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내가 사랑한 책들 저자:오쇼 라즈니쉬 류시화 옮김 제1부: 19 제2부:101 제3부:211 누구에게나 밤을 지새워 책을 읽지 않은 경험이 있으랴. 토로할 수 는 답답함에 불밝힌 새벽이나 막연한 희망에 들뜬 봄 햇살 아래를 지 나오면 누구나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게 된다. 밤을 지새지 않 고는 읽을 수 없는 그 책들은 그렇게 한 권씩 책꽂이에 쌓여가는 겄이 다. 감동을 주고 삶의 허무를 일깨우고 때로는 저 너머의 세계를 손짓해 보이는 책들, 칠흑같은 밤 검은 바다에 부호처럼 반짝이는 등대보다도 아름다운 그 책들의 비밀스런 서가를 오쇼 라즈니쉬가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지상의 어떤 들판보다도 넓고 어떤 나무보다도 무성한 그의 서가 에는 노자, 장자, 석가, 예수 등의 성인들의 불같은 말이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톨스토이도, 카잔차키스도, 니체도, 심지어는 마르크스 도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책을 사랑했던 그가 이제 우리를 향해 그 책들을 집어던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책 하나하나에 가슴 을 맞고 쓰러지는 일이다. 이 책을 옮기는 동안 내 기억 속의 묵은 책들을 봄 햇살 앞에 꺼내 놓 았다. 어디 하나 성한 게 없는 책들, 제각기 나름대로 상처입은 문장들 을 바라보며 살아온 날들이 참 힘들었구나 생각했다. 또한 괜히 상처를 꺼내 놓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눈 부신 봄 햇살 앞에 부끄러운 게 어디 그것뿐이랴. 류 시 화 내가 사랑한 책들 제1부--------------------------------------------------------p19 1 흰 국화가 피었다, 오늘. 손님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흰 국화, 흰 장미...여기 말이, 언어가 필요없는 순간이 있다. 손님도, 주인도, 밀이 필요없다. 오직 침묵뿐. 그러나 침묵은 그 자체의 언어가 있다. 침묵은 그 자체의 노래가 있다. 기쁨과 평 화와 아름다움, 그리고 축복의 노래가.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는 노자의1) [도덕경] 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B.C.4-5세기 초나라 사람으로 도가의 시조이며 장자의 스승으로 일컬어진다. 죽 음을 히말라야에서 맞이하기 위해 중국을 떠나다가 함곡관의 수비대장 윤희의 청으로 가르침을 베푼 것이 그의 유일한 저서 [도덕경]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도덕경]은 그의 무위자 연 사상과 "행함이 없으면서도 행하지 않음이 없는" 자유 자재한 인간상을 제시 하고 있다. 노자에 따르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생겨나고 지배되는 자연의 조화 에 인간이 손을 대면 댈수록 그 조화는 깨어지고 만다. 또 무리하면 할수록 문 제는 더욱 커진다. 가볍든 무겁든, 건조하든 습하든, 또는 느리든 빠르든 모든 만물은 그 안에 독자적인 성질을 갖고 있고,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반드시 혼란 이 일어난다. 천지 만물의 배후에 작용하는 것을 노자는 '도'라고 불렀다. 예수의 [산상수훈]2)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의 산 위에서 행한 인간의 덕에 관한 설교.신약성서 마태 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로 시작해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로 끝나는 예수의 대표적 가르침이 여기에 포 함되어 있다. 침묵의 언어로 씌어진 책들. 그 책들이 시집처럼 편집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시라고 여긴 다. 그 책들은 늘 이방인이다. 언제나 문밖으로 밀려난다. 어떤 면에선 그럴 수밖 에 없다. 그것들은 세상의 어떤 기준, 어떤 공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어떤 잼대 로도 그것을 잴 수 없다. 그 책들은 이 모든 기준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무시당하곤 한다.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3)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몇 부분은 순수한 시 그 자체 다. 3)1821-1881. 모스크바의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처음에 는 휴머니스트 작가로 등장했으나 형무소 생활과 군대 생활로 인해 세계관이 바뀌 었다. 그의 휴머니즘은 사회적 항의의 성격을 잃고, 생활 고민을 최고의 필연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기성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모든 투쟁을 개인주의적 허무주 의 입장에서 부정하고 기독교적 겸양과 인내를 러시아 국민의 미덕이라 여겼다. 그러나 작품은 그의 사상의 허무주의에도 불구하고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광인 프리드리히 니체 4)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몇 귀절 도 마찬가지다. 4)1844-1900. 독일의 철학자. 아버지는 목사였으나 5세 때 사망, 조모의 집에서 자랐으며 본과 라이프찌히의 두 대학에서 문헌학을 연구하였다. 그리스 정신에 매혹되었으며,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고 바그너에 심취했다. [비극의 탄생]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다루 었는데, [반시대적 고찰]에선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채를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고독에 침잠하기를 좋아한 니체는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삶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한 긍정적 인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 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역설했다. 다른 책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해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것만으로 도 니체는 인류에게 무한한 공헌을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값진 작업을 했다. 인류 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짜라투수트라 5)를 발굴한 것이다. 5)페르시아의 예언자이며 짜라투스트라교의 개조. B.C. 5세게 중엽에 리디아의 그 리스 역사가 크산투스는 짜라투스트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원전은 없어 졌고 일부가 B.C. 1세기경의 인용문에 남아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에 전하는 전 설에 따르면 짜라투스트라는 알렉산더 대왕 이전 285년에 히스타스페스 왕을 귀 의 시켰다고 하였고, 그때 나이 42세이며, 77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선악 이원론을 체계적으로 세운 최초의 사람이라 생각되어지고 있다. 선의 힘은 오르므즈드와 그 일곱 천사로 되어 있는데, 악의 힘은 그 이름 이 금기시되어 분명하게 전해지진 않고 다만 그아래의 악령의 이름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윤리적 이원론과 그 발전으로서의 짜라투스트라교는 이란 고원 오아시 스의 반농반목의 정착민 사회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러한 정착민을 외부로부터 위 협하는 유목민을 악의 힘이라 하고 스스로를 선의 힘이라 한 것이 아닌가 추측죄 기도 한다. 그의 사상은 멀리 중국에까지 미쳐 도교의 신비서 [황금꽃의 비밀]에 까지 영향을 남겼지만 그후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다가 20세기 들어 니체가 발 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 시켰다. 짜라투스트라를 재등장시키고, 그에게 불후의 생명과 부활을 준 자가 바로 니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앞으로 미래의 성서가 될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 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럽다. 미소를 지을 수는 있 어도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에 대해 웃음을 터뜨렸단 말인 가? 웃음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농담에 갓난아기 짜라투리트라는 웃음을 터뜨렸는가? 그것은 바로 우주적인 농담이다. 이 존재계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우 주적인 농담에 그는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다. 그대의 노트에 우주적인 농담이라고 쓰고 밑줄을 그어라. 