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신과 종교의 신 근대에 와서 철학은 그리스도교의 관리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교 신과 철학자의 신의 차이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신은 긍정 적, 부정적 속성을 모두 가진 아버지의 형상이다. 그는 사랑하고 분노하고 징계하고 용서하 는 아버지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성서'에서 신과 인간의 교류에 관 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에 반해 철학자의 신은 다채로운 인격체가 아니다.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신 이 영원한 법칙에 따라 경이롭게 움직여 돌아가는 우주로서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한 가지 밖에 없다. 그는 데미우르고스, 천재적인 기술자요 건축가이다. 근대에 자리잡은 경험과학은 이 경이의 세계를 탐구하고 법칙들을 발견하면서 '자연의, 혹은 신의 놀라운 작품'에 탄복한 다. Deus sive natura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사용한 말이다. 스피노자의 범신론 입장에 서 나온 이 문구는 "모든 것이 신적이다. 모든 것 속에 신이 있다"라는 뜻인데, 이 표현 역 시 앞에서 말했던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을 내포한다. 말하자면 나는 자연이 영원 하다고 결정하거나, 신이 영원하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신을 등지고 자연 쪽으로 결정했다. 신을 부정한 이유는 이렇다. 만일 유일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경이롭게 이루어진 이 세계의 창조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괴로움, 불행, 재난과 죽음에 대해 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유일한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악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것이 바로 신에 대한 변론, 곧 '변신론(Theodizee)'의 문제이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도 들은 신을 두려워하여 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조심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신에 대 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고대의 신들을 불한당이라고 깎아내렸다. 근대 계 몽주의에 와서 이 과정은 반복되었다. 철학자들은 이번에는 유일신에 대해 반대하였다. 신에 대한 변론 무엇으로 신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신을 비난했을까?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정의 의 신이 이 세계에 악을 공공연하게 허락한 것을 비판하였다. 전능한 창조주에게서는 오류 가 없는 세계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는 가능 한 한 최선의 세계이며 더 나은 세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에 대한 변론을 시도 하였다. 그는 세계에 있는 행복의 양은 최대치로, 불행의 양은 최소치로 정해진 것이라 했 다. 그런데 이 말은 이 세계에 있는 어떤 악을 밝혀내기는 쉽지만, 이 악을 제거하고자 하면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더 큰 악이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리하기는 해도 역시 문제가 있는 답이었다. 데미우르고스로서 신은 완벽한 작품 을 창조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모범에 따라 생각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라이프니 츠의 신은 가능한 한 최소의 비용을 지불하여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최대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상인과 같다. 이런 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것이 이제 우리의 관건이다. 아주 엄격한 척도를 설정 한다면 우리는 이런 신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라이프니츠의 신을 인정한다면, 우리들 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 정도 로 신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논의하기로 하자. 라이 르니츠의 제안을 관철되지 않았고, 도리어 그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볼테르 는 '캉디드'라는 풍자소설을 썼다. 이것은 일종의 모험소설로서, 주인공 캉디드는 온갖 불 행을 차례차례 거쳐가는데, 그의 동반자요 라이프니츠 철학의 추종자인 팡글로스는 모든 것 을 낙관적으로만 본다. 이 책에서는 라이프니츠의 세계 해석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는 낙 관주의자의 우스꽝스런 착각으로 드러난다. 팡글로스는 현실의 재난들을 겪을 때마다 줄곧 상투적인 말로 불행을 상대화한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쁠 수도 있었잖아." 그래서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9세기에 비관주의의 입장에서 철저히 라이프니츠 식의 세계 판단을 변형시켜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는 가능한 한 최악의 세계이다. 만일 조 금 더 나빠진다면 세계는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다. 인간의 철학인가, 진드기의 철학인가? 나는 여기서 1784년에 쓰여진 빌헬름 루트비히 베클린의 풍자 텍스트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글은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해결에 들어 있는 문제점을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먼저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명제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는 아무 잘못도 없 는 인간이 당하는 매일의 불행이 곧 세계질서와 신의 부재를 입증한다는 세간의 공격에 맞 서서, 도덕적 세계질서와 이 세계질서를 보장하는 선한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표상을 옹 호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에 인용하는 베클린의 텍스트는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 에담 치즈의 8층에 사는 진드기의 독백 은접시 위에 에담 치즈가 한 덩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가까이에는 촛불이 서서 치즈를 비추고 있었지요 치즈 속에서는 치즈의 유기 성분들이 내부에서 발효하여 진드기들이 생겨 났습니다. 진드기들 가운데 철학자가 하나 있어 치즈와 진드기의 근원과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하였 답니다. 어떤 신사 양반이 이 치즈를 드시려고 하는 찰나, 천체의 노래와 신경계의 울림과 벼룩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재의 귀를 가진 그 신사는 이 진드기의 독백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사에 대해 '어떻게'를 묻는 것은 종종 성가신 일이죠.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의심가가 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호기심이 많은 이 신사가 엿들은 진드기의 독백은 이랬습니다. 이 치즈의 향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맛은 낙원과 같구나! 얼마나 영양가 있는 음 식인가! 내 집은 편안하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여! 치즈를 만드신 그분, 우리 진드기를 위해 치즈를 창조하신 그분은 얼마나 전능하고 훌륭 하신지!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의지요. 우리의 행복이 그분의 목적이다. 우리는 사물의 쓰임 을 보아 그 의도를 알 수 있는 법. 더욱이 이 치즈 세계는 가능한 한 최상의 세계다(치즈 주인은 치즈가 너무 짜다고 생각했 는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창조주가 더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 이 그것을 만드셨을 테니까. 어째서 창조주께서 완전한 것을 뒤로 미루고 평범한 것을 만드 셨겠는가! 저 멀리에서 나의 치즈를 비추는(이 대목에서 진드기는 촛불을 향해 미소짓는다) 저 빛나 는 물체, 우리를 위한 빛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 빛은 얼마나 상쾌하고 얼마나 고마운 지! 내 눈의 신경조직에 적당한 저 빛! 그래, 빛은 진드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로구나! 행복한 진드기들이여! 너희들이야말로 세계의 모든 구성체들 가운데 중심이며 궁극 목적 이다. 빛은 너희의 기쁨을 위해 빛나고 치즈는 너희를 위해 향을 풍기며, 치즈의 지방질 성 분은 너희를 환락으로 초대하는구나. 진드기가 이 세계의 목적이기에 자연은 그의 모든 작품들을 진드기의 수단으로 사용되도 록 진드기보다 아래 놓았도다. 그렇기 때문에 숭고한 진드기들이여,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 의 실존은 자연이 너희에게 부여한 유산의 전체가 아님을 명심하라. 자연이 이 영원한 목적인 우리를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모든 광채가 집중하고 있는 이 중심이 없다면 자연의 모든 순환이 어찌 존속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는 없으리! 진드기 들이여, 너희들에게는 가장 숭고한 계획이 예비되어 있도다. 치즈의 구멍에 머무는 이생에서 의 삶이란 다만 멋진 하루의 한낮을 기다리는 장밋빛 아침일 뿐이로다. 지금 나의 정신을 사로잡는 이 숭고한 사상은 내 신체기관들의 작용을 훨씬 능가하는구 나. 참으로 나는 내 몸을 이루는 요소들의 내적 본질과 그것들이 조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조합으로부터 어떤 작용이 가능한지, 또 어떤 작용이 가능하지 않은지를 선험적으로 알 수 있도다. 바야흐로 이 연설가는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할 참이었습니다. 미래에 일부는 뜯어먹으면 서 살게 될 치즈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결코 취소할 수 없었던 진드기 형이상학 의 수많은 기본 개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신사 양반은 진드기의 헛된 노고를 동정하여 진드기가 지루한 삼단논법을 계속 나열하는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서 그만 이 철학자를 그가 서 있던 강단과 함께 입안에 넣어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드기 철학자는 교살자의 이빨 사이에 씹히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보존과 행복이 자연의 궁극 목적이라고 주장했지요 아마. 이 텍스트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 요소가 뭘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진드 기 한 마리가 그렇게 고상한 척 철학을 하는 것과 현실에 대한 어리석은 오해로 인해 치즈 가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상상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드 기의 형이상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진드기가 늘어놓은 철학은 곧 라이프니츠의 철학이었다. 그것을 진드기가 발설했 다고 해서 이 철학이 우스운 것일까? 인간이 그것을 주장한다면, 그때는 이 철학이 더 이상 우습지 않은 것일까? 앞에서 인용했던 유니버스 교수의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결국 동정심 으로 '진드기가 계속 철학하는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진드기와 함께 치즈를 먹어치운 이 신사는 바로 유니버스 교수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유니버스 교수와 같은 존재가 정말 있어서, 우리 인간들을 엿들으면서 우주가 우리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떠드는 것에 대해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것은 베클린이 말한 것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진드기는 한 예일 뿐이다. 모든 생물이 철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들 모두가 라이프니치 철학의 추종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자는 자기를 위해 양을 만들어 준 것을 창조주께 감사하지 않을까? 늑대는 거위에 대해 즐거워할 것이며, 황새는 개구리에 대해서, 개구리는 메뚜기에 대해서, 메뚜기는 인간이 경 작한 밭을 몽땅 갉아먹어치우면서 기뻐하지 않을까? 틀림없이 진드기와 코감기 세균은 인간 에 대해 기뻐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생물을 위해서 이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것 이란 말인가? 분명히 모두를 위해서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물론 이런 결 론도 가능하다. 이 세계는 특별히 어떤 생물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그건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집 '프로타고라스'에서 동물과 인간의 창조에 대한 신화를 이야기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인 에피메테우스는 각 생물들에게 저마다의 특성을 부여하는 임 무를 맡았다. 물론 에피메테우스는 생물들의 세계가 어떤 기능으로 돌아가는지, 또 이 세계 를 어떻게 균형 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가 맹수들에게 강한 이빨과 발톱 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세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약한 동물들에게는 다양한 의사소통과 도주의 능력들을 주었다. 어떤 것들은 딱딱한 갑옷으로 무장하거나 뿔을 가졌고, 또 어떤 것 들은 매우 빠른 발을 가져서 쉽게 달아나거나 날아갈 수 있었다. 또 어떤 것들은 나무타기 의 재주를 가졌고, 어떤 것들은 몸을 숨기고 위장하는데 능숙했다. 큰 몸집으로 자신을 지키 는 동물도 있고, 아주 작은 몸집으로 자신을 지키는 동물도 있다 그런데 인간의 차례가 되 었을 때 에피메테우스에게는 자연의 모든 재능을 다 나누고 주고 남은 것이 없었다. 인간은 벌거숭이에다가 허약한 채로 남겨졌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도와 육체적 약점을 보 완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지능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가 관장하던 기술의 능력과 불, 그리고 제우스의 정치술을 신들로부터 훔쳐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 이런 능력들을 지님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알고 있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물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지만 '신화 '가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한다. 우리는 '에피메테우스' 대신 '진화'를 말하고, '생태학적 영역'에 대해 논한다. 우리는 이 런 개념들을 가지고 위에 기술한 에피메테우스의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간을 '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이해하며, 인간의 기술적, 조직적 능력들을 인체의 '열등함'에 대한 '보완'으로 파악한다. 말하자면 옛날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셈이다. 그러면 이 새로우면서도 오래 된 이야기 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의 생명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생명을 소모해야 한다 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먹고 먹힘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생물을 먹고 살 것을 찾 는데,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선천적으로 허약하게 무장된 인간은 자신의 기민 함으로써 삶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법을 찾았다. 낙원의 표상 속에서 인간은 생물들의 생존을 위해 서로 적이 되어 뒤엉킬 필요가 없는 세 계를 꿈꾸었다. 낙원에서 인간은 곤궁에 시달리지도 않고, 투쟁과 힘겨운 노동 속에서 생계 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이상과 비교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일종의 형벌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 다. 현재의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라고 주장한들 세계의 비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 다. 