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역시 또다른 여성의 책이다. 아직도 저 무거운 헤비급 챔피온 블라 블라바츠키와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여성이라면 이제 그럭저럭 맞을 것이다. 이 여성은 한 사람의 수피Sufi 신비가로서 이름은 라비야 알 아다비야Rabiya-al-Ada- biya이다. '알 아다비야'는 '아다비야 마을 태생'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라비야가 그녀의 이름이고 알 아다비야는 그녀의 주 소인 것이다. 라비야가 살아 있을 때 그 마을이 바로 메카Mecca 가 되었다. 전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모이고 도처의 구도자들이 라비야의 오두막집을 찾았다. 그녀는 정말로 불꽃같은 신비가였 다. 누구의 머리라도 부술 것처럼 손에는 쇠망치를 들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많은 이들의 머리를 부숴 그 안에 숨은 본질을 꺼내었다. 한번은 하산Hassan이 그녀를 찾아왔다. 이른 아침 하산은 아 침 기도를 드리기 위해 그녀에게 코란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라비야가 자신의 코란을 그에게 빌려 주었다. 하산은 기겁을 하 고 놀라서 소리쳤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가? 이 무슨 불경죄인가?" 라비야는 코란의 많은 부분을 고쳐 놓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서 많은 단어들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에선 한 페이지 전체를 빼 버리기도 했다. 하산이 말했다. "이런 짓은 용납되지 않는다. 코란을 마음대로 고쳐선 안 된 다. 누가 예언자의 말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신의 마지막 메신 저의 말을!" 회교도는 마호멧을 그렇게 부른다. 신의 마지막 메신저! 마호 멧 이후에는 다른 예언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그들을 믿는다. 그 러니 누가 그의 말을 고칠 수 있겠는가? 라비야는 웃음을 떠뜨리면서 말했다. "종교적 전통에 대해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신을 일 대일로 만났다. 그리하여 나의 체험에 따라서 그 책을 바꾸었다. 이것은 나의 책이다." 그녀는 또 하산에게 말했다. "그대는 나에게 항의할 권한이 없다. 이것은 내 물건이다. 오 히려 그대는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체험이 아니라 내 자신의 체험에 충실해야 한다." 이 사람이 바로 라비야, 정말 믿어지지 않는 여성이었다. 라비야를 [내가 사랑한 책들] 목록에 포함시킨다. 그녀는 마 담 블라바츠키를 물리치기에 충분하다. 라비야의 노래 역시 그 녀가 직접 글로 쓴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라비야 는 문득문득 존재의 환희에서 터져나온 노래들을 불렀을 것이 고, 그 노래들을 제자들이 한자 한자 받아적었을 것이다. 그 노 래들을 나는 사랑한다. 미라Meera는 아름답긴 하지만 짠 맛이 없다. 그냥 달콤하기 만 하다. 그러나 라비야는 아주 짜다. 알다시피 나는 당뇨가 있 기 때문에 미라의 단맛은 즐길 형편이 못된다. 라비야는 문제가 없다. 나는 원하는 만큼 라비야의 짠맛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나 는 설탕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카린은 더욱 싫어한다. 인공 설탕 은 당뇨에 치명적이다. 소금이라면 문제가 없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라비야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라비야여, 그대는 세상에 존재한 모든 여성의 소금이다." 제9권은 시크교Sikhism의 창시자 나나크(9)의 노래이다. /(9)1469년 현재는 파키스탄 지역인 라호레 근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상 인 계급인 힌두교도였으며, 어려서부터 조숙하였고 천부적인 시인 Bakta 였다. 너무 명상과 종교적인 사색을 좋아하여 보모가 바라는 목동이나 점원의 직업에는 적합치 않았으나 결국 행정부서에 취직하여 결혼하고 두 아이를 두었다. 그러나 저녁이면 나나크는 자기의 '창조주'에게 찬송 을 부르는 일로 시간을 보냈으며, 친구인 음유시인 마르다나도 찾아와 합세했다. 마르다나는 원래 회교도였지만 이후 나나크의 활동에서 중요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 두사람을 중심으로 점차 조그만 종교집 단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나나크는 인도 북부와 서부지방을 널리 여 행하면서 마르다나만을 동행으로 하였다. 나나크가 노래를 부르면 마르 다나는 레베크rebeck라는 작은 현악기로 반주를 했다고 한다. 두 나그네 는 인도뿐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여러 성지를 비롯해서 주요 순 례지를 방문하였고, 종교 지도자들의 거부와 푸대접에도 아랑곳없이 나 나크는 시장이나 광장, 거리 모퉁이에서 쉬지않고 노래하며 설교했다. 그렇게 해서 시크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나크는 단 한명의 추종자인 마르다나Mardana를 데리고 당시 알려진 영적 세계를 전부 유람했다. '마르다나'는 '진실로 용감 한 자'라는 뜻이다. 추종자가 되기 위해선 용감해야 한다. 마르 다나가 시타르sitar를 연주하고 나나크는 노래를 부렀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도道의 향기를 뿌리면서 세상을 유람했다. 나나 크의 노래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노래들이 나를 눈물짓게 한다. 나나크의 노래 때문에 새 언어가 탄생했을 정도이다. 그는 문 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바탕으로 펀잡어Pun- jabi가 탄생했다. 펀잡어는 마치 매서운 칼날처럼 강력하기 그지 없는 언어다. 제10권. 나는 늘 상카라차리아(10)Shankaracharya 에 대해 말하 고 싶었다. /(10)788-820. 남인도에서 출생하여 [베다]를 배우고 수많은 사원을 건설 하였다.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논쟁에 참여하고 교단을 세워 그 확장 에 힘썼다. 샹카라의 사상 체계는 비이원론非二元論advaita이라고 불리운 다. 세계(프라크리티)와 개개의 자아(지바), 그리고 브라흐만이 절대로 하 나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 르지 않은', '둘이 아닌' 실재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인 격적이고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브라흐만은 인간 체험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있다. 초경험적이라는 것이다. 그 영원 불멸하고 존재로 충만한 브라흐만 이외의 모든 것은 흘러가는 강물, 타오르는 불꽃처럼 덧없고 혼탁하며 실체가 없고 바나나처럼 골조도 없으며,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신기루, 일장춘몽이라는 것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 바드라야나의 [브 라흐마 수트라]에 주석을 단 [브라흐마 수트라 바이샤Brahma Sutra Bhaisya]이다./ 현재의 상카라차리아가 아니라 제1대 상카라차리아 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저서 [비베크 추다마니Viver Chudamani]에 대해 강의하기로 나는 결정을 내렸었다. [비베크 추다마니]는 '깨달음의 보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미치광이라서 마지막 순간에 그 결정을 철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은 사랑보다는 논리가 앞선 책이며, 나는 그 논 리가 지겨웠다. 이 책은 결코 작은 분량이 아니다. 방대한 양이 기 때문에 8개월을 쉬지않고 강의해야 했다. 그것은 길고 긴 여 행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되 었다. 그러나 내가 꼽고 있는 위대한 책들 목록에 마땅히 이 책 을 포함시켜야 한다. 상카라차리아의 저서 [비베크 추다마니]는 두말할 필요없이 여기저기에 보석, 꽃, 별이 빛나고 있다. 동시에 힌두교 바라문 성직자의 쓸데없는 잔소리가 길게 이어져서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위대하다. 많은 돌과 진흙이 있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문닫을 순 없는 법이다. 제11권이자 제1부의 마지막 책은 하즈라트 마호멧Hazrat Mohammed의 [코란Koran](11)이다. /(11)또는 꾸란. 이슬람교의 성전. 읽어야 될 책이라는 뜻. 이슬람교들에게 있어서 신성한 말인 아라비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본래 번역이 금지되 어 있다./ 코란은 눈으로 읽어야 할 책이기라기보다는 노래로 불러야 할 책이다. 눈으로 읽는다면 그 맛을 잃을 것이다. 노래로 부를 때 신이 돕는다면 그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코란은 학자나 철학자에 의해 기록된 책이 아니다. 마호멧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름 석자조차도 쓸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신이 들려 버렸다. 