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바꿔볼만한 인생 저자: 해롤드 셔먼(고동호 옮김) 출판사: 국일 문학사 차례 프롤로그 제 1장 젊음 그 눈부신 날에 아버지 몰래 흘린 땀 변명 신은 편애하지 않는다 실패의 뿌리 정열 정오의 인생 제 2장 내가 나에게로 자기신뢰 미운 오리 새끼 자기만의 화제 큰 바위 얼굴 덩치 큰 사나이 스미스, 드디어 약을 팔다 제 3장 어려운 시절 이성과 사랑 소심한 한 남자가 있었다 승소 아마데우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열차 소년의 상처 제 4장 아름다운 충고 미켈란젤로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 도라크 부인 나누는 행복 제 5장 그들은 그렇게 웃었다. 아름다운 부부 헬렌 트로벨 명의 웃음의 묘약 링컨의 웃음 걱정거리가 하나 없어진 셈이죠 웃지 않는 아내 범인 제 6장 나눔의 자리 헬렌켈러 남을 돌봄으로 고뇌를 잊는다 나의 친구 마음의 문제 꾀병 불시착, 그리고 표류 제 7장 내면의 힘 내면의 눈 호버트의 신경질 즐거운 인생 무명 복서의 어퍼컷 프로패셔널 조난자 제 8장 내 인생을 찾아서 크리미아의 천사 광산업자가 유명작가로 왼손을 위한 협주곡 그를 만날 것이다 또 다른 목소리 제 9장 개척하는 사람들 대통령 각하 신가요 나는 줄리어스 시저요 전화위복 건망증도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리틀 아메리카 봉사하는 미망인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 10장 위대한 승리 가수가 가사를 잊다 실연 당한 여자 사기 농구 시합 홀로 걷는 길 선거 행복 제 11장 후회 없는 인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자유인생 주고받기 메리 크리스마스 크레인가의 형제들 에필로그 프롤로그 아직도 생각나는 가슴아픈 일이 있다. 전에 나는 일 관계로 리틀록에서 친구인 폴 첸버와 그의 친구인 프레드 스탠리를 만나기로 되 어 있었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스탠리에게 전화했다. 그러자 폴도 아직 다른 도시에 있음을 알 게 되어 그날 약속을 없었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스탠리가 급 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셔먼 씨, 당신을 만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 잠깐 들러 주시면 반 갑겠습니다만... 나는 여섯 시까지 있으니까요." 그날 나는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가능한 한 관심을 기울이려 하고 있었으므로 스탠리의 목소리에서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 다. 나는 스탠리에게 "나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여섯 시까지는 찾아가 뵙죠."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의 스케줄 표에 즉시 스탠리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런데 일이 스케줄대로 척척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시가 지나버렸 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전화하기조차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쫓긴 듯 했던 스탠리 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를 만날 기회를 놓친 것을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다음날 신문을 본 나는 쇼크를 받았다. 스탠리가 전날 밤 사무실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한 것이 었다. '어제 스탠리를 만났더라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탠리처럼 마음이 거칠 어진 사람은 어떤 행동이, 혹은 어떤 말이 마음의 지주가 될지 모르는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작은 문제에 사로잡혀 있으면 타인에 대해 배려치 못한다. 나에게 도움을 청해 온 스탠리에게 힘을 빌려주지 못한 과실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실패의 한 가지다. 인생에 있어서는 누구나 각각 큰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것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것은 나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은 경우뿐인 것 같다. 남이 힘든 상황에서 재기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것에 의해 그 사람과 같은 실패를 하지 않고 지나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한 인간이란 자신이나 친구나 이웃에 대한 신뢰감이 강한 사람이다. 이 삼자에 대한 신뢰감 이 없어지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기력도 살아갈 힘도 잃어버린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탈출 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용기와 의욕이 용솟음쳐 최종적 으로는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제 1장 젊음, 그 눈부신 날에 남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힘의 테스트요, 남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고생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사랑의 테스트입니다. -웨스트코트- 아버지 2백 쌍의 아버지와 아들의 시선이 집중, 내 연설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 순 조롭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대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것은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강연가로서 살아왔지만 그 첫 실패를 한번도 잊 은 적이 없다. 그 실패가 있음으로 해서 오늘의 성공이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제 1차대전의 군복무를 마치고 막 귀환한 직후의 일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 임' 이라는 집회에 나도 초청을 받았다. 나는 아들 측의 대표로서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 하는 연설을 하도록 요청 받고 있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멋지게 연설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 날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연설문을 종이에 적어 거울 앞에서 수없이 암송하고 연습을 되풀이했다. 드디어 영광스러운 밤, 나는 군복을 입고 아버지와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일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 연설문은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품고 있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그대로 문장으로 만든 것으로 서 감정을 듬뿍 담아 쓴 것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연설 도중에 종종 고교시절의 친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장난꾸러기로서 옛날에 그 에게 지독히 혼난 적이 있었다. 그는 건너편 탁자에 앉아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장난기 가 넘치는 표정으로 혀를 날름 내밀었다. '저런 녀석!'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순간 완전히 암기하고 있던 연설문이 내 머릿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머릿속은 텅 비었다. 나는 말없이 망연히 서 있었다. 다음 말을 생각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의식과 무의식사이의 간격은 벌어지기만 했다. 이윽고 나 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울상을 짓고 테이블을 떠났고, 곧 머리를 감싸 안으며 주저앉고 말았 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매우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복받쳐 연설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참혹하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실패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마음속 깊이 맹세했던 것이다. 그날 귀가 길에 아버지는 그 사건에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해해 주 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하나의 정열과도 같은 강한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용해 나가자.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당 당히 피력할 수 있는 실력을 쌓겠다.' 는 생각이었다. 그 실패 때문에 내가 받은 충격은 매우 컸으며, 재기하는 데에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다. 그 뒤로는 기억이나 즉흥에 의한 연설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연설은 원고를 작성 한 다음에 그것을 읽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했는데도 청중들 앞에서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를 필 요로 했다. 손과 무릎은 덜덜 떨렸고, 심장은 두근두근 가슴이 괴로울 정도로 뛰는 것을 스스로 도 알 수 있었다. 이토록 괴로운 싸움을 계속해도 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약해지곤 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땐 나는 아버지의 면전에서 실패한 지난날을 생각했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다시 멋있게 연설할 수가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의욕이 솟아나 두렵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주어진 찬스에 차례로 맞서갔다. 남 몰래 흘린 땀 나는 인디애나주의 마리온에서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고장에서 새로 라이온즈 클럽이 결성되어 나는 클럽의 간사로 지명되었다. 나는 기꺼이 그 직책을 수락했다. 그것은 간사가 되면 오찬회 때마다 클럽 회원들 앞에 서서 지난번 회의 때의 의사록을 낭독하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을 몇 개월 계속하는 동안에, '단지 원고를 단조롭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메모 같은 것을 보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메모 없이 자기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클럽 결성회의 밤에 있었던 일이었다. 간사들은 각자 제자리에 앉았다. 회장의 연설이 있었다. 회장에 선출된 사람은 유망한 실업가인 데이브 부르맨탈 씨였다. 그는 우선 회장으로 선출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자기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에 의장은 다른 사람이 맡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 다. 그리고 의장이 갖는 방망이를 나에게 건네주고 의장에 지면, 모두에게 소개했다. "여러분, 셔먼 씨입니다. 셔먼 씨, 지금부터 당신이 회의를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만약 나에게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주 흥분해 버렸을 것이 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최초의 충격이 가라앉자 약간 진정되면서 어떻게든 직책을 수행할 수 있 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회는 어색하였지만 클럽의 회원들은 나에게 호의적이어서 나를 회의의 진행 역으로 인 정해주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를 맡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마리 온에 온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전날의 그 실패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일이 있을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것저것 고민하며 혼자서 장시간 연습하고 있었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변명 실패에 대해 변명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된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고, 또한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변명은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변명은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대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변명은 자신해서 자신의 과실을 정정하는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약 점을 극복하고 재능을 신장하여 개성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한다. 지난날에 왜 실패했는가. 자신의 실패를 환경의 탓으로, 혹은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 은 없었는가, 순조롭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인생을 엉망으로 만 들만큼 사건을 일으킨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면, 그리고 그 사고가 정신적으로 패배시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쁜 일만을 차례로 일으키고 있다면 과연 이러한 태도를 취해야만 할 것인 가. 지난날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역시 자신을 잠식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읽기를 멈추기 바란다. 여기까지 정독했는가? 이 책을 다 읽고 아무 것도 얻은 것 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까지 말해온 것을 이해하고 납득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즉 그것 만으로도 어떤 경우의 실패이든 그 실패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 다. 나의 이 말뜻을 이해하기 바란다. 지난날의 실패가 공포를 낳는 것이라면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 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한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의식 속에서 자력으로 작용하여 그 결과 바라지도 않은 상황이 나타나 다시 같은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노력도 전혀 하지 않은 채 오로지 희망 적인 관측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장래의 희망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불행한 상황도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뭔가를 행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신은 편애하지 않는다. 어느 날 큰바람이 아칸사스주를 엄습했다. 그 바람에 잭 제이슨의 집은 완전히 부서졌다. 그러 나 이웃에 사는 셀론 커티스의 집은 아무 일 없이 무사했다. 이러한 현실은 제이슨에게 있어 매 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제이슨은 경건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자기 집이 이런 식으로 파괴되는 것을 신이 그냥 그대로 놔둘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커티스는 교회에 나가지 않 는데도 그의 집이 무사히 지켜진 것이다. 그것은 제이슨에겐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정의 같은 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이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목을 매다는 편이 낫다.' 라고 자신의 불행을 원망했다. 그는 도움을 자청해 온 여러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런 데서는 더 이상 살지 않겠다. 이 젠 내 집을 가질 생각도 없다. 아내와 셋집에서 살 생각이다. 이번에는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 이 재물을 잃는 고통을 맛보면 되는 것이다.' 제이슨은 토지를 이웃사람에게 처분하고 그 고장을 떠났다. 그 토지를 사들인 커티스는 즉시 새 집을 지었다. 그런 큰바람이 두 번 다시 똑같은 길을 지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 문이었다. 한편 제이슨은 불안과 공포를 가슴에 품고 역경에 맞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 후 얼마 안 되어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해 차까지 날려버리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제이슨은 눈을 떴다. 살아있는 이상, 재난을 피하려고 해도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길을 걷다가도, 목욕을 하다가도 부상당할 수가 있다. 불행을 당했을 땐 그 상황 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즉시 취해야 한다. 제이슨이 즉시 커티스에게 찾아가 자기의 옛 토지 위에 지은 새 집을 분할상환으로 다시 샀으 면 좋겠다고 교섭을 했다. 커티스는 쾌히 응해주었다. 그리고 커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새로 지은 이 집으로 한 밑천 잡으려 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당신이 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 다음에 파괴당 하는 것은 자기 집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생각을 말해봤자 그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신이 편애 심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 는 사람만을 구해 주십니다." 그래서 제이슨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세에서 뭔가를 하려고 태도를 바꿈으로서 다시 행복한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태도를 바꾸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원히 비극적인 생활을 탈피하지 못한 채 불행한 생애를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실패의 뿌리 우리는 실패에 대한 기억은 가능한 한 뇌리로부터 멀리하여 잊어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실패 는 잊혀진 것 같아도 싹만을 잘린 잡초처럼 다시 돋아나 우리를 괴롭힌다. 실패의 뿌리는 공포, 의심, 열등감이라는 형태로 끝까지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떠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를 원해도 이전의 실패가 때때로 고개를 쳐들어 전망을 빗나가게 하 거나 자신을 잃게 한다. 그 결과 자신을 잃고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옛날의 실패가 어째서 이토록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이 영향을 벗어날 길은 없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은 대지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의식' 이라는 땅에 심은 것은 뿌리를 내려 그에 어 울리는 행위나 사고방식을 낳는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하나의 실패는 연쇄반응이 단절 되지 않는 한 차례로 실패를 낳는다. '갖는 자는 얻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자는 그 얼마 안 되는 소유물마저 빼앗길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매우 불공평한,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을 문득 감지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갖는 자'란 곧 가지려고 노력을 해 왔던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욱 좋은 것을 더욱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가질 수 없는 자' 란 정말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속에 뭔가를 가지려고 하는 기력조차 갖고 있 지 않다. 이런 인간은 얼마 안 되는 것마저 잃을지도 모른다. 인생에 소용이 되는 뭔가를 얻으려 원하는 경우에는 먼저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꼼짝 않고 바라보고만 있으면 행운은 결코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실패했을 때에는 그 실패로부터 도망치거나 눈을 감고만 있으면 그 실패를 결코 뛰어넘지 못한다. 실패의 경험을 의식의 안쪽 깊은 곳에 아무리 밀어 넣더라도 실패에 봉착했을 땐 마음속에 이전의 실패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소극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고, 그것이 마당에 돋 아난 잡초처럼 의욕과 활력을 빨아올리기 시작한다. 지난날의 실패가 현재 닥쳐온 실패의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가. 천 만의 말씀이다. 방파제는커녕 장차 보다 큰 실패를 일으키는 유인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낙망할 필요는 없다. 실수나 경험부족에서 오는 판단의 착오가 실 패의 방아쇠가 되었다 하더라도 뒷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실패의 원인이 된 어떤 요소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취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에 더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실패를 냉정히 바라보고 그 실패로부터 건설적인 교훈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기 마음속에 소중한 금맥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경험이라는 금맥이다. 가령 그것이 불 행한 것일지라도 소중한 금맥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으로부터 배우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실생활에 응용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지금 더듬어 가고 있는 길을 일찍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더듬어 갔다는 것을 알면 용 기가 솟아날 것이다. 편안하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공하는 것이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외관의 화려한 업적밖에는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함에 있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비뚤어진 근성을 버리면 지난날에 쌓아온 경험은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실행에 옮기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열 나이가 40세인 엘리스 로이드 부인은 자신의 생활이 파탄에 빠진 것으로 보았다. 건강을 해쳤 고, 평온치 못했던 결혼생활도 이윽고 이혼이라는 종지부를 찍었다. 생활을 다시 세우려고 로이드 부인은 연로한 어머니와 함께 켄터키로 집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는 학교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문명도 뒤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사는 통나무집에 는 창문조차 없었다. 그 고장사람들은 그 지역 이외의 일들에 관해서는 아주 무지했다. 로이드 부인은 주민들에게 무엇보다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에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뉴잉글랜드에서 온 여성에게 학문을 배운다는 뉴 스는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제공 한 넓은 토지에 로이드 부인과 그녀의 노모를 위해 창문이 있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마을 최초의 학교가 되었다. 로이드 부인은 대학시절의 여자친구들 40여 명에게 지역주민들을 위한 교육계획을 밝히고 기부 를 의뢰하는 편지를 썼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가슴 훈훈한 여러 통의 답장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로이드 부인의 교육계획은 시작되었다. 주민들의 지식에 대한 욕구는 매우 왕성해 서 학교는 새 교실을 필요로 했고, 새 교실은 역시 그들의 손에 의해 신축되었다. 이에 따라 교사 의 보충도 필요했다. 로이드 부인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교사를 양성하는 한편, 그녀의 친구들 가 운데서도 몇 사람을 선발, 교사로 채용했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현재, 로이드 부인은 86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 교까지 이 학교의 운영자금은 모두 로이드 부인이 친구들과 지원자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얻어진 기부금이다. 그러나 그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재정난 때문에 학교운영이 궁지에 몰려 의기소침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신에게 이렇게 기도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주소서. 그러면 타이프를 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기력을 다하여 친구들에게 지원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학교는 살아났다. 엘리스 로이드 부인이 켄터키에서 역경에 부딪혔을 때 그녀는 자기가 40세라는 사실에도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그녀는 86세인 지금에도 현역에서 교육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 로 훌륭한 것은 그녀가 같은 의욕으로 충만한 수백 명이라는 지원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근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행복하다. 갖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근성을 배우고 기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선 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전력을 다해 보라.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관없다. 우선 전력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해답이 나온다. 누구나 처음부터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는 없다. 물론 단숨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런 행운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수가 극히 적다. 게다가 그들의 성공을 오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공을 유지하는 경험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의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 너무나 빨리 과중한 책임 을 떠맡게 되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너무 빨리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에 대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의 각 과정을 착실히 밟아 가면 틀림없이 성취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쓸데없다고 생각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적당히 다루어서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작은 일에 무관심하고 무성의하게 대하 는 습관이 붙으면 당장 큰 문제에 부닥치더라도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헨리보엔이라는 한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큰 돼지우리를 힘겹게 지었지만 그의 친구들 은 그에 대해 말이 많았다. "돼지 따위에겐 돼지우리의 크기가 필요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보엔은 그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그만의 방법으로 언제나 성공을 거두어 왔 다. 그가 기르는 돼지를 비롯해서 그 밖의 전시품은 시의 콘테스트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다.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리고 더욱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가령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어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거나 잘못을 범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선택 하는 권리를 버리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은 로봇이다. 로봇에겐 감정도 자선의 마음도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그러나 우 리는 자기 자신을 자신이 그리는 이 상상으로 접근, 생활을 향상시켜 실패를 장래의 성공에 도움 이 되도록 하는 훌륭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오의 인생 헨리 피터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실업이라는 불안을 극복했는지를 알아보자. 서부지역에 있는 큰 공장의 야간경비로 있던 헨리피터스는 그럭저럭 정년을 맞을 나이가 되었 다. 그러나 아직 건강했기 때문에 그대로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당시 그의 상사였던 제이크 패트리지는 자기가 지금의 지위에 있는 한 결코 헨리를 퇴직시키지 않겠다고 보장해 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이크는 심장이 나빠져서 그 공장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이크의 후임으로는 그보다 젊은 맥스 클링커가 부임하게 되었다. 이 상사 아래서 헨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헨리는 현재의 급료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정년 이후 에도 계속 근무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이 신임상사에게는 헨리의 희망을 받아들일 낌새가 엿보 이지 않았다. '머지않아 사표를 내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헨리는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헨리는 맥스가 자기를 가리켜 '노인' 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역시 그는 나를 노 인으로 보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쫓겨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맥스는 헨리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헨리 혼자 서 그렇게 속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장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는 자 기가 언제 해고당하더라도 충격을 받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생각에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입사 40년이래 가장 일을 잘했 다. 그와 동년배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나이쯤 되면 노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그가 야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을 때 맥스 클링커의 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화제가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것임을 안 헨리는 멈춰 서서 엿들었다. 맥스는 헨리의 야근동료 한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제 헨리 피터스의 근무기록을 보았는데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 왔을 때 그는 아 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의 그를 보면 침울한 것 같다. 그가 전처럼 원기를 회복하지 않는 한 사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을 들은 헨리 피터스의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귀가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그는 이전처럼 구김살 없는 명랑한 호인으로 되돌아갔다. "헨리 씨, 당신은 아주 밝아졌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만, 그러나 이젠 끙끙대며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깨끗이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해 야 하니까요." 제 2장 내가 나에게로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거나 간 에 그것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누구도 그에게 주거나 그로부터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 다. 그것은 분명히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의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자기신뢰 '자신' 이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전에는 '확신을 갖고 있는 상태' 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나는 이 정의에 좀더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즉 '자신이란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 더라도 그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또 이용하는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있는 상태이며, 어 떠한 실패도 성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태' 라고 말이다. P. T. 바남이라는 유명한 흥행사가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뉴스에 단잠을 깼다. 그의 서커스 가 플로리다에서 겨울 흥행을 하고 있었는데 화재를 만나 다 타버렸다는 소식이었다. 바남은 침 대에 앉은 채 그 보고를 들었다.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은 바남이 지시를 내릴 것으로 믿고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바남은 '오 늘밤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잠이나 자자.' 고 조용히 말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막대한 재산이 잿더미로 변하고 값비싼 동물들이 불타 죽었다는 데도 이처럼 무심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신' 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후 바남은 '일어난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는 생각을 믿고 실행했다. 그래서 불과 6개월 이 못되어 그의 '사상 최대의 쇼' 는 화재가 있기 전보다 더욱 융성 발전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성공으로 이끄는 키 포인트인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 자기가 범한 실패나 조건 때문에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관찰하면 대부분의 사람 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임을 이유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런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가망이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등감에 고민하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는 자신을 갖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체념한 채 아주 평범한 생활에 만 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정신적인 것에서 오는 것과 신체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있다. 시카고에 있는 대규모의 사회사업단인 할하라스를 창립한 제인 애덤스는 신체장애자였다. 그녀 는 어렸을 때부터 그 장애에 강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 그녀는 척추만곡증에 걸려 등이 굽고 머리가 한쪽으로 기우는 신체장애자가 되었다. 그녀의 부친은 그 직역 유명인사의 한 사람으로 매우 남성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요일이 되면 연미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교회에 나갔다. 당시 9세였던 제인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의 모 습을 비교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웃의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녀의 아버지는 '미운 오리새끼'를 가진 부모라는 오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 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애덤스씨는 제인을 데리고 이웃 마을에 갔다. 그리고 관청에 들러 볼일을 보는 동안에 상가의 쇼윈도라도 구경하며 기다리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그는 몇 명의 신사들과 함께 관청에서 나왔다. 아버지가 자기를 찾고 있는 것이 제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로등 그늘에 숨었다. 그의 딸이 이렇게 보기 흉하다는 것을 저 신사들에게 알게 해서는 안되겠 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덤스씨는 그녀를 발견하자 명랑하게 손을 흔들면서 세 사람의 신사들과 함께 걸어왔 다.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오자 명랑한 몸짓으로 친구들에게 소개 했다. 그 신사들도 정중히 답례하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이 때의 일을 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굽어있는 것은 나의 마음이지 등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제인은 곧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인생 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자 다른 사람의 불행이라든가 괴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도 할 수 있게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은 두 번 다시 갖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 게도 어른이 된 뒤에는 교정하는 코르셋을 착용했기 때문에 그녀의 신체적 장애를 알아차리는 사 람은 거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일어난 것'을 어떻게 받아넘기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그 점이다. 자기만의 화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장점도 갖고 있다. 자신을 잃는가 하면 원래 갖고 있는 우수한 능력이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수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낯선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소극적인 인간이 되어 남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낯가림' 인데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 있는 화제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화제라도 좋다. 화제를 선택했으면 그에 대해 좀더 연구해서 남보다 박식해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 나아가면 그에 대해 보다 깊은 흥미와 자신을 갖고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적지 않게 흥미를 가질 것이며, 나아 가서는 자신에 대한 평가도 높아질 것이다. 요즘 나는 교육정도가 높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 남녀의 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모임에 한 사내가 하늘을 나는 비행접시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참가자 전원이 그 이야기에 열중했 다. 그 사내는 대학도 나오지 않고 유복하지도 않았으며 사회적 명성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었다. 그러나 비행접시에 관해서 만은 권위자로서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화제가 바뀌어 그는 '듣는 사람'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도록 재치 있게 조정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비행접시로 되돌아오자 그는 다시 그 자리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다른 사람 앞에 섰을 때 '그 일' 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고 잘 이야기할 수 있 는 능력, 그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번 그런 능력을 몸에 익히면 '그 일' 이외의 것 에도 흥미가 솟아나 지식을 넓혀나갈 수 있게 된다. 