그래서 결국 절대적으로 완전한 세계라는 이상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세계는 불완전하 다는 사실이 문제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하고 전능한 창조주에 대해서는 그가 완전 한 세계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이프니츠가 했던 신을 위한 변론의 시도는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보는 현 실이 그와 같기 때문이다. 창조신이 선과 악이 함께 속하는 세계를 창조했고, 모든 생물은 살기 위하여 다른 생물을 죽여야 한다면, 이 신은 우리에게 어떤 법칙을 줄 수 있을까? 신 은 우리에게 엄격한 지침을 내리거나, 아니면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선하거 라, 그리고 살아남기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악하지는 말아라!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특별히 악하다거나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라 세계구조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세계 자체가 우리가 삶을 유지하려 할 때 다른 생명을 생존을 위한 수 단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있 으며, 그것은 다른 모든 생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낙원에서라면 생계유지를 위하여 이기주 의자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쩌면 악에 대한 쾌락을 생각할지 모른다. 다 른 사람의 불행과 고통에 대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악일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실패한 변신론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히 밝혀진 사실은, 우리가 단지 하나의 원리 혹은 하나의 힘을 토대로 삼을 때는 변 화하는 현상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기술하기 위 하여 힘과 그 반대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이 힘들을 사랑과 미움(엠페도클레스가 말한)이라 명할 수도 있고, 혹은 양전기와 음전기, 혹은 인력과 항력으로 부를 수도 있으며, 또는 신 (선한 신, 건설하고 창조하는 정신)과 악마(악한 신, 파괴하고 거부하는 정신)라고 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서 낙원은 하나의 힘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세계, 오직 건설되고 보존하기만 하 는 세계의 표상이다. 자명하게도 우리의 세계는 이런 낙원이 아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낙원이 있을 수는 있을 까? 신과 악마의 신화는 낙원을 우리 인간들이 함께 노력할 때 이룩할 수 있는 미래의 희망 으로 예고하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현존하는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것이라고 주장함 으로써 미래의 낙원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인정하라고 우리를 재촉했던 것이다. 그것을 결과로 받아들이기엔 실망스럽다. 그러면 불완전한 이 세계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라이프니츠처럼 낙관적으로 말하거나, 혹은 쇼펜하우어처럼 비관적으로 말할 때 무 엇이 달라지는가? 또 이것이 우리의 신에 대한 표상에서는 무얼 의미하는가? 신 없는 세계 라이프니츠의 변신론 시도가 비판을 받고 난 후, '신'의 테마는 서양 철학에서 차츰 자취 를 감추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철학자들이 신의 나태함을 등진 것이 아니라 신을 모범 으로 인정하고 공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유의 역사는 다시 반 복된 셈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인간의 작품 이라고 선언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은 전능하고 정의로운 유일자 신을 두고 논란을 벌였으며, "그들이 한 일을 보아 그들을 안다"는 그리스도교의 모토에 따라서 신이 한 일인 이 세계를 판단했고,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신을 폐지해 버린다면, 선한 신이 악과 불행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이유에서 그런 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과 연 인간은 무엇을 하겠는가? 이 장의 주제를 상기해 보자. 우리는 의미에 대한 물음을 다루고 있다. 신은 존재한다. 최 고의 입법자인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세계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이런 생각이 확고했을 때 인간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노고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들과 마지막에 치러야할 죽음이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삶', 다시 말해서 모든 근 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서 보상된다고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신이 사라져 버리면, 인간은 그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스스로를 버림받은 아이들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작가인 장 파울은 '지벤케스'라는 소설을 썼다. 이 책에서 주인공 지벤케스는 끔찍한 꿈을 꾼다. 죽은 그리스도가 우주 꼭대기에 앉아서 자신은 아버 지 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은 헛된 것이었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그런 꿈이다. 이런 생각이 주인공에게는 너무나 몸서리쳐지는 것이었기에 그는 얼른 이 꿈을 악몽이라 고 지워 버리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니까"라고 스스로 에게 되뇐다. 사실 우리가 지혜로운 창조주의 존재를 입증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는 이 세계가 의미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현명한 정신이 만든 것이고, 그 정신은 객관적인 도덕적 세계질서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종교에서 전승되어 온 바와 같이, 인간의 법을 신이 부여한 것으로 간주하는 생각은 이러한 표상에 부합되고 있다. 예들 들면 모세는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고, 그보 다 훨씬 전에 바빌론의 지배자도 함무라비 법을 신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도덕적 세계질서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 공동생활을 위한 법을 우리 스스로 설립해야 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우리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획득하게 되고, 신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선과 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신이라도 역시 자신이 좋은 신이 될 것인지 나쁜 신이 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자연적인 윤리적 세계질서를 믿지 않을 때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과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통찰과 자 신의 결정을 통해 윤리적 질서를 제시해야 한다. 자신의 이성으로 법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 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다음장에서는 옳은 행동에 대한 문제를 두고 벌어졌던 철학적 노력들을 소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까지 다룬 주제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신에 대 한 의심이 근대와 현대의 철학적 사유에서 어떤 결과들을 낳았는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과학에서 남긴 결과 변신론의 실패로 인해 과학에는 균열이 야기되었다. 근대초만 해도 천문학이나 물리학 같 은 경험과학들은 비록 교회의 입장에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반적으로 수용된 창조신의 표상에 묶여 있었다. 이러한 이념이 좌초하고 난 후 경험과학들은 무신론적이 된 다. 18,9세기에는 더욱 강하게 유물론이 확산된다. 현실의 모든 것을 물질적 성분으로 이루 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성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모든 사태가 야기되는 합법칙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임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유물론을 경험과학을 위한 강령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물론은 더 나아가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그것은 영역이 제한된 철학이다. 왜냐하면 이제 실증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물론 철학은 실증 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들 에게 '정신적인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쉽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난 세기의 유명한 자연과학자 에 른스크 헤켈은, 신이 기체로 된 척추동물이라고 악의에 찬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말로 써 그는 사람들이 신을 인간의 모습을 한 전지전능한 인격으로 상상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이 '신'을 무의미한 낱말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 한 결과였다. 실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대상들 가운데는 이 낱말에 부합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 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세계를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으나 세계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우리들 인간의 현존과 행위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예술에서 완전한 것의 구현 그러면 어떤 학문이 의미에 대한 문제를 모색한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논의한 것이 '정 신과학'이다. 정신과학은 인간정신이 이루어 낸 작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런 이름을 얻 게 되었다. 인간 정신의 작품에 속하는 것은 회화와 조각, 음악, 문학 등 예술작품들과 철 학적 사유구조들, 건축물들, 기계와 같은 기술의 걸작들, 과학이론들, 그리고 역사적 행위들 이다. 사람들은 전에 창조신을 천재적인 건축가, 화가, 조각가, 기술자, 학자 등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인간으로서 천재적인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들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더 이상 천재적인 창조신의 작품으로 찬양하지 못하고, 긍정적 의 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이 세계를 단지 현상들의 법칙에 따른 진행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인간이 예술과 문화 영역에서 이룬 성과들에서는 영속적이고 의미 있는 것을 보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술작품들 속에서 외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완전성, 즉 절 대 가치를 찾게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작품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신 전들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 신전을 우리는 '박물관', 혹은 '예술의 전당'이라 부른다. 박물 관을 독일어로는 '무제움(Museum)'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예술의 여신 뮤즈를 섬겼던 고대의 신전 '무제이온(Museion)'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열정적으로 숭배한다. 그것들은 곧 인간이 완전한 것을 창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과 정신의 창조는 우리가 창조신에 대 해 말하는 creatio ex nihilo(무에서 유를 차조)와 거의 비슷하다. 한 장의 종이는 처음에는 텅 빈 채 아무것도 없지만 나중에는 그 위에 악보가 쓰여지고, 철학과 학문의 사상들이 기 록되며, 그림이 완성된다. 종이 한 장의 물질적 가치는 기껏해야 1백 원도 되지 않지만, 그 것은 마침내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한 가치의 변화는 렘브란트 와 베토벤, 아인슈타인, 요제프 보이스 등 위대한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대 로마인들은 거창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큰 건물을 하나 짓고, 그 안에 그들이 아는 모든 신들이 조각상을 세워 놓았다. 이 건물의 이름이 판테온이다. 파리에도 역시 팡테옹이 있는데,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인간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이룬 정신적 성과들로 인하여 '불멸의' 존재로 꼽히게 되었다. 물론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불리고, 조각상이나 이름으로 남아서 '영속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를 더 드는 것은 그만하기로 하고, 이제 이 사실 하나는 확정지어야 한다. 인간은 신의 상실을 고통스러워한 나머지 '신적인 것' 이라는 표상만큼은 간직하였다. 하지만 '신적인 것 '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에 대한 학문인 신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간학 '으로 뒤바꾸게 되었다. 지난 세기에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뒤바꿈을 아주 인상 깊게 표현하였다. 그는 성서에 나오는, "신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다"라는 문장을 뒤집어서 "인간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신을 창조하였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 진 사람들의 귀에는 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그것은 수미일관한 표현일 뿐 이다. 우리는 수학에서 하나의 등식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을 수도 있고, 오른쪽에서 왼 쪽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위 문장에서 '형상에 따라'라는 표현에 '동일 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하기 시작했을 때, 벌 써 그들은 이 동일성을 이용했던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사람들이 이미 실행해 온 것을 그 렇게 표현했을 따름이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질문 나는 이미 인간이 신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이 세계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 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서 살다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들은 무에서 와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존재하고, 삶 속에 있으면서 삶 의 온갖 강요 속으로 연루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성공하기도 하고 실 패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해 불안해한다. 알던 사람들을 잃고 나서 슬퍼하고, 어느 날엔가는 그들도 역시 죽어서 다시 무 로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말하기 좋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한 결말이 없는 이야기이다. 종교에서 는 물론 신이 위로와 구원, 그리고 영원한 축복의 약속을 통해서 인생 모험의 행복한 결말 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이 유명한 속담에는 지나간 괴 로움과 고통과 불행들이 영속적으로 행복한 궁극의 상태를 통해 모두 상쇄될 것이라는 소망 이 표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쓰고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 들은 거의 모두가 '해피 엔드'로 끝난다. 그저 극히 소수의 이야기들만이 다르게 끝나는 데, 그것은 비극이거나 대체로 실제 현실의 삶을 그린 이야기들이다. 모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종말을 알지 못한다. 이런 불확실성이 인간의 행 복을 갉아먹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명한 격언 하나를 뚜렷이 남겼다. "죽은 이가 아니면 그 누구에 대해서도 행복하다 부르지 말라, 또 그이 종말이 평화로웠음을 알 라." 