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이제 우리의 길고 긴 도서목록의 끝부분에 이르러 비로서 나는 진작에 언급 했어야 할 두권의 책을 소개하는 바이다. 그것은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 이 상한 나라의 앨리스]5)이고,제8권으로는 같은 저자의 [거울 속의 앨리스alice thro ugh the looking glass이다. 5)"어느날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에 앨리스가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데 조끼를 입은토끼가 시계를 꺼내 보면서 급한 걸음으로 지나가더니 구멍 속으로 뛰어들어갔 습니다.앨리스도 뒤따라 뛰어들어갔는데...."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영국 작가 루이스 캐롤의 꿈과 환상과 자유룰 노래한 이야기이다. 두 권 다 심각하지 않다.그래서 나는 이 책들을 높이 평가한다.두 권 다 신비와 아 름다움과 재미와 여러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짧은 우화들로 가득차 있다.예를 들 어 여기 늘 즐겨 인용한 우화가 있다. 앨리스가 여왕을 만나러 왔다.여왕이 앨리스 에게 물었다."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를 만나러 오는 다른 사람을 못 보았니?" 앨리 스는 대답했다."아무도요nobody."그러자 여왕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아직 오지 않았으니 웬일이지?"앨리스는 속으 로 웃음이 나왔지만 영국 아가씨답게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여왕에게 말했다."여 왕님,`아무도'는 아무도 아니라는 뜻이에요."여왕이 심각하게 말했다."물론 나도 ' 아무도'가 아무도 아니라는 뜻임을 안다.그런데 왜 `아무도'라는 사람이 이렇게 늦 은 것이지?세상에 너보다 걸음이 느린 사람이 누가 있겠니?이런 아름다운 작은 우화 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속의 앨리스]에는 수없이 널려 있다.그리고 더욱 이상한 사실은 루이스 캐롤이 저자의 본명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리고 더욱 이 상한 사실은 루이스 캐롤이 저자의 본명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수학자이며 학교 교장이었기 때문에 필명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본명은 완전히 잊혀졌다.수학자이 면서 학교 교장이었던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운 책을 쓸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 운 일이다. 내가 왜 이 두권의 책을 포함시키는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나는 세상 에 대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두 권을 집어 넣는 것이다.즉,나에게는 장 폴 싸르트 르의[존재와 무]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격이다.[이상한 나라 의 앨리스]가 비록 짧은 동화이지만 싸르트르의 그 작품에 뒤질 것이 하나도 없다. 사실 나더러 두 권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기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을 선 택하고 [존재와 무]는 아궁이 속에 던져 버릴 것이다.누구도 꺼낼 수 없도록 아궁이 깊숙히 구겨 넣을 것이다.나에ㅔ게는 루이스 캐롤의 이짧은 동화 두편이 무한한 영 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나는 지금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제9권 .다 시 또다시 나는 칼릴 지브란에게로 돌아온다.그만큼 나는 그를 사랑하며,그를 도와 주고 싶다.나는 그가 이생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다려왔지만 아직도 그는 태어나지 않고 있다.아마도 그는 미래의 다른 어떤 스승을 만나야 할 것 같다.[방랑자the wo nderer]가 내가 꼽은 제 9권의 책이다.우화는 심오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아주 오래 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말로 직접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우화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방랑자]는 그러한 작은 우화들의 모음집이다. 제10권 역시 칼릴 지브란의 또 다른 책[영적인 말씀the spiri-tual sayings]이다.이제 나는 그가 비록 더 없이 사 랑하는 지브란이긴 하지만 반대의견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그는 [영적인 말씀]을 쓸 자격이 없다.책이 비록 아름답긴 해도 제목을 [아름다운 말씀]이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영적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은 터무니 없다.그렇긴 해도 나는 이책 을 사랑한다.나는 모든 터무니 없는 짓거리를 사랑하니까! 테르툴리안tertullian6) 이 생각난다. 6)155-222.카르타고 출신으로 플라톤과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배우고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서구 유럽 신학의 형성에 크게 공헌하였다.그노시스gnosis파에 대해 신 앙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아직 그의 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그의 책 전부를 포함시키는 것은 나로선 불 가능 한 일이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만은 언급할 수 있다.테르툴리안의 유명한 말이 있다."크레도 쿠아 압수르둠credo qua absurdum_나는 그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그 것을 믿는다." 이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 세상에 있는지 의심스럽다.그만큼 대단한 통찰 력이다.그리고 테르툴리안이 누구인가하면,그는 카톨릭 성자의 한 사람이었다!그렇 다.,나는 비록 그가 카톨릭에서 추앙받는 성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진실로 아름다운 점이 있으면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한다.크레도 쿠아 압수르둠!이 문장은 순금 활자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활자로 새겨져야 한다.요즘은 세상에 흔한 것이 금이다. "그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는다." 얼마나 의미깊은 말인가!테르툴리 안 정도면 [영적인 말씀]을 쓸 수 있어도 칼릴 지브란은 아직 그럴 위치가 못된다. 칼릴 지브란은 명상을 해야 한다.지금이 그가 명상할 시간이다.내가 이제 말을 끝 내야 할 시간이 된 것처럼....그러나 제2부의 50권을 다 채운 다음에 막을 내려야겠 다. 제10권....숫자가 맞는가?("사실 조금 전 열번째 책으로 50권이 다 채워 졌습니 다.")그렇다면 51권째를 이야기하겠다.이 책을 빼놓을 순 없다.숫자가 붙이든지 말 든지 마음대로 하라.아니면 일부러 숫자를 잘못 적든지 하라.