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2 지은이:시드니 셀던 출판사:지원 북 클럽 제8장 레이더스 제임스는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웠다. 지난 밤에 수십개의 통신망을 돌아 다녔던 노트북을 바라보면서 그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월 스트리트 증권거래소의 중앙컴퓨터 시스템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의 꼬리들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새벽을 맞이한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제임스는 매우 난감 했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 켜보았다. 그는 두 눈을 감았다. 눈이 매우 아리고 쓰라렸다. 안경을 벗고 목덜 미에 뭉친 근육을 풀기라도 하듯이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임스의 눈은 붉 게 충혈되어 있었다. 약간은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매우 피곤했지만 이대로 그냥 잠을 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발견한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로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임스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컴퓨터의 전원을 끊었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끌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머리 속은 온통 뉴월드 그룹의 주식에 관한 최근의 변화 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임스는 로라의 방으로 직접 찾아갈 것인지, 아니면 교환 수를 불러서 로라와 전화로 통화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깨끗한 셔츠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면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었다. 그러면서 도 이 사건을 어떻게 로라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로라와 먼저 통화를 한 후에 직접 방으로 찾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무었을 도와 드릴까요?" 호텔 종업원의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제임스 교수입니다. 로라 헤리슨 양과 통화를 하고 싶 습니다." "즉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호텔 종업원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잠시 후에 신호음이 들렸다. 그 시간에 로라는 다니엘의 품에 안겨서 고요히 잠에 빠 져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다니엘이 먼저 눈을 떴다. 그는 로라 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하면서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로라, 전화가 왔어 요." 로라는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화벨 소리는 계속 로라의 방안에서 울려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직접 전화를 받으려 고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로라가 난처하게 될 수도 있 어. 내가 전화를 받으면 안 돼. 다니엘은 다시 로라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로라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로라, 어서 일어나요. 전화를 받아야 해요." "알았어요." 로라는 지금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생태였다. 그녀는 침대 시 트로 자신의 몸을 약간 가린 채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로라구나. 아 침 일찍부터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이렇게 연 락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어머, 제임스 교수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지금 당장 할 이야기가 있어, 로라." 제임스의 목소 리에는 매우 다급한 일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로라는 지 난 밤을 다니엘과 함께 보내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로라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로라의 침대에는 아직까지도 다 니엘이 누워 있었다. "꼭 지금 해야만 하나요? 아직도 이른 새벽이잖아요, 교수 님." "이건 할아버지의 사없고 밀접하게 관련된 일이야. 지난 밤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그리로 가겠어요." "아니야, 로라. 내가 지금 그쪽으로 달려가는게 빠르 거야." "하지만 그건..." 그러나 로라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임스가 그 말만 남겨 놓은 채 다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던 것이다. 로라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니엘을 쳐다보았 다. 제임스 교수가 지기 방을 방문해서 다니엘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놀 랄 것이 분명했다. 그것보다도 자신을 아끼는 교수님이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은 아주 커다란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로라는 다니엘을 향해 정중한 태도롤 말했다. "다니엘, 제임스 교수님께서 급하게 전할 말이 있어서 지금 이 리로 오고 계시는 중이에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알 몸인 모습을 보여 드릴 수는 없어요." 다니엘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로라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차렸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니엘과 로라는 재빨리 옷을 입었 다. 로라가 거울을 보고 있는 사이에 다니엘은 침대의 시트를 치우고 있었다. 잠시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라는 다니엘을 한 번 쳐다보 고는 문 앞으로 다가섰다. "누구세요?" "나야." 마침내 제임스 교수가 도착한 것이다. 로라는 문을 열고 제임스를 맞이했다. 제임스가 로라의 인사를 받으면 서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낯선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 었던 것이다. 제임스는 순간적으로 어색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 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로라는 제임스에세 다니엘을 소개했다. "교수님, 이분은 다니엘이라고 해요. 아마 교수님도 알고 계실 거예요. 블레이크 그룹의 총수 다니엘 블레이크 씨 말이에요." 그런 다음에 로라는 다시 손으로 제임스를 가리키면서 다니엘에게 소개시켰다. "이분은 하버드 대학 경영학부의 제임스 교 수님이에요. 제가 경영지식을 올바르게 익힐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로라가 두 사람을 소개하자,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임스에게 손을 내 밀 었다. 제임스의 얼굴에서 매우 실망하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임스는 로라 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로라의 방에 서 마주친 사람은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대규모로 끌어 모으고 있는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어쩌면 블레이크 그룹이 뉴월드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한 후에 합병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는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악수 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다니엘입니다." "제임스라고 합니 다." 제임스는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로라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 는 어쩐지 근심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로라,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데..." 제임스는 다니엘이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에 대해 몹시 부담스러웠 다. 하지만 로라는 다니엘이 그대로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특히 할 아버지의 사업과 관계된 일이라면 경험이 많은 다니엘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교수님. 지금 여기에 있는 다니엘은 믿을 수 있는 분이에 요.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저의 친구이기도 한걸요." "그렇지만 내가 하려는 이 야기는 좀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해." 제임스가 진 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로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제임스에게 말 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제임스 교수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볍게 목례 를 하고 나서 옷을 챙겨 들고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로라는 다니엘을 배웅하기 위해 그 뒤를 따라나섰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니엘은 문 앞까지 따라나온 로라를 쳐다보면서 간단히 말했다. "나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로라. 지 난 밤은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가슴 속에는 당신이 항상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로라의 눈빛 속 에는 몹시 미안해 하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을 돌려보내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 다니엘. 아침에 당신과 따스한 커피를 마시면 지난 밤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어요. 부디 저의 마음을 알아 주세요." 로라는 다니엘의 가슴에 안겼다. 다니엘은 자신의 어깨위 로 흘러내리는 로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가슴은 금방 로라를 위로해 주었다. 다니엘은 지난 밤에 보낸 로라와의 사랑을 그대로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로라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여자가 되었다. "로라,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어요.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지 말아요.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겁니다. 이런 일은 조금도 나에게 무례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마 음을 이해해요.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나누기로 했던 대화들을 시작해요." 다니엘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들고 가벼운 키스를 나누 었다. 로라는 눈을 감고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다니엘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로 라는 다니엘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 다. 다니엘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가슴이 아릿해 왔다. 로라는 제임 스를 만나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교수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임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서 대충 세수를 마쳤다. 제임스는 자신이 로라를 방해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일부러 이럴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만약 다니엘이 로라의 방 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달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에 로라가 욕실에서 나왔다. 제임스는 고개를 돌려서 힐 끗 로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제임스 교수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리다니..." "로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니?" 제임스가 약간 목소리를 높이 면서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제임스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너무 민감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 라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사실 우리는 어제 처 음 만났어요. 하지만 다니엘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로라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했다. 욕실에서 세면을 하는 동안 로라는 제임스의 질문을 예상하면서 몇가지 답변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제임스의 질 문에 모두 다 예상한 후에 대답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제임스 의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솔직한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로라의 대답을 듣고 나서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로라..." 제임스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 가 생겼단다." "어떤 건가요?" "내 말을 듣고 놀라지 말거라. 나는 지난 밤에 노트북으로 월 스트리트 증권거래소의 중앙컴퓨터 시스템과 접촉을 시도했어." 로라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제임스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이해 하는 속도에 따라 말의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자로를 검색 하던 중에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지." "그게 뭔데요. 교수님?" 제임스는 잠시 망 설이다가 결심을 내린 듯이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뉴월드 그룹에 레이더스가 개입하고 있는 것 같아." 제임스 의 입에서 레이더스라는 말이 나오자 로라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임스 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로라는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것 은 상상하기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레이더스라니? 보유한 자산이 많고 건실 한 화사를 파산시키게나 주식을 몰래 사들여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기업을 인수 한 뒤에 쪼개서 되파는 전문적인 기업 사냥꾼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제임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라는 도저히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심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레이더 스가 설마 뉴월드 그룹까지 손을 뻗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너무나 위험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단다." "그 레이더스가 우리 할아버지 회사를 상대로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건가요? 그런가요, 교수님? 그들이 뉴월드 그룹을 노리고 있는 건가요?" 로라는 잠뜩 긴장하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초 조한 듯이 제임스의 대답을 재촉했다. 만약 제임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뉴월드 그룹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나의 판단에 따르면 레이 더스가 지금 뉴월드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 확실해, 로라." "도대체 그게 누구죠?" 로라가 다그쳐 물었다. "아직은 잘 몰라. 하지만 두 사람의 용의자가 있어. 한 사람은 현직 상원의원이고 퓨처 기획이라는 회사를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리차드라는 인물이야. 그가 소유하고 있는 퓨처 기획은 실제로 미국 각지 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어. 이곳 바하마에도 그 회사 소유의 카지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 제임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그러 수 있죠?" 로라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리차드는 자신화 다른 한 명의 대리인의 이름으 로 대략 13%정도의 뉴월드 그룹 주식을 사들였어.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로라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차순위 대주주라고 할 수 있지." 제 임스가 말하는 동안 로라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 서 귀를 기울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13% 정도의 주식으로 할아버지의 회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네 말이 맞다. 로라. 하지만 대리인을 내세우면 서 까지 은밀하게 주식을 사들였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야. 단순한 투 자의 목적이라면 그렇게 은밀하게 활동할 이유가 없어. 리차드가 대리인을 내세 운 것에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래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 겠죠.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라가 그 말에 수긍한다는 뜻으로 고개 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직은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시간이 좀더 흐르면 모 든 것들이 밝혀지게 될 거야." 제임스가 신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로라는 잠시 동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제임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쇼 수님, 조금 전에 두 사람의 용의자가 있다고 했는데 또 다른 사람은 누구죠?" 로라가 재촉했지만 제임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로라에게 사실대 로 아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좋을지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제다가 지금은 아직 모든 것들이 가설에 불과한 상태였다. 기업 사냥꾼들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여야 그 증거들을 끌어 모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움직이던 기업 사냥꾼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활동하는 시기가 되면 이미 기업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경우가 많다. 기업 사냥꾼들은 먹 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제임 스는 오랫동안 신중하게 고민을 하다가 모든 결정을 로라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로라의 눈빛을 쳐다보았다. 그것도 아주 신중하게... "놀라지 말거라, 로라." "어서 말씀해 주세요. 절대로 놀라지 않겠 어요." "그 사람은 바로..." 제임스는 조금 더 망설아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다니엘 블레이크야." 로라는 그 말을 들으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제임스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누구라 구요?" "블레이크 그룹의 총수 다니엘 블레이크." 제임스 교수의 말이 끝났을 때, 로라 해리슨은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올렸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행동은 로라 해린슨이 몹시 긴장했을 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제임스는 로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급한 현실에 대해 믿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제임스는 로라 해리슨에게 보다 확실하게 지 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로라, 지금은 내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조금 전에 이 방에서 나 간 다니엘 블레이크가 바로 레이더스의 두 번째 용의자야." 제임스가 눈을 똑바 로 뜨고 로라의 눈을 응시한 채, 디니엘 블레이크의 이름을 강조하자 그녀의 표 정은 더욱 놀랍게 변했다. "정말 믿을 수 없군요. 다니엘은 할아버지의 친구인 데..." 로라는 완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임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제임스는 로라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다니엘이 너의 사랑이라고 해도, 이 사실은 믿어 야만 한다. 로라." 제임스의 말은 로라의 귀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로라는 다니엘이 레이더스의 용의자라는 사실을 결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욱 거세세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니엘은 로라가 사랑을 느낀 첫 남자였던 것 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을 느낀 남자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은 받아 들이기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제임스는 로라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씩 이 성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블레이크 그룹의 주력 회사 인 블레이크 종합상사가 사들인 주식만도 벌써 5%가 넘었어. 그래서 다른 계열 사들에 대해서도 모두 조사를 해 보았더니 블레이크 종합상사 이외에도 다섯 개의 계열사에서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어." "그게 사실이라면 다 니엘이 소유하고 있는 뉴월드 그룹의 주식은 모두 합해서 얼마나 되는 거죠?" "10.07%정도가 될 거야." "그 정도라면 단순히 투자를 목적으로 한 주식 소유라 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 그럴 거예요." 로라는 제임스가 공연히 다니엘 을 의심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사실 블레이크 그룹이 소유한 주식이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기업들이 투자의 목적으로 유 망한 다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특히 주식은 유 가증권으로서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블레이크 그룹과 같은 기업이 뉴월드 그룹의 경영권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주식을 사들인 다면 그것은 매우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 면서 로라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기업을 파괴하는 레이더스일 가능성이 별로 없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임스의 다음 말은 로라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것 이었다. "하지만 로라, 다니엘은 리차드 상원의원과 아주 가까운 사이야." 다니 엘과 리차드 상원의원이 가까운 사이라는 정보는 로라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 한 사실이었다. 로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만약 리 차드와 다니엘이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메드닉이 이끄는 뉴월드 그룹에 치명타를 먹이는 것을 의미했다. 제임스는 로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계속 했다. "두 사람은 스탠포드 대학 선후배 사이로 사회 생활에서 도 매우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어. 지난번에 국회청문회가 열렸을 때, 다니엘을 경영 소위원 회의 증인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리차드 상원의원이었어." 그 순간 로라의 얼굴 에는 실망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로라는 지난 밤의 행복한 시간이 물거품이 되 어 버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로라는 다니엘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상황이 그를 의심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로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 그냥 주저앉아서 소리내어 울고만 싶었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난 메드닉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앉아서 음악 을 듣고 있었다. 메드닉은 날이 갈수록 점점더 거동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는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거의 하루종일 침대 에 드러누워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할 때마다 발코니에 나가 안락의자에 앉아 서 음악을 듣거나 난간을 잡고 겨우 잠시 동안 일어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뉴월드 그룹의 중요한 업무와 결재도 거의 침대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메드닉은 레베카에게 모든 일을 맡기다시피 할 정도로 그녀를 신임하고 있었다. 레베카는 비록 젊지만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모든 일을 잘 처리했던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메드닉은 사실상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 사업과 관련된 모든일이 레베카의 손에서 직접 처리되도 있었다. 비록 최종 결재권은 여전히 메드닉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그룹 내에서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메드닉은 날마다 침대나 안 락의자에 앉아서 건강 진단을 받고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메드닉의 상태는 좀 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한 달 전부터는 앤소니에게 자신의 상태가 과연 어느 정 도인지 그리고 어떤 주사를 맞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일조차 그만두고 말았다. 아미보셤 호텔은 길버트 부부의 스키 기증식을 앞두고 성대한 파티를 개최할 준 비를 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초대장을 받아서 몰려오고 있었 다. 하지만 메드닉 회장은 그 사실도 모르는 채, 아침 시간동안 발코니에 앉아 소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는 '빌리스 블루스'나 '아이 러브 마이 맨'과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메드닉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 다. 메드닉이 음악에 열중하고 있을 때 젊은 청년이 아침 식사를 가지고 발코니 로 나왔다. 청년은 메드닉의 앞으로 다가와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메드닉 이 귀찮다는 듯이 손짓하자 그는 식사를 탁자 위에 차려두고 뒤롤 물러났다. 메 드닉은 아침 식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음악에 열중했다. 잠시 후에 발코 니에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메드닉은 발코니에 나타난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메드닉의 주치의로 근무하는 애소니 박사였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메드닉 회장님?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앤소니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메드닉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맥박을 측정하기 위해 들고 온 가방을 열고 청진기를 준비했다. 메드닉은 잠시 앤소니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앤소니가 맥박을 재기 위해 팔에 혈압계를 장치할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던 메드닉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난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야, 앤 소니. 내가 음악을 들을 때에는 제발 좀 가만히 놔둘 수 없겠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지만 시간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야 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 니다."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게." 메드닉이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하 지만 회장님은 지금 화자고 저는 의사입니다. 환자는 의사의 조치에 따라야 만..." 앤소니도 좀처럼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레베카가 발코니로 나왔가 때문이었다. 레베카는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손에 몇 가지 서류를 들고 있던 레베카는 메드닉 회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을 왜 그렇게 야단치세요, 회 장님?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의사의 권고에 따라야 해요. 지금은 회장님이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레베카가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면 서 메드닉을 향해 다가왔다. 레베카는 언제나 가장 친절한 말고 행동으로 메드 닉을 대했다. 레베카가 메드닉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마치 할아버지를 대하는 손녀의 모습이 생각날 정도였다. "레베카, 이 돌팔이 의사를 지금 당장 여기에 서 내쫓아 버려." 메드닉이 앤소니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앤소니는 그 말을 들 으면서 약간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베카는 한 마지 말도 하지 않고 달래듯이 앤소니를 바라보았다. "회장님, 앤소니 박사가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저질렀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렇지만 회장님, 앤소니 박사가 그동안 통증을 많이 가라앉도록 해 드리지 않았나요?" "그것뿐만 이 아니야. 그는 다른 것들도 많이 없애 버렸어. 내 기억력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구. 이게 다 의사의 처방에 따랐기 때문이야." 메드닉이 마치 어린 소년처럼 투덜거리자, 레베카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통과 행복 중에서 어떤 게 더 좋으세요?" "한 번 좋아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더욱 괴로워. 물론 행복이 좋긴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남는 건 지옥뿐이야." 레베카 더글라스 는 메드닉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놓고 토닥거렸다. "만약 내 곁에 레베카가 없 었다면 난 아마 아무것도 못할 거야." 메드닉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마을 약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베카의 얼굴에는 매우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어렸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회장님. 저도 언제나 잔소리만 하는 걸요." 레 베카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메드닉은 그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메드닉이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레베카뿐이었다. 하지만 그 는 자신이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야망이 큰 여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레베카의 타고난 미모와 상냥한 태도 속에 어떤 이면이 도사리고 있는 지 조금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레베카를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는 것은 비 단 메드닉 혼자만이 아니었다. 메드닉의 주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가 레베카를 신뢰하고 있었다. 메베카는 메드닉 회장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로부터 호평을 받고 이었던 것이다. 레베카가 아니었더면 현재의 메드닉이 자기 의 사업을 제대로 유지할 수도 없었을 거라는 소문이 그녀에 대한 일반적인 평 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레베카의 한단은 어떤 경우에도 항상 정확했으며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도 열성적인 태도를 보였 다. 레베카는 그러한 태도들과 함께 ㅌ타고난 미모와 상냥한 행동 그리고 애교 스러울 뿐만 아니라 교양있는 행동으로 메즈닉과 그 주위 사람들의 마음를 단숨 에 사로잡았던 것이다. "여기 결재하실 서류를 가지고 왔어요. 회장님께서 직접 사인을 좀 해 주셔야 하겠어요." 레베카는 서류철을 펼치면서 슬며시 옆에 서 있는 앤소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앤소니는 팔에 주사를 놓기 위해 메즈닉의 옷소매를 걷어올렸다. 레베카는 서류철을 펼쳐서 메드닉에게 전해 주었다. 메드 닉은 서류철을 받아들고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한 손으로 목에 매달린 안경을 잡았다. 레베카가 앤소니에게 다시 눈길을 주었다. 메드닉이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안경을 걸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앤소니가 주사 바늘을 꽂았다. 메드닉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진 동안 앤소니는 재빨리 약품을 노인의 혈관 속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동작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었던 것처럼 딱 맞게 움직 이고 있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약품은 메드닉 회장의 혈관 속으로 스며들면서 신속하게 그 효력을 발생시켰다. 메드닉은 그 약의 효과를 이미 느끼기 시작했 는지 낮게 가라앉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에도 한 번 맞았던 적이 있는 주 사 같은데... 그런데 이건 무슨 서류지. 레베카?" 메드닉은 몸이 나른해지면서 약물의 효력이 온몸으로 급속히 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일상적인 호텔 업 무에 관한 거예요. 제가 회장님에게 드리는 몇 가지 제안이에요." 레베카는 대 수롭지 않은 서류라는 듯이 대합하면서 다시 한 번 슬며시 앤소니를 바라보았 다. 앤소니는 메드닉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레베카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안경 너머로 서류를 들여다보던 메드닉의 시야가 서서히 흐려 지기 시작했다. 메드닉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기분의 변화에 휩싸이고 있었다. 서류에 적힌 글씨는 눈 앞에서 가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메드닉은 도지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이 안경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군. 글씨가 통 보이지 않 아." "건강이 회복되시는 대로 다시 시력검사를 해서 안경을 바꾸어야 하겠어 요." 메드닉 회장은 레베카 더글라스의 태도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 래서 서류를 대충 훑어본 후에 고개를 들었다. "다른 중역들도 이 서류를 검토 했겠지?" 메드닉으로서는 단지 레베카 더글라스를 믿느 것 이외에는 달리 그 서 류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메드닉이 질문했을 때, 레베 카는 재빨리 앤소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은밀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앤소니와 레베카는 잠시 후에 메드닉의 시야와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깊은 수면에 빠져들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레베카는 그 시기에 맞 추어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만한 서류에 메드닉이 직접 서명하도록 유도하 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이에요, 제가 항상 완벽하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레베 카는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메드닉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몽롱한 상태가 되어버린 메드닉은 마치 꿈을 꾸듯이 비몽사몽간에 서류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메드닉은 잠들기 직전의 의식 상태에서 느릿느릿 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시야는 흐렸지만 사인을 하는 손 끝은 조금도 흔들 리지 않고 차분했다. 평소의 습관대로 사인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인 을 마친 메드닉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개를 숙인 채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었다. 메드닉이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앤소니가 레베카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 모든 일이 잘 처리되었어요." 하지만 레베카는 몹시 신중한 여자였다. 그녀는 메드닉이 깊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참 동안이나 내 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심해도 좋아요." 앤소니가 메드닉 회 장의 어께를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메드닉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앤소니, 그동안 너무나 고생이 많았어요." "축하해요. 이젠 뉴월드 그룹이 모두 당신 손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적어도 네 시간 안에는 메드닉 회장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엔소니의 말을 들으면서 레베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행동은 여전히 조금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레베카는 메드닉의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들고 정중하게 말했다. "다시 음악을 틀어 드리겠어요, 회장님." 레베카는 다시 음악을 틀어 놓았다. 누가 보더라도 메드닉의 모습은 음악에 도취되어 조용하게 눈을 감고 감상에 잠긴 모습이었다. 실력있는 의사와 함께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레 베카는 모든 점에서 완벽을 기하고 있었다. 어느 곳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레베카는 메드닉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앤소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앤소니. 우리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조 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요. 이제는 메드닉 회장의 변호사를 상대해야 할 차례예요. 변호사에게 연락은 취해 놓았나요?" "오늘 오후에 도착할 거예요." 앤소니와 레베카는 마음을 놓고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메드닉은 이미 깊이 잠들어 딨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레베카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레베카의 계획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 다. 레베카와 앤소니가 메드닉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면서 비밀스 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주 가까운 곳에서 두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코니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옥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 지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호텔 꼭대기에 위치한 메드닉 회장의 전용 층에는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옥상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그림자가 옥상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옥상에 있는 사람은 상당히 치밀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 을 완전히 숨긴 상태에서 작은 카세트에 부착된 소형 마이크로폰을 아래로 늘어 뜨린 채, 레베카와 앤소니의 밀담을 모조리 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앤소니와 레베카가 나누었던 대화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녹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데, 그동안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에요?" 레베카가 앤소니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앤소니는 즉시 대답하 는 대신에 잠시 레베카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앤소니는 레베카의 표정에서 방금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 있었다. 앤소니는 레베카를 깊이 사랑하고 있 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레베카의 음모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앤소니가 레베카를 알게 된 이후로 그녀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 는 행동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레베카를 위해서라면 앤소니는 활활 타오 르는 불길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뛰어난 미모와 매력을 갖춘 레 베카가 온갖 서비스를 다할 때, 앤소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혼 자 독차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앤소니는 그러한 레베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레베카와 앤소니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 메드닉 해리슨의 방에서 벌이는 한낮의 정사. 앤소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레베카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 다. 그녀는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오는 앤소니의 손길에 자신의 하체를 완전히 맡겨 버렸다. 앤소니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 메드닉 회장의 방에 있는 의자는 보통의 소파보다 두 배나 커다랗고 푹신했다. 앤소니는 순식 간에 레베카의 치마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상의 단추를 풀기 위해 손을 가져 갔다. 그런데 이미 숨을 거칠게 헐떡이고 있던 레베카가 앤소니의 손길을 가로 막았다. "이건 안 돼요. 옷을 입고 섹스를 해요." 레베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 였다. 앤소니는 앞으로 펼쳐질 달콤한 정사를 떠올리면서 가늘게 뻗어나온 그녀 의 다리를 들어올리고 팬티를 끌어내렸다. 레베카의 음모가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앤소니는 레베카의 배에 입을 맞추고 두 손을 밑으로 내려서 애 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앤소니는 레베카의 음모에 얼굴을 갖다대었다. 앤 소니의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헐떡거리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 다. 흥분된 표정의 레베카는 자신의 입술을 빨면서 주기적으로 작은 눈을 떠서 메드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메드닉은 여전히 행복한 얼굴로 깊이 잠들어 있 었다. 레베카는 몸을 약간 일으킨 후에 앤소니의 바지를 벗겨 주었다. 레베카 는 불쑥 솟아나온 앤소니의 상징을 핥고 있었다. 그녀는 혀를 위아래로 움직이 거나 빙글빙글 돌리다가 부드럽고 민감한 부위를 갑자기 자극하기도 했다. 앤소 니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자신의 하체 위에서 춤추고 있는 레베카의 허 리 움직임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뜨거운 열정이 두 사람을 휘어감고 있었 다. 두 사람의 신음 소리는 옥상에서 도청을 하고 있는 사람의 녹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남자는 메드닉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젊은 남녀의 신음 소리 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신음 소리인지 그리고 그 들은 왜 그곳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레베카는 섹스를 하면서 조각난 단편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앤 소니와 나누는 섹스가 어색하거나 특별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레베카 는 앤소니와 즐기는 것을 더욱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제 이런 막연한 느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생에서 무엇인가 빠져 있다는 듯한 느낌. 이 것은 현재의 즐거움이 미래에는 없을 거라는 징조일까? 아니면 오래 전에 잃어 버린 그 무엇? 마음 속 깊이 파묻혀 있다가 표면으로 떠오른 것일까? 하지만 레베카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로 만약 안다고 해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가분은 금방 사라질 거야. 이건 중요하지 않아. 달이 구름 뒤로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야. 그름을 벗어나면 금방 달이 나오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는 멋진 미래가 펼쳐지고 있어. 레베카는 앤소니와의 섹스에 더욱 열중하 면서 그런 생각들을 떨쳐 버렸다. 앤소니와 레베카 더글라스의 몸은 점점 땀으 로 젖어들었다. 그녀는 계속 앤소니 위에서 허리를 움직이면서 한 손으로 벽에 붙어 있는 에어컨 스위치를 올렸다. 에어컨이 작동하면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지 자 레베카의 신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곧이어 앤소니의 신음 소리도 점차 커 지기 시작했다. 그는 레베카의 허리를 거세게 끌어안고 소파 옆으로 쓰러졌다. 그들은 몇 분 동안 나란히 누운 자세로 키스를 나누었다. 메드닉 해리슨은 두 사람이 방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이는 동안에도 깊이 수면에 빠져 있었다. 메드 닉은 그의 방에서 네 시간 동안이나 계속 잠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 나 아주 상쾌한 기분이 되었을 때, 메드닉은 조금 전에 자신이 서명한 서류가 레베카에 의해 새로 작성된 자신의 유언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니엘은 로라와 헤어진 후에 정원을 산책하면서 잠시 동안의 휴식을 즐겼다. 아침 해살을 받으면서 산책을 하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다니엘은 그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아니, 저게 누구야?" 정원을 걷고 있던 다니엘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의 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시 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또다시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베이! 여기예요!" 다행스럽게도 하베이는 다니엘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하베이도 다니엘을 금방 알아보았다. 하베이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목에 건 채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미보셤 호텔의 옥상에서 레베 카와 앤소니의 대화를 도청하고 있었던 인물은 바로 하베이였다. 그는 메드닉 화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던 것 이다. "안녕하세요, 다니엘." 하베이는 다니엘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다가왔다.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잘 지냈어요? 그런데 이곳엔 언제 왔죠?" "어젯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곳에 온 거죠?" 다니엘은 바하 마의 아미보셤 호텔에서 하베이를 만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하베이는 사회의 구석진 곳에 감추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항상 모 두를 놀라게 만드는 기자였다. 큼직한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는 언제나 하베이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바하마는 그런 사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는 너무나 평온한 곳이었다. "그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니엘. 내 가 아무런 일도 없이 이런 곳까지 무엇을 하러 오겠어요, 안 그래요?" 하베이의 대답은 다니엘의 의아심을 더욱 강하게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당신처럼 유명한 민완기자가 이번에는 무슨 취재를 하려고 여기끼지 왔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내 가 보기에는 이곳은 아주 조용한 것 같은데... 무슨 이상한 냄새라도 맡았나 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겠죠. 아미보셤 호텔에서 초청한 사람들은 모두 저명한 인사들이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지겠 어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증인이 되기 위해 바하마까지 날아 온 셈입니다." "증인?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다니엘은 깜짝 놀라면서 하베 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뉴월드 그룹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 어요."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화로운 데..." "인간의 추한 욕망이 그런 좌악을 만드는 겁니다." 하베이가 고개를 끄 덕이면서 말했다. 평소에도 하베이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별나게 자신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자가 큼직한 기사거 리를 잡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외부로 드러내게 되는 그런 확신과 과시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입니까? 다니엘, 모든 일에 치밀하기로 유명한 사건 기자가 아니겠어요? 나 같은 기자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기 사 내용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마치 바하마에서 어떤 거대한 음모라도 벌어 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다니엘은 하베이가 어떤 스캔들이나 추적하려 이곳에 올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지금 하베 이가 보여 주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기사거리에 대해 너무 나 과신하면서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베이가 무엇을 알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직 사실로 밝혀진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니엘, 그러고 보니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군요. 그렇죠?" 하베이 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내가 도재체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거죠, 하베 이?" "주위를 좀 둘러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러니까 한 번 둘러보도록 하세요." 