더 나아가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운명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삶의 우연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를 숙고하였다. 고대의 행복론과 근대의 실존철학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인식한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외부적 현상들에 좌우될 뿐 아니라 마음속의 소망과 기대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소원을 가진 사람은 욕구 가 없는 사람보다 많이 실망하게 된다. 디오게네스의 이야기는 무욕에 대해 고대로부터 우 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대단히 인상적인 일례이다. 낡은 통 속에서 살았던 그는 세계의 정복 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당황케 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에게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줄 테니 말해 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비켜서 주시오." 이 점에서는 스토아 철학자들도 유명해졌다. 그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망, 열 정 들을 완전히 억제할 때 불행을 피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상태를 '아파테이다(apatheia)'라고 불렀다. 이는 '모든 열정에서 해방된 냉담한 상태'를 뜻한다. 냉담한 사람은 실망할 일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평범한 '삶의 유희'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한 스토아 철학자들이 영혼의 평화를 행 복으로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으며, 여기 에는 삶의 종말도 포함되었다. 우리에게 보고된 바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 유 의지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삶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삶이 그들에게 종속되었음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토아적'이라는 말은 스토아 철학자들 의 인생관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그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토아 적인 태연함'으로 견뎌내는 사람의 태도을 지칭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삶이 제공하는 모든 아름다운을 충분히 즐겨야 한 다는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스토아 철학자들의 비난과 적의를 감수해야 했다. 아울러 인간이 사회의 큰 사건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은둔하다시피 자신의 삶을 설정해야만, 정치와 사회의 변동에 의해 방해받는 일 없이 개인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바로 고대의 철학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행복론'이다. 두 경 우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히 현세적 차원에서 삶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유일한 창조신이 삶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임무를 마친 후, 근대 철학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사유했는지 물을 수 있다. 실제로 철학이론들로부터 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 린 후, 철학자들은 인간 삶의 철학을 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은 19세기에 '실존철 학'이라는 이름으로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금세기에 들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실존철 학의 터를 닦은 이는 덴마크인 쇠렌 키에르케고르이다. 그러나 그는 노골적인 무신론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신을 믿고 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불행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가 저지 른 죄 때문에 신이 자기를 벌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것은 끔찍한 표상이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졌던 운명의 표상보다 훨씬 더 불쾌한 것 이다. 그리스인들은 운명이 눈멀었다고 생각했다. 운명은 예기치 못하게 닥쳐오기 때문에 어 떤 사람이 만나고 어떤 사람이 면할는지 알 수 없다. 그 배후에는 체계도 없고 계획도 없다. 그저 운명과 마주치면 그 사람은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겪는 불행을 호소하게 되 지만, 그러나 불행 가운데서도 그에게는 유일한 위안이 있다. 그가 당하는 불행이 적어도 자 신의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에 반해서 키에르케고르는 가학적인 신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그 신은 체계적으로, 게다가 꼭꼭 숨어서 그를 파멸시킬 때를 노리고 있 다. 자신의 존재가 '눈먼 운명'이 아니라 전능한 인격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 전 능자가 근대의 친절한 창조신이 아니라 마음대로 행동하고 처벌하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신 이라는 생각은 키에르케고르를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그의 전생애를 비참하게 했다. 그래서 이러한 절망을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불안의 개념', '공포의 전율', '죽음 에 이르는 병'과 같은 표제을 달고 있다. 신과 키에르케고르의 문제를 제쳐 놓는다면, 우리는 그의 저작들을 어느 불행한 인간의 탄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낯선 힘으로 인간과 마주하고 있는 삶에 대한 탄식이다. 20세기의 다른 실존철학자들도 바로 이러한 문제를 철학의 중심 테마 로 삼았다. 그들은 '존재로 내던져짐'에 대해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되어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의 '내던져짐'에 대하여 그들은 삶 자체의 '기획성'을 대립시켰다. 그들은 인간이 여러 계획들을 만듦으로써 삶의 기획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부분 인간은 삶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기획을 변경시켜야 하고, 어쩌면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다. 삶의 매단계에서 이러한 위험을 직시해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짓을 아예 생각하지 않을 때, 인간은 만족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고트프리트 벤은 이렇게 악의에 찬 격언을 남겼다. "Dumm sein und Arbeit haben, das ist das Gluck-어리석은 채 일만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어리석음에 의한 행복? 우리들 현재의 삶을 살펴보면, 벤의 말을 수긍하게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간 에, 일할 때나 휴식할 때나 어리석을 정도로 바삐 몰두하면서 삶의 문제들로부터 관심을 돌 린다. 그리고는 거의 예외 없이 물질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서 행복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반드시 많은 물건들을 가져야 하고, 유명한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기 원한다. 하지 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든 것이 더 많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바지에 투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문명비평가들과 실존철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보았고, '소외'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상세하게 논구하였다. 여기서 '소외'란,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규정으로 부터 멀어져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 그릇된 삶의 기획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 다. 그런데 대체 인간의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는 또다시 앞장의 기본 질문으로 온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규정이 외부에서, 다시 말해 신을 통해서나 자연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님 을 알았다. 인간은 그것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인간 실존에 부과된 것이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것, 그것은 실존철학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에 의해 망가지기 쉬운 인간 실존을 분석했을 때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20세기 철학자들도 원칙적으로는 고대 철학자들보다 더 나은 답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인간 삶의 비극성을 대단히 풍부한 언어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확인된 세계의 무의 미성에 직면한 인간이 자신과 타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자신의 삶에 부여할 때 얼마나 영웅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를 꾸준히 밝혀내었다. 8. 올바른 사회질서의 탐구 이로써 우리는 마지막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에 도달하였다. 그거은 인간이 객관적인 도덕 적 세계질서에 의지할 수 없을 때, 세계 속에서 자기 행위의 근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실천철학이 이런 문제를 탐구하는데, 이 질문은 우리의 세계인식의 한계에 대한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평화롭거나 평화롭지 못 한 인간 공동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간 공동의 삶의 규칙에 대한 이 질문이 과학이 제기하는 질문들 과 달리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서 인간들이 계속해 서 서로 싸우고 죽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특히 금세기에 와서 심 각하게 자행되었으며,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이유에서 서로를 말살하였다. 그런데 1989년에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반목하는 두 개의 정치적 입장으로 갈라졌던 유럽의 마감을 의미하 는 세계사적 사건을 경험하였다. 양진영의 한편은 사유재산과 자유시장경제를 기치로 내세 운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사회였고, 다른 한편은 그것과 다른 경제와 소유질서 속에서 사람 들에게 행복을 약속한 공산주의 사회였다. 이 두 체제들은 계속 다투면서 전쟁의 가능성으 로 서로를 위협하였다. 아마도 전쟁이 일어났더라면 그것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오는 최후의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발달된 무기들을 사용될 경우 모든 생명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양측은 전쟁을 함부로 감행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세계의 종말이 될 묵시록적 전쟁의 위협이 있었기에 비교적 안정된 평화가 야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위협으로만 존재했던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나 자, 이번에는 갑자기 새로운 전쟁들, 즉 내란과 내전이 도처에서 발생하여 우리를 또다시 곤 경에 빠뜨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천년왕국'으로 시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거기서 전체 세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결과를 남긴 조직적인 민족 말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세 계사의 아무데로나 되돌아가 보아도 우리는 항상 싸움과 전쟁에 부닥치게 된다. 고대 철학 자 헤라클레이토스는 "polemos pater panton-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들의 전쟁만을 의식하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이 진행되는 기본 원 리를 표현하려고 했다. 말하자면 세계의 모든 일들을 서로 다른 힘들의 상호 작용 내지 길 항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상세하게 논의 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싸움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러한 원리에 종속된 채 행 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다른 소망들을 가지고 있을까? 안간의 윤리의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시금 옛 신화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신화 속에서는 우리는 인간 자신에 대한 지혜로운 사고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낙원 이야기에서 뱀은 금지된 열매를 따먹으면 인간이 신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의 인식을 얻게 될 것이라 하면서 이브를 부추긴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실제로 그들은 선과 악의 인식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신의 계율을 어겼음을 의식하여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자기 인식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과 도덕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에 해야 하 는 것 사이의 긴장 속에서 모든 행동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욕망과 윤리적 질서 사 이의 갈등은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윤리적 질서는 인간에게 어떤 특별한 행위들은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이런 윤리질서가 어디에서 온 것이길래? 크리티아스가 말하는 도덕의 발생 플라톤의 친척인 고대 철학자 크리티아스는 아주 명석한 답을 제시하였다. 그가 쓴 이러 한 글이 전해져 온다. 아주 옛날에 인간의 삶은 질서란 것을 알지 못했다. 인간은 들짐승처럼 살았고, 조야한 폭 력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 때에는 선한 사람이 칭찬을 받는 일도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 도 없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정의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지배하고, 방종이 억제될 수 있도 록 엄격한 교사로서 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 죄를 범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다. 법이 그렇게 공공연한 폭력행사를 저지하게 되니까, 이번에는 은밀하게 악행이 이루 어졌다. 그때 사람들이 은밀하게 악을 행하거나 말하거나 혹은 생각만 하더라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어떤 영리하고 지혜로운 이가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가르쳤다. 영원히 사시는 신이 계신다. 능력으로 충만하신 그분은 정신으로 보고 들으시며, 인간을 초월하여 통찰하신다. 신의 본성을 가지신 그분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 인간 들이 서로 하는 말을 모두 들으시며, 인간들이 하는 행위를 모두 보실 수 있다. 만일 네가 입을 다문 채 나쁜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신 앞에서는 그것을 절대로 숨길 수 없다. 신께서 는 인간을 초월하는 인식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런 연설로써 그는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간교한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진실을 기만적인 말로 은폐하였다. 그는 인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그곳에 신들이 산다고 했다. 