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유어드림 1 애슬리 패터슨 2 환상의 인터넷 3 색깔을 귀로 듣는 화가 4 10년 만의 동창회 5 악몽의 전주 6 의문의 죽음 7 퀘벡의 살인 사건 8 너는 곧 죽을 것이다 9 얼굴 없는 미행자 10 체포된 여인 11 패터슨 박사를 납치하다 12 다중 인격 장애 13 유죄인가. 무죄 인가 14 재판은 시작되고 15 사육제 축제 16 첫 공판 17 불리한 증언 18 피로 물든 사진들 19 진실은 어디에 20 절망의 늪 21 무죄 판결을 받다 22 코네티컷 정신 병원 23 치료는 시작되고 24 적과 연인 사이 25 두 얼굴 26 타오르는 분노 27 사라지는 분신들 28 세상 속으로 29 새로운 희망 누군가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들의뒤를 미행하다가 으슥한 곳에서 덮치는 스토커들에 관한 기사를여러 차례 읽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폭력의 세계에 속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또 왜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악몽을 꾸다가 매일자신에게로 점점 가까이 육박해 오는 재앙의 예감을 느끼며 잠에서깨곤 했다. '아냐, 어쩌면 이 모든 건 내 상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라.' 하고 애슐리 패터슨은 생각했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하고 있나봐. 좀 쉬어야겠어. 애슐리는 침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그녀는 20대 후반의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은 귀족적인 느낌을 가진 여성의모습을 거울 속에서 보았다. 호리호리한 몸매, 지적이지만 왠지 불안해 보이는 갈색 눈. 거울 속 애슐리에게는 조용한 우아함과 은은한 매력 같은 것이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어깨 위까지 부드럽게흘러 내려와 있었다.그러나 '정말 밥맛이군'.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너무 말랐어. 좀더 많이 먹어야 할까봐.' 애슐리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불길한 일을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오믈렛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 커피 메이커의 스위치를 켜고 토스터에 식빵을 한 장 집어넣었다. 10분 뒤, 식사 준비가 모두 끝났다. 애슐리는 식탁에 접시들을늘어놓고 그 앞에 앉았다. 포크를 집어들고는 한순간 음식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저었다. 공포감이 식욕을 몽땅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 애슐리는 화가 치밀었다. '그 남자가 누구든 간에 나에게 이런 짓을 하게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다구' 애슐리는 시계를 흘깃 들여다보았다. 벌써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어떤 확신이라도 얻으려는 듯이 낯익은 아파트 방안을 둘러보았다. 비아 카미노 코트에 있는 멋지게 꾸며진 아파트3층인데 거실과 침실, 서재와 욕실, 그리고 주방과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벌써 3년째 이곳 캘리포니아의 큐퍼티노에서 살고 있었다. 7주일 전까지만 해도 애슐리는 이곳을 단지 편안한 안식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아무도 해치러 들어을 수 없는 일종의견고한 요새로 변해 있었다. 애슐리는 현관문으로 걸어가서 자물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걸쇠 장치를 새로 설치해야겠어,'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내일 당장.' 그리고는 방안의 조명을 모두 끄고 문이 단단히잠겼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의 승용차는 엘리베이터에서 6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애슐리는 주차장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고 나서, 자기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차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서는 얼른 문을 잠갔다. 가슴이 마구 뛰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몰고 다운타운 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적의라도 품은 듯 어둡고 불길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선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아냐, 비는 오지 않을 거야.'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얼굴을 내밀걸. 하느님, 내기를 하는 게어때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모든 일이 잘되어 나갈 거라는 것을의미하는 거예요 모든 게 내 지나친 상상일 뿐이라는 걸 의미하는거라구요.' 10분 뒤,애슐리 패터슨은 큐퍼티노의 상업 지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한적하고 활기가 없던 이 조그만 산타 클라라 밸리가 이룩해 놓은 기적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80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 이곳은컴퓨터 혁명이 시작된 곳으로,지금은 그에 걸맞게 (실리콘 밸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애슐리는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 기업인 (글로벌 컴퓨터그래픽) 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원이 모두 2백 명이었다. 실버라도 스트리트로 차를 몰고 들어갔을 때 애슐리는 '그 작자'가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도대체 누구일까? 왜 따라오는 걸까? 애슐리는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모든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애슐리 눈앞에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가 들어 있는 모던한외양의 빌딩이 보였다. 애슐리는 회사의 주차장으로 들어가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는 자신의 주차 구역으로 들어갔다. 비로소 그녀는 위험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차에서 내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7시,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는 벌써 업무가 한창이었다. 똑같이 생긴 80개의 방에서 젊은 컴퓨터 도사들이 모두 분주하게웹 사이트를 만들고,신설 회사의 '로고'를 제작하고,음반과 서적출판 회사를 위한 도안을 만들고, 잡지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작업장은 관리,판매,기술지원,마케팅 등 몇 개의 부문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사원들은 청바지와스웨터 차림으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애슐리가 자신의 자리로 가고 있는데 직속 상사인 계인 밀러 실장이 다가왔다. "안녕, 애슐리," 세인은 30대 초반으로 우람한 체구에 쾌활했으며, 일에 열심이었다. 처음에는 애슐리에게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을 요구하면서 끈질기게 따라 다녔으나 끝내 포기하고,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좋은친구가 되었다. 밀러는 애슐리에게 (타임) 지를 한 권 건네주었다. "이 거 보았어?' 애슐리는 잡지의 표지를 보았다. (타임) 지의 표지에는 백발이성성한 50대의 위엄 있게 생긴 중년 남자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설명에는, '최소침윤 심장 수술(Mini Heart Surgery)의 아버지,스티븐 패터슨 박사'라고 쓰여 있었다 "나도 봤어요" "유명한 아버지를 가진 기분이 어때?" 애슐리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지요, 뭐...," "정말 위대한 분이셔." "아버지를 만나면 실장님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전할게요. 오늘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거든요" "고마워 그런대 말이야 ...,"하고 셰인 밀러는 그녀에게 고객 회사의 광고 모델로 결정된 영화배우의 사진을 한 장 보여 주었다. "이 사진에 문제점이 한 가지 있어. 데지레가 4킬로 정도 살이 찌는 바람에 사진에도 영향이 미친단 말야. 그녀 눈 밑에 있는 이 검은 기미들 좀 봐. 아무리 화장을 해도 피부의 반점들을 지울 수가없어. 애슐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겠는데, 가능하겠어?" 애슐리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 가장자리는 윤곽을 흐리게 하는 필터를 써서 해결하면 되고,얼굴은 왜곡 기구를 사용해서 가냘프게 보이도록 할 수 있겠지만-그건 안 되겠어요, 그렇게 하면 얼굴이 이상하게 보일 테니 까요" 그리고 는 다시 사진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몇 군데 에어브러시나 복제 기구를 사용해야겠네요" "고마워. 우리는 토요일에 만나는 거지?" "그럼요" 셰인 밀러는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진은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돼. 고객이 지난달까지 해달라고 한 거니까. 그럼 양호한 편이잖아." 애슬리는 웃었다. "우리 회사에 바쁘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애슐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애슐리는 광고와 그래픽 스트와 영상 레이아웃 분야의 전문가였다. 30분쯤 후 여전히 사진 작업을 하던 그녀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쳐들었다. 데니스 티블이었다. "안녕, 허니!" 그의 목소리가 애슐리의 신경을 자극했다. 티블은 그 회사의 컴퓨터 천재로 사내에서 '해결사'로 통했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그것이 어떤 고장이든 간에 티블을 불러왔다. 그는 30대 초반의 청년으로 몸이 호리호리하고 머리가 벗겨진,불쾌하고 오만한 태도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성격으로 애슬리에게 홀딱 반해 있다는 소문이 회사안에 떠돌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 것 뭐 없어?" "아뇨 없어요,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이봐. 이번 토요일 저녁에 둘이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게 어때?" "미안해요 바쁜 일이 있어서요" "또 실장하고 함께 외출하는 거야?" 애슐리는 몸을 돌려 화가 난 얼굴로 티블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그건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잖아요" "도대체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작자는 촌스럽고 보수적인 인간이야. 나는 당신을 더욱 즐겁게 해 줄 수가 있어." 하고 티블은 윙크를 했다. "내 말뜻, 잘 알지?" 애슐리는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할 일이 태산처럼 밀려 있어요, 데니스." 티블은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당신은 나에 관해서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 허니.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아암,포기하지 않고 말고." 애슐리는 저만치 걸어가는 티블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혹시 저 작자가 내 뒤를 밟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12시 30분,애슬리는 컴퓨터를 '일시 중지' 모드에 놓고 아버지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마르게리타 디 로마)로 향했다. 애슐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레스토랑의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아버지가 문을 열고 걸어들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매우 잘생긴 중년 남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스토랑 안의 손님들이 모두 자신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아버지를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유명한 아버지를 가진 기분이 어때?" 몇 해 전,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최소침윤 심장 수술 분야에서획기적인 치료법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 그는 전세계 유명한 병원으로부터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쉴 새 없이 받고 있었다. 그녀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애슐리에게는 아버지 외에 혈육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애슐리," 하고 패터슨 박사는 몸을 기울여딸의 빰에다 키스를 했다. "괜찮아요 저도 방금 왔는걸요 뭐." 박사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타임) 지는 읽어보았니?" "네, 계인 실장이 보여 주었어요" 갑자기 패터슨 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셰인이라니? 네가 사귄다는 사람 말이냐?"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저 제 상사일 뿐이에요" "일과 사생활을 혼동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란다. 애슐리.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가 그 남자를 직장 상사 이상으로 대하고 있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란다. " "아버지, 우리는 다만 좋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요一" 그때 웨이터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패터슨 박사가 웨이터에게 몸을 돌려 쏘아붙였다. "자네는 우리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고도 모르겠나? 부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게." "정말 죄송합니다. " 웨이터는 몸을 돌려 황급히 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애슐리는 당황해서 몸을 움츠렸다. 아버지의 성미가얼마나 사나운지를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는 인턴이 판단 착오를 일으킨 일로 해서 수술 도중에 주먹을 날린 적도 있었다. 애슐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함을 지르면서 말다툼을 하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 싸움은 정말 무서웠었다. 돌이켜 보면 양친은 항상 똑같은 일을 가지고 싸웠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였는지는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때 이미 그 일을마음속에서 몰아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얘기를 계속했다. "어디까지 얘기를 했더라? 아, 참 그렇지. 셰인 밀러와 데이트를하는 건 네 실수야. 아주 큰 실수지."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애슐리는 또 다른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애슐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짐 클리어리와 데이트를 하는 건 실수야. 아주 큰 실수지...," 애슐리가 마악 18세가 되던 해, 펜실베이니아 주의 베드포드에서 살고 있었을 때였다 사실 애슬리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짐 클길어리는 베드포드 지구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가장인지 있는 남학생이었다. 그는 학내 미식 측구 선수인 데다가 핸섬하고 잘 웃겼으며 여학생을 매료시키는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애술리에게는 교내 모든 여학생이 짐과 함께 자기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녀는 '아마 대부분의 여 자애들이 벌써 짐과잤을 거야.' 하고 단정지으며 매일 우울하게 보냈다. 짐 클리어리가 애슐리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그녀는 짐과는 죽어도 잠자리를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짐은 자신과의 섹스에만 관심이 있다는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갈수록 그녀의 결심은희미해져갔다. 애슬리는 짐과 함께 있는 시간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으며,짐 역시 자신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상급반 아이들끼리 주말에 산으로 스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짐은 스키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몹시 흥분해 있었다. "우리 둘에게 아주 멋진 추억이 될 거야," 하고 짐은 애슬리에게장담을 했다. "나는 가지 않을 거야," 그러자 짐이 깜짝 놀라서 애슬리를 쳐다보았다. "왜?" "추위는 딱 질색이거든.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이 마비된다니까."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스키 여행을-?" "나는 안 간다니깐." 그래서 짐 클리어리도 애슬리와 함께 베드포드에 남았다. 그들은 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같은 이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언제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짐 클리어리가 애슬리에게 '누군가가 오늘 아침에 네가 내 걸프렌드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면 좋겠니? 하고 물었을 때, 애슬리는 미소를 지으며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말해 주렴." 패터슨 박사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클리어리라는 남학생을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구나." "아버지, 짐은 아주 예절바른 아이예요 저는 그를 사랑해요" "네가 어떻게 그런 애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그 녀석은 변변치 않은 미식 축구 선수잖니.이 애빈,네가 그런 놈하고 결혼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가 없다. 그 녀석은 너와는 전혀 어울리지않아, 애슬리." 패터슨 박사는 애슬리가 만나는 남학생마다 그런 식으로 말을했다. 그는 짐 클리어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계속 헐뜯었는데, 마침내 고교 졸업식날 밤에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짐 클리어리와 애슬리는 졸업식 파티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래서 짐 클리어리가그녀를 데리러 갔는데 애슬 리가 집 안에서 울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우리- 런던으로 이사가야 한대.아버지가 그곳의 대학에 벌써입학 수속을 해 놓았대." 짐 클리어리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 사이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거니?" 애술리는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떠나는데?" "내 일." "내일? 말도 안 돼! 애슬리, 아무리 아버지라도 그렇게 할 수는없는 거야. 내 말 잘 들어. 난 너하고 꼭 결혼할 거야.우리 삼촌이시카고에서 광고대리점을 하고 있는데, 마침 나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거든.우리 둘이서 도망치자. 내일 아침 기차역에서만나. 아침7시에 시카고로 떠나는 열차가 있으니까.나하고 함께갈 거지?" 애슬리는 한참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같이 갈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애슬리는 졸업 파티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애슬리와 짐은 저녁 내내 흥분한 채 장래의 계획에관해서 얘기를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왜 시카고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는 거니?" 하고 애슬리가물었다. "비행기를 타면 항공 회사에 우리 이름을 신고해야 되니까. 하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 아무도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수가없잖아." 파티장을 떠날 때 짐 클리어리가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가지 않을래? 주말이라서 어른들은 여행을 떠나셨거든...," 애슬리는 한참 동안을 망설였다. "짐... 우린 지금까지 오랫동안 잘 기다려 왔잖아. 2, 3일만 참으면 정식으로 결혼할 텐데 뭐," "네 말이 맞아." 하고 짐은 싱긋 웃었다. "어쩌면 내가 미국에서숫처녀와 결혼하는 유일한 남성이 될지도 모르겠는걸.' 짐 클리어리가 애슬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때, 패터슨 박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지금이 얼마나 늦은 시간인지 알고나 있나?' "죄송합니다. 박사님. 파티가 워낙 늦게 끝나서...," "나에게 변명할 생각은 말게, 클리어리. 자네, 지금 누구를 바보취급하고 얼렁뚱땅 넘어 가려는 겐가?' "저는 다만一"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 딸에게서 손을 떼게. 내 말 알아듣겠나?" "아버지..." "우리 집엔 얼씬거리지도 말란 말야!" 하고 패터슨 박사는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당장 꺼져. 그리고 다시는 이 근처에 코빼기도 내밀지 말아!" "박사님, 애슬리와 저는..." "짐..." "너는 네 방으로 빨리 올라갓!" "박사님一" "만약 또다시 우리 집 근처에서 얼정거리는 것을 발견하는 날에자네 뼈를 몽땅 부러뜨려 버리겠어 !" 애슬리는 여지껏 아버지가 그처럼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장면은 세 사람 모두 각자 악을 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싸움이 끝났을 때 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애슬리는 눈물 범벅이되어 있었다. '더 이상 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수는 없어.' 하고 애슬리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지금 내 인생을 망치려 하고 있는 거야,' 애슬리는 오랫동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짐과 헤어져서는 못 살아. 짐과 함께 있고싶어.더 이상 이 집에 있고 싶지 않아.' 애슬리는 몸을 일으켜 여행 가방에다 자신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30분 뒤, 애슬리는 뒷문으로 물래 빠져나가 십여 블록 떨어져 있는 짐 클리어리네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밤에는 짐과 함께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시카고로 떠나야지." 그러나 짐의 집이 가까워졌을 때 애슬리는 생각을 다시 했다. '아냐, 지금 난 잘못하고 있는 거야. 모든 걸 다 망쳐 버릴 수는 없어. 짐과는 내일 아침에 역에서 만나는 것이 좋겠어,' 애슬리는 방향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애슬리는 앞으로 짐과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생각하느라고 앉아서 꼬박 밤을 새웠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5시 30분에 애슬리는 다시 여행 가방을 들고 닫혀 있는 아버지의 침실문 앞을 조용히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을 빠져 나와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애슬리가 역에 도착했을 때 짐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그녀가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 애슬리는 역 대합실 벤치에 앉아서 초조하게짐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미친 듯이 화를 내며 펄펄 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 인생을 참견하는 것은 싫어. 언젠가는 아버지도 짐을 인정하게 될 거야.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여자인지도알게 될 거구 말야' 6시 30분... 6시 40분... 6시 45분... 6시 50분. 그러나 아직도 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슬리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애슬리는 짐의 집에 전화를 걸어 보기로결심했다. 그러나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6시55분..., '아냐, 지금이라도 짐은 모습을 나타낼 거야.'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왔다. 6시 59분. 기차가 역 구내로 들어와 서서히 멈춰 서고 있었다. 애슬리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떤 불길한 일이 짐에게 일어난 것이 틀림없어. 짐이 사고를당한 거야.짐은 병원에 실려 갔을 거야.' 몇 분 뒤, 애슬리는 시카고행 열차가 플랫폼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서 있었다. 기차는 애슬리의 모든 꿈을 빼앗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애슬리는 그곳에서 반 시간을 더 기다린 후에 다시 짐의 집에전화를 걸었다. 계속 응답이 없자 애슬리는 맥이 풀려서 터벅터벅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정오, 애슬리는 아버지와 함께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애슬리는 2년 동안 런던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컴퓨터를전공하기로 결심을 하고 산타 크루즈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공학부의 여학생을 위한 '메이왕 장학금'을 신청했다. 그것에 합격한 애슬리는 3년 후에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에 취직하였다. 처음 얼마 동안 애슬리는 짐 클리어리에게 대여섯 통의 편지를썼다가는 모두 박박 찢어 버리고 말았다. 짐의 행동과 침묵이 자기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골똘히 하는 거지?" 옛 생각에 빠져 있던 애슬리는 깜짝 놀라 테이블 너머로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녜요." 패터슨 박사는 웨이터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젠 메뉴를 보여 주겠나?'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애슬리는 아버지에게 (타임)지의 표지에 사진이 실려 축하한다는 말을 잊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애슬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데니스 티블이 그곳에서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그게사실이야?' "남의 얘기나 엿듣기를 좋아하는 쩨쩨한 인간.저 작자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조리 알아내는 게 자신의 임무인 줄 안다니까' "그래요, 아버지와 함께 식사했어요" "그것 참, 별로 재미 없었겠다" 하고 티블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왜 나하고는 점심을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 거지?" "데니스... 전에도 말했잖아요 당신한테는 흥미가 없다고 말예요" 데니스 티블이 히죽이 웃었다. "아냐, 흥미를 갖게 될 거야. 두고보라고." 데니스에게는 무엇인가 닭살을 돋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무엇인가 을씨년스러운 것이 말이다. 애슬리는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사람이 데니스가 아닐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있다... 그러나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닐 거야.' 그녀는 골치 아프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애슬리는 (애플 트리 서점) 앞에 차를 세웠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서점 문 앞 거울 속에 비친 거리의 모습을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애슬리는 마음을 놓고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 점원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뭐, 특별히 찾는 책이라도 있습니까?" "네.스토커에 관한 책 있나요?" 점원은 애슬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토커요" 애슬리는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황급히 덧붙였다. "그래요. 그리고 또- 정원 손질법과- 아프리카의 동물에 관한책을 사고 싶은데요" "스토커와 정원 손질법과 아프리카의 동물이오?" "그래요" 하고 애슬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또 누가 알겠어? 정말로 정원을 갖게 되고,아프리카로 여행을 가게 될지 말야,' 애슐리가 서점을 나서 차 안으로 들어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를 몰자, 빗방울이 앞 유리창을 때리며 흩어져 앞에 있는 거리를 초현실적인 프랑스 인상주의파의 점묘화로 바꾸어 놓았다. 애슐리는 와이퍼를 켰다. 와이퍼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유리창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작자는 너를 죽이고 말 거야... 너를 죽이고 말 거야...,." 애슐리는 당황해서 와이퍼를 껐다. '아냐. 와이퍼는 아무도 따라오진 않아. 아무도 따라 오지 않는다나까 하고 말하고 있는 거야.' 애슐리는 앞 유리창의 와이퍼를 다시 켰다. "그 작자는 너를 죽이고 말 거야... 너를 죽이고 말 거야..., " 애슐리는 아파트 차고에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2분 후, 그녀는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현관문까지 걸어간 애슐리는 열쇠를 자물쇠에 꽂아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얼어 붙은 듯이 섰다. 방 안의 모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의 인터넷2 뽕나무 숲속에서 원숭이가 이리저리 족제비를 쫓아다니고 있네. 원숭이는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 (영국의 어린이들이 놀이할 때 부르는 노래) 토니 프레스코트는 자신이 그 바보 같은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 노래를 끔찍이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보 같은 노래를 그만 부르지 못하겠니! 내 말 안 들리니?아무튼 넥 목소리는 형편없단 말알." "알았어요, 어머니." 그리고는 토니는 작은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다시 부르곤 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만 어머니에게 반항하던기억은 아직도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토니 프레스코트는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에서 일하는 것이지긋지긋했다. 그는 올해 나이 스물두 살로,까부라지고 활발하고저돌적이었다. 절반은 속으로 지글지글 타 들어가는 연기 나는 불이고, 절반은 폭탄이었다. 그리고 얼굴은 꼬마 요정 같은 하트 모양이고, 눈은 장난기가 가득한 갈색인 데다가 몸매는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쾌활한 영국 사투리를 섞어 가면서 말했다. 그리고 스포츠를 아주 좋아했다. 특히 스키와 봅슬레이(썰매 2대를 연결시켜 그 위에 3-4명이 타고 앞에 있는 사람이 키를 잡아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놀이)와 스케이팅 같은 겨울 스포츠를 좋아했다. 런던에서 대학을 다닌 토니는 낮에는 순수한 옷차림이었지만,밤에는 미니 스커트에다 디스코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유행을 좇는 '웨스트 엔드'의 젊은이들과 뒤섞여서 캄덴 하이 스트리트의 (일렉트릭 볼룸)이나 (서브테라니아)와 (레오파드 라운지)에서 저녁과 밤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관능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음탕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다. 바로 그때 토니는 가장충만한 삶의 희열을 느꼈다. 클럽 안에서의 행동은 항상 다음과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네가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는 걸 알고 있니, 토니?" "고마워." "내가 한잔 살까?" 토니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핌스 같으면 한잔 하겠는데." "기꺼이 대접할게." 그리고 그것은 또 똑같은 방식으로 끝이 난다. 데이트 상대는 그녀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귀에 대고 속삭인다. "우리 집으로 가서 한바탕 신나게 흔들어 대는 것은 어때?" "저리 꺼져.'. 그리고는 토니는 그곳을 나와 버린다. 그녀는 침대에 드러누워남자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생각하고, 얼마나 그들을 다루기가 쉬운가를 생각한다. 불쌍한 사내 녀석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지배당하기를 원하고 있다. 남자들은 지배받을 필요가 있다니까. 그리고는 런던에서 큐퍼티노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토니는 큐퍼티노를 증오하고 (글로벌 컴퓨터그래픽)사에서 일하는 것을 증오했다. 그리고 '플러그인'이나 데이터 처리', '해프톤', '그리드' 같은 프로그램 용어에 관련된 소리를 듣는 것이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흥분으로 가득한 런던의 밤 생활을 잊을 수가 없었다. 큐퍼티노 지역에는 나이트 클럽이 몇 군데밖에 없었다. 그래서 토니는 (상 호세 라이브)나 (p. J. 멀리건)이나 (할리우드 정션) 같은곳을 빈번히 출입했다. 몸에 꽉 끼는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입고, 10센티가 넘는 힐이달린 높은 구두나 코르크 바닥을 붙인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다. 화장은 짙게 했다-두털고 검은 아이라인, 인조 속눈썹, 현란한 색깔의 아이 섀도,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새빨간 립스틱을 칠했다.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숨기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주말이 되면 토니는 진짜로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로 차를 몰고 갔다. 그리고 뮤직 바가 있는 레스토랑과 클럽을 찾아 다녔따.. (해리 덴톤)과 (원 마켓 레스토랑)과 (캘리포니아 카페)를 방문하여 저녁에 연주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토니는 피아노 앞에앉아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손님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토니가 저녁 식사 대금을 지불하려고 고집을 부리면 클럽 주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닙니다 그 돈은 당연히 우리가 지불해야지. 당신의 노래는정말 멋졌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찾아 주세요." "엄마. 지금 이 말 들었지요? 당신의 노래는 정말 멋졌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세요는 말을요." 어느 토요일 밤, 토니는 클리프 호텔의 (프렌치 룸)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악단의 연주자들은 정해진 곡들을 끝내고는 밴드 스탠드를 떠났다. 지배인이 토니를 바라보고 연주와 노래를 권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가로질러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걸어갔다. 그리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를 포터의 초기 히트곡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끝내자 손님들 사이에서 열렬한박수가 터져 나왔다. 토니는 두 곡을 더 부르고 나서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좌석으로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잠시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토니는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 중년 남자가 먼저 말을이었다. "나는 노먼 짐머맨이라는 사람입니다. (왕과 나)의 지방순회 공연의 제작자이지요 그 뮤지컬에 관해서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토니는 얼마 전에 노먼 짐머맨에 대한 열렬한 찬사가 적힌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노먼은 연극계의 천재였다. 노먼 짐머맨이 의자에 앉았다. "당신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요,젊은 아가씨. 이런 곳에서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당신은 브로드웨이 같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보로드웨이! 이 말 들었어요,엄마?' "오디션 한번 받아보지 않겠소?" "죄송합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아니에요' 노먼 짐머맨은 놀란 눈으로 토니를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출세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진심으로 권하고 있는 거요. 아무래도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군요" "전 직업이 있어요."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 "내 얘기를 잘 들어 보세요, 아가씨.나는 당신이 현재 받고 있는것보다 두 배의 급료를 지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토니가 말을 가로막았다. "감사합니다만 전...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짐머맨은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댔다. "연예계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인가요?" "아뇨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뭡니까?" 토니는 망설이다가 한참 만에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순회 공연 여행 도중에 극단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것 같아서요" "당신 남편이나 혹은 그 비슷한 문제 때문인가요?" "결혼은 아직이에요." "그렇다면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당신은 방금 연예계에관심이 있다고 했잖아요? 이것은 당신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출세의 기회인데ㅡ" "미안합니다. 저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만일 내가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저 분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고 토니는 비참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의 어느누구도 이해하지 못할걸. 나는 평생을 이 무서운 저주와 함께 살아야 할 테니까. 영원히.'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뒤에 토니는 전세계의 남성들과 만날 수 있는 '인터넷'에 관해서 배우게 되었다. 토니는 (듀크 오브 에든버러)에서 라이벌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인 케이시 힐리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레스토랑은 진짜 영국 본토에서 온 선술집인데, 건물을 그대로 분해해서 컨테이너에 담아 캘리포니아까지 배로 운반해 왔다고 한다. 토니는 런던 식의 생선 요리, 요크셔 푸딩이 곁들여진 쇠갈비 요리,소시지, 으깬 감자, 그리고 영국식 세리주를 맛보기 위해 그곳에자주 들렀다 '이곳에 발만 들여놓아도 내 뿌리를 기억하게 된다니까.' 하고 토니는 말하곤 했다. 토니는 케이시를 쳐다보았다. "너,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일을 좀 해 주어야겠어." "말해봐." "내가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 케이시, 인터넷을 어떻게사용하는지 가르쳐줘," "토니,내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회사에서 쓰는것뿐이야. 그런데 그 컴퓨터로 너에게 인터넷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회사의 규칙에 위반되기 때문에ㅡ" "그까짓 회사의 규칙쯤은 무시해버려도 돼잖아.너,인터넷을 할줄은 알지?' "그야 물론이지.' 토니는 케이시의 손을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잘됐다." 그 이튿날 저녁, 토니는 케이시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케이시는토니에게 인터넷의 세계를 처음으로 소개해 주었다. 인터넷 아이콘을 클릭한 다음 케이시는 패스 워드를 입력하고잠시 그것이 접속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또 다른 아이콘을 클릭하고 채팅 방으로 들어갔다. 토니는 경이에 찬 눈으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빠르게 타이핑되는 대화들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나도 채팅을 해야지 !"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 내방에도 컴퓨터를 설치해 놓아야지. 나도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네가좀 도와줘." "그러지 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일단은 마우스를 URL필드에 클릭한 다음에一' "유행가 가사에 있는 것처럼, 나에게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보여줘 봐," 그 이튿날 밤, 토니는 혼자 인터넷에 접속했고,그 이후 토니의인생은 달라졌다. 그녀는 더 이상 무료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 인터넷은 그녀를 자유자재로 전세계로 날아다닐 수 있게 만드는마법의 융단이 되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집으로 퇴근하는 즉시 토니는 컴퓨터를 부팅시키고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채팅방을 탐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토니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키를 눌렀다. 그러면 스크린에 윈도가 열리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토니는 "안녕, 거기 누구 없어요?' 하고 친다. 화면의 아랫부분에, '봅입니다. 나 여기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고있습니다. ' 하는 말이 깜빡거린다. 토니는 바깥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에는 한스가 있었다. "당신에 관해서 얘기해 줘요,한스" "나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커다란 나이트 클럽의 DJ입니다. 힙합,랩, 월드 비트에 열중하고 있죠," 토니는 자신의 대답을 쳤다. "신나는 일처럼 들리는군요 나는 댄스를 좋아해요 하지만 나이트 클럽이 몇 개밖에 없는 형편없이 작은 도시에 살고 있어요" "서글프게 들리는관요" "정말로 서글픈 신세예요" "내가 당신을 즐겁게 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한번 만나지않을래요?' "바이바이." 토니는 채팅 방에서 나와 버렸다. 남아프리카에는 폴이 있었다. "네가 나를 다시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토니." "나,여기 있어.너에 관한 것을 알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야.폴." "나는 서른두 살 요하네스버그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지. 나는ㅡ" 토니는 화가 나서 채팅을 중단해 버렸다. '의사라니!' 끔찍한 기억들이 노니에게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그녀는 한순간 눈을 감았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토니는 몇 차례 심호흡을 되풀이했다. '오늘 밤에는 김샜어!' 하고 토니는 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그리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저녁. 토니는 다시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더블린에 사는숀이 접속되었다. "토니... 정말 예쁜 이름이구나..." "고마워, 숀." "아일랜드에 와 본 적 있니?" "아니, 못 가봤어.' "굉장히 좋아하게 될 거야 여기는 레프레카운(장난을 좋아하는작은 요정)의 나라거든.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주지 않겠니?내 생각에는 무척 아름다울 것 같은데.' "그래, 네 말이 맞았어. 난 아름다워 아름답고 재미있고 게다가싱글이지. 네 직업은 뭐니, 숀?" "바텐더一" 그 즉시 토니는 대화를 끝내 버렸다. 그녀는 매일 밤마다 다른 남자와 채팅을 했다. 아르헨티나에는폴로(4명이 1조가 되어 말을 타고 하는 공치기) 선수가 있었고, 일본에는 자동차 세일즈맨이 있었고, 시카고에는 백화점 사무원이 있었고,뉴욕에는 텔레비전 기술자가 있었다. 인터넷은 환상적인 게임이었고, 토니는 그것을 속속들이 이용하고 즐겼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깊숙이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으나익명이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인터넷의 채팅 방을 통해서 토니는 장 클로드 패랑을 만나게 되었다. "봉 스와르(안녕),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몹시 기뻐요,토니." "만나서 반가워요,장 클로드.사는 곳이 어디예요?" "캐나다의 퀘벡 입니다. ' "나는 퀘벡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곳인가요?" 토니는 '예스'라는 말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 클로드는 이렇게 타이핑했다 "글쎄, 잘 모르겠군요.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겠지요" 토니는 그의 대답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요? 퀘벡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데요?' "퀘벡은 초기 북아메리카의 개척지와 비슷합니다. 이곳은 매우프랑스적이지요.퀘벡 사람들은 독립심이 강합니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명령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토니는 이렇게 쳤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당신도 퀘벡을 좋아할 수 있겠군요. 이곳은 아름다운도시예요 산들과 아름다운 호수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사냥과 낚시의 천국이랍니다. " 모니터에 나타나는 타이핑된 말들을 들여다보면서 토니는 장 클로드의 열의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로 매력적인 고장 같군요 당신 자신에 관해서 얘기를 좀해 주시겠어요?' "나요? 얘기할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서른여덟 살이고 아직미혼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했고,지금은 나에게 어울리는 여자와 만나서 정착하기를 몹시 바라고 있습니다그런데, 당신은? 결혼했나요?" 토니는 타이핑했다. "아뇨 나도 누군가를 찾고 있는 중이에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조그만 보석 가게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간 나면 언제 한번퀘벡에 놀러오세요." "초대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 토니는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 참 매우 흥미롭게 들리는군요' 정말로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퀘벡에 가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하고 토니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 사람이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일지도 몰라.' 토니는 거의 매일 밤 장 클로드 패랑과 통신을 했다. 장 클로드는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토니는 스크린을 통해 매우 매력적이고 지적인 남성을 볼 수 있었다. 장 클로드는 토니가 올린 사진을 보고는 이렇게 썼다. "정말 아름답군요, 귀여운 아가씨. 당신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알고 있었어요 하루빨리 이곳 퀘벡에서 당신을 뵙고 싶군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빠른 시간 내에 와야 합니다. " "안녕." 토니는 대화를 끝냈다. 이튿날 아침, 사무실에서 토니는 세인 밀러가 애슐리 패터슨에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생각했다. '도대체 밀러는 애슐리의 무엇을 보고 저렇게 졸졸 따라다니는걸까? 애슐리는 어느 면으로 보나 보잘것 없는 여잔데.' 토니가 보기에 애슬리는 좌절당한 미혼 독신주의자였다.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체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여자. '애슐리는 전혀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여자야.' 하고 토니는 생각했다. 토니는 애슐리에 관한 모든 것을 혐오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애슐리는 밤이면 집구석에 틀어 박혀서 책을 읽거나 역사 채널이나 CNN 뉴스 보기를 좋아하는 경직된 직장 여성이다. 그녀는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휴.따분해!' 토니가 보기에 애슬리는 채팅 방 같은 곳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컴퓨터를 통해서 낯선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은 애슬리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없는 일이었다. '썰렁한 계집애.그녀는 지금 인생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니까.' 하고 토니는 생각했다. 만약 채팅방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장 클로드를 만날 수 없었을 거야.' 토니는 어머니가 인터넷을 얼마나 싫어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다 어머니에게는단 두 가지 통신 수단밖에 없었다. 비명과 한탄 토니는 어머니를즐겁게 해 줄 수가 없었다. "올바른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 있니,이 멍청한 계집애야?"그렇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자주 그녀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토니는 어머니가 죽은 그 무시무시한 사고에 대해서 생각했다. 토니는 지금까지도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토니는 미소를 지었다. 실 한 타래에 I페니 바늘 한 개에 1페니예요 그렇게 해서 돈은 없어지는 법이라네.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색깔을 귀로 듣는 화가 3 만약 지금과 다른 장소,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알레트피터스는 성공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기억할 수 있는 까마득한어린 시절부터,그녀의 모든 감각은 색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알레트는 색깔을 볼 수가 있고 색깔을 냄새 맡을 수가 있으며, 색깔을 귀로 들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푸른색이고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두운 갈색이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노란색이었다. 단골 야채장수의 목소리는 자주색이었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초록색이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회색이었다. 알레트 피터스는 스무 살이었다. 그녀는 그날의 기분이나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아주 평범하게도 보이고,매력적으로도 보이고, 엄청나게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하게 겉 모습만으로 판단되는 그런 아름다움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매력의 일부는 자신의 외모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알레트는 거의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사근사근 말을 하는 여성이었다. 알레트는 로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리드미컬한 이탈리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로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스페인 계단)의 꼭대기에 서서 로마 시내를 둘러보고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고향이라고 느꼈다. 고대의 대성당들과 거대한 콜로세움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시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피아차 나보나)로 걸어 들어가 네 개의 강의 분수'의 물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빅토르 엠마누엘 2세의 결혼 케이크 기념비가 있는 (피아차베네치아)를 산책했다. 그녀는 라파엘과 프라 바르톨로메오와 안드레아 델 사르토와 폰토르모의 시공을 뛰어 넘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과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명장들의 재능은 그녀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고 또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알레트는 16세기에 다시 태어나서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그들은 거리를 지나가는 통행인들보다 더 현실적으로 생각되었다. 그녀는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며 그들과 같은 화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알레트는 어머니의 어두운 갈색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넌 종이와 그림물감만 낭비하고 있는 거야. 너에게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어."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와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알레트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많이 걱정했으나 그런 우려와는 달리 큐퍼티노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 작은 도시에서만이 만끽할 수 있는 생활을 즐겼으며 또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큐퍼티노에는 규모가 큰 미술관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알레트는 미술관을 두루 방문하기 위해 수시로 샌프란시스코로 차를 몰았다. "왜 너는 그런 그림 같은 것에 관심이 많지?" 하고 토니 프레스코트가 물어보곤 했다. "헤이 ! 그런 것은 모두 집어치우고 나와 함께 (p. J.멀리건)클럽에 가서 재미 보는 게 어때?' "너는 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니?" 토니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없어. 그 미술이라는 게 남자 이름이니?" 알레트 피터스의 인생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조울증 환자였다. 알레트는 아노미 현상(무규제 상태)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의 감정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수시로 변했다. 그녀는환희로 가득 찬 행복감에서 한순간에 절망적인 비참함으로 전락했다. 알레트에게는 감정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 토니는 알레트가 자신의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토니는 모든 일에 대한 해결책이 있었는데,그것은 대개의 경우, '자,나가서 한바탕 재미 보고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토니가 가장 좋아하는 논의 대상은 애슐리 패터슨이었다. 토니는 세인 밀러가 애슐리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저 새침데기 아가씨를 좀 봐," 하고 토니는 경멸하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완전히 공주병 중증이라니까." 알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는 매사에 지나치게 심각해.누군가가 저 애에게 웃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 것 같아." 토니가 맞장구를 쳤다. "누군가가 저 애에게 섹스하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걸.' 일주일에 한 번씩 알레트는 집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선교관에 가서 저녁 식사 대접하는 일을 했다. 그들 중에서도 땅딸막한 늙은 여인이 알레트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 노파는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알레트는 식탁에까지 밀어다주고 갓 만들어낸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노파는 알레트에게 고마워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가씨 같은 딸이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 알레트는 노파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너무 과분한 칭찬이세요 감사합니다. " 그러나 알레트 내부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에게 딸이 있었다면,그녀는 아마 당신같이 돼지처럼생겼을 거야.' 알레트는 자신의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마치 그녀의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일은계속해서 일어났다. 알레트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신자인 베티 하디와 함께 쇼핑을 하러 나갔다. 두 사람은 백화점 앞에 서 있었는데 베티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드레스를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옷,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아름답군요" 하고 알레트는 대답했다. "저 옷은 내가 본 옷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드레스야. 네가 입으면 꼭 어울리겠다. ' 어느 날 저녁, 알레트는 교회의 관리인인 로널드와 저녁 식사를함께 한 적이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니까 정말 즐겁군요, 알레트. 앞으로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합시다. ' 알레트는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즐거웠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세상에나 가야그런 일이 다시 있을걸,이 병신 같은 자식아,' 그리고 또다시 알레트는 자신에게 몸서리를 쳤다. '도대체 내 어디가 잘못된 걸까?' 그러나 알레트는 그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아주 사소한 일에도 알레트는 쉽게 분노했다. 어느 날 아침, 회사로 출근을 하는 길에 어떤 자동차가 그녀 앞으로 끼여들었다. 알레트는 이를 갈면서 생각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이 쌍놈의 새끼 !' 그 남자가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알레트는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부글부글끓었다.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면, 알레트는 길거리의 사람들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자동차에 깔려 죽거나,강도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알레트는 그런 장면들을 아주 생생하게 마음속에 떠올리곤 했다. 잠시 뒤,알레트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후회를 했다. 기분이 좋은 날에 알레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친절하고 동정적 이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즐겼다. 알레트의 행복을 망치는 단 한 가지는 어두운 구름이 언젠가는또다시 그녀를 덮칠 것이라는 사실과, 그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 되면 알레트는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는 집없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예배 후에 미술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알레트는 주일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육아원을 도왔다. 그녀는 모든 자선활동에 자원하여 봉사했으며.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바쳤다. 특히젊은이들을 위한 미술 교실을 지도하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 어느 일요일,교회에서 자선 기금을 모금하는 자선 바자회가 열렸는데 알레트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내놓았다. 프랭크 셀바지오 목사가 알레트의 그림들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니, 이 그림들은- 너무나 훌륭하군요! 이 그림들은 미술관에서 팔아도 되겠어요" 알레트는 얼굴을 붉혔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저는 다만 취미 삼아 그려 본 것뿐인걸요" 바자회장은 인파로 붐볐다. 교회의 신자들이 친구들과 가족을총동원했기 때문에 게임장뿐만 아니라 그림과 공예품 매장에도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아름답게 장식된 케이크, 손으로 만든 멋진 퀼트,근사한 항아리에 들어 있는 집에서 만든 잼, 정교하게 조각된나무 장난감 등등.사람들은 매장에서 매장으로 옮겨 다니면서 시제품 과자를 먹어 보고, 다음날이면 아무 쓸모도 없게 될 물건들을샀다. "하지만 이건 자선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니까요" 알레트는 어떤 여인이 남편에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알레트는 매장 한구석에 놓아 둔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밝고 생생한 색깔의 풍경화들이었다. 알레트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종이와 그림물감만 낭비하고 있는 거야.' 어떤 신사가 매장으로 다가왔다. "안녕, 아가씨 이 그림을 당신이 그렸나요?" 그 신사의 목소리는 짙은 청색이었다. '아니야,이 병신아.미켈란젤로가 지나가다가 잠깐 들러서 그린걸걸? "아가씨는 그림 그리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군요' "고맙습니다. " '네가 재능에 관해서 뭘 안다고 주접을 떠니?' 이번에는 젊은 부부가 알레트의 매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색깔들.좀 봐! 나도 저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솜씨가 정갈 좋군요, 아가씨." 오후 내내 사람들은 알레트의 그림을 사기 위해 그녀의 매장으로 찾아왔고, 그녀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떠들어댔다. 알레트는 그들의 말을 모두 그대로 믿고 싶었으나 매번 검은 커튼이내려지고,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내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군.' 한 화랑 주인이 찾아왔다. "그림들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아가씨는 그 재능을 상품화해야합니다" "저는 풋내기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걸요" 하고 알레트는 냉정히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 화랑 주인과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그날 바자회가 끝났을 때 알레트의 그림들은 모두 팔리고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지불한 돈을 모두 모아 봉투에 넣어서 프랭크 셀바지오 목사에게 건네주었다. 목사는 돈 봉투를 받아 들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알레트. 당신은 많은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생활 속에가져다주는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어요' '이 말 들었어요? 어머니?'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알레트는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서 많은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주로 미국인 화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드 영 미술관)에도 자주 들렀다 그곳엔 몇몇 젊은 화가들이 미술관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모사하고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알레트의 눈을 끌었다. 그는 20대 후반으로, 금발에다 호리호리한 체구였고, 강렬하면서도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지아 오키프의 (피튜니아)를 모사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뛰어나게 훌륭했다. 화가는 알레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안녕 " 젊은 화가의 따스한 목소리는 노란색이었다. "안녕하세요!" 알레트는 수줍은 듯이 대꾸했다. 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 쪽을 고개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멋져요" 알레트는 내부의 목소리가, '멍청한 아마추어 화가 치고는 말이지.' 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않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젊은 화가는 기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리처드입니다. 리처드 멜튼" "알레트 피터스라고 해요" "이곳에 자주 옵니까?' 하고 리처드가 물었다. "네,되도록이면 자주 오려고 하죠 샌프란시스코에 살지 않거든요' "그럼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큐퍼티노에서 살아요" '그건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라거나 니가 알아서 뭐하게?하는 대신에, '큐퍼티노에서 살아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곳은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지요" "나도 그곳을 좋아해요" 이번에도 '도대체 어째서 그곳이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라거나 당신이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에 대해서 쥐뿔이나 알고 있는 거야? 하는 말 대신에, 나도 그곳을 좋아해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젊은 화가는 그림을 모두 끝마쳤다. "아아, 배가 고프군. 내가 점심 식사를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드영 카페)의 음식은 아주 맛있죠' 알레트는 망설이지 않았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역시나 "넌 꼭 바보처럼 보이는군,'이라던가 나는 낯선 사람과는 절대로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아.'라는 말 대신에, '좋아요' 하는말이 튀어 나왔다. 그것은 알레트에게는 전혀 새로운 유쾌한 경험이었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알레트는 더할 수 없이 즐거웠다. 단 한번도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몇몇위대한 예술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알레트는 리처드에게로마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한 번도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리처드는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요" 그때 알레트는 생각했다. '당신과 함께 로마에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식사가 끝났을 때 리처드는 우연히 식당 건너편에 있는 룸메이트를 발견하고는 그를 자신의 테이블로 불렀다. "개리, 네가 이곳에 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인사를 시켜 줄사람이 있어.여기는 알레트 퍼터스,이쪽은 개리 킹입니다. ' 개리는 20대 후반으로 반짝이는 푸른 눈을 하고 있었고, 머리칼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개리." "개리는 고교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랍니다. 알레트." "그래요 나는 리처드의 비행을 10여 년 동안 보아 왔으니까,이녀석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를 찾고 있다면 기꺼이 내가ㅡ" "개리,너 어디 다른 데 가 볼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아, 참 그랬지.' 하고 개리 킹은 알레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내 말 잊지 마세요 그림,두 사람,또 만납시다. ' 두 사람은 개리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처드가 입을 열었다. "알레트...," "네?"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도 다시 만나고 싶어요" '아주 무척 !' 월요일 아침, 알레트는 토니에게 주말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화가들과는 절대로 관계를 갖지마." 하고 토니는 경고했다. '너는 그 작자가 그리는 과일을 먹고 살아가기가 십상일 테니까. 너,그 사람 또 만날 거니?' 알레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아무래도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나도 그가 좋고 진심으로 그가 좋아." 작은 의견 차이가 나중에는 격렬한 논쟁으로 끝이 났다. 그로 인해 프랭크 목사는 40년 간의 목회 생활 끝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매우 유능하고 자비로운 목사였기 때문에 신자들은 목사가 떠나는것을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에게 줄 은퇴 선물을 결정하기 위한 비밀 모임이 열렸다. 시계... 현금.... 휴가그림... 목사는 그림을 좋아했다. "교회를 배경으로 해서 목사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어떨까요?" 신자들은 모두 알레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초상화를 그려줄 수 있습니까?" "물론이에요" 하고 알레트는 기꺼이 수락했다. 월터 매닝은 교회의 후원회 간부 중 한사람으로서 헌금을 가장많이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성공한 실업가였으나 다른 사랑의 성공에 대해서는 몹시 배 아파하는 타입이었다. 월터 매닝이 말했다. "우리 딸이 유명한 화가입니다. 우리 딸에게 부탁하는 것이 더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누군가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어느 쪽을 프랭크 목사님께 선물할 것인지는 투표로 결정하면 어떻겠습니까?" 알레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5일이걸렸다. 그것은 목사치 자비로움과 선량함이 잘 나타난 걸작이었다. 그 다음 일요일, 신자들은 그림을 보기 위해 다시 모임을 가졌다. 모두들 알레트의 그림을 보고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이 그림은 목사님의 모습과 똑같군요 당장이라도 목사성이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실 것 같습니다...," "아아, 목사님이 이 그림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 까요...," "이 그림은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할 걸작품이군요,알레트...," 월터 매닝은 딸이 그린 캔버스의 포장을 풀었다. 그것은 꽤 잘그린 그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알레트가 그린 초상화보다는 열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 그림도 꽤 괜찮군요" 하고 신도회의 간부 하나가 마지못해칭찬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알레트의 그림이一" "나도 동의합니다...," "알레트의 초상화는 하나의...," 그러자 월터 매닝이 목청을 돋우었다. "이 일은 만장일치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딸아이는직업적인 화가이지," 하고는 알레트를 바라보았다.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내 딸은 오직 목사님에 대한 호의에서 이 그림을그렸습니다. 이 호의를 무시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월터一" "안 됩니다.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면 안 됩니다. 따라서목사님에게 내 딸의 그림을 드리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드리지 말던가 해야 합니다. ' 알레트가 일어나서 말했다. "제가 보기엔 그분의 그림이 훨씬 더 좋군요 그 그림을 목사님께 드리기로 합시다. ' 월터 매닝은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사님도 이 그림을 받으시면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월터 매닝은 뺑소니차에 치여서 목숨을 잃었다. 그 소식을 듣자 알레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10년 만의 동창회4 그소리가 들렸을 때, 애슬리 패터슨은 출근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서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닫히는 소리였을까? 애슬리는샤워기를 잠그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있었다. 침묵. 애슬리는 잠시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몸에서 물이 뚝뚝 흘러 떨어졌다. 서둘러 타월로 몸을 닦아내고 조심스럽게침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이건 역시 내 어리석은 상상적 탓일 거야. 빨리 옷이나 입어야지,?애슬리는 속옷을 넣어 둔 서랍 쪽으로 걸어가 서랍을 열고는 도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속을 응시했다. 누군가가 속옷에손을 댄 것 같았다. 브래지어와 팬티 스타킹이 뒤섞인 채 쌓여 있었다. 애슬리는 언제나 그 두 가지를 정확하게 분리해서 정돈해 두는데 말이다. 애슬리는 갑자기 속이 느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가 바지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팬티 스타킹을 집어들어 그의 물건을 비벼댄 것이 아닐까?그때 그는 자신을 강간하는 광경을 머리에 떠을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자신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광경을? 애슬리는 숨쉬기가 곤란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하지만 경찰은 나를 미친년 취급할 거야.' '누군가가 당신의 속옷 서랍을 뒤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그것을 수사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누군가가 나를 계속 미행하고 있어요" "미행자의 모습을 목격했습니까?' "보지는 못했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위협했습니까?" "아뇨" "그럼.그 누군가가 왜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 '모두 소용없는 짓이야.' 하고 애슬리는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경찰서에 찾아갈 수도 없어. 보나마나 경찰은 그런 것들을 나에게물어볼 거야. 그리고 나는 더할 수 없는 바보처럼 보이겠지,'애슬리는 갑자기 아파트에서 도망쳐 나가고 싶어져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옷을 입었다. '여길 벗어나야만해.그 놈이 나를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빨리가지 않으면 안 돼.'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놈은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고,내가 어디에서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그런데 나는 놈에 대해서 무엇을알고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어.' 애슬리는 폭력을 싫어하기 때문에 아파트 안에 권총 두는 것을계속 미루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 어떤 보호책이 필요해.' 하고 애슬리는생각했다. 애슬리는 주방으로 걸어가서 스테이크 나이프를 집어들고 다시침실로 들어가 침대 옆에 놓인 옷장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어쩌면 내가 속옷 서랍의 물건들을 흐트러뜨려 놓고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그래, 사실은 그런 건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뿐일까? 아래층 현관 홀에 있는 그녀의 우편함에 편지 봉투 하나가 들어있었다. 발신인의 주소는, (펜실베이니아 주 베드포드 시, 베드포드지구 고등학교)로 되어 있었다. 애슬리는 그 초청장을 두 차례나 읽어보았다. 10년 만의 동창회 부자, 가난뱅이, 거치, 도둑놈. 여러분은 지난 10년 동안 동급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게 생각한 적 없습니까? 여기 그들의변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습니다. 6월 15일 주말에멋진 재회의 기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맛있는 음식. 다양한 술. 아름다운 음악을 제공할 오케스트라,그리고 춤.그 기쁨을 우리 함께나눕시다. 참석하실 수 있는 분은 동봉한 초청 수락 카드를 보내 주시면고맙겠습니다. 모두가 당신을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회사로출근하면서 애슬리는 동창회에 관해서 생각했다. '모두가 당신을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 '짐 클리어리만 빼놓고 말이겠지.' 하고 애슬리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나는 너하고 결혼하고 싶단 말야.우리 삼촌이 시카고에서 광고대리점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거든... 아침 7시에 시카고로 떠나는 열차가 있으니까. 나하고 함께 갈 거지?"애슬리는 짐의 말을 믿고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때를 생각해냈다. 짐은 결심만 바꾼 게 아니라, 역까지 찾아와서 그녀에게 얘기해줄 만큼 성실한 인간도 아니었다. 짐은 그녀를 혼자 역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동창회 따위는 잊어버리자. 그곳에 내가 뭣하러 가겠는가?' 애슬리는 (TGI프라이데이) 레스토랑에서 세인 밀러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스 좌석에 앉아서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애슬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야?" 하고 세인이조심스레 물었다. "미안해요." 애슬리는 잠시 망설였다. 속옷에 관해서 그에게 얘기하고 싶은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어리석다는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제 속옷 서랍을 들쑤셨어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애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만에 열리는 고등학교 동창회 초청장을 받았어요" "그래, 참석할 거야?" "아뇨, 안 가요" 그것은 애슬리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어조였다. 세인 밀러는 애슬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왜 안 가겠다는 거지?동창회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짐 클리어리는 동창회에 나올까? 아내와 자식은 있을까? 짐은나에게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을까? "미안해 기차역에서 너와 만나기로 해 놓고 나가지를 않았어. 미안해, 너와 결혼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해서." "난 절대로 동창회에 나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애슬리는 마음속에서 동창회 문제를 몰아낼 수가 없었다. '옛날에 친했던 동급생들을 다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라고애슬리는 생각했다. 동급생들 중에는 애슬리가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두세 명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친했던 사람은 플로렌스 쉬퍼였다. '플로렌스가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하군.' 그리고 베드포드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도 보고 싶었다. 애슬리 패터슨은 알레게니 산맥 속에 위치해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베드포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은 주 수도인 피츠버그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그녀의 부친은 베드포드 카운티의 메모리얼 병원 원장이었고, 그 병원은 미국에서 100퍼 병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베드포드는 어린이가 자라기 에는 이상적인 도시였다. 피크닉을위한 공원이 여러 개나 있고,낚시를 할 수 있는 강도 많고, 일년내내 사회적인 행사가 끊이지를 않았다. 애슬리는 아미쉬(신교의일파로,암만파의 신도들) 거주지가 있는 (빅 밸리)를 찾아가는 것을좋아했다. 그곳에서는 주인의 신앙 정도에 따라서 갖가지 색깔의 지붕을한 아미쉬의 2륜마차를 말들이 끌고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또 '요술 마을의 밤'과 인형 극장과 '큰호박 축제' 등이 있었다애슬리는 그곳에서 자랄 때의 재미있는 추억들을 생각해내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다시 가보는 게 좋을지도 몰라.'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짐 클리어리가 무슨 배짱으로 동창회에 참석하겠어?' 애슬리는 세인 밀러 실장에게 자신의 결정을 털어놓았다. "동창회는 다음 주 금요일에 열리니까,아마 토요일 밤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생각 잘했어.돌아을 때는 언제 도착하는지 연락해 줘.내가 공항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 나갈 테니까.' "고마워요, 셰인." 애슬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자기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전혀 뜻하지 않게 일단의 작은 점들이 스크린 위를 굴러 다니면서 하나의 영상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애슬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 점들은 그녀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애슬리가공포에 휩싸인 채 지켜보고 있자니까 식칼을 든 손이 화면 위쪽에나타났다. 그 손은 그녀의 영상을 항해 식칼을 가슴 한복판에 찌르려는 듯이 재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애슬리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인 밀러가 그녀 옆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애슬리! 왜 그래?' 애슬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기... 스크린 위에..." 세인은 컴퓨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푸른 잔디밭을 가로질러 털실 뭉치를 쫓아가는 그림이 떠있었다. 세인은 의아한 얼굴로 몸을 돌려 다시 애슬리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게-그게 사라져 버렸어요' 하고 애슬리는 넋나간 듯이 대답했다. "무엇이 사라졌다는 거지?" 애슬리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녜요,아무것도 아녜요 요즘 스트레스에 많이 시달려서 그런가 봐요, 세인. 미안해요' "스피크맨 박사를 한번 찾아가 보는 게 어떻겠어?" 애슬리는 이전에도 스피크맨 박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박사는 컴퓨터 전문가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위해 회사에서 고용한 정신과 의사였다. 박사는 일반적인 의미의 의사는 아니지만 지적이고 이해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태를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게 좋겠네요 당장 찾아가 봐야겠어요" 하고 애슬리가 말했다. 벤 스피크맨 박사는 50대인데 불로의 샘의 샘지기 같은사람이었다. 사무실은 빌딩 꼭대기 층에 자리잡고 있어 조용하고안락한 오아시스 같았다. "어젯밤에 무시무시한 꿈을 꾸었어요" 하고 애슬리는 말했다. "꽃들로 가득 차 있는 어떤 커다란 정원에서 달리고 있었어요... 그 꽃들은 섬뜩하고 추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꽃들이 나를 보고는 악을 쓰는 거예요... 나는 그 꽃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무작정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애슬리는 말을 중단하고 눈을 떴다. "당신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무엇인가가당신의 뒤를 雲아오고 있지 않았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제- 제 생각에는 무엇인가가 따라오고 있는 것같기도 했어요, 스피크맨 박사님.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박사는 그녀를 한동안 응시했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까?" "글쎄요- 전혀 짐작도 못 하겠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미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뇨" "혼자 살고 있지요?" "네, 혼자 살고 있어요" "누구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습니까? 내 말은 애정적인 의미입니다만.' "아뇨 지금은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남자를 만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겠군요 그러니까,내 말은, 젊은 여성이 연인이 없을 때는 일종의 신체적인긴장감이 다른 때보다 훨씬 강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만...," '박사가 얘기하려고 하는 건, 나에게 좋은 남자가 필요하다는 것일 거야.' 그러나 애슬리는 그 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또다시아버지가 자신에게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는그런 말을 내 앞에선 하지 말아리. 사람들은 너를 음탕한여자라고 생각할 게다. 품위가 있는 사람들은 (씹)이라는 말은 쓰지않는단다 너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저속한 말을 배웠지?" "요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애슬리. 그것 말고는 당신에게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걱정할 것 없어_7_ 아마 긴장감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당분간 일을 쉬엄쉬엄 하도록 노력해 봐요 좀더 휴식을 많이 취하고말입니다" "그렇게 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 세인 밀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피크맨 박사가 뭐라고 해?" 애슬리는 억찌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 이상도 없대요 너무 과로한 것 같으니 좀 쉬라는군요" "그래? 그렇다면 그 문제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군.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 오후에는 이만 조퇴하는 게 어때?'세인의 목소리는 걱정하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마워요." 애슬리는 세인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친절한 남자였다. 그리고 좋은 친구였다. '그가 절대로 미행자일 리가 없어.'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아무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애슬리는 동창회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이 잘못하는 일일까? 만약 짐 클리어리가 그곳에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짐은 자신이 나에게 얼마나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혔는지 알고 있을까? 그런 것에 신경이나쓸까? 짐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베드포드로 출발하기 전날 밤, 애슬리는 도저히 잠을 이를 수가없었다. 자꾸만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바보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애슬리는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과거는 과거 아니겠어? 애슬리는 공항에서 탑승권을 받아 살펴보고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사무상의 착오가 생긴 것 같은데요? 전 2등석을 예약했는데, 이것은 1등석 아닙니까?' "맞습니다. 손님께서 1등석으로 바꾸셨는데요' 애슬리는 깜짝놀라서 항공사 직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요?' "손님께서 전화를 걸으셔서 2등석을 1등석으로 바꾸셨잖아요?'하고 항공사 직원은 애슬리에게 전표를 보여 주었다. "이것이 손님의 신용카드 번호 맞지요?' 애슬리는 그것을 보고 천천히 대답했다 "맞습니다만...," 하지만 애슬리는 그런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애슬리는 베드포드에 오후 일찍 도착해서 (베드포드 스프링스리조트)에 체크 인했다. 동창회는 오후 6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베드포드 시내를 좀 둘러보기로 했단. 그녀는 호텔 앞에서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가십니까, 손님?' "그냥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녀 주세요." 그 고장에 살던 사람이 오래간만에 돌아와 보면 고향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애슬리에게 베드포드는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컸다. 택시는 (베드포드 가제트) 신문사와 WKYE 텔레비전 방송국과십여 개의 낯익은 레스토랑과 미술관 앞을 지나서 눈에 익은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베드포드 베이커스 로프) 제과점도아직 그곳에 있었고, (클라라 플레이스)와 (포트 베드포드 박물관)과 (올드 베드포드 빌리지)도 그대로 있었다. 택시는 주랑 현관이 있는 우아한 3층짜리 벽돌 건물인 (메모리얼 병원) 앞도 지나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유명해진 것은 바로그 병원에서였다. 애슬리는 또다시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오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을 기억해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토록 심하게 다투었을까?' 애슬리는 도저히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오후 5시경,애슬리는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무엇을입고 갈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옷을 세 차례나 바꿔입었다. 결국 심플하고 편안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가기로 결정했다. 축제풍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베드포드 지구 고등학교 체육관에들어섰을 때,애슬리는 왠지 막연하게 낯이 익은 120여 명의 낯선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동급생들 일부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으나,대부분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애슬리는 단 한 사람만을 열심히 눈으로 찾고 있었다. 물론 짐 클리어리였다. '짐은 많이 변했을까? 혹시 아내와 합께 참석한 것은 아닐까?' 동창들이 애슬리 옆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애슬리, 나는 트렌트 와터슨이야. 너 아주 근사해졌는데!" "고마워. 너도 마찬가지야, 트렌트." "여기는 우리 집사람이야. 자, 인사를 해야지...,." "애슬리, 너 맞지?" "그래, 그런데 너는一" "아트야. 아트 데이비스. 나 기억나니?" "물론이지." 그는 옷도 형편없이 입고 몹시 불안해 보였다. "그래, 아트 하는 일은 잘되어 가고?" "너도 알다시피 나는 기술자가 되기를 원했잖니? 그런데 그렇게되지를 못했어." "안됐구나." "괜찮아. 어쨌든 공장 직공이 되었으니까.' "애슬리! 나는 레니 홀랜드야. 아니, 이럴 수가! 너 굉장히 예뻐졌다!" "고마워, 레니.' 그는 뚱뚱한 몸에 손가락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있었다. "나는 지금 부동산업을 하고 있어. 아주 잘되는 편이야. 너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니?' "응,하지 않았어." 하고 애슬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너. 니키 브랜트 기억나니? 우리 결혼했어. 쌍둥이를 낳았단다. " "축하해, 레니." 1()년 동안 인간이 얼마나 많이 변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라울정도였다. 그들은 더 뚱뚱해지고 더 마르고... 번창하고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이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부모를 잃었다..., 시간이 지나자 저녁 시사가 나오고 곧이어 음악 연주와 함께 몇몇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애슬리는 옛날의 동급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내내 짐 클리어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직도 짐은 동창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짐은 오지 않을 모양이군." 하고 애슬리는 단정지었다. 내가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나와 얼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말이야.' 그때 매력적인 얼굴의 여인이 애슐리에게 다가왔다. "애슬리!.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아니?" 플로렌스 쉬퍼였다. 그녀를 보자 애슬리는 진심으로 반가웠다. 플로렌스는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두 사람은 구석의 빈 테이블을발견하고 단둘이 얘기를 나누기 위해 그곳에 가서 앉았다. "너, 무척 좋아 보이는데, 플로렌스?' 하고 애슬리가 입을 열었다. "너도 그래 보인다. 얘.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우리 아이가 조금 아파서 이렇게 늦었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한 모양이다. 내가벌써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으니까.지금은 멋진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중이지.너는 어떻게 지내니? 졸업식 파티 뒤에 너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잖아. 그때 내가 너를 만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니? 하지만 너는 이미 이 고장을 떠난 뒤였어." "런던으로 갔었어." 하고 애슬리는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그곳 대학에 입학시켰거든.졸업식 다음날 아침에 바로 이곳을떠났지." "내가 너와 연락을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니? 형사들은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굴었지. 형사들은 너와 짐 클리어리가 함께 다녔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너를 찾아내려고 했던 거야." 애슬리는 천천히 되물었다. "형사라구?" "그래. 형사. 살인 사건을 수사한 형사들 말이야." 애슬리는 피가 온통 얼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살인 사건?" 플로렌스는 애슬리의 얼굴을 응시했다. "맙소사! 너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니?" "ah르다니, 뭘?" 