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다시 등장한 '희망적인 괴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압제자 위대한 형제(빅브라더)는 '인민의 적' 에마뉴엘 골드슈타인에 대해 매일 2분간 증오의 시간을 갖 는다. 1960년대 중엽 내가 대학원에서 진화생물학을 배우던 시절에 사 람들은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는 이야기가 나돌던 유명한 유전학자 리 처드 골드슈미트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조소하곤 했었다. 어느새 문제의 1984년이 되었건만 나는 이 세계가 빅브라더의 지배 하에 놓이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10년 안에 골드슈미트가 진화생물학계에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으리라고 생각한다.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골드슈미트는 나머지 생애를 버클리에서 보내다가 1958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진화에 관한 그의 견해는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그 윤곽이 헝성되었 다. 그것은 오늘날 지배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저 위대한 신다 윈주의 종합설neo-Darwinian synthesis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신다윈주의는 흔히 '진화의 종합설'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신다윈주의 이론이 집단 유전학 이론, 고전적 형태학, 계통 분류학, 발생학, 생물지리학, 그리고 고등생물학의 고전적 연구 등을 하나로 종합했기 때 문이었다. 이 종합설의 핵심 내용은 다윈 자신의 이론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두 가지 요소를 달리 말한 것뿐이다. 첫째, 진화란 2단계(원재료로서의 임 의적 변이와 방향을 지시하는 힘으로서의 자연 선택)로 이루어지는 과정 이며, 둘째, 진화적 변화는 일반적으로 완만하고 착실하고 점진적이며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실험실 속에서 초파리의 개체군을 병 속에 넣어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에 비해 박물학 자들은 영국 공업 지대의 매연이 수목을 검게 만드는 과정에서 점진적 으로 흰 나방이 검은 나방으로 교체되어가는 상태를 기록한다. 그리고 정통 신다윈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완만하고 연속적인 변화 가 생명의 역사에서 진행되는 가장 깊은 구조적 변화와 본질적으로 동 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조류는 감지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밖에 없는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 파충류와 연결되고, 똑같은 과정을 통해 턱을 갖는 어류는 턱이 없는 원시 어류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대진화(몸의 구조에서 나타 나는 큰 변화)는 소진화(병 속의 초파리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연장에 불과하다. 100년 정도가 걸려 흰 나방이 검은 나방으로 변할 수 있다면, 파충류는 수많은 변화를 연속적, 순차적으로 거쳐 2-300만년 만에 조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지 개체군local population에 자주 일어나는 유전자 변화는 모든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모형이 된다. 현대의 정통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생물학개론 교과서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어떤 책은 전통적인 견해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규모가 큰 진화적 변화, 즉 대진화를 이러한 소진화적 변화의 결과 라 설명할 수 있을까? 조류는 정말 초파리의 딸기색 눈색깔 유전자 로 설명되는 유전자 교환이 거듭되어서 파충류로부터 파생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훌륭하게 설명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화석 기록을 보면 대진 화가 실제로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들 개 인 병력의 내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수백 수천 가지 유전자 교환이 누적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은 수 없을 성도로 완만하게 진 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많은 진화학자들은 소진화와 대진화의 완벽한 연결이 다윈주의를 구 성하는 본질적 요소의 하나이며 자연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 다. 그렇지만 이미 17장에서 설명했듯이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자연 선 택과 점진론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서로 분리시켜 생각했고, 다윈에게 점진론에 지나치게 고리고 부당하게 구애된다면 자신의 전 체계를 스스 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갑작스런 이행을 보여주는 화석 기록은 점진적인 변화를 뒷받침하지 않으며, 자연 선택의 원리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택은 빠른 속도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억지로 만들어낸 불필요한 요소가 종합설의 중심적 교의 가운데 하나로 굳어 버렸다. 골드슈미트가 소진화에 관한 모범적인 설명에 반기를 든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된 저서인 '진화의 물질적 기초'(1940년)의 전반부를 종 의 점진적, 연속적인 변화를 논의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종이 불연속적인 변이, 즉 대돌연변이(Macromulation, 구조 유 전자의 현현에 변화를 일으켜 유기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 돌연 변이/옮긴이)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나타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종합 설과 그 견해를 달리했다. 그는 대부분의 대돌연 변이는 비참한 재앙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을 인정했고, 따라서 그것들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울러 골드 슈미트는 아주 드물게, 순전히 행운에 의해 어떤 대돌연 변이가 특정 생물을 새로운 생활 양식에 적응하도록 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그런 운좋은 돌연 변이가 발생한 생물을 '희망적인 괴물'이라고 불렀다. 대진화는 이러한 희망적인 괴물들이 드물게 성공함으로써 진행 하는 것이고, 특정 개체군 속에서 작은 변화가 누적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종합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자신들 대신에 매맞을 희생양을 만 드는 과정에서 골드슈미트의 사상을 희화화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 다고 내가 골드슈미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 진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다윈주의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그의 주장에는 결코 찬동할 수 없다. 골드슈미트 역시 다윈주의의 본질-자연 선택이 진화를 좌우한다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굳이 점진적인 변화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헉슬리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주의자로서 나는 대진화가 단지 소진화의 연장이 아니며, 주요한 구조적 변화는 일련의 연속적인 중간 단계를 무수히 거치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격히 발생한다는 골드슈미트의 가정을 지지하고 싶다. 나는 지금부터 세 가지 의문을 중심으로 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모든 대진화적인 사건에 대해 연속적 변화를 입증하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는가?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2. 돌발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이론은 본질적으로 반다윈적인가? (나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3. 골드슈미트가 이야기하는 희망적인 괴물들은,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 이전부터 주장했듯이 반드시 다윈주의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다'이다) 화석 기록에 중간적 단계를 보여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은 고생 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요한 군(동식물 분류상의 단위.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옮긴이)이 다른 군으로 이행하는 경우 는 모두 갑작스럽게 이행한다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대개 점진론자들은 화석 기록이 지극히 불완전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 한다. 즉 무수히 작은 단계들 가운데 오직 한 단계 만이 화석으로 남는 데 성공했다면 지질학이 연속적인 변화를 기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반대하지만(그 이유에 대해서는 17장에서 설명했다). 이런 식의 전형적인 발뺌을 너그러이 허용 하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완만하고 연속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하더라도, 구조의 이행 과정에서 선조와 자손 사이의 매개 역할을 하는 일련의 설득력 있는 형태, 즉 실제로 기능할 수 있고 생존 가능한 생물을 상정할 수 있는가? 생존에 유리한 구조들이 아직 완전히 발전하지 않은 초기 상태에 그것은 과연 어떤 용도가 있을까? 가령, 절반만 생긴 턱이나 반쪽짜리 날개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전 적응(preadaptation, 어떤 형질이 장래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계 통적 변화를 미리 나타내는 것/옮긴이)'이라 불리는 개념에 따르면 초기 상태에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관점이 허용되기 때문에, 우리 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절반만 발생한 턱뼈는 턱살을 떠받치는 골격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며, 절반만 발생한 새의 날개는 먹이를 붙잡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전적응'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반드시 진실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전적응으로 점진론을 변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개념을 이용해 거의 혹은 모든 경우에 연속성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나의 상상력 부족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그러면 내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최근 화제가 된 불연속적 변화의 두 가지 예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일찍이 도도(dodo,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하는 오리만한 새/옮긴이) 의 서식지로 알려진 외딴 섬 모리셔스Mauritius섬에 살고 있는 보아과 (비단뱀과 보아구렁이를 포함한다) 두 속의 보아뱀에게는 그 밖의 육생 척추 동물에게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턱에 있는 위턱뼈가 움직일 수 있는 관절로 이어진 앞부분과 뒷부분 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1970년에 내 친구 톰 프라제타가 '희망적인 괴물로부터 볼리에리아아과Bolyerine의 뱀으로'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적응의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불연 속적 이행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였던 위턱뼈가 어떤 과정을 거쳐 둘로 분리된 것일까? 설치류 가운데는 먹이를 저장하는 볼주머니cheek pouch를 가지고 있는 종류가 많다. 좀더 많은 먹이를 입 속에 저장할 수 있도록 선택적인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에 입안쪽에 있던 볼주머니는 점차 인후에 직접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더쥐붙이쥐과(땅다람쥐가 여기에 속한다)와 주머니쥐과(캥거루 쥐와 주머니쥐가 여기에 속한다)의 동물들은 볼의 바깥쪽 표면이 깊게 팬 결과, 볼주머니가 구강이나 인두로 이어지지 못하고 안쪽이 모피로 이루 어진 주머니가 얼굴 양쪽에 달리게 된다. 얼굴 바깥쪽에 움푹 들어간 구멍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완전하지 못한 구멍은 그 생물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었을까? 이 동물은 약간의 먹이를 불완전한 구멍 속에 넣고 그것을 한쪽 앞발로 누르면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세발로 달려갔을까? 찰스 A. 롱은 최근 전적응의 가능성(예를 들어 굴 파는 동물들 얼굴 양쪽에 흙을 나르는 데 쓰는 구멍이 있었을 수 있다는 식의)을 몇 가지 생각한 끝에, 그러한 가정 은 불연속적 이행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했다. 진화적 박물학이 들려주는 '진짜이야기(just-so story, 어떤 사물의 유래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어낸 이야기/옮긴이)'의 전통에 속하는 이러한 사례들은 아무것도 입증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유사한 사례들의 무게 때문에 점진론에 대한 내 믿음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다. 