인 간의 불안과 불쌍한 인간의 삶을 위한 축복도 저 높은 곳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이 보이 고 천둥의 그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별이 박힌 하늘의 둥근 지 붕은 영리한 예술가인 시간의 훌륭한 작품이며, 그곳에서 낮의 빛나는 둥근 공이 길을 떠나 고 눈과 비는 땅으로 흘러 내려온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불안을 일깨움으로써 사람들을 겁 주었으며, 적절하고 그럴 듯하게 신의 품위에 맞는 장소에 신들의 거주지를 정해 주었다. 그 렇게 그는 법으로 인해 야기된 불법적인 의미를 제거하였다. 우리는 태초의 인간들이 정말 '들짐승처럼' 완전히 무법으로 살았었는지에 대해 더 깊 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확실히 모든 것이 그의 말대로는 아니며, 들짐승들도 나름대로 규 칙에 따라 살고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인간이 오로지 이기적으로 서로를 대하 고 각 개인이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면, 인간 공동의 삶은 있을 수 없었 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 대신 살인과 난동이 판을 쳤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의식적으로 법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평화로운 공동 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은 금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시인하는 것과 똑같은 권리를 부여받은 존 재로 여기고 존경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생명과 소유 그리고 타인의 관심이 존중되어 야 하고, 저마다 추구하는 관심들이 조절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의 공동체-가족이나 부족뿐만 아니라 그 크기를 능가하는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인척관계이고 서로를 잘 아는 공동체들이 있다. 그런 부족 안에서는 동 정과 우정, 모자관계 등에 근거하는 교류방식과 서열이 형성된다. 원숭이같이 우리와 가까운 동물들이나 인간들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작은 집단 속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대가족으로서 강한 소속감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써 국가를 이룰 수는 없다. 철학적 사유에서는 이렇게 작은 집단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생활의 규칙을 ' 친족 윤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족의 크기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할 경우에는, 낯 선 이들과 교류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규칙과 친족 윤리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부 족끼리의 생활은 곧 부족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외부인을 경쟁자나 적으로 느끼며, 거부하고 추방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유인원들을 관찰함으로써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인간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친족 윤리는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윤리로 대치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작은 집단을 대신하여 보편주의적 윤리원칙 속에서 전체 인류 공동체가 등장하게 된다. 크리티아스의 텍스트를 다시 검토해 보자. 이 글은 인간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자 신과 근친관계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임의의 타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고려하면서 전반 적인 인간의 문제를 기술하고 있다. 인간이 설정한 법들은 임의의 타인에 대해 개인이 취하 는 태도를 조절해 준다. 옛 히브리인들의 십계명을 살펴보면, 그 중에서도 특히 거짓말, 도 둑질, 살인 이 세 가지 금지조항의 요점은,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것 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고, 하물며 사람을 죽이는 것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 계명들을 지킨다면 모두가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선으로 간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다.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간단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곧 선이다." 더 강한자 에게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열 투쟁에서 형성된 다양한 특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계율들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이웃'은, 친족, 친구, 모르는 사람,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나 여자 모두를 포함한다. 이웃은 곧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대접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멋지고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계명들이 요구하 는 대로 남을 배려하면서 그렇게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 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을 보면 그러한 관찰은 정확하다. 그러나 계율 태도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올 바르고 선한 행동을 위한 실제 지침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은, 예를 들어 내전에서 사 람들이 서로 죽일 때에도 역시 유효하다. 그러므로 계율 자체가 틀리거나 모순된 것이 아니 라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다. 크리티아스가 말하는 신앙의 기능 크리티아스로 돌아가자! 정의는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 그것이 곧 법의 의미이지만,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공으로 인정된 법을 몰래 어기면서 행동한다. 선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행동할 때는 이기주의에 굴복될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히 인간 본성의 나약함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몰래 어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크리티아스의 말대 로 어느 영리한 사람이 종교와 함께 신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냈다. 영리한 사람은 인간 이 스스로 설정한 윤리질서가 실제로는 신의 뜻이며, 윤리적 세계질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 니까 법을 위반하는 사람은 세계질서를 위반한 것이며,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처벌 받게 될 것이다. 크리티아스는 이렇게, 신의 처벌로 위협하여 이기적인 인간들이 선을 행하도록 강요하는 중요한 현세적 기능을 종교와 신들에게 부여한다. 종교는 인간을 악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증은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근대 초기에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저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를 제시하여, 이기주의자들이 성급하게 무신론자가 되지 말고 이 렇게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했다-만에 하나라고 신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모든 잘못을 벌한 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사람이 현세에서의 작은 이익을 위해 영원한 저주라는 엄청난 손해 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잘못한 계산이다. 관용과 신앙고백의 자유가 중요시되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무신론자들은 그러한 자 유를 아직 누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윤리적 세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곧 선한 인간이 아닐 수 있다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말했던 볼테르 는, 1755년 리스본에서 끔찍한 지진이 있고 난 후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의 존재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법을 무시한다는 비난으 로부터 무신론을 놓아 주어야만 했다. 이 테마는 이미 자세히 다룬 것이므로, 이 정도만 해 도 좋을 것이다. 분명히 크리티아스는 짤막한 텍스트 속에서 대단히 옳은 것을 말했다. 고대에 여러 입법 자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로부터 법을 받았다고 했다. 인간은 어떻게 법의 근거를 설명할까? 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인간은 공동 생활을 조절하기 위하여 스스 로 법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법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을 지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인간 공동체의 상태가 이루어진다. 법은 그것을 준수함으로써 인간을 위해 좋은 결과를 초래하였을 때 선한 것이다. 사람들 이 때로는 진실을 말하고 때로는 거짓을 말한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없 을 것이다. 그래서 계율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된 사람이 나에게 자기가 다시 건강해질거라는 확신의 말을 해달라고 애원하는데, 내가 "아니, 그렇지 않네, 여보게 자넨 곧 죽게 될 걸세"라고 치명적인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과연 선을 행한 것일까? 진실을 위해서 절망에 빠진 사람의 희망을 빼앗아도 된단 말인가? 아니, 반드 시 그래야 한단 말인가? 내가 단지 굶어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이유로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손을 댄다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율은 그때 무슨 의미이겠는가? 또 내가 아돌 프 히틀러와 같은 폭군을 살해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율들을 무조건 지켰다고 해서 그 결과 또한 반드시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분 명히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갈등에 빠져서 다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도덕적 계율은 무조건 타당한가? 아니면 이같이 무조건적인 의무를 뛰어넘어도 되는, 혹은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철학적 논쟁이 불붙었고, 그 논쟁은 현재까지 진행되었다. 의무론 대 목적론 논쟁의 한편에는 의무의 윤리를 주장하는 의무론자들이, 다른 한편에는 계율과 규칙의 결 과들을 묻는 목적론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순수 의무론자들은, 모든 의무는 절대적 의무로 서 어떠한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다른 면에서는 명석한 철학자였던 칸트는 의무론자였고, 이렇게 오싹한 예를 하나 제시하 였다. 만일 살인자에게 쫓기는 사람이 내게 와서 자기를 숨겨 주고 살인자가 딴 길로 가도 록 틀린 정보를 말해 달라고 청하면, 나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를 거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태도에 어울리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Fiat iustitia, pereat mundus-정직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우리는 어떤 점에서 의무론자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는 계율과 의무들에 순서를 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자기 행위의 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는 모든 의무조항들을 문자 그대로 지킬 때 자신이 정직하다고 믿는다. 순수한 지조가 그에게는 행위를 결정하는 유일 한 척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지조의 도덕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조의 도 덕가가 되기는 쉽다. 지조의 도덕가는 의무조항이 적힌 노트를 팔 아래 끼고, 아무런 방해 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량한 양심이 엄청난 파 국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목적론자들의 논증은 달랐다. 그들은 모든 계율에는 목표가 있다는 것을 옳게 인식하였다. 그 목표는 인간 공동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행위들을 그 결과에 따라 판단하였으며, 행위는 그 결과가 선할 때 허용된다는 결론 을 내리게 되었다. 모든 행동은 일련의 결과를 초래한다. 가장 먼저 그 결과는 행위자 자신 에게 해당된다. 그것은 분명히 행위자가 의도했던 결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런 행동 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의도적인 것으로서 대체로 선하다. 누구나 제 자신에게 는 잘하고 싶은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이런 말장난도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나는 나에게 잘한 것이다." 그런데 한 인간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선하다'고 할 것인가 '악하다'고 할 것인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결과에 따라 결정된 다. 만일 어떤 이기주의자가 자기는 어쨌든 한 인간에게, 즉 자기 자신에게는 선하다고 주 장한다면, 우리는 그를 인정하기는 해도 그 말은 곧 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에 대한 정의 라고 할 것이다. 행동함에 있어 남을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그것이 바로 선한 행동에 대한 정의가 된다. 남의 소유를 차지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선을 행하고, 게다가 소유의 가치를 정확히 잴 수 있는 실제적인 이익을 창출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이익 본 만큼 남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 다. 이와 같이 어떤 행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피해 를 전부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공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자신 들의 입장을 첫눈에 명확히 보여 주는 하나의 명제를 행동의 지침으로 내걸었다. 그것은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의 대차대조표를 계산하고, 그것을 모두 모아 계 산하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아야 한다. 이는 현명한 상인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상인은 지출과 수입을 계산하여 수입에서 얼마가 남았는지 본다. 이익을 많이 남길수록 그 는 장사를 잘한 것이다. 반대로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서 마이너스가 되면 그는 이 수치를 빨간색(빨강은 경고의 색이다)으로 적는데, 이때 그는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이른바 '행복의 회계사'가 되었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오늘날 매우 흥미 로운 철학적 보험수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행복은 어떻게 계산할까? 2백여 년 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행복산술법, 혹은 '쾌락의 산정법'을 전개함으 로서 이 분야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어떤 행동을 통해 의도한 행복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곰곰이 따져야 하는데, 이 를테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느긋한 행복의 상태와 짧지만 강도 높은 행복의 상태를 비교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결과들이 계속해서 예상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를테면 즐겁 게 술을 마신 후에 오는 고통스런 숙취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원하는 행복의 상태가 가 까운지 멀리 있는지, 또 기대한 것이 이루어질 때 동반될 수 있는 안전이나 위험에 대해서 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행동에 관련된 사람들 각자에 대해서 개인적 차원의 손익계산이 이루어 져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취향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세계를 정복하 려 하고, 어떤 사람은 통 앞에 앉아 일광욕이나 하면서 세계의 정복자가 자기를 방해하지 말 것을 원한다. 