그의 순진무구함 때 문에 그는 신에게 선택받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바로 [코란]이다. 나는 아라비아어를 모르지만 [코란]만큼은 이해한다. 그 리 듬을, 그 리듬의 아름다움을, 아랍어의 그 사운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 송이 꽃을 볼 때 "이 꽃의 의미가 무었인가?"라고 묻는가? 꽃만으로도 충분하 다. 하나의 불꽃을 바라볼 때 "이 불꽃의 의미가 무엇인가?"라 고 그대는 묻는가? 불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의 아름다움이 곧 그것의 의미이다. 바로 그 '의미없음無意味'이 의미이다. 내가 제1부의 마지막을 [코란]으로 장식하게 된 것에 대해 신 에게 감사드린다. 인살라Inshallah!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의ㅣ를 초월해 있고, 가장 중요한 책, 그러면서도 인류 역사를 통털어 가장 비논리적인 이 책[코란]이여! 제 2 부 6 이제 제2부의 시작이다. 1부에서 나는 50권의 책을 말했다. 원래 그것으로 끝날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 었다. 그리고 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의 매순간이 끝이 아니가? 처음에 내가 50권을 정한 것은 그 숫자가 마음에 들어서다. 어쨌거나 사람은 때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모든 결정은 변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결정을 내리고 신은 그 결정을 바꾼다 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사실 내가 제1부로써 [내가 사랑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 주 끝내려고 했을 때 나를 붙잡고 늘어졌던 [기트 고빈다]의 자 야 데바, [숨은 교리]의 마담 블라 블라바츠키를 비롯한 그 일 당들은 쾌재를 부르면서 사라졌다. 그때 나는 예수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예수는 말했다. "마음이 착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의 것이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했다. "끝에 서있는 자, 앞서려고 남을 밀치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 도다." 맨 뒤에 서서 끝까지 기다리는 자, 그에게 복이 있다. 남을 밀 치고 앞으로 나선 그 악당들이 쾌재를 부르며 사라진 다음 나는 뒤에서 말없이 기다리는 그 복있는 몇몇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제 2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고오타마 붓다Gautama Buddha의 [법구경法句經The Dha mmapada(1)]을 어떻게 해서 빠뜨리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납득 이 가지 않는다. 고오타마 붓다가 줄의 맨끝에서 조용히 눈을감 고 앉아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1)'진리의 말씀'이란 의미로 팔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초기불교의 교단 내 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던 붓다의 시를 모아서 편집한 것이라 고 여겨진다. 불교 성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불교의 윤리적 교리를 가르치고 있어서 불교 입문의 지침서다. 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문자로 붓다의 참뜻을 전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예로 부터 가장 널리 불교도 사이에 애송되어 왔으므로, 이것보다 오랫동안 또 널리 불교도에게 읽혀진 성전은 달리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 누구보다도 붓다를 나는 사랑한다. 평생에 걸쳐서 나는 그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른 이에 대해 말할 때도 나느그의 이 야기를 했다. 이것은 나의 진실한 고백이니 꼭 적어 넣으라. 붓 다를 끌어들이지 않고선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붓다를 끌어들이지 않고선 마호멧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했건 안 했건 그것은 중요하 지 않다. 나로선 붓다를 말하지 않고서 다른 무엇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나의 살이요, 뼈이며, 나의 골수骨髓다. 그는 나의 침묵이며 동시에 나의 노래이다. 맨 뒷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러한 것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사과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과를 뛰어넘는 문제였다. [담마파다]는 문자상으로 '진리의 길'이란 뜻이며, 더 정확히 는 '진리의 발자취'라는 뜻이다. 이 말의 모순됨을 알겠는가? 걸어들어가고 걸어나오지만 수면에는 발자취 하나 남지 않는구나 여기 길 안내자도 필요없다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발자취란 없다. 하늘을 나는 새는 허공에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모든 붓다 들은 하늘의 새와 같다. 그러나 붓다들은 항상 모순된 말을 한다. 최소한 그들은 어떤 말을 해야 한다. 따라서 모순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그 아름다움이 있다. 진리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 이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모순이다. 말하지 않는다 해고 이미 그 침묵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 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표현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붓다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책에 [담마파다]라는 이름을 붙 였다. 그것은 모순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다. 그는 너무 많은 모 순으로 가득찬 인물이기 때문에 나를 제외하곤 누구도 그를 물 리칠 수 없다. 물론 붓다는 나에게 지는 것을 즐거워할 것이다. 아버지는 이따금 아들에게 지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아들이 아 버지 배 위에 올라타서 이겼다고 기뻐할 때 아버지는 아들이 승 리감을 맛보도록 허락한다. 모든 붓다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자에게 지고 싶어한다. 나 역 시 제자들이 나를 이기고, 나는 뛰어넘길 원한다. 한 제자가 나 를 능가하는 것을 보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고오타마 붓다는 [담마파다] 그 이름으로 설법을 시작한다. 그의 설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는 대단히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 하여 [담마파다]는 히말라야와도 같은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세상엔 수많은 산들이 있지만 히말라야의 높이를 따를 산은 없다. 붓다가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또 그곳에 다 른 이들도 있었다. 순하고 아름다운 이들.... 그들은 "나를 들어 가게 해주시오!"라고 소리치면서 주먹으로 문을 두들겨대는 블 라바츠키 같지가 않았다. 마하비라도 벌거벗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진리는 옷을 모두 벗은 알몸이기에 그는 그곳에 알몸인 채로 깊은 삼매경 속에 서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제자들이 그의 책을 들고 서 있었다. 제2권은 [자이나 경經Jaina Sutras](2) 이다. '승리자의 경전'이 다. '자이나'는 아름다운 단어이다. 그것은 정복자, 승리자를 뜻 한다. '자기 자신을 정복한 자'라는 뜻이다. /(2)자이나교에는 성전聖典Agama, Siddhanta라고 불리는 것이 46개 있다. 마하비라는 당시의 종교계에 전하는 교리를 정리하여 자기의 체계를 세 워 포교하다가 기원전 447년 경에 열반했으나, 가르침은 구전으로 전수 되었다. 그 특징은 인도에 아리아인이 침입하기 이전부터 있었다고 생 각되는 출가 해탈주의의 종교의 흐름을 전하는 것으로, 교리는 불교와 는 달리 자아自我라는 영속적 존재를 인정한다. 또 단식을 특징으로 하 는 고행으로써 윤회로부터 해탈한다고 하고, 윤회는 자기의 행위의 결 과에 따라 생기는 까르마에 의해 일어나며, 고행은 이 까르마를 없애는 것이다. 종교생활과 수행은 철저한 불상생과 무소유를 그 신조로 삼으 며, 아무리 하찮은 미물까지도 인정하는 이 가르침은 불교의 중도中道에 비해 지나치게 탈세속적이고 극단적이다. 따라서 불교와 같은 대승적 견지의 발전은 없으나 고대의 과학, 전설, 역사 등도 받아들여 교리 체 계를 이루고 있다. / 나는 이 경전에 대해 여러 권의 분량으로 강의를 했다. 