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 전축에서 브라암스의 교향곡 제2번이 흘러 나온다. 누군가 곡에 맞춰 콧노래를 부른다, 멀리 사라 져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병마개 따는 소리, 맥주를 컵에 따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잠깐만. 지금! 이 소 리 들리지요? 이거요! 지금 이거요! 들리세요? 조금만 있으면 다시 나을 겁니다 똑같은 마디거든요. 잠깐만 요. 이거요! 들으셨지요! 베이스 소리 말입니다. 콘트라 베이스요. (음반 위의 전축 바늘을 제자리로 옮겨 놓자 음악 소 리가 끝난다.) 제가 한 겁니다. 정확한게 말하면 우리가 연주 한 거지요. 동료들하고 제가 말입니다. 우리는 국립 오 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는 단원들입니다. 브라암스의 교향곡 제2번. 대단히 감동적인 음악입니다. 저 곡을 연주했을 때 우리는 모두 여섯 명이었습니다. 중급 정 도로 구성된 인원이지요. 우리가 전부 다 모이면 여덟 명입니다. 어떤 때는 외부에서 초빙한 사람까지 합해 열 명이 함께 연주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언젠가는 열 두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함께 연주한 적이 있기도 했 지요. 엄청난 인원입니다. 정말 굉장히 많은 숫자입니 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열 둘이라면 -이론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제대로 형태를 갖춰서 무대에 다 올려 놓지도 못합니다. 물리적으로만 따져 봐도 불가능합니다. 다른 악기 연주자의 인원을 부득이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우리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 게 다 물어 보시라고요.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베이스만 은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음악을 아시는 분이라면 누 구나 인정할 겁니다 수백 년 동안 오케스트라는 지휘 자 없이 잘 해 왔었습니다. 지휘자는 사실 음악사적으 로 평가해 본다면, 최근에야 새롭게 등장하게 된 직업 입니다, 정확히는 19세기에 생겨났죠. 심지어 우리 국 립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도 가끔은 지휘자의 지휘를 전혀 따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연주할 때도 있다니 까요. 때로는 완전히 무시해 버릴 때도 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지휘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지 휘를 따르지 않고 연주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면 우리 는 지휘자를 자기 마음대로 앞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게 놓아두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발장단으로 박자를 맞추 곤 합니다, 물론 그런 짓을 우리 악단의 책임 지휘자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초빙된 지휘 자 앞에서는 항상 그러지요. 아주 은밀하게 쾌락을 맛 볼 수 있거든요. 그 맛은 도저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 그건 그런 정도로 언급해 두겠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졌다면 과연 어떻 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얻으려면-지금, 단어의 정의에 입각해서 말 씀드리고 있는 겁니다-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제1바이올린이 없 거나, 관악기가 없거나, 북이 없거나, 트럼펫이 없거나, 그밖에 다른 악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있 습니다. 하지만 베이스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 다.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 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 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 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 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히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 는 다른 일반적인 것들에게 기준의 역할을 해 내고 있 습니다. 물론 지휘자도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회화적으로 표현한다면, 훌륭한 건축물이라 고 할 수 있는 전체를 떠받들 수 있게 만드는 기초와도 같은 겁니다. 만약 베이스를 빼놓는다면 음악가들은 자 기가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소 돔처럼 엄청난 소음에 휘말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슈베르트의 나장조 교향곡에서 베이스가 (빠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을 보듯 뻔한 현상이 나다나겠죠. 그 따위는 아예 머 리 속에서 지워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오케스트라의 전 장르 가운데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말하자면 심포 니면 심조니, 오페라면 오페라, 솔로 콘서트면 솔로 콘 서트 어떤 종류든지간에 -그것들에서 콘트라베이스 가 빠진다면 그런 것들은 아예 모두 집어치워 버리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언제 제일 진땀이 나느냐고요! 한번 뚤 어보시라니까요!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듣지 못할 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할 겁니다. 완전 실패작이 되는 거 죠. 재즈 밴드의 연주를 들으면 내 말을 좀 더 명확하 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재즈 밴드에서 베이스가 빠지면 연주음은 -회화적으로 표현해서 -폭발음처 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다른 악기의 연주 자들은 일제히 무기력해지고 말겠죠. 평소에 저는 사실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록이나 그런 비슷한 것들도 마찬가지지요. 왜냐하면 고전 음악적인 의미에 서 아름답고, 흘륭하고, 진실된 것을 지향하는 예술가 로서 무정부적이고, 즉흥적인 자유분방함보다 더 금기 시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점 에 대한 언급은 이 정도로 일단 접어두기로 하겠습니 다. 저는 다만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의 중추적인 악 기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쉽게 설명해 보려고 시도 했을 뿐입니다. 사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쉽게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이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 지는 현상인 까닭에 아무도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는 않지요. 우리 오케스트라의 단장이 만약 콘트라베이 스가 없으면 자기가-보잘것 없이 사소하다는 것과 무 가치하다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예로서 -마치 옷을 걸 치지 않은 황제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인정 해야만 된다면,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으로 그는 과 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입장이 좋지 않겠죠. 전혀 안좋을 겁니다. 실례지만 잠간 좀 마시겠습니다....... (맥주를 조금 마신다.) 저는 원래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음악가로 서 저는 제가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바닥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뿌리를 박고 있는 땅이지요. 그 곳은 누구나 일체의 음악적 영 감을 힘차게 빨아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림으로 표현 하자면, 음악의 씨앗을 허리춤에서 분수처럼 쏟아 내 놓으며 하나의 금자탑을 이루는 꼭대기입니다...... 그 리고 그것은 바로 저입니다! 제 말은 베이스가 그렇다 는 거지요. 콘트라베이스요. 그리고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과 반대의 극을 이룹니다. 그것들은 모두 베이스를 통해서만이 극에 도달할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소프라노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오페라 말입니다. 소프라노를-글쎄 어떻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요....... 요즘 우리 오페라단에 한 젊은 소프라 노 성악가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메조소프라노가 전공 인데, 그 동안 노래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정말로 저는 그 성악가 의 목소리로 일생에 가장 커다란 감동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는 사실 아가씨라고 불러도 무방하 리만큼 젊습니다. 이십대 중반이거든요. 저는 서른 다 섯입니다, 8월에 서른 여섯이 되지요. 언제나 오케스트 라가 휴가중일 때만 생일을 맞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 운 여자죠. 물찬 몸매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은 이 정도로 접어 두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소프라노는 -지금 예를 들고 있는 겁니다- 콘트라베이스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 인간의 목소 리와 악기의 소리라는 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이를테면...... 이를테면 소프라노가...... 혹은 메조소 프라노가...... 정확히 양극을 이루면서 그 끝에서....... 아니 그보다는 그 끝을 향해서...... 아니면 콘트라베이 스와 함께 혼연 일체가 되어...... 전혀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말하자면-음악적인 섬광을 이 극에서 저 극 으로, 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종달새라고 비유될 수 있는 소프라노로 -아니면 메조소프라노로 왔다갔다 하면서 -지고하고 영원에 가까운 거룩한 그 높이, 우 주와의 조화를 이루는, 에로틱하고-성적인-끊임 없이 충동적인 본능,그러니까 말하자면...... 대지의 성 격에 가까운 콘트라베이스의 근본적인 밑받침으로부터 뻗어져 나오는 자석의 양극 범위 내에 존재하면서 태고 의 것으로서....... 그러니까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가 바로 그런 태초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도 그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음악이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혹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 으로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음악적으로 의미가 있는 모든 것들이 생성되어 비로소 음악적 의미와 삶 이, 분명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삶이 이루어지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그 성악가가-참고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이름은 세라라는 여자인데, 정말 굉장한 여자입니다. 음악에 대해서 일가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느낄 수 있죠. 사실 음악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제가 뭔가 대단히 감동적이라 고 느낄 때면, 언제나 그 성악가가 멋지게 음을 뽑아 올리곤 하더군요.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 즉 오케 스트라 단원들이 한 몫을 단단히 해줍니다. 그 중에서 도 우리 콘트라베이스 단원들이, 다시 말하면 제가 특 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말 가슴이 뿌듯한 일입니 다. 대단하지요. 자,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콘트라 베이스는 그 악기가 내는 원초적인 저음으로 오케스트 라 악기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악기라는 말씀을 이 제까지 드렸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콘트라베이스 가 현악기 중에서 가장 저음을 내는 악기라는 것입니 다. 한 옥타브 낮은 (미)까지 소리가 내려가거든요. 제 가 한번 연주해 보여드려도 괜찮겠죠...... 잠간만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서서 악기를 손에 쥐고 는 활을 조인다.) ......아 참, 제 베이스에서는 활이 제일 좋습니다. 프 레치너 활이거든요. 요즘 구입하려면 2천 5백 정도 할 겁니다. 제가 살 때만 해도 3백 50이었습니다. 이런 종 류의 물건들 값이 지난 10년 사이에 정말 엄청나게 많 이 올랐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귀기울여 잘 좀 들어보십시오....... (최저음의 현을 켜 보인다.) 들으셨어요? 한 옥타브 낮은 (미)였습니다, 줄 이 잘 맞았다면 정확하게 헤르쯔 41.2입니다. 베이스 중에는 더 낮은 음을 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한 옥 타브 낮은 (도)나, 심지어 두 옥타브 낮은 (시)까지 나 오는 것도 있지요. 그렇게 되면 헤르쯔가 30.9까지 나 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나오게 하려면 현이 다섯 개는 있는 것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제 것에는 네 개밖에 없어요. 제 것에 현을 다섯 개 걸면 악기가 소 화해내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망가져 버리고 말지요. 간혹 오케스트라에서 소장하고 있는 악기 가운 데 현이 다섯 개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 같은 것을 연주하려면 필요하거든요. 소리는 실상 그렇 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헤르쯔가 30.9라면, 그것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음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겁니 다. 여러분께서 한번 상상해 보신다면..... (미)를 여러 번 연주해 보인다. 거의 음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뭔 가 서로 문지를 때 나는 소리 같은, 글쎄 어떻게 표현 해야 할까요. 하나의 음이라기보다는, 뭔가 절박한 것 도 같이 바람결처럼 그냥 획 지나가 버리는 소리 같은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 악기의 음역만으로도 제가 연주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범위 의 한계는 이론적으로 따져 보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계는 있지요. 예를 들어서 제가 이 악 기의 지판을 최대 한도로 사용한다면 세 옥타브 높은 (도)까지 낼 수 있습니다...... (연주를 한다.) 플라지올렛. 이렇게 연주하는 것을 표현하는 음악 용어지요. 손가락을 줄 위에 얹어 놓고, 배음을 살 짝 간지럽히 듯 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물리적으로 어 떻게 작용하는지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 설명드 릴 수 없습니다, 알고 싶으시다면 백과 사전에서 직접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들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음역의 음까지 연주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잠깐만요..... 1)플라지올렛. 배음의 원리를 이용한 현악기의 연주법을 일 컫는 음악 용어. 연주법에는 개방현의 정확한 위치에 가볍게 접 촉함으로써 음을 만드는 자연적 플라지올렛과 모든 현 위를 둘 째 손가락으로 확실히 누르고 다른 손가락을 적당한 위치에 대 어서 음을 나오게 만드는 기술적인 플라지올렛이 있음. (사람들이 귀로 들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음을 연주해 보인다.) ....들으셨어요? 아마 잘 못 들으셨을 겁니다, 그것 보시라니까요! 이처럼 이 악기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 으로 이렇게 많은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음을 끄집어내어 들을 수가 없을 뿐이지요. 음악의 속 성상 그렇다는 겁니다. 현악기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 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지요. 그 의미를 곰곰히 되새겨 보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음 속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듯이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넓은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 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속성을 다 밖으로 표출해 낼 수는 없지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 정도로 해 두고 -. 현이 네 개면 이렇게 됩니다. 미-라-레-솔 (현을 손 끝으로 퉁기며 연주하는 피치카토로 친 다.) .....쇠줄에 크롬을 입혔습니다. 옛날에는 동물의 창 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 G현 위쪽은 주로 솔로 독주용으로 사용됩니다. 연주자가 연주할 실력만 갖추 고 있다면 가능하다는 거죠. 가격은 현 하나만 사더라 도 상당합니다. 요즘 한 세트에 제가 알기로는 백 60 마르크쯤 합니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해도 40밖에 안했었죠.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물가 상승 말입니 다. 어쨌든 좋습니다. 그러니까 현이 네 개면 음정이 네 개로 (미-라-레-솔)이 나올 수 있고, 현이 다섯 개인 것에서는 (도) 혹은 (시)가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카고 교향악단에서부터 모스크바 국립 오케 스트라에 이르기까지 전부 통일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 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러가지 역경이 있었습니다. 