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지은이: 스티븐 킹 미국내의 모든 연방교도소와 주립교도소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나는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다. 항상 그렇게만 되는것은 아니지만, 고급담배나 특히 선호한다면 마리화나가 들은 권련, 자식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브랜디 등 그 밖에 거의 모든 것이라도 합리적인 범위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꼭 스무살 났을 때 쇼생크에 왔으며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중에서 자신의 행위를 실토하는 몇 안되는 놈의 한명이다. 나는 살인을 했다. 세살 연상인 여편네한테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나는 장인이 결혼선물로 해준 시보레 쿠페의 브레이크에 손을 좀 봤다. 정확히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마을로 들어가던 이웃 여자와 그녀의 어린애를 태우리라는 것은 계획하지는 않았다. 브레이크는 달아나고 차는 가속도가 붙으며 마을 공터 가의 수풀로 돌진해 들어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차는 50 마일이상의 속도로 남북전쟁 기념동상의 기단을 들이받고 화염에 휩싸였다고 한다. 물론 내 계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체포되었다. 나는 한 계절이 지난 다음 이곳에 왔다. 메인주에는 사형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검사는 내게 세명의 죽음에 대하여 재판을 진행시켜 종신형의 세배를 언도받게 했다. 그것은 오래도록 내가 가질지도 모를 가석방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판사는 나의 행위를 가증스럽고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말했으며 사실 그랬지만 한편으론 이젠 과거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색바랜 '캐슬락 통신' 지에서 내 사건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히틀러, 무솔리니, 루즈벨트 행정부 의 뉴스 다음에 내 혐의가 다소 우스꽝스럽고 고전적이라고 한 신문 표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재사회화되었는가고 묻는가? 최소한 감옥과 교도소에 관한한 나는 그 말의 뜻조차 모르겠다. 나는 그말이 정치가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다른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먼 후일 내가 알게 될지도 모르는 말이리라.-먼 후일이라는 말은 죄수들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말이다. 나는 젊고 미남이었으며 마을의 빈민가쪽 출신이었다. 카빈 거리의 고풍스런 저택에사는 예쁘지만 고집세고 밝은 성격은 못되는 편인 여자하나를 나는 임신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의 안경공장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것을 조건으로 결혼에 동의했다. 나는 그의 진짜 속셈이 길들여지지 않아 사람을 무는 애완동물처럼 나를 집에 매어두고 지배하려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증오가 쌓이고 쌓여 이같은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같은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이 내가 재사회화되었다는 뜻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앤디 듀퓨레인 이라는 사나이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앤디에 대하여 말하기전에 나 자신에 관한 몇가지 설명을 해야만 되겠다.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곳 쇼생크 주립교도소에서 빌어먹을 40년 가까이나 물건을 입수하는 일을 해왔다. 고급 담배나 술이 항시 중요한 품목이긴 하지만 이와같은 금지품목만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복역하는 친구들을 위해 수천개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지만 처벌받고 있는 장소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녀석이 있었는데 놈은 미성년자 강간을 포함한 여러가지 죄목으로 들어왔던 놈이었다; 나는 녀석한테 핑크빛 버몬트 대리석 세개를 구해주었는데 놈은 그걸로 멋진 조각품들을 만들어 냈다.-어린아이, 12세 가량의 소년, 턱수염의 젊은이. 이렇게. 그는 거기에 '세 모습의 예수님' 이라고 이름붙였고 그 작품들은 지금 여기 주지사를 지낸 사람의 응접실에 가 있다. 메사츄세츠 북부에서 자랐다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이름이 하나 있다.-로버트 앨런 코트. 그는 1951년에 머천타일 은행을 털다가 현장을 피바다로 만들었었다. 여섯이 죽었는데 둘은 갱이었고 셋은 인질이었다. 또 한명은 고개를 잘못 들어 총알이 눈알에 박히고 만 주립 경찰관이었다. 코트는 동전 수집가였다. 이곳에서 그것을 보유하는 것이 물론 허용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어머니와 빨래 트럭을 운전하는 중개인의 도움으로 그의 수집품을 입수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도둑이 득실대는 이런 호텔에서 동전 콜렉션을 소지하려 하다니 제정신이냐고 말했더니 슬쩍 웃으면서 어디에다 그걸 간수할 것인지 알고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안전해. 걱정말라구. 그리고 그가 옳았다. 바비 코트는 1967년 뇌종양으로 죽었지만 그의 콜렉션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 때면 쵸콜릿을 구해줘왔다; 나는 성 패디 절에 맥도날드 점에서 파는 밀크 쉐이크 세통을 오 맬리라는 미친 아일랜드인에게 구입해줬다; 심지어는 돈을 갹출한 20명에게 '깊은 목구멍' 과 '존슨 양 안의 악마' 두 편의 필름을 빌려 심야상영을 해주기도 했다. 그 작은 탈선행위로 결국 열흘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면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이다. 나는 학습 참고서나 음란 소설, 혹은 핸드 부저나 잇칭 파우다같은 새로 나온 재밌는 물건들을 구해 주었고 여러차례 장기수들에게 그의 부인이나 애인들의 팬티를 입수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칼날처럼 질질 끄는 긴긴 밤 동안 이같은 물건들로 수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물건들을 공짜고 입수해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값이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꼭 돈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캐딜락을 살 것도 아니고 2월의 두주일간 자마이카로 날아가 있을 것도 아니데 말이다. 나는 좋은 푸주한은 신선한 고기를 팔 뿐 이라는것과 같은 이유로 이 일을 한다. 나는 좋은 평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싶다. 내가 취급하기를 거부하는 단 두가지 물건은 총과 약물이다. 나는 누군가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돕고 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평생을 복역케 할 충분한 살인이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꾸준한 나이만 마르쿠스이다. 그래 앤디가 1949년 내게 와서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1948년 앤디는 30의 나이로 쇼생크에 들어왔다. 그는 모랫빛 머리카락에 작고 날렵한 손을 가진 작고 깔끔한 사나이였다. 그는 금테 안경을 했다. 손톱은 항시 깍여 있었고 항시 청결했다. 한 사나이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기에는 좀 우습지만 그것은 내게 있어 그를 잘 요약해 주고 있었다. 그는 항상 넥타이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바깥에서 그는 규모가 큰 포틀랜드 은행 신용부의 차장이었다. 특히 대개의 은행들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생각해 본다면 젊은 나이에 성공한 셈이었다. 뉴 잉글랜드에서라면 그같은 보수성은 열배로 늘려 잡아야 되는데 거기 사람들은 은행직원이 대머리에 몸이 느릿느릿하고 계속 바지를 추켜 올려 똑바로 하는 사람이 아니면 돈을 맡기려 들지 않는다. 앤디는 아내와 정부를 죽인 죄로 들어왔다. 감옥 속의 모두가 나와 같다면 그들은 모두 무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TV의 목사가 요한 계시록을 읽는 것처럼 성경을 읽는다. 그들은 돌로 된 심장과 그에 어울리는 불알을 가진 판사의, 무능한 변호사의, 경찰의 음모의, 불운의 희생자들이다. 성경을 읽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그와 다른 성경이 나타나 있다. 그들의 최대불운은 어머니들이 그들은 순산했다는 데 있다. 쇼생크에 있었던 전 기간을 통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중에 내가 그것을 믿은 것은 열명도 안된다. 수년이 걸린 확신이지만 앤디 듀프레인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1947-1948년의 눈보라 치던 6주간 열린 포틀란드 최고 법원의 그의 사건 배심원의 일원이었다면 나 역시 유죄로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빌어먹을 사건이었다; 그럴듯한 모든 요소를 갖춘 흥미진진한 사건의 하나였다. 사교계에 드나드는 아름다운 여성 (죽었다), 지역 스포츠 계의 인물(역시 죽었다), 젊고 유명한 사업가가 등장한다. 여기에다 신문들이 암시하는 스캔들이 추가되었다. 검찰은 아주 간단한 사건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연방하원에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자신의 얼굴을 봐 주길 원했기 때문에 재판은 질질 끌기만 했다. 그것은 훌륭한 법률 서커스여서 자리를 확보하려고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방청객들이 줄들을 섰다. 앤디가 다투지 않은 검찰측 주장은 이러했다; 린다 콜린스 듀프레인이 그의 아내라는 사실; 1947년 6월 그녀가 팔 마우스 컨트리 클럽의 골프 강습에 흥미를 보인 사실; 실제 4개월간 강습을 받은 사실; 그녀의 강사는 팔 마우스 컨트리 클럽의 프로 골퍼 글렌 뀌틴 이라는 사실; 뀌틴과 그의 아내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을 1947년 8월 말 알게 된 사실; 1947년 9월 10일 오후 앤디와 린다 듀프레인이 심각한 말다툼을 한 사실; 그 말다툼의 주제는 그녀의 부정이었다는 사실. 그는 그녀가 다 털어놓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했음을 증언했다; 숨기는 일이 괴로웠었노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또 그녀는 나와 이혼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앤디는 그녀에게 이혼법정에서 보기 전에 지옥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골프장에서 멀리 안 떨어진 뀌틴의 전세 방갈로에서 그와 밤을 보내기 위해 가버렸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 청소 아줌마가 침대에서 죽어 있는 그 둘을 발견한 것이다. 각각 네 방씩을 맞았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앤디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사실이었다. 정치적 야심을 지닌 검사는 그의 모두 발언과 최후 진술에서 이 사실을 최대한 이용했다. 앤디 듀프레인은, 그는 말했다, 단순히 자신을 기망한 부인에게 충동적으로 복수를 감행한 배신당한 남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검사는 말했다, 용서받지는 못할 지언정 이해받을 수는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복수는 좀 더 냉혹한 타입의 범죄입니다. 여기에 주목하십시오! 검사는 배심원에게 소리쳤다. 4발에다 4발! 6발이 아니라 8발! 그는 장전된 총알을 다 쏘고 또 쏘기 위해서 총을 재장전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4발, 그녀에게 4발. 이라고 '포틀랜드 썬' 지는 대서특필했다. '보스턴 리지스터'지는 그를 '이븐 스티븐 킬러' 라고 불렀다. 루이스톤의 와이즈 전당포의 점윈은 자신이 사건 이틀전 앤디 듀프레인에게 6발 들이 .38구경 스페셜을 팔았노라고 증언했다. 컨트리 클럽 바아의 바텐더는 앤디가 9월 10일 오후 7시경 들어와서 20분 동안 스트레이트 위스키 석 잔을 마시고 이제 글렌 뀌틴의 집으로 갈 건데 그 후의 일은 신문에서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음을 증언했다. 또 뀌틴의 집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핸디픽 상점의 점원은 법정에서 그가 같은 날 밤 9시 15분 전 쯤 해서 가게에 들어와서 맥주 3쿼트와 담배, 그리고 접시 타월을 샀다고 진술했다. 검시의는 뀌틴과 듀프레인 부인이 9월 10일밤 오후 11시에서 11일 새벽 2시 사이에 살해되었다고 증언했다. 또 사건을 맡은 검찰청 형사는 방갈로에서 70야드도 안되는 주차장에서 9월 11일 오후에 세 가지의 증거물을 채집했다고 밝혔다; 첫번 것은 나라간셋 맥주의 빈 쿼트 병 2개. (거기엔 피고의 지문이 있었다.); 둘째는 담배 꽁초 12개 (모두 피고인이 즐기는 쿨 상표였다.); 셋째는 바퀴 자국의 석고 모형. (피고의 1947년 플라이 모쓰의 타이어 무늬와 정확히 일치했다.) 뀌틴의 방갈로 거실 소파에서는 넉 장의 접시 타월이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총알 구멍과 화약 자국이 있었다. 형사는 (앤디측 변호사의 고심끝에 내놓은 반론에 대하여) 살인자가 총 소리를 죽이기 위하여 타월로 총구를 감싼 것이라고 이론 구성을 했다. 앤디 듀프레인은 자신의 방어로서 조용하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태도로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아내와 뀌틴과의 고통스런 풍문을 일찌감치 7월 마지막 주쯤 해서 듣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8월 말경 좀 조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치 괴로움이 더해졌습니다. 골프 강습을 끝내고 포틀란드로의 쇼핑 계획이 있던 어느 날 저녁 저는 그녀와 뀌틴을 뀌틴의 1층 셋집까지 따라갔습니다. (불가피하게 신문은 그곳을 '사랑의 둥지' 라고 이름했다.) 제가 주차장에 있자니까 세시간 후 뀌틴이 그녀를 그녀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컨트리 클럽으로 데려다 주더군요. "당신은 자신의 신형 플라이 모쓰 쎄단으로 부인을 미행했었다고 이 법정에서 진술하고 있는 겁니까?" 검사는 반대 신문에서 물었다. "저는 그날 저녁을 위해 친구와 차를 바꿨습니다." 그의 교묘하게 계획된 미행에 대한 이같은 냉정한 인정이 배심원들 눈에 이롭지 못하게 작용했다. 친구차를 돌려주고 제차를 받은 다음 저는 집으로 갔습니다. 린다는 침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포틀랜드에 간일을 괜챦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재미있었지만 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물건은 못 보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제가 확신하게 된 때입니다.' 앤디는 숨죽인 방청객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다른 모든 증언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목소리로 남의 이야기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부인이 살해된 날 밤까지의 17일간의 심리상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앤디의 변호사가 질문했다. "저는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앤디는 냉정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쇼핑 목록을 말하는사나이처럼 그는 자신이 자살할 생각을 하게 되고 9월 8일 루이스톤에서 총을 구입하게까지 되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사건 당일밤 부인이 글렌 뀌틴을 만나러 간 후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배심원들에게 말해주도록 요청했다. 앤디는 말했다. 그가 준 인상은 최악의 것이었다. 나는 그를 거의 30년간 알고 지내와서 하는 말인데 그는 내가 일찌기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냉정 침착한 사람이었다. 좋은 일은 아주 조금만 내비칠 뿐이고 나쁜 일은 마음속에 꼭 담아두는 것이다. 소설가가 말하는 소위 영혼의 어둔 그늘이 그에게 드리워진다 해도 다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다. 자살을 결심한다 해도 그는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해 버릴 그런 타입의 사나이인 것이다. 그가 증언석에다 대고 고함을 쳤다든가 아니면 음성이 그늘지고 머뭇거렸다면 아니, 그 워싱턴에 환장한 지방 검사에게 소리를 버럭 질르기라도 했다면 끝내 그가 선고 받은 종신형을 모면했을 지도 모른다. 설사 그랬더라도 1954년 까지는 가석방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녹음기처럼 말했으며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듯 했다: 자, 제 얘기는 이렇습니다. 믿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취해 있었으며 다소간 차이는 있을 지라도 8월 24일 이래 늘 취해 있었고 자신은 술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물론 그 자체로 어떤 배심원도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두겹으로된 산뜻한 쓰리 피스 면 저고리를 입은 이 냉정하고 침착한 젊은이가 부인이 시골 마을의 프로 골퍼와 너저분한 정사관계를 가졌다고 알콜에 푹 빠져버리리라곤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여섯의 남자와 여섯의 여자가 가지지 못했던 그를 관찰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 말을 믿는다. 앤디 듀프레인은 내가 그를 안 이후 1년에 4차례만 술을 마셨다. 그는 매년 생일날 일주일 전과 크리스마스 2주일전엔 운동장에서 나를 만났다. 그때 마다 잭 다니엘 한 병을 부탁했다. 그는 대부분의 죄수가 물건을 사는 방식으로 그것을 샀다.-여기서 지불하는 노예임금에다 자기 돈을 좀 보탠다. 1965년 까지 노동의 댓가는 시간당 10cent였다. 65년에야 25cent로 올랐다. 술에 대한 내 수수료는 과거나 지금이나 10% 이고 블랙 잭 같은 고급 위스키의 가격에 추가 요금을 얹는다면 소내 세탁소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땀 흘려야 앤디가 1년 4차례 술을 사마실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일인 9월 20일 아침 그는 한 모금 크게 마시고 그날 밤 불 꺼진 다음 다시 한 모금 마신다. 다음날 그는 나머지 술을 내게 건네주고 나는 그걸 주위와 돌려 마신다. 또다른 술에 대해 말한다면 크리스마스 날 한 모금, 그리고 12월 31일 한 모금 마시곤 그만이다. 그 술 역시 돌려 마시라고 내게 건네진다. 1년에 4모금.-그것은 술에 어지간히 덴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피를 말릴 만치 지독하게 술에 덴 것이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10일 날 밤 너무 술에 취해 있어서 조각난 몇개의 기억 밖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린다에게 가기 전에 술에 취했던 것이다.-'전 술기운의 도움을 얻은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뀌틴을 만나러 떠난 후 그들을 만나고자 결심했던 것을 기억했다. 저는 뀌틴의 방갈로로 가는 길에 한잔 할려고 컨트리 클럽으로 들어갔습니다. 바텐더에게 후의 일은 신문에서 읽게 될 거라고 말했는지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이든 했는지 않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는 핸디팩에서 맥주를 산 것은 기억했지만 접시 타월을 산 기억은 없었다. '제가 왜 접시 타월이 필요했겠습니까? 라고 그는 물었고 어떤 신문은 여자 배심원들이 그 말에 몸서리를 쳤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훨씬 나중에 그는 내게 접시 타월에 대해 증언한 그 점원에 관한 자신의 추측을 말했고 나는 그의 말을 적어 놓을 필요를 느낀다. "생각해 보세요. 증인을 찾기 위한 탐문 수사의 과정에서요." 하고 앤디는 어느날 운동장에서 말했다. "그들은 제게 맥주를 판 친구를 찾아낸거지요. 3일이 흐른 뒤에요. 사건이 신문에 널리 보도 돼었단 말입니다. 아마 그들은 그 친구에게 영향을 미쳤겠지요. 경찰 너댓에 검찰에서 온 형사놈 거기다 검사까지 한데 뭉쳐서요. 기억은 굉장히 주관적인 겁니다. 레드 형. 그들은 아마 '그 사람이 접시 타월 너덧 장 샀을 수도 있지 않느냐?' 로 시작해서 일을 만들어 나갔을 거예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기억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죠."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동의 했다. "하지만 더 그럴 듯한 가능성도 있지요." 앤디는 예의 읖조리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자가 자기 자신을 확신 시켰을 가능성도 최소한 있다고 생각되는 군요. 그건 자기가 영웅이 되는 거죠. 기자들이 질문을 해대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고. 물론 무엇보다 법정에 나오는 것이 최고였겠지요. 저는 그가 고의로 말을 꾸며냈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전 그가 당당하게 거짓말 탐지기에 합격하거나 어머니의 신성한 이름을 걸고 맹세하고는 제가 그 접시 타월을 샀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기억이란 그렇게 빌어먹을 주관적인 거라구요. "전 이걸 잘 알아요; 제 변호사가 제 얘기의 절반은 거짓말로 둘러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판단했을지라도 접시 타월에 대해서는 거짓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 그 얘기는 좀 이상한 데가 있어요. 전 지독하게 술에 취했고 너무나 술에 취해서 총구를 막을 생각을 못했을 거라구요. 만약 그랬다면 단지 그걸 찢어뜨리고 말았을 거라구요." 저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주차시켰읍니다. 다음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읍니다. 그리고 뀌틴의 집 아랫층의 불이 꺼지는 것을 보았읍니다. 2층에는 불 하나가 켜져 있더군요. 15분후엔 그불도 꺼지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 나머지는 추측할 수 있었읍니다. "듀프레인 씨, 그래서 당신은 글렌 뀌틴의 집으로 올라가 둘을 죽였습니까?" 변호가가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앤디는 대답했다. 자정쯤 되자 술이 깨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심한 두통이 시작됐읍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서 한숨 자고 두통이 사라진 후 다음날 좀 더 어른스런 방법으로 이 모든 사태를 생각해보자고 마음 먹었읍니다. 그때 집으로 차를 몰면서 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단순히 그녀와 이혼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감사합니다. 듀프레인 씨." 검사가 불쑥 일어섰다. "당신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이혼한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접시 타월로 감싼 . 38 구경으로 그녀와 이혼한 거지요? 그렇지 안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앤디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애인을 쐈지요?" "아니오!" "당신 말은 글렌 뀌틴을 먼저 쐈다는 겁니까?" "제 말은 둘 중 어느 누구도 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저는 맥주 2쿼트를 마시고 주차장에서 경찰이 발견한 꽁초 만큼의 담배를피웠읍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잠을 잤읍니다." "당신은 배심원들에게 8월 24일에서 9월 10일까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지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권총을 구입할 정도로 충동을 느꼈다 그말이지요?" "대단히 실례지만 듀프레인 씨, 저한테는 당신이 자살할 타입으론 보이지 않는데요?" "괜챦습니다." 앤디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검사님이 오히려 그렇게 민감한 것 같지 않군요. 만약 제가 자살 충동을 느꼈다 해도 당신한테 상담하러 가지는 않을 겁니다." 이말에 방청석에서 약간의 긴장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배심원들의 점수를 따지는 못했다. "9월 10일 날 밤 당신은 자신의 .38구경을 가지고 갔읍니까?" "아닙니다. 제가 이미 말한 것처럼--" "아, 녜!" 검사는 비꼬는 듯한 미소를지었다. "당신은 그걸 강에다 던져 버렸지요? 그렇지요? 로얄 강에다가. 9월 9일 오후에-" "녜. 그렇습니다." "사건 하루 전날에-." "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편리하겠군요. 그렇지요?" "편리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읍니다. 오직 진실일 뿐입니다." "민처 부관의 증언을 들으셨는 줄로 아는데요?" 민처는 폰드로드 다리 근처에서 로얄 강 바닥을 수색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는 그 다리에서 총을 던졌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경찰은 총을 찾지 못했다. "녜. 들었읍니다." "3일동안 뒤졌어도 총을 찾지 못했다는 증언을 들었지요?" 그것 역시 대단히 편리하겠지요? 그렇지요?" "편리한 것은 차치하고 그들이 총을 못 찾은 것은 하나의 사실일 뿐입니다." 앤디는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폰드로드 다리가 강이 야마우쓰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과 대단히 가깝다는 점을 당신과 배심원들에게 지적하고 싶군요. 조수가 또 강합니다. 아마도 총은 만으로 흘러들어갔을 겁니다." "그래서 부인과 글렌 뀌틴의 피투성이 시체에서 나온 총알의 강선과 당신의 총의 강선을 비교 대조할 수 없었지요? 그렇지요? 맞습니까? 듀프레인 씨?" "그렇습니다." "그것 또한 대단히 편리하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신문에 따르면 그순간 앤디는 6주간의 재판 기간을 통틀어 몇 안되는 희미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희미한 고소가 얼굴을 스쳤다는 것이다. "저는 그 범죄에 대해 결백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건 전날 총을 버렸다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제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보이는 데요." 검사는 이틀 동안 그를 공격했다. 그는 앤디에게 접시 타월에 관한 핸디픽 상점 점원의 증언을 되풀이해서 들려주었다. 앤디는 그것들을 산 기억이 없다고 되풀이 했지만 또한 사지 않은 기억도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당신과 린다 듀프레인은 공동으로 1947년 초에 생명보험에 들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사실이다. 만약 석방된다면 당신은 수혜로서 5만 달러를 받게 된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러면 살의를 품고 글렌 뀌틴의 집으로 찾아간 것은 사실이 아닌가? 또 정말로 두차례에 걸쳐서 총을 발사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그러면 강도당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읍니다." 앤디는 조용히 말했다. 사건은 어느 눈오는 수요일 오후 1시 배심원석으로 넘어갔다. 12명의 남녀 배심원들은 3시 30분에 돌아왔다. 그들은 구의 비용으로 벤틀리 레스토랑에서 멋진 닭고기 요리를 즐기느라 늦어졌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일찍 돌아왔을 거라고 정리는 전했다. 그들은 유죄로 평결했으며 만약 메인 주에 사형제도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그해 봄의 크로커스가 눈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허공에서 춤을 추었을 것이었다. 검사는 그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앤디는 질문을 회피했다.-하지만 그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1955년 어느날 늦은 오후 그 얘기를 들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는 사이로부터 상당히 가까운 친구가 되기까지 7년이나 걸렸다.-하지만 나는 1960년 무렵이 되어 서야 진정으로 그와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지금 나는 내가 그와 마음을 터놓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다. 우리 둘 모두 장기수였기 때문에 내가 그로부터 복도 절반쯤 아래쪽에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같은 구역안에 있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는 미소지었지만 목소리에는 농조라곤 없었다. "저는 그날 밤 많은 불운이 몰려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같은 짧은 시간 다시 모이기가 힘들 정도로 말이예요. 제 생각엔 아마 놈은 그 곳을 지나치던 이방인이었을 거예요. 제가 집에 돌아간 다음에 우연히 놈의 차에 빵꾸가 났었던 건지도 모르구요. 강도나 정신병자였는지도 모르구요. 놈이 그들을 죽인 거죠. 그게 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들어와 있는 겁니다." 이처럼 단순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는 생의 나머지를 쇼생크에서 보내도록 언도받았다.-혹은 그 중의 중요한 부분을. 5년후 그를 위한 가석방 위원회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모범수였음에도 꼭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가석방은 거부되었다. 쇼생크에서 나오기란 입장표에 살인이란 도장이 찍힐 경우 강물이 바위를 침식하는 일만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대부분의 주립 교도소보다 2명이 많은 7명이 위원회에 앉아 있는데 일곱 명 모두 광천에서 뽑아 올린 물만큼 냉혹한 놈들이다. 놈들을 매수할 수도 없고, 좋은 말로 꾈 수도 없고, 울면서 호소할 수도 없다. 여기서 그 위원회에 관한 한 돈은 안 통한다. 또 앤디의 경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나온다. 50년대에 내게 상당히 큰 돈을 빌리러 온 켄드릭스란 모범수가 있었는데 4년 걸려서 다 갚았다. 그는 대부분의 이자를 정보로 갚았다.-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언제든지 정보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면 죽은 목숨인 것이다. 켄드릭스는 예를 들어 그 빌어먹을 자동차 번호판 공장에서 내가 스탬퍼를 누르면서 볼 수 없는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다. 켄드릭스는 내게 앤디에 대한 가석방 위원회 표결이 1957년 동안 7-0, 58년엔 6-1, 59년엔 다시 7-0, 60년엔 5-2 였다고 말해 주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16년 후에도 여전히 5번 블럭 14 호실에 여전히 그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마도 1983년 쯤 가면 관대한 마음이 들어 그를 내보내 줄지 모를 일이었다. 놈들은 빼앗아 갔던 삶을 돌려 준다. -그것은 어쨋든 중요한 모든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석방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보라; 나는 셔우드 볼튼이라는 사나이를 알고 있는데 그는 자기 방에서 비둘기를 키웠다. 1945년부터 1953년 가석방 될 때까지 그는 비둘기를 키웠다. 그는 알카트라스의 조인은 아니었다; 그저 키웠을 뿐이었다. 이름을 제이크라고 불렀다. 셔우드 자신이 소위 '걸어 나가'기 하루 전 제이크를 풀어 주었으며 원하는 대로 잘 날아갔다. 