우리는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 애는 그것을 알려 하지 않았어. "지금은 내가 아파요"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 나누길 거부했지. 그 애는 내가 얻어 가던 평온함을 증오했고, 그것에 상처를 입히고 일상의 작은 지옥들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했어. 그 애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결론을 내렸어. 어떤 것도 그 애의 삶을 이뤘던 그 생각을 흐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애는 자기 자신 속에 폐쇄되어 있었어.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그 애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깊은 곳에서는-열 여섯, 열일 곱살 때 모든 변화의 가능성을 거의 차단시켜 버렸지. 내가 천천히 다른 차원에 나를 열어 가는 동안, 그 애는 머리에 손을 얹고 꼼짝없이 세상일들이 자기 위에 떨어지길 기다렸던 거지. 나의 새로운 고요함이 그 애를 화나게 했다. 내 침대 맡의 작은 탁자 위에서 성경책을 봤을 때 그 애는 이렇게 말했어. "엄마가 무엇에 대해 위안 받아야 하나요?" 아우구스토가 죽었을 때 그 애는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몇 해 동안 아우구스토는 가볍지 않은 동맥 경화증에 걸려 어린아이처럼 말하며 집 안을 돌아다녔는데 그 애는 그걸 참지 못했어. "저 사람은 뭘 원하는 거예요?" 그 애는 그가 슬리퍼를 신고 방문에 나타나자마자 소리쳤어.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이라리아는 열 여섯 살이었는데, 열네 살 때부터 그 애는 그를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지. 그는 십일월의 어느 오후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 전날 심장 발작 때문에 입원했지. 나는 그와 함께 방안에 있었는데, 그는 파자마 대신 등뒤에서 끈으로 묶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어. 간호사가 저녁 식사를 가져오자마자 그는 마치 뭔가를 본 것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창문 쪽으로 몇 발짝 걸어갔다. "이라리아의 손이야" 불투명한 시선으로 그가 말했어. "우리 가족들 중에는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리고는 침대로 돌아와 숨을 거뒀지. 난 창 밖을 바라봤다. 가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어. 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십칠 년 동안 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비밀을 속을 감췄던 거야. 정오가 됐다. 해가 떠서 눈이 녹고 있단다. 집 앞에 있는 잔디밭 위에 노란 풀들이 얼룩덜룩하게 보이는구나. 나뭇가지에서는 물방울들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아우구스토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는, 그 어떤 고통도 가져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공간이 생겼고-공간은 언제나와 같다-다양한 고통들이 형식을 취하는 건 바로 그 공간 속에서란다. 거기에서 말하지 않던 것이 구체화되고 넓어지지. 넓어지고 또 넓어지는 거야. 문도, 창문도, 출구도 없는 공간으로 정지된 것은 영원히 그곳에 남아 있으며 네 머리 속에 있고, 너와 함께 네 주변에 있으면서 짙은 안개처럼 너를 휩쓸고 혼란시킬 거야. 아우구스토가 이라리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날 아주 깊은 절망 속에 빠뜨렸다. 그때 난 그에게 에르네스토에 대해, 그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얘기하고 싶었고, 아우구스토와 함께 많은 것들을 의논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해지고 말았어. 어쩌면 넌 이제 내가 처음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죽은 사람들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그들과 우리가 서로-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무게가 나가는 거란다 에르네스토가 죽었을 때처럼 아우구스토가 죽은 뒤에도 난 종교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보다 얼마 전 난 독일인 예수회 신부 한 분을 알게 됐다. 그분은 나보다 몇 살 위였는데 몇 번 만난 뒤 나의 종교적인 불안을 깨닫고 내게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어. 우린 둘 다 걷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함께 산책을 하기로 했지. 신부님은 매주 수요일 오후면 등산화를 신고 낡은 배낭을 멘 채로 날 데리러 왔어. 난 그분의 인상이 맘에 들었는데, 산사람처럼 여윈 데다가 진지했지. 처음엔 사제라는 그분의 존재가 나를 위협해서 그와 대화할 때마다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게 돼 버렸지. 난 소문이 나서 비난과 성급한 평가가 내려질까 봐 두려웠어. "당신 자신에게 해롭습니다. 알고 계세요. 당신 자신에게 뿐이오" 그 순간부터 난 속이는 일을 중단하고 그분에게 마음을 열게 됐는데 에르네스토가 죽은 뒤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어.