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이야기 지은이:시드니 셀던 옮긴이:김숙자 펴낸곳:(주)영림 카디널 지은이:시드니 샐던 시드니 셀던은 지금까지 세게30여 개국에서 1억부 이상이 팔린 초 베스트 셀러 작가이며, 그의 모든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진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호텔보이로 일하면서 작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고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자 17살의 나이에 할리우드로 가서 고생 끝에 꿈에 그리던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고 제대한 뒤 닷 뮤지컬과 시나리오를 써서 크게 성공한다. 그 뒤 우연한 기회에 첫 번째 소설 "벌거벗은 얼굴"을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이 미국추리작가협회상을 받고 베스트 셀러가 되자 그 뒤부터는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깊은 밤 깊은 곳에", "시간의 모래밭", "별빛은 쏟아지고" 등이 있다. "...어린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지식을 넓히고 인간사회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드니 셀던 1 기적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성서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 중 몇 개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들은 2천년동안 전해 내려 왔다. 그 얘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하지만, 대단히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하늘가 땅을 창조한 하느님은 산과 나무와 짐승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알았다, 바로 인간이야!" 하느님은 한줌의 흙을 집어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서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는 하느님, 너는 아담이다." 아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에덴동산이다."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군요." "마음껏 즐겨라." 하느님이 아담에게 말했다. 아담을 만들어 낸 뒤에도 하느님은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짝이 있어야겠구나' 하느님은 생각했다. 아담이 잠든 동안 그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어 여자의 모습으로 빚어냈다. 이름은 이브라고 지었다. 아담은 이브를 보고 몹시 기뻐했다. "너희들 둘이 마음껏 즐기며 살아라. 그러나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하느님은 맛있어 보이는 사과가 열려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선악과인데 이 열매는 절대로 따먹어선 안 된다. "잘 알았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절대로 먹지 않겠습니다." 이브도 약속했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는 사탄이 보낸 사악한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너희가 아직 맛을 몰라서 그렇지, 이 사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거야." 뱀이 그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아담과 이브가 대답했다. "전부 다 먹어 없애라는 게 아니야. 딱 한 개만 먹어 보라구!" "한 개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브가 말했다. 두 사람은 사과를 한 개씩 따먹었다. 하느님은 매우 화가 났다. "너희들은 서약을 깼다. 큰 죄를 지었어!" 두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어쨌든 성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어느 날 하느님은 세상에 죄인이 너무 많은데 놀랐다. '내가 만든 인간들은 실수였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겠어!' 하느님은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인간 한 사람을 찾기로 했다. 그가 자손을 번성시켜 온 세상을 채워 나갈 것이다. 하느님은 매우 신중하게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온통 거짓말쟁이, 도둑놈, 살인자, 사기꾼이었다. 하느님은 매우 낙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가 눈에 띄었다. 소박하고 정직한 상품의 그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바로 저 사람이다!' 하느님은 결정을 내렸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말했다. "나는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여 모든 인간을 물로 쓸어버릴 것이다." "하느님,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겁니까?" 노아가 물었다. "네 가족만 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노아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물에 빠져 죽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지시를 내렸다. "내가 이르는 대로하여라. 방주를 만들어라. 아주 큰배여야 한다. 그 다음엔 온갖 동물을 암컷과 수컷 한 쌍씩 모아 네 가족과 함께 방주에 오르거라. 할 수 있겠느냐?" "해 보겠습니다." 노아가 대답했다. 노아는 그저 해 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내었다. 얼룩말과 코끼리, 호랑이, 사자, 원숭이와 말... 마치 동물원 같았다. 동물들은 줄줄이 방주로 들어갔다. 뒤따라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배에 올랐다.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걱정 없을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끝냈다. 그 다음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서에서 말하는 '비'란 엄청난 비였다. 한 순간도 그치지 않고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다. 마을과 도시가 쓸려 내려가고 온 세상이 다 쓸려갔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노아의 방주밖에 없었다. 방주는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싣고 물위를 둥둥 떠다녔다. 40일이 지나 모든 인간이 다 죽자 하느님은 방주를 아라랏 산에 머물게 했다. 물은 점점 빠져나갔고, 노아와 그의 자손들은 다시 세상을 번성시켰다. 자, 이쯤 되면 기적이라 할 수 있잖은가! 성서에 나오는 또 다른 기적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황을 하던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견딜 수 없었다.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었고, 관리가 될 수도 없었다. 또,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노예였다. 하루는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찾아와 말했다. "저희를 이 비참한 생활에서 구해 주십시오. 저희는 이제 종살이에 지쳤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집트 왕에게는 잘 무장된 막강한 군대가 있었다. 왕에게 대항한 사람들은 모두 무참하게 짓밟혔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모세가 말했다. 모세는 하느님께 말씀드리기로 했다. "하느님, 백성들이 불행에 빠져 있습니다. 짐승처럼 취급받는 것에 이제 지쳤습니다.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자신의 주장을 폈다가는 누구나 그 자리에서 처형됩니다.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모세의 간청을 들은 하느님은 응답했다. "모세야, 너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땅으로 가게 될 것이다." 모세는 미칠 듯이 기뻤다. 그는 즉시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오. 내가 하느님께 말씀드렸소. 나는 여러분을 이 땅에서 탈출시킬 것이오." 다음 날 아침, 히브리인들은 모두 모세가 알려 준 장소로 소리 없이 모였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나를 따르시오." 모세가 말했다. 길고 긴 고된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몰래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집트 국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홍해 근처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왕의 측근 한 사람이 히브리인 대열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왕에게 달려갔다. "히브리인들이 홍해 쪽으로 도망치고 있소. 모세가 이끌고 있소." 화가 난 왕은 장군을 불러 명령했다. "모세가 자기 백성을 이끌고 탈출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장 제지시키게." 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소리쳤다. "아니, 제지만 할 게 아니라 아예 모조리 죽여 버려! 알아듣겠지?" "알겠습니다, 폐하." 한 시간 뒤, 준비를 마친 왕의 군대는 말을 타고 홍해를 향하여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때, 홍해에 도착한 히브리인들은 바다를 건널 배를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배라곤 한 척도 눈에 띄지 않았고, 망망대해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한 사람이 모세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길 건널 수 없었다.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 겁니다." 모세는 매우 당황했다. 하느님이 그들이 탈 배를 마련해 두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를 만들어 봅시다." 모세가 대답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급히 달려 왔다. "왕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어요. 곧 도착할 겁니다." 모세는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그를 "저버린 것이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느님, 당신의 백성을 이렇게 버릴 수 있습니까? 이 집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하느님의 음성이 울렸다. "믿음을 가져라. 너의 백성들에게 바다로 걸어 들어가라고 전해라." 모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이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에는 복종해야 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소." 사람들은 매우 놀랐으나 뒤에서 군인들이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군인들에게 살해당하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나를 따라 오시오." 모세는 앞장서서 물 속으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기적은 일어났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며 가운데 마른 길이 드러나는 것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모두 환성을 지르며 서둘러 건너기 시작하였다. 무사히 건너온 그들은 건너편을 돌아보았다. 막 홍해에 도착한 군인들은 멀리 도망치는 히브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격하라!" 장군이 소리쳤다. 모세는 왕의 군대가 바닷속으로 돌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물이 그들을 덮쳤고 모두 고스란히 수장되었다. 하느님은 약속을 지켰다. 히브리인들은 구원을 받았다. 성서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는 또 있다. 이스라엘에 삼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귀의 턱뼈 하나만으로 천명의 군사들을 단번에 처치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왕은 삼손을 잡아들이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매번 그를 잡으려고 군인들을 보냈으나, 오히려 가는 족족 삼손에게 죽임을 당했다. 삼손에게는 델릴라라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왕은 델릴라를 꾀어냈다. "삼손을 잡아야겠는데 말이야, 우릴 좀 도와줘.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비밀을 좀 캐 봐." 다음 날 밤 델릴라는 삼손에게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물었다. "머리카락이지. 만일 누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약해지고 말 거야." 그날 밤 삼손이 잠든 틈에 델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약하고 힘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왕은 그를 사슬로 친친 동여매어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이제 자기네들보다 더 약한 삼손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가 복수하지 못하도록 두 눈을 빼 버리고 신전의 돌기둥에 사슬로 묶어 놓았다. 몇 주일이 지나갔다. 왕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었다. 아무도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신전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그 신전을 버텨 주는 기둥에 묶여 있던 삼손은 기둥이 빠져 신전이 모두 무너져 내릴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사슬을 잡아 당겼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삼손도 불행히 예외는 아니었다. 요나와 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느님은 요나에게 니비아 시로 가라고 했으나 요나는 그곳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른 할 일이 있어." 요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하느님이 노하시지 않을까?" 친구가 물었다. "하느님은 바쁘셔서 내가 가지 않은 걸 모를 텐데, 뭐." "너 그래도 괜찮겠니?"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요나가 말했다. 그는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떠나 버렸다. 요나는 큰 잘못을 범했다. 하느님은 요나가 한 행동을 알고서 대단히 화가 났다. 하느님은 무서운 폭풍우를 일으켰다. 요나가 탄 배는 바다에 떠도는 작은 나무토막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이러다간 침몰하겠어. 이게 모두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란 말이야!" 선장이 부르짖었다. 요나도 선장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배에 탄 사람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될 판이었다. "좋아, 내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지. 내가 이 배에서 뛰어 내리면 폭풍우는 그칠 테고 여러분은 살아날 거요." 요나는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느님께 복종치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선장과 선원들은 요나가 무시무시한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요나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다. 요나가 물에 빠지자 큰고래가 그를 삼킨 것이다. 고래의 깊은 뱃속에서 요나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사흘 밤낮을 잠시도 쉬지 않고 기도하자, 마침내 하느님은 그를 구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고래는 입을 벌리고 요나를 토해 냈다. 2천 년 전에는 사람을 사자 밥으로 던져주는 일이 관습처럼 행해졌었다. 남자건 여자건 범죄를 저지르거나 왕의 비위를 거슬리면 왕은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명령했다. "사자에게 던져 줘라!"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 가득 모여 앉은 사람들은 사자가 곧 죽게될 불쌍한 죄인을 공격하는 것을 구경했다. 다니엘이라는 훌륭한 젊은이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시기한 왕의 신하들은 다니엘이 왕을 나쁘게 마라고 다닌다는 모함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왕은 명령을 내렸다. "사자에게 던져 줘라!" 다니엘을 없애 버리게 된 그들은 기뻐 날뛰며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들이 우글대는 우리에 던져 넣었다. 곧 성대한 축하연이 펼쳐졌다. "이젠 더 이상 다니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제 우리가 왕의 총애를 받게 될 꺼야." 우린 내일 아침에 그이 뼈다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보러 가기만 하면 돼." 다음 날 아침, 사자 우리로 가 그들은 우리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자신들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니엘은 사자들 가운데 앉아 있었고, 사자들은 강아지처럼 그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하느님이 포악한 사자들을 유순하게 만들어 다니엘의 생명을 지킨 것이다. 그들은 다니엘을 우리에서 꺼내 주고 다시는 해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자, 기적 이야기를 계속 해 보자. 여러분은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되었는지 아는가? 한때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서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시의 한 시민이 제안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하늘 꼭대기까지 닿을 수 있는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한 번 해봅시다."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필요한 벽돌과 회반죽,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해가 갈수록 탑은 한 층 한 층 높아져 갔다.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죽어도 그 자리는 그들의 자식들이 이어갔다. 탑은 쉬지 않고 쌓아졌다. 탑은 위로 위로 점점 높아져 갔다. 여러 해가 지나고 드디어 탑은 그들이 처음에 계획했던 높이까지--하늘까지--다다랐다. 하늘 위로 솟은 탑을 보고 하느님은 매우 화가 났다. '저들이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거야. 이제 그러지 못하게 해야 해.' 하느님은 결단을 내렸다. 번갯불 같은 섬광이 지나간 뒤 갑자기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라틴어, 영어, 스페인어 등등. 이젠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해 졌다. 탑을 쌓으려고 책임자가 지시를 내려도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혼란이 일어났고, 탑을 쌓는 일은 중지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탑을 포기한 채 뿔뿔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이렇게 해서 여러 가지 언어가 생기게 되었다. 여러분은 십계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두 개의 석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 왔다는 것이다. 석판 위에는 십계가 쓰여져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계율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했다. 나는 비밀 하나를 여기서 밝히려 한다. 성서에는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실제로는 십이 계명이 있었다. 모세는 세 개의 석판을 가지고 내려 왔다. 그런데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그 중 하나를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결국 열 개의 계명만이 남게 되었다. 매우 난처해진 모세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십이 계명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두 번째, 우상을 만들지 말라. 세 번째,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네 번째,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다섯 번째, 부모를 공경하라. 여섯 번째, 살인하지 말라. 일곱 번째, 간음하지 말라. 여덟 번째, 도둑질하지 말라. 아홉 번째,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열 번째, 이웃집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열한 번째, 거짓말하지 말라. 열두 번째, 남을 해치지 말라. 모세는 이 계명을 깨는 사람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모세의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부터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부와 명성, 그리고 행복을 누렸다. 2 첫 번째는 두 개의 계명을 한꺼번에 어긴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 번째 계명과,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세 번째 계명을 깼다. 이 이야기를 한층 더 흥미롭게 해 주는 것은 그가 바로 신부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은 조지였다... 조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발로 성당에 나갔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아이였다. 십이 계명 중 어느 하나라도 깬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요일마다 성당에 갔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자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는 신부가 되겠어요." 다른 아이들은 온갖 장난을 치고, 유리창을 깨고, 거짓말하고 속이며 하느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지냈지만, 조지는 절대로 계명을 깬다는 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일반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신부가 되려는 학생들만 모여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 착하고 친절하고 고상한 성품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였다. 학생들은 모두 그를 멀리했고, 선생님들조차도 그를 미워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건 조지가 너무나 철저한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이 친절하다면, 조지는 더 친절했다. 다른 학생들이 순수하다면, 조지는 더 순수했다. 다른 학생들이 성스럽다면, 조지는 한층 더 성스러웠다. 아무도 그의 근처에 얼씬거리려 하지 않았다. 누가 눈곱만큼만 잘못을 해도 조지는 면전에 대고 말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돼! 하느님께서는 그런 행동을 좋아하시지 않아."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조지는, "거짓말하는 것은 나쁜 거야. 하느님께서는 그런 행동을 좋아하시지 않아." 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 올바른 행동하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신학생들이 보통 사람보다 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지는 너무 지나쳤다. 조지 앞에서 실수할까 모두 겁을 냈다. 조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부모님을 뵈러 집에 갔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담배는 악마의 풀이에요." 조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TV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 오늘은 주일이에요. TV를 보고 계시면 어떡해요? 성당 가서 기도하세요." 그의 막내동생이 말했다. "하느님 맙소사, 또 일요일이라고 옷을 새로 차려 입어야 된다니..." 조지는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하느님'이름을 그렇게 부르다니!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일은 절대로, 절대로 해선 안돼. 넌 지옥에 떨어질 거야." 지옥이 어디 있어? 난 그런 거 믿지 않아." 막내가 대꾸했다. "너... 너는 죄인이야. 너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조지는 어머니, 아버지에게로 고래를 돌렸다. "모두들 죄인이로군요. 가족 모두를 위해 기도 드려야겠어요." 식구들은 조지가 어서 떠나 주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조지의 첫 부임지는 버몬트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성당이 하나밖에 없었다. 전임 신부가 떠난 뒤 마을 사람들은 새 신부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조지가 바로 그 새 신부였다. 카톨릭의 의식에는 고백성사가 있다. 신자들은 작은 고백실에 들어가 칸막이 너머에 있는 신부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전임 신부는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죄를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성모 송을 50번 드리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의 죄를 다 용서하실 겁니다." 조지는 달랐다. 절대 그러는 법이 없었다. 맨 처음 고백성사를 보러 온 사람은 어린 소녀였다. 고백실로 들어 온 소녀는 말했다. "신부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 보시오." 조지가 말했다. "지난밤에 남자 친구와 댄스 파티에 가서 위스키를 마셨어요. 그리고 그 애가 저를 만지 길래 그냥 내버려두었어요." "뭐! 어떻게 했다고?" 조지는 소리를 질렀다. 너무도 놀란 소녀는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위스키는 악마의 음료야. 그리고 남자가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었다고? 남편도 아닌 남자에게? 이런 사악한 것 같으니라구. 여기서 당장 나가!"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가엾은 소녀는 어머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 다음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다. "신부님, 죄를 지었습니다." "창피한 줄 아시오! 대체 무슨 죄를 지었소?" 조지가 물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신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신부라면 당연히 동정심과 이해심이 깊어야 하지 않는가! "제게 먹여 살려야 하는 손주놈이 하나 있는데, 저는 직장에서 쫓겨나서 돈이 없습니다. 집안에 먹을 거라곤 하나도 없고 해서, 며칠 전에 시장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쳐다가 손주한테 먹였습니다." "빵을 훔쳤다구? 이 도둑놈!" "그렇지만 손주놈이..." "어떤 변명도 듣고 싶지 않소. 당신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여덟 계명을 어겼어. 당신은 감옥에 가야 해!"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런 신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은 한 부인이었다. "신부님, 죄를 지었습니다." 조지는 몹시 화를 냈다. "당신들 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오? 모두 죄만 짓고 산단 말이오? 왜 나처럼 되지 못하지?" 그는 간신히 자신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죄를 고백해 보시오. 제발 별게 아니기를 바라겠소." "별거는 아니에요, 신부님. 작은 거짓말을 하나 했어요. 저는 남편이 있는데, 며칠 전에 옛날에 사귀던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끊었어요. 남편이 누구냐고 묻길래 잘못 걸려 온 거라고 했어요. 작은 죄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은 죄라는 건 없소!" 조지는 소리를 질렸다. "당신은 거짓말쟁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소." 부인은 충격을 받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렇게 한 거예요, 신부님." "하느님은 당신이 왜 그렇게 했는가 엔 관심이 없소. 거짓말했다는 것만이 중요한 거요." 조지는 본당 신부가 되자 신학생 때보다도 더 심해졌다. 너무나 순수하고 성스러운 그를 아무도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첫 미사의 강론에서 그는 신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새 신부인 조지 입니다. 난 깨끗하고 성스럽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이 방엔 죄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내가 이 곳을 떠나기 전에 여러분 모두를 착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만들어 하느님의 은총을 받게 하겠습니다." 그 뒤 30분 동안 그는 신자들의 죄상을 늘어놓았다. 한 주일이 지나자, 마을 전체는 조지가 떠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시장이 신부들의 부임지를 배정하는 주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그 사람을 여기서 떠나게 해 주세요. 그는 정신 병자예요." "어떻게 했길래 그러십니까?" "우리 모두를 죄수 취급합니다. 누구나 조금씩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여자들과 즐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또 가끔은 술도 마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조지 에게 그런 고백을 하면 당장 자살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내몹니다.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 주세요. 우리 마을 사람은 의기소침해져 있습니다." 주교는 조지를 불렀다. 조지는 그런 명예에 흥분했다. "앉으시오. 사제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까?" 주교가 물었다.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구원해야 할 영혼이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야 말겠습니다." "신자들을 좀 심하게 대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너무 심하다구요? 