하지만 셔우드 볼튼이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을 떠난 지 한 일 주일 후 한 친구가 이전에 셔우드가 어슬렁거렸던 운동장 서쪽 구석으로 나를 불렀다. 새 한마리가 작고 지저분한 침대시트 더미처럼 누워 있었다. 굶어 죽은 것 같았다. 친구가 말했다: "저거 제이크 아냐? 레드." 그랬다. 그 비둘기는 똥처럼 죽은 것이었다. 나는 앤디 듀프레인이 처음으로 뭔가를 사려고 나와 접촉했던 때를 기억한다: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그가 리타 헤이워드를 원했던 때는 아니었다. 그것은 나중이다. 1948년 여름 그는 다른 무언가를 구하려고 왔었다. 내 거래의 대부분은 바로 운동장에서 행해지는데 그 친구가 그리로 걸어왔던 것이다. 그 운동장은 굉장히 컸다. 한쪽이 70야드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그 북쪽 벽은 외부 벽인데 양쪽 끝에 경비탑이 있다. 그 위에 있는 경비들은 쌍안경과 진압용 곤봉으로 무장되어 있다. 정문은 바로 그 북쪽에 있다. 트럭에서 물품을 하역하는 곳이 운동장 남쪽에 있다. 5곳이 있다. 쇼생크는 주중에는 물품들이 들어오고 나가느라 분주한 곳이다. 이곳에는 자동차 번호판 공장과 소내의 모든 젖은 빨래뿐 아니라 키터리 리시빙 병원과 엘리어트 요양소의 빨래도 맡아하는 거대한 기계식 세탁소가 있다. 또 거대한 자동차 수리공장이 있어서 죄수 기능공들이 간수나 행정직원들의 개인 승용차는 물론이고 교도소, 주, 시의 자동차도 수리한다. 때로 가석방 위원들의 차도 고친다. 동쪽 벽은 작고 길쭉한 창이 많이 붙은 돌벽이다. 5번 구역은 그 너머에 있다. 서쪽 벽에는 사무실과 병동이 있다. 쇼생크는 대개의 교도소처럼 만원이 된 적은 없었고 48년 당시에는 수용 가능 인원의 2/3정도만 차 있었지만 어느 때라도 80내지 120명 쯤은 운동장에 있었다.-축구공을 차 올리거나 야구공을 주고 받고 혹은 농담, 혹은 말다툼, 혹은 거래를 하면서. 일요일엔 한층 더 사람이 많았다: 만약에 여자라도 있었다면 그곳은 시골의 휴일같아 보였을 것이다. 앤디가 처음 내게 온 것은 일요일이었다. 앤디가 걸어왔을 때 나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친구인 앨모어 아미티지와 라디오에 대해서 거래를 끝낸 참이었다. 물론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속물이고 아주 냉정한 놈이라는 평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미 눈에 띄게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중에는 남을 괴롭히길 좋아하는 악당 보그 다이아몬드도 있었다. 앤디는 감방을 혼자 쓰고 있었는데 나는 자신이 그걸 원해서 그런다는 말을들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자기 똥이 보통 똥보다 향기로운 줄 아는가보다고 말들을 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판단할 수 있을 때에는 어떤 사람에 관한 풍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는 말했다. "전 앤디 듀프레인 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사람을 사귀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장 욧점으로 들어갔다. "제가 듣기로 당신은 물건을 입수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데요?" 나는 때때로 어떤 물건들은 입수가 가능하다고 동의했다. "어떤 방법으로 합니까?" 앤디가 물었다. "때로" 나는 말했다. "물건들이 그냥 내 손으로 굴러들어 오지. 내 설명은 못 하겠네. 그건 내가 아일랜드 인이기 때문은 아닐세." 그는 이 말에 약간 미소지었다. "락 해머를 제게 구해 주실 수 있을 지 모르겠군요." "그게 뭐구 왜 그걸 원하나?" 앤디는 놀라는 것 같았다. "동기를 캐는 것도 거래의 일붑니까?" 이같은 말로 그가 어떻게 해서 속물이며 폼재기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평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의 질문 속에서 희미한 유머를 감지했다. "내 말해 주겠네." 나는 말했다. "자네가 만약 칫솔을 원한다면 난 질문따윈 하지 않아. 그냥 값을 부르고 말지. 왜냐하면 알다시피 칫솔은 흉기가 아니거든." "흉기에 대해 당신은 신경이 쓰입니까?" "그럼." 절연 테이프를 감은 낡은 야구공 하나가 우리쪽으로 날아오자 그는 고양이처럼 날쌔게 몸을 틀어 공중에서 그걸 잡았다. 그것은 프랭크 맬존도 자부심을 느꼈을 그런 동작이었다. 앤디는 공을 그것이 날아온 방향으로 던졌다.-그것은 손목을 이용한 빠르고 쉬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시선을 모으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보면서 한쪽 눈으로는 우리를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경비탑의 경비들도 또한 보았을 것이었다. 나는 백합에다 금멕기를 칠하지 않겠다; 어느 교도소에서나 작은 데는 너뎃명, 큰 데는 이삼십 명 정도 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죄수들이 있는 법이다. 쇼생크에서 나역시 그런 거물 중의 한 명이며 내가 앤디 듀프레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은 그가 어떤 나날을 보낼지 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걸 알고 있을 터였지만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거나 아첨하지 않았다. 그점에서 나는 그를 좋게 보았다. "좋습니다. 그게 뭐고 그것이 어째서 필요한지 말씀드리지요. 락 해머는 조그만 곡괭이 처럼 생긴 건데요.-크기는 한 이 정도." 그는 손을 1피트 가량 벌렸으며 그때 처음으로 그의 손톱이 얼마나 깔끔한지 알았다. "그건 한쪽 끝은 날카로운 곡괭이고 다른 쪽은 평평하고 무딘 망치머리가 붙어 있죠. 전 광물 수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게 필요한 겁니다." "광물이라구?" 나는 말했다. "잠깐만 여기 앉아 보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그러마고 했다. 우리는 인디언처럼 엉덩이를 땅에 대고 쭈구려 앉았다. 앤디는 운동자의 흙을 한 줌 쥐더니 깨끗한 그 손으로 걸러냈다. 뽀얀 먼지가 일었다. 조그만 돌들이 남았는데 한두 개는 반짝였고 나머지는 칙칙했고 평범했다. 칙칙한 돌중의 하나는 수정이었는데 깨끗해 질 때까지 연마해야한다. 그러면 그것은 보기좋은 우유빛으로 빛난다. 앤디는 깨끗이 닦아서 내게 던져 주었다. 나는 받아서 이름을 말했다. "그래요. 수정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보세요. 운모. 이판암. 침적 화강암이 있죠. 언덕을 파서 여길 만들었을 때 나온 훌륭한 석회암들도 있군요." 그는 그것들을 던져 버리고 손을 털었다. "저는 광물 수집광입니다. 적어도--. 과거엔 그랬죠. 오래 전에요. 전 그걸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제한된 범위지만 말입니다." "일요일 날 여길 찾아 헤맨단 말인가?" 일어서면서 나는 물었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반짝이는 수정을 보자 우습게도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정확히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바깥세상을 연상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같은 물건은 구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수정은 물살이 빠른 작은 냇물에서 찾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일요일 날 여길 찾아 헤매는 게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가 말했다. "그 락해머 같은 걸로 어떤 놈의 두개골에 구멍을 낼 수도 있쟎나?" "여기서 전 적이 없읍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없다구?" 나는 미소지었다. "내 말 좀 들어." "문제가 있다 해도 전 그 락해머를 쓰지 않고도 해 낼수 있읍니다." "혹시 탈옥하려는 거 아냐? 담 밑으로 말일세. 만약 그렇다면--." 그는 점잖게 웃었다. 3주 후 락 해머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게다가" 나는 말했다. "그걸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보면 뺏어 갈걸. 숟갈을 갖고 있어도 뺏긴단 말이야. 그래 여기 쭈그리고 앉아서 땅을 꽝꽝 파겠단 말인가?" "아, 그보다는 훨씬 더 잘할수 있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쨋거나 그 부분은 정말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한 사내가 물건을 얻기 위해 나와 거래한다. 내가 그것을 입수해 준 다음에는 그걸 간직할수 있는가 하는것은 그의 할 일인 것이다. "그 물건은 얼마쯤 나가나?" 나는 물었다. 나는 그의 낮고 조용한 말투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처럼 1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면 그 고함과 허풍과 고성에 질려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앤디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리라 생각한다. "보석상에서는 8달라 하는데요." 그가 말했다. "전 당신이 하는 그런 사업에서는 기본 요금에다가 비용이 추가되는 걸로 알고 있읍니다. " "10%가 내 수수료지. 하지만 위험한 물건은 값을 좀 올려야 하네. 자네가 말하는 그런 물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름칠이 더 필요하지. 10달라면 어떨까?" "녜. 10달라 좋습니다. " 나는 약간 미소를 띄고 그를 쳐다보았다. "10달라 갖고 있나?" "그럼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가 500달라 이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그걸 몸에 지니고 들어왔다. 이런 호텔에 들어올 때는 직원이 몸을 수그리게 하고 오장 육부를 다 조사하게 되어 있다.-하지만 여러가지 오장 육부가 있으며 꼭 집어 말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은 사람이라면 상당히 큰 물건도 그 윗쪽에다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확실히 안 보이도록. 물론 우연히 그직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조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예외지만. "좋아." 나는 말했다. "내가 준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붙잡힐 경우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네. " "녜, 그렇지요." 그는 말했다. 나는 그의 회색 눈에 나타난 약간의 변화로 내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독특한 그의 비꼬는 듯한 성격이 섬광과도 같이 내비쳤다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만약 잡히면 그냥 었다고 말해야 되네. 그런 취지로 말해야 돼. 놈들은 널 서너 주 독방에 쳐넣고-- 거기다 물론 네 장난감을 뺏기고 복역 성적표에 검은 별이 달리는 거지. 만약 내이름을 대면 다신 나와 거랠 못하게 돼. 신발 끈 같은 것도 안돼. 거기다가 친구들을 보내 자넬 손보게 하지. 난 폭력을 좋아하지 않네만 내 입장을 자넨 이해해야만 하네. 내 자신을 잘 억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나게 할순 없어. 그렇게 되면 나는 끝이지." "녜, 그렇지요. 전 이해합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읍니다." "난 걱정 따윈 안해." 나는 말했다. "이런 장소에선 그럴 가능성은 없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하고 걸어가 버렸다. 3일 후 그는 세탁소의 아침 휴식을 틈 타 운동장에 있는 내게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쪽은 보지도 않은채 훌륭한 마술사가 카드 마술을 할 때처럼 교묘하게 그는 나의 손에 알렉산더 해밀턴 경의 초상화 한 장을 끼워 넣었다. 그는 적응이 빠른 사나이였다. 나는 그에게 락 해머를 구해 주었다. 그걸 하룻 밤 동안 내 방에 가지고 있었는데 꼭 그가 묘사한 대로였다. 그것은 탈출하는 데 쓰일 만한 도구는 아니었지만 (그 락 해머로 담 밑에 구멍을 뚫자면 한 600년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만약 그 곡괭이 끝을 어떤 놈의 대가리에 담근다면 그 놈은 다시는 라디오에서 '파이버 맥기와 몰리' 프로를 듣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앤디는 이미 시스터들 때문에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때문에 락 해머를 원한 것이 아니길 바랬다. 결국 나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기상나팔이 울리기 20분 전 1956년 가석방 될 때까지 5번 구역 복도를 청소한 늙은 모범수인 어니에게 나는 락 해머와 카멜 한 갑을 밀어 주었다. 그것을 그는 아무 말 없이 웃옷 자락에다 넣었고 나는 19년 동안 두번 다시 락 해머를 보지 못했으며 그때는 이미 낡아버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다음 일요일 앤디는 또 한번 운동장에 있는 내게로 왔다. 확실히 그날 그의 얼굴은 볼만한 것이 못 되었다. 아랫 입술은 너무 크게 부풀어서 여름철의 소세지처럼 보였으며 오른쪽 눈은 부어서 반쯤 감겼고 한쪽 뺨에는 빨래판으로 긁힌 자국이 흉칙하게 나 있었다. 시스터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물건 고맙게 잘 받았읍니다." 그는 말하고는 걸어가 버렸다. 나는 궁금증에 차서 그를 쳐다보았다. 몇 발자욱 걷다가 그는 흙 속에서 뭔가를 보고 몸을 굽혀 어들었다. 그것은 조그만 돌 조각이었다. 교도소의 작업복은 기능공들이 입는 것을 제외한다면 호주머니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방법은 있었다. 그 조그만 돌은 앤디의 소매 속으로 사라지더니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했고 그에게 감탄했다. 겪고 있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을 계속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않하고 혹은 그럴 능력이 없는데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감옥안에 있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손은 여전히 깔끔했으며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그후 한 6개월 이상은 그를 자주 보지 못했다; 앤디는 그 기간의 대부분을 독방에서 지낸 것이다. 시스터에 대해서 좀 얘기하겠다. 많은 교도소에서 그들은 불 퀴어스(Bull queers) 혹은 빵간의 수지(Jailhouse susies)로 알려져 있다-극히 최근에는 킬러 퀸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쇼생크에선 언제나 시스터라고 불리웠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름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교도소 내에서 많은 남색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요즘 대부분에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고-운 나쁘게도 날씬하고 미남이며 조심성이 부족한 젊은 신입자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정상적인 섹스처럼 동성애도 수많은 형태와 모양새가 있다. 어떤 종류든 섹스 없이는 견딜수 없는 사나이들이 있고 그들은 미쳐 버리지 않기 위해 다른 사내와 관계를 가진다. 보통 그런 경우에 기본적으로는 이성애자인 두 사나이들 간에 조정이 이뤄진다.-나는 그들이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 돌아갔을때 생각처럼 이성애자일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성향이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요샛말로 그들은 "게이가 된" 것이거나 "변소에서 나온" 것이다. 대개 (항상은 아니다.) 그들은 여성역을 하고 그들을 차지하기 위해 맹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제 시스터가 있다. 그들은 소내에서 일반 사회에서의 강간범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대개 난폭한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장기수들이다. 희생자는 젊은 사람, 약한 사람, 무경험자들이고--. 아니면 앤디의 경우처럼 약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사냥터는 샤워장이나 기계 세탁기 뒤의 구부러진 터널같은 곳이고 때론 양호실이 되기도 한다. 간혹 강당뒤의 화장실만한 크기의 영사실 안에서 강간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스터들이 폭력으로 얻는 것의 대부분은 원한다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성향이 바뀐 자들은 10대 소녀들이 시내트라나 프레슬리, 레더포드에게 그러하듯이 한두 명의 시스터에게 반해 있는것 같으니까. 그러나 시스터들에게 있어서 재미는 강제로 하는 데 있어왔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작은 몸집과 꽤 잘 생긴 외모때문에 (그리고 내가 찬탄한 바 있는 침착성 때문에) 시스터들은 앤디가 이곳으로 걸어들어온 날부터 그를 ㅉ아다녔다. 이 이야기가 동화같은 거라면 나는 앤디가 훌륭히 싸워내어 마침내는 평안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리라. 또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교도소는 동화 속의 세계가 아니다. 첫번 째는 그가 우리의 행복한 쇼생크 가족의 일원이 된지 3일도 안되어 샤워장에서 발생했다. 그땐 그저 많은 모욕과 농지거리 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놈들은 먹이가 겉보기처럼 허약하고 불구인지 알아보는 쟈칼처럼 진짜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상대방을 얼러보기 좋아한다. 앤디는 반격으로 덩치가 커다란 시스터인 보그 다이아몬드에게 펀치를 먹여 입술을 터뜨렸다.-보그란 놈은 오래 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사태가 더 진행되기 전에 경비 하나가 들어와 제지했지만 보그는 다음에 두고 보자고 약속했다.-그리고 실제고 그랬다. 두번 째는 세탁소의 기계 세탁기 뒤였다. 여러 해를 걸쳐서 길고 먼지 투성이인 그 좁은 공간에서 많은 일들이 저질러 졌다; 경비들도 그걸 알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곳은 어두침침했으며 세제겸 표백제 통들과 헥스 라이트 촉매제 통들이 널려져 있었다. 헥스 라이트는 손이 건조할 때는 소금과 같이 무해하지만 젖었을 때는 황산처럼 치명적이다. 거기에는 어떻게 해 볼 공간도 없었으며 이런 곳으로 일하러 들어올 때 맨 먼저 교육 받는 것의 하나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장소에서 죄수들의 공격을 허용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날 보그는 거기 없었지만 1922년 이래 세탁소의 십장이었던 헨리 박커스가 놈의 동료 넷이 그 곳에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앤디는 한동안은 헥스 라이트 한국자를 들고 가까이 오면 뿌려 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놈들의 접근을 막았지만 한 놈의 뒤로 돌아가려다 넘어졌다. 그게 다였다. 놈들을 그를 덮쳤다. 나는 윤간이란 말이 여러 세대를 거쳐도 별로 변함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놈들 넷이 한 일이었다. 그를 공구 상자 위에 엎드리게 하고 일을 치르는 동안 다른 놈은 필립스 스크류 드라이버를 관자노리에 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몸을 좀 찢어뜨린다. 그러나 그리 심하진 않다.-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는 거냐고 묻는가?-그렇지 않다면 오죽 좋았으랴? 한 동안 출혈도 있다. 이제 막 월경을 시작했느냐는 농지거리를 듣고 싶지 않으면 멈출 때까지 화장지 한 다발을 속옷 속에 대고 있어야 한다. 그 출혈을 정말 월경같다. 2-3 일 동안 천천히 흘러 나온다. 그리곤 멈춘다. 놈들이 한층 더 기묘한 짓을 하진 않는 한 해롭진 않다. 육체적인 이상은 없다.-그러나 강간은 강간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앤디는 당시 모든 것을 혼자 겪은 것처럼 그 일도 홀로 겪었다. 그는 앞선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 즉 시스터를 다루는 데는 두가지 방법 뿐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싸우고 당하는냐, 아니면 그냥 당하는냐. 그는 싸우기로 결심했다. 세탁소 사건 후 1주일 쯤 후에 보그와 동료 두 놈이 그에게 따라 붙었을 때 (당시 주변에 있던 어니에 따르면 보그는 '네 놈이 뚫렸다는 말을 내 들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앤디는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는 의붓 딸을 폭행 치사한 죄로 들어온 루스터 맥브라이드라는 무지막지한 전직 농부의 코를 부숴 뜨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덧붙이지만 그는 이 교도소에서 죽었다. 셋 모두 그를 윤간했다. 일이 끝났을 때 루스터와 다른 한 놈이-피트 버니스였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앤디를 강제로 무릎 꿇렸다. 보그 다이아몬드가 그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당시 진주빛 손잡이 양쪽에 다이아몬드 펄이라고 새겨진 면도칼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걸 꺼내 들고 말했다. "이제 내 똘똘이를 꺼낼 건데, 짜샤, 먹으라고 주는 걸 넌 먹어야 돼. 다음엔 루스터 걸 먹구. 네가 이 친구 코를 부순것 같은데 네 생각에도 그 댓가는 치뤄야쟎겠어?" 앤디가 말했다. "네놈이 무얼 내 입에 넣든지 그건 작살날 거다." 보그는 앤디가 정신나간거 아니냐는 듯이 쳐다 보았다고 어니는 전했다. "아니지." 그는 앤디가 어리석은 아이인 것처럼 천천히 말했다. "넌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구만. 그런 짓을 하면 이 8인치 쇠붙이가 전부 다 네 귓 속으로 들어간다 말이야, 내말은. 알겠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네놈이 오히려 내 말귀를 못알아 듣는단 말이야. 난 입속에 들어오는 무엇이든 물어뜯을 거야. 내 뇌 속에 면도칼을 넣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점도 알아야 될 걸. 갑작스럽고 심각한 뇌 손상은 똥 오줌을 싸게하고 단단히 이를 악물게 한다는 점을 말이야. " 늙은 어니는 그가 셋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공격 받는게 아니라 주식과 채권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는 양 가벼운 웃음을 띄고 보그를 올려다 보았다고 전했다. 더러운 변소 바닥에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피가 허벅지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무릎 꿇고 있는게 아니라 세겹으로 된 은행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사실 그 반사적으로 무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입은 쇠지레나 쟈키를 써야만 열수 있다고 하던데?" 보그는 1948년 2월의 그날 밤 아무것도 앤디의 입에 넣지 않았으며 루스터 맥브라이드도 그랬고 내가 아는한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놈들이 한 일은 그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일이었고 결국에는 넷 모두 독방행이었다. 앤디와 루스터 맥브라이드는 양호실을 거쳐서 갔다. 그 패거리들이 몇 차례나 그를 덮쳤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루스터가 일찌감치 그 취미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코가 부서져 3개월간 치료를 받은 것이 그런 작용을 할수 있었다.-그리고 보그 다이아몬드는 그해 여름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7월 초의 어느날 아침 아침 점호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는 지독하게 두들겨 맞은 상태로 자기 방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해서 가해자들이 그에게 갈 수 있었는지 말하려 들지 않았지만 간수들은 뇌물을 먹으면 총을 구해주는 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을 나는 나의 거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 월급은 많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당시에는 전자식 문도 없었고 폐쇠 회로 TV나 교도소 전 지역을 통제하는 마스터 스위치도 없었다. 1948년 당시에는 각각의 구역에는 열쇠를 가진 간수가 있었다. 뇌물을 먹고 그들은 손쉽게 두셋 쯤은 구역안으로 들여 보낼 수가 있었고, 그렇다, 심지어 다이아몬드의 감방안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같은 일을 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 것이다. 바깥의 기준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교도소의 경제는 규모가 더 작다. 여기에 잠시 있어보면 손 안에 쥔 1달러 지폐가 바깥에서의 20달라 보이듯 할 것이다. 보그가 만약 이런 식으로 당한 거라면 그 비용은 잔돈 정도 밖에 안들었을 것이다.-아마도 간수에게 15달러, 가해자에게 두 당 2-3달라 정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앤디 듀프레인이 한 거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들어올때 500달라를 들여왔으며 바깥에서 은행원이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그것은 그가 돈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나이라는 뜻이다. 나는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다; 두들겨 맞은 다음-갈비뼈 세대가 부러지고 안구출혈에다 등뼈가 삐고 엉덩이뼈 탈골.-보그 다이아몬드는 앤디를 건드리지 않았다. 실제 그 후에는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맹렬히 불어대지만 괴롭히지는 않는 여름날 고공에서 부는 바람과도 같이 된 것이다. 실상 '연약한 시스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앤디가 만약 방지책을 취하지 않았다면 (조치를 취한 것이 그라면) 그를 결국 죽이고 말았을 보그 다이아몬드의 종말이었다. 하지만 시스터들로부터 받는 앤디의 고통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얼마후 그것은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이전보다 심하지 않았고 더 빈번하지도 않았다. 쟈칼은 손쉬운 먹이를 좋아하고 앤디보다 쉬운 먹이는 도처에 있었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앤디는 언제나 그들과 싸웠다. 그는 한 차례라도 싸우지 않고 하는대고 내버려 둔다면 다음번에는 싸워서 막아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같다. 그래서 앤디는 때때로 얼굴에 멍이 든 채로 나타났으며 다이아몬드가 두들겨 맞은 후 6개월인가 8개월 후 손가락 2개가 부러진 일도 있었다. 참, 그리고 1949년 말 언젠가 얼굴뼈가 부러져서 양호실에 입원한 일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 가격부위를 플란넬 천으로 감은 묵직한 쇠 파이프를 휘두른 결과일 터였다. 그는 항시 반격했고 결과는 독방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처럼 독방 생활이 앤디에게 고통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 잘 지낸다. 시스터 문제는 그가 자신을 적응시킨 문제였다.-그리고 1950년에 그것은 완전히 끝났다. 그 이야기는 적절한 시기에 말해야 할 이 글의 일부이다. 1948년 가을 어느 아침 앤디는 운동장에서 내게 락 블랭킷 6장 구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왔다. "그게 도대체 뭔가?" 나는 물었다. 그건 광석 수집광들이 부르는 명칭이라고 앤디는 설명했다; 그건 접시 타월만한 크기의 윤 내는 천입니다. 거친 면과 부드러운 면이 붙여져 있는데요-부드러운 면은 결 고운 사포고요, 거친 면은 산업용 연마 강철 솜처럼 거칩니다. (앤디는 또한 내가 구해 주지 않았는데도 자기 방에 강철 솜을 한 박스 간직하고 있었다.-아마 소내 세탁소에서 슬쩍한 것같았다.) 난 그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락 해머를 구한 보석상에서 그 물건을 입수했다. 이번에는 1페니도 더 받지 않고 보통대로 10%의 요금을 요구했다. 나는 사방 7인치의 덧댄 천 6장에서 치명적이라거나 위험스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말 락 블랭킷이었다. 앤디가 내게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온 것은 5개월 후였다. 그 얘기는 영화 관람 도중 강당에서 있었다. 오늘날에는 일주일에 1-2번 영화를 보지만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행사였다. 우리가 보는 영화는 보통 도덕심을 앙양시키는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 것인 '잃어버린 주말'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음주는 위험하다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약간의 마음의 위안을 주는 교훈이었다. 앤디는 요령있게 내 옆으로 와서 영화 중간 쯤에 약간 몸을 내게 기울이며 리타 헤이워드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을 말하면 좀 우스웠다. 평상시 침착 냉정한 그가 그날 밤은 한 갑의 트로이잔이나 잡지에서 말하는, '혼자있는 즐거움을 높여주는' 양 가죽을 댄 기구를 구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흥분해 있었고 거의 당황해 하고 있었다. 자제심을 잃기 저의 과도한 흥분 상태였다. "구해줄 수 있지." 나는 말했다. "문제 없어. 진정하라구. 그래 자넨 큰 걸 원하나, 작은 걸 원하나?" 당시에 리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였고 (몇 년 전 까지는 베티 그레블이었다.) 두 가지 크기였다. 1달라로는 작은 리타를 구할 수 있었다. 2달라 50센트로는 4피트 크기의 진짜 여자 같은 큰 리타를 구할 수 있었다. "큰 걸루요."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분명히 그는 그날 밤 완전히 볼 만했다. 형의 징병 카드로 쿠치쇼에 들어가려는 청소년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할 수 있죠?" "진정해. 확실히 구해 줄 테니까. 숲에서 곰이 똥을 쌌나 왜 그래?" 관객들은 벌레들이 벽에서 기어나와 알콜성 섬망증에 걸린 레이 밀란드를 공격하자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댔다. "언제쯤요?" "일 주일. 더 빠를 수도 있고." "좋아요." 하지만 그 음성은 당장 내가 바지에서 꺼내 주길 바라듯이 실망을 담고 있었다. "얼마죠?" 도매 가격을 말했다. 나는 그것을 원가에 제공할 수 있었다; 그는 락 해머나 락 블랭킷처럼 훌륭한 고객이었으니까. 게다가 좋은 놈이었다.-보그나 루스터 패거리들로부터 고통을 당할 때 가끔 나는 언제쯤 그가 락 해머로 놈들의 두개골을 박살낼까 생각에 잠겼었다. 포스터는 거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술 담배 다음이고 대개는 마리화나가 들은 권련보다도 약간 더 나았다. 60년대에 그 사업은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이지 라이더 포스터를 원하는 사람들로 굉장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를 원했다; 포스터의 주인공은 차례로 바뀌었다. 며칠 후 당시 나와 함께 사업을 하던 세탁소 운전사가 60장 이상의 포스터를 들여왔는데 그 대부분이 리타 헤이워드였다. 아마 그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수영복 같은 것을 입은 리타는 한 손은 머리뒤로 하고 눈은 반 쯤 감은 채 육감적이고 붉은 입술을 벌리고 있었다. 보통 그건 리타 헤이워드라고 불렸지만 뜨거운 여자라고 부르는 편이 나았으리라. 궁금해 할것 같아서 말인데 교도소 당국은 암시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아마도 내 장사에 대해서 거의 나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교도소란 압력 밥솥과 같아서 수증기를 내보낼 만한 구멍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를 묵인하는 것이다. 때로는 법석을 떨어서 일 년에 한 두번은 나로 하여금 독방 신세를 지게 하지만 포스터같은 것은 그냥 눈감아 준다.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니까. 커다란 리타 헤이워드가 어떤 죄수의 감방에 나타나면 친구나 친척으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것이려니 한다. 