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난 내 앞에 있는 남자가 성직자라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단다. 내가 만났던 다른 사제들과는 달리 그 신부님은 형벌의 말도, 위안의 말도 몰랐어. 처음 봤을 때에는 거부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딱딱함 같은 것이 그분에게 있었지. "고통만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죠" 그분이 말했어. "하지만 고통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궁지에 빠진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은 결정적으로 고통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승리한다는 것, 패한다는 것. 그가 사용하는 그런 전투적인 용어들은 침묵의 투쟁, 완전히 내면적인 투쟁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들이었어. 그분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땅과 같아서 반은 태양에 의해 빛나고 나머지 반은 그늘 속에서 빛난다는 거지. 성인들조차도 어디서든 빛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육체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린 어쨌든 그림자를 갖고 있지요. 그건 마치 수륙 양생의 동물들과 같아서 우리들 중의 일부는 저 밑에 살고 또 다른 부분은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경향과 같은 겁니다. 산다는 것은 그저 그것에 대해 인지하는 것, 그것을 알고 빛이 그림자에 압도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것일 뿐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경계하세요" "주머니에 해결책을 가진 사람을 조심하고, 당신에게 자기 마음을 얘기한 사람 외에는 모두 경계하세요" 난 넋이 나가 신부님의 얘기를 들었단다. 오래 전부터 표출되지 못한 채 나의 내부에서 동요하던 것을 그렇게 잘 표현해 준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분의 말과 함께 내 생각들도 형태를 이루어 갔고 갑자기 앞에 길이 나타났다. 그 길로 달려간다는 게 이젠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단다. 가끔씩 그분은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책 몇 권을 배낭에 넣어 가져왔다. 잠시 짬이 나면 그분은 맑고 중후한 목소리로 몇 구절을 읽어 주었어. 그분과 난 함께 러시아 수도사들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를 읽었어. 난 그때까지 난해하게 보았던 복음서와 성경의 구절들을 이해하게 됐지. 에르네스토가 죽은 뒤, 난 계속 내면적인 행진을 했지만 그건 나 자신에게 제한된 행진이었어. 그 속에서 나는 내 앞에 놓인 벽을 발견했고, 그것을 넘어서면 길은 더욱 넓게 빛나리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뛰어넘어야 알지는 몰랐어. 어느 날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우리는 동굴 입구에서 비를 피했어. "신앙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죠?" 내가 동굴 안에서 신부님께 물었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십시오, 당신은 이미 신앙을 갖고 있는데 당신의 자존심이 그걸 인정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너무 많은 질문들을 제기하는 거죠.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겨예요. 사실 당신은 무시무시한 두려움만을 갖고 계십니다. 흘러가게 내버려두십시오. 가야 할 것은 가게 될 겁니다" 이런 산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난 더 혼란스러워지고 의심에 싸이게 됐단다. 이미 말했지만 그 신부님은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분의 말들은 내게 상처를 줬어. 이젠 그분을 만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고, 화요일 저녁이 되면 '이제 신부님에게 전화해서 몸이 좋지 않으니 내일은 오지 말라고 말해야지'라고 혼잣말을 했어. 하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채, 문앞에서 정각에 신부님을 기다렸지. 우리들의 소풍은 일 년여 이상 지속됐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의 상급자들이 그분을 해임시켜 버렸단다. 내가 네게 들려준 얘기로 인해 넌 어쩌면 토마스 신부님이 거만한 사람이며, 그분의 말이나 세상에 대한 시각 속에는 격정이나 맹목적 신앙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내가 결코 만나 본 적이 없는 가장 평온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모습이 숨어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군인은 아니었어. 만약 그의 개성 속에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척 구체적이고 매일 매일의 사건들에 뿌리 박은 것이었을 거야. "우린 지금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분은 항상 되풀이해 말했지. 문가에서 그분은 내게 봉투를 하나 건네 줬다. 그 안에는 산악 목장의 경치가 담긴 엽서가 한 장 들어 있었어. 하느님의 왕국은 당신들 안에 있다. 독일어로 그 위에 인쇄되어 있었고, 뒤쪽에는 그분의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어. '참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당신은 당신이 아니라 참나무입니다. 