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용기를 심어주는 꼬마 배꼽 지은이:오쇼 라즈니쉬 엮으니:한용태 발행인:김갑선 발행처:도서출판 학영 발행일:1992년 5월 1일 입력일:1999년 8월 2일 입력자명:김미주 교정자명:임종욱 점역출판:부산맹인점자도서관 @ff 차례 제1부 루미의 이야기 제2부 불쌍한 신부 제3부 도둑의 아들 제4부 아름다운 사람 제5부 아버지의 편지 제6부 흰 빵과 검은 빵 @ff 제1부. 루미의 이야기 @ff 루미의 이야기 여기 수피의 성자 루미의 이야기가 있다. 언제인가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여인은 루미에게 말했다. "루미! 아무리 꾸짖어도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설탕을 너무 많이 먹습니다.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듣겠다는 것입니다." 루미는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3주 후에 다시 오너라." 여인은 매우 놀랐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 주면 될 것을 3주 후에 다시 오라니, 루미는 훌륭하신 분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쉽게 풀어 주신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일을 3주일씩이나 미루다니...." 그로부터 3주일 후에 여인과 소년은 다시 루미를 찾아갔다. 루미는 말했다. "3주일만 더 기다려라." 여인은 말했다. "왜 3주일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 루미는 말했다. "음, 3주일만 더 기다려 그 후에 다시 오너라." 3주일 후 그들이 다시 왔을 때, 루미는 말했다. "소년이여 앞으로는 먹지 말이라." 소년은 말했다. "루미 선생님, 잘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설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여인은 물었다. "선생님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 말씀을 해주시는데 왜 6주일이나 걸려야 했습니까?" 루미는 말했다. "나도 설탕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이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짓이다. 그래서 나는 3주 동안 설탕을 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3주일은 더 시도해 봤다. 이제 나는 설탕을 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다.--소년아, 너는 설탕을 끊을 수 있다. 보아라 나이든 내가 설탕을 끊는데.... 너는 젊다. 너는 앞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남에게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실행하기는 너무 어렵다. @ff 깨달음 어떤 스님에게 한 학생이 물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왜 너 자신의 본성을 묻지 않는가." 그 학생은 다시 물었다. "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은밀한 동작을 본 일이 있는가?" 학생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도대체 어떤 것이 은밀한 동작입니까?" 이 말을 들은 스님은 잠깐동안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였다. "이것이 바로 은밀한 동작이다. 그대여 ! 두 눈을 뜨고 사물을 보라. 그대여 ! 두 눈을 감고 사물을 보라. 그 사물은 안이면서 동시에 밖이다.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갖지 말라. 그 둘에는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스님이 그의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 보인 것은 커다란 암시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깨닫는다면 너희는 이제 도달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 내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내일은 결코 지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ff 음식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형은 하나의 그릇에 먹고, 동생은 두 개의 그릇에 먹었다. 두 개의 그릇에 먹는 동생은 동생의 음식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한 그릇에는 쓴 음식, 다른 한 그릇에 단 음식을, 그러나, 한 개의 그릇에 먹은 형은 단 음식과 쓴 음식을 섞어 먹어야 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동생은 점점 쇠약해져갔다. 그러나 형은 건강해져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동생은 병이 났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생은 형에게 물었다. "너는 두 그릇으로 음식을 먹었다. 너는 오직 음식의 단맛을 제일로 여겼던 것이다. 음식의 영양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맛보다도 영양가를 소중히 했던 것이다. 나는 쓴 음식과 단 음식을 한곳에 섞어 먹은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떤 맛의 음식이라도 나는 버리지 않았다. 영양가로서 나는 모든 음식을 섭취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 음식들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신(귀신 신)은 나에게 축복을 내렸다. 동생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 개의 그릇에 담긴 쓴 음식과 단 음식을 동생은 한 그릇에 섞어 먹기 시작했다... 그후 오래지 않아 동생은 원기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는 수피의 이야기다. 너희가 두 개로 나뉘어진다면 너희 내면 역시 두 개로 나뉘어질 것이다. 선과 악, 추와 미, 의식과 무의식, 미움과 사랑 등 존재를 두 개로 갈라 버린다면 너의 내부에서도 이 분열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로써 신경쇠약에 걸리게 될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충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ff 사자와 꿀 깊은 산 속에서 한 남자가 뛰어가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한 마리의 사자가 쫓아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는 낭떠러지에 이르고야 말았다. 거기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으므로 그는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것은 매우 깊은 계곡이었고 거대한 심연이었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에게는 아무런 방법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더 주의깊게 절벽 아래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계곡 밑에서도 두 마리의 사자가 고개를 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사자는 으르렁대며 더욱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아주 가깝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없었고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단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은 골짜기 아래로 뿌리내린 나무 뿌리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 뿌리들은 매우 연약해서 언제 그것이 끊어져 버릴지 알 수 없었다. 태양이 기울고 있었고 저녁 때가 되어서 잠시 후에는 차가운 밤바람이 불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이미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죽음은 확실해졌다. 순간순간마다 죽음은 거기에 있었다. 그때 그는 두 마리의 생쥐가 그 나무 뿌리를 갉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마리의 생쥐는 막무가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뿌리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는 거듭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때 그는 바로 그 나무 위에서 꿀이 넘쳐 흐르고 있는 벌통을 발견했던 것이다.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잊고 그의 혀를 가져다 댔다. 그는 마침내 그 꿀을 맛보았다. 그 맛은 어마어마하게 달콤한 것이었다. *지금 나는 한 가지 확실한 뜻을 지적할 것이다. 이 순간의 그 이전으로부터 한 마리의 사자가 오고 있다. 그 이후 두 마리의 사자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빠르게 달리고 있다. 죽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두 마리의 생쥐가 삶의 뿌리를 자르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현재에서 살 수 있다면 그 맛은 지극히 달콤하다.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ff 천재소년 어느 마을에 수학의 천재가 있었다. 열두 살인 이 수학의 천재는 아인쉬타인이라는 과학자가 40세에 계산을 못하여 골머리를 앓았던 것들을 척척 계산해 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천재는 주위사람들의 너무나 많은 질문 공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천재는 점점 정신이상증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것을 알게 된 그의 식구들은 그 천재소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어느 날 식구들은 그를 인기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쇼 공연에 데리고 갔다. 휴식시간에 그의 아버지는 물었다. "어떠냐, 이 쇼가 아주 재미있지?"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저 배우들이 공연 도중에 대사는 모두 71,832개의 단어였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즐길 수 없다. 말에 신경을 쓰지 말라. 차라리 말을 감싸고 있는 그 침묵에 귀를 기울여라. 대신 그 말을 감싸고 있는 의미에 귀를 기울여라. 말 자체에는 아무런 논쟁거리도 없는 것이다. 그 리듬에, 노래에 귀를 기울여라. 찬양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ff 뻔뻔스런 개구리 한 마리의 까마귀가 개구리에게 말했다. "천국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린대." 그러자 개구리가 눈을 껌뻑거리며 대답했다. "천국에서 말이지?" 까마귀가 아는 체를 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대. 그리고 악사가 와서 연주하고 노래도 한다더군." 개구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쳤다. "천국에서?" 그러자 까마귀가 덧붙였다. "그렇지만 입이 큰 동물들은 들어갈 수가 없대." 그러자 개구리는 갑자기 입을 작게 하고 중얼거렸다. "불쌍한 악어! 얼마나 실망을 할까." *여러분은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ff 애착 100살 된 위대한 왕이 있었다. 그는 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았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즐겼다. 어느 날 죽음의 신이 찾아와서 그에게 말했다. "너도 죽을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라. 나는 죽음의 신이다." 왕은 위대한 전사였고 셀 수 없이 많은 전투에서 승리해왔지만 죽음의 신 앞에서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직 죽을 때가 안됐어요." 그러자 신이 말했다. "때가 안됐다고! 너는 100년 동안이나 살았고 네 자식들조차 늙었다. 네 큰 애가 80살이나 됐는데도 너는 더 살기를 원하느냐?" 왕에게는 100명의 아내와 똑같은 수의 자식이 있었다. 왕이 죽음의 신에게 애원했다. "더 살게 해 주시오. 나는 당신이, 누구인가는 꼭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니 내가 내 아들 중에서 한 명을 내어준다면, 나 대신 내 아들을 데려가고 나를 100년 동안 더 살도록 해 주겠소?" 말을 끝낸 왕은 100명의 아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말했다. 제일 큰 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나이가 가장 어린 16세의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아버지 대신 가겠습니다." 그 말에 죽음의 신이 대꾸했다. "너는 어리석은 아이로구나. 99명의 형들이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늙은 네 형들도 더 살기를 바라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도 않았어. 너를 데려간다는 것은 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거라." 그러나 소년은 당당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미안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제 아버지가 100살을 사시고도 만족을 못한다면 제가 굳이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 100년을 살아도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99명의 형들도 저보다 오래 살고서도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죽겠습니다. 저는 아버지로 하여금 100살을 더 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저는 16살로 세상을 마치겠습니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 현실을 보세요. 제가 만약 100년을 산다 하여도 결국은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더 살다가 죽든지 지금 죽든지 다를 것이 없어요. 그러니 제발 저를 데려가세요." 죽음의 신은 결국 소년을 데리고 갔다. 그로부터 100년 후에 죽음의 신이 다시 왕에게 찾아왔다. 왕은 그때까지도 더 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짧군. 여보시오, 내 아들들은 모두 늙어 죽었소. 그렇지만 나는 또 애를 낳았소. 이번에도 나는 내 아들들을 줄 수 있으니 아이들을 나 대신 데려가 주시오." 매번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천 년 동안이나 왕은 똑같은 식으로 위기를 넘겼고 그 동안에 죽음이 열 번이나 찾아왔다. 죽음의 신은 왕을 살려주는 대가로 아홉 번이나 왕의 아들들을 데리고 갔고 그 대가로 왕은 900년을 더 살았다. 열 번째 죽음의 신이 찾아왔을 때 왕이 말했다. "당신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도 따라가기 싫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당신을 따라가겠소. 이제는 더 이상 당신에게 호의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제일 큰 이유는, 천 년이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 만 년이라고 어찌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겠소. 그래서 이젠 포기한 거요." *이것은 생명에 대한 애착이다. 우리는 계속 살면서도 죽음이라는 관념이 떠오를 때 두려움에 떨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 것에도 애착이 없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ff 침착 캄캄한 밤 율법학자 나스틴의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그는 잠을 자는 척하면서도 도둑이 하고 있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율법학자는 다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그 행동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도둑이 그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도둑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할 필요도 권한도 없다고 생각했다. 도둑이 집안의 물건들을 들고 가다가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났는데도 율법학자는 모르는 척 잠만 자고 있자 도둑은 이상한 생각이 들고 걱정도 되었다. '자기 집 물건을 훔쳐가는데 가만히 있다니, 참 이상한 사람도 있구나.' 그리고는 물건을 싸들고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뒤따라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깜짝 놀란 도둑이 뒤돌아보니 그는 바로 율법학자였던 것이다. 도둑이 말했다. "왜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거요?" 율법학자가 대꾸했다. "천만에, 나는 당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당신이 모든 것을 가져갔으니 그 집은 쓸모없는 것이 돼 버렸소. 어쨌든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으니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오. 그러니 당신은 다른 물건과 함께 나까지도 가져가 주시오." 도둑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평생 도둑질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도둑이 말했다. "당신 물건을 가져가지 않겠소." 그러자 율법학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당신 자유요. 그러나 당신이 모든 것을 다시 옮겨야 할 것이오. 반대한다면 나는 경찰을 부르겠소. 나는 신사처럼 행동하고 싶소. 나는 당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하기 싫소. 다만 내 집을 정리해 주기 위해 나를 돕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싶소." *침착해야 한다. 그러므로 단 한 번뿐인 짧은 생애라는 생각은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결국은 빈손으로 죽기 때문이다. @ff 거울 시장에 비쩍 말라서 죽은 개가 한 마리 누워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코를 막으며 얼굴을 돌려버리곤 했다. "아유, 지독한 냄새!" 어떤 사람은 침을 뱉으며 지나갔다. "저 앙상한 갈비뼈 좀 봐, 아유 징그러워, 토할 것 같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먹을 만한 한 점의 살도 없잖아?" 그때 온화하면서도 나무라는 듯한 소리가 사람들의 말 가운데에 섞여서 들려왔다. "이 세상에서 제일 하얀 것일지라도 저 하얀 이빨에 비교할 만한 게 못되지!" 그러자 사람들은 슬슬 흩어지면서 서로 소근거렸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일 거야. 아니면 누가 죽은 개한테 저렇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겠어?"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준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것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가슴속에 추한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추하게 보이고 너의 가슴이 순수하다면 모든 것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인다. 너는 단지 다른 것을 통하여 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다. @ff 믿음의 삶 신의 뜻에 따라 그의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이들을 숲속으로 데리고 가려 하자 그 아들은 소풍을 가는 줄 알고 기뻐서 매우 흥분하였다. 이른 아침에 그들은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한 밤중에 깨어나, "아버지, 우리 언제 가요?" 하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아버지는 몹시 괴로웠다. 그는 아들을 숲속에서 죽여야만 하기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는 그 자신의 절대자로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믿었다. 거기에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 갔고, 그 어린 아이는 매우 행복해 하였다. 가면서 생각한 그는 결코 자기 아이를 숲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아이는 매우 들떠 있었으며, 아버지를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좋아라 날뛰는 것을 보며 속으로 울면서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아들이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이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실 거예요?" 아버지가 말하였다. "너는 몰라도 된다. 나는 살인을 할 것이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놀라지 않고 물었다. "언제요?" 아버지는 칼을 들었다. 그래도 아들은 그의 앞으로 더욱 몸을 내밀며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아들은 그것을 게임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너는 나를 믿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였다. "왜 그만두세요? 어서 내리치세요! 아버지, 이건 재미있는 놀이잖아요..." 그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를 믿고 있었다. *네가 삶을 강한 의지로 믿을 때, 또한 신을 믿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삶이 신이기 때문이다. 삶 이외의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믿고 그것과 함께 표류할 때, 죽음조차 변형된다. 너에게는 죽음이란 것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ff 마음의 진실 중국의 한 마을에 커다란 식당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제일 크고 호화스럽기도 가장 으뜸이었다. 그 식당 옆에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식당의 음식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사먹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음식 냄새, 그 향기... 그는 식사를 할 때면 의자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가능한 한 식당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거기에 앉아서 그 식당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으며 식사를 했다. 