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류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회의를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지사의 상황에 대한 한탄과 옹호, 서로에 대한 비난과 이해의 과정에서 그들은 조심스레 희망을 발견해 낸다. 소비압력이라 불리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단호한 반감이 싹트고 있다는 것,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팽창주의와 결별하고 겸손한 자세로 세계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 등이 바로 그 희망의 싹이다. 결국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 개개인의 운명은 지구상 의 다른 모든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데카르트 - 여러분들이 선과 악, 책임과 죄, 영혼의 병과 구원에 대해 끝없이 골머리를 앓는 것이 신경에 거슬려 더 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모범적인 인물이 인간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하고는 곧 왜 인간들이 그들을 따르지 않는지 한탄합니다. 개혁 적인 시민운동을 찬양하고는 그들이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 인하는 등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심지어 프로이트식의 치료사 나 플라톤이 말하는 의사가 혼란에 빠진 인간들의 분열된 영혼을 치료해 줄 거라 기대하면 서 권위에 대한 맹신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지상에 있는 인간들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원하 는 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옛사상과 처방이 쓸모가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신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이유는, 우리의 논쟁이 이미 여러 번 반복되고 있고, 새로운 생각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모순이 견고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 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를 초대한 친애하는 아인슈타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 가 이제 결론을 맺고 요약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나는 정신적, 도덕적, 물질주의 적, 기술 만능주의적인 분석과 그 분석의 결과로 인한 혼란으로 충분히 당신을 지치게 했다 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다행히 성급함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여러분들의 말을 더 들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질문을 견뎌 내는 일이 우리 계획이 얻을 수 있는 주요한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지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아직 다가갈 수 있다면 말이지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처방이 아닐까요? 즉, 그들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타인 및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 다. 부디 내 말을 데카르트가 원하는 요약의 일부로 이해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나도 이젠 우리의 모임을 끝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 - 나도 아인슈타인에게 동의합니다. 이제 우리 모임의 수확을 요약할 시간이 되었 습니다. 처음에는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고, 어 디로 가려는지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는 당신의 제안이 진부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진부한 의문마저 놓쳤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2,500년 전에 재구성 한 나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 속에서 그들은 아직도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의문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 의문을 소크라테스가 그들 자신 보다 더 깊이 파고들었지요. 현재 지상에 있는 인간들 가운데, 누가 사랑과 아름다움과 선의 비밀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 중 누가 대화 속에서 인 식의 과정을 펼치는 소크라테스의 기술에 필적할까요? 2,000년 후 파스칼이 인간들은 아직 도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 단계에 서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달라 진 것이 있습니까? 소크라테스는 후세에게 천재적인 대화법을 선물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커닝했지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발견하면, 곧 그 대답 뒤에 있는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종적인 대답으로 보이는 것도 잠정적 인 질문의 결과일 뿐이며, 그 뒤에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할 질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 다. 부처 - 서구인들에게 호기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호기 심이 거의 전적으로 외부세계로 향해 있습니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더 완전하게 지배하고,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가공하려 하지요. 그들은 언제나 외부에 있는 것만이 그들에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없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따라 서 우리는 인간들이 기분전환에 대해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인간들이, 자기 자신과 자연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자연의 가장 작은 구성요소까지 탐색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그런 탐색에 그쳐 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견과 발명이 위대하다고 해서, 결코 전체 속에 서 인간의 위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경우에도, 내가 우주의 위대 한 연관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수록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불완전한지 더욱더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플라톤 - 오늘날 인간들은 몰락의 위험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 간의 결속을 해 체하는 경제 메커니즘과 자연파괴 앞에 자신을 보잘것없고 무력한 존재로 느낍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회구조의 붕괴나 원자탄이나 오존층 파괴나 기후 충격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을, 저 물질적 위험과 붕괴 속에 모사되어 있는 자기 자신의 정신적 몰락을 생각하는 것보 다 덜 두려워합니다. 