숲속에 있으면 숲이 되고 초원에서는 초원이 되고 인간들 속에서는 인간들과 존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 이 문장은 불행한 새댁으로 아퀼라에서 살 때부터 이미 내게 충격을 줬었지. 그때는 눈을 감고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토마스 신부님과의 만남 이후 뭔가가 변했어. 난 계속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맹목적인 실명은 아니었어. 어둠의 밑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가끔씩 아주 잠시 동안은 나 자신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그건 작고 약한 불빛이었고 정말 작은 불꽃에 불과해서 바람만 한번 불어도 금방 꺼질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상한 가벼움을 줬는데 내가 맛본 것은 행복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행복감도, 흥분도 없었고 내가 더 현명하고 고상해진 것 같지도 않았어. 나의 내부에서 자라났던 것은 존재에 대한 맑은 의식이었지. 초원 위에서는 초원으로, 참나무 아래에서는 참나무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으로 존재하라. 12월 20일 오늘 아침에는 벅을 앞세우고 지붕 밑 다락방에 올라갔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방문을 열지 않았던지! 도처에 먼지가 쌓여 있었고, 대들보 모퉁이에는 커다란 거미집들이 쳐져 있었어. 상자와 판지들을 들어내면서 난 두세 개나 되는 도르마우스(작은 다람쥐 비슷한 동물)의 보금자리를 발견했다. 도르마우스들은 너무 깊이 잠들어 있어서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어. 노인들이 다락방에 가는 걸 좋아하듯이 어린아이들도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신비로웠던 모든 것, 모험적이었던 것의 발견은 추억이라는 아픔으로 변한단다. 난 크리스마스를 위해 마구간을 찾았는데, 그걸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상자들과 아주 커다란 두 개의 트렁크를 열어 봐야만 했어. 신문과 천에 쌓여 있던, 이라리아가 좋아하던 인형과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들이 우연찮게 내 손에 잡혔단다. 더 밑에는 아우구스토의 곤충들과 확대 렌즈, 곤충을 채집할 때 쓰던 도구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라멜통 속에는 붉은 끈으로 묶인 에르네스토의 편지가 있었다. 네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너는 젊고 활기차서 다락방이 아직은 너를 위한 곳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트렁크 속에 들었던 작은 자루를 열자 집이 폭파 될 때 구한 내 어린 시절의 물건들 몇 개가 발견됐어. 그것들은 불에 그을려 시커멓게 돼 있었지. 무슨 유품이라도 되는 양 그걸 꺼내 보았다. 대개는 부엌용품들이었어. 법랑 그릇, 흰 색과 남색의 도자기 설탕통, 포크와 나이프 세트, 케이크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 떨어지고 표지도 없는 책 몇 페이지가 있었다. 무슨 책이었을까? 난 그 책을 기억할 수가 없었어. 그걸 손에 들고 처음 몇 줄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야 겨우 모든 것들이 떠올랐지. 아주 강한 감동이었어. 그건 어떤 책이라기보다는 어릴 때 내가 무엇보다도 꿈꿨던 것, 나를 환상에 젖게 했던 것이었어. 제목은 "2천년 대의 기적"이었는데 그 나름대로 공상 과학 책이라고 할 수 있었지. 줄거리는 매우 단순했지만 환상이 풍부했어. 내용은 놀랄 만한 진보가 이루어져서 19세기 말의 두 과학자들이 2천년 대까지 동면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였어. 정확히 1세기 후에 그들 동료의 손자가-그 역시 과학자인데-그들을 해동시켜 날으는 작은 플랫포옴 위에 태우고 세상을 돌아보며 교육적인 여행을 시켜 준단다. 이 책에는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우주선도 없어. 벌어지는 일은 모두 그저 인간의 운명, 그들 손으로 만들어 낸 운명과 관련이 있을 뿐이야. 작가의 말을 들어 보면 인간은 다양한 일들,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할 수 있지 세상에는 이제 기아나 빈곤이 없는데 기술과 결합한 과학이 혹성의 구석구석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비옥함을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야. 많은 기계들이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서 모든 이들에게 자유 시간이 많아졌어. 인간 존재들은 자신의 가장 고귀한 부분들을 가꾸어 나갈 수 있었고 지구 도처에서는 음악과 시, 평온하고 박학다식한 철학적 대화들이 다시 흘러 나오기 시작했어. 마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날아다니는 플랫포옴 덕택에 우린 한 시간도 안 걸려 대륙을 옮겨 다닐 수 있었어. 늙은 과학자는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였어. 실증주의적인 믿음으로 상상했던 모든 일들이 실현됐단다. 책을 넘기면서 난 내가 좋아했던 삽화를 발견했다. 다윈 같은 수염에 체크 무늬 조끼를 입은 두 명의 뚱뚱한 학자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 플랫포옴에서 즐겁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란다. 