물론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온 소포는 모두 개봉되고 내용물 목록이 작성되지만 누가 리타 헤이워드나 에바 가드너의 포스터처럼 무해한 물건 때문에 돌아가서 목록을 점검하겠는가? 압력밥솥 속에 있을 때는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목울대 위에 구멍을 낼 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방인 6호실에서 앤디 방인 14호실로 포스터를 갖다 준 것 역시 어니였다. 그는 앤디의 조심스런 필체로 씌어진 메모를 가지고 왔는데 한마디 '고맙습니다. '였다. 좀 있다가 아침식사 집합을 할 때 그의 방을 흘긋 보고 리타가 침대 위쪽에서 찬란한 수영복 차림에 한 손을 머리 뒤로 하고 눈을 반 쯤 감은 채 비단 같은 입술을 벌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밤에 소등후 운동장의 나트륨 불빛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포스터는 있었다. 하지만 밝은 햇살에는 그녀 얼굴에 어둔 그늘 자국이 드리워졌다.-유일한 작은 창에 있는 철창의 그림자이다. 이제 시스터와의 3년에 걸친 앤디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은 1950년 5월 중엽의 사건에 대해서 말하겠다. 또한 그것은 그가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을 떠날 때까지 세탁소를 벗어나 도서관에서 노동시간을 채우게 한 사건이었다. 이미 내 이야기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전해들은 이야기인가 느끼고 있을 줄로 안다.-누군가가 뭔가를 보고 내게 이야기를 해 주고 내가 전하는 식이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단순화시키기도 했고 네 다섯 다리 거친 정보를 반복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그것이 여기의 방식이다. 풍문은 대단히 진실된 것이고 앞서 나가려면 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거짓말과 루머와 단순한 희망사항의 왕겨 속에서 진실의 낟알을 골라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내가 사람이기보다 전설에 가까운 어떤 사나이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고 느낄 줄로 안다. 그점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점을 나는 동의해야만 한다. 여러 해를 거쳐 앤디를 알고 지낸 우리 장기수들에 있어선 그에겐 어떤 환상적인 요소가, 내 말뜻을 이해한다면, 신비한 마술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가 보그 다이아몬드의 요구를 거절한 이야기도 신화의 일부이고, 어떻게 시스터들과 싸워 나갔는지 하는 것도 그렇고, 또 어떻게 도서관일을 얻었는지 하는 것도 그 일부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현장에 내가 있었고 사건을 목격했고 그것이 모두 진실이라는 걸 엄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는 점이다. 유죄판결을 받은 살인자의 맹세가 뭐 그리 대단한 가치가 있을까만은 이점을 믿어주길 바란다: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때 쯤 앤디와 나는 꽤 친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를 매혹시켰다. 포스터일을 회고해 보자니 한가지 빼먹은 이야기가 있다. 리타를 걸어놓은 지 5주 후 (난 그때 그 일은 까맣게 잊고 다른 거래를 하고 있었다. ) 어니가 내 방 창살 틈으로 조그만 흰 색 박스를 들이밀었다. "듀프레인한테서 온 거예요." 낮게 말하며 그는 미는 빗자루로 밀어 넣는걸 잊지 않았다. "고맙네, 어니." 나는 카멜 반 갑을 밀어주었다. 자, 이제, 이 빌어먹을 게 뭐란 말인가? 박스의 포장을 풀면서 궁금해 했다. 안에는 흰 솜이 많았고 그 아래에는--. 나는 오랫동안 들여다 봤다. 몇 분 동안 감히 그것 만질 생각을 못했던 것같다. 그토록 예뻣다. 여기선 미란 거의 없었고 정말로 애석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스 안에는 잘 닦인 2개의 수정이 있었다. 드리프트 우드 형태로 가공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조그만 황철광들이 금가루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겁지만 않다면 남자옷의 훌륭한 커프스 단추역할을 할수 있을것 같았다.-그토록 잘 어울리는 세트였다. 이 두 조각의 수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이 투입되었을 것인가? 불이 꺼지고 나서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노력을 쏟아 부어 만든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느끼는 따뜻함을 느꼈고-노력을 쏟아 부어 만든 물건은 정말로 우릴 동물과 구분해 준다고 생각한다.-동시에 다른 무엇도 느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인내력에 대한 외경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앤디 듀프레인의 인내력이 무서운 것인지 나중까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1950년 5월 교도소 당국은 자동차 번호판 공장 지붕을 타르로 다시 칠해야 겠다고 결정했다. 당국은 그곳이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일을 했으면 했고 1주일로 계획된 그 작업을 위해 자원자를 요청했다. 그 일은 외부 작업인데다가 5월은 바깥에서 일하기에 너무나 좋은 때이므로 70명 이상이 나섰다. 모자에서 9명인가 10명의 이름이 뽑혔고 나와 앤디도 그 안에 있었다. 다음 주 동안 우리들은 아침 식사후 운동장으로 행진해 갈 것이었다. 경비가 앞에 둘, 뒤에 넷 함께 가고 게다가 경비탑의 모든 경비들이 고성능 망원경으로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 중 넷은 아침 행진에 대형 신축 사다리를 옮기게 되고-일을 맡은 디키 베츠가 그런 사다리를 '늘어나는 거' 라고 부를 땐 항상 재밌었다.-그리고그것을 낮고 칙칙한 건물에 올려 놓게 된다. 그러면 뜨거운 타르가 담긴 바께쓰를 지붕으로 옮기는 군단이 되는 것이다. 그 똥같은 것을 몸에 엎지르는 날에는 양호실까지 계속 지루박을 추며 가게 된다. 경비 6은 모두 고참들 중에서 뽑혔다. 그것은 거의 일 주일의 휴가와 같았는데 왜냐하면 세탁소나 번호판 공장에서 진땀 흘리거나 어딘가에서 펄프나 나무자르는 죄수들을 작업 감독하는 대신 낮은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허튼 소리를 지껄여 대며 정해진 5월의 휴가를 즐기게 되기 때문이다. 남쪽 벽의 경비탑이 그곳의 경비들이 그러고 싶다면 우리에게 침을 뱉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왔기 때문에 경비 여섯은 한 쪽 눈에 반도 우리를 지켜 볼 필요가 없었다. 지붕을 바르는 일당 중 어떤 놈이라도 우스운 동작을 한다면 캘리버 .45자동소총의 총알이 4초 안에 그를 두 동강낼 것이었다. 해서 이 간수들은 가만히 앉아서 쉬기만 하는 것이다. 원하는 전부는 얼음덩이에 묻어둔 6개 묶음 맥주 2짝이었으며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그들중 하나는 바이런 해들리란 친구인데 1950년 당시 나보다 고참이었다. 사실 최근의 소장 둘을 합한 것보다 오래 근무했다. 1950년에 쇼우를 관장한 친구는 좀스럽게 생긴 뉴 잉글런드 태생의 죠지 듀나이였다. 그는 교도소 행정 책임자였다. 내가 아는한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를 임명한 사람들만 빼고 말이다. 나는 그가 세 가지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다; 책을 쓰기 위해 통계를 편집하는 일(나중에 그것은 라이트 사이드 프레스라는 뉴 잉글랜드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아마도 그러기 위해 자신이 돈을 내야 했을 것이다), 매년 9월 어느 팀이 소내 야구 대회에서 우승하는가, 그리고 메인 주에 사형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 사형죄에 해당될 놈은 바로 죠지 듀나이였다. 그는 1953년 소내 주차장에서 할인 정비업을 운영해서 이득을 바이런 해들리와 죠지 스타마스와 분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때 짤렸다. 해들리와 죠지 스타마스는 한번 용서되었지만-그 둘은 위기를 모면할 만치 노회했다.-듀나이는 나갔다. 누구도 이를 아쉬워 하지 않았지만 그렉 스타마스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 역시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배짱이 두둑하고 몹시 냉혹해 보이는 갈색 눈을 가진 작은 몸의 사나이였다. 화장실에 가야만 하겠는데 일이 잘 안될것 같이 항시 얼굴을 약간 고통스럽게 찡그리고 있었다. 그가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쇼생크에선 잔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증거는 없지만 나는 교도소 동쪽의 관목 숲 아래에서 6명 쯤은 암매장되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듀나이는 못된 놈이지만 스타마스는 잔인하고, 사악하고, 냉혹한 심장을 가진 놈이었다. 그와 바이런 해들리는 상당히 친했다. 소장으로서 죠지 듀나이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교도소를 사실상 지배한 것은 스타마스와 소장을 통한 해들리, 둘이었다. 해들리는 숱이 적은 붉은 색 머리털에 키가 컸고 걸음걸이는 비틀거리듯 했다. 햇볕에 약한 피부를 가진 그는 목소리가 컸는데 그 지시에 따라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들고 있는 몽둥이로 후두려 패기 일쑤였다. 지붕 위에서 3일째 되던 그 날, 그는 머트 앤트휘슬이라는 다른 경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해들리는 놀랍도록 좋은 소식을 접했는데 그래서 그것에 관해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감사할 줄 모르는 누구에게도 좋은 소리를 하는 법 없는 인간이고 세계 전체가 자신에게 적대한다고 확신하는 놈이었다. 세상은 그를 속여 인생의 좋은 시절을 뺏어 갔고 즐거이 나머지도 앗아갈 것이었다. 나는 거의 성자와 같은 몇몇 간수를 보아왔으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이러하다.-즉,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비참하더라도 자신들이 주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고 감시하는 죄수들의 삶과의 차이를 알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이라는 것에 대하여 늘 비교를 할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은 할 수도 없고 하려 들지도 않는다. 바이런 헤들리에게는 그 비교의 기본조차 없었다. 부글부글 끓는 타르가 들어있 는 커다란 바께스에 손을 데어가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불과 10피트도 안 떨어져 있는데도 그리고 그들은 평소의 노동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같은 일은 휴식으로 여길 뿐인데도 따뜻한 5월에 태양아래 시원한 그늘에 앉아 뻔뻔스럽게도 자신의 행운을 한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인생관을 알아보는 오래된 질문을 기억할 것이다. 바이런 헤들리에게 대답은 언제나 '반이 비었다. 잔은 반이 비었다.'일 것이다. 영원히. 아멘. 만약 그에게 시원한 사과 술 한 잔을 준다면 그는 식초를 연상할 것이다. 그에게 부인이 언제나 그에게 충실해왔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건 그년이 지독하게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 그는 거기 앉아서 우리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머트 앤트휘슬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넓고 흰 이마는 이미 태양열에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손은 지붕을 둘러 싼 낮은 난간 너머로 내놓고 다른 손은 .38구경의 손잡이에 가 있었다. 머트와 함께 우리 모두도 그 얘기를 들었다. 해들리의 형이 한 14년 전에 텍사스로 가버렸는데 가족들은 그 후 그 개자식으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후련하게 여겼다. 그러고 한 10일 전쯤에 변호사 하나가 오스틴에서 장거리 전화를 가족들에게 걸어온 것이다. 하들리의 형이 4개월 전에 부자로 사망했다는 것이다('어떤 똥구멍같은 새끼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믿을 수가 없단 말야' 라고 번호판 공장 지붕위의 감사의 화신은 말했다. ) 재산은 오일과 오일 리스로 모은 것인데 백만 달러 가까이 되었다. 아니, 헤들리가 백만 장자가 되었다는게 아니다.-그랬다면 최소한 잠시나마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하지만 형은 메인에 남아 있는 생존 가족이 견된다는 것을 조건으로 각각 3만 5천달라라는 꽤 많은 유증을 남겼다. 괜챦은 액수인 것이다. 운이 좋아서 판돈을 싹 휩쓴 거나 같다. 하지만 헤들리에겐 잔은 언제나 반이 빈 것이다. 그는 아침의 대부분을 유산에서 그 빌어먹을 정부가 떼어갈 몫에 대해 머트에게 불평을 늘어 놓으며 보냈다. "놈들은 새 차를 살 만한 돈은 남겨 주겠지." 그는 인정했다. "그리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차에다 세금을 내야지. 보수비에다 유지비에다. 또 빌어먹을 자식 새끼들은 차 뚜껑을 열고 태워 달라고 들들 볶아댈 테지--." "아이들이 컸다면 지들이 운전해 보겠다고 조르겠지요. "머트는 말했다. 여우같은 머트 앤트휘슬은 빵의 어느면에 버터가 발라져 있는지 알고 있었고 우리 나머지에게 처럼 자신에게 명백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돈이 그토록 당신을 괴롭힌다면 바이런 씨, 제가 당신 수중에서 그걸 뺏어주면 되지 않겠소? 결국 친구 좋다는게 뭡니까? "맞았어. 지들이 운전하려구 그럴거야. 그걸로 운전을 배울려구 할지도 몰라. 으, 빌어먹을--." 바이런은 몸서리쳤다. "그리구 연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세금을 잘못 계산해서 수표를 지불할만큼 돈이 남아있지 않으면 생 돈으로 메꾸거나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야 된단 말이야. 어쨋든 놈들은 회계검사를 한단 말야. 그건 문제가 안돼. 정부가 회계검사를 하면 언제나 더 울궈내지. 누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가? 정부는 손을 셔쓰 속으로 쑥 넣고 퍼렇게 멍이 들 때까지 젖꼭지를 쥐어 짠단 말이야. 그리군 난 간단하게 끝장나는 거지. 오, 하나님!" 그는 3만 5천 달라의 유산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끔찍한 불행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울한 침묵에 빠졌다. 앤디 듀프레인은 15피트도 안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패드 붓으로 타르를 칠하고 있었는데 막 그것을 바께스에 던져넣고 머트와 해들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 모두는 긴장했다. 다른 경비인 팀 영블러드의 손이 권총이 꽂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경비탑의 경비 하나가 동료의 팔을 툭 쳤다. 둘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 한순간 나는 앤디가 총을 맞거나 곤봉으로 터지거나 그 둘 다일거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는 매우 부드럽게 해들리에게 말을 건넸다; "아내를 믿습니까?" 해들리는 보고만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는데 내가 알기로 그건 나쁜 징조였다. 3초 안에 곤봉을 꺼내 거대한 신경다발이 있는 태양 신경총 부위를 굵은 쪽으로 가격할 것이었다. 충분히 세게 가격하면 죽을 수도 있고 놈들은 그렇다고 해서 망설이지 않는다.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희생자를 오래도록 전신마비시켜 과거의 몸 놀림이 어떤 것이었는지조차 잊게 만든다. "야!" 해들리는 말했다. "그 붓을 집어 들 기회를 딱 한번만 주겠다. 다음번엔 지붕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거다." 앤디는 매우 냉정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은 얼음장같았다. 아무소리도 못 들은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은 그에게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였다. 그것은 간수들의 말을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하지마라, 물어보지 않으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 해선 않된다, 는 것이다(그리고 항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딱 하고 입을 다물어라). 흑인이건 백인이건 홍인이건 황인이건 모두는 동등하다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교도소 안에서는 그런 건 문제가 안된다. 교도소에선 모든 죄수는 흑인과 같은 존재이고 만약 죄수들을 죽이는 것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해들리나 스타마스 같은 놈들로부터 살아남고 싶다면 이런 규칙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교도소 안에 있을 땐 국가에 속한 존재이고 이를 잊으면 재난이 닥친다. 나는 두 눈을 잃은 사람, 손발가락을 잃은 사람을 알고 있다; 성기 끝이 달아난 사람도 있는데 그는 그것밖에 잃은 것이 없으니 자기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앤디에게 너무 늦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돌아가서 붓을 주워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날 밤 두 다리를 경직시키고 시멘트 바닥에서 몸부림치게 할 굉장한 고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담배 한 갑으로도 그같은 고문을 초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미 진행된 것 이상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전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지붕에다 타르를 바른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 자신을 먼저 챙긴다. 또 그래야만 한 다. 사태는 이미 금이 갔고 쇼생크에는 이것을 부숴버리는 일을 기꺼이 하는 해들리같은 놈들이 항상 있는 것이다. 앤디는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말한 것 같군요. 부인을 믿는가고 물은 것은 마음적인 게 아닙니다. 문제는 부인께서 당신의 등뒤로 가서 당신에게 치명타를 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해들리는 일어섰다. 머트도 일어섰다. 해들리의 얼굴은 소방서의 벽처럼 새빨개졌다. "네 놈의 유일한 문제는 성한 뼈가 몇 개나 될 것인가 그거다. 양호실에서 세 보면 알 거다. 머트, 이리와! 이 새끼를 바깥으로 던져 버리자구. " 팀 영블러드는 총을 빼 들었다. 우리들 나머지는 미친 듯이 타르를 칠하고 있었다. 태양이 작열했다. 놈들은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이다; 해들리와 머트는 간단히 그를 바깥으로 던져 버릴 것이다. 끔찍한 사고다. 죄수 번호 81433-SHNK 듀프레인은 빈 통 2개를 아래로 가지고 내려 가다가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정말 안됐다. 머트가 오른 팔을 해들리가 왼 팔을 잡았다. 앤디는 저항하지 않았다. 시선은 해들리의 붉은 말대가리 같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인을 손아귀에 넣고 있다면, 해들리 씨." 여전히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돈의 단 1센트라도 전부 못 가질 이유가 없지요. 바이런 해들리 씨는 결국 3만 5천 달라를 차지하고 미국 정부는 입을 꾹 다무는 거죠. " 머트는 가장자리 쪽으로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해들리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잠시동안 앤디는 줄다리기 경기의 줄이 된 형상이었다. 이윽고 해들리가 말했다. "머트, 잠깐만 기다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엉?" "제 말은 당신이 부인을 손아귀에 넣고 있다면 그 돈을 그녀에게 증여하란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알기 쉽게 말하라구! 안 그러면 떨어진다." "국세청은 배우자에게 단 1회의 증여를 허용하고 있읍니다." 앤디는 말했다." 6만 달라 까지는 괜챦습니다." 해들리는 이제 도끼로 얻어맞은 것처럼 앤디를 쳐다보았다. "아냐, 그럴리가." 그는 말했다. "세금 없이?" "세금 없이." 앤디는 말했다. "국세청은 단 1센트도 손대지 못하죠." "그런걸 어떻게 알게 됐어?" 팀 영블러드가 말했다; "쨔식은 은행에 있었거든요. 저는 이 놈이--." "닥쳐! 이 송어야! 해들리는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팀 영블러드는 얼굴이 붉어져서 입을 다물었다. 몇몇 간수들은 두꺼운 입술과 튀어나온 눈 때문에 그를 송어라고 불렀다. 해들리는 계속 앤디를 보고 있었다. "네 놈은 여편네를 쏴 죽인 똘똘한 은행원이지? 너 같이 얍삽한 은행원을 내가 믿을것 같으냐? 결국 내가 너 바로 옆에서 돌을 찾아 다닐 수도 있겠지? 너 그걸 노린 거지? 안 그래? 엉?" 앤디는 조용히 말했다; "탈세로 감옥에 간다면 연방 형무소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안 갈 거요. 배우자에게 하는 면세 증여는 완벽한 법의 헛점입니다. 저는 그걸 수 십, 수 백 번은 했지요. 그건 작은 사업체를 위장하거나 단 한 번 유증을 받은 사람을 위한 겁니다. 당신처럼 말예요." "거짓말 같은데." 해들리는 말했다. 하지만 생각은 달랐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얼굴에는 하나의 감정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건 음울하고 추한 표정과 움푹하고 햇볕에 그을린 눈썹에 겹쳐진 기묘한 무엇이었다. 그건 바이런 해들리의 얼굴에 나타났을 때는 혐오스런 감정이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아뇨. 거짓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제 말을 거짓으로 여길 이유도 없구요.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해들리가 고함쳤다. 앤디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국세청으로 가보세요. 공짜로 똑같은 말을 해 줄 겁니다. 사실 제가 필요없는 지도 모르지요. 당신 스스로 조사해 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씨팔 새꺄! 난 곰이 메밀밭 어디에서 똥을 쌌는지 너같이 여편네를 쏴 죽인 얍삽한 은행원 한테 물어보지 않겠어!" "증여를 처리하기 위해선 세무 변호사나 금융인이 필요하겠지요. 그러자면 비용이 들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아니면--. 원하신다면 기꺼이 제가 거의 공짜로 일을 해 드리지요. 비용은 제 작업 동료들에게 맥주 3병씩 주는 걸로 하죠." "작업 동료?" 머트가 말하고는 쉰 목소리로 웃어댔다. 무릎을 탁 쳤다. 여우같은 머트는 정말 같잖은 놈이다. 몰핀이 발견되지 않은 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 대장암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작업 동료? 그거 웃기는 소린데. 작업 동료라구? 너 무슨--." "그 빌어먹을 입 닥쳐!" 해들리가 으르렁댔고 머트는 입을 다물었다. 해들리는 앤디를 다시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대가로 제 동료들에게 맥주 3병 씩을 사 주시라고 말하는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제 생각에 맥주를 마신다면 정말 봄날 야외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할것 같으니까요. 제 의견일 뿐입니다. 맥주 맛이 기막힐 겁니다. 또 사람들이 당신에게 감사할 거구요." 나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동료 몇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레니 마틴, 로건 세인트 피에르, 폴 봉상등도 여기 포함된다.-그때 우린 똑같은 것을 보았고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레 승기를 잡은 것은 앤디였다. 허리에 총을 차고 손에 곤봉을 든 것은 해들리였고, 그의 배후에는 친구엔 그렉 스타마스가 있고, 스타마스 뒤에는 전체 교도소 권력이 있었고, 그 뒤에는 주 정부의 전체 권력이 있었지만 갑자기 그 황금 빛 태양아래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1938년 나를 포함한 5명의 죄수를 태운 트럭이 정문으로 들어오고 그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온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가슴 속의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앤디는 그 차갑고 고요한 맑은 눈으로 해들리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순간 3만 5천 달라라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는데 우린 의견이 일치했다. 나는 그 점을 되풀이 되풀이 생각해 보았고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사나이대 사나이의 문제였고 인디언 레슬링에서 강자가 약자의 손목을 테이블쪽으로 밀어붙이는 식으로 단순히 앤디는 그를 제압하고 있었다. 해들리가 그 순간 머트에게 동의하고 앤디를 거꾸로 집어 던지지 않고 여전히 그의 조언을 듣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맘만 먹으면 놈들한테 맥주 두 병씩 줄 수 있지." 해들리는 말했다." "일하면서 먹는 맥주는 정말 맛있지." 그 지독한 놈이 관대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굳이 귀챦게 해주지 않을 조언을 저는 해 드리는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시선은 깜박거리지 않고 해들리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확신한다면 그 돈을 부인에게 증여하도록 하세요. 만약에 부인이 배반하거나 등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도 ---" "나를 배반해?" 해들리가 거칠게 소리쳤다. "나를? 은행원 나리, 똥차 옆에서 식사 중 이더라도 내 허락 없인 방귀도 못 뀔 여자야!" 머트와 영 블러드 그리고 다른 경비들은 의무적으로 껄껄거렸다. 앤디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제가 필요한 서식들을 적어 드리지요." 그는 말했다. "그것들은 우체국에서 구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제가 싸인만 하면 되게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 이 말은 알맞은 정도로 중요하게 들렸으며 이에 해들리의 가슴은 부풀었다. 다음 우리들을 노려보고 소리쳤다. "새끼들 뭘 보고 있어? 엉덩이들을 움직여! 이 개새끼들아!" 그는 다시 앤디를 보았다. "너 이리 와서 내 말 잘 들어; 조금치라도 날 속이려는 거라면 네 대갈통은 이번 주안에 C 샤워장 근처에서 굴러다닐 거다. 이해가 가? "예, 이해합니다." 앤디는 조용히 말했다. 그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나보다도, 아니 어느 누구보다도 그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은 위와 같은 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작업 종료 하루 전 1950년 번호판 공장 지붕을 칠하던 죄수 작업반원들이 봄날 아침 10시에 일렬로 앉아 쇼생크 교도소에서 가장 악랄한 간수가 제공한 블랙 라벨 맥주를 마시게 되었던 것이다. 맥주는 오줌처럼 미지근했지만 평생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우리는 햇볕을 어깨에 느끼며 맥주를 마셨고 해들리의 얼굴에 나타난 반쯤은 재미있다는듯 반쯤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마치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가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듯한-도 우리의 기분을 잡치지 않았다. 맥주 타임은 20분 동안 계속되었으며 우리는 자유인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들 자신들의 집 지붕을 타르로 칠하면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는 것이니까. 오직 앤디만이 마시지 않았다. 그의 음주 습관에 대하여는 이미 말하였다. 그는 그늘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무릎 사이에서 손을 흔들흔들하며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를 띄운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러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이며 그가 해들리를 굴복시켰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는지도 마찬가지이다. 내게는 9-10명으로 기억되지만 사람들의 주장을 곧대로 믿는다면--. 1955년에 이르자 200명 이상이 되었다. 그렇다-. 내가 한 사나이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조그만 핵을 둘러싸고 있는 진주처럼 그의 주위에 만들어진 전설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하여 솔직한 대답을 해 주길 원한다면-그 대답은 그 둘의 어느 중간 어디쯤에 있다고 할 밖에 없다. 확실히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나나 내가 이 안에 들어온 후 알게 된 어느 누구와도 앤디 듀프레인을 달랐다는 점이다. 그는 뒷 구멍으로 500달라를 들여왔지만 그건 어떤 새끼라도 마찬가지로 할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랄까,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느낌, 아니면 단순히 이 빌어먹을 회색 벽 안쪽에서도 잃지 않고 있는 자유의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주위를 밝히는 내적인 불빛이었다. 나는 단 한 번 그 불빛이 꺼진 일을 알고 있는데 역시 이 글의 일부이다. 1950년 월드 시리즈가 시작되면서-기억하겠지만 그 해 필라델피아 휘즈 키즈는 4연속 패했다.-앤디는 시스터들로부터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었다. 스타마스와 해들리가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자신들이나 한통속인 간수 누구에게라도 찾아오거나 속 옷에 핏방울 하나라도 비치는 날이면 쇼생크의 시스터들 모두 곤욕을 치르게 될 판이었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지적했듯이 쇼생크에는 항시 18살 짜리 차량 절도범이나 방화범, 유아 추행범들이 있었으니까. 번호판 공장 지붕 위의 사건 이후 앤디는 앤디대로 시스터들은 또 그들대로 제 갈 길을 갔다. 그는 브룩스 핼튼이라는 터프한 늙은 죄수 밑에서 도서관 일을 하게 되었다. 핼튼은 초급 대학 교육 덕에 1920년대 말부터 그 일을 맡았었다. 사실 브룩스의 학위는 축산업에 관한 것이었지만 쇼생크처럼 수준 낮은 기관이라면 초급 대학 교육도 너무나 희귀한 것이어서 말하자면 그건 거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경우였다. 쿨리지가 대통령이었을 무렵 포커에서 패할 것 같다는 이유로 부인과 딸을 살해했던 브룩스는 1952년 가석방되었다. 늘 그렇듯이 지혜로운 주 정부는 그에게 가능했던 사회의 유용한 일원이 될 모든 기회가 사라져 버린 후에야 그를 내보냈다. 한 손에는 가석방 증서를, 다른 손에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표를 쥐고 폴란드 옷에 프랑스 제 신을 신고 비틀거리듯 교도소 정문을 나설 때 그의 나이 68살이었고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그는 울면서 떠났다. 쇼생크는 그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에게 담 너머의 세상은 미신적인 14 C 의 선원에게 서쪽 바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교도소에선 그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도서관원이었고 교육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키터리 도서관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 보았자 그들은 도서카드조차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1953년 프리포트 길 위쪽의 빈민 노인을 위한 집에서 죽었는데 내 예상보다 6개월이상 더 버틴 셈이었다. 그렇다. 나는 주 정부가 부룩스를 죽게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 놈들은 이 똥같은 집에서 그 일을 좋아하도록 훈련시켜 놓고 바깥으로 집어던진 것이다. 