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떤 말을 할까 지은이:호르스트에버하르트 리히터 지음 / 한경희 옮김 출판사:생각의 나무 봉사자:정루미 어느 날 나는 이 책에 대한 구상과 함께 잠에서 깼다. 나는 권위 있는 사상가들 중에서 특히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현자들을 이 가상대담에 참여시켰다. 냉철한 국가론자 플라톤, 급진적인 종말론자 아우구스티누스, 일관되게 발전을 예언하는 데카르트, 확고한 혁명 이론가 마르크스, 염세적인 사회심리학적 해설가 프로이트, 보수적인 교육가인 공자, 내향적인 영혼의 인도자 부처 그리고 초대인의 역할을 맟은 아인슈타인. -호르트스에버하르트 리히터 1. 이 모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천상에서 회의가 벌어졌다. 회의의 소집자는 아인슈타인 박사. 인류의 스승이라 불릴만한 일곱 명의 사상가를 불러모아 세계종말을 막을 수 있는 묘안을 짜내겠다는 것이었다. 플라 톤, 공자, 부처,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아인슈타 인은 지금 지상의 상황에 대해 자신들도 책임이 있지 않는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은 정말 잘못된 생각을 퍼뜨렸을까? 이 세계에는 정말 종말이 오는 걸까? 멸망에 대 한 공포는 사람들의 공연한 과대망상 탓이 아닐까? 상황이 심각한가, 심각하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 응하는가가 중요하다. 체념할 것인가, 자살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에 맞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인가? 아인슈타인 - 내가 이 천상에서 지낸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불멸의 영혼을 지닌 귀한 여러분들을 이 모임에 초대하였습니다. 내 추측이 옳다면, 여러분들도 우리 후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종의 생물까지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을 걱정 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더욱이 스스로 진보했다고 생각하는 민족들이 특히 더욱 그 런 위험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곧 자신의 경이로운 거주지를 완전히 파괴시키고 말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연은 물론이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들과 선조와 후손에 대한 책임감마저도 저버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보기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무책임을 걱정스럽게 자각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로 인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가 저 지상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합니 다. 내가 지상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가 걱정하는 것에 공감한다면, 상황이 저렇게 위험하게 전개된 데에 우리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요? 이미 시작된 듯한 세계종말의 정신적 원흉은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이 아닐까요? 프로이트 - 하지만 아인슈타인, 우선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 우리들을 여기에 모이게 한 건지 설명해 주시죠. 그러니까 공자, 부처,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마 르크스와 나를 선택한 이유 말입니다. 하늘에는 우리말고도 이 모임에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인물들이 많지 않습니까? 새로 이곳에 도착한 경제전문가나 과학기술자나 정치 적 공상가는 어떤가요? 아인슈타인 - 친애하는 프로이트, 먼저 인원 문제라면 20명이나 50명보다는 적은 수여야 생각을 모으기가 쉽다는 것은 당신이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겁잇니다. 그리고 왜 다른 사람 들이 아닌 여러분들을 선택했냐고 물었나요? 여러분들은 전체적인 연관성을 생각하는 특별 한 용기를 보여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새로 하늘 위로 올라온 이들은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자기 전공에 속하는 전문적인 계획을 수행할뿐, 한 번쯤 왜 그런 계획이 필요한지, 그 계획 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왜 인간들은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지 생 각해 볼 독창적인 머리가 부족하단 말입니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돈과 자신이 현재 하는 일과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즉 그들의 존 재이유가 무엇인지, 자연이 그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도록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사물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는 묻지만 자신의 인생을 이성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그 사물들을 어 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 모임에서 헛되이 정통파 종교 창시자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서도 늘 언쟁을 일으키는 종교 교리에 대한 논쟁을 피하고 싶습니 다. 부처는 자신의 교리를 다원적으로 발전시켜 늘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공자와 아우구스티누스는 특별히 철학의 스승으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 르크스에게도 그 자신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철학적 요소가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마 르크스가 정치경제 법칙의 교의학적인 공포자로 자처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마르크스 - 나를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물론 당신 자유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 회의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런 회의를 연다 해도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회의를 통해 어떤 결론을 얻는다 해도 그걸 지상에 전파시킬 평론가를 주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프로이트 - 당신과 엥겔스가 그 당시 <자본론>에 대한 서평을 대부분 직접 썼다는데 그 게 사실인가요? 마르크스 - 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는데도 <자본론> 1,000부가 팔리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가 여기 모여서 지금 지상의 세계가 처해 있는 문제를 의논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 말을 듣 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여기서 머리를 짜내든 짜내지 않든, 자본주의가 스스 로 몰락의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플라톤 - 일시적으로 보자면 당신의 추종자들은 도처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지배 계급의 권력을 빼앗고는 결국에 가서는 자기들이 압제자가 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선 우리는 각자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 봐야 할 것 같습 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제안이 마음에 들뿐만 아니라 가장 성과가 큰 처방이 되 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한 치료법으로 효과적입니다. 나는 하늘 위에 있 는 이들 가운데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추측하건 대 여러분들도 비슷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다음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겁 입니다. '내가 어떤 잘못된 생각을 퍼뜨렸는가? 올바른 생각이 잘못 이해되는 데 어떤 기여 를 했는가? 어디에서 나의 가장 개인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문제와 혼동했는가?' 하는 문제 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내가 노예제도를 의심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를 가 져왔는지 하는 문제로 고민합니다. 내가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 분들과 한 번쯤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이 좀더 가벼워질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모임 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를 서로 이야기한다면 마찬가지로 좋을 겁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내 입장에서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내가 원죄설을 통해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교회가 종교재판을 빌려 정화작용이라는 명목 으로 사람들의 자기 혐오를 악용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죄책감을 조종하여 지배수단으 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 - 나도 내가 살아 있을 때 저지른 오류와 죄악으로 지금 새장에 갇힌 것과 다 름없는 신세가 된 것에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도 플라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만든 이 기회를 적어도 '스스로 돕는 모임'이라는 의의를 두어 이용해 야 합니다. 각자 숨김 없이 솔직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해명하도록 합시다. 혼자서 고민하 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솔직한 비판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미 예전에 "죄책감에 빠진 이보다 채권자가 더 견디기 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스스로를 돕는 모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공 통적으로 빠져 있는 위험한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위기 에서 빠져 나올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지 다 함께 심사숙고해 봤으면 합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잘못된 생각으로 인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기도 했지만 좋은 생각들도 제공했습니 다. 다만 인간들이 우리가 제시한 생각들을 전혀 마음애 시기지 않았거나, 흘려 들었기 때문 에 화를 당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르크스 - 우리는 저 아래에 있는 인간들이 몰락하고 난후에야 어떻게 하면 몰락을 피 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겠군요. 이건 순전히 냉소 아닌가요? 프로이트 - 한 가지 조건을 단다면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돕는 모임'이 라는 데 의의를 둔다면 우리가 인간들에게 그들이 지향할 목표를 찾아 주는 것만으로 만족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상에 살고 있는 공동체가 이미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만 촉매가 필요할뿐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언젠가 불붙였고, 또 송공했던 여러 운동에서 여러분들은 바로 그런 촉매였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누군가 다른 이가 대신 촉매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 간이 내일 어떻게 서로 잘 지내게 될지를 감지할 수 있는 지진계가 늘 그곳에 있기 때문입 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분석을 통해, 다만 자극만 해주면 어디선가 유익한 각성이 일어 날 거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자극이 주어지면 곧 그 각성을 실행에 옮길 사람 이 한 명 혹은 여러 명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안을 받을 수 있겠지요. 자, 그럼 찾아 봅시다. 아우구스티누스 - 아인슈타인, 나는 이미 당신이 살아 있었을 때 당신의 인도주의적인 활 동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스스로를 돕는 모 임'이라는 구상도 호감이 갑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내 자서전인 <참회록>을 통해, 부족하 고 죄 많은 내가 이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 다. 하지만 나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이도, 인간들이 자기 자신과 자연을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멸앙으로 이끌 것인지 전망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신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이 왜 지근, 1세기 말 에 그랬던 것처럼 격력하게 세계종말의 불안을 일으키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 쨋든 나는 여전히 내가 주장한 예정설을 믿습니다. 비록 이 위에 올라와 보니 내가 상상했 던 것과는 좀 다르지만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 나도 늘 신적인 이성의 존재를 믿어 왔습니다. 경이로운 우주질서가 나의 이런 생각을 확고하게 해주었지요. 내가 이 경이로운 우주질서를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해도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상에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는 신의 신임을 산업사회 국민들이 무자비하게 남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계획해 놓은 신이, 인간들이 자기 종족을 말살시키는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원자핵을 분열시키거나, 요즘 들어 유전자를 새롭게 조작해 생명을 임 의로 배야하거나 없애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겠습니까? 나는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더 이상 자기가 저지른 엄청난 모험에 대한 책임을 간단히 벗어 던져 버리고 중세적인 충심으로 그 책임을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 떠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위에 있는 우리도 우선 우리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을 떠맡아야 합니다. 플라톤 - 나는 우리들 중에서 신의 대리자 노릇을 할 사람을 정하자고 제안할 뻔했습니 다. 우리를 꾸짖고, 신의 관점에서 우리 인류에게 남아 있는 선택권을 설명해 줄 사람 말입 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을 그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우주질서에 무분별하게 개입하고서 하늘의 섭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위선일 뿐입니다. 보다시피 이미 지상에 있는 인들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선 이상, 그들은 하늘로부터 처벌이나 구원을 기다리는 대 신에 스스로 그 결과를 떠맡아야 합니다. 