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 Krishnamurit 4)의 `처음과 마지막 자유The First and the Last Freedom'이다. 4)(인도 마드리스 근처의 마다나폴이라는 작은 마을에 서 태어났다. 여덟번째 아이로 태어난 그는 힌두교 전통에 따라 인도의 신 비시누의 여덟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열 한 살 때 어머니가 죽고 나서 신지학회의 회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신지학회 본부 내에서 살기 시작했다. 열 다섯 살인 1909년 마드라스의 해변가에서 놀다가 신지학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 던 영적 신비가 리드비터 Leadbeater에게 발견되어 미래의 구세주(마이트레이야,재 림 예수)가 내려올 육신으로 선택되면서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다. 수많은 신도들의 숭배를 받으면서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유체이탈을 통해 여러 신비의 영적 스승들 을 접견한 그는 `동방의 별의 교단'을 이끌면서 영국, 인도, 유럽, 네덜란드, 호주 등지에서 수많은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 무렵 `대사의 발 아래' 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러나 교단내의 암투와 허구성에 염증을 느끼고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35세 때 어느 강연회에서 "진리로 가는 길은 따로 없다. 어떤 길,어떤 종교, 어떤 종파로도 진리의 나라에 가까이 갈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별의 교단 해체 선언문'을 발표하여 충격을 던진 채 홀로 교단을 떠나 전세계를 여행하면 서 진정한 구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이후 그의 강연과 대화집은 수십 권의 책으 로 발간되어 독자들을 사로잡았으며,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자이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어떤 형식의 단체나 추종세력을 만드는 것을 배척하면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벗'으로 남기를 원했다.) 나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사랑한다. 동시에 나는 그를 싫어한다.그가 진리의 대변자 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지나친 지성 때문에 나는 그를 싫어 한다. 그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이다. 어쩌면 그는 저 괴물같은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논리 그것을 나는 싫어한다. 그의 사랑, 그것을 나는 존경한다. 여하튼 그의 책은 실로 아름답다. 이 책은 그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첫번째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이 기도 하다. 다른 많은 책들이 그 이후에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이 첫 번째 책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예언자'를 썼다. 그후 그는 평생에 걸쳐 그것보다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스펜스키 역시 구제프를 만나 수년 동안 함께 생활하고 작업을 했지만 `테르티움 오르가눔'을 능가 하는 책을 쓰지 못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책`처음과 마 지막 자유'는 말 그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제6권은 또다른 중국 선사의 책이다. 그것은 `전심법요The Book of Huang Po'이다. 이 소책자는 논문이 아니라 짧은 단상 모음집이다. 진리는 논문으로 쓰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진리 에 대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다. 어찌보면 박사학위라는 것은 진리 를 알지 못하는 바보들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황벽선사5)는 짧은 단상들을 남겼다. 5): ?-850. 일찍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선원의 규율을 체계화시킨 백장의 제 자이며, 임제의 스승이다. 그는 본체를 마음, 즉 일심이라고 보았다. 이 마음이 유 형의 모든 것의 창조자요 진정한 지혜의 원천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구도자가 이 근 본 마음을 만들고, 자기 자신 밖에서 부처를 찾으며, 수도생활에 있어서 현상과 수 행에 얽매이기 숩다는 것이었다. 선종사에 있어서 황벽의 중요성은 그의 견해가 가 장 분명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강한 개성과 철저한 방법이 제자 임제에게 깊은 영향 을 주었다는 것이다. 제자 배휴에 의해서 기록된 `전심법요'와 완능록'이 있다. `전 심법요'는 두 가지 영역본이 있으며, `완능록'은 황벽이 여러 제자들과 나눈 대화집 이다.) 겉으로 보면 그 단상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렇지 않다. 그것에 대해 명상하라. 그것에 대해 명상할 때 그대는 그것들의 연결성 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쓰여진 책 중에서 가장 명상적인 책이다. `전심법요'는 `황벽선사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Huang Po'이라는 영어식 제목 으로 번역되었다. 그 번역은 틀린 것이다. 황벽과 같은 사람은 절대로 가르침을 펴 지 않았다. 이 책속에 가르침 따위는 없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깊은 명상 속 으로, 한없이 깊은 침묵 속을 여행을 떠나야 한다. 제7권은 `회해선사어록'이다. 이 책 역시 영어로는 `회해선사의 가르침 The Teachings of HuiHi'라는 제목으로 번 역되였다. 불쌍한 서양인들은 인생에서 가르침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선생이 되려고 노력한다. 특히 서양 여자를 조심하라! 조심하지 않으면 학교 선생에게 붙잡힌 꼴이 되고 말 테니까. 회해6)와 황벽은 둘다 스승이었다. 6):백장회해를 말함. 720-814. 최초로 체계화한 `백장청규'를 만들었다. 백장의 사 원 제도의 독특한 점은 농사짓는 의무를 도입한 데에 있다. 백장 이전에는 승려들이 생산에 종사토록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백장의 좌우명은 `하루 일 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였다. 그는 94세까지 살았다. 그의 말년에 관해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즉 제자들은 백장이 너무 나이 많음을 염려해서 경작 일을 그만하도록 권유를 했는데 그는 끝내 듣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은 연장을 감추어 버렸다. 이에 백장 은 사방으로 찾으려다 찾지 못하자 연장을 돌려줄 때까지 단식을 했다.) 그들은 함 께 나눌 뿐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회해선사의 가르침'을 말해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8권....이 책이 오늘의 마지막 책이다. 그리고 영원히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 다.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또다른 귀신들이 밤새 내 방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지상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허풍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적어도 십만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이상일 수는 있어도 그 이하는 아니다. 왜냐하면 십만 권 이 상이 되면서부터 나는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내일 어떻게 될지 나 는 모른다. 어쨌든 오늘의 제8권은....앞에서 말한 `기트 고빈다'에 대해서 약간의 미안함이 느껴진다. 그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저자의 이름을 말하겠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제8권을 설명하겠다. 나에게 무한히 깊은 감동을 안겨준 이 제8권은 약간 이상한 책이다. 분명히 이상한 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이 책은 나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무엇인가 알면 그대는 그대는 놀랄 것이다. 짐작해 보라, 어떤 책일지.... 아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산스크리트 책도, 일본 책도, 아랍책도 아니다. 그대는 이 책을 잘 알고 있 다. 