하베이는 계속 알아듣기 힘든 말만 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하베이의 말대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전혀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신문이나 잡지 에 여러 번 나와서 낯이 익은 유명 인사 몇 사람이 눈에 뜨이는 것을 제외한다 면 의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베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르겠어 요. 무슨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건가요?" "어제 오후부터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무두 내일 벌어질 기념 파티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번에 열리는 파티에 관해서는 다니엘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길버트 부 부가 주선하는 파티장에서 스키 기증식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것이 일반적인 행사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일 파티가 열리는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메드닉 회장 의 근황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나요?" 다니엘은 하베이 의 입에서 메드닉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망 설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순한 파티일 뿐인 걸요." "정말 그럴까요? 다 니엘, 하지만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 유명 인사들이 이곳 아미보셤 호텔에 왜 모여들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다니엘은 아무 리 생각해도 하베이의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하베이 앞에서 갑자기 바보가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베이의 말은 아무 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당신 말의 요점이 뭐죠, 하베이? 길버트 부부의 파티가 메즈닉 해리슨 화장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가 요?" "그렇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나요?" "좋아요. 이따가 오후 5시에 내가 연락을 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하베이는 이렇 게 말하고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가려 하고 있었다. 하베이는 무엇인가 대단 한 사건의 꼬리를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쉽사리 밝히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밝힐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 사건이 몰 고 올 파장을 생각해서 밝히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니엘은 하베이가 경비 원들의 엄중한 경계망을 뚫고 옥상에 올라가서 레베카와 앤소니의 대화를 몰래 도청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하베이는 도청을 통해 이미 레 베카와 안소니의 관계와 그들이 꾸미고 있는 어떤 음모를 짐작하고 있는 단계였 다. 아직 그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는 있었다. 하베이는 더욱 확실한 내용을 파악하고 증거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하 베이의 성격은 언제나 완벽한 것을 추구했다. 하베이는 항상 어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증거를 확보하고 나서야 사건의 내막을 터뜨 렸던 것이다. "이봐요. 하베이 . 그런데 이대로 떠나가 버리면 어떻게 해요?" 다니엘은 평소답지 않게 하베이의 이야기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어디 론가 가려던 하베이는 다니엘의 말에 다시 뒤로 돌아섰다. "좋습니다, 다니엘. 그렇다면 길버트 부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 드리도록 하죠." 드디 어 하베이의 입에서 의문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잔뜩 호기심을 품으면서 하베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니콜이라는 여자 를 알고 있습니까?" "메드닉 해리슨 화장과 이혼한 여자가 아닌가요?" "맞습니 다. 니콜은 메드닉 회장과 결혼하기 전에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약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요?" 하베이가 다니엘을 응시하면서 물어보았다. "물론이죠." 다니엘 은 니콜이 과거에 유명한 영화배우였으며 메드닉과의 불화로 인해 은퇴하게 되 었다는 것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메드닉 회장은 니콜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메드닉은 그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유는 바로 사업 때문이 었습니다. 그 당시에 메드닉은 한참 사업에 쫓기고 있었고 그의 부인은 은퇴한 은막을 그리워하면서 외로운 생활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알콜에 중독되었고 다른 남자와 놀아나게 되었던 겁니다." 하베이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말을 멈추자 다니엘이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메드닉 해리슨은 그 사실을 알고 매우 분노해서 당장 이혼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니콜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몇 달 후에 니콜은 에릭이라는 남자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메드닉 해리슨에게 아이의 양ㄱ비를 청구했죠. 하지만 메드닉은 매정하게도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이 아니라고 주 장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하지요. 니콜이 바람을 피우는 광경을 메드닉이 직 접목격했으니까요." 헤베이가 말하고 있는 동안 다니엘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 서 듣고 있었다. 하베이는 이제부터가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베이는 다니엘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쪽으로 갈까요?" 하베이는 한 손을 들어서 인적이 드문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서 다니엘과 함 께 천천히 걸어가면서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 불쌍한 니콜 은 알콜 중독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에릭은 니콜의 절친한 친구의 손에 의해 자라났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로즈마리라는 딸이 있었는데 에릭은 청 년이 되었을 때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 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그 딸이 두 살이 되었을 때, 에릭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가 전사했어요. 매우 슬픈 일이죠." 하베이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렇 군요."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메드닉 회장의 아내였던 니콜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지 금까지 장황하게 니콜의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베이가 갑작 스럽게 질문했다. 다니엘은 도무지 이유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죠?" "니콜의 절친한 친구이자 에릭의 아내인 로즈마리의 부모가 바로 길버트 부부이기 때문이죠. 만약 니콜의 주장대로 에릭이 메드닉 해리슨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메드닉 해리슨과 길버트 부부는 사돈지간이 되는 겁니다. 이만 하면 짐작을 하시겠죠?" 그것은 대단히 놀하운 사실이었다. 다니엘은 뉴월드 그 룹의 메드닉 해리슨에게 그런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니 엘은 하베이가 바하마까지 달려온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 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막상 엄청난 사연들이 흘러나오자 하베이ㅣ가 직접 이곳에 온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니엘은 갑자기 한 가 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에릭의 딸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되었죠?" "엘리자베 스는 바하마에 와서 레베카 더글라스가 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프랭크 로시가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다니엘은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깜짝 놀 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메드닉의 손녀일지도 모르는 엘리자베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메드닉 회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레베카 더글라스라는 사실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이었다. "메드닉 회장의 비서로 일하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다니 엘은 마치 무거운 물건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습니 다." 하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프랭크 로시가 그것에 대해 조사를 하 고 있다는 말인가요?"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내가 프랭크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베이가 정 중한 태도로 말했다. 다니엘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이고 나서 말문을 열었다. "모두가 정말 놀라운 사실들이군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인가 충격적인 음모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모든 일들이 메드닉 회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정작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엘리자베스가 레베카 더글라스로 둔갑한 것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무 언가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메드 닉 회장을 만나게 되면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메드닉 회장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다니엘이 하베이를 쳐다보면서 물어 보았다. 하 지만 하베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나서 손을 들고 현 관을 가리켰다. 다니엘은 하베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미보셤 호텔의 경호요원들이 삼엄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다. "저들은 마치 솔 로몬의 금과이라도 된다는 듯이 엄중하게 회장실로 올라가는 통로를 지키고 있 어요. 즉 열쇠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그의 영역 안에 들어갈 수 없습 니다." "당신은 지금 그 열쇠를 찾고 있군요? 아마도 로라가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하베이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천만에 요. 난 이미 그 열쇠를 확보했습니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 다." "그렇다면 저 위에 올라가 보았다는 겁니까?" 다니엘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하베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하베이는 주위를 경계하듯이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비공식적으로..." "그렇다면 메드닉 회장을 만나 보았나요?" "아닙 니다. 아직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함니다." 하베이의 태도나 말투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 사건에 굉장히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추측이 적중한다면 아마 도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에 최대의 특종기사가 여기 바하마에서 터지게 될 겁니다." 하베이가 장담하면서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다 니엘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결코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사건이 아닙 니다. 아직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정계의 인물도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다니엘 은 사건의 규모가 자신이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 베이 정도의 기자가 자신있게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할 정도라면 가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퓰리처상 수상감입니다. 그 기 사의 기치에 견주어 본다면 말입니다. 나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죠." "잘 가요, 하베이." 다니엘은 손을 흔들면서 하베이에게 인사를 보냈 다. 하베이도 손을 흔들면서 잠시 미소를 지었다. 하베이는 바쁘다는 듯이 서둘 러 다음 계획에 따라 부지런히 장소를 옮겼다. 다니엘의 마음 속에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니엘에게 정보를 주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하베이였다. 하베이는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고서는 쉽게 흥분할 사람이 아니었 다. 그러한 그가 지금 굉장히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한 미로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엘 리자베스는 정말로 메드닉 회장의 손녀일까? 엘리자베스는 왜 레베카 더글라스 가 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어째서 메드닉 회장의 비서가 되었을까? 레베카 더 글라스는 지금 바하마에서 각계의 유명 인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행사를 열 고 있었다. 하베이의 말대로 그 행사는 스키 기증식이라는 단순한 의미 이외에 또다른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다니엘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의문에 잠김 채. 다니엘은 하베이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 다. 하베이는 모두가 증인이 되기 위해 바하마로 초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 이곳 바하마에 와 있는 것일까? 제9장 비밀 제임스가 돌아간 후에 혼자 남아있던 로라는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로라는 다니엘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제임스가 다니 엘이 뉴월드 그룹을 노리는 레이더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로라는 분명히 잘못 알았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로라는 머리를 흔들면서 그 사 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로라는 지난 밤에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을 조금 도 의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로라는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내 맡 기고 있었다. 물은 적당할 정도로 따스했다. "다니엘은 무척 좋은 사람처럼 보 였어.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마 사실이 아닐 거야." 하지만 다니엘이 직접 바하마까지 날아온 것은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비 서진도 데리고 오지않았다. 다니엘에게 무슨 비밀스러운 계획이라도 있었던 것 일까? 평소라면 블레이크 그룹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바하마로 찾아왔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옛 친구인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멀리까지 날아오 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라는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거울 속에서 로라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난 밤의 일들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다니 엘은 몹시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런 행동이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었을까? 혹시 내가 메드닉 할아버지의 손녀라는 사실을 안 후에 의도적으로 접 근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다니엘은 나를 진짜로 좋아한 것이 아닐지도 몰 라.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를 빼앗기 위해 계획적으로 나를 이용하려고 생각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야. 하지만 다니엘은..." 로라는 다니엘을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증거가 확실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계열회사를 이용해서 뉴 월드 그룹의 주식을 매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더스가 활동하고 있을 때, 감 상적인 마음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계속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지만 다니엘에 대 한 감정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니엘을 의심하려고 할 때마다 로라는 그만 가 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탁 막히는 것만 같았다. 지금처럼 다급한 순간에 소녀처 럼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냉정 해야 해, 로라." 로라는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녀는 다니 엘에 대해 좀더 객관적으로 많은 사실을 알아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다니엘을 만나야만 한다. 제발 다니엘이 레이더스가 아니었으 면... 얼마 후에 로라는 다니엘의 방으로 찾아가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몇 초 후에 문이 열리면서 다니엘의 얼굴이 나타났다 "할 이야기가 있어요, 다니 엘." "어서 들어와요." 다니엘은 친절한 태도로 로라를 맞이했다. 로라가 소파 에 앉았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만 기다려요, 로라. 먼저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전 괜찮아요. 기다리겠어요." 로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니엘은 손을 내밀어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로라는 의식적 으로 다니엘의 통화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아, 프랭크? 내가 부탁한 건 어 떻게 되었죠?" 그리고 나서 다니엘은 한참 동안이나 상대편의 말을 듣고 있었 다. 다니엘은 간혹 자기가 계속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몇번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 계속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니엘이 머리 를 가볍게 흔들면서 프랭크의 말을 끊었다. "아,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어요. 지난 번에 하베이가 나에게 알려 주었어요. 그 이후에 더 알아낸 사실이 있나 요?" 잠시 동안 다시 프랭크의 말이 이어지고 다시 다니엘이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이죠? 로즈마리가 이곳에 있다고요? 그게 확실한가요?" 로라는 다 니엘의 입에서 로즈마리라는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름은 조 금 전에 제임스에게 들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로라는 마음을 긴장하면서 다 니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담시 후에 다니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후에 리차드 상원의원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요. 네, 알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 보기로 하지요." 로라는 다니엘과 리차드 상원의원이 바하마에서 만난다는 사실 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게닫가 로즈마리라는 여자까지도 지금 바하 마에 와 있는 것이다. 다니엘의 전화에서는 제임스가 언급했던 사람의 이름이 차례로 언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다니엘이 확실히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니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로라의 표정이 매우 슬 프게 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임스가 이야기했던 것과 그대로 맞아 쩔어지 고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과 리차드 그리고 로즈마리는 모두 뉴월드 그룹의 주 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세 명이 현재 바하마에 와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제임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모 두 기업 사냥꾼의 용의자들이었다. 로라는 다니엘의 통화 속에서 제임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더스들은 만남의 장소로 바하마를 선택 했고 바하마는 바로 뉴월드 그룹의 회장 메드닉이 있는 곳이었다. 로라까지 포 함한다면 실제로 이 순간에 바하마에는 뉴월드 그룹의 대주주들이 모두 한 자리 에 모여 있는 셈이었다. 모든 일들은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같 았다. 로라는 앞으로의 일이 어떠게 진행될 것인지 매우 걱정스러워졌다. "그래 요, 프랭크.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전화해 주세요. 알았어요. 당 신도 조심해요." 마침내 다니엘이 전화를 끊었다. 다니엘은 로라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와서 곁에 앉았다. "할 이야기가 뭐죠, 로라?" 애초에 로 라가 다니엘의 방으로 찾아온 것은 그에 대한 의심을 풀기 위해서였다. 로라는 다니엘을 믿고 싶었고 그가 레이더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로라는 다니엘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눈다면 모든 오해가 풀릴 거라고 생각 했다. 로라에게 다니엘은 그만큼이나 인상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다니엘의 전화 내용을 들었던 로라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라 해리슨은 더 이상 다니엘의 태도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 나를 정말로 사랑하나요?" 로라가 서글픈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에요, 로라. 나는 항상 당신을 짐심으로 사랑해요." 다니엘이 로라의 어 께에 손을 얹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로라는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로라는 화를 내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단지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니엘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 다. "할아버지를 만나려는 이유는 도대체 뭐죠? 당장 회사를 내놓으라고 협박이 라도 할 생각인가요?" 로라가 소리를 질렀다. "로라,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 는 거죠?" "아침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임스 교수님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제발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 봐요, 로라." 다니엘은 로라 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제임스와 어떤 대화 를 나누었던 것일까? 다니엘은 로라를 달래고 싶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나니엘은 그러한 로라의 태도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로라는 다니엘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있었다. "좋아요, 다니엘. 그렇다면 당신과 리차드 상원의원이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죠?" "리차드? 당신이 리차드 상원의원을 어떻게 알고 있 어요?" 다니엘이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니엘은 조금 점에 프랭 크 로시로부터 리차드 상원의원과 레베카가 긴밀한 사이일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혹시 로라 해리슨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반문했 던 것이다. 하지만 로라는 더욱 화를 내면서 벌떡 일어났다. "계속 시치미를 떼 는군요, 디니엘. 당신 같은 사람과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어요." 로라는 곧장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로라를 잡았다. "그렇게 가 버 리지 말아요. 당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다니엘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로라의 얼굴은 이미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당신 들이 꾸미고 있는 것들을 모두 말씀드릴 거예요.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로라는 거칠게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다니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 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니엘은 소파에 주저앉은 다음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로라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로라는 무엇 인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니엘은 로라의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 지만 도대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석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침에 로라와 대화를 나 누었던 제임스 교수를 만나보는 것이었다. 제임스는 지난 밤을 꼬박 새운 탓에 오전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그의 잠 을 방해했다. 졔임스는 여전히 침대에 드러누운 채 손을 내밀어서 수화기를 집 어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제임스 교수님이시죠?"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는 중년의 여자같았는데 매우 부드러웠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혹시 호텔 카지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나요? 어젯밤에 우연히 지갑을 주웠어 요. 그 지갑 속에는 당신의 신분증이 들어 있더군요." "그래요? 하지만 난 지난 밤에 카지노에 간 일이 없는데..." "한 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제임스는 옷장 으로 걸어가서 상의에 들어 있던 지갑을 학인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 보아도 지갑을 확인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 다. 제임스는 깜짝 놀라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정말 지갑이 없어졌군요. 그 런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카지노에 가 있는 거죠?" 제임스가 의아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지갑은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어요. 어쨌든 이 지갑을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그속으로 찾아갈까 요? 아니면 당신이 나의 별장으로 오시겠어요?" "아, 물론 제가 그곳으로 가야 지요.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임스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별장은 호텔에서 내려다보이 는 해변의 끝에 있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요. 별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 을 거예요." 제이미가 제임스를 안심시키면서 말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어요." 제임스는 제이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나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몸을 씻기 위해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 간 제임스 교수는 세면대 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밤새 수염이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제임스는 면도 크림을 바르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수염을깎기 시 작했다. 면도를 하고 난 제임스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들여다보 면서 제임스는 방금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자신의 지 갑이 카지노에 가 있었던 것일까? 제임스는 자신이 카지노에 간 적이 없었기 때 문에 그곳에서 잃어버렸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자신 도 전혀 모르는 사이에 지갑을 훔쳐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어쨌든 지갑을 되찾 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제임스는 제이미가 매우 친절한 여자일 거라 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과연 어떤 여자일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제임스는 제이미라는 여자에 대해 상상해 보았 다. 어쩌면 바하마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동안 제임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임스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방 문을 나섰다. 그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눌렀 다.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멈추었다가 곧장 4층과 5층을 통과한 후에 제임스가 서 있는 6층에서 멈추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서서히 문이 열렸다. 문이 완 전히 열렸을 때 , 제임스는 그곳에 다니엘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니엘 은 제임스를 보자 뜻밖에도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제 임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반갑군요." 엘리베이터의 문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다니엘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제임스가 엘리베이 터에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1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자 두 사람을 태운 엘 리베이터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 는 중이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해서... 시간을 좀 내주시겠습 니까?" 다니엘은 아침에 로라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제임스에세 물어 볼 생 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 중입니다. 오후에 이야기를 하면 안 될까요?" 제임스가 다니엘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다니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오후 5 시가 어떨까요? 그 시간이라면 아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제임스는 다니엘에게 급히 악수를 청하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 시간에 호텔 의 지하 바에서 보기로 하지요." 다니엘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임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제임스는 잠시 고개를 끄덕인 후에 제이미를 만나기 위해 서둘 러 달려나갔다. 다니엘은 제임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됫모습을 물끄 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제프리는 점심 시간이 약간 지났을 때 아미보셤 호텔에 도착했다. 제프리는 곧바로 메드닉의 전용층으로 올라갔다. 제프리의 손에는 작 은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메드닉의 전용층에 도착한 제프리는 먼저 레베카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어서 오세요, 제프리." 레베카가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는 듯이 제프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제프리는 인사도 하지 않고 당장 용 건부터 말했다. "메드닉 회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프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프리는 원래 비사교적인 성격이었으며 외모에서도 딱딱하고 건조한 인상이 풍겼다. 제프리는 항상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세요." 레베카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제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메드닉의 개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메드닉의 개인 변호사 는 왼래 제프리가 일하고 있는 스탠포드 법률회사의 창립자인 해롤드 스탠포드 였다. 그리고 제프리는 해롤드 스탠포드의 사위로 그 법률회사에서 열심히 일하 고 있었다. 제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메드닉의 개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메드닉의 개인 변호사는 원래 제프리가 일하고 있는 스탠포드 법률회사의 창립 자인 해롤드 스탠포드였다. 그리고 제프리는 해롤드 스탠포드의 사위오 그 법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스태포드 법률회사는 뉴월드 그룹의 법률 문제 들을 전담해서 처리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메드닉은 워낙 까다로운 사람이었 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법률 문제들에 대해서는 스탠포드만을 상대하고 있 었다. 그러던 도중에 스탠포드가 죽은 다음부터 제프리가 그 법률회사의 운영을 맡았다. 그래서 제프리가 메드닉의 개인 변호사로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던 것이 다. 제프리는 레베카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오는 길이었다. 레베카는 제프리 에세 유언장과 관련된 서류들을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제프리는 메드닉의 신변에 무슨 중대한 문제가 생긴 거라고 예상했다. 제프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유언의 집행이라도 하게 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회장님께서 유언장의 내용을 정정하시겠다고 해서 그 문제에 대해 의논을 드리려고 합니다." 헤베카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메 드닉 회장님으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유 언장을 정정하는 이유가 뭐죠?" "그럴 만한 사정이 생겼어요. 자세한 것들은 메 드닉 회장님이 직접 말씀하실 거예요." 레베카가 제프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레베카는 곧바로 회 장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들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에 메드닉의 목소리 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지?" 메드닉이 궁금한 듯이 물어보았다. "제프리 변호사가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어서 들여보 내도록 해. 그리고 레베카, 당신도 함께 들어오는 게 좋겠어." 제프리가 회장실 에 들어갔을 때, 메드닉은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제프리는 정중한 태도로 메드닉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제프리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훨씬 젊어진 것 같지 않나?" 메드닉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제프리에게 물 어 보았다. 메드닉의 상태는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좋은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있었으며 걸음걸이도 훨씬 힘이 있어 보였다. "그렇군요. 몇 년은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가지고 계신가요?"제프리가 궁금한 듯이 물어보았다. "유능한 주치의 덕분이지요." 레베카가 앞으로 나서면 서 대답했다. 레베카는 잠시 메드닉을 바라본 다음에 다시 제프리를 향해 고개 를 돌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앤소니 박사님이 회장님에게 젊음의 명약을 처 방해 주셨어요." "그런 약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말로 그런 약이 있나요?" 제프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 보 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메드닉이 크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모든 일 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탈이야, 제프리. 레베카의 말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야. 앤소니 박사가 나에게 처방해 준 약은 바로 휴식이라는 거야. 일에 대한 아무런 부담없이 한참 동안 푹 쉬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 로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젊어지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지." 제프리는 알겠다 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 근래에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던 이유 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요."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요." "바로 그렇다네." 그 리고 나서 메드닉은 레베카와 제프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레베 카, 제프리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지 않겠어? 이 친구는 중국산 자스민 차를 아 주 좋아하지. 안 그런가, 제프리?" 메드닉이 웃으면서 말했다. "회장님께서 그 런 것 까지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프리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 면서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드닉은 다시 레베카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 었다. 레베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끓이가 위해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남게 되었을 때, 제프리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전에 유언장의 정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신 건가 요?" "그렇다네." 메드닉은 대답을 하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두눈을 감았다. 제프리는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메즈닉 회장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메드닉 회장은 무엇인가 결심했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이면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 주겠네. 자 네는 내 아내였던 니콜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니콜은 은막에서 대 단한 명성을 날리고 있었죠." "나의 니콜 사이에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네. 지 금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야." "네?" 제프리는 깜짝 놀라면서 메드닉 을 바라보았다. 제프리는 메드닉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돌아가신 자네 장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 자네 장인이 내 법률 고문으로 있을 때 나는 니콜과 이혼했어. 나는 그 당시에 니콜이 임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는 생각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고 이혼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 어." 메드닉이 무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프리 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메드닉 회장을 향해 말했다. "결국 나는 니콜을 내 쫓고 말았어. 그 후에 니콜은 혼자서 아이를 낳았던 거야. 나는 니콜과 관계된 것들을 모두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애를 썼어. 그 아이도 내 자식이 아 니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나는 니콜과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지냈다네." 메드닉이 과거의 일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레베카가 방으로 들어왔 다. 레베카의 손에는 찻잔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레베카가 제프리에게 다 가와서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을 때 제프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알게 되신 거로군요" "맞아. 그 이야기는 레베카가 잘 알 고 있지. 레베카가 자세한 내용을 말해 줄 거야." 메드닉이 레베카를 바라보면 서 말했다. 레베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니콜은 아기를 낳은 후에 알마 있지 않아서 죽었어요. 그 아이의 이름은 에릭이였죠. 에릭은 니콜의 친구 손에서 지라났죠. 20년 후에 에릭은 로즈마리와 결혼했어요. 로즈 마리는 그를 키워 주었던 사람의 달이었어요. 그들 사이에서 다시 딸이 태어났 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에릭은 베트남전쟁에서 죽고 말았어요. 에릭과 로즈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예요. 그녀는 바로 메드닉 회장님의 새 로운 손녀입니다." 그것은 몹시 놀라운 일이었다. 놀라울 뿐만 아니라 믿기 어 려운 일이었다. 뉴월드 그룹의 총수 메드닉 회장에게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손녀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 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군요." 제프리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입을 열고 말했다. 메드닉은 그런 제프리의 반응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였다. "나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네. 사실 니콜은 아주 착한 여자였어. 나의 고집이 그녀를 죽게 했던 거야. 그리고 나는 두 명의 아들 을 차례재로 잃고 말았어. 엔드류와 에릭, 두 명 모두 내 곁을 떠났지. 지금까 지 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은 로라뿐이었어. 하지만 이제 나는 새로운 손 녀를 찾게 된 거야."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엘리자베스는 나에게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어. 나는 엘리자베스를 정식으로 나의 핏줄로 인정하기로 결심 했네. 그래서 먼저 내 유언장에 엘리자베스에 대한 권리를 기록해 두려는 거야.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엘리자베스에게 정당한 상속권을 주려는 거지. 내 말을 알아듣겠나, 제프리?" 메드닉은 고뇌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을 번거롭지 않게 하기 우해서 새로 작성한 유언장은 미리 준비를 해 두었네." "어떤 내용을 수정했습니까?" 제프리가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자네가 직접 그 서류를 읽어보게. 다시 만든 유언장은 레베카가 보관하고 있다 네. 레베카, 제프리에게 그 서류들을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레베카는 새로 작성한 유언장을 꺼내서 제프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이미 사인을 마친 메 드닉의 새로운 유언장이었다. 제프리는 서둘러 유언장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그것은 모든 후손들에게 쪽같은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대로라 면 메드닉의 상속 재산은 로라와 엘리자베스가 똑같이 나누어 가지게 될 것이 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제프리가 메드닉을 쳐다보면서 물 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네. 하지만 내일이면 모두가 다 알게 될 걸 세. 나는 내일 열리는 길버트 부부의 파티에서 엘리자베스가 내 손녀라고 정시 으로 발표할 생각이야. 그 자리에 참석한 저명 인사들과 기자들이 모이는 곳에 서 이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거지."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자 네는 곧바로 돌아가서 내 유언장만 접수시키면 돼. 효력이 즉시 발휘될 수 있도 록 조치를 취해 주게. 그리고 다시 이속으로 와 주게나. 자네가 나를 위해서 해 야 할 일들이 아주 많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프리는 정중한 태도로 대답 한 후에 유언장을 서류 가방에 집어넣었다. 메드닉과 레베카는 그 모습을 바라 보면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 전에 바하마에 도착한 리차드 상원의 원은 아미보셤 호텔 특실에 투숙했다. 그는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해변을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라차드가 이곳에 온 것은 한 기지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치밀하게 진행했던 계획이 수확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리차드는 어디에 내 놓아도 혹은 어떤 문제가 생겨도 거뜬히 처 리할 만한 능역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회피하기 보다는 정변으로 돌파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재치와 용기를 발휘하면서 헤쳐 나왔다. 그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 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있었던 리차드 상원의원의 정치적 진출은 경이적인 것이 었다. 리차드는 민주당 플로리다 주 주지사 후보로 선출되면서부터 정치에 입문 했다. 리차드가 플로리다 주에서 민주당의 주지사 후보 지명선게에 출마한 것은 정말 위험한 도박이었다. 리차드는 그러한 도박을 할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 었다. 비록 민주당의 예비선거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 번이나 연임하고 있으며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예비 선거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는 현 주 지사 존스를 선거에서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 었다. 리차드는 주지사 선거의 당선 여부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 다. 리차드에게 있어서 주지사 선거의 승패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리차드는 어쨌든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는 자신이 앞설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그리고 비록 주지사 선거에서 패하더라도 주 전체를 상대로 선거 운동에 나서면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모든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리차드에게 그것은 장래를 대비한 확고한 정치적 기 반이되는 것이다. 리차드가 노리는 것은 바로 대통령 선거 출마였던 것이다. 리 차드는 모든 신문과 잡지 그리고 선거용 선전물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고 자신 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돌게 죄면 분명히 그의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 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국내의 언론들은 플 로리다주의 존스 후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존스는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플로리다 주는 다른 주들에 비 해 언론의 주목을 더욱 많이 받았다. 그리고 존스 후보를 상대하는 리차드의 이 름도 더욱 빈번하게 언론에 오르내렸다. 리차드는 독큭한 선거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선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리한 공약을 남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주 력했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가 노리는 유권자들은 플로리다 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 국민이 었던 것이다. 다른 주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은 플로리다 주의 정책이나 발전에 대한 공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스 후보가 화려한 공약을 내걸고 선거유세를 하는 동안, 리치드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에 더욱 주력 했던 것이다. 연설을 할 때에도 리차드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국의 미래에 대 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이런 방식의 선거전략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선거에 서 근소한 차이로 패하기는 했지만 공화당의 존스 후보와 아슬아슬한 대결을 벌 였다는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화당의 존스 후보는 주지사 선거에서 비록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리차드라는 애송이를 상대로 어이없게 고전해야만 했다. 선거에서 민주당의 리차드 후보를 누르고 압승할 거라고 예상 했던 존스의 평판은 도저히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전을 포기해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반면에 리차드에 대 한 평판은 정반대였다. 아직은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성장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던 것이다. 리차드는 비록 선거에서는 졌 지만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리차드는 그 만큼 야심이 있는 정치 가였고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잦추고 있었다. 리차드는 언제인가는 대통령 후보 로 출마할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현실적인 기 반이 필요했다. 하나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최대한 많이 사귀 는 일과 또 다른 하나는 재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정치적인 인맥을 만드는 일은 리차드의 타고난 성격과 정세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는 감각으 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리차드는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하면서 정계와 재계 에서 뛰어난 사교 활동을 벌였다. 리차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저명 인사들과 두 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기자들에게도 역시 항상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 인이었다. 