어쨌든 이 책은 이야기 해야 하겠다. 제11권.사무엘 케트samuel beckett7)의[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 odot}이다.`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듯이 사실 베게트는 신이란 단어 대신 고도란 단어를 기발하게 생각해 냈다.모든 인ㄴ간이 신을 기다리는 것은 실체가 없다.모두가 다만 기다리고 기다리 고 또 기다릴 뿐이다.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아무리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 는다.그래서 나는 50권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고도를 기다리며]를 포함시키 고자 하는 것이다. 12..................................................p213 이제 제2부가 끝나고 제3부가 시작이다.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나는 지난 반세기를 걸쳐 밤으로 책을 몇 권을 추려낸다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을 어찌하겠는가? 제1권은 마르틴 부 버martin buber1)의 책이다. 1)1878 독일의 비인에서 출생한 유태계 종교학자,어려서부터 유태교 신비주의를 따 르는 가정에서 자라난 그 유산의 보존과 소개에 힘썼다.종교학,윤리학,사회철학 분 야에서 활약했으며,성경 번역에도 종사했다. 마르틴 부버의 책을 빼놓았다면 나는 영원히 용서받지 목했을 것이다.이렇게 늦게 느즈막이 그를 말하는 것이 미안스럽기 짝이 없다.그런 의미에서 그의 저서 두 권 을 한꺼번에 올려놓는다. 첫번째 책은[하시디즘 이야기tales of hassidism]이다.다 이세츠 스즈키가 선을 세상에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듯이 마르틴 부버는 하시디즘을 그렇게 했다.두 사람 모두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엄청난 공헌을 했다.그러나 스즈키는 말년에 이르러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섰지만 불행이도 부버는 그렇지 못했다. 부버는 위대한 작가이며 철학자이고 사상가였다.그러나 그러한 것 들은 전부 갖고 노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이름에 표하면서 그의 책을 [내가 사랑한 책들]목록에 포함시키는 바이다.그가 없었다면 세 상은 `하시드hassid'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버는 하시드 가정에서 태 어나어렸을 때부터 하시드 신비가들 사이에서 성장했다.하시드즘은 그의 살이 되고 뼈가 되고 골수가 되었다.따라서 그가 하시드즘 이야기를 할 때는 비록 그것이 그의 체험이 아니라 그가 들은 바를 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더없이 진실되고 느껴진다. 또 그는 정확히 들었다.이것을 꼭 기록해야 한다.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나아 가 자기가 들은 것을 훌륭하게 해냈다. 스즈키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부버 는 아니었다.반면에 스즈키는 그다지 훌륭한 작가가 못되었지만 부버는 실로 위대한 작가였다.글쓰는 일에 관한 한 부버가 월등히 높다.그러나 스즈키는 자기가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부버는 알지 못했다.부버는 자신이 성장했던 그 신비 전통을 전하 고 있을 뿐이다.물론 성실하게 전하고 있다. 도를 추구하는 이들은 마땅히[하시디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여기에 실린 작은 이야기와 우화들은 깊은 맛을 지니고 있 다.그것들은 선의 이야기와 또 다르고,수피즘의 이야기와도 다르다.누구도 모방하지 않은,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 자체의 독특한 맛이 있다.하시드 수도승들은 웃 고 춤추고 소리지른다.그것이 그들의 종교의식이다.그들의 종교는 금욕이 아니라 축 제의 종교이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제자들과 하시드 수행자 사이에 어떤 연관 성을 느낄 수 있다.많은 유태인들이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나는 유탯교의 본질을 사랑하며,그 본질 이 바로 하시디즘인 것이다.물론 모세는 하시디즘이란 단어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 역시 하시드 신비가였다.그가 그 명칭을 알았든 몰랐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나는 그 명칭을 알았든 몰랐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나는 그가 한 사람의 하시드 신비가였다.그가 그 명칭을 알았든 몰랐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나는 그가 한 사람의 하시드 신비가였다고 선언하는 바이다.마찬가지로 붓 다,크리슈나,나나크,마호멧 셈baal shem에서부터 시작되었다.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정신이다.마르틴 부버의 두번째 책은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이기도 한[너와 나i and thou]이다.이 책으로 그는 노벨상을 수산했다.그러나 미안 한 일이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지 않는다.내가 이 책을 포함시키는 것은 그것이 진지하고 성실하게,그리고 아주 예술적으로 쓰여진 아름다운 작품이기 때문 이지만,이 책속에는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마르틴 부버 자신에게 영혼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니 아무리 걸작이라 해도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집어 넣겠는가?[나와 너]는 유태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유태인들은 그 책 이 자신들의 종교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이 책은 유태교든 힌두교든 세상의 어 떤 종교도 대병하지 않는다.다만 마르틴 부버라고 불리우는 저자의 무지를 대변할 뿐이다.하지만 그는 분명 위대한 예술가였고 천재였다.천재가 무엇인가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비록 그것이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걸작을 남기기 마련이다. [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부버는 이것이 신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한다.그 래서[너와 나]라는 것이다.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대화도 있 을 수 없다.오직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대화라고?신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달러 가치의 하락?아니면 아랍의 못 되먹은 지도자에 대해서?도대체 신과 무슨 내용의 대 화를 할 것인가?그대가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경외감에 깊은 침묵을 지킬 수 있 을뿐이다.그 침묵 속에 `나'라는 것도 없고 `너'라는 것도 없다.따라서 나는 이 책 의 내용 뿐 아니라 [너와 나]라는 제목 까지 못마땅하다.