앤디는 그를 이어받아 23년간 도서관 일을 했다. 그는 도서관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바이런 해들리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의지의 힘을 사용했고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축약판과 내셔날 지오그래픽이 꽂힌 조그만 방(그 방은 1922년 까지 페인트 광이었고 제대로 환기된 적이 없었으므로 여전히 테레빈 냄새가 났다) 이 서서히 뉴 잉글랜드에서 가장 훌륭한 교도소 도서관으로 변모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한 번에 한 발짝씩 나아갔다. 문 옆에 건의함을 설치해서 '섹스 소설을 더 달라' 혹은 '10가지 탈출 방법'과 같은 장난 건의를 꾸준히 솎아 냈다. 그는 죄수들이 진지하게 여기는 것만 취했다. 뉴욕의 주요 독서 클럽에 편지를 띄웠으며 그 중 '문학 안내'와 '월례 독서 클럽'으로부터 그들의 주요 선집을 염가에 얻어냈다. 또 죄수들이 비누 세공이나 목공, 마술, 혼자하는 트럼프 놀이 같은 사소한 취미에 관한 정보를 갈망한다는 걸 알자 이런 내용을 담은 책들도 힘 닿는 데까지 구했다. 교도소에서 주요한 두 작가는 얼 스탠리 가드너와 루이스 라모였다. 죄수들은 법정 싸움이나 잡다한 사건들에 대하여 아무리 하여도 질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상 밑에 싸구려 통속 소설을 한 박스 마련해 놓고 확실히 반납할 것을 확인시키고는 조심스럽게 대여해 주었다. 그런 책들은 들여오는 대로 빠른 속도로 읽혀져서 누더기가 되었다. 그는 1954년 오거스타에 있는 주 상원에 편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마스가 소장이었는데 앤디를 일종의 마스코트로 여겼다. 항시 도서관에서 앤디와 농을 지껄였는데 때론 양 팔을 앤디의 어깨에 자애로운 태도로 두르기도 하고 갑자기 쿡 찔러 놀래키는 일도 있었다. 실은 그것은 즐거운 장난도 아니었고 앤디는 누구의 마스코트도 아니었다. 그는 앤디에게 밖에서는 은행원이었을지 모르나 인생의 그시절은 순식간에 과거 속에 묻혔으며 교도소 생활의 현실을 잊지 않는 게 좋을 게라고 말했다. 오거스타의 공화당 로터리 클럽 회원들에 관한 한 감옥과 교도소 분야에서는 세 가지의 세금 지출만이 존재했다. 하나는 더 많은 담, 둘째는 더 많은 창살, 셋째는 더 많은 경비원이었다. 주 상원에 관한 한, 스타마스는 설명했다, 토마스턴, 쇼생크, 피츠필드, 싸우쓰 포틀란드 교도소에 있는 놈들은 인간 쓰레기들 이라구. 그들은 고통을 받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며 하느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고생이었다. 빵 속에서 바구미가 좀 나온다고 해서 무슨 대순가? 앤디는 침착한 미소를 띄우며 1년에 한 방울씩 백 만년 동안 물 방울이 떨어진다면 콘크리트라도 어떻게 되겠는가 물었다. 스타마스는 웃으며 앤디의 등을 탁 쳤다. "백 만년을 살려구? 만약 그렇다면 네놈은 백 만년 동안 미소지으며 그 일을 할 거라는 점은 믿어주지. 너는 계속 편지를 써. 우표 값만 내면 부쳐 주지." 그대로 했다. 스타마스나 해들리는 끝내 보지 못하지만 그는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 도서관 기금 요청은 계속해서 거부되다가 1960년 200달라 수표를 받게 되었다.-상원은 아마도 그것으로 입 다물고 꺼져 버리리란 희망에서 그걸 승인했을 터였다. 헛된 희망이었다. 앤디는 마침내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여 놓았다고 느꼈을 뿐으로 노력을 배가했다; 일 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두 차례의 편지를 냈다. 1962년에는 400달라를 얻어냈고 그 이후 60년대 내내 도서관은 시계처럼 정확히 매년 700달라를 받았다. 1971년에 액수는 1000달라로 올랐다. 보통의 마을 도서관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나 1000달라면 헌 책으로 페리 매이슨 스토리나 제이크 로건 웨스턴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앤디가 떠날 무렵에는 도서관(원래의 페인트 창고에서 방 세개짜리로 넓어졌다) 에서 원하는 어떤 책이고 찾을 수 있었다. 찾지 못한다면 앤디가 그것을 구해 줄 가능성이 컸다. 이제 이 모든 일이 단지 바이런 해들리에게 유산의 절세 방법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이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독자 스스로 상황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쇼생크는 자신의 재정 전문가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50년 늦 봄에 앤디는 자녀의 대학 학비를 위한 신용 기금을 처리해 주었으며 보통주에 약간 투자하려는 간수 두 명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나중에 드러난 바와 같이 성공이었다; 한 명은 그 덕에 2년 후 조기 은퇴할 수 있었다). 또 듀나이 소장에게 탈세 방법에 관하여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난 빌어먹을 놈인 것이다. 그것은 그가 부정을 저지르기 전이었고 아마 자신의 책이 벌어 줄 수 백만 달러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1951년에 이르자 쇼생크 간수의 절반 쯤의납세 신고서를 작성했으며 1952년에는 거의 전부를 하게 된다. 그 댓가로 교도소에선 가장 소중한 보답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선의였다. 후에 그렉 스타마스가 소장이 된 다음 앤디는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말하려 해보았자 추측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아는 부분이 있고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나는 몇몇 죄수들은 자기 방에 라디오를 갖는다거나 특별한 면회권같은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외부에는 이런 특권을 위해 돈을 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죄수들은 '천사' 라고 부른다. 토요일 오후 갑자기 어떤 죄수가 번호판 공장 작업에서 면제되면 외부에서 돈을 들여 그런 일을 주선한 천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일은 천사가 중간 단계의 간수에게 뇌물을 먹이고 그가 행정부의 위 아래로 기름 칠을 하는 식으로 처리된다. 그리고 듀나이 소장을 강등시킨 자동차 할인 정비공장이 있었다. 그것은 잠시 지하로 들어갔다가 50년대 말에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재 등장했다. 분명히 교도소에 관련된 계약 사업자들 일부가 때때로 상부에 뇌물을 바쳤으며 세탁소나 번호판 공장, 그리고 1963년 세워진 압연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60년대 말에는 또 약물 거래 붐이 일어났는데 같은 행정부 간수들이 그 자금 흐름에 관여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꽤 많은 불법 수입의 강물이 되었다. 앗티카나 센 뀌틴 같은 정말 큰 교도소에 날아다니게 마련인 검은 돈뭉치처럼 크진 않았지만 푼돈 역시 아니었다. 그리고 이윽고 돈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지갑에 쑤셔넣고 뒷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고 싶다거나 집을 증축하고 싶을 때 구겨진 20달라나 접혀진 10달라 뭉치들을 펑펑 써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정 한도에 이르면 돈들이 어디서 났는지 설명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설명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 못 되면 스스로 번호 명찰을 차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앤디의 봉사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앤디를 세탁소에서 데려다가 도서관에 앉혀놨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세탁소에서 아주 데려왔다곤 할수 없었다. 더러운 시트 대신에 더러운 돈을 세탁하게 한 것이니까. 그는 돈을 깔때기로 걸러서 주식에, 채권에, 면세 공채에 흘려 넣었다. 번호판 공장 사건 이후 10년 쯤 뒤 한 번은 내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으며 양심상 그리 꺼리낄 게 없다고 말했었다. 부정은 그가 있건 없건 계속될 것이었다. 저는 쇼생크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라고 말을 이었다; 저는 거대한 불운에 희생당한 무고한 사람일 뿐이지 선행의 사도는 아니란 말입니다. "게다가 말입니다, 레드 형." 예의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제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바깥에서 하던 일과 크게 다른 일도 아닌 걸요. 상당히 냉소적인 격언이 하나 있죠; 개인이나 회사가 필요로 하는 재정 전문가의 도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칠려구 하는가에 직접 비례한다는 거죠. "이 곳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어리석고 잔인한 괴물들이예요. 바깥 세상을 꾸려가는 사람들 역시 잔인하고 괴물스럽지만 경쟁의 정도가 좀 높기 때문에 어리석지는 않지요. 큰 차이는 아니고 약간의 차입니다." "하지만, 그 약물," 나는 말했다. "내 자네 일에 관해서는 얘기 않겠네만, 그건 좀 신경이 쓰여. 요새는 4단계라고 불리는 약들이 있지-빨간 약, 흥분제, 진정제, 넴뷰탈. 이렇게. 난 그런건 취급 안해. 절대로." "그렇죠." 앤디는 말했다. "저도 결코 그 약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술, 담배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는 마약 밀매상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들여오지도 않고 들여온 물건들을 팔지도 않아요. 그런 일들은 대개 간수들이 하지요." "하지만--." "아, 알아요. 그게 훌륭한 태도지요. 그건 말이죠, 레드 형, 어떤 사람들은 손을 더럽히길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게 이른바 성스러움이고 비둘기가 어깨에 내려 앉아 셔쓰에 똥을 갈기는 거죠. 또 다른 극단은 오물 속에 딩굴면서 돈이 될 만한 그 빌어먹을 물건들, 총이나 칼, 약물같은 것을 거래하는 겁니다. 어떤 놈이 형한테 와서 그런 물건을 거래하자고 합디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은 여러 해를 걸쳐서 수 없이 있어왔다. 결국 나는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니까.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밧데리나 담배 혹은 마리화나 들은 권련을 입수할 수 있다면 놈들은 자기들을 칼을 취급하는 사람과도 접촉시켜 줄 수 있는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히 많았을 거예요." 앤디는 동의했다. "하지만 형은 그런 일을 하지 않죠. 그건 말이죠, 레드 형, 우리같은 사람들은 제 3의 선택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아이들이 아닌 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젠데 진짜배기 인간으로 남느냐 아니면 똥통에서 딩구느냐 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있는데 형은 자신을 노리는 그 무엇에 대항해서 용케도 진흙탕 속에서 균형잡으며 걷고 있거든요. 형은 두 개의 악에서 덜한 악을 택하고 선의를 유지하려고 애쓰죠. 제가 보기에 형은 어떤 판단을 할 때 밤에 얼마나 편히 자게 될 것인가, 꿈자리가 어떨 것인가로 기준을 삼는 것 같아요." "선의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난 그걸 잘 알아. 앤디. 어떤 놈은 그렇게 하다가 지옥으로 직행하는 수도 있지. " "그렇게 생각지 마세요." 그가 침울해져서 말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예요. 쇼생크가 말입니다. 놈들은 약을 팔고 저는 금전처리 방법을 일러주죠. 하지만 한편으론 도서관을 갖고 있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려고 거기 책들을 이용하는 스무 명도 넘는 친구들이 있읍니다. 아마 그들이 여길 벗어날 때에는 똥통에서 기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1957년에 두번째 방이 필요해졌을 때 그걸 얻어냈죠. 왜냐면 놈들은 절 기쁘게 해주려 하거든요. 저는 저렴하게 봉사하는 셈입니다. 그걸로 비긴 겁니다." "그리고 자넨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렇죠. 혼자 있는게 편합니다." 50년대를 통해서 교도소 인구는 점차 증가했고 60년대에는 약물을 찾는 미국의 대학생 또래의 아이들과 마리화나 들은 권련을 좀 피웠다고 적용시킨 완전히 웃기는 형벌 제도로 인하여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중에도 계속 앤디는 노 메이든 이라는 큰 움집에 과묵한 인디언(쇼생크의 모든 인디언이 그렇듯 그도 '왕초'라고 불리웠다) 하나와 함께 했던 것을 빼고는 감방을 혼자 썼는데 그 노 메이든과도 오래 있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장기수들은 그가 미친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는 혼자 살았고 그런 생활을 좋아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놈들은 그의 환심을 사려했다. 그는 저렴하게 봉사하는 것이다. 교도소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며 가끔은 멈춰버린 게 아니냐고 불평하지만 흘러가긴 한다. 시간은 흐른다. 죠지 듀나이는 신문 표제가 스캔들과 착복이라고 외쳐대는 혼란 속에 무대를 떠났다. 스타마스가 그 뒤를 이었고 그 6년간 쇼생크는 생생한 지옥이랄 수 있었다. 그렉 스타마스의 통치 기간 동안 양호실의 병상이나 독방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1958년 어느날 나는 방에 간직해 둔 작은 면도용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았는데 마흔 살의 사내가 나를 들여다 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1938년에 홍당무처럼 붉은 더벅머리의 젊은이가 후회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자살을 생각하며 들어왔었다. 그 젊은이는 사라져 버렸다. 붉은 머리털은 회색으로 변하고 빠지기 시작했다. 눈 주위에는 주름살이 생겼다. 그날 나는 한 늙은이가 나타나는 것을 그 안에서 보았다. 두려웠다. 아무도 감옥에서 늙는 것을 원치 않는다. 스타마스는 1959년 초에 떠났다. 사건 기자 몇이 뭔가 냄새를 맡아 왔는데 한 사람은 단 하나의 사건 추적을 위해 4개월간 가명으로 복역하기도 했다. 그들은 다시한번 스켄들과 횡령 을 끌어 낼 준비가 되었지만 스타마스에게 치명타를 가하기도 전에 그는 도망쳐 버렸다.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 만약 그가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바로 이곳에 올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아마 한 5시간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런 해들리는 2년 앞서 떠났다. 그 새끼는 심장 마비에 걸려서 조기 은퇴했다. 앤디는 스타마스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 59년 초 새 소장이 부임했고 부소장과 간수장도 새로 왔다. 그 8개월 동안 앤디는 또다시 보통의 죄수와 같았다. 그 기간 동안 파사매커디 인디안의 피가 반쯤 섞인 큰 몸집의 노 메이든이 앤디와 방을 같이 썼던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노 메이든은 나가고 앤디는 다시 홀로 지내게 되었다. 꼭대기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부정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앤디에 관해서 노 메이든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좋은 친구야." 노 메이든은 말했다. 언청이에다 구개 파열로 인해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불투명했다. "나 거기 좋았어. 그는 장난 안쳐. 근데 내가 같이 있는 거 안 좋아해. 난 알아." 그는 어깨를 움찔했다. "나 거기 나와서 기뻐. 그 방은 바람이 되게 불어. 항상 추워. 그는 자기 물건들을 못 만지게 해. 그건 상관없어. 좋은 친구야. 장난 안쳐. 바람 되게 불어."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리타 헤이워드는 1955년까지 방에 걸려있었다. 그 다음은 '7년만의 외출' 이란 영화에서의 마릴린 먼로 사진이었는데 그녀가 지하철 환기구 위에 서있고 더운 공기가 스커트를 치켜 올리는 사진이었다. 마릴린의 사진은 1960년까지 있었는데 모서리가 닳아 너덜거리자 제인 맨스필드 사진과 바뀌어졌다. 이런 표현을 양해해 주리라 생각하지만 제인의 가슴은 캡이었다. 한 일년 뒤에 그것은 영국 여배우 사진과 교체되었다.-확실치 않지만 헤이젤 코트였던것 같다. 1966년에 그것은 내려지고 라켈 웰치 사진이 올랐는데 가장 오래인 6년간 걸렸다. 그곳에 걸려진 마지막 포스터는 린다 론스타트라는 예쁜 컨트리 락 가수였다. 나는 그에게 한번 포스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좀 묘하고 놀란듯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었다. "있쟎아요, 그건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는 말했다. "자유 아닐까요? 그 예쁜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그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녀들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자유감 말입니다. 그래서 라켈 웰치 사진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서 있는 해변 말입니다. 멕시코 어디 같지요? 너무도 조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들을 수 있을 것같은 곳 말입니다. 레드 형 사진에 대해 그렇게 생각지 않으세요? 마치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은 사실 없다고 말했다. "언제가는 제 말 뜻을 알게 될 겁니다." 그는 말했다. 그가 옳았다. 수 년 뒤 그 말을 정확히 이해했고 그랬을 때 맨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노 메이든과 앤디의 방이 항상 추웠다는 그의 말이었다. 1963년 3월 말인가 4월 초에 앤디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다른 모든 죄수들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앤디는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평정심이랄까 내적인 평온 아니면 언제가는 이 기나긴 악몽이 끝나리라는 꾸준하고 흔들림없는 믿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하든간에 앤디는 한결같았다. 거의 모든 죄수들을 한동안 괴롭히는 침울한 절망감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에게는 절망의 기미도 없었다. 63년 늦 겨울까지는. 그때는 샘 노튼이라는 사람이 소장이었다. 마더, 코튼과 인크리스는 그에게서 어떤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아무도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엘리어트의 침례 재림 교회의 30년 기념핀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행복한 가족의 우두머리로서 주로 개혁한 것은 신입 죄수마다 신약 성서를 갖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조그만 명판이 있었는데 티크목에 '예수는 나의 구원자' 가 금글자로 상감되어 있었다. 부인이 만든 벽에 걸린 자수는-'주님의 심판은 일찌기 찾아오도다. '였다. 뒤엣 말은 우리들 대부분을 얼어붙게 했다. 우리는 심판이 이미 내려진 것으로 느꼈으며 바위도 우리를 숨겨 주지 않고 죽은 나무도 우리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꺼이가장 훌륭하게 입증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성경구절을 인용했으며 독자가 그런 놈을 만날 경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는 씩 웃고 불알을 두손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렉 스타마스 시절 보다 병실 환자 수도 적어졌고 내가 아는 한 달밤의 암매장도 완전히 사라졌지만 이 말은 노튼이 처벌의 신봉자가 아니라는게 아니다. 독방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죄수들은 폭행이 아니라 빵과 물의 부족으로 이빨을 잃었다. 그건 '이봐 난 샘 노튼의 그레인 드레인 훈련 중이야. ' 하는 식으로 그레인 드레인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 사나이는 고위직에 있는 사나이로 내가 본 사람 중 최고의 위선자였다. 말한 바 있는 부정은 계속 성업 중이었고 샘 노튼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었다. 앤디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는 아주 친해졌기 때문에 몇몇을 들려 주었다. 그럴 때 그의 얼굴에는 추악함과 탐욕으로 인해 두렵다기 보다는 우스꽝스러운 어떤 종류의 흉한 육식 벌레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듯이 재미와 구역질이 섞인 놀라움이 나타나 있었다. 독자가 16-7년 전에 읽었을 지도 모를 인사이드 아웃 사업을 만든 사람이 바로 샘 노튼 소장이었다; 그것은 뉴스 위크에까지 실렸다. 신문에서는 교정과 재사회화 현장에서의 진실된 발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죄수들은 외부에서 펄프용 나무를 자르거나 인도나 교량을 보수하기도 했으며 감자 창고를 건설하기도 했다. 노튼은 이를 '인사이드 아웃' 이라고 불렀고 특히 그의 사진이 뉴스 위크에 실린 후에는 뉴 잉글랜드의 거의 모든 로타리 클럽이나 카와니스 클럽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초대되었다. 죄수들은 이를 그저 '도로 보수 작업'이라 불렀지만 내가 아는 한 어느 누구도 카와니스 클럽이나 로열 오브 더 무스 클럽으로부터 그들의 견해를 피력해 달라는 초대를 받지 못했다. 30년 예수장이 노튼은 그 모든 작업에 관여했다; 펄프 자르는 일에서부터 배수구를 파는 일, 주 고속도로 밑에 새로운 도랑을 파는 일에 이르기까지 노튼은 이득을 걷어냈다. 그런 일에는 한 백가지 쯤의 방법이 있었다-인력이라든지, 물자라든지, 그 무엇이든지. 하지만 그는 다른 방법도 사용했다.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노튼의 인사이드 아웃 사업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그것은 죄수 노동이 노예 노동과 다를 바 없었으며 따라서 도저히 경쟁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성서적 인물이자 30년 예수장이인 샘 노튼은 쇼생크 교도소장으로서 16년 재위 기간 동안 책상 밑으로 수 없이 많은 두툼한 봉투를 건네받았던 것이다. 봉투가 건네지면 사업을 비싼 값으로 응찰하던지 아니면 아예 응찰을 하지 않던가 인사이드 아웃 반원이 다른 작업을 맡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게 항상 경이로왔던 점은 남부 매사츄세츠 고속 도로 어딘가 주차된 썬더버드 승용차 트렁크에서 손이 뒤로 묶이고 대여섯 발의 총알이 머리에 박힌 노튼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쨋거나 오랜 술집 노래대로 오, 하나님, 어떻게 하면 돈이 굴러 들어옵니까? 하는 식이었다. 아마도 노튼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은행 계좌를 조사해 보는 거라는 오랜 청교도의 관념에 찬동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앤디 듀프레인은 소리 없는 파트너로서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오른팔이었다. 앤디는 교도소 도서관을 잃을 위험이 있었고 노튼은 그걸 알고 이용했던 것이다. 그는 노튼이 좋아하는 금언의 하나가 '한 손이 다른 쪽 손을 씻는다'였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앤디는 그에게 훌륭한 조언과 쓸모있는 제안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가 노튼의 인사이드 아웃 사업을 관리해 나갔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예수를 외치는 개새끼를 위해서 돈을 관리해준 것은 확실했다. 그의 훌륭한 조언과 쓸모있는 제안으로 돈은 늘어만 가고--. 젠장! 도서관은 새로운 자동차 수리 교본과 신판 글로리어 백과사전과 대입 검정고시를 위한 책들을 얻게 될 것이었다. 물론 얼 스탠리 가드너나 루이스 라모의 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노튼이 훌륭한 오른 팔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난 게라고 확신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앤디가 주립 교도소를 나갔을 때 발생할 일 즉,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일이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7년여에 걸쳐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얻어 들었으며 어떤 부분은 앤디로부터 직접 들었지만 전체를 듣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그 부분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그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부분부분을 대여섯의 정보원으로부터 들었다. 전에 죄수들이 노예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들은 귀머거리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귀를 열고 있는 노예의 관습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듣기는 윗 부분, 아랫 부분, 중간 부분 섞여서 들었지만 독자에게는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말할 작정이다. 그리하면 어째서 그 사나이가 10개월 가량을 풀이 죽고 우울하고 멍한 상태로 지내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이 즐거운 지옥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온지 15년 뒤인 1963년까지는진실을 몰랐었다고 생각한다. 토미 윌리암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태가 어떻게 악화될지 알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토미 윌리암스는 1962년 12월에 우리 행복한 작은 쇼생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토미는 자신을 매사츄세츠 토박이로 여겼지만 이를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27살인 그는 뉴 잉글랜드 6개주에서 두루 복역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전문적인 절도범이었고 독자가 추측하는 바와 같이 다른 전문직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느껴진다. 그는 기혼이었고 부인이 매 주 면회왔다. 그녀는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학위가 있다면 생활이 필 것이고-따라서 자신과 세 살짜리 아들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권했고 그리하여 토미는 정기적으로 도서관을 출입하게 된 것이었다. 그 무렵의 앤디에게 있어 그것은 오래된 일과처럼 되어있었다. 그는 토미가 일련의 고졸 검정 고시를 응시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합격한 학과(많지는 않다)는 다시 점검하고 시험에 응시하게 될 것이었다. 또한 앤디는 낙제한 과목이나 퇴학당해서 놓쳐버린 과목을 위해서 방송통신 교육과정에 등록하도록 했다. 그는 앤디가 봐 주었던 최고의 학생은 아니었던 듯하며 고등학교 학위를 따게 되었는지 여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 글과 관계없는 부분이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잠시 후에는 앤디 듀프레인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차례나 앤디에게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이런 감옥 구석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하고 물었는데 이런 질문은 "아가씨처럼 괜찮은 여자가 이런 곳에 있다니. "하는 말과 얼추 흡사한 것이다. 앤디는 말해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직 미소짓고는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이에게 물었고 내 생각에는 내막을 알았을 때 그는 젊은 인생에 있어 쇼크를 받았을 것이다. 그가 물어 본 사람은 세탁소에서 증기 다리미 일을 함께 하는 동료였다. 죄수들은 그 기계를 작두라고 불렀는데 깜박해서 재수없게 거기에 말려들면 글자 글자 그대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 동료는 살인 죄로 20년간 복역하고 있던 찰스 라스롭이었다. 그는 토미에게 한량없이 기쁜 마음으로 듀프레인 살인 사건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것은 기계에서 깔끔하게 다림질된 침대보를 잡아내어 바구니에 담아내는 작업의 단조로움을 깨뜨려 주었던 것이다. 점심 뒤에 유죄 평결을 제출하게 되는 배심원들의 이야기로 접어드는 찰라 문제가 생겼음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작두가 삐걱거리며 멈추었다. 멀리 떨어진 작업반에서 에리어트 병원의 잘 세탁된 시트가 기계에 들어가고 토미와 찰리의 작업 구역에서 건조되고 다림질되어 5초당 1장의 속도로 튀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일은 그것을 잡아 뽑아 개어서 수레에다 싣는 것인데 수레 안 쪽에는 깨끗한 갈색 종이가 대어져 있었다. 하지만 토미 윌리엄스는 아랫턱이 가슴까지 딱 떨어져서는 찰리 라스롭을 쳐다 볼 뿐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깨끗한 시트가 나와 쌓여 마루 바닥의 축축한 오물을 빨아들이는 와중에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세탁소에는 오물이 많았다. 그리하여 그 날 책임 경비원이었던 호머 제섭이 무슨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으르렁거리며 달려오게 되었다. 토미는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머리통을 부쉈던 호머 제섭이 그 자리에 있지도 않다는 듯이 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프로 골퍼 이름이 뭐랬지요?" "뀌틴이라구 했지." 이제는 혼란과 당황에 빠져버린 찰리가 대답했다. 나중에 말하길 그 젊은 놈이 백기처럼 창백했었다는 것이다. "글렌 뀌틴이던가? 그 비슷한 거야. 어쨋든--." "야! 야!" 호머 제섭은 목 부위가 닭의 벼슬처럼 벌개져 가지고 소리쳤다. "시트를 빨리 찬 물에 담궈! 빨리 빨리! 이 개새끼들! " "글렌 뀌틴이라구요? 오! 맙소사."라고 토미 윌리엄스는 말했는데 가장 무자비한 호머 제섭이 몽둥이로 귀 뒷부분을 가격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토미는 바닥에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앞니 세 개가 부러졌다. 깨어났을 때는 독방이었으며 샘 노튼의 그 유명한 그레인 드레인 훈련을 받으면서 일 주일간 갇혀 있었다. 더하여 기록 카드에 검은 별 하나가 달렸다. 그것이 1963년 2월 초의 일이었는데 토미 윌리엄스는 독방에서 나온 뒤로 예닐곱명의 장기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는 어느 날 도서관엘 가서 앤디 듀프레인에게 엄청난 정보를 털어 놓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니, 최소한 처음으로 트로이잔 콘돔 한 갑을 사려하는 젊은이모양으로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를 구하러 내게 접근했던 그 때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앤디는 냉정함을 잃었다--. 이번만은 완전히 냉정함을 잃었다. 그 날 늦게 그를 보았는데 그는 써레의 끝 부분을 밟고 서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며 양미간을 크게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도 보였다. 손은 떨리고 있었으며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날 오후가 가기 전에 그는 간수장인 빌리 한론을 따라가서 다음 날 노튼 소장과의 면담을 예약했다. 