벤담은 쾌락의 서열을 정하지 않았고, 이것을 개인들에게 맡겨서 각자 저마다의 가치 기 준을 이용하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명목상으로 불가능한 사과와 배의 비교가 가 능해진다. 그래서 광고에서 종종 그러는 것처럼, 어떤 과일 요구르트 한 개는 작은 스테이크 한 조각과 같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심지어 베토벤의 교향곡의 가 치를 스테이크용 고기의 단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은 이러한 무차별성에 반대하면서, 육체적 향유는 정신적 희열보다 낮은 단계에 있다고 확 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그가 오늘날 돼지와 소,닭 등 무참하게 도살당하는 모든 짐승들의 불행을 알았다면, 아마도 그는 인간의 유형들을 가지고 비교했을 것이다. 그의 호소는 거의 성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식,주,여행 등의 순서로 육체적 필요를 먼저 생각하며, 그리고 난 다음에야 교양이나 문화 의 차례가 된다. 다시 공리주의자들의 원칙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 리의 관심을 다시 한 번 라이프니츠의 신에게 되돌려보자. 우리는 이제 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신은 공리주의자이며, 행복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행복과 거의 같은 무게의 불행을 감수하는 구제할 길 없는 회계원이다. 이런 까닭에 철학자 들이 그와 절교했던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우리가 신처럼 완전하기를 전혀 상상하지도 않지만-공리주의자가 되어 행동한다면, 우리가 어느 정도로 엄격하게 계산할 것인지를 생각 해야만 한다. 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면 당연히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그런 경우에는 거짓말 을 하는 것이 어쩌면 의무가 아닐까?) 하는 것은, 공리주의자에게나 현명한 인간들에게는 문젯거리도 아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원칙 보다 더 고상한 선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가 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소유의 질 서를 위반한다면, 그것 역시도 우리는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러 사람의 생명이 서로 걸려 있는 계산일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인가? 1백 명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99명을 희생시 켜도 좋을까? 그런 상황은 일상생활에서야 나타나지 않지만, 전쟁이나 대형 재난의 위기 같 은 데서는 있을 수 있다. 계산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 경우에도, 그 대답이야 분명하겠지 만, 그러나 그것이 선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에는 만족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49%의 악과 51%의 선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위대한 창조라고 찬양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행복이 한쪽의 고통을 대가로 다른 한쪽에게 주 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선한 원리로 볼 수 없고, 악으로부터 선을 만들어 내야 하 는 궁여지책으로 여길 뿐이다. 물론 사회의 구성원들과 전체 사회,정부는 거의 항상 공리주의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예 를 몇 개 들어 보자. 모든 사람이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내전의 참혹함에 대해 경악하면서 미국이 개입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동정하고, 또 평화의 인류애를 다시 일으키 기 위해서 강력한 조치들이 있기를 요구한다. 정치가들은 반대로 그렇게 개입했을 때 드는 비용을 계산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 비싸고 또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 을 얻는다. 그래서 그들은 내키지 않는 정책을 수행하고 비용을 의식하여 되도록 요리조리 빠져 나가면서 조금만 인간적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전에서 죽는 사람들이 외국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 문제가 한결 쉽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현대 국가는 해결해야 할 수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으며, 그 것은 돈을 요구한다. 국가는 이 돈을 세금으로 마련한다. 지출액의 많은 부분은 가난한 사람 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복지정책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제 정부는 이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의미 있게 쓰이는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으로 무얼 하는가?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사용한다. 돈을 써 없애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에게 돈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은 돈을 더 많이 써 버릴까? 그렇지 않다! 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굴려서 증권을 매입하거나 자기가 운 영하는 공장에 투자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보다 더 강력하게 국가경 제를 활성화한다. 그래서 이러한 역설이 생길 수 있다. 사회 안에서 구성원들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 전 체는 더욱 부강해질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 모순된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좋은 뜻의 명제가 이런 해석을 허락한 것이다. 그 원인은 이익과 손해를 정산할 때 최종 결과에만 관 심을 두고,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한 분배를 고려하지 않은 데 있다. 물론 이런 계산법을 임의로 계속 사용해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예로서 인원을 초과한 구 명 보트의 문제가 있다. 구명 보트에 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를 버리고 불가피한 죽음에 몸을 던져야 한다. 배에 탄 사람들은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과 기대할 것이 거의 없는 노인, 아이를 가진 젊은 엄마, 부랑자,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 이 다섯이다. 이제 계산이 시작된다. 자 누구를 물로 던질 것인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이 당할 생명을 잃는 고통은 똑같기 때문에, 배에 탄 이들 전체를 참작하여 어떤 식으로든 개개인의 가치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랑자 와 노인은 나쁜 카드를 쥔 셈이고, 아이를 가진 엄마와 젊은 청년은 유리한 입장이다. 그러 면 노벨상 수상자는 어떨까? 이미 연구를 완료한 사람인데 그에게 더 기대할 것이 있을까? 물론 매우 많다! 통계는 노벨상 수상자가 다시 상을 받는 것이 처음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노벨상 수상자를 내던져서는 안된 다! 하지만 이런 계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유용성의 관점에서만 인간을 판단해 서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을 버린다는 것이 그렇다. 나는 종종 이 구명 보트 윤리의 문제를 놓고 대학생들과 토론했는데, 이 산정법에 찬성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제안한 것 은 제비뽑기에 의한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의 장점은 뭘까? 사람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은 참 특이한 대답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대 답은 도리어 이런 질문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하겠다 고 나선다면 어떨까요?" 이 말은 후기 산업사회의 소비 지향적 인간의 귀에는 매우 낯설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들리겠지만, 그렇게 대답한 이들은 옛 동독 지역의 마크데부르크 대학생들이었다. 사회주의에서 성장한 그들은 이제 막 개인주의적 세계질서를 배워야 할 참 이었다. 공리주의 명제의 약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예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정의 의 문제는 이 공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비판의 종합 우리에게는 순수한 두 가지 태도의 원칙이 있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상관없이 절대적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의무론적 윤리와, 오직 현명한 계산만 앞세우면서 정의와 선을 놓 쳐버린 공리주의적(목적론적) 윤리가 그것이다. 이 두 원칙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 인다. 우리는 상이한 두 입장들로부터 뭔가 이성적인 것을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 종합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조의 도덕가들에게 행동의 결과도 고려하도록 강요해야 하 며, 공리주의자에게는 계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세상에는 계산의 대 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는데, 인간의 생명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사 회 전체를 더 부강하게 하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그 누구에게서도 삶에 필요 한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종합의 결과로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의무론자들은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데, 이 규칙은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 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인간의 태도를 조절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 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규칙을 반드시 쓰여진 자구대로 지켜야만 하는지 물음을 제 기해야 하는 상황들도 있다. 히틀러 독재시대에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장교들 가운데, 충성의 서약을 지켜서 독재자의 잘못된 지시들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충성의 서약 을 어겨도 좋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던 몇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히틀러를 암살하 기로 결정하였고, 이는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었다. 우리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들을 공손하고 정중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이 간단한 원칙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기본 입장으로부터 비교적 단순한 규칙들이 먼저 생기는 것이다. 옛 히브리인들은 처음에 10개의 계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의 삶이 매우 복잡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규칙들을 문 서로 작성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금세 두꺼운 책으로 부풀어오른다. 물론 이 복잡다양한 규 칙들의 기본 뜻은 명백한 한 가지이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붙여 본다면, '선의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 안에서 정의를 글로 옮긴 것, 즉 성문화한 것이 법문서 들인데, 사람들은 이들 전부를 미리 읽지 않고도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가서 서로 평화롭 게 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타주의의 원리는 간단하고 일반적으로 수긍이 되며 적응 가능한 것이지만, 내가 이미 말했다시피 역사와 현재는 우리에게 그 반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 람들은 다양한 사회체제에 속해 있으며, 체제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선한 사회의 이념은 완 전히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다하여 서로 싸우는 것이다. 선이 그렇게 간단히 인식될 수 있다면, 왜 사람들은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을까? 이를 설명하려면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올바른 사회형태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역 사를 통해 그 윤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 범위를 다시금 서양의 전통에만 제 한할 것이다. 고대에 철학자들은 이미 어떻게 인간들이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숙고하였다. 최선의 국가 플라톤은 최선의 국가형태에 대하여 두 권의 방대한 책을 썼다. 그 첫 번째 저서 '국가' 에서, 그는 가장 좋은 국가가 어떤 것인지를 기술하였다. 이는 시대의 혼란상을 목도한 플라 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그리스 국가들은 전쟁을 벌였는데, 이른바 펠로폰네소스 전쟁 으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양축으로 각 동맹국들이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 전쟁은 몇 차 례 중단을 거치면서 30년간 지속되었고, 아테네측의 패배로 끝났다. 플라톤은 인간들과 국가들의 소유욕을 전쟁의 원인으로 인식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 을 제국주의라 부른다. 플라톤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좋은 국가는 자족적인 국가이다. 다시 말해서 구성원들이 더 부유해지기를 원하지 않으며, 가난과 부유함 사이에서 변함없이 유지되는 상태를 만족해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이웃의 대한 탐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플라톤은 이런 국가형태가 충분히 방어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이런 국가형태가 충 분히 방어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지혜와 용기, 욕망과 같은 인간의 내적 능력에 따 라 사회가 세 계급으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했다. 수공업자들과 농부들이 최하계급이고, 그 위에는 파수꾼들이 자리하였다. 이들은 일종의 군사 엘리트로서 그 구성원들은 선발경기를 통해 결정된다. 이 전사들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으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회가 제공한다. 국가의 꼭대기에는 가장 선하고 가장 현명한 철인군주가 자리한다. 이러한 국가형태의 기본 원리는, 모든 사람이 개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지분을 할당한다. 모든 사람은 통치자를 포함하여 국가의 종이다. 사리사욕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은 국가를 위해 교육을 받 는다.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심지어 누가 누구의 결혼할 것인지, 또 몇 명의 자녀를 낳아야 하는지도 국가가 결정한다. 인구수가 항상 알맞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산아제한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국가에서 맡게 되는 역할은 그들의 소양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각 자 자연적으로 분배받은 특성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가축을 사육할 때 그러듯이, 원하는 능력들을 계승시키고 강화하기 위해서 전사는 오로지 여전사와 결혼해 서 자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와 같이 습득된 절대적 이타주의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음 을 충분히 인식하였다. '국가'의 결말 부분에서 그는 이 최선의 국가가 지속될 수 없는 이 유를 기술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요구된 역할을 무조건 잘 해내리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다. 