[너와 나]라는 것은 아직도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아니다,신과 그대가 만날때 그때는 연꽃 위의 이슬이 바 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너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나'가 있든지`너'가 있 든지 둘 중의 하나다.그러나`나'가 없으면 `너'라는 것도 없다.`너'라는 것이 없으 면 `나'라는 것도 없다.따라서 실제로 하나의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지금 이 침 묵이 오히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 준다.그의 [나와 너 ]는 실패작이다.실패작이긴 해도 걸작임에 틀림이 없다. 제3권......마르틴 부버는 유태인이었다.그리고 여기 다른 유태인 하나가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세상에!아직도 저렇게 많은 인물들이 기다리고 ㅇ있다니!불쌍한 기트 바르티여,어쨌든 그대도 먹어 야 사니까 빨리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겠다.내 이야기만으로 살 수는 없으나까 그대 의 식사시간을 위해 가능한 한 저 인물들을 쫓아 버리겠다.그러나 몇 사람은 아주 고집이 세어서 내가 자기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 떠날 자세들이 아니다.마르틴 부버의 다음의 인물은 고집센 것으로 유명한 자다.물론 나보다는 약하지만 아마도 나 는 전생에선가 유태인었던 적이 있었나 보다.이 고집쟁이의 이름은 칼 마르크스이며,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자본론]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해로운 책이 이 책이다. 그러나 수천만의 사람을 지배했으니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전 세계의 절반이 공산주의자며,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확신 할 수 없다.공 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에선 공산주의의 어떤 점이 좋다는 것을 인 정한다. 공산주의에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그것은 위대한 꿈을 빙자한 인ㄴ간 착취 일 뿐이다.칼 마르크스는 전혀 경제학자가 아니라 몽상가였다.꿈꾸는 자,시인이었다 .그것도 3류시인이었다.그는 훌륭한 작가도 되지 못했다.아무도[자본론]을 읽지 않 는다.나는 많은 유명한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만나 보았ㄷ지만 그들에게 "자본론을 읽어 보았는가?"라고 물어 볼 때마다 모두 시선을 피하고 얼버무렸다.그들은 말했다 ."앞의 몇 페이지만 읽었을 뿐이다.우린 지금 할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지만 모두 잡동사니일 뿐,전혀 논리 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마치 미친 자의 글 같다.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조건 써내려갔다.수천 권의 책들로 둘러싸인 대영도서관에 앉아서 계속 써나갔다.날마다 도서관 문이 닫히는 시간에 마지못해 끌려나가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직원들이 강제로 그를 끌어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그는 책상에 앉아 있었을 것이며 혼이 나서 쫓겨 난 적도 있었다.이제 그 사람이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여기 신성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삼위일체가 있다.칼 마르크스와ㅑ 프리드리히 엥겔스,그리고 레닌이 그들이다.이 세 인물은 지구의 수천만 인구에게 신적인 존재 가 되었다.하나의 재난이 아닐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읽으라는 뜻이 아니라 읽지 말라는 뜻에서다.이 날에 밑줄을 그어라.이 책을 읽지 말라! 세상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도 많다.[자본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 다. 제4권.칼 마르크스 역시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여기 유태인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제 4권은 또다른 유태인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역작인[정신분석 강 의]이다.나는 `분석'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으며,이 사람에 대해서도 좋아하지 않는 다.그러나 그는 칼 마르크스와 마찬 가지로 하나의 큰 운동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 다.이 사람 역시 금세기를 지배한 주요 인물 중의 하나다. 유태인은 언제아 세계 지배를 꿈꾸어 왔다.실제로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금세기를 지배한 대표적인 세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칼 마르크스와 지그문트 프로이드,그리고 알버트 아인슈 타인이다.세 명 모두 유태인이다. 유태인 들은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그러나 경제 원리에 관한 한 마르크스는 틀렸다.프로이드 역시 빗 나갔다.인간의 마음은 분석 될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무심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상대성이론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옳았으나 루즈벨트 대통 령에게 원자폭탄 제조를 제의하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어리석음을 드러냈다.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거 산 채로 불타 죽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알버트 아인슈타인인을 손 가락질해 보이고 있다.미국의 원자폭탄 제조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아인슈 타인이다.그후 그는 자신을 결코 용서 할 수없었다.이것이 이 사람의 좋은 점이다. 적어도 그는 깊은 절망감 속에서 죽었다.죽기전에 그는 말했다."나는 다시는 물리학 자로 태어나지 않겠다.차라리 납땜공으로 태어나겠다."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를 통 틀어 가장 뛰어난 지성이었다.그러한 그가 왜 물리학자가 된 자신을 비관했는가?왜 그랬는가?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그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자신이 무엇을 했는가를 알고 났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깨어 있지 못한 인간은 늘 그런 식이 다.너무 늦게 깨닫는다.깨어 있는 인간은 사전에 이미 안다. 제5권.......너무 많은 유태인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려야 할지 판단 이 안 선다.그리고 알다시피 유태인들은 다루기가 만만치 않다.골치를 썩느니 차라 리 모두 내쫓는 편이 나을 것 같다.따라서 유태인이 아닌 다른 인물로 건너가겠다. 당분간은 유태인에 대해서 잊도록 하자.모두 사라져라....