이보다 훨씬 더 창의력 있는 의견이라면 점진론을 구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듯 판에 박힌 억측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는 내게 아무런 설득력도 주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대진화에서 보이는 불연속적 이행 사례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면, 다윈주의는 단지 종 내에서의 작은 적응적 변화를 설명하는 이 론으로 축소되지 않을까?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진화적 변화 의 주된 창조력이라는 한마디 속에 들어 있다. 자연 선택이 부적자 를 제거하는 소극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생물체는 선택이라는 방법을 통해 유전적 변이의 스펙트럼 속에서 매 단계마다 생존에 유리한 부분을 보존해간다. 그리고 자연 선택은 무수한 단계를 밟아나가는 동안 여러 가지 적응구조를 형성 하면서 적자를 만들어낸다. 선택은 무언가 다른 힘이 완성된 새로운 종을 갑작스럽게 만들어낸 후에 부적자를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창 조의 과정 그 자체를 지배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불연속적 변화를 주장하는 비다윈적 이론을-(가끔씩)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곤 하는 깊고 갑작스런 유전적 변화를 중시하는-마음속 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식물학자 드 브리스는 금세기 초에 이러한 학설을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수반된다고 생각된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네는 도대체 누구와 맺어지는 것일까. 그녀의 친척은 모두 다른 종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에 추한 괴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아테나가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 일까? 전 유전 체계가 거의 다 붕괴한 결과 생존에 유리한 생물이 -아니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생물조차도-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약 120년 전에 헉슬리가 지적했듯이, 불연속적 변화를 설명하 는 모든 이론이 반드시 반다윈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성체의 형태에 서 나타나는 불연속적 변화가 작은 유전적 변화를 통해 발생한다고 가 정하자. 이 경우에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과의 부조화라는 문제는 생기 지 않는다. 또한 생존에 유리한 큰 변이는 다윈적인 방식에 따라 한 개 체군 속에서 확산될 수 있다. 이 큰 불연속적 변화가 갑자기 완성된 형태를 생성하지 않고, 그 변화를 일으킨 개체를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이행시키는 '핵심 적 key adaptation'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그 생물이 새로운 방식으로 번성하기 위해서는 형태와 행동 양면에 걸쳐 광범위하게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 적응이 선택적인 압력을 크게 바꾸면 그 밖의 부차적 변화들은 좀 더 일반적인 점진적인 경로를 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의 종합설 신봉자들은 '희망적인 괴물'이라는 골드슈미트의 캐치 프레이즈를 깊은 유전적 변형으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비다윈적인 관점과 결부시킴으로써 골드슈미트를 골드슈타인으로 바 꿔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골드슈미트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성체 형태의 불연속성에 대해 설명하는 골드슈미트의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는 작은 유전적 잠재 변화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골드슈미트는 원래 배 발생을 연구한 학자였다. 그는 초기의 연구 경력 대부분을 매미나방의 지리적 변이를 연구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매미나방 유충의 색채 패턴상의 커다란 차이가 발생 시기의 작은 변화로 인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성장 과정 초기에 색소 형성이 약간 지연되거나 너무 빨리 일어나면 그 영향이 개체 발생의 진행 과정에서 증폭되고 다 자란 뒤에는 심각한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골드슈미트는 이러한 타이밍에서의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규명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큰 차이가 성장 초기에 작동하 는 하나 또는 소수의 '속도 유전자rate gene'의 작용을 반영한다는 사 실을 증명했다. 그는 1918에 속도 유전자라는 개념을 정리한 후, 20 년이 지나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돌연 변이 유전자는 발생을 구성하는 여러 과정의 속도를 변화시킴 으로써 ... 그 효과를 일으킨다. 그 속도란 성장이나 분화 속도, 분 화에 필요한 재료를 생산하는 속도, 일정한 발생 시기에 일정한 물 리적 또는 화학적 상태를 가져오는 반응 속도, 일정 시기마다 배 가 갖는 발생 능력 차이를 일으키는 여러 가지 과정의 속도 등이다. 골드슈미트는 1940년에 발간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저서에서, 속도 유전자를 '희망적인 괴물'의 잠재적인 제조자로서 각별히 중요시했다. "이 원칙은 요구되는 형태로 괴물성을 만들어내는 돌연 변이체의 존재, 그리고 배 상태와 결정에 관한 지식에 의해 주어진다. 그것은 발생 과 정 초기에 속도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그 생물체의 상당 부분을 구체 화시킬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편견이 심한 내 개인적 견해에 따르면, 대진화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불연속성과 다윈주의를 조화시키는 문제는 발생 초기에 일어난 작은 변 화가 성장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성체가 되면 커다란 차이를 야기한다 는 관점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가령 영장류의 뇌는 태어나기 전 에 급속히 성장한다. 만약 이런 원숭이 뇌의 성장 속도가 새끼 시절부터 계속된다면, 원숭 이의 뇌 크기는 인간의 뇌에 가까울 것이다. 멕시코 소치밀코 호수에 있는 양서류인 아홀로틀(axolotl, 멕시코에 서식하는 도룡뇽의 유생/ 옮긴이)은 변태의 시작이 늦으면 아가미를 가진 올챙이 형태로 번식 하기 시작하고 절대 도룡뇽으로 바뀌지 않는다(이 문제의 구체적인 예는 졸저 '개체 발생과 계통 발생'(1977년, 하버드 대학 출판)을 참조 하기 바란다. 물론 독자들이 이런 뻔뻔스런 요구를 허용한다면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롱Long은 들쥐의 볼주머니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유전적으로 제어된 볼주머니의 역전은 발생 과정에서 일어나고, 여러 차례 반복되다가 몇 개의 개체군에서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형태상의 변화는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을(즉 모피가 안쪽으로 들어 오게)'정도로 효과가 강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것은 비교적 단순한 발생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불연속적 이행이 발생 속도가 약간 변화해 일어난 것이 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진화적 변화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고도로 분화되고 명백한 특성을 갖는 '고등' 동물의 복잡한 성체만큼 저항성 강한 계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어떻 게 다 자란 코뿔소나 모기가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로 바뀔 수 있단 말 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인 군(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이 다 른 군으로 이행하는 사례는 생명 역사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다. 고전학자이며 빅토리아조의 산문 문장가이자 20세기 생물학의 입장에 서 보면 영광스러운 시대 착오자였던 다시 웬트워스 톰프슨은 '성장과 형태에 관하여'라는 고전적인 논문에서 이러한 괴로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하나의 기하학 곡선은, 그것이 속하는 군을 규정하는 기본 공식을 가지고 있다. ... 우리는 나선체를 타원체로, 또는 원을 빈도 곡선으 로 '변형'시키는 따위의 일은 절대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의 형 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단순하고 적절한 왜곡을 통해 특정한 무척추 동물을 특정한 척추 동물로 변형시키는 일을 절대 할 수 없고, 강장 동물을 환형 동물로 바꿀 수 없다. ... 자연물은 하나의 유형에서 다른 유형 으로 진행한다. ... 양자 간의 간격을 메우는 징검다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영원히 그리고 헛되이 계속된다. 톰프슨의 해결 방법은 골드슈미트와 같았다. 다시 말해 이행은 멀리 분화된 성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단순하고 유사한 유 생들 사이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가사리를 생쥐로 변형시킬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극피 동 물과 원시 척추동물의 유생은 거의 흡사하다. 1984년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지 125주년이 되는 해여서 1959년의 100주년 이래 처음으로 축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제부터 얼마 동안 우리들의 '새로운 주장'이 독단론이 되지 않고 터무 없는 주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견고히 지켜져온 점진론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입장이 인기를 잃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연계에나 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의 다원성을 받아들이게 될지 모르겠다. 제19장 대용암 지대 논쟁 일반인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의 첫 문장은 대개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 아들여지는 정설을 가장 순순한 형태, '그러나'로 시작되는 전문적인 서술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독단론으로 제시해서 사람들의 구 미를 돋우게 마련이다. 가령 미국국립공원이 작성한 치즈국립공원 자동 차 여행 안내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세계와 그 속에 포함된 삼라만상은 여러 가지 변화가 이어지는 연속적인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 는 변화들은 대부분 극히 미세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 한 채 끊임없이 지나쳐가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하 는 것들이며, 장기간에 걸쳐 그 영향력들이 누적되어 큰 변화를 일 으키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협곡의 절벽 밑에 서서 사암 표면을 손으로 문질렀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수백 개나 되는 모래알이 떨어져 나올 겁니다. 그것은 하찮은 변화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런 과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 협곡이 형성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힘이 모래알을 떨구고 운반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과정이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당신이 사암을 문지른 때 처럼), 보통은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이루어집니다. 충분히 긴 시 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모래알을 한 번에 수십 개씩 문질러 떨어뜨 리는 동작을 되풀이해서 산 하나를 무너뜨리거나 협곡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지질학 초급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팜플렛은 미세 한 변화가 축적된 결과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으로 협곡 바위벽을 문지르는 것은 협곡 자체가 생기는 속도를 보여주는 적 절한(아니 어쩌면 효과가 지나치게 큰) 예증인 셈이다. 지질학적 현상의 무진장한 원천, 즉 시간이 모든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 팜플렛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아치들 의 침식이 이루어진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다. 우리는 '칩 오 프 더 올드 블록Chip Off the Old Block'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암반 위에 균형을 잡고 있던 커다란 바위가 1975년과 1976년 사이의 겨울에 마침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또한 장대한 스카이라인 아치Skyline Arch의 옛날과 오늘을 보여주는 사진에는 다 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아치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0년 말엽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무너져 떨어지면서 스카이 라인은 갑자기 그전의 두 배 크기가 된 것이다" 이 아치는 모래알들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 라, 이따금 돌연히 일어난 사태나 붕괴 등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팜플렛을 작성한 필자들은 점진론적인 정설에 너무나 충실하려던 나머지 서문에 소개한 이론과 그들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구체적 사실 사이에 모순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3부에 나는 점진론이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형성된 편견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 속도 개념 역시 하나가 아닌 복수적 인 것임을 이야기했다. 