전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죄인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생각입니다." 주교는 조지를 보며, 왜 모든 사람이 그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좀더 작은 마을에 가서 일해 보는 게 어떻겠소?" 조지는 놀라서 쳐다보았다. "이유가 뭐죠?" 주교는 재치 있게 말을 돌렸다. "작은 마을일수록 더 죄인이 많아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죠." 조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렇군요. 언제 그리로 떠나죠?" "지금 당장 떠나시오." 주교는 잠시 생각했다. "메인 주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신자가 백 명밖에 안 돼요. 신부가 오기를 무척 기다리고 있죠. 그 곳으로 가시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구원하겠습니다." 주말이 되었을 때, 메인 주의 그 작은 마을로부터 주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에게 보내 주신 신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딴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죠?" "한 주일 동안 신자들이 고백한 곳을 주일날 공개하지 뭡니까? 당장 여기서 떠나게 해 주세요!" 주교는 조지를 다시 불렀다. "어때요? 일에 보람을 느껴요?" "아주 즐겁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죄인들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 한사람의 죄인까지 구하기 전에는 쉬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주교는 조지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지, 메인 주의 작은 마을보다 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에 성당이 있는데..." "아프리카요?" 조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죄인이 아주 많은 곳이오." "아, 그렇군요." 조지의 얼굴이 빛났다. "당신은 여섯 명의 다른 신부들과 함께 그 곳으로 떠납니다. 각자 다른 마을에서 성당 하나씩을 맡아 일하게 될 거요." 조지는 일어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좋아요. 이 비행기는 이틀 뒤에 떠날 거요. 그 전에 집에 한 번 다녀오시오." "아프리카로 갈 일이 무척 기대됩니다. 하지만, 슬픈 일이 한가지 있어요." "그게 뭐죠?" "제 본당 신자들이 저를 굉장히 그리워 할 거예요." 조지는 아프리카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갔다. 아버지는 외설스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던 조지는 망치로 텔레비전을 박살내 버렸다.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가 소리쳤다. "악마의 손에서 아버지 영혼을 구해 내려고요. 저 배우들이 하는 짓을 보셨잖아요?" "물론이지. 그걸 보려고 그러는 건데. 넌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냐?" "난 보통 사람들과 달라요. 난 신부예요." "좋아, 신부님. 텔레비전 값이나 내 놔. 아프리카로는 언제 떠날 거냐?" "내일이오." 아버지는 그 대답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거 참 잘됐구나!" 조지는 공항에서 여섯 명의 신부들과 만났다. 모두들 이제 가게 될 부임지 때문에 들떠 있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대부분 변변히 먹지도 못한답니다." "병자는 많은데 의사는 부족하데요." "독재정권 밑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십이 계명을 제대로 지키며 살았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요. 그들은 모두 죄인이오." 조지가 말했다. 신부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비행기에 탔을 때, 조지와 같이 앉으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비행기는 킬리만자로 산(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위를 날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별안간 번개가 치자 비행기는 미친 듯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신부 하나가 말했다. 비행기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우린 추락 할 거요." 다른 신부가 외쳤다. 조지가 나서며 말했다. "신부라면서 그렇게 믿음이 없소? 하느님은 우리가 땅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요." 2분 뒤에 그들은 추락했다. 비행기는 나무를 쓰러뜨리며 미끄러지다가 잠시 뒤에 멈췄다. 모두 놀라서 혼이 빠졌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식인종이 우글거리는 아프리카의 정글 한복판이었다. 식인종들은 커다란 새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경외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본 것이다. 그들은 딱 한 번 백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탐험가였다. 아주 오래 전에 그를 잡아먹었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몇 마디 영어를 배워 두었다. "하느님이 왔다." 추장이 말했다. 그들은 일곱 명의 남자가 비행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식인종들은 그들 종 한 명이 하느님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하인일 것이다. 신부들은 원주민들을 보고 기뻐했다. "우린 당신들의 영혼을 구하러 왔소. 그게 바로 하느님이 우리를 살려 준 이유요. 오늘 밤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도록 해 주면 고맙겠소." 조지가 말했다. 식인종들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리 와." 추장이 손짓했다. 신부들은 식인종을 따라 풀로 엮은 오두막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로 갔다. "우린 배가 고픕니다." 조지가 말했다. "배고프긴 우리도 마찬가지야." 추장이 말했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묶어라!" 신부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손발이 묶였다. 커다란 검은 솥이 보였는데, 그 안에는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추장은 신부들의 팔다리를 만져보며 말했다. "음, 맛있겠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우리 모두를 지금 당장 풀어 주시오." 조지가 말했다. 추장은 조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입닥쳐! 너희들 중 한 명은 하늘에서 내려오 하느님이다. 우리를 보호해 주고 이끌어 줄 하느님이란 말이다. 나머지는 먹어 버려야 해." "말도 안 돼! 우리는 미국 시민이오. 그리고..." 조지가 말했다. "입 다물어!' 추장은 또 조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첫 번째 신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우리를 구하러 온 하느님이오?" "아니오, 나는 인간일 뿐이오..." "솥에 넣어!" 다른 신부들은 첫 번째 신부가 펄펄 끓는 솥 안에 던져 지는 것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그의 비명은 너무도 끔찍했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온전할 것 같아? 우린..." 조지가 말했다. "입닥쳐!" 추장은 다시 조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추장은 다음 신부에게 물었다. "그대가 하느님인가?" "아니오" "이놈도 끓여!" 추장은 늘어서 있는 신부들에게 한사람 씩 물어 갔다. 신부들은 첫 번째 계명--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과 세 번째 계명--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을 깰 수 없었다. 신부들은 하느님이 아니라고 할 때마다 한 사람씩 끓는 가마 속으로 던져 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조지였다. "그대가 하느님인가?" 추장이 물었다. 조지는 다른 신부들이 죽어 가며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계명을 깨고 싶지 않았지만, 야만인들의 저녁 식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소, 내가 하느님이오." 조지가 말했다. 그 말에 모든 식인종이 그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묶었던 줄을 끊고 아름다운 부족 의상을 입혀 주었다. "당신은 이 곳에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면서 우리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추장이 말했다. 그들은 조지에게 세 명의 아름다운 여자를 주었고, 숲에서 먹을 것과 과일을 따서 바쳤다. 그는 여생을 왕처럼 대접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이상이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계명을 깬 사람의 이야기이다. 3 두 번째 계명--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 계명의 뜻은 간단하다. 하느님을 상징하는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하느님이 이것을 두 번째 계명으로 한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한 계명일 것이다. 이제 이 계명을 깬 사람 이야기를 하겠다. 그는 벌을 받았을까? 고통스러워했을까? 지옥에 떨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계명을 깨서 큰 부자가 되었다. 자,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그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목각 기술공이었는데, 이름은 토니였다. 토니는 매우 잘생겨서, 마을의 모든 처녀들이 그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의 딸을 사랑했다. 문제는 시장의 딸은 부자인데, 토니는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시장은 자신의 예쁜 딸을 보잘 것 없는 목각공에게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토니는 훌륭한 목각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심이 좋아서 동물이나 아기의 모습을 깎아서 남에게 그냥 주어 버리곤 했다. 그러니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시장의 딸도 토니에게 푹 빠져 있었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 토니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아빠는 부자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셔."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어. 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뭘." "아빠는 돈이 많은 사람만 취급하셔." "도망가서 결혼할 수도 있잖아?" 토니가 제안했다. "그건 안돼. 아빠 마음을 그렇게 상하게 해 드릴 수는 없어. 아빤 나를 은행가한테 시집 보내려고 하셔. 굉장한 부자거든." "그 사람을 사랑해?" "말도 안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걸 잘 알잖아." "나도 널 사랑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부자가 될 무슨 방법이 없겠어?" "안나, 난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아." 안나는 화가 났다. "좋아, 그렇다면 그 은행가와 결혼할 거야." 토니의 얼굴에서 상처 입은 표정을 본 안나는 그를 감싸 안았다. "괜히 해본 소리야. 너하고 결혼 못하면 난 평생 아무한테도 시집가지 않을 거야. 아빠가 뭐라고 하셔도 상관 안 해." 이런 대화는 한 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두 연인은 간절히 결혼하길 원했지만, 안나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토니가 큰돈을 벌지 못 하는 한 승낙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은행가가 안나의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늙고 못생겼지만 부자였다. 부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안나 아버지는 그를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안나 아버지가 말했다. "예, 안녕하셨습니까?" "저야 불평할 게 없지요. 사업은 번창하고 있고, 좋은 아내에다 예쁜 딸까지 있잖습니까?" "바로 그 따님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 봐 왔는데, 이젠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더군요." 은행가가 말했다. 안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딸이지만 참 자랑스럽습니다." "사실은 청혼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은행가가 말했다. 안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안나가 은행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늙고 뚱뚱한데다 심성도 곱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안나가 젊은 목각공에게 빠져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딸을 가난한 목각공과 결혼시킬 수는 없었다. "그거 무척 반가운 말씀이군요. 안나도 당신의 청혼을 아주 기쁘게 받아들일 겁니다." 안나의 아버지가 말했다. 은행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딸애는 당신이 아주 유복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기대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아름다운 집과 자동차, 그리고 하녀 여럿이 그녀를 편안하게 해 줄 겁니다." "좋습니다. 안나에게 결혼 준비를 서두르라고 하겠습니다." 안나의 아버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그 날 오후, 안나가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말했다. "앉아라. 좋은 소식이 있다." 안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버지에게 좋은 소식이라는 것은 자신에겐 항상 좋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데요, 아빠?" "은행가가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단다." 안나는 벌떡 일어났다. "차라리 죽어 버리겠어요. 난 절대로 그와 결혼 안 해요. 토니 외에는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어요."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넌 은행가한테 시집 가야돼!" 아버지가 말했다. 안나는 토니를 찾아가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토니가 물었다. "은행가하고 결혼해야 한 대. 아빠가 약속했대." 토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안나가 아버지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토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는 부모들의 뜻에 따라 결혼이 이루어졌다. 당사자들은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토니는 그의 평생에 유일하게 사랑할 여인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결혼 날짜는 언제야?" 토니가 물었다. "석 달 후. 아빠가 당장 하자고 하시는 걸 내가 미뤘어. 그 때까지 네가 아빠 마음이 바뀌도록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처럼 가난한 목각공이 뭘 할 수 있겠어?" 토니는 안나를 끌어안았다. "이 마을을 떠나겠어!" "왜?" "네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사는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 너를 잊어버릴 수 있는 먼 곳으로 떠나겠어." 그러나 토니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녀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토니는 뉴욕으로 떠났다. 돈이 별로 없어서 뉴욕까지 3주일이나 걸리는 낡고 지저분한 화물선을 탔다. 거친 물결에다 폭풍우까지 겹쳐서 배 안의 모든 사람이 멀미를 했지만, 토니는 안나의 생각에 그럴 겨를도 없었다.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뚱뚱하고 늙은 은행가와 결혼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슬펐다. '하지만, 내가 안나에게 뭘 줄 수 있지? 예쁘고 좋은 것에 둘러싸여 자란 안나에게 난 뭐 하나도 사 줄 돈이 없어. 우리가 가정을 꾸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차라리 은행가에게 시집가는 게 나아.' 토니는 생각했다. 뉴욕에 도착한 토니는 도시가 너무나 큰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큰 도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거리엔 자동차와 버스,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그런데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토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아무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이리저리 걸어다니기만 했다. 배는 고픈데 주머니의 돈은 몇 푼 안 되었다. 마침 음식점 앞을 지나치게 되어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뭘 드시겠어요." 종업원이 다시 물었다. 토니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뭘 시키시겠느냐구요?" 종업원이 다시 물었다. 당황한 토니는 벌떡 일어나 황급히 나왔다. 좀더 걸어가자 다른 음식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남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 메뉴가 몇 가지 있습니다. 간 요리, 양파 요리, 안심구이, 콘비프 등입니다. 그게 어떻습니까?" 토니는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또다시 일어나 식당을 나와 버렸다. 이젠 허기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 돈이 없는 건 둘째치고 이러다간 정말 굶어 죽겠다!' 토니는 생각했다. 그 때 토니는 구원을 받았다. 마침 카운터로 가서 직접 주문하는 카페테리아 앞을 지나게 되었다. 토니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한 남자를 따라 들어가서 그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남자는 카운터로 가서 말했다. "사과 파이와 커피." 토니는 정신을 차려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종업원이 남자의 쟁반 위에 맛있어 보이는 사과 파이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커피를 올려놓았다. 남자는 쟁반을 들고 가 버렸다. 종업원이 토니를 쳐다보았다. 토니는 웃으며 말했다. "사--과 파이와 커--피." "예" 종업원은 토니에게도 파이 한 쪽과 커피를 주었다. 토니는 테이블로 달려가서 급히 먹어 치웠다. 꿀맛이었다. 다시 카운터로 갔다. "사--과 파이와 커--피." 종업원은 다시 파이 한 쪽과 커피 한 잔을 주었다. 그것을 다 먹자 살 것 같았다. 그 날 밤, 토니는 잠자리도 구할 수 있었다. 빈민지역이긴 했지만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아껴야 했다. 다음 날, 눈을 떠니 다시 배가 고팠다. 전날 했던 말을 외우며 같은 음식점으로 서둘러 갔다. "사--과 파이와 커--피." 카운터로 가서 말했다. 카운터 뒤의 종업원은 파이 한 쪽과 커피를 주었고, 토니는 말끔히 먹어 치웠다. 일자리를 얻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토니는 매일 같은 카페테리아로 가서 식사를 했다. 마침내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에 물리게 되었다. 토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번에는 여자를 따라 들어가서 뒤에 섰다. "햄 샌드위치." 여자가 말했다.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가 나왔다. 토니도 가까이 가서 힘겹게 말했다. "해앰 샌드--위치." 종업원이 고개를 끄떡하더니, "흰 빵이오, 라이 빵이오?" 하고 물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토니는 다시 말했다. "해앰 샌드--위치." "흰 빵인지 라이 빵인지 말씀하세요." 토니는 당황해서 다시 말했다. "해앰 샌드--위치." 종업원은 짜증을 냈다. "흰 빵인지 라이 빵인지 물었잖아요?" 어쩔 수 없게 된 토니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사--과 파이와 커--피." 다음 날, 토니는 이탈리아인 장난감 제조업자가 하는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이젠 적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보수는 아주 작았지만 상관없었다. 먹고 살 만큼에다 안나에게 결혼 선물 사 보낼 돈만 있으면 충분했다. 하루 종일 장난감을 깎았다. 아이들은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했다. 일하는 것을 보려고 가게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인심 좋은 그는 장난감을 그냥 주어 버리려 했다. 그럴 때마다 주인은 말했다. "어리석게 굴지 마! 우린 큰돈을 벌 수 있단 말이야. 돈이 싫어?" 토니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관심 없어요. 그래서 평생의 애인도 놓쳐 버렸는걸요." 안나가 뚱보 은행가와 결혼해 사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뚱뚱할 것이고, 안나는 일찍 늙어 버릴 것이다. '안나는 사랑이 필요해. 그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 이야.' 토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안나의 아버지는 그녀를 부자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고집하고 있지 않는가!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토니의 명성이 뉴욕 전체에 퍼졌다. 뛰어난 작품 때문에 아주 유명해진 것이다. "나와 동업하는 게 어떻겠어?" 주인이 말했다.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동업은 무슨... 전 장난감만 계속 만들 수 있으면 돼요." 토니가 만든 목각 원숭이, 말, 코끼리, 얼룩말, 그리고 기린은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 손님들은 동물들이 걷는 소리,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 장난감들을 애지중지했다 아침마다 토니는 달력을 들여다보고 하루씩 지워 나갔다. 안나의 결혼식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3주일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안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들은 예전처럼 다시 만났다. "토니, 은행가와 결혼하기 싫어. 늦기 전에 어떻게 좀 해 봐." 안나가 말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토니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아빠가 우릴 결혼시키도록 돈을 많이 벌어 봐." 꿈속에서 그들은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고, 같이 소풍도 갔다. 안나와 다시 함께 있게 된 토니는 너무나 황홀했다. 그러나 이 꿈도 3주만 지나면 끝날 것이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결혼 두 주일 앞두고 토니는 다른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본 것이다. 어찌나 뚜렷한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 할 수 있었다. 결혼 선물로 무엇을 보낼까 궁리하고 있던 그는 마음을 정했다. "바로 이거야!" 토니는 소리쳤다. "하느님을 조각해서 보내는 거야." 그는 이 일이 두 번째 계명을 깨뜨리는 일이라곤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 해도 사랑하는 안나에게 줄 선물이었기에 그대로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어 갔다. 안나의 결혼 전에 끝내려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밤낮없이 그 일에만 매달렸다. 하루하루 날이 감에 따라 그 형상은 완성돼 갔고, 훌륭한 작품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안나에 대한 사랑으로 조각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어떤 조각품 보다 더 훌륭하게 되었다. "오늘 오후에 안나에게 부쳐야겠다." 조각에 온 힘을 다 쏟았기 때문에 토니는 녹초가 되었다. "집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올게요." 주인에게 말했다. 그가 나간지 5분쯤 지났을 때 토니의 작품에 대해 소문을 듣고 찾아온 남자가 가게문을 밀고 들어왔다. "여기가 토니라는 사람이 일하는 곳입니까?" 그가 물었다. "그런데요."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요." "그럼 나중에 다시 오지요..." 남자는 옆방을 돌러 보다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느님의 형상을 본 것이다. 그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기가 막힌 작품이군요. 지금까지 이렇게 훌륭한 작품은 본 적이 없어요." 그는 주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사장입니다. 이 작품을 사고 싶은데요." "아마 팔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 줄 선물이거든요." "난 꼭 사야겠어요. 우리 박물관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거든요. 백만 달러 드리지요." 주인은 아연실색했다. "백만 달러요?" "그래요." 주인은 잠시 생각했다. 토니의 작품을 팔 권리가 자신에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토니와 안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백만 달러가 있다면 토니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팔지요." 주인이 말했다. "좋아요."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오후에 수표를 갖고 다시 오겠습니다. 물건은 그때 가져가지요." 주인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해 보았다. 큰 모험이었으나 잘한 일이었다. 그는 토니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후에 박물관장은 백만 달러 짜리 수표를 가지고 다시 왔다. 일꾼 둘이 작품을 트럭에 옮겨 실으려고 함께 왔다. "토니는 아주 자랑스러워하게 될 거요. 이 일로 유명해질 테니까." 박물관장이 말했다. 저녁 늦게 가게로 돌아온 토니 는 작품이 보이지 않자 당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디 있어요?" "내가 팔았어." 주인이 말했다. "뭐라구요? 말도 안돼요. 그건 안나에게 줄 선물이라구요." 주인은 고개들 저었다. "아니야, 자네는 안나에게 더 좋은 선물을 가져 갈 수 있어." "그게 뭔데요?" "바로 자네야." 주인은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토니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안나와 결혼해." "정신 나갔군요. 난 가난하다구요." 주인은 백만 달러 짜리 수표를 토니에게 주며 말했다. "아니, 자넨 이제 엄청난 부자야. 백만 장자라구!" 토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표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는 주인을 얼싸안았다. 토니는 안나와 결혼하여 예쁜 아기를 여럿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상상만 해도 흐뭇했다. 그날 밤, 토니는 로마행 비행기를 탔다.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한 그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 곧장 안나의 집으로 찾아갔다.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안나의 아버지가 물었다. "멀리 가 버린 줄 알았는데." "돌아왔습니다." "아주 좋지 않은 때 돌아 왔군. 오늘이 바로 내 딸이 결혼하는 날이거든." "알고 왔습니다. 안나와 저는 결혼할 겁니다. 안나의 아버지는 웃었다. "정신이 돌았군. 가난뱅이에겐 절대 시집을 보내지 않을걸 잘 알잖나?" "이젠 가난뱅이가 아닙니다. 전 은행가보다 더 부자입니다." 토니는 수표를 보여 주었다. 안나의 아버지는 너무 놀라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백만장자가 되었잖아! 미국이란 나라는 가기만 하면 박만 장자가 된다더니 정말이구만..." "다 그런 건 아니죠. 따님 좀 만나게 해 주세요." 토니가 말했다. "물론, 물론." 그는 사근사근해졌다. "금방 불러 줄게." 안나는 토니를 보자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안나는 새하얀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토니! 방금 아빠한테 다 들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우린 이제 결혼할 수 있어. 자, 가자." 토니가 말했다. 토니와 안나는 성당으로 가서 신부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그대들은 한 쌍의 부부로 맺어 졌소." 신부가 말했다. 신랑이 두 번째 계명을 깬 덕분에 이들이 행복하게 맺어 질 수 있었음을 신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토니와 안나는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다. 4 네 번째 계명--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 이 계명은 무슨 뜻인가? 주일에는 일하지 말고 쉬면서 하느님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이 네 번째 계명을 어기고 부자가 된 랄프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랄프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열심히 일하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제대로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여자에게 미친 듯이 빠진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여자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해 버렸다. 결국 사랑하는 여자와 친한 친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다. 일 주일 뒤에는 기르던 개가 차에 치어 죽었고 며칠 뒤에는 고양이가 죽었다. 일하러 다니던 공장은 망했고, 그 다음에 취직한 옷가게는 불타 버렸다. 이쯤 되면 그가 불운한 사람이라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랄프에게는 제대로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하느님이 그를 벌주려고 나선 것 같았다. 랄프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살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매우 신앙심이 두터웠다. 하느님을 믿었고 계명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기면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아들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 것도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랄프를 서재로 불렀다. "랄프야,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해. 