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이드리스 샤흐(탁월한 수피 문헌의 번역가, 해석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책들은 여러나라 말로 출판 소개되었으 며, 특히 수피즘과 그 참모습을 범 세계적인 것으로 전하는 데 있어서 그의 선구적 인 노력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수피 신비가들]외에 [수피의 길],[동양의 사상가] [배우는 법을 배우는 법] [꿈의 대상들]등이 있다.)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저서 중 어느 한 권만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의 모든 책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모 든 저서를 오늘의 제4권에 넣겠다. 겁먹지 말라. 나는 제정신이 아니니까. 어떤 것도 나를 정신들게 할 수 없다. 그 러나 이드리스 샤흐의 저서 중 유독 한권만이 탁월하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모든 책이 다 훌륭하고 모두를 다 언급하고 싶지만 이 책 한 권만은 다이아몬드와 같다. 제목은 [수피 신비가들]이다. [수피 신비가들]에서 그가 행한 작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물라 나스루딘을 서양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이드리스 샤흐이며, 그밖에도 그는 무한한 공헌을 했다. 그에게 진 빚을 우리는 아무리 해도 다 갚을 수 없다. 서양은 세세토록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드리스 샤흐는 나스루딘의 짧은 우화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는 우화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더욱 의미깊고 날카롭게 하는 재능도 겸비했다. 그의 모든 책을 여기에 포 함시키는 바이다. 제5권으로 또다른 사람 알란 와츠(영국에서 태어나 1938년에 미국으로 이주함. 이후 편집자, 목사, 대학교수 등의 직업을 거치면서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 접하여'깨달음' 의 길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동양적 의미의 '스승'으로서, 특히 선불교와 도교를 비롯한 인도, 중국 철학 일반에 대한 탁월한 해석자로 널리 알려졌고, 비트족 운동에 이어 하피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캠브리지 ,코넬 하와이 대학 초청강사를 역임했으며, 5년동안 교회와 군부대, 노스웨스턴 대학 교 등지에서 종교담당 카운셀러를 지냈다. 또한 그는 일반 대중은 물론 미국 정신 의학협회와 스위스 쮜리히의 융 연구소, 그리고 미국의 여러 병원 의료진에게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 동양학 아카데미의 학장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암자인 샌프란시스코 북쪽 타말파스 산 기슭에 외따로 자리잡은 조그만 오두막 에서 명상과 사색, 그리고 집필 활동으로 만년을 보낸 그는, 1973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시적이고 예리한 필치로 20여권의 책을 썼는데 , 주요 저서로는 [선의 길], [도 를 이야기하다]등이 있다.)와 그의 모든 저서를 포함시키고자 한다. 나는 이 사람 역시 무척 사랑한다. 내가 붓다를 사랑하고 솔로몬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 이다. 그들은 깨달음에 이르렀다. 알란 와츠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으며, 한 사람의 미국인이었다. 미국인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미국인이 되고자 원해서 미국으 로 이주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가치있는 책들을 남겼다. [선의 길]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이것이 그것]역시 많은 가치와 통찰력이 깃든 저서다. 아직 도를 깨치지 못한 사람이 그러한 책을 썼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는 일이다. 깨달음에 이르면 어떤 말을 해도 아름답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깨달음 을 얻기 전 상태에서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갈 때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작은 빛으로도 열광하기 마련이다. 알란 와츠는 알콜 중독자이긴 했으나 진리에 아주 가깝게 접근 했다. 그는 한때 정식 기독교 목사였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곧 그는 그것 을 버렸다. 성직자의 위치를 포기할 만한 용기를 지닌 사람은 아주 드물다. 성직자 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알란와츠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돌이가 되었다. 떠돌이란 얼마나 좋은가! 보리달마가 그러했고, 바쇼(이뀨와 더불어 일본의 유명한 선승이자 하이꾸 시인.)가 그러했고, 중국의 임제선사(임제의현 ?-866. 중국 선사들 중에서 가장 개성있고 철저하며 열렬히 진리를 추구했던 인물. 지금의 산동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으며 효성이 지극했고, 승려가 되어서는 경건한 성품 과 아울러 진지한 구도자 였다. 수많은 고승들을 만나면서 처음에는 주로 계율과 화엄 경을 공부했으나, 이러한 공부로는 불교의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홀 연히 방랑의 길을 떠났다. 스무살 무렵에 당시 가장 이름을 떨쳤던 황벽선사의 문하에 들어가 비범한 재주를 인정받고 선의 비밀을 참구하여 대각에 이르렀다. 후에 진주의 작은 선원에 머물면서 선원을 임제원이라 이름짓고 크게 선풍을 휘날렸다. [임제록] 1권이 전해진다.)가 그러했다. 알란와츠가 붓다가 디는 일은 그리 멀지 않았다. 오래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다음 생에선 곧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제 6권...... 조금 전 나는 임제선사의 이름을 언급했다. 오늘의 여섯번째 책은 [임제록]이다. 임제의 중국식 발음은 린치이며, 일본에서는 린자이라고 부른다. 나는 린자리이른 일본식 발음이 더 감각적으로 들린다.[임제어록]은 뭐랄까, 다이나 마이트 같다고나 할까, 대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임제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부처를 추종하는 그대 어리석은 자들이여, 부처를 떠나라! 부처를 떠나지 않으면 그를 발견할 수가 없다." 임제는 붓다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오타마 붓다의 이름을 들먹이기 전에 이 사실을 알라. 그 이름은 실체가 아니다. 불당 안의 부처는 실체가 아니다. 진짜 부처는 그대들 안에 있다. 그 진짜 부처를 그대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바깥의 부처를 죽이고 안의 부처를 얻으라." 임제는 말한다. "교리라는 것도 없고 가르침이란 것도 없으며 부처도 없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가 붓다의 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임제야말로 붓다의 진정 한 제자였다. 선의 꽃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한 것이 바로 임제선사였다. 그는 선의 정신을 일본의 언어로, 언어뿐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로 피어나게 했다. 그렇게 해서 다도와 꽃꽃이와 도예와 궁도 등이 탄생했다. 한 사람에 의해서 나라 전체의 생활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제7권은 임제선사처럼 높은 깨달음에 이르진 못했어도 가까이 접근하긴 했던 하즈 라트 이나야트 칸(아들과 함께 현대 수피즘의 대표적인 인물. 음악가이기도 했으며, 이드리스 샤흐와 더불어 수피즘을 서양에 널리 소개한 공로가 크다.)의 책으로, 이 사람은 수피즘을 서양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는 직접 책을 쓰진 않았으나 그가 서양 에서 행한 강연들이 12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 책들의 여기저기에서 보석들이 발견 된다. 책 전체가 보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이따금 특히 그가 수피의 우화를 이야기할 때만 보석이 빛난다. 그는 또 음악가 이기도 했다. 음악에 있어선 정말로 대가였다. 영적 세계에선 스승 이 못되었지만 음악 세계에선 분명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영적 세계에 있어선 때로 구름 위를 치솟아 비상했다가도 한없는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그는 무척 고통받았을 것이다. 