당신들은 내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사회라는 것이 그것을 만드는 인간들과 똑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인식했 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들이 재산 추구에 압도되면, 가장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 권력을 잡 게 되고, 그들은 이 권력을 통해 자신의 부를 지키고 또 증가시키죠. 지금 자본주의에서 은 행이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나는 이것을 이미 <국가론>에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 때 문에 나는 프로이트가, 어떻게 해서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전체주의적인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해서 두려움에 떠는 민중이 자유의지에 따라 전능한 지도자 집단에게 금 치산 선고를 받는지 설명한 것도 분명하게 이해가 됩니다. 부처 - 결국 인간은 자신이 전체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어 야 합니다. 그런 의식을 갖고 있기만 하면 모든 불의와 폭력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하게 되 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대승불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와 같은 책임의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을 꿈꾸는 도덕가들의 요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플라톤이 제안했던 대로, 각 개인이 끊임없이 맹목적인 활동에 뛰어드는 대신에 공동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자기 짓ㄴ에 대해 철저하게 묻 는다면, 자기 안에서 전체와의 연대감을 발견하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낯선 사람의 인생과 고통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 것은, 각자 자신의 절망적인 개별화를 극복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였음을 확인하는 기호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라아 있는 후계자 달라이 라마가 자기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과 자신의 본보기로 분명하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듯이 말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당신들 서구인에게서도 사람들이 소비 압 력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단호한 반감이 싹트고 있는 것에 조심스럽게 희망을 걸어 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전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소망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설득당하지 않으려 하고, 더 이상 더 나은 건강과 힘과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소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상품 들에도 속지 않으려 합니다.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제 2의 손에 살지 않으 려 합니다. 즉,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꾸며진 감정과 열정에 관심 을 보이거나, 연기일 뿐이고 미화된 것일 뿐인 텔레비전 정책에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빼앗 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이 광고산업에 의해 고안되고 조작된 '목표집단' 에 속하는 익명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 즉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주체로 알려고 한다는 것이죠. 나는 오늘날 많 은 고객들이 이제까지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 뒤에 있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자아를 발 견하고자 몇 해동안이나 나의 동료들의 치료법에 자신을 맡긴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아인슈타인 - 그들은 사실 이전에는 진짜 병든 게 아니었겠군요? 프로이트 - 그들은 진짜 병들었던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이 자기 소외를 뭐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데카르트 - 당신들 말에 따르자면, 특히 서구인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머리 속에 분명해질 때까지 역사의 과정을 잠시라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또한 그러 고 나면 인간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소망해야 되겠군요. 소크라테스도 물론 그 당시에 자기의 대화상대가 발견해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요. 프로이트의 동료들도 환자를 돌 보면서 자기 스승의 이론을 확인하는 것 이상은 발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사이고, 아우 구트니누스의 환자들은 자신을 그가 이미 오래 전에 규정해 놓은 것처럼 죄인으로 인식해야 하고요. 하지만 서양인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힘들고 진저리나는 자기 조사를 통해 무엇을 발견하 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제쳐놓더라도, 그들이 그런 조사를 위해 필요한 여가를 가질 수 있으 며 당신들이 상상하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내가 이 미 여러 번 "그들은 그 누구도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기차 안에 앉아 있다" 고 말 하지 않았던가요. 그들의 경제체제는 확고하게 고착되어 있습니다. 산업국가에서는 한순간이 나마 숨을 돌리고자 기술적 변화의 경주에서 이탈한다면, 거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는 섬뜩하게 보이는 과정이 멈추지 않도록 유지하는 개척자의 동 기에 대해 말하자면, 그건 인간이라는 종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장 가능성을 펼치려는 대 담성과 사회적 요구입니다. 이에 반해 당신들이 선호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주장하 는 이들이나 '새로운 완만함'을 말하는 대변인이나, 광신적인 환경운동가들이나, 온갖 이상주 의 자 집단은 그들의 고결한 동조자들에게서 존경을 받겠지만, 그들은 지금도 그렇도 앞으로도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가이자 진보를 방해하는 불쾌한 자들인 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자신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여겼던 로마인들도, 그들의 문화가 이미 몰 락하고 있었을 때 경멸하거나 동정심을 느끼면서 당시 대안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롱하거나, 심지어 그리스도교인들을 괴롭혔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로마인들이 원 시적인 전투 기계 대신에 현대의 대량 학살무기를 갖고 있었더라면, 그들이 가진 잔인한 욕 구에 의해 장난하듯 모든 것을 끝장 냈을 것이고, 불에 타버린 흙만 남겨 뒀을 것입니다. 하 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신앙의 힘으로 새로운 문화세계를 건설했고, 이 유산을 오늘날 까지도 많은 민족들에게 기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비록 후손에 의해 잘 보존되지는 못했 지만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고요? 