대부분의 집에 이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약성서에 수록된 솔로몬의 오래, 즉 아가서'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모든 유태인 의 책 중에서 나는 오직 이 `아가서'만을 사랑한다. `아가서'는 그동안 대단히 잘 못 이해되어 왔다. 그것은 소위 심리학자라고 하는 자들, 특히 프로이드 학파의 이 론가들 때문이다. 그들은 `아가서'를 가능한 한 최악의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그들 은 그것을 성적인 노래라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그렇지않다. `아가서`는 관능적이긴 하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대단히 관능적이다. 하지만 성적이진 않다. 넘치는 생명력이 그곳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관능적인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진 않다. 성 이 아 노래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잘못 된 이해를 심어 주어선 안 된다. 심지어 유태인들조차도 이 책을 멀리해 왔다. 그들 은 그것이 구약성서에 포함된 것은 다만 우연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은 `아가서'야말로 구약성서 전체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유일한 부분이다. 나머 지 다른 것들은 불 속에 던져 버려도 아깝지 않다. 내 시간이 다 되었는다? 안 됐 군. 그대는 `그렇다'하고 말하지만 나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어쨌든 아름다 운 날이다. 감사하다. 옴 마니 팟메 훔 이 아름다운 순간에 이야기를 끝맺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이 `아니다'는 인도인들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하는 말이다. 깨 달음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아 니다, 아니다,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체험이 있고 난 후에 더 이상 생을 계속할 이유가 무엇인가? 4 이제 다시 받아적을 준비를 하라 기트 바르티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세상은 그 만큼 가난해졌을 것이다. 플라톤의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붓다나 보리달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수 역시 제 자들의 기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마하비라1)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고오타마 붓다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던 자이나교의 해탈자. 인도 바이샬리 지방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결혼해서 딸까지 낳았으나 양친이 세상 을 떠난 후 형의 동의를 얻어 가산을 정리하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12년간의 온 갖 방랑과 고행 끝에 대각을 이루었다. 마하비르, 또는 마하비라는 그의 존칭으로서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지나'라고도 불리웠는데, 그것은 `승 리다'라는 뜻으로 그 이름에서 `자이나교'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나는 왜 그런 이 야기가 전해지는지 이해한다. 실제로 마하비라가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 다. 그것은 그가 직접 세상에 대고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오직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세상과 만났던 것이다. 도를 깨친 자가 어떤 글을 쓴 경우는 역사상 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깨달음이 마지막 사항이 아니다. 그 너머가 있다. 더 초월적인 경지가 있다. 그 경지에서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 아닌 것도 없다. 그러한 의식 상태에서는 제자는 오직 개인적인 교감을 통해서만, 대화가 아니라 영적 교감을 통해서만 스승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제 받아적을 준 비를 하라. 지난 번 이야기에서 나는 마지못해 시집 `기트 고빈다'의 지은이 이름을 말하려고 했었다. 처음에 나는 말하지 않으려고 마치 내가 그 이름을 잊은 것처럼 가장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온종일 나는 자야 데바2)에 대해 약간이나마 걱정을 했었다. 2):(또는 자이데브라고 함. 12세기 인도의 힌두교 개혁 자이자 시인. 그가 사용한 귀절이 후에 시크교의 핵심 구호가 되었다. 자야 데바는 종교 의식이라든가 검소한 생활 따위는 "지성으로 신의 이름을 되뇌이는 것"에 비하 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원래 회교의 가르핌이지만 자야 데바가 힌두교에 응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시크교의 창시자 나나크가 등장하기 전에 길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며, 시크교의 성전`그란트'에 남데브,까비르등과 함께 그 의 시가 실려 있다.) 자야 데바가 바로 `기트 고빈다'의 저자 이름이다. 왜 나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기를 꺼렸는가? 그 자신을 위해서다. 그는 깨달음의 근처에도 가 지 못했다. 나는 `미르다드의 서'의 저자인 미킬 나이미를 언급했었다.칼릴 지브란 도 언급했다. 그밖의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니체, 도스도엡스키,월트 휘트먼의 이 름들도 언급했다. 그들 역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가까이 다가갔다. 거의 문턱까지 갔던 자들이다. 조금만 밀어주면 그들은 사원 안으 로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사원의 문 앞에 서있다. 문을 두드릴 용기가 그들 에게는 없다. 하지만 문은 잠져 있지 않다. 약간만 밀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이미 반쯤 열려 있다. 한번만 밀어주면 된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자야 데바는 사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 다. `기트 고빈다'가 그에게로 내려온 것은 기적이었다. 하지만 신의 신비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기억하라, 신은 존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단지 표현상의 한 방법일 뿐이다. 아무도 존재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 그 풍성함을.... 때로 그것은 황무지에도 비를 뿌리지만, 때로는 비옥한 땅에도 비를 뿌리지 않는다. 왜 그러한지 이유는 없다. 아무도 그것을 설명할 길 없다. 자야 데바는 황무지였다 그런데 이 무한히 아름다운 시집, `신의 노래'인 `기트 고빈다'의 비가 그에게로 뿌 려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시들을 쓰고, 노래를 불렀 을 것이다. 사원 근처 어느 곳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을 말하면, 그것이 그의 에고를 더욱 강하게 해줄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 자신을 위해서'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가련한 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그 자신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아이를 탄생시켰다. 아이의 이름을 말하려면 그 아버지의 이름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 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사생아라고 여길 것이다. 아버지는 사생아였을지언정 그 아 이는 사생아가 아니다. 자야 데바에 관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무척 홀가분하다. 그런데 지금 문밖에는 또다른 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큰 곤 경에 빠졌는지 모를 것이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왜냐 하면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며, 또한 일에 뛰어들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형의 인 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일단 뛰어든 다음에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단 지 열권의 아름다운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저토록 많은 다른 책들이 나를 붙들고 늘어질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어서 자기들도 끼워달 라고 아우성이다. 