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저자명: 니코스 카잔차스키 옮긴이: 김성영 출판사명: 고려원 차례 1. 유다를 찾고 있다. 2. 사람의, 사람에 의한 학대 3. 성자와 도적들 4. 수양과의 싸움 5. 악마와 그리스도의 가면 6. 선장의 죽음 7. 하나님은 토기장이, 흙으로 빚으신다. 8. 마을에서의 살인 사건 9. 희생의 제물 10. 떠오르는 길 11. 불을 단 수레바퀴 12. 사제의 저주 13. 볼셰비키 14. 네가 그를 죽였다. 네가 15. 최초의 충돌 16. 맨발의 여로 17.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18. 늑대도 제 힘으로 사냥을 한다. 19. 그리스도의 성난 얼굴 20. 오직 한 길 21. 헛되도다, 오, 헛되도다. 옮긴이의 말 1. 유다를 찾고 있다. 마을 광장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저택의 발코니에 앉아 리코브리시 마을의 아그하(풀이: 그리스를 다스리던 터어키의 지방관리의 통칭)는 파이프를 빨아대면서 이따금씩 라키를 들이키고 있었다. 부드럽게 가랑비가 부슬거렸다. 깔끔하게 염색된 그의 검고 다부룩한 콧수염에 자그마한 물방울이 매달려 반짝거렸다. 그는 따끈한 라키로 입술을 적시면서 신선한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오른편에는 트럼펫을 움켜잡은, 그의 종이자 경호원격인 후세인이란 사나이가 서 있었다. 이자는 동양적인 거인으로서 원숭이처럼 사악한 사팔뜨기였다. 그의 왼편에는 보조개를 한 소년이 그의 다리를 덮어 싼 벨벳 쿠션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의 파이프에 끊임없이 궐련을 넣어 주거나 컵에 라키를 채워 주고 있었다. 아그하는 음침한 눈꺼풀을 반쯤 내리깔고 이 지상 세계를 완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하늘은 만사를 확정했겠다. 이 인간사는 실제적인 완성, 그것이 아닌가? 여기 빵과 잘게 썬 고기, 그리고 계피를 곁들인 고기밥(풀이: 쌀에 고기와 향료를 섞어 만든 음식. 주로 회교도들이 먹음)이 있다. 너희들은 목마른가? 여기 젊음의 생수 라키가 있다. 그대들은 졸리는가? 하늘은 잠을 만드셨느니, 어디 잠만한 게 있겠는가. 화가 난다고? 여기 채찍이 있고 라이아스'raia's (풀이: 터어키족의 통치 아래 있던 반 모슬렘교도)의 엉덩이가 있으니 화풀이로는 그만이 아닌가! 만일 그대들이 의기소침 하다면, 그가 지은 아마네스(풀이: 터어키족의 가곡 또는 멜로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들이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근심을 잊어버리고 싶다면 여기 그가 빚은 미소년 유소우화키가 있지 않은가. 경이스러운 예술가, 알라여! 그는 제법 정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암, 그렇고말고. 이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일을 알고 있지. 그것은 솔직담백한 것이야, 역시... 악마인들 그가 가지고 있는 라키와 유소우회키 제조의 아이디어를 어찌할 건가? 아그하의 눈은 이슬방울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는 라키를 제법 많이 들이켜서 자신의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서서 광장 위를 거니는 라이아스들을 내려다보았다. 막 면도를 하고, 그들의 폭이 넓은 붉은 장식띠와 깨끗하게 세탁한 바지, 푸르고 긴 각반등 나들이 옷으로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 더러는 페즈(풀이: 붉은색의 양동이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자. 검은술이 달려 있음)를 쓰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터어번(풀이: 회교도가 머리에 감는 종교적 의식의 모자의 일종)을, 또 더러는 양피모자를 쓰고 있었다. 배질의 여린 가지라든가 궐련을 귀 사이에 숨긴 모양하며, 참으로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부활절 화요일, 미사가 막 끝났다. 날씨는 더없이 맑고, 감미로운 이른 봄의 태양과 비, 레몬꽃들이 향기를 속삭인다. 나무들은 벌써 잠에서 깨어나 움트기 시작하고 풀들도 소생하는 생명 빛이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온갖 모양의 미세한 것으로부터 부활하고 있다. 신자들은 광장을 가로질러 오가면서 서로 포옹하며 부활제 인사를 나누었다. "주께서 부활하셨도다!" "진정 부활하셨도다" 그리고는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코스탄디스네 카페에 앉거나 광장 한가운데 선 늙은 버짐나무 밑으로 갔다. 그들은 기다란 튜브와 기포용 물이 담긴 수연통을 주문하거나 커피를 들기도 하면서 마치 가벼운 빗줄기처럼 일제히 끝도 없이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이게 낙원이지 뭔가." 하고 교구 관리 카라이암보스가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부드러운 햇빛, 소리 없이 내리는 멋진 보슬비, 꽃불을 단 레몬나무들, 그리고 수연통과 이 기분좋은 대화들... 오, 영원할지이다" 광장의 다른 한쪽 끝에는 산뜻하게 백색 단장을 한, 우아한 종탑이 달린 마을 교회가 버짐나무 사이로 솟아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수난 당하심'. 부활제에 즈음해서 교회의 출입문은 종려와 월계수 가지들로 장식되었다. 주위의 모든 상점들과 외양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파나요타로스의 마구상도 보였다. '익살스럽게도 그는 '석고먹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내다. 언젠가 조그마한 나폴레옹 석고 조상이 마을에 옮겨져 온 적이 있었는데 이 사내가 그것을 통째로 삼켜 버렸었다. 그 후에 주민들은 케말 파샤의 조상 같은 다른 것도 들여다놓았었는데 이 사내가 또다시 슬쩍해 버렸었다, 끝내는 베니젤로스 조상 중의 하나까지도 마찬가지로 삼켜 버렸던 것이다.' 옆집은 안도니스가 경영하는 이발관. '안도니스'라고 씌어진 간판이 붙어 있다. 출입문 위에는 '이빨도 물론 뽑아 드림'이라고 어두운 적색 글씨로 쓴 독특한 명패가 달려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늙은 절름발이 디미트리가 경영하는 푸줏간이 있는데, 신선한 송아지 정수리에다가'헤로디아데 Herodiade'란 인상적인 글귀를 적어 두었다.(풀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베게 한 헤로디아를 상징하는 듯함). 매주 토요일이면 그는 송아지를 잡았는데, 도살에 앞서 송아지 뿔은 금빛으로 단장하고 이마에는 물감칠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놈의 목 주위에는 붉은 리본을 매고 그리고는 절름거리며 송아지를 이끌고 마을을 통과하면서 그놈의 덕행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맨 마지막에 유명한 코스탄디스의 카페가 있었다. 길고 좁은 방들이 딸린 그곳은 시원하였고,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커피와 담배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세이지 차(풀이: 살비아 잎을 달인 약용의 차 종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카페의 벽에는 - 이 마을의 자랑거리인 - 광택나는 종이에 그려진 세 점의 인상적인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한쪽 가장자리의 것은 열대 수풀 속에 반나체로 선 성 제네비브를 그린 것이고, 그 반대편은 푸른 눈을 하고 유모의 그것 같은 풍만한 가슴을 가진 빅토리아 여왕의 그림이며, 가운데의 그림은 굳은 표정과 음침한 눈빛을 하고 찌푸린 인상으로 높은 아스트라칸 캡(풀이: 러시아 아스트라칸 지방산 양가죽으로 만든 모자)을 쓰고 있는 케말 파샤였다. 대다수의 이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훌륭한 아버지들로서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그하 역시, 그가 즐기는 라키와 짙은 향수 - 사향이라든가 파줄리(풀이: 인도산 박하 식물로 만든 향료)따위로 - 인해서, 그리고 벨벳 쿠션위의 그의 왼쪽편에 앉아서 시중드는 계집아이 같은 소년으로 인해서, 그도 역시 멋진 사람이었다. 그는 즐겼다. 마치 목자가 그의 짐승떼를 지키듯 주민들을 주시하면서 아주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영리한 놈들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올해도 또다시 그들의 부활절 선물들, 이를테면 치즈라든가 코코넛 곁들인 참깨빵, 브리오시(풀이: 과자빵의 일종), 스칼렛 에그(풀이: 진홍빛 달걀로, 속죄의 의미로 부활제 때 달걀에 물감을 들임) 등등으로 나의 지하 저장고를 채워 놓았겠다... 천국이나 그를 잊지 않아 줄, 그들 중의 하나는 키앤 매스틱(풀이: 이탈리아산 포도주 성분의 기호품) 한 박스를 가지고 왔는데 나의 유소우화키가 그것을 아작아작 먹고는 그 자그마한 입이 감미로운 냄새를 풍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그하는 행복을 느꼈다. 나의 포도주 저장고는 좋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하고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비는 멋지게 내리고 수탉이 꿰ㄱ 목을 뽑는다. 그리고 내 곁에 바싹 다가와 발아래 웅크리고 있는 나의 유소우화키가 매스틱을 아작거리면서 혀를 다신다. 아그하는 갑자기 그의 가슴이 충일 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목을 당겨 아마네스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력만 진탕했을 뿐 듣기가 거북스러웠다. 그는 후세인을 돌아보면서 트럼펫을 불어서 라이아스들을 침묵케하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그의 왼편으로 몸을 돌리면서 외쳤다. "노래하라, 유소우화키 - 나의 축복이 그대에게 있지 않은가 - 자, 나를 위해 노래해. '도우니아 타비르, 로우야 타비르, 아만, 아만!' 노래하라니까! 그렇잖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애!" 예쁜 소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의 입으로부터 매스틱을 떼서는 노출된 무릎 사이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의 뺨을 간여린 손바닥으로 받치고 아그하의 18번인 아마네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현세와 꿈은... 결국 하나이려니, 어쩔꼬, 어쩔꼬!" 그의 플루트 같은 목소리는 비둘기 마냥 재롱을 떨며 고저를 밟았다. 아그하는 황홀해서 눈을 감은 채 마시는 것도 잊고 오랫동안 소년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의 멋진 날이군" 하고 코스탄디스가 커피를 따르면서 소근거렸다. "라키에게 축복을!" "유소우화키에게 긍휼을." 얀나코스가 심술궂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이 마을로 이주해 온 자로서 무성한 반백의 턱수염과 맹금의 눈을 가진 보부상인이었다. "운명을 저주하라, 눈먼 마녀여. 그를 아그하로, 우리들을 라이아스로 결정지은 그 운명을!" 하고 사제의 아우 하지 니콜리스가 으르렁거렸다. 이 자는 마을의 교장 선생이며 안경을 낀 매몰찬 인간이었다. 그가 말할 때 유난히 불거진 결후가 불끈불끈했다. 그는 흥분되어,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탄식했다. "순수한 그리스인인 우리 민족이 이 땅의 주인이었지. 역사의 수레 바퀴는 변전하여 동로마제국 시대가 왔었다. 그리스인들에게도 물론, 그리고 기독교도들에게도. 역사는 다시금 하가르의 자식들에게로...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소생하셨어. 나의 친구들이여, 우리의 민족은 다시 일어설 것일세. 암, 그렇고말고! 여보게, 코스탄디스. 한 순배 더 돌리라구!" 아마네스를 끝낸 멋쟁이 소년은 제자리로 돌아와서 매스틱을 입 속에 쑤셔 넣고는 졸듯이 반복되는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다시 트럼펫이 울었다. 라이아스들은 여전히 웃고 거침없이 큰소리로 떠들 것이었다. 마을의 다섯 원로 중의 한 사람인 포르투나스 선장이 카페의 출입구로부터 나타났다.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이 사나이는 지난날 선주로서 오랜 세월 흑해를 누비면서 러시아산 콩을 운송하거나 심심찮게 밀수도 일삼았었다. 턱수염이 없는 올리브빛 안색에 양피지 같은 피부, 깊게 패인 주름 투성이에다가 조그마하고 번득이는 칠흑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의 배와 함께 늙어 버렸다. 어느 날 밤 배가 트레비존드 암초에 부딪쳤다. 배는 난파하고 포르투나스 선장은 환멸을 안은 채 고향 마을로 돌아왔었다. 가능한 만큼의 라키를 해치워 버려서 마침내는 그의 얼굴이 벽과 같이 멍청하게 죽어 갔다. 그의 눈은 이제껏 많은 물건들만 보아 왔고 또 그렇게 많은 물질을 누렸었다. 이제, 그에게 충분히 가진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지쳐 버렸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오늘 그는 캡틴 부츠를 신고 노란 벨트에다 관록 붙은 캡 - 아스트라칸산 제품의 - 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원로용의 긴 지휘봉이 들려져 있었다. 몇 명의 주민들이 정중하게 서서 그에게 라키 한 잔을 권했다. "아니, 라키를 마실 시간이 아닐세, 나의 친구들." 그가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 나는 사제님의 집으로 가고 있다네. 우리는 중요한 회합을 한다구. 한 시간 남짓 있으면 모두들 그곳에 초청될 것일세. 빨리 자네들 자신의 십자가를 가지고 오게. 자네들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분명히. 아, 자네들 중 누군가가 그 악마의 턱수염을 단 마구상 파나요타로스를 데리러 가 줘야겠군 우리는 그가 꼭 필요해." 그는 잠깐 말없이 눈을 힐끔거리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일 그가 집에 없으면, 그 과부의 집에 있을 걸세."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늙은 노새 마부 크리스토퍼스가 불쑥 나서면서 거칠게 대꾸했다. "무엇이 그리 우습소? 진절머리 나는 사람들같으니라구. 하지만 그는 정당하단 말이오. 당신들은 그처럼 파나요타로스를 악평하지만 친절도 베풀지 않으면서 무슨 말들이오! 인생은 짧소. 하지만 죽음은 길단 말입니다. 계속하시오, 젊은이들!" 그는 젊은 시절, 사랑을 체험했던 자였다. 그것도 무거운 대가를 지불한 엄청난 사랑을. 도살자 뚱보 디미트리가 아둔한 골통을 흔들면서 말했다. "하나님, 그 과부를 기억하소서, 우리들의 카테리나. 그녀가 우리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뿔들을 모아두었는지 악마는 알겠지." 포르투나스 선장이 웃었다. "자, 여러분들, 입씨름은 그만 해. 어는 마을에나 우수리 여인은 있게 마련이지. 그처럼 정직한 사람을 망쳐 놓을 수 있겠나. 길가의 샘과 같지. 그게 그거야. 누군가 목이 마르면 거기 멈춰서 그것을 마시지. 다른 방법으로는, 그들이 우리들의 문을 두드리겠지. 그 사람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그리고 그 여인들도. 그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그는 돌아섰다. 그리고 교장 선생에게 통고했다. "아니, 당신은 왜 여기 머물러 있소, 영감님? 회의에 가지 않을 참이오? 아직 카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군. 모임에 늦겠소. 자, 갑시다!" "당신은 내가 가는 것은 원치 않겠지요, 물론?" 늙은 크리스토피스가 일행에게 윙크하면서 말했다. "나는 유다를 찾아보겠소." 그러나 포르투나스 선장은 그의 지팡이에 몸을 무겁게 의지하면서 이미 그곳을 떠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오늘 따라 그는 외양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류머티즘이 뺀찌로 조이는 듯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밤새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두세 잔의 라키를 단숨에 비워 버렸고 아침에는 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탄이 그것을 지배하고 있어서 고통은 잠시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라키조차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수치스럽지 않았다면 꽥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몸이 욱씬거려서 참는 거지. 그러니 자중하면서 이 악담하는 짓들을 유쾌하게 봐주어야지. 하지만 설령 내가 지팡이만 믿다가 넘어진다 해도, 어떤 젊은 장난꾸러기 녀석의 도움도 받지 않겠어. 내 스스로 능히 그것을 집고 일어설 수 있다구... 자, 가자! 포르투나스 선장, 너의 입술을 깨물어라. 항해의 깃발을 올려라. 파도 속으로 키를 잡고 나가라. 젊은이들! 그대들 자신의 수치를 은폐하지 말라구1 하나님, 당신이여. 인생이란 역시 일진광풍이군요. 결국은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그는 스스로 신에 대하여 불경스러운 말을 지껄여 댔다. 그리고 가까스로 언덕에 올라서서 맞은편 벽에 비틀거리며 몸을 던졌다. 그는 잠깐 멈춰서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 쉬고는 자신을 좀 안정시켰다. 그리고는 눈을 들어서 마을 끝의 고지를 바라보았다. 수목 사이로 흰 판자조각 같은 풍경이 잡히어 왔다. 쪽빛 창틀을 한 사제관이었다. 악마란 놈은, 하고 그는 늙은 술고래를 생각했다. 이 언덕 꼭대기에 그의 집을 짓기 시작했었지. 그는 투덜거렸다. 제길할! 그리고는 오르기를 계속했다. 마을 원로 두 사람이 벌써 와 있었다. 그들은 긴 안락의자에 포갠 다리를 하고 침묵 가운데 느긋이 앉아서 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제는 부엌에서 그의 의식을 베풀고 있었고, 그의 외동딸 마리오리가 거기서 커피와 냉수, 그리고 설탕졸임 따위를 마련하고 있었다. 창문 가까이 상석에는 리코브리시의 제일 연장자인 뚱뚱하고 당당한 위풍의 족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멋진 린네르 바지와 황금합사로 된 웃옷을 입고, 집게 손가락에는 그의 이름의 첫 글자를 딴 서 G.P. 라는 문자와 문장을 어긋 새긴 굵은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게오르그 파트리아케스였다. 그의 손은 주교의 그것처럼 통통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종들과 농노의 무리들이 그의 공로를 위해 일했을 뿐 그 자신은 일생을 통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부풀어 띵띵한 창자와 넓어진 엉덩이, 그리고 비계덩어리인 배와 주름진 삼중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허위대 좋은 살덩이에 의지한 무성한 털가슴까지 하고 있었다. 