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동안의 사랑 가브리엘 G. 마르께스 지음 정성호 옭김 1 그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큼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의 짝 사랑의 운명을 상기시켜 주곤 하였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적막에 싸인 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실로 오랫만에 하나의 사건에 입회해 달라는 긴급 호출을 받은 그는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제는 무력해진 전쟁 영웅이며, 아동 사진작가이며, 체스에 관한 한 우르비노 박사의 가장 호 적수였던 안틸리즈의 망명객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이제 황금빚 시안화물의 달콤한 향기 속에서 기억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해간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언제나 잠읕 자던 군용 침대 위에 담요로 덮여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그가 독극물을 증류시키는 데 사용하던 현상 접시가 얹힌 의자가 놓여 있었다. 마루바닥에는 덴마크 산 검은색 개 한 마리가 침대 다리에 묶인 채 나자빠져 있었고, 그 옆에는 지팡이가 놓여있었다. 한쪽 창문으로는 막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의 여명이 침실인 동시에 연구실이기도 한 갑갑하고 혼잡스런 방을 비춰 주고 있었지만, 우르비노 박사는 그 빚만으로도 한 죽음의 권위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나머지 창들은 방안의 다른 모든 틈새들과 마찬가지로 헝겊 조각이나 까만색 마분지로 밀폐되어 있어 한층 더 중압감을 느끼게 했다. 빨간 종이로 덮인 평범한 전구 밑의 조리대에는 딱지도 붙지 않은 병들과 단지들이 찌그러진 두 개의 백납 쟁반과 함께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시신 옆에 놓여 있던 것이 염착 용해용으로 쓰이던 세 번째 쟁반이었다. 낡은 신문과 잡지들, 유리 쟁반에 담긴 원판 더미, 부서진 가구 등이 온 방에 널려 있었지만, 주인의 부지런한 손길 때문인지 먼지가 뒤덮여 있지는 않았다. 창문을 통해 홀러들어오는 공기가 약간의 환기를 시켜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큼한 아몬드 속에 담긴 불운한 사랑의 꺼져가는 마지막 불씨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무런 선입관 없이도 이곳이 은총스런 임종을 맞이하기에 그다지 적절한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을 더러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무질서야말로 알 수 없는 신의 섭리에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 검시관이 지방 진료소에서 법의학 과정을 수료한 한 젊은 의대생과 함께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방을 환기시키고 시신을 덮어준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경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의에 가까운 듯한 엄숙한 태도로 우르비노 박사를 맞았다. 그와 고인이 나누었던 우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명한 스승 우르비노 박사는 임상 진료소에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학생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런 다음, 그는 마치 한송이 꽃잎을 다루듯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으로 담요 자락을 조심스럽게 움켜쥐고는 천천히, 신성한 동작으로 담요를 벗겼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눈은 치켜떠져 있었으며, 피부는 푸르딩딩하게 변해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지난 밤에 보았을 때보다 쉰 살은 더 늙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반짝이는 눈동자와, 노르스름한 턱수염과 머리칼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복부에는 오래된 흉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목발을 짚고 다녔기 때문에 몸통과 두 팔은 마치 해적선의 노예처럼 건장해 보였지만, 무기력한 다리는 굶주린 고아의 다리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잠시 시신을 살펴보던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죽음에 대한 부질없는 싸움을 시작한 후로는 별로 느껴보지 못한 비애에 사로잡혔다. "빌어먹을 !"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다 끝나 버렸군." 그는 시신을 도로 담요로 덮고는 학자적 근엄함을 회복했다. 지난해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던 그는 3일 간의 공식적인 행사로 축하를 받았는데, 그의 감사 연설은 다시 한 번 은퇴라는 유혹을 강하게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죽고 나면 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내 계획 중에는 들어있지 않지요." 비록 오른쪽 귀가 점점 더 들리지 않게 되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감추기 위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린넨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었으며 조끼 위로는 금 시계줄을 늘어뜨린 차림새를 유지했었다. 그의 진주 조개빛 턱수염과, 앞가르마를 타서 조심스레 빗어넘긴 진주조개빚 머리칼은 그의 인격을 충실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는 기억의 침식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종이 조각에다 메모를 써갈겨서 아무 주머니에나 쭈셔박아 두는 것이 그 방법이었는데, 그의 복잡한 진료 가방 속에 뒤엉킨 기구들이나 약병, 혹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워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그 도시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훌륭한 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괴팍스런 사람이기도 했다. 지나친 학식의 과시나 자신의 명성에 대한 약간은 부정직한 태도 등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조금씩 갉아먹기도 했다. 검시관이나 인턴에 대한 그의 지시는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심지어는 검시라는 것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였다. 집안에 풍기고 있는 냄새만으로도 사망 원인이 사진용 산에 의해 활성화된 시안화물 증발 기체라는 사실의 충분한 증거가 되었으며,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우연히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에는 그 분야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검시관이 뭔가 머뭇거리는 듯한 눈치를 보이자, 그는 자신의 전형적인 말투로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사망 진단서애 서명할 사람은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젊은 의사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는 시안화물이 시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할 기회가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의대에서 한번도 그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으나, 안데스 지방의 억양과 쉽사리 붉어지는 얼굴 등으로 미루어 그가 이 도시에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만간 상사병 때문에 미쳐 버린 사람이 생겨나 당신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거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수많은 자살들 중에서 사랑의 고통이 아닌 이유 때문에 시안화물로 자살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정말로 그런 기회를 잡게 되면 조심해서 다루시오." 그는 인턴을 향해 말했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가슴 속에 수정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오." 그런 다음, 그는 검시관에게 반드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한 어투로,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 당일 오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시장에게는 나중에 내가 말하겠소." 그가 말했다. 그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무척이나 엄격한 생활을 했으며, 자신의 예술을 가지고 필요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으니 어느 한 서랍엔가 장례식 경비쯤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 돈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아무 상관은 없소. 모든 일은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말이오." 우르비노 박사는 신문사에다 사진사가 자연사했음을 알리라는 명령도 내렸다. 어차피 그리 대단한 뉴스거리는 못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만약 필요하다면 총독에게도 알리겠소." 하고 우르비노 박사가 덧붙였다.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공무원인 검시관은 시민의 의무에 대한 박사의 감정이 심지어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격앙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장례식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법적 절차들을 건너 뛸 수 있다는 편의에 놀라움을 느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유일한 일은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성소에 묻힐 수 있게 하기 위해 대주교에게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검시관은 자신의 버릇없음에 스스로 당황해 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고자 했다. "이분이 성인이었다는 점은 저도 알고 있읍니다." 그가 말했다. "단순한 성인보다 더 귀한 인물이었소." 우르비노 박사가 대답했다. "무신론적 성인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건 신이 결정할 문제겠지." 식민지 도시의 다른 한쪽 멀리서 대미사를 알리는 대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비노 박사는 반달 모양의 금테 안경을 끼고, 건드리기만 하면 열리게 되어 있는 가느스름하고 우아한 자신의 시계를 돌여다보았다. 자칫하면 오순절 미사 시간에 늦올 판이었다. 거실에는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바퀴 달린 커다란 카메라가 있고, 뒷쪽은 사제 페인트로 옅은 바다색이 칠해져 있었으며, 벽은 기억 할 만한 순간들을 담은 어린이들의 사진으로 덮여 있었다. 첫 영성체에서 토끼 의상을 입은 생일 파티 장면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오랜 세월 동안 오후에 체스를 두다가 수를 생각하느라 언뜻 벽을 바라보면 예전보다 더 많은 사진들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일말의 슬픔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영광이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미래, 그 이름모를 아이들에 의해 통치되고 혹은 더럽혀질 미래의 단초가 그 무심한 초상들에 숨어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낡은 마도로스 파이프 몇 개가 들어있 는 항아리 옆에 아직 승부를 가리지 못한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우울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우르비노 박사는 그 체스판을 살펴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게임이 지난 밤에 이루어진 것임올 알 수 있었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매일같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최소한 세 사람의 상대방과 체스를 두곤 했었는데, 게임은 언제나 마무리를 지었으며 게임이 끝나면 체스판과 말들을 상자에 넣어 책상 서랍에 넣어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는 그가 백을 쥐고 게임을 했으며, 네 수만 더 두면 꼼짝없이 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만약 무슨 범죄가 개입되어 있다면 이것이 좋은 단서가 되겠군." 우르비노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교묘한 함정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명밖에 없으니까." 만약 그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 있다면, 우르비노는 그 불굴의 전사,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다하기 전에는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는 그가 생애의 마지막 전투를 끝내지 않은 채 내버려둔 것이었다. 그날 아침 여섯 시, 마지막 순찰을 돌고 있던 야경꾼이 대문에 붙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노크하지 말고 그냥 들어오시오." "경찰을 불러 주시오." 잠시 후 인턴과 함께 도착한 검시관은 시큼한 아몬드 향내와 모순 될지도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집안을 수색했다. 그러나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끝나지 않은 체스판을 살펴보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검시관은 책상 위의 종이들 사이에서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이름이 씌어진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풀칠을 얼마나 단단히 해 놓았던지 편지를 꺼내기 위해서는 봉투를 갈기갈기 찢어야 할 형편이었다. 더 많은 빚이 필요해진 박사는 창가에 드리워져 있던 시커먼 커튼을 걷었다. 11매의 종이를 앞뒤로 빽빽이 메운 그의 필체를 얼핏 확인한 다음, 첫 구절을 읽은 우르비노 박사는 오순절 미사에 참석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잃어버린 이야기의 맥락을 되찾기 위해 몇 페이지를 되짚어가며 마침내 읽기를 마친 그는 무척이나 멀고 험한 여행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애써 감추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동요하고 있었다. 박사의 입술은 시체만큼이나 파랑게 질려 있었고, 편지를 도로 접어 조끼 주머니에 집어넣는 그의 손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검시관과 젊은 의사의 존재를 상기한 그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별 것 아니로군." 그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 지시문이오." 그 설명은 절반쯤 사실이었으나 그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지시대로 바닥의 느슨한 타일 한 장을 들어내니, 금고 번호가 적힌 낡은 장부 한 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금액은 생각처럼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장례 비용과 기타 소소한 잡비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우르비노 박사는 복음 봉독 때까지도 성당에 도착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철든 후로 일요일 미사에 세 번째 빠지게 될 모양이군." 박사가 증얼거렸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해하시겠지." 그래서 박사는 자신의 아내에게 편지의 비밀을 보여주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고 그곳에 좀더 머무르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진취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인물인 양 행동했던 그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고 깊어하는 그 도시의 수많은 카리브 망명객들에게 부음을 전하기로 약속했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모두들에게 있어 자신의 행동이 환멸이라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히 밝혀진 이후에도 계속 그런 식으로 처신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또한 저명한 전문가에서 이름없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의 체스 상대들과, 어쩌면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약간은 덜 친숙한 지인들에게도 기별할 생각이었다. 유서를 읽기 전애는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지만, 읽고 나니 모든 것이 불분명해져 버렸다. 장례식은 뜨거운 날씨를 감안할 때 다섯시 정도가 적당할 것이었다. 만약 필요하다면, 정오부터는 동료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며 은혼식 잔치를 벌이고 있을 그의 총에하는 제자 라씨데스 올리벨라 의사의 시골 집에 가 있을 수도 있었다. 초창기의 고난에 찬 투쟁의 세월을 보낸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일상의 안정을 되찾고 그 분야에서는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존경과 권위를 확보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이른 새벽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비밀 요법을 시작하곤 했다.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브롬화 칼륨, 비오는 날의 통증을 없애 주는 살리신산염,현기증에 효력이 있는 에르고스테를, 기분 좋은 숙면을 위한 벨라도나 등이 그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남몰래 시간마다 약을 먹곤 했다. 의사로서, 선생으로서 살아오는 오랜 세월 동안 언제나 고령으로 인한 고통에 완화제를 처방하는 것에 반대해왔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참는 것이 남의 고통을 참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박사의 주머니 속에는 그렇게 많은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씻기 위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마음껏 빨아들이곤 하는 장뇌가 언제나 들어 있었다. 박사는 임상 진료소에서의 강의 준비를 위해 한 시간 정도를 서재에서 보내곤 했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여덟시부터 의대에서 강의했다. 그는 또한 파리의 서적상이 우송해주는, 혹은 현지 서적상이 대신 주문해준 바르셀로나에서 발송된 최신 서적들을 왕성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물론, 스패인 문학보다는 프랑스 쪽에 더욱 익숙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는 아침에는 결코 책을 읽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나서 한 시간 정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밤 시간 동안이 그의 독서 시간이었다. 서재에서의 강의 준비가 끝나면 욕실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15분 동안 숨쉬기 체조를 하는데, 언제나 수탉이 홰를 치는 쪽을 향해 숨을 내쉬곤 했다. 그쪽에서 새로운 공기가 밀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에 목욕을 하고, 화리나 게게뉘베르제 향수를 듬북 써서 수염을 매만지며, 하안 린넨 정장에 조끼를 받쳐 입고 중절모자와 코도반 가죽 구두를 신는다. 여든 하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콜레라가 한바탕 휩쓴 직후의 파리에서 돌아온 당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태평스런 성격과 정열적인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앞 가르마를 타서 조심스레 빗어 넘긴 그의 머리칼은 색깔의 변화만 제외하면 젊은 날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의 아침식사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으나 위장을 위해 쓴쑥꽃이 든 독자적인 식이요법을 따랐으며, 손수 껍질을 벗긴 마늘과 정향 하나씩을 먹었는데, 심장이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빵과 함께 조심스럽게 씹어먹곤 했다. 강의 이후에는 그의 시민적 창의성이나 성당, 혹은 예술적 사회적 개혁과 관련된 약속이 없는 날이 별로 드물었다. 그는 거의 언제나 집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하녀들이 망고나무 잎사귀 밑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와 거리 행상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마치 어느 천사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그 뜨거운 오후의 집안으로 지쳐빠진 증기들을 쏟아보내는 만으로부터의 기름과 자동차 소음 등을 잠결에 들으며 안뜰의 테라스에서 10분 동안 낮잠을 잤다. 그리고는, 한 시간 동안 대개 소설이나 역사에 대한 신간들을 읽고, 몇 년 동안 조그만 홍미거리가 되어준 앵무새에게 프랑스어와 노래를 가르친다. 4시가 되면 커다란 잔으로 얼음을 넣은 소다수를 한잔 마시고, 환자들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 나이에도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환자를 진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일일이 집까지 찾아가서 치료를 해주곤 했다. 도시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어디든 안전하게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는 두 마리의 누런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했는데, 그것이 별로 신통치 않게 되자 한 마리의 말이 끄는 2인승 사륜 마차로 바꾸어 계속해서 그것만 타고 다녔다. 이미 세상에서는 마차라는 것이 사라져가기 시작하고, 도시에 남은 마차라고는 관광객들을 태워 주거나 장례식에 화환을 실어다 주는 정도가 되어 버렸는데, 그가 그렇게도 마차를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유행에 대한 반발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사가 은퇴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 자신도 전혀 희망이 없는 환자들 외에는 아무도 자기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것 또한 전문화의 한 형태일 뿐이었다. 그는 환자를 쳐다만 보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고, 의약품들을 점점 더 신용하지 않게 되어갔으며, 수술의 대중화를 우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메스야말로 의약이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최대의 증거이다." 그는 엄격한 의미로 모든 의약은 독이며, 일반적인 음식물 가운데 70퍼센트는 죽음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얼마 안되는 의약을 알고 있는 의사는 몇몇에 불과하다.' 그가 강의에서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는 젊은 날의 열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숙명적 휴머니스트로 정의할 단계로까지 변화한 것이었다. '죽음의 임자는 각 개인이다. 죽음에 직면한 자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고통의 공포 없이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미 보편화되어 버렸다고도 할 수 있을 그의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독립해서 활동을 시작한 옛 제자들까지도 끊임없이 그에게 자문을 구해왔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에게 그때야말로 임상적 안목이라 불리던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늘 배타적이고 비싼 의사였으며, 그의 환자들은 바이스로이의 고풍스런 저택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어찌나 규칙적이었던지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 그의 아내는 어디로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아야할지 훤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 젊은 시절의 그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파리쉬 카페에 들르곤 했었는데, 바로 그곳이 그가 장인의 친구나 몇몇 카리브 망명객들을 상대로 체스를 익힌 곳이었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 들어서는 파리쉬 카페를 찾아가지 않고, 대신 사회 클럽의 후원 아래 전국적인 체스 대회를 조직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그 도시에 도착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때는 아직 아동 사진작가는 아니었지만,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체스 꽤나 둔다는 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로서는 체스에 완전히 빠져 있을 무렵, 게다가 자신을 만쪽시켜 줄 적수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올 무렵에 그를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덕분에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르비노 박사는 무조건 그의 보호자를 자임했으며 모든 일에 있어 그의 뒤를 돌봐 주었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혹은 그 어떤 불명예스런 전쟁애서 그의 몸이 그렇게 망가져 버렸는지 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가 사진관을 차릴 수 있도록 돈을 꾸어 주었고,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마그네슴 플래쉬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어린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한 푼도 남김 없이 양심적으로 빌린 돈을 되 갚았다. 모든 것은 체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저녁식사 이후인 7시부터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월등히 한수 위였으므로 몇 수를 잡아주고 게임을 벌였다. 그러다가 그 몇 수가 차츰 줄어들어 마침내는 서로 맞둘 수도 있게까지 되었다. 후에 돈 갈릴레오 다콘테가 처음으로 야외극장을 개장했을 때, 그의 가장 충실한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였으므로 체스 게임은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날 밤에만 벌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이면 이미 그와 우르비노 박사는 영화 구경을 함께 갈 정도로 친해져 있었지만, 박사의 아내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지를 못했다. 그녀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줄거리를 쫓아갈 수 있을 만한 인내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그 한 가지 이유이고,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그 누구에게도 별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직관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일요일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라스에서 독서를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웬만큼 급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일요일에 진료를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오래 전부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번 오순절에는 말하자면 무척이나 드문 두 가지 우연한 사건이 한꺼번에 겹친 셈이었다. 친구의 죽음과, 아끼는 제자의 은혼식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시신을 살펴본 이후에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겨보기로 작정했다. 마차에 오르자 마자 그는 다시 한 번 친구의 유서를 꺼내 보고는, 노예 지역의 어느 곳으로 향하라고 마부에게 명령했다. 그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마부는 그가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를 확인하고 실어했다. 아니, 결코 잘못이 아니었다. 주소가 너무나 분명히 적혀 있었고, 그것을 쓴 사람 또한 절대로 잘못 쓰지 않을 만큼 확실히 알고 있을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우르비노 박사는 다시 편지의 첫장을 읽기 시작했고,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을지도 모를 불길한 예감에 다시 한 번 사로잡혔다. 물론 그것이 죽어가는 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헛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말이다. 하늘은 아침 일찍부터 잔뜩 찌푸려 있었고 날씨도 선선한 편이었지만, 적어도 정오가 되기 전에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마부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도시의 거친 자갈길을 헤치고 나갔지만, 오순절 미사에서 돌아오는 성도들의 소란에 말이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이따금씩 멈춰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리는 종이 화환과 음악소리, 꽃, 그리고 발코니에서 의식을 지켜보는 색색가지 파라솔과 목양목 프릴을 두른 아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해방자의 동상이 아프리카 야자나무와 새로 설치한 가로등 사이에 거의 가려져 버린 대성당의 광장은 미사가 끝났기 때문인지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고 있었고, 장엄하고 소란스런 파리쉬 카페에는 빈자리라곤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한 혼잡 속에서도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우르비노 박사뿐이었다. 그의 마차는 에나멜 가죽으로 된 지붕을 언제나 반짝반짝하게 닦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마차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이었고, 부속품들은 모두 소금기에도 부식되지 않도록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바퀴와 기둥들은 마치 비엔나의 오페라 축제의 밤을 연상시키려는 듯 금박이 붙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수가 깨끗한 셔츠를 입기를 원하는 반면에, 그는 아직도 자신의 마부에게 색 바랜 제복과 곡마단장 같은 실크 모자을 쓰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시대에 뒤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카리브의 삼복 더위를 감안하면 잔인한 처사라고까지 생각될 수 있는 것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그 도시에 대한 거의 광적인 애정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박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 일요일처럼 노예 지역의 소란 속을 과감히 헤집고 들어가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마부는 박사가 요구하는 집을 찾기 위해 수없이 모퉁이를 돌아가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그들이 소택지를 지나갈 때, 우르비노 박사는 안 뜰의 쟈스민 향기와 더불어 찾아드는 그 숱한 불면의 새벽과, 자신의 생애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과거로부터의 한줄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적대적인 중압감들, 그 기분 나쁜 침묵, 숨막힐 듯한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아스라한 향수로 그렇게 자주 머리에 떠오르곤 하던 그 전염병도 마차가 마치 밀려나가는 파도에 쓸려 버린 것 같은 도살장의 고기 찌꺼기를 놓고 말똥가리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거리의 웅덩이를 지나느라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집들이 벽돌로 지어져 있는 바이스로이의 도시와는 달리, 이곳의 집들은 비막이 판자와 함석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대부분은 스페인 통치자들에게서 물려받은 하수구가 넘쳐 흐를 경우에 대비해 말뚝 위에 세워져 있었다. 모든 것들이 비참하고 황량해 보였지만, 지저분한 선술집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술로써 오순절을 경축하고 있는 듯 왁자지껄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사가 찾던 집을 발견했을 무렵에는 누더기를 걸친 한 패거리의 쪼무라기들이 마차를 쫓아오며 마부의 허풍스런 화려함을 놀려대는 바람에 그는 채찍을 휠둘러 그들을 쫓아 버려야 했다. 번지수도 붙어 있지 않은 그 집의 외관은 창가의 커튼과 낡은 교회에서 뜯어온 것 같은 멋진 대문만 제외하면 한층 더 황량한 다른 이웃집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마부가 대문을 두드려 찾던 집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박사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자, 어둠침침한 집안에는 까만 옷을 입고 귀 뒤에는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꽃은 중년 부인이 서 있었다. 사십은 되어 보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노란 눈동자와 마치 쇠줄로 만든 헬멧처럼 머리칼이 머리에 착 달라붙은 모습을 한 혼혈 여인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사진사의 작업실에서 체스를 두다가 여러 번 그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고, 한 번은 삼일열이라는 병에 시달리는 그녀를 위해 처방을 써준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박사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그를 반긴다기보다는 집안으로 인도하겠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거실은 마치 숲속의 오솔길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고, 가구와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제각기 자연스러운 위치에 빼곡히 놓여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무심코 지난 세기 어느 가을 날의 월요일과 파리 몽마르트르 26번가의 어느 골동품 가게를 떠올렸다. 여인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강렬한 스페인 어로 말을 꺼냈다. "여긴 당신의 집입니다. 박사님.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우르비노 박사는 일말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의 엄청난 상심과 슬픔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이 방문이 불필요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유서에 씌어진 글의 내용을 자신보다도 오히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녀는 비밀이라고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이 보잘것 없는 지방 도시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동안, 사랑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도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복종과 헌신으로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생애의 반을 함께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숨올 거두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포르토우프린스의 요양소에서 만났다. 그녀가 태어났고, 그가 탈주자로서의 청년기를 보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그녀는 그를 따라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었다. 명목은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지만, 그들 둘다 그녀가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 주일에 한 번씩 쌍아무르의 연구실을 청소하고 정리해 주었지만, 제 아무리 악의를 품은 이웃일지라도 그들 관계의 외관과 본질을 혼동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불완전한 신체가 걸을 수 있는 그의 능력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르비노 박사 자신은 오로지 의학적인 이유 만을 생각하고 있었고, 만약 그가 직접 자신의 편지에서 밝히지 않았더라면 그 친구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로서는 과거도 없이, 폐쇄된 사회의 선입관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자유로운 남녀가 비공식적인 사랑이라는 위험한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그의 바램'이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물론 때때로 갑작스런 행복의 폭발은 있었겠지만 결코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한 남자와 함께 나눈 그 비밀스런 생애가 그녀에게 경멸을 가져다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삶은 그녀에게 어쩌면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도 그들은 이태리에서 옮겨 온 돈 갈릴레오 다콘테가 17세기 수도원 터에 야외 극장을 세운 이후, 한 달에 최소한 두 번씩은 그랬던 것처럼 각자 극장으로 가서, 역시 떨어져 앉은 채 영화를 보았다. 그들이 본 영화는 한 해 전에 인기가 있었던 소설을 영화화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였는데, 우르비노 박사도 그 책을 읽으며 전쟁의 야만성에 가슴 아파한 적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 연구실로 돌아온 그가 옛 생각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아마도 그것이 진흙 속에서 죽어가던 한 부상병의 모습을 담은 처참한 장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체스를 한판 두자고 제안했고, 역시 그녀의 뜻을 저버리기 싫어 게임에 응한 그는 당연히 백을 쥐고 무심코 말을 옮기다가 네 수 후면 자기가 지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녀보다 먼저 깨닫고는 돌을 던져 버렸다. 따라서 그의 마지막 상대는 우르비노의 생각처럼 예로니모 아르고테 장군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는 놀란 마음으로 증얼거렸다. "대단하군 !" 그녀는 자기가 잘 두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미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던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자신의 말에 애정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도장의 음악소리가 끊길 무렵이었으니 11시 15분경에 체스를 중단시킨 그는 그녀더러 그만 가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인물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쥬베날 우르비노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하더란 것이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그들 사이의 유일한 공감대는 과학이 아니라 이성의 대화라고 이해되는 체스에 대한 집착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둘은 그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때, 그녀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자신의 고통을 마감시킬 때가 가까왔다는 사실과, 이제 그에게는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박사는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럼 당신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오?" 박사는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단지 알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고통을 참아내고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11개월은 그에게 있어 오로지 잔혹한 고통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임무는 그의 상태를 내게 알려 주는 일이었소." 박사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었어요." 여인은 충격을 받은 말투로 말했다. "난 그분을 너무나 사랑했으니까요." 모든 사정을 다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 같기도 한 우르비노 박사는 그렇게 단순한 소리를 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때 그 순간의 그녀를 자신의 기억 속에 고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뱀 같은 눈과 귀 뒤의 장미는 그녀의 새까만 옷과 함께 그녀를 마치 굳건한 강의 우상처럼 보이게 했다. 옛날, 그들이 아이티의 어느 사람 없는 해변에서 사랑을 나눈 후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을 때,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었다. "난 절대 늙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이 말을 맨손으로 시간에 대항해 싸우겠다는 영웅적인 결심이라고 해석했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70살이 되면 스스로 더 이상의 삶을 포기하겠다는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그는 그해 1월 23일로 70번째 생일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휴일인 오순절 전날 밤, 성령의 미사로 성화되는 그 전날 밤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으며,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함께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는 맹목적인 열정으로 삶을 사랑했고, 바다와 사랑을 사랑했으며, 자신의 개와 그녀를 사랑했다. 정해진 날짜가 다가오자, 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이 스스로의 결심 때문이 아니라 냉혹한 운명 때문이라는 듯 점점 더 절망으로 삐져들기 시작했다. "지난 밤, 내가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개라도 데리고 오려 했으나, 그는 목발 옆에서 졸고 있는 그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와 함깨 가야겠다." 그는 자신이 편지를 쓰는 동안 개를 침대 다리에 묶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가 끈을 잘못 묶는 바람에 개는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그녀의 불성실이었는데, 그것은 그 개의 차가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 주인을 기억하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는 개가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대답했다. "그건 개가 스스로 그러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녀는 그것이 기뺐다. 전날 밤, 이미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가고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편지쓰기를 멈추었을 때의 그의 부탁대로 죽은 연인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한송이 장미로 나를 기억해 주오." 이것이 그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자정이 조금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입은 옷 그대로 침대에 누워 몇 대의 담배를 피며 그가 길고 힘든 편지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을 주었고, 3시가 조금 못되어 개들이 짖기 시작할 무렵에 커피물을 난로에 얹고는 상복으로 갈아 입고 마당에서 새벽 첫 장미를 꺾은 것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때 이미 얼마나 완벽하게 이 한심한 여인의 기억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까지도 알 것 같았다. 원칙을 갖지 못한 사람만이 슬픔을 그렇게 고분고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그 뒤에 한 말들은 그의 그런 생각을 더욱 뒷받침헤 주는 것일뿐이었다. 그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르비노 박사가 생각하기엔 편지의 어느 구절엔가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가 씌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며, 추억의 늪에 빠져 남은 세월을 허송하지도 않을 것이며, 다른 과부들처럼 자신의 수의를 지으며 네 모퉁이의 벽속에 산 채로 매장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편지에 의하면 이제 자신의 소유가 된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처분할 작정이었으며, 언제나처럼 행복했던 빈자의 이 죽음의 함정 속에서 아무런 불평도 없이 살아갈 생각이었다. '빈자의 이 죽음의 함정'이라는 한마디가 쥬베날 우르비노로 하여금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그것은 전혀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도시, 그의 도시는 시간의 가장자리에 변함없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야행성 공포와 사춘기의 고독한 쾌락이 깃든, 꽃들이 시들고 소금이 녹아버리는 곳, 시들어 버린 월계수와 썩은 늪 사이로 서서히 세월만 흘러갈 뿐 지난 4세기 동안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타는 듯이 말라빠진 똑같은 도시였다. 겨울이면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변소가 넘쳐버려 거리는 구역질나는 수렁으로 변해 버리곤 했다. 여름이면 건물의 지붕이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광풍에 실려, 제아무리 굳건한 방어벽을 친 상상력마저 뚫고 들어오는 작열하는 백악처럼 세찬 먼지가 있었다. 토요일이면 가난한 혼혈인들이 가축과 가재 도구들을 몽땅 챙겨 늪지 한쪽 모퉁이의 초라한 판자집을 버리고 요란스럽게 식민 구역의 바위투성이 해변으로 몰려 가곤 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늙은이들 중에는 불에 달군 쇠로 갸슴에 왕족 노예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주말 동안 그들은 난장판에 가까운 춤판을 벌였으며, 집에서 담근 술을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퍼마시는가 하면, 이카코 나무 사이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고, 일요일 한밤중이 되어서야 그 소란스런 파티를 마치는 것이었다. 한 주의 나머지 날들 또한 그 요란한 군중들은 살수도, 팔 수도 있는 만물상을 가진 이웃 동네 골목과 광장을 메우며 몰려 다녔고, 생선 튀김 냄새를 풍기는 인간 박람회의 광폭스러움으로 그 죽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바로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생활이었던 것이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노예제도의 폐지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태어나고 자라난 영예로운 타락이라는 상황을 더욱 촉진시켰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대가문들은 침묵 속에 자신들의 황폐한 궁궐로 침몰해갔다. 해적들의 기습 상륙에 그다지도 유용하게 쓰이던 거친 자갈 도로를 따라 하양게 바랜 벽들의 갈라진 틈 새나 발코니 너머 잡초들이 삐져나왔고, 오후 두 시의 유일한 삶의 흔적은 가물거리는 낮잠 사이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맥뼈진 피아노 소리뿐이었다. 집안에서는 향내 스민 시원한 침실에서 마치 부끄러운 전염병이기라도 한듯 여인들이 햇살을 피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아침 미사 때조차 그녀들은 배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그들의 섹스는 느리고 까다로왔으며, 때로는 불길한 미신 때문에 방해를 받기도 했다. 인생은 한없이 지루한 것처럼 보였다. 밤과 낮이 교차되는 숨막히는 순간이 되면, 택지를 빠져나온 잔혹한 모기떼가 설치기 시작하고, 따뜻하고 애처로운 인간의 배설물의 부드러운 숨결이 누군가의 영혼 깊은 곳에 죽음의 확신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쥬베날 우르비노가 자신의 파리의 우울 속에 이상화시키고 싶어하던 식민지 도시에서의 바로 그런 생활은 기억 속의 환각이었다. 18세기에는 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아프리카 노예 시장이라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명성 덕분에 도시의 상업은 카리브해 부근에서 가장 크게 번성했었다. 그곳은 또한 그라나다의 새로운 왕국의 총독들이 끊임없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그들은 실재에 대한 감각마저 방해하는 세월에 찌든 이슬비 아래 얼어붙은 머나먼 수도보다는 세계의 바다라는 이 해변에서 통치하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일 년에 몇 차례씩 포토시, 퀴토, 그리고 베라크루즈의 보물들을 운반하는 돛배 함대가 만으로 모여들었으며, 도시는 영광스런 세월들을 보냈다. 1788년 6월 8일, 금요일 오후 네시, 산 호세 함대가 당시 돈으로 5천억 페소 상당의 보석과 금속들읕 싣고 카디즈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 함대는 항구의 입구에서 영국 함대에 의해 침몰되었고,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나도록 인양되지 못하고 있었다. 산호 침대 속에 누워 있을 그 보물들과 다리 위의 인도에 떠오른 사령관의 시체는 역사가들에 의해 과거로부터 건져 올린 도시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의 집은 만을 가로지른 라 만가의 주거 지역에 있었다. 넓직하고 시원스런 그 단층 건물엔 바깥쪽 테라스 위에 도리아식 기등이 받쳐진 현관이 있어서 고요하고 독기 어린 바닷물, 그리고 만에 침몰해 있을 함대의 파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문에서 부엌에 이르기까지, 바닥은 모두 새까맣고 하얀 바둑판 모양의 타일로 덮여 있었다. 이는 금세기 초에 벼락 부자들을 위한 주거 지역을 건설한 카탈로니아 지방 기술자들의 보편적인 약점 때문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르비노 박사는 그 바닥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커다란 응접실은 집안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천정이 높았으며, 여섯 개의 넓직한 창문이 거리를 향해 뚫려 있었고, 가지 뻗은 덩굴과 포도송이, 그리고 청동의 숲속에서 목신의 파이프에 마음을 뺏긴 처녀들이 그려진 크고 아름다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식당과 구분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파수꾼처럼 버티고 서 있는 괘종시계를 포함한 거실의 모든 가구들은 19세기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진품들이었으며, 벽에 걸려 있는 램프는 모두 눈물방울 모양의 수정이었고, 사방에 세브르 꽃병과 자기가 널려 있는가 하면, 이국적인 전원 풍경울 담은 조그만 설화 석고상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럽풍의 분위기는 버드나무 안락의자와 비엔나 흔들의자, 그리고 현지 기술자가 만든 가죽 발판의자가 서로 뒤섞여 있는 집안의 다른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색색가지 장식과 고딕채의 주인 이름이 비단실로 수 놓아진 화려한 해먹 침실의 침대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원래는 잔치 때의 식사 장소로 만들어졌던 식당 옆의 공간은 그 도시를 찾은 명사들을 위해 조그만 음악회가 열리는 방으로 사용되었다. 보다 조용한 분위기를 위해 바닥에는 파리에서 사온 터키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최신 모델의 축음기와 레코드판을 꽃은 스탠드가 놓여 있었고, 한쪽 구석의 마닐라 슬 휠장 뒤에는 우르비노 박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손대지 않는 피아노가 있었다. 온 집안에서 대지에 굳게 발을 디디고 있는, 훌륭한 감각과 조심성을 지닌 한 여인의 존재가 감지되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장엄함이 흐르고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은 세월이 훼방을 놓기 전까지는 변함없는 우르비노 박사의 성역인 서재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물려준 호도나무 책상과 술 달린 가죽의자 주위로 온 벽과 심지어 창문에조차 유리문을 단 선반을 붙이고, 금박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독특한 송아지 가죽 껍질을 씌운 3천 권의 장서를 거의 아무렇게나 꽃아두었다. 항구에서 불어오는 역한 갯바람과 소음이 가득찬 다름 방들과는 달리, 서재는 언제나 마치 수도원 같은 평정과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카리브 해의 미신 속에서 태어나고 양육된 사람들은 실제로 있지도 않는 시원함을 갈망하며 문과 창문을 열어놓듯, 우르비노 박사와 그의 부인은 처음에는 너무나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열기에 대한 로마인들의 전략의 장점을 깨닫고, 마치 혼수상태 같은 8월에는 거리의 뜨거운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집안의 모든 통로를 모조리 닫아 걸었다가,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밤이 되면 모조리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집은 광폭한 라만가의 태양 아래 가장 시원한 곳이 되었으며, 컴컴한 침실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오후의 현관에 앉아 뉴올리안즈에서 내려오는 묵직해 보이는 잿빚 화물선을 구경하거나, 등불을 밝히고 음악소리의 여운과 함께 만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며 미끄러져 가는 보트들의 나무로 만든 노를 지켜보는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스며들 틈을 찾아 밤새도록 돌아다니다 급기야는 지붕을 날려 버리기도 하는 북풍이 몰아치는 12월에서 다음 해 3월까지의 기간 동안에도 그들의 집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한 기반에 뿌리를 둔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르비노 박사는 그날 아침 10시 이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오순절 미사에 빠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그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듯한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는 라씨데스 을리벨라 박사와의 점심 식사 약속 시간 전까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싫었지만, 마침 하인들이 망고 나무의 제일 높은 가지 위에 날아가 앉은 앵무 새를 잡겠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날개의 깃털을 잘라주기 위해 새 장에서 끄집어내는 순간에 도망을 쳐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새는 무척이나 괴팍하고 사람에게 무안을 주는 앵무새였다. 누가 아무리 시켜도 절대로 말을 하지 않다가, 아주 무심코 한 마디를 툭 던지면 사람도 제대로 따라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고 분명하게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 앵무새에게 교육을 시킨 것은 바로 우르비노 박사 자신이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는 가족들 가운데 아무도, 심지어 어린 아이들조차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앵무새는 그 집에서 20년 이상을 살고 있었는데, 그 새가 그 이전에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매일 오후 낯잠을 자고 나면, 집안에서 가장 시원한 곳인 현관의 데라스에서 앵무새와 마주앉아 마치 학술원 회원처럼 능숙하게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을 다해 공부를 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미사에서 사용되는 간단한 라틴어 몇 가지와 마가복음에서 뽑은 구절 몇 개를 가르쳤으며, 산수공식 몇 가지도 공부시켜 보았지만, 그건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정성들은 뭔가 댓가를 바란다기 보다는 오로지 그것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팔 모양의 스피커가 달린 축음기 한 대를 사왔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 작곡가의 레코드판은 물론, 최신 유행가를 담은 많은 레코드판도 함께 사왔다. 그뒤로 몇달 동안은 지난 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배트 질베르나 아리스티드 블랑트의 노래를 거의 매일같이 하루 종일 이다시피 틀어 놓는 바람에 앵무새가 그 노래들을 줄줄 외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앵무새는 여자 노래는 여자 목소리로, 남자 노래는 남자 목소리로 따라 불렀으며, 맨 마지막에는 언제나 방자스런 웃음 소리 앵무새가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것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는 여자 하인들을 흉내내는 것으로 노래를 마쳤다. 그런 소문들은 차츰차츰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유명한 여행객들이 그 앵무새를 직접 보겠다고 찾아올 정도가 되었으며, 뉴올리언즈에서부터 보트를 타고 여행하던 어느 영국인은 원하는 만큼의 댓가를 지불할테니 그 앵무새를 팔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최대의 영광이었던 일은 공화국의 대통령인 돈 마르코 피델 수아레즈가 자신의 장관들을 데리고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까지 찾아왔던 사건이었다. 그들은 사흘 간의 공식 방문 기간 동안 8월의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끊임없이 쓰고 있어야만 했던 실크햇과 망토 때문에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 오후 3시쯤에 우르비노 박사의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티골만큼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두 시간 만에 그 집을 떠나야 했다. 아내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그들을 초대했던 우르비노 박사가 아무리 달래고 협박을 해도 그 앵무새는 그를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결심이나 한 듯,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앵무새가 그러한 역사적인 반항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실은 곧 그의 신성한 권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체념한 지 3년인가 4년 만에 부엌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북이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일채의 동물이라고는 그 집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거북이조차 하나의 살아있는 동물이라고 생각되기보다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단지 행운을 가져다 주는 광물질의 부적 정도로 생각되는 존재였다. 자신이 동물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는, 내세울 수 있는 모든 화학적, 철학적 핑계들을 들먹였다. 그의 그런 설명은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의 아내만은 결코 동의해주지 않았다. 즉, 동물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최악의 잔혹성이 내포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궤변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개는 충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비굴한 것이며, 고양이는 기회주의자이자 배신자이고, 공작은 죽음의 사자이며, 토끼는 욕심장이, 원숭이는 욕망이라는 열병의 전수자, 수탉은 그리스도를 세 번씩이나 부정한 유다의 공범이기 때문에 결국은 저주를 받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그의 아내인 페르미나 다자는 이미 젊은 시절의 숙녀다운 걸음 걸이마저 상실해 버린 72살의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대산 화초와 가축을 비정상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숭배하고 있었다. 결혼 초기에는 사랑이라는 잇점을 이용하여 상식이 허용하는 이상의 화초와 동물들을 집안에 들여놓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로마 황제들의 이름을 딴 세 마리의 달마티안 개가 있었는데, 그들은 메살리나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한 마리의 암컷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로 다툼읕 벌이곤 했었다. 덕분에 그 암컷은 아홉 마리의 강아지와 그 후에 또 다른 열 마리의 새끼를 임신할 때까지 오랫동안 살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독수리 같은 인상에다. 버릇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아비시니아 고양이 둘이 있었는데, 사팔뜨기 눈을 한 삼 산과 오렌지빚 눈동자를 가진 페르시아 산은 마치 그림자 유령처럼 방안을 돌아다니다가 사랑이라는 악마의 안식을 나누느라 밤새도록 찡찡거리곤 했다. 몇년 동안은 현관의 망고 나무에 묶인 아마존 산 원숭이가 살았는데, 희안하게도 그는 슬픈 듯한 표정과 솔직해 뵈는 눈매, 그리고 매끄러운 손까지 오브듈리오 이 레이 대주교를 빼다박은 듯이 닮은 바람에 보는 이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곤 했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가 그 원숭이를 치워 버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특히나 여자들을 놀려대기 좋아하는 그의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복도를 따라 놓여진 새장에는 모든 종류의 과태말라 산 새들이 살고 있었고, 노랗고 긴 다리를 가진 왜가리와 화분 속의 안튜리움을 먹기 위해 창문 사이로 날아든 사슴 벌레도 살고 있었다. 처음으로 교황의 방문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던 지난번 시민 전쟁 직전,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낙원의 새 한 마리를 사왔었는데, 교황 방문에대한 소문이 음모적인 자유주의자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정부 쪽에서 흘린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그 새를 도로 돌려 보내느라 구할 때보다 더 많은 애를 먹기도 했었다. 또 한 번은 큐라소에서 온 밀수선에서 향기나는 까마귀 여섯 마리와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새장을 구입했는데, 그 새들은 페르미나 다자가 어렸읕 때 아버지와 함깨 기르던 것과 똑같은 새여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그때에도 다시 한 번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장례식 때 피우는 향 냄새 같은 역한 냄새를 온 집안에 풍기며 끊임없이 날개짓을 해대는 그 까마귀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은 길이가 4미터나 되는 커다란 뱀 한 마리를 사들인 적도 있었는데, 그 뱀은 우기 동안 끊임없이 집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수많은 해충들과 박쥐, 그리고 도마뱀 등을 쫓아보겠다는 우르비노 박사 부부의 의도를 만족시켜 주기는 했지만,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내쉬는 쇳소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직업과 다른 사회적 활동 때문에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던 결혼 초기의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아내가 그렇게 수많은 징그러운 동물들 틈에 끼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카리브 해 부근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해 하곤 했었다. 그러나, 피곤했던 하루도 거의 저물어갈 무렵의 어느 비내리는 오후, 그는 마침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드는 하나의 끔찍스러운 사건에 직면하고 말았다. 거실 바깥의 육안으로도 너무나 뚜렷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죽은 동물들이 피로 물든 웅덩이 속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하녀들은 기겁을 해서 의자 위로 기어올랐다. 그 끔찍한 살육의 공포는 아직까지도 그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광견병에 걸린 독일산 맹견 한 마리가 모든 동물들을 눈에 띄는 족족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린 것이었다. 그 비참한 광경을 보다 못한 이웃집의 정원사가 용기를 내어 커다란 칼로 그 미친 개를 두 동강을 만들어 버렸었다. 그 미친 개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동물들을 그 시퍼런 이빨로 물어 죽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살아남은 동물까지도 모두 죽여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묻으라고 명령한 다음, 미저리코르디아 병원에 부탁하여 집안을 철저하게 소독하게 했다. 그 참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은 행운을 가져온다는 그 거대한 거북이 뿐이었다. 아무도, 거북이의 존재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가축 문제에 관한 한 남편의 견해가 옳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후 오랫동안 동물 이야기를 가능한 한 삼가하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린네우스의 자연의 역사라는 책에 실린 천연 색 삽화를 보며 스스로를 위안했고, 그 중의 몇 장은 엑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만약 어느 날 아침, 욕실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숨어든 도둑들이 5대째 전해져 내려오던 은제 식기들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도 두 번 다시 집안에서 동물을 기르겠다는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 사건 이후 이중 맹꽁이 자물쇠를 창틀에 설치하고, 출입문에는 강철 빗장을 달았으며, 귀중한 물건들은 안전한 금고에 넣어 보관시키고, 배개 밑에 권총을 넣고 자는 전쟁 시절의 습관을 새삼스레 부활시켰다. 우르비노 박사는 도둑 쫓는 개를 기르자는 주장에는 끝내 반대했다. 광견병 예방 접종을 하건 않건, 묶어서 기르건 놓아 기르건, 그 어떤 조건을 내세워도 막무가내였다. 심지어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조리 도둑맞는다 해도 개만은 기를 수 없다고 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짐승은 절대로 이 집안에 들여놓을 수 없소." 우르비노 박사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개를 길러 보겠다는 아내의 결심을 완전히 묵살시켰다. 자신의 그런 조급한 일반화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한 성격을 지녔던 페르미나 다자는 세월이 갈수록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는지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에조차 강한 집착을 보이곤 하더니, 도둑 사건이 있은 지 몇달 뒤에는 크라소의 밀수선에서 파라마리보 앵무새 한 마리를 사왔다. 선원들이 지껄이는 욕밖에는 할 줄 모르는 앵무새였지만, 목소리가 어찌나 사람과 똑같던지 지불한 엄청난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보기보다 훨씬 똑똑하고 활발한 앵무새였다. 노란 머리와 새까만 혓바닥이, 테레핀 좌약을 사용해도 결코 말을 가르칠 수 없는 홍수림 앵무새와 다른 점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아내의 뛰어난 재치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하녀들과 장난을 치며 말을 익혀가는 앵무새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층 더 놀라게 되었다. 어느 비오는 날 오후, 비에 젖은 깃털이 무척 마음에 흡족한 듯, 혀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앵무새는 그 집에서는 아무도 가르친 적이 없는 옛날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 겉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앵무새인 것 같았다. 그러나 박사는 어느 날 밤, 마침내 자신의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또 도둑이 들어, 다락방의 채광 창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앵무새는 진짜 보다도 더욱 그럴듯한 개 짖는 소리를 내어 도둑들에게 겁을 주었으며, 심지어는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말인 '도둑 잡아라' 라는 말을 외치기도 했다. 우르비노 박사가 앵무새 보살피는 일을 책임지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으며, 망고나무 밑에 물통과 바나나통, 그리고 공중 곡예를 위한 그네를 설치하도록 명령한 사람도 바로 박사 자신이었다. 현저히 떨어지는 밤 기온과 북풍 때문에 웬만한 동물은 바깥에서 살 수 없게 되는 12월에서 3월까지, 앵무새는 그의 만성적인 편도선염 때문에 사람들의 호흡이 곤란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우르비노 박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안으로 들여져 담요가 깔린 새장 안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그 집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앵무새의 날개 깃털을 깎아 주어, 마치 늙은 마부 같은 걸음걸이로 아무 곳이나 걸어 다닐 수 있게 내버려 두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의 들보에 매달려 공중제비를 돌고 있던 앵무새가 발이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며, 뱃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낸 비명 소리와 함께 국 남비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옆에 있던 요리사가 뜨거운 국에 데어 털이 훌랑 빠져 버렸으나, 숨은 아직 붙어 있는 앵무새를 국자로 건져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앵무새를 새장 속에 가두어 두면 배운 것을 모두 잊어 버린다는 미신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새장 안에서만 지내야 하게 되었다. 단, 오후 4시가 되어 기온이 좀 떨어지면 현관의 테라스에 나와 우르비노 박사에게서 말을 배우는 시간 만은 예외였다. 그때 당시에는 그의 날개가 너무 길다는 사실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또한 막 날개 깃털을 잘라 주려 하던 바로 그 순간에 망고나무 꼭대기로 도망을 치고 만 것이었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앵무새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할 수 없었다. 하녀들이 이웃집 하인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앵무새를 유혹해 보았지만, 앵무새는 '자유당 만세, 자유당 만세'를 외치며 미친 듯이 웃어대기만 할 뿐, 앉은 곳에서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우르비노 박사는 나무 잊사귀에 가려 앵무새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스페인어, 프랑스어, 심지어 라틴어까지 이용하여 앵무새를 달래려 했지만, 앵무새는 박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내어 되풀이하기만 할 뿐, 나무 꼭대기에서 한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 앵무새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이 최근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소방서에 사람을 보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이 나면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벽돌공의 사다리와, 아무데서나 마구 퍼온 물로 진화 작업을 하는 바람에 화재 자체로 인한 피해보다 오히려 돌팔이 소방수들에 의해 생기는 피해가 더 큰 경우도 종종 있곤 했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쥬베날 우르비노가 명예 회장으로 있는 공동단체에 의해 조성 된 기금으로 전문적 소방수들로 구성된 소방대와 사이렌, 종, 두 개의 고압 호스등읕 갖춘 불 자동차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는데, 화재 경보인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꼬마들이 몰려나와 소방수들이 불과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처음에는 구것이 그들이 하는 일의 모두였다.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가 시의 책임자에게 함부르크에서는 한 소방대원이 사흘간의 폭설로 고립된 지하실에서 한 소년을 구출해냈으며, 나폴리의 어느 10층짜리 건물에서는 계단이 너무 꼬불꼬불해 관을 밑으로 가지고 내려오지 못한 채 고민에 뼈진 한 가족을 위해 역시 소방대가 도와 주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다. 소방관들이 화재 이외의 긴급 사태 때도 시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박사가 제시해준 결과가 되었고, 의대에서는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사소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응급 처치법에 대한 특별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 유별난 앵무새를 구출해내기 위해 소방서에 도움을 청하는 일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말했다. "내 부탁이라고 그래." 그리고는 점심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 입으러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사실 당시의 그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편지 때문에 정신이 산란한 상태였으므로, 앵무새애게는 그다지 크게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히프 근처에 벨트를 맨 헐렁한 비단 드레스를 입고, 여섯 개의 기다란 고리에 달린 진주 목걸이를 걸었으며,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이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런 차림새는 페르미나 다자로서는 꽤나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멋을 부린 그녀의 차림새는 물론 훌륭한 할머니로서의 그녀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그녀의 외모와는 아주 잘 어울렸다. 늘씬하고 꼿꼿한 몸매와 반점 하나 없이 깨끗한 손, 그리고 뺨 근처에 드리워진 반짝이는 머리결 등을 그녀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명한 눈동자와 천부적인 고집까지도 결혼 당시와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사, 세월이 그녀에게서 빼앗아간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인격과 성실로 그것들을 메워나갈 수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무척이나 편안한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쇠받침대를 넣은 콜셋이나 꽉 졸라맨 허리,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한 허리받이 등도 이제는 모두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압박도 가하지 않은 몸으로 자유롭게 숨쉬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일혼 두 살의 나이에 말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아내가 천천히 돌고 있는 선풍기 날개 밑의 화장대 앞에 앉아 종 모양의 모자를 매만지고 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침실은 넓고 밝았으며, 영국제 침대를 지키고 있는 모기장에는 분홍빚 자수가 놓여 있었고, 두 개의 창문은 활짝 열려 마당의 나무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비가 을 것만 같은 징조 속에서도 매미들은 열심히 울어대고 있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입을 옷을 날씨와 상황 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스스로 선택해 주었으며, 욕실에서 나온 남편이 바로 입을 수 있게끔 전날 밤에 미리 준비해둔 옷을 의자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곤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언제부터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남편이 옷 입는 것을 거들어 주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애정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5년 정도 전부터는 의무감에 의한 행동으로 변절되어 있었다. 더 이상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 결혼 50주년 기념일을 맞았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없이, 혹은 그런 생각만으로도 다른 한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고, 세월이 흐를수록 상대방에 대한 그러한 의존은 더욱 더 심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상호 의존이 사랑이나 혹은 편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는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질문을 진심으로 던져본 적이 없었다. 대답을 모르는 채 지내는 편이 둘 모두에게 있어 더 나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발검음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다는 사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변해가고 있고, 그의 기억들에 편차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잠을 자면서 흐느껴 우는 버릇이 생겼다는 사실 등을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들이 그의 노쇠의 증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시절로의 행복한 복귀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까다로운 늙은이가 아닌, 나이든 아기 정도로 취급할 수 있게 되는 이유였으며, 이것이 바로 둘에게 주어진 신의 섭리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 이상으로 동정하지 않아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이 거대한 결혼의 대단원을 피하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비참함을 피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는 것을 제때에 알아 차렸더라면, 삶은 그들 둘 모두에게 있어 전혀 다른 문제로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무언가를 함께 알아 내었더라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유익함이 될 수 없는 지혜일 뿐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의 소란스러운 새벽을 씁쓰레한 기분으로 참아 왔었다. 그녀는 불길한 예감들로 가득찬 또 한 번의 아침을 맞아야 하는 운명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기 위해 마지막 잠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침대 속에 머물러 있으려 한 반면, 우르비노 박사는 마치 새로 태어나는 듯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맞곤 했다. 밝아오는 새로운 하루는 그 자신이 획득해낸 또 다른 하루였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새벽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 나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가 일어 났음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는 별다른 특징이나 이유도 없는, 그저 아내도 자기와 함께 일어나 주기를 원하는 듯한 기침 소리였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남편이 당연히 침대 옆에 놓여져 있을 슬리퍼를 찾느라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그녀의 잠을 방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으례 어둠 속을 더듬어 욕실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이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자신의 서재에서 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다시 잠이 들곤했는데, 한 시간 후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여전히 불이 커져 있지 않은 침실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언젠가, 어느 파티의 게임에서 자기 자신을 정의해 보라는 요구를 받은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옷을 입는 사람이오.' 페르미나 다자는 그가 만들어 내는 잡음들 가운데 꼭 펼요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자신이 잠을 깨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하는 것과 똑같이, 그 역시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의로 그런 잡음들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둠 속을 더듬으면서도 필요한 일은 모두 다 할 수 있었으므로 그녀를 깨울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몸매와 이마 위에 가볍게 얹혀진 손등, 잠자는 모습이 그녀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저 잠자는 척만 하고 있을 때의 그녀의 생각을 방해한 경우, 그녀만큼이나 사나와지는 사람 또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녀가 사실은 자신이 부스럭거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는 그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새벽 다섯 시에 자신을 깨우는 사람에게 그녀는 욕을 퍼부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슬리퍼를 찾느라 부시럭거리고 있으면 갑자기 그녀의 졸리운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어잿밤애 목욕탕에 놔두었쟎아요." 하지만, 잠시 후에는 완전히 잠이 달아난,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이 집안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아무도 당신을 보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게 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런 다음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여 하루의 첫번째 승리에 만족해 하며 과감하게 불을 켜는 것이었다. 그들 둘 모두는 약간은 유치하고 심술굿은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가정적인 사랑의 수 많은 위험한 쾌락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소한 게임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함께 생활을 시작한 지 약 30년 정도만에 거의 끝나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목욕탕에 비누가 놓여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일상적인 단순함으로 하루는 시작되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직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있었던 시절, 침실로 돌아오면 불을 켜지 않은 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여느 때처럼 가장 편안하고 포근한 자세로,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며, 머리 위에 팔을 얹은 채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여느 때처럼 반쯤만 잠들어 있는 상태였고, 그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혼자 부시럭거린 후, 우르비노 박사는 무심한 듯이 중얼거렸다. "비누 없이 목욕한 지가 한 일 주일은 되는 것 같군." 그러자, 완전히 잠을 깬 그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당장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을랐다. 욕실에 비누를 가져다 놓는다는 것을 정말로 깜빡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보다 사흘 전에, 이미 옷을 모두 벗은 상태에서, 비누가 떨어 졌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는 나중에 가져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을 다음날까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고, 사흘째 되는 날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비누가 떨어진 것은 아직 일 주일은 지나지 않았으며, 단지 아내의 죄책감을 좀더 크게 만들어 보려고 그가 무심코 꺼낸 말에 불과했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자신의 실수를 들켜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자 했다. "나도 매일같이 목욕을 했는데, 욕실엔 언제나 비누가 있었어요." 그녀는 화가 잔뜩 치밀어 소리쳤다. 그녀의 성격을 너무나 훤히 알고 있는 그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직업을 핑계삼아 미저리 코르디아 병원의 인턴 숙소로 들어가 버린 그는 왕진을 나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을 때만 잠시 집에 들르곤 했다. 우르비노 박사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그의 아내는 뭔가 일을 하는 척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그의 마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려 올 때까지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석 달 동안, 그런 불화를 해소시켜 보려는 시도를 더러 해 보았지만 그럴때마다 피차 간에 감정만 더 상할 뿐이었다. 그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큼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의 짝사랑의 운명을 상기시켜 주곤 하였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적막에 싸인 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넉 달이 지난 어느날 밤, 그는 여느 때처럼 아내가 욕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더블베드 위에 누워 책을 보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그만 일어나서 나라가라는 듯, 거칠게 남편 옆에 누웠다. 하지만 그는 벌떡 일어나는 대신 불을 끄고 베개 위에 몸을 바로 눕혔다. 그녀는 서재로 가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증조부가 물려준 깃털 침대의 안락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그는 항복을 해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좀 잡시다." 그가 말했다. "비누가 있었소." 이제는 황혼기에 접어든 두 사람은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결혼생활 50년 동안의 가장 심각한 불화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매사에 덤덤해질 나이가 된 이후에도 그들은 그 사건을 입에 담는 것 만큼은 조심스러워 했다. 거의 다 치유된 듯한 옛 상처가 언제 다시 피를 뿜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남자가 소변 보는 소리를 그에게서 처음 들었다. 그들이 결혼 한 첫날 밤, 프랑스로 신혼 여행을 가는 배 안에서 멀미가 난 그녀가 선실에 누워 있을 때, 그가 물줄기를 내뿜는 소리는 어찌나 거세고 우렁찼던지, 그녀는 잠시 후에 둘 사이에서 벌어질 사건에 대한 공포가 한층 더 커진 경험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소변 줄기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종종 그때의 생각들을 떠올려 보곤 했다. 그가 한 번씩 들어갔다 올 때마다 축축히 젖어 있곤 하는 변기 주위의 지저분 함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럴 듯한 설명으로 그녀를 납득시키고자 했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의 부주의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변명이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의 오줌 줄기는 어찌나 힘차고 곧았던지 학교에서 벌어진 오줌누기 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약해지고 방울이 흩어져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줄기가 곧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화장실을 발명한 사람은 틀림없이 남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었을 거야." 그는 어떻게 보면 조심성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창피스러운 일일지도 모르는 행동을 매일 되풀이함으로써 가정의 평화에 기여했다. 변기를 사용하고 나면 반 드시 그 가장자리를 화장지로 닦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욕실의 악취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나기 시작하자, 그녀는 마치 하나의 범죄를 발견한 사람처럼 이렇게 말했다. "꼭 토끼장 같은 냄새가 나는군." 우르비노 박사는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가면서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생각해냈다. 그도 아내처럼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그 뒤로 변기는 언제나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또한 더 이상 창피를 당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이미 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무척 한정되어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욕조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목욕을 할 때마다 무척 신경을 썼다. 그 집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고, 당시의 옛 저택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사자 발톱이 달린 백납 욕조가 없었다. 그는 위생상의 이유로 그걸 치워 버렸었다. 욕조는 유럽인들이 고안해낸 못마땅한 쓰레기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마지막 금요일에 목욕을 하는데, 자신들이 때를 씻어 낸 바로 그 더러운 물에서 음탕한 짓들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창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물통 하나를 주문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 속에서 마치 갓난 아기를 다루듯 남편을 목욕시켰다. 당아욱 잎파리와 오렌지 껍질을 넣고 데운 물로 1시간 이상 목욕을 하고 나면, 그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서 때로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잠 이 들기도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목욕이 끝나면 남편이 옷 입는 것을 도와 주었다. 사타구니에 파우더를 발라 주고, 종기가 난 곳에는 코코아 기름을 발라 주며, 마치 기저귀를 채우듯 속옷을 입혀 주는 등 양말에서 넥타이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옷을 입혀 주었다. 그들이 함께 맞는 새벽은 다시금 평온해졌다. 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빼앗겼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페르미나 다자도 마침내 쥬베날 우르비노의 일과를 따르게 되었다. 그녀 역시 나이를 먹어 잠이 점점 적어지다가, 70세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오히려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오순절이던 그 일요일에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시신을 보기 위해 담요를 들추었던 그는 의사로서, 종교인으로서 그 숱한 편력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부정하고 있던 그 무언가를 마침내 발견해 버리고 만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죽음이라는 것에 그렇게도 익숙해져 있던 그가, 끝없이 죽음과의 싸움을 벌여 왔던 그가, 마치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런 공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악몽에 시달리다 잠을 깬 어느 날 밤 이후로 줄곧 자신의 그림자를 덮어 씌우고 있는 또 하나의 그림자였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가 여지껏 믿어왔던 것처럼 영원한 우연이 아니라 순간적인 현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날 발견한 것은 그때까지는 환상 속의 확실성이던 그 무엇의 실체였다. 그는 그 놀라운 발견을 위해 신이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라는 인간을 이용해 주신것에 대해 커다란 감사를 느꼈다. 어떻게 보면 그 자신도 한 사람의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편지는 그의 참된 정체, 그의 불행한 과거,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의 사기성 등을 드러내 주었고, 따라서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인생에 뭔가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자신에게까지 우울한 기분을 전염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바지를 입혀 주고,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동안 그런 노력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 남자의 죽음에서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가 목발을 하는 절름발이이며, 안틸리즈의 수많은 섬 가운데 하나에서 반란이 일어난 동안 부대에서 탈출한 사람, 그리고 지금은 근방에서 가장 성공한 아동 사진가가 되었고, 그녀는 토레모리노스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체스를 이겼었다는 사실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흉악스런 범죄의 댓가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카이엔에서 도망쳐 나온 도피자일 뿐이오." 우르비노 박사가 말했다. "그가 사람 고기까지 먹었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구려." 그는 자신의 친구가 죽어서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싶어하던 비밀들이 쓰인 편지를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화장대 서랍에 집어넣고는 열쇠로 잠궈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무한한 능력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그의 과장된 의견들, 그리고 사회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심한 성격 등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사정이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를 좋아한 것이 예전의 그가 아닌, 낡은 배낭 하나만을 가지고 이곳에 나타난 이후의 그의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남편이 뒤늦게 알게 된 그의 정체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가 남몰래 여자를 숨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남편의 분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종류의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유전적인 습성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죽음을 결심한 그를 도와 주었다는 사실도 가슴아픈 사랑의 증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 사람 만큼이나 심각한 이유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면, 나에게 주어지는 임무도 그 여자가 했던 일과 똑같을 거예요." 우르비노 박사는 지난 반 세기 동안 그렇게도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던 아내의 몰이해를 새삼스레 느꼈다.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해 주지 않는군." 그는 말했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그가 무슨 짓을 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 모두를 속여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오." 쥬베날 우르비노의 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못 본 척했다. "그가 옳게 행동한 거예요." 그녀가 대답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면, 당신도 그 불쌍한 여인도 이 마을의 다른 어떤 사람들도 예전처럼 그를 좋아하지 않앤을 테니까요." 그녀는 그의 조끼 단추 구멍에 시계줄을 끼워넣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의 넥타이 매무새를 손보고 넥타이핀을 꽃았다. 그녀는 향수를 뿌린 손수건으로 그의 눈과, 눈물이 묻은 수염을 닦아 주고, 그 손수건을 그의 가슴 주머니에 꽃아 주었다. 11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은은히 집안에 울려 퍼졌다. "서둘러요." 그녀가 남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늦겠어요." 라씨데스 올리벨라의 아내인 아민타 데챰프스와 그녀의 일곱 명의 부지런한 딸 들이 은혼식의 점심 식사를 열심히 준비해 놓은 덕분에 그날의 행사는 그 해의 중요한 사회적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그들의 집은 그 지방에 혁신의 바람을 몰고와 마치 유물과도 같았던 17세기의 많은 건축물들을 베네치안 바실리카로 바꾸어 놓은 플로렌스의 건축가에 의해 개축된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 집에는 여섯 개의 침실과 넓직하고 멋있게 차려 놓은 두 개의 거실이 있었지만, 그래도 온 도시에서 몰려온 손님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비좁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가운데에 돌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는 정원은 마치 수도원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풍겼고, 헬리오트로프를 심은 화분들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치들 사이의 공간은 그렇게 많은 대가족의 이름을 모두 새겨 놓기에는 좀 부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심 식사는 왕립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그들의 시골 집에서 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의 정원은 인디언 월계수와 잔잔한 도랑 위에 수련이 활짝 피어 있는, 1에이커가 넘는 공간이었다. 돈 산쵸 여인숙에서 온 사람들이 올리벨라의 지시에 따라 헷볕이 드는 부분에는 색색가지 차일을 쳤고, 122명의 손님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을 월계수 밑에 설치했으며, 싱싱한 장미꽃 화환들로 장식을 꾸였다. 그들은 또한 목관악기 밴드를 위한 무대를 설치했고, 예술학교의 현악 4중주단도 초대되었으며, 을리벨라 부인은 남편의 고명한 스승이 행사를 주관하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날이 정확한 결혼 기념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행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오순절의 일요일을 선택했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해서 뭔가 필요한 부분을 빠트리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행사 준비는 석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시에네가 드 오로에서 직접 살아있는 닭을 사들였다. 물론 부근에서 크기와 맛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도 있었지만, 충적토에서 모이를 찾아 먹은 그 닭들의 모래주머니에서 조그만 순금 덩어리가 발견되었다는 사실로 더욱 유명한 닭이었다. 을리벨라 부인은 몇 명의 딸과 함께 호화로운 배를 타고 손수 잔치를 위해 최상의 물건들을 사모았다. 그녀는 모든 변수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한 가지 빠트린 것이 있었다. 잔치가 벌어질 6월은 1년 중 많은 비가 오는 시기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당일 날 아침에 미사를 보러 갔을 때야 비로소 그런 위험성을 깨달았고, 대기 증에 가득한 습기를 느끼고는 덜컥 겁이 났으며, 하늘은 유난히 무겁고 낮아 보였고, 수평선도 눈에 들어 오질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징조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미사에서 만난 기상대 감독관은 도시의 역사상 오순절에 비가 내린 적이 없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시계가 12시를 알리고, 이미 많은 손님들이 가벼운 음식들을 들고 있을 무렵, 한번의 천둥소리가 대지를 뒤흔들더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광풍이 식탁과 차일 위로 몰아닥치고, 뒤이어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 혼란의 와중에 길에서 만난 몇몇 다른 손님들과 함께 집까지 도착하느라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남들처럼 진흙 투성이가 되어 버린 정원을 껑충껑충 뛰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급기야는 돈 산쵸의 일꾼들이 노란색 차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집안으로 옮겨 주는 상황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들은 마당에서 거두어 온 식탁들을 집안에(심지어 침실에까지) 다시 꾸미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손님들은 망쳐 버린 기분을 거의 노골적인 투덜거림으로 표현했다. 비를 막기 위해 창문이란 창문은 꼭꼭 걸어 닫았기 때문에, 집안은 마치 무슨 보일러실처럼 뜨거웠다. 테이블이 놓여 있던 마당에는 관습대로 한쪽은 남자, 다른 한쪽은 여자라는 식으로 손님들의 이름을 적은 카드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집안에는 명판조차 뒤죽박죽이어서 손님들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앉을 수 밖에 없었으며, 거기에 따르는 사회적 관습은 이번 한 번만 무시하자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아민타 올리벨라는 비에 젖은 머리칼과 진흙탕이 튀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남편에게서 배웠을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불운을 극복해 나갔다. 그녀는 똑같은 천으로 옷을 해입은 딸들의 도움을 받아 좌석의 질서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식탁의 중앙에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그 오른편에 오브듈리오 이레이 대 주교가 앉았으며, 페르미나 다자는 여느 때처럼 남편 옆에 앉아, 혹시나 그가 식사 도중에 잠이 들어 버리거나 옷깃에 스프를 흘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의 맞은 편에는 약간 나약해 뵈는 인상을 가진 50세 가량의 신수 좋은 사나이, 라씨데스 올리벨라가 자리를 잡았는데 그의 활달한 성격과 정확하기로 소문난 진단은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인 듯했다. 데이블의 나머지 좌석은 지방과 도시의 관료들, 그리고 시장이 데려와서 자기 옆에 앉혀 놓은 작년의 미의 여왕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초대에 특별한 의상이 요망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자 손님들은 이브닝 드레스에 값비싼 보석들을 두르고 있었고, 남자들은 디너 자켓과 까만 넥타이, 심지어 그중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사람까지도 있었다. 평상복을 입은 사람은 우르비노 박사 혼자뿐이었다. 각각의 좌석에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엄청난 더위에 질려 버린 을리벨라 부인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식사할 때만이라도 자켓을 벗어 달라고 남자 손님들에게 에원하듯 말했지만, 아무도 먼저 벗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주교는 어떤 의미에서 이번 잔치가 역사적인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우르비노 박사를 향해 말했다. 독립 이후로 끊임없이 국토를 피로 물들여 온 두 개의 적대 세력이 상처를 치유하고 분노를 삭힌 채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 함께 마주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특히, 45년 간의 보수당 통치를 종식시키고 자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시킨 열성적인 자유당의 젊은이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자유당 대통령은 보수당 대통령보다 옷차림이 약간 검소해졌을 뿐 결국은 똑같은 것 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유대관계의 잇점 때문에 그 잔치에 참석한 것이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주고 실었지만, 대주교와 논쟁을 벌이는 것은 삼가하기로 했다. 그런 유대관계야말로 정치의 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폭우는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갑작스레 뚝 멎고 말았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지만, 폭풍우가 어찌나 격렬했는지 이미 몇 그루의 나무는 뿌리째 뽑혀 있었고 넘쳐흐른 개울은 마당을 늪으로 만들어 버렸다. 최악의 사태는 부엌에서 빚어지고 있었다. 건물 뒤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요리사들은 갑자기 쏟아진 비로부터 요리 도구들을 지킬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물바다가 되어 버린 부엌을 정리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새로운 불을 지펴야 했다. 그러나, 1시쯤에는 고비를 넘겨 오로지 디저트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클레어의 자매들이 디저트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11시까지는 보내 주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립 고속도로를 따라 흐르고 있는 개천이 넘쳐 버렸다면, 최소한 두 시간 후에나 도착하게 될 것 같았다. 날씨가 개이자 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폭풍우가 식혀준 시원한 공기가 집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그러자, 누군가가 밴드를 향해 테라스에서 왈츠를 연주하라고 지시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혼잡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고함을 질러야만 했고, 게다가 그릇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까지 합쳐져 매우 시끄러웠다. 기다림애 지쳐 버린 올리벨라 부인은 눈물이 글씽거리면서도 미소는 잃지 않은 채 식사를 차리라고 지시했다. 예술학교에서 온 그룹이 모짜르트의를 시발로 연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식탁 사이의 비좁은 통로를 김이 무럭무럭 나는 쟁반을 든 돈 산쵸의 흑인 종업원들이 비집고 다니는 번잡함 속에서도 우르비노 박사는 연주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현저하게 떨어져 버린 집증력 때문에 우르비노 박사는 체스를 둘 때도 생각한 수를 종이에 적어 놓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음악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오스트리아에 머물 당시의 절친한 친구였던 독일인 지휘자의 천재성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친구는 탄호이저를 들으며 돈조반니의 악보를 읽던 사람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두 번째 곡으로 연주되는 슈배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들으며 무척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접시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 속에서 연주에 귀를 기울이느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얼굴이 빨개진 채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아이였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어떤 때는 머리 속에 뱅뱅 도는 곡조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룻밤에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새벽까지 그걸 고민하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하마터면 그런 상태에까지 이를 뻔했던 그는 천만다행스럽게도 번뜩 그 소년이 작년에 가르쳤던 제자 가운데 하나임이 기억 속에 떠올랐다. 그는 특권층들이 모인 자리에 그 소년이 와 있다는 것이 놀랍게 여겨졌으나, 그가 보건상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지금 법의학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을리벨라 박사가 상기시켜 주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어 그 소년을 반겼고, 젊은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임으로써 답례했다.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는 그가 그날 아침에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집에서 만났던 인턴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맑고 아름다운 곡조의 마지막 연주가 무슨 곡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프랑스에서 막 돌아왔다는 젊은 첼로연주자가 그 곡이 가브리엘 포레의 현악 4중주라고 알려 주었지만, 유럽 음악의 추세에 항상 유념하고 있는 우르비노 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여느 때처럼 한쪽 눈으로 끊임없이 남편을 지켜보고 있던 페르미나 다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우울증에 빠지려는 그를 발견하고는 살며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일은 이제 그만 잊어 버리세요." 우르비노 박사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내의 걱정이 꼭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는 그 시간쯤에는 엉터리 훈장을 단 엉터리 군복을 입고, 자신의 작품 속의 아이들의 따가운 눈초리 아래 관 속에 누워 있을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대주교에게 그 자살 사건을 얘기해 주려고 했으나, 대주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에 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카리브 망명객들을 위해 고인을 성지에 안장해 달라는 예로니모 아르고데 장군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요구 자체는 나로서는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하오." 대주교의 말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자살의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대답했다. "노환이오." 즉석에서 만들어낸 말인데도 그럴 듯하게 느껴졌다. 옆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올리벨라 박사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도 사랑 이외의 원인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시안화물을 이용한 자살이라는 점이지." 그는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다시 한 번 동정심이 편지로 인한 슬픔보다도 더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에게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오랜 세월을 두고 체스를 통해 알게 된 한 속세의 성인과, 많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준 그의 예술과, 그의 모든 분야에 걸친 보기 드문 박식함과, 그의 스파르타식 습관과, 자신의 과거로부터 모든 것을 단절시킨 그의 순수한 영혼을 대주교에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한 세대의 영상을 보존하기 위해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작품들을 사들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질문을 시장에게 던졌다. 대주교는 말 많고 유식한 신도들이 자살을 거룩한 행위로 생각하겠느냐는 점을 문제삼았고, 시장은 그의 작품 대금은 누구에게 지불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편지의 비밀 때문에 입이 근질거렸다. "그건 내가 책임지겠소." 그 말과 함께 우르비노 박사는 다섯 시간 전에 자신이 거부했던 한 여인에 대한 성실함을 되찾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도 그걸 깨닫고,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충고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거기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축하 연설들은 짧고 간단했다. 목관악기 밴드가 유행가 풍의 곡조들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댄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원을 정리하고 있는 돈 산쵸 종업원들의 작업이 끌나기를 기다리며 테라스를 서성거렸다. 거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상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뿐이었는 바, 그들은 마지막 건배에서 브랜디 반 잔을 단번에 비워 버린 우르비노 박사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조금 전에도 포도주 잔을 그런 식으로 비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날 오후의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참으로 오랫만에 노래를 한곡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거들어 주겠다는 젊은 첼로연주자의 재촉도 있고 해서, 그때 마침 자동차 한 대가 온통 흙탕물을 튀기며 정원으로 미끄러져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우르비노 박사는 정말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현관 앞에서 멈춘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은 양손에 쟁반을 들고 환히 웃고 있는 마르코 아우렐리오 우르비노 다자와 그의 아내였다. 비슷하게 생긴 쟁반들이 자동차 안에도 많이 남아 있었다. 때늦은 디저트가 도착한 것이다. 한바탕의 환호성과 농담들이 오간 뒤에,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사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 클레어의 자매들로부터 디저트를 운반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는데,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도중에 누군가가 자기 아버지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바람에 도로 돌아 갔었다는 것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미처 끝까지 듣지 못한 우르비노 박사가 깜짝 놀라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앵무새 때문에 소방수를 부른 사실을 그의 아내가 상기시켜 주었다. 아민타 을리벨라는 사람들이 이미 커피까지 다 마신 후임에도 불구하고 디저트를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르비노 박사와 그의 아내는 디저트 맛도 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에 절대로 침해당할 수 없는 낮잠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방수들이 거의 정말로 불이 난 것만큼이나 커다란 피해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잠깐 눈을 붙이는 것으로 낮잠을 대신해야 했다. 소방수들은 앵무새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고압 호스로 그 나무에 물을 내뿜었는데, 물줄기의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침실의 창문을 통해 방 안에 있는 가구와 벽에 걸려 있던 이름모를 선조들의 초상화를 몽땅 망쳐 놓고 만 것이었다. 불 자동차의 종소리를 듣고 정말로 불이 났다고 생각한 이읏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게다가 마침 학교 수업이 없는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혼잡은 한층 더 가중되었다. 고가 사다리를 가지고도 앵무새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방수들은 커다란 칼로 나뭇가지들을 치기 시작했고, 다행히 때맞춰 도착한 우르비노 박사의 만류로 나무가 밑등에서부터 잘리워지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나무를 잘라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면 다섯시 이후에 다시 오겠다며 집을 떠난 그들은, 집에서 나가는 길에 테라스와 거실에 온통 진흙 발자국들을 새겨 놓았고, 페르미나 다자가 가장 아끼는 양탄자까지 짓밟아 놓았다. 사실 그 모든 피해들은 전혀 소용 없는 일이었다. 앵무새는 흔란스런 틈을 타서 옆집 정원으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가 그 앵무새를 찾아 나뭇 가지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온갖 나라 말로 다 불러보고 심지어 휘파람과 노래까지 불러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세시가 다 되었을 무렵에는 잃어 버렸다고 포기하고 낮잠을 자러 들어갔다. 그는 슬픔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날 아침, 친구의 시신 앞에서 느꼈던 그 슬픔 때문이 아니라 낮잠 이후에 언제나 그의 영혼을 엄습해 오는 보이지 않는 구름, 그가 스스로 생의 마지막 오후를 살고 있다는 신의 계시로 해석하는 그 보이지 않는 구름 때문이었다. 그는 쉰 살이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자신의 키나 몸무게, 혹은 몸의 상태에 대해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낯잠에서 깨어 잠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조금씩 조금씩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코 잠들지 못하는 심장과 미심쩍기만 한 간장, 그리고 신비스러운 췌장 등이 하나하나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자기보다는 젊을 것이라는 그리고 자신만이 자기 세대의 유일한 생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서히 사로 잡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최초의 망각에 대한 기억이 되 살아올 때면, 학창 시절에 어느 선생에게 어디에선가 들었던 말이 함께 떠올랐다. "기억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많은 종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방법 역시 한순간의 환상에 불과했다. 급기야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메모지에 쓰여진 글이 무슨 뜻인가를 알 수 없게 되고, 쓰고 있는 안경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지게 되며, 이미 잠궈진 문의 자물쇠에 자꾸만 열쇠를 돌리고, 하나의 진술의 전제들, 혹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망각해 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의미를 도통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그런 단계에까지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그를 괴롭힌 것은 스스로의 판단력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이었다. 배가 침몰하듯, 그는 자신의 판단력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이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경험 이외의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대부분의 치명적인 병은 그 고유의 냄새를 지닌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늙음이라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병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활짝 펼쳐진 해부대 위의 송장에서 그걸 발견했으며, 엄청난 성공으로 나이를 속이는 환자들에게서 그걸 느꼈으며, 자신의 옷에 배인 땀과 잠든 아내의 호흡 속에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현재의 그(특히 구닥다리 크리스찬)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늙음이란 것은 너무 늦기 전에 마감되지 않으면 안되는 꼴 사나움이라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견해에 동의하고 말았을 것이다. 유일한 위안은 침대 속에서는 더욱 더 훌륭한 남자였던 그같은 사람에게조차, 성적인 평화, 즉 성적 욕구의 완만한 감퇴였다. 여든 하나의 나이는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잠자는 동안 그저 몸을 한번 뒤척임으로써 아무런 고통도 없이 끊어져 버릴 수 있는 몇 가닥의 가느다란 실에 의해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했고 만약, 자신이 그 실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다면 그건 죽은 뒤의 암흑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리라는 것을 알게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소방수들이 어질러 놓은 침실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네 시가 조금 못 미처서는 언제나 처럼 남편에게 얼음 띄운 레모네이드 한 잔을 가져다 주며 이제 장례식에 갈 준비를 헤야 될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러 주었다. 그날 오후, 우르비노 박사는 두 권의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알렉시스 카렐의 <미지의 인간>과 악옐 문트의 <산 미첼레 이야기)였다. 두 번째 책은 아직 페이지를 자르지도 않은 것이어서, 그는 요리사인 디그나 파르도에게 침실에서 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요리사가 칼을 가져왔을 때 그는 이미 접어서 표시를 해두었던 <미지의 인간>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브랜디 반 잔을 단번에 마신 데서 오는 가벼운 두통을 느끼며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갔다. 잠시 읽기를 멈춘 그는 레모네이드 한 모금을 마시고 얼음 조각 하나를 부스러 뜨리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양말은 신고 있는 채였고, 셔츠 깃도 아직 괜찮았다. 장례식에 가려면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귀찮게 했다. 그는 아예 책 읽기를 중단하고 두 권의 책을 겹쳐 놓은 다음, 흔들 의자를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진흙 속의 바나나 나무와 상처 투성이 망고 나무, 비 온 뒤에 나타나는 날개미,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또 하루의 오후, 여러 가지 잡념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렇게도 좋아하던 앵무새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고 있던 그의 귓가에 "착한 앵무새" 하는 앵무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앵무새는 망고 나무의 가장 낮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이 악당아 !" 그가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더 악당입니다. 박사님." 앵무새의 대답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계속 말을 붙이면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조심스레 신발을 신고, 아직도 진흙 투성이인 마당으로 살금살금 내려갔다. 앵무새는 별로 높지 않은 가지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평소처럼 앵무새가 은 손잡이 위에 앉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러나 앵무새는 살짝 옆걸음질을 치더니, 조금 더 높은 옆 가지 위로 폴짝 날아올랐다. 