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해리포터와 불의 잔4-2 지은이: 조엔. K. 롤링 펴낸곳: (주)문학수첩 차례 제13장 매드아이 무디 교수 제14장 용서받지 못할 저주 제15장 보바통과 덤스트랭 제16장 불의 잔 제17장 네 명의 챔피언 제18장 '포터는 야비하다!' 제19장 헝가리의 혼 테일 제20장 첫번째 시험 제21장 꼬마 집요정 해방전선 피터 롤링과 수잔 글레이든에게. 그리고 리들리 씨를 기리며... 해리가 벽장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 * 2000년 영국 도서상 올해의 작가 부문 수상 Named Author of Year at the British Book Awards(Nibbie's) 2000 * 퍼블리셔스 위클리 1998년의 최우수 도서 A Publishers Weekly Best Book of 1998 * 북리스트 편집자가 뽑은 우수 도서 Booklist Editor's Choice * 1997년 영국의 우수 도서상 수상 Winner of the 1997 National Book Award(UK) * ALA(미국 도서관 협회) 우수 도서 An ALA Notable Book * 1997년 금메달 스마티즈상 수상 Winner of the 1997 Gold Medal Smarties Prise * 1998년 뉴욕 공공 도서관이 뽑은 올해의 우수 도서 A New York Public Library Best Book of the Year 1998 * 1998년 학부모가 뽑은 올해의 책 우상 Parenting Book of the Year Award 1998 제13장 매드아이 무디 교수 다음날 아침이 밝아 오면서 비바람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회장의 천장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한 자리에 모여서 새로운 시간표를 확인했다. 음산한 잿빛 구름이 연회장의 천장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는 프레드와 조지와 리 조던은 빨리 나이를 먹을 수 있는 마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별로 나쁘지 않아... 오전 내내 야외 수업이야. 약초학 수업은 후플푸프와 함께 듣고... 신비한 동물 돌보기는... 제기랄! 여전히 슬리데린과 함께 들어..." 론은 손가락으로 월요일 수업 시간표를 하나씩 짚으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오늘 오후에는 점술 수업이 있어." 해리가 희미한 신음 소리를 냈다. 점술은 마법의 약과 더불어 해리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자꾸만 해리의 죽음을 예언하면서 아주 성가시게 하기 때문이었다. "너도 나처럼 그 과목을 포기해야 했어. 안 그래?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산술점같이 이치에 맞는 과목을 들을 수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토스트에 버터를 잔뜩 바르면서 말했다. "너,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구나!." "꼬마 집요정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헤르미온느가 빵을 덥석 베어 물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배도 고팠겠지." 론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갑자기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기라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부엉이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 부엉이들은 제각기 우편물을 들고 있었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갈색과 회색 부엉이들만 날아다니고 있을 뿐 아니라 하얀 부엉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엉이들은 편지나 소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연회장을 빙빙 돌았다. 커다란 황갈색 부엉이는 네빌 롱바텀의 무릎 위에 소포 꾸러미를(네빌은 짐을 꾸릴 때마다 항상 뭔가를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털썩 내려놓았다. 드레이코 말포이의 수리 부엉이도 사탕과 케이크가 들어있는 꾸러미를 갖고 온 것 같았다. 수리 부엉이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서 깃털을 다듬고 있었다. 해리는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하지만 애써 실망한 표정을 감추면서 다시 죽을 먹었다. 아직까지도 시리우스가 편지를 받지 못한 걸까? 혹시 헤드위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게 아닐까? 흠뻑 젖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해리는 잠시도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3온실에 도착했을 때, 해리는 어떤 이상한 식물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프라우트 교수가 학생들에게 괴상한 식물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해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괴상하게 생긴 식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식물이 아니라 굵고 거무죽죽한 민달팽이처럼 보였다. 그 식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렸으며, 줄기에는 온통 액체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종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부보투버란다. 가끔씩 저 종기를 짜서 고름을 빼 주어야만 한단다. 너희들은 그 고름을 모아서..." 스프라우트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시무스 피니간이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름 말이다, 피니간... 고름!" 스프라우트 교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굉장히 귀중한 거니까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용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병에 고름을 담도록 해라. 희석시키지 않은 부보투버 고름이 몸에 닿으면 살갗이 부풀어오를 수도 있으니까..." 부보투버의 종기를 짜는 것은 비록 구역질이 나긴 했지만,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펑! 부보투버의 종기를 터뜨릴 때마다 휘발유 냄새가 나는 많은 양의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아주 걸쭉하고 연한 초록색의 고름이었다. 그들은 스프라우트 교수의 지시에 따라 초록색 고름을 병에 담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 되자 몇 리터의 고름이 모아졌다. "폼프리 부인이 무척 좋아하겠구나. 부보투버의 고름은 여드름 같은 고질적인 피부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이란다. 이 액체만 있으면 학생들이 더 이상 여드름을 없애기 위해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없지." 스프라우트 교수는 코르크 마개로 병 입구를 막았다. "가엾은 엘로이즈 미전처럼 말이죠! 걔는 마법을 써서 여드름을 없애려고 했어요." 후플푸프 기숙사의 한나 아보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면서 말했다.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지. 하지만 폼프리 부인이 결국 그 아이의 코를 원래대로 고쳐놓았단다." 스프라우트 교수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뿔뿔이 흩어졌다. 운동장은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후플푸프 학생들은 변신술 수업을 받기 위해 돌계단을 올라갔고,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받기 위해 해그리드의 작은 통나무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은 금지된 숲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한 손으로 멧돼지 사냥개 팽의 목줄을 잡고 서 있었다. 해그리드의 발치에는 나무 상자 몇 개가 놓여있었는데, 팽은 자꾸만 그 상자 쪽으로 가려고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낑낑거렸다. 팽도 나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 같았다. 그들은 해그리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갑자기 나무 상자가 덜거덕거리더니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해그리드가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구나. 그 애들도 이걸 놓치고 싶진 않을 테니까... 폭탄 꼬리 스크루트!" "뭐라구요? 다시 한 번만요." 론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해그리드는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이크!" 라벤더 브라운이 질겁을 하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해리는 `이크`라는 그 말 한 마디가 폭탄 꼬리 스크루트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꼭 껍데기 없이 형체가 일그러진 가재처럼 보였다. 다리는 아주 이상한 곳에 삐죽삐죽 나와 있으며 머리는 어디에 붙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창백하고 끈적끈적한 살갗은 쳐다보기만 해도 오싹 소름끼칠 정도였다. 나무 상자 속에는 길이가 20센티미터 가량 되는 수백 마리의 스쿠르트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스크루트들은 썩은 생선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펑! 가끔씩 스크루트의 꼬리에서 불똥이 튀어나오더니 몇 센티미터 앞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부화했단다. 너희들이 직접 키울 수 있을 거야! 이번 학기의 연구 과제로 쓰면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 해그리드는 폭탄 꼬리 스크루트를 쳐다보면서 흡족해했다. "왜 우리가 저런 이상한 동물을 키워야 하죠?" 말포이가 불만에 가득 찬 소리로 물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낄낄대면서 노골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문이 막힌 해그리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몹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것들로 뭘 하느냐고요. 저 동물의 특징은 뭔가요?" 말포이가 비꼬는 투로 물었다. 해그리드는 입을 약간 벌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건 다음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말포이. 오늘은 그저 먹이만 주면 돼." 해그리드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지금부터 스크루트에게 몇 가지 먹이를 주도록 해라. 나도 스크루트를 길러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있단다. 우선 개미 알과 개구리 간과 독 없는 뱀을 좀 먹이도록 해라. 어떤 것을 잘 먹는지..." "조금 전에는 고름을 만지게 하더니 이제는..." 시무스는 투덜거리면서 잔뜩 불평을 늘어놓았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찌부러진 개구리 간을 집어들고는 조심스럽게 폭탄 꼬리 스크루트에게 내밀었다. 만약 해그리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해리조차도 이런 일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스크루트들은 입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야! 저게 날 공격했어요!" 10분 가량 흐른 후에 갑자기 딘 토마스가 소리를 질렀다. 해그리드는 불안한 얼굴로 허둥지둥 토마스에게 다가갔다. "저 동물의 꼬리가 폭발했어요!" 딘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딘의 손에는 불에 데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아, 그래! 스크루트의 꼬리가 폭발하면 그럴 수도 있어." 해그리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크!" 라벤더 브라운이 깜짝 놀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크! 해그리드, 저 동물의 몸에 나 있는 뾰족한 게 뭐죠?" "어떤 것들은 침을 가지고 있단다." 해그리드가 열심히 설명했다(라벤더는 얼른 상자에서 손을 떼었다). "아마도 그건 수컷인 것 같구나... 암컷은 배에 빨판 같은 게 달려 있단다... 스크루트들은 그 빨판으로 피를 빨아먹는 것 같아." "어째서 우리가 저런 동물을 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 분명히 알겠군요, 태우고 찌르고 물어뜯는 걸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애완동물을 누가 갖고 싶어하지 않겠어요?' 말포이가 역설적으로 비꼬면서 말했다. "귀엽게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용의 피는 놀랄 만큼이나 신비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용을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해리와 론은 텁수룩한 수염 뒤로 슬쩍 미소짓는 해그리드에게 씩 웃어 보였다. 해그리드라면 애완용 용을 광장히 좋아했을 거라는 걸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1학년이었을 때, 해그리드는 정말로 사나운 노르웨이 리지백 용을 기른 적이 있었다. 해그리드는 그 용에게 노버트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해그리드는 괴물 같은 동물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 치명적인 동물일수록 더욱더... " 다행이야. 그래도 스크루트는 작잖아." 한 시간 후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성으로 올라가면서 론이 말했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시간 문제야. 일단 어떤걸 먹는지 해그리드가 알아내기만 하면, 스크루트는 아마도 2미터까지는 자랄 거야." 헤르미온느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스크루트도 분명히 유용한 점이 있을 거야. 만약 스크루트가 배멀미나 뭐 그런 걸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야. 안 그래?" 론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저 말포이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헤르미온느는 무거운 한숨을 내 쉬었다. "사실 나는 그 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들이 우리 모두를 공격하기 전에 당장 짓밟아 버리는 거야." 그들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서 양고기와 감자를 먹었다. 헤르미온느는 닥치는 대로 음식을 입 속에 쑤셔 넣었다. 해리와 론은 어안이 벙벙해서 헤르미온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그런데 이게 꼬마 집요정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더욱 좋은 방법이니? 실컷 먹고 토하는 게?" 론이 물었다. "아니야. 나는 그저 빨리 도서관으로 가고 싶을 뿐이야." 양배추를 잔뜩 물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입을 불룩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뭐라구? 헤르미온느... 오늘이 바로 개학이야! 아직까지 숙제도 없잖아!" 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르미온느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음식을 마구 집어먹었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 때 보자!"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종소리가 울려서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해리와 론은 서둘러 북쪽 탑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밟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은빛 사다리가 나타났다. 은빛 사다리는 천장에 있는 뚜껑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트릴로니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친근한 향기가 콧구멍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창문에는 여전히 커튼이 쳐져 있었으며, 짙은 붉은색 덮개가 덮인 등불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그스름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기는 숨막힐 듯이 후텁지근했다. 트릴로니 교수의 방에는 스무 개 정도의 작은 원형 탁자들이 있었으며, 주위에는 무명 천을 씌운 의자와 두터운 쿠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해리와 론은 작은 원형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안녕." 갑자기 해리의 등 뒤에서 트릴로니 교수의 몽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깜짝 놀랐다. 얼굴에 비해서 너무 큰 안경을 걸친 비쩍 마른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를 만날 때마다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목걸이와 귀고리와 팔찌가 벽난로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네 마음 속에는 커다란 걱정이 있구나, 얘야." 트릴로니 교수는 음울한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 영적인 눈은 모든 걸 볼 수 있단다. 너의 용감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괴로운 영혼까지도... 그런데 유감스러운 일이로구나. 수많은 시련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니... 아아, 가엾어라... 가장 힘든 고난이... 네가 걱정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두렵구나... 어쩌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빨리..." 트릴로니 교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론은 불안한 눈으로 해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트릴로니 교수는 벽난로로 걸어가더니 안락의자에 앉아서 학생들을 마주 보았다. 트릴로니 교수를 열렬히 숭배하고 있는 라벤더 브라운과 패르바티 패틸은 가장 앞자리에 있는 쿠션에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별들의 운행을 연구하도록 하겠어요." 트릴로니 교수가 말했다. "점성술은 행성의 운행을 보면서 신비한 전조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행성의 운행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미리 판독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점성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해리는 몹시 졸립고 나른했다. 벽난로의 불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해리의 머리를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점성술에 대한 트릴로니 교수의 말은 해리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 전에 트릴로니 교수가 한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걱정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두렵구나...' 그러나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정말로 노련한 사기꾼이었다. 해리는 지금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글쎄... 혹시 시리우스가 체포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만 제외하고는... 트릴로니 교수가 뭘 알 수 있겠는가? 해리는 벌써 오래 전부터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은 그저 운에만 맡기는 어림잡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난 학기 말에 볼드모트가 다시 일어날 거라고 했던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을 제외한다면... 그때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은 그대로 적정했다. 해리가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자, 덤블도어 교수는 트릴로니 교수가 정말로 몽환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해리!" 론이 작게 해리를 불렀다. "왜?" 문득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어느새 해리는 깜빡 졸고 있었던 것이다. "얘야, 난 네가 토성의 불길한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있었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해리를 보려보면서 말했다. 해리가 딴전을 피운 것에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죠? 어떻게 태어났다구요?" 해리는 멀뚱멀뚱 트릴로니 교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토성 말이다, 해리! 토성!"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가 자기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자, 몹시 약이 오른 것이 분명했다. "네가 태어나던 순간에 하늘에서는 토성이 확실히 그 힘이 강해지는 위치에 있었단 말이다... 너의 까만 머리카락과 빈약한 몸과... 어린 시절에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면... 내가 장담하건대, 너는 분명히 한 겨울에 태어났을 거야. 그렇지?" "아니에요. 저는 7월에 태어났어요." 해리가 말하자, 론은 푸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황급히 헛기침을 했다. 30분 후에 그들은 복잡한 원형 차트를 보면서 자신들이 막 태어나던 순간에 행성들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수없이 많은 시간표를 참고하고 각도 계산을 해야 하는 아주 지루한 작업이었다. "난 여기에 해왕성이 두 개 있어. 하지만 이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한참 후에 해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양피지 조각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아아아." 론이 영감에 잔뜩 도취된 트릴로니 교수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대답했다. "하늘에 두 개의 해왕성이 나타났다면, 그건 안경을 낀 꼬마가 태어날 거라는 확실한 징조란다, 해리..." 근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시무스와 딘이 큰 소리로 낄낄거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흥분에 가득 찬 라벤더 브라운의 외침 소리 때문에 트릴로니 교수는 론의 말을 듣지 못했다. "오, 교수님! 이걸 보세요! 제 성도에 이상한 행성이 하나 있어요! 어머나! 이게 뭐죠, 교수님?" "그건 천왕성이란다, 얘야." 트릴로니 교수가 차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나도 천왕성을 한번 볼 수 있을까, 라벤더?" 론이 또다시 트릴로니 교수를 흉내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트릴로니 교수가 론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수업이 끝났을 때, 트릴로니 교수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왕창 내준 건 바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다음 달의 행성 움직임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분석해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오늘 여러분이 그린 차트를 참고로 해서 말이죠." 트릴로니 교수는 평소처럼 점잔을 빼는 우아한 모습이 아니라, 맥고나걸 교수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월요일까지 반드시 제출하도록. 변명은 사양하겠어요!" "늙은 박쥐 같으니라구!" 계단을 내려가는 학생들 틈에 끼어 저녁 식사를 하러 연회장으로 가면서 론이 신랄하게 말했다. "그 숙제를 하려면 일주일 내내 걸릴 거야. 그건..." "숙제가 많니? 벡터 교수님은 숙제를 하나도 안 내 줬어!" 어느 틈에 그들 곁으로 다가온 헤르미온느가 명랑하게 말했다. "그래, 벡터 교수는 정말 멋지다." 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현관 복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줄의 제일 끝으로 가서 섰을 때,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위즐리! 야, 위즐리!"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한꺼번에 고개를 돌렸다.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론이 쌀쌀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신문에 났어, 위즐리!" 말포이가 <예언자 일보>를 흔들며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들릴 정도로 커다랗게 외쳤다. "이 기사 좀 들어 봐!" 실수 연발의 마법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마법부의 재난 리타 스키터 특파원 최근에 퀴디치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서투른 군중 관리로 비난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마녀의 실종에 대해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마법부가, 이번엔 머글 문화유물 오용 관리과의 아놀드 위즐리 씨의 괴상망측한 행동 때문에 어제 또다시 새로운 곤경에 처했다. 말포이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아빠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어, 위즐리. 네 아빠가 얼마나 변변찮은 사람이면 이름조차 엉뚱하게 알고 있는 거야. 안 그래?" 말포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복도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포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포이는 과장된 몸짓으로 신문을 똑바로 들어 올리더니 계속 읽어 나갔다. 2년 전에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소유한 사건으로 고발을 당했던 아놀드 위즐리 씨가 어제는 대단히 공격적인 쓰레기통문제 때문에 머글들의 법률 파수꾼(경찰관) 몇 명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위즐리 씨는 마법부에서 은퇴한 오러 '매드아이' 무디 씨를 도와주기 위해 급히 달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디는 악수와 살인 미수의 차이도 더 이상 분별하지 못하는 노인이다. 당연히 위즐리 씨는 경계가 삼엄한 무디 씨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디 씨가 또다시 착각을 해서 공연히 소동을 치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즐리 씨는 머글 경찰관의 기억을 수정한 후에야 비로소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품위 없고 어쩌면 창피스럽기까지 한 일에 마법부가 휘말리도록 만들었느냐는 <예언자 일보>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사진도 있어, 위즐리!" 말포이가 신문을 위로 들어올리면서 소리쳐다. "집 앞에서 찍은 네 부모 사진이야. 이걸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야! 네 엄마는 살을 좀 빼야 하겠다, 그렇지?" 론은 분을 참지 못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입 닥쳐, 말포이! 진정해, 론..." 해리는 재빨리 론을 말렸다. "맞아! 이번 여름방학에 너는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지냈지? 안 그래, 포터? 어서 말을 해 봐. 쟤 엄마가 정말로 이렇게 뚱뚱하니? 아니면 사진만 이런 거니?" 말포이는 계속 빈정거리면서 론을 자극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씩씩거리면서 말포이에게 당장이라도 대들 듯이 버둥거리는 론의 망토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런 네 엄마는 어때서, 말포이? 그 인상 좀 보라지! 네 엄마는 꼭 코밑에 똥을 달고 다니는 것 같더라? 언제나 그런 거니? 아니면 너랑 같이 있을 때만 그런 거니?" 해리가 통쾌하게 복수했다. 론은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엄마를 모욕하지 마, 포터!" 말포이의 창백한 얼굴이 약간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그 돼지 같은 주둥이나 좀 닥쳐!" 해리는 자시 말포이를 노려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펑! 몇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뭔가 하얗고 뜨거운 것이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잡기 위해 재빨리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미처 요술지팡이가 손에 닿기도 전에 다시 한번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우렁찬 고함 소리가 현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만두지 못해! 이 녀석아!" 해리는 홱 돌아다보았다. 무디 교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디의 요술지팡이는 정확히 말포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흰족제비를 겨냥하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무디 교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무디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해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적어도 무디 교수의 정상적은 눈 하나만은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눈은 뒤통수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저 녀석이 너를 공격했니?" 무디 교수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무디 교수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네, 하지만 빗나갔어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만 내버려두지 못해!" 무디 교수가 버럭 호통을 쳤다. "네? 뭘요?" 해리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너 말고... 저 녀석 말이다!" 무디 교수는 느릿느릿 뒤로 돌아서더니 흰족제비를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크레이브를 가리켰다. 무디 교수의 굴러다니는 눈은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크레이브와 고일과 흰족제비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흰족제비가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지하 교실 쪽으로 달아났다. "그럴 순 없지!" 무디 교수는 다시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흰족제비를 겨냥했다. 그러자 흰족제비가 허공으로 3미터 정도 날아올랐다가 찰싹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다시 한 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난 상대방의 등 뒤에서 공격하는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아." 무디 교수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흰족제비는 고통스럽게 끽끽대면서 점점 더 높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아주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러운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흰족제비는 다리와 꼬리를 무기력하게 흔들면서 다시 허공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앞으로-그런 짓은-절대로-하지-마." 흰족제비가 돌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튀어 오를 때마다 무디 교수는 한 마디씩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무디 교수님!" 갑자기 충격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맥고나걸 교수가 두 팔에 책들을 한아름 안고 대리석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맥고나걸 교수." 무디 교수는 흰족제비를 더욱 높이 튀어 오르게 하면서 태연히 말했다. "지...지금, 뭐...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흰족제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치고 있소." 무디 교수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가르치다뇨? 무디교수님, 저게... 학생인가요?" 맥고나걸 교수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팔에 들고 있던 책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소." "안 돼요!" 맥고나걸 교수는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오더니 자신의 요술 지팡이를 빼 들었다. 잠시 후에 딱 소리와 함께 복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매끄러운 금발이 빨갛게 달아오는 말포이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무디 교수님, 우리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데 변신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맥고나걸 교수가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아마도 말했을 거요. 하지만 이 녀석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약간의 충격이 필요할 것 같아서..." 무디 교수는 태연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거렸다. "무디 교수님! 우리는 방과 후에 혼자 남겨두는 벌을 줍니다. 아니면 잘못을 저지른 학생의 기숙사 담당 교수에게 말을 하거나요!" "알겠소. 이제부터 나도 그렇게 하리다." 무디 교수가 아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말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고통과 굴욕감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말포이는 증오스러운 눈으로 무디 교수를 노려보면서 '우리 아버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오, 그래?"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말포이를 향해 걸어갔다. 목발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옛날부터 네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단다. 얘야... 네 아버지에게 무디 교수가 아들을 열심히 감시하고 있다고 하거라... 지금 내가 한 말을 네 아버지에게 똑똑히 전해야 한다... 자, 너의 기숙사 담당 교수는 스네이프 교수겠지? 그렇지?" "네." 말포이가 잔뜩 심통이 나서 대답했다. "역시 내 오랜 친구지." 무디 교수가 거칠게 말했다. "나도 스네이프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지... 자, 어서 가자..." 무디 교수는 말포이의 팔을 잡더니 지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맥고나걸 교수는 잠시 동안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휘둘러서 바닥에 떨어진 책들을 다시 팔 안으로 불러들였다. "내게 말시키지 마." 얼마 후에 그들의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았을 때,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 조용히 말했다. 방금 일어났던 일로 모두들 수군거리느라 연회장은 온통 시끌벅적했다. "왜 그러니?" 헤르미온느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장면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 두고 싶단 말이야." 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론의 얼굴에는 기세 등등한 표정이 가득 했다. "드레이코 말포이,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흰족제비..."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는 커다란 그릇에 잔뜩 담긴 쇠고기 캐서롤(고기와 야채를 섞어서 볶은 요리:역주)을 개인 접시에 조금씩 덜어서 해리와 론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말포이가 다칠 수도 있었어. 맥고나걸 교수가 막은 게 천만다행이었지..." "헤르미온느!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망치고 있어!" 론이 다시 눈을 번쩍 뜨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약간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전속력으로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설마 오늘 저녁에도 도서관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해리가 물었다. "가야 해. 할 일이 많아." 헤르미온느가 입 안에 음식을 잔뜩 쑤셔 넣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벡터 교수는 숙제를 내지..." "학교 공부를 하려는 게 아니야." 5분도 되지 않아서 접시를 다 비운 헤르미온느는 황급히 연회장을 떠났다. 헤르미온느가 자리를 뜨자마자, 프레드가 다가오더니 빈 자리에 앉았다. "무디 교수 말이야! 굉장히 멋진 분이지?" 프레드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이상이야." 조지가 프레드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최고야." 쌍둥이 형제의 단짝 친구인 리 조던이 조지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는 오늘 오후에 무디 교수의 수업을 들었어." 리가 해리와 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땠어?" 해리가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프레드와 조지와 리는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 수업은 난생 처음이었어." 프레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은 알고 있었어." 리는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뭘?" 론이 앞으로 몸을 잔뜩 숙이면서 물었다. "저 밖에서 그걸 하는 게 어떤 건지 안단 말이야." 조지가 감명을 받은 듯이 말했다. "뭘 하는데?" 해리가 재빨리 반문했다. "어둠의 마법과 싸우는 거 말이야." "그는 모든 걸 다 봤어." 프레드와 조지가 한 마디씩 했다. "굉장해." 리가 맞장구를 쳤다. 론은 재빨리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시간표를 꺼내들었다. "우리는 목요일이나 되어야 그 수업이 있어!" 론은 몹시 실망한 것 같았다. 제14장 용서받지 못할 저주 그 다음 이틀 동안은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네빌이 마법의 약 수업 시간에 냄비를 녹여 버린 일 같은 사소한 사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냄비까지 합치면, 네빌은 벌써 여섯 개나 되는 냄비를 망가뜨린 셈이었다. 여름 내내 새로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스네이프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빌을 방과 후에 남겨 놓고 벌 주었다. 결국 네빌은 한 통 가득 담긴 뿔 달린 두꺼비들의 내장을 모조리 꺼낸 후에야, 거의 신경 쇠약 상태가 되어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돌아왔다. "스네이프의 기분이 왜 저렇게 더러운지 알지?" 론이 시큰둥하게 해리에게 물었다. 그들은 헤르미온느와 네빌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네빌에게 손톱 밑에 박힌 두꺼비의 내장 찌꺼기를 없앨 수 있는 세척 마법을 열심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디 교수 때문이지, 뭐" 해리가 대답했다.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자리를 몹시 바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스네이프는 지난 4년 동안 애를 썼지만 그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네이프는 지금까지 근무했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들을 하나같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매드아이 무디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스네치프는 매드아이 무디 앞에서는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삼가고 있었다. 사실 해리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식사 시간이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라도) 볼 때마다 스네이프 교수가 무디 교수의 눈길을(마법의 눈과 정상적인 눈, 둘 다) 애써 피하는 것 같아." 해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디가 스네이프에게 마법을 걸어서 뿔이 달린 두꺼비로 변신시키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봐. 그리고 두꺼비가 지하 교실 안에서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광경을..." 론의 눈빛을 몽롱해졌다. 그린핀도르의 4학년생들은 무디 교수의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목요일이 되자,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 앞에 길게 줄 서 있었다. 아직 수업 시작종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린핀도르 4학년생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교실 앞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빠진 사람은 헤르미온느 뿐이었지만,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헤르미온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난..."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물론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겠지. 자, 어서 서둘러! 그렇지 않으면 앞자리에 앉지 못할 거야."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들은 교탁 바로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어둠의 힘: 자기 방어를 위한 지침서>라는 책을 꺼내 놓고 평소와는 달리 조용하게 기다렸다. 곧이어 복도를 걸어오는 무디 교수의 둔탁한 발소리가 드렸다. 무디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이하고 무서운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쇠갈고랑이 달린 무디 교수의 목발이 기다란 옷자락 밑으로 불쑥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모두 치우도록 해라." 무디 교수는 교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책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필요없어." 무디 교수가 의자에 앉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학생들은 재빨리 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론은 굉장히 흥분한 것 같았다. 무디 교수는 출석부를 꺼낸 후에 머리를 약간 흔들어서 일그러진 흉터 투성이의 얼굴 위로 흘러내린 잿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디 교수의 정상적인 눈은 출석부의 이름을 차례차례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법의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대답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한 명씩 확인했다. "좋다." 마지막 학생의 출석까지 확인하고 나자 무디 교수가 말했다. "나는 루핀 교수에게서 이 학급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 너희들은 어둠의 생물과 어떻게 맞싸워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주 철저한 기초 지식을 갖게 된 것 같더구나. 보가트와 레드 캡과 힝키펑크와 그라인딜로우와 카파와 늑대인간을 다루었지? 내 말이 맞나?" 교실 여기저기에서 그렇다는 뜻으로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드렸다. "하지만 저주에 관해서는 진도가 많이 뒤쳐진 것 같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마법사들이 서로에게 어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알려 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나는 딱 1년 동안만 너희들에게 어둠의 마법을 다루는..."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계속 계시지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론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불쑥 물었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론은 잔뜩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미소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온통 흉터 투성이인 무디 교수의 얼굴이 더 흉측하게 뒤틀리며 일그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소를 짓는 우호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커다란 안도감을 주었다. 론도 마음을 놓는 기색이었다. "네가 아서 위즐리의 아들이구나, 응?" 무디 교수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해 주었지... 그래, 나는 딱 1년 동안만... 그런 다음에는 다시 조용한 은퇴 생활로 돌아갈 거란다." 무디는 시끄럽게 껄껄 웃더니 울퉁불퉁한 손으로 탁 박수를 쳤다. "좋다. 이제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다. 저주, 그것은 강도와 형태에 있어서 아주 다양하다. 현재 마법부 규칙에 따르면, 나는 너희들에게 저주를 막는 방법에 대해서만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너희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는 금지된 어둠의 저주가 어떤 건지 가르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런 저주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너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셨다. 그리고 너희들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차피 맞서야 할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알수록 좋다고 판단하셨다.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느냐? 어둠의 마법사가 너희들에게 먼저 어떤 저주를 사용할 건지 알려줄 것 같으냐? 너희들이 면전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저주를 내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항상 경계하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 좀 치워라, 브라운 양. 내가 말하고 있을 때에는..." 라벤더 브라운은 깜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라벤더는 책상 밑으로 몰래, 완성된 별점 지도를 패르바티 패틸에게 살며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등 뒤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단단한 나무도 꿰뚫어볼 수 있는 게 분명 했다. "좋다... 어둠의 저주를 사용한 마법사는 마땅히 마법사법에 의해 벌을 받게 된다. 그중 가장 심한 중벌을 받게 되는 저주는 어떤 것일까? 혹시 알고 있는 사람?" 론과 헤르미온느를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어올렸다. 무디 교수가 론을 지적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여전히 라벤더를 주목하고 있었다. "저...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임페리우스 저주나 뭐 그런 게 아닐까요?" 론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아, 그래." 무디 교수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도 그 저주를 알고 계실 거야. 오래 전에 마법부가 그 임페리우스 저주 때문에 엄청난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으니까..."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힘겹게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리고 교탁 서랍을 열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속에는 커다란 거미 세 마리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론이 몸을 움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론은 거미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무디 교수는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은색 거미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그 거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거미에게 요술지팡이를 살짝 갖다대면서 중얼거렸다. "임페리오!" 갑자기 거미가 무디 교수의 손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거미는 가느다란 거미줄을 타고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 빙 돌아 넘더니 줄을 끊고 다시 교탁 위에 내렸다. 그 다음에는 옆으로 재주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로 툭 치자, 이번에는 그 거미가 뒷다리로 서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실을 온통 웃음 바다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무디 교수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재미있는가?" 무디 교수가 버럭 호통을 폈다. "만약 내가 너희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건다면, 그래도 좋겠느냐?" 갑자기 웃음 소리가 뚝 그쳤다. "완전한 지배! 완전한 조종!"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거미는 이제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더니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거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도 있고 물에 빠져서 죽게 할 수도 있고 너희들의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도록 할 수도 있다..." 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러 해 전에는 임페리우스 저주로 조종되는 마녀와 마법사들이 많이 있었다." 무디 교수가 느릿느릿 설명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무디 교수는 볼드모트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때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조종받고 있으며, 누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마법부의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임페이루스 저주는 저항할 수 있다.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임페리우스 저주를 받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디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재주넘기를 하는 거미를 집어 다시 유리병 속에 넣었다. "또 아는 사람? 또 다른 금지된 저주는 어떤 게 있나?" 헤르미온느의 손이 다시 번쩍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빌도 손을 들었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네빌이 자발적으로 발표를 하는 과목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약초학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네빌도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약간 놀란 것 같았다. "그래?" 마법의 눈이 빙글 돌더니 네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나 있어요. 크루시안투스 저주요." 네빌이 작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무디 고수의 정상적인 눈도 네벨을 향하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두 눈이 모두 뚫어질 정도로 네벨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름이 롱바텀이냐?" 무디 교수가 마법의 눈으로 출석부를 확인하면서 물었다. 네빌은 불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디 교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디 교수는 다시 전체 학급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디 교수는 재빨리 다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거미는 잔뜩 겁에 질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는..." 무디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잘 이해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이 거미가 좀 더 커야겠군." 무디 교수는 요술지팡이를 거미에게 살짝 갖다댔다. "잉고르지오!"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우자마자, 거미가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 거미는 타란툴라 거미보다도 더욱 커졌다. 론이 체면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허둥지둥 의자를 뒤로 빼더니 무디 교수의 탁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무디 교수는 요술지팡이를 다시 들어 올리더니 거미를 겨냥했다. "크루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미의 다리들이 이상한 각도로 구부러졌다. 거미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무섭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거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해리는 만약 거미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을 거라고 확신했다. 무디 교수는 계속 거미에게 요술지팡이를 갖다대고 있었다. 그 거미는 한층 더 격렬하게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만 하세요!"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외쳤다.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거미가 아니라 네빌을 보고 있었다. 해리도 얼른 네빌을 쳐다보았다. 네빌은 공포에 질린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책상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비록 거미의 구부러진 다리가 풀리긴 했지만, 경런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리듀시오!" 무디 교수가 중얼거리자, 거미는 다시 원래의 크기대로 오그라들었다. 무디 교수는 그 거미를 다시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아주 고통스럽단다." 무디 교수가 건조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할 수 있으면, 굳이 손가락을 조이는 틀이나 칼 따위를 써서 고문할 필요가 없단다. 물론 한때는 이 저주도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지. 좋아... 또 다른거 아는 사람?" 해리는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교실을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들 마지막 거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길지 몹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손을 들었다. 불쑥 올라간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저주인가?" 무디 교수가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바다 케다브라요." 헤르미온느가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작게 대답했다. 론을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아..." 무디 교수가 축 처진 입술을 비틀면서 또다시 웃었다. "그래! 최후의 저주이자, 최악의 저주이기도 하지. 아바다 케다브라... 살인 저주!" 무디 교수가 손을 유리병 속으로 집어넣자, 세 번째 거미는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라도 하듯 그의 손가락을 피해 미친 듯이 달아났다. 무디 교수는 단번에 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해리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워다. 초록빛 섬광이 눈부시게 번쩍 빛나더니 쉭 소기가 들렸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뭔가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미는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거미의 몸은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했다, 죽었다! 거미가... 잔뜩 겁에 질린 여학생 몇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거미가 주르륵 미끄러지자, 론은 황급히 뒤로 물어나다가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무디 교수는 교탁 위에 놓여 있는 죽은 거미를 손으로 휙 쓸어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좋지 않아." 무디 교수가 냉정하게 말했다. "전혀 유쾌하지 않지. 이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주문은 없다. 이 주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이미 알려진 딱 한 사람만이 그 저주를 당하고도 살아 남았고, 그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해리는 무디 교수의 눈들이(두 눈 모두)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텅 빈 칠판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사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바로 저렇게 죽은 것이다... 바로 저 거미처럼... 그들도 흠집 하나, 상처 하나 나지 않았을까? 그들의 몸에서 생명의 빛이 꺼지기 전에, 그들은 그저 번쩍하는 초록빛 섬광을 보고 죽음을 예감했을까?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죽음을 느끼면서? 해리는 부모님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날 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3년 전에 처음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부모님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상상하곤 했다. 부모님의 소재를 알게 된 웜테일은 그 사실을 볼드모트에게 밀고했고 볼드모트는 부모님의 집으로 찾아갔다. 볼드모트는 먼저 아버지를 죽였다. 제임스 포터는 아내에게 해리를 데리고 달아나라고 소리치면서 볼드모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에게 다가가서 해리를 죽일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서라고 했다... 릴리 포터는 아들을 온몸으로 가린 채, 차라리 자기를 대신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려 해리를 겨냥했다... 