데카르트 당신은, 서양인들의 건설적인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미 폭력의 방탕한 축제와, 피상적인 유흥 문화와, 검투사 경기와, 사회 및 생태학적 무책임에 대해 점점 더 역겨워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자신의 실패를 자각하여 그 실패를 극복하고, 위대한 인도주의자들과 산상수훈이 그들에게 전해 준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되면, 그들은 바빌론의 운명을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인슈타인 - 나도, 데카르트 당신이 지노를 방해하는 자라고 경멸하는 집단을 변호하고 싶습닏. 너무 성급하게 어떤 일을 하고서 나중에야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옛날에는 기술자들이 작어한 일의 겨가가 비교적 해롭지 않았고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경쟁하듯이 끔찍한 대량 학 살무기가 생산되어 모든 나라로 공급됩니다. 나중에 이 무기로 인해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스픔을 겪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출발조건과 결과를 더 신중히 숙고했더라면, 결코 나는 원자탄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생명공학 분야의 기업이, 신중하 게 위험성을 평가하는 제도를 단순히 특허권 경쟁의 불필요한 장애로 평가하는 것을 보며 경악합니다. 내가 당신들을 이 자리에 초대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분별한 권력이 책 임감을 있는 생각을 앞질러 가서 나중에 스스로 초래한 재아을 한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 니다. 내가 데카르트 당신처럼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을 더 이대하고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처 럼 보이는 것을 추월선 넘으면서까지 더 빨리 생산해 내려는 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 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를 비관주의적인 세계종말론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온화함, 타협, 겸손함을 근거로 방향 설정을 다시 하는 또 다른 기술적 진보가 주는 기회를 믿습니다. 공자 - 친애한는 아인슈타인, 내가 보기에 중요한 점을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나는 우 리가 이제까지 사고와 행위를 너무 대립적인 것으로 다루어 왔다고 생각하니다. 어쩌면 우 리의 사상이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실제적인 정치에 있어서는, 혹시 관여했더라도, 우리가 특별히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잠깐 동안밖에 정치 에 참여하지 못해 얼마나 유감스럽게 생각하는지 이미 얘기했지요. 이제 스스로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비판적인 사상가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내가 지상에 있을 때도 이미 말했지만, 모든 중요한 지식은 일단 인간에게 전해져야 하고, 인간은 이 지식에 따라 실질적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인식이 원래 정해진 쓰임에 따라 활용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원칙은 내 제자들에게 전했고, 그래서 이 위 에서 나의 사상이 실제로 여러 아시아 민족의 사회 및 정치적인 생활에 스며드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공자, 당신은 바로 우리들이 당신의 원칙을 가장 잘키기고 있다고 생각 하지 않나요? 부처가 이미 일찍이 두명의 왕과 일련의 중요한 상인들을 자신의 추종자로 만 들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플라톤이 잠시 정치가에게 자문을 했던 일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 누었습니다. 당신들은 나 역시 종교저인 철학자이자 교회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고, 친구 마르스크스가 정치 활동을 했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 다. 플라톤 -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이 분야에서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공자를 이해했다면, 공자에게는 무엇 보다 현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철학자들 가운데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 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학문적인 경력이나 문화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정치가 가운데 권모술책이나 수사학적인 분야에서 만 협조자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과제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에 부합하는 적절한 자문가를 구하는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신적 후계자들이, 정치적인 책임자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도록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내가 나의 스승 소크 라테스의 단순한 표현법을 배워 나의 생각을 쉬운 말로 전달할 수 있는 데 기뻐했던 반면, 지금의 나의 고상한 동료들은 그들이 인공어를 교양 있는 시민계급 대부분은 물론이고 정치 실무자들도 해독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프로이트, 나는 당신들의 제자들이 화를 입을까 봐 사회적인 문제 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는 행위에 대해 탐탁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렇듯이 말입 니다. 사려 깊은 그리스도교인들이라면 오늘날의 정치가 그들의 교리가 갖고 있는 사회 및 인본주의적인 원칙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분명히 알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도 들은, 회의 속에서 정작 그들이 편을 들어 주어야 할 무력한 사람들과 약자들 대신에 권력 자와 당국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애하는 프로이트, 그 동안 대단히 많은 수로 증가 한 당신의 제자들은 보아하니 정치적인 현실이 인간 내면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적 실재의 반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현실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고, 하물며 참여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합니다. 오늘날 비판적인 지성인들이 자신의 말 을 경청해 주기를 부탁할 대상은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설명해 준, 시민사회로부터 자발적 으로 성장할 참여단체가 아닙니다. 그런 단체에서는 철학자 옆에는 정치적 실무자가, 신학자 옆에는 기술자가, 학생 옆에는 연금생활자가, 자연과학자 옆에는 노동자가 현실 속에서 그들 의 변화된 사회 및 생태학적 표상을 시허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갈등이 생길 경우 의 자기 자신의 저항력을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 아주 중요한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매우 상이한 구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군요. 이 상이한 구상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 니다. 