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늙은 미치광이 랜돌프 커크패트릭 악명을 남기지도 못한 채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괴짜에게 주어지 는 흔한 운명이다. 만약 이 책의 독자(해면 동물을 전공하는 전문 분류학 자가 아닌 독자)들 가운데 랜돌프 커크패트릭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척이나 놀랄 것이다. 표면적으로 커크패트릭이라는 사람은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언 행이 온화하고 헌신적이지만 얼마쯤은 편벽하다고 할 만한 전형적인 영 국인 박물학자였다. 그는 1886년부터 1927년 은퇴할 때까지 대영 박물관에서 '하등 무척추 동물의 부관리관으로 근무했다(나는 항상 간단 명료하고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려는 영국인의 기호-예를 들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엘리베이터 elevator나 아파트먼트apartment라는 말 대신에 리프트lifs나 플랫flat을 사용하는-에 감탄해왔다. 미국에서는 박물관 소장품 관리자를 부를 때 라틴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서 큐레이터curator라고 부르지만, 영국인들은 그냥 '키퍼keeper'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을을 나타내는 말로 영국인들이 '오텀autumn'을 쓰는 데 비해 미국인들은 'fall'이라는 말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앞선다). 커크패트릭은 처음에 의학으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지만 여러 차례 질병과 씨름을 벌인 후 자연사의 세계에서 "그다지 격렬한 싸움을 요하지 않는 생애"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표본을 찾아 세계를 두루 여행 하면서 87세까지 수를 누렸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50년의 마지막 수개월 동안에도 그는 런던의 번화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커크패트릭은 연구 생활 초기에 해면 동물에 대한 분류를 주제로 매 우 견실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간된 학술 잡지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후계자들은 추도 문에서 커크패트릭이 중도에 연구를 그만둔 원인은 '이상적인 관리자' 로서 행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극단적일 정도로 겸손하고 친절하고 관대했고, 동료와 외국에서 온 교환 연구원들에게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연구를 완성 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도와주기 위해서라면 언제 라도 자신이 하던 일을 기꺼이 중단할 정도로 지나치게 친절했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그리고 전해지는 것처럼 전혀 오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1915년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발표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학술지가 게재를 거부 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비로 출판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커크패트릭은 금세기에 한 전문 자연사학자(커크패트릭에 뒤지지 않을 만큼 중후한 대영 박물관 관리관)이 발표했고 오늘날에는 완전히 상식 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학설 가운데서도 가장 주변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데 자신의 연구 생활 나머지 기간을 몽땅 쏟아 부은 것이다. 나는 그의 '화폐석 생물권(nummulosphere, 신생대 제3기에 속하는 고등 유공충의 화석/옮긴이)' 이론에 가해지는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입장을 강하게 변호하고자 한다. 1912년, 커크패트릭은 모로코 서부 마데이라 군도에 속한 포르토 산 토 섬 앞바다에서 해면류를 채집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해발 1천 피 트 고도의 산 정상에서 주운 화산암 조각을 몇 개 그에게 가지고 왔다. 커크패트릭은 훗날 자신의 대발견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그 암석들을 확대경으로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모든 암석 에서 원반형 화폐석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이튿날 나는 암석 파편이 발 견된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오늘날 화폐석은 지금까지 생존한 유공충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 려졌다(아메바와 근연 관계에 있든 단세포 생물로서 단단한 껍질이 있기 때문에 화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화폐석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전과 비슷하다. 그 껍질은 지름이 1인치에서 2인치 정도 되는 평평한 원반이다. 이 원반은 일렬로 배열된 다수의 소실(동식물 체내에 있는 공동/옮긴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열은 전체적으로 소 용돌이 모양으로 단단하게 감겨진 형상을 이루고 있다(그래서 이 껍질은 동그랗게 감아놓은 밧줄을 그대로 축소한 모습처럼 보인다). 화폐석은 제3기 초기(약 5천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번성했었기 때문에 이 생물의 껍질로만 이루어진 암석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암석을 '화폐석 석회암'이라고 부른다. 카이로 부근에는 화폐석이 지면에 흩어져 있는 지 역이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이 화폐석을 대피라미 드를 건설하던 노예들이 급식으로 먹다 남긴 렌즈콩이 석화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 후 커크패트릭은 마데이라로 돌아갔고 그곳의 화성암 속에서도 화 폐석을 '발견'했다. 지구의 구조에 관해서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은 상 상하기조차 힘들다. 화성암이란 화산 분화로 만들어지거나, 지구 내부 에서 녹았던 마그마가 냉각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화성암에 화석이 들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커크패트릭은 마데이라와 포르토산토 화성암에 화폐석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화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렇 다면 '화성암'은 지구 내부에서 나온 용융된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저에 침전된 퇴적물이어야 하는 셈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거의 포르토 산토 섬 전체, 즉 건물, 포도즙 짜는 기구, 토양, 그 밖 의 대부분이 화폐석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나는 문득 '에오존 포르토산툼Eozoon portosantum'이라는 학명이 이 화석에 어 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후에 에오존에 대한 설명이 나온 다. 그 뜻은 '여명의 동물'이다). 마데이라의 화성암 역시 화폐석 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에오존 아틀란 티쿰Eozoon atlanticum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 무엇도 커크패트릭를 제지할 수 없었다. 그는 세계 여러 지 방에서 채취된 화성암을 조사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황급히 런던으로 돌아왔다. 모두 화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날 아침, 나는 북극 지 방의 화산암을 에오존을 포함하는 암석에 추가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태평양, 인도양, 그리고 대서양의 화산암을 그 목록에 덧붙였다. 자연 스럽게 에오존 오르비스-테라룸Eozoon orbis-terrarum이라는 명칭이 떠 올랐다." 마지막으로 운석을 조사한 후 그는 모든 것이 화폐석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만약 에오존이 전세계를 손에 넣은 후, 정복할 더 넓은 세계를 찾지 못해 한숨을 쉬었다면 그 운명은 알렉산더 대왕을 능가하였을 것이 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대왕과는 달리 그 갈망이 실현되었기 때문이 다. 화폐석의 제국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 을 때, 마지막으로 그 학명을 에오존 우니베르숨Eozoon universum 으로 바꿀 필요가 분명해졌다. 커크패트릭은 명쾌한 결론, 즉 지구 표면에 있는 모든 암석(우주에서 날아온 것까지를 포함해서)이 화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 암석이 원래 생물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도 자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거기에서 유공 충의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구조가 대단히 명 료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커크패트릭은 저배율 확대경으로 화폐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 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주장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성암을 비롯해서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암석에 관한 내 견해에 사람들은 상당한 의혹을 보내왔지만, 그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리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커크패트릭이 조금쯤 착각에 빠져 있 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 기구에 영합한 독단 론자로 배격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지키기 위해 상당 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앞에 얘기한 세부 사항들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몇 시간씩 암석 파편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더라도 도대체 그는 지구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지각이 완 전히 화폐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커크패트릭 은 생명계와 역사 초기에 화폐석이 껍질을 갖춘 최초의 생물로 출현했 다고 주장했다. 그가 그 생물에 대해 에오존이라는 학명을 사용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커크패트릭은 캐나다 대지질학자인 J. W. 도슨이 1850년대에 지구상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발견된 화석 생물에게 처음 붙인 이름을 응용했다(오늘날 에오존은 흰 방해석과 녹색 사문석의 와층 무기 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23장을 참조하라). 커크패트릭은 생명 탄생의 초기에는 틀림없이 해저의 전 지역이 화폐 석 껍질로 두텁게 퇴적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왜냐하면 바 다에는 그것들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 내부 에서 발생한 열이 이것들을 녹여서 껍질 속으로 규토가 흘러 들어가게 하였다고 보았다(순수한 화폐석이 탄산칼슘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화성암 이 규산염인 것은 왜일까라는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설명으로 해결된다). 화폐석이 압축되어 녹아내릴 때 그 일부는 윗쪽으로 밀려 올라가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었고, 이것들이 훗날 화폐석을 포함한 운석이 되어 지상 에 다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암석이 화석을 포함하는 것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 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화석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암석에는 한 가지 종류만 있는 셈 이다. ... 지각은 실제로는 규산질화된 단일한 화폐석권인 것이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지각이나 운석만으로 만족하 지 못한 그는 화폐석의 소용돌이 형태가 생명의 본질을 나타내며, 그 형태야말로 생명 자체의 구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 는 자신의 주장을 극한에까지 확대시켰다. 암석이 화폐석이라고 말해서 는 안 되며, 오히려 암석이나 화폐석, 그 밖의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생명 물질의 근본적인 구조' , 즉 모든 생존물의 나선 형태의 표현이라 고 말해야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필경 그랬을 것이다(만약 그가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직감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면 영감이 떠오른 것일까?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광기에 빠진 것일까? 역시 그랬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커크패트릭은 화폐석 생물권 이론의 틀을 세우는 데에도 항상 자신의 과학적인 연구의 동기가 되었 던 순서에 충실히 따랐다. 