애슬리는 황급히 다그쳐 물었다. '너,도대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졸업식 파티가 있던 그 다음날,부모님이 휴가에서 돌아와서 짐의 시체를 발견했대. 짐은 여러 군데 흉기에 찔려서 죽어 있었대. 무참하게 거세되어 있었대." 동창회 파티장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애슬리는 테이블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플로렌스가 그녀의 팔을 움켜 잡았다. "미- 미안해, 애슬리. 나는 네가 이미 그 사건을 신문에서 읽었을 줄 알았지. 너는 그 다음날 바로 런던으로 떠나서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애슬리는 힘을 주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날 밤 자신이 집에서몰래 빠져 나와 짐 클리어리네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그려졌다. 하지만 도중에 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침까지짐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짐네 집으로 가기만 했더라면 짐은 지금까지 살아있을지도 몰라,' 하고 애슬리는 비참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지난 10년 동안 짐을 증오하고 있었으니. 오오, 하느님, 도대체 누가 짐을 죽였을까요? 도대체 누가요?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 딸에게서 손을 떼게. 내 말을 똑똑히 들어... 만약 또다시우리 집 근처에서 얼정거리는 것을 발견하는 날에는 자네 뼈를 몽땅 부러뜨려 버리겠어 !" 애슬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먼저 일어날게, 플로렌스. 몸이 좀 좋지를 않아서," 그리고 애슬리는 도망치듯이 동창회장을 빠져 나왔다. 형사들. 형사들은 틀림없이 그녀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왜 아버지는 나에게 그 얘기를 해 주지 않았을까? 애슬리는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첫번째 여객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새벽녘에야 겨우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녀는 악몽을 꾸었다. 암흑 속에 서 있는 사람이 짐을 칼로 마구 찌르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불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악몽의 전주5 그다음 몇 개월은 애슬리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참하게 총기에 찔린 짐 클리어리의 피투성이 시체가 머릿속을 시도때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애슬리는 또다시 스피크맨 박사를 찾아가볼까 생각했으나, 이 문제는 누구하고도 의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러한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생각을 떠올리기만 해도 죄의식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고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슬리는 자신이 방금 망쳐 놓은 '로고'를 실망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세인 밀러 실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애슬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겠어, 애슬리?" 애슬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신 친구는 정말로 안됐어." 애슬리는 세인 실장에게 짐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곧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밤에 저녁 식사나 함께 하는 게 어떻겠어?" "고마워요, 세인.하지만 난-아직 그 정도로까지는 회복된 것같지 않아요 다음 주에나... "알았어.만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양말고...' "고마워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번 일은 도와줄 수가 없을 거예요' 토니가 알레트에게 말했다. "미스 새침데기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아.어디 한번 혼 좀 나보라지."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동정심이 느껴지는데. 무척 고민하고있는 것 같애." "내버려둬. 사실, 우리 모두 문제를 안고 있으니까, 안 그래?" 축제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애슬리가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데니스 티블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봐, 애슬리! 자기의 도움이 좀 필요한데?" "미안해 데니스. 바쁜 일이 좀 있어서一" "이리 잠깐 와 봐.그렇게 오만상을 찌푸리지 말고!" 하면서 데니스가 애슬리의 팔을 붙잡았다 "여성의 관점에서 조언이 필요해." "데니스, 나는 지금 그런 참견을 할 처지가..." "내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와 곧 결혼할 생각이야. 그몇 가지 문제가 생겼어. 애슬리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도와주는 거지?" 애슬리는 망설였다. 데니스 티블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를도와준다고 해서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 "아냐, 지금 당장 얘기해야 해. 보통 다급한 일이 아니거든.' 애슬리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좋아," "당신의 아파트로 가면 안 될까?" 애슬리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데니스를 그녀의 집에서 내쫓을 수 없을 것같았다. "그렇다면 내 아파트로 갈까?" 하고 그가 물었다. 애슬리는 다시 한번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래, 좋아,"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빠져 나올 수 있겠지,만일 내가 테니스가 사랑에 빠진 여자와 맺어지도록 도와준다면앞으로는 귀찮게 굴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겠지.' 토니가 알레트에게 말했다. "맙소사! 새침데기가 저 너절한 녀석의 아파트에 갈 모양이군. 아니, 저렇게 어리석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 똑똑한머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거지?' "그녀는 그냥 그 작자를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잘못될 것은 하나도 없다구-' "아니, 이럴 수가! 정신 차려, 알레트. 너는 언제나 철이 들 거니?저 인간은 그녀를 덮치려는 속셈이란 말야!" "그럴 리가 없어.괜한 걱정 하지 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알아듣지? 정말 구제 불능이군." 데니스 티블의 아파트는 가히 현대판 악몽을 연상케 했다. 옛날공포 영화의 포스터들이 벽에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벌거벗은 모델들의 사진과 맹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에로틱한 조그만목각 인형들이 테이블 위에 널려 있었다. '한마디로 정신병자의 아파트로군!' 하고 애슬리는 혼자 생각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애슬리,내 아파트까지 와 줘서 너무나 기뻐. 뭐라고 고맙다는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야. 만일..." "이곳에 오래 있을 수는 없어,데니스."하고 애슬리는 그의 말을가로막았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그 여자에 대해서 빨리 얘기를 해 봐." "그녀는 정말로 대단한 여자야.' 하면서 데니스는 담배를 꺼내그녀에게 권했다. '담배 피울래?' "아니,나는 담배 피우지 않아." 애슬리는 데니스가 담배에 불을붙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술은 어때?" "술도 안 마셔." 그러자 데니스는 빙그레 웃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단 말이지.그렇다면 인생에서 재미있는 것은 모두 하지 않는단 말이군, 안 그래?' 애슬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데니스, 빨리 용건을 말하지 않으면..." "그냥 장난으로 해 본 소리야.' 데니스는 주방으로 걸어가서 포도주를 조금 따랐다. "포도주는 한 모금 마셔도 되겠지? 이건 전혀인체에 해가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는 애슬리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애슬리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그 대단한 아가씨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시지," 데니스 티블은 소파에 앉아 있는 애슬리 옆에 걸터앉았다. "지금까지 그녀와 같은 여자는 만난 적이 없어. 그녀는 당신처럼아주 섹시하고 또한一'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안 그러면 그냥 가 버리겠어." "알았어,난 단지 칭찬으로 하는 말이었어. 어쨌든 그녀는 나에게 홀딱 반해 있어.그런데 그녀의 부모는 무척이나 사교적이어서나를 미워하고 있지.' 애슬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이 난처하게 된 거야. 만일 내가 그대로 밀어붙이면,그녀는 나와 결혼을 하겠지. 그렇지만 그녀는 자기 가족들과는 등을 돌리게 될 거야.그렇게 되면 그녀의 가족들도 틀림없이 그녀와의절하려 들 거야 배신감이 들 테니까.그리고 어느 날,그녀는 아마 그런 이유로 나를 비난하게 되겠지.내 문제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겠어?' 애슬리는 포도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래, 대충 알 것 같지만..." 그 후의 시간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애슬리는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서서히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마취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눈을 뜨는 것만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애슬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기절할 것 같았다. 싸구려 호텔 방의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간신히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딘지,그곳에 어떻게 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룸 서비스 메뉴가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었다. (시카고 루프 호텔) 애슬리는 그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경악을 했다. 내가 지금 시카고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곳에 얼마나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을까?데니스 티블의 아파트에 간 것은 금요일 오후였는데,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으로 애슬리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애슬리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저-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오늘은 17일...," "그게 아니고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니까요?" "아아. 네에.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 애슬리는 머리가 아찔해져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월요일이 라고?' 애슬리는 이틀 낮과 이틀 밤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그녀는 침대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기억을 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데니스티블의 아파트에 갔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한 잔 받아 마셨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공백이었다. 데니스는 그 포도주 잔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었고 그 때문에 그녀가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게 틀림없었다. 애슬리는 그와 같은 약물을 사용한 사건에 관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데이트 레이프 드럭' (데이트중 강간 약)이라고 불렸다. 데니스가 애슬리에게 준 것은 바로 그 약이었다. 그녀의 조언을 구한다는 얘기는하나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멍청이처럼 그 계략에 빠지다니.' 그러나 애슬리는 자신이 어떻게 공항에 가서 시카고행 비행기를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는지,또 어떻게 데니스 티블과 함께 이 초라한 호텔에 들어 왔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더욱 암담한 것은- 이 방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빠리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어.' 하고 애슐리는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마치 온몸이 구석구석 더럽혀진 것 같은 불결함이 느껴졌다.그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될 수 있는 데로 그 일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비좁은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기 밑에섰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더럽고끔찍한 일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을 씻어내려고 온몸에 힘차게뿌려댔다. 만일 그 작자가 임신이라도 시켰으면 어떻게 한담? 몸속에 그의 아이가 자란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왔다. 애슬리는 욕실에서 걸어 나와 몸을 말리고는 옷장이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옷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옷장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검은 가죽의 미니스커트와 몸에 착 달라붙는싸구려 티와 굽 높은 하이힐뿐이었다. 그런 옷들을 입어야 한다는것에 몸서리가 쳐졌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서둘러 그 옷들을 챙겨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영락없이 싸구려 창녀처럼 보였다. 애슬리는 지갑을 뒤져보았다. 단 40달러뿐이었다. 그러나 수표책과 신용 카드는 그대로 있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애슐리는 복도로 살며시 걸어 나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라하게 보이는 로비로 내려가서 체크아웃 담당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이 든 사무원에게 신용 카드를건네주었다. '벌써 나가시려고요?' 하면서 그가 추파를 던졌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애슬리는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가 하고 그를 응시했다.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데니스 티블이 언제 호텔을 나갔는지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그 화제를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호텔 직원은 그녀의 신용 카드를 체크기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한번 넣었다. 그리고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카드가 떨어지지를 않는군요 이용 한도를 초과했나 봅니다. ' 애슬리는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 "말도 안 돼요! 무슨 착오가 생긴 것이 틀림없어요!" 호텔 직원은 어깨를 으쓱 쳐들어 보였다. "다른 신용 카드는 없습니까?" "없어요 난- 아니, 없어요. 그러면 가계 수표는 받나요?" 그러자 그가 그녀의 복장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위아래로 훌어보았다 "진분증을 제시하면 가계 수표도 좋습니다. " "전화를 한 통 걸고 싶은데요..." "전화는 저 구석에 있습니다." "<샌프라시스코 메모리얼 병원>입니다...," "스티븐 패티슨 박사님을 부탁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패티슨 박사의 진료실입니다." "사라? 나 애슐리예요. 아버지와 급히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미안합니다. 미스 패터슨 박사님은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 계시고, 그 다음에도 또...," 수화기를 쥔 애슬리의 손인 부들부들 떨렸다. "아버지가 수술을 끝마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요, 말하기가 곤란하군요 박사님은 그 뒤에도 또 다른 수술 스케줄이 잡혀 있기 때문에一" 애슬리는 거의 히스테리를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당장 아버지와 통화를 해야 해요 급해요 아버지에게 이말을 꼭 전해 주세요 수술이 끝나는 즉시 이 번호로 꼭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예요' 그리고는 전화 박스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를아버지의 비서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걸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았어요 박사님께 꼭 전할게요.' 애슬리는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음산한 로비에 앉아서 거의 한시간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앞을 지나가면서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거나 음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마다 애슬리는 자신이 입고 있는 야한 옷 때문에 벌거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리자 오히려 그녀는 깜짝놀랐다. 애슬리는 허겁지겁 전화 박스로 달려갔다. "여보세요...?" "애슬리?"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네, 아버지. 전 지금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저 지금 시카고에 있는데요..." "도대체 시카고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지금은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 산호세로 가는비행기표가 필요해요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물론이지, 잠시 그대로 거기 있거라." 10분 뒤,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아메리칸 항공이 있다. 탑승 카운터에다 네 비행기표를 맡겨 두도록 조치를 취해 놓으마. 그리고 산호세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내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가마一' "안 돼요!" 애슬리는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저어- 저는 옷을 갈아입으러 아파트로 가야 해요" "알았다. 그러면 내가 저녁때 내려갈 테니까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려무나.' "고마워요, 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애슬리는 데니스 티블이 자신에게 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에는 꼭 경찰서에 찾아가야겠어. 하고 애슬리는 마음을 굳혔다. '이런 짓을 한 그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그 녀석은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이런 짓을 했을까? 애슬리는 아파트로 돌아오자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성역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입고 있는, 몸에 찰싹 달라 붙는 옷을입고는 더 이상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다른 것은 고사하고 그 천박한 옷부터 벗어 던졌다.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또다시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애슬리는 화장대 쪽으로 걸어 가다가 돌연 발을 멈추었다. 그녀의 앞,화장대 위에 피우다가 만 담배꽁초가 한 개비 놓여 있었기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은 디 오크스에 있는 레스토랑의 구석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애슬리의 아버지는 딸을 걱정스러운 얼굴로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시카고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니?"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의아한 얼굴로 애슬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도 모르겠다고?" 애슬리는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솔직히 말해야 할지 어떨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 일에 관해서 어떤 유익한 조언을 해 줄지도 모른다. 애슬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데니스 티블이 무슨 고민이 있다면서 저에게 좀 도와달라며 자기 아파트로 가자고 했어요..." "데니스 티블이라면? 그 뱀 같은 녀석 말이냐?" 오래 전에 애슬리는 아버지에게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인간과 어울리게 되었지?" 애슬리는 즉각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그녀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항상 과잉반응을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문제가 남자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만약 우리 집 근처에서 얼정거리는 것을 발견하는 날에는 자네뼈를 몽땅 부러뜨려 버리겠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고 애슬리는 말했다. "어디 자초지종을 빼놓지 말고 얘기해 봐라." 애슬리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차서 잠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래래서 데니스의 아파트에서 포도주를 한두 모금 마셨어요 그랬는데...," 얘기를 계속하면서 애슬리는 아버지의 얼굴이 차츰 심각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눈을 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겁이 났다. 그녀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히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안 돼." 하고 아버지가 강요하듯 말했다. "일어난 일을 하나도빠짐없이 그대로 자세히 얘기하거라.' 그날 밤, 애슬리는 심신이 너무나 지쳐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한채 밤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일 데니스가 한 짓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나는 창피스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거야. 회사에 있는 직원들도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 녀석이다른 여자들에게도 이런 짓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아무리 창피해도 경찰서에 찾아가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돼.' 주위 사람들은 애슬리에게, 데니스가 그녀에게 지나치게 홀딱반해 있다는 것을 경고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그녀는 애써그런 경고들을 무시해 왔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러한 일이일어날 징후가 여러 번 있었다. 데니스는 그가 누구든 간에 애슬리에게 말을 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귀찮을 정도로끈질기게 테이트하자고 졸라댔다. 그는 항상 애슐리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엿들으려고 했었다..., '이제야 누가 스토커였는지 알게 되었군.' 하고 애슈리는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8시 30분, 애슬리가 회사로 출근하려고 서두르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마지못해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애슬리? 나, 세인이야. 애슬리도 그 뉴스 들었어?" "어떤 뉴스인데요?"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어. 경찰이 데니스 티블의 시체를 발견했다는군.' 한순간 발밑에서 땅이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보안관 사무소의 발표에 의하면 누군가가 그의 몸을 흉기로 난자하고, 그 다음에 거세까지 했다고 하더군." 의문의 죽음6 보안관 대리인 샘 블레이크는 큐퍼티노 보안관 사무소에서무척 어렵게 현재의 지위에 올랐다. 샘은 보안관의 여동생인 세레나 다울링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말이 많고 표독스런 여자로, 오리건의 숲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날카로운 혀를 갖고 있었다. 샘 블레이크는 세례나가 만난 남자들 가운데 그녀를 다를 줄 아는 유일한 남성이었다. 샘은 키가 작았는데, 인정이 많고 상냥하고 군자와도 같은 인내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세레나가 아무리 심하게 화를 내더라도 샘은 그녀가 조용해질 때까지 꾹 참았다가,그 다음에 조용히 대화를 나누곤 했다. 샘 블레이크는 매트 다울링 보안관과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보안관 사무소에 취직을 했다. 두 사람은 학교도 같이 다녔고 함께자랐다. 블레이크는 경찰 업무를 좋아했고 또 그 분야에서 뛰어난실력을 발휘했다. 예리하고 추리력이 풍부한 지능을 갖고 있었고,고집스러운 끈기도 있었다. 그러한 성향들 때문에 그는 보안관 사무소에서 최고의 탐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일찍, 샘 블레이크와 다울링 보안관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다울링 보안관이 말했다. "어젯밤에 여동생이 자네를 못살게 들볶아댔다면서? 어찌나 시끄러웠던지 이웃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사무소로 몇 통씩 걸려 왔을 정도였다니까. 세레나는 하여간 악을 쓰는 데는 선수라니까. 그걸 누가 말리겠나." 샘은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그래도 끝에 가서는 내가 진정을 시켰다네, 매트." "지금은 나와 함께 살지 않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샘. 그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앉아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그애의 표독스런 성깔은一" 그때 두 사람의 대화가 일시에 중단되었다. "보안관님, 지금 911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서니베일 에버뉴에서살인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 다울링 보안관이 샘 블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블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가 보겠네." 15분 후,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데니스 티블의 아파트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순찰 경관이 아파트 관리인과 얘기하고 있었다. "시체는 어디 있소?" 하고 블레이크가 물었다. 순찰 경관은 침실 쪽을 가리켰다. "저 방 안에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블레이크는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한 남자의 시체가 침대를 가로질러 엎어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방 안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가까이다가가자 그 피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깨진 유리병의 날카로운 단면이 피해자의 등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찌른 듯피해자의 몸은 난자된 채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고,피해자의 고환은 잘려 나가 있었다. 그것을 보자 블레이크는 사타구니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아니,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요"하고 그는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방 안에 무기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철저히 수색해야 할 것이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아파트 관리인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다시 거실로 나왔다. "피해자를 알고 있습니까?" "네, 이곳은 그 사람의 아파트입니다. " "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티블- 데니스 티블입니다. "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메모를 했다. "그는 이곳에서 얼마나 살았습니까?" "거의 3년쯤 됩니다." "그 사람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보세요" "그다지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티블은 이웃과 교제가 거의 없는사람이고 집세는 제때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이곳에 여자를데리고 오곤 했지요 내가 보기에 그 여자들은 대부분 창녀들인 것같았습니다. " "당신은 그가 어떤 직장에 다녔는지 알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에 다녔습니다. 그는 컴퓨터 전문가거든요" 블레이크 보안관 데리는 다시 메모를 했다. "누가 시체를 맨 처음 발견했습니까?" "파출부인 마리아입니다. 어제가 휴일이었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서야 발견했습니다만..." "그 여자와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네, 그러시죠-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마리아는 피부가 검은 브라질 출신의 40대 여인으로,몹시 겁을집어먹고 있어서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당신이 시체를 처음 발견했습니까, 마리아?" "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 마리아는 히스테리 발작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저에게도 변호사가필요한가요?'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변호사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일이일어났는지 나에게 얘기만 해 주면 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전 오늘 아침에 평소처럼 청소를 하려고 이 방에 들어왔어요 전-그 사람이출근한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아침 7시쯤에는 이곳을 나가니까요저는 먼저 거실부터 청소를 하고 나서 다음에一" '이런 빌어먹을!' "마리아,당신이 청소를 하기 전에 거실이 어땠었는지 기억납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방 안에 있는 물건을 건 드렸느냐 이 말입니다. 여기서무엇인가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습니까?' "글쎄요, 맞아요 마룻바닥에 깨진 포도주 병이 있었어요 병이어찌나 끈적끈적거리는지 제가...' "그 포도주 병을 어떻게 했습니까?" 하고 블레이크는 흥분해서물었다. "그 병을 쓰레기 분쇄압축기에 집어넣어 깨뜨려 버렸습니다. " "그 밖에 또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리고는 재떨이를 비우고一" "재떨이 안에 담배 꽁초가 있었습니까?" 마리아는 기억을 해내느라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그래요 한 개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주방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 "어디 그 쓰레기통을 좀 봅시다. ' 하고 블레이크는 마리아를 따라 주방으로 가서 그녀가 가리키는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았다. 쓰레기통 속에는 립스틱이 묻어 있는 담배꽁초가 한 개 들어 있었다. 보안관 대리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봉투에 집어넣었다. 블레이크는 마리아를 다시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마리아, 아파트에서 혹시 무엇인가 없어진 물건은 없습니까? 어떤 값진 물건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까?' 마리아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티블 씨는 조그만 조각상을 수집하는것이 취미였어요 그 사람은 그것에 돈을 많이 투자했지요 그런데그것들은 모두 이곳에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살인 동기는 도둑질이 아니었군.마약에 관련된 사건일까? 아니면, 복수극? 여자 관계가 얽혀 있는 치정 사건?'마리아, 이 방에서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 무엇을 했습니까?' "진공 청소기로 이곳을 청소한 다음에 그러고 나서..." 그녀의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침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 " 그리고 마리아는 블레이크를 바라보았다. "전 절대로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검시관과 조수가 시체를 넣을 가방을 가지고 검시사무소 차를타고 도착했다. 세 시간 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보안관 사무소로 돌아왔다. "무엇 좀 알아냈나, 샘?" "별로 없네."블레이크는 다울링 보안관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레니스 티블은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에 다녔다더군. 그는 분명히 천재였던 것 같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천재는 아니었나 보지.' "그냥 살해당한 것이 아닐세, 매트. 그는 참살을 당했더군. 자네도 누군가가 그의 몸에 행한 짓을 봐두는 게 좋을걸세.범인은 일종의 편집광적인 미치광이임에 틀림없네.'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아직 살인 흉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네.부검 결과를기다리고 있는 상태지만 십중팔구 깨진 포도주병일 거라고 생각하네.하지만 피해자의 등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에 지문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크네.이웃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보았는데 그쪽에서는도움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더군.아무도 피해자의 아파트에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거야. 그리고 이상한 소리도 듣지 못했다더군. 분명히 티블은 이웃 사람과 왕래도 없이 혼자외롭게 살았던 것 같네.그래, 이웃 사람들과 사귀거나 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 같네.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네.티블은 죽기 전에 섹스를 했네.질액과 음모,다른 증거와 립스틱이 묻어 있는 담배꽁초를 하나 확보했네.그것들의 DNA검사를 해 볼 생각일세,' "신문들은 또 한참 동안 이 사건으로 떠들썩하겠군 샘, 벌써 요란스러운 표제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구먼- '살인광,실리콘밸리를 덮치다. '" 다울링 보안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하세. 꽤나 시끄럽겠는걸." ' "나는 지금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에 가 볼 생각일세." 애슬리는 회사에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꼬박 한시간이나 걸렸다. 그녀는 혼돈 속에 빠져 있었다. '누구든 나를 보기만해도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거야. 하지만 만일 내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직원들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할 거야. 경찰은 보나마나 직원들에게 질문하려고 회사에 와 있을 테지. 경찰이 나에게 질문을 하면나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하지만 경찰은 내 말을 곧이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그들은 내가 데니스 티블을 살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겠지.그리고 만일 경찰이 내 말을믿는다면,그리고 만일 경찰에게 그가 나에게 한 짓을 우리 아버지가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아버지도 의심하겠지.' 애슬리는 짐 클리어리의 살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플로렌스의 목소리를 지금도 들을 수가 있었다. "부모님이 휴가에서 돌아와서 짐의 시체를 발견했대. 짐은 여러군데 흉기에 찔려 죽어 있었고....무참하게 거세가 되어 있었대." 애슬리는 두 눈을 꼭 감았다. '하느님,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요?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직원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모여 서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블레이크는 그 대화의 화두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애슬리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세인 밀러 실장의 방으로 향해 가는 것을불안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세인은 책상 뒤에서 일어나 블레이크를 맞았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십니까?"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앉으세요, 보안관 대리님." 샘 블레이크는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데니스 티블은 이 회사의 직원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최우수 사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한비극입니다" "티블이 이 회사에서 약3년 간 일했다는데 맞습니까?" "네,티블은 우리 회사의 천재였습니다. 컴퓨터로 못 하는 일이없었으니까요" "그의 사교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주시겠습니까?" 세인 밀러 실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교 생활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티블은 단독행동을 좋아하는 타입이었으니까요' "혹시 마약을 복용한 경력은 없습니까?" "데니스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는 아주 건강하고 착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혹시 도박을 하지는 않았습니까?또 누구에게 많은 돈을 빚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티블은 엄청나게 많은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단돈 몇 푼을 가지고 벌벌 떠는 타입이었던 것 같습니다. ' "여자 관계는 어떻습니까? 여자 친구는 있었나요?" "여자들은 티블에게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i" 세인 밀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료들에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며 돌아다녔습니 다. ' "혹씨 그 여자의 이름을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까?" 밀러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쨌든 나에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부하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좀 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고 말고요 마음대로 물어 보십시오 그러나 이것만은 미리말해 두고 싶군요 직원들이 몹시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 '티블의 시체를 보았다면 아예 얘기조차 못 걸게 했을 뻔했군.'하고 블레이크는 생각했다. 두 사람은 작업장으로 걸어 나갔다. 세인 밀러 실장이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이 분은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입니다. 이 분이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답니다. ' 직원들은 하고 있던 일들을 중단하고 귀를 기울였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티블 씨에게 일어난 일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누가 그를 살해했는지 찾아내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가 누군가를 몹시 적대시했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를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미워하고 있던 사람을 혹시 알고 있는 분 없습니까?" 실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블레이크는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이 결혼하기를 원하던 여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 혹시그 여자에 대해서 그와 의논한 분 없습니까?" 애슬리는 갑자기 호흡하기가 곤란해짐을 느꼈다. 지금이 바로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때였다. 지금이야말로 티블이 자신에게행한 짓을 보안관에게 털어놓아야 할 때였다. 그러나 애슬리는 자기가 티블에 대하여 얘기했을 때 아버지의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기억했다. 경찰은 아버지를 살인자로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도 죽일 수 없는 분이다. 아버지는 의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다. 데니스 티블은 거세를 당했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아직도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티블 씨가 회사에서 퇴근한 다음에 그와 만난사람은 없습니까?" 토니 프레스코트는 생각했다. '자아,어서 보안관에게 말하렴,미스 새침데기야.보안관에게 티블의 아파트에 갔었다고 말하라고 왜 너는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 거지?'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대로 한참 서 있었다 "좋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무엇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기억나면 즉시 나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밀러 실장님이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 직원들은 보안관 대리가 셰인 실장과 함께 문 쪽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슬리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머리에 현기증이 일었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세인 실장을 돌아다보았다. "회사 안에서 티블 씨와 특별히 가까웠던 사람은 없었습니까?" "특별히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고 세인 실장이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데니스는 직원들 중 어느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컴퓨터 오퍼레이터 중 한 아가씨에게 상당히 호감을 갖고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호감을 얻어내지는 못했지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 아가씨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하지만一" "그 아가씨와 얘기를 좀 해 보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 방으로 가시지요" 두 사람은 다시 그의 방으로 향했다. 애슬리는 두 사람이 다시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곧장 그녀의 칸막이를 향해 걸어왔다. 애슬리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애슬리,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당신과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군." 기어코 알아냈구나! 보안관 대리는 그녀에게 틀림없이 티블의아파트에 간 것에 관해서 물어볼 것이다. '이제부터는 단단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보안관 대리는 애슬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미스 패터슨?" 애슬리는 가까스로 대답을 했다. "네, 얼마든지 요" 그리고 보안관 대리를 따라서 세인 밀러 실장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앉으세요' 두 사람은 각자 의자에 앉았다. '내가 듣기로는 데니스 티블이 당신을 무척 좋아했다던데요?' "글쎄요- 그런 것 같았어요" "조심해 야지 !' "티블 씨와 데이트를 한 적 있습니까?" '그의 아파트에 간 것은 그와 데이트를 한 것과는 전혀 별개 문제일 거야.' "아뇨" "그 사람이 결혼하려고 했던 여성에 대해서 당신에게 말한 적있습니까?' 애슬리는 점점 함정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보안관 대리는 이미 간파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녀가 티블의 아파트에 갔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은 그녀의 지문을 찾아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보안관 대리에게 티블이 그녀에게 한 행동을얘기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하고 애슬리는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로 연결이 될 것이고, 그러면 경찰은짐 클리어리의 살인 사건과 연관을 시킬 거야.' 경찰은 클리어리 사건도 알고 있을까?그러나 베드포드의 경찰서가 큐퍼티노의 경찰서에 그것을 통고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니,혹시 통고했을지도 모른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대답을 기다리면서 애슬리를 지켜보고있었다. "리스 패터슨?" "왜요? 아아, 미안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 너무 혼란스러워서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혹시 티블 씨가 당신에게,자기가 결혼하고싶어하는 여성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 최소한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럼,한 번이라도 티블 씨의 아파트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애슬리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만일 그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질문은 그것으로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경찰이그녀의 지문을 찾아낸다딴..., "네, 갔었어요" "당신이 그의 아파트에 간 적이 있다구요?" "네, 갔었어요" 보안관 대리는 이번에는 더욱 찬찬히 그녀를 살펴보았다. "좀전에 당신이 티블 씨와 한 번도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애슬리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맞아요 데이트하러 간 것이 아니었어요 난 그저 그가 잊고 간 어떤 서류를 전해 주러 갔었던 것뿐이에요" "그것이 언제였습니까?' 애슬리는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일주일 전쯤이었어요" "그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아파트에 간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제 경찰에서 그녀의 지문을 발견한다 해도 그녀는 빠져나갈구멍이 생긴 셈이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그대로 앉아서 애슬리를 자세히 뜯어보고 있었다. 애슬리는 죄책감을 느꼈다. 보안관 대리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어쩌면 강도가 그의 아파트에 침입해서 그를 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은 강도가 10년 전에, 이곳에서 4천8백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짐 클리어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만일 사람들이 그런 우연을 믿는다면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산타클로스를 믿는다면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이 빠진 요정'(빠진 이를 베개 밑에 놓아두면 그 대신에 요정이 돈을 놓고 간다는 전설)을 믿는다면 말이다. '왜 그런 짓을 하셨나요, 아버지?'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말했다. "이건 아주 잔인한 범죄입니다. 아무런 동기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도 아시겠지만 제 경험으로 보면 동기가 없는 범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 데니스 터볼 씨가 마약을 복용하지는 않았나요?" "아뇨, 전혀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확신해요" "그렇다면, 이 사건은 뭘까요? 마약도 아니고 강도의 짓도 아니고, 더군다나 티블 씨는 아무에게도 큰 빛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범죄는 남녀 관계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누군가가 그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거나 말입니다. " "아니면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이거나 말예요" "나도 보안관님처럼 영문을 알 수 없군요" 보안관 대리는 애슬리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의 말은 한 마디도 믿지 않아요, 아가씨."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애슬리에게 건네주었다. "만일 어떤 것이든 생각나는게 있으면 즉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세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실례를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애슬리는 보안관 대리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끝났어. 아버지도 위기를 벗어났고 말이야.' 그날 저녁,애슬리가 자신의 아파트에 돌아와 보니 응답기에 메시지가 한 개 녹음되어 있었다. "당신은 어젯밤에 정말로 날 흥분시켜 주었어, 아가씨, 나는 지금 성적 욕구불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하지만 당신이 약속한 대로 오늘 밤에는 나를 끝까지 만족시켜 줘야 해.같은 시각,같은 장소에서." 애슬리는 우두커니 서서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귀를기울이고 있었다. '미쳐 버릴 것만 같아.'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이건 아버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모든 사건 뒤에 개입되어 있는 거야.하지만 그게 누구일까?그리고 왜? 5일 뒤, 애슬리에게 신용 카드 회사로부터 이용대금 명세서가배달되었다. 세 가지 항목이 그녀의 주목을 끌었다. (모드 드레스 숍)으로부터의 청구 금액 : 470달러 (서커스 클럽)으로부터의 청구 금액 300달러. (루이스 레스토랑)으로부터의 청구 금액 250달러. 애슬리는 그런 드레스 숍이나, 그런 클럽이나 레스토랑의 이름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퀘벡의 살인 사건7 애슐리 패터슨은 매일 신문과 텔레비년을 통해 데니스 티블살인 사건의 수사 향방을 열심히 좇고 있었다. 경찰의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다끝난 일이야.'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내가 걱정할 이유는하나도 없어.' 그날 저녁,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애슬리의 아파트에 나타났다. 애슬리는 그를 보자 갑자기 입 안이 바짝 말라들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 하고 블레이크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궁금한 것이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 애슬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오 들어오세요." 그러자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아파트 안으로 서슴지 않고 걸어 들어왔다. "멋진 아파트에 살고 계시군요" "고맙습니다. " "데니스 티블 씨는 이런 가구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애슬리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건 저도 모르지요 그는 한 번도 이 아파트에 들어와 본 적이없으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나는 티블 씨가 여기에 왔었을지도 모른다고생각했거든요." "아뇨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보안관님,그와 데이트를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랬었지요 잠시 앉아도 될까요?" "네, 앉으세요" "아시겠지만, 이번 사건엔 커다란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미스패터슨. 이 사건은 어느 패턴에도 전혀 해당되지를 않습니다. 이전에도 말한 것처럼 살인 사건에는 언제나 동기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의 여러 사원들과 얘기를 해 보았지만 아무도 티블 씨를 그다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더군요. 티블 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교제를 하지 않는 성격이었더군요... 애슬리는 벼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제로 직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당신이야말로 티블 씨가진짜로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인물이더군요." 보안관 대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 유도 심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애슬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보안관님, 하지만 전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 점을 그 사람에게 분명히 밝혀 두었어요" 그러자 보안관 대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건 그렇고, 당신이 그 서류들을 그의 아파트에 전해 준 것은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애슬리는 하마터면, '무슨 서류 말입니까?' 하고 말을 할 뻔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말을 꺼냈다. "그건-별 일도 아니었어요 어차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어찌됐든 앞뒤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누군가가그런 참혹한 짓을 할 만큼 티블 씨를 엄청나게 증오하고 있었던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애슬리는 몹시 긴장되었으나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내가 무엇을 가장 증오하는지 아십니까?' 하고 보안관 대리가물었다. '해결하지 못한 살인 사건입니다. 그런 걸 보면 늘 좌절감이 느껴지죠 왜냐하면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그건범죄자가 영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경찰이 그만큼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나는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나는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를 다해결했었으니까요' 보안관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이번 사건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사건 해결에도움이 될 만한 단서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실 거죠, 미스 패터슨?' "그럼요, 물론이지요" 애슬리는 보안관 대리가 방에서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내게 경고를 하려고 찾아온 게 아닐까? 혹시 나에게 말해 준것 이상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니는 이전보다 한층 더 인터넷에 몰두해 있었다. 그녀는 장클로드와의 채팅을 가장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채팅 방의통신자들과의 접속을 모두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메시지를 보내거나 받곤했다. "토니? 지금까지 어디에 가 있었니? 여지껏 네가 들어오기만을기다리고 있었어." "난 네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자아,너에 관해서 얘기해 줘.직업은?' "나는 약국에서 일하고 있어.아마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너마약 해 본 적 있니?' "썩 꺼져 버려!" "토니, 안녕?" "오래간만이군. 너 마크지?" "너 요즘 통 인터넷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데." "요즘 굉장히 바빴어. 너와 한번 만나보고 싶어, 토니." "마크, 네 직업은 뭐지?" "나는 도서관 사서야," "야, 멋진 직업을 갖고 있구나! 그 많은 책들과 기타 등등..."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건 노스트라다무스에게 물어봐." "안녕, 토니? 내 이름은 웬디." "안녕, 웬디." "왠지 넌 재미있게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어때?" "맞아, 나는 인생을 즐기고 있지." "인생을 더욱 즐길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도와줄 생각인데?" "글쎄, 네가 실험을 두려워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꽉 막힌 인간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너에게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 줄 수 있지." "고마워, 웬디. 하지만 너에겐 내가 필요로 하는 도구가 없는 것같구나." 다음에는 장 클로드 패랑이 들어왔다. "좋은 밤입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잘 있었어요 당신은 어떠세요?" "그 동안 무척 보고 싶었어요 하루빨리 당신을 직접 만나보고싶군요' "나 역시 당신을 꼭 만나보고 싶어요 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은 아주 잘생긴 중년 신사더군요" "당신 역시 굉장한 미인이더군요.우리,지금부터 서로에게 노력해 보는 게 어때요? 상대방에 대해 잘 알려면 그게 가장 중요하단생각이 드는군요 참,당신네 회사는 퀘벡에서 열리는 컴퓨터 대회에 참가하지 않습니까?' "네? 처음 듣는 얘기군요 그 대회가 언제 열리는데요?" "3주일 뒤에 열립니다. 수많은 일류 회사들이 참가한다고 하더군요 그때 당신도 이곳에 오면 좋을 텐데.' "저 역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내일도 이 시간에 채팅 방에서 만날까요?" "물론 좋아요 그럼, 내일 만나요" "잘 있어요, 안녕." 이튿날 아침,계인 밀러 실장이 칸막이 진 애슬리의 자리로 찾아왔다. "애슬리, 퀘벡에서 열리는 컴퓨터 대회에 관한 얘기를 들어 본적 있어?' 애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꽤 흥미 있는 행사가 될 것 같은데요" "지금 그곳에 대표단을 파견해야 되느냐 마느냐에 대해 고민중이야." "일류 기업들이 모두 앞을 다투어 참가한다고 하던데요" 하고애슬리가 말했다. "시맨텍,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회사들 말예요 퀘벡은 이 대회를 위해 대규모 쇼를 준비하고 있대요 그런 출장이라면 일종의 크리스마스 보너스가 될 수도 있겠네요' 세인 밀러 실장은 애슬리가 매우 호의적인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시 고려해 보아야겠군," 다음날 아침,세인 밀러 실장이 애슬리를 사무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크리스마스를 퀘벡에서 보내게 된 걸 애슬리가 좋아할지 모르겠는걸?' "우리도 참가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너무 신나는군요!" 사실 애슬리는 그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매년 크리스마스 휴가를 아버지와 함께 보냈었는데 어쩐지 금년에는 그 계획이 두렵기만 했던 것이다 "아마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가야 할 거야," "걱정 말아요 든든히 껴입고 갈 테니까요 사실 이번 여행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몰라요,세인 실장님.' 토니는 인터넷의 채팅 방에 들어가 있었다. "장 클로드, 우리 회사가 퀘벡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정말이에요? 너무 기뻐서 말이 안 나을 지경이군요 그림, 언제쯤 도착하나요?' "2주일 후에요 열다섯 명이 참가해요" "잘됐군요 마치 무엇인가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애," 애슬리는 매일 밤 뉴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으나 데니스티블 살인 사건은 아직 별다른 단서가 발견되지 않은 채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다소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만일 경찰이 그녀를 그 사건과 연관시킬 수 없다면 절대 그 사건을그녀의 아버지와 연관시킬 재간이 없을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애슬리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버지에게 그 사건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만일 아버지가 정말로 아무 죄가 없다면 어떻게 하지 아버지는 딸이 자기를살인 용의자로 생각한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 '만일 아버지에게 죄가 있다 해도 절대로 그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알게 되면 난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거야. 설사 아버지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그건 아버지가 나를 진정으로 위했기 때문이야. 하여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버지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 애슬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서두도 없이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금년 크리스마스는 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없게 되었어요 캐나다에서 열리는 컴퓨터 대회에 몇몇 사람과 같이 우리 회사대표로 참가하거든요' 오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날짜를 잘못 골랐구나, 애슬리. 너와 늘 크리스마스 휴가를 함께 보냈는데..."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너는 나의 전부란다. 얘야." "그래요,아버지.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아버지는 나의 전부죠" "그래,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지," '사람을 죽여야 할 만큼 중요한가요?하고 얘슬리는 생각했다. "그 대회는 어디서 열린다든?" "캐나다의 퀘벡에서요 그곳은..." "그래,그곳은 아름다운 도시지.몇 해 동안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미리 내 계획을 말해 줘야겠구나.너도 짐작하겠지만 일부러 난 크리스마스 전후에 아무 진료 스케줄도 잡아 놓지않았단다. 그러니까 내가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가서 너와 함께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겨야겠구나.' 애슬리는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네가 숙박할 호텔이 어디든 간에 내가 묵을 방 하나를 예약해두거라. 우리 부녀의 오랜 전통을 이런 일로 깨뜨리고 싶지는 않구나. 안 그러냐?' 애슬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럼요, 아버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본담?' 알레트는 잔뜩 흥분된 채 토니에게 말했다. "난 퀘벡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거기에 미술관이 있니?" "물론 미술관이야 있고 말고" 하고 토니가 알레트에게 말했다 '그곳에는 없는 것 없이 다 있어.그리고 얼마든지 겨울 스포츠를 즐길수가 있지. 스키도 탈 수 있고 스케이트도 탈 수 있고...," 알레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 추운 날씨는 딱 질색이야 스포츠에는 취미가 없어. 장갑을끼어도 손가락이 모두 마비가 될 정도라니까.나는 미술관에나 붙어 살 작정이야...," 12월 21일,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의 대표단은 생트 프와의장 르사주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퀘벡의 유명한 (샤토 프롱트낙)으로 직행했다. 영하의 날씨에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장 클로드가 미리 토니에게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호텔에 투숙하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너무 늦게 전화를 건 것은 아닌가요?" "천만에요! 당신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오- 언제당신을 만날 수 있죠?' "글쎄요,내일 오전에 모두 대 회장으로 가기로 되어 있거든요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빠져 나을 수 있어요 우리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게 어때요?' "좋아요! 그랑드 알레 에스트에 (르 파리 브레스트)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그곳에서 1시에 만나기로 할까요?' "네, 1시에 거기로 갈게요" 르네 레베스크 거리에 있는 퀘벡 국제문화 센터는 유리와 강철로 지은 4층짜리 초첨단 빌딩이어서 수천 명의 대회 참가자들을수용할 수가 있었다. 오전 9시, 광대한 홀이 전세계에서 찾아온 컴퓨터 전문가들로붐볐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최신 컴퓨터 정보를 교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멀티미디어실과 전시 홀과 화상 회의 센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여섯 개의 세미나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토니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들 가만히 앉아서 입만 놀리고 있군.' 하고 토니는 하품을하며 생각했다. 12시 45분이 되자 토니는 대회장을 슬며시 빠져 나와 택시를잡아타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장 클로드는 벌써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반갑게 토니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토니,당신이 이렇게 와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저도 만나게 되어 기뻐요" "당신이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하고 장 클로드는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이곳은탐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예요" 토니는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되도록 많은 시간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군요" "그렇게 시간을 많이 낼 수 있겠어요? 보석 상점은 어떻게하구요?" 장 클로드는 미소를 지었다. "가게는 나 없어도 잘 굴러갑니다" 웨이터가 메뉴를 가지고 왔다. 장 클로드가 토니에게 말했다. "좀 생소하겠지만 프랑스식 캐나다 요리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좋아요" "그럼 내가 대신 주문해 드리죠" 그리고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르 브로뜨 레이크 덕클링'을 주세요" 하고 말하고 나서 그는토니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지방 특산 요리인데, 새끼오리를 칼바도스 사과주로 요리하고 그 속에 사과를 집어넣은 거죠' "아주 맛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말처럼 그 요리는 정말로 맛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군요?" 하고물었다. "안 했습니다. 당신은요?" "저도 안 했어요" "마음에드는 남성을 아직 찾지 못한 모양이군요" "맙소사!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셈이죠" 두 사람은 퀘벡에 관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보낼지에 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스키 탈 줄 알아요?" 토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스키 타는 걸 무엇보다도 좋아해요" "그럼 잘됐군요 이곳에선 스키 말고도 스노 모빌도 탈 수가 있고 아이스 스케이팅과 멋진 쇼핑도 즐길 수 있어요...," 다소 흥분된 듯한 그의 태도에는 얼마간 소년다운 구석이 있었다. 함께 있자니 토니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일은 그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셰인 밀러 실장은 대표단원들에게 오전에는 대회에 참가하고,오후에는 자유시간을 갖도록 조정해 주었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알레트는 토니에게 불평을 했다. "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춥기만 하고 넌 무엇을 할 생각이니?' "모든 걸 다 해 보고 싶어." 하고 토니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그럼, 이따 보자," 토니와 장 클로드는 매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오후에는 장 클로드가 토니에게 관광을 시켜 주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퀘벡같이 멋진 곳을 본 적이 없었다. 북아메리카에서 19세기 말 프랑스의 그림 같은 마을을 발견한 것 같았다. 고색이 창연한 거리는 (브레이크 넥 스테어스)와 (빌로우 더 포트)와 (세일러스 리프)같은현란한 이름들을 갖고 있었다. 마치 눈에 에워싸인 석판화 그림 같은 도시였다. 두 사람은 퀘벡 구시가지를 방어해 주던 성벽이 있는 (라 시타델을 방문하고,그곳에서 요새의 성벽 안에서 행해지는 경비병들의 전통적인 교대식을 지켜 보았다. 또 두 사람은 (생 장)과 (카르티에)와(코트 드 라 파브리크)등의 유명한 상점이 있는 쇼핑 가를섭렵하기도 하고, (카르티에 프티 샹플랑)을 목적 없이 배회하기도했다. "이곳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지구랍니다. " 하고 장클로드가 토니에게 설명해 주었다. "너무나 웅장하네요' 그들이 가는 곳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예수 탄생 모형이 즐비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캐럴이 을려퍼졌다. 장 클로드는 토니를 시골에 있는 스노 모빌 장으로 데려갔다. 좁은 비탈길을 함께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장 클로드는 큰소리로 외쳤다. "어때요, 재밌어요?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 맞죠?" 토니는 그가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오후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고 난 뒤 알레트는 노트르담의 대성당과 어거스틴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고 그밖의 다른 볼거리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미식가를 위한 십여 개의 레스토랑도 있었으나 호텔에서 식사를하지 않을 때는 채식주의자 쫀용의 키픽티린아인 (르 코망살)에서식사를 했다. 이따금 알레트는 화가 친구인 샌프란시스코의 리처드 멜튼을 떠올리고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가 자기를 기억이나 하고있을까를 생각했다. 애슬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고 몇 번이나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슨 핑계를 꾸며댄단 말인가? 아버지는 살인자니 까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해? 그러나 하루하루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에게 내 보석 가게를 보여 주고 싶군요" 하고 장 클로드가토니에게 말했다. "한번 가보고 싶지 않아요?'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가보고 싶어요." (패랑 보석 상점)은 퀘벡 시티의 중심지인 노트르담 가에 있었다.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토니는 깜짝 놀랐다. 인터넷에서 클로드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전 작은 보석 가게를 갖고 있습니다. " 그러나 그곳은 굉장히 넓었으며 아주 고상하게 꾸며져 있었다. 대여섯 명의 점원들이 분주하게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토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무나- 근사하네요!" 그러자 장 클로드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아니에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전一" "그냥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당신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군요" 하고 장 클로드는 토니를 반지가 가득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으로 안내했다. "자아, 어떤 걸 갖고 싶은지 말해 줘요' 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이 반지들은 너무 고가품들이에요 전 도저히 이런 것은一"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토니는 장 클로드를 잠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는 다시 진열장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진열장 한가운데 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커다란 에메랄드 반지가 놓여 있었다. 장 클로드는 그녀가 그 반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저기 저 에메랄드 반지가 마음에 듭니까?' "정말 아름답군요 하지만 너무 비싸서..." "그건 이제 당신 거.요' 장 클로드는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어 진열장의 자물쇠를열고는 그 반지를 끄집어냈다. "안 돼요 장 클로드- 그러면 안 됩니다 " "날 위한 일이오' 하고 장 클로드는 그 반지를 토니의 손가락에끼워 주었다. 맞춘 것처럼 손가락에 딱 맞았다. '자,보세요! 아주절묘하군요!" 토니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당신과 만나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아마 당신은 모를 거요 이근처에 (파비용)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오늘 저녁은 그곳에서함께 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아요" "8시에 전화를 걸겠습니다. " 그날 저녁 6시에 애슬리의 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다. "너를 실망시켜서 미안하게 되었구나,애슬리.아무래도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그곳에 갈 수 없을 것 같다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중요한 환자 한 사람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켰지 뭐냐. 그래서 오늘 밤에 급히 아르헨티나로 떠나야 한단다. " "어머나, 어쩌면 좋아요, 아버지.' 하고 애슬리는 실망한 듯한 어조로 말했으나 기쁨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다녀와서 그 벌충을 해 주마, 알겠지?" "알았어요, 아버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토니는 장 클로드와의 저녁 식사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입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시내의 거리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이글> 금화를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네 그것은 돈이 없어지는 모습.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아무래도 장 클로드와 전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어머니.' (파비용은 퀘벡의 오래된 열차 역인,동굴 모양의 '가르 뒤 팔레' 안에 있었다. 그곳은 입구에 길다란 바가 있는 커다란 레스토랑으로, 안쪽을 향해 좌석들이 줄지어 있었다. 매일 밤 11시가 되면 이곳은 댄스장을 만들기 위해 10여 개의테이블이 한쪽으로 치워지고, 디스크 자키가 레게 음악에서부터재즈와블루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아 나간다. 토니와 장 클로드는 7시에 그곳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은 문에들어서면서부터 주인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무슈 패랑, 어서 오십시오" "고마워요, 앙드레. 여기는 미스 토니 프레스코트이고, 이쪽은 니콜라스 씨입니다. " "저희 집을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미스 프레스코트 예약하신자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 "이곳 음식맛은 매우 뛰어나답니다. " 하고 장 클로드는 자리에앉으면서 토니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부선 샴페인부터 한 잔 합시다. " 그들은 (필라르 드 보)와 (토필)과 샐러드와 발포리셀라 포도주를 주문했다. 토니는 장 클로드가 자신에게 선물한 에메랄드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볼수록 이 반지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하고 그녀는 흥분해서말했다 장 클로드는 몸을 식탁 위로 기울였다. "우리 두 사람이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얼마나 기쁜지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오"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고 토니는 다정하게 말했다.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장 클로드가 토니를 쳐다보았다. "우리도 나가서 춤을 출까요?" "그래요, 저도 춤을 좋아해요' 댄스는 토니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댄스 플로어에 나가자마자 그녀는 다른 일들은 까맣게 잊어 버렸다 토니는 어렸을 때 줄곧 아버지와 함제 춤을 추었는데, 그때마다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저 아이는 춤 솜씨가 형편없어요" 장 클로드는 그녀를 바짝 끌어안고 춤을 췄다. "정말 춤을 잘 추시는군요 수준급이에요" "고마워요" '이 말을 들었겠죠, 어머니?' 그리고 토니는 생각했다. '이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장 클로드가 말했다. "토니,우리 집에 잠시 들러서 나이트캡(잠자기 전에 마시는 술)을한 잔 하고 가지 않겠소?' 토니는 망설였다. "아녜요, 오늘 밤에는 곤란해요 다음에 들를게요, 장 클로드" "그럼 내일 밤에는 괜찮겠죠?" 토니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내일 다시 만나요" 새벽 3시,르네 피카르 순경은 순찰차를 타고 카르티에 몽카르지구의 그랑드 알레를 순시하다가 2층짜리 붉은 벽돌집의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순찰차를 모퉁이에 세우고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보려고 현관으로 걸어가서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여보세요... 안에 누구 없습니까? 현관문이 열려 있는데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현관 홀로 들어가 커다란 응접실 쪽으로 걸어갔다. "경찰입니다. 안에 아무도 없습니까?"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집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권총집의 버튼을 풀고 피카르 순경은 아래층에 있는 방문들을 차례로열어 보면서 계속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을씨년스러운 정적만이 유일한 응답이었다. 다시 현관 홀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우아한 계단이 있었다. "여보세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피카르 순경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긴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쪽에 침실 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피카르 순경은 그곳으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그리고 순간,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며'맙소사!" 하고 내뱉었다. 아침 5시 스토리 불바르의,회색 대리석과 노란색 벽돌로 지은빌딩에 자리잡은 퀘벡 시티 중앙경찰서에서는 폴 케이어 총경이부하 순경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은?" 기 퐁테느 순경이 대답했다. "피해자의 이름은 장 클로드 패랑입니다. 피해자는 온몸에 최소한 십여 군데 자상을 입었으며,거세까지 당했습니다. 검시관은 범행이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전에 행해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윗저고리 주머니에서 (파비용) 레스토랑의 영수증이발견되었는데,장클로드 씨는 그날 저녁 일찍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자고 있는 레스토랑 주인을 깨워서 직접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그래서?" "장 클로드 씨는 레스토랑에 토니 프레스코트라는 여성과 함께왔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갈색 머리에 젊고 아주 매력적이었는데,영국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 클로드 씨의 보석 상점의 지배인은 그날 낮에 사장이 그런 인상의 여성을 상점으로 데리고 와서 토니 프레스코트라고 소개를 하고,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로 주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확실한 건 아니지만 장 클로드 씨는 사망하기 직전에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살해 무기는 강철 날의 레터 오프터(편지봉투 자르는 칼)였습니다. 그 칼 위에는 지문이 묻어 있었습니다. 지문은 실험실과 FBI에 보냈습니다. 지금 그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그럼, 그 토니 프레스코트는 체포했는가?" "아직 못 했습니다. " "왜 아직 체포하지 못했나?"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시내의 모든 호텔을 철저히 조사하고 경찰서 파일과 FBI의 파일을 모두 체크했지만 그녀는 출생증명서도 없고 사회보장제도 번호도 심지어 운전면허증도 없었습니 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 그녀가 이 도시를 빠져 나갔을 가능성은?"퐁테느 순경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을 빠져 나갔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총경님. 공항은자정이면 폐쇄됩니다. 퀘벡을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는 어젯저녁 5시30분에 떠났습니다. 오늘 아침의 첫 기차는 6시 39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의 몽타주를 버스 터미널과 택시 회사 두 곳과 리무진 회사에 보내 놓았습니다. ' "이런 빌어먹을! 우린 그녀의 이름도 알고 인상착의도 파악했고,지문까지도 갖고 있다. 절대 그녀가 이 도시를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해야 하네. 철저히 !" 한 시간 뒤, FBI로.부터 보고서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지문을 식별할 수가 없고, 토니 프레스코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너는 곧 죽을 것이다 8 애슐리가 퀘벡에서 돌아온 지 5일째 되는 날, 아버지로부터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에서야 돌아왔단다. " "돌아오다니요?" 애슬리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아,아르헨티나에 있는 환자 말이군요 그분은 좀 어때요?' "겨우 목숨은 건졌다. " "잘됐군요" "내일, 샌프란시스코로 저녁 식사를 하러 오지 않겠니?" 애슬리는 아버지와 만나는 것이 끔찍했으나 더 이상 핑계를 댈만한 것이 없었다. "알았어요, 갈게요" "저녁 8시에 레스토랑 (룰루)에서 만나도록 하자," 패터슨 박사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애슬리는 이미 레스토랑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한 마디로 유명 인사였다. '아버지는 오로지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패터슨 박사는 애슬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를 만나서 기쁘구나, 얘야. 크리스마스 만찬 건은 미안하게됐다. " 애슬리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저도 서운했어요" 애슬리는 메뉴를 들여다보았으나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을 집중하느라고 안간힘을 썼다. "뭘 먹고 싶냐?' "글쎄요,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하고 애슬리는 마지못해서 대답을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끼니 때가 되면 뭐라도 먹어야지. 얼굴이너무 수척해 보여." "그럼 닭고기를 먹겠어요" 그녀는 아버지가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내심 그문제를 먼저 꺼낼까 말까 궁리를 했다. "그래, 퀘벡은 어떻든?" "무척 재미있었어요" 하고 애슬리는 대답했다. "아름타운 도시더라구요" "언제 한번 우리 둘이서 함께 가보자꾸나." 애슬리는 결심을 굳히고 될 수 있는 한 지나가는 말처럼 들리게하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네.그래요 그런데요... 아버지, 지난 6월에요, 거의 10년 만에베드포드 고등학교 동창회가 열렸어요 그래서 저도 갔었거든요"패터슨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에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니?" "아뇨" 하고 애슬리는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가면서 느릿느릿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버지와 제가 런던으로 떠난 그이튿날에요... 짐 클리어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짐은 몸을 수없이 칼로 찔리고...그리고 거세까지 당해 있었대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려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패터슨 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클리어리라니? 아아,그렇지.고등학교 때 네 뒤를 쫓아다니던남학생 말이구나.내가 너를 그 녀석에게서 구해내 줬지, 안 그러냐?' '지금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종의 고백일까? 아버지는 짐 클리어리를 살해함으로써 나를 그 애로부터 구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애슬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을 계속했다. "데니스 티블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했어요 티블 역시 온난자당하고 거세가 되어 있었대요" 애슬리는 아버지가 빵을 집어들고 조심스럽게 버터를 바르는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패터슨 박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일에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애슬리. 악한대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마련이거든." 소위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의사의 말이었다.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아니,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에도 애슬리는 여전히 그 사건에 대혜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토니가 말을 꺼냈다 "난 정말로 궤벡에서 즐겁게 보냈어,알레트 조만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넌 어때? 재미있었니?' 알레트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런대로 미술관에서 재미있게 지냈어." "너, 아직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보이프렌드에게 전화를 걸지않았니?' "그 사람은 보이프렌드가 아니야." "하지만 틀림없이 보이프렌드가 되어 주기를 원하고 있을 텐태?"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왜 전화를 안 거는 거지?" "그건 여자로서 할 행동이라고는..." "전화를 걸라니까." 알레트와 리처드 멜튼 두 사람은 (드 영 미술관>에서 만나기로약속을 했다.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어요" 하고 리처드 멜튼이 말했다." 퀘벡은 어땠어요?" "아주 좋았어요" "나도 당신과 함께 그곳에 갔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언젠가는.' 하고 알레트는 희망에 차서 생각했다. "그림은 잘 돼가고 있나요?" "그럭저럭요 오늘 유명한 수집가에게 내 그림을 한 점 팔았어요" "어머나, 그거 참 잘되었네요!" 하고 알레트는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처드와 함께 있으면 나는 완전히 달라진다니까. 그가 아니라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난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렌 그림을돈을 받고 팔다니, 그림을 볼 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녀석이로군 아니면, 낮에 그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겠네. 등등 수백 가지 잔인한 말들 말이야. 하지만 그런 말을 리처드에게만은 하지 않고 있잖아.' 그것은 알레트에게 더할 수 없는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자꾸만 쇠약해져 가는 병에 대한 어떤 치유제를 발견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미술관에 마련된 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하고 리처드가 물었다. "이곳은 로스트비프가 천하일품이죠" "전 채식주의자에예오 그냥 샐러드만 먹겠어요" "좋을 대로 하세요" 젊고 아름다운 웨이트리스가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 리처드." "안녕, 버니스." 전혀 뜻하지 않게 알레트는 질투를 트껐다. 순간적으로 그녀는그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놀라웠다. "주문할 음식을 정하셨나요?" "그럼요 미스 피터스에게는 샐러드를, 나에게는 로스트 비프 샌드위치를 주세.요" 알레트는 웨이트리스가 자신을 자세히 뜯어보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저 여자도 나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는 걸까?' 알레트는 몹시 궁금했다. 웨이트리스가 물러가자 알레트는 지체 없이 말했다. "저 여자, 굉장히 예쁘네요 저 여자와 잘 아는 사인가 보죠?'순식간에 알레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런 것은 묻는 게 아닌데...," 리처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곳에 자주 오거든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제 주머니엔 돈이 별로 많지 않았지요 그래서 샌드위치를 시키려고 했는데 버니스가 아주 근사한 음식을 가져다주더군요 버니스는 정말 착한 아가씨예요" "저 여자는 정말로 매력적이에요" 하고 알레트는 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여자 다리는 무 다리야.' 주문을 한 다음 두 사람은 화가들에 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기회가 닿으면 언제 한번 지베르니에 꼭 가보고 싶어요" 하고알레트가 말했다 "모네가 그림을 그렸던 곳 말예요" "혹시 모네가 풍자 만화가로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뇨 처음 듣는 얘기군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때 모네는 부댕을 만났지요 부댕은 모네의스승이 되었는데,그에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려보도록 설득했어요그것에 관해서는 훌륭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모네는집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에, 2미터가넘는 캔버스에다 정원에 있는 여인의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도르래로 캔버스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도록 도랑 파는 사람을대기시켜 놓았다고 하더군요 그 그림은 현재 파리의 (오르세 박물쑴세 걸려 있답니다." 시간은 빠르게, 그리고 행복하게 흘러갔다. 점심 식사를 끝낸 뒤,알레트와 리처드는 미술관에 가서 여러 가지 전시품들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유물에서부터 현대미국의 회화까지 약4만 점 이상의 수집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리처드와 함께 있는 게 진심으로 기뻐서인지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부정적인 생각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야,'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브라이언. 이쪽은 내 친구 알레트 피터스이고, 그리고 여기는 브라이언 철입니다. " 브라이언이 알레트에게 말했다. "미술관이 마음에 드십니까?" "네, 물론이에요. 너무나 홀륭히군요" "리처드가 제게 그림 지도를 해 주고 있지요" 하고 브라이언이말했다. 알레트는 리처드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리처드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냥 조언 몇 마디를 해 주는 것뿐인 걸요" "아닙니다. 리처드는 그 이상을 가르쳐주고 있답니다. 아가씨.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것이 바로 내가 이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동기이지요 나는 그림 감상을아주 좋아한답니다. 어쨌든 리처드는 이곳에 자주 와서 그림을 그리는데 리처드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리처드에게 그림을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그때부터 죽 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답니다. 당신도물론 리처드의 작품을 보았겠죠?' "네, 보았어요" 하고 알레트는 대답했다. "모두 훌륭하더군요" 브라이언이 떠나고 나자 알레트가 말했다. "그런 일을 하다니, 정말 훌륭해요, 리처드." "나는 남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거든요" 그리고는 알레트를 바라보았다. 미술관에서 걸어 나오면서 리처드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나와 한방을 쓰는 친구가 지금 파티에 가고 없는데,우리 아파트에 잠깐 들렀다 가지 않을래요?' 리처드는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당신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그림도 몇 점 있고 하니까요" 알레트는 살며시 리처드의 손을 잡았다. "아직은 안 돼요, 리처드." "당신 편할 대로 하세요 그럼,다음 주말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그러나 그녀가 얼마나 다음 주말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리처드는 짐작도 못할 정도였다. 리처드는 알레트가 차를 세워 둔 주차장까지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그는 알레트가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작별의인사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날 밤 알레트는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리처드는 나를 해방시켜 주었어.' 