그는 그렇게 식당의 음식맛을 즐겼다. 그러한 그는 작은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그 식당의 주인이 음식 냄새에 대한 청구서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가난한 사람은 자기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작은 금고를 가지고 와서 식당 주인의 귀에 대고 흔들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돈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당신의 음식 냄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소." *마음은 단지 냄새와 소리일 뿐,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모든 잘못의 시작과 원인일 뿐이다. @ff 신은 멀리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등산가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처음에 무슨 이유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게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 높은 산에 올라가면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그러자 등산가가 대답했다. "난 그 산을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나는 산을 정복해야만 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죠?" "이유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산은 묵묵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오르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능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멀고 먼 천국에 있다. 이때 믿음은 쾌감을 느낀다. 거기에 모험이 있다. 그러나 나는 신이 가까이 있다고 말해 본다. 그러면 믿음은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 @ff 실제적인 것 어떤 사람이 남의 가게 앞에 차를 세워 놓았다.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차는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누군가가 차를 들이 받아 차 앞부분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의 차를 망가뜨린 상대방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낙심하여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언뜻 보니 와이퍼 밑에 쪽지가 끼워져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매우 기뻤다. 차를 망가뜨린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쳐 읽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내가 이 쪽지를 쓰고 있는 동안 적어도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소. 그들 모두는 내가 나의 이름과 주소를 쓰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오.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이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그가 자기 주소와 성명을 적어서 와이퍼 밑에 끼워 넣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그 종이에 무엇이 씌어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ff 거짓 모습 어느 복싱 선수가 연습만 열심히 하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뉴욕의 휘황한 밤거리와 향락에 빠져 그곳에서 헤쳐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마침내 그의 코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자네가 시합을 마칠 때까지 밤의 향락을 계속 즐기겠다면 나는 자네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시합을 취소하겠네." 그러자 그 복싱 선수는 앞으로 절제하겠다고 약속한 뒤 약 1주일 동안은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새벽 4시에 몰래 빠져나갔다가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매니저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복싱 선수가 말했다. "그래? 그런데 정장은 왜 했나?" "혹시 침입자가 숙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자신을 방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만일 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너 자신의 모습은 거짓말투성이일 것이다. @ff 감탄사 한 유태인 부부가 플로리다로 여행을 갔는데, 호텔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방이 비어 있는 유일한 호텔은 유태인을 출입시키지 않은 호텔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배키, 당신은 입을 꼭 다물어야 해. 당신 입에서 한마디라도 나오는 날이면 방을 구하지 못해. 나는 영어를 잘하니까 보이도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를 들여보낼 거야." 그들은 데스크로 다가갔다. 남편은 방을 청했다. 호텔 직원은 그들에게 열쇠를 주었다. 방을 얻는 데 성공한 후 아내가 말했다. "데이브, 날씨가 아주 더운데 수영하러 풀에 갈 수는 없을까요?" 데이브가 대답했다. "좋아, 그러나 한마디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마." 그들은 탈의실로 갔다. 데이브는 탈의실 심부름꾼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그들에게 의자와 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 물었다. "이제 풀에 들어가도 돼요?" "물론이지, 그러나 잊지 마. 입을 열어서는 안 돼." 배키는 풀의 가장자리로 가서 물에 발가락을 담가보았다. 물은 얼음처럼 차가왔다. 그녀는, "아 시원해!" 하고 고함을 지르다가 문득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 소리에 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당당한 태도의 그녀는 유태어로 덧붙였다. "그 말이 도대체 어쨌다는 거야." *속일 수 없다. 어떻게 해도 속임은 탄로 난다. 근본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근본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이나 언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은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것이다. 스스로는 그 근본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 @ff 거짓과 진실 어떤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다. "진실과 거짓의 간격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한 치도 안 되지." 어떤 사람은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 치도 안되다니요? 무슨 말씀입니까?" 랍비가 다시 말했다. "귀와 눈의 거리가 곧 거짓과 진실의 거리다. 네가 귀로 듣는 모든 것이 바로 거짓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거짓이요, 보는 것은 진실이다." *가슴과 머리 차이. @ff 제2부. 불쌍한 신부 @ff 불쌍한 신부 어느 날 율법학자 나스루딘은 우물가에 군중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띠를 머리에 두른 모슬렘의 한 사제가 물에 빠져 살려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몸을 구부리고 말했다. "손을 주세요, 신부님." 그러나 그 사제는 자기를 구원하려는 사람에게 주의를 쏟지 않고 계속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똑같이 외칠 뿐이었다. 마침내 율법학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사제를 향해 손을 내밀고는 소리쳤다. "내 손을 잡아요!" 사제는 율법학자의 손을 움켜잡고 위기를 모면했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서 율법학자에게 까닭을 물었다. "간단한 논리지. 나는 이 불쌍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심지어는 손조차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네. 그래서 나는 '손을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신부님, 내 손을 잡아요'라고 말했다네. 그것으로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네. 그는 당장 내 손을 잡았으니까." *자아가 계속 성숙하여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여러분은 더욱 깊숙이 진흙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은 더욱 더 구속에 빠지게 되며, 더욱 더 자아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결국 여러분은 질식할 것이며 삶 전체가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아의 성숙은 암적인 성숙이며, 자아는 암과 같은 존재이다. @ff 운전교습 어느 훌륭한 가문의 아가씨가 자동차 차원에서 운전 실력을 좀 더 배우기로 했다. 교통 법규를 잘 몰라 복잡한 도시에서는 영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첫 교습을 받는 날 강사가 놀랍게도 그녀에게 몸을 슬쩍 기대며 속삭이는 거였다. "아가씨, 방금 나보고 '여보'라고 불렀죠?" "어머나-" 숙녀는 기겁을 해서 운전은 까맣게 잊고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강사가 돌연 엄격한 어투로 바꾸어 말했다. "이게 바로 내 교습법이오. 아가씨,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도로에서는 절대로 눈을 떼서는 안된단 말이오.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 충격을 주기도 한다. 사람을 노하게 하거나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이다. 자명종처럼. @ff 지식 초상화가가 단골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병이 비자 그는 한 병을 더 주문하려다가 문득 옆자리에서 '불황이 오고 있다'는 신문 머리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화가는 술을 더 마시려던 생각을 바꿔 카운터에 계산서를 요구했다. 그러자 주인이 물었다. "오늘 술맛이 별로 안 나세요?" "아니, 좋아요. 하지만 불황이 오고 있다니 그만 마셔야겠어요. 절약해야죠." 주인이 말했다. "불황이라, 지금은 사업을 확장하면 안되겠군. 계획을 취소하고 이대로 끌고 나가야겠어." 재단사가 사업 확장 계획을 취소하자 건축업자는 생각했다. "그러면 집사람 초상화를 뒤로 미뤄야겠군." 건축업자는 화가에게 편지를 써보내 초상화 주문을 취소했다. 편지를 받아 본 화가는 크게 낙심하여 단골 카페로 갔다. 주문한 술을 기다리던 그는 문득 옆자리에서 며칠 전 본 그 신문을 발견했다. 화가는 신문을 집어 천천히 읽어보았다. 아뿔싸! 그 신문은 10년 전의 것이었다. *지식은 여러분에게 정확한 통찰력을 주지 않는다. 지식은 사람을 눈 멀게 할 때가 있다. 아는 것은 통찰이며 투명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지식은 낡은 것이다. 아는 것은 언제나 오래된 것이다.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는 것처럼 지식은 그런 포도주와 같다. 지식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지식은 사람을 무디게 만들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지식은 사람을 무의식 상태로 만든다. 아는 것은 언제나 신선하다. 아는 자는 매 순간마다 아는 것에 이른다. 아는 자는 결코 낡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순간을 살며 예민하고 민감하고 빈틈없다. 지식은 돌고 돈다. 그것은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넘어가며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ff 아버지의 헛소리 어떤 사람이 임종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사라, 내가 죽기 전에 당신에게 알릴 것이 있소. 양복점 긴즈버그는 나에게 200달러를 빚졌고, 푸줏간 주인 모리스는 50달러를 빚졌고, 이웃집 클레인에겐 300달러의 빚이 있소." 그의 아내는 자식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운 양반이냐. 죽어가면서까지 누구에게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사라, 내가 지주에게 100달러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 바라오." 그 말에 아내가 소리쳤다. "오오, 너희 아버지가 드디어 헛소리를 시작하시는구나." *듣고 싶은 말이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헛소리이다. 우리는 듣고 싶어하는 것만을 듣기를 원한다. @ff 연못의 송어 어떤 사람이 매우 커다란 연못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연못에는 작은 수련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연못의 주인은 퍽 행복했다. 그는 수련의 하얀 빛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련은 매일 두 배로 불어나 얼마 안 있으면 연못 전체가 수련으로 뒤덮일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연못 속에서는 송어가 살고 있었는데, 연못이 온통 수련으로 뒤덮인다면 그 좋아하는 송어도 잡아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련을 자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송어를 먹지 못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전문가에 상담을 하러 갔다. 전문가는 한참을 조용히 듣더니만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련이 연못 전체를 다 덮을 때까지는 꼭 천 일이 걸립니다. 수련은 아주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는 한 가지 해결책을 말해 주었다. 그 해결책은 전혀 틀림이 없는 매우 합당한 것으로 보였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십시오. 그러다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채워지면 그때 수련을 자르십시오. 그리고 항상 연못의 반만 수련으로 채워진 상태에 있게 한다면 하얀 수련과 송어를 둘 다 늘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오십 대 오십으로 반으로 수련으로 그리고 반은 송어로 즐기도록 하십시오." 그 해결책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천 일이라면 시간도 충분했다. 그러므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주인은 모든 긴장과 불안을 이젠 풀어 버릴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연못의 반이 채워지거든 그 때 수련을 자르도록 하자.' 세월이 흘러 마침내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그 날은 바로 999일째 되는 날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500일이면 반이 채워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수련은 매일 두 배씩 늘어난다고 했다. 따라서 천 일째 전부가 채워진다면 절반이 채워지는데는 999일이 걸린다.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연못 전체가 수련으로 가득찰 것이었다. 수련을 잘라내는 데는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999일째 되는 날 연못의 주인은 그리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999일이나 기다렸는데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루만 더 기다렸다가 자르자.' 이튿날 아침 연못은 온통 수련으로 뒤덮였고, 송어는 모두 죽어버렸다. *바로 이런 것이 삶의 수수께끼가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너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며 물질을 축적한다면 결국 너희의 삶은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인생은 참으로 길어 보인다. @ff 황금 바로 며칠 전, 한 남자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유명한 요가 수행자가 저를 속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 그가 무슨 짓으로 그대를 속였는가?" "그는 어떤 쇠붙이라도 금으로 만들 수 있답니다. 그는 저에게 쇠붙이로 금을 만들어 보여 주었고, 저는 제 눈으로 똑똑히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네가 가지고 있는 금을 모두 가져오면 열 배로 늘려 줄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장신구를 쓸어모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놈이 그것을 몽땅 가지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놈이 저를 속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요가 수행자가 그를 속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속인 것은 바로 그의 욕심이다. 욕심은 어리석은 것이다. 너의 장신구들이 열 배로 늘어나기를 바란 그 마음의 너를 속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단순히 그 기회를 이용하였을 뿐이며 영리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ff 아이의 힘 어린아이 한 명이 정원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주위에서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커다란 바위를 보고 들어올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커서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것을 보고 말했다. "너는 네 힘을 다 사용하고 있지 않구나." "아니예요. 저는 있는 힘을 다 쓰고 있는 걸요.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너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청하지 않았잖니? 그것도 역시 너의 힘이란다. 내가 여기 앉아 있는데도 너는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않더구나. 그것이 네 힘을 다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힘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힘만을 갖고 해결하려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ff 조그만 강아지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데 문득 커다란 표시판이 보였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개조심' 조금 더 가자 전과 같이 커다란 표시판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엔 더 큰 글씨로 씌어 있었다. '개조심' 잠시 후 그는 농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집 앞엔 볼품없는 조그마한 푸들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거였다. 그 사람이 농부에게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뭐요. 저렇게 조그만 강아지가 집은 지킬 수 있나요?" 농부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 천만에 말씀을. 그러나 표시판이 지켜주죠. 암요." *사람들은 표시판과 상징과 말, 그리고 언어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냥 믿어버리고 만다. 실제로 개가 있는지, 있으면 어떤 개가 있는지, 누가 굳이 보러 가겠는가? @ff 사자와 여우 언제 어느 곳에선가 사자와 여우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여우가 식사를 주문했다. 그런데 여우는 일인분만 주문하는 거였다. 웨이터가 물었다. "친구분은 어떤 것을?" 여우가 말했다. "무슨 말이오? 그가 배가 고팠다면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을 수 있겠소?" *어째서 사람이 가장 고귀한가?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천박한 존재처럼 보인다. 동물들을 보라. 동물들은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다. 잔인하지 않다. 동물들은 그렇게 미친 듯하지 않다. 너희는 정치가를 정복시키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동물들은 살인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죽는다. 야생의 동물들은 결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동물원에서 살도록 강요된 그들은 미친다. 동물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동물원의 그들은 자살한다. 동물들은 결코 자연 속에서 동성애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동물원의 그들은 동성애를 한다. 동물원의 그들은 살인적이고 위험하게 된다. 그렇다. 동물들은 죽인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죽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까닭없이 죽인다. 사람들은 밀림으로 가서 호랑이를 죽인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은 놀이고 게임이다. 나는 사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자가 사냥한다는 소릴 하든가? 그들은 결코 사냥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물론 죽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ff 지각한 이유 어린 앨버트가 학교에 또 지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만큼은 완벽한 변명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정말 걷기가 힘들었어요. 한 걸음을 옮기면 두 걸음씩이나 뒤로 미끄러졌어요." 선생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러냐? 좋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지?" 