이것은 그대에게 한 말이 아니라 유태인들에게 한 말이다. 제5권 구제프의[위대한 만남]을 누락시킬까봐 진작 부터 걱정했다.제3부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좋은 책이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 다.구제프는 오누 세상을 두루 여행했다.그는 티벳까지 올라갔으며,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지난번 달라이 라마2)의 선생까지 지냈다.티벳에서 그는 도르젭이란 이름으 로 불리워졌다. 2)`라마'는 직역하면 윗사람의 뜻으로 라마교의 승려를 말한다.본래 학식과 덕이 높은 승려,대사원의 장로를 가르키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라마교의 큰 스님을 일컫 는 말이다.티벳에서는 라마는 불,법,승 보다더 존경되며 라마에 대한 정신적 물질 적 봉사는 곧 불도 성취의 길로 인정된다.라마는 일반인과 구별되지만 라마 사이 에는 일반 승려와 귀족 승려의 구별이 있다.귀족 승려는 덕이 높은 자의 화신이라 하여 특별대우를 받는데,이 귀족 승려,즉 화신 라마의 최고 위ㅣ치에 있는 자가 달 라이 라마이다.달라이 라마는 정치와 종교 양권을 지배하고 관음보살의 화신이라 하여 크게 숭배받는다.라마교는 불교가 7세기초에 티벳으로 들어가 변형된 종교이 다. 많은 이들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르젭이 바로 조지 구제프다. 구제프가 티벳에서 여러해 동안 지냈으며 라싸의 궁전에서도 몇해를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 자 영국 정부는 구제프가 영국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그는 본래 영국에 머물고 싶 어 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구제프는 하나의 회상으로서[위대한 만남]을 썼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만난 온갖 기이한 인물들에 대한 실로 애정 가득한 회상이다.수 피의 수도승,인도의 신비가,그리고 티벳의 라마승과 일본의 선승 등이 등장한다.그 는 이 책에서 자기가 만난 모든 인물을 언급하진 않았다.많은 인물들을 빼놓았다.책 이 시장에서 팔려야 하고 독자의 구미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구의 구미 에도 맞추지 않는다.나는 시장성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지적하는 것이다.구제프는 이 책에서 진정으로 위대하고 뛰어난 인물들과의 만남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그렇긴 해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 다.아직도 그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아름다운 것과 마주칠때면 내 눈은 눈물로 가득찬다.그것말고 다른 존경의 표시는 없다.이 책은 단순히 읽고 끝낼 것이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야 할 책이다.영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지만 힌두어에는 `파트' 라는 단어가 있다.그것은`같은 것을 평생에 걸쳐 날마다 읽는다'는 뜻이다.이때의 읽는다는 뜻은 서양에서 문고판을 일고서 전철 안에 두고 내리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공부한다는 말로도 부족하다.`파트'는 읽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상의 것이다.그것은 즐겁게 반복해서 읽는 것이며,숨쉬는 일 그 자체가 되도록 가 슴 곳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다.이일은 평생이 걸린다.구제프의[위대한 만남]과 같은 진정한 책을 이해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국 친구 카롤로스 카스타네다3)가 쓴 [돈 후앙의 가르침]시리즈에 나오는 돈 후앙처럼 가공 인물이 아니다. 3)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로 태생으로 1951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UCLA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중 약초에 대한 정보 수집차 멕시코 근방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신비의 스승 돈 후앙을 만나 4년 동안 여러 신비체험을 겪으며 가르침을 받은 뒤 그 체험을 책으로 써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친구 카스타네다는 인류에게 참으로 나쁜 기여를 했다.영적인 내 용을 허구의소설로 쓰면 안 된다.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영적인 허구의 것으로 생각 하기 때문이다.[위대한 만남]은 논픽션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이다.구제프가 언급한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생존해 있다.내 자신이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중요한 인물들을 빼놓은 것에 대해선 구제프는 용서받을 수 없댜ㅏ.시장성이라는 것과 타협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토록 강인한 사람이 왜 그런 얄팍한 상업상과 타협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왜 그는 정말로 중요한 인물들을 제외시켰는가? 나는 그가 책 에서 빼놓은 몇몇 인물들을 직접 만나 보았다.그들은 나에게 구제프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현재 그들은 모두 아주 고령의 나이다.어쨌거나 이 책은 불완전하긴 하 지만 가치있는 책이다. 제6권.저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책,익명의 저자로 된 책을 난,언제나 사랑해 왔다.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이 책은 단순히 까르비르의 제자가 썼다고만 알려져 있다.저자가 누구든 그는 틀림 없이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다.이것 만큼은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작은 시집으로 꾸밈이 이를 데 없다.아마도 저자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인것 같다.그러나 그것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으ㅡㄴ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다. 이 시집은 출판되지도 않았다.시집의 소 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의 출판을 반대하는 것이다.나는 그들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으며,그들의 뜻에 찬성한다.그들은 그것이 책으로 출판을 원치 않은 것이다.그 시집을 읽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직접 손으로 베껴 가라는 것이 그들의 방침이다.그렇게 해서 생겨난 필사본이 현재 인도 전역에 돌아다니고 있다. 필사본의 소유자들이 그것을 출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출판이란 확실히 책을 망친다.출판은 너무 기계적이다.그래서 인쇄와 출판 과정을 거치면서 책의 정 신은 사라지고,책은 죽은 시체가 되어 버린다.이 시집은 제목이 없다.