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덕의 딜레마 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충)', '고(효)', '기리(의리)', '진(인)', '닌조(인정, human feeling)'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 들은, 인생이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닌조의 세계', 그 밖에 도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저마다의 세계는 각각 특유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인간을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판단하지 않고, '고를 모른다'든지, '기리를 모은다'든지 하는 말로 판단한다. 그들은 미국인처럼 어떤 사람을 부정하다고 비난하는 대신에, 그 인간이 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않은 행동의 세계 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라든지 불친절하다든지 하고 비난하는 대신에, 일본인은 그 인간이 위반한 법도의 특정 영역을 명시한다. 그들은 지상 명령이나 황금률에 호소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옳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그 행동이 나타나는 세계와 상대적이다. 사람은 '고를 위해' 행동할 때와, '단순히 기리를 위해', 혹은 '진의 세계에서' 행동할 때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서구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는데-행 동한다. 또한 각각의 세계에서 법도는 그 '세계' 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현저히 다른 행동이 당연히 해야할 행동으로서 요구되도록 정해져 있다. 주군에 대한 기리는 주군이 부 하를 모욕하지 않을 동안에는 최고도의 충성을 요구하지만, 일단 모욕을 받은 뒤에는 모반 을 일으켜도 전혀 상관이 없다. 1945년 8월까지 '주(충)'는 일본 국민에게 최후 한 사람까지 적에 항전할 것을 요구했다. 천황이 라디오로 일본의 항복을 고함으로써 '주'의 요구 내용이 변경됨과 동시에, 일본인은 그때까지와는 정반대로 외래자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런 점은 서구인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들의 경험에 의하면, '인간은 그 인품 (character)에 상응하게' 행동한다. 우리들은 충실한지 불충실한지, 협력적인지 고집이 센지 등으로, 양과 염소를 구별한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레테르를 붙여서 분류하고, 그들이 다 음에 행하는 행동이 전에 행한 행동과 같을 것으로 예기한다. 인간은 씀씀이가 좋은지 아니 면 인색한지, 자진해서 협력하는지 아니면 의심이 많은지, 보수주의자인지 아니면 자유주의 자인지, 그 어느 한쪽이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어느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믿고, 일관 되게 반대 이데올로기와 항쟁할 것으로 예기한다. 유럽에서 우리가 겪은 전쟁 경험에서 보 면 협력파와 반항파가 있었는데, 우리들은 유럽 전승일 이후 협력파에 속했던 사람들이 그 입장을 변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추측은 옳았다. 미국내의 정쟁에 있어서 도, 우리들은 이를테면, 뉴딜 파와 반뉴딜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두파는, 새 로운 사태가 나타나도 여전히 각파의 특유한 방법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우리들은 판단한다. 설사 개개인이 울타리 반대쪽으로 옮겨가는-이를테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 카톨릭 신자가 된다든지, '빨갱이'가 보수주의자가 된다든지-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변화는 바 로 전향이며, 그 전향에 알맞는 새로운 인격이 형성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구인의 이와 같은 완전하고 통일성 있는 행동의 신념은, 물론 반드시 항상 사실에 의하 여 뒷받침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미개와 문명을 가릴 것 없이 대다수의 문화에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들은 저마다 특정한 종류의 인간으로서 행 동하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권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타인이 자기의 의 사에 복종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그 실패와 성공을 측정한다.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 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인간적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는 희망을 채울 수 없 다. 그들은 자기들이 엄격히 올바른 인간이라든지,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든지, 혹은 선량한 가정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성격 속에 '게슈탈트 (Gestalt)'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인간 생활에 질서를 가져온다. 서구인에게는, 일본인이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도 하나의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극단적인 가능성은 우리들의 경 험 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일본인의 생활에 있어서는 모순-우리들에게는 모순 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이 그들의 인생관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치 우리들 의 획일성이 우리들의 인생관에 뿌리박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 식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활을, 어느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어느 하나의 행동 방침과 다른 행동 방침, 이 양자의 요구를 주의 깊게 비교 고찰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한 편의 연극으로 보고 있다. 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행동 방침은 그 자체에 있어서는 선이다. 만일 만인이 참다운 본능에 따른다 고 한다면, 만인은 선인이 될 터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중국 도덕의 가르침조차, 그것은 중국인이 그와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국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인의 열등성을 증명한다. 일본인에게는 생활의 전면을 덮는 윤리적 계율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 한다. 앞에서 인용한 조지 샌섬의 말을 빌린다면, "그들은 악의 문제와 정면에서 부딪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악의 행위는 그와 같은 우주적인 원리에서 부터 설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은 갈지 않고 있으면 녹이 슬게 된다. 그들이 곧잘 말 하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자신 의 인격을, 칼과 마찬가지로 녹슬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인생관 때문에, 그들의 민간 설화나 소설이나 연극은, 자주 행해지고 있 듯이, 그 줄거리를 고쳐 써서 우리들 성격의 일관성과 선과 악의 투쟁 요구에 합치되도록 하지 않는 한 서구인에게는 요령부득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일본인은 그 줄거리를 그 런 식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들의 비평은 주인공이 '기리와 닌조', '주와 고', '기리와 기무'의 갈등에 얽혀 있다는 데에 주어진다. 주인공이 실패하는 것은, 인정에 빠져서 '기리'의 의무를 등한히 하기 때문이거나, '주'로서 지고 있는 채무와 '고'로서 지고 있는 채무의 쌍방을 동시 에 변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리' 때문에 올바른 일('기(의)')을 행할 수가 없다. '기리'에 몰려서 가족을 희생시킨다. 그런 식으로 그려져 있는 갈등은 여전히, 모두 그 자체 에 있어서는 구속력을 가진 두 가지 의무 사이의 갈등이다. 이들 의무는 모두 '선'이다. 어느 의무를 선택하는가는, 너무나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채무자가 직면하는 선택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는 어떤 부채를 지불하고 다른 부채는 우선 무시한다. 그렇지만 하나의 부채를 지불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른 부채를 면제받지는 못한다. 이야기 주인공의 생활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서구인의 견해와 비교하면 매우 큰 차 이가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은, 선인쪽에 가담하여 반대 자인 악인을 상대로 싸우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흔히 입에 올리듯이, '덕이 승리를 차지하는'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인은 보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일본인은, 주인공이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기리'와 이름에 대한 '기리'의 사이 에 끼어 마침내 유일한 해결법으로서 죽음을 택한다는 따위의, '중대한 사건'의 이야기에 대 한 싫증 낼 중 모르는 기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대개의 문화에 있어서는, 가 혹한 운명에 대한 인종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바로 그 반대이 다. 그것들은 자발성과 단호한 결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그들의 어깨에 걸려 있는 어떤 하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리고 이때, 다른 의무를 경시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지막에 가서는 전에 경시한 '세계'와 결산을 한다. 일본의 참다운 국민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47로닌 이야기>이다. 이것은 세계의 문학 속에서 높은 지위를 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이야기만큼 일본인의 마음을 강하 게 붙잡는 것은 달리 그 유례를 볼 수 없다. 일본의 소년은 누구나, 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 뿐 아니라, 자세한 줄거리까지 잘 알고 있다. 그 이야기는 끊임없이 전해져서 문제로 인쇄되 고 현대의 통속 영화로 되풀이해서 다루어진다. 47로닌의 묘소는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 지 명소가 되었고, 몇 천만 명이 참배했다. 이 참배객들이 놓고 간 명함들로 무덤 주위가 허 옇게 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47로닌 이야기>의 주제는 주군에 대한 '기리'를 중심으로 하 고 있다. 일본인의 견해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기리'와 '주'와의 갈등, '기리'와 정의와의 갈 등-이들 갈등에 있어서, 물론 '기리'가 정당하게 승리를 얻는 것이다- 및 '한가락의 기리'와 '무한한 기리'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1703년의 역사 이야기인데, 당시는 봉건 제도 의 최성기로, 근대 일본인이 몽상하는 바에 의하면, 남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답게 '기리'에 본 심 아닌 요소가 전혀 없었던 시대이다. 47명의 로닌은 명성도, 아버지도, 아내도, 누이동생 도, 정의('기(의)')도, 일체의 것을 '기리'를 위해 희생시킨다. 그리고 최후에 그들은 자살을 하는 것으로 그들 자신의 생명을 '주'에 바친다. 아사노 영주는 바쿠후(막부)로부터, 전국의 모든 다이묘가 정기적으로 쇼군에게 경의를 표 하는 의식을 관장하는 두명의 다이묘였다. 따라서, 궁정의 매우 신분이 높은 다이묘인 기라 영주에게 필요한 예법을 지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사노 영주의 가신 중에서 가장 지 혜로운 오이시-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가 있었더라면 주군에게 빈틈없는 조언을 했 을 것이나, 공교롭게도 그는 고향에 가 있었다. 그리고 아사노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외 고집쟁이여서, 지도자에게 바칠 충분한 '선물'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기라의 지도를 받고 있 던 도 한 사람의 다이묘 부하들은 세상살이에 능숙한 사람들로, 돈의 액수를 따지지 않고 지도자에게 엄청난 선물을 보냈다. 그래서 기라 영주는 아사노 영주에게 필요한 예법을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 더군다나 고의로 전혀 맞지 않는 복장을 입고 의식에 나오도록 지시했 다. 아사노 영주는 기라 영주가 가르쳐 준 복장을 하고 영예로운 날에 임하였다. 그러나 아 사노는 자기가 모욕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칼을 뽑아 미처 다른 사람이 말리기도 전에 기라 의 이마를 베었다. 기라의 모욕에 복수하는 것은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으로서 그가 당연히 해야 할 행위-즉 이름에 대한 '기리'-였으나, 쇼군의 어전에서 칼을 뽑는 것은 '주(충)'에 반 하는 행위였다. 아사노 영주는 이름에 대한 '기리'라는 점에서는 훌륭한 행동을 한 것이지만, '셋푸쿠(절복)'의 예법에 따라서 자살하는 것 이외에는 '주'와 화해할 길이 없었다. 그는 그의 집으로 돌아와, '셋푸쿠'의 차림을 갖추고, 오로지 그의 가장 총명한 그리고 가장 충실한 가 신인 오이시가 돌아오기를 고대하였다. 두 사람이 긴 결별의 시선을 서로 교환한 후, 이미 예법에 다라 앉아 있던 아사노 영주는, 자기의 배를 칼로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에 반하여 바쿠후의 책망을 받은 고인의 뒤를 상속하려는 친척이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아사 노의 번지는 몰수되고, 가신은 주인 없는 로닌이 되었다. '기리'의 의무로 말하면, 아사노 가의 가신은 망군에 대하여 주군과 마찬가지로 '셋푸쿠'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주군에 대한 '기리'로 주군이 이름에 대한 '기리'를 위해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한다면, 기라가 그들의 주군에 가한 모욕에 대한 항의를 표명한 것이 된다. 그런데 오이시는 마음속으로, '셋푸쿠'는 그들의 '기리'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 고 값없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다른 사무라이들이 그의 주군인 아사노 영주를 신분이 높은 적으로부터 떼어놓았기 때문에 관철할 수 없었던 복수를, 그들이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 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라 영주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일을 성취하려 한다 면, 아무래도 '주'를 위반하게 된다. 기라 영주는 바쿠후와 너무나도 긴밀한 관계에 있어, 로 닌이 정부로부터 원수를 갚는 허락을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에 복수를 계획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그 허락 이전에 복수를 끝마친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 계 획을 포기하겠다는 최후의 기한을 정해서, 그 계획을 바쿠후에 계출하는 것이었다. 이 제도 덕택으로, 약간의 운이 좋은 사람들은 '주'와 '기리'를 화해시킬 수가 있었다. 오이시는 그와 그의 동지에게는 이 길이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전에 아사노의 가신이었던 로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기라를 칠 계획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들 로닌들의 수는 300명 이상에 달하였는데, 1940년도에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던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셋푸쿠하자는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이시에게는 그 모 두가 무한한 '기리'-일본어로 표현하면 '모코토노기리 : 진심의기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는 것, 따라서 그들을 신뢰하고 기라에 대한 보복과 같은 위험한 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가닥의 기리'밖에 갖지 않은 인간과 '진심의 기리'의 인간을 구별하는 방법으로서, 그 는 주군의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면 좋을까 하는 문제는 내놓아 보았다. 일본인으로 보면, 이 것은 그들의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므로, 그들이 이미 자결할 것에 동의한 사람이라고 는 생각할 수 없는 시험법이었다. 재산 분배의 기준에 관하여 로닌들 사이에 격렬한 의견이 대립되었다. 가신들의 우두머리는 가신 중에서 최고의 보수를 받고 있던 사나이였는데, 재산 을 종래의 봉록 액수에 따라 분배할 것을 주장하는 일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오이시는 전 원에게 균등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하는 일파의 지도자였다. 