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처스 1 차 례 .................................... 작가 소개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1장 제 5-2장 제 6-1장 제 6-2장 작가 소개 딘 R.쿤츠 (Dean R. Koontz) 드릴러 작가로 유명안 쿤츠는 1965년 20세의 나이로 아틀란틱 월간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미국문단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 후 교직 생활을 하면서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오다가 [Whispers], [Phantoms], [Night Chill], [Darkfall] 등을 내놓으면서 일약 미국의 최고 드릴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그의 소설 [Stran-gers]가 New York Times베스트 셀러 목록에 처음 오른 뒤로 발표하는 작품 대부분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1987년도에 발표한 [와처스]는 가장 원숙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옮긴이 소개 1958년 출생. 76년 배재고와 84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수년 동안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일해오다 80년대 말부터 전문 번역인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번역 작품으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 (범우사刊) [마음으로 하다] (정신세계사刊) [사색의 호수가] (한겨레刊) [삶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 (한겨레刊) [왜일까 ?......] (현일사刊) [사랑과 쓰레기] (성림刊) [비밀] (우남刊) 등이 있다. 두 인격체의 만남은 두 가지 화학 물질의 접촉과 같은 것이다. 그 둘에 어떤 반응이 일어났다면 그 둘 다 변형된 것이다. - C. G. 융- 1 장 1 서른여섯 번째 생일인 5월 18일, 트라비스 코넬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그는 투박한 하이킹 부츠에 진 바지 그리고 파랑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다. 그리고는 픽업 트럭을 몰고 산타 바바라의 자기 집을 나서 로스앤젤레스 남쪽을 지나 오렌지 카운티의 동쪽 기슭 한적한 샌디에고 계곡까지 갔다. 그는 오래오 쿠키 한 봉지와 오렌지 맛 청량 음료수가 가득 든 커다란 수통, 그리고 탄환이 장착된 38구경 권총만을 가지고 갔다. 두 시간 반 동안 차를 몰고 가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또 흥얼거리지도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다. 또 남자들이 혼자 있을 때면 종종 하는 콧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드라이브를 하는동안 내내 그의 오른쪽으로는 태평양이 가로 놓여 있었다. 아침 바다는 은빛 철판처럼 차가우면서 단단해보였고 수평선 쪽으로 갈수록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해변 쪽으로 올수록 황금색과 장미꽃 같은 붉은 색으로 아롱거렸다. 트라비스는 태양이 반짝이는 바다를 단 한번도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머리 색깔과 똑같은 검은 갈색의 깊게 패인 눈에 몸은 좀 야위었고 그러면서도 야무져 보이는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갸름했고 귀족적인 코에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좀 뾰족한 턱이 특징이었다. 그것은 어떤 성직에 있으면서 아직까지도 자기 수행과 고통을 통해서만 영혼이 정화된다고 믿고 있는 수도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금욕적인 얼굴이었다.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는 자기만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때에 따라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고 또 따뜻하고 솔직하게도 보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최근에는 그런 적이 없지만 한때 그의 미소는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랫 동안 미소를 잊고 살아왔다. 오레오 쿠키, 수통, 그리고 권총은 그의 옆 의자에 놓여 있는 작은 초록색 나이론 배낭 안에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그 배낭을 쳐다보았고 그것은 마치 그가 베낭 속에 들어있는 권총을 확인하는 것 같아 보였다. 오렌지 카운티의 샌디에고 캐년 도로를 벗어나 그는 훨씬 폭이 좁은 길로 빠져나와 마침내 타이어가 빠져드는 진흙 길로 들어섰다. 8시 30분이 조금 지났을 때 그는 길 노견으로 차를 붙여 잎이 무성한 커다란 전나무 밑에 그의 빨간 색 픽업 트럭을 주차시켜 놓았다. 그는 그 작은 배낭을 어깨에 메고 산타안나산 기슭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 산에 있는 모든 비탈길과 골짜기와 작은 길들 그리고 산마루들을 다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홀리 짐 캐년 기슭에 들로 지은 산장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아마 그 집이 사람이 사는 그 협곡 산악 지대 중에서 가장 외진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트라비스는 그 험악한 산중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몇 주일씩이나 보내곤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인적이 드문 이 협곡을 사랑했다. 그가 어렸을 땐 검은 곰들이 이 숲 속을 돌아다니곤 했다. 이젠 그것들도 다 없어졌다. 사슴들은 지금도 가끔 볼 수 있지만 그가 20년 전에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름다운 골짜기와 봉오리 그리고 각양 각색의 덤불 숲과 나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그는 한참을 걸어올라갔고 이제는 캘리포니아 참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산장이나 아니면 여러 채가 몰려있는 산장 지역을 지나쳤다. 몇 안되는 협곡 거주자들은 냉담한 생존주의자들로서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이곳으로 도피해온 이들이지만 아주 훨씬 더 험준한 곳으로 이사갈 마음들은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현대적인 생활의 번잡함에 진저리가 난 탓에 상하수도 시설이나 전기 시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협곡은 외떨어져 보였지만 그들은 침식해오는 도시 문명에 곧 압도당하게 될 것이다. 거의 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들이 오렌지 카운티와 로스앤젤레스 가운티를 잇는 도시에서 살고 있고 지금도 그 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며 그곳은 모두 이 협곡에서 백 마일 반경 이내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천연의 땅에 수정과 같고 계시와도 같은 빛이 마치 가랑비같이 내리 비치고 있었고 모든 것은 깨끗하고 자연 그대로였다. 나무가 없는 산등성이에는 짧은 우기 동안에 자랐던 키 작은 풀들이 벌써 말라서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트라비스는 넓은 바위 마루에 앉고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한 20미터쯤 떨어진 또 다른 바위 위에 1미터가 족히 넘는 방울뱀이 햇빛을 쬐고 있었다. 그 놈은 그 징그러운 삼각형 대가리를들어올리고 그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어렸을 때 그는 이 언덕바지얘서 방울뱀들을 아주 많이 죽였었다. 그는 배낭에서 총을 꺼내 그 바위얘서 일어섰다. 그는 뱀을 향해 두세 걸음 다가갔다. 방울뱀은 바닥에서 더 높이 고개를 쳐들고는 열심히 쳐다보았다. 트라비스는 또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서는 두손으로 총을 거머쥐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방울뱀은 몸을 감기 시작했다. 그놈은 자신이 그렇게 먼 거리에서는 공격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후퇴하려는 것 같았다. 트라비스는 한 방이면 깨끗하개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아쇠를 잡아당기지 못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그는 사실 한때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뱀을 보면 또한 그것들을 죽이기 위해서 이 언덕바지까지 왔던 것이다. 최근에 그는 삶의 고독함과 철저한 무의미함 때문에 우울하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기도 하여 심적 상태가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해져 있었다. 그는 좀 과격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 긴장을 풀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뱀들을 몇 마리 죽이는 것은 그러한 그의 우울증에 아주 좋은 처방처럼 보였다. 그건 누구에게도 해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뱀을 보자 그 뱀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보다도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놈은 생태계 면에서 제자리라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은 그가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보다도 더 많은 기쁨을 제 삶에서 누리고있는 것 같았다. 그는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구는 목표에서 계속 빗나갔고 또 방아쇠를 당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솜씨 있는 집행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는 총구를 내리고는 배낭이 있는 바위로 돌아갔다. 그 뱀은 다시 평화로운 기분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머리를 다시 바위에 천천히 내려놓고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잠시 후에 트라비스는 쿠기 봉지를 뜯었다. 이것은 그가 어렸을 때 제일 좋아하던 것이었다. 그는 십오 년 동안 이것을 먹지 않았다. 그때 기억처럼 여전히 그렇게 맛이 있었다. 그는 수통에서 청량 음료수를 따라 마셨다. 그러나 그것은 쿠키만큼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그의 미각에는 너무나 달았다. 젊은 시절의 순진함, 열정, 재미, 집착 등을 다시 생각해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걸 다시 완전하게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태양에 몸을 맡겨놓은 방울뱀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는 또 다시 배낭을 들쳐메고 그 산등성이 남쪽 기슭을 따라 내려와 그 협곡 윗부분에 있는 나무 그늘 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봄에 새롭게 자라난 상록수들의 향긋한 냄새로 공기가 신선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우울한 기분으로 그 협곡의 왼쪽 산마루 기슭에서 서쪽으로 돌아 오솔길을 따라갔다. 그는 몇분 후에 아취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커다란 수양버들 두 그루 사이를 지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숲속 공터에 다다랐다. 공터 저쪽 끝에는 오솔길이 또 다른 숲으로 나 있었고 그곳은 전나무, 월계수, 버드나무들이 다른 곳보다 더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앞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어서 협곡의 밑바닥이 보였다. 그는 그늘 속에 있으면서 발끝만 햇빛 가장자리에 놓고서서 그 가파른 길을 내려다 보았다. 그 오솔길은 아주 빈틈 없이 햇빛이 차단되어 있었고 그 짙은 어둠 때문에 1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트라비스가 막 그 밝은 공터를 지나 계속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개 한 마리가 오른 쪽에 있는 마른 덤불에서 불쑥 나와 그에게 곧바로 달려와서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개는 그 모습으로 보아 순종 사냥개였다. 숫놈이었다. 그는 그 개가 기껏해야한 살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는 자랄 만큼 다 자랐지만 어딘가 강아지와 같은 활기찬 면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의 두꺼운 털은 촉촉하게 젖은데다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었고 딱딱한 나무 파면 조각과 이파리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개는 그의 앞에 앉아 머리를 쳐들고 거절하기 힘들 정도의 다정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저분했지만 그래도 끌려는 데가 있는 개였다. 트라비스는 몸을 구부리고 그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귀 아래를 긁어주었다. 그는 개 주인이 헐떡거리며 나타나 이 개에게 이렇게 도망친 것에 대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목걸이나 이름표가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들개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그렇지? 아가야!] 사냥개는 칙칙 하고 콧소리를 냈다. [그래, 들개치고는 너무 다정해. 길을 잃은 것은 아니겠지?] 개는 코를 그의 손에 대고 문질렀다. 털만 지저분하고 헝클어진 것이 아니라 오른 쪽 귀에는 피가 말라 붙어 있었고 앞 발에도 피가 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치른 땅을 장시간 그것도 맹렬하제 달려와서 발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주 힘든 여행을 한 모양이구나. 얘야!] 개는 마치 트라비스의 말에 동의나 하는 것처럼 낑낑거렸다. 그는 계속 개 등을 어루만져 주며 귀 밑을 긁어주었다. 그러자 곧 그는 자신이 그 개에게서 불가능한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 절망으로부터의 탈출 등 이러한 것은 그 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 이제 네 가던 길로 가거라.] 그는 새냥개 옆구리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개는 가지 않았다. 그는 개를 그대로 놓아두고 캄캄하고 가파른 좁은 내리막길로 향했다. 그러자 개는 갑자기 날뛰며 그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저리 가라. 이놈아!] 사냥개는 이빨을 드러내고 깊은 목구멍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트라비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리 가거라. 착한 개지.] 그가 다시 그곳을 떠나려고 하자 또 다시 으르렁거렸다. 급기야는 그 개가 그의 다리를 물었다. 트라비스는 비틀거리며 두세 걸음 물러섰다. [이거봐! 뭐하는 거야.] 개는 다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 개는 전보다도 훨씬 더 표독스럽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훨씬 더 격하게 으르렁거리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는 그를 뒤로 끌고 공터를 가로질러 갔다. 그는 말라 붙은 전나무와 소나무잎들이 평평하게 깔려있는 지표 위에서 비틀비틀 몇 걸음 움직이다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트라비스가 넘어지자 개는 그의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공터를 지나 내리막 길 입구까지 뛰어가 그 아래 어두컴컴한 곳을 응시했다. 개의 얇은 귀가 쫑긋 세워졌다. [망할 놈의 개!] 트라비슨는 투덜거렸다. 개는 그의 투덜거림을 무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똥개야! ] 개는 그 숲 어두컴컴한 곳에 서서 계속 그 오솔길 아래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어두운 비탈길을 쳐다보았다. 개의 꼬리는 아래로 내려져 뒷다리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트라비스는 주위에 대여섯 개의 자그마한 돌멩이들을 주워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사냥개에게 한 개를 던졌다. 그 돌이 개 등에 맞았다. 꽤나 아플 텐데도 개는 깽깽거리기보다는 단지 놀라서 홱 돌아 보았다. [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트라비스는 생각했다. [저놈이 내 목을 물려고 달려들 거야.] 그러나 개는 단지 나무라는 듯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오솔길 쪽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몸은 지저분했지만 그 짐승의 거동에서 보이는 어떤 점-커다랗게 뜬 검은 눈과 큰 사각형 머리에서 풍기는 어떤 모습-때문에 트라비스는 자신이 돌을 던진 것에 죄의식이 느껴졌다. 그 가엾은 개가 그에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고 그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거봐! 들리나?] 그가 말했다. [네가 먼저 시작했어. 알지?] 개는 단지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트라비스는 다른 돌멩이들을 다 땅에 버렸다. 개는 그 버려진 돌멩이들을 쳐다보고는 또 다시 트라비스를 올려다 보았다. 트라비스는 그 개의 얼굴에서 만족해하는 표정을 분명히 보았다. 트라비스는 오던 길로 되돌아 갈 수도 있었다. 또는 협곡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길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어떤 비이성적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 있었다. 하고 많은 날 중 하필이면 이 날 걸리적거리는 하찮은 개 한 마리가 자신의 여행을 방해할 줄은 몰랐다. 잠사라도 지체되는 것조차 싫었는데. 그는 일어서서 다시 배낭을 짊어메기 위해 어깨를 움츠려 깊게 숨쉬며 숲 속의 상큼한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과감히 공터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사냥개가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했으나 위협적이었다. 이빨을 드러냈던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때마다 트라비스의 용기는 약해졌고 마침내 개 있는 곳까지 왔을 때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머리를 흔들며 부드럽게 그 짐승을 나무랐다. [이 심술굿은 개야! 넌 지금 아주 짓궂은 짓을 하고 있어. 그걸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응? 넌 본래부터 그렇게 나쁜 개같지는 않는데 말이야.] 그가 계속해서 달콤한 말을 속삭이자 그 사냥개는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 개의 털 많은 꼬리가 한 번 그리고 두 번 조심스럽게 흔들렸다. [좋은 아이지?] 그는 장난스럽게 그리고 살살 달래듯 말했다. [이게 더 좋겠다. 너와 내가 친구가 되는 거야. 그럴 수 있겠지, 응?] 개는 위로받을 때 내는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모든 개들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표현으로 친근하고도 사람 마음을 끄는 소리였다 [이제 우리 함께 가자꾸나.] 트라비스는 몸을 구부려 그 개를 어루만져줄 생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그러나 개는 또 다시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뒷걸음치며 공터를 가로질러 돌아갔다. 개는 그의 한쪽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물고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가 개를 발로 찼으나 빗나갔다. 트라비스가 발길질을 잘못 해 균형을 잃고 주춤거리자 이번엔 다른 쪽 바짓가랑이를 덥석 물고는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 개가 끄는 속도에 맞추려고 했으나 결국 비틀거리다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제기랄!] 그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개는 다시 낑낑거리며 친밀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그의 한 손을 핥았다. [너, 정신이 돌았니?] 트라비스가 말했다. 개는 그 공터의 다른 한쪽 끝으로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무들이 빼곡한 서늘한 음지로 뻗어있는 그 오솔길을 빤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갑자기 개가 머리를 움츠리고는 어깨를 둥글게 구부렸다. 개의 등과 궁둥이의 근육이 마치 재빨리 움직일 준비를 하는양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너,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거니?] 트라비스는 문득 개가 오솔길 그 자체에 얼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오솔길에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퓨마냐?] 그는 일어서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에는 퓨마들이 이 숲 속들을 어슬렁거리곤 했었다. 아마 몇 마리 정도는 아직도 이 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냥개는 트라비스에게가 아니라 그 개의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인가에 대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다. 그리고 개는 성이 나 있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코요테들일까? 이 근방엔 코요테들이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종종 사람 눈에 띄곤 했다. 굶주린 코요테 두 마리 정도라면 힘 세 보이는 이 누런 사냥개도 겁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개는 갑자기 눌란 듯이 캥캥 소리를 내며 그 컴컴한 오솔길에서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는 그에게 달려오더니 곧장 그를 지나쳐 줄달음쳤다. 그는 그 개가 숲 속으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조금 전에 지나왔던 마치 모양의 버드나무 앞에서 멈추더니 마치 그를 기다리는 듯 돌아다보았다. 그러더니 더시 그를 걱정하는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의 주위를 맴돌다 한쪽 바짓가랑이를 풀어 당겨서 그를 뒤로 끌고 갔다. [기다려! 기다려! 그래! 알았어!] 그는 말했다. 사냥개가 그를 놓아 주었다. 그리곤 다니 으르렁 소리를 냈다. 그것은 짖었다기보다는 차라리 큰 한숨 소리였다. 놀랍게도 그 개는 오솔길로 가는 그 어두운 곳에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그가 그곳으로 가려는 것을 막았던 것이 분명했다. 위험한 어떤 것. 그 개는 바로 그 위험한 생물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기와 함께 도망칠 것을 바랬던 것이다. 무엇인가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 트라비스는 두렵지 않았다. 단지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다. 접근해 오고 있는 무엇인가가 개 한 마리 정도는 놀라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숲 속에는 다 큰 인간을 공격할 만한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코요테나 쿠거들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인간을 공격하진 않는다. 그 사냥개는 초조하게 낑낑거리면서 다시 트라비스의 바짓가랑이를 물어 당겼다. 그 개의 행동은 어딘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 개가 겁먹은 거라면 왜 그냥 도망치지 않는가? 왜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가? 그는 그 개의 주인이 아니다. 그 개는 그에게 아무 것도 빚지지 않았고 또 그에게서 애정이나 보호를 받지도 않았다. 길 잃은 개가 낯선 사람에게 어떤 의무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또 어떤 도덕적인 감각, 일종의 양심 같은 것도 가지고 있을리없다. 이런 짐승이 그것이 무엇인지나 알겠는가? [좋아, 좋아!] 트라비스는 개를 흔들어 바짓가랑이를 놓게 하고는 개와 함께 아치 모양의 버드나무 앞까지 갔다. 개는 계곡 산등성이로 나 있는 오르막 길을 따라 나무들이 듬성듬성한 밝은 빛 속으로 줄달음쳤다. 트라비스는 버드나무가 있는 곳에서 잠깐 쉬었다. 그리곤 얼굴을 찡그리며 햇빛으로 환한 공터 너머 칠흑같이 어두운 숲을 응시했다. 그곳은 좁은 내리막 길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무엇이 오고 있는 것일까? 매미들의 시끄러운 울음 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마치 전축 바늘이 판에서 들어올려진 것처럼. 숲 속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 때 트라비스는 무엇인가를 컴컴한 오솔길을 줄달음쳐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할퀴는 소리, 마치 자잘 치우는 것 같은 소리, 마른 덤불이 살랑거리는 희미한 소리, 그런 소리들이 실제보다 더 가깝게 들렸다. 그 소리가 나무들의 좁은 통로 사이로 메아리치면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물은 몹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트라비스는 처음으로 자신이 심각한 위험 속에 처해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이 숲 속에는 자신을 공격할 만큼 그렇게 크거나 용기있는 것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본능에 의해서 묵살되었다. 그의 심장이 고동쳤다. 길 위쪽에서 사냥개는 그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개는 몹시 흥분하며 짖어댔다. 몇십 년 전 같으면 화난 곰이 무슨 병이나 통증으로 미쳐 날뛰며 그 오솔길을 줄달음쳐 올라온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산으로 문명을 몰고 들어온 산장 거주자들과 주말 하이킹족들 때문에 몇 안 남은 곰들마저 산타안나스 쪽으로 모두 다 후퇴해버렸다. 그 소리로 미루어 보아 2,3초면 그 미지의 생물이 오솔길 사이에 있는 그 공터에 도착할 것이다. 마치 유리창에 녹아 흘러내리는 진눈깨비같이 싸늘한 느낌이 트라비스의 등을 타고 스쳐 내려갔다. 그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순전히 본능에서 나오는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몹이 싸늘해져갔다. 사냥개는 협곡 위로 더 올라가며 조급하게 짖어댔다. 트라비스는 돌아서서 달렸다. 그의 몸은 군살이 하나 없는 훌륭한 체격이었다. 사냥개가 헐떡거리며 앞서갔고 트라비스는 팔을 옆구리에 바싹 붙이고는 머리를 숙이고 아래로 쳐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피하며 그 오솔길을 줄달음쳤다. 밑창에 징이 박혀있는 하이킹 부츠 때문에 달리기가 좋았다. 그는 자갈길에서나 미끄러운 마른 솔잎이 수북한 길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음지와 양지가 교차되는 오솔길을 달리는 것이 마치 나풀거리는 불길 속을 달리는 것 같았고 그러는 가운데 그의 가슴 속에서는 또 다른 불길이 불 붙기 시작했다. 트라비스 코넬의 삶은 위험과 비극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것에도 겁을 내본 적이 없었다. 최악의 시절에도 그는 침착하게 그 상실의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별한 어떤 일이 발생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생 처음으로 그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두려움이 그의 내부 깊숙히 파고들어 한번도 닿은 적이 없는 그 깊고도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달리는 중에도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끼쳐와 식은 땀이흘렀다. 그는 왜 그 미지의 추적물이 자신을 그토록 완전한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처음엔 아래로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그 꾸불꾸불한 오솔길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달리면서도 공포는 커져만 갔고 그래서 그가 수백미터나 달려왔는데도 뒤돌아 보지 못한 이유는 혹 자신이 보게 될지도 모를 그 어떤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태도가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목덜미 뒤가 뻣뻣해지는 감각이나 간장이 서늘해지는 느낌은 순전히 미신적인 공포에서 오는 증세였다. 그러나 문명화되고 교육 받은 트라비스 코넬은 모든 인간 속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그 놀란 아이 같은 미개인 기질에 그동안 족쇄를 체워왔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자제력을 회복할 수가 없었다. 맹목적인 본능이 지배하고 그 본능이 그에게 '달려라, 달려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달려야만 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계곡 꼭대기까지 오르자 그 오솔길은 왼쪽으로 굽어지면서 산등성이 쪽으로 뻗어 있는 가파른 암벽을 감아돌았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는 나무 그루터기가 앞에 가로놓여 있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으나 한 발이 그 썩은 나무에 걸렸다. 그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가슴이 땅바닥에 닿았다. 정신이 멍해져 숨조차 쉴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와락 달려들어 그의 목을 찢어 놓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냥개가 그 오솔길을 도로 내려와서는 트라비스 위를 깡충 뛰어넘어 그의 뒤편 길을 향해 다리를 딱 버티고 섰다. 개는 그들을 추적해 오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사납게 짖어댔고 그 소린 공터에서 트라비스에게 짖어댄 것보다도 훨씬 위협적인 것이었다. 트라비스는 몸을 굴려 일어나 앉고는 헐떡거렸다. 아래 오솔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사냥개가 오솔길 쪽을 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쪽 덤불 속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거품을 물고 사정 없이 쩌렁쩌렁하게 짖어대 그 소리 때문에 트라비스의 귀가 찢어지는 듯했다. 그 거친 분노를 담은 소리는 위압적이었다. 개는 그 보이지 않는 적에게 다가 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해, 얘야.] 트라비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진정해.] 사냥개는 더 이상 짖지 않았으나 트라비스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개는 열심히 덤불 속을 응시하며 검은 입술을 들어올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목구멍 깊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트라비스는 여전히 헐떡거리며 일어나서 동쪽 숲 속을 쳐다보았다. 상록수들과 버드나무들 그리고 몇 그루의 낙엽송들이 서 있었고 여기 저기 드리워진 검은 천 조각 같은 그림자들이 황금색 햇빛에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덤불과 들장미들 그리고 덩굴 식물들, 이빨 모양으로 줄지어 있는 반질반질하게 왕은 바위들, 그는 그 외 수상쩍은 것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가 내려와 사냥개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자 개는 마치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듯 더 이상 으르렁대지 않았다. 트라비스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덤불 속의 움직임에 귀기울였다. 매미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무들 위의 새들마저 울고 있지 않았다. 숲 속은 마치 방대하고 정교한 우주의 시계 장치가 똑딱거리기를 그친 양 그렇게 고요했다. 이 철저한 침묵의 원인이 그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지금까지 그가 협곡을 지나왔지만 새들이나 매미들이 울음 소리를 그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인가가 저기 밖에 있었다. 평범한 숲속 짐승들이 분명히 수용하지 못하는 침입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내쉬지 않고 긴장한 채 숲 속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귀기울였다. 이번엔 덤불의 살랑거림, 딱딱거리는 작은 가지들, 마른 잎들이 사각사각 조용하게 내는 소리들을 유심히 들었다. 그러다가 어떤 커다란 것의 육중하고 특이하고 불규칙한 숨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위치를 꼭 집어낼 수가 없었다. 그의 곁에 있던 사냥개 몸이 점점 굳어져 갔다. 또 얇은 귀가 조금씩 세워지면서 앞을 향해 굳어졌다. 그 미지의 적에게서 들리는 그 신경질적인 숨소리는 너무 오싹한 것이었다. 숲과 협곡의 메아리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그렇게 오싹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너무 오싹해서 트라비스는 재빨리 배낭을 벗어내리고는 그 안에서 실탄이 장착된 38구경 권총을 꺼냈다. 개는 그 총을 주시했다. 트라비스는 개가 권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 무기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숲 속에 있는 그것이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트라비스는 외쳤다. [거기 누구야? 내가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와.] 귀에 거슬리는 숨소리가 그 덤불 밑으로 들려왔다. 그 무시무시한 목청의 떨림 소리가 트라비스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의 심장은 훨씬 더 심하게 뛰었고 몸은 곁에 있는 사냥개처럼 굳어져만 갔다. 한없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그 소리만으로 온 몸에 그토록 강한 공포감이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그는 그토록 자신이 놀란 것은 그 소리의 모호성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생물의 으르렁거림은 틀림없이 짐승의 소리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지능이 있는 사람이 분노하여 내는 소리와 같은 톤과 음색이 묻어나오는 분간할 수 없는 점 또한 있었다. 그가 더욱더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것은 짐승의 소리도 인간의 소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둘 다 아니라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위쪽의 덤불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바로 위에서 무엇인가가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멈춰!] 그는 날카롭게 외쳤다. [더 가까이 오지마!] 그것은 계속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제 9미터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오던 것보다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약간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냥개는 다시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면서 은밀하게 접근해오는 그 생물을 쫓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개의 몸뚱아리에서 공포를 읽을 수 있었고 또 머리도 떨고 있었다. 개가 덤불속의 생물에게 맞서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것과의 대면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개가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트라비스는 더 초조해졌다. 사냥개들은 그 과감성과 용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사냥꾼을 돕도록 키워졌고 종종 아주 위험스러운 구조 작전에도 동원되곤한다. 도대체 무슨 위험과 어떤 적이길래 이처럼 강하고 자부심 강한 개에게 이같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숲 속에 있는 것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계속 다가왔고 이제 거의 6미터도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이상스러운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미신적인 공포랄까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무시무시한 존재에 대한 어떤 공포감으로 전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단지 쿠거일 거라고 자위하면서 어쩌면 그 놈도 자기보다 훨씬 더 놀랐을지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등 아래로부터 시작돼 머리 가죽까지 퍼져 올라온 그 서늘한 냉기는 이제 더욱 심해졌다. 손은 너무 땀이 많이 나 손에서 총이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제 4미터 앞이다. 트라비스는 38구경 권총을 허공에 대고 한 발을 발사하여 경고 사격을 했다. 폭발음이 숲 속을 가로지르며 메아리쳐 긴 협곡을 타고 퍼졌다. 사냥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숲 속에 있는 그것은 곧바로 방향을 돌려 협곡 능선을 향해 북쪽으로 줄달음쳤다. 그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쏜살같이 달릴 때 옆으로 갈라지며 흔들거리는 허리 높이의 억세풀과 덤불들의 움직임으로 볼 때 그것의 빠른 진행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놀래켜서 쫓아버렸다고 생각하고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그는 그것이 실제로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놈은 오솔길 위쪽으로 가는 모퉁이에 미리 가 있기 위해 북서쪽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트라비스는 그 생물체가 앞길을 가로막고는 그들을 아랫길을 통해 협곡 밖으로 내몰면서 좀더 공격하기 좋은 기회를 엿보려고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그냥 알았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일일히 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원시적인 생존 본능이 그를 행동하도록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동적으로 그 상황에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군사 작전을 수행하던 근 십년 전 이후로는 그 같은 동물적인 본능을 느낀 적이 없었다. 트라비스는 오른 쪽 덤불의 움직임에서 계속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제는 배낭도 벗어 던져버리고 총만 쥐고 가파른 오솔길을 줄달음쳐 올라갔다. 사냥개가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가 빠르긴 했지만 그 미지의 적을 따돌릴 만큼 빠르진 않았다. 그는 그놈이 위에 벌써 도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한 발의 경고 사격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적은 그것에 놀라는 눈치도 없었고, 그래서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는 그 덤불이 움직이는 곳을 겨누고 두 발을 쏘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는 그놈을 명중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위협을 주기는 했다. 그놈이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달렸다. 계곡 산등성이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그곳 산등성이는 나무들이 듬성듬성하고 덤불도 많지 않아 햇빛이 밝게 들고 있어서 어떤 것이 숨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잠시 후에 그가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몹시 숨이 찼다. 장단지와 허벅다리 근육들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심장이 너무 쿵쿵거려서 그 메아리가 건너편 산등성이에 부딪혀 다시 이 협곡을 가로질러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곳은 그가 쿠기를 좀 먹기 위해 잠시 쉬었던 곳이었다. 아까전에 넓은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던 방울뱀은 가버리고 없었다. 사냥개는 트라비스를 줄곧 쫓아왔다. 개는 그의 곁에 서서 헐떡거리며 지금 막 올라왔던 그 비탈길을 열심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트라비스는 약간 현기증을 느꼈고 그래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알 수 없는 종류의 위험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역시 그 오솔길을 내려다보며 앞에 있는 덤불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 추적물이 아직도 쫓아오고 있다면 이젠 좀 신중해져서 그 비탈길을 올라올 때 아마 억새풀이나 덤불을 휘젓지 않고 올 것이 분명했다. 사냥개는 낑낑거리며 또 한 차례 트라비스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당겼다. 개는 좁은 산등성이의 정상을 넘어 다음 협곡으로 가는 내리막길로 질주했다. 개는 자신들이 아직 위험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달려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트라비스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초적인 두려움과 또 그것 때문에 의지하게 된 본능에 따라 그는 황급히 개를 쫓아 산등성이 정상을 넘어 나무들이 빽빽한 또 다른 협곡으로 들어섰다. 2 빈센트 나스코는 어두운 차고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80키로그램에 가까운 몸무게에 190센티 키의 근육형으로 커다란 덩치에 항상 에너지로 꽉 차 있어서 언제라도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넓은 얼굴은 차분했고 평소 때는 황소 얼굴처럼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의 초록색 눈은 활기와 날카롭고도 민첩한 경계의 표정으로 번쩍였다. 그리고 그 눈에는 사람의 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글의 살쾡이와 같은 야생 동물의 눈에서나 볼 수 있는 굶주린 듯한 이상한 표정이 배여 있었다. 그는 그 엄청난 에너지가 자기 안에 꿈틀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같이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먹이를 손에 넣는 일이라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을 수 있었다. 목요일 아침 9시 40분, 나스코의 예상보다 훨씬 늦게 집안으로 통하는 차고 문 자물쇠가 덜컥하는 단 한번의 묵직한 소리와 함께 풀렸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데이비스 위더비 박사가 차고 전등을 켜고는 커다란 조립식 앞문을 들어올리는 단추를 누르려고 손을 뻗었다. [거기 꼼짝 말아!] 나스코가 불쑥 일어나 박사의 엷은 회색 캐딜락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위더비는 힐끔 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거기 누...... 누구......] 나스코는 소음기가 달린 웰더 P-38구경 권총을 들어올리고는 박사의 얼굴에 한발을 쏘았다. 으으으윽 위더비는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뒤로 쓰러지면서 밝은 노랑색이 칠해진 세탁실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는 머리가 건조기에 부딪치면서 그 옆에 있는 바퀴 달린 금속제 수레에 넘어지자 그것이 벽으로 밀려나갔다. 빈스 나스코는 그 소리에 신경쓰지 않았다. 위더비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문이 닫히지 않게 넘어져있는 시체 위로 몸을 구부려 부드럽게 한 손을 박사의 얼굴에 올려놓았다. 총알이 미간 바로 위를 명중시켰다. 박사는 그자리에서 즉사했고 또 총알이 두개골을 관통할 정도로 아주 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도 별로 나지 않았다. 위더비의 갈색 눈은 떠있는 채였다. 놀란 표정이었다. 빈스는 손으로 위더비의 따듯한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초점이 없는 왼쪽 눈을 감겨주고는 오른쪽 눈도 마저 감겨주었다. 사후의 근육 반응 때문에 몇분 후면 다시 뜨이게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했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빈스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그는 죽은이의 감긴 두 눈에 키스를 하고는 다시 한번 더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기쁨에 떨며 빈스는 그 죽은이가 바닥에 떨어뜨린 열쇠 꾸러미를 홱 집어들고는 차고로 들어가 캐딜락 트렁크를 열었다. 지문이 묻지않게 차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트렁크는 비어있었다. 잘됐다. 그는 위더비의 시신을 세탁실에서 끌어내 트렁크 안에 싣고는 뚜껑을 닫아 잠그었다. 빈스는 박사의 시체가 내일까지는 발견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 그 타이밍이 중요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일을 흠 없이 한다는 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세탁실로 돌아와 그 철제 수레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두고는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나 훑어보았다.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 노랑색 세탁실 문을 닫고는 위더비의 열쇠로 그 문을 잠궜다. 그는 차고 전등을 끄고는 어두운 곳을 지나 옆 문을 통해 나왔다. 그 옆문은 그가 밤 사이에 크레디트 카드로 그 허술한 자물쇠를 소리 없이 열고 들어갔던 문이었다. 그는 박사의 열쇠를 이용해 그 문을 다시 잠그고는 그 집에서 걸어나왔다. 데이비스 위더비는 태평양이 보이는 코로나 델마에 살고 있었다. 빈스는 2년 된 자신의 낡은 포드 밴을 박사의 집에서 세 블럭 떨어진 곳에 놓아두었었다. 그 밴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이곳은 아주 다양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아주 좋은 동네였다. 값 비싼 스패인풍 산장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케이프 코드 집들 사이에 들어 앉아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실제로 보지 않고는 그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녹음이 우거진 주변 경치는 상큼했고 아주 잘 가꾸어져 있었다. 종려나무들, 열대 식물들, 그리고 올리브 나무들이 보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붉거나 산호빛이거나 노랗거나 아니면 오렌지색 부겐빌레아(분꽃과의 관상용 열대 식물)의 수천 개의 꽃송이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쇠뜨기 나무꽃들도 활짝 피어 있었다. 자카란다스(아메리카산 열대 식물로 능소화과 수목) 가지에서는 활짝 핀 자줏빛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재스민 향기로 가득했다. 빈센트 나스코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아주 강하고 아주 힘있고 아주 활기에 넘치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3 개와 트라비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참을 뛰어가고 나서야 트라비스는 자신이 절망감과 극한 외로움으로 절실하게 몸부림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절망감과 외로움 때문에 그는 이 산타안나산 기슭까지 오지 않았던가. 털이 헝클어진 그 큰 개는 그의 픽업까지 오는 동안 계속 그의 곁에 딱붙어서 따라왔다. 그의 픽업은 흙길에 있는 커다란 전나무 아래 있었다. 사냥개는 트럭 앞에 멈춰서고는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그들 뒤로 검은 새들이 공중에서 땅으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마치 숲 속에 사는 어느 요술장이를 위해 정찰 임무를 맡기나 한 듯 했다. 검은 담벽같이 빼곡히 서 있는 나무들이 마치 악마의 성을 둘러싼 누벽같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숲은 어둠침침했지만 트라비스가 걸어왔던 그 흙길은 햇빛에 완전히 노출되어 엷은 갈색으로 말라 있었고 그 위에 가늘고 부드러운 먼지가 덮여 있었다. 그래서 트라비스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먼지들이 피어올라 그의 부츠 주위를 감쌌다. 그는 이런 백주 대낮에 어떤 불길한 느낌에 쫓겨 이토륵 자신이 압도당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들이 도망쳐 나온 숲 속을 찬찬히 살펴보던 개는 반 시간만에 처음으로 다시 짖었다. [아직도 따라 오고 있니? 그러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언짢은 표정으로 힘없이 끙끙거렸다. [그래.] 그가 말했다. [나도 그것이 두렵다. 터무니없지. 하지만 나 역시 그것이 두려워. 하지만 저기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 얘야, 응? 도대체 뭐난 말이야?] 개는 심하게 몸을 떨었다. 트라비스는 개가 눈에 띄게 공포에 질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자신의 두려움도 커져갔다. 그는 트럭 뒷문을 내리고는 말했다. [자! 내가 너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개는 짐칸에 뛰어올라 탔다. 트라비스는 그 문을 닫고는 트럭 옆으로 돌아왔다. 그가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 가까이에 있는 덤불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 쪽이 아니라 흙길 저쪽 끝에서. 바로 그 너머 좁은 평지에는 건초더미같이 파삭 파삭한 허리 높이의 갈색 풀들로 꽉차 있었고 간간이 몇 그루의 메스퀴트 나무들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다시 평지 쪽을 똑바로 쳐다보았을 때는 얼핏 보았던 그 움직임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시 조급한 마음이 생기자 그는 급히 트럭으로 올라가서는 권총을 옆자리에 놓았다. 그는 울퉁불퉁한 길이이만 가능한 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줄곧 짐칸에 있는 개를 생각했다. 이십 분 후 아스팔트와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샌디에고 캐년 도로 가에 차를 세웠을 때도 그는 여전히 무서운 느낌이 들어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그가 숲 속에서 느끼던 것과는 달랐다. 가슴은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았다. 손과 이마의 식은 땀도 다 말랐다. 목덜미와 머리에서 욱신거리던 것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런 기억도 실제로 있었던 일같지 않았다. 지금 그는 어떤 미지의 생물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했던 행동을 두려워 했다. 그 숲 속을 안전하게 빠져 나오자 그는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 공포의 크기를 확실하게 되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행동들은 비이성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핸드 브해이크를 올리고 엔진을 껐다. 11시였다. 그래서 도로는 한산했고 단지 간간이 몇 대의 자동차들이 2차선 아스팔트 길을 지나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은 본능에 따라 행동했고 그 본능은 훌륭했고 언제나 옳고 믿을 만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시 앉아 있었다. 그는 항상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침착함과 철저한 현실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왔었다. 그는 불 속 한가운데 놓여 있어도 냉정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누가 강압해 온다 해도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또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이상한 것이 바로 저곳에서 실제로 자신을 추격해왔다는 것이 점점 믿기 어려워졌다. 그는 자신이 그 개의 행동을 잘못 해석했고 또 자신의 마음을 자기 연민에서 구하기 위한 구실로 숲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상상에 사로잡혔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트럭에서 내려서 뒤로 갔다. 그리고는 짐칸에 서 있는 사냥개를 쳐다 보았다. 개는 머리로 그를 힘세게 밀었다. 그리고는 그의 목과 턱을 핥았다. 아까 전에는 물고 짖고 했지만 가만히 보니 정이 많은 개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개의 지저분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개를 뒤로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개는 그의 얼굴을 핥으려고 앞으로 밀고 나오며 짐칸 칸막이로 올라섰다. 그는 웃으며 개의 헝클어진 털을 문질러주었다. 사냥개가 기뻐하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드는 것에 트라비스는 예상치 않은 감동을 받았다. 오랫동안 그의 마음은 죽음에 대한 우울한 생각으로 꽉차 있었고 오늘 여행이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이 동물의 표정이 그의 암울한 마음에 한 가닥 빛을 비추어 그가 오래전에 포기했던 인생의 보다 밝은 면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대체 저곳에 있는 것이 무엇이지?] 그는 큰 소리로 개에게 물었다. 개는 그를 핥던 일을 멈추고 정신없이 흔들던 헝클어진 꼬리도 멈추었다. 개는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갑자기 개의 침착하고 따뜻한 갈색 눈에 못박히듯 시선이 고정되어버렸다. 그 눈 속의 무엇인가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고 또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트라비스는 거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개도 똑같이 무언가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한 봄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 올라왔다. 트라비스는 개의 눈을 살펴보며 그 눈의 특별한 힘과 호소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눈에서 특이한 것은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그러니까, 그 눈은 어딘지 모르게 보통 개들의 눈보다 더 살아있었고 좀더 영리하고 또 빈틈없어 보였다. 보통 개들의 짧은 주의력에 비교하면 이 사냥개의 흔들리지 않는 주시력은 정말 특이한 것이었다. 몇초 동안 트라비스와 개가 서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을 때는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어떤 전율이 그의 몸 안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기이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바로 자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신비의 사건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때 개가 머리를 흔들며 트라비스의 손을 핥았다. 그러자 주술이 풀렸다. [넌 어디서 왔니? 얘야.] 개는 머리를 쳐들고 왼쪽으로 갸웃거렸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되니?] 마치 그 말에 대한 대답이라는 듯 개는 트럭 뒷칸막이를 껑충 뛰어넘어 트라비스 곁을 지나 운전석 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트럭 조수석으로 뛰어 들어갔다. 트라비스는 안쪽을 빠꼼히 쳐다보았다. 사냥개는 조수석에 앉아 앞유리창을 똑바로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으르렁거렸다. 마치 그의 빈둥거림을 못 참겠다는 것처럼. 그는 핸들 앞에 앉아 권총을 자기 의자 밑에 밀어넣었다. [내가 너를 보살필 수 있다고는 믿지 말아라. 너무 일거리가 많아. 이놈아. 내 계획과는 맞지 않아. 그 점이 섭섭하구나.] 개는 애원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배고파 보이는구나.] 개는 또 한 번 더 가볍게 으르렁거렸다. [좋아. 아마 내가 그 정도는 도울 수 있을 거야. 글로브 박스에 캔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맥도날드 가게가 있어. 그곳에서 햄버거 몇 조각은 얻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다음에는...... 그러니까, 난 널 놓아주거나 동물 보호소에 맡겨야만 해.] 트라비스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개는 앞 다리 하나를 올려서 발로 글로브 박스 단추를 쳐서 뚜껑을 열었다. [도대체 무엇......?] 개는 몸을 앞으로 하고는 주둥이를 열려진 박스 안에 쳐 넣었다. 그리고는 포장지가 상하지 않도록 가볍게 입으로 캔디를 물고 꺼냈다. 트라비스는 놀라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사냥개는 마치 트라비스에게 그 과자를 까달라는 듯이 캔디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놀란 채 그 캔디를 받아들고 껍질을 깠다. 사냥개는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그것을 지켜 보았다. 트라비스는 그 캔디를 조각내 조금 내밀어 주었다. 개는 고맙다는 듯 그것을 입에 넣고는 점잖을 정도로 신중하게 그것을 먹었다. 트라비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정말 이상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가 글로브 박스에 캔디가 있다고 말했을 때 이 개가 정말 그 말을 알아 들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초콜릿 냄새를 맡고 그랬을까? 분명히 후자일 것이다. 그는 개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단추를 눌러 뚜껑 여는 것을 알았니?] 개는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또 다시 캔디를 받아 입에 넣었다. 그는 말했다. [좋아, 좋아, 그래. 아마 어쩌면 네가 과거에 배운 재주 중에 하나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보통 사람들이 개에게 훈련시키는 일이 아닌데, 그렇지 않니? 돌아 누워, 죽은 척해, 악수해봐, 아니면 뒷다리로 걸어봐 등등 이런 것들이 개들이 훈련받는 것들이지. 하지만 자물쇠나 빗장을 풀도록 훈련받지는 않아.] 사냥개는 마지막 남은 초콜릿 조각을 주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트라비스는 잠시 그 과자를 뒤로 물렸다. 그 타이밍이 정말 이상했다. 트라비스가 초콜릿에 대해 언급한 2초 후에 개가 그것을 찾아냈다. [너,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니?] 트라비스는 이 개가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 바보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니? 내 말을 알아듣니?] 마지못해 사냥개는 마지막 남은 캔디에서 눈을 떼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또 다시 트라비스는 기이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몸에 다시 전율이 일어났으나 아까처럼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머뭇거리며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음, 마지막 남은 이 초콜릿을 내가 먹어도 괜찮겠니?] 개는 아직도 그의 손 안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캔디 조각으로 눈을 돌렸다. 개는 마치 아쉽다는 듯이 한번 칙칙 소리를 내고는 앞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미치겠네, 정말 그럴리 없어.] 트라비스가 말했다. 개는 하품을 했다. 그는 초콜릿이 든 손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말로서만 그 초콜릿에 관심을 끌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털이 헝클어진 그 커다란 개에게 말했다. [좋아. 아마 나보다는 네가 더 이것이 필요할 거야. 얘야. 네가 이것을 먹고 싶다면 이 마지막 것도 네가 먹거라.] 사냥개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초콜릿을 주지 않겠다는 몸짓을 하며 그것을 자기 몸에 꼭 붙이고 여전히 손을 움직이지 않은 채 말했다. [네가 먹고 싶으면 이것을 가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밖으로 내던져 버리겠어.] 사냥개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목을 빼고 그의 손바닥에서 조심스럽게 초콜릿을 물어 빼냈다. [정말 미칠 노릇이네!] 그가 말했다. 개는 네 다리로 일어나서 좌석 위에 섰다. 그러자 거의 그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개는 뒷창으로 밖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트라비스는 힐끔 백미러를 쳐다보고는 사이드드 미러를 보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2차선의 아스팔트,좁은 길섶,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벼랑이 나 있는 잡초가 무성한 경사 뿐이었다. [우리가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러니?] 개는 그를 쳐다보고나서 뒷유리창으로 밖을 내다 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앞을 보며 뒷다리를 한쪽으로 누이고는 앉았다. 트라비스는 엔진을 켜고 기어를 넣었다. 그리고는 샌디에고 캐년 도로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했다. 그는 동승자를 힐끔 보며 말했다. [네가 정말 겉모양 이상으로 뛰어난 거니? 아니면 내가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거니? 그리고 네가 정말 너의 그 겉모양 이상이라면 넌 도대체 뭐니?] 찹맨街 동쪽 끝 시골 길에서 서쪽으로 차를 돌려 그가 말했던 맥도날드 가게로 향했다. 그가 말했다. [지금 너를 풀어주거나 동물 보호소로 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잠시 후에 또 그가 말했다. [내가 너를 데리고 있지 않는다면 너에 대한 호기심으로 난 죽게 될 거야.] 그들은 3킬로 정도 가다가 맥도날드 가게 주차장으로 꺽어 들어갔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너는 내 개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냥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2 장 1 노라 데본은 그 텔레비전 수선공이 두려웠다. 그는 그녀의 나이와 비슷하게 30세 가량 돼 보였지만 무엇이든지 아는 체하는 십대 아이들처럼 잘난 척하길 좋아하는 데가 있었다. 그녀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자신을 [와드로우 TV사의 아트 스트랙이오.] 라고 소개하고는 징그럽게 그녀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과 마주치자 윙크를 했다. 그는 키가 컸고 말랐으며 아주 빈약해 보이는 체구에 하얀 슬랙스(남녀용 낙낙한 스포츠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깔끔하게 면도가 되어 있었고 검은 갈색 머리는 짧게 깍여 말쑥하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그는 상습적인 강간범이나 정신 이상자라기보다는 평범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보통 아들 같아 보였다. 하지만 노라는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아마 그의 뻔뻔스러움과 잘난 척하는 점이 그의 외모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서비스가 필요하시오?] 그녀가 문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그가 물었다. 그의 질문은 순수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서비스'에 둔 그 강한 억양이 소름 끼쳤고 또 노라에게 성적으로 어떤 의미를 내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과민 반응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와드로우 TV사에 전화를 한 건 그녀였다. 그러니 아무 설명 없이 스트랙을 돌려 보낼 순 없었다. 그럴 듯한 변명을 한다해도 결국 다투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과 대적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가 넓고 시원한 홀을 지나 거실 아치까지 그를 안내했을 때 그의 산뜻한 옷차림과 과장된 미소가 조심스럽게 계산된 위장 요소들이라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서 짐승 같은 비상한 경계심과 꽉 조여놓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그들이 현관으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갈 때마다 점점 더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를 너무나 가까이 좇아 오다가 불쑥 뒤에서 그녀 어깨 위로 얼굴을 내밀며 아트 스트랙이 말했다. [정말 좋은 집을 가지고 있군요, 데본 부인. 정말 근사해! 난 정말 이런 집을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그녀는 애써 자신이 결혼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자는 이런 곳에서 행복할 수 있지. 그래, 남자는 아주 행복할 수 있어.] 그 집은 고전적인 산타바바라식 스페인풍이라고도 불리우곤 하는 건축 양식이었다. 2층에다 빨간 타일로 된 지붕에 크림색 벽, 베란다와 발코니들, 네모나게 각진 모퉁이 대신 둥글고 부드러운 선들이 그랬다. 싱싱한 빨간색 부겐빌레아가 활짝 핀 밝은 꽃잎들을 늘어뜨리며 건물 북쪽 벽을 타고 뻗어 있었다. 그곳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노라는 이 집을 싫어했다. 그녀는 2살 때부터 이 곳에 죽 살아왔고 지금까지 28년째였다. 그리고 지난 일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내내 그녀는 자신의 이모인 바이오렛의 철통 같은 손아귀에 쥐어서 지내왔다. 그녀에게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없었고 또 오늘날까지 행복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바이오렛 데본은 일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아직도 노라는 그녀의 이모에게 억눌려 있었다. 그 증오스러운 늙은 여인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끔찍했고 또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게 그녀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스트랙은 거실 바닥에 연장통을 내려놓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실내 장식들을 보고 놀란 것이 분명했다. 꽃무늬로 장식된 벽지는 검고 음산했다. 페르시안 카펫은 이상하게도 매력이 없었다. 회색, 고동섹, 감청색 등 색깔 구성도 몇 군데 노랑색이 섞여 있음에도 생기가 없었다. 깊게 조각된 조형물로 장식된 19세기의 둔중한 영국식 가구가 서 있는 주위에는 수 많은 소파들, 발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보조 의자들, 카리가리 박사에게나 어울릴 만한 캐비닛들, 모두 반 톤씩은 나갈 것 같은 장식장들이 놓여 있었다. 작은 테이블들은 두터운 능라로 덮여 있었다. 몇 개의 램프들은 빛 바랜 회색 갓을 씌운 백랍이었고 다른 것들은 고동색 사기 받침을 하고 있었으나 어느 것 하나 밝은 빛이 나는 것은 없었다. 두꺼운 커튼은 납처럼 무거워 보였다. 세월에 노랗게 바랜 투명한 천이 옆 창틀 사이에 걸려 있으면서 단지 겨자빛 햇살만을 방안으로 들여보내주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그 스페인풍 건물을 살려주지 않았다. 바이오렛은 고집스럽게 그 우아한 집에다 자신의 답답한 취향을 강요했던 것이다. [당신이 장식한 거요?] 아트 스트랙이 물었다. [아니오. 이모님이......] 노라가 말했다. 그녀는 거실에 있기는 했지만 되도록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대리석 벽난로 곁에 서 있었다. [이곳은 그분의 집이었어요. 저는, 이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어요.] [내가 당신이라면,] 그는 말했다. [여기서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버리겠소. 그러면 밝고 산뜻한 방이 될 수 있지요. 이렇게 말하는 나를 용서하시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이런 분위기는 시집 못 간 노처녀 이모에게나 어울릴 거요. 그 이모란 분은 노처녀였죠? 그렇죠?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해요. 늙어 쭈글쭈글한 노처녀 이모에게나 아주 잘 맞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처럼 예쁜 숙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노라는 그의 무례함을 나무라고 싶었고 또 그에게 입 다물고 텔레비전이나 고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바이오렛 이모는 그녀가 유순하고 순종하기를 더 좋아했다. 스트랙은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그의 오른쪽 입이 아주 불쾌하게 찌그러졌다. 그것은 거의 비웃는 것이었다. 그녀는 억지로 말했다. [나는 이대로가 아주 좋아요.] [설마 그럴리가......] [정말이에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텔레비전은 어디가 고장난 거죠?] [화면이 계속 흔들려요. 전파 장애도 있고 흰 반점도 생겨요.] 그는 벽에서 텔레비전을 끌어내고는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는 흔들리고 전파 장애로 비뚤어진 화면을 살펴보았다. 그는 소형 휴대용 전등을 플러그에 꽂고 그것을 텔레비전 세트 뒤에 걸었다. 홀에 있는 대형 괘종 시계가 한 번의 종소리로 온 집안을 공허하게 울리면서 15분 전을 알렸다. [텔레비전을 많이 봅니까?] 그는 텔레비전 세트에서 먼지막이 나사를 풀면서 물었다. [별로요.] 노라가 대답했다. [나는 밤에 하는 멜로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달라스나 다이너스티 뭐 그런 것들이요.] [난 본 적이 없어요.] [그럴리가......] 그는 교활하게 웃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다들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정말이지 중상 모략, 계략, 도둑질, 거짓말 그리고 강간 등으로 가득한 이야기들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들은 없지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혀를 차며 말하지요. '어머 너무나 끔찍해.'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그것에 도취되어 있어요.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지요.] [나는...... 난 부엌에 할 일이 있어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텔레비전을 다 고치면 저를 부르세요.] 그녀는 그 방을 떠나 부엌으로 가는 스윙 도어를 밀고 홀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듯 약하고 또 그렇듯 쉽게 공포에 굴복하는 자신을 혐오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새앙쥐였다. 바이오렛 이모는 종종 말했다. [얘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있단다. 고양이 같은 인간들과 새앙쥐 같은 인간들 말이다. 고양이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것을 가진다. 고양이들은 천성적으로 공격적이고 자급 자족을 하지. 반면 새앙쥐들은 그들 안에 일말의 공격성도 가지고 있지 않단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약점이 많고, 점잖고, 겁이 많지. 그래서 그들은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인생이 그들에게 던져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가장 행복해한단다. 얘야, 너는 새앙쥐에 속해. 새앙쥐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 너는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가 있단다. 새앙쥐는 고양이처럼 그렇게 화려한 삶을 살진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은신처에서 안전하게 있으면서 남들을 피하면 고양이보다는 오래 살 거야. 그리고 살아가면서 고통이라는 것을 아주 적게 겪게 될 거야.] 바로 지금 고양이 한마리가 거실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고치고 있다. 그리고 노라는 생쥐같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녀는 실제로는 스트랙에게 말했던 것처럼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일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싱크대 옆에서 차가운 한 손으로 다른 한손을 꼭 쥐고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항상 차가운 것 같았다. 그녀는 케이크를 굽기로 마음먹었다. 초콜릿 당의가 있는 노란 케이크. 그녀는 그 일이라면 마음을 몰두시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스트랙의 그 음흉한 윙크에 대한 생각을 기억 속에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찬장에서 주발들과 기구들, 전기 믹서기, 거기다 케이크 믹스와 기타 다른 재료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일을 시작했다. 곧 곤두섰던 신경들이 좀 풀렸다. 막 그녀가 두 개의 냄비에 반죽을 채워넣었을 때 스트랙이 부엌으로 걸어들어와서는 말했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지요?] 그녀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빈 금속 믹싱 주발과 반죽이 묻은 주걱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그것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단지 달그락거리는 작은 소리만이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것들을 씻기위해 개수대 안에 집어넣었다. [네, 요리하기를 좋아해요.] [아, 그래요? 난 여자가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을 거리낌없이 잘하는 여자들을 존경합니다. 바느질이나 뜨개질이나 자수 같은 것들도 하나요?] [레이스 뜨기를요.] 그녀가 대답했다. [훌륭하군요.] [텔레비전은 고쳤나요?] [네, 거의 다.] 노라는 케이크를 오븐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트랙이 자신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냄비들을 옮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너무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그에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마 그는 더욱 과감해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냄비들을 카운터에 놓아두고 대신 당의 믹스를 찢어 여는 척했다. 스트랙이 아주 느긋하게 친근한 미소를 머금고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물 한잔 먹을 수 있어요?] 노라는 안도감으로 한숨을 쉴 뻔했고 정말 그가 이 부엌에 들어온 것은 단지 냉수 한잔을 먹기 위해서라고 믿고 싶었다. [아,네, 물론이죠!]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는 찬장에서 유리컵 하나를 꺼내 물을 따랐다. 그녀가 그것을 그에게 건네주려고 돌아섰을 때 그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녀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컵에서 물이 쏟아져 마루 바닥에 흩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여기......] 그는 그녀의 손에서 컵을 받아 쥐며 말했다. [놀랐잖아요.] [내가 그랬나요?] 그는 차가운 파란 색 눈을 그녀에게서 떼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난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미안 합니다. 난 해코지를 할 사람이 아니오, 데본 부인. 정말이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물 한잔이 전부요. 당신도 내가 다른 어떤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그는 정말 너무나 당돌했다. 그녀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당돌할 수가 있고 또 어떻게 그토록 건방지고 냉정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말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뺨을 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질 일이 두려웠다. 만일 그의 뺨을 때린다면 그를 저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더욱 용기있게 만들게 될 것만 깊았다. 그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는 육식 동물의 그것이었다. 그녀가 스트랙을 다루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순진하고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둔한 척하며 그가 내뱉는 그 불쾌한 성적인 농담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체하면서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생쥐가 도망칠 수 없는 어떤 위협스러운 존재를 다루는 것처럼 그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그 고양이를 못본 척하라. 그 고양이가 거기에 없는 것처럼 하라. 아마 그 고양이가 반응이 없는 것에 혼란을 일으키고 실망할지 모른다. 그래서 좀더 반응을 보이는 먹이를 구하러 다른 곳에 갈지 모른다.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떨쳐버리기 위해 노라는 싱크대 옆에 걸려 있는 종이 타월을 찢어서 마루바닥에 흘린 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트랙 앞에 엎드린 순간 그녀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그녀에게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의 앞에 웅크리고 있는데도 그 자리에 딱 버티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무척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자기 자세에 순종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좀더 크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얼굴이 상기되고 정신이 혼란해진 노라는 그 젖은 종이 타월을 싱크대 밑에 있는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아트 스트랙이 말했다. [요리, 레이스 뜨기라...... 그래, 난 그것들이 정말 좋아. 맘에 들어. 또 좋아하는 것은 없소?]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난 다른 취미는 없어요. 난 그렇게 썩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따분하지요.] 이 악당에게 여기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녀는 그의 옆을 살짝 지나 오븐으로 갔다. 겉으로는 오븐의 예열이 끝났는지 확인하는 척했으나 사실은 오로지 스트랙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녀에게 바싹 다가서서 따라왔다. [내가 현관 앞에 차를 세워둘 때 보니까 꽃들이 많더군요. 당신이 손질한 거요?] 오븐 다이얼을 지켜보며 그녀는 말했다. [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니까요.] [아, 좋아요.] 마치 그는 자신이 좋게 생각하는지 나쁘게 생각하는지를 그녀가 신경써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꽃은 여자들이 많이들 좋아하지. 요리, 레이스 뜨기, 정원 가꾸기, 정말 당신은 여자다운 취미 생활과 재능으로 꽉 차있군요. 장담컨대 당신은 다른 것들도 모두 다 잘할 것 같소, 데본부인. 내 말은 여자라면 해야하는 모든 것들을 말이요. 분명히 당신은 모든 면에서 최상급 여자일 거요.] 만일 그가 나를 건드리면 소리쳐야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집은 오래된 것이라 벽이 두꺼웠고 더구나 이웃집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고 또 그녀를 구해주기 위해 달려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발로 차버려야지...... 그녀는 생각했다. 맞서 싸울 거야.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정말 그에게 대항하여 싸울 수 있을지는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우선 싸울 만큼의 적극성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잘 몰랐다. 설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그녀보다 크고 강했다. [그래, 분명히 당신은 모든 면에서 제일급 여자일 게요.] 그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까보다 좀더 자극적으로. 오븐에서 몸을 돌리며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 남편이 그 소리를 들으면 놀랄 겁니다. 케이크 굽는 솜씨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파이 껍질을 근사하게 만드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그리고 쇠고기 찜 요리는 항상 바싹 태우곤 하지요. 레이스 뜨기는 괜찮은 편이지요.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잘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녀는 재빨리 그의 곁을 지나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이싱 가루 곽을 열면서 지껄이고 있는 자신에게 놀랐다. 절망감이 그녀를 수다스럽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원예에는 재능이 좀 있지요. 하지만 대단한 살림꾼은 못돼요. 그리고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여기는 엉망일 거예요.] 그녀는 자기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에 약간의 히스테리가 섞여 있었고 그가 그걸 놓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을 언급한 것 때문에 아트랙이 그녀를 좀더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재고하는 건 분명했다. 노라가 혼합 가루를 주발에 쏟아붓고 버터를 적당히 재어서 자를 때 스트랙은 그녀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그리고 싱크대로 가너 지저분한 주발과 기구들이 있는 개수대에 그 빈 컵을 놓았다. 이번에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접근해오지 않았다. [그러면, 난 다시 일하러 가는 것이 좋겠군요.]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엌을 가로질러 가서 흔들 문을 밀쳐 열고는 멈추어 서서 말했다. [당신 이모는 어두운 걸 좋아한 모양이군요, 그렇지 않소? 당신이 부엌을 좀 밝게 꾸미면 아마 이 부엌도 커 보일 거요.] 그녀가 대꾸하기 전에 그는 흔들 문을 통해 나갔다. 묻지도 않은 부엌 장식에 대해 말은 하고 있었지만 스트랙은 기가 죽은 것 같았고 그래서 노라는 기뻤다. 있지도 않은 남편에 대해 몇 마디 선의의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녀는 겨우 그를 처리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공격해오는 것을 처리하는 고양이의 방식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겁많고 놀란 새앙쥐의 행동 또한 아니다. 그녀는 천장이 높은 부엌을 둘러보고는 이곳이 어둡긴 하다고 생각했다. 벽지 색은 청회색이었다. 머리 위에 걸린 희미한 간유리 전등은 단조롭고 황량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엌을 다시 칠하고 전등도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바이오렛 데본의 집을 크게 변화시켜보겠다는 생각만해도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났다. 바이오렛이 죽고난 후 노라는 겨우 자신의 방만 다시 꾸몄을 뿐이었다. 