내 생전 너처럼 운이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계명을 어긴 게 없나 잘 생각해 봐라." "없어요, 아버지." "정말이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 번째 계명은 잘 지키고 있니?" "그럼요." "그럼 두 번째 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만드는 방법도 모르는데요, 뭐." "좋아. 그럼 세 번째,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너, 주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른 적은 없니?" "없어요." "주일은 거룩하게 지내고 있니?" "그럼요. 주일마다 성당에 가는 걸요. 도박도 안 하고, 영화 구경도 안 가고, 하느님만 생각하며 지내는 걸요."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다음 계명은 어떠냐? 부모를 공경하고 있니?" "물론이죠. 저는 두 분을 잘 공경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 너 사람을 죽인 일은 없지?" "아버지! 저는 사람을 죽이는 꿈조차 꾸어 본 적이 없어요." "네 말이 사실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을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지 않니? 그렇지 않으면 왜 그렇게 일이 안 되겠어?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은 어때? 하기야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이 계명은 깼을 리가 없지." 딴 남자와 결혼해 버린 옛 애인이 생각났다. 랄프는 힘없이 말했다. "맞아요. 그럴 수 없죠." "여덟 번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저는 정직하게 살아 왔어요. 지금까지 조그만 것도 훔친 적이 없어요." "널 믿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렇게 운이 없는 거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럼, 아홉 번째 계명을 보자.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너 혹시 다른 사람에 대해 거짓말한 적 없니?" "없어요. 저는 진실만을 말해요." 랄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점점 더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열 번째 계명은? 이웃집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고 했는데." 랄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우리 이웃에는 다 쓰러진 판잣집뿐이잖아요. 들어가고 싶은 적도 없어요." "그래, 그렇겠지. 거짓말하지 말라는 열한 번째 계명은 어떠냐?"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 저는 거짓말을 안 한다니 까요!" 알았다. 열두 번째 계명, 남을 해치지 말라. 너 남하고 주먹싸움이라도 한 적 없니?" "제가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사람이라는 걸 아시면서 그러세요? 전 어떻게 싸우는 지도 몰라요." 아버지와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전보다 더 심한 의문에 빠졌다. 아들이 하느님의 계명 중 어느 하나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지금 까진 운이 없었지만, 계명대로 살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행운이 따르겠지.' 아버지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맞지 않았다. 다음 날 랄프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종업원이 뜨거운 커피를 쏟는 바람에 손을 데어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마침 복도를 왁스로 닦아 놓은 참이라 걸어가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들것에 실려 입원실로 가던 랄프는 인턴(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수련의)이 들것을 놓치는 바람에 팔이 부러졌다. 랄프는 두 주일 동안 입원해 있다가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하고, 손에는 붕대를 감고 퇴원했다. 랄프의 아버지는 절망했다. 그는 신부를 찾아갔다. "제 아들은 왜 그렇게 운이 나쁠까요?" 그는 랄프가 겪는 불행을 모두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랄프가 계명을 어긴 것 같군요." 신부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요." 아버지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할 말이 없군요." 신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문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서에는 십이 계명을 잘 지키면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 십이 계명 잘 지킨 사람이 아주 불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주일마다 랄프의 부모는 깁스에다 목발을 짚은 아들에게 성당에 가자고 말했다. "하느님이 노하시면 어떡하니?" 어머니가 말했다. "저에게 화를 내신다구요! 저는 하느님의 샌드백인 걸요." 랄프는 소리질렀다. "그만, 그만. 그런 말하면 안 돼. 어서 일어나서 성당에 같이 가자." 랄프는 몸도 아팠고 기분도 나빴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 때문에 옷을 입고 따라갔다. 성당에 앉아 있는 동안 랄프는 너무나 아파서 신부의 강론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계속되는 불운이 끝날 때까지 계명이란 계명은 모조리 철저히 지켜 볼 거야." 랄프는 맹세했다. 두 달 후, 팔 다리도 회복되고 손위 붕대도 풀게 된 랄프는 직장인 비디오 가게로 돌아갔다. "돌아왔습니다." 가게로 들어서며 랄프가 말했다. "자네가 너무 오래 못 나오는 바람에 다른 사람을 썼네. 자네는 해고됐어." 주인이 말했다. 그 날의 불운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공들여 가꿔 온 작은 정원이 무참히 파헤쳐진 것을 보았다. 들짐승의 짓이었다. 그 날 밤엔 저녁을 먹으러 났다가 자동차를 도둑맞았다. 그러나 그 사실도 사흘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식당에서 먹은 생선이 식중독을 일으켜 지난번에 입원했던 병원에 또 가서 위를 씻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랄프의 부모가 또 찾아왔다.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머니는 울었다. "더 일어날 나쁜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이제부턴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그러나 퇴원한 랄프는 이틀 뒤에 길을 건너다가 버스에 부딪혔다. "그것 봐!" 아버지가 소리질렀다. "네가 뭔가 하느님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야." 아버지는 십이 계명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나 랄프의 잘못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노력해 봐라." 아버지가 말했다. "싫어요. 더 이상 어떻게 해요? 앞으로는 하느님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벼락 맞아 죽게 된다." "그렇겠네요. 아직 벼락은 맞아 보지 않았으니까." 랄프는 대답했다. 랄프는 직장을 구하러 나갈 생각도 안 한 채 한 주일 내내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아무 소용없어요. 제가 얼마나 제수 없는 놈인지 아시잖아요. 아마 직장도 찾지 못하고 트럭에 치일 거예요." 아버지는 할말을 잃었다. 아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일날 아침이 되었다. "랄프야, 일어나라. 성당에 가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성당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성당에 가고 싶지 않다니, 무슨 말이냐? 주일엔 성당에 가야지." "그래서 좋았던 게 뭐 있었어요?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어요." "그러면 안 돼. 네 번째 계명에..." 아버지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거지요. 어쨌든 저는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루종일 누워 있겠어요." 부모는 할말을 잃었다. 그들은 랄프를 집에 둔 채 무거운 마음으로 성당에 갔다. "후회할 거다. 계명을 어기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돼." 아버지가 경고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겁날 것도 없어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랄프는 슬며시 죄의식이 들었다. '함께 갈 걸 그랬나.' 네 번째 계명을 깬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전에는 주일이면 언제나 성당에 갔었다. 불안해 진 랄프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산책을 가는 게 났겠다. 오늘은 어디 뼈가 부러지는지 보자.'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봄날 아침이었다. 상쾌하고 맑은 날이었다. 계명을 어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면서 주의를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무엇엔가 걸려 비틀거렸다. '드디어 시작이군.' 랄프는 생각했다. 그러나 길바닥을 내려다보자 자신의 발에 걸린 것은 누군가가 떨어뜨린 지갑이었다. 호기심으로 지갑을 주워 속을 들여다보았다. 백 달러 짜리 지폐가 가득 차 있었다. 이름도 없고 신분증도 들어있지 않았다. 정직한 랄프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었지만 돌려줄 방법이 없었다. 돈을 세어 보았다. 5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찾아온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이것이 그의 생애 최초의 행운이었다.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계속 걸어갔다. 길모퉁이에 있는 잡지 판매대에서 복권을 팔고 있었다. 복권을 사서 동전으로 긁어 보면 숫자가 나온다. "새 복권이 나왔습니다. 하나 사 보세요." 주인이 랄프에게 말했다. 랄프는 주저했다. 그는 늘 잃었기 때문에 도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지갑에는 돈이 꽉 차 있었다. "열 장만 주세요." 그가 말했다. 복권 열 장을 사서 주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첫 번째 복권을 긁었다. "당첨입니다. 백 달러예요." 주인이 말했다. 다음 복권을 긁었다. "또 당첨됐어요. 2백 달러입니다." 열 장의 복권이 모두 당첨되었다. 두 사람 모두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신처럼 재수 좋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주인이 말했다. 랄프의 주머니는 돈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야. 성당에 갔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지.' 랄프는 생각했다. 그는 항공사 사무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라스베이거스 왕복표 주세요." 그 곳에 가서 돈을 모두 잃더라도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미리 왕복표를 산 것이다.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이 걸렸다. 라스베이거스는 난생 처음이었다. 공항에 있는 수백 개의 슬롯 머신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갖고 있던 동전 몇 개를 기계 속에 넣자 돈이 쏟아져 나왔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도박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카드 게임과 주사위, 슬롯 머신에 돈을 걸고 있었다. 랄프는 비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저, 게임 할 수 있어요?" 그는 딜러에게 물었다. "그럼요. 돈 가지고 계세요?" 랄프는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놓았다. 딜러의 얼굴이 환해졌다. "물론입니다. 선생님, 이리로 오세요. 새로운 슈터가 막 나오려는 참이예요. 얼마를 거시겠어요?" 랄프는 주사위 게임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슈터'가 뭐하는 뭘 예기하는 건지도 몰랐다. "천 달러 걸겠어요." 랄프가 말했다. 딜러는 랄프에게 칩을 주고 천 달러를 걸었다. 주사위 두 개를 던지자 7이 나왔다. 랄프 앞에는 2천 달러의 칩 무더기가 놓여졌다. "제가 천 달러를 딴 겁니까?" 랄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라이드' 하시겠습니까?" 랄프는 '라이드'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좋아요" 했다. 다시 주사위를 던지자 11이 되었다. 이제 랄프 앞에는 4천 달러가 앞에 놓여졌다. "또 '라이드' 하시겠습니까?" "이 게임은 재미있군요. 그러죠." 그 때부터 한 시간 동안 랄프는 10만 달러 이상을 땄다. 그는 이길 확률이 별로 없는 경우에도 마구 돈을 걸었는데 그 때마다 따곤 했다. 카지노의 지배인 한 사람이 랄프에게 다가오더니 제의했다. " 뒤쪽에 더 큰판이 벌어지는 특실이 있습니다. 그쪽이 더 재미있으실 겁니다." 지배인은 랄프의 재미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랄프를 더 큰판에 끌어들여서 도박장이 잃은 돈을 되찾으려는 것뿐이었다. "그거 괜찮겠는데요. 랄프가 말했다. 지배인을 따라 뒤쪽 특실로 가자 돈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앉아 포커를 하고 있었다. 노름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랄프가 포커를 해 봤을 리가 없었다. 그는 포커 테이블에 앉았다. "엔티는 5천 달러입니다." 딜러가 말했다. "엔티가 뭐죠?" 다른 포커꾼들이 웃었다. 그들은 랄프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새 판을 시작할 때마다 내는 돈입니다. "아 그렇군요." 랄프는 테이블에 5천 달러를 내 놓았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주사위는 게임 때보다 더 잘 돼갔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잃는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이 자기의 패를 내려놓았다. "에이스 두 장." 그는 판돈을 끌어가려고 손을 내밀었다. "잠깐, 나는 퀸이 셋인데요." 랄프가 말했다. 그 다음 판에 누군가가 말했다. "풀 하우스입니다." "미안합니다만, 로열 플러쉬예요." 랄프가 말했다. 판이 바뀔 때마다 그는 계속 이겼다. 한 번도 잃는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낮은 패를 갖고 있으면 랄프는 높은 패를 갖고 있었고, 남에게 높은 패가 들어가면 랄프에게는 더 높은 패가 들어왔다. 두 시간 뒤에 랄프는 20만 달러를 갖고 테이블을 떠났다. 그는 어찌된 셈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방을 나왔다. 호텔 커피숍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뭘 드시겠어요?" 랄프는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평생 본 적이 없었다. 금발머리에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몸에 꼭 맞는 유니폼을 입은 그녀는 몸매까지 기가 막혔다. "네, 저..." 랄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메뉴를 훑어보았다. "해시(삶아서 잘게 썬 고기와 채소의 요리)를 먹겠어요." 여자는 주위에 듣는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고 나서 속삭였다. "그거 주문하지 마세요. 오래 된 거예요. 튀긴 국수가 좋아요." "고마워요. 그걸로 하지요." 랄프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국수는 매우 맛있었다. 음식값을 내려고 랄프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여자는 그가 갖고 있는 거액의 현금을 보았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면 안돼요. 누군가 뺏으려 할 거예요. 계산대에 가서 수표로 바꿔서 안전하게 가지고 다니세요." 그녀가 말했다.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랄프가 말했다. "저, 미세스..." "아니에요. 미스 모간이에요. 샐리 모간." "저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랄프가 말했다.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어떤 여자인지 기막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예기네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이 멋진 신랑감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이 멋진 신부 감인데요." 랄프가 말했다. "몇 시에 일이 끝나세요?" "6시오."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랄프는 그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그들은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마치 예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서로 첫눈에 반한 것이다. 랄프는 샐리처럼 다정하고 멋진 여자를 만남 적이 없었다. "만난 지 겨우 몇 시간밖에 안 돼서 정신나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랄프가 말했다. 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정신나간 소리 같겠지만, 대답은 예스예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랄프는 샐리를 끌어안았다. "주례를 찾으러 갑시다. 라스베거스는 24시간 결혼식을 올려 주는 성당이 있다. 랄프와 샐리는 그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집으로 갑시다.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죠." 랄프가 말했다. 랄프의 어머니 아버지는 걱정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성당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 아들은 거의 자정이 다 되어 젊고 예쁜 처녀를 데리고 돌아 왔다. "제 아내입니다. 인사 받으세요." 랄프가 말했다. 그들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내라고? 어떻게 결혼을 했다는 거냐? 넌 무일푼인데. 우린 너희를 벌어 먹일 수가 없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랄프가 말했다. 그는 20만 달러 짜리 수표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하겠어요. 두고 보세요. 꼭 성공할 테니까!" 사업을 시작한 랄프는 성공했다. 샐리는 훌륭한 아내였다. 그 이후부터 랄프의 일생은 행복 그 자체였다. 이 모두가 네 번째 계명을 깨뜨린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5 다섯 번째 계명--부모를 공경하라. 에드워드는 고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그를 필라델피아의 어느 쓰레기통에 내버렸다. 다행히도 경찰관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내어 병원으로 데려간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에드워드의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버려졌을 때 싸여있던 담요에는 '에드워드 빅스비'라고 이름만 붙어 있었다. 경찰이 부모를 영아 살인미수죄로 체포하려고 수사해 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었다.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한데다가, 다른 아이들까지 못살게 굴었다. 신부 한 분이 가끔 고아원으로 찾아와 아이들과 예기를 나누었다. 그는 십이 계명을 가르쳤다. 에드워드는 다섯 번째 계명에 대해들을 때면 혼란이 왔다. 부모가 누구인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공경하지? 에드워드는 열 일곱 살이 되자 원장 실로 불려 갔다. "에드워드, 내일이 네 열 일곱 번째 생일이다. 우리 고아원에서는 규칙상 열 일곱 살이 넘으면 있을 수 없게 돼 있다. 이제 너는 바깥 세상으로 떠나야 돼." 원장이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소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달랐다. 오히려 매우 기대에 차 있었다. 오래 전부터 가져온 꿈--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을 이제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 너는 착한 아이였어. 네가 자랑스러웠다. 보고싶을 꺼야." "저도 그럴꺼예요." 에드워드는 거짓말을 했다. 속으로는 빨리 고아원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다음 날 에드워드는 다른 아이들과 작별하고 부모를 찾아 나섰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먼저 신부를 찾아 나섰다. "전 부모를 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누군지, 또 어디 계신지 모르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신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 그건 아주 어렵겠는데... 그분들은 아무도 본 사람들이 없으니..." "저를 고아원으로 데려왔을 때 누가 보지 않았을까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신부는 에드워드가 이제 진실을 알아도 될 만큼 자랐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너를 고아원으로 데려 온 게 아니야.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걸 경찰이 발견해서 데려온 거야." 에드워드는 신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쓰레기통이라고요! 제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단 말씀이세요?" "그래." 에드워드는 충격을 받았다. "너를 키울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겠지. 아마 몹시 가난했을 거야." 에드워드는 친부모가 가난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에드워드 빅스비라고 이름이 담요에 붙어 있었다던 데요?" "그건 사실이야. 경찰에서 네 부모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끝내 찾지 못했지." "제가 찾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부모를 찾아 나섰다. 우선 전화번호부를 뒤져 빅스비라는 성을 찾아보았다. 대여섯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의사였다. '틀림없이 이 사람이 우리 아버지일 거야. 당시에는 너무 가난해서 나를 기를 수 없었겠지만, 이젠 나를 반겨 줄 거야.' 진료 실로 의사를 찾아갔다. "빅스비 박사를 뵈러 왔는데요." "약속하셨나요?" "아뇨. 그렇지만 저를 만나고 싶어하실 겁니다. 아들이 왔다고 전해 주세요." 간호사가 그를 쳐다보았다. "아들이라고요?" "그래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간호사는 진료실 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의사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잘생긴 흑인이었다. 에드워드는 놀라서 그 자리에 선 채 그를 쳐다보았다. "나를 만나러 왔다고?" 의사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그게 아니고, 안녕히 계세요."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다음 번 빅스비는 교외에서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집이었다. 에드워드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누군지 몰라도 집주인은 부자임에 틀림없었다. '부모님일 거야. 나를 낳았을 때는 가난했었지만, 이제는 부자가 됐고 아마 나를 찾고 계실 거야.' 벨을 눌렀다. 유니폼을 입은 하녀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 어머니를 뵈러 왔는데요."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라고요?" "네, 빅스비 부인요. 저는 에드워드 빅스비입니다." "주소를 잘못 알고 오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그는 제대로 찾아온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빅스비 부인께 말씀 드리지요." 애드워드는 잔뜩 긴장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침내 어머니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뒤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스물 다섯쯤 돼 보였다. "저를 만나러 오셨다고요?" "아닙니다, 부인. 저는 빅스비 부인을 만나러 왔는데요?" "제가 빅스비 부인입니다." 에드워드는 그 여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 말은... 부인은 제 어머니가 되기엔 너무 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이에요?" "네. 하지만, 꼭 찾아 낼 거예요." 그는 전화번호부에 있는 빅스비들을 차례로 찾아가 보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너무 젊거나 늙은 사람들이 아니면 피부색이 달랐다. 에드워드는 포기했을까? 천만에!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반드시 찾아내서 공경하겠다고 더욱 굳게 결심했다. 에드워드는 전국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전화번호부에서 빅스비를 찾아보았다. 시카고,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그리고 뉴욕에서 수많은 빅스비를 만났으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가 찾는 빅스비가 아니었다. 플로리다에 도착했을 때 에드워드는 드디어 운이 바뀔 것 같다고 느꼈다. 전화번호부에 에드워드 빅스비라는 이름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 자기 이름을 그대로 따서 아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전화번호부에 있는 주소로 찾아갔다. 넓은 정원에 커다란 저택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하인이 문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빅스비씨를 뵈러 왔는데요." "들어오세요." 에드워드는 큰 홀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뒤 기품 있어 보이는 회색 머리의 남자가 나왔다. 안녕하시오? 무슨 일로 오셨소?" "전 부모님을 찾고 있습니다." 서재로 좀 들어오시지." 그들은 마주 앉았다. 빅스비 씨는 에드워드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빅스비 씨가 말했다. "그래, 내겐 에드워드라는 아들이 있었지. 하지만, 비행기 사고로 죽었어. 그 뒤로는 죽 혼자 살아 왔지." 그는 앞으로 다가앉았다. "난 자네가 맘에 들어. 나에겐 이제 가족이라곤 한 사람도 없으니 자네가 내 아들이 되면 어떻겠나?"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많은 돈을 갖게 되고 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것이 그게 아니었다. 친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고 싶었다. "정말 고마우신 말씀입니다만, 저는 부모님을 계속 찾아보겠습니다." 빅스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네. 잘 되기를 빌겠네." 워싱턴 DC의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빅스비 씨는 장군이었다. 에드워드는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무슨 용건이시죠?" 비서가 물었다. "네, 아버지를 만나러 왔는데요." 비서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는 인터폰에 대고 말했다. "장군님, 아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장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들어오라고 해." 에드워드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콧수염을 기른 회색 머리의 남자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이름이 뭐지?" 장군이 물었다. "에드워드 빅스비입니다." "잘 왔네." '드디어 아버지를 찾았구나!' 에드워드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앉아라." 에드워드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자, 마침내 만나게 되었구나." "네, 아버지." "어머니 얘기를 좀 해 봐라." "어머니요? 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프랑스 여자냐? 이탈리아 여자냐?" "무슨 말씀이 신지..." "전쟁 때 난 해외 근무를 했었다. 그 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여자를 사랑했지. 아마 내 아이들이 유럽 여러 나라에 퍼져 있을 거야. 네 어머니가 누군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 넌 어느 나랏말을 쓰지?" 에드워드는 그를 쳐다보았다. "영어밖에 못 하는데요." "뭐라고? 그럼, 유럽에서 자란 게 아니란 말이냐?" "네."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럼, 넌 내 아들이 아냐. 이 사기꾼, 꺼져 버려!" 에드워드는 낙담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서 공경하겠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에드워드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영화를 보러 갔다. 출연 배우들의 이름이 스크린에 나왔다. 그 중에 '앨런 빅스비'라는 이름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배우의 모습은 에드워드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턱도, 코도, 입도 똑같았다. '아버지야! 드디어 아버지를 찾았어.' 에드워드는 흥분했다. 다음 날 아침, 에드워드는 할리우드를 향해 떠났다. 그는 앨런 빅스비가 출연하는 스튜디오로 찾아갔다. 수위는 에드워드를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빅스비 씨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수위가 말했다. "저는 만나실 거예요. 제 아버님이 시거든요." 수위는 금세 태도를 바뀌었다. "아, 그렇습니까! 곧 연락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에드워드는 앨런 빅스비에게 안내되었다. 그는 자주색 비단 가운을 걸치고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 그가 물었다. 영화에서 들었을 때보다 높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제가 아들인 것 같아서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배우는 에드워드를 잠시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래, 참 반갑구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에드워드는 기쁨으로 몸아 떨리는 듯했다. "아버지를 찾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모릅니다." 배우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참 착하구나. 그래, 이제야 나를 찾았구나." "네, 아버지." 앨런은 시계를 보았다 "난 지금 촬영하러 가야 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오후에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같이 가자. 괜찮겠지?" "그럼요." "이젠 같이 살게 되겠구나!" 