이리하여 누가 '한 가닥의 기리' 를 가진 인간인가가 충분히 밝혀짐과 동시에, 오이시는 우두머리 집사의 재산 분할안에 찬 성하였다. 그리고 승리를 얻은 패거리가 탈퇴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을 묵인했다. 우두머리 집사는 도망쳤다. 그래서 그 때문에 '개 같은 사무라이', '기리를 모르는 인가', '불의비도의 인간'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오이시는 오직 47명만이, 그의 복수 계획을 몰래 털어놓을 수 있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오이시와 맺어진 이들 47명의 로닌은, 신 의도, 애정도, 기무도, 무릇 그들의 숙원 달성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것을 배제한다는 서약 을 했다. '기리'가 그들에게 최고 무상의 법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47명의 로닌은 손가 락을 잘라 혈맹을 맺었다. 그들의 첫째 일은 기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 흩어져서, 명예라 는 것을 일체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가장했다. 오이시는 가장 저속한 창녀집에 틀어박혀, 추 한 싸움박질로 나날을 보냈다. 이와 같은 방종한 생활을 핑계삼아, 그는 아내와 헤어졌다. 이것은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려는 일본인 누구나가 통상 사용하는, 도한 완전히 정당 한 것으로 여겨진 수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처자는 그와 더불어 궁극적 행위의 책 임을 추궁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이시의 처는 울며 그와 헤어졌지만, 그의 아들은 로닌의 한 패거리에 들어갔다. 도쿄(에도)의 모든 사람들은 보복에 대해서 이러쿵저 러쿵 억측을 했다. 로닌들을 존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 모두, 반드시 그들이 기라 영주의 살해를 기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47명의 로닌은 그럴 생각을 전혀 없다 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리를 모르는' 사람처럼 가장했다. 그들의 장인들은 그런 치욕스러운 행동에 분개하여, 그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결혼을 해소시켰다. 그들의 친구는 그들을 조소 했다. 어느 날 오이시의 친한 친구가 술에 취해 여자와 희희낙락하며 떠들어대고 있는 오이 시를 만났다. 그런데 오이시는 이 친구에게조차, 주군에 대한 '기리'를 부정했다. 그는 "뭐, 원수를 갚는다고? 바보같이, 인생이란 모름지기 재미있게 웃으면서 지내는 것이 제일이야. 술을 마시고 노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어."라고 말했다. 친구를 그 말을 믿지 않고, 오이시 의 칼을 칼집에서 뽑아 내어 보았다. 아마, 오이시의 말과는 달리 잘 닦여 있으리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칼은 새빨갛게 녹이 슬어있었다. 친구는 오이시의 말이 본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ale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술에 만취되어 있는 오이시를 길거 리에서 공공연히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로닌의 한 사람은 복수에 참가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 처를 창녀로 팔아 넘겼 다. 이 여자의 오빠 역시 로닌의 한 사람이었으나, 복수의 비밀이 누이동생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충성의 증거를 보여 줌으로써 오이시의 복수 일당에 가담하기 위해서라고 설득 하여, 자기 칼로 누이동생을 죽이려 했다. 어떤 로닌은 의부를 죽였다. 또 어떤 로닌은 공격 의 시기를 기자 저택의 내부로부터 통보 받기 위하여, 자기 누이동생을 원수 기라 영주의 심부름꾼 겸 첩으로 들어가 살게 했다. 그 결과 그녀는 복수가 성공한 후에 자살하지 않으 면 안 되었다. 비록 겉으로 갖아하기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기라 영주를 곁에서 섬긴 과오를 죽음으로 씻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12월 1일 밤, 기라가 주연을 베풀어 경호하는 사무라이들은 취해 있었다. 로닌들은 방어가 견고한 기라의 저택을 습격하여, 호위 하는 무사들을 베고 똑바로 기라 영주의 침실로 향했다. 그는 거기 없었으나, 침상은 아직 따뜻했다. 로닌들은 그가 저택에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드디어 그들은 숯을 저 장하는 광 속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닌의 한 사람이 광의 벽 밖에서 창을 찔러 넣어 보았으나, 도로 빼낸 창 끝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창은 틀 림없이 기라의 몸에 박혔으나, 창이 도로 빼내질 때, 기라는 옷깃으로 피를 닦아 냈던 것이 다. 그의 이런 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로닌들은 그를 끌어냈다. 그런데 그는, 자기는 기라 가 아니고 우두머리 집사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때 47로닌 중의 한 사람이, 아사노 영주가 쇼군의 궁정에서 기라를 칼로 벤 상처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 상처에 의해, 로닌들은 그가 틀림없는 기라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에게 즉시 '셋푸쿠'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이 사실은 물론, 그가 비겁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닌들은 그들의 주군 아사노 영주가 셋푸쿠할 때 쓴 칼로 그의 목을 치고, 격식에 따라 그 목을 씻었다. 이리하여 본래의 소망을 달성한 일행은 대오 를 정비하고, 두 번 피를 머금은 칼과 절단된 머리를 가지고, 아사노의 묘를 향해 출발했다. 도쿄(에도) 시중은 로닌들의 훌륭한 행동을 알고 완전히 열광했다. 로닌들의 의로운 마음을 의심한 로닌의 가족이나 의부들은, 앞을 다투어 로닌들을 포옹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찾 아왔다. 넓은 영지를 가진 영주들은 연도에서 그들을 후히 대접했다. 로닌들은 묘 앞에 나아 가, 모과 칼, 그리고 망군에 대한 봉고문을 바쳤다. 이 봉고문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 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우리들은 오늘 여기에, 존령을 뵈옵기 위해 왔습니다. (중략)우리들은 영주님이 이룩하려 하시다가 미처 이루지 못하신 복수를 수행하지 않고는 묘전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들은 일일천추의 마음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이 단도는 지난 해 애용하시고, 우리들에게 맡 기신 칼입니다만, 지금 돌려 올리겠습니다. 원컨대 이 단도를 쥐시고 다시 원적의 목을 쳐 서, 영원히 유한을 풀어 주십시오. 이상 우리 47인 삼가 존령께 말씀 올립니다. 그들의 '기리'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아직 '주'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일치시키는 길은, 죽음 외에는 없다. 그들은 미리 계출하지 않고 복수하는 것을 금하는 국법을 어겼다. 그러나 '주'를 배반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것이 어떤 일이라 하더 라도, '주'의 이름 아래 요구되는 사항을, 그들은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쿠후(막부)는 47로닌에게 '셋푸쿠'를 명령했다. 국민 학교 5학년의 국어 독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그들은 주군의 원수를 갚았기 때문에, 그 확고한 '기리'는 영구 불멸의 귀감으로 간주해야 할 일이었다.(중략)그래서 바쿠후는 숙고 끝에, 셋푸쿠를 명하였다. 그것은 바로 일석 이조의 방책이었다. 즉, 로닌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생명을 끊음으로써, '기리'와 '기무'의 쌍방에 대한 최고의 채무를 지불했던 것이다. 이 일본의 국민적 서사시는, 전하는 바가 다름에 따라 다소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현대 영화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뇌물이 아니라 색정의 테마로 바뀌어 있다. 기라 영주는 아사노의 부인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현장을 들키게 된다. 그리고 부인에 대한 짝사랑으로, 일부러 그 예법을 틀리게 가르쳐 줘서 아사노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한다. 이 렇게 해서 뇌물 사건은 삭제되어 있다. 그러나 '기리'의 모든 의무는 전율을 느낄 만큼 상세 히 서술되어 있다. "그들은 '기리'를 위해 아내를 버리고, 자식과 헤어지고, 부모를 잃었다9 죽였다)." '기무'와 '기리'의 충돌 테마는, 다른 많은 이야기나 영화의 기초가 되어있다. 가장 뛰어난 시대 영화의 하나는, 시대를 도쿠가와 3대 쇼군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이 쇼군은 나이가 젊 고 아직 얼마나 큰 인물일지 모를 무렵에 쇼군으로 지명되었는데, 그 쇼군 계승에 대하여 바쿠후의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져, 어떤 사람들은 그와 동년배의 근친을 옹립했다. 결 국 쇼군 옹립에 패하게 된 다이묘의 한 사람은, 3대 쇼군의 뛰어난 정치 수완에도 불구하고, 이 '모욕'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있었다. 그는 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시기는 마침내 도 래했다. 쇼군과 그 측근자 몇몇이 영지를 순찰한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이 다이묘는 일행을 접대하는 임무를 명령받았다. 그는 이 기회에 편승하여 숙원을 풀고, 이름에 대한 '기리'를 수행하려 했다. 그의 주거는 이미 요새화되어 있었지만, 다가올 사건에 대비하여 일체의 출 구를 막고, 요새를 봉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또 벽이나 천장이 그 쇼군과 그 일행에게 무너져 내리도록 장치를 했다. 그의 음모는 당당히 실행에 옮겨졌다. 환대는 극진한 거시었다. 쇼군을 즐겁게 하는 여흥으로서 그는 가신 한 사람에게 칼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이 사무라이는 춤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칼로 쇼군을 지르도록 명령되 어 있었다. 다이묘에 대한 '기리'로, 사무라이는 군명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주는 쇼군에게 대항하는 것을 금했다. 스크린에 비추어진 칼춤은, 이 갈등을 남김없이 그려 내고 있다. 그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시에 해서는 안 된다. 칼로 찌르려 하지만, 아무래 도 찌를 수가 없다. '기리'도 그렇지만 '주'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점차 춤의 솜씨가 흐트러진 다. 그러자 쇼군 일행은 이것을 이상하게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바로 그 순간, 이 제 결사적이 된 다이묘는 건물의 파괴를 명령한다. 쇼군은 가까스로 칼춤 추던 자의 칼에서 벗어났으나, 이번에는 무너져 내리는 요새에 깔려 죽을 위험에 몰리게 된다. 이때 아까 칼춤 을 추던 자가 앞장서서 쇼군 일행을 안내하여 지하 통로를 지나 무사히 집밖의 광장으로 도 망치게 한다. '주'가 '기리'를 이긴 것이다. 쇼군의 대변자는 그에게 사의를 표하고, 수훈자로 서 일행과 함께 도쿄(에도)로 가기를 열심히 권한다. 그러나 그 사무라이는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돌아보고,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머물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기무' 이며 '기리'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쇼군 일행과 헤어지고 되돌아가, 무너지는 건물 속으 로 뛰어들어가 죽는다. 그는 죽음으로 '주'와 '기리'를 둘 다 완수했다. 죽음에서 양자는 일치 한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서는, '기무'와 '인정'의 갈등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나, 근년에 는 그것이 하나의 주요 테마로 되었다. 근대의 소설은, 사랑이나 인정을 '기무'나 '기리'를 위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테마는 조심스럽고 소극적으 로 취급되기는커녕, 반대로 크게 내세워지고 있다. 일본의 전쟁 영화가 서구인에게는 절호의 반전 선전이라고 생각되기 쉬운 것처럼, 이들 소설은 우리들에게는 자주 자기의 심정이 지 향하는 바에 따라 생활하는 자유의 확대를 바라는 호소처럼 생각된다. 이들 소설은 확실히 이 충동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를 논의하는 일본인은 끊임없이 우리들과는 다른 의미를 간취한다. 우리들은 사랑을 하고 있다든지, 어떤 개인적인 소망을 품고 있다고 하는 이유로 주인공을 동정하는데, 그들은 그와 같은 감정에 방해를 받아 자기 의 '기무' 또는 '기리'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인공을 약자라고 비난한다. 서구인은 우선 대개는, 인습에 반기를 들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을 획득하는 것을, 강함의 증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견해에 따르면, 강자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의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 성격의 강함은 반항함으로써가 아니라 복종함으로써 증명된다고 생각한 다. 따라서 그들의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는, 서구인의 눈을 통하여 볼 대 그것이 주는 의 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일이 많다. 일본인은 각기 자신의 생활, 혹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판단을 내릴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만일 의무의 법도를 저버리고 개인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 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약자로 판단한다. 모든 종류의 사태가 이런 식으로 판단 되는데, 그 중에서도 서구의 윤리와 가장 대조적인 것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태도이다. 아내 는 '고(효)의 세계'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데 불과하지만, 부모는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남편의 의무는 명백하다. 공고한 도덕적 품성을 가진 인간은 '고'를 다르며, 만일 어 머니가 아내와 이혼하도록 결정하면 그 결정을 수락한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두 사람 사 이에 아이가 있어도 마찬가지이며, 그것은 그 사람을 '한층 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지나 지 않는다. 일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고'는 처자를 타인과 동일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처자를 취급하는 방법은, 최선의 경우가 '진(인)의 세계'에 속한다. 최 악의 경우에는 처자는 남편에게 뭣 하나 요구할 수 없는 인간이 된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 게 영위되고 있을 때라도, 아내는 여러 가지 의무의 세계 중심에 놓여지는 일은 없다. 따라 서 사람들은 아내와의 관계를 양친이나 조국에 대한 감정과 동일 수준에 있는 것처럼 다루 어서는 안 된다. 1930년대에, 어느 저명한 자유주의자가, 대중 앞에서 자기는 일본에 돌아와 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 기쁨의 이유의 하나로서 아내와의 재회를 들었기 때 문에, 세인의 악평을 뒤집어쓴 일이 있다. 그는 부모를 만날 수 있으니까, 후지산을 볼 수 있으니까, 일본의 국가적 사명에 헌신할 수가 있으니까 기쁘다고 말해야 했었다. 그의 아내 는 이런 것들과 동일한 수준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근대에 접어든 뒤 일본인 자신은, 그들의 도덕률을 지금까지와 같이, 다른 수준과 다른 세 계와를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것으로 분리하는 것을 강조하는 채로 그냥 방치해 두는 데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인의 가르침의 큰 부분은, '주'를 최고 지 상의 덕으로 삼는 데 두어졌다. 마치 정치가가 천황을 정점에 두고, 쇼군 및 봉건 제후를 배 제함으로써 계층 제도를 단순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도 도덕의 영역에 있어서도, 하위의 덕을 모조리 '주'의 범주 아래에 둠으로써, 의무의 체계를 단순화하는 노력을 한 것 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전국을 '천황 숭배' 아래에 통일했을 뿐 아니라, 일본 도덕의 원자론 적 상태를 완화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를 완수함으로써, 다른 모든 의무를 수행한 것이 된 다고 가르치려 했다. 그들은 '주'를 지도 위의 단순한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도덕적 아치의 근본 원리로 삼으려 했다. 이와 같은 방책에 대한 최상의, 또 가장 권위 있는 표명은 메이지 천황이 1882년에 발표 한 "군인에게 하사하신 clr유"이다. 이 칙유와 교육 칙어야말로 일본의 참다운 성전이다. 일 본은 어떤 종교에도 경전을 용인하고 있지 않다. 신토에는 경전이 아예 없고, 일본 불교의 여러 종파도, 교외 별전이나 불립 문자라는 것을 교의로 하거나, 혹은 경전 대신에 '나무아 미타불' 또는 '나무묘법 연화경'이라는 문구를 되풀이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단지 메이 지 천황의 칙유와 칙어만이 참다운 성전이다. 