다른 곳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이제야 그녀는 자신이 전체적으로 다시 장식해서 이 집을 새로운 집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고 그러자 걷잡을 수 없는 과감성과 반항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어쩌면 그녀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녀가 스트랙을 막아낸다면 죽은 이모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도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즐겁고 들뜬 기분도 20분을 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케이크 냄비를 오븐에 넣었고 재빨리 아이싱을 만들고는 주발들과 기구들을 씻었다. 그리고나자 스트랙이 텔레비전을 다 고치고는 그 수리비를 청구하기 위해 부엌에 다시 나타났다. 그가 부엌을 떠났을 때는 풀이 죽어 보였는데 다시 나타났을 때는 여전히 건방졌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기라도 하는 듯 그녀를 위 아래로 뚫어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과 마주쳤을 때 욕정으로 가득찬 눈빛을 주저하지 않고 내보였다. 그녀는 청구한 수리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빨리 집에서 나갔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것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녀가 수표를 쓰려고 식탁에 앉았을 때 그는 자신의 남성다움과 우세한 덩치로 그녀를 압도시키려는 태도로 그녀 곁에 바싹 다가가서는 그 낯익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나서 그에게 수표를 건네주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자극적으로 건드리면서 받으려고 애썼다. 홀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노라는 계속 그가 연장통을 내려놓고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덮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현관까지 왔고 그는 베란다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줄달음치던 그녀의 가슴이 평상시와 같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가 문 밖에서 머뭇거렸다. [당신 남편의 직업은 뭐요?] 그러자 그녀는 당황했다. 이것은 벌써 전에 부엌에서 그녀가 남편에 관해 말했을 때에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그가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녀는 그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두려웠다. 그녀는 그가 아주 쉽게 화를 내며 또 조금만 건드려도 그 안에 억눌려 있는 폭력 근성이 드러날 것같이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또 다른 거짓말로, 그러니까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짓말로 대답했다. [경찰이에요.] 스트랙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정말이요? 여기 산타 바라라에서 말이요?] [그래요.] [경찰관의 집이라......] [왜요?] [경찰관이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소.] [아! 내가 말했잖아요. 이 집은 내 이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구요.] [아, 그랬던가, 맞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했지요.] 그 거짓말을 좀더 그럴싸하게 만들어 보려고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이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린 아파트에 살았었어요. 그 이후에 이곳으로 이사온 거예요. 당신 말이 옳아요. 그러지 않고는 우린 이만한 집에서 살 수 없을 거예요.] [음,] 그는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좋군요. 정말이오. 당신같이 아름다운 분은 이런 아름다운 집에서 사셔야지요.] 그는 모자를 올리는 시늉을 하며 인사하고 윙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흰색 밴이 주차되어 있는 도로변으로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녀는 문을 닫고 문 한가운데에 설치해 놓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 그를 지켜 보았다. 그는 뒤를 힐끔 돌아보고 그녀를 발견하자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유리창에서 물러나 어두컴컴한 복도로 들어가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분명히 그는 그녀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남편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굳이 남편이 경찰관이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를 쫓아내기 위한 너무나 빤한 거짓말이었다. 남편이 배관공이나 아니면 의사라고 말했어야 했다. 경찰관만 아니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그러나 어쨌든 아트 스트랙은 떠났다. 그는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떠났다. 그의 밴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그녀는 아직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사실 그 밴이 떠나고 없어진 후에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2 데이비스 위더비를 살해한 후 빈스 나스코는 자신의 회색 포드 밴을 태평양 해안 고속도로에 있는 한 주유소까지 몰고 왔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그는 전화기에 동전을 집어넣고는 오래 전부터 기억해둔 로스앤젤레스의 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빈스가 자신이 누른 번호를 몇번 반복해서 말하자 한 남자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대개 그 전화를 받는 세 가지 목소리 중의 하나였다. 깊게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가끔 빈스의 신경을 자극하는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의 또 다른 남자가 받기도 한다. 흔치는 않지만 어떤 여자가 받기도 한다. 그녀는 섹시하고 좀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딘지 앳된 데가 있었다. 빈스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를 가끔 상상해보려고 한 적은 있었다. 다시 그 부드러운 목소리의 남자가 그 번호를 반복하고나자 빈스가 말했다. [일은 끝났소. 정말 내게 전화를 주어서 고마웠소. 그리고 또 일거리가 생기면 언제든지 날 불러주시오.] 빈스는 전화 받는 이 남자가 자기 목소리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니 기쁘오. 우린 당신의 일 솜씨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소. 이제부턴 이 번호를 기억하시오.] 상대편이 말했다. 그는 일곱 자리 전화 번호를 불러주었다. 빈스는 당황하면서 그 번호를 반복했다. 상대편이 말했다. [이것은 패션島에 있는 공중전화 중 하나요. 로빈슨 백화점 부근의 야외 산책로에 있소. 거기까지 15분만에 갈수 있겠소?] [물론이요. 10분 정도면 충분하오.] 빈스가 말했다. 빈스는 전화를 끊고 휘파람을 불며 밴으로 걸어 갔다. [세부적인 지시]를 받기 위해 다른 공중전화 박스로 가라는 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들이 벌써 그에게 맡길 일거리를 또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다. 하루에 두 건씩이나. 3 한참 후에야 케이크가 구워졌고 그러자 그 위에 초콜릿을 입힌 후에 노라는 이층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올라갔다. 바이오렛 데본이 살아있을 때는 이곳이 자물쇠 없는 노라의 성역이었다. 이 큰 집의 모든 방이 그렇듯 이 방도 장중한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마치 이곳은 사람 사는 가정이라기보다 가구 창고와도 같아 보일 정도였다. 다른 것들도 모두 한결같이 황량했다. 그러나 그녀가 허드렛일을 마쳤을 때나 한없이 지루한 이모의 설교가 끝나면은 노라는 자신의 침실로 도망쳐 왔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책이나 생생한 공상 속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바이오렛은 항상 아무런 경고도 없이 자신의 조카 딸을 보러 오곤 했다. 소리 없이 복도를 지나 갑자기 자물쇠 없는 문을 확 열고는 금지된 오락이나 일을 하고 있는 노라를 잡겠다는 얼굴로 들어오곤했다. 이처럼 예고 없이 나타나 무언가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행위는 노라가 어렸을 때와 사춘기 시절에 아주 심하다가 그 후로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바이오렛 데본이 죽기 몇 주 전, 그러니까 노라가 스물 아홉의 다 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그 나쁜 버릇은 계속되었었다. 바이오렛은 검은 드레스를 좋아했고 머리는 뒤로 쪽을 틀어 꼭 묶고는 그 창백하고 깡마른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느 땐 남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엉성한 참회복을 입고 황량한 중세 수도원의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동료 수도사들을 단속하는 엄한 수도승 같았다. 만에 하나 공상에 빠져 있거나 낮잠을 자다 들키면 노라는 아주 심한 잔소리를 들었고 또 성가신 여러 허드렛일을 벌로 받았다.그녀의 이모는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았다. 책은 허락되었다. 바이오렛이 먼저 보고 인정한 책일 경우에 한해서. 무엇보다 책은 교육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이오렛은 가끔 이렇게 말했다. [너나 나처럼 평범하고 가정적인 여자는 결코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코 유흥지 같은 곳에도 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 책은 우리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우리는 책을 통해서 거의 모든 것을 대리로 경험할 수 있단다. 그것은 그리 나쁜 게 아니야. 책과 사는 것은 친구를 사귀고 또 남자를 아는 것보다 훨씬 낫단다.] 말 잘 듣는 한 주치의의 도움으로 바이오렛은 노라를 건강이 나쁘다는 구실로 국민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책이 그녀의 유일한 학교였다. 노라는 서른 살 때까지 수천 권의 책들을 읽었고 거기다 유화, 아크릴화, 수채화, 연필화 분야에서 혼자 독학을 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것도 바이오렛 이모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예술은 노라의 마음을 집 밖에 있는 세상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고 또 필연적으로 그녀를 거부하고 상처 입히고 또 실망시킬 사람들과의 접촉을 단절시킬 수 있는 고독한 취미였다. 노라의 방 한쪽 구석에는 화관과 이젤, 그리고 각종 미술 재료들이 들어있는 캐비닛이 있었다. 그녀의 소형 스튜디오는 다른 가구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만든 것이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른 것을 밖으로 내다놓지 않았다. 그 결과 노라는 밀실 공포중에 걸려버렸다. 몇 년간 노라는 침실 바닥이 무거운 가구들 때문에 아래로 붕괴되어 그녀가 아래층으로 떨어져 자신의 그 거대한 네 기둥 침대에 깔려 죽는 몽상에 자주 시달렸었다. 그런 몽상은 특히 밤에 자주 들었고 어떤 때는 대낮에도 그런 생각으로 시달릴 때가 있었다. 그 공포가 그녀에게 엄습해오면 그녀는 뒷뜰로 뛰어가 확 트인 곳에서 두 팔로 자신을 감싸안고는 벌벌 떨곤 했다. 자신에게 그와 같이 주체 못할 공포가 엄습하는 것은 가구로 가득찬 방들과 대부분이 칙칙한 색으로 장식된 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위압적인 이모의 존재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녀가 스물 다섯 살이 되어서였다. 넉달 전 일요일 아침, 그러니까 바이오렛 데본이 죽고 팔 걔월이 지났을 때 노라는 갑자기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심각한 필요성에 휩싸여 자신의 침실이자 스튜디오를 미친듯이 다시 배치했다. 그녀는 작은 가구들은 모두 밖으로 끌어내 이층에 있는 다른 방에 골고루 분산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네 기둥의 침대, 나이트 스텐드, 1인용 소파, 화판과 걸상, 재료 캐비닛, 그리고 이젤 등을 재외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나서 벽지도 다 찢어냈다. 그 들뜬 주말 내내 그녀는 마치 혁명이라도 일으킨 쾌감을 느꼈다. 앞으로의 그녀의 인생은 절대로 예전과 같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침실을 모두 다시 꾸미고 나자 그 혁명 정신은 곧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그 집에 있는 나머지 것들은 손대지 않고 놔두었다. 이젠 적어도 이곳만은 밝았고 심지어는 경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벽은 밝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두꺼운 커튼은 떼어버리고 그 자리에 벽 색깔과 어울리는 브라인드를 달았다. 바닥에 깔린 싫증나는 카펫도 말아서 내다버렸고 그 밑에 있는 아름다운 참나무 바닥 그대로를 잘 닦고 문질러서 윤을 냈다. 이제 이곳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녀의 성역다워졌다. 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 자신이 꾸며 놓은 것들을 보면 어김없이 정신은 고양되었고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도 잠시 멈추는 듯했다. 스트랙에게 시달린 가슴 떨리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노라는 이 밝은 방에 들어섬으로써 언제나처럼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화판 앞에 앉아 연필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유화의 밑그림이다. 처음에는 손이 떨렸다. 그래서 자주 멈추어야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스트랙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럴 수가 없었다. 만일 자신이 가까스로 꾀를 내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면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를 상상해보았다. 요즘엔 바이오렛 데본 이모가 바깥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한 말들이 전부 사실처럼 생각되었다. 사실 노라가 그렇게 생각하게된 것은 그녀가 받은 첫 번째 교육의 결과였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그것은 왜곡됐고 심지어는 병적인 생각이라는 의심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아트 스트랙과 대면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바이오렛의 주장을 충분히 입증할 만한 인물이었고 또한 바깥 세상과 너무 많이 교제하면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스케치가 반쯤 끝났을 때 노라는 스트랙의 말과 행동들을 자신이 오해했던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렇게 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자신은 그렇게 근사한 여자가 아니다. 평범하고 수수한 여자일 뿐이다. 어쩌면 못생긴 여자일지도 모른다. 노라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바이오렛의 결점들과는 상관 없이 나이든 여자는 몇 가지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말을 돌려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라는 매력이 없고, 눈에 띄지도 않고 또 안아주거나 키스해주거나 소중히 보살핌 받기를 바랄 수 없는 여자였다. 이것이 바이오렛 이모가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누누이 주입시켜온 사실이었다. 스트랙은 그 인성은 혐오스러웠지만 신체적으로는 매력적인 남자였고 또 예쁜 여자들을 마음대로 골라 차지할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자신처럼 따분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노라는 여전히 자신의 이모가 사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바이오렛이 입고 있던 것들과 비슷한 모양 없고 거무칙칙한 드레스와 브라우스였다. 보다 밝고 여성스러운 옷들은 깡마르고 맵시 없는 그녀의 몸을 드러나게 할 뿐이고 또 개성 없고 예쁘지도 않은 얼굴을 강조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스트랙은 그녀가 예쁘다고 말했는가? 아, 그래 그것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아마 그가 그녀를 놀린 것이다. 아니면 그가 공손하고 친절했던 때문인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는 자신이 그 애꿎은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나이 서른에 그녀는 이미 신경이 예민한 노처녀가 되었고 그래서 외롭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우울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배로 힘을 내서 열심히 한 장의 스케치를 마치고는 다른 시각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후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그녀는 자신의 예술 세계로 도피했던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고풍스러운 괘종 시계가 15분마다 정확하게 종을 울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가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하늘은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남쪽 창 너머로는 커다란 종려나무가 5월의 산들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4시쯤에는 마음이 완전히 평온해졌고 이제는 작업을 하면서 콧노래까지 나왔다. 그때 전화가 울렸고 그 소리에 그녀는 놀랐다. 그녀는 연필을 내려놓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재미있더군요.] 남자 목소리였다. [뭐라구요?] [그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데요.] [죄송합니다만 아마 전화를 잘못 거신 모양입니다.] [당신 데본 부인 맞지요?] 그녀는 그때서야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알았다. 그였다. 스트랙이다. 잠시 동안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데요. 산타바바라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데본 경관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은 자기네 경찰서에 없다고 하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데본 부인! ] [당신, 도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엔 컴퓨터 실수 같소.] 스트랙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어떤 컴퓨터 실수로 기록에서 당신 남편 이름이 빠진 모양이요. 그가 집에 돌아오면 바로 말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데본 부인. 혹시라도 그것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글쎄, 어쩌면 주말에 주급을 못 받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는 그는 전화를 끊었다. 이미 딸깍 소리가 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먼저 전화를 끊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고 말하자마자 수화기를 바로 내려놓았어야 했다. 그녀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창문들과 문들을 점검했다. 전부 확실하게 잠겨 있었다. 4 오렌지市의 이스트 차프만街에 있는 맥도날드 가게에서 트라비스 코넬은 그 누런 사냥개를 위해 다섯 개의 햄버거를 주문했다. 개는 픽업 앞자리에 앉아서 고기와 둥근 빵 두개를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트라비스 얼굴을 핥으면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려고했다. [너에게서 소화불량에 걸린 악어 냄새가 난다.] 그는 그 개를 뒤로 밀며 말했다. 산타바바라로 돌아오는데는 3시간 반이 걸렸다. 그날 아침은 고속도로가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붐볐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트라비스는 자기 옆에 있는 개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아까 전에 보여주었던 그 놀라운 지능을 또 발휘하진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을 걸곤 하였다. 그의 기대감은 충족되지 않았다. 그 사냥개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보통 개처럼 행동했다. 가끔 고개를 쳐들고서는 앞과 옆을 보며 정도 이상의 관심 있는 표정으로 주변 경치를 바라보곤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자에 코를 쳐박고 잠을 잤고 가끔씩 꿈을 꾸는지 코를 실룩거렸다. 그것도 아니면 헐떡이다가 하품을 하며 무척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개의 지저분한 털에서 나는 냄새가 참을 수 없게 되어 트라비스는 환기시키기 위해 유리창을 내렸다. 그러자 사냥개는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는 바람을 씌었다. 귀가 뒤로 젖혀지고 머리털이 휘날리면서 보통 개가 차를 타고 갈 때 다 그렇듯 바보스럽고 어딘가 멍청해보이도록 히죽이고 있었다. 트라비스는 산타바바라의 한 쇼핑 센타에서 차를 잠깐 세웠고 알포켄 몇 개와 밀크본 페트용 비스켓 한 상자, 프라스틱으로 된 개밥 그릇, 아연으로 도금된 양은 욕조, 벼룩과 진드기를 동시에 없애주는 페트용 삼푸 한 개, 개털용 브러쉬, 목걸이, 가죽끈 등을 샀다. 트라비스가 이것들을 픽업 뒤에 실을 때 개는 그 축축한 코를 운전석 뒷유리창에 대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운전석에 앉으면서 말했다. [너는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단말이야. 목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겠지? 그렇지?] 개는 하품을 했다. 산타바바라 북쪽 변두리에 있는 방 4개짜리 전세 방갈로의 진입로로 들어서서 픽업 엔진을 끄자 그는 아까 아침에 보았던 이 개의 행동이 자기 기억대로 정말 그렇게 놀라운 것이었는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네가 지금 다시 바른 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그 숲 속에서의 나는 정말 어디 나사가 하나 빠진 바보가 되어 그 모든 일들이 단지 내가 상상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는 현관 문에 열쇠를 끼우며 말했다. 개는 그의 곁에 서서 이상하다는 듯이 올려다 보았다. [나로 하여금 내. 정신 상태에 의심을 품게 만든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싶은가? 음?] 검은 반점이 있는 오렌지색 나비 한 마리가 사냥개 얼굴로 달려들어 개를 놀라게 했다. 개는 한 번 짖고는 그 펄펄 날아다니는 먹이를 쫓으며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가더니 보도를 따라 갔다. 잔디밭을 이리 저리 헤메다니며 껑충 뛰어오르기도 하고 허공을 덥석 물기도 했다. 개는 연신 그 밝은 색깔의 사냥감을 놓치고도 계속 달려들다가 하마터면 야자수 나무와 충돌할 뻔했다. 결국은 봉선화 화단으로 어정쩡하게 자빠졌고 나비는 안전하게 그 화단 위로 치솟았다. 사냥개는 한 번 뒹굴고는 잽싸게 일어서서는 어슬렁어슬렁 꽃밭에서 빠져나왔다. 개는 사냥에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트라비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놀라운 개야.] 그가 말했다. [야단났군.] 그가 문을 열자 사냥개가 먼저 미끄러져 들어갔다. 개는 곧장 걸어들어가서는 방들을 살펴보았다. [너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을 거야.] 트라비스는 개를 쫓아가며 소리쳤다. 그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 봉지와 양은 욕조를 부엌으로 가지고 갔다. 먹을 것과 개밥 그릇만 그곳에 빼놓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는 콘크리트 뒷뜰에 그 봉지를 내려놓고는 그 옆에 욕조를 가져다놓았다. 바로 옆에는 옥외 수도 꼭지가 있었고 거기에 호스가 끼워져 둘둘 감겨 있었다.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 부엌 싱크대 밑에서 양동이를 꺼내 되도록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밖으로 내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욕조에 부었다. 트라비스가 그 뜨거운 물을 한 서너 번 왔다 갔다하면서 퍼 나르는 동안 사냥개는 밖으로 나와 뒷뜰을 살펴보고 있었다. 트라비스가 욕조에 물을 반 이상 채웠을 때 개는 하얗게 회칠이 된 콘크리트 벽을 따라 거의 일 미터 간격으로 오줌을 싸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함으로써 자기 자리임을 정해놓는 선이었다. [이제 잔디를 다 밟아 죽였으면 목욕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거야. 네게서는 악취가 난단 말이야.] 사냥개가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는데 그것은 마치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그런 영리한 개들 같지는 않았다. 개가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멍청히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개는 벽을 따라 성급히 몇 걸음 더 가더니 다시 오줌을 누었다. 개가 시원해하는 것을 보자 트라비스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나서 너절한 일을 하기에 편한 낡은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트라비스가 밖으로 나왔을 때 사냥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있는 욕조 옆에 서서 이빨로 호스를 물고 있었다. 그 개가 수도 꼭지를 돌려 물을 틀었던 것이다. 호스에서 물이 욕조로 펑펑 쏟아져 들어갔다. 개가 수도 꼭지를 조작한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법 어려운 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애들이 열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아스피린 병 뚜껑을 한 손을 뒤로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만 열려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놀라서 말했다. [물이 너무 뜨겁니?] 사냥개는 호스를 떨어뜨려 물이 안뜰로 쏟아지게 내버려 두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앉아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욕조로 다가가서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수도물을 한번 잠궈 보렴.] 개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보여달라구.] 트라비스는 다시 말했다. 개는 콧김을 내뿜으며 뜨거운 물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네가 물을 틀었다면 잠글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한 거니? 이빨로 했니? 하긴 이빨로 했겠지. 발로는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꼭지를 돌리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닐텐데. 꼭지가 너무 단단해서 이빨이 부러질 수도 있다구.] 개는 욕조 밖으로 목을 빼더니 삼푸가 들어있는 봉지를 물려고 했다. [수도 꼭지를 잠그지 않을 거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냥 그를 힐끔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물을 잠궜다. [좋아, 그래, 너 잘났다.] 그는 봉지에서 브러쉬와 샴푸를 꺼내서 그 사냥개 앞에 내놓았다. [여기 있다. 너에겐 내가 필요 없을 거야. 너 혼자서 네 몸을 문지르고 닦을 수 있을 거야.] 걔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길게 그르르르르릉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트라비스는 그 개도 자신에게 너도 잘났다고 말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 그는 좀더 조심하자고 마음먹으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놓여있는 거야, 트라비스. 네가 데리고 있는 이 개는 정말 영리한 개야. 그러나 이 개는 실제로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잖아. 또 네 말에 대꾸도 할 수 없구.' 사냥개는 그가 목욕시켜주는 대로 얌전히 받아들였고 또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개에게 나오라고 한 다음 샴푸를 헹구어네고서는 다시 그 축축한 털을 빗기는 데만도 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물에 씻겨지지 않은 가시들과 지푸라기들을 떼어내고 엉킨 털을 풀어냈다. 개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빗질을 다 끝내고 시계를 보니 저녁 여섯 시였고 그 때 개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잘 빗기어진 개의 모습은 아주 근사했다. 개의 털은 대부분이 엷은 황금색이고 다리 뒷편과 배와 엉덩이, 그리고 꼬리 아래쪽에는 좀 거무스름한 털이 있었다. 속 털은 두텁고 부드러워서 열을 보존하고 방수도 되었다. 바깔 털 역시 부드러웠으나 두텁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떤 곳은 좀더 긴 털이 물결 모양으로 나 있었다. 꼬리는 약간 위로 올라가 있어서 경쾌하고 의기양양한 인상을 풍겼다.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어대는 그 개의 습관 때문에 아마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귀에 말라붙은 피는 이미 아문 작은 상처에서 난 것이었다. 발바닥에 난 피도 심한 상처 때문이 아니라 험한 땅을 너무 많이 뛰어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트라비스는 이 상처들이 난 곳에 붕산과 순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는 이 개가 앞으로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 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냥개는 이제 아주 멋있게 보였다. 그러나 트라비스는 축축하게 땀이 배여 몸에서 개 샴푸 냄새까지 났다.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또한 식욕도 생겼다. 남은 일은 개 목걸이만 채우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새로 산 목걸이를 채우려 하자 사냥개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가 손을 대지못하게 뒤로 물러섰다. [자! 얘야, 이건 목걸이일 뿐이야.] 개는 트라비스 손에 있는 빨간 가죽 고리를 쳐다보았다. [목걸이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니? 응?] 개는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누가 괴롭혔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그런 게 틀림없구나. 사람들이 목걸이로 네 목을 조였거나 비틀었던 모양이로구나. 아니면 줄을 짧게 해서 묶어놓았거나...... 그랬었니?] 사냥개는 한 번 짖고는 뜰을 가로질러 가더니 멀리 떨어진 구석에 서서 그 목걸이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너, 나를 믿니?] 위협적이지 않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의 시선은 가죽 고리에서 트라비스로 가다가 그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절대 너를 괴롭히지 않아.] 그는 단순한 개 한 마리에게 그렇게 직접적이고도 또 그렇게 충실하게 말하는 자신에게 어리석다는 느낌을 전혀 가지지 않고 엄숙하게 말했다. [넌 내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거야. 무슨 뜻이냐면 너는 그런 걸 아는데는 아주 민감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렇지 않니? 네 본 능에 맡겨봐, 얘야. 나를 믿어.] 개가 구석에서 나와 트라비스의 손이 닿을 만한 곳까지 왔다. 개는 그 목걸이를 힐끔 보고나더니 섬뜩할 정도로 뚫어지게 그를 쳐다보았다. 전처럼 그는 또 이 짐승과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심오한 교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싹함이었다. 그가 말했다. [잘 들어봐, 개를 줄로 묶지 않으면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이 많단다. 그때를 대비해서 목걸이를 달고있어야 그런 곳에 갈때 수시로 끈을 끼울 수 있지 않겠니? 내가 너에게 목걸이를 채우려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그렇게 하면 넌 나와 함께 어디든지 갈 수가 있는 거야. 그리고 벼룩도 방지해주니까 좋아. 하지만 네가 정말 이것을 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할 것까진 없어.] 사냥개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기라도 하듯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트라비스는 목걸이가 부탁 사항이라기보다는 선물이나 되는 양 그것을 계속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개는 새로운 주인의 눈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사냥개는 크게 몸을 털더니 재채기를 한번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옳지. 그래야 착하지.] 트라비스는 칭찬조로 말했다. 그러자 개는 바로 그의 코 앞까지 와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더니 옆으로 눕고는 네 다리를 공중으로 뻗어 자신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두려움은 있어보였지만 사랑과 믿음이 가득찬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웬일인지 트라비스는 목구멍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열심히 침을 삼키고 눈을 껌벅이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감정에 약한 바보가 되어버렸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그 개가 곰곰 생각하다가 굴복해온 것이 왜 그토록 강하게 그를 감동시켰는지를 알았다. 트라비스 코넬은 요 삼 년만에 처음으로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체와 어떤 무언의 깊은 교감을 느꼈던 것이다. 삼 년만에 처음으로 그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목걸이를 채우고는 사냥개가 내보인 배를 부드럽게 긁고 문질러 주었다. [너에게 이름이 하나 있어야겠는데.] 그는 말했다. 개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며 마치 무슨 이름이 붙혀질 것인지 잘 들어야겠다는 듯이 양쪽 귀를 쫑긋 세웠다. '세상에! 내가 저놈에게 인간의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트라비스는 혼자 생각했다. '저놈은 똥개다. 어쩌면 좀 특별할지 모르나 여전히 똥개일 뿐이다. 저놈은 마치 자신이 무엇이라고 불릴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놈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확실해.' [딱 맞는 외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군!] 트라비스가 한참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런 건 서두르는 게 아니야. 정말 딱 맞는 이름이어야 돼거든. 너는 평범한 개가 아니야. 이 털보야. 아주 딱 맞는 이름이 떠오를 때까지 좀더 생각해보자꾸나.] 트라비스는 욕조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로 헹군 다음 햇빛에 말렸다. 그와 사냥개는 이제부터 그들이 같이 쓸 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5 엘리자베스 야르백 박사와 변호사인 그의 남편 조나단은 뉴포트 해변가에 있는 헌 단층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옆으로 길게 지어진 목장 스타일로 쉐이크 널판지 지붕에 벽은 크림색 벽토로 치장되어 있었고 진입로는 보우킷 개곡의 돌이 깔려 있었다. 현관문 옆에 있는 폭 좁은 창의 비스듬하게 경사진 유리가 저물어가는 해의 홍옥색 빛을 받아 마치 거창한 보석처럼 빛났다. 빈스 나스코가 벧을 눌렀을 때 엘리자베스가 문에 대고 대답했다. 그녀는 50세 정도 된 깔끔하고 매력적이며 숱 많은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빈스는 그녀에게 자기 이름이 존 파커라고 말하고는 자신은 FBI에서 일하고 있고 최근 조사 중인 사건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얘기 좀 해야겠다고 말했다. [사건?] 그녀가 말했다. [무슨 사건요?] [그것은 당신이 한때 관여했던 정부 지원 연구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는 거요] 빈스가 말했다. 그 말이 그가 사용하도록 지시받은 첫 대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사진이 붙어 있는 신분증과 FBI 발행 증명서를 조심스럽게 검토했다.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 가짜 서류들은 그를 이 일에 고용한 바로 그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이 위조 서류들은 10개월 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암살 건에서 그를 지원하기 위해 제공해준 것으로 3건의 다른 일에서도 아주 잘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신분증은 그녀가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어떻게 될지 잘 몰랐다. 그는 곤색 양복에 하얀 셔츠를 입었고 청색 넥타이를 맸다. 그리고 아주 광이 많이 나는 검정색 구두를 신고 있어서 수사관으로 행세하기에는 아주 딱 맞는 차림이었다. 키나 표정 없는 얼굴도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에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데이비스 위더비 박사를 살해한 일과 또 앞으로 몇분 안에 해치워야할 두 건의 살인이 그를 아주 거칠게 흥분시켰고 또 거의 참을 수 없는 광적인 기쁨이 그를 사로잡았다. 웃음이 그의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점점 커졌고 그것을 억제하기가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졌다. 특별히 이 일을 위해 40분 전에 훔친 칙칙한 초록색 포드 승용차를 타고 올 때는 일시적으로 온 몸이 흥분되어 경련이 일어났었다. 이것은 초조해서가 아니라 거의 성적이라고 할수 있는 강한 쾌감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차를 길 옆으로 대놓고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진정될 때까지 10분 정도 앉아 있을 정도였다. 이제 엘리자베스 야르벡이 그 위조된 신분증에서 눈을 떼고 위로 얼굴을 올려다 보았을 때 빈스의 눈과 마주치자 얼굴을 찡그렸다. 하마터면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려 자신의 가면이 날라가버릴 뻔했지만 그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그의 큰키와 아주 대조가 되는 한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와도 같았다. 잠시 후 야르벡 박사도 미소 지었다. 그녀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의 신분증을 돌려주고는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저는 당신 남편과도 얘기해야 합니다.] 그녀가 현관문을 닫을 때 빈스는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그이는 거실에 있습니다. 미스터 파커. 이쪽으로 오시지요.] 거실은 크고 환했고 벽과 카펫은 크림색이었다. 거기에 엷은 초록색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일부 초록색 차양으로 가려지긴 했지만 커다란 통유리로 된 창문을 통해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의 멋있는 주변 경관이 한눈에 보였다. 조나단 야르백은 벽난로 안에 쌓아둔 통나무 틈새에 나무 조각을 한 움큼 집어넣고는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아내가 빈스를 소개하자 일어냐서 손을 털었다. [FBI의 존 파커씨......] [FBI?] 야르벡이 미심쩍은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야르벡씨, 집안에 다른 식구들도 있으면 지금 그들하고도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그래야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야르벡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엘리자베스와 나 밖에 없습니다. 애들은 모두 대학에 가 있지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지요?] 빈스는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꺼내서 조나단 야르벡의 가슴에 대고 쏘았다. 그 변호사는 뒤로 나가 떨어지며 벽난로의 앞면에 부딪히더니 못에 박힌 듯 잠시 그대로 있다가는 청동으로 된 벽난로 기구들 위로 쓰러졌다. 으으으으으윽 엘리자베스 야르백은 놀라움과 공포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빈스는 재빨리 그녀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왼쪽 팔을 붙잡고 비틀면서 힘껏 등뒤로 꺾었다. 그녀가 고통으로 소리지르자 그는 권총을 그녀의 옆머리에 대고 말했다. [조용히 해. 그러지 않으면 네 머리통을 날려버릴 거야.] 그는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거실을 가로질러 그녀 남편의 시체가 있는 곳까지 갔다. 조나단 야르벡은 조그만 청동 삽과 청동 손잡이가 있는 쇠스랑 위에 얼굴을 파묻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빈스는 살아날 가능성을 남기고 싶지 않아 가까운 거리에서 야르벡의 뒤통수에 다시 두 발을 쏘았다. 고양이 소리 같은 가늘고 이상한 신음 소리가 엘리자베스 야르벡에게서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빈스는 이웃집들에서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웃집들이 멀고 또 이 집 거실 유리창이 크긴 하지만 흐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여인은 좀더 은밀한 곳에서 처리하고 싶었다. 그는 그녀를 홀 쪽으로 끌고간 다음 좀더 안으로 들어가 이방저방 문을 열어보며 안방 침실을 찾았다. 그리고는 안방을 발견하자 그는 그녀를 거칠게 밀쳐 넣었다. 그녀는 방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대로 있어.] 그가 말했다. 그는 침대 가에 있는 램프 불을 켰다. 그리고는 안뜰로 통하는 커다란 미닫이 문으로 가서는 두꺼운 커튼을 닫기 시작했다. 그가 등을 돌린 틈을 타 여인은 네발로 기어서 문 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는 그녀를 붙잡아 벽에 내던지고는 주먹으로 헉 소리가 나도록 그녀의 배를 쳤다. 그리고나서 다시 그녀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그녀의 머리를 들어올리고는 그녀에게 억지로 자신의 눈을 보게 했다. [잘 들어요. 부인. 당신을 쏘지는 않겠소. 난 당신 남편을 없애러 여기에 온 거요. 오직 당신 남편만이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풀어주기 전에 먼저 도망치려고 하면 당신 역시 없애야 하오. 알아 듣겠소?] 그는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살해를 하고 대가를 지불받을 대상은 이 여자였다. 그녀의 남편은 단순히 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살해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빈스가 그녀를 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녀를 묶어놓고 좀더 여유있게 그녀를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그녀가 협조적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총 두발만 발사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건은 시간을 오래 끌고 그녀를 좀더 천천히 죽이고 싶었다. 때론 죽음은 좋은 음식이나 좋은 술, 화려한 저녁 노을처럼 감상할 만한 것이었다. 숨을 헐떡이면서 흐느끼며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몰라도 돼.] [무엇을 원해요?] [그냥 입 다물고 협조나 해. 그러면 넌 여기서 살아날 수 있어.] 그녀는 절박하게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두서 없이 소리내어 하다가 이따금 말 없이 너무나 절박한 작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빈스는 커튼을 다 닫았다. 그는 벽에서 전화를 잡아뜯고 방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다시 그 여인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워 욕실로 끌고 갔다. 그는 서랍들을 모조리 뒤져 응급 치료 상자를 찾았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접착 테이프였다. 한 번 더 침실로 들어가 그녀로 하여금 침대에 눕게 했다. 그는 테이프로 그녀의 발목을 돌돌 말고는 팔목도 움직이지 못하게 똑같이 꽉 묶었다. 장롱 서랍에서 그는 그녀의 얇은 팬티 두 장을 꺼내 똘똘 말아서 그녀의 입에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테이프 조각으로 입을 봉해버렸다. 그녀는 격렬하게 떨며 눈물과 땀을 동시에 흘리고 있었다. 그는 침실에서 나와 거실로 가서는 조나단 야르벡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었다. 아직도 그 시체에 볼 일이 남았던 것이다. 그는 엎어져 있는 시체를 위로 돌렸다. 총알 하나가 야르벡의 뒷골을 뚫고 목으로 튀어나와 그의 턱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의 반쯤 벌려진 입은 피로 가득했다. 한쪽 눈은 완전히 뒤집어져 흰자위만 보였다. 빈스는 다른 한쪽 눈을 살펴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진지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야르벡] 그는 두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키스를 했다. [당신의 생명을 참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는 곧장 차고로 들어가 캐비닛을 샅샅이 뒤지고는 몇 가지 연장들을 꺼냈다. 그는 고무로 된 손잡이에 빛나는 금속 대가리의 해머를 골랐다. 그가 침실로 돌아와 묶여있는 여인 옆 매트리스에 그 해머를 내려놓자 그녀의 눈이 거의 희극적으로 커졌다. 그녀는 비틀고 당기면서 손을 접착 테이프에서 빼내려했으나 허사였다. 빈스는 자신의 옷을 다 벗었다. 그녀가 해머를 보았을 때와 똑같이 공포에 떨며 그의 일거 일동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말했다. [걱정하지말아요, 야르벡 박사. 난 당신을 희롱하지는 않아요.] 그는 의자 등받이에 자신의 양복 저고리와 셔츠를 걸어놓았다. [난 당신에게 성적인 관심이 없어요.] 그는 신발과 양말과 바지를 벗었다. [당신은 그런 수치를 당할 필요가 없어요. 난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니까. 난 단지 내 옷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서 다 벗는 거요.] 그는 맨몸뚱이로 한 손에 해머를 들고는 그녀의 왼쪽 다리를 내리쳐 그 무릎을 산산이 부수어버렸다. 그리고나서 50회 내지 60회 정도의 계속되는 해머질 후에 겨우 손을 멈추었다. 으으으으으으윽 갑자기 그의 몸 안에서 힘이 솟구쳤다. 그는 초인적으로 기민해지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의 감촉과 색깔들에 극히 민감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주 강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마치 사람 몸을 한 신과 같았다. 그는 해머를 떨어뜨리고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온통 피로 물들어있는 침대 덮개에 이마를 대고 깊은 숨을 쉬며 거의 전율에 가까운 강렬한 환희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몇분 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이 보다 강력해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서서히 일어나서 그 죽은 여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해머에 뭉그러진 얼굴과 양손에 키스를 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감수해준 그 희생에 너무 감동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그래서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욕실에 들어가 그는 재빠르게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로 비누칠한 몸을 씻어내릴 때 자신이 살인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보수가 없었더라도 해왔을 일인데 이렇게 대가까지 지불받았던 것이다. 그가 다시 옷을 주워입고서는 자기가 이 집에 돌어와서 만졌던 것들을 타월로 닦아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만지고 무엇을 했는지를 다 기억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빠뜨리고 닦는다거나 해서 자신의 지문을 남겨놓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완벽한 기억력은 그가 가진 또 하나의 재능이었다. 그가 그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3 장 1 초저녁이 다 지날 때까지 사냥개는 트라비스의 상상력을 부추겼던 그 특이한 행동은 다시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개를 지켜보았다. 때론 똑바로 때론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호기심을 끌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저녁 식사로 베이컨, 양상추, 그리고 토마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냥개에게는 알포 깡통을 따주었다. 개는 알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몇번 크게 꿀꺽거리더니 그것을 다 먹어치웠다. 그러나 개는 트라비스가 먹는 음식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개는 그의 의자 옆에 응크리고 앉아서 그가 빨간색 호마이카 테이블 위에 놓고 먹는 두 개의 샌드위치를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개에게 베이컨 두 조각을 던져주었다. 구걸하는 개에게는 특이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놀라운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개는 그냥 주둥이를 핥으면서 가끔 낑낑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연민이나 애정을 나타내는 슬픈 표정의 제한된 레퍼토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어떤 똥개라도 다 그런 식으로 애정을 구걸했을 것이다. 잠시 후 거실로 가 트라비스는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개는 그의 소파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다 조금 후엔 고개를 들더니 주둥이를 그의 무릎 위에 갖다대며 애정을 호소하는 듯하여 트라비스는 목덜미와 귀 밑을 살살 긁어주었다. 개는 이따금씩 텔레비전을 힐끔 쳐다보았으나 프로그램에는 별 흥미를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트라비스 역시 TV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그 개에게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는 개를 관찰하고 또 좀더 많은 기교를 부려보도록 부추기고 싶었다. 그는 그 개의 놀라운 지능을 잴 만한 어떤 테스트를 고안해내려고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개가 테스트에 응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개는 평소에는 자신의 영리함을 본능적으로 숨기는 것 같았다. 그는 개가 나비를 쫓을 때 본 서툴고 엉성한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안뜰 수도 꼭지를 틀 때 발휘했을 재치있고 민첩한 행동과 대조해 보았다. 그 두 가지 행동은 각기 다른 두 마리 동물이 한 행위 같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트라비스는 이 사냥개가 평소엔 자신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다가 단지 위기시에나 아주 배가 고플 때나 아니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만 자신의 그 놀라운 지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위기절정이었던 숲에서 그랬고 아주 배가 고파 픽업 글로브 박스를 열고 캔디를 꺼냈을 때 그랬고 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수도 꼭지를 틀었을 때 그랬지 않았던가?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개는 다른 개들에 비해 지능이 뛰어남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사신의 그 특출난 능력을 또한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이 자신을 자기 종족들과 비교하고 분석하는 그런 높은 자의식이 전혀없다. 비교 분석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능력이다. 비록 어떤 개가 특이하게 영리하고 갖가지 기교를 부릴 수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다른 자신의 종족들과 다르다는 것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 개가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그 개가 뛰어난 지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 위에 이성과 논리력도 또한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의 행동을 주관하는 본능보다 훨씬 우수한 이성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너는 말이야. 미스테리에 싸여있는 수수께끼야. 아니면 내가 정신병원을 가야 할 거야.] 개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고는 잠시 동안 그의 눈을 응시하더니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어 거실과 식당 사이 통로에 있는 서가들을 그의 어깨 너머로 응시했다. 그 개의 얼굴에서 만족스럽고 태평스럽던 여느 개와 같은 표정이 사라지고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예리한 관심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것은 보통 개들의 경계심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냥개는 소파에서 재빨리 뛰어내려서 서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 밑에 서서 깔끔하게 꽂혀 있는 책들의 화려한 책등 색깔을 올려다보며 앞뒤로 왔다갔다했다. 그의 집에는 비록 멋 없고 값싼 것들이긴 하지만 내구성이나 때를 타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서 고른 실내 가구류들로 가득했다. 나무 제품 대신 끝이 까지거나 긁히거나 닳지 않고 또 담배 불에도 끄덕없는 호마이커 제품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이 집에서 트라비스 코넬의 취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거실에 있는 서가를 꽉 매운 책들뿐이었다. 개는 그 수백 권의 책들 중에서 적어도 몇몇 권에 대해 아주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트라비스는 일어나서 말했다. [뭐야? 얘야. 뭣 때문에 그렇게 꼬리를 흔드는 거야?] 사냥개는 껑충 뛰어 앞발을 서가 위에 올려놓고는 책등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트라비스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열심히 그의 서재를 살펴보았다. 그는 서가로 가서 개가 코를 들이밀고 있는 책 중에 하나를 뺐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었다. [이 책? 이 책에 관심이 있니?] 개는 롱 존 실버 그림과 책 카바를 장식한 해적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트라비스를 올려다보고는 다시 롱 존 실버를 내려다 보았다. 잠시 후에 개는 바닥으로 내려와 통로 다른 쪽에 있는 서가로 달려가더니 다시 앞 발을 올렸다. 그리고는 다른 책에 코를 대고 끙끙거렸다. 트라비스는 보물섬을 제자리에 꽂아놓고 그 사냥개를 따라갔다. 이제는 찰스 디킨즈 전집에 그 축축한 코를 갖다댔다. 트라비스는 두 도시의 이야기의 페이퍼백판을 뽑았다. 다시 사냥개는 그 책이 무슨 책인가를 알아보려는 것처럼 표지그림을 찬찬히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트라비스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당황해서 그는 말했다. [프랑스 혁명, 기요틴, 단두, 비극과 영웅주의, 그러니까 이것은...... 어...... 이것은 전체보다 개인의 가치를 더 존중해야 한다는 그 중요성에 관한 것이야. 다수의 발전보다는 한 남자나 한 여자의 삶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하는 필요성에 관한 것이지.] 개는 끙끙거리며 자기 앞에 꽂혀져 있는 크고 묵직한 책들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지.] 트라비스는 두 도시의 이야기를 본래 있던 자리에 다시 꽂으면서 말했다. [젠장, 내가 개한테 줄거리를 말하고 있잖아.] 사냥개는 큰 앞다리를 다음 서가에 올려놓고는 헐떡거리며 아래층에 있는 책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트라비스가 책등을 살피며 그 책들을 빼지 않고 있자 개는 고개를 비스듬히하고 머리를 서가에 들이밀어 넣고는 이빨로 조심스럽게 책 한 권을 물었다.그리고는 더 살펴보기 위해서 그것을 뺄려고 했다. [어어, 그 좋은 장정에 침이 묻지 않게 해. 이 털보야. 이 책은 올리버 트위스트야. 디킨즈의 또 다른 작품이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한 고아 이야기야. 그는 암흑가의 인물들과 범죄 세계에 휘말려 들었지. 그리고 그들이......] 사냥개는 바닥으로 내려와 통로 다른 쪽에 있는 서가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또 가까이에 있는 책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그러다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책이 탐이 난다는 듯 응시했다. 아마 5분 정도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예감에 사로잡혀 트라비스는 10여 종의 소설책 표지들을 보여주고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헤주면서 그 개를 따라 다녔다. 그는 그 영리한 개가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을 잘 몰랐다. 분명히 개가 자기가 말하는 그 줄거리 요약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개는 그가 말할 때 열중해서 듣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무 의미 없이 하는 개의 행동에 괜히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목 뒤가 쑤셔왔다. 한 권 한 권 계속 살펴가면서 트라비스는 어느 순간이 되면 어떤 놀라운 사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커져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멍청하고 바보스럽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에 대한 그의 취향은 폭이 넓었다. 그가 서가에서 빼낸 책들중에는 브라드버리의 이렇게 온 악과 찬드라의 긴 이별, 케인의우편 배달부는 벧을 두 번 울린다,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이 있었다. 리차드 콘던이 쓴 책도 두 권 있었고 앤 타일러 작품이 하나 있었다. 도로시 세이여스의 살인은 틀림없이 알려진다와 엘모어 레오나드의 52 픽업도 있었다. 마침내 개는 서가에서 걸어나와 방 한가운데로 갔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앞뒤로 분주히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멈추고는 트라비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세 번 짖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니? 얘야?] 개는 낑낑거리며 책이 가득한 서가들을 쳐다보다가 한곳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그러다 다시 책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낙심한듯 무언가를 포기하고 심하게 좌절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니? 애야.] 그는 말했다. [네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또 무엇이냐?] 개는 콧김을 내뿜고는 몸을 떨었다. 낙심해서 고개를 떨군 채 개는 풀이 죽어 소파로 돌아가 쿠션 위에 웅크렸다. [이제 끝난 거니? 그냥 포기하는 거야?]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는 머리를 소파에 얹어놓고는 축축하게 감정이 깃든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트라비스는 개에게서 눈을 떼고 천천히 책들을 살펴보았다. 마치 책이 그 속에 인쇄된 내용을 전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또 색깔이 화려한 책등이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 문자로 일단 해독이 되면 엄청난 비밀을 드러낼 것인양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해독할 수 없었다. 트라비스는 자신이 어떤 엄청난 사실이 드러나려는 긴장된 순간 앞에 놓여 있다고 믿으면서 한편으론 너무나 큰 낭패감을 느꼈다. 자신의 그 낭패감은 개가 보였던 것보다 훨씬 더 짖은 것이었다. 그는 사냥개가 했던 것처럼 머리를 소파에 내려놓고 웅크리고서 개에게 말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야?] 그가 다그쳤다. 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다 보았다. [그 책들이 도대체 어떻다는 거니?] 개가 쳐다보았다. [네가 특별한 거니? 아니면 내 머리가 돌아버린 거니?] 개는 마치 눈을 감고 곧 잠에 빠져버릴 것처럼 완전히 지친 모습으로 꼼짝하지 않았다. [한번 더 날 보고 하품을 하면, 제기랄, 네 엉덩이를 차버릴 거야.] 개가 하품을 했다. [악당 갈으니!] 트라비스가 말했다. 개는 다시 하품을 했다. [너 왜 그래? 내가 말했다고 고의적으로 하품을 하고 있는 거지? 나와 장난하려고 말이야. 아니면 그냥 하품을 하는 거냐? 너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니? 너의 행동이 의미가 있고 없고는 또 어떻게 아는 거니?] 개가 한숨을 쉬었다. 트라비스도 한숨을 쉬며 어둠이 내린 거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커다란 대추 야자수의 깃털 같은 잎이 나트륨 가로등의 엷은 노란색 빛을 받고 있었다. 개가 소파에서 일어나 급히 방에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 행동을 살피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무엇보다 이젠 더 이상의 큰 좌절감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냥개는 부엌에서 소리를 냈다. 땡그랑, 그러다 조그마한 달그락 소리. 트라비스는 개가 자기 밥그릇에 있는 물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개가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개는 그의 곁으로 와서 그의 다리에 몸을 대고 비볐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냥개는 주둥이로 캔 맥주를 물고 있었다. 퀄스였다. 그는 개가 내미는 캔을 받고는 그것이 차가운 것임을 알았다. [네가 냉장고에서 꺼낸 거니?] 개는 씩 웃는 것 같았다. 2 노라 데본이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있을 때 전화 벧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그 전화가 그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온 것이었다. [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요.] 스트랙이 말했다. [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안단 말이오.] '난 이쁘지도 않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평범하고 우울한 노처녀예요. 당신은 도대체 내게서 무엇을 원하는 거예요? 난 당신 같은 사람들이 겁 안나요. 내가 예쁘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 눈이 멀었어요?'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나요?] 그가 물었다. 마침내 힘을 내어 그녀가 말했다. [허튼 소리 말아요.] [난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당신은 잘 모를지도 몰라. 하지만 난 알아.]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너무 세게 수화기를 내려 놓아서 틀림없이 그의 귀가 아팠을 것이다. 잠시 후 8시 30분에 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위대한 유산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 벧소리에 너무 놀라 접시에 스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하마터면 그 디저트를 쏟을 뻔했다. 접시와 책을 옆으로 놓고 나이트 스탠드 옆에 있는 전화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10번째가 되도록 울리게 그냥 놔두었다. 15번. 20번. 날카로운 벧 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며 방안 가득히 울려퍼졌다. 전화 벧이 울릴 때마다 소리가 그녀의 골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녀는 그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아주 큰 실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가 집에 있으면서도 자기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것이 그를 기쁘게 해주고 있을지 몰랐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배하고 조종하길 원할 것이다. 괜히 그녀가 겁먹고 위축되면 그의 용기만을 돋우는 꼴이 될 것이다. 노라는 한 번도 누구와 맞서서 대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주장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도 아주 빨리. 그녀는 31번째의 벧이 울렸을 때 수화기를 들었다. 스트랙이 말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워. 너무나 검지. 새까맣다고 해야겠지. 숱 많고 윤도 나지. 내 손으로 당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고 싶소.] 그녀는 그가 제정신을 차리도록 무슨 말인가를 해야 했다. 아니면 전화를 끊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난 당신 눈처럼 아름다운 것은 본 적이 없지.] 스트랙이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회색 눈동자...... 다른 사람의 회색 눈하고 달라. 깊고 따듯하고 섹시한 눈이야.] 노라는 말을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당신은 정말 예뻐, 노라 데본. 아주 예쁘단 말야. 그리고 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 정말로...... 노라. 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 내가 그것을 줄게.] 마비되었던 몸이 풀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화기를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침대로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너무 떨려서 온 몸이 따로 노는 것같이 느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야 겨우 그 공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작고 연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을 부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자신이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되었다고? 그들은 크게 웃을 것이다.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그녀는 노처녀다. 예쁘지도 않다. 또 남자들이 그녀를 생각하며 에로틱한 꿈을 꾸어보는 그런 타입과도 거리가 멀다. 경찰들은 그녀가 말을 지어냈거나 아니면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녀가 스트랙의 친절을 성적인 관심으로 오해했다고 추정할지도 모른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입고 있던 펑펑한 남자용 파자마 위에 헐렁한 청색 가디건을 걸치고는 벧트를 했다. 그리고는 맨발로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 부엌으로 가서는 스토브 옆의 선반에서 부엌칼을 조심조심 꺼냈다. 잘 갈아진 칼날을 따라 가는 수은 줄기같이 빛이 흘렀다. 자기 손에 있는 번쩍이는 넓고 판판한 칼몸에 자신의 눈이 비쳤다. 그녀는 그 반지르한 금속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며 아무리 자기방어라지만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끔찍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그 해답을 구해낼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랬다. 그녀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부엌칼을 손이 쉽게 닿는 나이트 스탠드 위에 올려놓았다. [왜 하필 나지?] 그녀는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왜 하필이면 나를 골랐지?] 스트랙은 그녀가 예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라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바이오렛 이모에게 넘겨버리고는 28년 동안 단 두 번 왔었다. 그 두 번째 온 것이 그녀가 여섯 살 때였다.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데본의 친척들 중에 다른 어느 누구도 기꺼이 그녀를 데려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바이오렛은 그런 상황을 그녀가 못생겼던 탓으로 돌리곤 했었다. 그러니 스트랙이 그녀를 보고 예쁘다고 말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아마 그녀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를 겁주고 위협하고 해코지하는 스릴감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녀는 책이나 신문에서 그런 사람들에 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달콤한 말과 미소로 그녀에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그녀를 높이 띄웠다가 후에 그 높은 곳에서 내던져버리곤 훨씬 더 심하게 상처주려는 것이라고 한 바이오렛 이모의 경고는 아마 수천 번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주 심한 공포심은 누그러졌다. 노라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먹다 남은 아이스 크림은 다 녹아버렸기 때문에 나이트 스탠드 위에 치워놓았다. 그녀는 디킨즈의 소설을 뽑아들고 다시 한번 핍의 이야기에 빠져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계속해서 전화와 부엌칼 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열려진 문과 2층 홀에 자주 신경이 쓰였고 그곳에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3 트라비스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개도 따라 들어갔다. 그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헌번 해봐, 맥주를 꺼내보라구. 나에게 그걸 보여줘.] 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트라비스는 쪼그리고 앉았다. [들어봐, 털보야. 위험 천만의 그숲 속에서 너를 이리로 데려온 사람이 누구니? 나야. 그리고 누가너에게 햄버거를 사주었니? 그것도 나잖아. 목욕도 시켜주었고 먹여도 주었고 또 집도 주었잖니. 이제 너는 내 신세를 진 거야. 이젠 내숭 그만 떨고 이걸 열어봐.] 개는 낡은 냉장고로 가서 에나멜 칠이 되어 있는 문 아래로 머리를 내리고는 이빨로 그 끄트머리를 물고 온 몸을 써서 뒤로 제꼈다. 고무 봉함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풀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개는 재빨리 그 속으로 몸을 집어넣고는 껑충 뛰어서 앞발을 냉장고 내부 선반에 올려놓았다. [미치겠군.] 트라비스가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사냥개가 두 번째 선반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곳은 트라비스가 캔 맥주와 다이어트 팹시, 그리고 V-8 야채 쥬스 등을 쌓아놓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캔 맥주를 또 하나 물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다시 닫히게 하고는 트라비스에게 왔다. 그는 개에게서 맥주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양손에 그 맥주를 들고 개를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개에게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좋아. 하긴 누군가가 너에게 냉장고 문여는 법을 가르칠 수도 있어. 그리고 너에게 맥주 상표를 알아보는 법을 가르칠 수도 있고. 주인이 심부름시키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스테리야. 네가 훈련받은 그 상표가 내 냉장고에 있는 것과 똑같기는 쉬운 일이 아니잖아. 우연히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야. 게다가 나는 너에게 아무런 명령도 하지 않았어. 난 너에게 맥주를 갖다달라고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 순간의 나에게 맥주가 필요할 거라는 것을 네가 판단하고 가져온 거야. 난 그때 정말 맥주가 마시고 싶었지.] 트라비스는 캔 하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셔츠에 물기를 닦고는 꼭지를 따서 몇 모금 마셨다. 그 캔이 개가 물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엔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 짐승의 놀라운 재주에 너무 흥분되어 있어서 병균에 대해 걱정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개는 마치 위생이라도 생각하는 것처럼 캔을 물 때 아래 쪽을 물었던 것이다. 사냥개는 그가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삼분의 일 정도 마시고 다시 말했다. [내가 초조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었던 것 같구나. 그리고 맥주가 내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말이야. 그래, 내 말이 틀리니? 그러면 뭐지? 우린 지금 분석 논리력을 말하고 있는 거야, 좋아, 그래, 애완 동물들이 자기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릴 때는 많아. 하지만 맥주가 어떤 것인지 그것을 아는 애완 동물이 몇 마리나 될까? 그리고 그 주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몇 마리나 될까? 그건 그렇고 어떻게 맥주가 냉장고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 내가 저녁 식사를 만드는 동안에 그것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손은 떨고 있었다. 그는 맥주를 더 마셨다. 캔이 이빨에 부딪쳐 가볍게 덜덜거렸다. 개는 빨간 호마이카 테이블을 돌아 싱크대 유리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한쪽 문을 열고 머리를 그 속에 쑤셔박고는 밀크본 비스켓 봉지를 꺼내 곧바로 트라비스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내가 맥주를 대접받았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 줄 수 없지.] 그는 봉지를 잡아뜯었다. [밀크본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털보야.] 그는 과자를 바닥에 놓았다. [드시지. 난 네가 다른 개들같이 먹는 걸 너무 밝히지 않을 거라고 믿어.] 그는 다시 웃었다. [젠장, 네가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해도 믿을 것 같구나.] 사냥개가 봉지에서 비스켓 하나를 교묘하게 꺼내 물고 뒷다리를 비스듬히 내놓고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그것을 깨물어 먹었다. 의자를 잡아 당겨 테이블 앞에 앉아 트라비스는 말했다. [오늘의 이 기적들을 믿을 수 있게 나에게 설명 좀 해줄래? 내가 오늘 아침 그 숲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 개는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비스켓을 씹었다. 잠시 트라비스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난 그리로 아주 감상적인 여행을 떠난 거였어.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산타안나산에서 즐겼던 일을 떠올려보려고 말이야. 모든것이 우울해. 난 어렸을 때처럼 뱀들을 몇 마리 죽여보고 산보도 하고 산 속을 구경도 하며 옛날 생활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던 거지. 오랫동안 난 내 자신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야.] 개는 씹던 것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트라비스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요즘은 내 우울증이 한밤중보다 더 어두워졌어. 너 우울증이 뭔지 아니? 똥개야.] 사냥개는 밀크본 비스켓을 그냥 놔두고 일어나서 그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뚫어지게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도 개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살은 하지 않을 거야. 우선 난 가톨릭 신자였거든. 요즘은 전혀 미사에 가지 않지만 믿고는 있으니까. 가톨릭 신자에게 자살은 치명적인 죄에 속해. 살인이지. 게다가 난 심술궂고 고집이 세서 아무리 일이 잘 안되고 우울해졌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 사냥개는 눈을 깜박이기는 했지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는 않았다. [난 한때 행복했던 그 순간을 찾아서 그 숲 속으로 간 거야. 그리고 그때 너를 우연히 만난 거지.] [으르르르릉] 개는 마치 '좋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리냈다. 그는 두 손으로 개의 머리를 잡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울증, 그건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거야. 개가 어떻게 그런 것을 알겠니, 응? 개는 걱정이 없어. 그렇지 않니? 개에게는 모든 게 즐거울 뿐이야.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아니? 애야. 정말 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말을 이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신비로운 개라치고 내가 너무 너를 지능 면에서 과대평가하고 있는건 아니니? 그렇지? 그래, 넌 몇 가지 놀라운 재주가 있긴 해. 하지만 그런 것은 나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하고는 수준이 틀려.] 사냥개는 다시 밀크본 과자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이빨로 그 봉지를 물고 흔들어서 모노륨 위에 이삼십 개의 비스켓을 떨어뜨려 놓았다.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구만.] 트라비스가 말했다. [금방 반 인간같이 하다가는 금세 여느 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개가 된단 말이야.] 그러나 사냥개는 그것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 검은 코 끝으로 흐트러진 비스켓들을 한번에 하나씩 밀어서 그것들을 널직한 부엌 바닥 중앙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일직선으로 그것들을 나란히 정리했다. [이게 도대체 뭐야?] 개는 5개의 비스켓을 조금씩 오른 쪽으로 곡선이 되게 정렬했다. 그리고는 여섯 번째 자리에 한 개의 과자를 가져다 놓으면서 곡선을 더 강조했다. 트라비스는 그것을 보면서 마시던 맥주를 서둘러서 다 마시고 다시 두 번째 것을 땄다. 자신에게 맥주가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개는 잠시 그 줄을 살펴보았다. 마치 자신이 시작한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모르는 것 같았다. 개는 몇 번인가 앞뒤로 왔다갔다 했다.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마침내 비스켓을 두 개 더 그 선에 첨가했다. 개는 트라비스를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마루바닥에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아홉 번째 비스켓을 코로 밀어 제자리얘 갖다 놓았다. 트라비스는 맥주를 좀 마시고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긴장하며 기다렸다. 머리를 흔들고 좌절한 듯이 콧김을 내뿜으며 개는 방 맨 끝으로 가서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구석을 보고 서 있었다. 트라비스는 개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웬지 그 개는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서 구석으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개는 돌아와서 열 번째 것과 열한 번째 밀크본을 연결시켜 그 형태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중요한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에 다시 휩싸였다. 팔에 소름이 쏴 퍼져 올라왔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 누런 사냥개가 19개째 비스켓을 마지막으로 부엌 바닥에 어설프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물음표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표정있는 눈빛으로 트라비스를 올려다보았다. 물음표라. 왜라는 의미겠지. 당신이 왜 그렇게 우울했는가? 왜 당신은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하다고 느끼는가? 그런 물음이다. 개는 그가 말한 것을 이해한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 개는 사람말을 백 퍼센트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그가 한 말들을 다 알아듣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가 한 말의 의미는 안 것이다. 아니면 무언가 호기심 생기는 얘기라는 것 정도는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개가 또한 물음표의 목적을 이해한다면 이것은 필연코 이 개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알파벱이나 숫자, 물음표, 느낌표 같은 간단한 기호들은 복잡한 아이디어를 상호 전달하기 위해 만든 속기용이다. 그래서 그것은 추상적인 사고를 요한다. 그리고 추상적인 사고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종족에게만 부여된 것이다. 인간에게만 말이다. 이 누런 사냥개가 인간이 아닌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개는 다른 어떤 짐승도 엄두를 못내는 지적인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라비스는 아연실색했다. 물음표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전혀 아니다. 좀 서툴지만 절대 우연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이 개는 그 기호를 보고 그 의미를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통계학자들은 무한수의 원숭이들이 무한 수의 타자기를 가지고 그냥 아무렇게나 두들기면 마침내는 위대한 영국 산문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개가 밀크본으로 단 2분만에 순전히 우연으로 물음표를 만든다는 것은 그 망할 놈의 원숭이들이 섹스피어 작품을 다시 써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는 대답을 기다리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자 자신의 다리가 약간 떨리는 것을 알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정렬된 비스켓 앞으로 가서 그것들을 다시 흐트려 놓고는 다시 자기 의자로 돌아갔다. 