따라서 열 권을 더 이야기하자. 오늘의 제1권은 헤라클레이토스3)의 `단편'이다. 3):(B.C. 540년 경 사람. 그리스 의 철학자. 속세에 관한 것뿐 아니라 기존학자들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홀로 고고하 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잠언푸으이 잡다한 표현을 즐겼으므로 어두운 사람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에 의하면 겉으로 보이는 다양한 현상도 그 본질에 있어선 하나이 며 잡다하게 보이는 것들 속에도 상호간에 아름다운 조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시 시각각의로 생성변화하므로 유전이야말로 만물의 실상이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말 은 "만물은 유전한다"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이다.) 나는 이 사람 헤라이클레이토스를 좋아한다. 이 말을 꼭 적어 넣으라. 나는 모두 를 사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사랑하는 만큼 자야 데바를 사랑한다. 하지만 헤라클레이도스에 대해서는 좋아한다고 주저없 이 말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드문 덧이 아니라 아무도 없다. 지금 나는 그 동안 늘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아무도 못 미칠 곳에 서있다. 위험할 정도로 깨어 있고, 자신이 말하는 것의 결과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 는다. 그의 저서 `단편' 역시 한명의 기트 바르티, 즉 한 명의 제자에 의해서 기록 된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글을 쓰지 않았다. 거기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깨달음에 이른 자들이 책을 쓰지 않는 이유가..... 하지만 그것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자. `단편'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한다. "그대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말한다. "아니다. 그대는 단 한 번도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실로 아름답고, 진 리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어찌나 빠른지 그대는 같은 강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단 한 번도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끝없이 흐르고 있다. 흐르고 흘러 바다로 달려가고 있다. 무한을 향해 줄달음쳐주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사라져가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책, 이것이 오늘 저녁 나 의 첫번째 책이다. 제2권은 피타고라스4)의 `황금시편'이다. 4):(B.C.6세기 경의 철학자, 수학자, 종교가.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이집트 기타 각지에 유학하여 지식 을 얻고 귀향하였으나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남이탈리아의 크로톤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종교단체 겸 학술단체를 세우고 당시 일어난 종교 부흥 운동에 학문을 결합 시켜 이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박해를 받고 다른 곳으로 도피하여 그곳 에서 죽었다. 그의 교파는 그후에도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세력을 유지했으나 B. C.440년 경 심한 박해를 받아 정치적으로 무력해지고 많은 교도는 죽거나 또는 그 리스로 망명하여 정치면에서 손을 떼고 종교와 학문세계에 침잠하었으며 그 학풍이 플라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사상에는 철학적 우주론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이 섞여 있다. 우주론에 있어선 수가 우주의 변함없는 본질이며, 만물로 하여금 질서있는 코스모스이게끔 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적인 면에선 영혼의 불멸 과 윤회, 사후의 인과응보를 믿으며 영혼의 정화를 위해 금욕과 계율에의 복종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이 영혼을 진정시키는 음악과 영원불변의 진리를 가르치는 수학 의 연구에 정진하였다.) 분명 피타고라스는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사람 중의 하 나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분명하다.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대부분이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조차도 피타고라스 를 잘못 이해했다. 심지어 그의 `황금시편'을 기록한 제자들까지도 그를 잘못 이해 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그의 말을 기록했을 뿐이다. 단 한 명의 제자도 피타고라 스와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단 한 명의 제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희랍인들은 철처히 그를 무시했다. 희랍인들은 언제나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자들 을 무시했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플로티누스5)가 바로 그들이 다. 5):(204-269. 신플라톤 학파의 대표자. 알렉산드리아 암모니오스에게 10년간 배 운 뒤 40세 때 로마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50세 전에는 제자들에게 전적으로 구 술시켰으나 그 이후는 집필도 하여 54편의 논문이 있다. 만무르이 가장 근본적인 실 체를 일자라 하여 자신은 일체를 초월하고,`존재의 피안'이며 선과 악을 초월한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는가 하면 또 어디에서도 존재한다. 인간은 영성을 높여 수행에 힘쓰면 일자와 하나가 되어 해탈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철학은 일자와 하나인 영원 한 생명으 얻고다 하는 것을 긍극의 목표로 삼는 신비주의이며 종교철학이다.)그들 은 소크라테스까지도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너무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독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무시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러나 피타고라스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피타고라스는 고오타마 붓다, 예수, 혹은 다 른 깨달은 이들과 똑같은 열쇠를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예수도 붓다도 노자도 피 타고라스만큼 그 열쇠를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예수도 붓다도 노자도 피타고라스 만큼 그 열쇠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한적이 없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피타고라스는 가장 진실한 구도자였다. 그는 모든 위험을 무릅썼다. 그는 그의 시대에 알려진 모 든 세계를 여행했으며 온갖 종류의 스승들 밑에서 배웠다. 온갖 종류의 신비학파에 입문해 모든 과정을 배웠다. 역사상 그러한 인물은 실로 그 한 사람뿐이다. 제3권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 그의 조국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사라하6)이며, 그의 책은 `사하라의 노래'라는 티벳어 제목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6):(탄트라 불교를 최초로 정립시킨 인믈이며, 대승불교의 창시자 나가르주나의 스 승이다. 불기 346년에 남인도 마하 하수트라 지방에서 태어났다. 또다른 자료에 의 하면 불기 30년에 베나레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전통적인 바라문 가정에서 5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으며,5형제 모두 베다에 통달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사라하는 베다의 최고 통달자가 되었다. 그후 그는 마하팔라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아울러 왕 궁의 최고 법정관을 겸임했다. 