먼저 군주는 자신에게 요구된 지혜로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철인군주에게 기대 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덕망과 능력이다. 군주가 자신의 통치행위를 의무와 부담으로 여기 지 않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공명욕으로 지배하려고 하면, 국가가 멀리하고자 했던 이기주 의가 이미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면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기주의자가 되고 만다. 이리하여 최선의 국가는 평범한 국가로 변하고, 이기적 관심의 국가 로 퇴보하게 된다. 그래서 플라톤은 '법'이라는 저서에서 두 번째로 좋은, 차선의 국가를 구상하였다. 인간 에게 개인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그 는 완전히 이상의 인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법을 토대로 삼았다. 이 경우에는 인간 이 원래 타고난 대로 불완전한 존재라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선의 국가에서는 개인들 에게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다시 허락된다. 인간은 자기 의지대로 가정을 꾸밀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부유해지거나 가나 해지는 것은 법에 의해 저지된다. 모든 구성원들은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자산을 받아서 능 력껏 자신의 소유를 네 배까지만 늘릴 수 있다. 그 이상으로 벌어들인 것은 국가에 양도해 야 한다. 반대로 자산을 상실한 사람은 국가로부터 다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 회적 긴장과 갈등이 저지된다. 플라톤의 현실성 플라톤이 이런 생각을 정식화한 것은 2천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늘 날에도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그의 분석이 1989년에 유럽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함으 로써 의미 있게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최선의 국가를 구현하려 했 고, 모든 일을 공동체를 위해 하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물론 구성원들이 이런 요구에 응 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철인군주로 자처하고 나 선 레닌과 스탈린, 울브리히트, 호네커, 이들이 그저 독단적이고 고루한 폭군들이었다는 것 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자 사람들의 사회주의적 의식은 점차 소멸되어 갔다. 차선의 국가는 관철되었다. 차선의 국가는 사람들에게, 특히 통치자에게 초자연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통치자는 철인 군주일 필요가 없고, 다른 시민들처럼 보통의 인간이어도 된다. 모든 사람은 첫 번째로 자신을 생각하고 개인의 경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국가는 입법을 통해 조세를 징수하여 돈을 마련하고, 이것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함으로 써 사회의 평형을 꾀할 수 있다. 20세기말의 서구 민주주의는 플라톤의 차선의 국가를 구현 하는 시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플라톤의 이론에서 우리의 정치적 현재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다. 그에 못지않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정치학'에 쓴 내용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는 우선 통치자 의 수를 기준으로 국가형태를 세분하였다. 지배자가 하나인 국가는 군주제이고, 몇 명의 소 수가 통치하면 귀족제, 모든 사람이 통치자일 때 그것은 민주제이다. 우리는 플라톤에 의해 사회적 삶에서 이상(이타주의)과 현실(이기주의)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각 체제마다, 하나이든 몇 명이든 전부이든간에 통치자가 국가의 안녕을 생각하는 이상적 인 인격을 가졌을 때, 우리는 각 형태에 따른 좋은 국가들을 생각할 수 있다. 군주제는 한 사람의 선한 지배자가 통치하는 국가요, '훌륭한 사람들의 지배'형태인 귀족제 국가에서는 정신적, 도덕적 엘리트들이 전체의 행복을 위해 통치한다. '백성'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 제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른바 도시국가를 좋은 형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 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할 때 부정적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 사악한 일인 지배자는 폭군이요, 이기적인 엘리트들의 정치는 비틀려져서 자신들의 부를 더 증식시키려는 부자들 의 지배, 곧 금권정치로 변질된다. 민주적 지배의 부정적 형태는 천민의 지배, 즉 천민정 치이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민정치를 말하면서 다시 '민주제(Demokratie)' 라고 표현 했다. 하지만 이 낱말의 오늘날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맥락에서 혼동 하지 않기 위해 개념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그 뜻에 따라 '천민정치'라는 말로 바꾸었다.) 이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성이 지속적으로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플라톤의 인식을 수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군주 다음에는 이기적인 폭군이 뒤를 이을 확 률이 높다. 그러면 폭군에 맞서는 반대 세력이 형성된다. 국가내에서 힘 있는 귀족들이 주도 하는 이 세력은 폭군을 쫓아내려 한다. 폭군제로 왜곡된 군주제는 이렇게 전복되고, 그 다음 에 귀족제가 나타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힘 있는 자들이 국가를 말아먹는 부정적 형태 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백성들에 의해서 또다시 체제가 뒤집어져 국가는 민주제가 되는데, 그것이 왜곡되면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대중의 지배형태가 된다. 바야흐로, 한 사람의 강하고 능력 있는 정치가가 나타나서 새롭게 일인 지배의 터를 닦으며 혼란을 종식시키는 때가 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군주제를 다시 맞이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것은 국가형태의 순환이론이었다. 주인공들의 이기주의가 언제나 우세하기 때문에 어떤 국가형태 도 확고하게 지속되지 못한다. 정치제도의 불완전성의 원인으로서 우리는 이미 윤리학에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선을 아 는 것과 선하게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는 분명히 이기적 행동에 대한 충동이 이타적 행동에 대한 충동보다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 다. 그래서 플라톤은, 인간은 그냥 두면 이기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이타적 행동으로 사 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형태의 순환 이론에서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입증하였다. 그때마다의 국가형태는 언제나, 통치자들이 자신의 이기주의를 누림으로써 통치 당하는 자들에 의해 더 이상 정의 로운 지배자로 인정받지 못할 때 무너지게 된다. 권력분산의 사상 그렇다면 지배자들이 권력을 잘못 사용하게 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이 떠 오르는 문제이다. 기원전 2세기말에 로마에 살았던 그리스인 폴리비오스는,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공하였다. 국가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로마 공화정이 좋은 예가 되었다. 가장 위에는 일인 군주와 비슷한 두 명의 집정관이 있고, 그들 에 맞서는 기관인 원로원, 즉 귀족정치가 존재한다. 그밖에도 일반 민중은 민회에서 중요한 권리들을 행사할 수 있다. 폴리비오스는 이렇게 로마 공화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세 가지 지배형태가 함께 존재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치구조에서 폴리비오스는 당대 최선의 국가를 보았으며, 그래서 그는 그리스 동포들에게 자발적으로 이 국가에 동참하도록 권유하였다.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아테네인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로마인들이 성취하였다 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도시로 출발한 로마는 수세기에 걸쳐 그 세력을 지중해 연안의 전체 문화권으로 확장하였으며, 다민족 국가를 이룩하고 몇백 년 동안이나 지속시켰 던 것이다.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들은 우리에게 네로 황제의 악행과 로마의 몰락을 자세하 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를 볼 때에도 우리는 로마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을까 하는 더욱 중요한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20세기에 우리들 스스로 평화로운 세계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현재의 문제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고대 로마의 업적에 대해 경탄을 표시해야 할 것이다. 봉건주의 그러나 역사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물론 로마 국가는 가능한 한 최선의 국가는 아니었 다. 거기에도 노예제도와 억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을 통신기술이나 교통에 있어서 원시적 수단을 가지고 스코틀랜드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통일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지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위해서 매우 훌륭한 군사조직 뿐 만 아니라 정치조직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로마인들이 모든 사상 과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서, 제국에 예속된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자유를 보장 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적도 있었지만, 훗날 서양에 승리한 그리스도교가 이교도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 로마인들이 그리 스도교의 철저한 배타성과 본질적인 비관용에 대해 불신했던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 다. 어쨌든 그리스도교가 승리했고, 고대 로마의 다원주의적 복합문화 사회는 사라졌으며, '이 교도' 철학은 금지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중세로의 시대 변화를 의미했다. 게다가 로 마 제국도 몰락하여, 민족 대이동 때 서부 지역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민족 이동의 완 료되자 전에 세계제국이 있던 땅에는 여러 게르만 왕국들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상당히 야 만적인 모습이자만 그리스도교를 통해 고대로부터 내려온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 이 점은 그리스도교의 세계사적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의 유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재획득되어, 그리스도교적의 유럽은 13세기에 아랍인들의 중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다시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스콜라 철학의 신학과 철학사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세의 군주국에서 사람들은 위계적 사회질서 속에서 살았으며, 이 질서는 신이 내린 것 으로 간주되었다. 신이 여러 계층의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신 앞에서 평 등하지만, 현세의 삶에서 인간은 계급조건에 복종하여야 했다. 오늘날 유럽에는 군주국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중세의 왕국과 비교하면 현재의 군주국가 들은 민주주의 체제이다. 왕들은 더 이상 통치하지 않으며, 주로 외교적으로 국가를 대표하 는 등 매우 제한된 기능만을 수행한다. 국가들은 중세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변 화하였을까? 변화의 중요한 요인은 봉건적 세계질서와 통치질서에 맞서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킨 시 민계급의 영향력이었다. 시민국가 오늘날 국가의 주체인 시민의 원조는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중세 가 전성기에 달했을 때 새로운 계층으로 나타나서 영향력을 획득하였다. 상인들은 위계적 사회구조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충성의 서약을 통해 누군가에게 복종할 의무도 없고, 단지 자신만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 사업을 운영했으며 상행위의 자유를 원하였다. 가장 중요한 중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주의 통치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상인들을 이렇게 기술하였다. 상인들의 노력은 무엇보다도 이익을 지향하기 때문에, 상업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시민들 의 영혼에는 욕망이 일깨워진다. 그것의 다음 결과는 국가 안의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변질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모두를 위한 기만이 자리하게 된다. 사람들은 공 동의 안녕을 멸시하면서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을 따르게 된다. 혹독한 비난이지만, 그의 비난은 분명히 시민적 의식의 핵심에 적중한다. 상인들은 일단 자신의 이익을 따라 행동하지만, 또한 그들은 자신의 더 나은 이익을 예상하고 다른 상인들 과 연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자기들이 결합할 경우에 상업상의 이익을 최대로 관찰시킬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에 상인들은 상인동맹인 한자를 결성하였다. 이렇게 귀족 사회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상인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상업도시들의 연합 인 독일 한자동맹(Hansa Bund)이다. 사회계약설 근대의 정치철학에서 시민들의 자기 이해는 철학적인 국가 구성론의 기초가 되었다. 원래 자연상태의 인간들은 개별적으로 떨어져 살며 사회를 이루지 못하는 이기주의자들이다. 그 러나 그들은 평화롭게 교류하기 위하여 서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 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확정하는 계약을 함께 체결한다. 그래서 이 계약 을 '사회계약'이라고 하는 것이다. 크리티아스의 텍스트를 상기해 보자. 거기서는 종교의 탄생이 주제였다. 크리티아스 역시 인간의 출발을 무법의 자연상태로 보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법을 만들었다고 했 다. 사회계약론은 개별 철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되면 발전하였다. 철학자들은 그때마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은 주목하였다. 홉스 17세기 중엽, 종교와 정치가 한창 논란이 되던 시대에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본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bellum ominum contra omnes-만인에 대한 만인의 끝없는 투쟁'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의 태도 를 라틴어로 homo homini lupus라고 규정하였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동물과도 같다는 뜻이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다. 누구나 공공연히 폭력을 쓴다든지, 간계 와 모략을 사용하든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홉스는 인간들이 악하 기는 해도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가능성 없 는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답으로 인간들은 한 사람의 통치자가 선두에서 모든 권을 장악하는 강력한 독재국가를 찾아낸다. 