나무에는 소방수가 오기 전부터 놓여져 있던 사다리가 그때까지 그대로 기대어져 있었으므로, 우르비노 박사는 그 사다리를 두 칸만 올라가면 앵무새가 있는 곳에 닿을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 그는 그 교활한 새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기 위해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듯이 다정하게 노래를 부르며 사다리의 첫번째 칸을 올라갔다. 그가 별 어려움 없이 두 손으로 사다리를 붙들고 두 번째 칸을 올라갔을 때, 앵무새는 제자리에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가지의 높이를 잘못 짐작했던지 그는 세 번째, 네 번째 칸까지 계속 올라가, 마침내 왼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오른손을 뻗어 앵무새를 잡으려했다. 그때, 나이든 하녀 디그나 파르도가 우르비노 박사에게 장례식 참석 준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기 위해 걸어 나오다가, 사다리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뒷 모습을 발견했다. ''산틱시모 사크라멘토 ! 위험해요 ''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의 목을 움켜 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금방 손을 도로 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발 밑의 사다리가 미끄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오순절인 일요일 4시 7분, 영성채도, 아무런 후회도, 그 누구에게도 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그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페르미나 다자는 디그나 파르도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와 하인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뒤를 잇는 이읏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부엌에서 저녁 때 먹을 스프를 끓이고 있다가 들었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아직 망고나무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마치 미친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나간 그녀가, 진흙 속에 등을 묻고 누워 있는 자신의 남편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심장은 온 가슴 속을 헤집으며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자기 곁으로 달려 올 시간을 주기 위해,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견더내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두고 먼저 떠난다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는 한 세기의 반을 함께 살아온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슬픈,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눈빚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꺼져가는 마지막 숨결을 모아 이 한 마디를 남겼다. "하느님만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아실 게요." 그것은 충분히 기억될 만한 이유가 있는 죽음이었다. 프랑스에서 전문 교육과정을 마친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조국을 휩쓴 콜레라를 퇴치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유럽에 있을 동안에 발생한 콜레라는 석 달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에 전체 도시 인구의 4분의1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희생자들 가운데는 역시 명성 높은 의사였던 그의 부친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상속받은 재산을 투자하여 카리브 해 부근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의학 협회를 건립했다. 그는 역시 최초의 수도와 하수구 건설에 기여했으며, 라스 아니나스 만의 오물들을 치울 수 있게 했다. 그는 또한 언어 학술원과 역사 학술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라틴 주교로부터 성모 훈장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모든 종교적, 사회적 단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영향력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조직인 애국 협의회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가장 탁월한 업적은 항공 우편의 현실적 가능성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시절에, 풍선을 띄워 상환 데라 시에나가로 편지를 보내는 시험을 한 일이었다.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온 예술 센터는 예술 학교를 설립했는데, 그 학교는 아직까지도 설립 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매년 4월에 열리는 시 축제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는 최소한 한 세기 동안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업적들을 남겼다. 그는 식민지 시대 이후로 양계장으로 쓰이고 있던 연극 극장을 복구시켰다. 그때는 그 건물이 보다 가치 있는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폭넓은 계층의 여론들이 일고 있었다. 어쨌건 그 극장은 좌석이나 조명도 갖추지 못한 채 일단 개관식을 가졌다. 관객들은 자기가 앉을 의자와 후래쉬를 가지고 가야 했다. 부인들은 유럽 흉내를 내어 카리브 해의 삼복 더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롱드레스와 모피 코트를 자랑할 기회로 그 극장을 이용하려 했다. 프랑스 오페라와 함께 시즌이 개막되면, 유명한 터키 출신의 소프라노가 공연을 하러 왔는데, 제1막이 끝날 무렵에는 수많은 야자 기름 램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때문에 무대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금세 가수의 목이 쉬어 버리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열풍은 전 도시를 휩쓸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 수준은 결코 우르비노 박사의 기대처럼, 이탈리아 논자들과 바그너주의자들이 막간을 이용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대결을 벌이는 그런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지위를 한 번도 수락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직업적 권세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자 하는 의사들에게는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유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주교의 마차가 거리를 지나는 동안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익을 위해 자유당과 보수당의 제한적 화해를 원하는 천부적 평화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사회적 활동들은 너무나 독자적인 것들이어서, 그 어떤 그룹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중세적 혈거인이라 생각했고,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거의 지하 활동가들에 가깝다고 주장했으며, 지하 활동가들은 그를 교황청의 가두 서기라고 비판했으며, 심지어 그에게 가장 관대하다고 하는 비평가들도 그는 온 나라가 끊임없는 시민전쟁의 피로 물들고 있는 동안 시 축제의 기쁨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소한 그의 두 가지 행동만은 그러한 비판에 합당하지 않는 듯했다. 첫번째는 그의 선조들이 1세기가 넘게 살아온 마르케스 드 카잘두어로의 옛 궁궐을 떠나, 벼락부자들이 사는 동네의 새 집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그가 별다른 명성이나 재산을 갖지 못한 조금 낮은 계층의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름 꽤나 있다는 다른 여인들은 그녀가 자기네보다 여러 면에서 휠씬 탁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때까지는 끊임없이 뒷전에서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그렇게 탁월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의 아들 마르코 아우렐리오는 그들 가문의 모든 장남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의사였는데, 50세가 되기까지 별다른 업적, 심지어 아들조차도 남기지 못했다. 우르비노 박사의 유일한 딸, 오페리아는 뉴올리안즈 출신의 견실한 은행가와 결혼하여 역시 3명의 딸만 둔 중년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우르비노 박사가 그 무엇보다도 크게 우려한 것은, 외로운 여생을 혼자 살아가야만 할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그의 집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슬픔을 불러 일으켰다. 남은 것은 전설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거리로 몰려 나왔다. 사홀에 걸친 애도 기간이 설정되었고, 공공 건물들은 조기를 게양했으며, 유해가 가족 묘지에 안치될 때까지 모든 교회의 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우연히 그때 그 도시에 머무르고 있던 어느 유명한 화가는 우르비노 박사가 앵무새를 잡기 위해 사다리 위에서 손을 뻗치고 있는 장면을 커다란 화폭 위에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 그림에서 사실과 다르게 묘사된 유일한 부분은 우르비노 박사의 의상이었는데, 그 화가는 깃 없는 셔츠에 멜빵을 멘 줄무늬 바지가 아니라 까만색 플록 코트와 증산모를 씌 것으로 그렸던 것이다. 여하튼 그 그림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몇달 동안 골든 와이어 화랑에 전시되어 있다가, 나중에는 수많은 공공 개인 단체의 벽에 걸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들의 후원자를 생각케 했으며, 2주기가 지난 후에는 예술 학교의 벽에 걸리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그림은 결국 학생들에 의해 자신들이 경멸하는 미학의 상징이라 하여 대학 광장에서 불태워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과부가 되고 난 직후의 페르미나 다자의 상태는 그의 남편이 걱정했던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시신이 그 어떤 목적으로도 이용되지 않게 하겠다는 철석 같은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심지어는 남편의 유해를 정장 안치하자는 대통령의 통보가 왔을 때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시신을 대성당에서 하룻밤 새우게 하자는 대주교의 요청마저 거부했고, 오로지 장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성당 안에 안치하는 것에 동의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시신이 집안에서만 밤을 새워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커피와 간식을 준비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밤을 새우며 애도할 수 있게 했다. 관습을 따른 7일 동안의 철야제는 계획에 들어 있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면 특별한 경우 외에는 대문을 열지 않을 예정이었다. 집안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여졌다. 모든 귀중품들은 금고 속에 넣어졌으며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도 모두 떼어져 벽에는 그림이 붙어 있던 혼적만 남았다. 집안에 있던 모든 의자가 옆집에서 빌려온 의자들과 함께 거실에서 침실에 이르기까지 벽에 붙여진 채 정렬되었다. 하안 시트가 덮인 피아노 외의 모든 가구들이 한쪽 구석으로 치워진 바람에 텅 비어 버린 공간은 너무나 황량하게 느껴졌고, 소리를 내면 마치 유령의 소리처럼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서재 한가운데에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책상 위에 쥬베날 우르비노 드 라 칼레가 관도 없이 누워 있었다. 얼굴에는 최후의 공포가 굳어 있고, 새까만 망토가 덮여 있었으며, 기사 작위를 상징하는 군용 칼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상복을 차려 입고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슬픔을 자제하는 페르미나 다자가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11시까지 그녀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으나, 유해가 현관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손수건을 흔들어 남편과의 작별을 고했다. 그녀로서는 디그나 파르도의 비명소리를 듣고 난 이후, 그리고 진흙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늙은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난 이후로 자제력을 회복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의 뇌리에 떠오른 최초의 감정은 희망이었다. 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하게 빚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최소한 그가 자신의 사랑을 알아줄 시간만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는 예전에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들을 서로 나누며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억제할 수 없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결국 죽음과는 아무런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슬픔은 세상에 대한, 그녀 자신애 대한 맹목적인 분노로 폭발했다. 바로 그런 분노가 그녀의 마음 속에 자신의 고독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자제력을 채워 주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배반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를 행동들을 자제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비록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비애감을 느졌던 유일한 순간은 일요일 밤 11시, 아직도 왁스 냄새가 풍기는 관이 도착했을 때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지체없이 관의 뚜쩡을 덮으라고 명령했다. 이미 집안에는 수많은 화환들에 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유해의 목 근처에 이미 자주빚 반점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 어디선가 누군가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살아 있다면 이미 몸뚱이의 반 정도는 썩어 버렸겠지." 페르미나 다자는 관의 뚜쩡이 닫히기 직전, 자신의 결혼 반지를 뽑아 죽은 남편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하려 할 때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싸쥐었다. "머지않아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장면을 보며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졌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직도 그가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 주방에다 충분한 커피를 준비하도록 시킨 것도 그였고, 이웃집에서 빌려온 의자로도 손님들이 모두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은 의자를 준비시킨 것도 그였으며, 집안이 화환들로 가득 차 버리자 마당에 나머지 화환들을 정리하라고 시킨 것도 그였다. 그는 또한, 은혼식 파티를 한창 즐기고 있던 중에 부음을 듣고 달려온 라씨데스 올리벨라 박사 일행에게 브랜디를 준비해 주기도 했다. 자정 무렵에, 도망쳤던 앵무새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거실에 나타난 사실을 발견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도 그였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그 앵무새가 뭐라고 허튼 소리를 할 틈도 주지 않고 그 목을 움켜 잡아서는 새장 속에 집어 넣어 버렸다. 그는 마치 불행애 빠진 그 집을 위해 보수 없는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사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무척 유용하고 진지한 노인이었다. 그는 아직도 끗끗한 허리와 잘 손질된 피부, 은테 안경 뒤에 빚나는 두 눈을 가지고 있었고, 옛스러운 모양의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반듯이 뒤로 빗어넘겨 대머리를 감추려 한 듯했다. 그는 지난 3월로 76번째 생일을 맞은 자신의 나이를 감추기 위해 꽤 많은 돈과 정력을 투자했다. 그런 그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오렌 세월 동안의 비밀스런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가 세상을 떠난 날 밤, 그는 입은 옷 그대로 그의 집으로 달려 왔었다. 그는 6월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언제나 검은 정장과 조끼, 비단 나비 넥타이와 증절모를 썼고, 지팡이로도 쓸 수 있는 까만 우산을 항상 들고 다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두 시간 동안 빈소를 떠난 그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말쑥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장례식에 참석할 때만 입는 듯한 까만 프록코트에 증산모를 쓴 차림이었고, 여전히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버릇 때문만이 아니라, 정오 이전에 비가 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는 그럴 경우에 장례식을 보다 일찍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페르미나 다자에게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카리브 해 리버 회사의 사장이라 날씨를 예측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안목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다른 사람들도 그의 충고를 따르겠다고 결정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공식적인 절차와 준비들이 모두 11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시간을 변경시키기는 불가능했고, 마침내 그 역사적인 장례식은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한 억수 같은 비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막상 진흙탕 속을 첨벙대며 묘지까지 따라간 사람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전날 오후, 카리브 망명객들이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를 그의 요청에 따라 그의 개와 함께 매장한 바로 그 건너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돌아온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지나칠 만큼 철저하게 건강 관리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폐렴에 걸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는 침대에서 브랜디를 섞은 뜨거운 레모네이드 한 잔과 아스피린두 알을 먹고, 담요로 몸을 감싼 채 한바탕 땀을 홀리고 나니, 몸의 평형이 회복되는 듯했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즈음에는 페르미나 다자도 이미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다시금 정신을 다잡고 집안 정리와 손님 맞을 준비를 지휠했고, 서재의 제단 위에 고인이 된 남면의 파스텔 초상화를 놓아 두었다. 마지막 손님들을 대문까지 전송하고 집안에 들어서던 페르미나 다자는 텅 빈 거실에 상복을 차려입은 채 혼자 서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 왔던 그를 알아보자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처 이렇게 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그는 모자를 벗어 가슴 위에 올려 놓으며 너무나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인생 속에 솟아 있던 종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페르미나,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이런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영원한 충실함과 끝없는 사랑을 다시 한 번 당신에게 서약하기 위해서 말이오." 페르미나 다자는 마치 미친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사 그 순간의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성령의 은총으로 그런 영감을 받고 있다 해도 아무런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온 집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러 그에게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노를 참고 엄숙히 말했다. "당장 나가세요, 당신이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그런 다음, 그녀는 잠그려 했던 문을 다시 열고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 남은 시간이 짧았으면 정말 좋겠군요." 그의 발자국 소리가 텅 빈 거리 너머로 사라져 가자, 그녀는 천천히 빗장을 걸어 문을 잠그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채 열여덟 살이 되기도 전부터 시작된 엄청난, 드라마의 질량과 규모를 명확히 의식해 본 적이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날 오후 이후에 처음으로 눈물을 터뜨렸다. 언제나처럼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말이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때문에 울었고, 자신의 외로움과 분노 때문에 울었으며, 빈 침실로 들어갔을 때 다시 한 번 새로운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순결을 잃은 이후로 그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잔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것이던 그 모든 물건들이 또 다시 그녀를 울게 만들었다. 그의 슬리퍼, 베개 밑의 잠옷, 화장대 거울 속에 비치는 그의 부채, 그녀의 피부 속에 스며든 그의 체취.그녀는 한 부질없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던 사람은 죽을 때 자기 물건을 모두 다 가져가야만 돼." 누군가가 자신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싫었고, 잠들기 전에 아무것도 먹고 싫지도 않았다. 슬픔에 빠진 그녀는 그날 밤 잠자는 동안에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신발만 벗은 채 입은 옷 그대로 침대에 눕자 마자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얼핏 잠을 깬 그녀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언제나 침대의 왼쪽 편에 누워 잠을 잤는데, 다른 반쪽의 침대가 어쩐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잠이 든 채 생각에 잠겼다. 두 번 다시는 이렇게 잠잘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잠 속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새벽닭이 운 지 한참 후까지 그녀는 그렇게 잠을 자면서 울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아침 햇살 때문에 잠을 깼다. 그녀는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있고, 계속 눈물을 지으며 꽤 오랜 시간 동안을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렇게 울면서 잠들어 있는 동안, 죽은 자신의 남편보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더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H잊 한편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51년 9개월 4일 전, 페르미나 다자가 길고도 말씽 많은 연애 끝에 그를 버리고 난 다음 단 한순간도 그녀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날짜를 계속 적을 필요도 없었으며 감방의 벽에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작대기를 그릴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단 하루도 그에게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헤어졌을 때 그는 어머니 트란시토 아리자와 함께 상점가에 있는 셋집의 반쪽에서 살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어머니는 젊은 처녀 때부터 잡화점을 경영하고 살아왔다. 그곳에서 전쟁 때 어머니는 헌 셔츠와 녕마들을 찢어 부상병들의 붕대로 괄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카리브 해 상선 회사의 설립자이고 당시는 마그다레나 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을 운영하고 있던 3형제 중의 하나인,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 선박 소유자 돈 피우스 로아야자의 일시적인 바람기 때문에 태어난 어머니의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돈 피우스 로아야자는 그의 아들이 열 살 때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밀리에 항상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으나, 법적으로는 플로렌티노를 아들로서 인지하지 않았고, 자식의 미래의 생활 설계를 위해 재산도 남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은 세상 사람이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성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학교도 그만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우체국에 사환으로 취직했다. 우체국에서 플로렌티노는 우편부대를 풀고, 편지를 분류하고, 편지가 도착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체국 문 위에 우편물이 온 나라의 국기 게양하는 일을 맡았다. 그의 영리함은 독일인 이주민인 무선전신 기사 로타리오 수굿트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또한 수굿트는 대성당에서 중요한 의식 때마다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으며 집에서 음악 레슨을 하고 있었다. 수굿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모르스 신호와 전신 기계의 작동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바이얼린을 몇 번 가르쳐 주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귀로만 듣고도 직업 연주가처럼 연주할 수가 있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를 만났을 때 그는 그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젊은이였다. 그는 최신식 댄스를 추는 법을 알고 있었고, 감상적인 시들을 암송하고 언제나 친구들의 애인을 위해 자청해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바이얼린으로 연주해 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몹시 가날펐으며 향수 냄새가 나는 포마드를 인디언처럼 검은 머리에 덕지덕지 바르고 다녔다. 근시 때문에 쓴 안경은 그의 고독한 모습을 더욱 강조해 주고 있었다. 시력이 나쁜 이외에도 그는 만성 변비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일생을 통하여 관장기의 신세를 지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죽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검은 양복이 한 벌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어찌나 정성스럽게 간수를 하는지 매주 일요일마다 그 옷은 새로 맞춘 양복처럼 보였다. 나약해 보이는 외모, 내성적인 성격, 낡은 옷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위에 있는 소녀들은 누가 그와 데이트를 하는가를 정하기 위해 은밀히 제비뽑기를 했다. 그도 또한 패르미나 다자를 만나 그런 순진한 소년다운 데이트에 종지부를 찍는 날까지는 그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로타리오 수굿트가 주소가 분명치 않은 로렌쪼 다자라는 사람에게 온 전보를 전해 주라고 그에게 말하던 어느 날 오후에 그는 처음으로 페르미나 다자를 만났다. 그는 그 사람을 에반잴스 공원 근처에 있는 매우 낡은 집의 하나에서 찾아냈다. 그 집은 절반은 폐허였다. 잡초가 무성한 화원과 물이 없는 돌로 만든 분수를 가진 안뜰은 수도원의 내정과도 같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맨발인 가정부의 뒤를 따라 쓰다남은 석회와 시멘트 부대 사이에 제멋대로 널려 있는 인부들의 연장과 아직도 풀지 않은 이삿짐이 놓여 있는 지붕이 덮인 통로를 지나 걸어갔다. 집은 한창 대공사가 진행증이었다. 안뜰의 맨 안쪽에 임시 사무실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곱슬곱슬한 구레나룻이 콧수염으로까지 이어져 있는 무척 뚱뚱한 사나이가 책상 뒤에 앉아 낯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이름이 로렌쪼 다자였다. 그는 이곳에 온 지 2년이 채 안 되었고 친구도 많이 사귀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로렌쪼 다자는 마치 악몽의 연속이나 되는 듯한 태도로 전보를 받아들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일종의 직업적인 동정심을 가지고 그의 까만 눈을 주시했다. 그는 그 사람의 불안스러운 손가락이 봉함을 뜯으려고 더듬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너무나 빈번하게, 너무나 많은 곳에서 전보를 죽음과 연결시켜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마음 속으로부터의 공포를 보았던 것이다. 전보를 읽고난 다음 그 사람은 다시 평상시의 안색을 회복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소식이로구만." 그리고 나서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전보 요금 5레알을 주었다. 그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것이 나쁜 소식이었다면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 분명히 나타나 보였다. 그는 악수를 청하고 잘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보 배달부에게는 보통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돌아갈 때도 가정부가 길가의 문까지 그와 동행을 했는데, 길을 안내한다기 보다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다시 지붕이 덮인 통로를 걸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집안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안뜰에서 읽기 연습을 반복하고 있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바느질 방을 지나가면서 그는 창문을 통해서 한 나이 먹은 여인과 어린 소녀가 의자를 맞대놓고 앉아 여인이 무릎 위에 펼쳐 놓은 책을 읽는 것올 보았다. 그 광경은 좀 이상스러워 보였다. 딸이 어머니에게 책 읽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해석은 부분적으로는 틀리는 것이었다. 나이 먹은 여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소녀를 키우기는 했으나 소녀의 어머니가 아니라 고모였기 때문이다. 공부는 중단되지 않았지만 소녀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누군가를 보기 위해 눈을 쳐들었다. 그 우연한 한 번의 눈길이 반 세기가 지난 후 까지도 끝나지 않은 파란만장한 사랑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폴로렌티노 아리자가 로렌쪼 다자에 관해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의 전부는 그가 콜레라가 만연한 직후, 외동딸과 결혼하지 않은 누이동생을 데리고 씨에나하에서 왔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한 채의 집을 꾸미기에 필요한 모든 가구를 가져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이곳에 정착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로렌쪼 다자의 아내는 소녀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에스코라 스티카라는 이름의 그의 누이동생은 40세의 나이로, 길거리에 나다닐 때는 성프란시스 파 의 복장을 입겠다는 서약을 충실히 지켰으며 집에 있을 때는 허리에 고행자의 밧줄을 매고 있었다. 소녀는 열세 살이었으며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페르미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로렌쪼 다자는 재산가로 추정되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뚜렷하게 알려진 직업도 없으면서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고 에반젤스 공원의 집을 살 때도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 집의 수리비는 구입 가격인 200골드페소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들어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딸은 성모현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 학교는 과거 2세기 동안 상류 사회의 젊은 숙녀들이 근면하고 정숙한 가정 주부가 되기 위한 교양과 훈련을 쌓아온 곳이었다. 식민지시대와 공화정의 초기 동안 그 학교는 명문가의 영양들만을 학생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독립과 더불어 몰락한 명문가문들은 새로운 시대의 현실에 타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는 상 하류 계급을 불문하고 정당한 가톨릭 가정의 합법적인 자녀라는 기본적인 조건에 합당하는 사람이면 값비싼 수업료를 낼 수 있는 어떤 입학 희망자에게나 그 문호를 개방했다. 어쨌든간에, 그 학교는 매우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학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페르미나 다자가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은 비록 그녀 가정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적 지위를 충분히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것은 아몬드 모양의 눈을 지닌 아름다운 소녀가 그의 꿈의 영역 내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의 아버지의 굳건한 방비 자세는 난공불락의 울타리를 딸의 주위에 둘러치고 있었다. 그룹을 이루거나 늙은 하인들의 경호를 받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페르미나 다자는 항상 노처녀인 고모와 함께 통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태도는 어떤 종류의 한눈도 팔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외로운 사냥꾼으로서의 비밀스러운 인생을 시작한 것은 이런 순진한 방법으로였다. 아침 7시부터 그는 조그만 공원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아몬드나무 그늘에서 시집을 읽는 체하며 푸른 줄이 쳐진 교복을 입고, 무릎까지 을라오는 스타킹을 신고, 남성용 옥스포드화를 신고,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치렁치렁하게 닿은 머리를 한 소녀가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눈은 정면에 고정시킨 채 자연스러운 오만함을 지니고 빠른 발걸음으로 걷는다. 그녀의 코는 똑바로 앞을 향하고 양손을 모아 책 가방을 가슴에 안은 그녀의 정숙한 처녀다운 걸음걸이에는 한치의 빈틈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소녀와 보조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며 걷는, 성프란시스의 갈색 복장을 한 고모가 버티고 있어서 그에게 조그만치의 접근 할 기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하루에 네 번씩 그들이 자기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그들이 미사에서 돌아오는 것을 한 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를 보는 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만족했다. 차츰 그는 그녀를 우상화해 갔으며 최상의 미덕과 상상할 수 있는 한의 아름다운 감정을 그녀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난 다음에는 그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전보 용지의 앞 뒷면에 쓴 간단한 편지를 페르미나 다자에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전할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며칠 동안 그 편지를 주머니 속애 넣고만 다녔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마다 몇 페이지를 더 추가해서 썼다. 그래서 처음에 쓴 편지는 밤에 공원에서 철야를 하며 읽은 책들에서 따온 찬양의 글귀들로 가득 찬 사전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편지를 전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는 성모현 고등학교의 다른 학생들과 교제를 트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녀들은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그 밖에도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리게 하는 것은 안전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수소문해서 페르미나 다자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토요일 댄스 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아직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니다" 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편지가 앞뒤로 빼곡히 써서 60페이지 이상 되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더 이상 자신이 간직한 비밀의 중압을 견디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인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그의 어머니인 트란시토 아리자는 사랑에 대한 아들의 너무나 순진한 태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했다. 그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아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우선 서정적인 문구로 가득 찬 연애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설득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 소녀도 보나마나 연애 문제에는 서툴 테니까 편지를 받으면 남성의 열렬한 감정에 겁부터 집어먹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첫번째 단계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에게 그의 관심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그의 사랑의 고백이 그녀를 지나치게 놀라게 하지 않을 것이고 또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고 트란시토 아리자는 말했다. "그녀를 손에 넣기 전에 우선 그녀의 고모를 네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두 가지 충고는 의심할 바 없이 현명한 것이었으나 너무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실제로 페르미나 다자가 고모에게 글을 가르치던 날 우연히 창 밖읕 지나가는 것이 누구일까 하고 눈을 들어 쳐다보았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가 풍기는 나약한 분위기 때문에 그녀에게 잎은 인상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그날 저녁 식사때 그녀의 아버지는 전보에 관해서 얘기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기 집에 오게 되었으며 그의 직업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얘기는 그녀의 흥미를 끌었다. 왜냐하면 그녀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보의 발명은 뭔가 마술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으로 조그만 공원의 나무 밑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그녀는 금세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알아 보았던 것이다. 나중에 고모가 벌써 몇 주일째 그가 그곳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때까지는 그 광경은 그녀의 가슴을 조금도 두근거리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일요일의 미사를 끝내고 나온 다음 그를 보았을 때 고모는 이러한 만남이 결코 우연일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녀가 말했다. "저 사람은 나를 만나려고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태지." 신앙심 깊은 행동과 고행자의 복장에도 불구하고 에스코라스티카 고모는 그녀의 가장 큰 미덕인 인생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이해하는 소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 남성이 자기 조카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그녀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역할 수 없는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는 사랑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조차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 속에 불러 일으킨 단 하나의 감정은 분명히 연민의 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그가 환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고모는 한 남성의 참다운 인간성을 알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공원에 앉아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남자는 틀림없이 사랑의 병이 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스코라스티카 고모는 사랑이 없는 결혼에서 태어난 외동딸에게 있어서는 이해와 애정의 피난처였다. 그녀는 페르미나의 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 줄곧 조카를 키워 왔다. 따라서 페르미나 다자와 그녀와의 관계는 고모와 조카라기보다는 공범자 쪽에 더 가까웠다. 플로렌틱노 아리자의 출현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안해 낸 수많은 심심파적 놀이의 하나였다. 하루에 네 번씩 에반잴스 공원을 지나갈 때면 두 사람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체하고 있는 여위고 소심하고 전혀 인상적이지 못한 보초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면서 흘끗 쳐다보는 것이었다. "저기 있어." 누구든 먼저 본 쪽이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초연한 태도로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숙명의 여인을 보았다."불쌍도 해라." 고모는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있어서 네게 접근할 엄두도 못 내는구나. 그러나 그가 진실로 사랑한다면 언젠가는 네게 접근해서 편지를 건네줄 거야." 모든 종류의 불행을 예상하면서 고모는 소녀에게 금지된 사랑에서는 불가피한 전술인 손짓과 몸짓으로 얘기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한 뜻하지 않은 어린애 장난 같은 기괴한 몸짓은 페르미나 다자에게 낯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는 했지만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런 것이 그녀에게 필요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 그러한 장난이 열망으로 변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녀의 피는 그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들끓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엔가는 그가 침대 발치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꿈올 꾸고 소스라쳐 잠을 깨기도 했다. 그리고 나자 그녀는 마음 속으로 고모의 예언이 사실이 되기를 열망했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 그에게 편지를 전해 줄 수 있는 용기를 내려 달라고 간구했다. 그녀는 그 편지 속에 뭐라고 써 있는지를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응답되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런 일은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 시기에 일어났으며 어머니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보낼 70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해가 다 가도록 편지를 기다렸다. 12월의 방학이 가까워오자 그녀의 열망은 공포로 변했다. 그녀는 학교를 가지않는 3개월 동안 어떻게 그를 보며 어떻게 자신을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에 관해서 반복하여 자신에게 물었다. 그녀의 의문은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도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가 자정미사의 신자들 속에 섞여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설레임을 느꼈다. 그 설레이는 초조감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감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홍분한 자신을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 신자들이 성당을 떠날 때 그녀는 그를 너무나 가까이 그리고 너무나 뚜렷하게 느꼈기 때문에 하나의 불가항력적인 힘이 중앙 통로를 따라 걸어가는 그녀를 어깨 너머로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바로 그녀의 눈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는 그 얼음같은 눈을, 흙빚 얼굴을, 사랑의 공포로 떨고 있는 입술을 보았다.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당황한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고모는 레이스 장갑을 통해 그녀의 손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고 공범자의 은밀한 동정심으로 조카를 달랬다. 불꽃 놀이와 원주민들의 불소리가 내는 소음 속에서, 집집의 문 위에 켜놓은 오색 등불과 평화를 기원하는 군증들의 아우성 속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새벽까지 마치 몽유병자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축제를 지켜보면서 그는 오늘 밤에 태어난 것은 아기 예수가 아니라 그 자신이라는 환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의 환각은 다음 주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때 그는 절망감을 안고 낮잠 시간에 페르미나 다자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와 고모가 문 옆에의 아몬드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가 첫날 바느질방에서 목격한 광경의 야외판 재현이었다. 소녀는 고모에게 읽기 연습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어깨에 주름이 많이 달린 그리스식 흰 상의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신선한 치자 나무의 화관이 얹혀 있어 마치 왕관을 쓴 여신처럼 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이 틀림없이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았으나 책을 읽는 채하지는 않고 책을 펼쳐 놓은 채 눈을 매흑적인 소녀에게 고정시켰다. 비록 그녀는 단 한 번도 사랑의 눈길을 보내준 적이 없었지만. 처음에 그는 아몬드나무 아래서의 읽기 연습이 아마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집수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으나 그뒤 며칠이 지나가자 그는 3개월의 방학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매일 오후의 같은 시간에 그가 보이는 장소에 나와 앉아 있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한 확신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다보거나 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고 관심을 표명하거나 거부의 의사를 나타내거나 하는 어떤 징표도 찾아내지 못했으나, 그녀의 냉담한 태도 속에는 그로 하여금 더욱 참고 기다리라고 격려해 주는 어떤 희미한 빚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오후, 고모는 집안에서 일에 매달려 있었고 조카만을 아몬드 나무에서 떨어지는 노란 잎이 수북히 쌓인 문 옆에 혼자 남겨두었다. 이것은 미리 계획된 기회라는 성급한 생각에 힙을 얻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 페르미나 다자의 앞에 가서 멈춰 섰다. 그녀가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숩결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고, 일생을 두고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게 될 꽃 냄새와 같은 향수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같은 이유로 반 세기 뒤에 다시 되풀이하게 될 말을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나의 편지를 받아 달라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에게서 예상하고 있었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롭고 또렷했으며 그의 내성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자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수틀에서 눈을 들지도 않고 그녀는 대답했다. "저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편지를 받을 수가 없어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목소리의 따뜻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그 목소리를 그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받아 주십시요." 그리고는 그 명령을 하소연으로 부드럽게 중화시켰다. "이것은 생사의 문제입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자수를 놓는 손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내일 오후에 이리로 오세요."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제가 자리를 바꿀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음 월요일, 공원의 벤치에서 한 가지의 변화를 빼놓고는 똑같은 광경을 보게 될 때까지는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즉 에스코라스티카 고모가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페르미나 다자는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다른 의자에 앉았던 것이다. 양복 깃에 흰 동백꽃을 꽃은 플로렌티나 아리자는 거리를 가로질러 가서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순간입니다." 페르미나 다자는 눈을 들어서 그를 쳐다 보지 않았으나 주위에 눈을 돌려 건조한 계절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인기척이 없는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마른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편지를 제게 주세요." 그녀는 속삭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너무나 자주 꺼내 읽어서 거의 외우다시피한 70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를 줄 생각이었으나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약속한 자신의 완전한 성실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간결한 반 페이지짜리 편지만을 건네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편지를 윗저고리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떨고 있는 수놓는 소녀의 눈 앞에 내밀었다. 그래도 소녀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로 뺏뺏하게 굳어진 손 안에서 떨고 있는 푸른 봉투를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편지를 올려 놓을 수 있도록 자수틀을 쳐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의 떨리는 손가락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즉 한 마리의 새가 아몬드나무의 잎 사이에서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새의 배설물이 바로 자수틀 위에 떨어졌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얼른 자수틀을 치우고 그가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의자 뒤에 숨기고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불덩이 같았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편지를 손에 든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이것은 행운입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거의 빼앗다시피 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서 그것을 접어 옷 속에 집어 넣었다. 그것을 보고 그는 옷깃에서 동백꽃을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거절했다. "그것은 약속의 꽃이에요." 이미 두 사람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다시 냉정한 태도로 되돌아갔다. "이제는 돌아가세요."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제가 대답할 때까지는 공원에 오지 마세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난 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얘기하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목소리가 쉬고 식욕을 잃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밤새껏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첫번 째 편지에 대한 답장을 기다리기 시작하자 그의 번민은 설사와 구토에 의해 더욱 괴로운 것이 되었고, 그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갑자기 쓰러지곤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어머니는 그의 증세가 사랑의 고뇌라기보다는 콜레라 증세와 더욱 비슷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대부이고 트란시토 아리자의 젊었을 때부터의 숨은 애인이기도 했던 동종요법의 치료사도 처음에 환자의 증세를 보고 걱정했다. 왜냐하면 환자는 맥박이 약하고 숨을 가쁘게 쉬었으며 죽어가는 사람처럼 식은땀을 자꾸만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진찰은 그가 열도 없으며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환자의 단 하나의 분명한 감정은 죽음에 대한 성급한 욕구였다. 가장 필요한 것은 처음에는 환자와 다음에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었는데 그것은 다시 한 번 사랑의 병은 콜레라와 증세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가져다 주었다. 치료사는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참피나무의 꽃을 다려 먹으라고 처방을 해주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다른 지방으로 전지요양을 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그와는 정반대로 사랑을 위한 순교의 길을 택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해방된 인디안 혼혈아로서 그녀의 행복을 위한 추구는 빈곤에 의해 좌절 되어 졌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식의 고뇌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이는 데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헛소리를 하는 아들에게 약을 다려 먹였고 오한을 덜어주기 위해 두터운 털 담요로 그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그가 고뇌를 즐기도록 부추겨 주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이런 것도 약이다.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고통을 당해보는 것도 괜찮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네 평생 계속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우체국에서는 그런 일을 환영하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점점 게을러져 갔으며 정신이 딴 곳에 가 있어서 우편물의 도착을 알리는 국기의 게양에 자주 실수를 범했다. 어떤 수요일에는 레일랜드 회사의 배가 영국의 리버풀에서 우편 물을 싣고 왔을 때 독일 국기를 게양했고, 또 어떤 날에는 상나자르에서 우편물을 싣고 온 배가 들어왔을 때는 미국 국기를 내다걸기도 했었다. 이러한 사랑의 혼란은 우편물 분류 때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수 많은 항의를 유발해냈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로타리오 수굿트가 그를 전보 관계 일을 시키고 성당 합창대에서 바이얼린 연주를 시킨 덕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많은 연령의 차이로 인해 참으로 이헤하기 곤란한 우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할아버지와 손자 정도로 나이 차이가 났다. 그러나 그둘은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항구 근처의 술집에서도 곧 잘 어울렸다. 그 술집들은 술주정뱅이 거지로부터 쏘시얼 클럽의 자선 파티에서 기름에 튀긴 숭어와 코코닛 라이스를 먹기 위해 뼈져나온 연미복 차림의 젊은 신사들에 이르기까지 사회 계층에 관계 없이 저녁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었다. 로타리오 수굿트는 전보실에서 마지막 당번 근무가 끝난 뒤 그곳에 들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새벽녁까지 자마이칸 펀치를 마시며 안틸리즈 군도의 스쿠너에서 온 일단의 미치광이들과 아코디온을 연주했다. 그는 뚱뚱한 체구에 황소같이 굵은 목덜미와 황금색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밤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삼각 두건을 썼다. 거기에 한줄의 방울만 달면 영락없이 성 니콜라스처럼 보였을 것이다.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씩은 그는 '귀여운 작은 새' (그는 선원들을 위해 선창가의 호텔에서 하룻밤의 사랑을 파는 창녀들을 그렇게 불렀다.) 하나와 밤을 보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만났을 때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에게 자신의 낙원의 비밀을 전수해 준 것이었다. 그는 제자를 위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귀여운 작은 새'를 골라주고 그들의 가격과 몸매에 대해서 의논하고 자기 돈으로 미리 서비스 요금을 선불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동정이었고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동정을 잃고 싶지 않다고 처음부터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은 경기가 좋았던 시절의 식민지의 궁전이었다. 호화로운 대리석의 살롱과 방들을 들여다 보는 구멍이 뚫린 석고판으로 칸을 막은 작은 방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구멍은 창녀를 사는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를 받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빌려주고 있었다. 구경하다가 뜨개질 바늘에 눈을 찔린 사람의 얘기, 자기가 들여다보고 있던 것이 아내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얘기, 자신의 신분을 잊기 위해서 부랑자로 가장하고 찾아온 명문가의 신사에 관한 얘기, 그 밖에 구경하는 자와 구경거리가 된 자들의 불행한 모험에 관한 얘기들이 너무나 많아서 호텔방에 들어 간다는 생각만 해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따라서 로타리오 수굿트는 성 행위를 구경하고 자기 자신의 성 행위를 구경하게 하는 행위가 유럽의 귀족들이 애용하는 품위 있는 여흥이라고 설명했지만 끌내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의 비대한 체구가 연상시켜 주는 것과는 정반대로 로타리오 수굿트는 귀여운 아이와 같은 작은 장미빚 생식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결점이었다. 왜냐하면 가장 경험이 많은 창녀들은 누가 그와 함께 잠자리를 함깨 하느냐로 말다툼을 벌이고들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와 함께 잠자리에 들면 마치 목이 잘려나가는 듯한 비명을 질러서 궁전의 버팀벽을 뒤흔들어 놓고 그 유령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그가 여성의 성기를 불붙게 만드는 독사의 독으로 만든 연고를 사용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준 물건 이외는 사용한 적이 없노라고 맹세했다. 그는 껄껄거리고 웃으면서 말하고는 했다. "그건 순수한 사랑의 힘이야."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가야만 했다. 자신의 감정 교육의 보다 진보된 단계에서, 그는 동시에 세 사람의 여인을 착취해서 제왕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 인물을 만났을 때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그 세 사람의 여인은 새벽이면 그들이 벌어온 돈을 바치고 , 그의 발 밑에 엎드려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한 것애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녀들이 추구하는 단 한 가지 보수는 그가 가장 많은 돈을 갖다준 여인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직 공포심만이 그러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세 여인 중의 한 사람은 그것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진실을 말해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 일은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서만 할 수 있는 거예요." 로타리오 수굿트가 호텔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객의 한 사람이 된 것은 그의 성교의 재능이라기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매력 탓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 역시 그의 조용한 태도와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그곳 주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비탄에 찬 가장 어려운 기간 동안 그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좁은 방안에 들어앉아 시와 눈물로 가득 찬 사랑의 이야기들을 읽고는 했다. 그의 공상은 발코니에 있는 검은 제비들의 둥지와 낮잠 시간의 정적 속의 키스 소리와 날개 소리를 떠나갔다. 황혼이 찾아와 조금 선선해지면 그날의 일과를 끝내고 잠시간의 사랑으로 자신을 달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많은 불성실한 행동에 관해서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옆방에서 엿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고객이나 지방 관리들이 하룻밤의 애인들에게 털어 놓는 국가적 기밀조차도 몇 가지 엿듣게 되었다. 그가 소타벤토 군도 북쪽 12해리 지점에 5천억 페소 상당의 순금과 보석을 실은 스페인 보물선이 18세기 이래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또한 그런 얘기를 통해서였다. 그 얘기는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몇 달 뒤 그의 사랑이 페르미나 다자를 황금으로 목욕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 그 침몰된 보물선을 인양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그에게 일깨워 줄 때까지는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시의 연금술에 의해 이상화되어진 소녀가 진정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내려고 했을 때 그는 그 당시의 비통에 가득 찬 황혼과 그녀를 따로 구별해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첫번째 편지에 대한 회답을 기다리고 있던 그 갈망의 나날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을 때 조차도 그는 계절에 관계 없이 항상 4월인, 아몬드나무의 꽃돌이 소나기처럼 지는 오후 2시의 아련한 햇살 속에서 신성화되어진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성당 안이 전부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합창대 석에서 로타리오 수굿트를 따라 바이얼린을 연주하는데 흥미를 느낀 유일한 이유도 찬송가에 의해 일어난 미풍 속에서 그녀의 윗옷이 어떻게 나부끼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자신의 정신 착란은 마침내 그러한 즐거움을 망쳐 놓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신비스러운 음악은 그의 영혼의 상태에 비하면 너무나 무해한 것이어서 그는 사랑의 왈츠로 그것을 보다 흥미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타리오 수굿트는 그에게 합창단을 그만두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가없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이때가 그로 하여금 패르미나 다자의 맛을 알기 위해어머니가 만들어 화분에 키우는 치자나무 열매를 먹고 싶다는 욕구에 굴복하게 된 시기였다. 또한 그가 어머니의 트렁크 속에서 함부르크 미국간 항로의 선원들이 밀수품으로 들여다 판 일 리터짜리 콜로뉴 병을 우연히 발견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연인의 또 다른 맛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것을 시음해 보겠다는 유혹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새벽까지 병에서 조금씩 계속 따라 마셨다. 그래서 그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취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항구 근처의 술집을 돌아다니다가 연인들이 밀회를 즐기는 방파제에서 바다를 응시하고 서 있다가 끝내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불안과 초조한 마음으로 새벽 6시까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트란시토 아리자는 엉뚱한 곳을 찾아다니던 끌에 정오 조금 지나서야 익사체들이 가끔 올라오는 해변의 동굴에서 달착지근한 구토물의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아들이 회복하는 틈을 이용해서 편지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수동적인 태도를 나무랐다. 그녀는 약자는 잔혹하고 경쟁이 심한 사랑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아들에게 상기시키고 여자란 그들이 인생을 살아 나가는데 필요한 생활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결단력이 있는 남성에게 자기를 맡긴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교훈을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검은 양복을 입고 빳빳한 펠트모자를 쓰고 감상적인 보우타이를 매고 셀룰로이드 칼라를 달고 아들이 잡화점을 나가는 것을 보자 어머니로서보다 한 여성으로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혹시 장례식에 가는 것이 아니냐고 농담삼아 물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장례식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거예요." 그녀는 아들이 공포감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의 결심은 굳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마지막 경고와 축복을 준 다음 그리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그의 승리를 함께 축복하기 위해 또 다른 콜로뉴를 준비해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한달 전에 페르미나 다자에게 편지를 주었었다. 그 이후 공원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번이 깨뜨렸으나 들키지 않도록 무척 조심을 해 왔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무 아래서의 읽기 연습은 도시가 낮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인 오후 2시에 끌났다. 그리고 페르미나 다자는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고모와 함께 자수를 놓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모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남성다운 씩씩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건너갔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에게가 아니라 그녀의 고모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 숙녀와 함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겠읍니까?" 그는 말했다. "그녀에게 할 중대한 이야기가 있읍니다." "무례한 젊은이로군 !" 그녀의 고모가 말했다. "내가 이 아이와 관계 있는 일로 못 들을 얘기가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읍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것을 경고해 두겠읍니다." 그것은 에스코라스티카 다자가 이상적인 연인으로부터 기대한 태도는 아니었으나 놀라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성령의 영감 아래서 얘기하고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바늘을 교환하러 집으로 들어가고 두 젊은이만을 문 옆의 아몬드나무 아래 남겨 두었다. 사실 페르미나 다자는 마치 겨울의 제비처럼 자신의 인생에 나타난 이 말 없는 구혼자에 관해서 조금밖에는 알고 있는 바가 없었다. 그의 이름조차도 그의 편지에 서명한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모르고 있을 뻔했다. 그녀는 그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기는 하지만 단 한 번 젊었을 때 범한 실수가 남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영원히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미혼 여인의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가 생각한 바와 같이 전보 배달부가 아니라 장래를 약속받은 자격증을 가진 전보 기사 조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전보를 배달한 것은 오로지 자기를 만나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그 생각이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녀는 또 그가 합창대의 반주자의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미사 동안 감히 눈을 들어서 그를 올려다 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일요일 날 다른 악기들은 모든 사람을 위해 연주되고 있으나 바이얼린은 그녀 한 사람을 위해 연주되어지고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그는 그녀가 선택하고 싫은 종류의 남성은 아니었다. 그의 고아처럼 보이는 안경, 성직자 같은 복장, 신비한 힘 등은 그녀의 마음에 저항하기 어려운 호기심을 일깨워 주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 호기심이 사랑의 수많은 가면 중의 하나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녀 자신으로서는 무엇 때문에 그 편지를 받았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편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 자신올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답장을 써야 한다는 점증하는 압력이 그녀의 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한 마디 한 마디, 아버지의 우연한 눈길, 아무 것도 아닌 몸짓 등은 그녀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마련된 함정처럼 보였다. 그녀의 불안 상태는 무심한 말 한 마디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낼까 두려워서 식탁에서 얘기하는 것조차도 피할 정도였다. 또한, 그녀는 마치 자기 일처럼 그녀와 함께 조바심을 치고 있는 에스코라스티카 고모까지도 피해 다니게 되었다.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려는 이유 때문에 엉뚱한 시간에 욕실 속에 몸을 감추고 그것이 문면에 쓰여져 있는 이상의 의미를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회망에서, 48개의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314글자의 하나 하나에 담겨진 마법의 처방을, 비밀의 암호를 발견해 내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의 전부는 욕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길고도 열렬한 내용의 편지를 기대하면서 봉투를 뜯어 열고, 그녀에게 덜컥 겁을 안겨준 사나이의 결의에 찬 구절만을 발견했을 때, 그녀가 처음에 이해한 그 내용뿐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기가 답장을 보낼 의무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편지는 명백히 답장을 요구하고 있어서 그것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한편 망설임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빈번하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자기의 대답이 준비될 때까지 공원에 오지 말라고 그에게 부탁한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왜 그가 정해진 시간에 공원에 와 있지 않느냐고 짜증을 부리며 자신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가 어떤 사람에 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식으로 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있지 않는 곳에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고 그가 있을 수가 없는 곳에 그가 있기를 원했다. 그녀가 잠든 동안 그가 어둠 속에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또렷한 실감을 가지고 소스라쳐 잠을 깨고는 했다. 그래서 그날 오후, 그의 결단에 찬 발걸음이 공원의 노란 낙엽 위를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로서는 그것이 자신의 상상력이 빚어낸 또 다른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그가 평소의 무기력한 자세와는 걸맞지 않게 단호한 태도로 그녀의 대답을 요구했을 때 그녀는 공포를 가까스로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진실을 가지고 문제를 피하려고 했다. 즉, 그녀는 어떻게 답장을 써야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정도의 대답을 듣고 물러가기 위해 깊은 심연을 뛰어넘어 오지는 않았다. "편지를 받고도 그것에 대한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미로의 종말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자제력을 되찾고 답장이 늦어진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는 답장을 꼭 보내겠다고 진지하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는 편지를 받았다. 개학을 사홀 앞둔 2월의 마지막 금요일, 에스코라스티카 고모는 우채국을 찾아가 전보 배달 지역의 리스트에는 올라 있지 않은 마을인 피에드라스 드 모레르에 전보를 보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에 한 번도 그를 본 일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응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우채국을 나갈 때 짐짓 카운터 위에 도마뱀 가죽으로 싼 기도서를 잊어버리고 갔다. 그 기도서 속애는 금박 무늬가 찍힌 린넨지로 만든 봉투가 한 개 끼어져 있었다. 미칠 듯이 기뻐하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날 오후 내내 장미를 먹으면서 편지의 글자 하나하나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보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더욱 많은 장미를 먹었다. 그래서 자정이 될 때까지 그는 너무나 여러 번 편지를 읽고 또 너무나 많은 장미를 먹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마치 그가 송아지나 되는 것처럼 머리를 강제로 붙잡고 피마자 기름을 한 숟갈 억지로 먹였다. 그것이 두 사람이 파멸적인 사랑에 빠진 해였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구도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서로에 관해서 꿈을 꾸고 답장을 받을 때까지 서로가 똑같이 조바심을올 치며 편지를 기다렸다. 그 흥분으로 가득 찬 봄이나 그 다음 해에도 두 사람은 서로가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들이 서로를 처음으로 본 순간부터 반 세기 뒤 그가 자신의 결심을 되풀이하게 될 때까지 두 사람은 단둘이 있거나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3개월 동안 두 사람은 단 하루도 서로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 보낸 날이 없었다. 한때는 하루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에스코라스티카 고모가 그녀 자신이 불길을 당기는데 도움을 준 사랑의 불꽃이 너무나 강렬한데 놀라서 겁을 집어먹게 될 때까지는 그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복수심도 곁들여서 첫번째 편지를 우체국으로 전달한 뒤 그녀는 거의 매일처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며 두 사람간의 편지를 전달하고 전달받았으나 직접 만나서의 대화를 허용할 만한 용기는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대화가 아무리 평범하고 덧없는 것일지라도. 3개월이 지난 뒤, 그녀는 처음에 우려했던 바와 같이 조카가 소녀다운 환상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 자신의 생활은 불꽃 같은 사랑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에스코라스티카 다자는 오빠의 자비심에 의지하는 외에는 생활해 나갈 아무런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오빠의 폭군적인 성격이 그와같은 신뢰에 대한 동생의 배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젊었을 적부터 줄곧 간직해 와야만 했던 돌이킬 수 없는 똑같은 비탄을 조카에게도 안겨주고 싶은 몰인정한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카에게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전술을 가르쳐 주었다. 방법은 간단한 것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목의 몇 군데 장소에 편지를 숨겨놓는다. 그 편지에는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답장을 숨겨 놓을 장소가 지시되어 있다. 그도 역시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몇 달 동안 편지는 성당의 세례당, 고목에 뚫린 구멍, 폐허가 된 식민지 시대의 요새에 있는 갈라진 틈 같은 곳에 숨겨졌다. 이따금 두 사람의 편지는 비에 젖고 흙탕에 파묻히고 불운하게 찢겨 나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분실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다시 서로에게 접촉할 길이 트이고는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매일 밤 편지를 쓴다. 그는 잡화점의 뒷방에서 야자 기름 램프가 뿜어내는 독한 연기에 건강을 해쳐 가면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심신을 쏟아 넣었다. 그 당시 이미 80권에 육박하고 있던 대중 문고판 시집에서 읽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의 흉내를 내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편지는 산만해지고 광적인 것이 되어갔다. 열정을 갖고 사랑의 고뇌를 즐기도록 격려해온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건강에 우려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는 미쳐 버리고 말겠구나." 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자기 침실에서 소리쳤다. "어떤 여자도 그 정도의 값어치는 없어." 트란시토 아리자는 그와같은 주체할 수 없는 정열의 상태에 몸을 둔 인간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걱정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따금 그는 한숨도 자지 않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페르미나 다자가 학교로 가는 길에 받아볼 수 있도록 미리 정해진 장소에 편지를 숨겨 놓고 돌아서는 그의 머리는 사랑의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 아버지의 감시의 눈과 수녀들의 심술굿은 경계의 눈초리 밑에서 그녀는 욕실 안에 숨거나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하는 체하면서 공책에 겨우 반 페이지의 편지를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제한된 시간과 언제 발각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부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역시 그녀의 본성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한 본성이 편지에서 감정적인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게 만들고 항해 일지와 같은 실리적인 스타일로 일상적인 사건과 관계 있는 일에만 국한 시키게 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편지들은 뜨뜻미지근한 것으로서 손을 불 속에 넣지 않고 석탄불을 살펴보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의 한 구절 한 구절에 자기 자신을 불태우며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기 자신의 광기로 그녀를 감염시켜 보려는 절망적인 노력으로 그는 그녀에게 동백꽃에 핀 끝으로 찔러 쓴 짧은 시를 보냈다. 편지 속에 한줌의 머리칼을 잘라 넣어보낸 대담한 짓을 한 것도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열망한 페르미나 다자의 한 움큼의 닿은 머리는 종내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결국 그녀로 하여금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디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사전 속에다 말린 나뭇잎, 나비의 날개, 새의 깃털 등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생일에는 그녀 나이 또래의 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이 값이 비싼, 당시 비밀리에 팔리고 있던 성 피터 크라비어가 입었던 옷의 1cm를 주었다. 어느날 밤 갑자기 그녀는 놀라서 잠이 깼다. 한 개의 바이얼린이 그녀를 위해 똑같은 왈츠를 계속 반복해서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음악이 그녀의 식물 표본에서 보낸 꽃 잎들과 수학 시간을 훔쳐 편지를 쓴 것과 자연 과학보다는 그를 더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느낀 시험에 대한 공포 등에 감사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러한 대담무쌍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식사 때 로렌쪼 다자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 바이얼린 음악이 뜻하는 바를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집을 향해 연주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카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태연자약하게 에스코라스티카 고모는 침실의 커튼을 통해서 바이얼린 연주자가 공원의 반대편을 향해 연주하는 것을 틀림없이 보았노라고 말하고 그 음악은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날 보낸 편지 속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가 그녀를 위해 바이얼린을 연주한 것을 강조하고 그 왈츠는 자기가 작곡한 것이며 그 곡의 이름은 그가 혼자서 마음 속으로 부르고 있는 그녀의 별명 '화관을 쓴 여신' 이라고 했다. 그는 두 번 다시 공원에서 그 곡을 연주하지는 않겠지만 달밤이면 그녀가 공포에 떨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여러 곳에서 그 곡을 연주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좋아하는 장소의 하나는 햇빚과 비바람에 노출된 쓸쓸한 언덕 위에 있는 극빈자 묘지였다. 그곳에서는 독수리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음악은 초자연적인 공명을 갖게 된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바람의 방향을 식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그런 식으로해서 그는 자신의 멜로디가 의도한 대로 바람에 실려간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해 8월, 반 세기 이상 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어 오고 있는 수많은 내란중의 하나가 다시 전국에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카리브 해 연안 지방에는 오후 6시에 통행금지가 실시되었다. 이미 몇 번의 소요가 일어나고 군인들은 모든 종류의 보복적인 횡포를 자행하고 있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사랑에 도취되어 외부 세계의 세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그가 감미로운 음악의 자극으로 죽은 사람들의 신성한 잠을 방해하고 있을 때 한 군 순찰대가 그의 앞에 나타나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기적적으로 그는 가까운 바닷가에 떠 있는 반란군의 선박에 바이얼린으로 암호 통신을 보낸 스파이의 혐의를 받아 즉석에서 처형당하게 된 재난에서 벗어났다. "도대체 스파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대답했다. "나는 한 사람의 불쌍한 연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흘 밤을 그는 지방 교도소의 감방에서 발목에 쇠사슬을 찬 채 잤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석방되었을 때 그는 구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살았던 때와 같은 낭만적인 시대에도 아마 사랑때문에 5파운드짜리 쇠사슬을 찬 사람은 그 도시에서, 아니 그 나라에서 그 한 사람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열정적인 서신의 왕래가 거의 2년이나 계속 되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떤 편지의 짧은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처음으로 페르미나 다자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다. 그 이전의 6개월 동안 이따금 그는 휜 동백꽃을 보냈으나 그녀는 다음 편지 때는 그것을 다시 넣어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편지를 계속 써 보낼 생각은 있지만 결혼과 같은 심각한 감정은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실 그녀는 항상 동백꽃을 보내고, 되돌려보내고 하는 것을 연인들의 게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의 갈림길로서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결혼 제의를 받자,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죽음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그녀는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에게 의논했다. 고모는 그녀가 20세 때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했을 때는 지니지 못했던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조카에게 충고했다. "그에게 좋다고 해라." 고모는 말했다. "당장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도,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승낙을 해라. 너가 어떤 사람이 되든간에 만일 지금 싫다고 말한다면 너는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는 너무나 당황해서 얼마간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한 달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는 두 달을, 그리고 석 달을 요구했다. 넉 달이 지나서도 대답을 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다시 한 송이의 휜 동백꽃을 받았다. 그 동백꽃은 여느 때와는 달리 지금 외에는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는 단호한 내용의 쪽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노트를 찢어서 연필로 휘갈겨 쓴 편지를 받았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죽음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좋아요, 내게 가지를 먹이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 준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러한 답장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나 그의 어머니는 그렇지가 않았다. 6개월 전에 아들이 결혼할 생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그녀에게 밝혔기 때문에 트란시토 아리자는 그때까지 다른 두 가족과 함깨 세들어 살던 집을 전세로 빌리는 교섭을 벌이기 시작했었다. 17세기에 지은 이층 건물인 그 집은 스페인 통치 하에서 담배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몰락한 그 건물의 소유자는 그 건물을 유지해 갈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나누어서 세를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건물들 가운데는 옛날에 담배를 소매하던 점포가 자리잡고 있는 도로에 면한 구획이 있고 포장이 된 안뜰 뒤에는 담배 공장이 있던 또 다른 구획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거주인들이 공동으로 빨래터로 사용하고 있는 매우 넓은 마굿간이 있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가장 편리하고 잘 보존되어 있는 첫 번째 구획에 살고 있었으나 그곳은 구획 가운데서 가장 비좁은 곳이었다. 잡화점은 거리에 면한 커다란 문이 달린 옛날 담배 상점자리에 있었고 가게 한 쪽에는 옛날에 광으로 쓰던 천정에만 창이 달린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이 트란시토 아리자가 잠자는 곳이었다. 창고가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판자벽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방의 하나에 한 개의 테이블과 4개의 의자가 놓여져 있고 두 사람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공부를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밤에 책을 읽지 않으면 누워서 자는 그물침대가 있는 곳도 그곳이었다. 그 방은 두 사람에게는 넉넉한 공간이었으나 세 사람이 쓰기에는 비좁았다. 더군다나 성모현 고등학교에 다니는 처녀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폐허의 집을 거액을 들여 새 집으로 해 놓을 정도의 부호의 딸이 들어와 살기에는 너무나 비좁았다. 그래서 트란시토 아리자는 집 주인에게 안뜰에 있는 배란다를 쓸 수 있도록 교섭하고 있었다. 그 대신 그녀는 5년 동안 집을 깨끗이 보수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재력이 있었다. 잡화점과 지혈용 붕대로부터 들어오는 현금 수입에 더해 그녀는 저축해 놓은 돈을 새로 빈민으로 전락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고객들에게 빌려줌으로써 몇 배로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비싼 이자를 지불하고 기꺼이 그녀의 돈을 빌려 썼다. 여왕 같은 기품의 귀부인들이 시녀나 하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마차에서 내려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귀부인들은 네덜란드 레이스와 장식품들을 사는 체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잃어버린 낙원의 유물인 마지막 값진 장신구들을 저당잡히는 것이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그들의 혈통에 대해 많은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을 곤란한 지경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받은 돈보다는 명예를 잃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잡화점을 나갔다. 10년이 채 못 되는 동안에 그녀는 보석을 다시 찾고 그 다음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저당잡히고 하는 동안에 마치 자기 것이나 되는 것처럼 보석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이 결혼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이익금은 금으로 둔갑하여 그녀의 침대 밑 항아리 속에 숨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그것을 계산해 보고 5년 동안 셋집을 보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영리하게 행동하고 조그만 행운만 따라준다면 자기가 죽기 전에 그녀가 갖기를 원하고 있는 12명의 손자들을 위해 그 집을 통째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편,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잠정적으로 전보국의 수석 조수로 임명되었으며, 내년에 설립될 전신 통신 학교 교장으로 떠날 예정인 로타리오 수굿트는 자신의 뒤를 이어 그가 전보국을 맡아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따라서 결혼의 실제적인 면은 거의 해결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트란시토 아리자는 두 가지의 최종적인 조건을 신중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첫번째 조건이란 로렌쪼 다자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의 사투리를 들어 보면 그의 근본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나, 아무도 그의 신원이나 생활같은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못했다. 두 번째 조건은 약혼 기간은 두 사람의 약혼자가 개인적으로 충분히 상대방을 알 수 있게 되도록 길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두 사람이 서로의 애정을 굳게 확신할 때까지 충분히 유예 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두 사람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만 어머니의 이유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연금술적인 성격 때문에도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키는데 동의했다. 그는 또한 결혼의 연기에도 동의했으나 전쟁이 끌날 때라는 조건은 그에게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독립을 쟁취한 지 거의 반 세기 동안 이 나라는 단 하루도 국민이 평화를 누린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을 기다리다가는 우리는 늙은이가 되고 말 걸요."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말했다. 우연히 그들의 대화에 동석하게 된 동종요법사인 그의 대부는 전쟁이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이 지주들에게 황소처럼 혹사당하고 있는 빈민들과 역시 정부에 의해 혹사당하고 있는 맨발의 가난한 군인들, 즉, 빈민들간의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은 현재 산 속에서 벌어지고 있지." 그는 말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들은 도시에 있는 우리들을 총알로 죽인 것이 아니라 법령으로 죽여왔지." 어쨌든간에 약혼 절차는 그 이후의 몇 주 동안에 오고 간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결정되었다. 고모의 조언에 따라 페르미나 다자는 2년 간의 결혼식 연기와 절대적인 비밀 유지라는 두 가지 조건에 동의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에 그가 청혼해 줄 것을 제의했다. 그때가 되면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얻어내는 동의의 정도에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 약혼식을 거행하는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들은 옛날과 같은 열의와 빈도를 갖고 서로에게 편지 쓰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옛날에 느꼈던 고통에서 해방된 두 사람의 편지는 남편과 아내에게 어울리는 가정적인 색조를 띠어갔다. 두 사람의 꿈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생활은 변했다. 보답받은 사랑은 그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감과 힘을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직장에서도 유능함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에 로타리오 수굿트는 그를 정식으로 수석 조수로 임명했다. 자신의 전신 통신 학교 설립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독일인은 자신의 자유 시간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 즉 항구의 술집으로 가서 아코디온을 켜면서 선원들과 맥주를 마시고 호델에서 밤을 보내는 일에 바쳤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환락가에서의 로타리오 수굿트의 영향력은 그가 호텔의 소유자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항구의 창녀들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의 저축으로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사 나갔다. 그를 위해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깡마른 외눈의 왜소한 사나이로서 어찌나 친절한지 아무도 어떻게 해서 그렇게 훌륭한 지배인 노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여튼 그는 뛰어난 매니저였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지배인이 언제든지성적인 욕구가 생겼을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론, 독서를 하거나 사랑의 편지를 쓰기 위해 조용한 장소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호텔방 하나를 영구히 쓰도록 해 주겠다고 그에게 말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최소한 그렇게 보였다. 그리하여 약혼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는 사무실이나 집에서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따라서 그 시기 동안 트란시토 아리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돌아올 때만 아들을 볼 수가 있었다. 독서는 그의 탐욕스러운 결점이 되었다. 그에게 글 읽기를 가르쳐 준 이래 그의 어머니는 어린애들을 위한 읽을 거리로 팔고 있던 북유럽 작가들의 그림 책들을 그애게 사다 주었으나 실제로 그 책들은 어떤 나이의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내용들이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학교의 문학의 밤에서 기억을 더듬어 그 이야기들을 인용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대한 그의 친숙감도 그것이 지닌 공포감을 완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아니, 그 반대로 그것은 더욱 첨예화 되었다. 따라서 그가 시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마치 오아시스를 찾아낸 것 같은 심정이었다. 사춘기에 들어섰을 때도 그는 스크라이브 시장의 할인 서점 (그곳에는 호머에서 지방의 무명 시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책이 있었다.)에서 트란시토 아리자가 사다 준 '포풀러 라이브러리'의 전집을 출판되는 순서대로 탐욕스럽게 읽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가려 읽을 줄을 몰랐다. 그는 마치 그것이 운명에 의해서 정해진 것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무턱대고 읽었다. 따라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도 그가 읽은 모든 책에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산문보다는 운문을 더 좋아한다는 것과 시 가운데서도 사랑의 시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사랑의 시는 두 번만 읽고 나면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도 거뜬히 외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들의 운율이 좋을 때는 더욱 쉽사리 외울 수가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그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보낸 초기의 편지들의 원천으로서, 그 설익은 사랑의 문구들은 모두가 스페인의 낭만시에서 빌어온 것들이었다. 그의 편지는 현실 생활이 그로 하여금 마음의 상처보다는 보다 세속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강요할 때까지 그런 투로 계속되었다. 그 시기에 그는 최루형의 연속 소설과 그 당시의 훨씬 불경스러운 산문 쪽으로 옮겨갔다. 그는 시장이나 아케이드에서 팔고 있는 지방 시인의 소책자를 읽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우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황금시대의 가장 뛰어난 카스틸리아 인의 시를 암송할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는 그의 손에 잡히는 순서대로 모든 종류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첫사랑의 그 고통스러운 세월이 홀러간 오랜 뒤, 이제는 이미 젊은이도 아니었을 때 그는 젊은이의 보고 20권, 가르니에 형제 출판사의 총 도서목록, 번역판 고전 문학작품, 돈 비센테 브라스코 이바네스가 프로메테오 콜렉션에서 출판한 작품들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읽고는 했다. 어쨌든간에 싸구려 호텔에서의 그의 청춘의 모험은 독서나 열렬한 연애 편지를 쓰는 일에만 한정되어진 것은 아니었고, 사랑이 없는 사랑의 비밀에 눈을 뜨게 해 준 일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의 친구인 창녀들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호델은 이 도시의 비밀, 전날 밤 손님들에게 들은 것에 대해서 떠들썩하게 논평을 늘어놓는 벌거벗은 요정들로 붐비는 것을 발견한다. 많은 창녀들은 나체에 자신들의 과거의 숱한 혼적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배에는 칼을 맞은 자국, 총을 맞은 자국, 면도칼로 벤 자국, 돌팔이 의사들에 의헤 꿰매진 제왕절개 수술 자국 등등.... 그들 중의 일부는 낮에는 어린 자식들과 함께 지냈다. 그 불행한 어린 생명들은 반항적이거나 무관심 속에 버려졌다. 그들은 나체의 천국에서 위화감읕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도착하는 즉시 그들의 옷을 벗겨 버렸다. 창녀들은 각자 자신의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식사 때는 모두들 그를 초대하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만큼 잘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식사 가운데서 맛있는 것을 선택해서 먹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황혼 녁까지 계속되는 매일의 축제였다. 저녁때가 되면 벌거벗은 창녀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욕실로 행진해 갔다. 비누와 치솔과 가위를 빌려 달라고 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고, 빌려온 옷으로 몸을 감싸고 서글픈 광대와 같이 자신들의 얼굴에 울긋 불긋한 화장을 하고 그날의 첫번째 먹이를 낚아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호텔 안의 생활은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 되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그 생활 속에 끼어들 수가 없게 된다. 페르미나 다자를 알게 된 이래 풀로렌티노 아리자가 평안하게 느끼는 곳은 그 곳 말고는 없었다. 그곳이야말로 그가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한 아름다운 은발의 우아한 늙은 여인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늙은 여인은 벌거벗은 여인들의 방종한 생활에는 동참하지 않았으나 그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교활한 연인이 그녀가 어렸을 때 그곳에 데려와서는 한동안 그녀의 몸을 즐긴 뒤 창녀로 팔아 넘기고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치욕스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나이를 먹고 혼잣몸이 되었을 때 두 아들과 세 딸은 누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사는가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그녀는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보냈던 그 호텔보다 더 좋은 노후의 안식처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장기적으로 빌린 방은 그녀의 유일한 가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플로렌틱노 아리자와 자연스럽게 깊은 친교를 맺게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현명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왜냐하면 그는 음탕한 낙원 속에서 독서로 자신의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그녀에게 깊은 애정을 갖기에 이르렀고 그녀가 쇼핑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오후를 보내고는 했다. 그는 그녀가 사랑의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현명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사랑의 비밀을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깊은 통찰력으로 그의 연애 문제에 많은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패르미나 다자의 사랑을 경험하기 이전에 주위에 있는 수 많은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면, 그녀가 그의 공식적인 약혼자가 된 현재 그러한 유혹에 굴복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창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녀들의 즐거움과 비참함을 함께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그녀들에게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은 없었다. 하나의 예기치 않은 사건이 그의 결심의 강도를 증명해 주었다. 어느 날 오후 6시경, 저녁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창녀들이 한참 옷을 입고 있을 때 호텔의 그가 묵고 있는 층의 방을 청소하는 여자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직 젊었으나 수척하고 나이보다는 훨씬 늙어 보였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나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외로운 고행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자주 훔쳐본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고 매일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빗자루와 쓰레기통과 마루에서 쓰고 버린 콘돔을 담는 특별한 헝깊 주머니를 들고 방마다 돌아다녔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방으로 들어와 언제나처럼 그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가 끌나자 그녀가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그때 그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배 위에 올려지는 것을 느졌다. 그는 그 손이 그것을 찾아 더듬고 있는 것을 느꼈고 그 손이 그의 바지의 단추를 푸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거친 숨결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책을 읽는 체하고 있었으나 끝내 몸을 옆으로 비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청소부의 일자리를 줄 때 지배인이 그녀에게 주의를 준 첫번째 사항은 손님과 자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창녀란 직업은 돈 때문에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남자와 잠자리를 함깨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여자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구태여 그녀에게 그런 주의를 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각기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것은 그녀가 바람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세 번 이상 찾아오는 남자는 사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절박한 성욕 같은 것은 가져 보지를 못했다. 그녀는 절망감 없이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창녀들의 소굴인 그 호텔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미덕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녀는 6시면 일을 하러 왔다. 그리고는 밤새껏 방들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콘돔올 줍고 시트를 새것으로 교환했다. 남자들이 성교 뒤에 남기고 가는 물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들은 구토와 눈물을 남기고 갔다. 그것은 그녀로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섹스의 불가해한 물건들을 남기고 갔다. 핏자국들, 배설물의 덩어리, 의안, 틀니, 황금빚 음모가 들어있는 금랍, 연에편지, 사업상의 서류, 비통한 내용이 담긴 편지 . 그 중의 일부는 잊어버리고 간 물건을 찾으러 오지만 대부분은 잊혀져 버리고 만다. 로타리오 수굿트는 분실물들을 금고에 넣어 보관하면서 언젠가는 이 호텔이 그러한 물건들로 가득찬 사랑의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고되고 급료는 낮았으나 그녀는 열심히 일했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흐느낌 소리와 비명 소리와 침대 스프링의 삐걱거리는 소리였다. 그것들은 너무나 강한 욕정과 비애로 그녀의 혈관을 재우기 때문에 새벽녁이 되면 길거리에 나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첫번째로 만나는 거지나 비참한 주정뱅이와 함꼐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심은 욕망을 더 이상 억제할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처럼, 젊고 청결하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청년은 하늘이 그녀에게 내려 준 선물이었다. 왜냐하면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는 그도 자기처럼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절박한 욕망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를 위해 자신의 동정을 지켜왔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힘도 어떤 사상도 그를 그의 목적으로 부터 떼어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약혼을 하기로 정한 날을 4개월 앞둔 어느 날 아침 7시, 로렌쪼 다자가 전보국에 나타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그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렌쪼 다자는 8시 10분까지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는 우아한 오팔이 박힌 커다란 금반지를 손가락에서 뺏다 끼었다하면서 초조한 듯이 앉아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전보를 배달했던 청년을 금세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는 청년의 괄을 움켜 잡았다. "나와 함께 가세, 젊은이." 그는 말했다. "남자 대남자로서 5분간만 얘기하세." 시체처럼 창백해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이와같은 대결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페르미나 다자는 그에게 경고를 보낼 기회나 수단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러했다. 지난 토요일 성모현 고등학교의 교장인 프란카드 라 루즈 수녀가 우주 창조론의 학과 시간에 살며시 숨어 들어와 학생들의 등 뒤에서 학습 태도를 살펴 보았다. 그때 교장은 페르미나 다자가 실제로는 연애 편지를 쓰면서 공책에다 필기를 하고 있는 체하는 것을 발견했다. 학교의 규칙에 의하면 그러 한 행위는 퇴학 처분의 이유가 되었다. 로렌쪼 다자는 교장실로 출두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철옹성 같은 왕국을 붕괴시키고 있는 쥐구멍을 발견했다. 내적인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페르미나 다자는 교장도 있는 앞에서 편지를 쓴 잘못은 시인했으나 비밀의 연인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그녀의 퇴학 처분은 블가피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딸의 방안을 샅샅이 뒤져 마침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인 딸의 트렁크 밑의 이중 바닥에서 3년 동안의 편지 뭉치를 찾아냈다. 편지의 서명은 너무나 뚜렷했으나 로렌쪼 다자는 자신의 딸이 그녀의 비밀의 연인이 전보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과 그가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와 같은 미묘한관계가자기 동생의 공모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확신한 그는 동생에게 변명이나 하소연을 할 기회를 베풀지 않고 당장 배에 태워 시네하로 추방해 버렸다. 페르미나 다자는 고모와 마지막 작별하던 광경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메어졌다. 그날 오후, 고모는 갈색옷 속에 열에 들뜬 야윈 몸을 감싸고 창백한 얼굴로 문 앞에 서서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평생 끼고 다니던 유일한 소유물인 독신녀의 침낭을 팔에 끼고 한 달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싼 손수건을 손에 꽉 쥐고 고모는 공원의 눈부신 헷살 속으로 사라져갔다. 아버지의 억센 손아귀에서 자유를 얻는 즉시 페르미나 다자는 고모를 알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서 그 후의 소식을 알아내기 위해 카리브해 연안 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모의 그후의 행방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뒤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전전한 끝에 그녀의 손에 당도한 편지에는 고모가 어떤 나병 환자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로렌쪼 다자는 딸이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에게 행한 그의 부당한 벌에 대해서 그토록 광적인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페르미나 다자는 고모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기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식사도 물도 거부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협박으로, 나중에는 애끓는 하소연으로, 문을 열라고 사정하여 가까스로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딸이 다시는 15세가 될 수 없는 상처입은 암표범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렌쪼 다자는 온갖 종류의 위로로 그녀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그녀만한 나이의 사랑이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딸에게 이해시키려고 했다. 편지를 돌려주고 학교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빌라고 설득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좀더 훌륭한 배우자를 구하는 일에 앞장 설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시체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온갖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로렌쪼 다자는 마침내 월요일 점심식사 때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온갖 모욕과 독설을 퍼부으며 몰아세우자 그녀는 느닷없이 고기 써는 칼을 집어들고 그것을 목에다 갖다댔다. 쏘아 보는 눈이 어찌나 표독스럽던지 그는 감히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본 기억에도 없는, 자기에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 저주 받을 딸의 애인과 5분간 사나이 대 사나이로 얘기를 해 볼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로렌쪼 다자는 집을 나서기 전에 습관처럼 권총을 집어 들었으나 셔츠 밑에 조심스럽게 숨겼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로렌쪼 다자가 팔을 움켜잡고 성당 앞의 광장을 가로질러 건너가 파리쉬 카페 테라스로 끌고 가서 앉게 할 때까지도 아직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는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넓은 홀 안에는 타일을 닦고 있는 흑인 여자가 한 사람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의자들은 테이블 위에 거꾸로 얹혀져 놓여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로렌쪼 다자가 그곳에서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도박을 하거나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전쟁들에 대해서 큰 소리로 언쟁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었다. 그들의 불행한 사랑의 숙명을 의식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조만간 로렌쪼 다자와 부딪치게 될 대결이 어떤 것이 될까 하고 자주 생각해 왔었다. 그 대결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으로서 두 사람의 운명에 영원히 숙명적으로 새겨 져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대결이 불공평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녀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흉폭한 성격에 대해서 경고했다고 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가 도박판에서 웃을 때도 눈만은 화를 내고 있는 것을 주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로렌쪼 다자애 관한 모든 것이 잔인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의 무식하게 뚱뚱한 배, 단호한 말투, 시라소니 같은 구레나룻, 울퉁불퉁한 손, 오팔을 박은 금반지를 낀 우악스러운 손가락....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처음 그가 걷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느낀 것이지만 그의 유일한 사람다운 태도는 그의 딸처럼 암사슴의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앉으라고 의자를 권했을 때 그는 로렌쪼 다자가 생긴 것보다는 그다지 험상굿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니스를 한 잔 마시라고 권했을 때 그는 용기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침 8시에는 알콜을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으나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 마셨다. 그는 마시지 않고는 못 견딜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로렌쪼 다자는 자기가 꼭 해야 할 말을 하는데 5분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털어놓고 진지한 태도로 얘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플로렌티노 아리자 쪽이 당황했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자신을 위해 꼭 한 가지 목표만을 세웠다. 즉, 자기 딸을 훌륭한 숙녀로 만들어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그 길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노새 장사꾼에게는 멀고도 헙난한 길이었다. 더군다나 쌍후앙 씨에나하 지방에서는 그가 말도둑이라는 뜬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는 노새 몰이꾼의 시거에 불을 붙이고 탄식했다. "나쁜 건강보다 더욱 나볕 유일한 것은 나뵌 소문이지." 그러나, 그가 재산을 모은 비결은 그의 노새들이 열심히 일을 해준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마을이 쑥밭이 되고 논밭들이 폐허가 된 가장 어려운 전쟁 시기에 부지런히 뛰어서 돈을 벌었다. 그의 딸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아버지의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나, 마치 자신도 열렬한 동조자나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영리했으며 모든 일에 논리적이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글을 익히자마자 아버지에게 글을 가르쳐 줄 정도로 뛰어난 아이였다. 그리고, 12세가 되자 그녀는 고모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훌륭하게 집안을 꾸려나갈 정도로 세속적인 기호도 갖게 되었다. 로렌쪼 다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 애는 황금으로 자기 몸무게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노새일세." 딸이 모든 과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일등으로 국민 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는 쌍후앙 씨에나하가 그의 꿈을 이룩하기에는 지나치게 좁은 고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토지와 가축들을 팔아 새로운 추진력과 7만 골드페소를 가지고 이 폐허가 된 과거의 영광을 지닌 도시로 이사를 왔다. 아직도 고전적인 교육을 받은 한 아름다운 여성이 행운의 결혼을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그런데 플로렌틱노 아리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이 그의 필생의 대 계획에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부탁을 하려고 찾아왔네." 그는 시거의 골을 아니스 잔에 담갔다가 다시 꺼내고는 슬픔에 찬 목소리로 결론을 맺었다. "우리들 앞에서 사라져 주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니스를 조금씩 마시면서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의 오늘날까지의 얘기에 너무나 열중해 있어서 자기가 말할 차례가 왔을 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자신에게 물어 보지 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닥치자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의 운명은 그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얘기를 해 보셨읍니까?" "그것은 자네와는 관계 없는 일일세." 로렌쪼 다자는 대답했다. "그녀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쭤 본 것입니다." "그렇게는 생각지 않네." 하고 로렌쪼 다자가 말했다. "이것은 남자들의 문제이고 남자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일세." 그의 말투는 협박조로 변했다. 그때 마침 그들과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한 손님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한껏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으나 단호한 태도는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보이신다면 곤란하군요. 저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서는 대답을 할 수가 없읍니다. 그것은 일종의 배신 행위니까요." 