왕은 물론 인도 전역이 사라하의 깊은 지혜에 고개 숙였으나 차츰 지식의 세상에 싫증을 느낀 그는 왕궁을 떠나 바라문 대사제에서 불 교 승려가 되었다. 험한 구도여행 끝에 쉬리 키르티를 만났는데, 쉬리 키르티는 붓 다로부터 정통으로 내려온 불교 탄트라의 제3조로서 당시 최고의 명상가였다. 바라 문 대학자 사라하는 쉬리 키르티를 만나 그가 배운 베다의 모든 지식을 버리고 명상 에만 몰두하여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이후 명상마저 버리고 화장터에서 춤과 노래 로 세월을 보내면서 그를 찾아온 왕과 왕비마저 출가시켰다. 누가 이 책을 기록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사하 라는 그것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그것을 노래로 불렀을 뿐이다. 그 책 속에는 노래의 향기가 남아 있다. 그가 깨달은 것들, 그가 얻은 것들의 향기가.. ... 그 노래는 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한 신비가의 깨달음이다. 단지 몇 줄밖에 되지 않지만 놀라운 깊이와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다. 별들조차도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사라하의 노래'라는 티벳어 제목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누가 이 책을 기록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사라하는 그것을 쓰 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그것을 노래로 불렀을 뿐이다. 그 책 속에는 노래의 향기가 남아 있다. 그가 깨달은 것들, 그가 얻은 것들의 향기가......그 노래는 시 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한 신비가의 깨달음이다. 단지 몇 줄밖에 되지 않지만 놀라운 깊이와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다. 별들조차도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사하라의 노래'는 번역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티벳의 한 라마승으로부터 들었다. 아아, 나 는 그 노래를 다시 또다시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 라마승에게선 너무나 고약한 냄 새가 풍겼기 때문에 나는 한 번 듣고 나서 고맙다고 말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라마승들은 목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몹시 냄새가 난다. 냄새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 로서는 그 라마승의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그 노래 전체를 끝까지 듣는 것도 고역 이었다. 그 냄새 때문에 천식이 도질까봐 걱정이었다. 사라하에 대해서 나는 많은 강의를 했었다. 그는 탄트라7)학파의 근본이다. 7):탄트라는 원래 타트바 즉 진실과 만트라, 즉 언어가 합쳐진 말로서 곧 진실의 언어, 또는 인간의 언어라는 뜻이다. 탄트라라는 말은 4세기 이래 철학적인 용어로 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탄트라는 넓힘, 계속, 번식을 뜻하기도 한다. 다 시 말해서 지혜를 넓히고 계속하고 번식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서 밀교, 곧 탄트라 불교라는 말이 생겨났다. 탄트라 불교란 인도 불교 사상가 속에서 나타난 밀교 가운 데 후기 밀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8세기 이후 인도에서 꽃피어 티벳과 몽고에 이르 기까지 널리 전파된 대승 불교의 한 종파이다. 밀교라는 말은 불교 사상사 속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미묘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 나 여기서 말하는 밀교란 8세기 이후 꽃피어 인도 전역을 휩쓴 후기 밀교 곧 탄트라 불교를 가리킨다. 이는 다시 티벳으로 전파되어 독특한 교리체계와 함께 만달라와 만트라를 사용하는 주술적인 의식, 그리고 수행법 등을 발전시켰다. 탄트라 불교는 한 마디로 사고가 아니라 감각으로서 지혜를 넓히는 구도의 길을 추구하며, 따라서 모든 감각의 집합인 성을 중요시했다. 또한 본존불로서 석가모니불이 아닌 비로자니 을 신앙하며,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불심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에는 이와는 달리 8세기 이전 초기와 중기의 밀교가 중국을 통해서 전래되었다. 제4권은 틸로빠8)의 책이다. 8):988-1069. 사라하에서 시작된 탄트라 불교를 티벳 밀교의 형태로 크게 부흥시킨 인물. 그것은 다시 나로빠에게, 나로빠는 마르빠에게,마르빠는 밀라레빠에게 전수되 었다. 틸로빠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깨달음을 전할 제자를 찾아 인도 전역을 헤매였 으나 실패하고 히말라야 너머의 티벳으로 가서 제자 나로빠를 만났다. 그에게 들려 준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가 바로 틸로빠의 `무하무드라의 노래'이다. 이 책 역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그 제자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것을 놓쳤을까! 스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간 이들은 그것이 옳은 말인지 틀린 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리 가능한 한 스승의 말을 그대로 적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어려운 작업 이었다. 스승은 미친 자와 같아서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르든지, 아 니면 침묵을 지킬지도 모른다. 다만 손짓으로 뭔가를 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따라 서 제자는 그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기록할 수 있다. 메허바바가 30년에 걸쳐 끊임없이 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손짓으로 무엇인가 를 가리켜 보이기만 했다. 제5권.....이제 내가 말할 이 사람은 세상에선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 알려 져 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본다. 이 사람의 이름은 스즈키 다이세츠9)이다. 9): 1870-1966 동경대학 재학시부터 참선을 하는 한편 대승기신론을 영역하고 영문 으로도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선의 연구에 있어서 독자성을 확보했으며, 서구 세 계에 최초로 선을 소개하여 지성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동경 제국대 학에서 교편을 잡고 10여 년에 걸쳐 영문 잡지 `이스턴 붓디스트'를 발행했다. 스즈 키 다이세츠 전집 30권이 있다. 현대 세계에 선과 명상을 소개한 공로는 이 사람을 따를 자가 없다. 스즈키는 평생 에 걸쳐 서양에 선을 소개하는 일에 전념했다. `선'은 `명상'이라는 뜻의 산스크 리트어 `드히야나'가 전해진 말이다. 고오타마 붓다는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 았다. 그 언어가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이유 때문에 그는 그 언어를 기피 했다. 그 대신 붓다는 네팔의 작은 마을에서 민중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택했다. 그 언어는 팔리어였다. 팔리어에서는 `드히야나'가 `자나'라고 발음된다. 교육받지 못 한 민중은 복잡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를 단순화시켜서 사용하기 마 련이다. 그것은 돌 하나가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둥글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언어 도 그렇게 해서 처음엔 복잡했던 것이 점차 단순해지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드히야나'는 평범한 민중이 발음하기엔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자나' 라고 발음했다. 그것이 중국으로 가서는 `찬'이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선'이 되었 고, 일본에서는 `젠'이 되었다. 이제 보았듯이 언어는 사람들에 의해서 점차 단순해 졌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선과 일본문화'가 제5권이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인류에 게 무한한 봉사를 했다. 이 점에 있어선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전세계가 그에게 빚 을 졌으며, 그 빚은 실로 오랫동안 갈 것이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도 드믈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가진 자는 더욱 드물다. 