어느 인기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열등감과 심한 자의식을 타인에 대해 마음으로써 흥미를 나타냄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 다." '그 이야기 좀더 들려주세요.' '그런 일을 하신 다니 정말 부럽군요.' 라는 등의 말로 그녀는 누 구에게나 적극적인 흥미를 나타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매우 즐거워진다. 따라서 그 자 리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그녀는 그러한 인기자가 된 것이다. 사람은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는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된다. 큰 바위 얼굴 나다니엘 호돈의 고전적인 작품인 '큰 바위 얼굴' 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소년 어 니스트의 얼굴이 성장함에 따라 로키 산에 새겨져 있는 미국의 훌륭한 인물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는 것을 그린 것이다. 소년은 여러 해 동안 매일 그 얼굴을 바라보며 멋진 그 모습에 동경심을 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이야기하는 훌륭한 인격을 자기 속에 그리고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얼굴도 성장과 함께 그 산에 새겨진 얼굴을 닮게 된 것이다.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본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친구라든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도 칭찬을 받을 만한 자질이 있다. 그것을 본받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고 거꾸로 다른 사람 의 결점을 고치는 교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유명한 배우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릴 때 아주 심한 열등감으로 인해 무 척 고통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는 약간 '늦되는 아이'였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바보취급을 받으 며 자라야 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는 그들만큼 현명하지 않다고 체념한 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숨기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젊은이답게 대답한 행동을 취하다가도 공적인 장소에 나 오기만 하면 그는 자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겁쟁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 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윽고 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 서서 자기 이외의 인물을 연기해 본 결과 자 신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된 그는 매우 놀랐다. 어느 날 드라마의 대역에 고민하던 연출자는 적극적이면서도 용기 있는 인물의 역을 그에게 맡 겼다. 지금은 일류 배우가 된 그의 말에 의하면 그때 그 역이 최초의 전기였다고 한다. "그 역을 매일 밤 연기함으로써 자기 속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용기에 충만한 인물을 연기 함으로써 무대를 내려온 뒤에도, 나에게는 아직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가 연기한 그 인물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행동했다. 무대에서 연기한 그 인물의 행동양식이 그냥 그대로 내 실생활에서의 패턴이 되어 매일 그 인물의 성격을 모방했다. 덕분에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전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자신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취한 방법은 대성공이었다고 믿는다." 자신감에 차 있던 인물을 흉내내어 연기하려고 생각해도 스스로 자신을 갖고 연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자신이 성취해온 것들은 모두 머릿속에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큰 것을 성취할 자신이 없으면 우선 작은 목표를 실행에 옮겨 보도록 한다. 그리고 일단 그 목 표를 실행에 옮겼다고 가정해 보는 것도 좋다.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 다.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창조력이 때에 따라 장에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작은 목표를 실행하는 데 성공하면 이번에는 좀더 큰 목표를 세워보자.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 다는 자신감이 보다 큰 힘과 신념을 줄 것이다. 덩치 큰 사나이 자주 다른 사람에 대해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은 마음속에 열등감 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려고 그러는 수가 많다. 그런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나도 그러한 타입의 사람에게 겁을 먹고 복종했다. 그러한 사람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큰 소리를 지르기만 해도 나는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겁에 질리곤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러한 인간의 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상대방이 그들을 그다지 대단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는 태도를 표시하면 그들은 당장 태도를 바꾼다.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우월감을 갖고 있던 그들이 그때부터 상대방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것을 기회로 좋은 관계가 생겨난 다. 뉴욕으로 나와 처음 1년 동안 나는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입이 보잘것없 기 때문에 정기수입이 있는 편집관계의 일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어느 날 '프라이스 카펫 앤드 러그 뉴스' 라는 회사의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즉시 응 모했다. 대기실에는 70여명의 응모자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나는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한사람 한사람 라이벌들을 관찰했다. 모두들 나보다 연장자로서 뉴욕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사람들로만 보였다. 내 차례까지 오기 전에 채용자가 결정되고 말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잡한 그 방에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왜 이토록 치열한 경쟁에 휩싸이게 되었는가를 생각했다. 지난날 나는 신문 관계의 일을 익힌 후 작은 광고대리점에서 카피라이터를 한 적이 있었다. 찬 스만 있으면 이 출판업계에서 편집자로 능히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찬스 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에어 컨이 없던 시대여서 각 사무실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수화기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사람은 면접을 담당한 헝크 프라이스였다. "뭐라고? 이건 멋진 광고야. 그리고 신문에 실을 준비도 벌써 다 돼있단 말야, 찰리. 내가 썼거 든.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겐 관계가 없네. 이걸 버린다고? 그건 안돼. 신문에 실을 준비도 벌써 대 돼있어, 챨리. 이젠 다시 쓸 시간도 없네. 편집 담당자가 지금 여기 없어. 게다가 면접도 해야 하고. 나 혼자선 도저히 불가능해. 뭐라고? 변경하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야. 그래서 말했잖아. 그것은..." 전화의 상대방인 '찰리'가 먼저 수화기를 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찬스가 아닌가. 방문도 열려 있다. 당장 들어가서 자기 소개를 해야 한다.' 찬스는 바로 이때였다. 헝크 프라이스가 다시 써야 하는 광고문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 잡지 않 으면 안되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문 쪽으로 달려가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다부진 몸매에 머리 가 텁수룩한 프라이스가 굵은 테 안경을 쓴 채 혼자 있었다. 흐트러진 데스크 위에는 두 페이지 에 걸친 광고가 펼쳐져 있었고, 문을 등진 채 푸른 색연필을 손에 든 프라이스가 투덜대고 있었 다. 나는 집무실 안쪽에서 노크했다. 그는 움찔하며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왜 거기 서있어?" "문이 열려 있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셔먼이라고 합니다. 편집일로 뵙고 싶습니다." "편집 희망자라면 저쪽 방에 얼마든지 있지. 여기는 내방이야. 표찰도 못 봤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온 것입니다. 저쪽 방에서는 도저히 당신을 만나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 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기선 만날 수 없어. 바빠서 말이야. 나가서 기다려." 그는 또 한번 언성을 높였다. "프라이스 씨,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에 당신의 전화통화를 들었습니다. 나는 광고 카피를 쓴 적이 있습니다. 내게 그 광고를 손질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 까?" 나는 그에게 호소했다. 그는 나의 호소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자네는 뉴욕사람이 아닌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중서부에서 왔습니다." "그래, 실은 나도 중서부 출신이야." 그의 말투가 밝아졌다. "자, 셔먼 군, 이리 와 앉아서 이 광고 좀 봐 주게.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에겐 색다른 아이디어 가 있을 것 같은데. 여러 면으로 생각해 보았으니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야단났네. 이미 카피를 싣기 위해 신문의 페이지도 비워 놓았는데 말야. 자네가 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네. 만약 내 마 음에 들면 그것을 가지고 찰리 폴슨에게 가서 보여주게. 그리고 거기서 OK하는 경우엔 자네에게 10달러를 주겠네." 프라이스는 광고를 나에게 건네주고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으면서 이렇 게 부탁했다.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그 대신 만약 OK를 받는 경우엔 나를 편집자로 채용해 주시기 바랍 니다." 프라이스는 굵은 손가락으로 텁수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알았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폴슨은 내 첫째 단골이자 절친한 친구야. 그의 광고 카피 때문 에 가끔 옥식각신하긴 하지만, 어쨌든 자네가 그를 납득시키는 경우엔 일을 주겠네. 하지만 우선 자네 솜씨부터 보여 주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 나서 프라이스는 자기 의자에 앉아서 응모자의 면접을 시작했다. 그 곁에서 나 는 그들을 등지고 광고 카피와 캐치프레이즈를 손질했다. 30분이 채 안되어 나는 잠깐 쉬고 있는 프라이스에게 광고를 되돌려 주었다. 그는 그것을 손에 받아들고 한참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잘 됐어. 속히 이것을 가지고 5번 가에 있는 택스타일 빌딩으로 가서 폴슨에게 보여주게. 내 심부름으로 왔다고 말하면 되네. OK를 해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이것을 그대로 신문에 실을 수 있고 자네는 편집자로 채용이 결정되는 걸세." 나는 이제까지 이렇게 먼길을, 게다가 혼잡한 거리를 달려 본 적이 없다. 폴슨 러그사의 사무실 은 넓은 공간에 가지각색의 카페트와 깔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플로어의 한쪽 구석에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만나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기도 전에 저쪽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도대체 몇 번씩 말해야 알겠나? 무엇 때문에 자네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나?" 이윽고 방문이 열리면서 녹초가 된 한 사람의 세일즈맨이 나왔다. 그리고 그의 등뒤에서 다시 폴슨의 큰 소리가 울렸고, 이어서 큰 웃음소리도 흘러나왔다. 나는 그에게 과감하게 맞설 자신을 상상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솔직 히 말해서 나는 조금 전에 혼이 난 세일즈맨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 그처럼 큰 소리를 내는 위압 적인 사람이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편집직을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헝크 프라이스라는 '벼락영감'과의 대결도 감히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사이가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큰 회전의자에 버티고 앉아있는 사람은 내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나이였다. 그는 나를 보자 꾸짖듯이 외쳤다. "거기 서 있는 젊은이, 무슨 일로 왔나? 용건이 뭐야?" "수정한 광고 카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의 목소리는 떨렸고 가슴은 두근두근했다. "어디 좀 볼까?" 폴슨은 카피를 빼앗듯이 받은 다음 책상 위에 펴놓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누가 캐치프레이즈를 고쳤나?" "제가 고쳤습니다." "좋지 않은데..." "전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나는 대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며 그는 시거를 입에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새로 수정한 캐치프레이즈가 왜 이전 것보다 좋고 효과적인가를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설 명했다. "그것은 자네 생각이겠지. 그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한 사람이 나라고 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생 각할건가?" 그러나 나는 양보하지 않았다.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캐치프레이즈로는 전체의 균형이 나빠질 뿐입니다. 그래 서 프라이스 씨가 좋은 바디 카피를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수정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반론했다. 폴슨은 광고에서 눈을 떼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언제부터 헝크 프라이스와 함께 일해 왔나?" "약 30분전부터입니다. 이 광고 카피를 수정하는 데엔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나는 단숨에 대답했다. 폴슨은 시거를 입에 물면서 말했다. "그래서 이것이 좋다는 말이지?" "아주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그가 납득할 만한 말을 골라서 그렇게 말했다. "만약 OK가 안되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폴슨은 엷은 웃음을 띠고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프라이스사의 카펫 앤드 러그 뉴스의 편집직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폴슨은 데스크 위에 놓인 펜을 들자 광고 위에 'OK' 라고 썼다. 그리고 사인을 마치자 나에게 건네주었다. 결국 나는 그 일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 후 찰리 폴슨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넓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것을 알기까지는 그의 퉁명스러운 태도와 사람을 겁먹게 하는 고함소리에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광고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광고를 쓰는 사 람에게 납득이 갈 때까지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만약 카피라이터가 자기가 쓴 광고 를 변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광고가 아니다.' 라는 것이 폴슨의 지론이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카피라이터를 격려하는 것이었다. 내가 순간적인 번뜩임으로 결국 폴슨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내가 광고에 대해 분 명한 자신의 의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로도 나는 프라이스나 폴슨과 같이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지만 그때마다 나는 의견을 분명히, 그리고 유머를 섞어가면서 말했다. 여기서 진짜 자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태 도를 취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떠한 간판을 걸든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스, 드디어 약을 팔다 세일즈맨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고민하던 제스 스미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판매비결을 터득 했는가를 소개하겠다. 폴란드 출신의 제스 스미스는 약품 판매회사에서 1년간 근무한 후 오리건 주립대학을 졸업했 다. 류머티스 치료약의 세일즈맨으로 종사하던 그는 세일즈 매니저와 함께 시애틀로 출장을 갔다. 약을 약국에서 팔기로 하고 류머티스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급료와 모든 경 비를 선불로 받았기 때문에 매출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세일즈 판매는 전혀 처음이었다. 8일 동안 노력했지만 약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의욕을 잃고 매 니저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습니다. 나는 세일즈맨으로서 부적격 적인 모양입 니다." 그러나 매니저는 그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대로 주저앉긴 했지만 약 을 팔러 다닐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다만 류머티스 환자에게 힘이 되려고 그들의 가정을 찾아다녔 다. 어느 날 그는 만성 류머티스를 앓고 있는 중년 부인을 찾아갔다. 그 부인은 그에게 고통을 호 소한 후 약을 한꺼번에 6병이나 사겠다고 주문했다. 그는 즉시 차를 몰아 약을 가져왔다. 그 환자 는 30달러라는, 당시로는 적지 않은 돈을 수표로 그에게 건네주었다. 스미스는 그때 세일즈의 비결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즉 '팔기 전에 우선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그것이었다. 물건만을 팔려고 하는 데서 실패한 쓴 경험으로부터 이 세일즈의 비결을 찾아낸 것 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제스 스미스는 세계 굴지의 천식 치료약 회사 경영진의 한 사람이 되었다.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판다는 것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은 모두 서비스라는 한마디 말로 집약된다. 비즈니스에 관계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가치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 3장 어려운 시절 인생은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루기가 쉬운 것입니다. 항상 그대가 해야할 일은 불가능을 극복하고, 과감하게 행동하고, 그리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입니다. -노리스- 이성과 사랑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들이닥쳤다. 그때 프레드릭 그레고리는 월가에서 주식 브로커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경제적 파탄을 비관,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빌딩의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대공황의 와중에서 그레고리는 어느 날 밤늦게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인기척에 잠을 깬 부인이 '잘 되었느냐' 고 물었다. 그레고리는 '만사 OK' 라고 대답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 게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는 전 재산을 몽땅 날리고 말았어요. 이 집까지도..." 부인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불을 밝혔다. 그리고 남편의 태연함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참을 수 가 없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면 안돼요." 그레고리는 아내를 포옹하면서 말했다. "나라는 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단 말이오. 나에게 당신 이 있고, 당신에겐 내가 있지 않소.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게 무엇이 있겠소. 잃은 것은 돈과, 돈으 로 살 수 있는 것뿐이오. 이 세상에는 돈이 얼마든지 있는 만큼, 언젠가는 우리에게로 돌아 올 것 이오. 그 일에 대해선 이젠 그만 생각합시다." 그후 그레고리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원상대로 재산을 복구할 수가 있었다. 그레고리는 역경에 처해서도 비탄에 잠기지 않고 자기 감정을 잘 조절했음을 알 수가 있다. 평 소에 이러한 태도로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은 역경에 부딪히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불굴의 정신 력과 능력과 판단력을 몸에 익혀나가는 것이다. 소심한 한 남자가 있었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친구나 은행의 대부담당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비참하다. 완전히 의욕을 잃고 자신감도 장래의 희망도 잃은 사람에게 누가 원조의 손을 뻗칠 것인가. 지금은 곤경에 처해 있지만 반드시 재기해 보이겠다는 자신감을 보이지 않으 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일은 잘하지만 소심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거나 급료를 올려달라 고 상사에게 요구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1천 달러의 수표를 길에서 주웠다. 그는 몹시 놀랐지만 회사에 도착해서 그 수표를 바라보자 어떤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수표를 품에 지니고 상사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용기를 다해 자신의 급료를 올려 줄 것 을 요구했다. '소심한 남자' 인 그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상사는 반론했지 만 너무나 강력했지 때문에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주운 수표를 가지고 은행으로 갔다. 그런데 은 행의 담당직원은 의심스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 수표는 가짜입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았을 때 그는 수표의 진위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1천 달러의 큰돈을 갖고 있다는 기분으로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소 전에 한 부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시애틀에 사는 레드포드 부인으로 조금 알려진 인물이 다. 당시 그녀는 죽은 남편의 사업동료인 앤드류 씨를 상대로 소송 중이었다. 남편의 유산을 처리 할 때 그녀의 재산을 부당하게 차압당했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죽은 레드포드 씨는 철물을 취급하는 사업을 했었는데 부인은 남편의 생전의 사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리고 앤드류 씨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소송에서 부인의 입장은 분명히 불리했다.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비로소 그녀는 이 것저것 깊이 생각했다. 부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셔먼 씨, 오늘 나는 증인 석에 섰을 때 뜻하지 않은 실수를 했습니다. 남편의 사업에 대한 질 문에 전혀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 소송에서 적어도 2만 달러는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 데, 이렇게 된 바에야 그 4분의 1이라도 받게 되면 다행이겠습니다. 이런 소송은 일으키지 말았어 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앤드류 씨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부정을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소송을 취하할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 결과를 예측한 다음에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이번 소송이 정말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기분을 솔직히 앤드류 씨에게 전하시오. 그가 어떠한 태도로 나오느냐는, 한마디로 레드포드 씨에 대한 그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승복하지 않을 텐데요. 패소를 인정하는 경우와 같기 때문에..."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옳은 일은 어디까지나 옳은 일인 것입니다." 나는 그녀를 계속 설득했다. "해야 할 일만 하면 만사는 올바른 길로 귀결된다는 법칙을 알고 있습니까? 이 법칙에 따라 오 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것을 말하는 일만이 상황을 호전시키는 방책인 것입니다. 부인이 그 소 송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앤드류 씨에게 그것을 말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품고 있던 반감도 해소될 것입니다." 나의 설득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셔먼 씨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다음날 다시 레드포드 부인이 찾아왔다. 그리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었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재판에서 나의 입장은 매우 불리했었는데, 그것은 앤드류 씨가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배심원들의 판정도 신통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에 겨우 앤드류씨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나를 피하려고 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소 놀란 듯한 그에게 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 것은 나의 오해 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습니다. 점심 후에 심리가 재개되었는데, 앤드류 씨는 오전과는 달리 온 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그의 변호인은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판장님, 나의 의뢰인은 원고와 피고의 대리인이 직접 대화를 나누면 화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 의한다는 재판장의 방망이가 울리자 나의 변호인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나에게 항의하 듯이 말했습니다. '당치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손을 떼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이기 때문에 정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의 힘이 되어 주기 바랍니다.' 30분 후에 앤드류 씨와 나의 변호인은 쌍방간에 화해가 성립되 었음을 재판장에게 알렸습니다. 이어 재판장은 심리의 중지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멋진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계속했다. "앤드류 씨는 나의 요구액을 웃도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이것으로 결정짓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남편과 공동명의로 구입한 부동산을 나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가격으로 인수하겠다는 것이 었습니다. 나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사건이 이렇게 빨리, 그리고 만족하게 끝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기적입니다. 나도 이제 셔먼 씨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드포드 부인의 이 일이 물론 기적 같은 것은 아니다.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라는 움직일 수 없는 원리 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부인은 스스로 초래한 나쁜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 함으로써 새로운 희망에 찬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상대인 앤드류 씨는 부인의 올바른 행동에 감화된 것이다. 아마데우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끙끙거리며 고 민하는 바람에 자기가 지닌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위대한 작고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극빈 속에서 수많은 명곡을 발표했다. 그는 사 업에 실패하고 빚을 지는 곤경에 빠졌다. 결혼까지 한 그에게 있어 나날이 늘어만 가는 빚은 이 만저만 고통이 아니었는데, 그의 고통도 아랑곳없이 아내는 낭비벽이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모차 르트는 늘 경제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죽는 그날까지 작곡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작품은 악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연주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으로는 프로듀서들이 큰돈을 벌고 있는데도 그는 불과 얼마 안 되는 개런티밖에 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 비재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 '마적' 등의 명곡은 그러한 궁핍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모차르트는 성공한 것이다.' 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명작이나 업적을 낳기 위해서는 고민이나 고통이 필요하다는 사람도 매우 많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현상에 안주하는 타 성 때문에 긴장감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긴장감이 없으면 훌륭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 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주위의 상황에 좌우되는 일없이 자신의 의지 하나로 목 적을 달성하는 타입의 인간이 있다. 또 다른 타입은 긴급히 돈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지위가 필요 하다, 인정을 받고 싶다는 등 어떤 동기부여가 있을 때 비로소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인데 세상에는 이런 형도 적지 않다. 인간 각자가 동기부여의 자극이 강한 것일수록 지불하는 노력도 그만큼 커진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열차 인생을 건설적으로 살려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은 터무니없는 꿈을 꾸지 않는 한 대부분의 일 을 성취할 수 있다.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 장애에 부딪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쌓은 노력이 새로운 능력을 낳을 수도 있다. 목표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불해야 할 노력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인간의 습성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칫하면 안이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게 되는 그 점이다. 노력해서 뭔가를 얻기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편이 무난하다. 그래서 '동기부여' 라는 것이 주효하게 된다. 안이에 빠지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 를 분발시키는 어떤 동기가 필요하다. 할 마음을 잃은 인간은 기관차와 떨어진 화차와 같은 것이다. 그 화차에 아무리 가치 있는 상 품을 싣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머물러 있는 한 상품가치는 없다. 또한 그 자체의 동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관차에 접속되지 않는 한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자기를 끌어주는 기관차와 같은 에너지를 자기 속에 기를 필요가 있다. 그 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은 언제까지라도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기관차와 같은 추진력, 즉 '할 마음' 은 자신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능 력이라든가 소망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할 마음을 눈뜨게 하는 것은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없다. 일찍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할 마음을 일으켜 능력을 꽃피웠다. 누구도 하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다른 사람의 원조를 받을 수 있을 때에는 받아도 좋다. 그러나 주체는 항상 자기 자신임을 염 두에 두어야 한다. 어떠한 때라도 자신의 감정을 냉정히 조절할 수 있다면 역경 같은 건 조금도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년의 상처 켄자스시티의 서장은 H. 바틀이 어떻게 빈곤을 딛고 일어섰는가를 이야기하겠다. 바틀 씨는 키가 190cm 에 체중이 130Kg 이나 되는 '켄자스시티의 거인 시장'으로 알려져 있었 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업적을 수없이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바틀 씨는 27년간에 걸쳐 미국 보이스카우트 협회의 켄자스시티 지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또 프레스비텔리안 교회의 장로이자 카톨릭청년회 평의회 의원이며 유다 크리스천 국민회의의 집행 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모두 57개의 단체에 소속, 사업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기꺼이 참여했 다. 바틀 씨는 항상 최선을 다해 일하는 한편, 현명한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새 유복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보아 왔지만 바틀 씨만큼 마음이 충만하고 사업의욕이 왕성하며 인 간적인 매력이 풍부한 사람은 일찍이 본적이 없다. 바틀 씨 곁에 있기만 해도 용기가 솟아난다. 그는 천부적인 리더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갖고 망 설임 없이 목적을 향해 매진한다. 그러나 해답은 바틀 씨가 겪은 소년시절의 환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틀 씨는 프레스비텔리안 교회의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자신의 뒤를 이어주기를 바랬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난한 목사의 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 다. 신에의 봉사는 가난한 생활을 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그가 14세 때에 경험한 어떤 일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뼈저린 경험이었다. 첫 데이트를 신청한 소녀에게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 유는 그가 다른 사람이 입던 낡은 옷을 얻어 입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리고 목사 관의 거울 앞에 서서 두 번 다시 이러한 모욕은 받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했다. 소년시절에 받은 굴욕을 발판으로 삼아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의 노력은 굴욕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틀 씨는 여러 가지를 다짐했다. 그리고 의지력과 판단력, 풍부한 상 상력과 신앙심으로 그것을 결실케 했다. 그 최초의 맹세야말로 충만한 바틀 씨의 생활방식을 결 정지은 바로 그 것이다. 제 4장 아름다운 종교 나의 친구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무 관심한 사람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쳐 줍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 람은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나에게 자립심은 가르쳐 줍니다. -딩거- 미켈란젤로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애를 더듬어보면 그들은 역경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공의 발판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의 인생에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은 많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느 석공의 아내인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부친이 망치로 돌을 쪼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다. 후에 그는 조각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체험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어머니는 그가 6세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괴짜였기 때문에 아버지나 형제들로부터 문제아로 취급되었다. 천성적인 예술재능이 있었던 그는 집에서나 학교에 서나 벽화만 그리고 그 이외의 것에는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는데 몇 번씩이나 실패했다. 겨우 일자리를 하나 구하게 되 었는데, 그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메디치가의 정원에서 조각용 대리석을 다듬는 일이었다. 그의 일은 잡일에 불과했다. 어느 날 그는 조각을 했다. 그것이 고용주이자 유럽 제일의 은행가인 로렌쯔 메디치의 관심을 끌게 했다. 로렌쯔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숨은 재능을 발견하자 즉각 그를 자기의 호화저택으 로 초대했다. 그곳에서 미켈란젤로는 로렌쯔의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조각의 재능을 펼쳐갔다. 1492년에 로렌쯔가 사망했을 때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의 독보적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로렌쯔 사후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고대 유적을 관찰하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이 로마라는 범죄에 가득찬 거리에서 최초의 걸작 '마돈나의 팔에 안겨 죽는 그리스도상'을 조각하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세상에서 그 명성을 인정받게 되자 당시의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가 자기의 묘 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미켈란젤로는 즉각 이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관 주위에 38명의 예언자, 성인의 상을 배치한 묘를 고안했다. 율리우스 2세는 이러한 구상을 크게 기뻐하고 곧장 묘의 제 작에 착수하라고 미켈란젤로에게 명했다. 이윽고 바티칸 내부에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음모가 획책되었다. 주동자는 라파엘로와 그의 친 족인 브라만테였다. 브라만테는 성 폴사원 건설의 책임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교황에게 특별히 신임을 받고 있는 미켈란젤로를 시기했던 것이다. 그들은 율리우스 교황에게 생전에 묘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언하고 묘의 제작 중 지를 간언 했다. 그리고 그 대신에 미켈란젤로에게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채색시키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개인의 자그마한 예배당이다. 