그것들은 정중하게 예를 갖춰,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청중 앞에서 신성한 의식으로서 봉독된다. 그것들은 토라(torah : 모세의 율법, 구 약5서)와 같은 취급을 받고, 봉독 때마다 봉안소에서 꺼냈다가 청중이 해산한 뒤에 다시 정 중히 봉안소에 넣어진다. 칙어, 칙유를 봉독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그 속에 있는 문장 을 틀리게 읽으면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군인 칙유는 주로 복역중인 군인을 위해 하사된 것이다. 군인은 그것을 그대로 암기하고, 아침마다 10분씩 그에 대하여 묵상했다. 중요한 축 제일이나, 신병의 입영, 만기병의 제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에, 군인들 앞에서 읽혀졌 다. 그것은 또, 중학교 및 청년 학교의 전 학생에게 가르쳐졌다. "군인에게 하사하신 칙유"는 수 페이지에 걸친 문서이다. 그것은 주의 깊게 몇 가지 항목 아래 배열되고, 문장은 명료하면서도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에게는 불가해한 수수께끼다. 서구인에게 칙유의 교훈은 모순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거기에는 선과 덕이 참다운 목표로서 제시되어 있고, 서구인에게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되어 있다. 또 한 공도의 옳고 그름을 잘 가능 못하여 사정의 신의를 지켰기 때문에 불명예한 최후를 마친 옛날 영웅 호걸의 전처를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이어 이와 같은 옛날 영웅 호걸의 "이런 적지 않은 예를 엄히 경고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훈계하고 있다. 여기에 서술되어 있는 '경고'라는 말의 뜻은 의무에 관한 일본인식의 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칙유 전 체가 '기리'를 되도록 가볍게 다루고, '주'를 드높이려는 정부의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전문 을 통하여 단 한 번도 '기리'라는 말이, 일본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의미로 나타나지 않 는다. 칙유는 '기리'를 말하는 대신에, '대절(즉, 주(충))'과 '소절(사사로운 신의를 지키는 것)' 과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절'만이 충분히 모든 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칙유는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란 "기무를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주'에 차있는 군인은 반드시 '참다운 대용'을 가지고 있다. 참다운 대용이란, "평소에 사람들과 사 귀는 데 있어서 온화를 제 일로 삼고 모든 사람의 존경과 애정을 얻으려고 힘쓰는 일"이다. 칙유의 논지를 더 읽어 나가면, 이와 같은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굳이 '기리'에 호소할 필 요 없이 이것만으로 충분한 선이 된다고 말한다. '기무 이외의 여러 가지 의무는 '소절'로서, 사람은 이런 의무를 승인할 때는 가장 신중한 고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신의를 다하려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 못할 것 인가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확실치 않은 것을 경솔히 승낙해서 쓸데없는 관계를 맺고, 나 중에 가서 신의를 세우려 하면 진퇴유곡이 되어 몸둘 바를 모르게 되는 일이 있는데 후회해 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처음에 그 일의 순역을 잘 분간하고, 옳고 그름을 생각하여, 그 고토는 결국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기(의)'(칙유는 바로 이 앞 대목에서 '기'란 '기 무'를 다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깨달았다면 빨리 멈추는(너 의 사적 약속을 버린다) 일이야말로 좋을 것이다. 예로부터 혹은 소절의 신의를 세우고자 대강(근본적인 일)의 순역을 잘못 알고 혹은 공도의 시비를 잘못 가려 사정의 신의를 지켜 아깝게도 영웅 호걸들이 화를 만나 몸을 망쳐, 시체 위에 오명을 후세에까지 남기는 예가 적지 않은 것을 깊이 경계함이 마땅할 것이다. '주'가 '기리'에 우선한다는 이상의 가르침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리'라는 말을 사용 하지 않고 씌어져 있는데, 일본인은 모두"'기리'를 위해 정의('기(의)')를 행할 수가 없었다." 라고 하는 표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칙유는 그것을 "그 '고토(개인적인 의무)'는 결국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기(의)'는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깨달았다면......"이라는 말로 바꾸 어 말하고 있다. 천황의 권위를 가지고 칙유는, 그와 같은 경우에 '기리'는 소절이라는 것을 상기하여 사람은 '기리'를 버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설사 칙유의 가르침에 따라 '기리'를 버 려도 사람은 여전히 대절을 지킴으로써 유덕한 인간으로 여겨진다. '주'를 찬양하는 이 성전 은, 일본의 기본적인 문서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칙유의 우회적인 '기리'의 비난에 의하여, 과연 '기리'가 일본인을 붙잡을 힘이 약하게 되었는지 어쩐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일본 인은 자주, 자기나 타인의 행위를 설명하고 또 정당화하기 위해 칙유의 다른 대목-"기(의)란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만 진실하다면 무슨 일이나 이룰 수 있 다."-을 인용한다. 그렇지만, 자주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의 신의를 지키는 것을 금하는 경고를 입에 담는 일은 드문 것 같다. '기리'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권위를 가진 덕으로 "저 남자는 '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일본에 서 가장 심한 비난의 하나이다. 일본의 윤리는, 대절을 도입한다 해도 용이하게 단순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자주 자 랑삼아 온 것처럼, 일본인은 선행의 시금석으로서 사용해야 하는 보편적인 덕을 가지고 있 지 않다. 대개의 문화에 있어서 개개인의 인간은, 이를테면 선의라든지, 절약이라든지, 사업 의 성공이라든지, 아무튼 어떤 덕을 달성할 때마다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테면, 행복이라든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라든지, 자유라든지, 사회적 활동이라든지, 어쨌든 어떤 인생 목적을 목표로 내건다. 그런데 일본인은 보다 특수주의적인 법도에 따른다. 그것 이 봉건 시대에서든, 군인 칙유에서든 가릴 것 없이, 또한 일본인이 '다이세쓰(대절)'라는 것 을 입에 담을 때조차도, 그것은 다만 계층제의 상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의무는 하위에 있 는 사람에 대한 의무를 이겨야 한다고 하는 의미에서일 따름이다. 그들은 여전히 특수주의 적이다. 서구인에게 있어서 충성이란 충성에 대한 충성이지만, 그들의 '다이세쓰'는 이에 반 하여, 어느 특정한 개인, 혹은 특정의 주의 주장에 대한 충성이다. 근대 일본인은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한 가지 덕목을 들으려 할 때는, '성실'을 선 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쿠마 백작은 일본의 윤리를 논하여, "'마토코(성실)'야말로 가장 긴요한 가르침으로, 여러 가지 도덕적 교훈의 기초는 이 한 마디 말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해 도 좋다. 우리나라 고대의 어휘 속에는 '마토코'라는 한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달리 윤리적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금세기 초엽에 새로운 서구의 개인주의를 구가 한 근대의 소설가들 또한, 서구의 신조에 불만을 느끼게 되어, 성실을 유일하고 참다운 '교 의'로서 찬미하는 데 노력했다. 이처럼 성실이라는 것에 도덕적 역점을 두는 것은, 군인 칙유 자체가 지지하는 바이다. 칙 유는 역사적 서설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건국의 부조들(Founding Fathers)'로 워싱턴 과 제퍼슨의 이름을 드는 미국의 서설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 부분은, '온'과 '주'에 호소함으로써, 최고조에 달한다. 짐은 너희들을 고굉으로 믿고 너희들은 짐을 두수로 우러러야만 그 친함은 특히 깊어질 것이다. 짐이 국가를 보호하여 상천의 은혜에 답하고 조종의 은혜를 갚아 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희들 군인이 그 직무를 다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를 것이다. 그 후에 5개 조의 가르침이 서술되어 있다. (1) 최고의 덕은 '주'의 의무를 수행하는 일이 다. 군인은 아무리 기예가 뛰어나도 만일 '주'가 견고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다를 것이 없 다. 또 '주'가 없는 군대는 긴급한 경우에 오합지졸이 된다. 그러므로 "여론에 좌우되지 말고 '정치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한결같이 자기의 본분인 충절을 지키며, 의는 산보다도 무겁고, 죽음은 홍모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2) 제2의 계율은, 군대의 계급에 즉응하여 예 의를 바르게 하는 일이다. '하급자는 상관의 명령을 받드는 것이 실은 바로 짐의 명령을 받 드는 것이라고 알고', '상급자는 하급자를 친밀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3) 제3은 무용 이다. 참 무용은 '혈기에 날뛰는 난폭한 거동'과는 전혀 반대의 것으로, '작은 적이라 하더라 도 깔보지 말고 큰 적이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무용을 숭 상하는 자는 평소에 사람을 접하는 데 있어서는 온화를 첫째로 하고, 여러 사람의 애경을 얻으려 노력하다. (4) 제4의 계율은 '사정의 신의를 지키는'것에 대한 훈계이다. (5) 제5는 절 검의 훈유이다. "무릇 검소를 하지 않으면 문약에 흘러 경박해져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여 마침내는 탐오로 빠져 마음도 한없이 천해지고 절조도 무용도 그 보람 없이 세인 으로부터 미움받고 따돌림당하기에 이를 것이다. (중략) 그래도 그 악습이 나올 것을 두려워 하여 마음 편하지 않아 일부러 다시 이를 훈계하는 바이다." 칙유의 마지막 일절은 이상 다섯 가지의 가르침을 '천지의 공도 인륜의 상경'이라고 부르 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 군인의 정신'이다. 그리고 또 이들 5개조의 '정신'은 '마고코로'이다. "마음이 성실하지 않으면 어떠한 가언도 선행도 모두 겉치레로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 음만 성실하면 무슨 일이나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이 5개조는 '행하기 쉽고 지 키기 쉬운' 것이 된다. 모든 덕과 의무를 열거한 후에, 마지막에 성심을 덧붙이는 것은 과연 일본적이다. 일본인은 중국인처럼, 일체의 덕은 인애의 마음이 명하는 바에 의거한다고는 생 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소에 의무의 법도를 세우고, 제일 마지막에 그 의무들을 점심 전령 으로써, 또 전력을 다한 전지를 기울여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덧붙이는 것이다. 성실이라 는 것은,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가르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스즈 키는 그의 훌륭한 선개론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제간의 문답을 들고 있다. 승 : 사자는 적을 습격할 때, 그것이 토끼이든 코끼리든 이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하여 합 니다. 그 힘은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사 : 지성의 힘이다.(글자 뜻대로면 속이지 않는 힘). 지성, 즉 불기란, '전 존재를 털어놓 는 것'으로 선어에서는 전체 작용이라고 하여, 아무것도 유보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불어 표 현하지 않고, 아무것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하는 사람을 금모의 사자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용맹스러움, 지성, 전심의 상징이다. 신과 같은 사람이다. 이 '성실'이라는 말의 특수한 일본적 의미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른 것을 설명할 때 곁들 여서 이미 언급했다. '마코토'의 의미는, 영어의 어법에서 'sincerity'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것은 'sincerity'에 비해 훨씬 적은 내용을 가지는 동시에, 또 훨씬 많은 내용을 가 지고 있다. 이 말이 서구의 말에 비하여 의미하는 내용이 훨씬 적다고 하는 것을 서구인은 항상 재빨리 알게 되는데, 때때로 일본인이 누군가가 성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이 그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서구인은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는 어느 정도의 진리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어떤 사람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부 르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로'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사랑이나 미움, 결의 또는 놀람에 따라 행동하고 있느냐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통상 하는"He was sincerity glad to see me(그는 나를 만난 것을 진심으로 기 뻐했다)."라든지, "He was sincerity pleased(그는 진심으로 만족했다)"와 같은 표현 양식이 일본어에는 없다. 반대로 그들은 그와 같은 sincerity, 즉 감정을 드러내 놓고 언동으로 표현 하는 것을 경멸하는 여러 가지 관용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저 봐, 저 개구리는 입을 벌 리면 뱃속가지 다 보여."라든지, "석류처럼, 입을 벌리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다 보인다."라 고 말하며 비웃는다. '감정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수치다. 그것은 자기를 '털어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시되고 있는 이 'sincerity'이라는 말에 수반되는 연상 은, 일본의 '마코토'라는 말의 의미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일본의 소년이, 미국인 선교사를 성의가 없다고 비난했을 때, 그 미국인이 가 난한 소년이 알몸으로 미국으로 간다는 계획에 대해, '정말로' 놀라움을 느꼈는지 어찌했는 지를 생각해 보는 따위의 일은, 그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최근 10 년 간, 그들이 끊임없이 해 왔듯이, 미국과 영국을 성의가 없다고 비난했는데, 그들은 서구 제국이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미국과 영국을 비난한 것은, 양국이 위선자라는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위선자라면, 그렇게 크게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군인 칙유가 "하나의 성심은 또한 5개조의 정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일체의 덕에 실효를 가지게 하는 덕 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속의 소리가 명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마음의 순수성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그것은, 자기의 신념이 다른 사람의 신념과 다를 경우, 순수하게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마코토'는, 일본에서는 몇 가지의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 은 이 개념의 윤리적 역할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므로, 서구인은 반드시, 일본인이 이 말을 사용할 때 생각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이 '마코토'에 대하여 품 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는 <47로닌 이야기> 속에 유감 없이 예시되어 있다. 그 이야기 속의 '성실'은 '기리'에 덧붙여지는 플러스 기호이다. '마코토한 기리'는 '한 가닥의 기리'에 반대되 는 것으로 그것은 '영구 불멸의 귀감이 되는 기리'이다. 오늘날에도 일본인은 "마코토가 그 것을 지속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표현 속의 '그것'은 문맥에 따라서, 일본의 도덕률 속에 포함되는 어떤 계율, '일본 정신'이 요구하는 어떠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전시중의 일본인 격리 수용소 내에서의 '마코토'의 용법도, <47로닌 이야기>의 용법과 완 전히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가지 논리가 확장될 것인지, 또 그것이 어떻게 미국에서 쓰 이는 '성실'이라는 단어의 용법과 반대 의미가 될 수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일본 편을 드는 1세(일본 태생의 미국 인민)가 끊임없이 미국 편을 드는 2세 이민에게 퍼부었던 판에 박힌 비난은, 2세가 '마코토'를 갖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의 의미는, 2세가 '일본정 신'-전시중에 일본에서 공식으로 정의된 대로의-을 지속시킬 만한 심적 특질을 가지지 않았 다는 것이었다. 1세는 결코, 그들 자식들의 친미 태도가 위선적이라는 것을 뜻했던 것은 아 니다. 