나는 그대가 밑 줄을 긋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다. 내 귀가 얼마나 좋은지 아는가? 내가 원할 때면 나는 연필 굴러가는 소리도,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도 들을 수 있다. 원할 때면 나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을 때면 나는 전혀 듣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린 짜라투스트라!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전생애가 하나의 웃음이었 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고통 속에서 삶을 산 사람은 오래 기억되지만, 삶이 하나의 환희가 되고 넘치는 웃음이었던 사람은 금방 잊혀진다. 영어권에서 그의 이름을 조로아스터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괴물같은 이름 인가! '짜라투스트라'는 장미 쫓잎과 같은 향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 는 기계 냄새가 나고 죽은 이름이다. 짜라투스트라까지도 자기의 이름이 '조로아스 터'로 바뀐 것을 알면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그러나 니체가 그 책을 쓰기 전 까지는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교도들의 강압에 못이겨 짜라투스트라의 추종자들은 회교도로 개종했다.극히 소 수의 사람들만이 인도로 탈출했가. 인도 말고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인도 는 여권이나 비자 없이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살인자 회교도들의 탄압을 피해 아주 적은 숫자의 짜라투스트라의 추종자들만이 인도로 탈 출했다. 현재 그들의 숫자는 십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자, 불과 십만 명 정도의 추종자밖에 갖지 않은 종교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갖겠는 가? 그들 대부분이 인도에 살고 있을 뿐이고, 그것도 봄베이라는 한 도시 주변에만 모여 산다. 그들 자신 조차도 짜라투스트라를 잊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 살아 가야 할 힌두교인과 타협한 것이다. 늪을 피해서 달아났지만 결국 진흙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도 더 깊은 진흙 웅덩이에 한쪽에는 늪, 다른 쪽에는 진흙 웅 덩이, 그 중간에만 '길'이 있다. 붓다는 그 길을 중도라고 불렀다. 줄 위를 걷는 광 대처럼 정확히 중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니체의 위대한 공헌은 짜라투스트라를 현대에 되살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크니큰 잘못은 아돌프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그는 둘다를 동시애 했다. 물론 그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선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니체의 초인 사상을 잘못 해석한 것은 히틀러 자신이었다. 그것은 니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대가 나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한다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잘못 해석하는 것은 사람 들의 자유다. 아돌프 히틀러는 일종의 정신박약아, 지극히 볼품없는 인간이었다. 정말 추한 인 간이었다. 그의 얼굴 생김새를 보라. 왜소한 수염, 사람을 겁주려고 노력하는 그 잔뜩 겁먹은 눈, 그리고 긴장한 이마. 그는 너무나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해야 하 는 것이다. 히틀러는 사랑을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의 독재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불행하게도 많은 남편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여성을 하녀 부리듯 명령하고 지시하고 속이고 온갖 작전을 썼지만 그는 사랑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 다. 사랑은 지성을 필요로 한다.그는 심지어 자신의 애인까지도 밤에 단둘이 그의 방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토록 두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누가 아는가? 애인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애인이 적의 스파이인지도 모 르는 일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평생동안 혼자서 잠을 잤다.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아무런 느낌 도, 감정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가슴이 없었다. 그에게는 여성적인 면이 전 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속의 여성을 죽여 버렸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외 부의 여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외부의 여성을 사랑하기 위해선 그대 내면의 여 성을 키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외부적인 행위는 내면에 있는 것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애인을 총살하기까지 했다. 애인이 어느날 병든 어 머니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히틀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외출하자 애인은 몰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히틀러가 돌아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그 러나 히틀러는 경비원을 통해서 그녀가 외출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는 그 것만으로도 사랑을 끝장내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사랑뿐만 아니라 그 여성까지도! 그는 "만일 네가 내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너는 나의 적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녀를 총으로 사살했다. 그것이 그의 논리였다. 복종하는 자는 친구이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적인 것이다. 찬성하는 자는 자기 편이고 반대하는 자는 자기 편이 아니다. 나는 그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책은 단 지 몇 권에 불과하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내 도서 목록에 오를 첫번째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이다. 표도로 도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그 두번째 책이다. 제3권은 [미르다드의 서] 6) 6)미킬 나이미가 쓴 소책자며, 나이미는 칼릴 지브란과 가까웠던 인물로 1889년 레바논 출신의 문학 비평가이며,극작가. 제4권은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제5권은 노자의 [도덕경]. 그리고 제6권은 [장자] 7)이다. 7)노자와 함께 동양사상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인물.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학문 이 넓어서 그 사고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문장을 잘 쓰고 언변에 능해서 당시의 이름난 학자들도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었다. 말과 행동은 너무나 크고 당황하며 자기 중심적이라서 왕이나 고위관리들에게 도저히 훌륭한 인물로는 여 겨지지 않았다. 쓸모있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쓸모없음의 위 대함을 강조했으며, 세상에 절대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병신처럼' 사는 것이 최고의 삶임을 가르쳤다. 공자나 맹자 따위의 형식주의자는 상당한 인물이 못 된다고 여겼다. 그의 언행을 기록한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의 세 권으로 이 루어졌다. 장자야말로 더없이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우화들을 엮은 이 책에 견줄만 한 책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제7권은 예수의 [산상수훈]이다. 성경 전체가 정말로 탁월한 정신으로 가득차 있 으나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들로,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언어의 보고이 다. 