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떤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데카르트의 예언대로 미래에는 완전한 유전자 구조를 가진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고, 인류 에게 닥칠 불행을 슈퍼컴퓨터라는 새로운 종족들이 모두 해결하게 될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기술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절망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비관주의자들이 아닐까. 잔혹한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유연성을 상실한 자본주의가 세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 로 몰아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불안에 빠진 사람들은 스스로 상황에 대해 책임지려 하기보 다 자신들을 구원해 줄 강력한 독재정부를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인류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대해체와 환경파괴를 중단시키고 자시 의 운명을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바라는 진 정한 욕구와 자신의 과오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다. 데카르트 "기차는 놀라운 신세계로 달려간다" 아인슈타인 - 당신들도 알다시피, 저 아래에 있는 인간들은 예언은 스스로 실현되게 마련 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은 종종 엄청난 목표 지향성을 통해 그들이 상상하는 미래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끔찍한 재앙을 얻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특히 현재 지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 고 있는 서양인들이 예상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우리가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기에 앞서 그 점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아 하니 서구인들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동요됨이 없이 더욱 더 완전해지는 인위적인 신의 등극을 보고, 다른 이들은 끔찍한 파멸의 심연을 응시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문화가 만성질환이나 엔트로피의 증가로 서서히 사라질 거라고 예상 합니다. 물론 내면성이 정화되어 완쾌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여론들에는 우리들 각자가 한 번쯤 마음에 품었던 사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각자 배졍받은 역할에 따라 어떤 예언이 실현될지 그 가능성과 결과를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 - 다시 말하면, 우리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상이한 정신사조로 입장을 바꾸어 보고, 그것들의 협력작용이나 대립을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해 보게 되겠지요. 나는 먼저 정치 및 경제적인 문제를 결정하는 데 아직도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갖 고 있는 희망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물론 나는 과학과 기술이 결합하여 진보를 이루 어 낸다고 설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그 대표자겠지요. 데카르트는 그 무엇도 인간이 자신의 인식을 무한히 성장시켜 완전한 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함으로써 인간들에게 그 길을 제시했습니다. 지상의 수많은 연구센터에는 여전히 이런 정신이 만연되어 있으니, 그런 사고방식이 인간들을 어디로 몰아갈 것인지 데카르트가 우리 에게 말해 주어야겠습니다. 데카르트 - 먼저 나는 내가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하겠습니다. 즉, 적어도 서구인들은 그들 이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더 이상 임의로 찾아 헤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이 그 진로를 결정한 기차 안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차 안에 눈먼 광인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창조적인 발견자이자 발명자로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극복 할 수 없는 듯 보이는 장애에 대해서도 항상 해결책을 생각해 내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원 히 앞으로 나아가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믿음이 옳다고 봅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그들은 이미 위대한 발견을 통해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사 실에 경악하지 않았나요? 즉, 쿠바 사태의 생존자들의 목숨이 한동안 풍전등화 같았던 일 말입니다.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인간들이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새롭게 결정하지 않 으면 그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곧바로 멸망으로 달려갈 거라고 예언했을 때, 인간들은 자신 의 진롱 대해 의심이 들지 않았단 말인가요? 데카르트 -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 가운데 아무도 핵전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저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의 비장한 경고를 연로한 연금 생활자들이 의례적으로 하 는 말로 여깁니다. 노인들이 전형적으로 후회와 참회의 태도를 나타낸다는 얘기는 이미 했 었지요.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당신이 지지하는 낙관주의자들이 상상하는 멋진 신세계는 어떤 것인가요? 데카르트 -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세계와, 새로운 가상적인 세계라는 두 개의 세계를 기대합니다. 인간은 그 두 세계를 왔다갔다하며 살거나, 또 그 둘 사이의 다양한 연 계성 속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요. 친애하는 부처, 당신의 대승불교 신자들이 오래 전 부터 꿈꿔 왔던 대로, 곧 인터넷망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될 겁니다. 부처 - 진심으로 당신은 인터넷이 세상에 더 많은 동정심과 배렬르 불러일으킬 것이고, 아직까지 이런 영혼의 힘이 미약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다만 기술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까? 데카르트 - 어쨋든 낙관주의자들은 전자 통신공학을 통해 심리, 사회적인 의사소통도 크 게 개선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인간들은 실제로 서로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되고, 사회과정 과 정치적인 문제를 결정하는 데도 더욱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더 이상 교만하고 쓸모없는 관료주의의 노예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인도주의적이거나 정치적 인 목적을 지닌, 대중을 기반으로 한 시민운동도 서로 더 잘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어떤 일 에나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 - 그러나 전자공학이 실제로 개인적인 만남과 마찬가지로 친근감을 경험하게 하고, 유대감을 느끼게 해줄 수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점에 대해 매 우 회의적입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섬세한 토론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데 찬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활동하는 사람들조차 온라인을 통한 의사소통이 그렇지 않아도 이미 분열된 사횡에 새로운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나요? 즉, 온라인상의 지배 권력층과 오프라인상의 해체된 피지배층으로 분열되지 않을까 요? 그리고 네트워크 고객이 주로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들이고, 이 네트워크 고객들 가운데 여자들이 이제까지처럼 계속해서 수적으로열세하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데카르트 - 물론 이런 사회체제의 옹호자들은 새로운 기술공학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급속도로 증가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임박해 있다고 약속합니다. 전자공학자들의 희 망은 곧 고도로 발전하게 될 인공지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래의 컴퓨터 세대는 오늘날 불확실한 추측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중요한 결정들을 실수 없이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여 완벽함에 한 단계 더 다가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연구센터에서 는 이미 이 천재적인 미래의 컴퓨터를, 죽음에 의한 제한된 존재인 인간이 지고 있는 책임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떠맡게 될 우월한 종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계산을 잘한다고 해서 책임을 잘 질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친 애하는 데카르트, 이 새로운 종족이론가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충분히 비판한 당신의 망상 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다만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잘못된 믿음 말입니다. 그것은 냉전 대 핵무기 보유량이 서로 똑같기만 하면 핵 무기 겨쟁을 악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정치인들과 같은 기술 만능주의자들의 이념입니 다. 그 수학적인 균형 덕택에 그들은 모든 도덕적인 번민을 모면하게 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그러니까 최근에 지상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봤던 한 편의 영화가 떠 오르는군요. 그 영화에는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공룡 알에서 한 떼의 공룡을 새롭게 배양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가 나옵니다. 그 과학자의 사무실에는 별나게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 는 수십만의 일본인을 살해한 원자탄을 만드는 데 중심적인 책임을 맡았던 조정관으로 잘 알려진 오펜하이머의 사진이 걸려 있지요. 즉, 한 과학자가 공룡을 배양하는 것을 보여 줌으 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기술이라는 괴물이 주는 위협을 말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그 배양자는 살인적인 야수가 울타리를 벗어난 인간에게 덤벼들 수 없도록 전자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뛰어난 전문가에게 이 시설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문가는 마침 어떤 부정한 사업을 처리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그 커다 란 야수가 울타리를 부수고 끔찍한 파괴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그들이 도덕적인 책임까지 전자공학에 맡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들에게도 이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의 슈퍼 컴퓨터라는 '종족'이 구원을 약속해 준다고 밎지 않는다고 해 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욕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도덕적 결함을 지닌 인간의 품성을 보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룡을 배양한 과학자는 그 괴물을 생산하는 일에서 손을 뗐어야 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부처 - 나는 관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궁금하군요. 아우구스티누스 -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다만 흥미진진한 공포물을 즐긴 것뿐이었습니 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 가운데 몇몇은 그들 스스로 자기 문화의 과대망상에 동참하고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 - 낙관적으로 진보를 믿는 사람들은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할 것 입니다. 즉, 그것은 비관주의자 및 기술을 적대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해석이라고 말입니 다. 만약 공룡을 배양한 과학자가 컴퓨터 기술자를 고용할 때 더 신중하게 살펴보았더라면, 잘못된 기술자를 고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프로이트 -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인성 테스트는 아직 없습니다. 게다가 왜 인간은 저항 력이 약한 안전장치에 의지하여 부차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면서까지 그런 모험을 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정말 이상한 역설이군요. 데카르트 - 다소 역설적이지요.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기차는 달리고 있습니다. 인간을 태운로켓이 우주로 날아가고, 곧 그들을 화성까지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는 유전공학에 의해 유전병이나 신체 장애가 없는 새로운 완전한 인간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런 장애들은 계획된 낙태를 통해 제거되죠. 물론 타격고 있을 수 있습니다. 몇몇 로켓은 여전히 추락하겠지요. 에이즈나 광우병과 같이 병인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병이 나타날 수 있고, 그 병을 없애기까지 몇백만 명의 인간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차는 종점이 없으며 끝없이 '계속' 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실수는 기껏해야 이 기차의 빠른운행을 잠시 멈추게 할 뿐입니다. 어쨌든 나도 여전히 어려움들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곧 인간이 화학적으로 노화를 막을 수 있게되면, 공공복지를 위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죽이거나 노인들 스스로 자살하지 않는 다면, 젊은이들을 위한공간은 줄어들 것입니다. 이미 정상보다 두 배를 더 살 수 있는 파리 를 배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150세 먹은 인간은 안 되겠습니까? 물론 거대한 집단을 유 전공학으로 조작하여 그 중의 한 집단이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지 않도록 해야할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보다 완벽한 기계가 더 잘 생산하겠지만 말입니다. 때때로 그와 같은 전망에 다소 불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다른 이들 과 마찬가지로 철도가 승객을 병들게 하고 전깃불이 시력을 약화시킬까 봐두려워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내가 대변하는 사람들이, 기술적인 진보가 정말로 문제를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항상 그것을 극복하는 원동력도 전해 준다고 확신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중 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어쨌든 당신은 이 불안 가운데 어떤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는 것을 인정하는군요. 데카르트 - 하지만 내게는 그런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힘 을 아직도 의식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10대들처럼 보입니다. 