두 과학자 중 한 사람이 그 동안 매우 근심스럽게 품어 왔던 의심을 쫓아 버리기 위해 감히 질문을 던지지. "그런데 무정부주의자들이나" 그가 말했어. "혁명가들이 아직도 존재할까요?" "오, 분명 존재하지요" 그들의 안내자가 웃으면서 대답했어. "북극의 얼음 밑에 건설한 도시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우연히 해를 끼치려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군대들은" 그러자 다른 사람이 뒤이어 말했어. "왜 군인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죠?" "군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젊은이가 대답했어. 그 순간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마침내 인간은 원래의 선량함으로 돌아갔구나! 하지만 안도감은 금세 사라져 버렸지. 젊은 안내자가 곧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야. "오, 아니에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인간은 파괴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죠. 다만 참는 것만을 배웠답니다. 군인, 대포, 총검 등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들이죠. 그 대신에 작지만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어요. 바로 그 무기 덕택에 전쟁이 필요치 않은 거죠. 사실 산 위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그걸 떨어뜨리기만 하면 세상 전체를 부스러기와 파편들로 바꿔 놓을 수 있답니다" 무정부주의자들! 혁명가들! 내가 어린 시절에 이 두 단어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넌 아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10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난 일복 살이었다는 걸 염두에 둬야만 한다.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내 귀에 들려 왔어. 내 학교 친구는 얼마 후 러시아의 코사크인들이 로마와 베드로 성당까지 내려와 성스러운 분수에서 그들의 말에게 물을 먹일 거라고 말해 줬어. 어린아이들의 머리 속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공포는 그 이미지에 젖어 있었지. 밤에 잠이 들 순간이면 난 발칸 반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곤 했단다. 내가 경험하게 될 공포가 로마의 거리에 질주할 말들과는 전혀 다르고 더 혼란스러우리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니? 어려서 내가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2천년 대에 내가 몇 살이나 됐을지 알아보기 위해 몇 번씩 계산하곤 했단다. 아흔 살은 다소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 나이까지 산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어. 그런 생각들이 내게 일종의 무아지경의 상태를 부여해 주었고, 2천년까지 살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벼운 우월감 같은 것을 느꼈단다. 이제 거의 2천년이 다가온 지금, 난 2천년까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석함이나 향수를 느끼냐고? 아니야, 그저 너무 지쳐 있을 뿐이야. 예상했던 모든 기적들 중에 오로지 하나만이 완성됐다. 작고, 아주 강력한 무기 말이다. 너무나 오래 살아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는 이런 갑작스런 느낌이 최근 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지금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신석기 시대의 사람에게도 일어났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내가 살아온 거의 1세기에 걸친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난 어떤 순간에든 시간은 곧 가속도를 가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낮은 언제나 낮이고, 밤은 낮에 비례해서 항상 길고, 낮은 계절에 비례해서 길어진다. 신석기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그렇다. 해는 떴다 진다. 천문학상으로 보면 아주 미세한 차이밖에 없단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더욱 가속화됐다고 생각해. 역사는 수많은 일들을 일으켰고, 항상 다른 사건들로 우리를 집중 공격하고 있단다. 하루하루를 끝내며 우리는 몹시 지쳐 버리고, 삶을 끝낼 때는 피로를 느끼게 되지. 10월 혁명과 공산주의 생각해 보렴! 나는 공산주의가 일어나는 걸 보았고 볼셰비키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것이 각국으로 퍼져 세계를 커다란 두 개의 구역으로-이쪽은 흰 색 저쪽은 검은 색으로-나누어 놓는 것을 보았다. 흰 색과 검은 색은 그들끼리 영원한 싸움을 하고 있었어. 그 싸움 때문에 우리 모두는 숨죽이고 있었다. 무기가 있었고, 이미 한 번 투하됐지만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을 켰을 때, 이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으며 벽과 철조망과 석상들은 무너져 버렸어. 두 달도 안 돼서 이 시대의 위대한 유토피아는 디노사우러스(공룡의 일종)가 돼 버렸단다. 