그러자 로렌쪼 다자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충혈된 눈으로 밖을 흘깃 내다보았다. 그도 역시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권총으로 자네를 쏘아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지는 말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환이 바짝 차갑게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전혀 떨리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성령의 빚이 내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쏘고 싶으면 쏘십시요." 그는 손을 가슴에 갖다 대며 말했다. "사랑을 위해서 죽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겁니다." 로렌쪼 다자는 그를 옆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는 내뱉듯이 말했다. "쌍놈의 새끼 !" 바로 그 주일에 그는 딸이 연인을 잊게 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딸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 가자 분노로 콧수염을 실룩거리면서 시거를 문 채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이 죽으러 가는 거야."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는 대답에 겁을 집어먹은 페르미나 다자는 며칠 전의 용기를 되살려서 아버지와의 대결을 시도했으나, 그는 구리 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풀러 마치 총 소리처럼 날카롭게 온 집안에 울려퍼지도록 세게 그것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기 자신의 힘의 한계와 그것을 사용하는 기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두 장의 매트와 해먹을 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인 것을 확신하고 옷 전부를 두 개의 커다란 트렁크에 챙겼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그녀는 욕실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화장지를 찢어 거기에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보내는 짤막한 작별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가위로 댕기 머리를 목있는 데서 잘라 금실로 수 놓은 밸벳 상자 속에 넣고 편지와 함께 보냈다. 그것은 악몽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안데스 지방의 노새꾼들이 모는 대상에 끼어 노새 등에 흔들리면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능선을 따라가는 첫번째 여정은 11일이나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들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벌거벗은 태양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었고, 10월의 비에 몸이 홈씬 젖고, 까마득한 설벽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수증기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사홀째 되는 날 쇠파리들의 성화에 미쳐 버린 노새 한 마리가 사람을 태운 채 다른 노새에 연결한 밧줄을 끌며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밧줄로 연결된 7마리의 노새와 몰이꾼들은 끌려 내려가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절벽가에 아슬아슬하게 몇 시간 동안 사투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광경은 몇 년 동안 페르미나 다자의 기억속에서 자꾸만 되살아났다. 그녀의 짐도 노새와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으나 공포로 가득찬 비명이 길게 꼬리를 물며 계곡의 바닥에 이르러 뚝 그친 순간, 그녀는 불쌍한 노새와 몰이꾼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신 자기가 탄 노새도 다른 노새들처럼 함께 연결이 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노새를 타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에 대한 공포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도, 다시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만날 수가 없고 그의 편지가 주는 위안도 더 이상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만 없었더라면 그녀에게 그렇게 쓰라린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여행이 시작된 이래 아버지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지나치게 혼란해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 있더라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노새꾼들을 통해 말을 전달하게 했다. 운이 좋을 때면 그들은 길가에서 여인숙을 발견했다. 그런 곳에서는 시골 음식을 제공해 주고는 했는데 그녀는 먹기를 거절하고 땀 냄새와 오줌 냄새가 밴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의 밤을 길가에 세워 놓은 인디언들의 나그네를 위한 오두막에서 보냈다. 그 오두막은 나무 기등을 몇 개 세워 놓고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얹은 엉성한 것인데,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나 새벽까지 머물다 갈 권리가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공포 때문에 흘리는 식은 땀과 어둠 속에서 나무에 가축을 매고 그물 침대를 거는 조용한 여행객들의 왕래에 귀를 기울이느라고 단 하룻밤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해가 떨어져서 첫번째 여행객이 도착할 때는 그곳은 사람도 없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워지면 그곳은 마치 장터처럼 되었다. 여기저기에 각기 다른 높이로 수많은 그물 침대가 걸려 있고, 산에서 내려온 아루악 인디언들은 웅크리고 앉아 잠이 들어 있었다. 맴맴거리는 염소들의 울음소리, 투계들이 닭장 안에서 울어대는 요란한 소리, 전쟁의 위험 때문에 짖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들 개들의 조용한 으르렁 소리.... 그러한 고난은 산 속에서 반 평생을 헤매온 로렌쪼 다자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새벽이면 거의 언제나 옛 친구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의 딸에게 있어 그것은 끊이지 않는 고통이었다. 소금에 절인 메기 꾸러미에서 풍겨나오는 악취는 비탄으로 잃어버린 그녀의 식욕을 더욱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끝내 그녀의 식사 습관까지도 파괴해 버렸다. 그녀가 절망 때문애 미쳐 버리지 않은 것은 항상 오로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추억 속에서 안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곳이 망각의 땅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계속적인 공포는 전쟁이었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산속을 배회하는 반란군과 정부군 순찰대를 만날 위험성에 대해 얘기가 있었다. 노새 몰이꾼 은 그들에게 양쪽 병사를 식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상대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할 것을 강조했다. 그들은 빈번하게 장교의 지휘를 받는 몇 개분대의 기마병들과 만나고는 했는데, 그들은 새로운 보층병들을 가축떼처럼 밧줄로 묶고 끌고 가고 있었다. 수많은 공포의 경험에 압도당한 페르미나 다자는 절박하다기보다는 전설처럼 보이는 경험에 관해서는 잊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어느 편의 군대인지 알 수 없는 순찰대가 대상에 끼어 있는 여행자들 가운데서 두 사람을 체포하여 부락에서 약 2마일 가량 떨어진 캄파노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로렌쪼 다자는 그들과는 면식조차 없었으나 시체를 끌어내려 자기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지지 않은데 감사하며 기독교 의식으로 매장을 해 주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순찰대는 총을 그의 가습에 들이대고 잠을 깨웠다. 누더기를 걸치고 얼굴에 숯을 칠한 지휘관이 그의 얼굴에 불을 비치고 자유파와 보수파의 어느 쪽인가를 질문했다. "아무 파도 아닙니다." 하고 로렌쪼 다자는 대답했다. "나는 스페인 국민입니다." "참으로 운이 좋군 !" 지휘관은 말하고 경례를 한 다음 다른 곳으로 갔다. "국왕 폐하 만세 !" 이틀 뒤 그들은 발레듀파르의 번성하는 거리가 있는 넓은 평야로 내려갔다. 시장의 광장에서는 투계가 벌어지고 있었고, 거리 모퉁이에서는 아코디온 소리가 들려왔다. 품종 좋은 말을 탄 기수들과 불꽃 놀이가 벌어졌고, 종소리가 들려왔다. 페르미나 다자는 축제에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어머니의 동생인 리시마코 산체스 외삼촌의 집에 머물렀다 . 외 삼촌은 일단의 젊은 친척들을 대동하고 큰길까지 그들을 마중나와 주었었다. 그들은 외 삼촌의 안내를 받으면서 불꽃놀이가 한창인 거리를 지나 그의 집으로 향했다. 외 삼촌의 집은 몇 차례의 수리를 거듭한 식민지 시대의 성당 옆에 있는 대 광장에 있었다. 그 집은 넓고 어둠침침한 방과 과수원에 면한 테라스와 달콤한 사탕수수 냄새 때문에 농가와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들이 노새에서 내리자 마자 응접실은 처음 보는 많은 친척들로 붐볐다. 정이 철철 넘치는 말투들이 페르미나 다자애게는 오히려 역겹게 들렸다. 왜냐하면 아무도 좋아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안장에 너무 오랫동안 타고 있어서 고통스러웠고 피곤하고 뱃가죽이 당겼다. 혼자 틀어박혀 실컷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살이나 위인 그녀의 외사촌 언니 힐데브란다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도도하긴 했지만 한 번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미나 다자의 기분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두워지자 힐데브란다는 페르미나 다자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엉덩이에 생긴 상처를 약초로 찜질해 주고 목욕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성 밖에서 나는 총격 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다. 밤이 되자 손님들은 떠나고 잔치가 끝나자 힐데브란다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예쁜 잠옷을 입혀 주고 부드러운 이불과 깃털 달린 배개가 놓여 있는 침대를 마련해 주었다. 마침내 그들만이 남게 되자 힐데브란다는 문을 잠그고 볏짚으로 만든 침대 믿에서 단단히 봉해진 전보 봉투를 꺼내 페르미나에게 건네주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마음 속에 또다시 싹트는 추억의 그림자를 힐데브란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입으로 봉투를 뜯은 페르미나 다자는 새벽 녁까지 밤을 지새며 눈물을 흘리며 몰래 전보를 읽었다. 로렌쪼 다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웃의 많은 친척과 친지들에게 자신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해 놓았는데 그로 인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모든 여행 계획을 알 수 있었고 페르미나 다자가 맨 마지막으로 어디에 머물게 될 것인지까지 알게 되어 그곳의 전보 치는 기사에게까지 조치를 취해 놓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3개월 동안 머문 발레듀파르에 도착한 날부터 일년 반 뒤 리오하차에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 페르미나 다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아버지는 이제는 딸이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잊었으려니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젠 불면증도 없어지고, 오랫동안 지녔던 친지들의 편견을 멀리하고 반갑게 맞아준 처남의 호들갑스런 환영에 로렌쪼 다자는 정신이 없었다. 처남과의 화해가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늦게나마 이번 방문으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실 페르미나 산체스의 집안에서는 딸이 아무런 뒷 배경도 없고 허풍장이이며 항상 돌아다니기만 하는 노새상인 로렌쪼와 결혼하는 것을 적극 반대했었다. 로렌쪼는 그 지역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페르미나 산체스와 어떻게 해서라도 결혼을 하려고 커다란 도박을 했었다. 페르미나 산체스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속하고 비밀스럽게 로렌쪼 다자와 결혼을 해 버렸다. 마치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임신한 것을 숨기기 위해서인 것처럼. 2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딸의 강경한 연애 사건과 맞닥뜨려 예전의 자기자신의 연애 사건을 떠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옛날 자기들의 연애를 반대하던 처남에게 불평을 털어 놓는 것이었다. 로렌쪼 다자가 비탄에 잠겨 있는 그때, 그의 딸은 멋진 연애 사건을 벌이고 있었다. 로렌쪼가 처남의 옥토에서 숫송아지를 거세하고 노새를 돌보고 있을 때 페르미나 다자는 힐데브란다가 돌보아주는 가운데 여러 사촌 여자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고 있었다. 매우 아름답고 책임감이 강한 힐데브란다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많고 자식이 있는 유부남을 먼 빚으로 쳐다보며 마음을 졸이는 처녀였다. 발레듀파르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동안 페르미나 다자와 사촌들은 산을 오르내리며 꽃이 만발한 목장, 꿈같은 초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들은 어떤 마을에서나 음악과 불꽃놀이로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가끔씩 우체국에서 오는 전보는 페르미나 다자를 더욱 행복하게 해 주었다. 발레듀파르에 도착한 그날 오후 페르미나 다자는 이곳이 다른 곳 같지 않고 늘 활기에 차있고 일 주일 모두가 공휴일 같았다. 방문객들은 밤이 되면 아무데서나 잠자고 집들은 언제나 대문이 열려 있어 배가 고프면 난로불 위에서 끓고 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손님들이 올 것을 항상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힐데브란다는 친척들 간의 인정을 쌓으며 패르미나 다자를 늘 데리고 다녔다. 페르미나 다자도 처음으로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에게도 친구가 있고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함을 느껴 삶의 현실성을 만끽하고 있었다. 만년에 이르러서도 향수에 어린 그 여행을 돌이켜 보면 그녀의 추억은 더욱 더 뚜렷이 떠올랐다. 어느 날 밤, 사람은 사랑이 있음으로 해서 행복할 수 있지만 사랑 없이도 행복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며 산책길에서 돌아오던 날, 그녀의 사촌들이 로렌쪼 다자가 어머어마하게 부자인 클레오파스의 유일한 상속자와 결혼을 시키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페르미나 다자는 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미사에 오곤 하던 그를 길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점쟎게 생겼고, 누구나 보면 반할 듯한 속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조금 초라하긴 했지만 에반젤스 공원 아몬드 나무 아래 앉아 무릎 위에 시집을 펼쳐놓고 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며 그 부자 상속인에게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럴 즈음 힐데브란다가 무엇이든 쪽집개처럼 잘 알아 맞히는 점장이를 만나러 가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계획에 마음이 산란해져 있던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를 쫓아 점장이에게 갔다. 그 점장이의 점괘로는 페르미나 다자의 결혼 생활은 아주 행복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말에 용기가 난 페르미나 다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오직 한 사람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그 행복을 꾸리고 싶었다. 이런 확신으로 마음이 들뜬 페르미나 다자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와의 전보 왕래는 더욱 빈번해지고 어느 때보다도 더욱 두 사 람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들은 다시 만나는 날 어디서건 어느 누구와도 상의할 필요도 없이 결혼하겠다고 서로들 다짐했다. 페르미나는 이런 두 사람의 약속에 너무나 얽매인 나머지, 그날 저녁 아버지가 시내에 있는 성인 무도회에 가도 좋다는 허가를 처음으로 했어도 약혼자의 허락없이 그런 곳에 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와 카드놀이를 하며 호텔에 머물러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전보를 쳤다. 일곱 개나 되는 중간 전화국을 거쳐 가며 페르미나 다자는 무도회에 가도 좋으냐고 물었다. "물론이오, 춤을 추러 가도 좋소." 라는 짤막한 플로렌틱노 아리자의 전보 답을 받았건만 페르미나 다자는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침 7시까지 춤을 추다 아침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떠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수 없이 많은 전보를 가로챘지만 여전히 가방 속에는 많은 전보를 간직하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마치 결혼한 여자처럼 처신했다. 아버지 로렌쪼 다자는 이런 패르미나의 변화를 보고는 거리와 시간이 딸의 철부지 사랑을 잊게 했는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딸에게 자기가 딸의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옛날처럼 아주 원만해 보여 모든 사람들은 부녀간의 사랑이 각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바다 속에 침몰된 배에서 보물을 인양 할 계획을 편지에 밝힌 게 이때쯤이리라. 어느 뜨거운 날 오후, 수많은 고기때들이 마치 줄을 지어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 플로렌티노는 갑자기 보물을 건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새들이 죽은 고기를 먹으려고 모여들었다. 어부들은 새들을 쫓으려고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기를 잡기 위해 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금지되었으나 카리브 해의 어부들 사이에는 여전히 다이나마이트로 공공연히 고기를 잡아왔다. 페르미나 다자가 여행을 하는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소일거리는 부두에서 어부들이 배에다 짐도 싣고 큰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꼬마들 몇이 플로렌티노 같은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고 돈을 바다에 던지면 건져내어 오겠다고 한 번 던져 보라고 애걸하곤 했다. 그런 목적으로 수영을 하러 나온 소년들의 이야기는 많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여행 담 속에 중요한 화제가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소년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과연 그들이 배에 있는 보물을 끌어 올릴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계획이 세워진 후 거의 1년 뒤에 페르미나 다자는 돌아오게 된다. 그 계획에 대한 그의 집념은 대단한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한 십분 이야기해 본 에우클리데스는 그 잠수하는 소년들 중 한 명한테 물 속 탐험을 한다는 생각에 매우 흥분을 하고 있었다. 플로렌티노는 모든 계획의 전체를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에우클리데스에게, 너 산소 호흡기 없이 2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느냐고 묻자, 에우클리데스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는 폭풍우치는 바다 에서 아무 장비도 없이 어부들처럼 배를 저어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에우클리데스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너 그럼 소타벤토에 있는 가장 큰 섬 북쪽 16마일 떨어진 곳의 한 지점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에우클리데스는 네, 찾을 수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또한 에우클리데스에게, 그럼 어부들이 고기 잡을 때 도와주는 그 노임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소년은 그러나 일요일에 일할 때는 은화를 다섯 개만 더 달라고 했다. 상어를 피하는 방법을 아느냐고 묻자, 물론 안다. 상어를 놀라게 헤 쫓아내는 신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항만청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도 비밀을 지킬 수 있겠냐고 하자 그럴 수 있겠다고 소년은 대답했다. 그 소년은 한 번도 못한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 소년은 배를 빌리고 고기잡는 여러 도구를 빌리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계산했다. 또한 일을 하는 데는 음식과 깨끗한 물, 석유등, 초, 그리고 비상시에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호루라기도 필요했다. 에우클리데스는 열두 살 된 소년치고 상당히 동작도 빠르고 영리하고 쉴새없이 말을 많이 하는 소년이었다. 또한 그 소년은 너무나 날렵해 마치 황소 눈 속에서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헷빚에 너무 오랫동안 그을려 원래 피부 색깔이 어떤 빚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즉석에서 에우클리데스가 그런 큰 작전을 이행하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다음 일요일 바로 지체하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새벽에 항구를 떠났다. 준비는 모두 완벽했고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에우클리데스는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옷을 걸쳤을 뿐 거의 알몸이었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긴 코트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큰 장화를 신고 목에는 나비 넥타이를 하고 섬을 건너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할 책도 준비했다. 첫 일요일부터 플로렌틱노는 에우클리데스가 다이빙만 잘 할 뿐만 아니라 아주 훌륭한 항해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의 특성에 대해서도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항만에 흩어져 있는 암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에우클리데스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녹슨 폐선의 역사성에 대해서 상세하게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 위에 떠있는 부표는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바다 위에 생기는 쓰레기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항구 입구를 차단하는 채인의 고리수까지 알고 있었다. 혹시 에우클리데스가 그의 계획의 진짜 목적을 눈치첼까봐 두려웠던 나머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엉뚱한 질문도 해보곤 했지만 에우클리데스는 침몰된 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시로 머물던 호텔에서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침몰선에 대한 많은 것을 연구했다. 쌍조세 호뿜만 아니라 다른 배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큰 배는 1768년 이 항구에 도착했고 파나마에 있는 전설처럼 아름다운 포르토벨로 항구에서 보석을 싣고 왔다. 그 배 속에는 페루와 베라크루즈에서 가지고 온 3백 트렁크나 되는 금과 콘타도라 섬에서 가지고 온 수 십개나 되는 진주가 들어있는 트렁크가 있었다. 이 보석들은 길고 긴 세월의 낮과 밤 동안 바다 속에 있었다. 그 보석으로 스패인의 가난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보물이 배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조와 소몬도코에서 가지고 온 백열여섯 트렁크나 되는 에머럴드와 삼천만 개의 금화도 들어있었다. 거대한 함대 데라 피르마 호는 여러 작고 큰 배들로 이루어져 있고 무장한 불란서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지만 항만 입구 소타벤토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찰스 사령관 직속 영국 함대의 대포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침몰되어 바다 속에 가라앉은 배는 쌍조세 호 뿐만이 아닐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배들이 물에 잠기고, 얼마나 많은 배들이 영국의 대포 사격을 피했는지 알 수 있는 믿을 만한 근거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 함대의 가장 먼저 배 후미에 있던 선원들과 사령관이 같이 물에 잠겼으며, 대부분의 보석을 싣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당시 항해지도를 보고 배의 항로를 알게 되었고, 좌초된 지점도 대략 알고 있었다. 그들은 보카만을 지나 서너 시간을 항해한 후 아주 깊은 곳에 다다랐다. 바다는 잠잠하고 조용해서 바다 수면 위에 비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큰 섬에서 두 시간 정도만 가면 배가 좌초된 곳이 나온다. 해가 너무 뜨거워 질식할 것만 같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20미터 정도 깊이 들어가 바닥에 있는 것을 끌어 올려보라고 에우클리데스에게 부탁했다. 물이 너무나 깨끗해서 에우클리데스가 움직일 때마다 상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산호 숲 속에 파묻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까지 밑으로 내려갔다. 에우클리데스는 두 팔을 올리고 바다 바닥에 섰다. 그들이 더 깊은 쪽으로 탐험을 계속하고 북쪽으로 갈수록 오징어떼며 산호만 나올 뿐 공연한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았다. 에우클리데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말해 주지 않았다. 에우클리데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하늘 아래 또 다른 하늘과 산호가 깔린 바다만 보는 한이 있어도 옷을 벗고 같이 물 속에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하느님은 바다를 물을 통해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고 하면서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얼마 후 구름이 끼고 공기가 싸늘해지고 축축한 습기가 대기에 차 올라 그들은 항구의 등대를 찾아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항구에 도착하기 전 크고 흰 불란서 정기선이 바로 그들 옆으로 지나가는데 배 지나가는 자리가 불빚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3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만약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에우클리데스에게 그 배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더욱 긴 세월을 헛고생만 했을 것이다. 에우클리데스는 다시 계획을 짜서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생각한 지점에서 60마일이나 더 들어가서 다시 시작했다. 2개월 가량 지난 어느 비오는 날, 에우클리데스는 너무 오랫동안 바다 밑바닥에 있는 바람에 플로렌티노가 노를 저어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 가까스로 배에 오른 에우클리데스는 입에 여자용 보석을 물고 나왔다. 에우클리데스가 본 바다 속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도 수영을 배워 자기 눈으로 직접 바닷속을 보고 싶다고 했다. 에우클리데스는 18미터만 들어가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없이 많은 배들이 있어 끝을 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배가 많이 파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들은 그 배들의 공간과 시간이 동시에 잠겨버렸다. 배가 침몰되던 당시처럼 해는 뜨겁게 비치고 있었고 물의 압력 때문에 죽을 것 같았지만 쌍조세 호는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뱃 머리에 금색으로 글씨를 박아 놓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배는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것 같다고 했다. 에우클리데스는 계속해서 배 안에 살고 있는 커다란 산낙지며 군복을 입은 사령관의 시채를 보았다고도 말했다. 물 속에서 오래 참을 수만 있었다면 더 많은 보물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하면서. 하여튼 그의 얘기는 귀걸이와 마리아 상이 새겨진 기념품들이 증명해 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서 한 지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미나 다자가 돌아왔다. 침몰선에 대한 이야기는 페르미나 다자도 익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때는 그녀의 아버지 로렌쪼 다자가 한 독일 회사와 합작으로 그 침몰선을 끌어올리는 일을 하자고 수없이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 왔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몇몇 고고학자들이 그 난파선은 총독이 황실 보물을 훔쳐서 숨겨두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만 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로렌쪼는 그 일을 계속 추진했을 것이다. 여하튼 페르미나 다자는 그 난파선이 플로렌티노가 주장하듯 20미터의 바다 속이 아니라 2백미터 깊이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잠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흥분 잘하는 기분을 아는 그녀는 같이 맞장구를 쳐 그 배에 대한 모험은 멋진 것이라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추켜세웠다. 여전히 공상에 들뜬 듯한 이야기며 아주 진지하게 사랑의 약속을 담은 편지를 받을 때는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의 사촌 힐데브란다에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다고 고백하곤 했다. 그럴 즈음, 에우클리데스는 그의 말대로 많은 것을 증명해 보여 보석을 끌어올리는 것은 단순히 산혹초 속에 흩어져 있는 귀걸이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때 조만간 닥치고야 말 일이 닥치고 말았다. 플로렌티노는 그의 어머니에게 이 일이 잘 성사되도록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보석이라고 갖고 온 것을 햇빚에 비춰보고 그것들이 쇠 조각이 녹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순진한 자기 아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걱정을 하며 아들의 일에 간섭을 했다. 지나친 간섬에 기가 질린 에우클리데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자기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무릎을 꿇고 맹세하더니 그 다음 주일부터는 부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구해준 것은 편히 쉬기 좋은 등대지기 집이었다. 어느 날, 폭풍우가 몰려와 우연히 다다랐던 그 등대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등대지기가 알고 있는 육지와 -바다의 해아릴 수 없는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오후 시간에 그곳에 가끔 가곤 했다. 곧 그 등대지기와 친해지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나무로 불을 피워 흙으로 빚은 큰 기름항아리에 넣어 사람들애게 불을 밝히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등대지기가 바쁠 때는 자기가 그 일을 대신할 때도 있었다. 그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배가 지나가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수평선에 떠 있는 크기로도 알게 되었다. 낮 시간 동안에는, 특히 일요일에는 또 다른 종류의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부자들이 살고 있는 유서 깊은 바이스로이 구에서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해변과 남자들이사용하는 해변이 등대를 중심으로 석고벽을 사이에 두고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등대지기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해변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손님들을 모아 돈을 받았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가씨들은 예쁜 수영복을 입고 자신들의 풍만한 육체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깃 달린 모자를 쓰고 미사 볼 때 쓰는 파라솔을 쓰고 흔들 의자에 앉아 옆 해변에서 남자들이 물 밑으로 자기 딸들을 납치해 가지나 않나 감시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본다고는 하지만 별로 볼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차라리 길 거리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낫지만 일요일만 되면 덧없는 금단의 열매를 맛보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하여 망원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플로렌티노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재미로 본다기보다는 할 일이 없어서 보는 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짜 이유는 페르미나 다자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를 대신할 다른 여자를 찾을 수 있는 곳도 그곳이며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의 불행의 슬픔을 위로할 유일한 곳도 그곳이었다. 그곳은 그가 여러해 동안 가장 좋아한 곳이어서 그의 어머니와 후에 그의 아저씨가 된 레오 12세에게 그가 그 집을 사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등대는 개인 소유였고 항구로 들어오는 배 크기를 따라 통행세를 받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시를 써서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고상한 생활일 것이라고 했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저씨는 반대했다. 얼마 후, 그 등대는 그 주의 재산이 되고 플로렌티나가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잠은 헛되지 않았다. 난파선의 이야기와 등대 일이 페르미나 다자가 없는 공백을 메워주었다. 생각지도 않고 있을 때 페르미나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리오하차에서 오랫동안 머문 후에 로렌쪼 다자는 집으로 돌아 올 것을 결심했다. 배로 돌아오기에는 무역풍으로 인하여 좋은 날씨가 되진 못했고 배가 너무 오래되어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배는 때로는 엉뚱하게 출발을 한 장소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바로 그들이 탄 배가 그렇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밤새토록 토하며 주막집 같은 선실에 있는 간이 침대에 매달려 있었다. 그 선실은 지독히 좁을 뿐 아니라 고약한 악취가 진동했다. 배의 요동이 심해 침대에 달아 놓은 끈이 끊어질 것 같고 나무가 삐거덕삐거덕거리는 소리는 배가 부서져 버리는 소리 같았다. 옆 선실에서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더욱 페르미나를 무섬게 했다. 약 3년 동안에 처음으로 한 번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지 않고 밤을 꼬박 새웠다. 그와는 반대로 플로렌티노는 뒷방 의자에서 눈을 뜨고 누워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바람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페르미나 다자는 배멀미가 심하긴 했지만 깜박 졸다가 돛이 내려지는 소리애 깨어났다. 한숨 돌린 그녀는 배에서 내리자 혼잡한 틈 사이로 플로렌티노의 모습을 찾아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침 금빚 햇살 사이에 보이는 세관 창고와 전날 밤 항해를 떠난 곳이던 바로 그 지저분한 항구의 모습뿐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 있던 꼭 같은 집이었고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다른 방법도 있긴 하지만 노새를 2주일 동안이나 타야했다. 전쟁 중이라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날 밤 8시 다시 친척들이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나누고 선실에 놓기에는 너무 큰 선물 꾸러미를 들고 다시 똑같은 배에 올랐다. 배가 떠날 시간이 되자 친척들이 축포를 쏘며 인사하자 로렌쪼는 답례로 권총을 다섯 발이나 쏘았다. 바람이 밤에는 잔잔했고 바다에서 나는 듯한 꽃 향기가 그날 밤을 잘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패르미나 다자는 꿈속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다시 만나는 꿈을 꾸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밤 꿈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선장실에서 술을 마셔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으며 집에 돌아가는 일애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배가 항구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와 악취가 바다 멀리 나가는 시장 구석에 닻을 내렸다. 새벽에는 보슬비가 계속 오더니 이내 소나기가 되었다. 전화국 앞 마당에 서서 배를 보긴 했는데 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전날 밤 배가 심한 바람 때문에 항해가 늦어졌다는 전보를 받을 때까지인 11시까지 기다렸다. 오늘 아침에는 잠도 자지 않고 새벽 4시에 부두로 나왔다. 플로랜티노 아리자는 눈을 떼지 않고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배에서 뛰어 내릴 때에는 흙탕물이 튀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8시가 되자 허리까지 물이 찬 흑인 인부가 페르미나를 안아 배에서 내렸다. 비에 홈뻑 젖어 있어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페르미나가 문이 닫힌 집에 들어와 그들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은 흑인 하인들이 시중을 들어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상당히 성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이제는 아버지한테 일일이 간섭을 받는 아이가 아니라 힘찬 사랑의 힘에 의해 구원받은 숙녀였다.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용기를 부여받은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첫날밤 가족들이 큰 식탁에서 초코렛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아버지는 위엄을 부리며 페르미나 다자에게, "자, 지금부터 네 인생은 네가 개척하는 거다." 하고 말했다. 17년을 통해 엄한 교육을 받아온 그녀가 이제야말로 마음대로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나쁜 꿈을 꾼 다음날 아침 발코니 창문을 열고 에반잴스 공원에 내리는 보슬비와 머리가 잘려 죽은 영웅의 동상을 보는 순간, 처음으로 집에 와 있다는 현실이 별로 기분 좋지 않게 느껴졌다. 대리석 벤치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가끔 시집을 들고 앉아 있곤 했다. 페르미나는 이제 플로렌티노를 이룰 수 없는 사랑하는 연인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진정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 지낸 잃어버린 시간이 아까웠다. 페르미나는 하느님이 명하시는 대로 살고 남편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공원에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는 비가 오는 날에도 있곤 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죽은 걸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왜냐하면 페르미나가 갑자기 돌아오는 바람에 전보를 계속 주고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는 리오하차에 있는 전보 기사가 페르미나 일행이 금요일날 배를 탔지만 심한 역풍 때문에 전날 도착하지 못했다는 전보를 받고서야 페르미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월요일 황혼 무렵 창문을 통해 집안에 불빚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얼마 후 9시가 조금 지난 후에는 침실에 불이 보였다. 플로렌티노의 어머니는 첫닭이 울 때 일어나 아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부듯가에 나가 아침이 올 때까지 서서 페르미나가 돌아온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8시에는 피곤에 지쳐 파리쉬 카페에 앉아 어떻게 페르미나를 맞을까 하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그때 성당 네거리를 건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여인은 바로 페르미나 다자였다. 하녀인 갈라 플라시디아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처음으로 교복을 입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떠날 때보다 키도 더 큰 것 같았고 완전히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풍겼다. 그녀의 길게 닿은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는 대신 왼쪽 어깨 위에 예쁘게 놓여져 있었다. 그런 간단한 변화가 소녀 티를 완전히 가셔 버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환상 속의 소녀가 네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억누를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녀의 뒤를 쫓게 했다. 그녀는 성당 모퉁이를 돌아 시끄러운 시장 속으로 사라졌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며 세상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의 성숙한 모습을 보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조용히 뒤를 밟았다. 그녀가 그렇게 쏜살같이 군중들 틈새를 삐져나가는 것을 보자 약간 놀라웠다. 갈라 플라시디아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바구니가 끼이고 페르미나 다자와 같이 보조를 맞추려고 허둥거렸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어두운 밤의 박쥐처럼 아무하고도 부딪치지 않고 그녀의 자유자재로 거리의 무질서를 잘 잡아 나아갔다. 페르미나는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와 시장을 보러 나온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간단한 것을 사러 나왔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가구며 음식 뿐만이 아니라 여인들 속옷까지 사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의 시장길은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재미있는 모험이었다. 사랑의 묘약을 팔고 있는 마술사나,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길들인 악어를 사라고 조르는 사기꾼 같은 인도인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페르미나는 계획 없이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이 즐겁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생동하는 삶의 의욕을 느꼈다. 그녀는 큰 진열장 속의 옷감에서 나는 향기를 즐기며 머리에 빗을 꽃고 꽃무늬 부채를 든 마드리드의 여인처럼 꾸민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수입된 절인 청어를 담은 뚜쩡을 열어보며 쌍주앙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보낼 때의 그 저녁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감초 냄새가 나는 소시지를 시식해 보고는 토요일 아침 식사때 먹기 위해 두 개를 사고 대구와 붉은 건포도도 샀다. 차 종류를 파는 가게에서는 손 위에 올려놓고 각종 약용 잎들 냄새도 느껴보았다. 매운 가루 때문에 눈물과 웃음이 뒤섞였다. 불란서 화장품 가게에서 비누와 향유를 사려고 하자, 주인은 그녀의 귀 뒤에 가장 최근에 나온 불란서 향수를 뿌려주고 담배 피운 뒤에 사용하는 정제도 주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물건 사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샀다. 난생 처음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샀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샀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위해서도 샀다. 탁자를 덮는 12야드나 되는 린넨, 결혼식에 쓸 무명까지도...때로는 물건값을 점쟎게 깎기도 하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숨을 죽이고 몰래 숨어서 모든 행동을 보았다. 시장바구니를 든 그 하인과는 몇 번이나 부딪쳐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페르미나 다자가 너무 가까이에 있어 그녀의 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볼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고개를 너무 빳빳이 들고 걸었기 때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너무나 예쁘고 매혹적이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페르미나의 구두 소리에 놀라지도 않고 그녀의 닿은 머리에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매력을 깰까 두려워 감히 접근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시끄러운 스크라이브 아케이드로 들어갈 때는 저곳은 들어가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스크라이브 아케이드는 젊은 숙녀들에겐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곳에는 마차와 짐을 끄는 당나귀도 빌려주고 장사가 요란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조끼와 속옷에 간단한 부적을 써 주고 조금의 돈을 받는 사람들도 앉아 있었다. 청구서라든지, 소송문, 축하 서식, 조사 또는 연애편지까지. 시장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유럽에서 밀수해 와서 장사하는 음란한 잡지나 콘돔을 파는 행상인들이 대부분이다. 길애 어두운 페르미나 다자는 그 아케이드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단지 햇빚을 피하려는 이유로 그 길로 가고 있었다. 그녀의 귀에는 구두닦기 소년의 고함소리, 새 파는 사람, 싸구려 책장수 마술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지나쳐 그녀는 요술 잉크, 피빚의 잉크, 조사를 하는데 쓰는 잉크, 어둠 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야광 잉크, 불빚에 비추어봐야 보이는 잉크 등을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모든 잉크를 다 사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놀려주고 싶었지만, 몇 번 써 본 후 황금색 잉크만 샀다. 제과점에 가서는 통조림 여섯 개, 참깨로 만든 과자 여섯 개, 녹말 과자, 초코렛, 여러 종류 과자를 샀다. 시끄러운 소리와 땀 냄새가 진동했다. 마음 좋아 보이는 어떤 흑인 여자가 준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한 곳에 눈이 멈췄다. 그녀의 바로 뒤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이곳은 예쁜 숙녀들이 올 곳이 아니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새벽 미사에서 맨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활기찬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환멸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괴물같은 사람을 마음 속으로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련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읏으면서 뭔가 말하려 했으나 페르미나 다자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영원히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우리 이젠 헤어져요." 그날 오후, 그녀의 아버지가 낮잠을 자는 동안 갈라 플라시디아 편으로 짧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오늘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들 둘 사이에 있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하녀는 그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부친 전보며 시며 선물 상자를 가지고 와서는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준 편지,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의 미사 견본, 성인 기념 메달, 실크 리본 같은 선물을 돌려 달라고 했다. 다음 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길고 긴 간곡한 편지를 써서 그 하녀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되돌려 받는 선물 말고는 아무것도 받지 말라는 페르미나 다자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하녀는 집에 돌아와 다른 것은 다 되돌려 받았으나 페르미나 다자의 머리카락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이나 하고 주겠다고 하더라고 전했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완강히 거부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모습이 애처로와 자신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페르미나 다자에게 5분만이라도 자기 아들애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부탁했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그의 어머니를 들어와 앉으라는 말 한 마디도 없이 문 앞에서 잠시 만나보고 보냈을 뿐이다. 이틀 뒤 그의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거룩한 기념품처럼 소중히 여겨오던 페르미나 다자의 머리카락을 예쁜 유리 상자 속에서 꺼내어 금실로 수놓은 벨넷 상자 속에 넣어 페르미나에게 돌려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51년 9개월 4일을 살아오는 동안 여러 차례 페르미나 다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단둘이서 만나거나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과부가 되어 첫 밤을 지내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그의 영원한 신의와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H? 28살의 의사 쥬배날 우르비노는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신의학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 온 그의 모습에서는 파리 유학 중 한 순간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겨졌다. 그는 유학 가기 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졌고 자제력도 강해 그 분야의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점쟎고 또한 유능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든가 혹은 즉홍적인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는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의 외모와 재산에 반한 주변의 여자들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경쟁을 할 정도였으며 그도 또한 여자들과 즐겨 어울릴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품위와 매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그가 어느날 페르미나 다자의 소박한 매력에 아무런 저항 없이 이끌리어 흠뻑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그 사랑을 두고 치료상의 실수의 산물이라고 말하길 즐겼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곳이라고 늘상 힘주어 강조하던 고향 마을에 적어도 자신의 모든 정열을 쏟고 있던 그즈음 사랑에 빠졌다는 점이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의외였다. 파리의 늦가을날 애인과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일도, 황금 빚 찬란한 어느 오후의 화롯가 군밤 냄새나 단조로운 아코디온 소리, 혹은 옥외 테라스에서 키스하는 정열적인 연인에 비한다면 결코 행복에 겨운 정경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정경이 카리브 지역에서 보낸 4월과는 비교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직도 젊고 혈기 왕성한 그로서는 추억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잊게 하고 좋은 것만 남긴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짐을 능히 지고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식민지 해안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지붕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날벌레들이나 혹은 발코니에 널어 놓은 초라한 빨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비로소 향수라는 자비로운 기만에 자신이 얼마나 안이한 희생물이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익사하여 물에 떠다니는 동물들을 해치고 배가 해안으로 다가가자 대부분의 승객들은 악취를 피하려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젊은 의사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모직 조끼와 코트를 입고 의사다운 면모를 풍겨주는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기고 있었다. 젊은 의사는 두려움이 아닌 슬픔으로 인해 목이 메어왔으나 애써 진정시키며 배의 통로를 걸어갔다. 군복을 입지 않은 맨발의 군인들이 지켜서 있는 황량한 선창에서 누이들과 어머니와 함께 몇몇 절친한 친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교양은 있어 보였으나 어딘지 생기와 희망이 없어 보였고 마치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전쟁의 위험성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음성은 약간 떨렸고 눈동자엔 말과는 달리 불안한 모습이 서려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장 충격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우아하고 또 두드러진 사회 활동을 했던 까닭에 나이보다 늘 젊어보이는 여인이었지만 미망인이 된 지금은 서서히 그 기품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눈치챈 듯 납처럼 창백한 얼굴색에 대해 얼른 물었다. "그곳 생활 탓이에요 어머니. 파리에서는 모두들 이런 얼굴이 돼요." 라고 그가 말했다. 잠시 후, 어머니 옆에 앉아 있던 마차 속의 열기에 질식할 것만 같은 그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잔인한 현실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바다는 잿빚이었고 후작 부인들이 거처하던 고궁에는 날로 늘어나는 거지떼들이 몰려와 하수구에서 풍겨나는 음울한 죽음의 냄새와 향긋한 쟈스민 향이 뒤섞여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모든 것이 그가 떠나기 전보다 더욱 형편없이 빈곤에 시달려 서글퍼 보였으며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 위에는 굶주린 쥐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마차를 끄는 말들이 놀라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그는 항구에서 비세로이즈 가의 중심부에 있는 집까지 오는 긴 여정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향수에 합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좌절애 빠진 그는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얼굴을 돌리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우르비노 집안이 대대로 살아온 카잘두어로 후작 성곽도 주변의 파괴에 온전히 남아있지 못했다. 의사 쥬베날 우르비노는 어두컴컴한 현관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섰다. 먼지로 얼룩진 정원 분수대와 찔레꽃 덤불 속에 도마뱀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면서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판석들도 없어졌거나 일부는 실내로 통하는 청동난간이 달린 거대한 계단 위에 파손된 채로 내버려져 있었다. 의사로서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기 보다는 희생적인 인품을 지녔던 그의 아버지는 6년 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아시아형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 그분의 죽음과 함께 가문의 영혼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남편의 죽음에 슬픔으로 목이 메인 어머니 도나 블랑카는 고인을 추도하는 제사나 음악 대신 저녁 기도로 대신해왔다. 천성적으로 활발한 성향을 가진 두 누이들도 어쩔 수 없이 수도원 같은 생활 방식에 동조하고 있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의사는 집에 돌아온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어둠과 정적이 두려워 성호를 그어보았다. 머리 속에 기억나는 기도는 재난과 파괴와. 그리고 온갖 형태의 악몽을 물리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도를 하는 동안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마도요 새가 들어와 침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근처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미친 여인들의 환각에 젖은 듯한 비명소리와, 집안에 울려 퍼지는 세수 대야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마도요 새가 그 긴 다리로 침실을 걸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어둠에 대한 천성적인 공포감과 더불어 광활하고 고요히 잠든 저택에 나타난 아버지의 환영에 그는 밤새 시달렸다. 암탉이 우는 소리와 함께 새벽 5시 마도요 새가 노래할 즈음, 쥬배날 우르비노는 자갈투성이 고향 땅에서 또 하루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지 않아 영육을 신의 섭리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족애와 시골의 일요일, 그리고 아직 미혼인 주변 여인들의 선망에 찬 관심 등이 고향에 대한 그의 쓰라린 첫 인상을 어루만져 주었다. 쥬배날 우르비노는 10월의 숨막히는 더위와 과분할 정도의 평판과 친구들의 성급한 기대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의사 선생님 내일 뵙겠읍니다.' 혹은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라는 용어에도 친숙해졌다. 그는 곧 습관이라는 마술에 빠져버렸다. 이런 생활에 안이하고도 정당한 명분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곧 그의 고향이요, 하느님이 그에게 내려주신 슬프고도 억압받는 세계이며, 그 또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곳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시켰다. 그는 먼저 아버지가 쓰셨던 진찰실을 점검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 추위 속 에서 신음하고 있던 거무칙칙한 영국제 가구들을 정돈해 나가며 총독 치하의 과학 및 의학 논문들은 다락 속에 넣어두었다. 유리문이 달린 서가에는 프랑스의 새로운 의학 자료들을 꽃아두었다. 그는 발가벗은 여자 환자의 육신을 위해 죽음과 논쟁을 하고 있는 의사의 사진과 그리고 고딕체로 인쇄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을 제외한 몇몇 낡은 사진들을 걷어내어 버렸다. 그 대신 아버지의 유일한 학위 증서 옆에 자신이 유럽의 여러 유수 대학에서 받은 수료증들을 걸어 두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미저리꼬르디아 병원에 가장 최신 의학 지식을 전도하려 해보았지만 혈기 왕성한 의욕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고질적인 미신을그 케케묵은 병원 측에서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출나기 젊은 의사가 환자의 소변 검사시 당분의 검출량을 알아보느라 샤코트와 트로쏘의 이름을 마치 친한 친구 이름 부르듯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근래에 들어 발명된 최신식 좌약의 효험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백신의 위험성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일 등을 관대하게 보아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사건건 갈등에 시달렸다. 그의 참신한 지식, 의사로서 광기에 가까운 봉사 정신, 언제까지나 놀기 좋아하는 그 고향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그의 과묵함, 이 모든 것들은 사실 그의 출중한 능력이긴 했지만 선배 의사들의 비난과 동료들의 아첨을 빚어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의사는 도시의 위험할 만큼 비위생적인 면에 집착했다. 쥐들의 서식처가 된 하수구를 메워줄 것과, 그곳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장 골목이 아닌 다른 배수로로 통할 폐쇄식 하수로를 지어줄 것을 당국에 진정하기도 했다. 시설이 훌륭한 식민지 풍의 가옥들은 부패조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있었으나 인구의 3분의 2 정도는 늪지대의 오두막 집에 살면서 길거리에다 대소변을 처리했다. 배설물은 햇볕에 바싹 말라 더러운 먼지가 되어 12월의 차갑고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떠다니다 성탄절의 기쁨과 함깨 사람의 입 속으로 흡입되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계몽 강좌를 의무적으로 개설하여 빈민들도 화장실을 짓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시의회 측과 접촉을 시도해 보았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썩은 늪지대가 되고만 숲 속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고 그 대신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씩 수거하여 비거주 지역에서 소각해야 한다고 충고했으나 그 노력도 헛수고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쥬베낱 우르비노는 또한 식수난의 위협도 자각하게 되었다. 수로 건설 구상은 훌륭한 것이었는데 이 계획에 찬성하고 나선 사람들은 지하의 물 탱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는 수년간 내린 빗물이 아주 더러운 물찌꺼기 속에 고여 있었다. 당시 가장 쓸모 있는 살림살이는 돌로 만든 수도 꼭지에서 커다란 오지 그릇을 통해 밤낮 없이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놓을 수 있는 나무 물통이었다. 물을 뜨는 알루미늄 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컵의 가장자리는 마치 허영심 많은 왕의 왕관처럼 끝이 들쭉날쭉하게 만들어 놓았다. 시커먼 진흙 속에서 나오는 물은 수정처럼 맑고 시원했으며 수풀 냄새가 풍겨났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물통 밑바닥에는 구더기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쥬베날 우르비노로서는 외관으로 보이는 그 맑은 물에 이끌릴 수가 었었다. 그는 어렸을 때 구더기라는 존재가 영혼을 지닌 초자연적인 생물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확신하고는 거의 신비에 가까운 감탄의 눈길로 몇시간 동안이나 그것을 살펴본 적도 있었다. 앙금이 가라앉은 물 속에 서식하던 그 생물채는 어린 소녀들을 꾀어 사랑 때문에 무서운 복수심을 갖도록 하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소년시절 그는 이 생물체의 존재를 감히 거역한 라짜라 꽁드 선생님의 집이 그들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일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물을 담은 듯한 유리잔과 사흘 동안 밤낯을 가리지 않고 꽁드 선생님의 유리창에 던져놓은 산더미 같은 돌맹이를 보았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던 한참 후에야 그는 구더기는 사실 모기의 애벌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후 한 번도 그것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그 이유는 그 순간부터 그는 다른 구더기들도 돌로 만든 안전한 수도꼭지에 기어다니며 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탱크 속에 저장된 물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음낭 탈장의 원인으로 숭배되어져 고향 마을 사람들은 전혀 거부감 없이 일종의 애국적인 자만심으로 인내했다. 쥬배날 우르비노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탈장에 걸린 남자들이 뜨거운 오후 문 앞에 나와 마치 다리 사이에 잠든 아이를 다루듯 커다란 고환을 키질하는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질린 적이 있었다. 탈장은 폭풍우가 휠몰아치는 밤이면 애처로운 새소리를 내며 근처의 날벌레 깃털이 태워질 때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뒤틀리는 증세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크고 늠름한 모습의 고환이야말로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영예로운 남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이 미신의 과학적인 허구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미신을 뿌리 깊이 신봉하던 많은 사람들 은 영예로운 탈장의 근원이 훼손될까 두려워 물탱크 속에 미네랄을 보강하여 영양가를 높이는 일에 반대하였다. 의사 쥬배날 우르비노가 놀란 것은 비단 더러운 물 뿐만이 아니었다. 안틸리즈에서 출항한 배들이 정박하고 있는 라스 아니마스 항구의 광활한 개간지를 따라 들어선 시장의 비위생적인 면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대의 유명한 여행가들은 이 시장을 칭하여 세계 제일의 잡화물 시장이라 일컬었다. 사실 없는 것이라 곤 없는 시끌법석한 만물 시장이긴 했으나 경악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파도에 더러운 쓰레기들이 떠다녔으며 하수구 오물 등이 길거리에 넘쳐 흐르는 그런 곳이었다. 인근 도살장에서 나온 고기 찌꺼기들도 그곳에 버려졌다. 동강난 머리통, 썩은 창자들도 버려져 있었다. 피로 얼룩진 하수도 속에서는 밤낮 없이 떠다니는 분뇨들이 넘쳐 흘렀다. 이것을 두고 날 벌레와 쥐들이 가게 처마골에 걸려 있는 소타벤토산 사슴과 수탉과 돗자리에 펼쳐놓은 아조나산 야채 사이를 헤집고 서로 먹이 싸움을 벌였다. 우르비노는 이곳을 위생적인 시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도살장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언젠가 바르셀로나에서 본 노점시장처럼 무늬 유리로 덮개 시설이 갖춰진 시장으로 변모시키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시장의 물건들은 훌륭하고 청결하여 먹기가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온건한 축에 속하는 이들조차도 그의 이같은 환상적인 정열을 동정했다.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즉, 자랑스러운 종족과 고향의 역사적 가치, 귀중한 유적들, 영웅주의, 아름다움등을 주장하며 살아왔으나 세월의 황폐함에는 맹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쥬베날 우르비노는 진실된 안목으로 고향을 대할 만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 "이곳은 고상한 도시야. 왜냐하면 우린 4백년 동안 노력해 왔지만 아직 해내지 못했거든." 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해내고 말았다. 시장통 물통 근처에서 첫 희생자를 낳은 콜레라가 그로부터 11주 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당시 상류층들은 성당이나 대교구 전용 구역에 묻혔으나, 중산층들은 수도원 앞뜰에 묻혔다. 물이 말라붙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중심부와 떨어진 도시 외곽지대 어느 바람이 잦은 언덕 위의 식민지 령 묘지에는 빈민들이 묻혔다. 그 운하에는 회반죽하여 만든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천리안을 가진 어느 시장의 명령을 받들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콜레라가 번진 지 첫 2주일 후 묘지는 시체로 넘칠 정도였고, 여러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골들을 교회 묘지로 이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까지 한치의 여유도 없었다. 엉성하게 봉인한 관이 놓인 지하실에서 새어 나온 냄새로 인해 본당 근처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그후 3년 동안 성문들은 줄곧 닫혀 있었다. 그 즈음이 페르미나 다자가 자정미사를 끌내고 나갈 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본 시기였다. 3주일째가 되자 성 클레어 수도원이 포플라나무가 늘어선 길목까지 만원사태를 이루어 공동묘지의 두 배 가량 되는 시립 묘지를 이용할 수밖애 없었다. 그곳은 시체를 즉석에서 관도 없이 3단계로 지하 매장했는데 이것도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시체로 범람하는 땅이 메스껍고 감염된 혈액이 스며나는 스폰지처럼 변해 버려 중단해야만 했다. 그래서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느님의 손' 이라는목장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그 후 일반 묘지로 지정되었다. 콜레라 발생이 공표되자 화약 연기가 공기를 정화시킨다는 미신에 따라 요새를 지키던 수비대에서는 하루 종일 15분 간격으로 대포를 쏘아댔다. 콜레라는 몸집이 크고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사실은 피부색과 환경과는 무관한 전염병이었다. 콜레라는 발생할 때만큼이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 그 참상의 정도는 확인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불행에 관한 일은 묵인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이유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쥬베날의 아버지 마르코 오렐리오 우르비노 박사는 그 당시 희생자일 뿐만 아니라 영웅적인 존재였다. 개인적으로는 법에 의한 시민 건강법을 계획 시행하였으며 그 무서운 전염병이 만연하는 동안은 어떠한 공권력도 소용 없는 여러 사회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영향력을 발휠했다. 몇년 후, 당시의 기록을 살펴 본 쥬베날 우르비노는 아버지의 방법론적 행위가 비과학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반이성적인 것에 가까와 오히려 탐욕적인 전염병을 조장하였음을 확신하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아버지가 되어갈 아들의 입장에서 그는 연민의 정을 느꼈으며 혼자 쓸쓸히 과오를 범했을 아버지와 당시 함께 지내지 못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장점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근면성, 자기 희생정신을 가진 분이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난에서 치유되었을 때 시당국에서 많은 표창장을 수여한 것으로 미루어 용기가 있는 분이었다. 불명예스러운 전란에서 태어난 여러 영웅들 속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공정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일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며 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염병의 증상이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 헛된 노력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세상을 등지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동료 의사의 요청과 가족의 간청에 귀를 막으며 좁은 복도에서 죽어가는 전염병 환자들의 공포에 등을 돌린 채 그는 미저리꼬르디아 병원의 창고 속에 틀어박혔다. 아내와 자식에대한 뜨거운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썼으며, 또 삶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그'라는 존재를 부여한 데에 대한 감사를 담은 편지를 썼다. 그것은 스무 장에 걸친 비통에 젖은 작별 편지였는데, 점점 흐려지는 필체 속에서 그의 병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있는 힘을 다해 서명했음도 잘 알 수 있었다. 유언에 따라 재로 변한 그의 시신은 다른 시체와 함께 성당 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사흘 후, 파리에 있던 쥬베날 우르비노는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던 중 한 통의 전보를 받고 삼페인을 들며 아버지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아버님은 선량한 분이셨지.' 라고 그가 말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미숙함을 후회할지도 몰랐다. 단순히 울지 않기 위해 현실 도피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주일 후 아버지의 죽음 후에 남겨진 편지를 받은 그는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이전보다 훨씬 심오한 존재로 부각된 아버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를 키워주고 가르쳐 주고 32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해온 사람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편지를 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순진하고 단순하리만큼 소심함으로 인해 그 영혼과 육체의 존재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분으로서였다. 그때까지 쥬베날 우르비노와 그의 가족들은 다른 부모 형제들에 다가온 불행으로 서만 받아들였다. 그들은 단조로운 삶을 살며 늙고 병들어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부류들이었다. 인생이란 서서히 사라지면서 기억 속에 파묻혀 망각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나쁜 소식을 담은 전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 아버지의 편지는 그로 하여금 죽음의 확실성을 향해 무모하게 몰아세웠다. 그런데 그가 아마 아홉 살이었던가 열한 살이었던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그때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예고하는 징조가 보였던 적이 있었다. 어느 비오는 오후, 두 사람은 아버지의 집무실에 있었다. 그때 쥬베날은 타일 바닥에 색 분필로 종달새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었으며 아버지는 조끼를 풀고 소매에 고무끈을 하신 채 창문으로 들어오는 헷빛 속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골 부분에 조그만 은색 손 모양의 물채가 달린 등 긁개로 등을 긁기 위해 독서를 멈추었다. 가려운 부분에 닮지 않자 그는 아들에게 손으로 긁어 주기를 부탁했는데 소년이 등을 긁을 동안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한 아주 이상한 느낌이 그에게 들었다. 한참 후, 아버지는 슬픈 미소를 띤 얼굴로 어깨 너머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네가 내 나이가 되면 너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버리겠지."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아무런 확실한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했지만 집무실의 차가운 그늘 속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있었다. 천사들은 잠시 맴돌다가 아버지 뒤쪽에서 펄럭이던 깃털 흔적을 남긴 채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으나 소년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쥬베날 우르비노는 그날 오후 아버지만큼 겉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비슷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이 자각과 더불어 그 또한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두려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콜레라는 쥬배날 우르비노에게 하나의 강박 관념이 되었다. 그는 콜레라에 대해서 유학시절 보충 강의 도중 배웠던 틀에 박힌 지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강의 도중 그는 불과 30년 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14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주 원인이 바로 그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추억에 대해 참회하는 기분으로 콜래라의 여러 유형을 공부하였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전염병 학자이자 방역 사업의 창시자이며 유명한 소설가인 아드리엔 프라우스트 교수에 대한 연구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귀향하는 배 위에 서서 시장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맡으며, 하수구의 쥐들과 길거리 흙탕물 속에서 발가벗고 뛰노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비극의 원인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또다시 재발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미저리꼬르디아 병원의 제자들은 온몸에 이상한 파란 반점이 돋아난 구호 대상 환자 치료를 의뢰해 왔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문 입구에 서서 그 환자를 지켜보기만 해 달라고 했다. 제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 환자가 쿠라카오에서 범선을 타고 사흘 빨리 병원에 직접 찾아왔는데 아직 감염 흔적은 없는 것같아 보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동료 의사에게 주의를 주어 당국이 인접 항구와 감염된 그 범선을 격리 조치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계엄령을 발표하여 15분 간격마다 대포를 쏘는 치료책을 쓰고 싶어하는 담당 군지휘관의 행위를 금지시켜야 했다. "해방주의자들이 올 때를 대비해 화약을 아껴야지요. 지금은 중세 시대가 아닙니다." 라고 그는 쾌활하게 말했다. 나흘 후, 그 환자는 알갱이가 흰 액체를 토하며 질식사 해 버렸다. 그러나 그 다음 몇주 동안은 계속 경계를 했지만 다른 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커머셜 데일리 지는 떨어진 두 지역에서 두 명의 어린이가 콜레라로 숨졌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중 한 어린이는 흔히 있는 이질 증세였으나 다섯 살 난 소녀는 사실상 콜레라의 희생자로 밝혀졌다. 부모와 세 명의 형제들은 각각 격리되었고 마을 전체애 엄격한 의료 조치가 취해졌다. 그증 한 어린이가 콜레라에 감염되었지만 곧 회복되었고, 가족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후 석 달 동안 열한 건의 기사가 보도되다가 다섯째 주에는 충격적인 환자가 발생되긴 했으나 연말에 이르자 전염병의 위험은 사라졌다고 믿게 되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위생 관념 덕분으로 그러한 기적이 가능했다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 지역뿐만 아니라 카리브 해안과 막달레나 계곡에 이르기까지 콜레라는 풍토병이긴 했지만 결코 전염병으로 확산된 적은 없었다. 이것은 곧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경고를 관리들이 진지하게 이행한 결과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과대학에 의무적으로 콜레라 예방학과 열대병 강좌를 신설하였고, 하수구 덮개를 하는 일과 쓰레기더미에서 먼 곳에 시장을 건축하는 일이 절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는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사회적인 사명감을 가질 만큼 감동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그의 날개 하나가 부러져 그의 마음은 산란했고 불안정했으며 그외 다른 일은 모두 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것은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행운에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사랑은 치료상의 실수의 산물이었다. 의사인 그의 친구 하나가 열여덟 살 된 환자에게서 콜레라 증세를 발견하고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진찰을 의뢰해왔다. 그날 오후 그는 콜레라가 이미 도시의 보호 구역에 침투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깜짝 놀라 그곳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콜레라는 거의 빈민굴의 흑인들에게서 발병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증세가 다소 심하지 않은 환자들도 몇몇 보였다. 에반젤스 공원의 아몬드나무 그늘에 가리운 집 밖 풍경은 다른 구역들과 마찬가지로 폐허처럼 보였으나 집 안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아름다움과 밝은 빛이 서로 멋진 조화롤 이루고 있었다. 현관을 곧장 들어가자 갓 피어난 하얀 라임꽃과 만발한 오렌지나무가 있었다. 바닥도 벽과 똑같은 타일이 깔려 있는 정방형 세빌리안 풍 정원이 나타났다. 어딘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났으며 벽 장식장 위엔 카네이션이 꽂힌 항아리가 있었고, 벽기둥 사이로는 처음 보는 새장들이 놓여 있었다. 가장 이상스러운 것은 큰 새장 속에 든 세 마리의 까마귀들이었는데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오묘한 향기를 정원 가득히 풍기는 것이었다. 집안 어디에 묶여 있던 개들이 낯선 사람 냄새를 맡고 짖기 시작했으나 어떤 여인의 큰 목소리에 잠잠해졌으며 목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이 정원 안을 뛰어다니다가 꽃밭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동물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흐르는 낙수 물 소리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바다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투명하리 만큼 고요한 정적이 깃들었다. 신의 존재를 확신한 그 순간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 집엔 전염병 따윈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갈라 플라시디아를 따라 벽기둥이 늘어선 통로를 지나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처음 페르미나 다자를 본 바느질방 창문 곁으로 걸어갔다. 정원은 그때도 수라장이었을 것이다. 이층으로 향한 새 대리석계단을 올라가 환자방을 들어가기 전 도착을 알리기 위혜 그가 기다리고 있을 때에 갈라 플라시디아가 쪽지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 "아가씨께서는 아버님이 출타 중이시라 선생님이 들어오실 수 없다고 하시는군 요." 그래서 그는 하녀의 말에 따라 그날 오후 5시에 다시 찾아갔다. 그때는 로렌쪼 다자가 직접 대문을 열어 주면서 딸의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로렌쪼는 구석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진찰 도증 자신의 고르지 못한 호흡을 가다듬느라 애를 쓰면서 앉아 있었다. 점잖은 의사와 처녀다운 정숙한 실크 속옷을 입은 환자 중 누가 더 부자연스러 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대신 그는 사무적인 음성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였고 그녀는 두려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두 사람 모두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무척 의식하고 있었다. 이윽고,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지시한 다음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속옷을 허리까지 벗겨 내렸다. 그녀의 깨끗하고 큰 젖가슴이 어린 아이처럼 미숙한 젖 꼭지와 함께 어우러져 잠시 어둠 속에서 화약 연기처럼 빚났다. 그녀는 얼른 두 팔로 그곳을 가렸다. 의사는 침착한 태도로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 두 팔을 벌리게 한 다음 처음엔 가슴과 그 다음엔 등에다 귀를 대고 곧 진찰을 시작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평생 그의 반려자가 되어준 그 여인을 만난 순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노라고 후에 말했다. 그는 레이스가 달린 푸른색 속옷과 열기 있는 두 눈동자와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은 기억했다. 그러나 그 지역에 발생한 콜레라라는 두려운 존재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그녀의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젊음을 느낄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그는 그녀가 전염병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증세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그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 쪽은 휠씬 솔직한 편이었다. 콜레라 치료에 관한 그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그녀는 의사가 자신 이외는 그 누구도 사랑할 줄 모르는 잘난 척하는 남자로 보였다. 진단 결과는 소화기 계통의 대장염이었는데 집에서 사흘 정도 치료하면 회복되는 병이었다. 딸이 콜레라에 걸리지 않아 안심이 턴 로렌쪼 다자는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를 문까지 전송 나와 왕진료 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일 골드 페소를 지불하고 고마와서 어쩔 줄 몰라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우르비노 의사 가문의 훌륭함에 탄복한 그는 앞으로 개인적으로 그를 다시 만나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화요일 청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오후 3시라는 까다로운 시각에 그 집을찾아왔다. 패르미나 다자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재봉실에서 유화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티끌 하나 없이 하얀 코트와 모자를 쓴 그가 나타나서 그녀에게 손짓을 보냈다. 페르미나 다자는 파렛트를 의자에 놓고 주름치마가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여며 들고는 살금살금 창가로 걸어왔다. 그녀는 앞이마에 보석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눈동자처럼 차가운 색조로 빚났다. 그녀에게서는 차가운 분위기가 풍겼다. 집안에서 그림 공부를 할 때 입는 드레스가 마치 파티 의상같아 보이는 사실에 의사는 층격을 받았다. 그는 열린 창으로 그녀의 맥박을 짚어 보고 입을 벌리게 한 다음 알루미늄으로 만든 기구로 입 목구멍을 살펴보았다. 눈 아랫부분을 살펴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첫 방문 때보다는 덜 어색해 보였다.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다시 오지 않겠노라고 말하고 간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예고 없는 진찰을 하는 이유를 알수 없었던 그녀로서도 더욱 그러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다시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진찰을 끝내고 여러 도구와 약병이 가득 든 가방에 기구를 다시 챙겨 넣은 다음 찰칵 소리를 내며 닫았다. "아가씨는 갓 피어난 장미꽃 같소." 그가 말했다. " 고맙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시오." 라고 말하더니 그는 성 토마스의 말을 잘못 인용하기 시작했다.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느님이 주신 것임을 기억하라, 그런데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질문의 요지가 뭔지 모르겠군요." 그녀가 되물었다. "음악은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답니다." 그는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그녀도 음악에 대한 화제가 그의 호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그후 곧 알게 되었으나 그 당시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쥬베날 우르비노와 그녀가 창가에서 이야기할 동안 그림을 그리는 척하면서 친구들이 파렛트로 얼굴을 가리고 킬킬 웃어대자 그녀는 그만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그녀는 광 하고 창문을 닫아 버렸다. 당황하여 앓은 레이스 커튼을 쳐다보던 쥬배날 우르비노는 문을 찾으려다 방향을 잃고는 오묘한 향기를 뿜는 까마귀 집을 그만 차고 말았다. 까마귀들은 놀라 날개를 퍼덕이면서 사나운 비명 소리를 지르며 옷에다 향긋한 냄새를 뿜어 대었다. 로렌쪼 다자의 우렁찬 음성이 그를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 그는 윗층에서 모든행동을내려다보고 있었는지 퉁퉁한 얼굴이 붉게 물들어 셔츠 단추를 채우며 계단을 내려왔는데 구레나룻이 오랜 낮잠에서 깨어난 듯 헝클어져 있었다. 의사는 당혹감을 가라앉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따님한테 장미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소, 하지만 가시 돋힌 장미라오."로렌쪼 다자가 말했다. 그는 우르비노 박사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쳐 가 재봉실 창문을 활짝 열고 딸에게 소리쳤다. "이리 나와 의사 선생님께 사과를 드려라." 의사는 그를 만류하려 했으나 로렌쪼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는 "어서 !" 하고 재촉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표정을 살짝 짓더니 헷볕을 피하려 문을 닫았을 뿐이니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르비노 박사도 짐짓 유쾌한 듯 그녀의 말이 맞다고 동조했으나 로렌쪼는 딸이 순종해 주기를 끝내 고집했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페르미나 다자는 창문으로 돌아서더니 손 끝으로 스커트를 살짝 올리면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의사에게 일부러 거창하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신사답게 모자를 들어 올리며 활달한 태도로 응수했으나, 기대했던 따뜻한 미소는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로렌쪼가 사과하는 의미로 집무실에서 차 한 잔을 권해오자 그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사실 모닝 커피를 제외하고는 우르비노 박사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중한 자리에서 반주로 포도주 한 잔 이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그날은 커피뿐만 아니라 아니스 주까지도 얻어 마셨다. 그는 몇 군데 더 가야할 곳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렌쪼가 권하는 숱을 연거푸 마셨다. 처음에는 로렌쪼가 딸에 관해 변명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어떤 왕자와 어울려도 손색 없을 정도의 지성과 정숙함을 갖춘 여인이지만 단 한 가지 결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고집이 세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아니스 주를 마신 후 의사는 정원 쪽에서 들려오는 페르미나 다자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얼마 전에 깔린 집안 어둠 속에서 그녀가 통로의 불을 밝히며 침실에 살충제를 뿌린 다음 화로 위의 스프 냄비를 여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화로는 밤새 두 부녀가 함께 쓰는 것으로 식탁에 마주 앉은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스프맛도 보지 않고 쁘루퉁한 마음올 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아버지가 그날 오후 심하게 대했던 일을 사과할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집무실 앞을 지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만큼 그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그날 오후 당했던 수모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될 것 같지 않아 그 집에 그대로 남아 있기로 했다. 술이 얼큰히 취한 로렌쪼 다자는 자신의 끊임없는 능변에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상대방의 무관심 따윈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꺼진 담배 불 끝을 씹다가 큰 소리로 기침하여 목청을 가다듬어 가면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했다. 한편으로는 더위먹은 동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스프링에서 나는 회전의자 위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 로렌쪼는 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아니스 주를 석 잔 마셨는데 서로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잠깐 말을 중단하고 일어나 전등을 켰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불빛 속에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이 고생 선처럼 찌그러진 데다 입술 모양과 발음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과음으로 인한 환각 증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서는 순간, 마치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느껴져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극도로 정신읕 집증시켜야 했다. 로렌쪼와 함께 집무실을 나왔을 때는 7시가 넘어 있었다. 보름달이 떠 있었다. 취기로 인해 더욱 멋져 보이는 정원이 수족관에 떠다니는 것 같았고 천으로 덮여있는 새장엔 유령들이 갓 피어난 오렌지꽃의 강렬한 향기 아래서 잠들고 있는 것같아 보였다. 재봉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작업대 위에는 불 켜진 전등이 놓여 있었으며 미완성 그림들이 마치 전시중인 듯 이젤 위에 걸려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대는 어디 있소 !" 하고 중얼거렸으나 페르미나 다자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화가 나서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그날 오후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일을 사과받으려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로렌쪼는 권유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맥박과 청순하며 쌀쌀한 말투, 경미한 편도선이 그리워졌으나 그녀가 다시는 그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과 또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로렌쪼가 현관으로 걸어가자 판자 밑에서 잠이 깨어난 까마귀들이 구슬픈 소리를 내었다. 의사가 그녀를 생각하면서, "저 녀석들이 눈알을 쪼아댈걸." 하고 큰 소리로 말하자 로렌쪼는 무슨 말올 하느냐며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술이 하는 말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로렌쪼 다자는 마차까지 배웅을 하면서 두 번째 왕진료 조로 일 골드 페소를 억지로 지불하려 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그는 왕진을 가야 할 환자 두 명의 집 주소를 마부에게 정확하게 일러 주면서 부축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마차가 자갈길을 지날 무렵 속이 메스꺼워 그는 다른 길로 가자고 마부에게 말했다. 그는 마차 안에 있는 거울을 잠시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그때까지도 페르미나 다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았다. 그런 다음 얼굴을 가슴까지 내린 채 트림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그는 장례식 종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성당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차츰차츰 나중에는 성 줄리앙 병원의 항아리 깨지는 소리로 들려왔다. "이런 제기랄! 죽은 사람은 죽은 거야." 잠 속에서 그가 중얼거렸다. 어머니와 누이들은 그가 문가에 들어섰을 때 커다란 식당의 식탁에서 저녁 커피와 튀김 과자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형편 없고 몸에서는 까마귀의 더러운 냄새가 풍겼다. 인근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크고 텅 빈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동안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날 오후 뇌일혈로 쓰러져 숨진 이그나시오 마리아 장군의 장례식에 그가 참석하도록 그를 찾아 사방을 헤메고 다녔던 것이다. 성당 종 소리는 장군을 추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문틀을 꼭 쥔 채 어머니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침실 쪽으로 걸어 가다가 구토가 나오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런 꼴로 집에 들어오다니 분명히 심상찮은 일이 있었나보구나." 어머니가 소리쳤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일은 아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그나시오 장군의 추도식을 끝낸 직후 모짜르트 소나타를 연주한 유명한 피아니스트 로메오 러시히의 방문을 계기로 하여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음악 학교의 피아노를 노새가 끄는 마차에 싣고 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세레나데를 바쳤다. 첫 소절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탁월한 음악의 연주자가 누구인지 굳이 발코니를 통해 내다보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달갑지 않은 구애자 머리 위에 방안에 있던 물 주전자의 물을 부어 버리는 다른 처녀들처럼 그런 용기가 그녀에게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레나데가 연주되는 동안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로렌쪼 다자는 곡이 끝나자 정장차림의 우르비노 박사와 그 피아니스트를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맛있는 브랜디 한 잔을 권하며 감사 표시를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버지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주가 있은 그 다음날 그는 딸에게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우르비노 씨가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네 엄마가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 보렴." 그러자 그녀는 쌀쌀맞은 태도로 말했다. "아마도 무덤 속에서 기절을 하시겠죠." 그림을 함께 그렸던 페르미나 다자의 친구들이 그녀의 아버지가 우르비노 박사의 점심 초대를 받고 사교 클럽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해 우르비노 박사는 클럽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심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때서야 그녀는 아버지가 사교 클럽의 회원 신청을 수차에 걸쳐 했으나 그때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두 사람은 가끔 집무실에서 여러 시간 동안 잡담을 나누었는데 그러는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그가 가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일과 활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집은 시간의 가장 자리에 묶여 일시 정지해 버린 것같이 되었다. 파리쉬 카페는 두 사람이 만나는 아주 훌륭한 피난처였다. 로렌쪼 다자가 쥬베날 우르비노에게 맨 처음 체스를 가르쳐 준 곳도 바로 파리쉬 카페였다. 쥬베날은 그 당시 충실한 제자가 된 덕분에 그 후로 죽을 때까지 체스에 고질적인 중독이 되어 버렸다. 세레나데 연주가 있은 직후 어느 날 저녁 로렌쪼 다자는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현관 앞에 놓여 있던 것으로 겉봉이 납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그 편지는 딸 앞으로 온 것으로 그는 페르미나의 방문 앞을 지나갈 때 그 편지를 문틈으로 살짝 밀어넣었다. 딸에게 구애하는 남자의 편지 심부름을 할 만큼 아버지가 변했다는 것을 모르는 페르미나로서는 어떻게 해서 그 편지가 그곳에 놓여 있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며칠 동안 뜯어 보지도 않은 채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러던 중 어느 비 내리는 오후 페르미나 다자는 꿈 속에서 쥬배날 우 르비노가 기구를 가지고 와서 목구멍 검사를 한 적이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꿈속에서 본 기구는 알루미늄이 아니라 다른 꿈 속에서 기분 좋게 느낀 적이 있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그것을 두 조각을 내어 그중 하나를 그에게 주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편지를 뜯어 보았다. 그것은 간결하고 예의 바른 편지였으며 그녀를 방문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내도록 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담은 편지였다. 그녀는 편지의 간결함과 진지함에 감동을 받아 여러 날 동안 뜨거운 애정과 함께 품어왔던 분노가 그 자리에서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편지를 가방 밑에 간직했으나 그 속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보낸 향긋한 편지도 함께 들어있는 것을 깨닫고 수치심에서 편지를 꺼내어 어디 감추어 둘 곳이 없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가장 정숙해 보이도록 하려면 편지를 받지 못한 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램프 속에 집어 넣고 납에서 흘러 내리는 물방울이 불꽃 위에서 푸른 거품을 내며, 타들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안 됐군." 하고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일년 동안 그 말을 한 것이 두 번째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잠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면서 그가 그녀의 인생과 너무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 새삼 놀라워했다. '불쌍한 사람...' 그후 세 통의 편지가 10월의 마지막 우기 증에 배달되었으며 그중 첫번째 것은 플라비그니 수도원에서 만든 보라빚 선향 상자와 함께였다. 나머지 두 통은 우르비노 박사의 마부가 현관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마차 창문을 통해 갈라 플라시디아와 인사를 나눈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첫째는 그 편지가 분명 의사가 시켜서 보낸 것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편지가 배달된 일이 없는지를 확인하려 하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더우기 두 통 모두 납으로 밀봉된 데다 페르미나 다자로서도 이미 그의 글씨체라고 식별할 정도로 흘려 쓴 편지였다. 첫번째 편지 내용과 사실상 같은 부탁조의 내용이었으나 그 공손한 내용 속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인색한 편지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조바심을 느낄 수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로부터 2주일 후 편지가 도착되는 대로 즉시 읽어 보았고 웬지 모르게 불 속에 먼지를 집어 던지려고 하다가 마음이 변해 버렸다. 그러나 답장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10월에 보낸 세 번째 편지가 대문 밑에 놓여 있었는데 이번 것은 여러 면에 있어서 앞에 보낸 편지와는 종류가 달랐다. 글씨체가 마치 어린아이가 쓴 것같아 보였다. 분명히 왼손으로 갈겨 쓴 것이었는데, 편지 내용이 독설적인 것임을 알기 전까지는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면지를 쓴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페르미나 다자가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유혹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한 추측을 전제로 한 악의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편지였다. 편지 끌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협박 내용이 씌어져 있었다. 만약, 페르미나 다자 측에서 그 지역의 가장 유능한 남자를 빌미로 하여 출세해 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매우 심각한 불의의 회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불쾌하다든가 앙심을 품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적절한 설명으로 그에게 실수를 확신시켜 주기 위해 익명의 그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다. 그 이유로는 절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쥬베날 우르비노의 구애에 반응을 보이지 않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페르미나 다자는 익명의 편지 두 통을 더 받았는데 첫번처럼 악의에 찬 내용이었으나 세 통 모두 동일한 인물이 써 보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떤 음모의 희생자였든지 아니면 그녀의 비밀스러운 연애 문제에 대한 잘못 된 인식이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했든지 두 가지 증 하나였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쥬배날 우르비노의 무분별한 행동의 결과라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쥬베날 우르비노라는 사람이 외모와는 달리 경박하고 그녀의 집에 찾아올 적마다 그 또래의 다른 남자들처럼 여자들의 마음을 유혹했던 경험담들을 거짓으로 떠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르미나 다자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에게 모욕을 가한 일을 비난해 볼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이 곧 그가 바라는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내 떨쳐 버렸다. 그녀는 재봉실에서 함깨 그림을 그렸던 친구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그들이 들었던 것은 그 세레나데 연주에 관한 호의적인 소문뿐이었다. 그녀는 분노와 무력함과 수치심을 느졌다. 그에게 실수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고자 했던 처음의 감정과는 달리 지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나무 손질 용 가위로 그를 갈기갈기 찢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일말의 위안 거리를 찾고 싶은 희망에서 그 익명의 편지 속에 든 문구 하나하나를 분석하느라 불면의 밤들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 없는 희망이었다. 원래부터 페르미나 다자는 우르비노 집안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고 그 집안의 악행보다는 선행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무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편지도 동봉하지 않고 검은색 인형만 그녀에게 배달된 일로 인해 두려움을 느낀 이후부터, 이 생각은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그것을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는 금방 짐작이 갔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인형은 마티니끄에서 구입한 것으로 고유 상표가 붙여져 있었으며 특이한 옷이 입혀져 있었다. 황금색 곱슬머리에다가 밑으로 내리면 눈이 감기는 그런 인형이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마음에 쏙 드는 인형이었으므로 전혀 망설임없이 배개 위에 올려놓은 후 밤에 함께 잠이 들 정도로 그녀는 인형과 친숙해졌다. 그러나 나중에 악몽에서 깨어난 그녀는 인형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애초에 입고 있던 그 특이한 드레스가 허벅지 윗부분까지 올라가 있었고 신발은 발의 힘에 못 이겨 터져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이전에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문을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때도 이것 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우르비노 같은 사람이 그런 잔인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생각이 옳았다. 그 인형은 마부가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처음 보는 떠돌이 장사꾼이 보낸 것이었다. 그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고 애를 쓰던 중 그녀는 한 순간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했다. 그의 불행은 그녀에게 절망을 가져다 주었으나, 인생은 그녀에게 실수를 깨닫게 해 주었다.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그후 그녀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스스로 세계 제일가는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를 때까지도 그 일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 진저리를 쳤다. 우르비노 박사의 최후 수단은 성모현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프란카 드라 루즈 수녀에게 중매를 부탁하는 일이었다. 루즈 수녀는 미주 지역에 수녀원이 설립된 이후부터 도움을 아끼지 않은 우르비노 집안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아침 9시에 어느 신참 수녀 한 명을 대동하고 그 집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페르미나 다자가 목욕을 끝낼 동안 30분 가량 새장을 구경하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금속성 음성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아이 같은 정열과는 달리 거만한 눈매를 가진 남자 같은 독일 여성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와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미워했으며 그녀의 거룩한 체하는 신앙심에 관해서는 생각만 해도 속에서 전갈이 기어나오는 것 같았다. 욕탕 문을 통해 그녀를 보았을 때 학창 생활 때 겪었던 고통과 도저히 참기 어려울 정도로 지루했던 기도시간과 시험에 대한 공포, 수녀들의 맹종에 가까운 검약성, 정신력의 결여로 인한 고통스런 생활 등등이 되살아날 것 같았다. 그와 반면에 루즈 수녀는 진심으로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페르미나가 성숙한 처녀가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솜씨와 정원의 향내, 오렌지 꽃 내음 풍기는 화롯가에 대해 그녀를 칭찬했다. 그녀는 데리고 온 수녀에게 까마귀 근처에 가지 말라고 충고하며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까마귀들이란 잠시라도 방심하면 눈알을 파먹는다고 했다. 루즈 수녀는 조용한 곳에 앉아 페르미나 다자와 단둘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것은, 짧지만 고통스러운 방문이었다. 격식에 얽매일 시간이 없는 루즈 수녀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영예로운 복학을 제의해 왔다. 그녀의 제적 사유를 생활 기록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 주겠다고 했으며 그렇게 되면 학업을 끝내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당황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너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한 훌륭한 분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단다. 그분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지. 누군지 알겠니 ?" 수녀가 말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녀는 순진한 연에 편지 사건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그 권위에 넘치는 여자에 대해 자문해 보았으나 감히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만, 아울러 그가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 권리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너와 5분 동안 만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거야. 아버지께서는 허락하실 줄 믿어." 수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이 방문에 한몫 담당한 공범자라는 생각이 들자 페르미나 다자의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제가 아팠을 때 두 번 만난 적이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만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조금이라도 지각 있는 여자라면 그런 남자는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 거야." 수녀가 말했다. 루즈 수녀는 그의 장점,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봉사 정신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야기 도중 그녀는 소매에서 대리석 조각으로 된 예수 형상이 달린 황금 묵주를 꺼내어 페르미나 다자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그것은 백년 이상 묵은 가보였는데 씨에나의 세공장이가 조각하여 클레멘트 4세에게 축성받은 것이었다. "자아, 네것이야." 라고 수녀가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수녀님이 왜 이런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남녀간의 사랑은 죄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말입니다." 루즈 수녀는 그 말읕 못 들은 척했으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그녀는 그 묵주를 여전히 페르미나 다자의 눈앞에 들고 있었다. "나를 이해하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다음 번엔 대주교님께서 오실 테니까 말이야. 그분과는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 "그분을 오시라고 하세요." 페르미나 다자가 말했다. 루즈 수녀는 황금 묵주를 소매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나서 다른 소매 속에서 오래된 손수건을 꺼내 공처럼 눌러 손으로 꼭 쥐면서 연민어린 미소를 머금고 페르미나 다자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것 같으니라구 !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구나." 라며 한숨을 쉬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무례한 태도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노려보며 침묵을 지키다가 남자같이 생긴 수녀의 눈가에 눈물이 괴이는 것을 보자 매우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루즈 수녀는 공 모양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아버지가 고집장이라고 하더니 그분 말씀이 맞구나." 라고 그녀가 말했다. 대주교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힐데브란다 산체스가 크리스마스를 사촌과 함께 보내기 위해 오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며 그러면 두 사람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배멀미로 반쯤 초죽음이 된 승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오전 4시경 리오하차발 범선 위에서 힐데브란다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녀는 배에서 불편한 밤을 보내고도 희색이 만면한 흥분된 얼굴로 배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체류중 다른 사람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걱정하지 않도록 살아 있는 터어키와 그녀의 비옥한 땅에서 거둔 온갖 과일을 담은 상자들을 가지고 왔다. 그녀의 아버지 리시마코 산체스는 자기가 가장 훌륭한 음악가를 구해줄 수 있으니 연말 휴가 중에 필요한지를 묻고 있는 쪽지를 보내왔다. 나중에 꽃불 한 짐도 보내 주겠노라는 약속도 했다. 3월 이전에는 딸을 데리러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으므로 그들로서는 재미있게 보낼 시간이 아주 많은 셈이었다. 외사촌 자매인 그들 두 소녀는 첫날 오후부터 벌거벗은 채 물탱크 속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서로 비누질을 해 주고 때도 밀었고 엉덩이와 젖가슴을 비교도 해가면서 지난번 마지막으로 벌거벗고 만난 이후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그들을 잔인하게 취급했는가를 살펴보려고 거울을 보기도 했다. 힐데브란다는 피부가 황금 빛이고 몸집이 크고 탄탄했으나 몸에 난 털은 강철 솜처럼 짧고 곱슬곱술한 황갈 색이었다. 그와 반면에 페르미나 다자의 몸은 좀더 희고 곡선이 유연했다. 갈라플라시디아는 침실에 똑같이 생긴 침대 두 개를 준비해 주었으나 두 사람은 어떤 때는 한 침대애 누워 새벽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힐데브란다가 트렁크 속에 감춰둔 마치 노상 강도들이 피는 듯한 길고 가느다란 담배를 피웠으며 방안에 남은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미국산 종이를 태워야만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발레듀파르에서 처음 담배를 배웠는데 폰세카와 리오하차에서도 계속 피웠었다. 그곳에서는 열 명의 사촌들과 함께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남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녀는 군인들이 밤중에 담배불로 인해 발각되지 않도록 담배 피는 식으로 불 쪽을 입 안에 넣고 피우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혼자 있을 때는 피우지 않았다. 힐데브란다와 함께 지낼 동안 그녀는 매일밤 잠들기 전에 담배를 피웠으며 그 이후론 그것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비록 먼 홋날 남편과 아이들에게 항상 숨겨온 일이긴 했지만 그 이유는 여자가 공공연히 사람들 앞애서 담배 피우는 것이 정숙치 못하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몰래 피우는 즐거움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힐데브란다의 여행은 그녀의 부모들이 페르미나에게 좋은 배필감을 결정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 주도록 주선한 일이긴 했지만 그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잊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이 강요한 여행이었다. 힐데브란다는 그녀의 사촌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채념을 조롱해 보려는 마음에서 승낙을 하고 폰세카의 전신 기사에게 매우 신중한 편지를 보냈다.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결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환멸이 그토록 깊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더우기 힐데브란다는 애정관이 폭넓은 편이라 한 사람의 연애 사건이 세상의 다른 연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가 당황할 정도의 대담한 용기를 가지고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호의를 구하기 위해 혼자 전신국으로 찾아갔다. 그녀는 페르미나 다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전혀 일치하는 점이 없어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채찍질당한 강아지처럼 망신당한 율법자나 입을 옷차림에다 사람의 마음을 혼란시킬 수 없는 점쟎은 척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 자신의 사촌 동생이 그런 사람 때문에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 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자신의 첫 인상을 후회하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매우 친절히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 사람처럼 그녀를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신분이나 주소도 묻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그녀는 전신국 앞을 지나갈 테고 그러면 그녀에게 애인의 답장을 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힐데브란다가 가지고 온 편지를 읽고 난 그는 그녀에게 제안을 해도 좋겠냐고 부탁하였고 그녀는 승낙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먼저 몇 줄을 지우기도 하고 다시 고쳐 쓴 다음 여백이 없자 편지를 찢어버리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매우 감동적인 편지를 다시 써 주었다. 전신국을 떠날 때 그녀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그는 못난이고 처량하게 생겼지만 참으로 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 그녀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말했다. 힐데브란다가 가장 충격을 받은 일은 사촌 동생의 고독이었다. 그녀는 스무 살먹은 노처녀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도대체 몇 사람이나 살고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대가족에 익숙한 힐데브란다로서는 그녀 또래의 어린 소녀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아침 6시에 잠이 깨어난 이후부터 침대의 불을 끌 때까지 페르미나 다자는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생활이란 바깥과 관계된 것 뿐이었다. 맨 나중 수탉이 울 무렵 그녀는 우유 배달부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나서 해초더미 위에서 죽어가는 빨간 생선 상자를 든 어부 아내의 노크 소리가 있었으며 미리아라 바자산 야채와 쌍 자신토산 과일을 가지고 온 상인들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온갖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다 거지들, 복권을 가지고 온 소녀들, 자선단체 수녀들, 세상 잡담에 밝은 칼 가는 아저씨들, 병들을 사는 남자, 오래된 금을 사는 남자, 헌 신문지를 사는 아저씨, 그리고 카드나 손금, 커피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 혹은 세수대야의 물로 운명을 보아 주는 가짜 집시들 등 수도 없이 많이 찾아왔다. 갈라 플라시디아는 하루 종일 문을 여닫으면서 아뇨, 다음에 오세요, 하고 말하든가 혹은 제발 귀찮게 굴지 말라고 사나운 목소리로 발코니에서 고함을 지르며 벌써 필요한 건 다 샀다고 소리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에스코라스틱카 고모가 하던 일을 아주 열심히 제대로 해 내었으므로 페르미나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갈라 플라시디아에게는 하녀다운 기질이 다분히 있었다. 시간이 나면 다림질을 하러 작업실에 들어가 완벽하게 손질한 다음 라벤더꽃과 함께 서랍에 넣어 두었다. 방금 빨래를 끝낸 옷뿐만 아니라 입지 않아 퇴색해 버린 옷들도 꺼내어 다림질한 후 손질을 해 놓곤 했다. 그녀는 14년 전에 돌아가신 페르미나의 어머니 페르미나 산체스가 입던 옷들도 똑같은 정성으로 손질을 해 두었다. 그러나 집안 살림살이 결정은 역시 페르미나 다자의 몫이었다. 그녀는 메뉴, 구입할 물건,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지시했으며 그런 식으로 사실 아무 결정할 일이라곤 없어 보이는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곤 했다. 새장 청소와 새 모이를 주고 꽃 손질도 끝내고 나면 그녀는 할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이후 그녀는 가끔 낮잠을 자며 다음 날까지 깨어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림 공부만이 무료한 시간을 매우기에 가장 즐거운 일과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비록 서로 괴롭히지 않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있었지만 애스코라스티카 고모가 떠난 이후로는 줄곧 서먹서먹한 상태였다. 페르미나 다자가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의 아버지는 벌써 직장에 나가 버리고 없었다. 