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p 273 제3부에서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설명했는가? "40권입니다." 40권? 알다시피 나는 고집센 사람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50권을 채우고 끝을 맺 겠다. 그렇지 않으면 제4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고집은 나에게 실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로 하여금 세상에 가득찬 온갖 종류의 허위의식과 싸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세상 어디서나 인간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속물근성으로 부터 나의 지성을 보호하는 데 그 고집이 실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내가 고 집센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단히 고집센 인간으로 만들어준 신에게 감사한다. 이제 [내가 사랑한 책들] 시리즈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첫번째 책은 영국인, 완벽한 영국인 베네트Bennett의 책이다. 이 책은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인 도 신비가 시바 푸리 바바Shiva Puri Baba에 대한 것이다. 베네트의 책을 통해서만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시바 푸리 바바는 매우 드문 꽃이다. 수많은 바보들이 마하트마mahatma로 위장하 고 있는 인도에선 특히 그렇다. 인도에서 시바 푸리 바바와 같은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거나 아니면 무척 고생스러운 수소문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인도에는 50만명이 넘는 마하트마가 있다. 그것이 실제 숫자다. 이 대집단 속에서 진정한 신 비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베네트는 많은 점에서 행운이었다. 그는 구제프를 발견한 첫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구제프를 최초로 발견한자는 오스펜 스키도, 모리스 니콜도 아니고 바로 베네트였다. 베네트는 터어키 콘스탄티노플의 한 피난민 수용소에서 구제프를 발견했다. 그 당 시는 러시아 혁명기여서 구제프는 조국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탈출하기 전에 그는 두 번 총격을 당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운명은 같은 게임을 반복하는지 도 모른다. 피난민 수용소의 구제프! 그것을 상상해 보라. 인류가 그토록 저차원으로 전락한 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그들은 붓다를, 구제프를, 예수를, 보리달마를 마구 잡이로 피난만 수용소에 집어 넣는다. 베네트가 그를 발견했을 때 구제프는 식사 배급을 타기 위해 대열에 서있었다. 음식이 하루 한 차례씩만 배급되었고, 그 대열은 길기만 했다. 러시아를 탈출한 피 난민 수천 명이 그곳에 수용되어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은 1천만 명의 러시아인을 학살 했다. 베네트는 어떻게 구제프를 발견했는가? 제자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는 구제프를 알 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베네트는 누더기옷을 걸치고 여러날 씻 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베네트는 그 대열에 서있는 구제프를 알아보았는가? 그 눈...... 그 두 눈은 숨길 수 없다. 그가 왕좌에 앉아 있든 피난 민 수용소에 서있든 그 눈은 같다. 그리하여 베네트는 구제프를 서양에 소개했다. 이 점에 대해서 아무도 이 가련한 베네트에게 감사히 여기지 않는다. 거기엔 이유 가 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신념이 약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구제프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베네트는 그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구제프의 두 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눈의 힘을 베네트는 두 번 목격했다. 그는 그 사 건을 구제프에 관한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구제프에 관한 그의 책은 대단한 것이 못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도서목록에 포함시키지 않고 다만 잠시 언급할 뿐이었 다. 베네트는 그 사건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구제프에게 갔다. 나는 병에 걸려 몹 시 아팠고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그의 두 눈을 마 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그를 찾아간 것이다." 베네트는 구제프의 방으로 들어갔다. 구제프가 그를 쳐다보고는 일어나 가까이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베네트는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구제프의 방식이 아니었다 . 만일 그가 베네트의 뺨을 후려갈겼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를 껴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포옹 이상의 것이었다. 구제프의 손길이 닿는 순간 베네트는 엄청난 에너지 상승작용을 느꼈다. 동시에 그 는 구제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구제프는 그 자리에 잠시 주저앉 았다가 무척 힘들게 일어나 욕실로 가면서 베네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 10분 뒤면 내가 정상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베네트는 이렇게 말했다. "제 자신이 이러한 힘, 이러한 건강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라 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마약, 즉 LSD나 마리화나의 효과에 의해서도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낀다. 