그건 미이라로 만들어져서 이제 움직일 수 없음으로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아. 단지 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 모두들 그 앞을 지나며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오,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라고 말하고 있어. 난 공산주의를 얘기했지만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단다. 난 그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그 많은 일들 중에 남은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단다. 왜 시간이 가속화됐다고 말하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겠니? 신석기 시대에는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비가 오는 계절, 눈이 내리는 계절, 태양의 계절, 메뚜기의 침입,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이웃들과의 피흘리는 몇 번의 작은 전투, 아니면 연기 나는 구멍이 있는 작은 운석의 도착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겠지. 자기 지역 이외에, 강 이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확장되는 세계를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은 더 느리게 흘렀을 거야. '당신은 흥미 있는 시대에 살게 될 거야' 중국인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인 것 같다. 호의적인 전조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조라기보다는 저주처럼 보이는구나. 흥미 있는 시대란 가장 불안정한 시대, 많은 일들이 벌어진 시대야. 난 무척 흥미 있는 시대에 살았지만 어쩌면 네가 살아갈 시대는 그것보다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비록 단순한 천문학적 협약이긴 하지만 천년이라는 시대의 변화는 항상 자체 내에 커다란 재해를 불러오는 것 같다. 2000년 1월 1일에도 새들은 1999년 12월 31일과 똑같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 똑같은 방식으로 노래를 할거고, 노래를 마친 뒤에는 전날처럼 먹이를 찾으러 갈 거야. 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완전히 다르겠지. 어쩌면-형벌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면-훌륭한 의지로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몰두할 거다. 그렇게 될까?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조짐들은 각양각색이었고 그들끼리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어떤 날은 인간은 불행하게도 아주 위험한 혼합 기계들을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원숭이에 불과한 존재로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하지만 그 다음날엔 최악의 상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정신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 솟아오르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가정이 옳은 것일까? 어떻게 알겠니. 둘 중의 어느 하나도 맞지 않을 수 있고, 어쩌면 정말 2000년의 첫날밤에 하늘이 어리석은 인간,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마구 소모해 버리는 인간을 벌주려고 땅 위에 무시무시한 불비와 화산 자갈을 떨어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넌 2000년에 막 스물 네 살이 되겠구나. 그래서 넌 이런 모든 일들을 보게 될 거야. 하지만 난 이미 이곳을 떠나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을 간직한 채 무덤 속에 들어가 있겠지. 넌 이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고 능력도 갖추고 있니? 만약 이 순간 하늘에서 요정이 내려와 내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 것 같니? 난 그녀에게 도르마우스나 박새, 혹은 집거미로 날 변신시켜 눈에 띄지 않게 네 곁에서 살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할 거야. 난 너의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없고 그걸 상상할 수조차 없다. 널 사랑하니 그걸 모른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구나. 몇 번 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 넌 아주 비관적이었어 젊은이들이 갖기 마련인 확고한 생각으로, 넌 그 당시 너를 괴롭히던 불행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확신했어. 난 그와는 정반대가 되리라고 믿는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지 넌 자문해 보겠지? 네가 개 가게에서 벅을 택할 때, 넌 그저 다른 개들과 똑같은 개를 골랐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사실 그 삼일 동안 넌 너의 내부에서 아주 크고 결정적인 싸움을 했어. 