앨런 빅스비가 말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눈 화장을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앨런에게 키스를 했다. "자기, 잘 있었어?" "늦었군." 앨런이 투덜댔다. "장난꾸러기 같으니..." 에드워드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앨런 빅스비는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배우는 에드워드에게 돌아섰다. "이제 가야 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끝나는 대로 돌아올게." 앨런 빅스비가 돌아왔을 때 에드워드는 그 곳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처음으로 부모를 찾는 것이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는데도 부모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연한 운명의 장난으로 그는 도움을 받게 되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들렸다. 에드워드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대여섯 명의 험상궂은 남자들이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경찰이 나를 체포하긴 했지만 털끝만큼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어. 빅스비 말이 맞았어. 우린 완전범죄를 한 거야." 빅스비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에드워드는 바짝 긴장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 한탕에 50만 달러는 족히 들어왔을 거야. 은행에선 도대체 어떻게 털렸는지도 모를걸." 에드워드는 계속 귀를 기울였지만 빅스비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들을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고 하자 에드워드는 급히 그 테이블로 달려가 가장 많이 떠들던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만, 잠깐 말씀 좀 드릴 수 있을까요?" 우람한 체격에 험상궂은 인상의 그 남자는, "난 바빠." 하고는 그냥 가 버리려 했다. "잠깐이면 돼요." 에드워드가 애원했다. "아까 빅스비라는 이름을 들었는데요." 그는 에드워드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제 이름이 빅스비거든요."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저는 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혹시 아까 말씀하신 그분이 제 아버지가 아닌가 해서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쌍권총 빅스비가 네 아버지라고? 미쳤군."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18년 전에 저를 고아원에 맡기고 가셨거든요." 에드워드는 부모가 자신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험상궂은 남자는 에드워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18년 전이라고?" 그는 일행에게 몸을 돌렸다. "쌍권총과 몰 리가 애를 낳은 게 한 18년 전쯤 아니었나?" "맞아." 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마 그 애를 어딘가에 내버렸을걸." 그는 에드워드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네 이름이 빅스비인 것은 어떻게 알았지?" "제가 싸여 있던 담요에 그렇게 써 있었다나봐요." "세상에! 쌍권총의 아들이로구먼." "부모님은 살아 계신가요?" 에드워드가 긴장하며 물었다. "그래, 살아 있지. 야, 이것 좀 보게. 아버지 코에 어머니 눈일세." 에드워드는 이 우연한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부모를 찾은 것이다. 이제 부모를 공경할 수 있게 되었다. "저를 부모님께 데려다 주시겠어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글세..."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보다 먼저 사진을 보여 주는 게 좋겠다. "좋아요." 그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먼저들 가게. 들어가기 전에 수위를 처치해 버리는 거 잊지 마." 에드워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따라와." 험상궂은 남자가 말했다. 뜻밖에도 그는 에드워드를 우체국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우체국에서 일하시나요?" 에드워드가 물었다. "아냐." 그는 웃었다. 수배중인 흉악범의 사진이 붙어 있는 벽 쪽으로 가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고, 그 밑에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에드워드 빅스비(일명 쌍권총)와 몰리 빅스비. 일곱 개 주에서 살인 혐의, 우체국 강도 혐의로 수배중. 현상금 25만 달러. 에드워드는 포스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의 부모다. 그래도 만나 보고 싶으냐?" 에드워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가자. 숨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마." 은신처는 산 속 오두막이었다. 에드워드가 도착하자 우체국의 사진에서 본 남자가 문을 열었다.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 "이 애는 대체 뭐야?" 험상궂은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 아들 같은데..." 쌍권총이 에드워드를 쳐다보았다. "이름이 뭐냐?" "에드워드예요." "몇 살이냐?" "열 여덟 살이에요." "아주 오래 전에 경찰이 널 주워다 고아원에 넣었다는 기사를 읽었지. 맞냐?" "네, 아버지. 올해 초에 나왔어요." "거 참, 희한하군..." 쌍권총이 에드워드의 등을 두드렸다. "잘 왔다. 들어와라." 다른 방에서 몰 리가 나왔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다. "얘는 누구예요?" 몰리가 물었다. "우리 애야." 에드워드의 아버지가 말했다. 에드워드가 상상해 왔던 재회의 장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부모를 찾았고, 그 부모가 어떤 사람들이든 간에 어쩔 수 없어서 자기를 버렸을 거라고 믿었다. 아마 경찰에 쫓겨 달아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들의 안전을 위하여 자식을 포기한다는 큰 희생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드워드는 성서에 있는 대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려고 마음먹었다. "저를 버릴 때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자식을 내버리는 일이 두 분께 큰 희생이셨겠지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희생?" 어머니가 웃었다. "웃기지 마라. 넌 실수로 낳은 거야. 처음부터 애 같은 건 가지려 한 적이 없어. 네가 태어났길래 근처의 쓰레기통에 버렸던 거야. 뭐하러 이제 나타나서 성가시게 구는 거냐?" "돈이 필요한 모양이지." 쌍권총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사방팔방으로 찾아 돌아다녔어요." "그래? 만났으니 됐지? 그럼, 이제 여기서 꺼져! 다시는 귀찮게 찾아오지 마." 어머니가 말했다. 쌍권총이 에드워드를 데려온 남자에게 소리질렀다. "이 애를 데리고 가!" 에드워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마침내 부모를 찾아 이제 다섯 번째 계명을 지키려고 했는데 결국 얻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었다. 글쎄,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그 집을 나와 우체국으로 가서 쌍권총과 몰리가 숨어 있는 곳을 신고했다. 그리고는 현상금 25만 달러를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 멋있게 살았다. 6 여섯 번째 계명--살인하지 말라. 로저 존스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정말로 그는 매우 신앙심이 깊었다. 매주 교회에 갔고, 십이 계명 모두 잘 지켰다. 계명을 어긴다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며,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로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누구를 죽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내 루이스는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고, 로저 역시 아내를 사랑했다. 루이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녀의 어머니, 사라였다. 사라는 로저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녀는 딸이 로저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로저간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저명인사와 결혼하기를 바랐었다. 결혼식 날, 사라는 딸에게 말했다. "너희들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로저가 너한테 어떻게 하는지 직접 봐야겠어." 그 말을 들은 로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짐이 작아서 말이야, 어머니를 어디에 모시지?" "손님방에 계시라고 하죠, 뭐." 루이스가 말했다. 그 날 오후에 도착한 사라는 손님방을 보더니 말했다. "이렇게 작은 방에서 난 못 산다. 내가 큰 침실을 쓰마." "그럼 우린 어디서 자구요?" 로저가 물었다. "손님방." 사라가 말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장모는 로저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하루는 아침 식탁에서 사라가 말했다. "베이컨과 계란은 먹지 말게. 몸에 안 좋아." "전 베이컨과 계란을 좋아하는데요?" "이제부턴 건강식품만 먹도록 하게." 사라가 딱 잘라 말했다. 로저는 다시는 베이컨과 계란을 구경도 못했다. 사라는 로저의 옷차림새도 싫어했다. "꼭 얼간이 같군. 이제부터 회사 갈 때는 짙은 색 양복에 넥타이를 꼭 매야 돼."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넥타이 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자네는 매야 돼." 그 뒤로 로저는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야 했다. 어느 날 밤, 로저가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것을 보고 사라가 말했다. "이제 이 집안에선 술은 금물이야." 그녀는 술병이란 술병은 모조리 없애 버렸다. 로저가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딸을 붙잡고 그와 결혼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한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넌 돈 많고 잘생긴 저명인사와 결혼할 수 있었어." "난 로저를 사랑해요." 루이스가 말했다. "넌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 내가 좋은 사람을 찾아볼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난 이미 결혼했잖아요." "이혼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다." 루이스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혼 같은 건 안 해요." "넌 하게 될걸. 두고 봐라." 로저가 직장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장모는 그를 들볶았다. "왜 돈을 좀더 벌지 못하나?" 장모가 물었다. "제 수입은 괜찮은 편입니다. 우리 두 사람 사는 데는 불편 없습니다." "나는 불편하네. 난 더 큰집에서 살고 싶어. 직장을 바꾸지?" "그럴 생각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좋은 게 뭔지를 알아야 말이 통하지, 원!" 장모는 코웃음을 쳤다. 사라는 로저와 루이스를 둘 이만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쉴새없이 지껄여대면서 늘 그들 곁에 붙어 있었다. 한 순간도 조용할 때가 없었다. 루이스도 로저와 마찬가지로 불행했다. "따로 사시도록 설득해 봅시다." 로저가 말했다. "그럴 순 없어요. 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래요?" "내가 해 보지." 로저는 사라에게 말했다. "좋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시는 게 어떻겠어요? 비용은 제가 부담할게요." 사라는 고래를 저었다. "아니, 싫어. 여기 있으면서 내 딸을 지켜봐야 해. 그 앤 내가 없으면 안 돼." "루이스는 성인입니다. 어머니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에요." 로저가 항의했다. "그런 내가 결정할 일이야." 로저는 이제 더 이상 나쁜 일은 생길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로저는 직장 상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는 요리에 자신이 있어서 식사를 직접 준비하기로 했다. 훌륭한 야채 수프와 으깬 감자를 곁들인 고기 요리를 만들고 사과 파이도 구웠다. 아주 만족스러운 요리였다. 상사는 약속 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집안을 둘러보고 로저에게 말했다. "집이 참 아늑하군." "너무 작아요." 사라가 말했다. "술이나 한 잔씩 할까?" "죄송합니다만, 집안에 술이라곤 한 방울도 없어요." 로저가 사과하듯 말했다. "아니, 전혀 없다고?" 상사는 놀란 표정이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 이리 오세요." 루이스가 말했다. 루이는 로저가 준비한 음식을 날라왔다. 수프를 맛본 상사가 말했다. "맛이 기막히군!" "너무 짜요." 사라가 투덜댔다. "로저는 무엇을 만들든지 소금을 너무 많이 쳐요." 다음은 고기와 감자였다.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보네." 상사가 말했다. "음식에 대해 뭘 모르시는군요. 맛이 형편없어요." 사라가 손님에게 말했다. "으깬 감자 맛이 그만인데요." "제대로 으깨지 않았어요." 식사하는 동안 대화는 내내 이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사라는 뭐든지 다 불만이었다. '정말 죽여 버릴까 보다! 로저는 자신의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살인은 여섯 번째 계명에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사라는 물건을 사러 매일 오후 외출했다. 옷, 핸드백, 스카프, 구두 등을 사는 데 엄청난 돈을 썼다. 문제는 로저가 그 대금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은행 예금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요즘 돈을 너무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로저가 장모에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불만이야? 내 딸이 구두쇠한테 시집을 갔나? 돈 좀 쓰면서 즐기며 살면 안 되나?" "물론 그러셔야죠.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렇다면 다시는 돈에 대해 왈가왈부 말게 내가 그래서 자네하고 결혼하는 걸 반대한 거야. 이런 노랑이 같으니!" 로저는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예금은 금방 바닥날 거야. 당신 어머니가 다 써 버릴 테니까." "여보, 어머니는 노인이세요. 하고 싶은 대로하시게 놔둡시다." "노인? 우리들보다 더 오래 사실 거요." 로저가 소리 질렀다. "아무것도 당신 어머니를 죽이지는 못할 거요. 사자 우리에 넣으면 사자가 죽어 버릴걸. 사자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떠들어댈 테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쨌든 제 어머니인데..." 로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로저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장모는 그의 결혼생활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결정적인 사건이 토요일 밤에 일어났다. "친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사라가 말했다. 로저는 애써 상냥하게 말했다. "잘 하셨어요. 우리도 아는 부인인가요?"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사라가 말했다. 손님은 7시에 왔다. 키 크고 잘생긴 부자였다. "제 딸 루이스예요." 사라가 말했다. 그녀는 로저는 소개하지 않았다. 로저가 손을 내밀었다. "로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켄입니다." 캔이 루이스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대로 무척 아름다우시군요." "켄은 미혼이란다." 사라가 말했다. 로저는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루이스에게 소개시키려고 켄을 데려 온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루이스와 켄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큰 선박 회사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1년에 백만 달러 정도는 벌지요.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함께 나눌 아내가 없다는 겁니다. 켄은 로저를 바라보았다. "참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예, 그렇죠." 로저가 말했다. '그리고 난 끝까지 이 행운을 지키고 말 거야.' "켄은 오페라를 좋아한단다. 너도 그렇지, 루이스? 로저는 오페라라면 질색이지." 사라는 로저를 쳐다보았다. "켄이 목요일 오페라 표를 갖고 있다는 데 루이스를 데리고 구경가도 상관없겠지?" 로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자, 그럼 결정됐네. 두 사람은 나가서 재미있게 즐기면 되겠구먼." 사라가 말했다. 로저는 사라를 죽이고 싶었다. '죽인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다니!'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생각뿐이 아니었다. 로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남을 미워해 본 적이 없었다. 사라는 그의 결혼생활을 망치고 있었다. 켄이 떠나자 로저가 말했다. "장모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파트로 옮기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사라는 로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해. 루이스가 자네와 이혼하고 켄과 결혼한다면 그 때는 두 사람에게 옮겨가지." 바로 그 날 밤, 로저는 독약을 사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아침, 로저는 약방에 갔다. "나무에 벌레가 생겨서 농약이 좀 필요한데요." "농약을 사 가시려면 신분을 밝혀야 됩니다." "그러죠." 로저는 결심했다. 전기의자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장모는 죽여야 했다. 세상에서 사라같이 사악한 인간은 없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모녀가 거실에 앉아 있는 동안 로저는 부엌에서 커피를 끓였다. 그는 장모의 잔에 조심스럽게 독약을 붓고 잘 저어서 거실로 가지고 갔다. "커피 드세요." 장모 앞에 독약이 든 잔을 놓았다. "커피 끓이는 데 웬 시간이 그렇게 걸려?" 사라는 불평하면서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왜 이렇게 쓰지?" "종류가 다른 거예요." 로저가 말했다. "전에 마시던 것이 더 낫군." 로저는 사라가 한 모금 한 모금 커피를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감옥에 가도 좋아. 사형 당해도 상관없어. 그녀만 죽일 수 있다면 어떻게 돼도 좋아.' 로저는 생각했다. 커피를 다 마시자 사라가 말했다. "가서 자야겠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로저는 그녀가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제 더 이상 불평이나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결혼 후 처음으로 로저와 루이스는 오래도록 둘이서만 있을 수 있었다. "사랑해, 여보.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당신을 사랑해." 로저가 말했다. "아무일 없을 거예요." 루이스는 미소지었다. '루이스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게 되겠지.' 로저는 그 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에 벌어질 장면이 눈에 선했다. 루이스는 어머니가 침대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올 것이다. 경찰이 오고 부검이 실시 될 것이다. 독극물이 발견되면 그가 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장모를 독살했소?" 경찰이 물을 것이다. "그렇소." 그는 남자답게 자신이 지은 죄를 달게 받을 것이다. 다음 날, 로저는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어머니 방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겠지. 그 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어야 돼.' 로저는 옷을 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사라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늦었군. 난 기다리는 일은 질색이야." 그녀가 말했다. 로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독약을 마시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는가? "정말 악몽 같은 밤이었다. 어찌나 두통이 심하던지." 사라가 말했다. '이 여자는 마녀야. 다른 방법을 찾아야 돼.' 로저는 전기기구를 만지는데 아주 능숙했다. 그 날 저녁 사라가 외출한 틈에 로저는 장모 방에 들어가서 침대 머리맡 스탠드의 전깃줄을 벗겨 놓았다. 스탠드를 켜면 그대로 감전될 것이다. 로저는 전류에 감전되어 소리칠 사라의 비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로저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즉사했을 거야.' 로저는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에 로저는 옷을 입고 식당으로 갔다. 사라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 이 집은 이제 너무 낡았어. 침대 머리맡 스탠드의 전선이 너덜거리는 걸 내가 다 손봤다." 사라가 말했다. 로저는 할 말을 잃었다.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딴 걸로 매게." 사라가 쏘아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로저는 생각했다. 다음 날, 밤이 깊어지자 로저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와 장모가 자고 있는 방으로 기어갔다. 그는 베개를 들고 있었다. 몸을 숙여 베개를 사라의 얼굴에 대고 숨이 끊어 질 때까지 눌러댔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어긴 거야. 벌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로저는 생각했다. 침대로 돌아온 로저는 몇 주만에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무슨 좋은 일이 생겼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난밤이 다시 생각났다. 장모를 죽인 것이다.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식당으로 갔다. 사라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꿈자리가 어찌나 사납던지... 어떤 놈이 목졸라 죽이려 드는 꿈을 꿨지 뭐야." 사라가 투덜댔다. '소용없는 일이야. 사라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는 불사조야. 난 영원히 사라와 함께 살아야 될 운명인가봐! 로저는 그 날 아주 낙담해서 출근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요즘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걱정거리가 생긴 거 아니오?" 상사가 물었다. 로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기 싫었다. '어쨌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았잖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로저가 말했다. 그는 오늘 왜 특별히 우울한지 생각났다. 목요일이었다. 아내가 신부 감을 찾고 있는 젊고 잘생긴 백만장자와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루이스는 필경 나보다 그 녀석을 더 좋아하게 될 거야. 장모 말이 맞아. 나는 저명인사도 아니고 잘생기지도 못했어. 루이스는 잘못 결혼한 거야.' 로저는 혼자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밤늦게 귀가한 아내와의 대화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로저, 할 말이 있어요." "말할 필요 없어. 다 알고 있어." "켄을 사랑하게 됐어요." "당신을 탓하진 않아. 나보다 나은 친구지." "로저,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옳았어요. 조건이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해야 했어요. 오늘 밤 떠나겠어요. 켄하고 파리로 신혼여행 갈 거예요." "당신 어머니도 함께 갈 거요?" "아녜요. 어머니는 당신과 같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 날 밤, 루이스는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었다." "오페라에 가도 괜찮은 거죠?" 아내가 물었다. "그럼." 로저는 거짓말을 했다. "당신이 오페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아는데. 잘 갔다 와." "고마와요, 여보." 루이스는 그에게 키스했다. '이것이 마지막 입맞춤이겠지.' 초인종이 울렸다. 켄이었다. 정장을 한 그는 더 멋있어 보였다. 그는 로저에게 악수를 청했다. "당신 아내를 빌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천만 에요." 로저는 말했다. '곧 당신 아내가 될 사람 아닌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로저는 가슴이 찢어졌다. "설거지나 하게. 난 자야겠어." 사라가 말했다. 로저는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치운 다음 침실로 갔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는 루이스가 돌아와 이제 그들 사이는 끝났다고 말하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11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되어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로저는 일어나서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루이스는 돌아왔다. "할 얘기가 있어요." 루이스가 말했다. 로저는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을 거야. 내가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애야 돼.' "말해 봐." 로저가 말했다. 루이스가 그를 얼싸안았다. "내 생전에 지루한 저녁이었어요. 그렇게 쉬지 않고 말하는 남자는 처음 봤어요. 켄은 오페라가 끝나자 파티에 나를 끌고 갔어요. 그렇게 형편없는 파티는 처음이었어요." 그녀는 웃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당신 한사람뿐이에요." 로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주 듣기 좋은 말인데." 로저가 말했다. 사라가 방에서 나왔다. "둘 다 입 좀 다물지 못하겠니? 잠을 못 자겠다." 다음 날 아침, 행복한 사나이 로저는 차에 탔다. 차를 뒤로 빼려던 그는 장모가 차 뒤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조간 신문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그 때 장모가 신문을 집으러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의 차가 장모를 들이받았고, 그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교회에서는 마음속으로 지은 죄도 실제로 죄를 지은 것과 똑같이 여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로저는 장모를 독살하려 했을 때나 질식시키려 했을 때, 또 감전시키려 했을 때 벌써 죄를 지은 것이다. 어쨌든 간에 로저는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어겼다. 하지만, 경찰은 로저에게 매우 동정적이었다. "사고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그들은 말했다. 마침내 로저와 루이스는 둘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장모는 백만 달러를 남겨 놓고 죽었다. 7 일곱 번째 계명--간음하지 말라. 조스미스는 마피아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유명한 거물은 아니었다. 그는 열 살 무렵부터 마피아와 인연을 맺었다. 어렸을 때는 그들 밑에서 잔심부름을 했고,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본격적으로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돈을 제때에 갚지 않는 사람들을 혼내 주는 해결사 일을 했다. 조는 그 일을 기꺼이 했으며, 마피아의 일원이 된 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열 일곱 살 때 여자 친구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결혼했다. 사실 조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썩 예쁘지도 않은데다 성질은 고약해서 제멋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를 떼어버릴 수 없었다. 갱이기는 했지만 조 스미스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간음, 즉 남의 아내를 탐낸다는 건 꿈도 꾸어 번 적이 없었다. 마피아 두목은 프레드 불가티였는데, 그는 '얼음 송곳'이었다. 그는 육척 장신에 체구는 고릴라 같았는데,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인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다. 프레드에게는 아내와 세 아이들, 그리고 안젤라라는 정부가 있었다. 안젤라는 이름처럼 천사는 아니었지만,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자였다. 요염하고 관능적인 몸매에 영화배우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프레드는 젊은 조를 좋아했다. "조, 머지않아서 너를 '어른'이 되게 해 주마." 프레드가 말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큰 사건을 해결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일단 '어른'이 되어야 영원히 마피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조의 소원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어른'이었고 그 중에는 여러 번 큰 일을 맡아 본 사람도 있었다. 조는 그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어느 여름 날, 그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프레드가 그를 불렀다. "조, 좋은 기회가 생겼어. 자네 '어른'이 되고 싶은가?" 프레드가 말했다. 조는 그 말에 매우 흥분했다.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어떤 놈이 겁도 없이 안젤라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 신청을 했네. 전화 건 놈의 손가락을 몽땅 잘라 버리고, 안젤라의 목소리를 들은 그 놈의 귀도 잘라 버려. 그리고 데이트를 신청한 그 놈의 목구멍 속에다가는 총알을 먹여 줘. 할 수 있겠지?" 조는 프레드의 명령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문제없습니다, 두목." 그는 대답했다. 프레드는 권총과 칼을 주었다. "이 무기를 쓰도록 하게. 그 놈의 손가락과 귀를 가져와. 아무도... 아무도 내 안젤라에게 손댈 수 없어." 티모시 브라운--나중에 불쌍한 티모시 브라운으로 알려진--은 보험 외판원이었다. 그는 보험 때문에 안젤라에게 전화를 했었다. 