프로이트 - 그들이 자신의 잠재력으로 아버지에게 도전하거나 심지어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할 때, 아직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복수를 두려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 - 이제까지 신이든 아버지든 그 누구도, 그들의 도전을 처벌하여 계획을 중단시 킬 위력을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달에 갔던 이들은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원자탄을 만든 이 들도 벼락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유전자를 조작하는 이들에게 어떤 재앙이 생 기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친애하는 아우구스티누스, 인간들은 저 공룡영화와 같은 끔찍한 내용의 동화를 당신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즐겨 유 령열차가 있는 놀이공원엘 가는 것처럼, 그들은 때때로 한순간이나마 어린 시절의 마술과 같은 유령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플라톤 - 하지만 이카로스는 더 높이 올라가면,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는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지요. 데카르트 - 거기에 대해 지상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을 겁주려고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다. 하지만 진보를 주창하는 이들까지 겁 줄 수는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미국인들이 로켓에 타이탄이나 주피터와 같은 신의 이름을 붙여 우주로 쏠 용기를 냈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그러니까 당신이 옹호하는 낙관주의자들은 유쾌해하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 다는 거군요. 그들은 세상이 무너지거나 인간 스스로 배양해 낸 공룡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새로운 종족의 손 안에서 끊임없이 개선될 거라고 보 는군요. 몇몇 타격과 사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당신이 말하는 기차가 더욱더 훌륭한 낙원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죠. 데카르트 -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 낙원은 오늘날의 자연세계와는 다를 수 있습니 다. 새로 만들어진 식물과 동물이, 화학적으로 조제된 영양을 공급해 줄 원료가 될 것입니 다. 인간이라고는 거의 없는 공장에서 지능을 지닌 로봇이 생산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가 상세계는 환상과 소망을 충족시킬 것입니다. 이런 환상과 소망은 감정이 없는 기술적인 의 사소통을 통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유전공학을 통해 안정되고 가장 적절하게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이 만들어질 것이며, 그들의 일부는 이 지구상에서, 일부는 새로 창조 된 우주의 다른 생활공간에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 - 도대체 왜 당신이 증인들의 낙관주의자로 불리는지 의문이군요. 그들이 예측 하는 것은 지금의 문화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이, 실험실에서 탄생 하여 화학과 유전공학으로 완전히 변형된 합성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새로운 종에 의해 교체 되리라는 공상을 합니다. 나는 그런 공상에서, 오히려 인간 서로간의 관계 및 자연과의 관계 를 더 신중하고 평화롭게 조정해 나가야 할 책임을 발전된 기술에 떠맡기려는,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족과 절망에 찬 망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종은 역사의 주체라는 지위와는 작별하는 것이며, 더 지능적이기는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장님인 기술의 노예일 뿐입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스스로 금치산의 선고를 내리 는 격입니다. 데카르트 - 프로이트,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역사적 현실은 이미 급진적으로 무대 를 바꾸어 가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군요. 하지 만 내가 말한 친구들이 기대하는 것과 나의 기대가 똑같다면, 낙관주의적인 확신이야말로 미래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최상의 힙입니다. 아인슈타인 -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동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 당신이 이의를 제 기할 것 같군요. 아우구스티누스 - 고맙습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반신이 신의 창조를 파괴하려는 것에 대 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분노와 한탄 사이에서 우왕좌왕합니다. 분노는 그 계 획이 가진 오만함에 대한 것이고, 한탄하는 것은, 그 눈먼 모험가에게 병적인 광기가 있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모한 모험가들은 마술에 사로잡 혀 있으며, 그 마술을 아직 건전한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식시키려 합니 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성된 미래세계는 연금술사가 있던 시대의 현자의 돌을 빈약하게 모 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금술가들이 추구했던 바는 오늘날의 과대망상 환자들이 하려 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기차로 여행하는 이들이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 남아 있는 이성이, 이런 식으로 계속 가게 되면 그들 위로 바빌론 탑이 무너 질지 모른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인간에게는 장난감 상자를 가지고 신의 창조 를 바꿀 권한이 없다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떨쳐 버릴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데카르트 - 하지만 인간이 오만하게 스스로 신과 닮았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 모세에 따 르면 신이 인간에게 이런 위대성을 부여하였고, 게다가 지상에 있는 모든 동물에 대한 지배 권을 위임했습니다. <성서>에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아구스티누스 - 하지만 신이 말한 지배권이라 보호를 의미한 것이지 훼손하고 멸종시킬 권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데카르트, 당신은 모든 의뢰인들을 위해 의원직을 사퇴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후손들이 어디로 향해 가게 될지 예견하지 못한채, 350년 전 그 외뢰인의 선구자들에게 당신의 정신을 불어넣었지요.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당신 동료 파 스칼이 다음과 같이 경고 했을 때 그는 다신보다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것이며 그의 경 고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무한히 높은 탑을 건설하기 위해, 확실한 장소와 토 대를 발견하고자 하는 동경에 불탄다. 하지만 이 모든 기반은 무너질 것이고, 땅은 그 심연 드러낼 것이다" 라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그 기반의 균열이 나타나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옹호하는 이들 은 동요하지 않고 끝없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파스칼처럼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10년 혹은 30년 연장해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아직도 그들은 불멸과 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그들을 더욱더 강하게 지배해 가고 있는 폭력에 의 해, 결국 세대를 거치면서 영원히 계속될 전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지배자들은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해 내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신이 벌로 그들을 붙임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미 많은 남자들에게서 성욕과 정자가 감소하고 있고, 많은 여자 들이 불임 상태입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신이 이성적인 인간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데카르트 당신이 위대한 성과로 예언하는 것은 순전히 파괴의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진보를 담당하는 이가 장님이거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심장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 영혼 분열의 결과입니다. 당신이 이런 영혼의 분열을 야기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분열을 유포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당신을 철저하게 비난했지요. 사 람들은 자연을 노획물처럼 사냥해서 내장을 들어내고, 변형시켜, 토막 내어 먹어 치우면서 자신이 잔혹하다는 것을 거의 아니 전혀 모르는 종으로 변종시키려고 하면서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결점을 지닌 존재로 낙인 찍 고 차별하고, 결국은 제거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드 는 증오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증오도 더 이상 그들의 사고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들은 왜 자연과 자기 자신의 고결함에 반하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까요? 프로이트. 억압과 분열을 치료하는 것이 당신 전문이니 한번 말해 보시죠? 프로이트 - 자신이 아프거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만이, 자기 자신이 행하 는 억압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옹호하는 사람들은 치명적이 게도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의 분별없는 정복 성향이 지닌 파괴성을 비난하는 이들을 노이 로제 환자라거나 아니면 완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통이 없는 인간을 배양하는 것이 도덕적인 목표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전자 가 인간보다 더 중요하며, 인간의 신체는 유전자를 끊임없이 복제하는 데 봉사하는 보조기 계일 뿐이다. 따라서 계속해서 가장 건장한 유전자를 배양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이 목 표를 위해 어떤 인간들은 전체 인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 프로이트, 나치스가 그와 매우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프로이트 - 그들의 잔학성은 유례가 드문 것이었지요. 그들은 도덕적 가치기준이 타락한 예이기도 합니다. 또한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은 더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위해 지상의 자리를 양보해야 하며, 이것은 미래의 공공복지를 위한 도덕적 의무다" 라고 말하는 도덕적 타락에 인간이 집단적으로 굴복할 수 있다는 예이기도 하지요. 프로이트 "비관주의가 몰락을 준비한다"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데카르트, 나는 당신이 공룡을 배양한 과학자들과 그들의 추종자 들을 옹호하면서 감수해야 했던 질책이 견딜 만했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우구스티누스가 그 와 같은 도덕적 타락을 입지 않은 미래를 굳건히 믿고 잇는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어야 할 차례이겠지요. 하지만 먼저 우리는 수백만의 머리 속에 스며들어 있는 비관주의라는 유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 여기서 우리는 공공연한 비관주의와 은밀한 비관주의를 구분해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기술이 해방을 가져다 줄 거라고 예언하는 이들은, 인간의 힘과 지혜보다는 새로 운 컴퓨터와 로봇의 지능과 무오류를 더 믿는다는 점에서 은밀한 비관주의자들입니다. 또 오직 순간에만 몰입하며, 단지 지금 여기에서만 삶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은밀한 비관주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사실 그들은 두렵기 때문에 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이 지요.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프로이트,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비관주의를 가르쳐 줄 준비가 이 미 되어 있어서 기쁩니다. 하긴 당신은 이미 잘 알려진 회의론자이니 비관주의에 감정이입 을 하기 쉽겠지요. 우리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이미 "문화가 발전하게 되면 그 결과로 인 류라는 종이 멸종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을 당신한테서 들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하면서 최근에 '사회적 엔트로피' 에 대해 말하는 비관주의적인 예언학자들과 비슷한 생각 을 한게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프로이트 - 실제로 이런 현대의 몰락이론은, 당신과 내가 전쟁 예방의 가능성에 대해 서 신교환을 했을 때, 당신에게 고백했던 나의 우려를 상기시켜 줍니다. 나는 그때 길들여진 많 은 동물들이 퇴화하는 것처럼, 충동이 점점 더 약화되면서 문화인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추 측을 감히 했습니다. 이런 생물학적인 비교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그 사이에 오히려 의심스 러워졌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고도로 문명화된 민족에게 권태와 무감각이 만연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나는 많은 인간들이 더욱 피상적이 되고, 상상력이 결핍 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인간이 계속해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전반적인 심리적 빈 곤을 초래하게 되고, 내향성을 상실하게 되면, 결국 정신이 마비되어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 냉정해질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당신은 방금 단지 두려움 때문에 부정적인 미래상은 보지 않고 현재만을 보려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려 했지요. 프로이트 -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을 내 제자들이 여론조사 방법을 통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생활조건이 계속해서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실업률이 증가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환경파괴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거라고 추측하 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들은 자신을 마비시키는 체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비관적인 전망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침묵이 금기로 작용하고 있지요. 그 금기를 깨는 사람은 모두가 외며하고자 하는 것을 들추어 낸 죄로 결국 분노를 사게 됩니다. 아인슈타인 - 그러니까 서로 그 억압이 깨지지 않도록 하려고 되도록 걱정이 없는 것처 럼 기분 좋게 행동한다는 건가요? 프로이트 - 바로 맞혔습니다. 당신들도 관찰할 수 있듯이, 이 쾌활함은 극단적인 유흥에 대한 욕구로 변질됩니다. 항상 새로운 놀이, 새로운 재미, 새로운 스릴을 고안해야 하재요. 즉 오락을 통한 산만한 기분 전환과 유흥을 통해서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억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이 더욱 확장된 산업이 이런 유흥을 만들어 내고 있지요. 아인슈타인 - 하지만 비관주의에 대해 진단한 당신의 의견 가운데 의심이 드는 게 하나 있습니다. 유흥에 대한 욕구가 진정한 삶의 기쁨을 표현한다고 해설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프로이트 - 당신들이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이런 유흥 충돌의 산만함 속에는 기분 전환에 대한 강박관념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 충동들은 모두 너무 도가 지나치고 폭력적입니다. 한 유명한 문필가가 "우리는 죽도록 즐긴다"라고 짤막하게 표현했는데, 딱 맞 는 말입니다. 