앨버트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래서 저는 학교로 오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어요. 역시 한 걸음 나아가면 두 걸음 후퇴했어요. 그러다 보니 마침내 학교까지 후퇴했지 뭐예요." *변명을 만들지 마라. 그것은 과정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이 변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것이다. @ff 노 의사의 고백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제자들이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이 축전을 베푼 날 제자들은 그가 약간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왜 그렇게 슬퍼 보입니까? 선생님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무도 선생님과 비교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선생님은 행복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계십니다. 자, 선생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결코 의사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어렸을 때 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네. 이제 내 인생은 다 갔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데에 내 삶을 소모해 버렸어. 나는 분명히 성공했지만 만족할 수가 없네. 그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건 배고프지도 않은데 누군가가 자네에게 억지로 먹기를 강요한 것과 다름없네. 또 자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길 원했는데 누군가가 자네에게 우유를 강요한다면, 확실히 물보다는 우유가 낫지만 자네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물을 마시길 원했으므로 우유에 만족하지 못할 것일세."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모든 성공은 잘못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ff 이 아이가 문제입니다. 한 번은 내가 어떤 유복한 집에서 지내게 됐는데, 주인인 내 친구가 나를 그의 아내와 아이에게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 아이가 문제입니다. 도대체 한 순간도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한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군요. 당신 말이 옳아요. 내 남편도 일요일이면 쓸데없이 자동차에 매달리거든요. 문제없이 잘 달리는데도 뭔가 고치려고 하지요. 그러다 결국 다시 차고에 집어넣지요. 남편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고, 나도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우린 우리의 아이와 다를 바가 없어요. 우리는 미처 그 사실을 느끼지 못했어요. 당신이 우리를 일깨워 주었어요. 우리에겐 이제 아이더러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할 권리가 없어요." 내가 덧붙였다. "먼저 아이에게 집 주위를 일곱 바퀴만 뛰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조용히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가서 집 주위를 일곱 바퀴만 뛰어라."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요?" "그냥 일곱 바퀴만 돌아라. 네가 얼마나 잘 뛰는지 모두에게 보여 주렴." 그래서 아이는 집 주위를 일곱 바퀴나 뛰었고, 그리고나서 마침내 정원에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의 부모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똑같이 하면 됩니다. 앉아 있고 싶어질 때까지 집 주위를 도는 거지요." *먼저 뛰고, 소리지르고, 너희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쓰레기들을 집어던져라. 휴식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은 먼저 그들의 광기, 억압된 모든 것들을 바깥으로 내던지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 스스로 고요해진다. @ff 예수의 말 부자인 한 청년이 어느날 예수를 찾아와서 물었다.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입니까?" 예수는 그 청년에게 말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그대가 가진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청년이 물었다. "전 재산을요?" 예수는 말했다. "그렇다.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에 나에게로 오라." 청년은 그 자리에서 서서 머뭇거렸다. 군중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청년이 군중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때 예수는 그 유명한 말을 했다. "부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가난함을 찬양하면 부를 쌓아올리는 기술, 더 많은 편리성을 창조하는 기술이 무시당하게 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위안만 될 뿐이다. @ff 소년의 대답 두 절이 서로 이웃해 있었는데 이 두 절의 주지에게는 심부름을 시키는 작은 소년이 한 명씩 있었다. 두 소년은 시장에 가서 주지에게 필요한 채소 등의 물건을 사오곤 했다. 이 두 절은 서로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역시 소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잊어버리고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놀곤 했다. 사실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상대편은 적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쪽 절의 소년이 돌아와서 말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시장에 가다가 저쪽 절에 있는 애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저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의 대답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 절의 주지가 말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절의 사람은 누구나, 설사 하인까지도 저쪽 절의 사람들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너도 그 아이에게 이겨야만 한다. 내일 다시 만나거든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어봐라. 그 아이가 '바람 부는 대로'라고 대답하면 너는 말해라. '바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라고." 그 소년은 밤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려고 애를 섰다. 그는 주지가 일러준 말을 여러 번 되새겼다. 그가 물어보고 상대편 소년이 대답하면 그때 그는 준비한 질문을 할 것이다. 다음날 그는 길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 소년이 왔을 때 그가 물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 소년이 대답했다. "발 가는 대로." 그는 다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대답은 고정되어 있었는데 상대의 대답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침울하게 돌아와서 주지에게 다시 말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대답은 바뀌었고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그 주지가 말했다. "내일 그 아이가 '발 가는 대로' 라고 하면 너는 '네가 절름거리게 되거나 발이 잘려지면 어떻게 할래?" 하고 물어라." 다시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는 일찍 나가서 길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그 소년이 왔을 때 그가 말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러자 그 소년이 대답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사오려고!" 그는 매우 혼란스러워져서 돌아와 주지에게 말했다. "그에게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그는 계속 바뀌고 있어요." *삶이란 그 소년과 같다. 실체는 고정된 현상이 아니다. 여러분은 현재에 존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 오직 그때의 반응만이 실체와 딱 맞아떨어질 수 있다. 만약 너의 대답이 미리 고정되어 있다면 너는 이미 죽은 것이며 이미 놓친 것이다. 내일이 오면 너는 내일을 맞지 못한다. 너는 이미 지나가 버린 어제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ff 가르칠 수 없는 그 무엇 우파니샤드 시대의 스베타게투라는 어린 소년은 아버지에 의해 깨달음의 일인자로 알려진 어느 스승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수년 동안 그는 거기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 그는 모든 베다를 기억하였고 그 당시에 접할 수 있는 모든 과학과 학문을 통달하였다. 그는 마침내 위대한 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명성은 온나라에 널리 퍼졌다. 이제 누구도 그에게 가르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스승이 말했다. "그대는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스승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자신이 배워 알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큰 자만감과 신앙을 갖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막 마을 어귀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 우달락은 창문으로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걷고 있는지 보고 있었는데 매우 자만심에 찬 걸음걸이였다. 무거운 머리를 떠받치기라도 하듯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걷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슬퍼졌다.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식에 도달한 사람은 무엇을 알았다는 표시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스베타케투는 자기 아버지가 매우 행복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왜 슬픈 표정을 하고 계시는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너에게 꼭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그것 하나를 아는 것으로 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배울 필요가 없는 그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그것 하나를 아는 것으로 해서 모든 고통이 없어지는 그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배울 수 없는 그것을 너는 배웠느냐?" 아들 또한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아니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에게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거라. 그리고 너의 스승에게 돌아가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해라." "그러나 그런 말은 모순입니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승께서 어떻게 저에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요?" "그것이 진정한 스승의 기술이다. 그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너에게 가르칠 것이다. 다시 돌아가거라." 할 수 없이 그는 다시 돌아가 스승의 발에 절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을 위해 저를 다시 스승님께 보냈습니다. 지금 저는 제가 어디에 있으며 그리고 스승님께 무엇을 물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배워서 알 수 없는 것을 배웠을 때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요? 스승님께서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으셨습니다." 그 스승은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 묻기 전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대는 미묘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그것은 너무도 미묘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간접적으로 돕는 일밖에는 없다. 우선 이것은 한번 해보아라. 내가 데리고 있는 적어도 사백 마리 이상 되는 소와 그밖의 가축을 데리고 인적이 없는 아주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거라. 그 곳에서 어떤 말도 하지 말고 가축들과 함께 살아라.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가축들은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 침묵 속에 남아 있어라. 그리고 사백 마리가 번식하여 천 마리가 되거든 그때 돌아오너라." 스승은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숲속으로 가서 혼자 살아라.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말아라. 그곳에서는 생각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물들은 너의 어떤 생각도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학자적인 자만심을 그곳에서 떨쳐버려라." 스베타케투는 스승의 말대로 따랐다. 그는 숲속으로 들어가 가축들과 수년 동안 같이 살았다. 처음 며칠 동안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떠돌아다니느라고 혼란스러웠다. 똑같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지겨워졌다. 스베타케투는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사백 마리의 가축과 새와 야생 동물과 나무와 바위와 강과 냇물만 있을 뿐 거기에는 어느 무엇과도 이야기할 대상이 전혀 없었다. 동물들 앞에서 자만심을 내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쓸모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자만의 상태로 남아 있다면 이 동물들이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내가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거나 아니면 냇가에서 낮잠을 즐겼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점차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 해가 흘렀고 이제는 자신이 언제 돌아가야 할 것인지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그의 산만한 마음은 사라졌다.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침묵 속에 있게 되었다. 과거는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과거가 떨어져 나감으로써 미래 또한 떨어져 나갔다. 미래라는 것은 단지 과거의 투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 말했던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돌아가야 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그는 단지 여기, 그리고 지금 존재할 뿐이었다. 그는 마치 동물과 같이 순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제 한 마리 소가 되었다. 가축이 천 마리가 되었을 때는 가축 자신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가축들은 스베타케투가 스승이 계신 아쉬람으로 데리고 가길 원했다. 그러나 스베타케투가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는 소들이 이 사실을 알려주기로 결정을 하였다. "자, 이제 이만한 세월로서 충분하다. 우리들이 천 마리가 되었을 때 돌아와야 한다고 그대의 스승이 말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이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우리는 돌아가야만 한다. 이제 우리들은 천 마리가 되었다." 그래서 스베타케투는 비로소 동물들과 함께 스승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스승은 스베타케투가 천 마리의 가축과 함께 돌아오는 것을 자신의 오두막 앞에서 발견하고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아라! 저기 천 마리의 짐승이 오고 있다. 저기 스베타케투는 없다." 스베타케투는 이토록 침묵의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자만이나 자아 의식은 없었다. 단지 한 마리의 가축이 되어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은 그를 맞이하였다. 스승은 환희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스베타케투를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대에게 말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는 이미 알고 있는데 왜 나에게 왔는가?" 스베타케투는 말했다. "단지 스승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지 당신의 발을 만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스승님은 저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스승은 어떤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간접적인 도움만이 가능한 것이다. 직접적인 인도가 있는 곳, 마음에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종교가 싹틀 수 없다. @ff 제3부. 도둑의 아들 @ff 도둑의 아들 명성이 자자한 도둑이 있었다. 그는 도둑의 대가였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이젠 아버지도 늙으셨잖아요. 아버지의 기술을 제게 전수해 주세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좋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가르쳐 줄 수 없는 기술이란다. 이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숙련된 기술과 같은 거란다. 하지만 한 번 해 보자꾸나. 오늘 밤 나와 함께 나가보자." 아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는 궁궐 같은 집을 택해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몹시 추운 밤이었는데도 아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자기 집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는 벽에 구멍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너무도 두려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숨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계속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의 구조를 미리 조사한 것처럼 여러 개의 문을 열고 여러 개의 방을 살폈다. 이윽고 아버지가 벽장문을 열고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들어가서 제일 값비싼 옷을 꺼내 오너라."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아버지는 밖에서 문을 잠그더니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거였다. 그러자 집안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렸다. 벽에 구멍이 나 있으니 잡힐 것은 뻔한 이치였다. 벽장 안에 갇힌 아들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어쩔 줄을 몰라 그저 숨만 죽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미친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가르침이란 말인가?" 아들은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저의 최초이자 최후의 도둑질입니다. 주여, 앞으로 절대 이런 짓은 생각조차 하지 않겠으니 돌봐 주십시오." 그 때 한 하인이 촛불을 들고 들어와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아들은 쥐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간적인 행동이었다. 그러자 하인이 벽장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은 재빨리 촛불을 불어 끄고는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인과 동네 사람들이 그를 뒤쫓았다. 마침내 우물가에 이르렀을 때 아들은 커다란 돌을 하나 들어서 우물 속에 던지고는 재빨리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풍덩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뒤쫓아오던 사람들이 모두 우물가에 멈춰서 빙 둘러섰다. 사람들은 도둑이 우물 속에 빠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침에 우물 속을 살펴보고 도둑이 죽었는지 확인하면 돼. 죽지 않았으면 감옥으로 보내지 뭐." 아들이 겨우 집에 돌아와 보니까 아버지는 코를 골며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아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미쳤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말했다. "어, 돌아왔구나. 잘 됐어. 넌 이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자, 가서 자거라. 내일부터는 너 혼자 해봐라." "그런데 아버지, 왜 그렇게 하셨어요?" "내가 하는 일은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기술이란다. 그건 직관적인 기술이어서 그렇게 얻어지는 거란다. 그래서 난 너를 역경에 처한 게 했던 거란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을 보니까 넌 천성적으로 타고난 도둑인 것 같구나. 넌 역시 자격이 있는 아들이야." *그렇다. 이것이 바로 제자가 성장하는 길이다. 제자는 맨 처음 초라하게 보인다. 그는 구걸을 하고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란다. 