그들이 뜻하고 있는 바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증거로, 2세가 미군에 지 원하여 순수한 애국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제2의 조국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 명해졌을 때에도, 1세는 비난을 그만두기는커녕 한층 확신을 가지고 성의가 없다고 비난했 다.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 및 '일본 정신'에 의 하여 지도상에 그려진 '길(road)'을 따르려는 열의라는 뜻이다. 개개의 문맥에 있어서 '마코 토'라는 말이 아무리 특수한 의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일본 정신'의 어떤 측면의 칭찬, 덕의 지도 위에 세워져 있는 공인된 이정표의 칭찬이라고 해석하 면 틀림이 없다. '성실'이 미국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 번 납득되면, 이 말은 모든 일본어의 문헌에서 주의해야 할 극히 유용한 말이다. 왜냐하 면 이 말로 표현되고 있는 사항은 언제나, 일본인이 실제로 중점을 두고 있는 적극적인 덕 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마코토'는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 인간을 칭찬 하는 말로서 끊임없이 사용된다. 이 사실은, 일본인의 윤리가 이윤을 얻는 것을 매우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윤은-그것이 계층 제도의 당연한 결과가 아닌 경우에는-부당한 착취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그 일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 옆길로 빗 나간 중개인은, 사람들이 매우 경멸하는 대금업자가 된다. 그와 같은 인간은 항상, '마코토가 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다. '마코토'는 또 항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이것은 일본인의 자기 수양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실하다고 여겨지는 일본인은 또, 싸움을 걸 생각이 없 는 사람을 모욕하게 될 만한 위험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인의, 사람은 행 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행위의 파생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는 신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코토'가 있는 사람만이, '사람들의 머리에 서서', 그 수완을 유효하게 활용하고 또 심리적 갈등을 벗어날 수가 있다. 이들 세 가지 의 미, 그리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의미는, 일본인 윤리의 등질성을 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이 것은, 사람은 그저 정해진 법도를 이행할 때에만 실효를 거둘 수가 있고, 또 모순이나 갈등 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의 성실에는 갖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덕은, 칙유나 오쿠마 백작이 말 하듯이, 일본인의 윤리를 단순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영혼'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수라도 적당히 그 수에 덧붙여 쓰 면, 그 수를 고차의 멱수로 하는 지수이다. 조그만 2라는 숫자를 오른쪽 어깨에 붙이면 9든, 159든, b든, x든 전혀 관계없이 제곱수가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코토'는 일본인의 도덕 법전의 어떤 조항도 고차의 멱수로 높인다. 그것은 말하자면 독립한 덕이 아니고, 광신자의 스스로의 교의에 대한 열광이다. 일본인이 그들의 도덕률에 어떤 수정을 가하려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원자 론적이며, 덕의 원리는 여전히 그 자체에 있어서는 선인 어떤 행동과, 또한 그 자체에 있어 서는 선인 다른 행동과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들의 윤리 체계는, 마치 브리지 (bridge : 일종의 트럼프 놀이)의 승부와 같은 것이다. 잘하는 경기자란, 규칙에 따라 그 규 칙의 범위내에서 경기하는 사람이다. 그가 잘 못하는 경기자와 구별되는 것은, 추리의 훈련 을 쌓고 있어서 다른 경기자들이 낸 패에, 그 패들이 경기의 규칙 아래에서 무엇을 의미하 는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따라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표현에 의하면 그 는, 호일에 따라 경기한다. 그는 한 수마다 무한한 세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은 빠짐없이 경기의 규칙 속에 망라되어 있고, 점수도 미리 정해져 있다. 미국 인이 말하는 의미에 있어서의 좋은 의도란, 문제 밖에 놓여진다. 어느 나라 말이나, 어떤 문 맥에서 사람들이 자존을 잃거나, 혹은 획득한다고 말하는가 하는 것은, 그 국민의 인생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은 항상 스스로가 주의 깊 은 경기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이다. 그것은 영어의 용법처럼 남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든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어떤 훌륭한 행위의 기준에 의식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지초(자중)', 곧 self-respect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묵직한 자아'라는 것이고, 그 반대는 '경조부박한 자아'이다. "당신은 자중하지 않으 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은 빈틈없이 그 사태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인자를 감안하 여 결코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성공의 찬스를 감소하거나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 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일'은 때때로, 미국에서 이 말이 뜻하고 있는 행동과 정 반대의 행동을 의미하는 일이 있다. 피고용자가 "나는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 는 것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자기가 곤란해질 말을 해 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신은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표현이 정치적으로 쓰이는 경 우에도 또한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중책을 맡은 인간'은, 만일 무분별하게도 '위 험 사상'에 빠져 들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이미 자신을 존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처럼, 설사 사상이 위험하다 하더라도 만일 사람이 자신을 존중한다면, 자 기의 견해와 자기의 양심에 따라 자기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너는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은, 부모가 청년기의 자식을 훈계할 때, 끊임없이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절을 지키고, 타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하 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계집아이는 다리를 올바른 위치에 두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도록, 그리고 사내아이는 신심을 단련하고 남의 안색을 살피는 것을 배우도록 훈계를 받 는다. 그것은 '지금이야말로 장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향 하여, "너는 자중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경박한 거동을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 식의 예절 법도에 어긋남을 책망하고 있는 것으로, 자식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 하여 일어설 용기가 없다는 것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다. 대금업자에게 빚을 갚지 못하는 농부는, "나는 자중했어야 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것은 자신의 나태를 책망하거나, 채권자에 대하여 비굴한 태도를 취한 것을 책망하거나 하 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런 궁지에 빠질 경우를 예상해서 보다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야 했 다는 뜻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의 자존심이 이러이러한 것을 요구한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정직이라든지 청백 같은 일정한 도덕적 원리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그의 가문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것, 그 일 속에 그의 신분의 무게를 모조리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가가 그의 회사에 대하여, "우리들은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신 중에 또 신중을, 조심에 또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복수의 필요함을 말하는 사람은, "자중해서 복수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적의 머리 위에 '활활 타오 르는 숯불을 쌓는'일이나, 그가 어떤 도덕적 원칙에 따를 의도를 가진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는 기어코 완전히 복수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말과 같아서, 주도 면밀하 게 계획을 세워 모든 요소를 고려에 넣어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경솔한 결 론을 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도, 이하 의 노력도 소비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모든 자중의 의미는, 인생을 세심한 주의로써 '호일에 따라서(규칙에 따라서)' 행동해 야 하는 세계로 보는 일본인의 인생관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들은 자중이라는 것을 이상과 같이 정의하고 있으므로, 의도가 좋았다는 이유로 실패의 이유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거수 일투족이 여러 가지 결과를 수반하는 것으로, 사람은 그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당신은 당신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 '은혜를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견하지 않으 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을 비평해도 전혀 상관이 없지만, 비평한다 면 당신은 상대자의 원한 일체의 결과를 감당할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이 야기 한 미국인 선교사가 젊은 화가로부터 그를 조소했다고 비난을 받았을 경우에, 선교사 는 별로 악의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보았자 아무런 변명도 되지 않는다. 선교사 는 바둑판 위의 그의 한 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것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신중과 자중을 동일시한다는 것 속에는, 타인의 행동 속에서 간취되는 모든 암시 에 방심함이 없이 마음을 쓸 것, 그리고 타인이 자기의 행동을 비판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 식하는 것이 들어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시끄럽게 구니까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든 지, "만일 세상이라는 것이 없다면, 자중하지 않아도 좋은데....."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표 현은 자중이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한다는 것을 말하는 극단적인 표현이며, 올바른 행동의 내면적 강제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표현이다. 많은 나라들이 통속적인 언어 관행과 마찬 가지로, 이런 말투도 사실을 과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 일본인은 때에 따라서는 자기 죄과에 대하여 청교도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반응을 나타내는 일 이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역시 위의 극단적인 표현은, 일본인이 대략 어디에다 중점을 두고 있는가를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즉,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화의 인류학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설명하고 양심의 계발을 의지 로 삼는 사회는, '죄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사회의 인간도, 이 를테면 미국의 경우처럼, 죄악감 외에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지만 어떤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을 때 치욕감을 느끼고 상심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경우에 알맞은 복장을 갖추지 않았거나, 무슨 실언을 한 일로 해서 매우 번민하는 경우이다. 수치가 주요한 강제력이 되는 문화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우리들이라면 당연히 누구라도 죄를 범했다고 느 낄 것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번민한다. 이 번민은 때로는 매우 강렬하다. 더 욱이 그것은 죄처럼, 참회나 속죄에 의해 경감될 수가 없다. 죄를 범한 사람은, 그 죄를 감 추지 않고 고백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다. 이 고백이라는 수단은, 우리들의 세속적 요법에서, 또 그 밖의 점에 관해서는 거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종교 단 체에 의하여 이용되고 있다. 우리들은 그것이 기분을 가볍게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 치가 주요한 강제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설사 상대가 참회 청문승일지라도, 과오를 고백해도 도무지 기분이 편해지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거꾸로, 나쁜 행위가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 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고백은 되려 스스로 고생을 사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조차도 고백한다는 습 관은 없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은 있으나, 속죄 의식은 없다. 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인 죄의 자각에 의거하여 선행을 행하는 데 비하여, 참다운 수 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하여 선행을 한다. 수치는 타인의 비평에 대한 반응이다. 사람은 남 앞에서 조소당하거나 거부당하거나, 혹은 조소당했다고 확실히 믿게 됨으로써 수 치를 느낀다.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수치는 강력한 강제력이 된다. 그러나 다만, 수치를 느 끼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자리에 타인이 같이 있거나, 혹은 적어도 함께 있다고 믿을 필요 가 있다. 그런데, 명예라는 것이 자신이 마음 속에 그린 이상적인 자아에 걸맞도록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나라에 있어서는, 사람은 자기의 비행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죄의식에 고민 한다. 그리고 그의 죄악감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경감된다. 미국에 이주한 초기의 청교도들은 일체의 도덕을 죄악감의 기초 위에 두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현대 미국인의 양심이 얼마나 죄의식에 고민하고 있는가는, 모든 정신병 의사가 알고 있는 바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수치가 점차 무게를 더해 가고 있으며 죄는 전만큼 심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사실을 도덕의 이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해석에는 다분히 진리가 들어있으며, 그것은 우리들이 수치에는 도덕의 기초와 같은 중임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다. 우리들은 수치에 수반되는 심한 개인적 통한의 정을, 도덕의 기본 체계를 이루는 원동력 으로는 보지 않는다.