제8권은 크리슈나 신의 8) 노래 [바가바드 기타] 9)이다. 8)시바 신 다음으로 중요한 힌두교의 신. 고오타마 붓다 이전의 신의 화신. 언제 나 피리부는 소년으로 화신해서 많은 연인들과 사랑을 속삭인다. 성전 [바가바드 기타]에서 제자 아르쥬나에게 '작은 나'를 버리고 신의 철저한 도구가 되어야 한 다는 차원높은 가르침을 편다. 이 크리슈나와 그의 연인 라디와의 사랑 이야기는 인도 무용의 주된 소재이다. 9)고대 인도의 2대 서사시 중의 하나인 [마하바라타] 속의 한 권으로, 역사시라는 성격상 그 성립 연대를 확정짖기는 곤란하지만 다른 문헌과의 관계나 문체로 보 아 기원전 1세기 경으로 추측된다. 내용의 특징은 유일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이며, 기존의 사회재도에 입각하여 각자의 본분을 사심없이 수행할 것을 설하는 것이다. 훔볼트가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단 하나의 진정학 철학 시편"이라고 절찬한 이래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의 대 표적인 고전으로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한 인도 사상가들에게 있어서도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크리슈나가 잘못 전해진 단어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 스터'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크리슈나'는 의식의 가장 높은 차원을 의미하며, 크리슈나의 노래인 [바가바드 기타]는 존재의 최고 차원에 도달한 의식의 표현이다. 제9권은 [기탄잘리]이다. 그것은 '신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뜻이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10)의 작품이며, 그는 이 작품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0)인도 문예부흥의 중심지였던 벵갈 지방의 캘커타에서 한 명문 집안의 열두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대에는 새로운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 다.하나는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교리로 가득찬 종교의식을 타파하고 진실한 정신 적 탐구의 길을 여는 종교개혁운동으로, 이것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는 정통 힌두교인들에게는 일종의 정면 도전이었다. 둘째는 벵갈 문학의 개혁 운동이다. 타고르 자신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자기 표현은 정신적인 이상 에서만이 아니라 문학표현에 있어서도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문학 은 창조적 생명을 잃었다. 생명이 없고 율동이 없는 아름다운 수식에만 매달려 있다. 묘비명이나 죽은 자의 안정성을 믿는 정통파에 반항해야 한다. 언어에서 장황한 형식의 짐을 벗기고 우리의 문학을 오랜 잠에서 깨워야 한다. "그의 대 표작 [기탄잘리]에는 생의 애수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한 기쁨의 음률이 물결치고 있다. 인도의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 이를 두고 "유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노래"라고 말하고 있다. 제10권은 밀라레빠의 11) 노래들이다. 11)초인적인 고행과 아름다운 시로 유명한 밀라레빠는 티벳 불교사에서 가장 높이 선 봉우리이며, 그의 전기와 노래는 티벳 국민의 중요한 재산으로 여겨지고 있 다. 티벳과 네팔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한 마을에서 태어난 밀라레빠의 전설적인 생애는 7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후견인으로 지명된 큰아 버지는 그의 전재산을 강탈했으며,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거지와 같은 생활로 전락했다. 이 원한을 풀기 위해 유명한 마술사의 제자가 된 젊은 밀 라레빠는 흑마술로써 큰아버지의 집을 파괴하여 친척을 몰살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자신의 까르마를 깊이 깨달은 밀라레빠는 정도를 구하기 위해 스승을 찾 았다. 마침내 38세의 나이에 그는 인도에서 밀교를 배워온 당대의 스승 마르빠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에 대한 깊은 신앙과 인내가 인정되어 마침내 스승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은 밀라레빠는 동굴에서 홀로 명상하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수행 과정을 노래로 불렀으며, 그것이 바로 [미라레빠 십만송]이다. [밀라레빠 십만송], 티벳에서는 그 책을 그렇게 부른다.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 손님도, 주인도, 흰 국화도 아아,너무도 아름다운 시간이다.저 흰 국화.....아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의 언어는 너무나 초라한 것이다. 내 앞에 다가온 이것을 설명할 길 없다. 흰 국화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 손님도, 주인도, 흰 국화도 이 아름다움 때문에 내 귀에는 바깥의 소음들도 들리지 않는다. 내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눈물, 그것은 미지의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다. 침묵의 언어. 2-----------------------------p33 어제의 목록에서 몇 권의 중요한 책들을 빠뜨렸다. 그 점을 미안하게 여긴다. 짜 라투스트라와 미르다드, 장자, 노자, 예수, 크리슈나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것들 보다 훨씬 중요한 책들을 잊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칼릴 지브란 1)의 [예언자]를 빼놓을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믿어지 지 않는다. 1)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나 열 두 살이 되던 해 전가족과 함께 미국의 보스톤으 로 이주하였다가 2년 후에 고집을 부려 혼자 레바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베 이루트의 유명한 '지혜의 학교'를 다닌 후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면서 그 림을 그렸고, 그 길로 유럽으로 갔다. 1908년에는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 시기에 유명한 조각가 로댕을 만나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로 댕은 지브란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하기도 했다. 3년간 미술을 공부한 뒤 미국으 로 돌아온 지브란은 1931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의 한 아파트 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예언자]와 [부러진 날개], [사람의 아들 예수], [예언자의 정원] 등 지브란 특유의 종교적 색채의 작품과 그림을 발표하였다. [에언자]는 지 브란의 대표작으로 현대의 성서라고 불리울 만큼 2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세계 인에게 읽혀 오고 있다. 지브란이 영어로 쓴 최초의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인 이 [예언자]는 그가 베이루트의 '지혜의 학교'를 다닐 때인 열 다섯 살 때에 최초로 구상되어 1924년 세상에 발표될 때까지 26년간 수없이 다시 써졌다. 지브란만의 독특한 황색 노트에 쓰여진 이 작품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영향을 받아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를 대변자로 내세웠듯이 가상의 영적 스승 '알무 스타파'의 입을 빌어 사랑과 결혼과 노동 등 삶의 여러 현상들에 대한 심오한 통 찰과 진리를 역설한다.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아직도 나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그 부담에 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별히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저 최고의 책인 수피2)의 [더 북]을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2)회교 신비주의 수도승과 그 신비가를 지칭하는 말로 원래 '수프'는 '양털'이란 뜻이다. 