부처 - 나도 플라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나를 추종하는 이들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창 조자라는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보다도 자주 명상을 통해 자기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나는 우리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은 능력을 어 떻게 가상적인 신의 대리자에게 넘겨 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내 생각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리스도교도들이 신에 대한 순종을 통해 그들이 피조물이 라고 부르는 것을 내 추종자들보다 더 잘 보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대부분 스스로를 그리스도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폭 력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지상에서 진리를 아는 정신적 스승으로 사칭했다는 것을,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이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 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와서 우리의 정신이 별로 건전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데카르트 - 플라톤 자신이 곧 스스로 단념하기는 했지만, 나는 플라톤의 생각이 납득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도들은 부처가 말했듯이, <성서>를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표상을 지니고 있고 또한 그 표상으로부터 다른 신들이 파생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나는 데카르트 당신이라면 기꺼이 신의 대리자 노릇을 떠맡을 거라고 믿습니다. 왜나하면 당신은 이미 <성찰>에서 과대망상이 발작하여, 당신 자신에게 신처럼 오나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 은 서슴지 않고 신의 존재가 당신 논리로부터 이끌어진다고, 즉 당신 자신이 신을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이 정말로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데카르트 -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을 비꼬는 것 같군요. 아우구스티누스 - 바로 맞혔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완전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뭔가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근거 는 당신 자신에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에게 완전함에 대한 생각을 심 어 준 '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것은 신밖에 없 다고 했지요. 하지만 이런 인과율은 자연현상에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당신 논 리에 따르면 신을 보헤미아의 왕녀 엘리자베스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데카르트 -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합니까? 아구스티누스 - 당신 스스로 이 왕녀가 지닌 현명함의 완전성을 찬양하지 않았나요? 따 라서 당신 논리에 따르면 그 왕녀도 당신에게 완전함의 개념을 심어 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 지요. 데카르트 - 당신은 궤변으로 신에 대한 나의 겸허함을 부정하고자 하는 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쓴 <철학의 원리>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야 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 문장을 말해 주지요. "나는 항상 내가 미약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무조건 주장하지는 않으며, 모든 것을 현인의 판단과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예속 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 - 그것은 종교재판으로 당신의 동료 철학자인 지오다노 브루노가 화형당 하고, 갈릴레이가 구속되자 교회가 두려워 꾸며낸 것입니다. 데크르트 -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 둘 중에서, 당신이 더 신을 공경한다고 말하려는 거군 요. 나는 하느님의 나라와 악마의 제국을 안다고 말하는 당신이 더 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마르크스와 같은 유물론자를 만난 것에 대해 뭐라 말한 텐가요? 아인슈타인 - 그만들 하십시오! 여러분들은 나중에 서로 마음껏 욕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만 지금은 우리들 가운데 신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도움이 뙬지 안 될지 따져 볼 때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신의 대리자를 뽑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 리라 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상에서 모두 자신이 명철한 사상가인 체했습니다. 데 카르트도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다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들 중 한두 명은 우리 후손이 처한 현실이 어렵기는 하지만, 우 리가 여기서 이렇게 힘들여 그것을 분석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자기 자신의 책임을 따져 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마르크스는 자기 이 론은 펴면서 이미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넌지치 비추었습니다. 마르크스 - 다만 그 진행이 내가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동유럽과 중부유 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것은 내가 계획한 것과 맞지는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시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전지구적인 거대 자본주의가 이미 자신의 몰락을 준비하 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나는 그 이유도 설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언젠가 전세계 적으로 혁명적인 폭발이 일어난다면, 거대 자본주의가 자신의 몰락과 함께 붕괴시킬 것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공자 - 나는 지상의 상황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비판적 평가가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추측과 지식은 다른 문제지요. 따라서 나는 우리가 아인슈타인이 내린 추측의 근거를 함께 조사하는 데 찬성합니다. 그리고 내게 떠오느느 근거가 하나 있습니다. 아직도 내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동방의 민족들은 당신들 서구 민족을 엄습하고 있는 세계 몰락의 기운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민족이 느끼는 감정이 잘못 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동양의 민족이 느끼는 감정이 잘못된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즉 암울한 비관주의와 태연함 중에 어떤 것이 잘 못된 것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고 있는 지는 일단 제쳐 두고, 우리는 희망이 유익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해주므로 어는 경우에서나 두려움보다 더 나은 게 아닌지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공포가 커다란 위험에 대해 방어할 수 있도록 일깨우므로 비관주 의가 더 유익할까요? 이 문제를 우리는 더 파헤쳐 보아야 할 겁니다. 마르크스 - 내가 이 모임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는 내가 가버리면 여러분들이 나의 학설 을 가지고 나를 모든 해악에 대한 속죄양으로 삼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부처 -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티베트의 매우 존경받는 내 후계 자 달라이 라마는 당신 생각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상의 물질적인 생 활기반이 정말 아주 위험스러울 정도로 파괴된 것인지 아인슈타인한테서 듣고 싶습니다. 그 리고 나는 무엇보다 어떤 의식상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느지 알아내는 데 몰두하겠습니다. 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내적 능력보다 자신이 만든 기계를 더 믿는 건가요? 왜 인간들은 자신이 만들어 소비하는 물건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치절하합니 까? 왜 인간들은 자연을 영혼이 없는 물질 창고로 멸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정신을 위축시 켰으며, 그 때문에 자연을 이용하는 데서 정도를 상실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까요? 데카르트 - 좋습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우리는 물 질자원, 가난과 기아, 대기오염과 오존층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왜 냐하면 그런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새로운 기술을 고안하고,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공기를 정화하고, 오존층을 재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생명공학과 통신공학의 모험적이고 선구적인 계획을 통해서가 아니라 명상이나 도덕적 원칙 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밀교 내면 숭배를 반대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전문지 식이 있는 자연과학자로서 핵무기가 주는 위협과 환경파괴에 대한 우울한 의견으로 우리를 불안하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진보가, 해겨할 수 없는 듯 보이는 문제를 극복해 낼 길을 발견해 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을 여러분들은 비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나를 비난하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와 똑같은 이유에서 나 역시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나는 이런 일말고는 생각을 같이할 일이 거의 없지요. 아우구스티누스 - 아인슈타인이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해도 세계멸망이 임박해 있다는 증거가 끊임없이 내 눈앞에 보입니다. 나한테 학문적인 증거자료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다만 <성서>의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것만을 따릅니다. 언제 인간을 세상으로 내보 내고, 언제 인간을 빛의 제국이나 영원한 어둠으로 보낼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높으신 분 이 할 일입니다. 물론 나는 학문적 자료를 무시하는 주제넘은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 지만 아무도 [요한 계시록]을 건드릴 수 없는 반면에, 이 학문적 자료는 내일이면 완전히 다 른 내용이 될 수 있습니다. 플라톤 - 내게는 세계가 완전히 멸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 만 개별적인 문화가 붕괴되는 것은 나도 이미 이 위에서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우리 그리 스인들도 제국을 멸망으로 몰았고, 로마인도 그랬고, 마야인도 잉카족도 아즈텍족도 그랬습 니다. 그리고 티베트 민족이 그 다음 차례인 듯 보입니다. 이제 서양인들도 역사에서 사라지 길 원하는지는 이 위에서 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모자라는 인식능력으로 평가해 보자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보 기에 그들은 이카로스(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발명가 다이달로스이 아들. 아버지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갔다가 날개가 녹아 떨져 죽었다. -역주)처럼 우 리의 하늘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를 정복하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지금 오존층을 파괴시키는 것은 이카로스와 똑같이 죽음을 건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나의 비교가 순진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네게 는 우리의 옛 신화가 오늘날 인간들의 행동규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서양 인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문화와 함께 사라진다 해도 별로 슬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역사라는 것은 결국 크게 보면 반복적으로 순환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로 그래도 나는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리 그리스인의 유산을 더 많이 지키고 있는 서양문화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그 붕괴를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나는 우리 분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매우 긴장됩니다. 프로이트 - 친애하는 아인슈타인, 당신은 이제 우리를 여기에 초대한 당신의 의도를 우리 가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아래 세상에서 어떤 나쁜 일이, 어쩌면 가장 나쁜 일이 일어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학문적이라고 부르는 자료를 통해 우리의 두렴이 얼마나 맞는 것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자료가 내일이면 완전히 달라질 수 있 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옳습니다. 게다가 그 자료가 어떻게 가공될지 늘 불확실합니다. 14세게 유럽에 페스트가 퍼져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했을 때 인간들은 대부분 의기 소침해졌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보카치오는 전염병이 극에 달했을 때 자기 친구 들과 함께 농촌으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데카메론>의 외설적인 이야기로 즐겁게 지냈 지요. 어쩌면 이 처세술에 능한 이들이 페스트보다는 에로스를 더 즐겨 생각했기 때문에 무 사히 그 전염병을 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들은 그 태연함을 통해 자신의 면 역성을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만약 그 끔찍한 수, 그러니까 2,500만 명이라 는 유럽인의 3분의 1이나 되는 희생자만을 생각했더라면 그들도 틀림없이 번민하여 죽었을 것입니다. 플라톤 - 재미있는 이야기이군요.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잘 알려진 대로 자기 고향 시라 쿠사가 로마 군인에의해 위협받는 것을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맞아 죽었습니다. 나 자신도 그 당시에 우리 그리스 문화의 붕괴가 얼마나 눈 앞에 가까이 다가 왔는지 제때에 인식하지 못했지요. 여러 사소한 나쁜 일들에 대해서는 경고했지만 가장 큰 불행은 미처 예견하지 못한 겁니다. 프로이트 - 그렇지만 지금 지상의 인간들이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고 있으며, 우리들도 알 게 모르게 그들이 히스테리에 감염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데카르트 - 당신은 우리의 분별력을 부인하는 건가요? 프로이트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데카르트, 당신은 무의식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깊 이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 왜 지상에서는 대다수의 다른 지구인들보다 여러 관점에서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민족들이 특히 더 세계멸망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걸까요? 두 번째 문제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구원자나 철학자, 영혼의 치유자는 한 길 을 가르쳐 주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직업상 계속해서 더 나은 것을 가리켜 주는 안내자로 처신하기 위해 우리가 지상의 악을 과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 각해 봐야 합니다. 마르크스 - 첫 번째 문제는 프로이트 당신 말이 옳습니다. 