그에게 유일한 흠이 있다면 앞이빨이 두엇 빠져서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것과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함까지도 그의 우월성을 더해 줄 뿐, 그것은 그와 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데 있어서 그의 편에 서야만 하도록 강요하는 요소였다. 그의 오른편 구석에는 깡마르고 께저분하게 시체 같은 머리를 한, 거기다가 흐리멍텅한 눈동자와 심한 경결을 보이는 손을 하고,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모르는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이자 원로 중 두 번째 서열인 라다스 영감이 동그만이 앉아 있었다. 그는 70평생 동안 토지에 심혈을 기울여 밭을 갈았으며 씨를 뿌렸고 거둬 들였던 것이다. 또한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심었고 그 열매를 짰으며 그 즙을 마셨던 것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자연과의 싸움을 떠나서 몸차림을 말쑥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만족을 모르고 자신을 토지에 내어던졌으며 그것이 넘치는 소출을 그에게 안겨다 주도록 강요해 왔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불평만을 지껄였으며 언제까지나 불만스러워했다. 그런데, 늘그막에 이르러서부터 토지는 그에게 충분한 소출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와 오고, 그 자신 또한 인생의 장부책의 끝이 가까운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는 안달이 나서 마을 전체를 탐욕했다. 그는 사람들의 포도원과 집들을 저당잡고는 비싼 이자로 돈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지불 기일은 만기가 되고 채무자들의 수중에 한 페니의 돈도 없게 되면 라다스는 그들의 재산을 공매에 붙여 팔아 넘겨서 무엇이든지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여전히 끙끙거리며 궁상을 떨었으며 배불리 먹는 법도 없었다. 그가 얼마나 지독하냐 하면, 그의 아내 페넬로페는 항상 헐벗고 살아왔으며, 언젠가는 그의 하나뿐인 딸을 병들게 해 놓고도 의사에게 보이지 않은 채 죽게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돈 드는 일이지 뭐야. 더구나 큰 읍내들은 여기서 멀다구. 그러니 무슨 수로 의사를 부른담? 그건 그렇고. 그자들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별 신통한 수가 있겠어? 빌어먹을! 우리에겐 사제님이 계신다구. 그분은 조약을 쓸 줄 알지. 그분에게는 극진한 감격의 인사만을 지불하면 되는 거야. 딸년이 좋아지기는 마찬가지니까. 그것이 가장 싼 방법이지." 그러나 사제의 연약도 소용이 없었고, 성유도 아무 효험없이 앳된 소녀는 그녀 아버지의 자유를 뒤흔들어 놓은 채 열 일곱의 나이로 죽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딸의 결혼 비용 하나는 번 셈이었다. 딸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느 날, 그는 계산명세를 뽑아 보았다. 즉, 결혼 지참금에다가 린네르 제품의 혼수감, 탁자, 상당의 의자 등. 더군다나 결혼식에 초청된 모든 친지들을 마지못해 대접하는 일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누가 대식가 같은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단 말인가? 이를테면 살코기나 빵, 엄청난 술... 그는 볼장 다 본 판국에 멋들어진 계산을 덧붙였다. 하마터면 그의 딸은 그를 거지 신세로 변화시켰을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우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 세상의 걱정들로부터 벗어났다 - 남편, 자녀들, 질병, 가사 등등 - 사실상 그녀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신이여, 그녀의 영혼을 잠들게 하소서! 마리오리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얌전하게 인사를 한 다음 먼저 족장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과 선명한 눈썹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갈래로 땋은 밤색 머리는 그녀의 면류관인 양 하였다. 그 늙은 족장은 스스로 야생의 쓴 벚나무 열매 잼을 한 스푼 가득 뜨면서 젊은 처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잔을 높이 치켜 들었다. "사랑스런 아기, 마리오리. 내 아들 녀석은 정말 참을성 없이 군답니다." 이 사제의 따님은 그의 외아들 미켈리스와 약혼한 사이였다. 그래서 사제는 이러한 훌륭한 배필로부터 곧 손주를 얻게 됨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왜 그 녀석이 그렇게 성급하게 구는지 알겠어. 흡사 설치는 개같은 형상이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대. 그 녀석이 그러더군." 늙은이는 웃음까지 터뜨리면서 젊은 규수에게 눈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 끝까지 빨갛게 되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자, 모두들 즐깁시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백포도주 한 병을 내어 오면서 말했다. "다 함께 그리스도의 은총과 동정녀를 위해서 건배!" 푸른 정적과 튼튼함과 이상적인 기품을 지닌 흰 카이젤 턱수염을 한 그는 비계와 방향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는 딸이 난처해 하는 것을 알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언제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고 그가 물었다. "당신의 양딸 레니오 또한 출가시킬 생각이신지?" 레니오는 족장이 그의 하녀로부터 얻은 서자녀들 중 하나였다. 그는 레니오를 그의 목동과 혼약을 맺어 주었다. 그 목동은 신앙심 깊은 마놀리오스라는 청년이었다. 족장은 그녀에게, 마을에서 멀지 않은 비어진 산에 있는, 마놀리오스가 마음에 두고 있던 한 무리의 면양을 인색하지 않을 만큼 결혼 지참금으로 주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명히 멀지 않아서." 하고 족장이 대답했다. "레니오 편에서 서둔답니다. 그 애가 서둔다니까요. 복된 녀석! 젖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있어서 젖 먹일 아들이 필요하기도 하겠지. '5월이 어떻겠어요?'하고 며칠 전 그년이 내게 말하더군요. '5월이 좋겠어요. 주인님, 더없이 좋은 계절이에요'" 그는 다시 전력을 다해 껄껄 웃고는 그의 세겹으로 살찐 턱을 흔들어 제켰다. "얼간이 같은 녀석에게 시집가는 거지." 그는 말했다. "레니오 말이 옮아요. 5월은 최고의 계절이지. 역시 그들은 인간적이지요. 비록 그들이 종들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마놀리오스는 훌륭한 청년이지요."하고 사제가 참견했다. "그들은 행복할 겁니다." "물론이지요. 나는 그를 내 친자식처럼 사랑합니다." 족장이 말했다. "언젠가 성 펜테레이몬 수도원엘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를 봤어요. 그가 아마 열 다섯쯤 되었을 때지요. 응접실에서 내게 환영의 음식을 날라다 주더군요. 그때 그는 사실 어린 천사 같았어요. 다만 날개를 잃어버렸지만. 내 영혼이 그를 가엾게 보아서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답니다. '저토록 준수한 젊은이가 수도원에서 시들어 버릴지 모르오니 불쌍히 여기소서. 마치 거세된 남자처럼 말입니다.' 나는 마네스 사제의 훌륭한 별실로 가 보았지요. 수년 동안 거기 있었고 무능했던 그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는 말했지. '사제님, 정중히 말씀드립니다만,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수도원을 위해서 은제 램프를 기증하고 싶습니다.' '좋을 대로 하십시오만, 족장님, 마놀리오스만은 안 됩니다.' '그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애요, 사제님. 나는 그를 택해서 나의 일을 돕게 하고 싶소.' 그 늙은 수도사는 탄식하면서 말하더군. '난 그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다오. 그 역시 날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 아이한테는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나는 늙었고 혼자뿐이요. 다른 말벗이 없단 말입니다. 매일 밤 그에게 수도자들과 성자들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지요. 그것을 통해서 그는 배우게 되고 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를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십시오. 사제님. 그래서 가정을 갖고 자녀들을 얻어 살게 하셔야 합니다. 여한 없는 삶을 누리게 되면 수도사가 될 것입니다.' 끝내는 직언을 해버렸었지요. 그래서 그 아이를 얻어서 거느리게 된 것이오. 이제 나는 그에게 레니오를 짝지워 주고 있소. 하나님의 은총을!" "그가 당신에게 손주들을 안겨 주겠구료."하고 심술궂은 데가 있는 라다스 영감이 경멸조로 거들었다. 그는 스푼 끝으로 버찌를 집어서 우적우적 먹으면서 백포도주를 입이 터지도록 들이켰다. "우리들의 노동에 보상하시기를, 하나님. 우리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하소서. 포도원과 농작물들이 올해는 형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십니다." 사제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용기를 가집시다, 친구 라다스여. 당신의 허리띠를 조이십시오. 핑계를 대지 마시오.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해롭습니다. 사치를 삼가십기오. 당신처럼 돈을 헛되이 써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를 두고 말이오." 족장이 집이 흔들릴 만큼 호탕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사랑을 베푸소서, 기독교인들이여! 라다스 영감님이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하고 넉살을 떨면서 그의 거대한 손을 쭉 내어 밀었다.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이 삐걱거렸다. "여어, 우리들의 늙은 바다의 늑대, 포르투나스 선장이 왔네."하고 사제가 소리쳤다. 선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잠깐만, 마리오리, 거기 있어. 저분에게 마실 것 좀 드려야겠어... 그렇지, 내가 큰 잔과 라키를 가져올게. 그의 코가 벌써 술 냄새를 맡았다구." 포르투나스는 문턱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빙그레 웃으며 들어섰지만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으면서 교장 선생이 나타났다. 그는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그와 동시에 사제가 라키를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소, 여러분들!" 하면서 선장이 세 늙은이들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를 끄르륵 갈고는 애써 사뿐하게 소파에 앉으면서 마리오리에게 말을 걸었다. "나 때문에 커피나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아요, 귀여운 마리오리. 그들은 숙녀들과 늙은이들에게 잘해 주었어. 그 작은 잔이면 좋겠어요 - 너말고는 큰 잔을 청하겠지 - 너의 결혼을 위해서!" 하고 그의 빈 잔을 가져가면서 말했다. "성스러운 오늘, 우리 부락민들은 기다리고 있을 수만 없소. 우리들은 서둘러 결말을 지어야만 합니다." 교장 선생이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마리오리가 음식을 물려 내자, 사제가 출입문에 빗장을 질러 잠갔다. 그의 강렬한 구리빛 나는 넓은 얼굴이 갑자기 예언자답게 장엄해 보였다. 그의 짙은 눈썹 밑에서 강렬한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는 업무 중에도 실컷 먹고 흠뻑 마셔서 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화가 치밀면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성직자였다. 최근까지도, 그토록 늙은 형편에 여자들만 보면 피가 끓는 것이었다. 그의 머리와 가슴과 배는 인간적인 욕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가 미사를 집전하거나 경건하게 머리를 쳐들고 축복을 베풀 때나 파문을 선고할 때면, 사막의 거친 열풍이 그를 엄습하여 대식가이자 폭주가이며 호색가인 그리고리스 사제는 예언자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원로님들,"하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격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중대한 날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또한 우리의 말을 경청하고 계십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방에서 하는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책에 기록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직도 우리들 인간의 정욕 때문에 못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들의 내면에서 부활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원로님들, 우리들 부락의 명사들이신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친구들이여. 그대는 그대와 그대의 가족이 이 땅에서 누리는 행운과 덧없는 세속적인 일들을 버려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몫 이상을 먹어 왔고 마셨으며 탈취해 왔소. 그러한 세속적인 일들로부터 그대의 영혼을 소생시키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을 돕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 라다스 영감. 오늘 이 중대한 날에 당신의 올리브 기름과 온갖 술들, 그리고 터어키산 황금 따위의, 당신이 쌓아 놓은 재물들은 좀 잊어버리십시오. 보게나! 교장 선생,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자네 영혼은 항상 교단과 황금과 여자에게 머물러 있었어. 이제 그런 것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은혜의 생활을 하시게. 선장님, 늙은 불신자여. 당신은 당신의 부정으로 점철된 흑해를 마음껏 누볐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장 결정하십시오." 선장은 자신을 억눌렀다. "다 지나간 일이오. 사제님" 그가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그것을 심판하실겁니다! 설령 우리가, 스스럼없이 말한다면 우리도 당신의 성스러움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계속하시오, 사제님" 그러나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유의하시오. 당신은 원로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군요." 하고 족장이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많은 구더기들에 대해 말하고 있소." 사제가 펄펄뛰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물론, 나도 구더기요. 말을 가로막지 마시오. 우리의 손님들이 어느 순간에 이곳으로 올지 모르오. 그런만큼 우리는 신속하게 결정해야만 하오. 자, 들어보십시오. 이건 이 마을의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풍습인데, 말하자면, 7년마다 우리 동족중 5, 6명이 성주간(풀이: 부활제 전의 1주일간)이 되면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하는 연극을 하게 됩니다. 그 후 벌써 6년이 지나고 7년째 접어들어 그것을 준비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 우리들 이 마을의 원로들은 - 가장 덕망스러운 인품을 갖춘 세 사람의 위대한 사도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 그리고 가룟 유다와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선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나에게 허락하시기를 그 세월 동안 내내 자신의 마음을 순결하게 지킨 한 사람을 뽑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재현하도록 말입니다." 사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교장 선생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유난히 툭 불거진 결후를 오르내리면서 말했다. "고대 문명인들은 이것을 하나의 성사라고 불렀지요. 이것은 성지주일(풀이: 부활제 직전 일요일을 말함. 예수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했는데 이 날을 기념하는 주일)에 교회 현관 아래서 시작해서는 성토요일(풀이: 부활제 전의 토요일) 한 밤 정원에서 끝을 맺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연극이지요. 이교도들은 그들대로 연극과 서커스가 있었답니다. 기독교도들은 기적극을 했지만..." 그리고리스 사제는 그가 유식한 채 말하는 것을 제지했다. "좋아요, 좋아. 그런 건 누구나 알고 있네, 교장 선생. 내 말을 마저 하겠소.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직접 그분의 고난을 맛보는 것입니다. 모든 근처 부락으로부터 순례자들이 무리지어 옵니다. 그들은 교회 근처에 그들의 장막을 칩니다. 성주간을 보내면서 오열하고 가슴을 치며, 그리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의 외침 속에서 춤을 추면서 기념제를 시작하지요. 그 여러날 동안 많은 그리스도의 기적들이 일어난답니다. 원로 여러분, 많은 죄인들이 통애하며 회개합니다. 부유한 지주들은 그들이 가난한 자에게 범했던 죄와 과오를 내어놓고는 그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교회에 포도원이라든가 경작지를 내어놓습니다. 그렇게들 할 수 있겠소? 존경하는 라다스" "계속하십시오, 계속해요, 사제님. 그리고는, 교회 정원에 돌 던지기를 그치지요." 