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불의잔 제4권의 4 저자: 조앤 k 롤링 옮긴이: 김혜원, 최인자 출판사: 문학수첩 제29장 꿈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 보는 게 좋겠어. 크라우치가 빅터를 공격했거나 아니면 빅터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두 사람을 공격한 것이 틀림없을거야." 헤르미온느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크라우치가 분명해. 그러니까 덤블도어와 해리가 도착했을 때, 어디론가 사라진 거야. 크라우치는 재빨리 달아나고 있었겠지." 론이 투덜거리면서 밝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크라우치는 거의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어. 그런 상태로는 순간이동이나 다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 해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호그와트 내에서는 순간이동을 할 수가 없어, 아직도 몇 번이나 더 말해야 알아듣겠니?"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크룸이 크라우치를 공격한 거야. 아니, 잠깐만.. 내 말을 조금만 더 들어봐. 그런 다음에 자기 자신에게 기절 마법을 쓴 거지!" 론이 흥분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크라우치 씨가 증발해 버렸단 말이니? 그래?" 헤르미온느가 비꼬았다. "아, 그건..." 새벽에 어슴푸레 밝아 오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서둘러 기숙사를 빠져나와서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부엉이장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세 사람은 창문 너머로 안개가 잔뜩 낀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사람 모두 눈이 푸석푸석하고 안색이 창백했다. 한밤중까지 크라우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해리, 다시한번 자세히 얘기해봐, 크라우치가 분명히 뭐라고 말했니?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이미 말한 대로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덤블도어에게 뭔가 경고를 하고 싶다고말했어. 버사 조킨스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을 했는데 아마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계속해서 그 일이 자기 잘못이라고 중얼거렸지... 자기 아들 얘기도 했어." 해리가 대답했다. "그래, 그건 크라우치의 잘못이었어." 헤르미온느가 냉정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라우치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때에는 아내와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퍼시에게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어.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말했다고 한 것 같은데?" 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벌써 사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야." 해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크라우치는 제 정신이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그 말의 절반 정도는 그저 헛소리였을 거야..." 론은 짐짓 아무럿지도 않은 듯이 씩씩하게 말했다. "볼드모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에는 말짱한 제 정신이었어." 론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것을 무시하면서 해리는 말했다. "두 단어 이상을 연결해서 말하는 걸 무척이나 힘들어 했어. 하지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어. 덤블도어를 만나고 싶다고 계속 말했으니까 말이야." 해리는 창문에서 등을 돌려 서까래를 올려다 보았다. 수 많은 횃대의 절반 정도가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씩 끊이지 않고 부엉이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는데, 모두 밤사냥에서 잡은 생쥐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만약 스네이프가 나를 가로막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제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을 거야, '교장선생님은 무척 바쁘시단다. 포터...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 어째서 스네이프는 그냥 길을 비켜 주지 않았을까?" 해리가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어쩌면 네가 덤블도어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어쩌면... 아니, 잠깐만... 스네이프가 얼마나 빨리 숲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니? 혹시 너와 덤블도어보다 먼저 숲에 도착한 건 아닐까? 두 사람을 앞질러서 갈 수도 있잖아." 론이 재빨리 말했다. "박쥐나 뭐 그런 걸로 변신하기 전에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해리가 대답했다. "스네이프라면 충분히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것 같아..." 론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먼저 무디 교수님을 만나 보는게 좋겠어. 크라우치를 찾았는지 알아봐야 하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무디가 비밀 지도를 가지고 나왔다면 크라우치가 어디 있는지 쉽게 찾았을 텐데..." 해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크라우치가 이미 학교 밖으로 나가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그랬겠지. 비밀 지도에는... 학교 내부만 나타나잖아." 론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쉿!"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해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건 협박 편지야. 그러니까 어쩌면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질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러니까 되도록 점잖게 썼잖아. 지금은 더럽게 굴어야 할 때야.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그 사람도 마법부에서 자기가 저지른 짓을 알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거야." "내가 한 번 더 말하지만 그 편지를 보낸다면 그건 명백한 협박이야!" "그래 하지만 너도 우리가 두둑이 돈을 받게 되면 불평하지는 않겠지, 그렇지?" 마침내 부엉이장이 활짝 열렸다. 부엉이장의 문턱을 넘어오던 프레즈와 조지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보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뭘하는 거야?" 론과 프레드가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편지를 보내려고..." 해리와 조지가 어색한 목소리로 똑같이 대답했다. "뭐라구? 이 시간에?" 이번에는 헤르미온느와 프레드가 합창을 했다. "좋아. 너희들이 우리가 뭘 하는지 묻지 않는다면, 우리도 너희들이 하는 일을 묻지 않겠어." 프레드가 씩 웃으면서 제안했다. 프레드의 손에는 봉인된 봉투가 들려 있었다. 해리는 슬쩍 넘겨다보려고 했지만,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프레드가 봉투에 적힌 이름을 손으로 가려 버렸다. "좋아, 이제 그만 비켜 주시지." 프레드는 조롱하듯이 꾸벅 절을 하면서 문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거야?" 론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순간 프레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해리는 조지가 프레드를 힐끗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조지는 곧 론을 향해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그냥 농담한거야." 조지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지 않은걸?" 론은 좀처럼 물러설 기색이 아니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 보았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적 있지, 론. 그냥 생긴대로 살아가고 싶으면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란 말이야. 도대체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형들이 누군가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다면 그건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해. 조지 형 말이 맞아. 결국 형들은 그것 때문에 아주 심각한 곤경에 빠질 거야." 론이 말했다. "내가 말했지, 그냥 농담이라고 말이야." 조지는 프레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그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외양간 부엉이의 발에 편지를 매기 시작했다. "론, 너는 어째서 점점 우리의 친애하는 형님과 비슷해지기 시각하는 것 같니?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너야말로 반장이 되겠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론이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조지는 외양간 부엉이를 창가로 데려가더니 하늘로 휙 날려 보냈다. "좋아, 그럼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 지 묻고 다니지마!. 나중에 보자" 조지는 뒤로 돌아서더니 론을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잠시 후에 조지와 프레드는 부엉이장에 나갔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프레드와 조지가 이 모든 일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크라우치와 그 밖의 다른 일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아니야, 그렇게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었다면 분명히 누군가와 상의했을거야. 덤블도어에게 말을 했겠지." 해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론은 못내 불안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가 론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냥... 나는 잘 모르겠어, 과연 형들이 그렇게 할까? 형들은... 요즘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거든. 형들하고 어울릴 때 그 사실을 알아차렸어. 그러니까 그때 말이야, 너도 알잖아..." 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서로 말 안하고 지낼 때 말이지" 해리가 론은 대신해서 말했다. "그래 하지만 협박편지라니..." "형들은 장난감 가게를 차리려는 생각을 갖고있어. 나는 그저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형들은 그게 진심이었어, 정말로 장난감 가게를 차리고 싶어해. 형들은 장난감 가게를 시작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지만 아빠는 형들을 도와 줄 수 없거든." "그렇구나,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짓을 하지는 않을거야, 그렇지 않니? 헤르미온느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난 모르겠어, 사실 형들은 규칙을 어기는 일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잖아? 안그래?" 론은 아주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건 법이야, 이건 시시한 학교 규칙 따위가 아니라구... 협박 편지를 보낸다면 구류 이상의 아주 심한 벌을 받게 될 텐데! 론... 어쩌면 퍼시에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 헤르미온느는 덜컥 겁이 난 것 같았다. "정신나갔어?" 론이 펄쩍 뛰면서 소리쳤다. "펴시에게 말을 하라구? 퍼시는 아마도 당장 크라우치처럼 형들을 잡아넣을 걸?" 론은 한참동안이나 프레드와 조지의 부엉이가 날아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만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무디 교수님을 찾아기가에는 시간이 너무 이를까?"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면서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럴거야, 만약 우리가 이른 새벽부터 무디교수님을 깨우면 아마도 교수님은 당장 문 밖으로 우리를 날려 보낼걸? 무디 교수님이 잠자고 있는 틈을 타서 습격하러 온 줄 알고 말이야. 그러니까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자." 해라가 말했다. 마법의 역사 시간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느리게 지나갔다. 해리는 자꾸만 론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고장난 시계를 결국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론의 시계가 어찌나 느릿느릿 움직이던지 해리는 그 시계마저도 고장이 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해리와 론은 둘다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책상에 머리를 들이박고 꾸벅 졸았다. 심지어 헤르미온느조차도 늘 빼놓지 않고 하던 필기도 하지 않고 손으로 턱을 괸채,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으로 빈스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종이 울리자, 서둘러 교실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막 복도로 걸어나오는 무디 교수를 발견했다. 무다 교수도 그들만큼이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상적인 눈의 눈꺼풀이 축 처져서 평소보다 더욱더 얼굴이 비뚤어진 것처럼 보였다. "무디 교수님?" 해리가 와글거리는 학생들 사이를 뚫고 무디에게 다가가 이사했다. "잘 있었니, 포터?"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무디의 마법의 눈은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두 명의 1학년생들을 줄곧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종종걸음을 치면서 도망쳤다. 마법의 눈은 무디의 뒤통수까지 돌아가서 모퉁이를 돌아서는 두 명의 1학년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무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리 오너라." 무디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에게 비어 있는 교실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뒤따라 들어오더니 교실 문을 닫았다. "찾았나요, 크라우치 씨를?" 해리가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다." 책상 앞으로 다가간 무디는 조용히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희미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나무 다리를 쭉 뻗더니 휴대용 물병을 꺼냈다. "비밀지도를 사용해 보셨나요?" 해리가 물었다. "물론이지, 포터, 나도 네 흉내를 내서 사무실에 있는 호그와트의 비밀 지도를 숲까지 불러왔단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어디에도 없었어." 무디는 후대용 물병에 담긴 것을 한모금 들이켰다. "그렇다면 순간이동을 한건가요?" 론이 잔뜩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론, 여기서는 순간이동을 할 수가 없다고 몇 번 말했니?"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혹시 크라우치 씨가 사라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나요? 교수님?" 헤르미온느에게 쏠린 무디의 마법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장차 오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여기 또 한명 있구나, 그레인저, 생각하는 것이 아주 정확해." 무디의 칭찬을 들은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투명 인간이 된 것도 아니에요. 그 비밀 지도에는 투명인간도 나타나거든요. 결국 크라우치 씨는 학교를 빠져나간 거군요." 해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 나갔을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을 끌고 간 것일까?" 헤르미온느가 열성적으로 말했다. "그래, 누군가가 그랬을 수도 있어. 크라우치 씨를 빗자루에 태우고 날아가 버린 거야. 그렇지 않나요. 교수님?" 론은 재빨리 기대에 가득 찬 눈길을 무디에게 던졌다. 론도 무디로부터 장차 오러가 될 만한 재목감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납치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무디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호그스미드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론이 물었다. "어딘가에 있겠지." 무디가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확실히 알고 있는 단 한가지 사실은 크라우치가 이곳에 없다는 것뿐이야." 무디는 얼굴의 상처가 쫙 늘어나고 일그러진 입술사이로 이빨이 빠져 버린 자리가 다 드러날 정도로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런 후에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덤블도어에게서 너희 세 사람이 탐정놀이를 즐긴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크라우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이제부터는 마법부에서 크라우치의 행방을 수색할 거야, 덤블도어가 보고를 했으니까... 포터, 너는 세 번째 시험에 정신을 집중토록 해라." "네?" 해리는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아, 네..." 지난밤에 빅터 크룸과 함께 경기장에서 떠난온 이후로는 미로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시험은 네가 아주 딱 들어맞는 것일지도 몰라. 덤블도어의 말을 들으니까, 너는 옛날부터 그런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하더구나. 1학년 때는 마법사의 돌을 지키는 장애물들을 뚫고 지나갔다면서?" 무디는 상처 자국이 나고 우둘투둘한 턱을 긁으면서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도와주었어요. 저와 헤르미온느가 도와주었죠." 론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래, 이번에도 해리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렴. 만약 해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나는 무척 놀랄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경계를 늦추면 안돼. 포터. 언제나 깨어 있도록 하거라." 무디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무디는 다시 휴대용 물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무디의 마법의 눈이 창문을 향해 빙그르르 돌아갔다. 창 밖으로는 덤스트랭 배의 돛대가 보였다. "너희 두 사람은(무디의 정상적인 눈이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했다) 반드시 포터 옆에 꼭 붙어 있거라, 알았지? 나도 항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감시하는 눈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다음날 시리우스는 부엉이를 돌려보냈다. '예언자 일보'를 부리 사이에 문 황갈색 부엉이가 헤르미온느 앞에 내려앉는 것과 동시에 해리의 부엉이도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날아들었다. 신문을 펼쳐든 헤르미온느는 처음 몇 장을 훑어 보았다. "하! 이 여자는 크라우치에 관한 건 감도 못 잡았군!" 헤르미온느는 신문을 내려놓은 후에 시리우스의 답장을 읽고 있는 론과 해리를 향해 다가갔다. 세 사람은 시리우스가 지난밤에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해리... 빅터 크룸과 함께 숲속을 거닐면서 노닥거리다니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다음 답장에는 앞으로 어느 누구와도 밤중에 산책을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적어 보내렴. 호그와트에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 있단다. 그 사람들이 크라우치와 덤블도어가 만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 분명해. 어쩌면 너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너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 네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란다. 만약 누군가가 너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거야. 론과 헤르미온느와 항상 붙어 다니도록 하거라.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리핀도르 탑을 떠나지 말고 세 번째 시험에 대비해서 열심히 훈련을 하도록 해. 기절 마법과 무장 해제 마법을 연습하거라. 몇 가지 주문도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된다. 크라우치에 대해서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단다. 항상 자중하면서 네 자신을 돌아보도록 해라. 네가 다시는 규율을 어기고 허튼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 보내기를 고대하고 있겠다. 시리우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규율을 어기지 말라고 훈계를 하는 거지? 자기가 학교에 다닐 때는 온갖 말썽을 다 부려놓고서!" 시리우스의 편지를 접어서 옷 속에 집어넣은 해리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잖아! 무디와 해그리드 역시 그런 말을 했잖아, 그러니까 그분들 말씀을 잘 듣도록 해!"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쏘아보면서 야단쳤다. "한 해가 다 지나가도록 아무도 나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어. 어느 누구도 나에게 무슨 짓을 한 적이 없잖아." 해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이름을 불의 잔에 집어넣은 것 이외에는 말이지, 해리, 그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는 데에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스누플즈의 말이 맞아, 어저면 그들은 적당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이번 시험이 그들이 노리는 기회인지도 모르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좋아, 스누플즈가 옳다고 하자. 누군가 크라우치를 납치하기 위해 쿠룸을 공격해서 기절시켰어. 그래, 그들은 바로 우리 근처의 나무 뒤에 숨어 있었겠지. 안 그래? 그런데 내가 멀리 떠나갈 때까지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기다렸어, 그렇지? 그래도 내가 그들의 목표물처럼 보인단 말이야? 그래?" 해리가 짜증을 내면서 소리쳤다. "숲속에서 너를 살해하면, 도저히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게 할 수가 없잖아! 하지만 시험을 치르다가 죽게 되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하지만 크룸에겐 전혀 개의치 않고 공격했어, 그렇지? 왜 그들은 동시에 나를 공격해서 깨끗하게 해치우지 않았을까? 마치 나와 크룸이 결투 같은 걸 하다가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해리는 마치 따지기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나도 도무지 이해가 안돼. 해리. 내가 아는 것은 계속해서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야. 어쩐지 기분이 나빠... 무디의 말이 맞아. 스누플즈의 말도 맞아. 너는 세 번째 시험에 대비하는 훈련을 해야만 돼. 지금부터 당장 말이야. 그리고 스누플즈에게 답장을 써서 다시는 몰래 혼자 빠져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헤르미온느가 체념한 듯이 말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하는 해리에게는 호그와트의 운동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몇일동안 해리는 자유 시간을 온통 헤르미온느와 론과 함께 도서관에서 주문을 찾으면서 보냈다. 혹은 빈 교실로 몰래 들어가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해리는 특별히 기절 마법을 익히는 일에 모든 정신을 쏟았다. 기절 마법은 해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이 주문을 연습하려면 론과 헤르미온느의 절대적인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노리스 부인을 납치해서 데리고 오면 안 될까?" 월요일 점심 시간에 마법 교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론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론은 벌써 오십번째 기절을 했다가 방금 전에 깨어난 상태였다. 해리의 연습 상대였던 론은 기절 마법을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고양이를 잠깐 기절시키도록 하자. 아니면 도비를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비는 너를 돕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해리. 물론 내가 불평이나 뭐 그런 걸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 론이 등을 문지르면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이거야, 원... 온몸이 쑤셔서...!" 헤르미온느가 추방 마법을 연습할 때 사용했던 방석 더미를 다시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그 방석은 플리트윅이 캐비닛 속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뒤로 잘 쓰러지려고 노력해 봐!" "일단 기절 마법에 걸리면 조준이 잘 되지 않는단 말이야. 헤르미온느! 그런데 왜 너는 차례가 안 돌아오는 거지?" 론이 화를 내면서 물었다. "글세... 어쨌거나 해리는 이제 기절 마법을 어느 정도 연습한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황급히 말했다. "그리고 무장해제 마법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그 마법은 벌써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거니까... 오늘 저녁부터는 이 주문들 중에서 몇 가지를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어. 나는 이게 그럴듯해 보여, 장애 마법, 너를공격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천천히 움직이도록 만드는 거야. 해리, 이것부터 시작해 보자." 헤르미온느가 도서관에서 뽑아온 마법 목록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때 종이 울렸다. 세 사람은 서둘러 흩어진 방석을 다시 플리트윅의 캐비닛 속에 집어 넣고 교실을 나갔다. "저녁 식사 때 보자." 헤르미온느는 산술점 수업을 들으러 가고, 해리와 론은 점술수업을 위해 북쪽 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높은 창문을 통해 눈부신 황금빛 햇살이 복도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마치 에나멜을 칠해 놓은 듯이 푸른빛으로 반짝거렸다. "트릴로니 교수님이 있는 교실은 펄펄 끓고 있을 거야. 절대로 벽난로 불을 끄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야." 은빛 사다리와 뚜껑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론이 불만을 터뜨렸다. 과연 론의 말이 적중했다. 희미하게 불이 밝혀진 교실은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뜨거웠다. 향수 냄새가 풍기는 벽난로의 불은 오늘따라 더욱 짙은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 자리로 걸어가던 해리는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램프에 걸린 숄을 풀기위해 다른 쪽을 바라보는사이에, 해리는 커튼을 아주 조금 젖히고 무명 덮개가 씌워진 팔걸이 의자를 뒤로 약간 밀었다. 그러자 부드러운 바람이 해리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었다. "여러분" 트릴로니가 교탁 앞에 놓여 있는 날개 달린 의자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트릴로니는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눈을 반짝이면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우리는 이제 점성술 공부를 거의 다 끝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화성의 영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화성은 대단히 흥미로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이쪽을 쳐다보면 불빛을 희미하게 하겠습니다..." 트릴로니가 요술지팡이를 흔들자 저절로 램프가 꺼졌다. 이제 벽난로만이 교실을 비추고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트릴로니는 허리를 숙이더니 의자 밑에서 커다란 유리 반구 안에 태양계를 축소해서 만들어 놓은 모형을 꺼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형이었다. 아홉개의 행성들과 활활 타오르는 태양 주위에는 제각기 달들이 반짝이면서 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별들이 유리반구 속의 허공에 떠 있었다. 해리는 트릴로니 교수가 화성과 해왕성이 만들어 낸 환상적인 각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짙은 향기가 해리를 엄습했다. 창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해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튼 뒤의 어딘가에서 벌레가 부드럽게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해리의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수리 부엉이의 등에 올라탄 해리는 맑고 투명한 하늘을 가로질러, 언덕 위에 우뚝 세워진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낡은 저택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수리 부엉이가 낡은 저택을 향해 서서히 하강하자. 상쾌한 바람이 해리의 얼굴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마침내 그들은 깨진 유리창을 통해서 어두운 집의 이층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들은 복도를 따라 제일 끝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문으로 들어가자 나무판자를 덧댄 창문이 있는 어두운 방이 나타났다. 해리는 수리 부엉이 등에서 내렸다... 해리가 지켜보는 동안, 수리 부엉이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방 안을 가로 질러서 의자가 놓여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의자는 등이 돌려져 있었다. 의자의 양쪽에눈 두 개의 검은 형체가 있었는데 두 개 모두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나는 거대한 뱀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었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지고 축축한 눈동자에 코가 뾰족한 남자... 그 남자는 벽난로 깔개 위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해리는 그 남자가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는 운이 좋았다. 웜테일. 너는 참으로 행운아다. 네가 저지른 멍청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잘못된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자는 죽었다." 부엉이가 내려앉은 의자 깊숙한 곳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님! 주인님, 저는...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해서..." 웜테일이 입을 딱 벌렸다. "내기니." 차가운 목소리가 말을 이어 나갔다. "너는 운이 없구나, 결국 웜테일을 너에게 먹이로 주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절대로 걱정하지 말거라... 아직도 해리포터가 남아 있단다..." 그러자 뱀이 좌우로 머리를 흔들면서 쉭쉭거렸다. 해리는 날름거리는 뱀의 혓바닥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 웜테일, 앞으로 너의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줄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차가운 목소리가 웜테일을 향해 말했다. "주인님, 제발... 이렇게 빕니다." 의자 깊숙한 곳에서 요술지팡이 끝이 툭 튀어나오더니 웜테일을 향했다. "크루시오!" 차가운 목소리가 주문을 외우면서 중얼거렸다. 웜테일은 마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불에 타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그 처절한 비명 소리가 해리의 귀를 가득 채웠다. 또다시 해리는 이마의 상처가 칼로 찌르는 듯이 날카롭게 쑤셔오기 시작했다. 해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을 질렀다. 볼드모트는 분명히 해리의 비명을 듣게 될 것이다. 해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해리! 해리!" 해리는 번쩍 눈을 떴다. 해리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채, 트릴로니 교수의 교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마의 상처가 아직 까지도 강렬한 고통으로 인해 화끈거렸기 때문에 해리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고통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해리를 빙 둘러싸고 서 있었다. 론은 잔뜩 겁에 질려 해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괜찮니?" 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괜찮을 리가 없지! 포터, 그게 뭐였니? 전조? 환영? 도대체 뭘 보았지?" 트릴로니 교수는 완전히 흥분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트릴로니 교수의 커다란 눈동자가 해리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해리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면서 거짓말을 했다. 간신히 일어나 앉은 해리는 여전히 몸을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 뒤쪽 어두운 구석을 힐끗힐끗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의 목소리가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렸었다. "너는 이마에 난 네 상처를 움켜쥐고 있었어!. 너는 상처를 움켜쥔 채, 교실바닥을 뒹굴었단 말이다! 자, 어서! 포터,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한 경험이 아주 풍부하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병동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두통이 아주 심하거든요." 해리는 트릴로니 교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런! 너는 틀림없이 내 방에 흐르는 비상한 통찰력의 파동에 의해 자극을 받은 거란 말이다! 지금 내 방을 나간다면 네가 평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단 말이다!" 트릴로니 교수가 안타까운 듯이 소리쳤다. "저는 두통약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학생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중에 보자." 해리는 론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한 후에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호의를 무시당한 사람처럼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는 트릴로니 교수를 무시한 채 뚜껑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은빛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간 해리는 병동으로 가지 않았다. 병동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리우스는 상처가 다시 아프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라고 알려 준 적이 있었다. 해리는 시리우스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곧장 덤블도어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해리는 꿈 속에서 보았던 광경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프리벳 가에서 해리를 잠에서 깨어나도록 만들었던 꿈처럼 아주 생생하고 선명했다... 해리는 그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서 머리 속으로 하나 하나 다시 그려 보았다. 볼드모트가 웜테일에게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수리 부엉이는 그 실수가 만회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볼트모트를 찾아갔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웜테일은 뱀의 먹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리, 해리가 뱀의 먹이가 될 것이다. 해리는 아무 생각없이 덤블도어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비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무기 석상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문득 정신이 들어 눈을 깜박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시 뒤돌아서 간 해리는 이무기 석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해리는 자신이 여전히 암호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몬 방울?" 해리는 시험삼아 자신이 알고 있던 암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이무기 석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좋아." 해리는 이무기 석상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진주 방울. 지팡이 사탕. 피징 위즈비. 드루블즈의 풍선껌. 베르티 보츠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 오, 안 돼. 덤블도어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그냥 열려라, 그런 안되겠니?" 해리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정말로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야 한단 말이야. 아주 긴급한 일이야!" 하지만 이무기 석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이무기 석상을 발로 힘껏 걷어찼지만, 발가락만 아플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개구리 초콜릿!" 잔뜩 약이오른 해리는 아픈 발을 움켜쥐면서 닥치는 대로 지껄였다. "사탕 펜! 바퀴벌레 과자!" 갑자기 이무기 석상이 살아 움직이더니 펄쩍 옆으로 비켜섰다. 해리는 깜짝 놀라면서 눈을 깜박거렸다. "바퀴벌레 과자?" 해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난 그저 농담으로 말한 건데..." 열린 벽 사이로 서둘러 들어간 해리는 나선형의 돌계단에 올라섰다. 해리의 등 뒤에서 벽이 쿵 닫히더니 계단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놋쇠로 만든 고리가 달린 윤이 나는 박달나무 문 앞까지 해리를 데려다 주었다. 덤블도어의 사무실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에서 내려온 해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덤블도어, 나는 미안하지만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네! 전혀 연관성이 없단 말이야! 루도 베그만은 버사가 분명히 길을 잃어버렸을 거라고 말하고 있네. 나도 우리 생각대로라면 이미 지금쯤 버사를 찾아냈어야 했다는 건 인정하는 바일세. 하지만 더러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가 없어. 덤블도어, 그런 증거는 전혀 없단 말이야. 버사의 실종과 바티 크라우치의 실종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법부의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바티 크라우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장관?" 무디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앨러스터,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네. 하나는 크라우치가 마침내 이성을 잃고 - 이 점에 대해서는 자네도 동의할 거라고 믿네만, 그 사람의 개인적인 과거를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 미쳐서 어딘가를 방황하고 돌아다닌다는 걸세." 퍼지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코넬리우스, 만약 그렇다면 크라우치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방황을 하고 다니는 모양이군." "글쎄... 만약 그렇지 않다면... 크라우치가 사라진 곳을 조사하기 전까지 나는 일단 판단을 보류하겠네." 퍼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보바통 마차 근처라고 말했던가? 덤블도어, 자네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아주 능력 있는 교장이라고 생각하네. 춤 솜씨 또한 뛰어나지."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덤블도어, 이러지 말게! 자네는 해그리드 때문에 그 여자를 너무 좋게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들 모두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판명된 건 하나도 없다네. 그래, 자네는 해그리드가 전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괴물에 대한... 해그리드의 병적인 집착을 보면..." 코넬리우스가 버럭 화를 냈다. "나는 해그리드만큼이나 맥심 부인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네. 난 어쩌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코넬리우스." 덤블도어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식의 논쟁은 그만두는 게 어떤가?" 무디가 소리쳤다. "그래, 그래, 좋아. 그렇다면 운동장으로 내려가 보도록 하지." 코넬리우스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건 안 되겠군. 덤블도어, 포터가 자네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지금 문 밖에 와 있다네." 무디가 마법의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제30장 펜시브 갑자기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포터. 어서 들어오너라."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해리는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덤블도어의 사무실에는 전에도 한번 들어와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아주 아름다운 둥근 방이었으며 벽에는 호그와트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슴을 들썩거리면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의 책상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가느다란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손에는 연한 초록색 중절모를 들고 있었다. "해리! 어떻게 지냈느냐?" 퍼지가 해리를 향해 다가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냈어요."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방금 지난밤에 크라우치 씨가 운동장에 나타났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크라우치 씨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너라면서? 그게 정말이니?" 퍼지는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정면으로 해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네." 해리는 그들이 주고받은 말을 밖에서 듣지 못한 척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맥심 부인의 모습은 저혀 보지 못했어요. 사실 맥심 부인 같은 사람은 몸을 숨기는 게 무척 어려울 거예요. 안 그런가요?" 퍼지의 등 뒤에 서 있던 덤블도어가 눈을 찡끗하면서 해리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건 그렇구나. 으음... 해리,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잠깐 운동장을 둘러봐야겠다. 그러니까 너는... 그냥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 퍼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저는 교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해리는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재빨리 말했다. 덤블도어는 마치 탐색이라도 하듯이 해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기다리거라, 해리."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운동장을 조사하는 일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다." 세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해리의 곁을 지나서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잠시 후에 아래층 복도에서 무디의 나무 다리가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해리는 천천히 덤블도어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안녕, 퍽스." 해리가 다정하게 인사했다. 덤블도어 교수의 불사조인 퍽스는 문 뒤에 있는 황금 횃대에 앉아 있었다. 백조만한 크기에 진홍색과 황금색의 화려한 깃털이 달린 이 새는 기다란 꼬리를 흔들면서 유순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액자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를 지켜보면서,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이마의 상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해리는 손가락으로 상처를 문질러 보았다. 일단 덤블도어의 사무실에 들어오자 해리는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에는 다시 덤블도어를 만나서 꿈에 대해 죄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책상 뒤편의 벽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저기를 기운 누덕누덕한 마법의 모자가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은으로 만든 멋진 칼이 유리 상자에 담겨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었다. 해리는 자신이 2학년 때 마법의 모자 속에서 꺼냈던 바로 그 칼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원래 그 칼은 해리가 속해 있는 기숙사의 설립자인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것이었다. 해리는 실낱 같은 희망조차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순간에, 저 칼이 얼마나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묵묵히 그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해리는 문득 유리 상자 위에서 하얗게 반짝거리는 빛의 반점이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보았다. 해리의 등뒤에 있는 검은 캐비닛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하얀 은색 물체가 보였다. 캐비닛의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힐끗 퍽스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캐비닛의 문을 열었다. 캐비닛 안에는 얄팍한 돌로 만든 대야가 놓여 있었다. 대야의 가장자리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리가 알지 못하는 고대 룬 문자와 상징인 것 같았다. 반짝거리는 은색 빛줄기는 바로 그 대야에 담긴 내용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물질은 해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것과도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액체인지 기체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 그 물질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이었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표면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처럼 굽이치다가 또다시 구름처럼 부드럽게 흩어지거나 소용돌이치곤 했다. 그것은 액체로 만든 빛이나 혹은 고체로 만든 바람 같았다. 해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 물체를 손으로 직접 만져서 어떤 느낌인지 알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물질에 손을 집어넣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는 거의 4년에 걸친 마법 세계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옷 속에서 요술지팡이를 꺼내 들고 초조한 얼굴로 사무실을 한번 쓱 둘러본 다음, 대야 속에 담긴 물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해리는 신중하게 요술지팡이를 그 속에 살짝 담갔다. 은색 물질의 표면이 아주 빠르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해리는 자신의 머리를 캐비닛 속에 집어넣고 허리를 숙였다. 은빛이 감도는 물질은 점차 투명하게 변하더니 마침내 유리처럼 되었다. 해리는 돌로 만든 대야의 바닥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신비한 물질의 수면 아래서는 돌바닥 대신에 거대한 방이 보였다. 해리는 마치 천장에 뚫린 둥근 창문을 통해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방은 몹시 어둠침침했다. 해리는 아마도 지하실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창문은 하나도 없고 호그와트의 벽에 꽂혀 있는 것과 같은 횃불만이 주위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투명한 물질에 거의 코 끝이 닿을락말락 할 정도로 바싹 얼굴을 갖다댔다. 마녀와 마법사들이 방을 빙 돌아가면서 층층이 배열되어 있는 의자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방 한복판에는 빈 의자가 한 개 놓여 있었는데, 어쩐지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의자 팔걸이에는 굵은 쇠사슬이 달려 있는 것이, 아마도 의자에 앉은 사람을 묶어 놓는 모양이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호그와트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성에서 이런 장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더구나 대야 바닥에 비친 그 이상한 방에 가득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주로 어른들이었는데, 호그와트에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해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의 뾰족한 모자꼭대기 뿐이었지만, 모두들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대야는 둥글지만 그 안에 비친 방의 모습은 사각형이었다. 그러므로 방의 구석진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볼 수가 없었다. 해리는 좀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머리를 잔뜩 숙인 채,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해리의 코 끝이 그 이상한 물질에 살짝 닿았다. 그러자 덤블도어의 사무실이 크게 요동을 치더니, 해리는 대야에 있는 물질 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거꾸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해리의 머리는 단단한 돌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다. 해리는 무엇인가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공간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강력한 소용돌이처럼 해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해리는 대야 안에 나타났던 그 방의 제일 뒤쪽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맨 뒷줄의 의자는 다른 의자들보다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들어서 높은 돌천장을 바라보았지만, 자신이 방금 전까지 들여다보고 있던 둥근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시커멓고 단단한 돌뿐이었다. 해리는 숨을 헐떡이면서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방에 있는 마법사와 마녀들(적어도 2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은 아무도 해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방금 열네 살 짜리 소년이 천장에서 뚝 떨어졌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얼떨결에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해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조용한 방이 진동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바로 오른쪽 자리에 알버스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해리는 목이 졸린 사람처럼 꺽꺽거리면서 간신히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캐비닛 안에 있는 그 대야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제가... 제가 지금 어디 있는거죠?" 하지만 덤블도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쳐다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전혀 보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한쪽 구석을 열심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구석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힐끗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한 곳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빙 돌아본 후에 다시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전에도 한 번 해리는 아무도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해리는 마법에 걸린 일기장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해리가 무엇인가 완전히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제 그와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손을 들어 덤블도어의 눈앞에 대고 열심히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해리를 돌아보기는커녕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모든 상황이 확실해진 것 같았다. 덤블도어가 이렇게까지 해리를 모른 척 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덤블도어는 현재의 덤블도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것 같았다... 해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덤블도어도 현재의 덤블도어처럼 새하얗게 머리가 세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디일까? 여기 모여 있는 마법사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해리는 좀더 주의 깊게 방을 둘러보았다. 대야에 비친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때 상상했던 것처럼, 이 방은 지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하 감옥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방에는 어전지 냉랭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으며, 벽에는 그림이나 장식품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단지 방을 빙 둘러싸면서 계단식으로 나열되어 있는 의자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의자들은 어느 방향에서나 쇠사슬이 달린 의자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해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하실의 구석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세 사람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한 사람과 두 명의 디멘터가 들어오고 있었다. 디멘터들은 그 사람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었다. 갑자기 해리의 뱃속이 싸늘하게 차가워졌다. 키가 크고 두건을 얼굴까지 푹 눌러쓴 디멘터들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의자를 향해 천천히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그들은 다 썩어 문드러진 손으로 그 사람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었다. 디멘터들 사이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해리는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 속의 디멘터들이 해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디멘터들이 그 남자를 쇠사슬이 달린 의자에 앉히고 다시 방에서 나가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몸을 약간 움찔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고 디멘터들도 사라졌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카르카로프였다. 