산업국가에 사는 잘사는 계층 이 실제로 가장 신경질적입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보다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에, 항상 가난한 이들보다 걱정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위험한 기술이 가장 발달된 곳에서 가 장 먼저 그 기술 때문에 닥치게 될 재앙을 자각하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두 번째 지적에서는 내게는 기껏해야 성인 명부에 오른 우리 교부가 떠오르는군 요.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교회가 말하는 방탕한 양에 대해 교회가 영원히 지배권을 갖도 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 악과 죄를 과장하는 데 힘꺼 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묵시 록에 나온 지옥의 형벌을 가지고 협박한 것이 1,500여년 동안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아, 마르크스, '당신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정신과 비슷하군 요.' 어느 시인의 글에서 읽은 것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와 지령과의 대화 중에 나오는 말 - 역주). 당신에게는 죄라는 것이 낯선 단어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경제 문 제의 죄는 이해하지만 인간 영혼의 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서 구 사회의 지배세력이 자신의 이기주의로 인해 자기 나라의 가난한 이들과 남반구의 빈곤 지역에 사는 민족들과 그리고 결국에는 자연까지 무자비하게 약탈한데 대한 죄책감을 느끼 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명 아주 큰 처벌을 기대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 - 나는 우리들 가운데 몇몇에게도 그 말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 을 예로 들자면, 나는 내 생의 마지막 단계 거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위험을 인식 시키는 데 쏟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한 사 람들 중의 하나였지요. 물론 누군가 내게 물어 봤다면 나는 결코 원자탄으로 히로시마와 나 가사키를 파괴시키는데 동의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까지도 내가 수십만의 일본인들을 학살한 간접적인 공범자라는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과실을 보상하기 위해 계속 원자핵으로 된 악마를 벽에 그릴지도 모릅니다. 프로이트 -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 우리 모두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지상의 비 참함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데크르트 - 매우 복잡하게 들리는 군요. 우리의 과제를 단지 스스로를 돕는 모임으로 한 정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다시 되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프로이트 당신의 말은 내게는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레조 지상에서 잘못되고 있는 것과 프로이트가 말하 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해야겠지요. 아인슈타인 - 데카르트, 우리는 당신 말에 기꺼이 동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 로이트가 말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프로이트는 내가 내 경험을 통해 상황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학자로서 특정한 위험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보았다는 사실을 상 기시켜 줍니다. 주관적인 변조는 자료의 평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자들이 연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선택하는 데서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5만 개의 핵탄두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전지구적인 파괴력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누구든 인간이 핵무기를 축 소하고 핵폭발 실험을 중단하려는 노력을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이는 감소하는 어류의 수량을 세고, 어떤 이는 몇몇 강과 바다에서 다시 물고기 수량이 증가되고 있는 것을 봅니 다. 또 어떤 이는 유전공학과 유전공학이 가져올 결과의 축복을 기대하는 반면, 다른 이는 그것이 재앙을 만들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오랜 질병에 대한 의학의 승리를 축하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살인적인 바이러스가 초래한 재난에 몸을 떱니다. 우리는 현실이라고 생 각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보는 동안, 불안이나 희망은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플라톤 - 현대의 철학자인 오도 마크바트는 인간은 기질상 걱정을 해야 하고, 걱정할 일 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그는 인간 대부분이 걱정거리가 없어질까 두려워, 계속해서 적절한 위협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위협을 찾아 헤매는 것이 특 히 정치적 좌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은 우선 사회의 지배계층을 공 포의 대상으로 지명하고는, 계급투쟁이 약해진 후에는 그들이 말하는 억압된 자연을 새로운 위협의 희생자로 발명해 내었습니다. 따라서 세계종말론에 대한 ㄲ정은 실제로는 다만 정신 위생학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마르크스 - 그의 말은 시끄러운 잡소리에 불과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난한 이들은 스 스로 더욱 가난해진 것이고, 부자는 위협에 대한 욕구를 훌륭하게 만족시켜 더욱 부자가 된 것이니 결국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책임이 돌아가겠군요.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자신의 희생 자를 자시을 불안하게 하는 원흉으로 만들고, 자연을 오염시키는 기업은 우울증에 빠진 환 경운동가 집단이 자기를 박해한다고 설명하게 되겠군요. 프로이트 - 어쨌든 간에 정신분석가들이 발견한 것처럼 스스로 불행에 빠지려는 개인이 나 집단은 분명 존재합니다. 임상의들은 실제로, 걱정 근심 없는 인새을 추구하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찾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위협이나 불행이 주 는 압박감만이 잠시나마 그들의 긴장을 해소시켜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런 고통의 짐을 없애 주면 그들은 병들거나, 어떤 다른 새로운 불행에 탐닉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들이 직업상 실패한다거나 결혼생활에 위기가 오거나, 빚 때문에 괴롭게 된다거나 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장애를 '도덕적 마조히즘'이라고 이름붙였지요. 이러한 피학대증은 무의식적인 죄책감에 그 뿌리는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피학대증 증세 를 가진 사람은 과거 언젠가 얻은 깊은 가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 뿌리 깊 은 자책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배우지 않는 한, 이 무의석진 죄책 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어떤 어두운 압박감으로 자신을 처벌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도 이 도덕적 마조히즘에 엄습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언론인이 다음과 같은 이론을 세웠습니다. 독일인은 나치스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처벌에 대한 불안정한 욕구와 자신이 이룩한 번영을 조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핵실험, 원자력 발전소, 환경파괴, 유전공학등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가장 선두에 나서는 거라고 말입니다. 이 해석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특히 전쟁이 나 사회 및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감을 두드러지게 갖고 있는 민족의 경우도 그와 같은 죄책 감이 위협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 것일 수 있습니다. 플라톤 - 이제 두 가지 가능성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상의 상황이 실제로 정말 심각해서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나 우리 가운데 비관주의자가 상황을 제대로 본 것이거 나, 아니면 비관적 태도가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거지요. 하지만 세 번째 관점이 하나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여론조사 결과, 경제상황, 자연상태와 같은 외적인 사실이 심각하든 덜 심각하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체념할지, 자살할지, 아니면 보카치 오가 그랬듯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지, 그것도 아니면 유익한 행동을 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부처 - 내가 보기에는 셋째 관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지상에 있는 인 간들의 내면 상태와 그들의 행위를 이끄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 내는 일에 몰두했으면 합니 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 요구를 보류하고 데카르트에게 양보하겠습니다. 데카르트가 좀전에 우선 물질적인 요소를 조사하고 토론하자고 촉구했지요. 나의 관심사는 잠시 뒤로 미루겠습 니다. 2.지상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적은 없었다. 단 일곱 명의 재산만으로 전 인류의 기아와 빈곤을 구제할 수 있는데도 지구상의 88개국 에서는 국민대다수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지구를 파괴하라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 학자들은 거짓말을 일삼는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 100인이 말하는 인류의 끔찍한 미래를 우 리는 과연 피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전부 아니면 무'라는 극단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전한 몰락이나 위대한 비약은 없다. 인간이 좀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악을 바라볼 수 있다면,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을 필요도 없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멸망시킬 전쟁을 할 필요도 없 을 것이다. 절망만 하느라고 더 나쁜 재앙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르크스 -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는 군요. 나는 마조히즘, 죄책감, 처벌을 원하는 욕구 따위에 대한 잡담을 더 이상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 나를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명상 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인간은 우선 그들이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태를 알보면, 상황은 매우 비참합니다. 자기 지출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계층은 점점 더 엷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층은 더욱 거리낌 없이 자 신보다 약한 이들을 억누르는 데 자신의 힘을 남용합니다. 백만장자 358명이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다 갖고 있는 돈을 갖고 있습니다. 인류의 5분의 1이 전세계의 국민총생산과 총 저축액의 5분의 4를 소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에 88개 국가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굶주 리고 있습니다. 또 2억명이나 되는 다섯 살 이하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습니다. 가 난한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한테서 경제원조라는 이름으로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빚을 바로 그 부유한 나라에 갚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7명이 갖고 있는 재산은 전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빈곤을 없애는 데 충분합니다. 하지만 1960년 이래도 빈곤층 20퍼센트와 부유층 20퍼센트 간의 격차는 30대 1에서 78 대 1로 두 배 이상이나 증가하였습니다. 전 인류의 반 이상이 하루에 2달러보다도 적은 돈을 지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년 전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의 발전을 돕기 위한 지원자금을 국민총샌의 0.7퍼 센트 정도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5년 전 리우에서 개최된 세계정상회담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를 뜻함 - 역주)에 서 이 계획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원조는 0.27퍼센트로 감소했습니다. 산업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개발 지원 자금은 가장 낮은 상태에 도달 했습니다. 국제연합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명백한 단절이 이루어졌다고 말합 니다. 제3세계 국가에 아직도 감소되지 않고 공급되는 유일한 구호목지 물자는 바로 온갖 종류의 무기뿐입니다. 플라톤 - 마르크스가 이러한 자료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처럼, 산업국가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의 실패에 놀라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놀라지 않을까요? 마르크스 - 더욱더 신속하게 경제정상회담, 사회정상회담, 세계정상회담 등을 개최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결의문을 통과시키지만 더욱더 많은 피난민들이 물결과 폭력 및 새로운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빈곤 문제를 경시하는 자신의 통치자들을 그들은 토끼처럼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양인은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빈곤보다는 자기 사회에 서의 재분배 문제를 더 걱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국제적인 경쟁 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부자들이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임금, 과도한 사 회원조, 너무 낳은 의료비와 생계비용을 유발하는 약자들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 들은 국제화된 경제를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이 국고로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정치가 곤한한 처지에 빠져 잇는 것을 보게됩니다. 거대한 대기업은 ㅏ신의 수입을 가지고는 세금 이 적은 나라의 국민처럼, 지출을 가지고는 세금이 많은 나라에 사는 국민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재무장관을 냉대하지요. 그러는 사이에 더욱더 많은 실업자들이 전자공학을 이용한 혁명적인 생산성으로 인해 자 기가 이제 더 이상 회사에 쓸모 없으며, 많은 부채를 진 국가예산에 참기 어려운 무거운 지 이 되었다는 것을 경함하게 됩니다. 하지만 체제라는 것은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패 배자는 적응력은 모자라면서 탐욕적인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들은 잘못된 말로 기만당하면 서 자기들이 절약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왜냐하면 절약이라는 것은 결국 돈을 지키는 겁니 다. 