데카르트는 인류가 구원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제까지 만든 모든 문제들을 과학과 혁 명적인 기술성과를 통해 해결하면서 더욱 더 위대한 절정을 향해 뛰어오를 거라고 말합니 다. 위험이 발생하게 되면, 국가차원의 통제체제와 기술적인 통제체제를 통해 해결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공룡 배양자의 운명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혁명적인 폭력이 분출될 것이라 고 말합니다. 시장과 국가는 결국 붕괴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떨어 져 나왔거나 추방된 수백만의 사람들을 부양할 돈이 곧 고갈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부채가 천문학적인 액수로 증가하고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서는 체념과 침체가 퍼져 가는 반 면에, 패배자 집단에서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수가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그들 이 곧 지배자의 보루로 돌격할 것이고, 개인 및 국가 차원의 무장을 하여, 파멸의 전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아직 희망을 가지는 것은, 이 아비규환 속 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 남으리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공상으로 보일 뿐이 라는 거죠. 프로이트 우리에게 만성적이지만 치명적인 질환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공공연한 혹은 은 폐된 비관주의자 집단의 강박관념이지요. 프로이트는 스스로 강화되는 파괴의 순환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 주었습니다. 즉, 지상의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깊이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이 울증은 그들의 건설적 인 힘을 약화시킬 것이고, 이를 통해 그들의 미래상은 또다시 더욱 어두워질 것이며,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악순환이 나타난다는 거지요. 부패와 폭력에 대한 저항력은 감소되고, 수치 심도 사라지고, 냉소적인 억지 유머를 통해 절망도 거부할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여 문화 는 '사회적인 엔트로피'라고 부르기도 하는 만성적인 소멸과정 속에서, 비관주의적인 예언이 스스로 하나씩 실현되듯이 지쳐 간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에 반해 확고하게 세계종말을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탕녀 바빌론 속 에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방자한 자기신격화 때문에 우주적인 자기 파괴로 몰락해 가 는 것을 직접 그리고 노골적으로 눈앞에 보고 있는 대중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인이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명한 교부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통찰하여 전환의 용기를 발견하고, 언제나 그들 안에 숨겨져 있던 개선을 위한 힘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결국 끈기 있게 탐색한 결과, 우리는 최근에 서양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끝없는 팽창주의 라는 문화 이상에 이별을 고하고, 겸손한 자세와 감정이입으로 사회환경 및 자연환경과 더 욱더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는 데 주의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더 자연친화적인 기술공학을 발전시키고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런 집단의 뒤 를 이어 분명 모든 계층의 인간들이 자발적이거나 아니면 특히 여러분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함께 행동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복음 은 세계의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여러분들의 추종자도 처음에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나는 특별히 그 집단에 공감합니다. 내가 사회자로서 그 동안 자제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 우리 모두는 아인슈타인 당신이 사회자로서 현며하고 신중하게 회의를 진행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에게 이 흥미진진한 대담에 초대받는 큰 영광을 준 것 에 감사드립니다. 친애하는 아인슈타인, 당신은 내가 처음에 왜 당신이 새로 들어온 전문가 와 미래연구자말고 하필 박물관에나 있을 우리 영혼을 선택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는 것을 기억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생각을 잘 이애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심지 어 저 아래에 있는 인간들도 당신의 근본사상을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운명에 대해 가장 깊게 숙고했으며, 그것으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던 선인들말고 누구에게서 그들의 목표를 위한 올바른 척도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아직은 선인 측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만약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미리 자신들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묻지 않는다면 세계화된 경제와, 자신과, 원자핵과 세포핵과 마이크로 전자공학과의 관계를 이성적으로 계획할 수 있 을까요? 그리고 인간들은 오늘날의 전문가들과 엘리트 지식인들보다는 당신들 예 선인들과 역사적 구원론자들에게서 더 중요한 사상을 발견하지 않았나요? 부처와 공자와 플라톤이 인 간의 본질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얻은 원천도 우리 종족의 초기 시대로부터 전승된 지혜가 아니었던가요? 아인슈타인 - 당신이 이미 말했듯이,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해 보 면서 그들의 정신적인 조상에게 더 많은 조언을 구한다면 분명 그들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절실한 일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과정에서 우리 모임의 수확을 발견하 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제까지 미루어 놓고 있었습니다. 구원이 만약 존재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여성들의 힘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모 임에 적합한 여자 사상가들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내가 이 모임에 순전히 남자들만 초대한 것을 꾸짖어야 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이라면, 어쩌면 여러분들도 나처럼 여성들과 관 계가 매우 좋지못했기 때문에 내 태만함을 비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인도주의적이고 생태학적인 시민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여자들을 통해 정신적 및 정치적으로 반대방향으로 전환할 때만이 서구의 남성적인 전능 망상에서 해방될 수 있다 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플라톤 - 당신은 그러한 참회의 말로써 당신 자신은 물론 우리들의 정신적 부담을 덜어 주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우리가 우리들의 혼란과 태만함을 서로 찾아내면서 적어도 스스로 를 돕는 모임이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친애하는 아인슈 타인, 마지막으로 말해 보시지요. 