머리가 둔한 안젤라는 이것을 데이트 신청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프레드에게 그 전화 이야기를 했고, 프레드는 조를 파견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을 때 티모시 브라운은 아파트 안에 있었다. 문을 열어 보니 조 스미스가 서 있었다. "브라운씨?" "그런데요. 무슨 일로 오셨죠?" "당신 일을 도와주러 왔소. 어제 안젤라라는 여자와 통화했소?" 조가 말했다. "네, 그래요. 그녀와 만나기로 돼 있는데요. 그 분이 오셨습니까?" "대신 날 보냈소." 조가 말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가는 책에 온통 피칠 갑을 하게 될까 봐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두 시간 뒤에 조가 불쌍한 티모시의 손가락과 귀를 프레드에게 갖다 주었다는 것만 얘기하겠다. 조가 전리품을 가져왔을 때 프레드는 아직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가져온 것을 잘 살펴보고 나서 프레드는 말했다. "잘 해냈군. 수고했어. 입에다 총알도 먹여 주었겠지?" "네, 두목." "좋아. 넌 '어른'이 된 거야. 이제부터는 우리 가족이야." 조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때부터 가족이 된 조는 마피아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은행과 주유소를 털고 도박장과 매춘조직을 운영했다. 한 마디로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만은 철저히 지켰다. 다른 갱들은 밥먹듯 저지른 일이었지만 조는 남의 아내를 탐낸 적도, 자기 아내를 속인 적도 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바로 그것이 중대한 실수였다. 어느 날 안젤라가 조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결혼해 있는 한 절대로 다른 여자는 탐내지 않을 거야. 하느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것을 어기는 사람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거야." 안젤라는 이 세상에 자기를 탐내지 않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사실 안젤라는 워낙 뛰어난 미인이었으니 그 생각이 별로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여자만 나타나면 틀림없이 탐내게 될걸요." 안젤라가 조에게 말했다. 조는 충격을 받았다. "천만에!" 그 말 한 마디로 안젤라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를 거부할 수 있는 남자는 없어. 조도 예외가 아니야.' 안젤라는 생각했다. 안젤라는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다. 어느 날 프레드에게 말했다. "누군가 날 쫓아다니는 것 같아요. 불안해 죽겠어요." "뭐, 그 놈이 누구야? 찢어 죽여 버릴 테야." 프레드가 소리쳤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군가 따라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당신이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면 좋을 텐데." "알다시피 그럴 수 없잖아. 난 사업을 해야 해." 프레드가 말했다. 안젤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당신 부하를 하나 붙여 주실래요? 그러면 마음이 놓일 거예요." "그거야 문제없지. 누가 좋겠어?" 안젤라는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아무나 좋아요. 조 스미스라도 괜찮아요." "좋지. 조는 괜찮은 놈이야. 너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일러두지." "고마워요. 한두 주일이면 충분할 거예요. 그 때쯤이면 쫓아다니던 사람도 단념하겠죠." 다음 날 아침, 프레드는 조를 사무실로 불렀다. "안젤라에게 문제가 좀 있는 모양이야. 누군가 쫓아다니는 것 같대. 붙어 다니면서 경호해 줘야겠어."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고맙네. 어떤 놈인지 알면 잡아서 토막을 내 버리고 팔 다리와 머리를 가져와. 알겠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떤 놈이든 절대로 내 안젤라를 건드리지 못해." 프레드는 소리질렀다. 그 날 오후 조는 안젤라를 찾아갔다. 그녀는 프레드가 준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안젤라는 훤히 비치는 잠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들어와요. 이제부터 날 경호해 준다구요?" 안젤라가 말했다. "그래요. 따라 다니는 놈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몰라요. 하지만, 이제 당신이 곁에 있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뭘 좀 마실래요?" 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향수 냄새 때문에 정신이 어찔어찔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오후에 쇼핑가신다고요?" 조가 말했다. "네." 조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럼, 옷을 입으시죠." 그녀는 조의 팔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프레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 놈을 잡아서 토막을 내버려.' "빨리 나갑시다." "좋아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안젤라는 침실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그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좀 와 주실래요?" 조는 급히 침실로 들어갔다. 안젤라가 옷을 반쯤 입은 채 서 있었다. "지퍼가 끼었어요. 좀 도와주세요."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등이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흥분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등이었다. 하마터면 등에 입맞출 뻔했으나 프레드에게 입술이 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지퍼를 올렸다. "고마워요." 안젤라는 조를 굴복시키려고 유혹하기 시작했다. 안젤라가 점찍어서 넘어가지 않은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자기는 외롭다고 암시를 준 다음 프레드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불평했다. 그리고는 너무 잘 생겼다고 조를 치켜세웠다. 조에게 데리러 오라고 한 다음 아파트 문을 열어 두었다. 열린 문으로 조가 들어오면 침실에 있다가 그를 불러 들였다. 들어가 보면 그녀는 알몸이었다. 조는 황급히 거실로 뛰어나갔다. 상황이 너무나 유혹적이고 위태위태했다. 조에게는 유혹에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일곱 번째 계명을 어겼다가는 하느님한테 벼락 맞아 죽을 것 같아 두려웠다. 둘째로, 안젤라를 건드리기만 해도 프레드가 잔인하게 죽이려 할 것이 분명했다. 반면에 안젤라는 조를 유혹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고 있었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얼음 송곳' 프레드는 안젤라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조하고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그가 물었다. 안젤라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괜찮아요. 특별히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별로 매력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찾아볼까?" "뭐,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사람, 일은 잘 해요." 안젤라가 대답했다. "그런데 아직도 누군가 쫓아다니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아직 아무하고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그래요. 하여튼 조가 같이 있으니까 훨씬 안심이 돼요." "좋아. 한 사흘 더 데리고 있게 해 주지. 그 다음엔 다른 사람을 붙여 줄게. 일이 있어서 조는 시카고로 보내야하거든." 프레드가 말했다. '사흘 남았다고? 서둘러야겠네.' 안젤라는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안젤라는 조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의 아내가 받았다. "조 있어요?" "누구세요?" "안젤라예요." "아, 안녕하세요? 요즘 제 남편을 자주 본다면서요?" 조의 아내는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에게 싫증이 나 있어서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했다. "잠깐만요. 바꿔 드릴게요." 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젤라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몸이 좀 안 좋아요. 지금 좀 와 주겠어요? 의사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곧 가겠습니다. 의사를 먼저 불러 드릴까요?" "아뇨. 우선 이리로 오세요." "그러죠. 바로 가겠습니다." 조가 말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말했다. "안젤라가 많이 아픈 것 같아." 5분 뒤에 조는 안젤라의 아파트로 갔다. 조가 도착했을 때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었다. 누군가 쫓아다닌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언제나 문은 열어 둔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안젤라의 목소리가 침실에서 들려 왔다. "조, 나 여기 있어요."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 안젤라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리 오세요." 아주 약한 목소리였다. 조는 걱정이 되었다. 신음 소리까지 들렸다. "열이 나나 봐요. 이마 좀 만져 주겠어요?" 침대 옆으로 가서 이마에 손을 대었다. 뜨거운 것 같았다. "열이 나는군요." 조가 말했다. "아플 때 혼자 있는 건 정말 싫어요. 프레드는 언제나 나를 혼자 내버려둬요. 그이는 내게 관심이 없나 봐요." 안젤라가 속삭였다. "그렇지 않아요." 조는 단호하게 말했다. 프레드가 그녀에게 관심을 쏟는 게 지나쳐서,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장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안젤라는 조의 손을 잡고 침대 옆으로 끌어당겼다. "당신은 프레드와는 달라요. 섬세하고 자상하고, 게다가 미남이에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런 다음 조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조는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내가 싫어요? 내가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걸 몰라요?" 안젤라가 말했다. 조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안젤라, 당신은 날 사랑하면 안 돼요. 당신은 프레드 것이에요."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난 당신의 것이 되고 싶어요." "그건 안 돼요. 우리가 가까운 사이가 되면 프레드는 우릴 둘 다 죽일 거예요. 적어도 나는 죽일 거라구요. 그는 토막내 죽이는 걸 즐기는 사람이에요." 조는 일어서려고 했다.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안젤라는 조를 위에서 끌어안았다. "정말로 가고 싶은 건 아니죠?" 그녀는 침대 시트를 걷어 버렸다. 조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방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안젤라는 조를 점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불행하게도 조는 강철로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프레드가 어떻게 알겠어?' 그는 생각했다. 일곱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도, '하느님은 아마 다른 죄인들 때문에 바쁘겠지.' 하고 생각해 버렸다. 5초 뒤 조는 안젤라와 함께 침대에 누웠고, 곧 그녀의 팔이 감겨왔다. '내 평생 최고의 순간이 될 거야.' 조는 생각했다. 바로 그 때 '얼음 송곳' 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꼼짝없이 들켰다." 조가 놀라 일어나 보니 프레드가 침대 발치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면 그의 평생이 섬광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고 한다. 조는 물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 생애가 한 순간에 눈앞을 스쳐 갔다. 프레드는 먼저 어디부터 자르려고 할까? 조는 거의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프레드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서 있었다. "너희 둘 다 옷 입어." 그는 소리쳤다. 안젤라는 겁에 질려 있었다. 프레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는 간신히 기어 나와 옷을 입었다. 프레드는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여자와 내 심복이..." 프레드가 말했다. 조는 이왕 죽을 바에는 남자답게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젤라는 잘못이 없어요.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억지로..." "입 닥쳐!" 프레드가 소리질렀다.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한 마디도 하지 마." 프레드는 안젤라에게로 돌아섰다. "못된 화냥년 같으니. 그렇게 호강시켜 줬더니..." 두 사람이 옷을 입자, 프레드가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밖에 내 차가 있어. 나가서 차에 타." 조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일곱 번째 계명을 어긴 그를 벌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살아날 길은 없었다. "제발, 프레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달라요. 우리는 단지..." "너희들이 한 짓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프레드가 말했다. "하지만..." "입 닥치고 어서 나가." 그는 차가 있는 곳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검은 색 리무진이 있었다. 차에는 마피아 단원이 한 명 타고 있었다. 프레드는 조와 안젤라를 뒷자리에 밀어 넣었다. "가자" 프레드가 운전사에게 말했다. 조는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다. 이제 그의 생애는 끝장나는 것이다. 곧 토막토막 잘려져서 고기밥으로 던져질 것이다. "어디로 가는 거죠?" 조는 간신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입 닥치라고 했잖아!" 프레드가 소리쳤다. 그 뒤로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달렸다. 라스베이거스가 눈에 들어오자 조는 깜짝 놀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죽이려는 건가? 차는 교회 앞에서 멈춰 섰다. 조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다. "차에서 내려!" 프레드가 말했다. 안젤라와 조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좋아. 이제 내 생각을 말해 주지." 그는 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넌 내 부하였고 나는 너를 믿었어. 넌 죽어 마땅하지만, 난 인정 많은 사람이니까 너를 살려 둘 거야." 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프레드는 이번에는 안젤라를 쳐다보았다. "너도 믿었었지. 그런데 넌 나를 배신했어. 하지만, 너도 용서한다. 왜 용서하는지 알아? 너희 둘 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야. 너희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 안젤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프레드를 쳐다보았다. "내가 원래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서 너희 둘을 살려 두기로 했다." 프레드는 조에게 말했다. "너는 안젤라와 결혼해야 돼." "저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이미 결혼했잖아요." 조가 말했다. "그건 걱정마. 네 아내는 지금 법정에서 이혼 수속중이니까." 조는 혼쭐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안젤라와 결혼하려는 순간에 아내는 이혼 수속을 하는 등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의아해 할 여유가 없었다. 전날 프레드의 사무실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조가 들었다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날, 프레드는 부하 한 명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안젤라를 떼어버려야겠어. 점점 나를 미치게 만들어. 해달라는 게 끝이 없어. 별의별 보석에 밍크까지 가지고 있는데도 성에 안 찬다는 거야." "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깨끗이 헤어질 방법이 있을까요?" 프레드에게는 묘안이 있었다. "조를 써먹어야겠어. 내가 보기엔 안젤라가 조를 유혹하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가 거기에 넘어갈까요?" "자네 돌았어? 물론 넘어가지. 이 세상에 안젤라한테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나? 아파트에 가서 지키고 있다가 그가 넘어가는 순간에 현장을 덮쳐야지. 그리고 조를 안젤라와 결혼시키는 거야. 조의 아내는 이혼을 시키면 될게고. 기가 막힌 생각이 아닌가? 사실 나는 근사한 새 애인이 생겼단 말이야." 이렇게 해서 조 스미스는 아름다운 안젤라와 결혼하게 되었고, 보기 싫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8 여덟 번째 계명--도둑질하지 말라. 톰 워너는 일 주일에 150달러를 받는 은행원이었다. 부양 가족이 없는 총각이었다면 그 봉급만으로도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톰은 결혼해서 아들이 셋이나 딸려 있었다. 그의 봉급으로 아내와 세 아이를 먹이고 공부시키고 신발과 옷을 사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젊었을 때는 크게 성공해서 자신의 은행 하나를 갖겠다는 꿈을 품었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인 메리에게 훌륭한 집을 한 채 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큰 요트를 타고 아이들에게 온 세상을 구경시켜 주는 게 꿈이었다. 이제 마흔 다섯이 된 톰은 돈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청구서가 밀려 있는데도 자고 나면 또 새 청구서가 날아왔다. 아무리 절약하려고 애를 써도 언제나 적자였다. 그런 톰이 은행에서 매일 수백만 달러를 만진다는 것은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돈이 톰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지만... 어느 날 아침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애들 신발이 다 떨어졌어요." "아니, 산 지 두 달밖에 안 됐잖아." "알아요., 하지만, 벌써 다 닳았어요. 그리고 정육점엔 외상값이 밀려 있어요. 한 번만 더 달라고 했더니 더 이상은 못 주겠대요." "외상이 얼마나 되는데?" "이백 달러요." 톰에겐 2백 달러나 2천 달러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돈이 있어야 갚지." 톰이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말을 꺼냈다. "여보, 빵가게에도 외상값이 밀려 있어요." "거기에도?" 정육점과 빵가게만이 아니었다. 보험료 수금원, 자동차 정비공, 집수리해 준 전기공, 아이들 치과의사, 텔레비전 수리공, 집주인 등등 돈 들어갈 데가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세도 내야 했다. 그들 가족이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는 월세가 3백 달러밖에 되지 않았지만, 톰은 매달 그 정도의 월세 마련도 힘겨웠다. 그 아파트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곧 봉급도 오르고 승진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게이블 씨한테 봉급 좀 올려 달라고 하세요." 메리가 말했다. 게이블은 톰이 다니는 은행의 행장이었다. "약속한 지 벌써 몇 년 됐잖아요." "알고 있어. 그 얘긴 다시 꺼내고 싶지도 않아." 톰이 말했다. 사실 톰은 게이블을 두려워했다. 그는 직원들을 못살게 굴면서 그걸 즐기는 지독한 폭군 같은 사람이었다. 굉장한 부자였지만 남에게 나누어 줄 줄 몰랐고, 보수는 제일 적게 주면서도 그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왜 올려 달라고 못 해요? 가서 분명하게 얘기하세요.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죠." 아내가 말했다. 메리는 남편보다 강한 여자였다. 톰은 사실 매우 소심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굽히는 사람이었다. 메리는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그가 좀더 강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약속하세요." 메리가 말했다. "좋아." 톰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언제 하시겠어요?" "오늘 아침에 만나 보지." 톰은 행장실로 들어갔다. "게이블씨, 전 이 은행에서 10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 동안 봉급 인상은 한 번밖에 없었어요. 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봉급을 더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람한 체구에 살이 찐 게이블은 음식과 여자만 밝히며, 아랫사람의 사정 같은 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얼마를 받고 있지?" "일 주일에 150달러입니다." 게이블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많이 받나? 그렇다면 그 봉급에 만족할 줄 알아야지." "아이가 셋이나 있습니다. 그 돈 가지고는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도 빠듯합니다." "영화보고 파티 쫓아다니느라고 돈이 많이 드는 모양이군." 영화를 본 지는 1년이 넘었고, 마지막으로 갔던 파티가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없었다. "아닙니다." 톰은 황급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돈을 정말 아껴 쓰고 있습니다. 단지 돈이 부족할 뿐이에요." "그래? 그럼, 이제부터는 수입에 맞춰서 쓰게. 요즘은 은행 사정이 나빠. 돈이 말라 버렸어. 하지만, 자넨 훌륭한 일꾼이니까 내년엔 봉급이 인상될 거야." "그렇지만, 게이블씨,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자넨 해마다 봉급을 올려 달라고 졸라댔었단 말인가? 이젠 그만 하게. 여기 일이 정 싫다면 다른 사람을 쓰겠네." 톰은 왈칵 겁이 났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꼼짝없이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일이 싫다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얘긴 없었던 걸로 하지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이제 가서 일이나 하게." 톰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날 아침 은행은 매우 붐볐다. 고객 중에는 큰 회사, 돈 많은 투자가, 그리고 심지어 작은 나라까지도 있었다. 은행에서는 매일 수백만 달러가 대출되었고, 그 중 상당 부분이 톰의 손을 거쳐서 나갔다. 톰은 부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치과나 정육점에 외상 갚을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수리비용이나 잠잘 집을 마련할 걱정 따위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걱정거리라고 해야 고작 휴가를 어디로 갈까, 마누라한테 어떤 밍크 코트를 사 줄까, 애들을 어떤 고급 사립학교에 보낼까 하는 것들일 것이다. 그 날 밤, 톰이 집에 오자 아내가 물었다. "여보, 봉급 올랐어요?" 톰은 아니라고 말하려 했으나 간절한 아내의 표정을 보자 차마 그녀를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 올려 준대." 톰은 거짓말을 했다. 아내는 톰을 끌어안았다. "어머나, 정말 잘 됐어요."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지?' 톰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했다고, 마땅히 받아야 할 자기 몫을 받아 내지 못했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여보, 우리 축하 파티 해요. 오늘 저녁엔 아이들 데리고 외식합시다. 나가서 먹은 지도 오래 됐잖아요." 메리가 말했다. 톰은 가슴이 철렁했다. 식구들을 데리고 외식할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좋은 생각이야." 그는 힘없이 말했다. 주머니 속을 더듬어 보았다. "담배가 떨어졌군. 나가서 사 와야겠어." "애들 준비시킬게요." 메기가 말했다. 절망적이었다. 톰은 밖으로 나와 담뱃가게가 아니라 전당포로 갔다. 톰이 들어서자 전당포 주인이 쳐다보았다. "어떻게 오셨죠?" 톰은 시계를 풀었다. "이걸 잡고 돈을 좀 빌려주세요." 주인은 시계를 살펴보았다. "10달러 드리죠." "10달러라고요! 그 시계는 백 달러 짜리인데요." 주인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말했다. "15달러 이상은 안 돼요." 터무니없이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톰은 돈이 필요했다. "좋아요." 톰이 말했다. 주인은 시계를 집어넣고 5달러 짜리 지폐 석 장을 건네주었다. "일 주일 내로 찾아가지 않으면 팔아 버립니다." 주인이 말했다. 톰은 겁에 질렸다. 시계는 꼭 있어야 했다. 일 주일이라! 그 안에 어디서 15달러나 마련한다는 말인가? "한 달로 하면 안 될까요?" "절대 안 돼요. 일 주일 지나면 시계를 팔겠고."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됐지? 톰은 기가 막혔다. 아내에게 한 한 마디 거짓말은 점점 더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 날 저녁, 톰은 아내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값이 싸서 그 곳으로 간 것이다. 청구서가 왔을 때 보니 정확히 15달러였다. 이제는 시계도 없고 돈도 없었다. 집에 오는 길에 메리가 말했다. "여보, 저녁 잘 먹었어요. 그런데 봉급은 얼마나 올랐어요?" 사실 말하기엔 이젠 너무 늦었다. '기왕 거짓말하게 된거 차라리 크게 하는 게 낫지.' 톰은 생각했다. "일 주일에 50달러." 메리는 남편을 끌어안았다. "여보, 정말 잘 됐어요. 그럼, 이젠 일 주일에 2백 달러를 받는군요." "그렇지." 톰은 말했다. '꿈속에서나 받게 되겠지. 백 살까지 산다고 해도 게이블이 내게 일 주일에 2백 달러를 줄 리가 없지.' "그럼, 이제 청구서가 안 밀리겠네요." 메기가 들떠서 말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뿐이야. 죽어 버리는 수밖에 없어. 아내가 보험금으로 청구서 밀린 것을 갚을 수 있을 거야.' 톰은 생각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몇 시나 됐어요?" 메리가 물었다. 시계를 보려던 톰은 이제 시계가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시계를 집에 두고 나왔어." 그는 말했다. 톰은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해결책을 찾으려했다.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으면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니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직장은 그대로 다니면서 밤에 부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아내와 아이들 얼굴은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될 테고 종일 일만 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었다--자살. 그는 만 달러 짜리 생명보험에 들어 있었다. 그 돈이면 빚진 돈을 모두 갚고도 아이들을 충분히 공부시킬 수 있다.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것 뿐이야. 자살하는 수밖에 없어.' 톰은 생각했다. 갑자기, 자살하면 보험금 지급이 취소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고로 죽어야만 한다. 자연사에는 만 달러가 지급되지만 사고 시에는 이중보상 조항이 있기 때문에 2만 달러가 지급된다. '사고처럼 보이게 해야 돼.' 톰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까? 자살이라는 증거를 잡기 힘들 거야. 차를 몰고 산으로 질주하는 건 어떨까? 그게 좋겠어. 산으로 가자.' 옆에서 자고 있는 메리를 돌아보았다.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를 보고 싶어하겠지. 애들도 그럴 거야.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아내는 누군가를 만나 재혼하겠지.' 톰은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져서 눈물이 났지만, 아내가 깰까 봐 소리를 죽이고 울었다. 아침에는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했으니 가급적 빨리 해치우고 싶었다. 톰은 자기 목숨을 내던질 만큼 가족을 사랑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메기가 말했다. "오늘 아침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여요. 봉급이 올라서 그런가 보죠?" "그래, 오랜만에 기분이 아주 좋군." 그것은 사실이었다. 죽는다는 것도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겁나지 않았다. 자살하기로 일단 마음먹자 톰은 모든 일을 정리해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생명보험이 제대로 지급될지 점검하고, 밀린 청구서들을 모아 중요한 순서대로 적어 놓았다. 집세, 정육점 등의 순서로 메리가 볼 수 있도록 설명서를 만들어 두려 했다. '아냐, 안 돼. 그러면 내가 계획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은행 안을 둘러보았다. '오늘로 이 곳도 마지막이군. 이 사람들 모두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점심 먹으러 가세." 같이 일하는 그레고리가 말했다. "그러죠." 톰이 말했다. 마지막 점심이었다. 그들은 은행 부근의 음식점으로 갔다. 그레고리는 기업 합병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직위는 부행장이었다. 그는 톰과 마찬가지로 게이블을 싫어했다. "자네, 게이블이 요즈음 어떤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지 소문 들었나?" 그레고리가 물었다. 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골든 베네수엘라 커피회사에 비밀 대출을 준비중이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주식 값이 열 배는 뛸 거야."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한 몫 잡고 싶으면 지금 그 주식을 사 놓게. 아마 월요일이면 그 계약이 발표될 꺼야." 무슨 돈으로 주식을 산단 말인가? 톰은 씁쓸했다. 손목시계까지도 전당포에 저당 잡혔는데... "고맙습니다. 기억해 두지요." 톰이 말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그레고리가 말했다. "자, 이제 일하러 가야지." '죽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군!' 톰은 생각했다. 그는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토요일, 메리에게는 볼일이 있어서 외출한다고 말해 두리라.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톰은 산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굴러 떨어질 것이고, 분명히 사고로 기록될 것이다. 톰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 오후를 보내러 은행으로 돌아갔다. 