한 여성은 자신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뉴욕의 30층 건물의 창문 에서 뛰어내렸다.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뻔한 일이다. 베네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나폴레옹의 유명 한 말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를 이해했다. 단순한 이해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구제프 의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어가고 있는 나를 그가 살려낸 것이다." 그러한 일이 몇 년 뒤 또 한 번 일어났다. 동양에선 그것을 '전등傳燈'이라고 부 른다. 에너지가 한 등불에서 다른 꺼져가는 등불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 놀라운 체험에도 불구하고 베네트는 신념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스펜스 키처럼 스승의 생전에 스승을 배반하고 떠나진 않았으나, 구제프가 죽자 역시 그를 배반했다. 구제프 사후에 베네트는 다른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베네 트에게 불행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을 위해선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그는 시바 푸리 바바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바 푸리 바바 역시 위대하긴 하지만 구제프에는 비교가 안된다. 나는 베네트의 그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베네트는 과학자였고 수학자였는데, 여기서 그의 어 리석은 행동의 이유를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과학자는 과학 외적인 분야에선 거의 언제나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정의내리기를 "과학은 점점 더 작은 것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아는 것 "이며, 종교는 "점점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점점 더 적게 아는 것"이라고 했다. 과학 의 최종적인 결과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될 것이지만, 종교의 최종적인 결과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하여' 아 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다. '대하여'가 아니라 그냥 안다. 과학은 무지속 에 끝날 것이고, 종교는 깨달음 속에 끝난다. 위대한 과학자들조차도 과학 외적인 분야에서는 다방면에서 어리석게 행동해 왔다 . 그들은 때로 너무도 유치하게 행동한다. 베네트는 어느 수준에 도달한 과학자이며 수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신념이 부족했고 과녁에서 빗나갔다. 그는 다시 또다른 스승을 찾기 시작했으며 결국 시바 푸리 바바에게서도 떠났다. 시바 푸리 바바는 베네트가 만났을 때 아주 고령의 나이였다. 그때 이미 110살에 가까웠다. 그는 정말 강철같은 인간이었다. 그는 거의 한 세기 반을 살았다. 키도 육척 장신이었으며, 150살이 되어서도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육 체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결정에 따라 죽음이 이루어졌다. 시바 푸리는 침묵의 스승이었다. 그는 가르침을 펴지 않았다. 특히 구제프와 같은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접한 사람으로선 시바 푸리 바바를 따르는 것이 지극히 평 범한 일이다. 베네트는 그에 대한 책을 쓰자마자 또 다른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그 때는 아직 시바 푸리 바바가 생존해 있을 때였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에서 베네트는 수부드 무브먼트Subud Movement의 창시자인 모 하멧 수부드Mohammed Subud를 만났다. '수부드'는 '수실-붓다-다르마Sushil-Buddha- Dharma'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베네트는 모아멧 수부드 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부드는 무척 좋은 사람이긴 했으나 스승이 아니었 다. 시바 푸리 바바와도 비교가 안 되었다. 그러니 구제프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 다. 베네트는 모하멧 수부드를 서양에 데려와 그를 구제프의 후계자처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는 실로 어리석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베네트는 아름답고 수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저서는 [시바 푸리 바바Shiva Puri Baba]이다. 베네트는 바보이긴 했지만 때로 한 마리 원숭이를 타자기 앞에 앉혀 놓으면 뜻밖에 훌륭한 문장을 만드 는 경우가 있다. 여기 저기 자판을 두들겨 도인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말을 만 드는 것이다. 그러나 원숭이 자신은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베네트는 이런 방식을 계속해 나갔다. 머지않아 그는 모하멧 수부드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또다시 다른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불쌍한 친구, 그의 전생애 는 불필요한 찾고 찾음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미 구제프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났으 며, 그의 가르침은 훌륭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어둠이었고 전 혀 빛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책을 여기에 포함시킨다. 내가 얼마 나 편견없는 사람인가를 알 것이다. 제2권. 이것은 기이한 책이다. 아무도 이 책을 읽지 않는다. 그대는 이 책의 제목 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빌헬름 라이히 Wihelm Reich(1)의 [들어라, 소인들아Listen, Little Man]이다. 