그러 나 그것들은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이 [자이나 경]을 제2부에 포함시키는 바이다. 마하비라만큼 침묵이 깊었던 자도 없고, 마하비라만큼 벌거 벗고 산 자도 없다. 침묵만이 벌거벗을 수 있다. 나는 '누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몸'을 말하는 것이다. '누드'라는 표현은 외설적이지만 '알몸'은 자신을 감추지 않은 완전히 열린 상태를 말한다. 갓난아이를 보라. 그들은 누드가 아니라 알몸일 뿐이다. 알몸인 상태의 마하비라는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전하는 바로는, 마하비라는 자신의 경전을 누구에게도 설하 지 않았다. 오직 가까운 수제자들만이 그의 곁에 앉아서 내적으 로 그 경전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기적이 아 닐 수 없다. 마하비라 주위에는 11명의 수제자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이 있었으며, 그들은 동시에 같은 말을 내적으로 전해 들었 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마하비라가 입을 통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기록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마하비라는 은밀한 방식으로 염파를 통해 가르침을 전수했던 것이다. 따라서 [아이나경]은 세상의 어떤 책과도 다른 방식으로 기 록되었다. 스승은 침묵을 지켰지만 11명의 수제자는 동시에 같 은 말을 들었다. 이 '동시에 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말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자이나 경]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책이 세상에 또있겠는가? 이보다 더 환상적인 저술 방법은 없거니와, 이 책은 인간이 얻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빛,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비결을 수록하고 있다. 제3권.....그 다음에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이상한 일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수많은 생동안 나는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많은 길을 여행했 고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많은 신비학파를 경험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인가? 나에게 전혀 생소한 사람이다." 알고 보니 그는 한 사람의 스승이 아니었다. 내가 그를 몰라 본 까닭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그를 이 시리즈에 포함시켜야 한 다. 나는 언제나 그의 책을 사랑했다. 어떻게 해서 그의 책이 제1 부에서 빠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그리스인으로 이름은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3)이며, 바로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의 저자이다. 그의 이름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하는지 도 모르지만 [희랍인 조르바]는 걸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작품을 남긴 사람은 한 사람의 붓다도 아니고 한 사람의 마하비 라도 아니었으나 그러한 경지에 오를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자 였다. 이미 충분히 익어서 시기가 되면 언제라도 떨어진 그러한 자였다. /(3)알버트 슈바이쩌, 토마스 만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비평가와 학자들 로부터 금세기 최고의 재능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 1883년 크레테 섬에서 태어나 아테네 대학에서 법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파리 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문하생이 되어 철학을 전공했으며, 4년간은 독일 과 이탈리아에서 문학과 미술을 공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전까 지 많은 시간을 에게 섬에서 보내면서 철학과 문학 작업에 몰두했다. 1945년에 잠시 그리스 문교부장관을 역임했으며 그리스 문인협회 회장 을 지내기도 했다. 후반의 생애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보냈다. 1957년 독 일에서 사망. [희랍인 조르바],[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희랍인의 열 정]등의 대작을 남겼으며, 소설가이면서 극작가, 번역가, 시인, 여행 작 가이기도 했다. 앤소니 퀸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그의 대표작 [희랍 인 조르바]는 생에 대한 열정과 광기를 갖고 살아가는 '조르바'라는 인 물을 통해 생은 심각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누려야 할 즐거움'이라고 역설한다. 조르바는 나의 연인의 한 사람이다. 나는 기인奇人을 사랑한 다. 조르바는 아주 이상한 기인이었다. 비록 실존 인물이 아니고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나에게는 그가 실존 인물 이상이다. 그는 에피쿠로스Epicurus, 차르바카스Charvakas 등 세상의 모든 유물 론자를 대표한다. 단순히 그들의 대표일 뿐 아니라 그들의 완벽 한 모습이 바로 조르바이다. 어느 곳에선가 조르바는 그의 사장에게 말한다. "보스, 당신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삶에서 멀어져 있 다. 그것은 당신 안에 약간의 광기狂氣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 이다. 약간의 광기를 가질 수만 있다면 당신은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조르바를 이해한다. 조르바뿐 아니라 '약간의 광기'를 지녔던 역사상의 모든 조르바를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약 간'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완전히, 끝까지 미친 자이다. '약간' 미친 자는 약간의 삶만을 맛볼 뿐이다. 물론 전혀 맛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낫지만. 조르바.....가난하고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막일꾼이었던 조 르바, 그는 분명 몸집이 거대하고 강인한 체격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광기'로 눈이 빛났을 것이다. 그는 그를 채용한 광산의 보스에게 말한다. "약간의 광기를 가져라." 그러나 나로선 약간의 광기만으로 부족하다. 미치려면 완전 히 미쳐라! 오나전히 미치려면 명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 면 그대는 말 그대로 돌아 버릴 것이다. 오히려 광기 때문에 에 너지가 완전히 소모될 것이다. 명상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그 광기가 그대를 태워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르바 붓다Zor ba the Buddha(4)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든 것이다. /(4)붓다이면서 산속에 있지 않고 시장속에 있는자, 시장 속에 있으면서 붓다인 자를 일컫는 말로 오쇼 라즈니쉬가 예언하는 신인간이다./ 조르바 붓다는 일종의 종합이다. 위대한 걸작품을 남긴 것에 대해 나는 카잔차키스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 그는 어둠 속에 있다. 카잔차키스여, 그대에겐 '약간의 명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무엇인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제4권의 주인공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한 사람을 나는 보았 다. 나는 그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지만 제1부의 50권 속에는 그 의 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알 힐라즈 만수르 Al-Hillaj Mansoor(5)이다. 만수르는 책을 쓰진 않았으나 몇 마디 의 말을, 아니 그보다는 몇 개의 선언을 남겼다. 만수르 같은 사 람은 오직 선언할 뿐이다. 그것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 니다. 그에겐 에고라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날 하 크Ana'l haq!"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곧 신이다. 다른 신이 있지 않다"라는 뜻이다. /(5)수피의 성자로 평생을 거지로 살면서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다가 돌 에 맞아 죽었다. 