그는 종합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 그리고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실들을 하나로 결합하도록 하는 마치 충동과도 같은 상상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외형적으로 유사하다고 반드시 공통된 근원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진리를 무시하고, 그는 전통적으로 다른 범주로 분류되어왔던 것들 사이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형태의 유사성을 줄기차게 찾아 헤맸다. 또한 그는 자신의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기반으로 그러한 유사성을 구축한 것이다. 물론 이렇듯 종합하려는 경솔한 탐구로 인해 진지하게 접근하던 과학 자들이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던 진정한 관련성을 다시금 폭로할 수도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초의 착상 을 얻어 이러한 관련성에 주목하는 경우도 있지만). 커크패트릭과 같은 과 학자들은 대개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이 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옳을 때에는 일반적인 학자들이 보통의 방법 으로 실행한 견실한 연구를 무력하게 할 정도로 그들의 통찰은 괄목할 만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커크패트릭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가 1912년에 운명적인 발견을 했을 때 왜 그가 마데이라와 포르토 산토에 있었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해보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12년 9월, 나는 기묘한 해면 조류인 메를리아 노르마니merlia normani에 대한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마데이라를 지나 포르토 산토로 여행했다." 그 전해인 1900년에 J. J. 리스터라는 분류학자가 태평양의 리푸 섬과 푸나푸티 섬에서 특이한 해면 동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규산질의 침골을 갖고 있었고, 그 밖에도 산호의 일부 종과 놀랄 만큼 흡사한 석회질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침골이란 대부분의 해면 동물 골격을 구성하는 작은 바늘 모양 구조물을 말한다). 냉정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던 리스터는 규산과 방해석의 '잡종'을 용 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침골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해면 동물 속으 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더 많은 표본을 채집해서 해면 자체가 침골을 분비했다고 정확하게 결론지었다. 그 후 1910년에 커크패트릭은 마데이 라에서 메를리아 노르마니를 발견했다. 이것은 규산질 침골과 보조적인 석회질 골격을 가진 두 번째 해면 동물이었다. 이제 상황은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메를리아를 종합하고자 하는 커그패트릭의 정열은 둑이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었다. 그는 마침내 문제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석회질 골격이 보통 산호류로 분류되고 있는 몇 개의 화석 집단, 특히 스트로마토포로이드 Stromatoporoia와 카에테티드chaetetid류의 평편한 면을 가진 산호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사실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고생물학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에게 매우 중대한 관심사임을 보증할 수 있다. 스트로마토포로이드와 카에테티드류는 화석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으로서, 태곳적 일부 퇴적물에서 암초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이 차지하는 분류학 상의 위치는 고생물학에 있어 고전적인 수수께끼의 하나로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그 연구에 평생을 바칠 정도였다). 그런데 커크패트릭은 이들 두 군과 그 밖의 수수께끼 화석들이 모두 해 면 동물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해면 동물과 유연 관계를 가진다는 확실한 징후로서 그 화석들 속에서 침골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것들은 모두 침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커크패트릭이 다시금 착각과 망상에 빠진 것도 분명하다. 의문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한 이끼벌레인 몬티쿨리포라속 까지도 자기식으로 '해면 동물'의 범주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어쨌든 커크패트릭은 곧 자신의 화폐석 생물권설에 몰두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메를리아속Monticulipora에 대해 계획하던 주요 연구 성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화폐석 생물권이 그를 과학의 부랑아로 만들었고, 산호 모양의 해면류에 관한 그의 연구는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커크패트릭은 화폐석을 연구할 때나 산호 모양 해면류를 연구할 때에 도 항상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즉 아무도 하나로 결합시키려 들지 않 았던 몇 가지 사실에서 공통의 근원을 추론해내기 위해 추상적인 기하 학적 형태의 유사성에 조소하고, 마지막에는 분명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조차 자신이 기대한 형태를 실제로 '보았을' 정도의 열정을 기울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연구 사 이에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차 이점이란 해면류에 관한 한 그의 입장이 옳았다는 것이다. 자메이카의 디스커버리 만 해양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토마스 고 로는 1960년대에 암초가 많은 서인도 제도의 신비스런 환경에 대한 조 사에 착수했다. 그곳의 갈라진 금과 틈새, 동굴 등은 지금까지 알려지 지 않은 중요한 동물상을 숨기고 있다.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제레미 잭 슨 그리고 윌라드 하르트만이 이 서식지에 무수한 '살아 있는 화석'들 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최근 20년 동안 이루어진 가장 흥미로운 동물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숨겨진 사회는 그보다 더 새로운 종류가 진화함에 따라, 문자 그대로 그림자가 옅어진 하나의 생태계 전체를 남김없이 나타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생태계는 (우리들 눈에는)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구성 원들은 멸종하지도 않았고 희귀하지도 않다. 동굴이나 갈라진 틈의 안쪽 표면은 오늘날 암초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단지 스쿠버 다이빙이 등장할때까지 과학자들이 이러한 장소에 출입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이러한 숨겨진 동물상에는 두 가지 동물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완족류 동물과 커크패트릭이 발견한 산호 모양의 해면류가 그것 이다. 고로와 하르트만은 자메이카의 암초 앞쪽의 경사면에서 여섯 종 의 산호 모양 해면을 발견하고 기록했다. 이들 종은 경해면류Sclero- spongiae라는 해면류의 새로운 강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연구를 진행 하는 과정에서 커크패트릭의 논문을 재발견했고, 산호 모양의 해면류와 수수께끼의 화석인 스트로마토포로이드와 카에테티드의 근연 관계에 관 한 그의 입장을 조사했다. 그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커크패트릭의 논고에 의해서 우리들은 앞에서 기술한 산호 모양 해면류와 화석 기록으로 알려지는 몇 개의 군의 대표를 비교하게 되었다." 그들은-내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이들 화석이 실제로 해면류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동물학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 고생물학의 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다. 그런데 늙은 미치광이 랜돌프 커크패트릭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커크패트릭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하르트만에게 편지를 썼을 때, 하르 트만은 해면류에 관한 커크패트릭의 분류학상의 연구는 매우 훌륭한 것 이니 화폐석 생물권에 대한 이론을 빌미로 그를 지나치게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충고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해면류 연구와 불가사의한 화폐석 생물권에 대한 연구 양 측면에서 모두 커크패트릭을 존경한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이해하고자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한바탕 비웃음을 가지고 그것은 미친 학설이라고 일축하기는 무척 쉽다. 화폐석 생물권 이론은 사실 미친 이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들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취한 방법을 진지하고 세심하게 조사하는 노력을 통해 많은 보상을 얻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열정이 일관성 에 대한 타당한 인식과 주목할 만한 변칙적 가치를 갖지 않는 경우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식으로 드럼을 치는 특이한 드러머가 풍부한 결실을 맺는 새로운 템포를 치는 일이 자주 있으니까 말이다. 제23장 바티비우스와 에오존 토마스 헨리 헉슬리가 "우리의 기쁨이자 즐거움"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극진히 사랑했던 아들을 성홍열로 잃었을 때, 찰스 킹즐리는 영혼의 불 멸성에 관해 긴 이야기를 해주며 그를 위로하려 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불가지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던 헉슬리 는 킹즐리가 자신을 걱정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그의 위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절한 행동에 필요한 좌우명으로서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진 한 유명한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임무는 사실을 자신 이 바라는 바에 따라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바람이 사실과 일치하도록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 어린아이처럼 사실 앞에 겸허 하게 앉아 모든 선입견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자연이 이끄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깊은 낭떠러지라 하더라도 겸손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헉슬리의 기상은 고상하고 그의 고뇌는 애처롭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격언을 실행하지 않았다. 요컨대 창조적인 과학자들 가운데는 이 모토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뛰어난 사상가는 사실을 눈앞에 두고 결코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다. 그들은 자연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겸손하게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 나름의 바람과 직관을 가지고 있어 그 관점에 따라 세계를 구성하려고 열심히 시도한다. 걸출한 사상가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저지른 실수들 목록에서 특히나 이채로운 일역을 담당했다. 이론적으로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된 가상의 동물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에 볼테르는 "만약 신이 없다면, 신을 만들어내기 라도 해야 할 것이다"라고 빈정거린 것은 이에 대해 정곡을 찌른 표현 이었다. 실제로 서로 관련되고 교차하는 두 종류의 공상적인 괴물Chimera이 진화론이 등장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종 류와 괴물은 다윈주의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두 종류의 괴물 가운데 하나에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이 름을 붙여주었다.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에게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별문제가 되지 않 는다. 그들은 신이 생물을 암석이나 화학 물질보다 분명히 진보하고 뚜 렷한 차이를 갖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진화론자 들은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독일에서 다윈 이론이 지지를 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며 초기 진화론자들 가운데 가장 사변적이고 공상적인 인물이었던 에른스트 헤켈은 진화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공백을 메울 만한 가상의 생물을 상상 했다. 