그리고 라파 엘로 자신에게는 바티칸 궁전의 매우 큰 객실을 채색하게 해달라고 간언 했던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채색하라는 교황의 명령에 미켈란젤로는 거절했다. "저는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닙니다. 그 일은 라파엘로가 적격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자기 주장을 바꾸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마지못해 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시 스티나 성당 내부를 세밀하게 조사했다. 그 성당의 천장은 상당히 높았고 벽면의 경사는 급하여 그림을 그리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조건이었다. 만일 미켈란젤로의 지금까지의 삶이 평탄하고 어려움이 없는 여정이었더라면 그는 이 난제에 부딪히자마자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는 옅은 어둠의 빛을 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모두 프레스코 화법으로 채색하기 로 생각했다. 프레스코 화법이란 밑에 바른 회반죽이 반쯤 말랐을 때 수성도료로 그려 가는 벽화 제작의 한 방법으로, 채색된 빛깔은 회반죽이 마르면 영구하게 그 안에 침투해버리는 것이다. 도 료는 회반죽에 칠한 순간에 말라버리기 때문에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화가로서 상당한 역량이 요구되는 화법이다.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재능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몇 차례 갈등을 겪었지만 막상 이일에 착수하게 되자 그의 머릿속에는 영감이 넘쳐 흘렀다. 그는 침식조차 잊고 미친 듯이 천정화를 그려나갔다. 성당의 문에는 자물쇠를 채우고 아 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흡사 성안의 유폐자와 같은 생활이었다. 그로부터 4년간, 미켈란젤로는 발판 위에 드러누워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 노아의 대홍수 등 성서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천장에 차례로 재현해 갔다. 마침내 그는 조각 가에서 위대한 화가로 변신해 갔다. 미켈란젤로를 거들어주려고 한 화가도 있었지만, 미켈란젤로에게 있어서 그들은 벽에 낙서하는 아이와 같은 사람들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의 구상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의 천 재성을 알아준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흔해빠진 풍물 가운데에서도 그 자체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정열을 묘사하려고 했다. 그는 몇 번이나 실패하여 비탄에 잠기면서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그려나갔다. 제작기간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지쳐버렸다. 드디어 천장화가 완성되고 교황이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 다가왔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을 성당 안으로 안내하여 천장 가득 펼쳐져 있는 프레스코 화를 보게 했다. 교황의 머리 위에는 세속을 초월한 세계, 숭고하며 위엄에 가득찬 세계가 있었다. 너무도 신성했기 때문에 입이 벌어진 채 다 물 줄 모르는 교황은, 숨을 죽이고, 소리도 내지 않고 벽화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만년에 특별히 교황으로부터 제단 벽에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미 켈란젤로는 완전히 늙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7년이란 세월을 발판 위에서 살아갈 결 심을 했다. 7년 후, 그는 최후의 장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그 그림은 천사들이 운명의 나팔을 불며 와서 선 한 사람은 천국으로, 악한 사람은 뜨거운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최후의 심판'을 표시한 것이었 다. 이 벽화는 미켈란젤로의 말년의 걸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제작활동은 계속되어 갔다. 그가 성 피에르 성당 돔의 설계와 감독을 맡았을 때 그는 이미 90세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 돔은 세계 에서 가장 큰 것으로, 그 안에는 10만 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가 있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행 복하고 평온무사한 소년시대를 보냈다면 고난의 벽을 뛰어넘고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나간다고 하 는 백절불굴의 투지를 지닐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풍요롭지 못했던 생활에서 그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불굴의 투지를 길렀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경험이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 이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런 말이 있다. '어떤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의 머릿속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부딪힌 온갖 경험을 슬기롭게 이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렇지 못했더 라면 그는 좌절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처럼 우리도 인생의 기로에서 어 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켈란젤로와 같이 위대한 인물은 우연히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인물은 자기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의해서 스스로 위대해진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 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왔던가 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이 아무리 마음 에 들지 않더라도, 또한 어려워서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지 않는 한 진보는 없다. 그러한 경우 해결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열을 가지고 그것에 매달려 극복하는 것이다. 어떤 상 황에 처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 면 어렵게 보였던 일을 멋지게 해치웠다고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새로운 적응성이나 가능성 이 생겨날 것이다. 부여된 일에 정열을 가지고 덤벼드는 자세는 자기의 장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 이다. 최대의 결과는 최대의 노력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쉽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실은 엄청난 노력을 경주한 결과 얻어진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든지 도중하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소한 일이라고 해서 대충대충하는 습관이 밴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적당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헛되고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개성과 재능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재능이라든가 개성이 라든가 하는 것을 바라는 의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내면의 갈등 은 커진다. 인생에 평탄하기만 한 길은 없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엄청난 노력을 거듭해서 목 적의 지평선에 다다른다 할지라도 그걸로 만족하는 일은 없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지평선을 꿈꾸 는 것이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 탄생한 이래 문자 그대로 무지개를 거머쥐려는 꿈으로 정진을 계속해 왔 다. 가까운 장래에 혹성을 탐험하거나 우주인과 교류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인간의 탐구는 끝날 것인가. 인간의 의식은 점점 높아져 끝없는 영원의 세계를 향해 탐구의 손을 펼쳐갈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잘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 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지적 욕구이다. 인간에게는 지성이라는 것이 구비되어 있어서 그것을 잘 이용함에 따라 성장하고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역사상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모두 이렇 게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지서의 힘으로 장벽을 뛰어넘고 마침내는 스스로 인생목표에 도달하고, 혹은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우리도 자신을 단련함으로써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첫걸음으로서 우선 자기 자신 을 잘 알고 지난날의 실패나 핸디캡을 플러스 요인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전에 우리가 한 일 가운데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상황에 있다. 과거의 모든 경험이 오늘의 문제해결에 도움 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제부터 매일 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훈계하기 바란다. '내게는 이제까지 길러온 용기, 인내 심, 이해심 등 목표달성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있다.' 라고.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 인기 코미디언이자 댄서인 프레드 스톤은 브로드웨이에서의 인기절정기에 전신 40군데에 골절 상을 입는 불행을 당했다. 딸이자 여배우인 도로시와 공연을 하는 오페레타의 개막을 앞둔 때였 다. 그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프레드의 부상은 중상이어서 다시 무대에서는 것은 엎어두고, 회복될 전망조차 거의 보이지 않 았다. 설사 목숨을 건진다할지라도 아마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될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모두 가 의사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프레드만은 믿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부상은 틀림없이 나을 수 있다고 믿고 강한 의지로 견뎌나갔다. 병원사람들도 놀랐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재기하려는 몸부림 을 알게 된 의사들은 골절된 부분을 접하는 치료에 착수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고 싶은 것일까. 프레드의 부상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의문을 품게 했다. 두 번 다시 춤추지 못하고, 생의 보람이었던 무대에도 두 번 다시 설 수 없는 것을 안 다면 그는 무엇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의 주변사람들의 마음은 아팠다. 나중에 프레드는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 나는 의사나 주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던 그것에 상관없이 나의 부상은 나을 수 있다 고 믿고 살아갔습니다. 나는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무대에 돌아 가는 날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뜻밖의 사고로 인한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괴 로운 일도 참아낼 수 있으리라고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프레드는 자기의 결의를 실행에 옮겼다. 뼈가 굳어 기능회복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저 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능회복 훈련을 위해 침대 바로 위 천장에 자신이 고안한 도구를 매달 았다. 도르래를 이용한 이 도구는 그 일부를 자기의 팔이나 다리에 매달아서 훈련하고 지쳐 쓰러 질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쉬지 않고 훈련을 거듭한 결과 뼈와 근육에 원기가 되살아났다. 칼슘을 많이 함 유한 우유를 계속해서 마신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목발이나 단장을 짚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다시 춤출 수 있게 되었 던 것이다. 물론 예전처럼 멋지게 출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경쟁이 극심한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컴백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했다. 초지일관 치유를 믿은 강한 신념과 용기, 백절불굴의 정신력이 프레드를 소생시켰던 것이다. 그 는 그의 딸 도로시와 공연한 '지팡이의 춤'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재기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전에 없는 대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도라크 부인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맞붙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자신감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가 짐이 필요하다. 영어의 'CAN(할 수 있다)'이라는 말은 수많은 단어 가운데에서 가장 적극적인 의 미를 가지고 있으며 'WILL(하고 싶다)'이라는 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I CAN' 과 'I WILL'이라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이드 포스트' 라는 월간 종교지는 지금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판매 부수도 많은 잡지 이지만 이 잡지의 발간 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었다. 편집장은 세계 적으로 유명한 뉴욕의 마블회의 목사인 노만 빈센트 필이지만 만일 그에게 그 자신에 대한 자신 감과 잘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없었더라면 '가이드 포스트'는 이 정도로 길게 이어지지 않았을 것 이다. 그런데 '가이드 포스트'의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전국 규모의 출판물이 어떻게 해서 살아 날 수 있을까를 대충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지금부터 간행할 출판물의 기획과 시장조사에만도 수개월이 걸리고 편집자나 디자인 담당 자에 의해 기획이 철저하게 진행된다. 당연히 많은 돈이 소모된다. 그러나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출판물이 성공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신간 출판물의 대부분은 불발로 끝나버린다. 게다가 '가이드 포스트'의 발행을 결심한 두 사람, 즉 노만 빈센트 필 목사와 실업가인 레이몬 드 손바크는 출판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가이드 포스트' 발행계획이 두 사람의 화제에 오른 것은 제 2차 대전중의 일이었다. 당시 필 목사는 마블교회에서 선교활동에 힘을 쏟아 교회 내에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굳히고 있었다. 그의 설교는 인쇄되어 많은 사람에게 배부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책을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 이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것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즉흥적인 연설에는 능했지만 쓰 는 것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쓰는 것에 자신이 없는' 사람을 편집자로, 출판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새로운 사람을 발행자로 해서 '가이드 포스트'의 간행이 추진되었다. 편집자는 필 목 사, 발행자는 실업가인 손바크였다. 그들은 뉴욕주 폴링의 식료품 점 2층에 사무소를 차리고 중고 탁자와 의자, 빌려온 타자기 등 으로 사무실 안을 꾸몄다. 그리고 친구에게서 운영자금으로 약간의 돈을 빌려 가까스로 '가이드 포스트'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창간에 즈음해서 필 목사와 손바크씨는 친구들에게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그 결과 '가이 드 포스트'의 기본적인 편집방침이 마련되었다. 우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신앙에 충실할 것,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할까'라는 점에 중점을 두는 것 등이었다. 친구들로부터의 조언을 통해서 필 목사는 사람들이 신앙에 목말라 하면서 어떻게 기도하고 어 떻게 신을 사랑하고 믿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시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분명 그것을 알고 싶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바람을 어떻게 잡지의 기획에 반영해 가면 좋을 것인가는 필 목사로서는 금방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때 그는 기도했다. "신이여, 저는 이런 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가이드 포스 트'가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신이 기사로 실을 내용을 가르쳐 줄리 만무하고, 재정원조를 해줄 리 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힘이 초기의 '가이드 포스트'를 지탱하고 이 끌어준 것은 분명했다. 창간호의 권두기획은 기념할 만한 기사였다. 그것은 에디 리켄버그가 기고한 '나는 기도를 믿 는다'라는 제하의 기사로, 이후 '기도를 믿는다'라는 것이 이 새 잡지의 일관된 테마가 되었던 것 이다. 결국 창간호는 1945년에 발간되었는데, 그것은 당초의 계획과는 완전히 뒤바뀐, 보잘것없는 소 책자였다. 포켓판 4페이지의 팜플렛 상태의 것을 4책 1조로 해서 철한 것으로 삽화도 없었고 가 장 중요한 '가이드 포스트'라는 제호도 속표지에 작게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발행에 착수하게 되었던 것인데, 매호를 인쇄할 때마다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었 다. 그것은 필 목사의 지지자인 2-3천명이 독자에게 우송하기 위한 자금의 조달문제였다. '가이드 포스트'를 정기간행하는 자금조차 없는데 송금비용을 염출하는 문제는 더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 다. 필 목사와 손바크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조달하지 않는 한 지불할 수 있는 돈은 한푼도 없었 던 것이다. 당연히 두 사람은 무보수였다. 그럴 때, 그들의 친구인 토마스 로웰이 파우링 교외의 크에커에 있는 집을 사무실로 사용하면 어떨까 하고 권유했다. 이 집은 현재의 사무실보다는 훨씬 넓었다. 편집실은 즉시 이전했다. 그리 고 발행 부수의 관리와 타이프를 전담할 사무원이 새로 고용되었다. 그들은 모두 싼 급료를 받으 면서 열심히 일해 주었다. 1년 반 동안 필 목사는 혼자서 편집업무를 도맡아서 했다. 18개월간 '가이드 포스트'는 10호까 지 발행되었다. 숙달된 편집자를 고용할 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었지만 수개월간 시행착오를 겪으 며 전원이 많은 교훈을 배우고 조금씩 출판업무에 익숙해져 갔다. '가이드 포스트'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자 그 편집작업은 이미 필 목사 혼자의 손으로는 부족 하게 되었다. 그때 렌 루소라는 사람이 편집을 맡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렌 루소는 나중에 이 잡 지의 책임편집자가 된 사람이다. 필 목사는 렌 루소에게 편집부의 속사정을 설명했다. "루소 씨, 만일 당신이 안정된 생활을 바라신다면 그만두시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들은 신념 을 가지고 발행하고 있습니다만 결코 순조롭게 일이 진척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경비를 충당하기 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다만 당신이 선을 베푼다는 이 잡지의 취지에 찬동해 주셔서 전력을 경주 하실 생각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주급 25달러입니다만, 그래도 좋으시다면 일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시 주급 25달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낮은 임금이었다. 그러나 렌 루소는 이일을 선택 했다. 그 일에 대해서 루소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필 목사의 꾸밈없는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그는 독선적인 설교자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렌 루소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루소는 당시의 자기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당시의 나는 공군부대의 베테랑 사병으로, 복무 중에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출판하 지는 않았지만 출판관계에는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젊음이 살아 있었던 탓에 형식적인 종교나 세속적인 것에는 신물이 나 있었고 무언가 목마름에 한 모금의 물을 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던 터였습니다." 렌 루소와 비슷한 시기에 프레드 데커라는 인물도 가이드 포스트에 채용되었다. 광고 선전담당 이 경험을 가진 젊은 데커씨는 사업분야의 매니저로 종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루소와 데커를 영입하고 2개월 후에 사무실은 큰 화재를 만나 모든 것이 재가되어 버렸다. 하 나밖에 없었던 구매자 리스트도 온갖 서류도 완전히 타버렸다. 1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 다. 다음날 스텝 네 사람, 즉 필 목사, 손바크, 루소, 데커가 모였다. 발행중지를 협의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필 목사는 신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늘 독자에게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계속해서 말해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어쩌면 신이 우리들에게 그 신념을 얼마나 굳건히 지니고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일지 도 모릅니다." 이 재난은 결과적으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 큰 불행이라고 느껴졌던 재난도 그들의 신념과 결속을 공고하게 다졌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스텝의 친구인 토마스 로웰씨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이드 포스트'의 구매자에게 화재사건을 알리고 주소와 성명을 다시 한번 사무소로 연락해 줄 것을 호소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도 성명을 게재했 다. 온갖 방면에서 물심양면의 원조가 쇄도해왔다. 이리하여 잡지는 재출발한 것이다. 이윽고 잡지의 체재를 바꾸려는 안이 상정되어 4페이지의 잡지 형태에서 8페이지의 팜플렛을 4 개 철한 형식으로 수정되었다. 또한 발행을 매월 1회로 했다.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10개월 후인 1948년 5월에는 큰 적자를 기록해 인쇄공의 임 금조차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난 인쇄공은 임금을 주지 않는 한 '가이드 포스트'를 인쇄하 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화재 때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가이드 포스트'를 위해 돈을 융통해 주겠다는 여성을 만났다. 그러나 그 여성은 돈을 건네기 전에 우선 스텝 전원과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도라크 부 인이었다. 루소는 그녀의 이름을 필 목사에게 알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라크 부인은 우리들을 지도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돈을 융통해 주는 것보다 우리 들의 방침을 변경시키려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만나볼 가치는 있 는 듯 합니다." 이윽고 도라크 부인을 만나는 날이 왔다. 그리고 이날의 체험은 나중에 '가이드 포스트'의 관계 자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관계자 약 12명이 필 목사의 집 현관이 바로 앞방에 모였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잡지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서 서로 얘기했다. 도라크 부인도 이 회합에 동석하고 그들의 얘기 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후 도라크 부인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참가자 각자가 15분간 조용히 생각한 후에 현상 타개책을 종이에 써 옮겨 보자는 것이었다. 15분 후에 각자 자기가 쓴 것을 읽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자금만 있으면 어떻게 해볼 텐데 하 는 식으로 비슷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도라크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가 '-이 없다'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한 설명을 부탁 받자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여러분 모두의 사고방식은 무척이나 부정적입니 다. 잡지의 장래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고 눈앞의 문제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신 것 입니다. '가이드 포스트'는 멋진 잡지입니다. 이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가 얼마나 많을까요. 그 런데도 여러분은 지금 하신 말씀 가운데 아무도 자신감을 보이는 분은 안 계셨습니다." 도라크 부인의 말은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람들은 도라크 부인 으로부터 이런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부인에게서 거액의 자금만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다시 인쇄기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의 인쇄공에게 밀 린 임금을 지불했다. 부인이 지불한 돈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부인은 사람의 사고 방식을 일신시 켰다. 이것은 잡지의 관계자에게 있어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체험이었다. 이 모임이 '가이드 포스트'의 전기가 되었다. 특히 경리 면에서 비즈니스에 철저한 운영이 강화 되어 경제적으로 불합리한 8페이지 4조의 팜플렛 형식은 24페이지의 잡지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1948년의 필 가에서의 모임 이후 '가이드 포스트'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갔다. 그때까지 각파 교회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던 잡지는 점차 실천적인 사고방식을 표방하게 되었 고 스스로 종교철학을 제시하는 장을 구하고 있던 일반인들의 지지를 획득해갔다. 이 잡지를 정 기 구독하는 회사가 점점 늘어났다. '가이드 포스트'가 그토록 심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스텝들의 신념이 강했던 덕택이다. 스텝들의 끈기와 신념이 잡지를 여기까지 꾸려 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현재 잡지의 업무분야의 사무실은 뉴욕의 하멜에 있고 6만 평의 넓은 공간에는 1백 15명의 사 원이 일하고 있다. 편집부는 뉴욕의 뉴 카네기 빌딩에 있고 거기에서는 15명의 스텝이 편집에 종 사하고 있다. '가이드 포스트'의 신장과 함께 스텝들도 정신적 성장을 이룩했다. 렌 루소를 위시해 스텝들의 대부분은 확고한 신념이 없는 상태에서 이 일에 참가했던 것이지만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서 점 점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신념은 산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가이드 포스트'의 성공은 그 한 예인 것이다. '가이드 포스트'의 예를 통하여 일이나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라도 결코 쉽게 성공할 수 있지는 않다. 늘 해결하지 않으 면 안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이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시 간이 걸리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하라고 나는 앞에서 언급했는데 그것은 바위에 계란던 지기 식의 무모한 짓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판단력이나 분석력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지금 행하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그것이 앞으로 쓸모 있을지 없을지를 늘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신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념에 정확한 상황판단 을 할 수 있는 지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이야말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선물인 것이 다. 가이드 포스트의 예에서 도라크 부인은 잡지의 관계자들에게 '당신들은 없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해서 충격을 주었다. '결핍'이라는 말은 상당히 부정적인 말이다. '-가 없다'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주위에 물질이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눈에는 들어오지 않게 된다. 자기의 감정이나 행동에 한계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어떤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반드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매일 자기 자신에게 말하자. 그것은 성공을 위한 철학이다. '할 수 없 다'라는 사고방식은 패배자를 낳는다. 이제부터 당신이 직면하는 상황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 있는 태도로 임하면 반드시 앞날이 밝게 펼쳐질 것이다. 나누는 행복 신의 존재를 굳게 믿고 축복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가족이 있다. 이 마탄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었는가를 얘기해 보자. 마탄가의 사람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 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바란다면 모든 힘을 다해서 신을 영접하려고 노력해야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나 손발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결코 신이 불평등한 일 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각기 고뇌를 안고 있으며 그 괴로움의 형태는 각기 다른 것 입니다. 만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신다면 불평불만을 말하지 말고 각자의 입장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노력을 해서 모든 이웃에게 봉사합시다." 마탄가의 사람들은 전국 각지를 돌며 축복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 그 집안 의 인생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시간이나 비용이 아무리 들더라도 조금도 괴롭지 않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마탄가의 사람들은 오하이오주 아크론에 날 때부터 다리가 없는 12세의 소 녀가 있는 것을 알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가족은 어머니와 형제들뿐이었다. 소녀는 자립하기 위해서 전부터 접을 수 있는 휠체어를 원해왔었다. 그것을 사줄 정도로 소녀의 집은 유 복하지 않았다. 사정을 들은 마탄가의 사람들은 즉각 그 소녀, 이레나 포레스탄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어떻 게 해서든 휠체어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마탄가의 사람들은 기부금 모집에 착수했다. 그 결과 날이 저물 무렵에 는 수백 달러나 되는 기부금이 모아졌다. 휠체어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마탄가의 사람들은 휠 체어를 사고 남은 돈으로 믹서 기를 샀다. 그걸로 소녀가 과자를 만들어 팔아서 자립할 수 있도 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마탄가의 사람들은 휠체어와 믹서 기를 가지고 소녀의 집을 찾아갔다. 사 람들은 소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소녀는 팔을 다리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활발하게 가사를 돕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문에는 마탄 씨의 힘으로 형무소를 가출감한 어느 전과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 사나이 는 소녀의 모습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불구자가 아니다. 불구자는 바로 내 쪽이다." 그후 마탄가의 사람들에게 격려를 받고 소녀는 의족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의족은 무겁고 사 용할 때마다 몸이 아팠지만 그녀는 꾹 참고 어떻게 잘 사용해 보려고 노력을 계속했다. 소녀 이레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소망이 있었다. 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인 버지니아로 모시고 가는 것이었다. 돈을 저축하기 위해서 소녀는 아이를 돌보아 주는 일을 시작 했다. 그녀는 어린 아기를 돌보는 일이나 음식 만드는 일에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이곳 저곳에서 그녀를 필요로 하는 손길이 늘어갔다. 마탄가의 사람들은 이레나에게 '자기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자기 가문의 인생철학을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이레나도 눈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에게 책을 읽 어주고 쿠키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이레나는 평일에는 법률사무소에서 비서로서 근무하고 일요 일에는 교회의 일요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로 생활하였다. 그리고 그 수입을 바탕으로 아크론 대 학 사회학과에 들어가 공부에 전념했다. 이레나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형의 가벼운 의족을 주정부로부터 기증 받았다. 그녀는 그 의족을 몹시 아꼈다. 그 의족은 사용하기 쉽고, 걷는 것도 소아마비의 후 유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자유롭게 되고 그녀 의 행동범위는 넓어졌다. 이레나는 행복하였다. 마탄가의 사람들도 그런 그녀의 행운을 기뻐하고 어디에 가더라도 그녀의 사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제 5장 그들은 그렇게 웃었다. 얼굴을 찌푸리려면 34개의 근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웃으려면 13개의 근육만 필요할 따름입 니다. 그런데 왜 헛수고를 하십니까. 아름다운 부부 몇 년 전의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열차의 식당차 안에서 어느 중년 내외 와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었다. 그 내외는 웬일인지 몹시 우울해 보였다.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 어왔다. 남편이 말했다. "어쩌려고 그래. 안 먹고 싶어?" "그런 게 아니에요." 아내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어째서 늘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거야. 난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단 말야." "그런 걱정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조금도 신경써 주시지도 않고..." 그녀는 불만에 가득 차서 말했다. "아니, 늘 신경 쓰고 있지 않았어.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와서는 매일 아침 조반을 먹을 때 들 려주지 않았어. 당신이 유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기나 해. 게다가 당신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아무 말 하지 않 고 지내기도 한단 말야. 그런데도 늘 불만이야."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짓고 말했다. "무슨 까닭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마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럼, 난 어떡하면 좋지. 우리들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는 않아요. 잘 모르긴 해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부정했다. 조금 지나서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잡지 오린 것을 끄집어내었다. "이것, 어제 본 것인데 참 재미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였던가는 잊어버렸지만, 어쨌 든 그의 아내가 그것을 듣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온화해지고 손대지 않았던 식 사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후 그 내외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는데 전보다 부드럽고 행복해 보 였다. 이 일이 있고나서부터 유머가 부족한 두 사람이 유머를 즐길 줄 알게 되고 분위기를 바꾼 그 정경을 나는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고뇌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유머로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의 마음속 무거운 짐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아가서는 병이나 신경쇠약을 일으킬 수도 있게 된다. 헬렌 트로벨 '아메리칸 매거진'이라는 잡지의 1954년 11월 호에 돈에디 씨가 유명한 오페레타 헬렌 트로벨 에 대해서 이런 것을 얘기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대단히 우울한 기분으로 술집에 갔다. 그날의 특별 게스트가 유명한 오페라의 소 프라노 가수 헬렌 트로벨이었는데 그의 노래를 들어도 기분이 조금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이윽고 트로벨 양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객석에서 누군가가 재미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그 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관객도 그 농담을 듣고 웃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쇼가 끝날 때까 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쾌활한 웃음은 관객은 물론이고 스텝까지 웃음의 소용 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실로 즐거운 쇼가 되었다. 나도 완전히 함박웃음에 빠져서 어제 내가 그렇게도 우울했던가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활의 걱정이 없는 대 스타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우울한 기분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트로벨 양에게도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유머 로 웃어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유쾌한 측면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그녀의 노력의 발로였던 것이다. 어린 시절 몸이 뚱뚱하다고 해서 놀림을 받았을 때도 트로벨양은 유머로 받아넘겼다. 부모의 죽음이나 불행한 결혼생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극복해 갔다. 23년에 걸친 무명의 생활을 참을 수 있었던 것도 생활 속에서 즐거운 측면을 발견해 내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악계 최고의 지위인 그랜드 오페라의 일원이 되고서도 사치를 부리지 않고, 신경을 써서 사 람들을 대하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으로 유유히 현실을 헤쳐나갔다. 그녀는 자신이 건강한 것도 웃 음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문자 그대로, 그녀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웃음으로 해소하며 살아온 것 이다. "그래요, 무리하게 웃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라 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사태가 심각하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그 사태 전체를 바로 볼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고 난 뒤 언제나 쾌활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내면 이미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은 과거사가 되어버리지요." 명의 크고 시원스런 웃음은 그 무엇도 능가하는 강장제이다. 