그녀는 리처드의 꿈을 꾸면서 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새벽 2시에 리처드 멜튼의 룸메이트인 개리는 생일 파티를 치르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는 어두컴컴했다. 그는 거실케 불을 밝히려고 스위치를 올렸다. "리처드 안에 있어?" 그는 침실로 향했다. 방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젊은 친구, 제발 진정하시오." 하고 위티어 형사는 의자에 앉아서 몸을 떨고 있는 청년을 반라보았다. "자아, 처음부터 다시 한번차근차근 되풀이해 봅시다. 리처드 씨가 특별히 적대시하는 사람이 있었나요?아니면 이런 짓을 할 만큼 리처드 씨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개리 킹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없습니다. 모두들... 모두들 리처드를 좋아했죠" "어쩌면 누군가는 리처드 씨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당신은 리처드와 함께 얼마 동안 한방을 썼습니까?" "2년입니다. " "죄송한 질문이지만 혹시 연인 사이인가요?" "천만에요" 하고 개리는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냥 친구 사이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함께 살았을 뿐입니다" 위티어 형사는 좁은 아파트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강도 짓은 아닌 것 같군." 하고 형사가 말했다. "아무리보아도 이곳에는 훔쳐 갈 만한 것이 없으니. 리처드 씨가 사귀는여자는 따로 없었소?' "아뇨- 아니,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서 리처드가 관심을 가진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리처드가 그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것 같았어요' "당신도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소?" "네, 알레트, 알레트 피터스라더군요 그녀는 큐퍼티노의 회사에다닌다고 했습니다. ' 위티어 형사와 레이놀즈 형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큐퍼티노?' "맙소사!" 하고 레이놀즈 형사가 신음 소리를 냈다. 30분 뒤, 위티어 형사는 다울링 보안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보안관님,큐퍼티노에서 발생한 것과 동일한 살인 사건이 이곳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을 알면 보안관님도 흥미를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네? 네,맞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의 자상과 거세 말입니다. ' "맙소사!" "좀전에 FBI와 통화를 했었습니다. FBI의 컴퓨터 기록에 의하면. 지금까지 이번 사건과 매우 유사한 거세 살인 사건이 세 건 발생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펜실베이니아 주의 베드포드에서약 1()년 전에 발생했습니다. 그 다음 사건의 피해자는 데니스 티블이라는 남자였습니다- 그건 보안관 님의 사건이고요. 그리고세 번째로 퀘벡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 "도무지 논리에 맞지가 않다니까... 펜실베이니아... 큐퍼티노... 퀘벡... 샌프란시스코... 여기에 도대체 무슨 연결 고리가 있단 말인가?" "우리도 지금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퀘벡은 여권이 있어야 갈 수 있습니다. FBI는 현재 크리스마스를전후해서 퀘벡에 있었던 인물이,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그 도시의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컴퓨터로 크로스 체크를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그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자,살인 사건 기사는 전세계 신문의 제1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연속 살인범.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다... ' '네 명의 남성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거세당하다...' '의문의 연쇄 살인범,단서 추적중...' 텔레비전에서는 자칭 유명 심리학자들이 그 살인 사건들에 관해서 분석을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모두 남성입니다. 피해자들이 흉기에 찔리고 거세당한 것을 미루어 볼 때,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동성연애자의 소행으로서 그는...," "...따라서 만일 경찰 당국이 그 피해자들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 보면,아마 그들이 모두 경멸하고 있던 한 사람의 연인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아마도 어머니에게 심한 적대감을 갖고있는 자에 의해서 저질러진 완전히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토요일 아침,위티어 형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안관 대리, 새로 들어온 정보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뭔데요? 말해 보시오" "방금 FBI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 클로드 패랑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퀘벡에 있었던 한 미국인 주소가 큐퍼티노로 되어있는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래,그 남자의 이름이 뭐랍니까?'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패터슨, 애슬리 패터슨이라는 여자입니다. " 그날 저녁 6시,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애슬리 패터슨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잠시 뒤,꽉 닫혀있는 문을 통해 조심스런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세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입니다.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미스 패터슨.' 오랜 침묵끝에 문이 열렸다. 애슬리는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아버지에 관한 것을 물어보러 왔을까? 조심해야지." 애슬리는 보안관 대리를 소파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요, 보안관님?" "내가 묻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애슬리는 불편한 듯이 몸을 추슬렀다. "글쎄요, 지금 내가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 건가요?" 보안관 대리는 안심을 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게 아닙니다. 미스 패터슨, 소정의 절차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린 지금 몇 건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전 어떤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것이 없는데요." 하고애슬리는 재빨리 말했다. '내가 너무 빨리 대답을 한 건 아닐까?' "최근에 퀘벡에 가신 적이 있지요?" "네 갔었습니다." "장 클로드 패랑 씨를 압니까?" "장 클로드 패랑이오?" 하고 애슬리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아뇨,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데요 그 사람이 누구죠?' "퀘벡에서 보석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 애슬리는 고개를 저었다. "전 퀘벡에서 어떤 보석도 산 적이 없는데요" "당신은 데니스 티블 씨와 함께 일했지요?" 애슬리는 공포감이 다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틀림없이 아버지에 관한 일이다. 그녀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전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았어요. 단지 티블씨는 나와 같은회사를 위해 일했을 뿐이에요" "물론 그렇겠지요. 당신은 이따금 샌프란시스코에 가곤 하지요. 미스 패터슨?' 애슬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가없었다. '조심해야지.' "네, 이따금 갑니다." "혹시 리처드 벨들이라는 화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몰라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애슬리를 살폈다 "미스 패터슨, 경찰서까지 함께 가서 거짓말 탐지기의 테스트를받아주셔야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당신은 변호사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一' "전 변호사는 필요 없어요 기꺼이 테스트를 받도록 하죠"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는 케이스 로슨이라는 사람인데,그 방면의 최고 권위자였다. 저녁의 데이트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케이스 로슨은 기꺼이 샘 블레이크의 요청에 응했다. 애슬리는 거짓말 탐지기에 연결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로슨은 그녀의 배경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고 감정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애슬리와 45분이나 잡담을 나누었다. 로슨이 정색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합시다" 하고 로슨은 버튼 하나를 눌렀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애슬리 패터슨입니다." 로슨의 눈은 애슬리와 거짓말 탐지기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있었다. "나이는요, 미스 패터슨?" "28세 입니다."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큐퍼티노 시, 비아 카미노 코트, 10964번지입니다. " "현재 직장에 근무하고 있습니까?" "네" "고전 음악을 좋아하나요?" "네." "리처드 멜튼 씨를 알고 있습니까?' "아뇨" 그래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당신은 어디 근무하고 있습니까?"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입니다. " "자신의 일을 좋아합니까?" "네" "일 주일에 5일 근무하죠?" "네" "전에 장클로드 패랑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뇨" 아직도 그래프 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 식사를 했습니까?" "네" "당신이 데니스 티블 씨를 죽였습니까?" "아뇨" 질문은 30분이나 더 계속되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이 순서만 바뀌어서 세 번씩이나 반복되었다 테스트가 끝나자 케이스 로슨은 샘 블레이크의 사무실로 들어와서, 그에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 결과를 보여 주었다 "아주 깨끗하네.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1퍼센트이하일세. 자네는 범인을 잘못 짚었네,' 애슬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경찰서 문을 나섰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다 끝났군요' 애슬리는 아버지를 끌어들이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내내 잔뜩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이제는 아버지를 어떤 사건과도 연결시킬 수 없을 거야.' 애슬리는 자동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 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파트 문의 자물쇠를 열고 방안으로 들어간 다음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일일이 잠갔다. 심신이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으나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면 괜찮아지겠꾼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애슬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그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욕실 거울에 누군가가 새빨간 립스틱으로낙서를 해놓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는 곧 죽을 것이다!' 얼굴 없는 미행자9 애슐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너무 심하게 떨려서 원하는 번호에 전화를 걸기 위해 다이얼을 세 차례나 돌려야 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았다. 2...9...9...2...0...1...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안관 사무소입니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를 부탁합니다. 빨리요!" "블레이크 대리는 퇴근했는데요 다른 사람이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요! 그럼-그분에게 저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애슬리 패터슨이에요 지금 당장 그분과 통화를해야 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아가씨.블레이크 대리님과 연락이 되는지 한번 알아볼 테니까요"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아내 세레나가 그에게 악을 써대는것을 참을성 있게 듣고 있었다. "우리 오빠는 당신을 낮이나 밤이나 마치 말처럼 심하게 부려먹고 있어요 그러면서 월급은 쥐꼬리만큼 준다구요 어느 정도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대체 왜 당신은 월급 올려 달라는 말을 못 하는 거죠? 네?' 두 사람은 지금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보, 그 감자 그릇이나 이리 밀어줄래?" 세레나는 감자 그릇을 집어서 남편 앞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문제는 그들이 당신을 조금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신 말이 옳아, 여보 그 고기 국물을 좀더 줄 수 있겠어?" "도대체 당신,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기나 하는 거예요?" "물론 한 마디도 빼 놓지 않고 모두 듣고 있어,여보 오늘 저녁식사는 특별히 맛이 있군.당신 요리 솜씨는 진짜 대단해.' "이런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당신이 같이 싸워 주지 않으면 나혼자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샘 블레이크는 송아지 고기를 입에 가득 집어넣었다. "그건 모두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야, 여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잠간만." 하고 샘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그래... 그녀를 바꿔 주게...미스 패터슨?' 샘 블레이크는 그녀가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무엇인가- 무엇인가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보안관님 당장 이곳으로 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세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예요? 당신,지금 나간다구요?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어딜거예요!" "이건 긴급 상황이야, 여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올 테니까진정해." 세레나는 남편이 권총을 차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샘은 아내에게 몸을 기울여 키스를 했다. "정말 맛있는 저녁 식사였어 !" 애슬리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도착하자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뺨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경계하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면서아파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누군가 다른사람이 이곳에 있습니까?'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어요" 하고 애슬리는 흥분을 억제하려고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곳을 보세요...." 그러고 나서 애슬리는 보안관 대리를 곧바로 욕실로 데리고 갔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거울에 커다랗게 휘갈겨 쓴 글자를 읽었다. '너는 곧 죽을 것이다!' 보안관 대리는 애슬리를 돌아보았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짚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전혀 없어요"하고 애슬리는 대답했다 거 혼자 이 아파트에서지내고 있거든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 방에 들어와 있었다고요... 누군가가 내 뒤를미행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나봐요" 하고 애슬리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전 더 이상은 이런 일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애슬리는 계속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아.이제 그만 진정하세요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겁니다. 경찰이 당신을 보호해 줄 거예요 그리고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 범인을 곧 찾아내겠습니다. ' 애슬리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었다. "미안해요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서요 정말 무서워서 견딜수가 없어요' "자아, 이제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시지요." 애슬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우선 향기로운 차부터 한 잔 주시겠습니까?' 하고 보안관 대리가 부탁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이런 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미스 패터슨?' "약 6개월쯤 되었어요 줄곧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막연한 느낌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느낌이 차츰 확실하게 다가오더군요 전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행자를 목격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던어느 날, 회사에서 누군가가 내 컴퓨터에 들어와서 칼로 절 찌르려고 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더군요" "그리고 당신은 누가그런 짓을 했는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고요' "그래요" "오늘 말고 그 이전에도 누군가가 이 아파트에 들어온 흔적이있었나요?' "네.언젠가 한 번은 제가 회사에 출근한 뒤에 방 안의 모든 불을 궈 놓은 적이 있었어요 또 그 다음에는 내 옷장 위에 담배꽁초를 놓고 간 적도 있고요 전 담배를 피우지 않거든요 그리고 누군가가 옷장 서랍을 열고... 내 속옷들을 마구 뒤섞어 놓은 적도 있어요" 애슬리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로 이거였어요" "혹시 당신한테 배반당했다고 생각하는 남자친구는 없습니까?" 애슬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누군가가 당신 때문에 돈을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업상의 거래를 한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은 적은요?' "없어요' 애슬리는 보안관 대리에게 시카고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에 대해얘기할까 하고도 생각했으나,그렇게 되면 아버지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 밤에는 도저히 혼자 있을 수가 없어요" 하고 애슬리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이곳으로 보내 달라고一' "안 돼요! 제발 그건 안 돼요! 전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요 아침까지 만이라도 보안관님이 함께 있어 주실 수는 없나요?' "글쎄요, 나는 다른 할 일이..." "제발 부탁이에요" 애슬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보안관 대피는 애슬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심한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을 한 번도본 적이 없었다. "오늘 밤만이라도 임시로 가 있을 만한 곳은 없습니까?친구라던가, 친척이라던가 하는...?' "만일 내 친구들 중 하나가 이런 짓을 하는 범인이라면 어떻게하죠?' 보안관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요 좋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도록 하죠 날이 밝는대로 당신을 24시간 보호하도록 조치를 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애슬리의 목소리에는 안도의 빛이 가득 차 있었다. 보안관 대리는 안심시키려는 듯이 애슬리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제부턴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이 사건의 진상을 반드시밝혀내고야 말겠습니다. 우선은 다울링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서당신에 관해서 보고를 해야겠군요" 약 5분 간 통화하고 나서,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애슬리에게 말했다. "아내에게도 전화를 좀 걸어야겠네요" "물론 그러셔야지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당신? 난데, 오늘 밤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문단속잘 하고 텔레비전이나一" "지금 뭐라고 했어요, 당신?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그 싸구려 창녀하고 함께 있는 거죠?' 애슬리는 수화기를 통해서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을수가 있었다. "세레나..." "다른 사람은 모두 속일지 몰라도 나는 못 속여요!" "세레나..." "그것이 당신네 남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전부라니까-여자나 덮칠 생각만 하고一' "세레나..." "이제 더 이상 이런 생활을 참고 견딜 수가 없어요!" "여보一' "이게 그토록 선량한 아내 노릇을 한 보답이란 말이지‥‥!" 그로부터 일방적인 대화가 약 10분 간이나 계속되었다. 마침내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곤혹스러운 얼굴로애슬리를 돌아다보았다. "미안해요 예전에는 아내가 저렇지 않았는데一" 애슬리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아,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제 아내는 겁이 나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겁니다. ' 애슬리는 의아한 얼굴로 보안관 대리를 쳐다보았다. "겁이 나다니오?' 보안관 대리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제레나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암에 걸렸거든요 약 7년 전에암이 발병했지요 우리는 결혼한 지5년 되었구요'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면서...?" ' "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나는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보안관 대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그 병이 최근엔 눈에 띄게 악화되어 가고 있어요 아내는 죽는 게 두렵고 내가 자기 곁을 떠나버릴까봐 두려워서 잔뜩겁을 집어먹고 있는 거예요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런 공포를 숨기기 위한 은폐 방법 중 하나인 거죠"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내는 훌륭한 여자예요 마음속은 다정하고 인정이 많고 사랑가득 차 있지요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레나랍니다. "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제가 부인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군요 사과할게요..." "아닙니다.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 하고 보안관 대리는안을 둘러보았다. 애슬리가 재빨리 말했다. "침실은 하나밖에 없어요 보안관님이 그곳에서 주무세요 전 소파 위에서 잘 테니까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소파에서 자겠습니다. " 그러자 애슬리가 말했다. "너무 감사해서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군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미스 패터슨,' 그는 애슬리가 장롱 안에서 시트와 담요를 꺼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슬리는 그것들을 가지고 와서 소파 위에 시트를 폈다. "공연히 이런 곳에서 고생을一' "아주 좋습니다. 어차피 전 잠을 잘 생각은 없으니까요" 보안관 대리는 창문으로 가서 걸쇠가 제대로 걸렸는가를 확인하고 그 다음에는 문으로 가서 이중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이제 됐습니다. 오늘 밤에는 안심하고 푹 주무십시오 그리고내일 아침에는 24시간 경호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 그러고 나서 보안관 대리는 권총을 빼내어 소파 옆의 탁자 위에올려놓았다. 애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뺨에다키스를 했다. "고마워요."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애슬리가 침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문을 닫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창문으로 다가가서 잠금 장치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오늘 밤은 기나긴 밤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FBI본부에서는 라미레즈 특수 요원이 자기 부서의 책임자인 롤랜드 킹슬리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베드포드와 큐퍼티노와 퀘벡과 샌프란시스코의 살인 현장에서발견한 지문들과 DNA 보고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최종적인 DNA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살인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들이모두 일치하고, DNA의 흔적도 모두 일치합니다. " 킹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틀림없는 연속 살인 사건이로군.'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 "그 몹쓸 놈을 빨린 찾아내자구" 다음날 아침 오전 7시에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의 벌거벗은시체가 애슬리 패터슨의 아파트 건물의 뒤쪽 골목에서,그 건물 관리인의 아내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블레이크는 온몸을 난자당하고 거세되어 있었다. 체포된 여인10 다울링 보안관과 사복 형사 두 명, 정복 경관 두 명 등 모두다섯 명이 애슬리의 아파트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울고 있는 애슬리를 지켜보면서 거실에 서있었다 다울링 보안관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야말로 지금 우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미스 패터슨." 애슬리는 고개를 쳐들어 보안관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몇 번 심호흡을 했다. "네, 노력해 보겠어요"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 봅시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어젯밤이곳에서 지냈나요?" "네.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그분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전... 저는 너무나도 무서웠어요." "이 아파트에는 침실이 하나밖에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어디서 잠을 잤습니까?' 애슬리는 아직도 담요와 베개가 놓여 있는 소파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분은- 저기서 밤을 지냈어요" "당신은 몇 시에 잠을 자러 갔습니까?" 애슬리는 잠시 생각을 했다. "아마-틀림없이 자정쯤이었을 거예요 전 신경이 무척 곤두서있었어요 그분과 난 차를 마시면서 얼마 동안 얘기를 나누었어요그러자 다소 마음이 가라앉더군요 그래서 그분에게 담요와 베개를 갖다 드리고 그 다음에 전 침실로 들어갔어요' 애슬리는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몹시 애쓰고 있었다. "당신이 보안관 대리를 마지막으로 본 게 그때였습니까?" "네, 그래요" "그러고 나서 당신은 곧장 잠이 들었나요?" "금세는 아니었어요 참다못해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으니까요 그 다음에 제가 기억하는 것은 아래쪽 골목길에서 들려 온여자의 비명 소리 때문에 잠이 깼다는 것뿐이에요' 애슬리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군가가 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보안관 대리를 살해했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전-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하고 애슬리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누군가가 그전에도 이곳에 들어왔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내 거울에 협박조의 글을 남겨 놓고 갔으니까요' "그 사실은 어젯밤 보안관 대리로부터 전화상으로 보고 받았소' "그분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도 몰라요-그래서 조사를 해보려고 아파트 밖으로 나갔을지도 몰라요" 하고 애슬리가 말했다. 다울링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벌거벗은 채 말이오? 말도 안 돼요" 애슬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아아,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몰라요! 이건 악몽이에요!"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울링 보안관이 말했다. "아파트 안을 둘러보고 싶은데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올까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마음대로 둘러 보세요" 다올링 보안관은 형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 중 하나가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형사는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신과 보안관 대리는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습니까?" 애슬리는 또다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전-그분에게-최근에 저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에 관해서말씀드렸어요? 그분은 매우一' 그녀는 보안관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가 왜 그분을 죽였을까요?' "아직은 저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미스 패터슨. 하지만 곧 알아낼 겁니다. " 주방으로 들어갔던 엘튼 경위가 문턱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보안관님, 잠깐 이리로 와 보시겠습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다울링 보안관은 주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엘튼 경위가 설명했다. "이게 싱크대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피가 묻어 있는 부엌칼끝을 잡고 쳐들어 보였다. "이 칼은 씻지 않은 상태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이 칼을 감식해보면 얼마간의 지문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형사가 침실에서 나와서 황급히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에메랄드 반지를 들고 있었다. "이 반지를 침실에 있는 보석 상자에서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장클로드 패랑 씨가 토니 프레스코트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하는, 퀘백으로부터 보내온 반지 사양서와 일치합니다. "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군." 하고 보안관이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부엌칼과 반지를 집어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보안관이부엌칼을 내밀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미스 패터슨, 이 칼, 당신 겁니까?" 애슬리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네- 맞는데요 왜요?" 다울링 보안관은 다시 반지를 내밀어 보였다. "이 반지를 이전에 본 적 있습니까?" 애슐리는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처음 보는 반지예요" "이 반지가 당신의 보석 상자에 들어 있던데요" 그들은 애슬리의 표정을 살폈다. 애슬리는 무척 당황한 것처럼보였다. 애슐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곳에 집어넣은 게 틀림없어요...,"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애슐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도 모르죠" 형사 한 명이 현관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보안관님?" "왜 그러나, 베이커?' 보안관은 형사를 방 한쪽 구석으로 오라고했다. "뭘 찾아냈는데?' "복도의 카펫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핏자국을 찾아냈습니다. 아무래도 시체를 시트에 싸 가지고 끌고 가서 엘리베이터에 태워 뒷골목에 갖다 버린 것 같습니다. " "이런 빌어먹을!" 다울링 보안관은 애슬리에게로 몸을 돌렸다. '미스 패터슨, 당신을 체포하겠소 지금부터 당신의 권리를 말해 주겠소당신에게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이 말하는 것은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없을 시에는 법정이 당신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줄 것입니다. ' 보안관 사무소에 도착하자 다울링 보안관은 이렇게 명령했다. "그녀의 지문을 채취해서 경찰 기록부에 올리도록 하게." 애슬리는 자동 인형처럼 구속 절차를 밟아 나갔다. 마침내 절차가 끝나자 다울링 보안관이 말했다. "당신에게는 전화를 한 통 걸 수 있는 권리가 있소." 애슬리는 보안관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한테는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없어요' '아버지를 부를 수는 없다. '하고 애슬리는 생각했다. 다울링 보안관은 애슬리가 유치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자네도 그녀의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보았겠지? 나는 그녀가 무고하다고 장담하네.' 코스토프 형사가 걸어 들어왔다. 샘은 살해당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샘의 몸과 샘을 감싸고 있던 시트에 자외선을 복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정자와 질의 잔재물이 보였습니다. 따라서一' 다울링 보안관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만하게 !" 보안관은 여동생에게 그 소식을 알려야 할 순간을 계속 미루고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한숨을내쉬면서 말했다. "곧 돌아오겠네." 10분 뒤, 다울링 보안관은 동생의 집에 가 있었다. "어머, 웬일이에요,오빠 영광스럽게도 우리 집에 다 찾아와 주시고."하고 세레나가 말했다."샘도 오빠와 함께 왔어요?" "아니야, 세레나.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이제부터가 어려운 대목이었다. "뭔데요?" "너... 너 말이야, 샘하고 지난 24시간 이내에 섹스를 한 적 있니?" 그러자 세레나의 얼굴 표정이 싹 변했다. "뭐라고요? 아뇨... 그런 적 없어요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죠?그이가 어디 멀리 가기라도 했나요?' "너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는 싫지만, 샘은..." "그이가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갔군요 그렇죠? 언젠가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이를 비난하고 싶는 않아요 나는 그이에게는 끔찍한 아내였으니까요 나는一" "세레나, 샘이 죽었다. " "나는 언제나 그이에게 악만 써 댔으니까요 그러나 진심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내 기억으로는..." 보안관은 여동생의 팔을 움켜잡았다. "세레나, 샘이 죽었다니까.' "언젠가 우리 둘이 해변가에 갔었는데...' 보안관은 여동생의 몸을 흔들었다.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샘이 죽었단 말이야." "-그리고 우린 피크닉도 갔었어요' 여동생의 얼굴을 보고 보안관은 그녀가 이미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해변에 갔을 때 웬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가진돈을 몽땅내놔!'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셈이 말했죠 '어디 네 권총 좀 보자...," 다울링 보안관은 우두커니 선 채 여동생이 계속 주절대도록 내버려 두었다. 여동생은 갑작스런 쇼크에 빠져 모든 것을 부정하고있었다. "...그것이 샘이었어요 그이가 함께 도망친 여자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그 여잔 예쁜가요? 샘은 나에게 언제나 예쁘다고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그이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 말이 나를 기분 좋게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러나 그이는 절대로 나를버리고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그이는 꼭 돌아올 거예요 두고 보세요,오빠.그이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구요' 하고 세레나는 계속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올링 보안관은 전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다이얼을 돌렸다. "난데.이곳으로 간호사를 한 명 보내줘."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서 여동생을 끌어안았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모두 잘될 게다. " "오빠에게 그 얘기를 했던가요? 샘과 내가一?" 15분 뒤, 간호사가 도착했다. "잘 돌봐 주세요" 하고 다울링 보안관이 부탁했다. 다울렁 보안관의 사무실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보안관님, 1번선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울링 보안관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네, 다울링 보안관입니다." "보안관, 난 워싱턴 FBI 본부의 라미레즈 특수 요원이오 이렇게전화 건 이유는 연속 살인 사건에 관해 당신에게 전해 줄 정보가몇 가지 있기 때문이오 애슬리 패터슨 말인데, 기록을 살펴보니지금까지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더군요 따라서 FBI는 어떤지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1988년 이전에 자동차 등록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때 엄지손가락의지문을 요구하지도 않았더군요.' "말씀 계속하시죠" "처음에는 컴퓨터의 오작동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습니다만, 다시 여러 차례 체크를 해본 결과...," 그로부터 5분 동안, 다울링 보안관은 우두커니 앉아서 도저히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확실합니까? 도무지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그 말 모두가 사실입니까...? 알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 보안관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었다. "지금 전화는 워싱턴의 FBI 검시소에서 걸려온 걸세.그들은 이미 피해자의 몸에 묻은 지문의 크로스 체크를 끝냈다는군.퀘벡의클로드 패랑은 살해 당했을 때 토니 프레스코트라는 이름의 영국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지." "맞습니다. " "샌프란시스코의 리처드 멜튼 씨는 살해당할 당시 알레트 피터스라는 이탈리아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지,' 수사 요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젯밤,샘 블레이크는 애슬리 패터슨과 함께 있었지." "그렇습니다. " 다울링 보안관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애슬리 패터슨...," "네?" "토니 프레스코트..., " "...?" "알레트 피터스...," "...?" "그녀들이 모두 동일 인물이라는군." 패터슨 박사를 납치하다11 <브라이언트 앤 크라우더 부동산 소개소>의 부동산 중개인 로버트 크라우더는 과장된 몸짓으로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테라스입니다. 코이트 타워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가있지요" 그는 젊은 부부가 밖으로 나가서 난간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가지가 발 아래에 장대한 파노라마를 이루면서 펼쳐져 있었다. 로버트 크라우더는 부부가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보고는 은근히 쾌재의 미소를 머금었다. 젊은 부부가 애써 흥분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 구매자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일 경우 집값이 올라간다고믿고 있는 것이다. '이 복층 아파트는 값이 꽤 비싼 편인데.' 크라우더는 그 젊은 부부에게 이 비싼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는지 어떤지 걱정이 되었다 남편이 변호사라지만 신출내기 변호사는 그다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부부는 무척 매력적이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비드 싱거는 30대 초반으로 금발에다가 지적인 외모였는데, 어딘가 매력적인 소년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의 아내인 산드라는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따스한 인품이 느껴졌다. 로버트 크라우더는 산드라의 불룩한 배를 한번 바라보고는 말을꺼냈다. "하나 남는 침실은 아기 방으로 꾸미면 적당할 겁니다. 사실 이곳은 아이 키우기에 제격이랍니다. 불과 한 구역 떨어진 곳에 놀이터가 있고, 이 동네에는 초등 학교가 둘이나 있답니다. " 그러자 젊은 부부가 다시 비밀스러운 미소를 나누었다. 이 아파트는 2층에 욕실이 딸린 침실과 객실이 있고, 아래층에는 넓은 객실과 식당,서재,주방,그리고 손님 침실과 욕실이 두개 있었다. 거의 모든 방 창문으로 시가지가 내려다 보였다. 크라우더는 부부가 다시 아파트 안을 둘러보며 다니는 동안 그들을 죽 지켜보았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가서 무슨 말인가를 소근거리며 서 있었다.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하고 산드라가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를 키우는 데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여보,우리가 과연 이 집을 살 수 있을까요? 60만 달러나 달라고 하는데 !" "게다가 수리 비까지."하고 데이비드가 덧붙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당장은 이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지. 하지만 아무 걱정 말라구. 목요일만 되면 우린 이 집을 충분히 살 수 있을테니까. 며칠만 있으면 우리 생활은 완전히 변하게 될 거야.' "저도 알고 있어요" 하고 산드라는 행복한 듯이 말했다. '너무멋진 일예요!" "자아,어디 한번 흥정해 볼까?' 산드라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래요 한번 부딪쳐 보자고요" 데이비드는 싱끗 웃고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 집에 잘 오셨습니다. 싱거 부인.'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로버트 크라우더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 아파트를 사겠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가 중개인에게 말했다. "결정 잘하셨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위치 좋은 아파트를 선택하신 겁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틀림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관요' "두 분은 참 운이 좋으십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이 아파트에관심을 가진 분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계약금은 얼마나 걸어야 됩니까?' "1만 달러를 예치하시면 충분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서에 서명하실 때,다시 6만 달러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러면 거래 은행에서 20년이나 30년 할부로 매월 상환금을정해 줄 겁니다. ' 데이비드는 산드라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 "그럼, 계약서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다시 한 번 집 안을 둘러보아도 될까요?" 하고 산드라가 다급한 듯이 물었다. 크라우더는 관대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요 차근차근 살펴보십시오, 싱거 부인. 이젠 부인의 집이니까요' "모든 게 꿈처럼만 느껴져요 데이비드.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요" "실제로 일어나고 있잖아,산드라." 하고 데이비드는 아내의 팔을 잡았다. '난 당신의 꿈을 모두 실현시켜 주고 싶어.'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여보" 두 사람은 조그만 침실이 두 개 있는 마리나 지구의 아파트에서살고 있었다 그러나 곧 태어날 아기까지 셋이 살기엔 비좁은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둘은 지금까지 노브 힐에 있는 복층 아파트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목요일은 데이비드가 근무하고 있는 (킨케이드, 터너,로즈 앤 리플리)국제법률사무소의를 선발하는 날이었다. 스물다섯 명의 후보자들 가운데서 여섯 명이 법률사무소의 파트너(간부사원 겸 공동경영자)라는 간부로 선발되는데, 데이비드가그들 중 한 명으로 선발되리라는 것은 모든 사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그 법률사무소는 샌프라시스코를 비롯해 뉴욕, 파리, 런던, 도쿄사무실이 있는,전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법률사무소 중 하나였다. 때문에 매년 전국의 일류 법과대학의 수석 졸업생들은 그곳을 첫번째 취직 목표로 삼았다. 그 법률사무소는 젊은 신입사원들에게 이른바 채찍과 당근을 양손에 쥐고 접근했다 고참 파트너 들은 그 제도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젊은 법률가들의 시간이나 건강 상태를 무시한 채 자신들이싫은 궂은 일들을 몽땅 그들에게 떠넘겼다. 그것은 엄청난 압력이었으며 하루 24시간을 다 뛰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것이 바로 채찍이었다. 그래도 계속 법률사무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당근 때문에 그힘에 부치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떠맡았다. 당근은 법률사무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거액의 봉급, 거대한 사무소 이익의 분배, 전망 좋고 넓은 전용사무실,인 화장실, 해외 근무, 부수입, 그리고 그들에게만 주어지는 많은특전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킨케이드, 터너, 로즈 앤 리플리) 국제법률사무소에서 6년 간 회사법을 담당해 왔는데, 그것은 때에 따라 크게 유리하기도 하지만 크게 불리하기도 한 이력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끔찍하게 길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지만 파트너가 되기 위해 법률사무소에 매달려 있기로 작정한 데이비드는 그곳에 머물며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파트너로 진급할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부동산 소개소를 나와 쇼핑하러 갔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지붕이 달린 요람과 비싼 아기용 의자,유모차,유아용 보행기와 옷가지들을 샀다. 그들은 뱃속에 있는 아기의 이름을 벌써 제프리라고 지어 놓았다. "아예 아기 장난감도 살까?' 하고 데이비드가 물었다. "장난감 살 시간은 아직 얼마든지 많잖아요' 하고 산드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쇼핑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기라르델리 광장의 부두를 따라 가다가 통조림 공장을 지나 (피셔맨즈워러프)까지 갔다. 그리고 (아메리칸 비스트로)에서 점심 식사를했다. 그날은 토요일로 이름의 머릿글자를 찍어 넣은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권력 과시형 넥타이(주로 핑크색),검은색 계통의 양복,이름을 새겨 넣은 와이셔츠를 입고 고급스런 점심 식사를 하고 아파트 계약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법률가를 위한 완벽한 하루였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3년 전에 조촐한 디너 파티에서 만났다. 데이비드는 법률사무소 고객의 딸과 그 파티에 참석했다. 산드라는 변호사 보조원으로 데이비드가 근무하는 법률 사무소와 라이벌관계에 있는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산드라와 데이비드는 최근 워싱턴에서 있었던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에 관해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저녁 식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논쟁은더 뜨거워져 갔다. 그리고 논쟁을 벌이던 중에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두 사람 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잡담을 나누고함께 춤을 추었다. 데이비드는 그 다음날, 산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판결에 관한 논쟁을 끝내고 싶은데요" 하고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래요' 하고 산드라도 동의했다 "그럼,오늘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그 문제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어 볼까요?' 산드라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이미 그날 밤에 다른사람과저녁 식사 데이트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좋아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오늘 밤이라면 좋아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날 밤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 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법률사무소의 수석 파트너인 조셉 킨케이드는 데이비드에게 일주일의 결혼 휴가를 주었다. (킨케이드 터너,로즈 앤 리플리)국제법률사무소에서 데이비드가 받는 연봉은 4만5천 달러였다. 산드라는 변호사 보조원으로 계속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기를 낳게 되면 지출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몇 개월 후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 봐요" 하고 산드라가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 아기를 맡길 수는 없잖아요,여보 내가직접 아이를 키우고 싶거든요' 초음파 검사 결과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모든 일이 잘 풀릴 테니까.'하고 데이비드는아내를 안심시켰다. 조만간 파트너 지위에 오르면 그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데이비드는 좀더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파트너 선발에 탈락되는 일이 없도록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목요일 아침, 데이비드는 양복을 입으면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 앵커맨이 숨가쁘게 보도를 하고 있었다. "긴급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의사인 스티븐 패터슨 박사의 딸 애슬리 패터슨이 경찰과 FBI가 수사를 계속하고 있던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데이비드는 텔레비전 앞에 얼어붙은 듯 서 버렸다. "...어젯밤,산타 클라라 카운터의 매트 다울링 보안관은 잔인하게 거세를 하고 난자해서 살인을 한 일련의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애슬리 패터슨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울링 보안관은 기자들에게. '그녀가 진범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급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 데이비드의 마음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옛날로 되돌아갔다..., 데이비드가 스물한 살의 나이로 법과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의일이었다. 그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침실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즉시 911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어머니를 <샌프란시스코 메모리얼 병원>으로 실어 갔다. 데이비드는 의사가 나와서 얘기를 해줄 때까지 응급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괜찮으실까요?" 의사는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 심장과 의사가 진찰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친은 심장의 승모판의 코드가 파열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데이비드는 다그쳐 물었다. "우리로서는 모친을 위해 별로 해 드릴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친은 너무 쇠약해서 이식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최소침윤 심장수술은 새로운 수술법인데 매우 위험합니다." 데이비드는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 얼마나... 얼마나 어머니가 사실수 있을까요?" "2, 3일이나 잘하면 일 주일쯤 더 사실 수 있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데이비드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를 살려 줄 만한분이 어디에 안 계실까요?' "글쎄요, 그럴 만한 의사가 있을까요? 단 한 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은 스티븐 패터슨 박사밖에는 없을 겁니다. "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누굽니까?" "패터슨 박사는 최소침윤 심장수술 분야를 개척한 분입니다. 그러나 수술 스케줄과 연구에 쫓겨서 그분의 수술을 받을 기회는 거의 -' 데이비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데이비드는 병원 복도에 있는 공중 전화로 패터슨 박사 진료실에 전화를 걸었다. '패터슨 박사님의 진찰을 받고 싶은데요 제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죄송합니다.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가 밀려서 당분간은 받을 수없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박사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앞으로 6개월쯤 기다리셔야 합니다. ' "우리 어머니는 6개월을 사실 수가 없단 말이에요!" 하고 데이비드는 악을 썼다. "죄송합니다. 다른 의사 선생님이라면 제가 소개를..." 데이비드는 수화기를 부서져라 하고 내동댕이쳤다. 다음날 아침,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의 진료실로 찾아갔다. 대합실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접수계원에게 다가갔다. "패터슨 박사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어머니가 위 독하셔서一" 접수계 아가씨가 데이비드를 한번 훌어보고 나서 말했다. "어제 전화 건 분이죠, 그렇죠?' "맞습니다" "전화상으로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더 이진찰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고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기다려봐야 소용 없다니까요 박사님께서는一" 데이비드는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대합실의 환자들이한 사람 한 사람 안쪽의 진찰실로 불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대합실에는 결국 데이비드 한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6시가 되자 접수계 아가씨가 말했다. "더 이상 여기서 기다려 보았자 소용없어요 패터슨 박사넘은 이퇴근하셨으니까요." 데이비드는 그날 저녁, 집중 치료실에 있는 어머니를 면회하러'면회 시간은 1분입니다. " 하고 간호사가 데이비드에게 주의를주었다. "어머님은 몹시 쇠약해져 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집중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고여 있었다. 어머니의 양쪽 팔과 코에는 인공호흡장치에서 뻗어튜브들이 꽃혀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 당신이 누워 있는 시트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그리고 두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데이비드는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어머니, 저예.요 제가 어머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해줄게요. 어머니는 이제 곧 괜찮아질 거예요' 눈물이 양쪽 努으로 줄줄이 흘러 내렸다. "제 말 들었죠?저와 함께 이 병과 싸우는 거예요.우리 둘이 함께 있는 한 그 누구도 감히 어머니와 저를 갈라놓지 못할 피예요곧 이 세상에서 가장 훌릉한 의사를 불러올게요 어머니는 잠자코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요. 내일 다시 올게요" 그리고는 몸을 구부려 어머니의 뺨에 키스를 했다. '내일까지 살아 계실 수 있을까?' 다음날 오후,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의 개인 진료실이 있는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 관리인이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관리인이 데이비드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대답했다. "아내가 패터슨 박사님한테 진찰을 받고 있거든요" 관리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양반은 정말 훌륭한 의사이시지요." "얼마 전에 그분이 새로 구입한 신형 차에 대해서 자랑을 하던데,"하고 데이비드는 기억을 해내려는 듯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 '캐딜락이라고 했던가?'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하고 관리인은 구석에 주차되어 있는 롤스로이스를가리켰다. '저기 있는 롤스로이스겠지요." 데이비드는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하지만 그분은 캐딜락도 갖고 있다고 말한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해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죠." 하고 관리인은 말했다. 그는 다른 차가 들어오자 그쪽으로 바쁘게 뛰어갔다. 데이비드는 어슬렁어슬렁 롤스로이스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도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롤스로이스의 문을 열고재빨리 뒷좌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는 그곳에 드러누워서 몸을 구부린 채 불편함을 참으면서 패터슨 박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6시 15분이 되자 자동차 앞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운전석에 들어와 앉는 것이 느껴졌다 엔진 걸리는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패터슨 박사님." "잘 있게, 마르코." 자동차가 주차장을 나와 커브를 도는 게 느껴졌다. 데이비드는 2분쯤 더 기다렸다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패터슨 박사가 백미러로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돈이 목적이라면 안됐군.난 현찰은 그다지 많이 갖고 있지 않소" "저쪽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커브에서 차를 세우세요." 패터슨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는 의사가 불안한 태도로 옆 골목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커브 길에 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현찰은 모두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패터슨 박사가 말했다. "이 자동차도 가지시오 폭력을 쓸 필요는 전혀없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데이비드는 앞좌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저는 강토짓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자동차도 필요 없습니다" 패터슨 박사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젊은이?" "제 이름은 싱거입니다. 어머니가 위독해요 저는 다만 어머니를살리고 싶어서..." 패터슨 박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오르더니 금세 분노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 비서와 진찰 약속을 하면 되잖소...," "진찰 약속을 받아내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서 이러는 겁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악을 썼다. "어머니는 지금 죽어 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어머니를 돌아가시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요' 데이비드는 될 수 있는 한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어머니를 살려낼 수 있는 분은 박사님뿐이라고 어떤 의사 분이 알려 주었습니다. " 패러슨 박사는 아직도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어떤 병으로?" "어머니는- 심장의 승모판 코드가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다른의사들은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박사님만이 어머니를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하더군요' 패터슨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스케줄이..." "저는 박사심의 스케줄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요! 저는 어머니를살려야만해요 박사님께서 꼭 어머니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제 전부니까요一" 오랜 침묵이 계속되었다. 데이비드는 눈을 꼭 감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 패터슨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도 약속할 수가 없네. 그러나 어머님을한번 보기로 하세. 지금 어디 계신가?' 데이비드는 몸을 돌려 패터슨 박사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메모리얼 병원)의 집중 진료실에계십니다. " "그럼 내일 아침 8시에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세." 데이비드는 너무나 감격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선생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一" "내 말을 기억하게.나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네, 그리고 또한 가지,난 이런 비참한 꼴을 두 번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네.다음 번에는 전화를 걸도록 노력해 보게," 데이비드는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패터슨 박사가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나?'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 "그래? 이번에는 또 무슨 문제인가?' "저는-사실 가진 돈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법과 대학생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대학교를 다니는 형편입니다. " 패터슨 박사는 잠자코 데이비드를 응시했다. 데이비드는 단호하면서도 자신 있게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 돈만은 박사님께 갚아 드리겠습니다. 돈을갚는 데 평생이 걸린다 하더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박사님의수술비가 얼마나 비싼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一' "돈을 갚겠다는 자네의 말을 어떻게 믿지?' "저에게는 달리 부탁을 드릴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패터슨 박사님. 이렇게- 이렇게 빌겠습니다. ' 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자네, 지금 법과 대학 몇 학년인가?' "금년에 입학했습니다. ' "그런데도 자네는 나에게 수술비를 갚을 수 있다고 믿고 있나?' "하느님께 맹세하겠습니다. " '빨리 자동차에서 내리지 못하겠나!" 집으로 돌아온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를 납치해서 협박한 죄로틀림없이 경찰에 체포당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불안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마음속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로 패터슨 박사가 병원에 나타나느냐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데이비드가 집중 진료실에 들어가보니 패터슨 박사는 이미 와서 어머니를 진찰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 안이 바짝 말라붙은 채 진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패터슨 박사는 그곳에 모여 있던 의사들 중 한 사람을 돌아다보았다. "환자를 빨리 수술실로 옮기게, 알. 어서 !" 의사들이 데이비드의 어머니를 바퀴가 달린 들것에 옮겨 싣기시작하자, 데이비드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는 괜찮아지겠지요...?' "어디 두고 보세 !" 6시간 뒤,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이비드에게 패터슨 박사가 다가왔다. 데이비드는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고는 무서워서 차마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곧 좋아지실 걸세. 자네 어머니는 매우 강한 분이시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려 데이비드는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입 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패터슨 박사는 데이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의 이름이 뭔가?' '데이비드입니다. 선생님." "그래, 데이비드군 자네는 내가 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는지그 이유를 알고 있나?' "모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였네. 자네 모친의 상태는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네. 나는 도전을 좋아하거든.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자네때문이었네,' "저 때문이라면-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자네가 보여준 행동은, 내가 젊다면 나 자신이 했을지도 모르는행동이었네. 자네는 임기응변의 지혜를 보여 주었네.그런데 말일세 ," 패터슨 박사의 말투가 달라졌다. "지난번에 나에게 응분의 보수를 지불하겠다고 맹세했는데,그말 기억하나?' 그러자 데이비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선생님. 반드시 언젠가一" "당장 갚는 게 어떤가?" 데이비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요?' "자네에게 제안을 한 가지 하겠네, 자네, 자동차 운전을 할 줄 아나?' "네, 선생님...," "좋아. 난 지금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데 지쳤네. 자네가 앞으로일 년 동안 매일 아침 나를 출근시켜 주고, 매일 저녁 6시나 7시에퇴근을 시켜 주는 걸세. 일 년이 지나면 자네가 진 빛을 모두 청산한 것으로 간주해 주겠네...," 그것이 거래 조건이었다.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가 어머니를살려 준 대가로 일 년 동안 매일 아침 박사를 병원으로 태워다 주고 저녁 6시나 7시에 집으로 태워다 주었다. 그 일 년 동안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를 더할 수 없이 존경하게 되었다. 이따금 고함을 치고 신경질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는데이비드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사심이 없는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패터슨 박사는 자선 사업에 앞장섰으며 여가 시간을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에 바치고 있었다. 진료실이나 병원을 왔다갔다하면서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와자주 얘기를 나누곤 했다. "자네는 어떤 법률을 전공하고 있나?' '형법입니다. " "왜 형법인가?그것을 배워서 악당들이 구치소로 가는 것을 구해주려고?' "아닙니다. 선생님. 이 세상에는 법을 몰라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생하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 일 년이 되었을 때,패터슨 박사는 데이비드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우리는 비겼네...," 데이비드는 오랫동안 스티븐 패터슨 박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늘상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를 통해 박사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 에이즈에 걸린 갓난아기를 위한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 (패터슨 메디컬 센터)의 개설을 위해 케냐에도착하다' '(패터슨 자선 숙박소), 오늘 기공식.' 패터슨 박사는 세계 어느 곳이든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달려갔다. 산드라의 목소리가 데이비드를 과거의 세계로부터 끌어냈다. "데이비드, 당신 괜찮아요?" 데이비드는 텔레비전 수상기에서 몸을 돌렸다. "경찰이 방금 연쇄 살인범으로 스티븐 패터슨 박사님의 딸을 체포했다는군.' 산드라가 말했다. "어머나 끔찍해라! 너무 안됐어요, 여보." "그분은 우리 어머니에게 소중한 생명을 7년 간이나 주신 분이야. 그런 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세상은 공평치 않은것 같아 그분은 내가 지금까지 아는 사람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신사였어,산드라.절대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될 분이셔.그런 분에게 어떻게 그런 괴물 같은 딸이 있을 수 있겠어?" 데이비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 출근 시간에 늦겠네!" "아침 식사도 하지 않았잖아요' "너무 혼란스러워서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는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오늘... 파트너를 선발하는 날인데..." "당신은 파트너로 뽑힐 거예요 문제 없을 거예요" "여보, 그렇지가 않아. 항상 이변이 생기는 것이 승진 문제라니까.매년,틀림없이 선발될 거라고 장담하던 사람이 낙방의 쓰라림을 맛보곤 했거든." 산드라는 남편을 포옹하면서 격려하듯이 말했다. "당신을 선발해서 득을 보는 것은 오히려 회사 쪽이라고요" 데이비드는 몸을 기울여 아내에게 키스를 했다. "고마워, 여보 당신 없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아요 어쨌든 소식을 아는 대로 즉시 전화 걸어줘요, 알았죠, 데이비드?' "물론 전화를 걸고 말고 오늘 밤에는 외식하며 축하를 합시다!" 그리고 그 말이 마음속에서 메아리를 쳤다. 몇 년 전인가,그는다른 여자에게 말했었다. "외식하며 축하를 합시다!" 라고 그리고 데이비드는 그녀를 죽이고 말았다. (킨케이드, 터너. 로즈 앤 리플리) 국제법률사무소는 샌프란시스코의 번화가에 자리한 트랜스 아메리카 피라미드 빌딩의 세 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싱거가 문으로 들어서자 많은 직원들이 따뜻한 미소로그를 맞이했다. 오늘 아침 따라 '굿모닝'이라는 아침 인사가 전혀다르게 들려왔다. 마치 직원이 미래의 파트너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에 데이비드는 신임 파트너를위해 새로 단장한 사무실 앞을 지나쳤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곳은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는 크고 근사하게 꾸며진 사무실로,샌프란시스코 만의 장관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창을 면해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데이비드는 한순간 멈춰 서서 황흘하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그의 비서인 흘리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싱거 씨." 여비서의 목소리에는 경쾌한 가락이 담겨 있었다. "안녕, 홀리." "메세지가 와 있어요." "누구" "킨케이드 변호사님께서 오후 5시에 사무실에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세요' 여비서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드디어 진짜로 파트너가 되나 보군." "알았어 !" 홀리가 데이비드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 말도 꼭 전해 드리고 싶어요 오늘 아침 킨케이드 변호사님의 비서인 도로시와 커피를 마셨는데요, 싱거 변호사님이 리스트의 톱에 올라 있다고 하더군요" 데이비드는 빙긋 웃었다. "고마워, 홀리.' "커피 드시겠어요?' "들고 말고." "뜨겁고 진하게 드리면 되죠?' 데이비드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지시서와 계약서와파일 등이 높이 쌓여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킨케이드 변호사님께서 오후 5시에 사무실에서 만나보고 싶다고하세요... 리스트의 톱에 올라 있다고 하더군요" 데이비드는 그 소식을 당장 산드라에게 알려 주고 싶은 충동을느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 파트너로 실제로 임명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자.' 하고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들을처리했다. 11시에 홀리가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패터슨 박사님이 찾아와서 변호사님을 만나겠다고 하는군요그분은 면담 약속도..." 데이비드는 깜짝 놀라 얼굴을 쳐들었다. "패터슨 박사가 이곳에?" "네, 그렇다니까요" 데이비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분을 어서 들여보내요"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들어왔다. 데이비드는 안쓰러운 눈길로쳐다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패터슨 박사는 늙고 지쳐 보였다. "오랜만일세, 데이비드." "패터슨 박사님, 앉으시지요' 데이비드는 의자에 천천히 앉는 박사를 지켜보았다.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 패터슨 박사는 지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네." 하고 박사는 얼굴을쳐들었다. "자네가 날 좀 도와주어야겠네, 데이비드." "물론이죠' 하고 데이비드는 열의를 담아서 말했다 '제가 할 수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말입니다. ' "자네가 애슬리의 변호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네,"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 변호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형사 전문 변호사가 아니거든요" 패터슨 박사가 데이비드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애슬리는 범죄자가 아닐세," "아직 제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저는 상법 전문 변호사입니다. 대신 뛰어난 형사 전문 변호사를 추천해 드릴 수는一" "벌써 대여섯 명의 형법 전문 변호사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네. 그들 모두 애슬리를 변호하고 싶어하더군.' 그는 몸을 앞으로 바짝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딸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네. 워낙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라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지.그들에게는 애슬리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걸세.절대 나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네.그 아이는? 전부니까 말일세.' 데이비드는, '저는 어머니를 살려야해요 박사님께서 꼭 어머니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저의 전부니까요-'하고 말했던자신이 문득 떠올랐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저도 진심으로 박사님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一'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자네는 형사 전문 법률사무소에 들어갔잖은가?' 데이비드의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一' "여러 해 동안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했잖은가?'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하지만-전 이미 그쪽은 포기했습니다.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一'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었지, 데이비드. 난 아직도 자네가 그일을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네.그런데 무엇 때문에 형사 전문 변호사를 그만두고 상법 전문 변호사가 된건가?' 데이비드는 잠시 침묵을 지킨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패터슨 박사는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끄집어내서 데이비드에게건네주었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읽지 않아도 그곳에 무엇이 쓰여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친애하는 패터슨 박사님께, 제가 박사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그리고 제가 박사님의관대함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는 도저히 말로 다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박사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저에게 요구만 하십시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만사를 제쳐놓고 하겠습니다. 데이비드는 그 편지를 읽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데이비드, 애슬리와 만나 주겠나?"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따님을 만나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전..." 패터슨 박사는 몸을 일으켰다. "고맙네,"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가 문 밖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망연자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네는 형사 전문 변호사를 그만두고 상법 전문 변호사가 되었나?" '왜냐하면 제 잘못으로 제가 사랑하던 한 무고한 여자가 죽음을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 다시 다른 인간의 생명을 맡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나는 애슬리 패터슨을 변호할 수가 없어.' 데이비드는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홀리, 킨케이드 씨에게 지금 나를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봐주겠어?' "네, 변호사님." 30분 뒤, 데이비드는 조셉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의 화려한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킨케이드 변호사는 백발이 성성한 60대 노신사로,몹시 까다롭고 포용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어서 오게.' 하고 킨케이드 변호사는 데이비드가 문을 통해 들어오자 먼저 입을 열었다. "성미도 급하구먼, 젊은 친구. 이따 오후5시에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 데이비드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일을 의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조셉.' 몇 년 전에 데이비드는 그를 '조'라고 부르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때 노인은 화를 벌컥 냈다. "나를 다시는 조라고 부르지 말게." "거기 앉게나,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시거를 피우겠나? 쿠바에서 들여온 것일세.' "아뇨, 괜찮습니다. "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조금 전에 제 사무실에 왔었습니다. " 킨케이드가 말했다. "그 사람 오늘 아침에 뉴스에 나왔더군.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야. 그래, 그 사람이 무슨 일로 자네를 찾아왔었나?' "그분이 저에게 딸의 변호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킨케이드는 놀란 얼굴로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형사 전문 변호사가 아닐세." "저도 그분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부탁하더란 말인가?" 킨케이드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을꺼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도 패터슨 박사를 고객으로 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네.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니까.아마 우리 법률사무소에 많은 고객들을 끌어다 줄 수 있을 걸세. 패터슨 박사는 몇몇 의학 재단과 연줄이 닿아 있고一" "그 밖에도 또 있습니다." 킨케이드 변호사는 데이비드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뭔가?" "이미 그분에게 딸을 만나 보겠다고 약속 드렸습니다. " "알겠네.뭐 피고를 만나 보는 거야 별로 해가 될 것은 없겠지. 그녀를 만나 보게나 그 다음에 그녀를 변호할 우수한 형사전문 변호사를 찾아내도 늦지 않으니까.'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 "좋아.그렇게 되면 우리도 패터슨 박사에게 좋은 점수를 얻게되겠지.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게.' 그는 미소를 지었다. 5시에 다시 만나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셉."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데이비드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패터슨 박사는 내가 자기 딸을 변호해야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다중 인격 장애 12 애슬리 패터슨은 산타 클라라 구치소 감방 안에 앉아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슬리는 이렇게 구치소에 들어와 있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쇠창살이 스토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이기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저 무시무시하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피해,감방이 담요처럼 몸 주위를 둘러싸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생활 전체가 혼란스러운 악몽이 되어 버렸다. 애슬리는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모든 일들에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파트에 침입해서 온갖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시카고로의 의문의 여행... 거울 위에 써 놓은문구... 그리고 지금 경찰은 이 끔찍한 죄를 모조리 자신에게 덮어씌우려 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어떤 무시무시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그녀는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날 아침 일찍,교도관이 애슬리의 감방으로 찾아왔다. "면회 신청자가 있소" 교도관이 애슬리를 면회실로 데리고 갔다. 면회실에서는 아버패터슨 박사가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패터슨 박사는 일어나서 비탄에 잠긴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얘야...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애슬리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전 정말 그 끔찍한 일들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아버지. 경찰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나도 너한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가 네게뒤집어씌우고 있는 거야. 하지만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 애슬리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버지를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었는지,그녀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고 패터슨 박사가 말했다. '모든 일잘 해결될 테니까. 이미 너를 변호해 줄 변호사를 구했단다. 데비드 싱거 변호사란다. 변호사 가운데서도 가장 유능한 젊은 변호사란다. 아마 곧 너를 만나러 올 게다. 그러면 그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려무나.' 애슬리는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절망적으로 말했다. "아버지, 전-저는 변호사에게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우리는 사건의 진상을 꼭 알아내야만 해, 애슬리. 내가 있는 한어느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게다. 그 누구도! 절대로 말이다!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겠지?너는 내 전부란다. 애슬리 !" "저 역시 아버지뿐이 에요" 하고 애슬리가 속삭였다. 패터슨 박사는 그곳에 한 시간을 더 머물렀다. 아버지가 떠나자애슬리의 세계는 갇혀 있는 조그만 감방으로 좁혀졌다. 그녀는 간이침대에 누워서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곧 끝날 거야.자고 나면 이 모든 게 한낱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한낱 꿈이었다는 것을...한낱 꿈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교도관의 목소리 때문에 애슬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면회인이 왔소" 애슬리는 다시 면회실로 이끌려 나갔다. 면회실에는 세인 밀러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애슬리가 들어서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슬리 ...,"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나, 세인 실장님 !"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나는게 이토록 기쁜 적은 없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마치 그가 자신을 이곳으로부터 석방시켜주기위해 찾아온 것처럼 여겨졌다 "실장님,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뻐요!" "나도 너무 기쁘군.' 하고 세인 실장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우중충한 면회실 안을 둘러보았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야.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난-난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게 된 거지, 애슬리?' 애슬리의 얼굴에서 천천히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냐구요-?그럼 실장님은 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一' "신경 쓸 것 없어." 하고 세인이 얼른 말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구. 애슬리는 변호사에게 밖에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되니까 말야." 애슬리는 우두커니 선 채로 세인 밀러를 응시했다. 그는 그녀가유죄라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곳에 무엇 때문에 왔죠?' "글쎄, 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정말로 싫지만, 회사측에서 애슬리를 파면시켰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그러니까 회사는 이런 좋지 못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더 이상 직원으로 둘 수 없다는 거지. 신문을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 애슬리가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벌써 언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회사측으로서는 입장이 곤란해진 거야. 애슬리도 그건 이해할 수 있겠지? 물론 이런 조치에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아." 산 호세로 차를 몰고 가면서 데이비드 싱거는 애슬리 패터슨을만나서 할 얘기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것을 모두 알아낸 다음 그 정보를미국 최고의 형사 전문 변호사인 제시 귈러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했다 만일 누군가가 애슬리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은 제시뿐이었다. 데이비드는 다울링 보안관 사무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그는보안관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입니다. 애슬리 패터슨을 만나고 싶은데요一" "그녀도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데이비드는 깜짝 놀라서 보안관을 바라보았다. "그녀가요?" "그렇습니다. ' 하고 다울링 보안관은 조수 쪽을 돌아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로 오시지요" 하고 보안관 조수가 면회실로 데이비드를 안내했다. 몇 분 후, 애슬리 패터슨이 모습을 나타냈다. 애슬리 패터슨을 본 순간 데이비드는 그녀의 변한 모습에 깜짝놀라고 말았다. 그는 오래 전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그녀 아버지의운전사노릇을 할 때 애슬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애슬리는 매력적이고 똑똑한 소녀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잔뜩 겁에 질려 있긴 했으나 매우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애슬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안녕, 애슬리? 나, 데이비드 싱거요" "아버지가 당신이 찾아올 거라고 말해 주었어요" 애슬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거요" 애슬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질문을 하기 전에,당신이 나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다 비밀이 보장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군요 지금부터 하는 말은바로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나만은진실을 알아야겠죠" 그리고 데이비드는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 들어갈 의도는 애당초에는 없었다. 그러나 제시 귈러 변호사에게 자신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건네주고 싶었고, 또 그래야만 그에게 이 사건을 맡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입을열었다. "애슬리, 당신이 그 남성들을 모두 살해했나요?' "아니예요!" 애슐리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죄가 없어요!" 에이비드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이전에 짐 클리어리와 아는 사이였습니까?" "네,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둘은 결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짐을 해치다니요, 말도 안 돼요. 난 짐을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구요." 데이비드는 잠깐 애슐리를 주시하고 있다가 다시 종이쪽지를 들여다보았다. "데니스 티블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데니스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직장 동료였어요. 데니스가 살해당하던 날 밤에 그를 만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난 그 살인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어요. 나는 그때 시카고에 가 있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잠자코 애슐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말을 믿어주세요. 난... 나에게는 그 사람을 죽일 하등의 이유가 없었어요." 데이비드는, '좋습니다'하고 다시 메모지를 보았다. "당신과 클로드 패랑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경찰도 내게 그 사람에 관해서 물어보더군요. 하지만 난 그 사람의 이름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전혀 알지도못하고 사람을, 왜 내가 죽였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애슈리는 호소하는 눈빛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잘 모르시겠어요?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있다고요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체포한 거예요" 애슬리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리처드 멜튼을 압니까?' "그 사람도 누군지 몰라요" 데이비드는 애슬리가 다시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애슬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그날 밤에 날 지켜주려고 내 아파트에머물러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죽이겠다고 협박했거든요 난 침실에서 잠을 잤고,그분은 거실 소파에서잠을 잤어요 그런데-그 다음날 그의 시체가 뒷골목에서 발견된거예요'애슬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왜 그를죽이겠어요? 