단속적 변화는 적어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이루어지는 축적만큼은 중요하다. 이 장에서는 한 지방에 대한 지질학적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주된 내용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독단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학자들이 자연계에서 검증할 수 있는 반론을 미리 배제 시킨다는 사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워싱턴 주 동부에는 화산으로 형성된 현무암이 광대한 지역에 걸쳐 퍼져 있다. 이 현무암 지대에는 빙하 시대 바람에 날려온 입자가 느슨 하게 쌓여 형성된 두꺼운 황토 퇴적층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다. 스포 캔 시와 남쪽의 스네이크 강, 그리고 서쪽의 컬럼비아 강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에는 장대하고 길다란 수로들이 뻗쳐 있어 황토와 그 밑의 딱딱 한 현무암을 깍아내고 있다. 이 지방에서 '쿨리coulee'라 불리는 이 수 로들은 빙하가 녹은 물이 흘렀던 통로였던 것 같다. 이 쿨리들은 최후까지 남아 있던 빙하의 남단 부근에서 워싱턴 주 동부에 있는 두 개의 큰 강으로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수로 대용암 지대'는-지질학자들은 이 지방 전체를 이렇게 부르고 있다-다음 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한편으로는 경외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 스러운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 이들 수로는 일찍이 그것들을 분리시켰던 높은 분수령을 가로질러 연결돼 있다. 수로의 깊이가 수백 피트에 달하니 이 정도 규모로 수로가 서로 합쳐진다는 것은 막대한 양의 물이 분수령을 넘어 흘 렀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2. 과거 이 수로에 물이 가득 차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쿨리 양편 여러 지류들이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 다수의 현곡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현곡이란 현재의 본류 강바닥보다 높은 곳에서 본류에 합쳐지는 지류 수로를 말한다). 3. 쿨리를 형성하는 단단한 현무암이 깊게 패고 표면이 갈라져 있다. 이러한 침식은 온화하게 흐르는 하천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4. 대개 쿨리 가까운 곳에는 씻겨내리지 않은 황토가 여러 개의 언덕 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그물코 모양으로 교차하는 거대한 물결 가운데 솟아 있는 섬들과 흡사하게 배열돼 있다. 5. 쿨리에는 하천성 현무암 자갈로 된 불연속적인 퇴적물이 있는데, 이것은 그 지방 것이 아닌 암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직후, 시카고의 지질학자인 J 할렌 브레츠는 당 시로서는 이단적인 내용으로 이 이상한 지형을 설명했다(여기서 조심해 야 할 것은 J 다음에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그가 불처럼 화낼지도 모르니까). 그는 이 유수로 용암 지대가 형성된 것은 빙하가 녹은 물로 일어난 거대한 홍수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국지적인 격변이 쿨리를 가득 채워 수백 피트 두께에 이르는 황토와 현무암을 깍아내고 불과 며칠 후에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1923년에 발간한 주요 논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빙하의 해빙수는 컬럼비아 고원의 3천 평방마일 이상에 걸쳐 범람해 황토와 침니의 피복을 벗겨냈다. 이 지역 중 2천 평방마일 이상의 면적 이 노출되었고, 침식된 암반 위로 새겨지듯이 수로가 형성되어 오늘날의 대용암 지대가 형성된 것이다. 또한 거의 1천 평방마일에 걸쳐 침식된 현무암에서 나온 사력층 퇴적물이 남아 있다. 그것은 컬림비아 고원을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였다. 브레츠의 가설은 지질학계에 커다란 소동까지는 아니지만 한 차례 파 문을 일으켰다. 브레츠가 고립되면서도 자신의 대격변 가설을 완강하게 변호한 데 대해 마지못해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에는 대부분 아무런 지지도 보내지 않았다. 미국지질탐사국으로 대표되는 기구들은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더 나은 제안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이 용암 지대 지형이 갖는 특이한 성격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점진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 대격변적인 원인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도그마를 고수했다. 브레츠의 홍수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일반론에 비추어 그의 이론을 단순히 배격한 것이다. 1927년 1월 12일, 브레츠는 용감하게도 호랑이 굴에 뛰어들었다. 워 싱턴의 코스모스 클럽에서 열린 연구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과 감하게 피력했던 것이다. 회의에는 지질탐사국 사람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었다. 그 후 발간된 토론 결과를 조사해보면, 선험적인 점진론이 브 레츠가 냉담한 반응을 받도록 한 주된 원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러면 많은 반대자들의 논평 가운데 전형적인 몇 가지를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W. C. 올든은 이렇게 인정했다. "나처럼 이 고원을 실제로 조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그 현상에 대해 갑작스럽게 다른 설명을 가 하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계속했다. "두 가지 큰 난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수로가 단기간에 걸쳐 동시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이고, 둘째는 엄청난 양의 물이 흘렀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 그러나 만약 이 지형이 형성되는데 그보다 적은 양의 물로도 충분하고, 더 긴 시간과 여러 차례의 홍수가 반복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질 겁니다." 금세기 들어 지질학계에서 점진론의 기수로 꼽히고 있는 제임스 길루 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긴 논평을 끝맺고 있다. "특정 시점에 실 제로 일어났던 홍수가 현재 컬럼비아 고원에서 일어나는 정도, 또는 그 두세 배 정도의 규모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얻어낸 증거로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E. T. 맥나이트는 사력층에 대해 또 다른 점진적인 대안을 제기했다. "저는 그 사력층이 컬럼비아 강이 전빙기, 빙하기, 후빙기에 걸쳐 이 지 역 동쪽으로부터 이동하면서 생성된 지극히 일반적인 하상퇴적물 이라고 생각합니다." G. R, 맨스필드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 정도로 엄청난 과정이 현무암에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 역시 좀더 부드럽고 완만한 설명을 제기했다. "그 용암 지대는 빙하가 녹은 물이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때로는 그 위치와 유출 장소를 바꿔가면서 흐름 과 고임의 과정을 계속 반복한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설명이 훨씬 설득 력 있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O. E. 마인저는 "이 지역의 침식 상태는 서술이 불가능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기괴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점진론자들의 설명을 용인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은 태곳적 컬럼비아 강의 정상적인 흐름을 가정하더 라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대담하게 자기 신념을 공언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정도로 극단적인 가정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현재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후일 브레츠는 나중에 획득된 증거로 인해 호랑이 굴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이 다. 그 후 브레츠의 가설은 널리 알려져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지질학 자들이 대격변적인 홍수가 유수로 용암 지대를 조각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브레츠 자신이 이러한 대홍수를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빙하가 스포캔까지 나아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어떻게 그 엄청난 양의 물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녹을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러한 돌발적인 해빙이 일어난 메커니즘은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다른 방면에서 나왔다. 몬테나 주 서부 에 얼음 댐으로 막혀 있는 엄청난 크기의 빙하호가 있다는 증거가 지질 학자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이 호수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댐이 파괴되 는 과정에서 격변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 물의 방수로는 유수로 용암 지대에 곧바로 연결된다. 브레츠는 갑작스레 몰려든 엄청난 양의 물이 어디로부터 오는지에 대 해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수로가 새겨지는 과 정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진행된 것인지도 모른 다. 또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물길의 합류점이나 현곡 등은 모든 것을 휩쓸어갈 만한 강한 흐름이 아니라 온화한 흐름이 쿨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음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용암 지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이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지질학자들은 쿨리의 하상 일부 구역이 최대 높이 22피트, 길이 425 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하상 연흔(stream bed ripples, 얕은 물의 바닥에 파도와 수류의 작용으로 마치 물결 모양처럼 생긴 무늬/옮긴이)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브레츠는 예일 대학의 블래더볼(bladderball, 예일 대학에서 거행되는 전통 경기에 사용되는 거대한 고무 풍선/옮긴이)에 올라탄 한 마리 개미에 견줄 만한 잘못된 척도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수십 년간 그 연흔 위를 걸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연흔은) 무성한 산쑥으로 덮혀 있는 지상에서는 식별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관찰이란 적절한 척도에서만 가능하다. 수력 공학자들은 특정 하상에 존재하는 연흔의 크기와 형태를 조사함 으로써 그곳 물 흐름의 특징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V. R. 베이커는 그 용암 지대의 수로에서는 매초 최대 75만 2천 세제곱피트의 유량이 지났으리라 추측했다. 이 정도의 홍수라면 지름 36피트의 표석도 떠내려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취향대로 이 이야기를 삼류 소설처럼 끝맺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눈먼 교조주의자들에게 억압된 명민한 주인공이 초 지 일관 지조를 지켜 당시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에 굴하지 않고 사실에 대한 충성심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인내심 강한 설득과 압도적인 입증을 통해 드디어 승리를 거둔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분명 타당하다. 점진론에 대한 선입견이 브레츠의 대격변설을 처음부터 배격했지만, 결국은 브레츠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옳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쓴 논문의 원본을 읽은 후 나는 이 착한 사람 대 나쁜 사람의 줄거리는 더 복잡한 상황에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레츠의 논적들은 무지한 교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진론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인 면도 있었지만, 브레츠가 처음으로 주장하고 나섰던 대격변적인 홍수 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브레츠의 과학 연구 스타일은 그의 처음 데이터로써는 자신의 논적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브레츠는 경험주의라는 고전적 전통에 따라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모험적인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야외에서 끈질기게 정보를 수집해야 만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이론적인 검토를 등한시했으며, 반대 자들이 제기했던 타당한 개념상의 의문, 즉 그 많은 물들은 과연 어디 에서 갑작스럽게 흘러 나왔는가라는 문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브레츠는 야외에서 얻은 침식의 증거를 끈기 있게 하나씩 하나씩 종 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설을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는 자기의 이론에 일관성을 주는 데에 결핍된 한 가지 항목, 즉 홍수의 수원을 찾는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홍수의 수원을 찾 으려면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추측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브레츠는 오로지 사실에만 의존하려 했던 것이다. 