정신의 긴장을 해소해 주고 심신에 여 유를 주며 기분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다. 늘 마음속에서 웃는 습관을 길러두면 건강은 물론 장수하는데도 한몫 단단히 하게 된다. 웃음 의 묘약은 때때로 의약보다도 잘 듣는 경우도 있다. 나의 숙부인 로만 F 볼드윈은 인디아나주에서도 명의로 알려진 사람인데, 50년 이상이나 의료 에 종사해 왔다. 그는 멋진 유머센스의 소유자로 유쾌한 것과 마주치면 마음속으로부터 웃음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나는 숙부의 진찰실에 들어가서 진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병원의 대합실은 언제나 환자로 가득 차 있었다. 진찰실에 들어온 환자는 모두가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했다. 자기의 증상 을 몹시 걱정하는 화자도 있었다 숙부인 볼드윈 의사는 그러한 환자 모두에게 적절한 약을 처방 함과 동시에 유머를 가지고 대했다. 그 특유의 유머는 환자에게 있어서 일종의 정신 안정제 역할 을 하고 환자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완전히 쇠약해진 몸집의 작은 노부인에게 볼드윈 의사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할머니, '슬슬 하늘나라로 갈 때가 되었군'하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심한 것은 아닙니다. 심장 은 나쁘지 않아요. 단지 약간 공기가 들어가 있어서 압박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약을 드세요. 잘 들을 거예요. 너무 좋아지지 않도록 조금만 드세요. 자꾸 드시면 다시 젊은이가 되어버리니까... 내일 아침이 되면 완전히 좋아지실 거예요." 그는 각각의 환자 심리를 추측하면서 유머를 섞어서 얘기했다. 볼드윈 의사는 또한 처방전을 쓰면서 환자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큰 소리로 들려주고 그 자신도 곧잘 웃었다. 볼드윈 의사의 이 쾌활한 웃음소리는 대기실까지 울려 우울한 환자들의 기분을 부 드럽게 하고 용기를 주었다. '볼드윈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신 의사다. 대기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해주다' 환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볼드윈 의사를 평가했다. 진료가 끝난 뒤 볼드윈 의사는 곧잘 이렇게 말했다. "대개의 환자에게 약은 필요 없다. '큰 병은 아니다'라고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 가정이나 직장 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결과 위장의 상태가 나빠지거나 두통을 일으키거나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환자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용성분을 포함하지 않 은 정제로 훌륭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믿게 하는 것뿐이다. 그 정제가 잘 듣는다고 생각하면 그후 에는 환자 자신의 심리가 치료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암시의 힘이라는 것은 엄청나다. '잘 듣 는다'라는 암시가 병에의 불안을 제거하고 어느 사이엔가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웃음의 묘약 우울해질 때면 '웃음'이라는 약을 마셔보면 좋다. 웃음을 우울한 기분이나 불안은 제거해 준다. 게다가 자기가 웃으면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유쾌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웃음은 심신을 젊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웃으면 신체내부 기관의 움직임이 활발 하게 되고 기분도 고양되며 얼굴표정에 생기가 넘치게 된다. 신체상태가 나쁜 사람이 마음속으로 부터 웃음으로써 건강을 되찾는 수도 있다.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는 끝없이 괴로워하지만 말고 '웃음의 요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 다. 처음에는 무리하게 웃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점점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상태로 된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여유가 생긴다.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 하기도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도전하게도 된다.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식료품점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주인은 다음날 상점이 있었 던 장소에 텐트를 치고 장사를 시작했다. 텐트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충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세요. 이곳에 들러 쇼핑을 하세 요.' 이 간판은 손님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손님들을 텐트 안으로 유인했다. 결과적으로 태풍은 상점 주인에게 행운을 불러들인 셈이 되었던 것이다. 링컨의 웃음 정부고관이나 저명한 실업가도 중요한 회의가 한창일 때는 약간의 유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해하고 있다. 개중에는 논쟁이 격심해지거나 긴장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을 때 시기 적절하게 웃 음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유머 센스의 주인공을 일부러 돈을 들여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역대의 정치가 가운데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유머의 주인공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의 음울한 나날에 관료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는 것은 유명 한 얘기다. 중요한 장면에서 사람을 웃게 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눈을 부릅뜰 사람도 있겠지만 링컨은 마음의 긴장에서 해소되어야만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유 머를 삽입시키는 것을 결코 사양하지 않았다.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능숙한 사람은 청중이 듣기에 싫증이 났다고 생각할 즈음에 곧잘 유 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청중이 진지하게 얘기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유머를 사용하는 것이다. 같은 예를 사적인 대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괴로워하는 일을 남에게 얘 기하는 경우, 처음 얼마간은 친구나 애인도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지만 너무 불평불만을 되풀이 하면 점점 상대는 도망치려는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다. 걱정거리가 하나 없어진 셈이죠 나는 지금까지 쾌활하고 밝은 표정을 지닌 사람을 많이 만났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리븐스 부인이라는 여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녀는 앉은뱅이였는데, 신체가 부자유스러웠음에 도 불구하고 인간이나 인간의 행위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음악, 연극, 문 학 등에 조예가 깊고 일상 대화에도 기지가 풍부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리븐스 부인의 멋진 정신세계에 빠져서 사람들은 용기를 얻게 되고 부인이 신체장애자라는 것 조차 잊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부인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부인에게 위안을 받고 있었 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리븐스 부인에게 '어떻게 해서 언제나 그렇게 밝은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하고 물어보았다. 부인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내게도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것은 나만의 문제입니다. 나는 인간은 고통에도 순응하는 존재이고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되면 고통조차도 잊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에 빠진 채 지냈던 나날이 가장 덧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적은 노력으로 유쾌하고 밝은 삶을 영위하면 몸의 상태가 나쁜 것조차 잊을 수 있습니다. 밝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 세상에는 즐거운 일이나 감사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게 되지요." 만일 지금 자신이 병상에 있고, 누군가의 시중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가 볍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밝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에게 시중을 받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자신이 밝게 행동 하면 그곳의 분위기가 온화해 지고 주위 사람들의 기분도 가볍게 되기 마련이다. 또한 자기의 약함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유머 센스를 연마하는 것도 필요하다. 유머가 있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사태가 악화되더라도 냉정하게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집에서 파티가 열렸는데 그때 어떤 여자 손님이 그 집의 귀중한 화병을 깨뜨려 버렸다. 그 여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그 집의 여주인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여주인은 웃으면서 다음 과 같이 유머 넘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이 화병은 몇 년 전에 부자인 친구가 내게 선물한 것이에요. 선물 로 받은 것이어서인지 화병을 볼 때마다 그 친구에게 나도 무엇인가 선물을 해야 할텐데 하고 생 각했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깨져버렸으니 잘된 일이지 뭐예요. 걱정거리가 하나 없어진 셈이죠."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사람은 그가 밝게 살아간다는 증거이다. 사람은 누구나 밝고 유쾌 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주위에 모이기 마련이다. 거울을 통해 자기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자. 지금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사람의 감 정은 곧 얼굴에 나타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시달림을 받을 때는 우울한 얼굴이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서는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지금 자기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기 바란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울감, 불쾌감, 비탄 등을 발견했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고 빠른 시일 내에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도 좋다. '도대체 나는 어째서 이렇게 방황하는 것일까.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심으로 그 대답을 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해답을 구할 수가 있다. 찾아내 답이 자신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제1수단이다. 웃지 않는 아내 내가 있는 곳에 어떤 남자가 아내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 남자의 말로는 그의 아내는 8년째 자 기를 보고 웃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고, 아내는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며 울고만 있습니다. 어디에 나 가려고 하지도 않고 집안일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여러 의사와 정신과 의 사에게 보였습니다만 마음속에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 뿐으로, 그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이런 상태로 매일을 지내도 즐거운가요?" 그러나 그 여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말도 안돼요. 나는 여태껏 그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어요." 이것을 듣고 그의 남편은 놀랐다. "도대체 내가 언제 무얼 했다고 그래?" 그러자 그녀는 냉담하게 말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자기가 더 잘 알텐데요." "언제나 이 모양이라고요. 중요한 것은 조금도 얘기하지 않고 비비꼬는 얘기만 하고 있다니 까 요. 8년 동안 결혼생활다운 생활은 거의 없었어요. 마치 지옥에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허탈감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 여자의 혼란한 정신상태를 좀더 알게 되고서 나는 그녀와 이제까지 내외로 살아온 남편의 인내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말했다. "자, 그럼 어째서 당신이 그렇게 울적해졌는지 말해주세요.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 게 말해주세요. 당신이 그런 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감정을 누르는 한 유쾌한 기 분은 될 수 없어요." 결국 그녀는 괴로움의 원인을 얘기해 주었다. 8년 전 그녀의 친구가 집으로 놀러왔을 때 그 여 자와 남편이 마주보고 앉아서 다정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에 의심을 품었다. 이 의심이 그녀의 감정을 얼어붙게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 이었다. 남편이 그녀를 배반했다고 생각하게 된 감정이 남편에게 향한 애정표현을 중단시키게 한 원인이었다. 그녀는 고백을 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그녀의 허락을 받고 나는 남편에 게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의심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게되었다. "사정을 확인하지 않고 의심한 결과, 얼마나 바보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 이제는 잘 아시겠지 요? 흘러가 버린 세월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만, 이제부터의 생활을 바꿀 수는 있겠지요." 그녀는 남편에게 고개를 수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녀의 남편은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지나간 얘기는 잊어버리기로 해. 당신이 다시 결혼당시와 같은 사랑스러운 아내로 돌아 와 준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거야." 이 여자와 같이 이미 웃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 때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쳐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발산시켜 안으로 축적하는 일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의 내부에 삼켜두고 있어서는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안에 감싸고 있는 상태에서는 유쾌해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음울한 당신을 보고서 우울 해 지는 것이다. 문제가 생겨서 우울해졌을 때에는 '웃음의 폭탄'을 떨어뜨려 보자. 틀림없이 문젯거리는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다. 범인 나는 일전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담당하고 있던 에드워드 보즈 선생과 함께 어느 음악 제의 사회를 요청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 협의를 위해서 점심식사를 막 마치고 돌아오던 보즈 선생을 사무실에서 만났 다. 점심식사를 부인회와 함께 했던 보즈 선생은 라디오를 통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는 감사의 표시로 부인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보즈 선생의 가슴에는 '공로상'의 기념으로 증정된 금뱃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보즈 선생의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수상의 영예를 축하하고 있었다. 이윽고 보즈 선생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나를 발견하자 손을 내밀었다. 보즈 선생의 옆으로 가자 선생은 뱃지를 끌러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른 사 람들이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선생은 나에게 눈을 찡긋하고 일어서서 자기의 엉덩이에 금뱃지를 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조금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나와 그 날밤 프로그램 의 협의를 시작했다. 협의 도중에 선생은 몇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부하직원의 앞을 어슬렁대며 걷기도 하고, 부하직원을 옆으로 불러 지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도 서생의 엉덩이에 부착된 뱃 지에는 시선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에는 선생 자신도 실망한 듯 했다. 그 뒤 그는 방송원고에 손볼 것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별실로 데리고 갔다. 다시 자기 사무실 로 돌아왔을 때 선생은 금뱃지가 들어있던 상자를 열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뱃지가 없었다. 그런 데 선생은 뱃지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대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선생은 비서를 불러 이렇게 못된 짓을 한 범인을 찾아내도록 명령했다. 이 '사건'의 뉴스는 순 식간에 사무실 전체에 퍼지고 범인 수색이 개시되었다. 얼마 후에 선생의 비서가 새파란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보 즈 선생은 서류를 일부러 책상에서 떨어뜨려 집는 체 하면서 엉덩이의 뱃지를 비서에게 보였다. 그러나 순간 그녀는 뱃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선생이 안다면 경우가 경우인 만큼 짜증을 낼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웃고 지나칠 만한 상황이라면 그녀도 한마디하고 크게 웃어버 렸을 테지만 그때는 웃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방에서 나오자 동료들에게 이 것을 귀엣말로 알려주었다. 얘기는 점점 옮겨지고 뱃지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 었다. 나는 보즈 선생의 뜻을 추측하고 잠자코 일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를 봐서 보즈 선생은 직원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나의 뱃지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단 말야."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려 엉덩이의 뱃지를 모두에게 보였다.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한 거야?" 직원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불쑥 그는 말했다. "범인을 가르쳐 주지. 범인은 나다. 내가 내 손으로 뱃지를 엉덩이에 부착했던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서 놀람과 안도가 뒤섞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보즈 선생은 엉덩이의 뱃지를 떼어 상자 안으로 다시 넣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아 침착들 하라고.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 거북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도록 했으면 해. 설령 윗사람이라 할지라도 유쾌하게 대해 주는 편이 좋아." 이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거북하고,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던 사람이 그렇지 않 다는 것을 가르쳐 준 이 연극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보즈 선생의 인상이 너무도 멋있 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 6자 나눔의 자리 어느 비오는 날 오후에 노신사가 문 앞에서 떨고 있다가 지나가는 신문팔이 소년을 보았습니 다. 노신사는 신문 한 장을 산 뒤에 물었습니다. "아가야, 춥지 않니?" 그때 소년은 웃는 얼굴로 노신사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몹시 추웠습니다." -레이몬드 오토- 헬렌켈러 만약 지금 자신에게 정신적, 혹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어 하루하루 그러한 상태로 덧없이 살아 가는 것이 괴롭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장애를 가지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그것과 싸우고 있는 사 람의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틀림없이 마음속에 새로운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고 의욕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 그 유명한 헬렌켈러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 다. 그녀가 살아갔던 암흑과 허무의 세계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은커녕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 살았다. 그러나 이 암흑의 세계에서 헬렌켈러의 영혼은 빠져 나왔다. 그녀를 가르치고 이끌어준 사람의 인내심과 노력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노력 또한 그 몇 배의 것이었다. 그녀는 외계를 조금 씩 이해하기 시작하고, 어떤 소리를 발함으로써 언어에 대신하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끔 되었 던 것이다. 그녀는 뒷날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삶에의 메시지이다. "어떤 때라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세요. 어떤 핸디캡을 가 지고 있더라도 인생에는 가능성이 언제나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 역시 할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과 용기를 가지세요. 자기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헬렌켈러는 생명의 영원성에 대한 신념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생명이란 하나의 종이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갖추어 진 값진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재난이나 좌절은 우리들의 마음을 일구어 주는 것 입니다. 보다 훌륭한 것이 마음속에서 싹을 키우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과 신념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헬렌켈러는 고통과 절망의 심연에 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보내고 있 다. "실패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개성이라는 보물을 꺼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75세라는 고령으로 헬렌켈러는 온 세계 신체장애자의 대표로서 극동으로 여행했다. 그녀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의 즐거움은 뒷전에 두었다. 그녀는 어디엘 가 더라도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병든 사람들이나 장애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이라는 것은 육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표현수단으로서 육체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해서는 육체 그 자체로는 영혼에 반 응하는 힘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헬렌켈러의 일생을 더듬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 이다.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고 그 육체에 영혼이 살고 있는 것이어서, 설령 육체가 병든다 할지라도 영혼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헬렌켈러는 이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 생명의 영원성을 그렇게도 상하게 믿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 사실은 무엇인가 육체적인 핸디캡에 직면했을 때 우 리에게 용기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 남을 돌봄으로 자기 고뇌를 잊는다 하만 프레스바라는 사람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의료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거기에서 악성결 핵에 걸려 장기 입원하게 되었다. 결핵균은 뼈에까지 침투해 그는 늑골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 술을 받았다. 중병의 병상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기계장치 인형'이라고 웃으며 말하고, 늘 밝고 명랑하게 행 동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의 괴로움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높이 평가되어 그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되자 상이군인의 시중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동료들을 위해 맨 앞에 서서 일하고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기도하며 정부의 원조도 받을 수 있도록 주선을 했다. 또한 퇴역 군인을 위한 잡지인 '오버 서비스'지에 투 고하고 환자의 간호방법이나 퇴역군인 회의 운영에 대해서 의견을 발표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퇴역 군인들에게 얼마간의 정신적인 원조를 함으로써 나 자신의 건강 을 회복했던 것입니다." 일전에 내가 하만 씨를 만났을 때 그는 '사후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사후의 영혼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고, 그러한 각오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하나 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이 세상을 떠날 채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아들 필이 어엿한 성인으로 장성하게 될 때까지는 더 열심히 살 아갈 것입니다." 하만 씨는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후 그의 아들 필은 20세가 되어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하만 씨는 이 세 상을 떠났다. 그날 밤은 하만 씨에게 있어서 또 다른 세계로의 새 생활이 시작된 날이라고 지금 도 나는 믿고 있다. 나의 친구 육체적인 핸디캡이 있다고 해서 인생을 어둡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즐거움이나 만족감뿐만 아닐 무언가를 이룩했다는 성취감마저도 맛볼 수가 있 다. 나의 친구인 샘 에밀리라는 사람은 독신자인데 수년 동안 뉴욕시 클럽 상임멤버로 근무하고 있 었다. 샘은 갓난아기 시절 간호원의 실수로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에 부상을 입고, 그것이 원인이 되 어 뇌하수체에 이상을 일으켜 신체의 성장이 불균형하게 되어버렸다. 그는 동체의 폭은 넓지만 길이가 짧고 다리가 극단적으로 길며 발은 엄청나게 큰 기형아였다. 또한 시력도 정상이 아니어 서 색맹인데다가 근시여서 안경을 끼거나 확대경이 없으면 글을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목의 구조에도 이상이 있어 큰소리로밖에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샘 에밀리가 종사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때때로 격심한 고통에 휩싸이기도 하여, 원래가 건강체질이 아니었던 그는 결국 무언가를 쓰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의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다른 가족들의 적은 벌이에 비하면 겨우겨우 살아갈 수는 있었던 것이다. 대서업이었다. 샘의 인생이 결코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인생살이의 모험을 상상하고는 즐거 워했다. 그가 속한 뉴욕시 클럽멤버의 직업은 실로 다채로워서 탐험가, 편집자, 강연가, 대서가, 변호사, 의사, 과학자, 게다가 정치가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 속한 모든 사람은 각각의 분야에서 저명한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샘과 친하고 샘도 그들과 어울려 폭넓은 지식을 교환했다. 샘은 타고난 큰 목소리로 곧잘 사회의 부정을 규탄하는 신랄한 의견을 내뱉기도 했다. 클럽의 사람들은 그가 온후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멤버 중 누 군가가 곤란에 빠져 있을 때 샘은 맨 먼저 달려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다. 시력에 이상이 있었던 샘은 라디오를 아주 친한 친구처럼 아꼈다. 그는 유명한 오페라의 곡목 을 라디오를 통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스포츠도 몹시 좋아해서 축구나 야구의 시합 중계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들었다. 그러나 스포츠 시합이나 연극을 실제로 보러 가는 경우는 맨 앞줄을 확보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시력은 그만큼 나빴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농구선수권 시합의 맨 앞자리 좌석 표를 구했기 때문에 샘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막상 체육관에 도착해서 자리를 찾아보니 우리들의 자리는 2열에 있었고, 맨 앞줄에는 보도관계자와 양팀의 후보선수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사고하고 돌 아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모처럼 왔는데... 봐야하지 않겠어요?"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체육관은 열광적인 팬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시합은 팽팽한 접전이었다. 연장전까지 벌인 시합에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결승골을 터뜨리고 승리한 순간 나는 흥분해서 샘에게 말했다. "멋진 시합이었어!" "정말 멋진 시합이었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 그는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샘에게는 선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셈, 너는 잘 보이지 않았나 보구나." 내가 이렇게 말하자 샘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저 재빠른 손놀림, 저 슛, 볼 던지는 방법, 정말 멋있었어." 나는 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시합을 즐기는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 는 선수들의 어깨 위의 움직임은 볼 수 없었으므로 그들의 절묘한 드리블이나 패스는 볼 수 없었 다. 그러나 선수들의 탄력 있는 팔의 움직임, 점프하는 몸, 튕겨 올라가는 공, 이러한 것이 그를 열광케 했던 것이다. 체육관 내의 분위기와 함성을 듣고 게임이 백중세인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시야의 협소함에도 잘 순응해서 충분하게 시합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나는 무슨 일이 잘 되지 않거나 실망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그날 샘이 보여주었던 행동을 되새겼다. 그리고 서려 내가 현상에 만족 못할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상황 을 최대한으로 살려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마음의 문제 프랑스의 여배우인 사라 반하트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 자기 힘으로 설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배우 생활은 끝났다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의지력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했다. 그녀는 그때까지 수많은 곤란을 당하면서도 강한 의지력으로 그것 을 이겨냈던 것이다. 다리가 부자유스럽게 되고서도 그녀는 연기를 계속했다. 그 열연 모습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녀가 무대에 서게 되자 관객들은 그녀가 불구자인 것을 잊었다. 그러나 그녀의 다리는 절단하 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은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의지는 강철같았고,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1915년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녀는 프랑스를 대표해서 미국으로 왔다. 사라 반하트는 70세였지만 그 매력적인 개성과 풍부한 성량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로부터 8년 후에 그녀는 파리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분명 인생의 출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슴을 쫙 펴고서 당당하게 살다간 사람이었다. 병에 걸려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물론 힘든 것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장애를 극복하기 위 해서는 그보다 몇 배의 노력이 요구된다. 안젤로 로시드라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호르몬의 이상이 있어서 신장이 90cm 밖에 되지 않 았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섬세한 감정과 생에의 희망은 보통 사람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 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안젤로는 결코 자기 자신을 비참하다고는 생각하 지 않았다. 그는 고향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기술학교와 크레이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몸집이 작은 점을 살려 치어리더를 했다. 졸업 후 그는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때마침 불황이어서 부득이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서 신문판매의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그는 헐리우드에서 톱스타와 공연해 점점 지위를 굳건히 해갔다. 그렇지만 그는 신 문판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 업에는 파도가 있지만 신문판매 일은 매일 확실한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과 30Kg밖에 체중이 나가지 않았지만 신체는 튼튼해서 힘이 있었다. 그는 머리 위에 무거운 신문다발을 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장씩 팔았다. 안젤로는 자기의 신체가 작다는 것을 괴로워하기는커녕 반대로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을 장점 으로 살려갔다. 휴가 때에는 도날드덕의 분장을 했다. DJ로서 자기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갖고 있 었다.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몸이 작은 사람들과 함께 비행기의 골조 안에서 일하는 작업에도 종 사했다. 안젤로는 어떤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했는데, 그 여성도 신체가 작아 킥 120cm 밖에 되지 않았 다. 안젤로 내외 사이에는 1남 1녀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둘다 보통 체격의 아이들이었다. 나중에 안젤로는 헐리우드와 체로키거리의 모서리에 자기의 신문스탠드를 갖게 되었다. 그의 상점은 부근의 어느 가게보다도 인기가 있었다. 매일 저녁이 되면 단골손님이 모여 그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거나 하루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안젤로와 얘기를 시작하면 사람 들은 그의 신체가 작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개성이 풍 부해서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이제까지의 인생 여정과 그가 거머쥔 성공과 행운을 생각해 보면 핸디캡이라는 것은 육체 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게 된 장애를 극복한 안젤로와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건강한 사람의 핸디 캡 따위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불치의 병이 라고 불리는 것이나 중상에 가까운 심한 병에서도 사람은 정신력만 강하면 다시 회복되는 것이 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의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그 사람 자신이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적절한 의학적 조치가 취해진 후에는 인간의 의지력이 승패를 가름하게 된다. '이제 글렀다'하고 약해졌을 때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어떤 상황에 처 하든지 간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행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의욕이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꾀병 여러 사람들로부터 얼굴 색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도 어느 사 이엔가 자기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암시가 거듭되면 신경계통이 영향을 받아 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람들에게서 참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자꾸 들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병이 걸렸을 때라도 회복이 빨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말이 강한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하는 암시도 가 능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암시를 주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되기 바란다. 자의식이 과잉이어서 신경과민인 사람은 약간의 통증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좋지 않은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 쉽다. 그리고 과도한 걱정이 소화불량이나 변비, 관절염, 심장의 이상박동 등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람들은 의사가 큰 병은 없다고 말해도 그것을 신용하지 않고 어딘가 나쁜 곳을 찾아줄 때까지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 전전하는 것이 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곤란에 부딪히는데 그로부터 피하려고 하거나 무언가 책임을 다 하는 것을 회피하려고 해서 병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생활이 전처럼 평온해지면 어느 샌가 병도 나아버리는 것이다. 나의 숙모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었다. 그 뒤 남편도 잃은 그녀는 시내에서 조금 벗 어난 언덕 위 옛집에 틀어박혔다. 병이 있다는 것을 구실로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사회사업에서 도 완전히 손을 떼어버렸다. 숙모의 집이 있는 언덕은 '태양의 언덕'이라고 불렸는데 그와는 반대로 어둠 그 자체처럼 느껴 졌다. 숙모는 자기의 인생이 아들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친구나 친척이 아무 리 위로하고 달래도 숙모는 순교자와 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전에는 쾌활하고 상냥하고 재능이 많은 숙모였으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친구나 애인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일부러 병에 걸린 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행해지는 꾀병인데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는 결코 사랑이나 존경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조만간 그런 꾀병은 간파되고, 결국 자기 자신만이 상처받게 될 뿐이다.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꾸지람을 듣는 것만으로 병상에 드러눕는 여성이 있다. 대단히 어린티나 는 행동이다. 