라다스 영감이 분통을 터뜨리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와 함께 그런 속임수를 할 생각 마시오. 온당한 생각을 하시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모인 겁니다." 사제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이 신성한 성사의 임무를 맡길 그 누군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겠지만, 자, 기탄없이 토론합시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 보시지요. 족장님, 당신은 원로로서 서열이 제일 먼저인 만큼 당신부터 말씀세요. 우리들은 들을테니." "유다! 그 자가 있지." 선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당신들은 유다역에 그 석고먹성이 파나요타로스보다 더 적절한 인물을 찾지 못할 걸. 힘 세고 천연두로 얽은, 흡사 고릴라 같은 그자 말이오. 마치 오뎃사 같아 보이던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그 역할에 걸맞는, 마치 사람 속에숨어 있는 악마의 그것처럼 붉은 가슴털과 머리칼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 차례가 아닙니다, 선장." 사제가 통박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말아요. 모두들 순서가 있으니까요. 자, 족장님?" "무얼 말해야 하지? 사제님."하고 족장이 대꾸했다. "난 오직 한가지에만 관심이 있소. 뭔고 하면, 당신은 내 아들 미켈리스를 그리스도 배역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오." "당치 않소." 사제가 일축해 버렸다. "당신의 아들은 기대하고 뚱뚱하며,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젊은이오. 반면에 그리스도는 가난했고 여위었었소. 이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게다가 과연 미켈리스가 그렇게 어려운 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는 채찍질당할 것입니다. 그는 가시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입니다. 미켈리스는 강인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그가 골병들기를 원합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 선장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리스도는 금발이었다는 점이오. 하지만 미켈리스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닦은 구두처럼 검단 말이요." "막달라 마리아 역에 꼭 어울리는 자가 있군." 암탉 소리로 라다스가 말했다. "과부 카테리나라면 어때? 그 음탕한 계집은 금발의 멋진 매춘부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소. 어느 날 그녀가 그녀의 밭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마침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무릎까지 내려오더군. 악마가 그녀를 사로잡고 있어서 대주교까지 망쳐 놓았었지." 선장이 익살을 떨려고 입을 미리 반쯤 열었지만 사제가 그의 혀에 자갈을 물렸다. "쉽게 속단해 버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제가 말했다. "유다와 막달라 마리아. 좋은 사람 없을까요? 그것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여러분들의 충고요.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 하나님 맙소사! - 그리스도를 닮은 남자를 찾는단 말입니까? 외모 뿐만 아니라 그와 심리적으로도 다소간 닮은 인물을 선정해야만 합니다. 나는 몇 날, 몇 주일씩 내 뇌리 속에서 이 계획을 생각하면서 여러날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셨던 것을 믿습니다. 나는 그 적임자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게 누구요?" 하고 늙은 족장이 다그쳤다. "터놓고 말하시오." "족장님, 당신의 허락을 얻고자 합니다. 바로 당신의 고용자 중 한 사람인데, 당신이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목동, 바로 마놀리오스요. 그는 어린 양처럼 유순하고 지난날 수도원에서 배워서 글도 읽을 줄 알지요. 그는 푸른 눈동자와 꿀벌의 그것처럼 금빛의 짧은 턱수염을 가진, 성상에서 보듯이 진짜 그리스도의 얼굴 같습니다. 거기다가 신앙심이 두텁습니다. 주일이면 언제나 산에서 내려와서 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하고 영교를 하곤 했지요. 나는 한 번도 그에게서 과오를 발견하지 못했고 책망할 일이 없었소." "그는 약간 미친 것 같던데. 그는 환상을 보는 것 같았소." 라다스 영감이 비양거렸다. "아무 이상 없소. 그런 것은 영혼이 정결함을 뜻하기에 충분한 것이오." 사제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라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소. 가시면류관과 십자가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목동이라는 또 다른 유리한 점이 있소. 그리스도 역시 인간이라고 하는 양무리의 목자요." 교장 선생이 설교투로 말했다. "허락하겠소." 족장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한 참 뒤에 "헌데, 내 아들은? 하고 되물었다. "그는 사도 요한 역이 썩 어울릴 거요." 하고 사제가 열렬하게 말했다. "그는 그 역할에 필요한 조건을 잘 구비하고 있소. 건장한 몸, 검은 머리카락, 편도같이 생긴 눈, 그리고 좋은 집안, 아주 총애받는 12제자 중의 하나였던 요한에 말입니다. "사도 야곱으로는," 하면서 교장 선생이 그의 형인 사제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뭇거렸다. "그 카페 주인 코스탄디스보다 더 적당한 인물은 없을 것 같군요. 깡마르고 사나와 보이며, 괴팍한 사도 야곱을 다른 사람은 재현하기 힘듭니다." "또한 그는 그의 삶을 염려해 주는 아내가 있소. 사도 야곱 역시 결혼했던가요? 그렇지요? 당신의 지론은 모든 학식 중에서도 최대의 학식이라 이겁니까?" 하고 선장이 교장 선생에게 응수했다. "그만 하시오! 신정한 일에 농담을 하다니. 불경스러운 사람같으니라구!" 사제가 노여움을 발했다. "여기는 인간 쓰레기들이 추한 얘기나 주고받는 당신의 배 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숙의하고 있소." 교장 선생은 어깨가 으쓱해져서, "베드로에 상당한 사람은"하고 용기를 얻어 말했다.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보부상인 얀나코스가 어떨까 하는데요. 쪼빗한 이마하며 회색빛 나는 곱슬머리에 몽탁한 턱. 그는 그의 기질을 죽이고 흥분을 가라앉혔다가는 부싯돌처럼 쉽게 타오르지만, 그러나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죠. 이 부락에서 그보다 더 좋은 베드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협잡꾼 기질이 좀 있긴 하지만." 족장이 그의 큰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나 그 보부상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소? 상관없는 일일 거요." "사람들은 그가 그의 아내를 죽였다고 하더군." 라다스 영감이 으르렁거렸다. "그가 아내에게 뭔가를 먹여서 그녀가 죽었다는 거요." "헛소문이오. 거짓말이오!"사제가 외쳤다. "그런 말마십시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욕심이 나서 익히지 않은 이집트 콩을 한 스푼 가득 먹었던 겁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심한 갈증을 일으켜 견딜 수 없게 만들었소. 그래서 그 가엾은 여인은 한 병의 물을 다 마셔 버렸어요. 끝내 그녀는 몸이 부풀어 올라 죽어 버렸던 겁니다. 존경하는 라다스, 당신의 영혼을 저주하지 마시오!" "그녀의 정당성이 조작되었었소! 마실 물을 가져갔다니, 그녀는 다만 라키를 마셨어야 했는데." "우리에겐 아직도 빌라도(풀이: 그리스도를 처형한 유대 총독)와 가야바(풀이: 예수 당시 대제사장으로 그리스도를 재판하여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한 주동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을 찾아내기란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요." 교장 선생이 말했다. "존경하는 족장님, 통치권을 가진 당신보다 더 적합한 빌라도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족장에게 말했다. "난처해 하지 말아요. 빌라도 역시 위대한 귀족이었소. 당당한 몸가짐, 좋은 소질과 이중턱, 멋진 몸차림 등, 당신의 거동과 흡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좋은 인물이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구해 낼 수 있을까를 염려했던 사람 아닙니까. 마지막까지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 일에서 손을 씻는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지요. 승낙해 주십시오, 족장님. 그리고 당신이야말로 이번 성사를 권위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을을 위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덕망있는 마을의 족장 파트리야케스께서 본디오 빌라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들을 때 얼마나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지를 말입니다." 족장은 자기만족의 웃음을 흘리면서 호박 물부리의 긴 담뱃대의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침묵했다. "라다스 노인장께서는 회상의 가야바를 해낼 수 있을 거요." 선장이 분수없이 지껄였다. "더 적격은 없을 게요. 당신의 견해로는, 사제님, 지금까지 당신은 성화를 그리셨는데, 가야바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좋아요." 사제가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했다. "라다스 영감님을 쏙 뺐죠. 피부와 골격하며, 지저분하고 야윈 뺨에다가 노랗고 좁은 코라든가..." "그의 코밑수염 역시 지저분했던가요?" 하고 선장이 남의 부화를 건드리면서 물었다. "그는 그의 수호신에게까지도 한 방울의 물도 베풀기를 싫어했던가요? 그 역시 구두를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 그런 노랭이였던가요?" "나는 가겠소!" 라다스 영감이 소리치면서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었다. "그리고 당신 보라구, 해적 두목. 어째서 당신은 배역을 맡지 않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거야? 만약 당신처럼 보드라운 피부를 가졌어도 괜찮다면 어떻게 하겠어?" "나 말이오? 난 후보로 남아 있소." 하고 수염을 배배 꼬면서 선장이 웃었다. "혹시 행사 기간중에 - 우리는 모두 구닥다리들이오. 젊은이들이 아니란 말이오! - 당신들 중 하나가 황천에라도 가게되면, 이를테면 콧수염쟁이 라다스라든가 통치자 빌라도 역까지라도... 필요하다면 내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이오. 이 성사를 위해서 말입니다." "다른 가야바를 찾아보시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오!" 구두쇠 라다스가 내뱉었다. "아뭏든 난 들에 물을 좀 줘야겠소. 가겠소.!" 그는 출입문을 만지작거렸다. 사제가 황급히 따라가 그의 팔을 잡았다. "어딜 가시려구요? 주민들이 오고 있습니다. 영감님이 가셔선 안돼요. 당신은 우리들이 우스운 꼴 당하는 걸 원치는 않겠지요?" 그리고는 구슬렸다. "당신이 희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라다스 영감님. 그리고 지옥의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이일을 돕는다면 당신의 그 숱한 죄상들을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당신보다 더 훌륭한 가야바를 우리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고집 부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그분의 생명책에 기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설득을 채 끝맺기도 전에 주민들은 이미 도착해서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사제는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십니다, 원로님들!" 십여 명의 주민들이 그들의 가슴과 입술, 그리고 이마에 저마다 손을 얹고 들어섰다. 그들은 한 줄로 벽을 따라 늘어섰다. "과연 부활하셨도다!" 그들 자신이 자리잡은 긴 안락의자에서 원로들이 응답했다. 족장은 그의 담배 주머니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친애하는 여러분들, 결정을 보았습니다." 하고 사제가 설명했다."여러분들이 잘 와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는 손뼉을 쳤다. 그때 마리오리가 들어왔다. "얘, 마리오리야. 이 젊은이들에게 마실 것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붉은 달걀을 각자 몫대로 나누어 주어라. 그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각자 자기 몫의 붉은 달걀을 취하고는 기다렸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들." 사제가 그의 빳빳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설교를 시작했다. "어제 미사가 끝나고, 나는 우리들이 여러분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했었지요. 위대한 성사를 우리 마을에서 다음해 부활절에 상연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들 모두가 크고 작은 일들에 함께 조력하면서 말입니다. 기억해 보십시오. 6년전 여러분들이 경험한 그 거룩한 성주간을! 그리고 교회 발코니 밑에서 흘렸던 눈물들과 사무치는 통애함을. 그때 부활 주일에 환희와 어둠을 밝히던 양초,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펼치고 있던 팔들을. 우리는 얼마나 열렬하게 무도 속에 우리들 자신을 맡기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도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이기시며'라고 노래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은 모두 믿음의 한 형제가 되었었지요! 내년의 그리스도의 수난절은 더욱 빛나야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여러분들은 공감하십니까?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찬성입니다, 사제님!"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 중 하나는 "사제님께 하나님의 은총을!" 하고 외쳤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계시기를!" 하고 사제가 답례하면서 그의 팔을 들어올렸다. "우리들은 올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현신할 인물들을 선정했습니다 - 사도들과 빌라도와 가야바, 그리고 그리스도 역을 맡게 될 배역들을 말입니다. 사제의 직권으로 명하노니, 코스탄디스, 가까이 오십시오." 카페 주인이 그의 폭이 넓은 빨간 장식띠 밑으로 감춘 앞치마 자락을 만지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대, 코스탄디스. 우리는 그대를 그리스도의 근엄한 제자 야곱 역으로 선정했소. 힘든 책임인 동시에 성스러운 책임이오. 위엄을 지녀야 합니다. 알아듣겠소? 사도를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그대는 새 사람이 되어야만 하오, 코스탄디스.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더욱 훌륭한 인격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욱 정직하고 더욱 정중해야 하오.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오십시오. 커피에 보리가루를 좀 적게 넣으시고, 터어키인이 좋아하는 빵조각을 둘로 잘라서는 그 절반을 전체인 양 파는 행위도 금하시오. 무엇보다도 그대의 아내를 구타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왜냐하면 오늘부터 그대는 코스탄디스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더하여 사도 야곱이기 때문이오. 그대는 알아듣겠소? 어떻게 하겠소?" "잘 알겠습니다. " 그는 벽 쪽으로 물러서서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아내를 때리지 않았어요. 그녀가 나를 친다구요."하면서 변명을 하려다가는 부끄러워했다. "미켈리스는 어디 있지?"하고 사제가 물었다. "우리는 그가 필요해." "그는 부엌에서 사제님의 따님과 얘기하고 있던데요." 안나코스가 대답했다. "누가 가서 그를 데려와요. 자, 안나코스, 이리로 나와요." 보부상인인 그가 단걸음에 앞으로 쫓아나와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대, 얀나코스 그대는 베드로 역할일세. 잘 듣게! 늙은이는 잊어버려. 이것은 명명식일세. 나는 그대에게 사제의 직함으로 명명한다. 그대는 사도 베드로! 그대는 기성명할 정도는 되니까 복음서를 읽어 보게. 그러면 그대는 베드로가 어떤 인물이었으며, 무엇을 했는지를 알게 될 것일세. 자네 역시 당나귀 머리야, 얀나코스. 그러나 어진 마음씨였지. 과거는 잊어버려. 새로운 앞길을 택하라구. 하나님에의 길에 들어서야 해. 무게없이 굴지 말아요. 뻐꾸기를 나이팅게일인 양 팔지 말라구. 그리고 남의 편지를 뜯어서 사람들의 비밀들을 엿보는 짓도 그만둬야 해. 듣고 있나? 들은 바대로 따르겠노라고 말하게나." "들은 바대로 따르겠습니다, 사제님." 하고 대답하면서 황급히 벽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혹시나 사제를 지배하는 악마가 평판이 난 그의 사소한 허물들을 집어내거나 않을까 하고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를 가엾게 생각했던지 침묵을 지켰다. 비로소 얀나코스는 태연해질 수 있었다. "사제님, 호의에 감사합니다. 나는 복음서 속에는 당나귀가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는데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내가 알기로는 성지주일에 그리스도께서는 당나귀를 타고 계셨지요. 그러니 우리는 당나귀 한 마리가 필요할 겁니다. 내 당나귀를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대의 뜻대로 하게나, 베드로. 