그는 나를 도와주고 있었는데요!" 데이비드는 황당한 표정으로 애슬리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 사건은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군.' 하고 데이비드는생각했다. 혹시 애슬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니면희대의 명배우란 말인가.' 데이비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오겠습니다. 우선 보안관과 얘기를 좀 해 보아야겠습니다. "2분 뒤, 그는 보안관의 사무실에 있었다. "그래,그녀와는 얘기를 해 보았습니까?" 하고 다울링 보안관이물었다. "네,그런데 내 생각엔 보안관님이 뭔가큰 실수를 하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뜻이오, 변호사 양반?" "내 말뜻은, 당신이 체포를 지나치게 서둔 나머지 무고한 사람을잡아 가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애슬리 패터슨은 당신이 살해했다고주장하고 있는 피해자들 가운데 두 사람은 알지도 못하던데요' 희미한 미소가 다울링 보안관의 입술에 떠올랐다. "그녀가 변호사님까지도 속여넘긴 모양이군요 하긴 우리들 모두 감쪽같이 속아넘어갔으니까.' "도대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당신에게 보여 줄 것이 있소,변호사 양반.' 하고 보안관은 한개의 서류철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서류 몇 장을 데이비드에게건네주었다. "이것이 살해당한 다섯 명의 남성들에 관한 검시관의 보고서 사본과 FBI의 보고서, DNA보고서, 인터폴(국제 형사 경찰)의 보고서입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살해당하기 직전에 여성과 섹스를 했습니다. 모든 살인 현장에는 질의 흔적물과 지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그 사건에는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성이 관련되어 있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FBI가 이러한 모든 증거들을 대조해보았는데 거기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짐작이나 갑니까?그 각기 다른 여성이 바로 애슬리 패터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것입니다. 즉,애슬리의 DNA와 지문이 모든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똑같이 발견되었단 말입니다. ' 데이비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안관을 응시했다. "그게- 그게 확실합니까?' "물론 확실합니다. 인터폴과 FBI 그리고 검시관 사무소 다섯 군데가 작당해서 당신의 고객을 모함하고 있지 않는 이상에는 말입니다. 여기에 그 모든 증거가 있습니다. 변호사 선생. 애슬리 패터슨이 살해한 사람 중 하나는 내 매제입니다 애슬리 패터슨은 곧제7급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을 것이고 그녀는 분명히 유죄 선고를받을 겁니다. 그 밖에 또 무슨 볼일이 남아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애슐리패터슨 양을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 그들은 애슬리를 다시 면회실로 데리고 왔다. 애슬리가 면회실안으로 들어서자 데이비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쏘아붙였다. "왜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뭐라구요? 전 변호사님께 거짓말을 한 적 없어요.전 정말 죄가없어요 전..." "경찰은 당신을 열두 번은 단두대에 매달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증거물들을 갖고 있더군요 내가 처음에 분명히 얘기했지 않소?진실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이오.' 애슬리는 한참 동안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변호사님께 진실을 말했어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게 없어요" 애슬리의 말을 들으면서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사실이야 어찌됐든 이 아가씨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진심으로믿고 있는 거야. 나는 지금 정신병자와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제시 귈러 변호사에게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까?' "정신과 의사를 한번 만나 보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나요? 좋아요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어요' "내가 알아봐 드리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도중에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어찌됐든 난 패터슨 박사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어.애슬리 양을만나서 얘기를 들어 주었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만일 그렇다면 그녀는 미친거야.되도록 빨리 그녀를 제시 변호사에게 넘겨야겠어.그럼 제시는 정신 이상을 주장할 테고 그러면 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날 거야.' 그는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더할 수 없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메모리얼 병원)에서 패터슨 박사는 동료 의사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건 정말로 치욕스러운 일일세, 스티븐 박사. 자네가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다니, 참 안됐군...," "자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걸세.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그처럼 참하고 똑똑한 아이가 어쩌다가...," 그리고 그러한 각각의 위로의 말 이면에는 '우리 아이가 아닌것이 천만다행이야.'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데이비드는 법률사무소로 돌아오자 서둘러 조셉 킨케이드를 만나러 갔다. 킨케이드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런, 벌써 7시가 지났군 그래, 데이비드 여지껏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래, 패터슨 박사의 딸은 만나보았나?' "네, 만나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녀를 변호해 줄 변호사는 구했나?" 데이비드는 잠시 망설였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보다 전 지금 그녀를 진찰할 정신과의사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그녀를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 조셉 킨케이드는 의아스러운 얼굴로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솔직히 말해서,난 자네가 왜 이렇게 이 사건에 관심을갖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자네도 알고 있다시피,난우리 법률사무소가 그처럼 추악한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변호사님.그리고 제가 이 일에 열중하는 건 예전에 그녀의 부친에게 큰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한 약속도 있고 해서..." "그렇다고 어떤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아니잖는가? 자네가 계약서라도 써 주었단 말인가?' "그런건 아닙니다. ' "그렇다면 단지 도덕적인 채무 때문이라는 얘기군?' 데이비드는 그를 한순간 노려보며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으나 곧생각을 바꾸었다. "그렇습니다. 단지 도덕적인 채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 "알았네.그렇다면 하루빨리 패터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돌아오게. 자네의 일은 그 후에 다시 논하기로 하세." 파트너로의 승진에 관한 얘기는 끝내 한 마디도 없었다. 그날 저녁 데이비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파트 안은 어둠에묻혀 있었다. "산드라?'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데이비드가 현관 홀의 불을 켜자 산드라가 갑자기 주방에서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놀랐죠? 지금 축하 파티를 열려고..." 그러다가 산드라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중단했다. "뭐가 잘못되었어요, 여보?" "아냐, 약간 발표가...지연된 것뿐이야.' "킨케이드 수석파트너와 면담하는 날이 오늘 아니었던가요?' "그랬었지.하여간 자리에 앉아.당신에게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으니까.' 소파에 앉자마자 데이비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산드라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어.스티븐 패터슨 박사님께서오늘 아침에 날 만나러 사무실로 찾아오신 거야" "그분이오? 무엇 때문에요?' "그분이 나에게 자신의 딸을 변호해 달라고 부탁하더군.' 그러자 산드라가 깜짝 놀라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데이비드..., 당신은 형사 전문 변호사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나도 그 점을 박사님에게 강조해서 말했지.그렇지만 여러 해 동안 형사 관련 사건을 다뤘었던 건 사실이잖아."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되었잖아요?박사님께 당신이 곧 법률사무소에서 파트너가 될 거라는 사실을 얘기했나요?" "아니 자신의 딸을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라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던지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어.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제시 귈러 같은 유능한 변호사를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해도 그분은 그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막무가내로떼를 쓰는 거야.' "그래요, 그분으로서는 얼마든지 유능한 변호사를 구할 수 있잖아요" "물론이지.그래서 일단 그분의 딸을 만나보겠다고 약속하고 오후에 구치소로 그녀를 찾아갔었어.' 산드라는 소파에서 몸을 꼿꼿이 일으켜 세웠다. "킨케이드 씨가 그런 일에 관해서 모두 알고 있어요?" "그럼,내가 모두 얘기를 했으니까.그는 별로 탐탁해하질 않더군" 그는 킨케이드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우리법률사무소가 그처럼 추악한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네.' "패터슨 박사의 따님은 어떻던가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군." "그게 무슨 뜻이죠?" 산드라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죄가 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런 일이 가능한가요?" "큐퍼티노의 보안관이 그녀에 관한 수사 기록을 보여 주었는데,그녀의 지문과 DNA가 모든 살인 사건 현장에 남아 있었다는 거야." "그럼, 당신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그러잖아도 그녀를 만나고 나서 로이스 세일럼에게 전화를 걸었어.그 사람은 제시 귈러의 법률사무소가 고용하고 있는 정신과의사지.로이스에게 애슬리를 진찰하게 한 다음,그 보고서를 그녀의 아버지에게 제출하도록 할 생각이야.그럼 패터슨 박사는 다른정신과 의사를 고용하거나, 아니면 그 보고서를 이 사건을 맡게 될변호사에게 넘겨주겠지." "알겠어요" 산드라는 고민에 찬 남편의 얼굴을 응시했다. '킨케이드 씨는 당신의 파트너 승진 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던가요, 데이비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 산드라는 애써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마 내일은 그 건에 관해서 뭐라고 얘기를 하겠죠.희망을 가져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로이스 세일럼 박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식의 턱수염을 기른 중년 신사였다. '아마 저건 우연한 일치에 지나지 않을 거야.' 하고 데이비드는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저 사람이 프로이트처럼 보이려고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제시에게 당신에 관해서 여러 번 얘기를 들었습니다. ' 하고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그는 당신을 대단히 좋아하더군요' "저도 제시를 좋아합니다. 세일럼 박사."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더군요 내가 볼 때 패터슨 사건은 분명정신병자의 소행입니다. 정신장애 항변을 할 계획이오?' "사실," 하고 데이비드는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다. "전 이 사건을맡고 있지 않습니다. 패터슨 양을 위한 변호인을 선임하기 전에 그녀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얻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 데이비드는 정신과 의사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사실들을 말했다. "패터슨은 자신이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확보된 증거물들을 보면 그녀가 모든 범죄를 저지른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정신 상태를 한번 진찰해 보기로 할까요?' 최면 요법 실시는 산타 클라라 구치소의 심문실에서 이루어졌다. 방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장방형의 나무 테이블과 네 개의 나무 걸상뿐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피곤해 보이는 애슬리는 여 교도관에 의해 방안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하고 여 교도관이 물러갔다. 데이비드가 소개를 했다. "애슬리 양, 이분은 세일럼 박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애슬리패터슨 양입니다. ' 세일럼 박사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애슬리 양.' 애슬리는 그곳에 선 채 신경질적으로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도망쳐 나갈 것처럼 보였다. "싱거 씨한테 최면 요법을 기꺼이 받겠다고 했다던데,그게 사실입니까, 애슬리 양?' 침묵 세일럼 박사는 계속 말했다. "당신에게 최면을 걸어도 되겠습니까,애슬리 양?" 애슬리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전 이만 나가 있겠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가 끼어 들었다. '만약 一" "잠간만요" 하고 세일럼 박사가 데이비드 변호사에게로 다가왔다. '변호사께서도 이곳에 있어 주시오.' 데이비드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을 후회했다. '더 이상 이 사건에 깊이 개입해서는 안 돼.' 하고 데이비드는결심했다. '이것으로 이 사건과는 손을 끊어야 하는데.' "좋습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마지못해서 대답을 했다 그는 이일을 얼른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킨케이드를 만나야하는 게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세일럼 박사가 애슬리에게 말했다. "자아, 아가씨, 의자에 앉아 주십시오" 애슬리는 의자에 앉았다. "이전에 최면에 걸려본 경험이 있습니까,애슬리 양?' 애슬리는 순간적으로 망설였으나 얼른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 "힘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긴장을 풀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전혀 걱정할 것 없어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테니까요 긴장을 풀도록 하세요 좋습니다. 몸의 긴장을풀고 당신의 양쪽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진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무척이나 힘든 일을 겪어 왔습니다. 당신의 몸은 지쳤습니다. 아주 많이 피곤합니다. 당신이 원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잠뿐입니다. 그냥 눈을 감고 긴장을 푸세요 당신은 무척 졸립습니다...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애슬리가 최면에 걸리는 데는 10분이 걸렸다. 세일럼 박사가 애슬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애슬리 양,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네, 전 구치소에 있어요" 애슬리의 목소리는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자신이 왜 구치소에 들어와 있는지 그 이유도 알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내가 무엇인가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그게 사실은 아닌가요?당신이 정말로 무엇인가 나쁜 짓을 하진 않았나요?' "아닙니다" "애슬리 양, 당신은 누군가를 죽였습니까?' "아뇨" 데이비드는 놀라서 세일럼 박사를 쳐다보았다. '최면에 걸리면 사람들은 진실을 털어놓는다고 하던데.' "그러한 살인들을 누가 저질렀는지 혹시 알고 있는 게 없습니까?" 갑자기 애슬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숨을 짧게 끊어서 가쁘게쉬기 시작했다. 두 남자는 그녀의 외적 인격이 변하는 것을 경악한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애슬리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애슬리는 의자에서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활기가 넘쳤다. 또눈을 크게 뜨자.두 눈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변신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지켜보고 있는 두 남자 앞에서 애슬리는 뜻하지 않게 영국 사투리가 섞인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쌀을 반 파운드, 당밀을 반 파운드 그것들을 섞어서 멋지게 빛어 보자.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데이비드는 어안이 벙벙해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저 아가씨가 누구를 속이려고 저런 짓을 하는 거지? 아주 교묘하게 다른 사람 행세를 하고 있군 그래.' "당신에게 몇 가지 더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애슬리?"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박사를 보면서 영국 사투리로 말했다. "나는 애슬리가 아니에요" 세일럼 박사는 데이비드와 시선을 주고받고는 다시 애슬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슬리가 아니라면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토니예요 토니 프레스코트"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잘도 말하는군.'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코미디를 계속할 생각일까? 그녀 때문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공연히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애슬리,' 세일럼 박사가 다시 불렀다. "토니라니까요" '아예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기로 작정했나 보군,'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좋아요, 토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一"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게요 하루라도 빨리 이 음침한 곳에서 나가고 싶어요 혹시 당신이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 줄 수 있나요?' "그건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 하고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사건에 관해서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一' "-미스 새침데기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살인 사건 말인가요-? 그 사건에 관해서 라면 내가 얘기를 해 줄 수도 있어요...," 갑자기 애슬리의 표정이 또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와세일림 박사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애슬리는 의자 속에서 갑자기 오그라든 것처럼 보이더니 얼굴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까지 도저히 믿을 수없는 변신을 거듭했다. 마침내 그녀는 이탈리아 사투리가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토니... 제발 더 이상 말을 해서는 안 돼.' 데이비드는 황당한 얼굴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토니라니?"하고 세일럼 박사가 바짝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공연히 방해를 한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세일럼 박사님.' 그러자 세일럼 박사가 황급히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저는 알레트예요 알레트 피터스.' "맙소사! 이건 연기가 아니잖아.'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이건 진짜야.' 그리고는 세일럼 박사를 돌아다보았다. 세일럼 박사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들은 분신입니다. ' 데이비드는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져서 박사를 응시했다. "그녀들이 뭐라고요?' "나중에 설명해 드리지요" 세일럼 박사는 다시 애슬리에게 돌아섰다. "애슬리... 아니, 알레트지. 참... 당신들은 몇 사람이나 그 속에존재하고 있죠?' "애슬리를 빼 놓고 토니와 나 두 사람뿐이에요?-" 하고 알레트가대답했다. "당신은 이탈리아 사투리를 쓰고 있군요" "그래요 전 로마에서 태어났거든요 로마에 가본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난로마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이런 대화를 듣고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하고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로마는 매우 아름다운 도시지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토니를 알고 있습니까?' "그럼요, 물론 알고 말고요' "그녀는 영국 사투리를 쓰고 있던데요?' "토니는 런던에서 태어났으니까요" "그렇군요 알레트,당신에게 그 살인 사건들에 관해서 물어 보고 싶은데요 당신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짚이는 게 있습니까...?' 그때 데이비드와 세일럼 박사는 눈앞에서 다시금 애슬리의 얼굴과 인격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토니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중한 시간을 그녀 때문에 낭비하지 마세요, 아저씨." 그 목소리에는 영국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알레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당신이 얘기해야 할 사람은바로 나예요' "좋아요,토니.당신에게 얘기를 히지오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군요'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난 지금 지쳐 있어요.' 하고 그녀는 하품을 했다. '미스 새침데기가 우리 모두를 밤새도록 잠자지 못하게했거든요 나는 지금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지금은 안 됩니다. 토니. 내 말을 잘 들어요 당신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요...' 토니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하죠? 미스 새침데기가 알레트나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그녀는 우리가 재미 보는 것을 방해했다구요 그래요, 이젠 정말 신물이 나요 그리고 그녀에게도 신물이 났고요 내 말 알아들었죠?' 하고 토니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악을 써댔다.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깨워야겠습니다. ' 데이비드는 땀을 흥건히 흘리고 있었다. "그러세요' 세일럼 박사는 애슬리에게 몸을 기울였다. "애슬리... 애슬리...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이제 두 눈을 감으세요 두 눈이 아주 무겁습니다. 아주 무거워요 당신은 완전히 긴장을 풀고 있습니다. 애슬리, 당신의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당신의몸은 편안합니다. 당신은 내가 다섯을 세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 박사는 데이비드를 바라보고 나서 애슬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둘...," 애슬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녀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셋 ...," 애슬리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넷...," 두 사람은 애슬리가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가슴 섬뜩한 느낌이었다. "다섯!" 애슬리는 눈을 뜨고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기분이 좀 이상해요 내가 잠을 잤나요?' 데이비드는 애슬리를 응시한 채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습니다. " 세일럼 박사가 대답했다. 애슬리는 데이비드 쪽을 돌아다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그러니까 제 말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나요?' "맙소사! 애슬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애슬리는 정말로 자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데이비드가 애슬리에게 말했다. "정말로 잘해냈습니다. 애슬리.잠시 세일럼 박사와 단둘이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그러세.요" "당신과는 그 후에 다시 뵙기로 하죠" 그들은 그곳에 서서 여 교도관이 애슬리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지켜보았다. 데이비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도대체 모두 무슨 일입니까?' 세일럼 박사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오랫동안 의학계에 종사해 왔지만 나도 이번처럼 윤곽이 분명한 케이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 "어떤 케이스 말입니까?' "혹시 (다중 인격 장애)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습니까?' "그게 뭐죠?" "그건 하나의 몸 속에 완전히 서로 다른 인간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분열 인격 장애'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병은 2백여 년도 더 된 정신병리학의 문헌 속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충격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내부에 다른 인간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종종 한 사람의 내부에 수십 명의 다른 분신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에 관해서 알고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그렇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에도 토니와 알레트는 서로를 알고 있지만 애슬리는 분명히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분신은 그 몸의 주인이 정신적인 충격의 고통을 견디어낼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일종의 탈출구라고 할수 있습니다 새로운 충격이 있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분신이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정신병리학의 문헌들은 그 분신들은 서로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분신은 어리석고,어떤 분신은 지능이 뛰어납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취미도 완전히 다르고, 다양한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런 병은 얼마나 많이 퍼져 있습니까?' "어떤 연구가들은 세계 인구의 약 1퍼센트가 (다중 인격 장애)로 고통받고 있으며,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중 20퍼센트가 그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 데이비드가 말했다. "하지만 애슬리는 너무나 정상적으로 보이고 또..."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정상입니다...다른 분신이 그 사람을 점거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 주인은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하고,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가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 분신이 점거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한 병이죠 그 분신은 한 시간, 혹은 하루, 혹은 일주일까지도 지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신이 지배하는 동안 주인은기억의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 "그래서 애슬리 그러니까 주인은 분신이 한 어떤 행동에 대해서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 데이비드는 마법에 묶인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다중 인격 장애)의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브리디 머피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그 병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이후부터 수많은 케이스들이 나타났지만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것은 아니었고,또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 '중처럼 믿기지가 않는군요' "그것은 오랫동안 나를 매료시켜 온 연구 과제였습니다. 그 병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 명백한 패턴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분신들은 빈번하게 그들의 주인과 같은 머릿글자를 사용합니다. 즉- 애슬리 패터슨(A.p.)... 알레트 피터스(A.p.)...토니 프레스코트처럼 말입니다. " '토니라구요?라고 물어 보려고 하다가 데이비드는 이내 깨달았다. "앙투아네트(토니는 흔히 앙투아네트의 애칭으로 통함) 말인가요?' "맞습니다. 혹시 '제2의 나'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겠지요?' "네, 들어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 모두 제2의 나'나 다중 인격을 갖고있습니다. 친절한 사람도 잔인한 행동을 저지를 수가 있고, 잔인한사람도 친절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의 넓은 영역에는 한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소설이지만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데이비드의 마음은 바쁘게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만일 애슬리가 그 살인들을 저질렀다면...," "그녀는 전혀 그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살인은 그녀의 분신 중 하나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니까요" "맙소사! 그것을 어떻게 법정에서 설명하란 말입니까?" 세일럼 박사는 데이비드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변호를 맡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맡지 않을 겁니다. 내 말은-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이 시점에서는 나자신이 다중 인격자로 느껴지는군요' 그러고 나서 데이비드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치료는 가능합니까?' "대개의 경우, 그렇습니다. " "만일 이 병이 치유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다. "자살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애슬리는 정말 이 병에 관해서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가요?' "모르고 있습니다. " "애슬리에게 이 사실을 얘기할 생각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의 비명이었다. 애슬리는 감방 벽에 몸을 붙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요!"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애슬리,내 말 모두 사실이에요 힘들더라도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난..." "내 옆으로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내가 죽게 도와주세요, 네 !" 애슬리는 감정이 격해져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세일럼 박사가 여교도관에게 말했다. "애슬리 양에게 진정제를 주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 그녀에게 감시인을 꼭 붙이도록 조치를 취하시요'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박사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요" "나도 지금까지 자네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네,데이비드.애슬리를 만나보았나?' "네. 어디 조용한 곳에서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내 진찰실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샌프란시스코로 차를 몰면서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절대 이 사건을 맡아선 안 돼.내가 잃는 게 너무 많아.애슬리에게 훌륭한 형사 전문 변호사를 소개시켜 주면 그것으로 이 문제는 끝나겠지.' 패터슨 박사는 진찰실에서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애슬리와 얘기를 나누었다고 했지?' "네, 물론입니다. " "그 아이는 괜찮겠지?' '어떻게 대답해야 좋담? 하고 생각하면서 데이비드는 심호흡을한 번 했다. "박사님께서는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시죠?' 패터슨 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그것은 하나나 그 이상의 인격,혹은 분신이 한 사람의 내부에존재하면서 때때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말하는데,그 당사자는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병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따님이 그런 (다중 인격 장애)란 병을 갖고 있습니다. " 패터슨 박사가 경악의 눈으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도저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그게 확실한가?' "세일럼 박사가 최면술을 걸고 있는 상태에서 애슬리 양이 말하는 것을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따님은 두 사람의 분신을 갖고 있습니다. 수시로 그 분신들은 따님을 점령했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서둘러 나머지 말을 해치워 버렸다. '보안관이 저에게 따님에게불리한 증거들을 모두 보여 주더군요 따님이 살인을 저지른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 그러자 패터슨 박사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맙소사! 그렇다면 그 아이가- 유죄란 말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따님은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따님은 한분신의 영향아래에 있었습니다. 애슬리 양은 그런 범죄를 저지를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따님에게는 살인 동기가 없었고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검찰측이 그 동기나 의도를증명하려면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자네의 변호는 그 병 쪽을..," 데이비드가 박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전 따님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대신 박사님께 제시 퀼러 변호사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뛰어난 공판 변호사입니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을 해 봤기 때문에 그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一' "안 되네." 패터슨 박사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자네가 애슬리를 변호해 주게.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되네." 데이비드는 인내심 깊게 말했다. "아직 박사님께서는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저는 따님을 변호하기에 전혀 적합치 못한 사람입니다. 따님에게 필요한 변호사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네라고 전에도 말했잖은가? 딸아이는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세, 데이비드 자네밖에는 딸아이를 구해 줄 사람이 없네." "그럴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도 없고..." "물론 자네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네. 자네는 오랫동안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했잖은가?' "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은 옛날 일로..," "나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원치 않네." 데이비드는 패터슨 박사가 울화가 치미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건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했다. "제시 귈러 변호사는 최고의..." 그러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패터슨 박사가 몸을 앞쪽으로기울였다. "데이비드, 자네 모친의 생명은 자네에게 절실했었네. 애슬리의생명도 마찬가지네. 지금 난 딸애의 생명을 구할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옛날에 자네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자네 모친의 생명을 내 손에 맡겼었네.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자네의 도움을 청하고 있고, 애슬리의 생명을 자네의 손에 맡기려 하는 걸세. 꼭 자네가 애슬리를 변호해 주기를 바라네. 자네는 나에게 그럴 만한 빚을 지고 있으니까.' 내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군.' 하고 데이비드는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박사님이 왜 저러는 것일까? 변호를 반대하는 십여 가지의 이유가 데이비드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나, 박사의 단 한 마디 말 앞에서 그 이유들은 무기력하게 사라져 갔다. "자네는 나에게 그럴 만한 빚을 지고 있으니까."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했다. "박사님, 저어...," "'예스'인가 '노'인가만 대답하게, 데이비드" 유죄인가, 무죄인가 13 데이비드가 집으로 들어가자 산드라가 문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와요, 여보" 데이비드는 아내를 포옹하면서 생각했다. '아아,정말 아름답구나! 어떤 멍청한 작자가 여자는 임신을 하면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지? 산드라가 흥분해서 말했다. "아기가 오늘 또 발길질을 했어요!" 그리고는 데이비드의 손을잡아 자신의 배에다 갖다 댔다.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죠?' 한참 뒤에 데이비드는 대답했다 "안 느껴지는데?이 녀석도 나처럼 고집이 센 모양이지?' "아 참, 크라우더 씨가 오늘 전화를 했더라구요' "크라우더 씨라니?' "부동산 중개인 말예요 서명만 하면 되도록 서류 준비가 다 되었대요" 데이비드는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그래?" "당신에게 꼭 보여 줄 게 있어요" 하고 산드라는 신바람이 나서말했다. '꼼짝 말고 여기 있어요" 데이비드는 아내가 서둘러 침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빨리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데...," 산드라가 벽지의 견본 몇 가지를 손에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기방은 푸른색으로 하고 아파트 거실은 당신이 좋아하는 푸른색과 흰색으로 할 거예요 당신은 어느 쪽 벽지로 하고 싶어인이것보다 밝은 것? 아니면 조금 어두운 것으로요?' 데이비드는 마지못해서 정신 집중을 해 보려고 노력했다. "밝은 쪽이 좋은 것 같애." "저도 이쪽이 좋아요 한 가지 문제는 카펫이 좀 어둑한 푸른색인데 그것과 서로 어울릴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파트너 자리를 포기할 수가 없어. 파트너가 되기 위해 너무나오랫동안 준비해오지 않았던가.내 꿈을 이런 일로 무너뜨릴 수는없어.'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여보 당신은 두 가지 색깔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데이비드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아아. 그래, 어울리겠지. 당신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하도록 해, 여보.' "너무 흥분돼요 그렇게 꾸며 놓으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까요?' 내가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우린 그 집을 살 수도 없어.' 산드라는 좁은 아파트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가구들도 몇 가지는 아직 쓸 수 있지만 새로 사야할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에요' 그리고는 남편을 불안한 듯이쳐다보았다. '그 정도는 살 수 있겠지요, 여보? 안 그래요? 내가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말라니까." 하고 데이비드는 건성으로 말했다. 산드라는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을 거예요, 안 그래요? 아기와 파트너의 지위와 새로운 집...오늘 일부러 그 동네에갔다 왔거든요 놀이터와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서요 놀이터는 너무나 잘 꾸며 놓았더라구요. 미끄럼틀과 그네와 정글 짐도 있었어요 우리 토요일에 그곳에 같이 가요 제프리는 태어나면 보나마나그곳을 무척 좋아할 거예요' '잘만 말하면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에게 이번 사건이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납득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학교도 근사해 보였어요 우리 집에서 겨우 두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데이비드는 아내의 얘기에 귀를 기 울이면서 생각했다. '결코 아내를 실망시킬 수는 없어. 아내에게서 그 꿈을 빼앗을수는 없어.내일 아침에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에게 말해야지. 패터슨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그럼 별 수 없이 패터슨 박사는 누군가다른 사람을 구하겠지.' "서둘러 준비하는 게 좋겠어요, 여보 제시 퀼러 변호사 댁에 8시까지 도착해야 하니까요' 이제는 진실을 말할 때였다. 데이비드는 약간 긴장되었다 "여보,당신과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뭔데요?" "오늘 오전에 애슬리 패터슨 양을 만나러 갔었어." "그래요?그 일에 관해서 얘기해 주세요 애슬리 양은 유죄인가요? 그녀가 정말로 그런 무시무시한 일들을 저질렀나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 "변호사답게 얘기해 보세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애슬리 양은 살인을 범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무죄요' "데이비드-?" "애슐리양은 의학적으로 (다중 인격 장애)라고 부르는 정신병을 앓고 있어.그녀의 인격은 분열이 되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 채 여러 가지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산드라는 남편을 응시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군요!" 애슬리 양에게는 두 개의 다른 인격이 존재하고 있더군. 내가 직접 그녀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 "당신이 그녀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있었어. 그러니까 애슬리가연극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얘기지.'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예요?' "전혀 모르고 있지.' "그렇다면 그녀는 유죄인가요, 아니면 무죄인가요?" "그것은 법정이 결정할 문제지.그런데 지금 내가 난처한 건 패터슨 박사가 제시 귈러 변호사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난 누군가 다른 변호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구." "하지만 제시는 완벽하잖아요? 왜 박사님은 그분을 만나보려고도 하지 않는 거죠?' 데이비드는 다시 망설였다. "박사님은 내가 애슬리 양을 변호해 주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박사님께 그 사건을 맡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나요?' "물론이지." "그런데 무슨 문제가-?' "아주 막무가내야." "그분이 뭐라고 말했는데요,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마." "그분이 뭐라고 말했어요?" 데이비드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내가 어머니의 목숨을 그분의 손에 맡길 만큼 충분히 그분을신뢰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어.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분은 딸의 생명을 맡길 만큼 충분히 나를 믿고 있다고 하셨어.그러면서 자신의 딸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산드라는 남편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물었다.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겠어.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는 내가 이 사건을 맡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만일 이 사건을 맡는다면 난 파트너 자리를 잃게 될 거야." "어머 !" 그 뒤에 기나긴 침묵이 뒤따랐다. 한참만에 데이비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패터슨 박사에게못 하겠다고 말하고 법률사무소의 파트너가 되거나, 아니면 무급휴가를 얻어서 애슬리 양의 변호를 맡고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는 것.' 산드라는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애슬리 사건을 맡을 훌륭한 변호사들이 수두룩한데도 패터슨박사는 다른 사람은 죽어도 싫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 나로선 그분이 왜 이 문제에 관해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지만,하여간 그게 현실이야.만약내가 이 사건을 맡는다면 나는 파트너 자리를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고 이사가는 것도 포기해야해. 그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우리가 계획했던 많은 것을 포기하지않으면 안 돼, 산드라." 그러자 산드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당신이 박사님에 대해서 얘기했던게 기억나요 그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의사였지만 돈이라곤 한 푼도 없는 젊은이를 위해 시간을 내주셨다구요 그분은 당신의 영웅이었지요, 데이비드. 당신은 우리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이가 스티븐 패터슨 박사님과 같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한다고 말했었지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결정을 내려야 하죠?'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를 만나기로 했어." 산드라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패터슨 박사님은 어머니를 살려 준 은인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도 그분의 따님을구해 줘야 해요' 그리고는 방 안을 둘러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우린 언제든지 이 집을 흰색과 푸른색 벽지로 꾸밀 수 있잖아요?' 제시 귈러 변호사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형사 전문 변호사 중 한사람이었다. 키가 무척 컸으며 촌스러운 옷차림이 오히려 꾸밈없고 소박해 보여 배심원들에게 친근감을 안겨주었다. 배심원들은 제시 변호사를 자기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재판에서좀처럼 패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는,제시는 사진 같은 정확한 기억력과 넓고 착한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휴가를 가는 대신 제시 귈러 변호사는 여름 휴가 기간에 법률을가르쳤는데, 데이비드는 오래 전 그렇게 그가 가르친 제자 중 하나였다. 데이비드가 법과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귈러 변호사는 자신의형사 전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도록 권했는데, 2년 후 데이비드는그곳의 파트너가 되었다. 데이비드는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의 일을 좋아했고 그 분야에서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그리고 매일 업무 시간의 10퍼센트를 무료 법률 상담에 할애했다. 그러나 파트너가 되고 나서 3년이 지났을 때, 데이비드는 갑자기 사임하고 (킨케이드, 터너, 로즈 앤 리플리) 국제법률사무소에서 상법 분야의 일을 했다. 그 뒤에도 데이비드와 귈러 변호사는 죽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그들은 아내와 동반하여 일주일에 한 차례씩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금발의 제시 귈러 변호사는 호리호리하고,세련된 남자였다. 그는 에밀리와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에밀리는 아이오와 주의 농장 출신으로,나이에 비해 일찍 머리칼이 세어 버린 뚱뚱한 여성으로 귈러 변호사가 데이트를 하던 여자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그녀는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마음씨 좋은 어머니 같은 스타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부 같았으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은 무척 원만했다. 매주 수요일,데이비드 싱거 부부와 제시 귈러 부부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리버풀)이라고 부르는 복잡한 카드 게임을 했다산드라와 데이비드가 헤이즈 스트리트에 있는 귈러 변호사의 멋진 집에 도착하자제시 귈러가 문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산드라를 포옹하며 말했다. "자아,어서 들어오세요 샴페인을 얼음에 채워 놓았답니다. 오늘은 자네 부부에게는 기념할 만한 날 아닌가?새 집과 파트너의 지위라.아니,파트너의 지위와 새 집의 순서이던가?'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에밀리는 축하 만찬을 준비하느라고 주방에 있다네,"제시 귈러변호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오늘이 축하 만찬인줄 알았는데... 내가 뭘 빠뜨렸나?' 데이비드가 말했다. "아니에요,제시.우리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요-별것은 아니지만요' '자아.들어가요 칵테일을 좀 드릴까요?' 하고 그는 산드라를 보았다. "아뇨, 괜찮아요 아기에게 나쁜 습관을 들이고 싶지 않아서요" "그 녀석은 정말 행운아로군 그래. 자네들 같은 부모를 두었으니까.' 하고 귈러 변호사는 다정하게 말했다. 그는 데이비드를 돌아다보았다. "자네는 무엇을 마시겠나?" "괜찮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가 말했다. 산드라가 주방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사모님을 도와드릴 일이 있는지 가봐야겠어요" "앉게나, 데이비드. 자네의 얼굴이 좀 어두운 것 같은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져있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가 시인했다. '내가 알아맞혀 볼까?일단그게 새 집 건인가,파트너 건인가?' "양쪽 모두입니다. " "양쪽 모두라고?' '네, 그렇습니다. 패터슨 사건에 관해서 아시죠?' "애슬리 패터슨 사건 말인가?그야 물론이지.그것이 자네와 무슨 상관이-?' 그가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잠간만. 자네가 언젠가 스티븐 패터슨 박사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지. 법과 대학을 다닐 때였던가?그가 자네 모친의 생명을구해 주었다고 했었지 아마." '네, 맞아요 그분이 저더러 자신의 딸을 변호해 달라고 해서요저는 한사코 그 사건을 선생님께 넘겨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분은 저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변호를 맡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요," 귈러 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분도 자네가 더 이상 형사 사건 변호를 맡지 않는다는 것을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에요저보다 훨씬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수두룩한데 말입니 다. " "그는 자네가 과거에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했었다는 것을 알고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 귈러 변호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자신의 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그것 참 이상한 질문도 다하시네,'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분은 특히나 딸에게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알았네. 자네가 그녀의 사건을 맡는다고 가정해 보세. 그것으로야기되는 부정적인 면은一' "우선은,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가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만일 제가 그 사건을 맡는다면 파트너 지위는 날아가 버릴 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 "알겠네.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새 집도 함에 날아가 버린다는건가?' 그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는 듯 데이비드가 거칠게 대답했다. "집이 문제가 아니라 제 빌어먹을 장래가 몽땅 날아가 버리겠죠제가 이런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죠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요!" "도대체 자네는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건가?' 데이비드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왜냐하면 결국 전 그 사건을 떠맡게 될 테니까요' 그러자 귈러 변호사가 미소를 지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데이비드는 손을 이마에 갖다댔다. "만일 제가 그분의 청을 거절해서 그분의 딸이 유죄 선고를 받고 처형당한다면 그리고 제가 아무것도 도와주지를 못했다면,아마 전 그러한 저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 '나도 이해하네.그래,산드라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던가?' 데이비드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산드라를 잘 아시잖습니까.' "그래, 산드라는 보나마나 자네에게 그 사건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겠지." "맞습니다. " 귈러 변호사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도 자네를 도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돕겠네,데이비드." 데이비드는 한숨을 쉬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저 혼자 처리해야 할것 같아요 이것도 계약의 일부분이라서." 그러자 귈러 변호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 참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로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여러 차례 그 문제에 관해 패터슨 박사에게설명하려고 노력했는데 소용 없었습니다. 그분은 막무가내로 말을듣지 않습니다. " "자네의 그런 결심에 관해서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에게는 아직얘기하지 않았나?' '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나?' '뻔하죠 뭐. 그 사건을 맡지 말라고 권하다가 그래도 내가 말을듣지 않으면 무급 휴가를 권하겠지요" "그렇다면 내일 1시에 (루비콘)에서 나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세.'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 에밀리 부인이 키친 타월로 손을 닦으면서 주방에서 나왔다. 데이비드와 귈러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데이비드.' 하면서 에밀리 부인이 데이비드에게 부지런히 다가와서는 뺨에다 키스를 했다. '배가 고프더라도 조금만참아주세요 저녁 식사 준비는 거의 끝났거든요 산드라가 도와주서 일이 빨리 끝났어요' 그녀는 접시들을 들고 부지런히 주방으로 되돌아갔다. 귈러 변호사가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에밀리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고 있겠지?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 자네에게 몇 가지 충고를 해주지.되도록빨리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보게, 알았나?' 데이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래 전 일일세.그리고 그때 일어난 일은 결코 자네의 잘못이 아니었네.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일이 란 말일세," 데이비드는 귈러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일이 바로 저에게 일어 났다고요, 선생님. 제가 그녀를 죽인 거란 말입니다. ' 그 사건은 데이비드에게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어 떠오르는 악몽 같은 기억이었다. 데이비드는 그곳에 앉은 채로 그때의 장면을떠올렸다. 그 사건은 무료 법률 상담 케이스였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제시귈러 변호사에게, '이 사건은 제가 맡겠습니다. ' 하고 자청하고 나섰다. 헬렌 우드맨은 부유한 계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사랑스러운 여성이었다. 두 모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헬렌에 대한 모든 증거는 정황 증거(간접 증거)라 그녀가 무죄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데이비드는 구치소로 헬렌을 찾아가 얘기를 듣고 난 뒤 그녀가무죄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녀를 거듭 만나면서 그는 차츰 헬렌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변호사는 피고와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어기게 되었다. 재판은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다 데이비드는 검찰측의 증거를조목조목 반박해서 배심원들을 피고 쪽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을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예상치도 않은 파국이 찾아왔다. 헬렌의 알리바이는 살인이 일어난 시각에, 그녀가 친구와 함께극장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법정에서의 반대 심문 도중,헬렌의 친구는 그 알리바이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했고,증인 한명이 살인이 일어난 시각에 계모의 아파트에서 헬렌을 보았다고진술했다. 헬렌에 대한 신뢰성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배심원들은 헬렌에게 제1급 살인죄를 인정했고 판사는 헬렌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데이비드는 망연자실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소,헬렌?' 하고 그는비난했다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소?' '난 정말 계모를 죽이지 않았어요,데이비드.내가 계모의 아파트에 갔을 때 계모는 이미 마룻바닥에 죽어 있었어요 당신이 내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아서,그래서-극장에 있었다는 이야기를꾸며낸 것뿐이라고요" 데이비드는 냉소적인 표정을 띤 채로 서 있었다. "정말이에요, 데이비드 " "그래요?' 그는 몸을 돌려 획 하니 그 방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그날 밤, 헬렌은 감방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일 주일 후, 전과가 있는 사내가 강도짓을 하다가 체포되었는데헬렌의 계모를 살해한 사실을 자백했다. 그 이튿날, 데이비드는 제시 귈러의 법률사무소를 그만두었다. 귈러 변호사가 그를 만류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건 자네 잘못이 아닐세, 데이비드. 애초에 헬렌은 자네에게거짓말을 했고, 또一" '바로 그게 제 잘못이에요. 제가 헬렌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든거예요 저는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헬렌이 저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단지헬렌을 믿기를 원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헬렌은 거짓말을 꾸며낼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헬렌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주일 후, 데이비드는 (킨케이드, 터너,로즈 앤 리플리)국제법률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다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하고 데이비드는 맹세했다. 그런데 지금 데이비드는 애슬리 패터슨을 변호하려는 것이다 재판은 시작되고 14 다음 날 아침 10시, 데이비드는 조셉 킨케이드 수석파트너의 사무실로 갔다. 킨케이드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다가 데이비드가 들어오자 힐끗 쳐다보았다. "아아,왔군.우선 거기 앉게나.하던 일을 곧 끝낼 테니까." 데이비드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일을 끝내자 킨케이드는 데이비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가지고 왔나, 데이비드?" '누구를 위한 좋은 소식 말인가? 하고 데이비드는 궁금하게 생각했다. "자네에게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네.난 자네가 그것을 망쳐 버릴어떤 어리석은 행동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네. 이미 우리법률사무소는 자네를 위해 큰 계획을 세워놓았다네.' 데이비드는 묵묵히 앉아 적절한 말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있었다.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가 계속 말했다. "그래, 패터슨 박사에게 다른 변호사를 대신 구해 주겠다고 말했겠지?' "아닙니다. 전 그분의 딸을 변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킨케이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자네가 그녀를 변호할 생각이라고? 그녀는 악의에 가득 찬 구역질나는 살인범일세. 그녀를 변호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간에똑같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걸세.' '제가 원해서 맡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조셉. 다만 저에게는 그분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전에 패터슨 박사에게 평생 갚지 못할 큰 신세를 진 일이 있습니다. 이번이 제가 그 빛을 갚을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 킨케이드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참만에 입을열었다. "자네가 기어코 그 사건을 맡기로 고집한다면 더 이상 나로서도어쩔 수가 없네. 휴가 신청을 내라고 권할 수밖에. 물론 무급 휴가말일세.' '잘 가거라, 파트너 지위여 ! "재판이 끝나면 다시 사무소에 나오도록 하게. 파트너의 지위 문제는 그 후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세."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곧바로 콜린스 변호사에게 자네의 업무를 인계 받도록 조치하겠네. 자네는 하루라도 빨리 재판에만 전념하고 싶을 테니까 말일세 ." 30분 뒤, (킨케이드,터너,로즈 앤 리플리)국제법률사무소의 파트너들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 법률사무소가 그러한 추악한 재판에 관여하는 것을 묵과할 수가 없네.' 하고 헨리 터너가 반대했다. 조셉 킨케이드가 얼른 대답했다 "우리 법률사무소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아닐세, 헨리. 우리는 그 젊은이에게 무급 휴가를 준 것이니까." 앨버트 로즈가 말했다. '나는 그 청년을 파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아직은 아닐세. 그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일세. 패터슨 박사는 우리 법률사무소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그는상류층 인사들을 두루두루 알고 있네. 표현은 안 해도 아마 그는데이비드를 보내준 걸 고맙게 여기고 있을 걸세.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이 우리로서는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네.만일일이 잘 풀리면 패터슨 박사를 우리의 고객으로 삼으면 되고, 데이비드를 파트너로 승진시키면 되네. 만일 재판에서 지게 되면 우리는 데이비드를 雲아내면 되는 것이고, 패터슨 박사를 우리 고객으로 계속 확보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그때 가서 알아보면 되는 것일세.우리에게는 불리할 것이 전혀 없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존 리플리가 싱긋이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것 참 기막힌 생각이로군, 조셉." 킨케이드의 사무실에서 나온 데이비드는 곧바로 스티븐 패터슨박사를 만나러 갔다. 미리 전화를 해 두었기 때문에 박사는 진찰실에서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나, 데이비드?' 내 대답 한 마디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거야.'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바뀌지는 않겠지.' '제가 따님을 변호하겠습니다, 패터슨 박사님."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럴 줄 알았네. 난 이 사건에 내 인생을 모두 걸고 있다네." 그는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내 딸의 인생도 이 사건에 걸려 있다네.' "이 일을 하는 동안 무급 휴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맡기전에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형사 전문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만一" 그러자 패터슨 박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이 사건에 자네 말고 어느 누구도 개입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자네에게 분명히 말했을 텐데.애슬리는 자네의 손안에 있네.오로지 자네 한 사람의 손안에 달려 있단 말일세.' "알겠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하지만 제시 귈러 변호사는...' 패터슨 박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제시 귈러나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듣고 싶지 않네.나도 형사 전문 변호사들은 많이 알고 있네. 그 작자들은 돈과 자기선전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세. 이것은 돈이나 명성에 관한 일이 아닐세, 이것은 바로 애슬리의 생명에 관한 일이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반박을 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더 이상얘기할 것이 없었다. 그 문제에 관해서 패터슨 박사는 거의 광적이었다.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좋을 텐데, 박사님은 왜 굳이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일까?' 하고 데이비?는 생각했다. '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 같은데?'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물론 자네의 보수와 모든 경비는 내가 책임지겠네." "아닙니다. 이것은 (무료 법률 상담) 케이스입니다. " 패터슨 박사는 잠시 데이비드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어머니의 빛을 갚겠다는 건가?' "네, 빛을 갚는 셈이죠' 데이비드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 운전할 줄 아나? 라고묻던 패터슨 박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데이비드 변호사, 재판 준비를 하려면 경비가 많이 필요할 걸세. 더군다나 무급 휴가중이라면서. 내 돈을 받게나.' "정 그러시다면 받겠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양보했다. '최소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먹고 살 수 있겠군,' 제시 귈러 변호사는 (루비콘)에서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데이비드는 한숨을 쉬었다. "예언한 그대로 맞아떨어졌지요 당분간 무급 휴가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 "저런 죽일 놈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데이비드가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에요 그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는 문제예요 워낙 보수적인회사니까요' "이제 자네는 무엇부터 할 생각인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냐고? 자네는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재판을처리해 나가야 하는 걸세.그런데 자네는 지금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도 하나 없잖은가? 또 공판 기록이나 사건 기록 같은 것을 찾아볼 자료실도 없고, 형법 전서나 팩스도 없잖은가? 언젠가자네와 산드라가 가지고 있는 구식 컴퓨터를 본 적이 있는데,그것을 가지고서는 자네가 필요로 하는 법률 소프트웨어나 인터넷은어림도 없을 걸세.' "그런 것 없어도 괜찮습니다. ' "그야 물론 자네는 잘해내겠지. 하지만 우리 건물에 비어 있는사무실이 하나 있으니까 그곳을 사용하도록 하게.그곳에는 자네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을 테니까.' 제시의 호의에 감격한 데이비드는 말문이 막혀서 한참 동안 말을 더듬었다. '제가- 그런 신세를..." "아니,그렇게 하게." 하고 제시 귈러 변호사는 빙긋 웃었다. '대신 자네는 그 대가로 내게 보상할 방법을 찾아내게나.자네는 사람들에게 진 빛을 갚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 안 그런가, 데이비드성자?" 그는 메뉴판을 집어들었다. "몹시 배가 고프구먼." 하고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건 그렇고, 점심값은 자네가 내게."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슬리를 만나기 위해 산타 클라라 구치소로갔다 "안녕하세요, 애슬리 양."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오셨었어요 아버지는 변호사님께서 틀림없이 나를 이곳에서 빼내 줄 거라고 하셨어요' 그녀는 지난번보다 얼굴이 더 창백했다 나도 패터슨 박사처럼 그렇게 낙관적이었으면 좋겠군.'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할 생각입니다. 애슬리 양. 하지만한 가지 곤란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선은 이 분야에서우수한 의사를 이곳으로 불러다가 당신을 위해 증언하게 할 계획입니다. " '너무 무서워요' 하고 애슬리가 속삭였다. "뭐가요?' '내 안에 나 말고 다른 인격이 둘씩이나 있다는 것도 그렇고,그런 사실을 내가 전혀 모른다는 것도 그렇고." 애슬리의 목소리는떨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아무 때고 내 행동과 정신을 점거할 수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런데도 난 아무런 통제도 할 수없다니... 너무 무서워요" 애슬리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애슬리 양 당신의 마음속에 있을뿐이지요 그녀들 역시 당신의 일부입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곧 좋아질 겁니다. " 그날 저녁 데이비드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산드라가 그를 포옹하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한 적이 있던가요?' '내가 직장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데이비드가 장난스레 물었다. '당신도 참... 그런데 오늘 크라우더 씨가 전화를 걸어 왔어요이제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계약금으로 6만 달러를 준비하라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 집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깐만! 우리 법률사무소의 내 연금이 그 정도는 될 거야.그리고 패터슨 박사가 경비로 쓸 돈을 준다면 우리는 그럭저럭 그 숫자는 맞출 수 있을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여보 어쨌든 집 문제로 아기의 장래를 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그렇고,나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어.제시가 나에게 사무실을一' '나도 알고 있어요 사모님과 통화를 했거든요 우리,제시 선생님의 사무실 건물로 이사가야 한다면서요?" 데이비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라니?" '당신은 변호사 보조원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잊어 버렸나 보군요 이건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요,나도 당신을 돕고 싶어요 제프리가 태어날 때까지는... 하고 그녀는 배를 만졌다. '당신과 함께일을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는 또 무슨 수가 생기겠죠, 뭘." "싱거 부인,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아직 저녁 먹으려면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하니까요' "한 시간으로는 부족할 텐데?" 산드라는 양팔로 남편을 끌어안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왜 빨리 옷을 벗지 않는 거죠,호랑이 양반?' "뭐라고?" 데이비드는 몸을 빼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내를바라보았다. "임신중인데도 괜찮겠어? 베일리 박사가 뭐라고 했는데?" '박사님께서는 당신이 빨리 옷을 벗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공격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데이비드는 싱긋이 웃었다. "의사의 말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담!" 다음 날 아침, 데이비드는 제시 귈러 변호사 사무실 뒤쪽에 있는방으로 옮겨갔다. 그곳은 제시 귈러 변호사 법률사무소가 사용하는 다섯 개의 사무실 중 하나로 매우 실용적인 방이었다. "자네가 우리 법률사무소를 그만둔 다음 약간 확장을 했네." 하고 제시는 데이비드에게 설명했다. 자네가 필요한 것은 여기서 모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법률 도서실은 바로 옆방일세. 그곳에는 팩스도 있구 컴퓨터, 그 밖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네.자네가 찾는 것이 없을 때는 말만 하게.' "고맙습니다. '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정말... 얼마나 감사한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제시 변호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가 언젠가 이 빛을 갚을 텐데 뭘 그러나?' 산드라가 몇 분 뒤에 도착했다. "저도 준비됐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우선은 다중 인격 재판에서 다룬 다양한 케이스를 모조리 찾아서 검토해 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될 거야.아마도 인터넷에 그러한사례가 엄청나게 많이 올라 있을 거야.그 중에서도 먼저 (캘리포니아 형법 옵저버) 지와 법정 TV 사이트, 그리고 형법 링크를뒤져보고, (웨스트로우)와 (렉시-넥시스)로부터 구할 수 있는 쓸만한 정보는 모두 긁어 모아야 할 거야.그 다음엔 다중인격 문제를 전공한 의사들을 찾아내서, 증인으로 나서줄 수 있는지 그게 안되면 그들의 의학적 견해를 증언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지.우리의 주장을 견고히 하려면 확실한 의학적 뒷받침이 필요할 테니까 말야.난 형사 재판의 절차를 다시 복습해야 하고,예비 심문 준비도 해야 해,그리고 또 우리는 검찰측 증인의 리스트와 증인의 진술도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겠지. 나는 검사가찾아낸 것을 모두 알아야 하니까." "우린 검찰측에 우리 증인의 진술 내용도 보내야 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애슬리 양을 증인석에 세울 생각인가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증인으로 서기에는 너무 지쳐 있어. 아마 검사는 그녀를갈기갈기 찢어 놓을 거야.' 그는 산드라를 쳐다보았다. "예상하고있겠지만 우리가 이기려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거야." 산드라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당신은 결국 이길 거예요 나는 당신이 이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데이비드는 (킨케이드, 터너, 로즈 앤 리플리) 국제법률사무소의회계과장인 하베이 우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베이? 나, 데이비드 싱거요' "안녕하세요,데이비드.듣자 하니 법률사무소를 잠시 떠나 있게되었다면서요?' "그렇소" "아주 흥미로운 사건을 맡았더군요 신문마다 온통 그 기사로 가득 차 있더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다 주시고一" 데이비드가 말했다 '내 회사 연금에 6만 달러가 적립되어 있습니다. 그 돈을 이렇게일찍 빼낼 생각은 없었지만 며칠 전에 복층 아파트를 한 채 사기로 계약했거든요 그래서 계약금으로 그 돈이 급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 "아파트요? 야아, 축하합니다 !" "고맙소 얼마나 빨리 그 돈을 빼낼 수 있겠소?' 하베이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다시 전화 드리면 안 될까요?' "물론 괜찮지요." 데이비드는 하베이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곧 전화를 걸겠습니다. " "고마워요." 하베이 우델 회계과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들었다. "킨케이드 수석파트너님께 내가 즉각 만나 뵙겠다고 전해주게.' 30분 뒤,그는조셉 킨케이드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무슨일인가, 하베이 과장?' '방금 전에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킨케이드 수석파트너님.그가복층 아파트를 한채 샀다고 하면서 연금 기금에서 6만 달러를 인출해 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그에게 그 돈을 지불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휴직중이고, 그는 그 돈을一' '그 친구는 도대체 그런 집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경비가들어가는지 알고나 있는 건지 궁금하군.' "아마 모르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돈을 지불할 수 없다고 말할생각입니다만一' "그에게 그 돈을 내어주게." 하베이 회계과장은 깜짝 놀라서 수석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一' 킨케이드는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는 그 친구가 스스로 무덤 파는 것을 도와주자는 것일세,하베이 과장. 일단 아파트 계약금을 지불하고 나면... 우린 데이비드 변호사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게 되네." 하베이 우델 회계과장은 곧바로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언제든지 연금을 찾아가도록하시오 킨케이드 수석 파트너 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크라우더 씨세요? 데이비드 싱거입니다. " "이제야 전화를 주셨군요 전화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싱거 씨." "계약금이 마련되었습니다. 내일 중으로 돈을 송금해 드리지요' "잘됐군요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 집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진작에 전 선생님 부부가 그 집에걸맞는 주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틀림없이 두 분은 그 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시게 될 겁니다. ' '우리가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십여 차례의 기적이 필요할걸.'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애슬리 패터슨의 기소 적부 심사는 산호세의 북 1번가에 있는산타 클라라 고등 법원에서 이루어졌다. 재판 관할권에 대한 논쟁이 몇 주간씩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살인 사건이 두 나라와 각기 다른 두 주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적부심 회의는 퀘벡 경찰국에서 온 기 퐁테느 순경,산타 클라라 카운티에서 온 다울링 보안관,펜실베이니아 주의 베드포드에서 온 이건 형사, 샌프란시스코 경찰국 소속의 러드포드 서장,그리고 산호세의 경찰서장 로저 톨랜드가 참석한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퐁테느 순경이 말했다. "우리가 그녀의 유죄를 선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증거를 갖고있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퀘벡에서 열어야 합니다. 그곳이라면 그녀가 도저히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습니다. ' 이번에는 이건 형사가 말했다. "그게 이유라면, 우리도 자신 있습니다. 짐 클리어리는 그녀가저지른 첫번째 살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모든 사건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 샌프란시스코의 러드포드 서장이 입을 열었다. '신사 여러분, 우리들 모두 그녀의 유죄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세 건의 살인이이곳 캘리포니아에서 저질러졌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이곳에서 그세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야만더욱 엄한 벌을 내릴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중 두 건은 산타 클라라 카운티에서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그곳이야말로 재판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다울링 보안관이 말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 고장의 이점을 주장하면서 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데니스 티블, 리처드 멜튼,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에 대한 살인 사건의 공판은 산호세의 법원에서 열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러나 베드포드와 퀘벡에서의 살인은 보류해 두기로했다. 법원에서 기소 적부 심사가 있던 날,데이비드는 애슬리의 옆에서 있었다. 법관석에 앉은 판사가 물었다 "피고측, 어떻게 변호하겠습니까?' "무죄입니다. 정신 이상의 이유에 의한 무죄입니다. "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 "판사님, 변호인측은 이 시점에서 보석을 신청합니다. ' 데이비드가 말하자 검찰사무소에서 나온 검사가 벌떡 일어났다. "판사님, 우리는 강력히 반대합니다 피고는 세 건의 야만적인살인으로 고발되었고 사형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만일 피고에게보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외로 도주할 우려가 있습니다. ' "그건 억지입니다. " 하고 데이비드가 항의했다. 그런 우려는...," 판사가 발언을 중단시켰다. "수사 기록과 보석을 반대하는 검찰측의 선서 증언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보석은 기각합니다. 이 사건은 월리엄스 판사에게 배정되었습니다. 피고인은 공판 개시일까지 산타 클라라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될 것입니다. '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판사님" 그리고는 애슬리를 돌아다보았다. "걱정할것 없어요.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요... 당신은 무죄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 두세요" 데이비드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산드라가 말했다. "여보, 신문 제목들을 보았어요? 이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애슬리를 (여자 학살자)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리고 텔레비전에서도 온통그녀의 이야기뿐이라구요." "이 사건이 애당초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하고 데이비드는 다독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해. 자아, 일이나 시작합시다. " 재판은 8주 후로 잡혀 있었다. 그다음 8주 간은 열에 들뜬 듯 매우 바쁘게 일이 진행되었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피고들에 대한공판 기록을 캐내느라고 온종일 일을 하고도 밤늦게까지 또 일을했다. 그 결과 수십 건의 유사한 사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피고인들이 살인, 강간, 강도, 마약상습,마약밀매, 방화 등의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유죄가 선고되고 일부는무죄로 석방되었다. "우리는 꼭 애슬리를 무죄로 석방시켜야 해." 데이비드는 다짐하듯 산드라에게 말했다. 산드라는 증언할 가능성이 있는 증인들의 이름을 뽑아 그들에게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나카모토 박사님,저는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박사님께서는 (오레곤주 대 보해넌 사건)에서 증언을 하신 적이 있더군요 싱거 변호사는 현재애슬리 패터슨 양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아아,그러십니까?그럼,좋습니다. 박사님께서 산호세로 오셔서 그녀를 위해 증언을 해 주시겠습니까...,?" "부스 박사님,저는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일하고있는 산드라 싱거입니다. 그분이 이번 애슬리 패터슨 양의 변호를맡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딕커슨 사건)에서 증언을 하셨더군요 우리는 박사님의 전문가적인 증언을 듣고 싶은데요... 이곳 산호세에 오셔서 패터슨 양을 위해 증언을 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박사님의 전문가적 견해가 필요합니다..., " '제임스 박사님,저는 산드라 싱거입니다. 박사님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아침부터 자정까지 통화를 계속했다. 마침내 증인 10여 명의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읽어보고 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명단이 아주 화려하군.... 의과대학장에다가 법과대학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산드라를 쳐다보고 미소를 보냈다. '내 생각엔 지금까지는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때때로 제시 귈러 변호사가 데이비드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래,어떻게 진행되어 가나?' 하고 귈러 변호사가 물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겠나?"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 귈러 변호사는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뭐, 필요한 건 없고?' 그러자 데이비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가장 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모든 게 다 있습니다. " 월요일 아침 데이비드는 검찰측으로부터 그들이 보유한 증거물의 목록이 들어 있는 서류 뭉치를 받았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읽어내려가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산드라가 걱정스러운 듯이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게 뭐예요?' "이것 좀 보라고 검사는 (다중 인격 장애)에 반대되는 증언을할 의학 전문가를 일개 사단이나 동원했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죠?' 하고 산드라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살인이 저질러졌을 때 그 현장에 애슬리가 있었다는 것은 시인할 생각이지만, 살인은 실제로 분신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것을주장할 거야." '과연 그 말을 믿도록 내가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재판이 시작되기 5일 전, 데이비드는 월리엄스 판사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데이비드는 제시 귈러 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 월리엄스 판사에 대해서 뭐 좀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없습니까?" 제시 귈러 변호사는 의자의 등에다 몸을 기대고 손가락으로 깍지를 긴 다음 머리 뒤에 갖다댔다. '테사 월리엄스 판사라..., 자네는 어렸을 때 보이 스카우트에 들어간 적 있었나?' "그럼요...," "그때 보이 스카우트의 표어를 기억하나? 항상 준비하라'는 표어 말일세." "물론입니다. ' '테사 월리엄스 판사의 법정에 들어갈 때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하고 있어야 하네.그 여판사는 재능이 뛰어날 뿐더러 험난한 길을헤쳐온 당찬 여자라네. 부모가 미시시 피의 소작인이었거든 그런데도 그녀는 대학을 장학금으로 졸업했지. 그녀의 고향 사람들은 그녀를 더할 수 없는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더군. 고향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그녀를 법과대학원까지 졸업시켜다네.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워싱턴의 고위직 임명도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네.그 여판사는 전설적인 인물일세." '대단히 흥미롭군요' 하고 데이비드가 말했다. "재판은 산타클라라카운티에서 열리게 되나?'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자네는 내 오랜 친구인 믹키 브레넌 검사와 대결을하게 되겠군 그래." '그 검사님에 관해서 좀 얘기해 주세요" "브레넌 검사는 아일랜드계로,오만하고 거친 사람일세.그리고잘 나가는 전통 있는 가문 출신일세,부친은 출판 사업을 크게 하고 있고, 모친은 의사이고 여동생은 대학 교수지. 브레넌은 대학시절에 미식 축구 스타였는데, 법과 대학에서도 수석을 했다네."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친구는 우수한 검사일세, 데이비드.조심하게.그 친구의 수법은 증인을 무장해제 시켜 놓고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덮치는 것일세.그리고 상대방의 약점 찌르기를 좋아하지...그런데 월리엄스 여판사가 왜 자네를 보자고 하는것일까?' "저도 짐작이 가지를 않습니다. 전화로 그냥 패터슨 사건에 관해서 의논을 하고 싶다고만 말해 왔으니까요' 제시 귈러 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닌데. 언제 그 여판사와 만나기로 되어 있지?' "수요일 아침입니다. ' '늘 등뒤를 조심하게.' "고맙습니다. 선생님. 물론 조심해야지요' 산타 클라라 카운티의 고등 법원은 북 1번가에 위치한 4층짜리하얀색 건물이었다. 법원의 입구 바로 안쪽에는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앉아 있는 책상이 한 개 놓여 있고,그 옆에는 난간으로 구획된 금속탐지기와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건물 안에는 일곱 개의 법정이 있고,각 법정은 판사 한 명과그에 속한 임원에 의해서 관장되고 있었다. 수요일 오전 10시,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는 테사 월리엄스 여판사의 사무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방 안에는 믹키 브레넌 검사가 와 있었다. 지구 검사사무소에서나온 주임검사는 키가 작고 땅땅한 50대의 인물로, 아일랜드 사투리를 약간 쓰고 있었다. 매력적인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인 테사 월리엄스 여판사는 40대 후반인데,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며, 단호하고 권위주의적인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싱거 변호사님. 난 월리엄스 판사이고 여기는 브레넌 검사입니다. " 두 남자는 악수를 나누었다. "앉으세요, 싱거 변호사님. 패터슨 사건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싶어서 변호사님을 오시라고 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까 변호사님은 정신 이상에 의한 무죄의 답변서를 제출했더군요" '네, 판사님.'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그런데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니 우리의 시간과 국가의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두 분을 함께 이곳에 부른 겁니다. 평상시 전 답변 협상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어리등절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판사는 이번에는 검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예비 심리조서를 읽어보고 나서 전 이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검찰측이 사형을 철회하고,피고측은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데이비드가 항의했다. '잠간만요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판사와 검사가 놀라서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싱거 변호사님·, " "제 고객은 무죄입니다 애슬리 패터슨은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그게 뭘 증명하느냐 하면...' "그건 아무것도 증명하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변호사님도 알고있겠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법정에서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매스컴의 요란한 선전 때문에,이번재판은 길고도 번잡스럽게 될 게 틀림없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사실입니다만一' "난 오랫동안 법정 생활을 해 왔습니다,싱거 변호사.