음이 각각 달랐고, 현의 수가 각각 달랐고, 크기가 각각 달 랐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베이스처럼 형태가 다양한 악 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끔씩 맥 주를 마시는 것을 여러분께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이 무척 마르거든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17세기와 18세기에 흔란이 가장 극심했습니다. 저음 4현금으로 된 베이스겜브, 큰 베이스비올라, 오르간의 음정이 있 던 베이스, 오르간의 음정이 없던 섭트라베이스, 음정 이 세 개, 네 개, 다섯 개까지 있던 베이스, 현이 세 개, 네 개, 여섯 개, 흑은 여덟 개까지 있던 것, (파)음에 울림 구멍이 있는 것, (도)음에 울림 구멍이 나 있는 것 등등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지요. 19세기까지 만 해도 프랑스나 영국에 음정이 다섯 개까지 있는 현 세 개짜리 악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 아에는 음정이 4개까지 있는 현 네 개짜리가 있었고요.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보다 훌릉한 작곡가가 많이 있었 던 덕택에 음정이 4개까지 있는 현 네 개짜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거지요. 사실은 현이 세 개짜리인 베이스의 음이 더 좋기는 합니다만, 긁히는 소리도 별로 안나고, 멜로디도 더 좋고, 어쨌든 더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그렇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는 하이든이 있었고, 모짜르 트와 바하 일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이어서 베 토벤이 있었고, 수많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있었습니 다. 그런데 그들은 베이스가 어떤 음을 내는지조차 전 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베 이스는 그것을 기본으로 삼고 그 위에 아름다운 교향곡 을 작곡해 올려 놓을 수 있는, 소리로 만들어진 양탄자 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오늘날까지 음악 분야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큰 악기입 니다. 1750년부터 20세기까지 2백여년 간에 걸친 기간 에 일어났던 오케스트라 각 장르의 발전은 순전히 현이 네 개 있는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에 의해서 이루어졌 다고 저는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 렵 우리는 현 세 개짜리 콘트라베이스를 음악 분야에서 완전히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상상이 되시겠지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파 리에서는 현 세 개짜리 베이스를 1832년까지 음악 학 교와 오페라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미 잘 알려 져 있는 바대로 1832년은 괴테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 도 합니다. 바로 그 시절에 케루비니, 루이지 케루비니 가 그것들을 다 일소해 버렸습니다. 그는 사실 원칙적으 로 말하자면 이탈리아 사람입니다만, 음악에서는 순수 하게 중부 유럽 풍을 고수한 사람이었죠. 글룩: 하이 든, 모짜르트를 능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파리 에서 오케스트라의 상임 감독을 맡고 있었습니다. 처음 부터 끝까지 그가 모든 것을 관철시켰죠. 그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게르만 민족을 사랑하는 어느 한 이탈리아 사람이 현 세 개짜리 베이 스를 모두 없애 버린 것에 대해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 하던 프랑스 사람들 입에서 엄청난 저항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이 상당히 다혈질이잖 습니까. 자고로 어디든지 혁명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곳 이라면 프랑스 사람들은 어김없이 꼭 끼어 있으니까요 그런 현상은 18세기에도 그랬고, 19세기에도 그랬고, 20세기까지도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난 5월 초 파리에 잠시 체류했었는데, 체류 기 간중에 환경 미화원과 지하철 직원들이 파업을 일으켰 던 일이 있었습니다. 전기가 하루에 세 번씩 끊어지는 2)루이지 케루비니(1760-1842). 이탈리아 태생의 작곡가. 교향곡, 레퀴엠, 오페라 「메데아」가 있음. 3)글룩(1714-1787). 독일 태생의 작곡가. 발레곡, 플룻 협 주곡,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등 4편이 있음. 가 하면, 만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대규모로 데모도 하더군요. 여러분께서는 그때 사람들이 지나간 다음의 거리 꼴이 어떤 지경이었는지 아마 상상도 못하 실 겁니다. 어느 가게 하나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 었고, 쇼윈도란 쇼윈도는 모두 망가져 버렸으며, 자동 차란 자동차는 다 긁혀져 있었고, 팜플렛이나 종이 등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전부 길바닥에 버려진 채 짓이 겨져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 심정을 솔직히 말씀드리자 면 무섭더군요.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그 옛날 1832년에는 그런 식의 모든 행동들이 아무런 효과를 거 두지 못했습니다. 현 세 개짜리 콘트라베이스는 끝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영-원-히). 사실 말 이지, 그렇게 종류가 다양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었습니다. 물론 조금 안타까운 일이기는 했습니다만 말 입니다. 소리가 현저하게 더 좋았었거든요..... 그런 데 이것은..... ( 콘트라베이스를 손으로 문질러 본다.) .....음역은 이것보다 작았어요. 그렇지만 소리의 울 림은 더 좋았죠. (한 모금 마신다.) .....한번 생각 좀 해보세요. 글쎄 세상 일이 대개 그 렇다니까요. 뭐든지 좀 낫다 싶으면, 그것은 결국 시간 의 흐름을 역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방 모습을 감 춰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라는 것 앞에 서 모든 것들은 마침내 굴복하고 마는 거죠. 그때의 경 우로 보자면, 자신들에 게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제거해 버린 사람들은 바로 클래식 음악가들이었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말하고 싶지 는 않습니다. 사실 클래식 음악가들은 사람들 자체로만 보면 점잖은 사람들입니다. 슈베르트는 파리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짜르트는 평소에 좀 교양이 없는 사람처럼 굴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 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주 감성이 예민한 사람으로서 거 칠은 것 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베토 벤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비록 가끔씩 욱하는 성미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말입니다. 베토벤은 피아노도 몇 개 나 부숴먹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콘트라베이스는 하나도 부수지 않았습니다. 그 점만큼은 그 사람을 훌 륭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실 콘트라베이스를 다루는 법도 전혀 몰랐습니다. 유 명한 음악가 중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던 유일한 사람은 브라암스였습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의 아버지가 그랬죠. 베토벤은 사실 현악기는 한번도 다룬 일이 없었고 피아노만 쳤을 뿐입니다만 요즘에는 그 사 실이 까마득하게 잊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린도 잘 켤 수 있었던 모짜르트와는 정반대되는 사람이었죠. 제가 아는 바로는 모짜르트가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를 위한 곡과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 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준을 조금 더 완화해 본다면 슈베르트 정도밖에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굳이 꼽아보자면 말입니다! 그가 비록 그런 곡을 작곡하지 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사람은 거장이 라고 칭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절대 거장은 아니었습니다. 사람 자체로만 봐도 그렇고, 기 술적인 면에서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슈베르 트를 음악의 거장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 는 못합니다. 또한 그는 독창보다는 남성 합창단에 훨 씬 잘 어울릴 만한 음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동 안 슈베르트는 매 주마다 4중창을, 그것도 베이스 바리 톤 네스트로이와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건 아마 모르셨을 겁니다. 네스트로이는 바리톤으로 불렀고 슈 베르트는..... 그런데 참 이런 얘기는 지금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로군요. 그건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한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슈베르 트가 어떤 파트의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하시다면 번거 로우시겠지만 아무 자서전이나 들춰보시면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 죠. 더구나 저는 음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무 실의 직원도 아니니까요...... 콘트라베이스는 인간이 악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 으면 있을수록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이한 악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속성 때문에 많은 문 제를 야기하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여기 좀 보세요. 저 는 여기 우리 집에 사방 벽과 천장과 바닥에 방음판을 다 붙여 놓았습니다. 문은 이중으로 만들었고, 이중문 사이는 비어 있지 않도록 속을 확 채워 놓았습니다. 창 틀의 틈을 완전히 밀봉시킨 창문에는 특수 이중 유리로 된 유리창을 끼워 놓았습니다. 비용이 무척 많이 들었 지요. 그렇게 해서 방음 효과는 95퍼센트 이상 거둘 수 있게 됐습니다. 길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저는 사실 시내 한복판에 살고 있답니다. 믿기 어려우시죠? 잠깐만요...... (창문으로 다가가 창을 연다. 자동차 소음, 건축 공 사장에서 나는 소리, 쓰레기차와 굴착기 등이 내는 소 리가 시끌벅적하게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고함을 꽥꽥 질러 대며 말을 잇는다.) ......들으셨습니까? 베를리오즈의 테 데움 만큼이 나 시끄럽습니다. 사람들이 저 건너편에 있는 호텔을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고, 저 앞에 신호등이 있는 곳에 는 벌써 2년 전부터 지하철역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 다. 그래서 차들이 요즘 우리 집 밑으로 우회하고 있 죠. 또 하필이면 오늘이 쓰레기차가 오는 수요일이라 서, 저기 규칙적으로 뭔가 탁탁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바로 거기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저거요! 이런 아 수라장과도 같은 굉음은 약 102데시벨 정도는 될 겁니 다. 제가 한번 직접 측정해 보았거든요. 이 정도면 충 분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다시 창문을 닫아 버 리 겠습니다. 4)테 데움」. 프랑스 태생의 작곡가 베를리오즈(1803- 1869)가 작곡한 종교곡 가운데 하나로서, 백5명의 오케스트라, 파이프 오르간, 8백 명의 합창단 등으로 연주되는 웅장한 작품. 이 작품은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축제 행사에 사용되 는 종류의 것으로서, 1855년 4월 파리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 로 초연됐다. (창문을 꼭 잠근다. 고요.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말 을 잇는다.) .....자, 이제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군요. 어떻게, 소 음이 좀 차단되는 것 같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보다 과거 에 소음이 더 적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그너가 쓴 글에 보면 거리거리마다 양철 작업을 하는 소음 때 문에 파리를 다 뒤져보아도 적당한 집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그때만해도 파리에는 이미 백 만에 가까운 시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잘 못 알고 있습니까? 양철을 두드려대던 대장장이의 소 음은-혹시 들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건 음 악가가 들을 수 있는 소음 가운데 가장 지긋지긋한 소 리입니다. 쇠붙이 조각에 쉬지도 않고 망치질을 해대는 사람을 생각 좀 해 보세요!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하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끊임없이 일했 습니다. 최소한 그 정도는 했지요. 거기에다가 마차가 자갈길을 굴러갈 때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 시장 상인 들의 외치는 소리, 끊임없이 이어지던 싸우는 소리, 그 리고 잘 아시다시피 프랑스에서 지극히 단순한 계층, 즉 프롤레타리아 가운데서도 가장 미천한 사람들이 들 고 일어나서 발생했던 혁명으로 인해 생겨난 소음들. 파리에는 이미 19세기 말에 지하철이 개통되었습니다. 그러니 옛날이 요즘보다 훨씬 더 조용했으리라고 생각 하실 만한 근거는 없는 셈입니다. 그 사실만 제외하고 저는 바그너의 말을 별로 잘 믿지 않는 편입니다만, 어 쨌든 그건 그랬다고 칩시다. 자, 이제 주의를 좀 집중해 주십시오! 실험을 한 가 지 해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제 베이스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악기입니다. 만든 연도 는 대략 1910년 경이고, 장소는 아마 남부 티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악기의 앞판 길이는 1미터 12이고, 맴돌 이꼴 머리 부분까지 합하면 1미터 92가 되며, 버팀말 위에서부터 머리까지에 달하는 현의 길이는 1미터 12 입니다. 매우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급 이상이 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판다면 8천 5백 은 요구할 수 있으니까요. 구입은 3천 2백에 했습니다. 차이가 엄청나죠. 어쨌든 좋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아 무 음이나 소리를 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낮은 (파) 라고 해봅시다....... (조용하게 음을 뜯는다.) .....네, 방금은 피아니시모로 했습니다, 이제 피아 노로 쳐 보겠습니다,,,,,, 5)피아니시모. (매우 여리 게)를 나타내는 음악 용어, 6)퍼아노. (여리게)를 나타내는 음악 용어, (조금 더 크게 연주한다.) ......마찰하는 소리에 혼란스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 니다. 어쩔 수 없거든요. 현과 마찰할 때 생기는 소리 를 들을 수 없는 순수한 진동음은 이 세상 어디를 뒤져 봐도 찾아볼 수 없고, 예휴디 메뉴힌이 연주할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 지금 잘 들어보세요. 제 가 지금부터 메조포르테에서부터 포르테까지로 연주 해 보겠습니다. 그것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완전히 방 음 시설이 된 실내에서 해보겠습니다....... 7)예휴디 메뉴힌(1916-).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가. 7세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뷔한 이래 구미 각 도시에서 독주가로 활 약. 8)메조포르테. (좀 세게)를 나타내는 음악 용어. 9)포르테. (세게)를 나타내는 음악 용어, (조금 전보다 약간 더 크게 연주한다.) ......자, 했습니다 이제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 조금만 더요....... 이제 곧 들릴 겁니다...... (천정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 ......저 소리요! 들리지요! 위층에 사는 니메이어 부 인이 저러는 겁니다. 저 부인은 아주 조그만 소리만 들 어도 저렇게 발을 굴러 댑니다. 그러면 저는 제 연주가 메조포르테를 벗어났다는 것을 금방 알아 챌 수 있습니 다. 저런 반응만 빼면 아주 좋은 분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연주할 때 누구든 제 옆에 서서 소리를 들어 보았 다면, 연주 소리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겁니 다. 오히려 약하다고 느끼기가 쉽지요. 그런데 제가 지 금 예를 들어서 포르티시모로 연주해 본다면...... 잠 깐만요...... 10)포르티시모. (매우 세게)를 나타내는 음악 용어. (연주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시끄럽게 연주를 하 고, 귀를 멍하게 만드는 베이스의 소리를 압도하려고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말한다.) ......뭐 그렇게 소리가 지나치게 요란스럽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는 니메이어 부인 네 집에도 들리고, 관리인이 사는 아래층까지 들리고, 다른 이웃집까지 다 들릴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전화를 하거든요....... 자, 이런 속성이 바로 제가 이 악기가 갖는 (소리 관 통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낮은 저음의 진동음 으로부터 시작되는 힘이죠. 그냥 듣기에는 플루트나 트 럼펫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 이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관통 력이 없어요. 소리가 퍼지는 범위가 거의 없습니다. 미 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대로 말하자면 무게가 없습 니다. 저는 무게가 있지요. 정확하게 따지면 제 악기가 무게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이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 중 제 마음에 꼭 드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것을 제외하 면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 죽일 뿐이지요. (발퀴레의 전주곡 음반을 올려 놓는다.) 