여기 슬픈 일화가 있다. 만수르가 돌에 맞아 죽는 현장 에 그의 스승도 있었다. 이 스승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매우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였다. 사람들이 만수르에게 돌을 던지자 그 스승도 사람 들의 눈치 때문에 뭔가를 던져야 했는데 차마 돌을 던지지 못하고 장미 꽃을 던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돌을 맞으면서도 울지 않던 만수르는 장 미꽃을 맞자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는 한다. 그래서 돌로 치는 것보다 장 미꽃으로 치는 것이 더 아프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회교도들은 그러한 그의 선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들은 그를 죽였다. 그러나 과연 알 할라즈 만수르 같은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군중이 그를 죽일 때, 죽어가면서도 만수르는 웃었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왜 웃는가?" 그는 대답했다. "그것은 그대들이 나를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오 직 이 육체를 죽일 수 있을 뿐, 거듭 거듭 말하지만 나는 육체가 아니다. 아날 하크! 나는 신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다. 알 힐라즈 만수르는 어떤 책도 쓰지 않았다. 그가 행한 몇 개 의 선언만이 그를 사랑하는 이들과 친구들에 의해서 수집되었 다. 나는 추종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만수르 같은 사람 은 추종자와 모방자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오직 사 랑하는 이와 친구만을 받아들인다. 제1부에서 만수르를 까맣게 잊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수르여, 당신은 나의 난처한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들은 것보다 훨씬 많은 책 을 읽었다. 10만권 이상의 책을 나는 읽었다. 이제 그 중에서 50 권을 추려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눈물을 머금 고 많은 주인공들을 제외시켜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들 모두를 다 집어 넣고 싶지만, 이 한정된 시간에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 가? 어쨌거나 당신을 제2부에 포함시키노라. 제5권의 주이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사람이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는 글으 ㄹ쓴 적도 없으며 말을 한 적 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마하가섭磨河迦葉Mahakashya pa(6)이다. 그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일화만 전해질 뿐이다. /(6)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던 붓다의 상수上首제자. '가섭'이란 바라문 계급 의 성으로, 가섭 가문에서 출가한 자들이 붓다의 제자보다 많았다. 엄격 한 두타행頭陀行(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으로 두타 제1이라 일컬어짐. 마갈타국의 바라문 출신. 이름은 필파라畢波羅 Pippali. 부모가 필파라 나무의 신에게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 한다. 붓 다의 출현과 함께 불제자가 되었고, 항상 누더기 옷을 걸쳐 승려들에게 멸시 받았으나 붓다는 그를 옆에 앉혀서 그의 위대한 점을 대중에게 알 렸다. 처음에는 머리도 깎지 않아 모든 승려들 중에 유독 한자서 머리를 기르고 지냈다. 붓다가 입멸하자 가섭은 제자들 중 가장 연장자였기 때 문에 붓다의 다비식을 거행하고 장례 후 500인의 아라한들을 집결하여 왕사성에서 제1차 결집(불전편집회의)을 개최, 그 의장이 되어 붓다의 가 르침을 결집하여 그것을 후대에 전했다./ 어느날 붓다가 아침 설법을 하러 나오면서 연꽃 한 송이를 손 에 들고 나왔다. 붓다는 그 꽃을 응시하면서 한 마다의 말도 하 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10만 명의 대중들이 어리둥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우선 붓다는 지금까지 손에 무엇을 들고 설법 석상에 나온 적이 없었으며, 두 번째로 붓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설법을 시작했던 것이 다. 그런데 그날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손에 든 연꽃 만 응시할 뿐이었다. 모두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이 들은 붓다가 드디어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이것을 이해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마하가섭이다. 붓다는 눈을 들어 함께 미소지으면서 마하가섭을 불러 그에게 연꽃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서 붓다는 그 자리에 모인 대중에게 설법이 끝났음을 알리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말로써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애 썼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나는 침묵 속에서 말을 했으며, 마하가섭은 그것을 이해했음을 미소로써 보여 주 었다." 이 신비한 방식으로 법통法統을 이어나갈 후계자가 결정되었 다. 마하가섭이 붓다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이상한 방식으로. 마하가섭의 제자들이 마하가섭에 대해 몇 가지 일들을 기록 했으며, 굳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마하가섭의 저서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마하가섭은 책을 쓰지 않았으며, 그의 제자들 역시 책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모두 익명으로 행세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기록된 것은 무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 다. 몇 줄에 지나지 않지만 보름달의 조각들이다. 그 조각들을 한데 모으면 다시 보름달이 나타난다. 그것들을 한데 모으는 일 이 곧 명상이다. 마하가섭에서 시작된 전통이 바로 선禪이다. 그는 '드히야나 dhyana', 즉 석의 제1대 조사祖師이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붓 다가 아니라 제자인 마하가섭이 제1대 조사가 된 것이다. 그것 은 붓다는 40년 동안 연설을 했지만 마하가섭은 한 마디의 연설 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낸 소리라곤 웃음소리뿐이다. 물 론 그 웃음소리 역시 하나의 언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 제다. 어떤 면에선 웃음 역시 하나의 언어이다. 존재계 전체가 하나의 농담거리임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존재계 전체가 하나의 농담거리임을 이해하는 순간 그대는 깊은 앎知에 도달한 것이다. 다른 앎이, 다른 깨달음이 있지 않 다. 그밖의 다른 것들은 거짓된 것이다. 제6권.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를 나는 보았다. 그는 깨달음 에 도달한 자가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 존재였다. 그러나 그에게 는 시적인 표현 능력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인 [싯달타Siddhartha]를 쓸 수 있었다. 싯달타는 고오타마 붓다의 원래 이름으로, 부모가 지어 준 것 이다. 고오타마는 그의 성姓이고,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그의 부모는 점성가들과 상의한 끝에 그에게 싯 달타라는 이름을 주었다. 싯달타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싯달타 역시 '참의미를 획득한 자'라는 뜻이다. '싯다Siddha'는 '얻은 자, 획득한 자'의 뜻이고, '아르타artha'는 '참의미'의 뜻이다. 그 둘을 합치면 '삶의 참의미를 발견한 자'라는 뜻이 된다. 그에게 이러한 이름을 준 부모와 점성가들은 무척 지혜로운 자들이었 던 것 같다. 깨달음을 얻진 못했어도 최소한 깊은 지혜를 가졌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는 약간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같은 차원에서 붓다의 생애를 다시 서내려가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이 책은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헤세 자신 은 '싯다'가 되지 못했다. 여전히 한 보잘것 없는 작가였다. 