제6권으로, 한 프랑스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말에 놀랐을 것이다. 속으로 그대 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프랑스인이라고?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스즈키 등 의 계열에 프랑스인을 포함시키다니, 저 양반이 미친 게 아닐까?" 그렇다. 지난 25 년 동안 나는 한번도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다. 그 이전에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점에 대해 나는 신에게 감사드린다. 이것이 하나의 표현방식일 뿐임을 다시 기억 하라.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다 이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나의 제자들이 신 을 숭배하고 나아가 나를 신으로 숭배할 가능성이 있디 때문이다. 신은 존재한 적도 없다.오직 신성만이 있을 뿐이다. "신은 죽었다"라고 한 니체의 말은 틀린 것이다. 신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다. 죽으려면 먼저 살아 있었어야 한다. 싸르트르도 이 점에서 빗아갔다. 그는 니체의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내가 "신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말하면서 `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대신 쓸 다른 말이 없기 때 문이다. "신에게 감사드린다"는 단지 좋았다는, 아름다웠다는 뜻이다. 제6권은 프 랑스인 위버 베노아10)가 쓴 `렛 고우'이다. 이 책은 명상을 추구하는 모든 구도자 들의 책꽂이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누구도 그처럼 과학이면서 동시에 시적으로 쓰지 못했다. 모순이지만 그는 그 모순을 훌륭히 해냈다. 위버 베노아의 `렛 고우' 는 현대 서구세계에서 탄생한 최고의 걸작이며, 동양을 제외하고 서양만 따질 때 금 세기 최고의 책이다. 제7권은 성자 라마크리슈나11)의 `우화집'이다. 알다시피 나는 성자라는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성자라는 이들 은 거짓과 위선 투성이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는 다르다. 이 점에 대해 다시 신에 게 감사드린다. 라마크리슈나의 `우화집'은 아주 단순하다. 우화는 단순해야 한다. 예수의 우화들을 보라. 라마크리슈나의 우화들도 마찬다지다. 우화가 어렵다면 우화 로서의 쓸모가 없다. 우화는 무릇 어린아이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 다. 내가 말하는 어린아이란 모든 연령의 아린아이를 다 포함한다. 열 살의 어린아 이, 여든 살의 어린아이 등등....여든 살의 노인도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모으는 어린아이임에는 다를 바 없다. 라마크리슈나의 아름다운 책 `우화집'이 제7권이다. 10): `형이상학과 정신분석' `사랑의 여러가지 얼굴들' `최상의 교리'`내적 실현의 길'의 저자. 폭넓은 지식과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받았던 금세 기 중엽의 프랑스인. 대학에서 의학과 음악을 공부한 후 (낸시 폰설바토리에서 수상 한 경력까지 있는 실럭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12년간 의사생활을 했다. 그후 정 신분석에 관심을 가졌으며 35년간 파리에서 정신분석의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유럽 과 미국 등지에서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스즈키 다이세츠의 선에 관한 프랑스 판 저서에 서문을 쓰기도 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위버 베노아를 지두 크리슈나므르 티의 경지와 비교하기도 했다. 11): 인도 벵갈 지역의 위대한 성자. 본명은 차페르지로 벵갈의 후글리 지방의 가 난한 정통 바라문 계급에서 출생. 부친이 죽은 후에 켈커타의 한 절의 탁발승이 되 고 칼리 여신에게 열렬한 신앙을 바쳐 우주 및 자기 어머니로 삼았다. 12년간 삼림 속에서 고행하고 신과의 합일에 의해서 삼매경의 경지에 들어갔으며, 요가 수련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고 `라마크리슈나'로 이름을 바꾸었다. 더욱 고행, 명상을 거듭 하여 이슬람교, 기독교 등을 흡수하고 근대 유럽 사상의 섭렵을 통해 모든 종교의 귀결처는 오직 하나의 진리이며,제각기 다른 길을 거쳐 동일한 신에 이른다는 세계 일화적 경지에 도달하였고, 무아 무차별의 인격에서 나오는 빛과 사랑으로 많은 제 자를 얻었다. 그는 끝내 책을 집필하지 않았으나 제자들에 의해 그의 언행이 기록되 어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사후 제자 비베카난다가 뒤를 리어 라마크리슈나 미션을 창설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시켰다. 제8권은 `이솝 우화집'이다. 이솝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다. 사실 `이솝 이화집'에 등장하는 우화들은 붓다가 그의 설법에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복하면서 그 우화들이 서양으로 건너갔다. 물론 붓다의 이름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붓다는 `보디사트바'라는 이름으로 도 불리워졌다.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른 각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아르하트와 보디사트바가 그것이다. 아르하트는 자신의 불성을 자각했느나 다른 중 생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에 보디사트바는 남을 이끌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은 다한다. `보디사트바'는 알렉산더와 함께 서양으로 건너가서 `보디사트'라 는 말로 바뀌었으며, 그것이 다시 `조세푸스'로 변했다. `조세푸스'는 다시 `이솝' 으로 변했다. 이솝은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은 아니지만 그 이름 아래 묶인 우화들 은 실로 중요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제9권은 나가르주나12)의 `중론본송'이다. 12): 150년경-250년경. 인도의 초기 대승불교의 터전을 닦은 사람. 용맹, 용승이 라고도 번역된다. 남인도 바라문 집안에서 출생하여 인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당시의 여러 학문에 정통하였다. 현자의 `대당서역기' 등 외에 티벳에도 그의 생애 의 전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들은을 나가르주나의 재능과 박식함을 너무 추켜세 워 신화적 전설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부 믿기는 힘들다. 저서는 250권에 달하며 그 속에 담긴 높은 이상, 깊은 사색, 투철한 논리, 강한 실천적 태도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법화, 화엄, 정토, 진언밀교, 선 등에 이르는 초기 대승경전의 사상 모두 가 그 속에 담겨 있으며, 그밖의 다른 학문과 이론 등에 관해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소위 대승불교는 눈부신 초석을 완성하게 되었으며, 나가르주나는 인도, 중국, 한국 및 일본에서 여러 종파의 개조로서 모든 불교도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 었다. 나는 나가르주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철학자 타입이고, 나는 반 철학적이다. 그러나 그의 `중론본송'은 중요한 책이다. 제목의 뜻은 글자 그대로 `중도의 본질'인데, 이 책에서 나가르주나는 언어로 표현이 가능한 가장 깊은 곳까 지 파고든다. 나는 이 책에 대해 강의한 바 없다. 본질에 대해 말하는 가장 좋은 방 법은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일이다.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너 어쨌든 나가르주 나의 이 책은 대단히 가치있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제10권. 오늘의 마지막 책은 조금 이상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포함시키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티벳 신비가 마르빠13)의 책이다. 13): 티벳불교의 카규파의 시조. 1011-1096. 인도의 불교 경전을 가져다 티벳어로 번역한 공로가 크며 티벳불교의 찬란한 봉우리인 밀라레빠의 스승으로 큰 역할을 했 자. 마르빠의 추종자들조차도 이 책을 읽지 않는다.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해야 한다. 깊이 명상할 때 이 책의 내용물은 사라지고, 오직,`지켜보는 자'의 의식만이 남는다. 마르빠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 다. 