사냥개는 흐트러진 밀크본을 쳐다보며 트라비스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비스켓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낭패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트라비스는 기다렸다. 집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지구 상의 살아있는 모든 짐승들과 기계, 사물들에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 버렸고 그와 사냥개와 부엌에 있는 것들만이 예외인 것 같았다. 마침내 개는 방금 전에 했던 것처럼 코로 비스켓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1, 2분만에 개는 물음표를 다시 만들었다. 트라비스는 맥주를 조금 마셨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온통 놀라움과 황당함에 휩싸였다. 미지의 것에 대한 거친 기쁨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주눅이 들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웃고 싶었다. 단 몇 시간 전만해도 삶이란 황량하고 우울하고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울고 싶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삶이 가끔은 아주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귀중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그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고 또 세상은 놀라운 일로 가득찼고, 존재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서 느끼는 절망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사설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해 그 개를 보낸 것 같다고 느꼈다. 트라비스는 웃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거의 흐느낌 같았다. 그가 일어서려고 했을 때 자신이 아까보다 훨씬 더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떨려서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고는 다시 캔 맥주를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개는 고걔를 이리저리 쫑긋 세우고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마치 그가 미쳐가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사실 미친 적이 있었다. 수개월 전에 그랬다. 그러나 이젠 아주 좋아졌다. 그는 캔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가 말했다. [이리 와봐, 털보야.] 사냥개는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개의 털을 헝클어뜨렸다가 쓰다듬어주며 귀 아래를 긁어주었다. [너 때문에 내가 놀라기도 하고 겁도 난다. 난 네가 어디에서 왔고 또 네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네가 어디서 왔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보다 더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을 거야. 물음표라, 세상에! 이럴수가...... 좋아, 내가 왜 인생이 의미 없고 기쁨이 없는 것으로 느끼는지 알고 싶다 이 거지? 얘기해주지. 꼭 해주지. 바로 여기 앉아서 맥주를 하나 더 마시고 그 얘기를 한 마리 개에게 해주지. 그것보다 우선, 너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다.] 개는 코로 바람을 내뿜었다. 마치 '그래, 바로 지금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트라비스는 개의 머리를 잡고는 그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인스타인이야. 지금부터 그렇게 부르는 거야, 이 털보야. 네 이름은 아인스타인이라구.] 4 스트랙은 또 9시 10분에 다시 전화했다. 노라는 첫 번째 전화 벧이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움켜쥐고 앙칼진 말로 그를 쫓아 버리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그녀는 다시 입을 꼭 다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혐오감을 일으킬 정도로 끈끈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내가 보고 싶었지, 예쁜이 아가씨, 응? 내가 그곳에 가길 바라는가? 당신 남자가 되어줄까?]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왜 그에게 나를 그만 괴롭히고 꺼져 버리라고 말할 수 없는 거지? 어쩌면 자신이 그런 말을 못하는 것은 남자가 자기에게 예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싶은 비밀스러운 욕망에서였는지 모른다. 비록 스트랙같이 혐오스러운 별난 작자일지라도 일단 그는 남자이고, 또 그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속삭이는 달콤한 말을 듣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 넌 예쁘지 않아.]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아무 말 없이 있지 말아. 다음 번에 그가 다시 전화를 하면 꺼져 버리라고 해.]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홀을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거울이 있었다. 바이오렛 데본이 하던 대로 노라는 욕실을 제외하고는 아무 곳에도 거울을 걸어 두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 그녀는 자신이 보고 싶었다. 냉정하고 계산적이긴 하지만 스트랙의 아첨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그녀는 전에 본 적이 없는 어떤 좋은 점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렇다. 하룻밤 만에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다는 것은...... 그것은 어리석고 허망한 꿈이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탐탁치 않게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수수함과 고독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스트랙의 그 달갑지 않은 관심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가 지금 위협하고 있는 대로는 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평화로운 이 고독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재확인시키고 싶었다.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전등을 켜면서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좁은 욕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엷은 청색 타일로 되어 있었다. 커다란 욕조가 있고 하얀 자기들과 청동 제품들이 보였다. 커다란 거울은 세월 탓에 줄이 조금 가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스트랙이 아름답고 검고 윤이 난다고 했던 머리카락이다. 그러나 그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아침 머리를 감았지만 그녀 생각엔 자신외 머리카락이 윤이 나거나 기름기가 흐른 적이 없었다. 재빠르게 자신의 눈썹과 광대뼈, 코, 아래턱 윤곽, 입술, 턱들을 살펴보았다. 시험 삼아 손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만지며 훑어갔다. 그러나 남자의 호기심을 끌 만한 곳은 한 군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는 내키지는 않지만 자신의 눈을 보기로 했다. 스트랙이 사랑스럽다고 말한 눈이다. 그러나 그 눈은 황량하고 광택 없는 회색빛 눈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눈을 응시할 수가 없었다. 그 눈 때문에 자신의 외모가 더 떨어져 보였다. 또한 그 눈에서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떤 사무친 분노가 드러나 보였다. 그것은 그녀답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김새에 대한 분노였다. 물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자연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입...... 그녀는 입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낡아서 얼룩이 진 거울에서 몸을 돌리자 실망감이 밀려왔다. 자신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놀랍거나 재평가해볼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녀는 그 실망감에 충격을 입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욕실 입구에 서서 머리를 흔들며 지금까지 어떻게 자신이 이런 얼빠진 생각을 했을까 하고 놀라워했다. 그녀는 스트랙에게 매력 있게 보이고 싶었나? 물론 아니다. 그는 사악하고 병적이고 위험한 남자였다.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가 더 잘 알았다. 아마 다른 남자가 호감을 가지고 그녀를 보았다면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트랙은 아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이렇게 생기도록 만들어 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했다.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매력적이었다면 스트랙은 그가 위협한 말을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이곳으로 와 그녀를 강간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살해할지도 모른다. 그 같은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녀가 과민한 노처녀라서 살인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신문에는 그런 사건들로 꽉차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는 침실로 급히 돌아왔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가져다 놓은 부엌칼이 있었다. 5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 분석을 불행에 대한 치유책으로 믿는다. 그들은 자기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또 자신의 부정적인 기분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대한 이유를 깨닫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 경우는 별개라는 것을 트라비스는 알았다. 오랫동안 그는 충분하게 자기 분석을 해왔다. 그리고 오래 전에 그는 자신이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고독한 사람이 된 이유를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하지 못했다. 자정이 다가오는 지금, 그는 캔 맥주 하나를 더 마시면서 부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에게 자기가 스스로 자초한 감정적인 고립에 대해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마치 그의 이야기에 아주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또 하품도 하지 않고 귀기울이며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난 처음부터 고독한 사람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말이야. 친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난 그냥 혼자 있기를 좋아했어. 그것이 내 천성인 것 같아. 그러니까, 어렸을 땐 내가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그 사람에게 위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트라비스의 어머니는 그를 낳으면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운명에 대한 일종의 예고 같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엄청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나중에 깨달은 것이다. 어렸을 땐 그런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10살 때 그의 형인 해리가 죽었다. 해리는 트라비스보다 2살 위로 그 때 12살이었다. 6윌 어느 월요일 아침 해리는 트라비스에게 세 블럭 떨어져 있는 해변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아이들끼리 수영하러 가는 것을 분명히 금하고 있었지만. 그곳은 구조 대원들이 없는 후미진 곳이었다. 그래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그들 단 둘뿐이었다. [해리가 파도에 휩쓸려간 거야.] 트라비스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우린 서로 3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어. 그런데 그 망할 놈의 파도가 그를 휩쓸고 가서는 삼켜 버렸어. 그런데 난 멀쩡한 거야. 그를 구하려고 파도를 쫓아가기까지 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난 그 파도를 따라 똑바로 헤엄쳐 들어갔어. 그런데 파도는 해리를 데리고 가고 난 다음 곧장 방향을 바꾸었던 모양이야.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물 밖에 나와 있었거든.] 그는 오랫동안 식탁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빨간 호마이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파도 치고 변화 무쌍한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 세상에서 내 형을 가장 사랑했어.] 아인스타인은 동정하듯이 조용히 낑낑거렸다. [해리가 그렇게 되었다고 나를 나무랜 사람온 아무도 없었어. 그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는 거지. 그가 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난...... 그래, 그 파도가 그를 데려갔다면 나 역시 데려가야 했다고 느꼈어.] 밤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허술하게 끼워진 유리창을 흔들어 놓았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트라비스가 말했다. [내가 열네 살 때 난 테니스 여름 캠프에 너무나 가고 싶었어. 그때 난 테니스에 쏙 빠져 있었거든. 그래서 아버지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샌디에고 근처의 한 캠프에 나를 등록시켜 주었어. 아버지가 나를 그곳까지 차로 바래다 주는데, 또 사고가 났지. 오션사이드 북쪽에서 한 트럭 운전수가 졸음 운전을 하다 중앙선을 넘어서 우리 차를 깔아 뭉갠 거야.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 목과 등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깨지고 가슴이 꺼져 버렸어. 난 아버지 옆자리에 있었는데 몇 군데 상처와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진 것을 제외하곤 멀쩡하게 그 차에서 빠져 나왔어.] 개는 그를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때도 해리 때와 똑같았어. 둘 다 죽었어야 하는 거였어. 아버지와 내가 말이야. 그런데 난 살아나왔지. 그리고 내가 그 테니스 캠프에 대해 그처럼 법석을 떨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빌어먹을 여행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요즘에는 테니스 장에 얼씬도 하지 않아.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낳다 돌아가신 것은 내 책임이 아닐지 몰라. 그리고 해리의 죽음도 내 책임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아버지가 죽었을 땐 말아야...... 아무튼, 항상 내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내게 징크스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졌어.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친해지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던 거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들은 너무나 정확하게 죽어 갔어.] 그런 비극은 말하자면 그가 걸어다니는 저주 덩어리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트라비스는 그 때 단지 열네 살된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설명도 그처럼 명쾌하지는 않았다. 그는 너무 어려서 자연과 운명의 무심한 폭력은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로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그 의미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저주를 받았고 자신이 누군가와 아주 친해지면 그건 곧 그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웬지 내성적이었고 혼자서 지내는 것이 너무나 편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스물한 살 때에는 만성적으로 고독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가 성숙해져 자신의 어머니, 형,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보다 건강한 시각을 가지게 되어 더 이상 의식적으로 자신을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자기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친한 친구들 없는 내성적인 사람으로 있었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가꾸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에게 잃을 친구가 없다면 슬픔으로 좌절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습관과 자기 방어 때문에 나는 계속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갔어.] 그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개는 일어나서 부엌 바닥으로 몇 발자국 걸어왔다. 그리고는 그의 다리 사이를 슬며시 파고 들어와 그의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아인스타인을 어루만지며 트라비스는 말했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그때 군 징집이 있었지. 그래서 군(軍)이 날 부르기 전에 자원을 했어. 육군을 선택했지. 특공대 말이야. 그게 좋아 보였어. 글쎄, 동료애 같은 것이 있어서였는지 모르지. 그래서 난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 봐, 난 누구하고도 친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척했지. 하지만 무의식 중에 원했던게 틀림없어. 우정이 안 생길 수 없는 상황 속에 나 자신을 집어 넣은 걸 보면 그래. 군대에서 출세할 생각을 했지. 테러리스트 진압부대인 델타 특공대가 만들어질 때 그곳이 내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었어. 델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의리가 있는 진정한 친구들이었어. 그들은 나를 '벙어리'라고 불렀지. 내가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나도 모르게 친구들을 만들게 되었어. 그리고는 우리 분대가 열한 번째 작전으로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과격 분자들로부터 대사관을 되찾기 위해 아테네로 날아간거야. 그들은 이미 8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죽였고 그때도 한 시간에 한 명씩 죽이고 있었어. 협상은 없었지. 우리는 재빠르고 감쪽같이 그들을 강타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대실패를 했지. 그들은 그곳에 부비 트랩을 장치해 놓았던 거야. 우리 분대의 아홉 명이 모두 다 죽었어. 내가 유일한 생존자였어. 난 허벅지에 총알 한 방을 맞았지. 엉덩이에 파편이 박혔고...... 하지만 난 살아났어.] 아인스타인은 트라비스의 무릎에서 고개를 들었다. 트라비스는 개의 눈에서 동정 어린 표정을 보았다. 아마 그가 그렇게 보려고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게 내가 스물여덟 살 때였으니까 8년 전 얘기야. 육군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어. 아버지가 부동산 업을 했기때문에 난 부동산 자격증을 땄어. 그것 말곤 달리 할 게 없었어. 일은 괜찮게 되었어. 아마도 내가 고객에게 강요하거나 세일즈 맨처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인 모양이야. 그렇게 잘 되주니까 마침내는 브로커가 되었고 내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지. 그리고 영업직원들도 고용했고.] 그것이 그가 파울라를 만나게 된 경위였다. 그녀는 키가 큰 금발 미인에다 똑똑하고 활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동산을 너무 잘 파는 탓에 자신이 전생에 네덜란드 이주자들의 대표로 유리 구슬과 같은 값싼 장신구들로 인디언들에게 맨하탄을 사들였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녀는 트라비스에게 홀딱 반했다. 그녀가 그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다. [미스터 코넬, 전 홀딱 반했어요. 그것은 강하고 과묵한 당신의 행동 때문인 것 같아요. 크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인상이에요.] 그는 처음에는 그녀를 거부했다. 자신이 파올라에게 저주를 내린다고는 믿지 않았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는 덮어놓고 어린 시절의 미신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또다른 상실의 고통을 감수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의 망설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그를 계속 쫓아다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온 그 죽음과의 술래잡기 게임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것은 그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들어봐요.] 파울라는 말했다. [당신이 나의 명복을 빌 일은 없을 거예요. 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 테니까요. 난 내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타입이 아니에요. 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풀어버리죠. 그래서 틀림없이 내가 당신 수명을 한 십 년은 깎아낼 걸요.] 그들은 4년 전에 간단한 법정 결혼식으로 결혼을 했다. 트라비스가 32번째 생일을 지내고 난 여름이었다. 아!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그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땐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암에 걸려 있었어. 열달 후에 그녀는 죽었지.] 개가 다시 머리를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동안 트라비스는 계속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맥주를 조금 마셨다. 그리고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 후에 그는 말했다. [그리고나서 난 평소 때처럼 살아가려고 애썼어. 항상 열심히 살아가고 무엇이든 감연히 맞서고 언제나 기운을 잃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지. 하지만 모두 다 쓸데없는 것들이었어. 일년 더 부동산을 게속했지만 그것이 전혀 의미가 없어졌어. 그래서 2년 전에 팔아 버렸어. 그리고 내가 투자한 것들도 모두 현금으로 바꾸었어. 그리고 그걸 모두 은행에 집어넣었지. 그리고 이 집을 빌린 거야. 그럭저럭 2년이 지났어. 수심에 잠겨서 말이야. 그리고 난 미쳐 갔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지, 안 그래? 정말 지독하게 미쳐 갔어. 완전히 미쳐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믿고 있었던 사실로 되돌아간 거였어. 나와 가까워진 사람에게는 내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 말이야. 하지만 아인스타인, 네가 날 변화시켰어. 분명히 넌 나에게 삶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온 것 같아. 그리고 오직 바보만이 스스로 인생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도 알려 주려고 말이야.] 개는 다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맥주 캔을 들었다. 그러나 빈 것이었다. 아인스타인이 냉장고로 가서 캔을 하나 더 가지고 왔다. 그는 개에게 맥주를 건네 받으면서 말했다. [이제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어때? 그래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안전한 것 같니?] 아인스타인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건 예스라는 뜻?] 아인스타인이 옆으로 굴러 네 다리를 허공으로 들어올리고는 전에 트라비스가 목걸이를 채울 때 했던 것처럼 배를 드러내 보였다. 트라비스는 맥주를 옆으로 치우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개의 배를 어루만져 주었다. [좋아.] 그는 말했다. [좋아, 하지만 나 있는 데서 죽지는 마. 빌어먹을! 굳이 나 있는 데서 죽지는 말라구.] 6 노란 데본의 전화기가 밤 11시에 다시 울렸다. 스트랙이었다. [지금 침대 속에 있는가? 예쁜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함께 있기를 원하나?] 바로 전에 전화가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녀는 그를 어떻게 다룰까를 생각하다가 몇 가지 위협적인 말들을 생각해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면 경찰에 알릴 거예요.] [노라, 알몸으로 자고 있나?] 그녀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긴장하여 뻣뻣해진 몸으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경찰서에 가서 당신이 날 거...... 겁탈하려고 한다고 말할 거예요. 진짜예요. 분명히 말할 거예요.] [난 당신의 알몸이 보고 싶어.]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난 거짓말을 할 거예요. 당신이 나를 강간하려고 한다고요.] [당신 가슴을 매만지고 싶은데...... 싫은가? 노라.] 배 속에서 무딘 경련이 일어나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전화를 도청하도록 전화 회사에 부탁해서 당신 전화를 녹음해 놓도록 할 거예요. 그러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요.] [당신 몸에 키스해줄까? 노라. 근사하지 않겠어?] 경련이 더욱 심해졌다. 또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 위협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자꾸만 갈라졌다. [난 총을 가지고 있어요. 총 말예요.] [오늘 밤 당신은 내 꿈을 꿀 거야. 분명히 그럴 거야. 내가 당신 구석구석에, 그 아름다운 온 몸에 키스하는 꿈을 꿀 거야.] 그녀는 수화기를 쾅하고 내려놓았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 누워 등을 구부린 채 무릎을 끌어당겨서 자신을 감싸 안았다. 그 경련은 무슨 육체적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감정적인 반응이며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와 엄청난 불만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점차 고통이 사라져 갔다. 두려움도 가라앉아 오직 분노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한심할 정도로 세상과 그것을 사는 방식을 몰랐고 또 사람 다루는 것이 너무나 어설퍼서 이 집과 같이 사람 접촉이 없는 은밀한 세계 속에 자신을 묶어놓아야만 뭔가 하고 싶은 일을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인 교재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녀는 부동산을 처리하기 위해서 지금은 자신의 변호사가 되었지만, 전에는 바이오렛 이모의 고문 변호사였던 가리슨 딜워스와 만났을 때도 점잖게 대화조차 하질 못했다. 그녀는 가능한 한 가장 간단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눈을 아래로 내리고 무릎 위에 있는 손을 어찌해야될지 몰라 시종 수줍어하며 앉아 있었다.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녀가 가리슨 딜워스 같은 점잖은 사람을 다를 수 없다면 어떻게 아트 스트랙 같은 짐승을 다룰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집안에 무엇이 고장나든 수리공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녀는 망가지고 상해 가는 것들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다음에 오는 사람도 스트랙 같은 사람이거나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모가 만들어 놓은 관례대로 식료품들은 동네 수퍼에서 배달해 주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게에도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배달 소년마저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판국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에게서 전혀 공격적이거나 외설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도 스트랙처럼 나올지 모른다. 그녀는 바이오렛 이모가 미웠다. 그러나 바이오렛이 옳았다. 노라는 생쥐였다. 모든 생쥐들같이 그녀의 운명은 도망가고 숨으며 어둠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경련이 멎자 분노심도 줄어들었다. 분노 대신 고독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그녀는 침대 맡에 일어나 앉아서 크리넥스로 빨개진 눈을 눌러 닦고는 코를 풀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제부터는 숨어 살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어떻게든 용기를 내서 세상에 과감히 뛰어들 각오를 했다. 사람들도 만날 것이다. 바이오렛이 다소 회피해온 이웃들도 사귈 것이다. 친구도 만들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스트랙이 그녀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대처할 것이다. 또한 다른 부수적인 문제들도 그 처리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녀는 지금과는 딴판인 다른 여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녀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신성한 맹세였다. 그녀는 전화기 코드를 뽑아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급히 전화 쓸 일이 생길지 모른다. 자다가 집에 누군가가 들어오기라도 했을 때 재빨리 전화 프러그를 꽂을 수 없게 되면 안되니까. 그녀는 자물쇠가 없는 침실 문을 닫고 안락 의자를 문 밑으로 끌고가 그곳에 받쳐 놓고는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침대에 누워 나이트 스탠드 위에 올려 놓은 부엌칼을 만져보았다. 더듬거리지 않고도 곧바로 그것을 집을 수 있게 되자 안심했다. 노라는 똑바로 누워서 눈을 뜬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엷은 호박색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왔다. 천장은 검은색과 빛바랜 황금색으로 줄무늬가 드리워져 있어서 마치 몸이 한 없이 긴호랑이가 아주 높이 뛰어 올라 침대로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또한 저기 밖에 있는 보다 큰 세상에서 자신을 보살펴 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들어가기로 맹세한 그 큰 바깥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생쥐를 사랑해 주고 부드럽게 다루어 줄 사람이 누구없을까? 멀리서 기적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그것은 공허하고 차갑고 우울한 소리였다. 7 빈스 나스코는 이렇게 바빠본 적이 없었다. 또 이렇게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야르벡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려고 로스앤젤레스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또 다른 공중 전화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뉴포트港의 발보아島에 있는 한 식료품 가게와 횟집 사이에 있는 공중 전화였다. 거기에서 그는 섹시하고 목소리가 허스키한 그러면서도 아직 앳되게 들리는 소녀 목소리의 연락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죄가 될 만한 단어는 전혀 쓰지 않고 이국적인 완곡어들을 동원하여 용의 주도하게 살인을 주문했다. 그녀 또한 길가에 있는 다른 공중 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둘 다 도청당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굳이 모험을 하지 않는 곳이 바로 대부(代父)세계였다. 그녀는 그에게 세 번째 일을 맡겼다. 하루에 세 번씩이나. 빈스가 저녁 퇴근 차량들이 그 좁은 섬 도로로 조금씩 밀려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여인은 라구나 해변에 있는 알버트 허드스톤 박사의 집 주소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허드스톤은 부인과 16살 된 아들 하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허드스톤 부부 둘 다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운명은 빈스가 하기 나름이었다. 그 아이가 그 집에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이가 빈스를 보고 살인의 증인이 되면 제거해야 되는 건 분명했다. [당신 재량껏 하시오.] 그 여인이 말했다. 빈스는 벌써 그 아이를 없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인 대상자가 어릴수록 그의 원기를 북돋우는 데 더 좋았다. 그가 정말 어린 아이를 없애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그를 정말 흥분시켰다. [난 다만 이번 일도 빨리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만 강조할 수 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이 거래가 오늘 밤까지 결정나기를 원해요. 내일은 경쟁사가 활개치려고 할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방해할 겁니다.] 그녀가 말했다. 빈스는 그 '경쟁사'라는 것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하루만에 세 명의 박사를 죽이고 보수를 받고 있었다. 박사들, 전에는 박사들을 죽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끼리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위더비를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하고 또 자신의 침실에서 해머로 맞아 죽은 엘리자베스 야르벡을 발견했을 때 추론해 낼 수 있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빈스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는 자신이 죽이는 사람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고 또 전혀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해야 더 안전했다. 그러나 경찰은 위더비와 야르벡과 허드스톤을 연관지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밤 빈스가 허드스톤에게 안 가면 내일은 경찰이 그 사람을 철저히 보호할 것이다. 빈스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방법은 오늘 낮에 한 것과 똑같이 해 일관성 있게 하길 바라시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서 그들을 집안에 가두고 허드스톤의 집을 몽땅 태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요. 일관성 있게 하길 원해요.] 그녀가 말했다. [다른 건들과 똑같이 말이오. 우린 그들이 이 모든 일들을 우리가 다 했다는 것을 알기 원해요.] [알았소.]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시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웃었다. [철저히 몰아세워야 해요.] 빈스는 전화를 끊고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갔다. 그는 야채 스프와 햄버거, 프라이, 양파 링, 양배추 샐러드, 아이스 크림이 있는 초콜릿 케이크, 그리고 애플 파이를 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 다섯 잔으로 이 모든 것을 씻어냈다. 그는 평소에도 아주 대식가였다. 그러나 일을 끝낸 후면 더욱 식욕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사실 그가 파이를 마지막으로 다 먹어치웠을 때도 배가 차지않았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바쁜 하루만에 그는 데이비스 위더비와 야르벡 부부의 생명의 원기를 흡수했다. 그는 과잉 충전된 경주용 엔진이었다. 그의 신진대사는 최고의 속도를 냈고 그러므로 연료도 그만큼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몸이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여분의 생명 원기를 생물학적 배터리에 저장시킬 때까지말이다. 희생자들의 바로 그 생명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그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하는 그만의 재능이었다. 그 재능 때문에 그는 항상 강하고 생기있고 민첩할 것이다. 그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는 그 굉장한 자기 재능의 비밀을 그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인이나 다른 고용인들에게 누설한 적이 없었다. 그 같은 놀라운 재능을 진지하게 여겨줄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개방적인 사람은 드물었다. 빈스는 그것을 혼자서만 간직했다. 그들이 들으면 그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레스토랑을 나와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상쾌한 바다 바람을 쐬며 잠시 동안 길가에 서 있었다. 쌀쌀한 밤 바람이 길을 따라 종이 조각들과 자줏빛 자카랜다 꽃잎들을 휘날리고 있었다. 빈스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는 자신에게 바다나 바람처럼 원초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발보아島에서 남쪽으로 라구나 해변까지 그는 자를 몰고 갔다. 11시20분에 그는 허드스톤 집 건너편 길에 자신의 밴을 세워 놓았다. 그 집은 언덕 위에 있는 단층 집으로 바다 경치가 잘 보이도록 가파른 경사에 매달리듯 지어져 있었다. 그는 창문 두 군데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앞좌석 사이를 통해 뒷자리로 가서 허드스톤 가족 모두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다렸다. 야르벡의 집에서 나온 후 바로 그는 청색 양복을 벗어 버리고 헐렁한 회색 바지와 하얀 셔츠, 고동색 스웨터, 그리고 검은 청색 나이론 자켓으로 갈아 입었다. 이제 어둠 속에서 그는 마분지 박스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는 일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그 박스 안에 있는 무기들은 빵 2덩어리와 화장지 4개, 그리고 기타 생활용품들 밑에 숨겨져 있어서 누가 열어 보아도 그가 막 시장에 다녀온 줄로 알게 되어 있었다. 월더 P-38에는 실탄이 완전히 장착돼 있었다. 야르벡의 집에서 일을 끝내고 난 후 그는 새로운 소음기를 총신에 달았다. 이것은 하이 테크 혁명 덕분에 길이가 구형의 반밖에 안 되는 신형 소음기였다. 그는 그 총을 옆으로 치워 놓았다. 그는 날이 6인치나 튀어나오는 나이프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오른 쪽 바지 앞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또 목을 조를 철사줄을 둘둘 감아서 자켓 왼 쪽 안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는 납알을 넣어 무겁게 만든 짧은 곤봉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오른 쪽 바깥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는 총 외에는 아무 것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모든 돌발 사태에 대비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때는 자동 발사를 위해 불법적으로 변조시킨 Uzi 소형 경기관총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과제는 그리 중무장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간단한 밤도둑용 연장이 들어 있는 면도통 반만한 크기의 가죽 주머니도 가지고 있었다. 그 도구들은 애써 점검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이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집 안 보안에 느슨해서 밤에도 문이나 창문을 잠그지 않은 채 놓아둔다. 마치 자신들이 19세기 퀘이커 교도들의 마을에 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11시 40분에 그는 앞좌석 사이로 몸을 내밀고 옆차창을 통해 허드스톤 집을 살펴보았다. 불이 다 꺼졌다. 그래, 그들이 잠자리에 든 것이었다. 그들이 잠들 시간을 주기 위해 그는 다시 밴 뒷자리에 앉아 미스터 굿바를 먹으며 자신이 바로 오늘 아침부터 벌어들인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는 동력 스키를 갖고 싶었다. 보트 없이도 수상 스키를 할 수 있게 만든 교묘한 기계였다. 그는 바다 애호가였다. 바다의 무엇인가가 그를 끌어들였다. 그는 자신이 파도치는 거대한 검은 바닷물과 하나가 되어 움직일 때 가장 생기가 충만해짐을 느꼈고 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스쿠버 다이빙과 윈드 서핑, 그리고 파도타기 등을 즐겼다. 그의 십대 시절은 학교에서보다 해변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파도가 높게 밀려오면 지금도 가끔 파도타기를 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고 파도타기는 그에게 따분한 것이 되었다. 그 전처럼 쉽게 스릴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스피드가 더 좋았다. 그는 동력 스키를 타고 검붉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바람에 맞서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한없이 부딪치면서 카우보이가 야생마를 타듯 태평양을 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12시 15분에 그는 밴에서 내렸다. 권총을 허리춤에 쑤셔 넣고 인적이 없는 적막한 거리를 가로질러 허드스톤 집으로 건너갔다. 그는 잠기지 않은 나무 대문을 열고 옆 뜰로 들어갔다. 거대한 해홍두의 잎 많은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연한 가죽 장갑을 끼었다. 안뜰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유리문이 달빛에 반사돼 어렴풋하게 빛이 났다. 밤도둑용 연장 주머니에서 꺼낸 만년필형 후레시로 문이 맘대로 열리지 않도록 문 안쪽 레일에 설치해 놓은 나무 폴대를 찾을 수 있었다. 허드스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보안 의식이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빈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유리에 조그마한 빨판 컵을 부착시키고는 다이아몬드 카터를 이용해 문 손잡이 근처를 원을 그려 잘랐다. 그리고는 그 구멍을 통해 빗장을 풀었다. 그리고 문지방 근처에 또 다른 원을 그리고 잘라 안으로 손을 넣어 레일에서 나무폴대를 치우고 드리워진 커튼 아래로 밀어냈다. 개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그 섹시한 목소리의 아가씨가 허드스튼은 애완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의 정보는 항상 폭넓고 정확했기 때문에 그는 이 특별한 고용인들을 위해 일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문을 느슨하게 해놓고 그것을 열고 들어가 그 닫혀진 커튼사이를 통해 어두운 거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귀 기울이며 그 어둠에 눈을 조정하고 있었다. 집안은 무덤처럼 조용했다. 그는 우선 아들의 방을 찾았다. 디지탈 라디오 시계에서 깜박이는 초록색 숫자 때문에 방안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십대 아이는 가볍게 코를 골며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16살, 아주 어리다. 빈스는 아주 어린 그들을 좋아했다. 그는 웅크리고 침대 주위를 맴들며 자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을 맞대고 보았다. 그는 이빨로 왼손에서 장갑을 물어 벗었다.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쥐고 아이의 아래턱에 총구를 댔다. 아이는 즉시 깼다. 빈스는 장갑을 벗은 왼 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세게 찰싹 때리며 동시에 권총을 발사했다. 총알이 그 아이의 부드러운 턱 아래를 뚫고 입천장을 통해 뇌 속에 박혀 아이를 즉사하게 했다. 으으으윽 강하게 충전되어 있던 생명의 원기가 그 죽은 시체에서 터져 나와 빈스에게 들어갔다. 그것은 너무 순수하고 생기에 찬 원기라서 그는 그 힘이 자기 몸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기쁨에 넘쳐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그는 침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동 중이다. 숨을 죽인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그는 그 죽은 아이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내가 다 받았다, 고맙다, 내가 받았다.] 그는 고양이같이 민첩하고 소리 없이 그 방에서 나와 재빠르게 안방을 찾았다. 초록색 숫자로 껌벅이는 또 다른 디지탈 시계와 열린 욕실 문을 통해 나오는 야간 등의 부드러운 빛으로 방 안은 충분히 보였다. 허드스톤 부부는 둘 다 잠을 자고 있었다. 빈스는 여자를 먼저 죽였다. 으으으윽. 그녀의 남편을 깨우지도 않고. 그녀는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희생물을 받고난 후 머리를 그녀의 가슴 위에 얹고는 그 심장의 고요함에 귀기울였다. 그는 그녀의 젖꼭지에 키스하고 중얼거렸다. [고맙소.] 그는 침대를 한 바퀴 돌아 나이트 스탠드 램프를 켜고 허드스톤박사를 깨웠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며 정신이 없었다. 촛점 없이 떠 있는 자기 아내의 눈을 보자 비로소 그는 고함치며 빈스의 팔을 움켜쥐었다. 빈스는 총 개머리로 그의 머리를 두번 갈겼다. 빈스는 역시 알몸으로 자다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은 허드스톤을 욕실로 끌고 갔다. 다시 그는 접착 테이프를 찾아내어 박사의 팔목과 발목을 움직이지 못하게 꽁꽁 묶어 붙였다. 그는 차가운 물을 욕조에 채우고 허드스톤을 들어 그 안에 집어넣었다. 싸늘한 냉기 때문에 박사는 다시 의식을 찾았다. 벗은 채 묵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드스톤은 그 차가운 물에서 빠져 나와 빈스에게 덤비려고 했다. 빈스는 권총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치고는 그를 다시 욕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당신 누구요? 무엇을 원하이요?] 허드스톤은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오자 재빨리 말했다. [난 당신 부인과 아들을 죽였소. 그리고 당신도 죽일 거요.] 허드스톤의 눈이 그의 창백하고 축축한 얼굴 속으로 도로 잠기는 것 같았다. [지미? 오! 지미는 안돼. 정말 안돼.] [당신 아들은 죽었소.] 빈스가 말했다. [내가 그 아이 턱주가리를 날려보냈지.] 그의 아들에 대한 말에 허드스톤은 힘을 잃었다. 그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그런 극적인 행동은 전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죽어갔다. 껌벅이며 정말 갑작스럽게 꺼져갔다. 전등이 꺼지듯이. 그는 빈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더 이상의 분노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빈스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쉽게 죽느냐 아니면 어렵게 죽느냐 이 두가지 중에 하나야. 당신이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해 주면 당신을 쉽게 죽여주고 고집을 부리면 다섯 시간내지 여섯 시간에 걸쳐 죽일 수 있어.] 허드스톤 박사가 그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로 흘러내린 붉은 피줄기를 제외하면 그의 피부는 아주 하얗고 또 깊은 바다의 심연에서 영원히 헤엄치며 사는 생물들처럼 병적으로 창백했다. 빈스는 이 자가 긴장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이 데이비스 위더비와 엘리자베스 야르벡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점이 무어냐 하는 거야.] 허드스톤은 눈을 껌벅이며 빈스를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있었고 가볍게 떨었다. [데이비스와 엘리자베스?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당신, 그들을 알고 있지?] 허드스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나? 같은 학교를 나왔나? 아니면 같은 동네에서 함께 살았나?] 허드스톤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우리..... 우리는 바노디네에서 함께 일했다.] [바노디네라니?] [바노디네 연구소.] [그게 어디에 있는 거지?] [여기 오렌지 카운티에.] 허드스톤은 말했다. 그는 아르비네市의 어느 한 장소를 말했다. [그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나?] [연구. 하지만 난 10달 전에 떠났어. 위더비와 야르벡은 여전히 거기서 일하지. 하지만 난 아니야.] [어떤 종류의 연구?] 빈스가 물었다. 허드스톤은 망설였다. 빈스가 말했다. [재빨리 그리고 고통 없이 할까, 아니면 힘들고 지저분하게 할까?] 박사는 자신이 바노디네에서 관여했던 그 연구에 대해서 말했다. 프랑시스 프로젝트, 실험, 개. 그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빈스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허드스톤에게 서너 번 반복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도록 했다. 그는 모든 걸 다 쥐어짰다고 생각하자 허드스톤의 얼굴에 총을 쏘았다. 정면 사격으로 그가 약속했던 대로 순간적인 죽음이었다. 으으으윽 빈스는 밴으로 들아와 어둠이 드리워진 라구나 힐 아래로 차를 몰며 자신이 저지른 그 위험스러운 행위를 생각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살해 대상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나 그의 고용인들에게 가장 안전했다. 평상시에는 그 불쌍한 얼간이들이 스스로 큰 불행을 자초하기까지 무엇을 하던 인종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마음이 슬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세 명의 박사들과 그 가족들을 죽이고 보수를 받았다. 방금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도 의학 박사들이 아니라 과학자들로서 그들 모두가 훌륭한 시민들이었다. 특이한 일이다. 내일 신문들은 다른 뉴스를 실을 여백이 없을 것이다. 아주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게 일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좋은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고 또 그가 혼자서 다 셀 수도 없는 큰 돈을 손에 쥐게 될 기회를 얻을지도 모를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가 허드스톤에게 캐물어 낸 그 금지된 지식을 팔면 큰 돈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것을 사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현재 그의 고용인들이, 그러니까 L.A.에 있는 그 섹시한 목소리의 아가씨와 남자들이 그가 그 업계의 가장 기본적인 룰을 깼다는 걸 알면, 다시 말하면 그가 자신의 희생물을 없애기 전에 심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빈스를 놓고 다시 청부 살인을 계획할 것이다.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죽는다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안에 너무나 많은 생명을 저장해 놓았다. 열 개도 넘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굳게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영원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 앞으로 더 몇 사람의 생명을 흡수해야 하는지 그건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가끔은 자신이 이미 천하 무적의 영원한 생명을 성취한 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직도 여전히 취약하고 자신이 바라던 그 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생명의 원기를 섭취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올림프스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확신하게 될 때까지는 약간의 조심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바노디네. 프랑시스 프로젝트. 허드스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위험 정도는 감수할 만했고 그 정보에 대한 확실한 구매자만 발견하면 엄청난 대가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는 것이다. 8 웨스 달베르그는 오렌지 카운티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홀리 짐캐년 상단부에 돌로 된 오두막에서 혼자 10년 동안 살아왔다.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불빛은 가스 랜턴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역시 하나밖에 없는 상수도는 싱크대에 있는 수동식 펌프에서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화장실은 그 오두막 뒤편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옥외 변소로 하늘의 별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웨스는 42세였으나 더 늙어보였다. 그의 얼굴은 바람에 거칠어져 있었고 피부는 햇볕에 벗겨져 있었다. 구레나룻은 아주 많았으나 턱수염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비록 그는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였지만 몸은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나 같았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건강한 것은 자연과 가까이 접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5월 18일 목요일 밤, 쉬익 소리가 나는 가스 랜턴의 은백색 불빛에 의지해 그는 새벽 한 시까지 식탁에 앉아서 집에서 만든 자두술을 옆에 놓고 존 D.맥도날드의 멕기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는 자기 말대로 현대 사회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시대를 잘못 만난 반사회적인 심술궂은 구두쇠'였다. 그러나 맥기를 읽는 것은 좋아했다. 맥기는 너절하고 불쾌한 저 바깥 세상에 섞여 살면서도 잔인한 세태에 전혀 휘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웨스는 한 시까지 그 책을 다 읽고 벽난로에 나무를 더 집어 넣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달빛을 받아 땅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랑거리는 윤기나는 잎들의 표면들이 희미한 달빛에 반사되어 흐릿하게 빛났다. 코요테들이 토끼나 다른 삭은 동물들을 쫓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장작더미들은 오두막 북쪽에 만들어진 간이 창고에 야적되어 있었다. 그 창고 문의 빗장을 잡아 뺐다. 그는 그 창고 속에 장작들이 어떻게 쌓여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두워도 투박한 양철통에 여남은 개의 장작을 잘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그 양철통을 들고 밖으로 나와 땅에 내려놓고 문을 닫으려고 돌아섰다. 그는 코요테들과 풀벌레들이 모두 조용해진 것을 알았다. 오직 바람 소리만 들렸다. 얼굴을 찌푸리며 그 오두막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숲 속을 쳐다보았다. 무엇인가가 으르렁거렸다. 웨스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숲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달빛이 비치는데도 웬지 한 달 전보다 덜 밝은 것 같았다. 그 으르렁 소리는 깊고도 분노에 차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이 곳에서 십년 동안 밤에 들어왔던 것과는 달랐다. 그는 간이 창고 문을 다 닫고는 빗장을 걸고 장작이 꽉찬 양철통을 집어들었다. 다시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발 밑으로 마른 덤불과 이파리들이 바삭박삭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판단컨대 그것은 약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옥외 변소 바로 서쪽이다. 바로 뒤 숲 속이었다. 그것은 다시 으르렁거렸고 이번에는 더 크게 들렸다. 더 가깝게도 들렸다. 이제 20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 소리를 내는 짐승을 볼 수 없었다. 더욱 쓸쓸해 뵈는 달은 엷으면서도 가는 구름 띠 뒤에 계속 숨어 있었다. 목젖을 울리는 굵은 소리지만 울부짖는 그 으르렁거림을 듣고는 웨스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홀리 짐에 10년 동안 거주하면서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느꼈다. 양철통을 들고는 그는 재빨리 오두막 뒤 부엌문 쪽으로 향했다. 흩어지는 덤불의 살랑거림 소리가 더 커졌다. 숲 속의 그 짐승이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그것은 뛰어오고 있었다. 웨스도 뛰었다. 그 으르렁 소리가 높아져 사납고 악의에 찬 소리로 변했다. 한편 개 같기도 하고 또 돼지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코요테, 아니 사람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그 모든 소리가 합쳐져 나는 그 무엇인 것 같기도 한 등골이 오싹해지는 혼합 소리였다. 그것이 거의 그의 발뒤꿈치까지 왔다. 그는 오두막 귀퉁이를 돌아 뛰며 양철통을 빙 돌려 그 짐승이 있음직한 곳을 향해 내동댕이쳤다. 장작들이 공중으로 흐트러지면서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그 금속 양철통이 뎅그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으르렁거림 소리는 더 가깝고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이 빗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서들러 뒷걸음질쳐 부엌문을 당겨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는 빗장을 끼웠다. 그가 이 계곡의 평화스러움에 익숙해진 이후로 9년 동안 사용해본 일이 없는 보안 장치였다. 그는 오두막 안을 가로질러 현관 문으로 가 그 문도 빗장을 걸었다. 그는 자신을 압도했던 그 강렬한 두려움에 놀랐다. 어쩌면 언젠가 한번 산중에서 내려온 적이 있는 미친 곰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사나운 짐승이라 할지라도 문을 열고 그를 쫓아 오두막안까지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다. 자물쇠를 잠글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아주 훌륭한 야외 생활인으로서 본능이 요구하는 행동이 비이성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이제 그는 안전했다. 어떠한 짐승도 문을 열 수 없다. 분명히 곰은 열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곰 같았다. 그러나 그 소리로는 곰 같지 않았다. 그것이 웨스 달베르그를 그토록 겁먹게 만든 것이었다. 그것은 이 숲 속을 배회하는 어느 동물의 소리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웃이나 다름없는 동물들에 익숙했고 그들이 내는 울부짖는 소리나 기타 소리들을 다 알았다. 벽난로 때문에 거실에는 빛이 있었다. 그래도 구석은 여전히 어두웠다. 벽난로에서 움직이는 불꽃이 온 벽에 비치어 춤추고 있었다. 처음으로 웨스는 전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가게에서 사오는 양식거리로는 부족해서 그걸 보충하기 위해 작은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12구경 레밍톤 엽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부엌 선반 위에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내려 총알을 장전할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일단 문을 걸어 잠그고 안전하게 있게되자 자신이 그렇게 공포에 떨었던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젠장, 풋내기같이 말이야. 들쥐를 보고는 소리 지르는 뚱보 촌뜨기같이 말이야. 대개는 그가 그냥 소리 지르며 손뼉을 치면 숲 속에 있는 것들은 다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 자신의 행동이 아무리 본능에 따른 것이라지만 그는 만만치 않은 계곡 거주자로서의 자기 이미지에 맞는 처신을 하지 못했다. 총이 썩 긴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지금,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의 자존심은 상당히 많이 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은 그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총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 웨스는 과감하게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갔다. 이 창문은 20년 전 이 오두막을 임대해 살던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구조변경이었다. 낡고 좁고 칸이 많은 유리창을 떼어내고 그 자리를 좀더 크게 깍아내고 커다란 한 장짜리 통유리로 된 창을 설치해 앞에 있는 숲 속 경치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달빛에 비친 몇 점의 구름이 밤 하늘의 순한 검정색 속에서 청백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이 앞뜰을 얼룩지게 비치고 있었고, 웨스의 지프차 창문과 후드, 그리고 앞 유리창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또 주위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의 어슴프레한 모습들을 대충 비추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풍에 조용히 움직이는 몇 개의 나뭇가지들 외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몇 분 동안 산림 지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바깥은 평범했고 특이한 물체나 소리가 없어서 그는 그 짐승이 떠나가 버렸다고 생각했다. 상당한 안도감과 함께 당혹감이 다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창문에서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지프차 근처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을 힐끔 보았다. 그는 실눈을 뜨고 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몇 분 더 경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상상으로 그 움직임을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막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다시 보았다. 무엇인가가 지프차 뒤에서 나왔다. 그는 창문 쪽으로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무엇인가가 뜰을 가로질러 아주 빠르고 낮게 그 오두막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달빛은 그 적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신비롭고 더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휙 소리를 내며 그 오두막으로 오고 있었다. 오! 세상에! 갑자기 그 짐승은 공중에서 나타났다. 이상하게 생긴 것이 어둠을 뚫고 그에게 똑바로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웨스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짐승은 그 큰 유리창을 박살을 내며 들어왔고 웨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 소리는 금방 그쳤다. 9 트라비스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캔 맥주 3개면 불면증을 확실하게 쫓기에 충분했다. 그는 머리를 베개에 댄지 몇 초만에 잠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서커스의 공연 주임이 되어있는 꿈을 꾸었다. 그 서커스에서 연기하는 모든 동물들은 모두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쇼가 끝날 때마다 매번 그는 울로 그 동물들을 방문했다. 그 때마다 그 동물들이 그에게 놀랄 만한 비밀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다음 울로 가서 다른 비밀을 듣자마자 앞에서 들은 비밀은 다 잊어버렸다. 새벽 4시에 그는 깨었고 그때 아인스타인이 침실 창문에 있는 것을 보았다. 개는 앞발을 창문 턱에 걸치고 잔뜩 경계를 하며 어둠이 내린 바깥을 내다 보고 있었다. 달빛이 그런 그 개의 얼굴을 잔잔히 비추고 있었다. [뭐가 잘못됐니? 얘야!] 트라비스가 물었다. 아인스타인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관심을 달빛에 씻긴 밤으로 돌렸다. 그는 조용히 낑낑거리며 자신의 귀를 약간 치켜올렸다. [누가 밖에 있니?] 트라비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청바지를 입으며 물었다. 개가 네 발로 내려서서는 급하게 침실을 빠져 나갔다. 트라비스는 개가 어두운 거실의 또 다른 유리창에서 그 쪽으로 내린 어둠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개 곁에 웅크리고는 넓고 부드러운 등에 손을 얹고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응?] 아인스타인은 주둥이를 유리에 대고 누르며 초조하게 힘없이 울었다. 트라비스는 앞 정원에서나 길거리에서 위협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가 말했다. [오늘 아침 숲 속에서 너를 추적해온 그놈을 걱정하고 있는 거니?] 개는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그 숲 속에 있었던 그놈은 무엇이야?] 트라비스는 궁금했다. 아인스타인은 다시 낑낑거리며 몸을 떨었다. 산타안나산 기슭에서 그 사냥개가 보인 적나라한 두려움과 또 괴이한 어떤 짐승이 그들에게 접근해온다는 불길한 그 때 기분을 떠올리자 트라비스도 온 몸에 전율이 생겼다. 그는 밤이 드리워진 바깥을 내다보았다. 검은 야자수 잎의 뾰족한 모양들이 가까이에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노란색 불빛 속으로 빠져나왔다. 변덕스러운 바람이 보도를 따라 먼지와 이파리들과 쓰레기들을 공중으로 띄웠다가 내동댕이치고는 잠시 잠잠하더니 다시 또 불어왔다. 나방 한마리가 트라비스와 아인스타인의 얼굴 앞에 있는 유리창에 가볍게 부딪혔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반사된 것을 불꽃으로 오인한 것이 분명했다. [그놈이 아직도 너를 쫓고 있다고 생각하고 걱정하는 거니?] 그가 물었다. 개는 한번 조용히 낮게 으르렁거렸다. [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트라비스가 말했다. [우리가 북쪽으로 얼마나 멀리 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우리는 차를 타고 왔어. 하지만 그놈은 맨발로 쫓아와야 했을 거야. 그렇게 우리를 쫓아올 수는 없었을 거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놈은 우리 뒤에 멀리 있어, 아인스타인. 오렌지 카운티에서도 한참 아래에 있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알 길이 없잖아. 더 이상 그놈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알겠지?] 아인스타인은 그에게 코를 비벼대며 트라비스의 손을 핥았다. 마치 다시 안심하고는 감사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다시 창문밖을 내다보고는 겨우 들릴 정도의 낑낑 소리를 냈다. 트라비스는 그를 달래 침실로 돌아와야 했다. 개는 침대로 올라와 자기 주인 곁에 눕고 싶어했다. 그리고 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트라비스는 거부하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그 방갈로의 처마 끝에서 윙윙 울어댔다. 이따금 집이 삐걱거렸다. 그것은 한밤중에 일상적으로 들리는 소리들이었다. 가르릉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타이어 소리를 내며 승용차 한대가 옆 도로를 지나갔다. 그날 있었던 일로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지쳐서 트라비스는 곧 다시 잠에 떨어졌다. 새벽이 가까와서야 그는 반쯤 깨었고, 아인스타인이 망을 보며 다시 침실 유리창 옆에 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중얼거리듯 사냥개의 이름을 부르며 힘들게 매트리스를 두드렸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여전히 바깥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트라비스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4 장 1 노라 데본은 아트 스트랙과의 실랑이가 있고 난 다음날 긴 산책을 나갔다.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시내의 다른 곳들을 알아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바이오렛과 함께 짧은 산책을 하곤 했었다. 그 노파가 죽은 후에 횟수가 줄긴 했어도 그녀는 여전히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집에서 감히 예닐곱 블럭 이상 멀리 나간 적이 없었다. 오늘 그녀는 훨씬 더 멀리 나갈 생각을 했다. 그것이 자유와 자존심을 향한 긴 여정으로 가는 첫 번째 작은 조치인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 그녀는 산책 도중에 아무 곳이나 어느 레스토랑에 둘러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할 생각을 해보았다. 웨이터를 대하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식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그래서 대신 자그마한 종이 봉지에 사과 하나, 오렌지 하나, 오트밀 쿠키 한 봉지를 넣고 쌌다. 그녀는 공원 어느 곳에서 혼자 점심을 할 생각을 했다. 사실 그것조차도 혁명적인 것이다. 한번에 하나씩 작은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이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었다. 그리고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나무들은 봄을 맞이해 싱싱한 녹음으로 산뜻해 보였다. 그리고 뜨거운 햇볕을 식힐 정도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노라는 잘 가꾸어진 집들을 지나치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며 새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문들과 창문들을 쳐다보았다. 그 집들의 대부분이 스페인 건축 양식들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행복할까? 슬플까? 사랑할까? 그들은 어떤 음악과 책을 즐길까? 무슨 음식을 먹을까? 그들은 이국적인 장소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하고 있을까? 저녁 때 극장에는 갈까? 나이트 크럽 같은 곳에 갈까? 전에는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이 결코 서로 교차하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 궁금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는 다른 행인들과 마주치게 되면 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얼굴을 들렸다. 그러나 한참 후에 그녀는 용기를 내 몇몇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며 인사를 해올 때 그녀는 놀랐다. 얼만큼 지나자 자신이 그들의 인사에 답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훨씬 더 놀랐다. 그녀는 카운티 소재 법원에서 잠시 멈추고는 벽을 타고 올라가 키 큰 유리창 위의 잘 꾸며진 창살 사이를 감아돈 빨간 나팔꽃과 노란 유카 꽃잎들을 올려다 보았다. 1815년에 지어진 산타바바라 미션 교회 앞에서는 그 중앙 계단 밑에 서서 그 오래된 교회의 멋진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신성한 정원이 있는 안 마당을 구경하고나서 바로 서쪽 종탑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차츰 자신이 읽었던 몇몇 책에서 산타바바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부른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생의 거의 전부를 이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감히 밖을 나갈 생각을 못하고 바이오렛과 함께 오로지 집 안에 틀어박혀 자기 발등만 바라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시내 구경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시내 경치에 매료돼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오후 1시에 그녀는 연못이 보이는 아라메다 공원에 도착해 세 그루의 커다란 늙은 대추 야자수 근처의 한 벤치에 앉았다. 발이 아팠다. 그러나 일찍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종이 봉지를 열고 노란 사과부터 꺼내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맛이 있은 적은 전엔 한번도 없었다. 허기를 느끼며 그녀는 재빨리 오렌지도 껍질을 까 먹었다. 그리고 오트밀 쿠기 하나를 막 먹으려 할때 아트 스트랙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안녕, 이쁜 아가씨.] 그는 짧은 청색 반바지만을 입고 있었고 두꺼운 흰색 스포츠용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윗도리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조깅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땀을 흘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넓은 가슴에 근육이 나왔고 피부가 진하게 타서 몹시 남성적이었다. 그의 옷차림은 순전히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노라는 바로 눈을 돌렸다. [부끄러운가?] 그가 물었다. 그녀는 오트밀 쿠키가 입에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침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 쿠기를 삼키려고 하면 목에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나의 사랑, 수줍은 노라.] 스트랙이 말했다. 노라는 아래만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오른 손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쿠키가 손에서 흔들리며 조각났고 그 부스러기가 그녀 발 사이로 떨어졌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하길 자유를 향한 첫 번째 조치로 하루 동안의 산책을 나왔다고 했었다. 그러나 집 밖으로 나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스트랙의 관심을 피하려고 했었다. 집에 있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가 전화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런데 지금은 잠겨진 유리창과 빗장 걸린 문의 보호가 없는 야외에서 그에게 발견되었고 이것은 전화보다 더 안 좋은 것이다. 아니 아주 심하게 안 좋은 것이다. [나를 봐, 노라.] 보지 않았다. [나를 봐.] 조금 남아있던 쿠키 조각이 오른 손에서 떨어졌다. 스트랙이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 그녀는 뿌리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손을 쥐어짜며 손가락을 짓눌렀다. 그래서 그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을 자신의 허벅지 맨살위에 올려 놓았다. 그의 몸은 딱딱하고 뜨거웠다. 그녀는 배가 뒤틀리고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녀는 토하든 기절하든 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맨허벅지에 올려놓고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나지, 이쁜 아가씨. 난 당신을 보살필 수 있어.] 마치 오트밀 쿠키가 풀 덩어리인 양 그녀의 입을 봉해 버렸다. 그녀는 머리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나 눈썹 너머로 그를 경계하기 위해 눈동자 만큼은 올렸다. 근처에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어린애를 데리고 있는 젊은 엄마들만 두 명이 있었고 그것도 도움을 청하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자신의 허벅지에서 그녀의 손을 올리고는 이번에는 자신의 맨가슴에 대고 스트랙이 말했다. [오늘 소풍이 좋았나? 교회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응? 그리고 법원의 유카 꽃들이 이쁘지 않았어?] 그는 차갑고 거만한 목소리로 지껄이며 그동안 보아왔던 것들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그가 자신을 아침 내내 따라 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를 타고 다니며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걸어서 쫓아다녔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는 그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가 쫓아다녔던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그녀가 집을 나서서부터 했던 일거 일동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전에 했던 그 어떤 짓보다도 더 그녀를 화나게 했고 또 놀라게 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빠르게 쉬고 있었다. 그래도 숨을 다 쉬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귀가 울렸다. 그러나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들렸다. 그를 주먹으로 치고는 눈을 할퀼 생각도 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몸이 얼어붙었다. 너무나 강한 분노를 느낌과 동시에 두려움으로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도움을 청한다기보다는 절망감에서였다. [이제, 당신은 아주 근사한 소풍을 했고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지. 그리고 이젠 느긋한 기분 속에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겠지? 무엇이 오늘을 아주 멋진 날로 만들 건지 당신은 알 거야, 이쁜 아가씨. 정말 특별한 날이지? 이제 우리가 할일은 내 차를 타고 당신 집으로 돌아가 당신의 그 노란 방 안에 있는 네 기둥 달린 침대로 들어가는 거야.] 그는 그녀의 침실을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어제 그렇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텔레비전을 고치며 거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몰래 2층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올라가 어슬렁거리며 가장 내밀한 그녀의 성역을 침범하고 그녀의 소지품들을 뒤졌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크고 오래된 침대로 말이야. 그리고는 내가 당신 옷을 벗겨 주겠어, 허니. 옷을 벗기고 당신과 섹스를 즐기는 거야.] 노라는 머리를 재빨리 치켜들고는 그를 쳐다보며 삼키지 않은 쿠키 덩어리를 그의 얼굴에 뱉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용기가 생긴 것이 그가 자신의 성역을 함부로 침범했다는 그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처음으로 자기 앞에서 외설스런 음담을 했기 때문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침과 축축한 쿠키 부스러기들이 그의 오른 쪽 뺨과 오른 쪽 눈, 그리고 코에 붙었다. 그의 머리카락에도 걸려 있었고 그의 이마도 얼룩지게 했다. 그녀는 스트랙의 눈에서 분노가 피어 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행동 때문에 스트랙에게 보복을 당할지라도 자신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그 감정적 마비 현상을 깨트려 버렸다는 점에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잔인하게 보복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왼 쪽 손을 잡고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비틀어 빼낼 수가 없었다. 그는 방금 전에 했던 것처럼 손을 꽉 쥐어짜며 손가락 뼈를 더욱 세게 짓눌렀다. 아팠다. 정말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울부짖는 것을 그에게 보여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흐느껴 울거나 애걸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땀 때문에 머리카락 속이 따끔거렸다. 그녀는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통이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스트랙의 불안정한 담청색 눈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녀의 손가락을 짓뭉개고 있을 때 그는 단지 자신의 손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눈초리로도 가세를 했다. 그것은 차갑고 한없이 이상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협하고 으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서 자신으로선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광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절망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그녀의 손을 쥐어짜는 걸 멈추었다. 고통스러워 고함치는 것보다 더 그를 즐겁게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을 놔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이것에 대한 대가를 치를 거야. 내 얼굴에 침을 뱉은 대가 말이야. 그리고 당신은 그 대가를 즐기게 될 거야.] 그녀는 확신 없이 말했다. [당신 사장에게 항의하겠어요. 그러면 당신은 일자리를 잃게 될 걸요.] 스트랙은 그냥 웃기만 했다. 노라는 왜 그가 자신의 얼굴에서 오트밀 쿠키 부스러기들을 훔쳐내지 않는지 몰랐다. 그러나 곧바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그녀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할 셈이었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내 일자리를 잃어? 오! 난 이미 와드로 TV사는 그만두었어. 어제 당신 집을 나가면서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당신에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거 아니야, 노라.] 그녀는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자신의 두려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떨려왔고 마침내는 이마저 딱딱 부딪치는 것 같았다. [난 한 일자리에 그렇게 오래 머문 적이 없어. 나같이 너무 힘이 넘치는 남자는 무엇이든 쉽게 싫증을 내거든.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있지. 게다가 인생은 그 전부를 일하는 데 낭비하기에는 너무 짧거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잠시동안만 한 일자리를 지키지. 내가 어느 정도 돈을 모을 때까지 말이야. 그리고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일하지 않고 버티는 거야. 그러다 이따금 우연히 당신 같은 아가씨를 만나게 되지. 