나중에 말하길 그 날 한 숨도 못 잤다는 것이다; 저는 그저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차가운 겨울 바람 소리를 들었구요,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이었을 때부터 제 방이라고 불러온 감옥의 벽에 기다란 움직이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서치 라이트가 빙빙 돌아가는 걸 봤구요,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생각해보려고 했읍니다. 그는 토미가 마치 자기 감방과 같은 마음 속의 우리에 꼭 맞는 열쇠를 만들어 준 듯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우리는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가두고 있으며 그 호랑이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윌리암스는 그 우리를 여는 열쇠를 만들어 냈고 호랑이는 싫든 좋든 밖으로 나와서 그의 머리 속을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4년 전에 토미 윌리암스는 훔친 차에 훔친 물건을 가득 싣고 가다 로드 아일랜드에서 체포되었다. 토미는 공범을 불었고 검사의 협력으로 2-4년이라는 가벼워진 선고를 받았다. 복역한 지 11개월 만에 나이 든 같은 방 동료가 나가고 엘우드 블래취라는 놈이 들어왔다. 블래취는 무장 강도로 잡혀서 6-12년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하는 놈은 처음 봤어요." 토미는 내게 말했다. "그런 놈은 강도가 될 생각은 하지 말아야 되요. 특히 무장 강도는요. 무슨 소리만 나면 공중으로 3피트는 펄쩍 뛰어오르고--. 그리고는 꼭 중얼중얼거리죠. 어느 날 밤인가는 복도 아래쪽의 어떤 놈이 주석 컵으로 철창 문을 두들겨 대는 바람에 놈한테 목졸려 죽을 뻔했다고요.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7개월을 놈하고 같이 지냈어요. 있쟎아요, 전 시간이 흘러가게 할 밖에 도리가 없었어요. 엘 블래취란 놈하곤 대화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놈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지요. 놈은 내내 얘기를 해요. 절대 입을 다물지 않구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주먹을 흔들고 눈을 부라리죠. 그럴 때마다 몸이 오싹하죠. 놈은 큰 키에 몸집도 컸구요, 거반 대머리에다 초록빛 눈알이 움푹 들어가 있어요. 꿈에 나타날 까 겁날 지경이예요. "그건 마치 매일 밤 술주정하는 것과 같았어요. 놈이 자란 곳, 도망쳐 나온 고아원, 관계했던 여자들, 싹쓸이했던 도박판등등. 놈이 그냥 계속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어요. 뭐, 잘생긴 얼굴은 못되지만서도 다시 뜯어고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자기는 한 200군데 이상은 털었다는 거예요. 저로선 누가 방귀만 껴도 움찔하는 그런 놈을 믿을 순 없었지만 끝까지 우기는 거예요. 이제부터 잘 들어보세요, 레드 아저씨. 어떤 사실을 안 후에 이야기를 꾸며내는 놈들도 있지만요, 그 프로 골퍼에 대해서 알기 전에도 말이죠, 그 엘 블래취란 놈이 바로 저의 집을 털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경우 저는 단지 자신을 여전히 생명을 부지한 운좋은 새끼로 여겨야만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놈이 어떤 여자의 침실로 들어가 보석 상자를 터는데 그 여자가 자다가 기침을 한다거나 갑자기 몸을 뒤척이는 걸 상상하실 수 있어요?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해져요. 엄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요. "자기는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더군요. 자기한테 욕을 한 사람들을요. 적어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전 그말을 믿었어요. 분명히 살인을 할 수 있는 놈으로 보이니까요. 그럴 정도로 긴장하고 있거든요. 마치 공이를 짧게 자른 권총같앴어요. 제가 아는 놈 중에 공이를 짧게 자른 스미쓰 앤드 웨손 폴리스 스페셜을 갖고있던 놈이 있었는데요. 그건 얘깃거리로밖에 쓸모가 없어요. 그 방아쇠가 얼마나 섬세한지 죠니 칼라한이라는 그 친구가 전축 볼륨을 최대로 하고 스피커 위에 올려만 놓아도 발사될 지경이예요. 엘 블래취는 그런 놈이예요. 더 이상 설명을 못하겠어요. 그래 전 놈이 사람을 죽였다는데 대해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어요. "해서 어느날 밤 가서 물었지요; '누굴 죽였는데?' 농담처럼 말했어요. 그랬더니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내가 죽인 두 사람 땜에 북부 메인에서 감옥사는 놈이있거든. 다른 한놈하고 그 감옥사는 놈의 마누라를 죽였지. 걔들이 있는 델 기어들어가고 있는데 짜식이 욕을 하쟎갔어?' "전 놈이 그 여자의 이름을 저한테 말했는지 어쩐지 기억이 안나는 데요." 토미는 계속했다. "아마도 말했겠지요. 하지만 뉴 잉글랜드에선 듀프레인이란 이름은 딴 데서의 스미쓰나 존슨같은 이름과 다를바 없어요. 왜냐면 여기는 프랑스 놈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누가 듀프레인, 라베스크, 울레트, 뽈링. 그런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놈은 그 다른 남자의 이름은 말했거든요. 그는 글렌 뀌틴이고 몸이 건장하고 재산도 있는 프로 골퍼라더군요. 자기는 그의 집에 한 5000달라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거예요. 당시로선 거금이었다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그게 언젠데?' 했더니; '전쟁이 끝난 담에. 전쟁 직후에.'라더군요. "그래 그 집엘 들어갔는데 그 때 그들이 잠에서 깼고 남자가 자기를 괴롭혔다더군요. 자기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요. 하지만 제 생각으론 그저 남자가 코를 골기 시작했겠지요. 어쨌거나 엘은 뀌틴과 잘나가던 어떤 법률가의 마누라가 한 침대에 있었고 그 법률가는 쇼생크 주립 교도소로 보내 졌다고 말하더군요. 그러고는 껄껄대고 웃습디다. 빌어먹을, 저는 석방 증서를 받았을 때보다 기뻤던 적이없었어요." 이제 독자는 토미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앤디가 어째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는지 어째서 곧바로 소장을 만나려했는지 그 까닭을 알았을 것이다. 토미가 4년전에 그를 알았을 때 앨우드 블래취는 6-12년형을 살고 있었다. 1963년 앤디가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놈은 막 석방되려 하거나--. 이미 석방되었을지 몰랐다. 그래 이것이 앤디를 굽고 있는 두 개의 석쇠 꼬챙이였다.-블래취가 아직도 복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자신이 바람처럼 나간다는 진짜 현실적인 가능성 말이다. 토미의 이야기에는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지만 현실 생활에서 그런 일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닌가? 블래취는 감방에 간 놈은 잘 나가던 법률가라고 했는데 앤디는 은행원이었다. 하지만 그 두 직업은 교육이 짧은 사람들이 쉽게 혼동하는 것들이다. 또 블래취가 재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싯점과 토미 윌리엄스에게 이야기 해 준 싯점과의 사이에는 12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또 뀌틴의 장롱 속 트렁크에서 1000달라 이상을 슬쩍했다고 했는데 경찰은 앤디의 재판에서 강도당한 흔적은 없다고 말했었다. 난 그 점에 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현금을 훔쳤는데 주인이 죽었다면 누군가가 사실을 말해 줄 수 있다면 모르되 어떻게 무엇이 도난당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둘째, 블래취가 그 부분에서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아마도 놈은 별 소득 없이 두 사람의 목숨을 뺏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 지도 몰랐다. 셋째, 강도의 흔적이 있었지만 경찰이 발견하지 못했거나-경찰은 꽤 어리석은 놈들이다.-아니면 그 검사의 사건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고 고의로 은폐했을 수도 있었다. 놈은 공직에 출마하려 했었고 유죄 판결을 계속 필요로 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미제 강도 사건은 결코 그에게 이롭게 작용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둘째에 가장 마음이 끌린다. 나는 쇼생크에 복역하면서 앨 우드 블래취같은 놈을 몇 알게 되었다.-그 미친 듯한 눈알을 가진 총기 살인자들 말이다. 그런 놈들은 2달라짜리 타이멕스 손목 시계나 9달라를 강도질하다 잡혀 복역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했다하면 호프 다이아몬드 정도 되는 걸 한다고 상대방이 믿어주길 바란다. 토미의 이야기에는 의혹의 그늘을 넘어 앤디를 확신시키는 점이 하나 있었다. 블래취는 우연히 뀌틴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뀌틴을 몸이 건장하고 재산도 있는 놈이라고 했고 프로 골퍼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 앤디 부부는 2년간 1주일에 한두번은 그 컨트리 클럽에 가서 한잔 하거나 식사를 했고 앤디는 부인의 간통을 알고 나서는 거기서 꽤 많은 술을 마셨던 것이다. 컨트리 클럽에는 주유소가 딸려 있었는데 1947년 어느 땐가 한동안 토미가 묘사한 앨 블래취의 외양과 똑같은 놈이 거기서 시간제로 구리스를 치거나 가솔린을 넣는 일을 했었다. "몸이 크고 거반 대머리가 벗겨졌으며 움푹 들어간 푸른 눈동자의 사나이. 상대방을 가늠해 보는 듯이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사나이. 놈은 오래 있진 않았죠, 앤디는 말했다. 그냥 가버렸던지 아니면 주유솔 관리하던 브릭스가 해고했겠지요. 하지만 안 잊혀지는 놈이었어요. 잊혀지기엔 너무나 인상깊은 놈이었어요." 그리하여 앤디는 비 바람이 몰아치고 회색 담 위의 하늘에 커다란 회색 구름이 가로질러 날아가던 어느 날 노튼 소장을 찾아갔는데 그날은 마지막 눈이 녹기 시작하여 교도소 위쪽 들판에 작년의 죽은 잔디를 군데군데 드러내고 있었다. 소장은 행정 구역 내에서 상당히 큰 집무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장 책상 뒤로는 부소장의 집무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날은 부소장이 외출중이었고 모범수 하나가 안에 있었다. 그는 한쪽 발을 절었는데 진짜 이름은 잊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죄수들은 그를 마샬 딜런의 동료 이름을 따서 체스터라 불렀다. 체스터는 화분에 물을 주고 마루에 왁스로 윤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아마 그날은 식물들은 목이 타고 그 연결문의 열쇠판에 체스터의 지저분한 귀가 문질러졌기 때문에 윤을 낸 곳이라곤 그곳 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소장실의 정문이 여닺히는소리와 노튼의 목소리를 들었다; "잘 잤나, 듀프레인. 무슨 일이지?" "소장님." 앤디는 입을 열었다. 노련한 체스터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변해 있어서 그의 목소린지 분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소장님, 그--. 있쟎습니까--? 그--. 저한테 무슨 일이--. 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기해 보는 게 어떻겠나?" 소장은 아마도 평소 그러듯이 부드럽게 자-시편-23-장을-펼쳐-다-함께-읽어-봅시다 하는 식의 목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그게 보통 제일 좋은 방법이지." 그래서 그렇게 했다. 노튼에게 복역하게 된 원인이된 범죄에 관해 상세하게 환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토미 윌리암스가 이야기한 것을 정확히 말해 주었다. 또한 토미의 이름도 언급했는데 독자는 나중의 사건 전개에 비추어 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이야기가 일말의 신빙성을 갖기 위해서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겠는지 독자에게 의문을 던지고 싶다. 이야기를 끝냈을 때 노튼은 잠시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나는 그 모습을 정확히 그릴 수 있는데 벽에 걸린 주 지사 리드의 사진 아래 집무 의자에 몸을 뒤로 약간 젖히고 앉아있는 그의 손 가락들은 뾰족하고 붉은 입술은 오무라지고 이마는 머리 꼭대기로 오르는 사다리의 가로대인 양 주름져 있고 30년 기념핀은 달콤하게 빛나고 있었으리라. "그래."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들어본 얘기 중 가장 끔찍한 얘기군 그래. 근데 자네 얘기 중에서 내가 놀란 부분은 말해 줌세. 듀프레인." "예, 그게 뭡니까?" "그건 자네가 속고 있다는 거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체스터는 13년전 번호판 공장 지붕위에서 바이런 해들리를 굴복시켰던 그 앤디 듀프레인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허둥댔다는 것이다. "그게--." 노튼은 말했다. "내겐 말이지, 그 젊은 윌리엄이란 친구가 자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게 분명한 것같은데. 사실 푹 빠졌겠지. 그 친구는 자네의 비통한 얘기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자네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생각이 났겠지. 아주 자연스런 일이지. 걘 아직 얘야.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자네가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자, 그럼--." "제가 그 점을 생각 안한 줄 아십니까?" 앤디는 물었다. "하지만 저는 주유소에서 일하던 남자에 대해선 얘기한 적이 없읍니다. 그 누구한테도요.-게다가 제 마음 속에 떠오른 적도 없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감방 동료에 대한 묘사가 그 남자와 일치하더란 말입니다! " "자넨 말야. 좀 선택된 관념에 빠져 있는 것같군." 노튼은 웃으며 말했다. 선택된 관념과 같은 문구는 행형학과 교정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었고 그들은 가능한 한 그런 말들을 사용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자네 편견이야." 노튼은 말했다. "나는 다르네. 당시 팔 마우쓰 클럽에 그런 남자가 있었다는 자네 말만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기억하세." "아닙니다." 앤디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쨋든," 노튼이 큰 소리로 그의 말을 무시했다. "망원경의 다른 쪽에서 사태를 관찰해 보세. 단순한 가정이네만 정말로 앨우드 블로취란 남자가 있었다고 치세." "블래취입니다." 앤디가 단단히 말했다. "좋아, 블래취. 또 그 친구가 으로드 아일랜드에서 토마스 윌리암스의 같은 방 동료였다고 가정해 보세. 지금쯤 풀려났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네. 대단히 커. 거 왜, 그 친구가 윌리암스와 지내기 전에 얼마나 복역했는지도 모르지 않나? 그저 6-12년을 산다고 알고 있을 뿐이지." "그렇죠. 얼마나 복역했는지 모르죠. 하지만 토미는 그 친구가 행실이 나쁜 말썽꾼이라고 했어요. 아직 그안에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설사 석방되었다고 해도 교도소에선 그의 최근 주소나 친척들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구요--." "분명히 둘 다 소용없을 거야." 앤디는 잠시 침묵했다가 소리쳤다. "그건 가능성 아닙니까? 안 그래요?" "그래, 그렇지. 가만 있어보게. 듀프레인. 블래취가 실재하고 아직 로드 아일랜드 주립 형무소에 있다고 가정해 보세. 그러면 우리가 그 골치 아픈 문제를 그에게 내밀었을 때 뭐라고 그럴 것 같은가? 무릎을 꿇고 눈알을 두리번거리면서 '제가 그랬어요. 제가. 꼭 종신형을 선고해 주세요!' 그럴 것 같은가?" "어떻게 그렇게 우둔하십니까?" 이 말은 너무 낮은 음성이어서 체스터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나 소장의 말은 분명하게 들었다. "뭐? 너 지금 나보고 뭐랬어?" "우둔하다고 했읍니다." 앤디는 외쳤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요?" "듀프레인, 넌 내 시간을 5분이나, 아니, 7분이나 잡아먹었어. 오늘 바쁜 일정이 있단 말이야. 이제 그만 면담은 끝난 것으로 하세--." "컨트리 클럽엔 근무 기록표가 있단 말입니다. 모르겠습니까?" 앤디는 외쳤다. "또 그의 이름이 적힌 세금 고지서나 실업 수당 통지서가 있을 겁니다. 당시 고용주였던 브릭슨가 하는 친구가 아직도 거기 있을 거예요. 15년 전입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겁니다. 블래취를 기억할 거란 말입니다. 만약 토미더러 블래취가 한 말을 증언하게 하고 그가 실제로 그컨트리 클럽에서 일 한 적이 있다는 걸 브릭스가 입증한다면 전 재심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래요--." "경비! 경비! 이 친구 끌어 내!"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체스터는 이때 그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했다고 말했다." 이건 내 인생이 걸린 겁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란 말입니다. 그걸 모릅니까? 그래 그럼 토미의 얘길 확인해보기 위해 한 차례 장거리 전화도 안해볼 작정입니까? 이 봐요! 전화 요금은 내가 내겠어요! 내가 내겠단 말입니다--." 그리곤 경비들이 그를 붙잡아서 끌고 나갈 때 몽둥이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독방에 쳐 넣어!" 노튼 소장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러면서 30년 기념핀을 만지작거렸으리라. "빵하고 물만 주고." 그래 그들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소리를 질러대는 앤디를 끌어냈다. 체스터는 문이 닫힌 뒤에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건 내 인생이야! 내 인생! 그걸 모르겠어? 내 인생이란 말야! 앤디는 독방에서 그레인 드레인 훈련을 받으면서 20일을 보냈다. 두 번째 독방행이었으며 노튼과의 싸움은 그가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의 일원이 된 이래 첫번째 별을 달게 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동안 쇼생크의 독방에 관해서 좀 말하겠다. 1700년대 중반 메인의 어려웠던 초기 개척자의 시절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는 아무도 '행형학' 이니 '재사회화' '선택된 관념' 같은 것들로 시간을 과히 낭비하지 않았다. 당시는 완전히 흑이냐 백이냐 하는 용어로 다루어졌다. 유죄 아니면 무죄였다. 유죄라면 교수형이거나 감옥으로 간다. 그리고 감옥행 판결을 받더라도 어떤 건물로 가는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 메인 지방 정부에서 제공한 장소에다 자신의 감옥을 파는 것이었다. 일출과 일몰사이에 가능한 한 깊고 넓게 구덩이를 판다. 그리곤 가죽 2장과 바께스를 받고 그 아래로 내려간다. 내려가면 구덩이 입구에 간수가 창살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약간의 곡물이나 구데기가 끼는 고기 조각을 던져 주고 일요일 밤에는 보리죽 한 국자 정도를 준다. 바께스에다 소변을 보고 아침6시에 간수가 오면 바로 그 바께스를 물을 달라고 올려 보낸다. 비가 올 경우에는 빗물 통 속의 쥐처럼 익사하고 싶지 않다면 감옥 안의 물을 그 바께스로 퍼내야 한다. 아무도 이른바 '구덩이' 에서 오래 있지 못했다; 30개월이면 특별히 오랜 기간이었으며 내가 아는 범위에서 죄수가 살아서 나간 가장 긴 복역 기간은 급우의 성기를 녹슨 금속 조각으로 잘라버린 이른바 '듀램 보이' 라는 14세의 싸이코에 의해 기록되었다. 7년을 지냈는데 물론 젊고 튼튼할 때 들어간 것이었다. 범죄가 가벼운 좀도둑질이나 모욕죄, 혹은 안식일 날 포켓에 손수건을 넣는 것을 잊은 죄 같은것보다 중할 때는 교수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위와 같은 가벼운 범죄의 경우에는 3개월, 6개월, 9개월을 구덩이에서 보내다가 밖으로나오는데 몸은 물고기 배처럼 하얘지고 광장 공포증으로 움츠려드는 데다가 눈은 반쯤 멀고 이빨은 괴혈병으로 흔들리며 발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다. 유쾌한 메인의 옛 감옥이다. 요호호, 럼 주나 한 병! 쇼생크의 독방은 그렇게 지독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주요한 세 단계가 있다고 본다. 좋은 것, 나쁜 것, 끔찍한 것. 이렇게. 그리고 점점 끔찍한 것 쪽으로 짙어져 가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다 보면 그럴 수록 각 단계의 세분화는 어려워진다. 독방 구역으로 가자면 건물의 맨 밑바닥으로 23계단을 내려가는데 그 곳은 소리라고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뿐이다. 불 빛이라고는 죽 매달린 60W 짜리 전구 불빛 뿐이다. 감방은 부자들이 간혹 그림 뒤에 감추어 놓는 벽 금고처럼 개 집모양이다. 금고에서와 같이 둥그런 출입문은 창살 문이 아니라 속이 꽉 찬 문이었고 여닫이였다. 환기구는 위쪽에 있었고 방에 있는 60W 전구 불밖에 불빛은 없었으며 그 불은 교도소 다른 구역의 소등 시간보다 한 시간 이른 오후 8시면 신속하게 마스터 스위치로부터 꺼지게 되어있다. 전구는 철망이나 그 비슷한 것 속에 들어있지 않다. 깜깜한 데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끽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은 많지도 않지만 8시 이후에는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벽에 붙은 침대가 있고 좌변기없는 깡통이 하나 있다. 시간을 보내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앉아있기, 똥 싸기, 잠자기. 대단한 선택이다. 20일이 1년처럼 느껴질 수 있다. 30일은 2년, 40일은 10년에 해당된다. 때로 환기구에서 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같은 상황에서는 끔찍한 것의 세분화는 헷갈리기 십상이다. 독방이 좋은 점이 있다면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점뿐이다. 앤디는 그레인 드레인을 즐기면서 20일 동안 생각에 잠겼다. 독방에서 나오자 다시 소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요구는 거절되었다. 그같은 면담은 '비 생산적'인 거라고 소장은 말했다. 그 말은 교도소나 교정 분야에 직장을 갖기 전에 익혀 두어야 하는 문구의 하나이다. 꾸준하게 앤디는 요구를 갱신했다. 갱신하고 또 갱신했다. 앤디 듀프레인은 변해갔다. 1963년 봄이 우리들 주위에 만개하면서 갑자기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회색 빛 무늬가 나타났다. 항시 입 주위를 떠나지 않던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눈은 자주 허공을 응시했는데 어떤 이가 그러고 있다면 그는 지금 복역한 햇수와, 달수와, 주일수와, 날짜를 세고 있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여름이 되었다. 워싱턴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목숨이 반년 밖에 남지 않은지도 모르고 빈곤과 시민권의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개혁을 약속하고 있었다. 리버풀에선 비틀즈라고 불리는 그룹이 영국 음악계에서 상당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으나 미국 쪽에서는 아직 아무도 그들에 관해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보스턴 레드 삭스는 뉴 잉글랜드 사람들이 일컫는 67년의 기적을 4년 앞으로 남겨놓고 아메리킨 리그 밑바닥에스 빌빌거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활보하는 더 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노튼은 6월말이 가까와져서 그를 만났는데 그들의 대화는 한 7년 뒤에 앤디로부터 직접 들었다. "그 횡령 문제 때문이라면 걱정할 필요없읍니다." 앤디는 노튼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그걸 털어놓을 것 같습니까? 그건 제 목을 따는 식이지요. 저 역시 기소될 거란--" "됐네."노튼이 말을 막았다. 그의 얼굴은 석판 묘비처럼 길고 싸늘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몸을 젖히자 뒷머리가 주님의 심판은 일찌기 찾아오도다 라고 씌인 자수에 거의 닿을 듯했다. "하지만--." "다시는 내 앞에서 돈 문제를 꺼내지 말게." 노튼이 말했다. "내 사무실에서건 어디서건 말이야. 도서관이 창고와 페인트 저장소로 되돌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알겠나?" "전 소장님 맘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말이지,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너같은 불쌍한 개새끼가 필요할 때 나는 은퇴하는 거야. 하도 졸라대는데 지쳐서 이번 면담에 동의한 건데, 듀프레인, 그만뒀으면 싶어. 이 유별난 브룩크린 다리를 사고 싶다면 그건 자네 일이야. 날 끼워넣지 마. 너희 놈들한테 귀만 열면 일주일에 두 번은 네 놈 얘기처럼 미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여기 있는 모든 놈들이 날 눈물 수건으로 써먹을 거야. 내 자네는 좀 좋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 이제 우리 합의를 본 것 같지?" "좋습니다." 앤디는 말했다. "하지만 전 변호사를 고용할 겁니다. 아시겠어요?" "어떻게?" "저희들은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토미 윌리암스와 저의 증언, 그리고 컨트리 클럽의 기록과 공용인들의 보강 증거로 할 수 있읍니다." "토미 윌리암스는 이제 여기 죄수가 아닌데?" "뭐라구요?" "걔는 이감됐어." "어디로요?" "캐쉬맨으로." 그 말에 앤디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머리가 좋은 사내였다. 하지만 그 문제에 있어 뒷거래를 눈치 못챌려면 놀랍도록 머리가 나빠야만 했을 것이다. 캐쉬맨은 멀리 위쪽 아르수툭 구 북부에 위치한 최소 경비 교도소였다. 거기 죄수들은 감자를 많이 캐는데 일은 고되지만 보수가 좋았고 원한다면 상당히 괜찮은 기술 직업학교인 CVI에 다닐 수도 있었다. 토미처럼 젊은 부인과 아이를 가진 친구한테 더 중요한 것은 캐쉬맨에는 귀휴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최소한 주말에는 정상인들처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자녀들과 모형 비행기를 만들거나 아내과 잠자리를 함께하고 소풍도 갈 수 있다. 노튼은 그 모든 것을 줄 하나에 매달아 토미의 코 앞에서 흔들었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앨우드 블래취에 관해서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한마디도 해선 안돼. 안그러면 경치 좋은 1번 도로 아래 쪽에 있는 토마스턴 교도소에서 진짜 거친 놈들하고 생활하게 될 거야. 마누라랑 하는 대신 늙은 호모들이랑 그 짓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왜요?" 앤디는 말했다. "어째서--." "자네에 대한 호의로 로드 아일랜드를 조사해 봤지." 노튼은 조용히 말했다. "정말 앨우드 블래취란 친구가 있더구만. 한데 그 친구 임시 가석방됐어. 그거 죄수들을 거리에다 풀어놓는 미치광이 같은 자유 프로그램의 하나지. 그 뒤로 사라져 버렸어." 앤디가 말했다: "거기 소장이--. 당신 친굽니까?" 샘 노튼은 부사제의 시곗줄처럼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좀 알지." "왜요?" 앤디가 되풀이했다. "왜 그랬는지 말해 줄 수 없습니까? 제가 그걸 발설하지 않으리란 걸 알쟎아요? 당신이 하고 있는 그 무엇이든 말입니다. 잘 알면서 왜 그랬습니까?" "왜냐면 너같은 놈은 진저리가 나기 때문이야." 노튼은 천천히 말했다. "듀프레인 씨, 난 당신이 여기 그냥 있는 게 좋아. 내가 여기 쇼생크의 소장으로 있는 한 자넨 여기 있게 될 거야. 알겠나? 넌 자신이 남들보다 난 놈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 난 사람들 얼굴에서 그걸 읽어내는데 명수야. 처음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그걸 자네 얼굴에서 발견했지. 대문자로 이마에 써놓는 것이 오히려 나았을 걸. 그 표정이 이제 없어졌어. 그게 내 맘에 꼭 든다 말이야. 자네가 쓸모있는 놈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런 건 생각지도 말아. 너같은 놈은 겸손을 배울 필요가 있어. 단지 그때문이야. 네 놈은 자신이 지금 응접실에 있다는 듯이, 그리고 악마같은 작자들이 돼지처럼 술에 취해서 서로의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어슬렁거리는 칵테일 파티에 와있다는 듯이 운동장을 돌아다니곤 했지? 근데 이젠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지 못할 걸. 또 그런 식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지 지켜보지. 여러해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자넬 관찰할 걸세. 자, 이제, 여기서 꺼져버려! " "좋습니다. 허지만 이제 일과외 활동은 완전히 끝났읍니다, 노튼 씨. 투자 상담, 신용 사기, 탈세, 전부 끝났어요. H R 구역에 가서 당신 수입을 공개할 방법을 일러 달래시지요?" 노튼 소장의 얼굴이 벽돌처럼 붉어졌다가 이내 창백해졌다. "너 독방행이다. 30일 동안이다. 빵하고 물만 먹고. 검은 별도 단다. 거기서 이걸 잘 생각해 봐라; 지금까지 해오던 것중 하나라도 그만두면 도서관은 날아간다. 그걸 너 들어오기 전으로 되돌리는 걸 내 개인적인 업무로 삼을 테다. 또 네 생활을 되게 고달프게 만들거다. 아주 피곤하게 만들어 주지. 가장 지독하게 고달픈 생활을 할거다. 그 개시로 넌 혼자 쓰는 힐튼 호텔을 잃을 거구, 창턱에 있는 돌멩이들을 뺏긴다. 간수들도 호모들로부터 널 보호해 주지 않는다. 넌 모든 걸 잃는다. 알겠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술이며 진정으로 신비로운 오직 하나의 마술일 터였다. 앤디 듀프레인은 변했다. 그는 점점 더 냉정해졌다. 나로선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노튼 소장의 더러운 일을 계속했고 도서관을 유지했다. 외부적으론 다를바가 없었다. 계속 생일날과 매년 마지막날 술을 마셨으며 여전히 남은 술을 돌렸다. 때때로 나는 윤 내는 천을 새걸로 구해 주었으며 1967년에는 새 락 해머를 구해 주었다.-19년 전에 구해 준 것은 완전히 닳았다. 십구 년! 불쑥 이렇게 말하면 그 세 음절은 마치 쿵! 하고 무덤의 이중 문이 닫히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때 10달라였던 락 해머가 67년엔 22달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슬픈 미소를 나누었다. 앤디는 운동장에서 발견한 돌을 다듬고 윤을 내는 일을 계속했는데 운동장은 그 때 작아져 있었다; 1950년당시의 운동장 절반에 1962년 아스팔트가 깔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몰입할 수 있을만치 충분한 양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완성되면 동쪽으로 난 창 턱에 올려 놓았다. 자기는 그 놈들을, 흙 속에서 주워 모양을 다듬은 이 행성의 한 조각들을 햇 속에서 들여다 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편암. 수정. 화강암. 비행기 접착제로 붙인 작고 재밌게 생긴 운모 조각품. 윤을 내고 앤디가 '천년된 샌드위치' 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모양으로 커팅한 여러가지 퇴적 역암.-수 십년, 수 세기 동안 쌓여 만들어진 다양한 물질의 층들이다. 새것을 놓을 자리가 필요해지면 때로 그 돌들이나 조각품들을 치웠다. 내가 제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짝이 맞는 소매 단추처럼 생긴 돌들을 세어보니 5개였다. 위에서 말한 운모 조각품은 조심스럽게 세공해서 투창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고 두 개의 퇴적 역암은 부드럽게 윤을 낸 단면에 모든 층이 보이도록 한 것이다. 아직도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자주 내려놓고는 사람이 시간과 그것을 이용할 의사만 있다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무슨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적어도 외부적으론 변함이 없었다. 만약 노튼이 자신의 말처럼 지독하게 앤디를 파멸시키고자 했다면 그 결과를 보기 위해선 표면의 아래를 살펴보아야만 했으리라. 만약 그가 앤디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보았다면 그 충돌 이후 4년간은 꽤나 만족했을 것이었다. 그는 앤디에게 칵테일 파티에 와있는 것처럼 돌아다닌다고 말했었다. 나같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뜻은 알고 있다. 그 말은 이미 말한 보이지 않는 외투처럼 자유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이라든지 어떻게 그가 수인의 정신 상태로 떨어지지 않았는지 하는 것을 회상케 한다. 