그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얻을려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다가 어느덧 그는 훌륭한 도둑이 된다. 왜냐하면 진리란 주어질 수 없고 오로지 훔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니까. 여러분은 구걸만 하지 말고 도둑이 되어라. 도둑 중에서도 아주 위대한 도둑이 되어라. @ff 질문과 답변 지식이 많은 학자가 한 성자를 찾아갔다. 그는 아는 것이 많았고 위대한 학자였다. 그가 성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성자는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답할 수가 없소." 학자가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해 주십니까? 지금은 바쁘시기 때문인가요?" 그는 대단히 유명한 인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학자였다. 그런데 성자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난 수천 리를 걸어왔습니다." 당시엔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으므로 먼 길을 여행한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는 남쪽 먼 곳에서 성자를 만나려고 힘들게 걸어왔던 것이었다. 성자가 말했다. "아니오. 그게 문제가 아니오. 난 지금 바쁘지 않소. 그러나 당신은 지금 당장은 답을 얻을 수가 없소." 학자가 물었다. "대체 무슨 뜻의 말씀입니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첫째로 입이 없는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답을 주어도 들어갈 곳이 없다. 그는 어떠한 답도 받아들이질 못한다. 둘째로 한쪽 구석에 구멍이 난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 항아리는 똑바로 놓여 있지만 구멍이 나 있기 때문에 물을 계속해서 퍼담아도 곧 새버리고 만다. 따라서 그 항아리는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 셋째로 구멍도 나지 않고 입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오물로 가득 찬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 항아리에는 물론 물은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물이 들어가는 순간 그 물은 오물에 의해 오염되어 버린다. @ff 사람은 경솔하다. 어떤 배우가 오 년만에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역할이었지만 어쨌든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그의 역할은 아주 하찮은 것이었다. 주인공이 무대에 나타나서, '자네가 살인현장을 목격했단 말이지?' 하면 그는 주인공의 날카로운 눈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제가 봤어요.' 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주일 동안 그는 이 한 마디를 열심히 연습했다. "제가 봤어요. 제가 봤어요..." 그는 그 대사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억양까지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주인공이 무대에 나타났고, 바닥에 누워 죽은 시늉을 하고 있는 사람을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가 살인현장을 봤단 말이지?" 그 사람은 주인공의 눈을 또렷이 바라보며 자신있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제가 봤다구요?" *사람들은 대부분 경솔하다. 그들의 의식은 잠자고 있다. 어떤 둔중함이, 어떤 혼미가 너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아주 흐릿하고 멍멍한 무엇이. @ff 사물의 근원 한 떼의 개미들이 먹이를 찾기 위하여 그들의 굴에서 지상으로 기어나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아침이었고 개미들은 아침 이슬에 젖어 있는 초목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다. "저것은 무엇일까? 저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 개미가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다른 개미가 대답했다. "저것은 땅에서 오는 것이다." 또 다른 개미가 말했다. "아니다. 저것은 바다에서 오는 것이다." 결국 그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개미들은 바다 쪽을 지지하는 집단과 땅 쪽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나뉘어졌다. 오직 한 마리의 현명한 개미가 그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서 있다가 말했다. "논쟁을 멈추고 증거를 찾아보자. 모든 사물은 근원을 향한 친화력을 갖고 있다. 만물은 결국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늘을 향해 아무리 멀리 돌을 던진다 하여도 그것은 이내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무엇이든 빛을 향하여 기울어지는 것은 틀림없이 그 빛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미들은 그 말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들의 논쟁을 계속하려 한다. 그때 해가 솟아 오르자, 이슬들은 잎을 떠나 해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햇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어떤 사물이든지 본래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한 돌아가야만 한다. 만약 네가 삶을 이해하게 된다면, 당연히 죽음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삶이란 본래의 근원에 대한 망각이며 죽음은 먼 기억이다. 삶은 본래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져감이며 죽음은 근원으로의 회귀이다. 죽음은 추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름답다. 그런 죽음은 삶을 방해하지 않고, 삶을 짓누르고 억압하지 않고 산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삶을 아름답게 살았던 자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충분히 용감하게 살았던 자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하고, 춤추고, 축복하는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아름다운 이다. 그리고 죽음은 축복의 절정이 될 것이다. @ff 피카소의 그림 피카소의 그림 한 점이 어떤 귀부인에게 1백만 달러에 팔렸다. 그림을 산 귀부인은 그것이 진품이지 모조품인지 감정받고 싶었다. 한 미술 평론가가 말했다. "이 작품은 틀림없이 진품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피카소의 친구였던 것이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릴 때 내가 옆에 있었으므로, 이것이 진품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귀부인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피카소를 직접 찾아가 말했다. "나는 이미 이 그림을 샀으므로 그것이 모조품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정말로 이것이 진품인지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보더니 이상한 대답을 했다. 그 미술 평론가와 그와 동거하던 애인도 그곳에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진품이 아닙니다." 그러자 피카소의 애인이 말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은 이 그림을 그렸어요. 뿐만 아니라 이 평론가 선생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피카소는 말했다. "내가 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그것은 오리지널이 아니오. 나는 과거에도 그와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소.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던 것이오. 오리지널은 지금 파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소.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사본에 불과하오. 누가 그 사본을 만들었다 해서 사본이 진품이 되진 않는 것이오. 나에게 첫 번째 그림만이 오리지널이었소. 왜냐하면 그것은 내 존재의 침묵으로부터 탄생된 것이기 때문이오. 그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무아의 경지여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소.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릴 때는 그렇지 않았소. 이것은 마음의 산물이지만, 첫 번째의 그림은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 탄생하였던 것이오." *여러분의 침묵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름다움과 진실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복사에 불과하다. 무지한 자들에게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불리워질 수 없다. @ff 물병 뜨거운 사막을 지나던 한 여행자가 몹시 목이 말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에 펌프가 하나 있었다. 알다시피 펌프는 그냥 두면 물이 밑으로 빠지기 때문에 물을 퍼올리려면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다시 부어야 한다. 목이 마른 여행자는 무척 반가워서 펌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펌프 손잡이에는 종이 쪽지가 한 장 매달려 있고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부탁의 말씀. 길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년이 흘러야 한 두 명씩 이곳을 지나가곤 합니다. 펌프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만 몇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퍼 올리려면 먼저 펌프에 물을 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 한 병을 건너편 흰바위 밑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 물을 마셔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마신다면 펌프는 작동시키기엔 물이 부족하게 됩니다. 이 말을 믿어주십시오. 그 물을 전부 붓는다면 틀림없이 펌프가 물을 퍼 올릴 것입니다. 그때는 필요한 만큼의 물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떠나기 전에 반드시 도로 그 물병을 채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사람이 펌프를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물병을 도로 채워서 바위 밑 원래 자리에 숨겨 놓으십시오.' 그 쪽지에는 서명까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의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무려 이십 년 전의... 그 남자는 흰 바위 밑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는 물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그 펌프에 써 있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면 여행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그 글을 써놓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면, 혹은 누가 장난을 친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을 부었는데도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물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누가 아는가?'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며, 무턱대고 믿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 글을 써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며, 서명을 해 놓긴 했지만 그의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랐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신뢰이다. @ff 종소리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등대지기가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등대에 신호용 총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총은 자동으로 발사장치가 되어 있어 5분 간격으로 발사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나가는 배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등대지기는 항상 등대 안에서 지냈고 잠도 거기서 잤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총소리에 놀란 적이 없었다. 그는 3년이나 그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웬일인지 총이 발사되지 않았다. 깊이 잠들어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지? 어디가 잘못됐지?" 그는 불안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등대지기는 총소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총소리는 이미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생활의 일부분이었으며 마음의 일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총이 발사되지 않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단 한 번도 총소리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 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사라지면 이렇듯 갑자기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소음이 그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ff 초승달과 보름달 한 수피가 위대한 이란 왕의 명을 받고 심부름꾼으로 인도 왕에게 보내졌다. 이란 왕은 인도 왕과 약간의 불화가 있었으므로 근심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수피를 보내어 두 나라 사이의 오해를 풀고 서로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수피는 인도 왕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보름달이십니다." 그가 인도 왕에게 보름달이라고 했다는 소문이 퍼져 마침내 이란 왕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런데 그 수피는 이란을 떠날 때 이란 왕에게 초승달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란 왕은 매우 화가 났다. 초승달이라고?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초하루의 달이 아닌가. 그대는 초하루의 달을 구경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초이틀에야 그 달을 조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피가 인도 왕에게 보름달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는 이란 왕에게는 크나큰 모욕이었다. "그 자를 귀환 즉시 소환하라!" 이란 왕은 분노하여 명을 내리고 기다렸다. 수피는 돌아오자마자 즉시 붙잡혀서 법정으로 보내졌고 문책 받게 되었다. "단순합니다. 보름달은 이미 생이 끝난 것입니다. 이제 죽는 거지요. 보름달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는 있으나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 왕에게 보름달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저는 대왕을 초승달이라 불렀습니다. 초승달은 미래가 있고 가능성이 있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도 왕의 위엄은 위대할는지 모르지만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여러분! 어떤 것이 과거를 가질 때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다. 과학은 과거로 간다. 과학은 과거로 접근하며 과거를 탐구한다. 과학은 너희의 과거를 들추어낸다. 과학은 말한다. "너희의 과거를 모두 말하라"고. @ff 장님과 절름발이 어떤 숲에 큰불이 일어났다. 그런데 단 두 사람만이 그 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장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였다. 절름발이는 볼 수는 있었으나 뛸 수가 없었고, 장님은 빨리 달릴 수는 있었으나 앞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민한 끝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장님이 절름발이를 업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되었다. 절름발이는 볼 수 있었고 장님은 걸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도움으로서 결국 그 불길 속을 빠져 나와 목숨을 건졌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었더라면 그 두 사람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힘을 합했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ff 이름 결혼을 앞둔 한 예비 신부가 있었다. 그녀는 결혼 전날, 결혼식을 마친 후에 가질 만찬회 장소로 물색해 둔 호텔에 미리 찾아갔다. 그녀는 기쁨에 들뜬 마음으로 식장을 둘러보곤 술은 이쪽에 놓아야 하며 신부 들러리는 저쪽에다 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그녀는 호텔 지배인에게 몇 가지 사항을 일러두기 위해서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일 손님들을 맞이할 때 제 어머니께서는 이곳에 서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제가 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오른쪽에는 그 사람, 그... 이름이 뭐더라?" 그녀는 그만 남편 될 사람의 이름에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만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술이나 들러리 등, 이러한 하찮은 일에는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서 정작 가장 근본적인 남편에 관해서는 그만큼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감탄사를 뱉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를 덧없는 삶만으로 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러나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의 이름은 딱지처럼 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이름이란 편리상 붙여지는 대명사일 뿐이다. 당신이 ㄱ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면 ㄴ이라고 불리워질 수도 있다. 당신은 ㄱ으로 불리워지건 ㄴ으로 불리워지건 그것은 하등에 상관이 없다. 하지만 당신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변형될 수 없는 당신의 진짜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라도 사람은 엄청나게 큰 집을 지을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차를 살 수도 있다. 또 열심히 일을 하여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고, 죽을 때에는 은행에 많은 돈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주변에 불과할 뿐, 너 자신은 아니다. 너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른 채 결국은 이 세상을 떠나는 승선을 타고 말게 된다. @ff 낯선 세계 언젠가 나는 기차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우연하게도 내가 탄 칸막이 안에는 나 외에 다른 승객이 꼭 한 사람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는 내게 말을 걸려 했고, 나와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뭔가 물어올 때마다 난 간단히 "예", "아니오"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먹을 것을 내밀었고, 난 그저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담배를 권했고, 난 그저 "안 피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술을 권했고-그는 의사였다.-난 "안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과 친해질 수 있겠소? 우린 앞으로 이틀 동안이나 이 칸막이 안에서 같이 지내야 될 거요. 그런데 우리 두 사람 사이엔 전혀 친해질 가능성이 없는 것 같군요." 나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군요." 그리고나서 나는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점점 더 초조해지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는 여행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옷을 괜히 매만져 보며 신문을 계속 반복해 읽곤 하였다. 그리곤 간간히 나를 쳐다보면서 마치 내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요?" 하고 묻는 표정을 짓고 하였다. 나는 그저 묵묵히 앉아서 그의 안절부절못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두 시간쯤 지나가 그가 마침내 차장을 불렀다. "다른 칸으로 옮겼으면 하오." 차장이 뭐가 잘못된 게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양반이 너무 말이 없어서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이 양반의 침묵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 양반은 지독하게도 꼼짝하지 않고 침묵만 지킨단 말이오." *침묵을 지켜보라. 다른 사람들이 너와 함께 있기를 얼마나 불편해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너의 침묵은 완전히 다른 세계, 즉 그들에게는 아주 낯선 세계를 가져올 것이다. 