그런 사람은 어린 시절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으면 짜증을 부리거나 꾀병을 피 워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자에게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 업무상의 경쟁이 격심해지게 되면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 고,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서 그 일을 해주면 그 병은 자동적으로 나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또한 유아성에의 회귀이다. 만일 당신에게도 이러한 병으로 도망치는 경향이 있다면 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기 바란다. 원인을 알게 되면 그러한 경향은 의외로 쉽게 없어진다.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인생살이 제반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유아기와 같은 좁은 관념의 테두리 안에서 사물을 보아서는 본래의 능력은 살아나지 않는다. 자 아성찰이라는 것이 있으면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자기의 반응 양식에 주의해 주기 바란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성숙하고 어른다운 처신을 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확인해 보라. 만약 자신이 호가고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신념과 용기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병이나 신체적인 장애까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불행한 일 뒤에는 반드시 행복이 온다는 것을 믿고 있으면 인생은 유쾌한 것이라는 믿음 또한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시착, 그리고 표류 에디 리켄바크라는 사내는 전에는 육상선수로서 이름을 날렸고 제 1차 세계대전시에는 비행사 로서 활약, 나중에 이스터항공의 사장에 취임한 빛나는 경력의 주인공인데, 1942년에 생사를 건 엄청난 체험을 한 사람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의 비행기는 남태평양에 불시착했고 그는 동료들과 함께 17일 간 구명보트로 태평양을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켄바크씨는 살아만 있으면 틀림없이 발견되고 구출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전에도 그는 몇 번이나 죽음에 직면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 어떻게 대처하면 좋 을까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동료들의 사기와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 리켄바크씨는 자연히 그들의 리더가 되 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기도하고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자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구조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괴롭고 혹독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체력은 점점 약해지고, 구원된다는 믿음 또한 약해져 갔다. 수색 비행기가 날아왔다가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을 때는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 다. 그들은 비를 음료수로 하고 비상식량으로 몇 개씩 갖고 있었던 음식을 조금씩 먹으면서 살아 갔다. 그리고 표류를 시작하고서 17일 후, 체력도 정신력도 다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발견되 었다. 행방불명이라는 것으로 수색이 중단되기 일보직전의 구출극이었다. 극한 상황에서 그들을 17일간이나 살아있게 한 것은 생에의 강한 집념이었다. 반드시 구조된다 고 하는 확고한 신념이 이 사투를 승리로 이끌어준 것이다. 제 7장 내면의 힘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삼으면 버릇을 거두고, 버릇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 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둡니다. 내면의 눈 불운이나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지나고 보면 자신으로서는 훌륭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 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 실직을 했지만 전보다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거나, 사업에 실패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 기회를 발견한 경우도 있다. 비행기나 기차 시간에 대지 못하여 타지 못한 덕분에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혹은 신체장애자로 고통을 받으면서 남들이 얻을 수 없는 능력을 몸에 지니게 된 경우도 있다.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원인이 있으며, 거기에는 필연인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이 머릿속에서 일으 킨 일인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중에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창조력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 다. 창조력은 단순하고 정확하게 작용한다. 만약 매사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적극적인 결과를 가 져올 것이며 소극적이라면 소극적인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창조력은 항상 이 규칙에 따라 작용 하는 것이다. 전에 나는 크로드 브리스톨과의 공저인 'TNT-마음속의 불'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 적이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라서 소개해 본다. 1. 당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느끼는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창 조력에 영향을 끼친다. 2. 원망이나 공포의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창조력의 작용도 커진다. 3. 창조력에는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거나 회피하는 작용은 없다. 단순히 원망이나 공포에 반응 하여 자신을 위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자신이 원하거나 두려워한 것을 가져올 뿐인 것이 다. 4. 창조력이란 전자석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의해 자력을 띠게 되며 자신의 원망이 공포와 일치하는 상황이나 정보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5. 자신의 원망이 적극적인 것이라면 결과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강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게 된다. 이상을 주의 깊게 읽고 의식 깊숙이 새겨두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지난날 불행한 경험을 했더 라도 이제부터의 운명을 변경시킬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불운을 당했던 사람은 사고방식을 바꿀 일이다. 창조력을 소극적인 것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일이다. 창조력의 작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가령 실직을 했다 하자. 게다가 그 이유가 성실치 않았다던가, 능력이 없었다던가, 동료와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것 등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하자. 그런 일이 있으면 자신 내부에 잠재해 있는 창조력은 소극적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은 점점 잘 되지 않고 마음에는 불만이 쌓여 간다. 이러한 감정을 지니고 있으 면 상황은 결코 호전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태는 더욱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도 하면 내재해 있는 창조력은 현실적으 로 그렇게 되도록 돕게 된다. 결국 자신이 실직할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직한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응시하고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다 시 생각해 보면 길은 열린다. 제 3자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면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된 태도나 사고방식에 원인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과거처럼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 며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기분을 계속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것을 실업으로 솔직히 받아들 이고 이제까지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고칠 결심을 하는 것이다. 만약 적극적인 후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머지 않아 새로운 일을 발견하여 행복과 성공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불행을 당했으면서도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고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운명을 좋은 방향으 로 전환시켜 간다. 자신들이 실직이나 사업의 실패, 병이나 부상을 당하는 등의 일을 당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자신의 내부에 그러한 불운을 야기시킬 수 있는 구체적 요인이 있었기 때 문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마음속의 구체적 요인만 제거한다면 창조력도 나쁜 작용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짐을 지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실패나 불행의 아픔도 가능한 한 빨리 잊는 게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이 날 때마다 싫어지며 그러한 감 정은 또다시 창조력에 작용하여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계획에 신경 을 집중시키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러운 체험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체험이 잠재의식 속 에 새겨져 있다. 그때에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것은 그 당한 일과 함께 의식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머릿속에 계속 축적되고 있으며, 그것이 괴로운 경험일수 록 응어리가 되어 창조력에 작용한다. 그러면 괴로운 추억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그러한 체험을 의식의 밑바닥에서 끌어내어 마음의 눈으로 자세하고 냉정 하게 재 응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솔직히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탓이라 해도 원망치 말고 용서할 일이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 같은 일을 당하면 좀더 적극적으로 강력하게 대처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과 다투거나 성격이 맞지 않아 불쾌한 기분이 되었을 때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 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긴데에는 자신 에게도 역시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그런 좋지 않은 기분을 가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때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믿어버릴 일이다. '그를 용서하자. 그와는 이 이상 친해지려고는 생각지 않지만 불안해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의 탓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또 상대방과 화해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좋다. '나도 그를 오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용서하자.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버리면 틀림없이 잘 되어 갈 것이다. 성의는 필히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태도를 바꾸면 그도 틀림없이 거기에 응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긴 인생 중에는 압박감도 상당히 많아 항상 안정된 정신 상태로 지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7세된 딸이 즐거운 듯이 접시를 씻고 있는 것을 본 한 어머니는 감동해서 말했다. "네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모양이구나." 그러자 딸이 말했다. "지금은 계시지만 자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세요." 명언이 아닌가. 이처럼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항상 정상적이며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장기간에 걸쳐 안정을 잃을 수조차 있다. 자신이 우울하여 의기소침해 있으면 그런 기분은 친구 나 연인에게도 전염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울적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기 쉽다. 나는 일정기간 기분좋은 날이 계속되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다. 이러 한 사람들은 우울한 날이 올 것을 예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내재해 있는 창조력이 그러한 식으로 작용하여, 그 결과 기분이 주기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노여움이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수가 많다. 자신은 무시 당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에게 눈길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등 만족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 우울하게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에 관하여 생 각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울한 기분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감정의 배출구를 찾아 발작을 일 으키는 것이다. 발작을 일으켜 주위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면 가슴이 시원하고 긴장이 풀린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얼마동안은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기 때문에 그들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을 반복해도 근본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복하는 사이에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갈 뿐이다. 자신의 기분을 철저히 컨트롤하여 올바로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그렇 게 함으로써 내재해 있는 창조력이 작용하기 시작하여 자신에게 이로운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에는 큰 힘이 있음을 기억해 두자. 뭔가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 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또 감정이라는 것은 내재해 있는 창조력을 활발하게 작용시켜 자신 주위의 정황을 자신이 원 하는 대로 변경시킬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여 항상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내심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어떤 형태로든 열매를 맺는다. 어떠한 장애물도 창조 력을 작용시켜 전력을 다해 헤쳐 나아가려 하면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열등감이나 자 신 없는 마음 때문에 헤쳐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미 창조력에 도움을 기대할 수 없 다. 그러한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은 '창조력에 수갑을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괴로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을 가지는 방법에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고칠 일이다. 원인만 제거하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일어 나지 않는다. 호버트의 신경질 부동산 업자겸 건축가인 루이스 호버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즉시 역정을 내는 나 쁜 습관이 있었다. 일단 역정을 내면 그는 종업원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가족이나 손님에게까 지 고함을 지르곤 했다. 그러나 언젠 가부터 그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잠재되어 있는 어떤 힘이 있으며 그 힘을 이용하면 자신의 의지보다 더 효율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아무튼 이 방법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호버트는 지금은 완전히 건설적인 사고방식을 몸에 익혀 매사를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전처럼 역정이 나려는 때도 있지만 그런 때는 감정을 잘 컨트롤하여 일도 가정생 활도 원활하게 영위하고 있다.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면 그는 항상 그것을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올바른 방법으로 일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어떤 목수가 보내온 목재가 매우 질이 나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 전의 호버트라면 즉시 역정을 내고 목재상으로 달려가 소리쳤을 것이다. "내 얼굴에 먹칠을 할 생각인가?" 그리고 화난 감정이 응어리가 되어 뒤에까지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침착하게 그 목수에게 말했다. "목재를 트럭에서 내리지 마시오.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대로 운전사에게 기다리라고 이르시 오." 그리고 그는 목재상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죠! 우리 집 목수가 보내준 목재가 품질이 몹시 좋지 않다 하는데..." 이에 대해 목재상 죠는 격하게 반박했다. 호버트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죠! 우리 집 목수는 없는 말을 만들어 하는 사람은 아닐세. 그 목재는 받아들일 수가 없군. 그런 좋지 않은 목재를 사용하여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면 자네도 곤란할 게 아닌가. 지금 분명히 해두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네." 목재상은 더욱 격하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호버트는 냉정했다. 틀림없이 잘 되리라고 믿고 있었 기 때문이다. 결국 목재상 쪽에서 양보하여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물었다. 사태는 호버트에게 유 리한 쪽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의 마음속의 잠재력이 감응한 결과 호버트가 생각한대로 사태는 해결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죠, 그 목재를 반품시켜도 좋을까? 새로 좋은 목재를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는데..." 목재상은 망설인 후 호버트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좋소. 알겠소. 반품하죠."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하면 더욱 좋지 않은 감정밖에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일단 그런 감정을 버린다면 상대방도 나쁜 감정을 버릴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감정으로 이루어졌다고조차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매사에 감정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대로 모든 것을 맡겨버리면 내재해 있는 창조력은 플러스 방향으로는 작용치 않는 다.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여러 가지 감정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러한 감정의 파도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컨트롤할 필요가 있다. 한 여성이 백화점에서 유아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찼다하여 체포되었다. 그러한 행위를 한 이 유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다. "내가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한 남성이 다가와서 차에 태워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는 나에게 실례되는 일을 했습니다. 나는 미칠 것 같았고 그 화풀이로 누군가를 학대하고 싶어 졌습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의 하나로 자동차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어떤 감정의 배출구로서 자동차가 이 용되는 수도 많다. 어떤 곤경을 당했을 때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기분전환을 하는 일이 자주 있 는 것이다. 추월금지 차선에서 일부러 스피드를 떨어뜨리고 뒤에 오는 차가 부드럽게 주행하는 것을 방해 하는 차를 만난 적이 없는가. 잘못된 행위이지만 그러한 운전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위 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차의 행렬이 길면 길수록 그러한 인물은 기분이 좋아진 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이나 직장에서 남을 뜻대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시카고의 한 회사원은 앞을 달리는 차에 일부러 자신의 차를 부딪쳤기 때문에 체포되었다. 법 정에서 그러한 행위를 한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했다. "그의 자동차가 내 앞을 달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슨 일에 서든지 모두가 내 앞을 기분 좋게 달려가는 모습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싫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또 한 소년은 연인에게 버림받은 화풀이로 그녀의 집에 차를 부딪쳐 엉망으로 만든 경우도 있 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장기간에 걸쳐 불쾌한 기분을 지 닌다면 이처럼 가치 없는 일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은 자기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불쾌 한 감정은 건강을 해치며 정신상태를 혼란시켜 쾌적한 나날을 망친다. 내재해 있는 힘은 자신에게 원하는 대로의 성공을 가져다주도록 작용한다. 적극적이고 바른 생 각을 하고 있으면 이 힘이 강해져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보다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 줄 것이다. 감정에 흘러 올바른 사고방식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나쁜 감정을 품는 것은 파 멸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감정이란 살아있는 생물처럼 멋대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운전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사항을 명 심해 둘 필요가 있다. '제한속도를 지키자. 감정을 컨트롤하자.' '폭주하는 차가 있다. 울분을 가라앉히려 하는 운전자가 있다.' 일시적인 감정에 흘러버리면 내재해있는 창조력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여 두려운 경과를 가져 오는 일도 있다. 한 흑인 하녀가 고기를 써는 방법 때문에 주인과 말다툼을 한 끝에 그 주인을 도끼로 죽여버린 예가 있다. 그녀는 바로 전에 남편과 다투어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것이 주인과의 사소한 말다 툼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면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초래하기도 하 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 1939년 어느 토요일 저녁 무렵의 일, 뉴햄프셔에 있는 슈발트극장에서는 새로운 연극의 시험흥 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 연극인 윌리엄 사로얀 작품인 '즐거운 인생'이었다. 에디 다우링은 그 연극의 프로듀서, 감독, 주역의 3역을 겸하고 있었다. 또 한사람의 공동 프로 듀서는 리 슈발트로 그는 뉴욕에 있는 대극장의 대부분을 소유한 사람이며 극장 길드조직의 주최 자이기도 했다. 이 연극의 소문은 대단해서 유명한 극작가들도 첫날에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극평론가의 대가 로 일컬어지는 조지 진 나산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그 첫날 오후에 숙적인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이 축구시합을 했다. 결과는 47대 0으로 하버드가 압승을 거두었다. 흥분한 것은 예일대 출신자들이었다. 분개심을 가슴에 안은 채 그들은 극장으로 몰려갔다. 드디어 첫날의 막이 올랐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그 연극은 시시한 것이었다. 분명한 줄거리 가 없는 데다가 등장인물만 좀 색달랐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지루하게 대화를 계속할 뿐이었다. 뉴헤이븐(예일대학이 있는 도시)에 어울리는 연극은 못되었다. 객석에서 조롱과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객은 하나둘 자리를 떠 제 1막이 끝날 무렵에는 오케스트라와 2층의 좌석은 텅 비게 되었다. 제 2막의 끝에는 친분관계 때문에 온 사람들만이 남았다. 그리고 끝날 즈음에는 거 의 그 연극의 관계자와 그 가족들만이 남았다. 다우링은 의기소침해서 분장실로 돌아와 출연을 끝낸 배우들을 기다렸다. 배우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들은 다 우링을 혼자 있게 해주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우링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리 슈발트였다. 그는 도어를 연 채로 말없이 한참 있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에디, 이 공연은 중지하기로 하세. 더 이상 돈을 투자할 마음도 나질 않는군." 그후 극장의 로비에 관계자 전원이 모여 회합을 했다. 다우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공연을 즉시 중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최종결정권을 쥔 다우링은 공연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다. 극평론 가인 진 나산 한 사람만이 다우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연극은 사로얀이 의도한 것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네." 다음 공연은 보스턴에서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뉴헤이븐에서의 첫 공연 때보다도 더욱 참담한 것이었다. 극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일제히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첫날의 실패가 소문이 나 있었 기 때문에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두 번 다시 이 연극을 상연할 수 없 게 될 정도로 심하게 비난했다. 다우링의 오래된 친구인 목사조차도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에디, 이러한 연극은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어. 솔직하게 말한다면 창피해서 보고있을 수가 없 다네. 내가 힘이 되어줄 수도 없고..." 결국 공연은 중지되었다. 그러나 다우링은 이 연극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연 출 방법이 좋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우링은 출연자를 일단 전원 해체하고 새롭게 캐스팅을 해 보았다. 원래의 출연자 중에서는 에디 앤더슨과 쥴리 하이덴이 남았다. 이 두 사람에다가 새로 윌리엄 헨딕스, 세레스테 호름, 진 케리, 도로시 맥가이어, 아사 하니커트가 보강되었다. 다우링은 다시 그 연극을 연출하여 브로드웨이의 부스극장에서 공연했다. 그는 동료나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오직 혼자서 해낸 것이다.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 문에 그는 그것도 끝까지 밀고 나아갔던 것이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관객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으며 비평가들은 절찬했다. 하룻밤 사이에 6 인의 스타가 탄생했다. 멋진 개막이었다. 이 연극 '즐거운 인생'은 결국 퓨리쳐상과 뉴욕연극상 두 가지 모두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두 가지 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이 연극이 최초였다. 그리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재차 도전한 프로듀서겸 감독인 다우링의 공적은 두고두고 그 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무명복서의 어퍼컷 나는 전에 현상금이 걸린 복싱 시합을 관전한 적이 있다. 그 시합은 처음부터 인기 있는 복서의 일방적인 시합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복서는 자신의 필살의 펀치로 상대방을 몇 번이고 다운시켰다. 그 상대방은 가끔 공이 울림으로써 구원을 받기 도 했지만 몇 번이나 강렬한 펀치로 얻어맞았기 때문에 구경하고 있던 팬들은 일제히 중지시키라 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복서는 결코 기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정도로 강렬한 펀치를 얻어맞으면서도 상대방이 자신감이 몹시 흔들리고 있으며 시합의 흐름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기복서가 반복해서 내미는 글러브를 붙 들고 링 위에서 비틀거리거나 그에게 들러붙거나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이 작은 틈을 보이면 맹 렬한 반격을 개시했다. 진정 몇 방의 좌우 어퍼컷으로. 그 시합을 십중팔구는 손에 쥔 거나 다름 없던 인기복서는 넉아웃되고 말았다. 승리한 복서의 얼굴도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상황이 불리해도 어떻게 해서든 지탱하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졌을 때 반격하기 위 해서 체력과 정신력을 조금씩 비축한 불굴의 투지가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며 약자가 이기면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대부분 약자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투쟁의 연속이다. 우리들은 운동시합을 구경할 때 알게 모르게 약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강자와 싸우는 약자에게 성원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종적으로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코 도중에서 항복하지 않는 근성을 가져야만 한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투쟁의 장소에서는 어떤 재능보다도 근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 다. 재능이 풍부해도 역경에 처해 좌절해 버린다면 재능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전술한 복서와 같 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사태도 극복해 나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실패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지만 있으면 그 실패를 약으로 삼아, 성공을 위한 좀더 좋은 방법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프로페셔널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일을 달성하기까지의 '머나먼 비탈길의 수고'만을 몸에 절실히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감과 투쟁심만 있었더라면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과거의 실패를 한탄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버텼더라면 잘 되었을 텐데...' '자금이 떨어졌 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지.' '실증이 났었지.' '좀더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지.'라는 등의 이야기 를 자주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태도는 인내심이 없고 의지나 신념이 부족했던 점을 은폐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후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뒤에 가서야 겨우 그때 어떠한 방법을 취했어야 했던가를 안 것이다. 좀더 일찍이 과거의 사건을 되새겨 보았더라 면 어쩌면 실패는 하니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실패했다 하여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리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실패의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았던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핑계의 자료로 삼지 말 고 앞날을 위한 참고 자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의욕에 차 계획에 착수하여 그것이 순조로이 진행되면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방심하여 별로 노 력하지 않고 타성에 맡겨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예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인생이란 기나긴 경주인데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특히 처음부터 지 나치게 잘 되는 듯한 일일수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가치 있는 일은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으며, 또 그것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여배우인 바바라 스탠위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류가 되기 위한 경쟁도 격렬하지만, 줄 곧 일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지난날 전쟁에서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선언을 하고 영국국민의 전투의욕을 표명했다. 그것은 '우리는 어디에서든 싸운다. 결코 항복은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으 로 승리에의 강한 의지와 용기가 가득찬 것이었다. 처칠의 강한 의지와 근성이 없었더라면 영국 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을 당해도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을 플러스로도 마이너스로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곤경에 처했다 하여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건설적인 생각을 할 때에야 말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창조력은 보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여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도록 도 와주는 것이다. 어떤 원인으로 해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자신이 느꼈다하자. 그러한 경우는 우선 상황에서 일단 눈을 떼고 거리를 두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이다. 사람은 종종 무의식중에 자신 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당하면 사람은 의혹과 공포의 수렁에 빠 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가게 된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자신이 취한 행위가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면 자신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단단히 믿고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어떤 미움이나 악 의에 찬 보복을 당하더라도 그러한 것으로 자신이 기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투쟁심 을 간직하고 자신의 신념을 믿어 의심치 말일이다. 뛰어난 운동선수란 단지 꿈만 꾼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류 선수란 정녕 땀과 수 고의 하사품이며 좌절과 실망을 주목하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오를수록 그곳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하는 희생은 큰 것이다. 스포츠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을 차지한 사람이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사소한 것까지 자신을 위하여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녕 세계를 제패하려 하 는데 돌연히 장애가 생겨 의지를 잃게 된다면 그때까지의 수고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장 해나 불운을 극복치 않으면 아무리 수고를 했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범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 다. 최 정상급 경주자인 그렌 카닝햄은 어린 시절 심한 화상을 당하여 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 게 되었다. 의사는 걸을 수 있게 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근성이 있 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걷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몹시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입은 발에 다시 피가 통하고 원래대로 강해지기를 기원하면서 온갖 훈련을 했다. 그러는 중에 근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자 달리기 경주로 새로 운 힘을 길렀다. 이 어린 시절의 화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렌은 싫어도 자신의 발에 주위를 기울어야 했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발은 단련되었다. 그 후 그는 육상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그 시대의 세계적인 경주자들과 경쟁하면서 수많은 세계기록을 세웠다. 육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한 그렌의 투쟁심은 그를 일류 운동선수로 만들었다. 의사의 말 을 따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만을 했더라면 살아가는 것은 분명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 능한 한 노력을 하여 최고의 인생을 보낸 것이다. 세계의 정상수준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의 노력은 정녕 초인적인 것으로 그들의 강한 인내심과 근성에는 그저 놀랄 뿐이다. 만약 자신이 리즈 하텔이라는 여성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23세의 덴마크 여성, 리즈 하텔은 소아마비에 걸려 체력을 완전히 잃었다. 본래의 체력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몇 주 동안이나 마루 위를 기어다니며 훈련했다. 도르래에 매어 단 모래주머니로 매일 발과 말을 단련했다. 두 번에 걸쳐 발 수술을 끝낸 후부터는 다시 승 마할 수 있도록 자전거의 발판에 몸을 동여매고 연습을 했다. 겨우 3분 정도 승마해도 피로해 지 칠 정도의 상태에서도 연습을 반복했다. 마음속에 승마 능력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절실한 바램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그러한 일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즈 하텔은 전에는 마술의 명수로, 조마라는 분야에서는 세계챔피언에 가까울 정도의 지위에 있었다. 소아마비라는 사고 때문에 일단은 경쟁에서 낙오했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조금 늦어질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하여 어느날엔가는 자신의 훌륭한 기술로 고득점 을 따내겠다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과 같은 기술을 되찾는 것만으로는 부 족하며 더욱 고도의 기술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었다. 리즈 하텔의 분야인 '조마'라는 경기에서는 말과 기수의 감정이 일체가 되어 서로 이해할 필요 가 있었다. 