하등생물인 아메바는 최초의 생명체 모형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그 내부가 핵이나 세포질로 분화했다는 사실은 원시 무정형성으로부터 이미 상당히 진전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켈은 조직되지 않은 원형질만으로 이루어진 하등 생물인 '모네라'라는 유기체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했다(어떤 의미에서 그는 옳았다. 오늘날 우리는 핵이나 미토콘드리아를 갖지 않은 생물-물론 헤켈적인 의미에서는 무정형이라고까지 말할 수 는 없지만-, 즉 박테 리아와 남조류로 이루어진 집단에 그가 만든 명칭을 붙여 '모네라계' 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헤켈은 자신이 상상한 모네라를 "완전히 균질하고 구조가 없는 물질 이고, 영양과 생식이 가능한 알부민(albumin, 단백질의 일종/옮긴이)으로 이루어지는 입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 지대에 위치 하는 존재로 모네라를 든 것이다. 그는 무기물로부터 생명이 발생한다는 골치 아픈 문제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진화론자에게는 가장 복잡한 화학 물질과 가장 단순한 생물 사이에 가로놓인 커다란 간격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며, 역으로 창조설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강력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헤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세포는 이미 두 가지 다른 부분, 즉 핵과 세포질의 분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자연 발생적으로 직접 만들어 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모네라처럼 구조되지 않은 알 부민 몸체와 같이 완전히 균질한 유기 물질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훨씬 납득하기 쉽다." 그러한 이유로 1860년대에 다윈 지지자들이 해결해야 할 우선 사항은 모네라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따라서 모네라는 무구조적일수록, 그리고 더 많이 흩어져 있을수록 더 바람직했다. 헉슬리는 킹즐리에게, 자신은 몇 가지 사실을 추적해서 무정형의 심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비유적 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1868년에 정작 그가 진짜 심연을 조사할 때 그를 이끈 것은 [사실이 아니라] 희망과 기대였다. 그는 그보다 10년 전에 아일랜드 북 서부 해저에서 끌어올린 침니 표본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표본 속에서 초보 단계의 불완전한 젤라틴 물질을 찾아냈다. 그 속에는 코콜 리스(coccolith, 백악이나 심연의 연니 중에서 발견되는 석회석의 작은 조각/옮긴이)라 불리는 원반 모양의 작은 석회질 판이 파묻혀 있었다. 헉슬리는 이 젤리 물질을 그 동안 예견만 되왔을 뿐 실제로 찾아낼 수 없었던 무구조의 모네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콜리스를 모네라의 원시 골격이라고 판단했다(오늘날 코콜리스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다. 그것은 해초류의 골격 파편으로서 플랑크톤 을 생산하던 기관이 죽자 곧 해저에 가라앉아 형성된 것이었다). 그는 모네라의 존재를 예견한 헤켈을 기리기 위해 그것을 '바티비우스 헤켈Bgthybius Haekelii'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헤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귀하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대자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자 헤켈은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 각한다"는 답장을 보냈고, 당시 자신이 쓴 노트를 "모네라, 만세!"라는 구절로 끝냈다. 미리 예견되왔던 것의 발견만큼 크게 설득력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바티비우스는 도처에서 나타났다. 찰스 위빌 톰슨 경은 대서양의 심해 저에서 끌어올린 표본을 조사한 뒤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진흙은 정 말 살아 있었다. 그것은 계란의 흰자위가 엉긴 것처럼 덩어리져 있었다. 그 흰자위 비슷하게 생긴 덩어리를 현미경으로 조사해보니 살아 있는 원형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헉슬리 교수는 ... 그것에 바티비우스 라는 이름을 붙였다."(덧붙여 말하자면 원형질이란 단세포 원생 동물의 군이다) 헤켈은 평소의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해 이 사실을 즉각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저(5천 피트까지) 전체가 살아 있는 바티비우스의 맥동하는 막으로 덮여 있고, 청년 시절 헤켈의 우상이었던 낭만적인 자연 철학자들(괴테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이 이야기하는 '원점액 Urschleim'으로 덮여 있다고 추정했다. 헉슬리는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1870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바티비우스는 해저에 살아 있는 얇은 막을 형성해 수천 평방마일에 걸쳐 퍼져 있습니다. ... 필경 그것은 지구의 전 표면을 둘러 싸면서 살아 있는 물질의 연속된 얇은 층을 형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티비우스는 공간적으로 더 이상 확장시킬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인 시간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 정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두 번째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때를 만난 또 하나의 생물은 '에오존 카나덴세Eozoon canadense'이다. 이 말은 '캐나다에서 기원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다윈에게 화석 기록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고민거리였다. 모든 복잡한 동물의 설계가 지구 역사의 기원에 가까운 시기가 아니라 지구 역사의 5/6이상이 지난 후인 이른바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시기에 동시적으로 생겨났다는 사실만큼 그를 난처하게 만든 것도 없었다. 학문적으로 그와 다른 견해를 가졌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창조의 순간 이라고 해석했다. 캄브리아기 이전에 생명체가 살아간 궤적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시점에서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날에는 새로이 발굴된 태곳적 암석으로부터 광범위한 모네라류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21장 참조), 따라서 선캄브리아기의 화석 생물만큼 학자 들에게 설레임을 주며 환영받은 것도 없었다. 또한 단순하고 무정형일수록 더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1858년에 캐나다 지질조사국에서 일하던 한 채집원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기묘한 것들을 몇 가지 찾아냈다. 그것들은 사문석 (주성분은 규산염)과 탄산칼슘이 동심원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는 얇은 층 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사국장인 월리엄 로건 경은 그것이 화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지지하는 답은 거의 얻지 못했다. 로건은 1864년에 오타와 인근 지역에서 더 좋은 표본을 몇 개 발견했 다. 그는 그 표본들을 당시 캐나다의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맥길 대학 학장이었던 J. 월리엄 도슨에게 가지고 갔다. 도슨은 방해석 속에서 일 종의 도관 체계를 포함하는 '유기적인' 구조를 발견했다. 동심원 모양으로 층을 이룬 이 구조에 대해, 그는 현존하는 같은 종류와 비교해 다소 산만한 구조를 띠기는 하지만 지금 것보다 수백 배나 더 큰 거대 유공충의 골격일 것이라고 판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에오존 카나덴세' 라고 명명했다. 다윈은 이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그것이 생물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는 그의 확고한 찬사와 함께 에오존의 이 름은 '종의 기원' 제4판에 수록되었다(공교롭게도 도슨 자신은 충실한 창 조론자였고, 아마도 진화론에 맞서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훗날 1897년에 그는 '원시 생명의 유물'이라는 에오존 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거기에서 그는 단순한 구조를 지닌 유공충류가 긴 지질 시대 동안 계속 생존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연 선택설에 대한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생존 투쟁이 있었다면, 이러한 저급한 생물은 더 고급한 생물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은 하나로 결합될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 어졌다. 이들은 무정형성이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에 오존이 분명한 골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바티비우스와 차이가 날 뿐이다. 에오존이 그 껍질을 잃고 바티비우스가 되었거나, 아니면 이들 두 종류의 원시 생물이 서로 가까운 유연 관계를 맺으며 생존했던가 어느 한쪽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생리학자였던 W. B. 카펜터는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티비우스가 ... 스스로 조개 껍질 모양의 외피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 외피는 에오존의 그것과 아주 흡사했을 것이다. 더욱이 헉슬리 교수가 깊이뿐 아니라 온도의 측면에서도 매우 폭넓게 바티비우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듯이, 모든 지질 시대에 걸쳐 심해저에 그것이 계속 생존 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나는 에오존과 바티비우스가 모두 전 지질학적 시대에 걸쳐 생존을 계속해왔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진화론자들을 흥분시키는 하나의 환상이었다! 예상했던 무정형의 유기체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유기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신비로운 태곳적 해저를 뒤덮고 있었다. 이들 두 생물이 멸종한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일찍이 어떠한 과거 문헌에서도 옹호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편견을 지적하고 넘어가겠 다. 즉 이 논쟁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가장 원시적인 생물은 균질하고 무정형이고 산만하고 일정한 체제를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명백한' 진리를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카펜터는 바티비우스를 두고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해면류보 다 더 저급한 유형"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헤켈은 "여기에서 원형질은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거의 명확 한 형태를 띠지 않고 아직까지는 개체화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단언 했다. 헉슬리에 따르면, 세포핵과 같은 내적 복잡성을 갖지 않는 생물은 유기체의 조직이 무한의 생명력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헉슬리는 바 티비우스가 "핵 속에 아무런 신비로운 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한 생명은 생체 물질의 여러 가지 분자가 나타내는 속성이며 신체 조직 은 생명의 결과일 뿐 생명이 신체 조직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들을 고려할 때, 왜 우리는 무정형과 원시성을 같 은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오늘날의 생물들은 이러한 사고 방식을 뒷 받침해주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형태의 규칙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적합치 않다. 가장 단순한 박테리아도 일정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무조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아메바를 포함하는 분류군에는 모든 규칙적인 생물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잡하게 조각된 방산충류Radiolaria도 포함돼 있다. DNA는 조직화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은 아주 정교한 팅커토이(Tinkertoy, 집짓기 모형의 상표명/옮긴이) 집짓기 모형과 같은 것을 만들어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DNA구조를 밝혀냈다. 그렇지만 나는 규칙적인 형태가 신체 모든 구조의 기반을 이룬다는 신비주의적인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역설할 생각은 없다. 또한 원시성과 무정형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관념의 뿌리를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진보주의자들의 은유에-즉 생명계의 역사를 무에서 시작되어, 단순성 에서 복잡성을 향한 무수한 단계를 거쳐 필연적으로 인간 자신의 고귀한 형태에 도달하는 사다리라고 보는 사고 방식-기원한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자부심을 갖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윤곽을 그리는 토대로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간에 바티비우스든 에오존이든 그 어느 것도 빅토리아 여왕보 다 오래 살지는 못했다. 