책으로 출판되 지 않았으니 제목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나는 원본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이 원고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그들은 대답했다."그란타" 이제 이[그란타]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그란타'는 책이 종이 위가 아니라 나뭇잎사귀 위에 쓰여 지던 먼 옛날에서 유래된 단어다.그 시절엔 나뭇잎사귀를 묶는다'는 뜻인것이다. 이 책에는 대단히 가치있는 말들이 많이 적혀 있다.그중에 몇가지만 소개하겠다.첫째.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그것에 대해선 신경쓰지 말라.그것은 진리가 아니다.진리 는 말로 설명될 수 없다." 둘째. "신은 어떤 물체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셋째. "명상은 정신작용이 아니다.그것은 생각의 작용이 아니다.명상을 하려면 오히려 생각을 버려야 한다."등등 수없이 많다.내가[그란타]를 나의 도서목 록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내용의 가치말고도 그것이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고 있 고 번역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제7권.....숫자가 맞는가?("예,맞습니다.") 나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반대하지만 두 사람 공저의[공산주의 선언 ]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기억하라,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나보다 더 열렬 한 반공주의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소책자 [공산주의 선언]을 사랑한다.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쓰여진 방식을 사랑한다. 내용 말고 형식을 사랑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나는 여러 차원의 기호를 갖고 있다.내용은 별볼일 없어도 형식이 뛰어나면 나는 그것까지도 깊이 음미한다.형식을 논하면 붓다는 눈을 감아 버릴것이다. 마하비라도 멀리 달아날 것이다.그러나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 다.그렇다,나는[공산주의 선언]이 쓰여진 형식을 사랑하며,그 내용은 싫어한다.내 말을 이해 하겠는가? 옷은 좋아하되 그 옷을 입은 사란은 싫어할 수 있는 법이다.내 경우가 정확히 그렇다.[공산주의 선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세상의 프 롤레타리아 계급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승리할 경우엔 세상을 얻는다." 그 문장 형식을 이해하겠는가? 대단히 힘없는 목소리로 그들은 말 한다."하나로 단결하라!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며,승리할 경우 세상을 얻는다."내가 나의 제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물론 나는`단결하라!'라는 말 대신에 `존재 하라!'라고 말한다.그리고 잃을 것은 그대를 부자유하게 만드는 쇠사슬 뿐이라고 말 한다.그리고 나는 세상에 대해 승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왜 세상에 대해 신경쓰는 가? 세상을 정복하려 했던 알렉산더 대왕,나폴레옹 보나파르트,아돌프 히틀러,조셉 스탈린,모텍동....이러한 바보천치들이 한 줄로 길게 서있다.나는 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승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승리할 아무런 것 도 없다.단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그것이 나의 선언뭉이다.존재하라,그 속에서 그대는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 제8권은 가브리엘 마르셀4)의 저서 [시지프스의 신 화]이다. 4)프랑스의 현대 철학자.프랑스 실조ㅓㄴ주의의 선구자이며 기독교 실존주의의 대표 적 인물.그의 철학은 체계적 형식을 취하지 않고 실존적 체험의 자유로운 묘사에 의 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평범한 의미에서의 종교인이 아니다.나는 내 자신의 방식에 있어서 종교적이다. 따라서 내가 종교적이지 않은 책들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 다.물론 그 책들은 종교서적이 아니지만 깊이 파고들어가면 뛰어난 종교성을 발견하 게 될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는 고대의 신화로 마르셀이 그것을 자신의 책에 빌어 다 쓰고 있다.그 이야기를 해보자. 시지프스의 본래 신이었는데 최고신의 명령에 따 르지 않은 죄로 하늘에서 추방당했다.그에게 내려진 벌은 큰 바위를 골짜기에서 산 꼭대기로 옮기는 일이었다./그런데 산꼭대기의 자리가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그가 바위를 굴려서 아래로 굴러떨어지곤 했다.그러면 시지프스는다시 바위를 산 정상으 로 옮겨야 했다.이일은 끝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이었다.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시지프스로선 어쩔 수 없는 노릇 이었다. 이것이 모든 인간 의 상황이다.이 책을 깊이 파고들어가면 순수한 종교성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한 것 이 그 때문이다.이것이 모든 인간이 처한 상황이며,과거에도 그래 왔다.그대는 무엇 을 하고 있는가?또다른 인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바위를 정상까지 굴려올라가지 만 매번 더 깊은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그대는 다시 그것을 반복한 다.그리고 그대는 안다.그것이 또다시 굴러 떨어지리라는 것을. 아름다운 신화가 아닐 수 없다. 마르셀은 이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있다.그는 매우 종교적인 인간 이었다.사실 장 폴 싸르트르가 아니라 마르셀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주의자였다.그는 슬로건을 앞세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줄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는 조용히 살면서 조용히 글을 쓰다가 조용히 죽었다.그러나 그의 책[시지프스의 신화 ]는 더없이 감동적이다.[시지프스의 신화]야말로 현대문학이 탄생시킨 위대한 걸작 이다. 제9권. 이유를 모르겠지만 버트란드 러셀의 저서를 포함 시켜야 한다는 생각 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나는 언제나 이 사람을 좋아해 왔다.물론 나는 그가 나 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잘 안다.아마도 그것이 이유일 것이다.정반대 되는 것끼리는 서로 잡아당기기 마련이니까.다시금 내눈에 어리는 눈물을 보는가? 이 눈물은 버트란드 러셀을 위한 것이다.그는 친구3들 사이에 버티라는 애칭으로 불 리워지곤 했다. 제9권은 그의 [서양철학사]이다.서양철학에 관한 한 누구도 이만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오직 한 철학자만이 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역사가들이 여럿 시도를 했으며 또 실제로 여러 권의 철학사를 썼지만 그들 자신은 철학자가 아니었 다.