그의 눈은 결코 흐릿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 일과가 끝나고 또하나의 끝없는 밤을 보내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때 보이는-어깨를 꾸부정하게 하고 터벅터벅 걷는 그런 걸음걸이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앤디는 어깨를 꼿꼿이 하고 경쾌하게 걸어가는데 그것은 마치 맛대가리 없는 질척한 야채 덩어리나 울퉁불퉁한 으깬 감자, 죄수들이 대개 신비의 고기라고 부르는 한두 조각의 연골질과 지방 덩어리대신에, 집에서 만든 훌륭한 요리가, 벽에 걸린 라켈 웰치의 포스터 대신에, 멋진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4년 동안 다른 사람과 똑같지는 않을 망정,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뭔가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기뻐한 것은 노튼 소장이었겠지만--. 그것은 적어도 잠시뿐이었다. 그의 우울증은 1967년 월드 시리즈 무렵 사라졌다. 그 해는 꿈같은 해였고 레드 싹스가 라스베이가스 도박사들의 예견인 9위가 아니라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한 해였다. 그랬을 때-그 팀이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전 교도소가 광란의 도가니였다. 데드 싹스가 살아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어리석은 감정들이었다. 비틀즈 광이었던 사람들이 그 광기를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그 감정을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레드 싹스가 마지막 분전을 할 때 소내의 모든 라디오의 다이얼은 그 경기에 맞추어졌다. 싹스팀이 막판에 2점 뒤지자 우울함이 감돌았으며 리코 페트로셀리가 결정적인 내야 플라이를 처리하자 폭동과도 같은 환호가 일었다. 그리고 론 버그가 시리즈 7번째 게임에서 두들겨 맞아 완벽한 결실의 꿈이 깨지고 말자 다시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것은 아마도 노튼을 한없이 기쁘게 했을 것이다. 개새끼. 자기 감옥이 온통 비탄에 잠겨 있어야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앤디는 다시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다. 어쨋든 그리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아마 그게 이유였을 거였다. 그렇지만 그는 활력의 물줄기를 붙잡은 것 같았으며 시리즈 마지막 경기 후에도 그것은 다시 가늘어져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 벽장에서 그 보이지 않는 외투를 꺼내 다시금 입었던 것이다. 월드 시리즈가 끝나고 2주일쯤 지난 10월 말의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을 기억한다. 운동장에 사람이 가득차서 '한 주일을 걸어서 없애'고-프리스비를 주고 받거나 축구공을 차고 혹은 물물 거래를 하고-있었기에 일요일임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면회실의 기다란 책상 앞에 앉아 간수들의 감시하에 친척과의 대화나 흡연을 하거나 진지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아니면 검열을 거친 소포를 받거나 하고 있었다. 앤디는 인디언 식으로 벽에 기대 앉아 양 손에 조그만 돌을 하나씩 쥐고 부딪히고 있었다. 얼굴은 햇볕을 향해 들려 있었다. 늦가을치고 놀랍도록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햇볕이었다. "안녕하세요? 레드 형." 그가 불렀다. "이리 와서 좀 앉아요." 가서 앉았다. "이거 드릴까요?" 묻고는 일전에 말한 '천년 된 샌드위치' 잘 연마된 것 두 개 중 하나를 건넸다. "응." 난 말했다. "거 예쁜데, 고맙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화제를 딴데로 돌렸다. "내년에 형한테 큰 기념일이 하나 돌아오죠? 나는 끄덕였다. 내년이면 복역 30주년이 된다. 인생의 60%를 쇼생크 주립 교도소에서 보낸 셈이다. "여기서 나가게 될 것 같은가요?" "그럼. 허연 턱수염이 길게 자라고 노망이들어 2층에서 공기돌 놀이를 하게 되면 나가겠지. " 그는 미소짓고는 눈을 감고 태양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기분이 좋군요." "그 빌어먹을 겨울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걸 알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들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요," 앤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시 사철 따뜻한 곳으로 갈 겁니다." 차분히 자신에 찬 그 목소리를 들으니 복역할 기간이 한달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형은 제가 어디로 갈 건지 아세요?" "그야 모르지." "지화타네죠." 혀를 부드럽게 굴려 음악처럼 들리게 이 낱말을 발음했다." 남부 멕시코에 있죠. 플라야 아즐과 멕시코 고속도로 37번에서 20마일쯤 떨어진 조그만 곳입니다. 태평양의 아카폴코에서 북서쪽으로 100마일쯤 됩니다. 멕시코 사람들이 태평양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태평양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그 곳이 제가 여생을 마치고 싶은 곳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는 따뜻한 곳 말입니다." 말을 건네면서 그는 자갈을 한 웅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하나씩 던지면서 오래지 않아 눈의 발 밑에 깔리게 될 야구장의 내야로 튀어 굴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지화타네죠에다가요, 전 자그마한 호텔을 장만할 겁니다. 해변을 따라 오두막을 6개쯤 짓고요, 고속 도로 변 영업도 생각해서 훨씬 안쪽에도 6개 더 지어야죠. 손님들을 위해 낚시배를 담당할 사람도 하나 써야지요. 씨즌 중 최대어를 잡은 사람에게 줄 트로피도 준비하구요, 으로비에는 우승자의 사진을 걸어야죠. 가족들이 오는 데가 아니고 1급이나 2급정도의 신혼여행지로 만들 겁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 동화같은 호텔을 살 돈이 나나?" 나는 물었다. "주식을 팔아서?" 그는 날 보며 웃었다. "아주 틀리진 않군요. 형은 가끔씩 날 놀라게 한다니까요."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곤란이 닥칠 때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는 겁니다." 앤디는 성냥을 두 손으로 감싸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레드 형, 진귀한 그림과 조각, 훌륭한 골동품으로 가득찬 집이 한 채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리고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이 그리로 다가오고 있다는 뉴스를 주인이 들었다고 해 보지요. 한 종류의 사람은 단지 최선을 희망할 뿐입니다. 허리케인은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말하죠. 생각이 제대로 박힌 허리케인이라면 이 렘브란트 그림들, 드가의 말 그림 2점, 그랜트 우드와 벤통의 작품들을 감히 휩쓸어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도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가 된다 해도 보험에 들어있다. 이게 한 유형의 인간입니다. 또 한 유형의 사람은 허리케인이 자기 집 정면으로 들이닥칠 경우를 가정합니다. 기상청에서 태풍의 진로가 막 바뀌었다고 알려도 이 사람은 태풍이 자기 집을 정통으로 휩쓸어버리기 위해 다시 진로를 바꿀 거라고 가정합니다. 이 두번째 유형의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한에서만 최선을 희망하는데 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죠." 나도 담배불을 붙였다. "그럼 자넨 뜻밖의 일에 대비했다는 말인가?" "예, 전 허리케인에 대비했지요. 얼마나 강력한 놈인지 알고 있었지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 한도에서 일을 했어요.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아마 제 편이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을 건데-포틀랜드의 투자 회사에서 근무했죠. 6년 전에 죽었읍니다." "안됐네." "그래요." 앤디는 꽁초를 던졌다. "린다와 전 1만 4천달라쯤 있었는데요. 큰 돈은 아니었지만 젠장, 우린 젊었지요. 우린 자신들 보다 앞서 인생을 다 살아버린 셈입니다." 그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가, 웃었다. "바람이 불자 전 저의 렘브란트 작품들을 허리케인의 길목으로부터 끌어내기 시작했죠. 주식을 팔고 착한 소년처럼 자본 이득세를 냈습니다. 전부 공개했어요. 한 푼도 안 떼어먹고 말이죠." "놈들이 자네 재산을 동결하지 않았나?" "레드 형, 저는 살인죄로 기소된 거지 죽은 건 아니란 말입니다! 아무도 죄 없는 사람의 재산을 동결할 수는 없지요.-천만 다행입니다. 그 때는 놈들이 감히 저를 기소하기 얼마 전이었지요. 친구 짐하고 전 시간이 좀 있었읍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헐값에 팔아치워서 꽤 모았지요. 하지만 그때 주식 시장에서 손해 좀 보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 생긴 겁니다." "그랬을 테지." "제가 쇼생크로 올 때 그건 안전했읍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이 담벼락 바깥에는 말이죠, 레드 형, 살아있는 사람이 한번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는 사나이가 있거든요. 그 사람은 사회 보장 카드도 있고 메인 주 운전 면허증도 있어요. 출생 증명서도 있죠. 이름은 피터 스티븐스라구 하죠. 멋진 익명이지요? 예?" "그게 누구야?" 나는 물었다. 그의 대답을 거의 확신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접니다." "형사들이 괴롭히는 동안 가짜 신분증을 만들 시간이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말했다. "아니면 공판 전에 그 일을 다 끝냈다는 말--." "아닙니다. 제 친구 짐이 가짜 증명서를 만든 사람입니다. 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에 착수해서는 1950년 봄 무렵에 그 주요한 신분증들을 손에 넣게 된 거죠." "꽤 친했나 보군." 내 자신이 얼마만큼 그의 말을 신뢰했는지 확실치 않다.-조금은 믿었는지, 많은 부분을 믿었는지, 아니면 전혀 믿지 않았는지. 하지만 날은 따뜻했고 태양이 있었고 엄청나게 흥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가짜 증명을 만드는 건 100% 불법인데 말이야." "친했죠." 앤디는 말했다. "우리는 전쟁터에 같이 있었읍니다. 프랑스, 독일, 그리고 직업도 같았죠. 좋은 친구였어요. 그도 불법인 줄 알았지만 이 나라에선 가짜 신분을 만들기란 식은 죽 먹기일 뿐더러 들킬 염려도 없다는 것도 알았죠. 그는 제 돈을 갖다가-제 돈은 세금을 다 냈기 때문에 국세청에서도 그렇게 관심이 없었지요.-피터 스티븐스를 위해 투자했읍니다. 1950년과 51년에요. 그게 지금은 우수리는 빼고 37만 달라에 달하게 됐죠." 나의 아랫턱이 턱 하고 가슴에 닿았을 때 앤디는 웃음지었다. "사람들이 1950년 무렵부터 투자해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아쉬워하는 그런 종목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2-3종목에 피터 스티븐스가 투자했던 겁니다. 사실 이러구 있지만 않았다면 지금쯤은 재산을 한 7-8백만 달라는 모았을 겁니다. 롤스 로이스를 굴리거나--. 휴대용 라디오만한 궤양이 생겼을런지도 모르죠. " 그의 손이 흙 속으로 들어가서 돌을 체질하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것이 최선을 희망하면서 최악에 대비하는 거죠.-꼭 들어맞죠. 가명은 제 재산을 고스란히 지키기 위한 겁니다. 이건 마치 허리케인의 진로로부터 그림들을 끌어내는 거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허리케인이 이렇게 오래 계속될 수 있으리라곤 몰랐어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 다음으로 오래된 이 조그맣고 마른 인간이 신용사기술을 포함해서 노튼 소장이 그 불쌍한 인생의 나머지 동안 벌어들일 액수보다 더 큰 돈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해하려구 노력했던 것 같다. "자네가 변호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건 농담이 아니었군 그래."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만한 돈이면 클레어런스 더로나 아니면 요새 그런 사람으로 쳐주는 변호사를 구할 수 있었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앤디. 여기서 로케트처럼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그는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자기와 부인이 자신들보다 먼저 인생을 다 살아버렸다고 말했을 때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와 같았다.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실력있는 변호사라면 윌리암이란 꼬마를 놈이 원하건 말건 캐쉬맨에서 빼내 왔을 텐데." 나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자넨 새로 재판을 받고 사립 탐정을 고용해서 블래취란 놈을 찾을 수도 있었어, 게다가 노튼 녀석까지 날려버리고 말이야.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응?" "왜냐하면 전 제 자신보다 똑똑하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여기 앉아서 피터 스티븐스의 돈에 손을 대려 했다면 그 돈을 한푼도 남김없이 잃었을 거예요. 친구 짐이 일을 처리해 줄 수 있었는데 죽어버렸죠. 이제 문제를 아시겠죠?" 그제야 알았다. 그 돈이 앤디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어느 정도는 그랬다. 그리고 그 투자된 종목이 갑자기 하락한다면 앤디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투자 종목을 주시하는 일, 즉 매일같이 프레스 헤럴드 지의 주식과 채권 란을 살펴보는 일이 전부일 터였다. 몸이 쇠약해지지 않는다해도 고달픈 인생이 될 것이었다. "제가 상황을 말씀드리지요, 레드 형. 스턴 읍에 커다란 목초지가 있거든요. 스턴이 어디 있는지 아시죠?" 안다고 말했다. 스카보로 다음에 있었다. "좋아요. 그 특별한 목초지 북쪽 끝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암벽이 있거든요. 그 암벽 밑부분 어딘가에 메인의 목초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광석이 한개 있어요. 흑요석입니다. 1947년까지 제가 사무실에서 문진으로 썼던 거예요. 제 친구 짐이 그 암벽에 갖다 놨죠. 그 밑에 열쇠가 있어요. 그걸로 카스코은행 포틀란드 지점의 안전 보관함을 열죠."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짐이 죽었을 때 국세청에서 그의 안전 보관함을 전부 열어봤을 게 아닌가? 물론 유언 집행인과 함께 말이지." 앤디는 웃더니 내 옆머리를 툭 쳤다. "확실히 나쁜 머리는 아녜요. 마쉬멜로우 이상의 뭔가가 있어요. 우리는 제가 복역 중에 짐이 죽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습니다. 보관함은 피터 스티븐스 이름으로 되어있고 1년에 한번씩 유언집행자인 법률회사가 카스코 은행에 수표를 보내서 그 사용료를 지불하게 돼 있어요. 피터 스티븐은 밖으로 나가길 기다리며 보관함 안에 있지요. 출생 증명서, 사회 보장 카드, 운전 면허증 말입니다. 면허증은 짐이 6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시효가 6년 지났죠. 그거는 5달라 요금만 내면 완벽하게 갱신할 수 있어요. 주식 증명서, 면세 채권, 그리고 18장쯤 되는 장당 1만 달라씩 하는 소지인 증권, 이런 것도 안에 있구요." 나는 휘파람소리를 냈다. "피터 스티븐스는 포틀란드 카스코 은행의 안전 보관함에 갇혀있고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의 안전 보관함에 갇혀 있지요." 그가 말했다. "비슷비슷하죠. 그리고 상자와 돈과 새 인생을 열어 줄 열쇠가 스턴 풀밭의 검은 돌덩이 밑에 있읍니다. 이얘긴 많이 했으니까 레드 형, 딴 이야길 해드리지요. 그래요 전 한 20년 동안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스턴에 건설 공사가 있나 신문을 살펴 왔어요. 그곳에 고속도로가 통과한다든지 지역병원을 새로 세운다거나 쇼핑센터를 짓는다는 기사를 조만간 읽게 되리라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지요. 그러면 새 인생은 10피트의 콘크리트 밑에 파묻히거나 거대한 흙더미와 함께 늪지대 어딘가에 빠져버리고 말테지요." 나는 불쑥 말을 꺼냈다. "빌어먹을, 앤디, 그렇다면, 그게 다 사실이라면 자넨 어떻게 해서 미쳐버리지 않을 수 있었나?" 그는 미소지었다. "아직까지는요, 서쪽 지역은 조용했어요." "하지만 여러해가 걸릴 건데--. 나갈랴면--." "그렇겠죠. 하지만 주 정부나 노튼 소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구요. 전 지화타네죠와 그 작은 호텔을 생각해 왔읍니다. 그게 새로운 인생에서 원하는 전붑니다, 레드 형, 게다가 지나친 소원은 아닌것 같은데요. 전 글렌 뀌틴을 죽이지 않았고 부인을 죽이지도 않았어요. 그 호텔은--. 지나친 소원은 아닙니다. 수영을 하고 피부를 그을리고 창문을 연 방이나 탁 트인 곳에서 자 보는 것--. 이런 것들이 지나친 소원이랄 순 없는것 아닙니까?" 그는 돌들을 집어던졌다. "있쟎아요, 레드 형." 그는 불쑥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 "그런 곳에서도--. 물건을 입수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될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가장 큰 장애는 초소에서 무장한 간수들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이 좁고 지저분한 운동장에서 꿈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난 할 수 없네." 나는 입을 열었다. "바깥에서는 할 수없어. 지금 나는 이른바 교도소의 인간일뿐이네. 여기서야 내가 자네에게 물건을 구해주는 사람이네만 바깥에선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겠지. 바깥에서 자네가 포스터나 락 해머, 아니면 술병 속에 든 모형 보트를 구할라 치면 그 빌어먹을 전화 번호부를 이용하면 되쟎나? 여기선 내가 그 빌어먹을 전화 번호부 랄수 있겠지. 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텐데, 뭐." "형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형은 스스로를 교육했고 스스로를 만든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은 아니예요." "젠장 난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단 말이야." "압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종이 쪼가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감옥이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도 아니죠." "난 바깥에선 못 하네, 앤디. 내가 알아." 그는 일어났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라고 앤디는 심상하게 말했고 그때 안쪽에서 호각소리가 울렸다. 그리곤 한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에게 어떤 제안을 한 것인양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동안 그것은 나로 하여금 자유감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앤디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로 하여금 잠시동안 우리들이 완고한 가석방 위원 새끼들과 앤디가 지금 있는 곳에 있는 게 좋다던 그 시편을 노래하는 소장 놈의 손 끝에 매달린 복역수라는 사실을 잊게 할 수 있었다. 결국 앤디는 세금 문제를 처리 할 수 있는 애완 강아지이니 얼마나 경이적인 동물이냐! 놈은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내 방에 밤이 찾아오자 나는 다시 죄수로 되돌아 갔다. 그 모든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느껴졌으며 마음 속에 그린 푸른 물결과 하얀 해변은 터무니없다기 보다 잔인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다.-그것은 낚시 바늘처럼 머리 속을 긁어댔다. 그렇다. 나는 앤디가 하는 식으로 그 보이지 않는 외투를 걸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잠이 들어서는 들판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검은 바위가 꿈에 나타났다; 대장간의 커다란 모루 모양이었다. 나는 그 밑의 열쇠를 손에 넣으려고 바위를 움직이려 애를 쓰고 있었다. 꼼짝도 않했다; 젠장 너무 컸던 것이다. 그리고 뒤쪽에서는 경찰견의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탈옥이라는 문제에 이른 것 같았다. 확실히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에서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머리가 좀 돌아간다면 이 곳 쇼생크에서 월담할 생각은 집어치워야 한다. 서치라이트가 밤새도록 교도소의 삼면을 둘러싼 공지와 한쪽면의 냄새나는 습지대를 가로질러 길고 하얀 손가락을 뻗친다. 가끔씩 월담하는 놈들도 있지만 거의다 서치라이트가 적발해낸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6번 고속도로나 99번 고속도로에서 차를 얻어 타려다 붙들린다. 시골 길을 가로질러 가려해도 농부들이 발견해서 전화로 교도소에 그 위치를 일러준다. 월담하는 죄수들은 우둔한 놈들이다. 쇼생크는 교회법이 지배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회색 파자마를 입고 시골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사나이는 결혼 케익위의 바퀴벌레처럼 눈에 띄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때 가장 멋지게 해낸 친구들은-아마도 가장 기묘하게, 아니, 그렇게 기묘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순간적인 충동을로 탈옥한 친구들이다. 그들중 몇몇은 침대보가 가득한 손수레 속에 숨어서 빠져나갔다; 흰색의 죄수 샌드위치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는 그런 일이 많았지만 그 헛점은 거의 폐쇠되었다. 노튼 소장의 그 유명한 인사이드 아웃 사업은 그 나름의 탈주자를 만들어냈다. 하이픈의 왼쪽보다 오른쪽에 놓여 있는 그 무엇을 더 좋아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이것 역시 대부분 무심결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간수 하나는 트럭에서 물 한컵 마시고 둘은 보스턴 패이트리어트가 몇 야드를 전진 내지 패스했는지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블루 베리 갈퀴를 던져버리고 숲속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1969년에 인사이드 아웃 반원들은 사바투스에서 감자를 캤다. 11월 3일이었는데 작업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헨리 퓨라는 간수가-그 친구는 이제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의 일원이 아니다.-감자 트럭 뒷 범퍼에 앉아서 총을 무릎에 놓고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 때 아름다운(이렇게 들었지만 때로 이런 말들은 과장이다.) 텐 포인트 사슴 한마리가 쌀쌀한 이른 오후의 안개 속에서 걸어나왔다고 한다. 퓨는 자기 거실에 그 박제를 걸면 어떨까 머리 속에 그리면서 그 뒤를 았고 그러는 사이 그가 담당한 세명의 죄수가 그냥 걸어 가버렸다. 두명은 리스본 폴즈 핀볼 게임장에서 체포했고 다른 한명은 오늘날까지 못찾았다.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시드 네두 사건일 것이다. 1958년으로 되돌아가는데 나는 그것을 뛰어넘을 탈옥 사건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드는 토요일의 야구 시합을 위하여 구장에 줄을 긋고 있었는데 3시에 안에서 간수들의 근무 교대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주차장은 운동장 윗쪽의 전기로 작동되는 정문 건너편에 있었다. 3시에 문이 열리고 근무하러 들어오는 간수들과 끝내고 나가는 간수들이 섞였다. 많은 사람들이 등을 툭 치기도 하고 허튼 소리를 지껄이고 볼링시합 점수를 비교하거나 인종과 관련있는 낡아빠진 농담들을 하면서 말이다. 시드는 그냥 줄그리는 기계를 굴리면서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으며 남은 것은 운동장의 홈 플레이트에서 6번 도로 끝에 있는 도랑까지 난 3인치 두께의 베이스 라인과 거기서 석회석더미에 뒤집힌 채로 발견된 기계였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묻지 말라. 죄수복을 입은 6피트 2인치 인간이 석회 가루를 뒤로 풀풀 남기며 걸어간 것이다. 내 추측은 이렇다. 그날이 금요일 오후였기에 나가는 간수들은 나가는데 기뻣고 들어오는 간수들은 들어오는데 우울했던 거다. 기쁜 간수들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서 우울한 간수들은 자기 발끝만 쳐다보면서 걸음을 옮긴 것이고 노회한 시드 네두는 그 틈새를 슬쩍 빠져 나간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시드는 아직 안 잡혔다. 여러해를 두고 앤디와 나는 시드의 대탈주에 꽤나 웃어댔고 보상금을 노린 항공기 납치사건에서 한 명이 항공기 뒷문으로 낙하산 탈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앤디는 그 D. B. 쿠퍼 란 놈의 본명이 시드 네두일 거라고 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친구 행운의 상징으로 선 긋는 석회가루 한 웅큼 넣어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앤디는 말했다. "그 새끼 정말 운좋은 새끼예요. " 하지만 시드 네두의 경우나 사바투스 감자밭에서 깨끗하게 도망친 그 친구와 같은 경우는 에이레 식 싹쓸이 놀음의 교도소식 성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순전히 여섯개의 서로 다른 행운이 동시에 합쳐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앤디처럼 융통성없는 친구는 90년이 가도 그 비슷한 틈도 못 얻을 것이었다. 아마도 독자는 앞서 언급된 세탁소 욕실 담당자였던 헨리 바쿠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1922년 쇼생크에 와서 31년후 소내 양호실에서 죽었다. 탈옥과 탈옥 기도 사례의 수집이 취미였는데 아마 그건 자신이 모험을 할만치 배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백가지는 되는 탈옥기도를 얘기해 줄수 있었는데 모두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고 모두 한번 이상은 쇼생크에서 시도된 것들이었다. 나는 비버 모리슨의 얘기가 제일 재밌는데 그는 번호판 공장 지하실에서 잡동사니들로 글라이더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 계획은 1900년 경에 나온 '현대 소년의 오락과 모험' 이란 책에서 착상된 것이었다. 비버는 발각되지 않고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이건 얘기일 뿐이지도 모른다) 지하실에는 그 빌어먹을 물건을 가지고 밖으로 나갈만큼 큰 문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웃을 테지만 그는 10개나 20개 쯤은 그만큼 우스운 일들을 알고 있었다. 쇼생크의 탈옥사건을 말할 때면 헨리는 조목 조목 출전을 밝혀 가면서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복역하는 동안 자기가 아는 것만 400건 이상의 탈출기도가 있었다고 말했었다.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읽어나가기 전에 이점을 진짜 잠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400건 이상의 탈출 기도! 헨리 바쿠스가 쇼생크에서 그것들을 수집하는 동안 매년 12. 9건이 발생한 셈이다. 가히 월례 탈출 클럽이라 할만 하지 않은가? 물론 대개의 것들은 꽤나 시시한 것들이고 종국에는 간수가 슬슬 도망치는 그 불쌍한 놈의 팔을 붙들고 으르렁거리게 마련이다. "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이 똥구멍같은 새꺄!" 헨리는 그중에서 한 60건 정도를 중요한 것으로 꼽고 있다며 내가 쇼생크에 들어오기 전해인 1937년의 탈옥 사건을 그 가운데에 포함시켰다. 당시 행정부 건물이 건설중이었으며 14명의 죄수들이 건설 장비를 이용해서 허술하게 잠긴 창고를 부수고 나갔다. 남부 메인 전체가 이들 14명의 '거친 범죄자' 들로 패닉현상에 빠졌지만 탈옥수 대부분은 몹시 겁에 질려 있었으며 거대한 트럭에 달린 헤드라이트에 압도되어 꼼짝 못하는 토끼처럼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다. 14명중 누구도 도망치지 못했다. 2명은 사살되었고.-경찰이나 교도소 요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서-누구도 도망치지 못했다. 내가 이곳에 왔을 때인 1938년부터 앤디가 지화타네조를 말했던 10월의 그날 사이에 몇이나 탈옥을 했을까? 나와 헨리의 정보를 종합하면 10명쯤 된다. 완전히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10명이다. 독자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난 그 10명중에 최소한 절반은 쇼생크같은 수준 낮은 연구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인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감옥에서 살도록 교육받게 되면 다차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죽이러 달려오는 트럭의 불빛 앞에 얼어붙고 마는 토끼와 흡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갓 출감한 죄수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어리석은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왜? 그렇게 하면 안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말이다. 앤디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그렇다. 태평양을 본다는 생각은 좋지만 실제 거기에 있게 되면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다. 어쨋든 멕시코와 피터 스티븐스에 관한 대화가 있었던 그날--. 그날부터 나는 앤디가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잘 해내기를 신에게 기원하지만 결코 성공하는 쪽으로 돈을 걸지는 않을 것이었다. 알고 있듯이 노튼 소장은 특히 엄중하게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노튼에게 앤디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동업자라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 또 그는 두뇌와 심장을 갖고 있지만 노튼은 전자는 이용하고 후자는 파괴하려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 세상에 정직한 정치가가 있듯이-매수된 채로 있을 수 있는-교도소에도 정직한 간수가 있다. 성격 판단을 제대로 하고 뿌릴 만한 돈이 있다면 틈을 만들기 위해 잠시 딴 곳을 보는 척해 주도록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앤디는 그런일을 할 수 없었다. 말했듯이 노튼 소장이 그를 감시하고 있었으며 앤디나 다른 간수들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노튼 소장이 명단을 확인하는 한 아무도 앤디를 인사이드 아웃 반원으로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앤디는 시드 네두 타입의 무심결의 탈출을 시도할수 있는 부류가 못되었다. 내가 그였다면 열쇠 생각에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이었다. 밤에 2시간이나 제대로 자도 다행일 거였다. 스턴은 쇼생크에서 30마일도 안된다. 그렇게 가깝고도 멀었다. 여전히 그의 최선의 방법은 변호사를 사서 재심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노튼 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말이다. 토미 윌리암스는 그 즐거운 귀휴프로그램만으로도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난 꼭 그렇게만 보지 않았다. 노련한 미시시피 변호사라면 그의 입을 열게 할수 있을지 몰랐고--.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윌리암스는 앤디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종종 앤디에게 이런 점을 말했지만 그는 먼곳을 향해 미소지을 뿐이었으며 자기도 그문제를 고려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었다. 