그리고 가진 자들은 자기네는 투자하고 더욱 성공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적인 자선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시장경쟁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사치에 불과하지요. 따라서 더 이상 절약할 것이 없는 이들의 돈만 더욱더 절약되는 것입니 다. 곧 세계화 과정에서 전체 인구의 상위 20퍼센트만이 더욱 많이 벌게 되고, 나머지 80퍼 센트는 끊임없이 더욱 나빠지는 패배자가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플라톤 - 그런데 왜 그들은 그렇게 나빠지게 놔 둔단 말인가요? 그들은 왜 그런 불의에 저항하지 않나요?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아직도 강한 자에게보다 약한 자에게 더 욱 많은 부담을 요구하는 정부를 선택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평가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그렇게 나쁜 게 아니거나,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 너무 어리석거나 비 겁한 거겠지요. 옛날 우리 그리스 민주주의에서는 노예들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존재였고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민주국가에서는 국민들이 더 정의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을 텐데요. 프로이트 - 사람들은 아직도 마르크스 당신의 추종자들이 소위 사회주의 국가라는 곳에 서 저지른 재난을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우울하게 그려 낸 바로 그 자본주의가, 중국처럼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가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에서도 당신 제자 들에게 정치적 일격을 가했습니다. 당신이 영감을 불어넣은 사회 형태가 실패한 것에 대해 당신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책임이 있는지는, 앞으로 우리가 각자 차례로 자기 책임을 추 궁당할 때 마음껏 얘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서 설득력 있는 반대모델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유감스럽게도 내 제자들이 배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모델이 이미 나타났 을 겁니다. 내 제자들은 자기들이 약속한 대로 인간은 억압에서 해방시키지 않고, 그 반대로 인간들에게 금치산의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데도 자본주의 사 회의 엘리트를 능가했습니다. 마지못해서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아둔한 군 중들은 승리하는 자가 옳다고 믿고 그렇게 설득당합니다. 그러고 인간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패배자가 된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자신을 혐오합니다. 병자나 장애인들은 같은 이유로 남들 앞에 주눅이 듭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서 젊은 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당분간이겠지만 자본주의 정신 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친애하는 플라톤,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자신을 지키기보다 체념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희 생자의 수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고, 몰락하는 이들과 부당 이득자와의 틈은 더욱 벌어지 고 있습니다. 고통에는 한계선이 있으므로 곧 폭풍우가 몰아닥칠 것입니다. 데카르트 - 천천히, 천처히 하십시오. 우리는 아직도 사실을 수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런 사실을 수집하는 데 마르크스틑 우리에게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전해 주 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그 자료들을 잠시 그대로 놔 둬야겠습니다. 나는 이제 아인슈타인 이 자연과학자로서 현재 지상의 생활조건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지 들어 봤으면 합니다. 내 가 제대로 본 거라면, 많은 이들이 자연파괴를 사회적인 재앙보다 더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자연파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습니다만. 아인슈타인 - 나는 그 두 걱정이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 리해서 고찰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어떻게 지내느냐 와, 인간과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모두 사회 및 심리적인 근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우리는 더 세부적으로 고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원하다면 환경전문가들 이 지금 지상의 자여환경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요약해 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 들이 어디까지나 비판적으로 내 얘기를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데카르트 - 왜 당신은 그런 이상한 경고를 하는 겁니까? 정확한 인식을 얻는 데 우리가 자연과학자말고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그 이유를 설명하지요. 자연과학자는 바닷물과 강물의 현재 상태나 특정 지 역의 대기 상태, 특정한 대기층의 오존층 상태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그들 은 대기층의 오존층 상태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몇몇 상태 변화에, 즉 인구 증가, 에너지 소비의 증가, 지하수의 감소, 이용 가능한 농경지의 축소 등에 숫자를 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내일 혹은 내일모레에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과학적 조사가 허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자 중 적지 않은 수가 유갑스럽게도 돈으로 매수 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담배 제조 회사는 과학적 연구를 들먹이며 인간들을 우롱했습니다. 다배를 피우는 것이 전혀 해롭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결국은 비판적인 연구가가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거의 모든 산업체가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해 자신의 환경 파괴적인 생산품을 아주 환경 친화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 생 산업체는 그들이 만들어 낸 자동차가 매우 환경 보호적이라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도록 연구 가로 하여금 증명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알겠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자신이 조사한 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 줄 수 있는 정당이나 재단 또는 기관이 있을 때만 작업을 합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100명이 국제사회에 발표한 성명을 근거로 내세우고자 합니다. 이 100명이라는 숫자은 이 영예의 수상자 중 아 직도 살아 있는 이들이 과반수가 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문서를 자발적으로 작성했습니 다. 우리가 성극하고 편협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와 같이 우수한 연구자 집 단의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단ㄴ 것에 대해 프로이트가 저당성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프로이트 - 이미 노벨상 수상자도 부패하거나 미쳐 버렸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신 의견에 동의 합니다. 어쨌든 그들의 주장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들어 봅시다. 아인슈타인 - 그들은 자신의 성명을 '전지구적인 경고'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학인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층권의 오존층 감소는 지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활양식에 피해를 주거나 아예 그 런 생활양식을 없앨 수 있다. 둘째, 대기권의 공기오염과 산성비는 오늘날 이미 인간과 숲과 농작물에 해롭게 작용하고 있다. 셋째, 담수지를 분별없이 남용하여 현재 세계 인구의 40퍼센트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 다. 별도 추산에 따르면, 30년 안에 30억 인구가 물 부족으로 인한 비참한 재앙에 시달릴 것 이라고 한다. 넷째, 바다 물고기가 남획되고, 바다는 독성의 유해물질에 시달리고 있다. 다섯째, 토지 수확량과 농경지가 1945년 이래 11퍼센트 감소 및 축소되어 식량이 부족하 게 되었다. 여섯째, 몇몇 산림종이 곧 멸종될 것이며, 열대우림은 늦어도 100년 안에 대부분 파괴될 것이다. 일곱째, 아직 생존하고 있는 생물종의 3분의 1이 다올 세기에 멸종할 것이다. 여덟째, 지구는 쓰레기와 유해물질을 해결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 지구는 계속해서 증가 하는 인류에게 생필품과 에너지는 공급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플라톤 - 당신 말은 모두 너무 끔찍하게 들리는군요. 나는 무시무시한 목록이 그것으로 끝나길 바랍니다. 하지만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그 자료로부터 무슨 결론을 얻었는지 궁 금하군요. 아인슈타인 - 그들은 다음과 같이 아주 짧고 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이제 까지 해온 대로 계속한다면 그들은 지상의 생물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태대로 지속시키지 못할 것이다. 다만 가장 가까운 몇십 년 사이에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 막 기회가 제공된다." 그래도 옮기자면 그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이 자신의 종족과 지구에 사는 다른 모든 생물에 대한 책임감을 유지하기 위해 서는 새로운 윤리가 요구된다. 우리는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더 이상 남용해선 안된다는 것을 인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윤리를 통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든 저항력에 호소하여 본질적인 행동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 마르크스 - 아멘. 그러면 이들 위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먼저,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들이 지금 걱정하는 재앙 중 많은 부분을 그들 자신이 준비 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원자탄도 없었을 것이고, 체르노빌도 화학무기도 없었을 겁니다. 과학자들은 프레온 가스를 대량 생산하는 데 동의했을 때, 이미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할 거라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기업체에서 해롭지만 이익이 많이 남는 계획을 위해 그들을 고용하거나, 아니면, 군대에 인간을 죽이는 무기를 개발해 줄 때는 전혀 양심적이지 않지요. 데카르트 - 친애하는 마르크스, 당신 교리를 숭배하는 자들이 자기가 지배하는 나라에 어 떤 일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처럼 자연이 많이 파괴된 곳도 없을 겁니다. 그러 니 당신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나 우리들 중에 누가 더 탄식 하거나 책망을 듣거나 후회할 이유가 많은지를 놓고 싸우기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과 아인슈타인이 간명하게 얘기해 준 사회적, 자연과학적 전망은 이미 우리의 만남을 의미 있게 해줍니다. 물론 그 자료들이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 측면 일 뿐입니다. 나를 매우 격려해 주는 또 다른 사실도 있습니다. 즉 위대한 발전이, 예를 들 면 발전된 전자공학이 모든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고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들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미래에는 어떤 실수를 피해야 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플라톤 - 나는 생전에는 인간들이 자신의 오성을 뛰어 넘는 그런 놀라운 기계룰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인간들은 어떤 실수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소위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계속 개발하려 한다더군요. 그들은 컴퓨터가 미리 말해 주지 않 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이 피티아(미래를 점치 는 여인 - 역주)와 델포이 신전 사제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푸는 대신에, 밀애 대해 이렇게 많은 것을 미리 계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하지만 컴퓨터는 무엇이 옳고 그 른지 말해 주지 않지만, 델포이의 신탁은 우리에게 의무를 상기시켜 주었지요. 데카르트 - 그런 일은 전혀 컴퓨터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컴퓨터는 세계의 부를 어떻게 더 잘 분배할 수 있을지, 돈의 흐름을 어떻게 합목적적으로 이끌어 나갈지, 어떻게 자연자원 을 보호하면서 이용할지 말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책임자들이 컴퓨터가 말해 준 결 과를 신속하게 따르지 않는다면,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위대한 목 표이며, 바로 내가 이런 정신사조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잇습니다. 부디 나의 이 작은 교만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모두들 열정적으로 현대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당신은 소위 진보되었다는 이 사회가 오늘날의 끔찍한 무질서 상 태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또 자연을 신중하게 보호하지 않은 것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 건가요? 데카르트 -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생긴 지는 이제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 다음 세대에나 가서야 컴퓨터는 자기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될 겁니다. 아인슈타인 - 그러니까 데카르트 당신은 책임자들이 그들이 한 일을 더 정확하게 알기만 했더라도 이런 대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건가요? 데카르트 -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행한 일의 결과를 잘 알지 못했던 분야에서는 심 각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큰 발전을 거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공학을 놀라운 정도로 개선시켰고, 의학을 발달시켜 많은 질병을 극복했습니다. 아인슈타인 - 당신이 말한 것들은 새로운 지식이 유용하게 쓰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여러 분들이 방금 마르크스와 내게서 들은 상황은 인간들이 자신의 지식을 극단적으로 오용했고 또 계속 오용하고 있는 경우들을 말해 줍니다. 브라질에서 세계공동체의 모든 국가 지도자들에게 전지구적인 빈곤위기와 계속되는 자연 파괴에 대한 자료가 제시된 것이 바로 5년 전입니다. 이들은 이 회담에서 정의로운 세계질 서를 이룩하고 천연자원을 잘 보호하기 위해 2,500개 이상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21세기 의 제'를 엄숙하게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제안들은 여전히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 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방금 마르크스한테서 들은 것보다 더 적은 원조 를 받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 특별회의에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 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다시 방해했습니다. 