그의 스승 나로빠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마르빠에게 경배하노라" 어떤 스승도 제자에 대해 그렇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마르빠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한번은 누군가 마르빠에게 말했다. "만일 네가 너의 스승 나로빠를 믿는다면 불속 에 뛰어들어 보라" 그러자 마르빠는 당장에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달려 와서 불을 끄느라 야단이었다. 불을 다 끄고 보니 마르빠는 불길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르빠에게 물었다. "무엇이 좋아서 웃고 있는가?" 마르빠는 대답했다. "불조차도 믿음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디에 웃 는 것이다." 이 사람의 단순한 노래들로 엮어진 `마르빠의 서'가 오늘의 제10권이 자 마지막 책이다. 5 "아타토 브라흐마 지기야사.... 이제 저 절대의 것을 찾아가자." 바드라야나1)는 이렇게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실로 위대한 책.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인 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말할 첫번째 책은 바드라야나의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그는 이렇게 첫 문장을 시작한다. 1): 기원전1세기 인도인. 그의 대표적 저서 `브라흐마 수트라'는 4편 16장으로 구 성되어 있으며 베단타학파의 근본 성전으로서 이 책이 써지기 전에는 베단타 학파의 내부에 각 `우파니 샤드'의 군데군데에 관한 해석이나 형이상학적 근본 사상에 대 하여 학자들간에 많은 이설이 있었다. `브라흐마 수트라'는 그들의 각종 해석과 해 설을 요약하고 정리 비판하여 하나의 체계로 조직한 것이다. 이 책은 `우파니샤드' 의 각종 사상을 종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대의 베단타 학파뿐만 아니라 인도의 모 든 학파에도 통하는 성전으로 간주되며,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와 더불어 3학의 하나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극도로 간결하여 수트라 본문만으로 는 거의 이해할 수 없고 또 최고 계급의 바라문만이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여 비밀의 가르침으로 전수되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자유로운 해석을 받아들이는 결과 를 낳았다. 그래서 베단타 학파의 중요한 철학자는 각기 독자적인 입장에서 주석서 를 저술했다. "이제 저 절대의 것을 찾아가자. 더 나아갈 수 없는 길을 향해 떠나자." 동양에 서는 거의 모든 경전이 `아타토',즉 `이제'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른 방식으로 시작 하는 법이 없다. 바드라야나는 잘못 이해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는 너무 심각 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신비가로선 좋은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삼 천 년 전 바라문 성직자들 틈에서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그 자신 역시 한 사람의 바라문이었다. 바라문 성직자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놀라운 일이 지만 인도에는 유우머라는 것이 없다. 이토록 큰 나라에 유우머가 없다는 것이 이상 하지 않는가? 이토록 긴 역사를 가진 나라에 유우머가 없다니..... 바라문 성직자들 은 농담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서 저속하고 세속적인 반면에 그들은 대단히 성스 러운 자들인 것이다. 나는 바드라야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너 무 심각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을 내 도서목록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놓고 나는 한참 망설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의 심각한 성격 때문이었 다. `미르다드의 서'에 대해선 망설이지 않았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에 대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드라야나와 그의 저서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 해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양에선 그의 저서를 가장 위대한 역작으로 평가하 고 있으며, 사실이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심각한 책들을 읽었다. 장난꾸러기 성자 조지 구제프의 `모든 것' 까지도 읽었다. 그러나 심각성에 대해선 바드라야나 의 `브라흐마 수트라' 따라갈 책이 없다. 그는 심각한 점에 있어선 끝까지 들어갔던 인물이다. 아아, 그가 약간의 웃음이라도 가졌더라면!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한번도 웃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바드 라야나라면 그럴 법하다. 그는 평생 한번도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심각성은 이 루 말할 수 없다. 그의 저서보다 심각한 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 `브라흐마 수트 라'에 대해선 지금까지 수천 권의 해설서들이 쓰여졌다. 진리는 해설이 필요없다. 그러나 진리가 `심각함'이라는 옷속에 가두어질 때 당연히 해설이 뒤따르고 내노라 하는 해설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바드라야나의 책은 위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심각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작을 남겼다. 바드라야나는 끝 까지 갔던 인물이다.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본 인물이다. 날카로움과 과학적인 능 력을 그는 지니고 있었다. 인도에는 `아차리아'2)라는 칭호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 세 권의 책에 해설서를 쓴 사람에게만 붙이는 칭호이다. 첫번째는 108권의 `우파니 샤드', 두번째는 크리슈나의 바가다드기타',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바드라야나의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나는 바드라야나에 대해 강의한 바가 없지만 오랫동안 아차 리야로 불리워 왔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 세 권의 책에 대해 해설서를 썼느냐고 묻 곤 했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오직 농담만을 말할 뿐이다. 내가 아차리야로 불리우는 것은 하나의 농담이다.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브라흐마 수트라'.....`브라흐마'는 `신'의 뜻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것은 틀린 해석이다. 브라흐마는 기원전 4천4년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 기독교적인 신의 개 념과는 아무관계가 없다. 바드라야나조차도 그 얘기를 들었다면 웃음을 터뜨렸을 것 이다. 그의 심각성을 벗어 던졌을 것이다. 브라흐마는 `신'의 뜻이 아니라 존재계 전체에 깃든 `신성'을 뜻한다. 그리고 `수트라'는 `지나간 자국'을 뜻한다. 브라흐 마에 대해선 많은 말이 불가능하다. 그대가 어떤 말을 하든 그것은 하나의 발자국, 하나의 힌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의 발자국이, 하나의 작은 암시가 큰 다리 역 할을 할 수 있다. 바드라야나는 그의 책에서 그 다리를 완성시켰다. 바드라야나의 심각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나는 심각한 것을 도무지 싫어하 기 때문에 `바드라야아의 심각한 성격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탄생시킨 공로가 있기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성경'조 차도 바드라야나의 `브라흐마 수트라'에는 한참 못 미친다. 2):영적인 교사 또는 구루를 지칭하는 힌두교 용어 제2권은 나라다의 `박티 수트라'이다. 나라다는 바드라야나와 정반대되는 인물이 다. 나는 정반대되는 것들으 나란히 놓는 것을 좋아한다. 나라다와 바드라야나를 한 방에 집어넣고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고 싶다. 나라다는 언제나 `에크타라'라 는 이름의 악기를 들고 다녔다. 그것은 줄이 하나밖에 없는 악기였다. `에크'는 하 나를 뜻하고, `타라'는 줄을 뜻한다. 나라다는 항상 에크타라를 들고 다니면서 그것 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온갖 종류의 성격을 참을 수 있지만 바드라야나는 참 지 못하고 나라다에게 중지하라고 고함쳤을 것이다. 나라다는 바드라야나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바드라야나를 약올리기 위해 더욱더 큰 소리로 연주하 고 노래불렀을 것이다. 