덤블도어와는 달리 카르카로프는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카르카로프의 머리카락과 콧수염은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반들반들한 털코트가 아니라 다 낡아서 너덜너덜하고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리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갑자기 의자의 쇠사슬이 황금빛으로 변하면서 스르르 카르카로프의 팔 위로 기어 오르더니 그의 온몸을 꽁꽁 묶어 버렸다. "이고르 카르카로프." 날카로운 목소리가 해리의 왼쪽 귓전을 때렸다. 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크라우치가 당당한 태도로 우뚝 서서 카르카로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새카맣고 얼굴에는 주름살도 없었으며 체격은 단단하고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너는 마법부에 증언을 하기 위해 아즈카반에서 이곳까지 호송되었다. 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카르카로프는 의자에 묶인 채로 최대한 허리를 쭉 폈다. "그렇습니다."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여전히 살살 비위를 맞추는 듯한 매끄러운 어조는 변함이 없었다. "저는 마법부에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법부가 어둠의 주인의 마지막 남은 추종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힘이 닿는 한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마법사와 마녀는 흥미로운 눈길로 카르카로프를 자세히 뜯어보고 있었으며, 다른 마법사와 마녀는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바로 그 때 덤블도어의 옆자리에서 귀에 익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놈." 해리는 앞으로 몸을 쑥 내밀고 덤블도어의 옆자리를 넘겨다 보았다. 그곳에는 매드아이 무디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무디의 모습은 눈에 뜨일 정도로 확연하게 달랐다. 지금처럼 마법의 눈이 아니라 정상적인 두 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카로프를 응시하고 있는 무디의 두 눈은 온통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라우치는 저 녀석을 풀어 줄 생각이야." 무디는 목소리를 낮추고 덤블도어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과 거래를 한 거야. 나는 무려 6개월이나 고생하면서 저 녀석을 추적했는데, 크라우치는 새로운 명단만 얻어 내면 저 녀석을 풀어 줄 작정을 하고 있으니... 만약 나라면 정보만 들은 후에 저 녀석을 당장 디멘터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던져 버릴 텐데 말이야." 덤블도어는 무디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는 듯 길고 구부러진 코로 나지막이 콧소리를 냈다. "맞아! 그래, 내가 잊고 있었네... 자네는 디멘터들을 좋아하지 않지, 알버스?" 무디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미안하지만 난 싫어해. 오래 전부터 마법부가 그런 생물과 결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해왔어." 덤블도어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런 비열한 녀석은..." 무디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카르카로프, 너는 분명히 어둠의 주인을 추종하는 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서 그 이름을 말하라." 크라우치가 카르카로프를 노려보면서 재촉했다.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는 항상 철저한 비밀 속에서 행동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우리, 그러니까 그의 추종자... 이제 저는 그런 자들과 어울렸던 것에 대하여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허둥지둥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찰떡궁합이었지." 무디가 빈정거리면서 사나운 눈빛으로 카르카로프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동지들의 이름을 전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 자만이 정확히 알고 있었을 뿐..." "그것 참 현명한 행동이군. 카르카로프, 자네 같은 자들이 다른 추종자를 모두 밀고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겠지." 무디가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몇 사람의 이름을 알려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크라우치가 날카롭게 추궁했다. "예, 그랬습니다. 그들은 추종자 중에서도 특별히 아주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그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으로 보았죠. 저는 진심으로 그를 완전히 부인합니다. 후회와 자책감이 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증거로써 이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카르카로프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그 이름은?" 크라우치가 예리하게 질문을 던졌다. "안토닌 돌로호브가 있습니다. 저... 저는 돌로호브가 수많은 머글들과... 그리고 어둠의 주인을 추종하지 않는 자들을 고문하는 걸 보았습니다." 카르카로프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돌로호브가 고문하는 것을 도와주었겠지." 무디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미 돌로호브를 붙잡았다. 돌로호브는 네가 잡힌 직후에 곧바로 체포되었다."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카르카로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기... 기쁘군요!" 하지만 카르카로프의 표정은 전혀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해리는 아마도 그 소식이 카르카로프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르카로프가 알고 있는 이름 중에 하나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들은?" 크라우치가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예... 로시에르가 있습니다. 에반 로시에르... " 카르카로프가 서둘러 고백했다. "로시에르는 죽었다. 로시에르도 네가 잡힌 이후에 곧 붙잡혔다. 하지만 로시에르는 순순히 체포되기보다는 차라리 싸우는 편을 선택했지. 그래서 저항하던 끝에 죽임을 당했다." 크라우치가 카르카로프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도 좀 당했지." 무디가 덤블도어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무디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디는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자신의 코 끝을 덤블도어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로... 로시에르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거의 광적으로 들렸다. 카르카로프는 자신의 정보가 마법부에 하나도 쓸모없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다. 해리는 카르카로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의 눈은 자꾸만 구석에 있는 문으로 쏠렸다. 디멘터들은 저 문 뒤에서 조용히 카르카로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또 다른 이름은?" 크라우치가 다시 물었다. "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트래버스가 있습니다. 트래버스는 맥키논스 가족을 살해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뮬시버... 그는 임페리우스 저주의 전문가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록우드, 그는 스파이입니다. 마법부 내에 있으면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되는 그 자에게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이번에는 카르카로프가 제대로 적중을 한 것이 분명했다. 카르카로프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록우드?" 크라우치가 앞에 앉아 있던 한 마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마녀는 양피지에 무엇인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부의 어거스투스 록우드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록우드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마법부의 안과 밖,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조직망을 이용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열심히 말했다. "하지만 트래버스와 뮬시버는 이미 붙잡았다. 잘했다, 카르카로프. 네가 알고 있는 것이 그게 전부라면 너는 우리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다시 아즈카반으로 돌아가서..." 크라우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카르카로프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주십시오. 한 명이 더 있습니다!" 해리는 횃불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카르카로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의 백지장 같은 피부는 새까만 머리카락이나 콧수염과 더욱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스네이프!" 카르카로프가 고함을 질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재판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았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의 무죄를 보증해 주었다."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선언했다.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죽음을 먹는 자입니다!" 카르카로프가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카르카로프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증언했습니다." 덤블도어가 벌떡 일어났다. 덤블도어는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침착하게 설명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볼드모트 경이 몰락하기 이전에 우리편으로 합세해서 우리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극히 위태로운 것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듯이, 스네이프도 더 이상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닙니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돌려서 매드아이 무디를 쳐다보았다. 무디는 덤블도어의 등 뒤에서 못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알았다, 카르카로프." 크라우치가 차갑게 말했다. "너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너의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 얼마 동안 아즈카반에 머물러야 하겠지만..." 크라우치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실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지면서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변하고 있었다. 해리는 겨우 자신의 몸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짙은 어둠속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때 지하실이 다시 나타났다. 해리는 아까와는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제일 높은 뒷자리였지만, 이번에는 크라우치의 왼쪽 자리였다. 지하실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 상당히 달랐다. 마법사와 마녀들은 상당히 여유가 있었으며, 심지어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는 마법사와 마녀들은 흥미로운 운동 경기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문득 해리의 눈에 좌석 중간 정도에 앉아 있는 한 마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짧은 금발 머리에 짙은 붉은색 옷을 입고 선명한 초록색 깃펜을 쪽쪽 빨고 있는 그 여자는 분명히 젊은 시절의 리타 스키터였다. 해리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덤블도어는 다른 옷을 입고 해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크라우치는 훨씬 더 피곤하고 날카롭고 수척해 보였다... 해리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것은 아까와는 다른 날의... 다른 재판에 대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루도 베그만이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늙고 초라한 모습의 루도 베그만이 아니었다. 퀴디치 선수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전성기 때의 루도 베그만이 분명했다. 루도 베그만의 코는 아직도 부러지지 않은 채 멀쩡했고 훤칠한 키에 늘씬하고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다소 초조한 모습으로 쇠사슬이 달린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의자는 카르카로프에게 그랬던 것처럼 루도 베그만을 쇠사슬로 묶지는 않았다. 그 사실에 크게 용기를 얻은 듯이, 루도 베그만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심지어 몇 명에게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던지기까지 했다. "루도 베그만, 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활동에 연루되어 있다는 고발에 답변하기 위해서 여기 마법사 법정에 불려 나왔다." 크라우치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너에게 불리한 증언을 들었고, 이제 판결을 내리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가 판결을 선언하기 전에, 달리 증언할 말이 없는가?"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루도 베그만이 죽음을 먹는 자라는 거야? "저는 단지..." 루도 베그만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저도 제가 좀 멍청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두 명의 마법사들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반대로, 크라우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냉혹함과 혐오감이 가득 담겨 있는 표정으로 루도 베그만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네 입에서 그보다 맞는 말은 나온 적이 없을 게다. 이 녀석아. 네놈이 처음부터 항상 멍청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블러저에 얻어맞은 충격 때문에 네놈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았을 게다..." 해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덤덤한 목소리로 덤블도어에게 속삭였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자, 역시 무디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도빅 베그만, 너는 볼드모트 경의 추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므로 아즈카반에 투옥할 것을..." 크라우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방청석에서 성난 고함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몇 명의 마법사와 마녀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심지어 크라우치를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록우드 노인은 제 아버지의 친구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그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편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록우드는 적당한 때가 되면 마법부에 자리를 구해 주겠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일단... 제가 하고 있는 퀴디치 선수 생활이 끝나면 말이죠. 아실 겁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저도 평생 동안 블러저에 얻어맞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루도 베그만은 동그랗고 푸른 눈을 크게 뜨면서 웅성거리는 방청객들을 향해 열심히 호소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이 재판을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다." 크라우치가 루도 베그만을 노려보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크라우치는 지하실 오른쪽을 향해 돌아섰다. "배심원 여러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먼저 루도 베그만을 투옥하는 일에 찬성하시는 분..." 해리는 흥미롭게 재판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마법사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하실 말씀이라도?" 크라우치가 물었다.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벌어진 터키와의 퀴디치 시합에서 베그만 씨가 영국을 위해 보여주었던 그 눈부신 활약에 대해 먼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 마법사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크라우치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제 지하실은 환호성으로 떠나갈 것 같았다. 루도 베그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야비한 놈." 크라우치는 투덜거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크라우치는 지하실에서 걸어나가는 루도 베그만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면서 덤블도어에게 한 마디 내뱉었다. "록우드는 정말로 저 녀석에게 일자리를 얻어주었다네... 루도 베그만이 우리와 합세하는 그날이 마법부의 초상날이 되겠군..." 지하실이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더니 곧이어 다시 나타났다. 해리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리와 덤블도어는 여전히 크라우치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하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다만 크라우치 옆에 앉아 있는 연약하고 가냘픈 한 마녀의 흐느낌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마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는데, 해리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는 마녀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크라우치를 올려다보았다. 크라우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수척하고 늙어 보였다.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새파랗게 돋아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도록!" 크라우치의 목소리가 조용한 지하실의 정적을 깨면서 울려퍼졌다. 구석에 있는 문이 다시 열리면서 이번에는 여섯 명의 디멘터들이 네 사람을 끌고 지하실로 들어왔다. 해리는 무리를 지어 들어온 사람들이 크라우치를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명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디멘터들은 지하실 바닥에 놓여 있는, 쇠사슬이 달린 네 개의 의자에 네 사람을 제각기 앉혔다. 그 중에서 땅딸막한 남자가 크라우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좀더 날씬하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자는 방청객들 사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굵고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에 쌍꺼풀이 유난히 두꺼운 여자는 쇠사슬이 달린 의자가 마치 왕좌라도 되는 것처럼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십대 후반의 소년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밀짚 같은 금발이 주근깨가 박힌 소년의 우윳빛 얼굴을 거의 뒤덮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마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가늘게 떨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침내 크라우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명의 죄인들을 쳐다보는 크라우치의 얼굴에는 오직 증오와 미움만이 가득 차 있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판결을 받기 위해 여기 마법사 법정에 불려 나왔다." 크라우치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너무나 끔직한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 밀짚 같은 금발을 가진 소년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발..." "이 법정에서도 그와 같은 범죄는 거의 들어 본 바가 없다." 크라우치는 아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듯이 더욱 큰 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이미 너희들이 지은 죄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은 오러인 프랭크 롱바텀을 사로잡아서 그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너희들은 프랭크 롱바텀을 통해 너희들의 주인인 추방된 그 사람의 현재 소재를 알아내려는 의도에서..." "아버지, 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니에요. 맹세해요. 아버지, 저를 디멘터에게 보내지 마세요..." 쇠사슬에 묶인 소년이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너희들은 프랭크 롱바텀의 아내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한 혐의로 다시 한 번 기소를 당했다." 크라우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이 원하는 정보를 롱바텀이 주지 않자,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너희들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의 힘을 되찾아서 그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 너희들이 누렸던 그 난폭한 삶을 또다시 누릴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배심원들에게 요청하노니..." "어머니!" 소년이 애처롭게 부르짖자,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체구의 마녀가 어깨를 심하게 들썩거리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께 말해 주세요. 어머니, 저는 하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아니에요!" "이제 나는 배심원들에게 요청하노니..." 크라우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저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들의 범죄가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당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지하실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은 일제히 손을 들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던 방청객들은 루도 베그만의 재판이 벌어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혹한 승리감이 떠올라 있었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어머니, 안 돼요! 저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저는 결코 하지 않았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저를 그곳에 보내지 마세요! 제발 아버지께, 아버지께 말해 주세요!" 잠시 후에 문이 열리고 디멘터들이 미끄러지듯이 방으로 들어왔다. 소년과 함께 끌려온 세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의 주인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크라우치! 우리를 아즈카반으로 던져넣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분은 다시 부활해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다른 어떤 추종자보다도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보상을 내릴 것이다! 오직 우리만이 충성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오직 우리만이 그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두껍게 쌍꺼풀이 진 마녀가 크라우치를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소년은 디멘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반항했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도 벌써 디멘터의 차갑고 무시무시한 힘이 그 소년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 마녀가 지하실 밖으로 끌려나간 후에도 소년이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자, 방청객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몇 명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에요! 당신의 아들이란 말이에요!" 소년은 크라우치를 향해 울부짖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갑자기 크라우치가 두 눈을 부릅뜨더니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내겐 아들이 없다!"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몸매의 마녀가 헉 하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대로 의자 위에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기절을 한 것이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가! 당장 데리고 꺼져! 거기에서 평생 동안 썩으라고 해!" 크라우치가 디멘터들에게 호통을 쳤다. 크라우치의 입에서 마구 침이 튀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아버지, 제발..." "해리, 이제 내 사무실로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구나." 해리의 귓가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양쪽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오른쪽에는 디멘터들에게 끌려가는 크라우치의 아들을 바라보는 알버스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해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알버스 덤블도어가 서 있었다. "가자." 왼쪽에 있는 덤블도어가 해리의 팔꿈치를 잡았다. 해리는 허공으로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위의 풍경이 점점 사라졌다. 한 순간 모든 것들이 어둡게 변하면서 해리는 천천히 공중돌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해리의 발이 평평한 바닥에 닿았다. 눈부신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덤블도어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캐비닛 속의 대야는 여전히 해리의 눈앞에서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알버스 덤블도어가 해리의 곁에 서 있었다. "교수님,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캐비닛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해리가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덤블도어는 얄팍한 돌로 만든 대야를 번쩍 들어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 당기더니 그 앞에 앉았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쳐다보면서 맞은편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해리는 물끄러미 대야를 응시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대야에 담겨 있는 물질은 다시 원래대로 은빛이 감도는 하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 소용돌이치면서 출렁거렸다. "이게 뭐죠?"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 말이냐? 이건 펜시브라고 하는 거란다. 너도 분명히 그런 기분을 알고 있을 게다. 머리 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과 기억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네..." 솔직히 해리는 그런 종류의 기분을 느껴 봤던 적이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돌로 만든 대야를 가리켰다. "나는 펜시브를 사용한단다. 그저 머리 속에서 넘쳐나는 생각들을 빨아들인 다음에 이 대야에 쏟아붓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한가할 때 다시 들여다보는 거지.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 놓으면 어떤 사건의 유형이나 연관성을 파악하기가 훨씬 더 쉬워지거든." "그러니까... 저것이 교수님의 생각들이란 말씀인가요?" 해리는 대야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하얀 물질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너에게 보여주마." 덤블도어는 옷 속에서 요술 지팡이를 꺼내더니 관자놀이 근처의 은빛 머리카락 속으로 요술지팡이 끝을 갖다댔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뗐을 때, 그 끝에는 은빛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는 금방 그 반짝거리는 실이 펜시브에 담겨 있는 그 은빛이 감도는 하얀 물질과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덤블도어는 이 새로운 생각을 대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해리는 놀랍게도 자신의 얼굴이 대야의 수면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보았다. 덤블도어는 마치 사금을 고르는 사람이 금 조각을 찾아서 모래를 거르듯이 손으로 펜시브의 양쪽을 붙잡고 흔들었다. 해리는 자신의 얼굴이 점차 스네이프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르카로프의 것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분명하게..." 스네이프는 입을 뻐끔거리면서 천장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펜시브를 사용하면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나 혼자 충분히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단다." 덤블도어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덤블도어는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아직까지도 대야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퍼지 씨가 도착하기 직전에 나는 펜시브를 사용하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너무 급하게 치우느라 캐비닛의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네 관심을 끌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지." "정말 죄송해요." 해리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덤블도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기심은 죄가 아니란다. 하지만 호기심과 함께 조심하는 법도 배워야만 하지... 그래, 그렇고말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덤블도어는 요술 지팡이 끝으로 대야에 담긴 생각을 휘저었다. 즉시 한 사람이 대야 밖으로 솟아 올랐다. 열여섯 살 정도의 통통하고 인상이 험악한 소녀였다. 그 소녀는 발을 여전히 대야 안에 담근 채, 천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리나 덤블도어 교수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 소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목소리도 스네이프의 목소리처럼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돌로 만든 대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덤블도어 교수님, 그 애가 저에게 마법을 걸었어요. 저는 그저 놀리기만 했는데 말이죠. 저는 지난 목요일에 온실 뒤에서 그 애가 플로렌스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았다고만 말했는데..." "하지만 버사..." 덤블도어는 조용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소녀를 올려다보면서 서글픈 듯이 말했다. "처음부터 왜 그 애의 뒤를 밟았던 거니?" "버사? 이 사람이... 바로 버사 조킨스?" 해리가 소녀를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덤블도어는 다시 대야에 담긴 생각을 휘저었다. 버사는 대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고 대야 속에 담긴 물질은 다시 은빛이 감도는 하얀 색으로 변했다. "이게 바로 내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버사란다." 펜시브가 발산하는 은빛이 덤블도어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해리는 갑자기 덤블도어가 엄청나게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덤블도어의 나이가 꽤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노인이라는 생각은 아직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 해리. 내 생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서 말해보렴."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네." 해리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 조금 전에 점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 제가 그만 깜박 졸았거든요." 이 대목에서 해리는 혹시라도 어떤 질책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 있단다. 계속해 보렴." "그런데 꿈을 꾸었어요. 볼드모트 경에 관한 꿈을... 그 사람은 웜테일을 고문하고 있었어요... 웜테일이 누군지는 아시죠?" 해리가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알고 있단다. 어서 계속 하거라." 덤블도어가 즉시 대답했다. "볼드모트는 수리 부엉이한테서 편지를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웜테일이 저질렀던 커다란 실수가 잘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했어요. 누군가 죽었다는 말도 했고요. 그 사람은 웜테일에게 뱀의 먹이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어요. 그 사람의 의자 곁에는 뱀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그 대신에 저를 뱀의 먹이로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에 웜테일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내렸죠. 그 순간 제 이마의 상처가 쑤시기 시작했어요." 해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상처가 너무나 아파서 그만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어요." 하지만 덤블도어는 가만히 해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 그게 다예요." 해리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구나. 알겠어. 올 여름에 꿈을 꾸다가 깬 것 말고 또다시 네 상처에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니?" 덤블도어가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여름 방학 때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시죠?" 해리는 깜짝 놀랐다. "시리우스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너뿐만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나 또한 작년에 시리우스가 호그와트를 떠난 이후로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 시리우스가 머무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산중턱에 있는 동굴을 마련해 준 것도 바로 나란다." 자리에서 일어난 덤블도어는 책상 주위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관자놀이에 요술지팡이 끝을 갖다대고 반짝거리는 은빛 생각을 연신 끄집어 내어 펜시브에 덜어 놓았다. 펜시브 안으로 들어간 생각들은 너무나 순식간에 서로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해리는 어떤 것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단지 온갖 색깔들이 마구 뒤엉킨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교수님?" 몇 분이 흐른 후에,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덤블도어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해리를 쳐다보았다. "미안하구나." 조용히 사과를 한 후에 덤블도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교수님은... 그러니까 교수님은 혹시 제 상처가 왜 아픈지 아세요?" "한 가지는 설명할 수 있단다. 물론 추론에 불과하지만... 내 생각엔 네 이마에 난 상처는 볼드모트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 혹은 그가 특별히 강력한 증오를 느낄 때 통증을 느끼는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이나 해리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왜?" "너와 볼드모트는 실패한 저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건 평범한 상처가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그 꿈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수도 있지. 아마 그럴 거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런데 해리... 너는 볼드모트를 보았니?" 덤블도어가 해리를 쳐다보았다. "아뇨. 그저 볼드모트가 앉아 있는 의자의 뒷모습만 봤어요. 하지만 눈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어야만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사람은 몸이 없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요술지팡이를 집어들 수가 있었을까요?" 해리가 천천히 물었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덤블도어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덤블도어는 방 저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관자놀이에 요술지팡이를 갖다대고 또 다른 반짝거리는 은빛 생각을 꺼낸 후에 펜시브 안에서 들끓고 있는 물질 속에다가 덧붙였다. "교수님, 그런데 볼드모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었다. "볼드모트?" 덤블도어가 펜시브 너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덤블도어만의 아주 독특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해리는 무디의 마법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머리 속을 덤블도어가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리, 이번에도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구나." 덤블도어가 다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덤블도어의 모습이 훨씬 더 늙고 피곤해 보였다. "볼드모트가 세력을 떨쳤던 시기에는 특히 실종 사건이 많이 일어났단다. 버사 조킨스는 볼드모트가 분명히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어. 그리고 크라우치도 사라졌지. 바로 우리 운동장에서... 그리고 세 번째 실종 사건이 있었단다. 유감스럽게도 마법부에서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머글들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지. 그 사람의 이름은 프랭크 브라이스인데, 볼드모트의 아버지가 성장한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 그런데 지난 8월 이후로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단다. 마법부의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머글 신문을 읽고 있지." 덤블도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내 판단에는 이런 실종 사건들은 모두 밀접한 연관이 있어. 물론 네가 내 사무실 밖에서 조금 전에 들었던 것처럼 마법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만..." 해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덤블도어는 이따금씩 생각들을 꺼내고 있었다. 해리는 이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자꾸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교수님?" 해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니, 해리?" 덤블도어는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펜시브에서 봤던... 그 법정에서의 일에 대해서..." "그러렴. 지금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재판에 참석했었지. 하지만 어떤 재판은 아주 선명하게 머리 속에서 떠오르곤 하는구나. 요즘 같은 때에는 더구나..." 덤블도어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수님이... 교수님이 저를 발견하셨던 그 재판 광경이 기억나세요? 크라우치 씨의 아들이 나왔던 그 재판... 그런데... 거기에서 말했던 희생자들이... 네빌의 부모님인가요?"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네빌이 왜 자신이 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니?"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네빌과 거의 4년이 넘게 알고 지냈으면서도 어째서 그 일에 대해 한번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 그 사람들이 바로 네빌의 부모님이란다. 네빌의 아버지 프랭크 롱바텀은 무디 교수와 같은 오러였단다. 볼드모트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프랭크와 그의 아내를 붙잡아서 고문했지. 볼드모트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말야." 덤블도어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네빌의 부모님은 죽임을 당했나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니란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통하고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롱바텀 부부는 그만 미치고 말았단다. 두 사람 모두 마법 질병과 상해를 치료하는 성 뭉고 병원에 있지. 아마도 방학이면 네빌이 할머니와 함께 그 곳을 방문하고 있을 게다. 비록 롱바텀 부부는 네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해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혀 몰랐다... 전혀... 4년이 지나도록 관심조차 없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롱바텀 부부를 좋아했지. 그 불행한 사건은 볼드모트가 힘을 잃어버린 후에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안전하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었어. 그래서 이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지. 마법부는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당장 잡아내라는 강한 압력을 받았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롱바텀 부부의 증언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었어."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크라우치 씨의 아들이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해리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 덤블도어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리는 펜시브 안에서 마구 소용돌이치는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리의 마음속에서 두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범죄와 관련이 있는 질문이었다... "저..." 마침내 해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베그만 씨는..." "그 이후로는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어떤 행위로도 기소된 적이 없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해리가 다시 펜시브를 내려다보면서 재빨리 대답했다. 이제 덤블도어가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지 않자, 그 내용물은 점차 느릿느릿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그때 펜시브가 해리를 대신해서 질문을 하려는 듯이, 수면위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을 힐끗 바라본 덤블도어는 다시 해리에게 말했다. "스네이프 교수도 역시 마찬가지란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질문이 해리의 입에서 저절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스네이프 교수님이 정말로 볼드모트를 더 이상 추종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죠?"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 해리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해리, 그것은 나와 스네이프 교수 사이의 문제란다."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해리는 깨달았다. 덤블도어의 표정이 비록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덤블도어도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해리가 문 앞에 섰을 때, 덤블도어가 다시 신중하게 말했다. "해리, 네빌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다오. 네빌은 자기가 원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단다." "네, 교수님." 해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에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덤블도어가 한마디 덧붙였다. 해리는 다시 몸을 돌려서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는 펜시브 옆에 서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색 불빛에 반사된 덤블도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늙고 피곤해 보였다.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 행운을 빈다." 제31장 세 번째 시험 "덤블도어도 그 사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해리는 펜시브에서 보았던 광경과 덤블도어가 말해 준 것들을 거의 다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시리우스에게 연락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덤블도어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당장 부엉이를 보내서 소식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날 밤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학생 휴게실에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해리의 머리 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럽게 꼬이고 말았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머리 속이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에는 가끔씩 덜어 내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 의미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론은 휴게실 벽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따뜻한 저녁이었지만, 론은 어쩐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를 믿는단 말이야? 스네이프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로 그를 믿는단 말이야?" 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래."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거의 10분 동안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앉아서 묵묵히 자신의 무릎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생각이 많으면 펜시브 하나 정도는 거뜬히 채우고도 남겠다고 생각했다. "리타 그키터." 헤르미온느가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넌 어떻게 이런 순간에 그 여자 걱정을 할 수가 있니?" 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 걱정을 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생각하고 있었어... 그 여자가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내게 했던 말 기억나? '나는 루도 베그만에 대해서 네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어...'라고 말이야. 그건 분명히 뼈가 있는 말이었어. 안 그래? 그 여자는 베그만의 재판을 취재했고 그 사람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정보를 넘겼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윙키도 알고 있었던 거야. 기억하고 있지? '베그만 씨는 나쁜 마법사예요! 아주 나쁜 마법사예요!' 베그만이 풀려났을 때,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크라우치 씨는 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몰라."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베그만이 고의로 정보를 넘긴 것은 아니었잖아?" 론이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대답을 하는 대산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퍼지는 크라우치를 공격한 사람이 맥심 부인이라고 의심했단 말이지?" 론이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래. 하지만 단지 크라우치가 보바통의 마차 근처에서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였어."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해 봐. 그 여자는 거인족 혈통이 분명해! 물론 자신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론이 천천히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건 너무 당연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리타가 해그리드의 어머니에 대해 알아냈을 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생각해 봐! 또 퍼지도 그저 거인 혼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여자를 의심하고 있잖아! 그런 편견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진실을 말했을 때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익히 알고 있다면, 내가 맥심 부인이라도 원래부터 몸집이 큰 것 뿐이라고 우겼을 거야." 문득 헤르미온느가 시계를 바라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연습을 하나도 안 했잖아!" 헤르미온느는 거의 기절할 듯이 놀랐다. "장애 마법을 연습했어야 하는데! 내일은 정말로 그 주문을 끝내야만 해! 자, 해리. 넌 그만 자는 게 좋겠다." 해리와 론은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해리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네빌의 침대를 힐끗 쳐다보았다. 덤블도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네빌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네 기둥이 달린 침대로 올라간 해리는, 만약 부모님이 아직까지 살아 계시면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번 상상해 보았다. 해리는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사곤 했다. 하지만 네빌이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해리는 어쩐지 네빌에게 좀더 잘 대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둠 속에 누워 있던 해리는 갑자기 롱바텀 부부를 고문한 사람들에게 격렬한 분노와 증오심을 느꼈다. 크라우치의 아들과 공범자들이 디멘터에 의해 법정에서 나갈 때, 야유와 고함을 지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리는 그들의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던 소년의 우유처럼 새하얀 얼굴이 떠오르면서, 1년 후에 죽었다는 말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볼드모트! 이런 비극은 모두 다 볼드모트 때문에 비롯되었다. 해리는 어둠에 잠긴 천장을 노려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게 볼드모트 때문이야... 그 사람이 바로 모든 가정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은 장본인이었다. 사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학기말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해리의 세 번째 시합이 벌어지는 날이 바로 학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난 이제부터 혼자 연습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빨리 시험 공부를 하도록 해."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학기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적어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겠지. 사실 수업 시간만으로는 이 모든 주문들을 절대로 다 배우지 못했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나중에 우리가 오러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좋은 훈련을 하는 셈이잖아." 론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고 교실 안으로 날아 들어온 말벌 한 마리에게 장애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말벌은 허공에서 죽은 듯이 딱 멈춰섰다. 6월이 되자, 성의 분위기는 다시 약간 들뜨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세 번째 시합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세 번째 시합은 학기가 끝나기 일주일 전에 벌어질 예정이었다. 해리는 틈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주문을 연습했다. 다른 어떤 시합보다도 이번 시합에 훨씬 더 자신감이 들었다. 분명히 아주 힘들고 위험한 시합이 되겠지만, 역시 무디의 말이 옳았다. 해리는 지금까지 무시무시한 괴물과 마법의 장애물들을 간신히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통지를 받고 대비할 만한 여유도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에게 점심 시간에 변신술 교실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빈 교실을 찾아 학교 안을 헤매고 다니는 일에 완전히 지쳐버렸던 것이다. 해리는 곧 공격을 가해 오는 상대방을 저지하고 느리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장애 마법을 터득했고, 앞길을 가로막는 단단한 물체를 폭파시킬 수 있는 진압 마법도 익혔다. 또한 헤르미온느가 발견한 또 하나의 유용한 마법으로, 요술지팡이 끝을 항상 북쪽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미로 안에서 올바른 방향을 알 수 있는 나침반 마법도 배웠다. 하지만 방어벽 마법을 완전히 익히는 일에는 아직까지도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주위에 둘러쳐서 약한 저주를 막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엿가락 다리 마법을 명중시켜서 단번에 해리의 방어벽을 깨뜨려 버렸다. 그 덕분에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엿가락 다리 마법을 푸는 주문을 찾아낼 때까지, 약 10분동안이나 흐느적거리면서 교실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주 잘했어. 이 중에서 몇 개는 반드시 쓸모가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배워야 할 마법이 적힌 목록을 들여다보면서 해리를 격려했다. 그리고 이미 배운 마법에는 가위표를 했다. "이리 와서 저것 좀 봐. 말포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창가에 서서 고개를 내밀고 운동장을 쳐다보던 론이 말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도 창문으로 다가가서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이 나무 그늘 밑에 서 있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능글맞게 씩 웃으면서 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말포이는 손에 든 뭔가를 입에 갖다대고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마치 무전기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 해리가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그런 물건들은 호그와트 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이리 와, 해리." 