발퀴레의 전주곡입니다. 마치 백상어가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지요.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동일음으로 연주됩니다, 악보에 적혀 있는 것을 우리는 대략 50퍼센트 정도 연주합니다. 여기 이거는...... 11) 발퀴레」. 오페라 사상 가장 긴 작품으로서 바그너의 4부 작인 「니벨룽겐의 반지」 중 첫째 날 밤 악극. 작품 줄거리는 소 유하게 되면 전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나, 일단 소유하면 사랑의 기쁨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는 반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결국 모두 멸망한다는 이야기. 1870년 뮌헨에서 초연되 었음. (베이스 파트를 따라서 부른다.) ......이렇게 위로 쭉 올라가는 음이 실제로는 한 박 자가 5분의 1과 6분의 1음표로 나뉘어진 것들입니다. 서로 각각 다른 음이 여섯 개가 나란히 있다는 말입니 다! 이런 빠른 속도에서 말이지요!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 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음을 그냥 위로 쭉 쓸 어 올려 버립니다. 바그너가 그와 같은 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아마 몰랐었던 것 같 습니다. 어째 되었든지 간에 그것이 그에게는 별로 상 관이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는 언제나 오케스트라 를 우습게 보았거든요. 그래서 바이에른 주 바이로이트 시에 있는 바그너 음악당의 지붕 구조를 말로는 음향학 상의 이유로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케스트 라를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놓았던 것입니 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오로지 효과 음, 말하자면 연극의 배경음, 이해하시겠어요, 무대에 서의 음향 효과, 종합 예술 등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개개의 음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죠. 베토벤 교향곡 제 6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리골레토612) -리골레토」. 이탈리아 오페라 최고의 작곡가 베르디의 출 세작으로 1851년 그의 나이 38세 때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폭 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음.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를 원작으로 한 3막의 비극으로서 드라마틱한 긴 박감, 선율의 아름다움 등 베르디의 극음악에 대한 풍부한 재능 이 여지없이 발휘된 훌릉한 작품. 의 마지막 장 같은 것도 그렇죠. 그 사람들은 날씨가 좀 변덕스럽기만 했다 하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베이스 를 치지 못할 곡들을 악보에다 마구 휘갈겨 댄 사람들 이었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죠. 어차피 일반적으로 사 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에는 항상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하면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써야만 합니다. 그래서 콘 서트가 끝나고 나면 제 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 있어서 도저히 그냥 입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페라 하나 연주하는 데 평균적으로 수분을 2리터 정도 빼앗 깁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때도 그럭저럭 1리터 는 빠지지요. 주변에서 등산을 한다든가, 아령으로 몸 을 단련하는 몇몇 동료들을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런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오케스트 라 연주 도중에 절대로 회복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기력 을 탕진해 버릴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늘 예상하고 있 습니다. 콘트라베이스를 켠다는 것은 우선, 음악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힘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중노동입니 다. 제가 이것을 처음 시작한 것은 열 일곱 살 때였습 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지금 서른 다섯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것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녀가 애를 밴 것처럼 순전히 엉뚱한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 다.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본, 딕시랜드-등을 두루 다 13)딕시랜드. 1910년경의 뉴올리안즈 재즈에 대해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서 후기에는 흑인 재즈의 흐름을 받아들인 백인 재 즈 그룹의 연주를 딕시랜드 재즈로 부르게 되었다 연주는 트럼 펫, 트럼본, 클라리넷, 피아노, 드럼즈가 주축이 되고 베이스, 벤 조, 섹스폰 등이 추가된 5명 내지 7, 8명으로 편성된 밴드에 의 해서 이루어짐. 거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지난 옛날이야 기입니다. 세윌이 지나면서 재즈를 싫어하게 되었으니 까요. 저는 사실 애초부터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했다는 사람을 한 단 사람도 모릅니다. 좀더 꼼꼼하게 생각해 보면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악기가 그 렇게 손 쉽게 다뤄지는 악기는 아니니까요. 콘트라베이 스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악기라기보다는 거추장스러 운 물건 같은 것입니다. 어깨에 메고 다닐 수가 없으므 로 질질 끌고 다녀야만 하는데 어쩌다 넘어지기라도 하 면 함께 나뒹굴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에 실을 때는 앞자리 오른쪽 좌석을 떼어 내어야만 실을 수 있죠, 그 리고 그것 하나만 실어도 자동차 안이 거의 꽉 찹니다. 집 안에서 움직일 때도 항상 그것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지나다녀야만 합니다. 이것이 워낙에 좀..... 좀 바보 같이 덩그마니 자리를 잡고 서 있거든요. 피아노처럼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집 안에 피아노를 한 대 들 여놓으면, 가구가 하나 늘어난 셈이 됩니다. 그것은 뚜 껑을 닫아 놓을 수도 있고, 놓인 자리에 그대로 두어도 전혀 눈에 거슬리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안됩 니다. 이것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뿐이지, 그 모 습이 마치...... 항상 몸이 아픈데도 아무도 돌보아주지 도 않는다고 언제나 불평이 많으셨던 우리 친척 가운데 한 아저씨처럼 보인답니다. 그런 요물 단지가 바로 이 콘트라베이스입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것은 언제 나 곧 바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언제나 이것과 상관이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니까요. 때로 여자 친구와 단 둘이서만 있고 싶을 때도 이것은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면서, 우리들의 일 거수 일투족을 다 눈여겨 봅니다. 두 사람이 조금 진한 행동을 할 때도 이것은 곁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럴 때면 저는 이것이 일부러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을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내 느낌은 상대방에게 자연히 전달되고 맙니다. 일이 그쯤 되어버리면, 잘 아시다시 피, 육체적인 사랑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서로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인 까닭에 참으 로 괴상한 분위기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야말로 엉 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거죠! 서로 도대체 맞지가 않아 요. 실례하겠습니다...... (전축을 끄고, 목을 축인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 이야기가 본론 에서 빗나가 버렸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여러분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께 심리적 부담만 더 안겨 주었을 수도 있지요. 저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여러분도 각자 다 갖 고 계실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이렇게 흥분하 는 것도 양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굳이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린 까닭은, 혹시 사람들이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인 제게 그런 문제 따위는 있지 않으리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해서 단 (한번만)이라도 이것 을 똑똑하게 밝혀 두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 로지 이 악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여자를 만 났던 때가 1978년입니다. 그때 저는 이 녀석을 침대 속 에 감춰 두어도 보았지만, 그래도 녀석의 영혼이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서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치 음악의 쉽표처럼 말이지요 만약 제가 다시 (한번)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제 나 이가 아직 서른 다섯이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은 아 니지요. 인물이 저보다 못한 사람도 있고, 어쩠거나 신 분이 공무원이라도 되니 아직 사랑에 빠질 만한 가능성 은 충분히 있는 겁니다! 사실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요즘 사랑에 (푹) 빠졌 습니다. 어쩌면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방도 그 런 눈치를 전혀 못채고 있으니까요. 상대가 누구냐 하 면...... 제가 조금 전에 언급한 바 있는..... 오페라 단 원의 한 사람이며, 나이가 어린 성악가인 세라라는 이 름의 여자입니다....... 별로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흑시라도...... 일이 잘 되어서, 언젠가 한번 기 회가 닿는다면 저는 그 여자네 집으로 가자고 고집할 생각입니다. 혹은 호텔이라든, 아니면 비만 안오면 야 외로 나간다든가....... 이 악기가 소화해 내지 못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비오는 날씨입니다. 비만 오면 소리가 죽는데, 정 확하게 말하면 음이 풀어지는 거죠. 날씨 때문에 탄력 을 잃어 버리니까, 그것을 전혀 소화해 내지 못하는 겁 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그렇습니다, 날씨가 차가와 지면 몸이 오그라들거든요. 그럴 때는 연주하기 전에 적어도 두 시간 동안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해 놓 아야만 합니다. 전에 제가 실내 악단에서 일했을 때, 하루 걸러 하루씩 지방으로 연주를 하러 다녔는데, 겨 울 축제 공연 때는 어떤 성이라든가, 교회에서 연주를 하곤 했지요. 그런 일정을 맞추려면 얼마나 복잡한 절 차가 뒤따라야만 했는지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런 행사에 갈 때면 베이스의 온도를 적당히 유지해 주기 위해서 자동차를 혼자 몰고 다른 단원들보다 휠씬 일찍 길을 떠나 지저분한 여관으로 가거나, 난로가 있는 교 회의 한 구석을 찾아가곤 해야만 했습니다, 꼭 늙은 환 자처럼 말입니다. 정말 헌신적이었죠. 그런 식으로 사 랑은 시작되겠지요. 한번은 74년 12월에 에탈과 오버 라우 중간 쯤에서 눈사태로 발이 묶였던 적이 있었습니 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두 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외투를 벗어서 이것을 둘둘 말 고, 제 체온으로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막 상 연주회가 시작되었을 때 이것은 적절한 온도를 유지 할 수 있었지만, 저는 감기 기운으로 몸을 오들오들 떨 어야만 했습니다. 잠깐 목 좀 축여도 괜찮겠죠. 애당초부터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한 사람은 절대 없 습니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다들과정을 겪게 됩니 다. 우연과 실망을 통해서지요. 저희 국립 오케스트라 에 있는 여덟 명의 콘트라베이스 단원 가운데 단 한 사 람도 산전 수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자신에게 퍼부어지던 차가운 질책들을 오늘날까지 기억하지 않 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도 별 무리는 없으리라고 생각됩 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전형적인 운명은 제 가 살아온 이야기를 예로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이셨고, 음악성이 전혀 없으셨으며, 완고하셨던 아버지. 플루트를 부셨고, 음악 애호가이셨으며, 약하 셨던 어머니. 어렸을 때 저는 어머니를 우상처럼 사랑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셨으며, 아버지는 제 여동생을 좋아하셨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 명 도 없었지요.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튼 저는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공무원이 아니라 예술 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화풀 이로 덩치가 최고로 크고, 손쉽게 쥐어지지 않으며, 독 주가 안되는 악기를 연주하기로 하였습니다. 거기에다 가 부모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고, 동시에 돌아 가신 아버지께서 지하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실 만한 일 을 하느라고 나중에 굳이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국립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 제3열에 앉게 된 거죠. 그런 직위에 소속되게 된 저는-모양새로만 따져서 -여성스러운 악기 가운데 가장 큰 콘트라베이 스의 형상에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상상으로 수도 없이 겁탈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징적인 의미에 서의 근친 상간적인 폭행은 매번 도덕적인 대혼란을 초 래하였고, 그런 비윤리적인 흔란은 베이스 연주자들의 얼굴 마다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 씀 드린 점이 악기의 정신 분석학적 측면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지식들도 실상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왜 냐하면...... 정신 분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끝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 리는 이제 다 알고 있게 되었고, 정신 분석학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신 분석학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문 제를 제기함으로써 -그림으로 표현해 보자면-히드 라처럼 자기 머리를 자기가 물어 뜯어 버리는 형국으 로, 안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정신 분석의 모순에 휘감겨 스스로 질식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정신 분석은 오늘날 일반적인 것이 되어 버 렸습니다. 그것은 요즘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 지요. 오케스트라 단원 백 26명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정신 분석 요법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획기적인 신학문으로 취급되어졌거나, 그렇게 취 급되어졌을 수도 있었던 것이 오늘날 이렇듯 일반화되 어 버려,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에 별 다른 반응을 보 이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현대인 가운데 1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놀랍게 생각되십니까? 놀라셨어요? 저는 하나도 놀랍지 않습 니다. 글쎄 그렇다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굳이 정 신 분석요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 다 훨씬 그럴 법한 가정은-이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백년이나 백 50년 전에 우리 같은 사람들 이 정신 분석 치료를 받았더라면, 예를 들어서 바그너 같은 사람을 몇 가지 점에서 구제해 줄 수는 있었을 겁 니다. 그 사람은 노이로제가 몹시 심했던 사람이었거든 요. (트리스탄과 이졸데)과 같은 작품처럼 그가 만들 어 낸 것 중에서 가장 훌릉한 것들이 당시 어떤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그런 작품이 만들어진 단 한 가지 배경은 그가 그의 친구와 한 여자를 놓고 벌인 암투가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것이 이유가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세기의 서사시를 기초로 하여 바 그너 자신이 대본을 쓰고 1858년에 완성한 작품. 대본 집필 당 시 아내 민나와의 불행한 결혼에 대해 고민했던 그는 유부녀 베 젠도크 부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극적 경험을 함 으로써 처절한 비극적 선율과 관현악적인 색채를 이 작품을 통 하여 유감없이 나타내었음. 배신감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연합니다만, 소극적인 대처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극심하게 괴롭힌 끝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 세상 최고의 슬픈 사랑을 읊 을 수 있는 곡을 지어낼 수 있었던 겁니다. 가슴을 짓누 르던 압박감을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킨 셈이지요. 