그러므로 리즈 자신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불안감은 필히 말에 영향을 미친다. 따 라서 그녀는 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도 올바른 방향으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다른 노력을 거듭한 결과 리즈는 전보다도 더욱 세련된 기술을 몸에 익혀 지난 1947년의 노 르딕 승마 경기대회에서 2위에 입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애마인 치고로가 마구간 문에 끼어 그만 골절을 일으켜 재기불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새로운 말을 찾아내어 또 처음부 터 다시 가르쳐야만 했다. 밤색 털을 가진 암말 쥬비리를 사 가지고 왔다. 그 당시 리즈는 아직도 말을 탈 때에 마부의 도움을 받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새로운 말에게 착실히 여러 가지 기술을 가 르쳤다. 1952년.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걷게 된 리즈는 올림픽출전권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게다가 그 올림픽에서는 당당하게 2위에 입상했다. 더구나 그러한 대경기에서 상을 받은 여성은 그녀가 처 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스포츠계에서 정상에 선 선 수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패배나 역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해온 것을 알 수 있다. 프로 골프 선수인 베이브 디킨슨이 암으로 쓰러졌을 때 그녀의 경기생활은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경기에 임할 때와 마찬가지로 투쟁심을 가지고 수술에 임해 훌륭하게 몸 을 회복시켰다. 그녀는 외출할 수 있게 되자 즉시 크럽을 잡았다. 건강을 되찾자 손발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긴 비탈길을 오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전미 여자오픈과 전미 선수권에서 우승함으 로써 멋지게 컴백하였다.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커다란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골프경기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생의 방식에도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을 어느 한 사람이 성취한 경우 그러한 사람은 문명을 일보 전진시 킨 것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어떤 인간도 1.6km를 4분에 달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도 예를 든 그렌 카 닝햄이 1938년에 낸 4분 4초 04라는 기록은 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후 그 기록에 조금씩 접근하는 선수들이 나타났으며 1945년에는 영국의 로저 반스티가 3분 59초 04 라는 기록을 세웠다. 후에 또 한 사람 스트렐리아의 죤 운디라는 선수도 4분이라는 벽을 깨뜨렸 다. 이 새로운 기록은 스포츠 사상 빛나는 위업의 하나가 되었다. 기술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이었 을 뿐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벽을 돌파한 인간정신의 승리라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의 능력이란 이와 같은 과감한 정신에 의해 신장되며 확장되는 것이다. 노력이나 희생 없이 명성이나 부나 어떤 기술을 몸에 익히기를 원하는 것은 실로 인간적인 사 고방식이다. 많은 인간은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위하여 치러야 할 희생을 두고 머릿속에서 저울 질한다. 그리고 희생이 큰 데 비해 성과가 적다면 그 계획을 포기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일단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중지한 후에 누군가가 그것에 성공하면 그 사람을 부 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한다. '사실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해냈을 거야. 만약 그러한 일만 없었더라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좀더 강했더라면...' 이러한 한탄을 한다면 실로 한심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압박감 속에서, 혹은 언뜻 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아래에서 그 사 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하지 않은 안정된 환경에서 인생을 살기는 쉽다. 또 위기적 상황을 어떻게든 해서 극복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인간이 같은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키워온 용기나 신념이나 결단력이 '어느 시점에서 깨어져 버리는가'를 결정짓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던져 버리는 시점은 다른 사람에게는 시작 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만약자신이 매일 전진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은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서 가만히 있 다는 것은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이겨서 얻은 지위를 유지하려면 가능한 한 노력을 게 을리 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계의 패자는 일단 그 세계를 정복하려고 결심하면 위험이나 승리의 가망성 같은 것은 생 각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큰 위험이 있더라도 맞설 마음의 태세, 싸울 의사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스포츠계의 챔피언과 같은 정도의 결의와 인내력, 게다가 투지력을 가진다면 틀 림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조난자 눈을 뜰 수 없는 북극의 눈보라 속에서 시속 약 130km의 강풍과 영하40도의 극한에 시달리면 서 두 남성은 절망에 가까운 사태를 맞고 있었다. 휴버트 윌킨슨과 파일럿 칼 벤 윌슨은 북극의, 게다가 인적이 있는 곳으로부터 약 150km나 떨어진 곳에서 조난을 당한 것이다. 생환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깎아 세운 듯이 우뚝 서 있는 유빙의 무리와 덥쳐오는 눈, 그리고 바람과 싸우면서 약 150km의 험한 코스를 걸어서 돌파하는 것이었다. 어처 구니없는 생각이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데도 강한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윌슨과 윌킨슨은 불시착하여 이미 얼어붙기 시작한 비행기를 남겨 놓고 위험한 보행을 시작했다. 몇 킬로미터 정도 걸었을 때 걷고 있던 윌킨슨이 얇은 얼음을 밟아 차가운 물 속에 빠져버렸 다. 다행히 선반처럼 되어 있는 얼음을 붙잡아 살아났지만 그의 모피도 방한화도 물에 완전히 젖 고 말았다. 윌킨슨은 일어서서 즉시 모피와 장화를 벗기 시작했다. 놀란 윌슨은 말리려 했지만 윌킨슨은 젖은 옷을 눈으로 비벼 말리지 않으면 입은 채로 얼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윌킨슨이 의복을 말려 다시 입기까지는 그다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혹한 속에서 그 런 행위를 하기에는 대단한 침착성과 결단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물 속에 빠진 쇼크가 가시기도 전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훌륭한 행위였 다. 같은 상황을 당했을 때 놀라 당황하는 탐험가도 많을 것이다. 윌킨슨은 그때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이성으로 신체를 컨트롤하는 훈련을 항상 하고 있었다. 또 만일 돌발적인 사고를 당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곤경을 당하면 체념치 않고 최선을 다하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시착한 뒤 4일째에 윌슨과 윌킨슨은 쇠약해지긴 했지만 이겨냈다는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인 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생각할만한 점은 인내력과 의지력이 훌륭한 모험담을 낳는다는 것이다. 만약 두 남성이 육체도 정신도 튼튼치 못했더라면 기적적인 생존을 실현치 못했을 것이 다. 제 8장 내 인생을 찾아서 만일 현자들이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바보들은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괴테- 크리미아의 천사 기회란 손을 내밀어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만 있으면 기회는 달아나 버린다. 역의 홈에 열차가 들어오면 주저치 말고 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열차의 행선지와 자신 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행동해야 할 일이 많 다. 그런 때 당신의 대응방법에 따라 사태가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생에 있 어서 심심하다는 생각을 할 여가는 없을 터인데 심심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심심하다는 것 은 그다지 바람직한 정신상태는 아니다. 심심해하고만 있으면 어느 사이엔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서도 방관자처럼 되어버린다. 자극이나 변화에도 둔감해지고 혼이 빠진, 껍질밖에 없는 인간처럼 될 위험성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매우 바쁘다. 일상생활에서 생긴 모든 일이 그들의 흥미의 대상이며, 이것저것 열중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도중에서 인생을 내던지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이 흥미 있는 일을 발견하여 그것에 열중하고 인생을 마 음껏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았으면 싶은데, 만약 '심심한 벌레'가 습격해 오면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고 '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약'을 이용하여 그런 상황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자기계발을 촉진시키는 책을 읽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듣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그렇게 해서 배운 지식을 실행하는 것이다. 실행하지 않는 한 아무런 진보 도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많은 문제를 안고 죽지 못해 사록 있다면 그 중에서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 을 골라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라. 어떤 일이든 좋다. 우선 어떤 행동을 하면 나쁜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던 사고방식이 변경되어 새롭고 가능성이 풍부한 일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상황이 자신의 눈앞에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함에 따라 상황은 점 점 변화되어 결국에는 도리가 없었던 것 같던 장애나 문제점이 자신도 모르게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환자의 간호라는 직업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 전세계에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녀가 환자의 간호를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심심한 일상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였다. 나이팅게일은 영국상류계급 출신으로 매일을 파티나 댄스, 그 밖의 상류계급이 주최하는 모임 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런 나날을 보내면서도 젊은 나이팅게일의 마음은 만족되지 않았다. 그녀는 좀더 건설적이고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려 했다. 그때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2--3주 후, 전쟁터에서 부상병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 뉴스는 나이팅게일도 들었다. 나이팅게일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에는 의학도 위생학도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 않았으며 환자의 간호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전쟁터에서 부상병들이 버림받고 잇는 비참한 상황을 알게 된 영국인 들은 모두가 쇼크를 받아 분개했다. 나이팅게일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 우려고 하였다. 나이팅게일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육군대위 시드니 하버트를 찾아가 힘이 되 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한 그녀에게 하버트는 물었다. "귀하게 자란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부상병을 간호하는 일입니다. 그런 참담한 상태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하버트는 명문가 출신인 나이팅게일에게 환자의 간호라는 어렵고도 그다지 깨끗지 못한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해 곤혹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는 인생에 심심함을 느끼고 있던 옛 날의 그녀는 아니었다. 단호하게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일임을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하버트는 결국 그녀의 열의에 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을 38명의 간호원들의 지도자로 임명하여 크리미아 전선에 파견한 것이다. 전선에서 나이팅게일은 간호원들의 관리는 물론이고 군인병원의 운영, 1만 명에 이르는 부상병 들의 간호라는 큰 일에 직면하게 되었다. 상류사회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비상사태 속에 나이팅게일은 몸을 던졌다. 전선에서 그녀는 선견지명과 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였다. 매일 20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 시 간을 가능한 한 쪼개어 부상병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고 하였다. 어느 사이엔지 부상병들은 나이팅게일을 '램프의 천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녀는 환자 한사람 한사람을 위로하듯이 신경을 쓰면서 침대 사이를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병원대의 환경위생 개선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1855년 2월부터 6개월 사이에 42%였던 사망률이 겨우 2%로 격감하게 되었다. 그후 나이팅게일은 자신이 크리미아열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1856년 영국이 터키에서 철수할 때 까지 직무를 수행했다. 그녀의 훌륭한 헌신적인 행위는 영국본토까지 소식이 전해져 그 업적을 인정한 사람들이 그녀 를 위하여 5폰드(약 1억 원)를 기증했다. 영국에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간호학교를 설립하여 근대 적 간호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나이팅게일은 심심한 일상생활에서 한 발자국 내디딤으로써 기회를 잡아 훌륭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광산업자가 유명작가로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한 순간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가에 의해 그 사람의 그후의 인생항로는 결정된다. 또, 기회가 오기를 그저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기회를 잡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기회를 잡으면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 으면 모처럼 온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사무엘 클레멘스라는 사람은 미시시피 강을 오르내리는 배의 항해사로서 모험을 거듭한 후 황 금을 찾기 위해 서부로 갔다. 그런데 조금만 더 했더라면 뭔가를 얻었을 작업을 체념했기 때문에 금광을 발견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포기하고 심심하게 인생을 보낼 인간은 아니었다. 사무엘 클레멘스는 돈을 벌기 위해 네바다, 버지니아시티, 엔터플라이즈사에 취직하여 신문 보 도원으로 일했다. 그가 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생각해낸 것은 그곳에서 일할 때였다. 그는 그 이야 기에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붙여 뉴욕의 한 신문사로 보냈다. 그가 쓴 '뜀뛰는 개구리'는 즉시 출판되고 게다가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내 의 모든 신문이 서평에서 그 소설을 취급했다. 수천의 독자가 그 소설을 읽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은 순식간에 미국 전체에 퍼졌다. 그는 금광을 찾는 데 실패했 을 때 거기에서 체념하거나 심심한 인생을 보내지 않고 신문사에 근무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 작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내부에서 창조력이라는 금맥을 발견해 낸 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면 다른 사람 역시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개는 심심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경우 아마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하는 의욕이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인간이든 재미있고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 심심한 사람이라 고 말하기 전에 찬찬히 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 하여 그 사람을 가볍게 보 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만나 어떻게든 인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어떠 한 일로부터 인생을 크게 꽃피울 기회가 생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예를 들면 사소한 계기 로 원조나 호의를 주었던 사람에게서 후에 갑자기 유산을 물려받는 예도 있다. 또, 사소한 만남으 로 가치 있는 관계를 맺게 되어 성공으로 연결되는 예도 있다. 재미있게도 인생에서는 물위에 떨 어뜨린 빵이 필요할 때에 케이크가 되어 되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하는 소중함을 알아두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입장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 않은 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돕지 않고 방치한다면 언젠가 그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는 오퍼드 고도우스키는 한 이름높은 피아니스트 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었음을 알았다. 그 불운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그리고 연주가로서의 생명은 끝났 다고 생각하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에게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써주겠다고 말하며 격려 했다. 그런데 고도우스키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약속한 작곡이 좀 처럼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작곡을 시작하지 못해서 차차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한때 그는 만약 자신이 한쪽 팔을 잃었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는 왼손을 위한 연주곡을 완성시켜 그 사본을 비트겐슈타인에게 보냈다. 후에 비트겐 슈타인은 이 곡을 연주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고도우스키도 자신의 연주회를 차례로 성공시켰다. 그리고 왼손을 위한 곡을 쓴 것 같은 것은 거의 잊었을 무렵, 갑자기 그는 뇌졸중으로 쓰려졌다. 그의 오른손과 오른팔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불가사의한 운명의 장난이지만 그후 고도우스키는 전에 남을 위해서 쓴 곡을 자신의 손으로 연 주하면서 연주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를 만날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한 후에 기대한 대로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 이다. 초조해지고 정신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자신의 계획을 추진시키기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을 때는 욕구불만 상태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때에는 종종 어떤 압력이 라도 가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때가 문제인 것이다. 초조감에 쫓겨 행동을 하면 실수 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때야말로 직감에 의존하면 좋을 것이다. 단 필요할 때 직감에 의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 해서는 평소부터 직감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나름대로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자신이 행동을 하려할 때 진실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충동적으 로 행동할 뿐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뭔가를 하려 고 자신이 무리해서 힘을 내고 있다고 느끼거나 심한 긴장감이나 불안감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때 는 행동을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내재해 있는 창조력이 잘 작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행동해야 할 때가 오면 내재해 있는 힘이 자연스럽게 작용하여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싶 다는 강한 기분을 갖게 할 것이다. 이것이 소위 직감이다. 평소부터 직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 록 훈련하여 그 명령에 따르게 되면 인생에 있어서 성공할 확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직접적 힘에 의한 작용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직감이라는 유효한 수단을 간과 해 왔다. 힘에 의존하여 다른 사람을 무리하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 해도 사람은 반발할 뿐이 다. 해야할 일을 하고 나면 쓸데없는 일을 생각지 말고 낙관할 일이다. 자신이 계획이 잘 되어 가 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좋은 결과를 빨리 내기 위해 무리를 한다면 계획 그 자체를 창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해야할 일을 한 후에는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이것뿐이다. 내가 자신의 직감력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이후 나는 가능한 한 그 힘에 따르는 훈련을 해 왔다. 덕분에 현재 나의 직감력은 상당히 강해졌다. 그래도 다른 사 람이 불안해하는 일을 자신이 하려 할 때는 나 자신도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 한 다. 불안감을 품고 있으면 그것에 방해를 받아 직감력이 올바로 작용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도 필요할 때에 직감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기까지 직감력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직감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본다.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그 당시 영 루비캄 광고회사의 감독을 맡고 있던 나트 울프에게 한 가 지 계획을 제안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울프와는 그 몇 년 전에 뉴욕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후 그때까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울프가 단기출장으로 헐리우드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와 만날 약속을 받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광고회사의 헐리우드 지점 비서의 말에 의하면 울프가 2일간 헐리우드에 체재하는 동안의 스케줄은 꽉 들어찼다 했다. 그러나 원고라면 울프에게 전달 하고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라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나의 원고를 받아주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번 그를 만나 인사를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틀림없이 헐리우드에서 울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서 반복했다. 드디어 울프가 헐리우드에 오는 날 나는 어떤 직감력이 작용하기를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울프에게 전달되어 잠깐이라도 울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 던 것이다. 몇 시에 헐리우드 지점에 광고계획의 원고를 가지고 가야할 것인가의 문제로 지나치게 신경 쓰 이지 않도록 다른 일에 마음을 쓰면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전 중에는 어떠한 예감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무리해서 나가려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오후까지 기다렸다. 오후도 반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어떤 긴급한 예감을 느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달려나가 자동차를 타고 광고회사로 향했다. 울프의 대리비서가 응대하기 위해 나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부탁해보았다. "잠깐만이라도 울프씨를 뵐 수 없을까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틈이 날 때까지 기다릴 테니." 비서는 대답했다. "그런데 셔먼 씨, 울프씨는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정대로라면 30분 전에 도착 하셨을 텐데... 하지만 이 원고는 분명히 맡겠습니다. 1주일이나 10일 사이에 울프씨께서 답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직감이라는 고도의 힘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결코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무리해서 힘을 가해 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아직 조건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무리해서 어떤 행동 을 하면 사태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비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울프씨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걸은 후 헐리우드 거리의 모퉁이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제부 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내부에 있는 힘에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2--3분 후 거리 건너편에 있는 이발소에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세는 주인 혼자서 이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예약 없이 가는 일은 없었 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감으로써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이발소에 갔다. 가게의 문을 열자 가게 주인인 데이브 다이닌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셔먼씨. 예약을 해주세요. 보시는 바와 같이 지금 한창 바쁩니다."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좀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게주인은 물었다. 나는 기다려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잡지를 보면서 기다렸다. 이미 다섯시 가까이 되었지만 내부의 소리는 좀더 그곳에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울 프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는 아예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직감에 의해 울프가 현재 있 는 장소로부터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이발을 끝내고 가게를 나와 그곳에 당도했을 때 나는 서류 가방을 옆구리에 낀 울프를 발견했다. 나는 즉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커피를 마시기 위 해 브라운 더비의 가게에 가는 참이었던 것이다. "셔먼씨." 그는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예정이 있어서 만나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고는 확실히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몇 분간 이야기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던 대로였다. 나는 성공했다는 느낌을 가슴에 느끼면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직감력도 작용시킬 수가 있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직감력이 작용하기 쉽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 단, 여러 번 말했듯이 필요할 때에 유효하게 직감력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훈련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내가 자신의 직감력을 믿게 된 것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이다. 죠셉 서드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독심술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만난 사람의 인상에서 여러 가지 일을 느껴 앞으로 그 사람의 신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서드니는 자비로 출판한 '캬라벨 골짜기'라는 책 속에서 그러한 경험을 많이 서술하고 있다. 그 는 이제 80세가 다 되었는데 그야말로 인생을 '잠재력의 인도'에 의해 살아온 사람이다. '잠재력의 인도'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도의 심리적 능력이며 지금부터 미래로 나 아가야 할 인간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게 가장 좋을까를 결정하는 것이다. 서드니는 장래를 예견하는 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항상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어떤 사람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예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일을 예지하려 하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수신기를 항상 설치해 두어야 합 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의력과 직감력이 둔해져 정작 중요한 자신이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기원함으로써 직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매 일 그저 가만히 앉아서 직감이 솟아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선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직감이 행동의 키를 잡아줄 것입니다. 가능한 한 이론과 이성을 작용시켜서 행동을 하십시오. 단, 항상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자칫하면 사 소한 일로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이상의 사실을 머릿속에 넣어두면 직감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목소리 포아벨 부인은 남편을 병으로 잃고 한때는 살 보람이 없다고까지 생각하며 비탄에 잠겼었다. 그러나 점점 마음을 잡으면서 다시 한번 인생을 시작해 보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 포아벨 부인은 독자인 리처드와 며느리 헬렌과 함께 세 식구가 롱 아일랜드의 베이사이드에 살고 있었 다. 한때 리처드의 아내 헬렌이 추위 때문에 건강을 잃었다. 의사는 헬렌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휴양하도록 권유하였다. 아들인 리처드도 베이사이드의 집을 팔고 서부로 가자고 제안했다. 포아 벨 부인은 하룻밤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무렵 강한 직감을 받고 눈을 떴다. 그것은 그녀도 캘리포니아에 가야 하지만 아들부부가 원하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남 캘리포니아 쪽으 로 가능한한 빨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일가는 베이사이드의 집을 팔고 우선 아들부부가 주장하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하여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쉽게 좋은 집이 발견되어 그 집을 사서 세 식구가 생활을 시작했다. 리 처드는 즉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일년 후에는 부부 두 사람의 집을 근처에 마련할 수 있게 되어 아들부부는 독립해 나갔다. 젊은 부부가 독립했기 때문에 포아벨 부인은 남 캘리포니아로 간다는 지난날의 직감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쪽에서 좋은 집을 발견하여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 다. '좋은 집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방향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원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 던 중에 남 캘리포니아에서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종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 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20년간 소식이 없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포아벨 부인은 수화기 저편의 친구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친구가 캘리포니아의 산타바 바라라고 말했을 때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곳이야말로 그녀가 살기를 원했던 장소였던 것이다. 친구는 그녀에게 한번 놀러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청을 받아들여 산 타바바라에 갔다. 산타바바라의 친구 집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부인은 몹시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게다가 가격은 부인이 감당할만한 것이었다. 그녀는 직감으로 '바로 이것이다'라고 느꼈다. 그녀는 샌프 란시스코에 돌아오자 집을 팔아 산타바바라의 그 집을 샀다. 포아벨 부인은 가구를 실은 차에 타고 산타바바라로 향해 가면서 들뜬 기분도 맛보고 있었다. "왠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멋진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집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있는데 정원의 울타리를 넘어 한 사람의 남성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팔을 내밀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죤슨이라고 합니다." 거들어 주던 사람들이 돌아가자 뒤에는 빈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매 우 피곤했으므로 아침까지 상자를 두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포아벨 부인이 눈을 떠보니 집 앞의 길이 깨끗해져 있었다. 옆집에 살고 있는 신사가 치워준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교제가 시작되었다. 죤슨은 12년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윽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여 결혼하게 되었다. 포아벨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지난날의 결혼상대자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또다시 이렇게 훌 륭한 상대자를 만나다니 너무 행복해 과분할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새로 설계한 집에서 천 국에 사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직감에 따르기 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괴로울 때도 틀림없이 상황이 호전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일어난 모든 일이 우리들에게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나는 이처럼 직감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어 왔으며, 이 점은 나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서로 이해하고 있는 내외란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생각하는 수가 많은 것이다. 나와 아내는 어떤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나 어떤 방향을 정하여 움직이려 할 때 대개 서로의 뜻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 내외는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어려운 문제이든 근심을 하거나 희망적 관측에 의존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사태를 냉정히 응시하여 공평한 태도를 취하는 게 중 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직감이라는 고도의 감지 능력은 아무런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감력을 잘 작용시키기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다음에 우리 내외는 어느 편인가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하는 편이 좋다고 느끼면 자신 감을 가지고 이렇게 한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남편과 아내가 정신생활을 서로 완전히 이해하고 있으면 장래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서로 상처를 주는 일없이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공포감이나 불안감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매일 밤 다음과 같이 마 음속에서 되풀이하면 좋다. '나는 항상 자연에서 부여받은 힘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경고로서 번개처럼 느껴지는 직감을 항상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르도록 노력하자.' 누구나 내재해 있는 목소리에 의해 인도되며 그것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두면 좋다. 그리고 아무리 긴급한 사태가 발생해도 내재해 있는 소리를 따르면 정확한 장소에서 정확 한 시간에 정확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실제로 심각한 사태를 당해도 동요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심리적 현상을 연구해 왔는데, 그 결과 어떤 일이든 미리 그 일이 일어나 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일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들 인간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원하고 그 렇게 되도록 행동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인간이란 그 작 용의 면에 있어서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하나는 점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부분, 그리 고 두 번째는 끊임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부분, 또 세 번째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 하고 있는 부분이다. 직감력은 현재에서 미래로 전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감력이라는 위대한 힘을 더욱 계발 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직감력을 매일 사용해야 한다. 직감력의 소리를 듣고 그 지시에 따르면 결코 길을 잘못 들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 9장 개척하는 사람들 그대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직시하고 개선시키십시오. 