그대의 나귀를 선택하도록 하자구."하고 사제가 대답했다. 모두를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때, 미켈리스가 들어왔다. 그는 위풍당당하고 불그레하고 싱싱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귀 사이에는 꽃을 꽂고 그의 손가락에는 황금 반지를 끼고 있었다. 게다가 멋진 린네르와 공단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뺨은 불타고 있었다. 그는 방금까지도 마리오리의 손을 잡고 있어서 정염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게, 나의 아들 미켈리스." 하고 사위 될 미켈리스를 은근히 걱정하면서 사제가 말했다. "별 이의 없이 우리는 자네를 요한 역으로 선정했다네. 그리스도께서 각별히 사랑한 제자 말일세. 이것은 굉장한 영광이며 대단한 기쁨이야, 미켈리스. 그것은 자네가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서 그를 위로해 주는 의미있는 일일 걸세. 그것은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들은 실망에 빠져 있었음에도 그를 따르는 그대를 발견하는 의미있는 일이 될 걸세.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친 마리아를 그대에게 부탁하는 의미있는 일이야."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사제님." 기쁨에 상기된 표정으로 미켈리스가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성화 속에서 이 사도요한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었죠. 그는 항상 젊어 보였고 잘 생기고 감미로움에 충만해 보였습니다. 전 정말 그를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사제님. 저에게 다른 충고의 말씀이라도 계시는지요?" "아닐세, 미켈리스. 자네의 영혼은 비둘기처럼 순결해. 그리고 자네의 마음은 애정으로 충만하다. 그래, 자네는 사도 요한을 욕되게 하지 않을 거야. 나의 축복을 명심하게나!" "자, 그럼 가룟 유다를 선정할 차례요." 사제는 맹금의 눈을 하고는 나머지 부락민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그의 매서운 응시가 그들 중 누구에겐가 떨어질 것을 느끼면서 후들후들 떨었다. "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고 저마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난 원치 않는다구. 절대로 난 유다가 될 수 없어!" 이윽고 사제의 눈총이 붉은 콧수염의 사내 석고먹성이에게 가서 멈췄다. "파나요타로스, 좀 가까이 오게. 자네에게 한가지 협조를 구하고 싶은데." 파나요타스는 마치 멍에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황소처럼 그의 무거운 어깨와 툭툭한 목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낌새를 알아채고는 소리쳤다. "안돼요, 난 아무것도 원치 앓소!" 그러나 그는 원로들 앞인지라 기가 죽어 있었다. "사제님, 당신의 명령에 대해선." 하면서 그는 곰처럼 느릿느릿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섰다. "파나요타로스, 이건 매우 고통스러운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지만, 자네도 우리의 뜻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겠지. 자넨 몸가짐이 천박스럽지만 상냥한 마음의 소유자야. 자넨 마치 아아먼드 같은 데가 있어 - 조개는 돌처럼 딱딱하지만 그 속에 자신을 잘 감추지 않나 - 달콤한 아아먼드 말일세. 자넨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듣고 있겠지, 파나요타로스?" "듣고 있소. 난 귀머거리가 아니오." 그의 우박이 쏟아진 것 같은 곰보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지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사제의 달콤한 말과 아첨이 더욱 메스꺼웠다. "유다 없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도 없다네.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이 없다면 부활도 없는 것. 그러므로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유다의 역할을 맡아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세." 사제가 핵심을 찔러 말했다. "유다를? 내가 말입니까? 천만에!" 석고먹성이는 퉁명스우면서도 단호히 말했다. 그는 분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부활절의 붉은 달걀이 깨어져서 노른자위가 그의 손을 온통 버려 놓았다. 족장이 한바탕 넉살을 부릴 양으로 그의 담뱃대를 치켜들면서 벌떡 일어섰다. "이런 놈의! 세상 말세로군!" 하고 언성을 높였다. "여러분 모두가 권고를 받고 있는 거야! 이건 원로들의 회합이야. 자네들, 여기가 어디 코스탄디스의 카펜줄 아는가! 원로들이 결정했어. 누구든지 복종해야만 하는 바로 그런 거야. 자네 듣고 있나? 석고먹성이!" "나도 원로회의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나더러 그리스도를 배반하도록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절대로 그 일을 할 수 없소." 족장은 헐떡거리면서 거품을 토했다. 그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다. 선장은 혼란을 이용해서 그의 잔을 또다시 가득 채웠다. "자넨 구부러진 막대길세. 자넨 모든 것을 삐딱하게만 본다구, 파나요타로스." 사제는 그의 목소리를 되도록 온유하게 하려고 애쓰면서 훈계했다. "자네가 유다란 뜻이 아닐세, 이 바보 같은 사람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있네. 우리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중에는 그를 다시금 존귀하게 여기듯이 자넨 유다를 가장해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역할을 하는 걸세. 자네의 머리는 확실히 아둔해. 그러나 중의를 기울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셨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를 배반해야 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네도 알겠지만, 유다는 필요 불가결한 존재야.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더 없어서는 안 될. 만일 이 제자들이 빠진다 해도 별 문제가 없어. 그러나 만약 유다가 빠진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네... 그는 가장 필요한 인물이지. 나중에 그리스도께서... 자네 그걸 이해하고 있겠지?" "내가 유다라구요? 천만에!" 파나요타로스는 깨어진 달걀을 주무르면서 거듭 거절했다. "당신은 내가 유다가 되기를 원하는 거요? 난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소. 그뿐이오!" "여보게, 선량한 파나요타로스. 우리들의 간청을 뿌리치지 말게나. 유다가 되어 주게. 자네의 명성은 영원할 걸세." 교장 선생이 거들었다. "라다스 영감님 역시 자네에게 간청하고 있어. 그리구... 자넨 그분에게 갚아야 할 돈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는 자네에게 독촉하지 않을 거야. 영감님이 그렇게 말했다네. 영감님은 심지어 그 물권을 자네에게 선사할 수도 있을 거야. 영감님께서 그렇게 말했다구." 하고 선장이 설득했다. "남의 사정에 간섭하지 말아요, 선장. 난 절대로 그 따위 말을 하지 않았소.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명하는 대로 따르게. 파나요타로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물권을 희사할 수는 절대로 없다네." 늙은 구두쇠가 혼비백산이 되어 고함을 질렀다. 모두들 잠잠했다. 파나요타로스는 수모를 이기지 못한 채 산을 오를 때보다 더 거칠 듯한 가쁜 숨을 이기지 못했다. "들러붙지 말라구. 불쌍한 악마가 그 재산을 삼키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건 유다에게 어울리는 농담이 아니오. 결정적인 예고 없이는 그것이 꼭 당신에게만 어울리는 재산은 아닙니다. 불명예와 라키는 누구에게나 필요했던 것이오. 마놀리오스, 어디 있지? 이것 좀 받아 주게." "그는 약혼녀 레니오에게서 별다른 달콤한 그 무엇도 찾지 못했다더군요.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어요!" 얀나코스가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얼굴을 붉히면서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는 아까부터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슬쩍 방 안에 들어와서 제일 구석진 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대가 헌신해야 할 일은, 족장님을 비롯한 원로님들께서..." "가까이 오게, 마놀리오스." 사제는 부드럽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리와서 나의 축복을 받게나." 마놀리오스는 다가와서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비록 옷은 남루했지만 아름다운 머릿결을 한 수줍음 많은 젊은이였다. 그에게는 백리향 향기와 밀크 냄새가 풍겼다. 그의 푸른 눈은 자신의 솔직담백성을 말해 주는 듯하였다. "그대는 영광의 번호를 획득했다네, 마놀리오스"하고 사제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제스처와 목소리와 또한 그대의 눈물로써 재현하게 되는, 하나님이 선택한 바로 그 사람일세. 거룩한 수난자 말일세... 그대는 사람들로부터 가시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며, 그대는 사람들로부터 채찍질당할 것이며, 또한 그대는 사람들로부터 거룩한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며 마침내 그대는 사람들로부너 수난을 당하게 될 걸세. 오늘부터 다음해 성주간까지 그대는 오직 한 가지 일만 생각해야 하네, 마놀리오스. 오직 한 가지 일만을. 어떻게 하면 그 무서운 십자가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단 하나의 생각만을 말일세." "나는 그런 인물이 못 됩니다." 마놀리오스는 떨면서 말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네를 선택하셨네." "나는 덕스럽지 못합니다. 난 이미 약혼한 몸입니다. 여자를 알고있어요. 죄악이 나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난 결혼하게 될 것이고... 그런데 어찌 그리스도의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마놀리오스는 독백하듯이 중얼거렸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게." 하고 사제가 엄격하게 말했다. "그래, 자네는 훌륭한 인물은 아닐세.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이 그것을 용납하시고 사면하셨으며 또한 선택하셨네. 자네는 선택된 인물이야. 잠자코 있게나!" 마놀리오스는 못 이긴 체했지만 사실은 기쁨과 두려움으로 터질 듯이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가랑비가 그친 뒤여서 먼 곳에서 수목들이 점차 촉촉하고 청명하게 푸르러지고 있었다. 순간 눈을 크게 치켜 뜨면서 마놀리오스는 부르르 떨었다. 크고 멋진 무지개가 에메랄드와 루비와 황금빛을 발하면서 하늘과 땅에 연하여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뜻대로 하십시오." 마놀리오스는 그의 가슴 위로 두 손을 넓게 펴면서 말했다. "자, 사도들, 가까이 오게. 파나요타로스 자네도 물론. 이리 와, 그렇게 성난 얼굴을 하지 말게나. 누가 자넬 잡아먹으러 가진 않을 테니까. 가까이 와서 축복을 받게." 네 사람은 다가서서 마놀리오스의 좌우편에서 나누어서 나란히 섰다. 사제가 그들의 머리 위로 팔을 쭉 펼쳐들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계시옵소서. 성령이 그대들 위에 임하시기를. 마치 봄날 나무들이 수액으로 부풀고 꽃봉오리로 터질 듯하듯이, 그대들의 가슴에, 죽은 몸뚱이일지라도, 그들의 변화 속에 꽃이 피기를! 성주간 동안 그대들을 통하여 성실한 신도들이 '저 사람 얀나코스가 아닌가, 코스탄디스, 미켈리스가 아닌가. 아니, 아니, 저건 베드로야, 야곱이구 요한이야.'하고 말하는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그들이, 그들의 가시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그대를 볼 때 마놀리오스, 그들이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되기를. 땅이 다시금 흔들리고 태양이 빛을 잃을지며, 그들의 영혼의 내부에서 성소가 그 기초로부터 꼭대기까지 둘로 갈라지기를. 그들의 눈들이 눈물로 가득하며, 그들이 마침내 우리들은 모두 한 형제인 것을 깨닫고, 깨끗하게 정죄함을 입게 되기를. 교회 가까운 곳에서, 아니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금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아멘!" 세 사람의 사도와 마놀리오스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는 공포 때문에 무릎이 후들거렸으며 그들은 다른 사람의 손들을 더듬어 찾아서는 꼭 움켜잡았다. 그들은 꼭 연결된 형상을 하여 엄습하는 위험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다만 파나요타로스만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동료들과 한 덩어리가 되려하지 않았다. 그는 출입문을 응시하다가 황급히 나가 버렸다. "여러분들의 길을 가시오. 하나님의 가호를 비오. 여러분들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오. 그것은 매우 거칠고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허리띠를 단단히 조이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울 것입니다!"하고 사제가 부탁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사제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원로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물러섰다. 그리고는 묵묵히 출입문을 나섰다. 원로들은 일어서서 그들의 팔과 다리에 손을 뻗치면서 격려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여."하고 족장이 말했다. "모든 것이 합당하게 결정되었소. 당신이 구상한 일들은 매우 멋졌소. 사제님, 당신께 하나님의 은총을!" 원로들이 문지방을 막 넘어서려는데 포르투나스 선장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넓적다리를 철썩 때렸다. "아, 참. 우린 막달라 마리아를 선정하는 걸 깜박 잊었었군!" "걱정 말게나, 선장" 족장이 샐비어를 삼키면서 말했다. "내 그녀에게 가서 말할 걸세... 성사가 잘 될 거야." 그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녀와 죄를 범해야 한다면 하는 수 없지요, 족장님." 사제가 못 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에게 말하기 전에 하십시오. 그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큰 죄가 될 것이오. 당신 알겠지만." "나에게 잘 말해 주었소, 사제님."하고 족장이 말했다. 그는 크나큰 위험으로부터 막 탈출한 양,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포르투나스 선장은 그의 지팡이에 둔중하게 몸을 의지하고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악마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혼자 있게 되면 늘 그런 생각들을 하였다. 그러한 부류의 일을 위해서는, 늙은이, 자넨 깨끗한 마음이 필요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야. 우리들의 모든 성직자들이 게걸스럽게 쳐먹는다? 그는 약방을 벌여놓고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면서 무게에 따라 그리스도를 분배한다. 그는 무슨 병이든지 고친다고 말한다. 돌팔이 의사처럼. "당신은 무엇이 탈났습니까?" "나는 거짓말을 했어요." "좋습니다! 그리스도 3그램을 쓰십시오. 그만 피아스터(풀이: 터어키, 이집트 등 중동제국의 화폐단위)를 내세요." "나는 도적질했습니다." "4그램의 그리스도를 사용하세요. 그만한 돈이 되겠어요?" "난 살인했소." "오, 이 가엾은 사람, 당신은 매우 중병이오. 오늘 저녁 당신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그램의 그리스도를 복용해야 하오. 이 값은 굉장하오." "조금 할인할 수 없을까요? 사제님." "안 됩니다. 그것은 정당한 가격이오. 지불해야만 하오. 그렇잖으면 당신은 똑바로 지옥 아랫목으로 가게 될거요."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점을 지옥으로 연상하면서 상상 속의 자신을 본다. 화염과 쇠갈쿠리들과 악마들, 다음에는 고객이 그의 포켓에 소름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파트리아케스? 두 다리의 돼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보이는 거라곤 디룩디룩한 배뿐, 그는 머리통에까지도 창자로 가득하다구.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을 당신 옆에 두었다면 그는 그의 한쪽에다가 그가 평생 동안 먹어치운 모든 것들로, 다른 한쪽에는 그가 배설해 놓은 모든 것들로 온 지천에 악취나는 두 개의 거대한 산더미들을 만들어 버리겠지. 그러다가'그날'이 오면, 그는 그의 양편의 두 개의 산더미들과 함께 어떻게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출두할 것인지... 하지 니콜리스, 그 교장 선생 말이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난한 자의 동료! 무기력하고 낡은 사람. 한 쌍의 더러운 안경을 얹은 추한 얼굴. 그래서 그 자신이 알렉산더 대왕을 취했으렸다! 고대 종이투구를 쓴 새끼들의 머리에 종이투구와 왕관을 올려놓으라. 교장 선생! 그에게서 무슨 신통한 일이 있을 수 있겠나? 라다스 영감? 야비하고 인색한 사람. 한푼의 자존심 조차 없는 인간. 한 배럴의 술통 위에, 한 병의 기름 위에, 한 통의 밀가루 위에 앉아서 굶어 죽는 구두쇠. 어느 날 저녁, 그가 손님들을 맞고 있을 때 그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말했지. "부인, 가서 달걀 한 개를 요리해 주시오. 우리 네 사람의 저녁식사는 될 테니까." 언제나 배고프고, 언제나 목마르며, 왜 맨발로 궁상을 떠는가? 부자의 가죽 껍질로 죽을지어다! 이그! 악마가 그를 취할지어다. 그리고 나? 그래, 말해야 할까? 