그들이 무더운 사막지방에서 두꺼운 양털옷을 입고 내면의 '서늘한 곳' 으로 침잠하는 수행을 실천했다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루미, 하킴 사 나이, 아타르 등 불후의 시인들과 만수르, 이븐 엘 아라비 등의 위대한 스승들을 탄생시켰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세상의 소유가 되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그들은 지적인 탐구와 경전 연구를 통한 신에의 접근이 아니라 삶 속에서 헌신과 가슴의 열정을 통한 신과의 만남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러한 그들의 종교는 13세기 인도로 건너가 즈나니(지) 위주의 종교였던 힌두교 에 깊은 영향을 미쳐 박티(애) 중심의 새로운 민중종교의 불씨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그 책을 빼놓은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텅빈 백지들로 만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천 2백년 동안 수피의 수도승들은 대단 한 존경심으로 그 책을 전수해 오면서 그것을 읽고 연구했다. 아무 글씨도 써져 있 지 않은 백지인데 무엇을 읽고 연구한다는 것인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텅빈 백지를 오랫동안 주시해 보라. 그러면 그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 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연구이며, 진정한 작업이다. 내가 어떻게 [더 북]을 빼놓을 수 있었단 말인가? 이제 누가 나를 용서할 것인가? [더 북]은 맨 나중이 아니라 첫번째로 언급되었어야 할 책이다. 그 이상의 책이 있 을 수 없다.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책, 무를 담고 있는 책, 그리고 나아가 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그 어떤 책이 능가할 수 있겠는가? 그대의 노트에는 무를 기록해야 한다. '무'는 '없음'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가득차 있음'이다. 동양에서는 그것을 수냐타(공)라는 독특 한 말로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수냐타'가 '없음'이 아니다. 그것은 충만, 가득참을 의미한다. 너무 나 충만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더 북]의 메세지이다. 이 책을 반드시 내 도서 목록에 포함시켜야 하리라. 오늘의 제1권은 수피의 [더 북]다. 제2권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이다. 내가 이것을 빼놓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작품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모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토록 형식적 이고, 예의를 중시하는 거짓말장이들인 것이다. [예언자]가 아름다운 책인 까닭은 그것이 짜라투스트라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제3권은 [열자]이다. 나는 이미 노자를 말했다. 장자를 말했다. 그런데 열자3)을 잊었다. 3)장자와 함께 중국 전국 시대의 도인으로 이름은 어구였다. 그의 책 [열자]는 노 자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우주의 본체는 허무라 여겨, 이것을 황당무계한 이야기 에 붙여서 설명하면서 허무자연의 생활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주장하 였다. 하루는 열자가 제자들과 위나라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 다. 길 곁에는 백년도 넘어 보이는 해골이 뒹굴고 있었다. 열자는 쑥대를 뽑아 그 해골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직 저 죽은 자와 나만이 알 것이다. 참으로 그대들, 일찍이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은 적도 없는 것이다. 죽은 자는 과연 행복한가? 살 아 있는 우리가 과연 행복한가?" 열자는 노자와 장자의 종합이며 극치다. 열자는 그 삼대에 속한다. 노자의 제자가 장자이며, 장자의 제자가 바로 열자이다. 열자는 제자의 제자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그를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책은 더없이 아름다우며, 반드시 [ 내가 사랑한 책들] 목록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제4권, 이것 역시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잊고 말았다. 내가 이 책을 잊은 것은 아마도 플라톤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평범한 철학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실로 가 치있는 책이며, 그것을 빼놓아선 안된다. 제5권. 나는 또 [달마조사어록]을 잊었다. 고오타마 붓다에 대해 말할 때면 나는 언제나 보리달마 4)를 잊는다. 4)고오타마 붓다에서 마하가섭으로 전수된 선의 전통을 중국에 전한 인물.527년 중국 남방에 도착하였고 그 즉시 양 무제에 의해 수도인 남경으로 초청되었다. 독실한 불교도인 황제를 알현하는 중에 황제는 "내가 즉위한 이래 무수히 많은 절을 지었고 무수히 많은 경전을 만들었고, 수많은 승려를 먹여 살려 왔는데 이 모든 것이 무슨 공덕이 되겠소?" 라고 묻자 "전혀 공덕이 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아울러 불교의 거룩한 교리 중에서 첫번째 원칙이 무엇이냐고 황제 가 묻자 거룩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마침내 화가 난 황제가 "내 앞 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라고 묻자 모르겠다고 말하고는 신발 한 짝을 머리에 얹고서 가버렸다.그후 하남지방의 숭산으로 가서 소림사에 머물며 9년 면벽 끝에 혜가를 첫 제자로 받아들였다. 536년 달마는 자신의 입적이 기까왔음 을 느끼자 네명의 제자를 불러 깨달음에 대한 심득을 점검한 다음 혜가에게 법 통을 물려 주고는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그것은 보리달마를 그의 스승 붓다의 일부분인 것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보리달마는 스승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섰다. 그는 위대한 제자였다. 너무나 위대했기 때문에 스승조차도 그에게 질투를 느꼈을 정도다. 보리달마 자신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몇몇 제자들, 이름을 밝히지 않 았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몇몇 제자들이 보리달마의 가르침을 기록했다. 비록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 기록들은 코히누르 5)보다 더 값진 것이다. 5)인도산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로 영국 황실의 왕관에 장식되어 있다. '코히누르'의 뜻을 아는가? 그것은 '세상의 빛'이라는 뜻이다. '누르'는 빛이고, '코히'는 세상이다. 코히누르를 비유로 사용하라고 한다면, 그렇다, 나는 주저없이 보리달마의 이름없는 제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이 소책자를 택할 것이다. 제6권. 나는 또한 [루바이야트]를 빼놓았다. 내 눈에 눈물이 어린다. 다른 것들을 잊은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루바이야트]에 대해선 그럴 수 없 다. 오직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뿐이다. 오직 눈물로써 미안함을 표현할 수 있을 뿐, 언어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오마르 카이얌 6)의 [루바이야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책 중 의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6)11세기 후반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으며 '카이얌'이란 이름은 '천막 제조 업자'라 는 그의 부친의 직업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나라의 봉급을 받아 가면서 수학 연구에 전념했고 1074년에는 당대의 통치자의 도움을 받아 달력 개 혁에 필요한 천문학 관측을 하기도 했다. 카이얌은 수학과 천문학 이외에도 철 학, 법학 및 역사학의 권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12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명성이 서방 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가 썼다고 하는 [루바이](사행시라는 뜻 으로,'루바이야트'는 루바이의 복수형)덕분이다. 카이얌은 모두 1천 편에 달하는 루바이를 썼는데 이 시들을 통해서 자기의 불가지론적인 인생철학과 철저한 현실 긍정의 생활 태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번역상으로는 의미가 통하지만 그 정신은 완전히 잘못 이해되고 있다. 이책의 번역 자는 그 정신을 살려내지 못했다.[루바이야트]는 대단히 상징적인 작품인데, 그 번 역자는 아주 고지식하고 상상ㅇ력 없는 영국 친구였다. [루바이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루바이야트]는 오로지 술과 여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술과 여자를 찬양하는 노래다. 