제8권은 하즈라트 이나야트 칸의 아들의 책이다. 그의 이름은 서양의 구도자들 사이 에선 잘 알려진 하즈라트 비라야트 알리칸이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사람으로 아직도 살아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비라야트는 아직 살아 있다.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뜻한다. 단순히 숨쉬고 먹고 마시는 일만을 의미 하지 않는다. 비라야트의 모든 책을 여기에 포함시킨다. 비라야트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음악가다. 그리고 더 많이 침묵에 가깝다. 제9권. 칼릴 지브란의 또 한권의 책을 포함시키고 싶다.[사람의 아들 예수]가 그것이다. 이 책은 거의 무시당한 책 중의 하나다. 예수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책을 철저히 무시했다. 무시했을 뿐 아니라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한 예수에 대해 신경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기독교인들 스스 로가 비난하는데 기독교 밖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겠는가? 칼릴 지브란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시리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사실 아직도 시리아의 산악 지대에선 예수가 썼던 언어닌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시리아 삼나무들을 바라볼라치면 아무리 바보라ㄷ 신비와 경외감에 사로 잡힌 다. 칼릴 지브란은 삼나무들이 별까지 가닿는 그곳 시리아의 한 지방에서 태어난다. 그는 누구보다도 진정한 예수에 가깝게 접근했다. 오히려 복음서를 쓴 4인의 사도들 보다 더 잘 예수를 표현하고 있다. 4복음서는 가스펠이 아니라 가십에 불과하다. 칼릴 지브란이 훨씬 더 가깝게 접근했다. 그러나 예수를 사람의 아들이라 표현했다고 해거 기독교인들은 화를 내었다. 나는 이 책[사람의 아들 예수]를 사랑한다. 이 책은 예수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꾼, 농부, 어부, 심지어 세금 걷는 사람까지 남녀노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칼릴 지브란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예수에 대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가 아니라 진정한 예수에 대해 질문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 책에서 실린 이야기들은 실로 감동적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에 대해 깊이 명상할 필요가 있다.[사람의 아들 예수]가 오늘의 아홉권째 책이다. 제10권. 칼릴 지브란의 또 다른 책[광인]이다. 나는 이 책을 멀리 치워버리고 싶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책을 멀리 치워 버리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칼릴 지브란 이 말하는 광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안할 수 없게 되었다. 칼릴 지브란은 광인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고 진지하게 파헤쳐 나간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광인은 보통의 미치광이가 아니라 붓다, 까비르, 임제선사와 같은 광인을 가리 킨다. 어떻게 칼릴 지브란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 자신은 그러한 광인이 아니었다. 그 자신은 도를 깨치지 못했다. 그는 시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불행히도 미국에서 생활했다.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이 신비를 풀 길이 없다. 어떻게 그는 그러한 광인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을까? 아마도 다른 어떤 존재가, 수피 신비가들이 말하는 카즈라나 또는 신지학자들이 말하는 K.H. 대사, 즉 쿠트후미가 그에게 내려왔을 것이다. 칼릴 지브란이 늘 그러한 영적 존재의 통로였던 것은 아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그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다. 사실 보통의 평범한 인간보다 더 평범했다. 질투심이 강하고 화 잘내고 온갖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때로 갑자기 그는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비상하곤 했다. 높은 차원에서 어떤 영이 그에게로 내려온 것이다. 그 영이 그를 통해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제2부에서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이야기했는가? ("서른 권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른 권? 다소 안심이 된다. 아직도 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천 권의 책에서 한 권을 뽑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제2부의 연속이다. 제1권은 장 폴 싸르트르(1905년 출생.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이며 작가.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중심 인물. 교수 자격을 얻은 후 한때 베를린에서 독일 철학을 연구했다. 종전 후 잡지[현대]를 주간하면서 문단과 논단에서 활약했다. 그의 철학은 헤겔, 훗셀,키에르케골,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존재와 무]에서 자신의 존재론을 전개 하였다.)[존재와 무]이다. 먼저 나는 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겠다. 그는 금세기의 대표적인 속물근성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속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그가 실존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실존주의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내 제자들보다 약간 더 미친 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읽기가 그만큼 어렵다. 남보다 약간 더 미친 자에게는 이 책이 효과가 있다. 미친 자를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책이 이 책이다. 이것을 꼭 적어 넣으라. 모든 정신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히고 학습시켜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도 제정신 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1단계의 미친 자들, 즉 철학자와 교수와 학자라고 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효과가 있다. 장 폴 싸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명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싸르트르가 '존재'에 대해 말하고 '무'에 대해 말한다. 존재와 무는 둘이 아니다. 존재가 곧 무이며, 무가 곧 존재이다. 그래서 붓다는 존재를 '아나타', 즉 무아라고 불렀다. 자아를 '무아'라고 표현한 인물은 역사상 고오타마 붓다 한 사람뿐이다. 나는 1천 1가지의 이유 때문에 붓다를 사랑하지만, 이것이 그중의 한가지 이유이다. 나머지 1천 가지의 이유에 대해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 1천 가지의 이유에 대해서도 하나씩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장 폴 싸르트르를 싫어한다. 단지 싫어할 뿐 혐오하진 않는다. '혐오'라는 단어는 너무 강하다. 그 단어는 제2권을 위해 남겨 두겠다. 장 폴 싸르트르는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철학적인 말장난, 지적인 훈련을 즐겼다. 사실 이 책은 훌륭한 지적 훈련이 된다.[존재와 무]의 10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대는 미치든지, 아니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읽기가 힘들다. 대학교수 시절에 나는 이책을 많은 학생들에게 권했으나 끝까지 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10페이지를 읽은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첫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사실은 1단락만으로도 너무하다. 