그 침묵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 방식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들 속에 잇는 자유스러운 너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사람들 속에 있는 스스로 편안한 너는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ff 조건없는 사랑 아주 옛날에 하늘을 향해 수없이 많은 가지를 높이 뻗은 한 그루의 고목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꽃을 피울 무렵이면 온갖 모양과 빛깔, 크고 작은 나비들이 나무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먼 곳에서 새들이 날아와 그 나무 속에 둥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그럴 때마다 팔을 뻗은 것 같은 나무가지들은 그늘에 와 있는 모든 것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한 작은 소년이 늘 나무 밑에 와서 놀곤 했다. 큰 나무는 그 작은 소년에 대해 차츰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만일 큰 것이 자신이 크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의 사랑에는 하등에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나무는 자신이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크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항상 편견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사랑은 가까이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받아들이는 진실이 있다. 그 나무는 언제나 자기 곁에 와서 즐겨 노는 이 작은 소년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 가지는 매우 높았으나 소년이 꽃을 꺾고 열매를 딸 수 있도록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 주었다. 사랑은 언제나 머리를 숙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편견'은 머리를 숙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교만함이 있다. 당신이 편견에 빠지면 그 가지는 더욱 높게 뻗을 것이다. 장난꾸러기 소년이 가까이 오면 나무는 가지를 굽혀 주었다. 나무는 소년이 자신의 꽃을 꺾을 때면 기뻤다. 자신의 존재가 소년으로 인하여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차곤 했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 사랑은 항상 행복하다. 이제 소년은 조금 자랐다. 그는 가끔 나무의 우묵한 곳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하고, 그 열매를 따먹기도 하며 나무의 꽃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는 숲 속의 왕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사랑의 꽃이 자신의 가슴 안에 자리잡고 있을 때 인간은 이와 같은 행복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편견의 가시가 있게 되면 사람은 가난하고 비참해 진다. 소년이 꽃왕관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나무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무는 미풍 속에서 이파리들을 나부끼며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 소년은 더욱 많이 자랐다. 소년은 나무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 가지에 매달리며 놀았다. 나무는 소년이 가지 위에 서 있을 때면 매우 행복함을 느낀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평온을 줄 때만 행복하다. 그러나 편견은 불안을 줄 때 즐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소년에게는 나무 이외의 다른 번거로운 의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년의 내부에서는 야망이란 것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에게는 합격해야 할 시험이 있었고, 잡담하며 함께 돌아다닐 친구들이 생겼다. 그래서 소년의 발걸음은 차츰 나무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나 나무는 그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나무는 그 영혼으로부터 '오라, 오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사랑은 밤낮 없는 기다림이다. 나무는 항상 소년을 기다렸다. 소년이 오지 않아서 나무는 슬퍼졌다. 사랑은 나누어 가지지 못하면 슬프고, 누군가에게 주지 못하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누어 가질 수 있을 때만 사랑은 기쁨을 느낀다. 모든 것을 내 줄 수 있을 때 사랑은 행복하다. 소년은 성장함에 따라 나무에게로 오는 시간이 점점 뜸해져 갔다. 인간이 성장하여 야망이 크게 되면 사랑할 시간은 점점 멀어져간다. 소년은 이제 세속적인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이 나무 옆을 지나가자, 나무는 그에게 간곡히 말했다. "나는 네가 오기를 기다렸건만, 너는 끝내 오지 않았어. 난 매일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소년이 나무에게 말했다. "너는 무얼 갖고 있니? 왜 내가 너에게 와야 하니? 너는 돈이라도 갖고 있니? 난 돈을 갖고 싶어." 편견은 언제나 원인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쓸모 있는 목적이 있을 때에만 편견은 그 완강한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조건이나 원인이 없다. 사랑은 그것 자체가 보답인 것이다. 깜짝 놀란 나무가 말했다. "내가 무엇인가 줄 때에만 너는 나에게 오겠다는 말이니?" 주기를 아까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편견은 쌓아두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은 무조건 준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돈은 없어. 그래도 우리는 즐겁단다." 나무는 계속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꽃이 피고 많은 열매가 있어. 우리는 나그네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미풍 속에서 춤추며 노래한단다. 우리에게는 돈이 없어도 순결한 새들은 찾아와서 짹짹거리며 가지 위에서 뛰어 놀곤 한단다. 우리가 돈에 말려드는 날에는 너희들 약한 인간이 그러듯 우리도 어떻게 평화를 얻을까 배우기 위해, 어떻게 사랑을 찾아낼 것인가를 배우기 위해 사원(절 사, 집 원)에 가야만 할 거야. 그러나 우리는 전혀 돈이 필요없어."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그렇다면, 왜 내가 너에게 와야 하니? 나는 돈이 있는 곳으로 가겠어. 나는 돈이 필요해." 편견은 권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돈을 갈망한다. 나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아무 데도 가지 말려무나. 그리고 내 열매를 따서 팔도록 하면 돈이 생길 거야. 그러면 돈을 갖게 될 거 아냐." 소년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다. 그는 나무에 기어올라가 열매를 모두 땄다. 채 익지도 않은 것까지 모두 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렸다. 줄기와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땅에 떨어졌으나 나무는 행복했다. 상처를 받아도 사랑은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열매를 얻은 후에도 편견에 빠져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편견은 언제나 더 많이 갖기를 열망한다. 소년은 감사하다는 인사는커녕,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나 나무는 조금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다. 열매를 따서 팔도록 하라는 제의를 소년이 받아들였을 때 나무는 오히려 소년에게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소년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돈을 갖고 있었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그는 나무에 관한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몇 해가 지나갔다. 나무는 다시 슬퍼졌다. 나무는 소년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가슴은 젖으로 가득 차 있으나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나무는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이젠 어른이 된 소년이 나무에게로 왔다. 나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외치듯 말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소년아! 와서 나를 안아다오." 그 남자가 말했다. "그런 감상적인 말은 그만 둬. 그것은 어린 시절의 일이었어. 이제 난 어린아이가 아니야." 편견에 빠진 그는 사랑을 미친 짓으로 보며, 철없는 환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무는 그를 기쁘게 초대했다. "어서 오너라. 와서 내 가지에 힘껏 매달려 보렴. 자, 함께 춤추며 놀자꾸나!" 그 남자가 나무에게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두란 말이야! 나는 지금 집이 필요해. 너는 나에게 집을 지어줄 수 없잖아?" 나무가 그 남자에게 외쳤다. "집이라구! 나에겐 집이란 것은 없어." 오직 인간만이 집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인간 이외에 그 누구도 집에서 살지 않아. 한가지 묻고 싶은데 당신은 사방을 벽으로 둘러싸여 창문이 꼭꼭 닫혀진 인간의 상태를 알고 있는가? 소유한 건물이 크면 클수록 인간은 작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 거처하지 않으나 너는 나의 가지를 잘라갈 수 있지 않겠니? 그러면 나의 가지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야." 그는 그 말을 듣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톱을 가져와 나무의 가지들을 전부 잘랐다. 나무는 이제 몸통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지가 잘려 나갈지라도 사랑은 언제나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남자는 나무에게 감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 집을 지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 나무는 이제 통나무가 되어서 가지가 잘린 채로 그 남자를 기다렸다. 나무는 그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무에게는 힘이 되어 줄 가지도 잎도 없었다. 바람이 불어 지나갔으나 바람결에 소식을 부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나무의 영혼은 여전히 오직 한가지 기도만을 울리고 있었다. '오라, 오라, 나의 사랑하는 이여! 어서 오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은 흘렀고, 그 남자 역시 이젠 하찮은 늙은이에 불과하다. 어느 날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길에 나무에게로 와 옆에 섰다. 나무가 늙은이에게 물었다. "너를 위해 그밖에 다른 무엇인가를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너는 무척 오랜만에 왔구나." 그 늙은이는 나무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니? 나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먼 나라로 가고 싶어. 나에게는 여행할 배가 필요해." 나무는 기쁜 듯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그럼 내 몸통을 잘라다 그것을 배를 만들게. 네가 돈을 벌러 먼 나라고 가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무척 행복할 거야. 그러나 꼭 기억해 두게. 난 네가 돌아오길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그는 톱을 가져와 마지막 남은 나무의 몸통마저 잘라 배를 만들어서 그걸 타고 떠나갔다. 나무는 이제 작은 그루터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무는 사랑하는 이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무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집, 편견, 욕심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는 곳에는 가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요구하는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은 관용이다. 사랑은 왕이요, 황제인 것이다. 어느 날 밤 나는 그 그루터기 곁에서 쉬고 있었다. 나무는 나에게 속삭였다. "그 친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혹시 그가 물에 빠지지나 않았을까, 길을 잃지나 않았을까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그는 먼 나라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어쩌면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소식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를 부를 수 있다고 해도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그에게 줄 것이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이제 그는 받는 것밖에는 모르고 있을 테니까." 편견은 받는 언어밖에는 이해할 줄 모른다. 주는 언어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인생이 그 나무처럼 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가지를 멀리까지 크게 뻗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랑에는 경전도 없고, 도표도 없고, 서전도 없다. 사랑에는 정해진 원칙도 없다. 이처럼 사랑을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사랑은 다만 있을 뿐이다. 당신이 가까이 와서 내 눈속을 들여다 보면, 당신은 어쩌면 그 눈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포옹하려고 팔을 뻗칠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이겠는가? 만일 사랑이 나의 눈 속에서, 나의 팔 안에서, 나의 침묵속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언어를 가지고도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ff 진리속의 진리 어떤 물고기가 여왕 물고기에게 찾아와서 물었다. "저는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관해 누구보다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바다는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여왕 물고기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고 있다. 네가 이야기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너는 바다 속에 있으며 바다는 또 네 안에 있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 너는 그 바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 바다는 한 순간도 그 고기 곁을 떠난 일이 없었다. 바다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 고기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바다는 너무나 투명하여 물고기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멀어진 것이다. 너무 쉽게 손에 닿는다. 너무 깊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조금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보다 민감해져라. 보다 깊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해 빠짐없이 귀를 기울여 보라. 모든 것을 만져보라. 모든 것을 눈여겨 보라.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는 너희는 귀가 되라. 무엇을 볼 때에는 눈이 되라. 무엇을 만질 때에는 감촉이 되라. 모든 열정과 감수성을 다 모아서 보고 듣고 만져라. 그리하면 어떤 감각도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감수성으로 통합될 것이다. 그때 너희는 신 안에서 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ff 지도 한 무리의 새들이 남쪽지방을 찾아 하늘을 날고 있는데, 한 새가 다른 새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늘 저 멍청한 친구의 뒤만 따라다니지?" 그러자 다른 새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언젠가 듣기에 그만이 지도를 갖고있대." *지도라... 사실 그 누구도 지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너희는 누구를, 박식한 누구를, 훌륭하고 성스런 누구를 추종하며 그들이 지도를 갖고 있고 아니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라.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어쩌면 그들은 너희보다 훨씬 더 어리석을지 모른다. 그들을, 그들의 삶을 지켜보라. 그들은 과연 행복한가? 그들의 삶에 춤이 있는가? 향기가 있는가? 그들의 침묵이 너희에게 와 닿는가? @ff 자기 얼굴의 책임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된 뒤 내각 구성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선택할 때, 비서관에게서 한 사람을 추천받았다. 그 사람 이름을 듣자 링컨은 당장에 거절했다. 이유를 묻자 링컨은 말했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이유였다. 그래서 비서관이 반문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얼굴 생김새에는 책임이 없지 않습니까? 얼굴이야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링컨이 말했다. "아닙니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링컨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마흔 살이 넘으면 너희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얼굴은 너희가 살아오고 사랑하고 걱정해 온 모든 것의 종합이다. 너희가 행동해 온 방식, 관계해 온 것들이 얼굴에 다 나타나 있다. 얼굴은 바로 너희의 자서전이다. 따라서 사십이 넘으면 마땅히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ff 제4부. 아름다운 사람 @ff 아름다운 사람 한 사나이가 기차로 세계 여행을 했다. 그는 완벽한 여성을 찾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 것이다. 그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완벽하지 못한 여자와의 결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완벽한 여자만을 원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찾아 헤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한 여자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여자를 찾는 데 일생을 낭비하고 마침내 허탈감만을 가득 싣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친구가 찾아와 말했다. "자넨 결국 완벽한 여자를 찾는 데 평생을 허비했군. 이제 자네 나이도 70이지? 그런데 그동안 완벽한 여자가 단 한 명도 없던가?" 꼭 한 명 있었다네. 우연히 정말 완벽한 여자를 하나 만났었지." 친구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 그래서 어찌 됐나?" 그러나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됐냐구?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더군. 그래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우리에게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치 않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사람이 필요하다. 꽃을 피우고, 흐르며,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때로 슬픔에 젖고, 화도 내며,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치 기후처럼 변하는, 비가 올 때도 있고 구름이 낄 때도 있고, 햇볕이 쨍쨍 내리 쬘 때도 있는 것, 우리에게는 모든 계절이 필요하다. 진실한 사람은 모든 기후를 갖는다. 추위, 더위, 봄, 가을, 모든 것을 갖는다.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ff 침묵하는 법 다섯 살 난 어린 소년이 그의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의 여동생은 이제 말하기를 배웠느냐?" 그 소년이 대답했다. "예. 말하기는 배웠는데 이제 우리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하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이것은 불행이다. 그대는 말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그 후에 그대는 침묵하는 법, 말이 없는 법을 배워야 한다. @ff 부인의 복통 대학을 갓 졸업한 애송이 의사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 역시 의사였는데 너무도 일을 많이 하여 몹시 지쳐 있어서 휴업을 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3주일간 휴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휴양을 가 쉬고 있을 테니 그동안 네가 나의 일을 대신 해라." 아버지가 요양을 하고 3주일 후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들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께서 깜짝 놀랄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치료하면서도 고칠 수 없었던 부인의 병을 나는 3일만에 고쳤습니다. "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 어리석은 녀석, 그 부인은 너의 학비를 지불해 주었고, 나는 그녀를 통해 내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 있으리라고 희망했었다. 그녀의 복통은 사실 병이 아니다. 나는 요양하러 가 있는 동안 너에게 그녀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고 해야 할 것을 잊었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녀는 부유하고, 그녀에게는 복통이 필요하다. 