표면적인 것과 마음 사이에서 넌 그 어떤 의심이나 주저도 없이 마음의 소리를 택했다. 아마도 네 나이 때의 나라면 부드럽고 우아한 강아지를 골랐을 거다. 가장 기품 있고 좋은 냄새가 나는 개,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남들의 시샘을 받을 만한 개를 골랐을 거야. 나의 우유부단과 성장 환경 때문이었다. 난 그렇게 독재적인 외면성에 굴복하고 말았단다. 12월 21일 어제 다락방을 오랫동안 뒤진 끝에 마침내 마구간과 화제 때 살아 남은 케이크 틀을 가져왔다. 마구간은 알겠어요, 이제 크리스마스니까. 하지만 케이크 틀은 뭐에 쓰시려구요? 넌 이렇게 말하겠지. 이 케이크 틀은 우리 할머니 그러니까, 너의 고조모가 쓰시던 거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여인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지. 다락방에 오래 묻혀 있었기 때문에 너무 녹이 슬어 있었다. 곧 부엌 개수대로 가져와서 세제와 적당한 스폰지를 사용해 그것을 닦으려 애썼다. 이것이 만들어지고 나서 몇 번이나 오븐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얼마나 각양각색의 그리고 갈수록 현대적이 돼 가는 오븐을 보았는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손들이 얼마나 많은 밀가루 반죽을 그 틀에 부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렴. 케이크 틀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밑으로 가지고 내려왔단다. 네가 쓰다가 네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도록, 보잘것 없는 물건의 역사 속에서 우리들 세대의 이야기가 정리되고 기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트렁크 바닥에서 그것을 보자마자 우리가 다정하게 지냈던 최근의 시간이 떠올랐다. 언제였더라? 일 년 전이던가, 어쩌면 일 년이 조금 더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막 오후가 될 무렵 넌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왔어. 난 가슴에 손을 모으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보자마자 넌 울음을 터뜨리더구나. 너의 울음소리에 난 잠이 깼다. "왜 그러니?" 일어나 앉으면서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니?" "곧 돌아가실 거잖아요" 넌 더 큰소리로 울면서 내게 대답했지. "오, 하느님, 너무 빨리 그러지 않길 바라자꾸나" 웃으면서 네게 덧붙였다. "어떠니? 난 할 수 있는데 넌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알려 주마.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넌 그 일을 하면서 나를 추억하면 되잖니?" 난 일어섰고 넌 내 목에 팔을 감았지. "그러면" 나까지도 휩쓸려 들어가려는 감정에서 해방되기 위해 말했어. "네게 뭘 가르쳐 주면 좋을까?" 넌 눈물을 닦으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지. "케이크 만드는 거요" 그래서 우린 함께 부엌으로 가서 긴 전투를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넌 앞치마를 두르고 싶어하지 않았어. 넌 이렇게 말했지. "만약 앞치마를 두르면 젓가락과 프라이팬도 들어야 할 거 아니에요, 끔찍해요!" 그리고 거품을 내야 할 계란 흰자위 앞에서 넌 팔목이 아프다고 말했고, 버터가 노른자위와 섞이지 않아서, 오븐이 너무 뜨겁지 않아서 화를 냈지. 내가 초콜릿을 녹였던 주걱을 핥다가 코를 밤색으로 만들어 버리자 웃음을 터뜨리며 네가 말했지. "창피하지 않으세요? 강아지처럼 밤색 코잖아요" 그 간단한 과자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부엌을 처참하게 만들면서 오후를 몽땅 바쳤다. 갑자기 우리 사이에 커다란 가벼움, 공모의 즐거움이 생겼지. 케이크가 마침내 오븐에 들어갔을 때, 유리창 밖이 차츰차츰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을 때 넌 왜 우리가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냈고 다시 울기 시작했어. "울지 마라" 네게 말했지. "내가 너보다 먼저 떠나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도 계속 이곳에 있을 거다. 멋진 추억으로 네 기억 속에 있을 거야. 나무와 채소밭과 정원을 보면 우리가 함께 보냈던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이 생각나게 될 거다. 네가 내 의자 위에 앉을 때도 마찬가지야. 또 네가 오늘 내가 가르쳐 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네 앞에서 밤색 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야" 12월 22일 오늘은 아침 식사 후에 응접실로 가서 벽난로 곁에 마구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초록색 종이를 설치한 다음 마른 사향 몇 조각, 야자나무와 성 요셉과 마리아가 들어가 있는 오두막, 거위를 거느린 여인들, 연주자들, 돼지들, 낚시꾼들, 수탉과 암탉들, 양과 염소들을 준비했다. 그 위에 푸른 색종이로 하늘을 만들어 테이프로 붙였어. 가운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혜성을, 왼쪽 주머니에는 동방박사들을 넣어 두었다. 그러고 나선 방의 다른 쪽 찬장 위에 별을 걸고 그 밑에 조금 떨어진 곳에 동방박사와 낙타들을 한 줄로 배치시켰지. 기억나니? 네가 어렸을 때 어린아이들 특유의, 일관성에 대한 열망 때문에 넌 처음부터 혜성과 세 동방박사가 마구간 곁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지.