그런데 책은 1천 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나는 싸르트르를 싫어하며 그의 철학도 싫어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반철학이라고 부르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철학이란 점에는 다를 바 없다. 존재 그 자체는 철학적이도 반철학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나의 도서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가 실로 엄청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술과 논리로 쓰여진 기념비적인 책을 그는 남겼다. 제2부에서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이야기했는가? ("서른 권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른 권? 다소 안심이 된다. 아직도 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천 권의 책에서 한 권을 뽑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제2부의 연 속이다. 제1권은 장 폴 싸르트르(1905년 출생.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이며 작가.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중심인물. 교수 자격을 얻은 후 한때 베를린에서 독일철학을 연구했다. 종전 후 잡지 [현대]를 주관하면서 문단과 논단에서 활약했다. 그의 철학은 헤겔, 훗셀, 키에르케골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 [존재와 무]에서 자신의 존재론을 전개하였다)의 [존재와 무]이다. 먼저 나는 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겠다. 그는 금세기의 대표적인 속물근성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속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그가 실존 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실존주의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내 제자들보다 약간 더 미친 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읽기가 그만큼 어렵다. 남보다 약간 더 미친 자에게는 이 책이 효과가 있다. 미친 자를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책이 이 책이다. 이것을 꼭 적어 넣어라. 모든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히고 학습시켜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1단계의 미친 자들, 즉 철학자와 교수와 학자라고 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효과가 있다. 장 폴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명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싸르트르가 '존재'에 대해 말하고 '무'에 대해 말한다. 존재와 무는 둘이 아니다. 존재가 곧 무이며, 무가 곧 존재이다. 그래서 붓다는 존재를 '아나타' 즉 무아라고 불렀다. 자아를 '무아'라고 표현한 인물은 역사상 고오타마 붓다 한 사람뿐이다. 나는 1천 1가지의 이유 때문에 붓다를 사랑하지만, 이것이 그중의 한가지 이유이다. 나머지 1천 가지의 이유에 대해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 1천 가지의 이유에 대 해서도 하나씩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장 폴 싸르트르를 싫어한다. 단지 싫어할 뿐 혐오하진 않는다. '혐오'라는 단어는 너무 강하 다. 그 단어는 제2권을 위해 남겨 두겠다. 장 폴 싸르트르는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철학적인 말장난, 지적인 훈련을 즐겼다. 사실 이 책은 훌륭한 지적 훈련이 된다. [존재와 무]의 10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대는 미치든지, 아니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읽기가 힘들다. 대학교수 시절에 나는 이 책을 많은 학생들에게 권했으나 끝까지 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10 페이지를 읽은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첫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사실은 1단락만으로도 너무하다. 그런데 책은 1천 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나는 싸르트르를 싫어하며 그의 철학도 싫어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반철학이라고 부르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철학이란 점에는 다를 바 없다. 존재 그 자체는 철학적이도 반철학적이지도 않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책을 나의 도서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가 실로 엄청난 작업을 했 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술과 논리로 쓰여진 기념비적인 책을 그는 남겼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은 일개 평범한 사회주의자였다. 이 점 때문에도 나는 그를 싫어한다. 존재에 대해 깊이 안 사람은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다. 존재계에 평등이 불가능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곧 존재계의 방식이다. 어떤 것도 같지 않으며, 같을 수가 없다. 평등은 어리석은 자의 한낱 꿈일 뿐이다. 존재 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름'의 파노라마인 것이다. 제2권...... 잠시 기다려야겠다. 기트 바르티의 만년필이 잉크가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그런 싸구 려 만년필을 갖고 다니는가? 마치 아담과 이브 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다. 또 그 만년필은 왜 그 렇게 소음이 나는가? 하기야 이 '노아의 방주' 안에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제2권은 마르틴 하이데거(1889년 출생. 독일의 현대철학자. 남독일의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28년 훗셀이 은퇴하자 그의 뒤를 이어 모교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그후 나치스 당원이 되고 대학 총장에 취임했으나 얼마 후 사임했다. 종전 후 강단에서 추방되어 산장에서 은퇴생활을 하다가 1953년 추방이 해제되자 다시 모교에 복귀했다. 그의 철학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모든것이 무너져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싹터 나치스의 허무적이고 자학적인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했다. 고전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말쏨씨를 종횡무진 구사하고 있으나 그것이 철학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도 있다. 전후엔 특히 문학방면에서 싸르트르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으며, 카프카나 만년의 릴케를 비롯한 현대 독일 시인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의 [시간과 존재]이다. 나는 이 사람 하이데거를 혐오한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을 뿐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의 추종자인 파시스트였다. 독일인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토록 천재적이고 재능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바보 같고 저능아 같은 히틀러를 지지한 것이다. 다만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 [시간과 존재]는 가치가 있다. 역시 내 제자들 보다는 훨씬 더 미친 사람들에게 이 책은 권할 만하다. 만일 그대가 완전한 미치광이를 자처한다면 [시간과 존재]를 읽으라. 이 책은 정말로 읽기 힘든 책이다. 책을 읽노라면 망치로 머리를 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몇 군데 반짝이는 귀절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 그대의 머리를 망치로 치면 순간 적으로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것과 같다. 