바티비우스를 "실제로 살아 있는 ... 흰자위와 같은 덩어리"라고 말한 찰스 위빌 톰슨 경은 1870년대에 챌린저 호에 의해 이루어진 해양 조사의 수석 과학자가 되었다. 이 조사는 전세계 해양에 관한 과학적인 조사 항해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챌린 저 호의 연구원들은 깊은 해저 진흙 속에 들어 있는 신선한 표본에서 바티비우스를 찾아내려고 여러 차례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후일의 분석을 위해 진흙 표본을 보존할 때 대개 유기물을 고정할 목적으로 알코올을 섞어놓곤 했다. 헉슬리가 처음 찾아낸 바티비 우스는 10년 이상 알코올로 보존되어온 표본 속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 런데 챌린저 호의 조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신선한 진흙 표본에 알코올을 가할 때마다 바티비우스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사단에 속해 있던 한 화학자가 바티비우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바티비우스는 진흙이 알코올과 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황산 칼슘의 글로이드성 침전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톰슨은 헉슬리에게 편지를 썼고, 헉슬리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그의 표현대로 굴욕을 감내했다). 헤켈은 헉슬리보다 좀더 완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티비우스는 조용히 퇴색해갔다. 이와 반대로 에오존은 좀더 오랫동안 생명을 부지했다. 도슨은 지금 까지 과학자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신랄한 평론을 몇 편 썼다. 그 글들을 통해 그는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에오존을 고수한 셈이다. 한 독일의 비판자에 대해 그는 1897년에 이렇게 평하고 있다. "추는 모비우스가 독자적이지만 다소 제한된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 논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성이나 적절함과는 거리가 먼 논문을 과학적 자료로 발표하고 발간한다는 것은 과학이 간단히 용서 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특히 모비우스의 글을 실은 독일의 잡지 편집자 들의 경우-하나의 범죄 행위라고 본다." 도슨은 당시에도 고독한 저항을 계속 하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일 커크패트릭은 더 기묘한 형태로 에오존을 부활시켰다. 22장 참조).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모두 에오존이 무기물이라는 데-높은 열과 압력에 의한 변성 작용의 산물-의견을 같이했다. 실제로 에오존은 화석이 발견 되기에는 부적당한 장소인 고도로 변성된 암석(변성암) 속에서만 발견 되었다. 여기에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 에서 분출된 석회암 덩어리 속의 에오존이 그 증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발견으로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진 것은 1894년의 일이었다. 그 후 과학계에서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은 한바탕의 헛소동 정도로 간 주되었다. 음모가 놀랄 만큼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현대의 생물학자들 가운데서 단 1퍼센트만이라도 이 두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사 람이 있다면 나는 무척 놀랄 것이다. 과학이란 오류를 끊임없이 제거하 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고래의 전통(오늘날에는 효력이 상실된) 속에서 자란 역사가들도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잘못 으로부터 유쾌한 웃음이나 숱한 '금지 조항'으로 조립된 도덕률 외에 어떤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과학사가들은 이렇듯 영감에 뿌리를 둔 잘못에 대해 과거 사 람들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잘못은 각 시대에 나름 대로의 의미를 가졌다. 그렇다고 그런 오류들이 오늘날에는 아무런 의 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모든 시대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과학은 그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 개인적인 기행, 경험으로부터 오는 제약 등과 상호 작용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바티비우스와 에오존이 그전 시기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모으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이 글을 쓰면서 나는 처음 발간되었던 자료들, C. F. 오브라이언의 에오존에 관한 논문과 N. A. 루프케와 P, F. 레보크의 바티비우스에 관한 논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레보크의 논문은 철저하고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계에서 완전한 바보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의 전후 배 경을 정확하게 살피고,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인 식을 잣대로 삼아 판단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잘못은 항 상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잘못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전후 상황이 변화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대개 잘못은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보다는 통찰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체계화할 수 있는 상상력의 소유자들이고, 모든 점에서 '그렇다'라고 긍정할 수 없는 이 복잡한 세계에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이 떠돌게 만들 정도로 모험적(또는 자기 중심적)이다. 영감으로 인해 발생한 오류를 깊이 따지고 드는 것은 오만이라는 죄에 대해 훈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위대한 통찰력과 엄청난 잘못이 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양자를 관통 하는 공통된 특성이 탁월함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분명 바티비우스는 영감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이었다. 그것은 진화론을 진전시킨 보다 큰 진리에 기여했다. 또한 그것은 원시 생명체가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쳐 확산되었다는 매혹적인 환상을 제공했다. 레보크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것은 원생 동물의 가장 저급한 형태, 세포의 기본적 단위, 모든 생물을 진화시킨 전조, 화석 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생물 형태, 현대 해저 퇴적물의 중요한 요소(코콜리스), 또한 영양분이 빈약한 심해에서 고등 동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 등 지나칠 정도로 많은 역할을 한꺼번에 담당했다. 바티비우스가 퇴색한 후에도 그 것이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바티비우스는 허다한 과학 연구에 커다란 자극을 주어 풍부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의 윤곽을 밝혀낼 수 있도록 초점을 제공해주었다. 정통설은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매우 완강할 수 있다. 틀에 박히지 않는 연구를 할 때 영감이 떠오르듯이, 영감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잘못의 가능성을 그 자체 속에 품고 있는 왕성한 상상력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정통 학설들을 뒤흔들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밖의 다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뛰어난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자체를 교정함으로써 싹이 틀 수 있는 씨앗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결실 풍부한 잘못이라면 언제든 내게 주게. 물론 당신은 불모의 진리를 가슴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비탄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가 아니거나, 교회 비판의 현장에 있지 않을 때, "비합리적으로 신봉된 진리는 사유를 기초로 한 잘못보다 더 유해하다"라고 주장한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이름을 굳이 들먹일 필요 는 없을 것이다. 제24장 해면 세포의 안쪽 1979년 12월 31일, 나는 지난 연대의 마지막 주말을 한 무더기의 '뉴욕 선데이'지를 읽으면서 보냈다. 연말 연시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이행기의 침체 무드에는 항상 그렇듯이, 그 신문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70년대에 보물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80년대에는 배격될 것인가?' '7O년대는 무시되었던 것들이 80년대에 재발견될 것인가?' 와 같은 70년 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굽이'에 대한 잡다한 예언 목록이었다. 오늘날 이런 식의 억측이 너무나 만발해서, 나는 이전 세기에서 금세 기로 넘어가는 이행기, 그리고 이런 식의 생물학적 굽이를 회고해보고 싶다. 19세기 생물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런 주제들에 대해 강한 집착 을 가지곤 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방법이 출현해 금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몰락했던 주제들을 다시 중요한 문제로 부활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 바이다. 다윈에 의한 혁명의 결과 당시 박물학자들은 생물 계통수를 재구축하 는 것이 진화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야심에 찬 사람들은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계통 상의 작은 곁가지(예를 들어 사자와 호랑이의 유연 관계)나 그보다 더 큰 가지(예를 들어 새조개와 홍합의 관계) 등으로 초점을 좁게 맞추지 않았 다. 그들은 줄기 자체의 근원을 문제 삼아 식물과 동물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 척추 동물은 어떤 근원에서 나온 것인가 등의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중요한 큰 가지를 밝혀내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점을 토대로 이들 박물학자들 역시 결함투성이의 자 료로부터 각자가 찾고 있는 해답을 자유롭게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헤켈의 '생물 발생 원칙' -개체 발 생은 계통 발생을 동일하게 반복한다는 원칙-에 의하면, 모든 동물은 각각의 발생 과정 동안 자신의 계통수를 기어오른다고 설명되었기 때문 이다. 동물의 배를 조금만 관찰하면 선조의 성체가 일정한 순서로 잇달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물론 문제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반복론자 들은 발생의 여러 단계 중에는 선조의 흔적이 아니라 직접적인 적응을 말해주는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한 각 기관 사이의 발생 속도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의 여러 단계가 불일치하거나, 심지어는 그 전후가 역전되기조차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표면적인' 변형을 확실히 식별하고 제거해내면, 선조 형태의 행렬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동물학자 E. G. 콩크린은 훗날 '계통 발생 복원'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지만, 헤켈의 원칙이 가지는 사람을 혼란시키는 매력을 이렇게 회상 했다. (헤켈의 원칙이야말로) 땅속에 묻힌 태곳적 유물을 발굴하는 것 이상 으로 중요한 과거의 비밀-실로 그것은 지구상에 생식하는 모든 생명 형태를 포함하는 완전한 계통수임에 분명하다-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세기의 변환기는 반복설의 붕괴도 예견했다. 반복설 이론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은 주로 1900년에 멘델 유전학이 재발견됨으로써 반복설 이론을 바탕으로 세워졌던 여러 가지 전제가 성립하지 않게 되 면서부터 이다('성체의 행렬'이 계속되려면 선조 동물의 개체 발생 과정의 끝에 새로운 단계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만약 새로운 특성이 유전자에 의해 제어되고 그 유전자가 수정의 순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면, 그 새로운 특성이 배의 발생이나 그 후의 성장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발현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론은 훨씬 이전부터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선조 의 희미한 기억이 새롭게 나타난 배 단계의 적응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다는 가정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나치게 많은 단계가 누락되어 있고 그밖에도 많은 단계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다. 