작은 소책자이지만 예수의 [산상수훈]이나 노자의 [도덕경],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등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1) 대기중의 기를 응집하여 인체에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상자까지 고안했던 금세 기 미국의 기인이며 심리학자. 특히 주위의 모든 사람을 '소인'이라고 불렀기 때문 에 동료 심리학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결국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실 라이히는 그러한 책을 쓸 만한 자격이 아니었다. 분명 어떤 미지의 영이 그 에게 들어왔음이 틀림없다. [들어라, 소인들아]는 사람들 사이에 라이히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그가 모든 사람을 '소인'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실로 위 대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위대했는가? 그렇다. 한 사람의 붓다의 의미에선 아니지만 지그문트 프로이드, 칼 구스타브 융, 아싸지올리 같은 의미에선 그렇다. 그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는 위대했다. 물론 아직 인간 이고 초인은 아니지만 위대했다. 또한 이 책은 그의 예고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 그는 이 책을 써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여성이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 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이 책을 자기 안에 수년 동안 넣고 다니면서 그것을 쓰 려는 생각에 저항했다. 그 책을 쓰면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실제로 그랬다. 책의 출판 이후 그는 사방에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이 세상에선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 일종의 죄다. 인간은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소크라테스, 그들은 그를 죽였다. 라이히, 그들은 또 그를 죽였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들은 라이히를 정신병자라고 낙인찍고 정신병동에 감금시켰 다. 그는 정신병자로 처리된 채 쇠창살 안에서 죽었다. 그는 구름 위로 비상할 능력 을 가졌지만 인간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아직도 배워야 한다. 소크라 테스, 예수, 붓다와 같은 각자들과 함께 사는 법을. 모든 구도자들은 이 책에 대해 명상해야 한다. 무조건하고 이 책을 나의 도서목록 에 포함시키는 바이다. 제3권은 버트란드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공동집필한 책이다. 아무도 이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의 제목은 [수학의 원리]이다.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느라고 무척 고생을 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어 려움이 뒤따랐다. 이 책은 매혹적이고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만 구도자들에겐 권 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을 멀리하라! 나는 이 책의 수천 페이지를 독파했지만 결국 수학 계산 이외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수학에, 특히 고등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이 책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수학에 있어 서 하나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제4권...... 놀라겠지만 나의 네번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나는 아 리스토텔레스와 타고난 원수지간이다. 나는 이 자의 병을 치료가 불가능한 '아리스 토텔레스씨병'이라고 부른다. 그에겐 치료할 약이 없다. 편두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 니다. 아리스토텔레스씨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라! 그것은 암 중의 암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철학과 논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단지 쓸모없는 철학과 논리학에 대해서만 그러할 뿐, 진정한 것에 대해 선 전혀 그렇지 않다. 진정한 것은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플로티누스, 디오게네 스, 디오니수스로부터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는 한 권의 아름다운 저서를 남겼는데, 그리고 이 책은 아리 스토텔레스 학파의 학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유일한 책으로, 그 제목이 [시학]이 다. 나는 이 책에 도달하기까지 그의 수많은 지겨운 책들을 독파해야 했다. 나는 다 만 이 사람에게도 뭔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시학]을 발견하여 몇 페이지 읽자마자 나는 몸을 떨었다. 이 사람 역시 가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모든 책은 머리로 썼지만 [시학]만큼은 가슴으로 썼다. 물 론 이 책은 시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말 그대로 시학이다. 시의 본질은 곧 사랑의 본질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지식의 향기가 아니라 직관의 향기다. 나는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제5권. 아직도 너무 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선택할지 무척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필립 카플로(2)의 [선의 세 기둥]을 고르기로 하겠다. (2) 뉴욕 로체스터 선원의 설립자. [선-동양과 서양의 만남]의 저자이기도 함. 젊은 시절에 법률을 공부했고, 법원 취재기자로 활약했다. 