몇 개의 별들이 군데군데 반짝인다. 이 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제2부를 쓰기로 약속했다. 평생에 걸쳐 그는 그 약 속을 다짐하고 재다짐했지만 끝내 제2부는 탄생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신에게 감사드린다. 내 생각에 그 자신도 자기가 쓴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에 대해 제2부 를 쓸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는 제2부야말로 자신의 사상의 집대성이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 책을 쓰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안그러면 웃음거리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제2부를 탄생시 키지 못하고서 세상을 떠났다. [시간과 존재]제1부만 해도 세상의 미친 자들에게나 효과가 있 다. 그리고 미친 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제3권. 이 책이야말로 정말 완전히 미친것, 어떤 정신분석이나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미치광 이에게 알맞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독일인의 작품으로 저자와 이름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 1889년 비엔나 출생. 어려서부터 음악가 클라라 슈만 은 그의 집에서 비공식적인 연주회를 가졌고, 구스타부 말러는 자주 드나드는 방문객이었고, 요하네스 브라암스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이러한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일생동안 음악에 대한 정열과 재능을 스스로 가꾸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기도 하고 지휘자가 되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또 기계에 대한 관심도 커서 "말년에 이르러서도 박물관에 있는 그가 아끼는 증기 기관들을 만지면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으며, 고장난 기계를 수리한 몇 가지 일화도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항공학 연구에 몰두하면서 점차 순수학문에로, 그 다음에는 수학의 기초에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리하여 철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러셀의[수학의 원리]를 읽고 캠브리지 대학에 등록하여 러셀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와 오랫동한 대화을 나누었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있는 지적 모험중의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의 한사람인 무어와도 사귀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비트겐슈타인은 장교로 복무하다가 포로생활을 했으며, 이 전쟁중에 여러가지 기본적인 논리적 개념들에 대해 메모하여 그것이 군 휴가중 완성되었다. 그것이 바로 [논리철학논고]이다. 전쟁 후 은둔생활을 하다가 시골국민하교 교사가 되어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한적한 시골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일에 종사했다. 수도자의 방처럼 햐얗게 칠이 된 작은 방에서 살았으며, 어떤때는 시골집에 있는 헛간이나 학교주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저녁에 그는 독서를 하거나 클라리넷을 연주하곤 했으며, 때때로 그는 창문에서 몇 시간이고 별을 응시하곤 했다. 한번은 부서진 증기기관을 짧은 시간내에 수리해서 그 지방의 방직 공장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얼마 후 캠브리지 대학과 철학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철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게 될 강의를 시작했다.)이고 책의 제목은 [트락타투스 로지코 필로소피쿠스]이다. 줄여서 [트락타투스]라고 하자. 아마도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일것이다. 위대한 영국 철학자 무어(1873년에 출생한 영국의 철학자. 캠브리지 대학 철학교수를 지냈다.)나 또다른 위대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1895년에 출생한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사회평론가. 캠브리지 대학 교수로 제1차 대전중 반전운동에 가담. 화이트헤드와 함께[수학의 원리] 로도 유명하며, [서양철학사]를 썼다)같은 이도 비트겐슈타인이 자기들보다 훨씬 천재적 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의 책은 아니다. 그의 책은 지적 훈련감에 불과하다. 어쩌다 이따금만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한 문장들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옳은 말이다. 세상의 성자나 시인, 신비가들도 이 문장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적인 방식으로 짧은 문장들을 써내려간다. 긴 단락은 그의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경전들처럼 짧은 문장의 연속이다. 아주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자에게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한 개의 날카로운 못처럼 존재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를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줄지도 모른다. 루히비드 비트겐슈타인은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의 가장 권위있는 철학교수직을 권유받았지만 사양했다. 내가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시골로 내겨가서 농부와 어부로 지냈다. 이 사람의 멋있는 점이다. 비록 비트겐슈타인이 실존주의 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장 폴 싸르트르보다 더 실존적이다. 실존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실존이 된다. 그렇지 않고선 실존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이 무어와 버트란드 러셀 밑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쓰여졌다. 영국과 독일의 두 위대한 철학자에게서 배웠으니 [트락타투스 로지코 필로소피쿠스] 가 탄생할 법하다. 그 제목을 번역하면 '비트겐슈타인, 무어, 러셀'이란 뜻이 된다. 내가 보기엔, 비트겐슈타인이 우어나 러셀보다는 구제프의 발치 아래서 배웠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놓쳤다. 아마도 다음 번에는 가능할 것이다. 다음 생을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다음 생이란 있지 않지만 그에겐 적어도 한 번의 생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무어나 러셀이나 화이트헤드(알프렛 노쓰 화이트헤드. 1861-1947. 영국의 수학자이며 철학자. 런던대학 수학교수로 있다가 미국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를 지냈다. 데카르트에 견줄 만한 20세기의 철학자로 평가 되고 있다.)가 아니라 구제프나 장자, 보리달마와 같은 이에게서 배워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람이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그는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들과 어울리면 따라서 제대로 되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사람이 막 되어먹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 사람도 망쳐진다. 물론 이것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이다. 도를 깨친 사람은 남에게서 영향받지 않는다. 도인은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다. 예수는 창녀 막달레나와 어울렸으며, 붓다는 9백99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도 어울렸다. 이 살인자는 1천명의 사람을 죽이겠다고 공언했으며, 그 마지막 한 사람이 붓다였다. 