우리가 저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더 많이 알게 된 건가요? 아인슈타인 - 저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우리는 가장 중 요한 대안을 탐구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 다. 그들은 계속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강요와 기술공학적 강요의 자가역학에 자신을 맡 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대안책 중 가끔 끔찍한 것일 것입니다. 그들이 적어도 우리들 가운데 대다수가 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미 근본적으로 한 걸음 전진한 것 이겠지요. 당신들이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 습니다. 인간이 그들 종족의 미래가 안전하게 진행되길 원한다면, 유일한 기회는 두 가지 간 단한 통찰을 마음에 새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운명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 간들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자연에 속해 있는 것이지 자연이 인 간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충분히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 천상대담을 텔레파시를 통해서든 비밀스런 전달을 통 해서든 지구 밖에서 은밀히 엿듣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다. 본 보 고서 작성자는 수신된 단편적인 대화를 적절하게 보충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분명 의심할 여지없이 어려운 모험이었다. 천상에 있는 현인들이, 그들에게 감사하는 한 숭 배자의 불손을 관대하게 보아주기를 바란다. 본이도 나중에서야 수치시을 자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본인은 존경할 만한 구원론자들의 자기 자신의 말이나 상대방의 말을 인용할 때 그 원전을 찾아 내려고 노력했다. 부록 1 - 천상대담의 참석자들 부처 (Buddha, B.C. 566 - 486?) 부처의 생애에 관해서는 동시대인으로부터 전해오는 기록이 없다. 일반적으로 부처는 히 말라야 산맥 남쪽에 위치한 작은 카필라성의 왕자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석가라는 명 칭은 그의 종족의 이름인 샤키아에서 유래했으며 싯다르타는 아명으로 "자기의 목표를 달성 한 사람" 이라는 뜻이다. 그의 많은 이름 중에서 붓다('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라는 뜻)는 도 를 깨우친 후에 자신도 사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사치스러운 환경에 대한 환멸과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한 부처는 고행과 수 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른다. 그의 가르침은 무신론적인 불교의 전형을 이루었 고, 빼어난 윤리적인 가르침, 특히 실천적인 윤리를 후세에 전달했다. 서구 사상가들이 대체 로 선형적인 역사관을 제시한 데 반해 부처는 삶과, 죽음, 역사의 발전 등은 윤회의 한 부분 이라고 하는 원형적인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많은 후계자들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어 대승불교, 소승불교 티벳뷸교로 분파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공자 (B.C. 552 - 479) 중국 노나라의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한 공자는 일찍이 중국 고대의 사상을 섭려하고, 젊 었을 때부터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현실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자 들에 대한 가르침도 역시 군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제자들은 난세에 등용되어 관직에 올랐으나 그 자신은 공직을 수행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고, 고대로부 터 전승된 문서들을 수집하고 편찬하는 일과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항상 중국 고대의 전설적 태평성대인 요순시대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혼란한 시대에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업은 고대의 질서를 복원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규범을 의미하는 예와 사람다움 혹은 도덕의 지선을 의미하는 인을 근본으로 가르 쳤으나 형이상학적인 문제나 죽음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논리로 남을 설복하여 자신의 사 상을 전달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항상 끈질긴 감화를 통해 상대방을 독자적으로 올바 른 생각을 하도록 계도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플라톤 (Platon, B.C. 427 - 347) 그리스 아테네의 명문에서 출생한 플라톤은 20세에 소크라테스와 교분을 가지기 시작하면 서 철학연구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는 8년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학업에 열중하였 으며 소크라테스가 처형당한 후 고국을 등지고 방랑 생활을 했다. 저술 내용으로 보아 그는 이집트와 동양에까지 여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라쿠사와 폭군 디오니시스를 교육해 소 위 철인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으나 결국 몇 달 만에 실패했다. 그가 기원전 387년 자신 의 집 정원에 설립한 학원은 그가 죽은 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개칭되어 오늘날 대 학 의 모델이 되었다. '대화편'이라 불리는 그의 저작은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요 인물로 하여 철학을 문학 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승에 이어 보편성과 영원성을 참된 진리의 기준으로 삼아 철학 의 장을 열었다. 또 철학의 실천적 사명을 강조했던 그는 정의 본질을 인식하고 있는 철학 자들이야말로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론>에서 철학자가 지배하 는 이상국가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354 - 430)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누미디엔의 타카스데(오늘날의 알제리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면서 뛰어난 문 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19세에 이미 수사학을 강의했다. 자신의 저서인 <참회록>에 많이 언 급되어 있듯이 청년기를 매우 방탕하게 보냈으며, 악의 문제로 고민하던 중 마니교에 심취 한 적도 있었다. 