길루리가 그에게 홍수의 수원이 없다는 문제를 지적했을 때 브레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수로 용암 지대에 대한 내 해석은 용암 지대의 여러 가지 현상 자체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불완전한 학설이 반대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이유 는 무엇일까? 브레츠는 빙하의 남단이 갑자기 녹았다고 생각했지만, 어 떻게 그토록 급격히 해빙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학자는 한 사람도 없 었다(브레츠는 얼음 밑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길 루리의 반론에 부딪치자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브레츠가 고집스럽게 용암 지대에 머물고 있었을 때 엉뚱하게도 몬태나주 서부에서 해답이 나왔다. 1880년대 이후에 나온 문헌 속에는 미줄라 빙하호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호수를 자신의 연구와 연관시키려 하지 않았고,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 시키고 있었다. 결국 그의 논적들이 옳았다. 지금도 그 정도로 많은 양의 얼음이 어떻게 그처럼 빨리 녹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들에 의해 공유된 이 전제는 틀린 것이었다. 물의 근원은 (빙하가 아니라) 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은 그것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가 아무리 많이 축적되더라도 정당히 평가되지 않 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메 커니즘이 필요하다. 대륙 이동설의 초기 지지자들도 브레츠가 경험한것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몇 개 대륙에서 발견되는 동물상과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는 오늘날 우리에게 압도적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륙 이동설이 제기된 초기에는 대륙을 움직이는 힘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대륙 이동이라는 개념이 수립된 것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s, 지각 표층이 판 모양을 이루고 움직인다는 이론/옮긴이)이 이동의 메커니즘을 제공한 뒤의 일 이었다. 게다가 브레츠의 반대자들은 브레츠 가설의 이단적 성격만을 문제 삼 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몇 가지 구체적인 사실을 정리하 고 있었고,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의견이 옳았다. 처음에 브레츠가 홍수 가 단 한 차례 일어났다고 주장한 데 반해, 비판자들은 그 용암 지대가 단번에 형성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오늘날 우리는 미줄라 호수가 빙하의 경계가 변동함에 따라 여러 차례 그 형태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브레츠 자신도 마지막 논문에서는 대격변적인 홍수가 모두 여덟 차례 단속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적들은 일시적인 확산을 보여주는 증거에서 점진적인 변화 를 추론했다는 점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격변적인 사건들 사이 에는 긴 휴지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레츠도 용암 지대의 형 성 원인을 단 한 차례의 대홍수로 돌렸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 나는 겉만 번드르르하고 내용이 없는 권위자보다는 잘못을 저지르더 라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적인 영웅 쪽을 더 좋아한다. 브레츠가 내 글 의 주제로 등장한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경직되고 제약된 독단론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브레츠가 독선적인 권위자들을 각성시키기까지 무려 1세기 동안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었던 것이다. 지 질학에서 점진론의 대부격인 찰스 라이엘은,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일어난다는 교의를 수립해서 감쪽같이 많은 사람들을 속 여왔다. 과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지질학자들은 시대를 넘어선 자연 법칙의 보편성(균일성)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매우 옳았다. 그런 다음 그는 여러 가지 진행 과정의 속도에 관해 경험 적인 주장을 펼칠 때 똑같은 말(균일성)을 적용해, 변화는 완만하고 착 실하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큰 결과는 작은 변화의 축적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칙의 균일성이 자연스러운 격변, 특히 국지적인 규모인 경 우에서도 예외인 것은 아니다. 아마도 어떤 불변의 법칙들이 드물게 일 어나는 돌발적이고 심오한 이변을 야기하는 데에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 다. 어쩌면 브레츠는 이런 유의 철학적 모호성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그런 생각을 도회지의 책상물림들이나 늘어놓는 얼빠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브레츠는 호라티우스 (Horace, 로마의 시인/옮긴이)의 "Nullius addicfus jurare in verba magistri(나는 어떤 대가의 말에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라는 오래된 말을 모토로 삼아 살아갈 정도로 독립심과 진취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모토는 과학에 의해 자주지지 되기는 하지만 실행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즐거운 후일담을 남기고 끝나게 된다. 첫째, 유수로 용암 지대는 대격변적인 홍수의 작용을 증명한다고 한 브레츠의 가설은 그가 연구한 국지적 지역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풍부한 결실을 가져왔다. 서부 지방에서 다른 호수와 연결되어 있는 몇몇 용암 지대가 발견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너빌 호수-그에 비하면 유타 주에 있는 현재 그레이트 솔트 호수가 작은 웅덩이로 보일 정도로 거대했던 그 선조격인 호수-가 중요하다. 그 밖에 도처에서 적용 사례가 발견되었다. 또한 브레츠는 화성 표면 에서 관찰되는 수로의 특징이 브레츠식의 대격변적인 홍수를 상상하면 훌륭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성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 브레츠는 대륙 이동설이 망각 속에 묻혀 있는 동안 그린랜 드의 빙원에서 행방 불명된 알프레드 베게너와 같은 운명을 격지 않았 다. J 할렌 브레츠는 지금부저 60년 전에 독자적인 가설을 주창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 90세에 접어든 그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긍심 과 자기 만족에 차 있다. 1969년에 그는 워싱턴 주 동부의 유수로 용암 지대에 관한 반세기에 걸친 논쟁을 정리한 40쪽 분량의 논문을 발표했 다. 그는 그 글을 이런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국제 제4기 학회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Quaternary Research(제4기는 신생대 마지막 기로서 홍적세와 충적세로 이루어진 250만 년 전에서 현재까지를 말한다/옮긴이)의 1965년 대회는 미국에 서 개최되었다. 당시 예정된 여러 차례의 야외 여행 가운데 하나로 워싱턴 주의 북부 로키 산맥과 컬럼비아 고원을 방문하는 코스가 있었 다. ... 그 여행은 ... 그랜드 쿨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퀸시 분지 일부와 팔로우즈 스네이크 용암 지대 분수령 대부분 지역, 그리고 스네이크 협곡의 거대한 홍수 퇴적물을 횡단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참가할 수 없었지만 다음날 '인사' 전보를 받았다. 그 전문은 "지금은 우리들 모두가 대격변론자입니다"라는 구절로 끝이났다. 후기 이 기사가 '내추럴 히스토리'지에 게재된 후 나는 그 사본을 브레츠 에게 보냈다. 그는1978년 10월 14일에 답장을 주었다. 친애하는 굴드 씨에게 최근 제게 보내주신 편지는 대단히 기쁘게 받아 보았습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이해에 대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저는 제 선구적인 대용암 지대 연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 고, 나아가 한층 더 발전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시 종 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수십 년에 걸쳐 의심 이나 반론을 받았기 때문에 감각적인 무기력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후 6월에 있었던 빅토르 베이커의 필드 여행이 내게 준 또 한 차례의 놀라움으로 저는 다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럴 수 가! 저는 어느새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과정이나 사건에 관해 준권위자가 되어 있었던 겁니까? 이제 저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무기력해져서(저 는 96세입니다). 과거에 제 자신이 개척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979년 11월에 열린 미국지질학회 연례 회의에서 이 분야 최고의 상 인 펜로즈 메달Penrose Medal이 J 할렌 브레츠에게 수여되었다. 제20장 쿼호그는 쿼호그 일찍이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과학을 "상식을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을 비롯해서 그와 반대되는 생각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과학은 어떤 현상에 대한 '명백한' 해석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 며, 따라서 겉모습 뒷편에 숨어 있는 것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식과 유력한 이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반 법칙을 제시 한다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없다. 각 진영은 싸움에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의 쓴 맛을 보기도 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식이 승리를 거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까닭은 일반적인 관점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 는 이론도 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론이란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과 상식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게 된 잘못은 진화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범해지는 것으로서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식적인 견해로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거시적 생물들의 세계가 우 리들이 종이라 부르는 '묶음package'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매우 당 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새의 관찰자나 나비의 수집가들은 모든 특정 지 역의 표본들이 실제로는 비전문가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학 명이 붙여진 불연속적인 단위들로 분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때로는 이 묶음에 이름표가 붙지 않은 경우도 있고, 다른 묶음과 한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상세히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의 조류나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투구벌레들은 숙달된 관찰자라면 누구라도 동일한 방식 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종들의 명백한 구성원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종류natural kinds'를 의미하는 종의 관념은 창조설에 근거하는 다윈 이전 시대의 교의에 훌륭하게 부합한다. 예를 들어 루이 아가시는 종을 신의 존엄성과 신의 메시지가 우리들에게 감지 가능하게 구현된 신의 개별적 의지라고까지 주장했다. 아가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종이란) 신의 사고 방식을 나타내는 여러 범주들로서 신의 지혜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생물계를 불연속적인 여러 단위로 나누는 것이 끊임없는 변화 가 자연계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이라고 공언하는 진화론에 의해서 정당 화될 수 있을까? 다윈과 라마르크는 모두 이 문제와 씨름을 벌였지만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다. 두 사람은 모두 종에 '자연의 종류'라 는 지위를 부여하기를 거부했다. 다윈은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는 앞으로 종이라는 것을 ... 단지 편 의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합으로 ...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전망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종이라는 말의 본질에 대한 무익 한 탐구로부터 해방될 수는 있을 것이다." 