그래서 그는 붓다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살인자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사람들이 그에게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손가락뼈로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이 살인자가 그러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면 그 손가락을 잘라서 목걸이에 꿰어 넣었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숫자를 기억하기 위해서 였다. 이제 9백99개의 손가락뼈가 모였다. 다시 말해 1명만 더 죽이면 되었다. 그때 붓다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붓다는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앙굴리말라가 소리쳤다. "멈추어라." 붓다가 말했다. "훌륭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해 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멈추어라!' 그러나 듣는 사람이 없다." 앙굴리말라는 순간 어리둥절 해졌다. 이 자는 미친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붓다는 앙굴리말라를 향해서 걸어갔다. 앙굴리말라가 다시 소리쳤다. "멈추어라! 너는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바로 그 유명한 앙굴리말라이다. 나는 1천명의 사람을 죽이기로 맹세했다. 그리고 이제 1명만 더 죽이면 그 맹세가 실현된다. 나의 어머니 조차도 나를 보면 도망가는 판이다. 가까이 오면 널 죽이겠다. 하지만 네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니까 지금 도망치면 너만은 살려 주겠다." 붓다가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 나는 평생동안 도망쳐본 적이 없다. 그리고 멈춘 것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미 40년 전에 완전히 멈추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내 안에 움직이는 자는 없다. 또 나를 죽이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모든 태어난 자는 죽기 마련이다." 앙굴리말라는 이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앙굴리말라는 붓다를 바꿀 수 없었지만 붓다는 앙굴리말라를 바꾸었다. 창녀 막달레나는 예수를 바꿀수 없었지만 예수는 그 여인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선 다르다. 비트겐슈타인은 충분히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잘못된 동반자를 만났다. 그러나 이책[트락타투스]는 한번쯤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3류의 미치광이들에게 제정신들게 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제4권. 이 저자의 이름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나는 존재계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이제부터 내가 말할 사람은 숫자라는 것을 초월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비말키르티이여, 그의 저서는 [니르데쉬 수트라]이다. 물론 우리의 비말키르티(우리의 비말키르티란 독일 왕족 출신으로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었다가 70년대 말 세상을 떠난 자를 말한다.)는 이 비말키르티가 아니다. 사실 내가 그에게 비말키르티라는 이름을 준 것은 이 저자 때문이다. 비말키르티의 책은 흔히 [비말키르티 니르데쉬 수트라]라고 불리운다. '니르데쉬 수트라' 는 '안내서, 지침서"라는 뜻이다. 비말키르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이다. 붓다 조차도 그에게 질투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붓다의 제자이긴 했으나 결코 형식적인 제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는 형식적으로 제자 입문식을 거치지 않았다. 그가 어찌나 무서웠는지 붓다의 다른 제자들까지도 그를 두려워했다. 다른 제자들은 그가 제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길에서 마주치거나 인사를 나눌라치면 그는 갑자기 충격적인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충격을 주는 것, 그것이 비말키르티의 방법이었다. 구제프라면 이 사람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제프라 해도 이 사람을 직법 만나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비말키르티는 그만큼 진정으로 무섭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가 병이 들어서 붓다가 사리푸타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말했다. 사리푸타가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당신의 명령에 한번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만, 이번 만큼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비말키르티에게 가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비말키르티는 정말 골치아픈 사람입니다. 숨이 넘어가면서도 그는 저를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붓다는 모두에게 부탁했지만 단 한 사람 만주스리외에는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만주스리는 붓다의 제자로서 첫번째로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다. 만주스리는 붓다의 요청에 따라 비말키르티를 만나러 갔다. 이 책이 그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이 책은 바로 죽어가는 비말키르티와 만주스리의 대화집인 것이다. 만주스리가 죽어가는 비말키르티에게 질문을 던진 내용, 오히려 질문을 받은 내용이 바로 [비말키르티 지르데쉬 수트라]이다. 실로 위대한 안내서이다. 아무도 이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책이 어떤 특정종교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책은 불교의 책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는 붓다의 형식적인 제자가 되기를 끝내 거부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형식을 중히 여기지 때문에 알맹이를 잃어버렸다. 나는 이 책을 모든 구도자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구도자라면 이 책속에서 큰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할 것이다. 제5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그대의 기억속에 다시금 데려 오고 싶다. 책의 제목은 [삶에 대한 주석서]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일기다. 이따금 그는 일기 형식으로 뭔가를 적곤 했다. 아름다운 일몰 광경, 오래된 나무, 아니면 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단순한 저녁 풍경, 바다로 달려가는 강물 등 자신의 눈에 비치는 것들을 적어내려 가곤 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은 일기라서 체계적인 글은 아니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세계로....... 내 눈에 어린 눈물이 보이는가? 얼마동안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 눈에 눈물이 어린다. 그만큼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인간의 손에 쓰여진 가장 아름다운 책이 이것이다. 앞에서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처음과 마지막 자유]를 그의 최고의 책이라 평가했었다. 물론 책으로 따지자면 그것이 최고이지만 [삶에 대한 주석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책이 아니라 일기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아름다운 일기책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바이다. 제6권 역시 [주석서]라는 제목의 책으로, 모리스 니콜(구제프의 수제자 중의 한사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꾸미지 않아야 하듯이 다른 사람도 꾸미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꾸미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도 꾸미지 않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죽을 때까지 스승을 떠나지 않고 충실한 제자로 남았다.)