그러한 리차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충분한 정치자금이었다. 리차드 는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퓨처 기획 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여러 관광 도시의 카지노를 인수하면서 운영하 기 시작했다. 카지노는 잘만 운영하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리차드 는 카지노를 통해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을 마음대로 운용했다. 그 중에 는 마피아나 부패한 관리들의 자금들도 유입되어 있었다. 카지노를 이용하면 출 처를 밝힐 수 없는 검은 돈들을 얼마든지 양성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차드가 검은 돈을 세탁하는 일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재무성이나 주정부는 카지노가 엄청난 돈을 뒤로 빼돌리고 있다느 사실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조사에 착수할 수가 없었다. 리차드가 자신의 막강 한 영향력을 이용해서 세무조사를 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카지 노를 통해 드어오는 수입으로 리차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착실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카지노의 수입만으로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단번에 수천만 달러의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기업의 인수와 합병이 었다. 그는 먼저 자산의 비중이 높고 경영상태가 좋은 기업을 선정한 후에 정치 적 수완을 발휘하거나 흑색선전을 통해 자금 사정을 악화시켰다. 일시적인 채무 불능의 상태에 처한 기업은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이미 리차드로부터 통고 를 받았던 은행들은 아무도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보유하고 있는 고정자산을 매각해서 채무를 변제하려면 최소한 세 달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리차드는 절 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압력을 가하면서 그 기업을 파산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퓨처 기획을 통해 그 기업을 인수했 던 것이다. 그는 기업을 인수한 후에 마구잡이로 자산을 매각했다. 그리고 엄청 난 돈을 벌어들인 다음 손을 떼었다. 기업 사냥꾼들이 한 번 지나간 기업은 회 생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무도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파행적 으로 운영했던 것이다. 리차드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항상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비교적 합병하기 쉬운 기업들을 노렸지만 대통령 예비선 거를 앞두고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대기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 다가 적당한 먹이를 발견하게 죄었다. 그 기업은 바로 뉴월드 그룹이었다. 재계 에서 군림하던 메드닉 회장이 없는 뉴월드 그룹은 별로 어렵지 않게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뉴월드 그룹을 인수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았 다. 그리고 서서히 뉴월드 그룹은 그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리차드 는 산책을 하던 도중에 다니엘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젊은 나이에 정계와 재계의 거물로 등장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 스탠포드 대 학의 선후배이기도 한 두 사람의 대화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다니엘 , 나는 당신과 존 포스터가 이번 청문회에서 증언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분과위원회에서는 이번의 증언에 대해 기대를 크게 걸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반드시 대외 무역정책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차드가 말하는 이번 증언은 미국의 경제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니엘에게 는 사실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리차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저도 상원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 다." "이번 일은 정말 잘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바 블레이크 그룹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죠."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대화를 하던 도중에 문득 리차드가 손을 들고 아미 보셤 호텔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아, 저기 레베카가 오고 있군요. 레베카는 메드닉 회장의 비서로 있으면서 뉴월드 그룹 전체를 관리하고 있는 여자입니 다."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다니엘은 하베이와 프랭크로부터 이미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 었다. 그리고 사실은 레베카가 아니라 엘리자베스라는 것도... 그러나 엘리자베 스가 왜 레베카의 이름을 쓰느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리차드는 가 까이 다가오고 있는 레베카를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레베카?" 레베카 도 역시 리차드를 바라보변서 반가운 듯이 인사를 했다. "의원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뻐요." 다니엘은 두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짐 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니 엘은 매우 젊고 매력적인 레베카 더글라스가 거물급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약간 놀라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잡지에 실린 당신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레베카. 정말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있더군요. 그래요, 정말 수고 가 많아요." "감사합니다." 레베카가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 레베카, 다니엘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죠?" 리차드 상원의원이 레베카를 바라 보면서 말했다. 레베카와 다니엘은 이미 아미보셤 호텔 식당에서 잠시 만난 적 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간지의 동정란을 통해 자주 기사를 읽었어요. 당신 은 아직 젊은 분이지만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감사합니다." 리차드는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레베카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 에 재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니엘, 레베카로 말하자면 매우 상냥하면 서도 겸손한 여자야. 난 레베카가 클라크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있을 때 알게 되었어. 그 당시에 나는 벌써 레베카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 지. 뉴월드 그룹을 혼자 이끌고 갈 정도로 말이야." 다니엘은 비로소 그들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은 정계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클라크 상원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레베카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 았다. 하지만 레베카는 리차드의 말처럼 쮜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겸손한 여자가 결코 아니었다. 다니엘은 그녀가 현재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 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레베카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 던 것이다. "리차드 상원의원님은 아직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를 항상 좋게 보아 주시고 계시죠." 레베카 더글라스가 리차드의 팔에 매달리면서 미소 를 지었다. 다니엘은 리차드와 레베카의 사이가 어떤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쮜 어난 미모와 매력을 풍기는 젊은 여자가 현직 상원의원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 던 것이다. 게다가 메드닉 회장이 운영하던 뉴월드 그룹을 도맡아 서 경영하고 과리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레베 카 더글라스가 뛰어나다고 해도 누군가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매 끄럽게 운영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몇 가지 의문들에 대해 머리 속으로 생각 하기 시작했다. 메드닉은 레베카가 엘리자베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풀릴 수 있었다. 메드닉은 엘리자베스인 레베카를 자신의 손녀로 인정하고 사업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 당한 기회에 레베카를 자신의 손녀라고 세상에 밝힐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의 문은 쉽게 풀릴 수 있었다. 하지만 메드닉이 레베카가 엘리자베스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메드닉이 레베카가 자신의 손녀라는 사실을 조금 도 모르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힌다. 레베카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 이 메드닉의 손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입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마도 메드닉이 어 떤 이유에서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손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레베카로 둔갑 한 엘리자베스는 메드닉이 알지 못하는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그 점이 매우 궁금했다. 도대체 레베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메드닉은 레베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다니엘이 의문을 키우고 있는 사이에 리차드 상원의원이 레베카 더글라스의 어깨 위에 다정하게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안아요, 레베카. 나는 당신에 대해 조금도 과장 한 게 아니에요. 모두가 느낀 그대로죠. 그러니까..." 리차드는 거기에서 말끝 을 흐리더니 다른 곳을 바라본 다음에 갑자기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만 실려를 해야겠군요. 저기 에드워드 코웰이 있어요. 저 사 람하고 인사를 좀 나누어야겠어요. 나중에 다시 봅시다." 리차드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리차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레베카는 다시 다니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레베카는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있었다. "혹시 불편한 점은 없나요?" "아닙니다. 아주 좋아요." 다니엘은 대답하고 나서 레베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는지 레베카가 다니엘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 전혀 뜻밖이군요." 다니엘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베카는 아해할 수 없다 는 표정을 잠깐 지어 보였다. "뭐가요?" "당신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젊 고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군요. 당신은 제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죠. 게다가 당신은 굉장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여자입니 다. 뉴월드 그룹을 이끌고 있는 메드닉 회장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요." "그렇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다니엘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레베 카에게 한 가지 부탁의 말을 꺼냈다. "미안하지만 레베카, 메드닉 회장님과 한 번 만날 수 없겠습니까? 몇 가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다니엘의 말 에 레베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로 다니엘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메드닉 회장님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세요. 회장님은 과 거에 인연을 가졌던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당신에 대해서는 특 히 많은 호감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셔야 해요. 그시간 이 그렇게 길지는 않겠지만 말이에요." 레베카의 대답은 한 마디로 완벽했다. 레베카의 설명에 의문을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메드닉 헤리슨 회 장님이 나에 대해 좋게 말했다는 걸 들으니까 정말로 기쁘군요." 다니엘이 정중 하게 대답했다. 그 사이에 레베카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길버트 부부가 도착하신 모양이에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레베카." "천만에요." 다니엘은 호텔을 향해 걸어가는 레베카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면서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임스는 제이미라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별장으로 찾아갔다. 다 행스럽게도 그 별장은 아미보셤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 다. 절벽과 인접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별장에 도착한 제임스는 조심 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경쾌한 새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인터폰에서 어떤 여 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시죠?" "제임스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문 은 열려 있어요." 제임스는 별장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 에는 아무도 보이자 않았다. 제임스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침실인 듯 이 보이는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지금 옷을 갈아입는 중이에 요. 한 잔 하시고 싶으시면 거실 왼쪽에 있는 진열대로 가세요. 그곳에 술과 마 실것들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제임스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정중한 태도로 인사하고 나서 진열대로 걸어갔다. 제임스는 버본을 한 잔 따라서 들고 창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창문 너머로 잘 꾸며진 발코니가 있었다. 제임스가 창문 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을 때, 마치 관광지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 이는 섬들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씨?" 어떤 여자가 제임스의 등뒤에서 말을 걸었다. 제임스는 뒤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바 라보았다. 매력적인 중년 여성이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당신 이 제이미인가요?" "네,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임스는 신사처럼 정 중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제임스가 거실로 들어가자 제이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버본 위스키를 좋아하세요?" "네, 가끔씩 마시는 편입니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마시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임스가 술잔을 약간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술잔에 담신 위스키가 찰랑거리면서 작은 물결을 일으켰 다.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가 확인이라도 하듯이 제이미를 돌아 보면서 말했다. "누가 찾아왔나 보군요." 제이미는 고개를 돌려서 벽에 걸린 시 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그분이 도착했나 보군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렇다면 먼저 다른 분 과 약속이 있었던 겁니까? 혹시 제 방문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마 그분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할 거예요." 제이미는 이렇게 말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낯선 노인이 서 있었다. 제임스는 그 노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어서 오세요,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 지금 현관에 서 있는 노인이 바로 뉴월드 그룹 의 회장 메드닉이라는 말인가? 제임스는 그 노인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노인의 태도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드는 그런 분의기가 노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 다. "이분은 메드닉 회장님입니다. 사실 당신을 이곳으로 부른 것도 메드닉 회 장님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메드닉 회장님에 대해서는 당신 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제임스 교수님?" 제이미가 제임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면서 바 라보았다. 제임스는 이런 곳에서 메드닉 회장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제임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반드 시 회장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나는 당신이 무 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어요. 우선 자리에 앉으세요."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제임스는 지금까지 메드닉 회장이 고집스럽고 괴팍한 노인일 거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나고 있는 메드닉 회장은 제임 스의 생각과는 달리 매우 친절한 표정으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로라에게 이미 당신이 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뉴월드 그룹을 노리는 사람들에 대한... 나 는 레이더스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요.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임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뉴 월드 그룹의 재정 상태와 주식 동향 그리고 투자의 방식과 경영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비밀스럽게 주식을 사들인 리 차드와 로즈마리, 다니엘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제임스의 이 야기는 점점 열기를 띠고 있었다. 제임스가 말하고 있는 동안 메드닉은 계속 머 리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메드닉은 오랫동안 뉴월드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제임스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느 것 같아ㅆ. 로라에 게 이미 대강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렇게 놀라는 표정도 아니었다. 마침내 제임스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메드닉은 희미한 신음을 토해냈다. 처리가 곤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처럼 메드닉은 턱에 팔을 괸 채 소파에 등을 파묻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 동 안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메드닉은 드디어 무엇인가 결정을 내린 사람처럼 몸 을 앞으로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제임스 교수님, 정말 대단한 사실을 알아내 셨군요. 앞으로 바하마에 계속 머물면서 이번 일이 정리될 때까지 나에게 도움 을 주시기 바랍니다. 교수님의 힘이라면 나에게 마주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 다." "힘껏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메드닉 이 제임스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어떤겁니까?" "이번에 당신이 알아낸 사실들 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 적이 있나요?" "아직까지는 로라에게만 말해 주었을 뿐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비밀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 아서..." 메드닉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일에 그렇게 신경을 써 주니 매우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회장님께서 배려해 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바하마의 아미보셤 호텔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회장님에 대 한 저의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다른 일들 은 모두 잊어버리고 호텔에서 편히 쉬기 바랍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 겠습니다." 제임스는 메드닉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임스는 악수를 하면서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메드닉 회장은 분명히 지난 몇 년 동안 건강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요양을 하는 중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데 제임스와 악수를 나누었던 손은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노인의 손이라고 보기 에는 너무나 힘찬 손이었다. "이걸 가지고 가셔야죠." 제이미가 제임스의 지갑 을 내밀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해서 카지노에 떨어져 있었는 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다시 찾았으니까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임스 는 제이미를 향해 인사를 하고 나서 문으로 걸어갔다. 제임스는 문을 나서기 전 에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면서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제이미는 문 앞에 서 제임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했다. 제임스가 호텔로 돌아간 후 에 제이미는 다시 거실로 들어갔다.메드닉 해리슨은 마치 돌처럼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로즈마리?" 메드닉이 중년의 매력적인 여성에 게 물어 보았다. 제임스에게 자신을 제이미라고 소개한 여자는 바로 로즈마리였 던 것이다. 로즈마리는 메드닉을 쳐다보면서 가볍게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 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 서두르는 것이 좋겠어. 불씨는 빨리 꺼 버려야 해." 메드닉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로즈마리도 싸늘한 표정을 지으 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프랭크는 뉴욕 시립병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입구에는 진찰을 받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과 가족들로 붐비고 있었다. 간호사와 의사는 수많은 환자들은 돌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잇었다. 프랭크는 곧장 정면에 있는 안내 창구로 걸어갔다. "웨더비 박사의 연구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8층으로 올라가시면 복도 끝에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면 됩니 다."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아가씨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프랭크는 고압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프랭크는 8층에서 웨더비 박사 의 연구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프랭크는 연구실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 연구원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세요?" 젊은 여자 연구원이 낯선 방문자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랭크는 따분한 연구실을 방문하는 낯선 남자는 그리 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웨 더비 박사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나는 프랭크 로시라고 합니다." "들 어오세요." 프랭크는 여자 연구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에는 여러 가 지 실험장치들과 실험용 동물들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가운을 입어 주세요." 여자 연구원이 옷걸이에 걸려 있는 하얀색 가운을 프랭크에게 건네 주었다. 프 랭크가 가운을 들고 잠시 망설이자 여자 연구원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 은 중요한 실험을 하는 연구실입니다. 방문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 홋을 입어 야만 합니다." 프랭크가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가운을 걸치자 여자 연구원은 그를 사방의 벽에 하얗게 칠해진 웨더비 박사의 실험실로 안내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프랭크가 정중한 태도로 먼저 인사를 던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커다란 뿔테 안경에 머리가 조금 벗겨진 웨더비 박사가 연구를 하 기 위해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프랭크를 맞이했다. "저는 프랭크 로시라 고 합니다. 한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죠?" 웨더비 박사는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 실험용 흰 쥐가 있는 곳으로 걸어 가면서 질문을 던졌다. "항상 연구를 하고 계시는 군요." 프랭크가 감탄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나의 일이니까요." 웨더비는 옆에 놓인 시험관 을 집어들었다. 시험관 속에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웨더비는 주사기로 그 액체를 빨아들인 다음 실험용 쥐에게 조심스럽게 주사를 놓았다. 웨더비는 주사기를 내려놓고 장갑을 벗으면서 프랭크를 바라보아았다. "박사님, 저를 좀도와주십시오." "내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는 거죠?" "이것을 좀 확인해 주십시오." 프랭크는 로즈마리의 집에서 가져온 편지를 내밀었다. 웨더비는 편지를받아들고 읽어 보았다. "이건 굉장히 오랜 전의 일이군요." "편지 봉투에는1975년이라는 직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래요. 기억이 납니다. 메드 닉 씨의 의뢰로 유전자 감식을 한 겁니다. 샘플은 메드닉 씨의 혈액과 어떤 여자가 자신의 남편의 것이라고 하면서 주었던 뼛조각과 모발이었습니다." 웨더 비 박사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혹시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글쎄요..." "로즈마리가 아닌가요?" "그래요. 맞습니다. 로즈마리라고 했어요. 그리고 로즈마리가 죽은 남편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메드닉 씨였 죠."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그 편지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대답을 하 고 나서 웨더비는 다시 실험을 시작하려는지 고무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만약 감식 결과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프랭크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혹시 그 당시의 서류들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 어 려울 겁니다. 그 샘플에 관한 자료는 지금 찾을 수가 없으니까요." "전혀 찾을 수 없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병원의 규칙상 아무런 조치도 없이 20년 이상이 지난 자료는 폐기 처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 입니다. 그 자료도 역시 쓰레기로 분류되어서 연기로 사라졌을 겁니다. 자, 이 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실험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웨더비 가 프랭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니엘은 레베카와 헤어진 후에 호텔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커다란 주먹을 휘두르면서 달려오는 건장한 체격의 흑인을 만나게 되었다."아니, 저게 누구야?" 다니엘은 반가운 듯이 소리쳤다. 다니엘이 발견한 것은 혼자 달리기를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주먹을 재뻗는 권투선수었다. 다니엘은오래 전부터 그 흑인 남자와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었 다. "챔피언!" 다니엘이 그 남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챔피언이라고 불린 흑 인 남자는 얼굴을 돌려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니엘을 발견하 고는 반갑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다니엘, 안녕하세요?" 가까이 다가온 그는 커 다란 손을 내밀면서 소년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은 챔피언의 손을 잡 고 악수를 나누었다. 챔피언의 손은 그의 손보다 몇 배는 더 큰 것처럼 보였다. 링 위에서 사나운 야수처럼 싸우던 모습과는 달리 평소에는 무척이나 순한 사람 이었다. "정말 반가워요, 토미. 이제 보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바 로 여기에 있었군요." "과찬의 말씀이군요." "그런데 챔피언, 바하마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내일 벌어질 길버트 부부의 파티에 초청되었어요. 그 파티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다니엘?" "나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 굉장한 파티가 되겠군 요. 정치계, 경제계에다 영화계와 스포츠계까지 각계 각층의 모든 인사들이 모 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경비도 몹시 삼엄하고..." "나도 그건 좀 이상하 다고 생각했어요." 토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토미도 아미보셤 호 텔의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다니엘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토미를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당신의 모습을 보 았어요." "맥주 선전에 나온 모습을 보신 묘양이군요." 토미가 매우 자랑스러 운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었어요. 아마도 내가 본 건 베이비 파우더의 선전이었을 겁니다." "내 모습이 귀엽게 나왔나요?" 커다란 체격의 흑인이 매우 쑥스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니엘 은 그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토미의 얼굴에는 권투선수 로 생활하면서 얻은 상처가 여러 곳에 나 있었다. 콧날도 약간 주저앉은 것처 럼 보였지만 특히 턱이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선수답게 강인한 턱이 돋보였 다. 게다가 헤비급인 체구는 다니엘의두 배는 되어 보일 정도로 우럼했다. 그 러면서도 표정은 무척 순수했기 때문에 마치 어린 소년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다니엘은 토미의 모습을 보자,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참, 궁금한게 있어요. 당신이 은퇴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그게 사실인 가요?" 토미는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빼앗긴 후에 한참 동안이나 슬럼프에 빠 져 있었다. "매니저는 재기전을 하라고 자꾸만 보채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매 니저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챔피언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반문했 다. 다니엘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그랬어요. 앞으 로는 1천만 달러 이하의 개런티로는 어느 누구도 때리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토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다니엘도 순진하게 웃는 챔피언을 바라보 면서 미소를 지었다. 길버트 부부가 계획한 공식적인 행사는 내일 오후부터 열 리도록 되어 있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점차 바하마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경호원들이 여기 저기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주위를 경 계하고 있는 모습이 성대한 파티와 어울리지 않게 긴장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마치 백악관의 주인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비가 심엄했던 것이 다. 그런 가운데 레베카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잠깐씩 얼굴을 나타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하베이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면서 무언 가 냄새를 맡았지만 메드닉의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않고 있었다. 하베이는 메 드닉을 만나기 위해 다시 옥상에 잠입했다. 운이 좋으면 메드닉 회장의 전용실 에서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베이는 메드닉과 레베카 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었다. 지난번에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도청해서 녹음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레베카와 앤소니가 주고 받 았던 의문의 대화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 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증거였다. 하베이는 우선 레베카 더글라스와 함께 발 코니에 있는 메드닉의 모습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 다. 건물의 구조상 상체를 앞으로 내밀지 않고서는 발코니에 있는 피사체를 포 착할 수가 없었다. 지금 하베이에게 보이는 것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메드닉 뿐이었다. 지난 번에도 메드닉은 앤소니에 의해 주사를 맞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레베카가 지정한 서류에 서명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메드닉은 지금 안락의자에 앉아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레베카와 앤소니의 모습은 아 직 보이지 않았다. 하베이가 좀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을 때, 레베마와 앤소니가 발코니로 나왔다. "아무래도 그의 행동이 좀 지나친 것이 아 닐까요?" 앤소니가 레베카를 응시하면서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 황이긴 했어요." 레베카가 앤소니를 달래면서 말했다. 하지만 앤소니는 여전 히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난 그교수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 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메드닉?" 그것은 분명히 메드닉의 목소리였다. "메드 닉?" 하베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베이는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 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분석해 보면 메드닉은 레베카 의 공모자였으며, 그는 누군가를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앤소니는 메드 닉이 누군가를 살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드닉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누군가를 살해하다니? "앤소니, 그렇게 할 수밖 에 없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어요.우리 의 계획이 탄로날 수도 있었어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분명히 메드닉의 목소리였다. 하베이는 깜짝 놀라면서 다시 한 번 메드 닉을 쳐다보았다. 메드닉은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잠든 메드닉 해리슨이 그런 말을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말을 한 메드닉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헤베이는 갑자기 머리속에서 혼란이 일어나 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메드닉도 무서운 음모와 살인의 공모자라는 것인가? 하지만 하베이는 메드닉이 레베카와 공모하 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레 베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메드닉이 아니었다. 그 순간 하베이는 레베카 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레베카는 가짜 메드닉을 만들어서 뉴월드 그룹을 집어삼킬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메드닉, 지금부터 어떻 게 할 작정인가요?" 앤소니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지금 상황은 너무 위험해요. 어떻게 할 건지 잘 생각해서 졀정해야만 합니다. 몹시 중요한 일이니 까..." 도대체 메드닉으로 변신한 남자는 이번 일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것 일까? 하베이의 머리 속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있는 하베이의 귀에 다시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험하지 만 어쩔 수 없어요.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만 해요."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아 요. 내일만 넘기면 모든 일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우리의 일을 방 해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가짜 메드닉의 목소리였다. 하베이는 가짜 메드닉의 얼굴을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베이는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적당한 위치를 잡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철저 하게 통제되고 있는 옥상에 누군가 침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 기 때문에 경비원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하베이는 발각당하 지 않고 발코니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침내 하베이는 가짜 메드닉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맙소사, 완벽한 메드닉 이잖아!" 그곳에서는 분명히 메드닉이 레베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한명의 메드닉은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메드닉이 두명이 라니! 헤베이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가짜 메드닉과 레베카 그리고 앤소니가 서로 공모하면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 에서 살인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는 도대 체 무었일까? 하베이는 몹시 의아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이 세 사람이 나눈 대화에 대한 증거를 확실하게 잡아두어야만 했다. 하베이는 사진 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베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에 먼저 아래쪽 정원을 살펴보았다. 경비가 삼업했지만 옥상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베이는 가짜 메드닉의 모습을 카메라 에 담았다. 막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은 하베이가 쓰고 있던 모자를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하베이의 모자는 허공에 서 선회하다가 정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경호원은 하늘에서 모자가 떨어지자 이상하다는 듯이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인가 재빨리 움직 이는 것을 보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누군가 침입한 것이다. "옥상에 침 입자가 있다. 도망치기 전에 잡아라!" 경호원은 무전기를 통해 재빨리 다른 경 호원들에게 통보했다. 불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연락을 받았던 경호원이 권 총을 들고 옥상에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 으면서 나타나자 하베이는 순간적으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 다. "안녕하세요?" 하베이는 일부러 어수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경 호원의 표정은 여전히 목석처럼 변화가 없었다. "저, 난 이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엽서로 사용할 사진을 좀 찍으려고..." "이곳은 출입을 통 제하는 구역입니다. 아무도 올라올 수 없어요." 경호원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 다. 아무도 올라올 수 없는 구역에 있다는 사실을 하베이 자신도 잘 알고 있었 다. 한 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무서운 늪에 이미 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큼 다가온 경호원은 하베이의 카메라를 빼앗은 후에 안에 들어 있던 필름을 꺼냈다. 그것으로 사진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하베이는 태도를 바꾸었다. "이것 보세요. 나도 역시 이런 일은 별로 좋아하 지 않습니다. 좋아요, 그러니까 피차간에 없었던 일로 합시다. 나에게도 잘 못이 있으니까 당신이 꺼내버린 필름값은 받지 않겠어요." 하베이는 절박한 상 화에서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경호원이 하베이를 향해 바싹 다가섰다. " 뒤로 돌아서!" 경호원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명령했다. "하지만 내 말을 좀 들어보세요." "돌아서!" 경호원의 태도는 몹시 단호했다. 하베이는 어쩔 수없이 뒤로 돌아섰다. 하베이는 시간을 벌 생각으로 다금하게 중얼거렸다. 말을 걸면 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당한 기회를 찾을 생각이었다. "여긴 전망이 매 우 좋군요, 그렇죠? 그래서 풍경사진을 좀 찍으려고 이렇게 올라왔던 겁니다. 그런데 여긴 아무나 올라오는 장소가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요, 당신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하베이의 말이 갑 작스럽게 중단되고 그 직후에 처절한비명을 바뀌었다. 가까이 다가온 경호원이 하베이의 두 발을 번쩍 들어서 건물아래로 던져 버린 것이다. 하베이의 몸은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가차없이 떨어졌다. 제10장 지독한 운명 그 시간에 다니엘과 토미는 아미보셤 호텔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니엘은 지난번에 벌어진 토미의 시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챔피언, 지난번 시합에서 왼손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왼손 잽을 말이 에요." 다니에링 토미를 향해 장난스럽게 왼손을 쭉 뻗으면서 말했다. 그 순간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두개골이 터지는 둔탁한 소리가 정원에 있던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다니엘과 토미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니엘 은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니엘은 처참한 광경에 못서리를 쳤다. 방금 눈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어떻게 믿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불과 얼 마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하베이가 순식간에 옥상에서 추락해 죽고 말았 던 것이다. 다니엘은 등공이 오싹하는 것을 느꼈다. 하베이가 살아있을 가능성 은 조금도 없었다. 하베이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다니 엘은 하베이의 죽음에 깊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살인사 건이 아니었다. 하베이는 뉴월드 그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에 대해 조사하 고 있었던 것이다. 하베이가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간 이유나 들어갈 수 있었던 방법도 의혹이었다. 하베이가 옥상에서 추락한 원인과 삼엄한 경비는 결코 무관 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하베이가 어떤 비밀을 캐내기 위해 삼엄한 경비망을 뚫 고 옥상에 잠입하는 일에 성공했지만 도중에 발각되어서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 이라는 추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다 니엘은 하베이의 죽음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메드닉의 주위에서 벌어지 고 있는 일이 사람을 죽일 만큼 중요한 비밀이 있는 것인가? 더구나 죽은 사람 은 그와 절친한 기자였다. 산업 스파이나 재산을 노린 강도였다면 모르지만 기 자라는 확실한 신분을 가진 인물을 죽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특 별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메드닉의 호텔에 서 하베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하베이의 죽음을 조사하 기 위해 파견된 경찰은 사망자의 신원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죽은 사람이 하베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다니엘은 하베이의 사망 원인에 대한 강한 의혹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이미 실족에 따른 사고라고 결론 을 내렸고 별다른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결코 단념하지 않 았다. 다니엘은 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신분을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엘. 저는 형사반장 지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베이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당신이라는 겁니 까?" 지미의 말에 대해 다니엘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내가 아 니라면 아마 옥상에서 그를 떠밀어 떨어뜨린 사람이 되겠지요." 다니엘은 하베 이가 옥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떠밀려 추락했다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 었다. 하지만 지미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분명 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장 검증을 철저하게 해 보았지만 누가 떠밀었 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분명히 알고 계시기 바랍니 다." 그러나 지미의 말에 다니엘 은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이 알고 있 는 하베이는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서 실수로 떨어져 죽을 사람이 결코 아니었 다. "이것 보세요, 지미 경감님. 조금 전에 당신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카메 라에 필름이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그게 좀 이상 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날카롭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지미 경감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카메라에 필 름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은 단지 놓은 곳에서 전망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던 겁니다." 지미 경 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다니엘 역시 자신의 생각을 절대 로 단념할 수 없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이의를 느끼는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경우 에도 양보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그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 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전망이나 구경하기 위해 옥상에 올 라간 것도 아닙니다, 경감님." "무슨 말씀이죠?" "그 사람은 뛰어난 기자였어 요. 아마 또 다른 목적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아마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점에 대해 경찰에서 혹시 밝혀낸 일이라도 없습니까?" 지미는 고개를 저으면서 새삼스럽게 건물의 옥상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나도 이해가 안 갑니다." "무 슨 말씀이죠?" "그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저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 습니다. 외부인은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곳인데..." 다니엘은 지미 경감에게 하베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갔는지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 좋게다 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하베이와 만났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 주었다. "하베이는 뉴월드 그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캐고 있는 중이었 어요." "혹시 그게 무슨 사건인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메드닉 회장과 밀 접하게 관련된 일이었어요. 그 자신도 아직은 확실한 단서나 증거를 잡지 못한 것 같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옥상으로 잠입했던 겁니다." 다니엘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 는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레베카에 대한 의혹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레베카 양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니 엘, 당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매우 불행한 사 고였을 뿐입니다." "사고라구요?" 다니엘은 지미의 태도에 불만을 느끼면서 말 했다. 지미는 그 일을 단순한 사고로 처리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니엘 은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지미는 카메라에서 필름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에세 사진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민완기자인 하베이가 전망이나 구경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엄중한 통제구역에 잠입할 까닭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베이의 죽음은 매우 불행한 사고였 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는게 좋겠군요." 