통치자는 모든 시민을 굴복시키고 그들이 가졌던 무기들을 빼앗아서 기필코 평화와 질서를 이루어 낸다. 그리고 시민들은 절대적 통 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통치자가 그들에게 가장 귀한 자산인 생명을 보장해 주기 때문 이다. 20세기의 독재자들과 내전 상황들을 보면, 우리는 토머스 홉스의 생각이 정말 현실적이었 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금세기 초반에 유럽에 나타났던 독재체제들은 모두 국가의 평 화와 질서를 위해 애쓰고, 내전의 위협을 저지하겠노라고 약속한 '강한 남자들'에 의해 실현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유럽에서는 독재와 전체주의의 체제의 시대는 극복되었으며, 우리 는 다시 자유법치국가로 되돌아갔다. 로크 자유국가 체제의 사상은 존 로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홉스와 같은 영국인이며 홉 스보다 조금 젊었다. 하지만 로크는 사회가 평화로워지고 시민당이 왕당파(왕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승리를 거둔 후, 내전이 끝난 후의 상태를 기술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홉스처럼 인간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른바 lumen naturale, 즉 인간 이성이 가진 '자연의 빛'을 신뢰하였다. 이런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 은 이미 자연상태에서도, 사회의 테두리 밖에서도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홉스는 끝도 없이 많이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이미 가진 것을 갖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 자비한 경쟁자들이 된다. 하지만 로크는 인간에게는 자기의 소원을 제한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무조건 더 많이가 아니고, 합리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자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것에 한계를 정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이다. 따 라서 인간들은 가혹한 경쟁자들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아무 도 자기 이웃의 소유와 재산을 탐내지 않는다. 땅은 넓고 인간의 수는 적으니 모두를 위해 자리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재회는 모든 인간에게 공동으로 속한 것이며, 그 어떤 것도 개인 단독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을 통해 창출한 것은 그 사람 개인의 것이다. 강은 모든 사 람의 것이지만 내가 손으로 떠낸 물은 나의 것이므로, 나는 그것을 마셔도 된다. 내가 황무 지를 개간하여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그 열매들은 합법적으로 내 것이 된다. 노동이 소유 를 만든다. 홉스와 달리 로크가 생각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도 남의 소유를 존중할 줄 안다. 로크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의 평화로운 교류는 자연상태에도 이미 존재하며, 사람들은 잉여물을 서 로 교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양면성을 가진 발명품이 세계로 들어온다. 돈이 그것이 다. 돈은 식량과 달리 마음대로 쌓아둘 수 있다. 돈이 발명되자 인간의 마음속에는 부를 축 적하고자 하는 욕망이 싹튼다. 사화는 발전하면서 부유층과 중간층, 그리고 빈민층으로 나누 어진다. 이로써 사회적 긴장이 발생하며, 조직화되지 않은 평화로운 공동생활은 더 이상 매 끄럽게 진행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은 조직을 결성하고 규칙을 확립하며 기관들을 설립해야 한다. 이 기관들은 권리가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로크에 의하면, 인간이 건설하는 국가의 목적은 국가이전의 상태에서 이미 만들어진 자유로운 소유의 질서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으로 존 로크는 자유시민국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홉스가 인간을 강력한 절대 주의의 독재국가에 의해 길들여져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개선될 수 없는 이기주의 자로 보았던 반면, 로크의 사상은 인간을 이성능력이 있는 존재로 여기는 낙관적 표상에 의 자하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시대에는 존 로크의 이론이 관철되었다. 이 이론은 볼테르를 통해 프랑스에 알려졌으며, 프랑스 사상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몽테스키외 프랑스에서 중요한 두 사상가는 몽케스키외와 루소였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이라 는 저서에서, 오늘날의 국가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권력분할을 요구하였다. 고대 철학자 폴리 비오스의 권력분산론을 기억해 보자. 폴리비오스는 어떤 기관도 너무 강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통치권의 분할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는 군주제와 귀족제, 민주제의 요소들이 함께 균형을 이루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왕이 통치하는 중세에는 원래 권력분리라는 것이 없었지 만, 힘 있는 봉건영주들은 자연히 왕에 대해서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관철시키려 하였다. 그러니까 벌써 왕과 귀족 사이에 권력분리가 발생한 셈이었다. 여기에 또 강하고 부자가 된 시민들이 끼어들어 통치권의 지분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이론의 출발 근거가 되었다. 그는 권력을 행정권(당시에는 왕 오늘날에는 정부)과 법을 제정하는 입 법권(이것이 오늘날 국민이 뽑은 의회의 임무이다), 그리고 양쪽 어느 기관에도 의존해서는 안 되는 사법권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 인간은 이러한 기관들과 인간들 사이의 균형을 생각해 냈는데, 그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한 결과였다. 통제받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은, 결국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오용하는 것이다. 루소 루소도 흡스와 로크처럼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다. 돈의 발명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 로크 와는 달리, 루소는 인간이 소유를 생각해 낸 것 자체가 이미 큰 죄악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홉스와는 정반대로 그는 소유가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의 원초적 상태를 거의 낙원과 같은 상태로 보았다. 그것에 비하면 문명은 오염된 상태였다. 루소는 시대의 진보를 축하했던 동 시대인들과는 달리 자기 시대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가했다. 철학에 의해 주도된 운동으로 서 계몽주의는 인간에게 엄청난 진보를 안겨 주었으며, 과학의 진보, 종교의 진보(관용에 의 한 종교전쟁의 종식), 사회의 국가의 진보 등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러나 다른 한편으로 유럽인들은 탐험 여행을 통해 원시민족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이 원시 민족들의 일부는 낙원과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남태평 양의 거주민들이 이 시기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문명몰락론을 제기했을 때, 원 시민족들을 직접 보았던 루소는 그들의 삶을 당시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비교 하였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구분을 재수용하였다. 그는 인간의 행동의 동기를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과를 얻었다. 시민 개개인이 사회를 위해 최선의 것 을 실행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회의에 가면 그롯됨이 없는 공동의 의지가 발생한다. 회의 는 만장일치로 결의될 수 있다. 루소는 이를 '일반 의지(volonte generale)'라 일컬었다. 반 대로 시민들이 자신의 이기적이고 부분적인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회의에 가면, 부분적 으로 상충하는 수없이 다양한 의지들이 대립하기 때문에 일반 의지가 생길 수 없다. 이때에는 많은 당파들이 형성되고 부분 의지들만이 나타나게 된다. 루소는 이를 '전체 의지(volonte de tous)'라고 하였다. 그러면 의사는 투표로 결정되어야 하며, 다수 의지와 소 수 의지가 대립하게 되는데, 결국 지지자수와 우세로 다수 의지가 실행에 옮겨진다. 다수 의지가 반드시 더 현명하기 때문은 아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루소는 이타적 국가와 이기적 국가를 구분한 것이며, 우리가 보았다시 피 이런 구분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미 알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 역 사를 살펴보면, 역사는 이런 양자택일을 놓고 오락가락하면서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적 사회이론과 사회주의적 사회이론과 논쟁에서도 이 양자택일이 관건이 었다. 17세기말에는 존 로크는 정부에 관한 논문에서 시민적 사회이론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애덤스미스 18세기 후반에 영국 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이라는 짤막한 제목의 책 한 권은 세계 역사를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 책으로 국민경제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애덤 스미 스의 생각은 간명했고 결함도 많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의 생 각은 이러하였다. 모든 인간이 올바른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자유로운 시장에서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주장하면, 이른바 힘들어 자유로운 유희, 즉 수요와 공급의 유희를 통 해서 여러 다양한 이익들의 조정이 반드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비싸게 팔려 하고, 다른 사람은 이 물건을 싸게 사려 한다. 그러면 두 사람은 흥정을 하게 되고, 양측이 원래 요구했던 것 사이에서 가격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 가격으로 해당 물건의 소유자가 바뀐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대방 쪽으로 움직여 간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자유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자유로울 땐 균형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시장이-흡사 숨은 신처럼-'보이 지 않는 손'을 가지고 사회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고객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잘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적당한 양으로 제공하게 된다. 각 개인이 돈을 벌려고 하는 행위는 결 국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는 이로써 자기가 인간 교류의 자연스러운 법칙들을 기술했으며, 개인들에게 도덕적으로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도 잘 돌아가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했 다고 믿었다. 개인에게 기대할 것은, 단지 건강한 이기주의와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주 장할 수 있는 능력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사고를 상기해 보자. 그들은 구가 통치자들의 이기적 태 도가 반드시 국가를 몰락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그와 대립되는 것 을 선포하였다. 즉 모든 사람이 옳은 방식으로 이기주의자가 될 때 사회는 부강해질 수 있 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 행위의 절대 목적을 자기 자신으로 보고, 목적 달성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사용해도 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면 결국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버나드 데 만데빌레가 스미스에 대해 풍자적으로 표현한 대로, "공공의 복지는 개인의 악덕을 먹고 자란다." 칸트 칸트는 인간이 목적합리성에 따라서만 행동할 때, 국가는 악마들에 의해 움직이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썼다. 이 경우에 목적합리성이란 인간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칸트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서 나온 저 단순한 도덕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그 는 스미스의 명제에 대한 반대 표명으로 유명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정언 명령이다. 너의 행 동 원칙이 보편법칙일 수 있도록 행동하라. 이 말은 네 행동의 원칙이 인간사회에 해를 끼 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내가 남의 소유를 존중하라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나는 모든 사람이 또 그렇게 행동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한 정언 명령은 완전히 새로운 인 식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행동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법의 의미이다. 하지만 칸트는 이 러한 명제로써 개인들에게 자신의 행위들을 검증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 명령은 무조건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에 '정언적(kategorisch)'이라 한다. 사 람이 행동할 때 이 명령을 제쳐 놓을 수 있는 어떤 상황이라 생각할 수 없다. 또 칸트는 같은 방향을 겨냥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인간은 행동할 때 다른 사람 을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스스로를 행위의 목적으로 설정한 것과 같 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목적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칸트와 스미스로부터 두 가지 상이한 행동지침을 얻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제는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고 더 효과적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18 세기 이후 유럽의 역사를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스미스 이론의 거부 애덤 스미스가 이론화하여 내놓은 자유시장의 사상은, 시민 상인들과 공장 경영자들의 상업적 관심과 완전하게 맞아떨어졌다. 바야흐로 시민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자신들 의 정치적, 경제적 입지를 차츰차츰 확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19세기에 유럽 사회를 바꾸어 놓은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과거의 수공업 사회가 물러가고, 이제 산업사회가 도래하였 다. 대도시들, 대형 공장들, 대량생산, 노동자, 기업가와 자본가등이 이 새로운 사회를 결정 하는 단위들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기계를 이용한 산업 노동에 의해 과거의 수공업이 해체되면서, 그 첫단계에서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인간집단인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일자리와 사회 적 위치를 기계 노동으로 인해 상실하고, 이제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노동력 외에 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소수 인력에 의해 가동되는 기계들이 휠씬 더 많은 수 의 수공 노동자들 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대로라면 이 사람들은 자유시장에서 곧 바로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계생산의 진보로 인해 새로이 다른 일자 리를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다. 명백하게도 스미스의 모델은 너무 단순했던 것이다. 그 이론이 약속했던, 이익들이 조화로 운 조정이나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의 향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른바 힘들의 자 유로운 유희로 인해 불평등이 야기되었다. 한편에서는 급격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져서 거대 한 시민자산이 발생하였으나, 이에 비하여 노동자 계급은 점점 더 비참해져 갔다. 