의 다섯 권에 달하는 역작이다. 나는 그를 '니콜'이라고 부르지만 오늘 저녁 확인한 바로는 정확한 영국식 발음은 '니클'이었다. 아뿔싸, 나는 평생동안 그의 이름을 '니콜'이라고 발음해 왔다. 스펠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니콜은 구제프의 제자였으나 같은 제자였던 오스펜스키와는 달랐다. 니콜은 스승을 배반하지 않았으며 유다가 아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둘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그는 진정한 제자로 남았다. 니콜의 [주석서]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제7권 역시 구제프의 또 다른 제자인 하르트만의 책으로, 제목은 [구제프와 함께 보낸 시절들] 이다. 이 사람의 이름 역시 '하르트만'이 정확한 발음인지 나는 자신이 없지만 발음이 꼭 중요한 것이겠는가? 하르트만과 그의 아내는 둘다 구제프의 제자였다. 하르트만은 음악가였는데 구제프의 춤을 위해 연주를 하곤 했다. 구제프는 명상의 일종으로 춤을 사용했다. 춤을 추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춤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좋은 명상이었다. 구제프가 뉴욕에서 최초로 이 명상법을 선보였을때 하르트만은 피아노를 연주했고 다른 제자들은 춤을 추었다. 도중에 구제프는 '스톱!"하고 소리쳤다. 이것은 일종의 '스톱 훈련'이었다. 구제프가 스톱을 외치자 춤추던 무용수들은 말 그대로 춤 중간에서 완전히 정지했다. 그때 그들은 마침 무대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동작을 정지하자 모두 바닥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래도 그들은 동작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스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제자들의 태도에 감동받았다. 하르트만이 쓴 [구제프와 함께 보낸 시절들]은 제자에 의해 쓰여진 스승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이다. 진리 추구의 길을 걷는자 누구에게나 이 책은 도음이 될 것이다. 다음이 몇 권째인가? ("이제 막 일곱번째 책을 말씀하셨습니다.") 제8권.......그리고 그대는 내 가르침의 방식을 이해하겠는가? 때로 내가 그대를 화나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대가 지금 이 순간 깨닫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지금은 느끼지 못해도 언젠가 나에게 감사해 할 것이다. 제7권.......숫자가 맞는가? ("제8권입니다.") 스승이 제자에 의해 바로잡아지는 것은 정말로 기분좋은 일이다. 제자가 스승을 바로잡을 때 스승은 언제나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대들에게 이따금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이제부터 말하려는 제8권은 힌두교 신비가인 라마누자(11세기 후반 수피즘의 영향을 받은 인도의 힌두교는 모든 것의 가장 위에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놓게 되었다. 그러자 제례 의식과 그 권위만을 과시하던 바라문 사제 계급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이 소요의 틈에서 순수한 민중 신앙운동이 일어났다. 지적인 추구가 아닌 신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자각한 사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상이 하나의 서민층 신앙운동으로 불붙은 것이 바로 박티운동인데, 이 운동을 남인도에서 파급시킨 사람이 바로 라마누자이다.)에 의해 쓰여진[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한 주석서이다.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해선 많은 주석서가 전해진다. 이미 바드라야나의[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해서 말한 바 있지만, 이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한 라마누자의 주석서는 그 나름대로 아주 독특하다. 본서 [브라흐마 수트라]는 마치 사막처럼 건조하기 이를 데업다. 물론 사막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가지고 있지만 라마누자는 이[슈리 파샤]에서 그 사막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라마누자의 이 작품을 나는 사랑한다. 라마누자 자신에 대해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전통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주의자, 정통을 따지는 자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그들은 광신자와 다를 바 없다. 이따금 광신자들도 아름다운 일을 행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책을 포함시키는 것을 이해애 달라. 제9권. 나는 오스펜스키라는 사람에 대해선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저서들은 늘 사랑해왔다. 그는 스승이 아니라 마치 교장선생처럼 생겼다. 교장선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여러번 시도 했지만 실패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실패했고 대학에서도 실패했다. 학교 교장을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뿐만 아나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특히 교장이 여성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여자교장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바보들은 여자교장과 결혼까지 한다! 나는 오스펜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교장선생 타입이었다. 구제프의 가르침에 대해 강연을 할때도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교장선생이었다. 백묵을 손에 들고 칠판앞에 선 모습....... 안경을 쓴 폼하며 모든것이 학교의 교장선생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방식까지도. 그가 황금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왜 사람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둘째로, 나는 그가 유다였기 때문에 그를 싫어한다. 나는 배반자를 사랑할 수 없다. 스승을 배반한다는 것은 영적인 자살을 의미한다. 유다조차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막힌지 스물 네 시간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스펜스키는 나의 연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그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선 대단한 능력을 지닌, 가히 천재적인 솜씨였다. 내가 이제 언급할 이 책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는 생전에 이 책이 출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마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다. 책의 제목은 [인간 미래 심리학]. 그는 유언서에다 이 책을 그의 사후에만 출판하라고 못박았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책에서 그는 나와 내 제자들의 작업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가 예견한 미래의 심리학이 바로 내가 지금 이곳에서 행하고 있는 작업인 것이다. 미래의 인간, 신인간이 그것이다. 이 책은 소책자이지만 모든 구도자들이 일독을 해야 한다. 제10권....... 숫자가 맞는가? ("예, 맞습니다.") 제10권으로 삼고 싶은 이 책은 수피의 책인 [바하우딘의 서]이다. 수피 신비가의 원조격인 바하우딘은 수피즘의 전통을 세웠다. 이 소책자에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소책자는 하나의 씨앗이다. 사랑, 명상, 삶, 죽음의 씨앗....... 이 책에 대해 명상하라.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지금까지 제2부에서 몇 권의 책이 이야기되었는가? ("40권입니다.") 다시 제2부가 이어진다. 