지미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다니엘은 지미와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도 별다른 소용 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니엘은 지미 경감과 헤어진 다음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호텔 지하에 있는 바로 향했다. 제임스와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시계는 벌써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아 무리 오랫동안 기다려도 제임스 교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레베카의 방에서 는 금방 폭발할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헤베카와 앤소니는 경호실장 마틴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하베이의 소형 녹음기를 확인하고 있었 다. 하베리를 옥상에서 집어던진 사람은 바로 경호실장 마틴이었다. 세 사람은 소형 녹음기를 앞에 놓고 제각기 다른 표졍을 짓고 있었다. 앤소니는 무엇인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레베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손님 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틴은 내심 레베카가 어떻게 나올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레베카가 마틴에게 손짓을 보냈 다. 마틴이 소형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 작했다. "앤소니, 그동안 너무나 고생이 많았어요." "축하해요. 이젠 뉴월드 그 룹이 모두 당신 손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적어도 네 시간 안에는 메 드닉 회장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앤소니 와 레베카가 서로 대화하는 음성이었다. "다시 음악을 틀어 드리겠어요, 회장 님." 레베카의 목소리는 깨어있는 메드닉을 대할 때 들을 수 있었던 상냥한 목 소리였다. 녹음기에서 자신의 목소리라 흘러나오자 레베카는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레베카는 갑자기 거친 동작으로 녹음기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레베카의 시선이 마틴을 향하고 있었다. "그 기자의 몸에서 찾아낸 것은 이게 전부인가 요?" "그렇습니다." 마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레베 카를 대하는 마틴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그 기자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 데, 혹시 우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 같은 것은 없었나요?" "없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필름을 빼내 버렸으니까요." 레베카는 불안한 듯이 뒤로 돌아서서 창 문을 향해 걸어갔다. 레베카는 해변을 내다보면서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건 정말 잘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 다." 하긴 이녹음 테이프 하나를 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 기자가 무엇인가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아주 적절하게 처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레베카는 창가에 기대어 선 채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레베카는 사실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누군가 레 베카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꼬리를 잡힌 것일까? 그것을 알아야만 모든 문제를 매그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옥상에서 떨어뜨린 게 잘한 일이란 말인가요?" 앤소니가 레베카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레베카는 얼 굴을 찌푸리면서 앤소니를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실수로 떨어진 거예요, 앤소 니. 떨어뜨린 게 아니라구요. 서투른 기자가 메드닉을 취재하기 위해 지나친 의 욕을 부리다가 사고를 당한 것뿐이에요. 경찰도 그렇게 믿고 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마틴의 행동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었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우리의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었단 말이에요." 레베카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앤소니는 그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레베카, 나는 의사에요.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 람이란 말입니다, 알겠어요?" 앤소니가 의사라는 말을 하자, 레베카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비웃는 듯한 표정이 나타났다. "이봐요, 앤소니. 지금이 히포크라테 스의 선서나 외우고 있을 때인 줄 알아요? 지금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 걸린 일 이에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앤소니를 향해 소리 쳤다. 앤소니는 풀이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앤소니, 이번 일에 대 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해요. 그 기자는 실수로 죽은 거예요." 레베 카는 마틴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하베이의 테이프를 건네 주고 파기시키도 록 명령했다. "이걸 당장 없애 버리세요." "알겠습니다, 레베카." 마틴이 정중 한 태도로 테이프를 받아들었다. 마틴은 이제 메드닉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경 호원이 아니라 레베카의 충실한 부하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 스러운 점이 있어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몹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틴에 게 말했다. 앤소니는 몹시 기분이 상한 듯이 발코니로 나갔다. "어떤 겁니까?" "도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아미보셤 호텔의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르 겠군요. 그 점에 대해 뭐 좀 알아낸게 있나요?"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아 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직 모른다면 빨리 알아보도독 하세 요.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세요. 어느 누구도 아미보 셤 호텔 옥상에 접근해서는 절대로 안 돼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알겠습니 다." 마틴은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 후에 레베카의 곁을 떠났다. 레베카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옥상에 외부인이 잠입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 심각 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베이가 옥상까지 잠입할 수 있었다면 다른 누군가 도 건물 안의 어떤 장소에 침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외부 사람이 메 드닉의 전용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게 된다면 그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레베카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마틴이 방을 나간 다음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던 레베카는 발코니에 서 있는 앤소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앤소니는 등을 돌린 채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베카는 지친 듯한 앤소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앤소니가 아무 리 화를 낸다고 해도 레베카로서는 전혀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레베카는 언제 라도 앤소니의 기분을 되돌려 놓을 자신이 있었다. 앤소니는 범죄와는 별로 어 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레베카는 그를 완전히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앤소니를 바라보던 레베카는 발코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앤소니의 등뒤로 조용히 다가선 레베카의 몸에서 요염한 여인의 향기로운 체취가 풍겼다. "화났 어요, 앤소니?" 레베카는 앤소니의 어깨에 손바닥을 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앤소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마 지금 손을 떼겠 다는 건 아니겠죠?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내일이면 모두 끝날 거예요." "이해 할 수 없어요, 레베카. 도대체 이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뭐죠?" "거 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이나 말을 했잖아요. 당신도 한 번 생갹해 보세요. 메드닉 회장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말을 믿겠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된다면 경찰이나 기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안 그래요, 앤소니?" 레베카의 부드러운 입김이 앤소니의 귀 를 자극하고 있었다. 레베카는 앤소니의 말초신경을 조금씩 건드리면서 말을 계 속했다. "그럴 경우에 계획을 밀고 나가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벌써 잊었나요. 당신은?" "그건 나도 알아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앤소니 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 있었다. "우리가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고 있잖아요. 안 그래 요? 그 생각을 한 번 해 보세요. 우리가 몇 년 동안이나 고생한 보람이 비로소 나타날 단계가 되었다구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앤소니의 두 눈을 응시하고 잇 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매우 부드럽고 신속하게 손을 움직이면서 앤소니의 지 퍼를 열었다.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레베카는 이미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 한 앤소니의 남성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앤소니의 눈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없이 감겼다. 레베카는 앤소니의 뜨거운 입김을 느끼면서 야릇한 미소 를 짓고 있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니엘이 호텔 바에서 술을 마 시고 있을 때, 경호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그 남자는 사무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다니엘 블레이크 씨입니까?" "그런데요. 무슨 일이죠?" 다니엘이 고개를 돌리면서 반문했다. "저는 윌리라고 합니다. 경 호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모시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리는 매 우 정중한 태도로 다니엘을 대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지금 선착장에서 기다리 고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도록 하죠." 다니엘은 윌리의 안내를 받으면서 선착 장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에 요트가 정박하고 있는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했 다. 메즈닉은 선착장에서 한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 양이 지고 난 후의 바다는 고요하게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한눈에 메 드닉 해리슨 회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메드닉의 분 위기는 매우 독특했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메드닉 회장님?" 다니엘이 메드닉의 등뒤로 천천히 다가가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반갑군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 메드닉은 고개를 돌려서 다니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을 뿐 특별한 행동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거나 악수를 청하지는 않았다. 메드닉은 다시 멀리 수평선을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다니엘,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됴. 당신은 정말 성공적 으로 사업을 이끌었어요. 그건 여기에 있는 나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 의 사업이 몹시 번창하고 있다는 말은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빌려 주었던 5만달러가 도움이 되었나요?" 메드닉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즐거운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다니엘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메드닉을 바라보았다. 아 무리 보아도 메드닉의 모습은 몇 년 전에 보았을 때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 니엘은 몇 년 전에 메드닉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회 장님, 저를 아직까지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니엘이 정중하게 고 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메드닉은 시선을 계속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다니엘은 선착장 근처를 둘러보았다. 여러 척의 호화로운 요트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요트들은 모두 메드닉이 소유하고 있었다. 메드닉은 예전과 다름없 이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약간 의아스러 운 생각이 들었다. 메드닉이 여전히 건강했다면 무엇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이 나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레베카라는 젊은 여자에게 모든 업 무를 맡기다시피 하면서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회장님께는 좋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보니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신 모양입니 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겁니까?" 다니엘의 질문에 메드닉은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다. 그 웃음 소리에는 예전과 다름없는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어디 하나 약해졌거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다니엘은 점점 더 의아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지쳐 있었지요. 오랫동안 휴식을 취했더니 다시 몸이 좋아졌어요." 메드닉이 어깨를 약간 으쓱 거리면서 말했다. 문득 다니엘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메드닉은 한 번도 다니엘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다니엘은 그러한 메드닉의 태도가 어쩐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다니엘이 알고 있는 메드닉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할 사람이 아니었다. 메드닉은 항상 다른 사람의 눈을 똑 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던 것이다. "갑자기 오래 전에 회장님께서 하셨던 말이 생 각납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블레 이크 그룹을 운영하면서 항상 회장님이 하신 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습니 다." 메드닉은 다니엘의 말을 듣고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것도 같군요. 그래요, 아마 내가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다니엘은 메드닉 이 무엇인가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메드닉은 어딘지 모 르게 불안한 듯이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하베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꺼내 보기로 했다. 메드닉이 자기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 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 지만, 하베이 기자의 일은 정말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다니엘이 예상했던 대로 하베이의 사건에 대해서는 메드닉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오래 전에 나를 직접 인터뷰한 적도 있어요.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은 아주 뛰 어난 기자였죠. 다니엘, 당신도 내가 함부로 누군가를 추켜세우거나 하지 않는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그런 불행한 사고를 당했는지 지금도 마음이 아프군요." 메드닉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지만 하 베이를 그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메드닉의 말은 다니엘에게 오히려 의혹을 불 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베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면 분명 히 메드닉과 관계된 어떤 이유에 의해서 발생한 살인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리고 메드닉은 하베이가 바하마까지 찾아온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드닉은 그 이상의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다시 한 번 메드닉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메드닉은 다니엘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 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이 메드닉 회장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서둘러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니엘은 메드닉이 하베이에 대해 알 있는 무엇인 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나는 하베이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비밀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의 뉴월드 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 니엘은 좀더 노골적으로 하베이의 죽음과 메드닉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관해 알아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메드닉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더 이상 하베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 르겠습니다. 만약 뉴월드 그룹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있 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호텔이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길버트 부부의 스키 기증식 행사를 아미보셤 호 텔에서 열게 되었습니까?" "그건..." 메드닉이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대답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가긴이 갈수록 메드닉의 태도에 대한 다니엘의 의혹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메드닉의 태도에서 이미 몇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 고 있었다. 예전에 만났던 메드닉의 모습과 지금의 메드닉은 어쩐지 매우 커다 란 간극이 있다고 느껴졌다. 시선을 계속 다른 곳에 두면서 말하고 있는 메드닉 의 모습을 보면서 다니엘은 강한 의혹을 느꼈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무슨 뜻이죠?"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 다. 메드닉은 잠시 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오랬동안 회사의 운영 에서 손을 떼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고 있어요. 메드닉 해리슨이 여기에 있다느니, 메드닉 해리슨이 저기 에 있다느니, 메드닉이 죽었다느니 혹은 메드닉이 아직 살아있긴 하지만 바보가 되었다느니, 아주 말들이 많아요." 메드닉은 계속 말하면서 요트 위로 올라갔 다. 다니엘도 자연스럽게 메드닉의 뒤를 따라 요트 위로 올라갔다. 다니엘은 메 드닉의 뒤를 따르면서 뒷모습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겉모습에서는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잠시 후에 메즈닉은 요트의 선실 안으로 들어갔 다. 선실의 탁자 위에는 술병이 놓여 있었다. 메드닉은 독한 위스키도 거뜬히 마실 만큼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건재하 다는 사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말쓰을 듣고 보니 알겠군 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나의 건강에 대해 증언을 해 줄 겁니다." 다니엘은 메드닉 해리슨의 표정을 살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 는 증인이 되기 위해 이곳에 왔군요." "그렇소. 바로 그거요, 다니엘." 메드닉 이 처음으로 다니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말은 언뜻 들으면 하베이가 했던 말과 일치했다. 메드닉은 거대한 그룹의 회장으로서 항간에 떠도는 무성한 소문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잡다한 소문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 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남아있었다. 하베이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베이 지가도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증인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메드닉은 다시 하베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잠시 다니엘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재빨리 술병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사람은 머리 가 굉장히 좋아요. 당신도 위스키를 마시겠소?" 메드닉이 술잔에 위스키를 부으 면서 다니엘에게 물어 보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 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다니엘은 바하마에 오기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 고 있던 점에 대해 물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회장님께서는 평소에 아끼시던 기업의 주식을 최근에 대대적으로 매각하고 계시 더군요. 그래서 나도 이번 기회에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많이 구입해 두었습니 다. 혹시 내가 알아두어야 할 일이라도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메드닉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부분이었다. 다니 엘은 메드닉의 건강이 아주 좋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 문제가 더욱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메드닉의 건강이 매우 나쁘다면 운영하기 힘든 일부 기업을 매각하 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건강한 메드닉이 일 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항공사를 매입하기 위해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는 겁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면 막대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드닉은 마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 해 두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니엘은 메드닉이 항공사에 참여할 계획 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과 기업을 대량으로 매각하면서 까지 항공기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 다. "혹시라도 그 부분에 대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부탁을 하십 시오." 다니엘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메드닉의 답변 은 의외로 강경한 것이었다. "나는 사업 때문에 누구에게 부탁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지요."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그런 말은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군요. 또 질문할 것 있나요, 다니엘?" "아닙니다." 다니엘과 메드닉은 나란히 술잔을 들고 위스키를 마셨다. 잠시 후에 메드닉은 몹시 피곤하다고 하면서 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는 그만 쉬고 싶군요. 다니엘, 오늘 당신을 마난소 무척 반가웠어요. 우리는 나 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메드닉이 어쩐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 했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뵙도록 하 죠." 선착장에서 벗어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엘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 해 보았다. 메드닉을 만나기 전보다 의혹이 오히려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는 메 드닉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메드닉까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니엘은 지금의 메드닉이 자신이 알고 있었던 메드닉이아니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예전에 메드닉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활기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조금전에 만난 메드닉 은 건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딘가에 그늘진 구석이 였보였던 것이다. 로라는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수영을 하고 잇었다. 차가운 물 속을 헤엄치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라인을 따라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던 로라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로라는 고개를 들고 소리나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낯선 남자가 로라를 부르면서 손짓하고 잇엇다. 로라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면서 그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헤엄쳤다. "로라 양이죠?" "네, 그렇 습니다." 로라는 물속에서 나오면서 대답했다. 그 남자는 로라 해리슨이 물에서 ㄴ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손을 잡아 주었다. "저는 바하마 경찰서의 지미 경 감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요?" 로라가 잔뜩 긴장하면서 질문했다. 로 라의 몸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바닥을 적식 있었다. "로라, 혹시 제임스 교수 님을 알고 있나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임스 교수가 사고를 당했습니 다. 절벽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진 것 같습니다." "맙소사!" 로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되 었나요?" " 지금 병원 영안실에 있습니다." "죽었다는 말인가요?" 지미 경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임 스 교수님이 확실해요?" "머리가 온통 부서져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손수건도... 프레디 씨가 증언을 했습니다. 제임스 교수의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지미 경감이 제임 스의 손수건을 보여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로라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미 경감이 부축하기 위해 로라 해리슨의 팔을 잡았다. 로라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지미 경감에게 기대어 서 있었 다. 지미 경감은 로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로라,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이젠 괜찮아요." 로라가 겨우 정신을 차 리고 대답했다. "그런데 제임스 교수와 매우 가까운 시이였나 보죠?" 지미의 말 을 듣자 로라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분은 학교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셨어요. 저의 부탁으로 아미보셤 호텔에 오신 거구요. 교수님 이 이렇게 돌아가신 건 모두 저의 잘못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로라 양, 매우 어려운 부탁이지만..." 지미 경감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 사 이에 로라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시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로라 양이 시체 의 신분을 확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지미 경감이 고개를 끄 덕이면서 대답했다. 로라는 탈의 실로 걸어갔다. 로라의 뒷모습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매우 불안해 보였다. "로라!" 다니엘이 로라를 향해 걸어가면서 소리쳐 불렀다. 로라는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로라는 이내 고개를 돌릭 엘리베이터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이봐요, 로라. 당신과 할 이야기가 있어 요." 다니엘이 달려와서 로라의 팔을 붙잡았다. 돌아선 로라의 얼굴은 매우 우 울해 보였다. "당신과는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요?" 다니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로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로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던 다니엘이 답답한 듯이 다시 입을 열 었다. "로라, 제임스 교수님이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그리고 지금 교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바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어요. 나의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로라는 잠시 동안 다니엘을 똑바로 쳐 다보다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다니엘, 이젠 아무도 교수님을 만 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다니엘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임스 교수님은 죽었어요." "뭐러구요? 도대체 어떻게..." 다 니엘이 도대체 어떻게..." 다니엘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제임스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바로 당신이잖아요?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 가운데 한 명이 당신과 제임스 교 수님이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어요." 로라는 제임스의 죽음을 다니엘과 연관시키고 있었다. 다니엘은 매우 답답한 심정이 되었다. "난 단지 제임스 교수님과 바에서 만날 약속을 했을 뿐입니다. 제임스 교수님은 무 슨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급히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고..." 로라는 갑작 스럽게 닥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로라는 매우 컫란 혼란에 빠져있었다. "미안해요, 다니엘.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 요. 하지만 전 지금 혼자 있고 싶어요. 제발 절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로라가 다니엘의 팔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로라는 다시 뒤로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를 향 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로라를 잡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갈등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지금 로라 해리슨에게 무엇보다도 위로가 될 수 있 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로라는 다니엘에 대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로라는 다니엘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다. 그러는 사이에 로라의 모습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로라가 객실로 돌아가자 다니엘은 다시 술을 마시기 위해 바로 니려갔다. 지금과 같은 기분으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니엘은 바에서 우연히 토미를 만나게 되었다. 토미는 저녁 무렵에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다가 혼자 바에 들 어가서 술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안색이 약간 창백하게 보여요, 다니엘." 토미가 다니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니엘은 하베이와 제임스의 연속적인 죽 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다니엘의 머리 속을 마구 돌아다 니면서 어지럽히고 있었다. 다니엘은 위스키를 한 잔 들이키고 나서 입을 열었 다. "제임스 교수님이 죽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선착장에서 메드닉 회장을 만났는데..." 다니엘이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요. 메드닉 회장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다니엘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혹시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니엘은 토미를 향해 목소리를 낮추면 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 사람이 왜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 는 거죠?" "글세, 나도 확실히 그렇다고는 아직 단정할 수 없어요. 단지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쩐지 자신없게 말했다는 겁니다. 예전의 메 드닉 회장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어 보였어요."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모산다는 것은 그 사 람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메드닉이 다니엘에게 보인 것처럼 모 든 언동에 자신감이 들어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뉴월드 그룹에 무슨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토미도 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주 확실해요." "다니 엘, 당신이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니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메드닉 회 장을 만난 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 사람도 당신이 만났을 때보다 많이 변한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떤 의혹을 느끼면서 그대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다니 엘의 성격이었다. 다니엘이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되는 그런 일들에 대해 언제나 철저하게 파고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성격 탓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다니엘은 의혹을 그냥 두고서 바하마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챔피언, 당신의 말도 맞아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지 마련이죠. 아무래 도 내가 직접 좀 알아보는게 좋겠어요. 하베이가 떨어진 그 옥상에 올라가 보면 어떨까요?" 다니엘은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보다 의혹을 풀 려고 하느 욕구를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 을 각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에 무사히 올라간다고 해도 발각되면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다니엘 블레이크 라고 해도 결코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위험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베이가 아래로 떨어진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요, 다니엘. 아무래도 이 정도에서 단념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럴 수는 없어요. 나는 하베이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꼭 밝 혀내고 말겠어요." 다니엘의 단호한 말에 토미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 다. 토미는 다니엘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 저 메드닉 회장의 전용층으로 올라가야만 할 거예요. 하지만 메드닉 회장의 전 용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항상 경호원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요." 토미가 머리가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다니엘이 웃으면서 토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베이는 어떻게 옥상으로 올라 갈 수 있었을까요?" "그 문제에 대해서 나도 생각해 보았는데, 좋은 방법이 떠 올랐어요. 하베이가 그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니엘은 이미 전 용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토미는 다니엘이 어떤 방법 을 생각해 내었는지 몹시 궁금해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챔피언, 당신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가세요." 다니엘이 토미를 바 라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죠?" 토미는 벌써 긴장하기 시작하고 있었 다. "난 엘리베이터 위에서 관찰할 예정입니다. 아마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서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엘리베 이터를 움직이는 겁니다." 토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과 토미는 굳 게 악수를 나눈 후에 바에서 나갔다. 잠시 후에 다니엘은 토미의 도움을 받아서 엘리베이터의 지붕을 열고 위로 올라갔다. 토미는 긴장된 마음으로 다니엘이 신 호를 보내기를 기다렸다. 다니엘은 무사히 엘리베이터의 지붕 위로 올라간 후에 토미에게 신호를 보냈다. 토미는 서서히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 베이터 위에 타고 있던 다니엘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서서히 올라가던 에리 베이터는 일반 객실이 있는 17층에서 멈추었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다니 엘은 재빨리 난간을 붙잡으면서 엘리베이터 통로에 매달렸다. 다니엘이 무사히 엘리베이터 지붕에서 내린 것을 확인한 후에 토미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통로의 복잡한 구조물을 잡으면서 한 층씩 올라갔 다. 다니엘은 18층을 지나 19층까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완전히 내려가 있 었으며 다니엘의 발 밑으로는 아찔할 정도로 길게 뻗어있는 어두운 통로가 보었 다. 모사히 옥상으로 잠입한 다니엘은 난간을 타고 아래층의 발코니로 내려갔 다.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고 있었다. 메드닉 회장의 전 용층에 도착한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숨어들었다. 그런데 침실에서 메드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야? 레베카인가?" 메드닉은 인기척을 느끼 고 방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말을 던졌다. 다니엘은 조심 스럽게 메드닉이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다니엘은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메드닉 을 발견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침대 위의 메드닉은 몇 시간 전에 요트 에서 만났던 메드닉과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침실에서 만난 메드닉은 건강이 매우 악화된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다니엘은 이미 그곳에서 어떤 음모가 벌 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베드닉 해리슨 회장님. 저는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메드닉은 몹시 쇠야간 모습으로 눈을 떴다. "누구?" "저는 당 신의 치구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저를 기억하시죠?" "아, 다니엘. 반갑군요. 우리가 만난 게 언제였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메드닉은 말을 끝낼 정 도의 기력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몸이 아주 약해진 것 같은데..." "난 점점 더..." 메드닉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메 드닉은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가늘게 신음 소리까지 내었다. 다니엘은 메드 닉의 침대 옆에 있는 탁자에서 작은 약병을 발견했다. 그 약병을 발견한 다니엘 은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약은 제약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누 군가 특별히 조제한 것 같았다. 다니엘은 약병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엑소도신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엑소도신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품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약품이었다. 다니엘은 그 약병을 보는 순간, 메드닉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신경계통을 자 극시키는 엑소도신은 마치 카페인 성분처럼 처음에는 신경을 자극시켜서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약은 마약의 일종이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중독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신경계통이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그 약은 점차로 뇌신경을 마비시키고 결국에는 중추신경까지 손상을 입혔다. 뇌신 경이 마비되면 그 약을 복용한 환자는 심한 건망증이나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 런 증상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이 약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둥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증상은 일반적이 마약과는 다르게 서서히 진행 되었지만 나중에 혈액을 검사해도 체내에 완전히 흡수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흔 적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내가 구해 드리겠습 니다." 다니엘은 메드닉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메드닉은 말을 할 기력조차 없는지 알았다는 듯이 약간 손을 움직였다. 다니엘은 재빨리 문이 있는 곳으로 걸러가서 살며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문 밖에는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 문을 통해서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다니엘은 들어올 때 이용했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메드닉의 방문을 지 키고 있던 경호원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 나 다니엘은 이미 창문을 넘어 발크니의 난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그의 행동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안전한 것 은 절대로 아니었다. 다니엘은 아직 위험재대에 남아있는 것이다. 경호원은 방 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메드닉 이외에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주위를 두 리번거리던 경호원은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득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호원은 매우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창문을 통해 발코니로 나갔다. 다니엘은 발코니의 난간에 매달린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경호원은 발코니에 선 채 이상 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끝내 다니엘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호원이 사라진 후에 다니엘은 건물의 기둥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바람 때문에 무척 위 태로운 곡예를 벌이면서 위험한 순간을 무사히 넘기고 객실이 있는 17증까지 내 려올 수 있었다. 17층의 발코니에 도착한 다니엘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 다. 그곳은 아미보셤 호텔의 객실이었다. 다니엘이 그곳에 들어섰을 때 욕실에 서 목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이 몰래 빠져나가려고 할 때 인기척을 알아 차렸는지 욕실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드가, 당신이에요?" " 응, 그래." 다니엘은 능청스럽게 대답하고 나서 객실의 문을 나섰다. 그런데 이 번에는 문 앞에서 막 들어서려고 하는 남자와 마주쳤다. 그 남자는 낯선 사람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방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 남자를 향해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아, 당신이 에드가 씨로군요. 부인이 당신만을 찾고 있어요." 다니엘은 능청스럽게 말하고 나서 곧장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선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다니엘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메드닉 회장의 전용층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 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메드닉에 대한 레베마의 감시는 마치 철통과도 같았 다. 그녀는 자신의 음모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레베카는 경호원을 통해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긴장했다. 레베카는 누 군가 그 방에 잠입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레베카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메드닉을 다그쳤다. "자, 메드닉. 어서 말해 보세요." 레베카 더 글라스는 몹시 쇠약한 상태의 늙은 메드닉을 사납게 다루고 있었다. 앤소니가 레베카 더글라스의 옆에서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레베카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메드닉은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 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만약 누군가 메드닉 의 전용층으로 침입했다면 모든 일이 끝장나는 것이다. "메드닉, 누가 방으로 들어왔죠?" 메드닉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는 모든 일들이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 레베카를 굳게 믿고 있었으며 다니엘이 다녀간 사실도 역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힘 겨운 듯이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메드닉?" 레베카의 얼굴에서 무서운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그 방에 들어왔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하는 몹시 심각한 문제였다. "도 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해 보세요!" 레베카가 참지 못하 겠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메즈닉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 라고 말았다. 레베카는 더 아상 메드닉의 충실한 비서가 아니었다. 레베카는 메 드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늙고 쇠약한 메드닉의 뺨을 때렸다. "레베카, 진정해요." 앤소니가 레베카의 갑작스 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하지만 레베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레 베카는 사나운 눈빛으로 메드닉을 노려보고 있었다. "꼭 알아내야만 해요." 늙 고 쇠약한 메드닉은 레베카의 사나운 태도에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메 드닉은 약간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메드닉은 어쩌면 레베 카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보세요." 다니엘의 방문 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메드닉은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 했다. "레베카, 내 친구인 다니엘 블레이크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가 돌 아갔어." "정말 그가 왔었다는 말인가요?" "그래. 내가 왜 레베카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메드닉이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베카는 무서운 눈빛으 로 메드닉을 노려보았다. 만약 메드닉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니엘이 어떻게 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레베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 다. 앤소니는 레베카의 눈빛에 나타난 살기를 발견하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앤소니는 레베카가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 었다. 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레베카는 이미 다니엘에 대한 처리 방법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서둘러 처리하 지 않으면 모든 일들이 끝장이었다. 레베카는 인터폰으로 마틴을 불러서 차갑게 명령했다. "당장 다니엘 블레이크를 잡아오도록 해요."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이 죠?" 앤소니가 한숨을 쉬면서 물어 보았다. "또다시 불행한 일이 생길 거예요, 앤소니." "무슨 일?" "메드닉을 만나기 위해 바하마까지 찾아온 손님이 또 한 번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 겁니다." 레베카의 말이 뜻하는 것은 바로 다니엘의 죽음이었다. 바하마의 밤이 깊어가면서 새로운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레베카 의 음모가 어떤 것인지 겨우 알아차린 다니엘은 메드닉을 위해 서둘러 무엇인가 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자신의 방에 돌아온 즉시 경찰서에 연락 했다. 