해리는 이러한 모든 장면을 상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지난 해 디멘터들과 싸울 때, 부모님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디멘터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희생자로 하여금 평생 동안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무기력한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 무디 교수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해리의 귀에는 마치 꿈 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애써 다시 현실로 돌아온 해리는 무디 교수가 하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바다 케다브라는 아주 강력한 마법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저주다. 너희들 모두 지금 당장 요술지팡이를 꺼내서 나를 향해 그 저주의 주문을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코피나 흘릴지 모르겠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너희들에게 그 저주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건 아니니까... 자, 만약 대응할 마법이 없다면, 내가 왜 너희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는지 궁금하겠지?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최악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그런 저주를 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자, 학생들은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 세 가지 저주들-아바다 케다브라, 임페리우스 그리고 크루시아투스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주들 가운데 하나라도 인간에게 사용했다간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보내기에 딱 알맞지. 이게 바로 너희들이 맞서야만 할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너희들에게 싸우도록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지. 너희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끊임없이... 절대로 멈추지 말고 철저히 경계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깃펜을 꺼내서... 받아 적도록 해라..."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용서받지 못할 저주들에 대한 설명을 하나 하나 받아 적었다. 종이 울릴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내보내자, 교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봇물이라도 터진 것처럼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 저주에 대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너 그게 경련 일으키는 거 봤니?" "무디가 그걸 죽였을 때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죽일 수 있지?" 아이들은 그 수업이 마치 굉장한 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재미있는 수업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은 헤르미온느 역시 마찬가지였다. "빨리 와."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재촉했다. "설마 저 지긋지긋한 도서관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론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손을 들어 복도 한쪽을 가리키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빌 때문이야." 복도 중간에 혼자 가만히 서 있던 네빌은, 무디 교수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보여주었을 때처럼 공포에 질린 눈을 부릅뜨고 맞은편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네빌?" 헤르미온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자 네빌이 고개를 돌렸다. "어, 안녕. 참 재미있는 수업이었어, 그렇지? 저녁식사가 뭘까 궁금해. 나... 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야. 넌 안 그러니?" 네빌이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빌, 너 괜찮니?" 헤르미온느가 걱정이 돼서 물었다. "아, 물론이지. 난 괜찮아." 네빌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들뜬 목소리로 지껄였다. "아주 재미있는 저녁... 아니, 그러니까... 수업이었어. 저녁 식사에는 뭐가 나올까?" 론은 놀란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네빌, 도대체... 무슨 말을?"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쿵쿵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무디 교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말을 뚝 멈추고 두려운 표정으로 무디 교수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낮고 부드러웠다. "괜찮다, 애야." 무디가 네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 사무실로 올라갈래? 자... 차나 한 잔 하자꾸나..." 네빌은 아까보다 훨씬 더 겁에 질린 것 같았다. 무디 교수와 단 둘이서 차를 마시다니... 네빌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넌 괜찮니, 포터?"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해리에게 향했다. "네." 해리는 공포를 이기려는 듯 거의 도전적으로 말했다. 무디 교수의 파란 눈동자가 마치 해리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처럼 약간 흔들렸다. "너도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가혹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야만 해. 모르는 척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무디 교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 어서, 롱바텀.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내게 몇 권 있단다." 무디 교수는 네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네빌은 마치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네빌은 무디 교수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론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네빌과 무디 교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어쨌거나 정말 굉장한 수업이었어, 그렇지?" 연회장으로 가는 동안, 론이 해리에게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 형의 말이 맞았어. 무디 교수님은 정말로 그 방면의 전문가야. 안 그래, 해리? 무디 교수님이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를 내렸을 때... 거미가 그냥 죽어 버렸잖아. 한 방에 말이야..." 하지만 해리의 표정을 보자, 론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연회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트릴로니 교수의 점술 숙제를 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테니까 오늘 밤부터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해리와 론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곧 헤르미온느는 후딱 식사를 끝마치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해리와 론은 천천히 그리핀도르 탑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해리가 먼저 용서받지 못할 저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실 저녁 식사 내내, 해리의 머리 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 저주들을 봤다는 사실을 알면, 무디 교수와 덤블도어 교수가 마법부와 말썽이 나지 않을까?" 뚱보 여인을 향해 다가가면서 해리가 물었다. "하긴, 그렇겠지."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항상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분이고, 무디 교수님으로 말하자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골칫거리였어. 항상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분이니까... 쓰레기통 사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잖아. 허튼소리." 뚱보 여인의 초상화가 앞으로 확 열리면서 입구가 드러났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학생 휴게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학생 휴게실이 매우 북적거렸다. "점술 숙제를 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올까?" 해리가 말했다. "그래야겠지." 론이 희미하게 끙끙거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책과 차트를 챙기기 위해 서둘러 기숙사로 올라갔다. 네빌은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수업이 끝났을 때 보다는 훨씬 더 침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도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은 듯했다. 네빌의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니, 네빌?"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야. 난 괜찮아. 고마워, 해리. 무디 교수님이 빌려주신 책을 읽고 있어..." 네빌은 <지중해의 신비한 수초들과 그 특성>이라는 책을 들어 올렸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무디 교수님에게 내가 약초학을 잘한다고 말했나 봐." 네빌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 해리는 지금까지 네빌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무디 교수님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걸 보면 말이야." 무디 교수가 스프라우트 교수의 말을 네빌에게 한 것은, 네빌의 기운을 돋우기 위한 아주 적절한 방법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네빌은 지금까지 뭔가를 잘한다는 칭찬을 거의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핀 교수라도 그런 식으로 했을 것이다. 해리와 론은 <미래의 운세> 책을 들고 다시 학생 휴게실로 내려갔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다음달에 발생할 사건을 예언하는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잡다한 계산과 상징들이 적힌 양피지 조각만이 잔뜩 널려 있을 뿐이었다. 해리의 머리는 마치 트릴로니 교수의 벽난로에서 흘러나온 향기를 듬뿍 들이마신 것처럼 몽롱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길고 복잡한 계산 공식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했다. "있잖아, 해리. 아무래도 옛날식 점술 방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론이 입을 열었다. 짜증이 날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기 때문에 론의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뭐야? 거짓말로 꾸며내자는 말이니?" "그래." 론은 테이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종이들을 몽땅 치워 버렸다. 그리고 펜을 잉크에 푹 담갔다가 꺼내더니 중얼거리며 뭐라고 적기 시작했다. "다음 월요일에는... 화성과 목성의 불길한 위치 때문에 감기에 걸릴 것이다." 론은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해리를 쳐다보았다. "너도 그 교수님을 잘 알잖아. 그저 불길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으면... 트릴로니 교수님은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해리는 지금까지 썼던 숙제를 아무렇게나 구겨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1학년생들의 머리 위로 휙 던졌다. 양피지는 벽난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좋았어! 월요일에... 나는... 음... 화상을 입는 위험에 처할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우리는 월요일에 스크루트를 다시 만나게 될 거잖아. 좋아. 화요일에는... 음..." 론이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재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해리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래의 운세> 책장을 휙휙 넘겼다. "아주 좋은데?" 론은 그 말을 그대로 베껴 썼다. "음... 너는... 수성 때문에...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힌다고 하면 어떨까?" "그래! 멋진 말이야..." 해리도 신이 나서 그대로 휘갈겨 썼다. "왜냐하면... 금성이 황도 십이궁 가운데 열두 번째 별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아마... 싸움을 하다가 크게 얻어터질 거야." "이런! 나도 싸움을 한다고 쓸 생각이었는데... 좋아. 그렇다면 나는 내기에서 진다고 해야겠다." "그래, 너는 당연히 내가 싸움에서 이기는 쪽에 걸 테니까 말야..." 해리와 론은 한 시간 동안이나 예언을 짜 맞추는(그 예언은 점점 더 비극적이 되었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침실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휴게실은 점점 한산해졌다. 크룩생크가 그들에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빈 의자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헤르미온느가 지었을 꼭 그런 표정이었다. 해리는 아직까지 쓰지 않은 불운이 뭐 없나 고민하면서 학생 휴게실을 빙 둘러보았다. 문득 맞은편 벽에 기대앉아 깃펜을 빼들고 머리를 맞댄 채, 양피지 조각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드와 조지가 한쪽 구석에 숨어서 뭔가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한 장난을 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아주 떠들썩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쌍둥이 형제가 버로우에 있을 때에도 뭔가를 함께 쓰면서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 을 위한 또 다른 주문 용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일이었다면, 프레드와 조지는 분명히 그 장난에 단짝 친구 리 조던도 끼워 주었을 것이다. 해리는 혹시 트리위저드 시합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물끄러미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조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깃펜으로 뭔가를 좍좍 지웠다. 그런 다음 아주 나지막하게 프레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학생 휴게실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해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 돼! 그렇게 쓰면... 마치 우리가 그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조지의 눈이 해리와 딱 마주쳤다. 해리는 씩 미소를 지은 후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숙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엿듣고 있다는 오해를 살까 봐서였다. 잠시 후에 쌍둥이 형제는 양피지를 둘둘 말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리와 론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한 후에 곧장 기숙사로 올라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초상화 구멍이 살며시 열리더니 헤르미온느가 학생 휴게실로 들어왔다. 헤르미온느는 한 손에는 양피지 다발을,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상자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가닥달가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룩생크가 갸르릉거리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안녕. 이제 막 끝마쳤어!" 헤르미온느가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도!" 론이 깃펜을 던지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안락의자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면서 론의 점술 숙제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별로 좋은 달이 아니구나. 그렇지?" 헤르미온느가 비꼬며 말했다. 크룩생크가 헤르미온느의 무릎 위로 뛰어오르더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미리 알게 되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론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너는 두 번이나 익사할 모양이구나?" 헤르미온느가 론의 예언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런... 둘 중에 하나를 미친 듯이 날뛰는 히포그리프에게 짓밟히는 걸로 바꿔야겠어." 론은 당황하면서 점술 숙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게 너무나 뻔히 보이는 것 같지 않니?" "무슨 말씀!" 론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꼬마 집요정들처럼 죽도록 공부하고 있었는데!"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론을 흘겨보았다. "그저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론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해리는 참수형을 당해서 죽게 될 운명이라는 예언으로 끝을 맺은 후에 깃펜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점술 숙제를 모두 끝낸 것이다. "그 상자 속에 있는 게 뭐야?" 해리가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때마침 잘 물었어." 헤르미온느가 험악한 얼굴로 론을 쏘아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자 속에는 50개 정도의 배지가 들어 있었는데, 색깔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같이 'S. P. E. W.' 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도대체 뭘 먹고 토한다는('spew' 라는 단어는 '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주) 거니? 이게 도대체 뭐야?" 해리가 배지를 하나 집으며 물었다. "토하는 게 아니야. 그건 S-P-E-W야. '꼬마 집요정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Elfish Welfare)' 이라는 뜻이지." 헤르미온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런 모임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론이 물었다. "당연히 들어 본 적이 없겠지. 내가 이제 막 시작한 모임이니까..." 헤르미온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데?" 론이 약간 놀라며 물었다. "글쎄... 만약 너희 둘이 가입한다면... 세 명."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는 우리가 '토하다' 라고 적힌 배지를 달고 돌아다닐 것 같니, 응?" 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S. P. E. W.라니까!" 헤르미온느가 잔뜩 골이 나서 소리쳤다. "나는 처음에 S. O. A. O. F. M C. C. C. T. L. S.(Stop the Outrageous Abuse of Our Fellow Magical Creatures and Campaign for a Change in Their Legal Status)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어. '우리의 친구인 신비한 생물에 대한 부당한 학대 방지와 그들의 법적 신분 변화를 위한 캠페인' 이라는 뜻으로 말이야. 하지만 공간이 좁아서 다 쓸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S. P. E. W.가 우리 모임의 이름이야." 헤르미온느는 양피지 다발을 그들의 코앞에 대고 흔들었다. "나는 그 동안 도서관에서 철저히 조사했어. 꼬마 집요정의 노예화는 수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 지금까지 아무도 정식으로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뿐이야." "헤르미온느! 내 말을 똑똑히 들어. 집요정은... 그것을... 좋아한단 말이야! 그들은 노예로 지내는 걸 좋아한다구!" 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단기 계획은..." 헤르미온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론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꼬마 집요정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의 장기 계획은 '요술지팡이 사용 불가' 에 대한 법률을 바꾸고, 꼬마 집요정 가운데 한 명을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 에 들어 가도록 하는 거야. 왜냐하면 꼬마 집요정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해리가 물었다. "회원을 모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돼." 헤르미온느는 기뻐하며 말했다. "회원 가입비를 2시클로 정했어. 배지를 구입하는 값이야. 그 수익금으로 전단 캠페인 기금을 마련하는 거지. 론, 회계는 네가 맡도록 해. 이따가 너에게 모금통을 줄게. 그 모금통은 지금 위층에 있거든 그리고 해리, 너는 우리 모임의 간사야. 그러니까 너는 첫 모임에 대한 기록으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적어 두고 싶을지도 모르겠구나." 헤르미온느는 잠시 입을 다물고 해리와 론을 바라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 때문에 분통이 터지면서도 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너무나 우스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론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정적을 깨뜨렸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텅 빈 학생 휴게실을 두리번거리던 해리는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창틀에 눈처럼 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헤드위그!" 해리가 외쳤다.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헤드위그는 탁자에 놓인 해리의 점술 숙제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돌아왔구나." 해리는 서둘러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답장을 갖고 왔어!" 론이 헤드위그의 다리에 묶여 있는 더러운 양피지 조각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헤드위그의 다리에 매달린 편지를 풀었다. 해리가 열심히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 헤드위그는 해리의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앉더니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부엉부엉 부드럽게 울어댔다. "뭐라고 써 있니?" 헤르미온느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시리우스의 답장은 매우 짧았고 아주 급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해리 지금 나는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단다. 너의 흉터에 관한 소식은 내가 이곳에서 들은 이상한 소문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들은 거란다. 만약 흉터가 다시 아프면, 곧장 덤블도어 교수를 찾아가거라. 덤블도어가 은퇴한 매드아이를 학교로 불렀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덤블도어는 그 징조들을 읽었다는 뜻이란다. 곧 연락하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도 안부 전해 주거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경계하도록 해라, 해리. 시리우스 해리는 고개를 들고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구? 그렇다면 돌아오고 있는 걸까?"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무슨 징조들을 읽었다는 거야? 해리... 왜 그래?"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해리가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내리쳤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헤드위그는 중심을 읽고 비틀거리다가 그만 해리의 무릎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시리우스에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해리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무슨 말이야?" 론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내가 경솔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거야!" 해리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헤드위그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론의 의자 등받이 위에 내려앉았다.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건 내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정작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난 네게 줄 게 아무것도 없어." 해리는 먹이를 기대하면서 부리를 딸깍거리고 있는 헤드위그를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뭘 먹고 싶으면 당장 부엉이장으로 올라가!" 헤드위그는 몹시 성이 나서 인상을 팍 쓰더니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해리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런 다음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 버렸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달래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난 이만 올라가서 잘래." 해리가 짤막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보자." 이층 기숙사로 올라간 해리는 서둘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만약 시리우스가 덜컥 잡히기라도 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해리의 잘못이었다. 왜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않았을까? 이마의 흉터는 아주 잠깐 아팠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주책없이 지껄이다니... 그냥 나 혼자 알고 있어야 했는데...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잠시 후에 론이 기숙사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리는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해리는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방은 아주 조용했다. 만약 해리가 다른 생각에 몰두하지만 않았다면, 아직까지 잠들지 못한 사람이 비단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들리던 네빌의 코고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15장 보바통과 덤스트랭 아침 일찍 일어난 해리의 머리 속에는 마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밤새도록 뇌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미 모든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해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다음, 론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기숙사를 나갔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학생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리는 어제 저녁에 하다가 그대로 놓아 둔 점술 숙제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양피지 조각을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리우스 아저씨께 며칠 전에 제 흉터가 아팠다고 한 건 그냥 상상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아저씨께 편지를 쓸 때에는 잠이 덜 깬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일부러 돌아올 필요는 없어요. 이곳은 아무 문제 없으니까요...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제 머리는 정말로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해리 해리는 초상화 구멍을 빠져나와, 서쪽 탑 맨 꼭대기에 있는 부엉이장으로 올라갔다(4층 복도에서 갑자기 나타난 피브스가 해리에게 커다란 꽃병을 뒤집어 엎으려고 해서 잠깐 방해를 받긴 했지만). 부엉이장은 돌로 지어진 동그란 모양의 방이었다. 그러나 창문에는 유리가 한 장도 끼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이 그대로 불어오고 있었다. 부엉이장 바닥에는 온통 짚과 부엉이 똥과 생쥐나 들쥐의 뼈다귀들로 뒤덮여 있었다. 길게 늘어서 있는 횃대 위에는 수백 마리나 되는 온갖 종류의 부엉이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부엉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동그란 호박색 눈동자가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해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외양간 부엉이와 황갈색 부엉이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헤드위그를 발견했다. 해리는 서둘러 헤드위그에게 걸어가다가 그만 똥으로 뒤덮인 바닥에 찍 미끄러지고 말았다. 헤드위그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헤드위그를 흔들어 깨웠다. 헤드위그는 잔뜩 심통이 난 듯 해리를 외면하면서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래서 헤드위그가 해리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헤드위그는 전날 밤 해리의 태도에 여전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해리가 넌지시 "네가 너무 피곤할지도 모르니까 론에게 피그위존을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게 좋겠어. 핏기위존의 다리에 편지를 매달아서 보내야겠다."고 말한 후에야 간신히 헤드위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헤드위그는 부엉부엉 울면서 해리의 팔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시리우스만 찾으면 돼, 알았지?" 해리는 헤드위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면서 창문으로 걸어갔다. "대멘터가 먼저 그를 잡기 전에 말이야." 헤드위그는 해리의 손가락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물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부엉부엉 울었다. 헤드위그는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해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는 헤드위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자꾸만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의 답장을 받으면 그래도 걱정이 좀 덜어질 거라고 굳게 믿었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그건 거짓말이야, 해리. 너는 그냥 흉터가 아프다고 상상한게 아니었잖아." 해리가 아침 식사 시간에 헤르미온느와 론을 만나서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말하자,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나 하나 때문에 시리우스가 아즈카반에 갇히도록 놔두란 거야?" 해리는 완강하게 말했다. "그만둬." 헤르미온느가 다시 무슨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론이 제지했다. 이번에는 헤르미온느도 론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해리는 그 다음 이 주일 동안 시리우스에 대해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침에 우편물이 도착할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며, 밤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런던의 어두운 거리에서 디멘터들이 시리우스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영상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그때마다 해리는 시리우스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해리는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차라리 퀴디치 경기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는 것은 불안감을 떨쳐 버리는 데에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웠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내리겠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오거라. 과연 그 저주를 막아낼 수 있는 학생이 있을까?" 그들은 무디 교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교수님은 그게 불법이라고 하셨잖아요."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휘둘러서 책상들을 다 치우고 교실 한가운데에 빈 공간을 만들자, 헤르미온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했다. "교수님은...이 저주를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덤블도어 교수는 임페리우스 저주를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너희들이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 무디 교수는 마법의 눈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헤르미온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누가 너한테 이 저주를 내려서 너를 완전히 조종해도 상관없다면... 나는 괜찮다. 이걸 배우지 않아도 좋다. 이 교실에서 나가거라." 무디 교수는 굵은 마디가 있는 손가락을 들어올리더니 문을 가리켰다. "저는... 교실에서 나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붉히면서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해리와 론은 서로를 마주뵤면서 씩 웃었다. 그들은 헤르미온느가 이런 중요한 수업을 놓치느니 차라리 부보투버라도 먹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디 교수는 한 명씩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학생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해리는 그 저주를 받은 친구둘이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딘 토마스는 국가를 부르면서 교실을 세 바퀴나 돌았다. 라벤더 브라운은 다람쥐 흉내는 냈다. 네빌은 평상시에는 쳔혀 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어려운 체조를 연속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저주를 막지 못했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무뚝뚝하게 해리를 불렀다. "네 차례다." 해리는 교실 한가운데의 빈공간으로 걸어갔다.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고 해리를 겨냥했다. "임페리오!" 갑자기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해리의 머리 속에 가득하던 수많은 생각과 걱정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행복감이 해리를 휘감았다. 해리는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해리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무디 교수의 목소리가 텅 빈 머리 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해리는 책상위로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고분고분 무릎을 굽혔다.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왜요? 갑자기 해리의 머리 속에서 떠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그게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싫어요! 난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 난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아요... 뛰어! 당장! 그 순간 해리는 큰 고통을 느꼈다. 해리는 뛰어로르는 것과 뛰어오르지 않는 행동을 동시에 했다. 그 결과 책상 모서리에 힘껏 부딪힌 해리는 그만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무릎 양쪽을 다 삔 듯 무릎이 몹시 아팠다. "자, 정말 잘했다." 무디 교수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머리속이 멍하게 울리는 것 같던 기분이 순식간에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의 통증도 두배로 커졌다. "이걸 보거라, 얘들아... 포터가 싸웠다! 포터는 그 저주와 치열하게 싸워서 거의 이길 뻔했다! 다시 한 번 해보자, 포터.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똑똑히 주목하거라. 특히 포터의 두 눈을 잘 관찰해야 한다. 너희들이 봐야 할 곳이 바로 눈이니까... 잘했다,해리! 정말 잘했어! 아무래도 그들이 널 조종하는 건 조금 힘들 거다!" "무디 교수의 말투 말이야." 한 시간 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나오던 해리가 말했다(무디 교수는 해리의 역량을 시험하겠다는 미명하에, 해리가 그 저주를 완전히 물리칠 수 있을 때까지 연달아 네 번이나 공격하겠다고 우겼다). "마치 우리 모두가 언제 어느 때라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래, 맞아." 론이 맞장구를 쳤다. 론은 한 발로 번갈아 가면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론은 임페리루스 저주로 인해 해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무디 교수는 점심 시간 무렵이 되면 그런 영향들이 모두 없어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바로 그런 게 편집광적인 증세라는 거야..." 론은 무디 교수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조하게 어깨 너머로 힐끗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무디 교수가 은퇴하자, 마법부 사람들이 몹시 기뻐한 것도 아주 당연해. 그런데 해리, 혹시 무디 교수가 시무스에게 말하는 거 들었니? 언젠가 만우절 날 무디 교수의 등 뒤에서 그냥 장난으로 우우 하고 소리친 마녀에게 그가 어떻게 했는지?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도대체 언제 임페리우스 저주를 물리치는 방법을 복습하라는 거야?" 4학년생들은 모두 이번 학기에 해야 할 공부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변신술 수업 시간에 맥고나걸 교수가 숙제를 잔뜩 내자, 학생들은 큰 소리로 불평을 터뜨렸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반드시 치러야 할 '표준 마법사 수준' 테스트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5학년 때 치르잖아요! 아직 1년이나 남았다구요!" 딘 토마스가 입술을 불쑥 내밀고 툴툴거렸다. "아닐 수도 있단다, 토마스. 그러니까 시험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해! 내가 만족할 만큼 고슴도치를 바늘방석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 학급에서 그레인저뿐이야. 너의 바늘방석은 여전히 핀을 가지고 다가가면 깜짝 놀라면서 잔뜩 몸을 웅크린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렴, 토마스!"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다시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점술 수업에 참석한 해리와 론은 트릴로니 교수의 칭찬을 받자, 헤벌쭉 입을 벌리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트릴로니 교수가 그들이 제출한 숙제에 최고점을 준 것이다. 트릴로니 교수는 그들의 예언 중에서 많은 부분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들이 가까운 장래에 다가올 공포들을 아주 결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트릴로니 교수가 만족스러운 눈길로 해리와 론을 쳐다보면서 그 다음 달에 대해서도 똑같이 숙제를 해 오라고 하자, 그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맞은 기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재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 써먹었기 때문이다. 마법의 역사를 가르치는 빈스 교수는 18세기의 도깨비 반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으며, 스네이프 교수는 해독제 연구를 강요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는 학급 아이들이 만든 해독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한 명을 골라서 독약을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잔뜩 겁먹은 학생들은 그 말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또한 플리트윅 교수는 소환 마법 수업을 위해 책을 세권 더 읽으라고 말했다. 심지어 해그리드까지도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양을 더욱 늘리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파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무척 기뻐하면서, 학생들에게 연구 과제를 주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이틀에 한 번씩 저녁 시간에 해그리드의 오두막으로 가서, 폭탄 꼬리 스크루트를 관찰하고 특이한 행동을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저는 사양하겠어요." 해그리드가 마치 산타클로스가 자루 속에서 커다란 장난감을 하나 더 꺼내 주는 듯한 태도로 제안하자, 드레이코 말포이가 딱 잘라 거절했다. "저는 수업 시간에 이 더러운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순간 해그리드릐 얼굴에는 미소가 싹 사라졌다. "시키는 대로 해, 말포이." 해그리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무디 교수가 한 것처럼 할 테니까... 나도 네가 착한 흰족제비로 변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단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말포이의 얼굴이 수치와 분노로 시빨겋게 달아올랐지만,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무디 교수가 내린 벌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이 끝나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성을 향해 걸어갔다. 해그리드가 단번에 말포이를 잠잠하게 만드는 것을 보자, 그들은 아주 통쾌했다. 작년에 말포이는 해그리드를 호그와트에서 해고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현관 안의 넓은 홀에 도착한 그들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커다란 표지판이 세워진 대리석 계단 밑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론이 발끝을 한껏 치켜들더니 그 표지판에 적혀있는 내용을 다른 두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트리위저드 시합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대표단이 10월 30일 금요일 오후 6시에 도착합니다. 수업은 30분 일찍 끝날 예정입니다. "정말 잘 됐네!" 해리가 활짝 웃으면서 외쳤다. "금요일의 마지막 수업은 마법의 약 시간이야! 스네이프는 우리에게 절대로 독약을 먹이지 못할 거야!" 호그와트의 학생들은 가방과 책을 각자 기숙사에 갖다 두고 성 앞으로 모이도록 하십시오. 환영 만찬을 열기 전에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할 예정입니다. "일주일 밖에 안 남았어!" 후플푸프의 어니 맥밀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케드릭이 알고 있을까? 어서 가서 알려 줘야지..." "케드릭이라니?" 어니가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론이 물었다. "디고리 말이야. 케드릭도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생각인가 봐." 해리가 대답했다. "그 멍청이가 호그와트의 챔피언이 된다구?" 그들은 떠들썩한 인파를 헤치면서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론은 몹시 불만스러운 듯이 소리쳤다. "케드릭은 멍청이가 아니야! 너는 그저 케드릭이 퀴디치 경기에서 그리핀도르를 이겼기 때문에 무조건 싫어하는 거잖아."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말했다. "나는 케드릭이 정말로 훌륭한 학생이라고 들었어. 그리고 케드릭은 반장이야." 헤르미온느는 마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너는 그저 케드릭이 잘생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뿐이잫아." 론이 가차없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좋아하진 않아!"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론은 일부러 헛기침을 했는데, 이상하게 꼭 '록허트!'처럼 들렸다. 현관 안의 넓은홀에 붙은 표지판은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에 뜨일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다음 일주일 동안에는 어디를 가든지 온통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누가 호그와트의 챔피언으로 선발될 것인가? 트리위저드 시합 종목은 무럿인가? 보바통 학생들과 덤스트랭 학생들은 어떻게 다른가? 무성한 소문들은 마치 전염성이 강한 병균처럼 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옮겨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성은 점점 더 깨끗해졌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어 있던 초상화 몇 점도 깨끗하게 닦여졌다. 하지만 정작 초상화 속의 당사자들은 별로 좋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불쾌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남몰래 투덜거리면서 액자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분홍빛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자, 그만 질겁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갑옷은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름을 잔뜩 치자, 더 이상 끽끽거리는 소음을 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 관리인 아구스 필치는 신발을 닦지 않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 아주 사납게 화를 냈다. 필치에게 야단을 맞은 1학년 여학생 두 명은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 다른 교직원들도 모두들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롱바텀, 부디 덤스트랭 학생들 앞에서는 네가 간단한 전환 마법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말거라!" 맥고나걸 교수가 특히 어려운 수업 끝에 마구 호통을 쳤다. 그 수업 시간에 네빌은 실수로 자신의 귀를 선인장에 이식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10월 30일 아침이 밝았다. 해리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연회장은 아주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는 제각기 로그와트의 기숙사를 상징하는 커다란 비단 깃발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핀도르의 깃발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사자가, 래번클로의 깃발은 파란색 바탕에 검은 오소리가, 슬리데린의 깃발은 초록색 바탕에 검은색 뱀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큰 깃발은 교수석 뒷벽에 걸려있었다. 사자와 독수리와 오소리와 뱀이 커다란 알파벳 문자 'H'를 둘러싸고 있는 호그와트의 방패꼴 문장이 그려져 있는 깃발이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을 봤다. 이번에도 역시 두 사람은 평소와 달리 다른 사람들과 뚝 떨어진 곳에 앉아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 론은 쌍둥이 형제들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정말 불쾌해. 하지만 만약 그가 우리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걸 그의 손에 마구 밀어 넣거나... 그가 우리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순 없어." 조지가 음산한 목소리로 프레드에게 말하고 있었다. "누가 형들을 피하는데?" 론이 두 사람 사이에 앉으며 물었다. "제발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 갑자기 방해를 받게 되자, 프레드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뭐가 불쾌하다는 거야?" 론이 조지에게 물었다. "너처럼 함부로 참견하는 녀석이 내 동생인 거..." 조지가 투덜거렸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라도 있어?" 해리가 물었다. 맥고나걸 교수에게 챔피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어. 그저 너구리를 변신시키는 거나 잘하라는 충고를 들었을 뿐이야." 조지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시합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걸까? 유리는 분명히 잘할수 있을 거야. 해리 지금까지도 우린 위험한 일을 잘 해 나갔잖아..." 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심판관 앞에서는 해본 적 없잖아. 맥고나걸 교수는 그 임무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매겨진다고 했어." 프레드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심판관이 누구지?" 해리가 물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학교의 교장들은 모두 심판관 명부에 올라 있어." 헤르미온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자, 모두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1792년에 열린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한 가지 불상사가 생겼기 때문이야. 챔피언들이 잡기로 되어 있던 카커트리스(한 번 노려보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다는 전설상의 뱀. 바실리스크와 유사하다:역주)가 마구 날뛰면서 돌아다니는 바람에 세 명 모두 부상 당했거든." 헤르미온느는 다들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언제나처럼 자신이 읽은 책을 아무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나참, 그건 <호그와트의 역사>에 다 나와 있는 거야. 물론 그 책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만한 건 아니지만 말야. 차라리 '수정된 호그와트의 역사'라고 하는 게 더욱 정확한 제목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학교의 추잡한 면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린, 굉장히 편파적으로 가려낸 호그와트의 역사'라고 하거나..."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론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하지만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입에서 무슨 말이 쏟아질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꼬마 집요정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해리의 짐작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호그와트의 역사>는 무려 천 쪽에 걸친 그 방대한 내용 어디에도 백 명에 달하는 노예들의 억압에 대해 우리 모두가 결탁하고 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어!"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은 후에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기 시작했다. 해리와 론이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아도, 꼬마 집요정들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한 헤르미온느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 모두 S.P.E.W. 배지값으로 2시클을 내긴 했지만, 순순히 돈울 준 것은 오직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공연히 돈만 낭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헤르미온느를 자극해서 더욱 시끄럽게 떠들도록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다. 왜냐하면 헤르미온느는 처음에는 배지를 달고 다니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배지를 사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둥 계속 해리와 론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또한 헤르미온느는 매일 저녁마다 그리핀도르 학생 휴게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을 구석에 몰아세우고 덜거덕거리는 모금함을 코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소리치곤 했다. "너희들이 시트를 갈고 너희들의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너희들의 교실을 청소하고 너희들의 음식을 만드는 이런 모든 일들을, 봉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지내는 신비한 생물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니?" 네빌과 같은 아이들은 그저 헤르미온느의 무서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 억지로 돈을 냈다. 극소수의 아이들은 헤르미온느가 하는 말에 약간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캠페인을 벌인다든가 하는 좀더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일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여겼다. 론은 공연히 가을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비치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딴전을 피웠다. 프레드는 갑자기 베이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쌍둥이 형제는 둘 다 S.P.E.W. 배지 구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조지는 헤르미온느에게 몸을 숙여 말했다. "헤르미온느, 너 주방에 한 번이라도 내려가 본 적 있니?" "아니, 없어. 학생들은 주방에 들어갈 수 없..." 헤르미온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가 봤어." 조지가 프레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이나... 물론 음식을 훔치기 위해서 들어갔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만난 적도 있어. 그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어.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꼬마 집요정들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야!" 헤르미온느는 몹시 흥분해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말은 부엉이 집배원들이 마구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는 소리 때문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들고 이제 막 도착한 부엉이들을 쳐다보았다. 해리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헤드위그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헤드위그가 날개를 퍼덕이면서 해리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헤드위그는 날개를 접은 후에 힘없이 한쪽 다리를 쭉 내밀었다. 해리는 재빨리 헤드위그의 발에 매달린 시리우스의 답장을 떼어냈다. 해리가 배이컨을 조금 주자, 헤드위그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와구와구 먹었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가 다시 트리위저드 시합 얘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는 걸 본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작은 목소리로 시리우스의 편지를 읽어 주었다. 잘 했다. 해리 나는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와서 잘 숨어 있단다. 나는 네가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다 자세히 알려 주었으면 좋겠구나. 나에게 편지를 보낼때는 더 이상 헤드위그를 이용하지 말거라. 부엉이를 계속 바꾸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항상 몸조심하도록 해라. 내가 네 흉터에 대해 한 말을 잊어버리지 말거라. 시리우스 "어째서 부엉이를 계속 바꿔야 하는 거지?"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그건 헤드위그가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기 때문일 거야. 해드위그는 눈에 금방 띄잖아. 시리우스의 은신처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눈처럼 새하얀 부엉이가 계속 그곳을 들락거린다면... 그러니까 내 말은... 헤드위그가 주로 그 지방에서 서식하는 새가 아니라는 뜻이야.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어깨위에 헤드위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시리우스의 편지를 돌돌 말아서 망토 속에 밀어 넣었다. 혹시 시리우스가 오히려 더 많이 걱정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해리는 시리우스가 마법부의 손에 잡히지 않고 은신처로 무사히 돌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해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헤드위그!". 