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가 없다 는 것, 그것이 치욕(하지)이다. 수치는 덕의 근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수치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유럽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말은, 어느 때는 'virtuous man(유덕한 사람)', 어느 때는 'man of honor(명예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로 번역된다. 수치는 일본의 윤리에 있어서 '양심의 결백', '신에게 의로 여겨지는 것', 죄를 피 하는 것이 서구의 윤리에서 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권위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그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서, 사람은 사후 생활에서 벌을 받는 일은 없다. 일본인은-인도 경전의 지식 을 가지고 있는 승려를 제외하면-이 세상에서 쌓은 공죄에 따라 다른 상태에서 다시 태어 난다는 사상을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은-충분히 교의를 이해한 뒤에 그리스도 교로 귀 의한 사람들을 제외하면-사후의 상벌 내지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모두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세평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만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는 것을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 방침을 정한다. 모두가 같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은 쾌활하고 쉽게 행동할 수가 있다. 그들은 그것이 일본의 '사명'을 수 행하는 길이라고 느끼는 경우에는, 게임에 열중할 수가 있다. 그들이 가장 심한 마음의 상처 를 받는 것은, 그들의 덕을 일본 특유의 선행 도표가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외국에 적용하 려고 시도한 때였다. 그들은 '선의'에 의거한 '대동아'의 사명에 실패했는데, 중국인이나 필리 핀인이 그들에게 취한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일본인이 느낀 분노는 거짓 없는 감정이었다. 국가주의적 동기에 의거해서가 아니고, 유학이나 업무상의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개 개의 일본인 또한 자주, 도덕이 그렇게 딱딱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에서 생활하려 할 때, 그들이 지금까지 받아 온 주도한 교육의 '파탄'을 통감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덕은 아무 래도 대외적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논점은, 문화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는 그런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려는 것은 그 이상의 일로서, 그들은 때때로, 일본인이 미국의 생활에 맞추어 들어가는 것이 매우 곤란한 데 반하여, 그들이 서로 알게 된 중국인이나 태국인은 그렇게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들이 보는 바 로는, 바로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그들은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타인이 자기의 행동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정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안심감에 의지하여 생활 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이런 예절을 일체 무시하는 것을 보고, 일본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서구인이 일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활의 기준 으로 하고 있는 면밀한 예절을 발견해 내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일본인은 화가 났다고 말하고, 어떤 일본인은 깜짝 놀랐다고 말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그렇게 엄하지 않은 문화에서 맞닥드린 이러한 경험을, 누구보다도 잘 그리고 있는 것은, 미 시마의 자서전 <나의 좁은 섬 나라>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꼭 미국의 대학에 유학하려고 기도했다. 그리고, 미국 대학의 장학생이 됨으로써 미국인으로부터 '온'을 받는 것을 반대하 는 그녀의 보수적인 가족들을 겨우 설득해서, 웰즐리 대학에 입학했다. 교수도 학우도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한층 그녀는 괴롭게 느꼈다. "일본인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나도 나의 행동이 전혀 흠잡힐 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그 자랑스러움은 무참히도 상처받았다. 나는 이 나라에서는 대체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 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하여, 또 내가 이때까지 받아 온 예절을 비웃는 것 처럼 느껴진 환경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다. 이 막연한, 그러나 뿌리깊은 분노의 감정 외에는 이미 아무런 감정도 나에게 남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이어서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세계 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감각과 감정을 가진, 어느 다른 유성에서 떨어져 온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모든 동작을 얌전하게 하고, 모든 말투를 예의에 맞도록 하기를 요구하는 나의 일 본식 예절이, 이 나라의 환경 속에서-거기에서 나는 사회적으로 말해 전혀 장님이었지만-나 를 극도로 신경과민과 자의식에 빠지게 했다."고 쓰고 있다. 그녀의 긴장이 풀리고, 그녀에 게 내밀어진 호의를 쾌히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는 2,3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녀는 미국인은 소위 '세련된 허물없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허물없이 군다는 것은 예의 없는 짓으로서, 세 살 때에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압살되어 버렸다." 미시마는 그녀가 미국에서 서로 알게 된 일본 처녀들과, 중국 처녀들과를 비교 대조하고 있는데, 그녀의 평은, 미국의 생활이 양국의 처녀들에게 어떻게 다른 영향을 주었는지를 나 타내고 있다. "중국의 처녀들은 대개의 일본 처녀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차분함과 사 교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상류의 중국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여왕과 같은 우아함을 가지 고, 세계의 참다운 지배자인 것 같은 취향이 있어서, 나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사람들 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 위대한 기계와 스피드 문명 속에 있으면서 조금도 동요를 보이지 않는 그녀들의 겁내지 않는 태도와 당당한 침착성은, 우리들 일본 처녀의 끊임없이 겁에 질 린, 과도하게 신경질적인 태도와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사회적 배경에 어 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 것이다." 미시마는, 다른 많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마치 테니스의 명수가 크로켓 시합에 나갔을 때와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녀의 뛰어난 기량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배 워 온 사항이, 도저히 새로운 환경에 가지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받아 온 훈련은 무익했다. 미국인은 그런 것 없이도 잘 생활하고 있었다. 설사 극히 조금이 라도, 한 번 미국에서 살아서, 이 나라의 그렇게 딱딱하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행동의 규 칙을 받아들인 일본인에게는, 전에 그들이 일본에서 보낸 그 답답한 생활을 다시 되풀이한 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옛날의 생활을, 어느 때에는 잃어버린 낙 원으로, 어느 때는 '질곡'으로, 어느 때는 '감옥'으로, 또 어느 때는 분재를 심는 '조그만 화 분'에 빗대어 말한다. 분재로 꾸며진 소나무 뿌리가 화분 속에 갇혀 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정원에 미관을 더해 주는 예술품이 된다. 그런데 한 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 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 일 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 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단적인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제11장 자기 수양 어떤 문화의 자기 훈련은 항상 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기 수비다. 훈련 방법 그 자체는 잘 알지만, 어째서 저렇게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어 째서 일부러 고리에 매달리거나, 열심히 배꼽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이런 고행 중의 어느 하나에 전념하며, 국외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하고 훈련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충동을 통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관찰자가, 자기 훈 련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나라에 속해 있고, 그 방법에 매우 큰 신뢰를 하고 있는 국민의 한 복판에 몸을 두는 경우, 오해의 가능성은 최고도에 달한다. 미국은, 자기 훈련을 위한 특별한 전통적인 방법이 비교적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미 국인은 자기 생애에 있어서 실현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한 가늠을 잡고, 만일 그럴 필요가 있 다면 혼자서 멋대로, 자기가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를 훈련하고 있다. 자기 훈련 을 하는가 안 하는가는, 그 사람의 소망, 양심, 혹은 베블렌의 소위 '기술적 본능(an instinct of workmanship)'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는 축구 선수로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엄격 한 규율에 따르거나, 음악가가 될 수련을 하기 위해 또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일체의 오 락을 단념하거나 한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그릇된 행위나 경박한 행위를 하는 것을 삼간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특별한 훈련법으로서의 자기 수양 그 자체는, 산수처럼 개개의 경우에 있어서의 응용을 전혀 도외시하고, 그것만을 따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만일 그런 수업이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다면, 그것은 유럽에서 온 어떤 종파의 지도자 거나, 인도에서 고안된 방법을 전수하는 스와미(힌두교 교사)들에 의하여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 성 테레사(Saint Theresa)나, 십자가의 성 존(Saint John of Cross)이 설교하고 실천 한 것처럼 명상과 기도를 내용으로 하는 종교적 수련조차도, 미국에서는 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일본인은 중학교 시험을 치르는 소년도, 검술 시합에 출전하는 사람도, 혹은 또 단 순히 귀족으로서의 생활을 보내는 데 지나지 않는 사람도, 시험을 치를 때 필요한 특정한 학과 공부 뿐 아니라, 그와는 전혀 별개의 자기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 무리 시험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검술의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예의 범절에 빈틈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책이나 죽도를 곁에 놓고, 사교계에 나가는 것을 잠시 중지하고, 특수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일본인 모두가 다 신비스러운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자기 훈련에 관한 말의 표 현이나 그 관행에 대하여, 인생에 있어서의 일정한 위치를 인정하고 있다. 어느 계급에 속하 는 일본인도 자타의 행동을,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특수한 자제와 극기의 방법에 관한 그들의 관념에 의거한 일련의 개념에 의하여 판단한다. 그들의 자기 훈련 개념을 대별하면, 능력을 주는 것과 그 이사의 것을 주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 '그 이상의 것'을 나는 숙달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두 가지는 일본에서 획 연히 구별되고 있는데, 인간의 심성 속에 서로 다른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서로 다른 근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외적 징표에 의하여 식별된다. 첫 번째 종류, 즉 능력 을 배양하는 수행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례를 설명했다. 10분간의 휴식 때 잠깐 꾸벅꾸벅 졸 뿐, 60시간을 불면불휴의 훈련에 참가한 부하 병사들에 대하여 "놈들은 가르쳐 주지 않 아도 자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잠을 자지 않는 훈련을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 한 그 육군 사관은, 우리들에게는 극단적인 요구처럼 생각되지만, 다만 제대로 된 병사로서 필요한 능력을 기를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데 지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말은 의지는, 거의 무한히 도야의 가능성을 가진 육체를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 육체 그 자체는, 만일 사람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반드 시 손실을 입고 만다는 건강 법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일본적인 정신 통어법 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의 '인정' 이론 전체가 이 가정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대한 사항이 문제가 될 때에는, 육체의 요구는 아무리 그것이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일지라도, 또 그 자체로서는 아무리 시인되고 정 성 들여 배양된다 하더라도, 철저히 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자기 훈련을 해서라도 사람은 일본 정신을 발휘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견해를 이와 같은 표현으로 말하는 것은, 그들의 가정을 오해시킬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보통 미국의 용어법 에서는, '어떤 자기 훈련을 해도(at the price of whatever self-discipline)'라는 것은, 어떤 자기 희생을 하더라도(at the price of whatever self-sacrifice)'라는 것과 대략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자주 '아무리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도'라는 의미가 된다. 훈련이라 는 것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은-그것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든,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양심으로서 마음속에 투입된 것이든-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자진해서 받거나 아니면 권위에 의하여 강요되는 훈련에 의하여 사회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억압이다. 당 자는, 이와 같이 자신의 소망이 제한되는 것을 불쾌하게 느낀다. 그는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아무래도 반항적인 감정이 생겨난다. 이와 같은 견해 는, 단지 미국의 많은 전문 심리학자들의 견해만이 아니다. 그것은 각 세대가 가정에서 부모 들에 의해 양육될 대의 철학인 것이다. 그러니까 심리학자의 분석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많은 진리를 가지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일정한 시간에 '자지 않으면' 안 된다. 점차 그는 부모들의 눈치 속에서 잠자 는 것이 일종의 억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정에서 어린아이들 은 밤마다 실컷 떼를 쓰면서 불만의 뜻을 나타낸다. 