여기에서 이 책의 많은 번역자들은 모두 핵심에서 빗나가고 말았다. 빗나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오마르 카이얌은 한 사람의 수피였다. 타사우프의 사람, 즉 앎에 도달한 사람이었다.따라서 그가 여자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은 곧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수피들은 신을 그런 방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님이여,아아 나의 사랑하는 님이여." 그들은 언제나 신을 여성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세상의 그 누구도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신을 여성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오직 수피들만이 신을 '님 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내가 님과 함께 있을때 그곳에 '술'이 있는 것이다. 이때의 '술'은 알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랑하는 이와 그 대상이 만날 때, 스승과 제 자가 만날 때, 찾는 자와 그 찾음의 대상이 만날 때, 헌신자와 신이 만날 때 그곳 에 연금술이 일어난다.탈바꿈이,하나의 발효가 일어난다. 그것이 술인 것이다. [루바이야트]는 세상에서 크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그냥 지나쳐을 것이다. 제7권은 잘랄루딘 루미 7)의 [사행시편]이다. 7)수피즘(회교 신비주의)이 낳은 위대한 시인을 꼽으라면 당연이 루미다. 루미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인 '발크'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몽고족의 침입을 피해 오랜 여행 끝에 터어키의 '코냐'에 정착했다. 루미는 대부분의 생 애를 이 코냐에서 보냈다. '루미'라는 이름도 '터어키 지방 출신'이란 뜻이다. 루미의 집안은 대대로 학자와 신학자, 법률학자의 집안이었다. 루미도 부친의 뒤를 이어 왕실의 후원 아래 전통적인 종교 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36세 때인 1244년에 늙은 수도승 샴스를 만나면서 루미는 완전히 다른 삶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루미는 전통에 입각한 평범한 종교학자요, 절제를 중요 시하는 금욕주의자였다. 루미를 만난 샴스는 루미의 책들을 모두 우물 속에 집어 던져 충격을 주었으며, 두 사람은 일주일이 넘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루미 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내가 신으로 생각했던 존재를 오늘 나는 한 사람 속에 서 만났다."샴스를 만나기 전에는 루미는 시인이 아니었다. 샴스와의 만남을 통 해 루미는 시인이 될 수 있었고, 그의 시는 회교 신비주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말했다. "신으로 가는 데에는 많은 길이 있다. 그 중 에서 나는 춤과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작은 우화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위대한 것은 오직 우화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예수는 우화를 빌어 이야기했으며, 이 [사행시편]도 마찬가지다. 왜 내가 이 책을 잊었던가? 나는 우화를 더없이 사랑한다.예수의 우화, 장자의 우화 그리고 루미의 우화.... 내가 이 책을 뺀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지금까지 나는 이 책의 우화들을 수없이 인용해 왔다.아마도 이 책이 나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새삼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그러나 그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나는 루 미에게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다. 제8권은 [이사 우파니샤드]이다.내가 왜 이 책을 잊었는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나는 그것을 마셨다.그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그것은 곧 나 자신이다. 나는 수천 번도 넘게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은 무척 짧은 우파니샤드 8)이다. 8)고대 인도의 철학서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가까이 앉는다'라는 뜻 이며,스승과 제자가 마주앉아 비교진의를 전한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일본에선 보통 [오의서]라고 번역한다.현재 200여종이 전해지고 있으며,성립연대는 B.C. 600-300년경이다.각각의 우파니샤드는 통일된 사상을 동일 작가가 일정한 형식 아래 서술한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결집되고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수행과 고행에 의해 철저한 범아일여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윤회의 사슬에서 해 탈하며 불멸의 세계에 사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다.여기서 관념론,실 재론,유신론 등의 여러 체계가 생기고 많은 갈래의 인도철학이 탄생하였다. 우파니샤드에는 108종류가 있는데 [이사 우파니샤드]는 그중에서 가장 짧은 우파니 샤드로서 우편엽서 한 면에 충분히 인쇄될 수 있을 만큼의 적은 분량이다.하지만 그 안에는 나머지 107가지 우파니샤드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따라서 그 나머지 107 가지의 우파니샤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그것들의 정수가 곧 [이사 우파니샤드]인 것이다. '이사'는 신성을 뜻한다.놀라운 일이지만 인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 고 부르지 않고 이사라고 부른다.이사는 아람어의 '예수아',그리고 영어의 '요수 아'에 훨씬 가까운 말이다.예수의 부모는 예수를 '이에수'라고 불렀을 것이다.'이 에수'가 너무 길기 때문에 그 이름은 인도로 건너오면서 짧아져서 '이수'로 변했 다.인도인들은 '이수'가 '신'이라는 뜻의 '이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그를 '이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사 우파니샤드]는 깊은 명상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가장 차원 높은 가르침이다. 제9권....조지 구제프 9)와 그의 책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나는 잊었다. 9)1872-1949.러시아명으로는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구르지예프.그리스계 아르메니 아 사람으로 신비에 싸여 있음.서양인으로선 처음으로 동양의 종교와 신비에 관 심을 갖고 동양을 순례.티벳,인도,중국,중동 등지의 힌두교,불교,수피 사원을 찾 아가서 각기 다른 종교의식과 명상 비법을 배움.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서양 인에게 알맞게 개조하여 유럽에 소개했다.그의 명상법은 수피 무용을 중심으로 구제프 자신이 음악을 만들어 동작과 소리를 통하여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켜 주 는 데 특징이 있다.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그 룹 활동들이 서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대표작으로는 그의 사상의 정수가 담 긴 [모든 것]이 있는데,그 1권이 [벨제붑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고,2권 이 [위대한 만남]이다.2권은 제목 그대로 그가 만난 위대한 사람들에 관한 자서 전적 기록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그의 사후 신비에 싸인 생애를 밝히기 위한 여 러 연구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최근 그의 스승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한 [구제프의 스승들]이 발간되었다.저자 라피엘 레포트가 터키,이란,이라크,아프가 니스탄,바그다드,다마스커스,예루살렘,카이로 등지를 여행하면서 찾아낸 구제프 의 스승들은 양탄자 직공,서예가,구리 그릇 제조가 등 수많은 세속인들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 책이 실로 이상한,읽을 수도 없는 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나 를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 이다.나는 지금까지 많은 구제프의 추종자들을 만났지만 [모든 것]을 끝까지 읽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든 것]은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실로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이사 우파니샤드] 와 정반대되는 책인 것이다.