해리는 헤드위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헤드위근는 졸린 듯이 부엉부엉 울더니 부리를 해리의 오렌지 주스에 살짝 담갔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휙 날아갔다. 어서 빨리 부엉이장으로 돌아가서 푹 자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어쩐지 아침 일찍부터 유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수업에 귀를 기울이는 사라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날 저녁에 도착할 예정인 보바통과 덤스트랭 사람들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법의 약 수업조차 30분이나 짧아졌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견딜 만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허둥지둥 그리핀도르 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리 지시받은 대로 가방과 책들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재빨리 학교 망토로 갈아입은 후에 다시 현관 복도로 내려갔다. 기숙사 담당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줄을 서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위즐리, 모자 좀 똑바로 써라." 맥고나걸 교수가 론을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패틸 양, 머리에 맨 그 우스꽝스러운 장식 좀 떼어내도록 해라." 패르바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길게 땋아내린 머리에서 커다란 나비장식을 떼어냈다. "나를 따라오도록." 맥고나걸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거기 앞줄에 서 있는 1학년생들은 제발 좀 밀지 말고..." 그들은 줄을 맞춰 정문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들 호그와트 성 앞에 줄을 맞춰 길게 늘어섰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아주 맑았다. 해가 저물면서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금지된 숲 너머에서 희미한 달이 떠올랐다. 앞에서 네 번째 줄에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에 서 있던 해리는 1학년생들 중에서 유난히 들뜬 모습으로 까불고 있는 데니스 크리비를 발견했다. "벌써 6시가 다 됐네. 그런데 해리, 다른 학교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도착할 것 같니? 기차로?" 론은 잠시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에 성 입구로 통하는 차도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럴 것 같진 않아."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할까? 빗자루를 타고 올까?" 해리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아마 그렇진 않을 거야...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오는데..." "포트키? 그렇지 않으면 순간이동을 써거 뿅 하고 나타날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다른 학교에서는 열일곱 살 미만도 그걸 하는게 허용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론은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호그와트 교내에서는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가 없어!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니?" 헤르미온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핀잔을 주었다. 사방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를 쓰고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움직이는 물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그저 여느 때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몸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를 느꼈다. 빨리 도착했으면... 어쩌면 외국 학생들은 보다 극적으로 등장할지도 몰라... 퀴디치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위즐리 씨가 캠프장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언제나 똑같군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들 뽐내기 바쁘다니까...' 잠시 후에 다른 교수들과 함께 뒤에 서 있던 덤블도어 교수가 소리쳤다. "아하! 보바통 대표단이 도착하는군!" "어디요?" 수많은 학생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기 있다!" 6학년생 가운데 한 명이 금지된 숲 저 위쪽의 하늘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뭔가 아주 거대한, 빗자루보다 훨씬 큰 것이... 마치 수백 개의 빗자루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것이... 점점 더 커지면서 군청색 하늘을 가로질러 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용이다!" 1학년생 가운데 한 명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런 멍청이... 저런 날아다니는 집이야!" 데니스 크리비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데니스의 추측이 훨씬 더 진실과 가까웠다... 그 거대한 형상은 금지된 숲의 나무 꼭대기를 살짝 스치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성의 창문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 형상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그들은 코끼리만한 덩치의 팔로미노(갈기와 꼬리는 하얗고 몸통은 담황색인 말의 일종: 역주) 수십 마리가 끌고 있는 거대한 담청색 마차를 볼 수 있었다. 거의 집채만한 마차는 호그와트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마차가 점차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보바통의 마차가 엄청난 속도로 착륙하자 앞쪽 세 줄에 서 있는 학생들이 깜짝 놀라면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쾅! 귀청이 찢어질 듯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와 함께(네빌은 깜짝 놀라서 뒤로 펄쩍 뛰다가 슬리데린 5학년생의 발을 밟고 말았다), 대형 접시보다도 더 큰 말발굽들이 에 닿았다. 마차가 거대한 바퀴를 굴리며 착륙하는 동안, 황금빛 말들은 커다란 머리를 치켜들고 불길처럼 새빨간 눈알을 디룩디룩 굴렸다. 해리는 마차의 문이 열리기 전에, 문에 그려져 있는 방패꼴 모양의 문장(세 개의별이 반짝이고 있는 황금빛 요술지팡이 두 개가 서로 교차되어 있는 양이었다)을 힐끗 보았다. 연한 파란색 망토를 입은 남학생이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몸을 앞으로 숙여 마차 바닥에 있는 뭔가를 잠시 만지작거리자, 황금빛 계단이 활짝 펼쳐졌다. 보바통의 남학생은 아주 점잖게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에 해리는 그 마차 안에서 반짝거리는 검은색 하이힐 구두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해리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몸집의 여자가 나타났다. 비로소 왜 그렇게 거대한 마차와 말들이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은 너무나 놀라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해리는 이 여자만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 딱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바로 해그리드였다. 해리는 저 여자와 해그리드의 키가 거의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아마도 해리의 눈에 해그리드가 훨씬 더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거대한 마차의 계단 발치에 서서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 저 여자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훨씬 더 커다랗게 보였다. 그 여자가 현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걸어가자, 잘 생긴 올리브 빛 얼굴과 투명하게 보이는 크고 까만 눈, 부리처럼 휘어진 코가 드러났다. 그 여자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목 밑에서 반짝거리는 둥근 장식으로 묶여 있었다. 검은색 새틴 옷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목과 굵은 손가락에는 커다란 오팔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학생들도 보바통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박수를 쳤다. 많은 학생들은 그녀를 더 잘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기도 했다. 그 여자는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덤블도어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렁주렁 보석이 달린 손을 내밀었다. 덤블도어 교수도 제법 키가 큰 편이지만, 그 여자의 손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 허리를 굽힐 필요조차 없었다. 그 여자의 키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맥심 부인, 호그와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덤블도어가 정중하게 말했다. "덤블리-도어어르, 안뇽하셨나용?" 맥심 부인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반갑게 대답했다. "우리 학생들이에용." 맥심 부인이 뒤를 돌아보면서 거대한 손을 흔들었다. 온통 맥심 부인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던 해리는 그제서야 마차에서 내린 수십 명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들 십대 후반인 것 같았다) 맥심 부인의 등 뒤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얇은 비단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을 뿐, 망토를 걸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몇 명의 학생들은 스카프나 숄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해리는 어렴풋이 학생들의 모습을(그들은 맥심 부인의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호그와트 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카르카로프는 도착했나용?" 맥심 부인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렸다가 덤스트랭을 맞이하겠습니까?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좀 녹이겠습니까?" 덤블도어 교수의 눈길이 맥심 부인을 향하고 있었다. "몸을 녹이능 게 조을 것 같아용. 그런데 말드른..." 맥심 부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차를 끌고 온 말들을 쳐다보았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호그와트의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님이 기꺼이 맡아 주실 겁니다. 음... 잠시 후에 다른... 좀 사소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면 말입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스크루트야." 론이 씩 웃으면서 해리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 말드를 다루려명... 저어... 강한 힘과 뛰어난 솜씨가 필요해용. 히미 굉장히 세거든요..." 맥심 부인은 마치 호그와트의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님이 과연 자신의 말을 제대로 다룰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해그리드는 말을 잘 다룰 겁니다. 제가 보증하죠." 덤블도어 교수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조아용. 애그리드를 만나면, 저 말드레게 위스키 딱 항 잔망 주라고 전해 주시게써용?" 맥심 부인이 살짝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가자!" 맥심 부인이 보바통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호그와트 학생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맥심 부인 일행이 돌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은 비켜 주었다. "덤스트랭의 말은 얼마나 클 것 같니?" 라벤더와 패르바티 너머에 서 있던 시무스 피니간이 고개를 쑥 내밀면서 해리와 론에게 물었다. "글쎄... 만약 저 말보다 더 크다면, 심지어 해그리드조차도 다룰 수 없을 거야. 물론 그것도 해그리드가 스크루트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말이지만... 그런데 스쿠르트는 어떻게 된 걸까?" 해리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달아났을지도 몰라." 론이 잔뜩 기대에 차서 말했다. "오!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마. 스쿠르트떼가 운동장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걸 한번 상상해 봐..." 헤르미온느가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이제 그들은 약간 후들후들 떨면서 덤스트랭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맥심 부인의 거대한 말들이 콧김을 내뿜으면서 발을 구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무슨 소리 들었니?" 갑자기 론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해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 뭔가 소름끼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진공 청소기가 강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우르릉거리면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들은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잔디 언덕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검은 호수의 매끄러운 표면이 .한눈에 보였다. 그런데 호수의 표면이 마구 출렁거리더니 깊은 호수 한가운데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호수의 표면이 커다란 거품이 일어나면서 질퍽한 둑 위로 파도가 철썩거렸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서 마치 호수 바닥에 있던 거대한 물구멍 마개가 뽑혀져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마구 소용돌이가 있었다... 잠시 후에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장대처럼 보이는 길고 까만 것이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해리의 눈에 돛대가 보였다... "돛대야!"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거대한 배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서서히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덤스트랭의 배가 은은한 달빛을 받으면서 번쩍거렸다. 그것은 마치 물에서 건져 올린 난파선처럼 이상하게 뼈대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물을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거대한 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동안이나 요동치는 물 위에서 출렁이던 배는 호수의 둑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퍽! 닻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이번에는 둑 위로 널빤지를 내리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그들의 검은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해리는 덤스트랭 학생들이 왠지 크레이브와 고일처럼 덩치가 아주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덤스트랭 학생들이 현관 복도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다가오자, 체격이 그렇게 커다랗게 보였던 이유는 그들이 북실북실한 모피를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을 성으로 인도하는 한 남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은빛이 감도는 다른 종류의 모피를 입고 있었다. "덤블도어! 안녕하십니까?" 언덕을 따라 올라오던 남자가 힘차게 외쳤다. "아주 잘 지냈소. 고맙소, 카르카로프 교수." 덤블도어 교수가 손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카르카로프의교수의 목소리는 아주 낭랑하고 매끄러웠다. 현관 불빛에 비친 카르카로프의 모습은 덤블도어 교수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느낌을 주었다. 하얀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으며 다소 날카로운 인상의 턱에는 끝이 살짝 밀려 올라간 염소 수염이 나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덤블도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덤블도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운 호그와트." 카르카로프가 성을 올려다보면서 미소짓자, 약간 누런 이빨이 드러났다. 비록 입술은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차갑고 날카롭게 빛났다. "이곳에 오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군요. 얼마나 좋은지... 빅터! 자, 서둘러라. 따듯한 곳으로 가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덤블도어? 빅터는 지금 가벼운 코감기에 걸려서..." 카르카로프 교수가 덤스트랭 학생들 가운데 한 명에게 앞으로 손짓했다. 그 학생이 옆을 지나가는 순간, 해리는 그 두드리진 매부리코와 짙은 눈썹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론이 해리의 팔을 툭 치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해리, 크룸이야!" 제16장 불의 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론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잔뜩 들떠서 소리 쳤다. 호그와트 학생들은 일제히 덤스트랭 일행의 뒤를 따라 계단으로 몰려들었다. "크룸이야, 해리! 빅터 크룸!" "제발, 론... 크룸은 단지 퀴디치 선수일 뿐이야." 헤르미온느가 론을 쳐다보며 면박을 주었다. "단지 퀴디치 선수일 뿐이라니?" 론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 크룸은 세계 최고의 수색꾼 가운데 한 명이야! 나는 크룸이 학생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 덤스트랭 일행은 호그와트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현관 안의 넓은 복도를 가로질러서 연회장으로 향했다. 해리는 리 조던이 빅터 크룸의 뒷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발 끝을 세우면서 안간힘을 쓰는 걸 보았다. 6학년 여학생 몇 명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미친 듯이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오, 이럴 수가 ! 깃펜이 하나도 없어!" "크룸이 립스틱으로 내 모자에 사인을 해줄까?" "정말 제정신들이 아니군." 헤르미온느가 이제 립스틱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여학생들 곁을 지나치면서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크룸의 사인을 받을 거야. 너 혹시 깃펜 가진 것 없니, 해리?" 론은 초초하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물었다. "없어. 깃펜은 위층에 있는 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걸." 그들은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론은 설레는 마음으로 문간이 잘 보이는 쪽에 앉았다. 빅터 크룸과 덤스트랭 학생들이 어디에 앉을지 주저하면서 여전히 그 주위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뚱한 표정으로 연회장을 둘러보던 보바통 학생들은 래번클로 테이블을 선택했다. 그 중에서 세 명은 연회장으로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스카프나 숄을 두르고 있었다. "날씨가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닌데...망토는 왜 안 가지고 온 거야?" 그들을 지켜보던 헤르미온느가 언짢은 듯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이쪽으로! 헤르미온느, 조금 더 저리로 가! 자리를 좀 만들어야..." 론이 급하게 외쳤다. "뭐라구?" "너무 늦었어." 론이 씁쓸하게 말했다. 빅터 크룸과 덤스트랭 학생들이 슬리데린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해리는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무척 자랑스러운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포이는 크룸에게 뭔가 말을 걸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래, 좋아! 실컷 알랑거려라, 말포이." 잔뜩 기분이 상한 론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크룸은 단번에 말포이 녀석의 정체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크룸의 주위에는 언제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쟤들이 어디에서 잘 것 같니? 어쩌면 쟤들에게 우리 기숙사의 잠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리, 그렇다면 기꺼이 크룸에게 내 침대를 내줄 수 있어... 나는 그냥 침낭에서 자면 되니까..." 헤르미온느가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거나 덤스트랭 학생들이 보바통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아." 해리는 래번클로 테이블과 슬리데린 테이블을 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덤스트랭 학생들은 무거운 모피 코트를 벗으면서 흥미로 얼굴로 별이 총총 빛나는 연회장의 천장을 쳐다보았다. 두어 명은 황금빛 접시와 잔을 집어 들더니 매우 감동을 받은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호그와트의 학교 관리인 필치가 교직원 테이블에 의자를 더 갖다놓고 있었다. 필치는 이번 행사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낡은 연미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해리는 필치가 덤블도어 교수 자리 양 옆으로 두 개씩 네 개의 의자를 갖다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교장 선생님 두 분만 앉으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왜 필치가 의자를 네 개씩이나 놓는 거지? 누가 또 오나?" 해리가 물었다. "어?" 하지만 론은 해리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론은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빅터 크룸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호그와트 학생들이 모두 연회장으로 들어가서 소속 기숙사 테이블에 자리르 잡자, 교직원들이 줄지어 상석으로 올라갔다. 제일 마지막으로 덤블도어 교수와 카르카로프 교수와 맥심 부인이 입장했다. 보바통 일행은 의연한 표정으로 맥심 부인이 덤블도어 교수의 왼쪽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 서 있었다. 좌중이 모두 자리를 잡자, 덤블도어 교사가 일어났다. 일순 떠들썩하던 연회장의 분위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숙녀, 유령, 그리고 특빈 내빈 여러분..." 덤블도어 교수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호그와트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편하고 즐겁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머리에 여전히 머플러를 두르고 있던 보바통의 여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비웃는 듯한 소리로 웃었다. "마음에 안 들면 가라지. 아무도 안 붙잡아!" 헤르미온느가 버럭 화를 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연회가 끝나면 공식적으로 트리위저드 시합이 시작될 겁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모두들 편히 드시기 바랍니다!" 덤블도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카르카로프 교수가 뭐라고 말을 걸었다. 잠시 후에 성대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주방에서 일하는 꼬마 집 요정들도 전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다양한 요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외국 요리도 몇 가지 있었으며, 해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음식도 아주 많았다. "저게 뭐지?" 론이 커다란 스테이크와 통팥 푸딩 옆에 조개 스큐 같은 것이 잔뜩 담겨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부이야베스(생선, 조개류에 향료를 넣어서 찐 요리. 프랑스의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의 명물이다: 역주)야."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 론은 성대한 만찬을 둘러보면서 군침을 흘렸다. "저건 프랑스 요리야. 작년 여름 방학 때 먹어 본 적이 있어. 정말 맛있어."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네 말을 한 번 믿어 보지." 론이 까만 푸딩을 먹으면서 말했다. 겨우 스무 명 정도만 늘어났을 뿐인데, 연회장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붐비는 것 같았다. 어쩌면 색깔이 다른 그들의 교복이 그대로 드러났다. 20분쯤 지나서, 해그리드가 교직원 테이블 뒤에 있는 문을 통해 연회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제일 끝자리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앉더니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온통 반창고 투성이인 손을 흔들었다. "스크루트는 잘 있어요, 해그리드?" 해리가 해그리드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잘 자라고 있어." 해그리드가 유쾌한 듯이 외쳤다. "그럴 거야. 무럭무럭 잘 크고 있겠지. 마침내 스크루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은 것 같구나. 안 그래, 해리? 해그리드의 손가락 말이야." 론이 해리에게 소곤거렸다. "미안하지만, 그 부이야베스 먹을 거니?" 바로 그 순간 독특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덤블도어 교수가 연설을 하는 동안 내내 비웃었던 보바통의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더 이상 머플러로 머리를 가리고 있지 않았다. 거의 허리까지 흘러내린 기다란 은발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 여학생의 눈동자는 크고 진한 푸른색이었으며, 이빨은 아주 하얗고 가지런했다. 론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론은 마치 넋이 나간 눈빛으로 그 여학생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꿀꺽 하는 희미한 소리 이외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론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냐. 가져 가도 좋아." 해리는 부이야베스가 담긴 접시를 그 여학생에게 내밀었다. "그거 다 먹은 거니?" "응. 굉장히 맛있었어." 론은 간신히 입을 열고 대답했다. 그 여학생은 접시를 집어들더니 조심스럽게 래번클로 테이블로 걸어갔다. 론은 마치 여학생이라곤 한 반도 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도저히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론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래, 저 여학생은 벨라가 분명해!" 론이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 멍청이처럼 입을 헤벌쭉 벌리고 저 애를 쳐다보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헤르미온느가 콕 쏘아붙였다, 그러나 헤르미온느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그 여학생이 연회장을 가로질러 걸어가자, 수많은 남학생들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남학생 몇 명은 꼭 론처럼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저 애는 보통 여학생이 아니야! 호그와트에는 왜 저런 여학생이 없는지 몰라!" 론이 그 여학생을 좀더 자세히 바라보려고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호그와트에도 괜찮은 애들이 있어." 해리가 무심결에 말을 내뱉었다. 때마침 그 은발 머리 여학생이 있는 곳에서 몇 테이블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초 챙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너희 둘 다 눈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헤르미온느가 활발하게 말했다. "방금 누가 도착했는 지볼 수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으로 상석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비어 있던 두 자리 중 루도 베그만은 카르카로프 교수 옆자리에 앉는 중이었고, 퍼시의 상관인 크라우치 씨는 맥심 부인 옆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여기에 왜 온 거지?" 해리가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물었다. "바로 저 사람들이 트리위저드 시합을 준비했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상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마 시작하는걸 보기 위해 찾아왔을 거야." 두 번째 코스 요리가 나왔을 때에도 수많은 종류의 생소한 푸딩들이 보였다. 론은 이상한 종류의 희뿌연 블라망주(우유를 갈분으로 굳힌 과자:역주)를 열심히 쳐다보더니,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똑똑히 보이도록 그것을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몇 센티미터 옮겼다. 그러나 벨라처럼 생긴 그 여학생은 이제 배가 부른지 더 이상 음식을 가지러 오지 않았다. 일단 황금 접시들이 깨끗하게 비워지자,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느긋하면서도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덤블도어 교수를 쳐다보았다. 과연 덤블도어가 무슨 말은 할까? 해리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면서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블도어 교수를 바라보았다.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던 프레드와 조지도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덤블도어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트리위저드 시합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습니다. 상자를 갖고 오기 전에, 나는 먼저 몇 마디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상자?"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론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올해에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을 분명히 밝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국제 마법 협력부의 책임자인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 씨와(예의상 마지못해서 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의 책임자인 루도 베그만 씨를 소개합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루도 베그만은 소개하자, 훌륭한 몰이꾼이었다는 명성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루도 베그만이 훨씬 더 많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루도 베그만은 답례를 하기 위해 손을 흔들면서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는 덤블도어가 소개할 때에도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들지 않았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 크라우치는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해리는 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는 크라우치가 어쩐지 낯설어 보였다. 칫솔처럼 좁다란 콧수염과 반듯한 가르마는 덤블도어 교수의 기다란 백발 머리와 수염 못지않게 아주 이상해 보였다. "베그먼 씨와 크라우치 씨는 트리위저드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지나 몇 달 동안이나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분은 저와 카르카로프 교수, 맥심 부인과 함께 챔피언들의 자질을 평가할 심사위원이십니다." 덤블도어 교수의 입에서 '챔피언' 이라는 말이 나오자, 학생들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좋아. 상자를 갖고 오게, 필치." 갑작스럽게 학생들이 조용해지자, 덤블도어 교수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연회장 한쪽 구석에 서 있던 필치가 커다란 나무 상자를 들고 덤블도어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 상자를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보석들이 불빛을 받으면서 반짝거렸다. 몹시 흥분한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데니스크리비는 그 광경을 자세히 보기 위해 의자 위로 올라갔지만, 너무 키가 작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가려서 상석을 볼 수 없었다. "챔피언들이 금년에 경쟁해야 할 경기 종목에 대해서는 크라우치 씨와 베그만 씨께서 이미 다 검토하셨습니다." 필치가 조심스럽게 그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덤블도어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분은 각 시험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준비하셨습니다. 내년 6월까지 계속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가지 시험이 치러질 것입니다. 트리위저드 시합은 다양한 측면들... 그러니까... 마법 실력과 대담성, 추리력 그리고 물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까지도 시험하게 될 것입니다." 덤블도어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 연회장은 온통 무거운 정적으로 휩싸였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시합에서는 세 명의 챔피언이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침착하게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참가하는 학교에서 각각 한 명씩 챔피언이 선발됩니다. 챔피언들은 여러 가지 과제를 얼마나 한 명씩 잘 해결하느냐에 따라 걱정한 점수를 받게 됩니다. 세 가지 시험을 모두 마친 후에 총점이 가장 높은 챔피언이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챔피언들은 공정한 심판관에 의해 선정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의 잔'입니다. " 덤블도어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고 상자 위를 탁탁탁 세 번 두드리자. 천천히 두껑이 열렸다. 덤블도어 교수는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도끼로 대충 다듬은 듯한 커다랗고 거친 나무 잔 하나를 꺼냈다. 만약 그 언저리에서 활활 타오르는 청백색의 불길만 없다면, 그 잔은 전혀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덤블도어 교수는 상자 뚜껑을 닫은 후에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그 잔을 상자 위에 조심럽게 내려놓았다. "각 학교를 대표하는 챔피언이 되고자 하는 학생은 누구든지 작은 양피지에 이름과 학교를 정확하게 적어서 이 잔에 넣어야 합니다. 대망을 품고 있는 학생들은 24시간 안에 이름을 제출하도록 하십시오. 내일 밤, 그러니까 할로윈 데이에 불의 잔은 각 소속 학교를 대표할 만한 학생으로 뽑힌 세 사람의 명단을 공개할 겁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아직 나이가 되지 않은 학생이 그저 챔피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적어 넣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불의 잔을 현관 복도에 갖다 놓으면 그 주위에 나이 제한선을 그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열일곱 살이 채 되지 않은 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이 선을 넘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 시합은 가벼운 마음으로 깊이 새겨 두기 바랍니다. 일단 불의 잔에 의해 챔피언으로 선정된 학생은 이 시합에 끝까지 참가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불의 잔에 이름을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구속력 있는 마법이 계약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일단 챔피언으로 선정되면 결코 이를 취소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의 잔에 이름을 넣기 전에 여러분이 진심으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여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자. 이제 취침 시간이 된 것 같군요. 모두들 안녕히 주무십시오" "나이 제한선이라니! 나이 먹는 약을 먹으면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을거야. 그렇지? 그리고 일단 이름이 불의 잔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걸로 끝나는거야. 불의 잔이 이름의 주인이 과연 열입곱 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 연회장에서 나가는 프레드 위즐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하지만... 열일곱살 미만인 사람은 별로 가망이 없을 것 같아. 우리는 아직 마법을 충분히 배우지도 않았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물론 너도 참가하겠지?그렇지? 조지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무뚝뚝하게 물었다. 해리는 열일곱 살 미만인 사람은 절대로 이름을 제출할 수 없다는 덤블도어 교수의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 품에 우승컵을 안을 수만 있다면... 우승컵을 들고 손을 흔드는 멋진 영상이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만약 열일곱 살 미만인 어떤 학생이 나이 제한선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정말로 찾아낸다면, 과연 덤블도어 교수는 버럭 화를 낼 것인가? "그런데 크룸은 어디 있지?" 하지만 론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다른사람의 대화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던 론이 갑자기 빅터 크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덤스트랭 사람들이 어디서 잘 건지 아직 덤블도어 교수가 말하지 않았지? 안그래? 하지만 론의 궁금증은 즉시 해결되었다. 그들이 슬리레린 테이블을 지나가고 있을 때 카르카로프 교수가 허둥지둥 덤스트랭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서 배로 돌아가자" 카르카로프 교수가 덤스트랭 학생들에게 말했다. "빅터, 너는 좀 어떻니? 많이 먹었니? 주방에서 부탁해서 멀드 포도주(설탕과 향료와 달걀 노른자 등을 넣어서 따뜻하게 데운 포도주: 역주)라도 한 잔 보내줄까? 해리는 빅터 크룸이 다시 모피 코트를 입으면서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교수님, 저도 좀 먹으면 안 될까요?" 덤스트랭의 다른 남학생이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네겐 줄 생각이 없다. 폴리아코프." 카르카로프 교수는 마치 아버지처럼 자상했던 미소를 싹 거두면서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옷 앞자락에 또 음식을 흘렸구나. 이런 지겨운 녀석..." 카르카로프 교수는 덤스틀애 학생들을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문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그곳에 도착했다. 해리는 카르카로프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걸음을 멈추었다. "고맙다" 카르카로프 교수가 해리를 힐끔 쳐다보며 무심코 말하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딱 멈추어 섰다. 카르카로프 교수는 다시 해리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마치 자신의 눈을 믿을수 없다는 듯이 빤히 바라보았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등 뒤에 서 있던 덤스트랭 학생들도 역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카르카로프 굣의 눈이 해리의 얼굴 위로 천천히 올라가더니 이마에 나 있는 흉터에서 고정되었다. 덤스트랭 학생들도 신기한 듯이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곁눈질로 몇 명의 학생들이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 앞자락에 온통 음식을 묻힌 남학생이 옆에 있는 여학생을 팔꿈치로 슬쩍 찌르면서 공공연하게 해리의 이마를 가리켰다. "그래, 쟤가 바로 해리 포터란다." 갑자기 호통을 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카로프 교수가 얼른 뒤로 돌아섰다. 매드아이 무디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마법의 눈으로 듬스트랭의 교장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타르카로프 교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소름끼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카르카로프 교수는 마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무디 교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날세."무디 교수가 험학한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런데 포터에게 할 말이 없다면 그만 나가 주겠나, 카르카로프? 자네가 문을 막고 있다네." 그것은 사실이었다. 연회장에서 나오던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무엇 때문에 문이 막혀 있는지 알아보려고 앞 사람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카로프 교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덤스트랭 학생들과 함께 휙 지나갔다. 무디교수는 마법의 눈을 카르카르프 교수의 등에 고정시킨채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줄곧 지켜보았다. 해리는 온통 흉터로 가득한 무디교수의 얼굴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평소보다 늦게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다른 주말보다 훨씬더 일찍 일어난 사람은 비단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현관 복도로 내려가자 벌써 스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불의 잔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었다. 불의 잔은 마법의 모자를 올려놓았던 바로 그 의자 위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복도 바닥에는 불의 잔 주위로 지름이 3미터 정도 되는 가느다란 황금빛 원이 그려져 있었다. "이름을 넣은 사람이 있니?" 론이 어떤 3학년 여학생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모두 덤스트랭 학생들이야. 하지만 호그와트 학생은 아직까지 한 명도 보지 못했어." 그 여학생의 눈길은 여전히 불의 잔을 향하고 있었다. "틀림없니 어젯밤에 우리 모두가 잠을 자러 간 후에 넣었을거야.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름을 넣으려면 쑥스러울 테니까... 막 뒤로 돌아서는 순간에 그 잔이 탁 침이라도 뱉으면 어떻게 해?" 해리가 론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그런데 해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프레드와 조지와 리 조던이 아주 흥분한 얼굴도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어. 조금 전에 먹었던 말이야." 프레드가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뭘?" 론이 물었다. "나이를 먹는 약 말이야. 이 멍청아." 프레드가 핀잔을 주었다. "한 사람이 한 방울씩... 우린은 그저 몇 달만 더 늙으면 돼." 조지가 기쁜 듯이 두 손을 마주 비비면서 말했다. "만약 우리 중에서 한 명이 우승을 한다면 1000갈레온의 상금을 세 명이 똑같이 나눠 가질거야." 리 조던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그게 통할거 같지않아. 덤블도어 교수님은 분명히 그 점을 염두에 두셨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마치 경고하듯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프레드와 조지와 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자, 준비가 되었니? 좋아! 내가 먼저 가겠어..." 프레드가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다른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약간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프레드가 주머니 속에서 '프레드 위즐리-호그와트'라는 글씨가 적힌 작은 양피지 조각을 꺼내는 걸 바라보았다. 프레드는 나이 제한선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더니 마치 15미터 높이에서 다이빙을 준비하는 다이빙 선수처럼 발끝을 들고 섰다. 잠시 후에 ㅍ흐레드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나이 제한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복도는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프레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효과가 있어! 해리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프레드를 쳐다보았다. 조지도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면서 프레드의 뒤를 따라 펄쩍 나이 제한선을 뛰어넘었다. 우당탕!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쌍둥이 형제는 허공을 가로질러서 3미터 가량 붕 날아가더니 차가운 돌바닥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포환 선수가 쌍둥이 형제를 황금빛 원 밖으로 집어던진 것 같았다. 해리는 두사람의 얼굴에 길고 하얀 수염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순식산에 현관 복도는 온통 웃음 바다가 되었다. 심지어 프레드와 조지조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상대방의 얼굴에 난 수염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경고했지."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고개를 들리자 덤블도어 교수가 연회장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덤블도어 교수가 연회장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덤블도어 교수는 눈을 반짝이면서 프레드와 조지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지금 당장 두 사람 다 폼프리 부인에게 올라가 보는 것이 좋겠다. 폼프리 부인은 이미 래번클로의 포싯 양과 후플푸프의 섬머스 군을 돌보고 있단다. 그 애들도 역시 나이를 조금 올려 보려고 했지. 하지만 이 점만을 분명히 말해 두고 싶구나. 그 애들의 수염은 두 사람의 얼굴에 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단다." 프레드와 조지는 여전히 깔깔 웃고 있는 리 조던의 부축을 받으면서 병동으로 출발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 역시 웃음을 터뜨리면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연회장의 장식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오늘이 할로윈 데이이기 때문일까? 살아 있는 박쥐떼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마법에 걸린 천장 주위를 구름처럼 몰려다니고 있는가 하면, 얼굴 모양이 새겨진 할로윈 호박 수백개가 곳곳에서 학생을 흘겨보고 있었다. 해리는 딘과 시무스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들은 열일곱 살 이상이 된 호그와트의 학생 중에서 누가 이름을 넣었는지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워링턴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름을 넣었다는 소문이 있어. 꼭 나무늘보처럼 생긴 슬리데린의 덩치 큰 녀석 말이야." 딘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워링턴과 퀴디치 경기를 한적이 있는 해리는 그만 질색을 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리데린에서 챔피언이 나오게 할 수는 없어!" "후플푸프 아이들은 모두 디고리에 대해 말하고 있어. 하지만 뺀질뺀질하기만 한 그 녀석이 과연 그 잘난 얼굴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당하려고 할까?" 시무스가 경멸하는 투로 소리쳤다. "저 소리를 좀 들어 봐!"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귀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현관 복도에 서 있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 일제히 몸을 돌린 그들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연회장으로 들어온은 알젤리나 존슨을 바라보았다. 안젤리나는 그리핀도르의 퀴디치 팀에서 추격꾼을 맡고 있는 키가 큰 흑인 여학생이었다. 안젤리나는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곧장 다가왔다. "내가 했어! 막 내 이름을 넣었어!" 안젤리나가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설마!" 론은 몹시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네가 벌써 열일곱 살이란 말이야?" 해리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물론이지. 네 눈에는 안젤리나의 수염이 보이지 않니?" 론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를 거들었다. "지난 주에 생일이 지났어." 안젤리나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했다. "어쨌거나 그리핀도르의 학생도 참가한다니까 기뻐. 정말 잘 하길 바래. 안젤리나!" 헤르미온느가 안젤리나를 쳐다보면서 격려했다. "고마워. 헤르미온느." 안젤리나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멋만 잔뜩 부리는 디고리 녀석보다야 네가 훨씬 낫지." 시무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하자 때마침 테이블 옆을 지나가던 후플푸프 학생 몇 명이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뭘 하는게 좋을까?" 아침 식사가 끝나자,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우린 요새 해그리드를 찾아가지 않았잖아." 해리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좋아. 해그리드가 스쿠루트에게 우리 손가락 몇 개를 기부하라고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야." 론이 대답했다. 갑자기 헤르미온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맞아! 내가 왜 아직까지 해그리드에게 S. P. E. W. 에 가입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몰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얼른 위층에 올라가서 배지를 갖고 올테니깐... 알았지?" 헤르미온느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재빨리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는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론이 신경질을 부렸다. "야. 론. 헤르미온느는 네 친구야..." 해리가 말했다. 바로 그때 보바통에서 온 학생들이 현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벨라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의 잔 주위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그들이 지나갈수 있도록 뒤로 물러서면서 보바통 학생들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현관으로 들어온 맥심 부인은 보바통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웠다. 보바통 학생들은 차례차례 나이 제한선을 넘어서 양피지 조각을 청백색의 불길 속에 넣었다. 이름이 불의 잔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불길이 잠시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타닥타닥 불꽃을 내뿜었다. "선택되지 않은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벨라 소녀가 불의 잔에 양피지 조각을 넣을 때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까?" 그렇지 않으면 계속 호그와트에 머물면서 시합을 지켜볼까?"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어쩐지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아... 맥심 부인은 심사를 하기 위해 머물 거잖아?" 해리가 대답했다. 보바통 학생들이 모두 이름을 집어넣자, 맥심 부인이 그들을 데리고 다시 정원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 애들은 어디서 자지?" 론이 보바통 학생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해리의 등 뒤에서 덜거덕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헤르미온느가 S. P. E. W. 배지 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서둘러." 론은 이렇게 말하고는, 맥심부인과 함께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는 벨라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금지된 숲 가장자리에 있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에 가까이 다다랐을 때 보바통 학생들의 숙소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보바통 학생들이 타고 왔던 거대한 담청색 마차가 해그리드의 오두막 현관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보바통 학생들은 다시 그 마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차를 끌고온, 코끼리처럼 거대한 말들은 이제 그 옆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마구간이 딸린 작은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해리가 해그리드의 오두막 문을 두드리자. 팽이 벼락같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셨군요! 저는 또 제가 사는 곳을 당신이 잊어버린줄..." 해그리드가 문을 확 열면서 말했다. "정말로 바빴어요. 해그..." 헤르미온느는 뭐라고 대답을 하다가, 해그리드의 모습을 보자 그만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해그리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끔찍한)털이 달린 갈색 양복에 노란색과 오렌지 체크 무늬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건, 윤활유처럼 보이는 것을 듬뿍 발라서 마구 삐치는 머리카락을 얌전하게 누르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평소엔 마구 헝클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곱게 묶었다. 아마도 빌의 머리처럼 가지런히 하나도 묶으려고 시도하다가, 머리숱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으로 나눈 모양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해그리드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음... 스크루트는 어디에 있어요?" 헤르미온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해그리드를 쳐다보았지만, 해그리드의 외모에 대해서는 논평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 그냥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호박밭이 있어. 스크루트들은 아주 빨리 자라고 있어. 이제는 길이가 거의 1미터 정도는 될거야.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스크루트가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기 시작했거든." 해그리드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럴 수가... 그게 정말이에요?" 헤르미온느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표정으로 재빨리 론을 째려보았다. 해그리드의 이상야릇한 헤어스타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론이 뭔가 한 마디 하려고 막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래. 하지만 괜찮아. 스크루트를 제각기 다른 상자에 넣어두었거든. 그래서 아직 스무마리 가량이나 남아있어." 해그리가 애처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참 다행이네요." 론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마치 스크루트가 몽땅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해그리드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은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침대에는 누비이불이 덮여 있었으며, 벽난로에는 커다란 나무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오두막의 천장에는 훈제 햄들과 죽은 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해그리드가 차를 끓이는 동안,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탁자에 앉아서 트리위저드 시합에 토론에 열중했다. 해그리드도 그들만큼이나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돼.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첫번째 시합은... 하지만 난 말하면 안돼!" 해그리드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말해 보세요. 해그리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해그리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해그리드는 그저 씩 웃으면서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나는 너희들 때문에 그 시합을 망치고 싶진 않아." 