그는 이미 수면을 아무래도 '하지 않으 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으며, 도저히 항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 항해 보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또 그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정한다. 그것은 오트 밀일 수도 있고, 시금치일 수도 있고, 빵일 수도 있고, 오렌지 주스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어린아이는 그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음식에 저항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몸에 좋은' 음 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작정하고 대한다. 이런 것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또 예를 든다면 그리스와 같은 몇몇의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습관이다. 미국에서 어른이 된다 는 것은, 음식의 억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수면이나 음식에 대한 관념은, 서구인의 자기 희생 개념 전체에 비하 면 하찮아 거론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부모는 어린이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그 생애를 희생하고, 남편은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기의 자유를 희생한다는 것이 표준적인 서구인의 신조이다. 미국인에게는 자기 희생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회가 존재한 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회의 사람들은, 부모는 인정으로서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고, 여자는 다른 어떤 생활보다도 결혼 생활에 들어갈 것을 바라며, 일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자는 사 냥꾼이든, 정원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 자기 희생이니 뭐니 하 는 말을 입에 담을 필요가 있겠는가? 사회가 이런 해석을 강조하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해 석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경우, 자기 희생의 관념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그런 '희생'을 치르고 남을 위해 하는 일들 모두가, 다른 문화에서는 상 호 교환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나중에 변제 받는 투자거나, 혹은 이전에 남으로부터 받은 가치에 대한 답례이다. 그와 같은 나라에서는, 부자의 관계조차 이와 같이 다루어진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아들이 어렸을 때 해 주는 것을,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만 년에, 혹은 아버지의 사후에 한다. 모든 실무상의 관계가 또한 일종의 민간 계약으로, 그것 은 자주 같은 것을 같은 양만큼 변제할 것을 보증하는 동시에, 통상 당사자의 한쪽에는 비 호의 의무를, 다른 쪽에는 봉사의 의무를 지게 한다. 이리하여 쌍방이 다 이익을 얻는 것을 서로 좋다고 생각하는 일은 있어도, 당사자의 어느 쪽도 자기가 수행하는 의무를 희생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타인에 대한 봉사 배후에 있는 강제력은, 물론 이 상호 의무로서, 그것은 남에게 서 받은 것에 대하여 같은 양의 변제를 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계층적 관계에 선 자끼리 상호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기 희생의 도덕적 지위는, 미국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일본인은 이제까지 항상, 특히 기독교 선교사의 자기 희생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그들은, 유덕한 사람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을, 자기 소망의 억압이라 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일본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당신들 이 말하는 소위 자기 희생을 행하는 것은, 우리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결코 유감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실제로 남을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이 정신적으로 고매해진다거나, 또 그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상호 의무를 생활의 중추로 삼고 있는 국민이, 자기들 의 행동을 자기 희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극 단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전통적인 상호 의무의 강제력 때문에, 그들은 개인주의적인 경 쟁이라는 것을 기조로 하는 나라들에 있어서 자칫 일어나기 쉬운, 자기 연민과 독선의 감정 을 품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미국인은,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자기 훈련의 습관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우리들의 '자기 훈련(self-discipline)'의 관념에, 말하자면 일종의 외과 수술을 하지 않 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문화에서 이 고나념의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자기 희생 (self-sacrifice)'과 '억압(frustration)'이라는 부가물을 잘라 내야만 한다. 일본에서는 훌륭한 경기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훈련을 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태도는 브리지를 하는 사람과 마 찬가지로, 전혀 희생 의식을 수반하지 않고 훈련을 받는다. 물론 훈련은 엄격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항의 본질에 뿌리박은 것이어서, 엄격한 것이 당연하다.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아이 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슈요 (수양)')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 한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가 있다.(only so can he enjoy life)" 라고 번역되고 있다. 자기 훈련은 "배(자제력이 깃드는 곳)-배짱-을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확대한다. 일본에서 '능력'을 기르는 자기 훈련의 근거는, 그것이 처세 태도를 개선한다는 점에 있다. 훈련의 처음 무렵에 사람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느낌은 이내 사라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나중에는 훈련이 즐거움이 되거나 혹은 훈련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견습 소년은 장사에 도움이 되고, 소년은 '주도(유도)'를 배우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요구에 맞추게 된다. 훈련의 최초의 단계에서, 새로운 요구에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이 이와 같은 '슈요(수양)'를 피하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경우에 그들의 아 버지는 그들에게 "너는 무슨 그런 틀린 생각을 하느냐 인생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다 소의 훈련이 필요하다. 만일 그것을 내던지고 전혀 수행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불행 한 꼴을 당한다. 만일 그런 결과에 빠져,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을 듣게 되어 도, 나는 너를 더 비호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하여 설득한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어서 말하면,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와 같은 자기 훈련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들 의 도덕률이 자주 요구하는 극단적인 행위가 실로 중대한 억압이 된다는 것, 또 그와 같은 억압이 공격적 충동을 자아내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구별 은, 유희나 스포츠의 경우라며 미국인도 이해할 수가 있다. 브리지의 선수권 보유자는 실력 을 닦기 위해 감내한 자기 희생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 길에서 달인이 되기 위해 소비한 시간을 '억압'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큰 판돈을 건 승부를 할 때나 선수권 시합 때에 필요한 주의력이 때때로 위궤양이 나 신체적 긴장의 한 용인이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난다. 그 렇지만 상호 의무의 관념이 강제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또 자기 훈련은 자신의 이익이 된다 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미국인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많은 행 위가 용이한 일처럼 생각된다. 그들은 유능하게 행동하기 위해 미국인보다도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변명을 하는 일도 적다. 그들은 우리만큼 빈번히 생활의 불만을 남에게 전 가하지 않는다. 또 우리만큼 빈번히 자기 연민의 정에 젖는 일도 없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 에 기인하는가는 별문제로 하고 미국인이 갖는 소위 '남들과 같은 행복(average happiness)' 이라는 것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에 대하여, 미국인 사이에서 통상 행해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훈련되고 있다. '능력'을 기르는 자기 훈련 외에, 또 그위에 서는 것으로서, '숙달'의 평면이 있다. 이런 종 류의 훈련 방법은, 이에 대하여 쓴 일본 사람들의 저서를 읽는 것으로는 서구인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며,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서구인들은 때때로 그것을 멸시 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그들은 때로 그것을 '상궤를 벗어난 이상한 습관'이라고 부르고 있 다. 어느 프랑스의 학자는, 그것은 완전히 '상식을 무시한 것'이며, 훈련에 중점을 두는 모든 종파 중에서 가장 유력한 선종을 '엄숙한 난센스 덩어리'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인이 이들 훈련 방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은 결코 불가해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추구하는 것은, 일본인의 정신 통어법을 밝히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일본어 중에는, 자기 훈련의 달인이 도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심경을 나타내는 여러 가 지 말이 있다. 이 말들 중의 어떤 것은 배우에 대해 쓰이고, 어떤 것은 종교 신자에 대하여, 어떤 것은 검객에 대하여, 어떤 것은 연설가에 대하여, 어떤 것은 화가에 대하여, 어떤 것은 다도의 스승에 대하여 쓰인다. 이들 말은 어느 것이나 동일한 일반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 중의 하나인 '무가(무아)'라는 말만을 들추기로 한다. 이 말은 상류 계급 사람들 사 이에서 번창하고 있는 선종에서 쓰이는 말이다. 숙달의 경지는, 그것이 세속적인 경험에 있 든, 종교적 경험이 있든 간에, 의지와 행동 사이에 '머리카  한 올만큼의 빈틈도 없을 때'의 체험을 말한다. 방출된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숙달의 경지에 도달 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의지와 행동 사이에 말하자면 일종의 절연벽이 가로막는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아, observing self), '방해하는 아(interfering self)'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에 의하여 이 장벽이 제거되었을 때에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 있고, 전류를 자유로이 흐른다. 행위는 노력 없이 행해지게 된다. 그것은 '일점적(one-pointed)'으로 변한다. 행위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실현된다. 일본에서는 극히 보통의 사람들조차, 이런 종류의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영 국 불교 연구의 권위자인 찰스 엘리어트는, 어떤 여학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 하고 있다. 그녀는 도쿄의 어느 유명한 선교사한테 찾아가서,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비행사가 되고 싶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비행기와 그 리스도 교 사이에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자 그녀는, '비행사가 되려면 우선 매우 침착하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당황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되 며, 그리고 그런 마음은 종교적 훈련에 의해 비로소 획득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데 종 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종교는 그리스도 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습 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본인은 단지 그리스도 교와 비행기를 연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침착하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당황하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훈련을, 교육학 시험을 치를 때에도, 연 설을 할 때에도, 정치가로서 확약할 때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일점 집 중의 태도를 기르는 훈련은, 거의 어떤 사업을 할 경우에도 틀림없이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많은 문명이 이런 종류의 훈련법을 발달시키고 있는데, 일본의 목표와 방법은 완전히 독 자적이고 현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수행법이 대개 인도의 요가라 고 불리는 수행에서 유래되는 것 인만큼, 더욱 흥미 있는 일이다. 일본의 자기 최면이나 정 신 집중이나 오관 제어 방법은, 지금도 여전히 인도의 관행과 친연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 신체를 부동으로 유지하는 것, 동일한 문구를 몇 만 번이나 되풀 이하는 것, 신체를 부동으로 유지하는 것, 동일한 문구를 몇 만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 어느 일정한 상징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에 역점을 둔다. 인도에서 쓰이고 있는 전문 용어조차, 지금도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공통되는 것은 대체적인 뼈대뿐이고, 그 외에는 공통점을 거 의 가지고 있지 않다. 인도의 요가파는, 극단적인 금욕 고행을 하는 종파이다. 그것은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는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은 이 해탈, 즉 열반 이외에 구원은 없다. 그리고 인간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는 인간의 욕망이다. 욕망은, 그것을 굶겨 죽이고, 그것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 을 가혹하게 책망하여 괴롭힘으로써만 제거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수단에 의하여 사람은 성자가 되고, 영성과 신불과의 합일을 얻을 수가 있다. 요가 수행은 육의 세계를 버리고, 한 없이 되풀이되는 인간의 미래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또 영적 능력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고행이 극단적일수록 목표로의 행로도 빨라진다. 이와 같은 철학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다. 일본은 불교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윤회 와 열방 사상이 국민의 불교족 신앙의 일부분이 된 일이 없다. 이러한 가르침은, 소수의 승 려들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일은 있어도, 민중의 풍습이나 민중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일 은 한 번도 없다. 일본에서는 짐승이나 벌레를, 인간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 것이라는 이유로 죽이지 않는 일은 없다. 또 일본의 장례식이나 출생에 수반되는 의식은, 윤회 사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윤회설은 일본적인 사상의 틀은 아니다. 