청소년 집단이 테크노 파티를 벌이면서 흥분제를 사용해 자신의 몸을 지속적 인 황홀경에 빠지게 할 때, 사실 이때의 재미는 건강을 위협하는 고문이 되는 것입니다. 최 근에 한 청소년이 테크노 퍼레이드 마라톤이 끝나자 "이제야 나는 내가 뭘 위해 살아왔는지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은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지요. 그 순간을 놓치는 사람은 전망이 없는 미래에 의해 벌을 받게 됩니다. 광란에 빠 지거나, 감정과 충동을 자극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즐기는 것, 이것이 세기말 분위기의 전형적인 징후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것은 체험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그 어떤 금기도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포르노그라피와 폭력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든가요. 프로이트 - 나는 이렇게 봅니다. 이런 유흥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비디오를 통해 즉흥적인 감각적 즐거움의 욕구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억누른 몰락의 정조 를 달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노이로제 이론을 뒤족박죽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 습니다. 예전에 당신은 인간이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면서 히스테리를 일으킨다고 말했습니 다. 이제 당신은, 본능에 따라 스스로 무절제하게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타인의 성행위를 보 고 쾌락을 느끼는 것이 장애의 결과라고 설명하는군요. 프로이트 - 그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은 자신의 충동을 너무 두려워 하며 노이로제에 걸리고 그런 충동의 일부가 히스테리 증상이라는 위장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나는 나중에 가서야 또 다른 기제를 똑똑히 알게 되었는데, 점점 증가하는 세기말 정조가 그것을 드러나게 해주었지요. 이 기제는 우리가 이미 얘기를 나누었던 우울증과 조 증 사이의 연관성과 일치합니다. 인간들은 그들의 미래가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 거나, 아니면 아예 미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고는 이런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상적인 만족은 주는 도피처로 뛰어들지요. 인간의 감정생활에는 다양한 층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깊은 층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세계를 믿는지, 미래가 있다고 믿는지 아니면 미래를 포기하고 속 수무책으로 앞으로 닥칠 일을 그냥 기다리는지가 나타나지요. 인간들은 그런 기본 정조를 받아들여 감수하거나 그것을 억누릅니다. 이 기본적인 정조가 나쁘면 인간은 여기에 압도되 어 무력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정조가 희미한 모습을 띠면, 인간은 순간적인 행복감이나 적 어도 긴장의 이완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은 본능의 능동적인 정화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술이나 약물을 이용한 수동적이고 관음적인 정화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즉 기본 정조가 절망적이면 절망적일수록 그 와 같은 보상에 대한 열망에 저항하기가 더 힘들어지지요. 지금처럼, 사회가 점점 더 긴장이완을 위한 중독성의 정화작용에 좌우되게 되면, 인간 내 면의 깊은 곳에 부정적으로 색칠된 감정이 있다는 확실한 신호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어떤 집단은 밑바닥까지 비관주의적이어서 수백 가지의 피상적인 보상만족으로 도피합니다. 이때 긴장이완의 욕구는 끊임없이 그 보상자극이 증가되는 것을 요구하지요. 또한 자동적으로 우울증 속에 숨겨진 파괴성이 더욱더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고대 로 마인들이 즐겼던 검투사 경기가 후기 로마시대에 더 잔인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동차 경주나 오토바이, 스키 경주에서 일어나는 치명적인 사고를 보면서 더 이상 겁을 먹 지 않으며, 오히려 은밀히 그런 사고를 기대합니다. 축구가 그렇듯이 이전에는 온화했던 경 기가 점점 더 거칠어지면서 심각한 부상을 일으키지요. 다양한 형태로 바뀐 러시아 룰렛이 청소년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수많은 오락 프로그램은 더욱더 상 상 속의 재앙을 미리 앞당겨 놓고 있습니다. 그를위해 높은 보수를 받고 온갖 종류의 종류 의 종말 드라마, 즉 지진, 방화, 폭발사고, 출혈로 죽거나 사지가 절단되거나 불에 타 버린 인간들이 나오는 핵전쟁 시나리오를 재현해 내는 새로운 직업들을 만들어 냈지요. 이 모든 난폭함에는 폭력 앞에 굴복하는 만성적인 포기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에 반해 내적인 결속과 화해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있습니다. 몰락의 모습이 재현된 것을 보면 끔찍 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되죠. 그리고 가상적인 파괴성과 나란히 거리에서는 습격과 반달리즘의 형태로 직접적인 공격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종 사회의 약한 계층이 절망감에서 저지르는 가장 원시적인 정화작용이지요. 아인슈타인 - 요즘 들어 새롭게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현상이나 점성술 또는 은하의 기적에 대한 열광이 유행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미스터리 시리즈에 대한 시청률이 유례없이 높아지는 이유는 뭔가요? 그것 역시 일종의 도피나 자기 기만과 관련이 있습니까? 프로이트 - 여러 경우에서 볼 때 확실합니다. 지구가 완전히 암흑에 싸이게 되면, UFO나 헤일-봅과 같은 혜성이 자기를 해방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에 한 교파의 구성원들이 세계종말이 오기 전에 이 혜성으로 갈아타려고 자살했는데, 이것은 정신병의 극단적인 형태지요.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지상의 궁핍과 위협으로부터 벗 어나기 위해 기적처럼 변화된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동경 속에 서서히 나타나게 돕니다. 하 지만 점점 더 자주 나타나게 되죠. 미스터리물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밀교적인 시나리오와, 외계의 생물이 존재하는 새로운 삶의 공동체로 꿈의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영혼의 한구석에서는 언젠가 세계종말이 닥쳐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면, 외계에 있는 전 혀 손상되지 않은 낙원으로 옮겨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자라는 것입니다. 데카르트 - 프로이트의 말을 듣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군요. 나에게는 그의 말이 모두 무절제한 비관주의로 들립니다. 프로이트 - 당신들에게 비관주의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나의 과제가 아니었나요?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데카르트, 당신은 비관주의자들에게 화가 날지도 모릅니다. 하지 만 그들은 지금 지구상에 수많은 변종으로 중요한 파벌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위기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 즉 그 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것을 실제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프로이트 - 간접적인 증거를 들어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비관주의를 명료 하게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미래를 예상하기 때문에, 이런 전 망을 인정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지요. 왜냐하면 마음의 안정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예감하는 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 가운데, 나의 비관적 서술을 비난할 수천 명의 증인을 내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게 그것을 억압하고 부인하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는 계몽주의자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이제 위장된 비관주의 외에 공공연한 비관주의가 남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서도 알려 주시지요. 프로이트 - 공공연하게 한탄을 하는 무리는 해석이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진전되어 가는 몰락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가지지 않고, 그것을 마음껏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에 대해서는 한마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울한 무기력에 빠지지도 않고 공상적인 가상세계나 미스터리물에서 보상을 찾지도 않고, 죽도록 즐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에 그들은 바로 사회 전체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행동 유형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본보기 로 삼고 있는 것은 저 권력자들입니다. 그 권력자들은 부패에 대항하여 싸운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들 자신이 마음껏 부패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들에게 티끌만큼 남아 있던 수치심마저 줄어들면서 승승장구하는 무자비가 더욱 두드러지고 그로부터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왜 몰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어도 가능한 한 물 위에서 헤엄치는 데 방해가 되는 양심의 가책을 억압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은 수치도 모르 는 이기주의자들과 경쟁하면서 왜 우선권을 소유하려고 시도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들 은, 이미 몰락이 시작되었고 함께 죽어야 한다면 적어도 지금이나마, 소심한 도덕적 항변이 나 하면서 의미 없는 자기 만족만을 얻는 고귀한 사람을 제치고 맨 앞에서 함께 달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우리가 무책임하게 몰락의 과정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아마 끔찍하기는 하겠지만 신속 한 종말을 맞는 게 서서히 해체되는 사회에서 비참하게 보잘것없이 연명해 가며 끝이 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일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몇 사람이 생존하게 된다면, 그 것은 기껏해야 대홍수 등에 의해 세계가 멸망한 후일 것이고, 이런 세계종말로 인해 새로운 사상이 생겨난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 생각해 낼 수 없 는 사상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 적어도 대홍수를 열망하는 이런 사람들은 그들 안에 아직도 양심이 남 아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다만 그들은 양심의 소리에 복종하기에는 너무 비겁하지요. 프로이트 -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문학과 예술작품 속에 퍼져 있는, 비관적인 냉소주 의의 변형을 말해 주어야겠군요. 그 변형이란 바로, 몰락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불가피하게 바로 그 주제에 고착되어 있는 블랙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조소와 반어 가 가득한 코미디지요. 아인슈타인 - 지금 당신은 억지 유머를 말하는 건가요? 프로이트 - 아마도 그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아인슈타인 - 이런 반작용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프로이트 - 그러지요. 시민들이 그들의 지배자를 비판하며 희롱하는 희극배우와 광대 및 정치풍자가들을 원했을 때는 그래도 아직 희망의 징후가 있었습니다. 약하기는 하지만 지배 자의 불의와 부패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지요. 하지만 그 사이 비관주의가 격증하여 고전 적인 정치풍자는 인기를 잃게 되었습니다. 불안과 자기 불신에 시달리는 대중은 희극배우로 부터, 일반대중을 대신하여 재치 있게 선동적으로 도덕적 심판을 내리던 전권을 빼앗았습니 다. 오히려 고전적인 정치풍자 무대에서 치료사의 역할을 하던 그들을 조롱하려는 욕구로 바뀌었지요. 사실 대중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실패하고 있는 상류층을 희 롱하여 위안을 얻는 것이 재미없어지지요. 즉, "저 위에 있는 인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처 리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라는 것지요. 하지만 이런 실망보다도 그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믿지도 않는 도덕적 저항을 선동하는 인도주의자들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부류의 억지 유머가들이 진리 를 왜곡하여, "악이라는 것은 바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끔찍한 현상으로 자신의 선을 입증하려는 도덕의 사도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악의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습니까? 프로이트 - 몇몇 집단에게는 훌륭하게 성공했습니다. 이런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누군 가 그들에게 생활방식을 유익한 방향으로 바꿔 보라고 충고하면, 예를 들어 흡연이나 음주 를 그만두라고 충고하면, 남몰래 자포자기하고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척하는 병자들처럼 행동합니다. 그들은 절망감 속에서 그와 같은 충고를 하는 사람을 비웃을 뿐이지요. 그들에 게는 이런 조언자가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축복받은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얘기한 어릿광 대처럼 보입니다. 커튼 앞으로 등장하여 무대장치에 불이 붙어 극장이 불에 탈 위험에 처했 다고 말하는 어릿광대 말입니다. 그 어릿광대가 필사적으로 계속해서 경고했을 때, 대중은 웃으면서 더 크게 환호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어느 날, 익살스런 사람들의 환호 속에 멸망 하게 된다고 키르케고를 생각했습니다. 내게는 어떤 비관주의자 부류가 오늘날 이미 이 극 장에 앉아 있는 듯 보입니다. 마르크스 "세계화된 거대 자본주의가 아비규환을 향하여 나간다" 아인슈타인 - 비관주의의 몇 가지 유형을 설명해 준 프로이트에게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어떤 정치전략 속에도 표현되고 잇는 듯 보입니다. 마르크스 - 맞는 말입니다. 다만 이런 분위기에는 명백한 원인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추 진력이 약자와 강자 사이의 분열을 더욱 증가시키게 되면 정치는 주도권을 잃게 되죠. 세계 화된 시장이 지니고 있는 무제한의 힘이 바로 이런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정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몰락을 막는 일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예전처럼, 실업을 없애고 사회정의를 이룩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뭔가요? 마르크스 - 그것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공허한 상투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 리 친구 프로이트가 전문일 것입니다. 정치가 사회적으로 위험에 처한 계층이 빈곤, 정신질 환,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범죄 등으로 추락하는 것을 진심으로 막으려 한다면, 그들은 금 융시장으로 투기성 자본이 유출되는 것을 방관하지 말고 그런 돈을 사회적 예방조치를 취하 는 데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요. 점점 더 많은 부자들이 이 개인 경호원들을 두어 잘 방어된 성벽 뒤로 숨는 것은, 바로 유대관계의 해체와 실패한 치안정치 앞에 항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정치는 끝나겠군요. 하지만 당신은, 선진국가에서는 여전히 사회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당신이 말하는 절망적인 혼란의 모습은 아직 보이 지 않는다는 점을 반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르크스 - 겉모습만 본다면, 아인슈타인 당신 말이 맞습니다. 아직도 의회정치라는 의식 이 성공을 거두오 있지요. 