그는 집에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점심을 거르는 법은 드물었다. 파리쉬 카페에서 나오는 반주와 갈리시안 전채 요리가 그의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저녁도 집에서 먹지 않았다. 식사를 하지 않아 다음날 아침에 다시 데워야했다. 그의 식사는 식탁 위 뚜쩡 덮은 접시에 차려 놓아 둔다. 일 주일에 한 번 그는 딸에게 생활비를 주었다. 그는 그것을 자세하게 계산하였으며 딸은 빈틈없이 관리해 나갔으나 만일 딸이 예기치 않은 생활비를 청구하면 그는 기꺼이 들어주었다. 딸의 씀씀이에 대해서는 한푼도 캐묻지 않았고,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재판정에 나가기 전까지는 계산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하는 것처럼 철저히 돈 관리를 했다. 그는 하고 있는 사업이나 그 형편에 대해 딸에게 말해 준 적이 없었으며 부듯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데려간 적도 없었다. 그곳은 비록 아버지와 함께이더라도 정숙한 젊은 숙녀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로렌쪼 다자는 저녁 10시 이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시각은 전시증 다소 위험이 덜할 때의 통행금지 시각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파리쉬 카페에 앉아 여러 가지 게임에서 전문가적인 실력을 발휘해 훌륭한 선생 노릇을 하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아니스주 한 잔을 하고 시가의 끝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하루종일 규칙적으로 술을 마시긴 했지만 딸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언제나 술이 깬 상태로 귀가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페르미나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기마병처럼 올라가는 계단 소리, 이층에서 들려오는 큰 호흡 소리와 함깨 손바닥으로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난생 처음 보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눈과 불분명한 발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린 망했다 ! 폭삭 망했단 말이다. 너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게다." 그가 말했다. 그 말이 전부였으나 그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인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날 저녁 이후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예전의 학교 친구들은 그녀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천국에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영예롭지 못하게 제적당한 이후, 그녀는 이웃도 없었다. 그것은 이웃 사람들은 성모현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던 그녀로서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살던 세계는 장사꾼과 부두 하역꾼들, 파리쉬 카페의 비밀 대피소에있던 피난민들, 외로운 사람들과의 교제뿐이었다. 지난해 미술 교사가 단체 수업이 더 좋다고 하여 학생들을 재봉실로 많이 데리고 온 이후 그림 공부가 그녀의 외로움을 다소 덜어 주었다. 그렇지만 그 학생들은 천차만별의 불확실한 환경을 가진 소녀들이었으므로 페르미나 다자에게는 수업과 함께 우정이 끝나버리는 잠시 빌려온 친구들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힐데브란다는 집안을 활짝 열고 환기도 시키면서 아버지가 보내주기로 한 음악가와 꽃불과 화약 연기를 기다렸다. 흥겨운 분위기로 사촌 동생의 갑갑한 가슴을 달래 줄 댄스 파티도 열고 싶었으나 초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자신의 생각이 쓸모없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페르미나 다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림 공부가 끝난 오후, 힐데브란다는 도시 구경을 시켜달라고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와 매일 함께 걷던 길목과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를 기다리며 독서를 하는 척하고 앉아 있던 공원 벤치와 그녀를 쫓아다니던 좁은 골목과 편지를 감춰둔 장소를 구경시켜 주었다. 처음에는 교도소가 있었으나 그후 그토록 미워한 성모현 고등학교로 개축된 무서운 거리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들은 극빈자 묘지가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그 언덕은 페르미나 다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잘 들을 수 있도록 바람 부는 방향에 맞추어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바이올린을 켜던 곳이었다. 유서 깊은 도시 전체와 파손된 지붕들, 허물어진 담장들, 장미덩굴 속에 있던 요새의 자갈들, 항구의 섬들, 늪 지대의 오두막집들, 그리고 광활한 카리브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성탄절 전야 그둘은 성당의 자정 미사에 참석했다. 페르미나는 매우 맑은 음색으로 연주하던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던 자리에 앉았다. 오늘과 똑같은 날 밤 처음으로 그의 놀란 두 눈동자를 보게 되었던 그 자리를 힐데브란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몰래 스크라이버 상점에 가서 과자를 사 먹으며 예쁜 종이들을 파는 상점을 재미있게 구경하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사랑이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장소를 사촌언니에게 가르쳐 주었다. 힐데브란다는 모든 길목 길목이 플로렌티노 아리자라는 존재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그녀는 그 남자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인물이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부인해 버렸다. 벨기에인 사진사가 그 도시에 들어와 스크라이브 상점 거리에 사진관을 차려놓은 덕분에 사진을 찍기 위해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써버린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페르미나와 힐데브란다는 첫 손님이 되고 싶었다. 그들은 페르미나 산체스의 옷장을 다 뒤져 제일 예쁜 드레스를 한 가지씩 골라 입고 양산, 구두, 모자까지 꺼내어 중세기 여인처럼 몸치장을 했다. 갈라 플라시디아가 콜셋 입는 것을 거들어 주었고 둥근테 처리가 된 치마 입는 법과 장갑 끼는 법, 굽 높은 구두의 단추 채우는 법까지 일러 주었다. 힐데브란다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타조털이 달린 테가 넓은 모자를 원했다. 페르미나는 점토로 만든 과일과 크리놀린 꽃송이로 장식된 최신형 모자를 썼다. 한참후, 그들은 거울올 통해 옛날 은판 사진에 찍힌 할머니 모습과 꼭 닮은 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읏었다. 그들은 인물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 웃음을 터뜨리며 집을 나섰다. 양산을 펼쳐 들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 뒤뚱거리면서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둥근테 치마를 몸에 부딪치며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모습을 갈라 플라시디아는 발코니에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인물 사진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해 주었다. 파나마의 권투 챔피언이었던 베니 센테노가 사진을 찍고 있을 동안 벨기에인의 사진관 앞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는 권투용 팬츠와 장갑 및 챔피언 관을 쓰고 있었다. 가능한 한 숨을 죽이고 한참 동안 권투하는 시늉을 취하고 있는 사진은 찍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방어 자세를 취하자 그 순간 그의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으므로 그들에게 기술을 보여주어 즐겁게 해 주고 싶은 유혹을 그는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거의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마차를 타는 것을 거들었다. 페르미나는 사촌의 뒤를 따라 마차에 오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곤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집은 겨우 세 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두 사람은 우르비노 박사가 마부에게 지시를 내린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는 거의 30분 가량이 걸렸기 때문이다. 두 소녀가 주빈석에 앉고 그는 마차 뒷쪽을 향해 그들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돌리고 허공 속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한편, 힐데브란다는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또 우르비노 박사도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흡족해 하고 있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힐데브란다는 가죽 좌석의 은은한 냄새와 훌륭한 마차 내부의 장식이 주는 친밀감을 느졌다. 그녀는 이런 것을 타고 평생을 지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을 했다. 곧 그들은 웃기 시작하고 마치 오랜 친구나되는 듯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단어의 끝 글자를 받아서 그 글자로 시작되는 단어를 계속 말하는 재치 게임을 시작했다. 그들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들은 그녀가 그 게임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모두 관심 있게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게임을 시작했던 것이다. 수많은 웃음이 오간 뒤, 힐데브란다는 더 이상 발이 아파서 장화를 신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거야 문제될 것이 없지요." 하고 닥터 우르비노가 말했다. "누가 먼저 장화를 벗는지 시합을 해 볼까요?" 그는 장화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힐데브란다는 기꺼이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콜셋의 끈이 몸을 굽힐 수 없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그 일은 그녀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르비노는 마치 연못에서 장화를 건져내기나 한 것처럼 그녀가 승리의 읏음을 터뜨리며 스커트 밑에서 그것을 꺼내들 때까지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페르미나를 쳐다보았다. 저물어가는 태양의 찬란한 빚을 받아 그녀의 매혹적인 황금 꾀꼬리 같은 옆모습은 전보다 더욱 날카로와져 있었다. 그녀는 세 가지 이유로 화를 내고 있었다. 첫째는 자신이 처한 난처한 상황 때문이었고, 둘째는 힐데브란다의 방자한 태도 때문이었고, 셋째는 마차가 행선지를 놔두고 빙글빙글 맴을 돌며 시간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힐데브란다는 완전히 들떠 있었다. "이제야 알았어요." 그녀는 말했다. "불편한 것은 신발이 아니라 이 철사 그물이라는 것을." 우르비노 박사는 그녀가 철망이 들어가 있는 스커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놓칠세라 그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것도 벗어 버려요." 요술장이처럼 날렵한 솜씨로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기 눈을 가렸다. "나는 보지 않을 테니까요." 그 눈가리개는 둥근 턱수염과 끝에 왁스를 칠한 콧수염으로 둘러싸인 입술의 청결함을 강조해 주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갑작스러운 당황감에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페르미나를 보았다. 그녀는 페르미나가 화를 내고있는 것이 아니라 스커트를 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서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힐데브란다는 정색을 했다. "어떻게 할까?" 그녀는 몸짓으로 물었다. 페르미나는 똑같이 몸짓으로 대답했다. 이대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자기는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읍니다." 우르비노가 말했다. "이제는 보아도 괜찮아요." 힐데브란다는 대답했다. 쥬베날 우르비노가 눈가리개를 치웠을 때 그는 그녀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게임은 이미 끌났으며 끝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의 신호를 받은 마부는 마차를 돌려 에반잴스 공원으로 말을 몰아 들어갔다. 가로등을 켜는 인부가 불을 켜면서 다니고 있었다. 모든 성당들은 안잴리우스의 종을 울리고 있었다. 힐데브란다는 자기가 사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 쥬베날 우르비노에게 악수를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페르미나도 그녀와 똑같이 했으나 악수를 하고 장갑 낀 손을 뺄려고 했을 때 우르비노는 그녀의 반지 낀 손가락을 꼭 잡았다.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읍니다." 그러자 페르미나는 힘을 주어 손을 빼냈다. 그녀의 빈 장갑이 닥터의 손에 남고 손만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장갑을 돌려주기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식사도 하지 않고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힐데브란다는 부엌에서 갈라 플라시디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왔다. 그리고는 타고 난 재치를 가지고 그날 오후의 일올 논평했다. 그녀는 우르비노의 우아함과 매력에 대한 자신의 호의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페르미나는 대꾸를 하지않았으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얘기하는 도중에 힐데브란다는 우르비노가 눈을 가렸을 때 그의 장미빚 입술 사이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를 보자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벽쪽으로 돌아눠고는 사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이 속으로 혼자 웃으면서 고백에 종지부를 찍었다. "너는 정말 창녀 뺨치는 여자로구나 !" 그녀의 잠은 악몽 투성이였다. 쥬배날 우르비노는 도처에 있었다. 그녀는 그가 노래하고, 읏고, 눈가리개 밑에서 흰 이를 드러내놓고 광채를 발산하는 것을 보았다. 재치 게임을 하면서 그가 다른 마차를 몰고 극빈자 묘지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새벽이 찾아오기 훨씬 전에 잠에서 깨어나 기진해서 누운 채 눈을 감고 그녀가 아직도 살아가야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에 관해서 생각을 했다. 나중에 힐데브란다가 목욕올 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편지를 쓰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그것을 접어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봉투 안에 넣어, 힐데브란다가 욕실에서 나오기 전에 갈라 플라시디아에게 그것을 우르비노에게 전달하게 했다. 그것은 한 개의 단어도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녀의 전형적인 편지의 하나로서 닥터에게 승낙의 대답을 하고 아버지에게 청혼올 해달라고 쓴 것이었다. 명문가의 자손이며 재산가이고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나이에 비해 상당한 명성을 지닌 어느 의사와 페르미나 다자가 결혼한다는 것을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절망의 늪에 빠져 해어날 길이 없었다. 트란시토 아리자 부인은 말과 식욕을 잃고 울면서 밤을 지내는 아들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그는 주말부터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남편의 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인 돈 레오 12세 로아야자를 찾아갔다. 이유는 말하지 않고 우편이나 전신 시설도 없고 그 지긋지긋한 도시의 소문을 전할 사람도 없는 선박 회사에 조카의 직장을 구해 달라고 다짜고짜 부탁했다. 서자라는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의 형수의 간청에 못이겨 뱃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그에게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브 지역의 리버 회사 소속의 똑같은 형태의 배 세 척 중 하나인 그 배는 설립자를 기념하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피우스 로이야자 선은 2층 목재 가옥처럼 생긴 넓고 평평한 배였다. 화물 적재시 5피트까지 물 속에 잠기는 배였으므로 변화무쌍한 물길을 안전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 다른 낡은 배들은 오하이오와 미시시피 지역울 누비고 다니던 전설적인 배의 모양울 본떠 50년대경 신시내티에서 건조된 것이었다. 장작불 연소시 발생되는 힘에 의해 작동되는 바퀴가 한쪽에 부착되어 있는 그런 배였다. 리버 회사 소속의 배들에는 거의 수평 높이와 같은 갑판이 있었으며 증기 엔진과 주방 및 닭장 모양 같은 침실이 딸려 있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그물 침대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열십자 모양으로 걸어 놓을 수 있었다. 위쪽 갑판 위에는 다리와 선장 및 참모들이 거처하는 선실이 있었으며, 오락실과 식당도 있어 지명도가 높은 승객들은 적어도 한번쯤 식사 초대를 받아 카드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가운데 갑판에는 평상시애는 식당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통로 양쪽에 여섯 개의 일등실이 있었다. 뱃머리 쪽에는 나무조각이 새겨져 있는 난간과 쇠기둥으로 둘러싸인 휴게실이 강쪽 부분과 통해 있었다. 대부분의 숭객들은 밤이 되면 그곳에다 그물 침대를 걸고 잠을 잤다. 다른 낡은 배들과는 달리 그 배에는 바깥바퀴가 없고 그 대신 배 뒷부분 승객용 갑판 위의 더러운 화장실 바로 밑에 수평으로 된 노가 부착된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7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7시 배에 올라 타면서 난생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배 안을 둘러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칼라마의 작은 촌락을 지나갈 무렵,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그는 새로운 환경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소변을 보기 위해 배 뒤쪽으로 걸어가 화장실 문틈으로 발 밑에 있는 거대한 바퀴가 돌면서 화산 같은 물거품과 증기를 뿜어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트렁크 속에는 고산지대에서 입을 옷들과, 매달 팜플렛 식으로 사 모아 직접 마분지로 덮개를 한 그림 소설들, 그리고 완전히 외울 정도로 수없이 읽어 손때가 묻은 시집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바이올린은 놔두고 왔다. 바이올린은 자신의 불행과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베개, 시트, 백납으로 만든 주전자, 그리고 그물침대가 붙은 실용적이고도 인기 높은 휴대용 침구를 가져갈 것을 그에게 강요했다. 모두 짚으로 포장하여 비상시 그물 침대를 걸어놓을 대마 밧줄 두 개로 묶어 두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침대와 침구가 딸린 선실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그 물건들을 가져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배 위에서의 첫날 밤 그가 어머니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맨 나증에 야회복 차림의 신사가 승선하였다. 아내와 딸, 그리고 정복 차림의 하인 몇 명, 황금 장식이 된 가방 일곱 개와 함께 나타난 그는 연착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일 없이 항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쿠라카오 출신의 체격이 큰 선장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여행자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승객들에게 본연의 애국심을 발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스페인어와 쿠라카오 지방의 사투리를 번갈아 섞어가며 선장은 야회복 차림의 그 남자가 영국에서 새로 부임한 전권대사이며 수도로 가는 도증이라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선장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운동에 영국이 결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도 상기시켜 주었다. 따라서, 그런 귀하신 분들이 타국에서 편안히 지내도록 배려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대수롭지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방을 포기해 버렸다. 그즈음은 일년 중 강물이 많을 때라 처음 이틀 동안은 항해가 순조로 왔으므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방을 양보한 것올 후회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식사 후 5시경 선원들이 접을 수 있는 천막 침대를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므로 빈 자리를 찾아 침대를 놓고 침구 정리도 하며 모기장까지 쳤다. 그물 침대가 있는 사람들은 객실에 걸어 놓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항해중 두번 이상 바뀐 적이 없는 식탁보를 덮고 식당의 식탁 위에서 잠올 잤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상쾌한 강바람 속에서 페르미나 다자의 음성이 들려온다고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추억으로 고독을 달래며 어둠 속의 야수처럼 흔들리는 배의 진동 소리에 맞춘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듣느라 밤을 거의 지새웠다. 붉은 줄 무늬가 처음 수평선 위에 나타날 즈음, 황량한 목축지와 안개 어린 숲지대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여행이 어머니의 또 다른 배려의 하나임을 알고 마음 꿋꿋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흘 동안은 강물의 상태가 순조롭더니 그후 악조건의 모래톱과 겉보기와는 딴 판인 급류로 인해 항해가 점점 힘들게 되었다. 선박 보일러용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초가 집만 드문드문 보이는 거대한 숲과 탁해진 강물이 뒤엉키더니 강폭이 점점 좁아졌다. 앵무새 우는 소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숭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정오의 열기를 더해 주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자려면 배를 정박시켜야 했는데, 그때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버렸다. 난간에 말리기 위해 걸어놓은 소금에 절인 고기에서 나는 악취가 더위와 모기들의 극성에 합세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특히 유럽인들은 선실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를 못 이겨 밤새도록 갑판 위를 서성거렸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던 수건으로 그들은 온갖 종류의 곤충들을 쫓아내었다. 새벽 무렵, 그들은 기진맥진하였고 곤충에게 물려 몸이 온통 퉁퉁 부어 올랐다. 게다가 그때는 해방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간의 간헐적인 전쟁으로 인해 또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했던 해였다. 선장은 질서 유지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대단히 엄격한 예방조치를 취했다. 그는 오해와 짜증을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항해 중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을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끝없이 넓은 모래둑 위에서 일광욕 중인 악어들을 총으로 쏘는 오락이었다. 나중에 승객들 간에 찬반 양론으로 두 패가 갈리자 선장은 무기를 모두 압수하고 항해가 끝나면 되돌려 주겠다고 했다. 출발 다음 날 아침 사냥복 차림에 조준기가 달린 총과 호랑이 사격용 쌍발총을 들고 나타났던 영국인 신부에게도 단호한 조치를 내렸다. 테네리프만을 지날 때는 제한 조치가 더 심해졌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전염병 발생을 알리는 노란 깃발이 꽃혀 있는 배 한 척을 지나쳐 갔다. 선장이 보내는 신호에 다른 배에서 아무런 반웅을 보여 주지 않아 그 무서운 깃발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날 자마이카로 수송하는 소떼를 실은 또 다른 배 한 척을 만났는데 노란 깃발이 꽃혀 있는 배에 콜레라 환자 두명이 타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 지나갈 강가 지역에 전염병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승객들은 항구뿐만 아니라 장작을 구하기 위해 잠시 들르는 무인 지역에서도 일체 배에서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래서 6일 동안의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승객들은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들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모른 채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던 네덜란드제 도색 사진첩을 보며 엉큼한 생각을 품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었다. 그러나 그 물건이 선장이 애지증지하는 수집품이라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유일하고 특이한 그 소일거리도 얼마 못 가 시들해져 버렸다. 퓰로렌티노 아리자는 한때 어머니를 슬프게 만들었고 친구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던 인내심으로 항해 중의 고생을 이겨 나갔다. 그는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모래둑에서 꼼짝 않고 일광욕을 하면서도 입을 벌리고 나비를 잡아먹고 있는 악어들을 난간에 앉아 구경하기도 했다. 늪에서 불쑥 나타나는 왜가리떼들과 커다란 젖꼭지로 새끼에게 젖을 물리면서 큰 소리로 승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바다소 때들도 구경하면서 하루를 지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몸이 퉁퉁 부푼 시퍼러등등한 시체 세 구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시체 위에는 말똥구리 벌레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 시체가 두 구 떠내려 갔으며 그중 하나는 머리가 없었다. 나머지는 아주 어린 소녀로 머리칼이 배가 지난 물결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 시체들이 콜레라 희생자인지 아니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들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가 너무 지독해서 그는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그리움이 더럽혀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매사가 그녀와 관련지어졌다. 배가 정지하여 승객들이 대부분 실망에 빠져 갑판 위를 서성거리는 밤이 오면 그는 식당의 카바이드 등불 아래서 이제는 거의 암기하다시피한 그림 소설을 읽었다. 식당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읽어 왔던 희곡을 다시 꺼내들고 등장 인물을 그가 아닌 실제의 인물로 바꾸기도 해보았다. 자신과 페르미나 다자는 연인 사이가 되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원래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곤 했다. 또 어느날 저녁은 고뇌에 찬 편지를 쓴 후 다시 찢어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는 강물 위로 편지 조각을 뿌리기도 했다. 그는 겨우겨우 고비를 넘겨갔다. 때로는 수줍음 많은 왕자나 혹은 용감한 기사가 되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변심한 애인을 데리고 비열하게 도망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난간 옆에 있는 휴게실 의자에서 잠을 청하였다. 어느 날 저녁, 여느 때보다 일찍 독서를 끝내고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화장실 쪽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더니 매 발톱처럼 생긴 손 하나가 그의 소매 자락을 잡아 선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어둠 속에서 벌거벗은 여인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젊어 보이는 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고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녀는 대뜸 침대 쪽으로 그를 밀어 버린 다음 혁대를 풀고 바지를 벗겨내리더니 말 잔등에 올라탄 것처럼 위에서 꼼짝 못하도록 누른 채 불명예스럽게도 그의 동정을 빼앗았다. 욕망의 고뇌에 빠진 두 사람은 식용 새우들이 우글거리는 염전 냄새 풍기는 끝없는 심연의 허공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그의 몸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어둠 속의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할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젠 돌아가서 완전히 잊어버리세요. 없었던 일로요." 그녀가 말했다. 졸지에 그것도 태연자약하게 당한 강간이라 그것이 권태에서 생겨난 광기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용의 주도하게 꾸민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확신이 들자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열정은 더욱 깊어갔다. 쾌락이 절정을 이룬 순간, 그는 불가사의하고도 부인하고 싶지 않는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즉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그의 공상을 세속적인 정열로 대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표범과 같은 통찰력으로 그 여인의 정체를 알아 내면 자신의 불운에 대한 치유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러나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결코 쉽지가 않았다. 탐색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사실을 밝혀내기가 힘들었다. 맨 뒤쪽 선실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지만 문 하나로 옆방과 통해 있는 곳이라 침대가 네 개 딸린 가족실로 개조되어 있었다. 그곳에 거처하는 사람들은 젊은 여인 두 명과 성숙하고 매력에 넘치는 여인 한 명, 그리고 생후 몇 개월 되어 보이는 아이가 전부였다. 그들은 바란코 드로바에서 승선했는데 그곳은 몸폭스에서 온 화물과 승객들을 태우는 항구였다. 몸폭스 시는 변덕스러운 강물 사정 때문에 증기선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때 그들은 커다란 새장 속에서 잠이 든 아기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눈에 쉽게 띄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호화 여객선을 탄 듯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실크 스커트에는 허리받이를 대었고 레이스로 만든 목가리개에다가 크리놀린 조화로 장식한 차양이 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이가 조금 어려 보이는 두 명의 여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으므로 다른 승객들이 더위로 질식할 동안 그들만은 봄처럼 화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양산과 깃털 부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으나 속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이 한 집안 식구라는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 그는 나이 들어 보이는 쪽이 다른 두 여인의 어머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테 그러기에는 그녀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며 그녀만이 혼자 상복 차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옆방 침대에서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상황에서 그 두 여인중 한 명이 감히 그날 밤과 같을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단 한 가지 가능한 추측은 그녀 혼자 선실에 있을 때 우연한, 아니 어쩌면 미리 사전에 계획한 순간을 이용했을 것이란 점이었다. 그는 두 사람이 가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밤이 늦도록 밖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동안 나머지 한 여인은 아기를 돌보느라 혼자 선실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 차렸다. 그런데 무척 더운 밤이면 세 사람 모두 작은 가지로 만든 새장 속에서 천을 덮고 잠이 든 아기를 데리고 선실 밖으로 나온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얽히고 설킨 단서를 놓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두 여인중 나이든 쪽 여인이 강간범이라는 가능성은 맨 먼저 부인했다. 그리고 그중 제일 아름답고 대담하면서도 가장 어려 보이는 여인도 또한 용의자에서 지웠다.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세 여인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아기의 엄마가 장본인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굳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추측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그녀가 오직 아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젊은 엄마라는 증거를 부인하면서도 그는 페르미나 다자를 향한 관심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그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겨우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된 날씬하고 멋진 여인이었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포르투갈인 특유의 눈꺼풀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아들에게 기울이는 따뜻한 정성증 단지 일부분이라도 보여준다면 아마 남자치고 좋아하지 않을 남자가 없을 것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녀는 객실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일과를 보내었다. 그사이 다른 두 여인은 증국식 바둑을 두었다. 아기가 가까스로 잠이 들면 여인은 천장에 걸려 있는 그물 침대를 난간 쪽 시원한 곳에 옮겨 두었다. 그러나 아기가 잠잘 동안에도 그녀는 한눈 파는 법도 없이 여행의 불편함 따위는 잊어버린 채 자장가를 불러주며 그물 침대를 흔들어 주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조만간 손짓으로라도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 생길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책을 읽는 척하며 그 너머로 꾸밈없는 표정을 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명 블라우스 위로 걸려 있는 보물단지를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숨결이 달아오르는 것도 알아내었다. 식당에서도 그녀와 마주 앉기 위해 좌석을 옮기는 등 미리 계획된 행동도 취해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장본인이라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보다 어려 보이는 여인이 그녀를 로잘바라고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의 이름을 알았을 뿐이다. 8일째 되는 날 가파른 절벽 사이로 거친 해협이 나타나 항해가 꽤 험난했다. 점심식사 후 푸에르토 나르에 정박하게 되었다. 그곳은 다시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가장 피해가 큰 지역증의 하나인 안티오키아까지 가는 승객들이 하선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종려나무로 만든 오두막집 여섯 채와 함석지붕을 얹어 나무로 지은 상점 하나가 있었는데 폭도들이 배를 약탈한다는 소문 때문에 맨발에 엉성한 무장을 한 군인들이 지켜 서 있었다. 오두막집 뒤에는 벼랑 골에 얼어붙은 눈더미로 덮여 있는 황무지 산봉우리가 하늘 높이까지 솟아 있었다. 그날 밤은 모두들 두려움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약탈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침이 밝자 그곳은 장터로 변했다. 인디안 족돌이 타구아 부적과 사람을 반하게 하는 미약 등을 팔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산맥 중앙부 난초숲까지 6일 동안 걸어 올라갈 가축떼들이 떠날 차비를 갖추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등에 진 짐을 배 위에 싣고 있는 흑인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그들은 도자기 그릇 상자와 엔비가도 지역 젊은 처녀들에게 보낼 피아노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는 로잘바와 그녀의 일행이 육지에 내린 승객 틈 속에 끼어있는 것을 보았으나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그가 그들을 본 것은 이미 그들이 튼튼하게 생긴 구두와 열대성 특징을 가진 유색 양산올 받쳐 들고 앉아 있올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해 중에는 엄두도 못 내었던 행동올 취해 보였다. 로잘바에게 작별 인사로 손을 혼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낸 시기가 너무 늦어 세 여인이 모두 친절하고도 아주 다정한 얼굴로 손을 혼들어 보였다. 그는 그들이 상점 뒤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뒤쪽으로는 트렁크와 모자 상자, 그리고 아기 바구니를 태운 노새가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곧이어 개미떼처럼 그들은 벼랑을 따라 올라가더니 곧 그의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는 문득 세상에서 혼자임을 느끼면서 최근 며칠 동안 가라앉아 있던 페르미나 다자에 관한 그리움이 솟구쳐 올라와 그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화려한 결혼을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가장 사랑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라면, 그녀를 위해 죽을 권리조차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눈물 속에 감춰져 있던 질투심이 그의 영혼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오직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어느 남자에게 페르미나 다자가 사랑과 순종에 대한 맹세를 하는 순간 전광석 같은 하느님의 심판이 그녀에게 내려지기를 그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다른 남자, 아니 자신의 신부가 얼굴을 위로하고 제단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넋을 잃었다. 죽음의 이슬이 맺혀 있는 오렌지꽃, 그리고 본당 앞에 묻혀진 열네 명의 주교들의 비석 위에서 한 덩어리의 물거품처럼 흩날리는 그녀의 면사포도 눈에 보였다. 그러나, 복수심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사악함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가 땅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녀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영혼이 예전 그대로 아득히 멀어져 보였으나 생기는 있어 보였다. 그는 다시 잠들지 않았다. 그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결혼식 도중이나 혹은 가슴 설레이는 첫날밤, 적어도 한 순간이나마 그녀에게 배반당하고 모욕당한 남자의 환영이 그녀의 마음 속에 나타나 행복이 산산조각 나고 마는 고통에 그녀가 분명히 시달릴 거라는 사실이었다. 목적지인 카라콜리 항에 도착하기 전날 밤, 선장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작별 파티를 열었다. 선원들로 구성된 악단의 목관악기 연주와 배 안에 있는 다리에서의 꽃불잔치도 곁들여졌다. 영국인 신부는 사냥이 금지된 동물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특유의 냉정한 태도로 그 어려운 여행을 견디어냈다. 그래서 그런지 정복 차림을 한 그의 모습이 식당에서 띄지 않는 밤이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맥타버쉬 족들이 입는 바둑 무늬 모직 옷을 걸치고 마지막 파티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흥취를 돋우기 위해 백파이프를 연주하기도 하고 영국 민속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춤도 가르쳐 주었다. 비탄에 젖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흥청거리고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갔다. 그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오한을 이겨 내려고 로타리오 수굿트가 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마치 사형수가 사형 집행일에는 새벽에 잠이 깨듯이 그도 그날 아침 5시에 눈을 뜬 후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페르미나 다자의 결혼에 관해서만 생각했다. 그후 귀향한 그는 그 당시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과 모든 것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부질없는 공상을 마음껏 조롱할 만큼 지각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토요일의 열기 같은 발열 현상이 다시 최고점에 이르렀다. 그 순간 그는 첫날 밤의 기뿜을 만끽하기 위해 신혼 부부가 둘이서 몰래 문을 통해 도주하는 것을 눈에 본 것 같았다. 누군가가 열이 나 떨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선장에게 알리자 콜레라일까 봐 겁이 난 선장이 선의와 함께 걸어왔다. 선의는 브로마이드 한 첩과 함깨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양호실로 옮기도록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 날, 카라콜리 절벽이 보였을 때 그의 열은 씻은 듯이 가라앉고 원기도 회복되었다. 해열제를 복용할 적마다 전신 직종의 밝은 미래에 대해 다시는 저주하지 않겠다는 것과 타고 온 그 배로 다시 윈도우즈가로 되돌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온 전권 대사에게 선실을 양보한 보답으로 돌아 갈 배편을 제공해 달라고 설득하는 일은 어렵지가 않았다. 선장은 전신직이 미래 산업 임을 내세우면서 그를 만류했다. 그도 선박용 전신 시설 계획에 이미 착수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사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모든 만류를 뿌리치자 나증에는 선장이 그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선실 사용료를 빚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리버 회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선장은 잘 알고 있었기때문이었다. 돌아오는 여행은 6일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녁 메르세데스 호수에 도착하여 배의 진동에 따라 물결치는 고깃배의 불을 바라보는 그 순간 다시 집에 돌아왔구나하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페르디도 항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아직 날은 어두웠다. 그 곳은 준설 공사를 끝낸 오래된 스패인 수로가 다시 개통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지막 기착지였다. 승객들은 최종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전세 돛단배로 옮겨 타기 위해 아침 6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너무 홍분한 나머지 그들보다 훨씬 먼저 우편선에 올라탔다. 우편선의 선원들은 그를 동료인 줄 알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에 그는 상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느졌다. 그래서 소지품을 물 속에 던지고 등대불을 지나 멀리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았다. 남은 평생 다시는 그런 물건 따위는 펼요치 않을 것이라 그는 확신했다. 다시는 페르미나 다자가 있는 곳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동틀 무렵의 해안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늘에 걸려 있는 안개 너머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명으로 인해 황금빚으로 찬란히 빚나는 성당의 둥근 지붕을 보았다. 납작한 지붕이 달린 비둘기집을 바라보면서 그는 마르케스 궁의 발코니를 연상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불행을 느끼게 한 여인이 만족해 하는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그 곁에서 잠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올 했다. 그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지만 애써 진정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에서 희열을 맛보았다. 시장과 바다 밑에서 풍겨대는 악취가 뒤섞여 코를 진동하자 연안이 보였다. 그곳에 정박중인 배들 사이로 멧길을 뚫고 우편선이 지나갈 동안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기 시작했다. 리오하차에서 온 배는 이미 도착해 있었으며 허리까지 을라오는 물 속에 서 있는 인부들이 승객들을 붙잡고 배에 올려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우편선에서 제일 먼저 내려 그때부터 그 해안의 악취는 잊어버린 채 오로지 페르미나 다자의 향내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냄새가 어디서나 풍겨왔다. 그는 전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연애소설 시리즈와 일반 문고집에 쏠려 있었다. 그 책들은 어머니가 사다 주신 것으로 그물 침대에 누워 완전히 외울 정도까지 읽고 또 읽은 책들이었다. 그는 바이얼린을 찾지도 않았다. 친한 벗들과 다시 교분을 트고 때로는 당구를 치기도 하면서 대성당 광장 주위에 있는 아치가 달린 노천 카페에서 잡담을 즐겼다. 그러나, 토요일 밤 댄스 파티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녀 없은 파티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아침 그는 페르미나 다자가 유럽으로 신혼여행 중임을 알았다. 그녀가 영원히는 아닐망정 앞으로 몇 년 동안 그곳에서 사는 게 아닌가하고 그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러한 생각이 그녀를 잊어야한다는 애초의 다짐을 더욱 굳혀주었다. 그는 로잘바를 생각했다. 한 여인에 대한 추억이 가물가물 사라지면서 로잘바에 대한 추억이 더욱 밝게 불타올랐다. 그후, 죽을 때까지 길렀던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과 외모를 바꾼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경이로운 돌파구를 찾게 해 주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향기는 조금씩 횟수가 줄어 들면서 강도도 약해졌고, 나중에는 오로지 하얀색 치자나무 속에서만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밤, 그의 삶의 방향이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을 때 유명한 나자렛 부인이 그 앞에 나타났다. 리카르도 가이탄 오베소 장군의 반란이 일어나 대포알에 그녀의 인생이 망가져 그의 집에 피신을 왔던 것이다. 트란시토아리자 부인은 재빨리 상황 판단을 하고는 자기 방은 비좁다는 구실을 붙여 그 미망인을 아들 방에서 거하게 했다. 그녀는 내심 아들이 혹시 다른 여자에게 눈을 뜨게 되면 그를 배신한 여인을 잊게 되지 않을까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선실에서 로잘바에게 동정을 잃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후 누구와도 사랑 을 나누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여인과 한방에 있게 되자 그녀를 침대에서 자게 하고 자신은 그물 침대에서 자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결심을 했던 모양이었다. 이러한 마음으로 누워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침대 끝에 앉더니 그녀는 3년 전에 죽은 남편에 대한 상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상복을 벗어 공중으로 던지더니 결혼 반지까지 빼버리는 것이었다. 구슬 장식이 달린 블라우스를 벗어 구석에 있는 안락의자에 던진 후 그녀는 어깨 위에 걸치고 있던 윗도리를 침대 맞은 편에 던져 놓았다. 긴 주름 치마와 비단 허리띠, 그리고 칙칙한 색깔의 스타킹을 단숨에 벗어 바닥에 던졌다. 방 안에는 그녀의 비탄을 상징하는 마지막 남은 유품들도 바닥에 가득했다. 그녀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듯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어가며 벗어던졌기 때문에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맞추어 도시 전체를 완전히 뒤 흔들었던 군인들의 대포가 거수경례를 붙이는 것 같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콜셋 벗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그의 선수를 쳤다. 왜냐하면 5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그녀는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아니, 심지어 그 예비 단계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내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녀는 레이스 달린 팬티를 내리고 수영을 할 때처럼 재빠른 다리 동작으로 팬티를 벗었다. 드디어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 되었다. 그녀는 28살로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었지만 알몸은 처녀의 몸매처럼 현기증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황흘했다. 상복 몇 벌로 어떻게 해서 정욕에 불타 남편 아닌 그의 옷을 벗기는 야생 암말 같은 그녀의 욕망을 감출 수 있었는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3년간의 금욕 생활을 마감하려는 듯 스스로를 불태우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축복된 시간부터 그날 밤 이전까지 그녀는 죽은 남편 이외의 다른 어떤 남자와는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어리석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붕 위에서 들려오는 발포 소리에 잠이 깬 그녀는 동이 틀 때까지 내내 죽은 남편과의 즐거웠던 추억거리를 기억했다. 그녀만 남겨놓고 홀로 죽은 것을 원망할 뿐 남편의 불충실한 태도는 조금도 비난하지 않았다. 3인치짜리 못 열두 개가 박힌 관 속에 누워 2미터 땅 밑에 묻혀 있는 지금이나 그 전이나 한 번도 남편이 그녀의 완전한 소유물이 되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기뻐요, 이제서야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 실감이 나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그날 밤 이후 그녀는 상복을 벗어 버리고, 흰꽃을 블라우스에 꽃는 등 불 필요한 치장은 하지 않게 되었다. 연가와 그리고 앵무새와 호랑나비가 있는 대담한 드레스의 충만한 삶으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육체를 제공했다. 63일간의 공격이 있은 후, 가이탄 오베소 장군의 군대가 패배할 무렵, 그녀는 대포로 파괴된 집을 복구하면서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성난 파도가 분노를 토해낼 수 있는 방파제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테라스를 증축했다. 그곳은 그녀의 가장 아끼는 보금자리였다. 그녀의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아무런 댓가도 치르지 않고 불러들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건 남자 측에서 그녀의 부탁에 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했지만 때때로 그녀는 금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면 선물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관리하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부도덕한 행위를 노출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나자렛 부인은 아무리 바쁜 중이라도 플로렌티노 아리자와는 가끔씩 만날 약속을 했다. 그때마다 사랑이라는 전제를 붙이지 않고 만났다. 그녀는 언제나 마음 속으로는 사랑 비슷한 감정을 발견하고 싶은 희망을 가졌으나 사랑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때때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두 사람은 소금기로 홈뻑 젖은 테라스에 앉아 수평선 너머의 새벽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로타리오 수굿트가 가르쳐 준 이론뿐만 아니라, 수굿트가 경영하던 호텔방의 구멍을 통해 본 다른 사람들이 써먹던 여러 가지 기술들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는 그들의 행위를 직접 보면서 즐기자고 그녀를 설득했다. 구태의연한 선교관 건물 대신 바닷가 자전거 위에서 하든지, 혹은 창문가의 병아리나 힘껏 잡아 당겨 네 갈래로 다리 벌린 천사도 되어보자고 설득했다. 그물 침대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던 중 끈이 떨어져 하마터면 목이 부러질 뻔했던 적도 있었다. 수업은 아무 보람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겁이 없는 제자이긴 했지만 가르치고 지도하는 간음 행위에는 도통 재능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침대 속의 편안한 마력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일부러 꾸며 가장하는 순간도 없었으며 그녀가 느끼는 오르가즘은 부적절하고 피상적인 평범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유일한 남자라는 기만당한 느낌을 가졌다. 그녀도 운이 나빠 어쩌다 잠꼬대를 하기 전까지는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녀의 잠을 지켜보면서 그는 그녀의 꿈 속에 있을 항해 지도를 하나씩 맞추어 가며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에 자리한 여러 섬 사이를 항해했다. 이리하여 그녀가 그와의 결혼은 원하지 않으나 그녀를 타락시켜 준 점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에게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끔 말했다. "날 매춘부로 만들어준 당신을 존경해요." 역시 그녀의 말이 옳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타고 난 순결함이나 혹은 금욕 생활보다 훨씬 사악한 정숙미를 제거해 주었다. 그는 침대 위의 행위가 만약 그것이 영원한 사랑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부 도덕한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울러 그후 그녀의 생존 이유가 될 만한 내용도 말해 주었다. 즉, 사람은 누구나가 미리 운명지어진 몫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 때문이든 혹은 내키든 내키지 않든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라고 그녀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녀가 그의 말을 받아 들인 건 그녀의 명예 문제였다. 그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째서 그토록 미숙한 여인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잠자리에서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만을 떠들어대는 그런 여자를... 그의 생각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능력 부족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그녀는 매우 다정한 면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서로의 세계를 넓혀 나가며 특히 그가 고통에 위안이 될 다른 여인을 찾고 있을 동안 두 사람의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날 조금도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서로를 잊어버렸다. 그것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첫 경험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대처럼 두 사람은 서로 영원한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방탕한 삶을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으로서도 불가사의한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 때때로 나이가 든 사람처럼 과묵하고 갸날프게 보이도록 처신하며 옷차림도 그렇게 갖추었다. 그에겐 유익한 잇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날카로운 눈매였다. 일단 여자를 찾아내면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여자를 다루었다. 왜냐하면 거절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특기는 여인들이 그를 사랑에 굶주린 고독한 남자나 혹은, 매맞은 강아지처럼 불쌍한 떠돌이 거렁뱅이쯤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그때문에 여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또한 호의를 베풀었다는 마음의 평안 이외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 그에게 혹하고 빠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무기였으며 그것으로 그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역사적인 전투에 참가했다. 그 속에서 그는 법전에 나오는 공증인처럼 엄격한 태도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여자>라는 제목이 붙여진 법전이었다. 그 리스트에 맨 먼저 기록된 것은 나자렛 부인이었다. 50년 후 페르미나 다자가 종신 판결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의 기록은 25권에 이르렀다. 그 속에는 자선을 배풀 값어치조차 없는 수많은 모험 행위 이외에도 622가지 항목에 걸친 간통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자렛 부인과의 6개월에 걸친 격렬한 연애사건 이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고통이 여전히 자신의 내부에 남아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2년에 걸친 신혼 여행 도중에도 몇번인가 자신의 모친과 그 점에 대해 의논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운명적인 일요일,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충족감과 행복에 겨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성당을 나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평범한 가문의 처녀가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한 데에 대해 처음에는 조롱하고 비웃기까지 했던 명가의 여인들이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서둘러 바깔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매력으로 그들을 질식시켰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를 알아보는 데에도 잠시 시간이 필요할 만큼 그녀는 상류층 여인에게서 풍겨나는 완벽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나이든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침착한 태도와, 굽이 높은 구두, 베일과 동양산 새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의 모든 것은 훌륭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욱 아름답고 젊어 보였으나 그에겐 더욱 먼 존재로 느껴졌다. 실크 드레스에 감춰진 배의 곡선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그녀는 임신 6개월째에 접어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놀라게 한 사실은 그녀와 남편이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는 점이었다. 두사람 모두 유동적인 삶을 영위했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함정 위를 떠다니며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질투도 분노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뿐이다. 그는 불쌍하고 추악하고 열등한 느낌을 가졌으며 그녀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여인과도 사랑에 뼈질 값어치 없는 인간이라는 비애감에 빠졌다. 드디어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인생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후회할 하등의 어떤 이유 없이 돌아온 것이다. 오히려 신혼 무렵에 가졌던 어려움을 딛고 난 후, 그녀에겐 그런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의 경우는 신혼이 좀 유별스러웠다. 결혼 첫날 밤을 맞기까지 지나치게 순진했던 것이다. 외사촌 언니인 힐데브란다가 사는 지방을 여행했을 때 그녀는 알게 되었다. 수탉이 암탉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당나귀들의 야만적인 행위도 목격했고, 송아지가 태어나는 모습도 보았다. 가족 중에 누구누구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중이며 또 누구누구는 함깨 살고는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사랑이 식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전혀 꺼리낌없이 들려주는 힐데브란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 페르미나 다자는 본능적으로 언제나 간직하고 있던 신비의 감정을 느끼며 혼자서 외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였다. 여섯 명의 사촌들과 함께 쓰던 방에서 숨을 죽이고였다. 그 다음엔 머리를 푼 채 노새꾼들이 피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아주 열심히 그리고 태연자약하게 욕탕에 앉아서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런 후에는 후회를 했으며 죄책감에 떨어야했다. 그후 결혼한 다음에는 그 강박 관념을 떨쳐 버릴 수가 있었다. 사촌들은 하루에 느끼는 오르가즘의 횟수뿐만 아니라 모양과 크기에 대해 서로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그녀만은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절대로 비밀에 붙였다. 그런 황홀한 첫 의식을 치른 후, 처녀성을 상실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올 수 없었다. 그 당시로서는 가장 화려했던 그녀의 결혼식은 페르미나 다자에게는 공포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품위 있는 젊은이와의 결혼으로인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 이상으로 신혼여행이 두려웠다. 성당에 결혼 공고를 한 무렵, 그녀는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그 중에는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닥칠 첫날 밤의 잠자리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익명의 편지 내용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그 결혼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이후부터는 점점 익명의 편지가 수그러졌다. 고통과 원망으로 품위를 잃고 만 화난 여인들이 그녀에게 보여주는 관심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페르미나 다자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여인들은 어느날 자신들이 꾸민 흉계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요리책과 결혼선물을 가득 안고 애반잴스 공원이 마치 자기집이라도 되는 양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왔다. 트란시토 아리자 부인은 그런 여자들을 잘 알고 있었다. 성대한 파티가 열리기 전날 밤이 되면 그 여인들은 트란시토 아리자를 찾아왔다. 이자를 더 주겠다는 조건으로 항아리를 뒤져서라도 저당잡힌 보석을 단 24시간 만이라도 빌려 달라고 그들은 애걸복걸한다. 이런 일은 그때 당시 아주 오랫동안 행해져 내려온 일이었다. 항아리가 텅텅 빈 덕분에 기다란 성을 가진 여인네들이 어두컴컴한 집에서 걸어나와 빌린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그 어떤 결혼식보다도 훌륭한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결혼에 있어서 최고의 영광은 대통령직을 세 번 역임한 적이 있고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애국가의 작사가이기도 한 라파엘 누네즈 박사가 증인을 서는 일이었다. 그가 작사가라는 점은 그후 발간된 몇몇 사전을 뒤져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성당의 제단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날을 위해 특별히 정장을 빌려 입은 그녀의 아버지는 웬지 모르게 품위가 있어 보였다. 세 명의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 시간을 통해 주일날 아침 11시 그녀는 본당 앞에서 영원한 결혼을 언약한 몸이 되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심 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 시간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 때문에 초죽음이 되어 열에 들떠 광란에 싸인 채 그녀를 잊게 해주는데 아무 도움이 안되는 배 위에 홀로 외로이 누워 있었다. 결혼식과 그 후에 거행된 리셉 도중 그녀는 내내 흰 납 위에 그려놓은 듯한 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신부의 두려움을 위장하기 위한 가련한 노력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의 이해가 곁들여진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첫 사흘 밤을 고통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대서양 항로 여객선 회사 측은 카리브 해의 악천후로 인해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출발을 하루 앞당겨야 한다는 내용을 사흘 전에 발표했다. 그리하여 지난 6개월 동안 계획했던 것처럼 결혼식 다음날 로첼르 지역으로 가는 게 아니고 결혼식 당일날 저녁에 가기로 되었다. 불이 환하게 켜진 여객선 위에서 열린 리셉션 파티는 자정이 넘어서야 끌났다. 파티에는 비엔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참석하여 그들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최신 왈츠 곡들을 처음으로 바다 위에서 연주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여러 부류의 손님들은 삼페인에 홈뻑 취한 채 그동안 고생만 하던 아내의 손에 이끌려 배를 내려야했다. 술에 취한 그들은 파리까지 축제 기분을 지속시키고 싶어서 혹시 빈 객실이 있느냐고 승무원에게 묻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내린 손님이 엉망이 된 턱시도 차림을 하고 부듯가 선술 집 바깥 거리 한복판에 앉아 있는 로렌쪼 다자를 보았다. 그는 진창 바닥에 주저앉아 아랍인들이 시신을 앞에 두고 우는 식으로 큰 소리로 통곡하고 있었다. 여객선의 크기와 특등실의 호화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첫날밤 여행은 리오하차발 범선을 탈 때와 같은 무서운 느낌을 되살아나게 해 주었다. 착실한 의사인 그녀의 남편은 승객들의 배멀미를 치료하느라고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사홀쯤 되는 날, 과라 항을 지난 다음부터는 폭풍우가 그쳤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상적인 습관을 회복한 나흘째 되던 날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내가 잠들기 전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수녀들의 이중인격이 그녀로 하여금 형식적인 의식에 반발심을 갖게 하였으나 자신의 신앙심에는 변함이 없어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 하느님과 마음 속으로 대화하는 편이 더 좋아요." 그는 아내의 동기를 이해해주었으며 그날부터 두 사람은 같은 종교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 전 비교적 짧은 교제를 했으나 당시로는 형식을 갖추지 않은 교제이기도 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매일 일몰 무렵 시중드는 사람 없이 혼자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교회의 축복 없이는 손가락 끝 하나 못 건드리게 했으며 그도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첫날밤 두 사람은 옷을 입은 채 잠자리애 들었다. 그가 첫 포옹을 어찌나 조심스럽게 했던지 잠옷을 입으라는 그의 제안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러 욕실에 돌어갔다. 그리고는 특등실 안의 전등을 모두 꺼 버렸다. 속옷 바람으로 욕실에서 나온 다음 그녀는 문틈 사이를 옷가지로 틀어막아 칠혹 같은 어둠 속에서 침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의사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선생님 ? 전 낯선 사람과는 처음 함께 자 보거든요." 우르비노 박사는 그녀가 놀란 토끼처럼 살그머니 자기 옆자리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둘이 나란히 누우면 자연히 몸이 닿게 되는 좁은 침대위에서 그녀는 가능한 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차갑고 그리고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쥐면서 서로 손가락을 낀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여행담을 자세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침대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욕실에 있을 동안 남편이 옷을 모두 벗어버린 걸 알고는 바짝 긴장을 했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 왜냐하면 우르비노 박사가 그녀의 육체의 비밀을 하나하나씩 캐어가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리에 대해 파리의 사랑, 그리고 노상에서 버스 속에서 혹은 꽃으로 만발한 카페 테라스에서 키스하는 파리의 연인들에 대해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 카페들은 강혈한 바람이 불어오고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곳이라고 했다. 파리의 연인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세느 강변에서 선 채로 사랑을 속삭였다.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그는 손 끌으로 그녀의 목을 쓰다듬어 내려갔다. 팔 위로 드리워진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과 은밀한 복부 근처를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 그는 잠옷을 들어 올리려고 처음 시도를 했으나, 그녀는, "직접 벗는 법을 알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혼자 잠옷을 벗었다. 그 순간 그녀가 너무나 잠잠해졌으므로 만약 그녀의 몸에서 훌러나오는 광채가 어둠 속에서 빛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그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으나 부드러운 이슬에 젖은 듯 축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 그는 다음 단계를 취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남면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어둠이 주위에 완전히 엄습해 왔다. 문득 그는 그녀의 손을 놓으며 위로 올라갔다. 혀로 손가락을 적신 그는 무방비 상태의 젖꼭지를 건드리자 그녀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뼈 속까지 스며드는 무감각한 수줍음을 그에게 들키지 않아도 되는 어둠이 고마왔다. "걱정마." 라고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에도 본 적이 있으니까." 그는 그녀가 미소짓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러자 어둠 속에서의 그녀의 달콤하고 신선한 음성이 들려왔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화가 나 있단 말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때 그는 그들이 희망봉을 돌았음을 깨닫고 다시 한 번 그녀의 크고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처음에는 단단한 손바닥 뼈와 길고 사려깊은 손가락과 투명한 손톱을 지나가 보았다. 그 다음에는 땀으로 촉촉한 손바닥 위에 그려진 상징적인 그녀의 운명을 생각하며 외로운 입맞춤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이 어떻게 해서 그의 가슴께로 올려져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절대 불가사의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말했다. "그건 견갑골이지." 그녀는 가슴에 난 털을 하나씩 쓰다듬으면서 주먹으로 꼭 모아쥐고 힘껏 잡아당겨 보았다. "더 세게 해봐!"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말대로 해 보았으나 그가 아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어둠 속에 흘로 있는 그의 것을 손으로 찾아보았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형상없고 힘차게 서 있는 벌거벗은 동물의 거친 호흡 소리를 느낄 때까지 볼 수는 없으나 매우 규제된 힘으로 그녀의 손을 자신의 몸을 따라 움직이게 했다. 그의, 아니 심지어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그녀는 손을 빼려 하거나 혹은 그 자리에 가만히 대고 있지 않고 대신 자신의 영육을 성모마리아에게 맡긴 채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그녀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런 다음 손으로 그 치솟은 물건을 가만히 만져보며 크기와 힘, 길이를 알아내었다. 그의 의지력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한 그 모습에 동정이 가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그런 에무에 퍽 당황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을 품은 채 그녀는 그 물건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내의 정밀검사로 인한 현기증을 극복하려 있는 힘을 다해 애를 쏜다. 잠시 후 그녀는 쓰레기통에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놓아주었다.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설명하면서 부분에 그녀의 손을 갖다대어 주었다. 그녀도 훌륭한 제자처럼 가만히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의사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권위있는 설명을 그녀에게 들려 주었다. 그는 불빛 속에서 설명하는 편이 더 알기 쉬운 법이라고 제안했다. 그가 막 불을 켜려는 순간 그녀가 팔을 잡으며, "손으로도 잘 보여요." 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녀도 불을 켜고 싶었지만 누구의 말에 따라하는 것보다는 직접 그러고 싶었으므로 그녀가 불을 켰다. 갑작스러운 불빚 속에서 그는 아내가 이불 밑에서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물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단순한 의학적 호기심 이상의 관심 어린 시선으로 관찰했다. 정밀검사를 끌낸 그녀는"여자들 것보다 더 못 생겼군요." 하고 말했다. 그는 못생긴 점보다 더욱 심각한 여러 가지 불리한 면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장남과 같은 존재야. 평생을 그를 위해 일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바쳤지만 진실의 순간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거든." 그녀는 다시 검사를 계속해 나가면서 이것저것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만족한 대답을 받고난 다음 그녀는 그 물건으로 인해 고통당할 값어치가 있는지를 확인하느라 두 손으로 들고 무게를 재어본 후 실망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내려놓았다. 그는 그녀를 포옹했다. 의사는 그때를 첫 입맞춤을 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녀도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는 뺨, 코, 눈꺼풀 위로 달콤한 입맞춤을 계속해 나갔으며 한편으로는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납작하고 곧게 뻗은 음모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으나 다음 단계를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의학공부는 그만 하도록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럽시다. 이젠 사랑을 나눌 차례니까." 그가 말했다. 그는 이불을 끌어내렸으며 그녀도 저항하지 않았다. 더 이상 열기를 견딜 수 없었던지 그녀는 빠른 발동작으로 침대 이불을 걷어차 버렸다. 그녀의 육체는 물결치는 듯 탄력이 있었으며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휠씬 진지했다. 그녀에게서는 숲속 동물에서 나는 독특한 향내가 풍겨났으며 이 세상 다른 여인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불빚을 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뜨거운 피가 얼굴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남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두 사람이 숨이 찰 때까지 열렬하고도 정열적인 입맞춤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거만함, 진지함, 그리고 강인함 그리고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결혼을 했으나 그녀가 스스로 첫 키스를 해오자 그 순간 그는 진실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동이 틀 때까지 내내 이야기를 나눈 첫날 밤에는 거기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또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중 실수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이 트기 시작하여 두 사람이 잠이 들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처녀로 남아 있었으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별이 총총히 빚나는 카리브 해 하늘 아래서 비엔나 왈츠를 그녀에게 가르쳐 준 그 다음날 밤 그는 그녀 다음 차례로 욕실로 들어갔다. 특등실로 나왔을 때 그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제 주도권을 쥔 쪽은 그녀였으며 아무 두려움 없이 아무런 후회 없이 그녀는 바다의 즐거운 모험에 몸을 맡겼다. 시트 위에 명예로운 장미를 제외하곤 아무런 핏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기적처럼 사랑의 행위를 잘 해내었다. 밤이든 낮이든 여행이 끝날 동안 그리고 매번마다 더 훌륭한 행위를 치뤄내었다. 그들이 라 로첼르에 도착할 무렵, 두 사람은 마치 여러 해 동안 사권 연인들처럼 다정해졌다. 그들은 유럽에 체류하면서 파리를 근거지로 삼고 인근 여러 나라를 잠시 여행하기도 했다. 그동안 두 사람은 매일 사랑을 나누었다. 점심식사 시간까지 침대에서 뒹굴고 지낸 겨울의 일요일에는 매일 한 번 이상의 행위를 가졌다. 그는 충동이 강한 남성이었으며 또한 수양이 잘된 사람이었다. 또 그녀는 누구라도 함부로 자신을 이용하지 못하게끔 하는 여인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정열을 서로 함께 공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석 달에 걸친 열렬한 사랑 끝에 그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불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그래서 두 사람은 살했뜨리에르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롤 받기로 했다. 그 병원은 그가 한때 수련의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아무 보람 없이 끝났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고 있던 순간에 아무런 의학적인 도움없이 기적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집에 돌아왔올 때 페르미나는 임신 6개월째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기다려 왔던 아기는 물병자리 운세를 타고 아무 사고 없이 태어났다. 콜레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영세를 받았다. 그들에게 변화가 온 것이 유럽인지 아니면 사랑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귀향한 2주일 후 불행의 그 일요일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성당을 나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감지했던 것처럼 그것이 두 사람에게 국한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인생관을 안고 새로운 세계 정세를 익히고 돌아와 문학,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학 분야의 첨단 부문을 이끌어 나갈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는 현실과 유리되지 않으려고 르 피가로 지를 구독했으며 시와 단절되지 않으려고 뷰데뒤몽드 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입수하기 위해 파리의 서적상과도 연락을 취했다. 그런 작가들 중에는 아나톨 프랑스와 피에르 로띠,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레미 드 구르몽과 뽑부르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작품만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절대 사절이었다. 에밀은 그 당시 드레퓨스 사건의 정의로운 중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끔직히도 경멸하는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그 서적 상인은 리꼬르디 목록의 가장 인기 있는 곡목, 특히 실내악 부문의 곡들을 우편으로 발송해 주기로 했다. 쥬베랄 우르비노 박사는 그 도시의 제일 가는 음악 애호가라는 아버지가 부여해준 영예스러운 칭호를 계속 간직해 나갈 수가 있었다. 유행의 일방적인. 강요에 늘 저항감을 느끼고 있던 페르미나 다자는 일류 상표들을 믿을 수 없어 여섯 개의 의류가방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는 겨울 내내 워스 콜렉션 준비 문제로 띠렉리즈에서 지냈다. 워스는 에보뜨 꾸뜨르 지의 절대 전제 군주격인 인물이었다. 그때 그녀의 유일한 소득은 닷새동안 침대에 누워지내야 하는 기관지염뿐이었다. 라빼리에르는 그녀에게 허세를 덜 부렸고 탐욕도 적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현명한 결정은 비록 남편이 수의 같다고 치를 떨면서 핀잔을 주긴 했지만 헌옷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실컷 사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그녀는 또 상표 없는 이탈리아제 구두도 많이 가져왔다. 오히려 그것이 유명한 페리제보다 더 아끼는 것이 되었고, 지옥의 불꽃처럼 붉은 듀튀제 양산도 가지고 와서 깜짝 놀란 이야기꾼들에게 쓸 거리를 제공해주곤 했다. 그녀는 마담 루보 상표가 붙은 모자는 단 한 개만 가져왔다. 그대신 손으로 만든 체리나무 가지와 펠트천으로 만든 꽃줄기, 타조 깃털로 엮은 가지, 공작새의 머리깃 장식, 아시아산 수탉 꼬리털, 핍, 벌새, 날아다니려고 소리지르며 고뇌에 찬 희귀한 새들을 수없이 트렁크 속에 가득 담고 돌아왔다. 모자에 바꾸어 달기 위해 20년만에 처음으로 갖게 된 물건들이었다. 그녀는 또한 각 나라의 부채들도 가지고 왔는데 각각 그 용도가 서로 다른 것들이었다. 또한 봄바람이 불 때는 재 냄새와 같은 고약한 향기를 풍기는 향수 한 병을 그녀는 바자르 드 라 샤리떼에 한 병을 그녀는 바자르드라 샤리떼에 있는 향수가게에서 골랐다. 그녀는 그 향수가 참신한 멋이 없다며 단 한번 사용했을 뿐이었다. 아주 멋진 최신식 화장 케이스도 들여와 다른 사람의 화장을 엿보는 것이 점쟎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파티가 있을 때는 그것을 들고 다니곤 했다. 두 사람은 잊을 수 없는 세 가지 추억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호프만의 이야기가 파리에서 유례 없는 개봉을 가졌다는 것과, 또 베니스의 성 마르코 성당 밖에 떠다니는 곤돌라가 무서운 화염으로 인해 망가져 버리고 만 기억들이었다. 그들은 호텔 창문을 통해 슬픈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세 번째 추억은 1월의 첫 눈이 내린 무렵 오스카 와일드를 우연히 만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추억 중에서도 쥬베날 우르비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다. 그때는 그가 파리 유학중이었기에 아내와 함께 나누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되는 추억거리였다. 그것은 빅톨 위고에 관한 추억으로 그때 그는 작품과는 무관한 열렬한 명성을 누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아무도 직접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을 위한 헌법이 아닌 천사를 위한 헌법이어야 한다는 말을 그가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부터 그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하게 되었으며 프랑스로 여행한 사람들은 대개 빅톨 위고를 보기 위해 찾아다녔다. 쥬베날 우르비노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의과대학 학생들은 일로 가에 있는 그의 집 앞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그가 어김없이 꼭 들르곤 한다는 카페도 찾아다녔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리오네그로 헌장의 천사들이라는 이름을 적고 사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 어느날 쥬배날 우르비노가 룩셈부르그 가든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가 젊은 여인과 팔짱을 끼고 의사당을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매우 늙어보였고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였으며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달리 턱수염과 머리카락에 윤기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서 빌린 듯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쥬배날은 주제넘은 인사말로 그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평생토록 간직할 그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파리를 다시 들른 그는 좀더 점쟎은 상황하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으나 이미 빅톨 위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쥬배날 우르비노와 페르미나 다자는 그 일로 인한 위안을 찾고자 어느 비오는 오후 군증들의 음모에 빠진 추억을 함께 갖게 되었다. 군중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까푸신느 거리의 어느 서점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폭풍우라도 능가할 열기를 뿜고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고상한 풍채이긴 했지만 어딘지 그 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듯한 오스카 와일드가 한참 후 밖으로 걸어나왔다. 사람들은 그를 에워 싸고 책에 사인을 부탁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를 보기 위해 결음을 멈추었으나 충동적인 그의 아내는 책이 없는 대신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에 사인을 받기 위해 거리를 건너가고 싶어했다. 그녀의 얼굴 피부와 똑같은 색깔의 길고 부드럽고 매끌매끌한 멋진 가죽 장갑에 사인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세련된 감각을 가진 남자라면 얼마든지 장갑에 사인을 해 줄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남편은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그녀가 끝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는 당황했다. "만일 당신이 거리를 건넌다면 돌아올 때는 내가 죽어 있을 거야."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년 전 결혼하기 전까지도 그녀는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움직여 왔었다. 상주앙 드 라 씨에나하의 황무지에서 보낸 어린 소녀시절 마치 그녀가 여주인이라도 되는 양 자신 있게 살아온 것과 똑같은 그런 자신감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남편을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곳에서 그 누구와도 스페인 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신비스러운 재능도 갖고 있었다. "물건을 팔러 갈 때는 말을 알아 들어야 해요." 라고 그녀는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물건을 사러갈 때에는 당신 말을 알아 듣게 끔 해야 해요." 파리의 일상생활에 그토록 빨리 또 즐거운 마음으로 적응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우기 중에도 언제나 그 추억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여인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행으로 지치고 임신으로 나른한 몸을 이끈 채 수 많은 여행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구에서 받은 첫 질문은 유럽의 감탄거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지극히 즐거웠던 수 개월의 여행담을 단 네 마디의 카리브 속어로 요약시켜 말했다. "별로 대단한 것은 없더군요." H핂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성당 안에서 페르미나 다자를 본 날은 페르미나가 임신 6개월째 되는 날이었으며 세상 물정에도 밝은 여성이 되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를 소유하는데 필요한 명성과 재력을 갖추기 위해 모진 결심을 하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페르미나 다자가 현재 결혼한 몸이라는 사실이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만일 결정권이 있다면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죽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언제, 어떻게 그 일을 실행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 일이 불가피한 일인 것만큼은 분명해서 서두르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우선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이룩하는 일부터 풀어나가기로 했다. 그는 통보도 하지 않고 카리비안 해운회사의 회장인 삼촌 레오 12세의 사무실을 찾아가 자신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의사 표시를 했다. 그의 삼촌은 자신이 소개해준 빌라 드 레이바에서의 전신 기사직과 같은 좋은 일자리를 포기해 버린 조카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음으로써 한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운 탄생을 만드는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으로 인하여 레오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형수가 상속인도 정해 놓지 않고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데에서 오는 증오의 고통도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레오는 길을 잘못 든 조카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그것은 돈 레오 12세 로아야자의 특색 있는 결정이었다. 무정한 상인들의 세계에도 사막에서 레몬액을 뿜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중한 장례식에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있는 그런 온화한 괴짜적인 면이 있었다. 레오의 머리는 곱슬이었고,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 반은 양의 모습을 한 목신의 입술을 지녔으며 칠현금과 월계관만 갖추면 방화범인 네로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낡은 배들을 관리하는 일에 묶이지 않을 때나 혹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강에서의 항해 문제가 있을 때면 기분 전환으로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 좋아하는 서정시를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장례식 때 장송곡을 부르는 것이었다. 레오는 배를 젓던 노예의 목소리를 지녔으며 전문적으로 훈련은 받지 않았으나 개성적인 음폭을 소유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엔리코 카루소는 목소리의 힘으로 화병을 깨뜨려 버릴 수 있다고 말하자, 레오는 자신도 그렇게 해 보려고 수년 동안 유리창 앞에서 연습을 했지만 헛수고로 끝나 버렸다. 세계 일주를 하는 동안 우연히 만난 그의 친구들이 약하디 약한 꽃병을 준비해 놓고 레오가 마침내 자신의 꿈을 달성할 수 있도록 특별한 파티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천둥같이 심오한 목소리에는 마치 그 위대한 카루소의 크리스탈 꽃병과도 같은 청중들의 가슴을 찢어버릴 듯한 희미한 부드러움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장례식에서 그토록 존경받는 이유였다. 단 한 번 예외는 있었다. 그가 루이지아나에서 유래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송곡인 천국에서 깨어났을 때라는 곡을 불렀을 때 자신의 성당 내에 신교도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한 사제로부터 입 다물라는 주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레오는 가극을 불러 앵콜을 얻고 나폴리인의 소야곡 등을 즐기면서도 그의 뛰어난 재능과 기업가적 정신으로 인하여 사업이 한창 때에는 해운업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도 자기의 죽은 형들과 마찬가지로 사생아라는 치욕을 안고 살아왔으며 더욱 심한 것은 사생아는 결코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를 거쳐 온 인물이었다. 당시의 사생아들은 상점 점원 계급으로 불리웠고 그들이 거처하는 곳은 상업 회관이었다. 그리고 레오는 자신과 닮은 로마의 네로 황제처럼 현재는 살 수도 있지만 사업상 편리하기 때문에 오래된 도시의 평범한 집에서 꾸밈없이 살고 있으며 그러한 연유로 인하여 듣는 인색하다는 부당한 소문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레오 자신이 느끼는 호화로움은 더욱 단순한 것이었다. 바다를 낀 사무실에서 가까운 집과 그 내부에 있는 수공품 의자 6개, 그리고 흙으로 빚은 자기 스탠드와 그가 일요일이면 누워서 사색올 할 수 있는 곳인 테라스에 놓인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의자뿐이었다. 누군가가 레오에게 너무 부자라고 비난했을 때 그가 대답한 말보다 더 그를 잘 나타내 주는 표현은 없다. "아니오, 난 부자가 아니오." 그가 말했다. "나는 돈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오. 그리고 부자라는 것과 돈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과는 같지가 않소." 레오 12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 이외에는 여태까지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의 독특한 성격의 알면을 보여 주었다. 바로 그날부터 레오는 음울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나와 그에게 아무리 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엄격한 병영 훈련으로 그를 시험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는 그를 협박하지는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삼촌 레오 12세는 자신의 조카의 용기는 삼촌을 위한 것이거나 그의 아버지로부터 타고난 무정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을 수 없고 있다고 치더라도 그 장애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사랑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태는 과거지사가 되었고, 레오가 이사회의 사무원으로 임명되었을 때 쯤에는 레오도 명령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레오의 옛 음악 선생인 로타리오 수굿트가 바로 조카인 플로렌티노에게 글을 쓰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자고 추천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플로렌티노는 명작보다는 저질 작품읕 더 좋아하긴 했지만 문학작품을 닥치는 대로 수없이 많이 읽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는 자기 조카의 좋지 않은 독서 취향과 가장 좋지 못한 목소리를 지닌 학생이라는 로타리오의 말은 무시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나 그 독일인의 말이 맞아 들어갔다. 플로렌티노는 모든 글을 정열적으로 쓰는 습관이 배어 있었다. 심지어는 공문서까지도 연에 편지를 쓰듯이 썼다. 그의 화물 적재 계산서는 아무리 그가 사무적으로 쓰려 해도 운율이 들어갔으며 일상적인 사업용 서신에도 권위를 약화시키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마침내 어느 날, 그의 삼촌이 몸소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 서류 한다발을 들고 와서 결코 그러한 서신문에는 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수 없다면서 플로렌티노에게 경고했다. "네가 만일 사업용 서신을 쓸 수가 없다면 부두에 있는 쓰레기나 주워야 할 거다." 하고 레오가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도전에 응했다. 그는 간단 명료한 상업용 서류를 작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고, 한때 자신이 즐겨쓰던 대중적인 시에 쏟던 열정을 공증 서류를 작성하는 데 쏟았다. 이때가 바로 그가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편지 답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연에 편지를 대신 써 주며 자신이 서류나 보고서에 쓰지 못하는 사랑의 표현들을 마음껏 활용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6개월이 지난 후에도 공문서를 제대로 작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촌 레오 12세가 두 번째로 그에게 찾아왔을 때 플로렌티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자존심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저에게 홍미가 있는 것은 애정뿐이에요." 플로렌티노가 말했다. "문제는 말이다. 배가 항해를 하지 못하면, 사랑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삼촌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한 말이다. 레오 삼촌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경고했던 대로 부두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을 시켰다. 그 일을 충실히 하면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승진을 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레오는 그 말을 지켰다. 어떠한 일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힘들고 굴욕적인 일이라도,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비참한 일을 하더라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결코 오만한 상관과 직면했을 때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순진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무기력한 외모 속에 감추어진 과감한 결단력과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레오 삼촌이 예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조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야망 때문인지 사업상의 어떠한 비밀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고, 30년 동안이나 모든 일에 직면하여 불굴의 끈기와 헌신적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여 모든 직위를 두루 거쳐 승진해 을라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정말 놀라운 솜씨로 책임을 수행했고, 시를 쓰듯이 아주 섬세한 문제에서까지도 잘 풀어 나갔으나 자신이 정말로 이루고 싶었던 꼭 한 가지만은 결코 달성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업무용 서신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잘 알지도 못한 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반복해 읽던 시인보다 더 많은 상식을 가졌기에 더 끈질긴 성공, 더 명확하면서도 위험스런 경영자는 없다고 한 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레오 삼촌이 그에게 말했듯이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있던 한가로운 때면,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몽상가적 자질을 드러냈었다는 것과 일치했다. 레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동생 피우스 로아야자가 업무 이외의 다른 일을 보려고 사무실을 사용했었으며 일요일이면 누군가를 만나거나 배를 급파할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내가 의심할까봐 창고 안에 낡은 중기 보일러를 설치해 놓고 다른 사람을 시켜 배가 출항할 때 내는 증기 고동 소리를 울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레오의 계산대로라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느 무더운 일요일 오후에 잠겨져 있지 않은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만들어졌고 집에서는 형수가 떠나지도 않은 뱃고동 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사실을 알고 남편의 파렴치한 행위를 고소하려 했을 때는 이미 남편은 죽어서 때가 늦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린애를 갖지 못한 비통함에 잠겨 남편보다 여러 해를 더 살아 나가면서 남편의 사생아인 플로렌티노에게 영원한 저주를 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드렸던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분위기가 플로렌틱노 아리자에게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아버지는 상업적인 재질은 없지만 훌륭한 사람이었고, 할아버지가 해운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독일인 선장인 요한 비 엘버즈와 친밀한 동업자였기 때문에 해운업에 뛰어들게 되었었다고 일러주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같은 어머니에 아버지가 서로 다른 사생아들이었고 태어날 당시 교황의 이름을 딴 삼촌 레오 12세를 제외하곤 모두 그 어머니의 성과 성인들의 달력에서 닥치는 대로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원래 어머니의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여러 세대를 건너뛰어 트란시토 아리자의 아들 이름으로 전수된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상 아버지가 쓴 사랑의 시를 엮은 공책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시들 중의 일부는 트란시토 아리자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며 각 페이지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삽화들이 섞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놀라게 한 두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자기 아버지의 필체였는데 자신은 시의 입문서에서 가장 좋아 택한 필체였으나 아버지의 그 필체는 자신의 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지어낸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버지에 의해서 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만일,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 아버지의 사진도 두 장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처음으로 그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 중의 한 장은 그의 아버지가 당시의 자신과 거의 비슷한 나이였을 때 쯤인 아주 어렸을 때 산타 페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외투를 걸치고 목이 짧은 장화를 신은 한 동상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아버지의 옆에 있는 작은 소년이 바로 삼촌인 레오 12세였으며 그는 선장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에는 수많은 전쟁을 치른 듯한 병사들 중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며 아버지는 장총을 들고 있었고 그의 턱수염에서는 화약냄새가 풍기노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파이자 비밀 공제 조합원이었으나 자신의 아들은 신학교를 보내고 싫어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사람들이 관찰한 닮은 점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의 삼촌 레오 12세에 따르면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아버지 피우스 5세 역시 서류에 서정시적인 운율이 들어갔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어느모로 보나 플로렌티노는 사진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외모와는 전혀 닮지 않았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도 닮은 점이 없었으며, 어머니가 약간 변조시킨 아버지에 대한 영상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레오 삼촌에 따른 아버지의 모습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러 해가 흐른 후, 유사점을 찾게 되었다. 거울 앞에서 빗질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이 나이들어 가면서 아버지와 닮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윈도우즈 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트란시토 아리자와 애정을 나누던 초기에 그곳에서 한 번 잔 적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는 다시 찾아온 적이 없었다 여러 해 동안 세례 증명서가 그에겐 유일한 신분증이었으며 성 티부르티우스 교구에 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기록에는 그가 트란시토 아리자라고 불리우는 미혼인 여자가 낳은 사생아라고만 적혀 있었다. 피우스 5세가 죽기 전까지는 아들에 대한 모든 뒷바라지를 몰래 했었지만 그 아버지의 이름은 그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제약이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신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을 가로막게 되었지만, 그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독자라는 이유로 전쟁이 극심할 때에도 군대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매주 금요일 방과 후면 그는 카리비안 해운회사의 사무실 맞은편에 앉아 책의 겉장에 있는 동물들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 책은 그가 너무 자주 보는 바람에 겉장이 닳아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나증에 트란시토 아리자가 그에게 맞도록 고쳐준 코트를 입고 제단에 오른 성 요한과 똑같은 표정으로 아돌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가곤 했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가 건물 밖으로 나올 때면, 자신의 마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일주일분의 용돈을 주었다. 아버지가 말을 시키지 않기도 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 아버지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어느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평상시보다 훨씬 오래 기다린 후에 나온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돈을 주며 말했다.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거야." 그때가 바로 그가 아버지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열 살 경 레오 삼촌을 알게 되었을 때는 피우스 5세가 유일한 자식인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유언조차 할 시간 없이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지속적으로 트란시토 아리자를 돌보아 주고 있을 때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는 그가 카리비안 해운 회사의 사무원으로 재직할 때 항상 페르미나 다자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정시적인 글귀를 피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그는 결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빼놓고는 글을 쓰는 것조차 배울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른 직위로 옮겨갔을 때에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가슴 속에 너무나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보고자 연인들을 위한 연애 편지를 무료로 써주었다. 편지 써 주는 일은 업무가 끝난 후에 하였다. 그는 코트를 신증한 태도로 벗어 의자 뒤에 건 다음 셔츠 소매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커프스를 끼었고 더 생각을 잘 짜내어 보려고 조끼의 단추도 풀었으며 때로는 아주밤밥 늦게까지 미친 듯이 연애 편지에 매달리곤 했었다. 어떤 때에는 문제아 자식을 둔 불쌍한 여인, 또는 자신의 연금 지불을 주장하는 참전 용사, 도둑을 맞아 정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편지를 써 달라고 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의 편지를 써 줄 수가없었다. 왜냐하면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쓸 수 있는 편지는 오로지 연애편지 뿐이었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을 찾은 손님들에게 질문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눈동자만 바라보아도 그들이 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으며 각 페이지 페이지마다 마음 속으론 페르미나 다자만을 생각하면서 확실한 문채로 넘쳐흐르는 사랑의 표현을 담아나가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편지 써 주는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에는 시간 약속을 미리두는 제도를 도입해야 했으며 그렇게 해서 사랑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혼잡한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에 플로렌티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매우 어리숙하고 어린애 같은 소녀가 바르르 떨며 방금 받은 편지에 답장을 써 달라고 찾아왔던 일이다. 그 편지는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 전날 오후에 써 준 것이었다. 그는 그 소녀에 어울리는 문체로 마치 그녀가 직접 쓴 것처럼 답장을 써 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개인의 개성에 따라 모든 경우에 어울리는 글을 어떻게 쓰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을 그 어린 소녀가 상대방 소년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한다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물론, 이틀 후에 상대방 소년의 답장도 자신이 써준 첫 편지와 같은 문체로 써 주었고 플로렌티노는 혼자서 편지도 쓰고 그 편지에 대한 답장도 쓰는 열애에 빠지게 되었었다. 한 달도 채 못되어 그 소년, 소녀는 각자 플로렌티노에게 그 편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며 그들이 결혼하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첫 아이를 갖게 된 후에서야 그들은 비로소 지나가는 이야기중에 자신들이 교환했던 연애 편지들이 한 사람에 의해서 씌어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습작실로 찾아와 새로 탄생한 아기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꿈이 실제로 실현되어가고 있는 증거를 남기기해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책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책은 당시 시중에서 팔리고 있던 같은 종류의 책보다 훨씬 시적이고 광범위한 연애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페르미나 다자가 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상상해냈고,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유형과 대응책을 그 책에 담았다. 그가 그것을 다 썼을 때는 카바루비아스 사전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천 장의 편지 예문이 세 권에 나뉘어 수록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어느 출판업자도 그 책을 출판하는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트란시토 아리자도 평생 동안 저축한 돈을 그런 위험한 사업에 탕진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예전부터 써 온 글들과 함께 다락방에 처박히게 되었다. 몇 년 후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스스로 그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재산이 생겼을 때는 이미 그런 연애 편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카리비안 해운 회사의 일과 연애 편지 무료 대필 업을 하고 있을 무렵, 그의 어릴 때 친구들은 그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돌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맞아들어 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해에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당구도 치고 춤도 추러 갔으며 아가씨들이 제비뽑기로 자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고, 한때 자신이 보여 주었던 남성의 모습을 되돌이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았다. 나중에 레오 12세 삼촌이 그를 고용인으로 채용하자, 그는 사무실 동료들과 상업회관에서 도미노 게임을 즐겼고, 그가 해운 회사 이야기와 또 회사 이름도 약어로 말할 때면 그들도 동료로 받아 들이기 시작했었다. 플로렌티노는 심지어 먹는 습관까지 바뀌었다. 음식에 관한 한 그때까지도 무관심하고 불규칙했던 것이 얼마나 규칙적이고 간소화되었는지 모른다. 아침에는 큰 컵으로 블랙커피 한 잔, 점심에는 흰 쌀밥에 곁들인 삶은 생선 한 조각, 그리고 저녁에는 크림을 탄 커피 한 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치즈 한 조각이 전부였다. 원래 그는 언제, 어디서든, 하루에도 몇 잔이건 상관치 않고 커피를 마셨으며 손수 끓이기를 좋아하는 그 커피를 보온병에 넣어 가까이에 두고 마셨다. 하루에 작은 컵으로 서른 두 잔까지도 마셔본 적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영혼이 사랑과 결탁되기 전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 가려는 확고한 결심과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결코 다시 똑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를 다시 획득하는 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목적이었으며 트란시토 아리자는 지속적으로 집안을 복구시키려고 노력했으므로 언제건 그 기적 같은 일만 일어난다면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또 기필코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의 출판 제의에 대한 그녀의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트란시토 아리자는 훨씬 나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은 집을 사서 완전히 수리를 했다. 침실이었던 곳을 고쳐 응접실로 만들고 2층에다 넓고 밝은 침실 두 개를 만들어 방 하나는 결혼한 부부를 위하여, 그리고 또 한 방은 그들이 갖게 될 아기방으로 꾸몄다. 그리고 옛 담배 공장 터에는 모든 종류의 장미를 심은 넓은 정원을 만들었으며 그곳애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후의 한가한 시간을 그 장미를 돌보면서 지냈다. 과거에 대한 감사의 증표로 유일하게 수리하지 않은 곳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잠을 자던 뒷방이었다. 그 방은 원래대로 그대로 보존되었고 접는 의자와 함께 그곳에 있는 책상 위에는 흐트러진 책들로 어수선하게 덮여 있어서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윗층의 신혼 부부 방으로 예정된 곳으로 옮겨갔다. 그 방은 그 집에서 가장 넓고 분위기가 좋은 방이었으며 장식을 한 테라스가 연이어 있어서 밤이면 그곳에 앉아 바닷 바람과 장미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유쾌한 장소였다. 그 방은 또한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트래피스트 외의 수사로서의 엄격함을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곳이기도 했다. 평범하고 하얗게 칠한 벽은 거칠고 장식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가구라고는 간이 침대 하나와 초를 꽃은 병을 올려 놓은 보조 탁자, 그리고 낡은 옷장과 세면 대뿐이었다. 그 집안 단장에는 거의 3년이 걸렸고 그것은 해운업의 번창에 힘입어 일어날 간단한 도시의 부활과도 일치했었다. 그러한 요인들이 그 도시를 식민지 시대 하에서도 번창하게끔 유지시켰고, 30년 이상을 미국으로 통하는 교량 역할을 담당케 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트란시토 아리자가 처음으로 불치병 증세를 보인 시기이기도 했다. 그녀의 단골들은 늙고 창백했으며 그들이 방문실에 올 때마다 차츰 쇠약해져 갔다. 그녀는 그들과 인생의 절반 이상을 거래했으면서도 그들을 잘 알아 보지 못했고, 어떤 일을 다른 일과 혼동하기도 했으며 그러한 증세는 그녀와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귀가 차츰 어두워지는 것 같더니 곧 기억력의 상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전당포 사업을 청산하게 되었고, 항아리에 있던 귀금속은 집을 고치고 장식하는데 지불했지만 그래도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그 도시에서도 가장 값비싼 귀금속들이 많이 남았다. 그 기간 동안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동시에 너무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은밀한 사냥꾼처럼 자신의 일을 확장해 나가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정신력은 결코 시들지 않았다. 통속적인 사랑에 활짝 문호를 개방했던 나자렛 부인과의 괴팍스런 그의 경험 이후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페르미나 다자의 고통에 대한 처방을 찾아내길 기대하면서 여러 해 동안 밤거리의 여자들을 찾아 다녔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그는 희망 없는 간음의 버릇이 정신적 욕구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육체적 나쁜 습관에 불과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잠시 드나들던 호텔 출입은 그의 흥미가 다른 곳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정숙했던 가정생활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신이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호텔 출입을 삼가하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호텔을 찾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오후 5시, 퇴근을 하면 그는 닭을 사냥하는 매처럼 변했다. 그는 공원에서 일하는 소녀들과, 시장에 나온 흑인 여자들, 해변을 거니는 세련된 젊은 숙녀들, 뉴올리언즈에서 보트를 타고 온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골랐다. 그는 그 여자들을 도시의 반쯤은 이미 잠이 든 시간에 선창, 아니면 그가 데려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끔은 등대의 캄캄한 입구를 통해 들어갈 때도 있었고 문 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었다. 등대는 항상 폭풍으로부터 무사히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으며 그가 모든 것이 안정된 인생의 황혼기애 이르렀을 때 그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특히 밤에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였으며 그는 자신의 사랑이 불빚을 타고 모든 항해 선원들에게 차례로 비춰진다고 상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플로렌티노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등대를 좋아했고, 그의 친구인 등대지기는 어떤 여자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느긋한 표정으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 등대의 맨 밑부분에는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와 가까이 있는 집이 한 채 있었고 그곳에서의 애정 행각은 난파선처럼 더욱 강렬했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늦은 밤의 등대 그 자체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는 전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바다의 낚싯배에서 번지는 불빚과, 심지어는 먼 거리에 있는 늪까지도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당시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성의 외모와 그 여성의 사랑에 대한 상관 관계에 관한 단순한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악어를 날것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면서도 잠자리에서는 가장 수동적인 신경질적인 형은 싫어했다. 그가 좋아하는 형은 바로 그 반대였다. 거리에 나서면 누구도 돌아다보지 않을만큼 볼품 없이 여윈 올챙이처럼 마치 옷을 벗으면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을 듯한 여자가 바로 정력을 자랑하며 허풍을 떠는 남성들을 폐물로 만들어 버리고 떠날수 있는 형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러한 관찰을 메모헤 두었다가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를 쓰는데 활용할 의도였지만, 그 계획 역시 그 이전의 경우처럼 달성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오펜치아 산탄테르가 그에게 노련한 솜씨로 그를 마음대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모든 그의 이론을 파기하며 그의 머리 위에서 그를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오벤치아 산탄테르는 20년 전 전통적인 결혼식을 올리고 3명의 자식을 결혼시켰으며, 그 자식들이 차례로 아기를 낳아 그곳에서는 자랑스런 할머니로 뽑내고 다녔다. 그녀가 남편을 버렸는지 아니면 남편이 그녀를 버렸는지 혹은 동시에 두 사람이 같이 결혼 생활을 포기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남편이 첩들과 살려고 나가자 자유스럽게 배의 선장인 로센도 로사를 낮에 맞아들였고 가끔은 밤에도 뒷문을 통해서 받아들였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그녀와 만나게 해 주려고 그녀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점심식사를 같이 하려고 플로렌티노를 데리고 갔다. 그는 집에서 만든 닭이나 돼지고기 요리에 들어가는 최상품 양념을 병에 담아 파와 다른 야채와 함께 가지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처음부터 그 훌륭한 요리나 그 여자의 화려함에는 흥미가 없었고 다만 그 집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그는 밝고 시원한 그 집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집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커다란 4개의 창문이 있었으며 그 너머로는 낡은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실에 가득 늘어 놓은 수많은 장식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들은 선장 로센도 로사가 항해에서 돌아올 때마다 가져다 놓은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갖다 놓을 자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바다 쪽의 테라스에는 말라야에서 가져온 앵무새 한 마리가 새장에 앉아 있었는데 그 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여태까지 본 동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안 깃털과 우수에 잠긴 듯한 평온함을 지닌 새였다. 