따라서 헤켈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생물의 계통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끝없이 계속되고 해결하기 어렵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주장을 낳을 뿐이다. 계통수를 구축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척추 동물의 유래를 극피 동물에서 찾으려 시도하고, 다른 사람들은 환형 동물에서 이끌어내려고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대형 이매패에서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사변적인 계통 발생 복원을 대체할 수 있는 '엄밀한' 실험적 방법을 주창 했던 E. B. 윌슨은 1894년에 이렇게 한탄했다. 여러 가지 이론의 상대적인 유효성을 평가할 만한 명확한 가치 기준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태학자들의 학문이 이처럼 많은 계통 발생에 관한 억측과 가설-그 대부분은 상호 배타적이다-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형태학자들에게는 근본적인 수치이다. 그 연구가 너무도 자주 과학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조잡한 억측으로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연구자들, 특히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형태학의 계통 발생론적인 측면을 모두 진지하게 주목할 가치가 없는 사변적인 현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 한다해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계통 발생론을 복원시키려는 시도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인기를 잃었지만, 여러분들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이 주제 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나는 지금 높은 수준, 즉 줄기와 큰 가지에서의 계통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좀더 많은 적절한 증거가 있는 가지와 잔가지에 대한-흥미는 그보다 덜하지만 좀더 확실한-연구는 언제나 빠르게 진전된다). 계보가 사람들 사이에 독특한 매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그 '뿌리'를 추적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먼 증조부의 흔적을 다른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발견하는 정도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조상의 발걸음을 아프리카의 유인원이나 파충류, 어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척추 동물의 선조, 단세포 생물의 조상, 그리고 생명의 기원 그 자체에까지 거슬러 올라 조사하는 일은 실로 외경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심술궂게 이야기하자면, 애석하게도 우리가 더 멀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는 더 깊이 매료되지만, 그만큼 아는 것은 적어 진다. 이 장에서 나는 계통 발생에 관한 하나의 고전적인 문제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그리고 우리에게 기쁨과 좌절을 모두 안겨주는-주제의 예로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주제란 동몰의 다세포성multicellularity의 기원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하고도 경험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해 끝 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것이다. 과연 원생 생물(단세포성 선조 생물)과 후생 동물(다세포성 자손 생물) 사이에서 모든 의문을 해소해줄 만한 중 간적인 화석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문제의 이행이 약 6억 년 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로 명료한 화석 기록이 형성되기 훨 씬 전에, 화석이 될 수 없고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물에게서 일어났으 리라는 것이다. 원생 생물과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최초의 후생 동물 화석은 현존 하는 가장 원시적인 후생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동물이 선조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현존 생물 들에게 눈을 돌려야만 한다. 계보를 재 구축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신비스러움도 없다. 이 방법은 근연 관계로 생각되는 생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해석하는 데에 그 기반 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사성'은 전혀 단순한 개념이 아니 다. 유사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원인에 의해 각기 독자적으로 발생한다. 진화적인 계통수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들 두 가지를 엄격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계통을 보여주지만, 다른 하나는 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인도하기 때문이다. 어떤 두종의 생물이 공통된 선조로부터 유래했다면 그 생물들은 동일한 특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유시성이 '상동homologous'이라 불리는 것으로, 다윈의 말을 빌리자면 '혈통의 근친성'을 암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인간, 돌고래, 박쥐, 말 등이 공통적으로 갖는 앞 다리를 상동의 고전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것들은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동일한 뼈로 구성 되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 해도 매번 원점에서 출발해서 동일한 부품으로 이처럼 전혀 닮지 않은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들은 지금 그것들로 이루어진 특정한 구조물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공통된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서로 다른 2종의 생물이 각기 독립적인 계통을 따라 매 우 흡사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켜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갖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유의 유사성을 '상사analogous'라고 부르는데, 서로 매우 비슷해 보여 유연 관계가 가까우리라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계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이 상사성은 마치 도깨비와 같은 것이다. 예를들어 새, 박쥐, 나비 등의 날개가 상사의 좋은 보기로 많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들 가운데 어느 두 종의 생물도 날개를 가진 공통된 선조를 갖지 않는다. 생물 계통수의 줄기와 큰 가지의 위치를 설정할 때 겪는 어려움은 방 법에 관한 사고 방식의 혼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헤켈 이후의(또 는 그전부터의)주요 박물학자들은 그들의 작업 절차를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절차란 모두 상동의 유사성과 상사의 유사성을 구별해서 상사를 버리고 상동만으로 계통을 재현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부정확 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재생한다는 헤켈의 법 칙도 상동성을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였다. 이처럼 그 목표는 명확 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상동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사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상사는 근연 관계가 없는 두 계통 에 외면적, 기능적으로 현저한 유사성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수천 개나 되는 복잡하고 독립적인 부분들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변형시키 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 정확성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그 유사성은 상 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요한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확신할 만큼 충분한 정보가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원시적인 후생 동물과 가까운 유연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원생 생물들을 비교할때, 어떤 대비를 하든 간에 공통된 소수의 특징들을-상동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적은-기초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작은 유전적 변화가 성체의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따라서 한 차례 이상 일어 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유사성은 실제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 그 생물들을 비교하는 것 이 아니라, 그 생물들의 희미한 그림자만을 비교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원생 생물에서 후생 동물에의 이행은 6억 년 이상 전에 일어났 다. 모든 실제 선조들도 최초의 자손들도 모두 아득한 과거에 사라져버 렸다. 우리는 그들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특징들이 일부 현생종 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특징들이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분명 변형 되었을 것이고 너무도 많은 특수화된 적응 형태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적응을 통해 발생한 나중의 변형에서 원래의 구조를 식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확실하게 우리를 안내할 지침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생 동물이 원생 생물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 나리오는 단 두 가지이다. 첫째는 '융합amalgamation' 이라 불리는 것 으로서, 일군의 원생 생물 세포들이 하나로 결합해 군체로 살아가기 시 작해서 각 세포와 각 부분 사이에서 기능 분화가 일어나고 마침내 하나 의 통합된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는 '분열 division' 시나리오로서, 하나의 원생 생물의 세포 내부에 칸막이가 형 성되었다는 생각이다(세포 분열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딸세포가 분리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제3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오늘날 이 견해를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를 하는 데 우리들이 부딪치는 것은 바로 상동의 문제이다. 다세포성 자체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다세포화는 단 한 번만 일어난 것일까? 가장 원시적인 형태에서 그것이 일어난 과정을 해명하 기만 하면 모든 동물에서 다세포화가 일어난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 차례 일어난 것일까? 바꿔 말하면 여러 동 물의 계통에서 다세포성은 상동인가 상사인가? 흔히 후생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해면 동 물은 융합이라는 첫번째 시나리오를 통해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실제 로 현생 해면류는 편모를 가진 원생 생물들이 느슨히 결합된 연합체와 흡사하다. 일부 해면류의 세포들은 섬세한 비단옷을 걸치고 스쳐 지나 듯이 결합되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세포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이동해서 더 작은 덩어리로 분화하고, 다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새로운 해면을 재생한다. 만약 모든 동물이 해면류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다세포성은 우리가 속한 전체 동물계를 통해 상동이며 융합을 통해 나타난 것이 된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해면류는 그 후에 자손의 계통을 만들지 않으며, 진화적인 막다른 골목에 해당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다세포성은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일어난 진화 현상의 가장 유력 한 제1후보인 것이다. 다세포성은 상사의 기본적인 특성 두 가지를 갖 추고 있다. 첫째, 다세포성은 비교적 용이하게 달성된다. 