그것을 피하거 나 나쁜 이름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그대처럼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세계제일의 부 자라고 해도 그것은 가장 가난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약점만 발견하는 사람은 낙원에서 도 약점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대의 인생을 사랑하십시오. -도로우- 대통령 각하신가요 나는 줄리어스 시저요 1939년 민주의회가 열리기 수 개월 전에, 그 당시 ''코스모폴리탄지의 편집자였던 윌리엄 C 렌 젤은 하나의 예감을 가졌다. 그것은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미합중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그 예감에 기초를 둔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루즈벨 트에게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만 출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통령은 나나. 이것이 나의 정 책이다.'라는 제목의 원고를 써주도록 설득했다. 루즈벨트의 원고는 의회가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즉시 활자를 조합, 인쇄하여 특종 기사를 게재한 '코스모폴리탄'지를 더 많이 인쇄하도록 인쇄소에 신청했다. 그런데 여기에 생각지도 않은 장애가 생겼다. 증쇄를 신청해둔 후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흑 인 가정부가 벌벌 떨면서 말했다. "대통령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렌젤을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가 농담이라도 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대통령각하신가요. 나는 줄리어스 시저요." 그런데 수화기에서 들려온 것은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엘레노아 루즈벨트 부인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렌젤씨,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남편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어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랭클린 루즈밸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렌젤, 언제쯤이면 요전번 원고의 교정판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렌젤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뭐라고요? 교정은 몇 개월 전에 보아 주셨지 않습니까? 지금은 인쇄가 돌아가고 있는데요." "뭐라고? 그것은 곤란하네. 그 원고를 쓰고 난 후 변경사항이 많이 생겼네. 교정을 다시 한번 보게 해주었으면 하네." 대통령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렌젤은 서둘러서 교정판을 가지고 대통령 비서관을 방문했다. ' 코스모폴리탄'지의 인쇄는 중지시켰다. 렌젤은 자신의 예감에 일발의 승부를 걸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 벽력같은 소식이 업계의 정보통을 통하여 들어왔다. 라이벌인 ' 리버트'지도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를 기다렸다. 수정을 해야 한다면 그 기사를 게재한 그 자체를 다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그 기사를 게재하지 말라고 할지도 몰랐 다. 그 날밤 대통령 비서관인 반 호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사의 수정 승인을 받은 같은 기사를 게재하리라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리버트'지는 발매일이 빠르다. 렌젤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잡지에만 기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대통령은 웃으며 대답했다. "렌젤, 들어보게. 거절할 수가 없었지. 그들은 오랫동안 나를 지지해주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자 네에게 준 기사가 훨씬 좋은 것이야." 그런 소리를 듣고도 렌젤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리버트'는 그것으로 크게 히트를 할 것이다. 렌젤은 완전히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버렸다. 라이벌 지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면 도대 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렌젤은 방법이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매일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평상시 보다 일주일 정도 발매일을 앞당기는 수밖에 이겨낼 수단은 없었다. 수정해야 하는 부분은 활자 배열부터 다시 해야만 했다. 발매일을 앞당기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사방팔방으로 손을 썼다. 그 결과 1933년 1월 호는 '리버트'보다 일찍 발매되게 되었다. 권두특집 인 '새로운 합중국의 지도자, 차기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기사는 크게 히트하여 '코스모 폴리탄'은 날개돋친 듯이 팔렸다. 렌젤은 최초의 직감을 믿고 행동함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도중에 궁지에 빠지기도 했지만 렌젤 은 그것을 인생에 있어서 으레 있는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직감을 성 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 쾌거는 출판계 역사상 새로운 장으로 기록되었다. 전화위복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도 실제로는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특히 사업에 있어서는 파멸로 보인 일이 훌륭한 성공으로 연결되는 때도 있다. 1917년 세금전문가였던 몇 사람이 모여 새로운 출판사를 창립했다. 이 회사야말로 후에 세계적 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하나가 된 보드 오브 프렌티스 홀사이다. 그 창립멤버 중 후에 사장이 된 리처드 프렌티스 에틴셔라는 인물도 있었다.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출판사는 세금문제로 골치를 앓는 사람들을 위하여 당시의 세법 을 쉽게 해설한, 소득세에 관한 책을 출판하려 했다. 소득세에 관한 그 책은 초판이 4천부 인쇄되어 1부에 5달러씩 판매되었다. 당시 5달러라면 비 싼 가격이었지만 독자들이 열망하고 있던 책이었으므로 6주만에 매진되고 말았다. 이 판매실적에 용기를 얻은 이 작은 출판사는 또 다시 제 2판을 4천부 인쇄했다. 그런데 여기 서 큰 문제가 생겼다. 제본이 완성되었을 무렵 소득세에 관한 세제가 완전히 변경되어 버린 것이 다. 순간적으로 이 책은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4천부를 팔면 총액 2만 달러의 매상을 올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반대로 크게 손해를 가져왔다. 이것은 자본금이 적은 소기업으 로는 큰 손실이었다. 프렌티스 홀사의 직원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다. 누구나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 은 서로를 동정하거나 푸념을 하거나 하지 않고 나쁜 상황에서 탈출할 방법을 의논하였다. 그 회의는 지금도 이야깃거리로 남아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엔티셔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낙천적이며 결단력이 있었다. 그는 그때의 사태를 패배라 생각지 않고 시련으로 받아들였 다. "어떻게 하면 사태를 잘 수습할 수 있겠는가?" 그는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법률이 아무리 개정되어도 그 허를 찌를 방법도 있을 것이며, 자신들이 내려하고 있는 책의 내 용은 법률에 맞춰 변경시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들이 제 1판을 발매해보고 알 게 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세금지식을 철저히 알 수 있는 권위 있는 책을 진 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엔티셔는 역설했다. "우리들의 진실된 문제는 시대에 맞는 세금지식을 어떠한 형태로 출판해 갈 것인가 하는 것입 니다." 결국 이 회의에서 결정된 안이라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즉 낱장을 바인더 철한 루스리 프식 형태로 하여 그 책을 다시 한번 고쳐서 인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개정된 법률뿐만 아니라 그 해석법을 포함한 최신 정보를 항상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루스리프식 책은 다음해에 출판되었는데 발매와 동시에 출판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 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책은 매년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번은 실패하여 무일푼이 되었던 중소출판사가 이 책만으로 1억 달러를 넘는 매상고를 기록한 것이다. 엔티셔는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자문자답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과실을 분석하여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일단 방법 을 찾아내자 뒤에는 시행착오를 계속하면서 보다 좋은 방법을 짜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실 패를 잘 살릴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비즈니스맨이라면 지금까지의 실패를 생각해내어 거기에 숨겨져 있는 교훈을 읽도 록 하라.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용기가 용솟음칠 것이다. 성공의 길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경험 속에 있다. 같은 실패로 여러 번 되풀이하는 사람은 운 나쁘게도 그 길이 보이지 않았거나, 혹은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방향의 길로 빗나간 것일 뿐인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배우려 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일은 잘 될 것이다. 경험만큼 가능성이 풍부한 금광은 없다. 기억의 밑바닥에는 수많은 과오나 실패, 그리고 성공과 승리의 기록이 저장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 꺼내어 유익하게 써 주기를 기다리고 있 는 것이다. 그 중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고르면 된다. 성공을 한 사람은 인생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능을 활용한 사람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스스로 저지른 과오에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기억력을 부여해 주었다. 인간 은 자유의지와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동물이다. 자신도 기억력을 이용하여 극소에서 새로운 것 을 창출해내면 된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산 사람들이나 그들이 행한 일로부터 혜택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부터 도 같은 세대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도 이 세상이나 다 른 사람들에게 뭔가 이익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명 그 자체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우리들이 얻은 지혜도 선조들이 수 많은 실패를 거듭한 결과 얻은 것일 뿐이다. 인간이란 어느 시대에도 무의식적인 의미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경험은 항상 각각 서 로 반응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무의식중에 침투되어 가는 것이다. 이 이론으로 본다면 사람은 인생에서 뭔가를 달성할 때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목적달성도 돕 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조차도 그 실패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교훈을 주 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아주 융통성이 있으며 적응하기 쉬운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아보고 자기 표현을 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무슨 일이든 우선 경험할 일이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신체가 성장하는 것처럼 마음은 경험을 쌓음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장래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연구해 보도록 하라. 건망증도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실패나 사소한 실수에서 성공으로 통하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거나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는 수가 있다. 귄 호이트는 뉴멕시코주 아르부켈에 있는 레스토랑 '호이트 페이미스 디너벨'의 경 영자인데 그는 진작부터 가게의 간판이 될만한 디저트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스크림과 시럽을 여러 가지로 조합하여 시험해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것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맛이 독특한 디저트를 원했던 것이다. 어느 날 디너의 마지막에 호이트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에 쵸콜렛 소스를 끼얹어 달라고 주 문했다. 웨이트레스는 파페 글라스에 주문한 디저트를 넣어 가지고 왔는데 마침 그때 호이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디너는 중단되었다. 그는 그 디저트를 냉동실에 넣어두라고 웨이트레스에게 말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일을 금방 잊어버렸다. 며칠 후 그 웨이트레스가 호이트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그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들어있는데, 드시겠습니까?" 호이트는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어떻게 변했는가 한번 봅시다. 가져와요." 웨이트레스는 파페 글라스를 가지고 왔는데, 글라스 주위에는 서리가 가득 끼어 있었다. 안의 아이스크림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스푼으로 뜰 수 있게 되기까지 2--3분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한입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딱딱하게 언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은 비할 데 없이 맛있는 디저 트로 변해 있었다. 호이트는 새로운 디저트는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버터 스카치와 쵸콜렛 두 종류의 맛으로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들어 냉장고에서 하룻밤 얼린 후 다음날에 꺼내기로 하였다. 이 디 저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디너벨의 인기상품이 되었다. 평소라면 언 아이스크림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이트는 오 랫동안 새로운 디저트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건이 있었을 때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틀 아메리카 링컨 하이웨이와 국도 30호선이 교차하는 지점 근처에 자동차를 탄 채로 들어가는 유명한 야외 극장 '리틀 아메리카'가 있다. 와이오밍 황야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야외극장은 실은 그 창립자의 비극적인 경험을 기초로 하여 건설된 것이다. 창립자인 코베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세기에 내가 아직 젊어 이 와이오밍 황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북동쪽에서 불어닥친 눈보라의 습격을 받고 길을 잃어 밤새도록 어떤 곳에 발목을 붙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리틀 아메리카'가 세워진 곳이 그곳이죠. 풍속 22m의 폭풍이 불어닥치는 영하 24 도라는 혹한 속에서의 하룻밤은 기나긴 것이었습니다. 그때만큼 따끈한 음식과 따뜻한 모포와 난 로가 그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 황야에 최소한 비라도 피할 수 있는 작은 집을 누군가가 지어준다면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나 그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내 자신이 그 것을 짓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3년 전 버드 장군이 남극에 세운 '리틀 아메리카'의 사진을 보고 나는 와이오밍에서 눈보라의 습격을 받았던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 남극의 '리틀 아메리카'는 기지에서 몇 킬로미터 나 떨어져 있는 빙원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나는 그 와이오밍 황야에 기념비와 여행자 의 피난처를 세우고자 한 결심을 실행에 옮기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물론 '리틀 아메리카'였 죠." 결국 코베이는 젊은 시절의 괴로운 체험을 통하여 '돈'을 벌게 되었다. 이 지방은 폭풍이 습격 해 오면 고속도로가 완비되어 있는 오늘날에도 자동차나 트럭은 고립되고, 사고나 추위로 죽는 사람이 나오는 험악한 곳이다. 그러나 옛날 코베이가 위태로운 생명을 건진 이 장소를 지금 많은 사람들이 '리틀 아메리카'로 이용함으로써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코베이는 여행자들을 보살피 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훌륭하게 성공으로 매듭지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봉사하는 미망인 젊은 프랑스 여성 마농 다랑 여사는 전에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 다. 양친은 유복했고, 양부는 위대한 천문학자 카뮤 프라마디옹이었다. 당연한 일처럼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크라망 다랑을 만나 프랑스 바노의 아름 다운 성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즈음이 그녀의 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갑자기 종말을 맞았다. 사관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즉시 세단의 전쟁터로 향했고 그녀도 구급대를 지원하여 소레 솜 근처의 전쟁터로 나갔다.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구급대에서 마농 여사가 하는 일은 부상당한 병사나 상한 유해를 야전병원으로 옮기는 것이었 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바노에 있는 그녀의 집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남편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마농 여사는 생각에 잠길 여유도 슬픔에 잠길 틈도 없었다. 전쟁터에서는 밤낮없이 사 람이 자꾸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한때 마농 여사는 폭탄을 맞아 양 손발이 날아간 콩고 소년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다. 소년의 의식은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는 정성 들여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 소년 한 사람에게 매 어 있을 수는 없었다. 부상당한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마농 여사는 소년을 남겨두고 구급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그 때 육군소령의 전령이 지프로 와서 그녀에게 종이조각을 건네주었다. 그곳에 는 '제발 돌아와 주시오. 당신이 없으면 그 소년은 안심하고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오.'라고 쓰 여 있었다. 마농 여사는 서둘러 소년이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소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자 그는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듯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후에 마농 여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년은 나의 품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농 여사는 전쟁터에서 근무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서 일어 나는 크고도 놀랄만한 일들을 참아낼 수 있었으리라. 어느 날 밤, 그녀는 꿈속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그녀는 그때 남편이 살해 당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뒤에 남편의 사망소식을 공식적으로 통고 받았을 때 그녀는 그 예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본질적인 의미에서 처음으로 내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마농 여사의 말이다. 그녀는 이러한 불행은 신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부여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인간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숙소일 뿐이라는 것을 신은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대가로써 정성을 다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이대로 인생을 살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잃었거나 수고를 해 본 사람만이 다 른 사람을 진심으로 동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을 알기까지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인간들이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부 착실하게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세상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해 갈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필요하 다. 이 세상에서 생긴 모든 일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생긴 일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하는 것이 현재의 그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양식, 혹은 신체상황을 결정짓는 것이 다. 인간에게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의 원리가 일생동안 따라다닌다.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컨트롤하고 미래를 확실하게 손안에 넣기 위해서는 역경에 처했을 때나 순탄하게 살아갈 때나 항상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간 중 에는 역경에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공하는 순간 자제심을 잃는 사람도 있다. 자제심을 잃게 되면 순경도 역경도 마찬가지로 시련이 된다. 또, 인간의 본성에는 좋지 않은 일을 가능한 한 피해 가려 하는 면이 있는데 이 성벽이 재난을 부르는 수가 있다. 귀찮은 문제에 부딪쳤을 때 좀더 일찍 뭔가 수단을 강구했더라면 사태가 이렇 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으리라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인간의 계획은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있기 때 인생은 즐겁다. 인생은 우 리에게 항상 기회를 부여해 준다. 셰익스피어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이다.'라고 했지만 나 라면 '하느냐, 하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하겠다. 모든 생각이나 행동에 관하여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보다 나은 결과를 원한다면 자기의 성격 이나 습관, 장래의 희망 등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에게 다가올 일은 최대한으로 살려갈 결심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면 어떤 경험에서든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비극적 사태에 직면했다면 일시에 모든 슬픔을 막아내려 하지 말일이다. 사람은 일단 곤경에 처하면 앞으로 사태는 얼마나 악화할 것일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앞으로의 불안까지 안고 살게 되는 경향이 있다. 현실의 슬픔보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것이다. 이런 상태에 서는 인간의 사고력은 정상적으로 작용치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신 경을 집중시킬 일이다. 어떤 문제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합리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으며 완전히 해결하기까지는 그 나름대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자신이 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 있는 업적도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일이 협력자의 손에 의해 가치 있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은 없는 것이다. 자 신의 노력을 현재 아직 눈에 보이게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념과 희 망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틀림없이 결실을 맺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자신은 어둡고 괴로웠던 날조차 그리워하며 그 경험에서 얻은 가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인내와 신념과 용기를 가지도록 하라. 혼자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진 것은 아니다. 자 신은 항상 내재해 있는 힘이 돕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한 후에는 운을 하늘에 맡길 일이다. 조용 히 생각하면 문제해결의 열쇠는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 10장 위대한 승리 나는 한 해를 보내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인생의 낭비란 사랑하지 않는 것, 힘을 사 용하지 않는 것, 어떤 모험도 하지 않게 만드는 이기심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면치 못하거나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죤 탑- 가수가 가사를 잊다. 오래된 로키시극장에서 유명한 로키시와 그 악단이 최후의 연주회를 열었는데 그 실황을 라디 오에서 생방송 하였다. 로키시의 친구나 각계의 명사들, 그리고 라디오 출연자들이 조정실에서 관객석까지 가득 메웠 다. 그날 악단이 연주하는 곡목은 모두 청취자들의 요청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악단의 히트곡만 으로 짜여 있었다. 라디오의 생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로키시는 그의 악단의 동료에게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 주어 서 감사하다고 따뜻하게 이야기했다. 오프닝 곡을 위하여 로키시가 지휘봉을 치켜올렸을 때 주위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악단의 연주자들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연주를 하기 위 하여 긴장하고 있었다. 마침내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해롤드 본돗세가 노래 부를 차례가 되었다. 본돗세는 그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추억의 곡 '웃는 어릿광대'를 부르기 위하여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로키시가 노래의 곡명을 말하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케스트라가 전주를 연주하자 본돗세는 전에 없었을 정도로 정열적으로 노래를 부 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코러스에 녹아들어가자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도 관객도 모두 감동 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갑자기 가사가 중단되고 본돗세의 표정은 허탈해졌다. 로키시와 단원들은 본돗세가 가 사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수천 번을 반복해서 불러온 가사를 잊어버린 것이다. 단원들은 연주하면서 필사적으로 가사를 가르쳐 주려 했지만 본돗세에게 전달되었을 때는 멜로디가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본돗세는 얼어붙은 듯이 서서 동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 었다. 그러나 그는 체념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코러스 부분이 끝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2절도 중반을 지났는데 본돗세는 아직도 가사를 생 각해내지 못했다. 관객은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본돗세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로키시 쪽을 돌아보았다. 로키시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웃음띈 얼굴을 하고서 신경 쓸 일은 아니다라는 손짓으로 그의 어깨를 상냥하게 두드렸다. 그 손의 온기가 본돗세의 고뇌를 씻어냈다. 그의 눈에 광채가 다시 나고 그의 입가에서는 가사 가 소생한 것이다. 그는 나머지 부분을 울적한 감정을 털어 내듯이 힘있게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렸다. 스튜디오에 있던 사람들은 그러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광경은 라디오 방송사상에서도 마음에 남는 한 장면이었으며,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로서 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운 좋게도 나도 그 장소에 있었는데 그것도 본돗세의 바로 가까이 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대개의 가수는 도중에서 가사를 잊어버리면 거의 그대로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본돗세는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맞게 된 이 난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탈출하려 했던 것이다. 그가 후에 이야기해준 바에 의하면 이러한 사태는 모든 가수나 연기자가 항상 주의해야 하는 점이라 한다. 그의 경우 특히 감동적인 장면에서의 등장이었던 만큼 그것이 심리적으로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체념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부르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반대로 그와 같은 감동적인 장면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실연 당한 여자 얼마 전에 한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나에게 상담을 하러 왔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남성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남성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결혼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고민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는 나에게 가정이나 금전적 사정 때 문에 바로 결혼하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네가 필요하다. 어쨌든 결혼할 것이니 신경 쓸 일이 아 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 여성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한 경우 대개 어느 한편이 상처받게 된 다. 특히 그 여성처럼 종교적인 사고방식과 높은 도덕심을 가진 사람이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여 성은 혼전관계를 필요이상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죄악감을 느낀다. 그 여성은 덧붙여 말했다. "그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나를 이용하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린 지난날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나의 인생은 이제 끝장났습니다. 만약 내가 결혼할 때까지 그의 요구를 거절했더라면 이렇게 되 지는 않았을 겁니다. 분명 우리들이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이것은 그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달리 행동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누 구든 분명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남성이 말뿐인 인간이라면 결혼이라는 밧줄로도 그를 붙잡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여성에게 말했다. "만약 그가 아가씨와 정식으로 결혼했으면서도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지금 아가씨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지만 그 고민하는 만큼 그런 남성 에게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쓸모 없이 보냈다는 생각 을 하면 후회만이 앞섭니다. 특히 고통스러운 것은 그에게 나의 순결을 바쳤다는 사실입니다. 앞 으로 혹시 훌륭한 남성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하더라도 나는 그 사랑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는 인 간이 되어버렸어요." 이 젊은 여성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도 배우로서도 뛰어난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할 예정이었던 남성과 동거한 3년 동안 여러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남성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불신감을 품고 있었다. 일을 계속할 의욕 도 잃고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연애로 인한 자살이 빈번하게 보도되었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자살을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 할 것 같았다. 사랑을 거절당한 남녀에게 미래는 암흑이다. 그들은 그러한 입장에 자신을 빠뜨린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를 말살함으로써 복수하고 또한 실연이라는 불명예로부터 도망치려고 하 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상당히 단단하게 감정을 컨트 롤하지 않는 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연애문제를 안고 있는 남녀는 적당한 감 정의 배출구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도 좋고 지난날의 연인의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해도 좋다. 처음에는 괴롭겠지만 그렇게 한 경험은 틀림없이 장래에 도움이 될 것 이다. 그것을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아가씨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남성임을 알았으므로 그것을 가르쳐 준 그에게 감사 해야 합니다. 아가씨가 그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어한 데 대해서는 아가씨도 일말의 책임 감을 느껴야 합니다. 아가씨도 그도 생각이 부족했던 거지요. 그러나 아가씨의 인생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지금부터 미래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이번의 경험으로 장래 아가씨 의 남편이 될 남성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를 알게 되었을 테죠? 아가씨는 틀 림없이 그 남성을 전의 남성보다도 더욱 깊게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번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건설적으 로 장래를 생각하십시오." 나는 그렇다고 젊은 남녀의 혼전관계를 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성과 어떤 종류의 친밀한 접촉 없이 성인이 되는 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성에 대한 기본 적인 태도는 그러한 그들 자신의 경험과 그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성적으로 몹시 문란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자칫하면 장래의 생활에 절망감을 품거 나 죄악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어버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과오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가르쳐 준 것에 계속 감사하며 과거를 사랑해야 한다. 지난날 있었던 일에서는 장래의 생활에 도움이 될 일만을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사기 농구시합 기억에도 없는 죄로 추궁 당하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눈을 흘기고 친한 친구나 존경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이란 몹시 괴로운 일이다. 나트 홀만은 뉴욕 시립대학 농구팀의 명코치였는데 한때 나라 안 전체로 번진 '사기 농구시합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은 홀만이 이끄는 팀의 선수들이 사기시합을 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것인데 홀만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뉴욕시립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고등교육위원회는 홀트만을 아마추어 규정 위반의 공범, 즉 그가 선수들의 부정에 한몫 거들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홀만은 코치 경력 34년을 과시하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을 받고 다른 대 학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누명을 쓴 채로 그만두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팀의 선 수들과 그때까지 수많은 대시합을 치루어 승리로 이끌어 왔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한 시련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투쟁했다. 명예를 건 이 투쟁은 홀만과 그 아내에게 심신 양면으로 상처를 주었다. 홀만 부인은 마음고생 을 한 탓으로 위궤양과 신경염을 일으켰다. 몸은 여위고 머리는 백발로 56세라는 자신의 나이 이 상으로 늙어 보였다. 특히 내외에게 쇼킹했던 것은 친구들이 누구도 자신들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은 것이다. 그가 결 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친구조차도 자신의 사업에 지장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에게서 떠나 갔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에디칸타와 죠지 제셀 두 사람은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 이어 한 사람 두 사람 원조자가 나타났다. 대학교수 중의 한 사람은 홀만에 대해 취 해진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경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그가 죽 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후 홀만의 처우를 둘러싸고 심의가 거듭되었다. 그리고 홀만은 결국 뉴욕주 교육위원회에 이 의제기서를 제출했다. 신문은 홀만에 관한 이 일련의 사건을 게재하고 홀만에 대해 취해진 대학 측의 결정에 비난의 뜻을 표명했다. 시민들에 의해 인권옹호위원회도 설치되었다. 또, 졸업생 중에서도 특출한 존재인 데비드 로젠스타인은 '홀만 사건에 있어서의 정의와 도덕'이라는 제목의 논평 중에서 이 사건은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퓨스 사건에 비교하여 논했다. 대학동창회도 홀만을 지원했다. 이러한 경과를 거쳐 사건의 흐름은 변하여 무관심했던 일반인들도 차차로 그를 동정하기 시작 했다. 이윽고 결판이 나는 날이 왔다. 뉴욕주 교육위원회장은 홀만은 결백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풀렸다. 인생 최대의 난관을 돌파한 홀만은 그후에도 대학에 코치로서 계속 남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혹독한 처사를 한 대학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34년간이나 근무한 그 대 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은 늦든 이르든 틀림없이 들통이 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전과를 가진 사람으로 후 회하며 마음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나 태도에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죄를 용서치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자기자신이 신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간으로 완전히 변 화된다면 자연히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한번 잃은 신용을 되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란 냉혹한 것이다. 