로센도 로사 선장은 자기 손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고자 각 물건마다의 내력을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쉴새 없이 술을 마셔댔다. 그는 마치 콘크리트에 물을 붓듯이 퍼부었다. 그는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털무늬로 덮여 있었고 페인트칠용 솔 같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닻을 감아올릴 때 나는 소리와 같은 목소리를 지닌 독특하고도 고상한 예의를 갖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강철 같은 몸도 그의 술버릇은 감당해 내지 못했다. 그들이 식탁에 앉기도 전에 그는 그 독한 술을 반병이나 비웠고 그는 잔과 병들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오벤치아 산탄테르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그 거대한 몸집을 침대로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으며 침대에서 잠든 그의 옷을 벗겼다. 그리곤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서로 눈이 맞아 약속이나 한듯이 서로 어떤 제안이나 요구도 필요 없이 바로 그 옆방에서 알몸으로 튕굴었다. 선장이 항해에 나가 있는 동안은 어디서건 그렇게 알몸으로 7년이란 세월 동안 관계를 지속했었다. 선장은 항상 귀항할 때면 처음에는 그의 아내와 9명의 자식들을 위한 뱃고동을 세 번 길게 울리고 그 다음엔 애첩들을 위한 애처로운 뱃고동올 짧게 두 번 울려 자기가 돌아왔음을 알렸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혀 위험스럽지가 않았다. 오벤치아 산탄테르는 쉰 살 가까운 나이였지만 어떤 인위적이거나 과학적인 이론도 방해를 할 수 없는 애욕에 관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여자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배의 출항 일정을 알고부터는 낮이건 밤이건 언제든지 아무런 연락없이 가도 항상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녀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홀랑 벗겨서 머리에는 천으로 만든 리본을 달아매어 키웠듯이 그러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그녀는 그를 완전히 알몸으로 만들고서야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 이유는 집안에 옷을 입고 들어오는 남자는 불행을 초래한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로 로센도 로사 선장과의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선장은 알몸으로 담배를 피우면 불행이 온다는 미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즐기는 쿠바산 담배를 끊기보다는 그녀와의 애정 행위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와는 달리,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알몸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문을 닫자마자 그의 옷을 순식간에 벗기길 즐겼으며 심지어는 그가 인사를 할 시간이나 안경과 모자를 벗을 시간도 주지 않고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자신에게도 키스를 하라고 요구하면서 차례차례 그의 옷을 풀어헤쳐 나갔다. 처음에는 단추로부터 시작해서 허리 벨트, 그리고 조끼와 셔츠에 이르기까지 매번 키스를 퍼부어가며 벗겨내어 마치 그를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반으로 갈라놓은 싱싱한 생선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그를 거실에 앉히고 신발을 벗기고 팬티를 벗길 수 있도록 겉바지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 대님을 풀고 양말을 벗겼다. 그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을 멈추고 그녀가 자기에게 키스하도록 시키면서 자신이 꼭 해야할 한 가지 일을 그때 했다. 그 일이란 자신의 시계를 조끼 주머니에서 꺼내고 안경을 벗어 함께 구두 속에 넣어 두어 잃어버리고 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상 다른 사람의 집에서 옷을 벗을 때는 그러한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플로렌티노가 그 일을 끝마치는 즉시 그녀는 다른 어떤 것을 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막 옷을 벗긴 그 소파 위에서 그를 덮쳤다. 침대 위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는 그의 위에 올라가 눈을 감고 스스로 몰두하여 자신의 모든 쾌락을 위해 그를 멋대로 조절했다. 자신의 내적 상황을 잘 판단해 나가며 이곳에서는 전진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후퇴를 거듭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길을 정정해 가면서 보다 강렬한 다른 길도 개척해 갔으며, 자신의 내부에 흐르는 미끄러운 늪에 빠지지 않고 다른 방법읕 이용하여 전진해 나갔으며,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자문자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그렇게도 갈망하던 지점에 이르면 다른 어떤 것도 기다릴 수 없이 굴복해 버렸다. 그녀는 세상을 뒤흔드는 완전한 승리의 발산과 함께 탄성을 울리며 끊임없는 나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땀이 뒤범벅이 되어 불완전한 상태로 지친 채로 남아 있었지만 단순한 쾌락의 도구라는 느낌을 갖게 되어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나를 장난감처럼 다루는군요." 그러자 그녀는 거리낌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절대로 그렇지 않아. 당신은 특별한 내 애인이야." 라고 말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그녀가 탐욕스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 집올 떠났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오벤치아 산탄테르의 열정적 사랑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경멸하는 동시에 욕망을 채울 수 있는 행복에는 함정이 있으며 그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들이 만난 지 2년째 되던 날 어느 일요일, 그가 도착하자 그녀가 맨 먼저 한 행동은 그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안경을 벗긴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훨씬 쉽게 그에게 키스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그녀가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플로렌티노 아리자 자신이 알게 된 동기였다. 그 집을 처음 방문했던 날부터 그는 그 집에서 매우 편안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제서야 그는 그 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2시간 이상을 머문 적이 없었으며 잠을 잔 적도 없었고, 식사는 형식적인 초대에 응해서 딱 한 번 간적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에게 키스를 하려고 안경을 벗긴 그 일요일에는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 후, 그 선장의 거대한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잠을 잤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아름다움에 먹칠을 하는 앵무새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의해 자신이 잠을 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후 4시의 열기 속에서 주위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고, 침실 창문 밖으로는 오후 햇살에 금빚으로 물들은 오래된 그 도시의 외곽이 내려다보였다. 오썬치아 산탄테르는 과감히 손을 뻗어 옆 사람을 더듬었지만 폴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손을 치웠다. 그가 말했다. "지금은 싫어. 난 지금 누군가가 우릴 훔쳐 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구." 그녀의 장난기 섞인 유쾌한 옷음 소리가 앵무새의 비명 소릴 다시 기억나게 했다. 그녀가 말했다. "조나하의 아내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믿지 않을 걸." 물론 그녀도 믿진 않았으나 그럴듯한 추정이라고 인정은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섹스는 하지 않았지만 적막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속삭였다. 아직 해가 걸려 있는 5시에 그녀는 평상시처럼 알몸으로 침대를 빠져나가 머리에는 천으로 된 리본을 맨 채 마실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갔다.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집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벽에 붙은 전등뿐이었다. 그 나머지 모든 것, 가구와 인도산 카페트, 조각들, 손으로 짠 융단, 값비싼 돌과 금속으로 만든 수많은 장신구, 그녀를 가장 즐겁게 했고 그 집을 도시에서 가장 장식이 잘된 집으로 평가받게 했던 그 모든 것들, 심지어는 그 신성한 앵무새까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그들의 애정행각을 방해하지 않고 바다 쪽으로 난 테라스를 통해 밖으로 실어나른 것 같았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 방과 4개의 열려진 창문, 그리고 뒷벽에 씌어져 있는 다음과 같은 글뿐이었다. "이것은 너희들이 재미보는 데 대한 댓가다." 로센도 로사 선장은 왜 오벤치아 산탄테르가 그 도난 사고를 신고도 하지 않고 또 도난품을 발견할지 모르는 중개인들과 접촉도 하지 않으며 다시는 그 일을 입밖에도 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약탈당한 집으로 계속해서 그녀를 방문했었다. 그 집의 가구는 도둑이 부엌에 있던 것을 미처 갖고 가지 못한 3개의 가죽의자와 그들 두 사람이 있던 침실에 남아 있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그렇게 추측하고 그에게도 말했듯이 그 집안의 쓸쓸함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면서 등장한 노새가 끄는 수레의 신제품과 그 수레가 여기저기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여자들의 보금자리라는 데 흥미를 더 느졌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주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 플로렌티나 아리자는 하루에 사무실에 갈 때 두 번,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 두번, 네 번씩 그것을 탔으며 때로는 진짜로 독서를 했지만 대부분은 밀회를 위한 첫 단계로 독서를 하는 척했다. 나중에 레오 12세 삼촌이 라파엘 뉴네즈 대통령의 것과 똑같은 황금 장식을 한 두 마리 조그만 회색 노새가 끄는 마차를 매각했을 때 그는 자신이 즐기는 여자 사냥에 가장 효과적인 그 마차를 당시에 무척이나 갖고 싶어했었다. 그가 옳았다. 문앞에 마차를 세워두고 안에서 비밀스런 사랑행위를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거의 항상 마차를 집에다 숨겨 두고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걸어서 여자 사냥을 다녔다. 그에게 그 낡은 마차가 대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상처투성이의 쇠약한 노새 뿐만아니라 그 옆 창문을 통해서 어디에 사냥감이 있는가를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어떤 소녀와의 추억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와는 하룻밤의 반도 채 같이 지내지 못했지만 그의 남은 일생 동안 카니발에서의 난폭한 행동을 무력화시키기에 층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마차를 타고 공식적으로 폭력이 인정되는 축제의 광장을 겁도 없이 통과하면서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20살도 채 안 되어 보였으며 카니발의 분위기를 모르는 것같아 보였다. 어깨 너머로 부드럽게 흘러 넘치는 길고 곧은 머리칼을 지녔으며 평범하고 간소한 린넨 웃옷을 입고 있었다. 그 소녀는 거리의 혼란스런 음악 소리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고 군중들이 그 마차에 던지는 쌀가루와 염료 세례로 그 사흘 동안의 광란의 시기에 그 마차를 끌던 노새는 온 몸에 하안 분칠과 머리에는 꽃모자를 두르게 되었다. 그러한 혼란을 틈 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이상의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해서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이나 같이 하자고 초대를 했다. 그 소녀는 전혀 놀란 빛 없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겠어요. 하지만 전 미친 여자라는 것을 경고해 둡니다." 그는 그녀의 재치있는 응답에 읏음을 터뜨리며 축제 행렬을 볼 수 있는 아이스 크림 가게의 발코니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빌린 망토를 두르고 커스텀 하우스 광장에서 그녀와 함께 춤울 추었으며 새로 탄생한 연인들처럼 즐겼다. 그녀는 전혀 광란이 극도에 달한 다른 군증들에게는 무관심한 듯이 보였다. 그녀는 혼자만의 환락에 사로잡힌 듯 환상적으로 춤을 썩 잘 추었고 상대방을 사로잡기에 층분한 매력을 보여 주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있으므로서 큰 문제에 빠져 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시는군요." 그녀는 카니발의 열기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전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탈출한 미친 여자라구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겐 그날 밤은 자신이 아직 사랑의 아픔을 모르던 사춘기의 순진무구한 방종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겪은 것보다는 소문을 통해서 그런 쉽게 느끼는 행복이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고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상이 주어진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 되자 그녀에게 일출을 구경하러 등대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쾌히 승낙했으나 시상식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홋날 그 시간의 지연이 자기의 인생을 구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정신병자 요양소에서 나온 두 명의 경비원과 한 명의 간호원에게 잡혔을 때 등대로 떠나자고 그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오후 3시에 그녀가 탈출한 후로 줄곧 그녀를 찾아 헤매었을 뿐만 아니라 경찰도 출동했었다. 그녀는 카니발에 가서 춤을 추고 싶어서 경비원 한 명을 칼로 찌르고 두 명은 심하게 상처를 입힌 후 경비망을 뚫고 탈출했던 것이다. 아무도 그녀가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녀가 많은 집들 증의 어느 한 곳에 숨어 있으리라 생각하여 심지어는 각 집 안의 물통까지도 수색했던 것이다. 그녀를 잡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몸 속에 숨기고 있던 정원 가위로 강렬하게 저항을 했다. 그녀를 구속 복에 집어넣기 위해 6명이나 동원이 되었고 그동안 군중들은 커스텀 하우스 광장에 빽빽이 몰려들어 그것이 카니발 행사 중의 하나인 줄 알고 손뻑을 치고 휘파람을 불며 열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에쉬 웬스데이 가로부터 디바인 췌퍼드 가까지 그녀를 위해 영국산 초콜렛 한 상자를 들고 따라 내려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개를 들어 창틀 사이로 그를 보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는 수용자를 보았다. 그는 그 초콜렛 상자를 높이 들어 다행히도 그 쇠창살 사이로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면 그 초콜렛을 집도록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몇달 후에 그가 노새가 끄는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한 어린 소녀가 자기 아버지에게 그가 들고 있는 상자를 가르키며 초코렛 한 개만 얻어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호되게 꾸짖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그는 상자째 그 어린아이에게 주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모든 쓰라림을 치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이미 사라져간 내 애인을 위한 것이오."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말했다. 운명의 보상이라고나 할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레오나 카시아니를 만난 것도 노새가 끄는 마차 안에서였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둘이 잠자리도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녀야말로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진실한 여자였다. 그는 오후 5시에 집으로 가는 마차에서 그녀를 보기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손가락으로 그를 만지는 듯한 확실한 현실이었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마차의 저쪽 끝에 있는 그녀를 보고 다른 승객들 사이에서도 확실히 눈에 뜨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도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의 눈길과 지속적으로 마주쳐 그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나조차 잊어먹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젊고 예쁜 흑인이었지만 매춘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추호도 할 수 없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종착역인 캐리지 광장에서 내렸다. 그의 어머니가 6시에 기다리기로 되어 있어서 상가 지역의 골목길로 서둘러 걸어 들어갔다. 그가 길 반대편 군중에 섞였을 때 행실이 단정치 못한 여성의 구두굽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바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발걸음올 옮길 때마다 춤추는 듯한 몸짓에 망사 치마가 들먹이고 어깨는 너무 파여 왼쪽 어깨가 드러나 보이며, 다양한 색상의 목걸이를 한움큼 목에 건 채 하얀 모자를 쓴 싸구려 여자처럼 보이는 여자였는데 그녀가 바로 레오나 카시아니였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러한 옷차림을 호텔에 드나들던 시절에 많이 보았었다. 그러한 모습은 늦게서야 아침 식사를 하는 그런 여자들이 거리에 나오는 오후 6시경에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섹스를 강도의 무기처럼 이용하여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치는 남자에게 섹스를 요구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시험을 해 보기 위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방향을 바꿔 한산한 오일 램프 가로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그녀는 계속 따라왔고 차츰차츰 그와의 사이가 좁혀졌다. 그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그녀를 길 옆으로 몰아 세우고 두 손을 우산에 지탱하고 섰다. 그녀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봐, 귀여운 아가씨, 잘못 선택했어." 그가 말했다. "난 그런 짓을 하지 않아." "천만에, 당신은 그짓을 원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 얼굴에 그렇게 씌어져 있는 걸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릴 때 자기의 주치의이자 대부였던 분이 그의 만성 변비에 관해 했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세상은 대변을 볼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한 신조에 바탕을 두고 그 의사는 인간 성격에 관한 완전한 하나의 이른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며 그는 그 의사의 이론이 점성술보다도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여러 해를 사는 동안 터득한 바에 따라,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을 달리 표현했다. "세상은 섹스를 즐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된다." 그는 바로 그렇지 못한 자를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고 좁은 정도에서 이탈할 때면 자신들에게 그것이 너무나 특별한 것처럼 마치 자신들이 사랑을 고안해 내기라도 한 듯이 사랑에 대한 허풍을 떨곤 한다. 그러나 섹스를 즐기는 사람은 그 반대로 그것만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들은 마치 묘비처럼 자신들의 입술이 봉해져 버린데 쾌락을 느낀다. 그들의 인생은 자신들의 판단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적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않으며 자신들이 성교 불능자나 불감증 흑은 소심한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이 날 지경에 이를 때까지도 철저하게 무관심한 척 위장을 한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밀 단체를 만들어 전세계의 그 회원들은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 여자의 대답에 놀라지 않은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도 바로 그 회원중 한 명이었고 그래서 그녀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고 그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생각나는 큰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어떠한 사랑도 그 값은 치르기 마련이지만 사랑이 아니라 카리비안 해운회사에서 임금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였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그녀를 인사 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무척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인사부장은 그녀에게 잡화부의 가장 낮은 직급을 주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3년 간을 헌신적으로 일했다. 설립 이래로 카리비안 해운회사는 강둑 너머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며 반대편 만에 있는 해운회사나 라스 아니마스 항만의 시장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그 건물은 목조로, 경사진 양철 지붕으로 덮여 있었으며 정면에는 여러 개의 기둥으로 받혀진 긴 발코니가 있었으며 그물이 쳐져 있는 창문들이 있었고 사방으로 배들을 완전히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 독일인 창업자가 그 건물을 지었을 때는 양철 지붕은 붉은색으로, 그리고 목조벽은 흰색을 칠해서 그 건물이 마치 한 척의 배처럼 보였다고 한다. 나중에 그 건물 전채를 파란색으로 칠했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쯤에는 색깔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고, 녹슨 지붕 위는 원래의 양철판에 이곳 저곳을 새 양철판으로 기워 놓은 상태였다. 그 건물 뒤의 닭장처럼 철망이 쳐진 자갈밭에는 보다 최근에 지은 거대한 두개의 창고 건물이 있었고, 바로 그 뒤에는 약 50여 년간 무관심 속에 썩어 온 막힌 하수관과 악취나는 쓰레기 등이 널려 있었다. 그 중에는 시몬 볼리바라는 이름이 붙은 굴뚝이 달린 아주 오래된 배로부터 상당히 최근 것으로 보이는 선실에 선풍기까지 달린 배들도 있었다. 그것들 대부분은 분해하여 다른 배를 만드는 부품으로 쓰이지만 그중 몇 척은 새로 칠을 입히고 수리를 하면 도마뱀들이 놀라 도망치거나 커다란 노란꽃의 잎들도 손상시키는 일 없이도 진수식을 올릴 수 있고 더욱 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배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관리부는 그 건물의 윗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작지만 안락하게 잘 꾸며진 선실과 같은 사무실이었다. 도시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해운기사가 지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풍겼던 것이다. 복도의 맨 끝에는 다른 고용주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무실들과 똑같은 레오 삼촌이 급히 업무를 치를 수 있는 사무실이 있었다. 그 사무실이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매일 아침 그의 책상 위의 화병에는 향기 좋은 꽃이 가득 꽃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하층은 승객부였으며 대기실에는 낡은 의자들이 있고, 표를 팔고 화물을 다루는 계산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잡화부를 설명하자면 그 부서명 자체가 뜻하듯이 무슨 기능을 하는 데인지 확실치 않지만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해결 못하는 문제들이 보내지는 잡다한 곳인 것 만큼은 분명했다. 그곳에서 레오나 카시아니가 화물더미와 미결 서류들로 덮인 책상에 앉아 있던 날 레오 12세가 잡화부를 어떻게든 잘 운영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그곳을 둘러 보았다. 그 방의 모든 사무원들과 3시간 동안의 질문과 토론, 구체적인 증거들을 교환한 후 그는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되기는커녕 그 반대의 역효과가 생겼다는 결론을 내리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해결책이 없는 새롭고 다른 문제들만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잡화부를 기습 방문한 바로 그 다음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레오나 카시아니에게서 온 메모지가 있었다. 그 메모지에는 그에게 그 글을 잘 읽어 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의 삼촌에게도 보이라는 요청이 씌어져 있었다. 그녀는 전날 오후에 있었던 감사에서 유일하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사원이었다. 그녀는 그나마 간신히 얻은 자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가 무관심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부서의 직급 제도를 무시하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씌어져 있었다. 레오 삼촌은 완전한 재조직을 제안했으나 현실적으로 잡화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레오나 카시아니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부서는 다른 부서에서는 처리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골칫거리들을 모아 놓았으나 그런 것들이 이곳 저곳에서 몰려든 문제점들이 썩어 들어가 부패한 곳이 바로 잡화부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잡화부는 없에고 그곳에 보내지던 문제점들은 원래 문제가 발생된 부서로 되돌려보내 그곳에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결정이 내렸다. 레오 12세는 누가 레오나 카시아니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 보고서를 읽어본 후 그는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약 2시간에 걸친 밀담을 나누었다. 그들 두 사람은 털어 놓고 모든 이야기률 주고 받았다. 그 쪽지에는 단순히 그녀의 양심상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그녀의 제안은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오 12세는 그러한 업무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에게 흥미를 가졌다. 가장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국민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그녀의 교육 정도였다. 국졸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학으로 빠른 속도로 집에서 영어를 배웠고 지난 3개월 간은 야학에 다니며 타자를 배웠으며 앞으로 전망이 밝은 새로운 업무인 전신 업무도 익히고 있었다. 레오나 카시아니가 레오 12세의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레오는 그녀를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레오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 골치 아픈 부서를 전격적으로 해체하고 레오나 카시아니의 제안에 따라 문제거리들은 그것을 야기시킨 원래의 부서로 되돌려져 그곳에서 해결하도록 했으며, 그녀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었다. 그 자리는 어떤 직함이나 특별한 책임은 없는, 개인 비서 역할이었다. 잡화부의 불명예스런 해체가 있던 그날 오후에 레오 12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그녀를 어디서 찾아냈는지 물었다. 플로렌티노는 그녀와 만난 동기를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냐? 그렇다면 마차로 되돌아가 네가 발견한 그녀와 같은 모든 소녀들을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의 삼촌이 말했다. "두세 명만 더 있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는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을 레오 삼촌의 특징적인 농담의 하나로 받아들였으나 여섯 달 전에 자기 앞으로 배당 해 준 마차를 그 다음날 해약해 버려 그는 일반 수레를 타고 다니며 숨겨진 재능 있는 인물을 발굴해 내기를 계속할 수 밖에없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초기의 망설임을 즉시 극복하고 그녀의 첫 3년 동안 감추어 왔던 엄청난 교활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년 이상을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들었고 그후 3년 간은 비서실장에 버금가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그 자리만은 뛰어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보다 바로 한 등급 아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그에게서 명령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플로렌티노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로부터 명령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그런 상태를 원했다. 사실 그는 이사로서 그녀의 제안에 따르는 일 이외에는 달리 하는 일이 없었으며, 그녀의 그러한 제안이 그의 은밀한 적들이 파 놓은 함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승진하는 데 지대한 도움올 주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비밀을 다루는 데는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그녀가 있어야 할 곳과 어떻게 해야할지를 항상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활동적이면서도 달콤한 매력을 지닌 조용한 여자였다. 그러나 꼭 필요할 때면 가슴에 슬픔을 간직한 채 겉으로 웃어보일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목적은 필요하다면 피를 보더라도 어떻해서든 사다리를 깨끗이 치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신의 능력도 모르고 오르고 자 원하는 직위까지 오르게 하는 데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힘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지만 사실은 감사의 보답으로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그녀의 결심은 너무나 대담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그녀의 계획 안에서 놀아났고 그녀가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녀를 저지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가 분수를 알게끔 일깨워줬다. "오해하지 말아요."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난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 계획을 취소할 작정이지만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봐요." 사실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보지도 않았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때서야 가능한 모든 생각을 해 보았고 결국은 항복했다. 사실 회사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더러운 투쟁이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고 끊임 없이 계속되는 여자 사냥꾼으로서의 그의 파탄도 무르익어 가고 있는 데다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차츰 더해가는 중이어서 냉정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투쟁의 열기 속에서 애정과 독성을 함깨 풍기는 그 위험스런 흑인 여자의 매력적인 모습에 직면해서는 마음의 평정을 한시도 갖질 못했었다. 몇번이나 그는 자신이 그녀를 만나던 날 오후에 그가 생각했던 여자가 사실 이 여자가 아니었다는 후회를 하였으며 빚나는 금덩어리를 주고라도 몸을 씻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레오나 카시아니는 아직도 그날 오후 마차에서 입고 있던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충동적으로 탈출한 노예 같았고 그녀의 추잡스런 모자와 뼈로 만든 귀걸이와 목걸이들 및 손가락마다 낀 가짜 보석 반지 등이 그녀를. 거리의 암사자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녀의 외모는 거의 바뀌지 않았고, 그것이 그녀에겐 더 잘 어울렸다. 그녀는 원숙기에 접어들어 여성적인 매력이 한층 더해 갔으며 불타는 듯한 아프리카산 육채는 더욱더 탄탄해져 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원래 행동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10년간 그녀에게 음탕한 말 한 번 걸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것을 제외하곤 모든 일을 그녀는 도와 주었다. 어느날 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래로 자주 해 오던 야간 업무를 끝내고 나가려다 레오나 카시아니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지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안경을 끼고 지치고 심각한 모습으로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두 사람만이 그 건물 안에 있다는 느낌에 한편으론 공포와 다른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느꼈다. 도시는 잠에 빠져 들었고 캄캄한 바다는 영원한 밤을 예고했으며, 부두는 삭막했고 애처로운 뱃고동 소리도 당분간은 들려올 것 같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가 그녀의 길을 막으면서 오일 램프 가에서 했던 것처럼 우산 위에 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떨리는 무릎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내 영혼의 암사자 ! 무슨 말이든지 해보시지." 그가 말했다. "언제까지 우린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하지 ?" 그녀는 완전히 자신을 억제하며 놀라지도 않고 안경을 벗으며 호탕한 옷음으로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애정어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 전 당신이 그렇게 물어오기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10년을 앉아 있었어요." 때는 너무 늦었다. 기회는 바로 노새가 끄는 마차 안에서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였으며 그녀가 앉았던 그 의자에 기회는 항상 있었으며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를 위해 많은 더러운 술수도 썼고 그렇게 지저분했던 일들도 참아왔으며, 그렇게 해서 인생을 알게 되어 20살이나 위인 그보다도 더 많은 것을 겪은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는 너무 성숙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를 속이기보다는 너무나 사랑했고, 그에게 천한 태도를 보이기 보다는 마음 속으로 지속적인 사랑을 하기를 더 좋아했던 것이다. "안 돼요."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전 마치 있지도 않은 제 아들과 잠자리에 드는 기분이 들거예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말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다. 그는 여자가 안된다고 말할 때는 그녀의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빨리 서둘러 주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믿었지만 그녀만큼은 두 번씩이나 같은 실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항의 한 마디 없이 심지어 일종의 자비로움으로 물러섰으며 그것이 그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이후로 두 사람 사이의 모든 먹구름은 고통 없이 사라지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마침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도 여성의 친구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고 싶은 유일한 여자였다. 그 비밀을 알고 있던 몇몇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그것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둘 중 세 명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죽기 오래 전부터 기억력이 없어졌고 갈라 플라시디아는 그녀에게 딸과 같은 한 사람의 도움으로 오래 살다가 죽었고 그에게 기도서에 끼워서 그가 평생 처음 받아본 연애 편지를 전해주었던 여성인 잊을 수 없는 에스코라스티카 다자 역시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가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로렌쪼 다자가 페르미나 다자의 추방을 저지하려고 할 때 프란카 루즈 수녀에게 그 비밀을 폭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 이름과 정확한 주소가 적힌 전보를 다루는 힐데브란다 산체스가 살고 있는 지방의 전신 기사가 남아 있으며, 힐데브란다 산체스 자신과 그녀의 절대로 굴하지 않는 조카들의 충성만이 문제가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그 명단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힐데브란다는 과거에 그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그 비밀을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발설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적절지 못한 시기에 너무나 평범한 방법으로 그 비밀을 발설했기 때문에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한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흘려 버려서 그녀의 짐작대로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힐데브란다는 자신의 견해로는 은밀한 시인 중의 한 명인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시인들의 제전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도 하지 못했으며 그녀는 그에게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했지만 페르미나 다자가 결혼하기 전의 유일한 애인이 바로 플로렌티노라는 말만은 일부러 빼놓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너무나 순진해서 오히려 애처롭기까지 한 덧없는 일이라고 말했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힐데브란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나는 그 친구가 시인인 줄 몰랐는 걸." 그리곤 그후로는 그의 직업 자체가 윤리적인 문제를 잊어먹는 데는 익숙했기 때문에 다른 일들과 함께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머니만을 제외하고 페르미나 다자의 비밀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주시해 왔었다. 자신은 홀로 그 무거운 짐을 파괴해 가면서 누군가 도움이 될 사람을 필요로 할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믿을 수 있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만이 그 유일한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그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와 방법이 전부였다. 그것은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카리비안 해운회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그가 생각해낸 것이며 우르비노 박사는 오후 3시의 무더위로 부터 견디어 내려고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휴식을 취했고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그의 바지까지도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가끔 숨을 몰아 쉬었다. "폭풍우가 몰아칠 모양이구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레오 삼촌을 만나러 오는 그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명백하게 불청객인 그가 자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때는 바로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이곳 저곳을 기읏거리며 손에 모자를 들고 그의 예술 사업에 대해 기부금을 얻으러 다닐 때였다. 레오 삼촌은 그의 가장 충실하고 관대한 기부자였는데, 그때는 마침 그가 흔들의자에 앉아 매일 10분씩 자는 낮잠 시간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레오 삼촌의 바로 옆방인 자기의 사무실에서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기다리게 했다. 그들은 여러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직접 대면해 본 적은 없었다. 다시 한 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름답지 못한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10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삼촌이 일어 나셨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세 번씩이나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보온병에 들어 있는 블렉 커피를 모조리 마셔 버렸다. 우르비노 박사에게 커피를 권했지만 그는, "커피는 독입니다" 라고 말하며 한 잔조차 사양했다. 그리고 그는 이것 저것 혼자 중얼거렸으며 누가 그 말을 듣건 말건 신경쓰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의 선천적으로 타고난 우수성, 말의 유창함과 정확성, 그에게서 풍기는 크레졸 냄새, 그의 개성있는 매력, 하찮은 말이지만 그가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필연적인 것처럼 들리는 그 단순하고도 고상한 태도를 견딜 수가 없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불쑥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음악을 좋아합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깜짝 놀랐다. 사실 플로렌틱노 아리자도 그 도시에서 공연되는 음악회나 오페라에는 삐짐 없이 참석했었지만 어떤 평론이나 박식한 토론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사춘기때 작곡한 것이나 혹은 그의 은밀한 운문과 유사한 감상적인 왈츠와 같은 대중음악에 약했으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단 한 번 그런 음악을 들은 적이 있었으며 밤만 되면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맴도는 그 멜로디를 지워 버릴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가 그에게 던진 진지한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은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난 가르델을 좋아합니다." 그가 말했다. 우르비노 박사도 알아들었다. "아, 그래요?" 그가 말했다. "그는 유명하지요." 그리고는 그는 새로운 많은 계획들을 검토하는 데 몰두했으며 항상 그렇듯이 그 계획은 공식적인 후원자 없이도 실현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옛날에 들었던 훌륭한 음악과 비교해서 지금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연주의 실망스련 열등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드라머틱 극장에 코르토-카잘스 티바우드 3인조 악단을 데려오려고 후원자를 모집하는데 1년을 보냈으며 정부에서조차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수사극을 공연하는 라몬 카랄트 극단의 좌석은 이미 매진되었고, 돈 마놀로 프레시의 오페라 극단 공연 입장권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무언극과 무대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옷을 갈아입는 묘기를 벌이는 산타낼라스, 폴리스 베르게르와 함께 공연하는 무용가 다니제 드알타이네, 심지어는 투우를 혼자서 다루는 지겨운 우르서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연장에 빈 자리라곤 없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이 스스로 반 세기 동안에 아홉 번이나 시민 전쟁을 겪은 후 그 야만적인 증거를 무대에 올린다 해도 불평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으며, 이제 막 평화롭게 살아가기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사실상 그런 수많은 전쟁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비노 박사의 계획 중에서 폴로렌티노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시인의 제전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우르비노 박사가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어온 가장 큰 명성과 전통이 있는 사업이었다. 플로렌티노는 자신이 매해마다 열리는 그 대회에 열심히 참가했었으며 그럼으로써 국내의 유명한 시인들뿐만 아니라 카리브 해에 접한 다른 나라의 유명 시인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 혀 끝까지 나을 뻔했지만 참았다. 그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무덥고 습진 공기가 갑자기 시원스러워졌고 돌풍이 불어 와 문과 창문을 강타했으며 사무실을 표류하는 배처럼 흔들어댔다. 우르비노 박사는 6월의 미친 듯한 폭풍에 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그의 아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아내를 가장 열성적인 협력자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의 화신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아내가 없었더라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였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플로렌티노는 태연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플로렌티노는 그를 증오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날까봐 감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가 우르비노 박사를 이해하기에는 두세 마디 말이면 충분했으나 그 수많은 말을 한 후에도 자기 아내에 대한 찬사의 언어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그녀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명백한 증거였으며 그 사실은 플로렌티노에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는 그에 대한 응답을 하고 싶어도 그의 방망이질을 하는 심장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결국 그가 항상 자신의 적으로 여기고 있던 우르비노 박사와 자신은 똑같은 운명의 희생물이고 공통적으로 위험스런 열정을 지녔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은 같은 멍에에 매인 두 마리 동물이었다. 영원히 지속된 27년간의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플로렌틱노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 존경스러운 남자가 죽어야만 된다는 슬픈 번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태풍이 몰아닥쳤고 거센 북서풍은 15분 만에 주위를 물바다로 만들으며, 도시의 약 절반 정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우르비노 박사는 다시 한 번 레오의 후원에 감사를 표하며 날이 개이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의 마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빌려준 우산을 아무런 생각 없이 갖고 가 버렸다. 그렇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페르미나 다자가 그 우산의 주인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 하며 은근히 즐겁기까지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레오나 카시아니가 그의 사무실에 왔을 때 지금까지 망설여왔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더 이상 주저하다가는 자신의 마음도 편치 않을 뿐더러 지금이 아니고는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플로렌티노는 레오나 카시아니에게 우르비노 박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많은 일을 한 사람이에요. 어쩌면 너무 많은 일을 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해요." 그리고나서 그녀는 연필에 달린 지우개를 그녀의 길고 날카로운 이로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과는 관계 없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두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그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오." 플로렌티노 리자가 말했다. "아!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죠."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그는 꼭 죽어야 할 사람이오." 레오나 카시아니는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라했다. 그녀는 다서 어깨를 들먹이며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나가버렸다. 그때서야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언젠가 어느날 밤에 자신이 페르미나 다자와 함께 즐겁게 침대에 누워 그의 사랑의 비밀을 밝혀도 좋을 만한 사람에게조차 발설하지 않았다는 말을 페르미나 다자에게 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절대로 그 비밀을 지킬 것이며 레오나 카시아니에게도 말하지 않읕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일생 절반을 고이 간직해온 비밀을 활짝 터놓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만일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다면 그는 열쇠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 젊은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었고 그 시인의 제전에 관한 생생한 기억을 떠을렸다. 그 시인의 제전은 매년 신월 15일이면 안틸리즈 전역에 위세를 날렸으며 그는 항상 그 주인공 중의 한 명이었으나, 그가 한 대부분의 일은 베일에 가려진 일이었다. 그는 그 제전이 시작된 이래로 서너 번 그 경연에 참가했었으며 어떠한 칭찬의 말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상을 받겠다는 야망으로 그 경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그 경쟁 자체가 그에게는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첫회에 페르미나 다자가 봉투를 뜯어 수상자의 명단을 발표한 이래로 계속해서 그녀가 발표를 맡게 되었다. 구석진 곳에 앉아 떨리는 가슴으로 양복깃의 단추 구멍에 동백꽃을 꽃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 첫 제전이 있던 날 밤에 오래된 그 국립 극장의 무대 위에서 봉투를 뜯는 것을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보게 되었다. 그는 가슴 속으로 자신이 황금 난초상의 수상자라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가슴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하고 질문해 보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필체를 알아보리라고 확신했고, 그렇다면 그녀는 에반잴스 공원의 아몬드 나무 아래서 자수를 놓던 오후와, 편지에 끼워넣은 말린 치자나뭇잎의 향내, 바람부는 새벽녁의 화관을 쓴 여신의 왈츠곡을 생각해 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내 최고의 시인에게 수여되는 황금 난초상은 증국에서 이민 온 자에게 수여되었다. 사람들 중에서는 그 결정에 의문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으나 그 결정은 옳은 것이었으며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 시의 탁월함을 인정했었다. 그 상을 받은 작가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세기의 말쯤에 두 대양 간에 철로를 건설하던 중, 파나마를 휩쓴 황열병의 저주를 피해 그는 다른 수많은 중국인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해 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과 그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닮은 모습을 한 그들끼리 증국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수가 열 명을 넘지 않았고, 그들 중에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잡아먹을 수 있는 개를 데려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후 몇년 만에 항구를 끼고 있는 빈민가의 골목 4개가 통관 기록도 없이 스며 들어온 뜻밖의 중국인들로 넘쳐흘렀다. 그들 중 몇몇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빨리 성장했는가를 설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서둘러서 덕망 있는 족장으로 변신했다. 대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나쁜 중국인과 좋은 중국인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나쁜 부류는 부두를 따라 줄지어선 음침한 식당에서 왕처럼 먹다가 쥐고기와 해바라기씨의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 있던 탁자에서 갑자기 죽어버릴 것 같았으며, 백인 노예나 다른 많은 골칫거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좋은 부류는 건전한 정신을 물려받은 세탁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옷을 새것보다도 더 깨끗하게 세탁해서 막 풀을 먹인 듯한 옷깃과 소멧자락처럼 잘 다려서 갔다 주었다. 시인의 제전에서 72명의 대단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수상을 한 그 중국인도 역시 좋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당황한 페르미나 다자가 그 이름을 호명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중국인이 어떻게 호명되었는지에 대해 확실히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우승자인 중국인은 그들이 집에 귀가하면 입는 중국식 옷에 천사 같은 미소를 띠며 극장의 뒷쪽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우승할 것이라고 확신했음인지 4월의 행사에 상을 받기에 적합한 노란색 실크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는 18캐럿짜리 황금 난초를 받아들고 쉽사리 그 사실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 기쁨에 차 그것에 입 맞춤을 했다. 그는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으며 그는 신성한 사도처럼 무대의 중앙에 침착하게 서 있다가 분위기가 진정되자 입상한 시를 낭송했다.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의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가라앉으면 태연한 페르미나 다자가 그녀의 쉰 듯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그 시를 낭송하자, 그 첫 귀절부터 풍기는 놀라움이 위세를 떨쳤다. 그것은 순수한 고답파 시풍의 완전무결한 14행 시로서 그 시 안에는 명인의 작품인 것을 나타내는 감화의 숨결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가능한 단 한 가지 설명을 하자면 훌륭한 시 한편이 그 시인의 제전을 조롱하기 위한 웃음거리로 씌어졌으며 그 당사자인 중국인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그 비밀을 지키리라 결심했다. 전통 있는 일간지인 커머셜 데일리 지는 카리비안에 있는 중국인들의 고대 풍습과 문화적 영향에 관한 박식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를 혼동시키는 사설을 써서 우리 시민의 명예를 회복시키려고 시도했었다. 그 사설을 기고한 사람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그 14행 시를 쓴 작가였으며 그도 그것을 시인했고 '모든 중국인은 시인이다.'라는 제목으로 직접적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만일, 그러한 구상을 계획한 선동자가 있다면 그 비밀을 간직한 채 무덤에서 썩을 것이다. 그 중국인은 한 마디 고백도 없이 죽었고, 황금 난초와 함께 묻혔지만 그가 일생동안 원했던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지 못한 비통함을 간직했을 것이다. 그가 죽자 출판사들은 잊혀진 시인의 제전을 부활시키고자 그 14행 시에 현대적인 갖은 표현을 가미해서 출판했다. 하지만 그 시는 젊은 세대에게 너무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으며 누구나 그 시가 죽은 중국인이 쓴 것이라고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상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부유한 여자를 생각하면 수치스러움을 느졌다. 그는 그 행사의 처음부터 그녀를 주시해 왔지만 그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발표를 기대할 때는 그녀를 잊고 있었다. 그녀는 진주처럼 하얀 얼굴과 풍만한 여성미로 그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녀의 거대하게 높게 솟은 가슴은 인공적으로 만든 봉우리처럼 보였다. 그녀는 열정적인 까만 눈동자와 같은 색의 타이트한 까만 벨뱃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집시빗으로 목덜미쯤에 묵은 머릿결은 한층 더 까만색이었다. 그녀는 목걸이와 잘 어울리는 늘어 뜨리는 귀걸이와 반짝이는 장미송이 모양의 반지를 손가락 서너 개에 끼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뺨에 그린 점 하나가 한층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박수의 소란 속에서 그녀는 실망한 표정으로 플로렌티노를 바라다보았다. "전 당신이 뽑힐 줄 믿고 있었어요."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받은 위로에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전 당신의 옷깃에 꽃힌 꽃이 봉투가 개봉되는 순간 떨리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손에 있는 벨뺏으로 만든 목련꽃을 보이며 자신의 심정을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털어놓았다. "그게 바로 내 꽃을 떼어 버린 이유예요." 그녀의 눈에는 그의 패배 때문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야행성 여성 사냥꾼으로서의 직감으로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켰다. "우리가 함께 울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길까요?" 그가 말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쯤에 자정이 가까와서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그녀를 설득해서 자신도 집안에 들어가 브랜디 한 잔만 마시면서 그녀가 오는 도중에 말했던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십년 이상의 공식적인 사건에 관한 스크랩북과 앨범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낡은 수법이었지만, 국립극장에서 걸어오는 동안 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졌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처음으로 관찰한 것은 유일한 침실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으며, 그 침실의 침대는 크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누비 침대보가 깔려 있었고 머리판은 놋쇠로 된 나뭇잎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한 광경이 그의 마음을 혼란시켰으며 그녀가 거실을 가로질러 그 침실문을 닫은 것을 보면 그녀도 그것을 느꼈음이 분명했다. 그런 후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고양이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던 꽃무늬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며 그녀의 앨범들을 커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앨범의 사진들 보다는 그 다음 단계를 구상하며 그 엘범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기분이 풀릴 때까지 부끄러워하지 말고 실컷 울라고 말해 주었다. 우는 것보다 더 좋은 기분 전환은 없다면서 옷이 너무 꽉 끼는 것 같은데 편안하게 풀라고 일러주었다. 플로렌티노는 그녀의 몸통이 그녀의 등 부분에 서로 엇갈려 묶여 있는 끈 때문에 너무 꼭 끼인다며 서둘러서 그녀를 도왔다. 그는 그녀의 몸이 감싸고 있던 옷 밖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에 그 끈을 다 풀어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 그녀의 엄청난 가슴도 자유로이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심지어 안락한 분위기에서도 풋나기 같은 수줍음을 지닌 채 위험을 무릅쓰고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살며시 애무했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비틀며 버릇없는 어린애처럼 흥얼거리면서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곤 그는 똑같은 지점에 부드럽게 키스했으며 그녀가 욕정에 불타 그 거대한 몸집을 그를 향해서 돌렸기 때문에 두 번째 키스는 할 수도 없었고 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바닥에 굴렀다. 소파 위에 있던 고양이가 깨어 그들 위에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은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처럼 필사적으로 서로를 더듬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했고, 땀으로 젖은 옷을 입은 채 찢어진 앨범 위에 뒹굴었으며, 그들이 행하고 있는 격정적인 애정 행각보다는 고양이의 성난 발톱을 피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그날 밤을 시작으로 그들의 할퀸 상처에는 아직도 피가 맺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약 7년간 그런 애정 행각을 지속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그녀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있었고 그는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사라 노리에가였다. 그녀는 빈민들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집으로 상을 받아 젊은 시절의 15분 동안 명성을 누린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은 출판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공립학교의 도덕 선생님이었으며 오래된 갯세마네 구역의 잡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 주택의 한칸을 자신의 월급으로 빌려서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몇 명 있었지만, 아무도 결혼 의사는 없었다. 그 이유는 그 남자들로선 이미 잠자리를 같이 한 여성과 결흔한다는 것은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첫번째 공식적인 약혼자가 철없는 18세의 나이에나 어울릴 발광적인 열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다가 결혼식을 일 주일 앞둔 어느날 파혼을 하고 그녀에게 버려진 신부라는 낙인을 찍은 채 떠나버린 이후로는 결혼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런 여자를 중고품이라고 불렀다. 어릴적에 이미 그런 쓰라린 경험을 한 그녀는 결혼이나 하느님, 그리고 법에 대해서 초월한 나름대로의 신조를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침대에 남자가 없는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에게서 가장 좋아했던 점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는 그녀가 절정감을 느끼려고 어린 아이의 고무 젖꼭지를 빠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칫수와 모양, 색깔 등을 다양하게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젖꼭지를 수집하였고 사라 노리에가는 자신의 절정의 순간을 보이지 않고 그것들을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침대 머릿판에 그것들을 걸어놓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마찬가지로 사라 노리에가 역시 자유로운 몸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관계를 알아채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맨 처음부터 그것을 은밀한 모험으로 여겼다. 그는 거의 언제나 밤 늦은 시간에 뒷문으로 들어가서 새벽동이 트기 직전에 살금살금 몰래 빠져 나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플로렌티노 역시 그녀의 집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내부에서만 분리된 건물에서는 이웃들이 그런 관계를 눈치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행동은 단순히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여생 동안 관계한 모든 여성들과 만날 때면 늘 그렇게 은밀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나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 여자들의 비밀을 털어 놓지 않았다. 그는 과장도 하지 않았으며 단 한번이라도 수치스런 근거나 글로 쓰인 증거를 남긴다면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이리라는 것읕 잘 알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상 성실하지는 못해도 집요한 페르미나 다자의 영원한 남편인 듯이 행동했으며 페르미나에게 배신감을 안기지 않고 자신의 그러한 구속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려고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그러한 비밀스런 행동은 오해없이 지속될 수가 없었다. 그의 모친인 트란시토 아리자는 자신이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으로 기른 아들이 어린 시절의 첫 불행 때문에 어떠한 사랑에도 면역자가 되었다는데 죄책감을 느끼며 죽어갔다. 그러나 그와 매우 친숙했던 덜 호의적인 사랑이나 그의 신비스런 성격과 은밀한 여자 교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사랑에 면역이 된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만 면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품었다. 폴로렌티노 아리자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반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라 노리에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심지어는 사랑도 없이 쾌락만을 주고 받았던 그런 여자들처럼 사라 노리에가는 그냥 지나치는 남자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실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드디어 시간 제약 없이 그녀의 집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평온한 시간인 일요일 오전에는 꼭 찾아갔다. 그녀는 무슨 일을 하건 또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다 팽개치고 항상 그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 거대하고 신비스런 침대에서 그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그녀의 온몸을 내던졌으며 형식적인 호소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과거도 없는 독신녀가 남자를 그렇게 잘 알고 그 돌고래 같은 몸집으로 마치 물 속에서 해엄치듯이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녀는 실제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 상관 없이 사랑이라는 말로 자신을 엄호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여자였다. 그녀는, "알고 태어나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어요." 라고 말하곤 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어쩌면 겉으로 드러낸 것 이상의 과거를 지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번민했지만 그가 모든 여자들에게 말했듯이 그녀도 자신이 유일한 애인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동안 할퀴지 못하도록 고양이의 발톱을 사라 노리에가가 이미 제거했지만 침대에 그 사나운 고양이와 함께 노는 것을 플로렌티노는 가장 싫어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두 사람이 기진맥진할 때까지 침대에서 뒹군 후면 그녀는 남아 있는 애욕을 시의 예찬으로 풀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거리에서 소책자 형태로 2헨타보에 팔리던 감상적인 운문을 놀라울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벽에 핀으로 꽃아 놓고 원할 때면 언제나 큰 소리로 낭송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녀는 11음절로 된 2행 연구의 시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책으로 출판하는 데는 허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와 사랑의 행위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 시들을 암송했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린애의 울음을 멈추려 듯이 고무 젖꼭지 하나를 그녀의 입에 꽂아야만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무르익어 가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광폭한 침대와 평온한 일요일 오후 중 어느 것이 사랑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고, 사라 노리에가는 사랑이란 두 사람이 알몸이 되면 그것이 곧 사랑의 전부라는 사랑에 대한 단순한 논리를 주장했다. 그녀는 정신적인 사랑이란 허리 윗 부분에서, 그리고 육체적 사랑이란 그 아랫 부분에서 유래한다고 말했다. 사라 노리에가는 그 말이 분리된 사랑에 관한 시에 어울리는 정의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어떤 참가자도 그린 시를 쓴 적이 없다고 믿고 둘이 공동으로 그런 시를 써서 그녀가 제5회 시인의 제전 때 출품을 했으나, 또다시 탈락하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를 집에 바래다 주는 동안 그녀는 줄곧 분통해 했다. 그녀는 설명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신의시가 최고상을 받지 못하도록 구성을 잘못했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시상식 이후로 침울한 기분에 잠겼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페르미나 다자가 그날 밤에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첫눈에 그녀가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실 그에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의 아들이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 엄마로서의 연령이 그날 밤처럼 그에게 명백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녀가 수상자의 명단을 발표하려고 단상으로 걸어나올 때의 그녀의 굵어진 허리와 쳐진 듯한 가슴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플로렌티노는 사라 노리에가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시인의 제전에 관한 앨범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잡지에 실렸던 칼라 화보와 상가에서 기념품으로 팔던 엽서 등을 보았으며 그것은 자기의 인생에 있어서의 잘못된 생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플로렌티노는 세상은 변하는 것이며 관습과 스타일 역시 변화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면 페르미나 다자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그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의 인생도 많이 흐른 것을 처음으로 느낀 그날 밤은 자신의 인생도 다른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기다림 속에서 많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이 창백해지지 않고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페르미나 다자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싫증나도록 앨범을 보아도 그에게 그날 밤은 사라 노리에가가 깜짝 놀랄 이야기를 태연스럽게 했다. "그녀는 매춘부예요." 사라 노리에가가 말했다. 그녀는 가장 무도회에서 흑표범 가면을 쓴 페르미나 다자의 사진을 보면서 플로렌티노의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여자의 이름이 누구인지는 플로렌티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이 밝혀지는 듯한 두려움에서 플로렌티노는 서둘러서 조심스럽게 자신을 방어했다. 그는 자신이 멀리서만 페르미나 다자를 보았을 뿐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어디에서건 그녀는 존경받고 칭찬받는 훌륭한 여성으로 알고 있다고 사라 노리에가의 말을 반박했다.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돈 때문에 결혼을 했어요." 사라 노리에가가 끼어들었다. "가장 저질적인 매춘부죠." 플로렌틱노의 어머니도 그 정도는 약했지만 같은 도덕적인 면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플로렌티노의 불행을 덜어주려고 노력했었던 것이다. 핵심을 찌르는 듯한 사라 노리에가의 반격에 플로렌티노는 적절한 응답을 찾지 못해 그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라 노리에가는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는 그것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직감으로 그녀는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이 받아야될 상을 뒷전에서 공모하여 다른 사람이 받도록 한 주범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는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그둘은 서로 알지도 못하며 만난 적도 없고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렌티노와는 은밀한 사이라 하더라도 그런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사라 노리에가는 말을 덧붙였다. "여자들은 그런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되죠." 그리곤 그 논란의 끝을 맺었다. 그 순간부터 플로렌티노는 사라 노리에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세월의 흐름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풍부했던 섹시한 매력은 볼품없이 시들어가고 잠자리에서의 흐느낌도 역겹게 느껴졌으며 그녀의 눈언저리는 나이든 여성임을 나타내듯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녀는 어제의 꽃이었지 지금은 아니었다. 그 시인의 제전에서 상을 놓쳤듯이 그녀는 자신의 매력도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날 밤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이 덥혀 온 코코낫 빵을 먹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출품했던 시를 위해 두 사람이 얼마나 헌신했으며 그 황금 난초상이 자신들에게 수여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즐겨본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플로렌티노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달라진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심한 언쟁에 휠말렸으며 약 5년간의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다. 11시 50분쯤에 사라 노리에가는 시계 밥을 주려고 의자 위로 올라서서 시간을 12시 정각에 맞추었다. 그것은 마치 플로렌티노에게 빨리 그곳을 떠나 달라는 뜻을 암시하는 것과 같았다. 플로렌티노도 마침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으며, 항상 그래왔듯이 그렇게 할수 있는 계기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사라 노리에가가 자기에게 침대로 가자고 요청하길 기대하며 그럴 경우 이젠 모든 것이 끌났다고 말하려고 그녀가 시계 밥을 주고나자 자기 옆에 앉으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러자 플로렌티노는 브랜디에 젖은 자신의 집게 손가락을 뻗어 항상 섹스 이전에 그녀가 하길 좋아했듯이 그것을 빨 수 있도록 했으나 그녀는 그것도 거절했다. "지금은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누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까요." 페르미나 다자에게 거절당한 이래로 지금까지 플로렌티노는 그러한 경우의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은 끌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모든 것을 참고, 여자는 한번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그 남자가 매번 그녀의 열정을 어떻게 감동시키는가를 아는 한 남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계속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 그는 그러한 신조 때문에 그런 추잡한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참고 견디어 어떤 여자에게도 그러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은 너무 창피할 정도로 브랜디 한 잔에 취해 버린 채 모든 화풀이를 늘어 놓고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두 사람은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라 노리에가와의 관계는 5년 동안 그의 유일한 애정 행각은 아니었지만, 가장 길고 안정된 것이었다. 플로렌티노는 자신이 무엇보다도 잠자리에서 그녀와 함께 행복을 느졌지만 그녀 역시 페르미나 다자의 자리를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또다시 고독한 밤거리의 사냥꾼으로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역량을 키워 나갔다. 그렇지만, 사라 노리에가는 그에게 일순간이나마 기적적인 치료를 해준 장본인이었다. 이제 그는 최소한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페르미나 다자를 찾으려고 거리를 헤매거나 그녀가 있지도 않은 장소에 쓸데없이 가보거나 그녀를 볼 때까지는 풀리지 않는 마음 속의 흥분을 갖고 있거나 할 필요없이, 그녀를 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잠시라도 그녀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는 그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라 노리에가와의 헤어짐은 그의 잠자고 있던 슬픔을 일깨워 그는 다시 한 번 에반잴스 공원에서의 오후에 끝없이 독서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그의 필연적인 욕구인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더 그 정도가 악화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랫동안 자신이 과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를 품어오고 있었고, 그 여자도 분명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마음대로 준비를 해 왔는데 그것은 고독한 사냥꾼으로서 수많은 일을 겪어보니 이 세상에는 행복한 과부들로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과부들이 자기 남편의 시체 앞에서 미칠 듯이 통곡하며 남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같은 관에 묻히길 애원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웅하고 만족해 하면서부터는 새로운 생명력으로 더욱 잘 살아나가는 것올 보아 왔다. 그 과부들은 커다란 빈집에서 어둠속의 기생충과 같은 삶으로 시작해서 그 집 하인들과 막역한 사이가 되고 베개를 애인 삼아 지금까지의 천박한 포로생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 과부들은 전에는 하지 못했던 죽은 남편의 옷에 단추를 달거나 다림질을 깨끗이 해서 항상 새것처럼 보존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적절히 보낸다. 그들은 욕실에 남편이 쓰던 비누를 항상 비치해 두고 침대에는 남편의 베갯잇을 짜놓으며 식탁에는 항상 그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불시에 남편이 살아서 돌아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 놓는다. 하지만 그러한 고독한 미사와 같은 생활 속에서 그들은 남편의 성을 딴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이름이 불려지는 경우에는 자신만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일깨우게 되고 더 이상은 한 남자에게 귀속된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르는 남자와의 산만했던 사랑이 얼마나 지루한 것이었나를 알게 되지만, 그 남자가 죽을 때까지 마치 어린애처럼 그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매일 아침 출근하여 현실과 직면해야 하는 남편의 기분 전환을 위한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모든 것을 가져다 줄 듯한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 자들이 바로 그런 여자들이다. 그것이 바로 과부들의 인생이었다. 만일,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뭔가 분리된 또 다른 인생과 같은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근심 걱정을 회복하려고 과부들은 보다 명예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데 그것은 몸이 느끼는 대로 배고플 때 먹고 거짓 없는 사랑을 하며 외설스런 공상에서 벗어나려고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고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밤새 침대보다 밤의 고요와 투쟁하여 자신의 꿈이 달성될 때 지친 몸으로 홀로 깨어날 필요가 없었다. 집요한 사냥을 다니던 새벽 녁에 플로렌티노는 과부들이 어깨에 새까만 천을 두르고 새벽 6시 미사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를 보자마자 새벽넉의 희미한 불빚 아래서 거리를 건너 작은 새의 총총걸음과 같은 바쁜 걸음으로 남자와 가까이 걷는 것이 자신들의 명예에 흠이나 되는 듯 사라지곤 했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플로렌티노는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그런 슬픔에 잠긴 과부들이야말로 내부에 행복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과부 나자렛 이후에 그의 인생에서 겪었던 그렇게 많은 과부들이 플로렌티노에게 그들이 남편이 죽은 후에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꿈이었던 것이 그가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그들에게 플로렌티노는 마음 속으로 감사했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만이 다른 과부들과 달라야 한다는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으며 그녀의 죽은 남편에 대한 죄의식 없이 자신에게 닥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행복의 갑절이나 되는 행복을 찾아서 매일 더욱더 기적적이고 생동적인 사랑의 추구로 다른 모든 사랑은 그녀에 대한 사랑에 포함시켰으며 그 사랑만이 죽을 때까지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 다자가 세상을 알기 시작하고 불행을 제외한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자신의 그러한 환상적인 계산이 터무니 없는가에 대한 조금의 의심이라도 가졌다면 그렇게 열정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자들이 많은 이득을 누리던 그런 시절에는 물론 손해도 있기는 하지만 세상 사람의 절반 이상은 그렇게 부유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부를 갈망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동정심의 위기를 순간적으로 극복하고 성숙한 태도로 플로렌티노를 거절했으나,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데 대해서는 전혀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당시에는 자신의 이성 뒤에 감추어진 어떤 충동이 자신에게 그러한 통찰력을 갖게 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중년기에 접어 들면서는 플로렌티노와의 대화도 나누어 보지 않고도 그것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들은 한창 성업중인 카리비안 해운회사의 후계자가 플로렌티노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를 여러 번 만나서 거래도 했었지만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페르미나 다자가 겪은 무의식적인 동기의 발각이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그는 마치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같아요." 그것이 바로 플로렌티노의 실제 모습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그림자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정반대인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끈덕진 청혼을 거부하는 동안 자신이 죄를 진 것 같은 환상 때문에 고통을 겪었었다. 그녀는 그러한 고통이 자신에게 닥치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양심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페르미나 다자는 어릴 때부터 부엌에서 접시가 떨어져 깨지면 문 틈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은 채 그곳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어른을 실망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비난했다. "이건 당신의 잘못이에요." 사실상 그녀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 누구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 했었다. 그 고집은 너무나 악명이 높아서 우르비노 박사도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가정의 조화를 크게 위협하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감지하자마자 자기 아내에게 서둘러서 말했다.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내 잘못이었소." 그는 자기 아내의 갑작스런 절대적인 결정을 가장 걱정했으며 그러한 것은 항상 죄의식에서 시작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녀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거부함으로써 생겨난 그 혼란은 위로의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달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아침이면 발코니에 나가 그 황량한 에반젤스 공원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독한 환상을 그리워했다. 그녀는 그가 머물렀던 나무와 그가 자신을 생각하면서 앉아 책을 읽던 벤치를 바라보았으며, 그녀는 창문으로 더 가까이 가서 크게 한숨지었다. "불쌍한 사람 !" 이미 지나간 과거를 보상하기엔 너무 늦었으며 심지어 그녀가 추측했던 것처럼 그가 그렇게 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 의한 환멸로 고민했으며, 때로는 오지도 않는 편지를 뒤늦게마나 기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가 쥬베날 우르비노와의 결혼을 결정해야만 했을 때에는 자신이 플로렌티노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한 이후에도 그를 좋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굴복하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만큼도 우르비노 박사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그의 편지 역시 플로렌티노의 편지만큼 열정적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감동도 주지 못했었다. 즉, 쥬베날 우르비노의 옷은 결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입혀질 수 없었으며 이상스럽긴 하지만 그와 같은 호전적인 천주교 신자는 그녀에게 오직 세속적인 상품들만을 제공하려고 했다. 그것은 안정, 명령, 행복 등등이었으며 그것들이 합치면 사랑과 닮을 수도 있고 또 사랑과 거의 같아질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 사랑은 아니었다. 이러한 의혹 때문에 그녀의 혼란은 가증되었으며 그녀는 당시엔 그 사랑이야말로 자신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어떻든 우르비노 박사에게 대항하는 주된 요인은, 로렌쪼 다자가 자기 딸을 위해 그렇게나 원했던 이상적인 남성과 그가 너무나 닮았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그를 아버지와 닮은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었으며 그가 자발적인 의료 방문으로 그녀의 집에 잠시 들렸을 때 그를 본 이후론 그러한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결국 사촌 언니 힐데브란다와의 대화가 그녀를 혼란시켰다. 힐데브란다는 자신의 희생물과 같은 처지 때문에 로렌쪼 다자가 그녀의 방문을 주선해서 페르미나 다자에게 우르비노 박사 편에 서서 이야기를 잘해 보라는 것을 잊은 채 플로렌티노의 편을 들려고 했다. 하느님만이 페르미나 다자가 전신국으로 플로렌티노를 만나려고 갔을 때 그녀의 사촌 힐데브란다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 페르미나 다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고 계실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심스러운 점읕 그에게 제시하고 그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으며 그를 보다 잘 파악해서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항하는 사적인 전쟁에서의 항복이 되지 않도록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일생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그 순간에 구혼자의 멋진 외모나 엄청난 부, 그의 명예나 수많은 장점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운명에 따라야만 하는 개인적으로 제한된 시간인 스물한 번째 생일이 임박함에 따라 그 곤궁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 일순간은 그녀에게 신이나 인간이 법률에서 예견했던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의혹은 모두 사라지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도 없이 눈물도 보이지 않은 채 플로렌티노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었고, 한창 때 철없이 굴었던 기억조차도 완전히 잊어 버릴 수가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는 것은 평상시보다는 조금 더 깊은 한숨이 전부였다. "불쌍한 사람 !" 그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가장 두려운 의심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가방을 열려고 했을 때 가구의 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가 예전의 마르코 카살듀에로의 궁전의 귀부인이나 황후처럼 보이고 싶어서 가지고 온 11개의 금고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된 집안의 죄수가 된 듯한 치명적인 현기증을 느꼈으며 그보다 더한 것은 죄수가 아닌 남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의혹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상태였던 6년간 지속되었고, 당시 그녀는 시어머니인 도나 블랑카의 냉혹함과 수녀원의 방이 이미 차 있어서 수녀가 되지 못한 시누이의 정신적인 무감각 때문에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혈통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요청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신의 가호와 아내의 무한한 능력이 그러한 상황을 해결해 주리라 확신했다. 그는 한 때는 가장 회의적인 상태에서도 살고자 하는 활기에 넘쳤던 자기 어머니의 침체되는 성격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 아름답고 지성적이며 주위에는 그렇게 흔치 않은 인간적인 면을 갖추고 약 40여 년 간을 정신과 육체의 낙원을 누려온 사람이 바로 우르비노 박사의 어머니였다. 과부생활이 얼마나 쓰라렸던지 그녀는 예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과부 생활은 그녀를 무기력하고 심술굿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녀가 쇠약해지는 단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바로 그녀의 남편이 그녀만을 위한 희생이 필요할 때 그녀가 오합지졸들이라고 부르는 불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데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여하튼 페르미나 다자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신혼 여행까지만 지속되었고 최후의 파탄을 막는데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힘에 눌려 무기력하게 되어 버렸다.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죽음의 함정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한 것은 우둔한 시누이나 반쯤 미친 시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남편인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였다. 그녀는 남편의 직업적 권위와 세속적인 매력 뒤에 숨은 그러한 면을 알아차린 것이 너무 늦었으며 그녀가 결혼한 그 남자는 무기력한 인간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가문의 사회적 비중으로 뻔뻔스럽게 만들어진 불쌍한 악마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갓 태어난 아들에게서 위안을 구했다. 그녀는 아들에게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안도감을 느꼈으며 태내에 있던 아기를 산파가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 주었을 때, 피로 범벅이 된 채 목에는 탯줄이 감겨 있는 것을 본 이래로 자기가 아들에게 손톱만큼의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스스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집안에서의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아들을 이해하는 법을 익히고 아들도 어머니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애정이 형성되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게 된다는 큰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들을 제외한 그 집안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녀는 공원 묘지와 같은 창문도 없는 방에서 엄청난 시간을 탕진하며 고독감에 침체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매일밤마다 옆방의 수용소 같은 곳에서 들려오는 미친 여자들의 괴성 소리에 그녀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 집 식구들이 매일 수놓아진 연회식탁을 차리고 은접시와 장례식용 큰 촛대를 세워놓고 5명의 유령이 정찬을 하는 그 관습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는 낯선 식사 예절과 은 접시를 드는 방법, 마치 거리의 여자 같은 신비스런 걸음걸이, 서커스의 곡예사 같은 옷차림 등을 혐오했으며 심지어 자기가 남편에게 대하는 거친 태도와 망토로 가슴도 가리지 않고 아기를 돌본다는 데 대한 심한 질타에 환멸을 느졌다. 페르미나 다자가 처음으로 손님들을 초대해서 최고급 케익과 꽃모양의 캔디를 준비해 놓고 최근의 영국식 옷을 입고 나타나자 도나 블랑카는 그런 것을 이 집안에서는 내놓을 수 없다며 모든 음식을 치우고 대신 초콜렛이 섞인 오래 묵은 치즈와 둥근 빵조각을 내어놓았다. 심지어는 꿈 이야기조차도 도나 블랑카의 관심 밖이었다. 어느 날 아침 페르미나 다자가 알몸인 낯선자가 잿가루가 휠날리는 궁전의 응접실을 걸어가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도나 블랑카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점쟎은 여성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 법이다." 항상 다른 누군가의 집에 있다는 기분은 그녀에게 있어서 더욱 큰 두 가지 불행을 안겨 주었다. 한 가지는 도나 블랑카가 자기 남편을 존경하는 의미로 변경하길 꺼리는 거의 매일 먹는 다이어트 가지 요리를 페르미나 다자는 거부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가지 요리를 몹시 싫어했었고 심지어는 맛도 보기 전에 보기만 해도 가지의 색깔이 독을 칠한 것처럼 생각되어 진저리가 나곤 했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보다 나은 생을 위해 이 경우엔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5살때 이미 식탁에서 가지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6인분 몫의 가지 요리를 그녀에게 억지로 먹였었다. 그녀는 처음엔 구역질을 하고 그 다음엔 그 치료로 식용유를 한 컵 들이마시는 바람에 금방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두 가지 모두가 그녀에겐 독을 마시는 듯한 두려움으로 기억에 생생했으며 카살듀에로의 궁전에서의 점심 식사때는 메스꺼움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또 다른 불행은 하프가 원인이었다. 어느 날, 도나 블랑카는 매우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난 교양 있는 여성이 피아노도 칠 줄 모른다는 것을 믿을 수 가 없구나." 그것은 그녀의 아들 역시 논쟁을 했던 것이었지만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어린시절 전부를 노예 생활과 같은 피아노 레슨으로 보냈으며 성인이 된 지금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구속성 띤 명령과 같았다.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 아내의 성품으로 그것도 25세의 나이에 그런 똑같은 벌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가 그의 어머니와의 미숙한 논쟁을 통해 억지로 얻어낸 유일한 양보란 다름이 아니라 피아노 대신에 천사의 악기라 불리우는 하프를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금으로 된 것처럼 번쩍거리고 또한 그만큼 훌륭한 소리가 나는 굉장한 하프를 비엔나에서 사들였으며 그것은 시립 박물관이 모두 불타서 그 안의 소장품들이 전부 소각되어 버릴 때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치르는 희생이라고 마음먹고 그 주장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는 몸팍스에서 특별히 초청한 훌륭한 선생에게서 하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프 선생이 2후일 후에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그후 몇년 동안 신학교의 최고 음악가에게 계속해서 하프 연주를 익혔는데 무덤 파는 사람한테서 나는 것 같은 그의 숨소리가 오히려 하프 연주를 망쳐 놓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복종심에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이나 한때 사랑을 나누던 당시 그녀의 남편과의 조용한 논란에서도,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세계의 관습과 편견의 혼란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적응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을 나타내는 관례적인 어구를 내뱉곤 했었다. "바람이 불 때 환풍기를 없애 버려라."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신중하게 택한 특권과 당황과 멸시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리 굴욕적인 상황이라도 참고 견디어 나가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하느님께 한 번도 자신을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는 도나 블랑카에게도 동정을 베푸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마치 교회와의 문제거리가 있는 듯이 무거운 어조로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시켰다. 그는 자기 아내와의 어려움이 집안 분위기의 악화로부터 비롯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무한한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엮어지는 모순된 제도인 결혼 생활 그 자체의 탓으로 돌렸다. 결혼이라는 것은 모든 과학적인 증거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유사점도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성격과 성장 과정,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라는 다른 성을 가진 채 어느 날 갑자기 같이 살게 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며 서로 다른 방향의 운명을 억지로 공유하려는 그런 비 과학적인 모순이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결혼 생활의 문제점은 섹스를 한 후 매일 저녁에 끝이 나고 아침 식사 전에 매일 아침 다시 생겨난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결혼 생활 증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그들의 결혼이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아직도 계급 사회 신분이 남아 있는 도시의 서로 반대되는 계급의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두 사람을 엮어주는 유일한 끈이 있다면 변덕스러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결혼할 당시에는 그런 것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고 그들이 그런 사랑을 어떻게 만들어 보고자 했을 때는 이미 현실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과도 접촉이 불가능한 운명에 처해져 있었다. 그것이 하프와 관련된 시절에 그들이 직면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논쟁과 독과 같은 가지, 그의 정신착란 상태의 여동생과 그들을 괴롭히는 어머니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그가 목욕할 때 우연히 그녀가 욕탕에 들어왔을 때 그녀에게 비누질을 해 달라고 부탁할 만큼 그는 아직도 그녀에 대한 충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패르미나 다자는 유럽에서 간직했던 조금 남아 있는 애정으로 그에게 비누질을 해 주었고, 두 사람은 스스로를 비난하며 원하지도 않으면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말이 없이도 서로를 갈망하며 마침내 세탁장에서 하녀들이 그들에 관해서, "만일 그들이 앞으로 아이를 더 갖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이 섹스를 하지 않기 때문일 거야." 라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비누 향기와 함깨 욕실바닥에서 튕굴었다. 그들은 때때로 격렬한 축제가 골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문 뒤에서 서로를 부켜 안고, 회고의 정을 못 이긴 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엄청난 희열을 맛보았고, 약 5분 동안만은 다시 한 번 신혼 여행 때의 격렬한 사랑 행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 중 한 사람은 항상 잠자리에 들 때가 되면 나머지 한 사람에 비해 훨씬 지쳐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욕실에서 빈등거리며 향수 냄새가 나는 종이에 담배를 말아서 혼자 피웠고, 그녀가 결혼하기 전 자신의 침대에서 자유롭게 했던 자신의 육체에 대한 위로의 애무를 재행하곤 했었다. 그녀는 항상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모르나 두통을 느꼈고 졸린 것처럼 멍청해지기도 했다. 그것은 주기적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고백이 아닌 자신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서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수업 시간에 그렇게 여러 번 말을 꺼낸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 10년이 지난 여성은 일주일에도 세 번 이상씩 그 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험난한 시절 가운데서 설상가상으로 페르미나 다자는 언젠가 겪어야만 될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에 싸인 거래에 관한 진실이었다. 그 지방의 행정관은 쥬배날 우르비노를 자신의 사무실로 소환해서 장인의 월권 행위에 관해서 한마디 문장으로 요약을 했다. "인간이건 신이건 간에 이 사람이 무시하지 않은 법률은 한 가지도 없읍니다." 로렌쪼 다자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사실은 사위의 권위의 엄호 하에서 수행이 되었었고, 그의 사위인 쥬베날 우르비노와 딸인 페르미나 다자가 그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은 모든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자신의 무게있는 말로 무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로렌쪼 다자는 첫번쫓 떠나는 배로 그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향수에 젖어 가끔 모국으로 여행을 떠났었듯이 떠났으며 그의 뒷모습에는 뭔가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는 모국에서 온 배에 그의 고향 마을의 빗물로 채워진 물탱크에서 물 한 잔을 마시려고 올랐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팔이 뒤로 묶이지도 않은 채 편안히 떠났으며 지금까지도 자신이 사위의 정치적 음모의 희생자라는 것을 밝히려 하고 있었다. 그는 결혼한 이래로 그가 페르미나 다자라고 불러온 딸과 손자, 그리고 그런 의심쩍은 거래의 바탕 위에서 자신이 부자가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며 자신의 딸을 우아한 여성으로 변신케 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갖추게 했던 그곳을 등지면서 통곡을 했다. 그는 늙고 병든 채 떠났지만 그로 인해 손해본 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억제할 수 없었으며 질문을 피하려고 상복도 입지 않았었지만 왜 자신이 스스로 담배를 피우고자 욕실 문을 잠근지도 알지 못한 채 벙어리 같은 분노로 몇달 동안을 욕실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통곡이었다. 그들의 상황에 있어서 가장 모순적인 요소는 바로 그런 비참한 시기에 그들이 대중들 앞에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전통적인 규범에 대한 위반이라는 이유로 보다 현대적이고 달라 보이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주위의 적으로부터 그들이 완전한 승리를 쟁취한 때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페르미나 다자에겐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익숙지 못했올 때는 그렇게 많은 의혹을 야기시켰던 이런 세계의 생활은 단지 격세유전하는 계약, 진부한 의식, 미리 예정된 대화의 체제에 불과했으며 그런 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살인을 범하지 않으려고 서로를 접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질 없는 행위의 천국에서 압도적인 것은 알려지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공적인 생활에 있어서의 문제는 테러를 극복하는 것이며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문제는 지루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라고 단순하게 정의했다. 그녀는 그러한 갑작스런 발견을 자신의 끊임없는 신부 훈련에 이끌려 다니면서 명백히 느꼈다고 상류 사회의 모임에 가입했을 때 그런 엄청난 발언을 했었다. 그곳의 분위기는 많은 꽃들의 뒤섞인 향내와, 훌륭한 왈츠곡 속에서 외부로부터 그들에게 닥친 위험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보며 땀 흘리는 남성과 전율하는 여성들로 추잡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주위를 돌아다보고 자신의 적들은 증오로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마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이미 행했듯이 그들을 놀라게 한 것보다 더한 것은 그녀가 그들이 그녀를 알고자 한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관용을 배풀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원했던 도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고, 더 낫거나 나쁜 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지저분한 상인들, 그리고 마차 운전수들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항상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실제로 무엇이 있고 없고 때문이 아니라 파리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에게 대항하는데 쓰여졌던 공격 수단을 사용하였는데 그의 수단은 보다 많은 지식과 정확한 엄숙함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든 방면으로 두루 이용되었다. 전시회, 시인의 제전, 예술적 모임, 자선 바자회, 애국 기념행사 등도 그러한 그의 무기가 없었다면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위해 그곳에 존재했고 항상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주선해왔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그렇게 불행했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 부부처럼 행복하고 조화를 이룬 결혼 생활을 누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페르미나 다자에게 남겨준 집은 시집 식구들의 질식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서 빠져 나가자 마자 은밀하게 에반젤스 공원으로 가서 그곳에서 새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학창 시절이나 화실에서 사권 옛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것이 배신감에 대한 순진한 대처법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소녀적 기억을 되살려 주는 주위 환경에 둘러싸여 조용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녀는 향기 나는 까마귀를 치우고 그 자리에 거리에서 구해온 고양이들을 놓았으며 이젠 늙고 류마티즘으로 고생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집안일을 돌볼 수 있는 갈라 플라시디아가 그 고양이들을 돌봤다. 그녀는 플로렌틱노가 자신을 최초로 보았고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그녀의 병을 진찰하려고 그녀에게 혀를 내밀어 보라고 했던 조그만 방의 문을 열고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 어느 겨울 오후 그녀는 세찬 바람이 불어 발코니 문을 닫으려고 그곳에 갔다가 그 에반젤스 공원의 아몬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보았다. 그는 당시에 자기 아버지 옷을 자기에게 맞도록 고쳐 입고 무릎 위에 책을 편 채로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여러 번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러한 상상이 죽음의 예언이 아닌가 두려워했으며 비탄에 잠겼다. 그는 마음 속으로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함께 였다면 더욱 행복했을 거라고 고백했으며 그와 단둘이 그 집에서는 그의 집에서 자기를 위해 그가 사랑을 비축해 놓은 것만큼의 사랑을 자신도 그를 위해 비축해 놓을 수 있었으리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가정은 그녀를 낙담케 했다. 그 이유는 현재 그녀가 처한 극도의 불행한 상태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힘을 모아 남편에게 자신과 직면해서 핑계 없이 이야기하도록 만들고 논쟁을 하며 새벽 첫 닭이 울고 그 대저택의 레이스 커튼 사이로 헷빚이 새어들어오고 해가 뜰 때까지 천국올 잃은 분노로 그녀와 함께 울도록 만들었고 너무 많은 말과 수면 부족으로 지친 그녀의 남편은 너무 많은 흐느낌으로 독한 마음을 먹고 신발끈과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녀에게 좋다고 말하고 그들이 유럽에서 상실했던 사랑을 내일부터 영원히 추구하자고 말했다. 그것은 그의 재산 관리인인 트레져리 뱅크와 상의해서 내린 확고한 결정으로 모든 가족의 흩어져 있는 재산, 즉 모든 사업체와 투자금, 장기 예금 등을 모조리 정리해서 조금씩 외국의 그의 구좌에 저축을 해서 이 거친 나라에서 그와 아내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도록 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의 남핀과 아이를 데리고 황금 말들이 끄는 마차로 부두에 도착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프랑스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두에 있었다. 그는 공식적인 식장에서 그들을 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들은 이미 누가 보나 성인이 다 된 아들을 데리고 떠나려는 중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그의 모자를 벗어 반갑게 플로렌틱노 아리자에게 인사했다. "우리는 플랑드르(현재의 벨기에)를 정복하러 갑니다." 페르미나 다자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모자를 벗어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일찍 벗겨진 그의 대머리를 한치의 동정심도 없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그가 바로 그곳에 있었지만, 그는 바로 그녀가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의 그림자였다. 당시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도 최적의 시기는 아니었다. 갈수록 쌓여가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그의 은밀한 사냥에의 권태와 어머니의 위독한 건강 문제로 그의 마음은 거의 텅빈 상태로 어떤 회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독서를 하고 있는 그에게 와서 그를 놀라게 하는 질문을 할 지경에까지 병세가 악화되었다. "넌 누구 아들이니 ?" 그는 항상 사실대로 웅답했지만 트란시토 아리자는 주저없이 다시 그를 귀찮게 했다. "그렇다면 난 누구인지 말해 보겠니 ?" 그녀는 그렇게 묻곤 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해졌으며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전당포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화려한 옷과 장식으로 멋을 부리며 그녀는 잠을 매우 적게 잤으므로 다음날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깨어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꽃 장식을 하고 입술을 칠하고 얼굴과 팔에는 분을 바르곤 했으며, 누구건 그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난 누구지 ?" 이읏 사람들은 그녀가 항상 똑같은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어린 로치에 마르티네즈에요." 그 신분은 어린애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로부터 도용한 것이었는데, 그 이름이 그녀가 만족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는 종이꽃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눈 위에는 보라색, 입술에는 붉은색 얼굴에는 창백한 흰색을 완전히 다시 입힐 때까지 긴 분홍색 깃털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리곤 다시 가까이 있는 누구에게나 물었다. "난 지금 누구지 ?" 그녀가 이옷들간에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플로렌티노는 하룻밤 만에 그 낡은 전당포의 계산대와 서랍들을 철거하고 길쪽으로 난 문을 봉하여 그녀가 좋아하는 로치에 마르티네즈의 침실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아 다시는 그녀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지 못하게 했다. 레오 삼촌의 제안으로 그는 어머니를 돌볼 나이든 여성을 구했지만, 그 여성은 깨어있는 때보다는 졸고 있을 때가 더 많아서 그녀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시각부터 어머니를 재울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그는 상업 회관에서 더 이상 도미노 게임을 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그가 지속적으로 만나 왔던 여자들에게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올림피아 줄레타와의 끔찍한 만남 이후로 그의 가슴 속에서도 심각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림피아 즐레타와의 사건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건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사람도 휠청거릴 정도의 어느 10월달의 폭풍이 심하던 날 레오 삼촌을 막 집으로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마차 안에서 수녀복 같은 옷차 림을 한 가날프고 민첩한 여자를 보았다. 그는 그녀가 황급히 반대편 길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이유는 바람 때문에 그녀의 파라솥이 날려서 바다 쪽으로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를 마차에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녀의 집은 탁 트인 바다와 마주보고 있는 개조한 낡은 외딴 집이었고 거리에서도 보이는 그 집의 안뜰에는 비둘기가 가득 차 있는 비둘기 집이 있었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도중에 그녀는 시장에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파는 한 남자와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안되었다고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가끔 그의 회사 배 위에서 수요가 많은 잡다한 물건을 상자에 펴 놓고 어머니들이 어린애들에게 자주 사 주는 수많은 비둘기들을 새장에 넣어서 같이 팔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올림피아 즐레타는 까다로운 부류에 속하는 여인으로 보였다. 그것은 그녀의 튀어나온 궁둥이와 빈약한 가슴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지닌 모든 면으로 보아 내린 인상이었다. 그녀의 철사줄 같은 머리카락, 주근깨, 둥그렇고 활기찬 보통사람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눈동자와 지적이고 재미있는 말만 하는데 사용되는 그녀의 멜로디 같은 목소리에서 그러한 면을 엿볼 수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매력적이라기 보다는 재치있게 생각되었고 그녀가 남면과 시아버지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집을 나온 이래로는 곧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며칠 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남편이 부두에서 짐을 풀어놓는 대신에 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때 들려오는 배의 고동소리가 마치 그의 귀에 악마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날 오후에 레오 삼촌을 집에 모셔다 드린 후 그는 마치 우연인 것처럼 올림피아 줄레타의 집 앞을 지나치면서 시끄러운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그녀를 담장 너머로 바라보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마차에서 그녀를 불렀다. "비둘기 한 마리에 얼마죠?" 그녀도 그를 알아보고는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파는 것이 아니예요." 그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비둘기를 한 마리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계속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그녀는 응답했다. "폭풍 속에서 길 잃은 비둘기를 발견했을 땐 그 비둘기도 새장으로 되돌려 보내줘야 해요." 그래서 플로렌티노는 올림피아 줄레타로부터 감사의 선물로 받은 쇠로 된 반지를 발에 찬 전서 비둘기를 들고 밤에서야 집에 도착했다. 다음 날 오후, 바로 저 녁 식사 시간쯤 그 아름다운 비둘기 애호가는 자신이 선물로 준 전서 비둘기가 비둘기장 안에 있는 것을 보고는 도망쳐 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비둘기를 들어 살펴보니 그 발에 낀 반지에 종이가 한 장 끼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포고문이었다. 그것은 플로렌티노가 글로 써서 남긴 첫번째 증거였으며 이 경우에도 자신의 서명은 하지 않을 만큼 신중을 기했다. 그가 그 다음 날인 수요일 오후에 집으로 귀가할 때쯤 한 소년이 그 비둘기를 새장에 넣어 가지고 와서 그녀의 말을 전했다. 그것은 앞으로는 새장문을 잘 잠궈서 비둘기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이렇게 돌려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비둘기가 가는 도중에 쪽지를 잃었거나 아니면 그녀가 일부러 모른 체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가 다시 그 비둘기에 쪽지를 써서 보낼 수 있도록 비둘기를 되돌려 준 것으로 헤석할 수도 있었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그녀에게 회답과 함께 그 비둘기를 돌려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심사숙고한 끝에 토요일 아침에 또 다른 서명을 하지 않은 편지를 비둘기에 끼워 날렸다. 이번에는 그는 다음 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날 오후 똑같은 소년이 다른 새장에 그 비둘기를 넣어 가지고 왔으며 지난번에는 예의상 돌려 보냈지만 이번에는 동정심에서 되돌려 준 것이니까 앞으로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절대로 되돌려 주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을 전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그 비둘기를 새장에서 꺼내어 팔에다 안고 늦은 시간까지 데리고 놀았으며 동요를 부르며 그 비둘기를 달래 잠재우려고 했다. 그때 플로렌티노는 그 비둘기의 반지에 조그만 종이 쪽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한 줄의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저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편지는 받을 수가 없읍니다." 그것을 읽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첫 탐험에서 정상에 오른 것처럼 기뻣고 초조와 안달로 그날 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그는 사무실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연애 편지를 끼워 그 비둘기를 날렸다. 이번에는 확실한 자기의 서명을 했으며 더구나 자기 집 정원에서 가장 싱싱하고 붉고 향내가 좋은 장미 한 송이를 꺾어 그 비둘기의 반지에 덧붙여 끼웠다. 그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3개월 간의 지속된 노력 후에도 그 아름다운 비둘기 애호가는 똑같은 답장만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의 서신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예상한 때에 정확히 답신을 보내곤 했기에 두 사람은 만나지는 못해도 친숙해졌다. 