해그리드가 너털 웃음을 터뜨리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굉장할거라는 건 분명히 약속을 할 수 있어. 챔피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할거야. 난 살아생전에 트리위저드 시합을 또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들은 해그리드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다지 많이 먹지는 못했다. 해그리드가 먹음직스러운 쇠고기 캐서롤을 내놓기는 했지만 , 헤르미온느가 먹던 음식에서 커다란 갈고리 발톱을 발견하자, 그만 식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들은 말똥말똥 눈빛으로, 해그리드에게서 트리위저드 시합의 과제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누가 호그와트의 챔피언으로 선발될 것인가? 프레드와 조지의 수염이 이제는 없어졌을까? 그들은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가 지나면서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벽난로 옆에 앉아서 창문을 때리는 부드러운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던 해리와 론은 느긋한 마음으로 해그리드와 헤르미온느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해그리드는 양말을 꿰매면서 꼬마 집요정들의 복지에 대해 헤르미온느와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아주 기분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헤르미온느가 S. P. E. W. 배지를 들이밀면서 모임에 가입하라고 권유하자 해그리드가 딱 잘라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꼬마 집요정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거야. 헤르미온느, 꼬마 집요정은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돌보는 거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꼬마 집요정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시중을 드는 거야. 알겠니? 꼬마 집요정에게서 일을 없애는 건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봉급을 주려고 한다면 그건 꼬마 집 요정을 모욕하는 셈이야." 해그리드가 뼈로 만든 커다란 바늘에 두꺼운 노란색 뜨개질을 꿰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도비를 풀어 줬어요. 도비는 자유를 얻은 것을 아주 기뻐했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도비가 봉급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어요!" 헤르미온느의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 어느 종족에나 별난 녀석들이 있는 법이지. 나는 자유를 얻고 싶어하는 이상한 요정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절대로 꼬마 집요정 대부분이 도비처럼 행동하도록 설득하지는 못할 거야. 안돼! 아무래도 안 되겠어.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배지 상자를 다시 망토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5시 30분이 되자 서서히 땅거미가 깔리면서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론과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할로윈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더욱 중요한 일은, 바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각 학교의 챔피언들을 선발하는 일이었다)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같이 가자. 잠깐만 기다려." 해그리드가 꿰맨 양말을 치우면서 말했다. 해그리드는 벌떡 일어나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으로 걸어가더니 서랍을 뒤적거리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해그리드의 행동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곧 아주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해그리드, 그게 뭐예요?" 마침내 론이 기침을 하면서 물었다. "어? 이제 싫으니?" 손에 커다란 병을 들고 서 있는 해그리드가 빙 돌아섰다. "에프터쉐이브 로션이에요?" 헤르미온느가 놀라서 물었다. "이건 저... 오드 콜로뉴(향수의 일종:역주)야" 해그리드가 얼른 고개를 숙이면서 중얼 거렸다. 해그리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게 좀 많이 뿌렸나봐. 가서 냄새좀 없애고 오겠어. 잠깐만 기다려라..." 해그리드는 오두막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그들은 창문 너머로 열심히 몸을 씻고 해그리드를 쳐다보았다. "오 드 콜로뉴라고? 해그리드가 향수를?" 헤르미온느가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머리와 옷은 또 어떻구?" 해리도 해그리드의 변신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저기를 봐!" 갑자기 론이 창문 밖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해그리드가 막 허리를 펴고 돌아서고 있었다. 해그리드의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그리드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아주 조심스렇게 창 밖을 내다보았다.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막 마차에서 나오는 맥심 부인과 보바통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해그리드는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몽롱한 눈빛으로 맥심 부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의 그런 눈빛을 오래전에(아기용 노버트를 바라보고 있었을때)딱 한번 본적이 있었다.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과 함께 가려나 봐! 우리와 함께 갈 줄 알았는데?" 헤르미온느가 잔뜩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오두막을 돌아보는둥 마는 둥 하면서 해그리드는 맥심 부인과 함께 교정을 걸어가고 있었다. 보바통 학생들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두 사람의 걸음을 따라가기 위해 거의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을 좋아하나봐! 그런데... 만약 저 둘이 아기를 갖게 된다면, 아마도 세계 기록을 세울거야. 둘 사이에 아기라도 생긴다면 분명히 몸무게가 1톤은 나갈 테니깐." 론은 믿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오두막에서 나와 서둘러 문을 닫았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그들은 망토를 더욱 바싹 끌어당기면서 비탈진 잔디밭을 따라 올라갔다. "앗, 저기 좀 봐!"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으로 호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덤스트랭 일행이 성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카르카로프 교수와 나란히 걷고, 다른 학생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론은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빅터 크룸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와 론과 해리보다 조금 먼저 현관에 도착한 빅터 크룸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냥 들어가 버렸다. 연회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촛불이 연회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불의 잔은 덤블도어 교수앞에 놓여 있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지 못해서 실망이 무척 컸을 프레드와 조지는(깨끗하게 수염을 면도한) 그래도 잘 견디고 있을 것 같았다. "안젤리나가 됐으면 좋겠어." 해리와 론은 헤르미온느가 자리에 앉자, 프레드가 잔뜩 기대 하면서 말했다. "동감이야. 어쨌거나 곧 알게 되겠지!" 헤르미온느가 숨을 죽이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할로윈 만찬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겨우 이틀동안 벌써 두 번째 열리는 만찬이기 때문인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놓은 음식들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회장에 모여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해리도 안절부절못하면서 목을 길게 뻗으면서 덤블도어 교수가 식사를 끝마쳤는지 계속 확인했다. 어서 빨리 저녁 식사가 끝나고 누가 챔피언으로 선정되었는지 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침내 황금빛 접시들이 싹싹 비워지자 갑자기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덤블도어 교수 양쪽에 앉아 있는 카르카로프 교수와 맥심 부인 역시 다른사람들만큼이나 긴장한 표정이었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조바심을 내면서 챔피언이 선발되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다. 루도 베그만은 학생들을 향해 눈을 찡긋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크라우치는 챔피언 선발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몹시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의 잔은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덤들도어 교수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1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자 챔피언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연회장 위로 올라와서 교직원 테이블 뒤쪽에 있는 옆방으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손가락으로 작은 뒷문을 가리켰다. "챔피언들은 그곳에서 첫 번째 지시를 받게 될 겁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니 휙 하고 세게 한 번 휘둘렀다. 즉시 얼굴 모양이 새겨진 할로윈 호박 속에 들어 있던 촛불 이외에는 모든 촛불들이 한꺼번에 꺼졌다. 순식간에 연회장이 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불의 잔은 연회장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청백색으로 빛나는 불길이 너무나 밝게 타올라서 거의 눈이 아플 정도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면서 챔피언이 선발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사람은 초조한 듯이 계속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 초 안 남았어." 해리와 두 자리 옆에 떨어진 곳에 있던 리 조던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불의 잔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허공으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불길이 확 솟구치더니 까맣게 탄 양피지 조각 한 장이 펄럭거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덤블도어 교수는 양피지 조각을 집어 들고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어느 사이에 불길은 다시 청백색으로 변해 있었다. "덤스트랭의 챔피언은..." 덤블도어 교수는 힘차고 분명한 목소리로 양피지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빅터 크룸!" "그거야 당연하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지자, 론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슬리데린 테이블에 앉아 있던 빅터 크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구부정하게 숙인 채, 덤블도어 교수가 있는 상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빙 돌아 교직원 테이블이 뒤에 있는 문을 통해 옆방으로 사라졌다. "브라보 빅터!" 카르카로프 교수는 그 요란한 박수갈채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차게 외쳤다. "네가 될 줄 알았다!" 잠시 후에 박수 소리와 재잘거리는 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불의 잔으로 쏠렸다. 불의 잔 속의 불길이 다시 붉은색으로 변했다. 불길 속에서 튀어나온 두 번째 양피지 조각이 허공을로 치솟았다. "보바통의 챔피언은 플뢰르 델라쿠르입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양피지를 집어 들고 말했다. "그 애야, 론!" 해리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꼭 벨라처럼 생긴 그 여학생은 우아한 태도로 일어나더니, 은발 머리를 흔들면서 래번클로와 후플푸프 테이블 사이로 지나갔다. "어머, 저기를 봐! 다른 학생들이 무척 실망했나 봐." 헤르미온느가 보바통의 나머지 학생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나 '실망' 이라는 말은 너무나 조심스러운 표현이었다. 챔피언 선발전에서 탈락한 여학생들 가운데 두 명은 양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의 모습이 옆방으로 사라지자, 연회장의 분위기가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호그와트의 챔피언은 과연 누구일까? 불의 잔이 다시 한 번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강렬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이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을 때, 덤블도어 교수가 세 번째 양피지 조각을 집었다. "호그와트의 챔피언은..." 덤블도어 교수가 외쳤다. "케드릭 디고리!" "안 돼!" 론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해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론의 말을 듣지 못했다.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후플푸프 학생들은 모두들 벌떡 일어나더니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발을 쿵쿵 굴렀다. 케드릭은 의기양양하게 씩 웃으면서 교직원 테이블 뒤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케드릭에 대한 박수갈채는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좋아요!" 마침내 소란이 가라앉자, 덤블도어 교수가 유쾌하게 외쳤다. "이제 챔피언 세명이 모두 선발되었습니다. 나는 보바통과 덤스트랭에서 온 학생들 그리고 호그와트의 학생들 모두가 자기 학교의 챔피언에게 전심전력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격려가... 챔피언들에게 정말로 큰 도움이...." 갑자기 덤블도어 교수가 말을 멈추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뭔가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것 같았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덤블도어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이내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의 잔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다시 붉은색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리고 불꽃이 탁탁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어느 사이에 한 장의 양피지 조각이 나타났다. 덤블도어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서 양피지를 잡았다. 그리고 양피지에 적힌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덤블도어 교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양피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의혹에 찬 눈길로 덤블도어 교수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덤블도어 교수가 목을 가다듬더니 양피지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해리 포터!... " 제17장 네 명의 챔피언 그 순간 해리는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해리의 몸은 완전히 마비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잘못 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불의 잔 속에서 내 이름이 나오다니... 박수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에 성난 벌떼들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마치 차갑게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해리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 상석을 쳐다보았다. 맥고나걸 교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루도 베그만과 카르카로프 교수 옆을 지나서 덤블도어 교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황급히 덤블도어 교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덤블도어 교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맥고나걸 교수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 너머로 기다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 이름을 써 넣지 않았어."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두 사람도 멍하니 해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상석에 앉아 있던 덤블도어 교수가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똑바로 세웠다. "해리 포터!"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한 번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해리! 이리로 올라와라!"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등을 살짝 떠밀면서 속삭였다. "어서 가." 자리에서 일어서던 해리는 실수로 옷자락 끝을 밟아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테이블 사이에 나 있는 좁은 통로를 따라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짧은 거리가 해리에게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 상석은 단 한 걸음도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았다. 해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백 개의 눈동자들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그 시선 하나 하나가 해리를 샅샅이 훑어보는 탐조등과도 같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흐른 후에, 마침내 해리는 상석으로 올라가 덤블도어 교수 앞에 똑바로 섰다. 해리는 문득 선생님들도 모두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문으로 나가거라, 해리." 덤블도어 교수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는 미소조차 짓고 있지 않았다. 해리는 선생님들의 테이블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그리드는 제일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평소처럼 해리를 향해 윙크를 던지거나 손짓을 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하지 않았다. 해그리드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해리가 곁을 지나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해리는 연회장의 문을 지나서 마녀와 마법사의 초상화가 벽에 줄지어 걸려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맞은편 벽난로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가 작은 방으로 들어서자, 초상화의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바싹 마른 마녀가 초상화 액자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옆에 걸려 있는 초상화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초상화 안에는 팔자 수염을 기르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바싹 마른 마녀는 그 마법사의 귀에 대고 열심히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빅터 크룸, 케드릭 디고리 그리고 플뢰르 델라쿠르가 벽난로 주위에 모여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등을 구부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크룸은 다른 두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진 채, 벽난로 선반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케드릭은 뒷짐을 지고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해리가 다가오자,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징? 우리더러 연회장으로 돌아오라고 하드뇽?" 플뢰르 델쿠르는 해리가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해리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 명의 챔피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문득 세 사람 모두 아주 키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루도 베그만이 방으로 들어왔다. 루도 베그만은 해리의 팔을 잡더니 앞으로 이끌었다. "이상한 일이군!" 베그만은 해리의 팔을 꽉 붙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신사 숙녀 여러분... 좀처럼 믿을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네 번째 트리위저드 챔피언을 소개하도록 할까요?" 베그만이 벽난로를 향해 다가오더니 다른 세 사람에게 해리를 소개했다. 벽난로 선반에 기대고 있던 빅터 크룸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해리를 보자, 지르퉁한 빅터 크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케드릭은 무척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케드릭은 베그만의 말을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베그만과 해리를 자꾸만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하지만 플뢰르 델라쿠르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오, 베그만씨. 종말 재미있능 농담이에용." "농담이라니?" 베그만은 어쩔 줄을 모르면서 반문했다. "아니, 아니야. 농담이 아니야.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왔단다." 빅터 크룸의 짙은 눈썹이 잠시 붙었다가 떨어졌다. 케드릭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분명히 착오가 생긴 거예용." 플뢰르 델라쿠르는 거만한 목소리로 베그만에게 말했다. "이 친구능 경쟁 상대가 안돼용. 너무 어려용." "글세... 이것 참 놀라운 일이야." 베그만은 한 손으로 부드러운 턱을 문지르면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해리를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다시피, 원래 나이 제한은 더욱 철저한 안전을 위해서 올해에만 특별히 실시된 거예요. 어쨌거나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내 말은... 이 단계에서 그만둘 수는 없어요. 규칙에 적혀 있는 대로 여러분은 따라야만 해요. 해리는 단지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다시 문이 열리더니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덤블도어 교수가 선두에 있었으며 크라우치씨와 카르카로프 교수, 맥심 부인, 맥고나걸 교수, 스네이프 교수가 그 뒤를 따랐다. "맥심 부인!" 플뢰르 델라쿠르는 당장 자기 학교의 교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죠 사람들이 죠 쪼끄만 남자애도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갈 거라공 말했어용!" 이 말을 듣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던 해리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분노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쪼끄만 남자애라고? 맥심 부인이 거대한 몸을 쭉 펴자, 그녀의 잘생긴 머리 꼭대기가 양초를 가득 꽂아 놓은 샹들리에에 닿았다. 검은 비단으로 둘러싸인 맥심 부인의 커다란 가슴은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죵? 덤블리-도어어르?" 맥심 부인이 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무슨 일인지 알고 싶군요." 카르카로프 교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얼굴에는 강철같은 미소가 어려 있었으며,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호그와트의 챔피언이 두 명이라니? 트리위저드 시합을 주최하는 학교라고 해서 두 명의 챔피언을 내보낼 수 있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혹시 제가 시합 규칙을 자세히 읽어 보지 못한 탓일까요?" 카르카로프 교수는 짧고 심술궂은 웃음 소리를 내었다. "쎄 앵포씨블!(그건 안 될 말이에요)" 맥심 부인은 여러 개의 커다란 오팔 반지가 반짝거리는 거대한 손을 플뢰르 델라쿠르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호그와트만 두 명의 챔피언을 내보낼 수는 없어용. 그건 불공평해용." "우리는 당신이 제안했던 나이 제한선이 어린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곧 받았습니다, 덤블도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당연히 우리 학교 내에서 더욱 폭넓은 후보자들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에는 여전히 냉정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차갑게 빛났다. "카르카로프, 그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오. 모두 다 포터 때문이오. 포터가 규칙을 깨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덤블도어를 비난할 건 없소. 저 녀석은 이곳에 온 이후로 줄곧 규칙을 어기고 있었으니까..." 스네이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악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고맙네, 세베루스. 그만 하게." 덤블도어가 단호하게 말을 끊자, 스네이프는 곧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앞으로 흘러내린 기름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스네이프의 눈동자는 여전히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가만히 해리를 내려다보았다. 해리는 똑바로 덤블도어 교수를 바라보면서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교수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표정을 읽으려고 애를 썼다. "해리, 네가 불의 잔에 네 이름을 써 넣었니?" 덤블도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닙니다."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모든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 서 있던 스네이프는 조그맣게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소리를 내었다. "네가 상급 학생에게 불의 잔에 네 이름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니?" 덤블도어 교수는 스네이프를 무시하면서 계속 물었다. "아니에요." 해리가 격렬하게 부인했다. "아하! 물론 죠건 거짓말이에용!" 맥심 부인이 소리쳤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말아 올린 채,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해리는 나이 제한선을 넘어갈 수가 없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동의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덤블리-도어어르, 나이 제한선에 무엇인가 실수가 있었던 게 분명해용." 맥심 부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물론 그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덤블도어가 예의 바른 태도로 대답했다. "덤블도어 교수님, 교수님께서 절대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수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맥고나걸 교수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해리는 절대로 그 선을 넘어갈 수 없었어요.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가 상급 학생을 설득해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이렇게 말한 후에 맥고나걸은 스네이프 교수를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크라우치 씨... 배그만 씨." 카르카로프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다시 간드러지게 변했다. "두 분은 우리의 공정하신 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절대적으로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동의하시겠죠?" 베그만은 난처한 듯이 손수건을 꺼내더니 어린 소년처럼 둥글고 통통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불길이 던지는 둥근 불빛 밖에 서 있는 크라우치를 바라보았다. 크라우치의 얼굴은 어둠 속에 절반 가량 가려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약간 으스스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을 절반 가량 가리고 있던 어둠은 그를 훨씬 더 늙어 보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골 같은 인상을 풍기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평소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규칙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리고 규칙에는 분명히 불의 잔에서 이름이 나온 사람은 이 시합에 참가해야만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티는 트리위저드 시합 규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꿰뚫고 있답니다." 베그만은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이 환한 얼굴로 카르카로프와 맥심 부인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우리 학생들의 이름도 다시 제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카르카로프가 항의를 하고 나섰다. 카르카로프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매끄러운 미소는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불의 잔을 세우시오. 우리는 각 학교에서 모두 두 명의 챔피언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름을 집어넣겠소. 그것이 유일하게 공정한 방법이오, 덤블도어." "하지만 카르카로프, 그럴 수는 없어요. 불의 잔은 조금 전에 꺼졌단 말입니다. 다음 시합이 시작될 때까지는 절대로 다시 타오르지 않을 거요." 베그만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시합에 덤스트랭은 절대 참가하지 않겠소!" 카르카로프가 벌컥 화를 내었다. "그토록 수많은 회의와 협상과 타협을 거쳤는데,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소! 나는 이제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오!" "그런 식으로 협박하지 말게, 카르카로프." 갑자기 문이 있는 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자네 학교의 챔피언은 떠날 수가 없어. 그는 이미 시합을 시작했으니까... 그들 모두 다 말이야. 덤블도어가 말한 대로 마법의 계약에 묶였단 말이야. 참 편리한 방법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무디가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디는 절뚝거리면서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른쪽 발을 옮길 때마다 덜컹하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편리하다니?" 카르카로프가 무디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무디." 해리는 카르카로프가 마치 무디의 말이 전혀 신경을 쓸 가치가 없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카르카로프의 손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어느 틈에 단단하게 주먹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무디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주 간단하다네, 카르카로프.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오면 반드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불의 잔에 포터의 이름을 집어넣었지." "분명히 어떵 사람이 오그와트에게 사과를 두 번 베어먹을 수 있능 기회를 주고 싶었덩 거예용!" 맥심 부인이 끼어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맥심 부인. 저는 마법부와 국제 마법사 연맹에 항의서를 보낼 생각..." 카르카로프는 맥심 부인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했다. "이 중에서 정말 불평을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해리 포터야." 무디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군... 나는 해리가 한 마디라도 불평하는 걸 듣지 못했는데..." "죠 아이가 왜 불평을 하겠어용?" 플뢰르 델라쿠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죠 아이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잖아용? 아닌가용? 우리는 선택되기 위해서 몇 주일 또 몇 주일이나 기다렸어용! 우리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용! 그리고 상금으로 받게 될 1000갈레온! 그거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이라동 걸 만한 엄청낭 기회가 아닌가용!" "아마도 누군가 포터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지." 무디가 최대한 거친 목소리를 감추면서 말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일순 팽팽한 긴장과 침묵이 감돌았다. 루도 베그만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초조하게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말했다. "무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우리가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무디 교수는 점심 식사 전에 자신을 살해하려는 여섯 개의 음모를 발견하지 못하면 아침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카르카로프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자신의 학생에게 암살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는 선생치고는 참 이상한 자질을 갖고 있군요. 물론 덤블도어 선생께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무디 선생을 고용하셨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엉뚱한 상상을 한단 말인가? 헛것을 본다구? 불의 잔에 해리의 이름을 집어넣은 자는 아주 뛰어난 솜씨를 가진 마법사나 마녀가 분명해." 무디가 호통을 쳤다. "무슨 증거가 있나용?" 맥심 부인이 커다란 손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아주 강력한 마법의 물건을 현혹시켰기 때문이야! 그 잔을 감쪽같이 속여서 이 시합에는 오직 세 개의 학교만이 참가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도록 하려면, 특별히 강력한 혼동 마법이 필요하지. 나는 아마도 그들이 포터의 이름을 네 번째 학교에 집어넣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그 학교의 후보자는 오직 해리 한 사람밖에 없도록 말이야..." 무디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무척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무디." 카르카로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아주 천재적인 이론입니다. 물론 나는 당신이 최근에 생일날 받은 선물 중에 하나가 교묘하게 위장된 바실리스크 알이라는 생각을 품고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여행용 휴대 시계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당신의 주장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해하실 거라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들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는 법이지." 무디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톡 쏘아붙였다. "어쨌거나 어둠의 마법사들이 행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라네. 카르카로프, 자네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하겠지만..." "앨러스터!" 덤블도어가 경고하듯이 소리쳤다. 해리는 잠시 동안 덤블도어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매드아이'가 무디의 진짜 이름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무디는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르카로프를 바라보았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덤블도어가 그 방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케드릭 해리 두 사람 모두 이 시합에 참가하도록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지만 덤블리-도어어르." "친애하는 맥심 부인. 혹시 부인께서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다면, 기꺼이 들어보고 싶군요." 덤블어는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맥심 부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화가 난 사람은 맥심 부인만이 아니었다. 스네이프도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러나 베그만은 오히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베그만이 두 손을 비비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의 챔피언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도록 해야죠. 바티, 그 영광스러운 일을 자네가 하겠나?" 크라우치는 마치 깊은 백일몽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보였다. "좋아. 그래... 첫 번째 시험은..." 크라우치는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걸어나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자, 해리는 크라우치가 몹시 아픈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눈 밑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종잇장처럼 얇고 창백한 얼굴에는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퀴디치 월드컵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첫번째 시험은 너희들의 담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란다." 크라우치는 해리 포터와 케드릭 디고리, 플뢰르 델라쿠르,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는 않겠다. 알지 못하는 것을 똑바로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마법사에게 아주 중요한 자질이란다... 그래, 아주 중요하고말고... 첫 번째 시험은 11월 24일에 실시될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심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챔피언들은 트리위저드 시합중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이나 도움을 요청해서도 안 된다. 챔피언들은 각자 오로지 지팡이만을 몸에 지닌 채, 첫 번째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나면, 두 번째 시험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될 것이다. 많은 요구 사항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시합의 성격상 챔피언들은 학기말 시험에서 제외될 것이다." 크라우치는 고개를 돌리더니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알버스." "그런 것 같군."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크라우치를 바라보고 있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바티, 정말로 오늘 밤에 호그와트에서 묵고 가지 않겠나?" "아니야, 덤블도어. 서둘러 마법부로 돌아가야만 해. 요즘은 아주 바쁘고 아주 힘든 시기이기 때문이야. 젊은 웨더비에게 일을 맡기고 왔다네...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좀 지나치게 열성적이야." "그렇다면 떠나기 전에 잠깐 들어가서 한 잔 마시고 가는 게 어떤가?" 덤블도어가 크라우치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바티, 전 여기에 묵을 거예요." 베그만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티도 아다시피 지금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더 흥미롭거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루도." 크라우치가 약간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 교수, 맥심 부인. 혹시 필요하시면 나이트캡(잠자기 전에 마시는 술: 역주)을 드릴까요?" 덤블도어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하지만 맥심 부인은 이미 플뢰르의 어깨를 팔로 감싸안은 채, 재빨리 방에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해리는 연회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 불어로 아주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조용히 빅터 크룸에게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해리, 케드릭. 어서 침대로 가거라.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덤블도어가 두 사람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는 분명히 너희들을 축하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모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울 수 있는 훌륭한 핑곗거리가 생겼는데. 그걸 빼앗는다면 부끄러운 일이지." 해리는 힐끗 케드릭을 쳐다보았다. 케드릭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방을 나섰다. 연회장은 텅 비어 있었다. 거의 타버린 양초들만이 들쭉날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호박들 안에서 깜박거리는 기괴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서로 시합을 하게 되었구나!" 케드릭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것 같아." 해리는 정말로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해리의 머리속은 무언가가 온통 헤집고 지나간 것처럼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자, 이제... 나에게 솔직히 털어놓도록 해." 연회장 출입문에 도달하자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곳에는 불의 잔 대신에 횃불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떻게 네 이름을 집어넣었지?"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나는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어. 거짓말이 아니야." 해리는 케드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 좋아." 케드릭은 이렇게 말했지만, 해리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보자." 케드릭은 대리석 계단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 문으로 향했다. 해리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한참 동안이나 케드릭이 돌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천천히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이외에 누가 해리의 말을 믿어줄까? 혹시 모두들 해리가 이번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자기의 이름을 써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기보다 3년이나 더 오랫동안 마법 교육을 받았던 다른 경쟁자들과 겨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게다가 아주 위험하다고 알려진 사실을 안다면, 어느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물론 해리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해 줄곤 생각하고 있었다..., 공상은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해리가 시합에 참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해리가 확실하게 참가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놓았다. 왜? 해리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그럴 리는 없었다. 어쩌면..., 해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들은 거의 소망을 이루게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해리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디는 과연 단순한 편집증 환자일 뿐일까? 어떤 사람이 그저 짖궂은 장난을 치기위해서 속임수로 불의 잔에 해리의 이름을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정말로 해리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해리는 즉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렇다. 분명히 해리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해리가 겨우 한 살이었을 때부터 죽이고 싶어했던 사람... 볼드모트 경. 하지만 볼드모트가 어떻게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 속에 들어가도록 술수를 부릴 수 있었을까? 볼드모트는 아주 멀리 도망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딘가 먼 나라에서 힘없이 허약해진 몸으로... 혼자 숨어 지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아파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해리가 꾸었던 꿈 속에서 볼드모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해리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면서... 해리는 문득 자신이 벌써 뚱뚱한 여인 앞에 도착한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가 챔피언으로 합세했을 때, 옆에 걸려 있는 다른 초상화 속으로 재빨리 들어 갔던 그 바싹 마른 마녀가 뚱뚱한 여인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일곱 개의 계단 벽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든 초상화들을 쏜살같이 지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틀림없었다. 바싹 마른 마녀와 뚱뚱한 여인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길로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그래." 뚱뚱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바이올렛이 방금 전에 다 얘기해 줬어. 그래서 결국 학교 챔피언으로 선택된 것은 누구지?" "허튼소리." 해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만에! 다 알고 있는걸!" 창백한 얼굴의 마녀가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아니야. 바이올렛. 그건 통과 암호야." 뚱뚱한 여인이 바싹 마른 마녀를 달래면서 말했다. 그리고 초상화를 앞으로 열어서 해리가 학생 휴게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초상화가 거의 닫히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해리의 귓전을 때렸다. 다음 순간, 해리가 아는 것은 수십 개의 손에 붙잡혀서 휴게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학생 전체가 요란한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해리를 맞이했다. "네가 나이 제한선을 넘어갔다고 우리에게 말했어야지!" 프레드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프레드는 반쯤은 화가 나고 반쯤은 몹시 감탄한 것 같았다. "수염도 없이 그런 일을 어떻게 했니? 정말 똑똑하다!" 조지가 큰소리로 떠들었다. "난 하지 않았어.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해리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오, 내가 챔피언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리핀도르가 되어야만 해." 안젤리나가 와락 해리를 덮쳤다. "해리! 지난번 퀴디치 시합에서 케드릭 디고리에게 진 빚을 갚아줄 수 있겠구나!" 그리핀도르의 또 다른 추격꾼인 케이티 벨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해리, 음식을 준비했어. 어서 가서..." "난 배가 고프지 않아. 연회장에서 실컷 먹었어." 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해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혀 축하를 받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리 조던은 그리핀도르의 깃발을 뽑아 와서는 해리의 어깨에 망토처럼 두르라고 고집을 부렸다. 해리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슬쩍 빠져나가려고 할때마다 친구들이 무리를 지어서 해리를 둘러싸고는 억지로 버터 맥주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자나 땅콩 따위를 해리의 손에 잔뜩 쥐어주었다... 모두들 해리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어떻게 덤블도어의 나이 제한선을 속이고 넘어갔으면, 감히 불의 잔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나는 하지 않았어" 해리는 거듭 거듭 되풀이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난 전혀 몰라." 하지만 친구들은 해리가 단지 대답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난 피곤하다 말이야!" 거의 30분 정도 지났을 때, 마침내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아니야. 정말이야, 조지. 나는 자러 가겠어." 해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말짱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휴게실 안에는 없는것 같았다. 해리는 계단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크리비 형제를 거의 납작하게 때려눕히다시피 하면서 자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끝에 간신히 친구들을 모두 떼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론은 텅 비어 있는 기숙사의 자기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옷은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디 갔었니?"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 안녕." 론이 반가운 듯이 말했다. 론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는 했지만, 억지 웃음처럼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해리는 문득 리 조던이 어깨에 매어 주었던 진홍색의 그리핀도르 깃발을 아직도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은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해리가 깃발을 벗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축하한다." 마침내 해리가 깃발을 벗어서 구석으로 던지자, 론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축하한다니?" 해리가 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론의 미소는 분명히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것은 차라리 빈정거림에 더욱 가까운 것이었다. "글쎄... 아무도 나이 제한선을 넘었던 사람이 없잖아. 프레드와 조지까지도 말이야. 뭘 사용했니? 그 투명 망토?" "투명 망토로는 선을 넘을 수가 없어."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오, 그렇구나." 론이 말을 이었다. "만약 투명 망토를 사용한 거라면 네가 나에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투명 망토는 우리 두 사람이 충분히 덮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니? 하지만 너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구나? 그렇지?" "내 말 들어봐. 나는 불의 잔에 내 이름을 적어넣지 않았어.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한게 분명해." 해리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니?" 론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나도 몰라."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라고 대답한다면, 너무나 유치한 멜로 드라마처럼 들릴 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하지만 나한테는 진실을 말할 수도 있잖아. 만약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좋아. 하지만 왜 억지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해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않니? 뚱뚱한 여인의 친구인 바이올렛이 이미 우리에게 다 말했줬어.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도록 덤블도어가 허락해 주었다며? 1000갈레온의 상금, 그렇지? 게다가 너는 학기말 시험까지 치르지 않아도 되고..." 론은 머리카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눈썹을 위로 높이 치켜올렸다. "나는 불의 잔 속에 내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어!" 해리는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어. 좋아." 론은 케드릭과 똑같이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너는 지난밤에 그 일을 했어야만 했다고 말했지. 아무도 너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너도 알잖아. 난 바보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 넌 정말로 멍청이처럼 보여." 해리가 톡 쏘아붙였다. "그래? 해리, 그만 잠을 자고 싶겠구나. 사진을 찍거나 뭐 그런 일을 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까 말이야." 론의 얼굴에서 억지 웃음의 흔적조차 싹 사라지고 말았다. 론은 침대 기둥에 매달려 있는 커튼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해리는 문가에 서서 가만히 검붉은 벨벳 커튼을 노려보았다. 그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친구는 반드시 해리의 말을 믿어 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제18장 '포터는 야비하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뜬 해리는 한참 동안이나 왜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울적한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곧이어 지난밤의 기억이 물결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해리는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침대 커튼을 젖혔다. 론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말을 믿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벌써 론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실로 내려간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선형 계단을 지나서 휴게실로 내려갔다. 해리가 나타나자마자, 이미 식사를 끝낸 학생을 이 또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이대로 연회장으로 내려가서 해리를 마치 영웅처럼 대접하는 그리핀도르의 다른 학생들과 마주치는 것도 모두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그냥 머물러 있다가는 크리비 형제에게 꼼짝 없어 붙잡히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크리비 형제는 어서 빨리 자기들 옆에 와서 앉으라고 열광적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단호한 태도로 초상화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초상화를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헤르미온느와 얼굴을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안녕." 헤르미온느는 토스트 한 조각을 휴지에 싸서 손에 들고 있었다. "너에게 이걸 가져다 주려던 참이었어. 나와 함께... 산책하지 않을래?" "좋은 생각이야." 해리는 반가운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계단을 내려간 그들은 연회장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재빨리 현관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곧 잔디발을 가로질러서 호수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호수 위에는 덤스트랭의 배가 수면 위에 검은 그림자를 던지면서 정박하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차갑고 쌀쌀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토스트를 먹으면서 산책을 했다. 해리는 지난밤에 그리핀도르의 테이블을 떠난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헤르미온느에게 낱낱이 말해주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 해리. 