사무실 저쪽에서 그레고리가 전화기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 보였다. 그레고리는 열 배로 뛰어오를 주식을 사고 있을 것이다. 운 좋은 그레고리! 그 때 여비서 한 명이 톰의 책상으로 와서 쪽지를 건넸다. "이 전신환이 방금 스웨덴 은행에서 들어왔는데요. 그 쪽 계좌로 입금시켜 주시겠어요?" "그러죠,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톰이 말했다. 그는 전신환을 힐끗 쳐다보았다. 백만 달러 짜리였다. 톰은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금요일, 이것은 월요일까지는 입금이 안 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흘의 여유가 있다. 업무규정대로 처리하자면 즉시 스웨덴 은행 계좌로 입금시켜야 했다. '제기랄, 업무규정이 다 뭐람!' 톰은 생각했다. 갑자기 터널 저 끝에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톰은 그 수표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까지는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주가 상승분을 채기고 원금은 돌려 줄 수 있을 거야. 이건 도둑질이 아니야. 월요일까지 돈을 잠시 빌리는 것뿐 이야. 주가가 올라가자마자 당장 돈을 돌려주면 돼. 난 부자가 되겠지. 자살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야.' 톰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생각했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는 증권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골든 베네수엘라 커피 회사 주식을 백만 달러 어치 사고 싶은데요."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난 백만 달러를 훔쳤어. 발각되면 평생을 감옥에서 살게 되겠지.' 다음 날 아침, 메리가 말했다. "산에 가실 일이 있다더니요?" "다음으로 미뤘어." 톰이 말했다. 아내에게 이제 곧 굉장한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월요일이면 커피 회사에 대한 뉴스가 발표될 것이고 주식 값은 폭등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중개인에게 주식을 팔라고 해서 백만 달러를 은행에 되돌려 주면 된다. 그리고는 직장을 그만두고 메리와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아예 요트도 하나 사야지.' 톰은 생각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톰은 주말 내내 한잠도 자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나 천천히 갔다. 마침내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 일찍 증권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골든 베네수엘라 커피 회사 주가가 어떻습니까?" 톰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중개인이 물었다. "주가가 얼마나 올랐느냐고요?" 하나도 안 올랐어요. 오히려 1포인트 내렸어요." 톰은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입니까?" "예,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셨나 보죠?" "아니, 그래요. 내 말은... 상관없어요.' 그는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평생 이토록 절망했던 적은 없었다. 그는 백만 달러나 빼돌려서 오르지 않는 주식을 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은행에서는 매일 마감시간마다 모든 계좌를 점검하고 계수를 맞춘다. 그는 꼼짝없이 발각될 것이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10시에 중개인에게 다시 전화했다. "주가에 변동이 있나요?" "네, 있어요." 톰은 가슴이 뛰었다. "뭐죠?" "또 1포인트 내렸어요." 톰은 수화기를 내던졌다. '좋아.' 그는 생각했다. '게이블에게 가서 당당하게 내가 한 일을 얘기하자. 날 체포해서 감옥에 넣겠지? 메리와 애들은 망신을 당할 거야.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잡힐 때까지 버티는 게 낫겠어.'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벌써 정오였다. 3시에 계좌를 점검하면 모든 것이 발각될 것이다. 톰은 그레고리에게 갔다. "아, 그런데 말이죠." 우연히 생각난 듯이 말을 걸었다. "지난 번 얘기하던 베네수엘라 커피 건은 어떻게 됐어요? 무슨 소식 없어요?" "그 건은 깨져 버린 것 같아." 그레고리가 말했다. 톰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고 싶었다. "점심 먹으러 갈까?" 그레고리가 물었다. 톰은 고개를 저었다. 뭘 먹을 경황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탄로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자답게 게이블에게 가서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건너편 쪽을 보니 마침 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다음 그쪽으로 갔다. 게이블은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젠 끝장이야.' 톰은 생각했다. '이걸로 결혼생활도, 내 인생도 끝이야. 20년은 감옥에 있게 되겠지.' "저, 게이블씨..." 톰이 말을 꺼냈다. "난 지금 바빠." "하지만..." "나중에 얘기하게." "그렇지만..." "나중에 하라니까!" 톰은 잠시 선 채로 있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나오고 말았다. 자리로 돌아온 톰은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나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봉급이 올랐다는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손목시계로, 그리고 자살계획으로 이어진 것이다. '졸지에 내 인생을 망쳐 버렸어!' 톰은 생각했다. 게이블이 막 방을 나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톰은 고백하려고 급히 쫓아갔다. "게이블씨, 저는..." 이제야 점심 좀 먹으려고 나가는 길이야." "저..." 게이블은 이미 가고 없었다. '고백할 기회조차 안 주는구나. 곧장 경찰서로 가서 자수해 버릴까? 아냐, 게이블 씨가 먼저 알아야 돼.' 톰은 생각했다. 마침내 2시가 되었다. 게이블은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톰은 이번에야말로 꼭 고백하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일어섰다. 할말까지 이미 준비해 두었다. "게이블씨, 백만 달러를 개인적인 일에 썼습니다. 잘못인 줄 잘 압니다만, 가죽을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찰에 자수하고 감옥에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게이블이 말을 막지 못하게 할 것이다. 톰은 일어서서 게이블의 사무실 쪽으로 한발을 떼어놓았다. 그 순간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고백할 각오가 굳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계속 걸어갔다. 전화는 쉬지 않고 계속 울려 댔다. 톰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기로 했다. 평생 마지막으로 받는 전화가 될 것이다.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톰이오?" "그런데요."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에 들떠있었다. "세상에! 이봐요, 엄청난 횡재요, 횡재!" "뭐라구요?" "커피주식 말이에요. 미친 듯이 오르고 있어요." 톰은 온몸의 피가 몽땅 얼굴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이세요?" "열 배나 올랐어요. 그러고도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파세요." 톰은 말했다. "알겠죠? 팔라고요."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 올라..." "글세 팔라니 까요!" 톰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질렀다. 톰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충격에 못 이겨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천만 달러를 번 것이다! 어지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제 할 일은 꾼 돈 백만 달러를 되돌려 주는 일뿐이었다. 게이블이 톰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톰, 오늘 밤 야근 좀 해야겠네. 자네가 처리할 계약 건이 있는데..." 톰은 벌떡 일어섰다. "잘 먹고 잘 사시오, 게이블."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있는 게이블을 남겨두고 톰은 은행 밖으로 걸어 나왔다. 톰은 백만 달러를 은행에 돌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9백만 달러를 받아서 메리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했다. 메리에게 자동차와 멋진 옷을 사 주고, 온 가족이 유럽으로 석 달 동안 여행을 갔다. 9 아홉 번째 계명--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도널드는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독신자였다. 그는 백화점의 구두 매장에서 일하며 시카고의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생활은 단조로웠으나 특별한 불만은 없었다. 매일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술 한 잔 마시고 책을 읽거나 TV를 보는 정도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널드의 인생에 변화가 왔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오면서 보니 옆 아파트에 가구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여러 달 동안 비어 있었다. 새 이웃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그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할 때 도널드는 새 이웃과 마주쳤다. 부인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자그마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거구에다 첫인상이 사나웠다. 그들을 보자 도널드는 미녀와 야수가 생각났다. 도널드가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여자는 미소지었지만, 남자는 그를 쏘아보았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그것은 곧 밝혀졌다. 한밤중에 도널드는 옆 아파트에서 질러대는 고함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벽이 얇아서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낱낱이 들려 왔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내가 외박하고 싶으면 외박하는 거야. 어떤 여자도 내 행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 "당신 행동에 참견하려는 게 아녜요." 여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건..." "상관 마!"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다시 한번 잔소리했다가는 얻어터질 줄 알아." 뺨을 때리는 소리에 도널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이어 우는소리도 들려 왔다. "제발 때리지 좀 마세요." 여자가 말했다. "그럼, 이제 입 닥쳐." 소리는 그쳤지만 도널드는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옆집의 아름다운 부인과 야수 같은 남편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웠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 문을 나서던 도널드는 옆집 부인과 마주쳤다. 일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눈 주위와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도널드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좀 당황해 했다. "안녕하세요?" 어젯밤에 들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안해 할까 봐 참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어디가지나 그들 부부간의 문제였다. 그러나 일은 계속 벌어졌다. 그 날 밤,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얇은 벽을 통해 또 소리가 들려왔다. "병원의 의사 놈하고 시시덕거리다 왔지? 내가 다 안다고." 남자가 으르렁댔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불성실하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다고 생각지 말아요." 여자가 대답했다. "뭐가 어쩌구 어째? 너, 맞고 싶어?" 남자가 소리질렀다. 도널드는 화가 솟구치는 것을 겨우 자제했다. '어쩌다가 저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또 취했군요. 제발 술 좀 그만 마시세요." 여자가 말했다. "누가 너한테 잔소리하라고 했어?" 접시가 벽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그만하세요. 제일 좋은 그릇이에요." "이 집안에 있는 건 모두 다 내 거야. 내 걸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잔소리야!" 남자가 말했다. 또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파요!" "좋아. 만일 다시 바가지를 긁어대면 그 땐 정말 본때를 보여 줄 거야. 알아들어?"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널드는 이웃집 남자를 죽이고 싶도록 화가 났다.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예쁘고 착한 여자가 비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참고 있기는 힘들었다. 다음 날 아침, 도널드가 문을 나서자 옆집 부인과 또 마주쳤다.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도널드가 물었다. "예, 안녕하세요?" '참 따뜻한 미소로구나!' 도널드는 생각했다. "저...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도널드가 말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사방을 들러보았다. "아뇨,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저, 제가 뭐 도와 드릴 일이 있다면..." 도널드가 말했다. 그녀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제발, 상관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과 얘기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남편은 절 죽이려고 할 거예요." "왜 남편이 그렇게 학대하도록 놔두십니까?" 도널드가 물었다. "결혼 초엔 이렇지 않았어요. 하지만, 변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떠날 수도 있잖아요." 도널드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요. 제 직장을 알거든요. 끝까지 따라와서 죽이려 들거에요." 도널드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잊지 마세요. 제가 옆집에 있습니다. 필요할 땐 언제라도 부르세요." 그녀가 미소지었다. "고맙습니다." 그들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널드가 여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다.' 그는 생각했다. "그만 가 봐야겠어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도널드는 여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도울 수 있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벽이 워낙 얇아서 옆집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다 들려왔다. 남편은 술에 취하고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내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매맞는 소리에 이어, "제발 때리지 마세요."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원하는 그녀를 남편은 또 때렸다. '어떻게 좀 도울 수 없을까!' 도널드는 안타까웠다. 토요일 아침, 도널드는 아파트 문을 나서다가 이웃 여자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토요일에도 일하세요?" "아뇨.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에요. 남편은 자고 있거든요."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망설였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도널드는 알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댁의 남편은 모를 거예요. 그리고 같이 아침 좀 먹는 걸 가지고 나무랄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미소지었다. "좋아요." 그들은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이웃으로 지내게 돼서 무척 기쁩니다." 도널드가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참 좋은 아파트예요." 그녀는 도널드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는 뜻이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도널드가 물었다. "간호사 에요. 병원에서 일해요." "어떻게 간호사가 되었어요?" 그녀는 수줍어하며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돌보는 일을 좋아했어요.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아프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가 돌봤죠. 여동생 하나도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돌봤구요. 그러다가 간호사가 되었죠." 도널드는 생각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나를 돌보아 준다면 얼마나 좋겠소!'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세요?" 그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2년이요." " 어떻게 "어떻게 남편과 만나셨어요?" "그는 입원 환자였어요. 싸우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들어왔는데 제가 담당이었어요. 회복되자 청혼을 하더군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그녀는 계속 얘기했다. "신혼 때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죠. 그를 변하게 만든 저 자신이 원망스러워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남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왜 당신 책임이에요? 자신이 한 일에만 책임을 지는 거예요." 도널드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전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껴요." "그러면 안 됩니다." 도널드가 흥분해서 말했다. 종업원이 테이블로 오자 그들은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턱이 부어 올라서 그녀는 먹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도널드는 마음이 아팠다.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도널드가 물었다. "바로 여기 시카고에서 태어났어요." "저도 그래요. 전 동부 시카고 에요." "저도 그쪽이에요." "취미는 어떤 겁니까?" "오페라는 연극을 좋아해요." "저도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신기했다. 동부 시카고에 대해서, 그리고 다녔던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도널드는 어느 누구와도 이렇게 즐겁게 지내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와 평생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녀에게 야수 같은 남편이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널드는 그녀의 멍든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간 언젠가는 남편 손에 죽고 말 거예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헤어지세요." 도널드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순 없어요. 결혼했는데요. 그 사람하고 함께 있어야 해요."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도널드가 물었다. 그녀는 도널드의 눈을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이제는 아니에요." 도널드는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손을 여자의 손에 포갰다. "만나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도널드가 말했다. "저도 그래요." 그녀의 입가에 다시 그 기막힌 미소가 스쳤다. 도널드는 아파트까지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집안으로 사라지자마자 남편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누구하고 있었어?" "혼자 있었어요. 아침 좀 먹었어요." "거짓말 마." 때리는 소리에 이어 바닥에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흐느낌 소리가 뒤를 이었다. "제발, 날 내버려둬요." 또다시 때리는 소리가 났고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도널드는 생각했다. 옆집으로 들어가 남편의 폭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몸집은 도널드의 두 배였다.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옆집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남자는 한밤중에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고함을 지르며 아내를 깨웠다. 곧 때리는 소리가 나더니, 울면서 때리지 말라고 애걸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진짜 근사한 여자하고 놀았지." 남자가 자랑했다. "뜨거운 피가 끓는 여자였어." "그 여자한테로 가지 그러세요?" 여자가 말했다. 또다시 때리는 소리가 났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눈은 꺼멓게 멍들고 입술은 부풀어올라 있었다. 걷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괜찮으세요?" 하고 도널드가 물으면 대답은 항상 한결 같았다. "그럼요, 괜찮아요." 한 번도 불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도널드는 아름다운 이웃 부인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구두를 팔면서도 마음은 미녀와 야수에게 가 있었다. '남편이 그녀를 죽이기 전에 구출해 내야 해. 남편이 없어져 준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도널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그들은 다시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녀의 입술은 부어 오르고 터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도널드가 말했다. "예, 안녕하세요?" 입술의 상처 때문에 그녀는 겨우 말했다. 도널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직장에 늦었어요." "중요한 일입니다. 5분이면 돼요."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좋아요." 그들은 함께 아침을 먹었던 곳으로 갔다. "이런 식으로 살면 안돼요. 이러다간 당신은 죽습니다. 알고 있죠?" 그녀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될지 전 모르겠어요." 그녀는 울었다. "이제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그 집에서 나오세요. 그에게서 떠나라고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어디로 가죠?" "아파트를 구해 놓겠어요. 당신 남편이 절대 찾아 낼 수 없는 곳에 다요. 당신은 병원을 그만두세요. 돈은 내게 충분히 있어요. 당신을 먹여 살릴 만큼은 갖고 있어요."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시려는 거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도널드가 대답했다. 그녀는 손을 그의 손위에 포갰다. "저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도널드?" 도널드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럼, 다 결정된 겁니다. 나에게 하루나 이틀 여유를 주세요. 당신이 있을 만한 곳을 구하겠어요. 그리고 나서 그와 이혼하고 나와 결혼하는 겁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정말로 저와 결혼하기를 원하세요?" "제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당신뿐이에요. 당신은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래요." 새벽 2시에 도널드는 옆집에서 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남자가 아내에게 또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통 때보다 더 심각했다. 여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을 떠나겠어요. 다른 사람하고 결혼할 거예요." 도널드는 기쁨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뭘하겠다고?" 남자가 소리쳤다. 심하게 때리는 소리가 났고,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이젠 그만해요. 여기서 나가겠어요." "아무 데도 못 가." 남자가 소리질렀다. 다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 도널드는 무거운 물건이 내리쳐지고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해졌다. 도널드는 파랗게 질렸다. '그녀를 죽였어!' 도널드는 벽에다 귀를 바싹 갖다 대었다. 몸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탄자를 끄는 소리도 났다. 그녀의 몸이 양탄자에 둘둘 말리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널드는 문 앞으로 가서 귀를 기울였다. 계단 아래로 살금살금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체를 끌고 나가서 숨기려 하는구나!' 도널드는 밤새도록 방안을 서성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했다. 아침에 그녀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전 내내 집안에 있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녀가 일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른 간호사가 받았다. "오늘 출근하지 않았는데요." '물론 그랬겠지. 죽었으니까.' 도널드는 생각했다. 그 짐승 같은 남편이 감쪽같이 빠져나가도록 놔 둘 수는 없었다. 벽에 귀를 대 보았다. 이리저리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그냥 숨어있군. 도망갈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거야. 안 돼, 안 돼. 도망가도록 할 수는 없어. 넌 아내를 살해한 놈이야. 벌을 받아야 돼.' 그러나 어떻게 그가 죄값을 치르도록 할 것인가? 아무 증거도 없지 않은가! 누가 물으면 남자는 아내가 여행 떠났다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경찰은 달리 증거를 찾기 힘들 것이다. 남자가 어디에다 그녀의 시체를 숨겨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일 경찰이 집안을 수색하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수색하도록 만들지?" 그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널드는 경찰서로 갔다. "살인사건을 신고하려고 왔습니다." 도널드가 말했다. 담당 형사가 그를 바라보았다. "누가 죽었습니까?" "이웃 주민입니다." 여기가 도널드가 아홉 번째 계명을 어긴 대목이다. "제가 보았어요. 아내를 죽인 그 남자 옆집에 제가 살고 있거든요. 그들이 싸우는 소리와, '살려 주세요.' 하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그가 그 여자를 죽였어요." "어떻게 아시죠?" "그가 시체를 건물 바깥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어요." 경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남자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직 집안에 있어요." "좋아요. 두 명의 수사관을 보내겠고." "고맙습니다." 그는 거짓 증언을 했지만 당당했다. 사랑했던 여자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두 수사관이 도널드와 함께 아파트로 갔다. "여기는 제 집이고, 살인이 일어난 곳은 옆집입니다." "남자가 지금 안에 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시체 옮기는 걸 분명히 보셨습니까?" "네," 도널드는 거짓말을 했다. "좋아요." 수사관들은 권총을 꺼냈다. "뒤로 물러나세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수사관 하나가 문을 두드리고 기다렸다. 대답이 없었다. 좀더 세게 다시 두드렸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수사관이 문에다 귀를 갖다 댔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군. 틀림없이 안에 있어." "문을 부숩시다." 다른 수사관이 말했다. 두 남자가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세 사람은 아파트로 들어갔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남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기겁할 일이었다. 도널드는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죽은 것은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남편이었다. 한밤중에 그가 들은 것은 그녀가 남편의 시체를 옮기는 소리였다. 도널드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여자가 도널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를 죽였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을 체포합니다. 함께 경찰서로 가시죠." 수사관이 말했다. 도널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꼼짝 못하고 서서 자신이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잡혀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10 열 번째 계명--이웃집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이번엔 이웃집을 2년 동안 탐낸 하워드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워드는 형사였다. 적어도 한 대는 형사였었다. 형사직을 그만둔 뒤에 하워드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형편 벗는 동네로 이사갔다. 낡아서 다 부서져 가는 작은 집이었는데, 그 옆집은 더욱 형편없었다. "대체 왜 이런 집을 얻었어요?"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까지 형편없는 곳에서 살아야만 될 처지는 아니잖아요?" "난 여기서 살고 싶어." 하워드는 고집을 부렸다. "언젠가는 옆집을 살 생각이야." 하워드의 아내는 창 너머로 금방이라도 폭삭 내려앉을 것 같아 보이는 낡은 옆집을 바라보았다. "저 집을 사겠다고요?" 아내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왜지요? 