헤르미온느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더니 창문에서 휙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교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다시 한 번 방어벽 마법을 연습하자." 시리우스는 날마다 부엉이를 날려보냈다. 시리우스 역시 헤르미온느처럼, 다른 일들을 걱정하기에 앞서서 우선 해리가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호그와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전혀 해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며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매번 강조했다. 만약 볼드모트가 정말로 다시 강해지고 있다면, 내가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너의 안전이다. 네가 덤블도어의 보호 하에 있는 한, 볼드모트는 절대로 너에게 손을 댈 수가 없어. 그렇지만 위험한 짓은 하지 말거라. 안전하게 미로를 통과하는 일만 생각하도록 해. 그런 다음 다른 문제로 관심을 돌리도록 하자. 6월 24일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해리의 신경도 점차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첫번째 시험이나 두 번째 시험을 치를 때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우선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시합준비를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한 이것은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마침내 시합은 끝날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리에게는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세 번째 시험을 치르는 날이 되자, 아침 식사를 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은 몹시 시끌벅적했다. 우편 배달 부엉이가 해리에게 행운을 비는 카드를 전해 주었다. 그것은 시리우스가 보낸 카드였는데, 반으로 접힌 양피지 조각 위에 진흙을 묻힌 개의 발자국 하나가 턱 하니 찍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웠다. 끽끽거리는 부엉이 한 마리가 평상시처럼 헤르미온느에게 <예언자 일보>를 갖다 주었다. 신문을 펼쳐 들고 앞면을 살펴보던 헤르미온느는 갑자기 입 안에 있던 호박 주스를 푸 뿜어내고 말았다. "무슨 일이야?" 해리와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신문을 치워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론이 먼저 신문을 움켜잡았다. "이럴 수는 없어! 오늘만은 안 돼! 주책맞은 노파 같으니라구!" 얼른 머릿기사를 훑어본 론이 버럭 화를 내었다. "왜 그래? 또 리타 스키터야?" 해리가 물었다. "아니야." 론은 헤르미온느와 똑같이 허둥지둥 신문을 치우려고 했다. "나에 대한 기사가 실렸구나? 그렇지?"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야." 하지만 론의 목소리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해리가 미처 신문을 보여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드레이코 말포이가 연회장 저편에 있는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포터! 포터! 네 머리는 어떠냐? 오늘 기분은 괜찮아? 설마 우리에게 미친 듯이 덤벼드는 건 아니겠지?" 말포이의 손에는 <예언자 일보>가 들려 있었다. 슬리데린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킬킬거리면서 해리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디 좀 보여줘. 이리 달란 말이야." 해리가 론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론은 좀처럼 내키지 않아 망설이다가 신문을 넘겨 주었다. 신문을 펼쳐든 해리는 굵은 활자로 된 제목 밑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다. 정신 이상 징후를 보이는 위험한 해리 포터!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를 몰락시켰던 소년이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다 -리타 스키터 특파원 최근에 벌어진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은 해리 포터의 이상한 행동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포터가 트리위저드 시합과 같은 치열한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그와트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예언자 일보>가 독점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포터는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정신이상 징후를 보이며, 종종 이마에 난 상처(그 사람이 해리를 죽이려고 했을 때 남긴 저주의 유물)의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예언자 일보>의 리포터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지난 월요일, 점술 수업이 진행되던 도중에 포터는 너무나 상처가 쑤신 나머지 수업에 계속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교실을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의 최고 권위자는, 포터의 두뇌가 그 사람이 가한 공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처가 계속 아프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은 혼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픈 척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관심을 호소하는 것이죠."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예언자 일보>는 호그와트의 교장인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동안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었던, 해리 포터에 관한 또다른 불길한 사실을 공개하는 바이다. "포터는 뱀의 말을 할 수 있어요." 호그와트 4학년생인 드레이코 말포이는 이렇게 진실을 밝히고 있다. "2년 전에 많은 학생들이 공격을 당했었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터가 그 일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해요. 결투 클럽에서 몹시 화가 난 해리가 뱀을 조종해서 다른 친구를 공격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어야 했어요. 게다가 포터는 늑대인간이나 거인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포터는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거예요." 뱀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이 능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둠의 마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뱀의 말을 하는 자'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어둠의 마법 방어 연맹의 한 간부는, 뱀의 말을 할 줄 아는 마법사라면 "누구든지 다 조사 대상에 올려야 하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종종 뱀은 어둠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나쁜 마법에 이용되었으며, 역사적으로도 사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늑대인간이나 거인과 같은 그런 사악한 생물들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폭력을 좋아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이런 소년을 과연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도록 허락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재고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포터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필사적으로 승리하려는 욕심 때문에 어둠의 마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세 번째 시험은 바로 오늘 저녁에 치러질 예정이다. "좀 과장이 심하군. 그렇지?" 해리는 신문을 접으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는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기괴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해리를 놀리고 있었다. "점술 수업 시간에 네 상처가 아팠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그러니까... 엿들을 수도 없었을 텐데..." 론이 이상해했다. "창문이 열려 있었어. 내가 답답해서 조금 열어 두었거든." 해리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는 북쪽 탑 꼭대기에 있었잖아! 네 목소리가 저 아래 운동장까지 들릴 수는 없어!" 헤르미온느가 한심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좋아. 그 여자가 사용하는 도청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잖아! 그러니까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네가 한번 설명해 봐!" 해리가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헤르미온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갑자기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마치 꿈을 꾸듯이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손을 들더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너 괜찮니?" 론이 걱정스럽게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다시 머리카락을 헤집더니 손을 입에 갖다대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해리와 론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헤르미온느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아... 왜 아무도 볼 수 없었는지... 심지어 무디까지도... 어떻게 해서 창문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하지만 그 여자는 허가를 받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허가를 받지 않았어... 이제 드디어 그 여자를 잡은 것 같아! 잠깐 도서관에 좀 다녀올게! 확인 좀 해야겠어!" 그 말을 남긴 채, 헤르미온느는 가방을 움켜쥐고 쌩 하니 연회장에서 나가 버렸다. "이봐!" 론이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10분 후에는 마법의 역사 시험을 치러야 한단 말이야! 제기랄!" 론이 해리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시험에 늦을지도 모르는데 헤르미온느가 저러는 걸 보면, 리타 스키터가 정말 밉긴 미운가 봐. 그런데 해리, 넌 시험시간에 뭘 할 거니? 다시 책이나 읽을래?" 트리위저드 챔피언인 해리는 모든 학기말 시험을 면제받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시험이 있을 때마다 뒷자리에 앉아서 세 번째 시험을 위한 새로운 주문을 찾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지 뭐."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맥고나걸 교수가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었다. "포터, 챔피언들은 아침 식사 후에 옆방에 모이기로 했단다." "하지만 시험은 오늘 밤이잖아요!" 혹시 시간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덜컹한 해리는 그만 스크램블드 에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포터, 나도 잘 알고 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챔피언들 가족이 마지막 시합을 관람할 수 있도록 모두 초대했단다. 그래서 가족을 맞이할 시간을 주는 거야." 그 말을 마친 후에 맥고나걸 교수는 곧 가 버렸다. 해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맥고나걸 교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설마 더즐리 가족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해리는 갑자기 멍해져서 론에게 말했다. "몰라. 해리, 난 서둘러야겠어. 빈스 교수님 시험에 늦겠어. 나중에 보자." 텅빈 연회장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해리는 천천히 아침 식사를 끝마쳤다. 래번 클로 테이블에서 일어난 플뢰르 델라쿠르가 케드릭과 함께 옆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빅터 크룸이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해리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방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해리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어쨌거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해리를 보기 위해 찾아올 만한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주문이나 더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해리가 막 일어서는 순간, 옆방 문이 여리며서 케드릭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해리! 어서 들어와.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어!" 해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즐리 가족이 호그와트까지 찾아왔을 리는 만무했다. 연회장을 가로질러 걸어간 해리는 문을 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케드릭과 그의 부모님은 바로 문 근처에 서 있었다. 빅터 크룸은 한쪽 구석에 앉아서 검은 머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불가리아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빅터 크룸의 구부러진 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방 맞은 편에서는 플뢰르가 불어로 어머니에게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플뢰르의 여동생 가브리엘은 해리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해리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해리는 문득 벽난로 앞에 서 있는 위즐리 부인과 빌을 발견했다. 위즐리 부인과 빌은 해리에게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 위즐리 부인이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해리, 우리는 너를 보러 왔단다!" 위즐리 부인은 허리를 숙여 해리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너 괜찮니?" 빌은 씩 웃으면서 해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찰리도 오고 싶어했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네가 혼테일과 멋지게 싸웠다고 말하더라." 해리는 플뢰르 델라쿠르가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자꾸만 빌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기다란 머리카락이나 송곳니 귀고리에 전혀 아무런 거부감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정말 고마워요. 저는 잠시 동안 다른 생각을 했어요. 혹시 더즐리 가족이..." 해리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음." 위즐리 부인은 입술을 오므리면서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위즐리 부인은 항상 해리 앞에서 더즐리 가족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즐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위즐리 부인의 눈은 분노로 차갑게 번뜩이곤 했다. "여기 돌아오니까 정말 좋구나!" 빌이 천천히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뚱뚱한 여인의 친구인 바이올렛이 액자 안에서 빌에게 눈을 찡긋 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와 보는 거야. 그 미친 기사는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니? 캐도간 경 말이야." "오, 그럼요." 작년에 뚱뚱한 여인 대신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를 지키던 캐도간 경을 잊어버렸을 리 없었다. "뚱뚱한 여인도?" 빌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 여자는 내가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있었단다. 어느날 밤 새벽 4시에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하자, 나를 호되게 야단쳤었지." 위즐리 부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새벽 4시까지 기숙사 밖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죠?" 빌이 새삼스럽게 놀란 눈으로 위즐리 부인을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와 난 밤마다 산책을 즐겼단다. 그러다가 네 아버지는 그 당시의 기숙사 관리인이었던 아폴리온 프링글에게 붙잡히기도 했었지. 지금도 그 때의 상처가 남아 있단다." 위즐리 부인은 눈을 찡긋 하면서 씩 웃었다. "우리 한 바퀴 돌아볼까, 해리?" 빌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제안했다. "네, 좋아요." 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연회장으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문을 막 지나치는 순간, 에이머스 디고리가 고개를 돌렸다. "너로구나." 에이머스 디고리는 해리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우리 케드릭이 네 점수를 따라잡아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겠구나. 그렇지?" "네?" 해리가 반문했다. "그냥 못 들은 척 해. 우리 아빠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리타 스키터의 기사가 나간 후에 잔뜩 화가 나 있어. 그 여자가 마치 네가 호그와트의 유일한 챔피언인 양 기사를 썼기 때문이지." 케드릭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나지막이 해리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은 기사를 바로잡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에이머스 디고리가 해리의 귀에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떠들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과 빌과 함께 이제 막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래... 저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라. 케드릭, 넌 전에도 저 녀석을 이긴 적이 있잖니?" "에이머스, 리타 스키터는 말썽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그런 기사를 쓴 거라구요. 당신은 마법부에서 근무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위즐리 부인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에이머스 디고리는 씩씩거리면서 뭔가 한 마디 쏘아 붙이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에이머스 디고리의 아내가 팔을 붙잡으면서 말리자, 그는 어깨를 약간 으쓱거리더니 다시 뒤로 돌아섰다. 빌과 위즐리 부인과 함께 아침 햇살이 내리비치는 운동장을 산책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해리는 두 사람에게 보바통의 마차와 덤스트랭의 배를 보여주었다. 위즐리 부인은 되받아치는 나무를 보고는, 자기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없었다며 커다란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해그리드 이전에 사냥터 지기로 근무했던 '오그'라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퍼시 형은 어떻게 지내요?" 온실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해리가 질문을 던졌다. "별로 좋지 않아." 빌이 대답했다. "몹시 당황하고 있단다." 위즐리 부인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면서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마법부에서는 크라우치 씨의 실종 사건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아. 하지만 퍼시를 계속 소환해서 크라우치 씨가 보내는 편지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있어. 그 편지는 진짜 크라우치 씨의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일 때문에 퍼시는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심지어 마법부는 오늘 밤에 퍼시가 크라우치 씨를 대신해서 심판을 보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았지.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이 직접 심판을 볼 거야."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엄마! 빌!"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있던 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쳤다. "여기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 "해리가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는 걸 지켜보기 위해 왔단다! 솔직히 말해서 집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멋진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시험은 어땠니?" 위즐리 부인이 명랑하게 물었다. "저... 괜찮았어요. 사실 도깨비 반란자들의 이름을 모두 다 기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름 몇 개는 지어내야만 했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도깨비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수염난 보드로드나 지저분한 우르그와 같은, 뭐 그런 것들이니까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론은 코니쉬 파스티(양념을 한 야채와 고기를 넣은 콘웰 지방의 파이 요리:역주)를 입에 잔뜩 쑤셔 넣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위즐리 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 그리고 지니도 그들 옆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해리는 마치 다시 버로우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식사 도중에 불쑥 나타기 전까지는 리타 스키터에 관한 일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드디어 리타 스키터에 대해 뭔가 실마리를 잡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 우리에게 말해 주기로..."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해리에게 경고하듯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잘 있었니, 헤르미온느?" 위즐리 부인이 평소와 달리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미소를 지으려던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의 냉랭한 표정에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위즐리 아주머니, 설마 리타 스키터가 <마녀 주간지>에 쓴 그 쓰레기 같은 기사를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해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물론이지! 당연히 믿지 않았단다!" 위즐리 부인이 황급히 변명했다. 그 후로는 헤르미온느를 대하는 위즐리 부인의 태도도 눈에 뜨일 정도로 다정하게 변했다. 오후에 해리와 빌, 위즐리 부인은 성을 빙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산책을 즐겼다. 그리고 저녁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상석에는 루도 베그만과 코넬리우스 퍼지가 함께 앉아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무척 유쾌한 표정이었지만, 맥심 부인 옆자리에 앉아 있는 코넬리우스 퍼지는 딱딱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맥심 부인은 앞에 놓인 음식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해리는 어쩐지 부인의 눈이 붉게 충혈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그리드는 계속해서 테이블 너머로 맥심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만찬에는 평소보다 한두 가지 요리가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 해리는 별로 많이 먹지 못했다. 마법의 천장이 푸른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바뀌자, 덤블도어가 교직원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연회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5분 후에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시험을 위해 퀴디치 운동장으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챔피언들은 지금 바로 베그만 씨를 따라서 운동장으로 가십시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핀도르의 모든 학생들이 해리를 위해 박수를 쳤다. 위즐리 가족들과 헤르미온느는 한 마음으로 해리의 행운을 빌어 주었다. 해리는 케드릭과 플뢰르, 빅터와 함께 연회장을 나섰다. "기분은 괜찮니, 해리? 자신 있니?" 그들이 돌계단을 지나서 운동장으로 막 들어섰을 때, 루도 베그만이 물었다. "전 괜찮아요." 해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약간 초조하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주문들과 마법들을 떠올리자 훨씬 더 마음이 편해졌다. 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공부한 내용들을 계속 머리 속에 되새겼다. 잠시 후에 그들은 퀴디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6미터 높이의 산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들 앞에는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입구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통로는 아주 어둡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5분 후에 관중석은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좌석을 찾아서 우르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의 발소리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이제 하늘은 맑고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초저녁 별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그리드와 무디 교수, 맥고나걸 교수, 플리트윅 교수가 퀴디치 경기장으로 들어오더니 루도 베그만과 챔피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자에 번쩍번쩍 빛나는 커다랗고 붉은 별을 달고 있었는데, 오직 해그리드만이 두더지 가죽 조끼의 등판에 별을 달고 있었다. "우리는 미로 바깥에서 경비를 서고 있을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네 명의 챔피언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만약 어려운 일이 생겨서 구조를 받고 싶다면,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리도록 해요. 그럼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당장 달려가서 구해 줄 테니까... 알겠어요?" 챔피언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서 가세요!" 루도 베그만이 네 명의 구조반을 향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운을 빈다, 해리." 해그리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더니 미로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루도 베그만은 다시 요술 지팡이를 목에 갖다대고 중얼거렸다. "소노루스!" 그러자 마법으로 증폭된 루도 베그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시험이 곧 시작됩니다! 먼저 현재까지의 점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선 1등은 호그와트의 케드릭 디고리 군과 해리 포터 군입니다. 두 사람은 85점으로 동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오자, 금지된 숲에서 새들이 어두운 밤 하늘로 퍼드득 날아올랐다. "2등은 80점을 기록하고 있는 덤스트랭의 빅터 크룸 군입니다." 또다시 갈채가 터졌다. "3등은 보바통의 플뢰르 델라쿠르 양입니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관중석 중간쯤에서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위즐리 부인과 론,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발견했다. 해리가 그들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자, 그들도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발합니다. 해리와 케드릭!" 루도 베그만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셋... 둘... 하나." 루도 베그만이 짧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헤리와 케드릭은 재빨리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 높이 치솟은 산울타리는 통로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산울타리가 너무 높고 빽빽하기 때문인지 혹은 어떤 마법의 힘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들리던 관중들의 요란한 함성 소리는 미로 속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싹 사라졌다. 해리는 마치 다시 물 밑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꺼내 들고 주문을 외웠다. "루모스!" 해리의 등 뒤에서 케드릭도 똑같은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50미터 가량 걸어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잘 가." 해리는 케드릭을 향해 손을 흔든 후에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케드릭은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해리는 루도 베그만이 두 번째로 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었다. 빅터 크룸이 미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해리는 더욱 빨리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리가 선택한 길은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간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가능한 한 멀리까지 내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루도 베그만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이제 네 명의 챔피언 모두 미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해리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누군가가 해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늘은 점점 더 짙은 군청색으로 물들었으며, 미로도 더욱 어둠침침하게 변했다. 마침내 해리는 두 번째 갈림길에 도착했다. "방향을 가르쳐다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요술지팡이는 한 바퀴 빙 돌더니 오른쪽에 있는 단단한 산울타리를 가리켰다. 그 방향이 북쪽이라는 뜻이었다. 해리는 미로의 중앙을 찾아 가려면 북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일단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가 가능한 빨리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길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선 해리는 여전히 순탄하게 쭉 뻗어 있는 길을 발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아무런 장애물도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해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쯤이면 분명히 뭔가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미로는 마치 해리를 방심하도록 만들기 위한 속셈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요술지팡이를 빼들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케드릭이었다. 케드릭은 이제 막 오른쪽 모퉁이를 황급히 돌아서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케드릭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케드릭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단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해그리드의 폭탄 꼬리 스크루트야! 정말 엄청나게 커. 간신히 빠져나왔어!" 케드릭이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곧 다른 길로 모습을 감추었다. 스크루트와 멀리 떨어지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다시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해리는 끔찍한 것으로 보았다. 디멘터가 해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모습을... 키가 3.5미터나 되는 디멘터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썩어 문드러지고 딱지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손을 쭉 내밀면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가 있는 곳을 감지하곤 곧장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디멘터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싸늘한 냉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하지만 해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해리는 가장 행복한 광경을 애써 머리 속에 그렸다. 무사히 미로를 통과한 후에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모든 정신을 거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들고 소리쳤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해리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은빛 숫사슴이 튀어나오더니 디멘터를 향해 달려갔다. 디멘터는 옷자락을 밟고 비틀거리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해리는 지금까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디멘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기다려!" 해리는 고함을 지르면서 은빛 패트로누스의 뒤를 따라갔다. "저건 보가트야! 리디큘러스!"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디멘터의 형상을 한 보가트가 연기와 함께 펑 하고 터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은빛 숫사슴도 사라지고 말았다. 해리는 내심 숫사슴이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길동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리는 또다시 요술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채, 귀를 쫑긋 세우고 가능한 빨리 앞으로 나갔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두 번이나 막다른 골목이 길을 가로막았다. 나침반 마법을 써서 방향을 확인한 해리는 동쪽으로 너무 많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이상한 황금빛 안개 같은 것이 나타났다. 해리는 요술지팡이 불빛을 비추면서 조심스럽게 안개를 향해 다가갔다. 이것도 마법의 일종인 것 같았다. 해리는 과연 이 안개를 날려 버릴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레덕토!"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주문을 외웠다. 해리가 쏘아 올린 주문은 곧장 안개를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안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압 마법은 단단한 물체에나 사용하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번 시험해 볼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안개를 피해서 빙 돌아갈까? 해리가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정적을 깨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플뢰르?" 해리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해리는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플뢰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저 앞쪽 어딘가에서 들린 것 같았다. 해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마법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해리는 머리를 밑으로 한 채, 땅바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해리의 안경은 당장이라도 끝없는 하늘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코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해리는 안경을 꼭 움켜쥔 채, 겁에 질려서 한참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치 거꾸로 뒤집어진 잔디밭에 발바닥이 딱 붙어 버린 것 같았다. 머리 밑으로는 별들이 총총하게 박혀 있는 검은 하늘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발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당장 땅에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침착하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하자! 해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온몸의 피가 몽땅 머리로 쏠렸다. 생각하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해리가 연습했던 주문 중에서 갑자기 거꾸로 뒤바뀐 하늘과 땅에 대처할 수 있는 주문은 없었다. 그래, 용기를 내서 걸음을 옮기는 거야! 관자놀이의 맥박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불꽃을 쏘아 올려서 구조를 받을 것인가? 만약 구조를 받는다면, 해리는 시험에서 탈락하고 마는 것이다. 해리는 머리 밑으로 무한히 펼쳐진 공간을 보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풀이 나 있는 천장에서 힘껏 오른발을 떼었다. 순식간에 세상은 다시 똑바로 되었다. 해리는 힘없이 무릎을 꺾으면서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땅 위로 푹 쓰러졌다. 잠시 동안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의 맥이 탁 풀린 것이다. 해리는 계속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해리는 어깨 너머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빛 안개가 달빛을 받으면서 무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두 갈래 길에 도달한 해리는 신중하게 땅바닥을 살펴보면서 플뢰르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조금 전에 비명을 지른 사람은 플뢰르가 분명했다. 그런데 무엇을 만난 것일까? 플뢰르는 무사할까? 하지만 플뢰르가 불꽃을 쏘아 올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혼자 힘으로 곤경에서 무사히 빠져나간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험에 빠진 것일까? 해리는 점점 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면서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챔피언이 한 명 탈락했구나... 트리위저드 우승컵은 분명히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플뢰르는 더 이상 승산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우승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해리가 우승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챔피언으로 선발된 이후 처음으로, 다른 학생들 앞에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대략 10분 동안 걸어갔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번번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곤 했다. 두 번이나 똑같은 길로 잘못 들어선 끝에, 해리는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요술지팡이의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산울타리 담장 위에 일렁이는 해리의 그림자가 비쳤다. 또 다른 모퉁이를 돌아선 해리는 그만 폭탄 꼬리 스크루트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케드릭의 말이 맞았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 거의 3미터 길이로 자란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마치 거대한 전갈처럼 보였다. 침이 달린 기다란 꼬리는 등 위로 바싹 말려져 있었으며 두꺼운 비늘 갑옷은 해리의 요술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으면서 번쩍거렸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재빨리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기절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기절 주문은 스크루트의 갑옷에 맞고 다시 튀어나왔다. 해리는 재빨리 목을 움츠렸지만, 희미하게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머리 끝을 살짝 그슬린 것이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꼬리 끝에서 불덩이를 발사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해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임페디멘타!"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힘껏 소리쳤다. 장애 마법 주문 역시 스크루트의 갑옷에 맞고 튀어나왔다. 해리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몇 발 물러서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폭탄꼬리 스크루트는 무서운 속도로 해리를 덮쳤다. "임페디멘타!" 스크루트는 해리와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딱 멈춰섰다. 단단한 껍질로 뒤덮여 있지 않은 아랫배가 바로 스크루트의 약점이었고, 해리는 바로 그곳에 장애 마법 주문을 명중시킨 것이다. 숨을 헐떡이면서 스크루트로부터 벗어난 해리는 얼른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장애 마법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주문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스크루트가 꼬리를 휘두르면서 공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왼쪽 길로 들어선 해리는 또다시 막다른 골목과 부딪히게 되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섰지만 역시 막다른 골목이었다. 해리는 잠시 동안 걸음을 멈춘 채,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의 가슴은 마치 방망이질을 하듯이 쿵쿵거렸다. 해리는 다시 나침반 마법을 써서 방향을 바로잡은 후에,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짐작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몇 분 동안 해리는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갔다. 그때 문득 산울타리 너머에서 누군가 해리와 나란히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어섰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케드릭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크루시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빅터 크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케드릭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설마! 무서운 생각이 든 해리는 케드릭이 있는 통로로 넘어가는 길을 찾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길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다시 진압 마법을 사용했다. 그다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산울타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렸다. 해리는 구멍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고 빽빽하게 자라난 가지와 덤불들을 마구 걷어찼다. 마침내 가지가 부러지면서 산울타리에 구멍이 뚫렸다. 해리는 옷이 찢어지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몸을 버둥거리면서 구멍 속으로 들어가, 재빨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바닥에 쓰러진 케드릭이 몸을 비비꼬면서 씰룩씰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케드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해리는 재빨리 빅터 크룸을 향해 요술지팡이를 겨누었다. 바로 그 순간 빅터 크룸이 고개를 들었다. 빅터 크룸은 빙글 돌아서더니 황급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기절 마법은 빅터 크룸의 등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빅터 크룸은 죽은 듯이 그 자리에 딱 멈춰 서더니 앞으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잔디밭에 얼굴을 파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허겁지겁 케드릭에게 달려갔다. 케드릭은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경련은 간신히 멈춘 것 같았다. "괜찮니?" 해리가 케드릭의 팔을 붙잡으면서 물었다. "그래." 케드릭은 여전히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몰래 내 뒤로 다가와서는... 빅터 크룸의 발 소리를 듣고 뒤로 돌아섰을 때... 요술지팡이를 나에게 겨누고..." 케드릭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었다. 케드릭과 해리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어. 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해리가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조금 전에 플뢰르가 비명 지르는 소리 들었니?" 해리가 물었다. "응. 혹시 빅터 크룸이 플뢰르도 공격한 게 아닐까?" 케드릭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빅터 크룸을 노려보았다. "모르겠어."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이대로 놔두고 가도 될까?" 케드릭은 다시 해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아무래도 불꽃을 쏘아야만 할 것 같아. 구조반이 와서 빅터 크룸을 데리고 가겠지. 그렇지 않으면 스크루트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꼴을 당해도 싼 녀석이야." 케드릭은 화가 나서 투덜거렸지만 곧바로 요술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리더니 허공으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꽃은 빅터 크룸이 쓰러져 있는 곳을 표시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해리와 케드릭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케드릭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우리는 가는 게 좋겠어..." "뭐라구? 아... 그래... 맞아."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해리와 케드릭은 힘을 모아서 빅터 크룸과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경쟁자라는 사실이 다시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두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왼쪽으로, 케드릭은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곧이어 케드릭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해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나침반 마법을 쓰면서 걸어갔다. 이제 해리와 케드릭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조금 전에 목격한 빅터 크룸의 행동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무디의 말에 따르면,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람에게 사용하는 행위는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빅터 크룸이 그런 야비한 방법까지 사용하면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려고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해리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경욱 점점 더 많아졌다. 하지만 통로가 어두워질수록 해리는 미로의 중심부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다랗게 곧장 뻗어 있는 길을 달려가던 해리는 또다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요술지팡이 불빛을 비추자, 참으로 이상한 생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오직 <괴물들에 대한 괴물책>에서 그림으로나 보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스핑크스였다. 거대한 사자의 몸뚱이를 가진 스핑크스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과 끝에 갈색 털이 나 있는 길고 노란 꼬리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머리는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아몬드처럼 생긴 갸름한 눈을 돌리더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스핑크스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이 몸을 웅크리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길을 가로막은 채, 옆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어슬렁거렸다. 잠시 후에 스핑크스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깊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이제 거의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가장 빠른 지름길은 내 앞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을 좀 비켜주시겠어요?" 해리는 조심조심하며 부탁했다. 하지만 스핑크스가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그건 안 된다." 스핑크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서성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수수께끼를 풀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 대답을 해서 맞추면 너를 그냥 통과시켜 주겠지만, 맞추지 못하면 너를 공격할 것이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다면, 네가 그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마."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일을 잘 하는 사람은 해리가 아니라 헤르미온느였다. 해리는 신중하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궁리해 보았다. 만약 수수께끼가 너무 어려우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스핑크스를 피해 달아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로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좋아요. 무슨 수수께끼인지 들어볼까요?" 마침내 해리가 결심한 듯 말했다. 스핑크스는 길 중간에 턱 버티고 앉아서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자를 생각하라. 그는 비밀을 다루고 거짓말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두 번째, 고치는 것의 마지막, 중간의 중간, 끝의 끝은 무엇인지 말하라. 마지막으로 찾기 어려운 말을 찾으려고 할 때 종종내는 소리를 말하라. 이제 그 답을 다 엮어서 이 질문에 대답하라. 그대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이 동물은 과연 무엇인가? 해리는 입을 딱 벌렸다.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좀더 천천히요." 해리는 스핑크스를 향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스핑크스는 눈을 꿈벅거리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시를 외웠다. "앞선 질문의 해답을 다 합치면 내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나요?" 해리가 물어보았다. 하지만 스핑크스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해리는 그 미소를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은 아주 많았다. 당장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동물은 폭탄 꼬리 스크루트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것은 정답이 아닐 것 같았다.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애를 썼다...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가는 자." 해리는 초롱초롱한 눈길로 스핑크스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렇다면 사기꾼인데... 아니, 아직 답을 말한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스파이? 아무래도 다시 그 시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다음 구절을 다시 한 번 말해 주실래요?" 스핑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구절을 읊어주었다. "고치는 것(mend)의 마지막?" 해리는 그 시를 되풀이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 모르겠는걸? 중간의 중간, 끝의 끝이라... 중간(middle)과 끝(end)... 중간의 중간은... 그러니까 dd... 끝 중의 끝도... 역시 d가 되는구나. 그래, 알겠어. 두 번째 시의 비밀은 바로 'd'라는 글자야." 해리는 너무나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제일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스핑크스는 마지막 구절을 다시 말해 주었다. "찾기 어려운 말을 찾으려고 할 때 종종 내는 소리라... 어... 그건... 어... 잠깐 기다려요. '어'그래요! '어(er)'소리예요! 그리고 d와 er를 합치면 더(der)가 되네." 스핑크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 더... 스파이... 더... 스파이더..." 해리는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은... 그래, 스파이더! 거미예요!" 스핑크스는 활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리를 한 번 쭉 펴더니 해리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고마워요!" 해리는 자신의 명석한 두뇌에 대해 스스로 놀라면서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요술지팡이는 해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더 이상 끔찍한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한, 어쩌면 우승컵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해리는 목표 지점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방향을 가르쳐다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요술지팡이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쏜살같이 뛰어가던 해리의 눈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떤 그림자가 맞은편 통로에서 불쑥 나타났다. 케드릭이 먼저 우승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케드릭은 젖먹던 힘을 다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해리는 절대로 케드릭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케드릭은 해리보다 훨씬 키가 컸으며 다리도 더 길었다. 그때 해리는 왼쪽에서 거대한 어떤 물체가 산울타리 위로 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해리가 서 있는 통로와 교차되는 다른 통로를 따라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케드릭은 그것과 거의 충돌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케드릭은 온통 우승컵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직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케드릭! 