제1권은 콜린 윌슨(1931년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열네 살 때 [과학편람]전6권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고, 1956년[아웃사이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신실존주의'라 이름붙였으며, 이에 대해 [실존주의를 넘어서]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의 [아웃사이더]이다. 금세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 바로 이 [아웃사이더]이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단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자일 뿐이었다. 물론 책의 중간 중간에 빛나는 귀절들이 등장한다. 콜린 윌슨으로 말하자면 그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었다. 아웃사이더란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하는 것이다. 저자 자신은 자기가 말하는 차원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그래도 진리에 아주 가깝게 접근했다. 그러나 이 점을 기억하라. 진리 에 아무리 가깝게 접근했다 해도 '가깝다'는 것은 아직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진리이거나 진리 가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지 그 중간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의 세계를 그야말로 외부에서 바라보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다. 왜냐하면 콜린 윌슨 자신은 아웃사이더가 아니었으며, 아웃사이더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아웃사이더의 세계를 '아웃사이드'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열쇠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는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콜린 윌슨은 열쇠구멍을 통해 많은 것을 들여다보았다.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공부가 아니라 단지 읽기만 하면 된다. 한번 읽고 휴지통에 던져 버려라. 진정한 아웃사이더의 세계에서 탄생한 책이 아니라면 단지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2권은 공자의 [논어]이다. 나는 공자를 전혀 좋아하지 않으며,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 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말하게 되어서 마음이 편하다. 공 자와 노자는 동시대 인물이었다. 노자가 약간 더 나이가 많았다. 공자는 어느날 노자를 만나러 갔 다가 진땀을 흘리고 몸을 떨면서 돌아나왔다. 제자들이 이유를 물었다. "노자의 암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토록 몸을 떠십니까? 스승님과 노자 두 사람만이 그곳 에 있었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 사람 노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살아 있는 용이다. 그는 나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간신히 나는 도망쳤다. 그는 정말 위험한 인물 이다." 공자는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와 같은 사람은 그대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당장에 죽일 수 있다. 죽지 않고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자는 이 거듭남을 두려워하여 도 망친 인물이다. 나는 이미 노자의 책을 꼽은 바 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공자는 아주 평범하고 세속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적어 넣어라. 그는 속물 에 불과하다. 그가 영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어쨌거나 당시의 중국은 영국 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의 영국에는 야만인들만 난리를 칠 뿐 가치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공자는 더없이 영리하고 약삭빠른 정치가였다. 실제로는 아무런 지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지성 이 있었다면 그는 노자의 발 아래 엎드려 절하고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노자를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침묵을 두려워했다. 노자와 침묵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공자의 가장 유명한 책을 여기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논어] 는 그의 대표작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나무의 뿌리와 같다. 추한 것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것이 다. 세상에서 말하는 '필요악'이라는 것이 이것이다.[논어]는 하나의 필요악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현실적인 일들에 대해 말한다. 한번은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 침묵은 무엇입니까?" 공자는 갑자기 화가 나서 소리쳤다. "입 닥쳐라! 침묵이라고? 침묵이란 무덤 속에나 있는 것이다. 삶에는 침묵이 필요없다.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침묵이니 뭐니 떠드는 것이냐?" 이것이 공자의 인생관이었다. 내가 왜 그를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아, 그는 노자를 만나는 위대한 기회를 가졌으면서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에게 한없는 동정심을 느낄 따름이다. 제3권.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모국어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예언자]나 [광인]등 영어로 쓰여진 대표작들은 널리 알려졌으나 그가 모국어로 쓴 작품들은 몇 편밖에 번역되지 않았다. 물 론 번역이 원본을 따를 순 없겠지만 칼릴 지브란의 위대성은 번역 작품을 통해서도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몇 권의 번역 작품을 꼽고자 한다. 제3권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정원]이다. 이 책을 나는 번역 작품으로 읽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위대한 현자 에피쿠로스(B.C. 341-270.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이며 유물론자. 아테네에 학교를 세우고 이것을 '정원 학교'라고 불렀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시조.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가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지배하에 있었던 시대로 그리스 본래의 문화에 외국문화가 혼합되었으며, 이 시기에 그리스의 고전적인 철학도 그 모습이 퇴색되어 주로 개인적인 인생문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에피쿠로스도 이 인생 문제를 사색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자율성을 지닌 원자론을 주장하여 데모크리토스의 기계론적 결정론에 도전했으며, 인식에 대해서는 감각론을 주장하고 감각은 그 호소로 참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은 감각을 해석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기 때문 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지나 미신에 기초한 신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얻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을 평안하고 자율적인 심신의 안정 상태, 즉 '아타락시아'라 하고, 이것을 쾌락이라 칭하였다. 그가 주장한 쾌락주의란 일반적으로 오해되듯 물질주의적인 쾌락이 아니었다.)를 떠올려 주었다. 나말고 에피쿠로스를 위대한 현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지 모르겠다. 그는 옛날이나 지금이 나 비난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군중이 어떤 사람을 비난할 때는 그 사람에게 어떤 위대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의 정원]에서 나에게 에피쿠로스를 생각나게 한다. 