열반 사상 또한, 일반 민중 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승려 자신이 이에 손질을 하여 결국 없애 버리고 있다. 학문을 한 승려들은 '사토리(깨달음)'를 연 인간은 이미 열반의 경지에 있다고 말한다. 열반은 지금 여기에, 시간의 한 가운데 있다. 또 사람은 소나무 속에서도 야생의 새 속에서 도 '열반을 본다'고 단언한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항상, 사후 생활의 공상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들의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나 사자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불교의 사후에 있어서의 인과응보 사상조차 버리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라도, 신분이 낮은 농부들조차 죽으면 부처가 된다고 말했다. 각 가정의 불단에 모셔져 있는 가족의 위패를 나타내는 말이 바로 '부처님'이다. 이런 말을 하는 불교국은 달리 없다. 그리 고 극히 평범하게 살다 죽은 사람에게 이와 같이 대담한 말투를 쓰는 국민이, 열반의 달성 과 같은 어려운 목표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거나 어차피 부처가 되는 것이라면, 사람은 굳이 한평생 육체를 괴롭히고, 절대 적 정지의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된다는 교의이다. 요가 수행은 욕망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욕망은 육체 속에 머문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런 가르침 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정'은 악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관능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생활의 지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유일한 조건은, 관능은 인생의 중대한 의무 앞에서 는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이 신조는 일본인의 요가 수행 실행에 있어서, 논 리적으로 마지막 극한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자학적 고행이 모조리 제거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의 이 교파는 금욕주의적이지도 않다. 은둔 생활을 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세상을 버린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처자와 함께 산수 맑은 곳에 거처를 정하고 안 락하게 사는 것이 보통이다. 아내를 가지고 이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그들이 성자라는 것 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불교의 종파 속에서 가장 통속적인 종파에서 는, 승려는 어떤 형태이든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는다. 일본은 지금까지 영과 육이 상반된다는 설을 쉽게 받아들인 일이 없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성자인 까닭은, 명상에 의하여 수행의 공을 쌓는 것과 그 간소한 생활에 있다. 그것 은 더러운 옷을 몸에 두르고 다니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눈을 감거나, 고토, 샤미 센 등의 악기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소리에 대하여 귀를 막거나 하는 일이 아니다. 일본의 성자들은 우아한 시가를 짓고, 다도를 즐기고, 달맞이나 꽃구경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실 제로 선종 같은 경우, 그 신도들에게 '세 가지의 부족, 즉 의, 식, 면의 부족'을 피할 것을 명 하고 있다. 요가 수행의 마지막 신조, 즉 요가 수행이 가르치는 신비주의적 수행법은 수행자를 망아 입신의 경지로 유인하여, 우주와 합일시킨다는 신조 또한 일본에서는 볼 수 없다. 미개 민 족, 마호메트교의 수도승, 인도의 요가 행자, 중세의 그리스도 교도의 구별을 불문하고, 전세 계 어디서나 신비주의적 수행법이 행해져 온 곳에서 수행자들은, 그 신앙은 다르지만 거의 이구동성으로 '신과 하나'가 된다고 말하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법열을 경험한다고 말해 왔 다. 일본인은 신비주의적 수행법을 가지고 있으나, 신비주의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그 들이 황홀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 또한 망아의 경지에 달한다. 그 렇지만 그들은 황홀 상태조차, 그것을 '일점 집중'의 태도를 기르는 훈련법으로 간주하고 있 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입신의 상태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선종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신비주의자들처럼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은 오관이 활동 정지의 상태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종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신비주의자들처럼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은 오 관이 활동 정지의 상태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방법에 의하여, '육관'이 비정상 적으로 예민한 상태에 달한다고 한다. 제6관은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훈련에 의하여 제6관이 보통의 오관을 지배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나 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도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 각각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소리 없는 발소리를 듣고, 그 발소리 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여 가는 것을 정확하게 뒤쫓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 혹은 삼매경을 중단함이 없이 음식의 맛있는 냄새-그런 냄새를 일부러 나게 하여-를 식별하는 것이, 참선자들의 수행의 하나이다. 냄새 맡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맛보는 것이 '제6관을 보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삼매경에서, '모든 감관을 예민하게' 하는 것을 배우 는 것이다. 이런 일은, 초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종교로서는 실로 이례적이다. 삼매경에서조차 그와 같은 선의 수행자는 자기 밖으로 빠져 나가려 하지 않고, 니체가 고대 그리스 인에 대해서 한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에 머물고, 자신의 시민으로서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일본의 위대한 불교 지도자들의 말 중에는, 이와 같은 견해를 명료하게 표현한 말이 많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현재도 역시 선종 중에서 가장 유력한 종파인 조 동종을 연 12세기의 고승 도겐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잇 다. "나는 다만 수직의 코 위에 눈이 수평으로 달려 있는 것을 안 것 뿐이다. (중략) 무엇 하나 이상한 것은 없다(선의 체험 속에는). 시간은 자연히 지나간다. 해는 동쪽에서 오르고, 달은 서쪽으로 진다." 선에 대해서 씌어진 책은 또, 삼매경의 경험이 인간적 능력을 훈련하 는 이외에 어떤 다른 능력을 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일본의 불교도는, "요가 수 행은 명상에 의하여 갖가지 초자연적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선은 그런 바보 스런 주장은 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일본은 이처럼, 인도의 요가 수행의 근저가 되어 있는 가정을 완전히 말살해 버리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인을 상기시킬 정도로 섬세함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은, 요가 수행을 인간을 완전하게 하는 자기 훈련, 인간과 그 행위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의 틈도 없 는 '숙달'을 획득하는 수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힘을 유효하게 쓰도록 하는 훈련이 다. 그것은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태도를 기르는 훈련이다. 그것이 주는 공덕은 현세적인 공덕으로, 사람은 이에 의해 어떤 사태에 임해도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꼭 알맞은 노력 을 해서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기 마음을 수 행을 쌓음으로써 통제할 수 있어 밖으로부터의 신체적 위험에 의해서도, 또 내부로부터의 격정에 의해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훈련은 승려뿐 아니라, 무사에게 있어서도 유익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선을 자기들의 종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무사들이었다. 신비주의적 수행법이, 그 극치에 있어서 신비적 체험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행해지고, 무사가 일대 일의 전투 훈련법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곳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달리 발견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선이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최초의 시기부터 항상 그러했다. 12세기 일본 선종 의 개조, 에이사이가 저술한 저작은, <선을 보급함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논(흥선호국론)>이 라고 명명되었다. 그리고 선은 무사나, 정치가나, 검객이나,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아주 세속 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왔다. 찰스 엘리엇이 말하고 있듯이, 중국의 선종사 중에는 선이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군사적 훈련의 한 수단이 되는 것을 암시하는 사실 은 전혀 없다. "선은 다도나 '노가쿠'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일본적인 것이 되었다. 12세기 및 13세기의 동란 시대에, 경전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직접 체험 속에서 진리를 발 견해 내려는 이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이, 승원이라는 피난처 속에서 세상의 폭풍을 피해 출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일이겠지만, 설사 그것이 무사 계급이 애호하는 생활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 렇게 된 것이다." 불교와 '신토(신도)'를 포함하여 일본의 많은 종파는, 명상이나, 자기 최면이나, 황홀 상태 등의 신비적 수행법에 매우 큰 역점을 두어 왔다. 그런데 그런 종파들 중의 어떤 것은, 이와 같은 훈련의 결과를 신의 은총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그 철학의 근저를 '다리키(타력)'-즉 '타인의 힘에 매달리는 것'-즉 은혜를 갚은 신의 힘에 매달리는 것 위에 두고 있다. 이와 반 대되는 종파에서는, 선이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예지만, '지리키(자력)' 즉 자신의 힘만 을 의지한다. 이들 종파는, 가능한 힘은 자기 속에만 존재하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그 것을 증대할 수가 있다고 가르친다. 일본의 무사들은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성품에 꼭 맞는 가르침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승려로서 활동할 때에도, 정치가로서 활동할 때도, 혹 은 교육자로서 활동할 때에도-이런 직능은 모두 무사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이다-선의 수행 법을 강건한 개인주의를 받쳐 주는 지주로서 이용했다. 선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 가 되는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의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 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 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불타의 가르침이든, 경전이든, 신학이든, 일체의 간접적인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3승 12분경은 모두 부정을 씻는 휴지이다." 그것을 연구해서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자기 영혼 속에서 전광이 한 번 번쩍 빛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 전광 일섬만이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선의 문 답집 속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제자가 선승에게 법화경의 해설을 요구한다. 선승은 실로 훌 륭한 해설을 해 준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고 있던 제자는 낙심한 듯이, "놀랍습니다. 저는 선승은 경전이나 이론이나 논리적 설명의 체계 따위는 경멸하고 계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 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승은, "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깨달음)' 은 모든 경전, 모든 문헌의 밖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너는 '아는 것(깨달음)'을 원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경전의 설명을 듣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선의 교사들이 가르친 전통적인 훈련은, 제자에게 '깨닫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 로 하는 것이었다. 훈련은 육체적인 경우도 있고, 정신적인 경우도 있었으나, 어느 경우에나 마지막은 학습자의 내면적 의식에서 그 효력이 확인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검술가의 선 수행 은 이에 대한 좋은 예증이 된다. 물론 검객은 칼의 올바른 사용을 배우고, 또 그것을 끊임없 이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아무리 검술을 잘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능 력' 영역에 속하는 사상이다. 그는 그 위에 다시 '무가'가 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우선 처음에는 평평한 바닥 위에 세워져, 그의 몸을 받치는 겨우 몇 인치의 바닥 표면 에 정신을 집중하도록 명령받는다. 그의 발판이 이 아주 좁은 면적을 점점 높게 하여, 마침 내 그가 1미터 높이의 기둥 위에 마치 뜰에 서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태연히 서 있을 수 잇 게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때 비로소 그의 마음은 현기증을 느 끼게 하거나, 전락의 공포를 품게 해서, 그를 배반하는 일이 없게 된다. 이 기둥 위에 서 있는 일본의 수행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중세 서구의 성 시메온파의 기 둥 행자의 고행을 의도적인 자기 훈련으로 변형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고행이 아니다. 그것 이 선의 수행이든, 농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습관이든, 일본에서 모든 종류의 육 체적 훈련은 모두 이런 종류의 변형을 거치고 있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얼 음처럼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거나 산 속의 폭포수를 맞거나 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 는 육체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경우에는 신의 자비를 얻기 위해, 또 어느 경우에는 황홀 상 태를 맛보기 위한, 극히 보통의 고행으로 되어 있다. 일본인이 애호하는 '간교(엄행)'는 동이 트기 전에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폭포 속에 서거나 앉는 일, 혹은 겨울 밤에 냉수를 세 번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은, 마침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될 때까지, 의식적 자 아를 훈련하는 일이다. 물의 차가움도, 추운 미명의 떨림도 의식 위에 떠오르지 않게 되었을 대, 그 사람은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 밖에는 아무런 보답도 요구하지 않는다. 정신적 훈련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자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사를 모시는 일은 있어 도, 교사는 서구적인 의미로 '가르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자가 자기 이외의 원천으로 부터 배우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제자와 토론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 지만, 상냥하고 친절히 제자를 지도하여 새로운 지식의 영역으로 유도해 줄 수는 없다. 