왼쪽을 봐!" 해리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케드릭은 그 거대한 물체와 부딪히려는 순간, 힐끗 고개를 돌려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해리는 케드릭의 요술지팡이가 손에서 멀리 튕겨 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대한 거미가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케드릭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은 북실북실하게 털이 난 거미의 검은 몸뚱이에 명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정도의 효과밖에 나지 않았다. 거미는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허둥지둥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해리를 향해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임페디멘타! 스투페파이!"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미는 너무나 몸집이 거대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문을 쏘아댈수록 더욱 화만 돋우게 될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해리는 번뜩이는 여덟 개의 검은 눈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집게발을 힐끗 쳐다보았다. 거미는 앞발로 해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해리는 미친 듯이 버둥거리면서 거미를 발로 걷어차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거미가 집게발로 해리의 발을 꼭 쥐자, 참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다. "스투페파이!" 케드릭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케드릭의 주문 또한 해리의 주문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간신히 요술지팡이를 치켜든 해리는 또다시 집게발을 쫙 벌리고 달려드는 거미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무장 해제 마법을 당한 거미는 해리를 탁 놓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바람에 해리는 4미터 높이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미 부상을 당한 해리의 다리가 땅바닥에 세차게 부딪혔다. 미처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해리는 스크루트에게 했던 것처럼 거미의 아랫배를 향해 요술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목청이 터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스투페파이!" 그와 동시에 케드릭도 똑같이 주문을 쏘았다. 두 사람의 주문이 합쳐지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이 이루어졌다. 거미는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더니 근처 산울타리에 납작하게 붙어서 털이 북실북실한 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해리! 괜찮니? 거미에게 물렸니?" 케드릭이 큰 소리로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야." 해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붉은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거미의 집게발에 베인 깊고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산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선 채, 해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우승컵으로부터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케드릭의 등 뒤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드릭은 꼼짝도 하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에 케드릭은 힐끗 고개를 돌리더니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쳐다보았다.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승컵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케드릭은 다시 산울타리를 붙잡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해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땅이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우승컵은 네가 가지도록 해. 네가 우승자가 되어야만 해. 너는 두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 주었잖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시합의 우승자가 될 수는 없어." 해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꾸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는 참을 수 없이 아팠으며, 거미를 물리치기 위해 정신없이 싸우는 통에 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무진 고생 끝에 결국 케드릭에게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빼앗기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초 챙을 빼앗겼던 것처럼...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먼저 잡는 사람이 점수를 얻는 거야. 그리고 그건 바로 너잖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다리로 너와 경주를 해서 이길 수가 없어." 케드릭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거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야." 케드릭이 말했다. "제발 고상한 척 좀 하지마. 그냥 우승컵을 잡으란 말이야. 그래야 우리 모두 이 미로에서 나갈 수 있잖아." 해리가 신경질을 내면서 소리쳤다. 케드릭은 산울타리를 꼭 붙잡고 있는 해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용에 대해서 미리 말해 주었잖아. 네가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첫번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을 거야."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 나도 도움을 받아서 알아내었던 거야. 게다가 너도 황금알에 대해서 나에게 알려 주었잖아. 우리는 서로 비긴 거야." 해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다리에 흐르는 피를 옷으로 닦아내었다. "황금알에 대해 도움을 받았던 건 나도 역시 마찬가지야." 케드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도 우린 비겼어." 해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보았다. 다리에 약간 힘을 주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후들거렸다. 거미가 해리를 놓아 주었을 때,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발목을 삔 것 같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 너는 좀더 나은 점수를 얻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인질들이 모두 구출될 때까지 너 혼자 뒤에 남아 있었잖아. 그게 올바른 일이었어.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케드릭은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조금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그 노래를 진짜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큼 멍청한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야! 당장 우승컵을 차지해!" 해리가 신랄한 목소리로 외쳤다. "싫어!" 케드릭이 거칠게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는 뒤엉킨 거미의 다리를 넘어서 해리에게 걸어갔다. 해리는 케드릭을 빤히 노려보았다. 케드릭은 대단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후플푸프 기숙사가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엄청난 영광을 외면하고 돌아선 것이다. "어서 가!"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결연하게 말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온갖 고심을 다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팔짱을 낀 채, 턱 버티고 서 있는 케드릭의 얼굴은 아주 의연했다. 케드릭은 우승컵을 해리에게 양보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케드릭과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해리의 머리 속에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들고 미로를 빠져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번쩍 손에 들고 우뚝 서 있었다... 관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탄하고 있는 초 챙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잠시 후에 영상들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결의에 가득 차 있는 케드릭의 그늘진 얼굴이 나타났다. "우리 함께 하자."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뭐라구?" "우리가 동시에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는 거야. 그래도 호그와트가 우승을 하는 거잖아. 우리는 동점이 되는 거야." 케드릭은 해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팔짱을 풀었다. "너... 진심이니?" "그래, 정말이야. 결국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었잖아. 안 그래? 그리고 우린 함께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우승도 함께 하는 거야." 해리가 케드릭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잠시 동안 케드릭은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네 말이 맞아. 이리로 와." 케드릭은 해리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부축했다. 그리고 해리와 함께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놓여 있는 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내 두 사람은 트리위저드 우승컵 바로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우승컵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둘 다 손을 내밀었다. "셋을 세면 잡는 거야, 알았지?" 해리가 케드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케드릭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해리와 케드릭은 동시에 트리위저드 우승컵의 손잡이를 잡았다. 갑자기 해리는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확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발이 땅바닥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고 있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은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해리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케드릭 역시 해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제32장 살과 피와 뼈 마침내 해리는 발이 땅바닥에 닿는 것을 느꼈다. 상처입은 다리가 힘없이 꺾이면서 해리는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손에서 떨어졌다. 해리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케드릭은 고개를 저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리가 일어날 수 있도록 팔을 부축해 주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호그와트 운동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몇 킬로미터, 어쩌면 거의 수백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호그와트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풀이 무성하게 뒤덮인 어두운 공동묘지였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주목나무 너머로 교회의 검은 그림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왼족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언덕 위에는 웅장하고 오래된 저택이 한 채 자리잡고 있었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이 우승컵이 포트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니?" "전혀... 그런데 이것도 시험의 일부일까?" 해리는 공동묘지를 빙 둘러보았다. 온 세상은 마치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리고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도 모르겠어. 요술지팡이를 빼지 않을래?" 케드릭은 불안한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해리는 케드릭이 먼저 그런 제안을 한 것에 대해 은근히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요술지팡이를 빼들었다. 해리는 계속 주위를 경계하면서 두리번거렸다. 또다시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갑자기 케드릭이 초조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짙은 어둠 속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공동묘지의 무덤들 사이를 지나서 그들을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걸음걸이와 두 팔의 모양으로 미루어 볼 때, 뭔가를 품에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키가 작달막한 그 사람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건이 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 사이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해리는 그 사람이 갓난 아기 같은 것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 아기가 아니라 그냥 옷꾸러미일까? 해리는 천천히 요술지팡이를 내리면서 케드릭을 힐끗 돌아보았다. 케드릭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리를 마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 사람은 커다란 대리석 묘비가 우뚝 솟아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과 겨우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잠시동안 해리와 케드릭과 키가 작달막한 그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 순간, 해리의 이마에 나 있는 흉터가 느닷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고통이었다. 해리는 도저히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 요술 지팡이를 툭 떨어뜨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땅바닥으로 쓰러진 해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다른 한놈은 죽여라!"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아바다 케다브라!" 해리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초록빛 섬광이 번쩍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뭔가 육중한 것이 쿵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마의 통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했다가 차츰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무슨 광경을 보게 될까? 해리는 몹시 두려워하면서 쿡쿡 쑤시는 눈을 조심스럽게 떠 보았다. 케드릭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케드릭은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짧은 몇 초의 순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릅뜨고 있는 회색 눈은 버려진 흉가의 창문처럼 공허하고 생기가 없었다. 절반 가량 벌어진 입은 당장이라도 처절한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머리 속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전에, 무감각한 마비 상태에서 미처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누군가 해리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망토를 걸친 작달막한 체구의 남자가 품에 안고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요술 지팡이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해리를 끌고 대리석 묘비까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깜박이는 요술지팡이의 불빛을 통해,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톰 리들 그 사람이 강제로 해리를 돌아서게 하는 바람에 해리는 그만 묘비에 등을 쾅 부딪히고 말았다. 망토를 입은 사람은 튼튼한 밧줄을 꺼내더니 목부터 발목까지 해리를 묘비에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해리는 어두운 두건 깊숙한 곳에서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리가 마구 발버둥을 치면서 반항하자, 그 사람은 손바닥으로 해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 순간, 해리는 그 사람의 손가락이 네 개 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비로소 해리는 두건을 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 사람은 바로 웜테일이었다. "당신은!" 해리가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이미 해리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버린 웜테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밧줄이 단단하게 묶여 있는지 다시 한 번 분주하게 확인할 뿐이었다. 매듭을 더듬고 있는 웜테일의 손가락은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해리가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묘비에 단단히 묶여 있는 걸 확인하자, 웜테일은 망토 안에서 검은 천을 꺼내더니 해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휙 돌아서서 허둥지둥 사라지고 말았다. 해리는 희미한 신음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웜테일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볼 수도 없었다. 묘비에 꽁꽁 묶여 있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오직 정면만 바라볼 수 있었다. 케드릭의 시신은 6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별빛을 받으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해리의 요술지팡이는 바로 케드릭의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해리가 갓난 아기라고 생각했던 그 옷꾸러미는 무덤 근처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옷꾸러미가 움찔움찔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해리는 가만히 옷꾸러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또다시 이마의 흉터에 무서운 통증이 엄습했다. 갑자기 해리는 옷꾸러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옷꾸러미는 절대로 풀어지면 안 된다... 문득 해리의 발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뱀이 수풀을 헤치면서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해리가 묶여 있는 묘비 주위를 빙빙 돌았다. 또다시 웜테일이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웜테일은 뭔가 아주 육중한 물건을 힘들게 끌고 오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웜테일이 해리의 시야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웜테일은 돌로 만든 커다란 가마솥을 무덤 근처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 안에는 물처럼 보이는 것이 가득 들어 있어서 가마솥이 흔들릴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로 만든 그 커다란 가마솥은 지금까지 해리가 사용해 본 어떤 솥보다도 컸다. 어른이 들어가서 앉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옷꾸러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더욱 심하게 움찔거렸다. 마치 옷꾸러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웜테일은 가마솥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요술지팡이로 정신없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별안간 가마솥 밑에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거대한 뱀은 어둠 속으로 스르르 모습을 감추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는 금방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거품을 낼 뿐만 아니라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탁탁 맹렬하게 불꽃을 튀겼다. 자욱한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면서, 불길을 살펴보고 있는 웜테일의 모습을 흐릿하게 가렸다. 옷꾸러미는 잔뜩 안달이 난 듯이 더욱 초조하게 버둥거렸다. 해리는 또다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서둘러라!" 이제 가마솥 안의 액체는 작은 불꽃을 튀기면서 환하게 빛났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박아 놓은 것 같았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주인님." "자... 어서!" 차가운 목소리가 웜테일을 재촉했다. 웜테일이 땅바닥에 놓여 있던 옷꾸러미를 풀자, 그 속에 싸여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리는 마구 비명을 질렀지만, 입을 틀어막고 있는 천뭉치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웜테일이 지옥의 문을 열고 어떤 아주 추악하고 미끌미끌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를 꺼내 보여준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욱 끔찍했다. 수백 배는 더... 웜테일이 꺼낸 그것은 몸을 잔뜩 웅크린 갓난 아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렇게 전혀 아기같이 생기지 않은 아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검붉은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으며 온몸에는 오톨도톨한 비늘이 잔뜩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의 팔과 다리는 가늘고 흐늘흐늘했으며, 마치 납작한 뱀의 머리처럼 생긴 그것의 얼굴에는(이 세상의 그 어떤 아이도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번뜩이는 빨간 눈동자가 달려 있었다. 그것은 혼자 힘으로는 거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이 가느다란 팔을 내밀어 웜테일의 목에 걸자, 웜테일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두건이 뒤로 벗겨지고 말았다. 해리는 역겨워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 웜테일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웜테일은 그것을 안고 가마솥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갔다. 잠시동안 해리는 가마솥 안에서 끓어오르는 불꽃에 환하게 비추어진 그 사악하고 납작한 얼굴을 보았다. 웜테일은 품에 안고 있던 그것을 가마솥 안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쉿 소리와 함께 그것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해리는 그 조그마한 몸뚱이가 퉁 하고 가마솥 바닥에 부드럽게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가마솥에 빠져 죽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 해리는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생각했다. 이제 이마의 흉터는 불로 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확확 쑤셨다. 제발... 그냥 빠져 죽도록 가만히 내버려둬! 마침내 웜테일이 입을 열었다. 웜테일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웜테일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웜테일은 두 눈을 꼭 감고 천천히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어둠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바쳐진 아버지의 뼈여, 당신의 아들을 새롭게 하라!" 갑자기 해리의 발 밑에 있던 무덤이 쩍 갈라졌다. 공포에 질린 해리는 웜테일이 말을 마치자마자 고운 뼛가루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뼛가루는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더니 가마솥 안으로 사르르 떨어졌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수면이 갈라지면서 쉿쉿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타닥타닥 사방으로 불꽃을 내뿜으면서 독약처럼 보이는 파란색으로 변했다. 이제 웜테일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웜테일은 망토 안에서 길고 가느다란 단검을 꺼냈다. 은으로 만든 단검이 번쩍이는 빛을 뿌렸다. 무슨 일인지 웜테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구 흐느끼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웜테일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종의... 살을... 기... 기꺼이... 바치나니... 그대의 주인을... 다시... 살아나게 하라!" 웜테일은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손가락 한 개가 없는 바로 그 손이었다. 웜테일은 왼손으로 단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해리는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웜테일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깨닫고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어둠을 가르는 비명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해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웜테일은 비틀거리며 땅바닥으로 쿵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뭔가 가마솥 안으로 풍덩 떨어지는 역겨운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는 이제 빨갛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꼭 감고 있던 해리의 눈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웜테일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참기 위해 신음소리를 내었다. 문득 웜테일의 가쁜 숨결이 해리의 얼굴에 와 닿았다. 어느 틈에 웜테일이 해리의 눈앞에 서 있었다. "강... 강제로 빼앗은... 원수의 피... 그대는 그대의 적을... 부활하게 하리라!" 해리는 마구 발버둥쳤지만, 웜테일의 행동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밧줄을 풀기 위해 애를 쓰면서 절망적으로 고개를 늘어뜨렸다. 문득 웜테일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칼날이 오른팔의 안쪽 부분을 깊숙히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찢어진 소맷자락 밑으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여전히 고통으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웜테일은 호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유리병을 꺼내더니 해리의 상처에 대고 흘러내리는 피를 받았다. 웜테일은 해리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휘청거리면서 가마솥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마솥에 붉은 피를 부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가 즉시 하얀색으로 변하더니 눈부시게 빛났다. 마침내 일을 모두 끝낸 웜테일은 가마솥 옆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잘린 팔뚝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거리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마솥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불꽃을 온 사방으로 튀기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빛이 눈부실 정도로 밝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모두 검은색 융단같이 보일 정도였다.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빠져 죽어라. 해리는 마음속으로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일이 잘못되는 거야... 갑자기 사방으로 튀어오르던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대신에 가마솥에서 하얀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다. 해리의 시야는 수증기로 인해 완전히 가려지고 말았다. 웜테일도... 케드릭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증기뿐이었다. 일이 잘못된 거야... 해리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가마솥에 빠져 죽었을 거야. 제발... 제발 죽어라... 그 순간 해리는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공포가 밀려들었다. 키가 훌쭉하고 해골처럼 앙상한 체구의 한 남자가 가마솥에서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에게 옷을 입혀라." 자욱한 수증기 너머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웜테일은 여전히 잘려 나간 팔뚝을 움켜잡은 채, 애처롭게 흐느끼고 있었다. 웜테일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옷을 집어 들어 가마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개뿐인 손을 움직여 주인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바싹 마른 체격의 남자가 가마솥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무서운 눈길로 해리를 노려보면서... 해리는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지난 3년 동안 해리의 악몽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크고 번뜩이는 새빨간 눈, 뱀처럼 구멍만 뻥 뚫린 납작한 코, 해골보다 더욱 창백한 얼굴... 마침내 볼드모트 경이 부활한 것이다. 제33장 죽음을 먹는 자들 볼드모트는 천천히 눈길을 돌리더니 자신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볼드모트의 손은 마치 하얗고 커다란 거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볼드모트는 길고 창백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과 팔과 얼굴을 어루만졌다. 고양이 눈처럼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진 새빨간 눈은 어둠 속에서 더욱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구부려 보았다. 이윽고 볼드모트의 얼굴에 황홀하고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이 떠올랐다. 볼드모트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줄줄 흘리면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웜테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시 스르르 나타나 쉿쉿 소리를 내면서 해리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는 거대한 뱀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볼드모트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다란 손가락을 호주머니 속에 찔러 넣더니, 요술지팡이를 꺼내들어 잠시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갑자기 볼드모트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려 웜테일을 겨냥했다. 웜테일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해리가 묶여 있는 비석에 쾅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쓰러진 웜테일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볼드모트는 다시 새빨간 두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날카롭고 차갑고 전혀 유쾌하지 않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제 웜테일의 옷은 온통 붉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주인님..." 잘린 팔뚝의 끝을 옷자락으로 감싸고 있던 웜테일이 숨막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팔을 내밀어라." 볼드모트가 태연하게 말했다. "오, 주인님... 감사합니다. 주인님..." 웜테일은 피가 철철 흐르는 팔뚝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다시 소름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웜테일, 다른 팔을 내밀어라." "주인님, 제발... 제발..." 볼드모트는 허리를 숙이더니 웜테일의 왼쪽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웜테일의 소맷자락을 팔꿈치까지 말아올렸다. 해리는 웜테일의 팔뚝에 해골 모양의 선홍색 문신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해골의 입에서는 뱀 한 마리가 마치 혓바닥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퀴디치 월드컵이 끝났을 때, 어두운 밤하늘에 나타났던 바로 그 어둠의 표식이었다. 볼드모트는 이제 목놓아 통곡하는 웜테일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 문신만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다시 돌아왔다." 볼드모트가 나지막이 말했다. "모두들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곧 알게 될 테니까..." 볼드모트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웜테일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세게 눌렀다. 해리의 이마에 난 흉터가 다시 칼로 찌르는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웜테일도 몹시 고통스러워 하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에 볼드모트가 웜테일의 문신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해리는 그 문신이 새까맣게 변해 버린 것을 보았다. 볼드모트의 얼굴에 잔인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볼드모트는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운 후,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공동 묘지를 빙 둘러보았다. "이것을 느끼고 다시 돌아올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볼드모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차갑게 번뜩이는 볼드모트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을 모르는 척할 만큼 어리석은 자들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볼드모트는 줄곧 공동묘지를 둘러보면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볼드모트는 다시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뱀처럼 차가운 볼드모트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해리 포터, 지금 너는 죽은 내 아버지의 유골 위에 서 있다." 볼드모트가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속삭였다. "멍청한 머글이었지... 꼭 네 엄마처럼 말이야. 하지만 두 사람 다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다. 안 그런가? 네 엄마는 어린 너를 지키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나는 내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죽은 그 자의 뼈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았다..." 볼드모트는 다시 냉혹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계속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커다란 뱀은 수풀 속을 빙빙 돌아다니고 있었다. "포터, 언덕 위에 있는 저 집이 보이느냐? 리들 하우스... 내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이 마을에서 살았던 내 어머니 마녀는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지.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밝히자, 아버지는 그만 어머니를 버리고 말았어... 그는 마법을 좋아하지 않았지. 내 아버지는 말이야..." 볼드모트는 쩍 갈라진 무덤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머글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지. 나는 머글들의 고아원에서 자라나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아버지를 찾겠다고 맹세했지... 그리고 그 자에게 복수를 했어... 나에게 톰 리들이라는 이름을 물려준 그 멍청이에게..." 볼드모트는 여전히 서성거리면서 새빨간 눈으로 공동묘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잘 들어라, 나의 가족사를..." 볼드모트가 음산하게 말했다. "이런! 내가 좀 감상적이 되었군... 하지만 보아라, 해리! 나의 진정한 가족들이 돌아오고 있다..." 갑자기 망토 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 무덤들 사이사이, 주목나무 너머 그늘진 곳곳마다 마법사들이 뿅 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두건을 눌러쓴 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볼드모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볼드모트는 아무 말없이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 한 명이 털썩 무릎을 꿇더니 볼드모트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주인님... 주인님..." 그는 볼드모트의 검은 옷자락에 입을 맞추면서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그의 뒤를 이어서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그들은 차례대로 무릎을 꿇고 다가오더니 볼드모트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톰 리들의 무덤과 해리, 볼드모트, 웜테일을 빙 둘러싼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웜테일은 아직까지도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키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더욱 많은 동지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지, 드문드문 빈 자리를 남겨 두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볼드모트가 두건을 쓴 얼굴들을 한 번 빙 둘러보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원을 따라 파르르 동요가 일었다. 마치 원을 그리고 서 있던 사람들이 부르르 몸을 떨기라도 한 것처럼... "잘 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여!" 볼드모트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3년... 무려 13년만에 다시 만나는구나. 하지만 그대들은 마치 어제의 일인 양 나의 부름에 즉각 응답해 주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어둠의 표식 아래 굳게 결속되어 있구나! 과연 그런가?" 볼드모트는 그 끔찍한 얼굴을 휙 돌리더니 쭉 찢어진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죄악의 냄새가 난다." 볼드모트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죄악의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또다시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던 어둠을 먹는 자들 사이에서 파르르 동요가 일어났다. 마치 원을 그리고 서 있는 사람들 모두 흠칫 뒤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감히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신속하게 나타난 걸 보니까, 그대들 모두 건강하고 멀쩡하다는 걸 알겠노라! 마법의 힘도... 예전 그대로인 것 같구나...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이 멀쩡한 마법사 무리들이 한 번도 자기들의 주인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영원한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주인을?"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웜테일 이외에는 감히 몸을 움직이려는 사람조차 없었다. 웜테일은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진 채,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팔을 움켜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해 보았다." 볼드모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내가 완전히 끝났다고 믿은 거라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슬그머니 나의 적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너무나 무지하고 순진했으며 잠시 나쁜 마법에 걸렸던 거라고 핑계를 대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또다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떻게 내가 다시 부활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부터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 내가 어떤 과정을 밟아 왔는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 내가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던 그 시절에, 나의 무한한 힘의 증거를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자들이?" 볼드모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죽음을 먹는 자들을 빙 둘러 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볼드모트의 시선을 느끼자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아마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볼드모트 경까지도 없애 버릴 수 있는 힘이... 이제 그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민들의 우상이자 더러운 혈통과 머글들의 수호자인 알버스 덤블도어에게?" 덤블도어의 이름이 나오자, 원을 그리고 서 있던 사람들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 중에 몇 명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다... 솔직히 실망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갑자기 원을 그리고 서 있던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이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볼드모트의 발 밑에 털썩 쓰러졌다. "주인님!" 그는 애타게 부르짖으면서 볼드모트에게 매달렸다. "주인님,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를 용서해 주십시오!" 볼드모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더니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크루시오!" 갑자기 땅바닥에 꿇어앉아서 애원하던 죽음을 먹는 자가 온몸을 마구 비틀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해리는 그 비명소리가 분명히 근처 마을까지 다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경찰이라도 와라... 해리는 간절히 소망했다... 아무라도... 제발... 잠시 후에 볼드모트는 다시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고문을 받은 죽음을 먹는 자는 땅바닥에 벌렁 쓰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애버리." 볼드모트가 그 마법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일어나거라. 나에게 용서를 구했느냐? 나는 용서하지 못한다. 잊지도 못한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는 너를 용서하기 전에 그 13년이라는 세월에 대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한다. 여기 있는 웜테일은 이미 그 대가를 치렀다. 그렇지 않느냐, 웜테일?" 볼드모트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웜테일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나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너의 옛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대가로 혹독한 고통을 치렀다. 웜테일, 너는 그걸 알고 있느냐?" "예, 주인님. 제발, 주인님... 제발..." 웜테일은 울먹이면서 간절하게 애원했다. "하지만 너는 내가 다시 몸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볼드모트는 땅바닥에 쓰러져서 흐느끼고 있는 웜테일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별로 쓸모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녀석이지만, 너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볼드모트 경은 경을 도와주는 자에게 상을 내린다..." 볼드모트는 다시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려 허공에 대고 한바퀴 휘둘렀다. 그러자 요술 지팡이 끝에서 은을 녹인 반짝이는 액체처럼 보이는 것이 한 가닥 흘러나왔다. 아무런 형체도 없었던 그것은 곧 구불구불 휘어지더니 사람의 손 모양이 되었다. 반짝거리는 그 손은 마치 달빛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서는 피가 흐르는 웜테일의 손목에 저절로 찰싹 달라붙었다. 갑자기 웜테일의 흐느끼는 소리가 뚝 그쳤다. 웜테일은 거칠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은빛 손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감쪽같이 웜테일의 팔뚝에 붙어서, 마치 휘황찬란한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웜테일은 은빛으로 빛나는 손가락들을 살짝 구부려 보았다. 그리고 부르르 몸을 떨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웜테일의 손에서 나뭇가지가 바스러졌다. "주인님." 웜테일은 몹시 감격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주인님...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웜테일은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볼드모트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웜테일, 이제부터 두 번 다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볼드모트가 차갑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절대로! 나의 주인님..." 웜테일은 벌떡 일어나서 원을 그리고 서 있는 사람들 틈에 가서 섰다. 웜테일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눈물에 젖어서 번들번들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새로 생긴 강력한 손을 신기한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볼드모트는 웜테일의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루시우스, 나의 교활한 친구." 볼드모트는 그의 앞에 우뚝 멈춰 서더니 작게 속삭였다. "그대가 옛날 습성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비록 세상에는 아주 존경할 만할 얼굴을 내비치고 있지만 말이다. 그대는 아직도 머글들을 고문하는 일에 앞장설 준비가 되어 있겠지? 하지만 루시우스, 너는 한 번도 나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퀴디치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너의 활약은 꽤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너의 힘을 차라리 네 주인을 찾아서 돕는 일에 써야 하지 않았을까?" "주인님, 저는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으로부터 어떤 징표라도 있었다면, 주인님이 어디에 있다는 소문이라도 들었다면, 저는 당장 주인님 곁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그 무엇도 저를 막지 못했을 겁니다." 두건 밑에서 루시우스 말포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난 여름에 나의 충실한 죽음을 먹는 자가 어둠의 표식을 하늘에 쏘아 올렸을 때, 너 또한 도망치지 않았느냐?" 볼드모트가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루시우스는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루시우스... 너는 나를 실망시켰다... 따라서 앞으로 더욱 큰 충성을 바치기를 기대하겠다." "물론입니다, 주인님. 물론입니다... 정말 자비로우십니다. 고맙습니다." 볼드모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텅 빈 자리를 보고,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루시우스와 다음 사람 사이에 두 명은 충분히 설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는 레스트랭 부부가 서 있어야 한다." 볼드모트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즈카반에 갇혀 있다. 그들은 나를 부인하느니 차라리 아즈카반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즈카반의 문이 활짝 열리는 날, 레스트랭 부부는 상상을 초월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디멘터들도 우리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우리와 같은 부류인 것이다... 우리는 멀리 추방된 거인족들도 다시 부를 것이다... 나는 나의 충성스러운 모든 종족을 불러 모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마법 생물 군단을..." 볼드모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 앞을 아무런 말도 없이 휙 지나갔다. 잠시 후에 볼드모트는 어떤 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맥네어... 지금은 마법부에서 위험한 생물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웜테일이 말하던데? 머지않아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제물들을 갖게 될 것이다, 맥네어. 볼드모트 경이 그 제물을 마련해 주겠다..." "고맙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맥네어가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기는..." 볼드모트는 덩치가 커다란 두 명의 마법사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도 역시 두건을 눌러 쓰고 있었다. "크레이브로군... 이번에는 더 잘 할 수 있겠지? 안 그런가, 크레이브? 자네, 고일도?" 두 사람은 우물쭈물 대답하면서 엉거주춤하게 절을 했다. "예, 주인님..." "물론입니다, 주인님..." "너도 마찬가지다, 놋." 볼드모트가 고일의 그림자에 가려 구부정하게 서 있는 사람 앞을 지나가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주인님, 당신 앞에 굴복합니다. 저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그만! 그만 해라!" 볼드모트는 제일 넓게 비어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볼드모트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새빨간 눈으로 그 빈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볼드모트의 눈에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여섯 명이나 비었군. 세 명은 나를 섬기다가 죽었지. 한 명은 너무나 겁이 나서 돌아오지 못했고...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녀석은 내 곁을 영원히 떠났지... 그는 당연히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나의 가장 충실한 종으로 남았던 한 사람... 그는 벌써 돌아와서 나를 섬기고 있다." 갑자기 죽음을 먹는 자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해리는 그들이 가면 너머로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충실한 종은 지금 호그와트에 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우리의 어린 친구가 오늘밤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원을 그리면서 서 있던 어둠을 먹는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리에게 쏠리자, 볼드모트는 입술이 거의 없는 입을 말아 올리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친절하게도 해리 포터는 나의 부활 파티에 참석해 주었다. 그러므로 포터를 나의 영예로운 손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한참 동안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 웜테일의 오른쪽에 서 있던 죽음을 먹는 자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가면 밑에서 루시우스 말포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님, 저희들은 간절히 알고 싶습니다...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이런 일을 이루셨는지... 이런 기적을... 어떻게 해서 저희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었는지..." "아, 거기에는 참으로 기나긴 사연이 있다, 루시우스." 볼드모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여기 있는 나의 어린 친구로부터 시작되었다가 이 어린 친구에게서... 끝난다." 볼드모트는 천천히 해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원을 그리고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커다란 뱀은 계속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물론 그대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소년이 나를 몰락시켰다고 그들이 말한다는 사실을..." 볼드모트는 나지막이 말했다. 볼드모트의 새빨간 눈이 해리를 향하자, 이마의 흉터가 맹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해리는 도저히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비명을 질렀다. "그대들은 모두 내가 나의 힘과 육체를 잃어버린 그날 밤에 이 소년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소년의 어미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솔직히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보호막을 이 소년에게 씌워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 녀석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는 길고 하얀 손가락 하나를 해리의 뺨 가까이 들어 올렸다. "이 소년의 어미는 자신을 희생하고, 그 흔적을 이 소년에게 남겼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마법이다. 나는 그 마법을 기억하고 있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나는 그 마법을 간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제는 이 소년을 만질 수 있으니까..." 길고 하얀 손가락 끝이 뺨에 닿자 진저리나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머리가 펑 폭발할 것만 같았다. 볼드모트는 해리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웃더니 손가락을 치우고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연설을 계속했다. "나의 동지들이여! 그것은 나의 계산 착오였다. 솔직히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바이다. 한 여자의 어리석은 희생 때문에 나의 저주는 반사되고 말았다. 오히려 그 저주는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던 것이다. 아아... 나의 동지들이여! 그것은 고통을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내 육체로부터 이탈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영혼보다도, 가장 비천한 유령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살아 있었다.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불멸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던 내가... 