이러한 사 회적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19세기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되었 다. 마르크스 스미스와 그 후계자들의 이론을 일컫는 '고전적 시민경제학'은 이러한 발전 상황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카를 마르크스라는 위대한 비판가가 등장하였다. 그의 주저인 '자본 론'에서 마르크스는 시민경제학 이론의 문제점들을 해부하였다. 우선 그는 시민사회에 대해 원칙적인 비판을 표명하였다. 그 이전에 루소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의 생성 과 교환경제의 발전에서 사회적 '원죄'를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증하였다. 원래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한 다. 인간은 옷이나 음식, 집 등 필요한 물건들은 생산하기 때문에, 모든 물건에는 개인을 위 한 사용가치가 있다. 사용할 물건이 너무 많을 경우, 예를 들어 필요량 이상으로 곡식을 수 확했을 때, 그는 이웃에게 가서 이 잉여물을 다른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로써 만족할 것이다. 그런 교환사업이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마침내는 일반적으로 확산되며, 사람들은 기꺼이 사냥꾼, 농부, 수공업자가 되어 자신의 일을 전문화한다. 그리하 여 언제든지 시장에서 물자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개별 생산자들은 곧바로 시장에 내놓을 목적으로 물건을 생산하게 된다. 물론 제화공은 자기가 신기 위해 구두를 만들고, 재단사 역시 자기가 입을 옷을 스스로 만들지만, 생산물의 대부분 은 고객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목 적은 결국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데 있다. 그것은 고객을 거쳐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를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라 일컬었다. 상품이란 생산자 자신의 용 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용함으로써 유용성을 갖도록 만들어진 대상이다. 사람 들이 상품을 생산하면 자신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남의 사용가치, 곧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 속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복잡한 사회적 구조가 들어 있다. 시장이 커 지면 개인은 더 이상 주문에 의해 생산하지 않고 스스로 상품을 갖고 시장으로 나가서 구매 자를 기다린다.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는 사용가치가 여전히 있지만 결과적으로 쓸모 없는 물건을 만든 것이 된다. 시장에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판매의 불확실성이라는 요인이 끼어들기 때문에 이렇게 와해되는데, 마르크스는 여기서 시장경제 사회가 겪는 경제적 기복의 원인을 보았다. 생산은 실제로 파악된 사회의 필요량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고 기대한 양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양이 생산된다. 시장경제 사회는 애덤 스미스가 예언 했던 균형을 언제라도 상실할 수 있는 위험 가운데 있다. 왜 그런가는 '돼지의 순환' 이야기 를 빌려 설명할 수 있다. 농부들이 돼지를 키운다. 돼지들이 다 자라서 시장에 가지고 나가 면, 농부들은 자기가 너무 많은 돼지를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잉공급으로 인해 돼지 값이 하락한다. 그러면 농부들은 돼지를 적게 키운다. 모든 농부들이 그렇게 한다. 모두가 생산량을 감축하는 것이다. 그러면 공급량이 모자라게 된다. 가격이 상승하고, 다시 농부들 은 더 많이 생산하고, 다시 과잉공급이 되고... 어쩌면 이런 순환에 거꾸로 대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적게 생산할 때 많이 생산하고, 많이 생산할 때는 적게 생 산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곧 그를 따라 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순환 속으로 빠 지고 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자기는 올바른 양을 정확하게 생산했다고 확언한다면 어 떨까? 그도 역시 욕망의 유혹에 굴복하여 더 많이 생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균형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돼지의 순환은 마르크스가 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한 해명을 제공했다.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이웃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하지 않으며 오로 지 자신의 이윤을 얻으려는 욕구를 달래기 위해서 물건을 만들기 때문에 생산은 언제나 과 잉이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질서가 잡힌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필요량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생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먼저 있고, 생산된 전체가 필요한 것인지 남는 것인지는 나중에 시장에서 밝혀지게 된다. 오늘날 광고와 전단들, 특별세일 등에 늘 뒤덮여 있는 소비자로서 우리 모습을 한 번 돌 아보자. 순진한 바보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생산자들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자기 물건을 판매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탕발림의 광 고 문구들 뒤에는 순전히 이기심만 숨어 있다. 사실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그저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인간들 사이의 소외를 시민적 경제방식의 기본 해악으로 보았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연합된 사회를 꿈꾸었다. 그래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자유, 평 등, 박애'의 구호 속에서 표현되었던 계몽주의의 이상들을 마르크스는 다른 소유질서를 가 진 사회, 바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사회주의에서는 로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적 소유를 가진 개인이 사회의 지주가 아니며, 개인은 개별적으로 게획을 세워 경제활동 을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타고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사회에 속해야 한다. 개인은 사회에 대한 기여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며, 일하여 획득한 것에서 자신에게 할 당된 몫을 받게 된다. 마르크스의 대응 모델 이는 경제가 중앙기관에 의해 조절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것과 는 총체적으로 다른 조직원리에 입각한 사회의 모형을 발전시켰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목 표는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실현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몫을 보장하는 것이 다. 그러한 국가형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이타적인 시민이 전제가 되어야 한 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미 인간에게 그런 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과 이후의 현명한 정치사상가들은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 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규와 통제의 체계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인식이 공산주의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권력자들이 독재자 로 상승하여 시민들을 억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철인군주로 행세했고, 자신의 뜻이 곧 민중 의 뜻이라고 우기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시대가 시작되고 애덤 스미스가 설명했던 시민 자본주의 경제방식이 적용되었던 19세 기 초반 이후의 유럽 역사를 관찰해 보면, 역사가 보여 주는 진보는 부분적일 뿐이고, 무엇 보다도 정치적, 사회적 파국을 참 많이 겪었구나 하는 인상이 우리에게 밀려온다. 우선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정치적 억압이 지배하는데, 이는 봉건적 지배자들이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던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들을 취소시키고 자신들의 예전 권력을 재창출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동시에 애덤 스미스의 조정이론과 모순되게, 노동력의 공급이 몇 세대에 걸쳐 노동에 대한 수요를 현저하게 초과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궁핍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시민사회에서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대량생산으로 말미암아 재화가 엄 청나게 늘어나서 거대한 부가 야기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사회적 비참이 발생하였 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시민사회를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응 모델을 만 들 수 있었다. 올바른 국가형태와 경제형식을 둘러싼 논란은 이론과 현실의 영역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선전했는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 자본 소유자들의 노동자 착취 는 무산자에 대한 유산자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소유가 발생한 이래 계속되어 왔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프롤레타리아에 게 이 투쟁에 대응하여 사회 전복을 목표로 함께 노력하고, 혁명이 성공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를 창설하자고 호소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에서는 남은 시민들이 사회를 먼 저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로 다시 교육받게 되고, 독재의 단계가 끝나면 마침내 선한 인간들 의 자유로운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이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 즉 모든 활동을 공동체를 위 해 하는 것이 개인 행동의 전제가 되는 사회이다. 이는 플라톤이 구상했던 최선의 국가와 동일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약속에 따랄 행동했고 공산주의 혁명이 끝난 후에 독재체제를 이루었 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는 독재였 다. 1989년에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그때까지도 이 독재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무엇을 했을까? 그 하나는 20세기 후반에 노동자들의 여건이 개선된 것이다. 산업화 과정은 예전의 수공업들을 해체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직업들도 창 출하였다.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생산형태들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들은 계속해서 미성년자 노동 금지와 같은 법을 통해서 노동 여건을 개선하였다. 그 러므로 애덤 스미스가 너무도 소박하베 생각했던 자기 조절의 이념이 사회적인 한계 설정에 의해 비로소 쓸모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하였다. 케인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 이후 경제이론에서는 흡사 반대의 두 이론을 중개하는 듯한 제3의 이론, 혼합적 경제형태 이론이 부상하였다. 그것의 창시자는 영국인 존 메이너드 케인 스이다. 그는 돼지의 순환과 같은 시장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옳았음을 알았기 때문에, 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 제가 잘 풀릴 때는 뒤로 물러나 있다가, 경제가 나빠져서 실업이 늘어나면 국가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일자리를 얻고, 돈을 받은 실업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이 돈 을 지출할 것이고, 그로 인해 경제를 촉진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가가 노동에 대해 돈을 지불할 때, 그 돈은 국가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는 나중에 세금을 통해 지불된 돈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케인스가 제시한 모형의 한계가 있다. 국 가가 너무 많은 빚을 질 수는 없으므로,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기대되는 수입으로 다시 갚 을 수 있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2백여 년 전에 그의 이론을 제기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것 은 약 130년 전 일이며, 케인스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한 것은 70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새로운 경제학자가 나타나서 발전된 이념을 다시 전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경제이론의 정치적 결과들 사회의 경제이론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하자. 그런데 정치이론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숙고했다. 계급사회였던 19세기 사회에서 정당들은 자기들의 뜻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을 위해 투쟁이론을 제기하고, 프롤레타리아를 세계 역사의 해방자로 찬양하였다. 또 이기적인 유산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회의 이론으로서 시민계급의 이론이 있었다. 유럽 국가들이 세계의 다 른 지역을 분할하여 식민통치를 했던 19세기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시대에는, 도태나 품종개 량 같은 생물학의 개념을 사회에 적용시킨 인종주의와 국수주의 이론이 여기에 첨가되었다. 유럽인들은 이렇게 혼잡한 이론들과 더불어 20세기로 들어섰다. 제1차 세계대전은 부득이 하게 발발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전쟁이 끝날 때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당의 패배와 함께 러시아와 독일에서는 내부 변혁이 일어났다. 계속되는 불안정으로 인하여 파시즘이 출현하 게 되었는데, 이는 러시아 공산주의인 볼셰비즘과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똑같이 반대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독일의 파시즘 형태인 국가사회주의는 유럽을 인류 역사상 가장 끔 직한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전쟁이 끝나자 유럽은 시민적 자유주의의 서유럽과 동유럽의 공 산주의 영토로 양분되었다. '냉전'이 시작되었으며, 언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열전'에 대 한 불안 속에서 이 상황은 40년간 지속되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위험스러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최선의 국가 에 대한 서로 다른 표상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서로 싸웠던 두 입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최 선의 국가와 차선의 국가를 대표한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계몽주의 휴머니즘에 기반을 두었고, 모든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간 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통치는 사실 인간들에 대한 억압 그 자체였다. 이에 반해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민의 자유와 개인의 자기 실현을 최고 가치로 놓았으 며, 사회적 부를 할당할 때 차등을 둠으로써 이를 위해 지불되는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국가들은 실업자와 빈곤의 문제도 고려하였으며,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 을 받아서 완전한 파멸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사회, 다시 말해서 사회복지국가를 건설했다 고 생각했다. 이는 플라톤이 말했던 차선의 국가, 바로 그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