속이는 짓거리와 약탈하는 일! 당신은 나에게서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집게가 필요합니다. 먹는 일과 마시는 일, 속이는 일과 모해하는 일과 유부녀와 간통하는 짓거리를 나는 나의 생애를 통해 익혀 왔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이토록 많은 추악한 일들을 버리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의 손과 발, 나의 입과 넓적다리에 건강을!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좋은 일들을 했구나. 신의 은총이 있기를! 포르투나스 선장은 깊은 생각에 빠져 혼잣말을 하면서 지팡이를 따라 돌밭길을 나아갔다. 그는 모자를 벗어서 부채질을 했다. 그는 열기를 느꼈다. 태양을 바라보았다.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아그하가 그를 점심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진탕 마시고 그들의 배를 흡족하게 할참이었다. 어서 가자. 그는 웅얼거렸다. 인생이란 좋은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얻자구! 아그하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 그는 붉은 색을 칠한 출입문 앞에 잠시 멈추고는 침을 뱉었다. 자신을 좀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마치 터어키인 전체 위에 침을 뱉는 기분이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마치 작은, 지극히 작은 자유의 깃발을 높이 추켜 세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자유스럽게 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침을 뱉고는 마음놓고 문을 두드렸다. 그는 곧잘 먹고 마시러 갔었고 그때마다 아그하는 인색하지 앓은 멋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터질 듯이 살진 그들의 목 둘레에다가 다시 한 번 냅킨을 둘러 맬 것이었으며, 그들은 또다시 큰 잔 가득히 신선한 라키를 마실 것이었다. 안뜰에서 귀찮은 듯이 뒤뚱거리면서 나막신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아그하의 나이든 하녀인 곱사등이 마르다가 선장에게 까다로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혹시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으신다면, 선장님, 다시는 와서 술을 마시지 마세요. 그것으로 족하답니다. 그럼요, 정말 더 이상 오실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구요." 선장은 웃었다. 그러면서 늙은 여인의 잔등의 혹을 어루만졌다. "염려하지 말아요. 카이라 마르다. 우린 마시지 않을테니까. 설령 우리가 마신다 하더라도 채근하지 않을 거야. 또 설령 보챈다 손치더라도 그대는 마루를 더럽히는 우리에게 술단지를 더 가져다 주지도 않겠지. 맹세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위풍당당하게 문을 들어섰다. 2. 사람의, 사람에 의한 학대 저녁 무렵, 세 사람의 사도들과 마놀리오스는 마을에서 별로 멀지 않은 보이도마타의 조그마한 호수에 연한 도로를 따라서 출발하였다. 그들은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으므로 마음들이 유쾌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영적인 신앙의 교제를 체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 모두 신비적인 이상한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가랑비도 멎고 나무와 돌들은 맑게 빛났다. 대지는 싱그럽고 환희로왔으며, 흉내를 내면서 뻐꾸기가 지저귀었다. 태양은 훌륭한 귀족처럼 의젓하게 하면서 정념에 겨워 대지를 애무하고 있었다. 만물들은 순수하게 부드러웠고 화사하였다. 빗방울들이 나무 잎사귀들 끝에서 조용히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저녁 무렵의 촉촉한 공기 속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이었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오랫동안 침묵 속을 걸어갔다. 이윽고 그들은 도로에서 초원으로 갈라진 젖은 풀섶길로 들어섰다. 레몬나무의 화사한 꽃들이 어두운 군엽들 사이로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아직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즈음이 아니었는데도 온갖 꽃들을 다북히 머리에 인 대지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감미로운 바람은 대지에 수액을 오르게 하였고, 그래서 온갖 식물들은 더없이 겸손하게 소생하는 것이었다. 콘스탄디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사제님은 우리들의 등에다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셨어!"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이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시겠지. 자네들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난번의 성사 때는 그리스도 역을 차라람비스 선생이 맡았었지. 그는 재산이 많은 사람에다가 좋은 가문의 사람이었지. 그러나 그는 일 년의 예비기간 동안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인격을 갖추려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지나치게 준행하면서 몸부림 치다가 끝내는 머리가 돌아 버렸지 않은가. 부활절날, 그는 머리의 가시면류관을 내던져 버리고 어깨의 십자가를 내려 놓고는 트레비존드 로를 넘어서 소우멜라에 있는 성 게오르그 수도원으로 가버렸지. 그리고는 수도사가 되어 버렸던 거야. 그 일로 말미암아 아내가 죽어 버렸고 아이들은 마을에서 거지꼴이 되어 버려서 끝내 그의 가정은 몰락해 버렸던 게 아닌가. 마놀리오스, 자네 그 차라람비스 선생을 기억하는가?" 마놀리오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동료들이 듣고 있는 것과는 또 달리, 코스탄디스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의 영혼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던 것이며, 목이 조여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의 때묻지 않았던 유년 시절부터 그 일을 열망했다. 그 일이란, 그는 마네스 사제로부터 고귀한 성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그의 거룩함의 발아래 앉았던 것 처럼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수많은 밤마다 갈망했던 것인데, 보라,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그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순교자들과 성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육신을 깍아 내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신앙을 위하여 죽음을 자초하여 마침내 순교의 도구가 되는 것을 감당함으로써 낙원에 들어가리라. 가시면류관과 십자가, 그리고 다섯 개의 쇠못... "우리가 미친 짓 하려는 게 아닐까요? 그래도" 미켈리스가 악의 없는 농담을 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내면의 깊은 곳부터 막연한 불안을 느꼈다. "당신들은 우리가 마치 사도들인 양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하나님, 우리들을 지키소서!" "누가 알아?" 얀나코스가 마치 햇볕에 구운 듯한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인간이란 마치 명령을 쉽게 피해 버리는 미묘한 기계같아. 그것은 나사가 빠져 버린 인생을 위해서는 충분한 거지만..." 그들은 보이도마타 호수에 이르러서 발을 멈췄다. 짙은 풀빛 수면과 빽빽한 갈대숲, 그리고 물오리들. 황새 두 마리가 푸드득 날아서 그들의 머리 위를 무심한 양 천천히 지나갔다.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들은 황혼 속에 사라지는 호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그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고 알 수 없는 불안에 쫓기고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이윽고 얀나코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사실이야, 콘스탄디스. 그 임무는 매우 힘들고 어려워. 난 좋지. 못한 습관을 갖고 있지 - 하니님, 나를 용서하소서! - 어떻게 내가 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저울눈을 속이지 말게'하고 그는 말했지.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뜯어 보지 말게.'라고 말이야. 사제는 그것을 쉽게 상상한다구. 만일 자네도 저울눈을 속이지 않는다고 해봐. 어떻게 돈벌이를 기대할 수 있겠으며, 언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나? 만일 자넨들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훔쳐보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를 붙일 수 있겠나? 난 늦게 얻은 마누라가 나를 떠난 후 그런 습관을 갖게 된 거라구. 난 조금도 해치지 않았어 - 하나님, 나를 지키소서! - 그러나 난 지루했어... 그것은 버림받은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어. 나의 노새를 제외하고는 - 그에게 은총을! 그것은 나의 유일한 기쁨이야. 나는 외톨이가 되었으니까. 행상길에서 돌아오게 되면 오두막집 문을 잠그고 약간의 물을 끓인 후에 증기로 봉투의 풀칠한 곳을 눅눅하게 해서는 개봉하는 거라네... 난 그것을 읽지. 나는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문제거리가 무엇인지 발견하고는 그것을 다시 붙이지.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그것을 배달하지. 그런데 이즈음 사제가 그걸 알았다구. 자네도 알다시피, 여보게, 까마귀가 비둘기로 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 하나님, 나를 용서하소서!" 성긴 검은 콧수염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미켈리스는 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남을 속인 일이 없었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지 않았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그를 책망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담배쌈지를 끄집어내어 동료들에게 건네주었다. 네 사람 모두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뚱뚱한 몸을 건들대면서 쌈지를 제자리에 쑤셔 넣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태웠으며 연기를 들이마셨으므로 더우기 말이 필요없음을 느꼈다. 미켈리스는 자신의 자랑스러움을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제님께서는 나더러 나의 습관은 하나도 고칠 것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만큼 난, 난 사도들을 욕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간신히 뱉아 놓고는 이내 후회했지만 이미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마놀리오스는 그를 향해 돌아서서 근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애초부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다. 미켈리스는 그의 상전의 아들이다. 그가 아니라면? 그러나 그는 이제는 자신이 단순한 마놀리오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는 무엇인가 보다 깊고 보다 위대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대담해지게 하였다. "누구나 마찬가집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의 군주로서의 특권이 또한 당신의 습관 중 다소 얼마간을 전적으로 바꾸어 놓지나 않을까요? 지나치게 먹기를 즐기지 마십시오 - 마을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지 않습니까 - 그리고 지나치게 사치하지 마십시오. 화려한 린네르 바지와 수놓은 양복조끼, 방금 만들어진 각반 등 - 입을 옷이 없어서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이따금씩 당신의 지하실과 고기 저장고를 여십시오. 그리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소유하고 있소, 고맙게도." "그래서 만일 영감이 내가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눈치챈다면?" 미켈리스가 두려움 속에서 말했다. "당신은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당신의 나이는 스물 다섯, 다 장성한 사람입니다."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게다가 보다 높게는 당신 아버지는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그분이 진정한 아버지십니다. 그분만이 홀로 권고하십니다." 미켈리스는 말문이 막혀 그의 종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처럼 대답하게 말해 보기란 처음이었다. 그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가리가 부풀어 올라서 이러는 것이겠지, 하고 미켈리스는 생각했다. 그래, 아버지가 녀석을 불러 주의하도록 말해야겠어. 그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퉁겨 버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복음서를 사야 해."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길을 쭉 따라 가다가 보면 찾을 수 있을걸."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굉장히 큰 복음서가 있어요."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것은 나무와 돼지가죽으로 장정된 것이라구. 장식한 널빤지들은 거대한 성벽의 문 같아요. 물론 자물쇠도 달렸지요. 거대한 열쇠와 함께. 그것을 펼쳐 볼라치면 마치 웅장한 도시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 거예요, 그 내용은 참으로 단순해요 - 우리들이 매주일마다 우리 집에서 만나 그것을 읽을 수도 있어요." "산에 있는 동안 나도 한권 가졌어야 했는데."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자 힘으로 나무 조각을 구해서 손가락들을 조각하고 지팡이라든가 코담배갑과 성자들과 염소들, 내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었지요,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었죠. 그러나 이제부턴..." 그는 침묵과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가 - 당나귀를 타고 구역을 지킬 때나,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버짐나무 아래 앉아 있었을 때, 설령 내가 복음서를 조금씩 읽었다 해도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당신은 나에게 그것으로부터 판단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무렴 어때요. 그것은 무엇인가 항상 기쁨이 되었을 것을!"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해.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구." 하면서 코스탄디스가 소리쳤다. "내 마누라장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해서 울화가 치밀 때면, 난 복음서를 펴들고 마음을 가라앉혀야겠어. 그리고는 내 자신에게 타이를 거야. '모든 것을 참자. 이것이 나를 위한 순교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무엇이었던가?' 하고 말일세. 다른 방법으로는... 자네가 나를 책망해서는 안 되네, 얀나코스. 그녀는 자네의 누이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참을 성이 없다네. 한 번은 자네 누이가 내 위에 걸터앉아서 포크를 가지고 내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쥐어 뜯었다네. 그저께만 해도 그녀가 콩반죽 요리를 하다가 철남비를 들고는 빙빙 돌리면서 그것으로 내 머리를 까려고 했다네. 난 내 자신에게 말했지. '그년이 날 죽이든지, 내가 그년을 죽이겠다'고 말이야. 그러나 이젠 복음서를 읽어야겠어. 그러면 그녀가 큰소리칠 수 있는 만큼, 그녀는 좋아하게 되겠지!" 얀나코스는 웃었다. "가엾은 코스탄디스." 그는 측은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지 하나님은 알걸세. 그러나 참게. 남자라면 누구나 운명적으로 아내를 갖게 되지. 아무 말 말고 최고의 소유물로 만들게." "걱정이 있는데." 하고 콘스탄디스가 다가섰다. "그것은, 난 글씨를 잘 읽을 수 없다는 걸세. 복잡하게 뒤섞인 편지를 받으면 끝내는 혼란에 빠지고 말지."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 되오." 마놀리오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것은 편지보다 더 평이해요. 당신은 한 음절만을 읽고는 그 전체의 얘기들을 이해하면 되니까. 게다가 사도들 역시 우리들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오. 교육도 받지 못했고 대다수 어부들이었지요." "사도 베드로는 글을 읽을 줄 알았었나?" 얀나코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답했다. "난 잘 모르겠어요, 얀나코스. 우리 사제님께 여쭈어 봅시다." "그게 좋겠군. 또한, 베드로는 고기를 잡아서 사람들에게 팔았는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지도 말일세." 얀나코스가 나직이 말했다. "분명히 그는 저울눈을 속이지 않았겠지. 그런데 그것들을 팔았을까? 그게 의심스러워. 팔아먹었느냐? 아니면 남을 도왔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들은 성자들의 생애를 잘 읽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해요." 