그리고 수없이 많은 법적 주장을 들었어요. 자기 방어(정당 방위)의 주장도들었고, 일시적인 정신 착란의 이유에 의한 살인의 주장도, 분별력 저하에 의한 범행의 주장도 들었어요 물론 모두 다 입장에 따라 무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그런 주장들이었죠... 그러나 내가절대로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당신에게 말을 하겠어요, 변호인. 내가 범죄를 행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분신이 행한 것이기 때문에,나는 무죄요.' 하는 주장입니다. 어떠한 법학적 근거를 뒷받침할수 없는 이런 애매모호한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는걸 명심해야 할 거예요 따라서 당신의 고객은 범죄를 저질렀거나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만일 당신이 유죄로 답변을 바꾼다면 우리 모두는 많은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가 一" "아닙니다. 판사님. 전 절대로 답변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 월리엄스 판사는 한참 동안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대단히 완고하군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존경할 만한 미덕으로생각하고 있지만,' 하고 여판사는 몸을 의자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그렇지 않습니다. " "판사님一' "지금 당신은 최소한 3개월- 아니,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재판을 열 것을 강요하고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브레넌 검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죄송합니다만一' "싱거 변호사,난 지금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이 자리에있는 거예요 만일 재판이 시작되면 그녀는 틀림없이 사형을 당하게 될 겁니다. " '그만 하세요!사건을 심리도 하지 않고 미리 판결하는 건 옳지않아요...," '미리 판결한다고요?증거들을 보기나 하고 그런 소릴 하는 겁니까?' '네, 보았습니다. 저는一' '제발 내 말 좀 들어요,변호인.애슬리 패터슨의 DNA와 지문들이 모든 범행 현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난 이번처럼 명백한 유죄사건은 본 적이 없어요 만일 당신이 이런 것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하자고 우겨댄다면 자칫 잘못하면 서커스가 될 거예요 나는 그런 쇼가 내 법정 안에서 벌어지게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그냥보고 있을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이 사건을결말지어 버립시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변호인은 피고가 가석방 없는, 종신 징역에 처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데이비드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거부합니다. " 그러자 여판사가 그를 노려보았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납시다. " 데이비드는 적을 한 사람 만든 셈이었다. 15 사육제 축제 산호세는 마치 사육제 축제라도 열리는 듯한 분위기로 재빨리 바뀌어 갔다. 전세계의 매스컴이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오고있는 듯했다. 모든 호텔 예약이 이미 완료되어서 일부 언론 관계자들은 산타클라라, 서니베일이나 파올로 알토의 교외에 있는 방을 구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데이비드는 기자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싱거 변호사님, 사건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 주십시오 변호사님은 피고가 무죄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사측이 답변 협상을 원하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패터슨 박사는 딸을 위해서 증언할 계획인가요...?" "우리 잡지는 당신의 고객과 인터뷰를 하는 데 5만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믹키 브레넌 검사 역시 기자들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브레넌 검사님, 이번 재판에 대해서 몇 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브레넌 검사는 몸을 돌려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지요. 이 재판은 이 한 마디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 재판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더 이상은 노 코멘트입니다." "잠깐만요! 검사님은 그녀가 정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까...?" "검찰측은 사형을 요구하게 되나요...?" "검사님은 이번 사건이 간단히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데이비드는 법원에서 가까운 산호세에 사무실을 빌렸다. 그곳에서 피고측의 증인들을 면담하고 재판을 위해 그들에게 증언을 준비시켰다. 산드라는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 샌프란시스코의 퀼러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세일럼 박사가 드디어 산호세에 도착했다. "박사님께서 다시 한번 애슐리에게 최면술을 걸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데이비드가 부탁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그녀와 분신들로부터 가능한 많은 정보를 끌어내야 하니까요." 두 사람은 카운티 구치소의 면회실에서 애슬리를 만났다.애슬리는 애써 불안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대형 트럭 헤드라이트의 환한 불빛에 갇힌 새끼 사슴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애슬리 양. 세일럼 박사님을 기억해요?" 애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님께서 다시 당신을 최면에 걸 거예요. 그래도 괜찮겠지요?" 애슐리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내용을 얘기할 건가요?" "네, 왜 싫습니까?" "아니에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염려 마세요 당신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일은없을 거예요."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애슐리가 화가 난 듯이 갑자기 소리쳤다. "이해해요." 하고 데이비드는 달래듯이 말했다. "너무 걱정할 것없어요 곧 끝나게 될 테니까요." 그러고 나서 그는 세일럼 박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아, 긴장을 푸세요, 애슬리 양. 이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었나를 기억해 보세요. 눈을 감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당신의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세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다른모든 것은 잊어버리세요. 당신은 점점 잠에 빠져 듭니다. 당신의눈꺼풀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당신은 잠이 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잠들기를..." 10분 후, 애슬리는 완전히 최면에 걸려 있었다. 세일럼 박사가데이비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데이비드가 애슐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알레트와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알레트, 당신 거기에 있나요?" 두 사람은 애슐리의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일전에 목격했던 것과 같은 변신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고 경쾌한 이탈리아 사투리가 들려왔다." "본 조르노(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알레트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요. 지금은 매우 어려운 시기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다 어려운 때입니다." 하고 데이비드가 맞장구를쳤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요." "저도 그러기를 바래요." "알레트,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세요..." "짐 클리어리를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리처드 멜튼이란 사람은요?" "네, 알아요." 알레트의 목소리에는 깊은 비탄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어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세일럼 박사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아주 끔찍한 일이었지요 당신이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제가 샌프란시스코로 그를 만나러 갔을 때였어요. 우리는 함께미술관에 갔고, 그 다음 저녁 식사도 같이 했어요.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자신의 아파트로 같이 가자고 말했어요." "그래서, 함께 갔었나요?" "아니에요. 차라리 갔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하고 알레트는 후회하듯이 말했다. "그랬으면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몰라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람과 작별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큐퍼티노로 차를 몰고돌아왔어요." "그것이 당신이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나요?' "네, 그래요." "고마워요, 알레트 양." 데이비드는 애슐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토니 당신, 거기 있어요, 토니 양? 당신과 얘기를 좀나누고 싶어요." 두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애슐리의 얼굴이 또다시 현저히 바뀌어갔다. 그들의 눈앞에서 애슐리의 인격은 확신에 가득차고 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여성으로 변했다.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내의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이글' 금화를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네 그것이 돈이 없어지는 모습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그녀는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내가 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요, 아저씨?" "모르겠는데요." "우리 어머니가 이 노래를 싫어했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절 몹시 미워했거든요." "왜 어머니가 당신을 미워했을까요?" "글쎄요, 지금은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토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머니는 이미 죽어버렸으니까요. 전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일은 한 가지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당신의어머니는 어땠나요, 아저씨?"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참으로 행운아로군요, 안 그래요? 그건 제비를 잘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느님은 우리들과 게임을 하고있는 거라고요, 그렇죠?" "토니, 양은 하느님을 믿나요 하느님이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토니 양?" "모르겠어요. 어쩌면 하느님은 존재하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만일 존재한다면 그분은 이상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을 거예요, 안그래요? 알레트는 신앙심이 깊은 아가씨예요. 그녀는 매주 교회에나가니까요." "그럼 당신도 나가나요?" 토니가 짧게 웃었다. "글쎄요, 알레트가교회에 나간다면 나도 거기에 있는 거죠." "토니 양, 사람 죽이는 걸 어떻게 생각해요? 옳은 일이라고 믿고있나요?" "아뇨, 물론 아니에요." "그렇다면-" "꼭 죽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니에요." 데이비드 변호사와 세일럼 박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자 토니의 목소리 음색이 달라졌다. 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는 듯한 말투로 변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아시다시피,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경우란 말예요. 누군가가 해치려고 하는 경우, 같은 거죠." 그리고는 차츰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추잡한 짓을하려고 하는 경우죠." 그리고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토니-" 그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그 작자들은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거죠? 왜 그 작자들은 나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면-?"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토니-" 침묵. "토니..." 아무 반응도 없었다.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토니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빨리 애슐리를 깨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몇 분 뒤, 애슐리는 다시 눈을 떴다. "기분이 좀 어때요?" 하고 데이비드가 물었다. "피곤해요. 모든 게- 잘 되었나요?" "그럼요. 우리는 알레트와 토니하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들은-" "전 그 내용은 알고 싶지 않아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휴식을 좀 취하는 게 좋겠군요, 애슐리 양. 이따 오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세일럼 박사와 데이비드 변호사는 여교도관이 애슐리를 데리고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애슐리를 증인대에 세워야만 될 거요, 데이비드 그래야만 이세상의 어떤 배심원들이라도 납득시킬 수가 있소-"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봤습니다만." 하고 데이비드는 괴로운 듯이 말했다. "도저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요." 세일럼 박사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브레넌 검사는 인정사정 없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아마 애슐리를 발기발기 찢어 놓을 겁니다. 도저히 나는 그런 모험을 할 수없습니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재판의 예심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 퀼러변호사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윈덤 호텔에 겨우 방을 얻었어요." 하고데이비드가 말했다. "이것은 지배인이 특별 배려를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번엔 산드라도 저와 함께 내려 갈 거예요,선생님. 그곳은 정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비고있더군요." "아니, 벌써부터 그렇게 사람들로 붐빈다면," 하고 에밀리 부인이 말했다. "재판이 시작되고 나면 어떻게 될지상상이 가네요." 퀼러 변호사는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나?" 데이비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 지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애슐리 양을 증언대에세우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 말입니다." "그건 정말 결정하기 힘든 문제군." 하고 제시 퀼러 변호사가 말했다. "증언대에 세우기도 그렇고 안 세우기도 그렇고. 문제는 브레넌 검사가 애슬리 패터슨을 아주 잔혹하고 살인을 즐기는 괴물같은 여자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점일세. 만일 자네가 그녀를 증언대에 세우지 않는다면, 배심원들은 평결을 작성하기 위해 방으로들어갈 때, 마음속에 바로 그러한 이미지를 갖고 들어갈 거란 말일세. 그렇다고 해서 애슐리를 증언대에 세우면, 자네 말대로 브레넌검사가 그녀를 작살내버리고 말 테니 큰 걱정이군." "아마도 브레넌 검사는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법정에 수많은 의학 전문가들을 동원할 겁니다. "자네는 배심원들에게 그런 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해야만 할 걸세."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그런데 저를가장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생님? 바로조크입니다. 그곳에 떠돌아다니는 최신의 농담은, 내가 재판지의변경을 요구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안에 애슐리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조니 카슨이 텔레비전에 나오던 때를 기억하고 있으시죠? 조니 카슨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웃겼지만 언제나 신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심야 토크쇼의 사회자들은 모두 악의 일변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물로 삼아서 하는 그들의 유머는 정말 야만적이에요." "데이비드." "네?" 제시 퀼러 변호사는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는 그보다 더욱 악랄해질 걸세." 법정에 나가기로 되어 있는 그 전날 밤,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는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머릿속을 빙빙 떠돌아다니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잠이 들었을 때,그는 어떤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는 예전에 네 고객을 죽게 만들었어. 이번 고객도 죽게 되면어떻게 할 셈이지?' 데이비드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산드라가 잠을 깼다. "여보, 왜 그래요?"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도대체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하고 있는 거지? 그때 이 사건을 맡아 달라고 할 때, 패터슨 박사님에게 못 하겠다고 딱 잘라 말했어야 하는 건데." 산드라는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씀 드리지 못했잖아요 안 그래요?" 데이비드는 씁쓸하게 말했다. "당신 말이 옳아. 차마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럼 그것으로 끝난 거예요. 자아, 내일 하루를 좋게 시작하려면 이제 그만 잠을 좀 자 두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지."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다. 매스컴에 대한 월리엄스 판사의 예언은 적중했다. 기자들은 인정사정 없었다. 무자비한 연쇄 살인마로서 재판을 받는 아름다운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취재하려고 저널리스트들이 전세계로부터몰려들었다. 짐 클리어리나 장 클로드 패랑의 이름을 법정에서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 믹키 브레넌 검사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매스컴이 검사를 대신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텔레비전의 토크 쇼와 잡지들과 신문들이 모두 다섯 건의 엽기적인살인 사건을 앞다투어 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믹키 브레넌 검사는 더할 수 없이 기뻐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법원에 도착하자,기자들은 이미 그 앞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그 회오리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님, 변호사님은 아직도 <킨케이드> 법률사무소에 고용되어 있는 상태입니까...?" "이쪽으로 몸을 좀 돌려주세요, 싱거 변호사님..." "이 사건을 맡아서 파면당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헬렌 우드맨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예전에 그녀의살인 사건 변호를 맡았었지요...?" "애슐리 패터슨 양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 이유를 말했습니까...?" "애슬리 패터슨 양을 증인대에 세을 예정인가요...?" "노 코멘트." 데이비드 변호사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믹키 브레넌 검사가 법원에 차를 몰고 나타나자 기자들은 즉각그쪽으로 몰려들었다. 브레넌 검사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보십니까...?" "검사님은 이전에 변신 살인 사건의 재판에 관여해 본 적 있습니까...?" 브레넌 검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런 피고도 존재합니까?" 그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웃음을 기자들로부터 끌어냈다. "그런 사람들이많다면 야구팀을 만들어도 되겠군요." 다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겠군요. 그런 특이한 피고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비 심문은 월리엄스 여판사가 예비 배심원에게 일반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판사가 질문을 끝내자 피고측의질문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 검찰측이 질문을 했다. 문외한이 이런 장면을 본다면 배심원 선발은 간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배심원을 고를 때는 우호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고르고, 그렇지않은 사람은 버려라.' 실제로 예비 심문은 아주 신중하게 진행된다. 노련한 공판 변호사들은 '예스' 나 '노' 라는 대답을 가져다주는 직접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반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배심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털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배심원 선발에도 믹키 브레넌 검사와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는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서 검사측은 배심원에 남성을 많이 선발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즉, 여자가 피해자를 칼로 난자하고 성기를 잘라낸다는 생각에 혐오감을 느끼고 충격 받을 남성을 말이다. 검사측의 질문은 사고방식이 보수적인 사람, 영혼이나 귀신 같은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분신이 내부에 존재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데 주안점이 놓여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그 반대의 접근 방법을 택했다. "해리스 씨, 맞습니까? 전 이번 사건에서 피고를 대리하고 있는데이비드 싱거입니다. 이전에 배심원으로 선발된 적이 있습니까,해리스 씨?" "없습니다." "우선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감파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배심원이 되려는 이유가 뭐죠?" "이와 같은 살인 재판은 매우 흥미로을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사실 저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이번 재판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세요?" "네." "어느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까?" "유에스 철강회사입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동료 직원들과 패터슨 사건에 관해서 얘기를나누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당연히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죠."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그랬겠죠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해서 얘기들을 나누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의견은 어떤 것입니까? 당신의 동료들은 애슐리 패터슨이 유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은 그렇다 해도 마음을 결정하기 전에 증거들에 귀기울일 용의는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증거에 귀를 기울일 생각입니다." "당신은 어떤 책을 즐겨 읽습니까?" 솔직히 전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럴 시간이면 캠핑 가서 사냥하고 낚시하는 게 낫죠." "옥외 생활을 좋아하는 분이시군요. 그렇다면 캠핑 가서 하늘에무수히 떠 있는 별을 보았을 겁니다. 혹시 그걸 보면서 하늘 위에다른 문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 적 있습니까?" "지금 저에게 그 미친놈의 UFO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겁니까? 저는 그런 허황된 얘기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월리엄스 판사에게 돌아섰다. "검찰측으로 넘기겠습니다." 또 다른 배심원을 상대로 한 질문. "당신은 여가 시간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나요, 알렌 씨?" "글쎄요. 주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내는데요." "저와 같군요. 그럼 텔레비전은 어떤 프로를 즐겨 보십니까?" "목요일 밤에 방영되는 쇼 프로그램들을 즐겨 봅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방송국들이 쇼를 같은 시간대에 내보내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너무 심하더군요. 그런데 혹시 을 본 적 있습니까?" "네, 우리 아이들이 그 프로를 좋아해요." "<사브리나>와 <틴에이지 윗치>는 어떻습니까?" "네, 그것도 자주 봐요.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예요." "어떤 작가의 책을 즐겨 읽습니까?" "앤 라이스, 스티븐 킹..." '오케이!' 또 다른 배심원을 상대로 한 질문. "당신이 텔레비전에서 즐겨 보는 프로는 어떤 거죠, 마이어 씨?" "<60분>, 짐 레러가 진행하는 <뉴스 아워>, 그리고 기록 영화..." "어떤 책을 좋아합니까?" "주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책을 좋아합니다." '불합격!' 테사 월리엄스 여판사는 법관석에 앉아서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있었으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변호사는 여판사가 자신을 쳐다볼 적마다 매번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배심원의 선출이 끝났을 때, 배심원단은 남자 7명과 여자 5명으로 구성되었다. 브레넌 검사는 승리라도 거둔 듯이 데이비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이 재판은 학살장으로 변하겠군!" 첫 공판 애슐리 패터슨의 재판이 시작되는 날 아침 일찍, 데이비드변호사는 구치소에 있는 애슬리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몹시 불안해보였고, 거의 병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저히 견딜 수가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제발 날 혼자 있게 내버려둬 달라고 말 좀해주세요." "애슐리 양,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반드시 이길 테니까요." "변호사님은 몰라요-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전혀 모를 거예요. 마치 무시무시한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요." "지금 우린 당신을 그 속에서 꺼내 주려는 거예요. 애슐리 양,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아요." 애슐리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무서워 죽겠어요. 저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어떤 끔찍한 짓을하려고 하고 있다고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겠소."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힘을 주어 말했다. "나만 믿어요. 당신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거요. 당신은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자아, 저 사람들이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애슐리는 깊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이제 됐어요. 괜찮아질 거예요. 괜찮아지고 말고요. 곧 괜찮아질거예요." 방청석 한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스티븐 패터슨 박사였다. 박사는 법정 밖에서 구름떼 같은 기자들의 질문에 오로지 한 가지대답으로 일관했다. "우리 딸은 무고합니다." 몇 줄 떨어진 곳에는 사기를 돋우기 위해 제시와 에밀리 퀼러부부가 앉아 있었다. 검찰측 테이블에는 믹키 브레넌 검사와, 수잔 프리먼과 엘리노어 터커 조수가 앉아 있었다. 산드라와 애슐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지난 주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데이비드, 애슐리 양을 좀 보세요. 그러면 그녀가 무고하다는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산드라, 당신도 피해자들에게 남겨 놓은 증거물들을 보면, 애슐리 양이 그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들을 죽였다는 것과, 유죄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배심원들에게 납득시는 일이라고." 월리엄스 판사가 법정 안으로 들어와 ス판장 석으로 걸어갔다. "전원 기립! 지금부터 법정을 개정하겠습니다. 테사 월리엄스 판사님께서 주관을 하십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착석, 이것은 '캘리포니아 주민 대 애슐리 패터슨' 사건입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월리엄스 판사가 브레넌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찰측이 먼저 진술을 하겠습니까?" 믹키 브레넌 검사가 일어섰다. "네, 재판장님." 그리고는 배심원단 쪽으로 돌아서서 그들에게로 가까이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피고는세 건의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죄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살인자는 여러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등장합니다." 검사는 애슐리를 턱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녀의 변장은 순진하고 연약한 젊은 여인의 그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측은 여러분에게 피고가 자발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세 명의 무고한 남성을 살해하고 거세했다는 것을 합리적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피고는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서 세 건 중 한 건의 살인을 할 때에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피고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치밀하게 계산된, 냉혹하고 잔인한 살인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측은 그것을 뒷받침해줄 모든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시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브레넌 검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월리엄스 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피고측도 진술을 하겠습니까?" "네, 재판장님."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심원단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피고측은 여러분에게 애슐리 패터슨 양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는 것을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그녀는 어떤 살인에 대해서도 동기를 갖고있지 않으며, 또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 있는 피고는 하나의 희생자입니다. 그녀는 <다중 인격 장애>의 희생자인데, 그 병에대해서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월리엄스 판사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다중 인격 장애>는 확정된 의학적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주인의 몸을 접수해서 그 행동을 컨트롤하는 다른 인격이나분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중 인격 장애>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의사이며 독립선언서의 서명자이기도 했던벤자민 러쉬도 강연에서 <다중 인격 장애>의 병력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수많은 <다중 인격 장애>의 사건들이 19세기전체를 통해서 보고되고 있으며, 금세기 역시 분신에 의해 지배된사람들의 사고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의 진술에 귀를 기울이면서 얼굴에 냉소를 띠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애슐리 패터슨 양이 저질러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살인을 범하도록 명령하고, 실제로 행한 것이 <분신>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그녀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제어력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살인 사건에아무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촤고측은 <다중인격 장애>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고명한 의사들을 증인으로 내세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병은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애슐리 패터슨 양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제어력을 갖고있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 범죄로 인해서애슐리 패터슨 양이 유죄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리에 앉았다. 월리엄스 판사가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찰측은 진행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브레넌 검사가 일어났다. - "네, 준비가 되었습니다. 재판장님." 검사는 조수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배심원석 앞으로걸어 나갔다. 배심원들 앞에 서 있던 그가 갑자기 커다랗게 트림을한 번 했다. 배심원들이 깜짝놀라며 일제히 검사를 쳐다보았다. 브레넌 검사는 곤혹스러운 듯이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얼굴의주름살을 폈다. "아아, 알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가 '실례했습니다' 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그런 짓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과의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분신인 <피트>가트림을 한 것이니까요." 그러자 데이비드 변호사가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인정 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피고측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다.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다시 배심원 석으로 돌아섰다. "제 생각에 이러한 변명은 3백 년 전 살렘의 마녀 재판 이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나는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정말예요! 악마가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킨 거라고요." 데이비드가 다시 벌떡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검찰측은 지금-" "기각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맥없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브레넌 검사는 배심원 석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앞서 검찰측은 여러분에게, 피고가 자발적으로 냉혹하게 세 명의 남성, 즉 데니스 티블, 리처드 멜튼, 그리고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를 살해하고 거세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달고 약속했습니다. 피고는 자그마치 세 사람이나 살해한 것입니다! 피고측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하고 브레넌 검사는 몸을 돌려 애슐리를 다시 가리켰다.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피고인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그 많은 살인을 저지른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싱거 변호사는 그것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다중 인격 장애>라고요?검찰측은 곧 선서 하에 그런 병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여러분에게 명백하게 얘기해 줄 저명한 일학 박사들을 증인석에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이 사건과 피고를 결부시켜 줄 몇몇전문가들의 증언부터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월리엄스 판사에게 몸을 돌렸다. "검찰측은 첫번째 증인으로 특수요원인 빈센트 조던을 환문하겠습니다." 그러자 키가 작고 이마가 벗겨진 남자가 일어나서 증인석 쪽으로 걸어갔다. 법정 서기가 말했다. "증인의 성명 전부와 철자를 말해 주십시오." "빈센트 조던, J-o-r-d-a-n입니다." 검사는 그가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증인은 워싱턴의 연방수사국(FBI)에 근무하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FBI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조던 요원?" "지문반의 책임자로 있습니다." "그 자리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15년입니다." "15년이라... 15년 동안에 서로 다른 사람의 지문이 동일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FBI가 확보하고 있는 지문은 어느 정도나 되죠?" "초소한으로 잡아도 2억 5천만 개의 지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일 3만4천 개의 지문을 새로 송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단 하나라도 다른 것과 동일할 수는 없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증인은 어떻게 지문을 식별합니까?"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지문 패턴을 사용해 지문을 식별합니다. 지문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형성되어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됩니다. 우연한 사고나 의도적인 훼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지문도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조던 요원, 각각 다른 세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모두 받았나요?" "네, 받았습니다."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의 지문도 받았습니까?" "네, 받았습니다." "증인은 그 지문들을 직접 검사해 보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살인 현장에 남겨진 지문들과 애슐리 패터슨으로부터 채취한지문은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법정 안이 소란스럽게 웅성거렸다. "조용하시오! 조용하시오!" 브레넌 검사는 법정 안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계속했다. "두 지문이 동일하다고요? 어떤의심이 들지는 않았나요, 조던 요원? 어떤 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않습니까?" "없습니다. 지문들이 모두 깨끗해서 동일함을 증명하기가 매우쉬웠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고 넘어 갑시다... 우리는 지금 테니스 티블과 리처드 멜튼과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의 살해 현장에 남아있었던 지문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의 지문이 모든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었단 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지금까지 말한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잘못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던 요원." 그리고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싱거변호사를 돌아다 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죠." 데이비드 변호사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증인석으로 걸어갔다. "조던 요원, 평상시 지문을 검사하다가 범인이 범죄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그 지문의 일부를 일부러 흐리게 하거나 훼손시킨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훼손된 지문은 대개 고감도 레이저 기술로 원상 복귀시킬 수가 있습니다." "애슐리 패터슨의 사건에서도 그런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나요?" "아닙니다." "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지문은 모두 깨끗했으니까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증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피고는 자신의 지문을지우려고 하거나 흐리게 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배심원석으로 돌아섰다. "애슐리 패터슨은 자신이 무고하기 때문에 자신의 지문을 숨기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변호인! 변호인에게는 주장을 펼 수 있는기회가 따로 주어질 것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브레넌 검사가 조던 요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려가도 좋습니다." 그러자 조던 요원은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브레넌 검사가 계속했다. "검찰측은 다음 증인으로 스탠리 클라크를 환문합니다." 머리칼을 길게 기른 젊은이가 법정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증인석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는 동안 법정 안은 물을 뿌린 듯 조용했다. 브레넌 검사가 물었다. "직업이 뭡니까, 클라크 씨?" "전 <내셔널 바이오텍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옥시리보 핵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학에 문외한인 우리들에게 보통 DNA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것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내셔널 바이오텍 연구소>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습니까?" "7년쯤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지위는 무엇입니까?" "감독입니다." "그렇다면 DNA 테스트에 대한 경험이 많겠군요?" "그렇습니다. 매일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브레넌 검사사 배심원 쪽를 힐끗 바라보았다. "DNA 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분에게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고 나서 검사는 방청석을손으로 가리켰다. "클라크 씨. 지금 방청석에는 많은 분들이 앉아있습니다. 혹시 저분들 중에 대여섯 명이 동일한 DNA를 갖고 있을 수도 있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검사님. 우리는 DNA 사슬의 특징을 알아낸후 수집된 데이터베이스에 의거해서 주파수를 배정해 주는데, 동일한 DNA 특징을 가질 가능성은 5천억 명에 한 사람 꼴입니다." 브레넌 검사는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5천억 대 1이라고요? 클라크 씨, 당신은 범죄 현장에서 어떻게DNA를 수집합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타액이나 정액, 질 분비물, 혈액, 머리카락, 치아, 뼈의 골수 등에서 DNA를 찾아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 가운데서 찾아낸 것을 어떤 특별한 사람과 결부시킬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데니스 티블과 리처드 멜튼과 샘 블레이크의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DNA증거물을 직접 비교해 보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증인은 후에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의 머리칼을 몇 가닥 받은일이 있죠?" "네, 받았습니다." "여러 살인 현장에서 얻은 DNA 증거물과 피고의 머리칼에서나온 DNA를 비교했을 때, 어떤 결론이 나왔나요?" "그것들은 모두 동일했습니다." 이번에는 방청객들의 반응이 전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웠다. 월리엄스 판사는 의사 봉을 힘껏 내려쳤다. "정숙! 조용히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법정에서 퇴장시키겠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법정 안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클라크 씨, 방금 전의 말은 그러니까, 세 군데의 살인 현장에서채취한 DNA와 피고의 DNA가 동일하다는 건가요?" 하고 브레넌검사는 또박또박 끊어서 말을 했다. "네, 그렇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애슬리가 앉아 있는 피고석을 힐끗 바라보고는다시 증인에게 돌아섰다. "오염도는 어땠습니까? 우리 모두는 DNA 증거물이 더럽혀져서문제가 되었던 한 유명한 살인 사건의 재판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증거물도 잘못 취급되어 더 이상 증거로서의 효력을 상실했다거나 하는-?" "천만에요, 검사님. 이번 살인 사건의 DNA 증거물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부터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졌고,또 단단히 봉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에는 하등 의심할 여지가 없겠군요. 피고는 세명의 남성을 살해했는데..." 데이비드 변호사가 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증인을 유도 심문하고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자 데이비드 변호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클라크 씨." 하고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돌아다보았다.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반대 심문을 하세요, 싱거 변호사." "질문 없습니다." 배심원들은 일제히 데이비드 변호사를 응시했다. "질문이 없다고요?" 하고 검사는 잠시 놀란 듯 데이비드 변호사를 쳐다보고는 증인에게로 돌아섰다. "증인은 내려가도 좋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배심원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검찰측은 피고측이 증인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피고가 세명의 무고한 남성을 살해하고 거세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데이비드 변호사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인정합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뛰어 넘었어요, 브레넌 검사!"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애슐리가 겁먹은 얼굴로 데이비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그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걱정할 것 없어요. 이제 곧 우리 차례가 올 테니까요." 그날 오후에는 검찰측의 증인돌이 더 많이 등장했는데 그들의증언은 대개 피고측에게 매우 불리한 것들이었다. "그 건물 관리인이 증인에게 테니스 티블의 아파트로 오라고 전화했나요, 라이트맨 형사?" "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증인이 본 것을 얘기해 주겠습니까?"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은 온통 피투성이였으니까요." "피해자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피해자는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온몸이 난자당하고 거세되어있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얼굴에 공포의 표정을 띠고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난자당하고 거세당해 있었단 말이지요? 범죄 현장에 또다른 증거물은 없었나요?"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죽기 전에 섹스를 했습니다. 피해자의 몸에서 얼마간의 질 유출물과 지문을 발견했습니다." "왜 경찰은 그 자리에서 즉시 누군가를 체포하지 못했습니까?" "찾아낸 지문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어느 지문과도 일치하지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관할이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며 일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마침내 애슬리 패터슨의 지문과 DNA를 확보했을 때, 그것들과 완전히 일치한 거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매일 재판에 참석하여 피고석 바로 뒤쪽의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법정에 들어 올 때나 나갈 때나 항상 기자들이 그를 둘러쌌다. "패터슨 박사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재판 결과가 어떨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곧 우리 딸이 무고하다는 게 밝혀질 것입니다." 어느 날 오후 늦게, 데이비드와 산드라가 호텔에 돌아와 보니 메시지 하나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래 은행의 퀑 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벌써 월부금을 지불할 때가 된 걸까요?" 산드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런 것 같아. 시간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는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법이지." 하고 데이비드는 비ユ아서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재판은 곧 끝나게 될 거야, 여보. 그리고 돈은 걱정하지 마. 이번 달 월부금을 지불해도 될 만큼은행에 잔고가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산드라는 남편을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데이비드, 만일 월부금을 모두 지불하지 못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불해 온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거 아니에요?" "모두 날아가 버리겠지.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좋은 일은 선한사람에게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데이비드는 헬렌 우드맨에 대해서 생각했다. 브라이언 힐은 선서를 한 다음에 증인석에 앉았다. 그러자 브레넌 검사가 그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힐 씨?" "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드 영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직업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만일 그림을 좋아하면 말이지요. 소질은 없지만 전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몇 년 동안 그곳에서 근무했습니까?" "4년입니다." "미술관에는 같은 사람들이 매번 찾아오곤 하지 않습니까? 다시말하자면, 어제 왔던 사람이 이삼일 후에 다시 찾아오고 그 후에또 찾아오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럼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서로 낯이 익게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로는, 화가들은 미술관에서 진품들을 모사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미술관에도 그런 화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화가들과 만나 얘기해본 적이 있습니까, 힐 씨?" "네, 물론입니다. 그러다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증인은 리처드 멜튼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브라이언 힐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보고 증인이 그에게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때 데이비드 변호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건 재미있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얘기가 재판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검사가-" "모두 관련 있는 답변입니다. 재판장님. 검찰측은 힐 씨가 직접눈으로 보고, 또 이름을 들어서 피해자를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확인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누구하고 사귀고 있었는지를 이 자리에서 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검찰측은 그대로 진행하세요." "그럼, 리처드 멜튼 씨가 당신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멜튼 씨가 미술관에 왔을 때 증인은 그가 어떤 젊은 숙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네, 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 근래에 그가 관심 있어 하는 어떤 여자를 보게 되었으니까요. 그 뒤로저는 그가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알레트 피터스였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어리등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레트 피터스라고요? 그 이름이 정확합니까?" "물론입니다. 그가 분명히 그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혹시 이 법정 안에서 그 여자를 보지 못했습니까?" "네, 보았습니다." 하고 브라이언 힐은 애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앉아 있는 아가씨가 바로 그녀입니다." 브레넌 검사가 반박했다. "그러나 저 여자는 알레트 피터스가 아닙니다. 저 여자는 피고인애슐리 패터슨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피고측은 이미 알레트 피터스가 이 재판의 일부라는것을 말했습니다. 그녀는 애슐리 패터슨을 지배하고 있는 분신 중하나로써-" "너무 앞질러 가고 있군요, 싱거 변호사. 브레넌 검사, 계속하세요." "힐 씨, 저곳에 애슐리 패터슨이라는 이름으로 앉아 있는 피고가리처드 멜튼 씨에게는 알레트 피터스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알레트 피터스라는 여자와저기 앉아 있는 피고가 같은 여자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까?" 브라이언 힐은 잠시 망설였다. "글쎄요... 그렇습니다. 같은 여자입니다." "헬튼 씨가 살해되던 날, 증인은 그녀가 리처드 멜튼 씨와 함께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레넌 검사는 피고석을 바라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힐 씨, 제 개인적으로는, 수억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수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건 막중한 책임이 수반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렇습리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증인은 잠시도 경계 태세를 늦출 수가 없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또한 증인은 언제나 미술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무언가를 관찰하는 데는 증인을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겠네요?" "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브레런 검사가 증인에게, 애슐리패터슨이 리처드 멜튼 씨와 함께 있던 여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어떤 의심 가는 점이라도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증인이 잠시 망설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것 아닙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글쎄요 그녀는 상당 부분 같은 여자로 보이기는 했지만 어떤점에서는 다른 것처럼 보였거든요." "어떤 점이 다르게 보였습니까, 힐 씨?" "제가 보았던 알레트 피터스는 이탈리아인에 가까웠거든요. 그리고 이탈리아어 억양도 썼고요... 또 그녀는 피고보다 상당히 나이가 어려 보였습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힐 씨. 증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본 여자는애슐리 패터슨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로마에서 태어났고, 여덟살이나 어립니다-" 브레넌 검사가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그러자 데이비드 변호사는 월리엄스 판샅에게로 돌아섰다. "재판장님, 피고측은-" "두 분 다 재판장석으로 가까이 와 주시겠습니까?" 데이비드 변호사와 브레넌 검사는 급히 월리엄스 판사 앞으로걸어갔다.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싱거 변호사. 피고측은 검찰측이 증인 심문을 끝내고 나면 따로 주장을 개진할기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자제해 주십시오." 버니스 젠킨스가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의 직업을 말해 주시겠습니까, 미스 젠킨스?" "웨이트리스입니다." "어디서 일하고 있습니까?" "<드 영 미술관>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리처드 멜튼과 어떤 관계였습니까?"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 관계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한때 우린 연인 사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못 가 우리 애정은 식어버렸죠.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오빠와 동생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나는 그에게 내 모든 문제를 털어놓고 의논하고, 그도 나에게 모든신상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멜튼 씨가 피고에 대해서 당신과 의논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네, 그러나 그때 그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 이름은요?" "알레트 피터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힐튼 씨는 그녀의 이름이 사실은 애슐리 패터슨이라는젓을 알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도 그녀의 이름이 알레트 피터스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멜튼 씨를 속였다는 뜻입니까?" 데이비드 변호사가 화를 내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검사는 증인을 유도 심문해서는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하고 브레넌 검사는 다시 증인석으로몸을 돌렸다. "멜튼 씨에게서 알레트 피터스에 관한 얘기를 들은것 말고, 증인은 그 두 사람이 실제로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보았습니다. 언젠가 멜튼이 그녀를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와서 소개까지 시켜 주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과 얘기를 나누었습니까?" "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자신을 알레트 피터스라고 소개했습니다." 개리 킹이 증인석에 가서 앉았다. 브레넌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리처드 멜튼의 룸메이트였죠?" "그렇습니다." "두 사람 역시 친구 사이였습니까? 그럼, 멜튼 씨와 함께 놀러다니기도 했겠네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 더블 데이트도 많이 했습니다." "멜튼 씨가 특별히 어떤 젊은 숙녀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증인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그녀는 자신을 알레트 피터스라고 했습니다." "이 법정 안에 그녀가 있습니까?" "네, 저기에 앉아 있습니다." "기록을 위해서인데, 증인은 지금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을 가리키고 있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살인이 있었던 날 밤, 증인이 제일 먼저 아파트 그의 방에서 리처드 멜튼 씨의 시체를 발견했죠?" "네, 그렇습니다." "시체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온몸이 피투성이였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까, 거세되어 있지는 않았나요?" 개리 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맞아요.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그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배심원 석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은 정확히 그가 바라고 있던 반응을 나타내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경찰을 불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 쪽을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일어나서 개리 킹에게 다가갔다. "리처드 멜튼 씨에 관해서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어떤사람이 었습니까?" "멜튼은 훌륭한 친구였어요." "그가 평소에 친구들과 자주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나요? 싸움하것을 좋아했나요?" "리처드가요? 천만에요. 그 반대입니다. 리처드는 매우 조용하고느긋한 성격이었습니다." "자신이 조용한 성격이기 때문에 반대로 터프하고, 섹시한 아가씨들에게 호감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개리 킹은 어리등절한 얼굴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리처드는 아주 조용하고 마음씨 착한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그와 알레트가 자주 싸우진 않았나요? 혹시 그녀가 그에게 악을 쓰거나 고함 지르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까?" 개리 킹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변호사님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들은 한 번도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다정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럼, 알레트 피터스가 그에게 어떤 해를 끼칠 것 같은 행동을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의 있습니다. 피고측은 증인을 유도 심문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리에 앉으면서 애슐리에게 속삭였다. "걱정할 것 없어요 저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증언해 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실제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비드와 산드라가 윈덤 호텔의 레스토랑인 <산 프레스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급사장이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와서말했다. "어떤 분이 급한 일이라고 하면서 변호사님을 바꿔 달라는데요." "고마워요." 하고 데이비드는 산드라에게 말했다. "곧 돌아올게." 데이비드는 급사장을 따라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데이비드 싱거입니다." "데이비드? 나, 제시일세. 자네 방으로 빨리 올라가서 내게 전화를 걸어 주게. 만사가 다 글러 버렸어!" 17 불리한 증언 "선생님?" "데이비드,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자네가 무효 재판을 청구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무슨 일 있습니까?" "혹시 지난 며칠 동안 인터넷에 들어간 본 일 있나?" "아뇨. 그 동안 너무나 바빠서요." "하여간 그 빌어먹을 인터넷에는 온통 재판 얘기뿐일세. 심지어사람들은 채팅 방에 들어가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네." "짐작이 갑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인터넷에는 온통 부정적인 의견뿐일세, 데이비드 모두들 한결같이 애슐리가 유죄이고,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떠들어대고 있다네. 온갖 희한한 욕지거리들을 다 늘어놓으면서 말이야. 그들이얼마나 악의적이고 신랄한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일세." 제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갑자기 깨달은 듯 데이비드가황급히 말했다. "아니, 그럴 수가! 만일 배심원들 중 하나가 인터넷을-?" "맞네, 그들 중 몇 사람이 그것을 읽어 볼 확률이 매우 높네. 배심원들이 그걸 본다면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겠지- 나 같으면 무효 재판을 청구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배심원들을 격리시켜줄 것을 요구한겠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장 손을 쓰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산드라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돌아갔다. 산드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쁜 소식인가요?" "아주 나쁜 소식이야." 그 다음 날 아침, 법정이 열리기 전에 데이비드 변호사는 월리엄스 판사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브레넌 검사와 함께 판사의 사무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절 보자고 했나요?" "네, 판사님. 전 어젯밤에서야 이번 재판이 인터넷에서 가장 큰화두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채팅 방이 이번 재판을주제로 삼아 토론을 벌이고 있더군요. 그리고 거의 모두가 이미 피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편견을 갖게 하는 행위입니다. 배심원들 일부가 인터넷에 접속할수 있는 컴퓨터를 갖고 있거나 인터넷을 본 친구들로부터 얘기를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고측에 크게 불리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무효 재판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 신청을 기각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곳에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배심원들을 즉각 격리시킬 것을 신청합니다. 그래야만 인터넷으로부터..." "싱거 변호사, 변호사님도 이미 아시겠지만 매스컴은 매일 이 법정에 가장 많은 인력을 파견하고 있어요. 이 재판은 전세계 모든텔레비전, 라디오, 그리고 신문에서 떠들어댈 만큼 큰 화젯거리입이다. 내가 처음 당신에게 이 재판이 자칫하면 서커스로 변해버릴것이라고 경고를 한 바 있었죠? 하지만 당신은 전혀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판사는 몸을 쑥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요,이건 당신이 초래한 서커스예요. 만일 당신이 배심원들을 격리시키기를 원한다면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신청을 했어야지요. 그러나 그랬더라도 나는 아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 밖에 또 무슨 할 말 있습니까?" 데이비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꾹 참고 앉아 있었다. "없습니다, 판사님." "그렇다면 법정으로 가십시다." 브레넌 검사는 다울링 보안관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피고를 보호하기 위해 피고의 아파트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증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까? 누군가가 피고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도 그가 했습니까?"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언제 다시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의 보고를 받았습니까?" "그 뒤에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전 다음 날 아침에야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시체가 패터슨 양의 아파트 됫골목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증인은 물론 그곳으로 즉각 달려갔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증인은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다울링 보안관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샘의 시체가 피가 잔뜩 묻은 시트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온몸을 난자당하고 다른두 피해자처럼 거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두 피해자처럼요? 그렇다면 그 살인들은 모두 비슷한 유형으로 행해져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치 동일한 인물에 의해서 살해된 것처럼 보였습니까?" 그때 데이비드 변호사가 벌떡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 질문은 철회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했습니까, 보안관?" "글쎄요, 어쨌든 그 시점까지는 애슐리 패터슨 양은 용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우리는 그녀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지문을 채취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요?" "그 지문을 FBI로 보냈고 그 결과 그녀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배심원들에게 명백한 증거라는 말의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다울링 보안관은 배심원 석으로 향했다. "그녀의 지문이 그 이전의 살인 사건에서 채취한 다른 지문들과일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안관."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보안관, 피 묻은 칼이 패터슨 양의 주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증언을 들었습니다만, 그게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그 칼은 어떻게 숨겨져 있었습니까? 무엇인가로 싸서 숨겨 놓았던가요? 아니면, 찾을 수 없는 곳에 쑤셔 박아 놓았던가요?" "아닙니다. 그 칼은 아무나볼 수 있는 곳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곳에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는누군가가 그곳에 놓은 것이군요. 무고한 누군가가...?"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증인은 내려가도 좋습니다." 브레넌 검사가 입을 열었다. "법정이 허락한다면..." 하고 검사는 법정 뒤쪽에 있는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작업복을 입은 사나이가 애슐리 패터슨의 욕실 거울을 들고 들어왔다. 그 거울에는 '너는 곧 죽을 것이다!' 라는 글이 새빨간 립스틱으로 쓰여 있었다. 데이비드가 일어났다. "뭐 하는 겁니까?" 월리엄스 판사가 검사석을 돌아다보았다. "브레넌 검사?" "이것은 피고가 샘 블레이크를 살해할 수 있도록, 그가 자신의아파트로 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사용한 미끼입니다. 검찰측은 이것을 증거물 D로 채택하기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피고의 화장실약 선반에서 떼어온 것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것은 관련이 없습니다." "검찰측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어디 두고 봅시다. 그러나 일단 그대로 진행해도 좋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배심원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정면에 갖다 놓게 했다. "이 거울은 피고의 욕실에서 떼어온 것입니다." 하고 검사는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도 보는 것처럼, 거을 위에는 가로질러서, '너는 곧죽을 것이다' 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허나 이것은그날 밤,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를 자신의 아파트로 달려 오도록 하기 위한 구실이었습니다." 그는 월리엄스 판사에게 돌아섰다. "검찰측은 다음 증인으로 로라 니븐 양을 부르겠습니다." 한 중년 여인이 지팡이를 짚고 증인 석으로 가서 선서를 했다. "어디에 근무합니까, 니븐 양?" "저는 산호세 카운티의 자문 위원입니다." "그곳에서 증인은 어떤 일을 합니까?" "저는 필적 전문가입니다." "증인은 산호세 카운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습니까?" "22년 간입니다." 브레넌 검사는 거을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거울을 이전에도 본 일이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증인이 이 거울에 쓴 글씨를 검사했나요?" "그렇습니다." "그럼 증인은 피고의 필적 견본을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그것을 검토해 보았습니까?" "네." "그럼, 그 두 가지를 비교해 보았겠네요?" "네." "증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 두 가지는 동일한 인물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법정 안에서 일제히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증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애슐리 패터슨 양이 자기자신에게 협박의 글을 썼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잠시 망설였다. 그는 애슐리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눈앞의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질문 없습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데이비드를 의아한 듯이 내려다보았다. "질문이 없다고요,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 데이비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증언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배심원 석 쪽을 보았다. "검찰측은 애슐리 패터슨 양이 피해자들을알고 있었고,살해 동기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것입니다..." 그러자 월리엄스 판사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전에도 변호인에게 경고한 적이 있었을 텐데요. 이곳은 변호인이 배심원들에게 법률을 강의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법률 강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데이비드의 감정이 폭발했다. "재판장께서 검찰측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으니까 이런 일이-" "그만 하세요,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 재판장 석으로 다가오세요." 데이비드는 재판장 석으로 걸어갔다. "당신에게 법정 모욕죄를 적용하여 이 재판이 끝나는 그날 밤을안락한 감방에서 지낼 것을 선고합니다." "잠깐만요, 재판장님. 아무리 판사-" 여판사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하룻밤의 구류를 선고했습니다. 변호인, 이틀 밤을 지내고싶은가요?" 데이비드는 판사를 노려보며 그냥 서 있었다. "내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제를 하겠습니다." "현명한 결정입니다. 재판을 휴정합니다." 하고 월리엄스 판사가신랄하게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여판사는 법정 집행관을 돌아다보았다. "이 재판이 끝나는 날,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를 즉각 구속하도록 하세요." "네, 재판장님." 애슐리는 산드라를 돌아다보았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짓이죠?" 산드라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걱정 말아요. 제 남편을 믿으세요." 산드라는 제시 퀼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얘기 들었어요." 하고 퀼러 변호사가 말했다. "그 일이 모든 신문의 머리 기사로 실렸으니까요, 산드라. 데이비드가 분노를참지 못한 걸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판사는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그 친구를 괴롭혀 왔으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데이비드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렇게 악의적으로 대하는 거지요?" "저도 몰라요, 하여간 끔찍했어요. 선생님도 배심인는 얼굴을보았어야 했어요. 모두 다 애슐리를 증오하고 있어요. 그녀를 사형대에 보내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다음은 피고측 차례예요. 반드시 데이비드가 배심원들의 마음을 바러 놓을 거예요." "그런 '의지', 끝까지 저버리면 안 됩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나를 미워하고 있어, 산드라. 그 때문에 애슐리에게 본의 아니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게 사실이야. 만약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애슐리는 사형 당하게 될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수는 없지." "어떻게 하시려구요?" 하고 산드라가 물었다. 데이비드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거지, 뭐." 두 사람 모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매스컴은 일제히 그의 실패를 떠들어댈 것이다. "애당초 이 사건을 맡지 말았어야 했어." 하고 데이비드는 씁쓸하게 말했다. "패터슨 박사는 내가 자기 딸의 생명을 구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나는..." 데이비드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산드라가 양팔로 남편을 감싸 바짝 껴안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여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테니까요."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실망시켰어.'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애슐리도 산드라도... 아마 법률사무소에서도 쫓겨나겠지. 하지만 직장을 잃으면 안 되지. 아기도 곧 태어나는데... '모든 일이잘 해결될 테니까요.' 맞아, 그렇게 될 거야.' 다음날 아침, 데이비드 변호사는 월리엄스 판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브레넌 검사도 그곳에 와 있었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싱거 변호사?"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러자 월리엄스 판사가 물었다. "무슨 이유에서죠?" 데이비드 변호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이 사건에 적절한 변호인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히려 의뢰인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조용히 말했다. "데이비드 싱거 씨, 내가 당신을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게 하고 처음부터 재판을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더 많은 시간과돈을 낭비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착오예요. 당신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 대답은 '노' 입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잠시 눈을 감고 냉정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썼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대답했다. "네, 판사님. 말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이다. 18 피로 물든 사진들 재판이 시작된 지 어언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데이비드는단 하룻밤도 편안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그가 법정에서 돌아왔을 때 산드라가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들아가야 할까 봐요." 데이비드는 깜짝 놀라 아내를 쳐다보았다. "왜? 지금 한창 재판을- 아아, 맙소사!" 하고 데이비드는 아내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아기 때문이야? 벌써 태어나려고 하는 거야?" 산드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아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서 베일리 박사님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어머니가 오셔서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거든요." "당연히 돌아가야지. 당신은 집에 가 있는 게 좋겠어."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이제 난 아예 시간 관념이 없어졌나봐. 출산 예정일이 3주 후였던가?" "네, 그래요." 데이비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나는 당신 옆에 있어 줄 수가 없으니..." 산드라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초조해할 것 없어요, 여보. 재판은 곧 끝나게 될 거예요." "이 빌어먹을 재판이 우리의 생활을 몽땅 망치고 있어." "여보,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저더러 다시 나오래요. 아기를 낳으면 나도 돈을 벌 수가..." 그러자 데이비드가 말했다. "미안해, 산드라. 내가..." "여보, 당신이 옳은 일을 하는데 미안해할 게 뭐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데이비드는 아내의 배를 쓰다듬었다. "당신과 우리 아기 모두 사랑해." 하고 데이비드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내가 짐 싸는 것을 도와줄게. 아마 모든 일이 잘 해결될거야. 오늘 밤에 당신을 샌프란시스코까지 태워다 줄게." "안 돼요." 산드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곳을 떠나면 안돼요. 에밀리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생각이에요." "그럼 에밀리 부인에게 조금 일찍 와서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말해봐." "알았어요." 에밀리는 기꺼이 승락했다.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금세 데릴러 갈 테니까." 그리고 에밀리는 두 시간 후에 산호세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그날 저녁 <카이 제인>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정말 안쓰러워서 더 이상 못 보겠어요." 에밀리가 둘을 번갈아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지내야하다니..." "재판은 곧 끝날 겁니다." 하고 데이비드가 희망적으로 말했다. "어쩌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끝날지도 몰라요." 그러자 에밀리가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두 배로 축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데이비드는 산드라를 힘껏 껴안았다. "매일 밤 당신에게 전화를 걸게." 하고 데이비드가 속삭였다. "제발 내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난 괜찮으니까요. 여보, 당신을너무나 사랑해요." 하고 산드라는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몸 조심 하세요. 당신, 너무 피곤해 보여요." 산드라가 떠나고 난 뒤에야 데이비드는 자신이 정말로 외톨이가된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재판은 계속되었다. 브레넌 검사가 일어나서 법정에 고했다. "검사측은 다음 증인으로 로렌스 라킨 박사를 환문하겠습니다." 점잖게 보이는 백발의 신사가 선서를 하고 증인 석에 앉았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 주신 데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라킨 박사님. 우선 박사님의 경력에 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시카고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시카고 정신과 의사협회의 회장직을 전임한 바 있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대략 30년쯤 됩니다." "그럼 정신과 의로서 박사님은 수많은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을 보아 왔으리라고 추측합니다만?" "아닙니다." 브레넌 검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닙니다'라는 말은, 그러한 환자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까? 그렇다 해도 십여 명쯤은 보았겠지요?" "나는 다중 인격 장애 환자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일부러 실망한 듯한 얼굴로 배심원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의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신 이상 환자들을 30여 년 동안 치료해 오면서 다중 인격 장애 환자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나는 다중 인격 장애라는 것이 실제로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 "글쎄요, 정말 난감하군요, 박사님. 다중 인격 장애의 케이스들이여러 곳에서 보도되고 있잖습니까?" 라킨 박사는 코웃음을 쳤다. "보도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의사들이 다중 인격 장애라고 믿고 있는 것대부분이 정신분열증이나 우울병, 그 밖의 다양한 불안 장애와 혼동을 일으킨 것에 불과하니까 말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견해로군요. 그렇다면 박사님께선 그러니까 정신과 전문의로서 박사님은 다중 인격 장애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고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피고 석에서 일어나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박사님은 시카고 정신과 의사협회의 전임 회장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수많은 동료 의사들을 만났겠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로이스 세일럼 박사도 알고 있겠군요." "네. 아주 잘 압니다." "물론, 세일림 박사는 훌릉한 정신과 의사겠죠?" "뛰어난 의사입니다. 최고 중 한 사람이지요." "박사님은 클라이드 도노반 박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네,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그럼 도노반 박사를 훌릉한 정신과 의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일 나에게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면, 그를 부르첬습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약간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럼 잉그램 박사는 어떻습니까? 그를 알고 있습니까?" "레이 잉그램 박사 말입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지요." "유능한 정신과 의사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럼 그분들과 같은 유능한 정신과 의사들은 어떤 환자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같은 진단을 내리겠군요?" "아닙니다. 약간의 의견 차이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정신 의학은 정밀 과학이 아니니까요." "그것 참 매우 흥미롭군요, 박사님. 잠시 후에 세일럼 박사, 도노반 박사, 그리고 잉그램 박사가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을 치료해왔다고 증언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박사님만큼 유능하지를 못한 모양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반대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검사 쪽을 보았다. "재반대 심문 없습니까?" 브레넌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라킨 박사님, 종전에 거론된 의사들은 다중 인격 장왜에 관한박사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데 혹시 그들이옳고 박사님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천만에요 나도 다중 인격 장애를 믿지 않는 다른 정신과 의사들을 얼마든지 불러 올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브레넌 검사가 말했다. "업튼 박사님, 우리는 다중 인격 장애라고 생각되는 병이 때로는다른 정신적 장애와 혼동된 것이라는 증언을 들었습니다. 다중 인격 장애가 다른 정신적 장애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있는 테스트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런 테스트는 없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배심원들을 흘깃 바라보면서 깜짝 놀라 입을 쩍벌리는 시능을 해 보였다. "그런 테스트는 없다고요? 박사님은 지금 어떤 사람이 자기가다중 인격 장애라고 주장할 때, 자신이 범한 범죄에 책임을 지지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또는 꾀병을 부리는 것인지 또는그것을 핑계거리로 삼는 것인지 알아낼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미 말한 것처럼 그런 테스트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단순히 견해상의 문제란 말입니까? 어떤 정신과의사는 그것을 믿고, 어떤 의사는 그것을 믿지 않고?" "그렇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박사님은 누군가에게 최면을걸어 그가 다중 인격 장애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그런 시늉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업튼 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최면을 걸든, 소디움 아미탈(진정제의 일종)을 사용하든, 환자가 속이고 있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고있는지 그것을 식별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매우 흥미 있는 증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더 이상질문 없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변호인 석을 돌아다보았다. "반대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또다시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업튼 박사님, 다른 의사에게 다중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환자들이 당신을 찾아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까?" "아뇨, 가끔 있었습니다." "그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까?" "아뇨, 나는 치료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안 했습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환자는 공금 횡령자였는데 그는 자신의 분신이 횡령을 했기 때문에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언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또 어떤 환자는 가정 주부였는데 자녀를 구타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부인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들을 구타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각기 다른 변명을 하는 환자들이 몇 명더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로부터 몸을 숨기려고 안간힘을썼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모두 속임수를 쓰고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이 병에 관해서 매우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잇으니까요." 데이비드 변호사가 물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구요?" "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단 말입니까? 다중 인격 장애를 믿는 다른 의사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단 말입니까?"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박사님만이 유일하게 옳은 사람이란 말이군요? 감사합니다, 박사님, 심문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사이먼 렐레이 박사가 증인석에 올라가 앉았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60대 노신사였다. 브레넌 검사가 말했다. "이 자리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 박사님께선 아주다채로운 경력을 갖고 계시군요. 