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나와야 했어. 혜성은 조금 앞서 나오고 동방박사들은 바로 그 뒤를 쫓아야 했지. 마찬가지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기 예수가 구유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24시, 우리는 자정 정각에 하늘에서 마구간으로 내려오게 했다. 초록색 매트 위에 양들을 배치시키는 동안 네가 마구간에서 즐겨 했던 또 다른 일, 네가 만들어 냈고 몇 번을 되풀이해도 싫증내지 않던 놀이가 생각났단다. 처음 그 놀이를 할 땐 난 네가 부활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믿었다. 사실 부활절에 난 널 위해 정원에 색색깔로 된 달걀들을 숨기곤 했다. 크리스마스에 넌 달걀 대신 양들을 숨겨 놓았는데 내가 안 볼 때 양떼들 속에서 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겨 놓았지 그리고는 내게 와서 절망적인 목소리로 훌쩍거리기 시작했어. 그러면 탐색이 시작됐고 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웃다가 울다가 하는 네 뒤를 따라다니며 집 안을 돌아다녔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길 잃은 어린 양이 어디 갔지? 널 구해 줄 테니 찾게 해주렴" 그런데 지금, 어린 양인 넌 어디 있는 거냐?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넌 미국에서, 코요테와 선인장의 틈새에서 살고 있다. 이 글을 읽을 때면 십중 팔구 넌 여기 있을 거고, 내 물건들은 이미 다락방에 들어가 있겠지. 내 이야기들이 널 구해 줄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 말들이 널 화나게 만들지도 모르고 떠나기 전에 나에 대해 갖고 있던 나쁜 생각을 확인시켜 줄지도 모르지. 어쩌면 더 어른이 돼서야 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고집에서 자비로 이끌어 주는 신비한 행로를 완수하고서야 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비심을 가져라. 몸조심하고, 고통스러워 하지 말아라. 네가 고통스러워 할 때 마법의 요정들처럼 네게 내려와 응석을 부리마. 겸손하지 않고 비굴할 때, 침묵하지 않고 공허한 수다에 취해 있을 때도 난 똑같이 할 거야. 전등은 터져 버릴 거고 접시가 선반 밑으로 떨어져 내릴거고 속옷들이 샹들리에에 걸릴 거다.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단 한순간도 널 편히 놓아 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널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난 그저 내던져진 삶, 사랑의 발걸음으로 완성될 수 없었던 삶을 볼 때처럼 슬픔을 느낄 거야. 네 자신을 돌봐라. 어른으로 자라면서 잘못된 것들을 올바르게 바꾸고 싶을 때마다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야 할 대상은 네 자신 속에 있으며 그것이 최초의, 가장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라.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실수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없이 투쟁한다는 거야. 네가 길을 잃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무를 생각해라. 그들의 성장 방식을 기억하렴. 잎이 많고 뿌리가 적은 나무는 바람만 한번 불어도 뿌리가 뽑히는 반면, 뿌리가 많고 잎이 적은 나무에서는 수액이 제대로 흐르기가 힘들다. 뿌리와 나무는 비슷한 양으로 성장해야만 돼. 넌 사건들 속에,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여야 해. 그래야만 그늘과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고, 적당한 계절에 꽃과 열매를 마음껏 피울 수 있단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 지 모를 때, 되는 대로 아무 길이나 들어서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내쉈던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네 마음 속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마음이 네게 이야기할 때 마음 가는 곳으로 가거라. 옮긴이의 말 사랑의 힘이 있기에 인생의 종말을 눈앞에 둔 팔십대 할머니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 주는 서른 여덟 살의 젊은 작가 수산나 타마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그녀에게 '젤소미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의 말대로 매력적이고 순진 무구한 타마로의 모습은 그녀의 세 번째 소설 "마음 가는 대로"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올가라는 할머니가 미국에 가 있는 십대의 손녀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일기이다. 