다니엘은 하베이의 사건을 담당했던 지미 경감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지 미 경감님, 분명히 그 메드닉은 가짜였어요." "하지만 그것 자체만을 가지고는 아직까지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미 경감이 태연한 목 소리로 말했다. 다니엘은 그 말을 들으면서 몹시 답답한 시정이었다. 메드닉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심각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도 알다시피 메드닉 회장은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 리고 뉴월드 그룹을 이끌고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 그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다 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 의도를 충분히..." 하지만 다니엘은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지미 경감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한 가지는 올바른 말을 하 셨습니다, 다니엘. 메드닉 해리슨 회장은 돈도 많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상당 한 사람입니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과 아미보셤 호텔은 바하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이 바하마에 투자한 액수도 엄청 날 겁니다. 자세한 사정도 모른 채 메드닉 회장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곤욕을 치 르게 될 겁니다." 지미 경감의 말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바하마에서 가장 중 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 만큼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기 전에는 함부로 메드닉 해리슨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감님,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당장 내 목이 달아 날겁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선 메드닉 회장에 대해 어떤 수사도 할 수 없습 니다. 나의 처지를 이해하기 바랍니다." 지미 경감의 말을 들으면서 다니엘은 몹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니엘은 경찰에 대해 커다란 불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범죄 용의자를 체포하고 증거를 확보하느 것은 경찰의 임무였다. 그러 나 경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 이군요.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도 가만히 있다니..." 다 니엘은 화가 나서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니엘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 다듬으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런 문제는 흥분한다고 해결될 이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때일수록 보다 냉정하고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하긴 지 미 경감만을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 내가 먼저 좀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 도록 하는 수밖에 없겠어. 아무래도 플랭크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어." 그런 상 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프랭크였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프 랭크는 꼭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서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프랭크는 이미 여러 번이나 다니엘을 곤경에서 구해 준적이 있었다. "좋아! 가짜 메드닉 회장과 그 일당에게 한 번 진땀을 흘리도록 만들어 주겠어." 다니엘은 이미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랭크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확실한 증거를 잡아낼 수없을 것이다. 다니엘은 서둘러 프랭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랭크, 아무래도 당신이 와서 솜 씨를 한 번 보여주야하겠어요."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겁니까?" 프랭크가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그래요. 지금 메드닉 회장으로 행ㅅ고 있는 사 람은 가짜가 분명해요." "그렇다면 덫을 준비해야겠군요." "물론이죠, 프랭크." 다니엘과 프랭크는 보다 자세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다니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프랭크, 당신만 믿겠어요." "걱정하지 말 아요, 다니엘. 모든 일이 다 잘될 겁니다." 프랭크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니엘은 침대에 드러누워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누군가 문 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누구세 요?" "앤소니입니다.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서..." "잠시만 기다리셰요." 다니 엘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선뜻 방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다니엘을 찾아 온 사람은 앤소니 혼자가 아니었다. 다니엘은 약간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앤소니의 등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다니엘 씨?" 앤소니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다니엘을 대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난처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앤소니가 다니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 니엘은 두 명의 경호원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 그래요?" "메드닉 회장님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앤소니가 차가운 목소 리로 말했다. 그 순간 다니엘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은 이미 선착장에 서 만난 메드닉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베이가 죽음을 당한 것도 가 짜 메드닉의 존재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다니엘을 만나려고 하는 메드닉도 가짜일 것이다. 조금 전에 직접 확인했듯이 진짜 메드 닉은 쇠약해진 몸으로 철저히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짜 메드닉이 갑 자기 왜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다니엘이 진짜 메드닉 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하죠? 고마운 말이 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도록 했으면 좋겠군요. 지금은 너무 늦었고 머리도 좀 아파서..." 그것은 다니엘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는 어떻 게 해서든지 이 자리를 피한 후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 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앤소니가 손짓을 하자 경호원들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앤소니가 사무적인 목 소리로 말했다. 경호원의 손에 권총이 있는 것을 발견한 다니엘은 그만 입을 다 물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단념하고 앤소니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최악의 사태에 직면한 것만은 사실이었 다. 앤소니는 경호원 한 명을 레베카에게 보내서 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을 보 고하도록 한 후에 다른 한 명만을 데리고 다니엘과 함께 동행했다. 경호원은 아 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주머니 속에서 다니엘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돌연한 사태에 대해 직면한 다니엘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만 위험한 순간일수록 다니엘의 두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움직였다. 다니엘은 복 도를 걸어가면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다 니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 점을 이용하면서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에리 베이터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다니엘은 막 내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다니엘은 그를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 순간 다니엘의 두뇌가 빠르 게 회전했다. "알드리지 의원님, 안녕하세요?" 알드리지는 아칸소에서 하원의원 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반갑습니다." 알드리지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반갑게 대 해주는 사람들을 항상 정중하게 대했다.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사귀려는 것 이 정치가의 생리였던 것이다. 다니엘은 바로 그런 점을 이요하고 있었다. 다니 엘은 경호원과 앤소니를 떼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잘 만났어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의원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앤소니와 경호원은 갑작스러 운 다니엘의 태도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니엘이 어떤 일을 꾸미 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의원님,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함께 바에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떨까요? 이런 기회에 의원님의 고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의 말에 알드리지 의원은 어리둥절한 표 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원의원은 다니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다니 엘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내색하지 않았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요, 나도 사양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성함이..." 알드리지 의원 이 궁금한 듯이 물어보았다. "벌써 잊으셨나 보군요. 하긴 의원님께서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저를 잘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는 다 니엘 블렝이크라고 합니다. 이제는 기억나시죠?" 다니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 그렇군요, 블레이크 씨." 알드리지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되었습니 다. 함께 가시죠, 의원님." 다니엘은 그것으로 가연스럽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 다고 생각했다. 앤소니와 경호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사람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다니엘은 일단 바로 내려가서 알드리지 하원의원과 술을 마 시면서 달아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충분히 위기에 서 벗어날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일은 다니엘의 생각처럼 간단 하게 풀려 주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그만 발생하고 말았던 것 이다. "이런! 내 정신을 좀 보게." 하원의원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니엘은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다니엘이 재빨리 물었다. "잠시 후에 로렐 의원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우리의 만남을 미루어야 할 것 같군요." 알드리지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니엘은 기회가 빗나갔다 고 생각하면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이 호텔 에 묵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죠." 다니엘은 알드리 지 의원에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알드리지 의원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니엘은 알드리지 손목을 잡고 힘껏 끌어당겨서 등뒤에 서 있던 앤소니와 경호원에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앤소니와 경호원도 서둘러 다니엘의 뒤를 쫓았다. 계단으로 달려가던 다니엘은 비상구 뒤에 숨어 있다가 달려오는 경호원을 주먹으로 때렸다. 다니엘이 그 경 호원을 쓰러뜨렸을 때, 권총을 꺼내 든 앤소니가 그곳에 도착했다. "움직이지 마!" 상황은 다시 악화되고 말았다. 앤소니는 당장이라도 총을 쏠 듯한 기세였 다. 다니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쏘고 싶지 않 으니까 얌전히 있어!" 앤소니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겠지.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세 당신들의 특기니까..." 다니엘이 손을 위로 들어올리면서 말했 다. 앤소니는 화를 내면서 다니엘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다니엘은 다시 고스 란히 끌려가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무산 되고 난 후에 다니엘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사실을 겉으 로 드러내지 않았다. 다니엘은 침착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니 엘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겁을 집어 먹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위험과 정면으로 맞서기 로 결심했다. 다니엘은 붙잡히기 전에 이미 프랭크에게 도움을 요청해 놓고 있었다. 프랭크는 가짜 메드닉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다 니엘은 프랭크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죽음을 당하기 전에 프 랭크가 그 일을 해 내어야만 한다. 절망과 희망 지난 밤에는 이슬이 내렸다. 아미보셤 호텔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나무들과 꽃들 그 리고 풀잎들에는 아직까지도 작은 이슬방울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슬방울들은 오전의 태양이 내리비치기 시작하면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만 해가 떠오 를 때까지는 반짝이면서 자신의 자태를 빛낼 것이다. 아미보셤 호텔 비서실에는 지금 음모를 꾸미고 있는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메드닉과 레베카, 앤소니 그리고 경호실 장 마틴이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다정한 동창생 들의 모임이라도 열고 있는 것처럼 서로를 아주 편안한 자세로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잔 뜩 긴장한 얼굴로 그들이 오랫동안 추진하고 계획했던 일을 하나씩 점검하고 있었다. 그 음모는 바로 뉴월드 그룹의 재산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레베카였다. 레베카는 요염한 자세로 다리를 꼰 채 담배를 물고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고 모두 맡은 일을 잘 진행하도록 해 요. 레베카는 고개를 돌려서 마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특히 보안에 철저하게 신경 을 써 주세요. 염려하지 말아요. 마틴은 레베카를 응시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 다. 하지만 레베카는 무심한 표정으로 곧바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파 티 준비는 완벽하게 되고 있겠지? 메드닉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물론이에 요. 레베카가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다 니엘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메드닉이 자꾸만 걱정된다는 듯이 레베카에게 물었 다. 선착장에서 이미 다니엘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던 메드닉은 자꾸만 불안한 예감 이 들었다. 다니엘은 사고로 죽게 될 거예요. 레베카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 했다, 그렇지만 바하마는 아주 좁은 곳입니다. 작은 실수조차 사람들의 이목을 끌 위 험이 있어요. 너무 자주 사고가 일어나는 건 좋지 않을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 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신중한 성격의 앤소니가 말했다. 하지만 레베카는 앤소니의 그런 소심한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베카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퉁명스럽 게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요. 레베 카는 다시 정면에 앉아 있는 메드닉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메드닉은 여전히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레베카는 메드닉에게 무슨 말인 가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레베카는 다시 옆에 서 있는 마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마틴은 로라를 처리하는 문제는 잘 준비되고 있겠죠? 레베카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이 물어 보았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레베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경호실장 마틴이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겠죠? 레베카가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물어 보았다. 물론입니다. 마틴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 다. 레베카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 다. 로라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나서도 침대에 드러누운 채 가만히 천장을 쳐다 보고 있었다. 로라는 이미 오래 전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침대 속 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의 죽음은 로라를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로라의 안색은 마치 밤새 악몽에 시달린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로라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바하마로 가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로라는 열정과 흥분 속에서 바하마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도중에 로라는 다니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면서 의욕에 넘쳐 있었다. 하지만 바하마 에 도착한 다음부터 일이 점점 복잡하게 뒤얽히고 있었다. 로라는 지금 헤어나오기 어 려운 혼란의 늪에 빠져 있었다. 로라에게 있어서 제임스의 시체를 확인하는 일은 너무 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제임스 로라가 하버드 대학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수님이었다. 로라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제임스 교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제임스 교수는 로라의 잠재력과 능력을 키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상하게 보살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제임스 교수가 이제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병원의 영안실에 누워 있는 것이다. 제 임스의 시체는 너무나 참혹한 모습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돌과 바위들에 긁히고 찢겨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바닷물 속에 빠져 있 어서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불어 있었다. 제임스의 죽음은 로라를 몹시 슬프게 만들었 다. 제임스는 죽기 직전에 뉴월드 그룹의 경영상태와 레이더스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 를 하고 있었다. 로라는 제임스가 알아낸 사실들과 그의 죽음 사이에 분명히 어떤 관 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를 죽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얼마 후에 로라 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로라는 눈을 비비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 있는 커다란 거울이 로라를 맞이했다. 로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로라의 머리 속에서 다니엘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나 밤 꿈속이었지만 현 실처럼 생생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을 나누던 다니엘이 두 손으로 미친 듯이 로라의 목을 졸랐다. 로라 해리슨은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다니엘은 조금 도 힘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로라는 다니엘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은밀하게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로라를 괴롭히고 있었다. 로 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저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제임스는 뉴월드 그 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어떤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제임스가 알아낸 사실들에0 대해 모두 들려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로라와 함께 의논을 하거 나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로라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자리에는 항상 레베카가 앉아 있었다. 메드닉은 거의 모든 일들을 레베카와 상의하 면서 결정하고 있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후에 로라는 욕실에서 나왔다. 로라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옷장 속에서 몇 가지의 옷을 골라 몸에 걸쳐 보았다. 로라는 우울한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일부러 화사한 옷을 찾아 입 었다. 로라 해리슨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그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결심했다. 지금은 그 동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소원했던 할아버지 와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할아 버지와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면 뉴월드 그룹을 노리는 레이더스의 음모에 대비할 수 있는 계획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메드닉의 전용층으로 향하는 에리베이터에는 여전 히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 로라는 아미보셤 호텔에 도착했던 첫날을 떠올렸다. 그날 로라는 엘리베이터를 지키는 경호원과 말다툼을 벌였다. 그 다음부터 모든 일들이 던 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라 해리슨은 씁쓸한 미소 를 지으면서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어 섰다. 로라 해리슨은 이미 경호원과 안면이 있었 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메드닉의 전용층 에 도착한 로라 해리슨은 서둘러 할아버지의 침실로 향했다. 로라 해리슨은 깊이 잠들 어 있는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매드닉은 정말로 죽어 버린 사람처럼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로라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물끄 러미 쳐다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난번에 레베카와 함께 만났던 할아 버지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활기에 넘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안색이 아주 창백했다. 로라는 걱정스 러운 생각이 들어서 할아버지의 손을 만져 보았다. 맥박이 매우 느리게 뛰고 있었다. 로라가 손을 만지고 있어도 할아버지는 깨어날 줄 몰랐다. 로라는 의사를 부르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다가 문 앞에서 마틴을 만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할 아버지의 상태가 이상해요. 빨리 앤소니 박사를 불러주세요. 로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마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차갑게 웃고 있었다. 마틴은 주 머니 속에서 작은 용기를 꺼냈다. 그리고 로라의 얼굴을 향해 무엇인가를 뿌렸다. 마 틴이 들고 있던 용기 속에서 하얀 액체가 분사되어 나왔다. 그것은 강력한 스프레이 마취제였다. 마취제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로라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로라가 쓰러진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던 마틴은 다른 경호원들에게 손짓했 다. 그들은 정신을 잃어버린 로라를 어디론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로라는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머리 속이 온통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로라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로라의 손목과 발목은 굵 은 밧줄로 묶여 있었다. 로라, 정신차려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급하게 로라를 부 르고 있었다. 로라는 머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이봐 요, 로라. 정신차려요. 다니엘이 로라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었다. 다니엘은 두 손을 뒤로 묶 인 채 침대에 결박을 당한 채 누워 있었다.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로라는 종처럼 의식 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로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니엘은 안타까운 심정 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다니엘은 레베카를 향한 분노를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별로 화를 내지 않는 다니엘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니엘은 어떤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 로라만큼은 무사히 구하고 싶었 다. 로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로라만 무사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 실이 다니엘의 가슴을 헤집고 있었다. 잠시 후에 로라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 다. 정신이 좀 들어요? 다니엘은 배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정신이 돌아오 고 있는 로라가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평소처럼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라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거리면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자꾸만 눈 앞이 가물거리고 있었 다. 로라는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로라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던 것을 포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로라는 지금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죠? 내가 왜 이곳에 묶여 있는 거죠? 로라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경호원들에 의해 억지로 이곳으로 끌려왔어요. 당 신은 조금 전까지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어요.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기 때 문에 난 당신이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로라? 로라는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끌려오게 되었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했 다. 점차 머리가 맑아지면서 차갑게 웃고 있던 마틴의 모습이 떠올랐다. 로라는 의식 을 회복하면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무 슨 일이 있었나요.? 다니엘이 로라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네, 있었어요. 로라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손발이 모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 니엘은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뒹굴고 있는 로라 해리슨의 모 습을 보면서 몹시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가 그의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로라가 무사히 정 신을 차린 것만으로도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좀 어때요? 다니엘 이 로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걸었다. 로라는 다니엘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자 발버 둥치던 것을 그만두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분명히 이런 식으로 잠들고 싶지는 않 았는데... 다니엘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로라는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 찾을 수 있엇다. 로라는 자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침대에서 마구 몸을 비트는 동안 옷이 구겨지고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로라는 갑자기 자신이 초라한 모습 으로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라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 꼴이 우습죠? 로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요. 로라. 당신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한 번 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 다니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로라를 위로했 다. 로라는 감동을 받으면서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다니엘의 눈 이 반짝이고 있었다. 로라는 잠시 그 상태로 다니엘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생각 난 듯 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잇는 거죠? 아직 모르고 있었나요? 다니엘이 로라를 쳐다보면서 반문했다.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요. 로라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다니엘은 잠시 망설이 고 있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로라가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 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로라가 충격을 받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지 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진실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 것이 아무리 견디기 힘든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니엘은 로라를 쳐다보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요, 로라. 이 호텔에는 지금 두 명 의 메드닉이 있어요. 다니엘이 침착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둘이라구요? 로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반문했다. 할아버지가 둘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앗다. 로라는 다니엘이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니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래요. 물론 그 두 사람 가운 데 하나는 가짜예요. 다니엘은 물끄러미 로라를 바라보았다. 가짜라구요? 로라가 이 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래요. 메드닉 회장님이 주치의로 있던 앤소니 박사는 기 술이 아주 뛰어난 성형외과 의사였어요. 그가 성형수술로 가짜 메드닉을 만든 겁니 다. 다니엘이 설명을 해 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죠? 로라가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아직도 그걸 모르겠어요? 로라, 당신의 할아버지는 뉴월드 그룹을 이끌 고 있는 분이에요. 전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부자라구요. 그들은 할아버지의 재산을 몽땅 빼돌리려는 거예요. 다니엘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정도는 나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왜 하필이면 우리 할아버지가 그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비록 나이가 드시기는 했지만 그렇게 만만 한 분이 아니에요. 로라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요. 다니엘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게 뭐죠? 당신은 뭔가 알고 있군요, 그 렇죠? 로라가 다그치면서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은 놀라운 사실들을 어떻게 설명하여 할지 생각한 우에 입을 열었다. 다니엘은 하나씩 싸였던 해리슨 일가의 비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로라는 밑을 수 없는 사실과 받아 들이기 힘든 사실들을 접하면서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다니엘과 로라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빠져 있는 동안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미보셤 호텔에 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조용하던 호텔에서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당당하게 아미보셤 호텔 로비에 들어선 이후로 프론트에서 한바탕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로 보 나 겉모습으로 보나 프랭크는 상류사회에 속한 중년 신사로서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 다. 멋진 양복에 파이프까지 물고 있는 중년 신사의 모습은 뉴월드 그룹의 메드닉 회 장과 가까운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서 전혀 의심이 가지 않았다. 프랭크 로시는 다니엘 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바하마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바하마로 날아오는 동안 프랭크는 어떻게 호텔로 잠입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 안 에서 완벽하게 작전을 짠 프랭크는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알맞은 차림으로 변 장했다. 그리고 배짱 좋게 아미보셤 호텔 프론트에서 거침없이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프랭크는 아미보셤 호텔 직원에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에 대하여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프랭크가 호텔 직원에게 제시한 방문 목적은 메드닉 회장을 직 접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메드닉 해리슨 회장을 만나야만 하겠소! 프랭 크는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시끄럽게 떠들었다. 하지만 메드닉 회장님은 지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미보셤 호텔 프론트에서 일하는 직원 이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프랭크가 아니었다. 프랭 크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그 직원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질렀다. 만날 수 없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오? 프랭크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회장님은 다른 일 정이 있어서... 호텔 종업원이 어절 줄을 모르면서 대답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 리야. 프랭크는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호텔 종업원을 쳐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지금 은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호텔 종업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 말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메드닉 회장이 나를 내버려 두고 다른 일을 하다니... 좋아. 자네가 직접 메드닉 회장에게 연락을 해 보게. 프랭크가 호통을 치자 주위에 있던 사 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텔 직원은 당장이라도 경호원을 데 리고 와서 프랭크를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점잖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를 경호원들 이 끌고 나간다면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이 신사는 그렇게 호락호락 끌려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호텔 직원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프랭크가 한바탕 더 소란을 피울 기세로 덤비자 그 직원은 어쩔 서 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프 랭크가 무서운 눈빛으로 그 직원을 노려보자 그는 급히 총지배인을 불렀다. 이분이 바로 아미보셤 호텔의 총지배인입니다. 알더 선생님. 호텔 종업원이 총지배인 프레디 를 소개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이름은 알더 베네브치요! 똑바로 알고 말해야 지. 프랭크는 다시 한 번 젊은 직원을 엄하게 꾸짖었다. 그 직원은 프랭크의 기세에 눌린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프랭크는 정중한 태도로 총지배인 프레디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프레디에게 인사를 하는 프랭크의 표정은 젊은 직원에게 했던 것과 는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알더 베네브치라고 합니다. 내 친구 메드닉 회장을 만나기 위해 바하마까지 찾아왔습니다. 프랭크가 웃으면서 말했 다. 아, 그러십니까 나는 이 호텔의 총지배인으로 일하는 프레디입니다. 프레디는 프랭크의 행동 속에서 별로 의심이 가는 구석을 발견하지 못했다. 프레디는 중년 신사 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나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베네브치 씨께서는 메드닉 회장님을 만나실 약속을 미리 정해 놓고 오신 건가요? 죄송한 말씀이 지만 아무도 만나시지 않습니다. 이미 작정을 하고 찾아온 프랭크에게 약속 따위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정도에 물러설 프랭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일부러 잔뜩 권위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 보시오, 총지배 인. 프랭크가 호통을 쳤다. 내 이름은 프레디입니다. 프레디가 반박하듯이 말했다. 프레디가 관록이 있었기 때문에 호텔의 일반 직원들처럼 프랭크의 태도에 쉽게 넘어가 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디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프랭크를 대했다. 당 신이 누구이건 간에 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잘들어요, 프레디 씨. 내가 메드닉 회장을 만나고 싶으면, 나는 아무 때라도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 도 내 말을 아직 모르겠습니까? 겉으로는 비록 큰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프랭크의 마 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프랭크는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 다. 프레디를 잘 속여 넘긴다고 해도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리고 정말로 메드닉이 두 명이라면 프랭크가 만나게 될 메드닉은 과연 어느 쪽일까? 두 명의 메드닉 중에서 가짜 메드닉을 만나게 된다면 사실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될 것 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진짜 메드닉을 만난다면 혹시 어 떤 기회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한 것이었다. 메드닉을 둘러싸고 가공할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랭크는 그 일에 따르는 위험을 충 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급 호텔에서는 고객과 직원 사이에 잡음이 생기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아마도 로비가 시장 바닥처럼 시끄럽게 되면 프레디라는 지배인도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프랭크가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프랭크는 프론트에서 마구 소란을 피우면서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주위를 끌었다. 그렇게 하면 쉽게 다니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 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즉시 프랭크는 호텔을 면밀하게 살펴보았지만, 그 어 디에서도 다니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리기 위해 프랭크가 일부러 계속 소란을 피우는 동안에도 다니엘은 나타나지 않았다. 프랭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 닐까? 다니엘은 프랭크가 아미보셤 호텔로 찾아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아직도 프랭크의 눈에 뜨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프랭 크는 다니엘이 자신을 마중 나오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지금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다니엘은 계속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프랭크는 다니엘에게 어떤 심각한 위험이 닥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네브치 씨가 회장님의 명단에 들어있는지 확인해 보셨나요? 총지배인이 옆에 서있는 직원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프 랭크는 그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난 듯이 펄쩍 뛰었다. 약속자 명단에 알더 베네브치라 는 이름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었다. 프랭크는 이순간에 물러서면 모든 것이 끝장이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좀더 세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다. 프랭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롤 떠들기 시작했다. 약속자 명단 같은 건 집어치우시오. 지금 당장 메드닉 회장에게 가서 내가 찾아왔다고 전해요. 그렇게 전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아마 나를 반기면서 맨발로 뛰어나올 거요.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호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알더로 변장한 프랭크 로시의 고함소리를 듣 고 의아해 하면서 프론트가 있는 곳을 자꾸만 기웃거렸다. 메드닉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뉴월드 그룹의 회장인 메드닉의 친구가 호텔 지배인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중년 신사가 정말로 메드닉 회장의 친구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단지 메드닉의 친구 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다들 프랭크의 편을 들었다. 프레디도 상황을 의식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 었다. 그렇지만 베네브치 씨... 프레디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냥 알더라고 불 러요. 프레디가 약간 기세를 굽히는 모습을 보이자, 그랭크도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식으로 프레디를 마음대로 다루고 있는 프랭크의 모습은 성질이 괴팍한 부자로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괴팍하기로 소문난 메드닉의 친구다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다르게 본다면 분명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아무도 수행하지 않고 혼자 불쑥 나타나서 자기가 메드닉의 아주 절친한 친구라고 소 리치는 허풍쟁이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러한 프랭크를 수상하게 여 기고 신분을 확인이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는 여전히 주위 에 대해 신경쓰면서 다니엘이 어서 빨리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다니 엘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만약 다니엘이 나타난다면 아마도 이 문제 가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이 나타낼 때까지 마냥 기다릴수도 없었다. 지금 프랭크는 적지에 단신으로 뛰어든 척탄병과 똑같은 신세가 되어 있었다. 이 용감 한 척탄병은 아미보셤 호텔 속으로 뛰어들어서 지금 적의 진지를 교란하고 있는 것이 다. 그렇지만 알더, 회장님은 언제나 자신이 만나실 분들을 직접 결정하십니다. 총 지배인은 다시 한 번 프랭크 로시의 외모를 날카롭게 살펴보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점 이라도 발견하려는 사람처럼... 프랭크는 지금 프레디가 보여 주는 눈길이 어떤 의미 를 담고 있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프레디는 무엇인가 수상한 점을 찾아내려 하 고 있는 것이다. 프랭크는 그럴수록 더욱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위축된 느낌을 풍긴다면 그 순간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요.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프레디. 메 드닉 회장은 원래가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를 만나려고 할 겁니다. 내가 바하마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면 메드닉 회장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 프랭크가 가슴을 내밀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회장님과는 어떻게 되 는 사이입니까? 프레디가 정중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누구냐 하면... 프랭 크가 정중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누구냐 하면... 프랭크는 그 순간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였다. 프랭크의 의도대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프랭크의 말을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메드닉 회장의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인입니다. 내가 바로 그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라는 말이오. 알겠소? 프랭크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프랭크는 메드닉을 만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생명의 은인까지 들먹였다. 만약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풀려서 가 짜 메드닉을 몰아내고 진짜 메드닉을 구출한다면 프랭크는 실제로 메드닉의 생명의 은 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었다. 프랭 크의 임무는 메드닉 주위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파헤치는 일이었다. 프랭크의 말을 듣 고 주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더라는 중년 신사가 메 드닉 회장과 가까운 사이에서 약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더라는 중년 신사가 메드닉 회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까 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레디는 난데없이 나타난 이 이상한 인물과 계속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 소비적이라고 생각했다. 프레디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람 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프레디는 중년 신사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메드닉 회장에게 전화로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 다. 베네브치 씨. 어떻게 할 생각이오? 메드닉 회장님의 생명을 구해 주신 분이라 면 당연히 만나야 하겠지요.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프레디는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자 프랭크는 매우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자 프랭크는 매우 의기 양양한 태도로 시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프랭크는 애써 태연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작 그럴 일이지. 공연히 여기서 시간만 낭비하지 않았소?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당장 연락하시오. 프 랭크가 다시 한 번 호통쳤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당장 메드닉 해리슨 회장 님의 방으로 전화를 걸어서 만나실 생각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프레디가 뒤로 물 러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소? 전화 한통이 면 된다니까... 그러죠. 프레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 후에 프론토에 놓인 전화로 다가갔다. 프레디가 전화를 하고 있는 동안 프랭크는 계속 여유있는 미소를 지 어 보였다. 하지만 억지로 웃는 그 웃음은 프랭크에게 있어서 엄청난 고통이었다. 프 랭크는 지금 완전한 긴장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만약 메드닉이 면담을 거절한다면 그의 거짓말은 즉시 탄로 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일을 생각하자. 프랭크 는 그만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프랭크는 배짱이 아주 두둑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겪었다. 그 런 세월 속에서 프랭크가 터득한 이치는 일단 끝까지 밀고 나가고 그 이후에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었다. 프랭크는 전화를 하고 있는 총지배인의 모습을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시거를 피우고 있었다. 프랭크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지만 모든 신경은 온통 전화의 내용을 엿듣고 있었다. 프랭크는 지금이라도 다니엘이 나타나 주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죽음의 곡예사 그런데 프랭크 때문에 걱정이 되는군요. 