그리거 구제프는 대단한 장난꾸러기 성자였다.내가 '장 난꾸러기 성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이해해 달라.그는 그런 식으로 책을 쓰기 때 문에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한 문장이 몇 페이지씩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그래서 문장 끝에가면 앞부분의 내용을 잊고 만다. 그리고 구제프는 나처럼 자신이 만든 단어를 곧잘 사용한다.그것도 이상한 단어들 이다.예를 들어 그는 쿤달리니 에너지 10)에 대해 쓰면서 그것을 '쿤더버퍼'라고 불렀다.'쿤달리니'가 그에게서는 '쿤더버퍼'로 변하는 것이다. 10)인체에는 여섯 개의 챠크라(에너지 저장고)가 있다고 한다.이 여섯 개의 챠쿠 라 가운데 가장 낮은 챠크라로부터 냉각 상태에 있던 에너지가 기체화되면서 여 섯 개의 챠크라를 뚫고 상승하는 것,또는 에너지의 상승 자체를 쿤달리니라 한 다.구렁이 또는 뱀으로 고대로부터 상징되어 왔다. 구제프의 [모든 것]은 실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하지만 이 책 속의 다이아 몬드들은 평범한 돌들 틈에 숨겨져 있다.그 다이아몬드들을 발견하기 위해선 수없 이 찾고 뒤져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한번 읽은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었다.그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나는 이 책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더욱 더 그의 '장난끼'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진정한 앎에 이르지 못한 평범한 자들의 눈에 띄지 못하도록 그가 교묘히 숨겨놓은 보석들을 갈수록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앎이란 아직 그것을 받아드릴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용지물인 것이다.앎은 경 솔한 속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감추어져야 한다. 오직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나야 한다.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구제프가 이책을 그토록 이상한 방식으로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구제프의 [모든 것]만큼 이상하고 기이한 책은 세상에 없으며,이 책은 제목 그대 로 확실히 모든 것 그 자체다. 제10권....나는 이 책을 염두에 두었었다.하지만 저자가 오펜스키 11)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았다. 11)1878년 모스크바 태생.저널리즘 계통에서 일을 하다가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껴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저서들을 쓰기 시작했다.이후 인도 등지를 여행하면서 영적 스승을 찾다가 결국 실패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는 1915년 집 근처 카페에서 위대한 인물 조지 구제프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그후 8년간에 걸쳐 제자로 수행하다가 스승을 떠나 런던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했다.베네트 등과 함께 구제프의 사상을 보급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1947년 런던 근처에서 세상을 떠났 다. 오스펜스키는 구제프의 제자였는데 나중에 그를 배반했다.스승에 대한 배반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 책은 그가 스승을 배반하기 전에 쓴 작품이다.그래서 마침내 나는 그것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책의 제목은 [기적을 찾아서]이다.실로 아름다운 책이다.그것이 한 사람의 제 자에 의해서,아직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한 제자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 에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그는 한 사람의 제자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배반자 유다의 역할까지 했다.스승 구제프를 배반한 것이다.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만,원래 이상한 일들로 가득찬 것이 세상이 아니던가! 오스펜스키의 책은 구제프 자신이 쓴 책보다 훨씬 분명하게 구제프의 가르침을 설 명해 준다.어쩌면 어떤 차원에서는 구제프가 오스펜스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를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했는지도 모른다.그것은 내가 기트 바르티 12)를 나의 매개체 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지금 바르티는 내 이야기를 기록해 나가고 있고,나는 반쯤 감은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완전히 감은 눈으로도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나는 지켜보는 자,언덕 위에서 지켜보는 자이다.지켜보는 일 외에 다른 할 일이 나에겐 없다. 제11권,이 책은 스승도 아니고 제자도 아닌,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책이다.월트 휘트먼 13)의 [풀잎]이 그것이다.그러나 어떤 신비의 영이 이 시인의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갔음에 틀림없다.이 시인은 한 자루의 텅 빈 대나무 피리의 역할을 했다.그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곡조는 피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곡 조의 주인공은 피리가 아니다.월트 휘트먼은 한 자루의 미국 대나무 피리에 불과 했던 것이다. [풀잎]은 실로 아름다운 시집이다.신에게서 흘러넘친 무엇인가가 이 시인을 사로 잡았음에 틀림없다.내가 아는 한 월트 휘트먼을 빼고는 어떤 미국인도 그러한 것에 사로잡혀 시를 쓸 수가 없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방해하지 말라!잠자코 기록이나 하라.나중에 그대는 후회하게 될 것 이다.이것을 빠뜨리고,저것을 빠뜨렸다고.받아적는 일에만 열중하라.시간이 되면 내 스스로 이야기를 멈출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는가? 사실 나에게 있어서 시간이 끝난 지는 이미 오래다.오늘이 아니라 25년 전에 모든 것이 끝났다.나는 현재 '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마치 편지의 P.S.(추신)처럼. 하지만 P.S.(추신)가 편지의 본문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아아,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이 높은 곳에서도 저 골짜기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어쨌든 좋은 일이다.그 웃음소리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연결시켜 준다. 아아,이 모든 것이 곧 끝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 수는 없는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나를 배반하지 말라. 인간은 유일한 겁장이가 아닌가. 제자들은 유다가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시간이 되었다면 이제 끝을 맺어야 할 것이다. 아아,좋은 시간이...... 3----------------------------------P47 다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참으로 골치아픈 일이 벌어졌다.어젯밤 나는 한 잠도 잘 수가 없었다.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밤새 내 방문을 두들겨대는 것이었다.왜 자기의 책을 빼놓았느냐는 항의였다. 그중에서도 내 방문을 가장 요란하게 두들겨댄 것은 중국의 현자 승찬 1)이었다. 1)?-606.보리달마의 법통을 이어받은 혜가의 제자.나이 40에 이르러 풍병에 걸렸 다가 혜가를 만나 문답을 주고받은 끝에 '본래 풍병에 걸릴 수 없는 본체'를 깨 달아 혜가의 문하에 출가했다.나중에 불교 탄압 정책을 피해 산으로 숨었다가 어 느날 모인 대중에게 나뭇가지 하나를 건네 주고는 홀연 세상을 떠났다."차별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도에 이르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라고 시작되는 그의 [신 심명]은 선종 최고의 경전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심지어 문을 걷어차기까지 했다.이 신비주의자들은 아무도 못 말린다.