제2차대전 직후 국제전범 재판 취재차 일본에 갔다가 선에 매료되었다. 1953년부터 과거의 경력을 포기하고 일본에 남아서 선수행을 시작했다. 야스타니 선사에게서 인가를 받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 다. 1966년 미국으로 돌아가서 뉴욕시에 로체스터 선원을 세웠다. 이 선원은 미국, 중남미, 유럽, 캐나다 등지에 지부를 갖게 되었다. 최근 1986년 후계자에게 선원을 인계하고 여러 선원을 여행하면서 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스즈키 다이세츠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선에 대한 책을 썼 지만 [선의 세 기둥]이야말로 선에 '대해서' 쓰여진 단연 으뜸가는 책이다. 그러나 내가 '대하여'를 강조하는 것은 필립 카플로에겐 선의 적접적인 체험이 없기 때문이 다. 사실 그것이 이 책을 더욱 훌륭한 것으로 만든다. 어떤 체험도 없이, 다만 책을 통해 배우고 일본의 선원들을 방문함으로써 카플로는 하나의 걸작품을 탄생시켰다. 단 한 가지, 내가 카플로에게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선에는 세 기둥이 없다 는 사실이다. 한 개의 기둥조차 없다. 선에는 기둥이라는 것이 없다. 선은 사원이 아니다. 만일 이 책을 다시 출판한다면 책의 제목을 바꿔야만 할 것이다. [선의 세 기둥]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선의 정신에는 걸맞지 않는 제목이다. 그러나 이 책 은 매우 과학적인 방식으로 선을 설명하고 있다. 선을 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 람이 있다면 이보다 좋은 책이 세상에 없다. 제6권. 이번에 내가 선택한 책은 한 기이한 사람의 책이다. 그는 자신을 그냥 'M' 이라고만 불렀다. 나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알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알리려 하 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마헨드라나드이다. 그는 벵갈 지역 출신이며 라마크리슈나의 제자였다. 마헨드라나드는 아주 여러 해 동안 라마크리슈나의 발 아래 앉아 있으면서 스승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라마크리슈나의 복음서]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무명으로 남길 원했다. 그것이 진정한 제자의 태도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라마크리슈나가 죽은 날, 믿기지 않겠지만, M 역시 죽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삶 의 목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라마크리슈나가 죽자 그로서는 사 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스승 없는 삶보다 오히려 죽음이 더욱 큰 기 쁨이었을 것이다. 많은 스승들이 존재해 왔지만, 스승에 대해 M처럼 기록한 제자는 한 명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 자신은 어디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이야기를 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자신과 라마크리슈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라마크리슈나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다. 그 스승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과 그의 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 는 그 무한한 노력에 감동한다. M과 같은 제자를 발견하기란 실로 힘든 일이다. 이 점에서 라마크리슈나는 예수보다 운이 좋았다. 나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안다. 나는 벵갈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라마 크리슈나가 지난 세기 말까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본명이 마헨드라나드 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제7권...... 금세기 초에 살았던 한 인도 신비가가 있다. 나는 그가 깨달음을 얻 은 자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세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실수들을 제외하면 그가 엮은 책들은 더없이 아름다운 순수 시집이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실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이름은 라마티르타였는데, 이 위대한 사람 조차도 그토록 어리석은 실수들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생활했는데 대단히 카리스마적인 사람이었으며 많은 숭배 를 받았다. 인도로 귀국했을 때 그는 먼저 베나레스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베나레 스는 힌두 종교의 아성, 힌두교인들의 에루살렘이며 메카이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 를 그토록 존경했으니 당연히 베나레스의 바라문 승려들도 그를 신처럼 떠받들 것이 라고 확신했다. 베나레스에서 그가 연설을 하는 도중에 한 바라문 승려가 일어나 물었다. "연설을 계속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당신은 산스크리트어를 할 줄 아시오?" 라마티르타는 그때 막 우주의 본질에 대해, 궁극의 실체에 대해 연설을 하고 있었 다. 그러자 이 바라문 승려가 그에게 물은 것이다. "당신은 산스크리트어를 아시오? 산스크리트어를 모른다면 궁극의 실체에 대해 말 할 자격이 없소. 먼저 가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시오." 그 바라문 승려는 잘못되지 않았다. 세상 어디서나 바라문 승려들은 그런 식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러자 라마티르타가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나 는 충격을 받았다. 라마티르타는 마땅히 그 바라문 승려에게 말했어야 한다. "너의 모든 베다 서와 산스크리트어를 갖고 당장 꺼져라!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진리를 안다. 왜 내가 산스크리트어에 신경써야 한단 말인가?" 