그가 오늘 가짜 메드닉 해리슨을 만나러 갈 예정이었는데... 잘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니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로라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 의아스러운 듯이 물어 보았다. 다니엘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프랭크가 누구죠? 내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레베카에게 붙잡히기 전에 미리 프랭크에게 연락을 해 두었죠. 프랭크가 오늘 가짜 메 드닉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 있어요. 다니엘은 프랭크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부탁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탁을 할 때에는 자신이 로라와 함 께 사로잡힌 신세가 될 거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지 못했다. 다시 다니엘은 프랭크의 도움을 받아 가짜 메드닉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계획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 상태에서 홀로 남겨진 프랭크가 아주 뛰어난 능 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니엘은 잠 시 동안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라는지 미소 를 지으면서 로라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다니엘? 로라는 다니엘의 미소를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빤히 바라보면서 물어 보았다. 내게 키스를 해 주겠어요, 로라? 이제부터 일을 좀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필요하군요. 다니엘이 장난스러운 표 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로라는 다니엘이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그런 행동을 하 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아이처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키스 해 주기를 원하는 건가요? 로라가 정색을 하면서 건가요? 로라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 다. 내가 이빨로 당신의 손목을 풀어 주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먼저 힘이 생겨야 하 는데 아마도 당신의 키스가 그 힘을 내게 불어넣을 것 같군요. 로라는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다니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 정도로는 일할 맛이 나질 않았는 데... 다니엘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로라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갑자기 다니엘의 입술을 향해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 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황홀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다니엘이 생각했던 그 일은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레베카 더글라스가 마틴을 데 리고 나타난 것이다. 마틴은 다니엘을 위협하듯이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 세요. 두 분? 재미가 좋으신 가요? 다니엘이 무서운 눈빛으로 레베카를 노려보았다. 레베카는 다니엘의 눈길을 무시하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침대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마틴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틴은 침대를 향해 걸어가더니 다니엘의 손을 묶어 놓았던 줄을 풀어 주었다. 당신이 활동하기에 편한 옷을 가지고 왔어요. 블레이크씨, 어서 이 옷을 가지고 왔어요. 블레이크씨 어서 이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세요. 당신을 해변 으로 초대하겠어요. 레베카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다 니엘은 팔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물어 보았다. 로라도 역시 두 눈을 뜨고 무슨 영문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물론 말을 탈 줄 아시겠지요? 이번 기회에 당 신에게 해변가에서 승마 연습을 좀 시킬 생각이에요. 그것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요. 레베카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레베카 더글라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레베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다니엘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군! 승마를 하다가 실수로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처럼 꾸밀 계획이군. 다니엘이 레베카 더글라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런 다니엘을 상대하는 레베카는 얼 굴 가득히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사악한 악마의 화신이라 고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인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 으면 단정하고 정숙한 숙녀의 분위기까지 풍겼다. 맞았어요. 당신은 역시 대단히 빠 르시군요. 바닷가의 절벽에서 말을 탄 채 떨어지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죠. 물론 당신 의 생각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다니엘을 향해 기라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다니엘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로라 해리슨을 한 번 돌아본 후에 다시 레베카 더글라스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사 고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레베카를 쳐다보면서 말했 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 생각은 당신과 많이 달라요. 레베카가 머리를 흔 들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예요. 다니엘이 레베카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우리에 대한 걱정까지 해 주어서 고맙군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모든 계획들이 다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레베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경찰도 분명히 의심할 겁니 다. 다니엘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다니엘, 그런 당신이 아니라 내가 걱정할 문제입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인가요? 엉뚱한 말은 하지도 말고 어서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로라 해리슨이 다치는 걸 보 고 싶지 않다면 말이예요. 레베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소. 다니엘은 어 쩔 수 없는 듯이 가볍게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자,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우리는 성대한 파티 준비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당신이 계획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다니엘이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이제 또 다신 그런 말을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니엘. 순순히 그냥 우리말에 따르는 게 좋을 거예 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있는 경호실장이 당장 로라의 목을 부러뜨리고 말테니까. 레베카 더글라스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무서운 협박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레 베카 더글라스의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만한 여자였다. 다니엘은 자신의 눈 앞에서 마 틴의 손에 로라의 목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레베카 더글라스를 노려보았 다. 만약 혼자의 몸이라면 마틴과 한 번 붙어서 격투라도 벌이겠지만 로라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좀더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디니엘은 무엇보다도 로라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베카 더글라 스. 이렇게 위험한 곡예가 언제까지 성공 할 수 있다고 믿는지 모르겠군요. 이건 너무 나 위험한 일입니다. 다니엘이 레베카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젠 모두 끝났어요. 마침내 나의 도박이 성공한 거예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 지만 엘리자베스, 당신의 음모가 성공하는 게 그렇게 쉽진 않을 텐데? 다니엘이 머리 를 흔들면서 반문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정 체가 탄로난 레베카는 다니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내 이름 을 어떻게 알았죠? 난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어요. 당신의 음모는 반드시 실패하 고 말 거요. 다니엘이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 르겠지만 이젠 우리의 승부는 사실상 끝났어요. 당신은 곧 죽을 것이고 나는 뉴월드 그룹을 차지하게 되겠죠. 레베카 더글라스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니엘을 쳐다 보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다니엘은 레베카의 말에 의문을 표시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치 사나운 맹수가 먹이를 앞에 놓고 희롱하는 것처럼 그동안 진행되었던 일의 비밀들을 솔직히 공개하기 시작했다. 물론이죠. 이 계획을 진행하는 동안 몹시 힘들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죠. 사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메드닉이었어요. 레베카가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물론 메드닉 회장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만한 분이 아니죠.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메드닉은 에릭이 자신의 아들이 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에릭과 로즈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해리슨 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어요. 레베카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과연 그럴까요? 다니엘이 레베카를 비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레베 카는 다니엘의 태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레베카는 완전히 다니엘의 존재를 무 시하고 있었다. 다니엘의 자신의 손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메드닉은 나를 자신의 손녀라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내 어머니 로즈마리 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조금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죠. 내가 레베카 더글라스가 되어야만 했던 건 나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로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악녀로군요. 다니엘이 몹시 화 를 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레베카 더글라스는 다니엘의 말에 조금도 관심을 드러내 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승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메드닉 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무척 고민했어요.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앤소니 박사 가 완벽하게 가짜 메드닉을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레베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역 시 내 생각이 맞았군. 다니엘이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는 가짜 메드닉 을 이용해서 메드닉의 측근들과 개인 변호사들을 속일 수 있었어요. 앤소니 박사의 성 형수술이 완벽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말투나 습관같은 세세한 부분은 내가 그동안 정성을 다해서 가르쳐 주었거든요. 한가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이번 일과 아 무런 상관도 없었던 당신이 메드닉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다는 거예요. 레베카 가 다니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하베이 기자도 살해한 거죠? 다니엘이 비꼬 는 투로 말했다. 다니엘과 레베카 더글라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두 사람이 노려보는 시선은 마치 그 사이에 있다가는 벼락이라도 맞을 것처럼 강렬했다. 그래서 이런 비극이 시작된 거죠. 만약 그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없었을 거예요. 레베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살인을 하고 도 태연할 수 있죠? 다니엘은 도저히 레베카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베카의 행동은 너무나 악독했던 것이다.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예요. 누가 이 일에 끼여들라 고 했나요? 그 멍청한 기자는 바하마로 와서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한 거예요.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귀중한 목숨을 잃게된 거죠. 레베카 더글라스는 목소리에 별다른 변화 를 주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제임스 교수도 사실은 당신이 죽인 거죠? 로라가 레 베카 더글라스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우리가 그 사람으 죽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요, 로라? 레베카 더글라스가 로라를 향해 반문했다. 그리고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 교수님은 뉴월드 그룹을 노리는 레이더스에 대해 조사하다가 로즈마 리라는 여자가 이번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로즈마리는 바로 당 신의 어머니가 아닌가요? 로라가 몹시 흥분하면서 소리쳤다. 그 교수느 알지 말았어 야 할 내용을 알고 있었어요.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면 그런 꼴을 당할 수밖 에 없어요. 그러자 다니엘이 메베카 더글라스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천 벌을 받을 거요! 하지만 레베카 더글라스는 여유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쨌든 지 금은 모든 열쇠를 레베카 더글라스가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먼저 당 신이 죽을 겁니다. 승마를 즐기다가 말이죠. 레베카가 여유를 부리면서 말했다. 이런 방법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소? 다니엘은 레베카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난 고통스러운 나 의 과거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었어요. 레베카가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어떤 식으 로 말입니까? 다니엘이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로라가 메다닉의 품 안에서 행복 하게 자랄 때, 나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나를 손녀로 인정하지 않았던 메드닉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레베카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소. 엘리자베스 ,당신의 아버지 에릭은 메드닉 회장의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다니엘이 단호한 목소리 로 말했다. 뭐야? 메드닉 회장은 에릭이 과연 친아들인지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감 식을 의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신의 어머니 로즈마리에게 보내 주었지요. 로즈마리는 친자 확인 소송까지 벌이려고 하다가 웨더비 박사가 작성한 소 견서를 보고 모든 걸 포기했어요. 난 이미 그 증거까지 가지고 있어요. 다니엘이 사 실대로 말했다. 그건 진실이 아니야! 레베카 더글라스가 무서운 눈빛으로 다니엘을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아직 늦지 않았소. 모든 걸 포기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메드 닉 회장이 당신을 자신의 손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소. 당신이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자, 블레이크 씨. 어서 승마복으로 갈아입는 게 어떨까요? 로라양의 몸에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하려면 말이예요. 더 이상 꾸물거러는 건 용서하지 않겠어요. 다니엘은 어쩔 수 없이 레베카 더글라스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로라는 마틴의 손에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 다. 서투른 저항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다니엘은 레베 카 더글라스의 명령에 따라 승마복으로 갈아입었다. 좋아요. 이것으로 모두 준비는 끝났으니 밖으로 나가실까요? 다니엘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권총으로 로라를 위협하고 있는 마틴을 잠시 노려보다가 다시 레베 카 더글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좋소, 레베카 더글라스.하지만 나가기 전에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어젯밤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경찰에 신고를 해 두었 소. 하지만 그 말에도 레베카 더글라스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 그렇게 까지 하시다니 미처 몰랐군요. 그래서 경찰이 당신의 주장을 믿어 주던가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서 물어 보았다. 하지만 다니엘은 아무런 말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다니엘이 위험에 처해 있는 곳은 뉴욕이 아니라 바하 마였다. 만약 이곳이 뉴욕이라면 경찰에 대한 다니엘의 영향력이 발휘될 수도 있었겠 지만 이곳 바하마에서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영향력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작용할 수 었었던 것이다. 그런데 로라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다니엘이 레베카 더글라스를 쳐 다보면서 물었다. 죽이지는 안을 거예요. 로라는 따로 필요할 곳이 있으니까... 레 베카가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로락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입니까? 길버트 부부 의 스키 기증식 파티에 참석할 겁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만 하겠죠. 만약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그 즉시 진짜 메드닉은 처참하게 죽을 겁니다. 레베카 더글라스가 차가운 눈빛으로 로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레베카 더글라스와 눈 빛이 마주치자 로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앤소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다니엘 과 로라는 앤소니의 출현이 무엇 때문인지 몹시 궁금했다. 앤소니의 표정으로 볼 때, 무엇인가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베카, 방금 프론트에 서 다급한 연락이 왔어요. 프레디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한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 겨서... 무슨 일이죠? 레베카 더글라스 약간 긴장하면서 물어 보았다. 조금 전에 메드닉 회장을 만나겠다고 호텔로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지금 호텔 로비에 서 마구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메드닉 회장이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라고 자처하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당신이 결정해야 할 것같습니다. 앤소니가 초조한 표 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다니엘의 얼굴에서 재빨리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다니엘은 프랭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니엘은 레베카 더글라스가 어떤 반응 을 보일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앞으로의 결과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메드닉에게 생명 의 은인이 있었나? 레베카 더글라스는 잠시 생각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 서 앤소니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해요? 알더 베네브치라고 했습니 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짐짓 태연한 척 가장했지만 다니엘의 눈에는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이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다니엘은 로라에게 프랭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 고 싶었다. 프랭크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로라도 어느 정도 용기를 얻을 수 있 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어서 가서 메드닉 회 장에게 물어 보도록 해요. 그런 사람이 정말로 있는지 말이에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신중한 여자였다. 지금 이 순간에 레베카 더글라스는 가능하다면 가짜 메드닉을 내세 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앤소니는 메드닉에게 달려가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약간 신경질을 내면서 앤소 니에게 말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약간 신경질을 내면서 앤소니에게 말했다. 왜 그 래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메드닉 해리슨 회장은 조금 전에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있습니다. 앤소니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하필이면 지금 주사 를... 알더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요? 레베카 더글라스의 목소리에는 잔뜩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호텔 프론트에 있습니다. 렉베카 더글라스는 오랫동안 생각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레베카 더글라스는 마치 다니엘과 로라가 지켜보는 앞에 서 조금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좋아요. 위로 올려 보 내요. 그 대신에 간단히 이야기하고 즉시 돌려 보내도록 해요, 알았죠? 레베카 더글 라스는 서둘러 일을 끝마치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다니엘은 아무도 모를게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랭크 로시가 가짜 메드닉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정체 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프랭크가 호텔에서 쫓겨났다면 상황은 완전히 불리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이번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 을 정리해 보았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메드닉 해리슨에게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 있었 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아직까지 모든 계획이 완 전히 성공한 것이 아니기었기 때문에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 만 가짜 메드닉이 있으니까 일단은 안심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감쪽 같이 속였던 것처 럼 이번에도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봐요, 마틴, 당신 이 직접 다니엘을 처리하도록 하세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을 마쳐야해요. 레베카가 마틴을 쳐다보면서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로라는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감시하도록 하세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마틴을 향해 말했 다. 나에게 맡겨 주세요. 마틴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이 라도 다니엘을 죽일 수 있다는 듯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다니엘 에 대한 처리 문제를 마틴에게 맡기고 곧장 가짜 메드닉 해리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 다. 그의 외모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진짜 메드닉 회장과 똑같았다. 레베카 거글라스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의 생명을 구 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지금 프론트에 와 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은 알더 베네 브치라고 해요. 적당히 대답한 후에 돌려 보내도록 하세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아무 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가짜 메드닉 해리슨은 초조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나? 그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메드닉 회장이 지금 주사 때문에 의식을 잃고 있으니까 확인할 수가 없어요. 레베카가 차분 하게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뭐라고 하지? 다니엘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메 드닉은 어쩐지 어려워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진짜 메드닉이었다면 아무 리 늙고 쇠약해도 절대로 그렇게 약하고 자신이 없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가벼운 인사 정도만 하세요. 분명히 메드닉이 과거에 사귀었던 건달일 거예요. 가끔씩 그런 짓도 했으니까요. 뭐 다른 게 있겠어요? 그렇군. 가짜 메드닉이 고개 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레베카 더글라스에게는 메드닉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레베카 더글라스는 다시 한 번 가짜 메드닉 해리 슨을 진정시키고 나서 프랭크를 데리고 오기 위해 방을 나섰다. 메드닉 회장님, 그 동안 잘 있었나요? 프랭크는 진짜로 가까운 사이처럼 다정하게 말하면서 기다리고 있 던 가짜 메드닉 해리슨에게 다가갔다. 대단한 배짱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 할 수조차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프랭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했 다. 이런 일에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몹시 중요했다. 진짜 메드닉이었다면 프랭크는 어 렵게 만날 수 있었더라도 단번에 웃음거리가 되어서 쫓겨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메드닉은 가짜였기 때문에 프랭크의 정체 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야 물론 잘 있었지. 자네의 모습도 무척 건강해 보이는 군. 가짜 메드닉은 프랭크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최선을 다해 맞추어 주었다. 그 한 마디에 프랭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모든 조바심과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상대가 가짜 메드닉이라는 게 확실한 이상 두려울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 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눈치를 살펴보았지만 역시 가짜가 분명했다. 가짜 메드 닉은 레베카 더글라스를 불러서 프랭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인사하게나, 알더. 이쪽은 몇 해 전부터 내 비서로 일하고 있는 레베카 더글라스 양인데 내 오른팔이나 마찬가지 라네. 메드닉 회장이 레베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반갑습니다, 베네브치 씨. 레베 카 더글라스는 비서다운 태도로 공손하게 말했다. 자신의 신분에 대해 확신이 생긴 프 랭크는 조금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냥 알더라고 부르도록 해요. 당신은 상당한 미인 이군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친절하게 프랭크를 대하면서도 결코 경계심을 늦추지 않 았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메드닉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확인해 보았지만 거기에서도 알더 베네브치라는 이름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부르죠, 알더. 그런데 두 분께서 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레베카 더글라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프랭크는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드러낼 프랭크가 아니었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회장님이 직접 비서에게 들려주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요? 프랭크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면서 문제를 가짜 메드닉에게 떠넘겼다. 일이 그렇게 되자 오 히려 당황한 것은 가짜 메드닉이었다. 레베카 더글라스조차도 이 순간을 가짜 메드닉 이 잘 넘길 수 있을지 긴장할 정도였다. 가짜 메드닉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자네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어. 자네가 나보다 훨 씬 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니까 말이야. 가짜 메드닉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프랭크 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프랭크를 경계하면서도 혹시 가짜 메 드닉의 정체가 탄로 나지나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요. 저고 선생님의 이야기 를 듣고 싶어요. 아무래도 생명을 구한 당사자가 그 일에 대해 말하는 게 더욱 효과적 이니까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프랭크는 한눈에 레베카 더글라스가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프랭크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생 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고 의심할 만한 부분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가만 있자...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꼭 7년 전이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메드닉? 프랭크는 상대방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 게 말을 꺼냈다. 그 모습은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맞았어. 가짜 메 드닉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는 지금 프랭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인 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난 브룩클린에 있는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출발한 후에 맨해튼으로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지요. 지름길로 가기 위해 공원을 통과하던 도중에 회장님을 발견했던 겁니다. 회장님은 새벽 한 시에 공원에서 혼자 산책하고 있었어요.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지요. 프랭크는 지금 완전히 재담가로 변신하고 있었다. 레 베카 더글라스조차도 프랭크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말하는 프랭크 로시의 태도가 자신감에 넘친 탓도 있었지만, 레베카 더글라스는 혹시 메드닉이 가짜 라는 사실이 들통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다른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맞았 어. 내가 왜 그랬을까? 가짜 메드닉이 말했다.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서 프 랭크의 거짓말을 듣고 있었다. 72번가에서 공원을 막 지나가려고 하다가 회장님을 향 해 네 명의 갱들이 덤벼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겁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즉시 도 와주지 않는다면 저 사람이 갱들에게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하게, 계 속해. 가짜 메드닉은 정말 감동이라도 한 듯이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면서 사실상 신경이 곤두서 있던 프랭크는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아도 좋겠 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 사람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생각 끝에 자동차를 몰고 그 갱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해 들어갔지요. 갱들은 내 자동 차가 사나운 속도로 돌진해 들어오자 질겁을 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어요. 회 장님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 광경이 어떠했는지를... 그 순간 내가 자동차의 문을 열 어 주자 회장님은 급히 내 자동차에 올라탔지요. 프랭크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맞 아, 그래. 가짜 메드닉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서 프랭크의 말에 동의했다. 그날 밤 에 내 자동차는 여기저기가 부딪딛혀서 고물차가 되고 말았지요. 갱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몰았으니 자동차가 어떻게 되었겠어요? 프랭크가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레베카 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되었을지 알 만해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미소를 지으 면서 대답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프랭크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의혹이 파고들어 갈 만한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치는 가짜 메드닉을 어 떻게 생각해야 좋을지에 대해서도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느 프랭크 가 메드닉을 진짜로 믿고 빨리 돌아가 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알더. 그날 있었던 일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메드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갱들은 내 자동차를 향해 마구 총을 쏘았지요. 다 행스럽게도 우린 총에 맞지 않았지만 자동차는 벌집처럼 되고 말았어요. 프랭크가 메 드닉을 쳐다보았다. 난 항상 그 일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자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 있을 수도 없었을 거야. 메드닉 프랭크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프랭크는 승리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면서 커다랗게 웃었다. 하지만 레베카 더글라 스에게 그 표정은 메드닉을 진짜라고 믿는 태도로 보여지고 있었다. 가짜 메드닉 역시 자신이 진짜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짜 메드닉은 가장 어려운 난관을 통과한 듯이 자랑스럽게 레베카 더글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연극을 하는 동안에도 프랭크는 한 가지 걱정을 지워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다니엘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프랭크는 다니엘이 지금껏 나타나지 않는 데에는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프 랭크에게 도움을 청해서 바하마까지 불러들인 후에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날 리가 없었 다. 아무래도 프랭크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미 어떤 일이 벌어졌 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랭크는 다니엘이 메드닉에 대한 비밀을 발견했다면 당 연히 신변에 위험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프랭크는 무사히 레베카 더글라스와 가짜 메드닉을 속인 후에 다니엘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기 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위기1 세계적인 휴양지 바하마를 대표하는 아비보셤 호텔은 드넓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푸른 바다에는 섬들 사이로 몇 척의 배가 여유있게 떠다니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갈매기가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아이보 셤 호텔과 바다 사이에 놓여 있는 숲을 따라 걸어가면 그 끝부분에 기묘하게 생긴 바 위들과 마치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이라도 치는 것처럼 위태롭게 뻗어 있는 절벽이 있 었다. 그곳은 바로 다니엘의 무덤이 될 장소였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틴에게 다니엘 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런데 레베카 더글라스. 좀 지나치 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서실 창문을 통해 절벽을 바라보던 앤소니가 레베카 더글라 스를 향해 말했다. 앤소니는 말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절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레베카 더글라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이죠? 앤소니의 말에 레베카 더글라스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느닷없이 나타난 메드닉의 친구 때문에 신경이 몹시 날카로운 상태였다. 알더는 시끄럽게 떠들면서 주 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레베카는 은근히 그 일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니엘을 처리하는 문제 말입니다. 앤소니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뭐가 잘못 되기라도 했나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자 앤소니 는 바다를 등진 채 난간에 서서 레베카 더글라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앤소니는 자신 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인물이 갑자기 바하마에서 죽어 버린다면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곳에서 그를 처치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앤소니가 레베카 더글라스의 결정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지금 앤소니가 하는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레베카 더글 라도 그 말을 들으면서 약간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술병이 진열되어 있는 장식장을 향해 걸어갔다. 레베카 더글라스 는 조용히 술병을 꺼내서 술잔에 부었다. 앤소니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무척 화가 나 있는 거라고 추측하면서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기를 기다렸 다. 당신은 겁을 내고 있군요. 앤소니, 그렇죠? 레베카가 약간 언성을 높이면서 말 했다. 그런 게 아니라... 앤소니가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한 번 대답해 봐요. 그 다니엘이라는 자는 진짜 메드닉에 대해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거요? 레베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그 건... 경찰에 가서 그 사실을 알려 주도록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할 건가요? 레베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단지 지금이 다니엘을 해치우는 일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앤소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레 베카는 이미 앤소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가짜 매드닉이 체포 되고 우리의 계획도 끝장나 버린다면 좋겠어요? 그래요? 레베카 더글라스의 질문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단순할수록 대답하기 더욱 어려운 법이 었다. 그게 아니라... 앤소니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앤소니는 레베카 더 글라스가 너무나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베이가 죽었을 때에도 레베카 더글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두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앤소니는 음모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좋은 생각이 있으면 한 번 말해 보세요. 하지만 앤소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자 레베카 더글라스가 앤소니에게 다시 한 번 차갑게 쏘 아붙였다. 난 모르겠어요. 단지... 앤소니, 아직 모르겠어요? 우리는 어차피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레베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나 도 알아요. 나고 알고 있으니까 모두 당신이 알아서 해요, 레베카 더글라스. 앤소니 는 그런 식으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어차피 둘 중에 한 가지만을 선 택할 수 있을 뿐이었다. 레베카 더글라스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이것 봐요, 앤소니. 레베카 더글라스의 음성이 갑자기 따스하게 변했다. 조 금전에 쏘아붙이던 차가운 말투는 사라지고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얼굴은 은근한 표정 으로 바뀌었다. 이제 레베카 더글라스의 표정은 앤소니가 마음이 흔들릴 만큼 매혹적 으로 보였다. 남자가 왜 그렇게 겁이 많아요? 당신은 욕망도 없나요? 아직도 당신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레베카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 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죠? 앤소니가 불만스러운 듯이 물어 보았다. 난 욕망이 크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도 아주 많아요. 나이가 더 들기 전데 다른 사 람들보다 더 멋지게 즐기고 싶다구요. 그러기 위해서 돈도 필요한 거구요. 내 말 알겠 어요? 레베카 더글라스의 유혹적인 말에 앤소니는 더 이상의 논쟁을 벌일 용기를 잃 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레베카 더글라스, 현재로서도 당신은 여생을 충분히 호강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이제 앤소니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레베카 더 글라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뭘 가지고 말이죠? 레베카가 궁금한 듯이 반문했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레베카 더글라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 신의 야망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앤소니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건 맞아 요. 당신은 오늘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요. 레베카 더글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앤소니의 말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요? 앤 소니가 레베카를 바라보면서 물어 보았다. 누구를 말하는 거죠? 알더 베네브치라고 하는 사람 말이에요. 곧장 돌아간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것은 지금 알 수가 없지만 그냥 놓아 두었어요. 어차피 메드닉과 이야기가 잘 통하고 있고 다른 의심도 하지 않 는데 공연히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레베카가 앤소니에게 설명 했다. 그건 그래요. 다행이에요. 앤소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앤소니는 또 다시 누군가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척 만족한 것 같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레베카 더글라스는 앤소니가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앤소니를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앤소니가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앤소니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유혹적인 자태를 보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 다. 뭘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 앤소니의 욕정어린 눈빛을 의식한 듯이 레베카 더글 라스가 불쑥 물어 보았다.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앤소니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좋아 요. 그런데 오랜만에 우리가 단 둘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군요. 지금부터 당 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무슨 뜻이죠? 앤소니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어 마시면서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감각이 둔한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어려운 수 술을 하죠? 이해가 가지 않아요. 난 지금 당신의 몸을 느끼고 싶어요. 앤소니는 말문 이 막힌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레베카 더글라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 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앤소니의 몸은 레베카 더글라스의 유 혹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앤소니는 마치 눈 앞에서 레베카 더 글라스의 알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태도는 이미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가만히 서 있는 앤소니를 향해 천천히 다가 왔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야릇하고 신비스러운 표정에 약간의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몹시 요염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탄력있는 가슴이 앤소니의 눈 앞에서 가볍 게 출렁거렸다. 앤소니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옷 속으로 은은하게 비치는 가슴을 볼 수 가 있었다. 그것은 외부로 완전히 노출된 가슴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앤소니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앤소니는 슬며시 손을 내밀어서 레베카 더글라스의 가슴을 더듬었다. 앤소니의 손이 가슴에 와 닿자 레베카 더글라스의 입술이 조금씩 벌 어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비음이 흘러나왔다. 앤소니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미끈한 두 다리를 보면서 거센 욕망을 느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눈부신 피부가 그의 두 눈 을 자극했다. 앤소니는 조심스럽게 레베카 더글라스의 팬티를 벗겼다. 레베카가 더글 라스의 팬티가 벗겨지자 우윳빛 눈부신 피부와 대비되는 또 다른 지역이 완전히 개방 된 채로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한 암갈색으 무성한 숲이 앤소니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앤소니는 서둘러 레베카 더글라스의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날씬한 허리를 휘면서 그를 받아 들였다. 두 사람의 육체가 하나가 된 순간 앤소니는 지금 이 순간 이외에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앤소니와 레베카 더글 라스는 짜릿한 섹스를 나눈 후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만히 서 있었으며 앤소니는 소파에 앉아서 아직도 상기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앤소니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다 여자라 고 생각했다. 이건 아직 시작일 뿐이에요, 앤소니.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우리의 계획이 성공한 다음에는 훨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난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요. 레베카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 어요, 레베카. 자, 이제는 파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에요. 나를 믿어요. 조금도 두 려워 할 필요가 없어요. 레베카 더글라스는 앤소니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앤소니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레베카 더글라스뿐이었다. 레 베카 더글라스는 앤소니를 남겨두고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프랭크는 아무도 몰래 메드닉의 전용층으로 올라가서 조사를 해 보았다. 아미보셤의 다른 곳은 모두 조사를 해보았지만 다니엘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아있는 장소는 메드닉의 전용층뿐이었다. 하지만 메드닉 해리슨의 전용층으로 들어가는 것은 몹시 어 려운 일이었다. 전용층으로 이어지는 모든 비상구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고 엘리베 이터에는 항상 경호원이 지키고 서 있었다. 비록 메드닉의 생명을 구한 사람으로서 융 숭한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전용층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프랭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프랭크는 파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파티가 시작되면 무슨 방법이 생기길지도 모 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니엘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파티가 열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프랭크가 다니엘의 행방을 대해 걱정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 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레베카의 음모가 세상에 드러날 시간도 가까이 다가오 고 있었던 것이다. 로즈마리는 옷장을 열고 화려한 파티복을 준비했다. 로즈마리는 비 록 중년의 나이였지만 풍만한 가슴을 돋보이도록 만들면서 어깨를 드러내는 하얀색 드 레스를 골랐다. 치마에는 레이스를 달아 장식하고 보석이 박힌 화려한 목걸이도 걸었 다. 오늘 열리는 파티는 로즈마리에게 있어서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자신이 정식으로 메드닉 해리슨의 며느리로 인정받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로즈마리가 오랫 동안 꿈꾸어 오던 일이었다. 