너희들은 죽음을 정복하려고 했던 나의 목표를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 애를 썼던 그 동안의 노력을 시험해 본 셈이다. 그리고 나의 시도 중에서 한두 가지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마땅히 죽었어야 할 저주를 받고도 죽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미미한 존재처럼 아무런 힘도 없게 되었다. 심지어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땅한 수단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육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마법은 모두 반드시 요술지팡이를 사용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잠도 자지 않고 끊임없이, 순간 순간 오직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나는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숲속에 은둔했다. 그리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반드시 충실한 죽음을 먹는 자들 가운데 한 명이 나를 찾으려고 할 거라고... 그들 중에 한 명이 나를 찾아내어 내가 할 수 없는 마법을 대신 이루어 줄 거라고... 그리하여 내 몸을 다시 되찾아 줄 거라고... 하지만 나의 기다림은 헛된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원을 그리고 서 있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또다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볼드모트는 말을 멈추고 잠시 동안 무시무시한 침묵이 감돌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힘은 딱 한 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육신에 기생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오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나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동물의 몸에 기생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뱀이었지. 하지만 나의 처지는 순수한 영혼 상태일 때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동물의 몸으로는 마법을 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기생하는 동물들은 생명이 단축되었다. 어느 놈도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지..." 볼드모트는 싸늘한 눈빛으로 해리를 노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4년 전에... 나는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젊고 멍청하고 잘 속아 넘어가는 한 마법사가 내가 은둔하고 있는 숲속을 돌아다니다가 나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오! 그는 내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바로 그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덤블도어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쉽사리 나의 의지에 따라 주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왔다. 한참 동안이나 나는 그의 몸에 붙어 살면서 그가 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면밀히 감독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마법사의 돌을 훔치지 못했다. 나느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지 못했다. 나는 방해를 받았다. 해리 포터에게 다시 한 번 훼방을 당한 것이다! 해리 포터에게..."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목나무에 매달린 이파리조차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가면 너머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볼드모트와 해리를 응시했다. "내가 그의 몸을 떠나자, 그 종은 이내 죽어 버렸다. 나는 다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허약한 존재가 되었다." 볼드모트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나의 은신처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대들에게 솔직히 말하겠다. 그 당시에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나의 힘을 되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두려웠다... 그렇다! 아마도 그 시기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마법사의 몸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서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다..." 원을 그린 채 서 있던 가면을 쓴 마법사들 가운데 한두 사람은 마음이 찔리는지 몸을 약간 움직였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거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있을 무렵,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다... 한 종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바로 여기 서 있는 웜테일은 법의 심판을 피해 죽은 척 위장하고 살아가다가, 한때 친구라고 여겼던 자들에게 신분이 들통나자, 자기 주인에게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웜테일은 오래 전부터 내가 숨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던 나라로 나를 찾아왔다. 물론 웜테일은 마주치는 쥐들의 도움을 받았지... 웜테일은 아주 흥미롭게도 쥐들과 친화력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안 그런가, 웜테일? 그 조그맣고 더러운 웜테일의 친구들은 알바니아 숲속 깊숙한 곳에 모두들 무서워서 피하는 장소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곳에서는 쥐들처럼 조그마한 짐승은 갑자기 엄습하는 검은 그림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말이다..." 볼드모트는 힐끗 고개를 돌려 웜테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가 나를 찾아오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나, 웜테일? 어느 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웜테일은 나의 은신처가 있다고 짐작되는 바로 그 숲 근처까지 와서는 그만 어리석게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어느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법부의 마녀인 버사 조킨스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볼드모트와 눈길이 마주치자, 웜테일은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다음부터 운명은 볼드모트 경의 편이 되었다. 어쩌면 그 일로 인해 웜테일은 끝장이 날 수도 있었다. 웜테일과 더불어 내가 다시 힘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도... 하지만 웜테일은, 참으로 그에게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버사 조킨스에게 함께 밤산책을 나가자고 설득한 다음, 그녀에게 마법을 걸어 버린 것이었다. 웜테일은 버사 조킨스를 끌고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우리의 모든 일을 망쳐 버릴 수도 있었던 버사 조킨스는 오히려 내가 꿈도 꾸지 못했던 놀라운 선물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약간의 설득 끝에 버사 조킨스는 나의 충실한 정보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버사 조킨스는 올해 호그와트에서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와 연락이 닿기만 하면, 나를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충실한 죽음을 먹는 자를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밖에도 버사 조킨스는 많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당시 버사 조킨스는 기억력 마법에 걸려 있었지. 나는 버사 조킨스에게 걸려 있는 기억력 마법을 깨뜨리기 위해 아주 강력한 마법을 써야만 했다. 그러므로 버사 조킨스로부터 모든 필요한 정보를 다 빼내고 나자, 그녀의 몸과 정신은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고 말았다. 더 이상 써먹을 데도 없었고 그 몸을 차지할 수도 없었으므로, 나느 그 여자를 제거해 버렸지." 볼드모트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새빨간 눈을 번뜩이면서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웜테일의 몸 또한 내가 차지하기에는 부적당했다. 모두들 웜테일이 죽은 줄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누군가의 눈에 발각되면 지나친 관심을 끌게 될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웜테일은 내가 필요로 하는 육신을 가진 종이었다. 비록 웜테일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마법사라고 해도, 내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일시적으로 육체를 갖게 되었다. 물론 보잘것없는 육체였지만... 진정한 부활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들이 마련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육체를... 내가 직접 고안한 한두 개의 주문과... 나의 사랑스러운 내기니의 도움으로..." 볼드모트의 새빨간 눈길이 커다란 뱀에게 가 닿았다. 그 뱀은 여전히 묘비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니콘의 피를 섞어 만든 약과 내기니가 제공하는 뱀의 독으로, 곧 나는 거의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할 수 있을만한 힘도 갖게 되었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마법사의 돌을 훔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덤블도어가 틀림없이 그 돌을 없애 버렸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유한한 생명이나마 다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물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기 전에 말이다. 나는 눈높이를 낮추었다... 우선 나의 옛 육신과 옛 힘을 다시 되찾기로 결심했다. 이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강력한 성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오늘 밤 나를 되살린 마법의 약은 오래된 어둠의 마법 중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이미 내 수중에 들와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웜테일? 바로 종이 바친 살 말이다..." 볼드모트는 잠시 웜테일을 쳐다본 후에 말을 이었다. "내 아버지의 뼈를 구하기 위해 당연히 우리는 그가 묻혀 있는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하지만 적의 피는... 웜테일은 나에게 아무 마법사나 이용하자고 졸랐다. 나를 증오했던 마법사 중에 아무나 말이다. 그 중에 많은 자들이 아직까지도 나를 미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반드시 누구의 피를 사용해야만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몰락하기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나는 바로 해리 포터의 피를 원했다. 13년 전에 나의 모든 힘을 빼앗아 간 포터의 피를 원했다. 왜냐하면 포터의 어미가 그에게 준 보호의 힘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내 핏속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볼드모트는 고개를 돌리더니 새빨간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묘비에 꽁꽁 묶여 있는 해리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해리 포터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해리 포터는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오래 전에 덤블도어는 해리 포터의 장래를 계획하면서 아주 안전한 방법을 고안해 내었던 것이다. 덤블도어는 고대의 마법을 사용해서 해리 포터가 친척들의 보호 하에 있는 한, 그 누구도 포터의 몸에 손을 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나조차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친척들과 함께 있는 한, 해리 포터는 절대적으로 안전했다. 그리고... 퀴디치 월드컵이 열렸다. 나는 덤블도어나 친척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는 해리 포터를 둘러싼 보호막이 좀 약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부의 마법사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해리 포터를 납치하기에는 난 힘이 아직 부족했다. 얼마 후에 이 소년은 다시 호그와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머글을 사랑하는 그 멍청이의 매부리코 앞을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데 내가 어떻게 해서 해리 포터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을까?" 볼드모트의 얼굴에 냉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물론 나는 버사 조킨스의 정보를 이용했다. 나의 충실한 죽음을 먹는 자를 호그와트에 침투시킨 것이다. 나의 충실한 종은 이 소년의 이름을 불의 잔 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 소년이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확실히 우승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서 제일 먼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도록 조처를 취해 놓았다. 그 우승컵은 이미 죽음을 먹는 자가 포트키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덤블도어의 어떤 보호나 조처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를 곧장 내 품으로 오게 할 수 있었다. 나는 해리 포터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하여 바로 이 자리에 해리 포터가 있게 된 것이다... 너희들 모두가 나를 몰락시켰다고 믿었던 바로 그 소년이.." 볼드모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와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주문을 외웠다. "크루시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고통이 해리를 엄습했다. 해리는 마치 뼛속까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마의 흉터를 따라 머리가 두 조각으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해리의 눈동자는 미친 듯이 빙빙 돌았다. 그만 끝내고 싶었다... 모든 걸 잊은 채... 죽고 싶었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해리는 볼드모트 아버지의 묘비에 꽁꽁 묶인 채 축 늘어졌다. 희뿌연 안개 같은 것 너머로 번뜩이는 새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제 이 소년이 나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추측이었는지 똑똑히 깨달았을 것이다." 볼드모트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에 해리 포터가 나의 저주를 피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못박아 두고 싶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바로 이 자리에서 해리 포터를 죽임으로써 나의 힘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지금은 그를 도와줄 덤블도어도 없고 그를 위해 대신 죽어 줄 어미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해리 포터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 두 사람 중에서 어는 누가 더 강한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밝히기 위해, 나는 해리 포터에게 나와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내기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볼드모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자, 커다란 뱀은 풀숲을 헤치면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지켜보고 서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이제 해리 포터를 풀어 주거라, 웜테일. 그리고 그의 요술지팡이를 돌려주도록 해라." 제34장 대결 웜테일은 천천히 해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해리는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이 풀어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 모았다. 웜테일은 새로 생긴 은손을 들어 올려 해리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천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해리를 묘비에 묶어 놓았던 밧줄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 도망 치는 게 어떨까? 어쩌면 아주 잠깐 동안 이런 생각이 해리의 머리 속을 스치면서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해리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무덤 위에 간신히 서 있었다. 상처를 입은 다리가 마구 후들거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지금 이곳에 없는 다른 동료들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해리와 볼드모트를 중심으로 더욱 빽빽하게 원을 좁히기 시작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만든 원 밖으로 걸어나간 웜테일은 케드릭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해리의 요술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해리를 향해 다가와 해리의 손에 거칠게 요술지팡이를 쥐어 주었다. 해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잠시 후에 웜테일은 다시 죽음을 먹는 자들 사이로 되돌아 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해리와 볼드모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결투를 하는 건지 배웠겠지, 해리 포터?" 볼드모트가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볼드모트의 새빨간 두눈이 어둠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문득 해리 포터는 2년 전에 호그와트에서 아주 잠깐 참가했던 결투 클럽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에 해리가 배운 것은 오직 무장 해제 마법뿐이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하지만 설사 그 마법의 주문을 외워서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를 빼앗을 수 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최소한 서른 명이 넘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해리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마법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 다만 무디가 항상 경고했던 바로 그것을 이제 곧 자신이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 볼드모트의 말이 옳았다. 이번에는 해리를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어머니도 없다... 지금 이 순간 해리는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가 없다... "해리, 먼저 서로 인사를 하자." 볼드모트가 살짝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뱀 같이 생긴 얼굴을 여전히 꼿꼿하게 치켜세운 채,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 품위있는 행동을 보여라... 덤블도어는 네가 예의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할 게다... 해리, 죽음에게 인사를 해라." 죽음을 먹는 자들이 다시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이 없는 볼드모트의 입가에도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해리는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볼드모트의 손에 놀아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절대로 볼드모트에게 그런 만족감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인사를 하라고 말했다." 볼드모트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그 순간 해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를 거칠게 앞으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신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좋아." 볼드모트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볼드모트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해리를 짓누르는 힘도 사라졌다. "이제 남자답게 나와 맞서라. 똑바로 당당하게 서서... 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볼드모트의 새빨간 눈이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자, 이제 결투를 시작하자." 볼드모트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미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뭔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해리는 다시 크루시아투스 저주에 적중당하고 말았다. 온몸을 몽땅 불태우는 것 같은 강렬한 고통이 해리를 휘감았다. 해리는 더 이상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얗게 달아오른 뜨거운 칼날이 살갗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는 극심한 고통으로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해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소리로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고통이 사라졌다. 해리는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간신히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웜테일이 자신의 손목이 잘려나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해리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리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죽음을 먹는 자들 쪽으로 비틀거리면서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은 해리를 다시 볼드모트 쪽으로 떠밀었다. "잠시 휴식 시간이다." 볼드모트는 쭉 찢어진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말했다. "잠시 쉬도록 하지... 해리, 고통스럽지 않느냐?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해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도 곧 케드릭처럼 죽게 될 것이다... 무자비한 새빨간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해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결코 볼드모트의 장단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볼드모트에게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애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싶으냐고 네게 물었다." 볼드모트는 해리를 노려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대답하라! 임페리오!" 해리는 머리 속에서 생각이란 생각은 싹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 그것은 너무나 달콤한 축복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면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저 싫다고 말해라...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그저 한 마디만 대답하라... 대답하지 않겠어! 보다 강한 목소리가 해리의 머리 속 어딘가에서 들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을 거야! 그저 싫다고 말해라... 나는 대답하지 않을 거야.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그저 싫다고 말해라... "대답하지 않겠어!" 해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해리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동묘지에 울려 퍼졌다. 느닷없이 차가운 물을 흠뻑 뒤집어쓴 것처럼, 꿈결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그 대신에 크루시아투스 저주로 인한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해리는자신이 어디 있으며,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또렷하게 떠올랐다. "대답하지 않겠다고?" 볼드모트가 음산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갑자기 죽음을 먹는 자들이 웃음을 뚝 그쳤다.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해리, 네가 죽기 전에 아무래도 복종의 미덕을 가르쳐야겠구나... 고통을 좀더 당해야겠느냐?" 볼드모트는 다시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퀴디치 훈련을 통해 얻은 유연성을 발휘해서 해리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볼드모트 아버지의 대리석 묘비 뒤로 굴러갔다. 주문이 빗나가면서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 우리는 지금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차갑고 냉정한 볼드모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다시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나를 피해 숨을 수는 없다. 벌써 우리의 결투에 싫증이 난 것이냐? 이제 그만 내가 끝내 주기를 원하는 것이냐, 해리? 나와라, 해리... 나와서 승부를 벌이자... 곧 끝날 것이다... 아무런 고통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해리는 대리석 묘비 뒤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가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해리는 이제 남은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이성조차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숨바꼭질을 하는 철부지 어린 아이처럼 이대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볼드모트의 발 밑에 무릎을 꿇은 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똑바로 서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비록 어떤 방어도 불가능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지키다가 죽을 것이다... 볼드모트의 뱀 같은 얼굴이 묘비 위로 나타나기 전에, 해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앞으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묘비 뒤에서 걸어나와 볼드모트와 정면으로 맞섰다. 볼드모트도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해리가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소리치는 순간, 볼드모트도 동시에 외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초록색 불빛이 발사되는 것과 동시에 해리의 요술지팡이에서도 붉은색 불빛이 발사되었다. 두 불빛은 중간에서 마주쳤다. 갑자기 해리의 요술지팡이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움켜잡았다. 아니, 요술지팡이를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었다. 가느다란 광선이 두 요술지팡이를 서로 연결하고 있었다. 그것은 붉은색도, 초록색도 아닌 밝고 진한 황금색 광선이었다. 넋이 나간 눈길로 광선을 바라보던 해리는 문득 볼드모트의 길고 하얀 손가락도 마구 떨리면서 진동하는 요술지팡이를 꽉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 너무나 뜻밖에도 - 해리는 두 발이 땅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해리와 볼드모트 둘 다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두 사람의 요술지팡이는 아직도 번쩍거리는 황금광선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었다. 볼드모트 아버지의 무덤에서 번쩍 위로 들어 올려진 두 사람은 무덤이 없는 넓은 공터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마구 아우성을 치면서 볼드모트에게 빨리 명령을 내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쫓아온 그들은 다시 원을 그리며 빙 둘러섰다. 커다란 뱀도 죽음을 먹는 자들의 뒤를 바싹 따르고 있었다. 몇 명의 마법사들은 이미 요술지팡이를 빼어 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해리와 볼드모트를 연결하고 있던 황금빛이 갈라지면서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둥근 광선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요술지팡이는 여전히 굳게 연결되어 있었다. 수천 개의 황금빛 광선은 서로 얼기설기 엮이더니 두 사람을 둥근 돔 모양의 그물망 혹은 광선 우리 같은 것 속에 가두어 버렸다. 황금빛 광선 밖에서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자칼처럼 빙빙 맴돌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볼드모트가 죽음을 먹는 자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볼드모트는 새빨간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볼드모트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볼드모트는 해리의 요술지팡이와 굳게 연결되어 있는 황금빛 광선을 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해리는 두 손으로 요술지팡이를 더욱 세게 붙잡았다. 황금빛 광선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명령을내리기 전에는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볼드모트는 다급하게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소리쳤다. 그 순간 이 세상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해리와 볼드모트를 둘러싸고 있는 광선들이 일제히 진동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해리는 전에 이런 소리를 딱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사조의 노래였다. 그것은 해리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반가운 소리... 그 노랫소리는 밖에서가 아니라 바로 해리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해리와 덤블도어를 서로 연결하는 소리였다. 그것은 마치 친구가 해리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연결을 끊지 말아라. "알고 있어요." 해리는 그 노랫소리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결을 끊으면 안 된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해리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상황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해리의 요술지팡이가 더욱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리와 볼드모트 사이의 광선도 점차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마치 두 요술지팡이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실을 타고 커다란 빛의 구슬들이 미끄러지듯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빛의 구슬이 천천히 해리를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굳게 잡고 있는 요술지팡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황금빛 광선은 볼드모트로부터 해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의 요술지팡이가 분노로 인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제일 앞에 오던 빛의 구슬이 해리의 요술지팡이 끝까지 다가왔다. 요술지팡이가 어찌나 뜨겁게 달아올랐던지 해리는 이대로 불타 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빛의 구슬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해리의 요술지팡이도 더욱 심하게 떨렸다. 어쩌면 빛의 구슬과 맞닿는 순간, 요술지팡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해리의 손에서 요술지팡이가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해리는 온통 정신을 집중해서 볼드모트 쪽으로 빛의 구슬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불사조의 노래가 해리의 귓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리를 향해 다가오던 빛의 구슬들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파르르 진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진동하는 것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였다... 볼드모트는 경악하다 못해 거의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빛의 구슬 중에 하나가 불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몇 센티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리는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쪽으로 빛의 구슬을 밀어내는 일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해리는 지금까지 평생 동안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지금처럼 온 힘을 기울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빛의 구슬이 황금 실을 따라 움직였다... 잠시 동안 파르르 진동을 하더니... 마침내 빛의 구슬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 가 닿았다. 갑자기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 소리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새빨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아마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요술지팡이 끝에서 짙은 연기로 만들어진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볼드모트가 웜테일에게 만들어 주었던 그 손의 유령이었다... 더욱 처절한 비명 소리와 더불어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훨씬 더 커다란 무언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단단하고 짙은 회색빛 연기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 모양이 되더니... 가슴과 팔이 생기고... 잠시 후에는 케드릭 디고리의 흉상이 되었다. 해리가 일생에 딱 한 번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아 요술지팡이를 떨어뜨리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본능적으로 요술지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빛 실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해리는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케드릭 디고리의 짙은 회색 유령(과연 유령일까?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나 단단하게 보였다)이 마치 아주 비좁은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애를 쓰듯이 몸 전체를 서서히 빼내고 있었다... 마침내 케드릭의 형상이 땅바닥을 딛고 우뚝 섰다. 케드릭의 유령은 황금빛 실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꼭 잡아, 해리." 케드릭의 유령이 해리를 격려하면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아주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해리는 다시 눈길을 돌려서 볼드모트를 쳐다보았다. 부릅뜨고 있던 볼드모트의 새빨간 눈은 여전히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볼드모트도 역시 해리처럼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아주 희미하게... 해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황금빛 돔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에서 또다시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머리모양을 한 짙은 그림자가 떠오르더니 재빨리 팔과 가슴이 만들어졌다... 오래 전에 해리가 꿈속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 노인이 케드릭과 똑같이 요술지팡이 끝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유령인지 그림자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케드릭 옆으로 걸어가더니 우뚝 섰다. 그리고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약간 놀란 표정으로 해리와 볼드모트와 황금빛 돔과 서로 연결된 요술지팡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저 자가 정말로 마법사였단 말인가?" 노인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볼드모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자가 나를 죽였어... 이봐, 저 자와 싸워..." 하지만 벌써 또 다른 머리가 나타나고 있었다... 연기로 만든 회색 동상과 비슷한 그것은 어떤 여자의 머리였다... 두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요술지팡이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해리는, 다른 유령들처럼 땅바닥 위로 내려오더니 똑바로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버사 조킨스의 형상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술지팡이를 놓으면 안 돼!"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케드릭의 목소리처럼 버사 조킨스의 목소리 또한 먼 곳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해리, 저 자에게 당하지 마! 요술지팡이를 놓지 마!" 버사 조킨스와 다른 두 명의 형상은 황금 그물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편 죽음을 먹는 자들은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볼드모트의 희생자들은 결투하고 있는 두 사람 주위를 빙빙 돌면서, 해리에게는 격려의 말을 중얼거렸으며 볼드모트에게는 해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말을 마구 쏘아대었다. 이제 또 다른 머리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서서히 피어 오륵 시작했다. 해리는 그 머리를 보자마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깨달았다... 마치 케드릭이 요술지팡이 끝에서 나타나는 순간부터 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해리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그 여자는 해리가 오늘밤에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간절하게 생각한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젊은 여자의 형상은 버사가 그랬던 것처럼 땅 위로 내려오더니 똑바로 서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미친 듯이 두 팔을 덜덜 떨면서 어머니 유령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 아버지가 오실 거다..." 그 여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너를 보고 싶어하신단다... 괜찮을 거야... 계속 버티거라..." 그리고 아버지가 나타났다... 제일 먼저 아버지의 머리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 몸이 나타났다... 호리호리하게 키가 크고 해리처럼 머리가 헝클어진 남자였다.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피어난 제임스 포터의 형상은 땅바닥으로 내려가더니 아내처럼 똑바로 섰다. 잠시 후에 제임스 포터의 형상이 해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해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먼 곳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주 나지막하게 속삭였기 때문에 볼드모트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는 지금 자신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희생자들 때문에 얼굴이 납빛으로 질려 있었다... 그는 이 유령들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두 개의 요술지팡이를 연결하고 있는 빛이 끊어지면 우리는 아주 잠깐 동안만 머무를 수 있단다... 하지만 너에게 시간을 벌어 주도록 해보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포트키를 붙잡아야만 한다. 포트키는 다시 너를 호그와트로 돌려보내 줄 거야... 내 말을 알아듣겠니, 해리?" "알겠어요." 해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이제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미끄러지고 빠져나가는 요술지팡이를 잡기 위해 해리는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해리... 내 시신을 갖고 가 주겠니? 내 시신을 우리 부모님께 전해 줘." 케드릭의 형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 해리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간신히 요술지팡이를 붙잡고 있었다. "지금이다. 뛸 준비를 해... 바로 지금이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소곤거렸다. "지금이에요!"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쨌거나 더 이상 한 순간도 요술지팡이를 붙잡고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해리가 온 힘을 다해 손목을 비틀면서 요술지팡이를 위로 잡아당기자, 황금실이 뚝 끊어졌다. 동시에 광선 그물망과 불사조의 노래도 사라졌다. 하지만 볼드모트의 희생자들의 형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볼드모트 주위로 몰려들었다. 볼드모트가 해리를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젖먹던 힘을 다해 쏜살같이 달렸다. 얼이 빠진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을 쓰러뜨리면서 달려나간 해리는 묘비들 사이를 요리조리 도망쳤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해리를 추격하면서 주문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빗나간 주문이 묘비에 펑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주문과 무덤들을 살짝살짝 피하면서 케드릭의 시체를 향해 돌진했다. 더 이상 다리의 통증조차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든 신경은 오직 해리가 반드시 해내야만 할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 놈을 기절시켜 버려!" 볼드모트가 사나운 기세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케드릭의 시신으로부터 3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해리는 붉은 불꽃을 피하기 위해 대리석 천사 뒤로 휙 몸을 날렸다. 주문에 맞은 천사의 날개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요술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잡은 해리는 천사 뒤에서 쏜살같이 뛰어 나갔다. "임페디멘타!" 해리는 미친 듯이 달려오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향해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해리는 아마도 그들 중에 한 명 정도는 명중시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뒤를 돌아볼 만한 시간이 없었다.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더욱 많은 요술지팡이들이 해리를 향해 불꽃을 발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수많은 불꽃이 해리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힘껏 손을 뻗어서 케드릭의 팔을 붙잡았다. "비켜서라! 저 놈은 내가 죽이겠다! 저 놈은 내 거야!" 볼드모트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면서 부르짖었다. 해리는 케드릭의 팔목을 더욱 세게 잡았다. 이제 묘비 하나만이 해리와 볼드모트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끌고 가기에는 케드릭의 몸이 너무나 무거웠고, 트리위저드 우승컵은 해리의 손이 채 닿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볼드모트의 새빨간 눈이 어둠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볼드모트의 입술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아씨오!" 해리는 요술지팡이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겨냥하면서 소리쳤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해리를 향해 곧장 날아오기 시작했다. 해리는 재빨리 손을 뻗어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해리는 배꼽 근처가 확 잡아당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포트키가 작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분노로 가득 찬 볼드모트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세찬 바람이 불면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포트키는 해리를 데리고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케드릭도 함께... 그들은 호그와트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35장 베리타세룸 해리는 얼굴을 잔디밭에 묻으면서 쾅 하고 납작하게 떨어졌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해리의 코를 가득 메웠다. 포트키로 이동하던 중에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던 해리는 여전히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몸의 기운이 죄다 빠져 버린 것 같아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머리가 심하게 흔들리던지 해리가 엎드리고 있는 땅바닥이 배의 갑판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해리는 양쪽 손에 잡고 있던 것을 다시 한 번 꼭 쥐어 보았다. 매끄럽고 차가운 트리위저드 우승컵과 케드릭의 시체가 느껴졌다. 마치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놓쳐 버린다면 다시 머리 한 구석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아서 지칠 대로 지쳐 버린 해리는 풀냄새를 맡으면서 땅바닥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도움을 주기만을... 어떤 일이 일어나기만을... 그 동안에도 해리는 줄곧 이마의 흉터에서 통증을 느꼈다... 갑자기 주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귀가 먹먹하고 혼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방에서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와 서성거리는 발소리,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해리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마치 그것이 지나가는 악몽이라도 되는 듯이... 그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해리를 와락 움켜잡았다. 그 사람은 해리를 똑바로 뒤집으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해리! 해리!" 해리는 부스스 눈을 떴다.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덤블도어가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불안한 눈길로 해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가 해리와 덤블도어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밀치면서 웅성거렸다. 해리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해리가 쓰러져 있는 곳은 구불구불한 미로가 설치되어 있던 운동장이었다. 해리는 높이 솟아 있는 관중석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관중석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하지만 케드릭의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덤블도어의 손목을 붙잡았다. 덤블도어의 얼굴이 두 개로 보이면서 마구 출렁거렸다. "그 자가 돌아왔어요. 그 자가... 볼드모트가..." 해리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창백하게 질린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오, 세상에... 디고리!" 코넬리우스 퍼지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덤블도어, 이 애가 죽었소." 그의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그들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던 어두운 그림자들이 뒤를 돌아보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큰 소리로 그 말을 따라 외쳤다. "죽었대!" "죽었대!" "케드릭 디고리가 죽었대!" 그것은 다시 비명 소리가 되어서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해리, 케드릭을 그만 놓아 주거라." 해리는 문득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축 늘어진 케드릭의 시신에서 억지로 해리의 손을 떼어 내려고 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는 케드릭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여전히 몽롱하고 흐릿하게 보이는 덤블도어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해리, 이제 너는 케드릭을 구해 줄 수 없어. 모든 게 끝났다. 그만 놓아 주거라." "케드릭은 간절하게 원했어요... 제가 다시 자기를 데리고 돌아가 주기를..." 해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처럼 여겨졌다. "케드릭은 자기를 부모님께 데려가 달라고 했어요." "이제 됐다, 해리... 케드릭을 놓아 주렴..." 덤블도어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해리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나이가 많고 호리호리한 덤블도어의 몸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해리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머리가 쾅쾅 울렸다. 부상당한 다리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해리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오려고 앞사람을 마구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지?" "해리는 어떻게 된 거야?" "디고리가 죽었대!" 그들은 서로를 밀치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해리는 병동으로 가야만 합니다! 해리는 부상을 당했어요. 덤블도어, 디고리의 부모님이... 지금 그분들이 이곳에 있네. 관중석에..." 코넬리우스 퍼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리를 데리고 가겠네, 덤블도어. 내게 맡기게!" "아니, 내가 직접 데리고 가는 게..." "덤블도어, 에이머스 디고리가 달려오고 있네... 이리로 오고 있단 말이야... 자네가 직접 저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저들이 보기 전에..." "해리, 거기 가만히 있거라." 여학생들은 발작적으로 흐느끼면서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해리의 눈앞이 이상하게 흐릿했다... "이제 됐다. 녀석, 내가 너를 데리고 가마... 자, 어서 가자... 병동으로..." "덤블도어 교수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해리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이마의 통증 때문에, 해리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더 뿌옇게 흐려졌다. "너는 누워야만 한다... 자, 가자..." 해리보다 훨씬 크고 힘센 어떤 사람이 그를 반쯤은 잡아끌고 반쯤은 들고 가다시피 하면서 겁에 질린 군중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 해리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고함을 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해리를 부축한 그 사람은 군중을 밀치면서 성으로 돌아갔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호수와 덤스트랭의 배를 지나가는 동안, 해리는 함께 걸어가는 사람의 거친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냐, 해리?" 마침내 그 사람이 해리를 돌계단 위로 끌어올리면서 물었다. 철컥. 철컥. 철컥. 그 사람은 바로 매드아이 무디였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포트키였어요." 해리는 현관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대답했다. "저와 케드릭을 공동묘지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볼드모트가 그곳에 있었어요... 볼드모트 경이..." 철컥. 철컥. 철컥. 그들은 천천히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거기에 어둠의 주인이 있었단 말이냐?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케드릭을 죽였어요... 그들이 케드릭을 죽였어요." "그런 다음에는?" 철컥. 철컥. 철컥. 그들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약을 만들었어요... 그 사람의 몸을 다시 부활시키는 약이요..." "어둠의 주인이 몸을 되찾았느냐? 다시 돌아왔느냐?" "그리고 죽음을 먹는 자들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결투를 벌였어요..." "네가 어둠의 주인과 결투를 벌였다구?" "도망쳤어요... 그런데 저의 요술지팡이가... 뭔가 이상한 일을 벌였어요... 엄마와 아빠도 보았죠... 그 사람의 요술지팡이에서 나왔어요..." "해리, 여기다. 여기, 앉아라... 이제 괜찮을 거다... 이걸 마셔라..." 해리는 열쇠가 열쇠 구멍에 들어가 찰칵 소리를 내는 걸 들었다. 그리고 해리의 손에 컵이 쥐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걸 마셔라... 훨씬 기분이 나아질 거야... 자, 어서... 해리,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겠다..." 무디는 해리가 컵에 담긴 것을 다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해리는 캑캑 기침을 했다. 강한 후추향 때문에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차츰차츰 무디의 사무실이 또렷하게 보였다. 무디의 모습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무디의 얼굴은 코넬리우스 퍼지만큼이나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무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 볼드모트가 돌아왔단 말이냐? 확실히 돌아왔느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그 사람의 아버지의 무덤과 웜테일과 저의 몸에서 각각 필요한 재료를 얻었어요." 해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이마의 흉터도 그다지 쑤시지 않았다. 비록 사무실의 내부가 어두컴컴하긴 했지만, 무디의 얼굴만큼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해리는 저 멀리 퀴디치 운동장에서 나는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를 아련히 들을 수 있었다. "어둠의 주인이 너의 몸에서 무엇을 가져갔느냐?" 무디가 다급하게 물었다. "피요." 해리가 팔을 들어올리면서 대답했다. 웜테일의 칼에 찔린 소맷자락이 쭉 찢어져 있었다. 무디는 길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냐? 그들이 돌아왔느냐?" "네. 꽤 많은 자들이..." "볼드모트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더냐?" 무디가 조용히 물었다. "그들을 용서하더냐?" 갑자기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어째서 덤블도어 교수에게 그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조금 전에 덤블도어 교수를 만났을 때, 곧바로 그 얘기를 했어야만 했는데... "호그와트에 죽음을 먹는 자가 있어요! 여기에 죽음을 먹는 자가 있다구요! 그 자가 제 이름을 불의 잔에 넣었어요. 그리고 제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했어요."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무디는 다시 해리를 의자에 주저앉혔다. "나는 그 죽음을 먹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무디가 어쩐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르카로프인가요?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죠? 