물론 나는 네가 불의 잔에 스스로 이름을 넣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 해리가 연회장의 작은 방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고 나자,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덤블도어가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란! 하지만 문제는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는 거야. 무디의 말이 맞아, 해리... 나는 어떤 학생도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학생은 절대로 불의 잔을 속이거나 덤블도어의 나이 제한선을 넘을 수가 없어." "그런데 론을 보았니?"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잠시 동안 대답을 망설였다. "그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어." "아직도 내가 했다고 생각하고 있니?" "잘 모르겠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진심은 아닐 거야." 헤르미온느는 애매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그게 무슨 뜻이니? 진심은 아닐거라는 말이?" "오, 해리. 뻔한 일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진심을 털어놓았다. "론은 질투를 하는거야!" "질투라니?" 해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딱 벌렸다. "도대체 뭘 질투한다는 거지? 전교생 앞에서 악당이 되고 싶단 말이니? 그래?" "이것 봐." 헤르미온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건 바로 너였어. 너도 그건 알 거야."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성난 듯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네가 자칭한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글쎄,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론은 집에서도 항상 다른 형제들과 서로 경쟁을 하면서 자라왔어. 그리고 너는 론의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런데 너는 굉장히 유명하지. 론은 사람들이 너를 주목할 때마다 항상 옆으로 물러나 있어야만 했어. 물론 론은 그걸 잘 참았어. 지금까지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많은... "잘 했구나." 해리가 비꼬듯이 말했다. "정말 좋은 일이야. 론에게 가서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바꿔 주겠다고 전해줘. 마음대로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전해 달란 말이야... 내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내 이마에 나 있는 상처를 구경하지...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 건 네가 직접 말하도록 해. 이런 일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 방법밖에 없어." "나는 론이 철이 들도록 깨우쳐 주기 위해 그 뒤를 쫓아다니지는 않을거야!" 해리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근처의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부엉이 몇 마리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퍼덕거렸다. "언젠가는 내가 그렇게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론도 믿게 되겠지. 내 목이 부러지거나 아니면..."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마. 조금도 재미없어."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무척 심각했다. "해리. 난 줄곤 생각해봤어. 너도 우리가 뭘 해야 할 것이지 알고 있지? 그렇지? 이제 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겠니?" "물론 론을 보기좋게 걷어차는 거지!"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시리우스는 너에게 호그와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두 편지에 적어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잖아. 어쩌면 시리우스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마침 내가 양피지와 깃을 가지고 있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둬." 해리는 혹시라도 누가 그들이 나누고 있는 말을 엿듣지나 않았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사방은 아주 조용했다. "시리우스는 내 상처가 쑤신다는 말만 듣고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만약 누군가가 나를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도록 했다는 말을 들으면 시리우스는 당장 성 안으로 뛰어들지도 몰라." "시리우스는 네가 그 사실을 말해주기를 원할 거야. 반드시 시리우스는 뭔가를 밝혀낼 거야." 헤르미온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해리, 이건 그냥 조용히 덮어 둘 문제가 아니야. 이 시합은 아주 유명한 시합이야. 그리고 너도 유명하지. 만약 <예언자일보> 에 네가 이 시합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리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깜짝 놀랄 일이지. 그 사람에 관한 기사 중에서 절반은 이미 네 이름이 실려 있어. 그건 너도 알고 있을거야. 그러니까 시리우스는 차라리 너한테서 직접 듣고 싶어할 거야. 분명해." 헤르미온느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좋아, 좋아. 편지를 쓰겠어." 해리는 마지막 남은 토스트 조각을 호수 속으로 던져버렸다. 두 사람은 호숫가에 서서 빵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 속에서 커다란 촉수가 나오더니 빵조각을 끌고 들어갔다. 얼마 후에 두 사람은 성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누구의 부엉이를 사용할까? 시리우스가 헤드위그는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말라고 했어." 해리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물었다. "론에게 혹시 부엉이를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도록 해." "론에게는 어떤 부타도 하고 싶지 않아." 해리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학교 부엉이들 중에서 한 마리를 빌리자. 그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은 부엉이장으로 올라갔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양피지와 깃펜 그리고 잉크 한 병을 주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서 있는 횃대 주위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온갖 종류의 부엉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해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시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시리우스 호그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꼭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죠? 지금 그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벌써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토요일 밤에 거행되는 올해의 트리위저드 시합에 제가 네번째 챔피언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저는 누가 불의 잔에 제 이름을 적어넣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 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호그와트의 또 다른 챔피언은 후플푸프의 케드릭 디고리입니다 여기까지 쓴 해리는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 이후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거운지에 대해서 반드시 한 마디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심정을 글로 옮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병에 깃펜을 한 번 담갔다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디 무사하시길 빌어요. 그리고 벅빅도... 해리가 "끝났어."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가 옷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면서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헤드위그가 재빨리 해리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더니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너를 보낼 수는 없어." 해리는 고개를 들고 학교 부엉이들을 둘어보았다. "이 중에서 한 마리가 가야 해... 잔뜩 화가 난 헤드위그는 큰 소리로 울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발톱으로 해리의 어깨를 할퀴었다. 그리고 해리가 커다란 외양간 부엉이의 다리에 편지를 매는 동안 내내 방해를 했다. 간신히 외양간 부엉이가 날아가자, 해리는 손을 뻗어서 헤드위그를 어루만져 주려고 했다. 하지만 헤드위그는 맹렬한 기세로 부리를 딱딱거리더니 해리의 손이 닿지 않는 대들보 위로 날아가 버렸다. "처음에는 론이 그러더니 이제는 너까지 내 속을 썩이는구나!" 해리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야!" 해리는 자기가 학교 챔피언이 됐다는 소식에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좀 견디기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벌어진 일들은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이었는지 깨우쳐 주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자, 해리는 더 이상 다른 학생들을 피해서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리핀도르와 마찬가지로 다른 기숙사의 아이들도 해리가 자진해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핀도르와 다른 점이라면 그 일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다른 때에는 그리핀도르와 사이좋게 지내던 후플푸프도 그리핀도르 전체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약초학 수어 시간에 벌어진 그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후플푸프들은 자기네가 학교 챔피언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해리가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후플푸프 기숙사는 어떤 영예든지 차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케드릭은 퀴디치에서 그리핀도르를 이김으로써 후플푸프에 영광을 안겨주었던 몇 명 안 되는 학생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해리가 챔피언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더욱더 격분했던 것이다. 어니 맥밀란과 저스틴 핀치 플레츨리는 평소에 해리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었지만, 같은 접시에서 튀어오르는 구근을 다시 붙잡는 실습을 하면서 단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튀어오르는 구근 중에 하나가 해리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그의 얼굴에 세차게 부딪히는 것을 보자, 깔깔거리면서 기분 나쁘게 웃었을 뿐이다. 론도 해리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가 그들 사이에 앉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두 사람 모두 헤르미온느의 말에만 겨우 대답을 할 뿐, 서로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해리에겐 스프라우트 교수까지도 자신을 멀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후플푸프 기숙사의 담당 교수였던 것이다. 만약 다른 때 같았으면 해리는 해그리드와 만나는 순간을 무척 고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은 곧 슬리데린들과 부딪히는 것을 의미했다. 해리가 학교 챔피언이 된 이후로 슬리데린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말포이가 비웃음이 가득 차 있는 낯익은 얼굴로 해그리드의 오두막이 도착했다. "어이, 친구들. 여기 좀 봐. 챔피언이 나가시는데?" 말포이는 크레이브와 고일을 툭툭 치면서 해리의 귀에 들릴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너희들 사인북을 가지고 왔니? 지금 바로 해리의 사인을 받아두는 게 좋을거야. 왜냐하면 해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가 없거든... 아마도 트리위저드 챔피언 중에서 절반은 목숨을 잃었다지? 포터, 너는 얼마나 버틸 것 같니? 나는 첫번째 시합에서 10분도 못할 거라는 데 걸겠어." 크레이브와 고일은 말포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실없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말포이는 문득 입을 다 물었다. 갑자기 해그리드가 오두막집 뒤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해그리드는 마구 요동치는 나무 상자들을 높이 쌓아서 들고 있었는데. 그 상자 속에는 아주 커다란 폭탄 꼬리 스쿠루트가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해그리드의 설명은 들은 반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스크루트들은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힘이 남아돌면 서로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학생들이 스쿠루트를 한 마리씩 끈에 묶어서 잠시 동안이라도 산책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다. 이 일에서 딱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그 덕분에 말포이의 관심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저걸 데리고 산책을 하란말이야? 도대체 정확히 어디에다가 끈을 묶어야 한다는 거지? 침에다가? 터지는 폭탄 꼬리에다가? 아니면 빨판에다가?" 말포이는 스크루트가 들어 있는 상자를 노려보면서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자꾸만 되풀이해서 물었다. "가운데 부분에 묶어라." 해드리드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저 용 가죽 장갑을 껴도 좋다. 특별히 더 조심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해리, 너는 가까이 와서 이 큰 놈을 묶는 걸 좀 도와주렴... 물론 해그리드의 진정한 의도는 반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서 해리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었었다. 해그리드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스크루트를 데리고 산책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해리에게 몸을 돌려서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가게 되었구나, 해리. 학교 챔피언으로... 해리가 해그리드의 말을 정정했다. 텀수룩한 눈썹 밑에 달려 있는 해그리드의 두 눈은 검은 딱정벌레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해그리드의 두 눈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그걸 넣었는지 모르겠니, 해리?" "제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믿으세요?" 해리는 해그리드의 말을 듣는 순간, 홍수처럼 밀려드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이지. 나는 언제나 너를 믿는다. 그리고 덤블도어도 네 말을 믿을 거야." 해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면... " 해리가 분한 듯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서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이제 사방으로 흩어진 학생들은 무척 애를 먹고 있었다. 1미터 이상 자라난 스크루트들은 무척 힘이 셌다. 더 이상 색깔도 없고 껍질도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스크루트들의 표피는 두껍고 번쩍이는 일종의 회색 갑옷 같은 것으로 덮였으며, 그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전갈과 길게잡아 늘여 놓은 가재의 잡종처럼 보였다. 아직도 구별할 만한 머리나 눈은 없었지만, 날이 갈수록 스크루트들은 더욱 강해지고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모두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그렇지?" 해그리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해리는 아마도 해그리드가 스크루트들을 보고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스크루트의 폭탄 꼬리가 터질 때마다, 스크루트들은 몇 마일 밖으로 솟구쳤다. 스크루트의 줄을 잡고 있던 학생들은 땅에 질질 끌려가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려야만 했다. "난 모르겠다, 해리."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해리를 내려다보던 해그리드가 갑자기 크게 한숨을 쉬었다."학교 챔피언이라니... 모든 일들이 꼭 너한테만 일어나는 것 같구나. 안 그러니?" 해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 모든 일들이 다 자기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가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했던 말도 바로 그런 뜻이었다. 헤르미온느의 말에 따르면, 론이 더 이상 해리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이였다. 그 이후로 호그와트에서 보낸 며칠 동안은 해리에게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다.2학년 때 ,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해리가 동료 학생을 공격했다고 의심하던 몇 달 동안에도 이것과 아주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론이 해리의 편이었다. 해리는 예전처럼 론과 다시 다정한 친구가 될 수만 있다면, 학교 학생 전체와 맞서 싸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론이 원하지 않는 한, 애써 그에게 말을 걸거나 화해를 하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미움을 해리가 혼자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외로웠다. 해리는 후플푸프들의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후풀푸프들에게는 열렬히 응원해야 할 그들의 챔피언이 있었다. 처음부터 슬리데린들로부터는 악의에 찬 모욕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핀도르가 퀴디치 게임이나 기숙사들 사이의 경쟁에서 슬리데린을 꺾는 일에 종종 해리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래번클로만큼은 케드릭뿐만 아니라 해리 자신도 응원해 줄 거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대부분의 래번클로들은 해리가 불의 잔을 속여서 자기 이름을 집어넣을 만큼, 보다 커다란 명성을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사실 케드릭은 해리보다는 훨씬 더 챔피언답게 보였다. 곧게 뻗은 코와 검은 머리카락,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케드릭은 보기 드물게 잘 생긴 미남이었다. 요즘에는 케드릭과 빅터 크룸 중에서 누가 더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 해리는 빅터 크룸의 친필을 얻으려고 그토록 열성이던 6학년 여학생들이 점심 시간에 케드릭에게 가방에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 아직까지 시리우스로부터는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헤드위그는 해리의 곁에 절대로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트릴로니 교수는 다른 때보다 더욱 확신에 넘쳐서 해리의 죽음을 예언하고 다녔다. 게다가 플리트윅 교수의 수업에서는 소환 마법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별도 숙제까지 받았다. 별도 숙제를 받은 사람은 네빌을 제외하면 해리 한 사람뿐이었다. "그건 정말 별로 어렵지 않아, 해리." 플리트윅 교수의 교실에서 나오면서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헤르미온느는 수업 시간 내내 온갖 물건들이 교실을 가로질러서 그녀를 향해 날아오도록 만들었다. 헤르미온느는 마치 칠판 지우개나 휴지통, 천체 망원경 등을 끌어당기는 일종의 신기한 자석이라도 된 것 같았다. "너는 그저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았을 뿐이야."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케드릭 디고리가 일부러 꾸민 듯한 웃음을 짓는 수많은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해리의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해리가 괴상하게 몸집이 큰 폭탄 꼬리 스크루트라도 되는 듯이 힐끔거리면서 쳐다보았다. "신경 쓰지 마. 응? 오늘 오후에는 마법의 약 수업이 기다리고 있잖아..." 마법의 약 수업은 언제나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거의 고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스네이프 교수와 슬리데린들과 함께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것은 해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불쾌한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 감히 학교 챔피언이 되려고 한 해리에게 마땅히 벌을 주어야 한다고 굳게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지난 금요일에도 앉아 있던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시해 버려. 무시해 버리라구. 무시하면 되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분을 참기 위해 무척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오늘 수업이라고 해서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결코 없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스네이프 교수의 지하실에 도착했을 때, 슬리데린들은 이미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가슴에 커다란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잠시 동안 해리는 그것이 S.P.E.W.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배지에 모두 똑같은 구호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쩍이는 붉은 글씨로 적힌 구호는 어두운 지하실 통로 안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호그와트의 진정한 챔피언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 "어때? 마음에 들어, 포터?" 해리가 가까이 걸어가자 말포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야. 이걸 잘봐!" 말포이가 가슴에 달린 배지를 꾹 누르자, 적혀 있던 글씨가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초록색 글씨가 나타났다. 포터는 야비하다! 슬리데린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허리를 움켜쥐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제각기 가슴에 달린 배지를 눌렀다. 그러자 포터는 야비하다! 라는 글씨가 해리의 주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해리는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 재미있기도 하겠구나. 아주 재치가 있어." 헤르미온느가 슬리데린의 여학생들을 거느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요란하게 웃어대고 있는 팬시 파킨슨에게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딘과 시무스와 함께 벽에 등을 기댄채, 가만히 서 있었다. 비록 슬리데린들과 함께 웃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리의 편을 들어 주지도 않았다. "너도 하나 가질래, 그레인저?" 말포이가 헤르미온느에게 배지를 하나 내밀었다. "내겐 아주 많이 있거든. 하지만 내 손을 건드리지는 말아줘. 방금 전에 손을 씻었으니까 말이야. 잡종이 내 손을 더럽히는 건 원하지 않아." 지난 며칠 동안 해리의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분노가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앞을 다투어서 복도 뒤쪽으로 물러났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경고하듯이 소리쳤다. "어서 덤벼, 포터. "말포이가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들고 말했다. "너를 돌봐 줄 무디는 여기에 없어. 배짱이 있으면 어디 해 봐!" 눈 깜짝할 순간에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치더니 거의 동시에 지팡이를 휘둘렀다. "퍼넌쿨루스!" 해리가 지팡이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덴사우지오!" 말포이가 날카롭게 외쳤다. 두 사람의 지팡이에서 강렬한 빛이 분출되더니 가운데에서 충돌했다. 그리고 두 줄기의 빛은 제각기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해리의 빛은 고일의 얼굴에 맞았으며 말포이의 빛은 헤르미온느에게 맞았다. 고일은 커다랗게 울부짖으면서 코를 감싸안았다. 고일의 코에는 커다랗고 보기 흉한 종기들이 다닥다닥 솟아났다. 헤르미온느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입을 움켜쥐었다. "헤르미온느!" 론은 헤르미온느를 살펴보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왔다. 해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론은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손을 치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참혹한 모습이었다. 헤르미온느의 앞니가-그러잖아도 다른 사람의 앞니보다 훨씬 더 큰데-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의 앞니가 아랫입술을 지나서 턱까지 자라나자, 그녀의 모습은 점점 더 비버를 닮게 되었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헤르미온느는 앞니를 만지면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동이냐?" 나지막하고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 교수가 도착한 것이다. 슬리데린들은 저마다 설명하려고 아우성을 쳤다. 스네이프 교수는 길고 누런 손가락으로 말포이를 지적하면서 말했다. "네가 설명해라." "포터가 저를 공격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공격을 했어요!" 해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해리가 고일을 맞추었어요. 보세요." 말포이가 고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스네이프는 재빨리 고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고일의 얼굴은 이제 독버섯에 관한 책에 실리고도 남을 만한 모습이었다. "병동으로 가거라, 고일." 스네이프가 침착하게 말했다. "말포이는 헤르미온느를 맞추었어요. 보세요." 론은 이렇게 말하면서 억지로 헤르미온느의 앞니를 스네이프에게 보여 주었다. 헤르미온느는 손으로 앞니를 가리려고 했지만, 이제는 앞니가 거의 목까지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팬시 파킨슨과 다른 슬리데린의 여학생들은 스네이프의 등뒤에서 헤르미온느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웃음을 참기 위해 허리를 꼬부리고 난리였다. 스네이프는 냉정한 얼굴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난 별로 달라진 걸 모르겠다." 헤르미온느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뒤로 돌아서더니 어두운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려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해리와 론이 거의 동시에 스네이프를 향해 고함을 지른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그들의 목소리가 돌로 된 복도에 부딪혀서 왕왕 울린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스네이프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는지 스네이프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대충 그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스네이프는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핀도르에게 50점 감점이다. 그리고 포터와 위즐리는 한 시간 더 나머지 공부를 해라.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벌을 받게 될 거야." 해리의 귓속이 윙윙 울렸다. 스네이프의 판결이 몹시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갈가리 찢어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앞을 지나서 론과 함께 어두운 지하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위에 가방을 쾅 내려 놓았다. 론도 너무나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잠시 동안 두 사람 사이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론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더니 해리를 혼자 남겨둔 채, 딘과 시무스 옆에 앉았다. 교실 반대편에서는 말포이가 스네이프 몰래 배지를 눌러서 또다시 포터는 야비하다! 라는 글씨를 내보이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해리는 스네이프를 노려보면서 그에게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상상에 잠겼다. 만약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스네이프를 거미처럼 벌렁 나자빠지게 한 뒤 경련을 일으키게 할 텐데... "해독제!" 스네이프가 반 아이들을 모두 둘러보면서 말했다. 스네이프의 차가운 검은 눈동자가 기분 나쁘게 번쩍거렸다. "이제 너희들은 제각기 해독제를 제조할 준비를 하거라. 그리고 아주 조심해서 만들기를 바란다. 그 해독제를 실험해볼 사람을 고를 테니까... " 그러다가 스네이프의 눈길이 해리와 부딪혔다. 해리는 곧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깨달았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독을 먹일 작정이었다. 해리는 머리 속으로 솥단지를 번쩍 집어들고 교실 앞으로 달려나가서 스네이프의 기름진 머리 위에 쏟아붓는 상상을 했다. 그 순간 지하 교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바람에 해리는 더 이상 공상을 할 수가 없었다. 지하 교실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콜린 크리비였다. 콜린 크리비는 교실로 들어오면서 해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 곧장 스네이프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스네이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해리 포터를 위층으로 데려가야 하겠습니다." 스네이프는 구부러진 코를 내리깔면서 콜린을 노려보았다. 싱글벙글하던 콜린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포터는 한 시간 더 공부를 해야 한다. 수업이 다 끝나면 올려보내주마." 스네이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콜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선생님, 베그만 씨가 포터를 불렀어요." 콜린은 초조한 듯이 말했다. "챔피언들은 모두 가야만 한답니다. 제 생각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것 같아요..." 해리는 콜린의 마지막 말을 막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주었을 것이다. 해리는 재빨리 론을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론은 단호한 자세로 천장만 노려보고 있었다. "잘 하는군. 아주 잘 해." 스네이프가 톡 쏘아붙였다. "포터, 네 소지품들은 그대로 두고 가거라. 다시 돌아오면 네가 만든 해독제를 꼭 시험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 해리는 소지품을 다 가져가야만 하는데요. 챔피언들은 모두 다..." 콜린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잘 하는 짓이다! 포터, 가방을 싸서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스네이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가를 향해 걸어갔다. 슬리데린들의 책상 앞으로 지나가자, 사방에서 포터는 야비하다! 라는 글씨가 해리를 향해 반짝거렸다. "정말 굉장하지 않아, 해리?" 해리가 지하 교실의 문을 닫자마자 콜린이 성급히 말을 걸었다. "그렇잖아? 챔피언이 되는 것 말이야!" "그래, 정말 굉장해." 해리는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현관 복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왜 사진을 찍는 거니, 콜린?" "아마도 <예언자 일보>에 실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잘됐구나." 해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좀더 커다란 명성을 얻는 일." "행운을 빌어!" 오른쪽 교실 앞에 도착하자 콜린이 말했다. 해리는 문을 두드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주 작은 교실이었다. 대부분의 책상들이 교실 뒤쪽으로 치워져 있었으며 교실의 중앙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칠판 앞에는 책상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기다란 벨벳천으로 덮여 있었다. 벨벳이 씌워진 책상 뒤에는 다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베그만이 그 중의 한 의자에 앉아서 어떤 마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가 생전 처음 보는 그 마녀는 선명한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평소처럼 한쪽 구석에 우울하게 서 있었다. 빅터 크룸은 좀처럼 다른 사람과 말을 하지 않았다. 케드릭과 플뢰르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플뢰르는 해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보였다. 플뢰르는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이면서 빛을 내도록 연신 머리를 뒤로 넘겼다. 커다란 검은색 카메라를 든 채 입에 담배를 물고있던 배불뚝이 남자는 곁눈질로 플뢰르를 훔쳐보기에 바빴다. 문득 해리를 발견한 베그만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달려 나왔다. "오, 왔구나! 네 번째 챔피언! 이리 오너라.해리, 이리 와.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거라. 이건 단지 지팡이를 검사하는 절차일 뿐이니까. 다른 심판관들도 곧 도착하실... " "지팡이를 검사한다구요?" 해리가 불안한 듯이 되물었다. "우리는 너의 지팡이가 아무런 이상 없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지 조사해야만 한단다. 너도 알다시피 시험에서는 지팡이가 가장 중요한 도구이니까 말이야." 베그만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지금 전문가들이 덤블도어와 함께 위층에 있단다. 그런 다음에 잠깐 사진을 찍을 거야. 이쪽은 리타 스키터란다. 트리위저드 시합 기간에 <예언자 일보>를 위해 몇 가지 사소한 일을 할거란다." 베그만이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 마녀를 가리켰다. "그렇게 사소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루도." 리타 스키터가 해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교하게 손질한 리타 스키터의 머리카락은 신기할 정도로 구불거렸는데 삐죽 튀어나온 턱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리타 스키터는 보석이 박힌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악어 가죽 핸드백을 꼭 잡고 있는 굵은 손가락 끝에는 진홍색으로 칠해진 손톱이 거의 5센티미터나 길게 자라나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 잠시 해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리타 스키터는 줄곧 해리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최연소챔피언이라... 너를 좀 강조해도 되겠지? "당연하지! 해리도 반대하지 않겠지?" 베그만이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소리쳤다. "뭐... " 해리가 약간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 "아주 좋아." 리타 스키터는 순수식간에 길고 빨간 손톱이 나 있는 손가락으로 해리의 팔뚝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교실 밖으로 끌어내더니 옆방 문을 열었다. "저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너랑 있고 싶지는 않구나." 리타 스키터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어디보자... 그래, 아주 아늑하고 멋진 장소로구나." 그곳은 빗자루를 넣어두는 창고였다. 해리는 멍하니 리타 스키터를 바라보았다. "자, 이리 와라. 바로 그거야. 멋져." 리타 스키터는 뒤집어 놓은 양동이 위에 아슬아슬하게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해리에게 종이 상자 위에 앉으라고 말했다. 문을 닫자, 깜깜한 어둠 속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어디 보자... " 리타 스키터는 악어 가죽 핸드백을 열어서 양초를 한 무더기 꺼냈다. 그리고 지팡이를 흔들어서 불을 붙인 다음 허공으로 떠올리자, 간신히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해리, 속기 깃펜을 사용해도 괜찮겠지? 그걸 사용하면 평소처럼 너에게 자유롭게 말을 걸 수 있거든... " "그게 뭐죠? 해리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리타 스키터의 미소가 더욱 커지면서 반짝이는 세 개의 금니가 보였다. 리타 스키터는 다시 악어 가죽 핸드백에 손을 집어넣더니 길고 선명한 초록색 깃펜과 양피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다목적 마법 지우개의 상자 위에 펼쳐놓았다. 리타 스키터는 깃펜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듯이 한참 동안이나 쭉쭉 빨았다. 그런 다음에 양피지 위에 똑바로 세워 놓자, 깃펜은 저절로 중심을 잡고 서더니 조금씩 흔들렸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내 이름은 리타 스키터. <예언자일보>의 기자다." 해리는 재빨리 깃펜을 내려다보았다. 리타 스키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록색 깃펜은 양피지 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글씨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금발의 리타 스키터. 나이는 마흔 셋. 그녀의 잔인한 펜은 수많은 엉터리 유명인사들을 작살내고 말았다... "훌륭해!" 리타 스키터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리타 스키터는 양피지의 윗부분을 찢어서 구기더니 핸드백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래, 해리... 도대체 무엇 때문에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지?" 리타 스키터는 해리를 향해 몸을 숙였다. "어... " 해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깃펜에 완전히 정신을 팔려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깃펜은 혼자서 양피지 위를 쏜살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깃펜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지난날 비극의 흔적으로 남은 보기 흉한 상처가, 분명히 매력적이었을 해리 포터의 외모를 망쳐 놓았다. 해리의 눈동자는... "깃펜은 무시하거라, 해리." 리타 스키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해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고 리타 스키터를 바라보았다. "자, 너는 어째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지, 해리?" "전 결심하지 않았어요. 저는 왜 제 이름이 불의 잔 속에 들어갔는지도 몰라요. 제가 넣지 않았거든요." "이봐, 해리. 무슨 말썽이라도 일어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 네가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의 독자들은 반항아를 좋아하니까... " 리타 스키터는 아이 펜슬로 짙게 그려진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해리가 되풀이하면서 말했다. "도대체 누가 그랬는지도 몰라요... " "시합을 앞둔 심정이 어떠니? 흥분되니? 초조하니?" 리타 스키터가 해리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글쎄요... 약간 초조한 것 같아요." 해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어쩐지 뱃속이 불안하게 꿈틀거렸다. "과거에 챔피언들이 죽은 적도 있었지? 그렇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니?" 리타 스키터가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올해 벌어지는 시합은 훨씬 더 안전할 거라고 했어요."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깃펜은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이 양피지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너는 오래 전에도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지? 그렇지 않니?" 리타 스키터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 일이 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니?" "어... " 해리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네가 더욱더 네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니? 네 이름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쩌면 그 일 때문에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해리는 차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게 있니?" 리타 스키터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뇨." "만약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가는 줄 알면 네 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자랑스러워하실까? 아니면 걱정을 하실까? 화를 내실까?" 이제 해리는 정말로 고통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부모님들이 살아 계시면 지금 어떤 심정일지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리타 스키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해리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리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리타 스키터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깃펜이 방금 전에 휘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우리의 대화가 거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이르자, 별처럼 반짝이는 해리의 초록색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요!"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리타 스키터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빗자루 보관 창고의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을 깜박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덤블도어!" 리타 스키터는 만면에 기쁨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해리는 리타 스키터의 깃펜과 양피지가 갑자기 마법의 지우개 상자 위에서 싹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손톱을 길게 기른 리타 스키터의 손이 황급히 악어 가죽 핸드백을 탁 닫았다. "어떻게 지냈어요?" 리타 스키터는 남자처럼 크고 억센 손을 덤블도어에게 내밀었다. "혹시 지난 여름에 내가 국제 마법사 연맹 회의에 대해서 쓴 기사를 읽었나요?" "아주 인상적일 만큼 심술궂은 기사였소. 특히 당신이 나를 퇴물이 된 멍청이라고 묘사한 대목이 재미있었소." 덤블도어가 눈을 찡끗거렸다. "덤블도어, 나는 단지 당신의 생각 중에서 일부가 약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거리의 많은 마법사들은... " 리타 스키터는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리타, 나 또한 그런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소." 덤블도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작별의 뜻으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나중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소. 이제 곧 지팡이 검사가 시작될 거요. 그런데 우리 챔피언 중에 한 명이 빗자루 보관 창고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으면, 검사를 시작할 수가 없소." 마침내 리타 스키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면서 해리는 서둘러 교실로 돌아갔다. 다른 챔피언들은 문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해리는 재빨리 캐드릭의 옆자리에 앉아서 벨벳이 씌워진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네 명의 심판들이 앉아 있었다. 카르카로프 교수와 맥심 부인, 크라우치 씨 그리고 루도 베그만이었다. 리타 스키터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리는 리타 스키터가 또다시 핸드백에서 양피지를 슬쩍 꺼내더니 무릎 위에 펼쳐놓고 속기 깃펜의 끝을 쪽쪽 빠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리타 스키터는 양피지 위에 깃펜을 살짝 올려놓았다. "이제 올리밴더 씨를 소개할까요?" 덤블도어가 심판 자리에 앉으며 챔피언들에게 말했다. "시합이 열리기 전에 여러분의 지팡이가 아무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주실 분입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은백색의 눈동자를 가진 늙은 마법사가 창가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해리는 오래 전에 이 노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노인은 해리가 3년 전에 다이애건 앨리에 갔을 때, 지팡이를 구입했던 지팡이 제작자였다. "마드모아젤 델라쿠르, 제일 먼저 봐도 될까?" 올리밴더가 교실의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올리밴더에게 가서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음... " 올리밴더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마치 지휘봉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분홍색과 황금색의 불꽃이 튀어나왔다. 올리밴더는 지팡이를 눈앞에 바싹 갖다 대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렇구나". 올리밴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24센티미터... 휘어지지도 않고... 장미목... 그리고 안에 넣은 것은...오, 이런..." "벨라의 머리카락이에용. 할모니 거였지용." 플뢰르가 올리밴더를 쳐다보았다. 그렇구나. 플뢰르는 벨라의 혈통이였구나. 해리는 머리 속으로 론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는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곧 론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올리밴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나는 물론 벨라의 머리카락을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단다. 그걸 쓰면 요술지팡이가 다소 변덕스럽게 되지... 그래도 너에게 맞기만 하다면..." 올리밴더는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더듬었다. 긁힌 자리나 파인 곳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에 올리밴더가 중얼거렸다. "오르치데우스!"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한 다발의 꽃이 튀어 나왔다. "아주좋아. 아주 좋아. 훌륭하게 작동되는군" 올리밴더는 꽃다발을 들어서 플뢰르의 지팡이에 매달았다. "자, 디고리 군. 다음 차례..."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 플뢰르는 케드릭의 곁을 지나가면서 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던졌다. "아, 이건 내가 만든 지팡이야. 그렇지?" 올리밴더는 케드릭이 지팡이를 건네주자,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특별히 멋진 수컷 유니콘의 꼬리에서뽑은 털 한올을 넣었지... 그 유니콘은 17폭 정도 되는 놈이였어. 31센지미터... 물푸레나무... 탄력이 좋군. 아주상태가 좋아....규칙적으로 지팡이를 손질하고 있니?" "지난밤에도 광을 내주었어요." 케드릭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문득 자신의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에 손자국이 나있었다. 해리는 바지 자락을 끌어 당겨서 몰래 지팡이를 닦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황금색 불꽃이 튀어나왔다. 플뢰르는 몹시 딱하다는 듯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지팡이를 닦는 것을 그만두었다. 올리밴더는 케드릭의 지팡이 끝에서 은빛 연기 고리가 솟아 오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내면서 말했다. "자, 이제 크룸 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빅터 크룸은 둥근 어개를 구부정하게 늘어뜨린 채 팔자 걸음으로 올리밴더에게 다가갔다. 빅터 크룸은 지팡이를 휙 내밀더니 호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넣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음". 올리밴더가 입을 열었다. "이건 그레고로비치의 작품이군. 내 말이 맞지? 그레고로비치는 훌륭한 지팡이 제작자였지. 비록 그 스타일은 별로 내 마음에... 어쨌거나..." 올리밴더는 지팡이를 들고 몇 분 동안 이리저리 뒤집어보면서 시험을 해보았다. "그래, 자작나무와 용의 심금인가?" 올리밴더는 빅터 크룸을 쳐다보았다. 빅터 크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보는 것보다 조금 두껍군... 아주 단단해... 26세티미터... 아비스!" 자작나무 지팡이는 총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이 지팡이 끝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날아 가버렸다. "좋아", 올리밴더는 크룸에게 지팡이를 돌려주었다. "자, 이제는 누가 남았나... 포터군." 해리는 벌떡일어나서 크룸 곁을 지나 올리밴더를 향해 다가갔다. 올리밴더는 해리의 지팡이를 건네받았다. "아하, 그래". 올리밴더의 창백한 눈동자가 갑자기 빛을 발했다. "그래, 그래, 그래.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해리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지금으로부터 네 번을 거슬러 올라간 여름, 열한 번째 생일날에 해리는 해그리그와 함께 지팡이를 구입하기 위해 올리밴더의 상점을 찾아같었다. 올리밴더는 해리의 치수를 재고 지팡이를 시험해보도록 했다. 상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지팡이를 다 휘둘러보았던 해리는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지팡이를 찾아내었다. 그것이 바로 서양호랑가시나무로 만들었고 불사조의 깃털이 들어간 28센티미터 길이의 지팡이였다. 올리밴더는 해리가 이지팡이와 그렇게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상해." 올리밴더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해." 그리고 해리가 무엇이 그렇게 이상한지 물었을 때, 올리밴더는 해리의 지팡이가 불사조의 깃털이 볼드모트 경의 지팡이에 들어 간 것과 같은 불사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해리는 이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해리는 이지팡이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비록 볼드모트의 지팡이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리가 페투니아 이모와 어쩔 수 없이 친척관계인것과 마찬가지였다. 해리는 올리밴더가 교실 안에서 그 사실을 누설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리타 스터키의 속기 깃펜이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터져버릴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밴더는 해리의 지팡이를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마침내 올리밴더는 지팡이 끝에 포도주가 솟아나도록 만든 다음에 지팡이가 완벽한 상태라고 선언하면서 해리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모두 고맙습니다." 덤블도어가 심판 책상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다시 수업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아마도 곧바로 식당으로 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서둘러요.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까요." 마침내 오늘 일이 무사히 끝났구나 생각하면서 해리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검은색 카메라를 든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헛기침을 했다. "사진이오, 덤블도어. 사진!" 베그만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래요. 먼저 전체 사진을 찍죠. 그런 다음에 각자의 사진을 찍도록 해요." 리타 스터키의 눈길은 다시 해리를 뒤쫓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맥심 부인은 어느 쪽에서든지 간에 모든 사람이의 머리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게다가 사진가가 아무리 뒤로 물러서도 맥심 부인은 전부 다 나오도록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맥심 부인은 의자에 앉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주위에 서있기로 했다. 카르카로프는 손가락으로 연신 콧수염을 고면서 수염이 멋지게 말리도록 했다.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빅터 크룸은 오히려 사람들의 뒤 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다. 사진사는 플뢰르를 제일 앞에 세우고 싶어서 안달이였다. 하지만 리타 스터키가 서둘러 달려오더니 해리를 제일 잘보이는 곳으로 끌어내었다. 그런 다음에 모든 챔피언들이 제각기 독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챔피언들은 해방될 수 있었다. 해리는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헤르미온느는 그곳에 없었다. 아마도 앞니를 고치기 위해 아직 까지도 병동에 있는것 같았다. 식탁 끝에 앉아서 혼자 식사를 마친 해리는 해야할 소환 마법 숙제를 생각하면서 그리핀도르의 탑으로 돌아갔다. "너에게 부엉이가 왔어." 해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론이 불쑥 말을 걸었다. 론은 손을 들어서 해리의 베개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학교의 외양간 부엉이가 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래."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수업을 받아야만 해." 이렇게 말한 론은 한번도 해리를 돌아보지 않고 곧장 방에서 나가 버렸다. 잠시 동안에 해리는 론의 뒤를 따라갈까 망설였다. 아직도 론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한방 갈기고 싶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양쪽 모두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의 답장을 읽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해리는 외양간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부엉이의 다리에서 편지를 떼어내어 펼쳐 보았다. 해리 편지를 통해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가 없구나. 만약 누군가 도중에 부엉이를 가로 체기라도 한다면 너무나 위험해. 그러니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 11월 22일 새벽1시에 그린핀도르 탑 벽난로 옆에 혼자 나와 있을 수 있겠니? 네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느 누구 보다더 잘 알고 있단다. 또 덤블도어와 무디가 네곁에 있는 한, 아무도 너를 해칠 수는 없을 꺼야. 하지만 누군가가 계속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너를 시합에 참가하도록 한 것은 아주 위험한 모험이었었어. 더구나 덤블도어의 코앞에 서 말이야. 조심하거라, 해리 이 이상한 일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듣고 싶구나. 가능한 빨리 11월 22일에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거라. 시리우스 제19장 헝가리의 혼 테일 지난 이 주일 동안 해리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오직 시리우스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뿐이었다. 그것은 이보다 결코 더 어두울 수 없을 것 같은 지평선 위에 떠오른 단 하나의 빛이였다. 이제 자신이 학교 챔피언이 되었다는 충격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앞으로 겪에 될 일에 대한 두려움도 차츰차츰 가라앉는다. 첫번째 시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리는 그것이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잔뜩 도사린 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불안한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퀴디치 게임 전날에도, 심지어 퀴디치 컵의 승자를 가리기 위해 슬리데린과 마지막 게임을 치르는 날에도 이런 긴장감을 느껴 보았던 적이 없었다. 해리는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마치 해리의 모든 인생이 오직 첫번째 시험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것과 더불어 끝날 것 같았다... 솔직히 해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알지도 못하는 어렵고 위험한 마법을 행해야만 하는 자신의 기분을 시리우스가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정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였다. 해리는 시리우스에게 예정된 시간에 휴게실 벽난로 옆에 있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밤중에 어떻게 휴게실 근처를 아무도 어슬렁거리지 못하도록 할 것인가 대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만약 최악 의 경우가 되면, 똥 폭탄 가방이라도 던질 작정이였다. 하지만 부디 그것만은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필치가 그들을산 채로 껍질을 벗기려고 덤벼들 것이다. 성안에서 보내는 해리의 생활은 더욱 나빠졌다. 