텔레비전 시민(시청자로서만 기능하는 시민을 비꼬는 말 - 역주) 은 그들이 선택한 평범한 국회의원들이 약속하는 정치 선전용의 공약이 거의 모두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만, 국회의원들의 현란한 수사학에 의혹을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를 오락물을 상영하는 극장처럼 여기면서, 스포츠 경기의 관람석에서 관중들이 그러듯 누군가에게는 성공을 빌고, 누군가에게는 저주를 퍼부어 댑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몰래 텔레 비젼 화면이 보여 주는 수사학적 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도 좋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투표소로 달려가는 것이지요. 의사에게 가 기 때문에 그나마 기회가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얌전하게 찾아가는 만성적인 환자와 비슷하지요. 데카르트 - 당신은 프로이트와 똑같은 검은 안경을 끼고 있군요. 당신 말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마르크스 - 하지만 나는 사실 프로이트와 생각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그가 개괄한 심리학 적인 유형은 어느 정도 수긍되기는 하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 를 움직이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심리학적 경향이나 기질 문제가 아니라, 전혀 교육받을 기 회도 가지 못했고, 일자리도 돈도 없거나 곧 해고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커먼 벽과 같은 캄캄한 미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는 앞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미래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하지요. 다만 자신에게는 전혀 기호가 없다는 사실을 애 도하기 위해서 계획과 전망을 설계하게 된다면, 사회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군중은 미쳐 버 릴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산층도 곧 이런 상황을 겪게 되겠죠. 왜냐하면 잔혹한 신자유주의 경쟁 속에 곧 20퍼센트의 승리자와 80퍼센트의 패배자가 생겨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산층이라는 것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패배자 계급은 100년 안에 식물과 동물종이 얼마만큼 멸종될 것인가, 지구 온난화로 생기는 홍수로 인해 어느 항구도시의 제방이 가장 먼저 파괴될 것인가 하는 무제로 골머리를 썩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 어나서 부유한 20퍼센트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그 제방을 부술 것입니다. 냉정 당시 원자탄 때문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경악은, 가난한 민중들이 자신의 도난당한 미래를 요구하면서 이 번영의 요새로 돌격할 때 일으키게 될 공포와 비교하면 미약한 불쾌 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사회를 부패시키는 비관주의자들과 매수당하는 비관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준비한 대홍수를 맞이하게 되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 들을 구원해 줄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방금 전에 당신은 거대 자본주의가 패배자들에게, 거대 자본주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여 패배를 자기책임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마르크스 - 어느 날 모든 것이 붕괴될 때까지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붕괴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봉기는 완전히 착취당한 이들의 집단, 즉 아주 밑 바닥 계층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아직 체제를 따라잡던 계층들이 자신의 모든 자질과 적응 노력이 더 이상 자신을 지키는 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 계층으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이 집단은 자신의 사회적 몰락을 개인적인 실패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평화적인 저항과 파업을 통해 성과를 얻지 못하면, 그들 은 자제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혁명적인 잠재력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폭발하 는 거지요. 당신들이 주의를 기울인다면, 오늘날 이미 소요가 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3,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견고한 거주지 안에 벽을 쌓고 자리 를 잡았습니다. 만약 백인 경찰이, 국민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는 분노로 끓어오르는 흑인 들의 선동을 겁내며 피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여러 대도시들은 오늘날 이미 불타 없어졌을 것입니다. 단 하나의 불꽃만으로도 그곳은 이미 내일이면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를 것 입니다. 하지만 불안과 분노가 중산층의 하부에 스며들 때까지, 즉 이 집단이 폭력적인 사회적 분 열과정에 휩쓸려 더 밑으로 추락할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한마디로 먹거나 먹히거나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과감성을 펼치라고 배웠지만 자기가 이미 희생자 쪽에 속해 있는 것을 알게 된 군중은, 상위 20퍼센트의 사람들이 가진 권력을 부수기 위해 그 어떤 급진성도 그 어떤 혁명적인 폭력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이트 -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혹시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당신의 충직한 추종자들은 이번에야말로 마침내 당신이 약속한 '인간 해방'의 놀라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 고 믿는 건가요?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상상 하는 과도한 사회폭발은 분명 재만 남길 것이고, 그 어떤 회복 가능한 문화도 남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어쨌든 우리는 마르크스 말대로 그와 같은 아비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 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국 정부가 이제까지 북반부와 남 반부 사이에서 또 자국 내에서 빈부의 격차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는 사 실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마르크스는 지금 우리에게 오늘날의 시대에 맞을 듯한, 세계종말의 또 다른 변종을 보여 줍니다. 패배자들이 경제적 승리자의 보호벽을 공격하고, 그들의 방어를 현대의 대량 학살 무기도 부수어, 모두 함께 스스로 자초한 지옥 불 속에서 불타게 될 거라 는 거지요. 이 종족이 이제까지 하느님의 창조물에 저지른 폭력을 볼 때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프로이트가 말하는 비관주의자들은 어쨌 든 그들의 예언을 어떤 모습으로라도 철저하게 이룰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전망은 다릅니 다. 아인슈타인 - 나도 다르게 전망합니다. 마르크스가 옳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 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어느 정도 계몽된 사회가, 사회적으로 제어되지 않은 자본주의 메커 니즘에 의해 끔찍한 종말을 맞게 될 때까지 인간들로 하여금 서로간에 그리고 자연에 대항 해 싸우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들이 대안을 생 각해 내지 않으면, 핵무기가 지닌 파괴력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닌 사회적 긴장이 쌓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적시에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프로이트와 데카르트 "단호한 조치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 -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일이 그런 식으로 첨예화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 서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권한과 충분한 독립성을 가진 세계정부가 설립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계대전이 준 충격이 이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통찰하게 해줄 적절한 전제조건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후 탄생된 세계기구는 다만 임시변통으로 현존하는 예속 불평등을 은폐하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 것입니다. 그래도 나 는 완고하게 나의 생각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상위의 조정 및 중재기 관이 없이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지구적 질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 당신은 순진하게 초국가적인 대기업이, 중앙정부가 자신의 권력 확장에 간섭 하도록 놔 두리라고 정말 믿었단 말인가요? 그리고 지금도 믿는다는 거고요? 그 동안 정치 인은 오히려 경제체제의 보조자로 강등되어, 그들 자신이 원한다 해도 더 이상 이런 체제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 - 여러분들은 일방적으로, 지배권을 쥐고 있는 엘리트들만 보고 있습니다. 하지 만 나는 여러분들이 거의 고려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국제적인 중앙권력을 절실히 요구하는 목소리가 곧 울려 퍼지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세계정부 모델은 아인슈타인과 내가 상상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의 집 단이 좀 섬뜩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집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이 머 지 않아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르크스 - 누구를 말하는 건지 말해 보십시오. 프로이트 -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냉담한 숙명론자와 외눈박이 기술신봉자와 부패 한 이기주의자와 자신의 불안을 억압하는 유희중독자만 생기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는 아주 다른 또 하나의 유형이 나타나고 있으며 점점 더 큰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 신을 불안에서 구원해줄 권위 있는 지도자에게 매달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분명한 구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불분명한 동경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모든 무질서와 위기를 끝 내 줄 지배권력이 나와야 한다는 거지요. 권위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구조 안 에서는 정당도, 정치 지도자도, 자기 자신도 끊임없이 첨예화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여전히 불안하게 만드는 공동책임을 없애려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아이의 단계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손에 넘겨져 더 이상 무 언가를 스스로 결정할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성숙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매달리는 권력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끌어야 하고, 모든 위험과 악을 없애야 하지요. 다시 말해, 경제의 무절제한 이기주의와 사회의 모든 불의, 부패와 기술적인 모험에 대한 망 상과 환경파괴를 없애야 하는 겁니다. 이미 생태독재라는 개념이 여기저기 퍼지고 있지요. 마르크스 - 그러니까 인간들이 히틀러의 귀환을 환영할 거라는 건가요? 프로이트 - 내가 보기에는, 지각없는 사람들과 극단주의자들만이 이와 같은 지도자상에 호소하고 있는 듯합니다. 다른 이들은 정신적인 유사성을 인정하기를 주저하거나 자기가 뭔 가 아주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것이란 사실은 낡은 것에 불과한데, 바로 이런 것이지요. "열린 사회는 그 역할을 다했다. 악을 무너뜨리고 무질서를 청산할 단호한 조취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 에,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강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단호하게 조처를 취할 지도력 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이런 독재가 이제까지의 모든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 까? 즉, 자신이 없애야 할 악을 몇 배로 더 증가시키면 어떡하느냔 말입니다. 프로이트 - 우리는 권위에 의존하는 이런 공상가들을 이끄는 동기의 원시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들은 마술을 믿는 단계의 사고로 후퇴해 있습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즉 자신은 고독하며 의지할 데 없는 속수무책의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결국 누구에게 빠지느냐는, 무엇보다 그들에게 제시되는 구원의 약속이 얼마나 심리적 영향 력을 지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구원자나 기관의 비판적으로 검증된 자질에 의해서 가 아니라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프로이트, 언젠가 중아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강력히 요 구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꿈 을 꾸는 집단은, 아직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에게 의심을 받는 소집단이며, 사회적으로 고 립된 세력 아닌가요? 프로이트 - 하지만 이미 이 소집단의 주변에,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인본주의적 성과에 의 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의 결단력과 사회적 시민운동의 영향력을 신뢰하지 않는 회의주의자가 수없이 많습니다. 이렇듯 집단적인 자기불신이 싹트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는 가치를 지킬 능력이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없다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엄격함 과 강제 없이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는 겁니다. 심지어 빌리 브라트의 '공감 의 정치'나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사상'의 전망을 믿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렇듯 동요하는 이들이 아주 극우로 돌아설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그 문제에 대해서 당장은 더 이상 논의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미 권위주의적인 구원책으로 방향을 돌린 이들에 대해 더 자세히 고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집단은 대체로 국수주의적이어서 국경선을 넘어 전투력이 강한 동료집단과 연합하는 일은 힘들 텐데요. 프로이트 -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자공학의 도움으로 몇몇 연합체가 급속도로 국제적 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결합해 주는 공통의 목표들을 확정했습니 다. 그들은 자신을,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라고 생각하지요. 자기들이 마침내 질서와 규율 을 만들고, 예의범절과 도덕을 보장하고, 범죄와 부패와 성적 무절제에 대한 가차없는 조치 를 선언하고, 우생학적인 정치로 생물학적인 퇴화를 끝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특히 서구에 자리잡은 개인주의 숭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개인주의적인 경향은 집단주의적으로 독재적인 중앙권력에 복종하고자 하는 성향과 직접적 으로 대립되지 않나요? 프로이트 - 사실 개인주의적인 경향은 실제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르시 시즘을 찬미하는 소수 부유층의 변덕스런 기분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 변덕스런 기분도 이 미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습니다. 