난 지금까지 저렇게 형편없는 짓은 본 적이 없어요." "난 그 집이 좋아." 하워드는 계속 고집을 피웠다. 그 집 앞에는 '팔 집'이라고 쓰인 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부동산 중개인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하워드는 중개인을 찾아갔다. "옆집을 사고 싶은데요. 얼마입니까?" "3만 달러예요." 여자 중개인이 하워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집은 아니에요. 만 달러라도 비싼 편이죠. 하지만, 집주인이 3만 달러에서 한 푼도 못 내리겠다는군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놓은 지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정말이지 제가 본 중에 제일 형편없는 집이에요. 우리 부동산에서 왜 그 집을 취급하는지 모르겠어요." "주인은 근처에 사나요?" 하워드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10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요." 집주인은 은행을 털다가 하워드에게 잡혀서 교도소에 간 사람이었으니 하워드가 모를 리 없었다. "계약금으로 몇천 달러쯤 내면 어떨까요? 그리고..." 하워드가 제의했다. "죄송합니다만, 전액 현금으로 일시불 조건이에요. 집주인은 아마 집을 팔려는 생각이 없나봐요." "하여튼 그 집을 사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 보지요." 하워드는 약속했다. 하워드는 창고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빌딩의 야간 경비원 자리도 얻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내가 소리질렀다. "당신이 직장을 두 개씩이나 얻을 필요가 뭐 있어요? 나하고 딸애는 이제 당신 얼굴도 볼 수 없게 됐잖아요!" "잠깐 동안만이야. 옆집 살 돈만 마련할 때까지만." 하워드가 말했다. 아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신, 아직도 옆집을 사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건 쥐나 살 곳이에요. 아니, 거기선 쥐새끼도 살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좋아하게 될 거야." 하워드가 장담했다. "이제 두고 봐." 월급날, 하워드가 양쪽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 오자 아내가 말했다. "절반은 제가 쓸게요. 딸애하고 나가서 옷을 좀 사야겠어요." " 쓸 돈이 어디 있어?" 하워드가 말했다. "뭐라구요?" "월급은 몽땅 은행에 넣을 거야."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금은 해서 뭐 하게요?" "옆집 살 돈을 모아야지." 남편이 미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남편은 정말로 미쳐 있었다. "그 형편없는 집을 사는 데에 당신 월급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쏟아 붓겠다는 거예요?" "맞았어." 하워드가 말했다. 하워드가 낮일을 끝내고 6시에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밤일을 하러 나가기 전에 한 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우리 저녁은 나가서 먹어요. 외식한 지도 오래 됐어요." 아내가 말했다. "내가 저녁식사를 사 왔어." 하워드가 말했다. 그는 가방을 열고 냉동 피자 세 개를 꺼냈다. "그게 우리 저녁식사라고요?' "그래. 돈을 절약해야지." "돈은 절약해서 뭐에 쓰게요?" 아내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야 옆집을 살 수 있잖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내와 딸에게 옷 한 벌 아 사주고 외식 한 번 시켜 주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워드는 세 번째 직장까지 얻었다. 이제는 하루 24시간을 거의 한숨도 안 자고 일하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정 오빠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자고 하워드를 졸랐다. "정신과 의사를 뭐하러 만나? 나는 정상인데." 남편이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집을 사겠다고 직장을 세 군데나 나가서 하루에 24시간 꼬박 일하면서도 정상이라는 거예요? 그게 미친 게 아니고 뭐예요?" 아내의 잔소리에 견디다 못 한 하워드는 마침내 의사에게 가 보기로 했다. 정신과 의사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큰 키에 미남이었다. 그는 하워드의 증세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에 흥미를 느꼈다. "누우시지요." 의사가 말했다. 하워드는 시키는 대로 했다. "부인한테 들으니 직장이 세 군데라구요?" "그렇습니다." "일하는 것을 좋아하나 보죠?" "아닙니다." "직장이 두 군데라면 좀더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요." "그럼, 직장이 한 군데뿐이면 더 편안히 살 수 있겠죠?" "그렇죠?" 하워드가 말했다. 의사는 환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럼, 당신은 특별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한 군데면 더 편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장을 세 군데나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특별히 돈이 따로 필요해서 그러십니까?" "그렇게 모든 돈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하워드는 일어나 앉았다. "집을 사려구요."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가 세 들어 있는 집 바로 옆집이에요. 그렇게 아름다운 집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의사는 어리둥절해졌다 "당신 아내는 지금껏 본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집이라고 하던데요?" "아, 네. 아내는 잘 몰라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주 아름다운 집이에요." "다음에 그 집 사진을 한 장 가져오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니까요." 의사는 그 사진에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어디 좀 볼까요?" "자, 보세요." 하워드는 뒷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을 한 장 꺼내어 자랑스럽게 의사에게 건네주었다. 의사는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형편없는 집이 있을까 싶었다. 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더럽고 낡아빠진데다 지붕은 그대로 내려앉을 것 같았다. "이 집을 꼭 갖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집을 갖고 싶어요." "항상 집을 갖고 싶어했나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면 아무 집이나 갖고 싶어하겠어요? 이게 내가 갖고 싶은 유일한 집입니다." "그래서 이 집을 사겠다는 겁니까?" "사고야 말 겁니다. 그 집으로 이사 가면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겁니다." "부인이 그 집을 아주 싫어하는데도요?" "곧 좋아하게 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아내도 그 집을 아주 좋아하게 될 테니까."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악화되어 갔다. 하워드는 눈만 뜨면 그 집에 대해 생각했고, 좀더 빨리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다. 만일에 하루가 24시간이 아니고 그보다 더 많았다면 그는 네 번째 직장까지 구했을 것이다. 하워드는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예금은 급속히 불어갔다. 드디어 만 달러가 되었다. 그는 중개인을 찾아갔다. "만 달러를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우선 계약금을 지불하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주인에게 말해 보았는데, 3만 달러 이하로는 절대 안 된 대요. 그리고 전액 일시불로 달래요. 그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면서 안 팔려도 상관없대요. 저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군요." 하워드는 일어섰다. "다시 오지요." 그녀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보잘 것 없는 집을 사려고 왜 저렇게 애를 쓰지?' 하워드의 아내도 부동산 중개인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여보, 이렇게는 더 못 살겠어요. 언제 새 옷을 사 입었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해요. 하루 세 끼 피자만 먹는 것도 이젠 질렸어요. 딸애도 마찬가지 에요. 우린 짐승처럼 살고 있다구요. 제대로 외출 한 번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그만두지 못해?" 하워드가 소리쳤다. 새 집으로 이사가면 행복해 질 거라고 내가 약속했잖아?" "그게 집이에요?" 아내가 악을 썼다. "그건 썩어빠진 판자 더미라구요. 개라도 그런 데선 살 수 없을 거예요." "개도 없으면서 뭘 그래?" "그래요.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없어요. 먹일 수가 있어야 기르죠. 돈이란 돈은 모두 그 은행 예금으로 들어가니 강아지는커녕 우리 먹을 것도 없잖아요." "나 나가 봐야 해. 일하러 갈 시간이거든." 하워드가 말했다. 이런 상태로 여섯 달이 지나갔다. 하워드의 옷은 누더기가 되었다. 바지에는 구멍이 났고, 셔츠에도 구멍이 뚫렸다. "이런 것을 입고 어떻게 직장엘 나가요? 셔츠와 바지를 새로 사야겠어요." 아내가 말했다. "돈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일 주일에 천 달러는 벌잖아요." "그래, 맞아. 하지만, 집을 사려면 모조리 저축해야돼." "그 집 얘기라면 이젠 지긋지긋해요." 아내가 소리질렀다. "하워드, 절대로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했었지만, 안 되겠어요. 당신과 이혼해야겠어요." 하워드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혼할 수 없어.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언제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는 밤일을 하고, 또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는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는커녕 숨쉴 시간도 없는 사람이에요.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돼." 하워드는 사정했다. "그 집 살 돈이 이제 거의 다 모였어." "그래서 얻을 게 뭐예요?" 아내가 소리쳤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집에서 살기밖에 더 하겠어요?" "나를 믿어 줘." 하워드가 말했다. "믿으라고요? 난 이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방에서 뛰어나가 버렸다. 하워드는 집에 남아서 아내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어느 새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세 가지 일을 하면서 하워드는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돌아다녔다. 하루에 한두 시간 이상은 자 본적이 없었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본 지도 까마득했다. 그가 먹는 것이라곤 냉동 피자와 싸구려 샌드위치가 전부였다. 날이 갈수록 피로가 쌓여 갔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 더 심하게 채찍질했다. 예금은 2만 달러... 2만 2천 달러... 2만 5천 달러로 점점 불어났다. 그는 다시 중개인에게 갔다. 그녀는 하워드를 겨우 알아보았다. 몸무게가 7킬로그램이나 줄어 눈은 퀭하고 초췌해 보였다. 면도할 시간도 아까워했기 때문에 턱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목소리에 너무나 기운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괜찮으세요?" 중개인이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2만 8천 달러가 모였습니다. 일단 그걸로..." 그녀는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만, 3만 달러가 최저 선이에요."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알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녀는 하워드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나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 돈을 채우기 어렵겠어.' '이제 2천 달러밖에 남지 않았어. 곧 그 집 살 돈을 마련하게 될 거야.' 하워드는 생각했다. 하워드의 아내는 그를 다시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다. 의사 역시 그를 겨우 알아보았다. 하워드는 죽어 가는 사람처럼 초췌했다. 야위고 쇠약해진데다 수염도 길게 자라 있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눈도, 위장도 정상이 아니었고 두통도 심했다. 통증 때문에 의사도 겨우 쳐다보고 있을 지경이었다. "다행이군요. 부인 말로는 그 집 때문에 먹을 것도 제대로 사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렇지 않아요. 피자는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있습니다." "피자만 먹고 어떻게 삽니까?" "왜 못 살아요?" "아직도 그 집을 살 생각이십니까?" "물론이죠.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집을 원한다니 까요." "열 번째 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이웃집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계명이고 뭐고간에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전 그 집이 갖고 싶어요." 하워드가 말했다. "그 집을 갖게 되면 행복할 것 같아요?" 하워드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행복할 겁니다." 의사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구멍난 구두에 다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거리를 떠도는 집없는 사람의 몰골이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댁의 부인과 의논해 봤는데요, 며칠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당신은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의사가 말했다. 하워드는 일어나더니 의사에게 말했다.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청구서를 보내주세요, 선생님. 집을 산 뒤에 지불하겠습니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하워드는--간신히 걸을 수 있었다.--비틀거리며 중개인 사무실로 찾아갔다. 지난 번 보다 더 여윈 모습이었다. 수염은 더 길어져 있었고, 옷도 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사무실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았을 정도였다. "해냈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여기 돈을 가져 왔습니다." 책상 위에 3만 달러 짜리 수표를 올려놓았다. 중개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하워드를 쳐다보았다. 3만 달러를 가진 남자가 옷은 부랑자 같았고, 몸에서는 여섯 달은 목욕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악취가 났다. 하워드는 서 있을 기운도 없을 정도로 탈진해 있었다. "앉으세요. 딱한 양반 같으니... 이것이 당신이 가진 전부지요?" 중개인이 물었다.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모두 그 집에다 쓰겠다는 거예요?" 하워드는 다시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원하시니 그 집은 이제 당시 거예요." 그녀는 매매 계약서를 꺼냈다. "여기에 사인하세요." 하워드는 손을 뻗쳤으나 나무나 기운이 없어서 손에 펜을 쥘 힘조차 없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하워드를 쳐다보았다. 이 거래가 끝나기도 전에 하워드가 죽어버릴까봐 겁이 날 직경이었다. 그녀는 하워드의 손에 펜을 쥐어주고 그가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당신 집입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그녀는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하워드가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하워드가 다 해진 주머니에 서류를 넣고 비틀대며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불쌍하게도 돌아버렸어. 3만 달러를 휴지처럼 버리다니!' 중개인은 생각했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온 하워드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옆집은 우리 것이야, 여보." "오, 맙소사!" "그러지 마. 내 장담하지만, 당신도 그 집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의 발음이 분명치 않아서 그녀는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제발, 여보. 의사한테 가 봅시다." "의사 같은 건 필요 없어. 난 괜찮아." "당신은 쉬셔야 돼요." 그녀는 간청했다. "이젠 쉴 거야. 직장에 사표 내고 오는 길이야." "뭐라고요? 어떤 직장?" "전부 다 그만 두었어." 그녀는 하워드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직장을 세군 데나 다녀야 한다고 우겨대던 사람이 순식간에 모두 사표를 냈다고? 그녀는 완전히 미친 사람하고 결혼한 것이다. "하워드, 의사한테 가야겠어요." "의사한테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오늘 밤 새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오늘밤이라고요? 벌써 10시가 다 됐어요. 내일 아침에 하면 되잖아요." "오늘밤에 해야 해." 하워드는 고집했다. 그는 너무나 기운이 없어서 의자에 기대지 않고는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하워드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요, 여보. 오늘밤에 이사합시다." 그들은 두 사람 다 옆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밖이 형편없었던 것 못지 않게 안은 더 형편없었다. 집 전체가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방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아내는 그 집에 들어가서 둘러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데선 못 살아요." 그녀가 말했다. "잠시 동안만이야." 하워드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신, '잠시동안' 살기 위해서 이 집을 샀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이봐요, 하워드..." 그러나 그는 바닥에 눕자 마자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하워드는 24시간 동안 꼬빡 잤다. 아내는 차마 그를 깨울 수 없었다. 마침내 깨어나자 하워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우리가 어디 있는 거지?" "당신이 그렇게나 원하던 옆집이지, 어디긴 어디예요?" 아내가 원망 조로 말했다. "이제 여기 들어 왔으니, 다음엔 뭘 할거예요?" "즐겨야지." 하워드가 말했다. 하워드는 그 다음 이틀을 푹 쉬면서 보냈다. 3일째 되는 날, 그는 철물점에 가서 곡괭이와 삽을 사왔다. "그걸로 뭐하려고요?" 아내가 물었다. "지하실을 좀 손보려고." 하워드가 말했다. 그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하루종일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 땅 파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사흘이 지났을 때, 하워드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어디 다친 것이 아닌가 해서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하워드는 지하실에 파 놓은 커다란 구덩이 옆에 서 있었다. 아내는 가까이 다가갔다. 구덩이 안에는 커다란 철제 상자가 있었다. 하워드가 그 상자를 끄집어내서 열었다. 안에는 지폐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세상에!" 그녀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예요?" 하워드는 그녀를 보며 미소지었다. "백만 달러야. 제일은행을 턴 벅시 스톤을 내가 잡아서 교도소로 보냈지. 10년형을 받고 지금 복역중인데 돈이 발견되지 않았거든. 그런데 벅시가 이 집에 살았으니 이 집 어딘가에 틀림없이 돈을 숨겨 놓았으리라 짐작했었지." "믿어지지 않아요." 하워드의 아내가 말했다. "내일 당신과 딸애를 데리고 나가서 시내에서 가장 예쁜 옷을 사 줄게. 그런 다음에 세상에서 가장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자고." 그는 싱긋 웃었다. 11 열한 번째 계명--거짓말하지 말라 데이비드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조지 워싱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워싱턴이 여덟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과수원에 나가보니 가장 사랑하는 벚나무가 잘려 넘어져 있었어. 그래서 하인들에게 누가 벚나무를 베었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모두 안 했다는 거였어. '당신이 그 나무를 배었소?' 아내에게 물었지. 대답은 역시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어린 조지를 불렀지. '네가 나무를 베었니, 조지?' '네,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 아버지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데이비드는 이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데이비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험을 볼 때 커닝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다 마음이 약해진 데이비드도 친구의 시험지를 베껴서 제출했는데, 가장 최고 점수인 'A'를 받았다. 데이비드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친구의 시험지를 보고 썼어요." 선생님은 데이비드의 성적을 영점으로 고치고 방과후에 남아 있으라는 벌을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 몇 명과 함께 공장에 취직하러 갔다. "일해본 경험 있나?" 공장장이 물었다. "네, 있습니다. 친구하나가 대답했다. 데이비드는 두 사람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 차례가 되었다. "이런 일 해 본 적 있나?" "없습니다." 데이비드는 말했다. 데이비드만 빠지고, 친구들은 취직이 되었다. 몇 년 뒤, 그는 보험회사에서 일했다. 어느 날, 데이비드는 클립 몇 개와 타이프 용지 몇 장을 집으로 가져갔다. 다음 날, 상사에게 말했다. "전 거짓말을 못 합니다. 종이 몇 장과 클립 몇 개를 훔쳤습니다." 상사는 그의 봉급에서 그 값만큼 공제했다.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은 항상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가져갔지만, 그 사실을 보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데이비드를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져가도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그들은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전 조지 워싱턴처럼 되고 싶어요.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는 캐시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 데이비드가 말했다. "나도 너와 결혼하고 싶어." 캐시는 그를 껴안았다. 데이비드는 매우 행복했다. 좋은 직장에다 사랑하는 여자까지 있었던 것이다. '거 봐, 진실하면 보상받게 돼 있어.' 그는 생각했다. 캐시에게는 베티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름답고 섹시한 베티는 데이비드를 아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베티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캐시뿐이었다. 캐시에게 바쁜 일이 있었던 어느 날 밤에 베티는 데이비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데이비드, 텔레비전이 고장났어. 와서 좀 고쳐 주겠니?" 데이비드는 기계를 아주 잘 만졌다. "물론이지. 금방 갈게." 데이비드는 베티의 아파트로 갔다. TV고장이라고 했지만, 단지 연결이 돼 있지 않아서 화면이 나오지 않은 것뿐이었다. "여기 봐. 플러그를 벽에 꽂기만 하면 돼." 데이비드가 말했다. 플러그를 꽂자 TV는 잘 나왔다. "정말 훌륭해. 나는 생각도 못 했어." 베티가 말했다. 베티는 데이비드에게 다가가서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감사의 표시야, 데이비드." 베티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얼떨결에 입을 맞춘 데이비드는 순간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이러면 안 돼. 나는 캐시와 결혼할 거야." 데이비드가 말했다. "나도 알아." 베티가 속삭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입술을 맞추었다. "난 가겠어" 데이비드는 말했다. 데이비드가 보통 남자 같았으면 그 돌발적인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정직했기 때문에 케시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으면서 데이비드는 말했다. "케시,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래? 뭔데?" "어젯밤 베티 아파트에 갔다가 키스했어." 캐시는 그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냐. 어쩌다 그렇게 됐어. 이해 할 수 있지?" "하고 말고." 캐시는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에 들고 있던 컵의 물을 끼얹었다. "캐시..." 그러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나가 버렸다. 데이비드는 그 날, 다음 날, 다음 주, 그리고 다음 달 까지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받아 주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너무 정직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는 이 사건 때문에 좀 변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은 사람이라면 가끔씩 거짓말할 때도 있는 것이고, 데이비드처럼 항상 정직한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 어떤 일에 대해서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야." 하며 고집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원칙을 지킬 생각이었다. 데이비드가 어느 날 밤, 보석상 앞을 지나가는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남자가 뛰어 오고 있었다. 그는 데이비드 앞을 지나쳐 계속 뛰어갔다. 데이비드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몇 분 뒤에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데이비드 앞에 멈춰 섰다, 근처에는 창문이 깨져 나간 보석상이 있었다. 누군가가 진열돼 있던 보석을 모두 훔쳐 가 버린 것이다.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데이비드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벌어진 일을 보았소?" "아니오. 창문 깨지는 소리만 들었어요. 그리고 한 남자가 내 앞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 남자를 똑똑히 보았소?" "네." 데이비드가 말했다. 경찰의 얼굴이 밝아졌다. "남자를 알아 볼 수 있겠소?" "물론이죠. 아주 똑똑히 봤거든요." 경찰은 데이비드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었다. "범인을 잡으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와서 확인해 주실 수 있죠?" "기꺼이 협조하겠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월요일 아침에 경찰에서 전호가 걸려 왔다. "보석상을 턴 놈을 자은 것 같은 데요. 오셔서 확인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지금 곧 가지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는 곧바로 경찰서로 갔다. "그 자를 똑바로 보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증인이 당신 한 사람 뿐이었거든요. 확실히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거든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형사는 한 남자가 앉아 있는 방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당신이 이 보석상에서 뛰어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까?"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사는 정복 경관에게 말했다. "수감해." 그 남자는 데이비드를 쏘아보았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그를 감옥에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일 주일 후, 데이비드는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절도범으로 지목했던 사람입니다." 전화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놀랐다. "네? 그런데 어떻게..."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재판은 다음주에 열립니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남자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겁니까?" "당신은 터무니없이 착각했어요." "착각이라뇨?" "만나서 예기하지요." 남자가 음식점 이름을 말했다. "내일 1시에 나오실 수 있습니까?" 데이비드는 그를 만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만일 자신이 착각했다면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내일 나가죠." 다음 날 1시에 데이비드는 음식점으로 갔다. 도둑으로 지목했던 남자가 걸어 들어와서 앞자리에 앉았다. "내 이름은 헨리입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데이비드요."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인생을 망쳐버리려는 사람을 모르겠어요?"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 덩치가 작은 그 남자는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말했다. "바로 그것이 중요한 점이예요.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거짓말이에요. 당신은 내가 보석상을 털었다고 경찰에게 말했어요." "그랬죠."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신이 도망가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내가 뛰어 갔던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보석상을 털지는 않았단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왜 뛰어갔죠?" "사실을 말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낫겠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계속 말했다. "데이비드, 나에게는 아내가 있어요. 