둘째, 다세포 성은 고도로 적응적이며, 그것이 가져다줄 이익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 한 경로이다. 타조 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동물의 단일 세포는 일 정 크기 이상으로 커질 수 없다. 다른 한편 지구상의 물리적 환경에는 단일 세포 크기의 최대 한도보다 큰 생물만이 이용할 수 있는 서식지들이 무수히 많다(개체의 표면에 작용 하는 여러 가지 힘에 비해 중력이 훨씬 크게 작용할 만큼 몸집이 거대해 져서 얻을 수 있는 안정성을 생각해보라.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은 성장과 함께 감소하기 때문에 이렇듯 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기 위해선 크기를 늘려야 한다). 다세포성은 생물의 가장 큰 세 가지 계(식물, 동물, 균류)에서 각기 따로따로 진화해오기도 했지만 필경 각각의 집단 내에서 여러 차례 일 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식물과 균류의 다세포성 은 모두 융합에 의해 발생한 것이며, 이들 생물은 원생 생물 군체의 자 손일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해면류도 융합 을 통해 나타났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세포성이-세 개의 계 사이에서, 그리고 각각의 계 내에서 모두 상사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매번 같은 방식으로 진화했다 고 결론지으면서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까? 현존하는 원생 생물 가운데는 규칙적인 세포 배열과 초기의 분화 상태를 나타내는 군체 형태도 있다. 여러분은 고등 학교 생물 교실에서 본 볼복스(Volvox, 편모가 있는 다수의 녹색 세포가 모여 군체를 이루고 있는 볼복스속 생물의 총칭. 원생 동물이나 녹조류에 포함시키기도 한다/옮긴이)의 군체를 기억할 수 있는가? (사실 나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스푸트니크 인공 위성이 쏘아 올려지기 전에 뉴욕의 공립 고등학교에 다녔던 것 이다. 그때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실험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졸업하자마자 번개처럼 생겨났다(미국은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 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갑작스레 과학 교육 을 강조했다. 저자는 그 점을 비꼬고 있다/옮긴이). 일부 볼복스는 규칙적 으로 배열된 일정 수의 세포로 이루어진 군체를 형성한다. 이 세포들은 크기가 저마다 달라서 생식 기능은 어느 한쪽 끝에 위치한 세포들에 국한돼 있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해면류까지 진화하는데 그렇게 큰 간극이 가로놓여 있단 말인가? 동물에 한해서 또 하나의 시나리오에 대한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자신을 포함한 동물 가운데는 분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있을까? 이 의문은 동물학에서 가상 오래된 다음의 수수께끼를 풀지 않 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 그 수수께끼란 자세포 동물문phylum Cnidaria (산호와 그 동류, 그리고 아름답고 투명한 빗해파리류와 유즐 동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의 지위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자세포 동물문이 융합에 의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동물들과 다른 문과의 유연 관계가 딜레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기되는 모든 설명 체계가 나름대로 근거 있는 것들이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해 자세포류를 해면 동물의 후손일 뿐 다른 무엇의 선조도 아니라고 보는 견해, 자세포류를 동물계에서 분리되어 나왔으며 후손이 없는 하나의 가지로 보는 견해, 자세포류를 모든 '더 고등한' 동물문의 선조라고 보는 견해(이것은 19세기의 고전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고등한 문에서 퇴화한 자손으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지며 분분해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견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우리의 문제, 즉 모든 동물이 융합에 의해 필경 두 차례-한 번은 해면류, 다른 한 번은 그 밖의 모든 동물들-에 걸쳐 제각기 발생했으리라는 문제는 해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더 고등한' 동물문이 자세포류와 근연 관계에 있지 않다면, 또한 만약 이들이 동물계 중에서 다세포화가 일어난 제3의 다른 진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분열이라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재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등 동물이 각기 별개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편형 동물을 선조 계통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웨슬리안 대학의 생물학 자 얼 핸슨은 고등 동물의 편형 동물 기원설과 분열의 시나리오 양쪽을 모두 주장하였다. 그의 인습 타파적인 관점이 승리를 거둔다면 인간을 포함한 고등 동물은 아마도 융합이 아니라 분열에 의해 일어난 다세포 성의 산물이 될 것이다. 핸슨은 섬모충류-우리에게 잘 알려진 짚신벌레가 여기에 속한다-라고 불리는 원생 생물의 한 집단과, 편형 동물 가운데 '가장 단순한'종류인 무장목-체강을 발달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과의 유사성을 조사한 뒤에 독자적인 관점을 제기했다. 상당수의 섬모충류는 하나밖에 없는 세포 속에 여러 개의 핵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핵과 핵 사이에 세포 내 칸막이가 나타났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생물은 상동성을 주장하는 설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무장목과 흡사할까? 핸슨은 다핵성 섬모충류와 무장목 사이의 폭넓은 유사성을 상세히 기 록했다. 무장목은 작은 해양성 편형 동물의 하나이다. 그 중 일부 종류 는 헤엄칠 수 있었고, 다른 종류는 깊이 250미터 정도의 물밑에서 생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얕은 바다의 해저를 기어다니면서 바위밑이나 모래와 진흙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크기는 다핵성 섬모충류와 비슷한 정도이다(후생 동물이 원생 생물보다도 반드시 크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섬모충류는 몸길이가 100분의 1밀리미터에서 3밀리미터 사이인 데 비해 무장목은 몸길이가 1밀리미터 이하의 것도 있다). 섬모충류와 무장목의 내부 구조가 서로 유사한 것은 주로 그들이 단순 하다는 공통된 특성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으로 후생 동물과는 달리 무장 목에는 체강이 없고 체강과 연결되는 기관도 없다. 그들은 영구적인 소화 기관이나 배출 기관, 호흡 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섬모충류와 마찬가지로 이 동물은 일시적인 식포를 형성해서 그 속에서 먹이를 소화시킨다. 섬모충류와 무장목 모두 그 신체는 크게 나누어 안층과 바깥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모충류는 외부 원형질(바깥층)과 내부 원형질(안층)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수의 핵은 내부 원형질 속에 모여 있다. 무장목의 경우 안쪽 영역은 소화와 생식 기능에 할당하고, 바깥층의 일부는 이동 과 방어, 그리고 음식물 포획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두 집단은 여러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무장목은 신경망과 생식 기관을 갖추고 있으며, 그 기관들은 꽤 복잡한 형태를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류는 페니스을 가지고 있어 그 것을 마치 피하 주사처럼 체벽을 관통시켜 다른 개체를 수정시킨다. 그 리고 수정 후에 배 발생을 일으킨다. 그에 비해 섬모충류는 조직적인 신경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분열을 통해 둘로 분리되고 접합이라 불리는 과정으로 생식 행위를 하지만, 발생 과정은 거치지 않는다(접합이 일어날 때는 두 개 체의 섬모충이 하나로 결합해서 유전 물질을 서로 교환한다. 그 후 이들은 분리되고 각기 분열해 두 개체의 자손이 된다. 거의 모든 후생 동물에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성과 생식이 섬모충류에서는 별개의 과정인 것이다). 물론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무장목이 다세포성 인데 비해 섬모충류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있다고 해서 이들 두 군의 유연 관계가 가깝다는 가 설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현생 섬 모충류와 무장목은 그들의 공통 선조라 추정되는 생물로부터 5억 년 이상 앞선 것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다세포성의 기원을 설명해줄 만한 이행기 형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대신 이 두 생물 때문에 유사성이라는 것에 대해, 즉 유사성이 상동인지 상사인지를 둘러싼 가장 오래되고 가 장 기본적인 문제에 논쟁이 집중된다. 핸슨에 따르면, 무장목의 단순성은 편형 동물 가운데 선조적인 상태 이고, 주로 이 단순성의 결과인 섬모충류와 무장목의 유사성이 서로 계 통상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유 사성은 상동인 셈이다. 이 설에 대한 반대자들은 무장목의 단순성이 그 보다 복잡한 편형 동물로부터 그들이 '퇴화적' 진화를 겪은 이차적인 결과, 즉 무장목 내에서 몸이 현저히 작아진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보다 큰 와충강(무장목를 포함하는 편형 동물의 한 군)은 장과 배설 기관을 가지고 있다. 만약 무장목의 단순성이 와충강 내에서 파생된 상태 라면, 그 단순성이 섬모충류의 줄기에서 직접 이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핸슨이 증거로 삼고 있는 유사점들은 '상동 대 상사'를 둘러싼 해결 불가능한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특성들은 상 동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을 만큼 엄밀하지도 않고 그 수도 그다지 많지 않다. 특성들 대부분은 무장목이 복잡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기반하고 있으며, 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이 쉽게 반복적으로 일어 나는 데 비해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들이 독립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장목의 단순성은 몸의 크기가 작다는 사실로부터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은 계통 발생상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몸 크기가 같은 범위 내에 이차적으로 들어온 한 군이 섬모충류의 설계로 기능적으로 수렴한 것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표면적과 부피와의 관계가 문제된다. 호흡이나 소화, 배설 등 여러 가지 생리적인 기능은 몸의 표면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몸 전체 부피에 대해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집이 큰 대형 동물에서는 몸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작기 때문에 그들은 내 부 기관을 발달시켜 내부 표면적을 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능적으 로 폐는 가스 교환에 쓰이는 표면을 갖는 자루와 같으며, 장은 소화해야 할 음식물을 통과시키기 위한 표면을 갖는 시트와도 같다). 다른 한편 소형 동물의 경우에는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크기 때문에 외부 표면만을 통해 호흡, 먹이 섭취, 배설 등을 할 수 있다. 편형 동물보다 복잡한 동물의 문 중에서 가장 작은 종류들 역시 체내 기관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달팽이 가운데 가장 작은 동류인 시컴Caecum은 체내의 호흡 기관을 전혀 갖지 않으며, 외부 표면만으로 산소를 받아들 인다. 핸슨이 제기하고 있는 그 밖의 유사점들은 상동을 뒷받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생물에서도 널리 관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유사점들은 계통 발생의 어떤 특정한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생 생물과 모든 후생 동물 사이의 유연 관계가 깊다는 것이 되고 동시 에 파생된 형질에만 국한되어야 한다(파생된 형질은 그 특성을 공유하는 두 집단의 공통 선조로부터만 고유하게 진화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계통을 구별짓는 특징이 된다. 그에 비해 공유되는 원시적 형질은 어느 한 계통만의 특징이 아니다. 섬모충류와 무장목 모두에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들 두 군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원생 생물과 후생 동물이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핸슨은 "섬모충류와 무장목에 의해 공통적으로 의미 심장하게 유지되고 있는 항구적인 형질"로서의 "완전한 섬모"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섬모는 상동이라 하더라도 다른 여럿에 공유하고 있는 원시적 형질이다. 다시 말해 자세포류를 포함한 다른 많은 군들이 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섬모의 완전함은 섬모충류와 무장목에서는 상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쉬운' 진화상의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외부 표면 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섬모의 최대수는 한정되게 마련이다.