소위 (최고의 쾌락)이라는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어떤 것인 지 아마 여러분들도 잘 이해하실 겁니다. 그 당시만 해 도 부부 관계 이외의 불륜의 관계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런데 만약 그런 문제를 갖 고 바그너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고 상상해 보십시 오! 자-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란 작품은 나오지도 못했겠지요. 노이로제 때문에 그 런 곡을 쓸 엄두도 못냈을 것이므로 그런 정도는 쉽게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아내를 구타했던 일도 있었거든요, 바그너가 말입니다. 물론 첫 번째 부인을 그랬죠. 둘째 부인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확실합니 다. 그렇지만 조강지처는 때렸습니다. 도대체 통 정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름 끼칠 만큼 나긋나긋한 면 이 있는가 하면, 손색 없으리 만큼 매너가 좋은 사람이 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쨌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임 에는 틀림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사람도 자기 자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얼굴에는 언제나...... 비위가 약함으로 인해서 비롯된 부스럼을 달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기는 했지만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았습니다. 줄줄이 있었지요. 여자들을 유혹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가 없어요...... (한참을 심사 숙고한다.) ....음악 분야에서 여자들의 지위는 낮습니다. 제 말씀은 작곡과 같은 창조적인 분야에 국한해서 말씀드 리는 겁니다. 여자들은 확실히 별 다른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명한 여자 작곡가를 (한 명이 라도) 알고 계시는지요? 단 한 명만이라도요? 그것 보 세요! 이렇다는 것을 전에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적 이 있으십니까? 한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 시오! 음악 분야에서 여성적인 것을 생각해 보더라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콘트라베이스 같은 것도 따지 고 보면 여성적인 악기입니다. 문법적인 면에서는 물론 단어의 성이 다릅니다만 악기 자체로는 분명히 여성입 니다. 죽음이라는 것도-단어에 합당하는 감정의 정 도로 따져 본다면-무서움 때문에 으스스한 느낌이 산처럼 불어 난다는 점에서, 혹은-생각하기에 따라 서는-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품안 같은 곳이라는 면 에서 여성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 는 겁니다. 그 밖에도 삶의 보완이라는 점, 결실, 어머 니 품 속 같은 땅 등등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이 맞지요? 그리고 그런 역할에 따라-다시 이 야기의 초점을 음악에 맞추자면 -콘트라베이스는 음 악과 인생이 똑같이 땅 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위협 을 느끼는 절대적인 무의 경지를 죽음의 상징으로 서 분연히 투쟁하는 겁니다, 우리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들은 그런 점에서 초기 그리스도 교 지하 묘지를 지키 는 사나운 수문장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아니면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몽땅 어깨에 짊어지고 끊임없 이 산 위를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푸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한번 머리 속으로 그 려봐 주십시오? 찢겨진 가슴을 부여잡은 채, 남들로부 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꼴을 말입니다-일찍이 이 런 처지를 경험해야만 했던 자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프로메테우스, 그래요 그 신이 그랬었습니 다-아주 적절한 보기지요. 지난 여름에 우리는 국립 오페라 전 단원과 함께 축제 공연을 갖느라 프랑스의 오렌지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지그프리트의 특별 공연 때문이었지요.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을 상상 하실 수 있도록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렌 지의 엠피 극장은 지은 지가 거의 2천 년에 가까운 옛 날 건물입니다. 인류 사상 문화가 가장 잘 발달되었던 아우구스트 대제 시절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그 건축물 에서, 게르만 족속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댔고, 굼벵이들 까지 기승을 부리던 그곳에서, 지그프리트는 무엄하고, 거칠게 무대 위를 활보하였으며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 이 우리 나라 사람을 부를 때 흔히 쓰는 전형적인 (보 쉬boche)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날 우리는 1 인당 천 2백 마르크씩 출연료를 받기는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 날의 공연이 너무 엉망이라서 우리는 악 보에서 겨우 5분의 I정도만 연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 리고 공연 후에는-여러분, 우리가 과연 무슨 짓을 했 을 것 같습니까? 오케스트라 단원 전부가 무슨 짓을 했 겠느냐고요? 술을 곤드레만드레 되도록 마셨습니다. 시시한 일용 잡직에 종사하는 잡역부들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 러서 끝내는 경찰까지 출두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 다, 모두가 독일 사람이었던 우리들은 정말 너무 엉망 진창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성악가들은 다른 곳에 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로 우리 오케스 트라 단원들 하고 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이 없습니다. 세라도-제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아마 아실 겁니 다. 그 나이 어린 여자 성악가죠-역시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세라는 그 날 공연 때 산새의 노래 를 불렀습니다. 성악가들은 숙소도 우리와 다른 호텔로 잡지요.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그때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여자 성악가와 1 년 반 동안 교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사 람은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첼로는 베이스 처럼 유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 사이에 그렇게 중압감을 느낄 만 큼 대단한 위용을 드러내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연주자 로서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을 참 작해 보더라도, 작품에서 첼로가 독주되는 부분도 제법 흔하게 등장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슈 만의 교향곡 제4번, 돈 카를로스 등등 그런 모든 사 15)돈 카를로스. 베르디가 비극적 연애를 다룬 쉴러의 작품 을 가극화하여 1867년 파리에서 초연한 작품. 정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고 있다는 그 첼리스트는 그 여자 성악가와 교제함으로 해서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 리고 말았습니다. 그 여자의 노래를 반주해 주기 위해 서 피아노를 배워야만 했거든요. 그 여자가 단지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기 때문이었지 요. 어쨌든 그 사람은 불과 얼마되지 않아서 자신이 사 랑하는 여자의 연습용 반주자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답 니다. 그것도 별로 신통찮은 반주자로 말입니다. 그 사 람들이 함께 연습을 할 때면 여자의 목소리가 반주보다 한참 높게 나왔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철저하게 압도한 셈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것의 뒷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첼로만 놓고 보면 남자가 여자의 메조소프라노보다는 휠씬 높게, 비교할 수도 없 을 만큼 훨씬 좋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여자의 연습을 도와 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들은 꼭 붙어 다녀야만 했지요. 첼로와 소프라노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극 히 드문 편이죠. 콘트라베이스와 소프라노가 함께 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일 겁니다....... 저는 사실 종종 외롭습니다. 여가 시간이면 집에 혼 자 앉아서 음반을 몇 개 듣거나, 가끔 연습을 하기도 하 지만 항상 똑같은 일의 반복이기 때문에 별다른 재미를 못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축제 공연으로 「라인의 황금의 초연을 갖기로 되어 있습 16)라인의 황금.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제-부 서극. 1869년 윈헨에서 초연되었음. 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객원 지휘자로 모시고, 수상을 제일 앞줄에 모셔 놓는, 최고 중에서도 최고의 공연이라 입장권이 무려 3백 50마르크나 된다더군요. 너무 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요. 저는 연습도 별로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라인의 황금」 공연 때 우리는 모두 여덟 명이니까, 각 각의 연주자가 어떻게 연주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곡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잡아 주 기만 하면 나머지는 그대로 따르면 되니까요....... 세라 도 다른 성악가들과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벨군데)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부르지요. 그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의미가 대단히 큰 공연일 겁니 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겁니 다. 다만 도약의 발판을 하필이면 바그너의 작품과 함 께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을 뿐이겠지요. 그렇지 만 선택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이것은 하고, 저 것은 하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대개의 경우 우리는 연습을 한 번 내지 열번하고,저녁 공연을일 곱 번 내지 열 번 갖습니다. 그 나머지 시간에 저는 그 냥 집으로 와서, 방음 처리가 된 여기 이 방에서 지냅 니다. 갈증 때문에 맥주를 몇 병 마시기도 하지요. 그 럴 때면 저는 이 녀석을 저쪽에 있는 등받이 의자위 에 올려 놓고, 의자 안쪽으로 이렇게 비스듬하게 기대 어 놓고는, 활은 그 옆에다 놓고, 저는 여기 이렇게 안 락 의자에 앉습니다. 그렇게 해놓은 다음 저는 이것이 아주 볼품이 없는 악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것을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자세히 봐 주십시오. 꼭 살이 피둥피둥하게 찐 부인네 같지 않습니까. 엉덩이는 축 쳐졌고, 허리 부분은 잘룩 하지도 못한 것이 위쪽으로 지나치게 길게 뽑아 올라져 서 도대체가 못마땅합니다. 게다가 가늘고 축 늘어져 곱사등이 같은 어깨 부분 좀 보십시오. 정말 못 말립니 다. 이렇게 외모가 엉망으로 보이게 된 원인은 콘트라 베이스가 음악 역사상으로 보면 일종의 잡종이기 때문 에 그렇습니다. 아래 부분은 큰 바이올린과 같고, 윗부 분은 커다란 저음 4현금 겜브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 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 기의 돌연변이지요.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 은 충동을 느낍니다. 톱으로 토막을 내고 싶기도 하고, 잘게 부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잘게 가루를 내거나, 톱밥처럼 만들어 목재를 가스로 바꾸는 기계에 집어쳐 넣거나....... 아무튼 결판을 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 악기를 사랑한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녀석은 연주하기도 무척이나 까다롭습니다. 반음을 세 개만 내려고 해도 손가락을 확 펴야만 하거든요. 겨우 반음 세 개를 가지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반음을 세 개 연주해 보인다.) ...,..그리고 제가 한 현을 가지고 맨 밑에서부터 계 속 위로 연주를 할 때는...... (시범을 해 보인다.) ......자세를 열한 번이나 바꾸어야만 합니다. 힘이 제법 많이 드는 운동이지요. 그리고 현을 누를 때는 아 주 힘있게 눌러 줘야만 합니다. 여기 제 손가락 좀 보 십시오! 손가락마다 각질이 다 입혀져 있고, 이것 좀 보세요. 지문들은 아주 뻣뻣해졌습니다, 이 손가락들로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최근에 손가락을 데었 죠. 손가락의 각질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고서야 뒤 늦게 알아 챌 수 있었거든주. 아차 실수로 손을 기형으 로 만들 뻔 했지요. 대장장이도 이런 손가락을 하고 있 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제 손은 원래 조금 연약한 편 입니다. 악기를 연주하기에 적합한 손이 아니지요. 집 에서 처음에 저는 트롬본을 연주했습니다. 오른손이 튼 튼해야 활을 제대로 잡고 음을 뜯을 수 있는데 그만한 힘이 처음에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고약한 소리 구멍에서 좋은 음은커녕 그냥 단순한 음도 나오게 하지 못하거든요. 그 말을 바꾸어 서 말하면 좋은 음이 이 악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좋은 음을 쉽사리 끄집어 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러니까 이것은...... 음이 아니라, 말하자면...... 무식하 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이름 하자면, 소음 가운데 가장 듣기 거북한 소음입니다. 정말 실제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어느 누구도 콘트라베이스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하지 못해요. 유명한 독주 자들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콘트라베이스애 높은 음 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능력 보다는 악기의 물리적인 면과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 다. 높은 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소리가 항상 암울하게 들리지요. 언제나 그 모양이니까 콘트라베이스 독주는 또한 백 50년 전 이후부터 기술이 윌등하게 발전하였다 고는 하더라도, 비록 콘트라베이스와 솔로 소나타와 모 음곡을 위한 콘서트가 있기는 하지만, 콘트라베이스 독 주회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멍청한 바보 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어느 귀재가 나타나 바하의 샤 콘느나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를 콘트라베이 스로 연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이것은 음 자체가 원래 암울한 것이기 때문에 엎어치나 메어치나 항상 비 슷한 음을 낼 뿐입니다-자, 그럼 제가 이제 여러분께 이른 바 콘트라베이스를 위해 작곡된 곡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어떤 의미에서는 콘트라베이스의 즉위식이 17)샤콘느」. 보통 둘째 박자에 악센트가 있으며, 느린 3/4 박자의 곡으로서 변주곡의 일종임.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바하 의 「샤콘느」가 유명 함. 18)파가니니(1782--1840). 이탈리아 작곡가이며 19세기 최 고의 바이올린 연주가. 특히 플라지올렛, 피치카토, 스코르다투 라 등의 기법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세련된 연주 효과를 개척해 내었음. 엄격한 양식에서 벗어나 마음 내키는 대로 지어진 곡인 카프리치오를 24편 남겼는가 하면, 그 밖에도 다수의 소품과 협 주곡 등으로 후세의 바이올린 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음 19)카프리치오」. 일명 기상곡이라고도 함 멘델스존, 브라 암스 등 많은 19세기 작곡가에 의해서, 유쾌하고 흥겨운 피아노 소곡에 붙여진 이름. 다른 것에 비해서 형식이 자유로움. 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정수를 선보여 드리겠습니다, 카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의 작품입니다. 자, 잘 좀 들어보십시오....... (디터스도르프의 마 장조 협주곡의 제1악장 음반을 올려 놓는다.) ......이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거지요. 디터스도르프 가 만든 곡입니다, 콘트라베이스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마 장조 협주곡이지요. 원래 이 사람의 본명은 디터스 였습니다. 카를 디터스요. 1739년부터 1799년까지 살 았죠. 부업으로 산림 관리원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정말로 아름다웠는가에 대한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다시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곡 의 멜로디에 신경을 쓰지 말고 순수하게 소리만 염두에 두고 들어보시겠습니까? 곡의 후미 부분은 어떻습니 까? 곡이 끝나가는 부분을 한번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끝 마무리는 사실 아주 가소롭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곡의 전체적 분위기는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픕니다. 물 론 솔리스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기는 하였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순전히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는 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연주자의 이름을 굳이 밝혀 드리 고 싶지 않습니다. 