미켈리스가 넌지시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마놀리오스가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분별없이 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수도사들과 함께 생활했을 때, 난 그것들을 읽곤 했었죠. 그런데 하마터면 머리가 터질 뻔했어요. 사막과 용사들, 그리고 무서운 질병들과 문둥병, 어떤 사람들의 몸은 종기로 덮여 있고 벌레들에게 먹히기도 하며 거북의 껍질같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이 아름다운 여인처럼 찾아오지요. 아니, 아니오! 다만 복음서만 읽었소." 그들은 어둠이 깃들어 오는 호숫가를 천천히 걸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생활 속에서 이처럼 기이한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은 그리고리스 사제의 이상한 말들을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생각했다. "성령이 그대들 위에서 역사하시기를..." 역사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그러면 바람일까? 영이란 것은? 바람은 수액이 오르게 만들고, 습기같기도 하고, 저녁 무렵의 따뜻한 바람은 꽃봉오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가지를 터뜨리게 하는 걸까? 성령이란 어떤 바람의 한 자락 같은 것인가? 우리들의 영혼 위에서 숨쉬는 것일까? 네 사람의 동료들은 그것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 숙고하고 의심도 하고 고심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그의 이웃들의 의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그들에게 비밀스럽고도 이상스러운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둠이 내리는 정경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말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저녁별이 먼 지평선 위에서 반짝거렸다. 호수 가장자리에서는 개구리들이 그들의 존재를 들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개골개골 울기 시작했다. 호수 왼편으로는 파릇한 기운이 도는 초원과 수려한 버어진 산이 이미 어둠에 빠져들었다. 버어진 산은 마놀리오스의 양치는 오두막과 그가 지키는 양떼들이 있는 곳이었다. 오른편에는 사라키나라고 불리는 험준한 산이 검푸른 바이올렛 빛깔로 바뀌고 있었고 거기 산기슭의 움푹 패인 많은 동굴들이 어둠 속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육감적인 흰 회칠을 한 거대한 바위로 떠받혀진 그 산의 꼭대기는 마치 엘리야 선지자의 예배당처럼 희디희게.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달걀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쪽, 부드러운 대지 위에서는 등심초 사이로 여기저기서 배꼽에 불을 숨긴 개똥벌레들이 불을 태우면서 교교하고도 끈기 있게, 사랑의 짐을 가득 싣고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풀벌레들도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어두워지는군, 자 이젠 돌아들 가야죠."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던 얀나코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손으로 귀부채를 만들어서 무엇인가에 귀를 귀울였다. 그는 군중들이 행진하는 것 같은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분봉하는 벌떼들이 붕붕대는 것과도 같이 아득히 멀리서 들리는 듯하면서도 완전한 인기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점점 장중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들려왔다. "쉿, 조용히, 들어보게!" 안나코스가 나직이 외쳤다." 벌판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개미떼 같은 저것이 무얼까? 무슨 행렬 같잖아."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아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그 정체를 식별하려 애를 쓰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한 무리의 남녀들이 길게 행렬을 지어 포도원 사이의 옥수수밭 가운데서부터 시야로 잡혀 오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무리들이 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리들은 마을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들어 봐요!" 미켈리스가 말했다. "찬송가를 부르고 있잖아." "울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난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데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아니, 아니야. 찬송가야. 숨을 죽여봐,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구." 숨을 죽이고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랬더니 저녁의 평온 속에서 보다 분명하게 구식 비잔틴 성가가 울려 퍼졌다. "여호와여, 여호와여,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소서..." "우리의 형제들이다! 기독교인들이다!" 마놀리오스가 외쳤다. "가서 저들을 영접합시다!" 네 사람은 뛰기 시작했다. 그 행렬의 선두는 벌써 마을 어귀의 첫 번째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개들이 길거리로 달려나와 미친 듯이 짖어 대면서 뛰어올랐다. 문들이 열리더니 여인네들이 문 밖으로 쫓아나가고 남정네들은 입에 하나 가득 음식을 머금은 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리코브리시의 주민들은 평상에 책상다리들을 하고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와 울음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사도들과 마놀리오스는 그들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석양의 마지막 몇 가닥 빛줄기가 마을의 집들과 골목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무리들이 이제 막 가까이 도착했으므로 그들은 무리의 우두머리격인, 짙은 눈썹 밑에서 이글거리는 검은 눈과 성기고도 빳빳한 회색 턱수염의, 햇볕에 탄 얼굴의 깡마른 사제를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은으로 부조된 중후한 장정의 거대한 복음서를 그의 팔안에 꽉 움켜 안고 있었다. 그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오른손으로는 키 큰 성 게오르그를 금으로 수놓은, 수술을 늘어뜨린 검고 거대한 낡은 교회기를 들고 있었다. 그 뒤에는 대여섯 명의 여윈 늙은이들이 거대한 성상을 모시고 있었으며, 무리들이 죽은 듯이 일직선의 행렬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삽과 보습들과 곡괭이라든가 자루 긴 낫 따위의 연장 꾸러미들을 맡고 있었고 여자들은 요람과 상과 물통들을 지니고 있었다. "당신네들은 뉘시오? 신도 여러분들. 그리고 어디서 오셨으며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얀나코스가 마을 광장 위에 이제 막 모여들기 시작하는 무리들 중의 사제에게 머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외쳤다. "그리고리스 사제님이 어디 계시오?" 그 늙은 사제가 거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을 원로들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불안스럽고 놀라서 뛰어올라온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들은 신도들이요. 형제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신도들이여, 그리스 사람들이 박해를 당했소! 마을의 지도자들을 불러 주시오. 난 그들과 할 얘기가 있소. 종을 울리시오!" 여기저기서 지칠 대로 지친 여인들은 땅바닥에 풀석 주저앉아 버렸으며, 남자들은 그들의 봇짐을 힘없이 팽개치면서 얼굴의 땀을 훔쳤다. 그들은 그들의 사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묻습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할아버지." 계속 등에 무거운 자루를 매고 힘겨워하고 있던, 나이를 먹어 허리가 구부러진 한 노인에게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성급하게 굴지 말아요, 젊은이." 그 늙은이가 대답했다. "성급하게 굴지 말라구. 포티스 사제님이 말씀하실 테니까." "그 자루에는 무엇이 들었습니까, 할아버지." "아무것도 아닐세, 젊은이. 아무것도 아냐. 내 소지품들이지..." 자루를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노인이 대답했다. 사제는 복음서를 단단히 껴안은 채 계속 버티고 서 있었다. 한 젊은이가 종탑으로 달려가더니 줄을 잡고 거칠게 종을 치기 시작했다. 올빼미 두 마리가 화들짝 놀라서 버짐나무로부터 후드득 날아올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그하는 이제 마시기를 끝내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의 시야에 그에게 소속되지 않은 무언가 이상한 무리들이 가득 모여 있는 광장이 나타났다. 그는 멀리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 누구들이기에 저렇게 소리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노래도 부르는지 도대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옥의 소음을 내고 있는 저것은 - 그런 것일까? - 아마도 종소리겠지. "어이, 이봐, 얼간이 선장."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포르투나스를 찾았다. "이리 와서 저 수수께끼를 나에게 설명해 주게. 광장에 있는 저 돼지떼들은 도대체 뭘까? 저 소음은? 저 종소리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포르투나스 선장이 발코니로 뛰어나갔다. 그는 그의 머리 주위에다가 그것이 폭발이라도 할까봐 흰 수건을 질끈 매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아그하와 함께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하는 그의 습관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라키가 머리를 천 갈래로 폭발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더 자주 수건을 풀어서 찬물을 담아 놓은 대야에 그것을 담갔다가는 다시금 그의 불타고 있는 머리에다 두르곤 하였다. 선장은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고 눈을 부릅떴다. 그는, 버짐나무 주위에 운집한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깃발 등을 능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뭔가, 얼간이 선장? 도대체 어떤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겠나?" 아그하가 재차 물었다. "사람들이군요! 내 생각으로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그하님? 무얼 생각하시죠?" 하고 선장이 대답했다. "나 역시, 사람들 같아 보이는군... 저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지? 저것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어떻게 할까? 내버려 둘까? 쫓아 버릴까? 채찍을 들고 내려갈까?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개의치 마십시오, 아그하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채찍을 들고 내려가시지요. 초조하시고 역정이 나십니까?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기분전환이나 하십시오.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없을까요?" "유소우화키!" 아그하가 소년을 불렀다. "방석을 가지고 와, 내 장난감아. 그리고 술잔과 술병도 좀 가져오구. 그리고 이리 와서 잠깐 보라구, 내 귀여운 것. 저들은 롬노이(풀이: 그리스인의 다른 말)들이지. 네게도 그렇게 보이지. 그리스 놈들, 이제 곧 싸움질을 하겠지." "그리고리스 사제는 어디에 있소?" 포티스 사제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마을 원로들은 어디에 있소? 여기 신자는 없소? 누가 가서 그들을 데려올 수 없겠소?" "내가 가겠소! 잠깐만 참으십시오, 사제님."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마놀리오스는 미켈리스를 향해 말했다. "미켈리스, 가서 당신 아버지께 알리시지요.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에게 신도들이 도착했다고 말씀하십시오. 신도들이 쫓겨왔는데 그들의 발은 지쳐 있으며 당신의 보호를 바라고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아버지는 족장이시므로 그것이 그분의 의뭅니다. 나는 그리고리스 사제님께로 달려가겠소. 코스탄디스, 당신은 라다스 영감님께로 달려가시오. 가서 어떤 마을에서부터 사람들이 찾아왔으며, 그들은 굶주려 있기 때문에 건빵을 얻기 위해 그들의 소유물들을 팔고 있다고 전해 주시오. 당신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그에게 말해야만 합니다. 그렇잖으면 그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리고 얀나코스, 당신은 들판을 가로질러 선장의 별장으로 가서 이들이 흑해로부터 파선당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당신의 말을 듣고자 이곳에 왔노라고 전하십시오. 돌아오는 길에 학교장을 불러 오십시오. 그분에게는 그리스인들이 곤궁에 빠져 있다고 말씀하세요!" 한 장난꾸러기가 재잘거렸다. "선장은 아그하와 마시면서 떠들고 있어요. 저기, 그의 발코니에서요... 그는 그 머리에 수건을 잘끈 동여맸어요, 그건 그분이 많이 취했다는 의미죠." "족장님은 곯아떨어졌겠죠!" 하고 그들의 등뒤에서 까부는 목소리가 말했다. "대포 소리도 그를 깨울 수 없을 거예요." 그들은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거기, 육감적인 입술을 한 화려하고 매혹적인 과부 카테리나가 가쁜 숨을 가누면서 도착하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바탕에 크고 붉은 장미꽃들을 수놓은 새로운 쇼올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뺨은 불타고 있었고, 호도나무 잎으로 닦은 이빨이 반짝거렸다. "그는 잠들었어요. 천국에 가 있다구요. 코까지 골면서!" 카테리나가 짖궂은 눈빛을 던지면서 마놀리오스 쪽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당신이 그에게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에요,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들어 시선을 떨어뜨렸다. 암코양이 같은 여자! 그는 생각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암코양이... 너는 내 뒤로 사라질지어다, 사탄이여! 과부는 그에게 접근하면서 엉뚱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흡사 암내난 거친 들짐승같이 사향 냄새를 풍겼다. 등뒤로부터 들려오는 분명치 않은 고함 소리를 듣고 그녀는 몸을 돌렸다. 험상궂고 어둡게 화난 얼굴을 한 파나요타로스가 거기서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역시, 필시 달려왔을 것이었다. 물감칠을 했기 때문인지 그의 얽은 얼굴이 온통 진홍색이었다. "갑시다! 어서들 가십시오!" 마놀리오스가 조바심치면서 외쳤다. 세 사람은 언덕을 뛰어올라 달렸다. 이내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져 갔다. 격렬하게 이를 부드득 갈면서 파나요타로스는 카테리나 곁으로 다가섰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대섰다. "뭘 노리고 있지? 이 암컷, 족장의 집에서 그 늙은 수코양이와 뭘했던 거지? 그렇지? 이 창녀 같은 것. 내 너를 날것으로 잡아먹어 버리겠어!" "난 석고 재료가 아니라구요!" 카테리나가 야유조로 말했다. 그녀는 무리들 사이로 살금살금 걸어서 체격이 거대한 기수 가까이 숨어 버렸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포티스 사제가 신도들 가운데를 왔다갔다 하면서 외쳤다. "용기를 가져요. 이제 곧 이 마을 원로들이 올 것입니다. 덕망스런 그리고리스 사제님께서 오시면 우리들의 고통도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늪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탈출했습니다. 우리들은 대지에 새로운 뿌리들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고투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오, 나의 가련한 양떼들이여. 그것은 불멸할 것입니다! 벌떼들이 윙윙대는 것처럼 소문이 일어났다가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몇몇 여인들이 그들의 몸을 열어 젖가슴을 내어밀더니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젖을 빨게 했다. 거인은 땅에 꽂아 놓은 교회기에 기대어 있었으며, 1세기를 넘게 산 듯한 노인장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그의 피부 경결이 역력한 손을 봇짐 위에 올려놓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고마와라! 우리는 다시금 터전을 잡아야 해." 하고 노인이 손을 들어 성호를 그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무렵 마을 사람들이 숨쉴 겨를도 없이 도착하고 있었다. 개들이 진저리나게 짖어 대고 있었으며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온 무리들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젊은이는 여태껏 줄을 당기며 종을 치고 있어서 온 마을을 술렁거리게 하였다. 