플로렌티노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연인이었고 사랑에 가장 탐욕적이면서도 가장 인색한 사람이었고, 주는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원하고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는 어떤 여자에게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잠복해 있는 사냥꾼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자신이 서명한 편지를 거리낌 없이 보내고, 화려한 선물도 보내면서 심지어는 그녀의 남편이 여행을 가거나 시장에 나가지도 않았을 때도 두 번씩이나 그녀의 집 주위를 신증치 못하게 맴돌았던 것이다. 그가 사랑의 창에 찔려 관통당한 듯한 기분을 느졌던 아주 어릴 적 이후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두 사람은 마침내 부두에서 페인트 칠 중인 배의 선실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정말로 경탄할 만한 오후였다. 올림피아 즐레타는 진정으로 즐거운 사랑 놀음에 경탄을 발했고, 휴식하는 몇시간 동안도 알몸으로 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을 위한 사랑행위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그 선실은 정비가 되어 반쯤 페인트칠이 되었고 그 행복한 오후의 기억 속에 두 사람애게 묻었던 테레빈유의 냄새가 날아가 버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갑자기 잠자리에서 붉은 페인트의 깡통을 열어 그의 집게손가락을 담궈 그녀의 치골에 아랫쪽으로 향한 붉은 화살표를 그리고 그녀의 배 위에 다 글을 썼다."이 음부는 내것이다." 그날 밤, 올림피아 즐레타는 자기 몸에 페인트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깜박 잊고 남편 앞에서 옷을 벗었다. 그녀의 남편은 뭐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호흡조차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잠옷올 입는 동안 욕실에서 면도칼을 가지고 나와 단번에 그녀의 목을 배어버렸다. 올림피아 즐레타의 남편이 도망을 치다가 잡힌 며칠 후까지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까마득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신문을 보고서야 그녀의 남편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그녀를 살해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서명이 된 편지 때문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그자의 형기를 관심 있게 추적했다. 왜냐하면 그 살인자가 선박회사의 거래 관계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가 자신의 배신 행위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에 비하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두려움이나 대중들에게 날 소문 정도는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트란시토 아리자를 돌보던 여자가 뜻밖의 폭우로 시장에서 평소 때보다 늦게 돌아왔는데 그녀는 트란시토 아리자가 흔들의자에서 평상시처럼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눈을 뜨고 앉아 있어서 그녀가 죽은 지 2시간 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트란시토 아리자는 사망하기 직전에 그녀의 침대밑 항아리에 넣어 두었던 금과 보석들을 이웃 어린애들에게 캔디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전부 나누어 주어 버려서 정말로 소중한 몇 개의 보석은 영영 찾을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는 어머니를 그때까지 콜레라묘지로 알려지고 있는 전에는 하느님의 손이라 불리운 목장에 묻고 그 묘 위에 장미를 심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어머니의 묘지를 가 본 플로렌티노는 올림피아 즐레타의 묘가 어머니의 묘와 매우 가까이 있다는 것을 묘비는 없지만 묘에 갓 칠한 시멘트 위에 휠갈겨쓴 그녀의 이름과 사망 날짜를 보고 확인 할 수 있었다. 플로렌티노는 그것이 그녀 남편의 살벌한 암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장미가 활짝 피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머니의 묘에서 장미를 꺾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올림피아 줄레타의 묘 위에 옮겨 심었다. 양쪽 묘의 장미는 번창하게 잘 자랐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장미들을 잘 관리하느라 가위와 다른 정원용 도구를 갖고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몇 년 후 장미는 잡초처럼 다른 묘에까지 번졌고 바로 그때부터 전염병으로 불명예스럽던 그 묘지는 장미의 묘지로 불렸으나 그후 어떤 사람이 어느날 밤 그 장미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입구에 아치형 간판을 걸어 그곳을 일반묘지라고 불렀다. 어머니의 죽음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다시 한 번, 광적인 추구를 계속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무실의 출근, 정확하게 교대로 만나는 그의 정부들, 상업회관에서의 도미노 게임, 사랑에 관한 책들, 일요일의 성묘 등이 그것이었다. 그것은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경멸하고 너무나 두려워하는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의 지속적인 추구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나이가 드는데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12월의 어느 일요일, 이미 묘지의 장미밭은 가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들었고 최근에 설치된 전기줄 위에 제비가 있는 모습을 보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 어머니의 사망 후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훌렀으며 올림피아 줄레타의 살인 사건 이후로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으며, 그렇다면 페르미나 다자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 항상 그를 사랑하겠노라고 했던 옛 12월의 오후는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이었나 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자신에게 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예외인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 바로 일 주일 전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대필해 준 연애 편지로 인해 결혼하게 된 여러 쌍의 부부중 한쌍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며 그는 자신이 대부가 되어준 그들의 첫 아이는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놀라는 체하면서 자신의 당황기를 감추었다. "아이구 이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구나 !" 그리고 그는 항상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첫 이상이 생겼음을 나타내는 증세가 나타난 이후에도 계속 똑같이 행동했다. 트란시토 아리자도 자기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내 아들이 여태까지 앓아본 병이라곤 콜레라밖에 없다우." 물론, 그녀는 기억력이 상실되기 오래 전부터 콜레라를 사랑으로 혼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실수를 많이 했다. 왜냐하면 의사는 임파선이 붓거나, 4개의 혹, 그리고 살에 생긴 농가진에 대해서는 병도 아니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그런 무서운 질병도 끄떡없이 이겨낸 건강체라고 자랑을 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막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몸의 이곳 저곳의 애매한 통증이 생겨 의사를 찾아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본 후에 의사는 말했다. "나이 탓이군요." 그는 나이가 자신의 건강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항변과 같은 말 한 마디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그의 과거에 있어서 유일한 관심은 페르미나 다자와의 덧없는 사랑이었으며 그녀와 관련된 것만이 자신의 인생으로 간주 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그 전기줄에 앉은 제비들을 보며 플로렌티노는 아주 어렸을 무렵의 회상에 잠겨서 그의 사랑놀이와, 자신이 승진하기 위해서 겪어야만 했던 많은 함정들을 떠을리며 게다가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의 상상을 했던, 페르미나 다자가 자기 것이고 자기가 페르미나 다자의 것이라는 환상을 해 오는 동안 이제서야 비로소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머리 속이 텅 빈 듯한 느낌과 함깨 내장의 경련으로 비틀거리며 정원 도구도 손에서 떨어뜨리고 나이들어 생기는 첫 시련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 묘지의 벽에 몸을 기대었다. "제기랄 !" 그는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30년이 홀렀군 !"' 사실 그렇다. 물론 30년이라는 세월이 페르미나 다자를 위해서만 허비되었고 그 30년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가장 즐겁고 유쾌한 인생의 황금기였다. 카살듀에로 대저택에서의 끔찍한 날들은 엄청난 돈의 위력 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녀는 라 만가에 있는 그녀의 새집에서 그녀가 다시 선택을 한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택할 그녀의 남편과,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의학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과, 때로는 자기 자신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녀를 꼭 빼닮은 그녀의 딸과 더불어 여왕처럼 호사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녀는 유럽으로 세번이나 되돌아 갔었지만 그러한 끝없는 혼란 속에서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하느님은 마침내 누군가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페르미나 다자와 쥬베날 우르비노가 폐허가 된 그들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려던 파리에서의 2년 동안의 생활 후에 한밤중의 전보는 도나 블랑카 우르비노가 위독하며 신문에서는 이미 그녀의 사망 기사를 준비해 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 지체없이 돌아갔다. 페르미나 다자는 까만 임신복을 입고 배에서 내렸다. 임신복이 그녀의 신체적 조건을 완전히 가려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다시 임신을 했으며 그 소식은 악랄한 장난 노래를 통해 알려졌다. "이곳의 아름다음으로부터 벗어나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니 ? 그녀가 파리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출산 직전이었어." 단어의 저속함에도 불구하고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후 여러해 동안 사교 클럽에서 그 노래를 청해서 춤을 추곤 했었다. 카살듀에로 대저택은 지방 문화국에 적절한 가격으로 팔렸으며 다시 네덜란드의 학자가 그곳을 발굴해본 후 크리스토퍼 콜롬부스의 실제 묘가 그곳에 위치했었다는 것을 밝혀져 중앙 행정부에 엄청난 가격으로 매도되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여동생은 서원도 하지 않고 살레지오 수도회에 들어가 속세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시작했으며 페르미나 다자는 라 만가의 별장이 완성될 때까지 그녀의 아버지 집에 머물렀다. 페르미나 다자는 당당한 걸음으로 계단을 걸어보았고 신혼여행 때의 가구와 그것에 딸린 부속품들을 다시 들여와 첫날부터 그녀가 안틸리즈에서 온 상선에 가서 직접 사온 희귀한 동물들을 그 안에 가득 채워넣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시 획득한 남편과, 잘 키운 아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온 지 4개월 후에 출산하여 오페리아라고 이름 지은 딸과 함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이 신혼여행 때처럼 아내를 완전하게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사랑이란 그녀가 베푸는 것이 전부였지만 자식들과 함께 아직도 남아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 나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렇게나 갈망해 오던 조화의 정점은 페르미나 다자도 밝혀낼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저녁 식사 때였다. 그녀는 그 음식이 너무 맛이 있어서 한 접시를 더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방금 전에 그렇게 맛있게 먹은 요리가 바로 가지 요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순간 이후로 라 만가 별장의 식탁에는 카살듀에로 저택에서만큼이나 자주 가지 요리가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게 되어,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딸 하나를 더 얻게 되면 그 딸의 이름을 집안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쓰이는 단어를 넣어 '가지 우르비뇌'로 지어야겠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공적인 생활과는 달리 사적인 생활은 변덕스럽고 유별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애들과 어른들 간의 정말로 다른 점을 밝혀 내기가 쉽지가 않았지만 최근의 분석을 통해서 그녀는 어린아이들의 판단에 더욱 신뢰감이 가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막 정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녀가 어렸을 때 에반젤스 공원에서 꿈꾸어 왔던 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사교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잘 어울리는 여성이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녀의 집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철두철미한 면이 있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인생이 남편으로 인하여 제공되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혼자 힘으로 이룩한 거대한 행복의 제국의 통치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의 그 무엇,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녀는 남편의 신성한 하인일 뿐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를 짜증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매일 끌없이 돌아오는 식사 준비였다. 식사는 제시간에 맞추어야 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그가 원하는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해야만 했다. 만일, 페르미나 다자가 무엇을 먹겠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곳 관습으로는 가장 창피스런 짓이었다. 그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뭐든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한 친절한 방법으로 그는 진실을 전했으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군주 같은 남편의 저의가 깔린 말이었다. 그래서 먹을 시간이 되면 무엇이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완벽한 음식만이 상에 올려지게 되었다. 고기는 고기 맛이 나지 않아야 되며, 생선도 생선 맛이 나지 않아야되며, 돼지고기 냄새가 나서도 안 되고, 닭은 깃털 냄새가 나지 않아야 했다. 아스파라가스가 나올 철이 아니어도 가격에 구애되지 않고 그것을 준비해서 그가 자신의 향기로운 소변 냄새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팔자려니 하고 돌렸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인생에 있어서 무자비한 주인공이었다. 조금만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그는 접시를 옆으로 치우면서 말했다. "이 음식은 사랑이 담기지 않았어." 그러한 범주 내에서 그는 환상적인 영감의 성취를 느끼곤 했었다. 한 번은 그가 카밀레 꽃을 달인차를 맛보다가 한 쪽으로 치우며, "이건 창문을 끓여 놓은 듯한 맛이군." 하고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와 하인들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누가 창문읕 끓인 것을 마셨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 말을 이해해 보려고 그 차를 마셔본 결과, 역시 그것은 창문을 끓여놓은 듯한 맛이 났다. 그는 완벽한 남편이었다. 그는 마루에 떨어진 것을 줍는다거나, 불을 끄거나, 문을 닫아본 적도 없었다. 아침 어두컴컴한 곳에서 그가 자기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는 아내가 두 명이 필요해. 한 명은 사랑하기 위한, 다른 한 명은 남편의 단추를 달아주기 위한 아내가 말이야." 매일, 커피의 첫 한 모금올 들이키고, 국을 한 술 뜬 다음엔 이제 아무도 놀라지도 않는 큰 고함을 지르면서 그걸 내뱉는다. "내가 이 집을 떠나는 날, 너희들은 내가 항상 입에 화상을 입는데 지쳐서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는 자기가 대변 나오는 약을 먹어서 음식읕 먹을 수 없을 때면 항상 점심을 보다 맛있고 특별하게 차리질 못한다고 말하곤 했으며 그는 그것이 자기 아내의 배신 행위라는 생각으로 그녀를 불신하여 결국 그녀가 그와 함께 같은 약을 먹지 않으면 변을 잘 나오게 하는 약도 먹기를 거부했다. 남편의 이해력 부족에 지친 페르미나 다자는 그에게 특별한 생일 선물을 부탁했다. 그것은 단 하루 만이라도 그가 집안 일을 돌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재미있겠다며 그것을 수락하고 실제로 새벽부터 집안 일에 착수했다. 그는 굉장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지만 달걀 후라이가 아내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잊었고, 그녀가 콘레체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그는 8명의 손님들을 위한 생일 오찬을 준비하고 집안을 말끔히 단장하도록 지시하며 그녀가했던 것보다 더 잘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정오가 채 되기도 전에 자존심이고 뭐고 팽개치고 항복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는 무엇보다도 부엌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전혀 몰랐으며 하인들도 장난삼아 그가 물건 하나하나를 찾아낼 때마다 그를 당황시켰다. 10시가 되어도 집안 청소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점심 식사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침실은 아직 정돈이 안 되었고, 욕실은 아직 청소가 안된 상태였다. 그는 화장실 휴지를 갈고, 애들을 위해 마부를 보내는 일도 잊었다. 게다가 그는 하인들이 할 일까지도 혼동했다. 그는 요리사에게 침실을 정리하라고 했고, 하녀에게 요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11시가 되어 손님들이 도착할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페르미나 다자가 예상했던 대로 집안은 난장판이었으며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그런 승리의 쾌감으로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대신에 그녀의 남편의 무기력한 집안 일 담당에 대해서 동정을 했다. 그는 항상 자기가 즐겨하는 말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당신이 그 병을 치유 하려고 한다면 사태는 나보다는 당신에게 더 불리해질 거요." 하지만 꼭 그에게 뿐만이 아니라 둘 모두에게 그것은 좋은 교훈이 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그 둘은 서로 경로는 다르지만 똑같은 현명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론이란 달리 사는 어떤 방법도, 달리 사랑하는 어떤 방법도 불가능한 것이며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여유 있는 자신의 새로운 생활 가운데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승진을 거듭한 것보다도 자주 그를 공식 석상에서 보게 되었고 그녀는 과거보다도 훨씬 자연스럽게 그를 대할 수 있었지만 정신이 산만해서 그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잊었다. 사업의 세계에서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조심스럽고 은밀한 캐리비언 해운 회사에서의 승진이 가장 큰 화제였기에 그에 관한 소식은 자주 들었었다. 그녀는 그의 태도가 많이 개선되었고 그의 수줍음도 수수께끼처럼 사라져 버렸으며 몸무게는 그에게 어울릴 정도로 불었고, 자신의 온전한 대머리를 위엄의표시로 나타낼 줄도 아는 것을 보았다. 시간과 의상을 초월해 그가 아직도 고집하는 유일한 부분은 그의 칙칙한 복장과 시대에 뒤떨어진 깃털 외투와 독특한 모자,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전당포에서 나온 어떤 시인의 넥타이와 칙칙해 보이는 우산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다른 각도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보는데 익숙해지면서 성숙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녀는 에반잴스 공원의 노란 나뭇잎 위에 앉아 그녀를 위해 한숨지으며 앉아 있던 힘없는 청년과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연관시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이건 그녀는 그를 무관심하게 지켜볼 수가 없었으며 그에 관한 좋은 소식이 들리면 그녀도 항상 기뺐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죄 의식을 덜어주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추억에서 완전히 그를 지웠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전혀 예견치 못했던 장소에서 환상으로 그녀에게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그녀가 비가 오기 전에 천등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무슨 불치의 병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증년기의 초쯤이었다. 그것은 시에라 네바다에서10월의 오후 3시에 어김없이 울리는 고독하고 강한 천등소리였으며 그것은 지나간 추억을 생생히 기억나게 하는 불치의 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의 일들은 며칠도 안 되어 잊어버리지만 사촌 힐데브란다가 사는 지방을 여행했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곧고 숲으로 우거진 길이 나 있고 수많은 새들이 지저귀던 마노르의 한적한 산에 있는 집을 떠올렸으며 그곳에서 그녀가 누워 잠을 자던 바로 그 침대에서 수년 전에 사랑 때문에 죽은 페트라 모랄레스의 한없는 눈물에 잠옷이 젖어 잠에서 깨어났었다. 그녀는 다시는 같은 맛을 볼 수 없었던 구아바스 열매의 맛과 그다지도 크게 울리던 천둥소리를 기억했다. 그날 오후, 그녀는 사촌과 함께 전신국으로 가면서 그 전신국이 가까와짐에 따라 터져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같은 심장 때문에 이를 앙물고 걸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녀는 사춘기 때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고, 아버지의 집을 팔 수밖에 없었으며 그 집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황량한 그 에반젤스 공원과, 신비스런 풀 냄새, 그리고 이미 운명이 예정된 2월 오후에 보았던 나이든 여자의 놀란 얼굴들을 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장소에 상관 없이 이제 그녀는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으며 그때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그러한 기억들이 사랑이나 회개의 기억이 아니라 그녀의 양볼에 눈물 자국을 남긴 슬픔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마음도 평온했다. 그런 자각 없이는 그녀 역시 수많은 퓰로렌티노의 무방비한 회생물들을 함락시켰던 것과 똑같은 동정의 덫에 걸리는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밀착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남편이 그녀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였으며 그 이유는 그가 10살이나 그녀보다 많다는 단점을 지닌 채 혼자 노년기로 접어드는 듯한 비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은 자신이 아내인 여자보다 더 약한 남성이라는 기분으로 침통해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마치 독립적으로 살아온 것 같은 30년의 결혼 생활올 거쳐 서로를 잘 알게 되었으며 그렇게 하려는 의도도 없이 상대방의 생각을 짐작하는 어색한 행동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둘 중의 한 사람이 나머지 다른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미리 예상하는 것과 같은 우스팡스런 사건은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엔 일어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매일 매일 불편한 점을 극복해 나갔고, 즉흥적인 증오, 상호간의 거친 말 등을 배제하며 부부관계의 절정을 맞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그 두 사람이 서두르거나 지나침 없이 서로를 가장 사랑했던 때였고 가장 제 정신인 때였으며 동시에 역경을 이겨낸 엄청난 승리에 감사하던 때였다. 물론, 인생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를 안겨 주겠지만 그들에겐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그런 단계를 벗어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H?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축하함에 있어서, 하나의 멋진 공개의식 프로그램이 계획되어졌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은 최초의 기구 여행이었다. 그것은 끝없는 창의력을 지닌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발상이었다. 도시의 절반 가량의 시민들이 아스날 해변에 운집하여 갖가지 색깔의 태피터(호박단) 천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구가 상승하는 것을 이제나 저제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구에는 북동쪽으로 약 90마일 떨어진 곳애 있는 쌍후앙 드 라 씨에나하로 가는 첫번째 항공 우편물이 실려 있었다. 이미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비행의 흥분을 맛본 바 있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그의 아내가 버들가지로 엮은 광주리 좌석에 먼저 올라탔다. 그 뒤를 이어 조종사와 여섯 명의 유명인사가 탔다. 그들은 그곳 지사가 쌍후앙 드 라 씨에나하의 지방관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휴대하고 있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것이 공중을 통해 운반되어지는 역사상 최초의 편지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커머셜 데일리 지의 한 기자는 쥬베날 우르비노에게 모험 도증에 불의의 사고를 만날 것읕 대비하여 최후의 말을 남길 것을 요청했다. 그때 그는 별반 깊은 생각도 없이 두고두고 수많은 욕을 먹게 될 답변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하고 그는 말했다. "19세기는 우리들만 빼놓고 지나가게 되겠죠." 기구가 고도를 올려가자 국가를 합창하는 순진한 군중 속에 파묻혀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이러한 모험이 최소한 페르미나 다자와 같이 나이 많은 여성에게는 걸맞지 않는다고 군중들 속에서 말한 어떤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그토록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위험하다기보다는 얼마간 울적한 여행이었다. 기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을 뚫고 평화로운 여행을 한 다음 아무런 사고 없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들은 조용하게 부는 바람을 타고 빠르고 매우 낮게 날았다. 처음에는 눈으로 덮인 산맥을 따라 날으다가 다음에는 광활한 늪지대 위를 날았다. 하늘 위로부터 그들은 마치 하느님이나 된 것처럼 카르타고 드 인디아스의 영웅적인 고대 도시의 유적물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서 영국군의 포위망과 해적들의 잔학 행위에 대항하여 3세기 동안을 싸운 뒤 콜레라의 유행 때문에 주민들에 의해 버려진 도시였다. 그들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벽, 길거리에 무성히 솟아 있는 덤불, 야생의 꽃들로 뒤덮인 요새, 대리석 궁전, 황금의 신전, 갑주 속에서 콜레라 균으로 썩어가고 있는 죄수들을 보았다. 그들은 카타카 지방의 트로야스 호수에 떠 있는 수상 가옥 위를 날았다. 형형 색색으로 칠해진 그 집들은 우리 안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머리를 쳐드는 이구아나를 키우고, 발삼나무를 재배하고 옥상의 마당에는 도금양 덩굴이 어지럽게 뻗어 있었다. 어른들의 아우성소리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창문으로부터, 지붕 위로 부터, 카누로부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은 기구의 광주리 좌석으로 부터 새깃이 달린 모자를 쓴 아름다운 부인이 그들에게 던져주는 옷 뭉치와 감기 약병과 온정의 음식물들을 건져내기 위해 물고기처럼 다이빙을 했다. 그들이 어두운 바다와 같은 무성한 바나나 농장 위를 날아갈 즈음, 페르미나 다자는 흰 파라솔을 들고 예쁜 모자를 쓰고 무명옷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들에 둘러싸여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닐던 숲속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겼다. 쌍안경을 끼고 아래를 보고 있던 기구 조종사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 같다며 농장에 한가로이 놓여있는 소달구지, 철로, 바싹 마른 밭고랑을 보고 있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쌍안경을 건네주었다. 누군가가 콜레라가 거대한 수렁 지대의 마을을 엄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쌍안경을 보고 있던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온 천지에 시체들뿐이로군. 시체 목 뒷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니 대단한 콜레라이군."이라며 쌍안경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 말했다. 얼마 후 그들은 안개 낀 바다 위를 날아 땅이 갈라지고 불처럼 붉게 탄 광활하고 뜨거운 해변에 다다랐다. 관리들은 커다란 양산으로 헷빚을 가리고 국민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작은 깃발을 흔들며 예쁜 아가씨들은 시들은 꽃과 금빚 마분지로 만든 관을 쓰고 또한 그 당시 카리브 해 연안 도시들 중 가장 번성한 가이라시의 고적대들이 일행을 환영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고향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에 어릴 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위험한 콜레라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역사적인 그 우편물들을 전달했으나 곧 다른 편지들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모든 초대 손님들은 지루한 연설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기구 조종사는 기구를 다시 뜨게 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일행은 노새를 타고 바닷가 습지 지대인 프에블로 브에즈의 방파제로 갔다. 페르미나 다자는 어릴 때 몇 마리의 황소들이 끄는 작은 마차를 타고 어머니와 그곳을 거닐던 상념에 잠겼다. 페르미나 다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도 가끔 그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되풀이해서 이야기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그 여행을 잘 기억하지. 네가 한 말이 정확해. 하지만 그 일은 적어도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5년 전의 일이야. 그러니까 넌 기억하지 못할 걸?'하며 고집하셨다. 3일 후, 기구 탐험대들은 폭풍우치는 밤 때문에 지칠대로지쳐 그들 고향으로 되돌아와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환영 인파 속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의 얼굴에서 과로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의 남편이 주최하는 자전거 전람회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으나 피곤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삼륜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 삼륜차는 뒷바퀴는 작고 앞바퀴는 앉는 자리가 달린 큰 바퀴로 곡마단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겼다. 페르미나 다자는 붉은 줄무늬가 있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이런 복장은 나이 많은 여자들을 화나게 했으며 점쟎은 신사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복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덧없는 일들로 뒤범벅이 되어 온 지나간 세월 속에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가슴속에 뜨거운 정열만을 남겨 둔 채 야속한 운명이 그에게 다가오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보다 그가 페르미나 다자를 볼 때마다 느낀 묘한 변화가 더욱 그의 인생 행로에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 저녁,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돈 산초의 호텔 레스토랑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아 언제나처럼 혼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뒷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페르미나 다자가 남편과 두 다른 부부와 앉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쳤다. 페르미나 다자는 우아한 모습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샹데리아의 불빚 밑에서 더욱 눈부셨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숨을 죽이고 넋을 잃고 페르미나 다자가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조금씩 홀짝이며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두 시간이 넘도록 그녀와의 비밀스런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서도 페르미나 다자가 다른 일행들과 자리를 뜰 때까지 서너 잔의 커피를 더 마시곤 그 일행이 떠날 때 너무나도 가까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곁을 지나가 그들 중에서도 페르미나 다자의 향내를 식별해 낼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이후, 거의 일년 동안이나 호델 주인에게 만약 그 거울을 자기한테 준다면 호텔 주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주겠다고 졸라댔지만 거울테의 아름다운 조각이 마리 앙뜨와네뜨 왕비의 거울테를 본따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먹였기 때문에 그 거울을 손에 넣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마침내 그 거울을 차지했을 때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거울테가 아름다와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페르미나 다자가 두 시간 동안이나 그 거울 속에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 거울울 집안에 걸어두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를 만날 때는 페르미나 다자는 언제나 남편의 팔짱을 끼고 다정스럽게 유유히 걸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으나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몸이 굳어졌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때론 어깨를 툭툭 칠 정도였으나 페르미나 다자는 별로 달갑지 않게 그를 대했으며, 처녀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뜻을 내포한 어떤표시도 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는 두 다른 별개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부부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언제나 반대 입장만 취해왔다. 오래지 않아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이런 그녀의 태도가 그녀의 무지를 감추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레오 12세 삼촌을 대신해 RCC의 수석 부사장 자격으로 지방 조선소에서 조그마한 배의 명명식을 하는 공식 행사장에서 하게 된 생각이었다. 도시의저명인사들이 많이 모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직도 덜 마른 페인트와 타르 냄새가 나는 배의 연회장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을 즈음 갑판 위에서는 박수 소리와 개선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때 막 꿈 속에서 그리던 아름다운 페르미나 다자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행복한 결혼을 뽐내듯 하며 여왕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보일 때에는 그 자신이 무척이나 늙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들 부부는 열렬한 환영에 손을 흔들며 답례했는데, 전체가 금빚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여우털 목도리를 하고 예별 모자를 쓴 페르미나 다자의 모습은 군중들 속에서 유난히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지방 관리들과 그들 부부를 맞을 즈음 요란한 음악 소리, 불꽃놀이, 세 번 길게 울려 퍼지는 뺏고동소리가 갑판 위를 더욱 활기찬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유니폼을 입은 선장, 대주교, 주지사와 시장 내외, 새로 부임한 군 사령관 등 만찬회 인사들과 아주 상냥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태도가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지방 관리들이 서 있는 저쪽 건너편에 많은 저명 인사들 사이에 눈에 띄지 않게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군 사령관과 인사를 나눈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손을 내밀자 잠시 멈칫거렸다. 두 사람을 소개하려던 군 사령관은 페르미나 다자에게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묻자 페르미나 다자는 아무 말없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사교적 읏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과거에도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고 다시 또 일어난 순간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이런 경우 페르미나 다자가 너무 개성이 강해서 그렇다고 좋게 생각했으나 그날 오후에는 그런 매몰스런 무관심이 고통스런 사랑을 숨기는 속임수이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랐다. 이런 순진한 생각이 그의 젊은 욕망에 불을 당겼다. 다시 한 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의 집 앞을 거닐며 에반잴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던 시절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갈망을 마음 속 깊이 느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페르미나 다자를 보고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올 뿐이었다. 라 만가 지역은 미개발 지역이며 최근애는 젊은 연인들이 일요일을 보내는 장소로 바뀐, 많은 나무들이 뒤덮인 도시였으나 최근 스패인 사람들이 건설한 오래된 석조 다리가 무너져내리고 새 전차가 다니기 쉽게 가로수가 잘 정돈되었다. 처음에는 라 만가 주민들이 건설 도증 예상치 않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도시에 처음 들어선 전기 회사로 인한 진동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도시가 발전하는 것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핑계를 대면서 시민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도록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그 일행들이 사람들을 설득했다. 어느날 저녁 발전소의 보일러가 폭음을 내며 폭발하는 바람에 새로 지은 집들이 날아가고, 도시의 절반 정도가 혼들렸으며 한때 성 줄리앙 수도원의 가장 큰 화랑이었던 건물이 파괴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건물은 그해 초부터 버려진 상태였는데 그날 저녁 감옥을 탈출해 그 수도원에 숨어있던 죄수 네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평화스러운 교외는 부자들이 들끓게 되자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에는 부적당한 곳이 되고 말았다. 거리는 여름철에는 지저분했고, 겨울에는 습기차고 일년 내내 황량했으며 뿔뿔이 흩어진 집들은 구식스러운 발코니 대신 나무가 많은 정원 뒤로 숨어 버렸다. 그야말로 밀애를 나누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후 시간에 마차를 빌어 타고 언덕 위까지 달려 10월의 반짝이는 불빚을 바라보며, 해변가에 가끔 나타나는 상어를 바라보며, 거대하고 흰 정기선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사무실에서의 고된 하루를 마친 후 마차를 빌어 타고 언덕 위를 달리며 더운 날씨에는 의자 깊숙이 앉아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이지 않게 혼자서 상념에 잠기곤 했다. 사실 마차를 타고 갈 때 가장 그의 홍미를 끄는 것은 바나나 숲과 망고 나무가 뒤덮인 아름다운 대리석 궁전, 바로 페르미나 다자가 사는 집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의 자녀들이 가족 마차를 타고 5시 조금 전에 집에 돌아오고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순회 진료를 하기 위해 떠나는 모습을 근 일년 가까운 밤에 종종 보아왔지만 그가 정작 보고 싶은 페르미나 다자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비가 몹시도 내리던 어느 날 오후, 굳이 고집스럽게 말을 몰다가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시궁창에 뼈졌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이 바로 페르미나 다자의 집 앞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부에게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의 고집에 밀려 마부는 너무 서둘러 말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마차의 축이 부러졌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퍼붓는 빗속에서 마차를 빠져나와 지나가는 행인의 도움으로 다른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다른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집 하인이 그가 비에 젖어 무릎까지 진흙이 묻어 있는 것올 보고는 계단 밑에서나마 잠시 피할 수 있게 우산을 갖다 주었다. 플로렌티노는 그런 행운을 꿈꾸어 본 적이 없지만 그날 오후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페르미나 다자에게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쥬베날 우르비노 가족이 유서깊은 이 도시에 살 때는 8시 미사 참례를 하기 위해 일요일이면 집에서 성당까지 걸어가곤 했다. 미사는 그들에게 종교적인 의식이라기보다 세속적 의식이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으며, 때로는 친구들과 더불어 공원 야자수 밑을 찾곤 했다. 그러나, 사유 재산이 되어버린 해변과 사유 묘지가 있는 신학교 성당이 세워진 이후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파리쉬 카페에서 하루 세 번씩이나 있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매주 일요일마다 페르미나 다자의 모습을 기다렸다. 쥬베날 우르비노 가족이 더 이상 이 성당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몇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멋이 있었던 새 성당으로 가서야 8월 네째주 8시 정각 미사에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와 그의 자녀들을 볼 수 있었으나, 페르미나 다자의 모습은 그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어느 오후,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교회 옆에 있는 새 묘지에 갔는데 그곳에서는 라 만가의 주민들이 화려한 무덤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가슴이 뛰었다. 큰 나무 그늘 아래 가장 화려한 무덤 하나는 이미 완성이 되었으며 대리석 천사와 황금빛으로 글자를 새겨 넣은 묘지석이 있었다. 그 묘는 바로 페르미나 다자와 그녀의 남편의 묘였다. 그 묘비에는 "주님의 안식 속에 영원히 함께"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에도 페르미나 다자는 공식 자리나 연회석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부부가 항상 중심이 되었던 크리스마스 행사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가 없다는 사실은 오페라 계절이 시작되는 전야제 때 더 잘 알려졌다. 휴식 시간 동안 플로렌티노는 우연히 사람들이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페르미나 다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6월 초순, 어느 날 새벽 그녀를 점점 야위게 하는 창피스런 병을 숨기기 위해 검정색 베일을 쓰고 파나마행 정기선을 타고 가는 페르미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무슨 병애 걸렸는데 그럴까 하고 물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얻은 답은 '아름다운 여자는 명이 짧은건가 !' 하고 생각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연 환경이 수련한 그의 조국에는 이상한 전염병따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병자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죽거나 대축일 저녁 같은 날은 통곡 소리로 인해 축하식도 없이 지나거나 또는 몹쓸 병에 걸려 차츰 차츰 쇠약해져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경우가 있거나 했다. 파나마로 격리되는 것은 부자들의 생애에 있어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고행이나 다름없었다. 병자들은 노아 대홍수 때의 방주 같은 큰 병원에서 하느님 뜻에 일생을 맡기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다. 삼베로 짜서 만든 창문이 있는 괴로운 침실에서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소독 냄새가 죽음의 냄새라고 말하지 않았다. 회복된 환자들은 많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환자들은 거친 삼으로 꿰맨 것같이 어지럽게 꿰맨 배를 그들을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셔츠를 올려가며 보여주곤 했다. 그런 환자들은 일생 동안 무서운 전염병을 앓으면서도 천상의 환영을 느꼈다고 몇 번이고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 그런 한편 환자들 중 가장 불쌍한 몇몇 사람들은 영원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도대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진실을 캐고 심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가 듣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꼬투리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는 어떠한 신비나 비밀도 지켜질 수 없었다. 그러나 검은 배일 속에 가려진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비밀에 대해 알지를 못했다.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너무나 소문이 빨랐던 도시이건만 아무도 페르미나 다자가 사라진 이유를 몰랐다. 그는 라 만가 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미사에 참례하기도 했으나 아무 것도 마음에 없을 뿐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들은 이야기가 확실할 거라는 심증이 굳어져갔다. 페르미나 다자가 없다는 사실 이외에는 쥬배날 우르비노의 가정은 평안스러워 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계속 페르미나 다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동안 그가 알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로렌쪼 다자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플로렌티노는 로렌쪼 다자가 파리쉬 카페에서 쉰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뚱뚱한 몸을 이끌며 체스를 두고 있는 그를 생각했다. 그 두 사람은 제대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지만 로렌쪼 다자는 그의 딸이 결혼을 아주 잘했다는 사실 그 하나가 마치 그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단하나의 이유처럼 보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로렌쪼 다자가 자기에게 적의를 가지고 대한 것처럼 로렌쪼 다자도 플로렌티노에게 적의를 가지고 대했었다. 로렌쪼 다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될 듯이 기뻐했다. 그즈음 페르미나 다자는 1.5마일 떨어진 그녀의 사촌 언니의 목장에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채 살고 있었다. 부부 상호간의 약속에 의해 잡음 없이 조용히 결흔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이래 별거를 결혼 생활의 휴식으로 받아들이며 불행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자녀들은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며 불행을 겪지 않고 어떻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가를 배웠다. 그 부부가 카리브 해 연안 사람들처럼 고함치고 울고 불고 하면서 사건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사람 다 놀랍게 받아들였다. 그들 부부는 현명한 유럽인들처럼 어떤 행동도 함부로 벌이지 않고,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지 않고 헤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마침내 페르미나 다자는 단순한 노여움 때문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또한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헤어질 것을 결심했으나 남편은 죄책감에 그녀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무도 몰래 까만색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새벽 항해길에 나섰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더 간절해지던 고향,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곳으로 정기선을 타고 떠났다.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관습대로 집안 가정부로 일하던 15살 난 대녀만 데리고 떠났다. 그러나 선장과 각 항구의 관리들은 페르미나 다자가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갑자기 떠날 결심을 한 후 자녀들을 불러모아 삼사 개월 정도 기분 전환도 시킬 겸해서 힐데브란다 이모집에서 쉬고 오겠다고 했지만 내심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페르미나 다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죄에 대한 댓가로 생각하고 페르미나 다자의 결정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다. 배 위의 불빚이 그들 부부의 나약함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비록 그들 부부가 자녀 문재나 집안 문제 때문에 형식적인 왕래는 했지만 거의 2년이 지나서야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2년 동안 자녀들은 방학 동안 어머니 곁에서 지냈으며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아들 편지를 받아보고 페르미나 다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이겨냈으며 그녀의 새로운 인생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추기경이 사목 방문차 그곳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추기경을 따르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먼 곳으로부터 모여들었으며 음악가들은 아코디온을 키고 잡상인들은 술과 음식을 팔곤했다. 3일 동안 목장은 장애자들과 가난한 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들은 좋은 설교나 죄의 사함을 받기보다는 추기경 뒤에 따라다니며 기적을 행한다는 사람 때문이었다. 추기경은 본당신부였을 때부터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의 집을 가끔 드나들었었다. 추기경은 어느 날 오후 축제 분위기를 떠나 힐데브란다의 목장을 들렀다. 식사 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추기경은 페르미나 다자를 조용히 불러 고백 성사를 보도록 권했으나 페르미나 다자는 정중히 자기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거절했다. 이렇게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르비노 박사 귀에 들어가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지난 고통스런 2년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빨래할 때가 되었는데도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빨래를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결정하는 페르미나 다자의 그 고약한 냄새 맡는 버릇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페르미나 다자의 냄새 맡는 버릇은 어린소녀 시절부터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 첫날 밤부터도 그런 일을 남편이 간섭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부인이 적어도 하루 세 번 정도는 목욕탕 문을 닫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상류층 부인들은 남자들과 이야기하고 담배 피우며 술 마시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냄새 맡는 버릇은 이상하다고 생각될 뿐만 아니라 속되게 보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 들이며 논의의 가치도 없다고 여겼으며 하느님은 그녀의 얼굴에 매부리코를 단순한 장식품으로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아침, 페르미나 다자가 시장에 가고 없는 사이 3살난 아들이 없어져 하인들이 온 동네를 뒤지며 야단 법석을 떨고 있을 즈음 그녀가 시장에서 돌아와서 사방을 몇 바퀴 둘러보더니 그곳에 숨어 있으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장농 속에서 자고 있던 아들을 찾아냈다. 남편이 깜짝 놀라 어떻게 찾았느냐고 했더니 냄새로 찾았다고 했다. 페르미나 다자가 냄새를 잘 맡아 세탁을 하거나 자녀들읕 찾아내는 일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특히 사교 생활에도 크게 기여했다. 우르비노는 결혼 이래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지만 맨 처음 주위에서 가장 벼락 부자가 되어 오랫동안 미움을 받아왔지만 정숙한 생활을 영위해 오며 어느 누구와도 어떤 권력과도 다투는 일 없이 큰 마찰 없이 잘 지내오는 능력이 있었다. 이런 뛰어난 능력에 미사 바로 전 운수 나쁜 일요일 불행의 순간이 찾아왔다. 오랜 습관처럼 페르미나 다자가 지난 밤에 남편이 벗어둔 옷 냄새를 맡다가 그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상의, 조끼, 시계줄, 연필통, 돈지갑, 열린 주머니, 금으로 된 단추, 모든 것을 화장대 위에 놓고 냄새를 맡았다. 이번에는 바지, 손잡이 칼, 속옷, 양말, 손수건으로 옮겨갔다. 의심을 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오는 동안에도 없었던 어떤 냄새가 난 것이다. 냄새란 사실 꽃이나 어떤 사물의 냄새가 아니라 인간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딱 잘라서 뭐라고 말하기는 불가능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어디서 남편의 일상 생활 속에 냄새가 생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페르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매일 그 냄새의 출처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페르미나는 세탁할 때가 되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내면을 파고드는 참올 수 없는 근심 때문에 옷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생각에는 옷에 냄새가 배게 하는 일은 오전 수업이나 점심 시간 사이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하루 중 그렇게 바쁜 시간에 집안도 청소해야 하고 침실도 정리해야 하고 시장도 보고 점심 준비도 할 뿐 아니라 학교 간 자녀들 걱정까지 해야 할 시간에 바쁘게 오전 정사를 즐길 여자는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페르미나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오전 11시, 흐트러진 침대에 벌거벗고 누운 여자 위로 기어 올라가는 남편을 상상했지만 남편은 밤에만 사랑을 즐기고 그것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부부의 정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아침 새가 울기 전 식사 바로 전에 한 번 더 즐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올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옷에 냄새가 배는 것은 순회 진료 시간이나 채스나 영화를 보다가 잠시 짬을 냈을 때 일 것 같았다. 그 가정은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페르미나 다자도 다른 친구들처럼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를 시켜 남편이 뭘 하는지 알아보게 하는 짓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간통을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인 가정 순회 진료 시간올 눈여겨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각 환자의 상세한 병세 기록, 그의 진료비, 그리고 환자들을 전도한 기록까지 철저히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3주일 정도 흐르는 동안에도 페르미나 다자는 며칠 동안에는 그의 옷에서 냄새를 찾지 못했지만 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며칠 동안은 계속해서 지난번 보다 더 강렬하게 냄새가 났다. 더군다나 그 날들 중 하루는 일요일이라 가족들이 모여 그들 부부가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었는데도 불구하고.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의 사무실에 들러 한 번도 하지 않던 일을 했다. 정갈하게 쓰인 뱅골어를 번역해 보기도 하고 돋보기로 며칠 동안 남편이 가정 방문한 집들 전화번호를 보기도 했다. 페르미나가 이 사무실에 혼자서 들어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부제 냄새며, 이름모를 동물 가죽을 입힌 책들이며, 희미해진 학교 그림, 박사 학위증, 천체 망원경, 수년 동안 모아온 수술용 칼들이 있었다. 이런 분야는 사람과는 관계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의 성역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몇 번 남편과 이 사무실에 들어온 적은 있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 일 뿐 혼자서 들어와 더군다나 점잖지 못하게 훔쳐보는 것 같은 짓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는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다. 마치 신들린 여자처럼 그 진실을 밝혀내고는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고상함이나 품위를 내펭개치면서까지라도 캐내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두 사람의 친구들을 제외하곤 환자들도 남편의 고유한 영역이요, 그들을 안다는 의미는 얼굴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자들의 고통을 안다는 뜻이며 눈 색깔로 아는 게 아니라 간의 크기로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짓에 몇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며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올 믿는 아내는 남편이 바로 삶의 목적이며 이유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남편 손으로 서류 밑부분에 써놓은, '조용히 하여라 하느님이 문에서 너를 기다린다.' 라는 글귀를 마음 속에 새겼다. 그녀 자신의 상상력 때문에 페르미나는 남편에게서 변화를 찾기 시작했다. 남편이 안절부절 못하며 식탁에서도 별 맛 없이 먹는 것 같고 잠자리에서도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으며, 쉽게 화내고, 빈정거리며 집에 오면 옛날치럼 조용히 있지 못하고 우리 안에 갇힌 사자처럼 굴었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늦는 시각을 체크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도 해 보고 했지만 마음 속 깊이 상처만 입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어느날 밤 어둠 속에서 남편이 무서운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환상에 깜짝 놀라 깨었다. 이런 일은 페르미나가 젊었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녀의 침대 옆에 사랑이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던 플로렌티노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새벽 2시인데도 남편은 일어나 침대에 앉아 있었다. 페르미나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왜 그렇게 앉아 있었느냐고 아내가 묻자 남편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마 당신이 꿈을 꾸고 있었나보군 하며 돌아누웠다. 그날 밤 이후 어디서부터가 실제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인지 모를 정도로 페르미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느졌다. 마침내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지난 몇 주일 동안 성 목요일과 일요일날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올 밝혀냈다. 페르미나 다자가 남편에게 왜 영성체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영성체를 하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쥬베날 우르비노는 8살에 첫 영성체를 한 이후 중요한 축일에 영성체를 하지 않는 일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대죄가 있거나 아니면 고백성사를 보지 않는 것을 보면 상당히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들 부부의 사랑에 완전히 금이 가는 어떤 것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영혼을 좀 먹는 뱀의 등지를 불사르기로 작정했다. 어느 날 오후 남편이 매일 조금씩 즐기는 낮잠을 잔 후 독서를 하고 있는 동안 양말을 기우면서 페르미나 다자는 불쑥 일을 멈추고 안경을 고쳐쓰며 무표정하게 물었다. "여보." 남편은 그 때 배스트 셀러인 '팽권'에 심취해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왜 ?" "나를 좀 쳐다보세요." 남편은 안경 너머로 쳐다보면서 아내 눈 속에 번쩍이는 분노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다. 페르미나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이 페르미나 다자가 한 전부였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오랫동안 끌어 오던 고뇌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닥칠 근심이 조용히 생각보다는 빨리 다가왔다. 악령의 그림자가 집안에 닥친 것이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바바라를 만난 것은 약 4개월 전, 진찰실에서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를 엄습했다. 바바라는 키가 크고 우아했으며 까무잡잡하며 윤택 있는 피부를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바바라는 흰점이 박힌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써서 눈썹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성적 매력이 넘쳐 흘렀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임상 강의 시간엔 환자를 진찰하지도 않았으며 강의가 끝나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하는 대화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고 강조하곤 했다. 강의 시간에도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눈길은 자꾸만 바바라에게로 갔다. 그날 오후, 그가 마지막 순회 왕진을 끝내고 바바라의 집 옆을 지나 가고 있을 때 발바라는 집 앞 마당에서 바람을 씌고 있었다. 그 집은 습지에 나무 다리를 한 전형적인 열대 지방의 집으로써 지붕 위까지 노란색 페인트 칠을 하고 삼배의 창문이 가려져 있고 문 옆에는 카네이션과 야채들이 심어져 있으며 처마 끝에 달린 새장에서는 예쁜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국민학교가 있었고 아이들이 달려나와 마부는 말이 놀라지 않게 고삐를 움켜쥐고 있었다. 바바라가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알아본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바바라는 마치 친구인 양 박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이들이 사라질 동안 잠시 커피라도 마시고 가시라고 청했다.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는 우르비노 박사가 쾌히 승낙을 한 것은 하루 온종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바바라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그의 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조만간 결혼 생활에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한 적이 있는데 윤리적 교육을 받아온 우르비노로서는 콧방귀를 뀌며 흘려버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위기가 지금 닥친 것이다. 신학 박사인 바바라는 조나단 목사의 외동딸로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으로 찌든 습지를 노새를 타고 돌아다니며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러 다녔다. 유창하게 스페인 어로 떠들어대는 그녀의 예쁜 입이 그녀의 매력을 더욱 강조했다. 12월이 되면 바바라는 28살이 되며 2년 동안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 아버지의 제자 목사와 얼마 전에 이혼을 했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며 단지 앵무새만을 사랑할 뿐이라는 그녀의 말을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바바라가 그녀의 의중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스스로 이렇게 많은 여러 상황이 비록 하느님이 파 놓은 함정일지라도 바바라를 떨쳐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리를 떠날 즈음, 오전 진료의 몇 가지 점을 기록했다. 환자들은 그들 증상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별 흥미를 못 느끼지만 바바라는 그녀 주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말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내일 정각 오후 4시에 진찰을 오겠다고 약속했다. 바바라는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 같은 유명한 의사의 진찰은 진찰비가 비쌀 거라며 심각하게 고민을 하자 박사는, "걱정하지 말아요, 바바라. 가난한 사람들 진찰비는 부자들이 내게 하고 있으니까." 하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는 노트에다.'솔트 마쉬 마을, 바바라 토요일 오후 4시' 라고 표시했다. 몇 달 후 페르미나 다자는 이 메모를 읽게 된다. 상세히 기록된 진단, 치료법, 병의 전개 과정 등을. 그 이름이 이상하게도 페르미나의 주의를 끌었다. 바바라는 뉴올리안즈에서 온 전위 미술가인가? 아니면 주소로 미루어 보면 자마이카에서 온 흑인 여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남편은 그런 류의 여자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토요일 약속시간보다 5분 늦게 왔지만 바바라는 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파리 유학 시절 면접 시험을 칠 때 보다도 더 흥분되었다. 앓은 실크 잠옷올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바바라의 아름다운 모습은 우르비노 박사의 정신을 쑥 빼놓기에 층분했다. 그녀를 둘러싼 주위의 모든 것은 한없이 크고 무한한 것 같았다. 그녀의 인어같은 미끈한 다리, 엷게 탄 피부, 풍만한 가슴, 가지런한 치아, 그녀의 육체 모든 부분이 건강미를 풍기고 있었으며 이 건강미는 바로 페르미나 다자가 남편 옷에서 맡은 바로 그 냄새였다. 바바라는 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병원에 갔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바바라의 배를 조심스럽게 눌러 보았다. 그녀의 배를 쓰다듬을 수록 우르비노 박사는 손에 와 닿는 이상한 감각에 몸을 떨면서 꿈틀거리는 욕망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언젠가 딱 한번 진찰을 하던 환자를 희롱하려다가 화가 난 환자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왜 이러는 거예요 !' 하며 손을 뿌리친 부끄러운 일이 있긴 하지만 바바라는 그 환자와는 달리 우르비노 박사의 손에 몸올 내맡기고 있었다. 바바라는 박사가 치료에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박사님의 양심으로는 그렇게 못하실 걸요?" 하고 말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옷을 입은 채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손과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제가 한 말은 당신이 나를 안아주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같이 가련한 혹인 여자가 당신같은 유명인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어요." 하고 바바라가 말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한순간도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가슴 뭉클한 고백이었지만 바바라는 웃으면서 침실 불을 켜며 잠시 동안의 박사의 흥분을 잠재웠다. "알아요. 박사님, 내가 당신을 병원에서 만났고 비록 흑인이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예요." 바바라는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고 아름다운 밀애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바라는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자기를 유혹하도록 꼬리를 치며 집안에 혼자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깊숙한 내면의 성역을 침해하진 못하게 했다. 바바라는 박사의 욕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입은 채로 진찰을 받았다. 박사로서는 한번 문 고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바바라와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이런 관계를 끊어버리기엔 너무나 나약했다. 바바라의 아버지 린치 목사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다. 노새를 타고 성경책과 각종 팜프렛을 갖이고 이곳 저곳 다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우르비노 박사는 처신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은 학교가 길 건너편에 있어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 보며 글을 읽고 아침 6시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처마끝에 새장을 갖다 걸면 앵무새는 소년들이 읽는 것을 흉내내는데 바바라는 외운 시를 영어로 다시 읽어보곤 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와 바바라는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야 했는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는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오후 12시부터 2시 사이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집에 가고 없는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이때쯤이면 박사도 순회 진료를 마치고 가족들과 식사하기 전 조금쯤은 짬이 나는 시간이다. 박사한테 가장 곤란하고 어려운 문제는 마차 없이 그곳에 가는 것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면 마차는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하고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마부를 그의 공범자로 만들 수 있지만 그는 그런 인물이 되지 못했다. 우르비노 박사가 바바라를 찾는 횟수가 잦아지자 겁많은 그의 집 마부는 문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보다 갔다 다시 오는 게 좋기 않겠느냐고 말했을 때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의외로 단호한 입장을 취해 그를 내쫓고 말았다. "이런 문제는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좋은 방법이 없었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는 의사의 마차가 대문 앞에 서 있으면 병을 숨기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가끔 우르비노 박사가 스스로가 그 사실을 숨기려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면 걸어가거나 혹은 억측을 피하기 위해 마차를 빌려 타고 갔다. 그러나, 그런 기만술도 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약 처방서를 보면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르비노 박사는 정확한 병명은 자기만이 알 수 있게 써놓고 항상 가짜 약명을 써서 환자의 비밀을 최대로 지켜 왔다. 바바라 집 앞에 마차를 세워두는 것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세상이 지옥 같았다. 한번 그런 일에 빠지게 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하게 되는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스캔들에 휠말리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욕정에 사로잡힌 박사는 여러 차례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바바라에 대한 일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와같이 있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녀를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들의 밀애는 점점 더 서두르게 되고 문제성을 안게 되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오직 바바라만 생각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끝없는 갈증으로 오후 시간을 기다렸다. 마차가 바바라의 집 가까이 오면 하느님께 무한한 힘으로 자기 발길을 돌리게 해달라고까지 기도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바바라에게 가는 날은 린치 목사의 머리털만 봐도 기뻤다. 린치 목사는 앞 마당에서 독서를 하고 있고 바바라는 방에서 옆집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 때는 마음이 홀가분해져 집으로 돌아오지만 매일 오후 내내 5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미칠 지경이었다. 바바라 집 앞에 마차를 세워두는 것이 사람들 눈에 자꾸 띄게 되자 그들의 불장난도 서너 달 뒤에는 읏음 거리가 되었다. 그녀에게 미쳐서 들어오는 우르비노를 보자마자 바바라가 말 한 마디도 할 틈을 주지 않고 침실로 들어가 속옷을 입지 않고 자마이카에서 가지고 온 빨간 꽃 수술이 달린 예쁜 스커트를 입고 그를 반겼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온갖 정열을 다 바쳤다. 땀으로 범벅이 된 박사는 가슴을 헐떡이며 수캐가 암캐를 쫓듯이 침실로 따라들어가 지팡이며 왕진 가방이며 모자를 마루 바닥에 던지며 겁이 질린 표정으로 바지는 무릎까지만 내리고 상의는 단추만 풀고 신발도 벗지 않고 육체적 만족만 채우면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행동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단순한 육체적 행위만 마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완전한 사랑을 한듯이 멕빠져 단추를 하나 둘 채울 때 바바라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주사를 놓으러 왔다 가는 시간 정도로 시간을 철저히 계산했다. 그리고서는 나약해진 자신을 비읏으며 자신을 저주하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죄의식에 부인한테 바지를 내려 달라는 용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식사도 하지 않고 기도는 입으로만 하고 부인이 잠들기 전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동안 책을 읽으며, 조는 척하며 바바라 생각에 잠기곤 했다. 다음날의 오후 5시 5분 전과 박사의 혼을 빼놓는 그 야한 스커트를 입고 그를 기다리는 바바라를. 지난 몇년 동안 몸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았다. 책을 보며 증상을 살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실생활에서 의학 서적에서보다 노인 환자들한테서 더 많은 의학 지식올 배워오고 있는 터라 아동 병원의 의사가 종합 진찰을 해보라고 권했다. 실제로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병은 없는 데도 증상은 나타나며 더더욱 나쁜 것은 아주 큰 병이면서도 증상은 아주 가볍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우르비노 박사는 진정제를 놔 주면서 병을 잊어버리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남은 여생을 편히 살도록...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만한 나이의 의사로서, 경험할 대로 한 의사로서 아프지도 않은데도 아프다고 느끼는 기분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기는 아주 쉽다고 느꼈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실제로는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있었다. 수업 중애 그는 불혹의 나이인 사십 살에 인생에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이해한다는 사실이야, 하고 반 농담으로 말했지만, 막상 바바라한테 뼈지고 보니 그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가 늘 치료해 오던 늙은 환자들의 증상이 자기 몸에도 나타났다.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 간을 만져보지도 않고 정확하게 그 모양과 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양이가 내는 목소리를 느꼈고, 음낭에서 나타나는 자주빚 색깔, 동맥 속을 흐르는 피로 증상을 알 수 있었다. 가끔 새벽에 잠을 깨어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가슴 속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하여 학교 고적대가 연주하다 멈추는 듯했다. 그가 환자들에게 진정제를 주듯이 할 수도 없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그를 이해할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자기를 가장 사랑해 준 페르미나 다자를 떠올렸다. 이 일은 페르미나 다자가 그의 오후 독서를 가로막으면서 자기를 보라고 했을 때 일어났다. 그때, 우르비노 박사는 이미 그의 사랑 놀음이 끝장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냄새만으로 모든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하여튼 이 도시는 비밀을 간직하기는 어려운 도시였다. 가정집에 전화가 막 들어오고난 직후 많은 가정이 전화 때문에 단란한 가정이 깨어지는 일이 많아지자 어떤 가정은 아예 전화 놓기를 꺼렸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부인이 자존심을 버리고 익명의 전화를 받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비노 박사는 누군가가 살짝 종이 쪽지를 대문 밑에 갖다놓지나 않았을까 해서 더더욱 두려웠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그런 일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묘한 해석을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부인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개성이 강한 여인이 눈앞에 보이는 남편의 불의에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인이 질문했을 때 부인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어 눈을 내리깔고 다른 생각을 했다. 페르미나 다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말을 다 깁고 난 후 바느질통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는 부엌에 가서 저녁 준비를 시키곤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드디어 그는 오후 5시에 바바라한데 가지 않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가슴 설레이며 찾던 그녀의 집도, 영원한 사랑의 약속도, 불 같은 사랑으로 한 모든 약속이 영원히 사라졌다. 바바라가 우르비노 박사한테 받은 마지막 선물은 약 포장지로 싼 조그마한 상자 속에 든 에머럴드빚 작은 보석이어서 마부는 그 상자가 구급약 상자인 줄만 알고 아무 말 없이 바바라에게 주었다. 그 이후로 바바라를 다시 보지도 못했고 우연스런 일로도 만나지 않았다. 하느님만이 얼마나 그가 슬픔을 억누르며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아실 것이며 하느님만이 자신의 혼돈을 이겨내기 위해 실험실 문을 닫아 놓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아실 것이다. 바바라를 만나러 갈 5시에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하느님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청하고 일요일에는 영성체를 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지만 그의 영혼은 평안을 되찾았다. 새롭게 태어난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페르미나에게 그동안의 그의 불면증에 대해, 그의 갑작스런 고통에 대해, 울고 싶어지던 오후에 대해, 비밀스런 사랑의 고통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것이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후련히 이야기한 우르비노 박사는 새로운 위안을 얻었다. 페르미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을 쳐다 보지도 앉고 조용히 듣고는 그가 벗어놓은 옷들을 구겨서 세탁할 통에 넣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전과 똑같았다. 다음 날 아침, 침실의 기도대 앞에서 기도하기 전 "내가 죽올 것 같아." 하고 우르비노 박사가 말하자 페르미나는 눈도 깜짝이지 않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은 평온할 테니까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몇 년전, 우르비노 박사가 심하게 앓아 누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페르미나는 똑같은 인정 없는 대답을 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이런 말은 여인들의 무뚝뚝함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너무 매정하게 들렸다. 그날 밤, 페르미나는 진심으로 남편이 죽기를 기도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어둠 속에서 그녀가 그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로 베갯잇을 물면서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웬만한 일로는 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르비노 박사는 매우 당황했다. 페르미나는 울면 울수록 자신의 허약함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감히 아내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창에 찔린 호랑이를 위로하는 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우는 이유가 오늘 오후부터 없어졌다고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 피곤이 엄습했다. 눈을 떴을 때 아내는 침대 곁 희미한 불을 밝혀 놓고 눈을 뜨고는 있었으나 울지는 않고 있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 비장한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있던 앙금이 고통스런 질투로 인해 나타났다. 이 질투가 아내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갑작스레 아내의 주름살이 늘고 입술도 쳐지고 흰 머리카락도 보였다. 아내에게 잠을 청해 보라고 권하자 페르미나는 눈을 딴 곳으로 돌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그 여자가 도대체 누구예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우르비노 박사는 어깨 위에 놓여 있는 세상의 모든 짐을 떨쳐버리 듯 페르미나 다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아내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고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페르미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우르비노 박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줄곧 울었다. 이번 울음은 먼저와 같은 그런 울음이 아니라 살과 뼈를 깎는 듯한 울음으로 그녀의 뺨을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남자답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아내의 뜻을 따른 적이 거의 없다. 뭐든지 반대하고, 나쁜 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거짓 증언에도 무디어지고 남의 명예를 짓밟는 데도 조금도 주저않고, 잘못된 일이 분명한 데도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우르비노 박사가 그날 오후에 고백성사를 받았다는 말을 하자 페르미나는 격노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차라리 시장바닥에 있는 마술사한테 가서 고백하지 그랬어요?" 하고 페르미나 다자가 쏘아붙였다. 패르미나 다자로서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난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남편에 관한 소문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느끼는 초라함이 남편의 부정으로 인한 부끄러움, 분노 그리고 불의 보다 훨씬 참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지저분하게 흑인 여자하고 라니"' 하고 페르미나 다자가 내뱉자 우르비노 박사는, "아니야, 혼혈이야." 하고 고쳐 말했다. 이미 때는 늦었다. "오, 이제야 알겠어요. 바로 그 깜둥이 년 냄새였다는 것을." 일은 월요일에 발생했었다. 금요일 저녁 7시 페르미나는 가방 하나만을 들고 쌍후앙행 정기선을 타고 떠났다. 대녀를 데리고 자신과 남편의 일을 묻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검정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상호 합의에 따라서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부두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간 삼사일 동안 수없이 많이 서로 상의했지만 페르미나 다자가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때까지는 힐데브란다의 농장에 가 있기로 결정했다. 어머니가 왜 떠나는지도 모르고 아이들은 단지 지난번처럼 어머니가 여행을 떠나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우르비노 박사가 일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아무도 오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페르미나 다자가 없어진 것을 알기가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부인이 화를 가라 앉히고 나면 돌아 오리라 생각했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영원히 떠나버렸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는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린 게 단순히 화만 나서 그런게 아니라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여행을 오랫동안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세상사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춰 생각할 줄도 아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페르미나는 기구를 타고 한 여행 이후로는 쌍후앙에는 오랫동안 가 보지 못했었다. 페르미나 다자의 생각에는 비록 낙후된 지방이긴 했지만 힐데브란다의 농장에 가면 자기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남편의 바람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던 처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자신의 대녀와 쌍후앙 드 라 씨에나하에 도착하자 옛날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녀가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한 도시를 보고는 감회에 잠겼다. 군 사령관이 그녀의 도착을 알고 달려와 빅토리아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이때 마침 기차는 페드로 시로 떠나려는 중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위대한 장군이 어린 아이처럼 작아져서 죽었다는 그 작은 침대가 말대로 사실인지 보고 싶어 그 기차에 올랐다. 헷빚이 내리쬐는 오후의 도시 풍경이 너무나 멋있었다. 거리가 마치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가득찬 해변가 같았다. 입구에는 웅장한 모습으로 다듬고 청동 창살로 꾸며진 포르투갈 사람들의 정원이 눈에 띄었다. 황폐한 광장, 마차 앞에 서 있는 잠든 말들, 노란 기차,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당, 수도원 정문, 모든 것이 하나같이 정겨운 모습들이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수없이 질문을 퍼부어 페르미나 다자가 못 살게 굴었던 에스코라스티카 고모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고상한 의복을 입고 에반젤스 공원의 아몬드나무 밑에 시집을 끼고 서 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지만, 옛날 페르미나 다자의 집이었던 곳은 찾을 수가 없고, 허스름한 집들과 창녀촌이 들어선 길거리며 우편물을 기다리며 낮잠을 즐기는 창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옛날 같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볼 것만 같아서가 아니라 기차역에서 묘지까지 늘어선 시체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얼굴을 가린 검정 베일을 더 낮게 끌어 당겼다. 군 사령관이 '콜레라예요.' 하고 말했지만 기구를 타고 본 시체들처럼 목에 큰 구멍은 없었지만 부풀어 오른 시체의 입에 흰 혹을 보고는 콜레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관리가 하느님마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을 바꾸셨다고 말했다. 쌍후앙 드 라 씨에나하에서 페드로 시까지는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노란 색 기차가 가는 데는 하루종일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관사 친구들이 기차 여행을 하면서 중간에 기차를 멈추고 골프 코스인 잔디밭을 산책하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또 기차를 멈추고 목장의 우유를 먹거나 계곡물에 목욕을 하니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페드로 시에 도착하자 그 유명한 장군의 침대가 정말 소문대로 작다는 것을 확인했다. 옆에 있던 다른 방문객은 꽤나 유식해 보였는데, 그 사람은, 독립의 아버지인 그 유명한 장군은 사실 침대에서 죽지 않고 마루 바닥에서 죽었으며 침대는 단지 기념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집을 떠난 이래 보고 들은 것에 별 기분이 좋지 않던 페르미나 다자는 여행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향수가 어린 길들도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야만 추억을 깨뜨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환상에서 깨어난 페르미나 다자는 투계장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총소리를 들으며 다른 길이 없어 추억어린 길들을 어쩔 수 없이 지나긴 했지만, 옛날에 가졌던 그 추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검정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도 오랫동안 과거를 피하던 끝에 마침내 그녀는 어느 날 밤, 사촌 브란다의 목장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본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어 버릴 뻔했다. 마치 진실이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뚱뚱한 몸집에 나이가 든 그녀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그녀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여지껏 사랑하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그녀가 어쩔 수 없이 결혼해 버린, 지겨우리만치 그녀를 사랑하는 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망가진 육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며칠간의 시골 생활 이후에 그 충격으로부터 회복되긴 했으나, 오래 전부터의 공범자들, 즉 훌륭한 말을 탄 카우보이들과 아름답고 잘 차려입은 소녀들인 손자들과 함깨 일요 미사에 가는 것 외에는 목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달구지를 탄 채, 계곡 끝의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난번에 왔을 때는 별로 마음에 들 것 같지 않아서 한 번도가 보지 않았던 플로레스 드 마리아 계곡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막상 눈으로 본 그곳은 완전히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녀의 불행, 혹은 그 마을의 불행은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으로서 그녀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언젠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으로 상상 될 뿐이라는 점에 있었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는 리오하차 주교의 편지를 받은 후, 그녀를 데리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주교는 그녀가 돌아오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을 꺾을 방도를 찾지 못해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아내가 심한 향수병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의 서신을 힐데브란다와 교환한 후, 그녀에게 미리 연락도 해 주지 않고 불쑥 찾아갔다. 그 무렵, 그녀의 머리 속에는 집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아침 11시, 부엌에서 가지 요리를 준비하고 있던 페르미나 다자의 집에 일꾼들의 고함 소리와 말들의 울음 소리, 허공에다 총을 쏘아대는 소리와 마당에서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대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보다는 때 맞춰 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소." 그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장 손부터 씻기 시작한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주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힐데브란다가 점심 때 누가 찾아 올 건지도 말해주지 않은 채 가지요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여지껏 목욕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자신이 너무나 늙고 추한 꼴을 하고 있어서 혹시라도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성을 다해 손을 닦고 매무새를 고친 다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를 만나러 나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고개를 치켜든 채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미 한바탕 싸울 결심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심어 주었고, 그 함께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물론 한없이 기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침묵이라는 무기를 동원하여 그에게 댓가를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가 사라져 버린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트란시토 아리자가 신의 장난인 것만 같다고 표현할 만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우연이 일어났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활동사진의 발명이라는 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를 반 강제로, 시인 가브리엘 레다눈지오의 각본 덕택에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는 4카브리애의 장엄한 개막식에 이끌고 갔다. 어떤 때는 스크린 위의 영상보다도 밤하늘의 별들이 더 볼 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돈 갈릴레오 타콘테의 드넓은 야외 극장이 관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레오나 카시아니가 입을 벌리고 영화에 몰두해 있는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영화는 너무나도 지루했다. 그의 등 뒤에서, 마치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한 여인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로 지겨운 영화로군요 !" 그녀가 한 말은 단 한 마디뿐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 피아노 반주로 무성 영화의 흥을 돋우어 주는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쥐죽은 듯 조용한 상태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최악의 경우 외에는 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는 설사 몇 길 땅 속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만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황량한 날 그녀가, "우리 이젠 헤어져요." 하고 말했던 그날 오후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그의 영혼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는 그녀가 바로 자신의 뒷자리에 남편과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녀의 온기와 심지어 그녀의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건강한 숨결로 깨끗이 정화되었을 것만 같은 공기를 힘껏 들여마셨다. 그는 최근 몇 달 동안 낙담에 빼져 생각했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병균에 의해 시들어가고 있는 그녀를 상상하는 대신, 첫 아기를 가졌을 때 즈음의 젊고 아름다운 그녀를 상상했다. 이제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한 여인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아몬드 향기가 기뻣고, 그녀가 영화에 나오는 여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그는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그 여인의 곁에 그렇게도 가까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있어본 것은 처음이라는 환희를 깨달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오자,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조끼 단추를 잠그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천천히 일어났고, 그들 네 사람은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발견했기 때문에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쥬베날 우르비노는 먼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레오나 카시아니에게 인사를 한 다음, 언제나처럼 정중하게 플로렌틱노 아리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패르미나 다자는 두 사람 모두에게 미소를 지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녀의 인사에 답했지만,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끔찍스런 질병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균형 있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난 2년을 무척이나 힘들게 보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짧았던 머리카락이 뺨 근처에까지 자라 있었으나, 그 색깔은 예전처럼 벌 꿀색이 아니라 알루미늄 빚깔에 가까왔다. 돋보기를 낀 그녀의 눈동자는 예전의 광채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과 팔짱을 끼고 사람들 틈에 섞여 극장을 뼈져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뒤쫓고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집에서 신는 슬리퍼에 무척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녀가 남편의 팔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심지어 출입구 근처에서는 계단의 높이를 잘못 짐작한 듯, 발을 헛디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걸음걸이에 무척 민감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부터도 그는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걷는 늙은 부부들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때의 관찰들이 꽤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극장에서 만났던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나이 무렵에는, 남자들은 중년의 원숙미라 할 수 있을 것처럼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중후해져서 젊은 여자들이 보기에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남편의 팔목을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년만 더 지나면 남편들이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노쇠기라는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 버리고, 반대로 기운을 회복한 아내들이 마치 장님을 이끌듯 남편을 부축하고 다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거울에 종종 자신을 비추어 보곤 하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직까지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여인의 팔에 의지해야 할 만큼 늙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날 이후로, 오로지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는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 만남이 잠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레오나 카시아니를 마차로 데려다 주는 대신, 그는 그녀와 함께 자신들의 발소리가 마치 말발굽 소리처럼 메아리치는 낡은 도시를 걸었다. 때때로 누군가의 짧은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잠든 거리 사이로 새어나오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시 한 번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레오나 카시아니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그들이 서로 보조를 맞춰 함께 걷고 있는 동안, 그녀는 영화가 무척 재미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불운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 사나이가 세관 광장의 어느 발코니에선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멀리까지 퍼져가고 있었다. '그 거대한 바다의 파도를 호치며 내가 노 저어 나아갈 때.....' 그녀의 집 문 앞에까지 도착해 그만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순간이 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들어가서 브랜디 한잔 마시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그런 부탁을 하기는 그때가 두 번째였다. 10년 전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이 시간에 한 번 우리집에 들어가면 아마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걸요." 그래서 그는 결국 들어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중에 자기가 한 약속을 스스로 깨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레오나 카시아니는 아무런 약속도 요구하지 않고 선선히 그를 안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뜻하지 않게 사랑의 성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싹트기도 전에 이미 시들어 버릴 운명의 것이었다. 그녀의 양친은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형제인 동생은 큐라소에서 기반을 잡았기 때문에 그녀는 혼자서 그 집에 살게 된 것이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직도 그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을 때, 일요일이면 그녀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그녀의 집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자신이 그 집에 선물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집이 마치 자기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의 그날 밤, 그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기억이 몽땅 지워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구들의 위치도 바꾸어져 있었고, 벽에는 본 기억이 없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고양이조차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망각이란 정말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고양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군." 그러자 브랜디를 따르고 있던 그녀가 뒤를 돌아다보며, 고양이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니 그런 건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함께 소파 위에 몸을 기댄 채 그들 자신에 대해서, 서로 만나기 전의 각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 놓고, 능숙한 솜씨로 부드럽게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을 굳이 제지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의 손길이 좀 더 깊은 곳으로까지 나아가려 하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자제하셔야지요." 그녀가 말했다. "난 이미 오래 전에 당신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녀가 아직 무척이나 젊은 아가씨였을 때,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한 건장한 사나이가 그녀를 덮쳐 방파제 위에 내팽개치고는, 옷을 벗겨, 순식간에 말할 수 없이 열광적인 기세로 그녀의 몸을 빼앗아 버린 일이 있었다. 그녀는 온 몸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난 채 바위 위에 누워, 영원히 그 남자의 곁에 남아, 그 의 팔에 안긴 채 그의 사랑으로 죽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지만, 그의 윤곽이나 몸집의 크기, 혹은 사랑을 나눌 때의 태도 등을 알고 있으므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대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10월 15일날 밤 11시 반이 조금 지나서, 방파제에서 한 불쌍한 흑인 아가씨를 강간한 적이 있다는 덩치 좋은 사내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에게 내가 있는 곳올 꼭 좀 알려 주세요." 그녀는 입버릇처럼 그런 소리를 하고 다녔으나, 결국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말았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도 이미 그 이야기를 여러 번들은 적이 있었다. 새벽 2시경, 그들은 각각 세 잔씩의 브랜디를 마셨으며, 그는 자신이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브라보, 사자 부인 !"' 그는 그 집을 떠나며 말했다. "우린 호랑이를 죽여 버렸소." 그것만으로 그날 밤이 아주 끝난 것은 아니었다. 폐병 환자의 병동에 대한 거짓말 때문에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녀가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올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몸을 휘청거리는 그녀를 보았을 때, 그는 갑자기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장 먼저 죽을 것 같은 엄청난 심연을 향해 또 한 발자국을 내딛고 말았다. 그것은 현실에 근거를 둔 상상이기에 그 무엇보다도 끔찍스러웠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기다림의 세월들, 막연한 행운을 기다리는 희망의 세월들이 그의 뒤에 남아 있었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날 하루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돌이켜보며, 한때는 자신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 채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다. 몇년 전, 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번의 밀회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잠겨진 문을 살며시 밀어 보았다. 다행히도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 한 점쟎은 기혼녀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자신의 침대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두려워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지구상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며, 세기가 바뀌도록 한숨 한번 쉬지 않고 기다려 온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의 팔을 이끌고 거리를 건너, 죽음의 건너편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기회를 갖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이미 노인 축에 들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56년의 세월은 곧 사랑으로 이어진 세월이었기에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누구도 그런 나이에 여전히 젊어 보인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지난 세기에 받은 좌절 때문에 아직도 남몰래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털어놓을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대였다. 각 연령층의 복장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사춘기가 지난 직후부터 시작되는 노인 복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었다. 나이는 둘째 치더라도, 그건 사회적 위신의 문제였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할아버지 같은 옷을 입었고, 조숙한 외모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서른 살만 넘으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을 당연시했다. 여자들에게는 단 두 가지의 나이밖에는 없었다. 22살을 넘어서지 않는 결혼 연령과 영원히 노처녀로 남는 연령이 그것이다. 결혼한 여인, 어머니, 과부, 할머니 등은 그때까지 살아온 횟수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남은 시간과의 상관관계로 나이를 계산해야 하는, 거의 색다른 종족에 가까웠다. 반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특이한 운명 때문에 심지어 어린 시절에조차 노인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용에 가까운 용기로 늙음이라는 함정과 대면했다. 애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문제였다. 그의 아버지 옷을 고쳐서 입었기 때문에 그는 국민 학교 때에도 자리에 앉으면 땅에 질질 골리는 프록코트와, 귀까지 덮어 버리는 성직자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었다. 그는 근시 때문에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고, 마치 말의 갈기처럼 거칠고 뺏뺏한 머리칼은 그의 외모에 아무런 특징도 주지 못했다. 그 숱한 정치적 불안과 시민 전쟁으로 말미암아, 학문의 기준이 예전보다 덜 선택적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국민학교에조차 환경과 지위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반역군 장교의 군복을 입고 화약 냄새를 풍기며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무기를 보란 듯이 가슴에 꽃고 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운동장에서 서로 총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시험 점수를 낮게 매긴 선생을 협박하는가 하면, 그들 가운데 한 3학년짜리 학생을 교리문답 시간에 하느님은 보수당 편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환에레미타를 쏘아 죽이기도 했다. 반면에, 몰락한 명 가문의 자녀들은 마치 구시대의 왕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다녔는데, 그중에는 맨발 신세를 면치 못하는 가난한 소년들도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역시 그다지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초라하고 가난할 때만이 더 많은 것을 더 할 수 있다 !" 어쨌든, 필요에 의한 복장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그의 수수께끼 같은 본성과 근엄한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되어 버렸다. RCC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3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늙은이로 남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맞추었었다. 따라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언제나 실제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사실, 그와 잠깐 연애를 했던 브리지다 졸레타는 그가 옷을 입지 않고 있을 때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발가벗고 있을 때의 그는 적어도 20년은 젊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결코 자신의 그런 옷 입는 습관을 고칠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도저히 다르게 차려 입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무 살의 나이에 더 젊게 보이는 옷올 입는다는 것은 반바지와 해군 모자를 다시 꺼내 입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그 자신은 당시의 노인 개념으로부터 결코 탈피할 수 없을 듯했다. 페르미나 다자가 극장 출입구 앞에서 비틀거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사랑을 파멸시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것은 바로 대머리였다. 머리칼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처음 순간부터 그는,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고통을 알 수 없을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몇 년에 걸친 투쟁을 시작했다. 써 보지 않은 머리 기름이 없으며, 믿어 보지 않은 신념이 없으며, 감수해 내지 않은 희생이 없었다. 단 한 가닥의 머리칼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머리칼이 바라는 것과 농산물의 수확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잡지에 나오는 농업상의 모든 정보들을 정리했다. 그 무렵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카리브 해 부근의 모든 신문에 게재되는 대머리에 관한 광고들을 스크랩하고 있었다. 똑같은 사람의 사진이 두 장인데, 하나는 마치 참외처럼 시원한 대머리, 다른 하나는 사자보다도 더 많은 머리숱이라는 식으로 그 약의 효능을 선전하는 그런 광고들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그는 그런 대머리 약을 172가지나 써 보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어둠 속애서도 번쩍번쩍 광이 나는 머리 습진뿐이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그는 인디언들의 박하나, 모든 종류의 특효약, 혹은 동양식 물약까지 모두 이용해보았지만, 그때는 이미 삭발한 수도승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천일 시민전쟁이 국토를 피로 물들이고 있던 1700년도에는 사람의 머리칼로 가발을 만드는 이태리인이 그 도시를 찾아왔었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머리들은 그 가발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플로렌티노 아리자 또한 제일 먼저 그 가발 장사에게 달려간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원래 머리칼과 무척이나 흡사한 가발을 구할 수 있었지만, 죽은 사람의 머리칼을 자신의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다닌다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백발이 될 위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게되는 결과가 오고 말았다. 어느 날, 사무실을 나서는 그를 한 주정꾼이 끌어 안고는 모자를 벗기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오, 아름다운 대머리여 !" 그가 소리쳤다. 그날 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마흔여덟의 나이에 마지막으로 남은 몇 가닥의 머리칼마저 손수 잘라 버리고, 완벽한 대머리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매일 아침, 목욕을 하기 전에 턱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비누 거품을 묻혀 면도날로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밀어 버리곤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무실 안에서 조차 모자를 벗지 않고 있었다. 모자를 벗으면 마치 발가벗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후의 그는 대머리를 남성다움의 상징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반면, 그의 치아는 유전적인 요소가 아닌 떠돌이 의사의 엉터리 치료로 말미암아 엉망이 되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치과에 가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우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옆 방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신음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언잰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전에도 아들의 그런 신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의 입을 벌려 보고서야 그 신음이 사랑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치통 때문이라는 것올 알았다. 그런 그를, 승마용 바지에 절반을 차고 모든 치과 도구들올 가방에 넣은 채 보트를 타고 떠돌아 다니는 프란시스 아도나이 박사에게 보낸 사람은 레오 삼촌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입 속을 한번 들여다 본 그 돌팔이 의사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헤 멀찡한 이빨까지도 다 뽑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머리 치료 때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이러한 무식한 치료법이 마취도 하지 않고 피를 봐야 한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게다가 의치라는 것 역시 별로 싫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자신의 이빨을 뽑아 탁자 위에 놓아두면 그것들이 저 혼자시 마구 뭐라고 떠돌어대는 축제 때의 마술사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와, 사랑의 아픔 만큼이나 커다란 고통을 주던 치통을 영원히 없앨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벌겋게 달구어진 아도나이 박사의 핀 셋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으며, 미련스러울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회복기의 고통올 참아내었다. 레오 삼촌은 마치 자신의 고통이기라도 한 듯, 모든 치료 과정을 지켜보았다. 의치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막달레나 강을 따라 처음 여행하던 시절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또한 벨칸토에 대한 그의 광적인 애정으로 이어졌다. 보름달이 밝은 어느 날 밤, 그는 한 독일인 측량사와 내기를 했다. 자신이 나폴키 로맨스를 부르면 숲속 모든 동물들의 잠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정말로 두루미의 날개짓 소리와, 악어가 꼬리를 뒤혼드는 소리, 게다가 놀란 청어가 묻으로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내기에서는 그가 질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 측량사가 마지막 힘을 다해 노래를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그만 그의 의치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그 점은 그가 사랑을 즐기기에는 둘도 없이 알맞은 곳이었지만, 그 집은 오직 페르미나 다자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지어진 집이었으므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결코 그 집으로 다른 여자들을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도 RCC에서의 그의 지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여러 가지 특권들이 주어졌는데, 그증에서도 가장 유용한 것은 밤이나 혹은 공휴일에도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부사장으로까지 진급했던 어느 날, 그는 아가씨 한 명을 불러 허벅지 위에 앉혀 놓은 채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레오 삼촌이 불쑥 들어와서는, 사무실을 잘못 들어 왔나 하고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깜짝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조카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네 녀석도 네 애비와 똑같은 짓을 하는구나 !" 그리고는 문을 닫고 나가려다 말고, 허공을 응시하며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가씨, 아무 걱정 말고 계속하시오. 