이 책은 버트란드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쓴 최초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는 솔직했기 때문에 자신의 책을 [철학사]라고 제목 붙이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동 양 철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버트란드 러셀 자신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철학사뿐이라는 것을 고백했다.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러셀의 책은 철학서일 뿐 아니라 예술 작 품이다.그만큼 체계적이고 문학적이며 마름다운 창작품이다.아마도 구것은 러셀이 본래 수하가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에는 아직도 버트란드 러셀 같은 사람이 필 요하다. 그래서 인도의 역사와 철학사를 다시 써야 한다.그동안 많은 역사서들이 있어 왔지만 모두가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었다.역사학자 는 어디까지나 역사학자일 뿐이다. 역사학자는 변천하는 사상의 물결 속에 깃든 깊 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다크리슈난이 버트란드 러세셀의 저서에 버금가는 책 을 만들겠다는 의도로[인도철학사]를 쓰긴 했지만 그것은 도둑질한 원고에 불과하 다.[인도철학사]는 원래 라다크리슈난이 도용해서 책으로 만든 것이다. 사건이 법 정으로까지 갔지만 그 학생은 너무 가난하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소송에 승리할 수 가 없었다.문제삼지 않는 조건으로 그 학생은 라다크리슈난에게서 충분한 돈을 받았 다. 자,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인도철학을 논하겠는가? 인도와 중구,특히 이 두 나 라는 버트란드 러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서양은 다행히도 버트란드 러셀 같은 인 물이 필요하다.서양은 다행히도 버트란드 러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서양은 다행 이도 버트란드 러셀 같은 혁명적인 사상가가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자기 자신 에 자기 자신에 이르는 모든 서양철학사를 아름답게 기술할 수 있었다. 제10권. 이 제 내가 제10권으로 꼽을 책은 소위 종교서적이라는 것에 반대되는 책이다.그 내용 에 대해 명상할 때만이 그것이 종교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깊이 명상했을 때만이.....이 책은 아직 힌두어로만 남아 있을 뿐 어떤 언 어로도 번역되지 않고 있다.책의 제목은[다야바이의 노래]이다. 지금까지 라비야,미 라,랄라,사하조 등을 언급했으면서 이 여성을 빼놓은 것에 대해 상당히 미안함을 느 낀다.이제 다소 마음이 편안하다. 다야바이는 미라,사하조 등과 동시대 인물이었으 며,나아가 그 두 여성보다 훨씬 사상이 깊었다.다야바이는 진실로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차원을 지니고 있다. 다야바이는 한 마리의 작은 뻐꾸기였다.인도에선 뻐꾸기 를 `코얄'이라고 부른다.다야바이는 인도의 코얄처럼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 다.인도의 여름밤이 되면 멀리서 뻐꾸기 울음이 들린다.다야바이가 그러했다.이 세 상의 무더운 여름날 멀리서 다야바이의 노래가 들리는 것이다.나는 다야바이에 대해 강의 한 바 있다.언젠가 그것이 번역될 것이라 믿지만 번역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서 약간 두렵다.누가 다야바이 같은 시인의 노래들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인 가?동양의 언어는 순수시 그 자체이지만,서양의 언어는 산문에나 어울린다.영어로 쓰여진 진짜 시를 나는 만나지 못했다.때로 나는 서양의 위대한 클래식 작품을 듣곤 한다.그저께는 베에토벤을 듣다가 중간에서 음악을 꺼버려야 했다.동양의 음악을 들 어 보라.그러면 세상에 그것에 비교할 음악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인도의 대나무 피리소리를 들어 보라.그러면 모든 음악이 빛을 잃을 것이다. 내가 힌두어로 강의한 이 동양의 시인과 노래 부르는 자들의 작품이 과연 영어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모른다.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걸고 나는 그들의 이름 석 자만이라도 언급하는 것이다. 13................................................p231 오늘의 첫번째 책은 어빙 스톤의[삶의 열정]이다.이것은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어빙 스톤이 이 책에서 기울인 노력은 그야말로 타 의 추종 을 불허한다.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토록 가까이 접근해서 글을 쓴 적이 없 다.마치 자기 자신에 대해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삶의 열정]은 단순 한 소설이 아니라 영적인 책이다.나의 시각에서 볼 때 영적인 책이라는 뜻이다.삶의 모든 차원은 하나의 종합으로 묶여질 수 있어야 하며,오직 그때만이 영적이라는 칭 호를 붙일 수 있다.이 책은 너무도 아른다워서 어빙 스톤 자신도 그것을 능가하는 다른 작품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책 이후 그는 많은 작품을 썼으며,오늘의 두번째 책 역시 어빙 스톤의 작품이 될 것이다.그러나 내가 그 책을 두번째의 위치 에 놓은 것은 말 그대로 그것이 [삶의 열정]보다 훨씬 뒤처지기 때문이다.그 책의 제목은[고뇌와 환희]이다.역시 마찬가지로 또다른 인생 스토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 다.아마도 어빙 스톤은 자신이 또다른 [삶의 열정]을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실패하긴 했으나 능히 두번째의 위치를 차지할 만 ㅎ다. 세상에는 시인과 화가와 음악가 등의 삶의 소재로 한 소설들이 수 없이 많 지만 어빙 스톤의 이 두번째 작품을 능가할 만한 것도 없다.그러니 첫번째 작품은 말해서 무엇하랴!두 작품 모두 아름답지만 첫번째 작품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두번 째 작품은 약간 처지지만 그것은 어빙 스톤의 잘못이 아니다.[삶의 열정]같은 뛰어 난 작품을 쓰고 나면 누구나 인간인 이상 그것과 비슷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그러나 모방하는 순간 본래의 창의성은 사라진다.처음에[삶의 열정]을 썼 을때는 어떤 작품도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처녀림을 걷는것과 마찬가지였다.그러나 [고뇌와 환희]를 쓸 때는 모방 심리가 있었다.두번째 책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것이 다.그렇긴 해도 첫번째 작품의 뛰어난 점이 어느 정도 되살려져 있다.그래서 이 책 을 포함시키는 것이다.[고뇌와 환희]가 누구의 인생을 소재로 한 것인가를 잊었다. 작품이 너무나 생생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그 실제 주인공을 잊고 말았다.이 역시 드 문 일이다.나는 쉽게 용서하는 성격이지만 쉽게 잊는 성격은 아니다.이 소설이 누구 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더라?