의사이시며 대학 교수, 또 연구소에서-" 데이비드 변호사가 일어났다. "피고측에서는 증인의 화려한 경력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브레넌 검사는 증인에게 돌아섰다. "랠레이박사님, '의원병' 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병이 있을 때 의학적인 정신요법 치료가 그 병을악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박사님?" "정신요법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정신요법사의 질문이나 태도가환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정신요법사는 환자에게 요법사의 기대에어긋나게 반응해선 안 된다는 느낌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다중 인격 장애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만약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내부에 있는 다른 인격에 관해서질문을 한다면, 환자는 의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 인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매우 미묘한 영역입니다. 아미탈(진정제)과 최면술은 정상적인 환자가 다중 인격 장애를 모방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이 말하고 있는 것은, 최면술의 영향하에 있을때 정신과 의사가 환자로 하여금 진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하기위해 환자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브레넌 검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일어나 증인 석으로 걸어가부드럽게 말했다. "박사님의 경력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정신과 의사일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계시더군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강단에 섰습니까?" "15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박사님께선 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쓰고 계십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혹시 시간의 절반은 강의하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의사로서 일하는 데 쓰고 계시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현재는 모든 시간을 강의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의사로서 일을 하지 않는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약 8년쯤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최신 의학 논문을 빼놓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군요. 그래서 박사님은 '의원병'에 대해서 그토록 정통하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과거에서 많은 환자들이 자신이 다중 인격 장애라고 주장하며 박사님을 찾아왔겠군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고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박사님이 의사로서 일할 때, 자신이 다중 인격 장애라고 주장하는 환자들을 십여명은 만나 보셨겠죠?" "아닙니다." "그러면 여섯 명쯤?" 렐레이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네 명쯤?" 대답이 없었다. "박사님, 자신이 다중 인격 장애라고 말하는 환자를 한 명이라도만나 보았습니까?" "글쎄요, 그것은 좀 말하기가..." "'예'나 '아니오'로 대답해 주십시오, 박사님." "아닙니다." "그렇다면 박사럼이 다중 인격 장애에 관해서 알호 있는 것은모두 책에서 읽은 것이겠군요?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검찰측에서는 증인을 여섯 명 더 불렀으나 증언은 모두 비슷한것이었다. 결국 브레넌 검사는 한결같이 다중 인격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미국 내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아홉 명이나불러온 셈이었다. 검찰측의 입증도 끝나가고 있었다. 검찰측의 마지막 증인이 내려가자, 월리엄스 판사가 브레넌 검사에게 물었다. "검찰측에서는 더 이상 증인이 없습니까, 브레넌 검사?" "없습니다. 재판장님. 그러나 검찰측에서는 배심원들에게 경찰이보관하고 있는 살인 현장 사진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만..." 그러자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데이비드 변호사를 보았다. "지금 뭐라고 말했습니까,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 "저는..." 하고 데이비드는 말을 삼키며 분노를 억눌렀다. "이의있습니다. 검찰측에서는 사진을 보여 줌으로써 배심원들을 선동하려고 하고..." "이의는 기각합니다. 공판 전 수속 때 이미 신청한 것입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브레넌 검사에게로 돌아섰다. "사진을 보여 줘도 좋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분노를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브레넌 검사는 책상으로 돌아와 사진뭉치를 집어다가 배심원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사진들은 보아서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판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결코 말이나 이론이나 변명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신비스러운 분신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야만적으로 잔인하게 살해된 세 사람의 사진들입니다. 법률은 누군가가 이 살인들에 대해서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의가 실현되는것을 보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배심원들의 얼굴이 공포로가득 차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검사는 월리엄스 판사에게 돌아섰다. "검사측의 입증을 마칩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4시군요 법정을 휴정하고 월요일 오전 10시에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폐정." 19 진실은 어디에 애슐리 패터슨은 교수대 위에 서 있었다. 그러자 경찰관 한명이 계단을 달려 올라와서 항의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저 여잔 전기 의자에서 처형하기로 되어 있단 말입니다." 장면이 바뀌고, 애슐리 패터슨은 전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교도관이 손을 뻗어서 스위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월리엄스 판사가악을 쓰면서 달려왔다. "안 됩니다. 그녀는 독물 주사로 사형하기로 했단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잠이 깨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침대 위에일어나 앉았다. 파자마는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다가 갑자키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열이 느껴졌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굉장히뜨거웠다. 데이비드는 침대 밖으로 걸어가려고 했으나 머리가 어찔어찔해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아아, 안 돼!" 하고 데이비드는 신음 소리를 냈다. "오늘은 안돼! 지금은 안 된다니까!" 오늘이야말로 데이비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오늘이야말로 피고측이 주장을 펴기 시작하는 날이었다. 데이비드는 비틀거리면서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었다. 그는 거을을 들여다보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데이비드 변호사가 법정에 도착했을 때 월리엄스 판사는 이미재판장석에 앉아 있었다. 모두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쉬고 갈라져 있었다. "재판장석으로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재판장석으로 걸어갔다. 브레넌 검사도 그의뒤를 따라왔다. "재판장님."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하루 유예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일이죠?" "저어- 몸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내일은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만."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변호인의 조수가 대신 진행하면 되지 않습니까?" 데이비드 변호사는 깜짝 놀라서 여판사를 쳐다보았다. "조수가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싱거 씨?" "왜냐하면..." 월리엄스 판사가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살인 사건의 재판은 지금까지 본 적이없습니다. 혹시 영광을 얻기 위해 지금 원맨쇼를 하고 있는 겁니까, 싱거 씨? 하지만 이 법정 안에서는 절대 그 영광을 손에 넣을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한 마디 할까요 당신은 악마가 시켜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의 변호를 내가 믿지 않으니까 사퇴해야 한다고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사퇴하지 않을 겁니다. 난 무슨일이 있어도 배심원들로 하여금 당신의 의뢰인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를 결정하게 할 생각이에요 또 할 말 있습니까, 싱거 씨?" 데이비드는 그대로 서서 여판사를 응시했다. 그녀를 비롯한 주위의 재판정이 빙글빙글 돌았다. 데이비드는 여판사에게 엿먹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그는 무릎을 꿇고 여판사에게 제발 공평하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드러눕고 싶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재판장님." 월리엄스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싱거 변호사, 당신 차례입니다. 제발 이 법정의 귀중한 시간을더 이상 낭비하지 마세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두통과 열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배심원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느릿느릿 말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검찰측이 다중 인격 장애의 진실들을 비웃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넌 검사가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검사의 주장은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검사는 다중 인격 장애에 관해서 전혀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증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병에 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들로 하여금여러분에게 설명을 해 드리게 할 예정입니다. 그분들은 명성이 높은 의사들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여러분이그분들의 증언을 듣고 나면,브레넌 검사가 말해 온 것과는 전혀다른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피고가 유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유죄'. 제1급 살인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범죄의 의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애슐리 패터슨 양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었기때문에 범죄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애슐리양은 그러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분신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습니다. 몇몇 저명한 의사들이 애슐리 패터슨 양이 두 개의 추가적인 인격, 또는 분신을 갖고있다는 것을 증언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배심원들은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비드는 잠시 눈을 꼭 감았다. "미국 정신병 학회는 다중 인격 장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전세계 유명한 의사들은 이런 문제를지닌 환자들을 치료해 왔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다중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애슐리 패터슨 양의 인격 하나가 살인을 저지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컨트롤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하나의 인격, 즉 분신이 한 행동입니다." 변호사의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어갔다. "문제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 여러분은 법이 무고한 사람을 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하나의 역설이 존재합니다. 가령 샴 쌍등이(신체의 일부가붙어 있는쌍등이)가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상성해 보십시다. 이 경우,법은 죄를 저지른 사람도 벌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를저지른 사람을 벌하게 되면 무고한 사람까지도 같이 벌하게 되기때문입니다." 배심원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월리엄스 판사를 돌아다보았다. "피고측은 첫 번째 증인으로 조엘 아샨티 박사를 부르겠습니다. ハ "아샨티 박사님, 박사님은 현재 어디에 근무하고 있습니까?" "뉴욕 시의 <매디슨 병원>입니다." "박사님은 피고측의 요청으로 이곳에 왔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이 재판에 관한 기사를 읽고 증언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오랫동안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환자들과 함께 일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다중 인격 장애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퍼져 있는 병이에요 그런데도 사람들 대부분이 그 병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요. 전 이 기회에그 병에 관한 오해도 불식시키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호의에 감사 드립니다, 박사님. 그 병에 걸린 환자에게서는두 개의 인격이나 분신을 발견하는 것이 보통입니까?" "내 경험에 의하면, 다중 인격 장애 환자는 보통 그보다 더 많은분신을 갖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1백 명쯤 가진 환자도 있습니다." 엘리노어 터커가 브레넌 검사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그가 미소를지었다. "다중 인격 장애 환자를 치료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15년되었습니다." "다중 인격 장애 환자의 경우, 대개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분신입니까?" "그렇습니다." 몇몇 배심원들은 메모를 했다. "그럼 내부에 그러한 인격들을 가지고 있는 주인은 다른 분신들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그건 일정치 않습니다. 분신들을 보면 일부는 다른 분신들을 모두 알기도 하지만 그 중 몇몇만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보통 그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합니다. 정신(심리)요법 치료를 받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아주 흥미롭군요. 그런데 그 병은 치료가 가능합니까?" "대개의 경우, 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정신 요법 치료를받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 6, 7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박사님께선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을 완치시킨 적이 있습니까?"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박사님." 데이비드 변호사는 잠시 배심원들을 살펴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흥미는 느꼈지만 납득하지는 못했군 그래.'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생각했다. 그는 검사를 바라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브레넌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아샨티 박사님, 박사님은 도움을 주기 위해 자원해서 뉴욕에서여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달려 왔다고 증언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혹시 이곳에 온 이유가, 이 재판이 매스컴의 관심을 끌고 있어서 충분히 개인 선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데이비드 변호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논쟁적인 심문입니다." "기각합니다." 아샨티 박사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미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박사님은 의료계에 투신한 이래 정신병 환자들을 얼마나 많이 치료했습니까?" "글쎄요, 아마 2백 명 가량 될 겁니다." "그 환자들 가운데서 다중 인격 장애로 고통 받았던 환자가 몇명이나 되었습니까?" "10여 명쯤..." 브레넌 검사는 짐짓 놀란 얼굴로 아샨티 박사를 바라보았다. "2백 명의 환자들 가운데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수 없는 것은, 아샨티 박사님, 어떻게 그렇게 몇 명안 되는 환자를 취급하고서 자기 자신을 전문가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혹시 다중 인격 장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부정할수 있는 어떤 증거를 이 자리에서 제시해 주실 수 있습니까?" "검사님은 증거라고 말합니다만-" "우리는 지금 법정에 있습니다. 박사님. 배심원들은 이론이나 "만약에..."라는 것에 의거해서 평결을 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피고가 자신이 살해한 남자를 미워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들을 살해하고 난 뒤에 그녀의 내부에 있는 분신을이용하기로 결심했다면-" 데이비드 변호사가 다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증인을 유도 심문하고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재판장님-" "앉으세요, 싱거 변호사." 데이비드 변호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월리엄스 판사를 노려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브레넌 검사가 아샨티 박사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박사님은 다중 인격 장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브레넌 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입니다." 로이스 세일럼 박사가 증인석에 앉았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질문을 했다. "세일럼 박사님, 박사님께선 애슐리 패터슨 양을 진찰해 보셨죠?" "네, 했습니다." "진단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패터슨 양은 다중 인격 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토니프레스코트와 알레트 피터스라고 불리는 두 개의 분신을 갖고 있습니다." "패터슨 양은 그녀들에 대해서 어떤 제어력을 갖고 있습니까?"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녀들이 점거한 뒤에 패터슨 양은일시적인 기억 상실 상태에 놓여집니다." "그것에 대해서 좀더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세일럼 박사님?"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이란 펴해자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2, 3분 계속될 수도 있고 며칠이나 때로는 몇 주일씩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에 그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그리고는 데이비드 변호사는 브레넌 검사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브레넌 검사가 반대 심문을 했다. "세일럼 박사님, 박사님은 현재 여러 병원의 자문 위원이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 생각엔 박사님의 동료들은 모두 재능이 있고 유능한 의사라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네, 모두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 모두 다중 인격 장애에 관해서 박사님과 같은의견을 갖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그렇지 않다니요?" "그들 가운데 일부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말은, 그러니까 그들은 다중 인격 장애란 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박사님은 지금 그들이 틀렸고 박사님이 옳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환자들을 치료해 왔기 때문에 그런 병이 존재한다는 것을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만일 다중 인격 장애와 같은병이 존재한다면 주인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하나의 분신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 분신이 '죽여라'하고 말하면 주인은 그것을 실천합니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다릅니다. 각각의 분신들은 각기 다른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주인도 명령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군요?" "물론 때로는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고요?" "아닙니다." "박사님, 다중 인격 장애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최면술에 걸린 환자들이 완벽한 신체적 변화를 보이는 것을 목격해 왔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존재의 근거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일럼 박사님, 만일 제가 따뜻한 방 안에서 박사님에게 최면을걸어서 박사님은 북극의 폭설 속에서 벌거벗고 있다고 말한다면,박사님의 체온이 내려가나요?" "아닙니다. 하지만-" "이상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다시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세일럼 박사님, 그러한 분신들이 애슐리 패터슨 양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조그만 의심이라도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 분신들은 패터슨 양을 점거하고 지배할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패터슨 양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단 말입니까?" "패터슨 양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피고측은 세인 밀러 씨를 증인으로 환문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서 데이비드 변호사는 그가 선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직업이 뭡니까, 밀러 씨?" "전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의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회사에서 몇년째 일하고 있습니까?" "7년째입니다." "애슐리 패터슨 양도 그 회사에서 일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패터슨 양은 증인의 부하 직원이었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패터슨 양을 아주 잘 알고 있겠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인은 다중 인격 장애의 어떤 증상들은 과대망상이나 신경쇠약 등과 비슷하다는 의사들의 증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러한 증상들을 패터슨 양에게서 발견한 적은 없었습니까?" "글쎄요, 나는-" "패터슨 양이 증인에게,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것처럼느껴진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까?" "네,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또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말한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패터슨 양이 당신에게, 누군가가 그녀의 컴퓨터에 칼로 찌르려고 위협하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때 증인이 패터슨 양의 상태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그녀에게 회사 전속 정신과 의사인 스피크맨 박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결국 애슐리 패터슨 양은 우리가 얘기했던 증상들을 보인 셈이네요."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밀러 씨." 데이비드 변호사는 브레넌 검사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하시지요." "관리하는 부하 직원이 몇 명이나 되죠, 밀러 씨?" "30명 정도입니다." "그 30명 가운데서 그런 불안 증세를 보인 직원이 애슐리 패터슨 양 혼자였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 정말 그런가요?" "모두들 때때로 불안감을 나타냅니다." "증인의 말은 다른 직원들도 회사 내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을받았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직원들 때문에 스피크맨 박사님은 한가하게 보낼틈이 없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깊은 인상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나 많이요?" "그렇습니다. 직원들 대부분이 각기 문제들을 안고 있었으니까요 그들도 모두 살아 있는 인간 아닙니까?" "더 이상 질문 없습니다." "재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데이비드 변호사가 증인 석으로 바짝 다가갔다. "증인은 좀전에 부하 직원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는데 주로 어떤 문제들입니까?" "글쎄요, 그건 남자 친구나 남편과의 말다툼에 관한 것일 수도있고..." "그리고요?" "혹은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또요?" "또는 자녀들에 관한 고민일 수도 있고..." "바꿔 말하면, 우리들 누구나 흔히 져는 가정 생활에서 야기되는문제들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피고의 경우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거나죽이려고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피크맨 박사를 찾아간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심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재판은 잠시 휴식으로 들어갔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우울한 기분으로 자동차를 몰고 공원 안을한 바퀴 돌았다. 재판은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의사들조차 다중 인격 장애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의사들의 의견이 엇갈린다면 무슨 수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겠는가? 결국 나는 애슐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못하는 건 아닐까?' 그는 법정 가까이에 있는 레스토랑 <해롤드의 카페>로 차를 몰았다. 그는 차를 주차시키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종업원이 데이비드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싱거 변호사님." 데이비드 싱거는 유명해져 있었다. '아니, 악명이 높아져 있는 것 아닌가?' "이쪽으로 오시죠, 변호사님." 데이비드는 종업원을 따라 틀별석으로 가서 앉았다. 종업원은메뉴판을 건네주고 미련이 남아 있는 듯한 미소를 남기고는 멀어져 갔다. 그녀의 엉덩이가 유혹하듯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유명인의 특전이군!' 하고 데이비드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일어설까 생각하는데 불현듯 산드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건강을 지키려면 먹기 싫어도 꼭 챙겨 드셔야 해요." 옆좌석에는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리치 보든보다 더 악독한 여자야. 그래도 보든은 두 명밖에는 죽이지 않았잖아." 다른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그녀는 피해자들을 거세까지는 하지 않았지." "자네는 배심원들이 어떤 평결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나?"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물론 사형 선고를 받겠지." "'그 여자 학살자'가 사형 선고를 세 차례 받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니까." '저게 바로 대중들의 생각이야.'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그는 만일 자기가 레스토랑 안을 걸어다닌다면 그와 같은 대화들을 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몹시 우울했다. 브레넌 검사는패터슨을 하나의 괴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갑자기 퀼러스승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만일 자네가 그녀를 증인대에 세우지 않는다면,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리기 위해 배심원 실로 들어갈 때 마음속에 바로 그러한 이미지를 갖고 들어갈 걸세." '그 기회를 놓쳐선 안 돼. 애슐리 양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배심원들이 직접 보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해." 종업원이 옆으로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싱거 변호사님?" "생각이 바뀌었소."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배가 고프지를 않아서요." 일어나서 레스토랑을 나오는 동안 그는 적의에 찬 시선이 자신의 등에 쏠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사람들이 무장하고 있지 않기를 빌어야겠군.' 하고 데이비드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20 절망의 늪 데이비드 변호사는 법원으로 돌아와 감방에 있는 에슐리를찾아갔다. 그녀는 작은 간이침대에 앉아서 시멘트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슐리 양." 애슐리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눈은 절망의 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슐리 옆에 걸터앉았다. "얘기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애슐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검찰측이 당신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끔찍한 소리들은... 모두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배심원들에게당신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애슐리는 그냥 덤덤한 표정으로 데이비드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데요?" "당신은 그저 병을 앓고 있는 품위 있는 인간이지요. 배심원들은그런 병을 갖게 된 당신을 동정할 겁니다. "변호사님은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거죠?" "증인석에 나가 증언해 주었으면 해요." 애슐리는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난- 할 수 없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할 게 없어요." "그건 염려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뿐이오." 경비원이 감방으로 다가왔다. "재판이 곧 속개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일어나서 애슐리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전원 기립! 이제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테사 월리엄스 판사께서 <캘리포니아 주민 대 애슐리 패터슨> 사건을 주관합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재판관 석에 앉았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월리엄스 판사에게 말했다. "재판관 석으로 다가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브레넌 검사가 데이비드 변호사와 함께 판사석 앞으로 다가가자 월리엄스 판사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싱거 씨?" "피고측은 개시 리스트에는 올라 있지 않은 증인을 환문하고 싶습니다." 브레넌 검사가 반대했다. "지금 와서 새로운 증인을 내세우겠다니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다음 증인으로 애슐리 패터슨을 환문하려고 합니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허가할 수 없..." 그때 브레넌 검사가 재빨리 끼어 들었다. "검찰측으로서는 이의 없습니다, 재판장님." 월리엄스 판사는 두 법률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피고측은 다음 증인을 부르세요."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그는 애슐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손을 내밀었다. "애슐리..." 애슐리는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 채 여전히 앉아 있었다. "자아, 어서요. 당신은 꼭 해야 합니다." 애슐리는 마지못해 피고 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소리를내며 뛰고 있었다. 그녀는 느릿느릿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브레넌 검사가 엘리노어에게 속삭였다. "나는 데이비드 변호사가 애슐리를 불러주기만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다네." 엘리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은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로군요." 애슐리 패터슨은 법정 서기의 주재 하에 선서를 했다. "당신은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까?" "선서합니다." 애슐리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러고 나서 애슐리는곧바로 증인 석에 앉았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슐리에게 다가가서 상냥하게 말했다. "당신에게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범하지 않은 끔찍한 범죄로 기소를 당했습니다.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은, 배심원들이 진실을 아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범죄를 행한 기억이 있습니까?" 애슐리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들을 흘깃 바라보고 나서 질문을 계속했다. "데니스 티블을 알고 있었습니까?" "네,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데니스 티블을 죽일 어떤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애슐리는 말을 하기가 무척이나 곤란한 것 같았다. "단지- 그가 마디 충고를 해달라고 해서 그의 아파트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리처드 멜튼을 알고 있었습니까?" "모릅니다..." "그 사람은 화가였습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경찰은 당신의 DNA와 지문을 그곳에서 발견했는데요." 애슐리는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로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전혀 모르니까요!" "그럼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를 알고 있습니까?" "네, 그분은 절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죽이지 않았어요!" "당신은 자신의 내부에 두 개의 다른 인격, 혹은 분신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애슐리 양?" "네." 애슐리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언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재판받기 전입니다. 세일럼 박사께서 그것에 관해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건- 그건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에요." "혹시 그 이전에 그러한 분신들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았나요?" "전혀 몰랐습니다." "당신은 토니 프레스코트나 알레트 피터스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지금은 그녀들이 당신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네...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들이 이러한 모든- 무시무시한 짓들을- 행한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리처드 멜튼을 한 번이라도 만난 기억이 없습니까? 데니스 티블이나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 아파트에 있었던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를 살해할 아무런 동기도 갖고 있지 않지요?" "그렇습니다." 대답하고 나서 애슐리는사람들로 꽉 차 있는 법정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싹한 공포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과거에 법률을 위반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슐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것으로 일단 심문을 마칩니다." 그는 브레넌 검작를 돌아다보았다. "반대 심문을 하시지요." 브레넌 검사는 얼굴에 미소를 담뿍 지으면서 일어났다. "패터슨 양 드디어 당신의 모든 것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게 되었군요. 당신은 과거에 단 한 번이라도 데니스 티블과 성적인 관계를 가진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리처드 멜튼과 성적인 관계를 가진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은 과거에 단 한 번이라도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 참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군요." 브레넌 검사는 배심원 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질 분비물의 흔적이 그들 세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테스트 결과 그들에게 얻은DNA는 당신의 DNA와 일치했습니다." "전- 저는 그런 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악마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이의 있습니다! 이것은 논쟁을 일으키려는-" "기각합니다." "그들 세 명의 난자당한 시체에 집어넣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런 짓을 할 만큼 당신에게 악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전...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FBI의 지문 수사반은 범죄 현장에서 경찰이 발견한 지문들을검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확신하지만-"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브래넌 검사." "네, 재판장님." 만족스러워하면서 데이비드 변호사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애슐리는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와 있었다. "그 분신들이 틀림없이 그런 짓을-" "제 곳의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들은 모두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당신 한 사람의 것이었단 말입니다." 애슐리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브레넌 검사는 테이블로 걸어가 셀로판 봉지 안에 있는 부져칼을 집어서 높이 치켜들었다. "이 칼을 알아보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집의-" "당신 집의 부엌칼이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미 증거물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 칼에 묻어 있는 피는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의 피와 일치했습니다. 물론 당신의 지문도 이 살인 무기에 묻어 있었습니다." 애슐리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잔인한 살인 사건치고 이렇게 명명백백한 사건은 본 적이 없고 이처럼 무기력한 피고도 본 적이 없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으로 꾸며낸 두 인물 뒤에 숭튼다는 것은 가장-" 데이비드 변호사가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이미 경고를 했을 텐데요, 브레넌 검사."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브레넌 검사는 계속 심문을 했다. "나는 배심원들이, 당신이 얘기하고 있는 그 분신이라는 인물들을 만나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은 애슐리 패터슨맞습니까?" "네..." "좋습니다. 나는 토니 프레스코트와 얘기하고 싶은데요." "나는... 나는 그녀를 불러낼 수가 없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애슐리를 놀란 듯이 바라보았다. "불러낼 수가 없다고요? 정말입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알레트피터스는 불러낼 수 있습니까?" 애슐리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패터슨 양 나는 지금 당신을 도와주는 겁니다." 하고 브레넌 검사가 생색을 내면서 말했다. "나는 배심원들에게 무고한 세 남자를살해하고 거세한 당신의 분신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들을 빨리 불러내세요!" "나는... 나는 할 수가 없어요" 애슐리는 흐느껴 울었다. "당신이 불러낼 수 없는 이유는 그녀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유령들 뒤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 증인 석에앉아 있는 사람은 당신 혼자이며, 당신 혼자 죄를 지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녀들은 존재하지 않고 당신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말해 줄까요?당신이 세 남자를 죽이고 잔인하게 거세했다는 사실을 반박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브레넌 검사는 월리엄스 판사를 쳐다보았다. "재판장님, 검찰측은 반대 심문을 마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 석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은 모두 애슐리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월리엄스 판사가 데이비드를 지목했다. "싱거 변호사?" 데이비드 싱거가 일어났다. "재판장님, 피고측은 피고인을 최면에 걸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시 기를 바라는-" 그러자 월리엄스 판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싱거 변호사, 당신에게 이 재판이 서커스의 여흥으로 변하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고 이전에도 경고한 적이 있었을 텐데요. 분명히밝혀두지만 법정 안에서는 절대로 피고를 최면에 걸 수 없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격렬하게 항의했다. "재판장님께서는 피고에게 최면 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재판장님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싱거 씨." 여판사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또다시 당신에게 법정 모독죄를 적용해야겠군요. 변호인은증인을 재반대 심문하기를 원합니까, 원치 않습니까?" 데이비드 변호사는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면서 그대로 서 있었다. "재반대 심문을 하겠습니다. 재판장님." 그리고는 데이비드 변호사는 다시 증인 석으로 걸어갔다. "애슐리 양 당신은 선서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요?" "네." 애슐리는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것은 진실이 틀림없습니까?" "네." "당신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영혼 속에 당신이 제어할 수 없는두 개의 분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토니와 알레트를 말입니까?" "네." "당신은 그 끔찍한 살인들을 저지르지 않았지요?" "네." "토니와 알레트 둘 중 하나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그때 엘리노어가 브레넌 검사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드나 검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 목을 자기 손으로 매달고 있는 거야." 하고 브레넌 검사는속삭였다. "헬렌-" 순간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니, 애슐리 양... 당신이 토니를 불러내주었으면 좋겠는데요." 애슐리는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절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불러낼 수가 없어요." 하고 애슐리는 속삭였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은 불러낼 수 있습니다. 토니는 지금 우리들의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왜안 그렇겠습니까? 토니는 세 건의 살인을 행하고도 벌을 받지 않은 채 무사히 모면했으니까 말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목청을 높였다. 재단히 영리하군요, 토니. 빨리 나와서 답례를 해요. 아무도당신을 해칠 수 없을 테니까요. 애슐리가 무고하기 때문에 경찰도당신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당신을 잡히 위해 애슐리를 처벌하려고 할 것입니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이 데이비드 변호사를 응시했다. 애슐리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앉아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한 걸음 더 애슐리에게 다가갔다. "토니! 토니, 내 말 들립니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나와 주기만을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자아, 지금 어서!" 그는 잠시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데이비드 변호사는 다시 소리를 높였다. "토니! 알레트! 빨리 나와요! 어서 나오라구요 우리 모두는 당신들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법정 안에서는 숨소리 하나들리지 않았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자제력을 잃었다. 이제는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빨리 나와요! 당신의 얼굴을 좀 보여줘요... 이런 빌어먹을! 자아, 지금 어서요! 지금!" 애슐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월리엄스 판사가 분연히 말했다. "재판장 석으로 가까이 오세요, 싱거 변호사." 데이비드는 판사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당신의 의뢰인을 괴롭히는 일을 다 끝냈나요, 싱거 변호사? 빠른 시일 내에 당신의 행동에 대한 보고서를 주 법조협회에보낼 거예요. 당신은 당신의 직업에 대한 명예를 손상시켰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할 것을 건의할 생각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에게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피고측은 환문할 증인이 또 있습니까?" 데이비드 변호사는 비참한 심경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없습니다, 재판장님." 모든 것이 끝났다. 그는 패배한 것이다. 애슐리는 사형 선고를받을 것이다. "피고측은 재반대 심문을 마칩니다." 조셉 킨케이드 수석파트너는 법정의 맨 됫줄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하베이 우델 회계과장을 돌아다보았다. "저 친구를 쫓아내 버리게." 킨케이드 수석파트너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정을 나갔다. 우델은 법정을 떠나려고 하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불러 세웠다. "데이비드..." "안녕, 하베이." "이런 식으로 일이 끝나서 미안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킨케이드 수석파트너께서는 이런 일 하기를 싫어하시지만 자네가 회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네. 행운을 빌겠네." 데이비드 변호사는 법정 문을 나서는 순간 텔레비전 카메라들과고함을 지르는 기자들에게 에워싸였다. "성명서를 발표할 생각인가요, 싱거 변호사님...?" "월리엄스 판사가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말한 것 같은데요...?" "윌리엄스 판사는 법정 모독족로 고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변호사님의 생각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변호사님이 이 재판에서 패배했다고 하는데혹시 상고할 계획입니까...?" "법률 전문가들은 피고 애슐리 패터슐인 사형 선고를 받게 될것이라고..." "변호사님은 장래를 위한 어떤 계획을 갖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21 무죄 판결을 받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마음속으로 그때 그 장면을 고쳐 쓰고또다시 고쳐 썼다. "저는 오늘 아침에서야 뉴스를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네. 자네가 나를 좀 도와주어야겠네, 데이비드." "물론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인면 무엇인든지 하겠습니다. 어떤일이라도 말입니다." "자네가 애슐리의 변호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네." "저는 그 변호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형사전문 변호사가 아니거든요.대신 아주 실력 있는 제시 퀼러 씨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그것 참 잘됐군. 고맙네, 데이비드..." "성미도 급하구먼, 젊은 친구 우리는 오후 5시에 만나기로 되어있잖나? 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있네. 자네를 파트너로선발하기로 했네." "나를 보자고 했나요?" "네, 판사님. 저는 어젯밤에서야 이번 재판이 인터넷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채팅 방이 이번 재판을 주제로 삼아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피고를 유뵉 츤결쪽으로 몰안7注 있습닌탈 익것은 필고측엔 크겠 불익하게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효 재판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본관은 이것이 무효 재판의 훌륭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재판장은 무효 재판의 청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은 '만일... 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신랄한 게임이다. 다음 날 아침, 재판이 다시 속개되었다. "검찰측은 최종 변론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브레넌 검사가 일어나서 배심원 석으로 걸어가 그들을 한 사람한 사람씩 살펴보았다. "여러분들은 지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피고 안에 실제로 수많은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고믿고 또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 아무 책임이 없다고믿어서 그녀를 석방시킨다면, 여러분은 누구라도 살인을 저지른다음에 자신이 살인한 게 아니라 어떤 신비스러운분신이 한 짓이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해주는 것과같기 때문입니다. 분신들은 강도 짓을 하고 강간을 하고 살인을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신들은 유죄일까요? 아닙니다. '나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내 분신이 한 짓이다.' 그 분신에게는 켄이나조나 수지 등 아무것이나 원하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습니다. 검찰측은 여러분 모두가 너무나 이성적이어서 그러한 환상에 속아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현실은 여러분이 보았던 그 사진들속에 있습니다. 그사람들은 어떤 분신에 의해서 살해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저기 피고석에 앉아 있는 앨슐리 패터슨의 치밀한 계산 아래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피고측이이 법정에서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전에도 시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맨 대 텔러 재판>을 보면 다중 인격 장애의 인정이 본질적으로 무죄를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미합중국 대 훨리 재판>에서는 갓난아기를 살해한 유모가 자신은 다중인격 장애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정은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저 역시 피고에 대해 크나큰 동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불쌍한아가씨의 몸 안에 여러 인격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몸 속에서 일단의 미친 인격들이 뛰노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람을 죽이고 거세를 하고 돌아다닌다니까 얼마나 무사운 일입니까?" 브레넌 검사는 애슐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저기 앉아 있는 피고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두려움을 느낀다면 예쁜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고 화장까지 하고 나오겠습니까?그녀는 전혀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피고는 여러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 주고 석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이 정말로 존재하고있는지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측은 이 인격들이 밖으로 나타나서 주인의 행동을 점거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디 한번 살펴볼까요- 토니라는 아가씨가 있는데, 그녀는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알레트라는 아가씨는이탈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들은 둘 다 동얄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해에 태어났습니다. 제 말이 몹시 혼란스럽지요?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피고에게,그녀의 분신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분신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윌까요? 혹시 분신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 캘리포니아 주의법률은 다중 인격 장애를 정신 질환으로 인정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콜로라도 주의 법률은요? 아닙니다. 미시시피 주의 법률은요?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 내의 어느 주에도 다중 인격 장애를 정당 방위로 인정하는 법률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정당방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이것은 벌을 피하기 위한 허위의 알리바이인 것입니다... 피고측이 여러분에게 믿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피고의 내부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녀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정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피고인,애슐리 패터슨뿐입니다. 검찰측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녀가 살인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그녀의 몸을 빌린 누군가, 즉 분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분신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ボ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어떤일,우리가 은밀하게 원하는 어떤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여러분은 누군가가 마구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당신은 나를 체포할 수없다. 내 분신이 한 짓이니까"라든가, 당신은 러분신을 벌할 수없다. 왜냐하면, 내 분신은 사실은 나니까." 하고 말하는 세상에서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이 재판은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신비한 인격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적이고 냉혹한 세 건의 살인을저지른 혐의로 ス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을 상대로한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측은 피고를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브레넌 검사는 자신 있는 걸음걸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피고측은 최종 변론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데이비드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배심원 석으로 걸어가서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데이비드 변호사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 재판이 우리들 모두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문가들이 개인적으로 다중인격 장애 환자를 치료해 왔다고 증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다른 전문가들이 그런 병은존재하지 않는다고 증언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의사가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도 여러분이 의학적 지식에 의거해서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혹 어제의 제 행동이 어설프게 보였다면 여러분 모두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다만 그녀의 분신들을 강제로라도 끌어내고싶었기 패문에 애슐리 패퍼슨 양에게 고함을 질렀펀 것입니다. 그녀의 내부에는 실제로 토니와 알레트가 존재하고 있으며,그녀들은 자신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애슐리를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애슐리는 어떤 살인도 자신이 저질렀다는 것을 모르고있습니다. 이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나는 여러분에게 누군가를 제1급 살인으로 기소하려면 물질적인 증거와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는 동기가 없습니다. 피고가 유죄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검찰측은 먼저 그 동기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질 못했습니다. 피고측은 여러분이 이 사건에 관한 한 내내 의심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증거에 관한 한,피고측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각 범행 현장에는 애슐리 패터슨 양의 지문과 DNA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우리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싸슐리 패터슨 양은 지적인 젊은 여성입니다. 만일 그녀가 살인을 범하고 체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어리석게도 모든 범죄 현장에 자신의 지문을 뚜렷하게 남겨 놓았겠습니까? 그 대답은 ◎" 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30분 동안이나 최종 변론을 계속했다. 그리고 변론이 끝날 즈음 배심원들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으나 재판쉐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는 힘없이 자리에 禁았다. 월리엄스 판사가 배심원들 쪽으로 향했다 "본관은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이 사건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법률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주의를 기울여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20분 동안 그녀는 법률에 의해서 무엇이 인정되고 무엇이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하고 싶거나 증언일 일부분을 다시듣고 싶은 경우에는 법정 서기에게 말씀하십시오 배심원들은 모두 배심원실로 퇴장해 주십시오 법정은 배심원들이 평결문을 가지고 돌아을 때까지 휴정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배심원들이 배심원 석에서 나와 배심원실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배심원들이 시간을 많이 끌수록 우리쪽 기회는 커질 텐데,"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45분 뒤에 법정으로 돌아왔다. 데이비드 변호사와 애슐리는 배심원들이 줄을 서서 들어와 조용히 배심원 석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애슐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으나 데이비드 변호사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월리엄스 판사가 배심원장 쪽을 보고 물었다.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렸습니까?" "네, 재판장님." "평결문을 정리(延7)에게 건네주시겠습니까?" 정리는 종이쪽지를 받아다가 재판장에게 건네주었다. 월리엄스판사가 그 종이쪽지를 펼쳤다. 그러자 법정 안은 물을 뿌린 듯 조용했다. 정리는 다시 그 종이쪽지를 배심원장에게 돌려주었다. "평결문을 읽어 주시겠습니까?" 느리고도 정확한 목소리로 배심원장이 소리내어 읽었다. "く캘리포니아 주민 대 애슐리 패터슨 재판)에서,우리 배심원들은 피고 애슐리 패터슨이 데니스 티블의 살인출 대렇옅 형법 제187조를 위반한 유죄임을 평결합니다." 그러자 법정 안에서 헉 하고 숨을 몰아처는 소리가 들렸다. 애슐리는 양쪽 눈을 꼭 감아버렸다. "<캘리포니아 주민 대 애슐리 패터슨 재판>에서,우리 배심원들은 피고 애슐리 패터슨이 샘 블레이크 보안관대리의 살인에 대하여 형법 제157조를 위반한 유죄임을 평결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민 대 애슐리 패터슨 재판>에서,우리 배심원들은 피고 애슐리 피터슨이 리처드 멜튼의 살인에 대하여 형법 제187조를 위반한 유죄임을 평결합니다. 또한 우리 배심원들은 모든 평결의 등급을 제1급 살인으로 결정했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호흡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슐리를 돌아다보았으나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몸을 기올여 그녀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본관은 배심원들의 개별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배심원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났다. "평결문이 낭독되었는데, 당신의 평결은?" 그리고 모든 배심원들의 평결을 확인하고 나자 월리엄스 판사가말했다. "이 평결문은 재판 기록에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본관은 배심원 여러분들에게 시간을 내어 이 재판에 봉사를 해 준 데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퇴정해도 좋습니다. 내일 법정에서는 심신상실(◎쳔機失, 정신장애로 식별력을 잃음거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온몸이 마비된 듯 멍하니 앉아서 애슐리가법정 밖으로 호송되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월리엄스 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 쪽으로 시선 한번 주지 않은채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사무실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마치 내일아침에 있을 여판사의 결정이 어떤 것인지 말해 주고 있는 것 같 "았다. 애슐리는 사형 선고를 받을 게 틀림없었다. 산드라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화를 걸었다. "건강은 괜찮아요, 여보?" 데이비드는 일부러 유쾌한 척했다. "◎겄, 최상의 컨디션이지. 당신 몸은 어때?" "저도 좋아요 지금까지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판사가너무 당신에게 불공평하더군요 하지만 당신을 법조계에서 내몰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은 의뢰인을 도와주려고 노력한 것뿐이니까." 데이비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여보 내가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건데. 지금이라도 차를 타은..." "안 돼."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으니까. 오늘 산부인과 의사에게 찾아가 봤어?" "그럼" "이사가 뭐래?" "팎 출산할 거래요 오늘이나 내일쯤에요." "탄생을 축하한다. 제프리!" 제시 퀼러 변호사가 전화를 걸었다. "제가 재판을 모두 망쳐 놓았어요." 하고 데이비드가 말했다. "자네는 열심히 한 거야.판사를 잘못 만나서 그런 거지.자네가여판사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그렇게 사사건건 자네를 괴롭히려드는 거지?"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월리엄스 판사가 저에게 답변 협상을 하자고 제의했었어요 이사건이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원치 않았거든요 그때 그녀의 말을들었어야 했나 봐요" 모든 텔레비전 채널은 데이비드의 패배 뉴스로 떠들썩했다. 데이비드는 그 재판을 보도하는 어느 방송국 법률전문가의 해설을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피고측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그렇게 고함을 친경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 방청석은 모두 경악한 표정이었습니다. 이것은 재판사상 가장 상식에 벗어나는 몰지각한 행동으로..." 데이비드는 홧김에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것일까? 인생이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들 하는데 말야.내가 망쳐버린 탓이야.애슐리는사형당하게 되겠지.나는 변호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게 될 테고 말야. 아기는 오늘 내일 중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직업조차 잃게 되면... 한밤중에 데이비드는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호텔 방에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게 여겨졌다. 마음속에되풀이해서 떠오르는 것은 마지막 법정에서의 장면이었다. "법정 안엔선는 절댄로 픽고를 뵉면엔 걸 수 雲습닛탈 탤답은노 입니다." 한일 판사가 증언대에서 애슐리에게 최면을 걸게만 해 주었더 "라면 배심원들을 확실히 납득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재판은 이제 모두 끝난 것이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 조그만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누가 모두 끝났다고 그래? 나는 그 뚱뚱한 여자가 노래 부르는것을 듣지 못했는걸,".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자네 의뢰인은 무죄야. 자네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작정아킨"제발 날 좀 그냥 내버려둬." 그리고 월리엄스 판사의 말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법정 안에서는 절대 피고를 최면에 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 마디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 "법정 안앤석는절댔." 새벽 5시에 데이비드는 흥분해서 급히 전화를 두 통 걸었다. 전화를 끝내고 나니까 때마침 지평선 위로 태양이 모습을 나타내기시작했다.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군!"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우리가 이길 거야!" 얼마 뒤, 데이비드는 서둘러 골동품 가게로 갔다. 점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떤 걸 찾으십니까?" 그러고 나서 점원은 곧바로 데이비드를 알아보았다. "싱거 변호사님." "접었다 폈다 하는 중국식 병풍을 찾고 있는데요. 그런 물건 있습니까?" 게, 있습니다. 진짜 골동품 병풍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 병풍을 좀 구경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점원은 중국식 병풍 몇 개가 진열된 구획 쪽으로 데이비드를 안내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병풍을 가리켰다. "이 병풍으로 말하자면..." "이거면 됩니다." 하고 데이비드가 가로막았다. "알겠습니다. 이 병풍을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내가 지금 들고 갈 겁니다." 그 다음 데이비드가 들른 곳은 철물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스위스제 야전 나이프를 구입했다. 1분 뒤, 데이비드는 병풍을 들고 법원의 로비로 들어가 책상뒤에 앉아 있는 경비원에게 말했다. "애슐리 패터슨 양과 면담 약속이 되어 있소 그리고 골드버그판사의 사무실을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소 판사님은 오늘 출근을 안 하신다고 해서..." 그러자 경비원이 말했다. "네, 변호사님.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곧 피고를 그 방으로데려가겠습니다. 세일럼 박사님과 다른 한 분도 이미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 경비원은 데이비드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병풍을 들고 들어가는것을 지켜보았다. "아무리 봐도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하고 경비원은 생각했다. 골드버그 판사의 사무실은 창문을 향해 놓여 있는 책상 한 개,회전의자 하나, 그리고 한쪽 벽에 긴 소파 하나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무척 안락해 보였다. 데이비드가 들어서자 세일럼 박사와 또 한 사람이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그러자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이 사람은 휴 아이버슨입니다. 당신이 요청한 그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발리 장치를 하십시다." 하고 데이비드가 서둘러 말했다. 재슐리 양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는 휴 아이버슨을 돌아다보면서 방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저곳이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아이버슨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고 "저도 이 방에 있어야겠는데요." 하고 경비원이 말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상관없소." 그리고는 애슐리 쪽으로 돌아섰다. "일단 거기에 앉으세요." 데이비드는 애슐리가 의자에 걸터앉는 것을 보고 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 재판 결과가 좋지 않아서 대단히 죄송하는 말부터 해야겠군요." 애슐리는 얼떨떨해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애슐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애슐리 양 세일럼 박사님께 다시 한 번 최면 요법 부탁을 드렸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싫어요 지금 와서 그게 무슨 도움이...?" 니를 위해서 한 번만 승낙해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애슐리는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세일럼 박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세일럼 박사가 애슐리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했으니까 이젠 애슐리 양이 할칠을 잘 알고있을 겁니다. 우선 눈을 감고 긴장을 푸세요. 그냥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당신 몸 안의 모든 긴장을 완전히 풀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원하고 있는 것은 잠뿐입니다. 자꾸만 자꾸만 졸려 옵니다·, 졸려 옵니다..." 17분 뒤, 세일럼 박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완전한 최면 상태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슐리에게 다가갔다. 그의 가슴이 걷잡을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토니와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언성을 높였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요 내 말 들립니까 알레트... 나는 당신ミ두 사람 모두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침묵. 데이비드 변호사는 거의 악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들 무슨 짓아킨 너무 겁나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법정 안에서도 그런 식으로 침묵을 지킨 거야? 당신들 둘 다 배심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 애슐리가 유죄라는 걸 말야. 그래서겁이 나서 못 나오는 거지? 당신은 겁쟁이야. 토니! 그들은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세일럼 박사를 절망적인 얼굴로 바라보았다. 최면술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채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테사 월리엄스 판사범께서 주관하시겠습니다." 애슐리는 데이비드 변호사 옆의 피고 석에 앉아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의 손에는 붕대가 넓게 감겨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일어섰다. "재판관 석으로 다가가도 괜찮겠습니까, 판사님?" "그러세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재판관 석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브레넌 검사가 따라갔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말했다. "이번 사건에 관한 새로운 증거물을 제출하고 싶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하고 브레넌 검사가 강하게 반대했다. 월리엄스 판사가 검사를 바라보고 말했다. "◎ 결정은 내가 내립니다. 브레넌 검사." 하고 여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 쪽으로 향했다. "재판은 끝났습니다. 변호사님의 의뢰인은 이미 유죄 선고를 받 "이번 증거물은 심신상실의 주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항의했다. "제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은재판장님의 많은 시간 중 고작 10분뿐입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화가 난 듯이 쏘아붙였다. "언제부터 당신이 시간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싱거 변호사? 모든 사람의 귀중한 시간을 당신이 이미 엄청나게 낭비하고있다는 사실을 설마 모를 리는 없겠죠?" 여판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죠 나는 이팎이 이 법정에서 할 수 있는 당신의 마지막 요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본 법정은 犯분 간 휴정을 하겠습니다." 데이비드 변호사와 브레넌 검사는 판사를 따라 사무실로 沿다. 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를 돌아다보았다. "당신에게 10분을 주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변호인?" "재판장님께 필름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브레넌 검사가 반박했다. "그게 재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월리엄스 판사가 브레넌 검사에게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러고 나서 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젠 9분밖에 남지 않았군요."데이비드 변호사는 복도로 통하는 문으로 달려가서 문을 활짝열었다. "빨리 들어와요!" 그러자 휴 아이버슨이 17밀리 영사기와 휴대용 스크린을 들고뛰어 들어왔다. "어디에다 이것들을 설치할까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방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그들은 아이버슨이 영사기와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사기 코드를꽃는 것을 바라보았다. 커튼을 닫아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판사에게 물었다. 월리엄스 판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그성은를 대답했다. "좋아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는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젠 7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골드버그 판사의 사무실이 스ヨ린 위에 깜빡거리면서 나타났다. 데이비드 변호사와 세일럼 박사가 의자에 앉아 있는 애슐리를지켜보고 있었다. 스크린 위에서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건전한 최면 상태입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애슐리에게 다가갔다. "나는 토니와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요. 내말 들립니까? 알레트... 나는 당신들 두 사람 모두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침묵. 월리엄스 판사는 자리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화면에 나타난 데이비드 변호사는 거의 악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들 무슨 짓이야? 너무 겁나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법정 안에서도 그런 식으로 침묵을 지킨 거야? 당신들 둘 다 배심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 애슐리가 유죄라는 걸 말야. 그래서겁이 나서 못 나오는 거지? 당신은 겁쟁이야, 토니!" 월리엄스 판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건 이제 진절머리가 나요. 이런 구역질 나는 쇼를 전에도본 적이 있어요. 이제 약속한시간이 다되었군요, 싱거 변호사!"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외쳤다. "아직 시간이 좀..." "끝났습니다." 하고 월리엄스 판사는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내뱉듯이 말하고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돌연, 노랫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실 한 타래에 1페니 바늘 한 개에 1페니예요 그렇게 해서 돈은 없어지는 법이라네. 차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어리등절해하면서 월리엄스 판사가 스ヨ린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스크린 위의 영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애슐리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토니였다. 토니가 성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너무 무서워서 법정에 못 나왔다고? 흥, 설마 당신이 명령했기때문에 지금 내가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당신은내가 누군지 알아요? 내가 잘 훈련된 똥개인 줄 알아요?" 월리엄스 판사는 화면을 응시한 채 천천히 방 안으로 됫걸음질쳐 들어왔다. "나는 남들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그 멍청한 인간들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고요." 토니는 증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냈다. "저는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저리 같은 녀석들! 나는 지금까지 그렇킬 멍찰한..."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애슐리의 얼굴이 다시 변했다. 그녀는 상당히 긴장이 풀려 있는 것처럼 보였고 얼굴엔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투리로 알레트가 말했다. "싱거 변호사님, 전 변호사님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전 법정에서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지만 토니가 나가지 못하게말렸어요." 월리엄스 판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애슐리의 얼굴과목소리가 변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내가 내보내지를 않았지." 하고 토니가 말했다. 화면 ミ 데이비드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아니,만일 애슐리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면 당신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ユ 생각하나요?" "애슐리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질 리가 없어요. 애슐리는 그 남자들을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알겠어요?" 데이비드 변호사가 반박했다. "그렇지만 알레트는 그 남자들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알레트가그들을 모두 죽인 거요 그녀가 그 남자들과 섹스를 하고 그들의몸을 난지해서 죽게 하고 거세까지 했어요..." 토니가 소리쳤다. "이런 머저리 같으니라구!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요? 알레트는 그런 짓을 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못하즐고요 내가 죽였어요 그 남자들은 모두 죽어도 싼 인간들이에요 그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섹스뿐이었다고7" 토니는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렇지만 란 아주 멋지게 그 남자들 모두에게 그 죄값을 치르게 했어요 안 그래요? 더군다나 아무도 내가 죽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어요 미스 새침데기가 그 비난을 한몸에 받도록 내버려두세요 우리 모두는 조용하고 멋진 정신병자 수용소에 가서 재미있게-" 뒤쪽 방구석에 있는 병풍 뒤에서 무엇인가 커다랗게 덜컹거리는소리가 들렸다. 토니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저건 무슨 소리죠?" "아무것도 아니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는 당황해서 얼른 말했다. "그냥 무엇인가..." 토니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기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스크린 위를 가득 채웠다. 그녀가무엇인가를 밀어 제쳤다. 그러자 스크린이 기울고 병풍이 카메라 위로 떨어져 내렸다. 병풍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당신이 저 병풍 뒤에 몹쓸 놈의 카메라를 숨겨 놓았지?" 하고토니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돌아섰다. "이런 치사한 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나를 속임수에빠뜨리다니!" 책상 위에는 레터 오프너가 놓여 있었다. 토니? 그것을 움켜 쥐고는 악을 쓰면서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덤벼들었다. "너 같은 놈은 죽여 버려야 해! 너를 죽여 버리고야 말겠다고!"데이비드 변호사는 그녀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당해낼 수ト 없었다. 레터 오프너에 손이 찔렸다. 토니는 다시 찌르기 위해 팔을 치켜들었으나 경비원이 달려들어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나 토니는 경비원을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경관이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토니에게 덤벼들었다. 토니는 경관의 사타구니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다시 경관 두 명이그 뒤를 따라 뛰어 들어와서 세 사람이 가까스로 토니를 의자에』고 꼼짝 못 하게 눌렀다. 토피는 경관들에게 악을 쓰고 비명을 발버등을 쳤다. 데이비드 변호사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가세일럼 박사에게 소리쳤다. 이제 그녀를 깨워 주세요!" 그러자 세일럼 박사가 말했다. "애슐리... 애슐리... 내 말을 들어요 당신은 지금 잠에서 깨어나고 있어요 토니는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나와도 안전합니다. 애슐리. 지금부터 내가 셋을 세겠어요."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애슐리는 다시 얌전해졌다. "내 말 들립니까?" "네, 들려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으나 분명히.그건 애슐리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셋을 세면 깨어날 것입니다. 하나... 둘... 셋... 기분이어떻습니까?" 애슐리는 눈을 떴다. 매우 피곤하군요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월리엄스 판사 사무실의 스ヨ린이 하앙게 변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벽쪽으로 걸어가서 불을 켰다. 그러자 브레넌 검사가 말했다. "아주 좋았습니다! 멋진 연기였어요! 아카데미 최우수 연기상감이군요..." 월리엄스 판사가 검사를 돌아다보았다 "가만히 좀 있지 못하겠어요!" 브레넌 검사는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해진 채 판사를 바라보았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월리엄스 판사가 데이비드 변호사에게몸을 돌렸다. "변호인?" "네?" 잠시 말이 끊어졌다. "당신에게 사과를 해야겠군요" 재판장석에 앉은 테사 월리엄스 판사가 말했다. "검찰측과 피고측은 이미 피고인 애슐리 패터슨을 진찰한 바 있는 정신과 의사인 세일럼 박사의 의견을 받인들이는 데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가 심신상실의 이유아치한 무죄임을선고합니다. 애슐리 패터슨은 정신병 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게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폐정합니다." 데이비드 변호사는 심신이 소모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이 끝났어. 이제야 마침내 끝났어,"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데이비드와 산드라는 자신들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월리엄스 판사를 쳐다보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곧 우리 아기가 태어날 겁니다. 판사님." 세일럼 박사가 데이비드 변호사에게 말했다. "한 가지 제의할 것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당신이 그렇게 해줄 수만 있다면 애슐리 양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믿습니다. " "그게 뭡니까?" "동부에 있는 코네티컷 정신 병원이 미국의 다른 어느 병원보다도 다중 인격 장애 환자를 많이 치료하고 있습니다. 내 친구인 오토루이슨 박사가그곳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애슐리 양을 그곳으로 보내게 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리라고 믿습니다." "씰겠습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대답했다. "힘자라는 데까지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데이비드 변호사를 찾아왔다. "정말 - 자네에게 뭐라고 감시해야 할지 모르갰네,ハ데이비드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옛날의 빛을 갚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기억하고 계십니까?" "정말 멋지게 해냈네. 한동안 나는 걱정이 되어서..."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실현되었네. 애슐리는 치유될 수 있을 걸세." "저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제일럼 박사럼이 코네티컷 정신 병원을 추천했습니다. 그곳 의사들은 특히 다중 인격 장애에 대하여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한 가지 제의할 것이 있습니다. 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당신이 그렇게 해줄 수만 있다면 애슐리 양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믿습니다." "그게 뭡니까?" "동부에 있는코네티컷 정신 병원이 미국의 다른 어느 병원보다도 다중 인격 장애 환자를 많이 치료하고 있습니다. 내 친구인 오토 루이슨 박사가 그곳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애슐리 양을 그곳으로 보내게 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리라고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데이비드 변호사가 대답했다. "힘자라는 데까지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가 데이비드 변호사를 찾아왔다. "정말 - ス넉7f 왔라고 감신처야 할지 모그熱솎 데이비드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옛날의 빛을 갚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기억하고 계십니까?" "정말 멋지게 해냈네. 한동안 나는 걱정이 되어서..."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실현되었네. 애슐리는 치유될 수 있을 걸세." "저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말했다. "제일럼 박사님이 코네티컷 정신 병원을 추천했습니다. 그곳 의사들은 특히 다중 인격 장애에 대하여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패터슨 박사는 말없이 잠시 생각에 몰두하다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다시피, 애슐리는 이런 병에 걸려서는 안 되는아이일세. 그 아이는 여러모로 너무나 착한 녀석 아닌가?" "그렇습니다. 월리엄스 판사에게 얘기를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그쪽으로 옳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월리엄스 판사는 사무실에 있었다. "같슨 일로 날 보자고 했나요, 싱거 변호사?" "한 가지 특별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판사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좋겠군요 무슨 일인데요?"데이비드는 세일럼 박사가 자신에게 얘기한 것을 여판사에게 설명했다. "글쎄요, 그건 좀 특이한 요구로군요 이곳 캘리포니아에도 우수한 정신병 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는 병원이 있을 텐데요."데이비드는 얼른 물러섰다. "쟀습니다. 판사님. 감사합니다." 하고 데이비드는 실망하며 돌아서서 방을 나오려고 했다. "지금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싱거 변호사." 데이비드는 발을 멈췄다. "그건 특이한 요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번 사건 또한 매우 특이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잠시 기다렸다. "애슐리를 코네티컷 주로 옳겨 주도록 손을 써 보겠어." 애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나도 지금의 네 심정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애비를 믿어야한다. 곧 모든 것이 달라질 테니까.너는 병이 말끔히 나아 가지고내게 다시 돌아을 게다." 패터슨 박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판사님.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감방에서 애슐리는 생각했다. 난 사형 선고를 받은 거야. 정신병자들로 가득한 수용소 か렌맞이해야 할 기나긴 죽음.차라리 치금 죽는 게 더 나은 처사가 아닐까." 애슐리는 희망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세월들을 생각하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때 감방 문이 열리고 패터슨 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참 동안 멈춰 서서 고통이 가득한 얼굴로 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얘야..." 그는 애슐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제 넌 살수 있게되었단다..." 애슐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냐. 좀처럼 보기 드문 병이긴 하다만 치료할 수 있는 병이고, 또 너는 곧 나을 수 있을 게다. 병이 호전되면그펀 나와 함께 살자꾸나. 내가 너를 언제까지나 돌봐주마. 무슨일든 が1 항상 가족밖에는 없다는 걸 명심해라.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단다." 애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나도 지금의 네 심정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애비를 믿어야한다. 곧 모든 것이 달라질 테니까.너는 병이 말끔히 나아 가지고내게 다시 돌아을 게다." 패터슨 박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쁜 일이 있어서 나는 이만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보아야겠구나." 그는 애슐리가 무슨 말이든 해 주기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끝내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데이비드 변호사가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릉한 정신 병원에보낼 거라고 말하더구나. 나도 자주 찾아가마. 너도 그게 좋겠지?"애슐리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그럼, 됐다. 애슐리." 그는 딸의 뺨에다 키스를 하고 포옹을 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손을 ミ 테니까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이 애비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애슐리는 아버지가 감방을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지금 죽을 수가 없는 것일까? 왜 필들은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는 것일까? 한 시간 뒤, 데이비드 변호사가 애슐리를 만나러 왔다. 