그는 마니교의 유물론적인 사고와 신플라톤주의적인 회의론에 기울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읽고 마니교의 이원론을 떠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하나님 과 세계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점을 깨닫고, 플로티노스의 로고스와 성육신을 연결하여 사유 했다. 384년 밀라노에서 가르치던 중 모친의 권유와 성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확신에 힘입 어 회의주의와 작별을 고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신이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였 으나 아담이 타락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은 까닭에 그 자손들 역시 저주받았다는 원죄론과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하는 예정설 등으로 그리스도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데카르트 (Rene Descartes, 1595 - 1650) 근세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으로 예수회파 학교에서 스콜 라적인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몇 차례 종군했다가 1629년 당시 서구에서 사상의 자유가 가장 많이 보장되었던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약 20년간 철학연구에 집중하면서 저작활동을 했다. 1949년 그의 저서에 대하여 관심과 의문을 가졌던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아나의 초청 으로 스톡홀롬으로 건너갔다가 다음해에 그곳에서 병사했다. 다양한 자연과학적 문제를 다 룬 저술작업을 하였으나 교회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출판을 보류하거나 일부를 말소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개신교 신학자들의 항의를 받았으며, 가톨릭 교회는 그의 저서를 금 서목록에 포함시켰다. 데카르트는 중세와 근세의 획을 긋는 전혀 새로운 철학적인 입장을 취했다. 확실하고 명 징한 인식을 얻기 위해 일체의 선입관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불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 든 것을 의심한 것이다. 방법론적 회의라 불리는 이 회의의 결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는 유명한 명제에 도달했다. 진리는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주체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주체의 존재를 규정하는 본질 역시 신체가 아니라 사유라고 보았다. 또한 물질은 영혼이 없으며 기계적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그의 보편적인 기계론은 자연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견 의지에 완전하고 능 동적인 능력을 부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지가 오성을 따를 때에만 정당한 것으로 인장하여 이성적인 합리주의를 주창하였다. 마르크스 (Karl Marx, 1818 - 1883) 독일 트리어의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한 마르크스는 본과 베를린에서 인문계 학문과 법률, 역사 및 철학을 공부하다가 헤겔 철학에 접하게 되면서 무신론적이고 급진적인 자유주의자 가 되었다. 언론과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벨기에 브뤼셀에 망명해 있을 당시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기초했다.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참여했으나 혁명은 실패하 고 그에게는 늘 추방령이 국가에서 내려졌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연구와 집필활동에 전 념하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실질적인 철학으로 세계를 변혁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사상은 이론적 측면과 행동강령으로서의 측면을 함께 갖추고 있다. 그가 엥겔스와 더불어 주장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19세기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을 연결시킨 것인데, 헤겔좌 파의 사상과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역사의 발전이 정신에 의한 것이라는 헤겔 유의 사상을 극복하고, 역사의 원동력이 관념이 아닌 부를 생산하는 양식, 즉 생산양식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위 하부구조 위에 법류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이를 매 개로 하는 철학, 학문, 예술, 도덕, 종교 등의 이데올로기적 상층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부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충구조는 하부구조에 직, 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상부구조 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하부구조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적 유물론에 의거하여 역사는 자분주의에서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상인 공산주의가 도래할 때까지 무산자계급이 받는 고통 이 지대하기 때문에 이를 앞당기기 위한 방편으로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기에 이 른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현실적인 공산주의의 근본이 되었으며, 그는 현대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지목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 - 1939)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프라이베르크(현재는 체코에 속함)의 유태 인 가정에서 출생하여 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특 히 동물학, 생리학 및 해부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신경 임상가로 유명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히스테리를 관찰하였으며, 최면술로 마비나 경련을 일으키고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 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환자의 심리상태를 관찰하고 연구하여 카타르시 스 (cartharsis)법을 히스테리의 치료법으로 확립했다. 얼마 후 이를 보완하여 자유연상법을 발 견했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계속해서 꿈, 착각 해학 과 같은 정상적인 심리도 연구하여 1900년 <꿈의 해석>을 발표하는 등 심층심리학을 확립했 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암으로 사망했 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교육 학, 범죄학, 문예비평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 1955) 아인슈타인은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독일 울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취리히 공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시민권을 얻어 베른의 특허국에서 근무했다. 이때 여가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과 광전효과 등을 연구하고 1905년 특수상대성 이론, 광 전자 가설, 브라운 운동 이론 등을 발표했다. 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당시에 지배적이던 갈 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종래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 시켜 철학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그가 발견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은 원자 폭탄의 가능성을 미리 보여 준 것이다. 1913년 베를린대학 교수로 재직중 그 동안의 연구를 토대로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광전효과와 이론물리 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 에 몰두하자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제조하자는 서한을 보 냈는데, 이것이 맨해튼 계획이라 일컬어지는 미국 원자폭탄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그후 그 는 히로시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여 반파시즘 투쟁을 전개하고 유태인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만년에는 세계정부론을 주장하는 등 평화주의자로서 열정적으로 활 동했다. 