고갱이었던가?("미켈란젤로입니다.")미켈란젤로?그렇다 면 어빙 스톤은 제대로 그의 인생을 묘사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고갱이었다면 몰라 도 미켈란젤로라면 미안하지만 그의 위대한 삶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그러나 어 빙 스톤은 매우 아름답게 묘사했다.그의 산문은 시와 같다. 두번째 책이[삶의 열정] 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빈센트 고호와 같은 인물이 없 기 때문이다.이 네덜란드 친구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그는 홀로 우뚝 서 있다. 별들 가득한 밤하늘에 그는 멀리 떨어져서 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그러한 인물 에 대해서 위대한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미켈란젤로에 대해서 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빙 스톤은 자신의 첫 작품을 모방하려고 했기 때문에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다.절대로 모방자가 되지 말라.누구도 추종하지 말라. 그대 자신조차도. 불쌍한 체타나1).....나는 그녀에게 내 옷을 눈처럼 희게 빠라고 말했다. 1)오쇼라즈니쉬의 제자의 한 사람 체타나는 나의 제자로 내 옷을 세탁하는 일을 맡고 있다.그녀는 언제나 최선을 다 한다.그래서 오늘 나는 한 없이 행복하다.눈처럼 흰 옷을 입으니 내가 다시 히말라 야에 온것 같다.나는 노자가 그랬던 것처럼 히말라야에서 죽고 싶었다.히말라야에서 죽는것이 훨씬 더 멋있는 일이다.눈은 히말라야의 순수성,그 순결성을 상징한다.내 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그러므로 내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언제나 오늘에 살 라,바로 이 순간 우리는 히말라야의 세계속에 있는 것이다.미켈란젤로는 흰 대리석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그는 그 대리석으로 예수의 상을 조각했다.누구도 그러한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더욱 중요한 실수는 그가 자신의 첫 작 품을 모방하려 했다는 것이다.아아,만일 그가 첫번째 작품을 잊었더라면 또다른[삶 의 열정]을 탄생 시킬 수 있었을 텐데! 제3권은 레오 톨스토이의[부활]이다.전생애 에 걸쳐 레오 톨스토이는 예수에 대해 무관한 관심을 가졌다.그래서 [부활]이란 제 목을 붙인 것이다.그리고 레오 톨스토이는 실로 위대한 걸작을 썼다.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성경책과 같은 것이다.젊었을 때 나는 늘 톨스토이의[부활]을 옆에 끼고 다 녔다.아버지조차 걱정하게 되었다.어느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책을 읽는 것은 좋지만 왜 날마다 그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냐?넌 이미 그 책을 읽지 않았느냐?" 나 는말했다."예,물론 다 읽었어요.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었죠.그래도 계속 들고 다닐래요."마을 사람 전체가 그것을 알았다.내가 언제나 [부활]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미친놈이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나는 왜 날마다[부활]을 들고 다녔는가?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그 책을 옆 에 두고 잤다.그만큼 나는 이 책을 사랑했다.예수의 메시지를 전하는 레오 톨스토이 의 방식을 사랑했다.도마를 제외하곤 네명의 사도들도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해낸 것 이다.도마에 대해선[부활]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성경에 수록된 4복음서는 예수 의 정신에서 멀어졌다.[부활]이 훨씬 가깝다.톨스토이는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했으 며,사랑은 마술과 같아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시간이 사라진다.톨스토이가 예수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동시대 인물이 되어 버렸다.그 시간 간격은 2천 년 이나 되는 큰 것이었지만 톨수토이와 예수 사이에선 그것이 사라졌다.아주 드물게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언제나 손에 들고 다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책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는다.그 책은 이미 내 가슴안에 있 다.제4권은 다섯번째 복음서이다.이것은 성경에 수록되지 못했다.도마에 의해 쓰여 진 이[도마복음서]는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이 기록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나 는 그것에 대해 영어로 길게 강의한 바 있다.도마의 복음서는 아주 단순하기 때문 에 부정확한 기록일 수가 없다.그만큼 직접적이고 꾸밈이 없어서 도마는 사라지고 예수만이 남아있다.도마가 첫번째로 인도에 도착한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 는가?인도의 기독교는 바틴칸보다 더 오래된,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 다.도마의 시신이 아직도 인도의 고아라는 해변도시에 보관되어 있다.고아는 이상한 장소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아웃사이더들,소위 히피라고 하는 자들이 이곳으로 몰리 는 것이다. 도마의 시신이 아직도 그곳에 보관되어 있다.어떻게 그것이 보관되었는 가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현대에는 시체를 냉동시켜서 보관하는 기술이 있지만 도 마의 시체는 냉동된 상태가 아니다.이집트와 티벳에서 사용된 어떤 고대의 방법이 도마의 경우에도 사용되었다.과학자들도 아직 그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어 떤 화학약품을 썼는지,아니면 약품을 쓴 것인지 아닌지조차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 다.과학자들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가!그들은 달에 도착하는 로케트를 만들면 서도 잉크가 새지 않는 만년필 하나 못 만들고 있다.작은 것들에 있어선 맥을 못춘 다.제5권역시 레오 톨스토이의 작품이다.세상의 모든 언어로 쓰여진 작품중에서 가 히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할 수 있는[전쟁과 평화]이다.걸작일 뿐 아니라 수천 페이 지에 달하는 대작이다.나 말고 그러한 대작을 읽는 사람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그만 큼 이 작품은 장편이라서 두께를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게 만든다. 그러나 톨스토이 의 작품은 장편일 수밖에 없다.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전쟁과 평화]는 인간 의 식의 긴 역사이다.따라서 몇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 큼 독자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준다.