디터스도르프도 어쩔 수 없었을 겁 니다. 이것이 작곡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런 것 을 쓰지 않으면 안됐을 때였으니 참 딱한 노릇이었지 요.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해야만 했었죠. 엄청 나게 많은 곡을 써야만 했으므로 그 사람이 작곡한 수 20)디터스도르프(1739--1799). 독일 작곡가. 콘트라베이스 협주곡 및 플루트 협주곡 등을 남김. 에 비하면, 모짜르트는 한낱 하루 강아지밖에 되지 못 합니다. 백 곡이 넘는 교향곡, 30편의 오페라,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과 그 밖의 다른 소곡들. 그리고 35편의 독주용 협주곡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협주곡 등도 있 지요. 오케스트라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협주곡이 전 체적으로 총 50곡에 이르는데 그것들은 모두 별로 유명 하지 못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작곡된 것들입니다, 여러 분께서 혹시 요한 슈페르거라는 사람을 알고 계시는지 요? 도메니꼬 드라고네띠는 어떻습니까? 아니면 보테 찌니라는 사람은 어떻고요? 혹은 지만들, 쿠세비츠키, 호틀, 판할, 오토 가이어, 호프마이스터, 오트마르 클로 제라는 사람들은요?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시는 분 이 있는지요? 이 사람들이 다 콘트라베이스의 대가들 입니다. 정확히 살펴보면 저와 비슷한 사정들을 가진 사람들이지요. 어떤 절망감 같은 것에 의해서 작곡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곡들도 그런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작곡 가라면 좀더 나은 취향을 갖고 있을 터이기 때문에 콘 트라베이스를 위한 곡을 쓰는 것보다는 좀더 나은 곡을 썼겠지요. 또 혹시 그런 사람들이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곡을 썼다면 그것은 순전히 심심풀이로 그렇게 했을 겁 니다. 모짜르트의 짧은 미뉴에트 쾨헬 작품 번호 344번 정도가 그런 종류겠지요. 되 게 웃깁니다. 혹은 생상스 21)생상스(1835-1921). 프랑스 작곡가. 교향곡, 교향시, 모 음곡 동물의 사육제,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의 동물 사육제 중에 나오는 작품 번호 5번 (코끼리)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요.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독 주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조금 빠르면서도 화려한 알레 그레토 폼포소 형식으로 연주 시간은 총 1분 30초 걸 립니다. 웃기는 일이지요!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 스의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어두컴컴한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대목에 다섯 마디로 된 콘트라베이스 경과 구가 나옵니다 (저 안은 정말 칠흑 같구나! 저런 어두 컴컴한 곳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얼마나 끔찍스러울까! 꼭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겠지......) 5음부의 콘 트라베이스 경과구. 소름이 확 돋는 효과를 발휘합니 다. 듣는 이의 머리를 빳빳하게 서게 만들지요. 연주하 는 사람의 입장도 마찬가지이고요. 정말 끔찍스러운 공 포의 분위기가 감도는 음악입니다! 쳄버 오케스트라가 더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그렇 게 해야만이 음악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유발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5중주 연주를 위해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저를 고용하겠습니까? 경비만 많이 나갈 텐데요. 사람들은 가끔 우리 같은 사람이 필 요하면 돈을 주고 그때그때 연주자를 삽니다. 7중주나 협주곡, 퍼아노 5중주곡,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등이 있음. 22)알레그레토 폼포소 (조금 빠르게 장중하게)를 나타내 는 음악 용어. 23)리 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0). 독일 작곡가 교향곡, 교향시, 모음곡, 오보에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악극 「살로 메」 등이 있음. 8중주 때도 마찬가지지요. 저 같은 사람을 전속으로 쓰 지는 않습니다. 독일 내에 아무 때라도 무엇이든지 다 연주해 낼 수 있는 베이스 주자가 두세 명쯤 있습니다. 한 사람은 콘서트를 기획하는 회사를 자신이 직접 경영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고, 다른 한 사람은 베를린 필하 모니 단원이기 때문에 그렇고, 나머지 한 사람은 빈에 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그런 사 람들 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끼지도 못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드보르작의 5중주 곡도 정말 아름답 습니다. 야나체크의 것도 괜찮지요. 아니면 베토벤의 8중주 곡도 썩 좋습니다, 더 나아가서 슈베르트의 피아 노 5중주 곡 「숭어」라는 것도 좋지요. 아마도 그런 정 도가 음악 등급상 최고의 것들이 될 겁니다. 슈베르트 의 곡은 콘트라베이스 주자라면 누구나 연주하기를 꿈 꾸는 곡이지요.......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은 제게는 한결같이 너무 고상하고 먼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저는 큰 관현악단의 일개 단원일 뿐이니까요. 더 자세히 말 씀드리자면 앞에서 셋째 줄에 앉는 연주자입니다. 맨 첫 줄에는 독주자가 앉고, 그 옆에는 독주자의 대리인 이 앉습니다. 둘째 줄에는 팀의 리더가 앉고, 그 옆에 팀 리더 대리인이 앉습니다. 그런 다음에 일반 단원들 이 앉지요. 실력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도표에 의 한 서열상 그렇게 앉아야만 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24)야나체크(1854--1928). 체코의 작곡가. 모음곡, 오페라, 미사곡 등이 있음. 하면 상상이 되시겠지만,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 라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 엄격한 수직적 조직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이 사회 전 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집단이 그렇게 하 는 거지요. 그 누구보다도 지휘자의 자리는 높습니다, 그 다음에 제1바이올린 주자가 있고, 다음에 제2바이올린 첫 주자 가 있고, 제1바이올린 둘째 주자가 있고, 나머지 제1, 제2바이올린 주자들과 비올라 주자들, 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파고트 주자들에 이어서 금관 악기 주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콘트라베 이스가 있지요. 우리 다음에는 반쪽 북이라고 할 수 있 는 팀파니 연주자만 남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 론상의 분류일 뿐, 팀파니는 비록 하나지만, 모든 사람 들이 다볼 수 있도록,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한계단 정도 높은 곳에서 연주됩니다, 게다가 그것은 음량이 훨씬 크지요. 팀파니가 한 번 울리면 음악당 안의 맨 마지막 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 에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아, 팀파니로구나!)하 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제 악기는 다른 악기 의 소리에 쉽싸여 버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저를 보 고 (아, 콘트라베이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팀파니가 콘트라베이스보다 한 서열 윕니다. 사실 팀파니는 음정이 네 개밖에 없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는 악기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 번 같은 것에서는 마지막 악장의 끄트머리 쯤에 팀파니 가 혼자서 독주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곡이 연주될 때는 피아노 연주자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은 모두 팀파 니가 있는 쪽을 쳐다봅니다. 큰 음악당 안에 천 2백 내 지 천 5백 명은 족히 될 사람들이 그렇게 쳐다보는 겁 니다, 한 해의 전 연주 기간 동안 저를 쳐다보는 사람 들을 다 합해 보아도 그렇게 많은 숫자의 인원은 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질투를 느끼고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신지 말기 를 바랍니다. 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 스스로 알 고 있으므로 질투라는 것은 제게 아주 낯설은 감정이거 든요. 그렇지만 저는 공정한 것이 무엇인가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 분야에서는 몇 가지가 정 말로 불공정 합니다. 독주 연주자에게는 우뢰와 같은 갈 채가 쏟아 지는 것이 상례고, 관중들은 박수를 칠 수 없게 되면 마치 무슨 벌이라도 받는 듯한 느낌마저 갖 게 됩니다, 박수 갈채는 지휘자에게도 쏟아 집니다. 지 휘자는 악장의 손을 적어도 두 번은 쥐고 흔듭니다. 대 개의 경우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섭니 다...... 그런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미처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 서지도 못합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제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 니다-어떤 시각으로 살펴보아도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계에서나 그 세계에 서 쓰레기와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 와 조롱을 받기 마련이지요.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세계 는 인간 사회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 서는-이론적으로만 보자면-언젠가는 나도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 가서 꼭대기에서 내 밑의 벌레 같은 것 들을 내려다 볼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지만...... 어디 까지나 희망 사항을 말씀드리 고 있습니다만....... (목소리를 낮춰서.)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에서는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냉엄한 능력별 계급 제도, 옛날 옛적에 내려진 결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잔 인한 계급 제도, 재능에 따른 냉혹한 계급 제도, 진동 음과 음의 빛깔에 따라 절대로 번복 불가능하기도 한 자연의 질서이며, 물리적인 계급별 차별화 제도 등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 지 마십시오! ....... (씁쓸하게 웃는다.) ......물론 이른바 위치 조정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 적은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모임으로는 대략 백 50년 전에 있었던 앉는 자리 조정에 대한 회의가 바로 그것 입니다. 그 당시 베버는 금관 악기를 현악기 뒤에 두도 록 하였는데, 그것은 대단한 혁명적 처사였습니다. 콘 트라베이스에 대해서는 어떤 변동 사항도 생기지 않았 습니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뒤에 앉습니 다. 1750년경 베이스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 이후부 터 우리는 언제나 뒤에 앉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렇게 유지될 겁니다, 그러나 저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저는 제가 발을 어디에다 뻗어야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어디쯤에 소속된 사람인 지는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다 배워서 알고 있다 구요!...... (한숨을 몰아 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몸을 추 스린다.) ......그리고 저는 그런 것에 착실하게 순종합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단원인 보수적인 인물로서 질서, 훈 련, 계급 제도, 지도자의 원칙과 같은 것에 대한 중요 성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 기 바랍니다. 우리 독일 사람들은 지도자라는 말만 나 오면 즉시 아돌프 히틀러를 머리 속에 떠올리지요. 그 런데 히틀러란 사람은 아무리 잘 봐준다고 하더라도 기 껏해야 바그너를 좋아하는 취향 정도만 갖춘 사람이었 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바그너를 매우 차거운 눈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아마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음악가로 서의 바그너는-단순히 손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등 학교 최고 학년의 수 준 정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그너의 악보는 말 도 안되는 것들과 실수로 가득합니다. 그 사람은 피아 노를 서툴게 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느 악기도 제대로 연주해 내지 못합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삽는 사람들은 차라리 멘델스존이나 슈베르트에 대해서 휠씬 더 편안 하게 생각하지요. 멘델스존은 이미 이름이 말해 주고 있듯이 유태인이었죠. 히틀러는 바그너를 제외하고는 음악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음 25)멘델스존(1809--1847). 독일 작곡가.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현악 4중주곡 등이 있음 악가가 되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다만 건 축가, 화가, 도시 계획가 등등은 해볼 생각을 갖고 있었 습니다. 무조건...... 밀어 붙이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 기 자신에 대해서 그 정도는 파악하고 일었던 거죠. 음 악가들은 어차피 나치주의자들에게는 별로 환영을 못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푸르트벵글러나 리하르 트 슈트라우스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문제가 많은 경우로서 나치주의자들이 그들에게 절대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 니므로 그들은 많은 부담을 안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나치주의와 음악은-푸르트벵글러의 자서전을 들춰 보시면 아시겠지만--절대로 어울릴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절대로요. 물론 그때도 음악을 만들기는 했었지요. 그건 확실합 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맥이 끊겨 버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칼 뵘 같은 사람을 예로 들어 보더라 도 그는 그 무렵에 이미 성공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 으니까요. 그리고 카라얀도 그랬지요. 그 사람은 심지 어 점령지였던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열화와 26)푸르트뱅글러(1886--1954). 독일의 지휘자, 베를린 필하 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역임. 27)카라얀(1908 -- 1989). 오스트리아 태생의 지휘자. 1955 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된 이후 정 상급 지휘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세움 오페라나 교향악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 실력과 인기를 아울러 갖춘 지휘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됨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그 밖에 다른 것 을 생각해 보더라도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심지어 강 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죄수들까지도 자체적으로 관 현악단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마찬가지로 나중 에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도 전쟁 포로들이 그런 것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음악은 사실 어떤 의미로 해 석해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정치나 역사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띠 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음악을 아주 평범 하고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 인 영혼과 정신에 따라 본질적으로 구성된 결정체 말입 니다. 그러므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아프리카든 스칸 디나비아 반도든, 브라질이든 수용 군도이든지 간에 한 결같이 어느 곳에서든 음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음악은 형이상학이니까요. 형이상학이라는 말 아시지 요. 실제적인 존재 이상 혹은 그 이면, 다시 말하면 시 간과 역사와 정치와 빈곤과 부귀와 삶과 죽음 그 이면 의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일찍이 괴테는 음악은 영원 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음악은 지극히 지고한 것 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해력도 그것과 같은 수준에 있을 수 없고, 그것은 모든 것을 통치하며,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말로써 설명하려는 용기를 갖지 못 할 만한 위 력을 발휘 한다.......) 그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 대사를 아주 경쾌하게 말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자못 흥분된 태도로 방 안을 이곳 저곳 다니다 가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제 자리로 되돌아 온다.) ......