분명 그는 다른 여러가지 방법들도 생각하고 있었다. 1975년 앤디는 쇼생크를 탈출했다. 다시 체포되지 않았으며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나는 멕시코 지화타네조에 피터 스티븐스라는 사나이가 내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올해 서기 1976년 조그만 새 호텔을 운영하면서 말이다. 이제부터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생각한 바를 말하겠다;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전부이다. 그렇지 않은가? 1975년 3월 12일 일요일만 빼고 매일 아침 그렇듯이 6시 반에 5번 구역의 감방 문이 열렸다. 일요일만 빼고 매일 그렇듯이 각 방의 죄수들이 복도로 걸어나와 두 줄로 섰고 뒤로는 감방 문이 세게 닫혔다. 그들은 그 구역의 정문으로 걸어갔는데 거기서 아래 식당으로 보내져 오트밀, 계란 범벅, 기름기 많은 베이컨으로 아침 식사를 들기 전에 2명의 간수에게 점호를 받게 된다. 구역 정문의 점호까지는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27명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26명이었다. 간수장에게 연락을 한 뒤에야 5번 구역 죄수들은 아침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리차드 고너라는 못돼먹은 간수장과 데이브 벅스라는 칠칠치 못한 부하 하나가 즉시 5번 구역으로 내려갔다. 고너는 감방 문을 열고 벅스와 함께 총을 꺼내 들고 몽둥이로 창살을 드르륵 긁으면서 복도를 내려갔다. 이런 경우는 보통 죄수가 간밤에 병이 나서 아침에 감방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경우이다. 드물게는 죽거나--. 자살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자도 시체도 없었다. 도대체 아무것도 없었다. 5번 구역에는 한쪽에 7개씩 14개의 감방이 있었는데 모두 잘 정돈돼 있었고-쇼생크에서는 감방을 지저분하게 하면 면회 제한의 벌을 받는다.-모두 텅 비어 있었다. 고너는 처음 수를 잘못 세었든지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 5번 구역 죄수들은 식사가 끝난 뒤 작업에 들어가는 대신 각자의 감방으로 되돌아 갔다. 행복한 마음이 되어 농을 지껄이면서. 일상적인 일의 파격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었다. 감방 문이 열렸고; 죄수들이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문이 닫혔다. 어떤 익살꾼이 소리쳤다. "변호사를 사겠어, 나 변호사를 살 테야. 너희들 여기서 공포 분위기 조성하쟎아!" 벅스가; "닥쳐! 닥치지 않으면 두둘겨 맞는다!" 익살꾼이; "난 네 마누라를 두둘길 테다. 버키!" 고너가; "전부 입닥치지 못하겠어? 하루 종일 그 안에 쳐박아 둘까 부다--." 둘은 수를 세면서 걸어갔다. 그러나 멀리갈 필요가 없었다. "이 방 임자가 누구야?" 고너는 오른편의 야간조 간수에게 물었다. "앤디 듀프레인 입니다." 오른편에서 대답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때 모든 일과가 정지되었다. 애드벌룬이 뜬 것이다. 내가 본 모든 감옥영화에선 탈옥이 있으면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었다. 쇼생크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고너가 처음 한 일은 소장과의 연락이었다. 다음은 교도소 수색 지시였으며 세번째는 스카보로 주립경찰에 탈옥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린 것이었다. 그것은 정해진 순서였다. 탈주한 거라 의심되는 죄수의 감방을 수색하라는 지시는 없었으며 따라서 방 수색은 없었다. 그 싯점까지는 그랬다. 도대체 왜 수색을 하겠는가? 백문이 불여 일견이란 말이 바로 이 경우였다. 감방은 조그만 정사각형인데 창에도 창살이 쳐있고 미닫이 문도 창살로 돼있다. 화장실과 빈 침상이 있었다. 예쁜 돌조각들이 창턱에 있었다. 물론 포스터도 있었다. 이때는 린다 론스타트였다. 침대 바로 위에 있었다. 26년간 정확히 같은 자리에 포스터 한장이 있어 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뒤를 보았을 때-다음에 나오지만 그건 다름아닌 노튼 자신이었으며 사필귀정이란게 존재하기나 한다면 이경우가 바로 그랬다.-대경실색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건 앤디가 증발했다고 보고된지 거의 12시간이 지나고 실제로 탈출한지 아마 20시간은 지난 그날 저녁 6시 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튼은 노발 대발했다. 그것을 믿을만한 사람한테서 들었다.-모범수 체스터인데 그날 행정부의 홀 바닥을 닦고 있었다. 그는 그날 열쇠 구멍을 자신의 귀로 문질러 댈 필요가 없었다; 소장이 리치 고너에게 호통칠 때 받아적는 것처럼 명료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너, 무슨 말이야? 놈이 교도소안에는 확실히 없다는게? 그게 무슨 말이야? 그말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이지? 놈을 찾는게 좋아. 신상에 좋아. 놈을 꼭 찾아내! 알겠어?" 고너가 무언가 말했다. "뭐? 너 근무 중에 일어난 게 아니라구? 그건 네 생각이지. 내가 알기론 그게 언제 일어났는지, 또 어떻게 해서, 아니 도대체 진짜 탈옥을 한 건지 어쩐지도 아무도 모른다구. 오늘 오후 3시까지 놈을 내 집무실로 데려와! 안그러면 몇 놈 모가지가 달아날 줄 알아. 내 약속하지. 난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야." 고너한테서 무슨 말이 나왔는데 노튼을 더 큰 분노로 이끌었다. "안되겠어? 그럼, 이걸 봐! 보라구! 이게 뭔지 알아? 어젯밤 5번 구역 점호 기록이야. 죄수놈들도 다 입증하고 있어. 듀프레인은 어젯밤 9시에 감방에 갇혔고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는건 있을 수 없어. 불가능하다구. 자, 그럼 이제 놈을 찾아와! " 하지만 오후 3시까지에도 앤디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다. 5분 뒤에 노튼 자신이 직접 5번 구역으로 내려왔는데 우리는 그곳에 종일 갇혀 있었다. 우리들이 심문 받았느냐고 묻는가? 우리들은 용의 숨결을 목뒤에 느낄듯이 닥달을 당하고 있는 간수들로부터 심문을 받으면서 긴 한나절을 거반 소비했다. 우리 모두의 대답은 같았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한 우리 모두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당연하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감방 문이 잠길 때, 그리고 한 시간 후 불이 꺼질 때 분명 앤디는 자기 감방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어떤 친구가 앤디가 열쇠 구멍으로 빠져 나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것으로 그친구는 4일간 독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들은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 노튼이 내려왔는데-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는데 파란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것이 감방의 담금질된 강철 창살에 불똥을 일궈낼 만큼 활활 타고 있었다. 그 눈빛은 우리가 그 문제에 있어서 한통속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아마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앤디의 방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감방은 앤디가 떠날 때와 같았으며 침상의 시트는 뒤집혀 있었지만 사람이 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창턱에는 돌들이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제일 좋아하는 것들은 몸에 지니고 갔던 것이다. "돌덩이들." 노튼은 코웃음치고는 창턱에서 그것들을 우루루 쓸어버렸다. 이제 근무 시간이 초과한 고너는 움찔움찔했지만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노튼의 눈이 린다 론스타트의 포스터에 닿았다. 린다는 꼭 끼는 황색 바지 뒷 호주머니에 양손을 쑤셔넣고 어깨 너머로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팔과 등이 드러난 홀터를 입고 있었으며 살갗이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포스터가 노튼의 침례교도적인 감정을 상하게 했음에 틀림없었다. 그가 포스터를 노려보는 걸 지켜보면서 앤디가 이전에 말했던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와 같이 있을 수 있을 것같다던 느낌을 기억했다. 아주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는 그렇게 했던 것이다.-노튼이 그걸 발견하기 몇초전에 그렇게 한것 같이 느껴진다. "사악한 것!" 으르렁거리고는 포스터를 한번에 휙 벽에서 뜯어냈다. 그러자 바로 뒤의 콘크리트 벽에서 아가리를 딱 벌린 구멍이 나타났다. 고너는 안으로 들어가려하지 않았다. 노튼은 들어가라고 명령했고-교도소 전체에서 노튼이 고너에게 들어가라고 고함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고너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넌 당장 해고다!" 노튼이 비명을 질러댔다. 월경중인 여자처럼 완전히 히스테리칼했다. 완전히 침착성을 잃었다. 목은 짙은 붉은 색으로 변했고 이마에는 정맥 두 개가 솟아나와 고동치고 있었다. "믿어두 돼! 이 프랑스 노무 새끼. 다시는 뉴 잉글랜드 교도계통에서 발을 못붙이게 할테다.!" 고너는 조용히 자기 권총을 자루쪽으로 해서 노튼에게 내밀었다. 그는 당할만큼 당했다. 근무 초과가 2시간 넘어 3시간 째였으며 당할만큼 당했다. 마치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으로부터의 앤디의 탈출이 오랜 세월동안 존재해 왔던 내밀한 비이성의 상태로 노튼을 밀어넣은 것 같았다--. 확실히 그날밤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물론 그 내밀한 비이성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흐릿한 늦겨울의 하늘에서 마지막 빛이 스러지는 그 오후에 26의 죄수들이 리치 고너와 노튼 소장의 작은 다툼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거칠거나 혹은 나긋나긋한 여러 교도소 직원들이 들고 나는 걸 지켜봐온 우리 고생이 막심한 장기수들이 모두 사무엘 노튼 소장이 엔지니어들이 즐겨 말하는 '부서질 것같은 긴장' 상태를 막 넘어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 하나님. 어디선가 앤디가 웃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튼은 마침내 야간 근무자 하나를 꼬셔서 린다 론스타트 포스터 뒤에 난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 깡마른 경비의 이름은 토리 트레몽이었는데 좀 덜떨어진 친구였다. 아마도 청동 메달이나 그 비슷한 것을 수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나중에 나타난 바와같이 노튼이 앤디와 비슷한 키와 몸집을 한 친구를 그리로 들여보낸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에 엉덩이가 큰 놈이 들어갔더라면-간수들은 대개 엉덩이가 큰 것 같다.-하느님이 푸른 초원을 창조하신것이 사실인 것처럼 그 안에 틀어박혀 아직도 못나오고 있을런지도 몰랐다. 트레몽은 누군가가 차 트렁크에서 찾아낸 나이론 줄을 허리에 묶고 건전지가 6개 들어가는 커다란 손전등을 쥐고 들어갔다. 그때쯤에는 사직하는 문제에 대해 마음을 바꾼, 그 장소에서 유일하게 명료한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고너가 설계도를 조사했다. 나는 설계도가 그에게 보여줄 내용을 잘 알았다.-벽은 그 단면이 샌드위치 형태였다. 벽의 두께는 전체가 10피트였으며 외벽와 내벽이 각각 4피트 두께였다. 가운데는 2피트의 파이프 공간이었는데 독자는 그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믿고싶은 마음이 들것이다.-여러가지 의미에서. 트레몽의 목소리가 구멍으로부터 희미하게 울려나왔다. "여긴 냄새가 되게 나는데요, 소장님." "신경쓰지 말고 계속 가! 계속 가라구!" 트레몽의 짧은 다리가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발도 사라졌다. 전등불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소장님, 정말 냄새가 너무 지독한데요." "신경쓰지 말라고 했쟎아! "노튼이 소리쳤다. 트레몽의 목소리가 비통하게 울려왔다; "똥냄새 같은데요. 으아, 씨팔, 진짜 그거쟎아. 으아 날 꺼내줘! 토할 거 같애! 똥이야 똥!"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트레몽이 최근의 두끼 식사를 상실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나는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날의 사건 전체가-아니, 지난 30년이-갑자기 나에게 밀어닥치면서 나는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했다.-그것은 자유를 상실한 이래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웃음이었으며 이 회색 벽 안에서는 불가능하리라 여겨왔던 웃음이었다. 하나님도 그렇게 웃지 못할 것이었다. "그놈을 끌어내!" 노튼 소장이 소리쳤는데 너무 웃는 바람에 그게 나를 뜻하는지 트레몽을 뜻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냥 발을 굴러대며 배를 잡고 웃어댈 뿐이었다. 노튼이 즉석에서 날 쏴 죽인다고 위협해도 멈출 수 없을 거였다. "그 새끼 끌어내!" 이렇게 해서 나는 현장을 떠난 사람이 되었다. 독방으로 직행해서 14일간 있었다.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순간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되는 불쌍한 트레몽이 똥이야, 똥! 하고 소리치던 걸 생각했고 앤디 듀프레인이 말쑥한 옷을 입고 자신의 차를 몰면서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서 독방의 14일을 보낸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절반은 앤디 듀프레인과, 똥 속을 기어나가 깨끗한 바깥 세상으로 빠져나간 앤디 듀프레인과, 그리하여 태평양을 향해 간 앤디 듀프레인과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의 나머지 일들은 대 여섯의 정보원으로부터 들었다.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나는 로리 트레몽이 점심과 저녁을 상실한 후 잃을 것이 많이 남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계속 갔으니까. 5번 구역 벽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 있는 파이프 공간에서 밑으로 떨어질 위험은 없었다; 너무 좁아서 트레몽은 실제로 몸을 꿈틀거리며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나중에 그는 거기서 숨을 쉴수 없었으며 생매장당하면 기분이 어떨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그 공간의 맨 밑에서 발견한 것은 5번 구역의 14개 화장실과 연결된 하수 파이프였는데 33년전에 놓여진 도기 파이프였다. 안으로 깨어져 있었다. 파이프의 깨어진 구멍 곁에서 트레몽은 앤디의 락 해머를 발견했다. 앤디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수월치는 않았던 것이다. 파이프는 트레몽이 막 내려온 공간보다 더 좁았다. 으로리 트레몽은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아는한 어느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말할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트레몽이 구멍과 락 해머를 조사할 때 쥐 한마리가 파이프에서 튀어나왔는데 나중에 그는 그놈이 거반 코커 스파니엘 강아지만했다고 맹세하는것이었다. 그는 훈련받은 원숭이처럼 앤디의 방으로 다시 기어올라왔다. 앤디는 그 파이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파이프가 교도소에서 500야드 떨어진 서쪽 습지대의 개천으로 통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교도소의 설계도는 주변에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꼼꼼한 놈이었다. 그는 5번 구역에서 뻗어나간 하수 파이프가 새로운 하수 처리장으로 꺽여들어가지 않는 쇼생크의 마지막 파이프라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며 75년 중반까지 결행하지 않으면 못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8월에 우리들은 그 새 하수처리장 작업에 투입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500야드. 축구장 길이의 5배다. 꼭 반 마일이다. 그는 그 거리를 아마도 조그만 만년필형 손전등이나 성냥 한두 갑만 가지고 기어간 것이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오물 속으로 기어간 것이다. 아마 쥐들이 널려 있었을 것이고 어둠 속에서 대담해지는 동물이 하는 식으로 그에게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어깨를 움직일만한 공간밖에 없었을 것이고 파이프 전체를 그렇게 밀고 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나같으면 폐쇠공포증으로 수십 번은 미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파이프가 오물을 토해내는 그 더럽고 질척한 개천으로부터 이어진 진흙투성이 의 발자국들이 발견되었고 거기서 2마일 떨어진 곳에서 수색조는 그의 죄수복을 발견했다.-다음날이었다. 추측하는 바와 같이 이 뉴스는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으나 교도소 반경 14마일 내에서 아무도 차량이나 의복의 도난, 달밤의 벌거벗은 사내를 신고해오지 않았다. 농장에서 개가 짖었다는게 고작이었다. 그는 하수도에서 나와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스턴쪽으로 사라진 걸 잘 알고 있다. 그 기억할 만한 날로부터 3개월 후 노튼은 사임했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는 얘기지만 놈은 완전히 풀이 죽었다. 발걸음에는 활기가 사라졌다. 마지막 날 그는 코데인 알약을 구하러 양호실로 내려가는 늙은 죄수가 그러는 것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발을 질척질척 끌며 걸어나갔다. 그 자리는 고너가 이어받았는데 이것은 노튼에게 있어서 가장 무자비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한 샘 노튼은 현재 엘리어트로 낙향했으며 일요일이면 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어떻게 그 빌어먹을 앤디란 놈이 자기보다 한수 윗길일수 있었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거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간단해. 어떤 사람은 해내는 거야, 샘. 어떤 사람은 못하지, 천년가도.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내 생각을 얘기하겠다. 세부에 있어서는 약간 오류가 있었을지 모르나 전체적인 윤곽은 정확하리란걸 나는 내 시계와 시계줄을 걸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앤디와 같은 사람에게는 가능한 방법이 한두가지 밖에 없었겠기 때문이다. 틈틈이 그 문제를 생각할 때면 정신이 좀 이상한 인디언 노 메이든을 떠올린다. "좋은 친구야." 노 메이든은 앤디와 8개월을 함께 지낸뒤 말했었다. "나는 나가게 되서 기뻐. 거기 바람이 되게 불어. 종일 추워. 그는 자기 물건들을 못만지게 해. 그건 괜챦아. 좋은 친구야. 장난 안쳐. 하지만 바람 되게 불어." 불쌍한 노 메이든. 우리들보다 많은 것을 더 일찍 안 셈이었다.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앤디는 그를 내보내고 다시 감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만약 노튼 소장이 온뒤 노 메이든과 함께 지낸 그 8개월이 없었더라면 앤디는 닉슨이 사임하기 전에 자유의 몸이 되었을 게라고 믿는다. 나는 이제 그 일이 1949년의 락 해머가 아니라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와 함께 시작되었던 거라고 믿고 있다. 그것을 요구할 때 얼마나 긴장해 보였으며 얼마나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듯이 보였는지 말한 바 있다. 그때는 단지 당황때문이며 자신이 연약한 인간이며 여자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특히 여자가 공상용의 포스터인 경우)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하는 그런 유형이기 때문인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이 틀린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앤디의 그 흥분이 전혀 다른것에서 연유한 게라는 걸 안다. 리타 헤이워드가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여자의 포스터 뒤에에서 노튼 소장이 결국 발견한 그 구멍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 것인가? 앤디의 인내력과 고된 노동임은 물론이다.-나는 그것을 조금도 깍아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동등한 요소가 두 가지 더 있었다; 커다란 행운과 WPA 콘크리트가 그것이다. 그 행운에 대하여는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그 WPA 콘크리트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알아봤다. 약간의 시간과 우표 두 장을 들여서 메인 대학 사학과와 거기서 일러준 주소의 사나이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쇼생크의 최대경비 지역을 건설한 WPA 사업의 현장감독이었다. 3, 4, 5. 번 구역을 포함하는 그 지역은 1934-37년에 건설되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자동차나 오일 용광로, 으로케트와 달리 '기술 진보'로 생각지 않지만 사실 그건 잘못이다. 현대적인 시멘트는 1870년 경까지는없었고 현대적인 콘크리트는 금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배합은 빵 만드는 작업만큼이나 섬세한 작업이다. 물이 너무 많을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다. 모래를너무 많이 넣거나 너무 적게 넣을 수 있었다. 자갈도 마찬가지이다. 1934년 당시에는 배합술이 오늘날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5번 구역의 벽은 충분히 단단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건조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예나 지금이나 습기가 있다. 긴 장마철이 지나면 물이 맺히고 방울져 떨어지기까지 한다. 금이 가기도 하고 어떤 건 깊이가 1인치나 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회반죽을 바른다. 그러던 차에 앤디 듀프레인이 5번 구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메인 대 경영학부 출신이지만 내내 한두 과목의 지질학을 수강했었다. 지질학은 실상 그의 주된 취미가 되었다. 그것은 앤디의 꼼꼼하고 참을성있는 성격에 맞았을 것이다. 빙하기가 만년간 있었고 산맥이 형성되는데 백만년이 필요했다. 그리고 천년이상 지표아래 깊은 곳에서 암석판이 서로 마찰되었다. 압력. 앤디는 언젠가 내게 지질학은 순전히 압력의 학문이라고 했다. 물론 시간의 학문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벽을 조사해 볼 시간이 있었다. 아주 많았다. 감방 문이 닫히고 소등이 되면 보이는 건 벽 뿐이었으니까. 초범들은 보통 갇혀있는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다. 발광하기도 한다. 때로는 양호실로 질질 끌려가 진정제 두어 방을 맞고 제 정신을 찾는다. 우리의 행복한 작은 가족의 새 식구가 자기 방의 창살에 몸을 부딪히며 내보내 달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비명소리가 오래 계속되기도 전에 감방마다에서 합창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초짜! 초짜! 햇병아리! 햇병아리! 헤이! 헤이! 1948년 쇼생크에 왔을 때 앤디는 그렇게 방정을 떨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분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거의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어떤 놈은 진짜 미친다. 과거의 생활은 눈깜박할 새에 날아가 버리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악몽이 펼쳐진다. 지옥에서의 긴 시즌이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했는가? 그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절망적으로 어떤 대상을 찾았다. 그렇다. 교도소에서조차도 갖가지 기분전환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선 인간의 마음에는 무한한 방법이 가득차 있는것 같다. 앞에서 나는 조각가와 '예수의 세 모습'에 관해 말했다. 끊임없이 수집품을 좀도둑한테 잃는 동전 수집가가 있는가 하면 우표 수집가도 있었다. 35개국의 우편엽서를 가진 친구도 있었는데 만일 어떤 놈이 그걸 훔치다가 걸렸다면 두 눈을 잃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앤디는 광석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자기 방의 벽도 마찬가지였다. 맨처음 그의 생각은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가 얼마후 걸리게 되는 곳에 자기 머릿글자를 새기는 정도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 머릿글자나 아니면 시 몇줄 말이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은 흥미롭게도 콘크리트가 굉장히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머릿글자를 파기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돌 조각이 떨어져 나왔을 것이다. 그가 침대에 누워 그 돌 조각을 굴리면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듯하다. 처참하게 된 내 인생을 개의치 말자. 엄청난 불운으로 이곳에 밀려온 사실에 신경쓰지 말자. 다 잊고 이 콘크리트 조각이나 들여다 보자. 몇 개월이 흐르면서 그는 얼마나 벽을 파낼수 있는가 알아보는 것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자기 방의 벽을 파내서는 안돼며 주례 감찰( 혹은 항시 술, 마약, 포르노, 흉기 따위의 흥미있는 은신처를 적발해 내는 기습 감찰)때 간수에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거요? 그냥 벽에 구멍 좀 파 봤어요. 신경쓰지 마세요. 간수님." 그는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와서 작은 게 아니라 큰 걸로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달라고 했던 거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는 락 해머가 있었다. 48년 당시 그 도구를 구해 줄 때 그걸로 벽에다 구멍을 뚫자면 한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앤디는 벽을 절반만 파내면 되었으며-콘크리트가 부드러웠음에도 그렇게 하는데 2개의 락 해머와 27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물론 그 세월 가운데 1년의 거지반은 노 메이든 때문에 잃었고 밤에만, 특히 야간근무조 간수를 포함한 거의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만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업을 더디게 한 가장 큰 원인은 파내면서 나온 콘크리트의 처리 문제였을 것이다. 윤내는 헝겊으로 해머의 머리를 감싸서 작업하는 소리를 죽일 수 있었겠지만 콘크리트 가루와 때로 나오는 큰 덩어리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틀림없이 큰 덩어리는 자갈 크기로 잘랐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락 해머를 구해 준 다음의 일요일이 기억난다. 얼굴은 시스터와의 최근의 한바탕으로 부어오른채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던 그를 바라보았었다. 그가 몸을 숙이고 자갈을 어드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의 소매 안으로 사라졌었다. 소매 안쪽의 호주머니는 교도소의 오랜 트릭의 하나였다. 소매 윗쪽이나 바지의 접는 부분 안쪽 말이다. 그리고 강렬하지만 초점이 흐릿한 또다른 장면 기억나는데 아마 한 차례 이상 목격한 것일 터였다. 그것은 바람 한 점 없는 어느 여름 날 운동장을 가로 지르던 앤디의 모습이었다. 그렇듯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앤디의 발치에서 모래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던 약간의 미풍만 빼고 말이다. 아마 그는 바지의 무릎 아래 부분에 속임수 장치를 두개쯤 해 놨을 것이었다. 그 장치에다 내용물을 채워 넣고 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슬슬 걸어다닌다. 그러다 누가 보지 않아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호주머니를 움찔 한다. 물론 호주머니는 줄이나 튼튼한 실로 장치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걸어가면서 내용물이 바지 아랫단으로부터 쏟아지는것이다. 2차대전때 전쟁 포로들이 굴을 파고 탈옥할때 이 방법을 썼었다. 여러해를 두고 앤디는 감방의 벽을 한웅큼씩 한웅큼씩 운동장으로 옮긴 셈이었다. 그는 여러 소장과 협조했는데 사람들은 그 이유를 도서관을 키우고 싶어하는 데서 찾았다. 그것도 이유의 일부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5번 구역 14호실을 자기 혼자 쓰도록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탈옥할 실제적인 계획이나 희망을 가졌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아마 벽이 10피트의 속이 꽉 찬 콘크리트일거라 생각했을 거고 다 뚫는다면 운동장위 30피트 허공으로 나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했듯이 탈옥에 그렇게 마음을 썩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나는 약 7년에 1피트만을 나아갈 뿐이다. 다 뚫는데 70년이 걸리고 그러면 나는 101살이다. 내가 앤디였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붙들려서 복역 기록표에 아주 큰 검은 별을 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독방 생활을 할 것이다. 결국 정기적인 월례 감찰과 거의 두주마다 기습 감찰-보통 밤에 이루어진다- 이 있다. 빠르든 늦든 어떤 간수가 뾰족하게 갈은 숟갈 손잡이나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마리화나 들은 권련을 찾으려 리타 헤이워드의 뒤쪽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대한 그의 반응은 틀림없이 '웃기고 있네'일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적발되기 전까지 얼마나 파 나갈 수 있을까? 교도소는 지루한 곳이다. 포스터를 떼어놓고 있는 동안에 한밤중의 기습 감찰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마도 초기의 몇 년간은 생활의 양념 구실을 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가 순전히 엄청난 행운만으로 그일을 해냈다고는 보지 않는다. 27년간 말이다. 그럼에도 처음 2년 동안은, 즉 바이런 헤들리의 유산 세금 문제를 도와준-이것이 바로 그의 방식이었다-1950년 5월 중순까지는 틀림없이 그랬으리란 점을 믿어야만 한다. 혹은 그 시기에조차도 엄청난 행운 이상의 그에게 이로운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돈이 있었고 잘 지내보자는 뜻으로 매주 약간씩의 뇌물을 썼을 지도 몰랐다. 액수가 적당하다면 대부분의 간수들은 협조한다; 돈이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죄수들은 포르노 화보나 고급 담배를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앤디는 모범수였다.-조용했고 젊잖은 말투와 예절을 갖추었고 폭력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미치광이들이나 탈옥자의 경우에는 적어도 6개월에 한번은 감방을 샅샅이 수색당한다. 침대의 지퍼를 열고 배개를 찢어보고 화장실로부터 이어진 파이프도 꼼꼼하게 조사한다. 그리고 1950년 앤디는 모범수 이상의 무엇이 되었다. 1950년에 소중한 일용품이 된 것이고 말하자면 H. R 구역보다 세금 문제를 더 잘 처리하는 살인자가 된 것이다. 공짜로 부동산 관리에 관한 조언을 해주고 세금을 덜 내게 했으며 대부 신청서를 메꾸어 주기도 했다(때로는 새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가 도서관 책상 뒤편에 앉아서 중고 디소토를 사려하는 간수장과 자동차 구입 대부금 계약서를 한 문장 한 문장 열심히 검토하고 있던 걸 기억한다. 