리타 스키터가 트리위저드 시합보다는 대단히 과장된 해리의 인생 이야기가 더욱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으로 드러났다. 1면의 대부분은 해리의 사진이 차지했으며 2면, 6면, 7면으로 계속 이어지는 기사는 오직 해리에 관한 기사들 것뿐이였다. 보바통이나 덤블스트랭(심지어 철자도 틀렸다)의 챔피언의 제일 마지막 줄에 잠깐 등장했고 케드릭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 기사가 발표된지 벌써 열흘이 흘렀지만, 해리는 아직도 그 기사를 떠올릴 때마다 밀물처럼 수치감이 밀려오고 뱃속이 매슥거려 토할 것만 같았다. 리타 스키터는 해리가 빗자루 보관 창고에서는 물론이고 일생 동안 단 한번도 말한 기억이 없는 사실들을 엄청나게 써놓았다. 제가 지니고 있는 힘은 힘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내 모습을 보신다면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요. 지금도 밤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트리위저드 시합 동안에 그 어떤 것 도 저를 해칠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 분들이 저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리타 스터키는 해리가 단지 '어...' 라고 한 말을 좀더 길고 매끄러운 문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해리에 대해 다른 사람들괴 인터뷰한 기사까지 실어 놓았다. 마침내 해리는 호그와트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했다. 해리의 가까운 친구인 콜린 크리비는 해리가 헤르미온느 그레인자와 떨어져 있는 모습 은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헤르미온느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머그 태생의 소녀로, 해리와 학교의 최우등생 중의 한 명이다. <예언자 일보>에 그 기사가 나간 후로부터 해리는 사람들, 특히 슬리데린들이 그가 지나갈 때마다 빈정거리는 어조로 기사를 인용하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포터, 변신술 수업에서 네가 울음을 터트리면 손수건 이라도 갖다 줄까?." "포터, 언제부터 네가 우리학교의 최우등생이 되었지? 아니면 너와 롱바텀 둘이서 따로 학교를 세우기라도 한 거니?" "헤이, 해리!" "그래, 맞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된 해리는 복도를 돌아 서면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서 줄곧 눈물을 흐렸어! 그리고 지금도 막..." "아니야, 해리 지금 막 너의 깃펜을 떨어트렸어." 해리의 눈앞에는 뜻밖에도 초 챙이 서있었다. 해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 그래. 미안해." 해리는 깃펜을 주워들면서 중얼거렸다. "저... 화요일에 행운을 빌어. 네가 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래." 초 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 이였다. 헤르미온느도 해리와 똑같이 불쾌한 일을 당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해리처럼 공연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구 고함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실 해리는 이런 이 상황을 능숙하게 다루는 헤르미온느의 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아름답다구, 헤르미온느?" 리타의 기사가 나간 후 처음으로 헤르미온느와 얼굴을 마주쳤을 때, 팬시 파키슨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도대체 그 여자는 뭘 기준으로 한 거지? 얼룩 다람쥐?" "무시해." 헤르미온느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킬킬거리고 있는 슬리데린의 여학생들의 사이를 당당하게 걸어갔다. 마치 귀에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냥 무시해, 해리." 하지만 해리는 무시를 할 수가없었다. 론은 스네이프 교수의 보충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로 한번도 해리에게 말을 걸지않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지하 교실에서 두시간 동안이나 론과 함께 생쥐의 뇌를 식초에 절이는 동안 그와 화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날은 바로 리타의 기사가 발표된 날 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가 사람들 의 주목을 받고 싶어한다는 론의 믿음은 더욱 굳어 진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두 사람의 태도에 대해서 잔뜩 하가 났다. 해르미온느는 해리와 론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화해를 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해리의 결심은 돌처럼 단단했다. 오직 론이 해리가 불의 잔에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 이였다. 그런 다음에 다시 론과 말을 할 작정 이였다. "이건 내가 시작한 게 아니야. 론의 문제란 말이야." 해리가 고집을 부리면서 말했다. "너는 론을 그리워한다구? 아니야. 너는 그리워 한다는 걸 나는 조금도 론이 그립지않아..." 하지만 그것은 뻔한 거짓말 이였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론과 같지는 않았다. 헤르미온느를 가장 친한 친구로 삼는다면, 함께 웃을 일보다는 도서관을 헤메고 돌아다닐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해리는 아직까지도 소환 마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 마치 단단한 벽이 자기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 헤르미온느는 소환 마법의 이론을 알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꺼라고 주장했다. 결국 두 사람은 점심시간 내내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빅터 크룸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해리는 도대체 빅터 크룸이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공부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첫번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만 한 것들을 찾고 있는 것일까? 헤르온미온느는 종종 빅터 크룸이 도서관에 있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론 빅터 크룸이 그들을 방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종종 킬킬거리는 여학생들이 서가 뒤에서 빅터 크룸의 모습을 엿 보기 위해 무리를 지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헤르미온느는 그 소리가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심지어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저 여자애들은 단지 크룸이 유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야! 만약 크룸이 윙키 페인트인가 뭔가 하는걸 할 수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걸!" 잔뜩 화가 난 헤르미온느는 날카로운 빅터 크룸의 옆 모습을 노려보고 투덜거렸다. "렁스키 페인트야." 해리가 이를 악 물면서 대답했다. 퀴디치 용어를 올바르게 고쳐주는 것은 좋았지만, 헤르미온느가 윙키 페인트라고 말한 것을 론이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 이상한 일 이였다. 무엇인가 다가오는 게 두려워서 시간이 늦추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 시간은 오히려 심술궂게 더욱 빨리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다. 첫 번째 시험 전까지 시간은 누군가 마치 두 배로 빠르게 움직이도록 시계를 고쳐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제 해리가 어디를 가든지<예언자 일보>의 기사를 두고 헐뜯는 말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거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고통이 해리를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을 바로 앞둔 토요일 3학년 이상의 모든 학생들은 호그스미드 마을을 방문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잠시 동안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해리도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하지만 론은 어떻게 하고? 너는 론과 함께 하고 싶지 않니?"해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음... 그건..." 헤르온미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마도. 우리는 스리 브룸틱스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싫어." 해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 해리. 그건 너무 멍청한 짓이야." "나도 그곳으로 가긴 갈 거야. 하지만 론을 만나지는 않겠어. 나는 투면 망토를 쓰고 갈 거야." "그렇다면 좋아." 해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하지만 나는 투명 망토를 쓴 너와는 말하는 게 싫어. 네가 거기에 있는지 모르잖아." 결국 해리는 기숙사에서 투명 망토를 쓰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와 함께 호그스미드로 출발했다. 투명 망토를 쓰자 해리는 놀라울 만큼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이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 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배지를 달고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해리에게 끔직한 말을 하거나 <예언자 일보>에 실린 그 한심한 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어. 내가 혼자 중얼거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크림이 잔뜩 들어간 초콜릿을 먹으면서 허니 듀크 과자가게를 나오던 헤르미온느가 투덜거렸다. "입술을 그렇게 크게 움직이지 않고 말하면 되잖아." "이봐 해리 제발 그 투명한 망토 좀 벗어. 여기서는 아무도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오, 그래? 네 뒤를 한번 돌아보렴." 해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리타 스터키가 사진 기자를 데리고 막 스리 브룸스틱스 술집에서 나오는 중이였다. 그들은 커다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헤르미온느의 곁을 지나갔다. 해리는 리타 스터키의 악어 가죽핸드백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허니듀크 상점의 담벼락에 딱 붙어 섰다. 그들이 가버리자, 해리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저 여자는 지금 이 마을에서 묵고 있어. 분명히 첫번째 시험을 구경하러 올 거야." 그 말을 하는 순간, 해리의 뱃속이 뒤틀리면서 희미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그 일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이제 갔어." 헤르미온느가 투명망토를 쓰고 있는 해리 너머로 길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스리 브룸스틱스에 사서 버터 맥주나 한잔 마시지 않을래? 좀 춥지 않니? 거기 간다고 해서 꼭 롬하고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 해리가 선뜻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린 헤르미온느가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스리 브룸스틱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자유로운 오후 시간을 즐기려고 나온 호그와트의 학생들 이였다. 하지만 그밖에도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온갖 다양한 마법사들이 보였다. 해리는 호그스미드가 영국에서 마법사들만 사는 유일한 마을이기 때문에 늙은 마녀에게는 일종의 천국과도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녀들은 마법사처럼 머그들 사이에서 자신을 위장하는 일에 벼로 능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투명 망토를 입고 복잡한 사람들이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의 발을 밝게 되면, 당장 이상한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헤르미온느가 맥주를 사는 동안에, 해리는 가장자리를 따라 구석진 빈 자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프레드, 조지 그리고 리 조던과 함께 앉아 있는 론의 모습이 보였다. 론의 뒤통수를 한 방 세게 갈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해리는 마침내 테이블에 도달해서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에 테이블로 돌아온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투명 망토를 밑으로 슬쩍 맥주를 건네주었다. "여기 이렇게 혼자 있으니까, 내가 정말 한심한 멍청이처럼 보인다." 헤르미온느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도 뭔가 할 일이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헤르미온느는 S. P. E. W. 회원의 명단을 적어놓은 노트를 꺼냈다. 얼마 안 되는 명단의 제일 꼭대기에는 해리와 론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들이 함께 계획을 짜고 헤르미온느가 그들을 간사와 회계 담당으로 임명했던 것이 아주 오래 전의 일처럼 여겨졌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마을 사람들이 S. P. E. W. 에 가입하도록 설득해 보겠어." 헤르미온느는 진지한 표정으로 술집을 둘러보았다. "그래, 그렇구나." 해리는 투명 망토 밑에서 버터 맥주를 한모금 들이마셨다. "헤르미온느, 그런데 너는 도대체 언제 이지겨운 일을 포기할 생각이니?" "꼬마 집 요정들이 정당한 임금과 근로 조건을 얻게 될 때까지!" 헤르미온느가 작은 목소리 속삭였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좀더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런데 학교 주방에는 어떻게 들어가니? "난 몰라. 프레드와 조지에게나 한번 물어봐."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입을 다물고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해리는 버터 맥주를 마시면서 술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모두 다 유쾌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어니 맥밀란과 한나 아보트는 근처 테이블에서 개구리 초콜릿 카드를 서로 교환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망토 위에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 라는 배지를 달고 있었다. 술집으로 들어오는 문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초와 여러명의 래번클로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초는 가슴에 케드릭을 응원하는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은 해리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위로해 주었다 이 사람들 틈에 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 함께 둘러앉아서 웃고 떠들며 숙제 이외에는 다른 아무런 근심도 없이 지낼 수만 있다면, 해리는 이 세상 무엇의 그 무엇이라도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과연 어떤 기분으로 여기에 앉아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해리는 지금처럼 투명 망토를 입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론은 해리의 곁에 앉아 있을 것이고, 그들 세 사람은 학교 챔피언이 화요일에 치러야 하는 그 무섭고 위험하다는 시험이 무엇이든 즐겁게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리는 그 날이 어서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고대했을 것이고, 그 시험이 무엇이든 간에 관중석 뒤에 앉자서 안전하게 구경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케드릭을 응원하면서... 해리는 다른 챔피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최근에 케드릭 디고리는 약간 초조해하면서도 무척 활기에 넘치는 것 같았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이따금씩 복도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나 평소와 똑같이 거만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빅터 크룸은 도서관에 앉아서 책에다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해리는 머리 속으로 시리우스를 떠올렸다. 그러자 가금 속에 팽팽하고 딱딱하게 맺혀 있던 응어리가 금세 녹아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12시간만 지나면,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바로 오늘 밤에 두 사람은 휴게실 벽난로에서 만날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다른 일들이 그렇듯이 더 이상 꼬이지만 않는다면... "저기를 봐! 해그리드야!"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해그리드의 텁수룩하고 거대한 뒤통수가 다른 사람들 위로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해그리드는 더 이상 머리를 묶을 생각은 포기한 것 같았다. 해리는 왜 진작 덩치 큰 해그리드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가만히 허리를 숙인 채 무디 교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해그리드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해그리드의 앞에는 그가 늘 사용하는 거대한 맥주잔이 놓여 있었다. 예쁘장한 술집 주인인 로드메르타 부인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빈 술자을 치우던 로즈메르타 부인은 자꾸만 무디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로즈메르타 부인은 무디의 행동이 자기네 꿀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해리는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무디는 학생들에게 자신은 언제나 음식과 마실 것을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잔에 다 독을 타는 것쯤은 어둠의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누워서 떡먹기라는 주장이었다. 해리가 지켜보는 동안, 해그리드와 무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문득 해그리드가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무디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신비한 눈으로 해리가 앉아 있는 구석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그리드의 등(도저히 어깨에는 무디의 손이 닿지 않았다)을 탁 치더니 뭐라고 속사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술집을 가로질러서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잘 지내냐, 헤르미온느?" 해그리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헤르미온느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무디는 테이블 주위를 절뚝거리면서 돌아다니더니 허리를 약간 숙였다. 해리는 아마도 무디가 S.P.E.W. 공책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디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멋진 망토구나, 포터." 해리는 너무나 놀라서 무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보니까, 커다랗게 살점이 떨어져 나간 무디의 코가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무디는 씩 웃었다. "선생님이 눈은... 그러니까 저를 볼 수가 있지." 무디가 작게 소곤거렸다. 때때로 꽤 쓸모가 있단 말이야." 해그리드도 해리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리는 해그리드가 자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무다기 해그리드에게 비금 해리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 주었을 것이다. 해그리드는 허리를 숙이면서 S.P.E.W. 공책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그리고 해리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해리, 오늘 밤 자정에 오두막집으로 나를 찾아오너라. 그 투명 망토를 입고 와." 다시 몸을 일으킨 해그리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갑구나, 헤르미온느." 해그리드가 오늘 밤에 나를 만나자고 하는 걸까?" 해리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랬어?"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해리, 네가 가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어... 잘못 하다가는 시리우스와의 약속에 늦을지도 몰라." 헤르미온느는 불안한 눈길로 주위를 살펴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헤르미온느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자정에 해그리드를 찾아간다면, 까딱하다간 시리우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헤르미온느는, 헤그리드의 오두막으로 헤드위그를 보내서 갈 수 없다는 전갈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물론 헤드위그가 전갈을 전해주겠다고 동의를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해리는 해그리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재빨리 알아보는 편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해그리드는 한번도 그렇게 늦은 밤에 해리를 불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11시 30분이 되자, 일찍 잠자리에 드는 척했던 해리는 투명 망토를 입고 휴게실로 향하는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갔다.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몇 명의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크리비형제가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라는 글씨가 적힌 배지르 어렵게 구해 와서는 해리 포터 이겨라!라는 구호를 바꾸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간신히 할 수 있었던 일은 포터는 야비하다!라는 구호만 계속 나오게 하는 것뿐이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크리비 형제 곁을 지나서 초상화 출구 앞으로 걸어갔다. 해리는 시계를 줄곧 바라보면서 몇 분 정도 기다렸다. 그러자 미리 계획했던 대로 헤르미온느가 밖에서 뚱뚱한 여인을 열어주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곁을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고마워!' 라고 조그맣게 인사하고 재빨리 성을 빠져나갔다. 주위는 무척 어두웠다. 해리는 잔디밭을 지나서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오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보바통의 마차 안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해리가 해그리드의 오두막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 마차 안에서 맥심 부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해리, 너니?" 해그리드가 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요." 해리는 재빨리 오두막집으로 들어가서 투명 망토를 벗었다. "무슨 일이죠?" "너에게 좀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해그리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어쩐지 해그리드는 몹시 흥분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추 구멍에는 비정상적으로 크게 성장한 국화처럼 보이는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비록 해그리드는 윤활유를 머리에 바를 생각은 단념한 것 같았지만, 머리를 빗으려고 시도한 것은 분명했다. 해리는 부러진 빗살이 머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죠?" 해리가 걱정스런운 듯이 물었다. 기껏해야 스크루트의 줄무늬 알이거나, 아니면 해그리드가 또다시 술집에서 만난 낯선 사람으로부터 사들인 머리 셋 달린 괴물 개가 아닐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를 따라오너라. 조용히 하고... 저 투명 망토를 꼭 입고 있어야 해." 해그리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팽은 데리고 갈 수가 없어.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헤그리드,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저는 오래 있을 수가 없어요. 1시까지는 반드시 성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하지만 해그리드는 더 이상 해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해그리드는 오두막집 문을 열더니 어둠 속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둘러 해그리드의 뒤를 따라가던 해리는 문득 그가 보바통의 마차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해그리드, 도대체 무슨" "쉬잇!" 해그리드는 황금 지팡이 두 개가 십자가 모양으로 새겨진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잠시 후에 문을 열고 나타난 맥심 부인은 해그리드를 보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 아그리드... 벌써 시간이 되었나용?" "봉쐐르." 해그리드는 환한 얼굴로 맥심 부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맥심 부인이 황금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맥심 부인이 마차의 문을 닫자, 해그리드는 그녀의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은 맥심 부인의 날개 달린 거대한 말을 풀어놓은 방목장 주위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해리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채, 거의 뛰다시피 하며 부지런히 그들을 쫓아갔다. 해그리드는 나에게 맥심 부인을 보여주고 싶던걸 걸까? 하지만 맥심 부인은 언제라도 볼 수 있는데... 맥심 부인 정도의 몸집이라면 결코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맥심 부인도 해리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잠시 후에 맥심 부인이 애교를 부리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용, 아그리드?" "분명히 좋아할 겁니다." 해그리드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주 볼 만할 겁니다. 나를 믿으세요. 하지만 내가 보여주었다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면 안 됩니다. 알았죠? 원래 당신에게 알려줘서는 안 되는 거예요." "물론이죵." 맥심 부인은 길고 검은 속눈썹을 치켜 뜨면서 교태를 부렸다.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이따금씩 시간을 확인하면서 종종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쫓아가던 해리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해그리드는 또다시 어떤 바보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시리우스와의 약속을 어기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가도 두 사람이 멈추지 않는다면, 해리는 당장 뒤로 돌아서서 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해그리드는 맥심 부인과 함께 달빛 아래에서 산책이나 즐기라고 내버려두지...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성과 호수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 가장자리까지 멀리 걸어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해리는 어떤 수리를 들었다. 저 앞에서 사람들이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엄청난 울음 소리가... 해그리드는 맥심 부인을 나무 사이로 데려가더니 이윽고 걸음을 멈추었다. 해리도 황급히 그들을 따라갔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해리는 강렬한 불꽃을 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다음 순간, 해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용이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네 마리의 용이 두꺼운 나무판으로 담장을 두른 우리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네 마리의 용이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콧김을 내뿜을 때마다 날카로운 이빨이 솟아 나온 입에서 검은 밤하늘을 향해 불길이 솟구쳤다. 길게 뻗어 있는 용의 목은 바닥에서부터 거의 15미터나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푸른빛이 감도는 은색에 길고 뾰족한 뿔을 가지고 있었는데, 땅 위에 서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면서 덥석덥석 물려고 했다. 부드러운 비늘이 나 있는 초록색 용은 마구 몸부림을 치면서 발을 쾅쾅 굴렸다. 얼굴 주위에 가느다란 황금바늘 같은 기이한 털이 달린 붉은색 용은 허공으로 버섯 모양의 불구름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용들보다 훨씬 더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검은색 용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최소한 서른 명 정도 되는 마법사들이 사나운 기세로 날뛰는 용들을 달래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각각의 용마다 일곱 명 내지 여덟 명의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들은 용의 목과 다리에 묶여 있는 두꺼운 가죽 끈에 연결된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온몸이 마바리도 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해리가 겨우 머리를 들고 높이 올려다보자, 검은색 용과 눈길을 마주쳤다. 고양이처럼 동공이 수직으로 세워진 검은색 용의 눈은 동그랗게 떠 있었다. 분노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해리는 알 수가 없었다... 용은 끔찍한 소음과 신음 소리, 날카로운 비면 소리를 냈다... "뒤로 물러서요, 해그리드!" 6미터 이상 접근하면 용이 불을 내뿜는 것도 본 적이 있어요!"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해그리드가 용을 쳐다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런 소용이 없어!" 또 다른 마법사가 절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셋을 세면 다 함께 기절 주문을!" 해리는 용을 지키는 마법사들이 제각기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스투페파이!" 마법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기절 주문이 맹렬한 로켓처럼 어둠을 뚫고 발사되자, 비늘로 뒤덮인 용의 가죽에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해리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용 한 마리가 위태롭게 뒷다리를 비틀거리더니 입을 딱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용의 콧구멍에서 갑자기 불길이 사라지고 연기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용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몇 톤이나 되는 검은색 비늘 용이 땅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을 때, 해리는 정말로 과정 없이 말하건대, 나무들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용을 지키는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내리더니 쓰러진 용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용 한 마리가 거의 작은 언덕만한 크기였다. 마법사들은 부지런히 용이 몸에 쇠사슬을 두드리더니 쇠못과 단단히 연결했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이용해서 쇠못을 땅 속 깊이 박았다.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보시겠어요?" 해그리드가 신이 나서 맥심 부인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곧 담장으로 다가갔다. 해리도 재빨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해그리드에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던 마법사가 뒤로 돌아섰다. 해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찰리 위즐리였다. "괜찮아요, 해그리드?" 찰리 위즐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다가왔다. "비로소 좀 진정이 되었군요. 우리는 수면제를 먹여서 용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요. 밤이 되고 주위도 조용해졌을 때 용을 깨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보다시피 용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기분이 영 아니에요." "어떤 놈들은 데리고 왔나, 찰리?" 해그리드가 가장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는 검은색 용을 바라보았다. 그용은 아직까지도 눈을 뜨고 있었다. 해리는 주름진 검은 눈썹 밑에서 노랗게 번쩍이는 가느다란 용의 눈을 볼 수가 있었다. "이 용은 헝가리의 혼테일이에요." 찰 리가 검은색 용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저기 좀 작은 용은 웨일스의 그린이고, 저기 청회색 용이 스웨덴의 쇼트 스나우트죠. 저기에 있는 붉은색 용은 중국의 파이어볼이에요." 설명을 마친 찰리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맥심 부인은 기절한 용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울타리 가장자리를 따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해그리드, 손님을 데리고 왔는지는 몰랐군요. 챔피언들은 시험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저 부인은 자기 학생에게 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찰 리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저 맥심 부인이 저 용을 보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해그리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황홀한 해그리드의 시선은 용들로부터 떨어질 줄 모랐다. "참 낭만적인 데이트군요, 해그리드." 찰 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네 마리의 용이라..." 해그리드가 용들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챔피언들이 제각기 한 마리씩 담당하게 되겠군. 그런데 이 용으로 무엇을 하는 건가? 싸우기라도 한단말인가?" "그냥 용 앞을 통과하는 걸 거예요." 찰리가 해그리드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용이 너무나 심술궂게 굴면, 우리가 당장 소멸 마법을 걸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선 특별히 알을 품고 있는 어미들은 원했어요.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나 같으면 절대로 혼테일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독이 있거든요. 게다가 혼테일의 꼬리는 앞에 있는 뿔 만큼이나 위험하다구요." 찰리는 손을 들어서 혼테일의 꼬리를 가리켰다. 해리는 구릿빛의 길고 뾰족한 가시들이 혼테일의 꼬리를 따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찰리와 함께 일하는 다섯 명의 마법사들이 비틀거리면서 혼테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두꺼운 담요에 커다란 회색 알들을 담아서 끌고 오는 중이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혼테일 옆에 알을 갖다 놓자, 해그리드 탐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신음 소리를 내었다. "해그리드, 나는 알의 숫자를 모두 정확하게 세어 놓았어요." 엄격한 목소리로 경고한 다음, 찰리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해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 해그리드의 눈은 아직까지도 용의 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을 겪은 후에도 그 아이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찰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용의 우리 안을 바라보았다. "엄마에게는 해리가 어떤 시험을 겪어야 하는지 감히 말도 못 꺼내었어요, 엄마는 벌써 그 애가 걱정이 되어서 안달이거든요 ..." 찰리가 위즐리 부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흉내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아이를 그런 시합에 내보낼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그렇게 어린데 말이야!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 제한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엄마는 <예언자 일보>에서 해리에 대한 기사를 읽고 한바탕 눈물 바다를 이루셨죠. '그 아이가 아직도 부모 생각을 하면서 운다는구나! 오, 가엾은 것. 나는 전혀 몰랐잖니!" 해리는 이제 충분히 볼 것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네 마리의 용과 맥심 부인에게 완전히 넋이 팔린 해그리드도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뒤로 돌아서 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미리 알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미리 아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처음에 받았던 커다란 충격은 벌써 어느 정도 사라졌다. 만약 목요일에 처음으로 저 용들을 보았다면, 전교생이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오줌을 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해리는 지팡이(지금 이 순간에는 한낱 가느다란 막대기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뿐이지만)로 무장을 하고, 비늘로 잔뜩 뒤덮인 채 15미터 높이에서 불을 내뿜는 용과 맞으면서 그앞을 지나가야만 한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리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숲 가장자리를 따라갔다. 빨리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시리우스를 만나려면 15분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지금 해리에게 있어서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더욱 절실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해리는 느닷없이 무엇인가 아주 단단한 것과 세차게 부딪혔다. 해리는 그만 뒤로 쾅 나자빠지고 말았다. 안경이 아슬아슬하게 해리의 코 끝에 걸렸다. 해리는 정신 없이 투명 망토를 꽉 붙잡았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거기 누구야?" 해리는 황급히 투명 망토가 제대로 덮여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납작하게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해리와 부딪힌 마법사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마법사의 턱에 나 있는 염소 수염은 똑똑히 구별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카르카로프였다. "거기 누구냐?" 카르카로프가 무척 수상쩍은 듯이 깜깜한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해리는 여전히 숨을 죽인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몇 분이 후루자 카르카로프는 동물이나 뭐 그런 비슷한 것에 부딪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카르카로프는개를 찾으려는 듯이 허리를 숙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용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해리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가능한 빨리 호그와트를 향해 어둠 속을 걸어갔다. 카르카로프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첫 번째 시험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베에서 몰래 빠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숲을 향해 나란히 걸어가는 해그리드와 맥심 부인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거대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란 힘든 일이니까... 이제 카르카로프가 한 일은 단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쫓아가서 맥심 부인처럼 챔피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요일에 아무것도 모르고 시험을 치르게 될 챔피언은 오직 케드릭 한 사람뿐이었다. 성에 도착한 해리는 살그머니 현관으로 들어가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이 차고 힘들었지만,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5분 이내에 벽난로 앞에 도착해야만 한다... "허튼소리!" 해리가 통로를 가로막은 초상화 액자 속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뚱뚱한 여인에게 속삭였다. "음, 그렇다면..." 뚱뚱한 여인은 눈조차 뜨지 않고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초상화는 해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움직였다. 해리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까,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시리우스가 몰래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굳이 똥 폭탄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고, 벽난로 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몰을 던지다시피 걸터 앉았다. 휴게실 내부는 거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벽난로 불빛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는 크리비 형제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보려고 애를 썼던, 케드릭 디고리 이겨라!라는 글씨가 적힌 배지가 불빛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배지의 글씨는 포터는 정말로 야비하다!라고 바뀌어져 있었다. 다시 벽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린 해리는 너무 놀라서 펄쩍 뛰었다. 시리우스의 머리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얌전히 놓쳐 있었던 것이다. 언제인가 위즐리네 식당에서 디고리 씨가 이것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더라면, 해리는 그만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의 얼굴에는 금방 반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며칠 동안 처음으로 지어보는 미소였다.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해리는 벽난로 앞에 바싹 웅크리고 앉아서 입을 열었다. "시리우스, 어떻게 지내세요?" 시리우스의 얼굴은 해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지난번에 그들이 헤어질 때 시리우스의 얼굴은 야위고 홀쭉했으며 길고 텁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도 짧고 단정했으며 얼굴도 보기 좋게 살이 올라서 훨씬 젊어 보였다. 해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시리우스의 사진이었던 포터 부부의 결혼식 사진에 나온 그 얼굴과 더욱 비슷하게 보였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너는 어떻니?" 시리우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잠시 동안 해리는 '좋아요'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난 며칠 동안 말한 것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 더욱 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은 것, 리타 스키터가 <예언자 일보>에 거짓말 기사를 실은 것,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만 했던 것 그리고 론, 론이 자신을 믿어 주지 않고 오히려 질투했다는 것을... "방금 전에 해그리드가 첫 번째 시험에 뭐가 나올지 보여주었어요, 시리우스, 그건 바로 용이에요. 나는 그걸 통과해야만 해요." 해리는 간신히 말을 끝맺었다. 시리우스는 걱정이 가득 담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의 눈에는 아직까지도 아즈카반이 남긴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고뇌에 가득 찬, 생기 없는 표정이... 시리우스는 도중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해리의 말을 RMxRK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해리, 용은 우리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단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자. 나는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벽난로를 이용하려고 어떤 마법사 네 집에 몰래 들어왔기 때문이지. 하지만 집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먼저 너에게 경고하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단다." "뭐죠?" 해리는 자신의 영혼이 산산조각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보다도 더 나쁜 일이 또 있는 걸까? "카르카로프 말이다. 해리, 카르카로프는 죽음을 먹는 자야. 너도 죽음을 먹는 자가 뭔지는 알겠지? 그렇지?" 시리우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가... 뭐라구요?" "카르카로프는 붙잡힌 적이 있단다. 나와 함께 아즈카반에 있었지. 하지만 카르카로프는 금방 풀려나게 되었어. 덤블도어가 올해 호그와트에 오러를 한 사람 두려고 했던 건 틀림없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장담하지만, 그건 카르카로프를 감시하기 위해서야. 무디가 카르카로프를 잡아서 처음으로 아즈카반에 집어넣은 사람이란다." "그런데 어째서 풀려났단 말인가요?"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해리의 머리는 이 충격적인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왜 카르카로프를 풀어주었죠?" "마법부 장관이 협상을 했어." 시리우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카르카로프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고백하고 공범자들의 이름을 불었어...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카르카로프를 대신해서 아즈카반으로 들어갔지. 사실 카르카로프는 그곳에서도 별로 인기가 없었단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카르카로프는 자기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어둠의 마법을 가르쳐 주었어. 그러니까 덤스트랭의 챔피언도 조심해라." "알았어요."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카르카로프가 제 이름을 불의 잔 속에 집어넣었단 말인가요? 만약 그랬다면, 카르카로프는 아주 연기를 잘 하는군요. 그 일에 대해서 몹시 분개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카르카로프는 제가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카르카로프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는 우리도 알아. 마법부 장관을 속여서 풀려날 정도이니까 말이다. 요즘 나는 <예언자 일보>에 실린 기사들을 줄곧 살펴보고 있단다, 해리..." 시리우스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 신문을 보고 있죠." 해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지난달에 그 리타 스키터라는 여자의 기사에서 무디가 호그와트로 출발하기 전날에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물론 그 여자는 그것이 또 다른 가짜 소동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해리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자, 시리우스가 재빨리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디가 호그와트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막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 무디가 근처에 있으면 자기들이 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지. 어느 누구도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매드아이가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디가 현실과 환상으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야. 무디는 마법부의 역대 오러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오러였어." "그러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해리가 천천히 물었다. "카르카로프가 저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건가요? 하지만... 도대체 왜?" "나는 아주 이상한 소식들을 듣고 있단다." 시리우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최근 들어서 평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은 심지어 퀴디치 월드컵이 열리는 장소까지 모습을 드러냈어. 누군가 어둠의 표식을 떠올렸단 말이야. 그리고... 너도 마법부의 마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니?" "버사 조킨스 말인가요?" 해리가 깜짝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래... 버사 조킨스는 알바니아에서 사라졌어. 그곳은 바로 볼드모트가 마지막으로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곳이지... 그리고 버사 조킨스는 분명히 트리위저드 시합이 곧 열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니?" "그래요. 하지만... 그 여자가 곧장 볼드모트를 찾아갔을 것 같지는 않아요. 안 그래요?" "내 말을 좀 들어보렴. 나는 버사 조킨스를 잘 알고 있단다." 시리우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버사 조킨스는 내가 호그와트에 있었을 때, 함께 다녔단다. 버사 조킨스는 네 아버지와 나보다 몇 학년 위였지. 버사 조킨스는 돌대가리였어. 소리만 요란했지, 머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단다. 해리, 그것은 결코 좋은 결합이 아니야. 버사 조킨스라면 분명히 아주 쉽게 덫에 걸려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볼드모트가 이 시합에 대해서 모든 사실을 알아냈다는 건가요? 아저씨의 말은 그런 뜻인가요? 아저씨는 카르카로프가 볼드모트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나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시리우스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전혀 모르겠어. 내 생각에 따르면, 카르카로프는 볼드모트가 자기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볼드모트에게 돌아갈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불의 잔 속에 네 이름을 집어넣은 자가 누구든지 간에, 이 시합이야말로 우연한 사고처럼 가장해서 너를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지금 제가 처한 입장을 보면 그것은 정말 좋은 계획인 것 같군요. 그들은 그저 뒷짐을 지고 물러나서 용들이 자기 할 일을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까요." "맞아. 그 용들도..." 시리우스는 이제 아주 다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단다, 해리. 절대로 기절 마법 따위를 써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용들은 아주 강하고 너무나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의 마법사로는 결코 쓰러뜨릴 수가 없어. 용 한 마리를 상대하려면 최소한 여섯 명의 마법사들이 필요하단다." "그건 저도 알아요. 얼마 전에 보았거든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이 시험은 너 혼자 힘으로 치러야만 해.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단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한 마법이야. 그건..." 시리우스가 해리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재빨리 손을 들어서 시리우스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해리의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가세요!" 해리가 시리우스에게 속삭였다. "어서 가요! 누군가 오고 있어요!" 허둥지둥 몸을 일으킨 해리는 몸으로 벽난로를 가리고 섰다. 만약 누군가가 호그와트의 벽난로 안에 시리우스의 얼굴이 나타난 것을 본다면, 엄청난 소동을 일으킬 것이다. 어쩌면 이일에 마법부까지 개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해리는 시리우스가 있는 곳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 해리는 등 뒤에서 펑 하고 조그맣게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시리우스가 가버린 것이다. 해리는 가만히 나선형 계단을 노려보았다. 새벽 1시에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시리우스로부터 어떻게 용을 통과할 수 있는지 그 방법조차 들을 수 없도록 만든 사람이? 마침내 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론이었다. 밤색의 모직 잠옷을 입은 론은 휴게실 건너편에서 해리와 얼굴을 딱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 론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해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너야말로 이 시간에 여기에서 뭐하는 거냐?" "나는 그저 네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서..." 론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것도 아냐. 침대로 돌아갈 거야." "그저 여기저기 쑤셔 보고 다닐 생각이었지? 그렇지?" 해리가 마구 고함을 질렀다. 해리는 론이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냥 휴게실로 내려왔을 뿐,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 순간에는 달랑한 잠옷 바지 밑으로 보이는 발목까지, 론의 모든 것이 밉살스럽기만 했다. "미안해." 론의 얼굴이 분노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네가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미처 몰랐어. 네가 혼자서 시험을 조용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지." 해리는 근처에 있는 테이블 위에서 포터는 정말로 야비하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는 배지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힘껏 론을 향해 내던졌다. 그것은 론의 이마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그거나 가져가." 해리가 론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화요일에 네 가슴에 달고 갈 물건이야. 하마터면 이제 이마에 상처까지 날 뻔했구나. 그게 바로 네가 원하던 것 아니었니? 안 그래?" 해리는 방을 가로질러 계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내심 론이 자신을 붙잡기를 기대했다. 아니, 론이 자신을 한 방 갈겨준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론은 몸에 꼭 끼는 잠옷을 입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폭풍처럼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간 해리는 그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잠들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지만 침실로 올라오는 론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제20장 첫번째 시험 일요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어서, 한참 후에야 자신이 양말 대신 모자를 발에 끼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우 제대로 옷을 다 입고 나자, 해리는 분주하게 헤르미온느를 찾아다녔다. 헤르미온느는 연회장의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서 지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던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마지막 숟갈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에게 용에 관한 이야기와 시리우스가 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은 호수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아야만 했다. 카르카로프에 대한 시리우스의 경고를 듣고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용의 문제가 훨씬 더 다급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화요일 저녁까지 네 목숨이나 부지하고 보자꾸나." 헤르미온느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래야만 카르카로프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지." 두 사람은 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 무엇일까 궁리하면서 호수 주위를 다시 세 번이나 돌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도서관을 찾아갔다. 해리는 용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잇는 책은 모두 꺼낸 후에, 헤르미온느와 함께 열심히 책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용발톱 자르기... 비늘 상처 치료하기...' 이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겠어. 