물론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으나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진 않는다. 한 사람의 붓다가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았는가? 그는 웃으면서 그것을 멀리 내던졌을 것이다. 하여튼 이 책은 무척 감 동적이고 아름다운 책이다. 그것을 여기에 포함시킨다. 제7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아주 전통적이고 배 타적인 유태교 안에도 깨달음에 이른 몇 명의 스승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깨달음을 초월하기까지 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바알 셈 토브Baal Shem Tov이다. 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는 용서받을 수 없으며, 용서를 구할 사람도 나에겐 없다. 바알 셈 토브. '토브'는 그가 살았던 마을의 이름이다. 그의 이 름은 '토브 읍셍서 온 바알 셈'이란 뜻이다. 따라서 그를 바알 셈 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하시디즘Hassidism(7)에 대해 강의할 때 나는 수없이 그를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나는 본질에 접근한 것들에 대해선 모조 리 강의를 했다. 도道, 선禪, 수피즘, 하시디즘.... 건드리지 않 은 것이 없다. 나는 어떤 한가지 신비 전통에 소속된 사람이 아 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모든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심지어 나느 지도조차도 필요 없다. /(7)유태교의 한 분파로 시작된 신비주의 수도승들(랍비)로, 18세기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폴란드로 이주한 위대한 스승 바알 셈이 하시디 즘의 창시자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병든 자를 낫게 하 여 군중을 사로잡았으며, 경전을 새롭고 신비적인 방식으로 해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또 위대했던 신비가들이 그러했듯이 진정한 깨달 음은 자기 속의 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나는 그대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 은 고행이나 단식의 길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단 자신의 품안에서 춤추며 기뻐하는 일이다." 그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실 긍정의 새로운 종교 운동은 불길처럼 동유 럽 전역에 번져 유태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결국 기존의 교리 중심 적인 정통 유태교의 박해와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 정책으로 그 운동 은 지하화되고 축소되었다. '하시드'는 은총을 의미하며, 그들의 종교는 은총과 기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삶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이므로 그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신은 은총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역설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부르고, 소리지르고, 술을 마시는 것을 종교적인 의식으로 삼기도 했던 그들은 춤과 노래와 외침과 술 속에서 존재의 환희를 체험 하고 황홀한 무아경에 도달하고 또 그것을 통해 신을 만나고자 했다. / 걸어들어가고 걸어나오지만 수면에는 발자취 하나 남지 않는구나. 여기 길 안내자도 필요없다. 바알 셈 토브는 어떤 경전도 쓰지 않았다. 신비주의 세계에서 경전이란 추한 단어이다. 그대신 그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이 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한 여인이 바알 셈을 찾아왔다. 그 여인은 자식이 없었기에 자식을 낳기 원했다. 그래서 날마다 바알 셈을 찾아와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면서 애원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해 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합니다. 부디 나를 축복해 주세요. 나에게 자식 하나늘 점지해 주세요." 결국 여인의 애원에 지친 바알 셈은 여인에게 물었다. "아들을 원하는가, 딸을 원하는가?" 여인은 너무나 기뻐서 소리쳤다. "물론 아들을 원합니다." 바알 셈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잘 들어라. 나의 어머니 역시 자식을 낳지 못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을의 랍비를 붙들고 날마다 애원했다. 자기에게 축복을 내려서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마침 내 랍비는 어머니에게 먼저 예쁜 모자를 하나 선물하라고 말했 다. 어머니는 예쁜 모자를 만들어서 랍비에게 선물했다." 그 모자는 정말로 멋있었다. 그래서 바알 셈의 어머니는 말했 다. "저는 어떤 보상도 원치 않습니다. 이 멋진 모자를 쓰고 계신 랍비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오히려 제가 당신에게 감사를 느낍니다." 바알 셈은 그 여인에게 말했다. "그 길로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여인은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내일 저도 멋진 모자를 갖고 오겠습니 다." 다음날 여인은 정말로 아주 멋진 모자를 들고서 나타났다. 바 알 셈은 그 모자를 받긴 했지만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여인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요?" 바알 셈이 말했다. "아이에 대해선 잊어 버려라. 이 모자는 정말 멋지긴 하지만 그대는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잊었는가? 나의 어머니는 랍비에 게 모자를 선물한 대가로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임 신을 하게 되었고 나 같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무엇을 얻겠다는 욕망을 갖고 왔다. 이 모자를 선물하는 대가로 바알 셈 같은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이에 대해 선 잊으라. 그리고 다시는 이곳을 찾아오지 마라." 오직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된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바 알 셈은 아주 근본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요구하지 말라, 그러면 주어질 것이다." 요구하지 말라. 이것이 근본 조건이다. 바알 셈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일어난 하시디즘 운동은 종 교의 역사에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유태교는 모든 면에서 하시디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시디즘은 그 물줄기 가 크진 않지만 아직도 살아서 흐르고 있다. 제8권의 인물은 파리드Farid(8)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나는 전 에 여러날 강의한 적이 있다. 물론 영어가 아니라 힌두어 강의였 다. 파리드는 수피의 신비가로 까비르, 나나크 등과 동시대 인물 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의 노래에서 그는 자신을 '파리다 Farida'라고 부른다. 언제나 그는 자신을 향해 노래부른다. 남을 향해 부르는 법이 없다. 항상 그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파리다여, 그대는 듣고 있는가? 파리다여, 잠에서 깨어나라! 파리다여, 이렇게 저렇게 하라?!" 힌두어에서 '파리드'라고 할 것 같으면 그 이름에는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파리다'라고 하면 존경의 뜻이 전혀 없 다. 노예나 하인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 파리드가 자기 자신 을 '파리다'라고 부른 것은 자기의 육체는 하인이며 자기가 주 인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왕 아크바르Akbar가 파리드를 방문해서 그의 노래를 귀기울여 듣곤 했다. 한번은 아크바르가 매우 값비싼 선물을 받 았는데,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가위였다. 아크바르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파리드에게 좋은 선물이 되 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 값비싼 황금 자위를 파리드에게 주었다. 파리드는 그 가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다시 아크바 르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소.