나를 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 말이야. 그냥 나 같은 남자를 찾아 울부짖는 사람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런 여자를 도와가며 살아가지.] 이 자를 발로 차고 물어 뜯고 눈을 쥐어 뜯어라.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덜 아팠다. 하지만 아까 전에 그 고통이 얼마나 컸고 얼마나 심했는지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변해 좀더 부드러워졌다. 달래고 위로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훨씬 더 두렵게 만들었다. [ 그래서 난 당신을 도우려고 해, 노라. 내가 한동안 이사 들어가 살겠어. 재미있을 거야. 당신은 나에게 약간 초조해하고 있어. 그럴테지. 난 이해할 수 있어. 정말이야. 하지만 날 믿어. 당신에겐 바로 이런 게 필요한 거야. 아가씨. 당신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질 거야. 옛날과는 모든 것이 달라질걸. 이제 당신에게 최고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거야.] 2 아인스타인은 공원을 사랑했다. 트라비스가 가죽 끈을 풀자 사냥개는 바로 근처에 있는 꽃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갔다. 자줏빛 수선화가 둘러싼 커다란 노란색 금잔화 꽃밭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 주위를 걸었다. 꽃들에 매혹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제비꽃들이 뒤늦게 피어 타는 듯이 만개한 꽃밭으로 갔다가 또 봉선화 꽃밭으로 갔다. 그의 꼬리는 새로운 꽃밭으로 갈 때마다 더 빨리 움직였다. 개는 오직 흑백으로만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라비스는 아인스타인이 천연색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인스타인온 모든 것을 냄새말아 보았다. 꽃들과 관목들, 나무들, 바위들, 쓰레기통, 쭈글쭈글한 잡동사니들, 식수대, 그리고 자신이 밟는 땅들의 냄새를 맡았다. 전에 이 길을 지나갔던 사람들과 개들에 대한 모습을 후각적으로 알아보려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아인스타인에게는 사진처럼 분명한 이미지일는지 모른다. 정오가 지날 때까지 사냥개는 놀랄 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개가 보이는 '나는 평범한 멍청한 개다'라는 식의 행동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트라비스는 거의 인간 지능에 가까운 이 짐승의 지능이 마치 간질병의 발작과도 같이 아주 잠깐 동안 반짝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제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면 아인스타인의 그 특출난 기질은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이 연못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 때 아인스타인이 갑자기 긴장하며 고개를 쳐들고 그 얇은 귀를 약간 세웠다. 그리고 약 150미터정도 떨어진 공원 어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커플을 응시했다. 남자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여자는 좀 헐렁한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남자가 여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에 깊히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트라비스는 그들의 은밀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들이 있는 쪽을 피해 공원의 다른 잔디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한 번 짖고는 그 커플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아인스타인! 이리와! 이리로 돌아와!] 개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 벤치에 있는 두 남녀에게로 달려가며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트라비스가 벤치에 도착했을 때는 그 짧은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팔은 방어 자세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사냥개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주먹을 쥐었다. [아인스타인!] 사냥개는 진정하면서 벤치에 있는 그 여인에게로 가 자신의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올려 놓았다. 으르렁거리던 개가 너무 갑자기 애교 있는 애완 동물로 바뀌었던 것이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는 전혀......] [제기랄! 이렇게 위험한 개가 공원을 마음대로 뛰어다니게 하지 말아야지요.] 짧은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말했다. [얘는 위험한 개가 아닙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얘는......] [젠장, 이 망할 놈의 개가 나를 물려고 했단 말이요. 당신 고발당하고 싶소?]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개를 여기서 내보내란 말이요.] 그 남자가 말했다. 트라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인스타인 쪽을 보다가 그 여인이 사냥개를 달래며 벤치 위로 올라오게 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인스타인은 그녀를 보며 앞다리를 그녀의 무릎에 올려놓고 그녀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냥 단순히 그를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꼭 껴안았다. 실은 그녀가 그에게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었고 거기에는 웬지 좀 필사적인 데가 있었다. [여기서 저 개를 데리고 나가란 말이요.] 그 남자가 사납게 말했다. 그 사람은 트라비스보다 키가 더 컸고 어깨도 더 넓었고 또 가슴도 더 두꺼웠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오면서 더 큰 자신의 덩치를 이용해 위협하며 트라비스에게로 접근해왔다. 공격적이고 약간 위험스러워 보이며 또 그런 행동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익숙해 있는 사람 같았다. 트라비스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했다. 아인스타인은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쳐다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 말 알아들었어? 당신 귀머거리야, 뭐야? 가죽끈을 채워야 한다고 내가 말했잖아. 가죽끈이 당신 손에 있는데 뭘 망설이는 거야?] 트라비스는 무엇인가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독선적인 분노는 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마치 어떤 부끄러운 행동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또 즉각 격렬하게 공격하는 입장이 됨으로써 자신의 죄를 숨기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여자도 특이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그녀의 가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 개를 어루만지며 매달리고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를 두렵게 만든 것은 아인스타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트라비스는 왜 한 커플이 한 사람은 짧은 반바지 차림, 또 한 사람은 단조로운 홈 드레스 차림으로 공원에 왔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는 그녀가 두려워하며 몰래 그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순간 그 둘이 함께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여자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남자는 죄의식을 느낄 정도의 무슨 짓까지 했던 것이 분명했다. [미스......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지 않지.] 그 남자가 말했다. [저 망할 놈의 개가 우리에게 달려들어 물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지금 보기엔 내 개가 그녀를 겁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트라비스가 그 남자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트밀 조각같이 보이는 것들이 그 사람 뺨에 붙어 있었다. 트라비스는 여자 옆에 놓여 있는 봉지에서 오트밀 쿠키 하나가 흘러나와 있는 것을 보았고 또 다른 하나가 그녀의 발 아래 땅바닥에 부스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 남자가 트라비스를 쳐다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힐끔힐끔 그 여자와 아인스타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계산된 분노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그는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당신은 저 망할 사냥개를 계속 진정시켜 놓아야 돼.] [오,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가죽끈을 감으며 트라비스는 말했다. [단지 일시적으로 그랬을 뿐이오.] 여전히 화가 나 있고 그러면서도 모호한 표정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노라?]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아인스타인을 계속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중에 당신을 보지.] 그 남자가 그녀에게 말했다.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트라비스를 쳐다보면서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만일 저 사냥개가 쫓아와 내 발뒤꿈치를 물면......] [그러지 않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을 막았다. [당신이 하던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을 거요.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겁니다.] 그 남자는 공원을 가로질러 천천히 조깅을 하며 가장 가까운 출구로 빠져나가면서 몇 번 그들을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아인스타인은 배를 벤치에 깔고 자신의 머리를 그 여인의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당신이 얘의 마음에 드는 게 분명한 것 같소.]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한 손으로 아인스타인의 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개예요 ] [난 어제 어떻게 이 개를 얻게 되었지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인스타인 옆에 앉았다. [제 이름은 트라비스입니다.] 아무 대꾸 없이 그녀는 아인스타인 귀 밑을 긁어주고 있었다. 개가 만족한 듯한 소리를 냈다. [트라비스 코넬이죠.] 그가 말했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노라 데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러나 초조해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곧은 생머리이고 또 얼굴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이 났고 피부는 흠 하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회색빛 눈은 가는 초록색 줄이 져 있어 밝은 5월 햇살에 빛나면서 더욱 돋보였다. 마치 그가 호감을 느끼는 걸 눈치 채고 그것을 두려워한 듯 그녀는 즉시 트라비스의 눈에서 눈길을 돌리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가 말했다. [미스 데본,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당신을 귀찮게 했습니까?] [그랬어요.] 그녀가 말했다.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떨군 채 무거운 수치심에 눌려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연약해보여 트라비스는 모른 척하고 그냥 일어나서 가버릴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요.]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인스타인의 머리를 비키고 살짝 빠져나와 일어섰다. 개가 그 벤치에서 일어나 서서 애정 어린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트라비스도 일어나며 말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녀는 아까 그 남자가 나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 공원 밖으로 급히 나갔다. 아인스타인은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으나 트라비스가 그를 부르자 멈추고는 마지못해 돌아왔다. 트라비스는 당황한 채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주 엄격한 신도 복장같이 단조롭고 모양 없는 회색 드레스를 입은 수수께끼 같은 여인이다. 그와 아인스타인은 공원을 가로지르며 산책을 계속했다. 조금 후에 그들은 해변으로 갔다. 그곳에서 사냥개는 끝없이 굽이치는 바다 풍경과 모래 위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에 놀라는 것 같았다. 개는 계속 멈추어 서며 잠깐잠깐씩 바다를 내다 보았다. 그리고는 밀려드는 파도와 즐겁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트라비스는 어제 저녁 아인스타인을 그토록 크게 흥분시켰던 그 책들을 다시 보여줘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개가 그 책들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는지를 파악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인스타인은 트라비스가 가져다 준 책들에 대해서는 흥미 없어 하며 냄새만 맡았다. 그리고 하품을 해댔다. 놀랍게도 오후 내내 노라 데본에 대한 기억이 너무 자주 또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에게는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매혹적인 옷들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얼굴과 그 초록색 무늬가 있는 회색 눈이면 충분했다. 3 단지 몇 시간만의 수면을 취한 후에 빈센트 나스코는 멕시코 아가풀코로 가는 아침 비행기를 탔다. 그는 만 입구에 있는 한 대형 호텔에 등록을 했다. 모든 것들이 유리이고 콘크리트이며 테라조인 어슴푸레하고 멋이 깃들지 않은 고층 빌딩이었다. 그는 하얀 면 바지와 엷은 청색 셔츠로 갈아입고 또 바람이 잘 통하는 캐주얼 구두를 신고는 로우톤 하이네스 박사를 찾아 나섰다. 하이네스는 아카풀코에서 휴가 중이다. 그는 178센티의 키 그리고 72킬로그램의 체중에 뻣뻣한 검은 갈색 머리카락을 한 서른 아홉 살의 남자였다. 그는 알파치노같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마에 주먹 만한 크기의 붉은 반점이 있었다. 그는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은 아카풀코에 와서 이곳 만의 동쪽 끝 가장자리에 있는 우아한 라스 브리사스 호텔에 항상 머물었다. 그리고 카레타 호텔 가까이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자주 들러 아주 긴 점심을 즐겼고 특히 그곳에서 레몬즙 칵테일을 즐겨 먹었다. 오후 12시 20분에 빈스는 바로 그 레스토랑의 유리창 가 테이블 앞에 놓여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는 하이네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박사는 빈스와 테이블 3개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유리창 가 테이블에 앉았다. 그의 모습이 야자수 화분 때문에 반쯤 가려 있었다. 하이네스는 매력적인 한 금발 미인과 함께 새우를 먹으며 레몬즙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그 금발 미인은 헐렁한 하얀 스포츠용 바지에 몸에 딱 달라붙는 야한 줄무늬 웃옷을 입고 있었다. 빈스가 보기에는 하이네스는 알파치노라기보다는 더스틴 호프만과 더 닮아보였다. 그는 코를 비롯해서 호프만과 같이 선이 굵은 얼굴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그의 모습은 소문 그대로였다. 그 사람은 핑크빛 면 바지와 엷은 노랑색 셔츠에 하얀 샌달을 신고 있었다. 그것은 빈스가 보기에는 완전히 열대 휴양지 옷차림이었다. 빈스는 무용곡이 흐르는 가운데 해산물로 만든 멕시코 파이로 점심을 마치고 레몬즙을 마셨다. 그리고는 하이네스와 그 금발 미인이 떠나려할 때 그도 일어나서 계산을 했다. 그 금발 미인이 빨간색 포르세를 몰고 갔다. 빈스는 렌트카인 포드를 몰고 쫓아갔다. 그 차는 너무 많이 써서 마치 가두 음악단의 타악기마냥 너무 소리가 요란했고 차 안에 깔린 카펫에서는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라스 브리사스 호텔 주차장에서 그 금발 미인은 차를 멈추고 하이네스와 함께 내려 자신의 차 결에서 밝은 대낮에 서로 엉덩이를 끌어안고 깊은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그와 헤어졌다. 빈스는 놀랐다. 그는 하이네스가 그보다는 좀더 강한 예의범절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어쨌든 그 사람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교육 받은 사람이 전통적인 행동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오늘날 바로 그들이 대학에서 매너나 예의를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날이 갈수록 세상이 야만스러워지고 잔인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금발 미인은 자신의 포르세를 타고 떠났다. 그리고 하이네스는 하얀색 메르세데스 스포츠 카를 타고 그 주차장을 떠났다. 그 차는 분명히 렌트카가 아니었다. 빈스는 박사가 그 차를 어디서 얻었을까가 궁금했다. 하이네스는 다른 호텔로 가 보이에게 그의 차를 맡겼다. 빈스도 똑같이 했다. 그는 박사를 따라 로비를 빠져나와 해변으로 갔다. 그 박사는 해변을 따라 태평하게 거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망사 비키니를 입고 있는 한 멋진 멕시코 여자 곁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검었고 몸매가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또 그 박사보다 한 15살 정도는 어려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라운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하이네스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하자 그녀는 놀라 눈을 떴다. 하지만 그녀가 웃으며 팔을 내밀어 그를 껴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인 것이 분명했다. 빈스는 해변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와 하이네스와 그 여자 뒤편에 앉았다. 그와 그들 사이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다른 한 쌍이 누워있었다. 그는 하이네스가 자신을 알아볼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박사는 오로지 여체에만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빈스는 그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뒷배경으로 파묻히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만 밖의 바다에서는 한 사람이 예인 보트 뒤에 끌려 높이 떠오른 낙하산을 타고 있었다. 태양은 마치 끝없이 내리는 황금빛 금화 비처럼 모래와 바다에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20분 후에 하이네스는 그 아가씨의 입술과 비탈진 가슴에 키스를 하고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가씨가 소리 질렀다. [오늘밤 여섯 시요.] 그러자 하이네스가 말했다. [거기서 봐.] 그리고는 하이네스와 빈스는 유쾌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처음에 빈스는 하이네스가 어떤 목적지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목적 없이 그냥 해변 길을 따라 내려가며 경치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하이네스는 하얀색 메르세데스로, 빈스는 포드로 레볼카데로 해변을 따라 계속 나갔다. 마침내 그들은 경치 좋은 한 전망지에 도착했고 거기서 하이네스는 길 옆으로 차를 댔다. 그 바로 옆에 주차돼 있던 차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여행객들이 내리고 있었다. 빈스 역시 주차를 하고는 그 절벽 바깥 쪽 철제 난간까지 걸어갔다. 그곳은 삼사십 미터 절벽 아래 바위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그 해안선의 절경으로 정말 멋진 장관을 이루었다. 그 야한 옷차림의 관광객들은 그 경치를 보고 탄성을 지르기도하고 사진도 찍곤 했다. 그리고 쓰레기들을 버리고는 떠났다. 이제 그 절벽에는 하이네스와 빈스 둘 뿐이었다. 그 고속도로에는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검은색 트랜젬을 제외하고는 아무 차량도 지나가고 있지 않았다. 빈스는 그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하이네스를 급습할 생각이었다. 그 트랜젬은 그곳을 지나치지 않고 길 옆으로 차를 대고는 하이네스의 메르세데스 곁에 주차했다. 그리고는 약 스물다섯 정도 돼 보이는 한 아가씨가 나왔다. 그녀는 급하게 하이네스에게로 갔다. 멕시코 여자같이 보였으나 동양인 피가 섞인 듯 매우 이국적이었다. 그녀는 짧은 하얀 바지에 팔과 등을 드러내는 웃옷을 입고 있었고 다리는 빈스가 본 중에 최고였다. 그녀와 하이네스는 그 난간을 따라 걸어 나가다 빈스와 약 12미터 정도 떨어졌을 때 서로 열렬하게 포옹을 했고 빈스는 낯이 붉어졌다. 몇 분 후에 번스도 난간을 따라 그들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이따금 절벽 밖으로 목을 위험스럽게 내밀고는 공중으로 오육 미터씩 물을 튀기며 부서지는 파도를 멍청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특별히 큰 파도가 밀려와 울퉁불퉁한 바위에 부딪칠 때면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마치 자신이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순전히 우연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지만 산들바람이 그들의 대화 내용을 약간 전해주었다.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이 하이네스가 시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이네스는 내일 밤 약속에 대해 그 여자에게 결정을 하라고 밀어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는 자였다. 다시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빈스는 이 때가 아니면 하이네스를 처치하지 못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여자 가까이 가서 그녀의 목덜미와 반바지 벧트를 붙잡고는 번쩍 들어 난간 너머로 던져버렸다. 그녀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이 일이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하이네스는 미처 대응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 여자가 공중에 떠 있는 순간 빈스는 놀라고 있는 박사를 향해 얼굴에 두 번 펀치를 가하자 박사는 양 입술이 터지고 콧대가 깨지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하이네스가 땅바닥에 폭삭 쓰러짐과 동시에 그 여인이 절벽 아래 바위에 부딪혔다. 그리고 빈스는 멀리서 그녀의 선물을 받았던 것이다. 으으으윽 그는 저 아래 바위 위에 부서진 그녀의 시체를 좀 오래 보기 위해 난간 위로 몸을 기울여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 고속도로에 그토록 오랫동안 차량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이네스를 렌트카로 끌고 와어 그를 앞 좌석에 앉히고는 마치 평화스럽게 자는 것처럼 그를 문에 푹 쓰러지게 밀어 두었다. 그는 그 남자의 코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도록 고개를 뒤로 확실하게 젖혀 놓았다. 꾸불꾸불하고 도로 수선이 형편 없는 해안 고속도로를 벗어나 빈스는 더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택해 자갈 길과 진흙 길을 따라 다우림 지역으로 더 깊숙히 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나무들이 빽빽하고 풀들이 무성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하이네스는 두 번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으나 그때마다 빈스는 그의 머리를 자동차 앞 데시 보드에 처박아 그를 침묵시켰다. 이제 그는 의식을 잃은 그 남자를 포드에서 끌어내 그 덤불의 틈을 통해 나무 숲 깊숙히 끌고 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털같이 생긴 이끼가 깔려 있는 그늘진 한 공터를 발견했다. 까악까악 짹짹 지저귀던 새들도 조용해졌다. 그리고 특이한 울음 소리의 이름 모를 짐승들도 덤불 밑으로 숨어 버렸다. 빈스의 주먹만한 풍뎅이를 비롯해 커다란 곤충들이 그의 주변에서 황급히 달아났다. 그리고 도마뱀들도 재빨리 나무 줄기 위로 사라졌다. 빈스는 뒷트렁크에 몇가지 심문 장비를 남겨놓은 렌트카로 돌아왔다. 주사기 하나와 마취용 펜토탈 나트륨액 두 병이 들은 주머니, 납알들이 들어 있어 무거운 가죽 곤봉, 텔레비전용 리모콘을 닮은 테이져 전자총, 그리고 나무 손잡이가 달린 타래 송곳이었다. 빈스가 다시 공터로 돌아왔을 때도 로우톤 하이네스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숨을 쉴 때마다 그 깨진 코에서 덜컥덜컥 소리가 났다. 하이네스는 24시간 전에 죽었어야 했다. 어제 세 가지 일거리로 빈스를 고용했던 사람들은 하이네스 경우에는 아카풀코에 살면서 멕시코 전역을 통해 일하는 또 다른 프리렌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자가 어제 아침 런던으로부터 항공 우송돼온 소포를 뜯다 그 안에 들어있던 2파운드의 플라스틱 폭탄이 터져 죽었다. 하는 수 없이 로스엔젤레스의 그 일당은 그 일을 또 빈스에게 주었다. 빈스는 위험스러을 정도로 일을 너무 많이 맡긴 했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었다. 이 박사도 바노디네 연구소와 관련돼 있을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프랑시스 사업에 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을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빈스는 하이네스가 누워 있는 공터 주위 다우림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쓰러진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그 나무에서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 그것으로 물을 뜰 수 있는 국자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끼로 알록달록한 작은 시내를 발견하고는 그 껍질 국자로 물을 펐다. 그 물은 더러워보였다. 별 이상한 박테리아가 그 안에 번성해 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위생 문제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빈스는 국자의 물을 하이네스의 얼굴에 끼얹었다. 1분 후에 그는 다시 물을 퍼와 억지로 박사에게 그 물을 먹였다. 하이네스는 한참동안 푸푸거리며 콜록거리다가 또 약간 토해냈다. 그러면서 마침내 정신이 들었다. 빈스는 가죽 곤봉과 테이저 전자총과 타래 송곳을 내보이며 만일 하이네스가 비협조적이면 자신이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을 뇌 생리 및 기능 전문의라고 밝힌 그 박사는 그리 애국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바노디네에서 참여했던 최고 비밀 방어 전략 작품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열심히 털어놓았던 것이다. 하이네스가 더 이상 털어 놓을 것이 없다고 맹세했을 때 빈스는 펜토탈 나트륨액을 준비했다. 그는 그 약을 주사기 안으로 빨아 집어 넣으며 대화하듯이 말했다. [박사, 당신과 그 여자들과는 어떤 관계인가?] 하이네스는 빈스가 시킨 대로 팔을 몸에 딱 붙이고 등을 땅바닥에 대고 누운 채로 있다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난 점심 시간 이후로 줄곧 당신을 따라다녔어. 그리고는 당신이 여기 아카폴코에서 그들 셋을 한꺼번에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넷이야.] 하이네스가 말했다. [내가 몰고 다니는 메르세데스를 빌려준 가장 예쁜 지젤이 또 있지.] 두려움 속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당신이 다른 한 여자의 차를 이용하면서 그 여자를 속이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났다는 말이지?] 하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미소 때문에 뭉개진 코에서 고통을 느끼자 주춤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여자들을 다루어왔지.] [맙소사!] 빈스는 질리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더 이상 60년대나 70년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 자유 연애 시대는 지났어. 그것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지. 엄청난 대가 말이야. 당신은 헤르페스나 에이즈, 그런 것들을 들어본 적도 없는가?] 펜토탈 나트륨 주사를 놓아주며 빈스가 말했다. [당신은 성병이란 성병은 다 가지고 있는 보균자임이 틀림없어.] 하이네스는 멍청하게 그를 쳐다보며 눈을 껌벅이다 당황하는 표정을 짓고는 깊이 마취돼 잠에 떨어졌다. 그 약 기운 속에서 그는 자신이 바노디네 연구소와 프랑시스 프로젝트예 관해 번스에게 했던 모든 말을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약이 다 떨어지자 빈스는 배터리가 다 떨어질 때까지 테이지 총을 하이네스에게 쏘아댔다. 그 과학자는 온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테이지 총이 소용없게 되자 가죽 곤봉으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를 때렸다. 그리고는 마침내 타래 송곳을 그의 양 갈빗대 사이에 놓고 돌려 그를 죽였다. 으으으윽 처음부터 시종 일관 그 숲 속은 무덤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빈스는 수천 개의 눈이 보고 있음을 느꼈다. 야생 동물들의 눈들이. 그는 그 숨어 있는 목격자들이 자신이 하이네스에게 한 일을 잘한 일로 여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 과학자의 라이프 스타일은 자연 질서를 모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글의 모든 생물들이 따르는 그 자연 질서를. 그는 하이네스에게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입에다가도 이마에다가도 하지 않았다. 하이네스의 생명 에너지도 다른 사람들 것처럼 생기있고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과 영혼은 깨끗하지 못했다. 4 노라는 공원에서 곧바로 갔다. 그날 아침과 이른 오후에 그녀의 그 한 모험심과 자유로운 영혼은 다시 만끽할 수 없게 되었다. 스트랙이 그 날을 망쳐 놓았다. 그녀는 현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잠그고 보조 자물쇠도 잠궜다. 그리고 안전 체인도 걸었다. 그녀는 아래층 방을 돌아다니며 모든 창문에 걸린 커튼들을 꽉 여며 놓았다. 혹시 아트 스트랙이 와서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가 안 쪽을 들여다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때문에 집 안이 어두워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 안의 모든 전등을 다 켜 놓았다. 부엌도 덧문을 닫고 뒷문 자몰쇠도 점검했다. 스트랙과 마주쳤던 일이 두렵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웬지 더럽다는 기분이 남았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주 길고 뜨거운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리가 갑자기 떨리면서 힘이 빠져 나갔다. 그리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녀는 몸을 가누기 위해 부엌 식탁을 꽉 잡아야만 했다. 곧바로 이층으로 올라가려고 한다면 도중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의자에 앉아서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주 심했던 현기증이 좀 가시자 그녀는 냉장고 옆 식기장에 있는 브랜디 한 병이 생각났다. 그것을 한 잔 마시면 안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바이오렛이 죽은 후에야 레미 마티니인 그 브랜디를 샀었다. 바이오렛은 약간 발효된 사과사이다 정도는 몰라도 그 이상 강한 술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항의 행동 표시로 노라는 이모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혼자서 브랜디를 마시기 위해 한 잔 따랐다. 그것을 맛이 있게 먹지는 못했었다. 그러면서도 한 잔을 거의 다 마셨었다. 브랜디 한 잔이라면 이제 그녀를 떨리지 않게 해줄 것 같았다. 우선 그녀는 싱크대로 가서는 아주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는 반복해서 손을 씻었다. 비누와 세제를 아주 많이 묻히고는 열심히 문지르며 스트랙의 흔적을 몽땅 떨쳐벼렸다. 다 씻고나자 손이 마치 껍질이 벗겨진 양 빨개졌다. 그녀는 브랜디 한 병과 유리잔 하나를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큰 절망감을 안고 있는 주인공들이 약간의 술로 그 절망감을 씻어내는 소설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따금 술이 그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브랜디가 그녀의 마음 상태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든다면 한 병을 통째로라도 마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술꾼이 될 소질은 없었다. 그녀는 두 시간에 걸쳐 레미 마티니 한 잔을 겨우 마셨던 것이다. 그녀가 스트랙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히고 하면 바이오렛 이모에 대한 기억이 사정 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리고 바이오렛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다시 스트랙에 대한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 둘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마음에서 억지로 쫓아버리려고 하면서 그녀는 공원에서의 그 남자, 트라비스 코넬을 생각했다. 그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어도 역시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는 점잖고 공손하고 사려 깊은 아주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가 스트랙을 쫓아버렸다. 그러나 그도 어쩌면 바로 스트랙처럼 나쁜 사람일지 모른다. 만약 그녀가 코넬에게 약간의 기회만 준다면 그도 스트랙과 똑같이 그녀를 이용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바이오렛 이모는 왜곡되고 병든 폭군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데 따르는 위험에 관해서는 점점 그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나 그 개는, 그 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는 그 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개가 사납게 짖으며 그 공원 벤치로 달려들때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웬지 그 사냥개-아인스타인, 그 주인이 그렇게 불렀다.-가 자신에게 짖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개의 분노가 스트랙에게 집중돼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아인스타인에게 매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스트랙이 여전히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마치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개를 한 마리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바이오렛은 집안에 애완 동물을 키운다는 그런 생각만도 끔찍히 싫어했다. 그러나 바이오렛은 죽었다. 영원히 죽었다. 그래서 노라가 자신의 개를 가진다고 해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웬지 그녀는 다른 개에게서는 아인스타인에게서 느꼈던 그 포근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 그 사냥개는 잠깐 동안에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물른 그 개가 그녀를 스트랙에게서 구해 주었기 때문에 그 개가 특이하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자연히 그녀는 그를 구원자로, 자신의 용맹스러운 보호자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아인스타인이 단지 다른 여느 개와 똑같은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여전히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개도 아인스타인이 자신에게 느끼게 해 주었던 그런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시간에 걸쳐 마신 레미 마티니 한 잔과 아인스타인에 대한 생각이 겹쳐 실제로 기분이 들떴다. 좀더 중요한 것은 브랜디와 그 개에 대한 기억 때문에 부엌에 있는 전화기로 가 트라비스 코넬에게 전화를 해 그의 사냥개를 팔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볼 생각까지 할 정도로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사람은 단지 하루 전에 그 개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그녀에게 말했었다. 그러니 그는 그 개에게 아주 깊게 애착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제 값을 주면 팔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화 번호 책을 넘겨 코넬의 전화 번호를 찾아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 벧이 두 번째 울렸을 때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녀는 개를 사고 파는 일로 그 사람에게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들 구실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도 스트랙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위험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그가 반복해서 말했다. 노라는 머뭇거렸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그녀는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코넬에게 그 개에 관해 말하기 전에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코넬이 스트랙 같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그가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5 5시 5분 전에 전화가 울렸을 때 트라비스는 아인스타인의 접시에 알포 한 깡통을 까서 담아 놓고 있었다. 사냥개는 관심 있게 지켜보며 자신의 입을 핥았다. 그러나 마지막 조각까지 다 깡통에서 나올 때까지 자제력을 보이며 기다렸다. 트라비스는 전화기로 갔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음식으로 갔다. 트라비스의 첫 번째 대답에 아무 응답이 없자 그는 다시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개가 자기 밥그릇에서 눈을 떼고는 고개를 돌렸다. 트라비스가 여전히 아무 대답을 못 듣자 누구냐고 물었다. 그것이 아인스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부엌을 가로질러 걸어와 트라비스 손에 들려 있는 수화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트라비스는 수화기를 놓고는 돌아섰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거기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벽에 걸린 전화기를 응시하면서.......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봐.] 아인스타인은 그를 한번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기를 보았다. [아니면 전화 장난을 하는 어린 아이들일 거야.] 아인스타인은 기분이 안 좋은 듯 낑낑거렸다. [무엇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니?] 아인스타인은 그 전화기에 못이 박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숨을 쉬며 트라비스가 말했다. [난 얼떨떨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오늘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만약 네가 더 신비스러워지고자 한다면 나를 빼고 너 혼자서 해야만 할 거야.] 그는 자신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기 전에 초저녁 뉴스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개를 전화기와 특이한 교신을 하도록 놔둔 채 냉장고에서 다이어트 펩시 콜라를 꺼내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TV를 켜고는 커다란 안락 의자에 앉아 캔 콜라 꼭지를 땄다. 그러다가 아인스타인이 부엌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너, 거기서 뭘 하니?] 철거덕 소리. 달가닥달가닥 소리. 단단한 표면을 발톱으로 할퀴는 소리였다. 쿵하는 소리와 또 다른 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무엇을 하든 넌 그 대가를 지불해야 돼.] 트라비스가 경고를 했다. [그리고 네가 어떻게 돈을 벌 거야? 알래스카로 가서 썰매 끄는 개로 일해야 할지 몰라.] 부엌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단지 잠깐 동안이었다. 그러더니 두번 정도 꽝 소리와 함께 달각달각 소리, 살랑살랑 소리, 그리고 발톱으로 긁는 소리가 났다. 트라비스는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리모콘으로 TV 음향을 없앴다. 무엇인가 꽁하고 부엌 바닥에 떨어졌다. 트라비스는 무슨 일인가 알아보려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기 전애 아인스타인이 나타났다. 그 부지런한 개가 입에 전화 번호부를 물고 들어 왔다. 개는 그 책이 놓여 있는 부엌 다이까지 반복해서 뛰어올랐음이 틀림없었다. 그 책을 발로 잡아당겨 바닥에 떨어뜨릴 때까지 그렇게 게속 뛰어올랐을 것이다. 개는 거실을 가로질러와 안락 의자 앞에 그 책을 놓았다. [무엇을 원하는 거야?]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가 자기 코로 그 책을 조금씩 밀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기대하는 듯 트라비스를 응시했다. [누구에게 전화하기를 원하는 거야?] [으르르르릉] [누구?] 아인스타인은 다시 코로 그 전화 번호부를 밀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글쎄, 누구에게 전화를 하란 말이야?] 사냥개는 그 총명한 검은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표정이 많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했다. [들어봐, 어쩌면 너는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난 네 마음을 읽을 수 없어.] 사냥개는 실망해서 낑낑거리며 그 거실을 걸어나가 모퉁이를 돌아 욕실과 침실로 가는 짧은 복도로 사라졌다. 트라비스는 따라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지켜보기로 했다. 1분이 못 되어서 아인스타인은 8*10인치 사진이 들어있는 금테액자를 입에 물고 들어왔다. 개는 그것을 전화 번호부 옆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트라비스가 침실 경대 앞에 두고 보는 파울라의 사진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죽기 열달 전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소용 없어, 얘야! 죽은 사람에겐 전화를 걸 수 없어.] 아인스타인은 마치 트라비스에게 머리가 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씩씩거렸다. 그는 모퉁이에 있는 잡지 서가로 가서는 그것을 뒤집어 엎어 그곳의 잡지들을 다 쏟아 놓고는 타임지 하나를 물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사진 액자 옆에 그것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앞발로 그 잡지를 긁으며 펼쳐 놓고 페이지를 쭉 넘겨 나갔다. 그러면서 몇 장이 찢어졌다. 트라비스는 의자 끝으로 나와 앉아 몸을 앞으로 기울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아인스타인은 몇 번 멈추고는 그 펼쳐진 잡지 페이지를 찬찬히 살피다가 다시 계속해서 앞 발로 넘겨나갔다. 마침내 그는 아주 매력적인 갈색 피부의 여자 모델이 나와 있는 한 자동차 광고를 펼쳤다. 그는 트라비스를 올려다 보고는 광고를 내려다 보았다. 다시 트라비스를 올려다 보다가 끙끙 소리를 냈다. [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다시 페이지를 발로 넘기며 아인스타인은 미소 짓는 한 금발 미인이 담배를 쥐고 있는 광고를 발견했다. 그는 트라비스에게 콧김을 내뿜었다. [자동차와 담배? 내가 너에게 자동차 한 대와 담배 한 갑을 사주었으면 하니?] 아인스타인은 다시 한 번 뒤집어진 잡지 서가로 갔다가 부동산잡지를 한 권 물고 돌아왔다. 그 잡지는 그가 그 업계를 떠난 지 2년이 되었는데도 계속 매달 그의 우편함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개는 다시 그 책을 발로 넘기다 '21세기'라는 부동산 중개소 옷을 입고있는 한 아름다운 갈색 피부의 부동산 판매 여사원이 나온 광고를 발견했다. 트라비스는 파올라의 사진을 보았다. 또 담배를 피우는 금발 미인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의기양양한 21세기 중개소의 아가씨를 보았다. 그리고 갈색 미인과 자동차가 나와 있는 다른 광고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떤 여자? 내가 어떤 여자...... 에게 전화하기를 원하는 거야?] 아인스타인이 짖었다. [누구에게?] 아인스타인은 주둥이로 트라비스의 손목을 가볍게 물고는 그를 의자에서 일으키려고 했다. [좋아, 좋아, 놔줘. 따라갈게.]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주인이 반쯤 웅크린 채 걷도록 거실과 식당을 거쳐 부엌 벽 전화기로 올 때까지 트라비스의 손목을 놓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내 전화기 앞에 도착해서야 그는 트라비스를 놓아 주었다. [누구에게?] 트라비스는 다시 물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깨달았다. 그와 개가 함께 알게 된 유일한 여자가 있었다. [오늘 공원에서 만난 여자 아니냐?] 아인스타인이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넌 방금 전에 전화를 한 사람이 그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니?] 꼬리가 더 빨리 움직였다. [넌 어떻게 누가 전화를 하는지를 다 알 수 있니?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무튼 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중매?] 개는 두 번 끙끙거렸다. [그래, 그녀는 확실히 예쁘지. 하지만 그녀는 내 타입이 아니야, 이 작자야! 좀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아인스타인은 그를 향해 짖고는 부엌 문으로 달려가 문 위를 향해 두 번 뛰어올랐다가 트라비스를 향해 다시 짖었다. 그리고 테이블 주위를 돌며 내내 짖어댔다. 그러다 다시 문 쪽으로 달려들어 한 번 더 문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가 무엇인가에 아주 심하게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 여자에 관해서다. 그녀는 그 공원에서 그날 오후 무슨 문제에 빠져 있었다. 스포츠용 반바지를 입은 그 악당이 생각났다. 트라비스는 그 여자에게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리고 그녀가 거절했다. 그런데 그녀가 몇분 전에 생각을 다시 하고는 그에게 전화를 했었을까? 그건 단지 그녀가 자신의 궁지를 설명할 용기가 없었다는 뜻일 게다. [정말 그녀가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니?] 꼬리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글쎄, 비록 그녀가 전화를 했다고 해도 그녀 일에 끼어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해.] 사냥개가 달려들어 그의 오른 쪽 바지를 물고는 사납게 흔들어 거의 트라비스를 넘어뜨릴 뻔했다. [좋아, 그래, 전화를 하지. 내게 그 전화 번호부를 가져다 줘.] 아인스타인은 그를 놔주고는 미끄러운 모노륨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그 방을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입에 전화 번호부를 물고 돌아왔다. 트라비스는 그 전화 번호부를 받아 쥐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그 개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개의 뛰어난 지능과 능력은 이제 트라비스가 당연시하는 것이 되었다. 또한 그는 개가 그 전화번호부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했었다면 아까 자신에게 그 책을 가져다 주지도 않았을 것임을 깨닫고 놀랐다. [확신컨대, 이 털보야. 넌 아주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애, 그렇지 않니?] 6 노라는 보통 7시 전에 저녁을 먹지만 오늘은 일찍 배가 고팠다. 아침 산책과 한 잔의 브랜디 때문에 스트랙에 대한 걱정보다 강한 식욕을 느꼈다. 그녀는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선한 과일과 몇 조각의 치즈 한 접시를 준비하고는 롤 빵을 오븐에 데웠다. 노라는 대개 자신의 방 침대에서 잡지나 책을 옆에 두고 저녁을 먹었다. 그곳이 가장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막 한 접시를 준비해 2층으로 올라갈 때 전화가 울렸다. 스트랙일 것이다. 틀림없을 것이다. 달리 누구겠는가? 그녀에게 전화를 할 사람이 거의 없다. 그녀는 전화 벧 소리를 들으며 몸이 얼어붙어 갔다. 그 전화 벧 소리가 멈추었을 때도 그녀는 힘이 빠졌고 그래서 부엌 다이에 몸을 기대고 전화 벧이 다시 울리기를 기다렸다. 7 노라 데본이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트라비스는 다시 TV 저녁 뉴스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이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 사냥개는 부엌 다이 위로 뛰어오르며 전화 번호부를 발로 끌어당겨 다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입으로 그것을 물고 급히 부엌을 빠져나왔다. 개의 다음 행동에 호기심을 느끼고 트라비스는 그를 쫓아가다가 그가 전화 번호부를 입에 문 채 현관 앞에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뭘 하려고?] 아인스타인은 앞발 하나를 문 위에 올려 놓았다. [나가고 싶은 거야?] 개가 낑낑거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입에 문 전화 번호부 때문에 희미하게 들렸다. [그 전화 번호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야? 뼈를 묻듯 묻으려고? 무슨 일이야?] 그는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해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현관 문을 열어주고는 사냥개가 황금빛으로 물든 석양 속으로 나가게 했다. 아인스타인은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는 픽업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승객용 문 옆에 서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뒤돌아 보았다. 트라비스는 트럭으로 걸어와서는 그 사냥개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어딘가로 가고 싶은 모양이군. 전화국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인스타인은 전화 번호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껑충 뛰어 그의 앞발을 트럭 문에 올려놓고는 발판으로 올라가서 트라비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짖었다. [내가 전화 번호부에서 미스 데본의 주소를 찾아 그리로 가기를 원하는 모양이지, 그런가?] 한 번 으르르릉 소리를 냈다. [안됐군.] 트라비스가 말했다.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줄은 알아. 하지만 난 여자를 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게다가 그녀는 내 타입이 아니야. 내가 이미 너에게 그렇게 말했잖니. 그리고 또 나도 그녀 타입이 아니야. 사실 그녀에게 맞을 만한 타입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개가 짖었다. [안돼.] 개는 땅으로 뛰어내려서는 트라비스에게로 달려들어 다시 그의 한쪽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안돼.] 그는 몸을 구부리고는 아인스타인의 목걸이를 잡으며 말했다. [내 옷을 물어뜯어도 소용 없어. 가지 않을 테니까.] 아인스타인은 바지를 놓고는 그의 손아귀에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와서 봉선화가 환히 피어 있는 긴 화단으로 달려가 사납게 땅을 파헤쳤다. 그리고는 엉망이 된 꽃들을 잔디밭에 물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맙소사! 지금 무엇 하는 거야?] 개는 앞뒤로 화단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계속 파헤쳤다. 화단을 몽땅 망쳐 놓을 생각이 분명했다. [이 봐! 그만해.] 트라비스는 급히 사냥개에게 갔다. 아인스타인은 한번 더 잔디밭의 다른 쪽 모퉁이로 달아나서는 그곳에서 더 많은 잔디를 물어 뽑기 시작하다가 다시 봉선화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냥개를 잡을 수 없게 되자 트라비스는 마침내 쫓기를 그만두고 헐떡이며 소리쳤다. [이제 됐어!] 아인스타인이 꽃들을 파헤치기를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에 주홍색 봉선화의 구불구불한 줄기가 매달려 있었다. [가겠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이 꽃을 떨어뜨리고는 난장판이 된 꽃밭에서 잔디밭으로 나왔으나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속임수가 아니야.] 트라비스가 약속을 했다. [그것이 너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면 그 여인을 보러 가야지. 하지만 내가 그 여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8 한 손에는 저녁 식사 접시와 또 한 손에는 에비앙 한 병을 들고 노라는 아래층 복도를 따라 가며 모든 방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전등을 보고는 안도했다. 이층 층계 꼭대기에서 그녀는 팔꿈치로 이층 홀 전등 스위치를 탁하고 켰다. 그녀는 다음 번 식료품 배달주문 때에는 전구를 아주 많이 주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당분간은 밤낮 모든 전등을 다 켜놓을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은 비용이었다. 아직도 브랜디로 좀 기분이 들떠서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면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 밝은 강이여, 1마일보다 더 넓은 달 밝은 강이여.] 그녀가 문을 열고 걸어들어 갔다. 스트랙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하이, 베이비] 잠시 동안 그녀는 자신이 환각을 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했을 때 실제로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함쳤다. 손에서는 접시가 떨어지면서 온 바닥에 과일과 치즈가 흩어졌다. [오! 세상에! 이렇게 어지럽히다니.] 그가 일어나 앉으며 침대가 가장자리로 다리를 들어올렸다 내리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그 반바지와 스포츠용 양말과 운동화 차림이었고 웃도리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치울 필요는 없어. 우선 먼저 해야할 일이 있지. 난 여기서 당신이 2층으로 올라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 당신을 생각하며 기다렸지. 당신을 위해 잔뜩 흥분시켜 놓고 말이야.] 그가 일어났다. [자, 이젠 당신이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것을 가르쳐 줄 때야.] 노라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는 공원에서 곧바로 이 집으로 와서 그녀가 오기 전에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침입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녀가 부엌에서 브랜디를 마시고 있는 동안 내내 여기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여기서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해온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오싹해졌다. 그는 여기서 그녀에게 할 짓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아래층을 돌아다니는 그녀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일종의 자극적인 흥분을 맛보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일을 다 끝내면 그녀를 죽일까? 그녀는 돌아서서 2층 복도로 달아 났다. 그녀가 계단 꼭대기 엄지 기둥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스트랙의 소리가 바로 뒤에서 났다. 그녀는 계단으로 뛰어내려가며 한 번에 두세 계단씩 건너 뛰었다. 발목이 삐면서 넘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리고 층계참에서는 무릎이 거의 휠 뻔했고, 그러면서 휘청거렸지만 계속 내려갈 순 있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계단을 뛰어내려 아래층 홀로 들어섰다. 그러나 어느 새 뒤에서 스트랙이 그녀 드레스의 헐렁한 어깨 부분을 붙잡고는 그녀를 빙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 9 트라비스가 노라의 집 앞 진입로로 커브를 틀어 들어가자 아인스타인이 앞좌석에서 일어나 두 앞발을 자동차 문 손잡이에 올려놓고는 온 몸의 무게로 그것을 아래로 내려 문을 열었다. 또 다른 깔끔한 재주였다. 그리고는 트럭에서 나왔다. 트라비스가 핸드 브레이크를 걸고 시동을 끄기 전에 개는 벌써 앞쪽 진입로로 질주해 들어갔다. 잠시 후 트라비스가 현관 계단 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냥개가 현관에서 뒷다리로 서서 앞발 하나로 초인종 벧을 두드리고 있었다. 벧 소리가 안쪽으로부터 들렸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젠 어떤 악마가 네 속으로 들어갔니?] 개가 다시 벧을 울렸다. [그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아인스타인이 세 번째 벧을 울렸을 때 트라비스는 한 남자가 분노와 고통으로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도와달라는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아인스타인은 어제 숲 속에서 했던 것처럼 사납게 짖으며 마치 그 문을 부수어 버릴 것처럼 문을 할퀴었다. 트라비스는 서둘러서 현관 중앙의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홀은 밝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이 몸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짖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하면서 더욱 어쩔 줄 몰라했다. 트라비스는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잠겨 있었다. 그는 팔꿈치로 현관문 유리창을 부수고는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더듬으며 자물쇠와 보안 체인을 찾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그 여자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는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인스타인이 트라비스에게 행동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사냥개는 복도를 따라 그 남자를 향해 줄달음쳤다. 그 사람은 이만한 크기의 개가 달려들 때면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반응했다. 도망쳤던 것이다. 그 여자가 딴죽을 걸었다. 그러자 그는 비틀거렸으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복도 끝 스윙 도어를 밀치고 나가며 시야에서 벗어났다. 아인스타인이 노라 데본 곁을 지나쳐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그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면서 그 문이 앞쪽으로 흔들려 들어올 때 그 틈을 통해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그 남자를 쫓아 사라졌다. 스윙 도워 너머에 있는 방-트라비스는 부엌이라고 생각했다-에서 짖고 으르렁거리고 고함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무엇인가가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는 훨씬 더 큰 쿵 소리가 났고 그 남자는 욕을 해댔고 아인스타인은 트라비스마저 오싹해질 정도로 사나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소음은 더욱 커져 갔다. 그는 노라 데본에게로 갔다. 그녀는 층계 아래에 있는 엄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그가 하마터면...... 하마터면......] [하지만 아무 일 없었지요?] 그가 말했다. [예.] 그가 그녀의 턱에 묻은 피를 만졌다. [다치셨군요.] [그 사람 피예요.] 그녀가 트라비스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는 피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그 악당을 물었어요.] 그녀는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스윙 도어를 쳐다보았다. [저자가 개를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아마 그러지 못할 겁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트라비스가 스윙 도어를 밀치고 들어갔을 때는 부엌에서의 소란은 가라앉았다. 사다리꼴 등받이 의자 두 개가 넘어져 있었고 꽃무늬가 있는 파란색 쿠키 도자기도 타일 바닥에 떨어져 조각나 있었다. 그리고 오트밀 쿠키가 어느 것은 온전하게 또 어느 것은 깨지고 짓뭉개져서 온 부엌에 널려 있었다. 그 남자는 모퉁이에서 자신의 맨다리를 끌어올리고 손을 서로 교차시켜 방어 자세로 가슴을 가리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신발 한 짝은 어디로 가고 없었다. 개가 그것을 물고 늘어졌을 거라고 트라비스는 생각했다. 그 남자의 오른 쪽 손에서 피가 나고 있었고 그건 노라의 작품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의 왼 쪽 장단지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다. 개에게 물린 것같이 보였다. 아인스타인은 발로 걷어채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였지만 그자가 어리석게도 그 모퉁이를 떠나려고 시도하면 곧바로 물어뜯을 태세를 갖추고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아주 잘했어.] 트라비스가 그 개에게 말했다. [정말 잘했다.] 아인스타인은 그 칭찬을 수용한다는 듯한 소리로 낑낑거렸다. 그러나 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행복해하는 낑낑 소리가 갑자기 으르릉 소리로 바뀌었다. 아인스타인이 덤벼들며 물려고 하자 그 남자는 다시 모퉁이로 밀려 들어갔다. [당신은 이제 끝났소.] 트라비스가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가 날 물었어! 그들 둘이 나를 물었어!] 성미 급한 분노 놀람, 믿기지 않는 마음 등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나를 물었어.] 평생 제멋대로 살아온 다른 많은 깡패들이 그렇듯 이자는 자기도 상처를 입고 두들겨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또는 눈빛을 좀 미친 듯, 또는 상스럽게 보이면 사람들은 항상 뒤로 물러선다는 것을 이자는 경험으로 배웠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주 충격을 받은 것같이 보였다. 트라비스는 전화기 앞으로 가서는 경찰에게 전화를 했다. 5-1 장 1 5월 20일 목요일 늦은 아침 빈센트 나스코는 아카풀코에서 하루동안의 휴가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와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을 나올 때 타임紙를 샀다. 그리고 오렌지 가운티로 가는 정기 왕복 밴을 탔다. 사람들은 그것을 리무진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밴이었다. 그는 허팅톤 해변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신문을 읽었다. 그러다 3페이지에서 아르비네에 있는 바노디네 연구소의 화재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어제 아침 6시 조금 지나서 자신이 아카풀코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고 있던 바로 그 때 불길이 일어났었다.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잡긴 했지만 두 개의 바노디네 건물 중 하나는 완전히 다 타 버렸다. 자신에게 데이비스 위더비, 로우톤 하이네스, 야르벡 부부, 그리고 허드스톤 가족 등을 죽이도록 시킨 바로 그 사람들이 방화범을 고용해 바노디네를 태워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바노디네 서류철에 있는 것들과 또 그 연구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머리 속에 있는 것들 등,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 같았다. 신문은 바노디네 국방 관련 사업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에게 알려져서는 안될 것임이 분명했다. 다만 그 회사는 합성 DNA 연구를 통해 혁신적인 약을 개발하는 데 특별히 주력하는 '유전 공학 산업의 선두 주자의 하나'로만 언급되었다. 야간 당직자는 불에 타 죽었다. 타임지는 그 사람이 왜 그 불을 피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침입자가 그 사람을 살해한 후 그것을 감추기 위해 불에 태워 버렸을 것이라고 빈스는 생각했다. 정기 왕복 밴이 빈스를 그의 저택 현관 앞까지 실어다 주었다. 방들은 차고 어두웠다. 바닥은 카펫이 깔리지 않아서 한 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가 텅 비다시피 한 그 집 안 전체에 공허한 메아리를 울리며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2년 전에 이 집을 샀으나 가구를 다 들여놓지는 않았다. 사실 식당, 서재, 두 군데 침실에만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싸구려 커튼을 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갖다 놓지 않았다. 빈스는 이 저택을 간이역 정도로 생각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는 링컨 해변 가에 있는 집을 사서 이사를 갈 것이다. 이 집은 그때까지만 머물 임시 주거지였다. 링컨 해변은 서핑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고 또한 굽이치는 그 거대한 바다는 정말 장관이다. 그러나 그가 현재 이 집을 가구들로 치장하지 않는 것은 임시로 살 집이라는 것과는 무관하였다. 그는 그냥 하얀 벽과 깨끗한 콘크리트 바닥과 빈 방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꿈꾸던 집을 마침내 사게 되면 바닥과 모든 벽에 하얀 세라믹 타일을 붙이고 윤낼 생각이었다. 시각적으로 <따뜻함>을 주는 나무나 돌, 벽돌, 감촉 있는 표면 등은 없을 것이다. 가구들은 자기가 설명한 대로 맞추어서 하얀 에나멜 칠을 여러 번 하고는 그 위를 하얀 비닐로 씌울 것이다. 그렇게 모든 표면들을 하얗게 빛나도록 꾸미고 불가피게 변화를 주어야 할 곳은 유리와 광택이 잘 나 있는 철제품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 집에 푹 파묻혀 있어야 비로소 자기 생에 처음으로 평화로움과 안락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 짐들을 풀어놓고 난 후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내려갔다. 참치, 푹 삶은 달갈 3개, 호밀 크래커 여섯 개, 사과 두 개와 오렌지 하나, 게토레이 한 병이었다. 부엌에는 모퉁이에 작은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2층으로 올라가 드문드문 가구가 놓여 있는 안방에서 식사를 했다. 그는 서쪽으로 나 있는 유리창 가로 가 그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한 블럭도 안 되는 곳에 해안 고속도로 너머로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서는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 이층에서는 이 모든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드문드문 구름이 덮여 있었다. 그래서 바다가 햇빛과 그늘로 얼룩져 있었다. 어떤 곳은 용해된 크롬같이 보이기도 했고 또 어느 곳들은 검은 피가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그날 날씨는 이상스럽게 차고 쌀쌀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따뜻했다. 바다를 응시하고 있으면 그는 항상 자신의 혈관과 동맥을 통해 흐르는 피의 흐름이 바다의 조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느꼈다. 그는 식사를 다 마치고 잠시 동안 앉아서 낮게 감상적인 노래를 부르며 마치 수족괸의 유리 벽을 빠끔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희미한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지금 파도 밑 그 깨끗하고 차갑고 끝없는 침묵의 세계인 바다 속에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늦게 그는 밴을 몰고 아르빈으로 가서는 바노디네 연구소를 찾았다. 바노디네는 산타안나산 산중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그 연구소는 그토록 비싼 땅에 놀랍도륵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단지 두 개의 건물만을 가지고 있었다. L자 형으로 된 2층 건물과 또 좀더 큰 건물로 V자 형의 단층 건물이었는데 이 단층 건물은 아주 작은 유리창만이 몇개 나 있어 마치 요새처럼 보였다. 둘 다 디자인 면에서는 아주 현대적이었고 평평한 평면과 회색빛 자갈로 표면 처리가 된 검푸른 굴곡이 놀랍도록 잘 어울려서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 주위로는 몇 그루의 야자수와 해홍두가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고 그 앞에는 직원 주차장이 있었다. 또 그 너머로는 아주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 건물은 보기보다 더 컸다. 엄청나게 넓은 그 평평한 부지 때문에 그 실제 규모가 왜곡되고 축소돼 보였을 뿐이었다. 화재는 실험실이 있는 V자형 건물에서만 났었다. 화재가 났다는 흔적은 깨진 몇 장의 유리창과 그 좁은 창틀 위 자갈에 묻은 그을음 뿐이었다. 3차선 진입로에 간단한 문과 초소가 있긴 했지만 그 주위에 담장이 있거나 울타리가 쳐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빈스는 생각만 있으면 그쪽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보초가 휴대한 무기와 연구실이 있는 그 건물의 험악한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 잔디밭도 전자 장치로 감시되고 있을 것 같았고 또 밤에도 그 잔디밭으로 단 몇 걸음만 들여놓으면 정교한 경보 장치가 울려 경비원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알게 될 것 같아 보였다. 방화범은 단순히 불을 지르는 것 이상으로 솜씨가 좋았을 것이다. 그자는 또한 보안장치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빈스는 그 지역을 지나가며 뚫어보고는 다시 되돌아오면서도 또 살폈다. 마치 유령처럼 구름의 그림자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이며 그 건물의 벽을 따라 미끄러져 올라가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노디네는 이상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어쩌면 약간 불길해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자신이 그곳에서의 활동들을 알게 되어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헌팅톤의 자기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 그 장소를 보고나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곳을 다녀와서는 실망했다.여전히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는 이 정보를 자신이 감수한 위험에 걸맞는 가격으로 누군가에게 팔아야 했지만 마땅한 상대가 생각나지 않았다. 미국 정부에는 아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들의 정보였다. 그리고 적국인 소련도 아니다. 그를 고용해 위더비와 야르벡 부부, 허드스톤 가족, 하이네스 등을 죽이도륵 시킨 자들이 바로 소련인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에게 이 일들을 시킨 이들이 소련인들이라는 확증은 없다. 그들은 자기와 같은 프리랜서를 고용할 때는 영리하게 군다. 그러나 그는 일반 폭력단에 고용돼 일한 횟수만큼 이 사람들을 위해 일해온 경험으로나 또 지난 수년 동안 발견해왔던 여남은 건의 실마리들을 근거로 해 그들이 소련인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따금 그는 L. A.에 있는 그 3명의 연락책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있었고 그들은 한결갈이 러시아 억양이 섞인 발음으로 말을 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목표물은 어느 정도는 정치적이었다. 아니면 지금 바노디네 살해건들 경우처럼 군사적인 목표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정보는 단순한 암흑가의 폭력단이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정확하고 자세했었다. 그렇다면 미국도 아니고 소련도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토록 민감한 방위 정보를 사려고 할까? 강대국들의 핵 능력을 능가할 어떤 방법을 찾고 있는 어느 제3세계 독재자? 프랑시스 프로젝트는 어느 작은 히틀러에게 그 정도의 힘을 줄지 모르며 또 그를 세계의 강자로 부각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면 제값을 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가다피 같은 타입의 사람을 대하고 싶어할까? 빈스는 아니다. 게다가 그는 바노디네의 혁신적인 연구에 관한 정보를 소유하곤 있지만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기적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서류철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팔 것이 좀 적었다. 그러나 어제 이후로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줄곧 어느 한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정보를 살 만한 구매인에 대해 부심하던 중에 이젠 그 생각이 완전히 꽃을 피웠다. 그 개다. 그는 다시 바다를 응시했다. 그는 해가 완전히 져 더 이상 바다를 볼 수 없게 된 후에도 계속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허드슨과 하이네스가 그 사냥개에 관해 너무 많은 말을 해주어서그는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잠재적으로는 폭발적이고 또 값어치 있는 것일지라도 그 개 자체에 비하면 천분의 일의 가치도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냥개는 여러 모로 이용될 수 있다. 그것은 꼬리를 가진 돈 기계였다. 첫째는 그가 한 트럭분의 현금을 받고 그 개를 정부나 소련인들에게 되팔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 개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는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그 개를 찾을 수 있을까? 남부 캘리포니아 전역에 걸쳐 비밀리에 아주 대대적인 수색이 소리 없이 진행 중에 있을 것이다. 국방부는 이 추적에 엄청난 인력을 집중시켰을 것이고 만약 빈스가 그 탐색자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감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만일 그가 그 연구소를 탈주한 놈들이 도망쳤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산타안나산 기슭에서 탐색 작업을 실시하게 되면 엉뚱한 것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누런 사냥개는 놓치고 그 괴물과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위험스러울 수 있다. 정말 끔찍하게 위험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침실 창문 너머로 멀리 달이 떠 있는 가운데 구름에 싸인 밤하늘과 바다가 함께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2 아인스타인이 노라 데본의 부엌에서 아트 스트랙을 모퉁이로 몰아넣고 난 하루 뒤인 목요일에 스트랙은 불법 침입, 폭행, 구타, 강간 미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전에 이미 강간죄의 판결을 받고 3년 형 중 2년을 복역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의 보석금은 매우 높았다. 그래서 그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믿어줄 어떤 보증인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사건이 재판에 회부될 때까지 유치장에 계속 남아 있어야 될 운명인 것 같았다. 그것은 노라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금요일에 그녀는 트라비스 코벧과 점심을 하러 나갔다. 그녀는 그의 초대를 수락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트라비스는 그녀가 스트랙에게 시달리면서 겪었던 그 공포와 두려움에 대해 얘기를 듣고는 정말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도착해서 그녀가 순결과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된 것도 어느 정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바이오렛 이모의 편집증 속에서 오랫동안 주입된 사고 방식이 단 며칠만에 깨끗이 씻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의심과 걱정의 찌꺼기가 노라에게서 떠나지를 않았다. 만약 트라비스가 갑자기 자신에게 덤벼든다면 아마 당황할 것이다. 어쩌면 충격까지도 입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고 주입되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친절함과 애정에만 놀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점심을 하러 갔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그 답을 찾는 데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개다. 그 개 옆에 있고 싶었다. 그 개가 그녀에게 푸근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인스타인이 자신에게 베푸는 것처럼 그렇게 아낌없는 애정을 전에는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에 누군가로부터 어떤 애정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동물에게서 받는 애정일지라도 좋았다. 게다가 트라비스 코넬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스타인이 그를 믿고 있고 또 아인스타인이 믿는다면 자신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실외 안뜰에 하얗고 파란 줄무늬 파라솔 아래 린넨이 깔린 테이블이 몇 개 있는 한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서는 개 끈을 연철로 된 테이블 다리에 묶어 놓는다면 그 개와 함께 있는 것이 허용되었다. 아인스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조용히 누워있으면서 아주 행동을 조심했다. 그러다 이따금 고개를 들고 그들이 음식을 건네줄 때까지 간절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들을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노라는 개들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인스타인이 특이하게 민첩하고 호기심이 많다고는 생각했다. 개는 식사를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기 위해 자주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 그들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노라도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꼈다. 노라에게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하는 식사였다. 갖가지 레스토랑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 사람들에 관해 수많은 소설 속에서 읽었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이 레스토랑의 모든 점들이 놀랍고 또 유쾌한 것들이었다. 우유빛 하얀색 화병에 꽂힌 장미 한 송이, 설립자 이름이 새겨진 종이 성냥, 하나하나 꽃 무늬가 새겨져 있는 둥그런 버터, 얼음 물에 떠 있는 레몬 슬라이스 등이 모두 신기했다. 차가운 샐러드 포크가 특별히 놀라운 감동을 주었다. [이걸 보세요.] 주요 메뉴가 나오고는 웨이터가 떠나자 그녀가 트라비스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의 접시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잘못되었어요?] [아니, 아니요. 제 말은, 이 야채 말이에요.] [어린 당근과 어린 호박이지요.] [이렇게 작은 것들은 어디서 났을까요? 그리고 가리비 모양으로 끝을 잘라 놓은 이 도마토들을 보세요. 모든 게 너무 이뻐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이쁘게 만들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은 아주 놀라워 하고 있는 이것들을 그는 아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놀라워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 부족과 세련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마치 자신을 어린 아이같이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고 때른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신기한 것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트라비스는 줄곧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고맙게도 오만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가 이 새로운 발견과 약간 사치스러운 것들에 기뻐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커피를 다 마시고 그녀는 키위 파이, 트라비스는 딸기와 크림,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초콜릿 에클레어(가늘고 긴 슈크림에 초콜릿을 뿌린것)로 디저트를 마친 후 로라로선 자기 생애에서 가장 긴 대화 속에 빠졌다. 그들은 잠시도 불편한 침묵의 시간 없이 2시간 반이나 이야기했다. 노라의 은둔 생활 덕에 생긴 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이 함께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었기 때문에 주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과 고독. 그는 정말 소설가들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책에 대해 아주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통찰력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해 동안 웃었던 것보다 그날 오후에 더 많이 웃었다. 그 일이 너무나 상쾌한 것이어서 이따금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을 떠날 때에는 그녀는 자신들이 실제로 이야기한 것을 하나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모두 색깔 화려한 흐릿한 기억일 뿐이었다. 그녀는 마치 한 원시 부족인이 갑작스레 뉴욕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을 때 느낄 것 같은 감정적 과부하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는 사신에게 일어난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트라비스는 그녀 집에 자신의 픽업 트럭을 놓아 두고 그녀와 함께 걸어서 이 레스토랑에까지 왔었다. 