내 명예를 걸고 당신 얼굴읕 못 본 걸로 하겠소." 그 사건이 다시 거론된 적은 없지만 다음 주가 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월요일에는 한 전기 기술자가 천정에 선풍기를 설치해야 한다며 찾아왔다. 그다음에는 부르지도 않은 열쇠장이가 와서는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도록 자물쇠를 설치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목수가 와서 이유도 밝히지 않고 방의 칫수를 재는가 하면, 가구장이가 견본을 들고와서 벽의 색깔과 어울리는지를 살피는 듯하더니, 다음 주가 되자 문으로는 들어올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소파 세트가 창문을 통해 배달되기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결코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묘한 시간에 와서 작업을 하느라 수선을 피웠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뭐라고 항의를 할라치면 언제나, '윗분의 지시' 라는 대답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사태가 삼촌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부정한 행동에 대한 경고의 의미인지 조차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조카가 남다른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로서 그를 지목하는데 고민을 안고 있던 그의 삼촌이 그의 사기를 복돋아주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것을 그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반면 레오 로아야자는 자신의 동생과 달리 60년 가까운 안정된 결혼생활을 즐겼으며, 일요일에는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네 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해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나음직한 우연의 연속으로, 네 명의 아들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일하게 남은 외동딸마저 허드슨의 보트들을 바라보며 50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길을 택했다. 심지어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 모든 우연의 원인이라는 소문을 진실이라고 받아 들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의사가 그의 삼촌에게 은퇴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할 즈음이 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일요일의 사랑놀이를 조금씩 희생하기 시작해야 했다. 그는 삼촌과 함께 당시만 해도 진귀한 보물이나 다름없던 자동차를 타고 그의 나라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모든 일에서 손을 뗀 그의 삼촌은 자신의 이름이 수놓아진 해먹에 몸을 눕히고 눈 덮인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곤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그의 삼촌이 하천 운항 이외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레오 삼촌의 변함 없는 신조 가운데 하나는 하천 운항 업을 결코 유업의 기업채와 손잡고 있는 내륙 지방의 사업자들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건 언제나 해안 지방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던 사업이었지."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약, 내륙 지방의 사람들에게 이 사업이 넘어가 버리면 그들은 대번에 독일인들에게 그걸 도로 넘겨줘 버리고 말 게야." 그의 신조는 그가 어떤 자리에서건 몇 번이고 되풀이하곤 하는 정치적 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난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고, 심지어 하늘의 별들의 위치가 변하는 것까지 모든 변화들을 보아 왔지만, 이 나라가 변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가 즐겨 털어 놓는 탄식이었다. "사람들은 석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법과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지만, 우린 지금도 여전히 식민지 시대에 살고 있는 거야." 모든 잘못을 연방주의 확립의 실패로 돌리는 동생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천일 전쟁은 76년의 전쟁에서 23년을 후퇴시켰어." 절대의 한계를 떠돌고 있을 뿐인 정치에 무관심한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마치 파도 소리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삼촌의 지루한 연설을 들었다. 하지만, 일단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저돌적인 논쟁꾼으로 돌변했다. 그의 견해는 삼촌의 생각과 달라서, 하천 운항의 장애는 국회가 카리브 해 하천 회사에 부여해준 보트 독점권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오나라는 여자가 아무런 가치라곤 없는 무정부주의 이론으로 네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심어 놓았구나." 그것은 전혀 틀린 해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그런 생각은 지나친 개인적 야심 때문에 그 명석한 지호를 파멸시켜 버리고 만 독일인 장군 요한 엘베르의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삼촌은 엘베르의 실패가 지리에 대한 책임과 거의 상응하는 비현실적 거래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하천 수송력의 유지, 항만 시설, 육로를 통한 접근, 운송 수단 등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시몬 볼리바르 대통령의 적의에 찬 반대도 결코 읏어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사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논쟁을 양쪽 모두 틀리지 않는 부부 싸움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레오의 고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나이가 그의 환상을 희석시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독점권의 포기는 곧 전 세계의 강력한 상대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와 그의 형제들이 이룩해 놓은 역사적 승리를 내던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의 권리를 단단히 움켜 쥐고 있는 한 그 누구도 그것을 넘보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거의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려 했던 무렵, 레오 삼촌은 갑자기 자기가 죽은 후부터라는 조건만을 내건 채 독점권의 포기애 동의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그는 두변 다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으며, 아무도 자기에게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그의 명석함에는 털끝 만큼의 변화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볼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을 피했다. 그는 테라스의 흔들의자에 앉아 만년설을 바라보며 나날을 보냈고,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하천 운송 이전의 먼 옛날 이야기를 즐겨 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대화의 주제 하나가 남아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결혼에 대한 그의 소원이 그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언제나 같은 말로 이따금씩 되풀이하곤 했다. "내가 50살만 젊었어도 레오나 같은 여자와 결혼을 했을 게야. 그녀보다 더 훌륭한 아내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으니까 말야."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오랜 세월 동안의 자신의 부질없는 노력들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의헤 마지막 순간에 좌절을 겪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를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레오 삼촌은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흔두 살의 나이가 되자 그는 자신의 조카를 유일한 상속자로 인정하고 회사에서 완전히 손을 땠다. 그로부터 6개월 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만장일치로 그 회사의 이사장 겸 경영자에 임명되었다. 취임 축하 건배가 있는 후, 물러나는 늙은 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청하여 마치 한편의 비가와도 같은 짧은 연설을 했다. 자신의 삶은 신의 섭리로 인한 두 개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또한 마감되리라는 것이었다. 첫번째는 자신이 죽음으로의 불운한 여행을 시도했을 때 튜르바크 마을에서 해방자의 손에 의해 구출된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숱한 운명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맡길 만한 후계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내 인생의 유일한 좌절은 그렇게 많은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장례식 땐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있소." 따로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그가 '토스카의 아디오 알라 비타'를 부름으로써 행사는 막을 내렸다. 여전히 정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하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던 것 외에 그의 그런 감동은 그 어디서도 표현되지 않았다. 그의 모든 생활, 그의 모든 사고는 언제나 그러했고, 자신의 운명이 페르미나 다자의 그림자로 채워질 그 순간에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을 수 있기 위한 자신의 결정으로 모든 가치가 측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레오나 카시아니가 그를 위해 베풀어준 파티에서 줄곧 그의 머리 속에 맴돌던 상념들은 오로지 그녀에 대한 것들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 자신이 심어준 장미꽃 향기로 그를 추억하며 묘지에 누워 있을 여아를, 혹은 아직도 남핀과 함께 베개 위에 머리를 누이고 있을 그 모든 여인들이 새삼스레 기억에 떠올랐다. 고통애 잠겨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 한꺼번에 그들 모두와 함깨 살고 싶었다. 가장 어려운 시절,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연인들과 언제나 실낱 같은 관계나마 유지해 왔었다. 그날 밤, 그는 로잘바를 생각했다. 그의 동정을 앗아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의 가슴은 고통으로 메어져 왔다. 아름다운 드레스에 긴 리본이 달린 모자를 쓰고, 갑판에서 아기를 흔들어 재우는 그녀의 모습은 눈을 감을 때마다 그의 뇌리 속에 되살아나곤 했다. 때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녀를 이름조차 완전히 모르는 그녀를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확신도 없는 그녀를 찾아 길을 떠날 준비를 했던 적도 더러 있었다. 난초가 활짝 핀 숲속 어딘가에 틀립없이 그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그의 여행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포기되거나 좌절되곤 했다. 어떤 형태로든 페르미나 다자와 연결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집의 신성함을 더럽힌 유일한 여인 나자렛도 그의 기억에 떠올랐다. 그로서는 다른 어떤 여인보다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자였다. 침대 속에서는 무척이나 게을렀음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그로 하여금 페르미나 다자를 잊을 수 있게 해줄 만큼의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런 부드러움보다 더 탁월한 일종의 교활함이 숨겨져 있었고, 이는 곧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불 성실해도 서로를 불신하지는 말자 라는 모토에 힘입어 거의 3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이따금씩 만나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로 하여금 일말의 책임감을 갖게 만드는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 극빈자 묘지에 묻힐 것이라는 소문을 돌었을 때, 그는 주머니를 털어 그녀를 안장했으며, 유일한 조객으로서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다른 과부들을 생각했다. 두 명의 남편이 모두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어 두 남편의 과부라 불리우는 프르덴시아 피트레가 있었고, 그를 자신의 집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의 옷의 단추롤 모조리 뜯어 놓곤 하던 알레라노가 있었으며, 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남자가 될 수 없다면 다른 여자의 남자도 될 수 없다며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성기를 정원용 가위로 잘라 버리려 하던 쥬니가가 있었다. 또한, 그 모든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안잴레스 알파로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음악 학교에서 현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6개월 동안 머물렀던 그녀는, 자기 집의 옥상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조를 밤새도록 그를 위해 첼로로 연주해 주던 여인이었다. 그날 밤 이후로 두 사람은 온 정열을 다해 서투르지만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안잴레스 알파로는 그 죄 많은 첼로를 안고 올 때와 똑같이 허무하게 떠나 버리고 말았다. 망각의 깃발이 휠날리는 여객선에 몸을 실은 그녀는 마치 한 마리 고독한 비둘기인 양 하안 손수건을 흔들며, 그렇게 훌쩍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를 통해, 수없이 경험해 보았으면서도 뚜렷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하나의 사실을 배운 것 같았다. 한 인간은, 각각 동등한 슬픔올 느끼며, 어느 한 사람도 배신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환송 나온 부두의 인파들 틈애 홀로 남은 그는 분노에 치를 떨며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내 가슴 속에는 창녀촌보다도 더 많은 방이...." 그는 이별의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실은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다음 순간, 그의 그 드넓은 가슴 속은 다시금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추억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안드레아 바론을 기억했다. 지난 주, 그는 그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웠었다. 그의 출입을 금하는 오렌지빚 전등이 욕실에 켜져 있었다. 누군가 먼저 온 사람이 있다는 표시였다. 안드레아 바론은 사랑의 정염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여자 가운데 유일하게 몸을 팔아 생활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장사는 오로지 생계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쾌락의 추구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녀는 만인의 마나님 이라는 별명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고급 창녀로서의 화려하고 전설적인 전성기를 보냈던 여자였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그녀의 육체에 녹아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린 사람까지 있었다. 라파엘 레이스 대통령이 간신히 짬을 내 단 30분을 그녀와 함께 보내고 난 뒤, 그녀가 재정상에 탁월한 수훈을 세웠다 하여 종신토록 연금을 지급하게 했다는 사실도 거짓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허락하는 한 최대의 쾌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녀의 행위가 그렇고 그렇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객이자 사회적 유명인사들은 문제가 생길 경우, 그녀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마치 자기 몸을 보호하듯 그녀를 지켜 주었던 것이다. 당연히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여자에게 돈을 줄 수는 없다는 자신의 원칙을 어겨야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설사 남편이라 할지라도 공짜로는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어겨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상징적인 1페소의 댓가에 합의를 보았는데, 그렇다고 정말로 l페소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뭔가 그럴 듯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일 때까지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수많은 위험스런 상대방 중에서 자신에게 일말의 씁쓸함을 맛보게 한 사람이 사라 노리에가 단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을 대단한 행운으로 치부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그 엄청난 정력으로 더 이상 다른 여인들을 미치게 만들지 못하도록 성녀 수용소에 가두어 버렸었고, 그녀는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쳤던 것이다. 하지만 카리브 해 하천 회사를 온전히 떠맡게 된 그는 더 이상 페르미나 다자의 빈자리를 채워줄 다른 여인을 찾을 시간도 열망도 없어져 버렸다. 차츰차츰 그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여인들은 찾아다니는 일상 속에 매몰되기 시작했고, 그들이 자신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때까지, 그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했다. 쥬베날 우르비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그때까지 아무도 그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을 가진, 막 14살을 넘긴 소녀 하나가 유일하게 남았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메리카 비쿠나였다. 그녀는 2년 전에 푸에르토 파드레의 한 어촌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보호자로서, 또한 피를 나눈 친척으로서 철석같이 믿고 있던 가족들에 의해 보내졌다. 그녀는 장난감 같은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든 채 국비 장학금을 받으며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그 도시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굽 높은 하안 구두를 신고 금빚 머리칼을 나부끼며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었다. 그녀는 치열 교정기와 국민 학교 때 생긴 무릎의 흉터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누가 뭐라 해도 아직은 나이 어린 소녀임에 틀림 없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머지않아 어떤 유형의 여인으로 자라게 될지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토요일이면 서커스장에, 일요일엔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서서히 그녀의 신뢰를, 그녀의 애정을 얻어갔으며, 마치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그녀의 손목을 이끌고 자신의 궁궐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천국에의 문이 그녀 앞에서 활짝 열린 것이었다.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난 그녀는 생전 처음 맛보는 행복감에 몸을 떨었고, 주말마다 외출을 나갈 수 있는 특권을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그에게 있어 그녀는 가장 잘 은폐된 위안이었다. 그 오랜 계산된 사랑의 세월 이후에 맛보는 순수한 쾌락에는 그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타락의 매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마음이 맞아 떨어졌다. 그녀는 이제 그 어떤 일에도 충격을 받지 않을 듯한 자상한 노인의 보호 아래 인생을 배우려는 소녀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면 되었고, 그는 일생을 두고 가장 두려워한 역할, 즉 노쇠한 연인으로서의 처신을 선택했다. 그는 그녀가 놀라우리만치 페르미나 다자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닮았다는 사실, 교복이나 머리카락, 걸음걸이, 심지어는 예측을 불허하는 성격조차도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젊은 시절의 페르미나 다자와 똑같이 대하지는 않았다. 더우기 그녀로 페르미나 다자를 대신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그녀 그 자체가 좋았고, 그녀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일 뿐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불의의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처음으로 그녀에게 철저하게 피임약을 복용케 했다. 대여섯 번의 만남 이후부터는 두 사람 모두 일요일 오후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버릇을 갖게 되고 말았다. 그는 유일하게 그녀를 기숙사에서 빼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주말이면 회사 소유의 자동차를 타고 그녀를 데리러 가곤 했다. 중졀모를 쓴 그와, 교복에 해군 모자를 쓴 그녀가 함께 바닷가를 드라이브 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보호자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함깨 하지 말라, 그가 주는 것을 무조건 받아먹지 말라, 얼굴을 너무 가까이 갖다대지 말라는 등등이 충고를 해 주는 사람도 더러는 있었으나, 그녀는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친척 간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특히나 두 사람의 엄청난 나이 차이는 세상 사람들의 의심으로부터 그들을 가려 주었다. 오순절인 일요일 오후 4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막 한 차례의 사랑을 나눈 다음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젊었을 때에는 종올 울리는 것도 장례식의 값읕 매기는 하나의 기준이었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뀔 무렵의 전쟁이 끝나면서 보수당 정부는 식민적 관습을 정리했고, 따라서 장례 의식은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많은 비용이 드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단테드 루나 주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흐레 동안 밤낮을 쉬지 않고 울려댄 종소리 때문에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너무나 극심했고, 따라서 그의 후계자는 꼭 필요한 경우를 위해 장례식 때의 타종을 되도록 제한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오순절의 오후 4시에 돌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로 하여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환청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그 종 소리가 임신 6개월째의 페르미나 다자가 미사를 보러 가던 그 일요일 이후부터자신이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렇게도 갈망해 오던 바로 그 소리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기랄." 그가 어둠 속에 묻힌 채 말했다. "성당의 종소리가 저렇게 울려대는 걸 보니 엄청난 거물인가 보군." 발가벗은 채 잠들어 있던 아메리카 비쿠나도 막 잠을 깨었다. "오순절이라 그런가 보죠." 그녀가 말했다. 퓰로렌티노 아리자는 성당과 관련된 일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를 바 없었고, 그에게 전신학을 가르쳐 주었던 독일인과 함께 성가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이후로는 한 번도 미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로서도 그 종소리가 오순절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뭔가 모든 시민들이 애도해야 할 만한 사건이 생긴 게 틀림 없을 것만 같았다. 카리브 해 망명객의 대표단이 그날 아침에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가 자신의 사진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 왔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인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을 행사(그 대부분은 장례식이었지만)에 초대해 주곤 하던 많은 다른 망명객들과는 가깝게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 종소리가 무신론자에, 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냐, 저 정도의 종소리면 최소한 시장 정도는 될 게야." 아메리카 비쿠나는 아직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들은 한 차례의 사랑을 나누었고, 달콤한 낮잠에서 깨어나 옷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는 중이었다. 천정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있었고, 지붕 위를 기어다니는 도둑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른 모든 여인들을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경우보다도 훨씬 더 절박한 것이었다. 그 방은 배의 선실을 본따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선풍기로도 오후 4시의 열기를 식힐 수는 없어서, 방안은 진짜 선실보다도 훨씬 더 더운 것 같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로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조그만 공간으로서 그 방을 자신의 사무실 뒷편에 마련해 두었었다. 평일 날에는 선원들의 고함 소리와 항구에서 들려오는 기중기 소리 등 여러 가지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소녀에게는 일요일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들은 원래 그녀가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함께 오순절 휴일을 즐길 예정이었지만, 성당의 종소리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바람에, 그는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옷을 입었다. 먼저 그는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이 풀어 놓았던 그녀의 머리를 손수 묶어준 다음, 그녀를 탁자 위에 앉혀 놓고 신발 끈을 매 주었다. 그녀는 언제나 신발 끈을 제대로 묶지 못해 고생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만남 이후의 그들은 서로의 나이를 잊어 버리고,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서로를 대했다. 휴일의 사무실은 문이 잠겨 있었고, 항만에는 보일러가 고장난 배 한 척만이 떠 있을 뿐이었다. 찌는 듯한 날씨가 비를 예고하긴 했지만, 투명한 공기와 일요일의 침묵은 마치 다른 계절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도 모르는 종소리가 듣는 이의 가슴을 한결 슬프게 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스페인인들이 흑인들을 하역하곤 하던 현관으로 내려갔다. 창고 속에서 자동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뒷좌석에 올라 타서야 졸고 있던 운전수를 깨웠다. 창고 뒤를 돌아나온 자동차는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사람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 옛 시장터를 지나, 먼저 구름을 헤치며 항구를 뼈져 나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운전수의 어깨에 손을 대고 종소리의 이유를 물어 보았다. "염소 수염을 기르고 다니던 그 의사 때문이랍니다." 운전수가 대답했다. "이름이 뭐라더라?"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대번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수의 입을 통해 그가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지를 듣고 나자, 순식간에 거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도시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의사, 게다가 수많은 업적들로 세인의 존경을 받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앵무새를 잡으려다 망고 나무에서 떨어져 척추가 부러지는 바람에 여든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페르미나 다자가 결혼을 한 이후로,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모든 행동들은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일어나 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그는 전혀 승리의 쾌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대신에, 그를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공포였다. 자신이 죽었을 때도 저렇게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까 하는 환상적인 인식 때문이었다. 그의 곁에서 자갈길에 흔들리고 있던 아메리카 비쿠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 내가 너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려면 앞으로도 한 50년쯤은 더 지나야 될 것 같구나." 그는 예레미아 드 쌍아무르의 장례식을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그는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녀를 학교 문 앞에 내려주고, 곧장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집으로 차를 몰게 했다. 그 집 주변의 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와 마차,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비보를 들은 라씨데스 을리벨라 박사의 손님들도 달려와 있었다. 군중들의 틈을 헤집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간신히 침실에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방문을 막고 서 있는 사람들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쥬베날 우르비노의 시신을 확인했다. 목수가 관을 짜기 위해 시신의 칫수를 재어 갔고, 그의 옆에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차려 입었던 새 드레스 그대로, 낙담한 표정의 패르미나 다자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무모한 사랑에 자신을 헌신한 이후로 끊임없이 그런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왔었다. 스스로는 별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그녀를 위해 명예와 재산을 획득했고, 오로지 그녀를 위해 자신의 건강과 외모에 신경을 썼으며,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엄두도 내지 못할 시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것이었다. 마침내 운명은 자신에게 미소를 던져 주었다고 판단한 그는 용기가 생겼다.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영원한 성실함과 끝없는 사랑에의 서약을, 그녀가 과부가 된 바로 그날 밤에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분별 없고 몰지각한 것이었다는 자책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두번 다시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두려움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좀더 덜 잔인하고, 언제나 생각해 왔듯이 좀더 사리에 합당한 행동을 했어야만 옳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슬픔에 잠긴 채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 잔인한 밤이 그들 둘 모두의 운명에 여전히 남으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도저히 다른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2주일 동안, 단 하루도 그는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절망에 뼈진 채, 페르미나 다자가 남은 여생을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며 살 것인지를 자문했다. 그는 아랫배가 마치 거대한 북처럼 부어오르는 듯한 변비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잘 알고 있은 덕분에 남들보다 훨씬 잘 견더낼 수 있었던 노쇠의 불편함이 한꺼번에 그를 습격했다. 일 주일을 집에서 보낸 후, 수요일에야 사무실에서 나온 그를 보자,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의 창백하고 늘어진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단지 약간의 불면증에 시달렸을 뿐이라고 그녀를 안심시키며, 마음의 상처를 비집고 쏟아져 나와 버릴 것 같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혓바닥을 깨물어야만했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는 건강한 사고를 위한 단 한순간의 햇살도 그에게 용납해 주지 않았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정신을 집증시킬 수 없고, 음식은 물론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또 한 주를 보내며 구원의 신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금요일이 되자, 그는 까닭을 알 수 없는 평정에 사로잡혔다. 새로운 변화는 전혀 없을 것이라는 예감, 평생을 통한 자신의 모든 노력들이 한낱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리라는 예감,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 나갈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으로 받아들여지는 평정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한 장의 편지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겉봉에 씌인 필체는 그렇게 숱한 변화들도 끝내 변화시키지 못한 그녀의 필체임이 분명했고, 면지 속에 깃들어 있는 치자나무 향내조차 분간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바로 그가 세기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두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온 그녀의 편지라는 사실을 그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H? 페르미나 다자는 분노에 휩싸여 마구 갈겨쓴 자신의 편지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연서로 받아들여지리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녀는 가능한 한 최대의 분노를 담아, 가장 잔인한 단어를 구사해가며, 가장 신랄한 험담들을 늘어놓았으니, 자신이 보기에는 세상에 그것보다 더 공격적인 편지가 없을 듯했다. 그 편지는 그녀가 자신의 새로운 상황과 타협하기 위한, 가슴 아픈 푸닥거리와도 같은 최후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녀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지난 반 세기 동안의 노예 상태, 하지만 일단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겉잡을 수 없이 자신마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러한 상태를 극복해 포기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것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녀는 하룻밤을 지새우기가 그렇게도 힘들고 고독한 흉가의 유령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고,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를 기읏거리며 과연 정말로 죽은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을 떠난 남편인가 아니면 뒤에 남은 자신인가를 스스로 반문하며 번뇌에 몸을 떨었다. 자신을 바다 한가운데 홀노 남겨놓고 떠난 남편에 대한 깊은 원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남편 생각을 할 때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베개 밑에 놓여 있는 그의 잠옷이며, 환자용 같았던 그의 실내화며 잠자기 전 머리를 빗고 있을 동안 거울 속에 비친 남편의 옷 벗는 모습이며, 그의 체취가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페르미나 다자에게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갑자기 남편에게 잊어 버리고 말 못한 것이 생각날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마를 툭툭치곤 했다. 매 순간마다 수없이 많은, 남편만이 그녀에게 답해 줄 수 있는 일들이 떠올라 이미 죽고 없는 남편을 생각하곤 했다. 과부가 되어 처음으로 일어난 날 아침, 페르미나 다자는 눈을 감은 채로 어떻게 하면 좀더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오랫동안 처음으로 남편과 같이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그가 집에서 자지 않았다는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녀가 식탁에 앉자, 혼자라는 생각보다는 이미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와 식사는 같이 하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페르미나는 오후 그녀의 딸 오페리아가 남편과 세 딸을 데리고 와 같이 식사하기 전까지는 그 식탁을 쓰지 않고 간이로 만든 작은 탁자에서 식사를 했다. 딸의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식사는 하지 않은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부엌을 오락가락하다가 배가 고플 때에는 쟁반도 사용하지 않고 식기에 담긴 음식을 난로불 앞에 서서 하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먹곤 했다. 그 하녀는 페르미나 다자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고 그리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죽은 남편의 환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든지 남편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꼭 있었다. 남편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능하다면 모든 일을 비탄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페르미나 다자는 죽은 남편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물건들을 집에서 치워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만 죽은 남편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마치 죽은 남편의 환영을 뿌리째 뽑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 서재의 책을 가져 가겠다고 했으니까 그 방은 결혼한 이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바느질 방을 꾸밀까 생각증이며 그녀의 딸은 몇몇 가구와 뉴올리안즈의 골동품 경매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많은 잡다한 것들을 가져 가겠다고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신혼 여행중에 산 물건들이 이제는 골동품 에호가들의 애호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기분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몹시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하인들을, 이웃들, 그리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온 친구들이 놀리는 가운데 집 뒤뜰 공터에 소각장을 만들어 남편을 생각나게하는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지난 수백년 이래 그 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비싸고 멋진 옷들, 멋있는 구두들, 남편 초상화보다도 남편을 더 닮은 그의 모자,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앉았던 흔들의자며 그녀의 생활에 너무나 밀접해진 나머지 지금은 그녀의 분신처럼 되어버린 많은 물건들을 단순한 위생상의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남편도 기꺼이 찬성하리라 믿으며 조금도 의심 없이 태워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남편은 가끔 숨막힐 듯한 나무관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화장되기를 더 원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교회에서는 화장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의 남편은 주교에게도 가끔 이 문제를 의논했었다. 주교의 대답은 언제나 교리상으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화장은 단순히 공상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의 그 공포를 잊을 수 없어 남편의 장례식 와중에서도 죽은 남편에게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될 수 있도록 관에 빚이 들어갈 수 있게 작은 틈을 남겨 놓으라고 목수에게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었다. 갖가지 물건을 불태워버리는 것도 남편을 잊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죽은 남편에 대한 추억이 불에도 견디어 냈듯이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 참기 어려웠던 것은 남편의 옷을 태우고 난 후에도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가졌던 장점뿐만 아니라 그녀를 아주 난처하게 했던 단점까지도 여전히 아쉬워했다. 남편이 옆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걸어올 것만 같았다. 남편에 대한 추억들이 그나마 그녀가 슬픔을 견디어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페르미나 다자는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마음 속 깊이 작정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점점 쉬워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삼 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페르미나 다자는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더 넓고 크게 볼수록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의 한평생 동안 한 순간도 그녀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 악령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악령은 에반잴스 공원으로 그녀를 불러내고 그녀가 나이 들었을 때는 그녀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유령이 아니라 사형 수들이 입는 옷을 입고, 가슴으로 모자 쓴 머리가 축 떨어진 무서운 유령이었다. 그 유령의 무례한 경솔함이 페르미나 다자를 너무나 괴롭혔기 때문에 페르미나 다자는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르미나 다자가 18살된 그에게 절교를 선언한 이래 그녀는 그의 가슴에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만 하는 증오의 씨를 남겨놓았다는 것읕 알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언제나 증오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 유령이 가까이 있을 때는 공기 속에서도 그 유령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보기만 해도 페르미나 다자는 화가 나고 두려워 그를 자연스럽게 대할 수가 없었다. 죽은 남편을 위한 조화의 향기가 집안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페르미나 다자에게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다시 한 번 사랑을 고백했을 때, 페르미나 다자는 그의 무례한 행동이야말로 바로 하느님이 주신 복수에 대한 무서운 응답이라고 믿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추억이 페르미나 다자를 화나게 했다. 장례식 다음날,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며 잠이 깼을 때 단순한 의지의 힘만으로도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있었지만, 분노만은 항상 남아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잊으려는 갈망이 오히려 그를 더욱 생각나게 하는 가장 강렬한 유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페르미나 다자는 향수에 젖어 처음으로 꿈같은 비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 무엇 하나도 옛날 같지 않았기 때문에 에반잴스 공원의 작은 아몬드나무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를 사랑해주던 그 벤치를 떠올려 보았다. 사람들은 모든 것올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노란 잎으로 융단을 깔아 넣은 듯하던 나무도 옮겨 버렸고 교수형 당한 영웅의 동상도 다른 동상으로 교체했는데,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이름이나 날짜나 동상 건립 이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었고 그 동상에 제복을 입혔으며 동상이 서 있는 주춧돌 밑에는 그 일대 구역에 필요한 전기 조절 장치를 설치해 놓았다. 그 옛날의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비에도 상처받기 쉬웠던 그 말 없이 조용한 소년이 그녀의 처지와 슬픔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영혼을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타는 분노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좀먹은 폐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페르미나 다자가 바바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갔던 농장에서 되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외사촌 언니인 힐데브란다가 방문했다. 이제 나이도 들어 살도 찌고 매사에 느긋해진 힐데브란다는 그의 아버지를 닮은 장남을 데리고 왔는데 그 장남은 한때 육군 대령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쌍후앙에서 있었던 바나나 농장의 인부들의 대 학살 사건에 그의 아들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들과 부자의 인연을 끊었다. 페르미나 다자와 힐데브란다는 가끔 만나 그들이 처음 만나던 때를 회상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힐데브란다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그 전보다 더 향수에 젖었으며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매우 상심해 있었다. 그들의 기억을 더욱 잘 되살리기 위해 힐데브란다는 구 시대의 숙녀들처럼 구식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왔다. 그 사진은 어느 날 오후 네덜란드인 사진사가 찍어줬는데 그 일 때문에 페르미나 다자는 젊은 쥬베날 우르비노한테 청혼을 허락하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그 사진을 잃어버렸고 힐데브란다가 가지고 있는 사진도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희미하게나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올 알아볼 수가 있었다. 힐데브란다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운명이 자기 자신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힐데브란다는 페르미나에게 전해주던 첫 전보를 떠올리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했다. 힐데브란다는 슬픈 망각의 새가 되어버린 플로렌티노 아리자애 대한 추억을 가슴 속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힐데브란다가 생각하기에는 페르미나가 플로렌티노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가끔 그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플로렌틱노가 페르미나 다자의 첫 사랑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패르미나 다자는 시내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금방 듣듯이 플로렌틱노 아리자의 소식은 늘 듣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이상한 버릇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패르미나 다자는 전혀 그런 소문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런 일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플로렌티노가 여전히 신비주의자인 듯한 태도를 취하고 사람들이 쳐다보고 존경하는 그런 수수깨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페르미나 다자애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의 모습은 옛날의 플로렌티노 아리자라고 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힐데브란다가 가끔 한숨을 쉬며, "불쌍한 양반, 상처를 입은 게 틀림 없어" '하고 말할 때는 언제나 깜짝 놀랐다. 페르미나 다자는 오랫동안 아무런 스ㄹ픔도 느끼지 않고 그를 보아왔던 것이다. 마치 잃어버린 그림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레스 드 마리아 목장에서 돌아온 직후 어느 날 저녁 극장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만났을 때 이상한 감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 생겼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여자와 함께, 더군다나 흑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너무나 침착하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했기에 변한 것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니라 페르미나 다자 자신의 사생활에 불미스런 바바라 사건이 생긴 이후 자기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나 오는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연민어린 눈으로 보아왔다. 남편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곳애 있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또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용서하며 또한 잊어버린다는 행동이리라. 인생에서 더 바랄 것이 없는 나이가 된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페르미나 다자의 사이에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새삼 사랑을 고백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번째 충격에 대한 무서운 분노는 남편에 대한 상징적인 화장을 한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분노는 점점 더 커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추억을 가라앉히는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 그녀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대한 추억을 묻어버린 양귀비 밭이 서서히 그리고 무정하게 자리잡혀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마음에도 없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페르미나 다자는 더더욱 화가 났고 화가 나면 날수록 플로렌티노 아리자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마침내, 페르미나 다자가 더 이상 참기 힘들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페르미나 다자는 죽은 남편의 책상 앞에 앉아 모욕과 욕설이 가득 담긴 세 페이지나 되는 편지를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썼다.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일쩡 동안 플로렌틱노 아리자에게 저지른 자신의 매정함을 용서받을 것 같았다. 지난 몇 주일 동안 플로렌틱노 아리자도 역시 괴로웠다. 페르미나 다자에게 또다시 그의 사랑을 고백한 날 밤, 그는 오후에 내린 홍수로 황페해진 거리를 아무 목적 없이 거닐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50년 이상이나 자기를 괴롭혀 오던 호랑이를 막 죽이고 난 후, 그 호랑이 가죽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졌다. 시내는 심한 폭우로 인해 비상 사태였다. 어떤 집에서는 반나의 남녀들이 홍수로 인해 남아 있는 마지막 세간살이를 끌어 내느라고 야단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의 재앙이나 자기의 재앙은 같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잔잔했고 카리브 연안의 별들은 조용히 빚나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지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늘과 같은 이 장소 이 시간에 몇 년 전에 레오나 카시아니와 들은 <눈물에 젖은 강을 건녔네>라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밤, 그 노래는 외로운 그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장송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현명한 조언이 필요했다. 종이 꽃으로 장식한 가짜 여왕같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여인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피할 수가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런 여자를 하나 쉽게 찾을까 하고 길을 거닐다 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기숙사 창문에 비친 불빚을 보니 아메리카 비쿠나 생각이 났다. 아직도 어린 아기같이 침대 이불 속에서 잠에 취해 있을 그녀를 새벽 두 시에 불러내기에는 늙은 할아버지의 용기가 부족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레오나 카시아니가 혼자 자유스럽게 살고 있으며 그녀는 언제나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상관 않고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그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는 너무나 영리해 그가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서 울어도 그를 잘 이해해 주어 서로를 무척 좋아했다. 몽유병 환자처럼 황폐해진 시내를 거닐면서 오랫동안 생각한 후 자기보다 젊은 두 과부 중 하나인 프르덴시아 피트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꽤 오래됐지만 그동안 만나지 않은 것은 프르덴시아 피트레가 눈도 조금 멀고 늙어가는 자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를 생각해내자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집으로 돌아와 포도주 두 병과 안주용 피클을 작은 가방에 넣고 아직도 그녀가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아직도 혼자인지, 아직도 살아있는지 조차 모른 채 그녀의 집으로 갔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문을 굵는 신호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그때도 젊지는 않았지만 젊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문을 긁는 것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신호였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거리는 어두웠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검정옷을 입고 빳빳한 모자를 쓰고 있어서 희미하게 윤곽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는 또한 우산을 팔에 걸고 있었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눈이 너무 어두워 밝은 빛 속이 아니고서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금속으로 된 그의 안경테 위에 비치는 희미한 가로수 불빚으로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마치 손에 피를 묻히고 서 있는 살인자같이 보였다. "불쌍한 외토리가 쉴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군"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말했다. 뭔가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떠오르는 것이 그 말밖에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가 프르덴시아 피트레를 마지막으로 본 이래 너무나 많이 늙은 것을 보고 놀랐으며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를 보고 놀랬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 모두 처음 놀란 다음 서서히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켰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당신은 묘지에 갈 때가 가까워진 것 같구려." 하고 프르덴시아 피트레가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단테 드 루나 주교가 돌아가신 이후 가장 엄숙하고 호화롭게 장식한 장례 행렬을 11시부터 창가에서 보고 있었다. 땅을 흔드는 천둥소리 같은 대포 소리, 행진하는 군악대의 불협화음소리, 그리고 전날부터 쉬 낮잠지 않고 시끄럽게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에 맞춰 들리는 장례 음악이 그녀의 잠을 깨웠다. 그녀의 발코니에서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제복을 입은 기병대, 종교 단체, 학생들, 검정색 리무진을 탄 고관들의 행렬, 머리에 깃을 달고 금빚 마구로 장식한 말들이 끄는 마차, 역사적인 대포가 달린 마차 위에 놓인 국기로 덮인 노란 관,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서 조화를 운반하는 오래된 이인승 포장마차를 보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후 장례 행렬이 프르덴시아 피트레의 발코니 옆을 지나자마자 큰 비가 왔고 장례 행렬은 뿔뿔이 흩어졌다. "죽는다는 것은 정말 허무한 일이에요." 하고 그녀가 말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죽음은 재미가 없어, 특히 우리 나이에" 하며 맞장구를 쳤다. 플로렌틱노 아리자와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축대 위에 앉아 눈 앞에 확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을 반쯤 차지한 듯한 등근 달과 수평선 상에 보이는 배의 빚나는 불빚을 쳐다보고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 불어오는 따스하고 향기로운 미풍을 만끽하면서 그들은 프르덴시아 피트레가 부엌에서 잘라온 빵과 포도주와 피클을 먹었다. 그들은 프르덴시아 피트레가 자녀가 없이 과부가 된 후, 많은 밤을 이렇게 지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누구든지 그녀와 같이 있고 싶다면 무조건 받아들이던 시기에 그녀를 만났었다. 아마 그 당시 상황으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시간제로 고용됐더라도 그녀는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진실하고 오래 지속된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가 비록 한 번도 암시를 한 적이 없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그의 탐욕, 나이에 비해 조숙한 그의 외모, 광적인 계급 의식, 받기는 하되 주지는 않는 그의 삶의 태도를 따르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그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좋았다. 왜냐하면 플로렌티노 아리자만큼 사랑에 굶주린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참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남자였다. 그들의 사랑은 어떤 한계를 절대로 넘지 않았다. 그 한계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를 위해서 언제까지라도 결혼하지 않은 자유의 몸으로 있어야 한다는 결심에 의해 생긴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둘의 관계는 수년 동안 계속되어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석 달은 집에 있고 석 달은 돌아다니는 영업 사원을 프르덴시아 피트레에게 소개해 결혼을 하게 중매를 했는데, 그녀는 그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와 네 아들을 두었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그들 중 한 아이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자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두 사람은 젊은 시절에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포도주를 두 잔 이상은 마시지 못하는데, 세 잔을 마신 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그에게 원한다면 그의 상의며 조끼며 바지며 모든 것을 다 벗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옷올 벗고 있을 때 서로를 더 잘 알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옷을 모두 벗는다면 자기도 옷을 벗겠다고 했지만 얼마 전 옷장 거울 속의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앞으로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벗은 모습을 보일 용기는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번쩍 나서 거절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포도주를 네 잔이나 마셔 자기를 잘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똑같은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지난 과거,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줄 과거 속에 숨겨진 길을 간절히 찾고자 했다. 그는 영혼이 그의 입 밖으로 달아나기를 원했다. 수평선에 새벽 빚이 밝아 올 무렵,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우연히 묻는 투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프르덴시아 피트레에게, "당신 같은 나이 많은 과부에게 누가 청혼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하고 물었다. 그녀는 주름진 늙은 여인의 옷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 우르비노의 미망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자들이란 언제나 질문 그 자체보다 질문에 숨겨진 뜻을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을 항상 잊곤 했다. 프르덴시아 피트레는 다른 여자들보다 더 질문에 숨겨진 뜻을 많이 생각했다. 차가운 그녀의 반박에 덜컥 겁이 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슬며시 문께로 나가며,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또 다시 콧방귀를 뀌며 "가서 미친년하고 재미나 보구려. 미친년이라면 당신을 편안하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진짜 할 말이 무엇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닌 누구라도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한 처지에 새벽 3시에 단지 포도주를 마시며 빵과 피클을 먹기 위해 그녀를 깨울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틀렸오.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오. 오늘 밤 나는 노래나 부르면서 지내고 싶소."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말했다. 그녀는, "자 그럼 노래나 불러요." 하고 말했다. 프르댄시아 피트레는 그 당시 유행하던, '로마나, 난 당신 없인 살 수 없어요'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와 사랑 놀음은 감히 하고 싶지 않아 그날 밤은 그렇게 끌을 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6월의 마지막 다알리아꽃 향기나는 시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이미 빚을 잃은 곳이며 한 맺힌 과부들이 새벽 미사를 마치고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 길을 초라한 과부가 아니라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단순히 새벽녁에 흘리는 그런 눈물이 아니라, 51년 9개월 4일 동안 억누르며 참아온, 이제는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그런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의식하고 있지 못했다. 눈을 뜨고 깨어나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큰 창문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하녀들과 정원에서 공놀이 하고 있던 아메리카 비쿠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제 정신이 들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의 어머니 침실에서 잠이 들었었다. 그는 어머니의 침실을 깨끗이 정돈해 두고 있었다.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때 그곳애서 자면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침대 건너 편에는 산초의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그 큰 거울이 걸려 있어 눈만 뜨면 거울 깊숙이 페르미나 다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운전수가 아메리카 비쿠나를 기숙사에서 그의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을 알고는 토요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꿈 속에서 페르미나 다자의 화난 얼굴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면서 목욕을 마친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천천히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향수를 뿌려 흰 수염에 바르고는 침실을 나왔다. 이층 난간에서 토요일마다 그를 들뜨게 하는 아름다운 아이가 교복을 입고 우아하게 공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웬지 오늘 아침에는 그를 조금도 동요케 하지 않았다. 그는 아메리카 비쿠나에게 함깨 외출하자고 해 놓고는 차에 오르기 전, "오늘은 우리 사랑을 나누는 일은 하지 말자" 하고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지금쯤이면 미끈한 천장에 걸려 있을 만국기 밑에서 부모들이 자녀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복잡한 미국식 아이스크림 가게로 아메리카 비쿠나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그 당시 이상한 향내가 나서 가장 유행하던 음식인 여러 가지 색깔로 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담긴 큰 컵을 주문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블렉 커피를 마시며 유리잔 밑 바닥까지 닿는 큰 스픈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소녀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는, "나 결혼한다." 하고 말했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스픈을 허공에 중지시킨 재 못 믿겠다는 듯이 그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제 정신이 들어 웃으면서, "농담 마세요. 그 나이에 결혼이라뇨?" 하고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아메리카 비쿠나는 공원에서 인형극을 보고, 부두 생선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방금 시내에 들어온 곡마단의 동물들을 보고, 노점에서 학교로 가져 갈 여러 종류의 과자를 사고 시내를 여러 차례 드라이브한 다음, 삼종 소리를 들으며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 그녀를 학교에 데려다 줌으로써 자기는 이제 그녀의 연인이 아니라 보호자라는 생각에 아메리카 비쿠나가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아메리카 비쿠나가 그녀의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하고 싫어할 경우애는 차를 보냈지만 그녀를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 주부터 그들 두 사람의 나이를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사과 편지를 쓰려고 마음 먹었다. 편지 쓰는 유일한 목적은 아직도 자기는 페르미나 다자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지만 다음 날로 미루었다. 정확히 3주일을 고민한 월요일 아침 비애 흠뻑 젖어 집에 돌아온 그는 페르미나 다자의 편지를 찾아냈다. 밤 8시였다. 두 하녀는 잠자리에 들었고 그의 침실까지 가는 복도에는 하녀들이 불을 켜 놓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식당 식탁에는 검소하긴 하지만 맛있는 저녁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알았지만 기분 나쁜 편지를 받고 난 후 식욕을 잃어버려 어쩌다보니 며칠을 굶었는데도 별로 시장하지가 않았다. 그는 손이 너무나 떨려 침실에 있는 머리 위의 불을 켜기가 어려웠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비에 젖은 편지를 침대 위에 놓고 탁자 위 램프에 불을 밝혔다. 자기 자신의 감정올 억누르는 보통 때의 습관처럼 침착을 유지하며 젖은 상의를 벗어 의자 뒤에 걸고, 조끼를 벗어 조심스럽게 접어 상의 위에 올려 놓고 이미 유행이 지난 검정 넥타이와 빳빳한 칼라를 풀고, 숨을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셔츠 단추를 풀고, 혁대 끈을 느슨하게 하라고 마침내 모자를 벗어 마르도록 창가에 놓았다. 그리고는 편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몸을 떨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는 순간 너무 흥분한 나머지 편지를 침대 위에 놓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를 뜯기 전 그의 이름이 적힌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손수건으로 봉투를 닦는 동안 그 비밀은 페르미나 다자와 자신 두 사람만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세 사람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편지를 전달한 사람은 남편이 죽은 지 3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우르비노의 미망인이 평소에 가까이 지내지 않던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분명히 눈치챘을 것이며 페르미나 다자는 너무 바쁘게 처리해 일반 우편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비밀스럽게 하기 위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말고 익명의 편지처럼 문 밑에 놓아두라고 부탁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를 뜯지 않아도 되었다. 물이 풀을 녹였다. 그런데도 편지는 젖어 있지 않았다. 인사도 없이 빈틈 없이 쓰여진 세 페이지는 페르미나의 결혼한 이름 첫자로 싸인이되어 있었다. 플로렌티노는 침대에 앉아 할 수 있는 한 빨리 한 번 읽어보았다. 편지는 논조로 살짝 꾸며진 것 같았다. 그가 두 번째 페이지를 읽기 전에 그 편지는 생각했던 대로 사실상 자기를 무시하는 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편지를 접지도 않은 채로 침대 불빚이 보이는 곳에 놓고, 구두와 젖은 양말을 벗고 문 옆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이용해 머리맡에 있는 불을 썼다. 마침내 플로렌티노는 부드러운 털 이불을 끌어당겨 덮고선 바지와 셔츠는 벗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머리를 독서를 할 때 뒤에 받치는 두 개의 큰 베개 위에 올려 놓고서 그는 다시금 그 편지를 읽었다. 이번에는 한 음절 한 음절 자세히 읽으면서 편지의 숨은 뜻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그리고서도 네 번이나 더 읽어 드디어는 편지에 쓰인 단어를 완전히 외우다보니 그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마침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봉투는 없이 탁자 서랍에 편지를 놓고, 팔을 뒷머리에 깍지 끼고는 약 네 시간 동안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거의 숨도 쉬지 않고 페르미나가 한때 비쳐졌던 거울 속에 한 지점을 응시하면서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정확하게 밤 12시가 되어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부엌으로 가서 뜨거운 커피를 원유처럼 진하게 타서 방으로 가지고 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탁자 위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붕산 액이 들어 있는 유리잔에 그의 틀니를 담그고 비스듬히 누운 석상 같은 자세를 취하여 가끔 조금씩 움직이며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렇게 6시가 되자 하녀가 아침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그가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편지 속의 모욕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진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의 성격과 그럴만한 이유의 중대성을 생각해 보면 더 지독할 수도 있었던 합당하지 못한 비난을 굳이 수정할 마음은 없었다. 그의 흥미를 끈 것은 편지 그 자체였으며, 편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로 하여금 페르미나 다자의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답장을 하는 것은 그의 권리라고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페르미나의 편지는 플로렌티노로 하여금 답장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생은 그가 원하던 바로 그곳에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달렸다. 그는 반 세기 이상 그를 괴롭혀 온 고통이 여전히 많은 도전을 해 오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그는 지금까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열성과, 더 깊은 슬픔과 더 많은 사랑으로 도전해 오는 고통과 대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지 5일 후, 그가 사무실에 나가자 마치 플로렌티노 자신이 타자 소리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빗소리 같던 타자 소리가 멈추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조용한 한 순간이었다. 타자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을 때,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레오나 카시아니의 책상이 있는 자리로 가서 그녀의 손가락에 마치 인간처럼 대답하는 그녀의 개인 타자기 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는 놀란 듯한 환한 읏음을 지으며 문쪽을 바라다 봤지만 쉬지 않고 마지막 절까지 타자를 계속했다. "귀여운 아가씨, 만약 아가씨가 이 타자기로 친 편지를 받는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말 좀 해 주겠소."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묻자, 레오나 카시아니는 이미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았지만 그녀의 답은 순전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맙소사, 나는 그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아서요." 그래서 레오나 카시아니는 다른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도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체없이 그 모험을 감행해보기로 작정했다. 그는 사무실 타자기 한 대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의 부하 직원들이 농담으로,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잔꾀를 가르쳐 주지는 못 할걸요." 하고 그를 놀렸다. 새로운 일에 흥분한 레오나 카시아니는 집에서 그에게 타자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로타리오 수굿트가 악보를 보고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면서 바이올린을 시작하는 데만 적어도 5년은 걸리며 직업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려면 5년이 더 필요하며 연주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일생 동안 매일 하루 6시간씩 연습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은 다음부터는 조직적으로 배우는 것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머니를 졸라 어떤 장님의 바이올린을 사 로타리오 수굿트한테 다섯 가지 기본 규칙을 배워 일 년도 채 되지 않아서 교회 성가대에서 용감히 연주하였고 공동묘지에서 바람을 타고 페르미나 다자에게 들릴 수 있게 세레나데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바이올린을 배우기에는 어려운 스무 살때 일이고 보면 일흔다섯 살의 나이에도 한 손가락으로 사용하는 타자쯤이야 얼마든지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옳았다. 그는 키 보드의 글짜 자리를 익히는데 3일이 걸렸고, 타자를 치면서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데 6일이 더 걸렸고, 종이 2백40매를 오자 없이 처음으로 쓰는 편지를 완성하는데 3일이 더 걸렸다. 정중한 인사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젊은 시절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에 그렇게 했듯이 이름 첫 글자로 서명을 함으로써 끝맺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과부가 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슬픈 애도를 표시하는 삽화가 그려진 봉투를 사용해 부치는 사람 주소는 쓰지 않은 채 보냈다. 편지는 그가 전에는 그렇게 많이 쓴 적이 없는, 6장이나 되었다. 편지는 어조나 문체 또는 그의 사랑을 고백하는 수사적인 표현은 담지 않고 편지의 맛이 배제된 조리있고 정중한 어투로 쓰여졌다. 어떻게 보면 그 편지는 그가 결코 쓸 수 없었던 상용 편지에 가까웠다. 몇년 후에는 타자로 친 개인의 사사로운 편지는 거의 모욕으로 간주되었지만 그 당시로는 타자는 여전히 사무용으로서도 무례하다는 취급을 받았고 개인이 집에서 타자를 사용하는 것은 예의상 책 속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선두적인 편지였다. 페르미나 다자도 분명히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보낸 그녀의 두 번째 편지는 강철로 된 펜보다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읽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말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보낸 서투른 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편지의 서두부터 새로운 유혹의 방법을 시도해 과거의 사랑이나 지나간 과거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언젠가 그가 '연인들의 친구'라는 부제를 달아 쓰고 싶었던 남녀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경험에 대한 진지한 명상을 간결한 문체로 써 내려갔다. 이번에는 단지 한 노인의 추억이라는 독특한 문체로 살짝 꾸몄을 뿐 페르미나를 향한 그의 사랑에 대한 백서나 다름 없었다. 처음에는 그의 옛날 스타일대로 많은 문형을 썼는데 이런 편지는 사람의 감정을 불 붙게 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냉철하게 오랫동안 편지를 읽게 만든다. 그는 틀에 박힌 듯한 잘못이나 아주 작은 추억을 일으키는 경솔함도 페르미나의 가슴 속에 과거에 대한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을 다시 되살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되어 이 편지야말로 마지막 편지라는 각오로 모든 일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써 내려갔다. 그의 편지는 만족스럽고 온전한 삶을 산 여인에게 품은 새로운 음모며 새로운 희망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가졌던 상류 의식에 대한 편견을 내리게 할 용기를 그녀에게 주고자 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허황된 꿈이었으리라.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로 패르미나 다자로 하여금 사랑도 하나의 자비라고 생각하게 가르치고 싶었다. 자비는 시작과 끝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의 뜻이 있는 것이라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뼈른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편지가 그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며칠 지나자 그는 초조해졌고 편지가 되돌아오지 않고 며칠이 지나면 지날수록 답장을 받고 싶은 희망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처음에는 기민한 그의 손가락으로 좌우되던 그의 편지는 가끔 쓰여졌으나 나중에는 일 주일에 한 통, 일 주일에 두 통, 마지막엔 하루 한 통씩 썼다. 편지를 매일 부치는 사람이 되어버린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는 우편 서비스가 많이 발전된 것이 매우 유리했다. 왜냐하면 똑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부친다 해도 매일 우체국으로 가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도 되었고, 만일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내면 소문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람을 보내 한달을 쓸 충분한 우표를 사오게 하기도 쉬웠고, 시내에 설치된 세 우편함 중 하나에 편지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어 아주 좋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 부치는 일을 그의 일과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플로렌티노는 그의 불면증을 이용해 편지를 쓰고 다음 날 출근길에 운전수보고 잠시 길 모퉁이에 있는 우편함 옆에 차를 멈추게 하고는 편지를 부치기 위해 내리곤 했다. 그는 자기 대신 운전 기사가 편지를 투함하도록 시키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비가 오는 날은 편지가 빗물을 맞을까 걱정스러웠고, 가끔은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의 편지를 부치는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운전 기사는 다른 여러 장의 편지들은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기 자신의 주소로 쓴 빈 봉투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운전 기사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매 월말마다 아메리카 비쿠나의 부모에게 그 소녀의 근황이라든가, 건강 상태,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호자로서의 보고를 알리는 편지를 부치는 것 이외에는 어느 누구와의 서신 왕래 심부름을 한 적이라고는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가 어떤 영속성을 깨닫지 못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신문의 연재 소설처럼 편지에 번호를 매기고 먼저 부친 편지들과의 연관성을 표시했다. 편지를 매일 부치게 되자 슬픈 애도를 표시하는 삽화가 그려진 봉투 대신 길고 흰 봉투로 바꿨다. 이렇게 하자 편지는 더 더욱 일반적인 상용 편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타자로 편지 쓰기를 시작했을 때 그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그의 인내를 가늠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마침내 그가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새 방법도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 기다림은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고통스런 그런 기다림이 아니라,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고 순풍에 돛 단 듯 힘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강에서 배나 즐기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감정도 식어 없어진 노인의 고집만으로 기다렸다. 플로렌티노는 여전히 생기가 있으며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또는 언젠가 때가와서 페르미나 다자가 외로운 과부의 연정을 치료할 약은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너무나 높이 있는 문을 낮게 내려 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할 그때에도 완전한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럭저럭 그는 평상시처럼 보내며 지냈다. 호의적인 답을 기다리며 그는 누가 자기 집의 여주인이 되더라도 우아한 집에 걸맞게 자기 자신을 느끼게 하고 싶어 집을 두 번째로 새롭게 단장하기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약속한 대로 그는 아직도 나이가 많이 들긴 했지만, 외로운 밤뿐만 아니라 외롭지 않은 환한 낮에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프르덴시아 피트레를 찾아갔다. 그는 안드레아 바론의 집도 그녀의 목욕탕 불이 꺼질 때까지 여전히 지나다녔다. 플로렌티노는 육체적 사랑을 즐기는 습성을 잃고 싶지는 않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증명되진 않았지만 남자의 성적인 기능은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그 나름대로의 편견을 가지고 그녀의 미친 듯한 침대 속 기교에 자신을 잃고 싶었다. 아메리카 비쿠나와의 관계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그는 규칙적으로 운전 기사가 토요일 오전 10시에 그녀를 데리고 오게 했지만, 주말 동안 그녀와 무엇을 하고 지내야 할지 늘 고민스러웠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아메리카 비쿠나는 그 변화에 분개했다. 그는 하녀들에게 아메리카 비쿠나를 오후에 극장으로, 어린이 공원에서 열리는 고적대 발표회로, 자선 바자회로 데리고 가게 하거나 아니면 그녀와 그녀의 학우들이 할 수 있는 교내 클럽 활동올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줌으로써 그의 사무실 뒤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밀애의 장소로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그 밀애의 장소를 한번 갔다 온 이후 항상 그곳에 가기를 좋아했었다. 아련한 환영 속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여자는 3일 만에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푸에리토 파드레에서 오는 배 속에서 그녀를 만난 지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무리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바람기를 잠재우려 했으나, 그 소녀는 야속하게만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변한 그 이유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그녀에게 결혼한다고 말한 그날도 깜짝 놀란 그녀는 그 나이에 결혼한다는 그 가능성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 그 일에 대헤 곧 잊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후 아메리카 비쿠나는 마치 그의 말이 사실인 양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기보다 60살이 많은게 아니라 6년 연하의 남자인 양 납득하기 어렵게 그가 행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아메리카 비쿠나가 그의 침실에서 타자를 치고 있는 것올 보았다. 그녀는 학교에서 타자 치는 법을 배우고 있어서 꽤나 잘 쳤다. 그녀는 반 페이지 이상을 깨끗하게 완성했다. 몇 마디의 구절이 그녀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그녀가 쓴 것을 읽었다. 그녀는 그의 뜨거운 숨 소리와 그의 베개에서 나는 냄새와 꼭 같은 그의 옷 냄새에 흥분을 하여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이미 소녀가 아니었다. 언젠가 소꿉 장난을 하면서 옷벗기 놀이를 하던 어린 소녀가, 어린 아이들이 신는 작은 신발을 신던 소녀가, 애완용 작은 개들이 입던 작은 속옷을 입은 소녀가, 예뵌 팬티를 입던 소녀가, 예쁜 키스를 하던 그녀 아버지의 작은 새가 지금은 다른 모습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 남자에게 선수를 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타이프를 치면서 그녀의 왼손으로는 그의 다리를 더듬으며 그의 남성을 흥분시켰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홍분하여 신음 소리를 내면서 노인의 숨소리는 고르지 못한 힘드는 소리로 변했다.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기 힘들어지면 말이 오락가락하여 그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고 남자의 마지막 희열을 느끼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마치 길거리의 장님인 양 그의 손을 잡고 침대로 데리고 가 요부 같은 부드러움으로 그를 산산조각으로 찢어 놓았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녀들은 외출 중이었고 집을 고치는 석수와 목수도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아메리카 비쿠나에게는 전 세상이었다. 심연의 가장 자리에서 황홀경에서 정신이 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손을 밀치며 앉아 겁에 질린 목소리로, "피임 약 잊지 않고 먹었어 ?" 하고 말했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등을 침대에 대고 오랫동안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누워 있었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돌아온 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발톱 냄새를 맡으며 그녀의 일생을 망친 불쌍한 창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와 반대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남자들이 갖기 쉬운 오판을 하였다. 그는 아메리카 비쿠나가 이제 그녀의 욕망의 무익함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그를 잊기로 작정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6개월이 끝나갈 무렵, 그는 아무 소식도 못 들었다. 새벽녁까지 침대에서 이리저리 딩굴면서 새로운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가 편지의 겉봉만으로도 옛날 편지에서부터 눈에 익은 첫 글자를 보고는 편지를 찢는 수고도 할 필요 없이 다른 쓰레기와 같이 불 속에 던져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페르미나 다자가 계속 날아드는 봉투를 보고서도 뜯어 볼 필요도 없이 똑같이 불에 던져 넣어도 괜찮았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으로 쓴 명상록을 받아볼 때까지 계속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편지가 쓰여진 잉크의 색깔조차 모른 채 약 반 년 동안 거의 매일 배달되는 편지를 보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되었지만 만약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분명 페르미나 다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노년이 물살이 빠른 격류가 아니라, 추억이 쇠잔 해가는 바닥 없는 물탱크라고 생각했다. 그의 재간도 점점 닮아 없어져 갔다. 며칠 동안 라 만가의 별장을 둘러본 후 그는 젊은 시절에 사용했던 방법으로는 비탄으로 봉인된 그 문을 결코 부숴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번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신호가 가더니 한참 후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쉰듯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여보세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음성이 너무나 멀리 느껴지고 도저히 접근할 수 없게 느껴져 그의 용기가 움추러 들었던 것이다. 레오나 카시아니가 생일 날 몇몇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는 마음이 산란하여져 그만 닭 국물을 쏟아 버렸다. 그녀가 물에 적신 냅킨 끝으로 그의 깃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만일의 보다 심각한 사태를 대비해 턱받이 삼아 목 주위에 냅킨을 묶어주었다. 그는 늙은 아기였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가 식사 도중에 눈물이 고이는 바람에 안경을 벗고 닦는 것을 보았다. 커피를 마실 동안 그는 손에 컵을 쥔 채 잠이 들었다. 그녀는 그가 깨지 않게 잔을 빼내려 하였으나 그의 당황한 음성이 들렸다. "눈을 잠시 쉬게하는 것뿐이오."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가 나이든 티를 내려하는 것을 보고 가슴 속으로 경악을 감추며 침실로 걸어갔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의 첫 기일에 가족들은 연미사 초대장을 발송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때까지도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초대받지 못한 그가 연미사에 참석한 것은 대단한 결심 뒤에 깔려 있는 그의 추진력에서였다. 연미사는 일종의 허세 섞인 사교 모임과도 같았다. 전혀 감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맨 앞 몇줄 종신 지정석은 좌석 뒷부분에 부착되어 있는 청동 좌석표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의 눈에 틀림없이 띨 수 있는 좌석을 차지하려고 일찌감치 성당에 도착했다. 그는 지정석 뒤편 가운데 자리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좌석을 구할 수가 없었으므로 하는 수없이 그는 가난한 친척들 사이에 끼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곳에서 페르미나 다자가 아들과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녀는 발끝부터 목까지 단추로 잠겨진 마치 주교들이 입는 제의같이 생긴 옷을 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장식이 없는 긴소매의 검정 벨뺏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망인들이 그런 경우 착용하는 베일 달린 모자 대신 그녀는 캐스틸 풍 레이스가 달린 폭이 좁은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석고 상처럼 희고 매끄러웠다. 본당 가운데에 걸려 있는 커다란 샹데리아 불빚 속에서 피뢰침 같이 생긴 그녀의 눈동자는 특유의 생기를 풍기고 있었다. 몸을 꼿꼿이 바로 세운 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거만하고 침착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아들만큼이나 젊은 모습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현기증이 사라질 동안 손 끝을 좌석에 의지했다. 그와 그녀의 간격은 불과 일곱 걸음 정도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연미사를 드리는 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제대 앞의 가족석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오페라에 갔을 때처럼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난 후, 그녀는 관습을 깨어 버렸다. 연미사의 관습에 따라 애도를 표하는 대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사람들 사이를 걸어나왔다. 그것은 그녀다운 스타일과 성격에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혁신적인 행동이었다. 조객들에게 인사를 나누면서 그녀가 드디어 가난한 친척들이 있는 좌석까지 걸어왔다. 아는 사람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그녀는 샅샅이 쳐다 보았다. 그 순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초자연적인 바람이 자신을 내부로부터 끌어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그를 보았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는 남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일행을 빠져나와 매우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편지를 매우 관심 있게 읽어보면서 그 속에서 진지하고도 사려 깊은 삶의 동기를 발견했다. 첫 편지를 받았을 때 그녀는 식탁에서 딸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타이프로 친 점이 신기로와 그녀는 편지를 뜯어 보았다. 순간, 서명한 첫 글자를 알아본 그녀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붉어졌다. 그러나 곧 그녀는 평정을 되찾고 앞치마 주머니에 편지를 집어 넣었다. "정부에서 보내온 조문이구나." 딸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벌써 왔는데요." 그녀는 태연했다. "이건 다른 거야." 딸의 질문을 피할 때는 편지를 불태워 버릴 마음이었으나 태우기 전에 읽어보고 싶은 유혹을 그녀는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모욕적인 답장을 보내기로 했으며 그후 발송한 순간부터 그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의 바른 인삿말과 서두 부분의 내용을 읽고 그녀는 세상이 변했음을 느꼈다. 그녀는 꾀가 많은 여자였으므로 편지를 불태우기 전 한 번이라도 편안한 자세로 읽기 위해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쉬지 않고 세 번이나 읽어 보았다. 그것은 인생, 사랑, 늙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명상을 적은 편지였다. 그녀의 머리 주위를 마치 야행성 조류처럼 펄럭거리고 날아 다니다가 그녀가 잡으려고 하면 깃털 속으로 숨어버리는 그런 사색적인 내용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세밀하고 간결했다. 잠들기 전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남편이 살아 있어서 그 편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슬픔을 느졌다. 그동안 행방을 잊고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라는 존재가 이렇게 해서 그녀에게 부각되었다. 그녀는 젊었을 때 그의 열렬한 연애 편지나 혹은 평생 우울한 그의 행동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총명한 여자였다. 연애 편지는 에스코라스티카 고모의 말을 빌린다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쓴 것 같은 그런 내용이었다. 그것을 새삼 깨달은 그녀는 젊었을 때처럼 충격을 받았다. 어쨌든 그녀를 가장 안심시켜 주었던 것은 늙은 현자의 편지가 그날 밤에 있었던 모욕을 상기시켜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과거를 잊게 하기 위한 매우 점쟎은 배려가 담긴 편지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 번 편지들은 그녀를 더욱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게 읽어 본 그 편지들은 보고 난 후 모두 태워 버렸다. 그 일로 그녀는 씻을 수 없는 죄 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편지 횟수가 점점 줄자 그녀는 그런 식으로 처분하지 않아도 될 도덕적으로 정당한 구실을 찾게 되었다. 어쨌든 애초 의도는 편지를 두고두고 간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돌려 줄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매우 인간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상실되어 버리지 않도록 하려 함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년 동안 삼 사일에 한통 꼴로 편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옛날처럼 퇴짜 놓는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그리고 자존심이 허락치 않을 편지를 써서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고서도 되돌려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녀는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 해는 그녀가 미망인 생활에 적웅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는 시기였다. 남편에 대한 순수한 추억은 그녀의 일상 생활, 생각, 단순한 의지에 있어서 더 이상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이끌어주며 방해하지 않는 충실한 존재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환영이 아닌 실제의 산 사람으로 그를 보곤 했다. 그의 확실한 실체를 본 그녀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변덕도,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때를 놓친 입맞춤과 그녀를 사랑했듯 부드러운 말로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애절한 부탁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야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열정, 그리고 절실한 욕구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하는 데 버팀돌 역할을 하면서도 생존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위안을 아내에게서 느껴보려는 그런 욕구였다. 절망의 늪에 빠진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당신은 이해 못해요." 그는 흩뜨러지지 않은 자세로 독특한 제스추어를 쓰며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어린애 같은 눈동자에 투명한 물기를 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로운 말 한 마디로 그는 그녀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주었다. "원만한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임을 늘 기억하구려." 고독을 처음 느꼈을 때 처음 그 말을 듣고 느꼈던 비참한 위압감이 되 살아났다. 그러나 그 말이 바로 남편과 자신이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한 자석 같은 존재였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 그녀는 시선을 끄는 물건들을 그 신기함에 이끌려 모두 사 모았다. 그녀는 이 물건들을 남편이 즐겨 인용했던 일종의 원시적 충동으로 간직했다. 그 물건들은 로마, 파리, 런던 또는 마천루 건물들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쇼윈도우와 같이 그 본래의 환경에서 찰스톤 춤곡에 가늘게 떨며 자리 잡고 있을 때라야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이었다. 돼지고기 요리를 들며 듣는 스트라우스 왈츠 곡이나 그늘 속에서도 화씨 90도가 넘는 폭염 속에 진행되는 시 토론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페르미나 다자는 때때로 엄청난 크기의 트렁크를 대여섯 개씩 갖고 돌아오곤 했다. 이 트렁크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금속으로 되어 있었으며 자물 쇠도 구리로 되어 있었다. 귀퉁이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신기한 것들을 모조리 긁어 모아 장식한 관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화폐로서의 가치보다는 그녀와 같은 고향 출신의 누군가가 생전 처음 보고 잠깐 감명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들을 구입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나이가 들기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천박한 속성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 잡동사니들을 치워 버리겠어요. 도대체 움직일 틈이 없군요." 우르비노 박사는 그녀의 그런 부질없는 투정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왜냐하면 치워 봐야 또다시 다른 것들로 채워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을 피웠다. 사실 다른 것을 놓을 만한 공간이 전혀 없는 데다가 도무지 쓸모가 있는 것이라곤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문 손잡이에 걸려 있는 셔츠와 부엌 찬장에 쑤셔박아 놓은 겨울 용 코트 조차도 쓸모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기분 좋게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옷장을 있는 대로 뒤졌다. 그리고 트렁크들도 비우고 다락방도 헤집어 놓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싫증이 난 옷이라든지 아직도 유행하고는 있지만 기회가 없어서 미처 써보지 못했던 모자하며, 황후들이 즉위식 때 신은 구두을 모방하여 유럽의 예술가들이 만든 모조 구두를 골라내느라 한바탕 법석을 피웠다. 그런 구두는 사실 이 지방 상류층 부인들은 흑인 여인들이 집안에서 신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구입하는 그런 신발 같다고 하여 경멸하는 구두였다. 그날 아침 내내 데라스 안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집안에서는 나방이 퍼득거리며 뿌리는 따가운 가루 때문에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에 다시 정돈되었다. 마침내 자신이 불 속에 넣어버리기로 했던 실크나 장신구, 쓸모 없는 매듭 장식이나 은 장식 따위를 그녀가 새삼 동정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 판국에 이런 것들을 태워 없앤다는 건 죄악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불에 태우는 일은 연기되었다. 불에 태우는 일은 계속 미루어졌다. 물건들은 단지 각광받던 위치에서 폐품 창고로 변해버린 마굿간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깨끗이 치워진 자리에는 잠시 있다가는 장롱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들로 넘치게 되곤 했다. 그녀는,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물건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구를 누군가가 만들어야 되겠군."하고 말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그녀는 사물이 인간을 밀어내며 삶의 공간을 침범해오는 탐욕스러움에 실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페르미나 다자는 그 사물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두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리 정돈을 잘 하는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런 인식을 주려고 그녀는 애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무질서를 은폐하려 하였다. 쥬배날 우르비노 박사가 죽던 날 그들은 유해를 눕히기 위해서 서재를 반쯤 비워내고 물건들을 침실에 쌓아 놓아야 했다. 죽음이 집을 스쳐가자 해결책이 생겼다. 일단 남편의 옷가지를 태우고 난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손이 떨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자각이 일자 그녀는 부자의 질투도,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수심에 대해서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새것이든 낡은 것이든 모두 불속에 하나 하나 집어 던졌다. 마침내 그녀는 불행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망고나무를 부리째 베어 내어 버렸으며 앵무새 한 마리는 시립 박물관에 기증해 버렸다. 이윽고,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이 늘 꿈꾸어 왔던 크고 편하며 자신만의 집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그녀의 딸 오페리아는 석 달을 그녀와 함께 보낸 후 돌아갔다. 그녀의 아들은 일요일이 되면 점심을 함께 들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평일에도 가급적 친한 친구들도 자주 그녀를 찾아 오려고 노력을 했다. 그녀가 슬픔을 극복해내자 그녀를 찾아와 텅 빈 정원을 바라보며 함께 카드놀이를 했다. 친구들은 새 요리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그녀 없이도 여전히 존재하는 탐욕 세계의 비밀스러운 생활에 대해 근황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중 가장 충실한 친구는 루크레치아델 리얼 델오비스포였다. 그녀는 예전부터 그녀의 좋은 친구였으며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죽음 이후 더욱 가까와 진 귀부인이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외고집 삶에 후회하는 루크레치아는 당시 그녀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뿐만아니라, 시에서 추진하고 있던 여러 세속적인 사업 계획에 대해 함깨 의논올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의 보호에 가리지 않고 스스로의 명분을 위해서 스스로를 쓸모있는 인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남편과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 적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결혼 전의 이름 대신 우르비노 미앙인이라는 칭호로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일주기가 점점 다가오자 페르미나 다자는 어둡고 차가우며 적막한 곳으로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숲이었다. 폴로렌티노 아리자가 써 보낸 편지 내용이 마음의 평정읕 회복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그녀는 그 석 달 동안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경험에 꼭 일치되는 그 편지들은 그녀가 삶을 이해하고 또 늙음을 침착한 태도로 맞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 연미사에서의 만남은 그녀 역시 그의 격려 덕분으로 과거를 잊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이틀 후 그녀는 그로부터 또 다른 종류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린델 종이에 손으로 쓴 것으로 봉투 뒷면에는 매우 정확한 그의 이름이 적혀 었었다. 앞서 보낸 편지처럼 글씨체가 화려했으며 서정시와 흡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성당에서 보여준 그녀의 정증한 태도에 감사를 표한다는 간단한 것이었다. 편지를 읽고 난 며칠동안 페르미나 다자는 고통스러운 추억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양심에 가책을 느낀 그녀는 다음 주 목요일 루크레치아에게 해운 회사 사장인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흑시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루크레치아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방황하는 악령 같아." 좋은 신랑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그에게 여자가 없으며, 밤이면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소년들을 선창가의 어느 비밀스러운 곳으로 데려간다는 등의 소문을 들려주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아주 오래 전에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으나 믿을 수가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괴상한 취미가 있다하여 한때 자신도 소문의 대상이 된 적도 있는 루크레치아를 통해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페르미나 다자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냈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윈도우즈 가에서 잡화상을 하며 헌 셔츠와 종이 따위를 취급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물건들을 다시 손질하여 전쟁 중 붕대로 되팔았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확신에 찬 어투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야. 그리고 재치도 있어." 페르미나 다자의 말투가 어찌나 격했던지 루크레치아는 그녀의 말을 다시 취소했다. "그래, 날 보고도 수군거리는 세상이니까."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단지 그늘에 지나지 않았던 남자를 어째서 그토록 열렬히 옹혹하게 되었는지 자문할 만큼 호기심 많은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 특히 편지 대신 우편물만 도착했던 때를 기억하며 끊임없이 그를 생각했다. 조용했던 두 주일이 흘렀다. 어느 날 하녀가 낮잠을 자고 있던 그녀를 조용히 깨웠다. "부인, 플로렌틱노 씨가 오셨읍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집으로 온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가 보인 첫번째 반응은 당황 그뿐이었다. 그녀는 안돼, 다음에 적절한 시기를 택해서 다시 찾아 오라고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방문객을 맞이할 형편이 아니었으며 주고 받을 이야기도 없었다. 그러나 곧 평정을 회복하고 하녀에게 응접실로 그를 안내해 커피를 대접하라고 일렀다. 그동안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에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오후 3시의 지독한 폭염을 쬐며 현관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충분히 대처해 나갈 준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어떠한 구실을 붙여서라도 자신을 맞아들이지 않을 사태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태연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명확한 의사를 전해 들은 그는 새삼 골수까지 떨렸다. 응접실의 시원한 그늘에 들어선 그는 갑자기 창자 속으로 밀려든 가스가 금방 폭발해버릴 것 같아 기적과도 같은 그녀의 환대를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자리에 앉아 첫 연애 편지 위로 새똥이 떨어졌던 그 저주스러운 추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경련이 사라질 때까지 그늘진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던 그는 그 순간 부당한 불행을 제외한 어떤 재난도 감수하리라 결심했다. 그것은 잘 알고 있는 증세였다. 선천성 변비 증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서너 차례 자신의 탯속 비밀이 공공연하게 노출된 적이 있었다. 그럴 적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만 했다. 그는 시간이 없었다. 기억나는 기도를 외워보려 했지만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친구가 돌맹이로 새를 떨어뜨리는 신비한 말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맞아라, 맞아라, 내 돌맹이에 맞아라. 널 놓치면 내 탓이 아니란다." 그는 새로 만든 새총을 갖고 시골로 갔을 때 처음 그 말을 사용했다. 그러자 새가 떨어져 죽었다. 그는 당황하여 사물 간에는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기도문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지금도 그는 그 원리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그러나 원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스프링 코일처럼 창자가 뒤틀리는 바람에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뱃속의 가스의 강도가 점점 세어지면서 고통스러워졌으므로 그는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온통 범벅이 되었다. 커피를 들고 온 하녀가 시체처럼 하양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랬다. 그는 한숨을 쉬며, "열 때문이요." 라고 말했다. 하녀가 그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창문을 열었으나 오후의 헷살이 그의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졌으므로 다시 닫아야만 했다. 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느낀 순간, 페르미나 다자가 어둠 속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를 보고 놀래서 말했다. "옷을 벗지 그러세요."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설사를 참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것 보다도 그녀가 행여 그 소리를 들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 가까스로 참으면서, "괜찮소. 언제 방문하면 좋을지 물어 보려고 잠시 들렀던 참이오." 하고 말했다. 그녀는 그때까지 선 채로 당황한 빚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어쨌든 오셨쟎아요." 그녀는 정원의 데라스로 그를 안내했다. 그곳이 좀더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에게는 슬픈 한숨으로 들릴지 모르는 그런 목소리로 거절했다. "내일 다시 오겠소." 다음 날 목요일은 루크레치아가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날 임을 그녀는 기억했다. 그녀는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모레 5시에 오세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모자로 얼른 작별 인사를 고한 다음 커피도 들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페르미나 다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응접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때 그가 타고온 자동차의 출발 소리가 들리더니 곧 거리 저쪽 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좀 덜 고통스러운 뒷좌석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몸을 편안하게 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의 곁에서 몇 년 동안 시중을 든 운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도 놀라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문 앞에서 문을 열어줄 때에 운전수가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선생님. 콜레라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그건 만성 증세에 불과했다. 금요일 5시 정각 하녀가 응접실의 어둠을 지나 정원의 테라스 쪽으로 그를 안내했을 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테라스에는 페르미나 다자가 이인용 식탁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홍차, 쵸콜렛차, 흑은 커피 중 어느 것을 드시겠냐고 물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뜨겁고 진한 커피를 부탁했다. 그녀는 하녀에게 말했다. "나는 보통때 마시는 것으로." 그녀가 보통 때 마시는 차는 갖가지의 동양산 차를 한데 섞어 진하게 우려낸 것으로 낯잠 후에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차였다. 그녀가 동양 찻잔을 그리고 그가 커피잔을 비울 때까지 두 사람은 몇 가지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건 두 사람 모두 관심이 정말 있어서라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 감히 말문을 열기 힘든 화제를 피하고 싶어서였다. 두 사람은 위협을 느꼈다. 바둑판 무늬 타일이 깔린 테라스에 앉은 채 젊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집은 아직까지도 무덤 앞에 핀 꽃향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마주보며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은 50년 만에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현재를 바라 보았다. 죽음이라는 적을 가까이 몰래 숨겨둔 두 늙은이로서였다. 그들에겐 더이상 그들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젊은 두 연인들의 덧없는 추억 이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젊은 연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이젠 손주뻘이나 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녀는 드디어 그가 자신이 품었던 이상의 비현실성을 자각하여 오만했던 보상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과 부자연스러운 화제를 피하고자 그녀가 배에 관해 질문을 했다. 항해 선박의 소유주인 그가 몇년 전 회사를 세우기 전까지도 여행이라곤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만약 그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줄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영혼을 팔려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갖은 구실을 다 붙여 안데스 산을 기피하려 했다. 해발 지역의 위험성, 폐렴에 걸릴 위험, 사람들의 표리부동함, 집권주의의 불공평함 등등의 구실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절반은 잘 알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조국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최근에는 승무원 두 명, 승객 여섯 명, 그리고 우편 배낭을 가득 실은 정커즈 수상 비행기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메뚜기처럼 막달레나 항구 마을 사이로 운행을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날아다니는 관 같은 거죠." 그녀는 경비행기를 처음 타 보았을 때 아무런 두려움올 느끼지 못하였는데 자신이 그런 모험을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세상은 변했어요." 그녀가 한 말은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지 운송 수단이 변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녀는 가끔 비행기 소리에 깜짝 놀라곤 했다. 민족 해방 운동자의 서거 백주년 추도 기념일날 매우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면서 묘기를 보여주는 비행기들을 그녀는 본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대는 커다란 터어키 산 말똥 벌레처럼 까만 색이었는데, 라 만가의 지붕을 살짝 스쳐가더니 날개 부분이 근처 나무의 전깃줄에 걸려 버렸다. 그때까지도 페르미나 다자는 비행기라는 존재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 호기심이 없어진 그녀는 만자닐로 해안까지도 못 가보았다. 그곳은 경찰 소속 라안치들이 어부들의 카누와 날로 늘어가던 휴양 보트들을 다 치워버린 다음부터 수상 비행기들이 착륙하는 곳이었다. 찰스 린드버그가 친선 비행차 이곳에 왔을 때 그녀는 연륜 때문에 장미꽃 다발을 들고 그를 환영하는 사람 중에 선발되었던 적이 있었다. 큰 키에 블론드 머리카락을 지닌 멋장이 남자가 물결 무늬 양철로 만든 그 기계를 타고 꼬리의 도움으로 어떻게 해서 땅에서 올라갈 수 있는지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조그만 비행기에 여덟 명이나 탈 수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상 보우트는 모래톱이나 노상 강도들의 공격처럼 더 위험스러운 일면도 있었지만 여객선처럼 구르는 기계가 아닌 멋진 발명품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은 옛날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요즈음의 수상 보트는 댄스 홀과 호텔 방처럼 넓고 화려한 선실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 전용 욕실과 선풍기시설까지 딸려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번 전쟁 이후로는 무장 군인들의 공격도 전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의기양양하여 홉족해진 그는 이런 괄목할 만한 발전은 무엇보다도 그가 추구한 목표이자 또한 경쟁력을 키우게 된 항해의 자유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해 주었다. 