어느 순 간에 그들이 그대의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그대가 애인 과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승찬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그들은 언제나,어느 시각에나 찾아올 수 있다.그들은 에티켓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승찬은 나를 찾아와 무슨 말을 했던가?그는 나에게 따졌다. "왜 내 책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아아,그렇다.그것이 사실이었다.내가 그의 책을 내 도서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즉,그의 책은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다.따라서 그 의 책을 이야기하고 나면 더 이상 다른 책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의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그의 책은 [신심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신'은 영어의 '죄sin'와 같은 철자가 아니라 'hsin'으로 써야한다.이제 그대는 중국어의 미묘함을 이해할 것이다. 신 씬밍....... 승찬이여,좋다,당신의 책을 포함시키기로 하겠다.승찬의 책이 오늘의 첫번째 책 이다.사실 이 책이 맨 먼저 언급되었어야 할 책이다.그런데 나는 벌써 스무 권의 책을 이야기했다.승판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그러나 내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든 하지 않든,승찬의 [신심명]은 최상의,제1의 책이다. [신심명]은 길이가 아주 짧은 책이다.만일 먼훗날 구제프가 [모든것]이라는 방대 한 책을 쓰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승찬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을 겄이다.왜냐하면 [ 모든것]이라는 제목은 사실 승찬의 작은 책에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구제프는 그 제목으로 1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썼지만,승찬의 몇 개 안 되는 단어들 이 그것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의미깊다.그 단어들은 곧바로 그대의 가슴을 파고든 다. 나는 그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그 단어들이 그대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 를. 승찬의 책은 [이사 우파니샤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짧은 길이의 책이다.하지만 훨씬 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이렇게 이야기하면 가슴이 아프다.왜냐하면 나는 [이사 우파니샤드]가 최고의 책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하지만 할 수 있는가?승찬 이 그 책을 물리쳤다.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린다.[이사 우파니샤드]가 졌기 때문 이다.그리고 또한 승찬이 이긴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기도 하다. 승찬의 책은 아주 작기 때문에 그 전부를 손바닥에 적을 수도 있다.그러나 정말로 손바닥에 적으려면 오른손에 적지 말고 왼손에 적으라.사람들은 "오른쪽은 옳고,왼 쪽은 그르다"고 말하지만,나는 왼쪽이 옳고 오른쪽이 그르다고 말한다.왼쪽은 그대 내면의 아름다움을 뜻한다.따라서 승찬은 왼쪽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다.나는 그 것을 잘 안다.지금까지 나는 사람들의 왼손을 통해서,왼쪽을 통해서,그들의 여성적 인 측면,그들의 음기운을 통해서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양기운을 통해선 나는 누구의 내면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양'이라는 단 어 자체가 접근금지의 느낌을 준다.그것은 "물러나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정 지!들어오지 마시오.개조심!"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오른쪽이 바로 그렇다.오른쪽은 그대 의식의 잘못된 부분에 해당된다.그것은 쓸모 가 있긴 하나 하인과 같은 것이다.오른쪽이 절대로 주인이 되어선 안 된다.따라서 승찬의 [신심명]을 손바닥 위에 적으려면 왼손에 적으라는 것이다. [신심명]은 실로 아름다운 책이다.단어 하나하나가 황금니다.어떤 단어도 삭제할 수가 없다.진리를 전하는 데 꼭 필요한 단어만이 그곳에 적혀 있다.승찬은 틀림없이 대단히 치밀하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적어도 그가 [신심명]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나는 이 책에 대한 강의를 여러날 한 적이 있다.그때만큼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없 었다.승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그때가 내 수많은 강의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 던 순간들이다.말과 침묵이 동시에 그곳에 있었다.말을 하면서도 그곳에 말이 없었 다.승찬은 오직 '말없음'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언어의 인간이 아니라 침묵의 인간이었다.그는 오직 꼭 필요한 것만을 말했다. 승찬선사여,당신을 잊은 것을 용서해 달라.당신 때문에 나는 내 잠을 방해하면서 까지 방문을 두드린 몇 사람들을 기억하게 되었다.따라서 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 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늘의 제1권은 승찬의 [신심명]이다. 제2권은 오스펜스키의 [테르티움 오르가눔]이다.그가 구제프를 알기도 전에 이 책 을 썼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지도 목하는 상태에서 이 책을 썼다.그 자신은 나중에 구제프를 만난 후에야 자신 이 쓴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구제프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가 한 첫 마디 말은 이러한 것이었다. "당신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테르티움 오르가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 니다.비록 내 자신이 그 책을 쓰긴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즉,그 책 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매개체로 해서 쓴 것이라고." 아마도 그를 통해서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장난꾸러기 구제프였을 것이다.아니 면 수피들이 '가장 경지 높은 장나꾸러기'라고 부르는 누군가가 오스펜스키를 통 해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제목의 뜻은 '제3의 논리학'이다.오스펜스키가 [테르티움 오르가눔]을 쓴 것은 기 적이다.세상의 언어로 된 책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이다. 사실 세상에는 위대한 책이 세 권 있다고 한다.첫번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학]이고,두번째는 베이컨의 [신논리학]이다.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오스펜스키의 [ 테르티움 오르가눔]이다.'테르티움'은 '세번째'라는 뜻이다. 책의 서문에서 오스펜스키는 자만심이 아니라 아주 솔직하고 겸허하게,그리고 장 난스럽게-오직 현자만이 장난을 칠수 있다-말했다. "세번째가 존재하기 전에는 첫번째도 존재하지 않았다.첫번째가 세상에 나오기 훨 씬 전부터 이미 세번째는 존재했었다." 오스펜스키는 [테르티움 오르가눔]을 쓰면서 에너지를 전부 써버린 것 같다.그 책 이후로 그는 두번 다시 똑같은 경지를 보여 주지 못했다.[기적을 찾아서]라는 책에 서 구제프의 가르침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다시는 그러한 깊은 통찰력을 나타내지 못 했다. 구제프를 배반하고 나서 오스펜스키는 생애 마지막으로 [테트리움 오르가눔]을 능 가하는 대작을 쓰려고 무한히 노력했다.마지막 시도로서 그는 [제4의 길]이라는 제 목의 책을 썼지만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다.그 책은 좋은 책이긴 하다.대학의 한 교 과 과목으로 선정하기엔 딱 알맞은 책이다.어떤 것을 낮게 평가할 때 나는 이런 표 현을 쓴다. [제4의 길]은 대학 강의의 한 과목으로 선정될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긴 했지만 그 책은 오스펜스키의 저서 중에서 가장 형 편없는 책이다.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저서였다. 위대한 것을 창조하는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노력하면 그대는 실패하고 만 다.그것은 노력없음을 통해서,무위를 통해서 찾아온다.