애슐리 양,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 데이비드는 기쁜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애슐리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깥슨 일입니까?" "나는 정신병원에 가기 싫어요 죽고 싶어요 도저히 견딜 수가없어요 날 좀 도와주세요, 데이비드 변호사럼. 소원이에요, 제발 좀도와준끼오." "애슐리 양, 당신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될 겁니다. 이제 과 지나갔어요 당신의 미래는 문척 밝아요 악몽은 머지 않아7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애슐리의 손을 꼭 잡았다. "말 좀 봐요 여지껏 날 믿은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나를 믿어줘요 당신은 틀림없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애슐리는 아무런 반응モ 보이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 좀 해 보세요, 나는 당신을 믿어요, 데이비드 라고요." 애슐리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전 변호사님을 믿어요." 데이비드는 빙긋 웃어 보였다. "좋아요 이제 당신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선고 결과가 발표된 쓴シ, 7法컴에서는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데이비드 변호사는 영웅이 되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사건을 맡아서 그것을 승리로이끌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산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는-" "저도 알고 있어요,여보 방금 텔레비전에서 그 뉴스를 보았어요 너무 신나요, 여보 당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나도 이 재판이 끝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오늘71 집으로갈게. 당신이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어..." "데이비드...?" "왜 그래, 산드라?" "데이비드... 아아..." "왜 그래? 뭐가 잘못됐어?" "아기가.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데이비드가 소리쳤다. 제프리 싱거는 몸무게 3.9킬로그램의 건강한 아기였다. 데이비드는 지금까지 이렇게 예쁜 갓난아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아기가 당신을 꼭 닮았어요, 데이비드." 산드라가 아기와 데이비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애." 데이비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을든 일이 잘 해결되어서 더할 수 없이 기특그그計고 산드라가말했다.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이 캄캄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데..." "하지만 전 한 번도 당신의 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었어요"데이비드는 산드라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떨, 곧 다시 올게. 법률사무소에 있는 내 물건을 모두 정리해야 하거든." 데이비드가 く킨케이드, 터너, 로즈 앤 리플리) 국제법률사무소에들어서자 모두들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축하하네, 데이비드..." "멋지게 해냈네..." "자네는 정말 본때를 보여준 걸세..." 데이비드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홀리는 보이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조셉 킨케이드 수석파트너였다. 킨케이드가 데이비드에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자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파면당했으니까요." 그러자 킨케이드가 미소를 지었다. "파면을? 그건 아닐세. 아니지, 아니고 말고 내가 다ユ 오해를했었네." 하고 킨케이드는 밝게 웃어 보였다. "자네가 파트너로 선발되었다네,데이비드 사실 오늘 오후 3시에 자네를저해 이곳에서 기자 회견을 열기로 되어 있네." 데이비드가 킨케이드를 쳐다보았다 "정말입니까?" 킨케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자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런다면 기자 회견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군요 전 다시 형법전문으로 돌악각긴로 결심했거든요 제시 윌러 변호사께서 나에게파트너직을 제의해 왔습니다. 히소한 형법을 다루고 있을 때면 누가 진짜 범인인 줄은 알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파트너 감투는 어딘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라도 치워놓느시진" 그리고 데이비드는 곧바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제시 퀼러 변호사는 복층 아파트 안을 구석구석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것 참 멋진 집이로군, 그리고 정말로 자네들 두 사람에게 잘어울리네." "고맙습니다. " 하고 산드라가 말했다. 그때 아기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제프리에게 가 보아야겠어그" 하고 산드라는 옆방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제시 쥘러는 제프리의 첫 사진이 끼워진, 멋진 은제 사진ミ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이것 참 근사하군. 이 사진틀은 어디서 구했어한 "횔리엄스 판사가 보내주었어인." 제시 퀼러가 말했다. "지체가 다시 내게로 돌아와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파트너 ," "저도 돌아오게 되어서 정말 기뽐니다,제시 선생님." "아마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싶을 테지, 조금 쉬었다..."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그러잖아도 제프리를 데리고 오레곤 주장인장모님을 만나뵙고 올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7 "그런데 말일세,매우 흥미 있는 사건이 오늘 아침 사무소로 들어왔네,데이비드.이 여성은 자신의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가 되었다네, 그렇지만 난 고녀가 무고하다는 인상을 받았네. 불행하게도 나는 다른 사건 때문에 워싱턴으로 가야 되거든. 그러니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나에게 말해 주었으면 고맙겠는데... 북쪽으로 2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코네티 컷 정신 병원은 본래 부유한 네덜란드인 빔 베커의 사유지였다. 빔 베커는 1910년에 그ミ에 저택을 지었다. 푸르게 우거진 4만 8천여 평의 땅에 커다란 장원 저택 한 채와 작업장과 마구간과 수영장이 만들어졌다. 1925년 주 정부가 그 토지를 사들여 그 장원 저택을 백여 명의환자를 수용할 수 있더록 개조했다. 철사를 파도 모양으로 엮은높다란 울타리를 부지 주위에 만들고 입구에는 경비원 초소를 세웠다. 그리고 창문이란 창문에는 모두 금속제 창살을 설치하고 견고하게 지은, 위험한 환자를 수용하는 보호 구역도 있었다. 정신병 진료소의 책임을 맡고 있는 오토 루이슨 박사의 사무실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길버트 켈러 박사와 ヨ레이그 포스터 박사가 잠시 뒤에 도착할 예정인 새로운 환자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회색 눈의 길버트 켈러 박사는 70대의 중년 남자로, 중키에 금발 머리였다. 박사는 다중 인격 장애에 대하여 명성이 높은전문가였다. 코네티컷 정신 병원의 원장인 오토 루이슨 박사는 단정한 70대노인으로, 몸집은 작지만 긴 턱수염을 기르고 코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크레이그 포스터 박사는 오랫동안 켈러 박사와 함께 연구를 해왔으며,다중 인격 장애에 관한 저서도 한 권 출판했다. 세 사람은애슐리 패터슨의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루이슨이 말했다. "이 여성은 왜나 활동적이었군. 겨우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됐는데남자를 다섯 명씩이나 죽였으니 말일세." 그리고는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き 자신의 변호사까지 죽이려고 덤벼들었군, 그래."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하지." 길버트 켈러 박사가 냉담하게 말했다. 오토 루이슨 원장이 다시 말했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보호 병동 A에다 수용해야 되겠네," "언제 그 환자가 도착한답니까?" 켈러 박사가 물었다. 루이슨 원장의 비서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루이슨 박사님, 경찰이 애슐리 패터슨 양을 데리고 왔습니다. 경관에게 박사님 사무실로 데리고 오라고 말할까요?" "그렇게 하게." 하고 루이슨 원장은 고개를 쳐들었다. "이것으로자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나?" 그 여행은 하나의 악몽이었다. 재판이 끝나자 애슐리 패터슨은다시 감방으로 끌려 가서, 동부로 가는 비행 스케줄이 잡히는 동안사흘을 더 그곳에서 묵었다. 교도소 버스가 애슐리를 오클랜드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공항에서는 비행기 한 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비행기는nじ곰기를 개조한 것으로 미연방 보안관이 주관하는 <전국 죄수수송 시스템>에 소속되어 있었다. 비행기에는 24명의 죄수들이 동승하고 있었는데 里두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애슐리는 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비행기 좌석에 앉자, 양쪽 발에좌석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족쇄가 채워졌다.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난 위험한 범죄자도 아닌데.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인데." 그러자 애슐리의 내부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지, 무고한 사람 다섯 명을 살해한 평범한 여자일 뿐이지."비행기에 동승한 죄수들은 모두 흥악범들로, 살인과 강간과 무장강도 등 십여 가지의 범행을 저지르고 유죄가 확정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경비가 살벌한교도소로 이감되어 가는중이었다. 애슐리는 그 비행기예 탑승한 유일한 여죄수였다. 죄수 하나가 애슐리를 바라보고는 히죽 웃어 보였다. "안녕, 아가씨! 이리로 와서 내 무릎을 따뜻하게 데워주지 않을래?" "집 다물지 못하겠어!" 경관이 눈을 치켜뜨며 경고를 했다. "이봐, 자네는 로맨틱한 면도 없나? 하지만 이 아가씨는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주게 생기지는 않았는 걸-그래, 몇 년 형이나 받았지, 아가씨?" 다른 죄수가 수작을 걸었다. "하고 싶은 생각 없어, 아가씨?내가 옆자리로 가서 쑤셔 넣어줄까-?" 또 다른 죄수가 애슐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잠깐만!" 하고 그 죄수가 말했다. "저 여자, 남자 다섯 명을 죽이고 성기까지 잘라버린 그 계집애잖아?" 그러자 죄수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음담패설과 괴롭힘의 끝이었다. 뉴욕으로 가는 도중에 비행기는 죄수들을 태우고 내려주느라고두 차례나 착륙했다. 그것은 길고 지루한 비행이었다. 대기가 몹시불안정해서 <라 가르디아 공항>에 착륙했을 때 애슐리는 심하게비행기 멀미를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제복을 입은 경관 두 명이 활주로에서 애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좌석에 달려 있는 족쇄에서는 해방되었으나 다시 경찰 호송 차 내부에 있는 족쇄를 차야 했다. 애슐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치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슐리는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경찰은 그녀가 도망치려고 하거나 누구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은 과거에 끝나 버린 일이었다. 경찰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애슐리는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어디든 좋으니까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코네티컷으로 가는 길고도 지루한 자동차 여행을 하는 동안에애슐리는 어느 틈엔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경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다 왔으니까 일어나시지." 자동차는 코네티컷 정신 병원의 정문 앞에 モ착해 있었다. 애슐리 패터슨이 루이슨 박사의 사무실에 호송되어 들어서자 병원장이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네티컷 정신 병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패터슨 양." 애슐리는 창백한 얼굴로 침묵을 지킨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루이슨 박사는 의사들을 차례로 소개하고는 의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에 앉아오." 그리고 경관들에게 말했다. "수갑과 족쇄를 벗7_き." 자유를 속박하고 있던 무겁기만 한 쇠고랑이 벗겨지자 애슐리는권하는 대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포스터 박사가 말했다.- "석긴선 껑출한는 긱 장분쓴 무칙 끌플 걱굘고 생쓱합니디. 히지만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이 가능한 한 손쉽고 편안하게 진행되게할 생각이오 어느 날엔가 당신이 완전히 치유가 되어서 이곳을 홀가분하게 떠나가는 것을 볼 때까지 말이오." 애슐리는 기운을 내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얼마나- 병이 나으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오토 루이슨 병원장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하기엔 아직 일러요 대개 완전히 치유가 되려면 5년이나 6년쯤 걸릴 거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애슐리를 천등번개처럼 강타했다. "완전히 치유가 되려면 』년이나 7년쯤 걸릴 거요... 기료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치료는 켈러 박사와의 개인적인면담, 즉 최면술, 그룹 치료, 예술 치료 등으로 구성될저요 하지만가장 중요한 건 우리들은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일입니다."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을자세히 뜯어보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당신을 도와줄 수 있도록 당신도 우리를 도와주길 바래요"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다. 오토 루이슨 병원장이 남자 간호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애슐리에게 다가와서 팔을 잡았다. 크레이그 포스터 박사가 말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숙소로 데려다 줄 겁니다. 우린 나중에 다시얘기를 나눕시다. " 애슐리가 방을 나가자 오토 루이슨 원장이 길버트 켈러 박사에게 말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글쎄요, 한 가지 이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단 두 개의 분신뿐이니까요" 켈러 박사는 기억해내려고노력하며 물었다. "추리가 만난 환자들 가운데서 가장 많았던 것은얼마나 되었었지요?" "벨트랜드라는 여자는 분신이 아흔 개나 되었었지, 아마."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착하기 전까지 애슐리는 내내 어둡고 음산한 감옥을 상상했다. 그러나 코네티컷 정신 병원은 금ミ제창살이 달려 있는 기분좋은 클럽하우스 비ミ認다. 남자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밝고 긴 복도를 걸어특려, 애슐리는환자들이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자들 연령층도 다양했는데 모두들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저런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몇몇 환자들은 애슐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까지 했으나 애슐리는 너무나 어리등절해서 대답도 하지못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엉뚱하게만 보였다. 애슐리는 지금 정신 병원에 있었다. 내가 정말 미친 걸까? 그들은 건물의 일부분을 격리A그1고 있는 커다란 강철 문이 있는 ミ에 도착했다. 문 너머 쪽에는 다른 남자 간호사가 지키고 있었다. 그 남자 간회타가 빨간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철문이열렸다. "이 분은 애슐리 패터슨 양입니다." 그러자 문 너머에 있는 간호사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패터슨 양." 그들은 보통 사람을 대하듯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이제는 정상적이 아니야,"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모양이야." "이리 오세요, 패터슨 양." 남자 간호사는 애슐리를 또 다른 문으로 데리고 가서 그 문을열었다. 애슐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파스텔 블루의 벽과 작은 장의자와 편안해 보이는 침대가 놓여있는 쾌적한 방이었다. "여기가 당신이 머무를 방입니다. 필요한 물건들은 몇 분 후 간호사들이 모두 가져다줄 것입니다. " 애슐리는 남자 간호사가 방을 나가서 문닫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당신이 머무를 방입니다. " 그곳에 혼자 남게 되자 애슐리는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왔다만일 내가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만일내가 이곳에서 나가겠다고 우기면 어떻게 될까? 애슐리는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애슐리는 다시의자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半리는 당신을 친그하려고 쏙씨는 당신을 치유하려고 꼴리는 당신을 치유할 것입니다. " 노력할 것입니다." 7. 탁중 인격 장애를 치료하는 것으로 아주 가끔 실패하기도 하: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이런 치료 경우에는 손쉬운 해결책이없었다. 켈러 박사의 첫번째 임무는 환자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고,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뒤 분신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고,자신들이 왜 존재하는가를 알게 하기위해서 분신을 하나씩 불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신들에게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그것이 바로 혼합의 순간으로,서로 다른 인격들이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합쳐지치료는 시작되고 치료는 길버트 켈러 박사가 맡고 있었다. 그의 전 은 다중 인격 장애를 치료하는 것으로 아주 가끔 실패하기도 하,만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이런 치료 경우에는 손쉬운 해결책이없었디 켈러 박사의 첫번째 임무는 환자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들고,1와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뒤 분신즐띤 서로 대화를 나누고,자신들이 왜 존재하는가를 알게 하기7해서 분신을 하나씩 불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신들에게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그것이 바로 혼띠 순간으로,서로 다른 인격들이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합쳐지는 것이댄 그런 상태에 도달하려면 멀고도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한다." 하고 퀼러 박사는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사무실로 데려오게 했다. "안녕하세요, 애슐리 양," "안녕하십니까, 켈러 박사님." "나를 길버트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군요 우리 친구처럼 지냅시다.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애슐리는 의사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내가 사람 다섯을 죽였다고 비난하고 있어요 그러면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죠?" "당신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인 기억이 납니까?" "아뇨" "당신의 재판 기록을 읽어보았어요,애슐리 양.그 사람들을 죽인 건 당신이 아니더군요 당신의 분신 중 하나가 죽인 겁니다. 우리가 당신의 분신들과 사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요 때가 되면 당신의 도움을 빌어서 분신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겠소" "박사님이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할 거요 나는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여기에 있는것이고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고통 때문에 당신의 마음속에 분신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분신들이 활동하는 순간에 그 고통들은 사라지니까요 우리는 먼저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그러려면 우선 그 분신들이 언제, 왜 태어났는가를 알아내야1다:" "어떻게- 박사님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낸다는 거죠?" "대화를 통해서요 우리 둘 사이의 대화 말이오 그러면 여러 가일들이 떠오르게 될 겁니다. 때때로 최면술이나 소디움 아미탈7제의 일끙을 사용하기도 할 거요 애슐리 양, 이전에도 최면을? 경험이 있지요?" "네, 받았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해 나갑시다. " 그리고 켈러 박사는 확신가지고 덧붙였다. "치료가 끝나면 당신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할 수 있습니다. "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 뒤 애슐리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느꼈다. 방으로 돌아온 애슐리는 생각했다. "켈러 박사님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애." 그리고 애슐리는 짧은 기도를 올렸다.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과 면담을 했다. "애슐리 양과 오늘 아침에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 하고 켈러 박사가보고를 했다. "좋은 소식은.애슐리 양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을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 "그건 시작에 지나지 않네. 앞으로 진행 과정을 계속 알려 주게.""그러겠습니다, 병원장님." 그러려면 우선 그 분신들이 언제, 왜 태어났는가를 알아내야7다. " "어떻게- 박사님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낸다는 거죠?""대화를 통해서요 우리 둘 사이의 대화 말이오 그러면 여러 가일들이 떠오르게 될 겁니다. 때때로 최면술이나 소디움 아미탈7제의 일종)을 사용하기도 할 거요 애슐리 양, 이전에도 최면을? 경험이 있지요?" "네, 받았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하는 일은절대 없을 겁니다. 71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해 나갑시다. " 그리고 켈러 박사는 확신L 가지고 덧붙였다. "치료가 끝나면 당신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 뒤 애슐리는 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느꼈다. 방으로 돌아온 애슐리는 생각했다. 켈러 박시텀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애," 그리고 애슐리는 짧은 기도를 올렸다.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과 면담을 했다. "애슐리 양과 오늘 아침에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하고 켈러 박사가보고를 했다."좋은 소식은,애슐리 양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을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그건 시작에 지나지 않네. 앞으로 진행 과정을 계속 알려 주게,""그러겠습니다, 병원장님." 켈러 박사는 라기 앞에 놓여 있는 도전을 기꺼이 맞이할 각오가되어 있었다. 애슐리 패터슨에게는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이 있었다.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도와줘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두 사람은 매일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애슐리가 도착한 지 일 주일이 되었을 때, 켈러 박사가 말했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긴장을 풀어요, 애슐리 양. 지금부터 당신에게 최면을 걸 테니까요" 그리고 애슐리에게로 다가왔다. "안 돼요! 잠간 기 다리세요!" 켈러 박사는 깜짝 놀라 애슐리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수십 가지 끔찍한 생각이 애슐리의 머리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의사는 지금 자신의 분신들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애슐리는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제발 부탁입니다." 하고 애슐리는 애원을 했다."난- 난 분신들과 만나고 싶지 않아요." "팡신은 만날 필요가 없어요." 하고 켈러 박사가 애슐리를 안심시켰다."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애슐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요." "준비되었습니까?" 애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7·니다. 1럼, 시작하겠그니다." 리가 최면에 걸리는 데는 15분이 걸렸다. 그녀가 최면에 걸길버트 켈러 박사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쪽지를 들여다보았다. 프레스코트와 알레트 피터그 다른 인격으로 변화되는 전환의 시간이었다. 박사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는 애슐리를 들여다 보며 몸을기울였다. 그柳요, 토니. 내 말 들립니까?"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이 변화되고 전혀 다른 인격이 점거과정을 지켜보았다 애슐리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녀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쌀 반 파운드, 당밀 반 파운드, 그것들을 섞어서 멋지게 빛어 보자. 차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요." "너무 멋진 노래군요, 토니. 나는 길버트 켈러그" "당신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어일"하고토니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서 기쁘군요 혹시 누군가가 당신의 아름다운목소7에 대해 칭찬해 주지 않던가요?" "그런 입에 발린 말은 집 어치우세그" "정말입니다. 혹시 성악을 따로 공부하진 않았나요? 내가 보기에 성악 레슨을 받은 것 같은티그" "아뇨 레슨은 빈은 적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레슨을 받고싶었지만, 우리 엄...‥ "제발 부탁익닛깍 그 끔찍한 잡음 좀 집언칙을 수 謝刃닌,」 Iff간노래를 불러도 좋다고 누가 말했니?" "신경 끊으끼7." 하고 토니가 덧붙였다. "토니, 나는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요." "아뇨, 날 도와줄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은 나와섹스를 하고 싶은 것뿐이잖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남자들은 누구나 그 짓을 하고 싶어하니까요. 이제 그만 집어치워요." "토니... 토니...?" 침묵.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켈러 박사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알레트인가요?" 애슐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알레트...?"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자 애슐리가 불안한 듯이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나와 보세요, 알레트." 애슐리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탈리아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괄쿠노 케 팔라 이탈리아노?(이탈리아 말 하는 사람 있어요?)" "알레트..." "논 소 도베 미 트라보(어딘지 모르겠어요)" "알레트, 내 말 좀 들어봐요. 당신은 안전합니다. 제발 긴장을 푸세요." "이 센토 스탄카(피곤해요)... 난 지쳤어." "당신이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런 모든 건이제 과거의 것에 지나지 않아요 앞으로는 평화로워질 겁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박사의 목소리에는 악의가 없었다. "알고 있어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어떤 장소죠." 그게 바로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잖아요, 박사님. 당신도 미쳤어_a." 하고 알레트는 생각했다. "여기는 당신의 병을 치유하는 장소입니다. 알레트, 눈을 감고이곳을 상상해 봐요 마음속에 무엇이 떠오르죠?" "호가드예요 호가드는 사람들을 소름끼치게 만드는 정신 병원과 그 풍경들을 그린 화가죠" 당신은 너무 무식해서 그런 화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을걸." "여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시무시한 곳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 봐요,알레트 당신은 어떤일을 하고 싶습니까? 여기에 있는 동안 무엇을 해 보고 싶습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러요." "그럼 당신에게 그림물감 같은 것을 주겠소" "싫어요!" "왜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요." "얘야, 너라면 그 그림을 뭐라고 부르겠니? 나에게는 그 그림이보기 흥한 얼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날 좀 혼자 있게 내버려둬."하고 알레트는 생각했다. 그뗀트?"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이 다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레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깨웠다. 애슐리는 눈을 뜨고는 여러 차례 깜빡거렸다. "시작했어요?" "아뇨, 끝났습니다." "내가 어떻게 했나요?" "그니와 알레트가 나에게 얘기를 해 주었소 출발이 매우 좋았어요, 애슐리 양,"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날아왔다. 친애하는 애슐리 양,내가 당신을 늘 생각하고 있고 당신이 하루 빨리 쾌유되길 바라고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간단히 몇 자 적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을자주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 두 사람이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 같은느낌이 드는군요 아주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겼잖습당신에게 좋은 솔식이 있습니다. 띨 전 당신에 대한, 베드포드와 퀘벡에서의 살인죄 고발이 취소딴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가 도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지 연락을 주십시오.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데이비드 다음 날 아침,켈러 박사는 애슐리가 최면 상태에 있는 동안 토얘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요, 의사 선생님?" "신과 잠시 잡담을 나누고 싶군요 당신을 어떻게든 돕고 싶으." 나에게는 당신의 그 염병할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나 혼자서도 잘해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토니. 당신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애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미스 새침데기요? 나를 시험해 보려고 하지 말아 "당신은 애슐리를 좋아하지 않나요?" "." "애슐리의 어디가 그렇게 싫은가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애슐리는 남들이 재미있게 살려는 것을 방해하려고 안간힘을쓰고 있어요. 만일 내가 이따금 주도권을 잡지 않았다면 우리들의7니까.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며칠 전 당신에 대한,베드포드와 줴벡에서의 살인죄 고발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가 도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데이비드 디음 날 아침,켈러 박사는 애슐리가 최면 상태에 있는 동안 토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요, 의사 선생님?" "당신과 잠시 잡담을 나누고 싶군요 당신을 어떻게든 돕고 싶으니까요." "나에게는 당신의 그 염병할 도움 따위는 펄요 없어요 나 혼자서도 잘해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토니. 당신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애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미스 새침데기요? 나를 시험해 보려고 하지 말아요." "당신은 애슐리를 좋아하지 않나요?" "당연하죠." "애슐리의 어디가 그렇게 싫은가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애슐리는 남들이 재미있게 살려는 것을 방해하려고 안간힘을쓰고 있어요 만일 내가 이따금 주도권을 잡지 않았다면 우리들의생활은 아주 타분했을 거라고요 그래요, 따분한 인생이 되었을 거예요 애슐리는 파티에 가는 것이나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을 즐기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그러면 당신은 좋아하나요?" "물론 좋아하지요 인생이라는 건 마음껏 즐기라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의사 선생?" "당신은 런던에서 태어났지요, 토니? 그것에 관해서 얘기를 좀해 주겠어요?" "한 가지만 말씀 드리죠 나는 지금도 런던에 가서 살고 싶어요."침묵. "토니... 토니...?"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에게 말했다. "알레트와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애슐리의 얼굴 표정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켈러 박사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다정스럽게 불렀다. "알레트?" "네." "내가 토니와 나누는 대화를 들었죠?" "네, 들었어요." "당신과 토니는 서로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어요." "물론 알고 있고 말고, 이 얼간아." "애슐리는 어때요? 그녀는 당신들 두 사람을 모두 모르고 있습니까?" "그르고 있어요." "당신은 애슐리를 좋아합니까?" "애슐리는 괜찮은 여자예요." 그대체 왜 이런 어리석은 질문들만 하고 있는 거지? "왜 당신은 애슐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 거죠?" 개가 말 거는 것을 토니가 원치 않으니까요." "그니논 항상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지시를 합니까?""그니는 내 친구니까요." 그건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잖아." "나도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알레트 당신 자신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 주세요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나는 로마에서 태어났어요." "그마를 좋아합니까?"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애슐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패 울까? 켈러 박사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달래듯이 말했다. "출지 마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강요하지는 않아요 당신은 이제잠에서 깨어납니다. 애슐리... 그러자 애슐리가 눈을 떴다. "토니와 알레트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들은 이제 친구입니다. 당신들 모두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애슐리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남자 간호사는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마룻바닥에서 어떤 풍경을 그린 그림을 한 장 발견했다. 그는 그림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곧바로 켈러 박사의 사무실로가져 갔다. 루이슨 박사의 사무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가, 길버트 박사?" 길버트 켈러 박사는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 분신과 얘기를 해 보았습니다. 지배적인 분신은 토니입니다. 토니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얘기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분신인 알레트는 로마 태생이지만,그녀역시 그것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영국과 로마는 어떤 충격이나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토니는 무척 호전적이고,알레트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입니다. 알레트는 그림에 흥미를느끼고 있지만,그림 그리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찾아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토니가 애슐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있나?" "그렇습니다. 토니가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애슐리는 토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알레트의 존재도 역시 의식하지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니와 알레트는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토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알레트는 그림에 뛰어난 소질이 있습니다." 그는 남자 간호사가 가져다 준 그림을 들어 루이슨 박사에게보여주었다."제 생각에는 그녀들이 가진 재능이 바로 그녀들의 존재를 알아내그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애슐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들을 읽고 나면 그녀는 늘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누구와도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 편지들은 애슐리와 가정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입니다." 하고켈러 박사가 오토 루이슨 병원장에게 말했다."제 생각에는 그 편지가 애슐리로 하여금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욕망과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할 거라고 봅니다. 모든 사소한 것들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애슐리는 이곳 환경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항상 간호사들이 모든 문과 복도를 지키고 있기는 했지만, 환자들은 병원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들이 모여서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오락실도 있고 또 환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체육관도 있고, 모두가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대식당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러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본인, 중국인, 프랑스인, 미국인등등... 가능한 한 일반 병원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애슐리가 자신의 병실로 들어가면 언제나 그녀 뒤에서 문이 굳게 잠겨졌다. "여기는 병원이 아니야." 하고 토니는 알레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이곳은 염병할 감옥이란 말이야." "하지만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고칠 수 있다고 했잖아.그러면우리는 여기서 타갈 수 있을 거야."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 알레트 너 아직도 모르겠니? 켈러 박사가 애슐리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를 제거하는 길뿐이란 말야.우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뿐이 라니까.바러 말하면,애슐리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하는 거야. 제기랄, 나로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윌 어떻게 할 생각인데?"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야 해," 적과 연인 사이 애슐리를 그녀의 방으로 호송하던 남자 간호 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라 보이는군요." "그렇게 보이나요, 빌?" "그래요 다른 사람처럼 보여그" 토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당신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소림니까?" "당신 때문에 내 자신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뜻이죠." 하고 토니는 그의 팔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았다."당신이 나를 흥분시키고있어요." "팔도 안 되는 소리!" "정말이에요 당신은 너무나 섹시해요 당신도 그걸 알고 있지요?" "모릅니다." "정말로 당신은 섹시해요. 당신, 결혼했나요, 빌?" "한 번 했었죠." "당신 같은 사람을 놓아 주다니 당신 부인은 머리가 돌았나봐요. 이 병원에서 얼마나 근무했나요, 빌?" "그년입니다." "아주 오래 되었군요 혹시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않던가요?"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토니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정말로 잘못된 곳이 하나도 없어요 물론내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건 나도인정해요. 그러나 지금은 모두 치유가 되었어요. 나 역시 여기서나가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에요. 당신은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우리 둘이서 함께 몰래 여기를 빠져나가요. 그리고는우리 둘이서 멋진 생활을 즐기는 거예요. 어때요?" 남자 간호사는 그녀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글쎄요, 나로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 "망설일 것 없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생각해 로낀.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어느 날 밤 모두가 잠들고 난 다음에 내갈 여기서 빠져나가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라고요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는 거예요." 토니는그에게 추파를 던지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난 당신을 평생 즐겁게 해 줄 자신이 있어요." 그러자 남자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요." "좋아요 당신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토니는 자신있게 말했다. 토니는 방에 들어서자 알레트에게 말했다. "추리는 여기서 곧 나가게 될 거야." 다음 날 아침, 애슐리는 켈러 박사의 진료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애슐리." "안녕하세요, 길버트 박사님." "우리는 오늘 아침에는 소디움 아미탈을 사용해 볼까 합니다. 그주사를 맞아본 적 있지요?" "없습니다." "그래요?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요 이것이 최면술보다 훨씬 편할 테니까요." 애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준비되었어그" 5분 뒤, 켈러 박사는 토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토니." "안녕, 의사 선생님," "이곳에서의 생활낀행복합니까, 토니?" "나한테 그런 걸 물어 보다니 참 이상하군요 의사 선생님에게솔직히 털어 놓는다면 나는 이곳이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졌거든요." "그런데 왜 탈출하고 싶어합니까?" 그러자 토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살벌해졌다. "필라고요?" "빌이 나에게,당신이 여기서 탈출하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하던데요?" "저런 머저리 같은 놈!" 토니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재빨리 빠져나가 책상으로 달려가서는 서진을 집어들어 켈러 박사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켈러 박사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네 놈을 죽이고 말겠다. 너를 죽이고야 말겠어!" 켈러 박사가 그녀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토니-" 그는 애슐리의 얼굴 표정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토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켈러 박사는 가슴이 심하게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애슐리!" 애슐리는 깨어나자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어리등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토니가 나에게 공격출 했습니다. 토니는 내가 자신의 탈출 기도를 알아냈기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어머- 미안해요 나도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제는 괜찮습니다. 조만간 당신과 토니와 알레트를 함께 불러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죠?" "너무 무서워요 나는- 나는 그녀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이해 못 하시겠어요? 그녀들은 진짜가 아니에요 그녀들은 내 상상력의 소산이란 말예요." "조만간 당신은 그녀들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애슐리.당신도 그녀들을 알아야 해요 그것이 당신이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방법이란 말입니다." 애슐리가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제 병실로 돌아가고 싶어요." 병실로 돌아와서 애슐리는 남자 간호사가 걸어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깊은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여기를 나갈 수 없을 것 같애. 저 사람들은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저 의사들은 나를 고칠 수가 없어."애슐리는 다른 인격이 자신의 내부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분신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해당하고그 가정들이 파괴되었다. "하필이면 왜 나죠, 하느님? 내가 하느님께 무슨 나쁜 짓이라도했나요? 하고 애슐리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애슐리는 침대에걸터앉아서 생각했다."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이 세상을 끝내는 것 한 가지밖에 없어. 지금 당장 끝내 버리자." 애슐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끝이 畿족한 물건을 찾아 작은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런 물건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병실은 환자가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가 난 부분이 없도록잘 설계되어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고 있던 애슐리의 눈에 그림물감과 그림붓이 보였다. 그녀는 서둘러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림붓의 자루는 목재로 되어 있었다. 애슐리는 붓7掃를 부러뜨려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단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날카로운 普자루의 단면을 손목에 갖다댄후 재빨리 손에 힘을 주어서 손목을 그었다. 퍼가 줄줄 흘러나오기시작했다. 애슐리는 붓자루를 다시 손목에 갖다대고 그 동작을 반복했다. 그녀는 선 채로 피가 카첫을 적셔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슐리는 바닥에쓰러져 몸을 새우등처럼 구부린 채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온 방안이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길버트 켈러 박사는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다급히 애슐리를 만나러 갔다. 그녀의 손목71는 붕대가 두텁게 감겨있었다. 애슐리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켈러 박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겠군." "하마터면 당신을 잃을 뻔했어요." 하고 켈러 박사가 말했다."이런 짓을 하면 내가 아주 난처해집니다." 애슐리는 억지로 昔쓸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절망적으로 여겨져서요... "그건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요." 하고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격려하듯이 말했다."도움 받는 게 부담스럽나요, 애슐리?" "아뇨,그렇지 않아요 도움 받고 싶어요." "그렇다면 나를 믿어7그1요 나 혼자서는 당신을 치유할 수가 없어요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오랜 침묵이 흘렸다. "선생님, 내가 뭘 해야 하나요?" "첫째로,자신을 해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을 해 줘야 합니다." "알았어요 약속할 게요." "그니와 알레트에게서도 같은 약속을 받아낼 생각입니다. 이제부터 최면을 걸 테니 양해해주시오." 약 5분 후, 켈러 박사는 토니와 얘기를 했다. "그 이기적인 계집애가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그 애는오로지 자기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니까요 당신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죠?" "토니-" "글쎄요, 물론 나는 그러지 못하지많그..." "입 다물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요!" "나도 다 듣고 있다고요." "토니, 다시는 애슐리를 해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을 해 줘요." "내가 왜 그런 약속을 해야하나요?" "그 이유를 말해 주겠소 왜냐하면, 당신은 애슐리의 일부분이기때문이오 당신은 애슐리의 고통으로 인해 태어났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토니. 그러나 그것이 도저히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었을 거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당신은 애슐리도 똑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알레트도 당신과 같은 이유로 태어났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들 세 사람은 많은 공통점이 있어요 때문에 서로를미워해선 안 되고또서로를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아, 내게 약속하겠습니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토니...?" "알았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군요." 하고 토니는 원한을 품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맙소 그럼, 내게 영국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겠소?" "싫어요." "알레트, 거기에 있나요?" "네." "그림, 내가 7디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멍청아? "토니가 한 것처럼 당신도 내게 같은 약속을 해 주었으면 좋겠소 다시는 애슐리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당신은 노상 한 사람에게만 신경을 쓰는군, 안 그래? 늘 애슐리,애슐리뿐이라니까. 우리에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작정이이끈 "알레트."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몇 개월이 지나갔지만 애슐리의 병은 별로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켈러 박사는 책상 앞에 앉아서 메모지를 검토하고,치료 과정을회상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단서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현재 대여섯 명의 다른 환자들도 치료를 맡고 있었으나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애슐리였다. 애슐리의 무구한 나약함과 그녀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암흑의힘 사이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애슐리와 얘기를 나눌 때마다 켈러 박사는 그녀를 보호해 주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애슐리는 나에게 딸 같은 존재야." 하고 켈러 박사는 그녀의 존재를 애써 부인했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도대체 누구를 속이려 드는 건가?난 애슐리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는거(갸."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을 만나러 갔다. "저에게 문제가 클 가지 생겼습니다. 원장님." "를제는 환자 몫으로 남겨 놓은 줄 알았는데?" "이건 우리 환자 중 한 사람과의 문제입니다. 애슐리 패터슨과말입니다." "그래요?"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녀에게 무척 끌리고 있습니다." "역으로 감정이 전이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자칫 자네들 두 사람에게 매우 위험할 수도 있네, 길버트 박사,"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그것을 깨닫고 있는 한은·. 하여간 조심하게." "그래야지요." 77월 오늘 아침에 애슐리에게 일기장을 주었다. "애슐리, 토니와 알레트와 함께 이 일기장을 사용해 봐요. 이것을당신 방에 놓고 나에게 말을 하는 대신에 적어 놓고 싶은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좋으니까 그것을 이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알았어요, 길버트 박사님." 한달 뒤, 켈러 박사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치료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토니와 알레트는 과거를 얘기하는것을 거부하고 있다. 애슐리에게 최면을 걸도록 설득하는 일이 점점더 어려워졌다. 그 일기장은 아직도 공백이다. 그러한 저항이 애슐리에게서 오는건지 토니에게서 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애슐리를 최면에 걸어도토니와 알레트는 아주 잠간 동안만 나타날 뿐이다. 그녀들은 과거를논의하는 문제에 관해 완강하게 저항을 하고 있다. 나는 애슐리를 규칙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도 없는 것 같다. 그 일기장은 아직도 손을 텔진 않은 핀 그대로 있탈 락는 알레트에게 이젤과 그림물감 세트를 주었다. 만약에 그년간 그린을 그린다면 어떤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7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으나 그것이 진전의 조짐인지는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 알레트가 병원 마당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옮겨놓았다. 내가 그 그림을 칭찬해 주자 알레트는 기뻐하는 것처럼보였다. 그날 저녁, 그 그림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선생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겠다고요?" "네. 몇 시간동안만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보는 게 당신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애슐리 凉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아요." 애슐리는 길버트 켈러 박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병원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자신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스스로 놀라고있었다. "하루 저녁 만이라도 병원을 떠난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그러나 애슐리에게는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 이상으로 더 기쁜이유가 있었다. 길버트 켈러 박사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8킬로미터쯤 떨어진 (오타니 가든)이라는일본식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켈러 박사는 자신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라도 토니나 알레트가 애슐리를 점거할 수가 있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애슐리를 도와주려면 그녀가 나를 완전히 신뢰하게끔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요, 길버트 박사님." 애슐리가 손님들로 붐비는 레스토랑 안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소규모의 그룹 치료를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하고 켈러 박사가 말했다."그 밖의 치료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몇 명 정도의 환자를 머리에 염두해 두고 있나?" "여섯 명 이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애슐리 양을 다른 사람들과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려면 그 정도가 적당합니다. 애슐리 양은지금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혀서 살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룹 치료를 통해 그 틀을 깨고 나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생각일세.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값어치는 있겠군 그래."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작은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회의실 안에는 환자 여섯 명이 원을 그리고 앉아 있었다. "당신에게 친구들을 좀 소개시켜 주려고 합니다." 하고 켈러 박사가 말했다. 그는 애슐리를 데리고 회의실 안을 돌면서 그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지나치게 꺼려한 애슐리는 그들의 이름을거의 듣지 못했다. 앞사람의 이름이 그 뒷사람의 이름과 겹쳐졌다. 이름은 모르겠는데 거기에는 뚱뚱한 여자, 빼빼 마른 남자, 대머리여자, 다리를 저는 남자, 중국 여자, 그리고 친절한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단히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깎으세요 커피 드시겠어요?" 대머리 여자가 말했다. 애슐리는 빈 의자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당신에 관한 얘기는 들었어요." 하고 맡곡 하셨지요?" 친절한 남자가 말했다." 애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빼빼 마른 남자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고생했을 거라고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운아예요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고으니까요 여기는 참으로 멋진 곳입니다." "이 병원에는 세계 최고의 의사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하고 중여자가 한 마디 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보이는 걸.'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켈러 박사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대화를 모니터하고 있었다. 45분 뒤에,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 시간입니다, 애슐리 양." 애슐리가 일어났다. "여러분 모두를 만나 뵙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다리를 저는 남자가 애슐리에게 다가와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기서는 물을 마시면 안 돼요. 독이 들어 있거든요. 저 사람들은 우리들 모두가 죽기를 바란다구요. 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고 있어요." 애슐리는 깜짝 놀랐다. "감사합니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애슐리는 켈러 박사와 함께 복도를 걸어 가다가 불쑥 물었다. "저 사람들의 병명은 뭐죠?" "당신에 관한 얘기를 들었어요." 하고 친절한 남자가 말했다. "고생 많이 하셨지요?" 애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빼빼 마른 남자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고생했을 거라고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운아요.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고있으니까요 여기는 참으로 멋진 곳입니다." "이 병원에는 세계 최고의 의사들이 모여 있으니까요." 하고 중국 여자가 한 마디 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보이는 걸."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켈러 박사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대화를 모니터하고 있었다. 勞분 뒤에,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대망상증, 정신분열증, 다중 인격 장애, 강박관념 등입니다. 하지만 애슐리 양, 저들 모두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호전되었답니다. 그 사람들과 시간 날 때마다 대화를 나눠 볼래요?" "아뇨, 싫어요." 켈러 박사가 오토 루이슨 병원장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도무지 아무런 진전도 없어요." 하고 켈러 박사는 고백했다." 그룹 치료도 효력이 없고,최면 치료도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전혀다른 치료법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치료법을?" "애슐리를 병원 밖의 만찬에 데리고 나가도록 허가해 주십시오,병원장님." "글쎄, 그건 그리 좋은 아이디어 같지가 않은데, 길버트 박사. 게다가자네들 두사람모두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법일세.애슐리는 벌써 한 번-"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애슐리의 적이라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전 그녀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녀의 분신인 토니가 벌써 한 차례 자네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그녀가 만일 또다시 자네를 죽이려고 시도한다면?" "그 정도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루이슨 박사는 말없이 한참 동안 그 문제에 관해서 생각했다. "알았네. 동행해줄 사람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혼자서 충분합니다. 병원장님." 그때부터 시작할 생각인가?" "오늘밤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겠다고요?" "네.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보는 게 당신에게 좋 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애슐리 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아요." 애슐리는 길버트 켈러 박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병원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자신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스스로 놀라고있었다. '하루 저녁 만이라도 병원을 떠난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러나 애슐리에게는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 이상으로 더 기쁜이유가 있었다. 길버트 켈러 박사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8킬로미터쯤 떨어진 (오타니 가든)이라는일본식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켈러 박사는 자신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라도 토니나 알레트가 애슐리를 점거할 수가 있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애슐리를 도와주려면 그녀가 나를 완전히 신뢰하게끔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요, 길버트 박사님." 애슐리가 손님들로 붐비는 레스토랑 안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저 사람들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과 조금도 달라보이지가 않아서요." "맞아요. 저 사람들도 사실은 병원에 있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저마다 한 가지씩 문제들을 안고 있지요. 단 한 가지 차이점은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처럼 그런문제에 대처해 나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있는 겁니다." "전 제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세요, 애슐리 양? 그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파묻어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직시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마음속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나쁜 일들은 모조리 그 속에 파묻어 둔 겁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교묘하게 화제를 바꾸었다. "스테이크 맛이 어떻습니까?" "너무나 맛있어요, 고마워요." 그 이후 애슐리와 켈러 박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병원 밖에서외식을 했다. 그들은 (반두치)라는 아담한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더 팸)과 (에블린)혹은 (더 검보 팟)같은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토니와 알레트는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춤추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멋진 밴드가 있는 작은 나이트 클럽이었다. "어때요? 오늘밤은 무척 즐겁지 않습니까?" 하고 켈러 박사가물었다. 러무너무 즐거워요 고마워요." 하고 애슐리는 켈러 박사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다른 의사들과는 전혀달라요." "다른 의사들은 춤을 추지 않던가요?" "내 말뜻을 잘 알고 계시면서..."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바짝 끌어안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순간적인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자네들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법일세,길버트..." 25 두 얼굴 "나는 당신이 무슨 못된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 다 알고있어요, 의사 선생님. 당신은 애슐리에게 그녀의 친구라는 것을 믿게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잖아요." "나는 애슐리의 친구요, 토니. 그리고 당신의 친구이기도 하고요." "아녜요 당신은 친구가 아니에요 솔직히 애슐리만 훌릉하고 나형편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잘못 생각하고 있군요 나는 당신과 알레트 둘 다 애슐리를 존경하는 것만큼 존경하고 있답니다. 당신들 토두 나에게 똑같이 중요하답니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요. 토니, 전에 내가 당신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한 적 있죠? 그건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요. 혹시 악기를 연주할 줄 압니까?"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 "만약 당신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내가 오락실의 피아노를 사용하도록 주선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 주겠소?" "그렇게 할 수도 있죠." 하고 말하는 토니의 목소리에는 흥분의빛이 담겨 있었다. 켈러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약속 드리죠 당신이 언제라도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얘기해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켈러 박사는 토니가 매일 오후에 한 시간씩 오락실의 피아노를칠 수 있도록 조취를 취했다. 피아노의 선율과 노랫소리가 들리자 환자들이 더 잘 듣기 위해모두 닫혀 있던 방문을 열어 놓기 시작했다. 토니는 수십 명의 환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다. 켈러 박사는 루이슨 박사와 함께 노트를 검토하고 있었다. 루이슨 박사가 물었다. "또 하나의 분신, 알레트는 어떻게 되었나?" "매일 오후 정원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엄중한 감시 하에서 말입니다.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을 거라고생각합니다." 그러나 알레트는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를 치료하면서 켈러 박사가 말했다. "내가 준 그림 물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군요, 알레트. 이대로 그림 물감을 못 쓰게 되면 너무 아깝잖습니까? 더군다나 당신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요?" "좋아해요." "그렇다면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겁니까?" "나는 솜씨가 없기 때문이에요."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라니까.' "누가 그런 말을 당신에게 하던가요?" "우리- 우리 어머니가요." "당신 어머니에 관해서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 이기회에 어머니에 관해서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얘기할 것이 전혀 없어요." "당신 어머니는 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셨지요?" 긴 침묵이 뒤따랐다. "그래요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 다음 날, 알레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캔버스와 그림붓들을 가지고 정원에 나가 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즐거워보였다. 그림을 그릴 때 알레트는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다 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 몇 사람이 그녀 주위에 모여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색채의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화랑에 걸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군요." 하고 검정색환자가 말했다. "정말로 잘 그리는군요." 하고 노란색 환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법을 어디서 배웠나요?" 하고 검정색 환자가 말했다. "시간 나면 내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요?" 하고 오렌지색 환자가 말했다. "나토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하고 검정색 환자가 말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서 병원 건물 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되자 알레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에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습니다, 애슐리 양. 이 분은 리사 가레트 부인입니다." 리사 부인은 키가 작고 바짝 마른 50대 여자였다. "리사 부인은 오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부인이 밝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놀랍죠? 모든 것이 켈러 박사님 덕분이랍니다." 길버트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바라보며 설명해주었다. "리사 부인은 다중 인격 장애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자그마치 서른 명의 분신이 있었답니다." "한아요 아가씨. 그런데 모두들 사라져 버렸어요." 켈러 박사가 덧붙였다. "금년엔 리사 부인 말고도 다중 인격 장애를 완전히 치유하고이곳을 떠난 환자가 둘이나 더 있었답니다." 애슐리는 희망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알레트가 말했다. "켈러 박사는 우리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어. 그분은 정말로 우리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애." "넌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하고 토니가 쏘아붙였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니? 이전에도 너에게 말했잖아. 그는 우리를 좋아하는 체 꾸미고 있는 것뿐이야.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해 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너는 그게무엇인지 알고 있니? 그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합치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애슐리에게 우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니? 너와 나는 죽는 거라고 너는 죽기를 원하니? 나는 아니야." "나도 죽기는 싫어." 알레트가 망설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들어야지. 우리는 계속 그 의사에게 동조해나가는 거야. 그로 하여금 우리가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해.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를 속이는 거야.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어. 그러는 사이 언젠가는 반드시 여기를 빠져 나가겠다고 너에게 약속할게."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토니." "좋았어. 그러니까 우리는 의사 선생이 자기가 지금 위대한 일을하고 있다고 믿도록 만들어야 해, 알았지?" 데이비드 변호사가 다시 편지를 보냈다. 봉투 속에는 갓난아기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애슐리 양, 당신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는지 치료도 많이 진척되었는지 무척궁금하군요. 이곳에서는 모든 게 잘 돼가고 있답니다. 나는 열심히일을 하고 또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봉한 사진은 우리의 두살난 아들, 제프리의 사진입니다. 하루가다르게 커가는 그애의 모습을 보면 곧 결혼시켜 달라고 할 것 같아요. 새로이 알려드릴 소식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당신을 늘 생각하고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드라도 당신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는군요. 데이비드 애슐리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참 잘생긴 아이야.'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행복한인생을 보내기를 빌어야지.' 그런데 애슐리가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와 보니 사진은 갈기갈기 찢겨져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6월 15일, 오후 1시 30분 환자: 애슐리 패터슨. 소디움 아미탈을 이용한 치료 분신: 알레트 피터스 "나에게 로마에 관한 얘기를 좀 해 주세우 알레트."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죠. 그곳에는 훌릉한 미술관들이 많이 있어요. 나는 그러한 미술관들을 두루 찾아다니곤 했어요." '네가 미술관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겠니?' "당신은 화가가 되고 싶었나요?" "그래요." '내가 무엇이 되기를 원했을 것 같니, 이 소방수야?' "그림 공부를 따로 했습니까?" "아뇨, 안 했어요." '정말 귀찮아 죽겠네. 제발 날 좀 내버려둘 수는 없겠나?' "왜 안했습니까? 어머니가 당신에게 말한 것 때문에 그랬습니다." "아니에요. 나는 다만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토니, 제발 이 작자를 나에게서 떠나가게 해 주라!' "그 기간 중에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일은 없나요? 어떤 끔찍한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는 않았습니까?" "아뇨. 나는 아주 행복했어요." "토니!" 8월 15일, 오전 9시 환자: 애슐리 패터슨. 분신: 토니 프레스코트체 대한 최면술 치료 "내게 런던에 대해서 얘기해 주겠습니까, 토니?" "네. 나는 그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런던은 너무나세련된 도시였어. 그곳에서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때 근심거리라든가 아니면 좀 문제는 없었나요?" "문제요? 없었어요. 런던 생활은 무척 행복했거든요." "그곳에서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었어요." "도대체 무엇을 알아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 이 멍청아?" 매번 치료를 받을 때마다 애슐리는 옛날의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 갔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자신이 <글로벌 컴퓨터 그래픽> 사에다니던 때의 꿈을 꾸었다. 세인 밀러 실장이 꿈속에 나타나서 그녀가 만든 작품을 칭찬해주었다. "뿌리는 당신이 없으면 일을 해나갈 수가 없을 거야, 애슐리. 당신을 영원히 이곳에 붙잡아 둘 거야." 그리고는 장면이 구치소의 감방으로 바뀌고, 세인 밀러 실장은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이런 말을 전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어쩔 수 없이 당신을 파면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사실 회사 입장에서보면 이런 사건에 연루된 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당신도 이해할 수 있겠지? 물론 재인적인 감정은 조금도 없어." 아침에 애슐리가 잠에서 깨어 보니 베개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알레트는 치료 시간만 되면 슬퍼졌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로마를 그리워하고 있는가를 상기시켜 주었고 또 리처드 벨들과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가를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이미 너무 때가 늦었어. 너무 늦었단 말야.' 토니는 치료 시간을 증오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좋지 않은 많은 추억들을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행한 모든 행위는 애슐리와 알레트를 보호해 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녀에게 그것을 감사해 했던가? 아니다. 그녀는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듯 갇혀 지내야만 했다. '난 반드시 여기에서 빠져나갈 거야.' 토니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래, 여기에서 곡 빠져나가고 말 거야.'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력이 한 장 한 장뜯겨져 나가고 또 다른해가 찾아왔다가는 가 버렸다. 켈러 박사는 점점 더 깊은 좌절감을느끼고 있었다. "자네가 최근에 작성한 보고서를 읽었네." 하고 루이슨 병원장이길버트 켈러 박사에게 말했다. "자네는 진짜로 그녀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네, 그녀들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님. 마치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미리 알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애슐리는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는데분신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개 최면을 걸었을 때는 분신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인데, 애슐리의경우는 토니가 너무나 강력하게 나옵니다. 그녀는 완전히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위험하다고?" "네, 그렇습니다. 다섯 명의 남자를 흥기로 난자하고 거세까지할 정도라면 그녀의 증오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지요." 그 해의 나머지 날들도 별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나가고 말았다. 켈러 박사가 맡고 있는 다른 환자들은 모두 조금씩 차도를 보였으나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애슐리는 어떤 진전도 보이지 않았다. 켈러 박사는 토니가 자신과 게임을 벌이고 있으며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토니는 그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 전혀 뜻하지 않게하나의 돌파구가 열렸다. 그것은 패터슨 박사로부터 온 편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애슐리. 사업 관계상 때마침 뉴욕으로 가게 되었단다. 이참에 그곳 병원에들러 네 얼굴도 졸 보고 싶구나.루이슨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괜찮다고 하면 25일경에 찾아가마. 6월 5일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3주일 뒤, 패터슨 박사는 검은머리의 매력적인 40대 초반의 여성과 그녀의 세 살난 딸 카트리나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루이슨 박사의 사무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루이슨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패터슨 박사,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는 빅토리아 애니스톤이고, 이쪽은 그녀의 딸카트리 나입니다." "안까, 애니스톤 부클? 안떵, 카트리나." "애슐리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함께 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애슐리 양은 지금 켈러 박사하고 있습니다만 곧치료가 끝날 겁니다." 패터슨 박사가 물었다. "애슐리는 좀 어떻습니까?"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잠시 망설였다. "나와 단둘이 몇 분 동안만 얘기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패터슨 박사는 빅토리아와 카트리나를 돌아다보았다. "언뜻 보니까 병원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것 같더군. 당신은쾨트리나를 데리고 정원에 나가서 기다려요 잠시 뒤 애슐리와 함께 그쪽으로 나갈 테니까." 빅토리아 애니스톤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게요." 그리고 루이슨 박사를 보았다."만나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병원장님." "감사합니다. 애니스톤 부인." 패터슨 박사는 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오토 루이슨 병원장에게 돌아섰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패터슨 박사. 우리가 애당초 예상했던 것과 같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슐리 양은 말로는우리의 도움을 원한다고 하고 있지만 거의 협력을 해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치료에 대해서도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패터슨 박사는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죠?" "그다지 이상한 현상은 아닙니다. 어떤 단계에서는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분신을 만나기를 두려워합니다. 아니, 무서운겁니다. 다른 인격이 자신의 마음과 몸속에 살아 있고 마음대로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박사님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패터슨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애슐리 양에겐 한가지가더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그녀에겐 우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 문제들은 환자가 아주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한 경험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런데 애슐리 양의 경우에는 그런 것을 밝힐수 있을 만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정신적인 외상이 어떻게 그리고 왜 시작되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패터슨 박사는 얼마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건 내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하고 패터슨 박사가 심호흡을 한 번 했다."모두 내 잘못입니다."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긴장해서 지켜보았다. "애슐리가 여섯 살 때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때 난 영국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애슐리만 데리고 갔습니다. 영국에는 존이라는 아내의사촌 오빠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존은... 정신상의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강의 때문에 어쨀 수 없이 집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존이 아이를 봐주겠다고 자청하더군요 저녁에 돌아와 보니까 존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애슐리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더군요. 애슐리를 진정시키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애슐리는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겁 많고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일 주일 뒤, 존은 연쇄 유아 성적 학대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패터슨 박사의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부터 나는 애슐리를 절대로 다른 사람과 함께 두지 않았습니다." 긴 침묵이 뒤따랐다.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애슐리 양이 안고 있는 병의 깊은 원인을 알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믿어지는군요, 패퍼슨 박사. 이제 켈러 박사가 한결 수월해지겠군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어서 전에는 언급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시계를들여다보았다."애슐리 양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정원에 있는 애니스톤 부인에게 가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애슐리양이 오면 정원으로 보내 드릴 테니까요." 그러자 패터슨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패터슨 박사가 사무실에서 나가는 모습을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알아낸 사실을 켈러 박사에게 빨리 전해주고 싶어서 조바심을 쳤다. 빅토리아 애니스톤과 카트리나는 정원에서 패터슨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슐리를 만나 보았어요?" 그를 보자마자 빅토리아가 물었다. "몇 분 후에 이리로 보내 준다고 했소." 패터슨 박사가 말했다. 그는 넓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정원이군, 그렇지?" 카트리나가 그에게 달려왔다. "7시 하늘로 높이 올라가고 싶어." 패터슨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라." 그는 카트리나를 들어올려 머리 위로 높이 던져올린 다음 떨어지는 그녀를 양손으로 받았다. "더 높이!" "꼭 붙잡아라. 자아, 올라간다!" 패터슨 박사는 카트리나를 다시 하늘로 던져 올렸다가 받았다. 카트리나는 너무 좋아서 깔깔거리며 소리쳤다. "다시 한 번!" 패터슨 박사는 병원 건물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슐리와 켈러 박사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더 높게!" 하고 카트리나가 소리를 질렀다. 애슐리는 병원 문턱에서 얼어붙은 듯이 멈춰 서 버렸다. 그녀는아버지가 어린 소녀와 놀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간이 산산조각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공중으로 높이 던져 올려지는 어린 소녀의 장면이 짧게 나타났다. "더 높이, 아빠!" "꼭 붙잡아라. 자, 올라간다!" 소녀는 침대 위로 던져졌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남자가 침대 속으로 들어와 그녀 옆에 누웠다. 어린 소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요, 안 돼요. 제발 그만두세요." 남자는 그림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하니까 기분이 좋지?" 갑자기 그림자가 걷히더니 그 남자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정원에서 어린 소녀와 함께 놀고 있는 아버지를 보자 애슐리는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비명은 멈춰지지가않았다. 패터슨 박사, 애니스톤 부인, 그리고 카트리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켈러 박사가 얼른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와 주시겠습니까?" 그리고는 애슐리를 병원 안으로 서둘러 데리고 들어갔다. 그들은 애슐리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애슐리 양의 맥박이 급격하게 빨라졌습니다." 하고 켈러 박사가말했다. "일시적 기억 상실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켈러 박사는 애슐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애슐리 양, 무서워하지 말아요. 이곳은 안전해요. 아무도 당신을해칠 수가 없습니다. 자아,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긴장을 풀어요...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최면을 거는 데는 30분이나 걸렸다. "애슐리 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에게 말해 봐요.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까?" "아버지와 그 어린 소녀가..." "그들이 어떻게 했는데요?" 대답을 한 것은 토니였다. "애슐리는 그 장면을 보고 지레 겁먹은 거예요. 애슐리는 그 남자가 자기에게 했던 짓을 그 어린 소녀에게 할까봐 겁이 나서 그런 거라고요." 켈러 박사는 애슐리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가 애슐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요?" 그것은 런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애슐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너를 굉장히 행복하게 해 줄게, 아가야." 그리고 그는 애슐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애슐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애슐리의 잠옷을 벗기고, 그녀의 몸을가지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내 손이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니?" 애슐리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만둬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니까요."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애슐리의 몸을 누르고 계속... 계속... 켈러 박사가 물었다. "애슐리가 그런 일을 당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나요, 토니?" "그래요." "애슐리는 몇 살이었지요?" "여섯 살이었어요." "그리고 그 무렵에 당신이 태어났나요?" "그래요. 애슐리는 그게 너무나 무서워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거예요."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버지는 매일 밤 애슐리를 찾아와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왔어요." 몹시 감정이 격해져서 토니는 홍수처럼 말을 뱉어냈다. 애슐리는 아버지를 제지할 수가 없었죠. 그들이 영국에서집으로 돌아왔을 때 애슐리는 어머니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애슐리를 엉큼스러운 거짓말쟁이라고 불렀어요." 애슐리는 또다시 아버지가 자기 방으로 찾아을 거라는 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애슐리에게 자기 것을 만지게 하고 그러고 나서는 혼자 자위를 했어요. 그리고는 애슐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 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얘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다시는 너를 사랑해 주지않을 테니까.' 애슐리는 아무한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노상 서로에게 고함을 치며 싸움을 했어요. 그때마다 애슐리는 그것이 모두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무엇인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지요. 어머니는 애슐리를 미워했어요." "그런 일이 얼마나 계속되었습니까?" "내가 여덟 살 때..." 갑자기 토니가 얘기를 중단했다. "계속해요, 토니." 애슐리의 얼굴이 변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알레트였다. 알레트가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로마로 이사갔어요. 아버지는 그곳 <폴리클리니코 움베르토 프리모> 연구실에 근무했어요." "그곳에서 당신이 태어난 거로군요?" "그래요. 애슐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어느 날 밤, 내가 애슐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데요, 알레트?" "애슐리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가 침실에 들어왔는데벌거벗고 있었어요. 그리고 침대로 들어와서 이번에는 강제로 애슐리의 몸 안으로 자신의 것을 집어넣었어요. 애슐리는 제지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했어요. 아버지에게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그후로도 계속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이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란다. 너는 내 여자야. 너를 사랑하기때문에 이러는 거란다. 하지만 이런 일을 절대로 다른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돼.' 그래서 애슐리는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애슐리는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뺨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길버트 젤러 박사는 애슐리를 양팔로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싶었다. 