라마르크 역시 불평을 늘어놓았다. "박물학자들은 지금까지 기재된 엄청난 양의 종 일람표에도 성이 차지 않아서, 그 목록을 한층 더 늘리기 위해 미묘한 차이나 사소한 특성 등을 잡아내 그 목록에 새로운 종을 기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다윈과 라마르크 두 사람은 모두 수백에 달하는 종을 명명한 뛰어난 분류학자이기도 했다. 다윈은 따개비barnacles에 관한 네 권으로 이루어진 분류 전문서를 썼고, 라마르크는 화석 무척추 동물에 관해서 그 세 배에 달하는 책을 발간했다. 두 사람 모두 이론적 으로는 종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도, 일상적인 연구에서는 종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즉 끊 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계는 특정 순간의 형체만을 보면 정지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생물 종의 일관성은 시간이 흘러 그 자손들로 서서히 변형되어감에 따라 사라져간다. 우리들은 단지 '여자가 낳은 사 람'에 관한 욥Job의 비탄을 떠올릴 따름이다. "그는 저 꽃과 같이 떨어지고 ... 그림자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영속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라마르크와 다윈은 이 해결책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광범위한 화석을 연구해 현재 세계를 분석하는 데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해가는 연속물을 서로 다른 많은 종으로 나누는 데에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전통적인 도피처로 피신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의 미에서 종의 실재성을 부정한 생물학자들도 있었다. 필경 금세기 들어 가장 뛰어난 진화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J. B. S. 홀데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종의 개념은 우리들의 언어학적 습관과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재 한 양보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고생물학자는 1949년에 "종이란 ... 허구이고, 객관적 실재성을 갖지 않는 정신적 구축물에 불과하다"라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오늘날 세계 어 느 곳에서든지 종이 분명히 식별된다는 의견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 고 있다. 대다수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간에 걸친 종의 실재성은 부 정하더라도 현시점에서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종과 종분 화에 관한 연구의 제일인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종은 진화의 산물이 지 사람 머리의 산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이어는 종이란 그 역사와 각 구성원 사이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결과로 빚어 지는 자연계의 '실재' 단위들이라고 주장한다. 종은 일정한 지역 내에 살고 있으면서 일반적으로 작고 불연속적인 개체군 선조의 계통에서 가지쳐 나온다. 종은 그 구성원끼리는 서로 교 배할 수 있지만 다른 종의 구성원과는 교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유전 프로그램을 발전시킴으로써 각기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수립한다. 동일 종의 구성원들은 공통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해 교배를 통한 상호 작용을 계속한다. 린네식 계층 구조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단위들은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것들은 다수 종의 집합이고 자연계에서 독자적인 실재성을 갖지 않기-그들은 서로 교배하지 않고 반드시 상호 작용을 할 필요도 없다-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상위를 차지하는 단위들-속, 과, 목, 또는 그 이상의 단위-이 임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진화적 계통론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즉 인간과 돌고래를 같은 목에 넣고. 침팬지를 다른 목에 넣는 식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식의 서열 매기기는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관행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계통론에 따르면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 이다. 그러나 이들을 우리와 같은 속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같은 과의 다른 속에 넣을 것인가? 결국 종만이 자연계에서 유일한 객관적인 분류 단위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마이어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홀데인을 따라야 하는가? 나 자신은 마이어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으며,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설득력 있는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마이어의 견해 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싶다. 반복 실험은 과학적 방법의 기초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계에서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실을 다루 는 진화학자들은 그것을 실천한 기회를 좀처럼 잡기 어려운 것이 보통 이다. 그러나 이 경우 종이 고유한 문화적 행위 속에 담겨 있는 정신적, 추상적 관념인지, 아니면 자연계의 '묶음'인지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각 민족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어떻게 여러 단위로 나 누는지 조사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린네식의 종으로 나누는 서 양 분류법과 비서양 지역의 여러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민속적 분륜 법' 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이다. 비서양 지역에서의 분류법에 관한 문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것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린네의 종과 비서양 지역에서의 동식물 이름이 놀랄 정도로 잘 대응한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문화에 의해 같은 '묶음'이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 다고 민속적 분류법이 항상 린네의 종 목록 전체를 망라하고 있다는 주 장을 펼 생각은 없다. 어느 민족이든 사람들은 대개 중요하거나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진 생물이 아니면 빠짐없이 분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뉴기 니아의 포레Fore 족은 모든 나비를 단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곳의 나비들은, 그들이 린네의 종보다 훨씬 자세히 분류하고 있는 조류만큼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투구벌레들은 대부분 미국인의 민속 적 분류법에서는 각각의 명칭이 없는 반면에 메사추세츠 주의 새는 전 부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민속적 분류법이 상세한 분류를 시도한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린네의 분류 체계와 일치한다. 지금까지 여러 생물학자들은 현장 연구를 계속하면서 이러한 현저한 대응성을 발견했다. 에른스트 마이어 자신도 뉴기니아에서의 경험을 이 렇게 쓰고 있다. "40년 전에 나는 뉴기니아의 산 속에서 파푸아 부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이 훌륭한 숲 거주자들은 내가 식별한 137종의 새 가운데 136종의 새에 대해 고유한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식별하기 어려운 2종의 명금류 새에 대해서만은 혼동을 일으켰다) ... 석기 시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구미의 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생물학자가 자연계의 실체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증명해준다." 1966년, J. 타이아몬드는 뉴기니아의 포레 족에 관한 훨씬 더 광범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서식하는 새의 모든 린네 종에 대해 각각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가 7명의 포레 족 남자를 그들이 결코 본 적이 없는 새가 살고 있는 다른 지방으로 데리고 가서 신기한 각각의 새에 대해 가장 가까운 포레 명칭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그들은 130종 가운데 91종을 서양의 린네식 분류 종에 가장 가까운 포레식 종의 이름을 대었다.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포레 족의 조수 가운데 한 사람이 몸집이 크고 검고 날개가 짧은 지 상성 새를 붙잡았는데, 그 새는 나는 물론이고 조수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새였다. 내가 그 새의 유연 관계를 알지 못해 궁 금해하자 그 남자는 단번에 그 새가 '파테오베이에'라고 단언했다. 이것은 포레 족 정원의 나무 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몸집이 작고 갈색을 띤 아름다운 뻐꾸기 이름이다. 결국 이 신기한 새가 멘벡스 쿠컬(Menbek's coucal, 쿠컬은 두견새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이다/ 옮긴이)이라 불리는 종류임을 알았지만, 이것은 뻐꾸기과의 변두리 쯤에 위치하는 구성원으로서 체형과 발의 특징, 그리고 부리의 형태 에서만 차이가 났을 뿐이다. 생물학자들이 실시한 이러한 비공식적인 연구는 최근 뛰어난 박물학 자이기도 한 인류학자들이 출간한 두 편의 상세한 논문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뉴기니아에 살고 있는 칼람Kalam 족의 척추 동물 분류에 관한 랄프 벌머의 연구와, 멕시코 치아파Chiapas 고원의 첼탈Tzeltal 인디언 의 식물 분류에 관한 브렌트 벌린의 연구(식물학자인 데니스 브리드러브, 피터 레이븐과 함께 연구했다)가 그것이다(나는 이 자리를 빌어 벌머의 연 구를 내게 소개해주시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러한 경향을 나타낸 여러 주 장을 가르쳐주신 에른스트 마이어 선생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예를 들어 칼람 족은 여러 종류의 개구리를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데, 그들이 사용하는 개구리의 명칭은 거의 대부분 린네 종과 일대일 대응을 한다. 간혹가다 같은 이름을 복수의 린네 종에 대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그 차이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칼람 족 사람은 '구눔gunm'이라 불리는 두 가지 다른 종을 그 겉모습과 서식지로 쉽게-각각에 대한 표준 명칭은 없지만-식별할 수 있었다. 때로는 칼람 족이 우리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힐라 베키'(Hyla becki, 청개구리속의 일종/옮긴이)라는 서양 학명으로 잘못 불리던 두 가지 종을 '카소지kasoj'와 '위트wyt'로 올바르게 식별했다. 근년 들어 벌머는 칼람 족 사람인 이안 사엠 마즈네프와 협력해서 '우리 칼람 나라의 새들'이라는 주목할 만한 책을 발간했다. 그 책에 따 르면 사엠이 정리한 명칭의 70퍼센트 이상이 서양 종과 일대일 대응 관계를 갖는다. 그 밖의 경우에 그 칼람 족 주민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린네 종을 동일한 칼람 종으로 묶으면서도 서양식 구별을 인정하거나 또는 하나의 서양 종에 속한 것을 각각 구별해내면서도 그것의 일체성을 파악하고 있었다(예를 들어 극락조의 특정 종은 수컷만이 훌륭한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웅에 별개의 이름을 붙였다). 사엠은 단 하나의 경우에서만 린네식의 명명법과 일치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서로 다른 종의 극락조 황갈색 암컷에 대해 같은 이름을 붙인 반면, 같은 종의 화려한 수컷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이와 같이 벌 머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개구리류, 그리고 어류 등에 걸친 총 174 종의 척추 동물 목록 가운데 겨우 4퍼센트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을 밝혀냈다. 한편 벨린, 브리드러브, 그리고 레이븐 세 사람은 1966년에 최초의 연구 성과를 발표해 민속 명칭과 린네 종이 일반적으로 일대일로 대응 한다는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우선 그들은 첼탈 어 식물명 가운데 고작 34퍼센트만이 린네 종과 대응한다는 사실을 내 세웠으며, 여러 가지 '잘못된 분류'는 각 문화권의 고유한 명칭 사용과 관행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들은 한 편의 매우 솔직한 논문에서 종전에 자신들이 주장했던 내용을 번복하고, 민 속 명칭과 린네의 학명이 밀접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연구 초기에 계층적인 질서를 갖는 첼탈의 언어 체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민속적민 기본 분류군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계층에 속하는 명칭들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벌린은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인류학적 선입견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음을 스스 로 인정했다. 여기에 그가 자신의 입장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글을 직접 인용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그의 잘못을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 학자들이 좀처럼 실행하려 들지 않는 행위를 찬미하기 위해서다(성실한 과학자라면 누구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서 생각을 바꾼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분류법을 완전히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많은 인류학자들은 대개 이런 종류 의 발견을 받아들이기 꺼려한다. ... 