당신도 결혼하셨나요?" 데이비드는 거의 결혼할 뻔했던 캐시가 생각났다. "아뇨." "내 아내는 질투심이 아주 강한 여자요. 그런데 엘시라는 아내의 친한 친구하고 내가 끌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깊은 관계가 됐어요. 이해하시겠어요?" 데이비드는 베티와 함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아내가 엘시와의 관계를 알면 나와 엘시를 죽이려 들 거예요. 당신이 나를 본 그 날 밤에 나는 막 엘시의 아파트에서 나오던 참이었어요. 나도 누가 보석상 창문을 부수는 소리를 들었어요. 경찰이 출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이 나를 붙잡고 물으면 이름이 신문에 날 것이고, 그러면 아내가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 같아서 겁이 났어요. 그래서 뛰었지요. 그때 당신이 나를 본 겁니다." 데이비드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게 사실입니까?" "하늘에 대고 맹세해요. 엘시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당신이 나를 지목한 다음, 경찰은 자백을 강요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상점을 털었다는 자백서에 서명하게 했지요. 전부 다 거짓말이에요. 나는 무죄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어요." '하마터면 아무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뻔했구나!'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거든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불리한 증언을 하면 나는 감옥에서 10년을 썩게 됩니다. 인생을 망치는 거죠. 난 경찰에게 그 날밤에 내가 어디 있었는지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아내가 알면 감옥가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날 밤 본 사람이 나인지 확실치 않다고 법정에서 말하면 됩니다." "그건 거짓말인데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모든 것이 당신 손에 달려 있어요. 사실대로 말해서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넣든지, 약간의 거짓말로 한 사람의 명예와 결혼생활을 구해 주든지 당신의 양심적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헨리는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재판을 이틀 앞두고 형사가 헨리를 심문했다. "이것 봐. 당신은 10만 달러 어치 보석을 훔쳤어. 현명하게 처신하는 게 어때? 훔친 물건이 어디 있는지 자백하면 당신도 편해질 거고, 판사에게 형을 가볍게 해 달라고 말해 줄 수도 있어." "훔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자백합니까?" 헨리가 외쳤다. "왜 이래!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게 아냐? 어딘가 깊숙히 숨겨 놓았을 거 아냐. 바른 대로 불지 않으면 10년형이야. 어디 두었는지 말만 하면 1년이나 2년으로 감형될 수 있어. 어때?" "전 정말이지 말할 게 없어요. 보석을 훔친 사람이 내가 아닌데 무슨 말을 합니까?" 헨리는 필사적이었다.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 어리석게도 점점 더 불리하게 처신하는 군. 판사에게 법대로 최고형을 언도해 달라고 할거야." 재판은 수요일 오전에 시작되었다. 데이비드는 검찰측 증인으로 재판정에 섰다. 데이비드가 사실상 유일한 증인이었다. 판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법정 서기가 "이제 재판이 시작됩니다." 하고 말하자 재판정이 조용해 졌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사가 어떻게 보석상 유리가 깨지고 범인이 10만 달러 상당의 보석을 훔쳐 달아났는지 그 범죄 현장을 설명했다. 헨리측 변호사는 헨리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증인이 있습니다. 피고가 현장에서 달아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요. 지금 그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곧 데이비드의 이름이 불려졌다. 데이비드는 증인석에 섰다. "이름과 주소를 말해 주시오." 검사가 말했다. 데이비드가 자기이름과 주소를 말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아무런 직업이 없습니다." 데이비드는 일 주일 전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상사가 공금을 횡령하는 것을 보고하였더니 사장은 데이비드를 내쫓아 버렸다. "그 사건이 있었던 그 날 밤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밤일 할 사람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 근처에 갔었습니다." "취직이 됐습니까?" "아뇨." 그 곳은 제과점이었는데, 데이비드가 너무 지저분하다고 말하자 주인은 두말없이 그를 내쫓아 버렸다.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보석상 근처에서 도망가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지금 배심원들에게 지목해 주십시오." 데이비드는 헨리쪽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나에게 불리하게 증언하게 되면 나는 감옥에서 10년을 썩게 됩니다.' "저는..." 데이비드는 말을 더듬었다.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십시오." "저..." '인생을 망치는 것이죠.' "잘 들리지 않습니다. 도망치고 있었던 사람을 지목해 주십시오." 그 때 생전 처음으로 데이비드는 거짓말을 했다. "여기에 없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없다니?" "여기에 안 보인다구요." 데이비드는 힘주어 말했다. 검사의 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안 보인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경찰에게 바로 저 사람이라고 말했잖아요." 검사는 헨리를 가리켰다.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검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건은 완전히 데이비드의 증언 여하에 달려 있었다. "일 주일 전에 당신은 피고를 보석상에서 도망친 사람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서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도 있고, 약간의 거짓말로 한 남자의 명예와 결혼생활을 구해 줄 수도 있어요.' "못 알아보겠는데요." 데이비드는 분명하게 말했다. 피고측 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증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증인이 모르겠다면 모르는 것입니다." "인정합니다." 판사는 검사에게 말했다. "증인은 피고를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질문 있으면 계속하십시오." 그러나 더 이상 계속할 것이 없었다. 데이비드의 증언 없이는 헨리를 이 사건에 연관시키기조차 힘들었다. 검사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질문 없습니다." 변호사가 일어났다. "재판장님, 죄 없는 시민에게 누명을 씌어 감옥에 잡아넣으려는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은 아무 근거도 없이 피고를 기소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이 사건이 어떻게 재판에 회부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재판장님, 기각을 청구합니다." 판사는 나무망치를 두드렸다. "신청을 받아들입니다. 피고는 이 순간부터 자유의 몸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재판을 끝내겠습니다." 헨리는 기쁜 얼굴로 자리에 앉아 데이비드에게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거짓말을 했어. 그러나 한 남자의 명예와 결혼생활을 구해 주었으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조지 워싱턴이라도 나를 용서 할 거야.'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구인광고를 훑어보고 있었다. 직장을 구하는 게 절실했다. 집세 치를 돈도 없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데이비드가 소리쳤다. 문이 열리고 헨리가 들어왔다. 뜻밖 이였다. "안녕하세요? 감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옳은 일을 한 것뿐인 걸요.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지요." 헨리는 데이비드의 손을 잡고 흔들어 댔다. "정말 좋은 일을 해 주셨어요. 얼마나 감사고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군요."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당신의 결혼생활과 엘시에 대해 들었을 때, 당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데이비드가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헨리가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큰 다이아몬드 팔지 두 개를 꺼냈다. "당신 몫이에요. 2만 달러는 될 겁니다." 헨리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보석을 들여다보았다. "잠깐! 그러면 당신이 이것을 훔쳤...?" 그러나 헨리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데이비드는 다이아몬드를 쳐다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야해. 조지 워싱턴이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에라, 모르겠다. 조지 워싱턴은 조지 워싱턴이고, 나는 나야!' 12 열두 번째 계명--남을 해치지 말라. 로버트는 거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서 몸집이 무척 컸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그도 키가 컸지만, 어린 아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애는 나보다 더 크게 자랄 거야." 그 말은 맞았다. 열 살이 되었을 때, 로버트는 자기 반에서 다른 애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는 매우 신앙심이 깊었고, 남을 해치지 말라는 열두 번째 계명을 특별히 잘 지키려했다. 아이들은 로버트에게 싸움 거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그가 대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떻게 해도 괜찮았다. 아이들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놀려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로버트는 미소지으며, "왜들 그러니?" 하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네가 겁쟁이이기 때문이야." 아이들은 놀려댔다. 그들은 로버트를 괴롭히며 재미있어했다. 로버트가 눈에 멍이 들어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는 고함을 질렀다. "반에서 제일 큰 녀석이 왜 맞고 다니는 거냐? 넌 그런 놈들을 때려눕힐 수 있잖아. 왜 싸우지 않는 거냐?" "반에서 제일 크니까 그렇죠. 공평치 못하잖아요. 제가 때리면 그 애들은 모두 다치게 될 테니까요." 로버트가 말했다. 아버지는 로버트 때문에 창피해 했다. 로버트가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겁한 인간은 질색이었다. "우리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어. 제일 크고 힘센 놈이 누구한테나 맞고 들어오니 말이야." 아버지는 로버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었다. "로버트가 비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애들이 다칠까 봐 그러는 거예요." "내가 교육 좀 시켜야겠어." 아버지가 말했다. 다음 날, 로버트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버지가 말했다. "나하고 비디오 몇 편 같이 보자." "예, 좋아요." 로버트가 말했다. 그들은 TV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비디오에 테이프를 넣었다. '로키'였다. 로버트는 배우가 사람을 때려눕히고 얻어맞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못 보겠어요." 그는 일어섰다. "왜? 계속 봐야 돼."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앉아." 다음 영화는 훨씬 더했다. 경찰 영화였는데, 길거리에서 사람을 해치고 강도질하는 내용이었다. "끔찍해요." 로버트가 말했다. "세상이 이런 거야. 너도 그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 이 세상의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혼자 떨어져 살 수는 없어." 아버지는 이번에는 전쟁 영화를 틀었고, 로버트는 계속 앉아서 봐야만 했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폭력도 때에 따라선 필요하다는 것을 아들이 깨닫기를 바랬다. 그러나 정반대의 효과가 일어났다. 로버트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더욱 굳게 마음먹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달라지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로버트가 고등학생이 되자 변화가 오긴 왔는데,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로버트는 에이미라는 소녀를 굉장히 사랑하게 되었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도 에이미를 사랑한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응원단이었는데, 참신하고 예쁜데다 머리도 좋았다. 로버트는 걸어서 에이미를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로버트에게 집적거렸다. 둘이 걸어가고 있으면 애들은 그들 앞을 막아서곤 했다. "길 막지 말고 비켜 줘." 로버트가 점잖게 말했다. "못 비켜." 아이들이 소리쳤다. 그리곤 아이들 중 하나가 로버트를 밀어붙이는 것을 신호로 나머지 아이들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에이미는 로버트가 얻어맞는 것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에이미는 로버트에게 화를 냈다. "왜 너는 싸우지 않니?" "어떻게 그러니? 내가 그 애들 보다 훨씬 크잖아. 그 애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니? 누구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 에이미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넌 비겁해!" 그녀는 로버트가 준 반지를 돌려주었다. "비겁한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어." 로버트는 가슴이 찢어졌다. 에이미를 굉장히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할 수는 없었다. '열두 번째 계명을 깰 수는 없어.' 로버트는 생각했다. 학교의 미식축구 코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고 흥분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고 몸무게도 90킬로그램이 넘었다. 동작도 민첩한 게 타고난 운동 선수였다. "너는 축구 팀 주장감이야." 코치가 로버트에게 말했다. 로버트는 매우 기뻤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축구팀은 그 학교에서 매우 중요했다. 선수들은 팀에 대해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코치는 로버트같은 선수가 들어 왔으니 우승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첫 번째 학교 대항 경기. 로버트는 공을 가지고 경기장을 달리고 있었다. 상대팀의 방어수가 다가왔다. 로버트는 그를 밀어버리지 못하고 그냥 태클을 당하고 말았다. 전반전이 끝나자 코치는 로버트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상대가 태클을 하도록 놔두는 거야? 네가 밀어버려야 되잖아?" "그 애가 다칠까 봐 그랬어요." 로버트가 말했다. 코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어쩌구 어째? 축구경기를 무슨 파티인 줄 알아?" 코치는 로버트를 태클하는 자리에 배치했다. 그런데 문제는 로버트가 결코 태클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체 왜 그래? 너 때문에 졌잖아. 너는 공을 가지고 뛰는 선수에게 태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잖아?" 코치가 말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태클 하다가 그 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로버트가 설명했다. "너는 팀에서 필요 없어." 코치가 소리질렀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대체 넌 어떻게 된 놈이냐?" 그는 펄펄 뛰었다. "나는 학생 때 이름난 축구 선수였다. 네가 내 뒤를 이으리라고 기대했었다. 축구가 싫은 거냐?" "아뇨, 굉장히 좋아해요. 하지만..." 로버트가 말했다. "말 안 해도 안다.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이거지?" 전교생이 모두 로버트를 미워했다. 그가 모두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로버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축구팀은 우승할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로버트가 사물함을 열어 보니 노란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비겁한 놈!'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들 몇이 그가 사물함 여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유감 있어?" 한 아이가 물었다. "없어." 로버트는 조용하게 말했다. 누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꿈적도 안했다. 그는 '남을 해치지 말라'는 열두 번째 계명을 잊은 적이 없었다. 로버트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경찰국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를 경찰에 받아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 저는 경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의 안색이 변했다. "뭐라구?" "경찰관이 되고 싶지 않아요." 로버트의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왜 그래? 경찰관이 하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런 게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경찰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왜 못 돼?" 아버지는 로버트가 대답하기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다치게 할지도 모르잖아요."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아들을 설득하는 것을 단념했다. "창피해서 못 살겠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비겁했어. 남이 때려도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어. 고등 학교 축구 코치는 네가 경기를 하려 들지 않았다고 말했어. 너는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야. 항상 남이 다칠까 봐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다칠까봐 겁나는 거야."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아버지. 저는..." "집에서 나가! 난 네가 창피해 죽겠다. 로버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남을 해치지 말라는 열두 번째 계명에 대해 들은 적이 없을까?' 그는 의아했다. 로버트는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왔다. 떠나기 전에 어머니와 얘기했다. "네가 가는 것을 보려니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그렇지만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시니 어쩌겠니?" 어머니는 그를 감싸 안았다. "나는 네가 비겁하지 않다는 걸 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로버트는 작은 아파트로 옮긴 뒤에 직장을 찾으러 다녔다. 슈퍼마켓의 점원 자리를 얻었다. 돈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남을 해치지 않아도 되는 것만은 확실했다. 제니라는 아주 예쁜 여자가 같은 가게에서 일했다. 로버트와 제니는 데이트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그는 제니에게 청혼했다. 그녀가 청혼을 받아들여서 그들은 결혼했다. 제니는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미남에다 머리도 좋고, 성격까지 좋았다. 더할 수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 루이가 어느 날 눈에 멍이 들고 코피가 터져서 학교에서 돌아왔다. 제니는 기가 막혔다. "누가 그랬니?" 제니가 물었다. "학교에서 어떤 애가 그랬어요." 루이를 때린 아이는 루이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았다. 로버트가 집에 오자 제니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 애 아버지에게 가서 얘기하세요." 제니가 말했다. "그래야지." 로버트는 그 아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는 체구가 작은 사내였다. 로버트보다 훨씬 작았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아이들이 서로 싸운 것 같습니다." 로버트가 예의바르게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요? 애들은 다 싸우는 것 아닙니까?" "네, 그렇죠. 그러나 공평치 못해요. 댁의 아이가 우리 애보다 나이가 더 많아요. 자기보다 어린아이에게 싸움을 거는 것은 옳지 않아요." "우리 애가 그랬다고 누가 그래요? 루이가 싸움을 걸었어요."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로버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로버트는 때릴 생각도 않고 가만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로버트가 말했다. 남자는 다시 주먹을 날렸다. "정말 이럴 필요 있어요?" 남자가 또 때렸다. 로버트는 두 눈에 멍이 들고 코피가 터진 채 집에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제니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 아이 아버지하고 말다툼을 좀 했어." 로버트가 말했다. "너무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죠?" "아니." 로버트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한 대도 안 때렸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제니는 기가 막혔다. "때리는데도 그냥 맞기만 했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화도 내지 않았어." 로버트가 말했다. "화도 내지 않았다구요? 당신,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에요? 그 사람 아들이 루이를 두들겨 팼는데, 그 사람이 당신을 때리도록 가만히 놔두었단 말이에요?" 로버트는 설명을 하려 했다. "열두 번째 계명에..." "열두 번째 계명 같은 건 상관 안 해요." 그녀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아버지가 겁쟁이라며 루이를 놀려댔다. "우리 아빠가 너의 아빠를 때렸는데도 너의 아빠는 싸우려 들지도 않았대." 루이를 때렸던 아이가 말했다. "우리 아빠는 용감한 사람이야." 루이가 말했다. 그 날 저녁, 로버트가 집에 오자 루이가 물었다. "아빠, 싸움하는 거 무섭지 않지, 그렇지?" "그럼, 무섭지 않지. 다만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야." 로버트가 말했다. 루이는 멍이 든 아버지의 두 눈과 코피가 터진 코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겁쟁이야.' 로버트는 매우 풀이 죽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로버트는 의아했다. '하느님의 계명 하나를 지키려는 것 때문에 지금껏 곤란만 당해 왔어.' 다음 일요일, 그는 고백성사를 보았다.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님."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신부가 물었다. "열두 번째 계명을 지켰습니다."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해하기 힘들군요. 열두 번째 계명을 지켰기 때문에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신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신부님. 저는 혼동이 됩니다. 성서에는 싸우면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싸우려 하지 않는 다고 모든 사람이 저를 미워합니다. 무언가 잘못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학생 때에는 애들이 모두 나를 미워했고, 여자친구까지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집에서 내쫓았고, 아내와 아들 녀석은 저를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계명을 지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계명을 깨면 무서운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부가 말했다. 제니는 남편의 비겁한 행동에 너무나 실망해서 이혼을 결심했다. '그를 사랑해.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조차 싸우려 하지 않는 사람과 살 수는 없어. 이혼하자고 말해야겠어.' 제니는 생각했다. 아이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로버트에가 말했다. "오늘밤에는 우리 나가서 저년 먹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 "좋아." 로버트는 아주 멋진 식당에 예약을 했다. 제니는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다. 로버트에게 상처를 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로버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제니는 말문을 열었다. 네 명의 남자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취해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로버트 보다도 체구가 컸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제니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봐요."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꽤 예쁘게 생겼는데..." 제니는 그를 무시해 버렸다. "로버트, 이런 예기 꺼내는 걸 무척 망설였어요. 하지만..." 거구의 남자가 끼여들었다. "그런 녀석하고 뭐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나 같은 남자하고 어울려." 로버트는 화가 났다. 그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조용히 저녁 좀 먹게 방해하지 마시오." 그 남자가 일어났다. "감히 나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하는 거야? 이 건달 같은 녀석이... 너 같은 건 부러뜨려 버릴 수도 있어." "제발, 이러지 맙시다. 그냥 앉아서..." "네가 뭔데 나보고 앉으라는 거야?"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로버트의 테이블로 와서 제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가씨, 정말 예쁘게 생겼군!" "내 아내에게서 손 치우시죠." 로버트가 조용히 말했다. "아내? 이런 미녀가 너 같은 건달하고 결혼했단 말이야?" 그는 제니를 내려다보았다. "이봐요, 아가씨. 우리 테이블로 가자구. 클럽에 가서 놀다가 나중에 재미좀 볼까?" 제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로버트를 쳐다보았다. "로버트, 이 사람좀 가도록 해 줘요." "선생님, 그만 가 주시죠." 로버트가 정중하게 말했다. 거구는 웃었다. "모두 들었지?" 그는 로버트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선생님, 그만 가 주시죠. 넌 도대체 뭐야? 계집애 같잖아!" 그는 제니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자, 이리와. 재미보러 가자구." "잠깐 이러시면 안 됩니다." 로버트가 말하며 일어서려 했다. 남자가 팔을 뻗쳐 로버트를 눌러 앉혔다. "그냥 거기에 앉아 있어. 자네 아내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그는 제니를 자기네 테이블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로버트!" 제니가 비명을 질렀다. 로버트에게도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열두 번째 계명을 지키느라고 참아 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끓어올랐다. '열두 번째 계명 같은 건 이제 필요 없어!' 그는 생각했다. 로버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놔!" 그가 말했다.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놈이 누구야?" "나다." 난생 처음 로버트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는 거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거구가 제니를 놓고 로버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연달아 주먹을 날리며 싸웠다. 음식점의 손님들은 모두 놀라서 쳐다보고 있었다. 지배인이 와서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두 거구는 아무도 말리지 못할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 싸움은 거의 10분이나 계속되었다. 드디어 로버트의 올려치기 한 방에 그 남자는 나가 떨어져 정신을 잃었고, 싸움은 끝났다. 거구의 그 남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로버트에게 말했다. "당신이 방금 때려눕힌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에요!" 다음 날 아침, 신문의 머릿기사는 로버트의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 KO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제니는 남편을 끌어안았다. "여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로버트와 이혼하려 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음 날, 로버트는 챔피언의 매니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챔피언은 술 몇 잔 마신 것 때문에 당신이 이길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일정을 잡아서 정식으로 한판 했으면 합니다. 아무도 그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싸웠으면 하는데, 어떠시오?" "얼마든지." 로버트가 말했다. 그는 이미 열두 번째 계명을 깼으므로 이젠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석 달 후, 로버트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과 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니도, 로버트의 부모도, 루이도, 심지어는 에이미까지도 모두 그곳에 모였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로버트는 3회전에서 챔피언을 쓰러뜨리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5년에 걸쳐 수많은 도전자를 물리치고 로버트는 2천만 달러 이상을 벌여 들였다. 단지 그가 열두 번째 계명을 깼다는 것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