고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그렇다,말 그대로 고전이다. 제6권. 오늘은 마치 내 주위에 러시아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 같다.여섯번째는 박심 고리키의 소설[어머니]이다.나는 고리키를 좋아하지 않는다.그는 공산주의자였으며,나는 공산주의자를 싫어한다.그러나 싫어하 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고 그의 작품[어머니]는 감동적이다.평생동안 나는 이 책을 사랑해 왔다.내가 이 책을 여러권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말했다."너 미쳤 냐? 한 권이면 충분하지 뭣하러 똑같은 책을 또 주문하는 것이냐?소포가 와서 뜯어 보면 맨날 막심 고리키의[어머니]가 들어있으니 정말 너 미친게 아니냐?" 나는 아버 지에게 말했다."예,그래요.막심 고리키의[어머니]에 관한 한 나는 완전히 미쳤어요. 나의 어머니를 볼때마다 고리키의 이 작품이 떠오른다.고리키는 마땅히 서계 최고의 작가로 손꼽혀야 한다.특히[어머니]에서 그는 문학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그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그는 히말라야 봉우리처럼 우뚝 서있다.[어머니]는 읽고 또 읽어 야 한다.그때 서서히 이 작품의 세계가 그대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그때 서서히 어 떤 느낌이 찾아올 것이다.그렇다,생각이 아니라 느낌이,그때 이 작품은 더 이상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느낌이 그때 이 작품은 더 이상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살이 있는 사람처럼 다가올 것이다. 제7권은 또다른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이다.나는 그동안 수많은 책들,수천 권의 책들을 사랑해 왔지만 이제 고백하건 대 투루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만큼 사랑한 책이 없다.나는 나의 불쌍한 아버지에 게 이 소설을 읽으라고 강요하곤 했다.아버지는 지금 세상을 떠나고 없다.살아 계셨 다면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왜 나는 아버지에게 이 소설을 읽으라고 강요했는가?그 것이 아버지와 아 사이의 거리감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그러 나 아버지는 정망 멋있는 사람 이었다.내가 권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그리고 이 소설을 읽었을 뿐 아니라 최소한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갭에 하 나의 다리가 놓여졌다.우리는 더이상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었다.아버지와 아들,어머 니와 딸이라는 그 추한 관계는 사라지고 아버지는 나와 친구가 되었다.자신의 아버 지 혹은 자신의 아들과 친구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투루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은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한다.모든 사람이 어떤 종류의 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아버 지와 아들,남편과아내,형과누나 등 등 끝이 없다.아울러 그 관계들은 구토를 일 으킨다.내 사전에 `가족'이란 단어는 구토를 의미한다.그러나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서 아름다운 관계니 뭐니 떠들어댄다. 제8권은 로렌스의 작품이다.진작부터 이 책 을 말하고 싶었지만 발음에 자신이 없었다.그러니 웃지 말라.평생동안 나는 이 책을 [푀닉스]라고 발음해 왔다.스펠링이 그렇기 때문이다.오늘 아침 누군가에게 물었더 니 정확한 발음이`피닉스'라는 것이었다.나는 놀라서 말했다. "뭐라고?피닉스라고? 평생동안 나는 푀닉스라고발음해 왔는데...." 이 책[불사조]가 오늘의 여덟번째 책 이다.좋다,이제부턴`피닉스'라고 발음하겠다.[불사조],이 책은 수십 년 만에 어쩌 다 나타나는 훌륭한 작품이다. 제9권은 로렌스의 또다른 작품이다.[불사조]도 뛰어 난 작품이긴 하지만 나의 최종적인 선택은 아니다.최종적인 선택은[정신분석과 무 의식]이다.이 책은 거의 읽히지 않고 있다.나 같은 미치광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책 을 읽겠는가?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지 않으며,정신분석과 관계된 사 람들도 이 책을 읽지 않는다.로렌스를 정신분석학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다.나는 소설가들의 열광적인 독자도 아니고 정신분석에 미치지도 않았다.나는 두 세계 어느 쪽으로부터도 자유롭다.나는 완전한 자유인이 다.나는 이 책을 사랑 한다.[정신분석과 무의식]은 그동안 내가 아껴온 책 중의 하 나다.이제 더 이상 내가 책을 읽지 않고 있지만,만일 내가 다시 책을 읽는다면 그 첫번째 책이 바로 이 책이 될 것이다.베다 서나 성경이 아니라[정신분석과 무의식] 을 첫번째로 읽을 것이다.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가?이 책은 정신분석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로렌스는 진정한 혁명가이고 반역자였다.그는 지그문트 프로이드보다 훨 씬 더 혁명적이었다.프로이드는 중간밖에 되지 않는다.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내 가 말하는`중간'이란 곧 모든 저속한 것들을 가르킨다.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혁명가가 아니었다.로렌스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다. 제10권은 아놀드의[ 아시아의 빛]이다....몇 권 더 이야기하고 끝내야 하겠다.생의 마치는 한이 있어도 이야기는 끝내야 한다. 제11권음ㄴ[비자크]이다.`비자크'는 까비르의 시모음집이 다.`비자크'는 `씨앗'이란 뜻이다.물론 이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이다.그것 이 싹이 트고 나무가 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 제12권. 허버트 마 르쿠제의[일차원적 인간]이다.나는 그 내용에 반대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책을 썼 다.인간은 일차원이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뻗어 나갔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반대하는 것이다.[일차원적 인간]은 현대인의 이 야기다. 제13권은 중국의 신비서[주역]. 제14권이자 오늘의 마지막 책은 아직 영 어로 번역되지 않은 힌두어 소설이다.나 같은 사람이 이러한 소설을 말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다.힌두어 제목은[나디케 드 빕]이며,[강안의 섬]이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저자는 사치다난드 바트샤야나] 이다.명상을 배우고자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가치있는 소설이다.말하자면 명상 가가 쓴 소설이다.톨스토이나 안톤 체홉의 소설들도 이 소설들도 이 작품에 비교될 수 없다.그것이 힌두어로 써졌다는 것이 불행한 일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