가짜 메드닉이 그 사실을 선언하겠지만 그래도 해리슨 가 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도 메드닉의 손녀로서 정당한 상속권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로즈마리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 를 비추어 보았다. 로즈마리는 항상 화려한 생활을 꿈꾸며 살았다. 매일 밤마다 파티 를 열고 상류층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에서 마음대로 물건도 구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로즈마리는 그런 생활을 제대로 즐겨 보지도 못한 채 이미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상태였다. 그것은 모두가 메드닉의 고집 때문이었다. 메드닉이라는 고집센 노인이 에릭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즈마리도 해리슨 가의 일원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즈마리는 지 난 20년 동안이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바로 메드닉 해리슨의 며 느리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다. 로즈마리의 마음은 이 세상이라도 가진 것처럼 행복 했다. 로즈마리는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드레스는 자 신이 마치 파티의 주인공이라도 된듯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오늘은 멋진 신사 가 정중하게 손을 내밀면서 춤을 신청해 올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 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까? 로즈마리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 는 상상을 즐기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순조롭게 스키 기증식 파티를 진행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아미보셤 호텔 직원들과 식당 종 업원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할 사항들을 지시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레베카 더글라 스가 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스키 기증식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무대장치와 조명 그리고 음향 시설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빼놓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했다. 스키를 기증하는 파티는 아미보셤 호텔의 대회의장에서 예정대로 개최되었 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장을 차 려 입은 사람들과 화려하게 장식된 분위기가 파티의 질을 높여 주고 있었다. 초대를 받은 손님들은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파티의 주인공 길버트 부부는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길버트 는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을 모아 놓고 골동품 스키에 대해 과장된 표현을 섞어가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그 스키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잘 아시겠 지만 내가 출현했던 영화에서는 이 스키가 불에 타서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 러분이 직접 보고있는 이 스키는 분명히 진품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스키의 모형을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 리고 막상 불에 타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그 모조품을 태우는 겁니다. 그것은... 길버트는 영화 속의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길버트의 움직임을 쫓아가면 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길버트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팔을 길게 뻗으면서 스키를 가리켰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고 있는 이 스키가 바로 그 영화 에 등장한 스키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길버트가 말을 마치자 파티장에 모인 손님들 은 깊은 감동을 받은 것처럼 일제히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박 수를 받으면서 길버트 부부는 즐거운 미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가 프랭크 로시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다. 프랭크 로시가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어떤 여자였다. 그런 데 어딘지 모르게 그 여자는 좀처럼 낯설지 않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처음 만나는 것이 분명했지만 프랭크에게 꼭 어디에서 분명히 보았던 것 같은 인상을 안겨 주었다. 프랭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로즈마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중년 신사를 발견했다. 처 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듬직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부인. 이 파티장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부인으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군요. 나는 알더 베네브치라고 합니다. 프랭크가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알더. 전 로즈마리라고 해요. 프랭크느 비로소 그 여자를 기억할 수 있었다. 프랭크는 엘리자베스의 집을 방 문했을 때 사진 속에서 로즈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로즈마리는 바로 엘리자베스의 어 머니였다. 프랭크는 그녀도 레베카가 진행하는 음모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 다. 프랭크는 혹시 로즈마리를 통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음모와 사라진 다니엘의 행방 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로즈마리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부인께서는 이곳에 휴양차 오셨나요? 아 니에요. 전 친구를 만나러 왔어요. 로즈마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친구분이신가요? 프랭크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사실은 제 친구라기보다는 죽은 남편의 친구라고 할 수있죠. 프랭크는 로즈마리의 눈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로즈마리는 맑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그 눈빛은 어쩐지 음울한 느낌을 주었다. 아, 그러시군요. 나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프랭크가 미소 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세요? 정말 반갑군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죠? 로즈마리가 프랭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떤 사업을 하고 계시는지 물어 보아도 될까요? 세인트루이스에서 시 스템 매거진 이라는 작은 잡지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의학 전문잡지를 출간하고 있 어요. 나는 특히 여성들의 성형수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랭크는 자신의 의도대로 로즈마리와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자신을 의학 전문잡지의 경 영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성형수술에 관해 상당히 조예가 깊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 했다.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주제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버트 부부의 스키에 관한 이야기부터 영화, 연극 그리 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히 로즈마리는 신사답게 차려 입은 알더 베네브치에 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에릭이 죽고 난 이후로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알더처럼 마음에 들었던 남자는 없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계속 로즈마리를 통해 다니엘의 행방을 알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로즈마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프랭크는 이 정도에서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하던 프랭크는 간접적으로 메드닉 해리슨을 둘러싼 음모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비추기로 결심했다 혹시 당신은 메드닉 해리슨 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가요 프랭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요. 뉴월드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실과 성격이 무척 괴팍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로즈마리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 는 메드닉 해리슨 회장의 친구이기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메드닉 회장을 만났을 때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더군요. 이상한 점이 있어요? 로즈마리는 메드닉 해리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별로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내심 귀를 기울였다. 프랭크는 로 즈마리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해 아주 지지한 표정을 지었다. 로즈마리는 프랭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프랭크 로시의 표정 연기는 로즈마리가 그대로 속아 넘어갈 정도 로 완벽한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어요. 마치 성형수술을 받 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예전에는 분명히 그런 흔적이 없었어요. 나는 그 분야의 전문 가이기 때문에 한눈에 알수 있었죠. 로즈마리는 프랭크 로시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 털썩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만약 알더라는 사람 때문에 메드닉이 가짜라는 사실이 알 려지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그런 마음을 숨긴 채 아 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래요? 메드닉 회장이 주름살 제거 수술이라도 한 모양이 죠? 그럴 수도 있죠. 아니면 다른 사람이... 프랭크는 다음 말이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기를 망설였다. 프랭크가 일부러 뜸을 들이자 로즈마리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로즈마리가 다급하게 물어 보 았다. 아닙니다. 공연하게 제가 난처한 소문을 퍼뜨릴 이유가 없죠. 프랭크가 목소 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로즈마리는 몹시 당황하면서 이 남자가 무엇인가를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프랭크가 수사관 시절에 많이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스스로를 상대방에게 노출시킴으로써 상대가 어떤 식으로든지 미리 행동하도록 만들었 던 것이다. 물론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약점도 드러나게 되 는 것이다. 아, 제 친구가 왔군요. 전 이만 실례하겠어요. 로즈마리가 일부러 시선 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그래요. 나도 친구를 찾아봐야겠어요.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군요. 반가웠습니다. 두 사람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기 다른 방 향으로 걸어갔다. 로즈마리는 서둘러 레베카 더글라스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만약 알더가 정말로 메드닉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무슨 방법이라도 취 해야만 하는 것이다. 로즈마리는 헤어진 다음에 계속 파티장을 돌아다니면서 다니엘을 찾아 헤매던 프랭크는 우연히 토미와 마주치게 되었다. 세계 챔피언을 지낸 토미는 유 명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적극적으로 지금 벌어지는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토미 는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프랭크 로시는 토미를 만나는 순간 드디어 한 가닥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미에게 물어 보면 지금 다니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 요. 챔피언. 여기에서 만나다니 무척 반갑군요. 프랭크가 토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보냈다. 비록 챔피언 벨트를 다른 선수에게 넘겨 주긴 했지만 그의 쟁쟁한 전력 때문 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아직까지도 챔피언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프랭크가 인사를 하 자 토미가 뒤로 돌아섰다. 아니? 당신이 바하마에서 머무르고 있다니 정말 뜻밖이군 요. 토미가 반색을 하면서 프랭크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서 더니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이만 실례합니다. 오래간 만에 친구를 만나서... 괜찮아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토미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프랭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 하마까지 날아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프랭크. 프랭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 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토미의 말을 들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프랭크 로시는 토미를 응시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챔피언, 나는 알더 베네브치라고 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기쁘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프랭 크는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잘 지내고 있죠, 당신은? 요즘 아주 힘 들게 살고 있어요. 프랭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토미를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끌어당겼다. 토미는 조용히 프랭크의 뒤를 따라갔다. 토미는 프랭크 로시의 표정을 보 면서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프랭크의 뒤를 따라갔다. 프랭크 로시가 자신을 알더 베네브치라고 소개할 때부터 무엇인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왜 그래요? 토미는 들고 있던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물어 보았다. 프랭크 로시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어 보었다. 챔피언, 그런데 혹시 바하마에서 다니엘을 만나지 못했어요? 오늘은 다니엘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제는 만났었죠. 사실은 나도 그 일 때문에 다니엘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토미가 걱정스러 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프랭크가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다니엘은 메드닉 회장을 만나러 가겠다고 한 다음부터 소식이 없었어요. 다니엘은 위험을 무릅쓰고 메 드닉 회장의 전용층으로 올라갔었어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토미는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토미는 다니엘이 지난 밤에 메드닉 해리슨의 전용층에서 어떤 사실을 알아내었는지 그리고 지 금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챔피언, 난처한 문제가 생겼어요. 아무래도 다니엘이 실종된 것 같습니다. 나를 좀 도와주세요. 프랭크가 토미를 쳐다보면서 말 했다. 물론이죠. 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랭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 해서 가능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프랭크는 메드닉 회장이 가짜라 는 사실과 뉴월드 그룹을 노리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음모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 주었 다. 아무래도 누군가 뉴월드 그룹을 노리고 있는게 분명해요. 다니엘은 그 음모의 소 용돌이에 휘말려서 지금 위험에 처해 있을 겁니다. 세상에! 토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에요, 챔피언. 그 사람은 분명히 가짜였어요. 그 사람이 진짜 메드닉 해리슨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했어요. 프랭크가 자신을 만났던 메드닉 해리슨에 대해 말하면서 이야기글 마쳤다. 아무리 그렇지만 어떻게 그 렇다고 단정할 수 있죠? 어떻게 가짜 메드닉 회장이 생기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토미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토미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믿 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고 인정합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 요. 하지만 챔피언. 그 메드닉 해리슨이 누구입니까? 바로 뉴월드 총수 메드닉 해리슨 이 아닙니까?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요.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짜라면 어떻게 되겠었 요? 프랭크가 확고한 표정으로 토미에게 말했다. 당신이 메드닉 회장을 만났던 이야 기를 다시 한 번 해보세요. 프랭크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안내를 받으면서 전용층으로 올라가 메드닉 해리슨 회장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실 난 지금까지 한 번 도 메드닉 회장을 만났던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알더 베네브치라는 이름도 아무렇게 나 둘러대었던 이름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토미가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나는 메드닉 회장에게 당신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고 주장했죠. 그런데 그 는 내 말이 맞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거예요.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입 니까? 게다가 내가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표 정을 지었어요. 마치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는 듯이... 그렇군요. 토미는 연신 고개 를 끄덕이면서 프랭크 로시가 말한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프랭크는 마 지막으로 메드닉 해리슨이 가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챔피언, 만일 그 자가 가짜 메드닉 해리슨이라면 난 아마 로버트 레드포드일 겁니다. 내가 마음대로 이 야기를 아무렇게나 꾸며대었는데, 그 메드닉 해리슨이라는 자는 그것도 모르고 사실이 라면서 맞장구를 치더군요. 그가 진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토미는 잠시 동안 입 을 다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열거 한 마디 던졌다. 혹시 메 드닉 해리슨 회장이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건 아닐까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 린 메드닉회장이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는 분명히 가짜였어요. 프랭크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 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프랭크는 몹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토미의 생각이 너무나 순진했기 때문이었다. 프랭크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지금 중요한 건 다니엘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내 말 알겠어요, 챔피언? 프랭크가 토미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알았어요, 프랭크. 나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당신을 힘껏 돕겠어요.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다니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죠? 프랭크가 궁금 한 듯이 물어보았다. 어제 오후였어요. 토미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프랭크는 잠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토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니엘은 최소한 12시간 전부터 실종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요. 다니엘이 무슨 사고를 당한 것 같 은 기분이 들어요. 다니엘이 나를 바하마로 불러서 이곳에 도착했지만, 와서 보니 흔 적도 없이 사라진 다음이었어요. 다니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프랭 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토미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생각을 해 봐야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가요? 그렇다면 언제든지 말을 해주세요. 만약 다니엘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 주먹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토미는 단순하기는 했지만 의리 있고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토미 는 프랭크 앞에서 솥뚜껑만한 자신의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비록 토미 의 행동은 세련되지 못했지만 의리와 의협심에 있어서는 토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 을 정도였다. 프랭크는 토미를 믿을 수 있었다. 사각의 링 위에서는 상대를 거칠게 몰 아붙이면서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마음은 순박하고 단순한 법이었다. 토 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프랭크 로시는 토미가 허풍이나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든든하게 느껴졌다. 프랭크는 토미가 몹시 믿음직스러웠다. 만약 다니엘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토미와 같은 친구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것이다 고마워요, 토미. 나도 내 생각이 틀렸으 면 좋겠어요. 다니엘이 잠시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갔거나 메드닉이 가짜라면 나도 마 음이 이렇게 초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다니엘 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만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토미가 프랭크 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어쩌면 지금 다니엘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악당들에게 사로잡혀서 말이죠. 프랭크 로시는 토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 다. 하지만 다니엘의 흔적은 어디에도 찿을 수 없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뭔 가요? 챔피언, 당신은 계속 파티장 주위를 둘러보세요. 나는 다른 곳을 찾아보겠어 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마시면서 화려한 분위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길버트 부부에게 다가가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길버트 부부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말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몹시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버트 부부와 이야기를 마친 레베카 더글라스 는 파티장에 마련된 단상으로 걸어갔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 를 주목해 주십시오. 단상에 올라선 레베카 더글라스는 마이크를 통해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주목해 줄 것을 부탁했다. 떠들썩하던 파티장이 잠시 조용해지자 레베카 더글라스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길버트 부부께서 마련한 파티의 하이 라이트인 스키 기증식이 있겠습니다. 영화 관계자 분들께서는 모두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빛낼 분들입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말이 끝나자 몇 명의 사람들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 위에는 길버트 부부 이외에 헐리우드 영화 박물관의 소장을 비롯한 초대 손님들이 올라갔다. 메드닉 해리슨도 로라를 데리고 나 타났다. 메드닉은 당당한 태도로 단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저 사림이 메드닉 해 리슨이야! 누군가 작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메드닉 해리슨 에게 쏠렸다. 파티장은 조용한 가운데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메드닉 해 리슨이 손녀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걸어가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옆으로 비키면서 길을 내어 주었다. 메드닉 해리슨과 함께 걸어가던 로라의 얼굴은 어쩐지 창백해 보였 지만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드닉 해리슨이 로라와 함께 의자에 앉자 단상의 자리는 모두 주인을 찾았다. 스키 기증식의 사회는 토크쇼의 황제 라고 불리는 월터 휘버스가 맡고 있었다. 사회자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스키 기증식을 선언하자 파티장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긻버트 부부는 유명한 원로 영화배우였다. 단상 주위에는 길버트 부부를 취재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찾아온 신문과 잡지의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길버트와 친분이 있는 정치계와 경제계의 저명한 인사들도 끼여 있었다. 한 사람씩 간단한 인사의 말이 진행되었다. 소개가 모 두 끝나자 사회자는 스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곧바로 길버트에게 마이크를 옮겼다. 길버트는 천천히 마이크가 있는 단상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파티에 참석한 사 람들은 평생 동안 영화에 전념했던 노인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기자들은 길버트 를 담기 위해 곳곳에서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렸다. 길버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 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내 마음이 매우 기쁜 날입니다. 오늘은 여기에 있 는 이 스키를 영화박물관에 기증하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 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길버트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늙은 부부가 지금까지 살아온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그 들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길버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간간이 웃음과 감동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길버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갈증을 느꼈는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길버트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길버트가 다시 말을 시작할 때까지 파티장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 자리는 우 리 부부의 기념일 외에도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잃 었던 가족을 찾았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길버트는 뒤로 돌아서 더니 손을 들어서 메드닉 해리슨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켰다. 메드닉 해리슨 회장님 과 그의 손녀 로라 해리슨 양이 바로 우리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 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주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제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 던 놀라운 사실이 각계각층의 유명 인상들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메드닉 해리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라와 레베카 더글라스가 메드 닉의 양 옆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점차 술렁거 리기 시작했다. 토미와 헤어진 후에 프랭크 로시는 파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람들 의 관심이 온통 파티장에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전용층에 대한 경비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가짜 메드닉 회장과 레베카 더글라스도 파티에 참석 하고 있기 때문에 전용층을 통제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프랭크는 고객용 엘리베이터 를 타고 끝까지 타고 올라간 다음 18층으로 통하는 비상구를 찾아보았다. 복도 끝으로 비상계단이 나 있었다. 프랭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비상구로 올라갔다. 그계단을 올라가자 이번에는 18층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나타났다. 프랭크는 평소에 익혀 놓았던 실력을 발휘하면서 철문을 열기 시작했다. 프랭크는 만능열쇠를 항상 휴대하고 있었 다. 몇 차례 시도했을 때, 드디어 찰카닥하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프랭크는 의기양양하게 육중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알더 베네브치 씨.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메드닉 해리슨의 주 치의 앤소니였다. 앤소니는 커다란 체격의 경호원 한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무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체격 자체가 아주 위협적이었다. 프랭크는 그들과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하면서 앤소니를 쳐다보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당신은 앤소니 씨 아닙니까? 메드닉 해리슨 회장이 당신을 무척 신뢰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죠? 비상구에 화장실이 없다는 건 무 척 불편한 일입니다. 이런 고급 호텔에서는 분명히 개선할 만한 사항이지요. 알더, 헛소리는 그만 집어치우고 이곳에 무슨 이유로 올라왔는지나 말해 보시 오. 방금 말 했잖소? 화장실을 찾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당신이 나를 좀 화장실까지 안 내해 주면 좋겠는데... 그게 싫다면 난 그만 돌아가겠소. 프랭크는 이렇게 말하면서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 프랭크의 태도는 완전히 앤소니를 무시하는 것 이었다. 앤소니는 그러한 프랭크의 넉살을 보면서 그만 혀를 내둘렀다. 알더를 잡 아! 앤소니가 경호원에게 명령했다. 앤소니의 목소리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앤 소니의 명령을 받자 경호원은 커다란 손으로 뒤돌아서는 프랭크의 어깨를 붙잡았다. 프랭크는 거칠게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돌아서면서 말했다. 이것 봐. 내가 누 구인 줄 알아? 나로 말하면 메드닉 해리슨 회자의 친구 알더 베네브치야. 자네들 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메드닉 해리슨 회장에게 혼쭐이 날 각오를 해야할 거야. 이젠 그 만 입 닥치고 있어! 당시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군. 로즈마리가 이미 우리에게 모 든 사실을 알려 주었어. 그런데 메드닉 회장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앤소니가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그건 메드닉 회장의 얼굴에 수술자국이 나 있었 기 때문이지. 누구의 솜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팔이가 수술을 한 게 분명해. 프랭크가 빈정거리면서 대답했다. 앤소니는 그 말을 듣자 몹시 흥분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어. 어느 누구도 메드닉 회장이 성형 수술을 했다는 걸 알아볼 수 없어. 너의 정체는 도대체 뭐야? 앤소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앤소니의 표정은 매우 험악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프랭크 로시는 여전히 침착했다. 위기에 몰렸지만 프랭크는 전혀 이성을 잃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프 랭크의 얼굴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의 초조한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랭크는 앤소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프랭크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앤소니는 그 눈동자를 보면서 이사람이 더 이상 우쭐대기 좋아하는 중년 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랭크의 시선은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형사처럼 날카롭게 앤소니 의 눈동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을 때 오히려 기가 죽은 것은 앤소니였다. 다니엘 블레이크 씨는 지금 어디에 있지? 프랭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쯤 다니엘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즐기고 있을 거요. 해안가 절 벽에서 말을 타고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지 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다니엘은 죽으면서도 대단한 행운을 누리게 되겠군. 죽음의 동반자로 아름다운 여자에 그를 걱정하는 충실한 친구까지 대동하게 되었으니까 말이 야. 앤소니가 프랭크를 바라보면서 측은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서 경호원에게 명 령했다. 끌고 가게. 알겠습니다. 커다란 체격의 경호원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더 니 프랭크를 위협했다. 프랭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뒤로 돌아서서 두 손을 치켜든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호원이 프랭크 로시를 끌고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앤소니는 마음을 놓고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프랭크는 동양 무술과 운동으로 단련한 몸이었다. 뒤에 있는 경호원이 아무리 체격이 크다고 하지만 신체에는 급소가 있기 마련이었다. 프랭크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결정적인 기회가 다가 오기를 노렸다. 상대가 워낙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는 오직 한 번 뿐이었다. 단번에 정확히 급소를 가격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렵게 찾아온 그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프랭크는 너무 긴장해서 몸이 굳어지지 않도록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복도를 돌아섰을 때 프랭크는 모든 힘을 오른쪽 팔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왼쪽으로 회전시 키면서 총을 든 상대의 오른쪽 팔을 잡고 사정없이 꺾었다.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경호원의 관절이 탈골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프랭크 로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른팔을 들어올리면서 팔꿈치로 경호원의 인중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단 한 번의 타 격으로 경호원은 쿵하는 소리를 내면서 복도에 쓰려졌다. 프랭크는 잠시 경호원을 내 려다보았다. 경호원은 죽은 듯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프랭크의 정확한 공격으로 인해 커다란 체격의 상대는 부러진 팔을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프랭크의 공격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경호원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후에 프 랭크는 서둘러 다니엘을 찾기 위해 달려갔다. 메드닉의 전용층에 잠입한 프랭크는 주 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프랭크는 침실로 쓰이는 듯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침대 위에서 다니엘이 벗어 놓은 듯한 옷을 발견했다. 프 랭크는 그 옷을 집어들고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 옷은 분명히 다니엘이 입고 있던 것이었다. 프랭크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슨 다른 흔적들이 있는지 조사를 하기 시작 했다. 침실 바닥에는 다니엘을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밧줄이 흩어져 있었다. 프랭크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얼마 전까지 이 방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로 간 것일까?.프랭크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조금 전에 만났던 앤소니는 다니엘이 지금쯤 해안가 절벽에서 말을 타고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 을 거라고 했다. 그 순간 프랭크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해안가 절벽이 라면 아미보셤 호텔과 이어진 숲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니엘을 절벽에서 떨어뜨릴 작정이었어. 마치 말을 타다가 떨어진 것처럼 꾸미려고... 그래서 다니엘의 옷이 여기에 있는 거야.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승마복으 로 갈아입도록 했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프랭크는 더 이상 꾸물거릴 수가 없 었다. 다니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이다. 프랭크는 서둘러 17층으로 달려가서 고객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프랭크 로시는 서둘러 파티장으로 들어가서 토미 를 찾아 보았다.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토미는 길버트 부 부의 스키 기증식이 열리고 있는 동안 다니엘을 찾기 위해 이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 다. 챔피언. 프랭크는 다급한 목소리로 토미를 불렀다. 토미는 서둘러 프랭크가 있 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다니엘이 있는 곳을 찾았어요. 어서 달려가도 록 해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니엘이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을 겁니다. 어서 그곳으 로 가도록 하죠. 토미가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해변가 절벽으 로 이어진 산책로를 달려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미는 다니엘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돕겠다고 약소했다. 막 산책로를 벗어났을 때, 절벽을 바라보던 토미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저기를 봐요. 토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 았던 프랭크 로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니엘이 덩치가 커다란 경호원 두 명에게 위협을 받으면서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한 필의 말을 끌고 뒤따라가고 있는 경호실장 마틴이 보였다. 다니엘을 그 말 에 태워 절벽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끌고 가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급한 상 황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프랭크가 다급하게 말했다. 챔피언, 저 덩치가 커다란 두 친 구가 다니엘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 틀림없어요. 도와 줄 수 있겠죠? 그런 문제라 면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토미는 프랭크 로시를 향해 자신 있다는 듯이 말하면서 어깨를 가볍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몸을 좀 풀 수 있겠군! 토미는 프랭크 로시가 미 처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조금도 지체하니 않고 다니엘이 있는 절벽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갔다. 그 기세는 마치 태산이라도 뭉개 버릴 듯이 굉장한 것이었다. 프랭크도 서 둘러 뒤따라가면서 일이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때마침 토미가 있어 주어서 얼마 나 다행인지 몰랐다. 다니엘은 로라에 애해 걱정하면서 절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 후에는 죽게 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로라에 대한 걱정이 더욱 앞섰 던 것이다. 다니엘의 사랑은 그렇게 깊은 것이었다. 다니엘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질풍처럼 달려오는 토미와 그 뒤를 따오는 프랭크의 모습을 발견했다. 다 니엘은 그를 감시하고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을 무시하고서 대담하게 한 발자국 나서면 서 큰 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어이. 챔피언! 알더 씨도 함께 왔군요! 경호원들은 약 간 당황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경호원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알 수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챔피언과 알더가 지켜보는 앞에서 다니엘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다니엘. 그렇지 않아도 당신을 찾고 있던 중입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토미가 다니엘 앞에서 걸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그러자 프랭크 로시도 덩달아서 소리쳤다. 나도 찾 고 있던 중입니다. 다니엘. 요즘 기분이 어때요? 경호원들은 어쩔 줄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뒤에서 말을 끌고 따라오는 마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틴도 알더라는 사 람이 메드닉 해리슨의 친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 었다. 마틴은 말을 끌고 힘겹게 다가섰다. 다니엘과 두 사람은 경호원들이 있는 것을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들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경호원 들은 그들이 말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없었다. 마틴은 다니엘에 대한 처리를 아무도 모르게 사고로 위장해야 한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 다른 두 사람 의 등장으로 인해 마틴은 아직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 다.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이런 식으로 반가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 랐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다니엘. 프랭크 로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 다. 다니엘은 서둘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두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경호원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면, 마틴은 모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분명히 그들 두 사람마저도 죽이려고 시도할 것이다. 마틴이 무슨 일인지 조금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면서 말해야 한다. 잠시 생각을 정리 하던 다니엘이 웃으면서 토미에게 말했다. 챔피언, 우리가 여기에 도착해서 처음 만 났을 때, 당신이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무슨 얘기였죠? 토미가 궁금하다 는 듯이 물어 보았다. 당신은 매니저에게 이런 말을 했었죠? 앞으로는 1천만 달러 이 상의 개런티를 받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토미는 다니엘이 말 하는 의미를 금방 알아들었다. 아, 그거요. 물론 기억하고 있죠. 그러니까 여기에서 그 모습을 보여달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토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문했다. 맞아 요, 그런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어요. 1천만달러의 개런티는 내가 주겠어요.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다니엘을 감시하고 있던 경호원들은 무슨 영문인 지 몰라서 마틴의 눈치를 살펴 보았다. 마틴은 아직까지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요. 토미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경호원들은 선뜻 1 천만달러를 지불하겠다는 다니엘의 말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다음 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그럴 수 있어요? 다니엘 이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물어 보았다. 그거야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 론 당신의 부탁은 들어 드리겠지만 그 정도로는 개런티도 받지 않갰어요. 너무 쉬운 일이어서... 토미가 말을 마쳤을 때 상황은 이미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니엘의 오른쪽에 서 있던 경호원을 향해 토미의 강력한 오른손 주먹 이 날아갔던 것이다. 1천만달러라는 말에 놀라고 있던 그 경호원은 느닷없이 날아온 챔피언의 주먹에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쓰러졌다. 경호원도 무술을 익힌 실 력자라고 하지만 그의 상대는 세계 챔피언을 지낸 토미였다. 이미 시작할 때부터 상대 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토미가 날린 육중한 주먹은 무방비 상태로 있던 경호 원들이 턱뼈를 가루로 만들 만큼이나 위력적인 것이었다. 그 한 방으로 경호원과 토미 의 대결은 단번에 승부가 결정된 것이다. 그 사이에 프랭크는 품 속에서 권총을 뽑으 려고 하는 다른 경호원을 향해 재빨리 달려들었다. 경호원이 토미를 노리고 권총을 쏘 려는 순간, 프랭크가 그의 팔을 잡고 거칠게 비틀었다. 경호원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 겼지만 총알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프랭크가 손에 힘을 주자, 경호원은 비명을 지르면서 권총을 떨어뜨렸다. 토미는 프랭크에게 팔을 잡혀서 버둥대고 있는 경호원을 향해 다시 두 번째 주먹을 날렸다. 토미의 주먹을 맞은 경호원은 바닥에 완전히 뻗어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마틴은 서둘러 말에 올라타고 달아나기 시작 했다. 토미의 주먹에 맞으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다니엘은 마틴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바퀴가 아주 두꺼운 할리 데이비드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다니엘은 그 곳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청년을 밀어 버렸다. 청년은 전혀 예상 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보기 좋게 꼬꾸라지고 말았다. 정말 미안하네. 자네 의 오토바이는 내가 잠시 빌려야겠어. 다니엘은 청년을 향해 미안한 마음으로 손짓을 한 번하고 나서 마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승마를 구실로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던 레 베카 더글라스의 계획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마틴이 말을 타고 쫓기는 신세가 되 고 말았던 것이다. 바하마의 해변가에서 갑자기 숨막히는 경주가 벌어졌다. 말과 오토 바이의 경주는 아주 스릴이 넘치는 것이었다. 마틴의 승마 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이 아 니었지만 다니엘의 오토바이 실력도 대단한 것이었다. 경주는 서로 앞을 다투는 긴박 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랭크가 소리를 치면서 다니엘에게 응원을 보냈다. 조금만 더 빨리 달려요, 다니엘! 드디어 승부가 결정되었다. 엔진소 리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마틴의 뒤를 따라잡은 다니엘이 오토바이를 돌려서 말머 리를 가로막자 말이 흥분하면서 마구 날뛰었다. 그 바람에 마틴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지더니 모래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니엘은 마틴을 향해 달려들면서 거칠 게 주먹을 날렸다. 경호실장 마틴은 다니엘의 분노에 가득 찬 주먹이 얼굴과 배에 사 정없이 내리꽂히자 그대로 모래밭에 길게 드러눕고 말았다. 잠시 후에 프랭크와 토미 가 그곳에 도착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도어 버린 마틴을 바라보면서 토미가 재미있 는 듯이 말했다. 경호실장님께서는 지금부터 우리의 경호를 받으셔야 하겠군요. 프 랭크도 토미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렇게 되고 말았군요. 경호실장님도 높 은 사림이니까 경호를 받을수 있는 겁니다. 그랭크, 어서 마틴을 끌고 바하마 경찰 서로 찾아가도록 해요. 그리고 지미 경감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고 경찰을 출동시키라 고 말해 주세요. 나는 로라를 찾아봐야겠어요. 빨리 서둘러 주세요. 다니엘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베카의 음모 때문에 말에 올라탄 채로 절벽에서 추락해 죽을 뻔했 던 다니엘은 그렇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항상 로라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일은 위험에 처해 있는 로라와 메드닉 회장을 구출하고 레베 카 더글라스의 음모를 사전에 막는 것이었다. 위기2 지금 파티장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이크 앞으로 걸어나온 메드닉 회 장은 아주 다정한 모습으로 길버트와 포옹을 나누었다. 진짜 가족의 상봉처럼 뜨거운 포옹이었다. 길버트 부부와 차례로 포옹을 마치고 난 메드닉 회장은 마이크를 향해 이 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술렁거림이 가라앉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메드닉 회 장의 이야기가 파티장에 울려 퍼졌다. 많은 분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의 아해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손녀가 한명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로라에 대 해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에게 또 다른 한 명의 손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새로운 손녀를 소개하겠습니 다. 메드닉 회장이 말을 마치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기자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고 움직임도 민첩해졌다. 뉴월드 그룹의 총수 메드닉 회장에게 새로운 손 녀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특종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길버트 씨의 외손녀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바로 저기에서 있는 엘리자베스가 나의 친손녀입니다. 메드닉 회장은 레베카 더글라스가 서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 이 레베카 더글라스에게 집중되었다. 레베카 더글라스는 메드닉 회장을 향해 달려가서 그 품에 안겼다. 