잡았나요? 벌써 가두어 놓았나요?" 해리는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카르카로프?" 무디는 이상하게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오늘 밤에 카르카로프는 멀리 도망쳤단다. 팔뚝에 새겨진 어둠의 표식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걸 느끼고 말이야. 그는 어둠의 주인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너무나 많이 밀고했기 때문에 감히 그들을 만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 하지만 얼마나 멀리 도망칠 수 있을지 의심스럽군. 어둠의 주인은 적들을 추적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단다..." "카르카로프가 달아났다구요? 도망쳤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불의 잔에 제 이름을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요?" "아니야. 카르카로프가 그런 게 아니야. 바로 내가 그랬다." 무디가 싸늘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교수님이 그랬을 리가 없어요... 그럴 수는 없어요..." "틀림없이 내가 그랬다." 무디는 해리를 노려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빙빙 돌아가던 무디의 마법의 눈이 문에 고정되었다. 해리는 무디가 혹시라도 사무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무디가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니 해리에게 겨누었다. "볼드모트가 그들을 용서했단 말이냐? 자유롭게 풀려난 죽음을 먹는 자들을? 어둠의 주인을 배신하고 아즈카반을 피해 도망친 자들을?" "뭐라구요?" 해리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해리는 무디가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는 요술지팡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야. 이건 장난이야. 무디는 지금 약간 심한 장난을 치고 있어. 그래, 장난이어야만 해. "지금 너에게 묻고 있다." 무디가 냉혹하게 호통쳤다. "단 한번도 자기들의 주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그 인간 쓰레기들을 볼드모트가 용서했는지 아닌지를 말이다. 어둠의 주인을 위해 용감하게 아즈카반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던 그 비겁한 배신자들을... 퀴디치 월드컵에서 가면을 쓰고 날뛰다가 내가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리자 허겁지겁 도망치고 말았던 그 허약하고 무가치한 쓰레기들을..." "교수님이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렸다구요?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해리, 내가 분명히 말했다. 분명히 너에게 말했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죽음을 먹는 자라고... 나의 주인이 가장 절실하게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나의 주인에게 등을 돌렸다. 나는 어둠의 주인이 그들에게 무거운 벌을 내리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둠의 주인이 그들을 고문할 거라고... 해리, 제발 볼드모트가 그들을 혼내 주었다고 말해라..." 갑자기 무디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미소를 지었다. "어둠의 주인께서 오직 나, 나 한 사람만이 변함없이 충성을 바쳤노라고 그들에게 말했다고 말이다... 어둠의 주인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것을 갖다 드리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바로 너를 말이다..." "그럴 리가 없어요... 어떻게 교수님이 그럴 수가..." "또 다른 학교가 있는 것처럼 꾸며서 네 이름을 불의 잔 속에 집어넣은 사람이 누구일 것 같으냐? 바로 나다. 너를 해치려고 하거나 혹은 이 시합에서 네가 승리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 같은 자들에게 겁을 주어서 멀리 쫓아 버린 사람이 누구일 것 같으냐? 바로 나다. 너에게 미리 용을 보여주도록 해그리드를 부추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나다. 네가 용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던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다." 이제 무디의 마법의 눈은 더 이상 문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마법의 눈은 해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삐뚤어진 무디의 입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넓게 벌어져 있었다. "해리,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런 의심도 불러 일으키지 않으면서 네가 이 시험을 통과하도록 도와주는 일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꾀를 다 쥐어짜야만 했지. 네가 성공하는 데 내가 도와주었다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약 네가 모든 시험을 너무나 쉽게 통과한다면, 덤블도어가 의심을 하게 될지도 모르거든. 오히려 처음에는 다른 챔피언들과 엇비슷한 정도의 성적을 거두는 편이 훨씬 더 나았지. 일단 네가 미로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때는 내가 다른 챔피언들을 제거하고 너의 앞길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을 치워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테니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멍청한 네 머리와도 싸워야 했지.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실패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다. 포터, 나는 줄곧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황금알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너에게 또 다른 힌트를 주어야만 했다." "당신이 알려 준 게 아니에요." 해리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건 케드릭이 알려 준 거라구요!" "물 속에서 황금알을 열어 보라고 케드릭에게 말해 준 사람이 누굴 것 같으냐? 내가 그랬다. 나는 틀림없이 그 아이가 너에게 그 정보를 알려 줄 거라고 믿었지. 포터, 원래 품성이 바른 사람은 조종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케드릭은 분명히 용에 대해서 알려 준 너에게 빚을 갚고 싶어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내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터, 너는 여전히 실패할 것만 같았어. 나는 줄곧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네가 도서관에서 보내는 그 많은 시간들을... 나는 너에게 필요한 그 책이 바로 네 기숙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느냐? 나는 일찍부터 그 책을 네 기숙사에 슬쩍 넣어 두었다. 롱바텀, 그 녀석에게 주었던 바로 그 책 말이다. 기억나지 않느냐? <지중해의 신비한 수초들과 그 특성>. 그 책 속에는 네가 아가미풀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내용이 다 적혀 있었다. 나는 네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닐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렇다면 롱바텀은 즉시 대답해 주었을 게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는 그러지 않았어... 너는 잘난 자존심과 독립심으로 내가 어렵게 추진한 모든 일들을 몽땅 망쳐 놓을 뻔했지." 무디는 차가운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해리는 입을 딱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어떻게 했겠니? 또 다른 순진한 상대를 이용해서 너에게 정보를 주도록 했지. 너는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도비라고 하는 꼬마 집요정이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는 말을 했었어. 나는 세탁물을 가져 가라고 그 꼬마 집요정을 교무실로 불렀지. 그리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맥고나걸 교수와 떠들었다. 누가 인질이 될 것인지, 과연 포터가 아가미풀을 사용할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말이야. 과연 너의 꼬마 집요정은 곧장 스네이프의 사무실로 달려갔지. 그리고 너를 찾기 위해 황급히 나서더군..." 무디의 요술지팡이는 여전히 해리의 심장을 곧장 겨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벽에 걸려 있던 적을 비추는 거울 속에서 희뿌연 영상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디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포터, 너는 호수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머물렀어. 나는 네가 그만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지. 하지만 너의 어리석은 행동을 고귀한 행동으로 착각한 덤블도어는 너에게 최고 점수를 주었어. 그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 물론 너는 오늘 밤 미로 속에서 응당 겪었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시험을 치렀다." 무디는 잠시도 해리에게서 눈길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미로 주위를 순찰하고 다니는 동안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모두 볼 수가 있었지. 그리고 마법을 써서 네 길을 방해하는 수많은 방해물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나는 미로 안을 지나가던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기절 마법을 쏘았다. 그리고 빅터 크룸에게 임페리우스 마법을 걸어서 디고리를 끝장내도록 했지. 반드시 네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도록 말이야." 해리는 가만히 무디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디는 바로... 덤블도어의 오랜 친구가 아닌가? 게다가 유명한 오러인 그가... 죽음을 먹는 자들을 수없이 체포했던 사람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적을 비추는 거울에 나타났던 희뿌연 영상이 점점 더 뚜렷하게 변하더니 이제는 거의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해리는 무디의 어깨 너머로 세 사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무디는 거울에 비친 영상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무디의 마법의 눈은 오직 해리에게 똑바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터, 어둠의 주인이 어쩌다가 너를 죽이지 못했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어둠의 주인은 분명히 너를 죽이고 싶어하셨다." 무디가 소름이 오싹 끼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내가 어둠의 주인 대신 너를 해치운다면... 그리고 어둠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에게 얼마나 엄청난 보상을 내려 주실까? 너도 한번 상상해 보거라. 나는 이미 어둠의 주인에게 너를 주었다. 어둠의 주인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필요로 했던 것을... 그리고 이제 나는 어둠의 주인을 대신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다. 나는 다른 어떤 죽음을 먹는 자들보다도 훨씬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어둠의 주인이 가장 총애하는 종이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추종자... 아들보다도 더욱 가까운..." 무디의 정상적인 눈은 앞으로 툭 튀어나올 지경으로 불거졌으며, 마법의 눈은 한 순간도 해리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사무실의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라도 결코 무디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디의 공격을 막아 낼 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둠의 주인과 나는 아주 공통점이 많지." 무디가 말을 계속했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무디의 표정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주 실망스러운 아버지를 두었지... 참으로 실망스러운 아버지를... 게다가 우리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수치를 당해야만 했어. 하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똑같은 기쁨을 누렸지... 아주 커다란 기쁨을... 어둠의 질서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기쁨을!" "미쳤군요. 당신은 미쳤어요!" 해리가 불쑥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쳤다구?" 무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곧 알게 될 게다. 과연 누가 미쳤는지! 마침내 어둠의 주인께서 돌아오셨으니까! 그리고 어둠의 주인 곁에는 내가 있다! 해리 포터, 어둠의 주인이 돌아오셨다. 너는 결코 어둠의 주인을 끝장낼 수 없었어.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끝장낼 것이다!" 무디는 고함이라도 지르려는 듯 입을 딱 벌리면서 요술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해리는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요술지팡이를 찾았다. "스투페파이!" 갑자기 붉은 섬광이 번쩍거렸다. 해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쩍 하고 뭔가 갈라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디의 사무실 문이 산산조각으로 폭파되었다. 무디는 그만 사무실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해리는 여전히 무디가 서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마법의 거울 속에서, 몹시 긴장하고 있는 알버스 덤블도어 교수와 스네이프 교수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를 발견했다. 해리는 재빨리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이 문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앞으로 내민 채, 제일 먼저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해리는 왜 다른 사람들이 '볼드모트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마법사가 바로 덤블도어'라고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매드아이 무디를 노려보고 있는 덤블도어의 표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너그러운 미소는 종적을 감추었으며, 안경 너머에서 반짝이는 두 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덤블도어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 하나하나마다 차가운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덤블도어의 몸 전체에서 강렬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마치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처럼... 뚜벅뚜벅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 덤블도어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무디의 몸 밑으로 발을 집어넣어서 툭 걷어찼다. 무디의 몸이 뒤집어지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덤블도어의 뒤를 따라 들어온 스네이프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비추이고 있는 마법의 거울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곧장 해리에게 달려왔다. "포터, 나와 함께 가자. 어서 가자... 병동으로..." 맥고나걸 교수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맥고나걸 교수의 얇은 입술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실룩거리고 있었다. "아니오." 덤블도어가 날카롭게 말했다. "덤블도어, 포터는 당장 가야만 해요. 이 몰골을 좀 보세요. 오늘 밤에 포터는 고통을 충분히 겪을 만큼 겪었어요." "미네르바, 해리가 이곳에 남아 있도록 하시오. 해리도 알아야만 하니까 말이오. 지금 벌어진 일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오. 그래야만 상처도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거요. 해리는 오늘 밤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소. 그 혹독한 시련 속으로 해리를 밀어 넣은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오. 그리고 왜 그랬는지 그 이유도 말이오." 덤블도어가 단호하게 맥고나걸 교수의 말을 잘랐다. "무디 교수님이, 어떻게 무디 교수님이 그럴 수가 있죠?" 해리는 아직까지도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앨러스터 무디가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앨러스터 무디를 몰라. 진짜 무디라면 오늘 밤 그 일이 벌어진 직후에 너를 내 눈앞에서 데려 가지는 않았을 게다. 이 사람이 너를 데리고 사라진 순간, 나는 깨달았지. 그래서 곧 뒤쫓아 온 거야." 덤블도어는 허리를 숙여 축 늘어져 있는 가짜 무디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디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물병과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덤블도어는 몸을 일으키더니 맥고나걸 교수와 스네이프를 향해 빙 돌아섰다. "세베루스, 자네가 가지고 있는 진실의 마법약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을 갖고 오게. 그리고 주방으로 내려가서 윙키라는 꼬마 집요정을 불러오게나. 미네르바, 미안하지만 해그리드의 오두막으로 가면, 호박밭에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요. 검은 개를 데리고 내 사무실로 가시오. 그리고 그 개에게 내가 곧 돌아올 거라고 말한 후에, 당신은 다시 이곳으로 와 주시오." 스네이프와 맥고나걸은 덤블도어의 지시가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즉시 뒤로 돌아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덤블도어는 일곱 개의 자물쇠가 달린 트렁크가 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첫번째 자물쇠에 열쇠를 꽂고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마법서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덤블도어는 트렁크를 닫고 다시 두 번째 자물쇠에 두 번째 열쇠를 꽂았다. 그리고 다시 트렁크를 열자, 잔뜩 들어 있던 마법서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서진 스니코스코프와 양피지, 깃펜 그리고 은빛 투명 망토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해리는 놀라움에 가득 찬 눈길로 덤블도어가 차례차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자물쇠를 열었다가 다시 닫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럴 때마다 트렁크 속에는 다른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마침내 덤블도어가 일곱 번째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었다. 그 순간 해리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트렁크 속에 구덩이나 지하실 같은 장소가 있는 것을 보았다. 깊이가 3미터 가량 되는 구덩이 속에는 진짜 매드아이 무디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디는 뼈만 앙상할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굶주린 것 같았다. 무디의 나무 다리는 어디론가 없어졌으며, 마법의 눈이 달려 있어야 할 눈구멍은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잘려 나가 있었다. 해리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얼이 빠져서, 트렁크 구덩이 속에서 잠들어 있는 무디와 사무실 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무디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덤블도어는 트렁크 속으로 들어가더니, 구덩이 바닥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잠이 든 무디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기절했군. 임페리우스 저주에 의해 조종을 당했어. 아주 숨이 약한데..." 덤블도어가 무디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물론 무디를 계속 살려 둘 필요가 있었겠지. 해리, 그 가짜 무디의 망토를 이리 던져라. 무디의 몸이 아주 싸늘하구나. 아무래도 폼프리 부인에게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다지 위급한 상태가 아닌 것 같구나." 해리가 재빨리 망토를 던져 주자, 덤블도어는 무디의 몸을 망토로 잘 덮어 주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는 구덩이에서 올라오더니 다시 트렁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휴대용 물병을 집어 들어 마개를 열고 거꾸로 뒤집었다. 마룻바닥 위에 걸쭉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쏟아졌다. "폴리주스 마법의 약이구나, 해리." 덤블도어가 말했다. "너도 이게 얼마나 영리하고 단순한 방법이었는지 알겠지. 무디는 자신의 휴대용 물병에 담긴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어. 무디의 그런 버릇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 물론 이 가짜 무디는 마법의 약을 계속 만들기 위해서 진짜 무디를 줄곧 옆에 데리고 있어야만 했단다." 덤블도어가 트렁크 속에 들어 있는 무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가짜 무디는 지난 1년 동안 계속 무디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거야. 저기 머리카락이 들쭉날쭉한 것이 보이지? 하지만 오늘 밤에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우리의 가짜 무디께서 매시간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어디... 곧 알게 되겠지." 덤블도어는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짜 무디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해리도 가만히 가짜 무디를 쳐다보았다. 몇 분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상처 자국이 점차 사라지고 피부가 매끈하게 변했다.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코도 적당한 크기로 줄어들면서 완전한 제모습을 되찾았다. 희끗희끗하고 기다란 머리카락도 바싹 짧아지면서 밀짚 같은 색깔로 변했다. 갑자기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만든 의족이 떨어져 나가고 정상적인 다리가 자라났다. 잠시 후에는 마법의 눈이 얼굴에서 툭 튀어나오면서 진짜 눈이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 마룻바닥을 따라 데구르르 굴러간 눈알은 계속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았다. 해리는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짝 주근깨가 박힌 창백한 얼굴에 금빛 더벅머리를 한 청년이었다. 해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덤블도어의 펜시브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 크라우치에게 계속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디멘터들에게 억지로 끌려 나가던 모습... 하지만 지금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으며,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복도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가 윙키를 데리고 돌아오고 있었고, 맥고나걸 교수도 바로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크라우치!" 스네이프가 문가에 우뚝 멈추어 서서 소리쳤다. "바티 크라우치!" "하느님 맙소사!" 맥고나걸 교수도 마치 얼어붙은 듯이 걸음을 멈추고 마룻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더럽고 지저분한 옷차림을 한 윙키가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그 순간 윙키는 입을 딱 벌리면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바티 주인님! 바티 주인님! 여기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 윙키는 젊은 남자의 품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당신이 그를 죽였군요! 당신이 그를 죽였어요! 당신이 주인님의 아들을 죽였어요!" "단지 기절한 것뿐이란다, 윙키." 덤블도어가 윙키를 달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잠깐만 옆으로 비키렴. 세베루스, 약을 갖고 왔는가?" 스네이프는 덤블도어에게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스네이프가 마법의 약 수업 시간에 해리에게 먹이겠다고 위협했던 바로 그 베리타세룸이었다. 덤블도어는 마룻바닥에 쓰러진 사람 위로 허리를 숙이더니, 마법의 거울이 걸려 있는 벽에 몸을 기대고 앉도록 일으켜 세웠다. 마법의 거울 속에 비친 덤블도어와 스네이프 그리고 맥고나걸의 영상이 아직까지도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윙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마룻바닥에 꿇어앉았다. 덤블도어는 기절한 사람의 입을 강제로 벌리더니 진실의 약을 세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그 사람의 가슴에 겨누면서 주문을 외웠다. "에너바이트!" 크라우치의 아들이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축 늘어져 있었으며, 시선은 아주 몽롱했다. 덤블도어는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 말이 들리나?" 덤블도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네." 그 남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에게 솔직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네." 덤블도어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무슨 수로 아즈카반에서 도망을 쳤나?" 크라우치는 깊고 떨리는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마지막 은혜를 베풀어서 부디 나를 구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들은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사랑했던 아버지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두 분은 나를 만나기 위해 아즈카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내게 주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내 머리카락이 들어간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마셨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 모습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윙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마세요, 바티 주인님.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마세요. 아버님이 곤란한 처지에 놓일 거예요!" 하지만 크라우치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똑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디멘터들은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건강한 한 사람과 죽어가는 한 사람이 아즈카반으로 들어왔다가, 똑같이 건강한 한 사람과 죽어가는 한 사람이 아즈카반을 떠났다는 사실만 감지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다른 죄수들이 문 틈으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볼 경우에 대비해 나를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는 아즈카반에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긑까지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마시는 걸 잊어버리지 않았죠. 결국 어머니는 내 모습을 한 채, 내 이름이 적힌 묘비 밑에 묻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가 바로 나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크라우치의 눈꺼풀이 다시 파르르 떨렸다. "그래서 자네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군. 자네의 아버지는 그 다음에 어떻게 했나?" 덤블도어가 조용히 물었다. "일부러 어머니가 죽은 척 꾸몄습니다. 조촐하고 조용한 장례식을 치렀죠. 하지만 그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꼬마 집요정은 충실하게 나를 간호해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언제나 엄격하게 통제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복종시키기 위해 수많은 주문을 사용했습니다. 마침내 나의 힘이 모두 회복되었을 때, 나는 오직 어둠의 주인을 찾으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나의 주인을 섬기고 싶은 마음 이외에는..." "자네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 자네를 통제했지?" 덤블도어가 물었다. "임페리우스 저주를 썼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밤이나 낮이나 투명 망토를 입고 있어야만 했죠. 내 옆에는 항상 꼬마 집요정이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 꼬마 집요정은 나의 감시자이자 시종이었습니다. 꼬마 집요정은 내 처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가끔씩 나에게 선심을 쓰도록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착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말이죠." 가짜 무디가 몽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티 주인님, 바티 주인님. 이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야 했어요. 이제 우리는 큰일났어요..." 윙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면서 흐느꼈다. "네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냐? 네 아버지와 꼬마 집요정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느냐?" 덤블도어의 눈길이 크라우치를 향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버사 조킨스라는 마녀가 아버지의 사인을 받기 위해 서류를 들고 우리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윙키는 그 마녀를 거실로 안내한 후에 내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버사 조킨스는 우연히 윙키와 내가 서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마침내 버사 조킨스는 어떤 사람이 투명 망토를 쓰고 숨어 있다는 추측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마녀는 정확한 증거를 들이대면서 추궁했습니다. 아버지는 버사 조킨스에게 아주 강력한 기억력 마법을 걸어서 그녀가 알아낸 사실을 모두 잊어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어찌나 강력한 마법이었던지, 아버지는 그 사건 때문에 버사 조킨스의 기억력이 완전히 손상되었다고 말했죠." 크라우치가 다시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대답했다. "도대체 그 여자는 왜 우리 주인님의 사생활을 캐고 돌아다녔던 거죠? 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었던 거죠?" 윙키는 서러운 듯이 흐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말해 보게." 덤블도어가 말했다. "윙키가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퀴디치 시합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윙키는 내가 퀴디치 월드컵을 구경할 수 있도록 보내 달라고 졸랐죠. 투명 망토를 쓰고 시합을 관람하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딱 한 번만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 달라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걸 원했을 거라고 애원했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나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었지, 평생 동안 집 안에 갇힌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죠. 결국 아버지는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크라우치는 여전히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계획을 짰습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와 윙키를 데리고 일등석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윙키는 아버지 대신 자리를 지키는 거라고 둘러댔습니다. 아버지의 자리에는 물론 투명 망토를 입은 내가 앉아 있었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일등석을 떠난 후에 우리도 경기장을 빠져나오기로 했습니다. 윙키는 혼자인 것처럼 보일 것이고,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윙키는 나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임페리우스 저주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거의 나 자신을 되찾기도 했죠.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 아버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등석에 있을 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잠에서 확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퀴디치 월드컵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도중에 문득 나는 군중들 속에 있는 나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한 소년의 호주머니에서 비어져 나온 요술지팡이를 보았습니다. 아즈카반에 들어간 이후로 나는 요술지팡이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요술지팡이를 몰래 훔쳤죠. 하지만 윙키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윙키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요." "바티 주인님, 어떻게 그럴 수가!" 윙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윙키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요술지팡이로 무슨 짓을 했지?" "퀴디치 월드컵이 끝난 후에 우리는 텐트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소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아즈카반에 들어간 적이 없는 자들, 나의 주인을 위해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던 자들... 그들은 나의 주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나처럼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어둠의 주인을 찾아나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머글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나의 머리 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맑아졌습니다. 나는 몹시 화가 났죠. 나의 품 속에는 요술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어둠의 주인을 배신한 그들을 공격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아버지는 머글들을 구하기 위해 텐트를 떠나고 없었습니다. 윙키는 내가 그토록 분노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죠. 윙키는 나와 자신을 서로 연결하는 마법의 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나를 끌고 텐트 밖으로 나와서 숲으로 들어갔죠.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윙키를 막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는 다시 캠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을 만나서... 어둠의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고 그들의 불충에 대해 벌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훔친 요술지팡이를 사용해서 하늘에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렸습니다." 문득 해리는 숲속에서 윙키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윙키는 몹시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비로소 해리는 어째서 꼬마 집요정이 그렇게 힘들어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법부의 마법사들이 도착하자, 그들은 사방으로 기절 마법을 쏘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윙키와 내가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날아와, 윙키와 나를 연결하고 있던 마법의 끈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 순간 윙키와 나는 기절하고 말았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윙키가 발견되었을 때, 아버지는 분명히 내가 근처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윙키가 쓰러져 있던 덤불 속을 샅샅이 수색한 끝에, 내가 그곳에 쓰러져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아버지는 마법부의 직원들이 숲속에서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다시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어서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면서 윙키를 해고하고 말았습니다. 윙키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거죠. 윙키는 내가 요술지팡이를 가질 수 있도록 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도망칠 기회까지 줄 뻔했으니까요." 크라우치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윙키는 그 말을 듣자, 다시 절망적으로 통곡했다. "이제 집에는 아버지와 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 그때..." 갑자기 넋이 나간 듯한 크라우치의 얼굴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어둠의 주인이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느 날 밤에 나의 주인이... 웜테일의 품에 안겨서 우리집으로 오셨습니다. 웜테일은 주인을 따르는 종이었습니다. 어둠의 주인은 내가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겁니다. 어둠의 주인은 알바니아에서 버사 조킨스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버사 조킨스를 고문했던 겁니다. 그 마녀는 많은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트리위저드 시합이 다시 열릴 예정이라는 것과, 늙은 오러인 무디가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죠. 어둠의 주인은 아버지가 그 여자에게 걸어 놓았던 기억력 마법이 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고문했습니다. 마침내 버사 조킨스는 내가 아즈카반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둠의 주인을 찾아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가 나를 집에 가두어 놓고 있다는 사실도 말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직까지도 충실한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어쩌면 모든 종들 중에서 가장 충실한 종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의 주인은 버사 조킨스가 알려 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둠의 주인은 나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정이 가까울 무렵, 직접 우리집을 방문한 겁니다.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죠." 마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크라우치의 얼굴 가득히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화석처럼 굳어진 윙키의 갈색 눈동자가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윙키는 너무나 겁에 질려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주인에 의해서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습니다. 이제 조종당하고 감금당한 것은 바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아버지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 다니도록 했습니다. 마침내 저주에서 해방된 나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 되찾은 것입니다." "볼드모트 경이 너에게 무엇을 요구했나?" 덤블도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둠의 주인은 나에게 어떤 위험이라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나는 어둠의 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둠의 주인을 섬기고 어둠의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나의 꿈이자 나의 가장 커다란 야망이었으니까... 나의 주인은 충성스러운 종 한 사람이 호그와트로 몰래 잠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해리 포터가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도록 유인하고 계속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해리 포터가 반드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리고 마법을 걸어서 그 우승컵이 포트키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을 사람이 말입니다. 가장 먼저 우승컵을 붙잡는 사람은 곧장 나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앨러스터 무디가 필요했겠지." 덤블도어가 크라우치의 말을 가로챘다.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푸른 눈동자는 분노로 무시무시하게 번뜩였다. "웜테일과 내가 그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무디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무디는 격렬하게 반항했습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난 거죠. 우리는 간신히 무디를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트렁크 가운데 한 칸에 무디를 강제로 집어넣었습니다. 나는 무디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폴리주스 마법의 약 속에 넣었고요.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마시자, 나는 무디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디에게서 마법의 눈과 나무 다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동을 목격한 머글들을 해결하기 위해 아서 위즐리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아서 위즐리를 만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모두 끝낸 다음이었습니다. 나느 쓰레기통이 마당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서 위즐리에게 어떤 침입자들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들이 쓰레기통을 폭파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에 나는 무디의 옷과 어둠의 탐지기들을 챙겨서 트렁크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물론 무디도 그 트렁크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호그와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나는 무디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걸어 놓고 계속 살려 주었습니다. 무디에게 물어서 그의 과거나 습관을 알아내야 했으니까요. 덤블도어의 눈까지 완벽하게 속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한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무디의 머리카락도 필요했구요. 다른 재료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하 사무실에서 오소리 가죽을 훔쳤습니다. 그런데 마법의 약 교수가 자기 사무실로 들어온 나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재빨리 그 방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핑계를 댔죠." "네가 무디를 공격한 후에 웜테일은 어떻게 되었지?" 덤블도어의 두 눈이 크라우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웜테일은 어둠의 주인을 돌보고 우리 아버지를 감시하기 위해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도망쳤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후부터 아버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임페리우스 저주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아버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도 있었습니다. 문득문득 제정신을 차렸던 것입니다. 결국 나의 주인은 더 이상 아버지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강제로 병이 났다는 편지를 써서 마법부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웜테일이 그만 아버지를 감시하는 임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아버지가 도망을 친 겁니다. 어둠의 주인은 아버지가 호그와트로 가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덤블도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작정이었습니다. 아즈카반에서 나를 몰래 빼돌린 사실까지도 인정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어둠의 주인은 나에게 아버지가 도망쳤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아버지를 막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감시를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나는 해리 포터에게 얻은 지도를 사용했죠. 하마터면 그 지도 때문에 모든 일을 망쳐 버릴 뻔한 위기에 처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도라니? 무슨 지도 말이냐?" 덤블도어가 재빨리 물었다. "포터가 가지고 있던 호그와트의 비밀 지도 말입니다. 포터는 그 비밀 지도에 내 이름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날 밤에 스네이프의 사무실에서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훔치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지만 포터는 그것이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이름이 똑같았으니까요.그날 밤에 나는 포터에게서 그 비밀 지도를 얻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어둠의 마법사들을 증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터는 아버지가 스네이프의 뒤를 쫓고 있다고 믿었죠. 일주일 동안 나는 끈질기게 아버지가 호그와트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가 호그와트 교정으로 들어왔다는 표시가 비밀 지도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투명 망토를 걸치고 아버지를 만나러 내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숲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포터와 크룸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모습을 감추고 적당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둠의 주인이 포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해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포터가 덤블도어에게 달려가는 것으로 보고 나는 재빨리 크룸을 기절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아... 안 돼요! 바티 주인님, 바티 주인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윙키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너는 네 아버지를 죽였다. 그 시체는 어떻게 했는가?" 덤블도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추궁했다. "숲으로 끌고 가서 투명 망톨로 덮어 놓았습니다. 비밀 지도는 계속 갖고 있었죠. 그래서 포터가 성으로 들어가서 스네이프를 만나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포터가 덤블도어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느 재빨리 숲 밖으로 나가서 한 바퀴 빙 돌고 와서는 일부러 그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스네이프로부터 무슨 소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달려왔던 거라고 덤블도어에게 말했습니다. 덤블도어는 나에게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비밀 지도를 확인했습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숲에서 떠났을 때, 나는 아버지의 시체를 변신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뼈다귀로 변했습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도록 다시 투명 망토를 입고 그 뼈다귀를 땅 속 깊이 묻었습니다... 해그리드의 오두막 앞에 새로 파헤쳐 놓은 땅 속에 말입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윙키의 애절한 울음 소리만이 잠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밤에..."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저녁 식사 전에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미로 속에 갖다 놓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바티 크라우치가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법을 걸어서 우승컵이 포트키가 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둠의 주인이 세운 계획이 모두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어둠의 주인은 다시 힘을 되찾았습니다. 난 이제 다른 마법사들이 꿈도 꾸지 못할 영광을 얻게 될 겁니다." 또다시 크라우치의 얼굴에 넋이 나간 미소가 활짝 피어 올랐다. 갑자기 크라우치의 머리가 어깨 위로 푹 쓰러졌다. 윙키는 크라우치를 바라보면서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제36장 덤블도어의 사람들 덤블도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한참 동안이나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티 크라우치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가 또다시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요술지팡이 끝에서 기다란 밧줄이 흘러나오더니 저절로 바티 크라우치를 꽁꽁 묶었다. "미네르바, 내가 해리를 데리고 위층에 가 있는 동안 여기를 좀 지켜 주시겠소?" 덤블도어가 맥고나걸 교수에게 돌아서면서 물었다. "물론이죠." 맥고나걸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바티 크라우치를 바라보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의 얼굴에는 역겨운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바티 크라우치를 향해 요술지팡이를 똑바로 겨누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의 손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세베루스, 폼프리 부인에게 당장 이곳으로 내려오라고 전하게. 앨러스터 무디를 병동으로 데리고 가야만 해. 그런 다음에 운동장으로 내려가서 코넬리우스 퍼지를 찾아보게. 코넬리우스 퍼지를 만나면 즉시 이 사무실로 모셔 오게나. 분명히 그는 직접 크라우치를 심문하고 싶어 할 거야. 어쩌면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군. 난 30분 후에 병동에 있을 예정이라고 전해 주게." 스네이프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해리?" 덤블도어가 다정하게 해리를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다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크라우치의 고백을 듣고 있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다리의 통증이 다시 몰려 왔다. 해리의 몸이 심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팔을 부축하더니 어두운 복도로 나갔다. "해리, 먼저 내 사무실로 올라가자꾸나."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덤블도어가 차분하게 말했다. "시리우스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무감각하고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상태인 것이 기뻤다. 지금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처음 만졌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중 단 한가지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머리 속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사진처럼 선명하고 뚜렷한 기억을 자세히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마법의 트렁크 속에 들어 있던 매드아이 무디... 잘려 나간 팔뚝을 움켜쥔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웜테일... 무럭무럭 김이 피어나는 가마솥 안에서 다시 부활한 볼드모트... 케드릭... 죽음을 당한...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하던 케드릭... "저... 교수님. 그런데 케드릭의 부모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해리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분들은 지금 스프라우트 교수님과 함께 계신다." 덤블도어가 착잡하게 대답했다. 바티 크라우치를 심문하는 내내 냉정하기만 했던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약간 떨렸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케드릭이 있던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분들을 제일 잘 아시지." 마침내 두 사람은 이무기 석상 앞에 도착했다. 덤블도어가 암호를 말하자, 이무기 석상이 옆으로 펄쩍 움직였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박달나무로 만든 문 앞까지 올라갔다. 덤블도어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리우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시리우스의 얼굴은 처음 아즈카반에서 도망쳤을 때처럼 몹시 창백하고 바싹 야위었다. 시리우스는 재빨리 방을 가로질러서 해리에게 달려왔다. "해리, 너 괜찮니? 나는 짐작하고 있었단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시리우스는 해리가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부축을 해주었다. 해리는 시리우스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시리우스가 더욱 다급하게 물었다. 덤블도어는 시리우스에게 바티 크라우치가 말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하지만 해리의 귀에는 한 마디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몸의 뼈마디 하나 하나마다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몇 시간동안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이 잠에 곯아 떨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불사조가 부드럽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횃대에서 내려온 불사조 퍽스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날아와 해리의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너로구나, 퍽스." 해리가 불사조를 쳐다보면서 힘없이 말했다. 해리는 불사조의 아름다운 진홍색과 황금색 깃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퍽스는 평화로워 보이는 눈을 깜박이면서 물끄러미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퍽스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점차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덤블도어는 이야기를 끝마친 후 해리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해리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덤블도어의 시선을 자꾸만 피했다. 이제부터 덤블도어는 질문을 할 것이다... 모든 일을 다시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해리, 나는 네가 미로 속에서 포트키를 잡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한다." 