과거 단일 회사 체제에서 지금은 매우 적극적이고 번성일로에 있는 세 개의 회사로 늘어났던 것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술의 급속한 발전이 그들 모두에게는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녀는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자연의 뜻에 거역하는 그 기계를 타고 싶어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보트 산업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편지에대한 그녀의 답변을 얻어볼 셈으로 체신제도와 운송체제의 발전 부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두 사람의 화제가 이상하게 빗나가 있을 때 하녀가 전보와 동일 방식으로 새롭게 고안한 속달 편지를 손에 들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독서용 안경을 찾느라고 한참 두리번 거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잠자코 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필요 없을 겁니다. 그 편지는 내가 쓴 것이니까요." 하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저께 좌절어린 첫 방문으로 인한 낭패감을 극복할 수 없어 매우 비참한 기분으로 쓴 그의 편지였다. 편지 속에서 그는 그녀에게 전에 찍은 그녀와 힐데브란다의 사진을 가져 오기도 했다. 그는 그 사진을 스크라이버 상점에서 15센타보를 주고 샀다. 그 사진이 어떻게 해서 그의 수증에 들어 갔는지 페르미나 다자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사진이 사랑의 증표라도 되듯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정원에서 장미를 꺾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음 방문시 그녀에게 장미꽃을 갖다주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미망인이 된 것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으므로 꽃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불타는 정열을 상징하는 빨간 장미는 아무래도 그녀의 슬픔에 위배되는 것 같았다. 꽃말이 행운인 노란 장미는 보통 질투를 나타내는 꽃이라고 했다. 그는 터어키의 흑장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나 정원에 한 그루도 없었다. 한참을 생각한 그는 흰장미를 택했는데 무미건조하고 과묵하여 그가 싫어하는 종류였다. 하지만 흰장미는 아무 상징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 페르미나 다자가 의심스러운 나머지 혹시 꽃의 의미를 부여할까봐 그는 가시를 제거해 버렸다. 그 꽃은 선물로서 아무런 저의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래서 화요일의 만남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었다. 그가 흰 장미를 안고 도착하자 물이 가득 든 꽃병이 차 테이블 가운데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화요일 그는 꽃병에 장미를 꽃으면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장미가 아니고 동백꽃이었죠?" "그래요, 하지만 의도는 달랐답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즉, 그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언제나 그녀가 가로막곤 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금방 대꾸를 하기는 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의 의도가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붉힌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페르미나 다자가 얼굴을 옆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린 아이 같은 홍조로 마치 분노를 자신에게 되돌리는 듯한 오만함과 생기있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좀더 비공격적인 대화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매우 신경을 썼다. 그러나 조심성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그녀는 그가 눈치채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화가 났다. 지독히 운수 사나운 화요일이었다. 그녀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그 나이에 그런 일로 다툰다는 것이 연인들이 싸우는 짓거리 같아 우스광스러워 읏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음 주 화요일,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꽃병에 장미를 꽃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헤아리면서 놀랍게도 지난 주 품었던 분노가 말끔히 가셔진 것을 깨달은 것을 느끼곤 그것을 피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내 말은 예전에 편지에서 말입니다." 그녀는 화가 났다. 그래서 분노를 감추려고 갖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동안 성격을 느긋하게 고쳐보려 했지만 젊었을 때의 욱 하는 성격이 아직도 그녀에게 남아 있음을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좀더 현명하게 처신해 나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제 뜻은 편지가 매우 달라 졌다는 말입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세상만사가 다 변한 걸요." 그녀가 말했다. "난 변한 게 없소. 당신은?"그가 물었다. 그녀는 두 번째 찻 잔을 입쪽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모진 세파를 해쳐 온 그 특유의 눈빚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지금까진 별일 없었죠. 이제 겨우 일흔두 살이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가슴 한복판을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얻고자하는 대답은 화살처럼 빠르고 겨냥이 잘된 정확한 것이었으나 늙음이라는 짐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따름이었다. 그런 간결한 이야기에 여태껏 이토록 맥삐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의 통증을 느낄 때마다 박동 소리와 함깨 동맥 속에 금속성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늙고, 버림받아 쓸모 없는 인간으로 여겨졌다. 울고 실은 충동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예감으로 깊이 주름진 침묵 속에서 두 번째 잔을 비웠다. 그때 그녀가 말문을 열며 하녀에게 편지 묶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는 이미 사본을 만들어 두었으므로 그녀가 가져도 된다고 말할 뻔했으나 거절당하리라 생각했다. 더 이상의 할 말이 없었다. 떠나기 전에 그는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방문을 허락해도 좋을지 자문해 보고는 말했다. "자주 오셔도 상관 없을 것 같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가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 주 화요일 5시에 다시 왔다. 그때부터 매주 화요일의 방문을 사전에 구차하게 미리 알리는 번거로음을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매주 한 차례의 방문이 그들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방문은 곧 어색한 가족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그녀의 아들인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가 가끔씩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른 것처럼 나타나서 함께 카드 놀이를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카드 놀이를 할 줄 몰랐으나 페르미나가 언젠가 그가 방문했을 때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아들 내외에게 다음 주 화요일 내기를 하자는 도전장을 보냈다. 카드놀이는 모두에게 유쾌한 일이었으므로 곧 그의 방문처럼 공식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다. 각자의 지참물 종류도 정해졌다. 과자를 굽는 기술이 뛰어난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는 정교하게 만든 과자를 가져왔는데 매번 올 때마다 다른 종류를 만들어 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유럽행 선박에서 가져온 고급 과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페르미나 다자는 매번 깜짝 놀랄 새로운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그들은 매달 세째 화요일에 카드놀이를 했다. 돈 내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는 사람은 다음 번 놀이 때 특별한 선물을 가져오기로 했다. 페르미나 다자의 아들인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자세가 웬지 어색하였다. 게다가 즐거울 때나 혹은 화를 낼 때는 갑자기 경련이 일어났다. 자주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면 그의 정신적인 강인함이 의아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가졌던 일말의 의문과 더불어 그가 플로렌티노 아리자로서는 가장 두려운 말인 착한 사람이란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반면에 그의 아내는 활발하고 서민적인 날카로운 재치로 넘치는 여자였다. 이 점이 그녀의 우아함에 인간적인 면모까지 덧붙여 주었다. 카드놀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로서 그들 부부보다 더 훌륭한 짝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끝없는 욕구가 마치 자신이 그 가족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어우러져 넘쳐 흘렀다. 어느 날 저넉 함께 집을 나서면서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점심을 함깨 하자는 청을 해왔다. "내일 열두시반 사교클럽에서 합시다." 그곳은 독한 와인과 함께 훌륭한 음식이 나오는 식당이었다. 사교 클럽 측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출입을 제한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증 가장 중요한 제한은 사생아 출입 금지라는 명분이었다. 레오 12세 삼촌은 이 점에 관해 수없이 분노를 토해낸 적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설립자의 한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이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도 나가 달라는 치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설립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사업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부탁을 들어 준 적이 있던 사람이었으나 그도 어쩔 수 없었던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규칙을 만든 우리도 지켜야 하는 게 규칙이니까요."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우르비노 다자 박사와 모험을 감행했다. 저명 인사 방문록에 서명을 부탁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우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점심 식사는 간단했고, 식당에는 그 두 사람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다. 이 약속에 관해서 전날 오후부터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괴롭혀 왔던 두려움이 반주로 붉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로 미루어 보건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아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이 그녀가 쌍후앙 드 라씨에나하에서 온 이후 줄곧 소꿉친구였으며 그녀에게 독서를 권유한 것도 바로 그이며 그 점에 대해 영원히 고맙게 여긴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 주었던 것이다. 또한 학교가 파하면 잡화상에서 트란시토 아리자 부인과 몇시간씩 함께 보내며 엄청난 양의 자수를 놓곤 했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그 방면에 훌륭한 솜씨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 외에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자주 만나지 못했던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인생이 서로 빗나갔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 늙음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노인이라는 부담이 없으면 세상 발전이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지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들판에 나간 군대처럼 인간성도 가장 더딘 속도로 진화하죠." 라고 말했다. 그는 인도주의와 같은 맥락의 보다 문명화된 미래를 예견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때 굴욕, 고통, 그리고 노년의 고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격리 시설을 도시 외곽 지대에 마련할 수 있는 그런 미래를 뜻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적정 연령이 칠십 세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연령이 되기 전에 유일한 해결책이 양로원의 건립이었다. 그곳에서 노인들은 서로 위로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습관도 슬픔도 같이 하면서 젊은 세대와의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노인들은 다른 노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죠." 라고 그가 말했다.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어머니의 외로운 생활 중에 좋은 벗이 되어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두 사람과 모두를 위해서 계속 그렇게 해줄 것과 어머니의 변덕을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다자 박사와 만나 거둔 결실에 안심을 했다. "걱정 말게, 그녀보다 내가 네 살이나 많으니까. 게다가 자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랜 친구 사이니까 말일세." 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앞으로는 말일세, 어머니와 내 무덤에 점심 대신 물토란 꽃 다발을 들고 와야할 걸세." 하고 그가 말했다. 그때까지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을 다만 악화시킬 여러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가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기필코 준수해야 할 사회적 관습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르비노 박사와 조만간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한 그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 관습이란 어머니의 결혼 문제에 관한 정식 요청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점심 식사는 매우 유익하였다. 비단 한끼의 식사로서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간단 명료하고도 원만하게 수용되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젠 페르미나 다자의 승낙만 얻어낼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더우기 역사적인 점심 식사 도중에 나눈 대화 덕분에 정식 절차는 거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젊었을 때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버룻이 있었다. 발을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이미 노쇠 현상이 찾아와 곧 죽음이 오는 것처럼 언제나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 계단은 가파른 데다 협소하여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위헙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그는 발이 걸리지 않게끔 눈을 계단에 못 박은 채 양손은 난간을 꼭 붙들고 온 신경을 쏟아야만 했다. 안전한 것으로 바꾸라는 말도 가끔 들었으나 나이 탓이라 생각한 그는 언제나 결정을 다음 달로 미루곤 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그가 서둘러 변명하는 것처럼 점점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신경을 쏟느라고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우르비노 다자 박사와 만나서 붉은 포도주를 반주삼아 점심을 들고 더우기 유쾌한 대화까지 끝낸 어느 날 오후 그가 춤을 추듯 활기차게 세 번째 계단에 올라가는 순간 왼쪽 발목이 그만 삐끗해 버렸다. 그 바람에 뒤로 넘어졌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뒤로 넘어진 순간 그는 그것으로 자신이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정신이 말짱한 상태였다. 세상 법칙이 한 여인을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사랑했던 두 남자를 일년 간격으로 동일한 사인으로 죽게 만들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는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석고 기브스를 한 채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예전보다 더욱 활기찬 모습이었다. 의사가 60일 동안 요양을 하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이 당한 불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지 마시오 의사 선생. 나한테 두 달은 당신한테는 십 년 세월과 맞먹는단 말이오." 그는 사정을 했다. 그는 양손으로 마치 동상처럼 굳어진 다리를 붙잡고 몇 번이나 일어서 보려고 에를 썼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를 좌절시켰다. 드디어, 다시 걷게 되자 비록 아직도 발목이 욱신거리고 허리가 아프긴 했지만 운명이 그의 끈기에 대한 보답으로 행운의 사건을 상으로 내려준 것으로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첫 월요일은 그에겐 최악의 날이었다. 고통도 가라앉았으며 회복도 매우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넉 달 만에 처음으로 페르미나 다자를 만날 수 없게 된 재앙을 그는 받아 들이기를 거부했다. 낯잠을 포기한 그는 현실에 굴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그녀에게 썼다. 향수 종이에 발광 잉크로 직접 손으로 써 보내었다. 그렇게 하면 어둠 속에서도 잘 볼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하기 위해 자신이 당한 사고의 심각성을 아무 부끄럼없이 극적으로 과장해서 썼다. 이틀 후 그녀는 옛날 사랑했던 시절처럼 매우 동정적이고 친절하고 군더더기 말 하나 없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놓치기 전에 그 기회를 즉시 이용해 다시 편지를 썼다. 그녀가 두 번째 답장을 보내자 그는 일과로 되어버린 화요일의 약속 건 이상의 큰 진전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는 회사 업무를 보고받아야 한다는 핑계 삼고 침대 옆에 전화를 설치했다. 처음으로 돌린 이후부터 줄곧 속으로 외우고 있던 세 자리수 전화 번호를 연결해 달라고 교환에게 부탁했다. 신비로운 거리감에 긴장된 그녀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더니 상대방을 알아챈 듯 몇 마디 의례적인 안부를 물은 후 작별 인사를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냉담함에 절망했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러나, 이틀 후 그는 다시는 전화하지 말하는 부탁을 담은 페르미나 다자의 편지를 받았다. 그녀의 이유는 타당했다. 그 도시에는 전화가 몇 대 없었으므로 모든 전화 내용이 가입자를 모두 알고 있는 교환에게 알려 진다는 것이었다. 가입자들의 인생과 모든 세상사를 다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가입자가 집을 비운다 해도 문제가 없었다. 교환은 그들이 있을 법한 곳을 알아내어 연결해 준다는 것이다. 직업상의 그런 탁월한 수완으로 그녀는 가입자들이 나눈 대화를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사생활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도 파악했다. 게다가 가입자들간의 불화를 진정시키거나 혹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대화에 끼어 들기가 일쭈였다. 그 해는 또 석간 신문인 저스티스 신문사가 설립되던 해였다. 그 신문은 오직 고위층 인사들을 공격하기 위한 취지로 발간되었는데 언젠가 사교 클럽 가입이 거부된 아들을 가진 발행인의 복수심에 의한 것이었다. 나무랄데 없는 인생을 살아온 페르미나 다자도 언행이나 심지어 친한 벗들을 대하는데 더욱 주의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와의 관계를 시대에 뒤떨어진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계속 유지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편지 횟수는 날로 늘어갔고 내용도 열렬해졌으므로 그는 다친 다리와 감옥과도 같은 침대 생활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때 사용하는 휴대용 테이블에 앉아 그는 오로지 편지 쓰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들은 다시 서로를 당신이라 불렀고, 예전처럼 인생사를 주고 받았다. 플로랜티노 아리자는 다시 신속한 차비를 차렸다. 그녀의 이름을 동백꽃잎 위에 핀 끝으로 써 편지 속에 넣어 그녀에게 보냈다. 이틀 후, 그 편지는 아무 쪽지 없이 다시 반송되어왔다. 페르미나 다자가 당황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어린애 장난처럼 여겨졌다. 특히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옛날 에반잴스 공원에서 우울한 싯귀를 옮어대는 그날 오후를 되새기며 등교길에 감추어둔 편지, 혹은 아몬드나무 아래서 자수를 놓던 일들을 일깨워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겉으로 듣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사소한 질문을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힐책하듯 이렇게 던져 보았다. "무엇 때문에 지금은 지나가버린 과거를 들추어내는 거죠?" 그녀는 자연스럽게 늙도록 스스로 허락하지 않으려 하는 그의 무모란 고집을 나중에 비난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성급하고도 언제나 서투른 방식으로 과거를 들춰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 했다. 미망인이 된 이후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그녀에게 많은 힘을 준 남자가 어째서 자신의 인생에 관해서는 그토록 어린애같이 처신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두 사람의 입장이 서로 뒤바뀌었다. 그에게 미래를 대처할 새로운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는 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무모하리만큼 성급한 그에게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 그때야 알리라.' 그는 그녀만큼 영리한 제자는 될 수 없었다. 그의 완강한 고집,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자각, 그녀를 만나고 싶은 열정, 이 모든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비극적이었음을 그에게 증명해 준 것이다. 처음으로 그는 죽음의 실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목욕과 잠옷 갈아 입는 일을 이틀에 한 번씩 거들어 주었다. 그녀는 관장약을 그에게 주기도 했으며 그를 위해 변기를 들고 있기도 하고 등에 번진 욕창에 외상용 압착 붕대도 대어주었다. 움직이지 않음으로 인해 다른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는 의사의 처방문도 전해주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메리카 비쿠나가 대신 시중을 들었는데 그녀는 그해 12월 교사 자격증을 딸 예정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알라바마로 유학을 보내 준다고 약속했다. 경비는 회사 공금으로 대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서였으나 주된 목적은 그에게 퍼부어질 비난이나 혹은 그녀에게 해주어야 할 구차한 설명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학교에서 불면으로 밤을 지샐 동안, 혹은 그 없는 주말 동안, 혹은 그라는 존재 없는 인생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는 한 번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보낸 편지 중에 그녀의 학급 석차가 뒤로 밀려났다는 것과 기말 시험에 거의 떨어질 뻔했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 그는 아메리카 비쿠나의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죄의식이 일어 그녀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했다. 그녀가 자신의 실패에 그를 연루시킬까봐 두려워서 그는 그녀와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다. 죽음이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에서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의 문제를 마냥 뒤로 미루기 시작했다. 그를 돌보아 주던 두 여인과 심지어는 폴로렌틱노 아리자조차도 자신이 상당히 변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옷을 입은 채 서 있는 하녀를 계단 뒤에서 건드리곤 했다. 그리고는 필리핀 산 수탉보다 더 날쎈 솜씨로 하녀에게 임신을 시켜 놓았다. 그녀에게 그런 수치스러운 짓을 저지른 장본인은 일요일에나 가끔씩 만나면 에인이라고 둘러대겠다는 다짐을 받는 대신 그는 그녀에게 가구가 딸린 집을 장만해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애인이라는 남자는 그녀에게 키스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벌목 기술자인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그들에게 결혼을 독촉했다. 불과 두서너 달 전까지도 그런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두 여인은 그의 허리께를 비누질하여 목욕을 시켜주었으며 이집트산 타월로 닦은 다음 맛사지도 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정열에 들뜬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의 욕구가 사라진 점에 대해 두 여인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레오나 카시아니는 그것을 죽음의 전주곡으로 생각했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도무지 간파할 수 없는 사실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만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 사실 또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그건 불공평한 일이었다. 여인들이 그보다 훨씬 많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페르미나 다자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방문을 그토록 열렬히 원했던가를 깨닫는 데에는 불과 3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주 방문하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죽은 남편의 습관을 점점 잊어갈수록 그녀는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루크레치아는 귀병을 고치러 파나마에 갔다가 한달 후에 훨씬 좋아진 상태로 다시 돌아왔으나 전보다는 청력이 떨어져 나팔 모양의 보청기를 꽃고 있었다. 의사 소통의 애로를 가장 끈기있게 참아준 친구가 바로 페르미나 다자였다. 루크레치아로서는 무척 즐거웠던지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에게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와의 오붓한 오후 시간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말대로 지나간 추억은 미래를 보상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십대의 열정이 고상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는 페르미나 다자의 확신을 더욱 굳혀 주었다. 솔직 담백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편지로든 혹은 만나서든 한 번도 그것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위안을 주었던 그의 편지에 숨은 열정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말해주기 위해 일부러 마음 속에 품고 있지도 않았다. 서정시 같은 거짓말이 그의 인격을 깎아내는 짓이며, 또한 과거에 집착하려는 광기어린 그의 고집이 내세우는 명분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옛날에 받은 연애 편지 한 줄도, 경멸당하던 젊은 시절 그 어느 한 순간도 플로렌티노 아리자 없는 화요일 오후 그토록 지루하고 쓸쓸하며 따분한 것일 줄 깨닫게 해주지 못했었다.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그녀는 라디오 캐비넷을 마굿간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것은 남편이 결혼 기념 선물로 준 것으로 그 도시에서 최초로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되어 있던 물건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 슬픔에 잠긴 그녀가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물건이었다. 아무리 몰래 음악을 듣는다 해도 그것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일에 위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쓸쓸한 화요일이 지나자 그녀는 라디오를 응접실로 가지고 돌아왔다. 예전처럼 리오밤바 방송국의 감상적인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쿠바의 산티아고 항구 도시에서 방송되는 연속극을 들으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그건 아주 멋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딸이 태어난 후부터 그녀에겐 독서하는 습관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죽은 남편은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 줄곧 독서를 강요하다시피 권해왔다. 그러나 시력이 점점 피곤해진 탓에 독서를 금했으므로 독서 용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조차도 모른 채 여러 달이 지나가 버렸다. 산티아고 방송국 연속극을 무척 좋아한 그녀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녀는 가끔씩 세상 소식을 알기 위해 뉴스를 듣기도 했다. 어쩌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라디오의 볼륨을 아주 낯추고 감이 멀긴 하지만 잘 들리는 도밍고의 메탱게이 춤곡과 프에르토 리코의 플레나 춤곡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마치 갑자기 옆집에서 들려오듯이 크고 똑똑한 방송을 통해 그녀는 슬픈 뉴스를 듣게 되었다. 40년 동안 매년 같은 장소에서 신혼 여행을 즐겨왔던 어느 노인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노인들은 타고 있던 보트의 선장에게 노로 세게 얻어맞고 죽었는데, 수중에 있던 14달러도 모두 털려 버렸다. 루크레치아가 지방신문에 실렸던 사건 전모를 들려주었을 때 그녀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얻어맞아 죽은 그 노인네들이 40년 동안 함께 휴가를 보내온 내연의 관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두 노인은 각자 가족도 많았고 안정되고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고도 했다. 라디오 연속극도 결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는 페르미나 다자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다음 번 편지에서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녀에게 보내었다. 페르미나 다자가 참아야 했던 마지막 눈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루크레치아와의 비밀 연애 사건에 대한 기사와 함께 두 사람의 사진이 게재되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때까지도 60일 동안의 요양 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중이었다. 두 사람 관계에 대한 추측 기사를 포함하여 그동안 만난 횟수, 동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설탕 농장의 흑인들과 남색 행각을 즐기던 그녀의 남편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붉은 피빚 잉크의 대문짝만 한 블럭 활자체로 씌어진 그 기사는 나약한 그 지역 상류 인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기사 내용은 한 줄도 진실이 아니었다. 쥬배날 우르비노와 루크레치아는 둘다 독신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각자 결혼한 이후에도 우정을 나누었으며 결코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기사는 세계적인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먼저 주에 사교 클럽 회장으로 선출된 루크레치아의 남편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었다. 불미스러운 이 사건은 몇 시간 후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후 루크레치아는 다시는 페르미나 다자를 찾아오지 않았으며 페르미나 다자는 그러므로써 그녀가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가 상류 사회의 불운한 재난에 아무런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저스티스지가 그녀의 약점인 아버지의 사업 문제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아버지가 강제 추방을 당했을 때 그녀는 그의 수상적인 사업 거래중 단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갈라 플라시디아가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후 우르비노 박사가 총독과의 면담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녀는 아버지가 중상 모략의 제물이 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부측 대리인 두 명이 수색 영장을 들고 에반잴스 공원에 있는 그녀의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고 있던 것을 찾아 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페르미나 다자의 침실에 있던 거울 문이 달린 옷장을 열어 보라고 명령했다. 집안에 혼자 있던 탓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갈라 플라시디아는 열쇠가 없다는 핑계로 그 명령을 거부했다. 그러자 대리인중 한 명이 권총 끝으로 거울을 부수고 유리와 백 달러짜리 위조 지폐가 든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발견해 냈었다. 그것은 로렌쪼 다자가 거대한 국제적 조직망의 최종 중개인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것은 교묘한 위조 지폐였다. 지폐에는 종이로 비치는 원래의 무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 달러짜리 지폐를 마술에 가까운 화학 처리로 지운 다음 백 달러짜리로 다시 인쇄하였던 것이다. 로렌쪼 다자는 그 옷장은 딸이 결혼한 훨씬 후에 구입한 것으로 집에 들여올 때부터 그 속에 지폐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 물건이 페르미나 다자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줄곧 그 집에 있었음을 증명했다. 위조 지폐를 거울 뒤에 숨겨놓을 사람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이것이 우르비노 박사가 아내에게 들려준 사건의 전모였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장인을 조국으로 되돌려보낼 것을 총독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자 신문에서는 더욱 떠들어 대었다. 19세기 동란 중 로렌쪼 다자가 정부 측 자유당 의장인 아킬레오 파라와 죠셈 코르제니와스키간의 중재자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폴란드 태생의 코르제니와스키는 프랑스기를 단 상선 '쌍 앙또앙' 선의 승무원이었다. 그런데 복잡 미묘한 무기 거래건을 해결짓기 위해 이곳에서 몇 달 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후 죠셈 콘라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코르제니와스키는 로렌쪼 다자와 얼마간 접촉을 시도했다. 로렌쪼 다자는 정부 측을 대표하여 그로부터 무기 선적권을 사들였으며, 신임장과 영수증도 받아두었고, 대금은 금으로 지불하기로 조치했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로렌쪼 다자는 우연히 급습을 당하는 바람에 무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그 무지를 당시 정부측과 싸우던 보수당에게 두 배 가격으로 되팔아 버렸던 것이다. 라파엘 레이즈 장군이 해군을 창설할 무렵, 로렌쪼 다자는 영국 육군으로부터 여분의 신발을 사들였다. 저스티지는 6개월 동안 단 한 번의 거래로 로렌쪼 다자의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 신발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 로렌쪼 다자는 신발이 오른짝 밖에 없다고 하여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세관 측에서 법에 따라 경매에 붙이자 그는 유일한 입찰자로 나서서 백 패소를 주고 사들였다고 했다. 한편 공범자도 유사한 상황을 꾸며 리오하차에 도착한 왼쪽 신발을 구입했다. 로렌쪼 다자는 우르비노 집안과의 사돈 관계를 이용하여 제대로 짝을 맞춘 신발을 이천 퍼센트라는 이익을 남기고 새로 창설된 해군 에게 팔아 넘겼던 것이다. 저스티스 지 기사는 로렌쪼 다자가 그의 말처럼 딸의 훌륭한 장래를 위해 19세기 말 쌍후앙 드 라 씨에나하를 떠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사실은 수입 담배에 찢어진 종이를 섞는 방법으로 사업을 번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 기술이 어찌나 감쪽같은지 담배맛을 잘 아는 애연가들까지도 그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은 또한 그가 국제적인 조직을 가진 어느 비밀 기업과 연계를 맺고 있었던 것도 폭로했다. 19세기에 그들이 벌인 주된 사업은 파나마의 중국인들을 불법으로 밀입국시키는 일이었다. 그의 평판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던 의문의 노새 사업이 그가 벌인 사업 중에서 가장 정직한 사업인 것 같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허리의 통증을 참고 우산 대신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페르미나 다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나이 탓으로 얼굴이 형편 없이 상해 버린 낯선 여인처럼 느껴졌다. 마음 속에 품은 원한으로 살아갈 의욕마저 상실한 것 같았다. 와병 중의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두 번이나 찾아왔던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저스티스의 두 기사 건 때문에 어머니가 얼마나 상심하시는지 들려준 적이 있었다. 첫 기사를 읽은 그녀는 남편의 부정과 친구의 배신에 이성을 잃을 만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매달 한 번씩 일요일에 가족 묘지에가는 행사를 중단해 버렸다. 그녀가 퍼붓고 싫은 욕을 관 속에 든 남편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펄펄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은 사람과 언쟁을 벌인 것이다. 그녀는 잠자리를 같이한 수많는 남자 중에서 적어도 진실된 한 남자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루크레치아가 깨닫도록 다른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전하게 했다. 로렌쪼 다자의 기사 건에 대해서는 기사 그 자체든 아니면 아버지의 진면목에 대해 때늦게 알아버린 사실이든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충격을 안겨 주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아니 두 가지 모두 그녀를 참담하게 만들어 버렸다. 고상해 보이던 은빛 머리카락도 이제는 보기 흉하게 시들어 보였다. 아름다운 표범 눈동자도 분노로 작열하는 열기 속에서 예전처럼 반짝거리지 않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결의가 손짓하나 하나에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욕실에서나 혹은 어디서든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시 사람들 앞에서 피우기 시작했다. 억제할 수 없을 만큼 탐욕스럽게 피워댔는데 처음에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직접 손으로 담배를 말아 피웠다. 나증에는 그럴 시간이나 인내가 없었던지 가게에서 사온 보통 담배를 피웠다. 당나귀 안장에 닿은 듯이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절름발이 노인과 죽음 이외의 다른 행복은 원치 않는 노부인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고 사람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렇지 않았다. 절망으로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그는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해 내었다. 그는 페르미나 다자의 불운이 그녀에게 더 큰 영예를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그녀의 원한이 20대에 보여준 그녀의 말괄량이 기질을 빼앗아 가 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두 가지 이유로 감사했다. 불명예스러운 그 기사 건에 관해 언론의 도의적 책임과 사람들의 명예 존중을 골자로 한 본보기적인 편지를 그가 저스티스 신문사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신문사 측에서는 그것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카리브 연안에서 가장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신문인 커머셜 데일리로 사본 한 통을 발송했다. 커머셜 데일리 지는 그 편지를 일면 기사로 게재했다. '쥬피터'라는 필명으로 씌어진 그 편지는 매우 논리적이고도 신랄한 명문이었으므로 그 지역내 명망 높은 어느 작가가 쓴 것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그것은 바다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외로운 음성이었다. 그러나 아주 깊은 곳까지 그리고 아주 먼 곳까지 들리는 그런 목소리이기도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말해주지 않아도 편지를 쓴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진심과 문체를 환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란 스러운 고독에 빠져 있던 그녀는 그래서 전에 없이 새로운 애정어린 마음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즈음 아메리카 비쿠나는 토요일 오후 읜도우즈 가의 침실에 혼자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정말 우연히도 플로랜티노 아리자가 타이프로 친 편지와 페르미나 다자의 편지를 열쇠 없는 옷장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아들인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어머니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방문을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딸인 오페리아는 정신적인 요건이 과히 좋지 않은 남자와 어머니가 이상한 우정을 맺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마자 과일을 실어 나르는 첫 배를 타고 친정을 찾아왔다. 처음 일주일 동안 그녀의 충격은 심각한 정도였다.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사로 집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밤 늦도록까지 마치 연인처럼 속삭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아 내었다. 아들인 우르비노 박사는 그것을 외로운 두 노인의 건전한 애정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딸인 오페리아는 사악하고 은밀한 부정으로 보았다. 친할머니 도나블랑카를 닮은 그녀는 매사를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할머니처럼 그녀도 개성이 뚜렷했고 거만했으며 편견이 심한 여인이었다. 다섯살 때에도 남녀간의 순수한 우정은 여든 살 때까지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 여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오빠와 심하게 다투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잠자리를 같이 하려는 응큼한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그녀와 맞설 만한 배짱이 없었다. 한 번도 그녀에게 맞서 떠들 만한 용기가 없었다. 오페리아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리 나이 때의 사랑도 우스쾅스러운데, 그 나이에 사랑이라니, 역겨운 일이라구 !" 그녀가 소리소리 질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집 밖으로 쫓아 내야 한다고 그녀가 어찌나 격렬하게 고집했는지 그 소리가 페르미나 다자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하인들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 나눌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딸을 침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나서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딸에게 요구했다. 오페리아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말했다. 변태 성욕자로 소문난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수상쩍은 관계를 맺으면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로렌쪼 다자의 비열한 행동이나 쥬베날 우르비노의 대담한 부정보다도 더 수치스런 일이라고도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잠자코 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딸이 말을 끝내었을 때 페르미나 다자는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소생한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너의 무례하고 사악한 짓거리에 실컷 때려 줄 기운이 내게 없다는 사실이다. 당장 이 집을 나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한발 짝도 들여놓지 말아라." 그녀가 말했다. 그녀를 만류할 방법이 없었다. 오페리아는 오빠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그녀는 유능한 중개인을 통하여 온갖 탄원서를 보내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아들의 화해책이나 혹은 친구들의 중재도 페르미나 다자의 결심을 흐트려 놓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페르미나 다자는 며느리에게 전성기적 그 화려한 표현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며느리와는 일종의 서민적인 우정을 유지해오던 사이였다. "저 불쌍한 사람과 난 서로가 너무 젊었기 때문에 오래 전에 인생이 어긋났던게야. 하지만 이젠 두 사람 모두 너무 늙어 버리고 나니 예전처럼 되고 싫구나." 그녀는 피우고 있던 담배 끝에 또 한 개비를 붙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마음 속을 갉아먹고 있던 모든 독을 밖으로 토해 내었다. "전부 지옥에나 꺼지라지. 미망인이 좋은 게 있다면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사람이 없다는 거로군 !" 어쩔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오페리아는 달리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뉴올리안즈로 돌아가 버렸다. 어머니에게 사정 사정한 덕분에 겨우 작별 인사를 허락받긴 했으나 집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기분 전환삼아 배를 태워주겠다는 초대를 페르미나 다자에게 정식으로 요청한 적이 있었다. 기차로 하루 남짓 가면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카리브 도시처럼 수도 이름은 예전 그대로 '산타페'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편견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그녀는 춥고도 침울한 그 도시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곳의 여인들은 5시 미사를 보러 외출하는 것 이외에는 집 밖을 떠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아이스크림 가게나 관공서 출입도 할 수 없으며 하루 종일 장례 행렬로 교통이 마비된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가랑비가 내리는 곳으로 파리보다 더 지독한 도시라는 소문도 들었다. 그녀는 반면에 항해 쪽으로는 강한 매력을 느졌다. 모래톱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악어도 보고 싶었고 한밤중에 바다소를 보고 놀란 여인의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고도 싶어졌다. 그러나 그 나이에 더구나 외로운 미망인 처지에 그런 험한 여행을 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후, 또다시 초대를 해왔다. 그때 그녀는 남편 없은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있었던 중이었으므로 그것을 그럴 듯한 제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딸과 다툰 이후에는 친정 아버지를 모욕한 일로 속이 상해, 그리고 죽은 남편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이 집안에서 무용지물같이 여겨졌다. 게다가 수년 동안 제일 친한 친구로 여겨져 루크레치아의 위선적인 이증 인격에 크게 화가 난 탓도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여러 나라의 차를 달여 만든 차를 들고 있던 그녀는 정원의 낮은 습지 쪽을 바라다보며 자신의 불행을 상징하는 나무가 다시는 그곳에 꽃 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을 나가서 걷고 또 걷고, 다시는 안 돌아오면 좋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 봅시다."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래볼까요?" 그녀가 말했다. 입 밖에 내기 전까지도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나 이제 실현 가능성올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도 그렇게 된다면 페르미나 다자가 귀빈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얼른 말해 주었다. 그녀에게 집처럼 안락한 선실을 따로 마련해 주어 완벽한 서비스를 받도록 조처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선장이 직접 그녀의 안전과 건강을 돌보아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항해 지도와 황홀한 일몰을 담은 그림 엽서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막달레나의 원시적인 풍경을 주제로 하여 유명한 여행가들이 지은 시집과 또 그 시집 덕분에 여행가로 변한 사람들이 쓴 책도 가져왔다. 그녀는 기분이 우울할 때 그 책들을 보곤 했다. "어린애처럼 저를 치켜 세우지 마세요. 만약 가게 된다면 그 풍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가 마음을 돌렸기 때문일 거예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아들이 아내와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제의하자 그녀는 한 마디로 잘라 거절했다. "아무도 날 돌볼 필요는 없다." 그녀는 직접 여행을 떠날 모든 차비를 차렸다. 간단한 필수품만 지닌 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8일, 돌아오는데 5일 걸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없이 느긋해졌다. 면 드레스 여섯 벌, 세면도구, 배에 오르내리고 할 때 신을 신발, 여행용 슬리퍼, 그뿐이었다. 평생을 꿈꾸어 오던 여행이었다. 1824년 1월, 기선 여행의 선구자인 요한 버나드 엘버즈 선장은 막달레나 강 유역에 운항할 최초의 기선을 등록시켰다. 그 배는 '피델리티' 라는 이름을 가진 원시적인 형태의 40마력짜리 낡은 난파선이었다. 그로부터 백여 년 후, 7월 7일 오후 6시 우르비노 다자 박사와 그의 아내는 페르미나 다자를 모시고 와서 그녀의 첫 기선 여행이 될 배에 올려 주었다. 그 배는 지방 조선소에서 건조된 최초의 선박으로서 영광스러운 조상의 이름을 따 '뉴피델리티'로 명명된 배였다. 두 배 모두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은 것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만성적 낭만주의 기질에서 비롯된 기발한 착상이 아닌 역사적인 우연의 일치라는 것을 페르미나 다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구식이든 현대식이든 다른 배와는 달리 뉴 피델리티 호는 선장실 옆에 넓고 안락한 공간을 자랑으로 내세웠다. 화려한 색깔의 대나무 가구가 있는 거실에다가 중국 풍 장식으로 꾸며진 더블 베드, 그리고 욕조와 샤워 시설까지 갖춘 욕실도 딸려 있었다. 크고 울타리 쳐진 관망대는 고사리 무늬 벽지가 발라져 있었으며, 배의 전면 및 양면을 그대로 바라다 볼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외부의 기온을 차단하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실내 온도를 봄 날씨처럼 만들어 주었다. 대통령 세 분이 이미 사용한 적이 있어 대통령 전용실로 알려진 그 방의 화려한 시설은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고급 공무원과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그 방을 공용의 목적으로 만들어 놓을 것을 지시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조만간 페르미나 다자와 즐거운 결혼 여행을 함께 지낼 공간으로 점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녀는 여 주인으로서 대통령 전용실을 차지했다. 선장은 삼페인과 훈제 연어 요리로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식사 대접했다. 선장의 이름은 디에고 사마리타노였는데 구두부터 모자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흰 린넨 제복을 입고 있었다. 모자에는 금박실로 RCC 선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선장들처럼 그도 사이바 나무처럼 건장한 체격에다가 거만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태도는 플로렌스의 추기경 같아 보였다. 아침 일찍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공원 묘지로 갔었다. 그곳은 당시 라 만가 묘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무덤 앞에 서서 죽은 남편과 화해를 했다. 그동안 억제해 왔던 원망을 있는 대로 마음 놓고 퍼부었다. 그리고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여행을 간다는 말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동안 유럽에 갈 때마다 지긋지긋한 작별 인사를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치 여행을 처음 떠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출발 날짜가 임박해 오자 그녀의 가슴은 점점 설레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지막 멧고동이 울리자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가 그녀에게 별 감정이 내포되지 않은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을 건널 판까지 데리고 갔다. 우르비노 다자 박사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아내 뒤를 따라 걷도록 한쪽으로 비켜서려고 했다. 그때서야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어머니와 동행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논하지 않은 것이 있읍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의도를 분명히 해 두는 의미에서 선실의 열쇠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 열쇠는 보통실의 열쇠였다. 하지만 우르비노 다자에게는 그것이 결백에 대한 충분한 증거로 보여지지는 않았다. 그는 놀란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눈빚이었으나 아내의 눈은 얼음처럼 냉담했다. 그녀는 아주 낮고도 거친 목소리로 ''"당신두요?" 하고 물었다. 그도 역시 오페리아처럼 그 나이에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점잖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후 자신을 되찾은 그는 감사라기보다는 단념의 의미가 담겨진 악수를 하며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배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들이 내리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가 원했던 대로 우르비노 다자 박사 내외는 자동차에 오르기 전 그를 되돌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 사람도 마주 흔들어 보였다. 자동차가 항구의 먼지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난간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선장 전용 식당에서 열릴 첫 저녁 식사에 적합한 옷을 갈아입기 위하여 선실로 들어갔다. 멋진 밤이었다. 디에고 사마리타노 선장은 40년 동안 강에서 생활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흥을 돋구었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자는 일부러 즐거워하는 척하려고 무척 노력을 해야만 했다. 8시에 마지막 출발 신호가 울려 손님들은 배에서 내려야 했고 건널판도 치워야 했는데도 선장이 식사를 끝내고 출항을 지시하러 선교로 가기 전까지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시끌법석한 승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난간에 남아 있었다. 배가 항구를 뼈져나가 보이지 않는 수로를 따라 파도처럼 물결치는 불빚에 싸인 숲지대를 지나 드디어 막달레나 강의 탁트인 공기를 깊이 들어 마실 때까지 승객들은 그 도시의 불빚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내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악단이 대중음악을 크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신이 나서 우르르 몰려 나오고 곧이어 춤이 시작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선실에 남아 있는 쪽이 훨씬 편했다. 저녁 내내 그녀가 한마디도 하지 않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가 혼자 상념에 빠져있도록 신경을 써 주었다. 선실 밖에서 작별 인사를 하느라고 그녀를 잠깐 방해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단지 몸이 조금 추웠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동안 함께 전용 갑판에 앉아 강물을 바라 보자고 그에게 제의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고리버들로 만든 안락의자 두 개를 난간 쪽으로 밀고 간 다음 불을 갰다. 그리고는 모직 쇼올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며 곁에 앉았다. 그녀는 그가 사준 작은 담배 케이스에서 놀랄 만큼 익숙한 솜씨로 담배를 꺼내어 잠자코 담배만 천천히 피워댔다. 담배 두 개비를 다시 꺼내더니 하나씩 차례차례로 불을 붙였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산지에서 재배한 커피 두 잔을 홀짝홀짝 마셨다. 도시의 불빚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보름달 아래 비친 잔잔하고 적막한 강물과 둑 양쪽의 목축지 풍경이 어두운 갑판 위에서는 파란빚을 내는 들판처럼 보였다. 선박 보일러용 나무를 판매한다는 것을 알리는 큰 화톳불 옆에 짚으로 만든 오두막집이 가끔씩 나타나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젊었을 때 다녔던 여행에 대한 희미한 추억을 그때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현란한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원기를 북돋아줄 것 같아 그는 몇 가지 추억담을 페르미나 다자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세계에 빠진 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 중단하고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동안 그는 담배를 꺼내 이미 태우고 있는 그녀에게 계속 권하였다. 이윽고 담배가 동이 나 버렸다. 자정이 지나자 음악 소리도 그쳤고 승객들의 음성도 졸리운 듯 나지막하게 변헤 버렸다. 어두운 갑판 위에 훌로 남은 두 심장만이 배의 숨소리에 맞춰 고동치고 있었다. 한참 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강물의 불빚을 통해 페르미나 다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희미해 보였다. 조각한 것처럼 다듬어진 옆 모습이 연푸른 불빚을 받아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그녀가 말 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위로하거나 혹은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혼자 있고 싶소?" 그가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들어 오라고 말하지도 않았겠죠." 그녀가 대답했다. 그때, 그는 어둠 속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손가락을 두 개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더듬으면서 그 손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늙어 빠진 뼈로 된 두 손은 잠시 서로 닿기 전에 상상했던 그런 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만큼 두 사람은 이성적이었다. 그녀는 마치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은 남편에 대해 현재 시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삶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소유하지 못한 사랑에 대해 그녀가 품위 있고 엄숙하게 스스로 자문해 볼 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쥐고 있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피우던 담배를 중단했다. 그녀는 상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 볼 때, 즐거움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오해, 쓸데없는 언쟁, 해결되지 않은 분노로 점철된 생활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싸우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군요. 이런 빌어먹을 ! 사랑인지 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그녀가 마음 속을 시원하게 털어 놓을 무렵 달빚도 사라져 버렸다. 배는 마치 조심을 게을리하지 않는 거대한 동물처럼 꾸준한 속력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제 가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허리를 굽힌 채 뺨에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탁하고도 나지막한 음성으로 거부했다. "지금은 안돼요, 늙은 여자 냄새가 나서요."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 다음 날까지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페르미나 다자는 담배불 한 개를 더 붙여 물었다. 담배를 피면서 그녀는 티끌 하나 없는 린넨 셔츠를 업은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남편은 직업상 엄격했고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며 딱딱하게 느껴지는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과거라는 다른 배에서 하얀 모자를 살짝 들고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 남자들은 편견에 희생된 불쌍한 노예들이라오.' 라고 언젠가 그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가 만약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할 결심을 했다면 말이오, 여자에겐 넘지 못할 벽도, 파괴하지 못할 요새도 없오. 철저히 무시하지 않아도 될 도덕심도 없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오.' 페르미나 다자는 새벽이 올 때까지 플로렌티노 아리자를 생각하며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일말의 향수도 일깨워주지 못한 추억을 가진 그였건만 이젠 더 이상 에반잴스 공원의 버림받은 파수꾼은 아니었다. 늙고 절름발이의 몸으로 그녀에게 다가왔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언제든지 손만 내밀면 다가올 수 있는 남자이지만 그녀가 한 번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살아서 호홉하는 듯한 배가 그날 핀 첫 장미의 향기를 그녀에게 안겨 주었을 때, 그녀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또 하루를 시작한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는 그 방법을 알았다. 페르미나 다자는 실컷 잠들도록 해달라고 승무원에게 지시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테이블 위의 꽃병에 아직도 이슬에 촉촉한 싱그러운 흰 장미가 꽃혀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편지도 한 통 있었는데 그 옛날 헤어진 이후에 쓴 편지처럼 두툼한 내용이었다. 전날 밤부터 자신을 결박했던 속마음을 차분하게 토로한 편지였다. 시적이었고 수사적이었으나 현실에 근거를 둔 내용이기도 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가슴이 마구 조마조마하여 당황한 채 편지를 읽어 내려 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준비가 다 되면 승무원에게 알려 달라는 부탁을 편지 끝머리에 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배의 조작에 관해 구경시켜 주기 위해 선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꽃향기 나는 비누로 목욕을 한 후 미망인다운 매우 수수한 잿빚 드레스를 입고 11시에 준비를 모두 끝냈다. 전날 밤에 있었던 마음의 혼란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승무원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부탁했다. 승무원은 완벽한 흰색 제복차림이었다. 선장의 배려가 있긴 했지만 그녀는 사람을 보내 달라는 쪽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 갑판 위로 올라갔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눈이 부셨다.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선장은 브릿지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그를 달리 보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변해서인지 어쩐지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평생 입어왔던 칙칙한 옷 대신 간편한 흰구두, 바지, 그리고 칼라 없는 반소매 린넨 셔츠를 입었는데 가슴에 달린 호주머니에는 그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스코틀랜드식 하얀 모자도 쓰고 있었으며 언제나 끼고 다니던 근시용 안경 위로는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어두운 색 렌즈를 끼우고 있었다. 오로지 이 여행을 목적으로 새로 산 것임이 분명했다. 다만 암갈색 가죽 벨트는 예외였다. 마치 스프에 삐진 파리처럼 단번에 눈에 띄었다. 그녀를 위해 그런 옷차림을 한 그를 보고 얼굴이 빨강게 달아오르는 것을 그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황해 하며 그에게 인사를 했으며 그 바람에 그도 더더욱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연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욱 곤혹스러웠고 서로가 곤혹스러워한다는 사실에 더욱 어쩔 줄 몰랐다. 사마리타노 선장도 그 사실을 눈치챈 듯 두 사람에게 동정을 금치 못하여 두 시간 동안을 배의 조정장치 및 전반 시설에 대해 설명해 줌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두 사람을 구출해 주었다. 그들은 수평선 끌까지 펼쳐져 있는 메마른 모래 톱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 가는 둑 없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 어귀의 거친 물살과는 달리 물살이 느리고 깨끗하여 사정 없이 내려 쬐이는 태양빚을 받아 물이 마치 금속처럼 비쳐 보였다. "이곳이 우리가 아무렇게 버려둔 강이죠." 선장이 말했다. 사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변모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더욱 깜짝 놀랐다. 그날은 항해가 점점 힘이 들기 시작한 날로서 강물의 집결지인 막달레나 강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증의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 날이기도 했다. 사마리타노 선장은 50년 동안에 걸친 무절제한 벌채가 강물을 이렇게 망쳐 놓았다고 말했다. 옛날,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첫 여행 때 위압감을 주던 거대하고도 울창한 숲속의 나무들을 선박용 보일러가 모조리 베어 써 버렸던 것이다. 페르미나 다자도 구경하고 싶었던 동물들을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 뉴올리안즈의 가죽 공장에서 온 사냥꾼들이 악어를 멸종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강 근처 협곡 끝에서 죽은 척 꼼짝 않고 몇 시간 동안 누워 입을 커다맣게 벌린 채 나비를 기다리고 있던 악어들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울던 앵무새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던 원숭이들도 폐허가 되어 버린 숲과 함께 다 죽어버렸다. 엄청나게 큰 젖가슴으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며 버림받은 여인처럼 구슬프게 울어대던 바다소들도 재미 삼아 쏘아대던 사냥꾼들의 총탄에 의해 멸종되고 말았다. 사마리타노 선장은 바다소에 대해 거의 모성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며 그것을 터무니 없는 사랑에 저주받은 여인처럼 생각했다. 바다소가 동물의 왕국에서 짝이 없는 유일한 암컷이라는 전설을 그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배 안에서의 사냥을 그는 언제나 반대해 왔다. 사냥 금지법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종의 관례이기도 했다. 언젠가 관계 서류를 구비한 노스캐롤라이나의 어느 사냥꾼이 선장의 말을 어기고 스프링필드 라이플로 쏘아대는 바람에 어미 바다소 머리통이 박살이 나 버렸다. 새끼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어미의 몸뚱아리 위에서 마구 날뛰었다. 선장은 새끼 바다소를 돌보아주기 위해 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총에 맞아 죽은 어미 바다소가 있는 황폐한 강둑에 그 사냥꾼을 남겨두고 떠났다. 외국의 항의를 받아 선장은 감옥에서 6개월을 보내었으며 선장 자격증도 박탈당할 뻔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그는 여전히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역사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였다. 바랑카스 동물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그 새끼 바다소가 마지막 남은 바다소였기 때문이었다. "이 둑을 지날 때마다 배에 탄 미국놈들을 다시 처박아 놓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답니다." 선장이 말했다. 선장에게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페르미나 다자는 그 따뜻한 마음씨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날 아침 이후부터 그는 그녀의 가슴에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제 여행은 시작 단계에 불과했고 그녀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여러 사건이 많이 생기게 되리라는 그녀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티노는 점심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그 선교 위에 남아 있었다. 점심 식사는 그들이 칼라마 마을을 막 지나쳤을 때 반대편 해안에서 제공되었고, 그것은 몇 년 전만 해도 영구적인 축제로 성황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삭막한 거리를 낀 황량한 항구에서 행해질 뿐이었다. 그들이 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안 옷을 입고 그들을 향해 손수건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여자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가 그다지도 애절하게 신호를 보이는데 왜 구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했는데 선장이 설명하기를 그녀는 물에 빠진 여자의 귀신이며 그 현혹하는 손짓은 배들을 항로로부터 이탈하도록 끌어들여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꾀어 가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페르미나 다자가 그 물귀신을 햇빚 아래서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매우 가까이 지나갔으며 페르미나 다자도 그 물귀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그 물귀신의 얼굴 모습은 눈에 익었다. 그날은 길고 무더운 날이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필수적인 낮잠을 위해서 점심 식사 후에 선실로 돌아갔지만 귀의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고 그 통증은 또다른 캐리비언 해운회사의 배와 서로 교차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듯 뱃고동을 울려댈 때 더욱 심해졌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본관에서 선잠에 빠졌는데 그곳은 선실이 없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한밤중인 듯이 잠을 자고 있었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동정을 빼앗은 로잘바의 상륙을 보았던 지점이 가까와지자 로잘바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지난 세기의 옷차림을 한 채 혼자 여행하고 있었으며 천장에 걸려 있는 바구니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어린애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수수께끼 같고 즐거운 꿈이어서 그는 선장과 그의 친구들인 다른 두 명의 승객들과 함께 도미노 게임을 하면서 나머지 오후 시간을 즐겼다. 해가 기울자 날씨는 시원해졌고 배도 활기를 되찾았다. 승객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듯 목욕읕 끝내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 싸롱의 의자에 앉아서 웨이터 한 명이 갑판의 이쪽 끌에서 저쪽 끝까지 종을 울리고 다니면서 알려 주었던 정각 5시의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밴드는 판당고(역자주 : 3박자의 스페인 무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춤추는 것은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귀의 통증 때문에 먹는 것에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으며 통나무 더미와 작업을 감독하고 매우 늙은 한 남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소협곡에서 보일러에 사용되는 통나무들이 배 위로 실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많은 동맹 회사들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페르미나 다자에게는 그 배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그것은 길고 지루한 정거였으며 그 열기는 너무 강해서 그녀는 자신의 시원한 관망대에서조차도 그 강렬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배가 다시 출항을 할 때는 숲속에서 불어오는 듯한 향기로운 산들바람이 불었으며 음악은 더욱 더 활기를 띠었다. 시티오누에보 마을에는 유일한 한 채의 집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에서 단 하나의 불빚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며 그 항구의 사무실은 뱃짐이나 승객들에게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아 그 배는 인사도 없이 그곳을 통과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기의 선실문에 노크를 하지 않고 자기를 만나고 어떤 전략을 쓸 것인가를 궁금해 하며 오후 내내를 보냈으며 8시가 되자 더 이상 그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통로로 나가 우연인 것처럼 그와 만나기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멀리까지 나갈 필요는 없었다. 플로렌틱노는 통로의 벤치에 에반잴스의 공원에서 처럼 묵묵하고 고독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2시간 이상을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그것이 가식인 줄 알면서 놀라는 듯한 몸짓을 해 보였고 함께 걸어서 1등 갑판으로 갔으며 그곳은 대부분 학생들인 젊은이들로 붐렸다. 라운지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페르미나 다자는 자기들도 학생인 양 바아에 앉아 술을 한 병 시켜서 마셨는데 그녀는 갑자기 너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런 세상에 !"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왜 그렇게 놀라느냐고 물었다. "불쌍한 늙은 연인들 생각이 났어요.!" 그녀가 말했다. "배에서 죽도록 얻어맞아 죽은 내연의 노부부 말이에요." 두 사람은 어두운 관망대에서 길고 별 문제 없는 대화를 나눈 후, 음악이 멈추었을 때 안으로 들어 가기로 결정했다. 하늘은 구름이 끼어 달은 보이지 않았으며 수평선에는 반짝이는 불빚이 보였지만 잠시라도 두 사람을 비춰줄 수 있는 번갯 불조차 없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를 위해 담배를 말았지만 지금은 괜찮지만 배가 다른 배와 지나치거나 잠들어 있는 마을을 통과할 때 내는 고동소리가 울릴 때면 다시 재발될 그 귀의 통증 때문에 담배 한 개비도 채 피우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시인의 제전에 참석한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해마다 그 제전울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도 그의 모습을 보았었지만 그녀는 그가 오로지 자기만을 보려고 그곳에 있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더듬은 것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전날 밤 자신이 그의 손을 기다렸듯이 자기 손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은 떨렸고 플로렌티노의 심장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정말 이상해." 그가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귀여운 아이처럼 깔깔 웃음을 터뜨렸고 다시 한 번 배에서 노에 맞아 죽은 늙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 영상은 그녀의 뇌리에 깊이 남아 항상 그녀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날 밤은 그녀가 평생 동안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모든 비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처음으로 느낀 평온한 밤이어서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자기의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새벽이 올 때까지 조용히 그곳에서 머무르고 싶었지만 귀의 통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악이 끝나고 법석대던 일반 승객들이 싸롱에서의 잠자리 마련이 끝나자 그녀는 자신이 그와 함깨 있고 싶은 욕구보다는 귀의 통증이 더 강력한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통증에 관해서 그에게 말하면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그가 자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일생동안 그와 함께 살았던 것처럼 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녀는 그가 자신의 통증을 덜어주는 일이라면 그 배를 항구로 되돌아 가도록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날 밤 일이 어떻게 풀릴지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는 점쟎게 물러났다. 그녀의 선실문 앞에서 그는 그녀에게 작별 키스를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의 입술에 볼을 갖다 대며 그녀의 학창시절에는 그가 결코 보지 못했던 애교를 부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 시도를 했고 그녀는 입술을 내주었으며 그 입술은 그녀가 결혼하던 날 밤 이후로는 잊어 버렸던 읏음을 억제하느라고 심하게 떨고 있었다. "제발" 그녀가 말했다. "배가 나를 너무 괴롭히는군요."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홈칫 놀랐다. 그녀가 말했듯이 그녀에게서는 노년기의 냄새가 풍겨져 나왔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선실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잠자리들을 헤치며 걸어가면서 자신도 그녀보다 네 살 더 먹은 것을 생각하면 똑같은 노년의 냄새를 풍겼으리라 생각했으며 그녀 역시 그와 같은 생각으로 그 냄새를 감지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 가장 나이 들었던 애인들에게서 느꼈던 인간이 발효한 냄새였으며, 그들도 그에게서 그런 냄새를 느꼈었다. 솔직한 과부 나자렛은 노골적으로 그에게 말했었다. "이제 우리는 닭장 냄새와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겨." 그들은 자신의 냄새와 상대방의 냄새와의 동등환 경쟁이었기에 서로 참아냈다. 그와는 달리 플로렌티노는 아메리카 비쿠나를 자주 돌보아 주었는데, 그 아이의 기저귀 냄새는 그에게 모성적인 본능을 일깨워 주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더러운 늙은 남자의 냄새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심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에스코라스티카 고모가 그녀의 미사 경본읕 전신국의 계산대 위에 놓고 간 오후 이후로는 플로렌티노는 그날 밤과 같은 그렇게 강렬하고 놀라운 행복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5시에야 그는 졸기 시작했고 그때 잠브라노 항구에서 배의 사무장이 그를 깨워 그에게 전보를 건네 주었다. 그 전보는 그 전날 날짜로 발송되었고 레오나 카시아니의 서명이 되어 있었으며 놀라운 소식이 담겨져 있었다. "아메리카 비쿠나, 어제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사망함." 그날 아침 11시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신이 전신원을 그만둔 이후 처음으로 직접 무전을 통해서 레오나 카시아니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전송받았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최종 시험에서 떨어져 학교의 진료소에서 훔친 아편제를 들이키고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플로렌티노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그 이야기는 뭔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메리카 비쿠나는 누구도 자신의 결정 때문에 비난받지 않도록 아무런 유서도 남겨 놓지 않았다. 레오나 카시아니에게서 연락을 받은 그녀의 가족들이 푸에르토 파드레로부터 도착했고 장례식은 그날 오후 5시에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몇 년에 걸쳐 때때로 그 악같은 기억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도 없이 오래된 상처의 갑작스런 통증처럼 그에게 다시 떠오르곤 했었지만 그는 그 기억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 다음날부터는 무덥고 지루한 날이 계속되었다. 강물은 흙탕물로 좁아지고 플로렌티노의 첫 항해 때 그를 놀라게 했던 거대하고 울창했던 나무 대신에 강을 운항하는 배들의 보일러 용으로 그것들을 완전히 잘라버려 숲 전체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고 고독한 암벽으로 된 마을은 아무리 혹독한 가뭄에도 길이 항상 물에잠겨 있었다. 밤에 그들은 모래둑에 있는 바다소의 유혹하는 노래소리에 잠을 깬 것이 아니라 바다로 흘러 내려가는 시체들의 악취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곳에는 더 이상의 전쟁이나 전염병도 없었지만 아직도 물에 떠내려가는 부풀은 시체들이 있었다. 단 한 번 선장은 심각한 어조로, "우리들은 승객들에게 저 시체들은 사고로 물에 빠진 사람들 것이라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라고 말했다. 한때는 숨막힐 것 같은 한낮의 더위의 강도를 더해 주었던 앵무새들의 꽥꽥거리는 소리와 보이지 않는 원숭이들의 날뛰는 소음 대신에 황폐한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삭막한 적막뿐이었다.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없었고 있는 곳도 서로 너무 떨어져 있어서 뉴 피델리 호는 항해 나홀째 되던 날 연료가 바닥났다. 배는 승무원들이 나머지 흩어져 있는 나무 숲을 찾는 동안의 약 1주일 동안을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벌목꾼들은 그곳을 버려두고 땅의 잔인함과 눈에 보이지 않는 콜레라 균과, 정부가 괴로운 포고를 숨기는데 온 힘을 쏟던 에벌레들의 전쟁으로부터 도망치고 없었다. 그러는 동안 승객들은 무료함을 달래느라고 수영 시합과 사냥 탐험대를 조직했으며 식용 도마뱀을 잡아서 배를 갈라 부드러운 내장뭉치를 꺼내고 다시 꿰매고 반투명한 알들은 실에 매달아 말렸다. 가까운 마을에서 온 가난에 굶주린 매춘부들은 탐험대를 따라나서 해안을 따라 난 골짜기에 탠트를 즉석에서 치고 탐험대와 함께 음악과 술을 즐기며 꼼짝 못하고 있는 배의 강 건너편에서 소란을 떨었다. 그가 카리비안 해운 회사의 회장이 되기 오래 전에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항만청으로부터 경고문을 받았었지만 거의 읽어본 적이 없으며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 말아요, 나무가 떨어지면 배는 기름을 연료로 해서 가게 될 테니까." 하고 말하곤 했다. 페르미나 다자에 대한 열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런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그가 사태를 깨닫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강물이 최적의 상태일 때에도 배들은 밤에 정박해야만 했고 심지어는 살아있다는 단순한 사실조차도 인정하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승객들, 특히 유럽인들은 악취가 나는 선실을 포기하고 갑판을 거닐면서 밤을 지새우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은 그 수건으로 모든 종류의 날 벌레들을 털어댔고 새벽녁이면 지치고 벌레에 물려 부어오른 몸이 되었다. 19세기 초에 카누와 노새 여행은 50일 동안은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 한 영국 여행가는,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여행 중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면한 것 중의 하나이다."라고 썼다. 그 말은 증기 항해가 성행하던 첫 80여 년 동안은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으나 악어가 마지막 나비를 잡아먹고 어미 바다소가 사라지고 앵무새와 원숭이와 마을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질 때 그 말은 영원한 진리가 되고 만다. "문제 없어요." 선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몇년 후엔 우리가 훌륭한 자동차를 타고 말라붙은 강바닥 위를 달리게 될 태니까요." 첫 사흘 간은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밀폐된 관망대에서 봄날씨 같은 온도로 지낼 수 있었으나, 나무가 배급제가 되고 냉방 장치가 고장이 나자 회장실도 마치 한증탕처럼 되었다. 그녀는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강바람에 밤에는 생기가 있었고 배가 정박했을 때는 해충제도 소용이 없어서 수건으로 모기들을 쫓았다. 페르미나 다자의 귀의 통증은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매미 울음 소리같은 소음과 함께 갑작스럽게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까지도 자기의 왼쪽 귀의 청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그녀의 왼쪽에서 말읕 할 때 그 말을 알아 들으려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녀는 그것도 나이때문에 생기는 불치의 증세라는 사실에 채념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항해가 지연되는 것은 두 사람에게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플로렌티노는, '사랑은 재난 속에서 더욱 위대해지고 고상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회장실 내부의 습도는 그들을 혼수 상태에 빠뜨렸고 그 안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을 나누기가 한결 쉬웠다. 그들은 난간 옆 의자에서 서로 손을 잡고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을 보냈으며 조급함 없이 키스를 교환하고 초조감 없이도 애무의 감흥을 만끽했다. 혼수 상태처럼 된 사홀째 되던 날 밤 그녀는 강심제로 쓰이는 술을 한 병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술은 외사촌 언니인 힐데브란다와 또 다른 사촌들과 몰래 마시곤 했던 것이며 그녀가 결혼하여 임신올 했을 때 남몰래 문을 잠가 놓고 마시곤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너무나 명료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정도 중독이 필요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것이 그녀에게 최종 단계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상상으로 용기를 얻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늘어진 목과 금속 버팀줄로 방비가 된 그녀의 가슴과 쇠퇴한 뼈를 지닌 히프, 그리고 노쇠한 동맥이 보이는 그녀의 허벅지를 손끝으로 과감하게 애무해 나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기쁘게 받아 들였으나, 떨지는 않았고 규칙적인 간격으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마침내 그의 애무가 그녀의 복부 위를 미끄러져 내려갈 때는 그녀는 이미 강심장이 되어 있었다. "당신이 그걸 원한다면 좋아요, 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어른답게 해야 해요." 그녀는 침실로 그를 데리고 가서 불을 켜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똑바로 누워 침대 위에 있었고 다시 한번 그가 죽인 호랑이 가죽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쳐다보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천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왜?" "왜냐하면 당신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벗은 알몸이 그가 상상했던 대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주름이 잡히고 가슴은 쳐졌으며 그녀의 갈비뼈는 창백하고 차가운 개구리의 피부 같은 껍질로 덮혀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방금 벗은 블라우스로 가슴을 가렸고 불을 껐다. 그 다음에는 그가 일어서서 어둠 속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으며 그는 벗은 것들을 그녀를 향해 던졌다. 그녀는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과 함께 그것들을 다시 되돌려 던졌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고, 그는 흥분에서 깨어나면서 더욱더 마음이 산란했고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이 평화롭게 보였지만 그녀가 강심제 술을 과다하게 먹었을 때면 항상 그랬듯이 바보처럼 웃어대지 않기를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 스스로와 각자의 분리되었던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멈춰선 배의 캄캄한 선실에서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녀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소문부터 나는 그 도시에서 그의 여자 관계에 대한 소문만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고 그는 일정한 목소리로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총각으로 있었던 거요." 페르미나 다자는 그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믿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연애 편지 역시 비슷한 문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한 말 속에 담겨진 그 정신을 좋아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갑자기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감히 질문도 못했던 것을 이번에는 스스로 자문했다. 그것은 그녀가 결혼 생활 외에 어떤 종류의 비밀스런 사랑을 영위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자들도 그런 종류의 비밀스런 탐험에서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전략과 갑작스런 영감, 후회 없는 증오 등을 겪었으리라는데 놀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을 만큼 현명했다. 한때 그녀의 신앙 생활이 허물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고해 신부는 그녀에게 남편에게 충성을 안했다는 투의 질문을 뜻밖에 던지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결론도, 작별 인사도 없이 일어서서 그곳을 나왔으며 다시는 그 고해 신부나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고해하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신중함은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를 낳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그의 배와 옆구리, 그리고 털도 거의 없는 치골을 애무하며 말했다. "당신은 어린애 같은 피부를 갖고 있군요." 잠시 후 그녀는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녀는 그의 물건을 찾아 정처 없이 뒤적였으며 그녀가 그것을 찾아냈을 때 그것은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죽었소." 그가 말했다. 그것은 가끔 그에게 일어나는 현상이었고, 그런 망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을 익혔으며 매번 그가 그것을 자각할 때마다 기분은 처음 느꼈던 것과 같았다. 플로렌티노는 그녀의 손을 잡아 그의 갸슴 위에다 올렸다. 페르미나 다자는 나이는 들었어도 지치지 않는 그의 사춘기 시절의 심장같이 그의 피부를 뚫고 터져 나올 것만 같고, 힘차게 박동하며, 빠르고도 불규칙적인 그의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과도한 사랑은 이래서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만큼이나 나쁜 것이오."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그 말은 창피와 신경질과 자신의 신체상의 일시적 결함을 무마하려는 설득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것을 알았으며 그의 무방비 상태인 알몸을 기뻐 날뛰는 고양이처럼 애무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헌신을 더 이상 견디다 못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자기의 선실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새벽녁까지 그에 대한 생각을 했으며 아직 남아 있는 술기운 때문에 그녀는 그가 화가 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번민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바로 그날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평상시와는 달리 11시에 돌아왔으며, 그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과시하듯이 옷을 벗었다. 그녀는 그를 어둠 속에서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환한 곳에서 보는 것이 즐거웠으며 그의 몸은 젊은 사람처럼 활짝 펼친 우산과 같은 탄탄함과 윤택을 지닌 검은 피부였고 그의 팔 밑과 살 부위 등 몇몇 부위를 제외하면 털이 거의 없었다. 그의 무기는 세워져 있었고 그녀는 그가 우연히 자신의 무기를 내보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전쟁의 승리 트로피처럼 전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새벽녁의 바람이 불어올 때 그녀가 걸쳐 입은 잠옷도 벗을 시간조차 그녀에게 주지 않았으며 그의 초심자 같은 서두름은 그녀를 관용으로 전율케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경우에는 관용과 사랑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났을 때 그녀는 허전함을 느졌다. 그것은 그녀로서는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맺은 관계였으며 그녀는 그렇게 오랫동안의 금욕 이후에 그녀의 나이에서 느끼는 그 관계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에게 그녀의 육체 역시 그를 사랑했는가를 밝혀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 일은 조급하고 슬프게 행해졌으며 그녀는 이젠 모든 일이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옳지 못했다. 두 사람 각자가 느낀 실망과 서투른 솜씨를 탓하는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후회, 술기운에 정신 없었던 그녀의 후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후 며칠을 잠시 동안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디에고 사마리타노 선장은 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떠한 비밀스런 일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사람이라서 매일 아침 그들에게 하얀 장미를 보냈고, 그들 세대에 유행했던 옛 왈츠를 틀어주었으며 최음제 양념이 들어간 식사를 제공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갈망하지 않고 어떤 동기가 자연스럽게 유발될 때까지 한동안 그런 관계를 다시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있는 단순한 즐거움에 만족했다. 그들은 만일, 선장이 점심 식사 후에 11일 간의 종착항인 도라다에 도착한다고 쪽지로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선실을 떠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실에서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햇볕을 받고 있는 집들의 융기를 보면서 그 지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불에 달군 솥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더위를 느끼고 거리의 타르가 녹아흐르는 거리를 볼 때는 그곳의 지명이 확실히 파악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배는 그곳에 정박을 하지 않고 산타페로가는 철로가 나 있는 반대편 둑에 정박했다. 두 사람은 승객들이 상륙을 시작하자 곧바로 그들의 은신처로부터 나왔다. 페르미나는 텅 빈 싸롱에서 무사히 도착함을 자축하며 안도의 심호흡을 하였고, 뱃전에서 두 사람은 장난감처럼 보이는 짐들을 기차에서 내리고 있는 승객들의 혼잡스런 광경을 목격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유럼으로부터 온 것 같았는데 특히 여자들은 찌는 듯한 폭염 속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코트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머리에 아름다운 감자꽃을 꽃고 있었는데 그 꽃은 더위에 시들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꿈결 같은 대초원을 지나 기차로 안딘 고원으로부터 막 도착한 사람들이어서 카리브 해협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갈아 입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혼잡한 시장의 한가운데서 얼굴에 몹시 슬픈 표정올 한 노인이 그의 거지 같은 코트의 주머니에서 병아리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그 누더기 같은 코트를 걸친 채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다녔는데, 그의 코트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는지 그의 체격에 비해서 너무 길고 무거워 보였다. 그 사람은 모자를 벗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집어 던질 수 있도록 항구의 가장자리에 놓았고 호주머니를 뒤져 한움큼의 병아리를 끄집어 냈는데 그 병아리들은 마치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화된 듯이 보였다. 항구는 삽시간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병아리들로 정신이 없었고 바쁜 여행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병아리들을 짓밟고 다녔다.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막힌 광경과 자신만이 유일하게 그 목격자라는 생각으로 넋이 빠져 있던 페르미나 다자는 승객들이 다시 귀항을 위해서 배에 오르는 것조차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구경거리가 끝이 나자 그녀는 행객들 중에서 낯익은 얼굴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얼마 전에 치뤘던 슬픈 장례식에 참석했던 친구들도 있어서 그녀는 바로 은신처인 선실로 되돌아갔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마음이 산란한 그녀를 선실에서 발견했으며 그녀는 자기 남편의 사망 후에 그렇게 빨리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목격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고민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를 선실에만 은신시키는 것보다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런 생각은 두 사람이 독립된 식당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증에 갑자기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선장은 오랫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상의하기를 원했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럴 때마다 항상 선장에게, "레오나 카시아니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그런 문제들을 잘 다룰 걸세."라고만 말하면서 선장을 피해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자진해서 선장의 의견을 들었다. 그 의견은 다름이 아니라, 화물선은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화물을 싣고 가고 내려올 때는 비어서 내려오며 승객선은 그 반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물선의 장점은 돈은 더 많이 받고 소요 경비는 덜 든다는 것이죠."라고 선장이 말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남자들의 차등 요금제 적용 가능성에 관한 무기력한 토론에 싫증을 느끼며 별 생각 없이 식사를 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토론을 끌까지 집요하게 끌고 갔고 선장의 생각에 해결책의 실마리가 잡혀 질문을 했다. "가설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말했다. "정지하지 않고, 화물이나 승객조차 태우지 않고, 어느 항구로도 들어갈 필요가 없는 항해가 가능하다는 말이오?" 선장은 그것도 가능은 하지만 오직 가설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 카리비안 해운 회사는 화물, 승객, 우편 등등 대부분 해약할 수 없는 계약을 맺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플로렌티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 계약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배 안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였다. 배는 검역이 되어야 하며 노란 기를 걸고 비상체제로 운행한다. 선장은 그러한 몇몇 경우에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보건국에서 의사들에게 사망 진단서에 질병이라고 쓰도록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외에도 해운업의 역사에는 세금을 면제받거나, 별 볼일 없는 승객들의 승선을 피하고, 불시의 검사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노란 깃발을 꽃은 적이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식탁 아래로 페르미나 다자의 손을 잡았다. "좋아, 그렇다면 그렇게 해 봅시다."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말했다. 선장은 깜짝 놀랐지만 늙은 여우 같은 직감으로 모든 것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저는 이 배를 통솔하지만 회장님은 우리를 통솔하시는 분이죠."선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만일 진심이시라면 저에게 서면으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면 우린 지금 곧바로 떠날 것입니다." 물론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는 그 명령서에 서명했다. 사람들은 보건국으로부터의 만족스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콜레라가 완전히 박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 안에서의 문제거리는 없었다. 승객들이 들고 온 약간의 짐은 옮겨 싣고 승객들에게는 배가 고장났다고 말했으며, 그날 아침 일찍 다른 회사의 배편으로 승객들이 여행을 계속하도록 해 주었다. 만일, 그런 일이 많은 비도덕적이고 심지어는 경멸할 만한 이유에서 행해진다 하더라도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왜 그것이 사랑을 위해서 하는 그들에게까지 불법이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장이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부탁한 유일한 것은, 푸에르토 파드레에 잠시 정박시키고 그와 항해를 동행할 친구를 한 사람 태워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선장 역시도 비밀이 있었다. 그래서 뉴 피델리티 호는 다음 날 새벽에 짐이나 승객을 전혀 태우지 않고 출항했는데 큰 돗대에는 노란 콜레라 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해질 무렵, 푸에르토 파드레에서 그들은 선장보다 키도 크고 억세 보이는 한 여자를 태웠는데 수염만 붙이면 곡예단에도 채용될 만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제나이다 네베스였는데 선장은 그녀를 '나의 거친 여인'이라고 불렀으며 그녀는 선장이 이쪽 항구에서 태워서 다른 쪽에 내려주곤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배에 올랐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늙은 노새가 끄는 기차가 엔비가도로부터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쥐죽은 듯이 고요한 장소에서 그는 로잘바와의 추억읕 다시 한 번 떠 올렸다. 아마존 강의 폭우는 나머지 항해 동안 거의 쉴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배에는 지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페르미나 다자는 승무원의 취사실로 내려가, 자신이 손수 만든 요리를 배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었고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 요리를 사랑의 가지로 명명했다. 낮에 그들은 카드놀이를 하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낮잠을 잤으며, 해가 지면 오캐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고 그들은 더 이상 먹고 마실 수 없을 때까지 연어와 술을 먹었다. 그것은 정말 빠른 항해였다. 배는 가벼웠고 물의 흐름도 빨랐으며 홍수가 난 상류에서 흘러내린 물은 그들이 지금까지 항해해 오면서 일 주일에 걸쳐 내린 빗물을 한군데 모아온 것 같았다. 어떤 마을에서는 콜레라를 두려워하여 멀리 쫓아 보내려고 쏘아 대는 공포 소리도 들렸고, 그 배가 가까이 오지 않는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내는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 배가 도증에 지나친 배들은 소속 회사에 상관없이 애도의 표시를 보내왔다. 메르체데스의 고향인 마그앙그 마을에서는 남은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목재를 구했다. 페르미나 다자는 그녀의 잘 들리는 쪽 귀로 배의 고동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지만 강심제용 아니스 주를 먹은 지 이틀째 되는 날에는 양쪽 귀가 모두 잘 들렸다. 그녀는 장미 향기도 전에 보다 더욱 향기롭게 느껴졌으며 새벽의 새들 노래소리도 전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하느님이 바다소를 창조하셔서 타말라메큐의 강둑에 머물게 해서 그녀를 깨우게 한 것 같았다. 선장도 그 소리를 듣고 배는 항로를 바꾸었으며 마침내 그들은 그 거대한 바다소가 새끼를 품에 안고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뿐만 아니라 페르미나 다자도 얼마나 자신들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었는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페르미나 다자는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관장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가 자는 동안에는 유리잔에 넣어 보관하는 의치를 일찍 일어나서 닦아 두었으며 잊어버린 그녀의 안경 대신 독서나 바느질을 할 때는 그의 안경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일어나 보니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어두운 곳에서 옷에 단추를 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에게서도 두 명의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서 단추를 달아주었다. 그와 달리 그녀가 그에게서 필요로 하는 유일한 것은 그녀의 등의 통증을 그가 안마해 주는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나름대로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빌려 옛 추억을 되살리기 시작했으며 하루의 절반 가량을 그녀를 위해서라면 '왕관 쓴 여신'이라는 왈츠를 연주할 수 있었지만 주위에서 그만 좀 멈추라고 하는 바람에 4간 동안밖에 그 곡을 연주할 수 없었다. 페르미나 다자가 난생 처음으로 어느날 밤 눈물에 젖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무슨 분노 때문이 아니라 선원들에게 배에서 죽도록 얻어 맞아 죽은 그 늙은 연인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고 그녀는 또한 파리가 어쩌면 옛날처럼 그렇게 음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산타페에도 거리를 줄지어 선 장례 행렬은 이제 보이지 않읕 것이라고도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녀는 플로렌틱노 아리자가 수평선상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또 다른 여행을 꿈꾸었는데, 그것은 가방도 필요 없고 사교적인 예식도 없는 미친 듯한 항해, 바로 사랑의 항해를하는 꿈이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날 밤에 그들은 종이로 만든 꽃 장식과 색 전등을 달아놓고 큰 파티를 열었다. 날씨는 밤이 깊어지면서 맑아졌다. 선장과 제나이다는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볼레로를 추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에게 단둘이 왈츠를 추자고 용기를 내어 제안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그녀는 밤에는 계속해서 서서 시간을 보냈었지만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앉아서 춤을 춘 잠시 동안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로 볼레로의 어둠 속에서 선장과 그의 연인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을 때였다. 페르미나 다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계단을 오르는데 부축올 받아야 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게 하는, 웃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는 증세의 발작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가 향내나는 천국인 그녀의 선실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사랑의 경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주위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으며 그것이 그 어이없는 항해에서 그녀가 잊지 못할 최고의 기억이었다. 선장과 제나이다가 추측했던 것과는 반대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신혼부부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뒤늦은 연인관계처럼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부부생활의 험한 수난을 뛰어넘어 곧장 사랑으로 연결된 듯한 관계였다. 두 사람은 인생 항로에 지친 늙은 부부처럼 묵묵히 함께 지냈으며, 열정의 구렁텅이나 무모한 회망이나 환상을 초월한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랑이란 언제 어디서건 항상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함께 충분히 오랫 동안 지내왔지만, 그 관계는 가까워지면 질수록 파경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6시에 일어났다. 그녀는 숙취로 인해 머리가 아팠고, 쥬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그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보다 살찌고 젊어진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은 인상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층격을 받았다. 그가 그들이 살던 집의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흔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술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임박한 귀가 때문에 생긴 환상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꼭 죽을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그녀의 말에서 항해가 시작된 이래로 그를 줄곧 불안하게 해 온 생각을 돌이킬 수 있었다. 두 사람중 어느 누구도 선실 이외의 다른 집은 상상도 못 했으며 선상에서의 식사 외에 다른 식사 방법이나, 달리 사는 방법조차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만일, 그런 다른 방법이 있다면 두 사람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죽어가는 것과 같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손을 깍지 끼어 뒷 머리에 받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순간, 아메리카 비쿠나에 대한 슬픈 충동이 그를 고통스럽게 엄습했고 그는 더 이상 진심올 왜곡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홀로 욕실문을 잠그고 눈물 샘이 말라 버릴 때까지 실컷 통곡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가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이미 상륙할 옷으로 갈아 입은 그들이 갑판 위로 올라갔을 때는 배는 좁은 해협과 오래된 스페인의 늪을 지나서 난파선들과 유전들 주위를 항해하고 있는 증이었다. 헷빚 나는 목요일에는 빅세로이스 도시의 금빚 돔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페르미나 다자는 난간에 서서 악취를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그 냄새는 마치 인생의 공포와도 같았다. 그것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중 어느 것 하나도 그렇게 쉽게 항복시킬 수 없다는 느낌이 돌었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선장을 발견했는데 그는 평소 때의 단정함에 어울리지 않게 지저분했다. 선장은 면도도 하지 않았고 두 눈은 수면 부족으로 충혈되어 있었으며 그의 옷에는 어젯밤에 흘린 땀이 얼룩져 있었고 그의 말은 술트림을 하느라고 지장이 많았다. 제나이다는 골아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보사부에서 그 배를 정선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모터 보트가 도착했을 때 말 없이 아침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선장은 선교 위에 서서 무장한 경찰이 묻는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배에서 어떤 질병이 발생했으며 승객이 얼마나 되며 발병자는 몇명이며 감염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인가를 알고 싶어했다. 선장은 배애는 승객이 3명밖에 없는데 모두가 콜레라에 전염되어 있지만 완전히 격리시켜 놓고 있다고 대답했다. 라 도라다에서 배에 탔던 사람들과 27명의 승무원들은 그들과는 어떤 접촉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경찰의 지휘관은 만족을 못했고 그에서 그 만을 떠나서 라스 메르세데스 마쉬에서 오후 2시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했으며 그동안 배를 검역할 수 있도록 서류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선장은 콧방귀를 끼며 손을 혼들면서 항해사에 배를 돌려 늪으로 되돌아가자고 명령했다.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틱노 아리자는 식탁에 앉아 모든 대화를 다 들었지만 선장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선장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계속했는데, 그의 식사 예절은 전통적으로 유명하게 전해 내려오는 선장들의 식사 예절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이프의 끝으로 4개의 달걀 후라이를 잘라 그것을 녹색 바나나 조각과 같이 통째로 한입에 넣고 야만스럽게 씹어 댔다. 페르미나 다자와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마치 최종 학점을 듣기 위해 학교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학생들처럼 아무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선장이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 마디 대화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막막했지만 선장이 자신들을 위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선장의 관자놀이가 박동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선장이 자기 몫의 달걀과 바나나 튀김과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다 비우고 난 후, 그 배는 자줏빛 꽃이 핀 연꽃과 심장 모양의 잎사귀를 뒤로 하고 그 만을 빠져나와 늪으로 향했다. 물에는 악독한 어부들이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려 죽은 고기들이 사방에 등둥 떠 있었고 육지와 강의 모든 새들은 그 죽은 고기들 위에서 맴돌면서 금속성 소리로 빽빽거렸다. 카리브 헤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새들은 무리를 지어 날았고 페르미나 다자는 자신의 핏줄에서 자유로운 의지가 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는 강의 흙탕물 줄기가 다른 세계로까지 뻗어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접시에 더 이상 먹을 것이 남지 않았을 때 선장은 식탁보의 한쪽 면으로 입을 닦고 선장들이 고상한 말을 사용한다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험악한 어조로 내뱉았다. 그는 그들이나 다른 누구에게 대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털어 버리려는 방법으로 그런 쌍소리를 했다. 야만스런 욕설을 한참 뱉아버린 후에 그가 도달한 결론이란 자신이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고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눈도 깜짝 않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서 측정기에 나타난 완벽한 사분원과 명백한 수평선,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12월의 하늘과 영원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말했다. "가자, 가자, 계속해서 가자. 라 도라다로 돌아가자 !" 페르미나 다자는 성신의 은총으로 활기를 되찾은 예전의 그의 목소리를 감지하고 전율을 느썼다. 그녀는 선장을 바라보았고, 선장은 바로 그들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플로렌티노 아리자의 엄청난 상상력에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는 볼수도 없었다. "방금 하신 말씀이 진정이십니까?" 선장이 물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플로렌티노 아리자가 말했다. "나는 진심이 아닌 말은 해 본 적이 없소." 선장은 페르미나 다자를 바라보았고, 겨울 서리에 반짝이는 그녀의 속 눈썸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선장은 다시 플로렌티노 아리자에게 고개를 돌렸으며 그의 도전 불가능한 능력과 그의 대담무쌍한 사랑을 파악할 수 있었고 죽음을 초월한 끝이 없는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인가 하는 뒤늦은 의혹으로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이런 빌어먹을 왕복을 지속하는데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장이 물었다. 플로렌티노는 자신의 대답을 53년 7개월과 11일간의 낮과 밤에 걸쳐 준비해 왔었다. "영원히 !" 플로렌티노가 대답했다. "영원히..." < 옮긴이의 말 > 이 책은 1982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마르께스가 최근에 발표하여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전세계의 독서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으로 원제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며 그 완역본이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모아 놓은 사랑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역자는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설레이는 가슴과 겸허한 마음으로 노벨문학상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그러나 198년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미 국내 출판사에 의해 번역 출판되어 있어서 그 기회를 놓쳤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그 위대한 마르께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되어 기쁨을 느끼는 한편, 다시 한 번 번역자로서의 자세를 바로 잡으며 책상에 앉았다. 이 책은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를 무대로 한 백년 동안의 러브 스토리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물, 즉 영화, 소설, 음악, 미술 등의 주제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올 만큼 위대한 것이다. 사랑이란 고린도 전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오래 참고는 것으로써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와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르깨스가 다루고 있는 이 사랑 이야기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영원하고, 그리고 잊혀질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를 마르께스는 우주적인(세계적인이라는 단어로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재능으로, 콜레라가 인간을 쓰러뜨리던 시절을 배경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집어삼킬 듯이 사랑 이야기로 승화시켜 펼쳐주고 있다. 이 작품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 버금가는 백년 동안의 사랑을 묘사한 소설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자는 페르미나 다자라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53년이 넘는 동안을 오로지 그녀만을 사랑한다. 페르미나가 아버지의 반대에 못이겨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그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날을 기다리며 돈과 명예를 획득헤 나간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페르미나의 남편이 죽자 그는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나 사랑을 고백한다. 플로렌틱노의 사랑의 열병은 그의 건강을 좀먹고 일생토록 고독한 남자로 머물게 하지만 결국은 그 길고 긴 나날이 보상받는 날이 닥치게 된다. 그들이 70이 넘은 나이에 진정한 일체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열정은 늙고 추악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가능케한다. 돌아오지 않는 항해 사랑의 항해. 플로렌티노 아리자와 페르미나 다자가 사랑의 항해를 떠나기까지 53년이 걸렸고, 그들이 영원한 사랑의 항로를 떠나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들의 사랑은 백년 동안 계속 될 것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늦게나마 이 작품올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주신 도서출판 동아 사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그리고 또한 워싱턴에서 나를 위해 이 책을 급히 구해 속달로 보내 준 나의 옛친구 김유복에게도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