나의 제자는 바로 이런 집단에서 권태가 급속히 진행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들은 어쨌든 그들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활동 여지가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이 독창적으로 옷을 입고, 머리를 파란색이나 초록색으 로 염색하고, 코나 입술을 뚫어 장식품을 걸거나, 몸에 난잡하게 문신을 하거나 해도 마찬가 지입니다. 사실 그들은 모두 단조롭게 평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되지 않고, 즉 사회복지 수혜자에 속하 지 않고 아직은 필요한 존재인 한, 자신이 무엇에 쓰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술혁명과 세계화는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다른 나라의 싼 인력과 대체가 가능하며, 끊임 없이 기계와 경쟁하여 더 빨리,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지능적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 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강요합니다. 더 이상 뭔가를 감지하지 못하고, 더 이상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지 않으며, 더 이상 자신이 무슨 목적을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수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 전체주의적인 구조의 건설을 용이하게 해주고, 그런 구조를 유지하는 데 쉽게 이용될 수 있는, 유혹되기 쉽고 조종이 가능한 특성을 지닌 잠재력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속 에 대한 동경은 더욱더 증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곧, 저항력이 약한 이들을 이용하려는 야심을 지닌 지배욕으로 가득 찬 기관도 늘어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국제적인 분파가 기 뻐하고 있듯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군중들이 많다는 것을 볼 때, 곧 상황이 완전히 다른 차 원으로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 - 당신이 좀 과장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아직도, 환자들을 실 제 상태보다 더 아프다고 말하는 직업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나는 프로이트의 지적에 납득이 갑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그들이 확 산된 방식을 보면, 전체주의적인 기구를 통한 권력 장악이라는 전략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경제적인 몇몇 연맹들이 이미 지구상의 모든 나라 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모든 자유를 보장하겠다면서 사람들에게 정신 및 물질 적인 면에서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는 나라에서 더욱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 런 조직들은 남몰래 구성원을 소집하여 그들을 교육하고, 자기 조직의 구조는 감춘 채, 사회 제도와 어떤 갈등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사회에 침투합니다. 그들은 경제적인 권력을 획득하 고, 그들의 대표자를 그 사회에 관료로 배치하며 심지어 목표를 위해서는 비밀정보기관에까 지 침투합니다. 아마도 당신들은 최근에 이런 조직 중의 하나가 미국과 우방관계에 있는 한 나라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제약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미국 정부까지 이용했다는 사 실을 알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모든 면에서 자유의 이상이 존재하는 곳으로 간주되고 있고,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미국마저도, 그 조직의 뜻에 따라, 자신의 우방국가의 내부 문제까지 거리낌없이 개입한다" 는 것을 의미합 니다. 내가 그 조직과 조직의 행동양식을 예로 드는 이유는, 실제로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이 미 지배권을 획든한 후, 어느 날 자신이 이미 정복한 체제의 막을 내리게 하고서, 자신이 인 수한 지배권을 공포하는 권력기구가 바로 사회 내부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서입니다. 프로이트 - 그 말은, 그와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 이미 경제, 정치, 대중매체의 지도층에 침투했거나 그 분야의 가장 중요한 주요 인물을 전향시켰다는 것이군요. 사회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혁명이 이루어지겠군요. 아인슈타인 - 나도 사태가 그런 방식으로 진전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지만 그 당시 문제가 된 조직에 관해서라면, 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과 때때로 큰 소동 이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국민의 건전한 저항력이 입증된 게 아닌가요? 프로이트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공연한 혼란은 단지 그런 혼란을 일으킨 원인이 지 닌 유혹의 힘을 입증할 뿐입니다. 격심한 혐오의 이면에는 종종 유혹당하기 쉬운 성질이 잠 재되어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염성의 질병으로부터 가장 먼저 도망 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병에 특히 저항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아인슈타인 - 나는 프로이트가 분파들에 대해 지적해 주어 우리의 논의를 한 걸음 더 진 전시켰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요소를 지닌 그런 단체들은, 극우파 단체들이 경쟁하 기 어려운 어떤 것을 인간에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 - 그렇습니다. 그들은, 의지처를 원하는 인간을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유혹합니 다. "우리는 너를 위해 절대적이고 구속력 있는 진실을 준비해 놓고 있다. 너는 결코 또다시 뭔가를 찾거나 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우리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 이다. 우리 교리를 무조건 믿고 우리 규정에 복종하면, 너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너 자신 을 비난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제나 너의 구원이요, 너의 양심이고, 너의 숙명 이고, 네 삶의 의미이며, 너의 보호자이다. 오직 우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라. 그러면 너는 비로소 네가 진정 누구이며, 네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고, 어떤 힘이 네 안에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너의 모든 것은 우리를 통해 존재한다.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이런 말이 당신들에게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세뇌를 당하고 있고, 그러 고 나면 굉장한 해방감과 완전한 자신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예속을 주관적으 로 결코 예속으로 느끼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선택한 충성으로 이해합니다. 누구든지 외부에 서 이것을 위협하면, 그들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우리 외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의 생존권이다" 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놓치면 모든 것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그들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 - 무시무시하게 들리는군요. 당신은 그런 예속에 빠지기 쉬운 성향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의지력이 약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확신하나요? 프로이트 -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 다. 하지만 내가 당신들에게 정신적인 전극 교환의 과정을 너무 폭력적인 것으로 묘사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수정해야겠지요. 변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위에 의지 하여 자신의 당황스러운 처지와 열등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능동적인 충동에 의해 일어납 니다. 그 권위의 추종자들은 설사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 할지라도 권위가 시키는 일을 하며 그것도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각각의 정치-종교적인 혹은 종교-정치적인 종파 를 위한 점령지는 공고히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유혹당하기 쉽다' 는 것 은, 외부 조종을 자기 안에 이식시키려는 각 개인의 능동적 요구입니다. 이런 이식이 성공하 면 그 종파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그 어떤 불확실함도 느끼지 않고, 자기 스스로 금치산 선 고를 내리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율적이고 자립적으로 보이고 또 스스로 그렇게 느낍니다. 그들에게 주입된 것을 꼭두각시처럼 수행하면서도 말이지요. 마르크스 - 하지만 프로이트 당신이 그렇게 훌륭하게 아니 심지어 충격적으로 설명한 것 은, 내가 예언한 재앙 시나리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파시즘 체제의 심리학적 하부구 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통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대 신에 전체주의적인 지배에 복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영혼의 세계혁명에 관해 서라면 당신이 심리적 에너지를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나는 히틀러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그와 같은 실험이 최소한 서구에서는 반복되지 못하도록 충분한 면역력을 만들어 놓았다고 추측합니다. 아인슈타인 - 그 문제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입니다. 물론 지금은 히틀러가 안 보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나는 불안과 위기가 독재에 대한 기대를 곧 빠르게 불러일으킬 거라는 프로 이트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인간들이, 점점 확대되는 사회의 통제 불가능성과 점점 더 심화되는 사회적 균열과 이 제까지의 무절제한 환경파괴가 어떤 전체주의적 체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한 다는 직접적인 관찰의 결과입니다. 프로이트 - 무력감, 체념, 자기 가치에 대한 회의는 바로 그 보상심리로 불가피하게 전능 에 대한 요구, 승리에 대한 확신과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절망하고 있 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대한 약속으로 위로를 받으라고 제안하는 지배구조가 생성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극성은 불행한 역사적 전례와 마찬가지로 자가 역동적 으로 강화될 것입니다. 즉, 이상화된 지도부는 전능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 해 끊임없이 군중을 더욱더 정신적인 노예로 만들면서 점점 자신을 신격화하게 될 것입니 다. 독재적인 권력을 지닌 지배자와 그 권력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은 고분고분한 피지 배자는, 상호간에 더 격한 감정적 흥분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폭력을 행사하 는 이는 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고, 노예는 그들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해 말하지 않 을 것입니다. 지배자는 해방자로서 오고, 힘을 빼앗긴 군중은 그들에게 감사하며 끔찍한 드 라마의 희생자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데카르트 - 여러분들은 경솔하게 히틀러와 끔찍한 드라마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들은 거라면, 이 경우에서 문제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끔찍한 유토피아에 대한 대안 으로서 피 흘리지 않고 실현되는 계획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전쟁과 학살로 황폐 화시켰던 히틀러의 파시즘과 싸잡아 비교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대다수의 사람 들이 국가와 경제의 통합적 권력이 더 이상 자신의 이기주의를 자신의 힘만으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전쟁이 아닌 다른 수단을 이용해 이성적으로 규율되는 세계질서를 만들어 낼 권력체를 형성하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치적 야심을 지닌 종교적인 성격의 공동체가 점차적으로 경제 및 정치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당신들의 사유 유희를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항 하는 집단은 프로이트가 방금 설명했던 대로, 적절한 심리훈련을 통해 진정될 것이고 효율 적으로 통합될 것입니다. 어쨌든 불평하고 선동을 일으키는 특성들은 출생 때 예방책을 마 련함으로써 제거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어떻게 말인가요? 데카르트 - 추측하건데, 시험관에서만 아기가 태어나도록 한다면 의학상 및 사회적으로 무해한 유전자로만 이루어진 태아가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강요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텐데요. 데카르트 - 특별히 강요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심리훈련센터에서, 여전히 나쁜 기질을 갖고 있는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여성들을 배척하는, 새로운 윤리를 도입할 것입니 다. 게다가 그런 여성들은 물론 법적으로도 문책을 받게 되겠지요. 아인슈타인 - 데카르트, 당신은 당신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과학 및 기술공학적 혁명이 프 로이트가 방금 우리에게 설명해 준, 전체주의적인 목표를 가진 심리경향과 잘 화합할 거라 고 생각한다는 건가요? 데카르트 -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회, 경제적, 생태학적 문제들을 극복하 기 위한 다른 가능성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들을 해롭다고 인정되는 모든 유 전자를 없애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 돌 겁니다. 이제까지 만연되어 있던 양심의 가 책에 반항하여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생명체를 무성생식하여, 서로 효율적으로 어울리는 특 성을 지닌 인간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제외하면 우리 철학자들이 제일 먼저 전쟁과 살육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 교하지 않았습니까? 전투적인 성향의 유전자를 없애고 오락산업을 통해 과도한 공격성의 잔 재를 상쇄시킨다고 해서 우리 종족을 나쁘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 솔직해집시다. 여러분들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우아하게 극복하는 데 도 움이 될 현대의 기술적인 수단을 시샘한다면, 그것은 다만 질투와 향수에 젖은 비애일 뿐입 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당신은 끔찍한 얘기를 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자신에게 충실 했기 때문에, 새삼 놀랍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늘 당신의 자의식과 수학 및 물리적 세계의 진리만 믿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 유기체를 영혼이 없는 기계로 설명했습니다. 당신은 그 안에서 그 어떤 악도 발견하지 않으며, 세계공동체가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잘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상 신의 자비가 인간을 잘못된 길로 가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이제 신이 인간에게 유전인자를 가지고 세포핵을 조작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면, 인간은 자칭 창조물을 개선하고 현대화하는 것을 부끄러 워할 필요가 없겠지요. 