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테트리움 오르가눔]에서 오스펜스키에게 그 일이 일어났지만 오스펜스키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테트리움 오르가눔]에 적힌 말들은 너무나 힘있기 때문에 그것을 쓴 저자가 아직 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며,아직도 스승을 찾고 있고,아직도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 나는 하루종일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매우 가난한 대학생이었 다.보수는 형편없었지만 그것이 당시 내가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였다.그러나 나는 진리 탐구의 강렬한 욕구가 있었기에 밤이면 어김없이 학교를 갔다.낮에는 하 루종일 신문사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학교를 간 것이다.어떻게 보면 내 이름도 밤에 관계가 있는 이름이다.내 이름 '라즈니쉬'는 달을 의미한다.'라즈니'는 밤이고,'이 쉬'는 신이다.즉 '밤의 신' 달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너는 낮에는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밤이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니,네 이름을 완성하려는 것인가?" 이제 나는 그 질문을 대답할 수 있다.그렇다.이 말을 대문자로 적으라.그렇다.나 는 평생에 걸쳐 내 이름의 의미를 완성하려고 추구해 왔다.보름달이 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그래서,그 시절 한 가난한 학생으로서,나는 낮 동안에는 하루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하지만 나는 어차피 미친 자,가난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남에게서 책을 빌려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도서관에서조차 책을 빌리는 것을 싫어했다.도서관의 책들은 매춘부와 같은 것이다.나는 책에서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표시나 밑줄을 발견하는 것이 싫엇다.언제나 나는 새로운 것,겨울 의 흰 눈처럼 때묻지 않은 신선한 것을 사랑해 왔다. [테르티움 오르가눔]은 무척 비싼 책에 속했다.당시 인도에서 내 한 달 봉급은 70 루삐 2)에 불과했다. 2)인도의 화폐단위.1루삐는 약35원. 우연히도 그 책의 정가 역시 70루삐였다.하지만 나는 그 책을 샀다.책방 주인이 놀 라서 말했다. "부자들조차 이 책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지난 5년 동안 나는 이 책을 진 열했지만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사람들은 책의 정가를 보고는 살 마음을 포기 했다.그런데 낮에는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밤에만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인 자네가 어떻게 이 책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말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나는 이 책을 살 것입니다.첫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책값이 얼마가 되더라도 살 것입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내가 읽은 첫번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이것은 제3의 논리학이다.오직 세 가지 논리학만이 존재한다.첫번째는 아리스토텔 레스의 것이고,두번째는 베이컨의 것이다.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나의 것이다." 나는 "이 세번째의 것은 첫번째의 것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오스펜스키의 대담성에 전율을 느꼈다.내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 바로 그 문장이었다. 나는 책방 주인에게 내 한 달 월급을 몽땅 주었다.그것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 이었다.왜냐하면 그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굶고 지내야만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그 아름다웠던 1개월의 시간들을 나는 기억한다.먹을 것도 없고,입을 것도 없던,심지어 잠잘 곳조차 없었던 그때를.방세를 낼 수 없었기 때문 에 나는 내 작은 방에서 쫓겨났다.하지만 나는 이슬이 내리는 밤하늘 아래서 [테르 티움 오르가눔]과 함께 있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고백하건대,나는 그 책을 거의 가로등불에 의지해서 읽었다.그 책이 곧 나의 삶이 었다.실로 아름다운 책이었다.그리고 이제와서 생각하건대 그 책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책의 저자가 자신이 쓰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러한 책을 쓸 수 있었을까?그것은 틀림없이 신의 음모였을 것이다.저 너머의 세계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온 것이다.어떤 대행자가 있었을 것이 다. 수피 성자들은 그 대행자를 '키즈라'라고 부른다.키즈라는 안내자가 필요한 사람들 을 안내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테르티움 오르가눔]이 오늘의 제2권이다. 제3권은 [기트 고빈다],즉 '신의 노래'이다.이 시집을 낸 시인은 인도인들에게 많 은 비난을 받았다.신의 노래인 [기트 고빈다]에서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늘 사랑에 반대하는 인도인들이 이 위대한 시집을 좋아할 리 없었다. [기트 고빈다]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서 노래로 불러야 한다.이 시집 에 대한 그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이 시집은 어느 바울 3)의 노래,어느 미친 자의 노래다. 3)인도 민중신비주의자를 지칭하는 말 그것을 노래부르고 춤출 때만이 그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이 시집의 지은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의 이 름이 무엇이든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겠는가?내가 그의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가 붓다들의 세계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 문이다.하지만 그는 위대한 공헌을 했다. 제4권은......인내를 갖고 듣기 바란다.왜냐하면 나는 열 권을 채워야 하기 때문 이다.그 이상은 셀 수가 없다.왜 열 권까지인가?그것은 내가 열 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어서다.십진법이 만들어진 것은 손가락이 열 개인 것과 관련이 있다.인간은 자신 의 손가락을 사용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기 때문에 십진법이 기본이 된 것 이다. 제4권은 쿤쿤다의 [사마야사르]이다.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책에 대해 강의한 적이 없다.수차례 결심했었지만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다.이 책은 자이나교가 탄생 시킨 책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다.하지만 지나치게 수학적인 책이다.그래서 나 는 이 책에 대한 강의를 포기했던 것이다.나는 시를 사랑한다.만일 이것이 시적인 책이었다면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먼저 강의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강의를 했었다.하지만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수학자나 논리학자인 사람에 대해서는 강의하지 않았 다.수학은 너무 딱딱하고 논리는 사막과 같다. 쿤드쿤다의 책은 아름답다.하지만 나는 단지 그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은,그것이 너무 수학적인 책이기 때문이다.수학 역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 그 자체의 리듬을 갖고 있다.그래서 나는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그것은 그 자 체의 진리를 갖고 있다.하지만 너무 답답하고 너무 '오른손'에만 쏠려 있다. [사마야사르]는 '본질'이라는 뜻이다.그대 만일 우연이라도 쿤드쿤다의 [사마야사 르]를 갖게 되면 절대로 그 책을 왼손에 들지 말라.오른손으로 그 책을 들라.[사마 야사르]는 오른손에 해당하는 책이다.그 점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이 책에 대해 강의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물론 눈물을 머금은 상태에서, 왜냐하면 나는 그 책을 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이다.나는 쿤드쿤다를 사랑한다.동시에 나는 그의 수학적인 표현법을 무척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