사회는 걸핏하면 남의 과오나 실패를 들춰내곤 한다. 그러나 노력하여 높은 지위를 얻고 오랫동안 그 지위를 보존시키 려면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 주위로 모여들 것이다. 우선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멀어져 간 친구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서도 초조해 해서는 안 된다. 자신 쪽에서 두 번 다시 그를 배신치 않을 것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제일이다. 자신의 친구들이 그것을 이 해하게 되면 그들은 다시 마음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죄를 보상하고 싶다면 그것이 어떤 범죄이든 진실로 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자신을 재판한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거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부당하다 는 마음이 있으면 언제 또 다시 죄를 짓게 될지 모른다. 사고방식 그 자체를 완전히 개조하지 않 으면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홀로 걷는 길 우리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인식하고 현재하고 있는 일 에 전력을 다하는 생활방식을 가지면 어떠한 어려운 문제라도 잘 대처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장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발견되는 것 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또, 아무리 현명하게 행동해도 최초부터 최후까지 원활하게 진행되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 누 구에게나 틀림없이 물심양면으로 저축해 두었던 것을 꺼내 써야 할 시기는 올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고 의무를 행하지 않으며 나태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은 최종적으로 그 대가가 돌 아왔을 때에도 잘 대처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태도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원래 강한 정신력 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진 정 강한 사람이다. 몇 번이나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지난날의 경험은 항상 우리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다. 줄거리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단 한가지, 과거의 경험에 서 얻은 교훈뿐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있기는 하겠지만 자신의 인생은 결국은 자기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인생 에서 실패하는 것은 모든 것을 도중에서 내던졌을 때뿐이다. 그러나 실패는 틀림없이 극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큰 실패를 했으나 훌륭하게 극복하여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선거 1945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행해진 아칸소주의 지사 선거는 주선거 사상 역사에 남을만한 격 전이었다. 현직에 있던 프란시스 췌리가 관례대로 재선을 목표로 출마했다. 이 주에는 2기 째는 틀림없이 당선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어서 75년간 그것이 지켜지고 있었다. 췌리에 대항하여 오발 파우버스가 출마했다. 파우버스는 조용하지만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한 츠빌의 작은 마을에서 신문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아칸소타주 북서부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여러 가지 농사일을 경영하여 가계를 도왔다. 파우버스는 지사선거에 출마하는데 있어서 지방산업의 진흥과 확대, 저소득층에 경제적 원조의 기회를 줄 것을 시정방침으로 내세웠다. 한편, 췌리 지사는 이미 산업확대에 강력한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고속도로 건설 을 둘러싼 의혹스러운 사건이나 주의 집무기관내의 부패를 규탄하고 정치적 부패를 일소시키는 실적을 올렸다. 이에 대해 라이벌인 파우버스는 단기간이었지만 그 악명 높은 고속도로 건설공단의 주임을 맡 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대세는 압도적으로 현직에 있는 췌리지사가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췌리의 지원자나 운동원들 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파우버스가 이 선거에 기울이는 열의와 저력을 알지 못했던 것 이다. 췌리 진영이 승리를 장담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파우버스는 주 내의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순회하면서 한 사람씩 확실하게 지원자를 늘려나갔다. 파우버스 후보의 세력이 자신들을 능가한다는 소식을 접한 췌리 진영은 당황해서 허둥댔다. 사 태를 역전시키기 위해 어떤 강경조치를 시급히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췌리 진영은 우선 파우 버스의 과거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폭탄'을 발견해냈다. 파우버스는 젊은 시절, 고등교육을 받기 위하여 메나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커머웰스 대학이라 는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에 갔다. 그런데 그 학교는 그 몇 년 후에 미국해방위원회에 의해 '공산주의자 양성기관'이라는 레텔이 붙여지게 되었다. 파우버스가 이 학교에 들어가려 한 원래의 동기는 학교의 부속농원에서 일하면 수업료가 면제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파우버스가 입학하려 했을 때에는 아직 공산주의 학교라는 소문은 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학교 경영자들의 언동에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1주간도 학교에 다니지 않고 그 학교를 그만두었다. 파우버스와 커먼웰스 대학과의 관계는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췌리 진영으로서는 파우버스가 커먼웰스 대학에 갔다는 정보만으로 충분했다. 췌리는 텔레비전의 정견방송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파우버스가 '좌경화된 인간'임을 암암리에 시사했다. 파우버스 진영은 이 폭탄과 같은 발언에 크게 타격을 받았다. 그 다음날 엘도라도 광장에서 파 우버스의 연설회가 열리고 그것이 라디오 중계될 예이었는데 당일 아침 긴급하게 시의 평의회가 열려 연설회를 금지시켰다. 그는 변명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던 것이다. 그를 지지하던 민중은 모조 리 그에게서 떠났다. 지원자들도 화를 내고 돌아가 버렸다. 리틀록에 있는 파우버스의 선거관리 사무소에서는 사람 의 그림자도 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라는 레텔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정오가 되기 전에 갑자기 연설금지조치가 해제되었다. 평의회 내에서 양식 있는 사람들 의 의견이 우의를 점했던 것이다. 예정대로 연설회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파우버스는 처음의 심한 조치에 상당히 타격을 받고 있었다. 라디오 방송시간은 다가왔다. 그러나 연설회장인 광장에 모인 사람의 수는 20여 명에도 못 미 쳤다. 그러나 이것은 파우버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희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후보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달라붙었다.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파우버스는 광장 앞에 있는 한 호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해답 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파우버스의 친구이자 지원자이기도 한 인물로부터였다. 친구는 최후까지 파우버스를 지지했다. 그는 이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행동계획을 미리 짜 두었다가 그것을 전 해 준 것이다. 파우버스는 그것을 종이에 받아쓰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연설 대에 올라갔다. 첫머리에서부터 그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는 가정의 경제적 사정으로 커먼웰스 대학 에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간 적은 있지만 입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산주의적인 활동은 일체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자신을 공산주의자처럼 선전한 상대진영에게 파우버스는 강력하게 반격을 하였다. "만약 췌리씨와 그 관계자들이 나를 중상 모략하려 한다면 나는 감히 법정에서의 투쟁도 사양 치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명예훼손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법정에서 나는 완전하게 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우버스의 진실 있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쳤다. 사람들은 집을 나와 광장에 있는 파우 버스 주위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멀어졌던 민중의 마음은 조금씩 파우버스 후보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선거전에 온 힘을 다하여 임하였다. 그리고 투표일이 되었다. 파우버스는 당선률 1%라는 예상을 깨고 훌륭 하게 지사의 자리를 따냈다. 유권자들은 상대방 후보의 이름을 더럽혀 가면서까지 승리하려 했던 췌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성실한 파우버스를 아낌없이 지지했던 것이다. 취임 후 파우버스 지사는 아칸소주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주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인 물이 되었다. 2기 째의 선거에서도 민중의 신뢰를 얻어 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파우버스는 최초의 지사선거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투쟁했기 때문에 현 재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투쟁이 파우버스의 마음속 에 강인함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원망치 않습니다. 그때는 서로 필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행복 언뜻 보면 손을 쓸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 내기는 불가능하지는 않 지만 어려운 일이다.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사태에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기까지는 상당히 시간 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행한 경험을 하는 사람은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 도 있으며, 그 사람들은 모두 그 불행을 발판 삼아 강한 인간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 상당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인간이란 완전을 지향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현 명해진다. 인간은 장점과 함께 결점도 지니고 있는데, 인간성의 본질에는 신으로부터 부여받는 강 한 힘이 있다. 사람은 자기 주위의 세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려고 고민하는 존재다. 그것은 끝없는, 그리 고 훌륭한 투쟁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신이 부여해 준 힘을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의 장래 는 희망에 가득찬 것처럼 보일 것이다. 행복이란 개개인의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행복이 어떤 신의 도움도 받지 않은 것이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신이라는 개념의 폭을 더욱 넓혀 그 힘이 이 세상의 모든 부분에 미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신은 지각할 수 있는 형태를 가진 존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외부에서 신 을 발견할 수는 없다. 신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의 의식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신의 힘을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신 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기적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또,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인과 관계의 법칙이 균등하게 작용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점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힘을 느낀 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호감은 호감을 부른다'는 법칙이 있다.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명랑한 기분으로 사람들과 접하면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일들을 암기시킬 수 있다. 반대로 좋지 않은 상 황을 상상하며 화를 내고 있으면 회의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정말로 그러한 상황을 야기하 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도 거기에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듭 반복해서 말하지만 인간에게는 내재해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을 잘 끌어내면 이 세 상의 어떠한 일에도 적절하게 대처해 갈 수 있다. 이것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그 내재력을 요령 있게 끌어낼 수 있느냐 없으냐가 문제이다. 제 11장 후회 없는 인생 사랑은 절대로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을 때 그가 그대 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면 그대의 사랑은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와서 그대의 마음을 위로할 것입니 다. -워싱턴 어빙-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같은 대사건은 몹시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들을 혼란의 와중으로 몰 아넣는다. 두 번의 대전으로 심신 어느쪽인가에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참한 체험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그후의 인생은 결정되는 것이다. 전쟁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로 사람이 생명을 빼앗겼을 때 인간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 지 모를 슬픔에 빠질 것이다. 신의 무자비함을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탓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범죄자는 틀림없이 벌 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전에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패는 될 수 없다. 피해자의 유족으로서는 범죄자가 아무리 심한 극형에 처해지든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범죄자가 어떤 처벌을 받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생명은 영원하며 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저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아 또 다시 행 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리라고 믿는 것 외에는 위로 받을 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러한 불행한 사건을 발판으로 하여 진보해 왔다고 나는 생각 한다. 예는 얼마든지 있다. 노동환경이란 그 미비한 점이 원인이 되어 안전사고를 내고 그 후에 비로소 개선을 요하게 된 다. 수많은 운전자가 생명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도로의 급커브 길에 경고 표지판이 세워지거나 공사를 하게 된다. 극장이나 공공시설은 화재나 지진 등의 재난을 당한 후에야 방범설비나 안전 성을 점검한다. 대형의 태풍이나 이상기상에 의해 피해를 당함으로 해서 그러한 기상조건의 관측방법이 진보되 었다. 역병이 유행함으로써 주거환경의 청결이나 병의 예방책을 필요로 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 결 과 지금은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던 천연두는 박멸되었으며 말라리아, 티푸스 등의 병이 지구상에 서 계속 박멸되고 있다. 정치에 있어서도 독직이나 부패가 표면화되었을 때 비로소 정치의 윤리성을 문제삼는 일이 많 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직접 자신과 관련이 없는 한 상황이 심해질 때까지 서로 협력해서 개선책이나 보완 책을 취하려 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이 사회 진보의 단서가 되는 현상이 전개 되는 것이다. 자유인생 아칸소 주에 사는 르네 케이츠 렌멜부인은 보험회사의 부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던 남편을 젊어 서 병으로 잃었다. 그녀는 단번에 열 살을 필두로 한 살까지의 여섯 명의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 는 미망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렌멜부인은 몸집이 작았지만 근성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시골에 있는 어머니를 부르고 흑 인 가정부를 고용한 뒤 스스로 직장에 나가 일가를 부양하였다. 그리고 여섯 명의 자녀들에게도 훌륭한 교육을 시켰다. 자녀들 중의 한 사람인 프레드 렌멜은 후에 리틀록 사상 최초의 공화당원 시장이 되었다. 또, 렌멜부인 자신도 뛰어난 음악가임과 동시에, 교회활동과 사회활동을 비롯한 대표적인 사회사업가가 되었다. 나는 부인에게 그 생동력의 비결을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대단한 낙천가입니다.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만 하고 살죠. 그렇게 하면 정말 로 그렇게 됩니다." 렌멜부인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시련에 맞선다면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다. 그러므로 역경에 처했을 때는 신이 틀림없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도 한 방법 이다. 자신은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에 관한 일체의 책임을 신에게 맡기고 싶다고 생각지 않는가? 자 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는 자신 밖에 모른다. 신은 항상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지켜준다. 그것을 계속 믿고 시행착오를 되풀 이하면서라도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 나쁜 방향으로 기운다면 그것은 그 일과 관련을 맺고 있는 그 사람 자신의 탓이다. 만약 신이 인간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면 완벽에 가까운 일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은 거 리를 두고 인간을 지킴으로써 인간에게 스스로 노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생을 산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 고, 혹은 내재해 있는 힘을 이끌어내어 보다 나은 인생을 실현하려 한다. 이러한 인간의 작용으로 인간사회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고받기 우리 인간들은 수세기 동안에 자신들이 무엇을 해왔는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들은 차차로 신을 힐책하기 않게 되었다. 비리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틀림없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행동의 결과와 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신이 우리들의 앞에 장애물을 놓은 것도 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장애물을 눈앞에 둔 것도 징벌을 가하는 것도 자기 자신인 것이다. 즉 실수를 범해도 자신의 손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생각하면 자유롭고 커다란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의사로서 타국에 파견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사람으 로 손꼽힌다. 그는 스스로 인생철학을 실천하여 자신을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최고의 인생을 보낸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신이 남보다 건강하고 재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가정환경도 좋다면 그것을 당 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혜택받은 조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 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상이나 인생의 좋은 면도 공평하게 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면과 나쁜 면, 혹은 혜택받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서로 보 완해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생을 즐겁게 잘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답은 자신이 무일푼이 되었을 때 알게 될지 도 모른다. 사람은 소중한 소유물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 닫는다.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영화감독인 젠스 러스킨의 아내 베시는 헐리우드의 호화스러운 저택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다른 집에 사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라이프 스 타일에 맞게 그 집을 건설했고 살기에 편안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러나 유지비가 대단히 많이 들었죠. 차차로 유지비를 염출하기가 곤란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지못해 집 을 팔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도 나는 내심으로는 집이 팔리지 말았으면 하고 원했습 니다. 그러한 기분이 화근이었는지 집을 보러오는 사람은 있어도 좀처럼 거래는 성립되지 않았습 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도 거의 가까워진 어느 날 나는 문득 언제까지고 이 집에 집착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집 앞에 집을 팔겠다는 간판을 세우자는 남 편의 의견에 동의했죠. 간판을 세우자 상황은 완전히 변해 크리스마스 당일 즉시 집을 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양친 과 두 소녀의 4인 가족으로 그들은 집안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가구배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 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겨우 3일 후 그 가족은 재차 우리 집을 방문하여 6주 이내에 비워줄 수 있다면 꼭 이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 다. 6주간이라니 얼마나 짧은 기간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우선 승낙을 했습니다. 몇 년 걸쳐 서 모아들인 애착이 가는 물건들을 겨우 6주간에 짐을 꾸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죠. 눈 깜 짝할 사이에 집을 비워 주어야 할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그날 나는 짐을 하나둘 차에 옮기면서 커다란 집안이 텅 비어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좀더 일찍 깨달았어야 할 것이었죠. 나는 그때까지 소중히 여기고 있던 많은 소지품 때문에 살아온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물건에 구애받는 마음 이 항상 나의 마음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나는 그때 이 집을 팔기를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 다. 그런데 다음의 문제는 그 물건들을 어떻게 처분할까 하는 것이었죠. 우리들은 전의 집과 같은 도로에 면한 장소에 조그마한 토지를 사서 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게 아담한 집을 지을 예정이 었습니다. 많은 소지품은 일시적으로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새 집에 전부 들여놓을 수는 없 을 것이었죠.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짜내었습니다. 그 결과 절대로 필요한 것 외에는 전부 경매장 에 팔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물건에 사로잡혀 사는 생활은 실컷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는 더욱 창조적이고 실속 있는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각을 남편에게 말하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쾌히 찬성해 주었습니다. 그 는 말했죠. '당신이 소중히 여겼던 앤 여왕 풍의 가구를 전부 없애도 괜찮겠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대찬성이오. 현명한 생각이요.' 나는 그날 안에 창고 관리인에게 가구류를 아메리칸 경매사에 팔 준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 다. 그리고 남겨둘 물품의 리스트도 작성해서 건네줬죠. 후일 내가 경매장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지난날의 나의 보물이 윈도우에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을 가지고 돌아보지 말자고 마음을 다짐했죠. 그리고 나는 그때 이후 두 번 다 시 그 물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물건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베시 러스키 부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물품을 소유함으로써 나는 그것에 구애받아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는 사실 을 깨달았습니다. 아담한 새집을 완성하여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자신을 위하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나는 전의 집에서는 관리나 정리정돈에 쫓겨 하 고 싶어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새 집에서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뻤던 것은 남편도 그 작은 집을 마음에 들어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행복한 기분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한 물건을 처분하게 되어 마음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하겠어요. ' 물건을 처분한다고 하여 당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마 검소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으로 가득찬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새 집에서 베시 러스키 부인은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원래 예술적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두 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내어 그 작품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뉴욕, 파 리, 런던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성장해 있다. 자신은 지금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 고 있는가? 훌륭하게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러한 사람들은 가치 있다고 생각한 일을 착실하 게 키워가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시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거나 자기 인생에 그다 지 관계없는 일로 끙끙거리며 고민하지 말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마땅히 그래야 할 자신의 생활 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은 그저 기원하기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도와주지도 않는다. 크레인가의 형제들 죠지 W. 크레인박사라는 사람은 미국전체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칼럼니스트이다. 그의 칼럼은 그 사람 특유의 위트와 지성으로 넘쳐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생의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 또, 크레인 박사는 내외가 함께 수년간이나 시카고의 교회에서 공민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아홉시 반이 되면 크레인 박사는 성서 클래스를 맡고 있는 가까이의 센트죤교회로 나간다. 그리고 그후 열두시 반부터는 다른 클래스를 가르치기 위하여 시카고로 차를 달리는 것 이다. 크레인가에는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모두 착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함께 교회에 나가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1956년 7월 7일에는 장남인 죠지가 참석치 않았다. 그는 크렌 뷰 해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아메리카 해군 협력대의 제트기 파일럿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죠지는 젊고 용감하며 강한 향상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며 생을 기쁨으로 여기며 사록 있는 부모 슬하에서 자란 좋은 청년이었다. 크레인가의 가족들은 애정과 신뢰를 바 탕으로 한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설사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집을 떠나 있다 해도 가족의 애 정을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7월 7일, 그날 죠지는 소년정찰대의 시찰단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를 몹시 좋아했다. 지난날 해군의 파일럿으로서 한국에 있었을 때도 대위였던 그는 고아들에게 가능한 한 원조의 손 길을 뻗어 주었었다. 그는 그날의 임무를 마치고 군대를 떠난다면 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소아과 의사가 되기 위 한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는 전세계에 있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책을 제본하는 중이기도 했다. 소년정찰대의 임무를 두시경에 끝내고 어린이들에게 작별을 고했을 때 그의 마음속은 장래의 계획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부푼 기분으로 귀로에 들어서 미시건호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세시 조금 전에 착륙목표지인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죠지가 탄 비행기의 바로 뒤에 다른 기 체가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공중 충돌을 일으켜 죠지의 비행기는 지상으 로 급추락했다. 낙하산을 이용해 탈출할 여유는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죠지는 사람들이나 건물에 위험을 안 겨주지 않으려고 감히 조종간을 계속 잡고 있었다. 그의 손목시계는 추락의 쇼크로 2시 59분을 가리킨 채 머물러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망시각이었다. 이 사고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 죠지의 두 남동생들은 마침 집의 정원에서 놀 고 있었다. 그곳으로 뉴스를 들은 이웃사람들이 달려들었다. 뉴스는 부모에게 알려졌다. 생의 기쁨을 알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던 그 청년이 죽었다니... 도 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이 그러한 좋은 청년의 생명을 빼앗아 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 다. 꼬박 하루가 지나도 크레인가의 사람들은 죠지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가족은 아직도 그와 정신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가 의연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변화를 느끼지 못하 고 있었다. 크레인가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격려의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조문의 말을 건 넸다. 크레인가 사람들은 전과 같은 일상생활로 되돌아감으로 해서 죠지를 가까이 느끼려 하였다. 크레인 박사는 다시 일요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항상 이곳에서 가르치고 있었으므로 그 생활로 되돌아간 것뿐입니다. 이런 때 그 밖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죽은 아들에게는 우리들의 재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죠지는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틀림 없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후 크레인가 사람들은 생전에 죠지가 하고 싶어했던 일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식구들은 일을 분담하여 우선 죠지가 이미 제작을 시작했던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용 책을 완성시켰다. 그 리고 그 책을 팔아 얻은 돈으로 가정과 어린이의 행복을 위한 비영리적 재단을 설립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어도 용기를 가지고 임하면 죽음이라는 사실도 극복할 수 없는 것 은 아닌 것이다. 크레인가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만든 소책자 중에 죽은 아들에 대한 애정 깊은 글을 기록하고 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매듭지어져 있다. '안녕, 죠지. 언젠가 틀림없이 또 만날 수 있을 꺼야' 에필로그 카네기 제철소에서 일하는 해리 반하트라는 청년은 노래부르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그는 직장 에서도 쉬는 틈에 투명하고 맑은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모두가 같이 노래부르는 즐거움을 알게 된 반하트 청년은 하나의 꿈을 그리게 되었다. 그것은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모아 마음을 같이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광경이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뉴욕에 있는 한 센트럴파 크 관리위원회에 나가 공원의 산책로에 있는 야외음악당을 하루 빌어주도록 신청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공원에 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서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는 연대감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야외 음악당의 사용허가가 나온 첫 일요일, 반하트 청년은 순백의 플란넬 양복으로 차려입고 음악당의 무대에 섰다. 무대에는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의 여자친구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 다. 반하트 청년은 따뜻하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듯한 몸짓으로 산책로에서 산보하는 사람을 향하 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고 발걸음을 돌려 무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 했다. 반하트 청년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받으십시오. 모두 함께 노래 부릅시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만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드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공원을 빠져나가 큰길가에까지 퍼져나갔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지나가 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느 사이엔지 무대 앞에는 5백 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은 더 욱 불어나 한 시간 후에는 3천명 가까이로 불어났다. 인종이나 국적을 초월하여 모여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노래에 취했다. 모두가 노래부르는 즐거움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 모임이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반하트 청년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도 오시겠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다. "친구를 데리고 오실 분은?" 또 다시 거의 전원이 손을 들었다. 그는 말했다. "멋진 일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더욱 많은 악보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다음 일요일, 센트럴파크의 산책로는 수많은 인파로 혼잡하게 붐볐다. 이 진기한 모임을 보도하 기 위해 신문기자들도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다. 그날의 음악회는 전보다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최후에 반하트 청년은 다음주의 계획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다음 주에는 많은 악대를 무대로 불러 반주해 주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거기에 답해 말했다. "실현할 수 있도록 뭔가 노력해 봅시다. 천달러 정도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지금 나에게 는 자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현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틀림없이 잘되리라고 믿습니다. 어떻 습니까? 여러분도 많은 악대가 올 것이라고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다음주에도 틀림없이 이곳으 로 와 주십시오." 음악회가 끝난 후 반하트 청년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마 찬가지로 그다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 고급승용차에서 내린 한 귀부인이 반하트 청년에게 다가왔다. 그 귀부인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하트씨. 나는 바리챠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남편은 음악계에서는 상 당히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오늘 음악회는 멋졌습니다.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이 노래에 대한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할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나도 뒤에서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뭐하긴 하지만, 여기에 천달러짜리 수표를 마련했습니다. 다음주에 악대를 부르는데 써 주세요." 반하트 청년은 바리챠 부인의 마음에 감격하여 눈물을 보이면서 그 선물을 받았다. 다음 일요일, 적어도 20만 명 이상 되는 인파가 야외음악당 앞에 모였다. 그리고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반하트 청년은 악대 앞에 서서 지휘봉을 치켜 들었다. 이것이 유명한 '센트럴파크의 노래와 빛의 제전'의 시작이었다. 이 제전은 그후 규모가 커져 극 장도 산책로 근처의 호반으로 옮겨졌으며 대규모의 조명등을 사용하여 행해지게 되었다. 많은 악대와 지휘자인 반하트 청년이 호반에 떠 있는 섬에 서면 조명의 효과로 그 모습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악대를 둘러싼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대합창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이 제전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일요일마다 행해졌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자 반 하트 청년은 벨 장군의 명령을 받아 '노래하는 병정들'을 편성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상을 추구하며 인생을 산 한 젊은이의 성공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