마침내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아침까지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덤블도어? 해리는 잠을 자야만 합니다. 해리가 편안하게 쉬도록 해야 한다구요." 시리우스가 해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해리는 시리우스에게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시리우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를 향해 몸을 바싹 기울였다. 마지못해 해리는 고개를 들고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너에게 마법을 걸어서 오늘 밤은 그냥 편안히 잠들게 하고, 내일 아침에 얘기하도록 하는 게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게다." 덤블도어가 작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단다. 고통을 피하기만 한다면, 네가 마침내 그 고통을 느껴야 할 때에는 오히려 더욱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너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용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네가 그 용기를 발휘하기를 원한단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우리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순간 불사조가 달콤하고 떨리는 울음 소리를 내었다. 불사조의 울음 소리가 해리의 고막에 와 닿았다. 갑자기 해리는 뜨거운 액체 한 방울이 목줄기를 타고 뱃속까지 흘러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점차 따뜻해지면서 저절로 기운이 솟았다. 해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해리의 눈앞에 떠올랐다... 해리는 볼드모트를 부활시킨 마법의 약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불꽃을 온 사방으로 튀기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무덤 사이 사이에서 나타났던 장면도 보았다... 케드릭의 시체가 트리위저드 우승컵 근처에 쓰러져 있던 모습도 보았다... 해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던 시리우스는 한두 번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조용히 손을 들어서 시리우스의 말을 막았다. 해리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말문을 열고 나니까 점점 더 말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무엇인가 해로운 것이 해리의 몸 속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래서 웜테일은 단검을 휘둘러서 저의 오른팔을 찔렀..." "뭐야?" 갑자기 시리우스가 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자리에서 후닥닥 일어서서 황급히 다가오더니 해리에게 팔을 내밀어 보라고 말했다. 해리는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난 팔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볼드모트는 일부러 다른 사람의 피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제 피를 사용하면 자기가 훨씬 더 강해질 거라고 말했어요." 해리가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볼드모트는... 저... 저의 어머니가 제게 남긴 보호의 힘을 자기도 갖게 될 거라고 했죠. 볼드모트의 말이 맞았어요. 볼드모트는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저를 만질 수가 있었어요. 볼드모트는 직접 저의 얼굴을 만지기도 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리는 덤블도어의 눈이 승리감으로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 본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덤블도어가 다시 책상 앞으로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을 때,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해리가 보았던 대로 몹시 피곤하고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잘 알겠다." 덤블도어가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볼드모트는 특별한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었구나. 해리, 어서 계속하거라." 해리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볼드모트가 가마솥에서 걸어나왔던 장면을 설명한 후에,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뭐라고 연설했는지 기억이 나는 대로 모두 들려주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해리의 밧줄을 풀고 요술지팡이를 돌려주면서 결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금빛 광선이 해리의 요술지팡이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를 연결한 대목에 이르자, 그는 목구멍이 꽉 막혀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나왔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홍수처럼 해리의 머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해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케드릭... 낯선 노인과 버사 조킨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갑자기 시리우스가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을 때, 해리는 몹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두 개의 요술지팡이가 연결되었다는 거야?" 해리를 응시하고 있던 시리우스의 시선이 다시 덤블도어에게로 향했다. "왜 그런 거죠?" 해리도 궁금하다는 듯이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는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꼼작없이 붙잡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프리오리 인칸타템이야." 덤블도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덤블도어의 시선이 해리의 시선과 서로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상호 이해의 불꽃이 오고가는 것 같았다. "역주문 효과 말인가요?" 시리우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바로 그렇다네. 해리의 요술지팡이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는 똑같은 심을 가지고 있다네. 두 개의 요술지팡이 모두 똑같은 불사조의 꼬리 깃털이 들어가 있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이 불사조라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해리의 무릎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진홍색과 황금색의 불사조를 가리켰다. "제 요술지팡이의 깃털이 퍽스의 것이란 말인가요?" 해리는 깜짝 놀라면서 덤블도어에게 물었다. "그렇단다, 해리. 4년 전에 너는 올리밴더 씨의 가게에서 그 요술지팡이를 구입했지. 네가 문을 나서자마자, 올리밴더 씨는 네가 그 두 번째 요술지팡이를 샀다고 곧장 내게 편지를 보냈단다." "이 요술지팡이가 형제 요술지팡이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죠?" 시리우스가 물었다. "서로 잘 싸울 수가 없게 된다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만약 요술지팡이의 주인들이 강제로 두 요술지팡이에게 싸움을 붙인다면... 아주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난다네. 요술지팡이 중에 하나가 다른 요술지팡이에게, 자신이 행했던 마법들을 토해 내는 것이지. 거꾸로... 우선 가장 최근에 행했던 마법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차례 차례 모든 마법을 되풀이한다네." 덤블도어느 해리를 쳐다보면서 과연 그랬는지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케드릭의 형상도 다시 나타났어야 하는데..." 덤블도어가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해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디고리가 다시 살아났단 말인가요?" 시리우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마법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네. 기껏해야 일종의 반향 같은 것이지. 살아 있는 케드릭의 형상이 요술지팡이에서 흘러나왔을 거야. 내 말이 맞니, 해리?" 덤블도어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케드릭이 나타나서 저에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케드릭의 유령이... 아니, 그게 뭐든지 간에 저에게 말했어요." 갑자기 해리의 몸이 다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메아리란다. 케드릭의 모습과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 내 생각엔, 다른 형체들도 나타났을 것 같은데... 최근에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로 희생을 당했던 자들이..." 덤블도어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어떤 노인이 있었어요. 버사 조킨스도 있었고, 그리고..." 해리는 여전히 목구멍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네 부모님도?" 덤블도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시리우스는 해리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움켜잡았다. 덤블도어는 말을 계속했다. "그 요술지팡이가 저지른 가장 최근의 살인부터 거꾸로 나오는 거야. 물론 네가 요술지팡이의 연결을 더욱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면, 좀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을 거란다. 잘 했다, 해리. 그런데 희생자의 메아리들... 혹은 그림자들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그들은 무슨 행동을 했니?" 해리는 요술지팡이에서 나온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황금 그물망 언저리를 돌았는지, 볼드모트가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제임스 포터가 해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었는지, 케드릭이 어떤 마지막 요청을 했는지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 대목에 이르자, 해리는 도저히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시리우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해리는 불사조 퍽스가 무릎에서 내려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사조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마룻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머리를 해리의 상처입은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 불사조의 눈에서 진주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며 거미가 남긴 상처에 떨어졌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상처가 아물면서 다리의 부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 불사조는 날갯짓을 하면서 푸드득 날아오르더니 다시 문 옆의 횃대에 내려앉았다.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싶구나." 덤블도어는 불사조를 힐끗 쳐다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리, 오늘 밤에 너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커다란 용기를 보여주었단다. 너는 전력을 다해 볼드모트와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과 똑같은 용기를 보여주었어. 어른 마법사들이나 감당할 만한 무거운 짐을 너도 충분히 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거지. 이제 나와 함께 병동으로 가자. 오늘 밤에는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잠자는 마법의 약을 먹고 푹 쉬어야 하니까... 시리우스, 해리와 함께 있어 주겠나?"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벌떡 일어서더니 커다란 검은 개로 변신했다. 해리와 덤블도어와 검은 개로 변신한 시리우스는 함게 사무실을 나가서 병동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덤블도어가 병동의 문을 열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과 빌, 론,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은 폼프리 부인을 둘러싸고, 해리가 어디에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질문 공세를 펴고 있던 모양이었다. 해리와 덤블도어 그리고 검은 개가 병동으로 들어서자, 모두들 일제히 고개를 휙 돌렸다. 위즐리 부인은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입을 딱 벌렸지만,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해리에게 달려왔다. "해리! 오, 해리!" 하지만 덤블도어가 재빨리 위즐리 부인 앞을 가로막았다. "몰리." 덤블도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잠깐만 내 말을 들어 주시오. 해리는 오늘 밤에 아주 끔직한 시련을 겪었소. 그리고 방금 전에 내게 이야기하느라고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소. 지금 이 애에게 필요한 건 조용히 안정을 취하며 잠을 푹 자는 것이오. 만약 해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면, 그건 좋소." 덤블도어는 잠시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와 빌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해리가 대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해리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더구나 오늘 밤에는 절대 안 될 일이오." 위즐리 부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즐리 부인의 얼굴을 몹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론과 헤르미온느와 빌이 시끄럽게 떠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을 돌아보면서 야단을 쳤다. "너희들도 들었지? 조용히 해야 한단다!" "교장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건..." 폼프리 부인은 아주 난처한 눈빛으로 시리우스가 변신한 검은 개를 쳐다보았다. "이 개는 해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덤블도어는 단호한 태도로 딱 잘라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검은 개는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답니다. 해리, 어서 침대에 누우렴." 해리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막아 준 덤블도어에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이 옆에 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또다시 비참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퍼지를 만나는 대로 다시 돌아오겠다, 해리." 덤블도어는 다정한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너는 내일도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서둘러 병동을 떠났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를 가까운 침대로 데려갔다. 병실 제일 끝에 진짜 무디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디의 나무다리와 마법의 눈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무디 교수님은 괜찮아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무디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곧 좋아질 거란다." 폼프리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에게 잠옷을 내주고는 침대 주위에 칸막이를 쳤다. 재빨리 옷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해리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론과 헤르미온느, 빌, 위즐리 부인, 검은 개는 칸막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제각기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잔뜩 겁에 질려 있던 론과 헤르미온느는 어쩐지 두려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아. 그저 피곤할 뿐이야." 해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괜히 침대 커버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위즐리 부인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부산하게 사무실로 달려 간 폼프리 부인은 자주색 약이 담긴 작은 병과 잔을 갖고 돌아왔다. "해리, 이걸 다 마셔야 한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약이란다." 폼프리 부인이 다정하게 말했다. 해리는 잠자는 마법의 약을 잔에 부어서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마셨다. 즉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몽롱하게 보였다. 병동을 밝히고 있는 등불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칸막이 너머에서 다정하게 깜박거리는 것 같았다. 따뜻한 깃털 이불 속으로 해리의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약을 다 마시기도 전에, 지칠 대로 지친 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온몸이 너무나 나른했기 때문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병동은 여전히 희미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아직도 한밤중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별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해리가 잠을 깰 거야!" "도대체 왜 고함을 지르는 거죠?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해리는 살며시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해리의 안경을 벗겨서 치워 놓았기 때문에 제일 가까이 있는 위즐리 부인과 빌의 모습만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건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야." 위즐리 부인이 속삭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목소린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말다툼을 하는 걸까?" 이제 해리의 귀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병동으로 다가오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요, 미네르바." 코넬리우스 퍼지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절대로 그것을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블도어가 아는 날이면..." 해리는 병동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해리는 몸을 일으키고 앉은 후에 안경을 찾아서 썼다. 하지만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빌이 칸막이를 젖히자, 모두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스네이프와 맥고나걸 교수가 그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코넬리우스 퍼지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여긴 안 계세요. 장관님, 여기는 병동이에요. 좀 조용히 하셔야..." 위즐리 부인이 잔뜩 화가 나서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다시 열리더니 덤블도어가 재빨리 병실로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왜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까? 미네르바, 솔직히 당신에게 놀랐소. 분명히 바티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는데..." 덤블도어가 코넬리우스 퍼지와 맥고나걸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 덤블도어 교수님! 퍼지 장관님께서 이미 다 알아서 처리하셨으니까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지금처럼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맥고나걸 교수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두 손은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스네이프가 조근조근 설명했다. "퍼지 장관님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 밤 사건을 주동한 죽음을 먹는 자를 우리가 붙잡았다고 보고드렸습니다. 그러자 퍼지 장관님은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디멘터 한 명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바티 크라우치가 잡혀 있는 사무실로 디멘터를 데리고 들어오더니..." "덤블도어 교수님, 저는 교장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어요! 저는 퍼지 장관님에게 교장 선생님은 디멘터가 이 성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가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그게 잘못이란 거요?" 코넬리우스 퍼지가 호통을 쳤다. 해리는 지금처럼 심하게 화를 내는 코넬리우스 퍼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법부 장관으로서, 지극히 위험한 자를 만날 때, 경호원을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내가 결정할 소관이란 말이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는 이내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순간..." 맥고나걸 교수는 온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라우치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그리고... 그리고..." 그 순간 해리는 뱃속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는 굳이 말을 다 끝낼 필요가 없었다. 디멘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멘터는 바티 크라우치에게 죽음의 입맞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입을 통해서 크라우치의 영혼을 빨아들인 것이다. 이제 크라우치는 차라리 죽은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크라우치가 받은 처벌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크라우치는 벌써 몇 사람이나 죽인 게 분명하지 않소!" 코넬리우스 퍼지가 발끈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증언도 할 수가 없게 되었군, 코넬리우스. 어째서 그 사람들을 죽였는지 증언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네." 덤블도어는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크라우치가 그들을 죽였냐구?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나? 안 그런가? 크라우치는 미쳤어. 마구 날뛰는 정신병자였단 말야! 미네르바와 세베루스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에 따르면, 크라우치는 마치 이 모든 일들을 그 사람의 지시에 따라서 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코넬리우스 퍼지가 거칠게 소리쳤다. "코넬리우스, 분명히 볼드모트 경이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네." 덤블도어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들의 죽음은 볼드모트가 다시 완전한 힘을 되찾기 위해 세웠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네. 그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지. 볼드모트는 원래의 몸을 되찾았으니까." 코넬리우스 퍼지는 마치 누군가에게 한 방 얻어맞은 듯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갑자기 기가 막히다는 듯이 푸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돌아왔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소리! 이보게, 덤블도어..." "미네르바와 세베루스가 자네에게 말한 대로, 우리는 바티 크라우치의 진술을 들었네. 베리타세룸을 마신 후에 바티 크라우치는 무슨 수로 아즈카반에서 도망쳤는지 솔직하게 털어 놓았어. 그리고 버사 조킨스를 통해 크라우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볼드모트가 어떻게 해서 그를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는지 고백했다네. 물론 볼드모트가 해리 포터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어떤 술책을 부렸는가에 대한 것도... 이미 말한 대로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다네. 크라우치는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거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것 보게, 덤블도어." 코넬리우스 퍼지가 입을 열었다. 해리는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설마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말을? 이봐요, 이봐... 분명히 크라우치는 그 사람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다고 믿었을 거야. 하지만 덤블도어, 그런 정신 이상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니..." "오늘 밤에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붙잡자마자, 곧장 볼드모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네." 덤블도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볼드모트 경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어. 내 사무실로 잠깐 올라오면, 모두 다 설명해 주겠네." 해리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린 덤블도어는 해리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밤에 해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허락할 수가 없군." 코넬리우스 퍼지는 입가에 여전히 기묘한 웃음을 떠올리면서 해리를 힐끗 돌아보았다. "자네는... 음... 그러니까 해리의 말까지 귀담아 들을 생각인가, 덤블도어?" 코넬리우스 퍼지의 시선이 다시 덤블도어에게 향했다. 잠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은 이내 시리우스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다. 시리우스는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검은 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채,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물론, 나느 해리의 말을 믿네. 나는 크라우치의 고백도 들었고, 해리에게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에 손을 갖다 댄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들었네. 두 사람의 진술은 서로 정확하게 들어맞았어. 그리고 지난 여름에 버사 조킨스가 실종된 이후로 계속 일어났던 일련의 이상한 사건들도 모두 의문이 풀렸네." 이제 덤블도어의 눈은 분노로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의 입가에 떠오른 기묘한 미소는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또다시 이상야릇한 눈길로 해리를 힐끗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미친 살인자와 한 꼬마의 말만 듣고 볼드모트 경이 다시 돌아왔다고 믿는 모양이군... 하지만 저 꼬마도 정신이... 글쎄..." 그 순간 해리는 코넬리우스 퍼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퍼지 장관님도 리타 스키터의 기사를 읽으셨군요." 해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위즐리 부인 그리고 빌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들은 해리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집스럽고 완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랬다면 어쩔 건가? 자네가 저 소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있었다는 걸 내가 알았다면? 심지어 저 소년은 뱀의 말까지 할 줄 안다면서? 그 밖에도 아주 재미있는 소문들이 떠돌고 있던데..."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완강하게 말했다. "가끔씩 해리가 이마의 흉터에서 통증을 느끼는 걸 말하는 모양이군." 덤블도어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네도 해리가 머리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건가? 그건 도대체 뭐지? 두통인가? 악몽? 그게 아니라면 환각?" 코넬리우스 퍼지가 단호하게 따졌다. "코넬리우스! 내 말을 똑똑히 듣게나." 덤블도어는 코넬리우스 퍼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 덤블도어의 몸에서, 그가 젊은 크라우치를 기절시켰을 때 해리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해리는 당신이나 나처럼 말짱하네. 해리의 이마에 나 있는 흉터는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다만 볼드모트 경이 가까운 곳에 있거나 혹은 특별히 살기를 느낄 때, 상처가 쿡쿡 쑤시는 것 뿐일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 앞에서 반 걸음 가량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금도 기가 꺾인 것 같지 않았다. "미안하네, 덤블도어. 하지만 나는 비상벨처럼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알려 주는 흉터 마법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저는 볼드모트가 부활하는 걸 직접 봤어요!" 해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해리는 다시 침대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위즐리 부인이 강제로 해리를 붙잡았다. "저는 두 눈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을 똑똑히 보았어요! 그 이름도 말할 수 있어요! 루시우스 말포이!" 갑자기 스네이프가 움찔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네이프는 슬그머니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루시우스 말포이는 아무런 혐의가 없어! 말포이가는 아주 전통있는 가문이야. 게다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엄청난 기부금을 내는데..." 코넬리우스 퍼지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었다. "맥네어!" 해리는 계속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그 사람도 결백해! 지금은 마법부를 위해서 일하고 있단 말이야!" "애버리! 놋! 크레이브! 고일!" "너는 그저 13년 전에 이미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는 무죄 판정을 받아서 석방된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읊어대고 있을 뿐이야! 과거의 재판 기록에서 그 이름들을 보았겠지! 덤블도어, 작년 말부터 이 아이의 머리 속에는 온갖 해괴한 생각들이 가득 차 있네. 이 아이가 하는 말은 날이 갈수록 가관이야. 그런데 자네는 그걸 더욱 부추기고 있으니... 덤블도어, 이 아이는 뱀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일세. 그런데 자네는 이 아이의 말을 믿는다는 건가?" 코넬리우스 퍼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말 멍청하군요! 케드릭 디고리! 크라우치 씨! 이 사람들의 죽음은 절대로 정신병자가 제멋대로 저지른 소행이 아니에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않소!" 코넬리우스 퍼지는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고 더욱 목청을 높였다.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은 거의 보랏빛으로 변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들 모두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에 이루어 놓았던 모든 업적들을 단번에 무너뜨리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소!"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해리는 언제나 코넬리우스 퍼지가 약간 호통을 잘 치고 허세를 부리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해리의 눈앞에 서 있는 땅딸막하고 분노에 가득 찬 이 마법사는, 안락하고 질서정연한 세계에 무서운 혼란이 일어날까 봐서 명백한 진실을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볼드모트는 부활했네!"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퍼지, 만약 자네가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즉시 필요한 조처를 취한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걸세. 우선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인 일은 아즈카반을 지배하고 있는 디멘터들을 내보내는 일이네." "터무니없는 소리! 디멘터들을 아즈카반에서 내보내라구? 그런 주장을 한다면, 나는 당장 마법부에서 쫓겨날 거야! 그나마 디멘터들이 아즈카반을 지키고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우리 중에서 절반은 밤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있단 말이야!" 코넬리우스 퍼지는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단번에 덤블도어의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있네. 코넬리우스, 당신이 볼드모트 경의 가장 위험스러운 추종자들에게 마법 생물 관리를 맡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세. 그들은 언제든지 볼드모트가 부르기만 하면, 즉시 달려가서 합세할 자들이야!" 덤블도어가 경고했다. "퍼지, 자네는 그들이 자네에게 언제까지나 충실할 거라고 믿는가? 자네보다는 볼드모트가 그들에게 더욱 많은 힘과 더욱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디멘터가 볼드모트의 뒤를 따르고 옛 추종자들이 다시 어둠의 주인에게 돌아간 뒤에, 볼드모트가 13년전과 똑같은 힘을 되찾는 걸 막으려 한다면, 그땐 너무 힘이 들 걸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너무나 화가 나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잠시 입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어 버렸다. "두 번째로 자네가 즉각 해야 할 일은 거인족에게 외교 특사를 보내는 일일세." 덤블도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코넬리우스 퍼지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거인족에게 특사를 보내란 말인가? 이건 또 무슨 정신나간 소린가?" 다시 할 말을 찾았다는 듯이 코넬리우스 퍼지가 날카롭게 외쳤다. "너무 늦기 전에 거인족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도록 하라는 말일세. 만약 그렇지 않으면 볼드모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직 자신만이 거인족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라고 거인들을 설득할 게 분명해!" "서...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코넬리우스 퍼지는 기가 막힌 듯이 입을 딱 벌렸다. "만약 마법 사회에 내가 거인족과 접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덤블도어... 그렇게 되면 내 경력은 끝장이야. 사람들은 거인족을 증오한단 말일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코넬리우스, 자넨 눈이 멀었어!" 덤블도어는 이제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덤블도어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자네가 차지하고 있는 그 직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넨 항상 소위 그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어!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건 어떤 신분으로 태어나는가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일세! 하지만 이제 방금 그 어떤 가문보다도 유서깊고 순수한 혈통을 지닌 명문가의 단 하나 남은 후손을 당신의 그 잘난 디멘터가 송두리째 파괴시키고 말았네! 그 젊은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자네도 한 번 보게나! 나는 자네에게 분명히 말하겠네. 어서 내가 제안한 그 조처들을 취하도록 하게나.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넨 마법부 내에서나 밖에서나, 역대 마법부 장관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용기 있는 장관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이대로 포기한다면, 역사는 자넬 비겁하게 뒤로 물러나서 볼드모트에게 우리가 애써 재건하고 있는 이 세계를 파괴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 인물로 기억할 걸세!" 덤블도어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미쳤군. 정신이 나갔어..." 코넬리우스 퍼지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품프리 부인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해리의 침대맡에서 얼어붙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해리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조용히 서 있던 위즐리 부인이 재빨리 해리의 어깨를 손으로 눌렀다. 빌과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매서운 눈초리로 코넬리우스 퍼지를 노려 보고 있었다. "코넬리우스, 만약 자네가 끝까지 계속 모르는 척하겠다면... 우리는 이제 갈림길에 온 것 같네." 덤블도어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넨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겠네."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다. 코넬리우스 퍼지를 협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단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담담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치켜들고 덤벼들기라도 한 것처럼 벌컥 화를 내었다. "이보게, 덤블도어. 나는 항상 자넬 존중하면서 자율적인 지도권을 보장해 주었네. 나는 자네에게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어. 때때로 자네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두었네. 자네가 늑대인간을 고용하거나 해그리드를 데리고 있거나 혹은 마법부와 한 마디 의논도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제멋대로 정하는 일 따위를 너그럽게 허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하지만 자네가 나를 방해하려고 한다면..." 코넬리우스 퍼지는 위협적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방해하려고 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볼드모트 경이야. 만약 자네도 볼드모트를 반대한다면... 코넬리우스, 우리는 여전히 같은 편일세." 덤블도어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 말에 코넬리우스 퍼지는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중산모를 빙빙 돌리면서 병실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가 애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부활하다니... 덤블도어,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갑자기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앞을 지나가 성큼성큼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다가갔다. 스네이프는 왼쪽 소맷자락을 위로 걷어 올리더니 코넬리우스 퍼지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몹시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를 보십시오." 스네이프가 팔뚝을 내밀면서 거칠게 말했다. "바로 여기를 말입니다. 이건 바로 어둠의 표식입니다. 지금은 비록 조금 흐려졌지만, 한 시간 전에는 까맣게 타올랐을 정도로 아주 선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표식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겁니다. 어둠의 주인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낙인을 찍었습니다. 어둠의 표식을... 이건 서로를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자, 볼드모트가 우리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죠. 만약 볼드모트가 어떤 죽음을 먹는 자의 팔에 찍힌 이 표식을 만지면, 우리는 즉시 순간이동을 해서 그 사람의 곁으로 가야만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둠의 표식은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카르카로프의 팔뚝에 찍혀 있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밤에 카르카로프가 왜 도망을 쳤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두 사람은 어둠의 표식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마침내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카르카로프는 볼드모트의 복수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카르카로프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너무나 많이 밀고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결코 환영받을 수 없을테니까요." 코넬리우스 퍼지는 주춤주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스네이프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팔에 찍힌 추악한 문신을 보고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덤블도어, 당신과 당신의 교수들이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하지만 나는 이제 충분히 들었어. 더 이상 들을 말도 없네. 내일 다시 연락하리다. 그리고 이 학교의 운영 방침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하겠네. 나는 지금 당장 마법부로 돌아가야만 해."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중얼거렸다. 거의 병실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코넬리우스 퍼지가 문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빙글 뒤로 돌아서더니 병실을 가로지르면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는 해리의 침대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네 상금이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호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꺼내더니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우승자에게 주는 1000갈레온이다. 당연히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어야만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상황으로는 어려울 것 같구나..." 코넬리우스 퍼지는 다시 중산모를 머리에 쓰고 병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잠시 후에 병실 문이 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사라지자마자, 덤블도어는 진지한 눈길로 해리의 침대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할 일이 있소." 덤블도어가 신중하게 말했다. "몰리... 내가 당신과 아서를 믿어도 되겠소?" "물론이에요." 위즐리 부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코넬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아서가 계속 마법부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도... 남편이 머글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죠. 퍼지는 아서가 마법사로서 응당 가져야 할 자부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위즐리 부인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표정은 아주 단호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아서에게 편지를 보내야만 하겠소. 진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즉시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하오. 아서는 마법부 내에서 코넬리우스처럼 편협한 사고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과도 접촉하기 쉬운 위치에 있잖소." 덤블도어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아빠에게 가겠어요. 지금 당장 가죠." 빌이 벌떡 일어섰다. "훌륭하구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말씀드리거라. 조만간 내가 직접 아버지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겠다는 말씀도 전하거라. 하지만 아주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할 거야. 만약 내가 마법부의 일에 간섭하고 있다고 퍼지가 생각하게 된다면..." 덤블도어가 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제게 맡기세요." 빌을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은 해리의 어깨를 툭 치더니 어머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에 망토를 집어 들고 재빨리 병실을 나갔다. "미네르바." 덤블도어가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돌아섰다. "가능한 빨리 해그리드를 내 사무실로 불러 주시오. 즉시 해그리드를 만나야겠소. 그리고 맥심 부인도 불러주시오. 부인이 동의하신다면 말이오." 맥고나걸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병실을 떠났다. "폼프리 부인... 미안하지만 무디 교수의 사무실에 좀 갔다 오겠소? 그곳에 가면 몹시 슬퍼하고 있는 윙키라는 꼬마 집요정을 만날 수 있을 거요. 그 요정을 달래서 다시 주방으로 데리고 가 주시오. 아마도 도비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 요정을 잘 보살펴 줄 거요." "잘... 잘 알겠어요." 폼프리 부인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떠났다. 덤블도어는 병실의 문이 닫힌 후에도 폼프리 부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덤블도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드디어 우리 중의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순간이 되었군. 시리우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나." 커다란 검은 개는 덤블도어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위즐리 부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침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리우스 블랙!" 위즐리 부인이 손가락으로시리우스를 가리키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엄마, 조용히 좀 해요! 괜찮단 말이에요!" 론이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 스네이프는 비록 소리를 지르거나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노려보았다. "이 자는!" 스네이프가 차가운 눈길로 시리우스를 쳐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는 거죠?" 시리우스도 스네이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시리우스도 온통 혐오감이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내 초대를 받아서 이곳으로 온 거라네." 덤블도어는 두사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자네처럼 말이네... 나는 두 사람을 모두 신뢰하고 있다네. 이제 두 사람 모두 해묵은 미움은 그만 잊어버리도록 하게. 마침내 서로 신뢰해야 할 때가 온 거야." 해리는 덤블도어가 거의 기적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리우스와 스네이프는 여전히 미움과 증오가 가득 담긴 눈길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노골적인 적대감만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대로 만족할 걸세." 덤블도어가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서로 악수를 하게. 시리우스... 스네이프... 이제 두 사람은 같은 편이야. 시간이 별로 없다네.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 몇 사람조차도 협력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네." 아주 천천히 (하지만 여전히 상대방이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듯한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시리우스와 스네이프는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마지못해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주 재빨리 돌아섰다. 덤블도어가 다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했다. "계속 그렇게만 지낸다면 됐네. 지금부터 두 사람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맡기겠네. 퍼지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은 되지만, 어쨌거나 퍼지의 태도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시리우스, 자네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하게. 옛 동료 리무스 루핀과 아라벨라 피그, 먼던구스 플레쳐에게 어서 경고를 해야 해. 한동안 루핀 곁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도록 하게.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거야.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을 하겠네." "하지만..." 해리가 불쑥 말을 꺼냈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이렇게 빨리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금방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해리. 약속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주 바쁜 일이 있단다. 나는 서둘러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해. 이해할 수 있겠지?" 시리우스는 따뜻한 애정이 담긴 눈길로 가만히 해리를 바라 보았다. "그래요." 해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물론이죠." 시리우스는 해리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그리고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까딱 머리를 숙이더니 순식간에 검은 개로 변신했다. 검은 개는 병실의 문을 향해 달려가 앞발로 손잡이를 돌렸다. 해리는 검은 개가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내가 자네에게 어떤 부탁을 하려는지 자네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각오가 되었다면 말이네..." 덤블도어는 천천히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어쩐지 평소보다도 더욱 창백하게 보였으면, 차갑고 검은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행운을 비네." 덤블도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나가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덤블도어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구나. 디고리 부부를 만나야 하니까... 해리, 남은 약을 마저 마시도록 해라.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마." 덤블도어마저 나가자, 해리는 털썩 베개 위로 쓰러졌다. 헤르미온느와 론 그리고 위즐리 부인은 한결같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해리, 남은 약을 마저 마시도록 해라." 마침내 위즐리 부인이 약병과 잔을 집어 들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랫동안 푹 자려무나. 뭔가 다른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떻겠니? 이 상금으로 뭘 살지 생각하는 게 좋겠구나!" 위즐리 부인은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황금 꾸러미를 가리켰다. "하지만 저는 그 금화를 받고 싶지 않아요. 아주머니가 가지세요. 아무나 가지라고 하세요. 저는 그걸 받아서는 안 돼요. 그건 케드릭 거예요." 해리가 무감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로를 빠져나온 이후로 줄곧 해리가 애써 피하려고 했던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눈시울이 점차 뜨거워지더니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해리는 눈을 깜박이면서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리,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위로했다. "제가 케드릭에게 함께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자고 말했어요."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구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해리는 론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않기 바랬다. 위즐리 부인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약을 내려놓더니 해리에게 다가와 두 팔로 해리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해리는 한 번도 이렇게 누군가의 품에 다정히 안겨 본 기억이 없었다. 위즐리 부인의 품에 안기자, 해리는 지난 밤에 보았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머리 위로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의 얼굴... 아버지의 목소리...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케드릭의 시신... 이 모든 것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빙빙 맴돌았다. 마침내 해리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비탄에 찬 울부짖음과 싸워야만 했다. 갑자기 뭔가를 탁 내리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위즐리 부인과 해리는 얼른 몸을 떼었다. 뭔가를 손에 꼭 잡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창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해요."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 약을 먹어라." 위즐리 부인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재빨리 말했다. 해리는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효력이 나타났다. 저항할 수 없는 무거운 잠의 파도가 해리를 덮쳤다. 베개 위로 털썩 쓰러진 해리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제37장 딱정벌레의 비밀 한달이 흐른 후에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해리의 머리 속에는 거의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나머지 머리가 더 이상 기억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디고리 부부를 만난 것이었다. 디고리 부부는 지나간 일로 해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가 케드릭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온 것에 대해 무척 고맙게 여겼다. 해리를 만나는 동안 에이머스 디고리는 계속 흐느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디고리 부인은 이제 눈물을 흘릴 만한 기력조차 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케드릭이 어떻게 죽었는지 디고리 부부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이 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겠구나. 어쨌거나 에이머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승리한 후에 죽었잖아요. 분명히 행복했을 거예요." 디고리 부인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부디 몸조심 하거라."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디고리 부인이 해리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금화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이걸 받으세요. 우승 상금은 원래 케드릭이 받아야 할 것이었어요. 케드릭이 제일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받으세요." 해리가 금화 주머니를 내밀면서 말했다. 하지만 디고리 부인은 한사코 금화 주머니를 떠밀었다. "아니다. 