기후 에 해로운 이산화 탄소가 단위 시간당 배출되는 양이 계속해서 최고기록을 갱신하고 있고, 기상전문가가 대기층의 온난화로 인한 엄청난 홍수와 사막확대의 위험을 계속해서 예고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또한 물고기 남획에 대한 경고도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식량기구가 최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어획고가 높았던 어장의 70퍼센트는 이미 물고기가 완전히 멸종되었거나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에너지 대기업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환경에 적합한 기술 개발과 그 적용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곧 태양과 바 람을 이용해 환경에 덜 해로운 방법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열대림을 보호하겠 다고 했지만, 그러기는커녕 그 이후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열대림 가운데 연간 13만 평방 킬로미터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상황의 전환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이 모든 죄 악은 얼마 전에 독일 철학자가 간단하게 세 문장으로 요약한 것과 일치합니다. 첫째,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둘째, 이런 상태 대신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인가는 잘 알려져 있다. 셋째, 그런데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데카르트 - 머리가 어지럽군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 습니다. 인간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 반대로 행한다면 그건 정 말 완전히 미친 짓일 겁니다. 내 생각에는 인간들이 아무런 책임감 없이 사회환경과 자연환 경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이 오산했거나 기만당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 이제 당신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 군요. 데카르트 - 단지, 건전한 이성을 지닌 인간들이 정부와 합세하여 의도적으로 자신의 몰락 을 준비하고 있다는 당신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말인가요? 아인슈타인 - 당신은 마음속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마르크 스와 나는 결코 몰락이 와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몰락이 저지된다면 그 것은 분명 미래의 컴퓨터 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데카르트 - 그렇다면 무슨 방법으로 몰락을 막는다는 건가요? 아인슈타인 - 노벨상 수상자들이 새로운 윤리에 대해 말했지요... 아우구스티누스 - 드디어 여러분들이 결정적인 지점에 도달했군요. 소위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인간이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겪고 있는 불행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혼란을 일으켜서가 아니라, 마 음의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혼란으로부터 다시 벗어나기 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가 그들에게 영원히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엄청난 과학지식을 유례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부담감을 안고 서까지 말입니다. 그들은 핵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죽일 뻔하지 않았나요. 나는 그 들이 이미, 곧 닥치게 될 엄청난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인간에게는 순수 한 새로운 지식을 악한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사악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는 인간들이 전능하고자 하는 불경스런 망상에 빠져 유전공학을 이용하여 모든 피조물의 관계를 붕괴시 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서>에 계시된 대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많은 서 구인들이 세기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요한 계시록>을 떠올리는 것이 내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된 것이며 나에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최종적으로 계산해 얻 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심오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 - 존경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나는 당신을 초대한 것이 기쁩니다. 당신은 소수 의 사람들만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 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다만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노밸 상 수상자들이 호소하는 도덕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우구스티누스 - 아인슈타인,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도덕의 호소에 가장 먼저 귀기울여야 할 이들이 그런 얘기를 마음속에 새길 준비가 가장 덜 되어 있습니다. 내가 기초를 세운 교회가 지배하는 곳에서조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인 훈 계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교회 스스로가 더 모범적으로 행동한다면 아마도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무질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지배자와 부자들 편에 어 있는 것을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따라서 최후 심판의 날에 교회 의 지도자 가운데 몇몇은, 그들을 후원하는 양심 없는 자들과 운명을 같이하여 함께 지옥에 떨어지게 되더라고 놀라지 말아야 할겁니다. 플라톤 - 조금 전, 내가 델포이 신전의 옛 신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 것이 정당했는지 회의가 드는군요. 그 당시 우리는 모호한 예언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오 늘날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통해서도 자신이 믿는 권위자한테서도 얻지 못하는 중요한 도덕 적 지향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신이 신전 사제에게 영감을 부여했다고 믿었 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에게 계시를 통해 지식을 전하는 것이 누구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지식을 전달할 기회를 주기는 하는지 또 그 짓을 자기 안 에서 다시 발견하려 하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 사는 인간들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지요.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악이, 인간들이 자기 파멸을 모면하는 것을 방해할 거 라고 예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런 예감 속에서 <성서>에 예언된 세계종말을 떠올립니 다. 인간은 이 계시된 진리에 대해 공포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더 안간힘을 다하여 그들이 바라는 마법과 같은 기적을 성취하려고 컴퓨터와 유전공학을 이용해 현자의 돌(연금술사들은 비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변화시키려 했는데, 실제로 그들이 몰두한 것은 비금속에 섞으면 금이 되는 특별한 물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 역주)을 찾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그러니까 우리는 사회적, 자연과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신앙이라는 심리적 현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성서에 묘사 되어 있는 세계종말을 우리가 새롭게 기억해 내도록 도와 달라고 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데카르트 - 내가 보기에 대다수가 이 제안에 찬성하는 것 같군요. 그러니 나도 아우구스 티누스를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에 회 의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르크스 - 나도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이 대안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 은 경건한 상상력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말하는 계시를 통한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지 어떨지 조용히 시험하고 싶겠지요. 아우구스티누스 - 많은 성경 구절을 인용해 여러분들을 귀찮게 하기보다는 본질적인 것 만을 말하는 것이 옳겠지요. 내 말을 듣는 동안 여러분들은 계속 반복해서 세계종말이 지상 에 있는 인간들의 방자한 오만에 대한 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 계종말이 신이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겁니다. 우선 젊은 나이에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궁정으로 불려 간 다니엘(<구약성서>중 <다니엘서 > 참조 - 역주)을 기억해 주십시오.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을 해석해 주었지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돌이, 쇠와 구리와 진흙과 은과 금으로 된 사람 모양을 한 어떤 것을 으스 러뜨리는 꿈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결국에 모든 왕국이 멸망하게 되지만, 신이 영원한 제국을 세울 거"라고 말입니다. 벨사자르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다니엘은 자신의 꿈속에서 하느님을 모독하고, 성인들을 죽이고, 축일과 율법을 바꿀 한 왕이 등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한 해하고 두 해에 다 반년 동안이나 지속될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재판을 받아 이 왕의 통치 는 끝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 아래 모든 왕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에게 모두 돌아올 것이고, 그 나라는 영원하며, 모든 나 라가 그 나라를 섬기고 복종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다니엘에게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아라. 종말 의 시대가 다가오니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모두 터뜨리실 세상 끝판에 일어날 일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대천사는 나라가 끝장나게 되었을 때 불손하고 부정직한 왕이 나타나 많은 것을 파괴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천사가 말하기를, "그 왕은 인간의 도움 없이 멸망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대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나타나 말하길, 한 거 만한 왕이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왕은 성전을 모독하고, 매일 드리던 제사를 없애며, 끔 찍한 참상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왕은 끝을 보게 될 것이며,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종말의 시대에 대비하여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자신을 순결하고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현자들에 대한 얘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땅 아래에서 누워 자고 있는 많은 이들이 깨어 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영원한 삶을 얻게 될 것이고, 다른 이는 영원한 치욕을 입게 될 것 이다"라는 것이죠. <요한 계시록>에 이 드라마가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지상에 살 고 있는 인간들이 <계시록>에 묘사된 탕녀 바빌론의 얘기 속에서 자신을 재인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도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치장을 하고 손에는 금으로 된 술잔을 들 고 있는, 온갖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불결한 창녀로 비유됩니다. 천사는 그 도시를 악마의 숙소, 죄악에 물든 정신과 온갖 불결하고 혐오스런 동물들의 감옥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민 족들이 매춘이라는 포도주에 취했고 지상의 왕들은 그녀와 간음을 했으며, 지상의 상인들은 창녀의 풍만한 육체로 부자가 되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죄가 하늘에까지 닿 아, 신이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 도시는 풍만함의 여왕으로 자 처하며, "나는 고통이라는 것은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서에 씌어 있기를 "그로 인해 어느 날 그들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니, 죽음과 고뇌와 굶주림을 겪게 되고, 불에 타 멸망하리라. 주인이신 신은 강하시니, 그들을 심판하리 라" 했습니다. 친구들, 여기서 바로 지금 서구 사회의 대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분별없는 오만과 도덕의 타락이 떠오르지 않나요? 인간들은 그때처럼 "우리는 고통을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 니까? <계시록>에 묘사된 것처럼 인간들은 순종과 외경심을 귀찮은 족쇄인 양 벗어 던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인간들은 부패한 자들에게, 도덕적 타락을 수단으로 풍요한 부를 쌓아 올리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고통이라는 것은 보지 않을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진보라는 망상의 모토 아닌가요? 모든 고통이 없어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고통 을 견뎌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자들이 숨거나 가능하다면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야 한다는 진보 말입니다. 하지만 삶의 위대한 책에 모든 죄가 다 씌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씌어 있는 대로 죽은 자들도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죽 음과 죽음의 나라는 그곳에 머물던 죽은 자들을 토해 낼 것이고, 죽은 자들은 각자 자기가 저지른 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지만 그 계시는 새로운 땅과 새로운 하늘이 나타난다는 약속으로 위로합니다. 그리고 새롭고 신성한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해 치장한 신부처럼 준비하고" 신에 의해 하늘에서 내 려올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저기를 보라, 인간 곁에 있는 신의 오두막을 보라! 신은 인간 곁에서 살게 되고, 인간들은 신의 국민이 되리라." 데카르트 - 아우구스티누스, 하지만 보십시오. 세계종말이 아주 종종 그리고 아주 극적으 로 여러 사람을 통해 <성서>속에 예연되었지만 그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 살 치하에 살았던 다니엘은 2,500여년 전에 죽었지만 세계는 아직도 존재합니다. 요한이라 불리는 계시록의 팔자가 묘사한 매춘녀 바빌론은 로마를 의미하는 거였지요. 