그들 머리 위에는 커다란 별들이 두엇 부드럽게 반짝이는 무한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피난민들은 그들의 눈을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응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원로들의 도착을 확실하게 믿고 기다렸다. 모두들 조용하였다. 잠시 동안 돌 사이를 흐르는 냇물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들어오게, 악마의 선장. 술을 따라 주게."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그하가 말했다. "꿈이련가. 그건 우리들의 흐름이다. 달콤한 흐름. 취하여 잠들도록 술을 기울이게. 자넨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 롬노이 놈들이 자리를 뜰라치면 내게 알려 줘. 채찍을 들고 내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그하여.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필요하면 당신을 깨우겠소. 내가 감시하고 있다니까요!" "후세인을 불러. 트럼펫을 가지고 오라구 해. 그놈이 필요할지 몰라. 유소우화키, 담뱃불을 붙여라." 나긋나긋한 소년은 호박색 대통에서 궐련을 한줌 집어서 아그하의 긴 담뱃대에 불을 달았다. 아그하는 지긋이 눈을 감고 빨아 대기 시작했다. 그는 채롱받이 술병과 그의 유소우화키 가운데서 쿠션 위에 앉은 채, 포만감에 스르르 신비경으로 빠져들었다. 숨을 헉헉거리면서 마놀리오스가 돌아왔다. 그는 팔을 크게 벌리면서 소리쳤다. "길을 비키세요, 비켜요. 형제 여러분들. 사제님이 오십니다!" 남자들은 기대에 부풀어 벌떡 일어섰으며 여자들은 지친 머리를 번쩍 쳐들고 소망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포티스 사제가 기수에게 교회기를 흔들게 했다. 무리의 원로들이 성상을 대열의 앞쪽으로 옮겼다. 사제가 자신의 가슴에 십자를 그으면서, "주께서 도우셨도다!" 하고 나직이 말하면서 담담한 자세로 기다렸다. 미켈리스도 돌아왔다.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다가가서 귀엣말을 전했다. "아버지는 자고 있었소, 코를 골면서.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소. 그는 너무 많이 먹고 취하셨어.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꿈쩍도 않더군. 난 고함을 쳐 보았지만 들은 척도 않아. 하는 수 없이 돌아오고 말았지." 곧 따라 코스탄디스가 돌아왔다. "제길할, 늙은 늑대 같은 영감이란." 코스탄디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영감이 우리의 속임수를 눈치채고는 걸려들지 않더군. 그래서 바빠서 갈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거야. 마을을 쳐들어온 거지들에게서 금붙이를 모으는 일이라면 한푼도 쓸 돈이 없다고 말하던데. 우리들이 자기를 찾아오도록 내버려 두지 말래나. 그는 문도 열지 않을 걸세." 바로 그 순간, 얀나코스가 도착했다. "교장 선생님은 책을 읽고 있더군. 독서가 끝나면 오겠대. 그리고 무슨 일이든 그리고리스 사제가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데. 거 보라구!" "마을 원로들 말이 나왔으니 말하지!" 마놀리오스가 탄식을 하면서 한심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골아 떨어졌지를 않나, 술독에 빠져 곤죽이 된 사람이 없나, 또 그 늙은 수전노는 재물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있고... 또 독서 때문이라고 핑계하는 영감이 없나. 그러나 그리고리스 사제님은 올 것이 틀림없다고 난 믿고 있어요. 그분은 - 하나님의 목소리, 말씀의 대언자 중 한 분이시니까!" 무리들 중, 얼굴이 창백한 한 여인이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는 처절하게 울었다. 그녀는 사흘 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안온했던 세월은 다 지나가 버렸고 그녀의 강한 삶에의 의지마저 소진되어 버렸다.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힘을 내어요, 가엾은 데스피니오. 절망하지 말아요." 여인들이 그녀 가까이 모여 그녀를 부추기며 위로했다. "우리들이 여기 있다구요. 이렇게 기름진 곳에 왔잖아. 게다가 저분들이 우리들을 위해 먹을 것을 가져온다구. 우리들이 새로운 힘을 얻도록 말예요. 조금만 더 버텨요!"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힘없이 가로저었다. 눈동자가 몇 번 굴러 휜자위가 되더니 이내 감겨져 버렸다. 모두들 돌연히 환호작약하면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분이 오신다! 사제님이 오고 있다!" "이봐, 털북숭이, 무슨 일인가?" 아그하가 무겁게 눈꺼풀을 들면서 물었다. "제가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조바심하지 마십시오, 아그하여... 당신이 지금 맛보고 있는 무릉도원의 황홀경을 계속 즐기도록 하십시오. 제가 당신의 무릉도원 문에 서서 빈틈없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권위를 지키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리고리스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 사제 말이에요. " 아그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이상한 유랑민들에게도 사제가 있었던가?" "그럴 겁니다." 빈 술잔을 다시 그득 채우면서 선장이 대답했다. "좋아, 그렇다면 우린 재미있는 일을 보게 될걸. 자네 두고 봐 그 두 사제는 다투면서 주먹다짐을 할 테니까. 그들은 여자 같다네. 딱한 사람들같으니. 그들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만나기라도 할 때면 서로 머리채를 쥐어뜯으면서 야단이지. 후세인은 어디 있나? 그를 내려보내, 그리구 그렇게 말해 버리라구 해.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한편, 파나요타로스는 그 과부를 쫓아가기 위해 그녀가 숨은 교회기 가까이 접근해 갔다. "내 너를 처먹어 버리겠어, 이 잡년!" 그는 그녀의 귀를 향해 또 다시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해? 이 많은 사내들 사이에서 말이야. 집으로 가자구, 빨리! 여기를 떠! 난 곧장 널 쫓아갈거야." "비정한 인간, 당신은 기독교도들의 고뇌를 보지 못하나요? 당신은 이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에게 한 점 동정심도 갖지 못하나요?" 과부는 그를 향해 호되게 쏘아 붙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음침한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질식시킬 듯했으므로 그녀는 도저히 자신을 더 억제하지 못하고 느닷없이 그를 향해 고막을 찢어 놓았다. "유다같으니!" 그와 동시에 그녀는 피난민들 틈으로 미꾸라지처럼 몸을 감추어 버렸다. 파나요타로스는 그의 발 밑에서 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 저주의 말이야말로 그의 가금에 비수를 꽂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할까. 그는 가까스로 교회기의 장대를 붙들고서야 쓰러지는 자신을 가눌 수 있었으며, 입을 헤 벌린 채 반쯤 꼬꾸라진 상태로 빙글빙글 도는 땅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한참 동안을 그렇게 있어야만 했다. "그분이다! 그가 온다! 그리고리스 사제다!" 사방에서 환호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무리들은 눈을 들어 그를 선망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건장한 키에 도도해 보이는, 거대한 배 위에 넓은 검정 벨트와 그의 육중한 은제 십자가를 장식한 청적색 줄무늬의 고급 세틴 사제복을 입은 리코브리시 마을의 하나님의 대리자, 그리고리스 사제가 굶주린 피난민들 앞에 우뚝 나타난 것이었다. 무리들은 무릎을 끓었다. 그들의 수척한 사제가 팔을 벌리고는 수도사의 예법에 따라 어깨에 성작을 부여하기 의해 이 살찐 하나님의 종을 향하여 정중하게 발을 옮겼다. 그러나 그리고리스 사제는 살찐 손을 들어서 불쾌한 몸짓으로 의식을 제지시켰다.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주위를 일별하면서 남루한 행색의 난민들을 쏘아보았다. 굶주림에 지친 유민들을, 죽어 가는 형제들을, 그는 도대체 이 행객들에게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일갈했다. "당신네들은 누구요? 어째서 당시들의 집을 버리고 이러시는 거요? 당신들은 여기서 무얼 얻으려고 하는 거요?" 그의 목소리에 여인들이 비틀거렸으며 어린아이들은 질겁을 하면서 어머니들에게로 달려가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개들이 다시금 악을 쓰기 시작했다. 발코니 위에서 선장이 그의 큼직한 귀를 쭈삣하게 세워 듣고 있었다. "사제님이시여." 피난민의 사제가 침착하고도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님, 나는 이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성 게오르그 마을의 사제 포티스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하나님은 여기 있는 무리들의 영혼을 내게 책임지웠소. 터어키족이 우리들의 마을을 불태우고 우리의 땅으로부터 우리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많은 종족을 살육했습니다. 남은 우리들은 겨우 그곳을 탈출하였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소.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앞장이 되셔서 인도해 주셨으며, 우리들은 그분의 이끄심을 따르고 있소. 우리들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자 찾고 있습니다. 어디엔가."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입은 갈증에 겨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들은 역시, 다같은 믿음의 형제들이오." 그는 한참 만에야 말을 다시 계속했다. "우리들은 위대한 민족인 순수한 그리스인들이오. 우리들이 파멸될 수는 없소!" 선장은 알콜 기운 때문에 머리가 윙윙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발코니에 기대서서 카랑카랑하면서도 자긍심에 가득 찬 사제의 격렬한 음성을 듣고 있었다. 점점 라키의 열기가 가시고 그의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악마의 종족이라도 아무 상관없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정말 완강하군! 어디에서 그들 안에 내재한 이런 용기를 발견한단 말인가! 우린 다방면으로 힘이 있는 존재들이다. 하나의 촉각을 끊어 버리면 또다시 다른 것이 자라는 것같이 우리도 그런 존재렷다. 그는 머리를 졸라맨 수건을 끌렀다. 그것이 열기에 너무 더워졌으므로 찬물에다가 다시 식히자 그것을 재차 머리에 둘러 싸늘한 기분을 즐겼다. "우리는 파멸될 수 없소! 우리는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수천 년을 살 것이오... 당신과 만난 우리들의 시간이 복되기를 기원하오. 그리고리스 사제여!" 포티스 사제가 외쳤다. 그야말로 사제들 중 출중한 사제로군! 하고 포르투나스 선장은 생각했다. 저 짐승은 도대체 무슨 정열과 무슨 용기를 가졌담! 해변에서라면 나는 그가 정당하다고 생각해. 우리들 그리스인들이 불멸의 종족이라니. 헛되이 그들은 우리를 뿌리째 뽑고 우리를 불태우고 우리의 목을 찌른다. 그들은 우리들의 깃발을 낮출 수 없다! 우리들은 성상과 설교단과 문화의 발상지와 그리고 복음서를 취하여 급속한 전진을 한다! 라니. 우리는 달아나서 멀리에 우리 진을 단단히 땅에 치고 있다! 라니. 두 눈에서 눈물이 솟아 나오더니 그는 갑자기 발코니에 사채를 내밀고 외쳤다. "부라보, 선장 사제. 만세 옛 친구여!" 무리들의 시선이 아그하의 발코니 쪽으로 돌려졌으나 그 외치는 소리는 사제의 말에 묻히어 사라졌다. 여인네들은 그들 집을 생각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입 밖으로 뇌이고,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파 빵을 생각하면서 울리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왁자지껄한 소리가 딱 그쳤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살이 쪄서 옴폭한 손을 쳐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은 높으신 곳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시며 균형을 잡으시고 저울질을 하십니다. 그는 리코브리시 마을이 가진 것만큼 즐기도록 허락하셨으며, 당신네 마을을 비운 속에 내던지셨소. 하나님께선 당신들이 저지른 죄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는 군중들이 자기가 방금 던진 침통한 말의 뜻을 이해하도록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손을 다시 들고는 비난하는 조로 쏘아붙였다. "사제여, 사실대로 말해 보시오! 하나님께 미움을 살 만한 무슨 일을 했는지 고백해 보시오." "그리고리스 사제님," 포티스 사제는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격노를 억제하면서 대답했다. "그리고리스 사제여, 나도 역시 하나님의 성직자요. 나 역시 성서를 공부하고 하나님의 살과 피로 된 성작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우리는 동등한 사람이오 다만 당신은 부유하고 나는 가난하다는 것이 다를것이오. 당신은 당신의 가축들을 풀어놓을 비옥한 목초지를 갖고 있는 반면, 나는 당시도 아시다시피 내 머리 둘 곳도 없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대답하기를 원하신다면 당신 목소리를 좀더 낮추십시오." 그리고리스 사제는 충격을 받았다. 그도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참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고 온마을 사람들이 목격자로서 이 순간에 있어서는 분명 이 지독한 넝마주이 사제에게 동정을 기울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해 보시오. 말해 봐요, 사제님" 그는 될 수 있는 한 목소리를 억제하면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사람들도 듣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독교 성도들이며 그리스인들입니다. 당신의 목에 걸려 있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하겠소. 그 이상이라도." "그리고리스 사제여, 당신의 이름은 우리 인근 마을들에 널리 퍼져 있었소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직접 당신을 만나게 되었고 당신의 말을 듣고 있소. 당신은 나에게 우리 마을이 어떻게 해서 비운에 빠졌는지 물었었지요. 나는 당신에게 대답합니다. 들어보십시오. 그리고리스 사제여, 잘 들으시오. 존경하는 여러분들, 우리들을 보러 와서 경멸하고 계실지라도 들어 주세요. 여러분 모두, 리코브리시의 성도들이여." 마놀리오스의 가슴은 격렬하게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세친구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분 가까이 갑시다." 그가 속삭였다. "좀더 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가까이 갑시다." "마놀리오스, 저분은 나로 하여금 사도 야곱을 생각하게 하신다네."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사도 베드로를." 얀나코스가 말했다. 포티스 사제는 마치 내키지 않는 일을 기억하고 아픈 상처를 다시 여는 듯이 흥분해서 재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떨리는 모습으로 기억들을 뛰어넘어 갔다. "어느 날, 우리 마을 위쪽으로부터 술렁거림이 있더니 이렇게 외쳐 대는 것이었지요. '그리스 군대다! 그리스 군대야!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서 그 킬트(풀이: 남자용의 짧은 스커트. 주로 스코틀랜드 사람이 흔히 입음)들을 볼 수 있어요'하고 말입니다. 내가 즉시 명령했습니다. '부활절 종을 울리시오! 자, 모이십시오.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주민들은 공동묘지 있는 곳으로 달려갔었지요. 그들은 무덤들을 손으로 파헤치며 각자 자기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왔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왔어요.' 그들은 십자가 위에 있는 등에 불을 키고는 죽은 혼을 부르기 위해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죽은 혼들과 함께 일을 마치고서 그들은 우르르 교회 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나는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동포들이여. 사랑하는 신도들이여. 모든 신앙심에 불타는 형제들이여! 그리스 군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땅과 하늘이 합쳐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무장 궐기하여 터어키 족속들을 지옥의 문턱으로 내쫓읍시다.'" "그렇게 크게 말하지 마세요, 사제님. 그렇게 큰소리는 제발." 얀나코스가 사제의 귀 가까이로 말을 던졌다. "그렇게 크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그하가 발코니에서 듣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그하가 펄쩍 뛰었다. 잠이 살살 그를 애무했지만 그는 몇마디의 거슬리는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이봐, 얼간이 선장!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말이 들리고 있단 말씀이야. 내 귀가 그걸 잡아 냈다구..." "별것 아닙니다. 제가 다 말씀드립죠. 아그하여, 주무십시오. 잠이나 푹 주무시라니까요. 제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니까요!" "그래, 나도 자고 싶어. 그게 좋겠군, 선장... 하지만 만일 두 선장이 심히 말다툼을 하든지 머리채를 쥐어뜯고 싸우거든 나를 흔들어 깨우게. 그럼 내 채찍을 들고 내려가서 질서를 바로잡아 주지." 그는 유소우화키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리 와, 유소우화키. 내 발바닥을 잘 만져서 날 잠들게 해주렴."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포티스 사제는 그의 목소리를 한결 낮추었다. "우리는 기둥에 숨겨 둔 무기를 끄집어내었고, 나는 탄약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서는 십자가를 들고 관장으로 사람들을 모았지요. '사랑스러운 신도들이요, 출발에 앞서 모두들 국가를 부릅시다!' 