그것은 매우 극적인 연출이었다.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는 속도가 더 욱 빨라졌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는 동안에 여기저기에서 기자 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모든 것들이 레베카 더글라스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마구 쏟아지자 메드닉 회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 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메드닉 회장이 이렇게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면서 매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메드닉 회장에게 쏠려 있었다. 프레디도 놀라운 일을 목격한 사람처럼 물끄러미 메드닉 회장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에! 레베 카 더글라스가 바로 메드닉 해리슨 회장의 손녀였다니... 그래서 메드닉 해리슨 회장은 뉴월드 그룹의 모든 일들을 레베카 더글라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었구나. 프레디는 깜짝 놀라면서 레베카 더글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 열대 식물이 심어진 화분 뒤에서 파티장을 지켜보던 검은 그림자가 슬며시 모 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놀랍게도 오래 전에 피터에게 앤드류 부부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마약 밀매 조직의 보스였다. 그는 손을 들고 파티장에 와 있던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그의 부하들 중에는 파티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여러 명이나 되었다. 그것 도 모두 레베카 더글라스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즉시 예정된 일을 하 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단상 위의 메드닉 회장에게 쏠려 있었다. 종업원으로 위장하고 있던 마약 밀매 조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골동품 스키를 훔치기 시작했다. 진열대에 놓여 있던 스키가 종업원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 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것을 인식했다고 해도 의 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프레디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종업원들이 스키를 옮 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프레디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종업원들이 스키를 옮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프레디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스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니? 누 구의 허락을 받고 스키를 옮기는 거야? 프레디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건 ……. 스키를 들고 있던 종업원이 약간 망설이면서 말했다. 지금 길버트 부부의 스키를 진열 대에 다시 갖다 놓도록 하게. 그럴 순 없어. 그들 중에 한 명이 주먹으로 프레디의 머리를 거세게 후려쳤다. 프레디는 머리를 맞고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스 키를 들고 있던 종업원들이 서둘러 파티장에서 빠져나갔다. 저자가 길버트 부부의 스 키를 훔쳐가고 있어! 어서 저자를 잡아! 프레디가 겨우 몸을 일으키면서 소리를 질렀 다. 하지만 프레디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키를 훔치고 있던 일당이 총을 쏘았던 것이다. 탕! 아미보셤 호텔의 파티장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프레디 는 가슴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프레디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파 티장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경호원들과 스키를 훔치러 온 마약 밀매 조직원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스 키를 훔치던 범인들은 벽 뒤에 몸을 숨기면서 총을 쏘았다.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전개 되던 도중에 갑자기 총성이 멈추었다. 범죄 조직의 보스가 여자 한 명을 방패로 삼아서 경호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는 놀랍게도 메드닉 해리슨 회장의 손녀 로라였다. 그는 로라를 인질로 잡은 채 파티장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로 라 해리슨 때문에 함부로 총을 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란 눈으로 상황 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인질이 된 로라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 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처음부터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로라 해리슨은 몸을 움직이면서 반항하거나 소리도 지르지 않고 고분고분 범인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 였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이 권총을 들고 있는 범인의 위협 때문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로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전에 철저하게 계산된 일이었다. 경호원들과 범인들 사이에 벌어진 총격조차도 레베카 더글라스의 음모에 따른 것이었다. 레베카 더글라스 혼란한 기회를 이용해서 뉴월드 그룹을 인수하는 일에 방해가 될 만한 프레디를 죽이고 로라로 자연 스럽게 범인들에 의해 죽은 것처럼 위장할 생각이었다. 로라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인질 로 잡고 있는 할아버지의 신변을 걱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범인에게 인질로 잡혔다. 로 라를 인질로 잡았던 일당들은 혼란스러운 파티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다니엘과 프랭 크 그리고 토미가 바하마의 경찰들을 이끌고 들이닥쳤을 때, 파티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아미보셤 호텔의 종업원들만이 어수선한 파티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레베 카 더글라스와 앤소니 그리고 가짜 메드닉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다니엘은 호텔의 이곳 저곳을 정신없이 찾아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로라의 모습은 보이진 않았 다. 프랭크와 토미는 레베카 더글라스와 앤소니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과 함께 뉴월드 그룹의 전용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위험을 느 끼고 어디론가 도망을 친 것이다. 하지만 가짜 메드닉은 체포할 수 있었다. 마틴이 하 베이를 죽인 사실도 밝혀지게 되었다. 살인죄가 밝혀지는 동안 마틴은 한 마디고 입을 열지 않았다. 시종일관 무거운 침묵을 지켰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발등을 내려다보 기만 했다. 다니엘이 아미보셤 호텔의 이곳저곳를 뒤지다가 전용층으로 올라갔다. 프랭 크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다니엘에게 물어 보았다. 어떻게 되었나요, 다니엘? 로라를 찾았나요? 아직 찾지 못했어요. 정말 큰일이군요. 프랭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랭크는 다니엘을 만났을 때부터 그가 로라에게 깊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프랭크는 문득 로라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다. 다니엘은 아무 여자 나 쉽게 사랑할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한 다니엘이 사랑에 빠질 만한 여자라면 굉장한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프랭크는 사진을 통해서만 본 적이 있는 로라를 꼭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로라의 안전에 대해서 다니엘만큼이나 걱정하고 있었다. 다니엘 은 서둘러 지미 경감을 만나기 위해 걸어갔다. 지미 경감은 이번 사건에 대해 다른 형 사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이 지미 경감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미 경감님. 무슨 일이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다 니엘. 가짜 메드닉 회장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왜 만나고 싶은 거죠? 단지 몇 마디 물어 보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경찰에서 하는 일과 상관없는 문제에 대해서 말입 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다니엘이 정중하게 부탁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경 찰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다면 당신이 곧바로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 지요? 지미 경감이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물론이죠, 그런 일이라면 말씀하시지 않아 도 당연히 경찰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지미 경감이 고개를 끄덕이 면서 허락했다. 다니엘은 가짜 메드닉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가짜 메드닉은 모든 음모가 드러나자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이 정 말로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라의 행방에 대해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니 엘이 가짜 메드닉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힐끗 다니엘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 아 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몹시 초조한 듯이 가짜 메드닉을 설득하기 시작했 다. 레베카 더글라스와 앤소니가 모든 음모를 꾸민 장본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요. 우리에게 협조를 해 주면 당신의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 주겠습니다. 다니엘이 가짜 메드닉을 향해 간곡하게 부탁했다. 가짜 메드닉은 모든 것 을 포기한 상태였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얼굴까지 바꾸었던 일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 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다니엘이 원하 는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다니엘. 나는 레베카 더글라스가 시키는 대 로만 행동했기 때문에 나의 역할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가짜 메드닉이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로라 해리슨의 행방에 대해 알아내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다니엘에게 있어서 유일한 단서는 가짜 메드닉이었다. 다니엘은 그 를 통해서 반드시 행방을 알아내야만 했다. 가짜 메드닉이 로라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 고 해도 약간의 단서는 줄 수 있을 것이다. 제발 부탁합니다. 지금 로라 해리슨이 목 숨이 위험합니다. 하지만 가짜 메드닉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 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사람이라니? 레베 카 더글라스가 누군가와 은밀하게 통화하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어요. 레베카 더 글라스는 그 사람을 의원님이라고 불렀는데, 아주 지위가 높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가짜 메드닉 해리슨의 입에서 의원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다니엘은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무엇인가 단서를 잡았다는 듯이 활기찬 목소리로 프랭크 로시를 돌 아 보았다. 프랭크, 그 사람은 바로 리차드를 말하는 거예요. 어서 리차드의 행방을 알 아보세요. 상원원 리차드를 말하는 건가요? 프랭크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프랭크는 이 사건에서 리차드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 다. 그래요, 프랭크.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어요. 어서 리차드의 행방을 알아보 세요. 다니엘이 다급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마도 호텔 프론트의 직원이 알고 있 을 겁니다. 프랭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프랭크는 호텔 프론트 로 전화를 걸어서 리차드의 행방을 물어 보았다. 프론트의 직원과 통화를 한 후에 프랭 크는 다시 다니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리차드 상원 의원은 파티가 끝난 직후에 프론 트에 키를 맡기고 어떤 여자와 함께 호텔을 나갔다고 합니다.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호텔에 묵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로즈마리일 겁니다. 다니엘은 잠시 동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 들고 프랭크를 응시했다. 프랭크, 지미 경감에게 지금 당장 리차드와 로즈마리가 바하마를 떠나지 못하도록 공항을 통제 해 달라고 부탁하세요. 자세한 설명은 로라를 찾고 난 다음에 해 주겠다고 전해 주세 요. 알겠습니다, 다니엘. 프랭크는 지미 경감을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다니엘 은 프랭크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짜 메드닉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봐요, 당신은 로즈마리라는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있겠죠? 가짜 메드닉은 순순히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어디에 있죠? 아마 별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레베카 더글라스와 로즈마리는 서쪽 해안가 절벽 근처에 위치한 별장을 아지트로 사용 해 왔으니까요. 그렇다면 로라가 그 별장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글쎄요. 아마 그곳으로 끌려갔다면 살아 있기 힘들 겁니다. 별장은 곧바로 험한 바위 해안 절벽 으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가짜 메드닉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니엘은 그 이야기 를 듣자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시간을 끌다가는 로라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벌써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다니엘의 마음은 몹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서둘러 밖으로 달려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아미보셤 호텔에서 빠져나온 다니엘은 마침 손님 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발견하고 무작정 올라탔다. 하지만 그 마차에는 말을 모는 마부가 없었다. 마부를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었던 다니엘은 힘껏 채찍을 휘 둘렀다. 다니엘에게 채찍을 맞은 말들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항해 다니엘은 로라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를 찾아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로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니엘이 로라 해리슨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 도안 그녀는 장소를 전혀 알 수 없는 어느 어두운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로라 해리슨이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는 온통 암흑에 싸여 있었다. 로라는 해리슨이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는 온통 암흑에 싸여 있었다. 로라는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의 어둠 속에 서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문 밖에서 들어오는 리차드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리차드는 몹시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로즈마리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로라와 다니엘 때문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동안 빼돌린 돈을 가지고 이곳을 달아나는 수밖에 없어. 그 많은 메드닉의 재산 을 포기하고 말이야. 그런데 로라는 어떻게 할거죠?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요. 로즈마리가 리차드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나한테 계획이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 리차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어 떻게 할 생각인가요? 나에게 맡겨. 로라를 이대로 두고 떠날 순 없어. 당장 해안가 절벽으로 끌고 가서 없애 버릴거야!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로즈마리가 걱정스러 운 표정을 지으면서 리차드를 바라보았다. 물론이지. 로라가 죽을 곳은 험한 바위지대 니까 그곳에 떨어뜨리면 경찰도 한참 동안이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할 거야. 경찰이 로 라를 수색하는 동안 우리는 무사히 바하마에서 떠날 수 있을 거야. 리차드는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로라는 리차드의 말을 들으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잠시 후에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삐걱거리는 소 리가 들렸다. 로라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침착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갑자기 지하 실의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리차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로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리차드를 노려보았다. 리차드는 잠시 동안 로라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태연한 표정으로 로라의 등뒤로 다가와서는 의자에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 로라의 손과 발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 리차드는 로라의 등을 힘껏 떠밀었다. 어서 움직여!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로라는 어쩔 수 없이 지하실의 문을 나와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니엘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악당들에게 죽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들은 다니엘을 말에 태운 채 절벽에서 떨어뜨릴 계획이라고 말했 던 것이다. 로라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보다 다니엘의 일이 더 걱정되었다. 다니엘 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남자였다. 소중한 사람에게 만약 어떤 사 고가 닥쳤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로라는 끔찍한 상상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로라에게 기회가 온 것은 육중한 철문을 나선 다음이었다. 어둠 속으 로 경사가 매우 가파른 계단이 놓여 있었다. 로라는 뒤따라 올라오고 있는 리차드가 바 싹 다가오도록 매우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빨리빨리 움직여! 계단을 중간 쯤 올라갔을 때, 로라의 생각대로 뒤에서 리차드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등을 떠 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로라는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 로 라는 재빨리 돌아서면서 등을 떠미는 리차드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는 힘을 다해 그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체격이 건장한 리차드였지만 워낙 가파른 계단이었기 때문에 중 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리차드의 손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허공을 이리저리 휘어잡 았다. 로라는 다시 한 번 발로 리차드의 턱을 걷어찼다. 드디어 리차드는 뒤로 넘어지 더니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단이 무척 어두웠기 때문에 로라는 자신이 리차드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무조건 달 아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로라는 리차드가 지하실 바닥까지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계 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하실에서 올라온 계단은 별장의 뒷마당으로 이어지고 있 었다. 로라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어둠이 깔린 숲을 향해 무작정 달려갔다. 로라는 울창한 숲을 달리기 시작하고 나서 몇 분이 지나자 금방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 만 리차드의 손길에서 벗어나자면 서둘러야 했다. 로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 르면서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귀를 기울렸다.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 렸다. 누군가 낙엽을 밟으면서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숲에는 지금 로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다른 누군가 있는 것이다. 뛰어! 달아나야 해! 로라는 다시 달리기 시 작했지만 얼마가지 못해서 지치고 말았다. 다리가 풀린 로라는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로라는 자신의 움직임이 너무 큰 소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로라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숨을 죽이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로라는 길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로 가야 하지? 이대로 있다간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 거야. 잠시 동안 숨어서 휴식을 취하던 로라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라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걸었다. 잠시 후에 덩굴을 지났을 때 가파른 언덕 이 나왔다. 로라는 언덕을 따라 힘들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절반 정도 올랐을 때, 등뒤에서 로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라, 당장 그 자리에서 멈춰! 넌 어차피 도망가지 못해!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구! 리차드가 로라를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리차드는 끈질기게 로라를 뒤쫓고 있었다. 로라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로 라는 온몸에 남아있던 기운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같았다. 리차드는 로라보다 두 배 는 더 빠르게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힘을 내, 로라! 로라의 귓가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비록 환청이었지만 다니엘의 목소리가 로라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로라는 가파른 언덕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을 헉헉거 리면서 정상에 도달했을 때, 로라는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 이 끝장이었다. 가파른 언덕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절벽 밑으로 파도가 들이쳤고 바위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숨 을 곳도 달아날 곳도 없었다. 강한 바닷바람이 로라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젠 정말 어쩔 수 없어. 로라는 소금기가 배인 바람의 냄새를 맡으면서 다니엘을 생각했 다. 그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아니야, 살아서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 라! 이 절벽은 로라 해리슨이 죽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외로운 장소였다. 다니엘이 탄 마차는 아미보셤 호텔을 벗어나 로즈마리의 별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 다. 다니엘은 마차에 속도를 가하면서 로라가 제발 무사하기를 빌었다. 다니엘이 휘두 르는 채찍이 허공을 갈았다. 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달려갔다. 다니엘은 로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이 앉아 있는 마부석이 매우 삐걱거렸다. 빠 른 속도로 움직이는 마차의 뒤쪽으로 먼지가 마치 안개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갑자 기 달리던 마차의 바퀴가 돌에 걸리면서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 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다니엘은 자갈이 바퀴에 긁히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 를 들으면서 정신을 집중시켰다. 이 길은 마차가 달리기에는 몹시 위험했다. 마차가 별 장 입구에 막 접어들었을 때, 다니엘은 멀리 언덕을 기어오르는 로라 해리슨의 모습을 발견했다. 다니엘은 거칠게 숲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향해 미친 듯이 마차를 몰았 다. 얼마 후에 마차가 언덕에 도착하자 다니엘은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은 앞발을 높이 치켜들면서 그 자리에 멈추었다. 다니엘은 서둘러 마차에서 내린 후에 주위를 둘 러보았다. 멀리 언덕 위에 서 있는 로라 해리슨의 모습이 보였다. 그뒤로 로라를 뒤쫓 고 있는 리차드가 언덕을 기어르는 모습이 보였다. 다니엘은 재빨리 언덕 위로 달려갔 다.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로라가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언덕길을 어느 정도 올라가지 세찬 바닷바람이 사납게 몰아쳤다. 다니엘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다니엘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언덕을 잠시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언덕은 검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황량한 절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검푸른 바 다가 다니엘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절벽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다니엘은 리차드가 절벽에 도달하기 전에 따라잡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리차드가 로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땀이 온몸에서 비오듯이 흘 러내렸지만 다니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언덕을 올라갔다. 작은 나뭇가지들이 다니엘의 얼굴을 긁었지만 다니엘은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절벽에 거의 다다랐을 때, 다니엘은 로라를 뒤쫓는 리차드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리차드는 로라를 노리면서 서서히 접근하 고 있었다. 멈춰! 다니엘은 무서운 기세로 리차드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아니? 너는 다니엘? 리차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깜짝 놀라면서 다니엘을 쳐다보 았다. 다니엘은 달려드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리차드에게 주먹을 날렸다. 리차드는 배를 맞고 비틀거리면서 중심을 잃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기 위 해 다니엘의 옷을 움켜잡았다. 리차드와 다니엘은 뒤엉켜 절벽 위에서 뒹굴기 시작했 다. 리차드, 이젠 모든 게 끝났어요. 당신의 계획은 끝장이 난 겁니다. 차라리 자수를 하는 게 당신의 죄를 더욱 가볍게 만들 겁니다. 다니엘이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그 러나 리차드는 다니엘의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리차드는 다니엘과 로라를 죽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널 죽이고 말겠어. 리차드가 무서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디니엘은 어쩔수 없다는 듯 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럴수록 당신의 죄가 더욱 무거워진다는 걸 모르겠어요? 닥 쳐! 리차드가 다니엘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다니엘은 가볍게 피하면서 리차드 의 발을 걸었다. 그 바람에 리차드는 바닦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는 그만 항복하 세요. 다니엘이 리차드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리차드는 다니엘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런데 리차드가 주머니 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더니 순식간에 다니엘의 허 리를 찔렀다. 갑자기 다니엘은 허리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리차 드가 다니엘의 허리에 칼을 꽂았던 것이다. 다니엘은 혹독한 고통을 참으면서 로라 해 리슨을 바라보았다. 로라 해리슨은 잔뜩 겁에 질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교 활한 리차드는 이제 마지막 순간이라는 듯이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니엘을 향해 다가왔다. 급박한 순간이었다. 하늘에서는 검은 새 한 마리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녔다. 다니엘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다니엘의 손에는 커다란 돌이 들 려 있었다. 칼에 찔린 다니엘의 몸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온통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 한 순간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실수를 한다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무서 운 고통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니엘은 허리의 상 처 때문에 몸을 곧게 펴지도 못하고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있는 다니엘은 의식이 흐려 지고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리차드의 음침 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범인의 주먹이 다니엘의 얼굴로 날아들 것만 같았다. 다니엘은 마지막을 남아있는 모든 힘을 손에 모 았다. 지옥에나 가라! 다니엘은 리차드의 얼굴을 노리고 힘껏 돌을 던졌다. 방심하고 있던 리차드는 다니엘이 던진 돌에 맞고 비틀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니엘은 마지막 힘을 모아서 리차드를 절벽 밑으로 떠밀었다. 리차드는 비틀거리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내렸다. 으악! 리차드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절벽에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갑 자기 모든 것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차드를 삼켜 버린 바다 에서는 세찬 파도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다니엘은 이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 니엘은 위태로운 절벽에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상태는 좀 처럼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다니엘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에 다니엘 은 로라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니엘은 로라의 부드러운 손 길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니엘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럴 수 없어! 안돼! 다니엘은 비명을 지르며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났다. 다니엘의 몸은 온통 비오듯이 흘러내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다니엘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 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허리에서 무서운 통증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로 소 다니엘은 자신이 깨끗한 시트가 까려 있는 병원 침대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프랭크가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니엘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어떻게 자 신이 이곳에 와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프랭크? 다니엘은 프 랭크를 쳐다보면서 물어 보았다. 프랭크는 몹시 흥분하고 있던 다니엘을 안심시키기 위 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니엘.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다니엘이 조급한 마음으로 프랭크에게 물어 보았다. 다니엘은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얼 굴을 하고 프랭크가 대답해 주기를 기다렸다. 프랭크는 진정하라는 듯이 다니엘의 어깨 를 잡고 차분하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다니엘. 여기는 안전한 병원이에요. 이제는 모 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다니엘은 현기증을 느끼면 서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다니엘 은 그 여자를 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병실로 들어온 여자는 바로 로라였다. 로라! 다 니엘! 로라는 반갑게 달려와서 다니엘의 품에 안겼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뜨거운 키 스를 나누었다. 로라의 입술은 너무나 달콤했다. 로라와 함께 들어온 지미 경감은 다니 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니엘, 내가 왜 보다 일찍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모르 겠군요. 메드닉 회장이 가짜였다니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지미 경감이 쑥스 러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지미 경감님.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 했다. 상처는 좀 어때요? 지미 경감이 다니엘의 상태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상처가 그다지 깊지 않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얼마 동안 입원하고 있으면 완치될 거라고 했습니다. 프랭크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모든 것은 레베카 혼자 만들어낸 작품이었나요? 지미 경감이 다니엘을 쳐다보면서 물어 보았다. 그렇지 않아요. 다니엘이 머리를 흔 들면서 대답했다. 이번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지미 경감은 호기심을 감추 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배후에 또 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로라 를 한 번 돌아본 후에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베카 더글라스가 메 드닉 회장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가짜 메드닉을 만드는 것을 지원했던 배후의 인물 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그게 누군가요? 지미 경감이 다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사건을 뒤에서 조종했던 사람은 바로 리차드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리차드 상원의원이 이번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이 라구요? 설마... 다니엘의 말을 듣고 지미 경감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프랭크조 차도 다니엘의 말을 듣고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차드 상원의원과 다니엘은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사이였다. 리차드는 항상 다니엘에게 잘 대해 주었고 다니엘도 정계에 진출한 리차드 상원의원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 습니다. 리차드 상원의원이 의도했던 것은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최대한 확보한 후에 회사를 장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리차드의 목적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그 런 일을 꾸밀 수 있죠? 이번에는 프랭크가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그 런 비극을 만든 겁니다. 앞에서 그 일을 맡았던 것이 바로 레베카 더글라스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레베카 더글라스는 메드닉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되고 리차드는 뉴월드 그룹의 경영권을 획득하게 되는 겁니다. 다니엘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뉴월드 그룹을 노린 겁니까?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파죽겠어요. 지미 경감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점에 대해서는 로라가 잘 말해 줄 겁니다. 다니엘이 로라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제임스 교수님을 통해 뉴월드 그룹에 레이더스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교수님이 살해를 당했던 것도 그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말 악당이었어요.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다니... 지미 경감이 치를 떨면 서 말했다. 맞아요. 그리고 리차드 상원의원은 이번 일을 꾸미면서 그가 거느리고 있 는 계열사에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각각 1.8에서 4.9%씩 분산 매입토록 했습니다. 로 라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죠? 비록 힘들긴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 어요. 현행 증권거래법 제307조는 상장법인 총발행 주식의 5%이상을 매입할 경우에 한 해서만 5일 이내에 증권 거래소와 증권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차드 상원의원이 소유자로 드러나 있는 퓨처 기획 이외에 다른 계열사에서는 외부에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던 겁니다. 교묘한 방법이었군 요. 그래요. 그건 모두 리차드의 머리 속에서 나왔을 겁니다. 게다가 증권거래법은 법인의 경우 상호간에 30% 이상의 출자관계가 없으면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상원의원은 그러한 증권거래법의 맹점을 이용해서 계 열사 중에서 출자지분이 30% 미만이었던 다섯 개의 회사를 주식매입에 집중적으로 동 원했으며 결과적으로 보고의무도 면제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리차드 상원의원은 그렇 게 해서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20% 이상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할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레베카에게 상속하는 방법을 통해 보유 주식을 절대적 으로 늘일 생각이었어요.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뉴월드 그룹의 운영권은 리차드 상원의 원에게 그대로 넘어갔을 거에요. 로라가 사건의 전모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렇 군요. 지미 경감이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메드닉 회장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어 보았다.. 로 라가 다니엘을 응시하면서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무사해요, 다니엘. 나중에 경찰이 로 즈마리의 별장을 조사하다가 감금되어 있던 할아버지를 발견했어요. 할아버지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로라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니엘을 바라보았 다. 로라의 시선 속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다니엘은 프랭크와 함께 즐거운 마 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다니엘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후에 아미보셤 호텔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다니엘은 호텔에 도착하자 곧바로 메드닉 해리슨을 만나기 위해 전용층으로 올라갔다. 메드닉 회장은 다니엘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회장님. 이번에 당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레 베카의 정체가 드러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드닉 회장은 지난번에 다니 엘이 전용층으로 숨어들었을 때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레베 카의 음모에서 완전히 벗어난 메드닉 회장의 모습은 아주 활기가 넘쳐 보였다.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궁금 하죠? 현재 뉴월드 그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 까? 메드닉 회장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니엘. 회 장님의 능력이라면 단기간에 모든 일들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데 블레이크 그룹에서는 무슨 일 때문에 우리 회사의 주식을 매입했죠? 메드닉 회장 이 궁금한 듯이 물어 보았다. 뉴월드 그룹과 손을 잡고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었기 때 문입니다. 당신의 사업 제안이라면 자세히 들어볼 필요도 없겠군요. 나는 당신의 능 력을 믿습니다. 기꺼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 다. 난 사실 뉴월드 그룹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힘든 입장입니다.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해서... 그리고 로라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뉴월드 그룹을 맡기는 일 에 약간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다니엘, 당신도 대주주의 일원이니까 뉴월드 그룹의 경 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니엘은 메드닉 해리슨의 요구에 기꺼이 응 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니엘. 당신처럼 훌륭한 친구를 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서로 돕는 게 당연하죠. 회장 님이 빨리 회복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 드리겠습니다. 메드닉은 다니엘을 몹시 신뢰하 고 있었다. 다니엘과 메드닉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바하마의 사건을 계기로 다니엘 은 로라에게 그동안 품어왔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결혼을 신청했다. 로라는 기꺼이 다 니엘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다니엘은 로라와 함께 바하마의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두운 바닷가에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니엘과 로라는 바닷바람에 실 려오는 냄새를 맡으면서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 런데? 로라는 다니엘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결혼하면 작은 섬에 우리의 집을 짓는 게 어떨까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좋은 생각이 아닌가요? 그래, 난 연인 을 사랑하는 용감한 해적이 될 수 있을 겨야. 다니엘은 로라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어 는 사이에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두 개의 입술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그들은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으로 짝지어진 한 쌍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로 라, 우리가 살아갈 그 섬에 텔레비전은 있는거야? 다니엘이 궁금한 듯이 질문을 던졌 다. 그런 물건은 없는 게 좋아요. 공연히 방해만 될 테니까... 로라가 웃으면서 대답했 다. 그렇다면 축구중계도 볼 수 없단 말이지? 그럼요. NBA 농구시합도 볼 수 없 고? 다니엘이 한숨을 쉬면서 물어 보았다. 물론이죠. 로라는 그 일이 매우 당연하다 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연극 관람도 못하는 겨야? 그렇다니까요. 당 신은 언제까지나 나만 생각하고 사는거에요. 로라가 다니엘의 품에 안기면서 말했다. 좋아. 다니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니엘, 우리의 성대한 결혼식은 어디에서 올리죠? 대통령에게 부탁해서 백악관의 연회실을 사용하도록 하지. 주례는 법무장관을 세우고 결혼식 사회는 백악관 대변이이 맡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 모든 사 람들이 우리를 축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다니엘이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웃자 로라도 따라서 소리내어 웃었다. 바다는 부드러운 달빛을 받으면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였다. 비는 바하마의 더운 공기를 식 히면서 바다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선착장에 있던 곤잘레스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 면서 오랜만에 항해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열중하고 있었다. 곤잘레스는 조금 전에 메 드닉 회장으로부터 항해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곤잘레스는 즐거 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선착장에 묶여 있었던 메드닉 해리슨 호 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시 한 번 엔진을 확인하고 키에 기름을 바르고 통신장비를 시험해 보았다. 그동안 손 질을 잘해서인지 요트의 상태는 아주 좋았다. 요트는 모든 장비들에 이상이 전혀 없다 는 것을 확인한 곤잘레스는 선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곤잘레스는 메드닉 해리슨과 로라 해리슨 그리고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 속의 로라는 아직 나이 어 린 소녀였다. 로라는 할아버지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를 즐거운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 었다. 곤잘레스는 그 사진을 찍었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진을 찍었던 날은 꼭 10년 전 로라의 생일이었다. 세 사람은 그날 잡은 물고기로 저녁에 특별한 만 찬을 즐겼다. 곤잘레스는 메드닉 해리슨과 로라 해리슨 그리고 자신이 함께 항해를 떠 났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번 항해에 가슴이 부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항해에는 한 사람이 더 늘었다. 다니엘이 손님으로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 떠나는 항해는 더욱 멋질 것이다. 곤잘레스는 갑판으로 올라가서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 다. 저기에서 메드닉 회장과 로라 그리고 다니엘이 그대로 비를 맞으면서 걸어오고 있 었다. 그들은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에필로그 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바하마의 하얀 백사장 위로 그녀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갔다. 나는 언제까 지나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는 파란 하늘과 똑같은 색의 드레스를 입은 채 내 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놓인 모래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을 때, 나는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막힌 어떤 투명한 장벽에 부딪히 면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자꾸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는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녀 는 바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나의 몸에서는 흥건하게 땀이 쏟아졌다. 그녀의 몸이 서서히 바다에 잠기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지만 계속 그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이 바다 속에 절반이나 잠겼을 때 나 를 돌아보았다. 나는 길게 풀어헤친 머리카락 때문에 그녀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모습이 바다 속에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시간을 알 수 있는 건 아침 과 점심, 저녁 그리고 취침을 알리는 신호음을 통해서일 뿐이다. 창살 밖으로 보이는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저녁 시간이 거의 되어가 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하늘은 노을에 물들지 않고 있었다. 아직 날 이 저물려면 여러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 머리가 매우 무겁다. 나는 지난 밤에 낙서처럼 쓰다가 그대로 내버려두었던 항소이유서를 찾아 보았다. 내가 항소이유서를 쓰는 이유는 1심 법원에서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애초에 변호사를 수임해서 항소 따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마지막 기록으로 항소이유서를 쓰려고 생각했다. 왜냐하 면 공식적으로는 그것이 그들이 나에게 기록할 수 있는 펜과 종이를 제공하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내 인생의 모든 단편들이 머리 속에 서 어지 럽게 헤집고 돌아다녔다. 어렸을 때 옆집 소녀와 낡은 창고 속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른 다. 그 창고는 나의 병원이었고 제시카는 나의 첫 번째 환자였다. 나는 짚을 끌어 모아 서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제시카를 발가벗긴 채 드러눕게 만들었다. 나는 진흙으로 조 제한 약을 제시카의 온몸에 발랐다. 내가 제시카의 그곳에까지 약을 발랐을 때, 그 소 녀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의사가 되려는 꿈을 포기 해 버렸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아마도 그녀를 만나는 일고 그녀를 죽여야만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줄을 쓰고 있는 동안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 호음이 울렸다. 오늘 저녁의 메뉴는 지난 주 수요일 저녁의 메뉴와 똑같을 것이다. 어 렸을 때부터 나의 간절한 소망은 내 인생 전부를 걸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해 보고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고 말았다. 나의 야채수프와 감자 그리 고 구운 돼지고기. 나의 인생은 한 여자에 대한 지독한 사랑 때문에 완전히 빗나가게 되었고 그것이 허황된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파멸이 나의 눈 앞에 다가 온 것이다. 나의 사랑은 잠에서 깨어나 지나간 밤의 꿈을 회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 다. 그렇다. 인생이란 결국 마음속에 무성하게 자라는 꿈과 사랑들로 인해 한숨 지으면 서 늙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맛은 마지막 순간에 눈을 감으면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