이재 그들은 다시 걸어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까지 오는 동안 줄곧 노라가 그 개의 끈을 잡고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그녀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또 자신의 끈이 그녀의 다리에 걸리지 않게 하면서 그냥 그녀 곁이나 앞으로 온순하게 걸어갔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애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 보았고 그녀도 그러는 그를 보고 미소짓곤 했다. [좋은 개예요.] 그녀가 말했다. [아주 좋지요.] 트라비스가 맞장구쳤다. [아주 점잖아요.] [대개는요.] [그리고 아주 귀여워요.] [그에게 너무 지나치게 아첨하지 말아요.] [그가 자만해질까봐 걱정하세요?] [그는 이미 자만해졌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가 이 이상 자만해지면 함께 살기 불가능해요.] 개가 뒤돌아서 트라비스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주인의 평을 비웃듯이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다. 노라가 웃었다. [어떤 땐 그가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가끔은요.] 트라비스도 동의했다. 노라는 집에 도착했을 때 그를 안으로 들어오도록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초대가 너무 대담하게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트라비스가 그것을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신경 예민한 노처녀임을 알았고 또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고 또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갑자기 바이오렛 이모가 남자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 보따리를 한 아름안고 그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노라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날은 완벽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더 연장시키는 것이 겁났다. 어떤 일이 생겨서 그날 그 모든 기억을 망쳐 버리게 돼 그 동안 좋았던 것을 다 잃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점심에 대해 그에게 감사하고는 감히 그와 악수조차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을 굽히고는 개를 껴안았다. 아인스타인은 그녀의 목에 코를 대고 비비며 그녀의 목을 한 번 핥았고 그녀는 낄낄 웃었다. 그녀는 전에는 낄낄 웃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개에게 매달려 몇 시간 동안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녀는 열려진 문 앞에 서서 그들이 픽업을 타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트라비스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그 트럭은 모퉁이에서 오른 쪽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노라는 자신이 너무 겁이 많았음을 후회했고 트라비스에게 잠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함치듯 그의 이름을 부르며 거의 뛰다시피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 진입로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때는 트럭은 가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집 안으로 들어가 좀더 밝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닫았다. 3 벧 특수 유격대 전투 헬리콥터가 나무가 울창한 산골짜기와 산타안나산 기슭의 민둥 산등성 위로 휙 지나갔고 그 아래로 그 그림자가 따라 달렸다. 금요일 오후가 저물면서 해가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리 짐 계곡 정상에 다가가면서 레무엘 존슨은 헬기 유리창 밖을 내다 보았다. 그리고는 저 아래에 지방 경찰서 자동차 4대가 좁은 흙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검시실 웨곤과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지프차를 비롯해 몇 대의 다른 차들도 돌오두막 옆에 주차되어 있었다. 조종사가 가까스로 충분한 공간을 잡아 공터에 헬리곱터를 착륙시켰다. 엔진이 꺼지기도 전에, 헬리곱터의 날개 속도가 줄어들기도 전에 렘은 그곳에서 나와 오두막을 향해 급히 갔고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프 소아메스가 그의 뒤를 바싹 뒤쫓아 들어갔다. 지방 경찰서장인 왈트 가이네스가 렘이 다가올 때 그 오두막에서 걸어나왔다. 가이네스는 190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90키로가 넘었고 거창한 어깨에 아주 두꺼운 가슴을 가진 덩치 큰 사람이었다. 그의 옥수수빛 노랑 머리와 수레 국화빛 파란 눈 때문에, 만약 그의 얼굴이 그렇게 넓지만 않았다면, 또 그의 모습이 그렇게 둔감해 보이지만 않았다면 그는 영화 배우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는 55세였지만 40대처럼 보였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그가 20년 동안 복무해온 해령대에서 해온 것처럼 그렇게 짧았다. 렘 존슨은 왈트가 모든 곳이 하얀 것처럼 모든 곳이 검은 흑인이었지만, 또 왈트보다 20센티나 작았지만, 또 왈트보다 몸무게가 30키로 정도 적게 나갔지만, 또 왈트네 집안은 남부 켄터키의 가난한 백인들이었고 그는 중상류층의 흑인 가정 출신이지만, 그리고 렘은 그 서장보다 10살이나 어리지만 그들은 친구였다. 아니 친구 이상이었다. 막역한 사이다. 그들은 함께 브리지 게임을 하고, 함께 바다 낚시를 하러 심해로 나가고, 서로의 집 안뜰에서 야외용 의자에 앉아 코로나 맥주를 마시거나 세상 모든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순수한 기쁨을 함께 나누곤 했다. 그들 부인들도 가장 친한 친구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이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말 운 좋은 발전이었다. 왈트의 말에 의하면 자기 부인은 자기가 지난 20년 동안 소개해 준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 어떤 사람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렘에게도 왈트 가이네스와의 우정은 또한 기적이었다. 그는 쉽게 친구를 사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 중독자였고 보통 아는 사이를 좀더 지속적인 관계로 조심스럽게 가꿀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물론 왈트의 경우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가꿀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기 투합했었고 서로에게서 자기와 비슷한 태도와 견해를 발견했었다. 그들이 6개월 정도 알고 지내는 동안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까웠던 사이인 것처럼 되었다. 렘은 그들의 우정을 거의 카렌과의 결혼만큼이나 가치있게 보았다. 그가 이따금 왈트와 만나 얼마큼씩 화를 풀어내 버릴 수 없었다면 그의 직업에서 오는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헬리콥터의 날개가 조용해져 가자 왈트 가이네스가 말했다. [난 반백의 한 늙은 계곡 거주자의 살해 사건이 왜 자네네 연방 기관원들의 관심을 끄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그렇겠지요.] 렘이 말했다.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알고 싶어할 필요도 없고 말예요.] [아무튼 난 자네가 직접 이렇게 올 줄은 생각치 못했네. 그냥 자네의 그 양복쟁이들 몇 명만을 보낼 줄로 생각했지.] [국가 안보국 사람들은 양복쟁이들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렘이 말했다. 크리프 소아매스를 쳐다보며 왈트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저 사람이 당신네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요, 그렇지 않소? 크리프, 얼빠진 양복쟁이들같이 말이요.] [폭군이지요.] 크리프가 맞장구쳤다. 그는 빨간 머리에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31살의 남자였다. 그는 국가 안보국 수사관이라기보다는 열성적인 젊은 전도사 같아 보였다. [맞아, 크리프.] 왈트 가이네스가 말했다. [자네는 렘이 어떤 가정 출신인지 이해했어야 했어. 그의 아버지는 일 년에 20만 달러 이상 벌어본 적이 없는 학대받는 흑인 사업가였지. 가난했지. 알겠지. 그래서 렘 저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자네들 백인 청년들로 하여금 시련을 겪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잔혹했던 고난의 세월을 보상하기 위해서 말이야.] [절보고 본인을 '마샤'라고 부르랍니다.] 크리프가 말했다. [충분히 그렇겠지.] 왈트가 말했다. 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들 둘이 미친 여자 뭣 본 듯 재미있어 하는데...... 시체는 어디 있어요?] [이쪽으로, 마샤.] 왈트가 말했다. 따뜻한 오후 바람이 휙 불어와 주위의 나무들이 흔들리며 나뭇잎 움직이는 소리에 계곡의 침묵이 깨졌다. 서장이 렘과 크리프를 오두막 안에 있는 두 개의 방 중 첫 번째 방으로 인도했다. 렘은 왜 왈트가 그렇게 익살스러운 말을 했는지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억지로 짜낸 그 유머는 오두막 안에 있는 공포와 반작용이었다. 그것은 웬지 마치 밤에 공동 묘지에서 두려움을 쫓아 버리기 위해 큰 소리로 웃는 것과 같아 보였다. 두 개의 안락 의자가 엎어져 있었고 커버가 타져 있었다. 소파의 쿠션들은 찢겨져 그 안에 있는 하얀 스티로폴 속감들이 드러나 보였다. 책들이 귀퉁이 서가에서 떨어져서 찢겨진 채 온 방 안에 흩어져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의 유리 파편들이 그 난장판 속에서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 파편들 위와 벽들에 피들이 튀어 있었다. 그리고 가벼운 송판 마루 바닥에는 검게 마른 피가 아주 여러 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꾸미려고 밝은 색깔의 실을 찾고 있는 한 쌍의 까마귀같이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실험실 요원들이 조심스럽게 그 난장판 속을 샅샅히 조사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들 중 하나가 들릴듯 말듯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핀셋으로 무엇인가를 집어 그것을 비닐 봉지에 넣고 있었다. 그 시체는 이미 조사를 끝내고 사진 촬영까지 마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불투명한 비닐 시체 안치용 백에 넣어져 구급차로 옮겨지기를 기다리며 문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뿌연 비닐 아래로 단지 희미하게 보이는 자루 안의 시체를 내려다 보며 렘이 말했다. [그의 이름이 뭐요?] [웨스 달베르그,] 왈트가 말했다. [여기서 십년 이상 살았지.] [누가 발견했어요?] [한 이웃 사람이.] [언제 살해되었나요?] [우리가 가장 가깝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약 3일 전이야. 아마도 목요일 밤 같아. 그것을 정확히 알려면 실험실 테스트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 최근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부패 속도에도 차이가 난다구.] 목요일 밤이라. 목요일 아침 새벽 아직 동트기 전에 바노디네에서 탈주 사건이 일어났었다. 목요일 밤이면 그 괴물이 이 정도로 멀리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렘은 그것을 생각하고는 몸을 떨었다. [추운가?] 왈트가 빈정대며 물었다. 렘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들은 친구다.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경찰이다. 하나는 지방 경찰이고 하나는 연방 경찰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들은 서로 상반된 입장에 있었다. 왈트의 일은 진실을 밝혀서 그것을 공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렘의 일은 이 사건의 뚜껑을 닫고 이것을 아주 단단하게 단속해 놓는 것이다. [이 안의 냄새가 아주 고약하군요.] 크리프 소아메스가 말했다. [우리가 그 시체를 백 안에 넣기 전에 당신이 그 냄새를 맡았어야 하는 건데.] 왈트가 말했다. [썩은 냄새 정도겠지요.] 크리프가 말했다. [아니야.] 왈트가 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 얼룩을 여기저기 지목하며 말했다. [오줌과 배설물이야.] [피해자의 것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왈트가 말했다. [이것에 대한 예비 테스트를 끝냈나요?] 렘이 걱정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현미경으로 하는 현장 정밀 조사말이오.] [아니, 우린 샘플을 실험실에 넘기려고 해.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온 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건 그놈의 것으로 생각해.] 시체 백에서 눈을 떼고 올려다 보며 렘이 말했다. [달베르그를 죽인 사람을 얘기하는 거겠지요.] [사람은 아니었어.] 왈트가 말했다. [그리고 난 자네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 [사람이 아니라고?] 렘이 말했다. [적어도 자네나 나 같은 사람은 아니야.]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 까닭이 있겠나.] 왈트는 커다란 한 손으로 뻣뻣한 머리카락이 많은 뒷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시체로 미루어 보면 그 살인마는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아마 발톱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성질이 아주 난폭할 거야. 자네가 찾고 있는 것과 비슷한가?] 렘은 그런 미끼에 넘어갈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상쾌한 솔바람이 그 부서진 유리창을 통헤 불어와 그 유독한 냄새를 어느 정도 쓸어냈다. 실험실 사람 중 하나가 [아!] 소리를 내며 핀셋으로 파편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집었다. 렘이 걱정스레 한숨을 쉬었다. 이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그들이 호기심을 아주 심하게 느낄 정도로는 여러 증거물들을 모을지 모르지만 달베르그를 살해한 것이 무엇인지 알 정도까지 못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방위의 문제이고 어떠한 민간인도 이것에 대해 호기심을 키우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렘은 그들의 조사를 중단시켜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왈트를 화나게 하지 않고 끼여들 수 있기를 원했다. 이것은 그들의 우정에 대한 진짜 시험이 될 것이다. 그 시체 백을 응시하다 갑자기 그 시체 모양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말했다. [머리가 없잖아.] [자네 연방 수사관들은 빈틈이 없구만, 안그래?] 왈트가 말했다. [목이 잘렸습니까?] 크리프 소아메스가 불안스레 물었다. [이리로.] 왈트가 그들을 두 번째 방으로 인도하며 말했다. 그곳은 좀 원시적이지만 싱크대에 수동식 펌프와 나무를 연료로 쓰는 구식 화덕이 있는 커다란 부엌이었다. 머리를 제외하고는 부엌에는 폭력의 흔적이 없었다. 물론 그 머리는 아주 엉망이었다. 그것은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접시 위에, [맙소사!] 크리프가 조용히 말했다. 그들이 그 방에 들어갔을 때 한 경찰 사진사가 여러 각도에서 그 머리를 찍고 있었다. 아직도 그는 다 찍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 죽은 사람의 눈은 뽑혀 없어졌다. 그 빈 구멍은 우물 만큼이나 깊었다. 크리프 소아메스는 너무 하얗게 질려서 그의 주근깨가 그 얼굴색과 대조돼 마치 불티같이 그의 피부 위에서 불타고 있었다. 렘은 메스꺼움을 느꼈다. 단지 웨스 달베르그에게 일어난 일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그 모든 죽음들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관리 및 수사 기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이 사건을 더 잘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적을 과소 평가하거나 또는 이 악몽이 아주 빨리 끝날 것인 체할 수 없는 아주 빈틈 없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살인마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심과 운(運)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 더 많은 시체가 쌓일 것이다. 그 머리는 그냥 잘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 그건 할퀴고 씹히고 비틀려서 떨어진 것 같았다. 렘의 손바닥이 갑자기 축축해졌다. 이상하다...... 어떻게 그 머리의 빈 구멍이 마치 그 안에 커다란 눈이 있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그 자리에 못박히게 하는가? 그의 등골에 한 방울의 딴이 맺혀 골을 따라 흘러 내렸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겁이 났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이 일에서 빠지고 싶지 않았다. 이 위급 사태가 제대로 처리되는 것이 바로 국가 안보에도 아주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안전에도 중요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만큼 그것을 그렇게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자화 자찬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최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정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잘못된 겸손은 가지질 않았다. 이것은 그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이 문제와 함께 할 것이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너무 민감하다할 정도로 의무와 책임감을 중시여기는 사람으로 키웠다. [흑인은 아무튼 어떤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백인들보다 두 배로 일해야 해. 더 가혹한 사실은 없다. 저항할 가치도 없어. 그것이 바로 인생의 한 사실이야. 차라리 겨울에 추워지는 날씨에 저항하는 것이 나아. 저항하는 대신 해야할 일은 사실을 직시하고 두 배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거야. 그리고 넌 너의 모든 형제들을 위해 기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돼.] 그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런 가정 교육 결과 렘은 어떤 과제든 주저하지 않고 완전히 몰두하지 않고는 못배겼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 했고 또 실패를 맛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을 그가 성공적으로 매듭지을 수 없을 때는 몇 주씩 깊은 실의에 빠질 수 있었다. [밖에 나가서 잠깐 얘기 좀 할까?] 왈트가 열려진 오두막 뒷문으로 나가면서 물었다. 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크리프에게 말했다. [여기 있게. 그리고 검시관, 사진사, 정복 경찰 등 누구도 내가 말하기 전에 여기를 떠나지 못하게 하게. 확실하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크리프가 말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오두막 앞문 쪽으로 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잠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고 그 눈 없는 머리에서 떨어져 있도록 했다. 렘은 왈트 가인네스를 따라 오두막 뒤 공터로 갔다. 그는 양철통과 땔감들이 땅바닥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잠시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린 이 사건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왈트가 말했다. [아마 달베르그가 불을 피우기 위해 땔감을 빼고 있었을 거야. 그때 아마 무엇인가가 저 나무 숲 속에서 나왔겠지. 그래서 그는 그것을 향해 이 양철통을 던지고는 집 안으로 달려들어 갔을 거야.] 그들은 신비로운 녹색의 깊은 숲 속을 응시했다. 붉은색이 감도는 오렌지색의 늦은 오후 햇볕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렘은 불안했다. 그는 위더비 실험실에서 도망친 놈이 그들을 지켜보며 가까이에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왈트가 물었다. [말할 수 없어요.] [국가 안보 사항이라고?] [맞아요.] 전나무와 소나무, 플라타너스가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소리를 냈다. 그리고 렘은 무엇인가가 그 덤불 속에서 몰래 움직이고 있는 소리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은 자기나 왈트 가이네스나 둘 다 어깨 총집에 믿을 만한 권총을 넣고 무장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왈트가 말했다. [자네가 고집하면 자네는 입을 봉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네는 나를 전적으로 암흑 속에 있게 하지는 못할 걸세. 난 내 스스로 몇 가지 점들을 파악할 수 있어. 난 바보가 아니잖아.] [나도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목요일 아침 오렌지 카운티와 산 베르나디노 카운티의 모든 경찰서들이 자네네 국가 안보국으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았지. 우리들에게 범인 수사에 협조할 준비를 해달라고 말이야. 지켜야 할 자세한 수칙도 함께였지. 그것이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 우리는 자네네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맡고 있는지 알아. 안보 연구를 지켜 주고 보드카 오줌을 싸는 러시아인들이 우리의 비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 그리고 남 캘리포니아는 우리 나라 안보 연구소들의 반이 있는 고장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도둑 맞을 것이 아주 많지.] 렘은 숲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왈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머니 속에 꽤나 중요한 것을 가지고 다니는 어느 러시아 스파이를 찾으려는가 보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우린 미국을 위해 어느 바보녀석을 차버리는 데 일조할 기회를 가지게 돼 행복했지. 그러나 정오가 되자 우린 자네들로부터 자세한 정보를 듣기는 커녕 오히려 이전의 요청을 취소한다는 전보를 받았어. 범인 수사는 없던 것으로 하자는 거였지. 모든 것은 평정이 되었다고 자네 사무실에서 우리에게 말했지. 처음 경보는 실수로 발생했다고 말이야. 자네들이 그렇게 말했지.] [맞아요.] 국가 안보국은 지방 경찰은 충분하게 관리될 수 없고 그러므로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군사적인 일이었다. [실수로 나온 경보예요.] [악착스럽구만. 똑같은 날 오후 늦게 우린 엘 토로에서 해병대 헬리콥터들이 산타안나산 기슭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았지. 그리고 수요일 아침 첨단 기술의 추적 장비를 갖춘 백 여명의 해병대원들이 지상 수색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펜드리톤 기지에서 날아왔지.] [나도 그것에 관해서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 기관과는 무관해요.] 렘이 말했다. 왈트는 렘을 쳐다보는 것을 고의적으로 피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나무들을 보았다. 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고 또한 렘으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똑바로 그의 눈을 바라보는 가운데 렘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라고 느꼈다. 왈트 가이네스는 거칠고 매너가 안 좋게 보였지만 그는 우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아주 신중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카운티[郡] 경찰서장이다. 그리고 렘이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게속 알아보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가 말했다. [해병대가 우리에게 그것은 단지 훈련일 뿐이라고 말하더군.]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 [우리는 항상 10일 전에 훈련 통지를 받곤 했지.] 렘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숲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가 번쩍하며 어떤 검은 존재가 소나무가 우거진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해병대가 저 산기슭에서 수요일 하루 종일과 목요일 반 나절을 보냈지. 그러다 기자들이 이 훈련에 관해 듣고 와서는 기웃거리며 돌아다니자 그 해병대원들이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는 짐을 챙겨 귀대해 버렸어. 그것은 마치 말이야,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너무 걱정되고 또 너무 극비 사항이라 그것을 찾다가 언론에 알리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아예 찾지 않으려는 것만 같단 말이야.] 렘은 긴장한 채 실눈으로 숲 속을 보면서 어두워 가는 그 그늘 속을 계속 주시하며 방금 전에 그의 관심을 끌었던 움직임을 다시 보려고 했다. 왈트가 말했다. [그리고나서 어제 오후에 국가 안보국이 '특이한 보고나 이상한 공격, 또는 극도로 난폭한 살인 사건' 등이 있으면 계속 알려 달라고 요청해 왔어. 우리는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지. 하지만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어.] 저기서다. 상록수 가지 밑 어두운 곳에서 잔 물결이 일었다. 숲 가장자리에서 25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한쪽 어두운 은신처에서 다른 쪽으로 재빨리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무엇이 있었다. 렘은 바른 손을 코트 안으로 집어 넣어 어깨 총집에 있는 권총 손잡이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나서 하루 뒤 우리는 산산이 찢겨진 이 망할 불쌍한 달베르그를 발견했지. 그리고 이 사건은 너무나 특이했어. 내가 기대했던 대로 너무 지나치게 난폭한 것이야. 그리고 이제 자네가 여기 왔네. 남 캘리포니아 국가 안보국 지국장인 미스터 레무엘 존슨이 내일 밤 브리지 게임 때 내가 어떤 음료수를 마실 것인가를 묻기 위해 이리로 헬기를 타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말이야.] 숲 속 움직임이 25미터보다 더 가까워졌다. 훨씬 가까워졌다. 렘은 두터운 그늘과 또 나무 사이를 뚫고 이상하게 굴곡돼 비치는 늦은 오후의 햇살 때문에 헷갈렸다. 그것은 이제 12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어쩌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다 갑자기 그것이 그들을 향해 곧바로 왔다. 숲 속에서 그들을 향해 뛰면서. 렘이 고함치며 총집에서 권총을 뺐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다리를 넓게 벌리고 두 손으로 총을 잡고 겨냥했다. [저건 단지 검은 사슴일 뿐이야.] 왈트 가이네스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냥 검은 사슴이었다. 그 사슴은 바로 몇 미터 앞, 축 늘어진 전나무 가지 아래에서 멈추고는 호기심으로 빛나는 커다란 갈색 눈을 뜨고 그들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놈들은 이 협곡에서 너무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거의 길들여진 것이나 다름없어.] 왈트가 말했다. 렘은 권총을 다시 집어 넣으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검은 사슴은 그들의 긴장감을 감지했던지 그들에게서 몸을 돌려 오솔길을 따라 껑충껑충 뛰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왈트는 열심히 렘을 쳐다보았다. [이 짓을 한 게 도대체 뭐야? 친구!] 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팔장을 끼었다. 산들바람이 더 세차지면서 좀 싸늘해졌다. 저녁이 저물어가고 그 뒤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엔 자네가 놀라는 것을 본 적이 없네.] 왈트가 말했다. [카페인에 취해서지요. 오늘 커피를 너무 마셨거든요.] [터무니없는 소리.] 렘이 어깨를 으쓱했다. [달베르그를 살해한 것은 짐승이었던 것 같아. 이빨이 아주 많고 발톱과 사나운 그 무엇인가를 가진 것일 게야.] 왈트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짐승도 그 사람 머리를 그 테이블 중앙에 있는 쟁반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을 수는 없어. 그것은 일종의 병적인 조크야. 짐승은 조크를 하지 않아. 그것이 병적이든 아니든 말이야. 무엇인가가 달베르그를 살해했어. 그것이 우리를 조롱하기 위해서 저 머리를 저렇게 올려 놓았지. 그러니 도대체 우리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야?] [알고 싶어해도 안 되고 아실 필요도 없어요. 이 사건은 내 관할이기 때문이오.] [악착같구만.] [난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렘이 말했다. [이것은 지금부터는 연방 정부의 문제요, 왈트. 난 당신네 사람들이 모아 놓은 모든 증거들과 지금까지 기록한 모든 보고서들을 넘겨받겠어요. 당신하고 당신네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해요. 아무에게도. 당신은 이 사건에 대한 서류철을 하나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은 해당 법령 아래 연방 기구의 특권을 주장하는 나의 메모 외에는 아무 기록도 없게 될 겁니다. 그 주장으로 당신은 여기서 빠지게 되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누구도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요, 왈트.] [젠장.] [그냥 손을 떼요.] 왈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난 알아야 하는데.] [그냥 손을 떼요.] [우리 카운티 사람들이 위험하겠지? 적어도 내게 그 정도는 말해주라구, 젠장.] [네.] [위험해?] [네.] [그리고 내가 자네하고 싸운다해도, 그러니까 내가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을 고집한다 해도 그런 위험이 줄어들거나 주민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는 거지?] [그래요. 아무 것도 없어요.] 렘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 자네하고 싸울 필요가 없겠군.] [그렇지요.] 렘이 말했다. 날이 빨리 저물고 있었기 때문에 렘은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둠이 몰려들어 오기 전에 숲 근처에 있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아까 그것은 단지 검은 사슴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번은 모르는 일이다. [잠깐만 기다려.] 왈트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냥 자네에게 말하겠네. 자네는 그냥 듣기만 하게. 자네는 내가 말하는 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네. 자네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흘리면 되는 거야.] [해봐요.] 렘이 성급하게 말했다. 나무 그림자들이 그 공터의 억센 마른 풀들을 가로질러 계속 기어들어 왔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왈트는 나무 그림자에서 벗어나 저무는 햇빛 쪽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손을 뒷주머니에 넣고 어슴푸레한 땅을 내려다보며 잠깐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목요일 오후, 누군가가 뉴포트 해변에 있는 어느 집에 걸어들어가 야르벡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쏘았지. 그리고 그의 아내를 해머로 두들겨 죽였어. 그날 밤 또 누군가가 라구나 해변에 사는 허드스톤 가족을 몽땅 살해했지. 남편, 부인, 십대의 아들을 모조리 말이야. 두 지역의 경찰이 똑같은 법의학 연구소를 이용했어. 그래서 한 총이 두 장소에서 사용됐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 하지만 그 경찰이 그 두 사건에서 알아낸 것은 그것이 전부야. 자네 국가 안보국이 그 범죄에 대해서도 조용하게 관할권을 가져가 버렸던 거지. 국가 안보를 위해서 말이야.] 렘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동의한 것마저 후회했다. 아무튼 그는 그 과학자들의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수사 책임이 없었다. 그것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것이 거의 분명했다. 그는 그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게 그 개와 괴물을 찾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태양이 오렌지빛으로 타고 있었다. 오두막 창문들이 그렇게 사그라드는 햇빛의 반사를 받아 빨간빛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왈트가 말했다. [좋아, 그리고 코로나 델마의 데이비스 워더비 박사가 있지. 목요일 이후로 실종됐었어. 오늘 아침 위더비의 동생이 박사의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했지. 지방 검시관들이 그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국가 안보국 수사관들이 나타났어.] 그 경찰서장이 자기 관할에 있지도 않은 여러 지역으로부터의 정보를 확실하게 모으고 정리하고 또 분석하는 그 기민함에 렘은 약간 기운이 빠졌다. 왈트는 씩 웃었다. [내가 이렇게 모두 연락이 될 줄 생각 못했지, 응? 이 모든 일들이 각기 다른 사법 관할 지역에서 일어났어. 하지만 나에게는 이 카운티는 2백만 인구가 사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지. 그래서 나는 모든 지방 경찰서와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일하는 것을 철칙으로 해왔어.] [요점이 뭐예요?] [요점은 한 날에 훌륭한 시민 6명이 각각 따로따로 살해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는 거야, 이곳은 오렌지 카운티야. 아무튼 L.A.가 아니지. 그리고 그 여섯 건의 죽음 모두가 국가 안보의 긴급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훨씬 더 놀라운 거야. 그래서 내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거지. 난 이 사람들의 배경을 확인하기 시작했어. 그들을 연관 짓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말이야.] [왈트, 제발.] [그리고 난 그들 모두 말이야, 바노디네 연구소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했었다는 것을 알아냈지.] 렘은 화내지 않았다. 그는 왈트에게 화낼 수 없었다. 그들은 형제보다도 더 가까웠다. 그러나 이 덩치 큰 사람의 빈틈 없음이 바로 지금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렘이 말했다. [들어봐요. 당신은 수사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난 이 지방 경찰서장이야, 알잖아?] [하지만 여기 달베르그를 제외하고는 그 살인 사건들의 어느 것도 처음부터 당신 관할이 아니잖아요.] 렘이 말했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해도 일단 국가 안보국이 끼어들면 당신은 계속할 권리가 없어요. 사실 법에 의해서 그건 명백하게 금해져 있어요.] 그의 말을 무시하며 왈트가 말했다. [그래서 난 바노디네를 알아 보았지.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 알아보았어. 그리고 난 그들이 유전공학인 DNA 합성법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어.] [당신은 제멋대로군요.] [바노디네가 방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표시는 없었어.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지. 너무 비밀스러워서 그 재원이 공공자료에도 나타나지 않은 비밀 계획이나 사업일 수도 있지.] [젠장.] 렘이 초조하게 말했다. [우리가 국가 보안법을 어기게 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알지 못해요?] [그냥 지금 추측해보는 거야.] 왈트가 말했다. [지금 당신은 그 흰둥이 엉덩이를 감방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중이예요.] [자, 렘! 여기서 추악한 인종 대립을 가지지 말자구.] [당신은 제멋대로예요.] [그래, 그리고 자네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네. 아무튼 난 좀 골치 아픈 생각을 했지. 그리고 바노디네에서 일한 이 사람들의 살해 사건들이 웬지 수요일과 목요일 해병대가 실시한 범인 수색과 틀림없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여기 웨스 달베르그의 살해도 마찬가지야.] [달베르그 살해 건과 다른 건들은 유사점이 없어요.] [물론 없지. 똑같은 살인마가 아니니까. 나도 그것은 알 수 있어. 이 불쌍한 웨스 달베르그는 조각조각 찢겨졌지만 야르벡 부부, 허드슨 가족, 위더비 등은 프로에게 당했지. 하지만 분명히 관련이 있어.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 연결 고리는 바노디네가 분명해.] 태양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이 몰려들면서 주위가 컴컴해졌다. 왈트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런 거야. 그들이 바노디네에서 어떤 새로운 미생물, 그러니까 유전자를 변형시킨 균을 연구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것이 누출돼 누군가를 감염시켰어. 그런데 그것이 그를 그냥 병만 들게 만든 것이 아니었지. 그것이 그의 뇌까지 아주 심하게 손상시켰고 그래서 아주 사납거나 뭐 그런 것이 된 거지. 이게 내 생각이야.] [첨단 시대에 맞추어 개작한 지킬 박사와 하아드만씨란 말이지요?] 렘이 빈정대며 말을 막았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기 전에 그 실험실을 몰래 빠져 나와 산기슭으로 도망쳐 이리로 와서 달베르그를 공격했다는 말이야.] [싸구려 공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군요.] [야르벡과 다른 사람들은 말이야, 그들이 그 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결과가 너무 겁이 나 일반에게 공개해 버릴까봐서 아마 제거되었겠지.] 좀 떨어진 어슴프레한 협곡에서 조용하고 처량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냥 코요테일 게다. 렘은 이 숲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왈트 가이네스를 다룰 사람은 자신뿐이며 또 이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이 같은 조사나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려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똑바로 얘기하지요, 왈트. 당신은 지금 미국 정부가 자기 나라 과학자들을 단지 그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죽였다고 말하는 거요?] 왈트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깨닫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렘이 말했다. [인생이 정말 단지 루드럼 소설 같은 것인가요? 정부가 우리 국민을 죽여요? 정말 진심으로 그런 허튼 생각을 하나요?] [아니.] 왈트가 인정했다. [그리고 달베르그의 살인마가 어떻게 뭔가에 감염돼 뇌에 손상을 입은 과학자일 수 있단 말입니까? 내 말은 그러니까 당신 입으로 달베르그를 살해한 것은 바로 짐승이라고 했잖아요.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짐승 말입니다.] [좋아, 좋아, 그래서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전혀 말이야. 하지만 난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바노디네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네. 내가 아주 완전히 빗나가지는 않았어, 그렇지 않은가?] [아니요. 빗나갔어요.] 렘이 말했다. [완전히요.] [정말?] [정말입니다.] 렘은 왈트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 그를 속이는 것이 아주 기분 나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그렇게 했다. [난 당신이 잘못된 흔적들을 추적해오고 있었다는 말조차 해 주지 말아야 했어요. 하지만 친구로서 난 당신에게 뭔가를 빚졌다고 생각해요.] 오싹한 울음소리를 따라 또 다른 거친 울음소리들이 숲 속에서 들려 왔다. 그건 그 소리들이 단지 코요테들의 울음 소리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이지만 렘 존슨은 그 소리에 으스스해졌고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왈트는 한 손으로 그 황소 갈은 목덜미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것이 전혀 바노디네와 상관이 없다는 거지?] [전혀요. 위더비와 야르벡이 둘 다 그곳에서 일했다는 것은 단지 우연이에요. 그리고 허드슨이 그곳에 일했었다는 것도 그렇고요. 만약 당신이 계속 연관이 있다고 고집한다면 헛수고만 할 뿐이죠. 그것은 나로서는 상관없지요.] 태양이 졌다. 그리고 훨씬 차갑고 힘찬 바람이 어두워져 가는 이 숲 속으로 불어왔다. 왈트는 여전히 목덜미를 문지르며 말했다. [바노디네가 아니란 말이지, 응?]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난 자네를 너무 잘 알아, 친구. 자네는 너무나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네 어머니에게도 거짓말을 할 거야.] 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 왈트가 말했다. [난 손 떼겠네. 지금부터는 자네 사건이야. 내 관할 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만일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글쎄, 난 다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할지 몰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가 없네. 나 역시 아주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거든. 자네도 알잖아.] [알아요.] 렘이 죄의식과 또 아주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마침내 그들은 둘 다 오두막을 향해 돌아왔다. 동쪽 하늘은 깜깜했고 서쪽 하늘은 진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가면서 그 빨간 현란한 빛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코요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저쪽 바깥 어두운 숲 속에서 무엇인가가 그 울음소리를 되받아 울부짖었다. 렘은 그것 역시 코요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4 성공적인 금요일 점심 데이트 이후 이틀이 지난 일요일에 트라비스와 노라는 산타 이네즈 골짜기의 덴마크식 마을인 솔방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곳은 정교한 스칸디나비안 수정에서부터 덴마크 맥주 조끼의 프라스틱 모조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파는 수백 개의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관광지였다. 기이한 건축물(계산된 설계지만)과 나무들이 늘어선 거리들 때문에 단순히 진열장 안의 물건들을 구경하는 기쁨 이상으로 기분이 한층 드높여졌다. 여러 번 트라비스는 노라의 손을 잡고 꼭 쥐고 거닐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옳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아직은 손 잡는 것과 같은 해롭지 않은 접촉조차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지 모른다고 느꼈다. 그녀는 역시 또 단조로운 옷을 입었고 이번에는 흐린 파란색으로 거의 자루와 같은 옷이었다. 거기에 지각 있는 신발을 신었다.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그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멋을 내지 않은 상태로 부드럽게 흘러내려져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순수한 기쁨이 생겼다. 그녀는 상냥한 성품을 가졌고 확실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친철했다. 그녀의 순진함은 아주 신선했다. 그녀의 수줍음과 겸손함은 좀 지나친 데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귀엽게 보였다. 그녀는 모든 것들을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 하며 보았고 그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단순한 것들로 그녀를 놀라게 하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오로지 뻐꾸기 시계만을 파는 가게, 또 오로지 박제한 동물들만 파는 가게, 뚜껑을 열면 발 끝으로 도는 발레리나가 나오는 자개 뚜껑 달린 뮤직 박스 등에 그녀는 무척 놀라워 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문안을 새겨넣는 T셔츠를 그녀에게 사 주면서 그 글자가 다 새겨지기 전까지는 보지 못하게 했다. 그 문안은 '노라는 아인스타인을 사랑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은 T셔츠를 입지 못하며 그것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트라비스는 그녀가 정말로 그 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아인스타인은 그 셔츠에 적힌 말을 읽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 가게를 나와서 그를 묶어둔 주차 계기대에서 끈을 풀고는 노라가 아인스타인에게 보라고 셔츠를 펼쳐보였다. 그러자 아인스타인은 그 셔츠를 진지하게 보고는 아주 즐거워하며 그녀를 핥고 코를 문지르고 했다. 그날 그들에게 딱 한번 안 좋은 순간이 있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가게 진열장에 다가갈 때 노라가 갑자기 멈추더니 보도에 있는 인파를 둘러보았다. 아이스 크림을 먹는 사람들, 밀납 종이에 싸인 사과 파이를 먹는 사람들, 이곳 어느 가게에서 샀을 것 같은 깃털 장식의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들, 짧은 반바지와 홀터(팔과 등이 나온 여성용 운동복)를 입은 예쁜 여자 아이들, 노란 무무(헐겁고 화려한 하와이 여자의 드레스)를 입은 아주 뚱뚱한 여자, 영어와 스페인어와 일본어와 베트남어와 또 남 캘리포니아 관광지라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그 모든 언어들을 말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녀는 복잡한 거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돌과 나무로 된 3층 풍차집 에서 고정되더니 몸이 뻣뻣해지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트라비스는 자그마한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한 벤치로 그녀를 안내해야 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떨며 앉아 있다가 몇 분이 지나서야 겨우 무슨 문제였는지를 말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많이 보았어요.] 마침내 그녀가 말했고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새로운 장면들...... 새로운 소리들...... 갑자기 색다른 것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어요. 정말 너무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가 감정에 젖어 말했다. [전 우리 집과 낯익은 사물들에만 익숙해 있었죠. 사람들이 쳐다보지요?]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주목할 것이 뭐 있나요?] 그녀는 어깨를 둥글게 구부린 채 머리를 앞으로 떨어뜨리고 손은 쥔 채 무릎 위에 올려 놓고는 앉아 있었다. 아인스타인이 머리를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기 전까지...... 그녀는 개를 쓰다듬자 점차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전 즐거웠어요.] 그녀는 머리를 들지는 않았지만 트라비스에게 말했다. [정말 즐거웠어요. 전 집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를 생각했어요. 신기하게도 얼마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말예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돼요.] 그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주 아주 멀어요.] 그녀가 말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이곳은 상당히 먼 거리일 수 있다고 트라비스는 생각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집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깨달았을 때, 그리고 모든 것이 얼마나 다...... 다른 지를 깨달았을 때 전 두려워서 어린애같이 입이 다물어졌어요.] [지금 산타 바바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아니요. 여기 좀 있고 싶어요. 하루 종일요. 여기서 어느 레스토랑을 정해 저녁을 먹고 싶어요. 여기 길거리 카페가 아니라 좀 안 쪽으로 들어간 곳이요. 다른 사람들이 하듯 말예요. 그리고나서 어두워진 뒤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두워진 후에요.] [좋아요.] [물론 당신이 지금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요.] [아니 아니요.] 그가 말했다. [전 이것으로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어요.] [이렇게 해주시다니 정말 친절하시군요.] 트라비스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무슨 말씀이지요?] [아시잖아요.] [모르겠는데요.] [저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고요. 정말 너무 관대하세요.] 그는 놀랐다. [노라, 확실히 말씀 드리죠. 지금 내가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은 무슨 자선 봉사가 아니에요.] [전 당신 같은 분은 5월 일요일 오후에 더 좋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집에 있으면서 내 신발들을 모두 꺼내 칫솔로 깔끔하게 닦고 있겠지요. 마카로니 상자에서 그 내용물의 숫자를 세고 있거나 말예요.]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당신은 심각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단지 당신을 동정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입술을 물며 말했다. [맞아요.] 그녀는 다시 개를 내려다 보았다. [전 괜찮아요.] [하지만 전 정말 동정으로 여기에 온 게 아니에요. 난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여기 왔어요. 정말이오. 난 당신을 아주 좋아합니다.] 머리가 아래로 떨구어져 있어도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들어지는 것은 눈에 보였다. 잠시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인스타인은 그녀가 자신을 쓰다듬을 때 홀딱 반한 듯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이따금씩 눈을 돌려 트라비스를 바라보며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옳지, 당신은 관계의 문을 열었어. 하지만 바보같이 그냥 거기 앉아 있지 말고 무엇인가 말하고 더 진전시켜. 그래서 그녀를 끌어들여.' 그녀가 사냥개의 귀를 긁어주며 몇 분 동안 어루만져 주고는 말했다. [이제는 좋아졌어요.] 그들은 그 조그만 공원을 벗어나 다시 가게들을 지나치며 한가로이 거닐었다. 그리고 한참 지나자 마치 그녀가 공포를 느꼈던 순간과 또 그가 어설프게 애정을 천명했던 일들이 모두 다 없었던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수녀에게 구애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했다. 삼년 전 그의 아내가 죽은 이후로 그는 줄곧 독신이었다. 성적인 관계에 대한 화제가 다시 모두 그에게 낯설고 새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꼭 자신이 어느 수녀에게 구애하는 성직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모든 구역에는 빵집이 있었고 또 새로운 빵집의 진열장에 있는 것들을 볼 때마다 이전 장소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 육계피, 가루 설탕, 육두구, 아몬드, 사과, 그리고 초콜릿 등의 냄새들이 따듯한 봄 공기 속에서 흩날렸다. 아인스타인은 빵집마다 멈추고는 앞다리를 진열장 턱에 올려놓고 식욕이 생기는 듯 유리창을 통해 정교하게 정렬해 놓은 케이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개는 그 어느 가게로도 들어가지 않았고 짖지도 않았다. 개가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는 신중하게 낮은 소리로 찡찡거릴 뿐 그 붐비는 관광객들에게 폐가 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물렁한 캔디와 작은 사과 파이를 받아 먹고는 만족하고 더 이상 구걸하지 않았다. 10분 후 아인스타인은 노라에게 자신의 그 놀라운 지능을 드러냈다. 그는 아주 좋은 개였고 또 애정이 많고 똑똑하고 품행이 바른 개였다. 그리고 그는 아트 스트랙을 쫓고 구석으로 몰아넣는 데 상당한 독창력을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녀에게 자신의 놀라운 지능을 알아채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다 그녀가 이것을 목격했을 때도 처음에는 자신이 본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한 약국을 지나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또한 신문들과 잡지들도 팔고 있었으며 어떤 것들은 바깥 출입구 옆에 있는 진열대에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인스타인이 갑자기 그 약국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노라는 개 끈을 놓쳤고 그래서 깜짝 놀랐다. 노라나 트라비스가 그를 다시 붙잡기 전에 아인스타인은 자기 이빨로 그 진열대에서 잡지 하나를 물어 그들에게 가져와 노라 발 밑에 떨어뜨렸다. 그것은 신부생활이란 잡지였다. 트라비스가 그를 붙잡으려고 하자 아인스타인은 그를 피하더니 다시 신부생활을 한 권 더 낚아챘다. 그리고는 노라가 자기 발 밑에 있는 잡지를 다시 진열대에 올려 놓으려고 집을 때 개는 지금 다시 낚아챈 잡지를 트라비스 앞에 또 놓았다. [주책없는 개로구나.] 그녀가 말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어?] 개 끈을 잡으면서 트라비스는 통행인들 사이를 뚫고 그 두 번째 잡지를 본래 자리에 다시 갖다 놓았다. 그는 아인스타인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노라를 당황하게 할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걸었다. 아인스타인은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고 또 흥미있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냄새를 말았다. 그리고는 그 결혼 잡지에 대한 자신의 그 열의는 금방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스물 걸음도 못 가서 개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트라비스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며 그의 손에서 끈을 잡아챘고 트라비스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아인스타인은 곧바로 그 약국으로 가서는 진열대에서 잡지를 다시 낚아채서 돌아왔다. 신부생활이었다. 노라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몸을 웅크리고 그 사냥개의 털을 헝클어뜨렸다. [이것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읽을 거리니? 이 주책아! 매달 이것을 읽니? 그래? 분명히 그런 것 같은데. 너는 아주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 쌍의 관광객이 그 명랑한 개를 보고는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들도 이 짐승이 그 잡지를 가지고 장난치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이면의 뜻을 모르는 것은 노라보다 더 할 것이다. 트라비스가 몸을 구부려 신부생활을 집어 다시 그 약국에 도로 가져다 놓으려 하자 아인스타인이 먼저 그 잡지를 물고는 잠깐 동안 난폭하게 흔들어댔다 [심술궂은 개로구나.] 노라는 아인스타인에게 그같이 지독한 성향이 있는 것에 놀란 듯 말했다. 아인스타인이 그 잡지를 떨어뜨렸다. 잡지는 심하게 구겨졌고 또 몇 페이지가 찢어졌다. 그리고 그 종이가 여기저기 침으로 축축해졌다. [우리가 이것을 사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사냥개는 숨을 헐떡이며 보도에 앉아 고개를 곧추세우고 트라비스에게 싱긋 웃었다. 노라는 아직도 그 개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른 채였다. 물론 그녀가 아인스타인의 행동을 복잡하게 해석할 까닭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뛰어난 지능에 익숙하지 않았고 또 그가 그토록 기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트라비스는 그 개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 이 털보야. 이제 이 일은 그만해. 알아듣겠니?] 아인스타인이 하품을 했다. 잡지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약국 봉지에 쑤셔넣고는 그들은 다시 산책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구역 끝까지 도착하기 전에 개는 자신의 의도를 보다 정교하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이빨로 노라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물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그녀를 보도를 따라 한 예술 화랑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한 젊은 남자와 여자가 진열장 안에 있는 풍경화를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 부부는 접을 수 있는 유모차에 한 아기를 태워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이 노라의 관심을 유도하는 대상은 바로 그 아기였다. 그는 그녀로 하여금 억지로 그 어린 아이의 분홍빛 나는 그 통통한 팔을 만질 때까지 그녀의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당황해서 노라가 말했다. [당신네 아기가 너무나 귀엽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또 정말 귀엽네요.] 그 엄마와 아빠는 처음에는 그 개를 걱정했었지만 그가 해를 입히지 않을 것임을 곧 깨달았다. [이 귀여운 따님이 몇 살이에요?] 노라가 물었다. [10개월 됐어요.] 그 엄마가 말했다. [이름은 뭐예요?] [라나] [예쁘네요.] 마침내 아인스타인이 노라의 팔을 놓아 주었다. 그 젊은 부부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어느 한 가게 앞에서 트라비스가 멈추었다. 그 가게는 마치 17세기 덴마크에서 돌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 운반해와 지은 것 같은 고대식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트라비스는 그 개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쪽 귀를 들고 말했다. [이제 충분해. 네가 다시 네 알포를 먹고 싶다면 그만 둬.] 노라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요?] 아인스타인은 하품을 했고 트라비스는 자신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10분 동안에도 개는 다시 두 번씩이나 노라의 손을 물고는 두 번 다 아기들에게로 이끌었다. 신부생활 그리고 아기들. 그 의도는 고통스럽지만 이제 분명했다. 노라에게도 말이다. '당신과 트라비스는 서로 잘 어울려. 결혼해. 아기를 가져. 한 가족을 이루는 거야. 무엇을 기다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트라비스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트라비스 역시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마침내 아인스타인은 자기 뜻을 이해시켰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 개구장이짓을 멈추었다. 그리고 개는 마치 자신이 대견스러운 듯 으쓱대는 것만 같았다. 조금 후 저녁을 먹을 때에도 날씨는 여전히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리고 노라는 실내로 들어가 식사를 할 생각을 바꾸고 평범한 실외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그녀는 커다란 참나무 가지 그늘 아래 빨간 파라솔 달린 테이블들이 놓여 있는 길가의 한 장소를 정했다. 그녀도 이제는 진짜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는 것에 겁먹지 않는다. 그녀가 옥외에서 먹으려는 것은 단지 아인스타인과 함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트라비스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줄곧 그녀는 은밀하게 또 때론 드러내놓고 골똘하게 아인스타인을 쳐다보았다. 트라비스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 일 전체를 잊어버린 척했다. 그러나 그는 개가 자신을 주목할 때, 그리고 노라가 보지 않을 때, 개에게 입 모양으로만 위협했다. '이제 더 이상 사과 파이는 없어. 체인을 채우고 재갈을 물릴 거야. 그리고 개 수용소로 직행이야.' 아인스타인은 씩 웃거나 하품을 하거나 콧구멍으로 콧김을 내뿜으면서 아주 침착하게 그 모든 위협을 받아들였다. 5-2 장 5 일요일 초저녁 빈스 나스코는 '철사끈' 조니 산티니를 방문했다. 조니는 몇 가지로 이유로 '철사끈'으로 불렸고 그중에서도 그가 키가 크고 깡마르고 팽팽하게 긴장돼 있다는 점이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여러 측면에서 마치 철사를 엮어서 만들어 놓은 것같이 보였다. 또한 그의 곱슬 머리도 구리 철사 모양이었다. 그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뉴욕의 5대 가문 중 한 가문의 대부인 그의 아저씨 레리지오 푸스티노를 기쁘게 하기 위해 브론스에서 그 가문 허락 없이 활약 중인 한 무소속 마약 거래업자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을 자청했을 때 이미 자기 기틀을 잡아 놓았었다. 조니는 그 일을 하기 위해 길다란 피아노 줄을 이용했었다. 이런 독창력과 또 가문의 원칙에 대한 헌신을 보임으로써 그는 레리지오 대부로 하여금 벅찬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대부는 평생 흘리지 않던 눈물을 흘리며 자기 조카에게 그 가문이 영원한 존경을 보일 것을 약속하고는 아주 벌이가 좋은 사업을 맡겼다. 이제 조니 철사끈은 35살이며 산 크리멘테에 있는 백만 달러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10개의 방과 4개의 욕실이 있는 집으로 현대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하고도 비싸고 내밀한 아르데코풍 은신처였다. 모든 것이 검고 은빛에 짙은 청색 바탕이 은은히 깔리고 그 위에 터키 옥색과 진주빛이 강조되었다. 아르 데코풍은 떠들썩했던 20년대를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에 아르 데코를 좋아한다고 조니는 빈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20년대는 전설적인 갱들의 로맨틱한 시대였기 때문에 그는 20년대를 좋아했다. 철사끈 조니에게는 범죄는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문명화된 사회의 압박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또한 단지 유전적인 충동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로맨틱한 장대한 전통이었다. 그는 자신을 약탈물을 찾아서 줄곧 항해하는 그 모든 외눈박이 갈고리 손 해적들의 형제요, 또 우편 마차를 터는 그 모든 노상 강도들의 형제로 여겼다. 또 금고털이 강도, 납치범, 횡령범, 암살범 등 범죄에 종사한 그 모든 시대의 인물들을 다 자신의 형제들로 보았다. 그는 자신이 제시 제임스, 딜린져, 알카포네, 달톤 아이들, 럭키 루시아노, 기타 다른 군단 등이 그의 영적인 친척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조니는 그들 모두를, 족 피와 강탈의 이 전설적인 형제들 모두를 사랑했다. 현관에서 빈스를 맞으며 조니는 말했다. [들어와, 들어와, 거구, 자네를 다시 보니 좋구만.] 그들은 서로 껴안았다. 빈스는 껴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살던 때 조니의 숙부 레리지오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이따금씩 푸스티노 가문을 위해 서부 지역 일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와 조니는 포옹이 필요할 정도로 오랫동안 서로 알아왔던 사이였다. [자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만.] 조니가 말했다. [몸을 잘 보살피고 있는가 보군. 여전히 뱀처럼 솜씨 좋게 말이야.] [방울뱀이지.] 빈스는 자신이 그처럼 어리석은 말을 한 것에 좀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니가 듣기 좋아하는 것이 이런 종류의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네를 보지 못해서 난 자네가 경찰에게 붙잡히기라도 한 줄 알았지.] [난 결코 형 같은 건 살지 않을 걸세.] 빈스는 자기 운명엔 감옥같은 건 없다는 걸 분명히 하며 말했다. 조니는 빈스의 그 말을 법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여 인정해 주었다. [그들이 자네를 궁지로 몬다면 그들에게 끌려나오기 전에 될 수 있는 한 그들을 많이 없애 버린다는 거지? 하긴 그것이 깨끗하게 쓰러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철사끈 조니는 몹시 못생긴 사람이었다. 아마도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로맨틱한 위대한 전통의 일부라고 느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오랜 경험으로 빈스는 잘생긴 깡패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낭만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죽이는 것을 좋아하거나 또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냉혈적으로 죽였다. 또 그들은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훔치고 횡령하고 탈취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정당화하는 것도 없다. 찬미도 없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콘트리트 바닥에서 대충 빚어놓은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자신들에게 낭만적인 분위기를 가미시켜 자신들의 불운한 모습을 보상하려 한다. 조니는 검은 낙하복을 입고 있었고 또 검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항상 검은 색으로 입었다. 아마 그것이 자신을 그냥 못생기게 보이도록 하는 대신 사악하게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로비에서 빈스는 조니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가구들이 검은 천으로 겉이 씌워져 있었고 소파 앞 테이블들은 윤기 나는 검은 라커 칠이 되어 있었다. 근사하게 생긴 한 금발 미인이 은색과 검은색이 배합된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잡지를 읽고 있었다. 20살이 안 돼뵈는 그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무르익어 있었다. 그녀의 은빛 나는 금발 머리는 짧은 안말이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중국제 붉은 비단으로 만든 편한 잠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옷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딱 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빈스를 올려다보며 토라질 때는 마치 진하로위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만 같았다. [여기는 사만타야.] 철사끈 조니가 말했다. 그리고는 사만타에게 말했다. [여기 이분은 이 시대의 전설적인 인물로 누구도 함부로 못하는 메이드 맨(made man; 마피아의 정식 멤버)이지.] 빈스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메이드 맨이 뭐예요?] 그 금발 미인이 높은 음정의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는 그 옛날 영화 배우인 주디 홀리스의 목소리에서 따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 긴 의자 곁에 서서 한 손으로 그 금발 미인의 한쪽 가슴을 감싸더니 이내 비단 잠옷 밑으로 손을 넣어 애무하면서 조니가 말했다. [얘는 외국말을 몰라, 빈스, 산골 아가씨지. 인생을 몰라. 우리 관습도 모르지.] [제가 맥시코계 뿔닭이 아니라는 거지요.] 사만타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니는 그녀의 뺨을 사정 없이 때렸다. [멍청한 년!] 그가 중얼거렸다.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제게 잘해주는데...... 전 이렇게 행동하는 제가 싫어요.] 빈스가 보기엔 그것은 연습해둔 장면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사람들이 있을 때나 그들만일 때나 전에 이런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만타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 빈스는 그녀가 맞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조니가 자신을 때리도록 하기 위해 그에게 쫑알거렸던 것이다. 조니 역시 그녀를 때리길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빈스는 역겨웠다. 철사끈 조니는 다시 그녀를 '쌍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빈스를 거실 밖으로 인도해 커다란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는 윙크를 하며 말했다. [걔는 좀 건방져. 하지만 잠자리 맛은 괜찮지.] 조니 산티니의 싸구려 말투가 지겨워진 빈스는 그런 대화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대신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난 정보가 필요해.] 조니는 그 봉투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고 백 달라짜리 지폐 뭉치를 대충 손으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뭘 원하는 거야?] 그 서재는 이 집에서 아르 데코풍이 침범하지 않은 유일한 방이었다. 이 방은 완전히 최첨단 기술의 결과였다. 튼튼한 칠제 테이블들이 3면의 벽을 따라 나란히 놓여 있고 각각 다른 형태와 모델의 컴퓨터들 8대가 그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모든 컴퓨터들은 전용 전화선과 모뎀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모니터의 스크린들이 켜져 있었다. 어떤 스크린에서는 프로그램들이 가동 중에 있었다. 두꺼운 커튼이 창문들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목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두 개의 작업 램프는 빛이 모니터에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리개가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주된 조명은 컴퓨터에서 나오는 초록색 전자빛이었고 이것 때문에 빈스는 마치 바다 수면 아래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3대의 레이져 프린터들이 아주 희미한 소리만을 내며 복사지에 내용을 인쇄해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웬지 바다 밑 해초들 사이를 누비며 헤엄쳐다니는 물고기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하는 소리였다. 철사끈 조니는 6명의 사람을 죽였고, 마권업자들을 관리했었고 또 소속 대원들을 통솔했었다. 그리고 은행털이와 보석털이 등을 기획하고 실행했었다. 그는 푸스티노 가문의 마약 사업, 강탈, 납치, 노조 부패, 레코트 및 비디오 테이프 불법 복제, 장거리 트럭 강탈, 정치적 뇌물, 그리고 어린이 포르노 등에 관여해 왔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해 왔고 그 모든 것들을 보아 왔다. 그리고 그는 어떤 범죄 사업에도 싫증을 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빈번하게 관여해 왔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웬지 좀 지쳐보이는 것 같았다. 지난 십년 간 컴퓨터가 범죄 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 줌에 따라 조니는 마피아의 그 어떤 잘난 인간도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분야로 들어올 기회를 잡았다. 전자 도둑질과 파괴라는 아주 짜릿한 전선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 폭력배들의 최고 컴퓨터광이 되었다. 시간과 동기만 있다면 그는 어떤 컴퓨터라도 그 보안 시스템을 부수고 기업이나 정부 기관의 가장 민감한 정보라도 파고들어가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수백만 달러어치의 물품 대금을 다른 사람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계좌에 올리는 대형 크레디트 카드 사기를 치고 싶다면 철사끈 조니는 신용 카드 관리국의 파일에서 몇개의 적당한 이름과 크레디트 사용 거래 내역을 빼내고 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데이타 뱅크에서 그들의 카드 번호를 얻어낸다. 그리고는 일을 해낸다. 만약 당신이 기소 중인 마피아 두목이고 그래서 아주 무거운 죄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당신 동료 하나가 변절해 검찰측 증인으로 나와 증언할 것이 두렵다면 조니는 최고로 보안이 잘된 사법부의 데이타 뱅크까지도 침입해 들어가 연방 증인 은닉 프로그램을 살펴서 그 변절자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신분을 알아낼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암살자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 지를 알려줄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철사끈'이라고 부르지만 조니는 꽤나 오만하게 자신을 '실리콘 마법사'라고 불렀다. 폭력배들의 컴퓨터광으로서 그는 전국에 있는 모든 가문들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해졌다. 너무 소중해져서 그들은 조니가 그들 밑에서 일하면서도 멋진 해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산 크래맨트 같은 비교적 후미진 곳으로 이사를 가도 상관하지조차 않았다. 마이크로 칩 시대에 세계는 하나의 조그만 촌 마을이 되었고 그래서 산 크래멘트나 오쉬코쉬에 앉아서 뉴욕에 있는 사람의 주머니를 털 수 있게 되었다고 조니는 말하곤 했다. 조니는 고무 바퀴가 달려 있는 등 높은 검은 가죽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그 의자를 굴리며 재빠르게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옮겨갔다. 그가 말했다. [그래, 이 실리콘 마법사가 자네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빈스!] [자네, 경찰 컴퓨터로 침입해 들어갈 수 있나?] [쉬운 일이지.] [지난 주 목요일 이후로 카운티의 어느 경찰 기관이 아주 특이하게 이상한 살인 사건들에 대한 화일을 연 적이 있는지 알고 싶어.] [피해자는 누구야?] [몰라. 난 단지 이상한 살인 사건들을 찾고 있는 거야.] [어떤 방법으로 이상해?] [정확히는 몰라. 아마...... 목이 찢겨져 나간 사람이거나 또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사람, 아니면 어떤 짐승에 의해 몽땅 찝히고 후벼진 사람일 테지.] 조니가 그를 특이하게 쳐다보았다. [그거 이상하군. 좋아, 그 비슷한 것이 신문에는 났을 테지.] [아마 없을 거야.] 프랑시스 프로젝트와 목요일 바노디네 연구소에서의 그 위협한 사태를 언론에 숨기기 위해 국가 안보국의 요원들이 부지런히 활동했을 것을 생각하고는 빈스가 말했다. [살인 사건은 신문에 났을지 몰라. 하지만 경찰은 아마도 그 자세한 참상은 은폐하고 그것들을 평범한 살인 사건 정도로 보이게 만들었을 거야. 그래서 신문에 쓰여 있는 것으로는 어느 사건이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식별할 수가 없단 말이야.] [좋아, 할 수 있지.] [또 동물 관리소를 샅샅이 확인해. 그들이 코요테나 쿠거 또는 다른 육식 동물들의 특이한 공격이 있었다는 어떤 보고를 받지 않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거야. 그리고 단지 사람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소나 양들 같은 가축들에 대한 공격은 없었는지도 알아봐 줘. 어쩌면 군 동쪽 편에서는 많은 가정 애완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거나 또는 사나운 어떤 것에 정말 끔찍하게 찝힌 채 발견되는 동네들조차 있을지 몰라.] 조니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 늑대 인간을 추적하고 있는 겐가?] 그것은 조크였다. 그는 어떤 대답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왜 이 정보가 필요한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일을 꼬치꼬치 알려 들지 않기 때문에 결코 묻지 않았다. 조니는 호기심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빈스는 철사끈이 결코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려 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았다. 빈스는 그 질문 때문이 아니라 씩 웃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컴퓨터 스크린에서 나오는 초록빛이 조니의 눈과 그의 이빨에 묻은 침에 반사되었고 또 좀 덜하기는 했지만 그의 구리 철사 모양의 머리카락에서도 반사되었다. 본래 그는 아주 추하게도 생겼지만 으스스한 그 초록색 냉광 때문에 꼭 괴기 영화에서 다시 살아난 시체처럼 보였다. 빈스가 말했다. [또 하나는 이 카운티의 어느 경찰 기관이 누런 사냥개 한 마리를 은밀하게 수색 중에 있는지 알고 싶네.] [개?] [응.] [경찰은 대개 길 잃은 개를 찾지는 않아.] [알아.] 빈스가 말했다. [그 개에 무슨 이름이 있나?] [아무 이름도 없어.] [확인해보지, 또 다른 것은?] [그게 다야. 언제 그걸 다 알아낼 수 있겠나?] [내가 아침에 전화하지. 일찍 말이야.] 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네가 조사해내는 것에 따라서 말이야, 또 자네에게 하루 정도 계속 이것들을 추적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생길지 몰라.] [애들 놀이 정도지.] 조니가 그 검은 가죽 의자를 한 바퀴 휘 돌리고는 씩 웃으며 벌떡 일어나서는 말했다. [이제, 난 사만타하고 한바탕 해야겠어. 자네도 끼고 싶은가? 우리같이 그것에 밴 남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그 년을 녹초로 만들어 버리겠지. 그래서 우리에게 좀 봐달라고 애걸할 거야. 어떤가?] 빈스는 그 섬뜩한 초록빛 조명이 고마웠다. 그것이 유령처럼 창백해져 가는 그의 얼굴을 숨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오염된 암캐와, 그 병든 창녀와, 그 썩고 곪은 정조 없는 여자와 놀아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그를 메스껍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말했다. [어기면 안되는 약속이 있어.] [거 참 안됐네.] 조니가 말했다. 빈스는 억지로 말했다. [재미있었을 텐데.] [다음에 할 수 있을지 모르지.] 그들 세명이 그런 짓에 덤벼든다는 생각 때문에 빈스는 불결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김이 나는 뜨거운 샤워를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6 일요일 밤 솔방에서의 긴 하루에 기분 좋게 지쳐서 트라비스는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는 노라 데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회색 눈에는 초록빛이 감돌았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 우아하고 가냘픈 목, 아름다운 웃음 소리, 미소 짓는 표정 등이 아른거렸다. 아인스타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 어두운 방의 일부만을 비추어 주는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트라비스가 한 시간 동안이나 뒤치닥거리자 개는 마침내 그의 침대로 올라와 그 큰 머리와 앞발을 트라비스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너무 예쁘지, 아인스타인.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얌전하고 예쁜 여자 같아.] 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똑똑해. 그녀는 생각이 아주 예리해. 자기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예리해.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 그녀에게는 사물들을 신선하고 새롭게 보이도록 묘사하는 재능이 있어. 내가 그녀와 함께 세상을 보면 이 모든 세상이 모두 신선하고 새로운 것 같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지만 아인스타인은 잠들지 않았다. 그는 아주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난 지난 30년 동안 그녀의 그 지성과 활력,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 등 그 모든 것들이 억눌려 온 것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 그 오래된 어두운 집에서 30년 동안을 말이야, 젠장! 그리고 그녀가 그런 세월을 견디어 왔으면서도 냉혹하고 모진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를 껴안고 정말 놀랍고 강하고 용기 있는 여자라고 말해 주고 싶어.] 아인스타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까의 기억이 트라비스의 머리에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솔방의 한 화랑 유리창 앞에서 그가 그녀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였을 때 노라의 머리에서 풍겼던 그 깨끗한 삼푸 냄새가 생생했다. 그는 깊게 숨을 쉬었고 그러자 그것을 다시 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가 그의 가슴을 더 세차게 뛰게 했다. [젠장,] 그가 말했다. [난 그녀를 안 것이 단 며칠밖에 안돼. 그런데 내가 사랑에 빠진 모양이야.] 아인스타인이 머리를 들고 한 번 낮은 저음를 냈다. 마치 트라비스에게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을 시간이 거의 다 됐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들을 함께 합치도록 해 그들의 미래 행복을 만들어 준 공적을 인정받게 되서 기쁘다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이것은 어떤 위대한 계획에서 모두 나왔고 그러니 트라비스는 그것에 관해 애태우지 말고 그냥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시 한 시간 동안 트라비스는 노라에 관해서, 쳐다보고 움직이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 부드러운 목소리의 그 아름다운 음질에 대해서, 삶에 대한 그녀의 특이한 생각과 사고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마음 써 주는 진정한 친구처럼 관심을 가지고 진실로 흥미를 느끼며 들어 주었다.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다. 트라비스는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구도 전혀 사랑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일 수는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영구적인 고독은 도저히 정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후 트라비스는 몸과 마음이 철저하게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가 지난 한밤중에 그는 반쯤 잠을 깼고 아인스타인이 창가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 사냥개는 앞발을 창턱에 올려 놓고 주둥이를 유리창에 대고 있었다. 개는 긴장한 채 어둠 속을 내다보고 있었다. 트라비스는 그 개가 불안해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보름달 아래에서 노라의 손을 잡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즐거운 환상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 두려워 완전히 깨고 싶지 않았다. 7 5월 24일 월요일 아침 레무엘 존슨과 크리프 소아메스는 오렌지 카운티 동편에 있는 아주 사람이 붐비는 아르비네 공원의 작은 동물원에 있었다. 이 동물원은 어린이들을 위한 애완 동물원이랄 정도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태양은 밝고 뜨거웠다. 거대한 참나무는 바람 한 점 없는 대기 속에서 나뭇잎 하나 꿈적도 하지않았다. 그러나 새들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들면서 짹짹거리며 지저귀었다. 12마리의 동물들이 죽었다. 그것들은 피범벅이 된 더미로 쌓여 있었다. 지난 밤 동안에 누군가가 아니 무엇인가가 울타리를 기어올라 우리로 들어가 3마리의 어린 염소와 흰꼬리 사슴 1마리, 최근에 태어난 그 새끼, 공작 2마리, 토끼 1마리, 암양 1마리, 새끼 양 2마리를 살육했다. 조랑말 1마리도 물려 뜯기지는 않았지만 죽어 있었다. 