제자 를 가장 난폭하게 다루는 교사가 가장 도움이 되는 교사라고 여겨진다. 스승이 갑자기, 제자 가 입으로 가져가려 하는 찻잔으로 쳐서 깨버리거나, 다리를 걷어차 자빠지게 하거나, 독경 할 때나 설법할 때 손에 쥐는 여의로 제자의 손가락 관절을 때리거나 하면, 제자는 그 충격 을 받는 그 찰나에 갑자기 마치 전류에 닿은 것처럼 깨달음을 얻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 의 자기 만열을 때려부수는 것이었다. 승려의 언행을 기록한 책은 이런 종류의 삽화로 가득 차 있다. 제자에게 전력을 다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기 위해 가장 애용되는 방법은 '고안 (공안)'이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가 1,700종이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선승의 일화집을 보면, 하나의 '고안'을 풀기 위해 7년의 세월을 소비한 사람쯤은 예 사였다. '고안'은 합리적 해답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쌍수의 소리를 듣는 다."라든가 또 "태어나기 전의 어머니가 그립다."라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시신 을 업고 걷고 있는 자는 누구냐?"라든지, "나를 향하여 걸어오는 자는 누구냐?"라든지, "만 법은 하나로 돌아온다.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선의 '고안' 은, 12세기 혹은 13세기 이전의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선종과 함께 이 수단들을 채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안'은 중국 대륙에서는 전멸해 버렸는데, 일본에서는 '숙달' 수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선의 입문서에서는 '고안'을 매우 중요시 하여 다루고 있다. "고안은 인생의 딜레마를 포장하고 있다." '고안'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마치 '뜨거운 철 덩어리를 삼키 려 하는' 가람과 비슷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는 '철괴(선서에는 철수)를 물어뜯으려 하는 모기'이다. 그는 정신 없이 더 한층 노력을 거듭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과 '고안'의 사이 를 가로막아 있던 '보는 자아'의 장벽이 제거된다. 전광의 섬광처럼 빨리, 양자-마음과 '고 안'-가 융합한다.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와 같은 극도로 긴장한 심적 노력의 묘사를 읽은 후에, 선승의 언행록을 펴 보고, 이만 큼의 노력을 기울여 얻어진 위대한 진리를 찾아 보면, 약간 허탈해지는 느낌을 갖는다. 이를 테면 남악은, "나를 향하여 걸어오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8년 간 생각하고 또 생각 했다. 그 결과 마침내 그는 이해했다. 그의 말은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고 하는 바로 그 순 간에, 전체가 도망쳐 버린다."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선의 계시에는 일정한 전반에 통하는 틀이 있다. 그것은 다음 몇 줄의 문답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승: 어떻게 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할 수 있을까요? 사: 너를 속박하고 있는 자(즉, 이 윤회에 너를 얽매어 놓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이 배우는 것은, 유명한 중국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그때까지 그들은 '소에 탄 채 소 를 찾고'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필요한 것은 그물이나 덫이 아니고, 그런 도구로 잡을 물 고기나 짐승이다."라는 것을 배운다. 이것을 서구식의 표현으로 고쳐서 말하면, 그들은 딜레 마의 양 각은, 모두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은 만일 심안이 열리기만 하 면, 목전에 있는 손쉬운 수단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일이라도 가 능하다. 그것도 자기 이외의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말이다. 일본에서 행해지는 '고안'의 의의는 이들 진리 탐구자가 발견하는 진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진리는 전 세계 도처의 신비주의자가 발견하는 진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고안'의 의의는, 그것이 일본인이 진리 의 탐구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점에 있다. '고안'은 '문을 두드리는 벽돌'이라고 불리고 있다. '문'은, 눈앞에 있는 수단만으로 과연 충 분할까 하고 지레 걱정을 하고, 자기의 행동을 혹은 칭찬하고 혹은 비난하는 무수한 사람들 이, 감시의 눈을 번쩍이고 있다고 망상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인간성의 주위에 둘러쳐진 벽 에 붙어 있다. 이 벽은 모든 일본인이 대단히 절실하게 느끼는 '하지(치욕)'의 벽이다. 벽돌 로 문을 두들겨부수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은 자유의 천지로 해방되어 벽돌을 내던져 버 린다. 이제 그 이상 '고안'을 푸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수행은 완료되고, 일본인의 덕의 딜레 마는 해결된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인 기세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갔다. '수행을 쌓기 위 해' 그들은 '철우를 무는 모기'가 되었다. -'기무'와 '기리'의 사이, '기리'와 인정의 사이, 정의 와 '기리'의 사이에도 역시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한 가닥의 혈로를 발 견했다.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처음으로 충분히 인생을 '맛볼' 수가 있다. 그들은 '무가 (무아)'의 경지에 달한다. 그들의 '숙달' 훈련은 훌륭하게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선불교 연구의 권위자인 스즈키는 '무가'를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이 전혀 없는 삼 매경', '무노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는 나(아)'는 배제된다. '사람은 나를 잃는다' 즉, 이 미 자기의 행위의 방관자가 아니게 된다. 스즈키는 말하고 있다. "의식이 눈을 뜨자마자, 의 지는 행위자와 방관자의 둘로 분열된다. 그리고 반드시 모순 상극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행 위자(로서의 나)는, 방관자로서의 나의 구속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 달음'에 있어서 제자는 보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미지의, 혹은 불가지의 양으로서 의 영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뿐이다.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자는, 이 표현을 조금 고치면, 그대로 그 것을 일본 문화의 특성을 가리키는 말로 나타낼 수가 있다.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일본인은 자기의 행위를 관찰하고, 타인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그 시비를 판단 하도록 철저히 훈련받는다. 그의 '보는 나'는 매우 상처 입기 쉽다. 영의 삼매경에 몰입할 때, 그는 이 상처 입기 쉬운 자아를 배제한다. 그는 이제, '지금 내가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그때 그는, 이로써 자기는 마음의 수양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것은 검술을 배우 는 사람이, 자기는 이제 겁먹지 않고 1미터의 기둥 위에 서는 훈련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가도, 시인도, 연설가도, 무사도, 마찬가지로 이 '무가(무아)'의 훈련을 이용한다. 그들이 습득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미를 명료하게 방해받음이 없이 지각하는 것인데, 혹 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꼭 알맞은 정도의 노력을 하 수가 있도록, 수단과 목적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전혀 훈련을 받은 일이 없는 사람조차, 일종의 '무가' 경험을 하는 일이 있다. 노극이나 가부키극을 구경하는 사람이, 무대에 빨려들어가 완 전히 자신을 잃어버릴 때에도 역시, '보는 나'를 잃는다고 말한다. 그는 손에 땀을 쥔다. 그 는 '무가의 땀'을 느낀다. 목표에 근접하는 폭격기의 탑승원도 드디어 폭탄을 투하하기 직전 에, '무가의 땀'을 흘린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의식에서 는 방관자로서의 자아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다른 일에는 일체 정신을 팔지 않고, 오로지 열심히 적기의 동태를 살피는 고사포의 사수 또한 마찬가지로, '무가의 땀'을 흘린다 고 하며 '보는 나'를 잃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 놓여져 있는 사람은, 이상의 어느 경우 에 있어서도 최상의 컨디션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일본인이 자기 감시와 자기 감독을 얼마나 중압으로 느끼고 있는가를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제약이 없어졌을 대 자유로워지고, 마음껏 일할 수가 있 다고 말한다. 미국인은 '보는 나'를 자기 안에 있는 이성적 원리로 간주하고, 위기에 임해서 도 빈틈없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행동하는 것을 자랑으로 하는데, 이에 반하여 일본인 은 영혼의 삼매경에 몰입하여 자기 감시가 과하는 제약을 잊을 대, 지금까지 목 둘레에 매 여 있던 무거운 맷돌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문화는 그들의 영혼에,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시끄럽게 들려 준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에 대하여, 이런 무거운 짐을 내팽개쳐 버린 데에 한층 유효한 일 을 할 수 있는 인간의식의 평면이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대항해 왔던 것이다. 일본인이 이 신조를 표명하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적어도 서구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 다-표현은, '죽은 셈치고'라는 표현으로, 그들은 '죽은 셈치고 사는' 사람을 매우 높이 평가한 다.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서구어로 번역하면, 우선 '산 송장'이라고 하겠는데, 서구의 어느 나라의 언어에서도 이 '산 송장'이라는 말은 혐오의 표현이다. 이 표현에 의하여 우리들은, 어떤 인간의 자아가 사멸하여, 이 지상에 오직 귀찮은 존재로서 남아 있는 그의 육체에서 떠나버린 것을 나타낸다. 이미 그 인간 속에는 전혀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일본 인은, '죽은 셈치고 산다'라는 표현을, '숙달'의 평면에서 산다는 의미로 쓴다. 그것은 극히 보편적인 일상적 사항에 관하여 누군가는 소년을 격려할 때, 사람들은 흔히 "죽은 셈치고 치러 봐라, 쉽게 합격한다."라고 말한다. 중대한 상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을 격려하는 경우 에도, 흔히 그 사람의 친구는 "죽은 셈치고 해 보라고."하고 말한다. 중대한 정신적 위기에 직면하여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사 람들은 '죽은 셈치고' 살 결심을 하여 그 궁지를 벗어난다. 종전 후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 된 위대한 그리스도 교 지도자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의 자전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마치 악마에 끌린 사람처럼 그는 매일 자기 방에서 울면서 지냈다. 그의 발작적 으로 흐느끼는 울음 소리는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고뇌는 1개월 반이나 계속되었으나, 마침 내 마지막에 생명이 승리를 얻었다. (중략) 나는 죽음의 힘을 몸에 지니고 살아가리라. (중 략) 나는 죽은 셈치고 싸움 속으로 뛰어들어가자. (중략) 나는 크리스천이 될 결심을 했다." 전쟁중 일본의 군인은 흔히, "나는 죽은 셈치고 살아, 황은에 보답할 각오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출정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집행하거나, 자기의 몸은 "이오지마의 흙이 되 게 하겠다."고 맹세하거나, "미얀마의 꽃과 더불어 지겠다."는 각오를 다지거나 하는, 그러한 행동을 일괄하여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무가(무아)'의 근저에 있는 것과 같은 철학이, '이 죽은 셈치고 산다'는 태도의 근저에도 숨어 있다. 이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일체의 자기 감시를, 또 일체의 공포심이나 경계심을 버린다. 그는 죽은 자, 즉 이미 올바른 행동 방침이라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를 초월한 사 람이 된다. 죽은 자는 이제는 '온(은)'을 갚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 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나의 활동 력과 주의력은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똑바로 목적의 실현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되 었다. 이제는 여러 가지 불안의 무거운 짐을 가진 보는 나(아)는, 나와 나의 목표 사이에 가 로막고 서 있지 않다. 보는 나와 더불어,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의 방해가 되어 있던 긴장과 노력의 의식 및 의기 소침에 빠지는 경향도 역시 없어졌다. 이제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이라 도 할 수 있다." 서구식으로 말하면, 일본인은 '무가(무아)'의 습관이나, 죽은 셈치고 산다는 습관에 있어서 의식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보는 나(아)', '방해하는 나'란, 인간 행위의 시 비 선악을 판단하는 감시자를 말한다. 서구인과 동양인의 심리적 차이를 실로 명료하게 엿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미국인이 양심을 갖지 않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행에 당연히 수반되는 죄의식을 이미 느끼지 않게 된 인간을 말하는 것인데, 이에 반하여 일본이 마찬가 지의 표현('무심', '무념무상' 등)을 사용할 때에는, 그것은 이미 굳어지지 않고 방해받지 않 게 된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악인의 뜻이고, 일본에서는 선인, 즉 수행을 쌓은 인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 수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가장 곤란한, 헌신적인 무사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미국인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요구 하는 강력한 강제력을 죄의식이다. 양심이 마비되어 버려서 이미 죄를 느낄 수 없는 인간은,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본인은 문제를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 그들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그 마음의 밑바닥에 있어서는 선이다. 만일 충동이 그대로 즉시 행위 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 인간은 쉽게 선행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숙달'의 수행을 쌓아, '하지(치욕)'의 자기 감시를 배제하려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제6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 상극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이다. 일본인의 자기 훈 련의 철학은, 일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개개의 일본인의 생활 체험에서 떼어 내어 고찰 하는 한,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그들이 '보는 나'로 귀속시키고 있는 이 '하지'의 의식이, 얼마나 무겁게 일본인을 덮어 누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지만, 그들의 정 신 통어 철학의 참된 의미는, 일본의 어린이를 기르는 법을 설명하지 않는 한은 여전히 불 확실하다. 어느 문화에 있어서도, 전통의 도덕적 규율은 차례차례로 새로운 세대에, 단순히 말에 의해서 뿐 아니라 연장자의 자기 자식에 대한 모든 태도에 의해 전해진다. 그리고 국 외자에게는, 그 나라의 어린아이를 기르는 법을 연구하지 않고,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인생 의 중대사로 여기고 있는 사항을 이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의 어린아이 를 기르는 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들이 지금까지 성인의 경우만을 다루어서 설명해온, 일본 인이 국민 전체로서 품고 있는 인생에 관한 가정의 많은 부분이 더 한층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