이건 해그리드처럼 용을 건강하게 기르고 싶어하는 괴짜들이나 보는 거라구..." "'용을 죽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용의 두꺼운 가죽에는 고대 마법이 깃들어 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마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가...' 하지만 시리우스는 간단한 마법이라고 했다며..." "그렇다면 간단한 마법에 관한 책을 살펴보자." <너무나 용을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옆으로 던지면서 해리가 말했다. 해리는 마법책이 잔뜩 쌓여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서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곁에 딱 붙어 서서 잠시도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글세... 이건 바꾸기 마법이야. 하지만 바꾸기 마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네가 용의 어금니를 빨간 잇몸이나 조금 덜 위험한 것으로 바꿀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는 바로 이거야. 용의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이 별로 없다는 거 말이야... 나는 너에게 변신 마법을 권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큰 놈이라면 네가 성공할 희망은 거의 없어. 심지어 맥고나걸 교수라고 해도... 차라리 너에게 마법을 걸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네가 엄청난 힘을 갖게 될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건 단순한 마법이 아니야. 게다가 수업 시간에는 이런 마법들을 사용해 본 적도 없어. 나도 약간 알고 있을 뿐이야. O.W.L. 실습 시험을 쳤던 적이 있거든..." "헤르미온느,. 잠시 동안이라도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을래? 집중을 좀 해야겠어." 해리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해리의 머리 속이 텅 비면서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해리는 절망적으로 책 목록을 훑어갔다. <바쁘고 짜증난 사람들을 위한 기본 주문>, <즉석에서 머리가죽 벗기기> 하지만 용에게는 머리카락이 없다... <후추 불어넣기> 이건 오히려 용의 화력을 더욱 세게 만들어놓을 것이다... <뿔 혓바닥> 용에게 무기를 하나 더 안겨줄 일은 없지... "오, 이런! 크룸이 다시 나타났어. 그 우스꽝스러운 자기네 배 안에서 책을 읽으면 어디가 덧나나?" 빅터 크룸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자,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냈다. 빅터 크룸은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더니 책이 잔뜩 쌓여 잇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자, 해리. 우리는 그만 휴게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조금 있으면 저 녀석의 팬 클럽이 잔뜩 몰려올 거라구."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이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왔다. 그 여학생들 중에 한 명은 허리에 불가리아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그날 밤에 해리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해리는 처음으로 아주 진지하게 호그와트에서 도망칠 궁리를 했다. 하지만 아침 식사 시간에 연회장을 둘러보면서 이 성을 떠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절대로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해리가 행복을 맛보았던 유일한 장소였다. 아마...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도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리가 기억할 수 없는 과거였다. 어쩌면 프리벳 가의 두들리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용과 맞서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해리의 마음은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간신히 (목구멍이 잘 움직여 주질 않았다) 접시에 놓여 있는 베이컨을 다 먹은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케드릭 디고리의 모습이 보였다. 케드릭 디고리는 아직까지도 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맥심 부인과 카르카로프가 플뢰르 델라쿠르와 빅터 크룸에게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라는 해리의 짐작이 맞다면,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챔피언은 오직 케드릭뿐이었다. "헤르미온느, 이따가 온실에서 만나자." 연회장을 떠나는 케드릭을 보면서 순간 결심을 굳힌 해리가 말했다. "어서 가. 내가 곧 따라갈게." "해리, 잘못하면 수업에 늦어. 이제 곧 벨이 울릴 텐데..." "곧 따라갈게. 알았지?" 해리가 막 대리석 계단 밑에 도착했을 때, 케드릭은 벌써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케드릭의 주위에는 6학년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해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케드릭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해리가 가까이 지나갈 때마다 리타 스키터의 신문 기사를 읊어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해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케드릭을 따라갔다. 케드릭은 마법 수업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 교실을 보자, 해리는 한 가지 좋은 수가 떠올랐다.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지팡이를 꺼낸 해리는 조심스럽게 목표물을 겨냥했다. "디핀도!" 그 순간 케드릭의 가방이 활짝 열렸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양피지와 깃펜 그리고 책들이 쏟아지면서 마루에 흩어졌다. 잉크병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귀찮게 굴지 마!" 친구들이 케드릭을 도우려고 허리를 숙이자, 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플리트윅 선생님께 내가 곧 간다고 말씀드려. 어서 가..." 마침내 모든 일이 해리가 원하던 대로 풀렸다. 해리는 지팡이를 다시 옷 속에 집어넣고 케드릭의 친구들이 모두 교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재빨리 케드릭과 자신밖에 없는 텅 빈 복도를 달려갔다. "안녕!" 케드릭이 잉크로 얼룩이 진 <고급 변신술 입문서>를 집어들면서 인사했다. "갑자기 가방이 열려서 말이야... 모두 다 최고급 신제품 물건들인데..." "케드릭, 첫 번째 시험은 용이야." 해리가 대뜸 말했다. "뭐라구?" 케드릭이 깜작 놀라면서 얼굴을 들었다. "용이라니까." 케드릭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언제 플리트윅 선생님이 불쑥 교실 밖으로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해리는 다급하게 말했다. "모두 네 마리야. 우리 네 사람이 한 마리씩 맡게 될 거야. 우리는 용을 통과해야만 해." 케드릭은 가만히 해리를 쳐다보았다. 케드릭의 회색 눈동자에서 해리가 지난 토요일 밤부터 겪었던 고통과 두려움이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이니?" 케드릭이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야. 내 눈으로 직접 봤어." "하지만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니? 그건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지신을 말하면 해그리드가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냐. 지금쯤 플뢰르와 크룸도 알고 있을 거야. 맥심 부인과 카르카로프 모두 용을 봤기 때문이지." 케드릭이 몸을 똑바로 세웠다. 케드릭의 팔에는 깃펜과 양피지, 책 등이 잔뜩 들려 있었고 어깨에는 가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케드릭은 멍하니 해리를 바라보았다. 케드릭의 눈에는 거의 의심하는 듯한, 당혹스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 케드릭이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해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케드릭을 바라보았다. 만약 케드릭이 직접 두 눈으로 용을 보았다면 분명히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해리는 아무리 미워하는 적이라고 해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런 괴물과 대면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글쎄... 혹시 말포이나 스네이프라면... "그냥... 이게 공평하잖아. 그렇지 않니?" 해리가 케드릭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알게 되었구나... 그러니까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는 거야. 그렇지?" 케드릭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매드아이 무디 교수님이 가까운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포터, 이리 와라."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디고리, 너는 가고..." 해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무디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을까? "저, 교수님. 저는 약초학 수업에 들어가야만 해요." "그런 건 잊어버려라, 포터. 어서 내 방으로 들어와." 해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디의 뒤를 따라갔다. 무디가 어떻게 용에 대해서 알았는지 알아내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무디가 덤블도어를 찾아가서 해그리드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나를 흰족제비로 바꾸어 놓지나 않을까? 만약 흰족제비가 된다면, 용을 통과하기가 더욱 쉬울지도 몰라... 해리의 머리 속에서 엉뚱한 생각들이 오락가락했다. 몸이 더 작아지면 15미터나 되는 용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을 거야... 해리는 무디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무디는 문을 닫은 후에 해리를 쳐다보았다. 무디의 마법의 운동장는 마치 보통 눈처럼 제자리에 딱 박혀 있었다. "포터, 지금 네가 한 일은 아주 잘한 일이다." 무디가 차분하게 말했다. 해리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무디의 반응은 해리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앉아라." 무디의 말대로 의자에 앉은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리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던 예전 선생님들이 이 방을 사용할 때 여기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록허트 교수가 있을 때에, 이 방은 온통 활짝 웃으면서 눈을 찡끗거리는 록허트 교수의 독사진을 도배되어 있었다. 루핀 교수가 지내고 있을 때에는,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해온 신기한 어둠의 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했던 온갖 이상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해리는 아마도 무디가 어렸던 시절에 사용하던 물건인 모양이라도 추측했다. 무디의 책상 위에는 꼭대기가 빙빙 돌아가는 커다랗고 금이난 유리팽이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해리는 한눈에 그것이 스티코스코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무디의 것보다는 훨씬 더 작기는 했지만, 해리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작은 탁자 위에는 몹시 구불구불한 황금 텔레비전 안테나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해리의 맞은편에는 거울처럼 보이는 것이 벽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거울 안에는 방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림자처럼 흐릿한 형체가 거울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둠의 탐지기들이 마음에 드니?"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해리를 향해 무디가 말했다. "저게 뭐죠?" 해리는 구불구불한 황금 안테나를 가리켰다. "비밀 탐지기란다. 비밀이나 거짓말을 간파하면 탐지기가 진동을 한단다... 물론 여기에서는 사용하지 않아. 너무 귀찮으니까 말이야. 사방에서 학생들이 왜 숙제를 해오지 못했는가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다 늘어놓잖니. 내가 여기에 온 이후로 비밀 탐지기는 줄곧 진동을 멈추지 않았단다. 그리고 나는 스니코스코프도 잠재울 수밖에 없었어. 잠시도 삑 소리를 멈추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내 스니코스코프는 몹시 예민하기 때문에 근처 1.5킬로미터 이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감지할 수 있단다. 물론 학생들의 거짓말 따위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지." 무디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거울은 어디에 쓰는 거죠?" "저것은 나의 적을 비추는 거울이야. 저기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니? 저 눈동자들이 하얀색으로 변할 때까지는 아직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야. 그때는 내 가방을 열 수가 있지." 무디는 굴고 짧은 웃음 소리를 내더니, 창문 밑에 놓여 있는 커다란 가방을 가리켰다. 그 가방은 열쇠 구멍이 무려 일곱 개나 달려 있었다. 해리는 도대체 저 가방 속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무디의 질문을 듣고 해리는 다시 퍼뜩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 용에 대해서... 알아냈단 말이지? 그렇지?" 해리는 잠시 동안 망설였다. 지금까지 줄곧 두려워하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케드릭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해그리드가 규율을 어겼다는 말은 무디에게도 절대로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좋아." 자리에 앉은 무디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나무 다리를 쭉 뻗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은 전통의 일부였어. 항상 있었던 일이지." "저는 속임수를 쓴게 아니에요. 제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건, 그건... 그냥 우연이었어요." 해리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이 녀석아,. 나는 지금 너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무디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나는 덤블도어에게 말했어. 그 사람이야 얼마든지 고상하게 굴 수 있지만, 늙은 카르카로프와 맥심 부인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그들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반 드시 이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덤블도어를 꺾고 싶어한단 말이야. 덤블도어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지." 무디는 이렇게 말하면서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자 마법의 눈이 너무나 빠르게 빙글빙글 돌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던 해리는 그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 무사히 용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했니?"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뇨." "나도 너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 무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누구만 편애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저 아주 일반적인 충고나 한 마디 해주지. 첫 번째 충고는... 너의 능력을 사용하라는 거야." "제겐 아무런 능력도 없어요." 해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것 봐!" 무디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너에게 능력이 있다고 하면 너는 능력이 있는 거야. 잘 생각해 보거라. 네가 제일 잘 하는 게 뭐지?" 문득 해리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게 무엇일까? 그래, 그건 아주 쉬웠다. "퀴디치요." 해리가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맞았어." 무디는 해리를 무섭게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의 눈조차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너는 정말 끝내주는 비행 선수라고 하더구나." "그렇기는 해도..." 해리도 무디를 마주 쳐다보았다. "빗자루를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어요. 저는 오직 지팡이만..." "두 번째 일반적인 충고는... 너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멋지고 간단한 마법을 사용하라는 거다." 무디가 해리의 말을 가로채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멍하니 무디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 "자, 얘야..." 무디가 부드러운 눈길로 해리를 쳐다보면서 속삭였다. "나의 두 가지 충고를 잘 생각해 보렴... 별로 어렵진 않아..." 그 순간 해리의 머리 속에서 반짝 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해리가 제일 잘 하는 것은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것이다. 허공을 날아서 용을 통과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파이어볼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파이어볼트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헤르미온느!" 3분이나 늦게 온실로 들어간 해리는 스프라우트 교수에게 황급히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의 곁을 지나가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헤르미온느, 너의 도움이 필요해." "해리, 그럼 넌 지금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니?" 부르르 떨고 있는 파동 덤불의 잔가지를 치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덤불 너머로 걱정스럽게 해리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 난 내일 오후까지 소환 마법을 배워야만 해." 마침내 두 사람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심 식사도 하지 않고 비어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해리는 죽을 힘을 다해서 다양한 물건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책과 깃펜들은 교실을 절반 가량 날아오던 도중에 균형을 잃고 돌처럼 바닥으로 쿵 떨어져 버렸다. "집중을 해. 해리, 집중을..." "너는 도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 같니?" 해리가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거대한 용이 자꾸만 내 머리 속에 나타난단 말야... 좋아, 다시 한 번 해보자..." 해리는 점술 수업을 빼먹더라도 계속 소환 마법 연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점술 수업을 몰래 빠지자는 제안을 딱 잘라서 거절했다. 헤르미온느가 없다면 혼자 남아서 연습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해리는 한시간 동안 트릴로니 교수의 수업을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수업 시간의 절반 정도를, 화성과 토성이 마주치게 되면 7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끔찍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일에 써버렸다. "그것 참 잘 됐군요." 해리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질질 끌지 않는다니까 말이죠. 저는 고통을 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잠시 동안 론은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근래에 들어서 처음으로 해리와 론의 눈길이 마주쳤다. 하지만 해리는 아직까지도 론에 대해서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해리는 수업 시간 내내 책상 밑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작은 물건들이 자기 쪽으로 날아오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간신히 파리 한 마리가 해리의 손 안으로 곧장 날아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소환 마법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파리가 멍청한 놈이었는지도 모른다. 점술 수업이 끝나자 이번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가야만 했다. 식사를 마친 해리는 마침내 헤르미온느와 함께 투명 망토를 이용해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비어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정이 지나도록 열심히 연습을 했다. 좀더 오랫동안 연습할 수 도 있었지만, 갑자기 피브스가 나타나서, 해리가 자신에게 물건을 던지려 한다고 하면서 마구 교실 의자를 내던지는 바람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필치가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오기 전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리핀도르의 휴게실로 돌아갔다. 고맙게도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해리는 책과 깃펜, 뒤집어진 의자 몇 개, 낡은 고브톤 세트, 네빌의 두꺼비 트레버 등 온갖 잡다한 물건 더미에 둘러싸인 채, 벽난로 옆에 우뚝 서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해리는 소환 마법을 확실하게 터득한 것이다. "훨씬 낫구나. 해리, 아주 좋아." 헤르미온느는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무척 기뻐했다. "좋아. 다음 번에 내가 마법을 잘 부리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해리는 룬 문자 사전을 다시 헤르미온느에게 던졌다. 다시 한 번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용이 나를 위협한다. 좋아..." 해리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아씨오 사전!" 묵직한 사전이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빠져나오더니 교실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해리는 손을 내밀어 그 사전을 붙잡았다. "해리, 마침내 네가 소환 마법을 터득한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파이어볼트는 여기 있는 이 물건들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거야. 파이어볼트는 성 안에 있고 나는 저기 운동장에 있을 텐데..."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돼." 헤르미온느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네가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집중을 한다면, 파이어볼트는 반드시 날아올 거야. 해리, 이제 우리도 자러 가는게 좋겠다. 너는 좀 자야만 해." 저녁 내내 소환 마법을 배우는 일에 몹시 신경을 썼기 때문에, 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도 잠시 동안 잊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고통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순식간에 학교는 터질 듯한 긴장감과 흥분에 휩싸였다. 모든 수업이 정오에 끝나고, 학생들은 용이 있는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물론 그들은 아직도 운동장에 무엇이 있는 지 알지 못했다. 해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격리되어서 홀로 남겨진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해리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은 행운을 빌거나 혹은 "포터,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휴지를 꼭 준비해 가마"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상 태가 점점 더 심해지자, 해리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용 앞으로 나가는 순간 정신이 돌아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특별하게 움직여서 전속력으로 지나갔다. 분명히 방금 전에 첫 번째 수업인 마법의 역사 시간에 들어갔던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에 벌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아침 시간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용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마지막 몇 시간은?) 잠시 후에 맥고나걸 교수가 황급히 연회장으로 들어오더니 해리를 향해 다가왔다. 맥고나걸 교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리를 불렀다. "포터, 이제 챔피언들은 운동장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너도 첫 번째 시험을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해야지." "알았어요." 해리를 포크를 접시 위에 힘없이 떨어뜨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운을 빌어, 해리. 너는 잘 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속삭였다. "그래."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해리는 어쩐지 자신의 목소리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와 함께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맥고나걸 교수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맥고나걸 교수도 거의 헤르미온느 만큼이나 안절부절 못 하는 것 같았다. 해리와 함께 돌계단을 지나서 차가운 11월의 오후 공기가 감돌고 있는 밖으로 나오자, 매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겁먹지 말거라. 언제나 냉정하게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해... 만약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사들을 대기시켜 놓았단다. 제일 중요한 것은 네가 최선을 다하는 거야... 괜찮니?" "네." 해리의 귀에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요. 저는 괜찮아요."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를 데리고 용의 우리가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 울창한 숲 너머로 울타리가 분명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해리는 그곳에 커다란 천막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입구를 가로막은 천막 때문에 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다른 챔피언들과 함께 여기 있다가 들어가야 한단다."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네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다. 베그만 씨가 저기 있을 거다... 그분이 너의 순... 순서가 되면 불러주실 거야... 부디 행운을 빈다." "고맙습니다." 해리는 공헌하고 맥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를 천막 입구 앞에 남겨두고 떠나갔다. 해리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에는 플뢰르 델라쿠르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평소에 보여 주었던 냉정하고 태연한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얼굴에는 겁에 질린 듯한 창백한 표정만이 감돌았다. 빅터크룸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크룸이 긴장을 표현하는 방식일 거라고 짐작했다. 천막 안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던 캐드릭은 해리가 들어오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리도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이 웃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해리! 잘 해라!" 베그만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챔피언들을 둘러보았다. "자... 모두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구." 온통 창백하게 질린 챔피언들 사이에서 혼자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베그만의 보습은 마치 좀 지나치게 잘난 척하는 만화 주인공과 같았다. 베그만은 또다시 낡은 와스프 팀의 겉옷을 입고 있었다. "좋아요. 이제 모두 모였군요.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줘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베그만은 신이 나소 떠들었다. "관중들이 모이면 내가 여러분에게 이 주머니를 열어 주겠어요." 베그만은 보라색 비단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이 주머니 속에서 여러분은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의 작은 모형을 뽑게 될 거예요. 에... 물론 모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는데... 그러니까... 여러분이 치러야 한 시험은 바로 황금알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힐끗 돌아보았다. 케드릭은 당장 베그만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천막 안을 서성거리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케드릭의 얼굴은 거의 초록색이었다. 그러나 플뢰르 델라쿠르와 빅터 크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도 꼭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진해서 이 시합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얼마 안 있어 천막 주위를 지나가는 수백 명의 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즐겁게 웃고 농담을 하면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그들이 별나라에서온 전혀 다른 인종이라도 되는 듯한 소외감을 느꼈다. 잠시 후에(해리에게 있어서 이 순간은 몇 초처럼 짧게만 느껴졌다) 베그만이 보라색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숙녀 먼저..." 베그만은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플뢰르 댈라쿠르는 용과 똑같이 생긴 작은 모형을 꺼냈다. 그것은 웨일스의 그린이었다. 용의 목에는 2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용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결의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해리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맥심 부인은 이미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시험에 무엇이 나올지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빅터 크룸도 역시 똑같았다. 크룸은 자주빛 중국 파이어볼을 뽑았다. 그 목에는 3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크룸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케드릭도 비단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청회색이 감도는 스웨덴의 쇼트 스나우트의 목에는 1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용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는 해리는 비단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헝가리의 혼테일을 꺼냈다. 4번이었다. 해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작은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는 용의 모형을 내려다보았다. "자, 다 되었군요!" 베그만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제각기 맞서 싸우게 될 용을 뽑았습니다. 용에 붙어 있는 번호는 여러분이 나가게 될 순서입니다. 자, 해리... 잠시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눌까? 밖에서?" "그러죠..." 해리는 어리둥절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베그만과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갔다. 베그만은 조금 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해리를 데려 갔다. 그런 다음에 얼굴 가득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 기분은 괜찮니? 내가 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네? 저는... 아니에요. 없어요." "계획은 있니? 내가 약간 조언을 해줘도 괜찮은데...물론 네가 좋다면 말이지. 진심이야." 무엇인가 음모라도 꾸미듯이 베그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는 여기에서 제일 불리한 입장이잖니, 해리... 무엇이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베그만이 더욱더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해리는 무례하게 들릴 정도로 재빨리 거절했다. "싫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해리, 아무도 모를 거다." 베그만이 눈을 찡끗거리면서 해리를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해리는 왜 사람들에게 자꾸만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이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보다 어딘가 안 좋아 보이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저는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어요. 저는..." 갑자기 저 멀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오, 맙소사! 뛰어가야겠군!" 베그만이 깜짝 놀라면서 마구 달려갔다. 천막으로 돌아오던 해리는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케드릭의 얼굴은 더욱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케드릭의 곁을 지나갈 때, 해리는 행운을 빌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해리는 입에서는 거친 신음 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해리는 플뢰르와 크룸이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울타리가 세워져 있는 운동장으로 들어간 케드릭이 좀 전에 골라 잡은 모형과 똑같이 생긴 살아 있는 용과 대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해리가 마음 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관중들은 마치 머리는 수백 개나 되지만 몸은 하나인 괴물처럼, 케드릭이 스웨덴 쇼트 스나우트의 앞을 통과하려고 할 때마다 다 함께 비명을 지르고... 함성을 터뜨리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빅터 크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케드릭의 뒤를 이어서 천막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베그만의 해설은 모든 것들을 훨씬 더 끔찍하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듣고 있는 해리의 머리 속에는 온갖 무시무시한 모습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우! 아슬아슬하게 빗나갔군요, 아주 아슬아슬했어요." "잡힐 위험에 처했습니다. 지금 바로!" "날쌔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로 소용이 없군요!" 이렇게 약 15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해리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함성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케드릭이 용을 통과해서 황금알을 붙잡은 것이다. "아주 잘했습니다!"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심판으로부터 점수를 받겠습니다!" 하지만 베그만은 케드릭의 점수가 몇 점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해리는 아마도 심판관들이 점수판을 들어서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한 사람은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베그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델라쿠르 양! 나오실까요?" 플뢰르 델라쿠르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어느 때보다 더욱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지팡이를 꽉 움켜쥐고 머리를 똑바로 치켜든 채, 천막을 떠났다. 이제 천막 안에는 해리와 크룸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똑같은 과정이 다시 되풀이되었다... "오, 별로 현명한 방법인 것 같지 않군요!" 베그만이 신나게 떠들었다. "이런... 아슬아슬합니다! 이제부터 조심해야겠군요... 오, 맙소사! 거의 통과하는 줄 알았습니다." 10분 후에 해리는 또다시 열광한 관중들이 마구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플뢰르도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플뢰르의 점수가 집계되는 동안 잠시 휴식 시간이 있고...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세 번째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크룸 군이 나옵니다!" 베그만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빅터 크룸은 해리만 홀로 남겨 둔 채, 천막 밖으로 나갔다. 해리는 평소와는 달리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는 손가락... 동시에 해리는 자신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서 마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얀 천막 벽을 바라보며 관중들의 함성을 듣고 있는 듯한 멍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아주 용감합니다!"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중국의 파이어볼이 무시무시하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관중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크룸 군,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예, 마침내 알을 잡았군요!" 유리잔이 깨어지는 듯한 요란한 함성 소리가 차가운 겨울 하늘을 마구 뒤흔들었다. 빅터 크룸의 순서도 끝났다. 이제 해리의 차례만이 남았을 뿐이다. 해리는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다리가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해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렸다. 잠시 후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천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미칠 듯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해리는 나무들 사이를 따라 걸어가다가 울타리 담장으로 들어갔다. 해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아주 선명한 꿈만 같았다. 관중석에서는 수백 명의 얼굴들이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운동장 반대편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알을 품고 있는 헝가리의 혼테일이 있었다. 온통 검은 비늘이 뒤덮인 거대한 용은 날개를 절반 가량 펼친 채, 사악하고 노란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혼테일이 독침이 달린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땅 위에는 길고 깊이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관중들은 계속 함성을 질렀다. 해리를 응원하는 것인지 혹은 야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드디어 해리가 할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래, 마음을 집중하자. 전적으로 오직 한 가지에만... 이것이 유일한 기회야... 해리는 지팡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씨오 파이어볼트!"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해리는 파이어볼트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온몸의 세포가 다 깨어나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주문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빗자루가 오지 않는다면... 해리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투명한 장벽을 통해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해리르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와 수백 명의 얼굴들이 이상하게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바로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파이어볼트가 숲 가장자리를 지나서 울타리를 넘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해리의 옆에 우뚝 멈추어 선 파이어볼트는 주인이 올라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광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베그만도 목청이 터질 정도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귀에 들리는 소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해리는 빗자루 위에 다리를 걸친 후에 힘차게 땅을 박차고 올라갔다. 순식간에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하늘 높이 올라가자, 수많은 관중들의 얼굴이 저 아래에 조그맣게 찍힌 살색 점처럼 보였다. 헝가리의 혼테일도 개 정도의 크기로 작아졌다. 그 순간 해리는 깨달았다. 단지 땅에서만 멀어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도 멀어졌다는 사실을... 마침내 해리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그저 또 다른 퀴디치 게임에 불과할 뿐이야. 그게 전부야... 나는 지금 또 다른 퀴디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며, 혼테일은 보기 흉한 상대팀 선수일 뿐이야... 용이 지키고 있는 알의 둥지를 내려다보던 해리는 시멘트 색깔의 여러 알들 중에서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알을 찾아냈다. 그 알은 용의 앞다리 사이에 안전하게 놓여 있었다. "좋아." 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견제 작전을 쓰는 거야... 가자..." 해리는 재빨리 밑으로 하강했다. 혼테일의 머리가 해리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었던 해리는 정확히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방금 몸을 피하기 전까지 해리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용의 불길이 뿜어졌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블러저를 따돌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오, 맙소사! 해리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관중 틈에서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이 장면을 보고 있나요, 크룸 군?" 해리는 원을 그리면서 더욱 높이 올라갔다. 혼테일은 아직도 긴 목을 빙빙 돌리면서 해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계속한다면, 용은 분명히 어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끌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용이 다시 불을 뿜을지도 모른다... 혼테일이 입을 딱 벌리는 순간, 해리는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운이 좋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불길은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신 혼테일의 꼬리가 해리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왔던 것이다. 간신히 해리가 왼쪽으로 몸을 피했을 때, 기다란 가시들 중에 하나가 그의 옷을 뚫고 어깨를 찔렀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관중석에서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처는 그다지 깊은 것 같지 않았다... 해리는 서두러 혼테일의 등 뒤로 빙 돌아서 날아갔다. 한 가지 가능성이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혼테일은 멀리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알에 대한 보호 본능이 너무나 강했던 것이다. 비록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고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무시무시한 노란 눈으로 줄곧 해리를 뒤쫓아 다니기는 했지만, 용은 알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용을 멀리 끌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알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속임수를 써야만 한다... 해리는 재빨리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이 뿜어대는 불길에 닿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지만, 계속 용의 눈길을 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용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수직으로 찢어진 눈동자로 해리를 감시했다. 날카로운 어금니를 모두 드러낸 채... 해리는 하늘로 더욱 높이 날아갔다. 혼테일의 머리가 해리를 따라 높이 솟아올랐다. 이제 늘어날 대로 길게 늘어난 용의 목은 마치 최면술사 앞에 서 있는 뱀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해리는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용이 짜증스럽게 울부짖었다. 해리는 지금 용에게 있어서 귀찮은 파리 같은 존재였다. 당장이라도 덥석 삼켜 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용의 꼬리가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꼬리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다... 용은 허공으로 불길을 내뿜었지만, 해리는 살짝 피했다... 용의 아가리가 다시 커다랗게 벌어졌다... "자, 어서 덤벼.," 해리는 마치 당장이라도 잡힐 듯이 용의 애를 태우며 속삭였다. "자, 어서! 어서 와서 나를 잡아 봐... 이제 올라오란 말이야..." 드디어 용이 소형 비행기만큼이나 거대한 검은 가죽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급강하를 했다. 그리고 용이 미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깨닫기도 전에 아니, 해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온힘을 다 하여 전속력으로 땅을 향해서, 이제는 용의 날카로운 앞발로부터 벗어나 있는 알을 향해 날아갔다. 해리가 파이어 볼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황금알을 움켜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속력을 내면서 해리는 관중석 위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묵직한 황금알은 상처를 입지 않은 해리의 한쪽 옆구리에 단단히 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높여 놓은 것처럼, 해리는 트리위저드 시합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월드컵의 아일랜드 응원단들만큼이나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난리였다. "저걸 보십시오!" 베그만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보십시오! 우리의 가장 어린 챔피언이 가장 빠른 시간에 황금알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포터 군이 우승을 차지할 확율이 더욱 높아졌군요!" 해리는 용의 조련사들이 사나운 기세로 날뛰는 혼테일을 진정시키기 위해 재빨리 달려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맥고나걸 교수와 무디 교수 그리고 해그리드가 해리를 맞이하기 위해 황급히 달려나오고 있었다. 해리가 다가가자, 그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의 환한 미소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관중석 위로 다시 날아올라간 해리는 부드럽게 땅 위에 내려앉았다. 관중들의 요란한 함성이 해리의 귓전을 울렸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적은 없었다. 첫 번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해리는 살아남았다... "정말 훌륭했다, 포터!" 해리가 파이어볼트에서 내렸을 때, 맥고나걸 교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맥고나걸 교수로서는 엄청나게 커다란 칭찬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는 맥고나걸 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심판들이 점수를 선언하기 전에 먼저 폼프리 부인에게 가도록 해라. 저기로 가거라. 디고리를 치료하는 일은 벌써 끝났을 거야..." "우와! 해냈구나, 해리!" 해그리드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마침내 해내고 말았어! 혼테일과 맞서 싸웠단 말이지. 정말 대단하다! 너도 아다시피 찰리의 말에 따르며 혼테일이야말로..." "고마워요, 해그리드." 해리는 해그리드가 자신에게 미리 용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누설하지 못하도록 재빨리 큰 소리로 말했다. "멋지고 간단하게 해치웠구나, 포터." 무디 교수가 호통을 치듯이 말했다. 무디 교수도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무디의 마법의 눈은 눈구멍 안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포터, 지금 당장 응급 처치소로 가거라. 어서..." 맥고나걸 교수가 재촉했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면서 우리 밖으로 걸어나온 해리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번째 천막 입구에 서 있는 폼프리 부인을 발견했다. "용이라니!" 폼프리 부인은 해리를 천막 안으로 잡아끌면서 혐오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천막의 내부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해리는 칸막이를 통해 케드릭의 그림자를 볼 수가 있었다. 케드릭은 그다지 심하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몸을 일으키고 앉아 있을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의 어깨를 살펴보면서 줄곧 화가 나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난 해에는 디멘터더니 올해는 용이란 말이야? 그럼 다음 해에는 학교 안으로 또 어떤 걸 끌어들이겠다는 거야? 너는 아주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상처가 별로 깊지 않구나. 상처를 싸매기 전에 먼저 깨끗이 닦아야겠다..." 폼프리 부인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기는 보라색 액체로 해리의 상처를 닦았다. 폼프리 부인이 지팡이로 해리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자, 즉시 상처가 낫는 것이 느껴졌다. "자, 잠시 동안 가만히 앉아 있거라. 앉아 있어! 조금만 있으면 네 점수를 보러 나갈 수 있을 게다." 폼프리 부인이 부산하게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옆 칸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기분이 좀 어떠니, 디고리?" 하지만 해리는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온몸이 흥분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된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미처 천막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두 사람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헤르미온느와 그 뒤를 따라온 론이었다. "해리, 정말 눈부셨어!" 헤르미온느가 목이 메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는 두려움으로 인해 두 뺨을 꽉 움켜쥐었을 때 생긴 손자국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넌 너무 대단해! 정말이야!" 하지만 해리의 눈길은 론에게 머물고 있었다. 론은 마치 해리가 유령이라도 되는 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해리." 론은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잔에 네 이름을 집어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는 그들이 너를 이 시합에 일부러 끌어들이려 했다고 생각해!" 마치 지난 몇 주일 동안에 벌어졌던 일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 태도였다. 아니, 해리가 챔피언이 된 이후로 론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 같았다. "이제 알았니?" 해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아주 오래 걸렸구나."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헤르미온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해리와 론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론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머뭇거렸다. 해리는 론이 사과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득 사과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론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 일은 잊어버려." "아니야." 론이 입을 열었다. "나는 꼭 너에게..." "그만 잊어버리라니까!" 해리가 말했다. 그러자 론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해리가 씩 웃었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는 거야? 울 일이 뭐가 있어?" 해리가 몹시 당황하면서 물었다. "둘 다 한심한 멍청이야!" 헤르미온느는 두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해리와 론이 미처 헤르미온느를 달래기도 전에 그녀는 두 사람을 꽉 끌어안더니 이번에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헤르미온느는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천막 밖으로 달려나가 버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해리, 가자. 곧 네 점수가 나올 거야..." 황금알과 파이어볼트를 집어든 해리는 불과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천막을 나섰다. 론은 해리의 옆에 바싹 붙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비교할 필요도 없이 네가 제일 잘 했어. 케드릭은 아주 기괴한 방법을 썼거든. 땅 위에 있는 바위를 변신시켰어... 개로 말이야. 용이 자기 대신에 개를 쫓아가도록 만들려고 했던 거지. 사실 변신술 자체는 제법 괜찮았어.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고 말이야. 어쨌거나 알을 차지하기는 했잖아. 하지만 케드릭은 심한 화상을 입어야만 했지. 개를 쫓아가던 용이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케드릭을 쫓아왔던 거야. 케드릭은 그저 달아나기만 했어. 플뢰르, 그 여자애도 비슷한 종류의 마법을 썼어. 그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 용이 곧 졸음에 빠졌거든. 그런데 용이 코를 골기 시작하더니 그만 코에서 불을 뿜어내는 거야. 그 바람에 플뢰르의 치마에 불이 붙었어. 플뢰르는 지팡이에서 물이 나오도록 해서 불을 껐어. 그리고 크룸은... 너는 도저히 믿지 못할 거야. 물론 크룸은 하늘을 날아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크룸은 어떤 주문을 외우면서 곧장 용의 눈을 때렸어. 그저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 용은 고통스럽게 쿵쿵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진짜 알을 절반이나 짓밟아 버렸어. 그렇기 때문에 심판관들이 크룸의 점수를 깎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용의 알에 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거였거든." 두 사람이 울타리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론은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혼테일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없었다. 해리는 황금 휘장이 드리워진 상석에 다섯 명의 심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심판들이 한 사람씩 점수를 주도록 되어 있어. 10점이 만점이야." 론이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해리는 첫 번째 심판인 맥심 부인이 허공으로 지팡이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맥심 부인의 지팡이 끝에서 긴 은빛 리본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커다랗게 8자를 그려놓았다. "나쁘지 않군!" 론이 관중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네 어깨 때문에 점수를 깎을 거라고 생각했어..." 다음 차례의 심판은 크라우치였다. 크라우치도 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허공에 9점을 쏘았다. "아주 좋은걸!" 론이 해리의 등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다음은 덤블도어 차례였다. 덤블도어도 9점을 주었다. 관중들은 점점 더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10점을 주었다. "10점?" 해리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지만... 나는 상처를 입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점수를 매기는 거지?" "해리, 불평하지마!" 