당신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데카르트 - 당신 말 속에 숨어 있는 반어가 느껴집니다. 당신은 자연 상태를 고수하는 인 류는, 당신과 인간들이 유지하기를 바라는 본능 때문에 파괴될 거라는 점을 전혀 통찰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주 오래 전에 야생 동물 상태에 있을 때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써야 했던 시대착오적인 공격충동을 생물공학의 도움으로 인위적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인간들의 자기파괴는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해로운 싸움으로 인한 손실과 충동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계획에 따라 인공적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자연환경도, 아인슈타인이나 부처나 다른 낭만주의자 무 리가 바라는 것처럼 겸허한 경외심 속에 계속 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에 따라 이용하고, 자신의 이해에 따라 개조해야 합니다. 우리 종족이 바로 지금 전자공학, 로봇학 생물공학적인 혁명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잘 기능하는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공동생활을 완벽하게 조정하고 감독하면 아름답 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당신들은 파쇼적 혹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비 난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유일한 길입니다. 아인슈타인 - 데카르트, 당신은 해설자에서, 공룡 배양자의 열렬한 지지자 및 예언자 헉 슬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변한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 - 내가 과학적 발견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는 반면 헉슬리는 자유롭게 상상했 다는 차이점이 있지요. 당신들은 기껏해야 발견된 가능성들이 실제로 적용될 것인지 아직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나를 비난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즉 , 이제까지 어떤 집단에 이롭게 이용될 것이라 예견된 모든 발견이 실제로도 충분히 이용되었다는 통계자료 말입니다. 지금 이미 노벨상 수상자와 올림 픽 금메달 수상자의 냉동된 정자와 난세포의 결합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아직 죽 지 않았다면, 당신들의 꽁꽁 언 정자세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벌써 몇몇 국가에서는 선별을 목적으로 시험관 아기를 실험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보험회사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거라 믿습니까? 아니면 기업이 직원을 뽑을 때, 그들의 발병 가능성과 성격상의 기 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순진하게 모집하겠습니까? 당신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간에 인류는 자기 자신과 다른 모든 생명체를 생명공학적으로 새롭게 설계할 수 있고, 설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때 충분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수나 심지어 의 도적으로, 전대미문의 위험성을 가진 유전공학적 산물이 방출될 수도 있습니다. 선발 기준에 혼란이 있게 되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변종된 생명체가 자연 성장함으로서 폐해가 생겨 세 계가 끝장 날 수도 있습니다. 이 변종된 생명체가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대신에, 폭발력이 매우 강한 새로운 갈등과 위기로 사회를 이끌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강력한 국제적 조정기 구가 설립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냐고 묻겠지요. 이미 핵무기 생산의 감시를 소홀히 해서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유전공학자와 생식을 전공하는 의학 도들의 실험실을 관리 하는 일이 더욱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조정되는 배양 프 로그램을 설계하는 동시에 규칙 위반을 막기 위해, 완벽하게 조직된 기구를 통해 모든 구석 까지 빛을 비추는 중앙집권적이고 독재적인 기구를 통해 모든 구석까지 빛을 비추는 중앙집 권적이고 독재적인 지도부에 대한 본능적인 동경이 몇몇 나라에 확산되어 있는 것이 불합리 한 것인가요? 당연히 전체주의적인 체제만이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포기하기보다는 그런 것을 설립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덛 독적이지 않을까요? 아인슈타인 - 도덕성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속성입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방금 우리에게 공룡 배양자를 예로 들어 그 어떤 감시체제도 인간의 도덕성을 대체할 수 없 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지도부의 상층에는, 그런 지도부가 설 립된다면 말입니다만, 바로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할 유형의 인간들이 바리잡고 있다고 확 신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지상에 있는 이들은 우선 독일인부터, 인간이라는 종을 생물학 적으로 정제하려고 했던 저 나치스 지도자들이야말로 낮은 등급의 변종임을 인식하게 될 것 입니다. 프로이트 - 데카르트는, 자신의 불안에서 해방되기 위해 이상화된 지도력을 열망하며 그 지도력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은, 자기가 최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고, 순수한 동기에 따라야 하며, 골수에 사무치게 정의 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속성을 지닌 사람 가운데 누가 인간의 대부분을 노예와 실험용 토끼로 만들어 품위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체제 를 이용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덕을 소유한 사람은 단 하루라도 그런 체제를 떠맡기보다는 오히려 그 체제를 쳐부수려 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제시한 모델은 영혼이 없는 지도부 아래 영혼이 없는 기 계 사회를 낳는 기만적인 모델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파괴성을 다루는 것은 순전히 문화적 인 과제입니다. 완벽하게 계산된 체제를 통해 인간이 지닌 파괴성을 없애려는 사람은 심리 적, 도덕적으로 완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계획은 저 <쥐라 기 공원>과 똑같은 이유에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과 부처 "자연 치유력에 조심스런 희망을 걸어 본다" 플라톤 - 친애하는 데카르트, 당신은 나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역시 내 가 예전에 권위주의적인 전제국가에 대해 열광했던 것을 머리 속에서 떨쳐 내기가 쉽지 않 습니다. 나는 교만하게도 지혜가 그와 같은 형태의 국가를 선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습니 다. 추측하건대, 당신도 비슷한 동기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군요. 내가 나중에 아테네 시민이 나의 독재적인 국가 이상을 빠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성에 대해 매 우 기뻐했듯이, 오늘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당신이 말하는 모델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당 신도 기뻐해야 할 겁니다. 당신이 말하는 모델은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모델의 현대화된 변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 - 그 대신에 마르크스가 상상하는 세계종말의 모습이 실현되지 않도록, 우선 각자의 힘을 모아 공동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사회의 약자들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불가피하게 오웰이 말한 감시기구가 필요하게 될, 저 과대망상과 같은 기술적 모험을 피해야 할 겁니다. 마르크스 - 그 둘 다 똑같은 상업적 이유에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에게 임금을 적 게 주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경제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 부담이 큰 유 전공학의 산물로 막대한 이윤을 얻을 가능성이 보이면, 그 어떤 기업도 자기 경쟁자가 그 일을 먼저 차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당신이 지금의 경제체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언젠가 내적 모순으로 인해 강력한 폭탄밭과도 같은 파멸의 아비규환으로 몰락할 것이라 고 믿고 있는 반면에, 데카르트는 기술공학을 통해 혁신된 범세계적인 국가를 예언합니다. 즉, 예속을 추구하는 군중이 오웰이 말하는 전체주의적 지도부에 자신을 내맡길 그런 국가 말입니다. 그 둘 다 맞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비관주의적으로 체념하지도, 자신의 불안을 억압하지 도, 자신에게 폭력에 대한 맹목성이 있는 것에 놀라지도, 전체주의적인 구원자를 갈망하지도 않는 힘을 탐색하는 것만이 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파쇼적인 세계 독재가 나타나는 혼돈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고, 연대의 해체와 환경파괴 과정을 중단시키고자 자신의 운명 을 스스로 바구려 노력하는 어떤 집단을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먼저 나는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 중에 잔인한 세계화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희생자 역할에 대항하여 더욱더 크게 그리고 더욱더 격렬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집단을 떠올 리게 됩니다. 옛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유럽에서부터 아시아에 이르기 까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 항거는 '세계적인 운동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들은 그 나마 남아 있는 사회적인 가치마저 무너뜨림으로써 신뢰를 잃고 당황하고 있는 정치를 폭로 합니다. 모든 것이 부서지거나 전체주의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전에, 아래로부터의 대중적인 압력과 상류층에게 강요된 통찰이 이성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배제되어야 겠습니까? 나는 어느 정도 내적 만족을 느끼면서, 여기저기에서 무책임한 군사정책과 환경 정책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 있는 사회운동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관찰한 것은 국제적인 평화운동이 정치가와 그들의 산업상의 협조자가 헛 된 핵무기 경쟁을 계속하려는 것을 저지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이라면, 핵에너 지 반대 운동도 사회의 의식 속에 더욱 깊이 침투하여 에너지 정책전략에 점차 생산적인 작 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항운동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국민들은, 데카르트가 묘 사한 것과 같은 유전공학적 배양에 대한 망상이 또 하나의 새로운 파쇼적 야만 행위를 불러 일으킬 거라는 사실을, 이미 어렴풋이 깨닫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 내가 갖고 있는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인슈타인과마 찬가지로 나도 그 들 집단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비판적인 조심성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우리는 그들의 약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아인슈타인 - 그게 무슨 말인가요? 프로이트 - 그저 저항집단에서는 항상 아버지와의 사춘기적인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젊 은 남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개인적인 복수심이, 군비경쟁과 전쟁,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행과 자연파괴에 책임이 있는 권력자를 향한 증오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반대동기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박해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당신은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신중함을 미덕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어떻게 그런 성격이 그 집단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프로이트 - 내가 좀전에 말한 집단은 반대동기보다는 찬성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들 입니다. 아인슈타인 - 당신이 말하는 찬성동기는 무엇인가요? 프로이트 -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킬 수 있고, 갈등이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자연을 보호하는 모든 이들에게 결국 선이 행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 다. 그런 신념은 더 많은 인내력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며, 또한 적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도 사회적 결속력을 위협하고 자연스런 생활 조건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당신은 그와 같이, 사회의 기층민중을 기반으로한 자발적인 시민운동이 당 신이 말하는 찬성동기를 강화하고, 그들 내면의 적대감을 제한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다고 봅니까? 프로이트 - 젊은이들은 앞선 세대가 30년 전에 일으켰던 위대한 저항들을 근본적으로 연 구해야 합니다. 그 저항의 큰 주제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전세계의 약자, 즉 여자, 아이, 자연에 대한 억압이었습니다. 그 반항아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 친구 마르크스를 근거로 내 세웠지요. 마르크스 - 나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의 추종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도 합법적인 정치적 동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세대 갈등이 너무 오래 쌓여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아버지, 선생님, 교수, 상사 에게 돌격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는 정치적인 권력관계에 충격을 줄 수 없다는 것 을 깨달을 때까지 말입니다. 프로이트 - 그렇게 하여 반권위저의적 증오는 결국 공허 속으로 치닫게 되었지요. 그들 가운데 소수의 광신적인 사람들은 테러리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대부분 소리 없이 전통에 순응하면서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집단들이 견고하게 남아 있 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운동이 중요한 개혁을 위한 몇 가지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을 느꼈지 요. 그들은 산업체와 대학에서 더 많은 공동참여권을 획득했습니다. 많은 시민운동이 사회적 으로 고립된 집단에 주의를 돌려 정신병원, 부랑자, 형 집행, 토지 문제와 같은 영역에서 많 은 개선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들은 여성운동을 촉진시켰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참여했고, 나중에 녹색운동으로 성장하게 되는 최초의 단체도 세웠습니다. 여기에 는, 혐오스러운 체제의 대표자들에게 대항하여 폭력적인 방법으로 투쟁하는 데 자신의 힘을 다 소진하는 대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지지하는 데서 내적 만족을 찾았던 참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르크스 - 하지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억압적인 지배체제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지배체제가 부수적인 갈등을 털어 버리는 것을 도왔습니다. 