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 다면 바늘을 가져오시오." 아크바르는 이해가 안 가서 물었다. "왜 하필이면 바늘이오?" 파리드가 말햇다. "가위는 물건을 조각낼 때 쓰이지만 바늘은 조각난 것을 한데 합칠 때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오. 나의 작업 역시 가위가 아니라 바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오. 나는 종합하고 통합하는 일을 하고 있소." 파리드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정신분석과 같 은 작업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분석이란 그 황금 가위 처럼 모든 것을 조각내는 일이다. 오히려 파리드는 아싸지올리 Assagioli와 같은 정신통합psychosynthesis에 찬성했을 것이다. 분열되고 조각난 것들을 하나로 만드는 일. 내 눈에 눈물이 어린다. 이 눈물은 파리드를 위한 것이다. 아 니, '파리다'를 위한 눈물이다. 그에겐 거짓된 존경의 표시가 통 하지 않는다. 그는 황금 가위가 아니라 눈물을 이해할 것이다. 아아, 만일 아크바르 황제가 파리드의 발 아래 엎드려 눈물을 흘 릴 수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승에게 바치는 진정한 선물이 었을 것이다. 파리드는 책을 쓰지 않았으나 그의 노래들이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의 노래는 더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단, 그 노래들은 펀잡어Punjabi로 들어야 한다. 그는 펀잡 지방에 살았 기 때문에 그의 노래 역시 힌두어가 아니라 펀잡어이다. 펀잡어 는 힌두어와 아주 다르다. 힌두어는 온건한, 소위 사업가의 언어 이다. 반면에 펀잡어는 칼날과 같아서 전사戰士의 언어이다. 펀 잡어는 깊숙히 찌르고 들어온다. 파리드의 펀잡어로 된 노래를 듣는 순간 그대는 심장이 멎을 것이다. 펀잡 지방을 여행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파리드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가?" 그렇게 해서 이따금 나는 파리다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 을 만나 열차 안에서 혹은 버스 안에서 그들의 노래를 감동적으 로 듣곤 했다. 그들 모두가 훌륭한 가수였다. 아아, 얼마나 아름 다운 순간이었는가! 펀잡어는 그 자체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펀잡어는 확실히 날카로운 비수와 같다. 제9권 역시 시인이며, 춤추는 자이고, 노래 부르는 자의 책이 다. 곧 시바Shiva 신의 [비그야나 브하이라바 탄트라Vigyana Bhairava Tantra]가 그것이다. 나는 이책에 대한 뜨거운 강의를 한 바 있다. 이 책은 아주 작은, 불과 112개의 짧은 경經에 지나 지 않는다. 책의 한 페이지나 기껏해야 두 페이지에 다 적을 수 있는 분량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수천 페이지가 넘는 다섯 권의 책으로 강의를 했으며, 그 강의 시리즈의 제목은 [비법秘法의 서書The Book of the Secrets]이다. 이 [비그야나 브하이라바 탄트 라]에 압축되어 표현된 내용을 능가할 다른 책을 나는 알지 못 한다. 시바신의 경전인 이 책의 모든 경이 저마다 하나의 비법이 다. 제10권. 언제나 나는 우마 스와티Uma Swati와 그의 책에 대 한 강읠르 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우마 스와티는 한 사람의 신비가다. 하지만 매우 건조한 신비가다. 지금 내 입술처럼 전혀 물기가 없이 건조할 뿐이다. 그는 절대 진실에 대해 매우 건조하 긴 하나 진리에 입각한 설명을 했다. 그의 책의 제목은 [타트바 수트라Tatva Sutra]이다. '타트바'는 '궁극의 실체'를 의미한다. '타트Tat'는 곧 영어의 '그것that'에 해당하는 것으로 궁극의 것 을 상징한다. '이것'은 눈앞의 것을, '그것'은 궁극의 것을 가리 킨다.(9) /(9)우파니샤드에서는 "그대는 그것이다Tatwamasi"라고 말한다. 이 말이 나오는 부분을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보기로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스베 타케투라는 이름의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우탈라카는 어느 날 소년에게 말했다. "스베타케투, 나의 아들아. 집을 떠나 은밀한 지혜를 터득했을 때, 우리 는 성스런 바라문이라 불려질 수 있느니라." 소년은 [베다]를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때 소년의 나이는 열두 살 이었다. 그로부터 12년 후 소년은 많은 지식과 나름대로의 사색을 얻고 자랑스럽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우탈라카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스베타케투, 나의 아들아. 너는 많은 배움을 얻은 듯하구나. 너는 많이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데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되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며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러한 이치를 공부하였는가?" "어떻게 그런 가르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버지?" 스베타케투가 반문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여기 진흙이 있다고 하자. 흙으로 빚어진 모든 것은 진흙의 본질을 알 때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니라. 그것이 도자기 이건 물그릇이건 항아리이건, 그것들은 단지 말에서 파생되어 변질된 이름일 뿐이다. 진리는 흙, 바로 그것뿐이니라." 스베타케투가 말했다. "아마 나의 스승님은 그런 것들을 알지 못했나 봅니다. 스승이 아셨다면. 어찌 그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버지, 저에게 가르 쳐 주십시오." "사랑하는 아들아, 내 너를 위해 말하리라. 저 무와과나무의 열매를 내 게 따오너라."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그것을 반으로 자르라." "잘랐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이 보이느냐?" "아주 작은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앗을 다시 반으로 자르라." "잘랐습니다, 아버지."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우리들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씨앗 속의 미세한 본질이 바로 이 무화과나무를 만들었느니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보 이지 않는 이 미세한 본질이 이 우주의 본체이니라. 그것은 실재實在이 니라. 그것이 바로 아트만이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아버지." "그렇게 하리라, 나의 아들아. 이 물그릇에 소금을 담았다가 내일 아침 내게 가져오너라." 스베타케투는 아버지의 분부대로 물에 소금을 넣었다가 다음날 아침 아 버지에게로 가져갔다. "어젯밤에 네가 넣었던 소금을 내게 가져오너라." 스베타케투는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소금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미 소금은 물에 용해되었기 때문에. "그릇의 이쪽으로 물을 마셔 보라. 그 맛이 어떠한가?" "이것도 소금물입니다." "그렇다면 그릇의 저쪽에서 마셔보라." "이것 역시 소금물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금을 찾아서 내게 가져오너리." "저는 소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물만 보일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와 마찬가지로 너는 사트sat有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는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트가 이 우주이니라. 그것은 실재요. 진리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요." "그렇게 하리라, 내 아들아. 여기 어느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간다라 스의 자기집에서부터 누군가에 의해 눈을 헝겊으로 가리운 채 집에서 먼곳으로 끌려갔다. 그는 동서남북을 떠돌면서 집을 찾았으나 찾을 길 이 없었다. 그는 눈이 가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좋은 사람 이 있어서 그의 눈을 가린 헝겊을 풀어 주고, 그에게 간다라스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자. 만약 그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는 간다라 스의 자기집에 닿을 때까지 마을마다 사람마다 그곳에 이르는 길을 물 어서 기어이 집을 찾고야 말 것이다. 이것은 마치 스승에게 물어서 사트 의 대지를 찾아가는 구도자와 같다.