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큰 소형 동물의 경우에는 섬모를 이용해 이동할 수도 있지만, 대형 동물은 상대적으로 작은 몸 표면에 그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섬모를 발생시킬 수 없다. 무장목이 완전한 섬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몸 크기에 대한 이차적인, 적응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몸이 작은 '시컴'도 섬모 운동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이보다 몸집이 큰 근연 관계에 있는 종 들은 근육을 수축하여 이동한다. 물론 핸슨은 형태와 기능에 관한 고전적인 증거를 이용해서 그의 매 력적인 가설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편모충류와 무장목 사 이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유사성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그들 사이에 엄격하게 규정할 만한 상동 관계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리고 이 끝 모를 논쟁을 완전히 종식시킬 다른 방법은 없을까? 만약 우리가 충분히 비교 가능하고 복잡한 새로운 특성들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상동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 면 상사로써는 무수한 상호 독립적인 항목들에 대해 부분대 부분의 상 세한 설명을 줄 수 없으며, 수학적 확률의 법칙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 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사한 단백질들의 DNA 배열이다. 모든 원생 동물과 후생 동물 들은 많은 상동 단백질을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길다란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미노산은 DNA 속에 들어 있는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로 부호화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단백질 DNA 부호에는 분명한 순서를 가진 수천 개의 뉴클레오티드들이 들어 있다. 진화는 이러한 뉴클레오티드들의 배열을 바꾸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두 군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후 그들의 뉴클레오티드 배 열은 변화를 거듭한다. 대략 그 변화의 빈도수는 최소한 분기 이후 경 과된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따라서 상동 단백질의 뉴클레오티드 배열 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유사성은 계통적인 분리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클레오티드 배열은 상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꿈이 다. 왜냐하면 그 배열이 잠재적으로 수천 개가 될 수 있는 변화들을 나 타내기 때문이다. 각각의 뉴클레오티드의 위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변화의 자리site인 것이다. 오늘날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지금 문제되고 있는 모든 섬모충류와 후생 동물의 상 동 단백질을 추출해서 그 배열을 조사하고 두 생물 사이의 유사성을 측 정해서 이 해묵은 계통학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좀더 결정적인 통찰 (심지어는 그 해결책까지도)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만약 무장목이 체내에 세포막을 진화시켜서 다세포성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원생 생물의 군들과 가장 가까운 유연 관계를 맺는다면, 핸슨 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군체 속에서 통합되어 다세포성에 도달할 수 있었던 원생 생물에 가장 가깝다면, 고전 적인 견해가 승리를 거둘 것이고 모든 후생 동물은 융합의 산물로 나타 나게 되었을 것이다. 금세기 들어 계통학 연구는 적응 현상에 대한 분석 때문에 부당하게 그 빛을 잃었지만, 학자들을 매료시키는 힘은 아직까지 상실하지 않았 다. 핸슨의 시나리오가 우리와 그 밖의 다세포 생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함축하는 내용을 생각해보라. 동물학자들 가운데는 모든 고등 동 물들이 편형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다세포성을 띠게 됐다는 사실에 의 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약 무장목이 어떤 섬모충이 다세포 화되면서 진화한 형태라면, 우리들의 다세포성 신체는 원생 생물의 일 개 세포와 상동인 셈이다. 또한 만약 해면류, 자세포류, 식물, 그리고 균류가 융합으로 인해 발생 한 것이라면, 그들의 몸은 원생 생물의 군체와 상동이다. 그리고 섬모충의 세포가 원생 생물의 군체를 만든 개별 세포와 상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몸 전체가 해면이나 산호, 또는 식물 몸체 일개 세포와 상동이라 고-이것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다-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상동성의 기묘한 경로는 훨씬 더 과거까지 올라간다. 원생 생물 세포 자체는 여러 개의 더 단순한 원핵 생물(박테리아, 남조류) 세포가 서로 공생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원핵 생물의 세포 전체와 상동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원생 생물 각각 의 세포와 후생 동물 몸체 각각의 세포는 계통적으로 볼 때 원핵 생물의 통합된 군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을 박테리아의 군체 덩어리, 또는 해면이나 양파의 얇은 껍질의 일개 세포와 상동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여러분은 당근조각을 삼키거나 버섯을 얇게 자를 때 이 점을 생각해보라. 제7부 과소 평가된 동물들 제25장 과연 공룡은 우둔했을까 무하마드 알리가 미 육군의 지능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그는 다 음과 같은 재치로 궁지를 모면했다. "나는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을 뿐이지 가장 똑똑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은유와 우화 속에는 종종 몸집은 거대하고 강한 반면에 지능이 매우 낮아서 공평함을 이루고 있는 거인들이 등장한다. 재능은 몸집이 작은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 되어왔다. 토끼와 곰 이야기, 돌팔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이야기, 콩나무를 베어 거인을 물리친 잭의 이야기 등을 생각해보라. 재능없고 우둔하다는 것은 거인의 비극적 결함인 것이다. 19세기 공룡의 발견은 크기와 지능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전형적인 생 각을 증명해주었다(아니 그런 것으로 생각되었다). 공룡들은 콩만한 뇌와 거대한 몸집을 가졌기 때문에 우둔함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공룡이 멸종 했다는 사실은 그 몸의 설계에 결함이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공룡에게는 위대한 육체적 용맹함이라는, 흔히 거인에게 붙어다니는 위로조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신은 이 거대한 동물의 뇌에 관해서 주의 깊게 침묵을 지켰지만, 그 강력한 힘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탄했다. "보라, 그의 강함은 허리에 있고, 그 힘은 배의 중심에 있다. 요동치는 꼬리의 모습은 향떡갈나무와 같고 ... 그 뼈는 구리로 만든 판처럼 강하고, 그 늑골은 쇠막대와 같도다(욥기 40장 제16절-18절)." 다른 한편으로 공룡은 언제나 움직임이 느리고 신경이 무딘 동물로 그려져왔다. 일반적으로 공룡 시대를 복원해놓은 그림에서 브론토사우 루스는 소택지의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그 까닭은 땅 위에서는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사용되도록 보급된 그림들은 정통설에 입각한 묘사를 제공한다. 나는 뉴욕 시 퀸즈구립 제206 초등학교에서 도둑맞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버사 모리스 파커의 '과거의 동물들' 이라는 3학년용 책(1948년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매키너니 선생님, 미안합니다). 그 책 속에서 소년은 쥐라기 세계로 염력 이동되어 브론토 사우루스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동물은 엄청나게 크다. 당신은 그 작은 머리를 보면 그 동물이 무척 우둔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거대한 동물은 먹이를 먹으면서 아주 느리게 어슬렁거린다. 움직임이 그처럼 느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커다란 발은 굉장히 무겁고, 굵은 꼬리는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여러분은 이 브론토사우루스가 물의 부력 으로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물 속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거대한 공룡들은 한때 지구를 지배한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종적 을 감춰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그 대답 중 일부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몸이 뇌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했다는 것이다. 만약 몸이 더 작고 뇌가 더 컸더라면, 그들은 더 오랫동안 살아 남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모두가 공룡을 좋아하는 시대가 되자 공룡들은 힘차게 되살아 났다. 최근 들어 고생물학자들 사이에는 공룡을 정력적이고 활동적이고 유능한 동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브론토사우루스는 한 세대 전만 해도 늪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땅 위를 뛰어다니고 있 다. 때로는 두 마리의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한 정교한 성적 투 쟁으로서 긴 목을 서로 상대의 목에 꼬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마치 기린들이 목으로 씨름을 하듯이). 최근 시도되는 해부학적인 복원은 공룡의 강력함과 민첩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 많은 고생물학 자들은 공룡이 온혈 동물이었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26장 참조). 공룡이 온혈 동물이었다는 생각은 일반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신 문과 잡지에 빈번하게 보도되었다. 그에 비해 공룡의 능력에 대한 또 하나의 옹호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그 주장이 온혈설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둔함과 몸 크기의 거대함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수정주의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것은 공룡을 '지성의 전당'에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공룡들이 특별히 작은 뇌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크기의 몸을 가진 파충류로서 저마다 '적정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주관적이고 불균형적인 관점을 적용해 거대한 몸집의 스테고사 우루스가 편평하고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 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공룡에게 다른 동물들 이상의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몸집이 큰 동물은 유연 관 계가 가까운 소형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뇌를 가지고 있다. 동족의 동물들(예를 들어 파충류 전체나 포유류 전체)에서 뇌 크기와 몸 크기와의 상관 관계는 매우 규칙적이다. 소형 동물에서 대형 동물로, 예를 들어 생쥐에서 코끼리로, 또는 작은 도마뱀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인 도네시아 코모도 섬에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도마뱀/옮긴이)로 옮아가면 서 뇌 크기는 차츰 늘어나지만 몸 크기만큼 급격하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몸은 뇌보다 큰 비율로 증대해서 대형 동물의 체중에 대한 뇌 무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사실 뇌는 몸의 2/3 비율로 증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대형 동물이 소형의 근연 동물보다 반드시 우둔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따라서 우리는 대형 동물이 그보다 작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작은 뇌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다. 이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면 아주 큰 동물, 특히 공룡의 지능을 과소 평가하기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뇌와 몸 크기의 관계가 모든 척추동물 집단에서 같게 나타 나는 것은 아니다, 뇌 크기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비율은 모든 동물에 게 마찬가지지만, 소형 포유류는 체중이 같은 소형 파충류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이 불일치는 체중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대로 이어진 다. 