일상 생활을 통해 고통스러웠던 삶의 여정을 손녀에게 들려주는 고백투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듯이 남편 아우구스토와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 단 하나의 연인 에르네스토와의 만남과 그의 죽음, 딸 이라리아와의 불편한 관계, 손녀의 엄마인 이라리아의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얘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냉정할 정도로 담담한 고백 속에서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열정과 감정, 고통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불륜이라 할 수 있는 에르네스토와의 사랑은 자칫 잘못하면 추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깔끔하고 정확한 글쓰기를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됨으로써 오히려 가슴 뭉클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올가는 성실과 진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삶은 사슬처럼 연결되어 그 고리를 끊고 나오기가 매우 힘들며 부모의 죄가 자식에서 전해진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올가의 불행한 삶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유래하는지도 모른다. 딸인 이라리아의 불행은 바로 올가 자신의 거짓말, 그러니까 연인인 에르네스토의 딸을 남편의 딸로 만든 그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 고향을 버리고 미국에 가 버린 손녀의 불행은 60년대의 여권 운동에 물들어 자유로운 성생활을 주장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딸을 낳은 이라리아에게서 비롯되었다. 세대간의 갈등 역시 이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고난 고통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절망적이기만 한 이 사슬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우리의 마음과 감정만이 그 고통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다. 실수와 어둠, 불행으로 가득 찬 인생이지만 그곳에는 미래가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힘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난 이 소설을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로 느끼지 않았다. 비록 트리에스테라는 낯선 지방을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바로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얘기였다. 올가라는 주인공의 삶이나 그녀의 태도를 '윤회'라든가 '업'이라는 동양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비록 그 원인이나 상황은 다르겠지만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자신이 밝혔듯이 부르주아적인 속성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보수적인 올가의 세대를 거쳐 여권 운동에 물든 이라리아, 그리고 가치관의 혼돈을 겪으며 삶의 중심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손녀에 이르는 삼대의 이야기에서 동서양을 뛰어넘는 여성들의 문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치열한 성찰로 인해 다소 교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한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느끼는 주인공의 절실한 감정들이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리라 본다. 나이를 초월해 자신을 찾고 자기 삶의 중심을 찾으려는 여성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가슴에 묻어 버렸지만 결코 죽지 않는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여서, 생활의 지침서를 필요로 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읽어 볼 만한 귀중한 소설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소설을 번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무엇보다 기뻤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고려원 편집부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1995년 10월 이현경 수산나 타마로 1957년 트리에스테 출생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십대 후반에 로마로 건너가 영화 실험 센터에서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이탈리아 국영 방송을 위해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9년 처녀작 "구름 속의 머리"를 발표, 엘리자 모란테 상을 수상하였다. 91년에는 단편집 "단 하나의 목소리를 위하여"를 발표하여 이탈리아 펜 클럽 상과 라팟토 상을 수상했다. 92년, 94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뚱뚱보 미첼", "책을 싫어함"을 발표했다.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으며 명상과 좌선을 즐긴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이 현 경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 강사로 있으면서 이태리 문학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역서로는 "인샬라", "반쪼가리 자작", "거미집이 있는 오솔길" 등이 있다. 8ㅞY]2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