하지만 로마는 나쁜 시기를 겪긴 했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사탄의 암흑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비록 교황 이 그곳에 거주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순결하고 신성한 곳으로 정화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지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공포소설로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 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만 두렵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 로 이 두려움이 그 당시에 그런 극적인 세계종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다고 생 각합니다. 나는 어쨌든 명백하고 반박할 수 없는 근거에 의해 증명되는 것만을 진리로 받아 들이겠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입니다. 프로이트 -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죄책감 때문에, <성서>에 묘사되어 있는 세계종말에 서 자신의 내적 상태의 모범을 찾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고대의 표상을 제멋대로 원자탄 재해와 화학물질 사고가 일어나고 오존층 파괴로 암 환자가 크게 증가되는 현대의 시나리오로 번역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수도를 죄악이 가득 찬 바빌론 이라고 부 르고, 자기 내부에 탕녀 바빌론의 어떤 성질이 숨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어쨌든 현대의 장면들은 <성서>에서 예언한 내용의 첫 번째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부분이 빠져 있는데, 바울이 데살로니카인들에게 약 속했던 세계부흥과 해방에 대한 전망입니다. 대천사와 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영원히 주의 곁에 머물기 위해 구름 위로, 주의 하늘로 인도된다는 것 말입니다. 프로이트 - 만약 인간이 천국과 같은 정보사회와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목가적인 인공세 계를 대용물로 보려 하지 않는다면 맞는 말이지요. 어쨌든 신이 하늘에서 내려 보내 줄 새 롭고 신성한 예루살렘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 - 나는 <요한 계시록>을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구체적이고 우주적인 재앙이 예언되어 있는데,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엄청난 파괴를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미 일어났어야 할 사 건이거나 언젠가 곧 일어날 사건이다. 둘째, <성서>에 묘사된 대로 도시가 파괴되고,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은 모든 질서가 혼돈과 폭력으로 침몰한다는 문화의 내적 해체를 상징한다. 셋째, 이 몰락은 이미 현존한다. 그것은 그언젠가 일어날 일이 아니다. 인간들은 바로 지 금 자신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근본적으로 변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시험을 치러야 할 순간을 맞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 몰락은 이미 현존하며, 도처에 그 몰락을 재촉하는 바빌론의 사악한 힘 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 당신이 세 번째로 해석한 게 맞습니다. 진보한 나라의 국민들은 어떻게 더 정의롭고 자연 친화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 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 있는 악령이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타락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은 당신이 말한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것에 예속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들에게 악은 쳐부수어야 할 적이고, 아직 고치지 못하거나 예방하지 못하는 병이며, 아직 없 애지 못하는 열성 유전인자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극복한 각각의 개별적인 악, 즉 독재정치, 살인적인 전염병, 해로운 유전자 같은 것이 또 다른 새로운 악을 성장시킨 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자신 안에 있는 악을 투사한 증오의 대상을 찾아내는 한, 그들은 서로 참을 수 있을 만큼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들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악한 면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참회하며 뭔가 바꾸려 할 때 비로소 그들은 자신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기에는 멀었습니다. 프로이트 - 나는 당신 말에 동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중에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목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나는 당신을 다음과 같이 비난할 겁니다. 당신은 그 악 이라는 것을 너무 강하게 묘사해서 인간들이 그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인간은 그 악이라는 것을 외부의 것으로 간주하고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 다. 인간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입니다. 의도적으로 당신 교회 는 그리스도라는 이름 아래 저지른 정복전쟁에 의한 집단학살은 제외하고라도, 이교도와 마 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시킨 사람 수가 300만인지 400만인지, 아니면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600만 명인지 통계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 나중에 변명하겠지만, 교황 그레고리 9세가 이교도를 화형시키라고 승 인했을 때 그 근거로 삼은 것은 내가 아니라 바울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 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최후 신판의 날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받으려면 음탕한 자들의 육신을 사탄에게 넘겨 주라고 충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교회가 비록 늦기는 했지만 스스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라는 죄악을 멀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다신들 다는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어둠 속으로의 타락만 보고 있는 반면 에, 나는 <요한 계시록>을 읽어 알게 된 위대한 구원의 희망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공자 - 나는 오랫동안 여러분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지상의 물질적 상태를 아주 정확하게 개관하고는, 결국에는 인간들이 몰락의 힘에 대항할 대응력을 키우기에는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다고 결론 짓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대응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가요? 무엇이, 뛰어난 정신을 지닌 인간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환하는 것을 방해합니까? 비전문적이고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에 대해 내 가 갖고 있는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당신들 서양인들은 완전한 몰락을 상상하거나 아주 위 대한 비약을 상상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인정하 든 안 하든, 당신들이 생각하는 미래상은 항상 극닥적인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지옥 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언젠가 프로이트 당신이 표현했던 대로, 거의 전능한 인위적인 신 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객관적이고 정신이 말짱한 것처럼 행동할지 모르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전부 아니 무'라는 생각이 깊숙이 박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나는 주위에서오직 멸망과 재앙만을 보았습니다. 나는 "좋은 기질이 보호 되지 않고, 배운 것이 적용 안 되며,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무에 맞게 키워지지 않으며, 나쁜 습관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개선시킬 능력이 없다. 이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한탄했습니다. 때때로 나는 자신감을 잃고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자 신의 잘못을 볼 줄 알고, 내면으로 향하여 자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고 고백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나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인류가 멸망할 거라거나 세계의 종말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 니다. 불쾌한 시대가 오고 가죠. 하지만 어떠한 상황도, 각자 기여할 수 있고 또 기여해야 하는, 개선에 대한 희망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가망이 없지는 않습니다. 당신들 서양인은 이 희망을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발전을 통해 영원으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아니면 그 것에 실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대안으로 완전한 몰락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인들 은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 생명을 임의로 배양할 수 있게 되면 전능에 이르고 불사신에 가 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런 오만함 때문에 거대한 혼돈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라고 있는 거죠. 그들이 이런 딜레마에 빠진 것은 데카르트 이래로 물질세계를 계산하는 것을 배우는 동안 자기 자신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프로이트와 같은 극소수의 예외 가 있었지요. 하지만 뇌 세포와 뇌 세포의 화학적 및 전기적 기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 기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 면서부터 그들의 인식은 다시 파묻힐 위험을 맞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 - 존경하는 공자, 당신은 우리 대화가 부딪친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는지 암시를 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서구인들은 그 사이에 물질세계의 법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지식을 적용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 만 그에 비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 동기에 대해 아는 것은 훨씬 적습니다. 우리는 여기 위에서 점점 더 지식은 나아지는데도 인간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을 확 인하기는 했지만, 그들 안에 존재하는, 그들을 잘못된 행위로 이끄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 가 하는 것은 이제부터 더 정확하게 탐색해야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이 수백 번 반복했고 도그마로까지 만든 원죄론은 너무 단순하고 대략적이어서 우리는 만족할 수 없군요. 아우구스티누스 - 내 이론이 당신에게 너무 대략적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너무 고통스 럽기 때문입니까? 아인슈타인 - 당신은 아딤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악용한 이래로 인간 안에 악이 숨어 있 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저지른다고 말합니다. 당신 의견에 따르면 신은 인간의 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게 되지요. 아우구스티누스 - 아마도. 플라톤 - 나는 교부의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제우스 신을 선한 것뿐만 아니라 악한 것의 후원자로 묘사한 것은 호메로스의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데이만토 스에게도 말했듯이, 그 어떤 시인도 신성을 악한 것과 결부시키는 것은 허락받을 수 없습니 다(플라톤의 <대화편> 중 <국가> 참조 - 역주). 기껏해야 벌이 갖는 유익한 효과를 위해서 만이 인간은 신에게 책임을 돌리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나는 여기서 신학을 논하려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말은 내게 생각할 거리 를 줍니다. 그는 서양인들이 중간 단계나 조정 없이 항상 빛과 어둠의 대립에 대해서만 생 각하는 절대주의를 지적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라면 인간들이 스스로 악에 대항 하기로 결정한다 해도, 그들이 최후 심판의 날에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피할 수 있을 지 어떨지 전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 - 나는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신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언자 사무엘이 "야훼 자신도 한 번은 다윗을 나쁜 짓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나보다 먼저 살았던 독일 철학자 야콥 뵈메는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며, 악 자체도 신이 만들었다 고 확신했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악을 배경으로 두드러질 때, 즉 악으로부터 빛을 발할 때만 이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우리 동료 프리드리히 헤겔도 역사의 세계과정 에서 악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이 두 불멸의 영혼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나 자신에게도 이 주제가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아닙니다. 악에 관하여 내 흥미를 끄는 점은 다만 악에 속한다고 하는 열정이 어떻게 육체 안에 생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 인간들이 "신의 창조 안에 악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야콥 뵈메의 말 을 믿는다면, 그들은 악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고, 악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을 텐 데요.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대로 악이라는 것을 단지 인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면, 인간은 쉽게 절망할 것이고,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악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 - 이로써 여러분은 인간은 종종 과중한 죄책감에 눌려 새로운 죄를 범하게 된 다는, 역설적으로 보이는 나의 발견으로 되돌아오는군요. 인간들은 자기가 저지른 죄가 발견 되어 벌을 받도록 꾸밉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속죄행위가 양심의 가책보다 덜 두렵기 때문이지요. 