나는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수년 동안 그녀는 착실한 내 수입원이었다. " *모든 병의 90퍼센트는 심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문에 의해 고쳐질 수 있고, 어떤 연상에 의해 고쳐질 수 있다. 우선 그들은 이미 그 병들을 만들어내는 실제의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라도 그들을 고칠 수 있다. @ff 3층 누각 옛날에 도대체 미련하여 아는 것이라곤 돈 모으는 재주밖에 없는 어리석은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이웃에 사는 부잣집에 갔다가 삼층 누각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넓고 높아 시원스럽게 보였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것을 무척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가지고 있는 재산도 저 사람 것만 못하지 않은데 왜 나는 아직까지 이런 누각을 짓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당장 목수를 불렀다. "저 누각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누각을 지을 수 있겠소?" "저 누각은 바로 내가 지은 것입니다. " "그럼 곧 저런 누각을 하나 지어 주시오." 부탁을 받은 목수는 곧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집짓는 것을 지켜보던 부자는 의심이 나서 목수에게 물었다. "어떤 집을 지으려는 것이오?" "삼층 누각을 짓는 중입니다." 그때 이 어리석은 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래 두 층은 필요없으니 맨 위층만 속히 지어주시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아래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이층을 지을 것이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삼층을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런 집을 짓지 못합니다. " 목수는 그만 떠나 버렸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그 부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ff 말과 자동차 한때 나에게는 교수였으며, 말을 너무 사랑하는 이웃이 하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자동차를 한 대 구입했는데 매일 아침 그는 차를 깨끗이 닦았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전시품 신세에 불과할 뿐, 결코 그것을 길 위로 끌어내는 법이 없었다. 수년 동안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는데 매일 아침 그는 차를 닦고 광내느라 많은 곤란을 겪곤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우리는 같은 기차의 객실에서 만났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차에 무슨 고장이라도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밖으로 내놓지 않고 사용하지도 않으니 말이오. 언제나 당신의 차고 안에 그대로 놓여 있더군요."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과 사랑에 빠졌어요. 나는 그것을 너무나 사랑해서 내가 만일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면 무엇인가 잘못될까봐 항상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고나 긁히는 일 같은,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 잘못될 수는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자동차, 말, 그물, 그것들은 수단이지 절대로 목적이 아니다. 그대는 그것들과 사랑에 빠질 수 있으나, 그렇다면 그대는 결코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 @ff 젊은이의 사랑 한 젊은이가 어느 유태인 노인을 찾아갔다. 젊은이는 그 유태인 노인의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마침내 노인에게 말했다. "어르신, 저는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노인은 젊은이를 쳐다보면서 유태인들 특유의 말투로 물었다. "이보게 젊은이, 그 이유가 뭐지? 왜 내 딸과 결혼하고 싶은 거지?" 젊은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렇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사랑에 무슨 효용이 있을까? 사랑에 무슨 용도가 있을까? 너희는 장미꽃을 보며 짜릿한 황홀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두둥실 떠오른 달을 본다. 너희 속안의 무엇이 달과 만나고, 무엇인가가 변화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의 삶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 있으니 그대로 놔두어라. @ff 암소와 돼지 어느 부자가 한 친구에게 말했다. "이상하단 말일세. 내가 죽으면 나의 전 재산을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유언해 두었는데도 왜 사람들은 나를 구두쇠라고 비난하는지 모르겠어." 친구가 대답해 주었다. "글쎄, 내가 암소와 돼지 예기를 하나 해주겠네.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신은 사람들에게 왜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네. 돼지가 말했어. '사람들은 항상 암소의 부드럽고 온순함을 칭찬하지. 물론 암소 너는 사람들에게 우유와 크림을 제공해 주지.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사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구. 베이컨과 햄, 털까지 제공하고 심지어 발까지 주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날 좋아하지 않아. 도대체 왜 그러는지 난 알 수가 없어.' 암소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어. '글쎄. 그건 아마 내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을 제공하기 때문일 거야."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죽음 다음에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때까지 아껴두는 것보다 모든 것을 나누고 모험을 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죽음은 결국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 사람은 언제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 잘못도 없는 것. 길을 잃은 사람은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는 자라면 죽은 사람이다. @ff 완전한 원 "선생님, 하느님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요?" 국민학교 1학년짜리 꼬마가 물었다. "하느님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예요." 선생님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꼬마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잖아요?" 꼬마가 고집을 부리며 묻자, 옆에 있던 다른 꼬마가 빈정거렸다. "원에서 처음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이 어디 있니?" 그 말을 듣고 그 꼬마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제야 조금 알 듯 말 듯 한데." *만약 당신이 완전하다면 당신은 원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삶을 찾는다면 그것은 둥근 원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모든 완전한 것은 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발자국으로 마지막 발자국이 이어질 때 원은 완결된다. @ff 절약 어떤 구두쇠 부자 노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모든 가족이 모였을 때, 큰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묘지까지 모시고 갈 영구차를 빌려야 할 텐데..." 막내 아들이 선뜻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롤스로이스를 갖는 게 꿈이셨어요. 아버님 살아 생전에 그 차를 한 번도 타시지 못했으니 적어도 돌아가실 때 만큼은 롤스로이스로 모시는 게 좋겠어요. 물론 편도죠. 무덤까지만..." 그러자 큰 아들이 말했다. "너는 너무 철이 없구나. 죽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롤스로이스든 아니면 포드든지 상관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 포드가 적당할 것 같다. " 둘째 아들이 말했다. "형은 어찌 그렇게 사치스럽소. 어쨌든 우리는 시신만 옮기면 되는 거예요. 나는 트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아요. 그게 아마도 훨씬 편하고 싸게 먹힐 거예요." 셋째 아들이 말했다. "도대체 롤스로이스니, 포드니, 트럭이니 하고 떠들 필요가 어디 있어요. 아니 아버지가 결혼하시려고 가시는 겁니까? 아버지는 묘지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를 대문 밖 쓰레기통 옆에 내려놓으면 쓰레기를 치우는 트럭이 아버지를 자동적으로 데려갈 거예요. 그리고 그건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아요." 이때 노인이 눈을 뜨고 말했다. "내 구두가 어디 있느냐?" 아들들이 동시에 말했다. "구두를 가지고 무얼 하시려구요? 아버지는 그냥 쉬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우겼다. "글쎄, 내 구두를 내놓으라니까." 큰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고집은 못 말려. 얘들아, 아버지께서 구두를 신고 돌아가시고 싶은 모양이다. 구두를 내드려라." 노인이 구두를 신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장례비용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직 목숨이 조금 남아 있으니 무덤까지 걸어가 그 옆에서 죽겠다. 얘들아, 거기에서 만나자. 다만 너희들이 너무 사치스럽게 나를 괴롭히는구나. 나는 살아 생전에 롤스로이스나 다른 아름다운 차에 대하여 오직 꿈만 꾸었단다. 꿈꾸는 것에는 돈이 하나도 들지 않지. 꿈은 공짜야. 그리고 너희들은 무엇이나 꿈꿀 수 있어." 그 후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노인은 무덤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무덤 옆에서 노인은 죽었다. 돈을 절약한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마지막 생전은 그의 일생을, 그의 철학을. 그의 종교를 농축시킨 것이다. 이는 엄청난 노출인 것이다. @ff 신과 사랑 사람들은 사랑의 가면을 들고 무작정 뛰는가 하면 신을 찾아 헤맨다. '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사랑은 또 어디에 있는가?' 눈을 감은 채로 무작정 찾기만 한다. 그러나 신은 어디에나 항상 있다. 다만 당신이 신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조금 더 민감해진다면 어디에서나 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찮은 나뭇가지에서도, 쓸데없이 놓여진 작은 바위에서도 신을 만날 수가 있다. 사랑을 가져라. 그러면 모든 것에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돌멩이 하나에도 사랑을 담고 만진다면 당신은 거기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가지고 사물을 보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속에서도 신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관심을 갖는 모든 만물 속에 신은 함께 존재한다. 신은 당신의 전체적인 힘이다. 능력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의 일부이다. 당신의 모든 감각이 생동하고 있다면 전체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어느 것인들 말씀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말씀 그것은 곧 신이다. 진리가 곧 신이다. 때문에 신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ff 스님과 약사 어느 저녁 만찬에 스님 한 분이 초대되었다. 그 스님은 어느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옆에 앉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면서 스님은 옆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저는 약사입니다." 그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자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것은 당신이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고, 그것 외에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약사가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요."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의식의 흐름을 행위에서 실존으로 변형시키지 않는 한 당신은 자신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당신은 '나는 의사입니다' 또는 '나는 교사입니다', 혹은 '나는 사업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대답이다. 이러한 대답은 여러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ff 스승과 원숭이 어느 스승의 집 뜰에 호기심 많은 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숭이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곤 했다. 원숭이는 스승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졌다. 스승은 조용히 침묵한 채 앉아서 아무 것도 행하질 않는 것이었다. 원숭이는 스승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대체 무얼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신비였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에게 가장 신비스런 것이 있다면 누군가가 고요히 앉아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원숭이에게 경박스러움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다. 원숭이는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휴식하고 있는 걸까? ... 아니면 미친 걸까? 원숭이는 그를 살펴보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데 가까이 다가간 원숭이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침묵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한없이 고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원숭이라 할지라도 순간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원숭이는 침묵하고 있는 스승을 좋아하게 되었고, 스승 가까이에 머무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다. 원숭이는 이제 틈만 있으면, 그리고 스승이 뜰에 앉아 있을 때면 줄곧 다가가서 스승 옆에 앉곤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원숭이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무얼 하시는 거예요? 제게도 말씀해 주세요. 전 스승님에게 복종하겠어요. 절 제자로 받아 주세요." 스승은 자비로운 눈빛으로 원숭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그대도 나와 똑같이 할 수 있다.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봄이 절로 오고 풀이 절로 자란다. 그대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으라. 그리하면 어느 순간 돌연히, 어마어마한 기쁨과 평온과 신성이 가득 찰 것이다. 그대는 아무 것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그것은 곧 방해가 되고 파문을 일으키고 마침내는 파도를 일게 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거칠게 파도칠 때 신성은 들어올 수 없다. 그대의 마음이 잠잠할 때 모든 것이 침묵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 신성이 들어온다. 신은 침묵의 문을 통해서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아야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원숭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말했다. "불가능해요. 전 무언가가 거기 있다면 그걸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은 불가능해요. 스승님이 설혹 달을 따오라 하셔도 전 할 수 있어요. 히말라야를 옮겨 놓으라 하신다면 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오랜 옛날, 사람과 같았던 다른 원숭이들은 그렇게 할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전 원숭이고 잠재력을 갖고 있으니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잠자코 앉아서 아무 것도 행하지 말라고요? 스승님, 그건 저에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해요. 제 성질에 전혀 맞질 않거든요. 아마 미치게 될 거예요." *인간의 마음은 바로 한 마리 원숭이다. 인간은 그리 진보하지 않았다. 인간은 외형만 진화했다. 인간은 원숭이처럼 전혀 침착하지 못하다. 경박하다. 자기 내부에 있는 원숭이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참된 사람이 태어난다. 참된 사람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원숭이가 없다. 마음은 끊임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가 가고 바뀌어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속 얘기나 독백을 지껄인다. 그건 죄악이다. 원초적인 죄악이다. 그 지껄임이 언젠가 멈출 때, 아, 그때는 그대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ff 스승의 잠 한 스승 밑에 두 제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제자는 하루하루를 서로 자기가 수제자라고 주장하면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서로 스승의 환심을 사려고 경쟁하였다. 어느 여름날 오후, 스승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두 제자는 스승의 몸을 주물러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스승이 대답했다. "그래, 한 놈은 내 왼쪽을, 한 놈은 오른쪽을 맡아서 주물러 봐라." 그리고 스승은 곧 잠이 들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분필로 스승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놓았다. 서로 책임맡은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잠자던 스승이 오른쪽 발을 들어 왼쪽에다 올려 놓았다. 그러자 왼쪽을 맡은 제자가 말했다. "오른쪽 발은 자네 책임이니 치우게, 어서 자네가 맡은 발 때문에 내 일을 못하지 않나." 오른쪽 발을 맡은 제자가 대꾸했다. "치울 수 없네. 발을 올려놓은 건 내가 아니잖나. 용기가 있다면 자네가 직접 해보시지?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난 구경이나 하겠네." 두 제자는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옥신각신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스승이 깨어나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들이 대답했다. "스승님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 주무십시오. 저희끼리 결정할 문제니까요." *나눈다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유용성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여, 자신의 몸을 느껴보라. 눈을 감고 조용히 느껴보라. 생명은 전체적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경계선이 있는가? @ff 제5부. 아버지의 편지 @ff 아버지의 편지 한 소녀가 어느날,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그 옛날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냈던 사랑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소녀는 그 편지의 내용을 다른 편지지에 그대로 옮겨썼다. 그런 다음 그 편지에다가 다른 남자의 이름으로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 소녀는 그 편지를 자기 자신에게 오도록 보냈다. 편지가 도착하자 그녀의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다. 아버지는 그 편지를 읽고는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분노를 일으켰다. 그리고 마구 호통쳤다. "이 녀석은 정말 얼간이로구나! 네가 이 녀석과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도 분노에 떨며 말을 이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그런 백치는 원하지 않는다. 이 따위 어리석은 편지를 쓰는 바보는 정신병원에다가 처박아 버려야 해." 이렇게 마구 꾸짖는 것이었다. 당신은 사랑할 때 어리석은 짓을 한 적이 없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의 미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종교인을 볼 때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본다. 여러분이 사원에게 기도하고 있거나 기원하고 있을 때 무신론자들에게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때 너희는 얼간이이거나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ff 운명 운명은 엄지손가락의 지문이나 마찬가지다. 지문은 사람마다 독특하다. 세상에 어디에도 똑같은 유형의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 지문은 당신 혼자만의 것이며 우주 안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그 엄지손가락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당신 외에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신격을 나타내는 독특한 흔적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엄지손가락의 지문으로 운명을 분별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물론 그런 것으로 당신 신격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눈썹만한 잣대에 불과하며 태평양에 띄워 놓은 돛단배일 뿐이다. 