내 동료와 나는 과거에 쓴 논문 속에서 '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 주장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발표한 후 많은 자료를 조사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지금 이 입장은 진지하게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민속적 분류법으로 인정되는 기본적인 분류 단위가 과학적으로 알려진 종과 긴밀히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그후 벨린, 브리드러브, 레이븐 세 사람은 '첼탈 족이 식물을 분류 하는 제 원리'라는 제목으로 첼탈 족의 분류법을 자세히 논한 책을 발 간했다. 그들이 펴낸 완벽한 목록에는 471개의 첼탈 어 명칭이 수록되 어 있다. 그 가운데 61퍼센트에 해당하는 281개의 명칭이 린네의 학명 과 일대일로 대응한다. 17개를 제외한 나머지 명칭은 모두 저자들이 이 야기하는 '불완전 분화underdifferentiated'된 명칭이다. 즉 이들 첼탈 명칭들은 복수의 린네 종을 지칭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용어들 가운데 2/3 이상이 기본적인 분류군 내에서 다시 세분하기 위한 보조 명칭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이들 보조 명칭은 모두 린네 종에 대응한다. 3.6퍼센트에 해당하는 17개의 명칭만이 린네 종의 일부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어 '과분화overdifferentiated'를 나타낸다. 일곱 개의 린네종이 각기 두 개의 첼탈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종은 세 개의 첼탈 명칭을 가지고 있다. 흔히 호리병박이라 불리는 'Lagenaria siceraria'가 그것이다. 첼탈 족은 호리병박을 실제 유용성을 기준으로 구별하고 있다. 하나의 이름은 토르티야(tortilla, 멕시코의 빵케이크의 일종. 옥수수 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펴서 철판이나 냄비에 굽는다/옮긴이) 용기로 사용되는 크고 둥근 열매를 가리키며, 또 하나의 이름은 액체를 붓는데 쓰기 좋게 만들어진 목이 긴 조롱박을 가리키며, 세 번째 이름은 특별한 용도 없는 작은 타원형 열매를 가리킨다. 또한 흥미로운 두 번째 일반성은 민속적 분류법에 대한 연구에서 나 온다. 생물학자들은 오직 종만이 자연계의 실질적인 단위이고, 분류학 상 종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는 명칭들은 종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결정을 말해준다고 주장한다(물론 이러한 분류는 진화적인 계통론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약하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종으로 이루어진 군에 적용되는 명칭에 대해서 린네식의 학명과 일대일 대응을 기대해선 안 되며, 국지적인 사용법이나 각각의 문화에 뿌리내 린 다양한 체계를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민속적 분류법에 대한 연구에서 항상 발견되었다. 여러 종으로 이루어진 군에는 몇 가지 진화 계통에 따라 따로따로 도달한 기본적인 형태를 포함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첼탈 족은 수목, 덩굴성 식물, 화본과에 속하는 풀, 그리고 잎이 넓은 초본 식물과 대략 적으로 일치하는 몇 가지 종으로 이루어진 군을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의 호칭을 네 개 가지고 있다. 이들 명칭은 그들이 식별하는 식물 종류의 약 75퍼센트에 적용된다. 한편 옥수수, 대나무, 용설란 등 그 밖의 식물들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몇 가지 종을 묶어서 군으로 분류하다 보면 문화가 갖는 미묘하면서 도 구석구석 퍼지는 특성이 잘 반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뉴기니아의 칼람 족은 파충류 이외의 네 발을 가진 척추 동물을 세 가 지 부류로 나누고 있다. 즉 쥐류는 '코파크kopyak', 진화적으로 이질 적이고 비교적 몸집이 크며 수렵의 대상이 되는 포유류-대개 유대류 와 설치류가 여기에 속한다-는 '쿰kmn', 그보다 더 이질적인 개구리 류와 소형 설치류를 '애스as'로 분류한다(벌머가 여러 차례 물어보니 칼 람 족은 '애스' 안에 개구리류와 설치류의 아 구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스'에 속하는 것들 가운데 몸집이 작고 털투성이인 동물이 '쿰'에 속하는 설치류와 형태상 서로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지 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어떤 종류의 '쿰'은 주머니를 갖지만 다른 '쿰'은 갖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러한 분류법은 칼람 족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코파크'는 배설물이나 인가 근처의 쓰레기 등 불결한 것과 연관된다고 생각하여 식용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애스'는 주로 여자와 아이들이 채집한다. 대부분의 남자는 그것을 먹고 몇몇은 채집하기도 하지만, 통과 의례를 거치는 소년들과 주술을 하는 성인 남자들은 이 동물들은 먹지 못하도록 금지된다. '쿰'은 주로 남자들이 사냥 한다. 마찬가지로 새와 박쥐는 모두 '야크트yakt'라 불리며, 단 한 가지 몸 집이 크고 날지 못하는 화식조만이 예외로 '코브티kobty'라 불린다. 칼 람 족은 '코브티'에게도 새의 특징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니 이렇게 구별한 데에는 겉모습만이 아닌 더욱 깊고 복잡한 이유가 있다. 벌머의 주장에 따르면, 화식조는 삼림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사냥감이며, 칼람족은 타로 토란(taro, 토란의 일종/옮긴이)과 돼지로 대표되는 농경 생활과 판다누스 열매와 화식조로 대표되는 숲속의 생활 사이에서 정교한 문화적 대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화식조는 신화에서 인간의 형제로 간주된다. 우리는 자신들의 민속적 분류법에서 이와 유사한 관습을 계속 유지하 고 있다. 식용 연체 동물 하면 '셀피시shelfish'라는 이름이 있지만, 린 네식의 종들은 똑같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 나는 뉴잉글랜드의 마닷가 에서 모든 이매패에 대해 비공식적인 학술 용어인 '클램'(clam, 대합조 개/옮긴이)이라는 단어로 명명했을 때, 그 고장의 어부(그에게 '클램'은 오직 우럭[Mya arenaria, 껍질이 얇은 달걀형의 식용 이매패/옮긴이]만을 지 칭하는 말이었다)로부터 "쿼호그는 쿼호그(quahog, 비늘백합속의 일종. 북미 대서양 연안에서 생산되는 대합류 식용 조개), 클램은 클램, 가리비는 가 리비!"라고 힐난을 받았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속적 분류법이 제시해주는 이러한 증거는 오늘날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생물을 린네 종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우리 모두에게 고정 배 선돼 있는 신경학적 정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면(이런 주장은 흥미롭 기는 하지만 상당히 의심스럽다). 생물계는 어떤 근본적인 의미에서 진화로 인해 탄생한 불연속적인 묶음 으로 합당하게 나누어진다(물론 나는 어떻게든 사물을 분류하려고 하는 인간 성향이 우선 우리들의 뇌와 그 뇌가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능력, 그 리고 복잡성에 질서가 부여되고 의미를 갖게되는 일정한 방법 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단지 생물 을 린네 종으로 분류하는 일정한 절차가 자연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들의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인식되는 린네 종은 그 순 간의 일시적인 형상, 즉 끊임없이 유동하며 진화 계통상 거칠 수밖에 없는 작은 간이역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미 17장과 18장에서 진화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종 은 특정 시점에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에 걸쳐 '실재성'을 갖는 다고 주장했다. 화석으로 남은 무척추 동물의 종들은 평균적으로 500만년 내지 1천만 년 가량 존속한다(육생 척추 동물 종의 생존 기간은 평균적으로 이보다 짧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자손 없이 멸종해간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종은 선조 종의 개체군 전체가 천천히 변형되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선조의 줄기에서 갑자기 작은 가지가 분리돼 나가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종분화의 빈도와 속도에 대한 저로 다른 견해는 근년 들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진화론 논쟁 가운데 하나며, 대다수 동료 학자들은 대부분의 종이 분열을 통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기간은 우리들 일상 생활과 비교해볼 때는 무척 긴 것으로 여 겨질지 모르지만,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두꺼운 지층에 걸쳐 연속적 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얇은 층 속에 화석 기록으로 나타 날 뿐이다. 그 정도의 기간이라면 지질학적 척도에서는 일순간과 같다 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종들이 수백 내지 수천 년에 걸쳐 나타나서 그 후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존속한다면, 그 종이 출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종의 존속 기간 전체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은 시간의 흐름에서 볼때에도 불연속인 실체로 간주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 높은 수준에서의 진화는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종 수준에서의 여러 가지 차등적인 번영에 대한 이야기이지 각 계통의 느린 변형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지질학적인 일순간에 해당하는 탄생의 시기에 처 한 한 종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들은 그 종을 뚜렷이 식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이 이런 상태에서 발견될 가 능성은 지극히 드물다. 종이라는 것은 처음 생성될 때에는 대단히 짧은 기간을 걸치고 불명료한 상태에 있지만 일단 완전한 형성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매우 안정적인 실체가 된다(반면 소멸할 때에는 그렇게 불명료하지 않다. 그 이유는 거의 모든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하지 않고 깨끗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 다). 과거에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파크는 다른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낮과 밤의 경계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빛과 어둠은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진화론은 유기체의 변화에 대한 이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 각하듯이 끊임없는 유동이 피할 수 없는 자연계의 상태라거나, 생물체 의 구조는 어느 한순간의 일시적인 구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이론 은 옳지 않다. 변화는 완만하고 일정한 속도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하나의 안정된 상태에서 다음의 안정된 상태로 빠르게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조직화되고 적절히 구별화된 세계에 살고 있 다. 종이란 자연 형태론에 나타나는 하나의 단위인 것이다. 제6부 최초의 생물 제21장 첫출발 '티티푸의 그 무엇보다도 존귀한 귀족'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푸바 Pooh-Bah는 자신의 가문에 대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자부심 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뇌물을 쓰면 적절하긴 하지만 무척 비용이 많 이 들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난키 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조가 원형질 속의 근원적인 원자 구체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자존심이 이 정도로 깊은 뿌리를 가졌다면, 1977년 말엽은 인 간의 자만이 매우 풍부한 결실을 맺은 시기였다. 1977년 11월 초, 남아 프리카에서 원핵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생명의 역사를 34 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했던 것이다(박테리아와 남조류를 포함하 는 원핵 생물은 모네라계Monera라는 분류군을 형성한다. 이들 생물의 세포에는 세포 기관, 즉 핵과 미토콘드리아가 모두 없기 때문에 지구상의 생물들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간주된다). 2주일 후에 일리노이 대학의 한 연구팀은 이른바 '메탄을 생성하는 박테리아'가 다른 모네라류와 근연 관계를 갖지 않으며, 하나의 독자적인 '계(kingdom, 분류의 최상 단계로 일반적으로 식물계, 동물계, 곰팡이계, 원생 생물계, 원핵 생물계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옮긴이)를 형성한다는 이론을 발표 했다. 가령 진짜 모네라가 34억년 전에 이미 생존한 것이라면, 모네라와 새 롭게 '메타노겐methanogen'이라 명명된 이 미생물의 공통 선조가 존 재했던 연대는 이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에 서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보이는 그린랜드 서부 이수아Isua 표층 지각 이 38억 년 전의 것이니 지구 표면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고 나서 생명 자체가 등장하기까지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 걸렸을 것 으로 추측된다. 