아인슈타인 - 나는 야콥 뵈메의 사상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즉 인간들이 좀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악을 바라볼 수 있다면, 끊임없이 외부에서 적을 찾을 필요도 없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무기를 가지고 싸울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들 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믿고 악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의 문제로 보면, 그들은 자기 내면의 위기를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살인적인 행위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악이 너무 악박하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와는 달리 더욱더 이런 행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우리의 존경하는 친 구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는 것보다는 야콥 뵈메를 따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부처 - 아니면 나의 교리를 따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왜냐하면 나도 역시 악과 선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심연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후손 들은 이런 나의 생각을 이어받았지요. 내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내게는 데바닷타라고 하 는 사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야망이 너무 크고 권력에 굶주려 있었지요. 내가 성인이 되 었을 때, 그는 나 보고 자기를 내 후계자로 임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 자 그는 분노에 차서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물론 실패했습니다. 그벌로 그는 병들게 되었지 요. 하지만 후에 내 추종자 사이에서는 데바닷타가 끝없이 긴 정화과정을 거치면 언젠가 부 처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자랐습니다. 결론은 악은 결코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한번 악의 손에 빠진 자라 도 오랜 정화과정을 통해 그 악에서 해방되는 것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절 망할 필요도 그로인해 자신을 더 나쁜 재앙 속으로 몰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아인슈타인 - 나는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이 격렬하게 항변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닏. 하 지만 우선은 자제해 주세요. 나중에 서로 비난하고 책망하고, 반박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겁니다. 당신이 잠시 진정하도록 하기 위해 프로이트도 악이라는 것을 파괴충동이라는 이름 아래 초심리학적인 신화로 고양시킴으로써 인간이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 주장에 대해서 프로이트도 곧 증명을 해야 할 겁 니다. 3.동양적 가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경쟁에서 낙오할까 봐 앞만 보고 뛰는 사람들. 앞선 세 대의 문화를 유통기한 지난 상품 취급하는 젊은 세대들의 조급함. 자연을 형제, 자매라고 부 기보다 자연의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오만. 서양인들은 예전보다 훨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존재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고자는 역사란 계속 자라나는 고목과 같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나무에 난 작 은 싹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후손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을 거이라고,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처도 말한다. 홀로 자신과 마주 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서 어떻게 삶과 존재의 의미에 다가갈 것인가. 아인슈타인 - 인간의 내부세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사이에 갑자기 격렬한 논쟁이 불붙는 군요. 우리는 조심스럽고 이성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대신에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이 중요한 듯 서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어디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 를 찾을 수 있는지 암시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공자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공자는 우리 서양 인들이 물질적인 것을 탐구하고 지배하는 데 모든 주의력을 쏟게 된 이후 자기 자신을 놓쳤 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법칙의 수수께끼를 벗겨 내고, 기술을 이용하여 자연법칙을 지배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종이 갖는 의미와, 인간이라는 종이 수행해 야 할 과제에 대해 묻는 일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 서양인들은 예전보 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한계가 무엇인지, 도대 체 자기가 왜 존재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프로이트를 초대한 이유는 프로이트가 최 소한 다시 자기를 탐구하는 데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몇 안 되는 서양인들 중의 한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프로이트의 노력을 통해, 인간들이 자아인식에 있어서 아주 무지한 미개인으로 퇴보했으며, 서구문화가 자연과학과 기술면에서 이룩한 업적에 비해 뒤져 있는 심리법칙과 도덕법칙에 대한 연구에서 최대한 빨리 그 격차를 줄이거나 보충하는 것이 얼마 나 시급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구인들은 모든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 야 자신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 당신은 우리가 이 결핍을 주목하게 해주었습니다. 서구 문화 태생인 우리에게는 별 로 친숙하지 않지만, 당신 고향에서는 2,500년 동안이나 생생하게 유지되어 온 당신의 지헤 로부터 우리가 뭔가 얻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공자 - 그건 여러분들이 '유교'라고 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가르침을 많이 보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부분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변질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서구사회에 서 예수의 가르침이 겪었던 일과 비슷하지요. 아인슈타인 말대로 내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자료를 모으는 동안 떠 오른 몇 가지 생각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이 나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선 나라는 사람과, 나를 움직이는 행동 동기에 대해 말해야겠군요. 나는 일종의 윤리학자면서 동시에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좀 비슷하다고 할 수 있 지요. 물론 나는 플라톤 당신처럼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꿈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배군주의 조언자로 일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 다. 나도 당신처럼 아주 잠깐이나마 관리로 일했지만 곧 쫓겨낫습니다. 나는 죽기 바로 전까 지도 "현명한 지배자도 나타나지 않고,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나를 스승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구나!" 하고 한탄했지요. 현명한 부처나, 내가 생전에 한 번 만날 기회를 가졌던 존경할 만한 노자와는 달리 나는 은둔생활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사회 중심에서 활동했습니다. 나는 공동생활의 질서를 향상시키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열 렬한 개혁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통의 전승자였습니다. 아인슈타인 -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하지요. 공자 -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나는 역사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특히 우리 고대 역사에 말입니다. 나는 평생 동안, 우리 공동체를 설립한 요, 순, 우 임금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가 졌지요. 하지만 내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내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원칙을 발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역사란 계속 자라는 고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무에 인간들이 작은 싹을 틔 운 것이고, 따라서 인간은 이제까지 그 나무의 성장을 결정해 온 질서에 순응해야 합니다. 조상의 업적과 관습을 연구하고 존중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하게, 우리를 교만 과 과대망상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게되면, 자신의 삶에 지나 치게 집착하거나 부당하게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현재를 사는 이들은 수없 이 많은 선대들이 물려준 유산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후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관리하고 있는지 항상 물어야 합니다. 내가 제대로 본 거라면 서양인들은 바로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치 역사의 의미를 자기 자신의 짧은 삶의 여정 동안이나, 아 니면 적어도자신의 아이들 세대에서 성취할 수 있는 듯 말입니다. 선조와 후손에 대한 책임 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도 별로 고려할 줄 모른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와 후손뿐만 아니라 동시대인으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은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내 가 보기에 서양인들은 자기 스스로 창조되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불사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세계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미치광이 같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비상으로 여기며 추구하는 것이 나에게는 세대라는 고리 속에 역사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소박한 역할을 벗어 나는 일로 보입니다. 나로서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선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도 후손에게 그와 비슷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은 고무적인 전망을 포기하는 것은, 우둔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표현이 지나쳤다면 용서하십시오. 프로이트 - 그런 전망을 중요하게 여기려면 우선 한 번쯤 후손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합니 다. 하지만 인간들이 자기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겨 후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사후의 치욕같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게 되죠. 플라톤 - 존경하는 공자, 잠깐 끼어들겠습니다. 나도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고대 아테네에서도 선조와의 연대의식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나도 당신의 경외심에 기 꺼이 동조합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조상숭배와 제물을 바치는 제식을 보존하자고 말 해 왔고, 많은 기회를 통해 나 자신의 조상숭배를 표현했습니다. 나는 문서로도 다음과 같은 권고를 남겨서 조상숭배를 표명했습니다. "조상을 계속 기억하고, 우리가 가진 물질 가운데 적절한 몫을 조상에게 바치는 일을 중단하지 말라." 하지만 아직도 까다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선조가 자기가 저지른 죄와 태만으로 후손에게 짐을 지우면 어떻게 합니까? 공자 - 물로 그런 죄악은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상과 특히 부모가 저지른 잘못은 밀 에 그 자식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됩니다. 새 세대가 짐스럽다고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부모 없이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 은 그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잘못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끌어 내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 공자,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공경한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기에 봉건주의를 고수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당신이 젊은이들에게 자기 해방보다 순종을 가르쳤다는 점은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복종으로부터는 그 어떤 변화나 미래를 새롭게 형성할 용기가 생기지 않기 때 문입니다. 공자 - 나에게는 충성이라는 거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모 범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성장하는데도 모범이라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교육을 위해 모범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 습니다. 인간은 모범을 경외함으로써만 개선될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인물을 경외하면 그들 의 특징이 자신 안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일찍부터 모든 것을 자기 혼자 힘으로 알 수 있고 또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비 록 가장 최근의 기술적인 기구들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안다고 해도 그들은 작고 어리석은 자 로 남게 됩니다 그들이 더 이상 모범적인 인물을 찾지 않으면, 그들은 더 이상 모범적인 인 물을 만들어 낼 수도없습니다. 더 이상 훌륭한 군주나 국가 지도자를 얻지 못할 것이고, 그 렇게 되면 지금의 서양인들처럼, 지도층에 평범하거나 심지어 부정직한 정치가밖에 없다고 한탄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한탄할 자격이 없습니다. 법률과 규정은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다만 외적인 규칙입니다. 그 규칙들을 위반하 게 되면 외부로부터 경고를 듣거나 벌을 받게 되죠. 하지만 이를 위반하고도 벌을 받지 않 고 넘어간다면 그들은 심지어 내적 만족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가 따르는 모범을 배반한 사람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비난을 듣게 됩니다. 그는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이 수치심은 그 사람 마음속에 더욱더 깊데 각인되죠. 여러분 서구인들이 여러분들이 가진 진보적인 법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보다시피 여러분의 법은 사회적 인 무자비함과 부패와 폭력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재빨리 법을 강화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청소년들이 자기 내면에서 제동을 걸어 줄 모범을 찾거나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가 관찰하기로는 여러분 문화권의 청소년들은 많은 업적을 남긴 정신적, 도덕적 권위자 들을 본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또 부모세대에 반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건설하려 고 부모세대를 가능한 한 빨리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처럼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사회 는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열여덟 살 먹은 아이는 더 이상 마흔 살 먹은 사람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또 예순살 먹은 노인 때문에 자신이 윤택해졌다고 느끼기보다는 그 를 짐으로 느낍니다. 