저는 괴테보다도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씀드 리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음악이라는 전문 분 야에 깊이 파고 들면 들수록, 음악이 하나의 커다란 비 밀, 대단히 신비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구요. 또한 음악에 대해서 더 알면 알수록 그 것에 대해서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저는 알 게 되었습니다. 괴테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 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적합하게 -높지만, 엄격히 분류해 본다면, 그는 음악 가는 아니었습니다. 우선은 그를 작사가 중의 한 사람 으로 손꼽을 수도 있겠고, 또한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 으로서 음률 조정가 혹은 언어로 화음을 만들어 낸 사 람으로 부를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음악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분류해 놓지 않고서는 음악 가라고 하는 그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할 수 없을 테니까요. 비록 그렇기는 했지만 그가 신비스러운 것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괴테가 범신론자였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흑시 알고 계시는지요. 아마 알고 계 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범신론이라는 것은 신비론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본 다면 그것은 도교나, 인도의 신비주의 등에서 종종 나 타나거나, 중세기 전반에 걸쳐 지속되고, 르네상스 등 을 거친 후 18세기에 프리메이슨 운동에서 다시 나타난 것처럼, 신비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짜르트가 프리메이슨의 회원이었다는 것 은 여러분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일 겁니다. 모짜 르트는 이미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음악가로서 프리메이 슨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그것은 제가 보기에는-그 사람 본인에게도 분명하였겠지만 -그가, 즉 모짜르트 가 음악을 역시 신비스러운 것으로 봤다는 것과 그 당 시 세계관에 입각한 시각에서 사고를 더 이상 하지 못 하였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므로 결국 제 주장에 하나 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들 으시기에 제 이야기가 너무 복잡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듣기 전의 상황 설명이 부족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지난 수 년간 각종 관련 자료 들을 검토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러분께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짜르트는- 그런 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과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음악가로서의 모짜르트는 (너무) 지나친 평 가를 받아왔단 말씀입니다. 사실이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이 말이 별로 신빙성이 없게 들리 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수년간 28)프리메이슨 운동. 중세에 상호 부조, 우애를 목적으로 하 는 비밀 결사 조직의 활동을 말함. 반 카톨릭적이며 초인종적, 초계급적, 초국가적, 평화적 인도주의를 표방함.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직업상 면밀하게 검토하였던 사 람으로서 모짜르트가 불공정하게도 완전히 잊혀져 버 린 동시대의 수 많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전혀 특별 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어린 나이에 재능이 뛰어나서 여덟 살 에 이미 작곡을 시작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람은 이미 짧은 시간 안에 끝장을 본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들 중에서 책임이 제일 무거운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정말 너무 심했습니다. 제게 만약 아들이 하나 있다면, 그리 고 모짜르트보다 열 배는 더 재주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를 겁니다. 사실 어느 아이든지 원 숭이처럼 훈련만 잘 시키면 작곡을 할 수 있는 것이므 로 아이가 작곡을 한다는 것만으로 아이를 신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술 작품도 아닐 뿐만 아니 라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이요,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 리고 요즘에는 그런 짓들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 다 아이들은 모름지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 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모짜르트가 작곡할 때만 해도 조금이라 도 두각을 나타내는 음악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 입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베버, 쇼팽, 바그너, 슈 트라우스, 레온까발로, 브라암스, 베르디, 차이코프스 29)레온까발로(1857-1919). 이탈리아 작곡가. 주요 작품으 로 차테톤,팔리아치,라보엠 등이 있음. 키, 바르톡, 슈트라빈스키...... 미처 등장하지 않았던 그 숱한 사람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의 95퍼센트나 즐기지 못했고, 더욱이 나처럼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존재하 지도 않았습니다! 모짜르트는 그런 실정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당시에 태어났던 사 람들 가운데 대가라고 칭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은 바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에 생존 당시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이 시대에 와서야 우리들에 의해 새롭게 평가를 받게 되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짜르트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의 시절 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부담이 없었죠. 그런 처지라면 흘연히 나타나-자신이 하고 싶은 바 를-아무 걱정도 없이, 신선한 연주를 해 보이거나, 작곡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았 던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더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저 라도 아마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가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짜르트는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 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더 솔직했던 괴테와 상반 되는 인물입니다. 괴테는 자신이 활동하기 전의 문학이 백지장과도 같아서 운이 좋았다는 말을 그간 누차에 걸 30)바르톡(1881--1945). 헝가리 작곡가. 주요 작품으로는 오 페라 푸른 수염의 영주님, 발레 음악 「허수아비 왕자」 등을 비롯 다수의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이 있음. 쳐 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요. 정말 행운을 등에 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모짜르트는 단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점에 있어서 그가 대단 히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들이 제 신경을 몹 시 거슬리게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 는 저로서는, 그를 마음 내키는 대로 비난하고 싶습니 다. 그리고 그냥 언급해 두는 말씀입니다만-모짜르 트가 만든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곡은-그대로 접어두 시는 편이 나으실 겁니다. 돈 조바니의 마지막 장 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니 까요. 모짜르트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끝맺겠습니다. 이쯤에서 제가 목 좀 축여도 괜찮으시겠죠....... 31) 돈 조바니. 1787년 모짜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자리에서 일어서서 뒤로 물러서다가 콘트라베이스 에 걸려 넘어지자 화를 벌컥 낸다.) ......야, 이 멍청아 조심 좀 해! 왜 맨날 길을 가로막 고 있는 거야, 바보 얼간이 같으니라구! 여러분, 삼십 대 중반이나 된 제가 왜 항상 이렇게 훼방만 놓는 이 따위 악기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지 그 까닭을 좀 설명 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 로나, 교통 편으로나, 연인과의 교제 면으로나, 음악적 으로나 (항상) 방해만 하는 이 따위 것과 말입니다? 왜 저로 하여금 증오의 칼날을 번득이도록 만들게 하느 냔 말입니다! 설명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소 리를 질러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만큼 은 제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소리를 질러도 상관 없 습니다. 방음 장치를 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제가 저 녀석을 박살을 내고야 말겠습니다. 언젠가는 끝장을 보겠어요....... (다시 맥주를 가져 오려고 잠시 자리를 뜬다.) (모짜르트 작 피가로의 결흔 전주곡이 흐른다.) (음악 끝. 다시 등장한다. 잔에 맥주를 따라 부으면 서 걸어 나온다.) ......에로티시즘에 대하여 한 마디만 더 말씀드리겠 습니다. 그 키가 작다는 여자 성악가, 정말 끝내 줍니 다. 키는 아담하고, 눈은 새카맣습니다. 어쩌면 유태인 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따위에는 신 경쓰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름은 세라입니다. 저하고 아주 썩 잘 어울릴 수 있는 여자죠. 저는 사실 첼로나 비올라를 연주하는 여자와는 절대로 사랑에 빠질 수 없 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단순히 악기만 생각해 볼 때 -콘트라베이스는 비올라와 배음이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디터스도르프의 교향 곡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트럼본 하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첼로도 되기는 하지요. 사실 말이지 우리는 주로 첼로와 함께 화음을 맞춥니다. 하지만 인 32)피가로의 결흔. 모짜르트가 1786년 30세 때 빈에서 작 곡한 오페라. 프랑스의 희극 작가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의 결흔에 곡을 만든 오페라로서 모짜르트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음. 원작의 정치적인 풍자 요소를 제거하고, 피가로의 기지와 음악에 의한 등장 인물의 박진감 있는 성격 묘사가 빼어 난 작품, 간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콘트라베이스 연 주자인 저로서는 저 하고는 정반대 되는 여자가 필요합 니다. 이를테면, 덩치가 아담하고, 음악성이 있고, 아름 답고, 복이 많고, 명성을 얻었고 또 볼륨있는 앞가슴도 필히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전에 한번 혹시 우리에게 맞는 곡이 있지 않나 해서 자료 보관실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프라노가 콘트라베이스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가곡을 두 개나 찾 을 수 있었습니다. 가곡을 두 개나 말입니다. 물론 작곡 가는 언제나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 지 않는, 1812년에 사망했다는 요한 슈페르거라는 사람 이었습니다. 게다가 바하의 9중주 곡 칸타타 152번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9중주라면 실제로 오케스트라 용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 두 사람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두 곡뿐인 셈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잠시 목 좀 축이겠습니다. 소프라노를 부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합니 까? 우리 서로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맙시다! 소프라노 를 부르는 사람에게는 연습용 반주자가 필요합니다. 실 력을 제대로 갖춘 피아니스트 말입니다. 지휘자가 더 나을 수도 있죠. 감독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보다는 기술 감독관이 그 런 사람에게는 더 중요하지요. 제 생각으로는 그 여자 가 우리 기술 감독관 하고 뭔가 심상찮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히 행정관일 뿐인데 말입니다. 음악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 는 행정관료 말입니다.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다분히 호색가로 보이는 늙은 수컷 같은 남자입니다. 게다가 동성 연애까지 한다더군요. 어쩌면 둘 사이에 아무 일 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또 사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그것이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금 아플 뿐이지요. 우리 기술 감독관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여자하고는 절대로 같이 잘 수 없을 테니까요. 저라면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가 벌써 그런 단계는 단연 코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여자가 저를 아직 모르 기 때문에 과연 그럴 단계가 앞으로 오게 될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제가 그 여자의 눈에 한번이라도 확실하게 띈 적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음악적으로 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겁니다. 어떻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운이 좋아 보았자 구내 식당이 고작일 겁니다. 저는 제가 연주하는 실력만큼 외모가 남들에게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자가 구내 식 당을 별로 이용하지 않는 것에도 있습니다, 종종 식사 초대를 받거든요. 나이가 더 많은 성악가들이 그 여자 를 초대하죠. 값이 비싼 생선 요리집으로요. 제가 언젠 가 한번 그 식당을 눈여겨 본 적이 있습니다. 생선 한 접시에 52마르크나 하더군요. 저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 종종 소름이 돋습니다. 나이 어린 여자가, 나 같은 사 람은 심심하게 덩그머니 혼자 있는데, 50살이나 된 테 너 가수와 만나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친단 말입 니다. 그때 제가 본 그 남자는 이틀 저녁 노래를 불러 주고 출연료를 3만 6천이나 받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얼마나 버는지 아십니까? 저는 정말 쥐꼬리만큼 받습 니다, 가끔 가다 음반을 내거나, 다른 악단에 잠시 끼 어 들어 연주하면 경우에 따라서 몇 푼더 받기는합니 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그냥 쥐꼬리만한 윌급을 받 습니다. 그런 돈은 요즘 세상에는 회사에서 직급이 낮 은 사원이나,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의 액수와 맞먹습니다. 그런 마당에 기껏 노래나 불러제끼는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뭘 배웠습니까? 아무것도 배우지 않 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음악 대학을 4년이나 다녔습 니다. 크루취니크 교수님한테서 작곡법을 배웠고, 리더 러 교수님한테서는 화음법을 배웠습니다. 오전에는 세 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저녁에는 네 시간 동안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시간이 날 때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기다려야만 했고, 12시가 되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며, 틈틈이 이 녀석을 붙들고 연 습에 매달려야 했고, 악보를 보지 않고도 달달 외울 수 있을 때까지 하루에 열 네 시간이나 피나는 노력을 해 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만약 제게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 런 생선 요리집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꼭 그래야 만 된다면 생선 요리 한 접시에 52마르크를 던질 용의 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눈썹이라도 하나 까딱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저를 아직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저는 그런 것을 보 면 소름이 끼칩니다! 더구나 그런 작자들이란 대개 돈 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여자가 제게 로 온다면-아직 저를 알지도 못하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제게 이렇게 물어 오겠죠. 「여보, 우리 비싼 생 선 요리 먹으러 가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겁 니다. 「그것 좋지, 여보, 당장 그렇게 합시다, 아주 값 비싼 것으로 먹자구. 값이 설령 80마르크나 된다고 해 도 무슨 문제가 되겠소.」 저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제법 호기를 부릴 줄도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렇지만 그 여자가 다른 남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꼴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소름끼치는 일이지요. (바로 제가) 사랑하는 여자가 말입니다! 