이 조랑말은 무엇인가가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고 있을 때 그것을 피하려고 울타리에 반복해서 제 몸을 부딪치는 동안 놀라 죽은 것이 분명했다. 목이 불가능한 각도로 꺽인 채 옆으로 누워 있었던 것이다. 사나운 곰들은 다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콧김을 내뿜으며 자신들의 먹이통 주위에 있는 흙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음식 부스러기를 찾고 있었다. 그 음식들이 어제 엎어져서 지금까지 먹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존해 있는 다른 동물들은 곰들과는 달리 놀라 정신들이 없어 보였다. 역시 놀라 정신들이 없는 공원 직원들이 카운티 소속 오렌지색 트럭 곁에 모여서 동물 관리국 직원 두 명과 또 야생 동물국 캘리포니아 지회에서 온 젊고 턱수염이 있는 한 생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렘은 그 가냘프고 애처로운 새끼 사슴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 목에 있는 상처를 살피다가 그 냄새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 악취들이 다 죽은 동물들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 살해자가 그 희생물들 위에 똥을 싸고 오줌을 깔긴 흔적이 있었다. 마치 꼭 달베르그의 오두막에서처럼 말이다. 그는 악취를 좀 막아보기 위해 손수건을 코에 대고 죽은 공작새 쪽으로 갔다. 머리가 찢겨 떨어져 있었고 한쪽 다리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두 날개가 부러져 있었고 그 무지개빛 깃털들은 흐리고 또 피로 덤벅이 되어 있었다. [국장님.] 크리프 소아메스가 옆 우리에서 불렀다. 렘이 공작새 곁을 떠나 다음 우리로 열려 있는 쪽문을 발견하고는 암양의 시체 곁에 있는 크리프에게로 갔다. 파리들이 그들 주위에 몰려들어 부산하게 윙윙 날아다니며 그 암양 위에 앉기도 하다가 사람들이 부채로 쫓으면 휙 도망쳤다. 크리프의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금요일 달베르그의 오두막에서처럼 그렇게 놀라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살육 대상이 사람대신 동물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충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마 그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마음을 의식적으로 단단히 준비해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쪽으로 와보시지요.] 크리프는 웅크린 채 말했다. 렘은 그 양 주위를 돌아 크리프 곁에 웅크렸다. 암양의 머리가 그 우리로 뻗어들어온 참나무 가지 그늘 아래에 있었고 렘은 그것의 오른 쪽 눈이 찢겨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크리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막대기를 이용해 그 암양 머리의 왼 쪽을 땅에서 들어 그 쪽 눈구멍도 또한 비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파리 떼들이 그들 주위에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이것도 우리 탈주자의 짓같이 보이는군.] 렘이 말했다. 크리프는 얼굴에서 손수건을 떼고는 말했다. [더 있어요.] 그는 렘을 3구의 다른 동물 시체 쪽으로 인도했다. 양 2마리와 염소 1마리인 이것들 역시 눈이 없었다. [이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어. 그 망할 것이 지난 목요일 밤에 달베르그를 죽였어. 그리고는 5일 동안 그 산기슭과 협곡을 배회하면서 뭔가를 했어.] [무엇을 해요?] [그것을 누가 알겠나? 하지만 지난 밤 여기서 이런 일을 벌여 놓았잖아.] 렘은 손수건으로 자신의 검은 얼굴에서 땀을 닦아냈다. [여기는 달베르그의 오두막에서 북북서쪽으로 단지 몇 마일밖에 안 떨어져 있어.] 크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생각에 그놈이 어디로 향하는 것 같은가?] 크리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 그놈이 어디로 가는지 알 방법이 없어. 우리가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못하기 때문에 그놈을 앞질러 생각할 수가 없는 거야. 그냥 그놈이 이 군에서 비거주 지역인 외곽 지대에만 있어 주길 하나님께 기도나 하자구. 만약 그놈이 오렌지 파크 에이커스나 빌라 파크 같은 동쪽 끝 교외 쪽으로 가기로 했다면 그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그 울 안에서 나오는 길에 놓여 있는 죽은 토끼 주위에 파리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 있어서 마치 검은 천 조각이 그 동물 시체에 덮여 있다가 가벼운 산들바람에 너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8시간 후 월요일 저녁 7시에 렘은 엘토로에 있는 해병대 공군 기지 구내의 커다란 회의실 강단 위로 올라갔다. 그는 마이크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것이 작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보고는 공허한 소리가 들리자 말했다.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백여 명이 접을 수 있는 금속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젊고 체격들이 좋았으며 건강해 보였다. 그들 모두 해병대 정예 첩보 부대 대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2분대로 구성된 소대 다섯 개가 펜드레톤 기지와 캘리포니아의 다른 기지들에서 착출돼왔다. 그들 대부분이 바노디네 연구소의 탈주 사건 이후로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 산타안나산 기슭 수색 작전에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수색 중이며 하루 종일 언덕들과 협곡들을 돌아다니다 방금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군복을 입고 작전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기자들과 지방 관할 관청을 따돌리기 위해 자동차, 픽업, 지프 웨곤 등을 몰고 수색 경계선을 따라 여러 지점들로 따로따로 갔었다. 그들은 3,4인이 한 조가 되었었다. 옷차림들은 평범한 산책인들 복장으로 청바지나 카키색 바지에다 티셔츠나 사파리 면 셔츠 등을 입고 야구 모자나 카우보이 모자 등을 썼다. 그들은 강력한 소화기(消火器)로 무장한 채 갔지만 도중에 진짜 산책인들이나 주립 관청 사람들을 만나면 재빨리 나이론 배낭이나 자신들의 헐렁한 티셔츠 안에 숨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티로폴 냉각기 속에는 적을 발견하면 단 몇 초만에 즉시 작동시킬 수 있는 소형 기관총이 들어 있었다. 그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이들은 비밀 서약에 서명했고, 그 서약으로 인해, 만일 누군가에게 이 작전의 성격을 알리게 되면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쫓고 있는 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렘은 그들 중에는 그런 짐승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원들은 특히 레바논이나 중앙 아메리카에서 전에 복무했던 이들은 죽음과 공포에 익숙해 있어서 이런 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몇몇 고참자들은 월남전에도 참가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이런 임무는 누워 떡 먹기 정도로 공언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들은 모두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고 또 자신들이 몰래 추적하고 있는 그 이상한 적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웃사이더가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들 몫이었다. 이제 렘이 주목할 것을 요구하자 그들은 즉시 침묵했다. [호치키스 장군께서 여러분들이 또 하루를 공치셨다고 제게 말씀했습니다.] 렘이 말했다. [그리고 난 여러분들이 저만큼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6일 동안 저 험준한 곳에서 오랜 시간 고생해왔습니다. 그리고 지쳤지요. 이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질질 끌지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글쎄요, 우린 우리가 추적하고 있는 것을 찾을 때까지 계속할 작정입니다. 우리가 그 아웃사이더를 궁지에 몰아 죽일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이 이대로 풀려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멈출 길이 없습니다. 전혀 없어요.] 수백 명의 대원 중 누구 하나 반대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기억하십시오. 우린 또한 개도 찾고 있습니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개는 자기가 발견하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그 아웃사이더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렘이 말했다. [수요일에 우린 좀더 먼 기지에서 해병 정보대 4개 분대를 추가로 더 불러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순환제로 교대해 주게돼 여러분들은 며칠간 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은 여러분 모두 수색에 나갑니다. 그리고 수색 지역이 재편성되었습니다.] 군(郡) 지도가 강단 뒷벽에 걸려 있었다. 렘이 지휘봉으로 그것을 짚었다. [우린 북북서로 옮겨서 아르비네 공원 주위의 언덕들과 협곡들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그곳에 있는 작은 애완용 동물원에서의 살육 사건에 관해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 동물 시체들의 상태에 관해서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그는 이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방심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이 경계를 게을리 하면 그 동물원 동물들에게 일어난 일이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렘이 말했다. 백여 명의 남자들이 아주 신중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그들이 두려움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8 5월 25일 화요일 밤 트레이시 리 키산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 흥분해서 마치 자신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꽃철이 지난 민들레나 하얗고 연약한 솜털이 나 있는 말불 버섯으로 상상했다. 그리고나서 바람이 한 번 휙 분다. 그러면 그 모든 솜털들이 온 사방으로 맴돌며 날아갈 것이다. 가장 먼 세상 끄트머리까지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트레이시 키산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흥분으로 파괴될 것이다. 그녀는 특이하게 상상력이 풍부한 13살 소녀였다. 그녀는 어두운 자기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필요도 없이 자신이 말에 탄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의 밤색 말을 타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경주장을 달리고 그 옆으로 울타리가 번개처럼 지나가고 다른 말들이 뒤로 처진다. 그리고 마지막 골인 라인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특별 관람석에서 열광하는 관중들이 요란하게 환호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렸다. 학교에서 그녀는 으레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녀가 부지런한 학생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학습이 쉽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큰 노력 없이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 학교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금발에 마른 편으로 눈은 꼭 맑은 여름 하늘의 색깔과 같아 아주 아름다웠다. 그래서인지 남자 아이들이 그녀를 무척 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 공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남자 아이들에 대한 생각에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친구들은 남자 아이들에게 너무 매달렸고 또 트레이시에게는 따분해서 거의 죽을 것만 같은 주제들에 너무들 골몰하고 있었다. 트레이시가 정말 깊이, 심오하게,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말이었다. 경주용 순종 말이다. 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말 사진들을 수집해 왔다. 그리고 일곱 살 때부터 승마 레슨을 받았다. 아주 오랫동안 부모가 그녀에게 전용 말을 사 줄 여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그녀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했다. 그리고 2개월 전에 그들은 오렌지 공원 부근에 약 2천5백 평의 대지 위에 새로 지은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 지역은 승마 구역으로 승마로(路)들이 아주 많았다. 그 대지 뒷쪽 끝에는 여섯 마리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개인용 마구간이 있었으나 오직 한 칸만이 찼을 뿐이다. 바로 오늘, 5월 25일 화요일, 영광의 날, 트레이시 키산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날,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얻었던 것이다. 찬란하고 아름답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자정까지 계속 깨어 있었다. 수요일 새벽 1시 그녀는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마구간으로 나가서 그 말을 보아야만 했다. 그 말이 괜찮은지 확인해 보아야 했다. 그 말이 새로운 집에서 편안해 하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그 말이 정말 와 있는 것인지 다시 확인해보아야 했다. 그녀는 시트와 얇은 담요를 제치고 조용하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팬티와 산타아니타 경주장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청바지만 입고 맨발에 파란색 나이키 운동화를 밀어넣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자기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어둔 채 빠져 나왔다. 집은 어둡고 조용했다. 그녀의 부모와 여덟 살 난 남동생 바비는 잠들었다. 트레이시는 전등을 켜지 않고 그 커다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달빛에 의지해 홀을 내려가 거실과 식당을 통과했다. 부엌에서 조용히 모퉁이 책장의 실용품 서랍을 열고는 손전등을 꺼냈다. 그리고는 뒷문을 통해 뒷뜰로 나와 살짝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아직 손전등은 켜지 않았다. 봄날 밤이 싸늘하기는 해도 춥지는 않았다. 윗쪽 하늘은 달빛을 받아 은색을 띠고 있었으나 아래쪽은 컴컴한 채였고 몇 개의 커다란 구름들만이 달빛을 받아 마치 밤 바다를 가로 지르는 하얀 돛달린 커다란 범선들갈이 서서히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 트레이시는 그 순간을 만끽하며 한동안 그것들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면서 이 특별한 시간의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하고 싶었다. 아무튼 이것이 그 자랑스럽고 고상한 말과 단 둘이 만나 자신들에게 펼쳐질 미래의 꿈을 같이 하는 첫 번째 순간이 될 것이다. 그녀는 뒷뜰을 가로질러 수면에 달 모습이 너울거리는 수영장 주위를 돌아 경사진 잔디밭으로 나갔다. 이슬로 축축히 젖은 잔디가 희미한 달빛에 빛나는 것 같았다. 개인 소유 땅을 표시하기 위해서 오른 쪽과 왼 쪽으로 세워져 있는 하얀 목장 울타리가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인광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 울타리 너머에는 이웃의 땅이었다. 그것들도 크기가 적어도 천 평은 넘었고 어떤 것들은 키산네 땅만큼씩 했다. 그 밤 오렌지 공원 부근 전 지역은 귀뚜라미들과 개구리들만 제외하고는 고요했다. 트레이시는 자신과 이 말 앞에 펼쳐질 그 승리들을 생각하며 그 대지 끝에 있는 마구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굿하트라는 이름의 이 말은 다시 경주를 할 수는 없읕 것이다. 이 말은 산타안니타, 델마, 헐리우드 파크, 그리고 캘리포니아 전 지역의 다른 경주장에서 돈더미에 올라섰던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부상을 입었고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안전하게 경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종마로는 쓰일 수 있었다. 그래서 트레이시는 이 말이 종마 수상자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일주일 안에 그들은 이 마구간에 훌륭한 암말 두 마리를 추가로 들여올 생각이다. 그리고는 이 말들을 곧바로 생식 농장으로 데리고 가서 굿하트로 하여금 그 암말들을 임신시키게 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세 마리 모두 다시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는 트레이시가 돌볼 것이다. 그 다음 해에 두 마리의 건강한 망아지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면 그 어린 놈들을 트레이시가 언제든 가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사는 조련사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훈련을 도와줄 것이고 또 챔피언을 기르는 것에 관해 배울 게 있으면 모두 배울 것이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그녀와 굿하트의 자손은 새로운 경마 역사를 만들어낼 것이다. 아! 그렇다! 그녀는 새로운 경마 역사를 만드는 것을 아주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구간에서 4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죽하고 미끄러운 것을 밟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그제서야 그녀의 공상은 멈추었다. 거름 냄새를 맡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저녁에 굿하트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 배설한 말똥일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스럽고 난감한 기분이 들어 후래시를 켜고는 땅을 비추었다. 그리고 배설물 대신 잔인하게 몸이 절단된 고양이 시체의 잔해를 목격했다. 트레이시는 역겨움으로 윽 소리를 내고는 즉시 후래시를 껐다. 이 동네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동네 마구간들 주위 쥐들의 숫자를 조절하기 위한 까닭도 일부는 있었다. 코요테들이 먹이를 찾아서 정기적으로 언덕과 계곡에서 동쭉으로 과감하게 내려왔다. 고양이들이 빠르긴 하지만 코요테들을 당하진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 트레이시는 코요테가 울타리 아래로 구멍을 팠거나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어 이 불운한 고양이를 붙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고양이도 쥐들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코요테라면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바로 다 먹어치우고 꼬리나 찌꺼기, 털 정도만 남겼을 것이다. 코요테는 미식가라기보다는 대식가로 게걸스러운 식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나중에 한가하게 먹기 위해 어딘가로 그 고양이를 치워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반도 채 먹히지 않아 보였고 그냥 조각조각 찢겼을 뿐이었다. 마치 무엇인가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것을 산산히 찢는 데서 오는 병적인 쾌감을 위해서 죽인 것 같았다. 트레이시는 오싹했다. 그리고 그 동물원에 대한 소문이 생각났다. 여기서 3키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아르비네 공원에서 누군가가 이틀 전에 그 자그마한 동물원의 동물들을 죽였다는 소문이었다. 마약으로 미친 파괴자일까, 끔찍한 살인마일까. 그 이야기는 정말 흥분되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표시는 있었다. 어제 수업이 끝나고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엉망이 된 동물 시체들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안얘 평소보다 동물들의 숫자가 적어진 것 같다고들 말했다. 그리고 셰틀랜드종 조랑말이 없어진 것은 분명했다. 공원 직원들은 가까이 접근해도 상대해주질 않았다. 트레이시는 바로 그 정신병자가 오렌지 파크 부근을 배회하며 고양이들과 다른 애완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순전히 재미로 고양이를 살육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라면 충분히 말을 죽이는 데서도 쾌감을 느낄 정도로 삐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굿하트가 내내 혼자 그 마구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거의 온 몸이 마비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몸 전체로 퍼져들어왔다. 잠시 동안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 주위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조용한 것 같았다. 더 조용해졌다. 귀뚜라미들은 더 이상 짹짹거리지 않았다. 개구리들도 울기를 멈추었다. 큰 범선 구름이 하늘에서 닻을 내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밤이 차가운 달빛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관목 숲에서 움직였다. 그 넓은 부지 대부분이 확 트인 잔디밭이다. 그러나 20여 그루의 나무들이 인공적으로 모아져 서 있었고 진달래 밭, 캘리포니아 라일락 덤블, 인동 덩쿨 등이 있었다. 트레이시는 무엇인가가 거칠고 급하게 관목 숲을 뚫고 나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후래시 전등을 켜고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들을 휘 둘러 비춰 보았을 때는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밤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잠해졌다.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깨워 조사해 보도록 부탁하든지 아니면 그냥 잠을 자고나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날이 밝았을때 이 상황을 직접 조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관목 숲 속에 있는 것이 단순한 코요테라면...... 그 경우라면 그녀는 위험하지 않다. 굶주린 코요테라면 아주 어린 아이는 공격할지 모르지만 트레이시만한 사람에게는 도망칠 것이다. 게다가 그 품위 있는 굿하트가 너무 걱정이 돼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괜찮은지 확인해야만 했다. 바닥에 더 많은 고양이들이 죽어 깔려 있는지 몰라 그것을 피하기 위해 후래시를 켜고 마구간을 향했다. 그녀가 단지 몇 걸음 옮겼을 때 다시 그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또 그뿐 아니라 전에는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짐승의 으스스한 으르렁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막 몸을 돌리고 집으로 향해 뛰려고 했다. 그때 마구간에서 굿하트가 마치 두려운 듯이 날카로운 소리로 울었다. 그리고는 마구간 칸막이를 발로 찼다. 그녀는 심술궂은 정신병자가 가공할 고문 기구들로 굿하트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 자신의 안전에 대한 걱정보다 사랑하는 종마에게 일어날 끔찍스러운 일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가엾은 굿하트가 훨씬 더 광적으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발굽이 계속 칸막이 벽을 맹렬하게 두들겼다. 그 소리가 그 조용한 밤 하늘에 천둥 소리같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여전히 마구간에서 약 15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을 때 다시 그 이상한 으르렁 소리를 들었고 무엇인가가 그녀를 쫓아오면서 뒤에서 급습하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축축한 잔디 위에서 미끄러져 뱅글 돌면서 손전등 불빛을 쳐들었다. 분명히 지옥에서 탈출한 것 갈은 생물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광적이고 분노한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냈다. 손전등 불빛에도 불구하고 트레이시는 그 공격체를 명확히 볼 수 없었다. 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주위는 달이 구름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더 어두워졌다. 그 흉칙한 짐승은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 두려워서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았다. 블균형하게 움푹 들어가고 또 툭 불거져 나온 검고 기형적인 머리에 날카롭게 흰 이빨들이 가득한 거대한 턱, 그리고 손전등 불빛을 받아 타오르는 호박색 눈을 가진 생물이란 인상이 들었다. 트레이시는 비명을 질렀다. 그 공격체가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그것이 헉 소리가 날 정도로 트레이시를 쳤다. 손전등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져서 잔디 위를 굴렀다. 그녀는 넘어졌다. 그러자 그 생물이 그녀 위로 덮쳤다. 그리고는 서로 엉킨 채 마구간을 향해 굴렀다. 그렇게 구를 때 그녀는 그 작은 주먹으로 그것을 필사적으로 때렸다. 그러다 그녀는 그것의 발톱이 자신의 오른 쪽 허리 살 속으로 깊이 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벌려진 입이 그녀의 얼굴 앞에 와 있었다. 그녀는 냄새가 지독한 그것의 뜨거운 입김이 얼굴로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피 냄새와 썩은 냄새가 섞인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목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죽었다. 오! 하나님! 이것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나는 죽었다. 고양이같이...... 그때 4미터도 안 되는 마굿간에서 굿하트가 놀라 문을 박차고 나와 곧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지 않았으면 그녀는 단 몇 초만에 죽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말은 그들을 보자 울부짖으며 뒷발로 서서 마치 그들을 발로 짓밟을 것처럼 올라섰다. 괴물은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노에서가 아니라 놀람과 두려움에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자기 몸을 던져 말의 발굽에서 벗어났다. 굿하트의 발굽이 트레이시 머리 바로 옆 땅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다시 뒷발로 서서 울부짖으면서 앞발을 허공으로 쳐들며 바둥거렸다. 그녀는 그 말이 두려운 나머지 본의 아니게 그녀의 머리를 짓뭉개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말 아래에서 밖으로 몸을 던져 빠져 나왔다. 또한 그 호박색 눈동자의 생물로부터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놈은 말이 있는 곳의 반대 쪽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전히 굿하트는 뒷다리로 서서 울부짖었다. 그리고 트레이시 또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개들이 온 동네에서 짖어댔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집에서도 불이 켜졌다. 그것으로 그녀는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적은 포기할 생각을 하지않고 그녀에게 다시 한번 덤벼들기 위해 놀라 날뛰는 그 말 주위를 여전히 맴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으르렁거리며 침을 뿜어내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저 멀리에 있는 집으로 가려고 하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다시 그 괴물에게 잡혀 죽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마구간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녀의 입에서는 [제발, 오, 제발, 제발] 소리가 연신 나왔다. 두 짝으로 된 네덜란드식 마구간 칸막이 문이 단단하게 잠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빗장이 문 틀까지 가로질러 문 전체를 단단히 잠그고 있었다. 그녀는 두 번째 빗장을 풀고는 문을 활짝 열고 밀집 냄새가 나는 어둠 속으로 달려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안 쪽에서는 빗장을 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 괴물이 쫓아 들어와 문을 쳐서 열려고 그 문 바깥 쪽을 쳤다. 그러나 문 틀이 문 열리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 문은 오직 밖으로만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트레이시는 그 호박색 눈 괴물이 그 문이 어떻게 열리는가를 알 정도로 영리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놈은 그 정도는 영리했다. 오! 하나님! 왜 저것은 추하게 생긴 만큼 멍청하지 않나이까? 그 놈은 그 문을 단 두 번 쳐본 후에 안 되자 미는 대신 당기기 시작했다. 그 문이 트레이시 손에서 빠져나가 거의 확 열릴 판이었다. 그녀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고함치고 싶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만 온 힘을 다 쏟을 필요가 있었다. 그 악마 같은 괴물은 덜거덕거리기도 하고 팡팡 치기도 하면서 문을 가지고 씨름했다. 다행스럽게도 굿하트가 여전히 날카로운 비명과 공포에 찬 울음 소리를 계속 내뿜고 있었다. 그 괴물 또한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짐승 소리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람 소리 같기도 한 소리였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온 그녀의 아버지가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이 몇 센티 약간 열렸다. 그녀는 큰 소리를 지르며 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순간 그 괴물은 다시 문을 잡아 당겨 약간 틈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그렇게 열어진 상태로 잡고 있으면서 그 문을 더 많이 열려고 열심히 잡아당겼다. 그녀가 지고 있었다. 문이 약간 더 열렸다. 그녀는 기형적으로 생긴 얼굴의 그늘진 윤곽을 보았다. 날카롭게 뾰족한 이빨이 어슴푸레 빛났다. 그 호박빛 눈은 이제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대고 쉿 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것의 지독한 입 냄새는 밀짚 냄새보다 더 심했다. 공포와 좌절감에 흐느껴 울며 트레이시는 온 힘을 다해 그 문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문은 약간 더 열렸다. 그리고 또 조금 더 열렸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나 크게 두근거려서 첫 번째 권총 소리도 듣지 못했다. 두 번째 권총 소리가 그 밤을 울릴 때까지도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12구경 권총을 쥐고 집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구간 칸막이 문이 탁하고 닫혔다. 그 괴물이 총소리에 놀라 문을 놓았던 것이다. 트레이시는 그것을 꽉 붙잡았다. 어쩌면 이런 혼란 속에서 아버지가 이 모든 게 굿하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 불쌍한 말이 미쳤거나 어떻게 된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구간 안에서 고함쳤다. [굿하트를 쏘지 말아요! 그 말을 쏘지 말아요!] 더 이상의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 트레이시는 아버지가 굿하트를 쏘아 버릴 것으로 생각했던 것에 대해 바보스러움을 느꼈다. 아버지는 신중한 분이다. 특히 총알을 잰 총을 가졌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분은 상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기 전에는 경고 사격 외에는 어느 것도 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그 분은 그냥 몇 그루 관목 정도를 날려버렸을 것이다. 굿하트는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호박색 눈의 괴물은 틀림없이 산기슭이나 협곡이나 아니면 하여튼 그가 왔던 곳으로 급히 달아났을 것이다. 도대채 그 망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제 시련은 끌났다. 그녀는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마구간 칸막이 문을 밀쳐 열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파란 파자마 바람에 맨발로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엄마도 짧은 노란 잠옷 바람에 손전등을 들고 아버지 뒤를 급히 쫓아왔다. 경사진 뜰 위쪽에 미래 챔피언의 종마인 굿하트가 서 있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은 사라졌고 다치지도 않았다. 트레이시는 다치지 않은 그 말을 보자 안도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그 말을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그 말에게로 가고 싶어서 비틀거리며 마구간을 나왔다. 두세 걸음 걷자 오른 쪽 옆구리 전체로부터 지독한 고통이 느껴져 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그녀는 비틀거리다 쓰러지면서 한쪽 손을 옆구리에 댔다. 무엇인가 축축한 것이 느껴졌고 그제서야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굿하트가 마굿간을 뛰쳐 나와 그 괴물이 놀라 떨어져 나가기 직전에 그놈의 발톱이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중얼거리듯 [훌륭한 말이야. 너무 훌륭해.]라고 말했으나 자신의 귀에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아버지가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가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 뭐가 잘못됐어?] 엄마 역시 도착했다. 아버지가 피를 보았다. [앰블란스를 불러.] 엄마가 곧바로 돌아서서 집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트레이시는 더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 한쪽 끝으로 밤의 어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어둠이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을 환영해 주고 치유해 주는 어둠 같았다. [아가야!] 아버지가 한 손을 그녀의 상처에 대고 말했다. 그녀는 힘이 빠진 상태에서 자신이 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말을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정말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가 생각나요. 그리고 난 어떤 괴물이 내 옷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밤에 말예요.]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얘야, 넌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다. 조용히 하고 안정을 취해.] 트레이시는 의식을 잃어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어쩌면 다른 집 옷장에 살아왔던 도깨비인지도 몰라.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거야. 그것이 돌아왔어.] 9 수요일 새벽 4시 20분 키산의 집 침입 사건이 있은 후 바로 한 시간 뒤 레무엘 존슨은 오렌지에 있는 성 조셉 병원으로 와 트레이시 키산의 병실에 도착했다. 그는 아주 빨리 왔었다. 하지만 경찰서장 왈트 가이네스가 그에 앞서 벌써 도착해 있었다. 왈트는 복도에 서서 초록색 수술복에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고 있는 젊은 의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용하게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국가 안보국의 바노디네 비상팀은 오렌지市 경찰서를 비롯해서 군(郡)내의 모든 경찰 기관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키산의 집은 바로 그 관내에 있었다. 비상팀의 야간조 지휘관이 이 사건의 뉴스를 가지고 집에 있는 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상되는 바노디네 관련 사건들의 개요와 딱 맞아 떨어졌다. [당신은 관할권을 포기했어요.] 렘이 그 소녀의 닫힌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경찰서장과 의사에게로 다가가 왈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어쩌면 이 건은 그 경우가 아닐지도 몰라.] [당신은 이 건이 그 경우라는 것을 알아요.] [글쎄, 그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어.] [내려졌어요. 내가 당신네 사람과 전화로 이야기하던 그 키산네 집에서 말이오.] [좋아, 그러면 난 그냥 참관인 정도로 여기에 있다고 말해두지.] [아이구 엉덩이야.] 렘이 말했다. [자네 엉덩이가 어때서?] 왈트가 웃으며 물었다. [그 곳에 종기가 났단 말입니다. 그 종기의 이름은 왈트요.] [그거 재미 있구만.] 왈트가 말했다. [자네는 자네 몸에 나는 종기에도 이름을 붙이누만. 치통이나 두통에도 이름을 붙이나?] [난 바로 지금 두통을 앓고 있어요. 그 이름도 역시 왈트예요.] [그건 너무 헷갈리네, 친구. 두통은 버트나 헤리나 뭐 그런 다른 걸로 부르는 게 낫지 않아?] 렘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들의 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왈트가 그 웃음을 지렛대로 삼아 다시 이 사건으로 파고들어오려는 시도를 할 것을 알고 경계했다. 그래서 렘은 돌 같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러나 왈트는 렘이 웃고 싶어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 게임은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해야만하는 것이다. 의사인 로져 셀벅은 젊은 로드 스타이져를 닮았다. 그는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는 역시 좀 스타이저의 강력한 태도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찡그림으로 그들이 진정하고 조용하게 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 아이는 테스트를 받았고 또 상처 부위도 치료받았고 진통제도 맞았다고 셀벅이 말했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그는 그녀를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막 진정제를 놓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어떤 계급의 경찰이든 바로 지금 그녀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속삭임 소리들, 이른 새벽 병원의 정적, 홀을 가득 메운 소독약 냄새, 그리고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하얀 옷을 입은 수녀들의 모습 등이 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그는 그 소녀의 상태가 자신이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셀벅에게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그 애는 아주 좋은 상태예요.] 그 의사가 말했다. [난 그 애의 부모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애의 얼굴 왼 쪽에 찰과상이 있고 눈이 좀 안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것이 못돼요. 오른 쪽 옆구리에 있는 상처는 32바늘이나 꿰매야 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아요. 아주 심한 흉터가 남겠지요. 하지만 이 아이는 영리하고 또 의타적이질 않아요. 그래서 난 그녀가 지속적인 심리적 상흔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오늘밤 이 아이로 하여금 심문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심문이 아닙니다.] 렘이 말했다. [그냥 몇 가지 질문이에요.] [그냥 5분 동안만이요.] 왈트가 말했다. [아니 그 정도도 안 걸려요.] 렘이 말했다. 그들은 계속 셀벅을 졸랐고 마침내 그의 승낙을 얻어냈다. [좋아요. 당신들도 해야할 일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녀에게 너무 집요하게 묻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시오.] [전 그 애를 마치 비누 거품으로 만들어진 아이처럼 다룰 겁니다.] 렘이 말했다. [우린 그 아이를 마치 비누 거품으로 만들어진 아이처럼 다룰 겁니다.] 왈트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셀벅이 말했다 [그냥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나 말해 주시오.] [그 아이가 직접 말해 주지 않던가요?] 렘이 물었다. [글쎄요. 코요테한테 공격을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렘은 놀랐다. 그리고 왈트도 역시 놀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사건은 웨스 달베르그의 죽음이나 아르비네 공원 동물원의 죽은 동물들과 아무 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의사가 말했다. [어떤 코요테도 트레이시같이 큰 아이를 공격하지는 않아요. 코요테는 아주 어린 아이에게나 위험할 뿐이지요. 그리고 난 그 상처가 코요테의 짓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왈트가 말했다. [그 애의 아버지가 권총으로 그 것을 쫓아버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양반은 무엇이 그 애를 공격했는지 알게 아닙니까?] [아니요.] 셀벅은 말했다. [그분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볼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냥 경고 사격으로 2발을 쏘았다지요. 그분 말로는 무엇인가가 마당을 가로질러 질주해 울타리를 뛰어넘어 갔다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더 자세한 것은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분 말이 트레이시가 처음에는 그것이 자기 옷장에 살고 있던 도깨비였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 때 그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요. 그 아이는 내게는 코요테였다고 말했어요. 그러니...... 당신들은 압니까?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입니다. 내가 그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은 말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난 모릅니다.] 왈트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 존슨씨는 전체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렘이 말했다. 왈트는 그냥 미소 지었다. 셀백에게 렘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박사님, 하지만 전 이 사건을 드러내 놓고 말씀드릴 자유가 없습니다. 아무튼 제가 선생님께 무슨 말씀을 드리든 선생님이 트레이시 키산을 치료하는 데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렘과 왈트가 자신들의 면담 시간을 재도륵 셀벅 박사를 복도에 있게 하고는 마침내 트레이시의 병실로 들어갔다. 아주 심한 상처를 입고 눈처럼 창백해 있는 아주 예쁜 열세 살짜리 여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시트를 어깨까지 올리고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진통제를 맞았지만 정신이 멀쩡했고 심지어 예민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셀벅이 그녀에게 진정제를 놓으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가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렘이 왈트 가이네스에게 말했다. [우린 뭐든 항상 함께 나누어 먹지 않는가?] 왈트가 말했다. [하이! 트레이시, 난 경찰서장 왈트 가이네스야. 그리고 이분은 레무엘 존슨씨지. 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지. 하지만 여기 렘은 정말 고약한 사람이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 하지만 내가 이 양반을 얌전하도록 만들어서 너에게 아주 잘해주도록 할테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괜찮지?] 그들은 함께 트레이시를 구슬려 대화로 유도했다. 셀벅에게는 코요테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건 단지 그녀가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 의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믿게 할 자신이 없었던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분들이 내가 정말 머리를 세게 맞아 내 뇌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그분들이 나를 여기에 오랫동안 있게 할까 봐서요.] 그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 끝에 앉으면서 렘이 말했다. [트레이시, 내가 네 정신을 의심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난 네가 본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확인하는 게 전부야.] 그녀가 믿지 못한다는 듯이 그를 응시했다. 왈트가 침대 끝에 서서 포근한 테디 곰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말했다. [네가 기절하기 전에 아빠에게 네 옷장에서 살던 도깨비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지.] [확실히 그 정도로 흉칙했어요.] 그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말해보거라.] 렘이 말했다. 그녀는 왈트와 렘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들이 먼저 내가 보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세요. 그리고 아저씨들 말씀이 가까우면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말씀 드리지요. 하지만 제가 먼저 시작하지는 않을래요. 아저씨들이 내가 미친 상태라고 여길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렘은 이 사건의 일부 사실을 밝히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낭패스러운 얼굴로 왈트를 바라보았다. 왈트가 씩 웃었다. 렘이 그 여자 아이에게 말했다. [노란색 눈!] 아이는 놀라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몸이 굳어져 갔다. [맞아요! 아시는군요. 그렇죠? 아저씨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녀는 일어나 앉으려다 상처 부위가 땡기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움찔하더니 다시 침대에 폴싹 쓰러졌다. [그것이 무엇이죠? 그게 대체 무엇이에요?] [트레이시! 난 그것이 무엇인지 너에게 말할 수 없단다. 난 기밀 서약에 서명을 했거든. 내가 그것을 어기면 난 감옥에 갈 수도 있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를 더 존중할 수 없게 된다는 거야.] 그녀는 찡그리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 이제 네가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말해보거라.] 막상 얘기를 들어보자 그 아이도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었던 것 같았다. 밤이 어두웠고 또 손전등으로 아주 잠깐 그 아웃사이더를 비추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동물치고는 아주 컸어요. 아마 나만큼은 컸지요. 노란 눈에다가요.] 그녀는 몸을 오싹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이상했어요.] [어떻게?] [울퉁불퉁하고...... 기형적이었지요.] 그 아이가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도 아주 창백했었지만 지금은 더 창백해졌다. 그리고 가는 땀방울이 이마 윗부분에서 생겨 이마가 젖었다. 왈트는 침대 발걸이에 몸을 기대고 관심을 집중해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산타아나의 돌풍이 갑작스럽게 병원 건물을 강타하자 아이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바람 소리가 신음하듯 들리며 덜거덕거리는 유리창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무엇인가가 그 유리창을 부수고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바로 아웃사이더가 웨스 달베르그에게 덤벼들었던 방법과 똑같다고 렘은 혼자 생각했다. 그녀는 힘들게 침을 삼켰다. [그놈의 입은 엄청나게 컸고...... 또 이빨들은......] 그녀는 떨리는 것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렘은 안심시키기 위해 한손을 그 애의 어깨에 올렸다. [이제 괜찮다. 얘야. 이젠 다 끝났어. 이젠 다 지나갔어.] 그녀는 자제력을 되찾기 위해서 잠시 멈추었으나 여전히 떨면서 말했다. [제 생각엔 그 이빨들이 일종의 털 같았어요. 아니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들은 정말 억세보였어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짐승하고 닮았던?] 렘이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동물하고도 닮지 않았어요.] [하지만 억지로라도 다른 어떤 동물하고 닮았다고 말해야 한다면 코요테하고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하겠니?] [아니에요. 코요테는 아니에요.] [개 같든?] 그녀는 머뭇거렸다. [어쩌면 약간 개를 닮았지요.] [곰을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하던가?] [아니에요.] [표범 같던가?] [아니에요. 고양이과(科) 같지는 않았어요.] [원숭이 같던가?] 그녀는 다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찡그리며 생각했다. [웬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요. 좀 원숭이하고 닮았어요. 하지만 개도 원숭이도 그런 이빨들을 가지고 있진 않지요.] 그 때 문이 열리고 셀벅 박사가 나타났다. [이제 5분이 다 지났습니다.] 왈트가 손으로 박사에게 나가라고 흔들기 시작했다. 렘이 말했다. [아니, 됐어요. 끝났습니다. 아직 30초가 남았습니다.] [난 초까지 재고 있어요.] 셀벅이 물러나며 말했다. 렘이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입을 다물라고요?] 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난 아무에게도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집에서는 제가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고 생각하지요. 제 말은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가 괴물들에 대한 그 황당한 이야기들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분들은 내가 결국 그렇게 성숙한 편이 못된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아마도 그분들은 내가 말들을 보살필 정도로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지 몰라요. 그렇게 되면 그분들은 우수 종자 생식 계획을 늦출지도 몰라요. 전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요. 존슨 선생님. 정말이에요. 저에게는 그건 코요테예요. 하지만......] [하지만 뭐?] [그것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없는지 말씀해 주실 수 없어요?] [난 다시 그러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분간 밤에 마구간에 나가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게다. 됐니?] [예, 됐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서 그녀는 앞으로 몇 주 동안은 어두워진 후에는 집 안에만 머물 것이다. 그들은 병실을 떠나면서 셀벅 박사에게 협조해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는 병원의 차고로 내려갔다. 아직도 새벽이 밝아오고 있지 않았다. 동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은 텅 비어 있었고 황량해 보였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벽에서 메아리쳐 공허하게 들려왔다. 그들의 자동차는 똑같은 층에 주차돼 있었다. 그리고 왈트는 아무 표시가 없는 초록색 국가 안보국 세단이 있는 곳까지 렘을 따라왔다. 렘이 자동차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꽂을 때 왈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보고는 말했다. [말 좀 해 주게.] [할 수 없어요.] [난 알아낼 거야.] [당신은 이 사건에서 손을 뗐어요.] [그래서 날 법정으로 데려갈 건가? 그래서 체포 영장이라도 발급하겠다는 건가?] [그럴지도 몰라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구실로 말인가?] [그것이 적당한 죄목이겠지요.] [내 엉덩이를 감옥에 쳐넣겠다는 거지.] [아마 그럴 거예요.] 렘은 실제로는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했다. 왈트의 끈질김이 난감했고 좀 성가시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또한 재미있기도 했다. 그에겐 친구가 적었고 적은 중에서도 왈트는 중요한 친구였다. 렘은 자신에게 친구가 적은 것은 선별해서 친구를 사귀고 또 그 선별 기준이 아주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했다. 만약 왈트가 전적으로 뒤로 물러서 버리거나 연방 정부의 권위에 아주 겁을 먹거나 아니면 마치 전등을 끄듯 호기심을 싹 꺼버렸다면 아마 렘의 눈에 그가 좀 퇴색되어 비쳤거나 그의 가치가 축소돼 보였을 것이다. [개와 원숭이를 생각나게 하고 노란 눈을 가진 것이 도대체 뭐야?] 왈트가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 부인을 제외하고 말이야.] [이 일에서 내 아내는 빼줘요. 흰둥이씨.] 렘이 말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차에 탔다. 왈트가 문이 닫히지 않게 잡고는 몸을 아래로 숙여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바노디네에서 탈출했어?] [이것은 바노디네하고는 무관하다고 내가 말했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날 실험실에서 일어난 불 말이야,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일해왔던 것들의 증거를 파괴하기 위해서 스스로 지른 것인가?] [웃기지 말아요.] 렘은 자동차 키를 끼우면서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증거 인멸을 하려면 그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덜 호들갑스럽게 할 수 있어요. 인멸할 증거가 있다면 말예요. 하지만 없어요. 바노디네는 이것과 무관하니까요.] 렘은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왈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문이 닫히지 못하도록 잡고 있으면서 자동차 소음에도 불구하고 돌리도록 훨씬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유전 공학이야. 그것이 그 사람들이 바노디네에서 해온 것이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만지작거려서 인슐린을 제조하거나 수면 위의 유막을 먹어치우는 좋은 일을 하는 새로운 벌레를 만드는 일 같은 것 말이야. 그리고 내 생각인데 그 사람들은 산성 용액에서 자라는 옥수수나 보통의 반 정도 물로 길러낼 수 있는 밀 등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식물들의 유전자도 만지작거리지. 우리는 항상 유전자 조작이 식물이나 균들처럼 소규모로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동물의 유전자를 가지고 만지작거리다가 기괴한 생물을,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낼 수도 있잖아? 그것이 그 사람들이 해왔던 것이지? 그리고 그런 것이 바노디네에서 탈출한 것이지?] 렘은 화가 난 듯 머리를 흔들었다. [왈트, 난 DNA 재결합에는 전문가가 아니에요. 하지만 과학이 확신을 가지고 그런 일을 추진할 정도로 그렇게 발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럴 필요가 뭐 있겠어요? 좋아요. 그냥 기존의 종족들 유전자 구조를 만지작거려서 기괴한 새로운 생물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예요? 그러니까 기괴한 축제 쇼에 전시하는 것 말고 말예요.] 왈트의 눈이 좁혀졌다. [난 모르지. 그러니 자네가 나에게 말해 주게나.] [들어봐요. 연구 개발비는 항상 지독하게 짜요. 그리고 크고 작은 보조금에 대한 각축전이 치열해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도 쓸모없는 실험에 투자하려고 대들 수가 없어요. 알아듣겠어요? 그리고 지금 말예요. 내가 여기에 관여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국가 방위 문제란 것은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바노디네가 어떤 축제 쇼를 하기 위해 국방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겠네요?] [그 '낭비'와 '국방부'라는 단어는 종종 같이 쓰이곤 하지.] 왈트가 냉담하게 말했다. [왈트! 국방부가 필요한 무기들을 생산하기 위해 몇몇 하청 회사에 돈을 낭비하게 하는 일은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알면서도 방위에 도움이 될 잠재성이 없는 실험에 기금을 내놓지는 않아요. 무기들이 때론 비효율적일 때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부정까지도 있지요. 하지만 아주 어리석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다시 한번 말하겠어요. 이런 대화는 전부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이것은 바노디네와 무관하니까요.] 왈트는 오랫동안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렘,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난 자네가 내게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 하지만 또 한편으론 자네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 [난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 말해 주게. 위더비, 야르벡,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을 살해한 살인마는 잡았나?] [아니요.] 실은 그 사건을 맡은 부하 직원이 렘에게 보고하길 소련인들이 자기네들 첩보국 밖에서 어느 살인마를 고용해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전혀 정치 세계와는 무관한 곳에서 고용한 듯 하다는 것이다. 수사는 곤경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왈트에게 한 말은 [아니요]가 전부였다. 왈트는 몸을 펴고는 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몸을 구부려 머리를 안으로 넣고는 말했다. [한가지 더, 자네는 그놈이 어떤 의미가 있는 목표지를 가지고서 그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놈은 바노디네를 탈줄해 나온 이후로 꾸준하게 북쪽이나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왈트가 말했다. [그놈은 바노디네에서 탈출하지 않았어요. 제기랄.] [바노디네에서 홀리 짐 캐년, 또 거기에서 아르비네 공원, 그리고 거기서 오늘 밤 키산의 집까지 말이야. 꾸준하게 북쪽 아니면 북서쪽이란 말이야. 난 자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거라고 생각하네. 또 어디로 향하는지도 말이야. 하지만 물론 난 감히 그것에 관해 자네에게 묻지 않겠네.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날 바로 감옥으로 쳐넣어서 거기서 썩도록 하겠지.] [난 당신에게 바노디네에 관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자네는 그렇게 말하겠지.] [당신은 어쩔 수 없군요, 왈트.] [자네는 그렇게 말하겠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해요. 이젠 날 집에 가게 해주겠어요? 난 녹초가 되었다구요.] 왈트는 웃으며 마침내 문을 닫아 주었다. 렘은 차를 몰고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마인 스트리트로 나왔다. 그리고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프라센티아 쪽으로 집을 향했다. 그는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바랬다. 그는 대양 한 가운데로 나 있는 해로(海路)처럼 텅 빈 도로로 국가 안보국 세단을 몰고 가면서 지금도 북쪽으로 향해 가고 있을 아웃사이더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 점을 알아챘었다. 그리고 그놈이 정확하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 개와 아웃사이더는 서로를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같은 방에 있지 않을지라도 서로의 기분과 행동들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신비한 인식 체계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두 생물간의 관계에서는 텔레파시 같은 것이 있다고 데이비스 위더비가 꽤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아웃사이더는 여전히 그 개와 파장이 꼭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그놈은 어떤 육감으로 그 개를 쫓고 있을 것이다. 개를 위해서는 제발 그런 경우가 아니기를 바랬다. 개가 항상 그 아웃사이더를 두려워했던 것은 실험실에서도 분명했던 사실이다. 그럴 만도 했었다. 그 둘은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음과 양이었다. 성공과 실패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이었다. 개가 훌륭하고 바르고 선한 만큼 그 아웃사이더는 어느 모로나 흉측하고 잘못되었고 사악했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아웃사이더가 웬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분노심을 품고 그 개를 미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 둘은 풀려났고 아웃사이더는 오직 일념으로 그 개를 추적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로지 그 사냥개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어서 말이다. 렘은 불안감에서 자신이 악세레더 페달을 너무 심하게 내리 누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총알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페달을 살짝 놓았다. 그 개가 어디에 있든, 어느 은신처에서 누구와 있든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개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도 또한 심각한 위험 속에 있다. 6-1 장 1 5월 마지막 주와 6월 첫째 주 내내 노라와 트라비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트라비스가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걱정했었다. 아트 스트랙만큼은 안 위험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 편집증의 주문(呪文)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이 그를 경계하며 걱정한 것을 생각하면 웃음까지 나왔다. 그는 다정하고 친절하고 또 바이오렛 이모 말에 의하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바로 그런 종류의 남자였다. 일단 편집증이 극복되자 그녀는 이제 트라비스가 자신을 계속 만나는 이유는 오로지 그가 자신을 딱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절박한 입장이나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노라를 만나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가 절박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좀 이상하고 부끄러워하고 또 애처롭게 볼지 모르나 절박하게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 밖의 세상을 대처할 수 없는 데서 절박했고 또 미래를 두려워하는 데서 절박했다. 그리고 또 절박할 정도로 외로웠다. 트라비스는 친절할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민감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절박함을 알았고 또 그에 맞게 대해 주었다. 5월이 지나고 6월에 접어들자 여름의 태양에 하루 하루가 점점 뜨거워졌고 그녀는 점차 그가 자신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남자가 자기같은 여자에게 뭘 볼 게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줄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맞다. 그녀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자기가 그렇게 아주 단조롭고 지루하게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다 해도 트라비스는 그녀보다 더 나은 여자와 사귈 수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관심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마음을 놓고 그것을 즐기면 된다. 트라비스는 부인이 죽고 난 후에 부동산 회사를 팔아버리고는 이제 완전히 은퇴했고 또 노라 역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기만 하면 하루 중 어느 때든 자유롭게 서로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들은 함께 화랑을 갔고 또 책방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긴 산책을 했고 또 그림같은 산타 이네즈 골짜기나 경치가 수려한 태평양 해안을 따라 긴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그들은 아침 일찍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그곳에서 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노라는 그 도시의 크기에도 놀랐지만 돌아다니며 본 것들에도 놀랐다. 영화 제작 스튜디오의 방문, 동물원으로의 소풍, 그리고 히트 뮤지컬의 낮 공연 등이 모두 다 놀라웠다. 어느날 트라비스는 그녀에게 머리를 카트하고 멋을 좀 내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가 자주 들르던 미용실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노라는 너무 초조해서 원기 왕성한 금발 미인인 메라니라는 미용사에게 말을 할 때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노라의 머리는 항상 바이오렛이 집에서 잘라 주었다. 그리고 바이오렛이 죽고 난 후에는 노라가 직접 자신의 머리를 잘랐었다.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어 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또 그것은 생전 처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일만큼이나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메라니는 '페더링'이라는 것을 하면서 노라의 머리를 아주 많이 잘라냈으나 웬지 머리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노라에게 거울을 가리고는 머리를 다 감고 말린 후 잘 빗겨 놓기 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은 그녀를 돌려 거울 속의 자기 모습과 대면하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신 아주 멋져 보이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것은 완전한 변신입니다.] 메라니가 말했다. [멋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당신은 너무나 예쁜 얼굴과 그리고 아주 휼륭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요.] 메라니가 말했다. [하지만 긴 생머리 때문에 당신 모습이 가늘고 뾰족하다는 인상을 풍겼던 것이죠. 이 스타일이 당신 얼굴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요.] 아인스타인마저도 그녀의 변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 미용실을 나왔을 때 개는 주차 미터기 기둥에 매어 놓았던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는 깜짝 놀라 노라를 다시 보더니 앞발을 껑충 들어 그녀 몸에 얹고는 그녀의 얼굴과 머리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듯 낑낑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싫어했다. 그들이 자신의 몸을 돌려 거울을 보게 했을 때 그녀는 예쁘고 쾌활한 젊은 처녀처럼 보이려는 애처로운 노처녀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멋낸 머리는 정말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근본적으로 평범하고 수수한 여자라는 것을 강조할 뿐이었다. 이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는 결코 그렇게 섹시하거나 매력있거나 현대적이거나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밝은 색의 깃털 총채를 칠면조 꽁무니에 묶어 놓고는 그것을 공작새인 체하는 꼴이었다. 그녀는 트라비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좋아하는 척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녀는 머리를 감고는 그 스타일이 모두 다 펴질 때까지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페더링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처럼 그렇게 똑바르고 부드럽게 흘러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다음 날 트라비스가 점심을 함께 하러 가기 위해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다시 그 전 모습으로 되돌아 간 그녀의 머리를 보고는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봐 너무 당황하고 겁이 나서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잠깐씩도 그와 눈을 마주치질 못했다. 그녀가 계속 거절했었지만 트라비스는 그녀의 새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함께 가자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Talk of Town이라는 웨스트 구티에르즈에 있는 한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때 그녀가 입을 수 있는 밝은 여름용 드레스를 사자는 것이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가끔 이 지역에 사는 몇몇 영화 배우들을 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고급스러운 한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러 벌의 옷들을 입어보고 매번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트라비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그의 앞에서 옷 매무새를 보였다. 점원은 진심으로 노라의 모습을 칭찬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계속 노라의 모습이 완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라는 그 점원 여자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트라비스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는 디아네 프레이스 콜렉숀 제품이었다. 노라도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선명한 빨간색과 황금색, 그리고 그것에 전혀 안 맞을 듯한 다른 바탕들이 웬지 오히려 훨씬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하긴 이런 점이 프레이스 디자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너무나도 여성적인 옷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검은 색깔들, 모양 없는 카트, 단순한 무늬, 무(無) 장식 등 바로 그런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말하려 했고 그래서 이런 옷은 정말 입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이 이걸 입으니 너무나 예뻐 보여요. 정말이오.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그것을 사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오, 결국 그녀는 그렇게 했다. 이것은 큰 실수이고 잘못이며 그래서 결코 그 옷을 입지 못할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그 옷이 다 포장되었을 때 노라는 자신이 왜 그냥 묵인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비록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옷을 사주고 또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써 주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우쭐했었음을 깨달았다.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고 꿈도 꾼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압도당했던 것이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현기증까지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현기증이었다. 그리고 그 가게를 떠날 때 그가 그 옷값으로 5백 달러를 지불했다는 것을 알았다. 5백 달러! 사실 그녀는 그 옷을 옷장에만 걸어 놓고 가끔 보며 즐거운 공상의 나래를 펴는 것으로나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라면 50달러짜리 옷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5백 달러짜리라면 그것을 입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 옷을 입음으로 해서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거나 또 날품팔이가 공주가 된 척하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 트라비스가 그녀를 Talk of the Town으로 에스코트해 가기 위해 그녀를 데리러 오기 전 두 시간 동안 그녀는 대여섯 번은 그것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그녀는 거듭해서 옷장의 옷들을 뒤지며 입을 만한 다른 것, 좀더 분별있는 옷을 미친 듯이 찾아뒤졌다. 그러나 전에는 성장(盛裝)을 해야 하는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애 대신 입을 만한 정장 옷이 전혀 없었다.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찌푸려 보며 그녀는 말했다. [너는 마치 투시에 나오는 더스틴 호프만 같아 보여.] 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자신에게 너무 심하게 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좀더 후하게 다룰 수가 없었다. 그것이 지금 그녀의 마음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여장을 한 남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기분이 사실들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녀의 웃음은 곧 맥이 빠져 버렸다. 그녀는 두 번씩이나 주저앉아 울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데이트를 취소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무리 큰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될지라도 가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녀는 뮤어라인을 이용해 빨개진 눈을 회복시키고 다시 그 옷을 입었다. 그리고는 다시 벗었다. 그가 일곱 시가 조금 지나 도착했을 때 그의 모습은 검은 정장으로 너무나 멋있었다. 노라는 검푸른 신발에 모양 없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기다리겠소.] 그녀가 말했다. [예? 무엇을요?] [알잖아요.] 그는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으로 말했다. 그 말들은 아주 간결하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변명은 기운 없는 것이었다. [트라비스, 미안해요. 이를 어쩌죠. 너무 미안해요. 그 옷 전체에다 커피를 쏟았어요.]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그는 거실 아치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커피 한잔 전부......] [서두르는 게 좋아요. 우리의 예약 시간은 7시 30분이오.]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다 드러내고 비웃지는 않을지라도 재미있다는 듯 수근댈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오로지 중요한 것은 트라비스의 의견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그녀는 디아네 프레이스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며칠 전에 멜라니가 해주었던 머리 스타일을 풀었던 걸 후회했다. 아마 그 머리 스타일대로였다면 좀더 나았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정말 그녀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트라비스는 그녀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 정말 예뻐보입니다.] 그녀는 Talk of Yown의 음식이 그 명성만큼 좋았는지 못했는지 몰랐다. 그녀는 아무 맛도 못 느꼈다. 나중에는 그곳의 장식도 분명하게 기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우인 제네 하크만을 비롯해 다른 손님들의 얼굴들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저녁 내내 그 사람들이 놀라움과 경멸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 도중 그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듯 트라비스는 와인 잔을 내려놓고는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당신 정말 너무 예뻐보여요. 노라. 그리고 당신이 전에 이런 곳의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 이 룸 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당신에게 매료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요.] 그러나 그녀는 진실을 알았고 그것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정말로 자신을 응시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예쁘기 때문이 아니다. 공작처럼 보아 넘겨주기를 바라며 깃털 총채를 달고 나타난 한 마리 칠면조를 재미로 쳐다보았을 뿐일 게다. [화장기 하나 없는데도 당신은 이 룸에 있는 어느 여인보다도 더 근사해 보여요.] 그가 말했다. 화장을 안 했다. 그게 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본 또 다른 이유였다. 여자가 비싼 레스토랑에 오기 위해 5백 달러짜리 옷을 입을 때는 립스틱이나 아이라이너, 화장, 스킨 브러쉬 등등으로 가능한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노라는 화장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초콜릿 무스 디저트는 분명히 맛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도 그녀에게는 풀반죽 같은 맛이었고 또 자꾸 목구멍에 걸렸다. 그녀와 트라비스는 지난 몇 주 동안 함께 지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에게 친밀한 기분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놀랍도록 쉬워졌다. 그녀는 그의 외모가 그토록 멋있고 또 비교적 부유한 편인데도 왜 혼자 사는지 알았고 그도 그녀가 왜 그녀 자신을 그렇게 낮게 생각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더 이상 무스를 삼키지 못하고 트라비스에게 바로 집으로 좀 데려다 주길 호소했을 때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만일 심판관이 계시다면 당신 이모는 오늘 밤 지옥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거요.] 놀라서 노라는 말했다. [오, 아니에요. 그녀가 그렇게까지는 나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는 침묵을 지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를 그녀의 집 현관 앞까지 데리고 왔을 때 그는 그녀 이모의 변호사이면서 지금도 노라의 사소한 법적인 문제를 보아 주고 있는 게리슨 딜워스와 좀 만나게 해 줄 것을 그녀에게 요구했다. [당신이 나에게 얘기한 바로는 딜워스는 누구보다도 더 당신 이모를 잘 알아요. 그러니 당신 이모가 무덤에서조차 당신에게 행사하고 있는 그 족쇄를 깨트려 버릴 수 있는 방법들을 그가 말해줄 수 있을 거라고 난 확신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노라가 말했다. [하지만 바이오렛 이모에게 그렇게 큰 어두운 비밀들은 없어요.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였어요. 그녀는 정말 아주 단순한 여자였지요. 뭐랄까, 슬픈 여자라고나 할까요.] [슬픈 아집쟁이였겠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는 그녀가 게리슨 딜워스와 약속을 하도록 동의할 때까지 집요하게 요구했다. 나중에 윗층 침실에서 그녀는 그 디아네스 프레이스제 옷을 벗으려고 할 때 웬지 그것이 벗고 싶지 않아졌다. 저녁 내내 자신은 그 의상을 벗으려고 안달했었다. 그 옷이 그녀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날 저녁에는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행복감을 연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치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처럼 그녀는 5백 달러짜리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게리슨 딜워스의 사무실은 점잖고 안정되고 믿음직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세심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은 참나무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두꺼운 감청색 커튼이 청동 막대에 매달려 걸려 있었다. 가죽 장정의 법률 서적들이 가득한 서가들이 있고 거대한 참나무 책상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 변호사는 근엄하기도 하고 또 청렴해보이기도 한 사람으로 마치 산타크로스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며 상당히 풍채가 좋고 진한 은발에 7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일주일 내내 일을 하는 게리슨은 조끼까지 입는 정장에 차분한 넥타이를 선호했다. 캘리포니아인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왔지만 그 깊고도 부드럽고 다듬어진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가 동부에서 나서 자라고 교육받은 동부 상류 계층 출신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또한 그의 눈은 유쾌한 반짝임으로 빛났고 또 그의 미소는 따뜻한 산타의 미소였다. 그는 거리를 두고 자기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노라와 트라비스를 우아한 커피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게 한 후 자신도 함께 동석했다. [난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낼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소. 당신 이모에게는 아무 비밀도 없어요. 당신의 인생을 바꿀 만큼 그렇게 큰 어두운 폭로거리가 없......]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노라가 말했다. [저희가 괜히 선생님을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트라비스가 노라에게 말했다. [ 딜워스씨가 말씀을 마저 끝까지 하도록 기다려요.] 