생명이란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확실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즉 단순한 구성 성분을 가진 지구의 초기 대기에서 이 지구상에 가장 정교한 조직을 광대한 시간에 걸쳐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구축해나가는 데에 엄청난 시간이 요구되는 복잡한 사건과는 다르다. 생명은 매우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발생이 가능하게 되자마자 급속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아마도 생명은 석영이나 장석의 출현이 불가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났을 것이다(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이지만, 처음 생성된 다음부터 계속해서 용융과 반용융의 상태를 거치다가 아마도 그린랜드 서부의 연속 지층이 퇴적하기 조금 전에야 비로 소 단단한 지각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가 '뉴욕 타임즈'의 제1면을 장식했고, '퇴역 군인의 날' (11월 11일)을 위한 사설을 쓰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20년 전, 나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콜로라도 대학에서 여름을 지낸 적이 있었다. 여름에도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나, 섣불리 빨리 걷도록 재촉하다가 성내게 만든 나귀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 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일은 조지 월드가 실시한 '생 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강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정도로 강력한 매력과 열정을 발산하면서, 195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해서 최근까지 정설로 군림하고 있는 생명계의 전체상을 이야기해주었다. 월드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자연 발생적인 기원은 지구의 대기와 지각, 그리고 태양계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위치와 크기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명이란 것 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화학 물질에서 생명 이 발생할 때까지에는 틀림없이 장구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주장한 다. 즉 그 후에 벌어지는 DNA 분자에서 고등한 딱정벌레-아니면 우 리의 주관적인 생명의 사다리에서 어떤 단계를 임의적으로 선택해도 무 방하다-에까지 이르는 진화 역사 전체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천에 달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모든 단계는 그 이전의 단계를 필요로 하며 결코 그 자체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장구한 시간만이 그 결과를 보증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간만이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일로 바꾸어내기 때문 이다. 내게 100만 년이라는 시간이 허용된다면, 동전을 100번 던져 100번 모두 앞이 나오는 경우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월드는 1954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실로 시간은 음모의 주역이다. 우리들이 다루어야 할 시간은 20억 년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것이다. ... 그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고 가능한 것은 사실상 거의 확실한 것이 된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 자체가 기적을 일으 키니까." 이러한 정통적인 관점은 고생물학에서 얻어낸 직접적인 자료의 검증 없이도 이미 확고하게 굳어졌다. 6억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있 기 전의 화석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어찌할 수 없는 장벽으로 작용 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초로 선캄브리아기의 생명계를 이야기해주는 명 백한 증거는 월드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세운 바로 그해에 발견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엘소 바그혼과 위스콘신 대학의 지질학자 S.A. 타일러는 슈피리어 호 북안의 약 20억 년 전 암석인 군프린트Gun flint층의 규산질 퇴적암에서 일련의 원핵 생물 화석을 발견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군프린트 층과 지구의 기원 사이에는 아직도 25억 년이라는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고, 25억 년이란 기간은 월드가 주장하듯이 완만하고 착실한 구축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은 계속 고대로 거슬러 을 라간다. 스트로마톨라비트(stromatolite, 녹조류의 활동에 의해 생긴 박편 모양의 석회암/옮긴이)라 불리는 와층상 구조를 나타내는 탄산염 퇴적물이 남로디지아의 26억 년에서 28억 년 전의 블라와요 통(Bulawayan series, 통은 계의 하위 단위로서, 지질 시대의 세에 해당하는 지층을 가리킨다/ 옮긴이) 암석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적층구조는 퇴적물을 고정시키는 오늘날의 남조류 매트에서 볼 수 있는 패턴과 동일하다. 버그흔과 타일러가 군프린트 화석을 발견하자 선캄 브리아기 화석에 대한 믿음을 이단적으로 보던 당시까지의 잘못된 관점이 사라졌다. 그 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생물의 기원이라는 견해가 널리 받아 들여졌다. 그 후 1967년에 바그혼과 J. W. 쇼프는 남아프리카의 피그 트리통에서 '남조상' '박테리아상' 생물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로써 생명계 가 지구 역사 대부분의 기간을 통해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정통적 사고 방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67년 당시에 알려진 바로는 피그 트리통의 암석은 31억 년 이상 전의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쇼프와 버그흔은 라틴어 학명을 붙여 자신 들의 발견물에 위엄을 부여하려 했지만, 그 발견물 자체가 갖는 특성-남조 상과 박테리아상의 특징-은 그들이 품던 의구심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실제로 훗날 쇼프는 증거라는 저울이 이 구조물이 생물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34억 년 전에 이미 생명이 존재했었다는 최근의 뉴스는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니었다. 피그 트리통에 나타난 생명계 상태에 관한 10 년에 걸친 논쟁이 필연적으로 도달한 하나의 정점에 지나지 않는다. 앤 드류 H. 놀과 버그흔이 최근에 얻어낸 증거도 피그 트리통의 규산질 퇴 적암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증거는 결정적인 것에 가깝다. 게다가 최근 확인된 연대는 이 지층이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욱 오래된 34억 년 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피그 트리통의 규산질 퇴적암은 태곳적 생명체가 발견되는 데 알맞은 가장 오래된 암석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오래된 그린랜드의 암석은 열과 높은 압력으로 지나치게 변질돼 있기 때문에 생물의 화석을 보존하기 힘들었다. 놀은 내게 아직 조사되지 않은 로디지아의 규산질 퇴적암 가운데는 36억 년 전의 것도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열성적인 과학자라면 자신들의 난해한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느정도 탄탄한 지지를 얻을 때까지 정치적인 선언을 보류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생명체의 증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가장 오래된 암석 속에서 실제로 그런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생명이 완만하고 점진적인,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사고 방식을 버리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필경 생명은 지구가 생명체를 수양할 수 있 을 정도로 냉각되자마자 갑자기 발생했을 것이다. 피그 트리통에서 발견된 새로운 화석은 그전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 다. "더 새로운 연대의 암석에서 발견된 [그것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해초류의 미화석microfossil이라고 불렸을 것이다"라고 놀과 버그혼은 말했다. 이런 해석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논거를 바탕으로 한다 1. 이 새로운 구조물은 현재의 원핵 생물의 크기 범위 내에 있다. 이 미 버그혼과 쇼프가 기술한 그전의 구조물은 매우 컸다. 후일 쇼프는 그것의 생물성을 스스로 부인했다. 그것은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었다. 평균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1마이크로미터는 100 만분의 1미터)인 새롭게 발견된 화석의 평균 부피는 지금은 무생물로 간주되고 있는 그 이전 구조물의 약 0.2퍼센트에 불과하다. 2. 현존하는 원핵 생물의 개체군들은 크기에서 특징적인 빈도 분포를 보여준다. 그 분포도는 전형적인 종 모양 곡선을 이루는데, 평균 지름이 최빈값을 이루고 그보다 지름이 크거나 작아질수록 점차 수가 작아진다. 따라서 원핵 생물의 개체군은 특징적인 평균 크기(앞에서 이야기한 가장 높은 지점)를 가질 뿐 아니라 이 평균치를 중심으로 특징적인 변이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미화석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1에서 4마이 크로미터까지) 훌륭한 종모양 분포를 보인다. 그에 비해 이전에 발견된 더 컸던 구조물은 훨씬 폭넓은 변이를 나타내며 중요한 평균치도 없다. 3. 새롭게 발견된 구조물은 군프린트와 선캄브리아기 후기의 원핵 생물과 놀랄 만큼 흡사해서, "어떤 것은 가늘고 길며, 다른 것은 납 작하고 주름이 져 있거나 접혀져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겉모습은 현존 원핵 생물이 죽은 후에 보여주는 변화의 특징에 해당한다. 최초에 발견되었던 더 큰 구조물은 난처하게도 구형이었다. 구는 표면적을 최소로 만드는 가장 표준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생물적 과정에서도 쉽게 관찰될 수 있다. 가령 물방울을 보라. 4. 이 네 번째 증거가 가장 설득력이 크다. 지금까지 새롭게 발견된 미화석의 약 1/4이 다양한 세포 분열 단계에서 발견되었다. 이처럼 세포 분열이 한창 진행중인 상태에서 발견된 비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원핵 생물이 약 20분마다 분열하며 그 과정을 완료 하는 데 수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해주고 싶다. 따라서 하나의 세포가 두 개의 딸세포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생애의 1/4을 사용한다고 생각 해도 좋을 것이다. 5. 형태를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네 가지 논거만으로도 내게는 충 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놀과 보그혼은 여기에도 만족하지 않고 생화학에 바탕을 둔 몇 가지 근거를 덧붙이고 있다. 어떤 분자의 원소들이 다른 무게를 가진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위원소라 불리는 이러한 이형들은 같은 숫자의 양성자를 갖지만 중성자의 수는 서로 다르다. 동위원소 중에는 방사능을 띠거나 다른 원소로 자연 발생적으로 붕괴하는 것도 있으며, 긴 지질 시대를 통해 변화하지 않고 존속할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난 것도 있다. 탄소에는 중요하게 생각되는 안정된 동위원소가 두 종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각기 6개씩 갖는 C12와 6개의 양성자와 7개의 중성자를 갖는 C13이 그것이다. 생물이 광합성으로 탄소를 고정할 때에는 가벼운 동위원소 C12가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광합성으로 고정되는 탄소의 C12/C13의 비율은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와 같은 무기 탄소에서의 그것보다 크다. 더구나 이 두 가지 동위원소는 모두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 비율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피그 트리통에서 발견된 탄소의 C12/C13의 비율은 무기적인 기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광합성을 통해 고정되는 탄소의 범위내에 있다. 그렇다고 이 사실 자체가 피그 트리 속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증거는 아니다. 가벼운 탄소는 다른 방법으로도 선택적으로 고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화학적 으로 얻어지는 이 추가적인 근거가 크기와 분포, 그리고 세포 분열 등의 증거와 결합해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34억 년 전에 원핵 생물이 충분히 뿌리를 내렸다면,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더 과거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야 하는 것일까? 이미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구상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된 적당한(또는 적어도 사용 가능한) 암석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 에, 화석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삼는 한, 현재로서는 더 이 상 과거로 추적해 들어갈 수 없는 셈이다. 그 대신 우리들은 또 하나의 톱 기사감으로 주의를 돌리기로 하자. 그것은 메타노겐(methanogen, 발생적으로 박테리아나 동식물 세포와는 다른 메탄 생성 미생물/옮긴이)은 박테리아가 아니라 모네라(박테리아와 남조류)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계'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그들의 보고서 내용은 크게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 특히 1977년 11월 11일자 '뉴욕 타임즈'의 사설은 가장 두드러진 경우 이다. 