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자유를 얻을 때까지 이세상을 유랑하리라. 그러나 내가 집에 닿으면 나 의 여행은 끝나리라'고, 이와같이 보이지 않는 미세한 본질이 이 우주의 사트이니라. 그것은 실재로, 진리이니라, '네가 바로 그것'이다."([챤도갸 우파니샤드4])/ [타트바 수트라]는 매우 훌륭한 책이며 나는 이책에 대해 강 의하려고 여러차례 마음먹었지만 번번이 뒤로 미루었다. 이 책 은 쿤드쿤다의 [사마야사르]처럼 지나치게 수학적이다. 자이나 교의 신비가들은 한결같이 너무 건조하고 삭막하다. 나는 건조한 사막이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 나 나의 제자들 때문에 히말라야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내가 어디에 살든 나 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창조할 것이다. 어떤 도전을 받는지 그것을 이룰 것이다. 제11권이자 제2부의 마지막 책이다. 오늘로서 마지막이란 뜻 이다. 내일에 대해 누가 알겠는가? 여기 이 마지막 책은 사실 맨 처음에 언급되었어야 할 책이다. 그것은 [나로빠의 노래Song of Naropa]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강으도, 아무런 해설도 가하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나로빠 의 노래]는 나의 가슴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이 책을 언급하는 것 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자들이 그것을 스스로 탐구해 나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로빠의 그 시와 노래들,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그 춤들..... 그시와 노래와 춤은 곧 나의 시이 며, 나의 노래이며, 나의 춤이기도 했다. 옴 마니 팟메 훔 Om Mani Padme Hum 연꽃 속의 보석이여! 7 그대가 노트를 펼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다시 나의 시간이 되었다. 나의 시간은 60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70분 이 될 수도 있고, 90분이 될 수도 있으며, 100분이 넘을 수도 있 다. 숫자라는 것을 초월할 수도 있다. 시간이 나를 구속할 순 없 다. 제2부가 계속된다. 오늘의 제1권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책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말루카Maluka이다. 그는 인도 신비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원래 말루크다스Mal- ukdas인데, 그는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말루카'라고 불렀다. 아니,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아이였 다. 나는 그에 대해서 역시 힌두어로 강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것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기까진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 다. 이유는 단순하다. 말루카는 그만큼 기이한 존재이며,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주석가와 학자와 판디트pan- dit(1)등으로 가득찬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 아무도 말루카에 대 해 주석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말루카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서 나 같은 사 람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말루카를 강의한 첫번째 인물이며, 또 나로서 마지막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 힌두교 율법학자를 지칭하는 말./ 보기를 하나 들어 보자. "아즈가르 카라이나 차카리 판치 카라이나 감 다스 말루카 카 하 가예 사브 케 다타 람Ajgar karai na chakari panchhi karai na kam das Maluka kaha haye sab ke data Ram....." 이제 그것을 번역해 보겠다. 물론 정확한 번역은 불가능하지 만 그것은 내 침임이 아니다. 세상의 빈약한 언어로는 그러한 함 축미 있는 내용을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말루카는 말하고 있다. "뱀은 일하러 나가지 않는다. 새들 역시 일하러 나가지 않는 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존재계가 모든 것을 그들에 게 제공하고 있다." 말루카는 조르바 같은 사람이 좋아했을 타입이다. 그는 '약간 의 광기', 그리고 깊은 명상을 함께 지니고 있다. 깊은 명상 상태에서 그는 말한다. "말라 자폰 나카르 자폰 지브야나 람, 수미란 메라 하리 카라 인 마인 파야 비스람Mala japon na kar japon jibhya na Ram, su miran mera Hari karain main paya bisram."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신의 이름을 찬송하지 않는다. 또 나는 염주를 돌리며 예배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숭배하지 않는다. 그러한 어리 석은 것들에 대해 신경쓸 일이 무엇인가?" 그는 또 계속해서 말한다. "사실 신이 내 이름을 기억한다. 내가 그를 기억할 하등의 이 유가 없다." 이것을 이해하겠는가? 약간의 광기와 깊은 명상....말루크다 스야말로 깨달음의 차원까지 초월한 인물이라고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다. 그는 선禪의 십우도十牛圖(2)의 맨마 지막 열번째 그림이 된 것이다. /(2)도道를 깨치는 일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열 개의 그림. 중국 곽암선사郭巖禪師가 그린 것이다./ 제2권은 시크교Sikh의 책으로 [구루 그란타 사히브Gura Gra- ntha Sahib](3)이다. 이 책은 한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 기 때문에 그 저자가 누구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여러 세대 에 걸쳐 전해지면서 완성되고 종합된 것이다. 따라서 이책은 모 든 근원에서 흘러나온 사상의 물줄기들을 종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어떤 책보다 독특하다. /(3)시크교 제5대 구루 아르잔Arjan, 1581-1606이 편찬한 시크교 경전. 아르 잔은 시크교도가 예배에서 사용하는 송가들이 유실될 우려가 있음을 깨 닫고 그것을 한데 모아 집데성했다. 아르잔 자신도 재능있는 시인이어 서 여기에 담긴 송가 절반은 아르잔이 직접 지은 것이다. 나머지는 주로 나나크의 작품이고, 또 자이 데브, 남데브, 까비르 등이 지은 것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이 성전은 시크교 안팎을 불문하고 즉각 유명해졌다. / [구약]은 유태교만의 것이고 [신약]은 기독교만의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만의 것이며 [법구경]은 불교만의 것, 그리고 [자이나 경]은 자이나교만의 것이다. 그러나 [구루 그란타 사히브]는 세상의 모든 사사의 흐름을 종합한 책이다. 그 물줄기는 힌두교에서, 회교에서, 자이나교에서, 불교와 기독 교에서 다 모였다. 이만큼 이 책은 자기의 것만을 주장하지 않고 활짝 열려 있다. 이 제목 [구루 그란타]는 '스승들의 책' 또는 '마스터북the Master Book'이란 뜻이다. 이 책 속에서 그대는 까비르를, 나나 크를, 파리드를 발견할 것이다. 서로 다른 전통에서 소속된 신비 가들의 길고 긴 도맥道脈과 법통法通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수천 갈래의 강물이 한 바다에서 만나는 것과 같다. [구루 그란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대양大洋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나나크의 가르침 중에서 한 마디만을 번역해 보겠다. 나나크는 시크교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말 들도 이 [구루 그란타]속에 실려 있다. 그는 말하자면 시크교 의 첫번째 스승이다. 그의 뒤를 이어 9명의 스승들이 맥을 이었 다. 따라서 시크교는 10명의 스승에 의해서 창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종교가 단 한 명의 스승에 의해서 창시되었다는 점에서 시크교는 드문 종교이다. 나나크는 말한다. "진리는, 궁극의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나 를 용서해 달라. 나는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노 래로 표현하겠다. 만일 그대가 음악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대 가슴에 그것이 전달될 것이다. 진리의 전수는 언어 를 초월해 있다." [구루 그란타 사히브]....시크교도들은 이 책에 '사히브Sah- ib'라는 존칭을 붙였다. 그만큼 그들은 그 책을 존중한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마치 스승의 산 정신을 대하는 것처 럼. 