그 변호사는 말했다. [바이오렛 데본은 내 고객이었지요. 그리고 변호사는 고객이 비록 죽은 후일지라도 그들의 비밀을 지켜 줄 의무가 있어요. 적어도 그것이 나의 견해죠. 그처럼 지속적인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변호사들도 몇몇 있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물론 지금 앞에 계시는 분은 바이오렛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상속자이시기 때문에 굳이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비밀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난 당신의 이모에 대한 내 정직한 의견을 표명하는 데에 조금도 도덕적인 제약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법률가나 성직자, 의사들도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가지도록 허용됩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난 그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약간은......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러니까 아주 편협하고 전적으로 자아에 얽매인 여자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을 키워온 방법은 범법적인 것이었어요, 노라! 사법 기관에 제소할 정도의 학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범법적인 것이었소. 그리고 잔인했구요.] 굵은 어떤 끈이 그녀 몸 안의 모든 주요 기관들과 혈관들을 꽁꽁묶고 죄며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고 피의 흐름을 제한하지 않았던 때가 노라의 기억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각들의 기를 죽이며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게리슨의 말이 그 끈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풍요롭고 제한 없는 생명이 단번에 그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바이오렛 데본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그 가혹한 족쇄를 떨쳐버리기엔 충분치 못했다. 그녀에게는 이모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트라비스는 이미 바이오렛을 비난했었다. 그래서 노라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녀를 자유롭게 만들기에 충분치 않았다. 트라비스는 바이오렛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말에는 전혀 권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리슨은 바이오렛을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그의 말이 노라를 속박으로부터 풀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심하게 떨고 있었고 눈물이 그녀의 얼굴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트라비스가 한 손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위로해 줄 때까지도 자신이 그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 속을 더듬어 손수건을 찾았다. [미안해요.] [노라, 당신이 평생 갇혀 있던 그 철갑을 깨부수고 나온 것에 대해 사과하지 말아요. 당신이 어떤 강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갈소. 아주 부끄러워하는 모숩 말고는 다른 모습을 당신에게서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오. 보기에 좋군요.] 변호사는 노라에게 눈물을 닦도록 시간을 주고는 트라비스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저에게서 더 듣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까?] [노라도 모르고 있던데요.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을 밝히신다고 해도 그것이 고객의 특권에 대한 당신의 엄격한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어떤 종류의 질문이오?] 트라비스가 말했다. [바이오렛은 전혀 일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풍요롭게 살면서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었지요. 그리고 또 그녀는 노라의 여생 동안에도 노라가 살아갈 만큼 아주 충분한 기금을 남겨 놓았습니다. 노라가 그 집에 머물면서 은둔자처럼 산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 돈이 어디에서 다 나온 겁니까?] [어디에서 왔느냐구요?] 게리슨은 놀란 목소리였다. [노라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아니, 모르고 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노라는 얼굴을 들고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리슨 딜워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바이오렛의 남편은 꽤 부유했지요. 그는 아주 젊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모든 것을 물려 받았지요.] 노라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며 겨우 숨을 돌려 말했다. [남편요?] [조지 옴스테드라는 사람이었지요.] 변호사가 말했다. [전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어요.] 게리슨은 다시 반복해서 눈을 껌벅였다. 마치 모래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그녀가 남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요?] [전혀요.] [하지만 이웃 사람도 언급한 적이......] [우린 이웃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노라가 말했다. [바이오렛은 그들을 상대하질 않았어요.]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이 바이오렛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양쪽 이웃 모두 다 새로 이사온 집들이었던 것 같네요.] 게리슨이 말했다. 노라는 코를 풀고는 손수건을 치웠다. 그녀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갑작스러운 해방감이 강한 감정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호기심이 발동할 여유를 가질 정도로 웬만큼 가라앉았다. [괜찮아요?] 트라비스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를 열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셨지요. 그렇지요? 그 남편에 관해서 말예요. 그게 당신이 나를 이리로 데리고 온 이유지요.] [난 혹시 하고 생각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만약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면 그것에 관해 말했었을 거요. 그녀가 돈이 어디서 생겼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한 가지 가능성밖에는 없었던 거죠. 남편이지요. 그녀와 문제가 있던 남편에게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것이지요. 그녀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얼마나 심한 원한을 품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훨씬 더 쉽게 납득이 되지요.] 변호사는 너무 당황하고 흥분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커다란 고대식 지구본을 지나쳐 천천히 걸었다. 그 지구본은 양피지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전구가 켜져 있었다. [어리둥절하군요. 그래서 왜 그녀가 그토록 인간을 싫어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셨군요. 그러니 왜 그녀가 모든 이들이 속으로 자신이 아주 못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이해를 못 하셨겠지요.] [예.] 노라가 말했다. [전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냥 그녀가 본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여전히 천천히 걸으며 게리슨은 말했다. [그래요. 그게 사실입니다. 난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도 어느 정도 편집증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조지가 그녀를 배신하고 여러 다른 여자들과 바람 피운 것을 알았을 때 그 편집증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온통 그녀 안에서 짤깍거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그리고 그후로 훨씬 더 심하게 되었던 겁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왜 바이오렛은 처녀 때 성(姓)인 데본을 그대로 썼나요? 옴스테드와 결혼했는데도 말입니다.] [더 이상 그의 성을 원치 않았던 거지요. 그 이름에 염증을 느꼈던 겁니다. 그녀는 짐을 꾸려 그를 집 밖으로 내보냈지요. 작대기를 들고 그를 거의 때리다시피 하며 집 밖으로 내쫓은 겁니다. 그녀는 그가 죽기 바로 전에 막 이혼하려고 했었지요.] 게리슨이 말했다.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격분했어요. 수치심을 느꼈고 분개했지요. 내가 빠트릴 수 없는 말은 전적으로 그 불쌍한 조지만을 탓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가 집안에서 어떤 사랑이나 애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혼식 후 한 달만에 그 결혼이 실수였음을 깨달았지요.] 게리슨은 지구본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한 손을 가볍게 지구본 꼭대기에 올려놓으며 먼 과거를 회상했다. 보통 때 그는 자기 나이만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뒤로 거슬러 회상하고 있는 지금은 얼굴의 주름이 깊어지는 것 같았고 또 그의 파란 눈도 흐려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때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는 연민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그런 색다른 시대였어요. 하지만 그런 시대일지라도 바이오렛의 반응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녀는 그의 옷이란 옷은 모두 다 불태우고 집안의 모든 자물쇠들을 바꾸어 버렸어요. 심지어는 남편이 좋아했던 개인 스패니얼까지 죽였어요. 독살시킨 거지요. 그리고 그것을 상자에 넣어 그의 앞으로 우송했었지요.] [오, 세상에!] 트라비스가 말했다. 게리슨은 말했다. [바이오렛은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처녀 때 성(姓)을 되찾은 거였지요. 평생 조지 옴스테드의 이름을 지고 다닌다는 생각이 역겨웠다고 그녀가 말하더군요. 그가 죽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녀는 용서할 줄 모르는 여자였어요.] [그랬어요.] 노라가 맞장구쳤다. 그의 얼굴이 그 기억에 대한 불쾌감 때문인지 찡그려졌다. 그리고는 계속 말했다. [조지가 죽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쁨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았지요.] [살해되었나요?] 노라는 바이오렛이 조지 옴스테드를 살해하고도 어쩐 일로 아직까지 기소를 피해왔다는 말을 반쯤은 기대하고 있었다. [교통 사고였어요. 벌써 40년 전 일이네요.] 게리슨이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다 해안 고속 도로에서 차가 말을 안 들었지요. 그래서 그 시절에는 난간이 없었던 그 길가를 넘어버렸던 겁니다. 그 뚝은 20에서 30미터의 높이에다 무척 가파랐지요. 검은색 대형 패카드인 조지의 차는 그 아래 바위에 부딪칠 때까지 일곱 번이나 굴렀어요. 바이오렛은 이혼 수속을 시작했었지만 조지가 미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되었던 거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러니 조지 옴스테드는 바이오렛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냥 죽어버림으로 해서 그녀에게는 화낼 대상이 없어져 버린 셈이군요. 그래서 그 분노를 세상으로 돌렸던 거군요.] [그리고 특히 저에게로요.] 노라가 말했다. 바로 그날 오후 노라는 트라비스에게 자신의 그림에 관해 말했다. 그녀는 전엔 자신의 예술적인 취향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이젤, 재료함, 또 화판 등을 구경하기 위해 그녀의 침실로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자기 생활의 일면을 그에게 비밀로 간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언급하곤 했었다. 그것이 함께 화랑과 박물관에 가곤 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 그림들을 보자마자 맥빠져 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녀는 진정한 재능이 없다고 느끼면 어떻게 할까? 책들이 제공하는 그 위안을 제외하고는 노라로 하여금 그 험하고 외로운 세월들을 이겨내게 만든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괜찮은 화가라고, 아니 어쩌면 아주 훌륭한 화가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수줍고 또 너무 연약해서 그런 확신을 누구에게도 드러내 말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틀리면 어쩌나? 만일 자신이 재능이 없고 단순히 시간 채우기를 해왔다면 어쩌나? 그녀의 예술은 그녀가 자신을 정의하는 제일의 매체였다. 그녀에게는 그 얇고 부실한 자기 이미지를 지탱해줄 다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믿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트라비스의 의견은 그녀에게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림에 대한 그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면 그녀는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게리슨 딜워스의 사무실을 떠난 후에 노라는 모험을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오렛에 관해 진실을 들었던 것이 노라에게는 심적인 감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였다. 그녀가 그 감옥에서 일어나 긴 홀을 따라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은 필연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문을 열고 새로운 삶이 제공하는 그 모든 경험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상이 거부하거나 또는 심하게 그녀에게 실망할지도 모를 가능성 등도 감수해야 한다. 모험 없이는 새로운 걸 얻을 희망도 없다. 집에 돌아와 그녀는 트라비스를 이층에 데리고 올라서 자신의 가장 최근의 작품 대여섯 점을 보여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한 목적일지라도 남자를 자신의 침실로 데리고 간다는 생각이 너무 불안했다. 게리슨 딜워스가 사실을 밝혀줌으로 해서 그녀는 자유로와졌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세계는 급속도로 넓어졌다. 그러나 침실까지 보여줄 정도로 자유롭지는 않았다. 대신 트라비스와 아인스타인이 가구들로 가득 찬 거실의 커다란 소파에 앉아 기다리면 자신이 침실에서 몇 점의 그림을 가지고 와 보여주겠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모든 전등을 다 켜고는 창문 커튼도 다 걷었다. 그리고 말했다. [곧 돌아올게요.] 그러나 막상 이층에 올라가자 그녀는 자기 침실에 있는 열 점의 그림들을 놓고 안절부절못하며 그에게 우선 보여 줄 두 점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4점으로 결정했지만 그 많은 것을 한꺼번에 옮기는 것이 좀 어설펐다. 계단 반쯤 내려와서 멈추고는 떨고 있다가 그 그림들을 도로 가져다 놓고 다른 것들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를 네 걸음도 채 되기 전에 자신이 이러다가는 왔다갔다 하며 하루 온 종일을 다 허비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녀는 한번 깊게 숨을 쉬고는 자신이 처음에 선택했던 그 4점을 가지고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트라비스는 그 그림들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격찬했다. [세상에, 노라, 이것은 취미 삼아 하는 그림이 아니야. 이것은 진품이야. 예술이라구.] 그녀는 그 그림들을 4개의 의자 위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그는 소파에 앉아서 그것들을 살펴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일어나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왔다갔다 했다. [당신은 뛰어난 포토리얼리스트요.] 그가 말했다. [글쎄, 난 예술 평론가는 아니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은 웨스만큼 솜씨가 있어요. 하지만 이쪽 것들은...... 이 두 그림에서는 엄청난 수준이......] 그의 칭찬으로 해서 그녀는 아주 심하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침을 어렵게 삼키고나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의 분위기죠.] 그녀는 두 개의 풍경화와 두 개의 생물화를 가져왔었다. 그 중 하나씩은 실로 엄격하게 포토리얼리스트 작품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강한 초현실주의 요소가 가미된 포토리얼리즘이었다. 예를들면 정물화에서 몇 개의 유리잔과 주전자, 스푼, 그리고 얇게 잘린 오렌지가 테이블 위에 있고 그것은 아주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보면 그 장면이 아주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보면 유리잔 중 하나는 그것이 놓여 있는 표면에 녹아 붙어 있고 또 레몬 조각은 유리잔 측면을 뚫고 있어서 마치 그 유리잔이 그 레몬을 둘러싼 채 만들어졌던 것처럼 보였다. [이것들은 아주 뛰어나요. 정말 그래요.] 그가 말했다. [다른 작품들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다른 작품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두 번 더 침실로 갔다와서는 6점의 그림을 더 가져왔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접할 때마다 트라비스의 흥분은 커져갔다. 그의 기쁨과 열의 또한 진실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그녀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그가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동해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옮겨다니다 다시 돌아보며 그는 말했다. [당신의 칼라 감각이 뛰어납니다.] 아인스타인은 트라비스를 쫓아 그 거실을 돌아다니며 자기 주인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조용하게 으르릉 소리를 내며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마치 그의 평가에 동감임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 그림들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으르릉] [매체에 대한 콘트롤이 놀랍습니다. 수천 번의 붓질로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대신 마치 이 그림들이 신비하게 그냥 화폭에 나타난 것만 같네요.] [으르릉] [노라, 이것은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아주 훌륭해요. 어느 화랑이든 단번에 이것들을 가져갈 겁니다.] [으르릉] [당신은 이것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생각엔 굉장한 명성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아주 심각하게 취급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캔버스를 다시 반복해서 사용하면서 종종 이전 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그 결과 많은 그림들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다락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들이 80점이 넘게 쌓여 있다. 이제 트라비스의 고집에 못 이겨 다락에 포장돼 있던 그 그림들을 20여점 이상 내와 갈색 포장지를 찢고는 다 거실 가구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정말 처음으로 그 검은 방이 밝아졌고 또 온화해 보였다. [어느 화랑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것들에 대한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할 겁니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러지 말고 정말 내일 저것들 몇 점을 트럭에 싣고는 몇몇 화랑을 돌아보고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봅시다.] [오, 아니요. 아니요.] [당신에게 약속하지요. 노라!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갑자기 근심에 빠졌다. 예술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는 생각에 스릴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론 갑작스러운 상황 진척에 놀랐다. 낭떠러지 끝을 걷다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 그것들을 트럭에 싣고 화랑에 가져가 보지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트라비스, 난 정말 할 수 없어요. 난 아직 그렇게 못 하겠어요.] 그가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아인스타인이 그녀에게로 다가와서는 몸을 그녀의 다리에 대고 비비며 아주 애정 어린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의 귀 아래를 긁어주며 그녀는 말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일어났어. 난 이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할 수가 없어. 난 계속 현기증과 싸워서 그것들을 떨쳐내야만 해. 웬지 내가 너무나 빨리 돌아서 멈출 수 없게 된 회전 목마에 타고 있는 것만같이 느껴져.]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예술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기를 미루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앞으로 나가면서 이 찬란한 발전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다 맛보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갑작스레 곧바로 뛰어들면 세상을 피하던 노처녀에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자로의 변신이 너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면 후에 분명히 자국이 남게 될 것이다. 그녀는 변신의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싶었다. 마치 출생 이후 내내 생명 유지 장치가 복잡하게 설치된 어두운 방에서만 갇혀 살아온 병자였다가 막 기적적으로 치료된 사람처럼 노라 데본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세계로 나왔던 것이다. 트라비스만이 노라가 은둔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아니다. 아인스타인도 그녀가 변화되는 데 그만큼의 역할을 했다. 그 사냥개는 자신의 그 놀라운 지능의 비밀을 노라에게 털어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솔방에서 그 신부생활誌나 어린애 일 이후로 그 개는 자신의 그 개 같지 않은 마음 상태를 작동시키며 그녀를 거듭해서 쳐다보곤 했다. 트라비스는 아인스타인에 앞서서 노라에게 자신이 어떻게 숲 속에서 그 사냥개를 발견했으며 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이상한 것이 이 개를 쫓아왔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 때 이후로 그 개가 해온 그 놀라운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그는 또한 아인스타인이 가끔 한밤중에 창가에 서서 어둠을 응시하며 마치 그 숲 속의 생물이 그를 찾아낼 것을 믿는 양 몇 차례씩 불안에 떤다는 것도 노라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느 날 저녁 노라의 부엌에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또 집에서 만든 파인 애플 케익을 먹으며 그 개의 신비한 지능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인스타인은 케익 조각을 달라고 조르지 않을 때는 그들이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을 마치 이해하는 양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다 때론 자신의 구강 구조로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에 답답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찡찡거리거나 조급하게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왜 다른 개들과 그토록 엄청나게 다른지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고 난 믿어요.] 노라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이 바쁘게 자신의 꼬리로 허공을 휘두르고 있었다. [오, 나도 그것을 확신해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는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색다르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 이유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가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러지 찾기만 하면 그것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해요.] 사냥개는 한 번 짖고는 부엌 저쪽 끝으로 달려갔다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정말 사람처럼 좌절감을 드러내는 약간의 광적인 춤을 추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머리를 자기 발 위에 올려놓고 마루 바닥에 폭 쓰러져서는 칙칙 소리를 내다가 또 조용히 낑낑거리기도 했다. 노라는 그 개가 트라비스의 서가에 꽂혀 있는 전집을 보고 흥분했었다는 이야기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그는 책들이 의사 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그는 책들을 이용해서 그와 우리들 사이에 있는 의사 소통의 갭을 넘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떻게?] 트라비스는 파인 애플 케익을 포크로 다시 한 조각 뜨면서 물었다. 노라는 어깨를 움츠렸다. [몰라요. 하지만 문제는 당신의 책들이 그가 바라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소설들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요. 픽션들이지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들은 그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나 사진들이 있는 책들인지 몰라요. 갖가지 종류의 그림책들이나 잡지들을 모아와서 마루 바닥에 펼쳐 놓고 아인스타인에게 보이면서 노력해보면 어떻게 그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요.] 그 사냥개는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노라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쳐다보는 그의 눈을 보고 노라는 자신의 제안이 괜찮았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 그녀는 여남은 권의 책들과 잡지들을 모아와서 이 계획을 실행해볼 생각이었다. [아마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겁니다.] 트라비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인내심만큼은 바다만큼이나 많아요.] [당신은 자신이 그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요. 하지만 아인스타인을 다루다 보면 때때로 인내심이란 말이 색다르게 느껴지곤 할겁니다.] 개는 트라비스를 향해서 콧구멍으로 콧김을 내뿜었다. 수요일과 목요일 동안에 실시한 그 개와의 첫 번째 실험에서는 좀더 직접적인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전망은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커다란 진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6월 4일, 그들은 그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그들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을 수 없었다. 2 [보르디옥스 리지라는 완공되지 않은 주택 건설 부지에서 절규 소리가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음.] 금요일 저녁, 6월 4일 해지기 한 시간 전, 태양은 황금빛으로 오렌지 카운티를 내리 비추고 있었다. 34도가 넘는 작열하는 온도가 이틀째 계속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 긴 여름날의 축적된 열이 도로와 건물들에서 방출되고 있었다. 나무들은 지쳐서 축 늘어져 있었고 바람은 한점도 없었다. 고속 도로나 일반 도로에서의 자동차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마치 두꺼운 공기층이 엔진의 울림과 경적 소리를 걸르는 것처럼 말이다. [반복한다. 동쪽 끝 건설 현장인 보르디옥스 리지다.] 요르바 린다에 인접한 미편입 군(郡)지역 안에 있는 곳으로 북쪽으로 뻗은 완만한 산기슭 지역이다. 그곳은 아주 최근에서야 교외 인구들이 뻗치기 시작한 곳으로 자동차들이 적었다. 이따금 울리는 경적 소리나 브레이크 밟는 끽 소리는 아득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 후덥지근한 정적 속에서 애처롭고 우울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지방 경찰관들인 틸 포터와 켄 디메스는 통풍 장치가 고장난 순찰차를 타고 있었다. 틸은 운전을 하고 켄은 무장 정찰을 하면서. 에어콘 장치도 없었고 바람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없었다. 유리창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차는 찜통이었다. [자네한테서 죽은 돼지 냄새가 나는군.] 틸 포터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말했다. [그래?] 켄 디메스가 말했다. [저, 자네는 죽은 돼지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돼지 같아 보이네.] [그래? 그러면 자네는 죽은 돼지들과 데이트를 주로 하는구만.] 켄이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었다. [자네의 여자들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자네는 죽은 돼지처럼 사랑을 한다며? 그게 정말인가?] 그런 지친 유머로는 그들이 지치고 힘들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전 송신에 응답하였지만 그렇게 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건축 부지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이 경찰관들은 둘다 서른두 살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미식 축구 선수들로 깡마른 체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6년 동안 파트너로 지내면서 형제가 되었다. 틸은 군(郡) 도로를 벗어나 보르디옥스 리지 현장으로 들어가는 흙길로 들어섰다. 약 40여 채의 집들이 각기 여러 건축 단계에 있었다. 대부분이 아직 골조 상태였으나 이미 치장 벽토가 끝난 것들도 몇 채 있었다. [저기 봐, 정말 사람들이 홀딱 반할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저 똥 같은 것들이 있어. 내 말은 제기랄, 도대체 남 캘리포니아에서의 건축 단지에 보르디옥스란 이름이 웬 말이야?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날 여기가 포도원이 될 것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것인가? 그리고 여길 '리지(산마루)' 라고 부르고 있어. 하지만 이 구역 전체는 언덕 사이에 있는 평지야. 그들의 광고를 보면 평온함을 약속해주고 있어. 아마 지금은 그러겠지. 하지만 앞으로 5년 간 여기에다 또 다시 3천 가구를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나?] 틸이 말했다. [그래, 나를 화내게 만드는 부분은 '미니 별장'이란 말이야. 미니 별장이란 말이 뭔 말라 비틀어진 말인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이곳을 별장이라고는 생각 안 할 거야. 한 아파트에서 열두 명씩 살면서 평생을 보내는 러시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이 집들은 그냥 평범한 주택들일 뿐이야.] 콘크리트 연석(緣石)들과 도랑받이들이 보르디옥스 리지의 길들을 따라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러나 도로 포장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틸은 천천히 차를 몰며 먼지가 많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썼으나 그래도 먼지는 났다. 그와 켄은 좌우로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집들의 골조 형태들을 쳐다보며 곤란한 상태에 빠진 아이들이 있나 찾았다. 보르디옥스 리지 인접 지역인 서쪽 요르바 린다市 주변 지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완공된 집들이 있었다. 그곳 주민들이 요르바 린다 경찰서에 이 미완성 개발 부지 어디선가 절규 소리가 들렸다고 전화를 했었다. 이 지역이 아직 그 시와 병합되지 않았기때문에 그 민원이 오렌지 카운티 경찰서의 관할로 떨어졌다. 거리의 끝에서 두 경찰관은 보르디옥스를 소유하고 있는 투레만 브라더스 주식 회사 소속의 하얀 픽업 트럭을 보았다. 그 트럭은 거의 완성된 전시용 모델 하우스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곳에 아직도 현장 주임이 있는 모양인데.] 켄이 말했다. [아니면 좀 일찍 나온 야간 경비인지도 몰라.] 틸이 말했다. 그들은 그 트럭 뒤에다 순찰차를 주차하고는 숨 막힐 것처럼 뜨겁고 답답한 차 안에서 나와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 기울이며 잠시 서 있었다. 고요했다. 켄이 소리쳤다. [이봐요. 여기 누구 없어요?] 그의 목소리가 삭막한 구역을 가로지르며 앞 뒤로 메아리쳤다. 켄이 말했다. [둘러보고 싶은가?] [젠장, 아니.] 틸이 말했다. [하지만 해보자구.] 켄은 여전히 보르디옥스 리지에 무슨 일이 났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 픽업은 그냥 놔두고 퇴근했을 수 있다. 대개 다른 장비들은 밤 사이에도 그대로 놔둔다. 그리고 신고된 절규 소리는 아이들이 놀다가 지른 소리일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을 차에서 꺼내 거머쥐었다. 전력이 이 부지까지 연결되었을지라도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건축물에 램프나 천장 전등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라기보다는 거의 습관적으로 엉덩이에 걸려 있는 총 벧트를 다시 정리하며 골조가 부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집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을 통과하며 걸어나갔다. 그들은 특별히 어떤 것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조사할 뿐이었고 사실 그것이 경찰 업무의 절반이었다. 부드럽고 산발적인 산들바람이 처음으로 불어와 그 집 공터에 톱밥이 날렸다. 태양은 빠르게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벽의 간주(間柱)들이 마루바닥에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황금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해가는 태양은 마지막 남은 빛으로 하늘에 석양을 깔아놓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못들이 날카로운 빛으로 반짝이며 어지럽게 널려 있다가 발 아래 밟혀 쨍그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만팔천 달러면 이 집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틸은 손전등으로 어두운 구석들을 비추며 말했다. 톱밥 냄새가 나는 공기를 깊게 들이키며 켄이 말했다. [젠장, 난 공항 라운지만한 집을 얻겠다.] 그들은 그 집 뒤 쪽으로 걸어가 얕은 뒤뜰로 나와서 손전등들을 썼다. 황량한 땅은 조경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은 목재 조각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 구겨진 타르 종이 조각들, 엉켜진 철선, 많은 못들, 쓸모 없는 PVC 파이프들, 지붕 잇는 사람들이 버린 삼나무 지붕 널, 스티로폴로 된 음료수 컵과 햄버거 용기, 빈 콜라 깡통들, 그리고 분간할 수 없는 부스러기 등 갖가지 건축 자재 파편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울타리들은 아직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따라 건축 중인 집들의 뒷뜰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누가 피해를 본 흔적은 없어.] 틸이 말했다. [문제에 처한 계집 아이들도 없고 말이야.] 캔이 말했다. [글쎄. 여기를 따라 좀 걸어보면서 건물들 사이를 살펴보기나 하자구.] 틸이 말했다. [우린 주민들 돈을 받고 사니 무엇인가 그들에게 주어야 한단 말이야.] 건물들 사이를 큰 보폭으로 30보 정도 걸으며 두 채의 집을 지났을 때 그들은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제기랄!] 틸이 말했다. 그 사람은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있었고 몸 대부분이 그늘진 어둠 속에 있어서 몸 하단 부분만이 희미한 붉은 빛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틸과 켄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마주친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켄은 그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그 남자의 내장이 찢겨진 채로 열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 사람 눈이......] 틸이 말했다. 켄은 난자당한 몸통에서 시선을 위로 올려 보고는 이 피해자의 눈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긴 휑한 구멍들을 보았다. 틸은 어지러운 뜰로 나와 권총을 뽑았다. 켄도 난자당한 시체에서 물러나 권총집에서 총을 살짝 뺐다. 그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갑자기 다른 종류의 땀, 으스스하고 음산한 공포의 땀으로 더 축축하고 미끄러운 느낌을 받았다. 켄은 마약을 생각했다. 마약에 취한 어떤 얼간이만이 이런 짓을 할 정도로 난폭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르디옥스 리지는 고요했다. 시시각각 길어져만 가는 것 같은 그림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것들이 없었다. [나도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틸이 말했다. [좀더 보고 싶은가?] [우리 둘만으론 안되겠어. 무전으로 원조를 청하자구.] 그들은 방심하지 않고 사방을 보면서 천천히 몇 걸음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못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충돌하는 소리, 금속판이 달그닥거리는 소리,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켄은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소음은 모델 하우스로 쓰기 위해 벌써 다 완성돼 가는 3채의 집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혐의점이 없고 또 용의자를 어디서부터 찾기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 단서가 없을지라도 그냥 순찰자로 돌아가 원조를 청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모델 하우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은 이상 그들은 좀더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훈련과 본능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 집 뒷뜰을 향해 움직여갔다. 건물 간주(間柱)들에는 합판 외피들이 못에 박혀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벽들도 아직 끝 마무리가 다 되지 않은 상태였고 또 그 장소의 반 정도만이 벽토 처리가 되어 있었다. 사실 벽토는 좀 축축해 보였다. 벽토 일이 바로 오늘 시작된 것 같았다. 창문들은 대부분 다 설치되어 있었다. 단지 몇 곳만 불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다. 또 다시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가 처음 것보다 더 크게 들렸고 뒤이어 안에서 더 많은 유리창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켄 디메스는 뒷뜰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미닫이 유리문을 밀쳐보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바깥에서 틸은 유리를 통해서 거실을 살펴 보았다. 커튼이 없는 문과 창문들을 통해 약간의 빛이 집 안을 비추고 있었지만 안은 대체로 어두웠다. 하지만 그 거실이 황폐하게 되어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틸은 한 손엔 손전등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권총을 꼭 쥐고는 반쯤 열린 문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자네는 앞으로 돌아가게.] 틸이 속삭였다. [그 악당놈이 그 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야.] 켄은 창문 위로 몸이 보이지 않도록 허리를 구부리고 집 측면을 따라서 급히 모퉁이를 돌아 집 앞으로 갔다. 웬지 발을 뗄 때마다 누군가가 지붕에서 뛰어내려 덮치거나 아니면 어느 창문을 통해 튀어나와 덤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내는 석고 상태였고 천장은 직물로 되어 있었다. 거실은 부엌과 붙어 있는 식당으로 열려 있어 모두가 칸막이 없이 커다란 하나의 공간이었다. 부엌에는 참나무로 된 식기장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바닥에는 아직 타일이 깔리지 않았다. 집 안은 목재 착색제 냄새에다 벽토의 석회 냄새가 섞여 풍겼다. 틸은 식당에 선 채 뭘 부수는 소리나 움직이는 소리가 더 나는지 귀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집이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주택들과 갈은 것이라면 부엌 너머 왼 쪽으로 식당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 거실, 현관 입구, 그리고 서재 식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간이 식당을 나와 홀로 들어가면 아마도 세탁실이 있을 것이고 아래층 욕실, 외투 장, 그리고 현관이 나올 것이다. 그는 어느 루트를 잡든 특별히 잇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홀로 들어가서 우선 세탁실부터 살펴보았다. 그 어두운 세탁실은 창문이 없었다. 문은 반쯤 열린 채였다. 그래서 손전등으로는 오로지 노란 캐비닛과 또 앞쪽으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일 장소만이 보였다. 그러나 틸은 문 뒷부분을 보고 싶었다. 아마 싱크대 자리와 일할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을 완전히 밀어 열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전등과 총을 그 방향으로 휙 돌렸다. 그가 기대했던 대로 스테인레스 싱크대와 붙박이 테이블이 있었다. 그러나 살인마는 없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안했다. 그 죽은 사람의 형상이 계속 마음 속에서 껌벅이며 되살아나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눈알이 빠진 휑한 구멍을 마음 속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불안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생각했다. 사물을 직시하라. 너는 너무 놀라 있다. 현관 밖에서 켄은 좁은 도랑을 뛰어 넘어 여전히 닫혀 있는 두짝 열개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는 주변 지역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도망치려는 자가 없었다. 황혼이 내리고 있어서 보르디옥스 리지는 개발 중인 택지라기보다는 폭격당한 동네처럼 보였다. 그림자들과 먼지들이 폐허의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세탁실에서 틸 포터는 홀 쪽으로 걸어나오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오른 쪽 노란 캐비닛들이 있는 곳에서 넓이 60센티, 높이 180센티의 청소함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는 그 생물이 마치 상자곽 속의 용수철 인형처럼 그에게로 덤벼왔다. 처음 순간에는 고무로 된 괴물 마스크를 쓴 아이임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 생물 때문에 방향을 잃은 손전등의 역광만으로는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흐린 등불과 같은 그 놈의 눈이 유리나 프라스틱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이 실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총부리는 앞을 향해 홀 쪽으로 향해져 있었다. 총알은 아무도 해치지 못하고 거실 밖에 있는 벽에 박혔다. 그래서 총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놈이 뱀처럼 쉬익 소리를 내며 그를 완전히 덮쳤다. 그는 다시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마루 바닥에 박혔다. 총소리가 그 밀폐된 공간에서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는 뒤 싱크대로 몰렸다. 총은 낚아채였다. 또 손전등도 놓쳐 구석으로 굴러가 버렸다. 그는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채 날라가기도 전에 그는 배 부근에서 끔직스러운 고통을 느꼈다. 마치 몇 개의 단검들이 일시에 그를 찌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즉시 깨달았다. 그는 고함을 질렀다. 절규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상자곽의 용수철 괴물의 괴이한 얼굴이 그를 덮쳐왔다. 노란빛을 토해내는 눈을 하고서...... 틸은 다시 절규하며 몰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더 많은 단도들이 그의 부드러운 목 피부를 뚫고 잠겨왔다. 켄 디메스는 현관에서 네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틸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었다. 놀람과 공포와 고통의 울부짖음이었다. [제기랄!] 현관문은 착색된 참나무로 된 두짝열개 문이었다. 오른 쪽 문짝은 걸쇠로 문지방과 윗문틀에 꽉 잠겨 있었지만 왼 쪽 문짝은 실제 쓰이는 문으로 잠겨 있지 않았다. 켄은 잠깐 주의하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두운 현관에서 멈추었다. 이미 절규 소리는 멈추었다. 그는 손전등 스위치를 켰다. 오른 쪽으로 빈 거실이 있었고 왼쪽으로 빈 서재가 있었다.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했다. 완벽하게 고요했다. 마치 진공 속에 있듯이. 잠깐 동안 켄은 망설이며 소리내 틸을 부르지 못했다. 자신의 위치를 그 살인마에게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다가 그는 그 손전등만으로도 자신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손전등 없이는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가 소리를 낸다 해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틸!] 그 이름이 빈 방들을 통해서 메아리쳤다. [틸, 어디 있나?] 대답이 없다. 틸은 죽은 것이 틀림없다. 이럴 수가! 그가 살아 있다면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다쳐서 무의식 상태로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 경우라면 순찰차로 돌아가 앰불런스를 부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파트너가 절박한 상태에 있다면 켄은 그를 빨리 발견해 응급 조치를 해야 한다. 틸은 앰뷸런스를 부르러가는 시간이면 죽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하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다. 게다가 그 살인마는 처리해 버려야 한다. 이제 아주 희미한 붉은 빛만이 창문들을 통해서 비치고 있었고 그래서 서서히 어둠이 몰려 들고 있었다. 켄은 전적으로 손전등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 빛이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들이 껑충껑충 뛰며 덤벼들면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그같이 잘못 본 그림자들 때문에 정작 진짜 위험은 보지 못할지 모른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그는 그 집의 뒤로 나가는 좁은 홀을 따라 살금살금 걸었다. 그는 벽에 몸을 붙이다시피 했다. 신발 한 짝의 밑창이 걸을 때마다 끽끽거렸다. 그는 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총구를 마루나 천장을 향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만은 무기 안전 수칙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른 쪽으로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작은 방이었다. 비어 있다. 자신의 땀 냄새가 그 집에서 나는 석회석이나 나무 착색제 냄새보다 더 짙게 나기 시작했다. 그는 왼 쪽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재빨리 손전등으로 훑어보았으나 평범한 것들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거울에 비친 공포에 찬 자신의 얼굴 때문에 잠깐 놀라긴 했어도 말이다. 그 집 안쪽으로 있는 거실, 간이 식당, 부엌 등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리고 왼 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고 역시 열려 있었다. 손 안에서 갑자기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 손전등의 불빛을 통해서 켄은 세탁실 바닥에 있는 틸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있어서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간장을 씻어 내려가는 두려움의 파고 밑으로 슬픔과 분노, 증오, 그리고 복수에 대한 강렬한 충동 등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쿵하고 소리를 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그 위험 요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른 쪽 홀과 왼 쪽 간이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소리는 집 안 앞쪽에서 났다. 그 소리의 메아리가 사그러들고 있었지만 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다. 또 다른 소리가 정적을 깼다. 첫 번째 소리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더 기가 꺾이는 소리였다. 걸쇠가 잠기는 딸깍 소리였다. 그 살인마가 떠나면서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궜을까? 하지만 그가 어떻게 열쇠를 얻었겠는가? 그가 살해한 그 현장 주임에게서 얻은 것일까? 그러면 왜 이제서야 문을 잠궜을까? 그가 안에서 문을 잠궜을 가능성이 더 많다. 단순히 켄이 도망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사냥은 계속 중이라는 것을 켄에게 알리는 것이다. 켄은 손전등을 끌 생각을 했다. 그것 때문에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리창으로 들어오던 석양의 햇빛도 진한 자줏빛이 되었고 그 빛마저 집 안으로는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손전등 없이는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살인마는 이토록 짙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제길을 찾아 다닐 수 있는가? 마약 중독자가 마약에 취해 있을 때는 야간 시력이 증진되는 것일까? 합성 헤로인 부작용의 하나로 중독자의 힘이 열 사람 몫을 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집은 조용했다. 그는 복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그는 틸의 피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금속성 냄새가 엷게 풍기는 비린내였다. 딸깍, 딸깍, 딸깍. 켄은 몸이 굳어져 왔고 귀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재빠른 3번의 소리 뒤에는 더 이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들은 콘크리트 바닥을 가로지르는 재빠른 발걸음 같은 소리였다. 딱딱한 가죽 뒤축이 있는 구두나 부츠를 신은 누군가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가 끊겨서 그는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 소리들을 다시 들었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이번에는 4번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현관에서 이 쪽 방향으로 오면서 그가 서 있는 홀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벽에서 몸을 떼고서 적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낮추어 웅크리면서 걸음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손전등과 권총을 확 들이댔다. 그러나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의 움직임 소리를 못 들을지 모르기 때문에 켄은 자신의 가쁜 숨소리를 줄이기 위해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며 복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 현관으로 갔다. 아무 것도 없다. 현관문은 아주 잘 닫혀 있었다. 그러나 서재와 응접실, 계단과 이층 난간에도 아무도 없었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그 소리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났다. 그 집의 뒷 쪽 간이 식당 쪽에서다. 그 살인마는 조용히 현관에서 빠져나와 켄을 뒤에 두고 응접실과 식당을 가로질러 그 집안을 한바퀴 뺑 돌아 부엌과 간이 식당으로 들어 갔던 것이다. 이제 그 악당놈은 지금 막 켄이 떠나온 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은 다른 방들을 사뿐히 소리 없이 지나다니면서도 다시 가끔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어서가 아니다. 또 켄의 신발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듯이 그의 신발에서도 딸깍 소리가 나서도 아니다. 그놈은 그 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켄을 조롱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봐, 난 지금 네 뒤에 있어. 그리고 여기서 내가 간다. 준비가 돼있든 아니든 여기서 난 간다.' 딸깍, 딸깍, 딸깍. 켄 디메스는 겁장이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문제로부터 발걸음을 돌린 적이 없는 훌륭한 경찰이었다. 그는 7년밖에 근무하지 않았는데도 그 동안에 그 용맹성으로 두 번이나 훈장을 받았었다. 그러나 얼굴 없이 미쳐 날뛰는 이 망할 자식은 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온 집안을 질주하며 조롱하듯 소리를 냈다 내지 않았다 하며 켄을 당황하게 하고 겁을 주었다. 켄은 어느 경찰 못지 않게 용감했지만 또한 바보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로지 바보만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과감하게 뛰쳐들어갈 것이다. 홀로 돌아가서 그 살인마를 대적하는 대신 그는 현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으로 레버 식으로 된 청동 손잡이로 손을 내뻗었다. 그 문은 그냥 단순히 닫혀서 걸쇠로 잠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정된 문짝과 사용 중인 문짝의 손잡이에 한 팔 정도 되는 철사줄이 감겨 두 문짝을 꽉 묶어 주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면 그 철사줄을 풀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30초는 걸릴 것이다. 딸깍, 딸깍, 딸깍. 그는 보지도 않은 채 홀을 향해 한 번 총을 발사하고는 빈 거실을 가로질러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는 자기 뒤에서 살인마의 소리를 들었다. 딸깍거리는 소리를. 어둠 속에서 빠르게 오는 소리를. 그러나 켄이 식당으로 가 부엌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거의 다와갈 때 바로 앞에서 딸깍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 살인마가 거실로 자신을 쫓아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놈은 빛이 없는 복도로 돌아가 다른 방향에서 그에게 오고 있었다. 이렇게 미친 게임을 하면서...... 그 악당놈이 내는 소리로 봐서 그놈은 막 간이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켄과의 사이는 단지 부엌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켄은 바로 거기서 멈추고는 그 미친 놈이 손전등 빛 안으로 나타나는 순간 그놈을 날려버릴 생각을 했다. 그 때 그 살인마가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복도를 따라 딸깍거리며 다가오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적은 원시적인 분노와 증오의 응어리 같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켄이 들어본 중에 가장 이상한 소리로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미친 사람도 그런 소리는 내지 않는다. 그는 대결할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는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손전등을 부엌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적으로부터 몸을 돌려 다시 도망치기로 하고 거실이나 집 안의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식당을 가로질러 황혼의 마지막 희미한 빛이 흐릿하게 비치는 창문으로 향했다. 그는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이고 양팔을 가슴 위에 모으고는 옆으로 돌아 유리창으로 뛰어 들었다. 유리창이 깨졌다. 그리고 그는 뒷뜰로 떨어져서 건축 자재 파편들 가운데로 굴렀다. 깔쭉깔쭉한 목재 조각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그의 다리와 가슴을 찔러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는 민첩하게 기어 일어나 그 집 쪽을 향해 몸을 돌려 그 살인마가 그를 추격할 경우를 생각해서 그 부서진 창문에 권총을 발사했다. 밤은 적막하고 그는 그 적의 흔적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운 타령이나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집 측면을 따라 달려 거리로 나왔다. 그는 순찰차로 가야 했다. 거기에는 무전기가 있었다. 그리고 펌프식 폭동 진압용 단총이 있다. 3 6월 1일과 2일인 수요일과 목요일에 트라비스와 노라와 아인스타인은 인간과 개와의 의사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남자와 개는 절망에 빠져 거의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라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실히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6월 4일인 금요일 저녁 해질 무렵 마침내 큰 진전을 보게 되었을 때 트라비스나 아인스타인은 놀랐지만 노라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40권의 잡지들과 50권의 미술집 및 사진집들을 사다가 트라비스의 집 거실로 가져왔다. 그 거실은 그것들 모두를 다 바닥에 펼쳐놓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들은 또한 바닥에 베개를 가져다놓고 누워서 그 개의 눈 높이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준비해 놓는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라는 비닐 소파에 등을 대고 바닥에 앉아서 두 손으로 그 사냥개의 머리를 잡고는 거의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말했다. [좋아, 이제 내 말을 들어, 아인스타인. 우리는 너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보통 개들보다 영리한지, 트라비스가 너를 발견하던 날 그 숲 속에서 무엇을 보고 두려워했는지, 왜 가끔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그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 하지만 넌 말을 못하잖니, 그렇지?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너는 글을 읽지 못해. 또 네가 글을 읽을 수 있다 해도 쓰지는 못해. 그래서 우리는 그림들을 가지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할 것 같아.] 노라 곁에 앉아 있던 트라비스는 그 개의 눈을 유심히 보았고 그 눈은 그녀가 말할 때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몸이 굳어 있었다. 그의 꼬리는 아래로 처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실험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정말 이 똥개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이해를 하는가? 그리고 순전히 내 희망 사항 때문에 내가 착각했던 그의 반응들은 몇 개나 될까? 트라비스는 궁금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신들의 애완 동물들을 인격화하는 경향이 있고 또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짐승들에게 인간과 같은 인식력과 의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정말 특별한 지능이 작동하고 있는 아인스타인의 경우에는 의미 없이 씰룩거리는 개 특유의 모든 행동들도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려는 유혹은 보통 경우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 있는 모든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너의 관심을 끄는 것들과 네가 어디서 왔고 또 네가 어떻게 지금의 너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볼 거야. 그러니 우리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네가 발견할 때마다 너는 어떻게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줘야 해. 그것을 보고 짖거나 그것 위에 발을 올려 놓거나 아니면 꼬리를 흔들어서 말이야.] [재미있군.] 트라비스가 말했다. [내 말 이해하겠지? 아인스타인.] 노라가 물었다. 사냥개는 조용하게 으르릉 소리를 냈다. [전혀 효과가 없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니요, 효과가 있을 거예요.] 노라가 주장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다 뿐이에요.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는 있어요. 그가 여남은 장의 그림들을 지적해낸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가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때가 되면 우리는 그것들을 서로서로 연관 짓게 되고 마침내 그와도 관련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거예요. 그리고 결국은 그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도 알게 될 거예요.] 개는 여전히 머리를 노라의 손 안에 올려놓은 채 트라비스를 향해 눈동자를 돌리며 다시 으르렁거렸다. [준비됐어?] 노라가 아인스타인에게 물었다. 개가 다시 휙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좋아.] 그녀는 그의 머리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시작하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한 번에 여러 시간씩 그들은 아인스타인에게 갖가지 그림들을 보여주며 그 많은 책들을 쭉 훑어나갔다. 사람, 나무, 꽃, 개들, 다른 동물들, 기계들, 도시 거리들, 지방 도시, 자동차들, 배들, 비행기들, 음식들, 수많은 상품 광고 등의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그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많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았다. 그는 그 수천 가지 그림들 중 아마 수백 가지의 그림에 대해서 짖거나 발을 올려놓거나 으르렁거리거나 주둥이를 들이밀거나 꼬리를 흔들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하도 다양하게 선택을 해서 트라비스는 그것들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연관시키고 또 그런 연관 가운데서 어떤 의미를 축출할 방법이 없었다. 아인스타인은 자동차가 강인한 호랑이에 비유되어서 한 철창 우리에 갇힌 채로 보여지는 한 자동차 광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 자동차인지 호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몇 개의 컴퓨터 광고와 개먹이 광고, 휴대용 녹음기 광고, 책 그림, 나비, 앵무새, 감옥에 있는 고독한 남자, 줄무늬 비치 볼을 가지고 노는 네 명의 남자, 미키 마우스, 바이올린, 운동용 트레이드밀 위에서 뛰는 남자, 그리고 많은 다른 것들에도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누런 사냥개의 사진에는 어쩔 줄 몰라했다. 또 스파니엘 개의 사진에도 곧바로 흥분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른 종류의 개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당황하며 반응한 것은 곧 극장에 내놓을 20세기 폭스사의 영화에 관한 잡지 기사 속의 사진에 대한 것이었다. 그 영화의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것-귀신들, 요정들, 지옥에서 온 악마들-과 관련이 있었고 그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사진은 널빤지 같은 턱과 가공할 송곳니에 눈이 전등처럼 빛나는 무시무시한 유령이었다. 그 생물은 그 영화에 나오는 다른 것들보다 더 흉측할 것도 없었고 오히려 어떤 것들에 비해서는 좀 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오로지 그 악마에게만 영향을 받았다. 사냥개는 그 사진을 보고 짖었다. 그리고는 소파 뒤로 달아나더니 마치 그 사진 속의 생물이 그 잡지에서 일어나 나와 그를 쫓아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몸을 숨기고 머리만 빠끔히 내밀었다. 그는 다시 짖고는 낑낑거리다가 노라와 트라비스의 구슬림을 받고서야 잡지 앞으로 돌아왔다. 아인스타인은 다시 그 악마를 보자 곧바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미친 듯이 발로 잡지를 넘기려고 했다. 마침내 좀 찢어지긴 했었도 그 잡지는 덮어졌다. [그 사진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니?] 노라가 그 개에게 물었다. 아인스타인은 그냥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조금 떨고 있었다. 노라는 인내심 있게 그 페이지를 다시 폈다. 아인스타인은 그것을 다시 덮었다. 노라가 다시 폈다. 아인스타인은 그것을 세 번째로 덮고는 입으로 그것을 확 낚아채 방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트라비스와 노라는 그 사냥개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그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쓰레기통은 페달을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것이었다. 아인스타인은 페달에 발을 올리고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그 잡지를 그 통에 떨어뜨리고서 페달에서 발을 뗐다. [아니, 저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요?] 노라가 궁금해했다. [내 생각엔 분명히 그가 보고 싶지 않은 영화인 모양이오.] [네발 달린 털보 영화 비평가로군요.] 그 일은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금요일 초저녁에는 트라비스와 그 개의 좌절감이 한계점에 가까와졌다. 가끔 아인스타인은 신비스러운 지능을 보이곤 했으나 때론 여느 보통개와 같이 행동했다. 그래서 천재적인 개와 멍청한 잡견 사이를 오락가락해서 그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그들의 기운을 빼놓았다. 트라비스는 그 사냥개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의 놀라운 기교에 대비하되 항상 그러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인스타인의 특이한 지능의 신비는 전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노라는 여전히 인내심을 가졌다. 그녀는 그들에게 로마는 하루만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값어치 있는 모든 성과들은 결의와 인내심, 끈기, 그리고 시간을 요했음을 자주 상기시켰다. 그녀가 끈기와 인내심에 대해 강의를 시작하자 트라비스는 지쳐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인스타인도 하품을 했다. 노라는 굴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모든 책들과 잡지들 속의 그림들을 다 검토하고난 후 그녀는 아인스타인이 반응을 보인 그림들만 모아서 그것들을 온 바닥에 죽 펴놓았다. 그리고는 그로 하여금 각 그림들을 연결하도록 부추겼다. [이 그림들 모두가 그의 과거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했던 것들의 모습들일 거예요.] 노라가 말했다. [난 그렇게까지 확신하지는 않아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글쎄요, 바로 그걸 우리가 그에게 부탁하는 거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그림들을 그에게 짚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가 이 방법을 이해할까?] [이해하지요.]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개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노라는 아인스타인의 발을 들어서는 그것을 바이올린의 그림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똥개야. 너는 어딘가에서의 바이올린을 기억하지. 그리고 웬지 모르지만 그것이 너에게 중요했어.] [아마 그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했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조용히 해요.] 그리고는 노라는 개에게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바이올린이 여기 있는 다른 어떤 그림들과 연관이 있니? 바이올린이 너에게 의미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어떤 그림이 있니?] 아인스타인은 마치 그녀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는 양 잠시 동안 진지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방을 가로질러 그림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통로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코를 끙끙대기도 하고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며 그림을 보다가 마침내 소니제 휴대용 스트레오 카세트 프레이어 광고를 발견했다. 그는 한발을 그 위에 올려놓고는 노라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연관이 있지.] 트라비스가 말했다. [바이올린은 음악을 만들어내지. 그리고 카세트 프레이어는 음악을 복사해내지. 이것은 개로서는 감명 깊은 연상 기교야. 하지만 그것이 정말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나? 그의 과거에 관한 어떤 것을 의미할까?] [오, 난 그러리라고 확신해요.] 노라는 말했다. 아인스타인에게 노라는 말했다. [너의 과거 속의 어떤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니?] 개는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말했다. [너의 전 주인이 이렇게 생긴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었니?] 개는 눈을 껌벅이며 낑낑거렸다. [좋아.] 그녀는 말했다. [네가 바이올린과 녹음기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다른 그림이 여기에 또 있니?] 아인스타인은 마치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잠시 소니 광고를 내려다 보고는 또 다른 통로를 통해 걸어가더니 녹십자 광고가 있는 잡지 앞에 멈추었다. 그 광고는 아기를 안고 있는 산모의 침대 가에 의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서 있는 장면이었다. 의사와 산모가 모두 웃고 있었고 아기는 아기 예수처럼 평온하고 순진무구해보였다. 노라는 팔과 무릎으로 기어 개에게 가까이 가 말했다. [이 그림 때문에 너의 주인집 가족들이 생각나니?] 개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가 함께 살았던 그 집에 엄마, 아빠, 애기가 있었니?] 개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트라비스는 여전히 등을 소파에 대고 바닥에 앉아서 말했다. [어이구, 어쩌면 우린 지금 환생의 실제 예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이 아인스타인이 전생에 의사나 엄마, 아니면 애기였다는 걸 기억해낼지도 모르지.] 노라는 그런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기라.]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기분이 언짢은지 가냘프게 울었다.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마치 개와 같은 자세로 노라는 그 사냥개로부터 칠팔십 센티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좋아, 이것으로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겠어. 그림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것보다는 좀더 나은 방법으로 해야겠다. 우린 이 그림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어떻게든 답을 얻어내도록 해야겠어.] [그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다 주지 그래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에요.] 노라는 트라비스에게는 개에게 보인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래도 역시 우스꽝스러워요.] 그녀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시달리는 개처럼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아인스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정말 얼마나 영리하니? 똥개야. 네가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니? 우리의 지속적인 경의와 존경을 계속 받고 싶니? 그러면 네가 해야할 일이 이거야. 간단하게 예 아니오라고 내 질문에 답하는 법을 배우라는 거야.] 개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찬찬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면 꼬리를 흔들어.] 노라는 말했다. [하지만 오로지 답이 예스일 때만이야. 이 테스트가 진행 중일 동안은 습관에서나 단지 흥분되기 때문에 꼬리를 흔드는 일은 피해야 돼. 꼬리를 흔드는 것은 네가 예스라고 말하고 싶을 때만을 위한 거야. 그리고 네가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을 땐 한번 짖어. 그냥 한번만.] 트라비스가 말했다. [두 번 짖는 것은 '난 차라리 고양이나 쫓고 싶어요.' 이고 세 번 짖는 것은 '나에게 버드와이저를 가져다 주세요.'라고 해두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요.] 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왜 안되지? 저놈은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어.] 개는 트라비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노라가 예스에 대해서는 꼬리를 흔들고 아니오에 대해서는 짖는다는 약속을 다시 설명하는 동안 그는 커다란 갈색 눈을 노라에게서 떼지 않고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자, 해보자. 아인스타인, 예스 노 사인을 이해하니?] 그 사냥개는 다섯 번 여섯 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멈추었다. [우연이야.] 트라비스는 말했다. [아무 의미도 없어요.] 노라는 잠시 머뭇거리며 다음 질문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말했다. [내 이름을 아니?] 꼬리가 흔들렸다가 그쳤다. [내 이름이 엘렌이니?] 개는 짖었다. 아니오다. [내 이름이 메리니?] 한번 짖었다. 아니오다. [내 이름이 노나니?] 개는 마치 자신을 속이려하는 그녀를 몹시 비난하듯이 자신의 눈동자를 돌렸다.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한번 짖었다. [내 이름이 노라니?] 아인스타인은 열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노라는 기뻐서 크게 웃으며 앞으로 기어가 앉아서 그 사냥개를 껴안았다. [이럴 수가 있나.] 트라비스도 기어서 그들과 합류하며 말했다. 노라는 그 사냥개가 여전히 한 발을 올려놓고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그림 때문에 네가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생각나서 이것에 반응을 보였니?] 한 번 짖었다. 아니오다. 트라비스는 말했다. [네가 어떤 가족과 함께 산 적이 있었니?] 한번 짖었다. [하지만 넌 야생 개가 아니지 않니.] 노라가 말했다. [넌 트라비스가 널 발견하기 전에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살았을 거 아니야.] 트라비스는 녹십자 광고를 찬찬히 살피다가 갑자기 좋은 질문을 찾아냈다. '넌 그 아기 때문에 그 그림에 반응했니?' 한번 짖었다. 아니오다. [그 산모 때문에?] 아니다.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은 사람 때문에?] 꼬리를 아주 많이 흔들었다. 예스, 예스, 예스. [그렇다면 얘는 의사와 살았군요.] 노라가 말했다. [수의사하고 살았을지 모르지요.] [아니 어쩌면 과학자하고 일지도 몰라요.] 트라비스는 뇌리를 스치는 섬광 같은 직감에 따라서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과학자라는 말에 [예스]라고 꼬리를 흔들었다. [연구하는 과학자?] 트라비스가 말했다. 예스. [실험실에서?] 트라비스가 말했다. 예스, 예스, 예스. [넌 실험실 개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연구용 동물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예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영리한 거로구나.] 예스. [그들이 너에게 무슨 일을 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영리한 거니?] 예스. 트라비스의 심장이 질주했다. 그들은 실제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 개가 건빵으로 물음표를 만들어 보이던 그날 밤 그와 아인스타인이 의사 소통했던 그런 조악한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극도의 특이성을 띤 의사 소통이었다. 이건 마치 그가 사람인양 얘기가 통하고 있다. 그래, 거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이전과 다 달라졌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동등한(색다를지는 몰라도) 지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이 똑같은 조건과 똑같은 권리와 똑같은 희망과 꿈들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게 되는 세상에서는 어느 것 하나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 좋다. 아마 그래서 그는 그걸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인지 모른다. 모든 동물들이 다 갑자기 인간 수준의 의식과 지능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 한 마리의 개일 뿐이다. 실험용 동물 한 마리로서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일 게다. 하지만 세상에...... 세상에...... 트라비스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 사냥개를 쳐다 보았다. 그러자 찬 소름이 그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려움의 소름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소름이었다. 노라가 개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트라비스를 잠깐 입 다물게 만든 것과 똑같은 두려움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들이 그냥 너를 놓아주지는 않았지, 그렇지?]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도망쳤니?] 예스. [내가 너를 그 숲 속에서 발견했던 그 목요일 아침에?] 트라비스가 물었다. [바로 그때 도망친 거니?] 아인스타인은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그 전날에?] 트라비스가 물었다. 개는 끙끙거렸다. [얘도 아마 시간 개념은 가지고 있을 거예요.] 노라가 말했다. [실제로 모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낮과 밤의 리듬을 따르잖아요, 안 그래요? 그들은 본능적인 시계를, 그러니까 생리학적인 시계를 몸 속에 가지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달력의 날짜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을지 몰라요. 얘는 우리가 시간을 날짜와 주, 그리고 달로 쪼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걸요. 그래서 당신 질문에 답할 수가 없는 걸 거예요.] [그러면 그걸 가르쳐야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인스타인은 맹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노라는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도망했다고......] 트라비스는 노라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겠구나, 그렇지 않니?] 개는 끙끙거리며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반응은 아주 걱정스러워하며 예스라고 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6-2 장 4 해가 진 후 한 시간 뒤 레무엘 존슨과 크리프 소아메스는 8명의 국가 안보국 수사관들을 실은 2대의 차량이 뒤쫓아오는 가운데 그 보르디옥스 리지에 도착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주택 택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비포장 도로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었고 대부분이 지방 경찰서 배지 무늬가 있는 희고 검은 차량들이었다. 거기에다 검시관 사무소에 온 자동차들과 밴이 있었다. 렘은 기자들이 벌써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했다. 신문 기자들과 소형 카메라들을 가지고 있는 텔레비전 기자팀들이 경찰 라인 뒤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 곳은 살해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반 블럭 정도 떨어져 있었다. 홀리 짐 캐년에서의 웨스레이 달베르그의 죽음과 바노디네에서 일했던 과학자들의 연쇄 살인 사건들의 자세한 사항을 조용하게 감추면서 또 한편으론 적극적인 정보 차단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하며 국가 안보국은 그 모든 사건들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언론이 알아내지 못하도록 애써왔다. 렘은 이 방책(防柵)들을 지키는 경관들이 왈트 가이네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또 그럴 듯한 위장용 스토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들이 굳은 침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맞서기를 또한 바랐다. 아무 표시도 돼 있지 않은 국가 안보국 차량들이 경찰 라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도록 방책이 치워졌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여졌다. 