나는 이 두 사람을 한 방에 집어넣고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두번째 책으로 나라다의 `박티 수트라'를 선택 했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타토 박티 지기야사......이제 사랑을 찾아 가자." 사랑을 찾는 것, 그것만큼 위대한 추구가 없으며, 그것만큼 위대한 탐험이 없다. 어떤 것도, 원자폭탄의 에너지조차도 사랑을 따를 수 없다.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라 해도 사랑을 알지 못하면 진정한 추구가 불가능하다. 또한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사랑에 깨어있음이 뒤따라야 한다. 이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추구가 된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사랑과 깨어있음--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 잔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무의식 속에서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 랑은 생리적인 것이며, 지구 중력적인 것이라서 늘 땅쪽으로 끌려내려간다. 그러나 나라다가 말하는 사랑은 완전히 다른 사랑이다. 명상으로서의 사랑, 깨어있음으로서 사랑인 것이다. 혹은 과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중력에 반대되는 `공중부양'으로서의 사랑이다. 중력은 죽은 자들에게나 적용되게 하라. 그대는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라. 사랑으로 들려올라갈 때, 별을 향해 들려올라갈 때, 그것이 바로 `아타토 박티 지기 야사'이다. 나는 나라다의 책을 더없이 사랑했다. 그 책에 대해 강의까지 했으나 영어로는 하지 않았다. 영어는 나의 모국러가 아니다. 나아가 영어는 너무 과학적이 고 수학적이며 현대적이다.나라다에 대한 강의를 나는 나의 모국어인 힌두어로 했다 힌두어로는 더욱 쉽게 노래부를 수 있으며, 그것이 내 가슴에 더욱 와닿는다. 내 대학교수 주의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외국어로는 사랑을 할 수 없다. 또한 싸움도 불가능하다." 싸움을 하려면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말로 소리쳐야 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더욱더 가슴의 언어를 요구한다. 더 깊이 들어 가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영어로 말하려면 걸림이 많다. 이중 작업이 되기 때문 이다. 아직도 나는 일단 머리 속에서 힌두어로 문장을 구성한 뒤 그것을 영어로 옮 긴다.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어로 곧바고 말하는 일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 오 히려 이 점에 대해 신에게 감사드린다. 나라다에 대한 나의 힌두어 강의가 누군가에 의해 번역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그동안 필요에 의해서 영어가 아니라 힌두어 로 강의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영어로는 강의 가 불가능한 내용들이었디 때문이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힌두어로 표현이 어려운 많은 것들을 나는 영어로 강의 했다. 이 점에서 나의 작업은 기이하다 아니할 수 없다. 만일 내 모든 책들이 힌두 어에서 영어로, 그리고 영어에서 힌두어로 번역되어 세상에 나오면 정말 볼 만할 것 이다..그대는 훨씬 더 오리무중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미소를 짓고 있겠지. 그때에 내가 육체를 갖고 살아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는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 대가 당황해서 머리를 흔드는 꼴을 보면서 나는 우주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언어를 가지고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강의를 했다. 내가 어떤 것을 영어 로 강의한 것은 힌두어로 표현할 수 없는 차원이 있어서다. 제3권은 파탄잘리3)의 `요가 수트라'이다. 바드라야나는 지나치게 심각했고, 나 라다는 또 지나치게 심각성이 없었다. 파탄잘리는 그 중간이다. 정확히 그 중간 위 치다. 심각한 것도 아니며,심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정 신을 파탄잘리는 갖고 있었다. 3): B.C. 2세기 경 인도사람으로 기존의 전수되어 오던 모든 요가 자료를 집대성하 여 `요가 수트라'를 완성했으며, 아울러 요가 학파인 샹카학파를 창시했다. `요가 수트라'는 4장 194경으로 이루어졌으며, 원전은 `베나레스 산스크리트 시리즈'No. 75에 실려 있다. 야마, 즉 욕망을 없애는 다섯가지 맹세, 니야마, 즉 자기 수련의 규칙을 지킴, 프리나야마, 즉 호흡 조절, 크라티아하라, 즉 모든 감각 대상으로부터 감각을 거두어 들임, 다라나, 즉 집중, 드히야나, 즉 명상, 마지막으로 사마디에 들 어 마음은 텅 비고 객체에 대한 인식도 주체에 대한 인식도 없이 유일자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역설하면서 그 실천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대해선 이미 10권의 책으로 강의한 바 있으니 새삼 그를 설명하는 일이 군더더기다. 책 10권의 분량을 얘기한 다음엔 무엇을 덧붙이는 일이 오히려 어렵다. 오직 한 가지, 내가 이 사람을 더없이 사랑한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제4권은 까비르4)다. 4): 1440-1518.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의 베나레스에서 어느 힌두교 수도승과 과 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태어난 직후 길에 버려졌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어느 회교 도 부부가 그를 주워다 키웠으며, 그래서 까비르 역시 양부모의 직업을 따라 평생 을 베짜는 직공으로 살았다. 젊어서 인도 민중종교 운동(박티 운동)의 지도자인 라 마난다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헌신과 사랑의 찬란한 시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기에 제자들이 그의 시를 바다 적었으며, 타고르와 마하 트마 간디가 극찬한 인도 시문학의 최고봉인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 힌두교와 회교 신도들에 의해 널리 애송되고 있다. 그의 시는 타고르에게 영향을 미쳐 `기탄잘리' 를 탄생시켰고, 타고르 자신이 영역한 `까비르의 백 편의 시'에 의해 세상에 알려 졌다. `까비르의 노래' 세상에 까비르의 노래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까비르 그 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를 표현할 언어는 세상에 없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문맹이었으며 베짜는 직공으로 태어나 이름없는 삶을 살았던 까비르. 까비르를 낳 자마자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갠지스 강가에 버렸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사생아라는 것이 무엇인가? 합법적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사 생아로 태어나긴 했지만 사랑 속에서 태어났으며,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법이다. 까 비르에 대해서도 나는 여러 권의 강의를 했다. 따라서 다시 또다시 이 말을 덧붙이 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까비르여,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한 다." 제5권. 이제 한 사람의 여성을 소개할 차례다. 여성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대해 많이 망설였다. 수많은 남성들이 아직도 내 방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그들은 전혀 신사답지 못하다. 여성에게 자리를 비켜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 여 성이겠는가! 이 여성의 이름은 마담 블라바츠키5)이다. 5): 1831-1891. 러시아 여성 신비가로 1875년에 신지학회를 창립했다. 어려서부터 보이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으며, 유령에 자주 놀라곤 했다. 17세에 결혼했으 나 불행으로 끝나고 그후 그녀는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를 폭넓게 여행했다. 인도와 티벳을 여행한 후 영적으로 존재하는 신비의 대사들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았 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 대사들의 도움으로 많은 저서들을 쓰게 되었다고 믿었으 며, `숨은 교리'외에 `신지학의 열쇠,' `침묵의 소리'등의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남겼다. 