생산품을 근대화하려던 욕망은 인간을 근대화하려는 욕망으로 바귀었 습니다. 노인들은 기술에 뒤쳐졌기 때문에, 인터넷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행에 뒤 떨어진 존재가 되죠. 즉 경쟁사회에서 노인들은 생산적인 젊은 세대가 자신을 아직 구석으 로 내몰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부양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당신이 내가 미래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면 나는 무척 놀랄 것입니 다. 노년층은 바로 젊은이들이 곧 맞이하게 될 모습이 노인들에게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젊 은이들은 더 이상 노년층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 곧 자기에게 닥칠 가치저하 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가 닥쳤을 때 결연히 적응하 지 못하고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젊은이들은 다음날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합니 다. 그들은 시뮬레이션으로 먼 미래의 발전을 계산하기는 하지만 바로 지금의 순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공자 당신이 방금 말한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그래 도 우리 친구 마르크스가 던진 비판적인 질문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습니다. 인간이 과거만 돌아보면 도대체 어떻게 개선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 - 물론 새로운 것을 감행하고 시도해야지요. 하지만 당신 서양인들은, 하던 일을 멈 추고 뒤를 돌아보면 시장경쟁에서 탈락할까 봐 곧바로 공포에 빠져들게 됩니다. 물론 오늘 날의 제품이 더 낫다면 어제의 나쁜 제품을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서양 인과 우리 동양인이 모두 걱정하는 것은, 그 사이에 서양인들 자기 자신과 공통의 과제 대 한 방향감각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나는 인간은 우선 한 번쯤 자기가 어디서 왔고, 전통과 관습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전통과 관습 가운데 어떤 것을 보전해 왔고 어떤 것을 거부 했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승된 것 가운데 쓸모 없는 것도 있지 만 좋은 것도 있습니다. 좋은 전통을 발견하고 강화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려면 많은 시간 이 걸립니다. "많은 것을 듣되 그 중에 좋은 것을 선택하여 따르는 것, 많은 것을 보되 그것 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적어도 지혜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현인이 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정립되었으며, 마흔 살에는 더 이상 의혹을 갖지 않았고,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는 귀가 열렸고, 일흔 살에 는 내가 원하는대로 행해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그 잘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실현시켜야 가치 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서양인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리리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들은 아마도 내 사유에는 활동성과, 전진하고자 하는 욕구와 미지의 지역을 정복하고자 하 는 의욕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분명 나는 너무 정적이지요. 이 런 점에서는 여러분들이 나를 비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놓칠까 봐, 다른 이 에게 추월당할까 봐 끊임없이 걱정하는 여러분 서양인들을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시달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런 걱정이 여러분들을 곤궁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이런 조급함 때문에 자신의 삶의 본질을 완성하는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내분에서 척도와 중요을 발견하 지 못합니다. 나는 그 척도와 중요을 인간의 본질인 인이라 이름지었지요. 플라톤 - 나도 거의 병적으로 보이는 이 조급함 때문에 불안합니다. 서구문화는 자기 민 족은물롱니고 주변 민족까지 이 조급함으로 몰아갔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 조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많은 발명품은 다만 시간을 버는 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모두 들 더 빨리 계산하고, 더 빨리 생산하고, 더 빨리 이동시키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당장에는 전자공학과 항공기가 인간을 가장 먼 곳까지 연결시키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을 들으면, 인간이 이렇게 해서 얻어 낸 시간을, 일하는 데 이득이 되거나 단순한 오락을 얻는 데 이용할 뿐이며, 서로에 대한 그리고 인간이 실현한 가치에 대한 이해심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보기에는 과학의 급 속한 발전이 인간의 흥미를 천박하게 만들고 인간의 노력을 감소시키는 것 같습니다. 공자 - 어쨌든 부유한 나라에서는 가장 바쁜 사람이 일시적으로 큰 물질적 이득을 얻기 는 했지만, 우주의 영원한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과는 더욱 멀어진 듯 보입니다. 그들은 세대의 고리 안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어떻게 조상의 유산을 관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기반을 마련해야 할지 그리고 자연이 자신에게 무엇을 허락하고 무 엇을 금지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전체의 균형을 좌우하는 두 개의 중요한 세계원리인 양과 음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죠. 공자 - 양은 능동적이고 생성적인 원리인데 남성적인 원리라고도 합니다. 음은 그와 반대 로 여성적인 원리오 헌신적이고 수용적이며, 덮어 주는 원리입니다. 여러분들 문화는 그대로 들어와서 무분별하게 양에만 몰두하였고 음은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숨돌 릴 틈도 없는 행동주의로 뒤덮였고 인간은 맹목적으로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강한 것에만 도취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온화함과 견손함을 제공해 주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연결해 주 는 위대한 네트워크에 편입되도록 눈과 귀를 열어 줄 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양의 원리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폭력과 무자비함이 증 가하게 됩니다. 음이 더 이상 관용과, 따뜻함과 헌신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더 차갑고 더 딱딱하게 될 것입니다. 플라톤 - 당신이 설명해 준 그 두 가지 원리를 뭐라고 부르든, 서양인들은 불행으로 치닫 는 맹목적인 활동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본다는 생각, 다시 말해 서양인들은 끊임없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당신의 말에 납득이 됩니다. 그들은 수동성을 단순히 결핍 으로, 마비로, 무력감으로 결국은 죄로 보고 수동성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계시되는 본질적인 인식을 모두 놓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내가 늘 말했듯이 대부분은 단지 상기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 당신은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부여되어 인간에 의해 도덕적 원칙으로 발견 되는 가치척도를 말하는 건가요? 플라톤 -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우리 안에 근본적인 진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시 간의 흐름에 따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모사되어 결국 발현된다고 믿습니다. 나 는 심지어 그로부터 그 영혼이 탄생하기 이전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 - 나도 점차 양심의 소리에는 체질적인 면, 다시 말해 선천적인 기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판적인 우리의 천상 동료 쇼펜하우어는 잘 알려진 대로, 모든 도덕의 기본충동, 다시 말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키는 동정심은 모 든 인간에게 있는 고유한 것으로 특히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강하게 표현된다고 주장합니 다. 공자 - 이로써 우리는 다시, 여러분 서양인들은 항상 다른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에만 몰두하며, 여전히 일방적으로 양만을 신봉하 고 있다는 나의 단언으로 돌아온 것 같군요. 나는 여기서 아인슈타인 당신이 말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말은 내 마음에 쏙 들더군요. 당신은 언젠가 오늘날의 문제는 원자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말했었지요. 나는 당신 말이 결국은 '음의 원리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 - 어쨌든 우리는 서양인들이 공공연하게 여성적인 원리, 즉 당신이 '음'이라고 이름붙인 원리를 더 이상 양에 대한 필수적인 대응력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행동 주의적인 행위가 억제할 수 없는 분노로 나타난다는 당신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러나 당신이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악을 묘사하는 새로운 방법일 뿐입니다. 그리고 서양의 악덕이 당신 고향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 것에 큰 희망을 걸 수가 없습니다. 공자 - 여러부들이 착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중국인들이 서양인들의 잘못 을 모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의 정신이 중국인의 영혼에 깊숙이 배어들었다고는 믿 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이 여러분ㄷㄹ의 기술을 사고, 여러분들의 기계를 모방하기는 하지요. 그리고 불행하게도 끔찍한 핵무기까지 만들고 말았지만, 여러분들이 중국인들ㄹ에게서 서양 인이 갖고 있는 세계종말에 대한 공포를 찾는다면 헛된 일입니다. 이 거대한 민족은 이제까 지 외부 문화와 외부 지배체제의 모든 침입을 소화시켜 결국은 다시 자기 고유의 옛 전통으 로 되돌아갔습니다. 중국인은 몽고족의 정복과 만주족 황제의 정복도 이겨냈고, 가장 끔찍했 던 전쟁과 대학살도 이겨냈으며,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낸 마오쩌둥 치하의 문화혁명도 극 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중국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사회질서 속에 마르크스주의 요소와 자본주의 요소 를 융합해 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항상 '이것 아니면 저것'하 는 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혼란스럽겠지만, 철저하게 권위적인 지배체제 가 자본주의적인 경쟁 원칙과 잘 화합하고 있습니다. 또한 50개가 넘는 소수민족으로 이루 어진, 곧 15억 인구가 될 중국의 사회과정이 서양과는 완전히 다른 규칙들에 따라 움직이고, 여러분들이 지금 피상적으로 경함하고 있는 구조변화가 중국에서는 고대의 정신을 손상시키 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어쨌든 마오쩌둥이 죽은 이래로 많은 곳에서 나의 도덕론이 다시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먼저 아시아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나라에 퍼져 있는 재외 중국인한테서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 사회의 몰락과 종말론적인 불안에 대한 우울한 얘기들을 들은 후에 당신의 확신을 들으니 기분이 정말 상쾌해지는군요. 나는 영웅주의적인 전쟁과 폭력적인 정복이 아 니라 평화로운 질서와 관습으로 움직이는 국가를 주장하고, 심지어 음악이 청소년 교육을 위해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당신 철학을 뿌리로 둔 민족이 좀 부럽습니다. 하지만 당신 철학에는 서구적 의미의 천국과 지옥의 개념도 없고, 성인과 이교도의 개념도 없으며, 또 당신이 아무런 기적도 이루어 내지 않았고, 죽을 때도 십자가에 못박힌다거나 부활한다 거나 지진을 동반한다거나 신의 북소리를 동반하는 등의 극적인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당신 철학이 우리들 나라에는 유입되지도 않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 서양인들의 낙원과 같은 진보에 대한 환상과 세계 종말적인 재앙에 대한 기 다림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중국인처럼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군요. 하지만 누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겠습니까?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우월하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낯선 성향을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이 세계 각 곳에 공급 한 현대적인 기계를 무기로 중국인으로부터 그들의 모든 전통적인 신앙을 떼어 낼 새로운 신을 수출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까? 자기 고유문화의 핵심적 요소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낯선 것을 습득해 내는 중국인의 능력 을 서양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공자의 말이 옳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자는 서양 출신 이 우리들이 우리 나라에서 나온 파괴적인 에너지의 규모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게 아 닌지 숙고하게 만듭니다. 혹시 중국인들이 100년 뒤에는 서구인들이 현재 손상시키고 있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을 다시 복원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문화가 붕괴하면서 전세계가 몰락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서양인이 빠져 있는 과대망상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공자의 암시적인 자기 확신에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오늘날 의 기술혁명은 지난 2,500년 동안 있었던 어떤 외부 영향보다도 중국인의 생활양식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1906년 만주왕조 때처럼, 사람들이 공자 당신을 하늘과 땅의 신성과 대등하게 볼지 어떨지 나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두 번째로, 최근에 100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여서 티베트를 복속시킨 일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당신의 정치적 도덕론이 타락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여기 위에서 지구에서 가장 평화로운 문화를 파괴하 려는 끔찍한 시도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끔찍한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외부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 고향의 권 력자가 지닌 정복욕에 의해 일어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