프로이트 - 모든 것을 이루려고 했던 급진주의자들이 완전히 포기하거나 테러리스트가 되어 끔찍한 해악을 저지른 데 반해, 그들은 많은 분야에 개혁을 관철시켰고 저항력을 강화 시켰습니다.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프로이트, 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납득이 갑니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억압하는 관계를 개선하려는 충동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끌어내고 체념과 비관 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건설적인 실천을 시도하는 집단들에게 희망을 갖도록 하는군요. 주위 를 둘러보면, 그와 같은 일련의 실천적인 계기가 스스로 고무적인 낙관주의를 발견할 수 있 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부처 - 우리에게도 격려가 되도록 그것에 대해 뭔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자연과학자로서 나는 잔잔한 기쁨을 느끼며, 오늘날 나와 같은 전문직에 종 사하는 몇몇 사람들이 경제학자와 기술자들과 함께 파괴적인 거대광을 경제에서 몰아내고, 더 신중하게 조치를 취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그들의 발견에 대해 더욱더 공감하고 있지요. 그리고 새로운 생활양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더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아주 열심입니다. 집을 지을 때도 예전보다 훨씬 적은 소비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가전제품과 전구도 얼마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지지요. 이것은 다만 작은 예들에 불과합니다. 기술공학적인 공명심은 천연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서 자연을 더 적게 소비하려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자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제커, 애모리 로빈스, 훈터로빈스 등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표현했지요. "한 통의 기름과 한 통의 토양에서 우리는 오늘날보다 네 배나 많은 복지를 얻어 낼 것이다." 이 말은 자연을 난폭하게 착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비축분을 더 오래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뜻입니다. 그 밑받침이 되고 있는 기 본 사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분별한 팽창주의로부터 책임감에 따라 행동하는 생활형태로 전환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기술공학을 이용한다." 부처 - 이런 변화가 빠르게 진전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이런 전환을 오 래 전부터 바라왔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들 서구의 경제는 엄청나게 비싸기만 할 뿐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생산품을 시장에 내 놓기 위해 인위적으로 창출되고 고양된 많은 욕구로 인간들을 구속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는 불교의 경제이론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 다. 부처 -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나라에서는 우리 종교가 갖고 있는 정신 및 영혼상의 가치 를 경제적인 진보 및 적절한 기술 발전과 결합시키는 일이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합 니다. 당신들 나라의 전문가들이 소비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생활수준' 이라는 개념은 나의 추종자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 꼭 더 나 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도 비관주의라는 주제로 얘기하면서 뭔가를 구매함으로써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대부분은 불안한 기본 정조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것 임을, 즉 내적인 위기를 은폐하고자 하는 행위임을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나는 서구인이 점점 더 야만적으로 자연을 폭행하는 것을 경악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이것 은 자연에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의 추종자들에게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종교가 심지어 꽃까지 신성하게 생각하고 우리 수도사들에게는 때때로 나무를 심는 일 이 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들도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더 신중하고 더 아끼는 기술공학에 의지하는 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나에게는 병적인 탈선으 로부터의 귀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만 그런 계기들만 있지요. 그들의 생산적인 힘을 더 잘 평가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에게 한 가지 더 질문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자연 소비'라고 부르는 것을 철저하게 제한하려는 운동에 앞장 서고 있는 집단을 움직이는 본질 적인 동기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몰락하게 된다는 것을 계산했기 때문인가 요? 아니면 그들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요? 아인슈타인 -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기술 만능주의적 계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 은 우울한 최종수치를 수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가 '병에 대한 통찰' 이라는 말로 설명할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면 부처 당신도 그런 말로 설명할지 모르는 경험 말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팽창주의적인 사고로 인해 생태학적으로는 물론 사회적 으로도 의지처를 잃었다는 점을 느끼고 다시 겸손해지려 하며, 이것을 자신의 천명으로 보 고 있습니다. 데카르트 -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내게는 당신들이 순진하게도 낭만적인 향수에 사로잡 혀, 산업사회를 이미 사라져 보린 목가사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 만 실제로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전진하는 것이며, 정확한 계산을 통해 세계질서를 기술 적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잃어버린 중세의 확실성을 대체하는 일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친애하는 데카르트,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의 거대광적인 낙원을 충분히 묘사해 주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지상에 있는 당신 추종자들이 방금 아인슈타인이 말한 사 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추종자들 역시 불 안하고, 퇴행적이며, 기술에 대해 적대적이고,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며, 유아적이거나 다른 어떤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아우구스티누스, 그만두십시오. 데카르트가 내가 여전히 아이와 같은 순진 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나는 저 위대한 자연의 질서 앞에 서면 나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진다는 것도 이미 당신들에게 고백했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집단들도 자연의 질서에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애하는 데카르트, 부디 이런 유망한 징후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새로운 확신을 얻다" 아우구스티누스 - 부처가 환경운동가들의 실천적인 활동의 동기를 물은 것은 중요한 질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 아인슈타인의 대답에서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더 나 은 생존의 기회를 계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현명한 자족을 배웠기 때문에 더 절제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명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기 때문에 겸손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덜 요구하고, 덜 팽창주의적으로 행동하고, 덜 착취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아인슈타인 - 나도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그런 집단만이 장기적으로 상황을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신념이 변하지 않고는 생태학상의 '효과적인 혁명'은 효력을 나타내기 힘듭니 다. 왜냐하면 절약하여 얻은 것이 무절제한 소비욕을 지닌 팽창주의적인 생활양식에 의해 곧 다시 잠식되기 때문입니다. 선경지명이 있는 환경운동가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프로이트 - 하지만 반드시 두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즉, 내가 찬성동기라 고 일컬었던, 더 평화롭고 더 온화한 생활형태를 바라는 욕구가 개혁적인 실천과 결합되어 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쟁문화 속에서는 신념의 변화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또 개혁적인 실천 가들은 정신적 동인이 없다면 힘들고 오래 걸리는 계획을 실행하면서 힘이 다 빠질 것입니 다. 따라서 성공적인 작용을 위해서는 정신적인 동기와 혁신적인 실천이 서로에게 필요합니 다. 아우구스티누스 -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바로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됩니 다. 즉, 지금 지상에서는 어떻게 더 정의롭고, 더 절약하며, 더 건강하고, 더 비폭력적으로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계획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천할 의지가 부족 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서구의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의지를 발 견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줄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솔직해집시다. 이런 새 로운 사상의 출현은 아직 말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물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회에서 는 그와 같은 의지와 이미 예전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질투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프로이트 - 하지만 왜 서구인들은 불교가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를 실천하는 것이 힘들며, 또 이런 결핍을 어떻게 하면 당장 극복할 수 있는지, 당신말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특히 당신은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마르크스가 말하는 대홍수라는 우울한 관점과, 데카르트의 무 시무시한 전체주의적 전망과 만성적인 질환에 의한 세계종말의 모든 양상들에 몰두하다보 니, 우리의 모든 기대가 바로 그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프로이트의 질문에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친애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당 신은 지상에 있는 많은 민족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한, 가장 중요한 전달자 중의 한 사람 입니다. 이 가르침은 도덕적 내용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저 유명한 산상수훈을 도덕적인 의무이론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도 좋다면, 찬성동기에 대한 격려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산상수훈은 "너희들은 겸손하고, 고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온화해야 한 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 "너희들이 자비롭고 정의로울 수 있다면, 너희들이 빈곤과 고 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너희들은 환희에 넘칠 것 이고, 깊은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즉 내 생각으로는, 이 산상수훈은 내면 의 건강을 선물해 주는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왜 그리스도교 국가의 국민들은 이 설교가 갖 고 있는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의미를 잃었습니까? 왜 그들은 그 복음이 단지 아주 낯선 평 화주의자나 전문적인 영혼의 위로가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복음에만 귀를 엽니다. 인간이 산상수 훈을 듣는 걸 견디고 기꺼워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능력을 자기 안에서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그 안에서 고통스런 비난만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중세 이후로 과대망상과 같은 불건전 한 발전을 통해 점차 무자비한 권력숭배에 주의를 기울인 사회가, 산상수훈이 다만 신의 이 름으로 고통과 동정 속에 황홀해지고자 하는 여성적인 약골과 마조히스트를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솔직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현대의 현실세계에는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프로이트 - 그러니까 서구인은 산상수훈에서 약속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더 자비 롭고, 더 정의롭고, 더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야겠군요. 아우구스티누스 - 그게 지금 걱정입니다. 이런 종류의 자신감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 닙니다. 수만 명의 트레이너와, 치료사와 조언가가 와서 암시, 분석 또는 행동연습을 통해 자신을 선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인 간이 심리적인 심연에서 그들의 말과 다르게 느낀다면, 유전공학자처럼 다른 기본 정조를 이식할 수 있는 심리기술자는 없습니다. 종파의 간부들이 자신의 희생자를 세뇌하여 그들의 양심을 양도받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프로이트 - 그 말은,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산상수훈 속에 곧 뻗쳐 있는 도움의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믿기에는 아직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너무 악하다고 느낀다는 뜻이군요. 하지 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 자신 안에 아직도 개선을 위한 힘이 숨겨져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진정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 타락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공통의 자기 가치의식이 사라질수록 사회는 더욱 부패하고, 무절제하고, 폭력적으로 된다는 통례에 따르자면 말이죠. 아우구스티누스 - 나는 더 많은 희망과 낙관주의를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 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서구인들은 자신이 빠져 있는 우울증의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 - 그럼, 도대체 어떻게 말인가요? 아우구스티누스 - 서구인의 우울증에는 마음을 압박하는 죄과가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죄과 앞에 설 용기가 싹트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몇몇 징후를 환영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 당신은 어디에서 이런 암시를 발견합니까? 