그 사설은 식물과 동물이라는 기본적인 2분법이 무너졌다고 선언 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생물이 동물이 아니면 식물이라는 식의 -포유류 동물이 모두 수컷과 암컷으로 나누어지는 것만큼이나-보편적인 이분법을 배운다. 그런데 ... [지금 우리들은] 지구상에 '제3의 생물', 즉 동물도 식물도 아닌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생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2분법'을 이미 오래 전에 폐기 시켰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단세포 생물을 그 동안 전통적으로 복잡한 생명체로 인정돼온 이들 2대 집단에 포함시키려 하는 무모한 시도를 벌이지 않는다. 요즈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식물, 동물, 균류, 원생 생물(핵, 미토콘드리아, 그 밖의 세포 기관을 갖춘 아메바와 짚신벌레를 포함하는 단세포 진핵 생물), 그리고 원핵 생물인 모네라의 다섯 가지 계로 이루 어지는 분류 체계이다. 만약 메타노겐의 중요성이 조금 더 강조된다면 제6의 계를 이루어 모네라계와 함께 '원핵 생물'이라는 '초계 super kingdom'를 구성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동물이냐 식물이냐가 아니라 원핵 생물이냐 진핵 생물이냐의 구분이 생명계를 나누는 가장 근본적인 칸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위즈 연구 집단(문헌 목록의 폭스Fox 및 기타 학자 참조)은 10 개의 메타노겐을 비교해서 사용한 3개의 모네라로부터 공통의 RNA를 분리해냈다(DNA가 RNA을 만들고, RNA는 단백질 합성의 원형이 된 다). DNA와 마찬가지로 한 가닥의 RNA는 연속되는 뉴클레오티드 효 소로 이루어진다. 네 개의 뉴클레오티드 가운데 어느 하나가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면,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지는 각 집단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결정 한다. 그리고 단백질은 서로 연결된 사슬 모양으로 배열된 아미노산으로 완성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이 바로 '유전 암호'인 것이다. 오늘날 생화학자들은 RNA의 염기 서열을 결정하는 단계, 즉 RNA 가닥에 각각 의 뉴클레오티드 배열 전체를 순차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원핵 생물(메타노겐, 박테리아, 그리고 남조류)은 최초의 생명이 탄생 할 즈음에 틀림없이 공통의 선조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핵 생물 은 모두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같은 RNA 염기 배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모두 원핵 생물 계통수의 줄기가 여러 갈래 가지로 갈라진 후에 이 공통 선조의 염기 서열에서 방산하여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분자 차원에서의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했다면, 현재 어느 두 종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범위는 계통이 공통된 선조, 즉 두 종류가 같은 RNA 배열을 공유하고 있는 가장 최근의 선조에서 각각 다른 모습 으로 분열하는 데 걸린 시간의 길이를 직접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두 종류의 생물이 동일한 상황에서 10퍼센트 차이를 갖는다면 뉴클레오티드는 10억 년 전에 갈라져 나왔음을 말해주고, 그 차이가 20 퍼센트라면 20억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위즈와 그의 연구팀은 10종류의 메타노겐과 3종류의 모네라 사이에서 각각 한 쌍의 종을 선택해 RNA 차이를 측정함으로써 계통수를 세울 수 있었다. 이 계통수는 두 개의 큰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메타노 겐 전체, 다른 하나는 모네라 전체이다. 그들은 3종의 모네라를 그 집 단 가운데서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선택했다. 예를 들어 대장균과 자 유 생활을 하는 남조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모네라 사이에는 모네라와 가장 흡사한 일부 메타노겐과의 유사점보다 더 커다란 유사성 을띠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해석은 메타노겐과 모네 라가 공통 선조로부터 분리해 나온 별개의 진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그전까지 메타노겐은 박테리아로 분류되었었다. 즉 이들은 통일성 있는 실 체로 인식되지 않았고, 각각의 메타노겐은 각기 독립적인 계통, 즉 메탄을 생성하는 능력을 향해 수렴 진화하는 각각 다른 계통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다). 이러한 해석은 메타노겐이 모네라와 다른 것이며, 제6의 계로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훌륭한 모네라가 34억 년 전 또는 더 오래 전 피그 트리통 시대에 이미 진화한 것이라면, 메타노겐과 모네라의 공통 선조는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기원은 지구 자체의 시발점을 향해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위즈와 그의 연구팀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 단순한 사고 방식이 그들 의 연구 결과에 대한 유일 무이한 해석은 아니다. 우리는 그 해석과 똑 같은 정도로 그럴듯한 가설을 두 가지 더 세울 수 있다. 1.그들이 사용한 세 종의 모네라는 그 집단 전체를 충분히 대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모네라의 RNA 배열은 모든 메타노겐이 서로 각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3종의 모네라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메타노겐을 모든 모네라와 함께 단일한 대집단에 포함시킬 수 없다. 2.진화 속도가 거의 일정했다는 가정이 그릇될 수도 있다. 어쩌면 메타 노겐은 모네라의 주류 집단이 공통의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훨씬 후에 모네라의 어느 한 가지에서 파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초기 의 메타노겐은 서로 다른 것에서 갈라져 나올 때, 모네라의 각 집단이 갈라져 나오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메타노겐과 모네라의 RNA 배열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초기의 메타노겐이 빠른 속도로 진화했음을 기록할 뿐이지, 모네라 자체가 그보다 작은 여러 하부 집단으로 분열하기 전에 모네라와 메타노겐의 공통 선조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진화가 어느 정도 일정한 생화학적 속도로 진행되기만 하면, 생화학적인 차 이의 총량은 어느 시기에 갈라져 나왔는지를 정확히 기록해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위즈의 가설은 매력적인 면이 있고 강력하게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메타노겐이라는 생물은 혐기성 으로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메타노겐 은 산소를 남김없이 소모한 소택지 밑바닥이나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 있는 깊은 온천 바닥 등처럼 특이한 환경에서만 서식한다(메타노겐은 수 소를 산화시켜 이산화탄소를 메탄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통해 살아간다. 메타노겐이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오늘날 초기 지구와 그 대기에 대한 연구에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일반적 합의에 도달한 내용이 있다. 최초의 대기에는 산소가 없고 이산화탄소가 풍부했고, 이런 조건하에서 메타 노겐이 급속도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으며, 그런 조건 때문에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메타노겐은 원래 지구 표면의 전반적인 조건에 부합하도록 진화했지만, 그 후 대기 중에 산소가 증가하면서 지금 은 극히 제한된 환경으로 몰리게 된 지구상 최초의 생물상일까? 우리는 현재 대기 중에 있는 유리 산소free oxygen가 대부분 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피그 트리통의 생물은 이미 활발하게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메타노겐의 황금 시대는 피그 트리통의 모네라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이미 지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추측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생명은 피그 트리통의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에 발생한 셈이 된다. 간단히 말해 지금 우리는 생명의 직접적인 증거를 가장 오래된 암석 속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상당히 확실한 추론에 따라 메타노겐 의 광범위한 생태적 분포는 광합성을 하는 이들 모네라류보다 먼저 일 어난 일이었다고 생각할 만했다. 필경 생명은 지구가 그것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냉각한 직후에 발생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 개인적 편견을 반영하고 있을 결론적인 생각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나는 주체 문제를 포함하지 않는 대주제인-이 점에서는 오직 신학만이 우리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우주 생물학의 열렬한 팬이 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상상해온 것 이상으로 생명이 지구와 같 은 크기, 위치, 구성을 갖는 행성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광 한다. 나는 지구의 생명계가 유일 무이하지 않다는 개념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다른 행성의 문명을 탐색 하는 데 한층 더 노력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여기에 해결되어야 할 어 려움은 무수히 많지만, 만약 긍정적인 결과가 얻어진다면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둘째, 오늘날엔 신뢰를 잃긴 했지만 그전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던 주장, 즉 생명이 서서히 발생했다는 주장이 그처럼 강고하게 전체적 합 의를 얻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관점이 그만큼 합리적으로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이 책 이외의 여러 글에서 되풀이해 주장했듯이, 나는 과학이 진리를 향해 방향지어진 객관적인 기계가 절대 아니며, 열정과 갈망, 문화적 편견 등에 의해 영향받는 뭇 인간적 활동의 전형이라는 관점을 강력히 지지한다. 문화에 얽매인 사고의 전통은 과학 이론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특히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주제처럼) 상상이나 선입견을 제약하는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 억측이라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자신의 영역에 관해서 말하자면(17장, 18장 참조), 나는 점진론이 "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결코 비약하지 않는다) 라는 오래된 모토를 통해 고생물학에 가해온 강력하고 불행한 영향력에 대해 큰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 점진론, 즉 변화란 완만하고 착실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개념을 암 석에서 직접 판독할 수 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것은 공통된 문화적 편견이거나, 또 부분적으로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세계에 대한 19 세기 자유주의의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객관적이라 생 각되는 우리들의 생명 역사 읽기를 지속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점진론적인 가정을 통해서 생명의 기원에 관한 그 밖의 어 떠한 해석이 내려질 수 있을까? 지구의 원시 대기 성분에서 DNA 분자 까지에는 거쳐야 할 엄청난 단계가 가로놓여 있다. 그러므로 수십억 년 에 걸쳐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식으로 무수한 중간 단계를 건너 며 힘들게 진행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는 생명의 역사는 일련의 안정적인 상태들이고, 그 상 태들의 연속은 급속하게 발생하면서 다음 안정기를 수립하는 큰 사건들 에 의해 여기저기에서 단속되어punctuated 있다. 원핵 생물은 캄브리 아기의 '대폭발'이 있기까지 30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왔다. 이 대폭 발이 있기 천만 년 전후로 다세포 생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후 약 3억 7천 5백만 년이 지난 다음, 무척추 동물에 속하는 약 절반 가량의 과가 수백만 년이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멸종해버렸다. 지구 역사는 잘 변하지 않는 완고한 계가 하나의 안정된 상태에서 다음 안 정된 상태로 추진해가면서 이따금씩 맥동하는 일련의 움직임으로 모델 화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원소가 빅뱅big bang이 있었던 최초의 수분 동안 한꺼 번에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후 수십억 년의 기간은 이 대격 변적인 창조의 산물들을 개조해온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명은 그 정도로 급격하게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후 계속된 기간에 비한다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DNA의 뒤섞임과 진화 과정은 최초의 산물에 몇 차례 개 량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경외스러운 무언 가를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