그녀의 공헌은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종합하고, 그것을 통해 보편적인 신 비 전통을 이해하는 골격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항상 `마담 블라 블라'라고 부른다. 그녀는 그렇게 허풍떠는 데 있어서 일인자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갖고 온갖 것을 이야기하며, 사마귀 하나 를 갖고 산처럼 꾸며댄다. 그녀가 첫번째 여성으로 등장하리라는 것을 내 이미 짐작 했었다. 그녀는 그만큼 강하고 대가 세다. 파탄잘리와 까비르와 마드라야나 등을 밀 치고서 그녀는 자신의 저서 `숨은 교리'일곱 권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이것이 오늘의 제5권이다. 이 책은 거의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엔사이 클 로페디아 에소테리카'라 할 수 있다. 신비주의에 있어서 블라바츠키와 경쟁할 자가 없다. 물론 나를 빼고선. 나라면 7권이 아니라 7백 권이라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 유 때문에 나는 블라바츠키의 `숨은 교리' 일곱 권에 대한 강의를 포기했다. 일단 강의를 시작하면 적어도 7백 권 이상의 분량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강의한 분량이 이미 3백 36권이나 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신은 정말 로 자비로우시다! 나는 그 책들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 중 어떤 책도 나는 읽 지 않았다. 그러나 블라바츠키라면 그 자리서 어떤 신비 이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신비주의라는 것이 그것이다. 336권이라......3 더하기 3은 6이다. 그러면 66이 되고, 6 더하기 6은 12......1더하기 2는 3. 다시 3이 되었다. 이 3이라는 숫 자만 갖고서도 신비주의자들은 그대가 상상하지 못한 온갖 신비한 문을 열어 보일 것이다. 가련한 여인 블라바츠키! 나는 그녀를 불쌍히 여기면서 동시에 그녀를 사 랑한다. 물론 그녀의 얼굴은 사랑하거나 좋아할 얼굴이 아니다. 어린아이들도 그 얼 굴을 보면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블라바츠키는 그토록 못생겼지만 나는 그녀를 좋 아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 남성들이 주도해 가는 이 사회 속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여성이 창시한 첫번째 종교를 시작하고 이끌었다. 그것이 바로 신지학6)이다. 그녀 는 붓다, 짜라투스트라, 마호멧 등과 겨루었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그녀에게 감사드 린다. 누군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 그들을 그들을 물리칠 필요가 있었다. 이 점에 대해 그녀에게 고맙데 여긴다. `숨은 교리'는 소위 신비주의라는 이름 아래 많은 허접쓰레기들이 모여진 있긴 하지만 군데군데 진기한 보석과 연꽃이 박혀 있다 그녀는 수집광이었기 때문에 온갖 쓰레기가 없을 수 없다. 그 쓰레기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것이 쓸모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지도 않고 온갖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모든 쓸모없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늘어 놓는 데 있어서 그녀는 가히 천재 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몇 개의 보석들도 함께 발견된다. 전체로 말하면 이 책은 별로 가치가 없다. 내가 이 책을 포함시키는 것은 몇 사람의 여성들도 포함시켜서 내가 남성 우월론자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남성 권위자가 아니다. 오 히려 여성 우월론자 쪽이지 남성 우월론자는 절대로 아니다. 6): 1975년 미국에서 강신술과 최면술에 관심을 가진 남북전쟁의 영웅 헨리 스틸 올코트 대령과, 반대파에선 완벽한 사기꾼으로,신봉자들에게선 높은 영적 세계로부 터 신비의 힘을 받는 현자이며 기적을 행하는 이로 숭배받던 러시아 여인 헬레나 페 트로바 블라바츠키에 의해 창시되었다. 이 학회는 세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첫 째, 종족과 교리와 신분과 피부색과 성의 구별없이 우주 형제단의 구심체를 만드는 일. 둘째, 종교 철학 과학의 비교 연구를 후원하는 일. 셋째, 드러나지 않은 자연 법칙과 인간 내면에 깃든 힘들을 조사하는 일. 1882년 신지학회는 미국에서 인도로 이사했으며, 그때부터 신지학회는 급속도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1889년 블라바츠키 는 신지학회를 설립한 진정한 복적이 세계의 교사(구세주)가 지상에 내려올 때 그 가 들어가 살 인간 육체를 준비하는 데 있다고 발표했다. 그 육체로 선텍된 것이 바 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였다. 신지학회는 그후 영국인 애니 베산트와 리드비터가 중 심이 되어 이끌어갔으나,크리슈나무르티의 `별의 교단'해체 선언 이후 급속히 쇠퇴 했다. 현재 그 본부가 인도의 마드라스에 있다. 제6권은 `미라의 노래'이다. 블라바츠키 다음에 미라7)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 는 것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블라바츠키는 너무 무게가 키기 때문에 균형을 맞 추려면 다른 가벼운 여성 몇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 7): 또는 미라바이라고 함. 1498년 인도 델리 근처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전쟁에 참가중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늘 크리슈나 신에게 헌신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크리슈나의 신상에 지 집착했다. 그녀의 시에는 "크리슈나여,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의 나의 사랑을 아는가 "라는 귀절도 보이며, 실제로 꿈에서 크리슈나와 결혼하는 일도 있었다. 세상을 떠 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육체가 녹아 없어져 신상과 하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 해진다. 그녀의 시집 제목은 `미라바이 헌신의 신'이다. 그래서 제6권은 `미라의 노래'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에 의해서 불리워진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여기에 있다. 그 노래를 인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 라는 말한다. "마인 토 프렘 디바니" 그것은 이런 뜻이다. "나는 사랑에 미쳤노 라. 너무나 사랑에 빠졌기에 나는 미쳐 버렸노라!" 이 문장만으로도 그녀의 노래가 어떠한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녀는 공주였고 왕비였다. 그러나 왕궁을 버리고 그녀는 거리의 거지가 되었다. 비나를 연주하면서 시장바닥에서, 마을에서 마을로 춤추면서 다녔다. 자신의 가슴을 쏟아부으면서 존재 전체로 노래부르고 춤추었다. 미라에 대해서 나는 힌두어로 강의한 바 있다. 어느날인가 어느 미친 자가 나와서 그것을 번역할지도 모른다. 7권은 또다른 여성의 책이다. 저 무거운 마담 블라 블라바츠키와 균형을 맞추려 고 나는 노력하고 있다. 블라바츠키는 말 그대로 무겁기 짝이 없다. 아마도 족히 120킬로그램은 될 것이다. 여성이 120킬로그램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무하마드 알 리라도 일격에 그녀에게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소위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그녀는 깔아뭉갰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에겐 추종자들만이 있었을 뿐 연인이 없었다. 그녀 가 밀어부치면 사람들은 그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블라바츠키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제7권은 `사라조의 노래'이다. 사하조8)는 그 이름조차도 시적이다. 사하조 의 의미는 `자연스러움의 극치'이다. 나는 역시 힌드어로 사하조에 대해 강의한 바 있다. 영어로는 그러한 시적 표현이 불가능하다.영어라는 언어는 그다지 시적이지 않다. 시집이라는 것들도 읽어 보면 어찌나 비시적인지 왜 누군가 나와서 영어를 보 다 시적으로 개혁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영어는 갈수록 과학자와 기술자의 언어,정확히 표현하면 테크놀로지스트의 언어가 되어간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 다. 다만 바라건대 먼훗날 누군가 나와서 사하조에 대한 나의 강의를 번역하여 세 상에 널리 알렸으면 한다. 8): 미라와 더불어 역시 인도의 여류 신비가. 당시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