다 른 남자들과 어울려서 고급 생선 식당을 드나들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거의 매일 밤마다 말입 니다! 물론 그 여자가 나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변명거리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저를 알 게 된다면...... 마침내 저와 사귀는 사이가 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 가 서로를 알게 된 다음에는, 제가 한번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을 이 자리 에서 여러분께 서면으로 약속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갑자기 고함을 친다.) ......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아 내가 단지 소프라노 가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고 종종 도라벨라가 아이다-라든가, -나비부인 따위 를 부른다고 해서, 그리고 제가 단순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 불과하다고 해서......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 그것 때문에...... 고급 식당을 간다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용서하십시오...... 죄송합니다.. ,... 마음을 좀...... 진정해야..... 제 생각에는...... 진 정시켜야...... 제가 여자를 하나 만나...... 산다는 것이 ...... 가능하시다고 생각되십니까......? 33) 아이다. 수에즈 운하 개통을 축하하는 음악으로 작곡 된 베르디의 작품으로서 1871년 카이로에서 초연되었음. 34)나비부인, 라 보엠, 토스카와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의 하나. 1904년 스칼라 좌에서 초연되었음. (전축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뭔가를 올려 놓는다.) ,,,,,,000000000000000..... 도라벨라가 부르는 아리 아입니다...... 제2장이지요...... 코지 판 투테에서 말입니다. 35)코지 판 투테. 모짜르트가 1790년 34세 때 반에서 작 곡한 오페라. 표제인 코지 판 투테는 (여자란 모두 이런 것) 이란 뜻. (음악이 흐르는 동안 조용하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 여자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체격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을 수 있을 것인지 에 대해 믿기 어려워 할 겁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별로 크지 않은 역할만을 했습니다만-예를 들어서 바그 너의 파르지팔 전설에 나오는 꽃파는 소녀 가운데 제2의 소녀 역할을 한다거나, 「아이다」에서 성전의 성 가대에 소속된 단원의 역할을 맡는다든가, 나비부인 에서 시녀로 나온다거나-그런 등등으로 나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를 때, 그 노 래를 들으면,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습니 다 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여자는 초청받아 온 스타 아무, 아무개와 함께 어느 고급 생선 요리집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생선회나 생선 스프 같 은 것이나 먹으러 가는 거죠!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 자는 혼자서 방음 장치가 된 방에 우두커니 서서, 그 여 자가 부르는 노래를 단 한 음도 반주해 주지 못한 채, 이렇게 못생기기만 한 이 악기나 손에 들고서 님 생각 에 가슴이나 저리도록 그대로 두고 말입니다...... 36)파르지팔 전설. 1882년에 완성한 바그너의 최후 작품. 십자가 위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과 그것에 의해 피를 받았다는 성스러운 잔이 후세까지 전해져 내려와서 스페인의 몽사르바트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는 중세의 전설을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오페라.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잘 만나 볼 수도 없는 여자를 끝없이 그리워하며 원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그 (여자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사실상 얼마되지 않으니, 실제로 그 여자는 그림의 떡일 수밖 에 없는 여자입니다. 한 번은 억지로 계기를 만들어 볼 생각을 했습니다. 「아리아드네」 리허설 때 그랬죠. 불과 몇 음절밖에 안 되는 소절을 불렀고, 감독도 그 여자를 꼭 한 번만 스 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곳으로 내보냈습니다. 그곳에서 그 여자가 지휘자만 뚫어져라고 쳐다보지 말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만 했더라면, 저와 눈이 마주칠 수 도 있었을 뻔했지요....... 그때 저는 그 여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불쑥 무슨 행동이라도 해 보인다면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이스를 집어 던 진다든가, 제 앞에 있던 첼로를 활로 문지른다거나, 어 쨌든 확실한 실수를 저질러 이상한 소리가 나게 한다거 나 하는 따위를 생각해 보았었지요. 「아리아드네」에서 라면 어차피 베이스가 둘밖에 없으니까, 사람들의 귀에 확실하게 들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생각 끝에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했 습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보다 공상은 훨씬 더 쉬운 법이니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 지휘자를 모르 십니다. 그는 단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상한 소리 를 내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모욕으로 받아들 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한 엉터리 연주로 그 여자 와의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이 어쩐지 너무 어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 으로 앉아서 동료들과 함께 연주를 하면서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짓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저는 그런 짓 은 할 수 없었습니다. 전 사실 양심이 곧은 음악가이거 든요. 그리고 그 여자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서 엉터리 연주를 한다면 차라리 그 여자에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것 보세요. 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라니까요. 그래서 결국 저는 제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범주에 서 최대 한도로 남들 보기에도 정말 멋드러진 연주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 죠. 하나의 시험이 되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제가 멋드 러지게 연주하는 것이 그 여자의 귀에 느껴져서, 단지 저 때문에 뒤를 돌아 본다면, 세라는 영원히 제 인생을 함께 할 여자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럼 모든 것을 끝장으로 생각하 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른바 애정 행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미신적인 면이 있는 겁니다. 그 여자가 뒤를 돌 아보지 않더군요. 제가 멋진 연주를 하기 막 시작했을 뿐인데, 그 여자는 감독의 손짓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 서서 다시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사실 어차피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그 누구도 받지는 못했 습니다, 지위자에게도 그랬고, 바로 제 옆에서 연주하 던 베이스 제1주자인 하프핑거에게도 그랬습니다. 그 연주자에게조차도 제가 얼마나 멋드러지게 연주하는지 가 느껴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음악당에 자주 가십니까? 한번 제 말씀대로, 여러분 께서 오늘 축제 공연으로 「라인의 황금」이 초연되는 음악당에 가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2천 명이 넘는 관 객들이 화려한 의상과 중후한 양복을 입고 있을 겁니 다. 방금 목욕을 끝낸 부인네들의 잔등머리에서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폴폴 날리겠죠. 비단 양복은 번쩍거리 고, 쭉 뽑아 올린 목덜미는 새하얗고, 보석은 찬란한 빛 을 발할 겁니다. 제일 첫줄에는 수상과 각하의 가족이 앉고, 각료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저명 인사들 도 자리를 함께 할 겁니다. 감독용 좌석에는 감독이 그 의 부인과 여자 친구와 가족과 특별히 초대한 귀빈들과 함께 앉게 될 겁니다. 책임 지휘자를 위해 지정된 자리 에는 책임 지휘자가 그의 부인과 특별히 초대된 손님들 이 앉게 됩니다. 모두들 오늘의 스타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출입문을 살 그머니 닫을 테고, 형광등의 불이 꺼진 후 샹들리에가 밝아오면 모두들 향그러운 냄새를 발하며 기다리게 됩 니다. 줄리니가 나타나겠죠.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옵니 다. 그가 머리를 깊숙히 굽히며 인사를 하겠죠. 방금 감 은 그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릴 겁니다 그 다음에 그가 오케스트라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면 사람들은 저마 다 서둘러 마지막 헛기침을 할 테고, 곧 고요한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가 팔을 올리며, 눈맞춤을 해두려고 제1 바이올린 주자를 찾은 다음 고개를 끄덕이면, 잠시 정 말로 마지막이 될 헛기침 소리가 조금 날 겁니다...... 그런 다음 음악당 안의 모든 것이 혼연 일체가 되고, 최초의 동작이 막 시작되려고 할 그런 초긴장의 순간 에, 모두들 잔뜩 긴장을 하고, 숨소리를 죽이며, 무대의 커튼 박스 뒤에서 「라인의 황금」에 등장할 세 명의 아 가씨들이 말뚝처럼 굳은 채 부동 자세로 서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오케스트라의 맨 뒷줄에서, 정확히 콘트라베이 스 주자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순간에,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사나이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소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소리를 크게 지른다.) ....세라!!!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겠죠! 내일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릴 겁니다. 저는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날 테 고, 꽃을 한 다발 사 가지고 세라를 찾아가면 그는 문 을 열고 제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될 겁니다. 저는 그러면 마치 백마를 탄 기사처럼 꼿꼿이 서서 이 렇게 말할 겁니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저올시 다.」 그런 다음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하고, 서로가 하 나가 되어, 꿈결 같은 행복을 만끽하며, 지상 최고의 환희를 즐기고 있노라면, 세상은 우리 두 사람 밑으로 가라앉아 버릴 겁니다. 아멘. 저는 사실 세라를 머리 속에서 지워보려고 애도 많이 써 봤습니다. 그 여자가 인간적으로는 정말 너무나 형 편없는 사람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성격이 아주 고약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정신 연령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유치할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사 람하고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저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 천사의 목소리 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것 자체만으로 영혼 을 담고 있습니다. 막상 그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형 편없는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제 생각으 로는 음악의 무서운 마력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에로티시즘이 문제가 됩니다, 어느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테마죠. 저는 이렇 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라가 노래를 부를 때면, 그 소리는 내 가슴 속을 너무나 깊게 파고 들어서, 저는 거의 성교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하게 됩니다. 제 말씀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저는 종종 한밤중에 깨어나곤 합니다. 끙끙 신 음을 하면서요. 그 여자가 노래부르는 소리를 꿈 속에 서 듣기 때문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겁니다. 방 안 에 방음 장치를 해둔 것이 천만 다행이지요. 그런 밤에 서는 몸이 땀에 흥건히 젖은 채 다시 잠을 청하곤 합니 다. 그러다가 다시 제 자신이 내는 끙끙 앓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버리곤 하지요. 그런 식으로 밤을 꼬 박 새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세라가 노래를 부르고, 저는 신음 소리를 내고, 깜박 다시 잠에 들었는가 하 면, 세라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저는 신음 소리를 내 고, 다시 잠에 빠져 들고 또다시 반복되고...... 그것은 정말 성교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어떤 때는-이왕에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와 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그 여자의 모습이 낮에도 눈 앞에 아른거릴 때도 있습니다. 물론 공상 속에서 그 러는 거지요. 저는...... 조금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 만....... 어떤 때는 세라가 여기 이 베이스처럼 내 앞에 바짝 나타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그런 상상을 하다가 그 여자를 가슴에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쪽 손으로 이렇게...... 말하자면 이 활과 함께...... 그 여 자의 뒤쪽을 거쳐서...... 아니면 콘트라베이스처럼 뒤 에 서서 앞으로 이렇게, 혹은 다른 방향으로, 왼손으로 는 그녀의 앞가슴을, G현의 세째 마디를 누르듯 이렇 게 감싸고...... 혼자 하기에는..... 제대로 보여드리 기 가 어렵습니다만, 오른손으로는 활을 손에 쥔 채로 뒤 에서 앞으로, 이렇게, 밑으로, 그 다음에는 이렇게, 다 시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콘트라베이스를 가지고 어지럽게 이쪽 저쪽을 만지 작거리다가 마침내 그것에서 손을 떼고는, 지친 모습으 로 의자에 털퍼덕 주저앉은 다음 맥주를 잔에 따른다.) .....저는 손재주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입니 다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음악가는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음악적 자질이 분명히 낫지 않을 겁니 다, 음악은 좋아합니다. 누가 현을 잘못 튕기면 그 소 리도 금방 알아챌 수 있고, 반음과 온음과의 구별도 확 실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단 (한마디도) 음악적으로 느껴지도록 연주하지 못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단 한나의 음도 제대로 연주해 내지 못합니다... .. 그런데 그 여자의 입에서는 입만 벌리기만 하면 온 갖 주옥 같은 소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설령 수만은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들립니다. 저는 단지 악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못한다 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프란쯔 슈베르 트가 제8번 교향곡을 지으면서, 그것을 일부러 아름다 운 음을 뽑아낼 수 없는 악기로 시작하게 만들었다고는 설마 생각하시지 않으시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슈베르 트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러나 어쨌든 (저는) 그 여자처럼 할 수 없습니다. 그 러니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다 연주해 낼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기술적인 면만 본다면 저는 여러분께 콘트라베이스의 파가니니 라고 할 수 있는 보티지니의 모음곡을 정교하게 연주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저처럼 연주할 수 있는 사 람이 이 세상에 불과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연습 만 착실하게 한다면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겠 지만, 제게는 그렇게 할 만한 동기가 결여되어 있고, 그 렇게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일로 생각되기 때문 에, 실제로는 연습을 그다지 하지 않습니다. 내적으로 충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 말씀 이해하시겠어요. 저에게는 음악적인 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 니다. 그런 정도는 저 자신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쯤은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저 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점일 겁니다. 제게는 아직까지는 저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천만 다행이지요. 제가 누구이고, 또 제 가 어떤 사람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비록 서 른 다섯의 나이에 공무원 신분으로 국립 오케스트라에 단원으로 소속되어 앞으로 평생 동안 그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 럼 그렇게 바보는 아닙니다, 저는 사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올시다! 