론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제 카르카로프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카르카로프는 잠시 동안 망설이더니 지팡이로 점수를 쏘아올렸다. 4점이었다. "뭐라구?" 론은 벌컥 화를 내었다. "4점이라구? 이 편파적이고 야비하고 더러운 놈! 크룸에게는 10점을 주고서!"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카르카로프가 해리에게 0점을 준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론이 자신의 편을 들어서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해리에게는 100점보다는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물론 해리는 이런 말을 론에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동장을 떠나는 해리의 마음은 공기보다도 더 가벼웠다. 비단 론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그리핀도르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막상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리고 챔피언들이 무엇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지 알게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케드릭뿐만 아니라 해리도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해리는 슬리데린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슬리데린들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해리, 네가 공동 선두야! 너하고 크룸이!" 찰리 위즐 리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찰리 위즐리는 학교로 돌아가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허겁지걱 달려온 것이다. "내 말을 들어봐. 나는 빨리 뛰어가야 해. 엄마에게 부엉이를 보내야만 하거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 주겠다고 맹세를 했어. 하지만 도저히 믿지 못하실 거야! 아, 참! 그리고 심판들이 너에게 몇 분만 더 남아 있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어... 베그만 씨가 잠시 할 말이 있다고 챔피언의 천막으로 돌아오라는구나." 론은 해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리는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금 전까지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친근하고 반가운 분위기였다. 해리는 혼테일을 피해 다닐 때의 비교를 해보았다...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다. 기다림의 순간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플뢰르와 케드릭, 크룸이 모두 함께 천막으로 들어왔다. 케드릭의 얼굴 한쪽에는 두꺼운 오렌지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마도 화상을 치료하는 모양이었다. 케드릭은 해리를 보자 빙그레 웃었다. "잘 했어, 해리." "너도." 해리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했어요. 여러분 모두!" 루도 베그만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직접 용 앞을 지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몇 마디만 하겠어요. 여러분은 두 번째 시험이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게 될 겁니다. 그 시험은 2월 24일 아침 9시 30분에 치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분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겠어요!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황금알을 잘 살펴보면, 그 알을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거기... 연결 부분이 있는 게 보이죠? 여러분은 이 알 속에 들어 있는 실마리를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두 번째 시험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모두 잘 알았나요? 확실하죠? 좋아요. 그럼 어서 가 보세요!" 천막에서 나온 해리는 다시 론과 만났다. 두 사람은 열심히 재잘거리면서 숲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다른 챔피언들이 어떤 식으로 용과 싸웠는지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잠시 후에 해리가 처음으로 용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덤블 숲을 돌아나왔을 때, 한 마녀가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 마녀는 바로 리타 스키터였다. 오늘은 현란한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속기 깃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축하한다, 해리!' 리타 스키터는 해리를 향해 활짝 웃었다.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니? 용과 맞섰을 때, 기분이 어땠니? 지금은 어떻지? 점수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니?" "좋아요. 한 마디만 하죠." 해리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해리는 론과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제21장 꼬마 집요정 해방전선 그 날 저녁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피그위존을 찾기 위해 부엉이장으로 올라갔다. 해리가 어떻게 무사히 용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려줄 생각이었다. 부엉이장으로 가는 도중에 해리는 론에게 시리우스가 카르카로프에 대해서 했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카르카로프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론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부엉이장으로 들어갈 무렵이 되자, 오히려 진작부터 의심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딱 어울리잖아? 그렇지 않니?" 론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말포이가 기차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던 것이 기억나지 않니? 자기 아빠가 카르카로프와 친구라고 했던 거 말야. 그들은 아마 월드컵에서도 가면을 쓰고 같이 돌아다녔을 거야... 해리, 상상해 봐. 만약 불의 잔 속에 네 이름을 집어넣은 것이 카르카로프였다면, 지금쯤 완전히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일 거야. 그렇지? 아무런 소용도 없었잖아? 너는 그저 약간 긁혔을 뿐이야! 자, 이리 와. 내가 할게." 피그위존은 편지를 배달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흥분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면서 해리의 머리 위를 빙빙 날아다녔다. 론은 손을 뻗어서 피그위존을 낚아챘다. 그리고 해리가 부엉이의 다리에 편지를 동여맬 때까지 꼭 잡고 있었다. "이제 다른 시험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 어떻게 위험할 수가 있겠어?" 론은 피그위존을 창가로 데려가는 해리의 뒤를 따라갔다. "너 그거 아니? 내 생각에, 넌 분명히 이 시합에서 우승할 거야. 해리, 정말이라니까." 해리는 론이 지난 몇 주일 동안 있었던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해리는 론의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부엉이장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체, 팔짱을 끼고 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해리가 이 시합을 끝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헤르미온느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첫번째 시험이 이 정도라면 다음 시험은 또 어떤 것이 될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 "희망이 전혀 없다는 말이니? 그래?" 론이 볼멘 소리로 말했다. "어떨 때에는 너나 틀리로니 교수나 똑같은 것 같아." 해리는 피그위존을 안고 창문으로 걸어가서 살짝 던졌다. 피그위존은 4미터 정도 아래로 곧장 떨어지더니 가까스로 다시 날아올랐다. 피그위존의 다리에 묶여 있는 편지가 평소보다도 훨씬 더 길고 무거웠던 것이다. 해리는 시리우스에게 자신이 어떻게 혼테일을 피해서 빙빙 날아오르고 속임수를 썼는지 한 동작 한 동작 설명하고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두운 밤하늘로 멀리 사라지는 피그위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 해리. 이제 그만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너를 위한 깜짝 파티에 참석하는 게 좋겠다. 지금쯤 프레드와 조지가 주방에서 음식을 잔뜩 빼내왔을 거야." 마침내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과연 그들이 그리핀도르의 학생 휴게실로 들어갔을 때, 온통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터질 것만 같았다. 맛있는 케이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사방에는 호박 주스와 버터 맥주를 가득 담은 잔이 널려 있었다. 또한 리 조던이 필리버스터의 폭죽을 터뜨렸기 때문에 공중에는 별과 불꽃이 가득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딘 토마스는 아주 인상적인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 세워 놓았는데, 대부분이 파이어볼트를 타고 혼테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해리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 두 개는 머리에 불이 붙은 케드릭이 등장했다. 해리는 배가 터질 정도로 음식을 잔뜩 먹었다. 오랫동안 배가 고픈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거의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이다. 해리의 곁에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해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론과는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되었으며 첫번째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앞으로 석 달 동안은 두 번째 시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거 꽤 무거운걸." 해리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황금알을 집어든 리 조던이 손으로 무게를 가늠하면서 말했다. "해리, 한번 열어 봐. 어서!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자!" "해리는 혼자 그 실마리를 풀어야만 해. 그게 트리위저드 시합의 규칙이라구..."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말했다. "용을 통과하는 일도 나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었어." 해리는 오직 헤르미온느의 귀에만 들리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겸연쩍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서, 해리! 열어봐!" 주위에 있던 학생 몇 명이 합창을 했다. 리 조던은 해리에게 황금알을 돌려주었다. 해리는 손톱으로 황금알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가 황금알을 여는 순간, 커다랗고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휴게실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소음이었다. 이것과 가장 흡사한 소리는 목이 달랑달랑한 닉의 사망일 파티에서 해리가 들었던 유령 오케스트라의 연주뿐이었다. 유령 오케스트라는 전 악단이 톱으로 연주를 했었다. "당장 닫아!" 프레드가 손으로 뒤 귀를 막으면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지?" 해리가 다시 황금알을 탁 닫아 버리자, 시무스 피니간이 알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밴시 요정의 울음소리 같은데... 해리, 다음 번에는 그 요정을 통과해야만 하나 봐!" "꼭 누군가 고문을 당하는 소리 같은데!" 네빌이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랐던 네빌은 소시지를 바닥에 떨어뜨린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와 싸워야 하는 게 아닐까?" "멍청한 소리 좀 하지마, 네빌. 그건 불법이야." 조지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챔피언들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할 수는 없어. 내 귀에는 꼭 퍼시가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는 걸... 해리, 어쩌면 퍼시가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 그를 공격해야 하는 걸지도 몰라." "잼 파이 먹을래? 헤르미온느?" 프레드가 갑자기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몹시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프레드가 내미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프레드가 씩 웃었다. "이건 괜찮아. 여기에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 정작 조심해야 할 건 커스타드 크림이야..." 바로 그때 커스타드 크림을 한 입 퍼먹은 네빌이 목이 탁 메어서 크림을 뱉어내었다. 프레드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냥 장난이야, 네빌..." "프레드, 이 음식을 모두 주방에서 가져온 거니?" 헤으미온느가 잼 파이를 집어 들면서 물었다. "그럼." 프레드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꽥꽥거리면서 꼬마 집요정 흉내를 내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건 뭐든지 드리죠. 나리, 뭐든지요! 그 녀석들은 참 쓸모가 있단 말이야... 내가 배가 좀 고프다고 말만 하면 황소라도 한 마리 통째로 구워서 올 거야." "그런데 주방에는 어떻게 들어갔니?" 헤르미온느가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아주 쉬워." 프레드가 웃으면서 설명했다. "과일 그릇이 그려져 있는 벽 뒤에 비밀 문이 있거든. 그냥 배를 간지르기만 하면 배가 킬킬거리면서..." 갑자기 프레드는 말을 뚝 끊고 수상스러운 듯이 헤르미온느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대답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꼬마 집요정들의 파업이라도 주도할 계획이니?" 조지가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전단 뿌리는 일은 단념하고 이제 반란을 일으키자고 꼬마 집요정들을 선동할 생각이야?" "그 자리에 있던 몇 명이 재미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었지만,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연히 꼬마 집요정들을 부추겨서 옷을 달라느니 봉급을 달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마!" 프레드가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경고했다. "그랬다간 음식도 만들어 주지 않을 거라구!" 바로 그때 네빌이 커다란 카나리아로 변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이런! 정말 미안해, 네빌!" 프레드가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그만 잊어버렸어. 커스타드 크림에 마법을 걸어 놓았거든..."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네빌은 곧 허물을 벗었다. 일단 깃털이 모두 떨어지고 나자,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심지어 네빌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카나리아 크림이야!" 프레드가 신이 나서 웃고 있는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조지와 내가 개발했어! 한 개당 7시클에 팔지!" 새벽 1시가 가까워지자 해리는 론과 네빌, 시무스 그리고 딘과 함께 기숙사로 올라갔다. 네 개의 침대 기둥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을 닫기 전에 해리는 자그마한 헝가리안 혼테일 모형을 침대 옆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혼테일은 하품을 하고 몸을 둥글게 말더니 두 눈을 감았다. 정말이었어. 해그리드가 옳았어... 그것들은 모두 정말로, 썩 괜찮은 용이었어... 해리는 네 기둥의 커튼을 잡아당기면서 생각했다. 12월이 시작되자 호그와트에 서리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 성 안에는 항상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 들어왔지만, 해리는 호수 위에 떠 있는 덤스트랭의 배가 있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두꺼운 성벽과 따뜻한 벽난로가 무척 고맙게 여겨졌다. 그 배는 시커먼 하늘 밑에서 검은 돛을 펄럭이며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해리는 보바통의 마차도 꽤 추울 거라고 생각했다. 해그리드는 맥심 부인의 말들에게 말이 좋아하는 몰트 위스키를 먹여 주면서 잘 보살펴 주고 있었다. 방목장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구유에서 풍기는 독한 술냄새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 전체를 살짝 취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것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그 끔찍한 스크루트들을 돌봐야만 하는 학생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 동면을 하는지 안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해그리드는 바람이 쌩쌩 불어 오는 호박밭에서 덜덜 떨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녀석들이 잠자는 걸 좋아하는지 한 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 이제 상자 안에 이 녀석들을 넣도록 하자..." 이제 남아 있는 스크루트는 열 마리뿐이었다. 서로를 죽이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스크루트의 본능은 훈련으로 없애 버릴 수 없는 것이 확실했다. 벌써 스크루트들은 이제 길이가 거의 2미터 가까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두꺼운 회색 갑옷과 강력하고 빠른 다리, 불을 터뜨리는 꼬리, 침과 빨판을 비롯해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 스크루트야말로 해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들 중에서 가장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동물이었다. 학생들은 해그리드가 가지고 온 커다란 상자를 절망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상자 안에는 베개와 폭신한 담요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이 상자 속으로 스크루트를 몰아넣기만 하면 된단다." 해그리드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하지만 결국 스크루트는 동면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녀석들은 강제로 베개가 딸린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크루트들은 발톱으로 상자를 마구 긁어대었다. 곧 해그리드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흥분하지마! 자, 흥분하지 마!" 이제 스크루트들은 불이 붙어서 연기를 내뿜는 상자 조각들을 사방으로 흩어놓으면서 호박밭을 이리저리 짓밟고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특히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을 선두로) 허둥지둥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뒷문으로 뛰어들어가서 꼭꼭 숨어 버렸다. 하지만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밖에 남아서 해그리드를 도우려고 애쓰는 학생들 편에 속했다. 다 함께 힘을 합친 끝에 그들은 간신히 아홉 마리의 스크루트를 붙잡아서 묶을 수가 있었다. 비록 여기저기에 온통 상처가 나고 화상을 입기는 했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단 한 마리 뿐이었다. "겁주지 마!" 론과 해리가 지팡이를 사용하면서 스크루트에게 강한 불꽃을 발사하자, 해그리드가 다급하게 외쳤다. 스크루트는 둥글게 말아 세운 침을 흔들면서 그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냥 침에 밧줄을 씌우도록 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말이야!" "우린 못 하겠어요!" 론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론과 해리는 불꽃으로 스크루트를 계속 쫓아 버리면서 거의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담까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런, 이런, 이런...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걸." 리타 스키터가 해그리드의 정원 담장에 몸을 기대고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리타 스키터는 악어 가죽 핸드백을 팔에 낀 채, 보라색 털이 달린 진한 붉은색 두꺼운 망토를 입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해리와 론을 구석으로 몰고 있는 스크루트 위로 몸을 던져서 깔고 앉았다. 스크루트의 꼬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자 근처에 있던 호박 줄기가 순식간에 시들어 버렸다. "누구시죠?" 스크루트의 침을 밧줄로 꽁꽁 묶으면서 해그리드가 리타 스키터에게 말을 걸었다. " 리타 스키터라고 해요. <예언자 일보>의 기자죠." 리타 스키터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리타 스키터의 황금 이빨이 반짝거렸다. "그런데 덤블도어가 당신을 더 이상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해그리드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해그리드는 납작해진 스크루트를 번쩍 들어올려서 동료들이 있는 상자 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타 스키터는 마치 해그리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 매력적인 동물들은 뭐라고 부르나요?" 리타 스키터는 더욱 환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요." 해그리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요?" 리타 스키터는 상당히 호기심을 느낀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동물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디에서 났죠?" 해리는 해그리드의 얼굴이 텁수룩한 검은 수염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해리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해그리드가 어디에서 스크루트를 구해왔을까? "아주 흥미롭죠?. 그렇지 해리?" 줄곧 해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응? 어, 그래... 아이쿠... 정말 흥미로워." 헤르미온느가 그의 발을 꽉 밟자, 해리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오우! 해리! 여기 있었구나!" 리타 스키터가 해리를 돌아서면서 소리쳤다. "그러니까 너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에 하나야?" "그래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해그리드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활짝 웃었다. 해리는 리타 스키터의 시선이 딘(그의 뺨에는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을 지나서 라벤더(그의 옷은 심하게 불에 그을렸다)와 시무스(그는 화상을 입은 손가락을 치료하고 있었다)그리고 오두막 창가까지 재빨리 훑어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곳에는 반 아이들이 대부분이 창문에 코를 바싹 갖다대고 소동이 끝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벌써 2년째 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해그리드가 리타 스키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멋지군요... 하지만 인터뷰를 하고 싶어하지는 않겠죠? 혹시 마법 생물에 대한 당신의 경험을 다른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예언자 일보>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물에 관한 칼럼을 싣고 있답니다. 물론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만 말이죠. 우리는 이것들...음... 그러니까 총 꼬리 스크루트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입니다." 해그리드가 열심히 설명했다. "어... 그래요. 좋습니다. 안 될 이유가 없죠." 하지만 해리는 그 결정이 몹시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리타 스키터의 눈에 뜨이지 않고 해그리드에게 그런 말을 전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가만히 서서 해그리드와 리타 스키터가 다음 주에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만나서 길고 상세한 인터뷰를 하자는 약속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성에서 수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럼 안녕, 해리!"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는 해리를 쳐다보면서 리타 스키터가 명랑하게 인사를 던졌다. "금요일 밤에 만나요, 해그리드!" "저 여자는 해그리드가 하는 말을 전부 꼬아 놓을 거야." 해리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제발 해그리드가 스크루트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여온 건 아니어야 할 텐데..."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것이야말로 해그리드가 꼭 저지를만한 일이었다. "예전에도 해그리드는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켰잖아. 하지만 덤블도어는 절대로 해그리드를 해고하지 않았어." 론이 위로를 하면서 말했다. "설사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해그리드가 스크루트를 풀어줘야 하는 정도일 거야. 안된 일이지... 미안... 내가 최악의 사태라고 말했나? 사실은 최선의 경우라는 뜻이었어."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좀더 가벼운 기분으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걸어갔다. 해리는 그날 오후에 점술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즐겁게 보낼 수가 있었다. 여전히 점성술과 예언을 배우고 있었지만, 이제 론과 다시 친구가 되고 나니까 모든 일들이 아주 재미있게 여겨졌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끔찍한 죽음에 대해 예언했을 때에는 그토록 기뻐했던 트릴로니 교수는 이제 명황성이 날마다 재앙을 일으키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이 킬킬거리자, 잔뜩 심술이 났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트릴로니 교수는 강한 불쾌감을 역력하게 드러내며 불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약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트릴로니 교수는 아주 의미심장한 눈길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지난 밤에 내가 수정 구슬에서 본 장면을 봤다면 이런 식으로 경솔하게 날뛰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 당시에 나는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정 구슬을 살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어요.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 구슬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저 깊은 수정 구슬 속을 들여다보았죠... 거기에서 내가 뭘 봤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커다란 안경을 낀 추악하고 늙은 박쥐?" 론이 숨을 죽이면서 속삭였다. 해리는 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죽음입니다, 여러분." 트릴로니 교수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패르바티와 라벤더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렇습니다." 트릴로니 교수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독수리처럼 우리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점점 더 낮게... 점점 더 이 성을 향하여..." 트릴로니 교수는 노골적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해리는 일부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벌써 여든 번이나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좀더 인상적이었을 텐데." 트릴로니 교수의 방을 나와서야 겨우 신선한 공기를 다시 마시게 되었을 때, 해리가 입을 열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나의 죽음을 예언할 때마다 내가 죽었더라면, 나야말로 의학적으로 기적의 대상이 되었을 거야." "특별히 농축된 유령이 되었겠지." 론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다가온 피투성이 바론이 그들의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커다랗게 뜨고 있는 피투성이 바론의 눈길은 불길한 느낌을 던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숙제가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헤르미온느는 벡터 교수의 수업 시간에 숙제나 왕창 받았으면 좋겠어. 나는 헤르미온느가 숙제를 하느라고 끙끙거릴 때 옆에서 노는 게 제일 좋더라."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저녁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리와 론은 식사 후에 일부러 도서관까지 찾아갔지만 그곳에도 헤르미온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는 빅터 크룸 한 사람밖에 없었다. 론은 한참 동안이나 책꽂이 뒤에서 서성거리며 크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크룸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을 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해리와 귓속말로 의논을 했다. 하지만 론은 곧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바로 옆 책상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 당장 크룸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도대체 헤르미온느는 어디로 간 거지?" 해리와 함께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오면서 론이 말했다. "나도 몰라... 허튼소리." 해리가 머리를 약간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뚱뚱한 여인이 막 출입구를 열었을 때, 그들의 등 뒤에서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헤르미온느가 나타났다. "해리!" 헤르미온느는 숨을 헐떡이면서 미끄러지듯이 달려오더니 해리 옆에서 딱 멈춰 섰다. 뚱뚱한 여인은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헤르미온느를 내려다보았다. "해리, 어서 와 봐. 꼭 가 봐야만 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어서!"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팔을 잡고 복도 아래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해리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거기 도착하면 보여줄게. 자, 어서! 서둘러!"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론을 돌아보았다. 론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해리를 마주 쳐다보았다. "좋아."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함께 복도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론도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다. "오우, 나는 신경 쓰지 마라!" 그들의 등 뒤에서 뚱뚱한 여인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공연히 미안하다는 말로 나를 성가시게 할 것 없다! 나야 뭐 여기 그냥 매달려 있으면 되니까! 너희들이 돌아올 때까지 활짝 문을 열어 놓고서 말이다!" "예, 고마워요!" 론이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 어딜 가는 거니?" 헤르미온느의 뒤를 따라 여섯 층이나 아래로 내려갔을 때, 해리가 물었다. 이제 그들은 대리석 계단을 지나 현관 복도로 내려서고 있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알게 될 거라구!" 헤르미온느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계단을 끼고 왼쪽으로 돌더니, 불의 잔에서 해리와 케드릭 디고리의 이름이 나왔던 그날 밤에 케드릭이 들어갔던 문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해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해리와 론은 헤르미온느의 뒤를 따라서 돌 계단을 내려갔다. 그 계단 끝에는 스네이프의 지하 교실로 내려가는 길처럼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지하 통로 대신에, 돌이 깔려 있고 횃불이 환하게 밝혀진 널찍한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에는 주로 먹을 것을 소재로 한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 잠깐 기다려..." 복도를 반쯤 걸어오던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잠깐만 헤르미온느..." "왜 그래?" 헤르미온느가 걸음을 멈추고 해리를 돌아보았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가득 차 있었다. "난 여기가 어딘지 알아."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해리는 팔꿈치로 론을 툭 치면서 헤르미온느의 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그것은 과일이 담긴 커다란 은그릇이었다. "헤르미온느!" 비로소 론이 알아차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설마 우리를 꼬여서 다시 S.P.E.W.인지 뭔지 하는 그 부질없는 일에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황급히 변명했다. "S.P.E.W.가 아니야, 론..." "그렇다면 이름을 바꿨나? 그래? 이제 뭐지? 꼬마 집요정 해방전선? 나는 주방으로 쳐들어가서 꼬마 집요정들이 일을 그만 하도록 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구!" 론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한테 그런 일을 부탁하지도 않아!"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나는 그저 꼬마 집요정 모두와 이야기를 하려고 내려왔었어. 그리고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지. 자, 해리. 어서 가자.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헤르미온느는 다시 해리의 팔을 잡더니 커다란 과일 그릇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을 뻗어서 커다란 초록색 배를 간지었다. 그러자 배가 꿈틀거리면서 킬킬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커다란 초록색 문 손잡이로 변했다. 헤르미온느는 손잡이를 잡고 비밀 문을 열었다. 그런 다음에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등을 세게 떠밀어서 비밀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해리는 천장이 높은 커다란 방을 둘러보았다. 대연회장만큼이나 넓은 방에는 번쩍거리는 놋쇠 항아리와 냄비들이 돌로 만들어진 벽 주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벽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조그마한 무언가가 꽥꽥 소리를 지르더니 방 가운데에서 총알처럼 해리를 향해 달려 나왔다. "해리 포터! 해리 포터!" 잠시 동안 해리는 완전히 혼이 빠져 버렸다. 꽥꽥거리는 꼬마 집요정이 해리의 가슴을 펑펑 두드리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끌어안으며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도... 도비?" 해리가 입을 벌렸다. "도비예요, 나리. 도비라구요!" 해리의 허리 근처에서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비는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런데 해리 포터가 도비를 만나러 와 주었군요!" 비로소 도비는 해리를 놓아 주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테니스 공만한 크기의 툭 불거진 초록색 눈동자에는 기쁨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도비는 해리가 기억하고 있는 예전 모습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연필처럼 뾰족한 코와 박쥐 같은 커다란 귀다란 손가락과 발가락... 단 한가지, 옷차림만은 전혀 달랐다. 도비가 말포이네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을 때에는 항상 더럽고 낡은 베갯잇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리가 평생 보았던 것들 중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옷을 입고 있었다. 도비는 월드컵 때의 마법사들보다도 더 옷차림새가 엉망이었다. 머리에는 모자 대신에 찻주전자 보온덮개를 쓰고 있었으며 반짝거리는 배지를 몇 개나 달고 있었다. 또한 벌거벗은 가슴에는 말발굽 무늬가 찍힌 넥타이를 매고 아이들 축구복 같은 반바지에 짝이 맞지 않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 양말들 중에 하나는 해리가 자기가 신고 있던 것을 벗어서 말포이 씨가 도비에게 던지도록 속임수를 썼던 바로 그 검은색 양말이었다. 그 덕분에 도비의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양말 한짝은 분홍색과 오렌지색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도비,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해리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도비는 호그와트에 일하러 왔어요! 덤블도어 교수님이 도비와 윙키에게 일자리를 주었죠!" 도비가 신이 나서 꽥꽥거렸다. "윙키? 윙키도 여기 있단 말야?" 해리가 도비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요.그래요!" 도비는 해리의 손을 잡고 네 개의 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는 주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테이블 주위를 지나가던 해리는 그것들이 모두 위층 연회장에 있는 네 개의 기숙사 테이블과 똑같은 자리에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식사가 끝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천장을 통해 바로 위층에 있는 테이블로 보낼 음식들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쌓여 있었을 것이다. 주방 안에는 적어도 백여 명 이상의 꼬마 집요정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도비가 해리를 끌고 그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활짝 웃는 얼굴로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절을 했다. 꼬마 집요정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때 윙키가 그랬던 것처럼, 호그와트의 문장이 찍힌 차 수건을 토가(고대 로마인들의 복장)처럼 끝으로 묶고 있었다. 마침내 도비는 벽난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윙키예요!" 도비가 윙키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윙키는 벽난로 옆에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도비와는 달리, 윙키는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에서 옷을 져다가 아무렇게나 입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윙키는 깔끔하고 짧은 치마와 블라우스 그리고 옷에 잘 어울리는 푸른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윙키가 쓰고 있는 모자에는 커다란 두 귀가 빠져 나오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지만 도비의 옷은 아무리 괴상하기는 해도 너무나 깨끗하고 정성껏 손질이 되어 있어 방금 나온 신제품처럼 보이는 반면에, 윙키는 자신의 옷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블라우스에는 수프 얼룩이 여기저기 번져 있었고 스커트에는 불에 그슬린 자국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녕, 윙키." 해리가 먼저 반가운 듯이 인사를 했다. 윙키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윙키의 커다란 갈색 눈에서 홍수처럼 쏟아진 눈물은 금세 바닥에 웅덩이를 이루었다. 퀴디치 월드컵에서 그랬던 것과 똑같았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해리와 도비를 따라서 주방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윙키,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하지만 윙키는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도비는 해리를 쳐다보면서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해리 포터는 차를 마시고 싶은가요?" 도비가 윙키의 울음소리보다 더욱 큰 소리로 꽥꽥 거리면서 물었다. "그래... 좋아."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해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섯 명의 꼬마 집요정들이 커다란 은쟁반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은쟁반 위에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위한 찻잔과 찻주전자, 우유병 그리고 비스킷이 담긴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다, "서비스가 훌륭하군!" 론이 감탄한 듯이 말하자, 헤르미온느는 험악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꼬마 집요정들은 모두 굉장히 기쁜 표정이었다. 그리고 허리를 연신 굽실거리면서 대접을 했다. "그런데 도비,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니?" 찻잔을 돌리는 도비에게 해리가 물었다.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해리 포터!" 도비가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비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일자리를 잃은 꼬마 집요정이 새로운 자리를 얻기란 무척 어려워요. 정말로 너무 어려워요..." 그 말을 듣자, 윙키는 더욱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짓뭉갠 토마토 같은 윙키의 코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윙키는 콧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비는 지난 2년 동안이나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일자리를 찾으려고 말이죠!" 도비가 커다란 목소리로 꽥꽥거렸다. "하지만 도비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도비는 이제 봉급을 받고 싶어했거든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주방 안의 꼬마 집요정들은 도비의 말을 듣자, 일제히 시선을 피했다. 마치 도비가 아주 무례하고 당혹스러운 말이라도 한 것 같았다. "너를 위해 좋은 일이야, 도비!" 헤르미온느가 도비를 격려하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도비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이빨을 다 드러내면서 씩 웃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봉급을 받고 싶어하는 꼬마 집요정을 원하지 않아요. '그건 꼬마 집요정답지 않은 일이야!'라고 말하고는 도비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는 거예요! 도비는 일을 좋아해요. 하지만 도비는 옷을 입고 싶고 봉급을 받고 싶어요. 해리 포터... 도비는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이 너무 좋아요!" 호그와트에 있는 꼬마 집요정들은 이제 슬슬 도비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도비가 몹쓸 병에 걸린 전염병자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윙키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비록 울음 소리가 훨씬 더 커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해리 포터. 도비가 윙키를 찾아갔을 때, 윙키도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걸 알았죠!" 도비가 신이 나서 말했다. 이 대목에 이르자, 윙키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털썩 앞으로 주저앉더니 단단한 돌바닥에 얼굴을 대고 조그만 주먹으로 바닥을 탕탕 치면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허둥지둥 윙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달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어떤 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윙키는 여전히 요란하게 울었다. 도비는 윙키의 울부짖는 소리보다도 더욱 높은 목소리로 악을 쓰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순간 도비에게 좋은 수가 떠올랐지요, 해리 포터! 도비는 말했죠. 도비와 윙키가 함께 일을 하면 어떨까? 그러자 윙키가 말했죠. 꼬마 집요정 두 명이 일을 할 만한 곳이 어디일까? 도비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문득 생각났죠. 호그와트! 그래서 도비와 윙키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기꺼이 우리를 받아주셨죠! 덤블도어 교수님은 도비가 원한다면 도비에게 봉급도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도비는 자유로운 요정이에요! 도비는 일주일에 1갈레온을 받고 한 달에 한 번 쉬어요!" 도비는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비의 눈에는 다시 기쁨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건 너무나 형편없는 조건이야!" 여전히 비명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바닥을 탕탕 치고 있는 윙키를 달래던 헤르미온느가 분개하면서 소리쳤다. "덤블도어 교수님은 도비에게 일주일에 10갈레온과 주말 휴가를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이 말을 하면서 도비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토록 많은 휴가와 엄청난 봉급을 받는다는 생각만 해도 두려운 것 같았다. "하지만 도비가 그 제안을 거절했어요... 도비는 자유가 좋아요. 하지만 너무 많은 걸 원하지는 않아요. 도비는 일하는 걸 더 좋아해요." "더블도어 교수님이 너한테는 얼마를 주니, 윙키?" 헤르미온느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헤르미온느가 그런 말로 윙키의 분을 달래주려고 했던 것이라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갑자기 윙키는 울음을 뚝 그쳤다. 윙키는 몸을 일으키고 앉더니 커다란 갈색 눈으로 헤르미온느를 노려보았다. 윙키의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윙키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윙키는 수치스러운 요정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지 봉급 따위는 받고 있지 않아요!" 윙키가 꽥꽥 소리를 질렀다. "윙키는 그렇게까지 타락하지는 않았어요! 윙키는 자유로운 몸이 된 것에 대해 당연히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부끄럽다니?" 헤르미온느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윙키, 진정해!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크라우치 씨야! 네가 아니란 말이야! 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야말로 너에게 아주 끔찍한 짓을..." 그 말을 듣자, 윙키는 모자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도록 두 귀를 꽉 막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마구 악을 썼다. "내 주인을 모욕하지 마세요! 크라우치 씨를 모욕하지 마세요! 크라우치 씨는 훌륭한 마법사예요! 크라우치 씨는 나쁜 윙키를 해고할 권리가 있어요!" "윙키는 교정되기까지 좀 문제가 있어요, 해리 포터." 도비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쳤다. "윙키는 자신이 더 이상 크라우치 씨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은 얼마든지 자기의 생각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데, 좀처럼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꼬마 집요정들은 주인에 대한 생각을 말할 수 없단 말이야?" 해리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오, 그럼요. 안 돼죠." 갑자기 도비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건 꼬마 집요정들에게 주어진 속박 중에 하나예요. 주인의 비밀을 간직하고 침묵을 지켜야만 하죠. 우리는 그 가문의 명예를 보존하고 절대로 주인집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면 안 돼요. 물론 덤블도어 교수님은 도비에게 그런 일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우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도비는 불안한지 해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해리가 허리를 숙이자, 도비가 작게 속삭였다. "교수님은 우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괴팍하고 미친 늙은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어요!" 도비는 두려움을 감추려는 듯이 킬킬거리고 웃었다. "하지만 도비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요, 해리 포터." 도비는 다시 평소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귀가 펄럭이도록 머리를 흔들었다. "도비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아주 좋아요. 그리고 교수님을 위해서 비밀을 지키고 침묵하는 게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이제는 말포이 집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 않니?" 해리가 씩 웃으면서 물었다. 도비의 커다란 두 눈에 두려운 기색이 다시 떠올랐다. "도비는... 도비는 할 수 있어요." 도비는 어쩐지 자신 없게 말했다. 하지만 곧 작은 어깨를 곧게 폈다. "도비는 해리 포터에게 도비의 옛날 주인들이 나쁜... 나쁜... 어둠의 마법사라고 말할 수 있어요!" 도비는 한참 동안이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자신의 용감한 발언에 대해서 스스로 겁이 난 모양이었다. 도비는 가장 가까운 테이블을 향해 돌진하더니 자신의 머리를 쾅쾅 들이받았다. 그리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나쁜 도비! 나쁜 도비!" 해리는 도비의 넥타이를 붙잡고 테이블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고마워요. 해리 포터, 고마워요." 도비가 숨을 헐떡이면서 이마를 문질렀다. "너도 좀 연습이 필요한 것 같구나." 해리가 도비에게 말했다. "연습이라구!" 윙키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도비, 너는 너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야 해. 네 주인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그들은 더 이상 내 주인이 아니야, 윙키!" 도비가 용감하게 맞섰다. "도비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 "오, 너는 정말 나쁜 요정이야! 도비!" 윙키가 구슬프게 흐느꼈다. 윙키의 얼굴에서 또다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의 가엾은 크라우치 씨. 윙키도 없이 어떻게 지내실까? 그분은 내가 필요하셔. 그분은 나의 도움이 필요해! 나는 평생 동안 크라우치 가족을 보살폈어. 나보다 전에는 우리 어머니가 그 일을 하셨고 우리 어머니 전에는 우리 할머니가 그렇게 했어... 오, 만약 그 분들이 윙키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윙키는 다시 치맛자락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 울었다. "윙키, 크라우치 씨는 분명히 네가 없어도 완벽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우리도 그 사람을 봤어. 너도 알겠지만..."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주인님을 보셨다구요? 여기 호그와트에서 우리 주인님을 보셨단 말인가요?" 윙키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번쩍 들고 눈알을 굴리면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래, 크라우치 씨와 베그만 씨는 트리위저드 시합의 심판이야."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배그만 씨도 왔다구요!" 갑자기 윙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윙키의 얼굴이 다시 분노로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표정으로 보건대 그들도 역시 무척 놀라는 것 같았다. "베그만 씨는 나쁜 마법사예요! 아주 나쁜 마법사예요! 우리 주인은 베그만 씨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요. 절대로 아니에요!" "베그만이... 나쁘다구?" 해리가 물었다. "그럼요!" 윙키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주인은 윙키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했어요! 하지만 윙키는 말하지 않아요... 윙키... 윙키는 주인의 비밀을 지켜요..." 윙키는 또다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들은 윙키가 치맛자락에 얼굴을 묻고 구슬프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불쌍한 주인님! 불쌍한 주인님! 이제 윙키는 주인님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윙키의 말은 더 이상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윙키가 울도록 가만히 내버려두고 향기로운 차를 마셨다. 도비는 자유로운 요정으로서 맞이하게 된 생활과 앞으로 봉급을 쓸 계획에 대해서 즐겁게 떠들었다. "도비는 다음 주에 스웨터를 살 거예요! 해리 포터!" 도비는 아주 행복한 듯이 벌거벗은 가슴을 가리켰다. "도비,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론은 이 꼬마 집요정에 대해 커다란 호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나 입으라고 떠서 보내주시는 스웨터를 너한테 선물하겠어. 엄마는 항상 스웨터를 보내거든. 혹시 밤색이라도 괜찮겠니?" 그 말을 듣자 도비는 몹시 기뻐했다. "그런데 네 몸에 맞으려면 아무래도 스웨터를 좀 줄이는 게 좋겠구나." 론이 도비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어쨌거나 너의 차 보온덮개와 아주 잘 어울릴 거야." 그들이 떠날 준비를 하자, 주위에 서 있던 수많은 꼬마 집요정들이 바싹 다가와서 위층으로 가지고 갈 간식 거리를 잔뜩 내놓았다. 헤르미온느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는 꼬마 집요정들을 바라보면서 음식을 거절했다. 헤르미온느는 가슴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와 론은 호주머니에 크림 케이크와 파이를 잔뜩 쑤셔 넣었다. "정말 고마워!" 해리가 꼬마 집요정들을 둘러보면서 인사했다. 꼬마 집요정들은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모두들 문가에 서 있었다. "안녕, 도비!" "해리 포터... 도비가 가끔씩 찾아가서 만나도 될까요?" 도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지. 좋아."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자, 도비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주방에서 나온 후에 다시 현관 복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너희들 이거 아니?" 문득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프레드와 조지가 주방에서 음식을 슬쩍 해오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렇지? 저 꼬마 집요정들은 음식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야!" "내 생각에는 꼬마 집요정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도비가 이곳에 일하러 왔다는 사실 말이야. 다른 꼬마 집요정들도 도비를 보면, 자유로운 몸이 된 도비가 얼마나 행복한지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서서히 자신들도 자유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라구!" "차라리 꼬마 집요정들이 윙키가 쫓겨난 꼴을 보고 나도 저런 신세가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자꾸나." 해리가 비꼬듯이 말했다. "오, 윙키도 곧 기운을 차릴 거야."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약간 자신이 없었다. "일단 충격이 가시면 윙키도 호그와트의 생활에 익숙하게 될거야. 그렇게 되면 크라우치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게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윙키는 진심으로 크라우치씨를 사랑하는 것 같았어." 론이 약간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에 론은 크림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베그만에 대해서는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렇지? 크라우치가 집에서 베그만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해리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아마도 별로 좋은 책임자가 아니라고 말했겠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건 사실이잖아. 그렇지 않니?" 헤르미온느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나 같으면 늙은 크라우치보다는 차라리 베그만 밑에서 일을 하겠다. 최소한 베그만은 유머 감각 정도는 있잖아." 론이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네가 한 말을 퍼시가 엿듣지 못하도록 해." 헤르미온느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괜찮아. 퍼시도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 밑에서는 절대 일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안 그래? 물론 퍼시는 바로 눈 앞에서 도비의 찻주전자 보온덮개를 쓰고 벌거벗은 채 춤을 추더라도 그게 장난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론은 이제 초콜릿 슈크림을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