엄지손가락 그것은 외부이며 외양적이다. *운명은 엄지손가락의 지문처럼 분명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운명이 벌써 그렇게 지워졌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운명은 개개인이 만들어 간다. 바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지문의 비밀을 아는 것은 신이 아니라 너 자신이다. 너 자신만이 그 지문의 비밀 열쇠를 가지고 있다. 만약 지문대로 운명이 지워진다면 마치 토기장이가 큰 그릇이나 작은 그릇을 만드는 일과 같아진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이듯이 말이다. @ff 엄마의 이름 어느 일요일 날, 학교에서 소풍을 가다가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그만 잃어버렸다. 그의 어머니는 미친 듯이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어린아이가, "에스텔! 에스텔!!"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아들을 발견해 내고는 달려가서 두 팔로 그를 끌어 안았다. "왜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에스텔이라고 이름을 불렀지?" 어머니가 물었다. 아이가 전에는 한번도 엄마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곳은 엄마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라고 부른다면 수많은 어머니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곳은 어머니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대는 엄마를 개인적으로 불러야 한다. 하느님 역시 개인적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면 즉,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면, 신은 너의 삶에서 아무런 진실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 @ff 랍비의 꿈 한 랍비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떤 도시에 있는 다리 부근에 굉장한 보물이 숨겨져 있어서 그곳엘 가기만 하면 그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 사람은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가난한 랍비였다. 가난한 랍비는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지.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데. 백 리는 될 걸 아마. 꿈은 꿈일 뿐이라구." 그런데 이튿날 그는 똑같은 꿈을 또 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좀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꿈만은 아닐지도 모르지 않는가. 신이 내게 계시를 내려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찮은 꿈 때문에 백 리나 되는 먼 길을 떠날 만한 용기가 그에겐 없었다. 그는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설령 길을 떠나려 한다 해도 누군가에게 여비를 빌려야만 했다. 그는 또 그 도시에 정말 꿈에서 본 그런 다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 도시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날 그는 또 다시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은 끈질기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가라. 가서 보물을 찾으라. 모두 네 것이다. 보물은 그 다리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까지 또렷이 보이는 것이었다. 보물이 있는 그 장소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직접 가서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모두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보이는데 안 갈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여비를 빌어 길을 떠났다. 백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길을 가면서 물론 수없는 의혹과 의심이 일어났다. "끝장을 내버려야지. 내가 직접 가서 확인을 해보리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꿈에 본 그 다리가 정말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꿈속의 다리와 똑같았다. 완전히 똑같았다. 주변 풍경도 나무들도 모두 똑같았다. 보물이 있다는 그 장소도 꿈속에선 보이지 않던 경찰관 한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한사람의 경찰관이 일정한 시간마다 교대를 하고 있을 뿐 거기엔 언제나 한 사람의 경찰관이 있었다. 24시간 언제나 경찰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왜 거기에 늘 경찰관이 있는 건지를 물었더니 사람들이 말했다. "저 다리에서 여러 명이 자살했거든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는 자연히 다리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가 다리 주변을 어정거리며 왔다 갔다 하자, 경찰관은 그를 미심쩍어 하게 되었다. 그가 계속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던 경찰관이 하루는 그를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당신 왜 그러시오? 혹시 자살하려는 거 아니오? 말썽부리지 마쇼. 뭣 때문에 여기서 할 일 없어 얼쩡거리쇼? 뭐하는 거요?" 가난한 랍비가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난 사실 이 다리엔 조금도 관심이 없소. 내가 여길 서성거리는 건 꿈 때문이오. 아주 생생한 꿈이었소." 그러면서 그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건 내가 꾼 꿈인데,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세자 깊이에 굉장한 보물이 있단 말이오." 경찰관이 쿡쿡 대며 웃었다. "당신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양반이군 그래. 한데 묘한 게 좀 있기는 하오. 실은 나도 꿈을 꾸었는데 이러저러한 마을에--가난한 랍비가 사는 마을이었음--요모조모한 랍비가--가난한 랍비가 똑같은 사람이었음--살더란 말예요. 그런데 그 랍비의 침대 밑에 굉장한 보물이 있다는 거요. 계속 그런 꿈을 꾸었단 말이오. 이봐요. 그렇지만 난 그 따위 꿈에 조그만 흥미가 없소. 꿈은 어디까지나 꿈에 지나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참 어리석군. 난 바보가 아니란 말요. 백 리나 되는 그 마을을 찾아가서, 거기다 또 그 가난한 랍비를 찾아내서, 다시 그 랍비의 침대 밑을 파헤쳐보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안한단 말이오. 아시겠소?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란 말요. 이보쇼. 얼른 집으로 돌아가시오. 얼른! 가난한 랍비는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얼른 침대 밑은 파헤쳐 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엔 굉장한 보물이 있었다. *그대는 구름처럼 머리에 떠있다. 가슴은 찬양 속에서 그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보물은 바로 거기에 있는데, 그대는 그걸 찾으러 세상을 헤매고 있다. @ff 낮추어라 한 젊은이가 늙은 율법학자에게 물었다. "옛날 그 황금 시절에는 사람들이 눈으로 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신과 만났으며 신은 땅 위를 걸어다녔습니다. 신은 그들의 음성으로 사람들은 불렀으며 사람들은 신과 매우 친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왜 신은 이 땅을 버렸는가요! 왜 신은 이제 이 땅 위를 걷지 않는가요? 왜 신은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걸까요?" 그 늙은 율법학자는 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제자들아, 신은 아직도 도처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는 만큼 낮게 구부리는 법을 잊었느니라." *구부려라... 인간은 구부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인간은 너무나 거만하게 서 있다. 인간은 신과 따로 떨어져서 서 있다. 인간은 섬이 되어 있다. 인간은 이미 우주의 부분이 아니다. 전체의 부분이 아니다. 신은 그가 서 있었던 곳에 여전히 있다. 지금도 너희 손을 잡으려 하는 데 네가 가까이 가지 않을 뿐이다. 신은 지금도 너희와 마주하고 있으나 네가 옆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ff 변덕 옛날 중국의 위나라 임금이 미자하라는 영리한 소년을 총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궁중에 머물고 있는 미자하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니 급히 오라는 기별이 전해졌다. 미자하는 일의 앞뒤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임금의 명령이라고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서둘러 달려갔다. 그 당시의 위나라 법에는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면 월형(달 월, 형벌 형=발을 자르는 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얘기를 전해 들은 임금은 미자하의 효심을 가상히 여기고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발을 잘리는 벌도 달게 받을 각오였구나."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미자하는 임금과 더불어 과원을 거닐면서 복숭아를 먹는데 맛이 하도 좋아 다 먹지 아니하고 남은 반쪽을 임금에게 드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참으로 귀여운 녀석이구나. 맛이 좋은 것을 저 혼자만 먹으려 하지 않고 내게로 나누어 주다니, 미자하는 어리지만 마음씨가 기특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어느덧 미자하의 귀여운 얼굴빛이 시들고 임금의 총애도 쇠퇴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아주 조금만 실수를 저질렀다. 임금은 심히 노여워하면서 "미자하는 본래가 그런 놈이다. 일찍이 나의 수레를 내 명령이라고 속여 탄 일이 있었는가 하면 또한 제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인 일이 있었다."라고 꾸짖었다. 그리고 임금은 미자하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을 명령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듯 변덕이 심하다. 마치 동지섣달 팥죽 끓듯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또 바람이 물에 닿으면 출렁이듯, 아니면 하늘이 개었다 흐렸다 하듯 설왕설래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ff 욕심 이런 우화가 있었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 한 마리가 여름 동안 나뭇가지에 앉아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머지 않아 다가올 겨우살이 걱정도 하지 않고 평화와 행복의 노래만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리고 바로 가까운 이웃에 들쥐 한 마리가 살았는데 날이면 날마다 보리밭 옥수수밭을 들락거리며 온갖 곡식들을 몰래몰래 끌어다 곳간에 쌓았다. 하느님이 파랑새의 몫으로 작정해 놓으신 빨간나무 열매마저도 어느새 날쌔게 훔쳐다 쌓았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허기진 파랑새는 들쥐를 찾아가 자기 몫이었던 나무 열매 한 알이라도 돌려주기를 간청해 보았다. 그러나 들쥐는 아주 냉정하게 거절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버린 파랑새는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날개를 접고 죽어갔다. 그러면서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파랑새의 슬픈 노래소리를 무심히 흘려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파랑새의 노래소리가 끊어졌다. 어쩐지 들쥐는 이상한 공허에 휩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랑새의 노래소리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들쥐는 그제서야 비로소 그 노래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다. 들쥐는 못견디게 쓸쓸하고 삭막했다. 이리저리 헤매고 곳간 밖을 내다보았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허전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파랑새의 노래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들쥐는 점점 식욕을 잃고 몸은 쇠약해져갔다. 마침내 들쥐는 곡식이 잔득 쌓여 있는 곳간 속에서 전신쇠약으로 죽어버렸다. *인간은 그동안 들쥐의 철학만을 지나치게 숭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일과 그른 일, 가야 할 길과 가지 못할 길을 가리지 않고 그저 곳간을 채우고 재산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익과 편리와 발전을 향하는 외골수의 집념 때문에 정서적인 면에서의 부족함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양적증대가 경제적 발전을 가져오고 그것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확실했었다. 악착같이 벌어서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요, 영광의 바탕이라는 생각 때문에 삶은 갈수록 치열한 아귀다툼의 양상을 띠게 되고 인간 관계는 그만큼 차가워지기만 했다.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할 것인가?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고 믿고 지금도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것이 지금의 현대인의 모습인 것이다. @ff 호기심 옛날 인도의 깊은 산 속에 자기는 천 살이나 되었다고 말하는 수도승이 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한 서양 사람이 이 소문을 전해 듣고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동양이라는 곳이 워낙 신비하고 베일에 싸여 있으니까 그것이 사실인지도 모르지'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만나려고 수 천리 길을 달려갔다. 그는 천 살이나 먹었다는 그 수도승에게 가까이 가 보았지만,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며칠 동안 그 수도승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지켜보아도 그가 천 살이나 먹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천 살짜리 노인의 수제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저 분이 천 살이나 되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 제자가 대답했다. "글쎄요. 그것은 나도 잘 모릅니다. 나도 이곳에 온 지 삼백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제자도 삼십이 넘어 보이지 않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인간이란 이처럼 어리석다. 그가 오십 살이든 삼백 살이든, 또는 천 살이든 그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오래 사는 것'에 대한 흥미는 바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 사실이다. 만약 누군가가 천 살을 먹었다고 한다면 인간은 그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그를 만나면 오래 살 수 있는 무슨 비결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ff 거울 속의 개 언젠가 한 왕이 수백만 개의 거울이 달린 큰 궁전을 지었다. 모든 벽이 거울로 뒤덮여 있었다. 한데 우연히 개 한 마리가 그 궁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개는 거울에 비친 수백만 마리의 개들을 보았다. 그 개는 일순간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바짝 긴장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짖어대기 시작했고 그가 짖기 시작했을 때 그 수백만 마리의 개들도 역시 짖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에 그 개는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 개는 혼자 거기에 있었고, 그곳에는 오직 거울들만이 있었다. 아무도 그 개와 싸우지 않았고, 사실 거기엔 싸움할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그 개는 거울 속에서 그 자신을 보았고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 개가 싸우지 시작했을 때, 거울 속의 반영체들도 역시 싸우기 시작했다. *너희는 그 개가 보낸 그날 밤의 지옥을 상상할 수 있는가? 너희는 바로 지금 그 지옥에서 살고 있다. 거울들과 거울 속에 개들이 너희 주위에서 짖고 있다. 모든 거울 속에서, 모든 관계 속에서 너희는 적을 본다. @ff 무한대와 유한대 중세 최대의 철학자며 신학자였던 성 어거스틴이 어느 황혼녘에 석양을 등지고 바닷가를 혼자 거닐고 있었다. 그는 우주와 인간에 관한 깊은 명상에 잠긴 채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닷물과 모래밭, 거기 홀로 걸어가고 있는 성 어거스틴은 무한대의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미미한 위치에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그리고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려는 의지에 찬 인간의 존재가 꽤나 위대하게 느껴지는 미묘한 모순을 감지하면서 깊은 사색을 동반한 해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까 바로 앞에 천진난만하게 생긴 소년 하나가 작은 표주박을 가지고 바닷물을 모래밭의 웅덩이에다 열심히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소년의 표정이 무척 심각한 것을 보고 성 어거스틴은 약간 의아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소년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너는 아까부터 계속 그 표주박을 가지고 바닷물을 퍼서 그쪽 웅덩이에 쏟곤 하는 데 무슨 이유라도 있느냐?" 그러자 그 소년은 아주 의연하게 "예, 저는 이 작은 표주박을 가지고 이쪽에 있는 바닷물을 몽땅 퍼서 저쪽에 있는 웅덩이에다 옮겨 보려고 합니다. 한번 작정한 일이니 평생이 걸리더라도 기어코 해내고야 말 작정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성 어거스틴은 기가 막혔다. 망망한 대해(큰 대, 바다 해) 끝도 없이 꽉 차 있는 바닷물을 저렇게 작은 표주박으로 모래밭의 작은 웅덩이 속에다 옮겨 놓겠다는 소년의 생각은 귀여운 어린이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웃고 지나치기에는 그 대답이 너무 진지한 것이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얘야, 너의 크고 높은 뜻은 알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표주박을 가지고 저렇게 무한대한 바닷물을 몽땅 퍼서 옮길 수 있겠니? 더구나 저렇게 작은 웅덩이에다 말이야. 그러니 이제 그 일일랑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거라."하고 그 소년을 타일렀다. 그 소년은 가만히 성 어거스틴의 말을 듣고 나서 아주 기상천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러시다면 제가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그렇게 작은 머리를 가지고 무한대의 우주에 대한 진리를 몽땅 알아내겠다고 애를 쓰고 계십니까? 바닷물은 많긴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진리는 글자 그대로 무한하고 영원한데 어떻게 선생님의 유한한 삶을 가지고 그것을 몽땅 알아낼 수 있습니까?" 어거스틴은 그 소년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어거스틴은 어린 소년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번쩍 트였다. @ff 지혜 당신은 하루에 책을 어느 정도나 읽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책을 읽는 목적은 무엇인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당신의 기억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욕망 때문인가? 독서는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진실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미묘한 것이다. 당신이 지식을 쌓기 위해 독서를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독초를 기르는 것과 같다. 그 지식에 가지가 뻗고 뿌리를 내려 독의 열매를 맺게 되면 사람을 다치게 한다. *지식은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식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는 지식과는 무관하다. 지식은 까칠까칠한 마음의 실체이며, 지혜는 너희 내면 의식의 따뜻한 날개이며 한 부분이다. 지혜란 지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무식 속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ff 강물 갠지스 강물은 먼 히말라야로부터 흐르고 있다. 그것은 다만 물로서 흐를 뿐이다. 그것은 성직자에게 바다로 가는 길을 묻지 않는다. 당시는 강물이 갈림길에 멈춰서서 경찰관에게 '바다는 어디로 가는가'하고 묻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강물은 바다가 얼마나 먼 곳에 있든지, 어디에 숨어 있든지간에 틀림없이 자기의 갈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바다로 흐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힘, 그 에너지는 우리 마음 속 흐름의 강물 중심에 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강물의 앞길에 장애물이 던져졌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즉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댐이 세워졌다면 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강물은 그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강물에서 있어 아무런 장애물도 아닌 것이다. 