라마티르타는 산스크리트어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또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는 그 필요성을 느꼈다. 이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그의 첫번째 실 수이다. 그의 책들은 더없이 시적이며 생명력 넘치고 환희에 차있다. 그러나 그 사 람 자신은 어디선가 과녁에서 빗나가고 있다. 두번째로 그의 아내가 멀리 펀잡 지방에서부터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 는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는 다른 어떤 여성의 방문도 거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자기의 아내를 물리쳐야 했는가?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집착하고 있었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아내를 떠났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세번째로 그는 자살로써 생을 마쳤다. 비록 힌두교인들은 그것을 '자살'이라고 부 르지 않고 '갠지스강과 하나가 되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자살은 자살이다. 추 한 것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추한 것이 아름다워지진 않는다. 이 세 가지 점을 제외하면 라마티르타의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사실을 잊으면 사람들은 그를 깨달음을 얻은 자로 착각할 것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도를 깨친 것처럼 말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를 깨친 것처럼'일 뿐이 다. 제8권. 무어의 [프란시피아 에티카].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이것은 논리학에 대 한 훌륭한 연습이다. 그는 "선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장장 2백페이지 이상을 소비 한다. 그리고 그가 도달한 결론은 "선이란 결국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다. 정말 대 단하다! 그는 숙제 풀듯이 논리를 전개해 나갈 뿐이지 신비가들이 하듯이 얼른 결론 으로 비약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자답게 아주 천천히, 단계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리하여 결국 신비가들이 내린 것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선'은 정의내릴 수 없다. '미'도 마찬가지, '신'도 마찬가지다. 사실 가치를 지 닌 모든 것은 정의내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꼭 메모하라. 만일 어떤 것이 정 의내려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무가치한 것임을 뜻한다. 정의내릴 수 없는 것에 도달 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제9권...... 지금까지 [내가 사랑한 책들]의 목록 속에 [라힘의 노래]를 포함시키 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라힘은 회교도였지만 그의 노래들은 힌두어로 쓰여졌다. 그래서 회교도들은 그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갖지도 않는다. 또 힌두교인들은 그가 회교도였기 때문에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를 존경하는 유일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라힘의 완전한 이름은 라힘 칸 카나이다. 그의 노래들은 까비르, 미라, 차이타냐 의 노래들과 같은 경지, 같은 깊이를 지녔다. 왜 그는 힌두어로 작품을 썼는가? 회 교도였으니까 우르두어로 쓸 수도 있었으며, 우르두어가 힌두어보다 훨씬 아름다운 언어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힌두어를 택했다. 회교의 독단성에 반기를 든 것이 다. 제10권. 위대한 우르두어 시인 미르자 갈리브가 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우르두어 시인일 뿐 아니라 어쩌면 세상의 어떤 언어권에도 그와 견줄 만한 시인은 없을 것이 다. 그의 시집은 [디반]이라고 불리운다. [디반]은 단순히 시 모음집이란 뜻이다. 그의 시는 읽기 어렵지만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무한한 보상이 뒤따른다. 마치 각각의 싯귀가 책 한 권의 내용을 담고 있 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우르두어의 아름다움이다. 그토록 작은 공간 속에 그토 록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언어를 나는 우르두어말고는 알지 못한다. 책 한권을 담는 데 단 두 줄이면 충분하다. 가히 마술적이다! 미르자 갈리브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제11권이자 마지막 책...... 알란 와츠의 저서 [책]이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그 것을 아껴왔다. 알란 와츠는 한 사람의 붓다가 아니었으나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 었다. 그는 매우 가까이 접근했다. [책]은 더없이 중요한 책이다. 이것은 그의 경전이며, 선사들과 선의 고전들에 대 한 그의 모든 체험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는 술을 즐겼다. 지성과 술의 만남이 이 신선한 [책]을 탄생시켰다. 나는 [책]을 늘 사랑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을 위해 그것을 남겨두었다. 예수가 한 말, "마지막 줄에 선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이 책은 복받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축복하는 바이며, 나아가 이 [내가 사랑한 책들]시리즈를 알란 와 츠에 대한 기념으로 삼고 싶다. 류시화 시인, 가타 명상센터에서 살고 있다. 발행일:1997년 4월 20일 초판12쇄 지은이:오쇼 라즈니쉬 옮긴이:류시화 펴낸이:박양진 펴낸곳:동광출판사 주 소:마포구 신수동 448-6 한국출판협동조합내 전 화:717-8322 F A X:716-5686 등 록:1978년 8월 20일 제1-102호 가 격: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