그러나 책은 어디까지나 책일 뿐이며, 스승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그 책은 이미 죽은 것이고 책에 적힌 말들도 죽은 것이다. 그 후에 사람들은 다만 아름다운 시체를 찬양하고 다닌 뿐이다. 세상의 종교들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 점을 기억하라. 종교는 오직 그 스승이 살아 있을 때만이 가치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말 그대로 '종교'가 될 뿐이다. 스승이 떠나면 그것은 하나의 교 리로 전라갛고, 교리는 추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학자가 종파 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두말 할 필요없이 그들은 첫번째 연구 대상으로 나를 지목했다. 나는 네델란드 제자들을 통해 그에게 전했다. "우리는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어떤 종파도 아니며 교리라는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살아 있는 종교이다. 종파나 교리에 속하는 것들은 기독교, 불교, 유태교, 힌두교, 회교들이다." 그 세미나 주최자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네덜란드의 내 제자 들에게 협력해 달라는 편지를 여러번 보냈다. 제자들은 다시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내 생각을 전했다. 그 세미나가 진정한 종교의 정 신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에 참가할 이유가 없 다." [구루 그란타]는 10명의 살아 있는 스승의 가르침을 엮은 책 이다. 10명의 깨달음을 얻은 스승의 말씀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거듭 말하지만 어떤 책도 이 책을 능가할 수 없다. 아주 독 보적인 책인 것이다. 나나크는 말한다. "에크 옴카르 사드하나Ek omkar sadhana." 그것은 이런 뜻이다. "오직 한 가지 것만이 진실하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동양에선 그것을 '옴카르omkar'라고 부른다. '옴om', 오직 그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소리 없는 소리, 소리가 사라진 다음에 스며드는 침묵과도 같은 것....에크 옴카르 사드하나! 제3권은 마벨 콜린스Maqbel Collins의 [길을 밝히는 빛The Lig- ht on the Path]이다. 가장 차원 높은 삶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원 하는 자는 누구나 [길을 밝히는 빛]을 이해해야만 한다. 분량으 로 따지자면 이 책은 불과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작은 책이 지만, 그 내용의 깊이로 따지자면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이 책은 현대에 쓰여졌다. 이 책의 저자 마벨 콜린스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 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 마벨 콜린스를 그대로 쓰지 않고 다만 M.C.라고만 썼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 에 M.C.의 몇몇 친구들을 통해서다. 왜 그는 자기의 이름을 약자로 M.C.라고 적었는가?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한다. 글을 쓰는 작가는 다만 하나의 도구일 뿐인 것 이다. 특히 [길을 밝히는 빛]과 같은 경우에는 거욱 그렇다. 아 마도 수피의 길 안내자로서 사람들을 배후에서 이끌어 주는 영 적 전재 키즈라Khijra가 M.C.의 배후에서 일을 했을 것이다. M.C.는 신지학회神智學會 회원이었다.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 지도 나는 모른다. 어쨌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수 피의 영적 안내자 키즈라의 안내를 받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안내자를 신지학회에서 말하는 영적 안내자로 바꾸 면 M.C.는 더욱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신지학회에서는 그 안내 자를 K.H.라고 부른다. 어떤 이름이라도 상관없다. 신지학회식 으로 K.H. 대사라고 하든 수피식으로 키즈라라고 하든 결국 같 은 뜻이다. 이 책은 무척 도움이 된다. 누가 그 책을 썼으며 어떤 영이 그 저자를 안내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요는 이 책이 하나 의 황금탑처럼 우뚝 서있다는 것이다. 제4권은.....내가 이렇게 숫자를 정확히 기억한다고 해서 놀 랄 필요는 없다. 어쩌다 우연히 맞추는 것일 뿐이니까. 오늘의 제4권의 주인공은 캐시미르의 여인 랄라 Lalla(4)다. 캐 시미르 지방 사람들은 얼마나 랄라를 사랑하는지 그들에게는 오직 두 단어, 즉 알라신과 랄라만이 있다고 그들 스스로 말할 정도이다. 캐시미로 지방에는 99퍼센트가 회교를 믿는다. 그래 서 그들은 알라신과 랄라, 두 단어밖에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4) 평생을 나채로 살았다고 전해지는 중세시대 인도의 여성 신비가./ 랄라는 책을 쓴 적이 없다.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한 문맹이 었으나 대단히 용기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생동안 나체로 살았다. 동양에서 그것도 수백년 전에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다. 더욱이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개시미르의 여인들은 누구나 미인이다. 인도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은 바로 캐시미르에 모여 있다. 셩경에 기록된, 모세가 잃어 버린 부족이 바로 캐시 미르 사람들이다. 따라서 본래 그들은 유태인이다. 모세는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이스라엘을 향해서 떠났다. 왜 굳이 이스라엘을 찾아서 떠났는가?미치광이 는 어디까지나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설명이 있을 수 없다. 모세 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미치광이였다. 그는 자기 민족이 편안 히 살 장소를 찾아서 길고 긴 여행을 떠났다. 그는 사람들을 이 끌고 40년 동안이나 사막에서 헤맨 끝에 마침내 이스라엘을 발 견했다. 그 도중에서 그는 부족 하나를 잃어 버렸다. 그 부족은 다른 길을 헤매다가 마침내 캐시미르 지방에 도착했다.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행운을 가져다 줄 때가 있다. 모세는 그 잃어 버린 부족을 찾아서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모세 역시 마침내 캐시미르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모세 는 캐시미르에서 죽었다. 그의 무덤은 이스라엘에 있는 것이 아 니라 바로 캐시미르에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세도 캐시미르에서 죽었고 예수 도 캐시미르에서 죽었다. 나는 그야말로 수차례 캐시미르 지방 을 여행해 보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안다. 캐시므르에선 누구나 이렇게 소리치게 된다. "아아, 내가 지금 이곳에서 죽을 수 있다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캐시미르인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가난하지만 더없이 아름 다운 사람들......랄라는 캐시미르 여인으로서 배우진 못했으나 노래부를고 춤출 줄 알았다. 그녀가 부른 노래 몇 편이 다행히 주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녀의 그 노래들을 제2부의 책들 속에 포함시키고 싶다. 제5권은 또다른 신비가이며 칸트리카tantrika(5)였던 고라크 Gorakh(6)의 책이다. 그는 탄트라의 모든 수행 체계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업에 손을 대는 사 람을 고락단다Gorakhdhandha라고 부른다. 즉 '고락과 같은 사 업가'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한 가지 사업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고라크는 모든 방향, 모든 차원을 섭렵했다. /(5)탄트라 수행자./ /(6)탄트라의 대가인 중세시대의 인도 신비가. 현재까지도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고락나트 파가 있다./ 고라크의 이름은 본래 고락나트Gorakh-Nath이다. '나트'는 '주인'의 뜻이므로 아마도 제자들이 그 이름을 붙인 것이라 생 각된다. 고라크는 내면의 신비 세계로 들어가는 모든 열쇠들을 설명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설명한 장본인이다. 아주 끝장을 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끝장을 모른다. 세상은 끝장을 내지 않고 언제 까지나 계속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말하는 도중에 문장 을 끝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