부록2 - 천상대담에서 언급된 주요 인물들 간디 (Mohandas Karamachand Gandhi, 1869 - 1948)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영국의 지배를 받던 서뱅골 구자라트 주의 작은 공국 포르반다 르에서 태어났다. 이후 영국에 유학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은 후 인도에서 취직이 어렵자 남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남아프리카 인도인의 자유를 위해 활약하였고, 1915년 귀국 후 반영 무저항, 불복종 운동을 선언하고, 국민회의파를 강화하고, 인도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분투하였다. 1930년대 이후에는 독립투쟁보다 사회문제에 전념, 힌두 사회의 체 질 비판, 불가촉천민구제의 제창, 이슬람과 힌두 양파의 대립 완화에 노력하였다. 제 2차 세 계대전 후에는 파키스탄과의 분리독립에 반대하고, 통일 인도의 조직에 노력하였으나, 한 힌 두교도에 의해 암살되어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게오르기우스 (St. GEorge Georgius, 270? - 303?) 로마의 군인이며, 14구난성인의 한 사람(축일 4월 23일), 303년 경에 로마의 디오클레타아 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팔레스타인의 루다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동방에 서는 이미 4세기부터 게오르기우스에 대한 숭배가 성행하였고, 그 후 십자군의 귀환자들에 의해 서방에도 전해졌다. 특히 용을 퇴치한 전설로 유명하며, 이 전설은 동방교회의 성화의 화재로 많이 취급되었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우스의 괴물 퇴치와 결부된 것으로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 (Dalai Lama) 달라이는 티베트어의 '갸초'에 해당하는 몽골어로 '큰 바다'를 뜻하며, 라마는 티베트어 로 '무상의 스승'을 뜻한다. 달라이 라마란 칭호는 제 3대 종정부터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후 에 는 초대와 제 2대도 이 칭호로 불렸다. 제 5대에 이르러서 구파 불교세력을 몰아내었고, 정 교 일치의 지도자가 되었다.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1935 - )는 중국에 의해 티베트가 합병 되자 1959년 인도로 망명, 망명정권을 수립하였다. 이후 비폭력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 을 해오고 있으며, 티베트인들의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1989년 노벨 평화상 을 수상하였다. 데바닷타 ( ? - ?)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활동한 불교 승려,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다. 석가모니를 세 번이 나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아마 도 석가모니의 노선에 반대했던 그의 행적을 두고 후세인이 각색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 이다. 승가에 엄격한 생활 규범을 도입하여 승가를 개혁하고자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 영국의 철학자, 논리학자, 제 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한 그는 평화운 동, 핵무장 반대운동을 주도한 사회정치 운동가로도 유명하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 다. 정통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끈 <독일 사회민주주의>등의 저서를 남겼다. 로맹 롤랑 (Romain Rolland, 1866 - 1944)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자 중 한 사람이다. 당시 프랑스 군부의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늑대들>, 혁명 극 <당통>, 교양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비롯해 <베토벤의 생애>, <미켈란젤로의 생애>, <매혹된 영혼>, <마하트마 간디> 등의 평전이 있다. 19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마이모니데스 (Maimonides, 1135 - 1204) 중세의 유대 철학자, 법률가, 의사, 에스파냐 코르도바의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후에 카이로에서 의사생활을 하였는데, 이때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 신학 대전이라 할 만한 <혼란에 빠진 자들을 위한 길잡이>를 썼다. 마이모니데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유대교와 결합, 조화시켰다. 종교, 의학, 철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만델라 (Nelson Rohihlahla Mandela, 1918 -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가, 대학 시정부터 흑인해방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52년 남아프 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변호사가 되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부의장을 지냈고 1955년 인민의회를 주도하였으며, 1962년 백인 정부에 의해 반역혐의로 체포되어 27년간 옥중투쟁 을 하다 1990년 석방되었다. 1991년 ANC 의장이 된 후 백인 정부와 흑백 차별 없는 총선 실시에 합의, 인종차별 종식의 기초를 닦았다. 1994년 첫 다인종 자유총선거 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3년 데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보른 (Max Born, 1882 - 1970) 독일의 물리학자, 모교인 괴팅겐 대학교와 에든버러 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하이젠 베르트 등을 지도하여 행렬역학을 정식화하고 계속해서 충돌과정, 분자구성의 양자역학, 파 동함수의 통계적 해석 등에 기여하여 1954년 독일의 발터 보테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 았다.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 1313 - 1375)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페르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가로 꼽힌다. 서정시, 장 편소설, 논문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당시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방대한 작품 을 남겨 이탈리아어의 문학을 고대 고전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 라틴어를 통하지 않고 그리스어로 직접 고전문헌을 해독하여 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348 - 1353년 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데카메론>은 100편의 기상천외한 단편 을 모은 토막 형식의 이야기이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후세의 유럽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 다. 