아우구스티누스 - 내가 당신들에게 최근에 텔레비전, 영화, 잡지 같은 서구의 대중매체에 서, 마치 어떤 압력을 받기나 한 듯이 아주 집중적으로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 당신들은 아마도 놀랄 것입니다. 하필이면 성탄절에 서구의 가장 중요한 시사 잡지 중 하나가 악에 대한 모든 가능한 예술적, 문화적, 철학적, 스탈린, 테러리스트 맨슨, 현대의 다른 많은 악마와 같은 인물들이 바로 사랑과 평화의 축제날에, 수백만의 대중의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사탄 예식, 사디즘의 광란의 축제, 악마적인 예식도 함께 말입니다. 이것 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저널리스트들이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람들이 영혼 속에서 열망하 는 주제' 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탄생일 축제에 인간들은 자신들 이 타락했다는 감정이 치솟는 것입니다. 그들은 곪고 있는 종양을 터뜨리기를 원하는 환자처럼 이 감정 앞에 설 수밖에 없지요. 프로이트 - 내가 당신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들어봐주십시오. 그러니가 불쾌한 죄책감이 서구인들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인간들은 내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아그이 모든 공언 에 자신을 내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요? 아우구스티누스 - 나는 당신의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노이로제 현상으로서의 죄책감만 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진정한 죄책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장 악하고 있는 것의 본질이 악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몇몇 악마의 모습에 직면할 수밖에 없 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신에게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를 지은 존재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선한 전쟁을 통해 악 한 적을 쳐부수는 고귀한 인본주의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프로이트, 당신 동료들이 조언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고통스런 이유 는 아버지, 어머니, 시조를 살해하고자 하는 자신의 소망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혹은 처벌을 원하는 유아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수천 번 암시를 준다 해도 당신은 이런 자명한 죄 악에 대항할 치료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악은 실재하며 끔찍합니다. 계통학상의 콤플렉스는 다만 그에 대한 본보기일 뿐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럼 그 실재하는 죄악이란 무엇인가요? 아우구스티누스 - 그것은 바로 최근의 문화적 폭력의 전 역사입니다. 그것은 가시적으로 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거나 살해된 민족과 자연파괴의 대가로 맹위를 떨치는 권력욕의 광란의 축제이며, 비가시적으로는 경제적으로 합리화된, 인간성과 자연적인 생명연관성의 파괴입니다. 모든 중범죄와 대학살의 극치가 바로 세기 전환기인 지금 투사의 저항을 이겨냈다는 것은 어쩌면 고무적인 징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주는 공포는 이 살인적인 범행을 저지른 민족은 물론이고, 그 살인자들을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그 범죄에 연루되었던 주변 민족들도 뒤흔듭니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보다 그 범죄에 더 많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치스 체제가 저지른 야만행위가 문화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우연적 인 실수가 결코 아니었다는 공감이 일고 있습니다. 그 야만 행위는 집단적인 자기신격화와 외부로 투사된 부정에 대한 제거행위가 결합되어 나타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나치스 이데 올로기의 핵심사상을 완성한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유전공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었 다는 점도 이를 증명하지요. 그 결과 인류는 다음 세기로 들어서는 지금, 인정하려 하지는 않지만 악의 특성인 집단적인 피의 정화라는 이상을 믿고자 하는 생생한 유혹의 시험대 앞 에 서게 된 것이며, 이번에는 유전공학자를 통해 그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반박할 것입니다. "억압된 것은 다시 돌아온다" 고 말입니 다. 히틀러의 망상과 그의 발생학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이론은 결코 개인적인 정신병이 아니 었습니다. 그것은 문화 차원의 병이고, 결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으며, 깊숙한 곳에서 지 속적으로 발효되는 과정이 분출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범인이 있던 나라뿐만 아니라 가장 먼 주변나라도 대학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게 좋습니다. 이 사실들은 그 동안 은폐되어 있었지요. 즉 공범관계, 방관적인 비밀공유, 도망자 고발, 추적자 원조, 희생 자의 금을 부당이득 취하는 행위 같은 것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당신은 서구인들이 자신감을 상실한 원인을 어떻게 파헤쳐야 하는지 물었습 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은 하나의 과제를 볼 것입니다. 즉, 억압된 원인 때문에 다음 세기에 혹시라도 지옥으로 떠밀려 가게 되지 않도록, 20세기에 있었던 모든 실패를 기억해 내 폭력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이 말하는 작업은 유망하기는 하지만 어렵게 보입니 다. 독선으로 가득 찬 서구인들이 그와 같은 고통스런 치유과정을 견뎌 내리라 믿습니까? 프로이트 - 나는 공자, 당신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인간 이 기억 속에서 범인을 저주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것에 그친다면, 자신의 악에 대해서는 장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배워야 할 생생한 예로 나는 항상 저 넬 슨 만델라를 생각하게 되며 그에게 경탄합니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인 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망자인 자신에게 자행된 모든 악에서 인간적인 흔적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스 스로 말하듯이, 그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비와 관용이 현존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지 키려 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내 동료들과 내가 한계에까지 내몰렸 던, 감옥에서 보낸 가장 끔찍한 시절에도, 나는 한 간호인에게서 인간애의 한 가닥 빛을 보 았다. 어쩌면 다만 몇 초 동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다시 믿음을 주고, 내가 계속 살 아갈 수 있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27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화해를 위한 힘을 유지했습니다. 이 힘으로 그는 결국 해방자로서 자기 나라를 유혈의 시민전쟁으 로부터 보호할 수 이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유태인이 워싱턴에 대학살 박물관을 세웠을 때, 무서운 인종말살을 재현한 커다란 진열판 한가운데에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생애와 그 행위를 기록해 두었지요. 그 가 준 도움을 조직화된 집단 범죄의 규모와 비교해 보여 주면서 그들도 그와 똑같은 효과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스카 쉰들러의 행적을 통해 방문객들은 만델라가 경험한 몇 초 동 안의 박애와 같은 것을 느낄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최악의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 대응 력이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탈무드>에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을 구하는 사람은 전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라는 격언도 이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겠지 요. 부처 - 20세기는 전쟁과 많은 폭력 기구의 그늘 아래서도 멀리까지 빛을 발할 인도주의 자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나의 고향 인도의 비폭력적인 해방자 간디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 니면 마틴 루터 킹이 미국 흑인들을 도덕적으로 격려한 것이나, 자국 러시아에서뿐만 아니 라 다른 나라에서까지 인권을 위해 용감하게 투쟁했던 아드레이 사하로프를 생각해 보십시 오. 마지막으로 우리는 버트런드 러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업적은 아인슈타인 당신이 우리보다 더 잘 알겠죠. 아인슈타인 - 인류 대부분이 세기 전환기를 경험할 수 잇는 것에 대해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다음의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1962년 10월 23일, 미 국 대통령은 핵무기 발사 경고를 명령했습니다. 두 세계권력은 끔찍한 침묵을 나누었지요. 이 침묵은 마지막 순간에, 러시아이들도 높이 존경하는 버트런드 러셀이 흐르시초프에게 띄 운 공개전문에 의해 깨어졌습니다. 그것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흐루시초프에게 양보해 줄 것을 간청하는 감동적인 편지였습니다. 흐루시초프가 보낸 화해의 내용이 담긴 긴 공식적인 대답은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던 첫 번째 신호였습니다. 러셀이 어떻게 이런 결말 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퍼그워시 회의(핵무기 폐지 나 세계 평화에 대해 토의하는 과학자들의 회의 -역주)를 처음 열어 전세계적인 평화운동에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공자 - 하지만 그의 이름과 당신들이 일컬은 다른 이들의 이름이 실제로 서구인의 마음 속에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그 사이에 간디의 평화운동은 마치 최근 20세기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어느 암울한 태고 적에 있었던 일처럼 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지 않았습니까? 누가 아직도 버트런드 러셀을 압니까? 하물며 그의 업적을 누가 압니까?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 리카를 살육으로 이끄는 대신에 화해와 평화로 이끌었다는 것은 곧 잊혀질 평범한 일이 되 어 버리지 않았나요? 사하로프도 이미 오래 전에 잊혀지지 않았습니까? 나는 어쨌든 인간 이 그와 같은 모범을 열망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이트 - 당신의 의심은 당연합니다. 위대하고 또 성공적이기도 한 화해의 성취는, 이 런 업적을 성취한 사람이 수배되고, 투옥되거나 암살당할 때만, 즉 고전적인 희생자 - 범인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때만 대중을 감동시키죠. 폭력이 두각을 나타내야만 흥미를 끄는 것이 지요. 극적인 사건도 없이 다만 인본주의적 목표를 위해 의연하게 일하는 사람은 그 어떤 공개적인 관심도 끌지 못하며, 기껏해야 추도사를 쓰기 위한 자료를 제공할 뿐입니다. 공자 - 죽을 운명을 지닌 보통 인간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특이한 천재들이나 성인만 중 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런 무관심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여러분들은 내가 왜 오늘날의 인간들이 그들에게 산상수훈을 상기시켜 주면 불편해하는지에 관해 말한 것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군요. 인간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그 들은 자신의 선을 스스로 억눌렀고, 아직 자기 안에 생생히 존재하는 선을 초인으로 미화시 키거나, 아니면 심지어 스스로 타락하고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그 어떤 약함이나 결함을 부 각시키죠. 따라서 친애하는 공자,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은 책임이 그들을 너무 억압하여, 예전 또는 새로운 모범을 본받고 그들의 사상을 실행할 용기가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한, 그런 모범 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위태로운 미 래를 극복하기 위해서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희망을 가질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을 때 까지는 우선 자신의 죄과를 철저히 규명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 - 하지만 당신이 늘 말하는 그런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희망을 갖고 있 어야 하지 않습니까? 즉, 이런 희망을 통해, 인간이 부정적인 기억에 빠져 있을 때에도 죄의 식 속에 정체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아우구스티누스 - 당신 말이 옳습니다. 인간들은 차별대우를 받는 이들과 소외당하는 이 들과 소위 열등하다고 배척당하는 이들, 즉 그들이 혐오하는 나약함과 그들이 경멸하는 열 등감과 그들이 경시하는 자연, 이 모든 희생자들이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울 때, 자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감지할 것입니다. 그들은 지 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멸시하는 것을 자 기 안에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인간성이 지닌 결점을 고치려고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들 은 고통, 우울증, 무상함이 자신의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파괴적인 공격성이 해소되지 않는 자기혐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과대망상에 빠져 다른 생명체를 침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되풀이 해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내면을 개방하고자 하는 용감한 준비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아인 슈타인, 나는 당신이 내 대답에 만족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슨 말 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프로이트 - 친애하는 교부, 당신이 설명한 학습과정이 어느 정도 우리가 정신분석을 통해 얻고자 노력하고 가끔 성취하기도 하는 치유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대답에 공 감합니다. 이 치료법을 통해서도 인간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억압된 자기 비난 과 불안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과거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그 앞에 대면하는 것이지요. 어 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이전에 분열된 자신의 내면과 더 쉽게 화해하고, 그를 통해 더 건 강해지고 더 강한 저항력을 얻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 무엇인지는 당 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서로 단절되어 있던 것이 왜 다시 결합되는 것인지, 그것은 아직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플라톤 - 당신 말을 들으니 언젠가 내가 훌륭한 의사를 예술가에 비유했던 일이 떠오르 는군요. 그 의사는, 사랑이 없는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치는 데 능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몸 안에서 서로 적대적인 것을 서로 사랑하게끔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서투른 말로 표현했지요. 프로이트 - 어쨌든, 인간이 늘 갖고자 하는 선한 자아와, 인간이 그 존재를 부정해 왔고 정신적 부담을 주는 유산이기에 인지하려 하지도 않았던 약한 자아 사이의, 절대적인 불화 를 극복하는 원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