공무원 신분을 가진 천재요! 사람 들이 잘못 알아 보고, 죽을 때까지 공무원으로 신분을 37)보티지니(1821-1899). 19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콘트라 베이스 주자. 작곡가. 지휘자. 규정해 놓은 천재로서,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 이스를 연주하는 사람 말입니다....... 이왕에 이렇게까지 될 바에는 바이올린 연주하는 법 을 배울 수도 있었고, 작곡이나 지휘를 배울 수도 있었 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제 실력이 모자 랐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싫어하는 악기를 붙들고, 사 람들이 제가 얼마나 형편없이 연주하는지를 잘 알아채 지 못하는 이 따위 악기를 이리저리 긁어 대는 것만을 겨우 해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제가 왜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느냐고요?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제가 왜 꼭 당신네들보다 잘 지내야 하는 겁니까? 그래요, 당신 네들요! 회계사, 수출 업무 대행업자, 사진 현상가, 법 률가 등등인 당신네들보다 말입니다....... 아니면 여러분들도 저처럼 손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사 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에 소속되어 계시는 겁니 까? 혹시 저 밖에서 지금 굴착기로 시멘트 바닥을 하루 에 여덟 시간씩 뚫고 있는 인부들 가운데 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아니면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다 들고서 그것을 비우려고 쓰레기차에 엎어 버리는 일을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하는 분들 가운데 오신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런 작업이 당신의 능력에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당 신이 아닌 다른 어느 사람이 당신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쓰레기통을 비운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일종의 모욕이 됩니까? 여러분도 저처럼 이상주의와, 자신을 잊고 지 낼 만큼 열성으로 직업에 매달리며 사는 분이십니까? 저는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왼손으로 네 개의 현을 있는 힘을 다해 꼭 누릅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말 총으로 만든 활을 잡고, 오른손이 뻣뻣하게 굳을 때까 지 그것으로 현을 문질러 댑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일종의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구별되는 단 한가지 특징은 제가 일을 가끔 연미복을 걸치고 한다는 것뿐입 니다....... (창문을 닫는다.) .....연미복은 제공받습니다. 그렇지만 드레스 셔츠 는 제가 직접 준비해야 되지요. 이제 곧 옷을 갈아 입 어야 됩니다. 제가 좀 흥분했던 걸 용서하십시오. 저는 사실 흥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더욱이 여러분들의 심기를 괴롭 혀 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 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 가끔 저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방금 전 처럼 세라를, 꿈 속에 그리는 그 여자를 마치 콘트라베 이스인양 착각을 하는 겁니다. 그럴 때면 그 여자는 음 악적으로 저보다 휠씬 지고한 위치에 있는 천사가 되고 .......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지만....... 저 자신은 각질 이 박혀 뭉툭해져 있거나, 더러운 활을 주물럭거렸던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죄죄죄한 콘트라베이스 박스로 상상해 버리곤 합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저를 압도하 거나, 종종 넋까지 빼앗긴 채, 상상의 나래를 펴고 깊 숙히 물두하도록 만드는 허무맹랑한 공상들입니다. 원 래 저는 뭔가에 그렇게 열중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다만 무슨 생각을 할 때만 열정적이 되지요. 생각에 빠 져 있을 때만 제 상상력이 날개 달린 말처럼 휠훨 날아 다니며 저를 질질 끌고 다닙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22년 전부터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쳐근에야 박사 학위를 받게 된 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나 심심풀이로 해 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는-제 친구는-예를 들자면 굳이 자리를 잡고 앉 아서 피아노 교향곡을 연주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믿을 테고, 그리고 사람 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더 많 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요즘 흔 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큰 실수라고 제 친구는 말합니 다. 그런 실수 때문에 우리 모두 함께 멸망하게 될 재 난이 곧 닥친다는 겁니다 그 말에 대해서 저는 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정말로 옷을 갈아 입어야 됩니다. (무대 뒤로 가서 옷을 가져온 다음, 그것을 갈아 입 으며 계속 말한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목소리가 좀 커서 죄송 합니다. 맥주만 마시면 이렇게 목소리가 커지거든요-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사실상 공무원이므로 평 생 동안 신분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근무 시간 도 정해져 있고, 휴가도 I년에 5주나 받을 수 있습니 다. 의료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고요. 월급은 2년마다 자동적으로 인상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는 연금도 타지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런 상황에 종종 두려움을 느 낍니다. 저는....... 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집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여가 시간에는-저에게는 사실 여가 시간이 많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두려움 때문에 집에 그냥 눌러 앉아 있 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런 현상을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요?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고, 가 위눌림 같은 것을 느끼며, 이런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공포로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밀폐 공포증 이라든가, 고정된 직업을 가짐으로 해서 비롯된 정신 이상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콘트라베이스 를 계속 다루면서 생겨난 거지요. 단체에 소속되어 있 . 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는 없거 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베 이스 연주자는 평생 동안 공무원 신분으로 남습니다. 심지어 우리 악단의 책임 지휘자조차도 그런 안정된 직 업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책임 지휘자의 계약 기간 은 5년이거든요. 악단에서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그 날짜로 밥줄이 끊어지고 마는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적어도 그렇습니다. 감독도 마찬가지지요. 감독의 힘은 사실 막강합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잘릴 수가 있습니 다. 우리 악단의 감독이 -예를 들어서 -헨쯔의 오 페라를 무대에 올려 놓았다면 잘리는 겁니다. 즉시 그 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것은 확실합니다. 헨쯔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지요. 국립 오케스트라 에서는 그런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일종의 정치 적인 보복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절대로 잘리지 않습니다. 연주를 하거 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 해도 절대로 잘리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제게 (그것 참 좋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이 제가 안고 사는 위 험 요인입니다. 예전부터 늘 이렇게 살아왔지요. 오케 스트라 단원은 언제나 고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국가 공무원인 사람이 2백년 전에는 성에 소속 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옛날에는 영주 가 죽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성 의 악단은 해체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죠. 무슨 일 38)헨쯔(1926-). 독일의 작가. 주요 작품으로 오페라 「시골 의사-외로운 거리」를 비롯 발레 음악, 교향곡, 관현악곡 등 을 남김. 이 일어나더라도 끄떡없습니다, 심지어 전쟁이 나도 상 관없지요. 나이가 많은 동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거 든요. 폭탄이 떨어져서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도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음악당은 불에 활활 타올랐어도, 지하실에서는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아침 9시면 모여 연습을 했다고 하더군요. 절망적입니다. 물론 저 는 사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죠. 제가 그냥 가서 말만 하면 됩니다. (그만두겠습니다) 라고요.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이제까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합법적인 행동이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는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자유로운 몸이 되겠 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엔 무 엇을 합니까? 그냥 길거리에 나 앉게 되는 겁니다....... 절망적이지요. 어차피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겁 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 (침묵,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어지는 대사는 속삭이 는 듯이.) ......제가 오늘 밤 공연을 망쳐 놓고, (세라)라고 소 리지른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죠. 그것은 그야말로 세상 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 될 테니까요. 수상이 배석 한 자리 앞에서 그런다면 말입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만천하에 알려질 테고, 저는 파면당하겠죠. 공수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괴성 때문에 말입니다. 어쩌면 큰 사건이 터지게 될지도 모 릅니다, 이를테면 수상의 경호원이 저를 총으로 쏠지도 모릅니다, 잘못 오인하는 바람에요. 순간적인 반응이 그렇게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그 사람이 실수 로 객원 지휘자를 쏠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무슨 일이 든지 분명히 일어날 겁니다. 제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 어 버리겠죠. 제 일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될 겁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라가 저한테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는 저 를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의 경력이나 인생길 에서 저는 언제나 에피소드로 남게 될 테니까요. 그것 이 말하자면 괴성을 지름으로써 얻게 된 효과가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저는 감독과 마찬가지로 잘리 겠죠... .... 파면당하는 겁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입 가득히 마신다.) 정말 제가 그렇게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냥 입 고 있는 옷 이대로 그곳으로 가서 이렇게 소리를 지를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실내악단으로 들어가 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착실하고, 근 면하고, 연습을 철저히 하고, 인내심이 많고, 규모가 작 은 오케스트라에서 제1베이스 주자가 되고, 작은 실내 악단 연합회에 가입하고, 8중주를 하고, 음반을 내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되고, 융통성이 있고, 약간의 명 성을 얻고, 겸손하고, 5중주단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을 다하고....... 제 나이였을 때 슈베르트는 이미 죽은 지가 3년이나 되었습니다. 이제 가 봐야 합니다. 7시 반에 시작하거든요. 여러 분을 위해서 다른 음반을 올려 놓겠습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가장조 5중주 곡으로 1919년, 그의 나이 스물 둘에, 슈 테이르에 사는 어느 채광업자의 청탁을 받고 쓴 작품입 니다....... (음반을 올려 놓는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음악당으로 가서,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그럴 용기만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께 서는 내일 신문에서 그것에 관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 으실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방을 나가고, 현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 순간 음악이 흐르기 시작 한다. 슈베르트의 5중주곡 숭어, 제1악장.> 책을 옮기고 나서 쥐스킨트의 글을 읽으면 적어도 세 번은 놀라게 된 다. 우선은 이야깃거리가 될 성싶지 않은 지극히 평범 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에 놀라고, 다음은 집요하게 소재를 추적하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국 제법 실 팍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내어놓되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 게 당연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치부하여 무심코 지나친 것들의 속성에 담 겨져 있는 심오한 의미들을 깨달으며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내게 있어서 그의 글은 음식으로 치자면 밥과도 같 다.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야만이 비로소 향긋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밥. 애초에 아무런 맛이 없지만, 실 제로 안에 촉촉한 달콤함을 숨기고 있는 그 순수한 자 연의 산물이 연상되는 것은 그의 글이 갖는 편안함과 친근함에 이은 조용한 깨달음 때문인 것 같다. 그가 묘 사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는 느낄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냄새를 맛볼 수도 있다. 더구나 작품 「콘트라베 이스」에서는 모노드라마라는 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배 우의 목소리를 높게, 아주 높게, 혹은 낮게, 아주 낮게 처리하여 독자의 정서적 흥분도(감정상태)를 조절함으 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하는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쥐스킨트의 글로서는 「좀머씨 이야기」에 이어서 두 번째로 번역하게 된 콘트라베이스는 남성 모노드라 마로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서, 그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 이라고 작가 자신은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 글을 1984년 스위스의 디오게네스 출판사를 통하여 발표하였으며, 이것은 그 이후 현재까지 독일어 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으로, 연 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록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느끼는 한 평범한 시민의 절망감 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 제도 와 관습과 인식의 굴레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우리네 연 약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부추기면서 존재의 가치를 스스 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배우의 힘겨운 몸짓은 차라리 따 스한 위안을 안겨 주었다. 번역가의 역할이 국내 독자들의 작품 이해를 어느 일 정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데 한 몫을 한다면 그것은 작가에 대해서 대단한 결례를 저지르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조금 먼저 읽은 독자로서 많은 사 람들이 내가 번역한 책을 통해서 감동을 받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구나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이 쥐 스킨트의 글처럼 순수하고, 심오하고, 향긋하고, 재미 있는 것인 바에야 번역 작업이 오로지 즐거울 따름이 다. 아무쪼록 이 책을 읽는 동안이나, 나중에 기억하는 시간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언제나처럼 엄마의 작업을 웃음으로 도와 준 우리 성 표와 성우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1993년 2월 대전에서 유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