또 그 속에 담긴 그의 정신은 선과 운명이라는 뚜렷한 이원론을 보여 주어 르네상스적 감성과 사고에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 그 외로 저서로 단시 <디아나의 사냥>과 5권으로 된 산문 <일 필로콜로>, <일 필로스트라토> 등의 문학작품이 있다.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 - 1600) 이탈리아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신비주의자, 현대과학을 예상하는 이론들을 제시했 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무한한 우주에 관한 이론과 다양한 세계에 관한 이론'이다. 브루 노 는 이 이론들을 통해 지구 중심의 전통 천문학을 거부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혁 교회 가 모두 유럽의 복음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엄격한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적 원리들을 재 확인하던 시기에 비정통 사상을 고수하다가 화형대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였다. 슈펭글러 (Oswald Spengler, 1880 - 1936) 독일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할레, 뮌헨, 베를린 대학에서 자연과학, 철학을 배웠고, 니체 의 인생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각 문화를 역사적 상대주의 입장에서 일정한 주기로 성장, 쇠 퇴하는 유기체로 보았다. 저서 <서구의 몰락>은 유럽 문화의 몰락을 예언,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스파시아 (Aspasia, ? - ?) 아테네의 장군 페리클레스의 애인으로 BC 400년대 초 아테네로 이주하여 창녀가 되었으 며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다. 정치와 수사학에 능통하였다고 하며 소크라테스와도 대화를 나 누었다고 한다. 안드레이 사하로트 (Andrey Dmitriyevich Sakharov, 1921 - 1989) 소련의 핵물리학자, 1950년 탐 박사와 함께 제어열행융합에 관한 연구를 완성시켜 소련의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일컬어졌다. 1968년 <진보, 공전, 지적인 자유>라는 논문을 발표하 여, 모든 핵 보유국들의 핵무기 감출을 요구하였다. 그는 또한 민주화의 필요성을 당국에 호소 하였고, 1970년 인권위원회를 설립해 활동하였다. 이러한 행적으로 1975년 노벨 평화상을 수 상하였으나, 당국은 그를 니주니노브고르트로 유배시켰다.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복권되 었다. 야콥뵈메 (Jakob Bohme, 1575 - 1624) 독일의 철학자, 신비주의 사상가, 형이상학적 관심에서 점차 실천적, 종교적 관심으로 사 상이 변하였고, 모든 사색의 중심을 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두고 있었다. 낭만주의 독일 관념 론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 르네상스의 자연 신비주의와 성서 교리를 종합한 <위 대한 신비>와 <은총의 선택에 대하여>등이 있다. 오웰 (Geoge Owell, 1903 - 1950) 영국의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하급관리의 아들로 인도에서 태어나고 이튼학교를 나와 미얀마의 경찰관이 되었으나 식민지 정책에 혐오를 느껴 그만두고, 파리와 런던에서 곤궁한 생활을 하며 문필활동에 들어갔다. 또한 에스파냐 내전에 참가, 공산당의 내부 분열을 경험 하기도 하였다. 주로 영국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전체주의적 권력국가의 공포를 통렬히 풍자 한 우의소설, 미래소설을 썼다. 저서로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쓴 <파리, 런던의 바닥 생활>, <미얀마의 나날들>, <카탈루냐의 찬가>와 스탈린 독재를 비꼰 <동물농장>, 인간성 을 박탈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전율을 예고하는 <1984> 등이 있다.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 1904 - 1967)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일찍이 중간지론에 주목하여 그 발전에 기여하고, 우주선 샤워의 기 구, 일반상대론에 의한 중성자 구조 등을 연구하였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괴팅겐 대학 에 유학한 후 연구생활을 거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소장, 프린스턴 학술연구 소장을 역임학고, 미국원자력위원회 일반자 문회의 의장이 되었다. 수소폭탄 제조계획에 대한 반대가 문제가 된 오펜하이머 사건을 계 기로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이븐 루슈드 (Ibn Rushd, 1126 - 1198) 이슬람의 종교철학자, 이슬람 전통과 그리스 사상을 통합하는 데 힘썼으며 이슬람 세계에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문헌적 연구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대 부분의 작품에 대한 주석서를 썼다. 저서로 <종교법과 철학의 일치에 관한 결정론>, <종교 교리에 대한 증명법의 고찰>, <마나히즈>등이 있다. 펠라기우스 (Pelagius, 354 - 418) 영국의 신학자, 원죄와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은총은 구원이 쉽게 이루어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일 뿐, 영혼이 구원받는 데 인간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비난을 받고, 후에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저서로는 자신의 파문을 가져왔던 <자유의지에 관하여>, <신앙에 대한 짧은 진술>등이 있다. 프란체스코 (St. Francesco, 1182 - 1226) 프란체스코 수도회 및 수녀회의 설립자이자 13세기 초 교회 개혁운동의 지도자이다. 1204 년 크게 병을 앓은 일을 계기로 개심하여 겸허, 청빈한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1210년 10명의 동료들과 청빈, 정결, 복종 등을 규칙으로 한 공동생활에 들어가 예수의 교훈을 실현 하기에 전력하였다. 모든 생물을 형제라 부르고 산천초목을 자매라 부르면서 전도를 하였다. 플루타르코스 (Plutarchos, 46? - 119?) 그리스의 작가, 전기 작가, 로마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관직에도 있었다. 그는 '최후의 그 리 스인'으로서 고전 그리스 세계에 통달한 일류 문화인이었으며, 플라톤 철학을 신봉하고 박 학 다식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윤리적, 종교적, 물리적, 정치적, 문학적 주제에 대한 60편 이상 의 수필을 모아 엮은 <모럴리아>, 그리스와 로마의 군인, 입법자, 웅변가, 정치가들의 고상 한 행동과 성격들을 상술한 <영웅전>을 지었다. 헉슬리 (Aldous Huxley, 1894 - 1963) 영국의 소설가, 평론가, 장편 <크롬 옐로>, 대표작 <연애 대위법> 등에서 당시의 회의적, 허무주의적 지식인의 군상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멋진 신세계>, <가자에서 눈이 멀어> 이 후 윤리적, 신비적 경향을 보였다. 그 밖에 비평서 <영원의 철학>, <인식의 문> 등이 있다. <멋진 신세계>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린 반 유토피아적 풍자소설이다. 헤시오도스 (Hesiodos, ? - ?) BC 70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시인,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호메로스와 달리 현실적이며 간결한 작풍을 보여 주나, 때로 장대한 경지에 이를 때도 있다. 저서로는 농경에 관한 교훈 과 길흉의 역을 혼합한 <노동과 나날>과 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것으로 우주 창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이 포함되어 있는 <신통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