강물에는 끝없이 흐르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근본적인 통일과 조화가 있다. 자연의 장애물, 자연 속에 보이는 분명히 상반된 것은 에너지를 일으키기 위한 도전이다. 그것은 내부에 잠재해 있는 것을 불러일으키는 나팔의 구실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부조화는 있을 수 없다. @ff 진실한 말이란 어떤 한 수피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제자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자, 여기를 떠나서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써 오라. 종교에 대해서, 영원에 대해서, 또 삶에 대해서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써 오너라." 젊은이는 물러갔다. 속세에 내려온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젊은이는 스승에게 갔다. "스승님,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써 보았습니다만 아직도 진실에 다다르기에는 먼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일 년 만에 스승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스승은 젊은이의 글을 읽었다. 수천 장의 종이 위에는 깨알같은 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말의 홍수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 읽은 후 스승은 다시 젊은이에게 말했다. "아주 훌륭하고, 멋지지만 너무 길다. 줄여 오너라." 젊은이는 다시 내려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 젊은이는 스승을 찾아왔다. 그 글은 100여 페이지로 압축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스승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여, 이제 그대는 진실의 심장부 근처에 이르렀도다. 그대의 생각은 분명하고 굳세도다. 그러나 아직도 좀 길구나. 좀더 압축하여 말을 줄여 오너라." 젊은이는 힘없이 돌아갔다. 그는 진실의 심장부에 이르기 위하여 뼈와 살을 깎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다시 스승을 찾아 왔다. "스승이시여.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것의 모두이며, 제 삶의 핵심입니다. 이제 저에게 축복을 내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스승은 제자의 글을 보았다. 불과 5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글이었다. 줄여질 대로 줄여진 그 말들은 황금보다 더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승은 젊은이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읽어 갔다. "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의 심장부에 이른 것이다. 말 이전의 말이다. 말로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아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핵심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자, 가서 마지막으로 그 핵심을 가져오너라." 그로부터, 얼마 후 스승은 이제 때가 된 것을 알았다. 그에게 최후의 축복을 내려 줄 때가 온 것을 알았다. 그때 그 젊은이는 다시 스승을 찾아왔다. 그는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스승은 그 종이를 받았다. 과연 거기 무슨 말이 적혀 있었겠는가... 단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았다. @ff 의무와 책임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곧잘 다리를 주무르게 하시곤 했다. 그는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불러 다리를 주무르게 하셨다. 그분은 나이가 매우 많아 아무에게나 항상 "내 다리를 좀 주물러 주지 않겠니?"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네." 하고 대답하고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싫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왜 무슨 일이 있니? 너는 곧잘 내 다리를 주물러 주지 않니? 내 다리를 너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가끔 싫다고 대답하지?" "내가 싫다고 대답할 때는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책임일 때 나는 기꺼이 주물러 드려요." "그 둘이 어떻게 다르니?"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어요. 내가 사랑을 느낄 때,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싶을 때,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라고 느낄 때--즉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고 느낄 때--아이들이 밖에서 놀며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여기에 없어요... 그때 나는 할아버지 곁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맛사지를 원할 때 이따금 싫다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할아버지,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나는 지금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싶어요. 나는 지금 그 아름다운 일을 할거예요.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는 거예요. *너희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너희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행하라. 결코 너의 가슴을 억압하지 말라. 마음은 사회의 부산물이므로 결코 마음에 따라 행동하지 말라. 그것은 너의 진실이 아니다. 너의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움직이고 행하라. @ff 제6부. 흰 빵과 검은 빵 @ff 흰 빵과 검은 빵 영어를 못하는 한 외교관이 미국 국회에 참석했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식당으로 가서 줄을 섰다. 그때 그는 앞에 있던 사람이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문하는 것을 듣고 자기도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2주 내내 애플 파이와 커피만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다른 것을 주문하고 싶어 다른 사람이 햄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을 주의깊게 듣고 자기도 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햄 샌드위치." 그는 카운터맨에게 주문했다. "흰 빵으로 할까요, 검은 빵으로 할까요?" 카운터맨이 물었다. "햄 샌드위치." 외교관은 반복해서 말했다. "흰 빵입니까, 검은 빵입니까?" "햄 샌드위치" 마침내 카운터맨은 화가 나서 외교관의 코앞에 주먹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이것봐요. 흰 빵을 먹겠소, 아니면 검은 빵을 먹겠소?" "그냥 애플 파이와 커피를 주시오." 외교관이 대답했다. *누가 그처럼 골치 아픈 일을 자청하겠는가? 새로운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존의 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기존의 것에만 집착한다면 너희는 전혀 삶을 영위한다고 할 수 없다. 너희는 다만 명목상으로만 살고 있을 뿐이다. @ff 과학은 끝났소 아인슈타인은 인생의 말년에 이르자 자신의 모든 삶이 쓸모없이 낭비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누구인가 그에게,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결코 다시는 과학자가 되지 않겠소! 땜장이가 될지언정 결코 과학자는 되지 않겠소! 과학은 끝났소!" *신비는 영원하다. 그것은 고갈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신비롭고 광대하며 고갈될 수 없는 신이라고 하는 개념이다. 너희가 아무리 끊임없이 탐구해도 여전히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ff '추함'과 '성스러움' 추한 것을 볼 때 그의 추함에 속지 말라. 좀더 깊이 관찰해보면 그 추함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젊은이여, 부디 그 추함에 속지 말라. 추함은 순전히 그대 자신의 관념적 해석이다. 만물은 무조건 아름답다. 진리란 무조건 아름다우며, 존재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추함이란 전혀 있을 수 없다. *무릇, 진리는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진리는 여성적이다. 여성적인 것은 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여기 성스럽다는 이 말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식의 성스러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속적인 것에 반대되는 그런 식의 성스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 모든 것은 성스럽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조건없이 성스럽다. 여기 세속적이라느니, 저속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성스럽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성한 이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철새들이다. @ff 퇴근길 한 어린 소년이 정원에서 놀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몹시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아버지를 보자 뛸 듯이 기뻐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회사에서 하루종일 무얼 하셨어요?" 아버지는 너무나 피곤하고 아들의 물음에 대답할 힘조차 없어 그냥 내뱉듯이 말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그러자 소년은 한참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일이 끝난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만일 너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언제 끝났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일 너희가 어떤 일을 한다면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 끝나는지를 알 수 있다. @ff 자기 변화 어느 날, 늙은 여인이 극장엘 갔다. 갑자기, 그녀의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귀에 약간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아예 어떤 소리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화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보았으나, 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보았으나,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극장은 음향 장치가 좋지 않은가 봐. 아마 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들릴지도 몰라." 그녀는 위층을 올려다 보았다. 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영화 보는 데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계속 표를 바꾸는 것을 본, 극장 주인은 그녀에게 다가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극장은 음향 장치가 엉망인가봐요. 자리를 어느 쪽으로 옮겨 보아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요." 주인이 말했다. "부인, 아마도 부인의 귀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 귀에 이상이 있다면, 아무리 자리를 바꾸어 보아도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내부의 어떤 것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ff 반복된 실수 한 달 봉급을 받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10루피짜리 지폐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아마도 회계원이 계산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율법학자는 몹시 기뻤다. 그런데 다음 달에는 10루피가 부족했다. 그는 즉각 회계원에 따졌다. 그러자 회계원은 이렇게 말했다. "율법학자여, 내가 지난 달에 10루피를 더 넣었을 때는 왜 불평하지 않았소?" 율법학자는 대답했다. "내 말 좀 들어봐요. 실수는 한번으로 족해요. 그런데 실수가 두 번이나 반복되지 않았소? 나는 그 점이 불만인 거요." *명심하라. 너희는 한 번 실수를 범했다. 이제 다시는 전처럼 어리석지 말라. @ff 한 자루의 사탕수수 옛날에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탕수수 열 자루를 얻었다.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오는 길에서 많은 거지들과 아이들을 만났다. 결국, 그는 열 자루의 사탕수수 중에서 아홉 자루를 나누어 주었고, 한 자루만을 남겨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도 그는 매우 행복했다. 그는 사탕수수를 거지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이 고맙다고 했기 때문에 행복했으며, 아이들이 매우 기뻐했기 때문에 행복했다. 그들은 매우 좋아하며 사탕수수를 가지고 그들의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주 아주 즐거웠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사탕수수를 열 자루를 주었소. 그래서, 나는 아홉 자루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 한 자루를 당신과 나를 위해서 가져왔소." 물론, 그의 아내는 매우 화를 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그 사탕수수 열 자루는 그들의 양식이 충분히 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굶을 때가 많았는데도, 그는 사탕수수를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너무 화가 나서 그 사탕수수를 들고 남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나 한 자루의 사탕수수가 부러져서 두 자루가 되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당신은 대단하오. 나는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둘로 만들었군. 좋아. 이제 사탕수수는 둘이야. 당신이 하나 가질 수 있고 내가 하나를 가질 수 있지.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하나라고 믿었고 그래서 한 자루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어요." @ff 항아리 한 사람이 붓다를 찾아갔다. 그는 매우 교양이 있고 많은 교육을 받은 학자였다. 그는 붓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붓다는 "지금 당장은 대답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왜 대답해 주실 수 없다는 겁니까? 지금은 바쁘시기 때문인가요?" 그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붓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에게 약간의 시간도 내 주지 않아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나는 수천 마일을 걸어왔습니다." 그 당시는 열차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여행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남쪽 오지에서 부처를 만나러 그 먼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붓다가 말했다. "아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난 시간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대는 지금 당장은 대답을 얻을 수 없다." 학자가 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듣는 사람이 있다. 첫째는 뒤집어진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대답을 해주어도 그에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대답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바닥에 구멍이 나 있는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 항아리는 똑바로 놓여 있기는 하지만 바닥에 구멍이 나 있다. 그리하여 그 항아리가 가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물은 곧 새어나가고 항아리는 다시 텅 비게 된다. 단지 겉으로 보기에만 물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나 그 항아리는 어떤 것도 가두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바닥에 구멍도 나지 않고 거꾸로 놓이지도 않았지만 오물로 가득 차 있는 항아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 항아리에는 물이 들어갈 수 있지만 물이 그 항아리에 들어가는 순간 그 물은 오염되고 만다. 그리고 그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그대에게 대답해주기 어렵다. 그대는 너무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염되어 있다. 지식은 오염이다. 그대가 배워 온 것은 모두 오물이다. 반면 그대가 이해한 것만이 그대를 정화시키고 변형시키며, 해방시킨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 온 것은 모두 오물이다. 그대는 그것을 훔쳤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그대를 정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대는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기만하고 있다. 그대는 위선자이다. *한 인간의 머리가 오물로 가득 찬 항아리와 같을 때는 신이 그에게로 다가와 무슨 말을 할지라도 그에게로 들어가는 순간 그 말은 오염되고 말 것이다. 그 말은 신이 말하는 대로 들리지 않고 잘못 해석될 것이다. 학식이 있는 자는 이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그의 그 고정관념들은 뒤에 숨어 있다. @ff 불행의 보따리 한 유태인 행자가 보따리를 짊어지고 생각에 잠겨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에는 현명한 자와 무지한 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 그 누구의 보따리에도 이런 무거운 짐이 들어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런 보따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놀라자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인지 "너희들이 메고 있는 보따리를 매달아라!" 그들은 명령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당황하여 황급히 자기의 복잡하고 귀찮은 보따리를 매달고는 일어섰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기회를 만났었더라면, 역시 그들처럼 금방 불행의 보따리를 서슴치 않고 매달았을 것이다. 한참 있다가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왔다. "자아, 너희들 각자가 좋아하는 보따리를 가져라!" 여러분은 그 유태인 행자가 재빨리 다른 사람의 보따리를 집어들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그는 그런 잘못은 범하지 않았다. 매우 당황하여 그는 달려갔다. 누군가가 손을 대기 전에 자기 보따리를 집어들려고. 그렇지 않으면 귀찮아지게 된다. 어쨌든 모든 보따리가 모두 같아 보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보따리를 갖는 편이 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 속의 불행에는 정이 들어 있었다. 타인의 보따리에 어떤 불행이 들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정든 불행 쪽이 그래도 비참함이 적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알고 있는 불행, 낯익은 불행인 것이다. 그는 당황하여 달려갔다. 그리고 타인이 손을 대기 전에 자기의 보따리를 도로 집어들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누구나가 모두 자기의 보따리를 가지러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자기의 것이 아닌 보따리를 가지려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당황하여 자기 보따리를 가지러 가는 겁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나만이 불행하다고 믿고 있었지만"하고 대답했다. 화려한 저택 속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죄다 타인은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대답만 되돌아 왔다. "우리는 당신은 행복할 것으로 믿고 있었어요. 당신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거리를 걷고 계셨지요. 그런데 당신도 내면에는 불행의 뭉치를 지니고 걷고 있었다니!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이상히 여겨 그는 물어봤다. "왜 자기의 보따리를 갖는 것입니까?" 왜 다른 사람의 것과 바꿔치기를 하지 않는 겁니까?" 사람들은 말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신에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불행의 뭉치를 바꿔 갖고 싶다고. 그런데 누구의 불행도 같은 것을 보고 무서워졌습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보따리를 갖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이 든 것이고, 잘 알고 있으니까요." "왜 새로운 불행에 떨어져가지 않으면 안된단 말입니까? 조금씩 묵은 비참함에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군요?" *그날 밤, 그는 잠이 깨어, 자기의 불행을 되찾게 해준 자비심 깊은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런 기도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