에피쿠로스는 자신 의 공동체를 '정원'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곧 그 사람을 대변한다. 플라톤은 자 신의 공동체를 '학원'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학자였고 매우 지적인 철학자였던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공동체를 '정원'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나무 아래서, 별 아래서 살았다. 한 번은 왕이 에피쿠로스를 만나러 왔다. 이 '정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왕은 무엇 때문에 그들이 행복한지 알고 싶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다. 왕은 당황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 고 정말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왕이 말했다. "에피쿠로스여,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오. 다음에 올 때는 당신들에게 선 물을 가져오고 싶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에피쿠로스는 왕에게 말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버터를 약간 갖다 주시오. 여러 해 동안 이곳 사람들은 버터를 구경하지 못했소. 우리는 버터 없이 빵을 먹고 있소. 그리고 한 가지 더,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구 경꾼으로 서있지 마시오. 적어도 이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시오. 우리와 하 나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시오. 그밖에는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없소." 칼릴 지브란의 책은 나에게 에피쿠로스를 생각나게 한다. 에피쿠로스의 책을 나의 도서목록에 포함시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나로선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의 책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모 두 불태워졌기 때문이다. 입수 가능한 모든 책이 이미 수백년 전에 아깝게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칼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의 정원]을 통해 그에 대한 이야 기를 이 시리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제4권 역시 칼릴 지브란의 또다른 영어 번역 작품으로 [스승의 목소리]이다. 역서의 군데군데 아름다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서는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영어 번역은 원어를 따 라갈 수 없다. 칼릴 지브란이 사용한 언어는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에 아주 가까운 것이었다. 그 두 언어는 이웃간이었다. 칼릴 지브란의 조국은 레바논이다. 그는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솟아 있는 레바논의 언덕배기에서 태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바로 이 레바논 삼나무들이다. 레바 논 삼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반 고호의 말이 실감난다. "나무는 별에 가닿고자 하는 대지의 꿈이다." 그렇다. 레바논 삼나무들은 별에 닿을 만큼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아 있다. 칼릴 지브란은 어떤 면에서 예수를 대변한다. 그는 예수와 같은 차원이다. 그 자신은 비록 그리 스도가 되지 못했지만 충분히 될 수도 있었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기회를 놓쳤다. 지브란은 생정에 스승을 찾아서 떠날 수 있었다. 또 그 시대에는 훌륭한 영적 스승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는 뉴욕의 더러운 거리를 배회하는 가련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그는 마땅히 그 시대 위대한 스승 이었던 라마나 마하리쉬(1950년에 세상을 떠난 금세기 최고의 스승. 남인도의 가난한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17세에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섰으며 결국 혼자서 죽음의 본질을 이해해야 함을 깨닫고 삶이 크게 달라졌다. 속세의 일들에 흥미를 잃은 그는 집을 떠나 아루나찰나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44년 동안 살다가 육체를 떠났다. 그래서 그는 '아루나찰나의 성자' 로 불리워졌다.)를 찾아갔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5권은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으로 하자. 이것은 책이라기보다는 [나는 누구인 가]라는 제목은 작은 팜플렛이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학자도 아니었으며 많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17세에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진정한 집을 발견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세속의 집으로 돌아가겠는가? 라마나 마하리쉬의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존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 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야말로 금세기의 깨달음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 는 이 깨달음 운동의 선구자로 자처하는 엉터리 미국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은 그다지 눈에 띄는 책이 아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 자신은 실로 위대한 인물이었다. 지 금까지 평범한 인간에 의해 쓰여진 훌륭한 책들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의 경우는 그 정반대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위대했지만 몇 페이지에 불과한 팜플렛 형식의 작은 책만을 썼 다. 사실 그는 늘 침묵이었다. 어쩌다 이따금씩만 말할 뿐이었다. 칼릴 지브란이 라마나 마하리쉬를 만나러 갔다면 인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칼릴 지브란은 천재적인 작가인 반면에 라마나 마하리쉬는 전혀 글솜씨가 없었고, 또 칼릴 지브란은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의 위대성은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이 만났다면 세상은 더없는 축복을 누렸을 것이다. 제6권은 무어헤드와 라다크리슈난(1888년에 태어난 인도의 철학자. 마드라스 대학의 기독교대학에서 배운 후 캘커타, 베나레스 등지의 여러 대학교수를 지냈다. 한때 부통령을 지냈으며, 인도 정계의 1인자이기도 했다. 저서로 [인도 철학자]2권이 있다.)공저의 [인도의 마음]이다. 무어헤드는 인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그것은 라다크리슈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은 인도의 모든 전통을 훌륭히 대변하는 아름다운 책을 썼다. 물론 이 책 속 에 인도 정신의 높은 봉우리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불도저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히말라 야의 봉우리를 평지로 만들어 버리듯이 두 사람은 정확히 불도저와 같은 작업을 했다. 진정한 인 도의 정신-나는 인도의 '마음'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이 [인 도의 무심]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 책이 인도 최고의 정신적 봉우리들을 대표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낮은 차원의 인도는 썩 잘 표현하고 있다. 사실 99.9퍼센트의 대중은 이 낮은 차원에 속하니까 그것도 무리라 곤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인도를 거의 대부분 소화해 내었다고 하겠다. 이 책은 잘 쓰여지 긴 했지만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라 상상에 의한 작업이었다. 한 저자는 영국인이었고, 다른 저자 는 인도 정치가였다. 이 얼마나 멋드러진 만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