그는 계약서 내용의 장단점에 대해 말해주고 이것으로 대부금을 얻을 수 있으며 괜챦게 된 계약이라고 설명하고는 당시에는 종종 합법적인 고리대금업자나 같았던 금융회사와 거래하지 않도록 조종하고 있었다. 일이 끝나자 간수장은 손을 내밀다가--. 재빨리 거두어 들였다. 잠시동안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마스코트와 상대하고 있다는 걸 잊었던 것이다. 앤디는 세법이나 주식시장의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그렇게 해서 추측하는 것처럼 그의 유용성은 감옥 속에서도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도서관 자금을 받기 시작했으며 시스터와의 계속된 싸움도 끝이 났고 아무도 그의 방을 철저하게 수색하지 않았다. 그는 괜챦은 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업이 꽤 진척된 어느날-아마도 1967년 10월 무렵-오래된 취미는 갑자기 다른 무엇으로 바뀌었다. 어느날 밤 허리께까지 굴에 들어가 라켈 웰치 포스터가 엉덩이에 늘어뜨려져 있는 상태에서 락 해머의 곡괭이 쪽이 자루 부위까지 콘크리트 벽 속으로 푹 들어갔음에 틀림없다. 정상적이라면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이쪽으로 끌어냈을 테지만 아마 그는 그것들이 허공으로 떨어져내려 바닥에 어지럽게 튀거나 수직 파이프에 부딪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 공간으로 나가게 될 줄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아연 실색했을까? 나는 알수 없다. 그때까지 설계도를 보았을 수도 있겠고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못 보았더라도 오래지 않아 어떻게든 그것을 보게 됐으리란건 믿어도 좋으리라. 갑자기 그는 자신이 단순한 재미로 게임을 하는 대신 커다란 판돈이 걸린-가장 큰 판돈인 자신의 인생과 미래가 걸린-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지화타네조에 관해 얘기한 것이 그 무렵이었기 때문에 그 싯점에선 확신은 아닐지라도 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느 순간 벽에 난 변변챦은 구멍이 단순한 장난거리가 아니라 그의 주인격이 된것이다.-바닥에 놓인 하수구와 그것이 외부 벽 밑을 통과한다는 걸 알았다면 확실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여러해 동안 스턴의 바위 밑에 있는 열쇠를 두고 근심해 왔다. 이제는 어떤 신출내기 일벌레 간수가 포스터 뒤를 들여다 보고 모든 것을 폭로하게 될지, 다른 감방 동료를 맞이하게 될지, 많은 세월을 잘 있다가 갑자기 다른 데로 이감될지 마음 졸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후 8년간 이같은 걱정거리를 마음 속에 품고 지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냉정 침착한 사람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만일 내가 그 모든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면 얼마 안가 완전히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앤디는 그저 게임을 계속해나갔을 뿐이었다. 그는 8년간 발각될 가능성을 간직하고 살았다.-개연성이라 해도 좋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아무리 조심해서 카드를 친다해도 주립 교도소의 일개 수인으로서 칠만한 카드가 많지는 않았을 테니까.-하느님은 정말 오랫동안 그를 보살폈다; 19년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아이러니는 만약 그에게 가석방이 제공되었다면 하는 것이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가석방자는 실제로 석방되기 3일전 경범죄자 수용지구로 이감되어 종합 신체검사 및 직업 테스트를 받는다. 거기 있는 동안 이전에 쓰던 감방은 완전히 치워진다. 그랬더라면 앤디는 가석방되는 대신 저 아래 독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위로 와서는 형기가 연장되었을 것이며--. 그것은 다른 감방이 되었을 것이다. 1967년에 그 파이프 공간까지 뚫었다면 어째서 1975년까지 탈출하지 않고 있었을까? 확실히는 모르겠다.-그러나 그럴듯한 추측은 가능하다. 첫째, 이전보다 더 신중해졌을 거란 점이다. 그는 최대 속도로 일을 밀고 나가 8개월 혹을 18개월 만에 탈출을 시도하기엔 너무 똑똑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 기어가는 공간을 넓혔음에 틀림없다. 그해 송년의 술을 마셨을 때 찻잔 만한 구멍이 68년 생일 술을 마실 때쯤 접시 만해지고 69년 야구 경기가 개막될 무렵엔 쟁반 만해졌을 것이다. 나는 작업이 실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척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구멍이 뚫린 다음에 말이다. 돌덩이를 부수어서 이미 말한 속임수 장치로 감방 밖으로 내가는 대신 그냥 그 공간 속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데 소요한 시간의 길이로 보아 대담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소음이 누군가의 의혹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수도의 존재를 알았을 경우-분명 알았을 것이다.-준비가 미처 되기도 전에, 떨어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하수도를 깨고 5번 구역의 하수 처리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켜 조사단이 오게되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파멸로 이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닉슨이 두번째 취임 선서를 할 무렵까지는 몸을 꿈틀대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넓어졌을 것이다--. 아마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앤디는 몸집이 작았으니까. 어째서 그때 나가지 않았을까? 여기서 나의 논리적인 추리는 한계에 닿는다; 지금부터는 그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 될것이다. 한가지 가능성은 그 공간이 똥으로 막혀 있어서 이를 제거해야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간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면 무엇이었을까? 아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교도소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힘껏 말해왔다. 처음에는 사방의 담벼락을 견뎌내지 못하다가 그것을 참아낼 수 있을 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다음에는 몸과 마음과 정신이 교도소의 기준에 맞게 조정이 되면서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 언제 밥을 먹을지, 언제 편지를 쓸 수 있는지, 언제 담배를 피울 수 있는지, 지시가 내려진다. 세탁소나 번호판 공장에서 일할 경우 매 시간마다 5분이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주어진다. 35년 동안 매시 25분이 나의 화장실 시간이었으며 그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시간이 되어야만 요의나 변의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매시 25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못갔을 경우 욕구는 매시 30분이 지나면 사라져서 그 다음 시간 25분에 되돌아 온다. 나는 앤디가 그 호랑이-즉, 죄수 신드롬-와 투쟁을 했으리라 생각하며 또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커다란 공포와도 싸웠으리라 생각한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라는걸 잘 알고 있는 그가 얼마나 많은 밤을 포스터 아래쪽에 누워 하수도에 관해 생각하면서 지새웠을 것인가? 설계도는 하수도의 직경에 관해서는 알려주었겠지만 그 안쪽이 어떨것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줄 수 없었다.-질식하지 않고 숨쉴수 있을지, 쥐들이 달아나지 않고 덤벼들 만치 크고 사나울지--. 설계도는 또 그가 하수도관 끝에 다다랐을 경우 무엇을 맞닥뜨리게 될지에 관해서도 알려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가석방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하수도관속에 과감히 들어가서 숨막히고 똥냄새나는 어둠 속을 500야드나 기어가 하수도관 끝에서 육중한 철망과 맞닦뜨린다. 하, 하, 굉장히 재미나지 않은가? 이런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해도 민간인 옷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추적당하지 않고 교도소 근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끝으로 하수도에서 나와 탈옥 경보가 내려지기 전에 쇼생크로부터 도망쳐서 스턴으로 가 옳게 그 돌을 뒤집었는데--. 그밑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옳게 그 들판에 갔는데 거기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거나 슈퍼마켓 주차장이 건설되어 있는걸 발견한다.-이러면 가장 극적일 것이다. 광석을 좋아하는 꼬마 녀석이 있어서 그 흑요석을 뒤집어보고 보관함 열쇠를 발견하고는 기념으로 둘 다 자기 방으로 가져가 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11월 어떤 사냥꾼이 그 돌을 발로 차 열쇠가 드러나고 밝게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다람쥐나 까마귀가 그걸 가져가 버렸을 수도 있었다. 어느해 봄 홍수가 그 암벽을 휩쓸면서 열쇠도 떠내려갈 수도 있었다. 어떤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앤디가 한동안 그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거라생각한다.-그저 추측일 수도 있다. 결국 도박을 하지 않으면 잃지 않는다. 그에게 잃을 것이 무어가 있는가고 묻는가? 도서관이 그 하나고, 교도소 생활의 그 마약같은 평화로움이 다른 하나이다. 그리고 안전한 신분을 획득할 미래의 어떠한 가능성도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말한 그대로 앤디는 마침내 해냈다. 정말 보기좋게 해치우지 않았는 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독자는 물을 것이다. 그는 정말 탈출에 성공한 것인가? 그 뒤로 무슨일이 생겼을까? 그 돌이 여전히 그자리에 있다치고 그가 들판에 이르러 그것을 뒤집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독자를 위하여 그 광경을 묘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교도소의 인간은 여전히 이 감옥에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다. 75년 늦여름. 정확히는 9월 15일. 나는 텍사스의 맥내리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부친 한장의 우편 엽서를 받았다. 그 마을은 미국 국경선에 있는데, 엘 포베너 바로 건너편이었다. 엽서의 내용란은 완전히 공란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인간들 모두는 언제가 죽는다는 것 만큼이나 확실히 알고 있다. 맥내리는 그가 국경을 넘은 곳이었다. 테사스의 맥내리. 이상이 나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모두 쓰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몇 페이지나 될지 생각지도 못했다. 엽서를 받은 직후 쓰기 시작해서 이제 1976년 1월 14일에 끝을 보게 되었다. 연필 3자루를 몽당 연필이 되도록 썼고 종이 한권을 다 썼다. 나는 이것을 조심해서 숨겨왔으며--. 어쨋든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읽어볼 수는 없었다. 이 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에 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나뭇가지를 맑은 냇물 속에 넣고 그 진흙 바닥을 휘젖는 것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라고 극장의 맨 뒷줄에서 들려온다. 앤디 듀프레인에 관한 글이다. 여기서 본인은 조연급밖에 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 않다. 한 단어 한 단어 속속들이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앤디는 놈들이 결코 가두어 둘 수 없었던 나의 일부분이었으며, 마침내 문이 열리고 싸구려 옷에 호주머니에는 20달라라는 기막힌 돈을 넣고 걸어나갈 때 기뻐하게될 나의 한 부분이었다. 나머지 부분이 얼마나 노쇠와 실의와 두려움에 빠져버릴지라도 그 부분은 기뻐할 것이었다. 단지 앤디가 그러한 부분을 나보다 더 많이 가졌으며 더 잘 사용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는 나와같은 죄수들이 있고 이들은 앤디를 기억했다. 우리는 앤디의 탈출에 기뻐했지만 동시에 약간은 슬퍼했다. 그렇다. 어떤 새들은 새장에 넣게 되어있지 않다. 그들의 깃털은 너무나 가볍고 그들의 노래는 너무나 달콤하고 야성적이다. 그래서 그들을 날려보내는 것이다. 아니면 먹이를 주기위해 새장문을 열때 어떻게든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처음의 장소에 그들을 가두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마음은 기뻐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떠나버림으로해서 자신의 집은 더 우중충해지고 텅 빈것 같은 것이다. 이상이 끝이고 이야기를 털어놓아 기쁘다. 비록 결말이 분명치 않고 또 펜이 들쑤셔 놓은 기억의 어떤 것은 (나뭇가지로 내의 진흙 바닥을 쑤시듯이)나를 좀 우울하게 만들고 실지보다 더 늙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게 했지만 말이다. 들어줘서 감사하다. 그리고 앤디, 나는 믿고 있지만, 자네가 정말 그 아래 내려가 있다면 해 떨어진 직후 나를 위해 별들을 바라봐 주고, 해변의 모래를 감촉하고, 물로 걸어들어가 자유를 만끽하게. 이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게 될 줄은 전혀 예기치 못했지만 지금 내 앞 책상 위에는 귀퉁이가 접힌 종이들이 펼쳐져 있다. 이제 나는 새 종이 한 권으로 서너 페이지 이야기를 덧붙이려한다. 이 종이를 나는 가게에서 샀다.-포틀랜드 의회 거리에 있는 상점에 걸어들어가 이를 산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쇼생크의 한 감방 안에서 1976년 1월의 어느 음산한 날 끝낸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1977년 5월이고 포틀랜드 부르스터 호텔의 조그만 싸구려 방에 앉아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이 굉장히 크고 그래서 흥분이 되고 두렵다. 나는 끊임없이 창문을 올려다 보며 그 곳에 창살이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켜야 한다. 싸구려 방의 침대건만 너무 크고 호사스럽게 느껴져서 밤에 잠을 잘 못잔다.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잠이 깨어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두려움을 느낀다. 꿈자리가 사납다. 자유낙하를 하는 듯한 이상한 꿈이다. 그 느낌은 흥분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추측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가석방되었다. 38년간 꾸준히 가석방 청문회가 열리고 거부되기를 계속한 끝에 (이 38년의 세월 동안 나를 담당한 3명의 변호사가 죽었다.) 나의 가석방은 승인되었다. 그들은 내가 58살이나 되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 만큼 늙어빠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러분이 막 읽은 이 기록을 나는 거의 불살라 버리기 직전까지 갔었다. 놈들은 들어오는 신참자 만큼이나 철저하게 나가는 가석방자를 수색한다. 나를 즉시 되돌려 보내 감방에서 6-8년을 더 살게 하기에 충분한 화약을 포함하고 있는것 이상으로 이 '회고록'은 다른 무엇도 담고 있다; 앤디 듀프레인이 가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마을의 이름 말이다. 멕시코 경찰은 기꺼이 미국 경찰과 협력할 것이고 나는 그토록 오래 힘들여 쓴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고집으로 앤디의 자유가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앤디가 1948년 500달라를 들여왔던 방법을 기억해 내고 똑같은 방법으로 앤디에 관하여 쓴 글을 가지고 나왔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지화타네죠가 언급된 모든 페이지를 주의해서 다시 썼다. 쇼생크에서 부르는 대로 '출감 수색'에서 이 글이 발견된다면 나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겠지만--. 경찰은 페루해안의 라스 인트루드레스라는 곳에서 앤디를 찾아 헤매게 될 것이었다. 가석방 위원회는 내게 싸우스 포틀랜드 스프루스 몰의 커다란 푸드웨이 상점의 '상점 보조원' 자리를 얻어주었다. 이것은 내가 늙은 백보이의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백 보이에는 두 종류만이 있다는걸 알고 있는지; 늙은 백 보이와 젊은 백 보이 말이다. 누구도 그 둘 모두 쳐다 보지 않는다. 혹시 스프루스 몰 푸드웨이 상점에서 쇼핑한 적이 있다면 내가 야채 상자를 차에 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일한 기간인 1977년 3-4월 사이여야 할 것이다. 처음 나는 바깥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나갈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교도소가 바깥 세상의 축소판이라 말한 바 있지만 얼마나 바깥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지 생각도 못했다; 사람들이 엄청 빨리 다닌다. 말소리도 빠르고 크다. 그것은 내가 해야했던 가장 어려운 적응이었으며 아직도 안되고 있다--. 전혀 안되고 있다. 한 예로 여자를 들어보자. 40년간 그들이 인류의 절반이라는 걸 거의 잊고 있다가 갑자기 그들로 가득찬 상점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나이든 여자들, 아래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여기에 애기가 있어요' 라는 글자가 인쇄된 티 셔츠를 입은 임신한 여자들, 셔츠 입은 위로 젖꼭지가 두드러져 보이는 깡마른 여자들,-내가 들어갔을 무렵이라면 이런 걸 입은 여자들은 체포되어 정신감정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가지가지의 모양과 크기의 여자들이 있었다. 나는 거의 내내 정신이 어찔어찔하고 자신이 더러운 노인네라는 걸 저주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그 하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욕구는 항상 매시 25분에 찾아온다.) 웃 사람의 허락을 받으려는 굉장한 충동과 싸워야만 했다. 이 밝은 바깥 세상에서 그냥 가서 일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가까이 있는 간수장에게 허락 받지 않았다간 이틀간 독방 신세를 져야 했던 그 많은 세월을 겪은 후 그 아는 것에 나의 내적 자아를 적응시키는 것--.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사장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스물 예닐곱 먹은 젊은 친구였는데 쓰다듬어 달라고 배를 깔고 기는 알랑거리는 비굴한 늙은 개가 그러듯이 그를 구역질나게 한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나도 나 자신에 대해 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감옥에서 평생을 산다면 이렇게 된다네, 젊은이. 간수들은 전부 주인이 되는 거구 죄수들은 그 주인의 개가 되는 거라네. 그 안에서도 자신이 개라는 걸 알수도 있겠지만 거기선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않되지. 여기서는 그렇지 않지만 말일세. 하지만 그같은 젊은 친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결코 이해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맡은 경찰 역시 이해못할 것이었다. 거구의 퉁명스런 퇴역 해군으로 무성한 붉은 턱수염을 했는데 폴란드 식 농을 잘했다. 그는 매주 5분간 나를 만났다. "근데 자네 아직도 바깥에 있나?" 폴란드 식 농이 바닥나면 이렇게 묻곤 했다. 나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 주까지는 그걸로 그만이다. 라디오의 음악. 내가 들어가던 무렵에는 대형 밴드가 아주 인기였다. 지금 노래들은 전부 섹스에 관한 것같다. 차도 무척 많다. 처음에는 길을 건널 때마다 목숨을 걸고 있다고 느꼈다. 그 외에도 많았다.-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무서웠다. 독자는 이해할 것이다. 아니, 최소한 짐작은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안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무언가를 해볼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석방 중인 경우에는 어떤 일이라도 대개 감옥으로 되돌려 보낼 수가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조용한 곳, 하루중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기 위하여 나는 돈을 좀 훔치거나 그 푸드웨이 상점에서 좀도둑질을 하거나 할 생각을 했 다. 앤디라는 사람을 몰랐다면 십중 팔구 그렇게 됐을 거였다. 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 많은 세월 동안 락 해머로 시멘트를 부수어나간 그를 계속 생각했다. 그걸 생각하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그 생각을 다시 포기하는 것이다. 혹시 독자는 그가 자유를 찾아야 할 더 많은 이유를 가지지 않았는가 말할 수 있겠다.-새로운 신분과 막대한 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신분이 거기 그대로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고 새로운 신분이 없이는 돈을 손에 넣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가 원한 것은 자유 그 자체였으며 만일 내가 가진 것을 차버린다면 그건 그가 되찾기 위해 그토록이나 노력했던 그 모든것에다 침을 뱉는 격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얻어 타고 조그만 마을 스턴으로 가보는 일이었다. 1977년 4월 초였는데 눈이 이제 들판에서 녹기 시작하고 대기는 바야흐로 따뜻해지기 시작했으며 신이 찬성하는 유일한 경기임이 분명한 야구 경기의 새 씨즌을 위해 야구 팀들이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갈 때마다 실바 나침반을 호주머니에 지니고 갔다. 스턴에 커다란 목초지가 있읍니다. 앤디는 말했었다. 그 목초지의 북쪽끝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암벽이 있거든요. 그 벽 밑부분 어딘가에 메인의 풀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돌이 하나 있읍니다. 헛 수고다 라고 말할 것이다. 스턴같은 시골 마을에 목초지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50개? 100개? 직접 경험으로 말하건대 앤디가 들어올 땐 초지였지만 지금은 개간된 곳까지 합치면 그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옳게 찾았더라도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었다. 그 검은 흑요석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더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앤디가 그걸 호주머니에 넣고 가져가 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독자 생각에 찬성한다. 의심할 바 없이 헛수고다. 게다가 가석방 중인 사람에게 더 나쁘고 위험한 것이 어떤 곳은 무단횡단 금지 푯말이 선명하다는 점이었다. 말했듯이 규정을 어길 경우 놈들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감옥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었다. 헛 수고다--. 하지만 27년간 그 빌어먹을 콘크리트를 쪼갠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또 더 이상 물건을 입수하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늙은 백 보이에 불과한 지금 새 삶에 있어 기분 전환을 할 취미를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나의 취미는 앤디의 돌을 찾는 일이었다. 이렇게 나는 스듕으로 차를 얻어타고 가서 길을 돌아다녔다. 새 소리와 도랑을 흐르는 봄의 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으며 스러져가는 눈이 드러내 놓은 빈병을 살피기도 하며-그 병들은 모두 쓸모 없는 일회용품이었다. 이렇게 말해 뭣하지만 내가 감옥에 들어간 이래 세상은 몹시 낭비가 심해진것 같았다.-목초지를 찾아다녔다. 목초지의 대부분이 깨끗하게 사라진것 같았다. 암벽도 그랬다. 어떤 곳은 암벽이 있었지만 나침판은 그것이 엉뚱한 방향이라고 일러준다. 어쨋거나 이런 엉뚱한 풀밭들을 거닐었다. 즐거웠으며 이런 소풍때 나는 정말 평화롭게 자유를 만끽했다. 어느 토요일엔 늙은 개 한 마리가 나를 따라왔으며 어느날인가는 겨울 동안 마른 사슴 한 마리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4월 23일이 되었다. 50년을 더 산대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토요일 오후였으며 나는 다리 위에서 낚시질하던 어린 꼬마가 가르쳐 준 올드 스미쓰 로드라는 곳을 걸어오르고 있었다. 갈색 슈퍼마켓 봉지에서 점심을 꺼내 길가 바위에 앉아서 먹었다. 다 먹은 후 내게 길 이름을 가르쳐준 그 어린 낚시꾼보다 더 나이많지 않았던 내게 생전의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대로 쓰레기를 깨끗하게 땅에 묻었다. 2시경에 왼쪽에 커다란 들판이 나타났다. 그 끝에는 대략 북서쪽을 향해 암벽이 있었다. 젖은 땅을 절벅거리며 다가가 암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람쥐 하나가 참나무 위에서 내게 뭐라고 지껄였다. 그 끝으로 3/4쯤 가서 나는 그 돌을 보았다. 틀림없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흑요석이었다. 메인의 풀밭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울것 같은 기분이 되어 오래도록 그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다람쥐가 따라와서 아직도 조잘거리고 있었다. 나의 심장은 미친듯 뛰었다. 평정을 찾았다고 느끼자 그 돌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무릎 관절에서 2연발 숏건처럼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손을 대보았다. 현실이었다. 그 밑에 뭔가가 있을것 같아서 그걸 집어들 수가 없었다; 나는 그밑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쉽게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걸 가져가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기에 확실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그 풀밭에서 그 돌을 가져간다는 것은 가장 중한 절도로 느껴졌다. 그랬다. 단지 나는 더 잘 느껴보기 위해, 그 중량감을 알아보려고, 아니, 아마도 내 피부로 그 비단결같은 감촉을 느낌으로써 이것이 현실임을 확인하고자 그 돌을 어올렸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그 밑에 있는 것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눈은 그것을 바라보지만 두뇌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습기를 막기 위해 비닐로 잘 싼 봉투 하나였다. 겉면에는 앤디의 깨끗한 필체로 나의 이름이 씌여 있었다. 나는 봉투는 주워들었지만 돌은 앤디와 그에 앞서 그의 친구가 놓았던 곳에 그대로 두었다. 안녕하세요, 레드 형.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형은 나온 겁니다. 그 방법이야 어떤 것이든지요. 이렇게 멀리까지 와 주었다면 좀더 멀리 와 줄 마음이 있으실것 같은데요. 그 마을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그렇죠? 저를 도와 제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을 좋은 일손이 필요합니다. 잠시, 저를 위해 한 잔 하시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형을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겁니다. 희망은 좋은 거라는걸 기억하세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 겁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지요. 형이 이 편지를 제대로 발견하기를 희망합니다. 형의 친구 피터 스티븐스. 나는 들판에서 이 편지를 읽지 않았다. 일종의 공포가, 남의 눈에 띄기 전에 그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슴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체포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나는 방에 돌아와서 편지를 읽었다. 노인네들의 식사냄새가 계단을 통해 올라와 진동했다.-비파로니, 라이스 어 로니, 누들 로니, 였다. 고정 수입으로 살아가는 미국 노인네들이 오늘밤 무엇을 먹든지 그건 분명 '로니'로 끝날 것이었다.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고는 머리를 팔에 파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편지와 함께 봉투 속에는 빳빳한 50달라 지폐 20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다시 사법으로부터의 도피자로서 나는 여기 브루스터 호텔에 있는 것이다.-가석방 선서 위반이 나의 범죄이다. 아무도 이와같은 혐의로 수배된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진 않을 것이다.-지금부터 할 일을 미리 알고 그럴리는 없는 것이다. 내게는 이 수기가 있다. 그리고 소지품을 전부 넣은 의사가방 크기의 조그만 짐꾸러미가 있다. 또 50달라 19장, 10달라 4장, 5달라 1장, 1달라 3장, 그외 갖가지 종류의 동전이 있다. 이 종이 한 권과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50달라 한 장을 깨서 썼던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사실 생각할 것도 없다. 항상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바쁘게 살아갈 것인가, 바쁘게 죽어갈 것인가. 우선 이 수기를 가방 속에 넣을 것이다. 가방을 잠그고, 외투를 들고, 아래로 내려가서 이 너저분한 호텔의 숙박비를 계산할 것이다. 다음 업타운의 바아로 걸어들어가 5달라를 바텐더 앞에 내밀고 잭 다니엘스 스트레이트 2잔을 주문할 것이다.-한 잔은 나, 다른 한 잔은 앤디 듀프레인을 위한 것이다. 한 두잔의 맥주를 제외한다면 그 술은 1938년 이래 자유인으로서 마시는 첫번째 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텐더에게 1달라를 팁으로 주며 상냥하게 수고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바아를 떠나 스프링가를 걸어올라 그레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에 가서 뉴욕을 경유해 앨패소로 가는 버스표를 살 것이다. 앨패소에 도착하면 맥내리행 버스표를 살 것이다. 맥내리에 닿으면 나같이 늙은 악당도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갈 수 있을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이름 지화타네조를 나는 기억한다. 그같은 이름은 잊기에는 너무나 예쁜 이름이다. 나는 흥분하고 있다. 너무 흥분해서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붙들고 있기가 어렵다. 이것은 자유인만이 느낄 수 있는, 목적지가 불분명한 기나긴 여행을 출발하는 자유인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이리라. 나는 희망한다. 앤디가 그곳에 내려가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내가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내 친구를 만나 악수를 나눌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 속에서처럼 푸른 빛이기를. 나는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