그리고 호든 일이 잘 해결될 테니 아무 염려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애슐리의 의사니까." 켈러 박사가 루이슨 병원장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패터슨 박사와 빅토리아 애니스톤 부인과 카타리나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마침내 병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하고 켈러 박사가 병원장에게 말했다. "좀전에 토니와 알레트가 언제, 그리고 왜 태어났는가를 알았습니다. 이제부턴 커다란 변화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켈러 박사의 말이 옳았다. 치유가 빠르게 진전되기 시작했다. 26 타오르는 분노 최면술 치료가 시작되었다. 일단 애슐 리가 최면에 걸리자켈러 박사가 말했다. "애슐리 양, 짐 클리어리에 대해서 얘기해 줘요." "나는 짐을 사랑했어요. 우리 두 사람은 함께 도망가서 결혼할생각이었어요." "그래서요...?" "고교 졸업 파티에서 짐은 나에게 자기 집으로 함께 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때 나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짐이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죠. 아버지는 짐에게 썩 꺼져 버리라고 호통쳤어요."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는 짐에게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행 가방을 챙겨가지고 짐의 집을 향해선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슐리는 한참 동안을 망설였다. "짐의 집으로 절반쯤 갔을 때 나는 생각을 바꿔서 다시 집으로되돌아왔습니다. 나는-" 애슐리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차츰 긴장이 풀린 듯하더니다음 순간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토니였다. "집으로 가긴 어딜 가. 의사 선생, 애슐리는 짐의 집으로 갔다고요." 애슐리가 짐 클리어리의 집에 도달했을 때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주말 여행을 떠나고 안 계셔." 애슐리는 초인종을 눌렸다. 몇 분 뒤, 짐 클리어리가 문을 열었다. 짐은 파자마 바람이었다. "애슐리." 하고 말하는 짐의 얼굴에 함빡 웃음이 떠올랐다. "오기로 결심했구나." 그는 애슐리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말이야..." "네가 왜 오기로 마음을 바꾸었는지 는 말 안 해도 돼. 이미 넌 여기 와 있잖아." 짐은 애슐리를 포옹하고 키스했다. "술 마실래?" "아니, 그냥 물이나 줘." 애슐리는 갑지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리 와." 짐은 애슐리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물컵에 물을한 잔 따라주고는 그녀가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니?" "나는- 그래, 좀 불안해." "불안해할 것 하나도 없어. 우리 부모님이 돌아올 염려는 전혀 없으니까. 자아, 우리 이층으로 올라갈래?" "짐, 아직은 우리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짐은 애슐리의 뒤로 다가와서 양팔로 몸을 감싸고 젖가슴을 만졌다. 애슐리는 몸을 홱 돌렸다. "짐..." 짐의 입술이 애슐리의 입술을 덮쳤다. 그리고 짐은 애슐리를 부엌의 카운터 쪽으로 밀어붙였다.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베이비."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베이비." 갑자기 애슐리의 몸이 얼어붙었다. 짐이 애슐리의 옷을 억지로 벗겼다. 벌거벗겨진 채 나직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 짐은 그녀의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흥폭한 분노가 애슐리를 사로잡았다. 애슐리는 나뚜 받침대에 꽃혀 있는 부엌칼을 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어 비명을 지르면서 짐의 가슴을 힘껏 찌르기 시작했다. "그만둬요, 아버지... 제발 그만둬요... 그만둬요...!" 애슐리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짐이 피를 흘리면서 마루에 쓰러져 있었다. "이 짐승 같은 놈!" 하고 애슐리는 비명을 질렀다. "이제 다시는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거야!" 애슐리는 몸을 구부려 칼을 짐의 고환 속으로 찔러 넣었다. 새벽 6시에 애슐리는 기차역에서 짐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기다려도 짐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애슐리는 두려움에 떨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때 멀리서 열차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기차는 역 안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애슐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떤 불길한 일이 짐에게 일어난 것이 틀림없어.' 몇 분 후, 애슐리는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서 있었다. 그 기차는 그녀의 꿈도 함께 실어가 버렸다. 애슐리는 그곳에서 30분을 더 기다리다가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날 정오에 애슐리는 아버지와 함께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 치료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켈러 박사는 숫자를 헤아렸다. "...넷 ...다섯. 이제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애슐리는 눈을 떴다.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토니가 어떻게 짐 클리어리를 죽였는지 모두 얘기해 주었습니다."애슐리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에게 보고를 했다. "병이 조금씩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치료가거의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들 모두 속마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런 두려움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겨우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나 애슐리는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루이슨 병원장이 물었다. "애슐리는 어떻게 그 살인들이 행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인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애슐리는 그런 기억들을 완전히 지워버렸습니다. 대신 토니가 그것을 떠맡았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마음이 편안한가요, 애슐리 양?" "네." 애슐리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데니스 티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데니스와 친구사이였나요?" "데니스와 난 같은 회사에 다녔어요. 친구라고 말할 만큼 친한사이는 아니었어요." "경찰 보고서에는 당신의 지문들이 데니스의 아파트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건 맞아요 데니스가 나에게 몇 마디 조언을 구했기 때문에그의 아파트에 갔으니까요." "거기서 윌 했죠?" "5분 정도 얘기를 했어요. 그 다음에 데니스는 약이 들어 있는포도주를 한 잔 나에게 주었어요." "그 다음에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뭡니까?" "그러고 나서 나는- 나는 시카고에서 잠이 깼어요." 애슐리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켈러 박사에게 얘기하고 있는 사람은 토니였다.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드릴까요?" "그두 얘기를 해 봐요, 토니." 데니스 티블은 포도주 병을 집어들고 말했다. "기왕이면 기분 좋게 하자구." 그리고는 그녀를 침실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데니스, 이러지 말아요-" 그녀의 말에 아랑곳 않고 데니스는 그녀를 침대쪽으로 몰아붙였 그러고 나서 그녀의 옷을 벗겼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어. 내가 섹스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잖아. 그게 당신이 여기까지 따라 온 이유 아냐?" 그녀는 몸을 빼내려고 저항을 했다. "그만두지 못해요, 데니스!" "당신인 여기에 온 목적을 내가 달성시켜 줄 때까지는 안 되지. 당신도 곧 좋아하게 될 거야, 베이비." 데니스는 그녀를 침대에 넘어뜨리고 꼼짝 못 하도록 붙잡고 한손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너도 곧 좋아하게 될 거야, 베이비." 그리고 데니스는 자신의 것을 그녀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녀는소름 끼친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아버지. 그만둬요!" 그리고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포도주병을 보았다. 손을 뻗어서 그것을 집어들어 탁자의 모서리에 대고 내리쳤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이 선 유리병의 단면으로데니스의 등을 힘껏 찔렀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려고 몸을 버등거렸으나. 그녀가 그를꽉 움켜 잡고 계속 깨진 병으로 찔러댔기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데니스가 마루 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제발 살려 줘!" 데니스는 애처롭게 하소연을 했다. "이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겠어? 그래, 좋아. 그러나확실하게 해 놓아야지." 그녀는 깨진 유리병을 들고 그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잠시 침묵이 흐늰뒤, 켈러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 뒤에 당신은 어떻게 했지요?" "나는 경찰이 오기 전에 그곳을 빠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내가 무척 흥분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군요. 나는 얼마동안만이라도 애슐리의 따분한 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카고에 친구도 있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죠. 그러나 그 친구는 집에 없었어요. 그래서 잠시 쇼핑을 하고 술집을 몇군데 들러 기분을 냈지요."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곧바로 호텔로 들어가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 졌지요." 하고 토니는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역할을 애슐리가 맡았어요." 애슐리는 무엇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느껴졌다. 급히 방안을둘러본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그곳에 들어와 있는지 전혀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머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줄기를 온몸에뿜어대며 자신에게 일어났던 끔찍하고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려고노력했다. 만일 그 작자간 자신에게 임신이라도 시켰으면 어떻게 하지? 몸속에 그의 아이가 자란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애슐리는 욕실에서 나와 몸을 타월로 닦아내고 옷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의 옷들이 보이지 않았다. 옷장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검정색 가죽 미니스커트와 몸에 달라붙는 싸구려 티와 굽높은 구두뿐이었다.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몸서리가 쳐졌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애슐리는 재빨리 옷을 주워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영락없이싸구려 창녀처럼 보였다. "아버지, 전 지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저 지금 시카고에 있는데요..." "도대체 시카고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지금은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 산호세로 가는 비행기표가 필요해요.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물론이지. 잠시 그대로 거기 있거라... 오헤어 공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아메리칸 항공의 407편이 있다. 아메리칸 항공의 탑승카운터에다 네 비행기표를 맡겨 놓으마." "알레트, 내 말 들립니까? 알레트?" "여기 있어요, 켈러 박사님." "리처드 멜튼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그와 가까운 사이였지요?" "네. 그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 사람도 당신을 사랑했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맞아요. 그는 화가였어요. 우리는함께 미술관에 가서 훌릉한 그림들을 감상했어요. 리처드와 함께있으면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만일 그 사람이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우리는 결혼했을 거예요."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을 때의 얘기를 해 봐요." "미술관에서 나왔을 때, 리처드가 말했어요. '내 룸메이트가 지금 파티에 가고 없는데 우리 아파트에 잠깐들렀다 가지 않을래요?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그림도 몇 점있고 하니까요.' "아직은 안 돼요, 리처드." '그럼, 편할 대로 하세요. 다음 주말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요.'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떠났어요.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내가-" 켈러 박사는 슐픈 얼굴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던 그녀가 점차 토니의 활발함을 띠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건 바로 그녀가 그렇게 믿고 싶어한 것뿐이라구요." 하고 토니가 빈정거렸다. "그건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실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하고 켈러 박사가 물었다. 그녀는 펠 스트리트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갔다. 둘이 쓰기엔 작아보이는 아파트였지만 리처드의 그림이 사방 벽에 걸려 있어 무척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알레트." 하고 리처드는 그녀를 양팔로 끌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은 아름다워." "너는 아름다워." 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얼어붙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가 그녀 속으로 들어올 때의 아픔을 느끼면서- 그녀를 짓찢어 놓는 것 같은 아픔을느끼면서.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안돼! 그만둬요, 아버지! 그만둬요!" 그때 광적인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칼을 어떻게 쥐게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그에게 악을 쓰면서 온몸을 칼로계속 찔러대고 있었다. "내가 그만두라고 했잖아! 그만두라고!" 애슐리는 의자에 앉아 몸을 비틀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애슐리 양." 하고 켈러 박사가 달랬다. "진정해요. 이제 다섯을 세면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애슐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되었나요? 잘 되었나요?" "토니가 리처드 멜튼에 대해서 얘기해 주더군요. 당신은 그와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로 착각하고-" 애슐리는 양손으로 귀를 가렸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을 만나러 갔다. "일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습니다. 애슐리 양이 정신적 충격을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합니다만, 지금 상태로라면 완치되는건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아직 두 건의 살인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애슐리와 토니와 알레트를 하나로 결합시킬 생각입니다." 27 사라지는 분신들 "토니? 토니, 내 말 들립니까?" 잠시 후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듣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오늘은 장 클로드 패랑에 관해서 얘기를 합시다." "그 사람은 너무나 완벽했어요. 바로 그 점을 의심했어야 하는데, 제가 어리석었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 그 사람은 진짜 신사처럼 보였어요. 그는 매일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죠. 우리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는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보였죠. 그러나 그 사람도 별수 없더군요.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섹스뿐이었다구요." "이제 알아 듣겠습니다." "그가 내게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주더군요. 그런데 그것으로 나를 소유했다고 생각했나봐요. 그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처음에 난 거부했죠.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가 난 마음을 바꾸었어요. 그래서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갔어요." 그의 집은 붉은 벽돌로 근사하게 꾸며놓은 이층집으로 집 안이골동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이층 침실에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특별한 것이 있소." 그리고 장 클로드 패랑은 그녀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를 제지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했다.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그녀를 포옹하고 귀에다 속삭였다. "옷을 벗어요." "이러지 말아요. 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 당신은 원하고 있을걸. 우리 두 사람 모두 원하는 일이야." 그는 재빨리 그녀의 옷을 벗기고는 침대에 눕히고 그녀 위로 을라갔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그만두세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그러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 속으로 계속 쑤시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아아!' 하고 동작을 멈췄다. "당신은 정말 멋있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때 강한 분노가 그녀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레터 오프너를 책상에서 집어 그의 가슴에 꽂았다. 그리고는 위에서 아래로,아래에서 위로 찔러댔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게 해 줄 테야." 그녀는 그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그 뒤에 그녀는 느긋하게 사위를 하고 옷을 챙겨 입은 다음 호텔로 돌아왔다. "애슐리 양..." 애슐리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아, 이제 잠에서 깨어나요." 애슐리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켈러 박사를 보자 입을 열었다. "또 토니인가요?" "그래요. 토니는 인터넷을 통해서 장 클로드를 만났답니다. 애슐리 양, 당신이 퀘벡에 머물렀을 때 막연하게나마 시간을 잃어버린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나요? 갑자기 몇 시간 뒤가 되었다거나 하루 뒤가 되었다던가, 아니면 앞뒤 정황이 잘 맞지 않았던 일같은 경우 말입니다." 애슐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고 보니까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었어요." "그때 바로 토니가 당신을 점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일을 그때... 그녀가 그런 시간에-?" "그렇습니다." 다음 몇 개월 동안은 이렇다 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켈러 박사는 토니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고 알레트가 정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살인 사건이 하나 더 남아 있었으나 그 사건을 끄집어내기 전에 애슐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해 주고싶었다. 애슐리가 정신 병원에 들어온 지도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한고비만잘럼기면 돼." 하고 켈러 박사는 생각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켈러 박사는 애슐리가 진료실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슐리는 마치 자신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알고라도 있는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안녕, 애슐리 양." "안녕하세요, 길버트 박사님."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떻습니까?" "불안해요 오늘이 마지막 진료인가요?" "그래요 그럼 이번에는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십시다. 그때 그 사람이 당신의 아파트에 온 이유가 뭐죠?" "제가 그분에게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누군가가 욕실 거울에,'너는 곧 죽을 것이다!'라는 협박문을 써 놓았더군요. 나는 어떻게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두려운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달려왔습니다. 그분은 매우 자상했어요." "당신이 그 사람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나요?" "네. 혼자 있는 게 무서웠어요. 그분은 밤 동안 나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24시간 보호를 받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어요. 내가 소파에서 잘 테니 내 침실에서 자라고 권유했지만 그분은 한사코 자기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창문이 잘 잠겨 있는지 확인한 게 기억나네요. 그분은 현관문도이중으로 잠갔어요. 그분의 권총은 소파 옆 탁자 위에 놓여 있었어요. 나는 안녕히 주무시 라는 인사를 하고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요."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내가 기억하는 일은 골목에서 누군가가외쳐대는 비명 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보안관이 들어와서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가 살해당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녀는 말을 중단했다. 그녀의 얼굴은 더할 수 없이 창백했다. "좋아요. 지금부터 당신은 잠에 빠질 겁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두 눈을 감고 긴장을 풀어요..." 최면이 걸리는 데 17찰이 소요되었다. 켈러 박사가 불렀다. "토니..." "나 여기 있어요.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날 부른 거죠, 안 그래요? 애슐리는 보통 멍청한 게 아니에요.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를 아파트 안으로 불러들이다니요. 더군다나 자고가라고 하다니-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애슐리에게말해 줄 수 있다고요." 샘 블레이크 보안관 대리는 침실에서 울음소리가 나자 소파에서벌떡 일어나 권총을 집어들었다. 그는 침실 문으로 달려가 잠시 귀내가 잘못 들었나 보군." 하고 돌아서려는데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그는 권총을 겨누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애슐리는 발가벗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낮게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그녀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듯 다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는 그드러누워 그녀를 부드럽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녀의고동이 느껴졌고 그는 발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귓기에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이제 안심해요. 당신은 안전하니까요."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포개졌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양다리를 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아버지!" 그는 욕정에 사로잡혀 더욱 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때 사나운 복수심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침대 옆의 탁자 서랍에서 칼을 꺼내 그의 몸을 난지적기시작했다. "그를 죽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시트로 그의 시체를 싸 가지고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가서 차고를 통해 뒷골목에 갖다 버렸어요." "...그러고 난 다음," 하고 켈러 박사가 애슐리에게 설명했다. "토니는 시트로 그의 시체를 싸 가지고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가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고를 통해 뒷골목에 갖다 버렸답니다." 애슐리는 죽은 사람처럼 핏기 없는 얼굴을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괴물- 아니, 나는 괴물이에요." 길버트 켈러 박사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애슐리 양. 토니는 당신을 보호하기위해 고통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죠. 알레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그들과 타협하는 일만 남았어요. 그러기 위해선 그들과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넘어서야 하는 최대의 고비요." 애슐리의 눈은 꽉 감겨 있었다. "좋아요... 언제 그 일을 하죠?" "내일 아침에요." 애슐리는 깊은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켈러 박사는 토니와함께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토니, 애슐리와 함께 얘기를 나누어 보겠소? 물론 알레트도 같이말이오." "애슐리가 우리 둘을 다를 수 있다고 믿고 계시나 보죠?" "애슐리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좋아요, 의사 선생. 당신 말대로 한 번 해 봅시다." "알레트, 당신도 애슐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토니가 괜찮다고 한다면요." "그녀가 허락해 주었소. 자아, 알레트. 시간이 거의 되었습니다." 켈러 박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애슐리 양, 당신이먼저 토니에게 인사를 하세요." 긴 침묵이 뒤따랐다. 그리고는 애슐리는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토니..." "안녕." "애슐리 양, 알레트에게도 인사를 하세요." "안녕, 알레트..." "안녕, 애슐리..." 켈러 박사는 안도의 숨을 휴우 하고 내쉬었다. "여러분 모두가 서로 알고 지냈으면 좋잖아요. 당신들은 모두 너무나 오랫동안 끔찍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 충격들이 여러분을 서로에게서 격리시켜 놓았구요.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격리되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멀고 긴 여행이지만 이미 그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은 이미 끝났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애슐리의 치료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애슐리와두 분신은 매일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너를 보호하려고 그런 거야." 하고 토니는 설명했다. "그남자들을 죽일 때마다 난 아버지가 너에게 한 짓을 떠올렸지. 난아버지를 죽였던 거야." "나도 역시 너를 보호해 주려고 노력했어." 하고 알레트가 말했다. "나도- 너희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너희들 둘에게 감사하고있어." 애슐리가 켈러 박사를 돌 아다보고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얘들은 사실은 전부 나잖아요? 지금 나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은 당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분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켈러 박사는 상냥하게 바로잡아 주었다. "여러분 모두가 합쳐져서 다시 하나가 될 겁니다." 애슐리가 켈러 박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단단히 준비되었어요." 그날 오후, 켈러 박사는 오토 루이슨 병원장을 만나러 갔다. 루이슨 박사가 말했다. "훌륭한 보고서일세, 길버트 박사." 켈러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슐리 양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뒤에는 퇴원해서 외래 환자로 통원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생각합니다."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 축하하네!" "애슐리를 잊지 못할 거야." 하고 켈러 박사는 생각했다. '무척그리워지겠지.' "세일럼 박사님의 전화가 2번으로 와 있습니다. 싱거 변호사님." "알았네." 데이비드 싱거 변호사는 의아한 얼굴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세일럼 박사가 전화한 이유가 윌까?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얘기를나눈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세일럼 박사님이세요?" "그래간만이오, 데이비드. 당신에게 흥미 있는 정보가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걸었소 애슐리 패터슨 양에 관한 거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갑자기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예전에 그녀가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가찾아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기억합니까? 끝내 실패하고 말았지만요." 데이비드 변호사는 물론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재판에서 커다란 약점이었다. "기억하고 있고 말고요." "그런데 방금 그 해답을 알아냈소. <코네티컷 정신 병원>의 루이슨 박사가 조금 전에 전화를 걸었어요. 그 퍼즐의 잃어버린 조각은바로 패터슨 박사였소. 애슐리가 어렸을 때 그녀에게 성희롱을 한장본인이 바로 그였소." 데이비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뭐라고요?" "루이슨 박사도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 뒤에 세일럼 박사는 뭐라고 계속 얘기했지만 데이비드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온통 다른 데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전에 패터슨 박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네만이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변호사일세, 데이비드 딸아이는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세. 자네밖에는 딸아이를 구해줄 사람이 없네... 꼭 자네가 애슐리를변호해 주기를 바라네. 그리고 이 사건에 다른 어느 누구도 개입시키는 걸 원치 않아..." 데이비드 변호사는 그제서야 패터슨 박사가 자기 혼자만이 애슐리를 변호해야 한다고 고집한 이유를 깨달았다. 박사는 만일 데이비드가 자신이 한 짓을 캐어낸다 해도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 줄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패터슨 박사는 딸과 자신의 명성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선택했던 것이다. "저런 죽일 놈!"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세일럼 박사님." 그날 오후, 애슐리는 오락실을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그곳에 놓고 간 <웨스트포트 뉴스>라는 신문을 보았다. 신문의 첫 페이지에는 아버지가 빅토리아 애니스톤과 카트리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그 기사 첫머리의 내용은 이러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사교계의 여왕, 빅토리아 애니스톤 씨와 결혼할 예정이다. 그녀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세 살 난 딸이 있다. 패터슨 박사는 맨하탄의 <세인트 존스 병원>의 임원으로 취임했으며 롱 아일랜드에 아내와 함께 살 저택을 구입했다... 애슐리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그 개새끼를 죽여 버리고 말겠어!" 하고 토니가 소리를질렀다 "죽여 버려야지!" 그녀는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해버렸다. 간호사들은 그녀가 자기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도록 패드를 벽에 댄 독방에 가두고수갑과 족쇄도 채웠다. 그런데도 그녀는 간호사가 식사를 주러 갈 적마다 사납게 달려들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가능한 한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했다. 토니가 애슐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던것이다. 켈러 박사를 보자 그녀는 악을 썼다. "날 여기서 당장 나가게 해 줘, 이 불한당 녀석아!" "그러잖아도 당신을 이곳에서 내보낼 생각이오." 하고 켈러 박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토니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나를내보내 달라고요!" 켈러 박사는 그녀 옆의 마룻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토니, 아버지의 사진을 보았을 때 아버지를 해치겠다고 말했었죠. 그리고..."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는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단 말이야!"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잖아요. 설마 또다시 사람을 흥기로 찌르고 싶은 건 아니겠죠?" "아뇨, 난 아버지를 칼로 찌르지는 않을 거예요. 혹시 염산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염산은 피부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고요 기다려 보세요, 내가요" "나는 당신이 그런 짓을 하는 걸 원치 않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불을 지르는 거야! 불을 지르는 게 더 좋겠어. 그가 지옥불에 태워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나는 경찰이 나를 체포하지 못하도록 교묘히 할 수가 있다" "토니, 제발 그런 생각은 버려-" "좋아요. 그렇다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보죠." 켈러 박사는 좌절감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화내는 이유가 뭐죠?" "몰라서 물어요? 꽤나 유능한 의사인 줄 알았더니만... 그 사람은 지금 세 살짜리 딸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어린 소녀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똑똑한 의사선생님? 내가 말해 줄까요. 우리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일이일어날 거라고요, 알겠어요? 내가 나서서 막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요!" "그러한 모든 증오심이 마음속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나요?" "증오요? 진짜 증오한다는 게 어떤 건지 말해 드릴까요, 의사선생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속력을 내어 달리는 자동차 지붕에 쉴 새 없이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자기 옆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 앞쪽 도로를 음치하고 있었다. 그녀는행복한 기분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뽕나무 숲속을 원숭이가 이리저리-" 어머니가 그녀를 돌아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닥치지 못해.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겠니. 아주 날 미치게 만드는구나, 이 볼품없는 계집애..." 그 뒤에는 모든 일들이 느린 화면처럼 떠올랐다. 앞쪽의 커브길에서 자동차는 도로에서 미끄러져 나가 나무를 들이받았다. 그 충돌로그녀는 창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몸은 떨리고 있었으나 다친 곳은없었다. 그녀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차 안에 갇혀 있는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 좀 꺼내 줘! 살려 줘! 어서 살려 줘!"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꼼짝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얼마 뒤,자동차는 폭발했다. "증오에 대해서 더 들어보고 싶어요?" 월터 매닝이 말했다. "이 일은 만장일치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딸아이는 직업적인 화가이지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내 딸은 오직 목사님에 대한 호의에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호의를 무시한다는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면 안 됩니다. 따라서 목사님에게 내 딸의 그림을 드리던가 아니면 아무것도드리지 말던가 해야 합니다." 그녀는 시동을 걸어 놓은 채 커브길에다 차를 세웠다. 그녀는 월터 매닝이 자기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을 향해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기어를 넣고 발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짧았다. 마지막 순간 월터 매닝은 자동차 한 대가 자기 쪽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동차와 충돌할 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지켜보았다. 자동차는 치명상을 입은 그의 몸을 길 옆으로 날려보내고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는 계속 차를 몰았다. 목격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하느님은 그녀 편에 서 있었다. "그게 바로 증오라고요, 의사 선생! 그게 진짜 증오란 말예요!" 길버트 켈러 박사는 그 잔인한 악의에 몸을 떨며 경악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남은 치료 스케줄을 모두 취소했다. 켈러 박사는 혼자 있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켈러 박사가 패드를 댄 독방에 들어가자 이번에는알레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죠, 켈러 박사님? 날 좀 여기서 내보내 주세요." 하고 알레트가 말했다. "때가 되면 내보내 주겠소." 하고 켈러 박사는 그녀를 다독였다. "내게 토니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 봐요. 토니가 당신에게 뭐라고얘 기 했습니까?" "저는 여기를 탈출해서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어" 이번에는 토니가 다시 맞받았다. "안녕, 의사 선생. 우린 지금 모두 괜찮다구요. 왜 우리를 내보내주지 않는 거예요?" 켈러 박사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냉혹한 살인자가 있었다.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한숨을 지었다. "이번 일은 정말로 유감일세, 길버트 박사.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애슐리를 불러낼 수조차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번 일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네." 켈러 박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병원장님. 이미 세 개의 분신이 서로를 알게 되는 데까지 도달했잖습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생각합니다. 지금 일은 그녀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단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 방법만 찾아낸다면-" "그 망할 놈의 신문 기사가-" "토니가 그 기사를 본 게 오히려 우리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러자 오토 루이슨 병원장이 깜짝 놀라서 켈러 박사를 쳐다보았다. "다행 이 라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오의 앙금이 토니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 앙금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도록 노력해야죠. 그래서 말인데, 애슐리에게 한 가지 실험을 해볼 생각입니다. 만일 그것이 성공한다면 그녀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켈러 박사는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애슐리는 나머지 인생을여기서 감금된 채 마쳐야겠죠." "무슨 실험을 하려고 하는데?" "처음엔 그녀를 패터슨 박사와 만나보게 할까 생각했는데 좋은방법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더군요. 그래서 신문기사 수집 센터에모조리 연락해서 전국의 일간지에 실린 패터슨 박사에 관한 기사들을 전부 보내달라고 할까 합니다." 병원장은 눈만 껌벅거렸다. "무엇에 쓰려고?" "그 기사들을 모두 토니에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녀의 증오가스스로 불타다가 없어져 버릴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그녀를 모니터하다 보면 그녀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도가 생길 겁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지도 모르네, 길버트 박사." "길어 보았자 1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애슐리에게는유일한 기회입니다." 5일 후, 드디어 애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켈러 박사가 패드를 댄 독방에 들어서자 애슐리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요즘 며칠 동안 문제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해요." "아니, 그렇게 된 걸 나는 오히려 기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자신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도록 합시다." 켈러 박사는 경비원에게 수갑과 족쇄를 풀어 주도록 지시했다. 애슐리는 몸을 일으키고 손목을 비볐다. "이것들을 차고 있으니까 그다지 편하지가 않더군요." 하고 애슐리가 말했다. 두 사람은 복도로 걸어 나갔다. "토니는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토니도 그것을 곧 극복하게 될 거요. 내 계획은..." 매달 패터슨 박사에 관한 기사가 3, 4건씩 보내져 왔다. 어느날 켈러 박사는 토니에게 패터슨 박사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 신문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이번주 금요일 롱 아일랜드에서 빅토리아애니스톤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으로, 패터슨 박사의 동료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그 기사를 보고 나서 토니는 신경질을 부렸다. "결혼 생활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할걸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토니?" "왜냐하면, 그는 곧 죽게 될 테니까요!"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세인트 존스 병원>에서 사임하고, <맨해튼메소시스트 병원>의 심장과 과장으로 취임할 예정... "그래, 그 작자는 그곳에서 모든 어린 소녀들을 강간할 수 있겠군!" 하고 토니가 악을 썼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는 의학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으로 (래스커상)을 수상하였으며, 백악관에 초대되어서... "저 작자를 목 매달아 죽여야 하는 건데!" 토니는 고함을 질렀다. 길버트 켈러 박사는 토니가 아버지에 관한 기사들을 모두 받아볼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썼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기사를 읽을 때마다 보이던 토니의 분노는조금씩 강도가 막해져 갔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은 차츰 마멸되는것 같았다. 토니의 증오는 분노로,분노에서 마지막에는 체념에서 오는 수용으로 변해갔다. 부동산란에 패터슨 박사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스티븐 패터슨 박사와 그의 새로운 신부는 맨해튼에 있는 집으로이사를 갔으나, 핼프톤에 또 집 한 채를 구입하여 딸 카트리나와 그곳에서 여름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토니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죠?" "그 어린 소녀에게 당신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군요, 토니?"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혼란스러워요." 또 한 해가 흘러갔다. 애슐리는 일 주일에 세 차례씩 치료를 받았다. 알레트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렸으나 토니는 노래 부르는 것도피아노 치는 것도 거부했다. 크리스마스 때, 켈러 박사는 토니에게 새로운 신문을 보여주었다. 그곳엔 아버지와 빅토리아 부인과 카트리나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패터슨 밖산 일간. 햄프톤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다. 토니는 꿈꾸듯이 말했다. "우리들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곤 했어요. 아버지는 늘 멋진선물을 사 주셨어요." 그리고는 켈러 박사를 보았다. "아버지는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 일만을 빼고는... 좋은 아버지였어요. 나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날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새로운 돌파구의 첫번째 징후였다. 어느 날, 켈러 박사는 오락실 앞을 지나가다가 토니가 피아노를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다. 깜짝 놀란 켈러 박사는 오락실로 들어가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토니는 완전히 음악에 몰입해 있었다. 그 이튿날, 켈러 박사는 토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점점 늙어 가고 있어요, 토니. 만일 아버지가죽는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까?" "나는- 나는 아버지가 죽는 것을 원치 않아요. 물론 내가 아버지에 대해 어리석은 말들을 많이 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모두 화가 나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그럼 지금은 더 이상화가 나지 않습니까?" 토니는 그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에요. 상처를 입은 거예요.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 어린 소녀가 내 자리를 빼앗아가려 한다고 생각을했던 거예요." 그녀는 켈러 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또 애슐리도 자신의 생활을 꾸려갈 권리가 있어요." 켈러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다시 본궤도로 돌아왔군 그래." 그녀들 세 사람은 다시 자유롭게 서로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켈러 박사가 말했다. "애슐리 양, 당신은 고통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에 토니와 알레트를 필요로 했던 거예요. 당신은 지금 아버지에 대해서 어떻게생각하고 있습니까?"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애슐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짓을 죽어도 잊을 수 없지만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난 과거를 묻어 버리고 미래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들 모두가 다시 하나로 합쳐져야 해요. 그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알레트?" 이번에는 알레트가 대답했다. "만일 내가 애슐리라고 해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나요?" "몰론입니다.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좋아요." "토니는?" "나도 계속 피아노를 칠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나요?" "그럼요." 켈러 박사가 단언했다.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죠." "애슐리 양?" "나는 벌써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나는-내가 그녀들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 "천만의 말씀." 하고 토니가 말했다. "별 소리를 다하는군." 하고 알레트가 말했다. 이제 최종 단계인 통합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좋아요 지금부터 당신에게 최면을 걸겠습니다. 애슐리 양. 토니와 알레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게 좋겠군요." 애슐리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안녕, 토니. 안녕, 알레트." "안녕, 애슐리." "몸 조심해, 애슐리." 10분 뒤, 애슐리는 깊은 최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애슐리 양,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는 과거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당신은 더이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떤 불쾌한 경험도 회피하는 일없이 꾸려 나갈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그것을 직시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말에 동의합니까?" "네, 동의합니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좋습니다. 토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토니?"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알레트?" 침묵. "알레트?" 침묵. "그녀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애슐리 양. 당신은 이제 온전한인간이고 이것으로 당신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셋을 세면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하나... 둘... 셋...!" 애슐리는 눈을 반짝 떴다. 그리고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차 있었다. "선생님의 생각대로 되었나요, 켈러 박사님?" 켈러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애슐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자유예요. 아아, 정말 고맙습니다. 길버트 박사님! 마치 무시무시한 검은 장막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켈러 박사는 애슐리의 손을 잡았다. "나도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요. 하지만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검사를 몇 가지 더 받아야 해요.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당신은 곧 집으로 돌아갈수 있을 거요. 당신이 어디에 있건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소." 애슐리는 감정이 북받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연신 고개만끄덕였다. 28 세상 속으로 그다음 2, 3개월 동안, 오토 루이슨 병원장은 애슐리를 세명의 박사에게 맡겨 세 차례에 걸쳐 정신병 검사를 실시했다. 그때마다 최면술과 소디움 아미탈이 사용되었다. "안녕하세요, 애슐리 양. 나는 몽포르 박사입니다. 당신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상쾌한 기분이에요, 박사님. 마치 오랫동안 앓아 온 병을 극복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오. 나도 얼마간 나쁜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내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않아요."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습니까?" "과거에는 미워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요.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가 다신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지 않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생활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요." "애슐리 양?" "네." "나는 보흔 박사입니다. 당신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토니와 알레트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물론이에요. 그렇지만 그녀들은 이제 없어요." "그녀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내가 그녀들을 필요로 했었다는것을 알고 있어요. 그녀들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밤에 잠을 잘 잡니까?" "지금은 잘 자요." "당신은 주로 어떤 꿈을 꾸죠? 그 꿈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끼?" "전엔 무서운 꿈을 많이 꾸곤 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항상 쫓아다니는 꿈이었죠. 그래서 나는 늘 살해당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을지니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 꿈을 꿉니까?" "아니오,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 않아요. 꿈속에서 난 너무 평화로워요. 화려한 색깔과 미소짓는 사람들도 보구요. 어젯밤에는 스키장에 가서 슐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꿈을 꾸었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추운 날씨도 무섭지 않아요."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버지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구요." "애슐리 양?" "네." "나는 호엘테르호프 박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른 의사들이 전혀 귀뜸해 주지 않아서 잠깐 당황했습니다. 당신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정도의 매력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듣기에는 당신의 목소리도 아주 아름다운 것 같은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쑥스럽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하고 애슐리는 웃었다. "노래도 그럭저럭 잘 부른답니다." "당신은 그림도 상당히 잘 그린다고 하던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마추어치고는 상당히 잘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호엘테르호프 박사는 무엇인가 생각하듯이 애슐리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나에게 물어보고 싶거나 아니면 자문을 구하고 싶은 문제는 없나요?" "아뇨, 전혀요. 여기서 좋은 치료를 받고 있으니까?" "이곳을 떠나서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선 많이 생각해 봤어요. 한편으로는 겁도 나지만, 흥분되기도 해요." "바깥 세상에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아뇨. 난 하루빨리 새로운 생활을 꾸려 나가고 싶어요. 나는 컴퓨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회사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다른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호엘테르호프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애슐리 양. 당신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몽포르 박사, 보흔 박사, 호엘테르호프 박사, 그리고 켈러 박사가오토 루이슨 병원장치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병원장은 의사들의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검토가 끝나자 그는 켈러 박사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축하하네!" 하고 루이슨 병원장이 말했다. "이 보고서들은 모두긍정적일세. 훌릉한 일을 해냈네, 길버트 박사." "애슐리 양은 훌릉한 여성입니다. 매우 특별한 여성이죠. 그녀가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에슐리 양이 이곳을 떠난 뒤에도 통원 치료를 받겠다고 동의했나?" "동의했습니다." 병원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네. 애슐리 양의 퇴원과 석방 서류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겠네." 그는 다른 의사들을 돌아다보았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9 새로운 희망 이틀 뒤, 애슐리는 루이슨 병원장실로 불려갔다. 켈러 박사도 그곳에 와 있었다. 퇴원하면 애슐리는 큐퍼티노에 있는 자기아파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법원이 지정한 정신과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치료와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루이슨 병원장이 말했다. "자아,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흥분됩니까?" 그러자 애슐리가 대답했다. "흥분도 되고 겁도 나고... 잘 모르겠어요. 방금 새장에서 풀려나온 작은 새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애슐리의 얼굴은 차츰 홍조를 띠어가고 있었다. "당신이 이곳을 떠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당신이 보고 싶어질 거야." 하고 켈러 박사가 말했다. 애슐리는 켈러 박사의 손을 잡고 다정스럽게 말했다. "저도 박사님이 보고 싶어질 거예요. 박사님께 어떻게 감사를-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박사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되돌려 주었으니까요." 애슐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루이슨 병원장에게 몸을 돌렸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면, 그곳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 일자리를 얻을 거예요. 그리고그곳 생활과 통원 치료에 대해서 자주 보고 드릴게요. 내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러면 나부터 확신을 가져야겠죠?" "그 점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할 게 없어요." 병원장이 격려하듯이 말했다. 애슐리가 떠나자, 루이슨 병원장은 길버트 켈러 박사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이번의 성공이 그 동안 실패했던 많은 케이스들에 대한 큰 벌충을 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겠나, 길버트 박사?" 햇살이 눈부신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애슐리는 뉴욕시의 매디슨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애슐리는 앞으로 펼쳐질 멋진 인생에 대해서 생각했다. 비극적인 결말이 그아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원했던 대로 행복한결말을 맞았다. 애슐리는 펜실베니아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철도역이었다. 숨막히는 수많은 대합실과 통로의 미로역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모두 각자 남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겠지.'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저마다 다른 고장으로 가서 자기 자신의 삶을 살겠지. 나도 저들처럼 내 인생을 살 거야.' 애슐리는 자동판매 기에서 차표를 한 장 구입했다. 그녀가 탈 열차가 때마침 역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주 좋은 징조야!' 하고 애슐리는 생각했다. 애슐리는 열차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차는 덜컹하는 소리과 함께 출발하여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는 내 길을 걷기 시작한 거야.' 기차가 햄프톤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때 애슐리는 부드럽게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뽕나무 숲속을 원숭이가 이리저리 족제비를 쫓아다니고 있네. 원숭이는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이구!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네..." (끝) 작가 노트 지난20년 동안, 피고들이 '다중 인격 장애'를 갖고 있다고주장하는 형사 재판이 수십 건이나 열렸다. 그들이 범한 범죄는살인, 납치, 강간, 방화 등 광범위했다. '다중 인격 장애(MPD)'는 또한 '분열 인격 장애(BID)'로도 알려져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있는 정신병이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다중 인격 장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굳게 믿고 있다. 한편, 많은 의사들과 사회 복지 기관에서는 '다중인격 장애'로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치료해 오고 있다. 어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병 환자들 중 5~15퍼센트가'다중 인격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유아 성폭행 피해자들 중 3분의 1은 6세 이하이며, 3명의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은 18세 이전에 성폭행을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보고된 근친 상간 케이스의 대부분은 아버지와 딸이 관련되어있다. 그리고 3개국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다중 인격 장애'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신 분열 장애는 오진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특히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서 7년이라는시간을 헤매고 다닌다는 보고가 있다.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 중 3분의 2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리스트는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을 도와주고치료해 주는 단체의 이름이다. 이것에 덧붙여서,이 문제에 관심을가진 분들을 위해 참고 서적과 그 밖의 리스트를 소개했다. (미국) *B.E.A.M (Being Energetic About Multiplicity) P.O. Box 20428 Lauisville, KY 40250-0428 Fax+1 (502) 493-8975 The Cen拏r for Post-Traumatic & Dissociative Disorders *The Center for Post-Traumatic & Dissociative Disorders Program The Psychiatric Instiute of Washington 4228 Wisconsin Avenue, N.W. Washington, D.C. 20016 Tel. +1 (800) 969-8437 *The Forest View Trauma Program 1055 Medical Drive,5.E. Tel.+1 (800) 949-8437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Study of Dissociation60 Revere Drive, Suite 500 Nordlbrook, IL 70062 Tel.+1 (847) 480-7899 Fax+1 (847) 480-9282 *Justus Unlimited p.0. Box1221 Parker, CO 80134 Tel. +1 (303) 643-8698 Master? and Johnson"s Trauma and Dissociative Disorders Programs Two Rivers Psychiatric Hospital 5121 Raytown Road Kansas City, MO 64133 Tel. +1 (800) 225-8577 Mothers Against Sexual Abuse (MASA) 503"/, South Myrtle Avenue, No.9 Monrovia, CA 91016 Tel.+1 (626) 305-1986 Fax +1 (626) 503-5190 The Sanctuary Unit Friends Hospital 4641 Roosevelt Boulevard Philadelphia, fA 19124 Tel. +1 (215) 8317600 *The Sidran Foundation 232877s1 Joppa Road, Suite 15 Lutherville, MD 21093 Tel. +1 (410) 825-8888 The Timberlawn Trauma Program 4600 Samuell Boulevard Dallas If 75228 Tel +1 (800) 4267944 (아르헨티나) Grupo de Estudio de Trastomos de disociaci7n y trauma de Argentina Dra. Graciela Rodrigue? Federico Lacrote 18207mo. A (1426) Bffnos Aires Argentina Tel. /Fax541-775-2792 (이스라엘) Maytal-Israel Institute for Treatment & Research on Stress Eli Somer Ph.D., Clinical Director 3 Manyan Street Haifa 3784, Israel Tel. +972구8381999 Fax+972-78386369 (네덜란드) Nederlands-7aamse 7ereniging moor de bestudering van Dissociatieve Stoomissen (NWDS) (Netherlands-Flemish Society for the Study of Dissociative Disorders) coo Stickling RBC, location p.C. Bloemendaal Kliniek voor Intensieve Behandeling Adantis Fenny ten Boschstraat 23 2555 PT Den Haag The Netherlands Tel. +3l (070) 391-6117 Fax +31 (070) 391-6115 Praktijk voor psychotherapie on hypnose Els Grimminck, M.D. Wielewaal 17 ? 1902 KE Castricum The Netherlands Tel. (+31-0) 251650264 Fax (+31-0) 251653306 (참고 서적) ·Calof, David L., wi沆 Ma그 Leloo. 그그貯글短킬7「7o辯곯그 7H?7iffo7i7f7"oH.· 7777rrf7u71"uf Jnreff,.47uf7,7%? 77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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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는 형편없는 낙오자들이었지요. 아버지는 아마 평생 책한 권도 읽지 않으셨을 겁니다. 가족 중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지요."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잡일을 해가며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비스마르크 호텔에서 손님의 외투와 모자를 받아 정리해주는 일을 하는 동안, 그곳 악단 단장에게 자신이 쓴 곡을 하나 둘 보여주었고, 운이 좋아 그 중 몇 곡이 채택되어 악단에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곡이 한 11개쯤 쓰여졌을 때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RKO제퍼슨극장의 좌석 안내인으로 아침나절 일하기 시작했고, 오후에는 꾸준히 음악관계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아무런 성공의 기미 없이 허비하자, 그는 다시 고향 시카고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영화 대본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이그토록 좋아하는 오래된 고전 영화들에 푹 파묻히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는 부모에게 3주 내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하고 나서, 다시금 큰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한다. 그 당시를 셀던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할리우드에 도착했을 때 내 나이 열아홉이었지요. 나는 여덟 군데의 메이저 스튜디오 현관문을 일일이 두드리며 배짱 좋게도 이렇게 말했지요. 내 이름은 시드니 셀던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누굴 만나면 되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어김없이문지기가 나와 "아무도 볼일 없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를몇 차례, 일이 바쁜 제작자들이 종종 대본 모니터 요원을 필요로한다는 말을 얼핏 듣고, 결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주당 17달러를받고 취직하게 된다.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일하는 동안 셀던은 동료 벤 로버츠와 더불어 틈나는 대로 자신들이 직접 창작한 스토리에 대해 대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다듬어진 첫 두 작품이 각각 하루만에 팔려나가자,그들은 내친김에 계속해서 리퍼블릭 영화사의 B급 영화 대본을 닥치는 대로 쓴다. 2차 세계대전을 공군 비행사로 복무하고 나온 그는 브로드웨이연극 대본을 집필하기 시작해서, 25세 때엔 일급 극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당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한 커크 더 글라스가 출연한첫 작품이 바로 셀던의 네 번째 뮤지컬 '군대에 간 앨리스'였으며, '붉은 머리'라는 작품으로는 토니상을 거머쥐기도 한다. 그 후 12년 넘게 셀던은 MGM 영화사의 성공한 극작가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캐리 그란트 주연의 '독신남과 사춘기 소녀 Bachelor and the Bobbysoxer로 아카데미 대본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주디 갈란드와 프레드 아스테어 주연의 '부활절 축제 Easter Parade', 빙 크로스비 주연의 '뭐든지 괜찮아요Anything Goes' 등등 총 30여 편의 영화 대본을 집필하며 왕성한활동을 벌이게 된다. 대본작가이자 감독, 제작자로서 MGM 영화사와 헤어진 셀던은당시 갓 출발한 TV 산업에 뛰어들게 되고, 때마침 패티 듀크(pattyDuke)라는 여배우를 내세워 TV 쇼를 준비중이던 ABC 사의 제의를 받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이름하여 '패티 듀크 쇼The Patty Duke Show'이다. 셀던은 향후 3년에 걸쳐 총 60편이라는전례가 없는 이 쇼의 방송 대본을 써내려간다. 그리고 좀더 나중에쓰여진 '나는 지니를 꿈꾼다 I Dream of Jeannie'와 '하트 투 하트Hart to Hart'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데, 전자의 경우 NBC에서 5년 간이나 롱런하는 쾌거를 이룬다. 셀던에게 있어, 극작가에서 소설가로의 변신은 우연한 기회에이루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구상하는 이야기는 내성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따라오려면 등장인물의 생각을 모조리 읽어내야만 했다. 따라서 나는 아예 서사적 형태의 글쓰기가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에 훨씬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뭐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성미에도 불구하고,이렇게 해서 그의 처녀작 '벌거벗은 얼굴 Naked Face'이 나오게되었고 그는 이 원고를 출판사 다섯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월리엄 머로우 컴퍼니(William Morrow Company)'라는 출판사에 겨우넘길 수 있었다. 비평계의 반응만큼은 그에게 애드거 앨런 포 상을부여할 만큼 대단했지만, 실제로 대중적인 호응은 별로였다. 정작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소설은두 번째 작품 '한밤의 저쪽 The Other Side of Midnight'이었다. 그리고 뒤이은 후속 작품들이 줄줄이 출판되면서 소설계 왕으로서의그의 입지는 더더욱 공고히 굳어져간다. 소설을 쓰면서 셀던이 맘에 들어하는 것은 이야기 형태가 주는무한한 자유이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만든다면 수많은 협력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쓸 때는 당신 혼자면 족하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신이 되는 셈이다. 등장인물들을 마음껏 창조하니까 말이다. 당신은 그들을 때에 따라 죽게도 살게도 할 수 있다. 그건 정말이지 신나는 일이 아닌가!" 셀던은 소설이야말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글쓰기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TV나 영화 대본을 쓸 때보다 소설을 쓸 때는, 훨씬 더 세부적인 묘사와 진술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영화의 카메라 렌즈가 시각적으로 포착해서 보여주는 그 모든것을 소설은 문자로 구체화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작중 인물의 성격묘사 역시 훨씬 더 심오한 테크닉을 요한다. 스크린 위에서라면표정이나 액션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오로지 글을 통해서만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작가는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지극히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꼼꼼히 점검하고 화인해야 한다. 셀던이 종종 일 년 내내 외국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눈에 띄는 풍습은 무엇이든 샅샅이 훌고다닌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 그는 말한다. "조사 과정은 내게 무척 중요하지요. 나는 소설에 묘사할 어떤한 상황이 과연 독자에게 그럴 듯하게 전달될 만한 것인지 확신이설 때까지 그에 대한 조사를 밀고 나갑니다. 만약 당신이 내 등장인물 중 누군가 어느 이국적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대목을 읽게 된다면,당신은 바로 이 시드니 셀던 자신이 바로 그러한 레스토랑에서 똑같은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믿어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정확성과 진실성 역시 중요하지요. 만약 소설가가 무언가 어영부영 꾸며대고자 한다면 독자가 즉각 눈치챌 테니 말입니다. 주의력을 얼마나 세심하게 기 울이느냐에 따라그저 그런 책과 정말 좋은 책이 구별되는 법이지요." 셀던은 자신의 독특한 창작방식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소설을 시작할 때 어떠한 플롯도 머릿속에 마련해 두지 않습니다. 단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만 가지고 시작을 하지요. 비서에게 일단초고를 받아적게 하는데, 이때 내가 말을 함에 따라 소설이 태어나는 셈이지요. 그게 어디서 온 건지는 모르지만, 할 이야기가 이미 내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결국 이야기의첫머리만 풀어놓으면 나머지는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이끌어가는데,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그들이 하는 거고, 난 그저 그 뒤치다꺼리나 하는 셈이지요. 소설을 쓰는 과정은 적어도 내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랍니다. 하루 종일 이런 저런 문제들을 늘어놓고 그것들을 일일이 해결해나가야 하니까요. 정말이지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이 웬만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듯합니다." 셀던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 시각까지 1주일에 6일을 일한다. "처음 초고 상태를 완전히 구술하는 데에 꼬박 여러 달이 소요되지요. 그런 다음 내 비서가 타자해놓은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면밀히 검토하면서 재집필 작업에 들어잡니다. 대개 일차 초고는 천에서 이천 페이지에 달합니다. 그 중 백에서 이백 페이지 가량을먼저 줄이고, 장면들을 따로 따로 분리하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이때론 퇴출되고 때론 새로 영입되지요. 그렇게 해서 두 달만에 일단원고 손질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재수정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런 식으로 십여 차례의 퇴고가 진행되는 동안 대개는 열두 달에서열여털 달이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원고들을그럴 듯한 상태로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거의 강박적일 정도랍니다. 그러니 최종 원고를 직접 내 손으로 건네 주기까지 출판사가 단어 하나 절대로 미리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시드니 셀던의 이름이 베스트셀러 차트를 횝쓴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말못할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이를테면 제리 폴웰 목사와그의 추종 세력들처럼 일군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그의 소설이소위 '부도덕'하다고 하며 판금 대상으로 지목되거나, 심지어는 불살라지고 폐기 처분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셀던은 어느 국영 TV토론 프로에 출연해서 자신의 책에대한 판금논란과 관련하여 톰 월리엄스 목사와 열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월리엄스는 셀던의 책을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에극렬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미 읽은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 공개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셀던은 자의 반타의 반 모든 형태의 검열에 대한 성전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출판의 자유를 옹호하는 진영의 가장 강력한 변호인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유독서재단의 주요 후원자이자, 그 대변인으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셀던은 띨치 미식가협회 회원이다. 그는 특히 프랑스 고급요리를 비롯해 온갖 요리를 즐기는 편이지만, 스스로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그가 가장 즐겨찾는 레스토랑은 파리에 소재한(라 세르)라고 한다. 1985년 셀던은 서른이 갓 넘은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의 아내 조르자 셀던은 결흔 전, 뛰어난 연극 배우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일류 디자인 잡지에 작품이 오를 만큼탁월한 재능의 촉망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한편 그의 유일한 자식인 마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열여섯 살 때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그녀는 옥스퍼드 출신이다. 그녀의 처녀작 끼는 어둠을 꿈꾸리라 Perhaps I'llDream of Darkess'는 랜덤하우스에서 출판되었다. 그녀는 연이어'로즈마리를 기억하며 Rosemary Is For Remembrance'와 '테네시왈츠 Tennesse Waltz'그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역시 아버지를 따라브랜다이스 대학 도서관협회 상(Brandeis University LibraryAssociation Award)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 쓰기의 매력 -시드니 셀던과의 인터뷰 *당신은 소설 이외에도 뮤지컬, 시나리오, TV 방송극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썼다. 그러나 당신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은 소설이라고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술 구조가 주는 자유로움이 좋다. 영화를 만들 때는 수많은 사람이 공동작업을 하지만 소설 창작은 오로지 작가혼자서 하는 일이다. 소설 창작을 통하여 작가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 인물의 생사를 결정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나는 이런 창조적 과정에서 말할수 없는 즐거움을 맛본다. *당신의 소설은 2억 7천만 부가 팔렸으며, 전세계 181개국 51개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아마 소설 속의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것이다. 그것은 내 작품 속의 인물들이 '절대선'과 '절대악'이란 이분법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작품에서 그 인물이 영웅이던 악당이던간에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내적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종종 '한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책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이 사실성에 기초한서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성은 소설창작에서 내가 매우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나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의 문화와 관습들을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쏟는다. 아무리 훌릉한 소설이라도 작가가 그럭저럭 꾸며낸 것은독자들이 바로 알아챈다. *당신의 소설을 인고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사례를 얘기해줄 수 있는가? 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삶이 변화했다는 편지를 읽을 때 소설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긴다. 심장병에 걸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21세의 소녀가 병원에서 보낸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병원에서 그소녀는 부모도 남자친구도 만나지 않았으며 오직 삶이 끝나기만을바랐다. 그런데 누군가 침대에 두고 간 띨밤의 자륵을 보고 읽기시작했다. 소녀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과 스토리에 매료되었으며, 다시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어느 여성은 자신이 변호사가 된것은 씬사의 왔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은다른 어떤 판매부수보다 더 나를 고무시킨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여성이고 그 여성은 어떤 상황에서도살아남는다.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쓴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미인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소설 속의 여자주인공이 강한 개성과 육체적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내가 만난여성들의 캐릭터가 반영된 결과이다. 대공황 동안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우리 어머니는 일흔살이되도록 일을 하셨고, 죽은 아내나 현재의 아내도 모두 지적이고,결단력 있고, 재능있는 여자였으며 또한 여성다움을 일지 않았다. -http: //www. twbookmark. com에서 소설, 언어로 그린 세상이 풍경 -시드니 셀던과의 채팅 hungyminds(이하 H): 시카고에서 보낸 어린 시절, 당신은 무엇으로인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셀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글쓰기를 무척 원한다는 것만을알고 있었다. 열한 살 무렵 처음 쓴 시가 (Wee wisdom)이라는 잡지에 실려 원고료를 받았다. H: 어떤 시였는가? 셀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3학년 때 학교를그만두고 세일즈맨이 되었던 아버지가 내가 시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시를쓴다는 것이 아버지를 몹시 언짢게 했다. H: 왜 아버지가 그렇게 언짢아 했는지 아는가? 셀던: 아버지는 당신이 아주 거친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당신 아들이 시 나부랭이나 쓰며 살게 될까봐 몹시 걱정하셨다. 그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내가 쓴 시를 드리며 잡지사에 보내달라고하자, 당신 아들이 쓴 글이 거절당할 것이 싫다는 구실로 거절하셨다. 아버지는 내 이름 대신 삼촌 이름으로 잡지사에 시를 보냈다. 2주일 후 아버지와 삼촌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삼촌이 (Wee wisdom) 잡지사에서 자신에게 5달러를 보내왔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 첫 데뷔작은 삼촌이름으로 발표되었다. H: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셀던: 열아홉인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갈 무렵 미국 경제는 극심한 불황을 펴고 있었다. 그때 부모님은 시카고에 살고 있었는데 어떡러카 그끽 안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가 스튜디오를 돌며 '시드니 셀던이라고 합니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담당자를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스튜디오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2주일이란 시간이 그렇게 끝나갈 무렵,대본 모니터 요원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스타인 벡의 멋진 소설 '오브 마이스 앤 맨'을 요약해 스튜디오에 보냈다. 원고를 보낸 모든 스튜디오에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고 주당 17달러를 받고 유니버설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H: 왜 '오브 마이스 앤 맨'이었는가? 셀던: 마침 그때 그 책을 읽었었는데 굉장한 소설이었다. 소설의인물들은 모두 멋졌고 나는 그 인물들에 매혹되었다. 그 소설은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스타인 벡은 훌릉한 작가다. 그의 소설은리얼리티가 강하다. 영화 또한 훌릉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많이 다르다. 소설은 묘사적 인데 반해 영화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언어가 아니라 봉직임"으로 보여준다. 소설과 영화는 많이 다르지만소설이 그런 것처럼 영화도 영화 그 자체로서 매력적이며 멋지다. H: 존 말코비치를 좋아하는가? 셀던: 물론이다. 그는 너무 멋진 배우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Beingjohn Malcovichj를 보고 싶다. 멋지다고 들었다. magmawas(이하 m):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가? 셀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그냥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나는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그것에 대한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고마워하고,자신의 재능으로 더 좋은창작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란 것은 일종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H: 당신의 재능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뜬그 셀던: 모르겠다. 내 어깨 위에 보이지 않는 천사가 앉아 있는 건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은 영적 세계를 믿는가? 나는 믿는다. 여기가 아닌 저기 멀리 어딘가에 우리를 인도하는 그 무엇이 있는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H: 당신이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작품은 어느 것인가? 셀던: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이제엇 28개의 시나리오를 썼고 캐리 그란트, 주디 갈란트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작업을 같이 했다. 또 브로드웨이에서 멋진 사람들과 뮤지컬 작업을했다. 또한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 각각에게 모든 심혈을 기울인다. 나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묻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같다. M: 딘 쿤츠(Dean Koontz)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셀던: 좋은 작가다. 그와 서스펜스는 훌릉하다. H: 항상 소설에 강인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안그 셀던: 남자보다 여자가 더 흥미있다. 우선, 여자는 인류 역사가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고통의 시간들을 겪어왔다. 오늘날에도 몇몇 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여성이 남자보다 더 많은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훨씬 예민하다. 내가 작품에서 여자들에 관해 즐겨 쓰는 것은 여자가남자보다 더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상황을 설정하는데 그것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그리고 더 말을 하자면 내가 세상에서 관계를 맺은 첫번째 여자인 우리 어머니는 굉장히 멋진 분이셨다. 그리고 심장병으로 죽은 아내는 배우였는데 그녀 역시 멋진 사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떠나기까지 우리는 오래 함께 살았다. 그리고 현재의 아내도 더할나위없이 멋지다. 이렇게 강하고 지적이고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여자들을 만난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다. 여성성을 잃어버린여자는 거칠고 공격적이다. 내가 여성성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여기에 있다. chillin 05: 가장 최근 출간한 책은 무엇인가? 셀던: '텔 미 유어 드림'이다. 내 16번째 소설이다. H: 그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셀던: 연속살인사건의 범죄자로 지목된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경찰과 FBI는 범인으로 지목된 세 여자의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여 당황하는데, 사건을 해결할 돌파구가 생기고 이어 센세이션한재판이 열린다. 이 소설은 작년에 일어난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H: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가? 셀던: 나는 내가 직접 가 커피를 마셔본 곳이 아니면 소설의 인물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단 한 줄도 쓰지 않는다. 나는 내 소설의 모든 자료를 주의깊게 조사한다. 만약 어떤 사건 어느 나라에 관해 써야 한다면 직접 그곳에 가서 조사한다. 내가 쓰려고 하는 것에 관련된 모든 것을 꼼꼼히 조사하여 그것에 관한한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가 된다. H: 당신이 가본 곳 중에서 어디가 마음에 드는가? 셀던: 한 백여 나라 가봤는데... 좋아하는 곳이라... 런던, 파리아르헨티나, 브라질, 남프랑스, 로마... 너무 좋은 곳이 많아 한군데만 말하기가 힘들다. H: 런던에 사는가? 셀던: 런던에는 아파트가 한 채 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antisocial angle: 친한 친구 중에서 작가가 있는가? 셀던: 어빙 왈리스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그는 훌릉한 작가였다. 소설가들은 혼자서 작업을 한다.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는 TV방송작가들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지만 혼자 일해야 하는 소설가는 그렇지 못하다. 나 역시 소설가들을 많이 알지 못한다. H: 당신은 어떤 장르의 글쓰기를 좋아하는가? 셀던: 많은 장르의 글을 썼지만 소설이 좋다. 시나리오는 일종의'속기'이다. 주인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묘사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키가 크고 훤칠하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를 섭외하면 된팍. 그각 건절한면 또 시나리오를 들고 덕스런 흐프만을 찾아가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시나리오는 그런 방식으로 인물을 묘사한다. 영화에 나오는 방을 시나리오에서는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할리우드 최고의 세트 전문가가 영화장면의 방을 꾸미면 된다. 반면 소설에서 작가는 인물의 외모와 그가 생각하는 것, 그가 들어가는 방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런 묘사를 누락시키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언어로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다른 어떤 장르의글쓰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H: 대중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셀던: 대중문화를 어떻게 보느냐는 시각의 차이다. 우리 세대가성장하면서 우리 자신만의 문화를 가졌듯이 오늘날의 대중문화는젊은이들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해져 기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http: //www. hungryminds. com에서 정 성 호 194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75년 가톨릭대학 신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였고 현재 번역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역서로서는 '내일이 오면' '천사의 분노' '시간의 모래밭' '깊은 밤 깊은 곳에' '센세이션' '우연한 여행자' '하버드 동창생' '터미널 맨' '콩고'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개 같은 나의 인생' 등 700여 종이 있다. 시드니 셀던 장편소설 텔 미 유어 드림s (하권) 초판 1쇄 인쇄: 2000년 5월 3일/ 초판 6쇄 발행: 2000년 6월 20일 지은이: 시드니 셀던/ 옮긴이: 정성호/ 발행인: 김종철/ 펴낸곳/ 북@북스 주소: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1/ 전화: 790-6656 등록: 1995년 3월 24일 제03-00986호 http: // www. moonhak. co. kr/ e-mail: moonhak@moonhak. co. kr 값: 뒤표지에 있음/ 파본은 바꾸어 드립니다. ISBN 89-88182-32-4 ISBN 89-88182-30-8(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