렘은 범죄 현장을 지나서 길 끝에 차를 주차했다. 그는 다른 수사관들에게 브리핑을 하도록 크리프 소아메스를 남겨 놓았다. 그리고는 관심이 집중돼 보이는 채 완공되지 않은 집으로 향했다. 순찰차들의 무전기들에서 부산하게 나오는 암호와 경찰 속어들, 그리고 정적을 깨는 무전기 잡음 소리들로 그 무더운 밤 대기가 꽉 채워졌다. 수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휴대용 야간 아크등들이 삼각대 위에 세워져서 그 집 전면애 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렘은 자신이 마치 거대한 무대 세트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방들이 아크등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불빛에 덤벼들고 있었다. 어스름한 땅위에는 좀 확대된 나방들의 그림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맨 땅으로 된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갔다. 집 안에는 더 많은 아크등들이 있었다. 하얀 벽에서 반사되는 그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두세 명의 젊은 경관과 검시관실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과학 수사 연구과에서 온 인상 강한 사람들의 땀에 밴 모습들이 그 냉랭한 불빛 속에서 파리해 보였다. 한 사진사의 섬광 전구가 집 안 저 안쪽에서 한번 두번 번쩍하고 터졌다. 복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래서 렘은 거실과 식당 그리고 부엌으로 우회해서 집 안 안쪽으로 갔다. 왈트 가이네스가 갓 쓰인 아크등 뒤 어스름한 간이 식당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서도 그의 분노와 슬픔은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그가 집에 있을 때 이 경관의 살해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해진 운동화를 신고 또 주름진 황갈색 면바지에 갈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큰 덩치와 굵은 목, 단단한 근육이 보이는 팔, 커다란 손 등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차림과 어깨가 폭 꺼진 자세 때문에 마치 길 잃은 어린 소년 같아 보였다. 간이 식당에서는 시체가 있는 그 세탁실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렘은 말했다. [미안해요, 왈트. 정말 미안해요.] [이름은 틸 포터라고 해. 그의 아버지 레드 포터와 나는 25년간 친구였어. 레드는 지난 해 바로 우리 경찰서에서 은퇴를 했지. 내가 어떻게 그에게 말해야지? 젠장, 우리가 그렇게 가까웠으니 내가 직접 말해야 해. 이번은 그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어.] 왈트는 근무 중에 자기 부하가 죽게 되면 그 책임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을 렘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직접 그 가족을 방문해서 그 비보를 전하고 처음 충격이 가실때까지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하마터면 둘을 잃을 뻔했어.] 왈트가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몹시 떨고 있지.] [틸은 어떤 상태...... 예요?] [달베르그처럼 내장이 나왔어. 목이 베어져 있고.] 아웃사이더다. 렘은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방들이 안쪽으로 들어와 렘과 왈트 앞에 서 있는 아크등 렌즈에 세게 몸을 부딪혔다. 분노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왈트가 말했다. [그의 머리를 찾지 못했어. 틸의 머리가 없어졌다고 어떻게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지?] 렘은 대답이 없었다. 왈트가 사납게 그를 쳐다보았다. [자넨 이제 날 계속 이 일에서 밀어낼 수 없네. 내 부하 중 하나가 죽은 마당에서는 안돼.] [왈트, 우리 쪽 수사관들은 의도적으로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어요. 빌어먹을! 심지어 이 일에 동원된 수사관의 숫자도 정보로 분류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부서는 완전히 언론이 집중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네 사람들이 이 사건을 맡으려면 우선 먼저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대상에 대해 정확하게 들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경관들에게 국가 방위 비밀들을 노출시키게 돼요.] [자네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왈트가 대꾸했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 쪽 사람들은 기밀 유지 각서에 서명을 했고 또 아주 엄격하게 보안 점검을 받아요. 그리고 또 계속 그들의 입을 함구할 수 있도록 훈련도 받지요.] [우리 쪽 사람들도 역시 비밀을 지킬 수 있어.] [나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그들이 평범한 사건들에 관해서도 바깥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요. 하지만 이것은 평범한 게 아녜요. 정말 아니에요. 이것은 우리 손 안에 남아 있어야만 해요.] 왈트가 말했다. [우리 쪽 사람들도 기밀 유지 각서에 서명할 수 있네.] [우린 당신네 부서 사람들 모두 신원 조회를 해보아야 해요. 단지 경관들만이 아니라 문서 정리원에 이르기까지 말이에요. 그것은 몇 주 몇 달이 걸릴지 몰라요.] 부엌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열린 문을 바라보다 왈트는 크리프 소아메스와 또 다른 국가 안보국 수사관이 그 옆방에서 두 명의 경관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네들은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관할권을 넘겨받기 시작했군, 그렇지 않은가? 자네가 그것에 관해 내게 말하기도 전에 말이야.] [그래요. 우린 당신네 사람들이 오늘 밤 여기서 본 것은 어느 것 하나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들의 부인들에게도 안돼요. 우린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연방법을 인용하고 있어요. 우린 그들이 이것을 어겼을 때 받게 될 벌금이나 금고형을 확실하게 이해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다시 감옥 운운하며 날 위협할 텐가?] 왈트가 물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며칠 전 성 조셉 병원 주차장에서처럼 그런 유머는 없었다. 렘은 그 경관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인해 그와 왈트 사이가 벌어지는 느낌 때문에도 마음이 우울했다. [난 누구도 감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난 그들이 그 중요성을 확실하게 이해하길 바라는 거예요.] 왈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를 따라와 보게.] 렘은 그를 따라 집 앞에 있는 순찰차로 갔다. 그들은 앞좌석에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왈트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유리창을 올리게. 그러면 우린 완전히 외부와는 차단되네.] 렘은 환기가 되지 않아 이 열기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그 희미한 빛 속에서도 그는 곧 터질 것 같은 왈트의 그 순전한 분노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금 입장이 횃불을 들고 휘발유 속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리창을 올렸다. [좋아.] 왈트가 말했다. [이젠 우리만이야. 국가 안보국 지부장도 경찰서장도 아니야. 그냥 오랜 친구들이지. 막역한 친구 말이야. 그러니 그것에 대해 모두 말해 보게.] [왈트, 젠장, 난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내게 말해 주게. 그러면 난 이 사건에서 손떼겠네. 방해하지 않겠네.] [아무튼 당신은 손을 떼게 돼 있어요. 그래야만 해요.] [천만에.] 왈트는 화난 어투로 말했다. [난 바로 이 길을 따라 내려가 저 늑대들에게로 갈 수도 있어.] 보르디옥스 리지 밖에 서 있는 그 순찰차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방책들을 향하고 있었고 왈트는 먼지 투성이의 앞유리창 너머로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저 사람들에게 바노디네 연구소가 어떤 국방 사업을 추진하다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사람인지 뭔지 모르지만 하여튼 뭐가 그 연구소에서 보안망을 뚫고 탈출해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그렇게 해 봐요.] 렘이 말했다. [바로 감옥으로 들어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직업을 잃게 돼요.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그 모든 경력을 망치게 돼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네. 법정에서 난 국가 보안법을 어기는 일과 나를 이 군(郡)의 경찰서장으로 선출해 준 주민들의 신망을 배신하는 일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고 주장할 걸세. 이같은 위기시에는 난 워싱턴의 국방부 관료들의 걱정들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더 생각해야 했다고 주장하겠네. 난 어떤 재판관이라도 내 무죄를 입증해 줄 것에 대해 확신하네. 난 감옥에 가지 않을 걸세.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지난 번보다 훨씬 더 많은 표로 승리할 걸세.] [젠장,] 렘은 왈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네가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해준다면, 자네가 지금 자네 부하들이 내 부하들보다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날 확신시켜 준다면 난 자네에게 양보하겠네. 하지만 자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으면 난 이것을 모두 공개해 버릴 걸세.] [난 내 맹세를 깨게 되요. 난 내 목을 올가미에 집어넣는 꼴이 된단 말예요.] [자네가 나에게 말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걸세.] [그래요? 글쎄, 그런데 왈트, 단지 당신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이렇게 어색한 입장에 빠뜨리는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왈트는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이것은 그렇게 시시한 게 아니야, 젠장! 이것은 그냥 호기심이 아니야.] [그러면 뭐예요?] [내 부하 중 하나가 죽었어!] 렘은 머리를 의자 뒤로 젖히며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쉬었다. 왈트는 자기 부하 중 하나가 살해됐는데도 자신이 왜 그에 대한 복수심을 억눌러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적어도 그 정도도 알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그의 의무감과 도의심이 허락치 않았다. [내가 저리로 내려가 기자들에게 말할까?] 왈트가 조용히 물었다. 템은 눈을 뜨고는 손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 자동차 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사람들이 집 안팎으로 가면서 그들 곁을 지나가곤 했고 그는 정말 누군가가 자신이 지금 왈트에게 말하려는 것을 주워듣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신이 바노디네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옳았어요. 몇 년 동안 그들은 국방과 관련된 연구를 해왔지요.] [생물학적 전투?] 왈트가 물었다. [흉측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기위해 DNA 합성 기법을 이용해선가?] [어쩌면 그렇기도 하지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세균 전쟁은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리고 난 여기서 우리 문제와 관련된 연구에 관해서만 얘기하려고 해요.] 유리창이 이슬로 흐려졌다. 왈트가 시동을 걸었다. 에어콘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이슬이 계속 퍼졌다. 그러나 통풍구로 들어오는 희미하고 습하고 더운 바람일지라도 고마운 것이었다. 렘이 말했다. [그들은 프랑시스 프로젝트라는 제목 아래 몇 개의 연구 프로그렘들을 추진하고 있었지요. 아시시의 성(聖) 프랑시스의 이름을 딴 것이었죠.] 놀라 눈을 껌벅이며 왈트가 말했다. [그들이 성인의 이름을 따 전쟁 관련 프로젝트의 이름을 지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적절한 것이었어요.] 렘이 그를 납득시키기 위해 말했다. [성 프랑시스는 새나 동물들에게 말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바노디네에서 데이비스 위더비 박사는 인간과 동물 간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었어요.] [돌고래의 언어를 배우는 그런 것들인가?] [아니요. 유전 공학의 가장 최신 지식을 적용해 아주 고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이디어지요. 그 동물들은 거의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고 또 우리들과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왈트는 못 믿겠다는 듯 열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렘이 말했다.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총괄적인 계획 아래 아주 다른 실험들을 추진 중인 몇 개의 과학 팀들이 있었어요. 그들 모두가 적어도 5년 정도는 연구 보조를 받아 왔어요. 그 하나로 데이비스 위더비의 개들이 있었어요.] 위더비 박사는 누런 사냥개의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연구를 해왔다. 그는 개들이 백 년이 넘게 상당히 높은 순도(純度)를 지키며 계속 번식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택했었다. 첫째로 이러한 순도는 유전적인 성질이 있는 모든 질병들이 그 동물의 유전 코드에서 삭제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 점 때문에 위더비는 사냥개를 자기 실험의 가장 유망한 대상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일 실험용 강아지들이 어떤 종류의 기형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류의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그 동물의 유전자 조작에 의한 부작용으로 생긴 기형인지를 구별해내기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실수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년 동안에 걸쳐서 그 동물의 외형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그 새끼들의 지능만을 높이려고 해오면서 데이비스 위더비는 시험관에서 유전적으로 변형된 수백 개의 사냥개 난자들을 수정시켜왔다. 그리고는 그 수정된 난자들을 대리모(代理母)역할을 하는 암캐들 자궁에 옮겨 놓았다. 그 암캐들은 그 시험관 강아지들을 만삭까지 배고 있다가 낳게 되면 위더비는 이 어린 강아지들을 관찰하며 지능이 증가하는 징후가 보이는지 살폈다.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요.] 렘이 말했다. [폐기해버려야할 정도의 기괴한 신체적 돌연변이, 사산된 강아지들, 정상적으로 보이나 지능이 본래보다 못한 강아지들, 그야말로 천태 만상이었어요. 위더비는 결국 이종 교배(異種交配)공학을 실행했어요. 그래서 아주 엄청난 몇 가지 것들의 가능성들이 실현된 거지요.] 왈트는 이제 완전히 불투명해진 앞유리창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렘을 보았다. [이종 교배? 그게 무슨 말이지?] [글쎄, 알지 모르겠지만 그는 사냥개보다 더 영리한 종족에서 지능의 유전적 결정 인자를 추출했어요.] [유인원 같은 것에서? 그것들은 개들보다는 영리하지, 그렇지 않은가?] [맞아요. 유인원들......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세상에!] 왈트가 말했다. 렘이 통풍구를 조종해서 미지근한 바람이 자신의 얼굴로 오도록 했다. [위더비는 그 이질적인 유전자 물질을 사냥개의 유전자 코드에 삽입함과 동시에 지능을 개의 수준에 한정시키고 있는 그 개 자신의 유전자를 제거해 버린 거지요.] 왈트가 이의를 재기했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아. 자네가 말한 그 유전 물질이란 이 종족에서 저 종족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것은 자연계에선 항상 일어나요.] 렘이 말했다. [유전 물질은 다른 종족으로 옮겨져요. 그리고 그 매개체는 보통 바이러스예요. 가령 어떤 바이러스가 붉은털 원숭이 몸 안에서 번식했다고 해 봐요. 그것은 원숭이 몸 안에 있는 동안 원숭이의 세포에서 유전 물질을 획득해요. 이렇게 획득되어진 원숭이 유전자가 바이러스 자체의 일부가 되지요. 후에 그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를 감염시키자마자 그 인간 숙주 몸 안에 그 원숭이 유전자 물질을 남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그 바이러스는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AIDS 바이러스를 생각해 봐요. AIDS는 일부 원숭이와 인간에 의해서 옮겨지는 질병이지만 어떠한 종족도 그것에 실제로 감염되지는 않는다고 수십년 동안 믿어져 왔어요. 내 말은 우린 순전히 보균자일 뿐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옮기게 될 뿐 자신은 병들지 않는다는 거였죠. 그러나 그 후로 어떻게 해서 원숭이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그들을 단지 보균자로 남게 하지 않고 AIDS 바이러스의 희생자로 만드는 부정적인 유전자 변화였죠. 원숭이들은 그 병으로 죽기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해졌을 때 그것은 AIDS 감염을 명령하는 이 새로운 유전 물질도 함께 전한 거였어요. 그래서 인간도 그 질병에 걸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런 일은 자연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단면일 뿐예요. 그것은 실험실에서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요.] 측면 유리창까지 이슬로 서서히 흐려지고 있을 때 왈트가 말했다. [그래서 위더비가 정말 인간의 지능을 가진 개를 낳게 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것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었지요. 하지만 점차 진전을 보았어요. 그리고는 약 일 년 전에 그 기적적인 강아지가 태어났지요.] [인간처럼 생각하나?] [인간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마 그 정도는 돼요.] [하지만 모양은 보통 개와 똑같은가?] [그것이 국방부가 원하는 것이었어요. 제 생각인데 그것이 위더비의 일을 아주 더 힘들게 만들었지요. 분명히 뇌의 크기는 어느 정도는 지능과 관계가 있어요. 그리고 위더비가 좀더 큰 뇌를 가진 사냥개로 만들어도 되었다면 아마 그는 그런 획기적인 업적을 훨씬 빨리 해냈을 거예요. 하지만 더 큰 뇌는 훨씬 큰 두개골로 머리형을 바꾸어야 되고 그러면 그 개는 정말 아주 이상하게 보이게 되는 거지요.] 이젠 모든 유리창이 이슬로 덮였다. 왈트도 렘도 그 뿌연 유리를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후덥지근하고 꽉 막힌 안에 갇혀서 밖을 내다볼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저 밖의 진짜 세계와 단절돼 시간과 공간을 표류하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인지 유전 공학으로 가능해진 그 신기하고도 괴이한 창조 행위들에 대한 얘기가 이상하게도 더욱 실감나게 들렸다. 왈트가 말했다. [국방부가 모양은 그대로인데 생각은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개를 원했다는 건가? 왜지?] [첩보 활동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해봐요.] 렘이 말했다. [전쟁시 개들은 적지 깊숙히 들어가 시설과 군사력을 염탐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우리와 어떻게든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지능이 뛰어난 그 개들이 염탐을 하고는 돌아와서 자신들이 보고 또 적들이 하는 말 중에 흘려 들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게 되는 거지요.] [우리에게 말해 주어? 지금 자네, 개들이 말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가? 젠장, 렘, 농담하지 말게!] 렘은 이 놀라운 가능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자기 친구의 심정을 이해했다. 현대 과학은 아주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매년 혁신적인 것들이 탐구되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점차 과학의 응용과 마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앞으로 20년 후의 세상이 지금 세상과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모르긴 해도 200년 전과 지금과의 차이 정도는 나지 않을까? 변화는 감지할 수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보게 될 때 마치 지금 왈트가 그런 것처럼 설레이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고 또 흥분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것이다. 렘이 말했다. [사실 개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유전적으로 과감하게 변형시킬 수도 있었지요. 아니 쉬울지도 몰라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개에게 제대로 된 혀나 입술 같은 음성 기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 외모를 철저하게 변형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국방부의 목적을 위해서는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개들은 말은 하지 못해요. 의사 소통은 물론 특별하게 만든 신호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겠죠.] [자네, 웃지를 않는군.] 왈트가 말했다. [이런 일은 지독한 농담이어야 하는데 자네는 왜 웃지 않고 말하고 있지?] [이걸 생각해 봐요.] 렘은 인내심 있게 말했다. [평화시에......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인의 선물이라고 하며 일 년생 누런 사냥개를 소련 수상에게 선물한다고 상상해 봐요. 수상의 집과 사무실에서 살면서 소련의 최고위 당 간부들이 말하는 최상급 비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리고는 이따금 몇 주만에 아니면 몇 달만에 그 개가 밤에 몰래 그곳을 빠져나와 모스코바에 있는 미국 첩보원과 만나 정보를 보고하는 겁니다.] [정보를 보고해? 말도 안돼!] 왈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에는 메마르고 공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여실히 보였고 그래서 렘은 그 경찰서장의 의심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니까요. 그런 개가 실재로 시험관에서 유전적으로 변형된 정자가 역시 유전적으로 변형된 난자에 수정돼 대리모의 몸에서 자라 태어났지요. 그리고는 바노디네 연구소에서 일년 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5월 17일인 월요일 이른 아침에 그 개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영리한 행동들을 통해서 그 곳 보안 시스템을 교묘히 뚫고 도망쳤어요.] [그래서 그 개가 지금 풀려났다는 건가?]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살상을 하고 다니나?] [아니요.] 렘이 말했다. [그 개는 해도 없고 정도 많고 훌륭한 동물이지요. 난 위더비가 그 사냥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일 때 그의 연구실에 갔었지요. 제한적인 방법이긴 했어도 난 그놈과 의사 소통을 했어요. 맹세코 정직하게 말하는 건데, 왈트, 당신이 그 개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까 위더비가 창조한 것을 보면 말이에요, 당신은 아마 인간이라는 이 가엾은 종족에 대해서 엄청난 희망을 가지게 될 거요.] 왈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렘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 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할 적당한 말을 찾으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이 감정으로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경이로운 일을 세상에 만들어 내놓을 수 있다면, 염세주의자들이 믿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리 안에는 심오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잠재적으로 신의 힘과 지혜를 가진 거지요. 우린 단지 무기를 만드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만드는 자들이기도 한 거죠. 우리가 많은 다른 종족들을 우리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어떤 종족을 창조해내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믿음과 철학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그 사냥개를 변형시킨 바로 그 행동에 의해서 우린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는 거지요. 그 개를 새로운 인식의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의 인식 또한 올리게 되는 거지요.] [젠장, 렘, 자넨 꼭 설교자같이 말하는군.] [내가요? 그건 내가 이것에 대해서 당신보다 더 많이 생각해왔기 때문이에요. 때가 되면 당신도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될 거요. 당신도 역시 그렇게 느끼게 될 겁니다. 인류가 신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또 우린 충분히 그곳에 도달할 능력이 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느낌 말예요.] 왈트 가이네스는 김이 서려 있는 유리창을 응시하며 마치 그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양에서 흥미로운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쩌면 자네가 말한 것이 옳을지 몰라.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입구에 와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린 옛 것 속에서 살아야 하고 또 그것을 다루어 나가야 해. 그러니 내 경찰관을 죽인 게 그 개가 아니었다면 그러면 그건 뭐지?] [그 개가 나가던 바로 그 날 또 다른 것이 바노디네에서 도망쳤지요.] 렘이 말했다. 도취되었던 표정이 갑자기 가시면서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어떤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그놈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어요.] 5 노라는 자동차를 호랑이에 비유해서 그 자동차를 철창에 가두어 놓은 모습을 보여주는 잡지 광고를 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아인스타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네가 우리에게 밝혀줄 게 달리 또 있나 보자. 이것은 어떠니? 이 사진에서 네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이니? 자동차니?] 아인스타인은 한 번 짖었다. 아니다다. [호랑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한번 짖었다. [철창이니?] 노라가 물었다. 아인스타인이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그들이 너를 철창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이 사진을 택한 거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는 마루 바닥을 기어서 감옥 안에 한 사람이 쓸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는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사냥개에게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울이 이 감옥 같이 생겨서 이 사진을 택했니?] 예스. [그리고 이 사진 속의 죄수가 네가 울 속에 있을 때 네 기분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니?] 예스. [바이올린은 말이야,] 노라가 말했다. [연구실에 있는 누가 너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었니?] 예스. [왜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 궁금하군.]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것은 그 개가 단순하게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너 바이올린 좋아하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너 재즈 좋아하니?] 개는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트라비스가 말했다. [얘는 재즈가 무엇인지 몰라요. 그들이 얘에게 그런 것은 듣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로큰롤은 좋아하니?] 노라가 물었다. 한 번 짖었다. 그리고 동시에 꼬리를 흔들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려는 걸까요?] 노라가 물었다. [아마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뜻이겠지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얜 로큰롤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좋아해요.] 아인스타인은 꼬리를 흔들어 트라비스의 해석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크래식은?]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고상한 체하는 속물인 개를 데리고 있는 거야, 안그래?] 예스, 예스. 예스. 노라는 기뻐서 웃었고 트라비스도 그랬다. 그리고 아인스타인은 코를 그들에게 문지르며 행복한 듯 그들을 핥았다. 트라비스는 다른 사진을 찾아 둘러보다 운동용 트레이드밀 위에 있는 사람의 사진을 집어들었다. [그들은 네가 연구실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들이 네가 건강을 유지하기를 원했겠지. 이것이 그 사람들이 너에게 운동시킨 방법이니? 트레이드밀 위에서 말이야.] 예스. 뭔가를 발견하는 기분은 아주 상쾌한 것이다. 트라비스는 외계인과 의사 소통을 했다고 해도 이렇게 흥분되거나 경이롭거나 짜릿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 '난 토끼 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왈트는 렘 존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불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주 비행, 가정의 컴퓨터화, 위성 중계 전화 통신, 공장의 로보트화, 그리고 이제는 생물 공학 등의 이 새로운 하이 테크 세계는 그가 태어나서 자란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젠장, 그는 제트기도 없었던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그는 꼬리 날개가 붙은 크라이슬러 자동차나 단추가 아닌 다이얼식 전화나 디지탈 표시판이 아닌 바늘이 달린 시계 등 좀더 단순한 세계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가 태어날 때는 텔레비전도 존재하지 않았었고 또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핵 재앙의 가능성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통과해서 자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빠르게 돌아가는 또 다른 현실 속으로 들어온 것같이 느껴졌다. 하이 테크날리지의 이 새로운 왕국은 유쾌할 수도 있지만 놀라운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때때론 그 두가지 면이 다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지능이 높은 개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의 동심에는 어필했다. 그래서 웃고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것, 그 아웃사이더도 그 연구소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젠장,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 개에게는 이름이 없어요.] 렘 존슨이 말했다. [그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 아니지요. 실험용 동물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면 필연적으로 그것에게 인격을 부여하게 되요. 그렇게 되면 그 동물과의 관계가 변질되지요. 그리고 실험자는 자신의 연구에서 더 이상 객관적이질 못하게 돼요. 그래서 그 개는 위더비가 그토록 열심히 이루려고 애썼던 그 성공이 확실시될 때까지 단지 번호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심지어 성공이 분명해져서 그 개가 실패작으로 낙인 찍혀 폐기되지 않아도 되었을 때에도 이름은 주어지지 않았어요. 모든 이들이 그냥 그것을 '그 개'라고 불렀지요. 그렇게만 해도 위더비의 다른 강아지들과 구별하기에는 충분했어요, 다른 것들은 모두 번호로 불리었으니까요. 아무튼 그와 동시에 야르벡 박사는 다른 것에 매진하고 있었지요. 프랑시스 프로젝트 범주 아래 있긴 했지만 아주 다른 연구였어요. 그리고 그녀도 역시 마침내 성공을 했지요.] 야르벡의 목표도 현격하게 지능을 높인 동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동물은 또한 경찰을 따라 도시의 위험스러운 동네들을 순찰하는 경찰견과 같이 전투 시에 전사들과 함께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야르벡은 영리하기도 하면서 또한 무시무시한 짐승을 만들려고 했다. 전장터에서의 공포의 존재로 말이다. 잔혹하고 음흉하고 간교하고 그러면서도 정글이나 도시에서의 모든 전투에서 뛰어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것으로 말이다. 물론 인간만큼은 못되었다. 또 위더비가 개발한 그 개만큼도 영리하진 못했다. 일종의 살인 기계를 그것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인간만큼 영리하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모든 사람들이 프랑켄스타인을 읽었거나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야르벡의 연구에 잠재한 그 위험을 과소 평가하지 않았다. 원숭이와 유인원들이 본래 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고 또 인간과 같은 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대상으로 선택하고는 야르벡은 그 어두운 창조 행위를 위한 기초 종족으로 결국 비비(몸집이 큰 원숭이)를 택했다. 비비(拂拂)는 유인원들 중 가장 영리했고 또 순수한 혈통을 잘 지켜온 동물이었다. 그놈들은 천성적으로 싸움을 잘 할 뿐만 아니라 가공할 발톱과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서 치명적이며 또 자기 지역에 대한 텃세 의식이 강하고 일단 자기 적으로 간주되면 그것에 무섭게 덤벼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비비의 신체 변형 건으로 야르벡이 첫 번째 한 일이 그것의 몸집을 좀더 크게 해 다 큰 성인 남자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렘이 말했다. [그녀는 그것의 키가 적어도 150센티 또 몸무게는 45키로에서 50키로 정도는 돼야 한다고 결정했지요.] [그리 크지 않구만.] 왈트가 말했다. [충분히 커요.] [난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한 주먹에 날릴 수 있어.] [사람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이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단단한 근육에 지방질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사람보다 훨씬 빨라요. 이삼십 킬로 되는 불독이 성인 남자를 어떻게 절단낼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러면 야르벡이 만든 그 사오십 킬로의 전사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왈트에게는 그 순찰차의 뿌연 유리창이 잔혹하게 살해된 남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볼 수 있는 영화관 스크린 같아 보였다. 웨스 달베르그, 틸 포터......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체들이 아른거렸다. [좋아, 그래, 자네 말을 알겠네. 싸우고 죽이고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사오십 킬로로도 충분할 거야.] [그래서 야르벡은 좀더 크게 자라는 비비 새끼들을 만들었지요. 그리고는 한편으로는 그 큰 원숭이들의 정자와 난자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때론 그 비비의 유전 물질을 떼어내버리고 또 때론 다른 종족의 유전자들을 주입시키기도 했지요.] 왈트가 말했다. [그 영리한 개를 만들어냈던 것과 똑같은 짜깁기식 종족 혼합 기법이로구만.] [난 그것을 짜깁기식이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요.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거예요. 야르벡은 자기 전사의 턱이 좀더 크고 사악하길 원했지요. 뭐랄까 독일산 세파트 턱이나 심지어는 재칼의 것과 좀 닮아서 이빨이 더 많을 수가 있었죠. 그녀는 그 이빨들이 좀더 크고 좀더 날가롭고 또 약간 구부러지게 되길 원했지요. 그러기 위해선 그 비비의 머리통을 더 키워야 했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얼굴 구조를 완전히 변형시켜야 했죠. 보다 큰 뇌를 담기 위해서는 아무튼 두개골이 아주 커져야 했어요. 야르벡 박사는 데이비스 위더비가 개의 외모를 변형시키지 말아야 했던 것과 같은 그런 제한을 받지 않고 일을 했었지요. 사실 야르벡은 자신의 창조물이 무시무시하고 기괴하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전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적에게 몰래 다가가 죽이는 데뿐만 아니라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덥고 후줄근한 차 속인데도 불구하고 왈트 가이네스는 마치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자신의 배 부근에서 차가운 냉기를 느꼈다. [젠장, 야르벡이나 다른 누가 그 부도덕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은 닥터 모로우의 섬이란 책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렘, 주민들이 이것에 대해 알아야 하네. 자네는 이것을 널리 공개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지고 있고 나도 그러네.] [그럴 것이 아니에요.] 렘이 말했다. [선하고 악한 지식이 있다는 그 생각 말입니다. 글쎄, 그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견해지요. 행동들은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일 수 있겠지요. 맞아요. 하지만 지식은 그런 식으로 라벧을 붙일 수 없어요. 과학자에게나, 교육받은 남자나 여자 그 어느 누구에게나 모든 지식은 도덕적으로 중립이에요.] [하지만, 젠장, 야르벡의 경우에는 지식의 적용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지.] 주말에 서로의 집 뜰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세상의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그들은 이런 종류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뒤뜰의 철학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지혜에서 거만한 기쁨을 느끼는 맥주에 취한 현인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때론 주말에 그들이 이야기한 도덕적 딜레마들이 후에 자신들의 경찰 업무에서 나타나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왈트는 이번 것처럼 자신들의 일과 급박한 관계를 가진 토론은 기억할 수 없었다. [지식을 적용하는 것은 더 많이 배우는 과정의 일부지요.] 렘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것은 적용을 해보아야 해요. 그런 적용들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지 보기 위해서지요. 도덕적인 책임은 그 기술을 실험실 밖으로 내와서 그것을 부도덕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있는 거지요.] [자네는 그런 허튼 소리를 믿나?] 렘은 잠시 생각했다. [그래요. 그런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과학자들이 하는 일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들린다면 그들은 우선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또 전혀 발전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린 지금도 여전히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왈트는 호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찍어내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가 진 땀을 흘린 것은 차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야르벡의 전사가 오렌지 카운티를 종횡 무진하고 있다는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태평한 세상 사람들 앞에 나가 새롭고 위험스러운 어떤 존재가 이 땅 위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경고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야르벡의 전사를 이용해서 일반 대중을 자극시켜 모든 DNA 재결합 연구를 종식시키려고 하는 신 러다이트들의 손 안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다. 이미 DNA 재결합 연구들을 통해서 적은 물과 척박한 토양에서도 자랄 수 있는 옥수수와 밀을 만들어냈고 또 몇 년 전에는 노폐물로 값싼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인공 바이러스를 개발해냈었다. 만일 그가 야르벡의 괴물에 대해 세상에 알린다면 단기적으로 몇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DNA 재결합 연구를 통해 생길 기적적인 혜택을 세상이 맛보지 못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수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젠장,] 왈트가 말했다. [이것은 흑백 논리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렘이 말했다. [그런 것 때문에 삶이 재미있는 거지요.] 왈트가 쓴 웃음을 지었다. [너무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이어서 지금 당장은 내가 다루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군. 이것은 계속 뚜껑을 닫아두어야겠구만. 게다가 우리가 이것을 공개하면 그 괴물을 찾아서 밖으로 나올 수천 명의 머저리 같은 모험가들이 나서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생물의 희생자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들 총질을 해대겠지.]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우리측 사람들도 그 뚜껑을 닫아둔 채로 수색에 참여할 수 있네.] 렘은 지금도 민간인 복장을 하고 하이 테크 추적 장치와 또 어떤 경우는 경찰견까지 동원해서 산기슭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난 벌써 당신이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배치해 놓았어요. 우린 벌써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충분히 해놓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 일을 하는 겁니다.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것 말입니다.] 왈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그러네. 하지만 난 계속 정보를 듣고 싶네.] 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질문이 더 있네. 첫째는 왜 그들이 그것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나?] [글쎄요, 개가 첫 번째 과학의 쾌거였지요. 실험실 실험 대상들 중 특이한 지능을 보여준 첫 번째 것이었죠. 그런데 이 아웃사이더는 그 다음 번 거였죠. 단 두 건만이 성공했었죠. 그 개와 다른 하나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하나라는 의미로 The Other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The Outsider가 되었지요. 그게 더 적당한 것 같아서였지요. 그것은 개처럼 그렇게 신의 창조물이 진화된 것이 아니었죠. 그것은 지구 상의 창조물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였던 거지요. 외떨어진 것 말입니다. 아무도 실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놈은 혐오스러운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놈도 아웃사이더로서의 제 처지를 알고 있었어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왜 그냥 비비라고 부르지 않았지?] [그건...... 그러니까 그놈은 더 이상 비비같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 세상에서는 그것과 닮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지요. 악몽 속에서라면 모르지요, 그 비슷한 게 있을지.] 왈트는 자기 친구의 얼굴과 눈에 어두운 표정이 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웃사이더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알 필요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대신 그는 말했다. [허드슨, 위더비, 야르벡의 살해 건들은 어떤가? 그 사건들 배후에는 누가 있지?] [우린 직접 방아쇠를 당긴 자가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소련인들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만은 알지요. 그들은 또한 아카풀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또 다른 바노디네 사람도 살해했어요.] 왈트는 자신이 마치 다시 또 그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고 나가 훨씬 더 복잡한 세계로 뛰어든 느낌이 들었다. [소련인들? 지금 소련인들이라고 얘기했나? 그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지?] [우린 그들이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심지어 우리들의 진척 사항에 대해서 보고해 주는 스파이를 바노디네 안에 두고 있었던 게 분명했어요. 그 개와 연이어 그 아웃사이더가 탈주하자 그 스파이가 소련인에게 그 정보를 알렸고 소련인들은 그 혼란을 틈타 우리에게 훨씬 더 큰 타격을 주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해요. 그들은 그 모든 프로젝트의 팀장들을 모두 죽였어요. 야르벡과 위더비, 거기다 한때 어느 프로젝트의 팀장이었다가 나중에는 바노디네를 떠났던 하이네스 등 모두가 당했지요. 우린 그들이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프랑시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 위해서고 둘째는 우리가 그 아웃사이더를 추적해 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려고 했던 거지요.] [그런다고 어떻게 그 일이 더 어렵게 되나?] 사안의 중대함으로 어깨가 무거운 듯 렘의 어깨가 축 쳐졌다. [소련인들은 허드슨, 하이네스, 그리고 특히 위더비와 야르벡 등을 제거함으로써 그 아웃사이더와 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없애 버리려고 했던 거지요. 그 동물들이 어디로 가고 또 어떻게 하면 다시 붙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던 거지요.] [실제로 소련인들의 짓이라는 확증이라도 잡아냈는가?] 렘은 한숨을 쉬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난 우선적으로 그 개와 아웃사이더를 찾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린 살인 사건들과 방화, 데이타 방출 등의 배후에 있는 소련 첩보원들을 추적하도록 또 다른 전담 특수반을 두고 있지요. 불행하게도 소련인들은 자신들의 조직망 밖에서 무소속 살인 청부업자를 이용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린 그자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어요. 그쪽 수사가 아주 완전히 난관에 봉착돼 있지요.] [그리고 하루 정도 뒤에 일어난 불은 어떤 것인가?] 왈트가 물었다. [분명히 방화지요. 역시 소련인들의 짓이에요. 그것 때문에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서류들과 컴퓨터 화일들이 다 파괴되어 버렸지요. 물론 다른 장소에 백업된 컴퓨터 디스크들을 놓아 두었지요. 하지만...... 거기에 실린 데이타들도 어찌 된 일인지 다 지워져 있었어요.] [역시 소련인들 짓인가?] [우린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화일들이 모두 다 없어졌고 우리는 완전히 암흑 속에 빠졌지요. 그 개와 아웃사이더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고 또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계략을 꾸며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왈트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러시아 사람들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하지만 이런 연구는 중단되는 편이 나을 것 같네.] [그들은 그렇게 순진한 동기에서 한 짓이 아니예요. 내가 들은 바로는 그들도 우크라이나에 있는 연구소들에서 비슷한 연구들을 실행 중에 있다는 겁니다. 난 우리 측도 그들이 우리 것을 파괴했던 식으로 그들의 화일들과 사람들을 파괴하기 위해 부지런히들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아요. 아무튼 소련인들에게는 그 아웃사이더가 평화스러운 교외를 종횡 무진하며 가정 주부들을 난자하고 어린 아이들의 머리들을 찝어버리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요. 그런 일이 거듭해서 일어난다면 그땐 이런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할 테니까요.]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찝어버린다고? 세상에!] 왈트는 오싹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가?]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 아웃사이더는 지독하게 공격적이죠. 하여튼 그놈은 공격적이도록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놈은 자신을 만든 자에게 더욱 특별한 증오심을 품고 있어요. 그것은 야르벡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그녀는 그 다음 자손 대에서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랬지요. 하지만 그놈은 또 영리하죠. 그래서 자신이 인간을 살해할 때마다 자기 행방의 위치를 우리들에게 알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놈은 그렇게 자주 자신의 증오심을 발산하려고 하지 않아요. 대개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가 주로 밤에만 움직입니다. 이따금 호기심에서 이 카운티[郡]의 동쪽 끝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주거 지역으로 들어올지도 모르지요.] [키산의 집에서처럼 말이군.] [그래요. 하지만 그놈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은 분명 아니었어요. 그냥 단순히 호기심에서죠. 그놈은 자신의 주요 목적을 성취하기 전에 붙잡히고 싶어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뭔데?] [그 개를 찾아 죽이는 거죠.] 렘이 말했다. 왈트는 놀랐다. [그놈이 왜 그 개에게 신경을 쓰나?] [우리도 잘 몰라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바노디네에서 그놈은 그 개에게 극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죠. 그놈이 사람들에게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거였죠. 야르벡이 복잡한 이이디어들을 전달할 수 있는 기호 언어를 만들어서 그 아웃사이더에게 가르쳤을 때 그놈은 그 개를 죽여서 절단해 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몇 번 표현했지요.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은 없어요. 그놈은 그 개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래서 자네는 그놈이 지금 그 사냥개를 추적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그래요. 지금까지의 증거들을 살펴보면 그 개가 연구소를 탈출하자 그것으로 인해 그 아웃사이더가 미쳐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웃사이더는 야르벡의 연구실에 있는 커다란 울 안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침구, 많은 교육용 자재, 장난감들 등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산산히 찢겨지고 깨져 있었죠. 그걸 보면 아웃사이더는 자신도 탈출을 하지 않으면 그 개는 영원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임을 깨닫고 고심하다가 어떻게 자신의 탈주 방법을 알아낸 거죠.] [하지만 그 개가 그놈에 앞서 아주 빨리 출발했다면......] [그 개와 아웃사이더 사이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연결 끈이 있어요. 정신적인 어떤 연결 끈이죠. 본능적인 인식이랄까요. 우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놈이 상당히 먼 거리까지도 그 개를 추적해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그 연결 끈이 강하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그것은 야르벡과 위더비의 연구에서 사용된 지능 향상 기술의 어떤 부수 효과로 일종의 육감같은 것이 아닌가 해요. 하지만 그것도 단지 추측일 뿐이에요. 실은 우리도 확실히는 몰라요. 젠장, 우리가 모르는 것이 그렇게 많아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차 안에 밀폐된 후덥지근한 공기가 이제는 그렇게 아주 불쾌하지 않았다. 저 바깥 세상에 모든 위험들이 풀려나와 있다고 생각하면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영역이 안전하고 편안한 것 같았다. 일종의 피난처다. 마침내 왈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자신이 들을 대답들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다. [바노디네는 고도의 보안 장치가 돼 있는 건물론이지. 그곳은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졌어. 그러니 그곳을 나오기도 역시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을 거야. 하지만 그 개와 아웃사이더는 탈출했단 말이야.] [그래요.] [그리고 누구도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지. 그것은 그것들 둘 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영리했다는 것을 말하는 거겠지.] [그래요.] 왈트가 말했다. [그 개의 경우는 말일세...... 그러니까 그놈이 생각보다 더 영리하다고 해도,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그 개는 우호적이야.] 불투명한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던 렘이 마침내 왈트의 눈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그 개는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아웃사이더가 우리 생각보다 더 영리하다면...... 그놈이 거의 인간만큼이나 영리하다면 그땐 그놈을 잡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고 또 그만큼 더 위험하지요.] [거의 가깝다고...... 아니면 사람만큼이나......]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아니면 훨씬 더 영리할 수도 있겠지.] 왈트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럴 수 없다고?] [그래요.] [확실하게 그럴 수 없는 건가?] 렘은 한숨을 쉬며 지쳐서 눈을 부볐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다시 거짓말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7 노라와 트라비스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확인시키면서 아인스타인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한 번 짖거나 열심히 자신의 꼬리를 흔듦으로써 그 개는 질문들에 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컴퓨터 광고를 택했던 이유는 자신이 갇혀 있던 연구실의 컴퓨터들이 생각났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4명의 젊은이들이 줄무늬 비치 볼을 가지고 노는 사진이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아인스타인이 특별히 즐겼던 지능 측정 테스트에서 연구실 과학자 중 하나가 여러 크기의 볼을 사용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앵무새, 나비, 미키 마우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에 관심을 보인 이유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적당한 질문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백여 개의 질문으로 사진 한 장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라도 그들 셋은 여전히 그 발견의 과정에 흥분했고 기뻐했다. 다른 많은 사진들에서는 성공을 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분위기가 아주 심하게 악화되었던 것은 그들이 개봉을 앞둔 공포 영화에 나오는 악마의 잡지 사진에 대해 아인스타인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는 극도로 동요되었다. 그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는 이빨을 드러내고 목구멍에서부터 깊이 으르렁거렸다. 몇 번 그는 그 사진 곁에서 걸어나가 소파 뒤에 숨거나 다른 방으로 들어가 1,2분씩 있다가 마지못해 돌아와 다른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악마에 관해 질문을 하면 몸을 떨었다. 그 개가 공포에 떠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한 십 분 정도 노력하다가 마침내 트라비스는 넓적한 턱, 사악한 송곳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영화 속의 악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면 넌 이해하지 못할지 몰라, 아인스타인! 이것은 진짜 살아있는 것의 사진이 아니야.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가상의 악마야. 내가 말하는 가상이라는 말 뜻을 이해하니?] 아인스타인은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다. [그래, 이것은 가상의 괴물이야.] 한 번 짖었다. 아니다. [가상이야. 가짜야. 실제가 아니야. 단지 고무 옷을 입은 사람일 뿐이야.] 노라가 말했다. 아니다다. [정말이야.] 트라비스가 말했다. 아니다. 아인스타인은 다시 소파 뒤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트라비스는 그의 목걸이를 붙잡고는 그를 끌어안았다. [네가 지금 그런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니?] 개는 그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트라비스의 눈읕 올려다보며 몸을 떨면서 낑낑거렸다. 아인스타인의 조용한 끙끙 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깊은 두려움의 흔적, 그 검은 눈동자에 감돈 형용키 어려운 혼란한 기색 등이 한데 어울려 트라비스를 놀라게 했다. 트라비스는 한 손으론 목걸이를 쥐고 또 한 손은 아인스타인의 등에 올려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개의 온 몸을 통해 몸서리쳐 오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도 갑자기 전율했다. 그 개의 적나라한 공포가 그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인스타인이 분명히 실제로 이와 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라비스의 태도 변화를 느끼고는 노라가 말했다. [뭐가 잘못되었어요?] 그는 그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아인스타인이 아직 대답하지 않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네가 그와 같은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거니?] 예스. [정확하게 이 악마같이 생긴 것이니?] 한 번 짖고 한 번 꼬리를 흔들었다. 예스이기도 하고 노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것과 좀 닮은 것이니?] 예스. 목걸이를 놓아주면서 트라비스는 그 개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를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인스타인은 계속 몸을 떨었다. [네가 이따금 밤에 창가에서 망을 보는 이유가 이것이니?] 예스. 고통스러워하는 가엾은 그 개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듯 노라도 역시 그를 어루만져 주었다. [연구소 사람들이 너를 찾아낼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로구나.] 아인스타인은 한번 짖었다. [연구소 사람들이 너를 찾아내는 것이 걱정되지 않니?] 예스 그리고 노.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러면 바로 이 괴물이 너를 찾아낼까봐 더 두려운 것이지?] 예스, 예스, 예스. [이것이 그 날 숲 속에서 우리를 추적해와 내가 총을 쏘았던 바로 그것이니?] 트라비스가 물었다. 예스, 예스, 예스. 트라비스가 노라를 쳐다보았다. 노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 속의 괴물일 뿐이에요. 실제 세상에는 이것과 조금도 비슷한 게 없어요.] 아인스타인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분류되어 있는 사진들에 코를 대고 킁킁대더니 병실에 의사와 산모, 아기가 나와 있는 녹십자 광고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그 잡지를 그들 앞으로 가져와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다. 그는 자신의 코를 사진 속의 의사에게 대고는 노라와 트라비스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코를 의사에게 댔다가 또 뭘 기대하는 듯 올려다 보았다. [전에 네가 우리에게 그 의사는 연구소의 과학자라고 했지.] 예스. 트라비스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너는 너를 연구해 왔던 그 과학자가 그 숲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거라고 말하는 거니?] 예스. 아인스타인은 다시 사진들을 살피러 갔다가 이번에는 울에 있는 자동차를 보여 주는 광고를 물고 돌아왔다. 그는 코로 그 울을 댔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면서 다시 자신의 코를 악마의 사진에 댔다. [숲 속에 있던 그것이 울에 사는 맹수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거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그 이상일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가 그 괴물이 한때 울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예스. [네가 울 속에 있었던 바로 그 연구소에서 말이니?] 예스, 예스, 예스. [연구소의 또 다른 실험용 동물이니?] 노라가 물었다. 예스. 트라비스는 그 악마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의 짙은 눈썹과 깊게 패인 노란 눈들, 그리고 기형적인 주둥이 모양의 코, 이빨들로 꽉찬 입 등을 자세히 살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건...... 잘못된 실험이었니?] 예스 그리고 노. 아인스타인이 말했다. 이젠 극도로 동요되어서 개는 거실을 가로질러 앞 창으로 가 앞발을 껑충 들고는 창문 턱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산타바바라에 깔린 저녁을 빠끔히 내다보았다. 노라와 트라비스는 바닥에 펼쳐진 잡지와 책들 사이에 앉아서 자신들이 해낸 그 진전에 행복해하다가 그제서야 그 동안 흥분 때문에 못 느꼈던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며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인스타인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이 하듯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 말예요.] [모르겠소. 개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거짓말은 단지 사람만의 재주일까?] 그는 자기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느끼고는 웃었다. [개가 거짓말을 할 수 있어? 사슴이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을까? 황소가 노래할 수 있을까?] 노라 역시 웃었다. 아주 귀엽게 웃었다. [오리들이 탭 댄스를 출 수 있을까?] 아인스타인과 같은 영리한 개의 온전한 생각을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다루기 힘들다 못해 생긴 터무니없는 생각들 끝에 트라비스가 말했다. [난 한 번 오리 한 마리가 탭 댄스를 추는 걸 보았어요.] [오, 예?] [그래요. 라스베가스에서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어느 호텔에서 공연을 했나요?] [케사르 궁전 호텔에서죠. 그는 또 노래도 할 수 있었어요.] [오리가요?] [그래요. 내게 그의 이름을 물어봐요.] [이름이 뭔데요?] [사미 데이비스 덕 Jr. 이죠.] 트라비스가 오리란 뜻의 '덕'이란 이름을 가진 스타 이름을 대고는 함께 웃었다. [그는 너무 대형 스타라서 그곳에서 그가 공연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호텔 입구에 그의 이름을 다 쓸 필요도 없었죠.] [사람들은 그냥 '사미'라고들 불렀죠, 그렇죠?] [아니, 그냥 'Jr.'이라고만 했죠.] 아인스타인이 창가에서 돌아와 머리를 곧추세우고 그들을 보고 서서는 그들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행동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사냥개의 얼굴에 나타난 그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트라비스와 노라에게는 그 동안 본 중에 제일 코믹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를 껴안고는 바보들같이 웃어댔다. 사냥개는 비웃듯이 콧김을 내뿜고는 다시 창가로 돌아갔다. 그들이 점차 자제하게 되고 웃음이 가라앉게 되자 트라비스는 자신이 노라를 안고 있고 그녀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 위에 있으며 그들 간의 신체적인 접촉이 전에 자신들이 허용했던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깨끗하고 신선한 냄새가 났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는 그녀를 절박하게 원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어깨에서 머리를 들면 그녀에게 키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그녀가 그를 올려다 보았고 그는 자신이 하려던 것을 했다. 그녀에게 키스를 했던 것이다. 1,2초 동안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잠깐 동안 그 키스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고 따듯하고 아주 순수한 것이었으며 또 열정의 키스가 아니라 우정과 큰 애정의 키스였다. 그리고는 그 키스가 변했다. 그녀의 입이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고 그녀의 손은 그의 팔 위에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더 가까이 당기려고 했다. 낮은 신음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완전히 그를 남자로 인식하고는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놀라 커졌다. 트라비스는 곧바로 얼굴을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때가 알맞지 않고 아직 상황이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들이 사랑을 나누게 될 때는 그것은 주저함이나 산만함이 없는 아주 적당한 시기여야 한다. 남은 여생 동안 그들은 항상 그 첫 번째를 기억할 것이고 그래서 그 기억은 아주 밝고 즐거운 것이어서 그들이 함께 늙어갈 때 수천 번 그 기억을 끄집어내 검토할 가치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맹세로써 확고하게 만들 만한 때는 아니었지만 트라비스는 자신과 노라 데본이 서로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지난 며칠 동안은 잠재 의식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그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색한 순간이 지난 후 그들은 서로 떨어져서 그들 관계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해야될지 생각하다가 마침내 노라가 말했다. [그가 아직도 창가에 있네요.] 아인스타인은 자신의 코를 유리창에 대고 어둠이 내린 밤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이 진실일까요?] 노라가 궁금한 듯 말했다. [그 연구소에서 도망쳤다는 그 다른 것 말예요,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기괴한 것이 말예요.] [만일 그들이 아인스타인과 같이 영리한 개를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특이한 것들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날 그 숲 속에는 뭔가가 분명히 있었어요.] [하지만 그놈이 아인스타인을 찾아올 위험성은 확실히 없어요. 당신이 이렇게 멀리 북쪽으로 데려왔잖아요.] [위험이 없죠.] 트라비스도 수긍했다. [그런데 아인스타인은 자신이 그 숲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숲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그를 추적해올 수 없어요. 하지만 연구소 사람들은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개시했을 것이 틀림없어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에요. 그리고 아인스타인도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대개 멍청한 개인척하다가 단지 나나 이젠 당신에게 아주 비밀스럽게만 자기 지능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하고 있어요.] 노라가 말했다. [만일 그들이 그를 발견한다면......] [그들은 발견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다면 그땐 어떻게 되죠?] [난 그를 포기하지 않을 거요.] 트라비스가 말했다. [절대로 안해요.] 8 그날 밤 11시에는 경찰관 포터의 머리 없는 시신과 팔 다리가 잘린 공사장 현장 감독의 시신이 검시관실 사람들에 의해서 보르디옥스 리지에서 치워졌다. 위장용 스토리가 만들어져서 경찰 바리케이드 앞에 몰려 있는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언론도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질문을 해댔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또 TV 기자들은 내일 아침 뉴스 시간에 한 100초 정도로 편집되어져 버릴 것을 위해 수백 미터의 비디오 테이프에 이것 저것들을 담고 있었다. (대량 살상과 테러리즘이 성행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두 명의 희생자로는 단 2분 정도의 방영 거리밖에는 못 된다. 10초 정도 도입부, 취재한 필름을 위해 100초, 그리고 머리를 잘 다듬은 앵커맨들이 정중하게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보이기 위해 10초 해서 2분이다. 그리고 바로 비키니 대회에 대한 이야기와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가 버린다.) 기자들도 이젠 갔고 또 실험실 사람들, 정복 경찰들, 그리고 크리프 소아메스를 제외한 레무엘 존슨측의 수사관들도 모두 갔다. 구름이 조각난 달에 걸려 있었다. 아크등들도 철거되었다. 그리고 빛이라곤 왈트 가이네스의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왈트는 자신의 세단을 한 바퀴 휙 돌려 헤드라이트를 비포장 도로 끝에 주차되어 있는 렘의 차에 비추었다. 그래서 렘과 크리프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릴 필요가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 깊은 어둠 속에는 반쯤 지어진 집들이 마치 선사 시대 파충류들의 화석처럼 어렴풋이 드러나 보였다. 렘은 자신의 차로 걸어가면서 그런 삭막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왈트가 이의 없이 관할권을 연방 기구에 넘겨주겠다고 동의했던 것이다. 렘이 프랑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하게 왈트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여남은 개의 규칙들과 또 기밀 유지 서약을 어기게 되었지만 그는 왈트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 사건의 뚜껑은 아직도 그대로 덮여져 있다. 전보다는 좀 느슨해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크리프 소아메스가 먼저 자동차에 도착해 문을 열고 운전석 옆좌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렘이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 크리프가 소리 질렀다. [오,세상에! 오, 하나님!] 크리프가 허겁지겁 다시 차 밖으로 나올 때 렘은 맞은 편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무엇에 그런 소동을 벌이는지 보았다. 머리다. 틸 포터의 머리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앞 좌석에 세워져 있어서 렘이 차 문을 열 때 그를 쳐다보고 있도록 놓여 있었다. 입은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며 벌어져 있었다. 눈은 없어졌다. 렘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몸을 떼고는 손을 코트 밑으로 넣어 권총을 뽑았다. 왈트 가이네스는 벌써 자신의 차에서 나와서 권총을 손에 쥐고 렘에게 뛰어왔다. [뭐가 잘못 됐나?] 렘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왈트는 국가 안보국 세단으로 가 열려진 문을 통해 그 머리를 발견하고는 가늘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냈다. 크리프가 자신의 총을 꽉 쥐고 총구를 곧바로 위로 세우고는 자동차 맞은 편에서 돌아왔다. [그 망할 것이 우리가 이 곳에 도착해 집 안에 있는 동안 여기에 있었어요.] [아직도 여기 있을지 몰라.] 순찰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 사방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걱정스레 살펴보며 렘이 말했다. 이번엔 왈트가 어둠에 싸인 주택 건설 현장을 살펴보며 말했다. [내 부하들을 불러서 수색을 해보지.] [소용없어요.] 렘이 말했다. [그놈은 당신네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가버릴 거예요. 아직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다면요.] 그들은 보르디옥스 리지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그 너머로는 확트인 평지, 그리고 산기슭, 그 너머로는 산들이 있어서 아웃사이더가 그곳에서 나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사라지기 쉬운 곳이었다. 그 언덕들, 산등성이, 그리고 협곡들 등은 조각달의 희미한 빛을 받아 단지 뿌연 형태였고 그것도 눈에 보인다기보다는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불빛이 없는 도로 아래 어디선가에서 달가닥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마치 목재나 널빤지 더미가 무너진 것 같았다. [그놈이 여기 있어.] 왈트가 말했다. [어쩌면요.] 렘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이 어둠 속에서 그놈을 찾아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우리 셋만으론 안돼요. 그것이 바로 그놈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네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여기에 와서 모든 지역을 다 수색했었네.] 왈트가 말했다. 크리프가 말했다. [그놈이 당신들보다 게속 한 발 앞서 있었던게 틀림없어요. 당신네 사람들을 교묘히 피하는 게임을 하면서요. 그러다가 우리가 도착하는 것을 보았죠. 그리고 렘을 알아본 거예요.] [내가 몇 번 바노디네를 방문했었기 때문에 나를 알아볼 거야.] 렘이 수긍했다. [사실...... 어쩌면 아웃사이더가 여기서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놈은 이 모든 일에서 나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놈과 그 개에 대한 수색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그놈은 나에게 그 경관의 머리를 남겨놓고 싶었던 거지.] [자네를 조롱하기 위해서?] 왈트가 말했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죠.] 그들은 마무리되지 않은 집들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응시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무더운 6월의 공기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한동안 주위에 들리는 소리는 그 보안관의 자동차 엔진이 공회전 되는 소리뿐이었다. [우리를 보고 있어.] 왈트가 말했다. 또 다시 건축 자재들이 뒤집어지는 듯한 달가닥 소리가 났다. 그 세 사람은 얼어붙어서 각자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한 1분 정도 지속되었다. 렘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아웃사이더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괴성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으시시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르디옥스 리지 너머 어둠이 짙게 깔린 저 밖 넓은 평지에서다. [그놈은 지금 떠나고 있어요.] 렘이 말했다. [그놈이 우리가 수색에 착수하도록 유인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냥 우리 셋만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원 병력을 불러들이기 전에 떠나려는 거지요.] 그것이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아주 멀리에서...... 그 무시무시한 괴성은 마치 렘의 영혼을 직 할퀴는 손톱들 같았다. [아침에 해병 첩보대 팀들을 동쪽에 있는 산기슭으로 이동시키겠어요. 우린 그 망할 놈을 붙잡을 겁니다. 반드시 말예요.] 렘이 말했다. 왈트는 틸 포터의 절단된 머리를 처리할 불유쾌한 일을 생각하는 듯 렘의 세단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눈은 왜 이러지? 왜 그 놈은 항상 눈들을 빼 없애 버리는 거야?] 렘이 말했다. [그놈이 극히 공격적이고 피에 굶주렸기 때문이죠. 그런 요소가 그것의 유전자 안에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놈이 정말로 공포를 만들어내길 즐기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또한.......] [하지만 뭐야?] [난 이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잊혀지지가 않아요. 지금도 너무나 생생해요.] 한번은 바노디네에 방문했을 때 렘은 야르벡 박사와 아웃사이더가 서로 의사 소통하는 것을 목격했다. 야르벡과 그의 조교들은 1970년대 중반에 고릴라와 같이 고등 유인원들과 의사 소통하는 실험을 시도했던 과학자들이 개발했던 것과 비슷한 기호 언어를 그 아웃사이더에게 가르쳤다. 70년대 때는 가장 성공적인 실험 대상 고릴라는 코코라는 이름의 암컷으로 지난 10년 간 수없이 매스컴을 탄 바 있었다. 코코는 약 400개 정도의 단어를 아는 기호 언어 어휘력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아웃사이더는 여전히 원시적이긴 했지만 코코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어휘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야르벡 연구소에서 렘은 커다란 울 속에 있는 그 괴물이 그 과학자와 복잡한 일련의 수화식 기호들을 주고 받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러는 동안 한 조교가 곁에서 그것을 보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렘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아웃사이더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향해서 극심한 적개심을 표현하면서 자주 야르벡과의 대화를 중단했다. 그리고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울 주위를 씩씩거리며 돌다가 철책을 탕탕 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렘에게 그 장면은 놀랍기도 했고 또 혐오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아웃사이더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가슴 아플 정도의 슬픔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짐승은 항상 울 안에 갇혀 있고 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언제나 괴상하게 취급될 것이고 또 외로울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생물들은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것들이고 심지어 위더비의 개도 마찬가지다. 그 때 일이 그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와 야르벡 사이에 교환된 그 모든 신호 언어들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그 무시무시한 대화 중 한 부분이 떠올랐다. 한번은 아웃사이더가 신호를 보냈다. 네 눈을 빼내 없애버리겠어. 내 눈을 빼내버리고 싶은 거니? 야르벡이 신호를 보냈다. 모든 이들의 눈을 빼내버리고 싶어. 왜? 그러면 나를 볼 수가 없지. 왜 너 자신을 남에게 보이는 게 싫은가? 추악해서. 네 자신이 추악하다고 생각하니? 아주 추악하지. 자신이 추악하다는 것을 어디에서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서. 어떤 사람들에게서? 나를 처음 보는 모든 사람들. 오늘 우리와 함께 있는 이 사람과 같이? 야르벡이 렘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모두가 나를 추악하게 생각해. 나를 미워하지.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아. 모두가 미워해. 아무도 너에게 네가 추악하다고 말한 적이 없어.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 난 알아. 어떻게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그놈은 그 울 안 주위를 질주하며 철창을 흔들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그리고는 돌아와서 야르벡을 마주 보았다. 내 눈을 빼버려. 그렇게 해서 네 자신을 볼 수 없게 하려는 건가? 그렇게 해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는 거야. 그놈이 그런 신호를 보냈고 그러자 렘은 동정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런 동정심이 그놈에 대한 공포심을 줄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무더운 6월의 밤 한가운데 서서 왈트 가이네스에게 야르벡 연구실에서 오고갔던 그런 대화를 들려 주었고 왈트는 몸을 떨었다. [제기랄,] 크리프 소아메스가 말했다. [그놈은 자신을 미워해요. 그러니까 별나게 생긴 자신의 모습을 말예요. 그래서 자신을 만든 사람은 훨씬 더 미워하는 거지요.] [자네가 하는 말을 잘 들었네만, 난 자네들 누구 하나 그놈이 왜 그 개를 그토록 맹렬하게 미워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놀랍군. 이 불쌍한 망할 괴물과 그 개는 프랑시스 프로젝트의 유일한 두 자식이야. 그 개는 사랑받는 자식에다 호강을 받고 있지. 그리고 그 아웃사이더는 항상 그것을 알고 있었어. 그 개는 부모들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자식이지만 아웃사이더는 지하 감방에 확실하게 가두어놓고 싶어하는 자식이지. 그래서 그놈은 그 개에게 분노심을 품고 있는 거야. 매일 매순간 분노로 속을 태우고 있었던 게지.] [물론예요.] 렘이 말했다. [맞아요. 물론이지요.] [틸 포터가 살해된 그 집 이층 욕실의 거울 두 장을 깨버린 것에도 그놈은 또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왈트가 말했다. [그놈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멀리서, 이제 아주 멀리서 무엇인가가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의 창조물이 아닌 것의 소리였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