그건 네 것이야. 나는... 받을 수 없단다... 네가 간직하렴." 다음날 저녁에 해리는 다시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갔다. 헤르미온느와 론의 말로는, 덤블도어가 그날 아침 식사 시간에 전교생에게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아무도 미로 속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해리는 복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슬슬 피하면서 외면하는 것을 느꼈다. 어떤 학생들은 해리가 지나갈 때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수군거렸다. 해리는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난번에 리타 스키터가 썼던 기사 내용을 그대로 믿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기사에는 해리가 정신적으로 몹시 불안정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학생들은 케드릭의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각본을 짜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있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좋았다. 혹은 체스를 두면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좋았다. 마치 그들 세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말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는 경지까지 도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호그와트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나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확실히 알기 전에 공연히 다가올 일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지나간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입에 올린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위즐리 부인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덤블도어를 만났다고, 론이 해리에게 말했던 것이다. "엄마는 교장 선생님께 이번 여름 방학에는 네가 곧바로 우리집으로 오면 안 되는지 물었어.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네가 더즐리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어. 최소한 처음 며칠만이라도 말이야." 론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왜?" 해리가 물었다. "엄마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 론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믿어야만 하겠지? 그렇지?" 론과 헤르미온느를 제외하고 해리가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해그리드였다. 더 이상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이 없었으므로 그 수업 시간은 자유였다. 그들은 목요일 오후의 빈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방문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날이었다. 오두막집 가까이 다가가자, 팽이 펄쩍 뛰어나오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팽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면서 왕왕 짖어대었다. "누구세요?" 해그리드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문을 나왔다. "해리!" 해그리드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한 팔로 해리를 끌어안으면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았다. "만나서 반갑구나, 친구! 정말 반가워!"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간 해리와 친구들은 벽난로 앞에 있던 나무 탁자 위에 거의 양동이만큼이나 커다란 컵 두 개와 받침 접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올림프와 커피를 한 잔 했단다. 올림프는 조금 전에 돌아갔어." 해그리드가 서랍장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죠?" 론이 물었다. "물론 맥심 부인이지!" 해그리드가 겸연쩍어하며 대답했다. "두 분은 화해하셨군요! 그렇죠?" 론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도통 모르겠구나." 해그리드는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서랍장에서 몇 개의 컵을 더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차와 살짝 구운 부드러운 쿠키 한 접시를 차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해그리드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딱정벌레 같은 검은 눈으로 해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너 괜찮니?" 해그리드가 불쑥 물었다. "괜찮아요." 해리가 대답했다. "아니야. 넌 괜찮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곧 좋아질 거란다." 하지만 해리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돌아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그리드가 불쑥 말을 던졌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해그리드를 쳐다보았다. "그래...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해리, 그는 조용히 은신처에 숨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언젠가 그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이제 일어난 거야. 우리는 그가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쨌든 그게 덤블도어 교수님의 계획이란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참 위대한 분이야. 그런 분이 우리 곁에 있는 한,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 해그리드는 세 사람의 얼굴에 회의적인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자, 송충이 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걱정이나 하면서 앉아 있는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 일이 닥치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면 되는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은... 해리, 네가 어떻게 했는지 말씀해 주셨어." 해그리드는 다정한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쭉 폈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 행동한 거야... 너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큰 칭찬은 없다고 생각해." 비로소 해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요즘 들어서 해리가 웃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뭘 부탁하셨어요, 해그리드? 맥고나걸 교수님을 보내서 아저씨와 맥심 부인을 불렀잖아요... 그날 밤에 말이에요." 해리가 물었다. "여름 방학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주셨단다. 하지만 그건 비밀이야. 나는 그 이야기를 절대로 말할 수 없어. 너희한테도 안 돼. 올림프... 그러니까 맥심 부인이 나와 함께 가게 될 것 같거든..." 해그리드가 대답했다. "볼드모트와 관련이 있는 일인가요?" 해리가 그 이름을 말하자, 해그리드는 몸을 움찔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해그리드는 모호하게 대답하면서 말꼬리를 돌렸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마지막 남은 스크루트를 보러 가지 않을래? 아니다, 농담이다. 농담이었다니까!" 해그리드는 세 사람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보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변명했다. 프리벳 가로 돌아가기 전날에 기숙사에서 트렁크를 싸는 해리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해리는 어쩐지 종강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두렵기만 했다. 물론 평소라면 호그와트 기숙사들 사이의 대항전에서 승자를 발표하는 아주 즐거운 자리였을 것이다. 해리는 병동에서 퇴원한 이후부터 줄곧 연회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기피하고 있었다. 식사를 할 때에도 다른 친구들의 호기심이 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연회장이 텅 비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가곤 했다. 연회장으로 들어간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즉시 종강 연회 때마다 연회장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던 실내 장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년 같으면 우승을 차지한 기숙사를 상징하는 색깔로 연회장이 온통 치장되어 있었겠지만, 오늘 밤에는 교직원들의 상석 뒤에 검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그것이 케드릭에 대한 조의의 표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교직원 테이블에는 진짜 매드아이 무디가 앉아 있었다. 무디의 나무 다리와 마법의 눈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무디는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펄쩍 뛰곤 했다. 해리는 그런 무디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적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무디의 두려움은, 트렁크 속에서 열 달 동안이나 감금되는 지독한 경험을 겪은 이후로 당연히 더욱 커졌을 것이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과 함께 자리에 앉은 해리는 어쩐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카르카로프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볼드모트에게 붙잡히지는 않았을까? 맥심 부인은 종강 연회에 참석했다. 맥심 부인은 해그리드의 옆자리에 앉아서 뭔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블 저편에는 맥고나걸 교수 옆자리에 스네이프가 앉아 있었다. 해리가 고개를 들고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네이프의 시선도 한참 동안 해리에게 머물렀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심술맞고 불쾌하게 보일 뿐이었다. 스네이프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해리는 스네이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볼드모트가 돌아온 그날 밤에 덤블도어의 명령에 따라 스네이프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왜... 왜... 덤블도어는 스네이프가 정말로 우리편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는 것일까? 스네이프는 첩자였다. 해리가 우연히 보았던 펜시브 속에서, 덤블도어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엄청난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볼드모트의 밑으로 들어가서 첩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스네이프는 다시 그 일을 맡게 된 것일까? 혹시 죽음을 먹는 자들과 다시 접촉을 한 것은 아닐까? 마치 진짜로 덤블도어의 편에 섰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척하면서? 마치 볼드모트처럼, 스네이프도 적당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척하면서? 마침내 교직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리의 생각은 뚝 중단되었다. 지금까지도 다른 종강 연회가 열렸을 때에 비해 훨씬 조용했던 연회장은 그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또다시 한 학년이 끝났습니다." 덤블도어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한 채, 후플푸프 기숙사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후플푸프 기숙사 테이블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후플푸프 학생들은 연회장에 참석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슬프고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습니다." 덤블도어가 다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일 먼저 아주 훌륭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지금 저기 저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후플푸프 테이블을 가리켰다. "우리와 함께 이 연회를 즐기면서 말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케드릭 디고리를 위해 잔을 높이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덤블도어의 지시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숙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소리쳤다. "케드릭 디고리를 위하여!" 해리는 연회자에 모여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초 챙의 모습을 발견했다. 초 챙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리는 그만 테이블 위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잠시 후에 학생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케드릭은 언제나 모범적으로 행동했으며, 후플푸프 기숙사를 빛낸 자랑스러운 학생이었습니다." 덤블도어는 연회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케드릭은 착하고 신의 있는 친구였으며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케드릭은 정정당당한 시합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케드릭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나, 모르고 있었던 사람 모두에게 그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 모두가 케드릭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리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덤블도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덤블도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드릭 디고리는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순간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통 공포와 의혹에 가득 찬 눈길로 덤블도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연회장이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법부는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 중에서도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한 어떤 분들은 내가 여러분처럼 아직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라도 거짓보다는 진실이 더 낫다고 믿습니다. 또한 케드릭 디고리 군이 우연한 사고나 혹은 어떤 실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습니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덤블도어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온몸이 마비라도 된 것 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지만 해리는 슬리데린 기숙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리는 역겨움과 뜨거운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다시 덤블도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케드릭의 죽음과 더불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덤블도어가 계속했다. "그 사람은 물론 해리 포터입니다." 연회장이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해리 포터는 볼드모트로부터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더구나 그는 케드릭의 시신을 다시 호그와트로 가지고 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해리 포터가 보여준 용기는 그간 볼드모트와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극소수의 마법사들이 보여준 용기를 방불케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해리 포터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덤블도어는 엄숙한 태도로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덤블도어를 따라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케드릭의 이름을 외친 것처럼 해리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은 다시 해리를 위해 건배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해리는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 그리고 슬리데린의 많은 학생들이 끝까지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잔에는 손도 대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마법의 눈을 갖고 있지 않았던 덤블도어는 해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자, 덤블도어는 연설을 계속했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목적은 마법사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볼드모트의 부활로 인하여 이러한 결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덤블도어는 맥심 부인과 해그리드를 슬쩍 바라보더니 플뢰르 델라쿠르와 보바통의 다른 학생들 그리고 슬리데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빅터 크룸과 덤스트랭의 다른 학생들까지 한 번 쭉 둘러보았다. 해리는 거의 겁에 질린 듯이 팽팽하게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덤블도어가 당장이라도 뭔가 심한 말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연회장에 앉아 있는 모든 손님들께서..." 덤블도어의 시선이 잠시 덤스트랭 학생들에게 머물렀다. "호그와트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면 언제라도 우리는 기꺼이 환영할 것입니다. 볼드모트가 돌아온 이 마당에 우리는 오직 하나로 단결할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고 흩어지면 흩어질 수록 더욱 약해질 것입니다. 볼드모트는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적의를 퍼뜨리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보다 강한 우정과 신뢰를 보일 때에만 그와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똑같고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언어와 관습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 모두 힘들고 어두운 시기를 맞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디 이런 나의 생각이 한낱 망령된 착각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중에서 몇 사람은 이미 볼드모트의 손에 의해 직접 고통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몹시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한 학생이 우리의 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덤블도어는 엄숙한 목소리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케드릭을 기억하십시오. 부디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올바른 길과 쉬운 길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닥친다면, 선량하고 친절하고 용감한 한 소년이 단지 볼드모트의 앞길에 우연히 잘못 들어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십시오. 케드릭 디고리를 기억하십시오." 해리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헤드위그가 들어간 새장은 트렁크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현관에서 다른 4학년생들과 함께 어서 마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호그스미드 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청명한 여름날이었다. 오늘 저녁쯤엔 프리벳 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지금 프리벳 가는 무척 덥고 녹음도 울창하겠지.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해리의 기분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애리!" 갑자기 해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힐끗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성으로 들어오는 돌계단을 따라 성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의 등 뒤로 운동장 저편에서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을 도와 두 마리의 거대한 말에 마구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능 아마 공 다시 만나겡 될 거양. 나능 영어 실력을 늘이기 위행 여기에서 일자리릉 구할 거양." 플뢰르 델라쿠르는 해리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벌써 아주 훌륭한데 뭘 그래." 론이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론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자, 헤르미온느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안녕, 애리. 너희드를 만나서 증말 즐거웠엉!" 플뢰르 델라쿠르가 천천히 돌아서면서 말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눈부신 은빛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면서 맥심 부인을 향해 잔디밭을 달려가는 모습을 보자, 울적했던 해리의 기분도 약간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덤스트랭 학생들은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카르카로프도 없이 배를 조정할 수 있을까?" 론이 물었다. "카르카로프는 조청하지 않았타." 갑자기 그들의 등 뒤에서 굵고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카로프는 선실에 있었타. 배를 조청하는 일은 우리가 다 했타."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칸 이야기 좀 할 수 있을카?"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음... 그래... 좋아." 헤르미온느는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빅터 크룸을 따라 학생들 틈을 헤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둘러야 할 거야! 몇 분 후에 마차가 도착할 테니까 말이야." 론이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마차가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모두 해리에게 맡기고, 몇 분 동안 론은 목을 있는 대로 길게 빼면서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빅터 크룸과 헤르미온느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방 현관으로 들어왔다. 론은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디고리를 좋아했타." 빅터 크룸이 불쑥 해리에게 말했다. "디고리는 항상 나에게 친절했타. 언제나. 내가 카르카로프와 함께 온 덤스트랭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빅터 크룸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아직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니?" 해리가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빅터 크룸은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플뢰르 델라쿠르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빅터 크룸은 해리와 악수를 나눈 후에 다시 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론도 빅터 크룸과 악수를 나누었다. 론은 마음속에서 뭔가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빅터 크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론은 몹시 다급했던지 그의 입에서 엉겁결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인 좀 해줄래?"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저만치에서 말이 끌지 않고 저절로 움직이는 마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론이 내민 양피지 조각에 기꺼이 사인을 해 주었다. 킹스 크로스역으로 돌아가는 길의 날씨는 지난 9월에 호그와트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와 영 딴판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간신히 객실 한 칸을 잡을 수 있었다. 피그위존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었기 때문에 론은 다시 예복으로 덮어씌워 버렸다. 헤드위그는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고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크룩생크는 털이 북실북실한 커다란 붉은색 방석처럼 몸을 둥그렇게 만 채 좌석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리는 종강 연회에서 덤블도어가 했던 연설 덕분에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어느 정도 뚫린 기분이었다. 이제 지나간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덤블도어가 볼드모트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한창 떠들던 세 사람은 음식을 파는 마녀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자 잠시 동안 이야기를 중단했다. 헤르미온느는 벌떡 일어나더니 수레를 끌고 있는 마녀를 향해 다가가서 <예언자 일보>를 구입했다. 헤르미온느는 가방 안에 거스름 돈을 다시 집어넣고 <예언자 일보>를 펼쳐 들었다. 해리는 <예언자 일보>에 실린 기사를 읽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난처한 표정으로 신문을 바라보았다. 해리의 표정을 재빨리 읽은 헤르미온느가 태연히 말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어.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 해리.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기사도 실리지 않았는걸. 나는 날마다 신문을 자세히 읽어 보았어. 세 번째 시험이 열렸던 다음날 아주 짧은 기사 몇 줄이 실렸을 뿐이야.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이겼다는 내용이었어. 케드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어. 다른 이야기도 전혀 없었고... 아마도 퍼지가 언론에게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명령했나 봐." "하지만 리타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어. 더구나 이런 기사 거리를 말이야." 해리가 말했다. "오, 리타 스키터는 세 번째 시합 이후로 그 어떤 기사도 쓰지 않았어." 헤르미온느가 이상하게도 무척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참 동안 리타 스키터는 아무런 기사도 쓰지 못할 거야. 내가 자기 비밀을 누설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이제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론이 물었다. "나는 교정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리타 스키터가 도대체 무슨 수로 사람들의 개인적인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지 알아냈어." 헤르미온느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털어놓았다. 사실 해리는 지난 며칠 동안 헤르미온느가 뭔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간신히 참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냈니?" 해리와 론이 거의 동시에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사실 내게 실마리를 주었던 사람은 바로 너였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활짝 웃었다. "내가? 어떻게?" 무슨 영문인지 몰랐던 해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청 장치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아주 신이 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장치들은... 호그와트에서 쓸 수 없다고 분명히 네 입으로..." "물론 전자 도청 장치는 아니었지."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그러니까 리타 스키터는..."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승리감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마법부에 등록되지 않은 애니마구스였어. 그러니까 리타 스키터는...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헤르미온느는 가방을 열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 유리병은 마개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바로 딱정벌레로 말이지." "웃기지 마. 그럴 수가... 그럴 리가 없어..." 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정말이야." 헤르미온느는 두 사람의 코앞에 유리병을 들이대더니 야단스럽게 흔들었다. 해리와 론은 물끄러미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유리병 속에는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 몇 장이 들어 있었는데, 커다랗고 통통한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지금 농담하는 거지?" 론은 얼른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론이 투명한 유리병을 눈 높이까지 들어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절대로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병동에서 이 여자를 잡았어. 이 딱정벌레는 병동의 창틀 위를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지. 자세히 살펴봐. 딱정벌레 더듬이 주위에 그 여자가 쓰고 있던 안경과 똑같은 모양의 무늬를 볼 수 있을 거야." 과연 그 딱정벌레의 더듬이 주위에는 안경 무늬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문득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에게 자신의 엄마에 대해 고백하던 그날 밤에도 딱정벌레가 석상 위를 기어가고 있었어!" 크리스마스 무도회가 열리던 날 밤에 순록 석상 등을 기어가던 딱정벌레! 바로 그 딱정벌레가 리타 스키터였단 말인가? "바로 그거야. 빅터 크룸과 내가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도 그 딱정벌레가 있었어. 빅터 크룸이 내 머리에 붙어 있던 딱정벌레를 떼어 주었지. 네 흉터에 통증을 느끼던 그 점술 수업 시간에도 리타는 분명히 창틀 위에 앉아 있었을 거야. 결국 리타 스키터는 지난 1년 내내 기사거리를 찾아서 붕붕거리고 날아다닌 셈이지."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세 번째 시험을 앞두고 말포이가 나무 그늘 밑에서 혼자 열심히 지껄였을 때에도..." 비로소 론이 이해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변신한 리타 스키터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물론 말포이는 이 딱정벌레가 리타 스키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이런 방법으로 리타 스키터는 슬리데린 학생들과 멋진 인터뷰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거야. 그 애들은 우리와 해그리드에 대해서 끔찍한 기사 거리만 제공할 수 있으면, 그 여자가 어떤 불법적인 짓을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어." 헤르미온느는 론의 손에서 다시 유리병을 받아 들더니 딱정벌레를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딱정벌레는 화가 난 듯이 붕붕거리면서 유리병에 달라붙었다. "리타 스키터에게 말했어. 런던으로 돌아가면 놓아 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이 유리병에 깨뜨릴 수 없는 마법을 걸어 놓았기 때문에 리타 스키터는 다시는 변신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리타 스키터에게 앞으로 1년 동안 그 속기 깃펜은 그냥 간직하고만 있으라고 말했어. 과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지독한 거짓말을 쓰는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지켜보겠다고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딱정벌레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갑자기 객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주 똑똑하군, 그레인저." 드레이코 말포이가 떡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레이브와 고일도 그 뒤에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거만하고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말포이는 천천히 객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결국 너는 가련한 한 기자를 붙잡았고, 포터는 다시 덤블도어가 가장 총애하는 소년이 되었군... 정말 잘했어. 아주 훌륭한 거래야." 말포이는 더욱 능글맞게 웃었다. 크레이브와 고일도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하는 게 좋겠지?" 말포이가 세 사람을 둘러보면서 느물느물하게 말했다. "꺼져!" 해리가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케드릭에 대해 연설을 하는 동안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이후로 말포이와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해리는 귓속이 웅웅거리면서 마구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요술지팡이를 움켜잡았다. "포터, 너는 잘못된 편에 선 거야! 나는 경고했어! 나는 분명히 너에게 친구를 좀더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말했어! 기억하고 있니? 우리가 처음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났을 때? 그때 나는 이 따위 인간 쓰레기들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했어." 말포이가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갯짓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어. 포터! 어둠의 주인이 부활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쟤들이 제일 먼저 갈 거야! 머글 혼혈들과 머글 애호가들이 첫번째 희생물이지! 아니, 두번째라고 해야겠군. 디고리가 첫번째였으..."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객실 안에서 폭죽을 한 상자 터뜨린 것처럼 사방에서 눈부신 마법의 불꽃이 번쩍였다. 해리는 눈부신 불꽃 때문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연달아 들리는 굉음 때문에 귀가 아주 먹먹했다. 해리는 눈을 깜박이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말포이, 크레이브, 고일, 세 사람은 모두 의식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털썩 쓰러져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세 사람의 발치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 모두 제각기 다른 주문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주문을 쏜 사람은 비단 그들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세 녀석이 무슨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지." 프레드가 고일을 타 넘고 객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태평스럽게 말했다. 프레드는 손에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조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지는 일부러 말포이를 발로 짓밟으면서 프레드의 뒤를 따라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재밌군. 그런데 누가 퍼넌쿨러스 마법을 썼지?" 조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크레이브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나야." 해리가 말했다. "참 이상하군. 나는 엿가락 다리 마법을 썼는데... 마치 이 두 가지 마법은 서로 섞어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군. 이 녀석은 얼굴에 온통 작은 촉수가 돋아났잖아. 음... 이대로 세 녀석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지. 이 녀석들이 있으면, 미관상 보기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조지가 명랑하게 말했다. 론과 해리, 조지는, 의식을 잃고 열차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세 사람 모두 온갖 종류가 뒤섞인 주문을 동시에 맞는 바람에 더욱 심각한 상태가 된 것 같았다)을 발로 굴리면서 객실 밖으로 밀어 버렸다. 조지는 재빨리 객실의 문을 쾅 닫았다. "폭발카드 놀이 할 사람?" 프레드가 카드 한 벌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들은 빙 둘러앉아서 카드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섯 번째 게임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해리는 힐끗 고개를 돌려서 조지와 프레드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두 사람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게 어때, 형?" 해리가 조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뭘?" 조지가 카드를 뒤적거리면서 반문했다. "형들은 누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고 있었던 거야?" "아, 그거 말이야?" 어쩐지 조지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 거 아니야. 게다가 전혀 중요한 일도 아니었어.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야." 프레드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제는 그만 포기했어." 조지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하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무슨 일인지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좋아, 좋아. 만약 너희들이 정말로 알고 싶다면... 그건 바로 루도 베그만이었어." 마침내 프레드가 입을 열었다. "베그만? 그렇다면... 베그만이 이 일에 관련이..." 해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그런 일이 아니야. 그 사람은 정말 멍청해. 그럴 만한 머리도 없어." 조지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데?" 론이 재빨리 물었다. "우리가 퀴디치 월드컵에서 그 사람과 내기를 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아일랜드가 승리를 거두지만, 크룸이 스니치를 잡을 거라고 했던 것 말이야." 프레드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응, 알고 있어." 해리와 론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이 우리에게 아일랜드팀의 마스코트인 레프러칸 요정이 뿌렸던 금화를 우리에게 주었어." "정말?" "정말이라니까! 당연히 그 돈은 곧 사라지고 말았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구! 다음날 아침이 되니까..." 프레드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말하자, 조지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베그만에게 편지를 써서 뭔가 실수가 있었다고 알려 주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베그만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어. 우리가 보낸 편지를 그냥 묵살해 버린 거야. 우리는 호그와트에서 계속 그 문제에 대해 베그만과 의논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베그만은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우리를 피했지." "결국에는 아주 험악하게 나오더군. 도박을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거야." 프레드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걸었던 돈만이라도 돌려 달라고 부탁했어." 조지가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설마 그것조차도 거절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그래! 거절했어!" 프레드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형들이 애써 모았던 돈 전부잖아!" 론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내가 다 설명할게. 물론 우리는 결국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냈어. 리 조던의 아버지도 베그만에게 돈을 한 푼도 받아내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었지. 사실 베그만은 도깨비 때문에 커다란 곤경에 처해 있었던 거야. 도깨비들에게 금화를 엄청 빌렸거든. 퀴디치 월드컵이 끝난 후에 도깨비 갱단이 베그만을 붙잡았어. 도깨비들은 베그만을 숲속으로 끌고 가서 가지고 있던 금화를 몽땅 빼앗았어. 하지만 그걸로도 베그만이 진 빚을 죄다 갚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베그만을 감시하기 위해 호그와트까지 쫓아왔던 거야. 베그만은 도박으로 전재산을 다 날린 채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지. 단돈 2갈레온이 없었다니까... 그런데 그 멍청이가 어떻게 해서 빚을 갚았는지 알아?" 조지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갚았는데?" 해리가 물었다. "베그만은 너에게 내기를 걸었어.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이긴다는 쪽에 엄청난 돈을 걸었지. 물론 도깨비들을 상대로 말이야."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계속 내가 이기도록 도와주려고 했던 거구나! 어쨌거나 내가 이겼잖아? 그렇다면 베그만은 형들에게 금화를 돌려줄 수 있었겠네?" "전혀." 조지는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도깨비들은 베그만만큼이나 치사했어. 도깨비들은 네가 디고리와 비겼다고 말했어. 베그만은 네가 단독으로 우승할 거라는 쪽에 내기를 걸었던 거야. 결국 베그만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지. 세 번째 시합이 끝나자마자, 베그만은 당장 도망을 치고 말았어." 조지는 땅이 푹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아주 즐겁게 흘러갔다. 해리는 이대로 여름 방학이 다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킹스 크로스 역에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해리가 지난 1년 동안 힘들게 배운 것처럼,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도착한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열차 통로는 요란한 소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짐을 내릴 때마다 항상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아직도 통로에 쓰러져 있는 말포이와 고일, 크레이브를 피하면서 짐을 운반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프레드 형, 조지 형... 잠깐만 기다려." 쌍둥이들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해리는 트렁크를 열더니 트리위저드 상금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이걸 받아." 해리는 조지의 손에 돈 주머니를 쥐어 주었다. "뭐라구?" 프레드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물었다. "이걸 받으라구. 나는 이 돈을 갖고 싶지 않아." 해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조지는 한사코 해리에게 돈 주머니를 되돌려 주었다. "아니, 난 멀쩡해. 그러니까 이걸 받아. 이 돈을 발명하는 데 써. 이건 장난감 가게를 위한 돈이야." 해리는 다시 돈 주머니를 내밀었다. "쟤가 미쳤나 봐." 프레드가 거의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 형들이 이 돈을 받지 않으면, 나는 이걸 시궁창에 던져 버릴 거야. 나는 이 돈을 받고 싶지 않아. 필요도 없어. 하지만 나는 한바탕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활짝 웃을 수만 있으면... 나는 머지않아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훨씬 더 웃음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해리, 여기에는 1000갈레온이 들었단 말이야." 조지는 손으로 돈 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 그 돈이라면 얼마나 많은 카나리아 크림을 만들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봐, 형." 해리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쌍둥이들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만 아주머니에게 이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주머니도 더 이상 형들이 마법부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리..." 프레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부탁이야, 형! 이걸 받아. 그렇지 않으면 주문을 쏘겠어. 이제 나는 제법 쓸 만한 주문들을 많이 알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이 돈으로 론에게 다른 예복 정장을 한 벌 사 주고... 형들이 선물했다고 말해줘." 해리는 아주 단호했다. 그는 쌍둥이 형제가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을 성큼 타 넘더니 객실에서 나가 버렸다. 아직도 열차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저주를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킹스 크로스 역 개찰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논 이모부의 모습이 보였다. 위즐리 부인은 버논 이모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해리를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재빨리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름 방학이 좀 지나고 나면,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이 너를 우리집으로 보내 줄 것 같구나. 해리, 계속 연락하자꾸나." "해리, 잘 가." 론이 해리의 등을 탁 치면서 인사했다. "안녕, 해리!" 헤르미온느는 작별 인사를 하더니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뺨에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해리, 고마워" 조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프레드는 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열심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해리는 그들을 향해 눈을 한 번 찡긋한 후에 버논 이모부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의 뒤를 따라 조용히 킹스 크로스 역에서 빠져나갔다. 더 이상 걱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더즐리네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타면서 해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해그리드의 말대로 어차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리고 그 일이 닥치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거야. <해리포터와 불의 잔> 끝 제5권에서 계속됩니다. 옮긴이의 말 현대의 성배 최인자(문학평론가) 불의 잔! 마침내 불의 잔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불의 잔을 가만히 응시한다. 불의 잔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신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마법의 세계가 막을 올리는 것이다. 조앤 롤링은 '불의 잔'을 통해 온갖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신비와 감동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그야말로 '현대의 성배'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빛과 어둠이 골고루 스며들어 있다. 가뭄이 심할수록 한 모금의 물이 더욱 소중한 것처럼, 해리 포터는 복잡하게 얽힌 운명의 미로를 헤쳐 나가면서 용기와 지혜의 물줄기로 애타는 듯한 갈증을 시원하게 적신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조차도 무심코 지나갈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후반부로 갈 수록 그 의미가 증폭되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한 의미망을 형성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른바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인해 문학성에 대한 시비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해리 포터를 진정한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 조앤 롤링은 영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출판문학상 중에 하나인 위트브레드 상을 놓고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셔머스 히니와 경합을 벌인 끝에 안타깝게도 간발의 차로 수상을 놓쳤지만, 아마도 제 4권이 미리 출간되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톰 소여의 모험>이나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영원한 명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반증이다. 조앤 롤링은 마크 트웨인이나 키플링처럼 전형의 창조와 묘사, 치밀하고 황홀한 구성을 바탕으로 작품의 환상적인 구조를 지탱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조앤 롤링의 손끝에서 현대 문학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학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출간되었던 작품들이 스토리 중심의 얼개를 가지고 있었다면, 제 4권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성격을 불어넣으면서 그 형식과 내용을 더욱 확장시킨다. "전편들에 비해 분량이 거의 두 배나 되고 가장 쓰기 힘들었던 작품"이라는 조앤 롤링의 고백대로, 이 책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한 저자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만만찮은 분량으로 인해 모두 네 권으로 출간된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처음에 우리는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일반 소설을 압도하는 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순식간에 호그와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상반된 갈등으로 인해 몹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어서 빨리 속독을 하고 싶은 욕망과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 천천히 정독하고 싶은 욕망이 서로 엇갈릴 것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고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조앤 롤링은 이미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사건들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해리 포터 제 5권은 도대체 언제 나올 것인가?)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외적인 흥미에 치중하던 조앤 롤링의 작품 세계가 내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이 너무나 섬세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해리 포터 매니아라면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개성과 거미줄처럼 깔린 복선을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그 재미와 깊이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얽힌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려 나가는 가슴 떨리는 재미와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모두 7권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 시리즈의 반환점을 이루고 있는 '불의 잔'은 전체 작품의 방향과 형태를 잡아 주는 매우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불의 잔'은 빛과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담아 내고 있다. 확고한 규범과 질서를 가지고 있는 '밝은' 호그와트와, 위험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어두운' 리들 하우스가 한꺼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개학이 되어서 다시 호그와트로 돌아간 해리는 덤블도어로부터 올해에는 퀴디치 게임이 열리지 않는 대신에 트리위저드 시합을 개최하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세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는 트리위저드 시합은 챔피언들의 용기와 미덕 그리고 지혜를 시험하는 무대이다. 해리는 헝가리의 혼테일과 싸우면서 용기를 익히고 인어들에게 사로잡힌 인질을 구출하면서 미덕을 쌓는다.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지키는 스핑크스와 지혜의 대결을 벌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마지막 4권으로 오면서,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모든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좀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책읽기를 당부하고 싶다. 이 소설의 전반부가 늘어진다거나 전편에 비해 흥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것은 흙 속에 파묻힌 보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출간 즉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유명한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던 해리 포터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해리 포터가 우리의 내면 속에 깃들어 있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작품을 쓰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작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천박한 영웅들(혹은 작가자신)은 모든 난관을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가면서 정상에 다다른다. 결국 그런 영웅들은 우리가 도저히 접근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해리 포터는 위대한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해리 포터는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다. 결국 그 '불완전함'이 해리 포터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동양의 고유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지, 덕, 체를 한몸에 아우르는 진정한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하지만 그 영웅은 결코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해리 포터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서사적 가치는 이러한 경로를 거치면서 초개인적이고 초시간적인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해리 포터는 신의 신탁을 받아서 최정상에 우뚝 선 '강요된'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웅의 길로 접어든다. 물론 그 길에는 가슴 벅찬 감동과 용기, 그리고 희망이 깔려 있다. 해리 포터의 책장을 여는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사이에 우리 모두는 또 다른 해리 포터가 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지배하는 디지털이나 영상 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문자의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것 자체가 놀라운 마법의 힘이 아닐까! 자, 우리 모두 위태로운 갈림길에 서 있는 해리 포터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