왜냐하면 뇌 크기는 어느 쪽 집단에서도 같은 비율(몸 크기의 2/3비 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정리하면, 대형 동물은 모두 상대적으로 작은 뇌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같은 체중이라도 파충류는 포유류보다 훨씬 뇌가 작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보통의 대형 파충류에게는 어떤 현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가장 적절한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생 파충류 가운데는 몸의 부피가 중간 크기의 공룡에 가까운 것도 없으니 공룡의 모형으로 사용할 만한 현존 하는 기준은 없는 셈이다. 다행히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화석 기록이 비록 불완전하다 하더라 도, 그것은 공룡의 뇌에 관한 데이터 공급원으로서는 그렇게 불만족스럽 지 않다. 수많은 공룡 종에서 대단히 보존 상태가 양호한 머리뼈가 발견 되었고, 그 머리뼈를 통해 그 뇌 용적을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충 류의 뇌는 두개골을 완전히 채우지 않기 때문에, 머리뼈 속의 빈 공간을 기준으로 뇌 크기를 추정하려면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처리 방법을 사용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공룡이 우둔했다고 하는 평범한 가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명쾌하게 검증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파충류 일반의 기준이 유일하고 적절한 기준인지 여부를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 다. 우리는 현생 파충류의 뇌와 몸 크기의 관계에 관한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생 종에서는 소형에서 대형으로 옮겨 갈수록 뇌가 몸 크기의 2/3비율로 증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따라서 공룡들도 이 비율을 따라 커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으며, 가령 현생 파충류가 공룡만큼 커진다면 그것의 뇌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예상하여 공룡의 실제 뇌 크기가 이것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었다. 결국 공룡이 인간이나 고래보다 작은 뇌를 가졌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 으로 드러났다. 해리 제리슨은 10종의 공룡의 뇌 크기를 조사한 결과, 그것들이 파충 류의 외삽 곡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공룡이 유별나 게 작은 뇌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고유의 크기를 갖는 파 충류로서 적정 크기의 뇌를 가진 셈이다. 더욱이 공룡의 멸종에 대한 파커 부인의 설명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그러나 제리슨은 여러 종류의 공룡들을 따로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았 다. 여섯 가지 주요 집단에 걸쳐 10종만을 조사한 것으로는 비교를 위 한 적절한 기반을 제공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시카 고 대학의 제임스·A ·홉슨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괄목할 만한 발견을 했다. 우선 홉슨은 모든 공룡에 대한 공통의 척도를 얻으려 했다. 따라서 그는 각 종의 공룡 뇌와, 체중에 따른 파충류의 뇌 크기 평균치를 비교 했다. 만약 어떤 공룡의 수치가 표준 파충류의 외삽 곡선상에 놓인다면 그 공룡의 뇌는 1.0이라는 값 (같은 체중의 표준 파충류에게 예상되는 뇌와 실제 공룡의 뇌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흔히 대뇌화지수 encephalization quotient[EQ]라고 불림)을 갖게 된다. 이 곡선보다 위에 있는 공룡(같은 체중의 표준 파충류에게 예상되는 것보다 큰 뇌를 가진 공룡)은 1.0이상의 값을 가지며, 이 곡선보다 밑에 있는 공룡은 1.0이하가 된다. 홉슨은 EQ 평균치의 증대에 따라 대표적인 공룡 집단들을 서열 순서 대로 배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등급은 운동 속도, 민첩함, 섭식 행동(또는 먹이가 될 가능성을 피해 다니는 행동)에 대한 행동상의 복잡성 등과 완전히 일치한다. 거대한 용각아목의 하나였던 브론토사우루스와 그 동류의 EQ는 0.20내지 0.35라는 가장 작은 값을 갖는다. 그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이동했고, 기동성도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그들은 오늘날의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큰 덩치 덕분에 먹이가 되는 것을 모면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EQ 0.52에서 0.56의 집단으로는 갑옷을 두른 안킬로사우루스 와 스테고사우루스가 있다. 튼튼한 갑옷을 갖추고 있었던 이들 동물들은 주로 수동적인 방어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안킬로사우루스의 곤봉 모양의 꼬리와 스테고사우루스의 스파이크가 돋은 꼬리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투쟁성과 행동상의 복잡성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으로 약 0.7에서 0.9사이에 각룡아목이 있다. 홉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거대한 머리에 뿔이 돋은 대형 각룡아목은 적극적인 방위 전략에 의존했고, 포식 동물의 공격을 막거나 같은 종 끼리 싸움을 벌일 때에 꼬리를 무기로 사용하는 어떤 종류보다도 민첩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뿔이 없는 소형의 각룡아목은 예민한 감각과 빠른 속도에 의존해서 포식 자의 공격을 피했을 것이다." 조각아목의 EQ는 0.85에서 1.5여서 초식성으로는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군이었다. 그들은 육식 동물을 피하는 데 "예민한 감각과 비교적 빠른 속도"에 의존했다. 그러나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땅 위에서 방어할 때보다 한층 더 예민하고 민첩해야 했을 것이다. 각룡아목 가운데 대체로 소형에 속했고, 뿔이 없었으며, 빠른 속도로 달렸으리라고 짐작되는 프로토케라톱스는 세 개의 뿔이 돋아난 대형 트리케라톱스보다 EQ가 높았다. 오늘날의 척추 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육식 공룡은 초식 공룡보다 EQ가 높다. 재빠르게 도망치거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먹이를 사냥하려 면 안성맞춤인 식물을 뜯어먹는 데 비해 훨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한 다. 거대한 수각룡(뒷다리로 걸어다니는 육식성 공룡. 티라노사우루 스와 그 동류들)의 EQ는 1.0에서 2.0에 가까운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높은 정상에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게 EQ가 5.0을 넘는 소형 코엘루로사우루스인 스테노니코사우루스가 위치해 있다. 아마 소형 포유류이거나 조류였을 것으로 보이는 민첩하게 돌아다니는 먹이감을 찾아내 사냥하는 데에는 티라노사우르스가 트리케라톱스를 사냥하는 데 부딪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뇌의 크기가 지능과 일치한다는, 또는 이 경우에는 행 동 범위와 민첩함과 일치한다는 천진 난만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 다(인간에게 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미 멸종한 파충류의 한 집단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한 종 내에서 뇌 크기의 편차와 지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사람은 뇌 크기가 900세제곱센티 미터에서 2,500세제곱센티미터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모두 잘 살 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클 경우에 다른 종과의 비교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이 EQ 수치에서 코알라를-나는 이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이 그 동안 인류가 이룩해온 번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 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룡들 에 대한 합당한 서열 매김 은 뇌의 크기라는 거친 척도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행동의 복잡성이 지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우리는 협동, 단결, 상호 인지 등이 요구되는 사회적 행동의 일부 징후들이 공룡 화석에서 발견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재로 그러한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공룡을 우둔하다고 잘못 평가하던 시대에 그와 같은 징후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0마리가 넘는 공룡들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이동했음을 말해주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종류의 공룡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 던 것일까? 데이븐포트 랜치Davenport Ranch에서 발견된, 용각아목들이 자주 지나 다져진 길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중앙에 나 있고 그 양 옆으로 큰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공룡은 오늘날 일부 고등한 초식 성 포유류 무리처럼 몸집이 큰 공룡이 주변부에 위치해 어린 동물들을 가운데 놓고 보호하면서 이동했던 것일까?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과거의 고생물학자들에게는 가장 기괴하고 아 무런 소용이 없어 보이던 구조물-하드로사우루스의 정교한 볏, 각룡아목의 뿔과 목 주름,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뇌를 둘러싸고 발달한 두께 9인치 가량 되는 단단한 뼈 등-이 오늘날에는 성적인 과시와 투쟁에 사용된 장치로서 다시금 설명되고 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는 그 튼튼한 이마를 가지고 오늘날의 산양처럼 박치기를 하면서 암컷을 둘러싼 경쟁을 벌였 을지도 모른다. 일부 하드로사우루스의 볏은 공명실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 면 그들은 누가 더 큰 소리로 울 수 있는지 경쟁을 벌였던 것일까? 또한 각룡아목의 뿔과 주름은 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서 칼이나 방패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동은 그 자체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사회 체계가 존재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에, 낮은 지능 수준을 간신히 벗어난 동물 집단이라면 발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룡의 능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흔히 공룡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들먹여지는 사실, 즉 그들의 멸종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멸종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최근까지도 '섹스'에 수반되는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빈번하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토론하지도 않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멸종은 섹스와 마찬가지로 생명계가 피해 갈 수 없는 일부인 것이다. 멸종은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숙명이지, 운이 나쁘거나 잘못 설계된 생물만의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결함의 징후가 아닌 것 이다. 공룡에 관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이 아니 라, 오히려 그들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지구상을 제패했다는 사실이 다. 그들은 약 1억 년 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포유류 는 소형 동물로서, 공룡들의 세계에 나 있는 작은 틈새에서 생활했다.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지 7천만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포유류는 뛰어 난 업적을 이루었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공룡과 같 은 지구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사람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다. 오스트랄 로피테쿠스 이래 약 500만 년 동안 우리 자신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온 기간은 고작5만 년에 불과하다. 그러면 우리들의 가치 체계 내 에서 최후의 검증을 해보기로 하자. 호모 사피엔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 다 오랫동안 살아 남을 것이라는 명제에 대해 아주 유리한 조건이라도 상당한 금액을 내기에 걸 사람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