그 목소리들이 어떠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과도 같았습니다! 지축이 흔들리도록 모두들 함께 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포티스 사제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헬레네의 신성한 뼈대에서 자유가 솟아나..." "그렇게 큰소리를 내지 마세요.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사제님." 얀나코스가 재차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메아리처럼, 그리스의 국가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발코니에서 신장의 커다란 목 쉰 소리가 울려 펴졌다. "더없이 용감하군. 환영해, 환영한다구. 오 자유여!" 아그하는 마치 벼룩이 그를 물어뜯는 것처럼 몸을 잠깐 뒤척거리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래, 광장에서는 모두들 가슴이 섬뜩했다. 그들은 발코니 쪽으로 시선을 올렸으나, 선장은 다시금 방석에 앉아서 라키 잔을 채우고 있었다. "오라, 그대들에게 건강을, 거룩한 그리스여." 그는 흐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대들이 이 세상을 다스릴지어다!" "포르투나스 선장이 취했군."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바이란의 밤의 첨탑처럼 아주 불이 붙었군. 하나님 제발, 그가, 아그하가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을 빼들고 그를 죽이지 않도록 하소서! 그러면 우린 끝장이야!" "그것이 우리를 아주 끝장나게 한다고!" 미켈리스가 잔뜩 열이 올라 말했다. "이 사제가, 우리가 송아지처럼 징징 울도록 한단 말씀이야." "조용히들, 형제들, 조용하시오. 그가 하는 말을 들읍시다." 포티스 사제 입술에 바짝 달라붙어 있던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놈의 누더기를 걸친 사제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있군.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지 않은 일인데, 그를 내 구역에서 몰아낼 방도를 강구해야만 한다. "이야기하시오. 이야기해요. 사제여!" 그는 보호하는 듯이 말했다. "왜 말을 멈추었소이까? 우리가 듣고 있는 중인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강제로 이야기하게 만들지 마시오. 사제님." 포티스 사제가 한숨을 내쉬며 신음을 했다. "여기에 내 심장이 있소만 돌덩이가 아니오. 부서지려 하고 있습니다. 사제여."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의 목소리가 쪼개지는 듯하였다. 선장은 다시 발코니에 기대어 그의 젖은 수건으로 두 눈을 비볐다. "내 신세가 처량하군." 그가 중얼거렸다. "난 한창 때가 다 지나갔어." "이제 하나님 뜻이지." 그리고리스 사제가 말했다. "불평하는 것도 커다란 죄악이 될 것입니다." "나는 불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포티스 사제가 목소리를 진정시켜 대뜸 응수했다. "나는 두렵지 않소.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오. 보시오, 내 마음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소. 나는 말할 것입니다. 헬레네의 군대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으며 우리만 남았을 뿐 아니라 터어키군들이 다시 돌아왔던 겁니다. 그 터어키 족속들이 말입니다. 이 말이 전붑니다. 그들은 불을 지르며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약탈을 했습니다. 그들은 역시 터어키 사람이었소. 저는 그 순간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을 모두 규합했습니다. 여기 모인 이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당신들이여, 몇몇의 남자들과 그보다 좀더 많은 여인네들, 그리고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성상들과 복음서, 그리고 성 게오르그의 깃발을 구해 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 내가 앞장을 서서 영광의 탈출을 시작한 것입니다... 추격 당함과 기근, 질병들이 우리가 지나온 석달 동안의 길을 따라다녔지요. 우리들 중 몇 사람은 도중에 실족했고, 우린 매장을 하면서 옮아 다녔습니다. 우리 생존자들! 매일 저녁이면 우리들은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나는 두 손을 내 가슴에 얹고 일어나 그들에게 복음을 읽어 주었으며 하나님과 그리스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어 아침에는 다시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저 건너편 버어진 산 가까이에 어진 사람들이 사는 부유한 마을인 리코브리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뇌까렸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도들이며 그리스인들이다. 그들의 창고는 가득 차 있을 것이고 그들은 풍족한 땅을 가졌으니 그들이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왔고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포티스 사제는 이마에 달린 땀방울을 훔쳐내면서 성호를 긋고 몸을 굽혀 복음서에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이 외에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런 위안도 없습니다." 그는 무거운 복음서를 휘두르며 말했다. 모든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람들은 공포심으로 몸을 떨었다. 마놀리오스는 쓰러지려는 몸을 가누려 얀나코스의 팔에 기대었으며 미켈리스는 흥분하여 콧수염을 꼬면서 눈물을 감추었다. 파나요타로스의 눈조차 젖어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그들은 착하고 순후한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사물을 바라보았다. 그 과부 역시 기독교 왕국과 그리이스를 위해,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책감과 수치심에 눈물을 흘렸다. 위쪽 발코니에서는 선장 포르투나스가 그의 커다란 손으로 입을 막고서는 코를 골고 있는 아그하를 깨우지 않기 위해 흐느낌을 삼키고 있었다. 다만, 두 사제만이 울지 않았다. 한사람은 이 모든 불행을 겪고 과거에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며, 다른 한 사람은 이 굶주린 무리와 사람의 영혼을 뒤엎어 놓는 무시무시한 인도자를 제거할 방법을 찾기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 중에 몇 사람은," 포티스 사제가 조금 억제된 목소리로 계속했다. "공동묘지까지 갈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선조들의 유해를 꺼내 함께 가지고 왔는데, 앞으로 세워질 우리의 새로운 마을에 기초가 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저 백 살이나 되신 할아버지께서는 석 달 동안 그것들을 등에 짊어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리고리스 사제는 자제력을 잃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사제여." 그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오?" "땅입니다." 포티스 사제가 대답했다. "뿌리를 내릴 땅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황무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당신들에게는 필요가 없을 터이니 그걸 우리에게 빌려주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골고루 나눠 그곳에 씨를 뿌리고 추수도 해서 이 모든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간구하는 바, 그것입니다, 사제여!" 그리고리스 사제는 양을 쫓는 개처럼 투덜거렸다. 뭐라구? 이 거지 떼들이 나의 우리를 강탈하려 하다니? 그는 턱수염을 어루만지다가 도로 놓았다. 이 무리들의 운명은 그의 입술 끝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그하가 일어나더니 귀찮은 듯 화를 내었다. "왜 그것들이 조용한 거지? 내가 그들에게 소리치지 말라고 했던가?" "주무세요. 주무시라니까요, 아그하님." 선장이 말했다. "소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구? 자네 목소리가 떨리고 있잖은가 - 왜 그러지? 자네 취했나?" "아, 라키, 라키 때문입죠. 그건 맹물이 아니죠. 그게 나를 사로잡았지요. 내 참 더러워서." 선장이 두눈을 닦으며 어물거렸다. 마놀리오스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낱 종에 지나지 않은 그가 어디서 자신을 내세울 용기를 얻어 모든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있더란 말인가? "그리고리스 사제님, 사제님이시여." 하고 외쳤다. "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 배가 고파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격분하여 미친 사람처럼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녀석, 닥치지 못해!" 더욱 무거운 침묵이 다시 흘렸다. 코스탄디스와 얀나코스가 마놀리오스를 보호하려는 듯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미켈리스도 난처한 듯한 몸짓을 하면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도련님, 가셔서 아버님을 깨우세요." 마놀리오스가 미켈리스에게 말했다. "빨리 가십시오. 그분은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저들을 동정할지도 모르지요. 당신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난 저들을 불쌍히 생각해... 저들을 동정한다네...하지만 난 그를 깨우는 것이 두려워..." "당신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미켈리스. 하나님 그분이십니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인간이 아니올시다." 미켈리스는 얼굴을 붉혔다. 그의 종이 어찌해서 이처럼 그에게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누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인가? 명령을 내리는 일이 누가 할 일이었던가? 그는 얼굴을 찌푸렸을 뿐 그의 아버지를 깨우러 가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리고리스 사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자신이 뭐라고 이유를 붙여서 이 굶주린 늑대들을 그의 양 우리에서 쫓아내어 버릴까 하는 궁리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솜털이 일어나 그에게서 막 달아나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그하를 부를까? 터어키인들과 싸우다가 집에서 쫓겨난 이 사람들을 다시 터어키인에게 심판하도록 넘긴다면 마을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원로들을 부를까? 그러나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라다스 영감뿐이었다. 망령된 족장은 눈물에 쉽게 감동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긍정적으로 말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들, 저놈의 너저분한 선장도 확실히 '좋다'고 말하리라 - 그는 무엇인가 잃어버려야만 하니까? 게다가 또 그 학교장, 원대한 이상의 안경을 낀 말 많은 몽상가. 그는 두 당나귀에게 귀리조차 나누지도 못하지... "하나님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당신을 관찰하시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제여." 포티스 사제가 더 참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분이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격노해서 뇌까렸다. "나 역시 내 목에 걸려 있는 영혼을 책임지고 있기에 하나님께 계산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포티스 사제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마다 목에 둘레를 걸고 있소. 그래서 당신의 것과 나의 것 사이에는 구별이 없는 것이오, 사제님." 그들 단둘이만 있었다면 분명히 그리고리스 사제가 그에게 달려들어 모가지를 비틀어 질식시켜 죽였으리라. 그러나 사실상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자신을 억제했다. 아뭏든 그는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다. 모든 눈들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들어 보십시오, 사제여..." "나 듣고 있소." 포티스 사제가 마치 그의 머리에 던지려는 듯이 무거운 성경을 양손으로 잡고 대답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채 생각하지는 못했었지만 필요할 때라면 시시각각 어떤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거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가련한 데스피니오가 기절을 했다. 곁에 있던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를 부축하려 달려들었으나 무서움에 움찔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푸른빛이 되어 있었으며 발이 퉁퉁 부어 올랐고, 배조차 부풀어올라 북처럼 탄탄했으며 입술은 죽은 자줏빛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올렸다. "사랑하는 신도들이여." 그는 희열을 애써 참으며 소리쳤다. "끔찍스러운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셨습니다. 저 여인을 보십시오. 가까이 가서 잘 살펴보십시오. 부풀어오른 배, 퉁퉁 부은 발, 푸르죽죽한 빛의 저 얼굴. 필시 콜레라요!" 모두들 움찔하더니 일순 공포에 휩싸였다. "콜레랍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이 생명부지의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소름끼칠 재앙을 가지고 왔소.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요? 마음을 굳게 먹고 여러분의 아이들과 부인, 이 마을 전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정을 내리고 있는 자는 내가 아니라 곧 하나님이십니다. 저 사제는 응답을 요구했습니다. 저기 응답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광장 한가운데 쓰러진 죽은 여인을 손으로 가리켰다. 포티스 사제는 복음서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의 두 손이 떨렸다.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달려들어 항변하려 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이 막혀 버렸다. 위쪽 발코니에서 선장이 몸을 비트적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수건을 재차 물통에 담갔다. 피가 머리 끝까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다시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어 한결 나아진 기분을 느꼈다. 물방울이 그의 시들시들한 두 뺨 위로, 수염도 없는 민숭민숭한 턱으로, 바다 소금기에 절여진 털 하나 없는 가슴팍으로 흘러내렸다. 저 악질 같은 턱수염쟁이! 저 살찐, 국물로 가득한 배뚱보 녀석 같으니라구!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 술기운 때문에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저 녀석이 가엾은 피난민의 사제를 곤욕스럽게 하다니! 콜레라라구! 아! 저 늙은 돼지 같은 놈! 하지만 이렇게 끝이 나서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내 아래층으로 내려가야겠어. 내가 가서 소리쳐야 되겠어. "거짓말장이! 가증스러운 친구!" 나 역시 원로야. 나도 이 마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내게도 역시 발언권이 있다고. 내 가서 한 마디 하구 말 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갈짓자 걸음으로 문에 이루러 발로 문을 걷어차 버렸다. 그는 잠깐 동안 아래층에서 머뭇거렸다. 타고 있는 등잔, 사방의 벽에 즐비한 총들, 쪼그리고 앉은 채 잠들어 있는 후세인, 날 밑이 빠진 긴 칼들, 붉은 터어키 모자들이 얼씬거렸다. 집 안이 온통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난간 위로 걸어가서 한쪽발을 쭉 내뻗었다. 날개를 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단들이 펼쳐지더니 파도처럼 밑으로 쭉 깔렸다. 그가 빈 공간으로 발을 옮기자마자 그의 몸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서는 머리가 먼저 닿았다. 그가 떨어지는 소리에 아그하가 흠칫 놀라 잠에서 깼다. "어이, 선장." 그가 외쳐 댔다. "누가 그의 코를 깨어 놓았지?" 그는 어둠 속에서 두 손을 뻗어 발코니 주위를 더듬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어서려 애썼으나 다시 방석 위로 나동그라졌다. 그 옆에는 입가에 군침을 흘리며 단잠에 빠진 유소우화키가 있었다. 아그하는 포근함을 느끼면서 그의 발 냄새를 맡고는 웃음을 흘렸다. "내 사랑하는 유소우화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네 놈은 자고 있었구나. 내 귀여운 보물..." 그는 자신의 머리를 소년의 신선한 가슴에 기댄 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 상황이 달라져 무거운 고요가 깃든 가운데. 다만 온화함으로 바뀐 그리고리스 사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형제여, 당신은 당신들의 고충을 호소했으며, 우리의 가슴 또한 찢어지는 듯했소. 당신도 보았지요. 우리는 눈물을 흘렸소이다. 우린 당신들을 영접하려 두 팔을 벌렸으나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에게 따끔한 경고를 내리셨소. 당신은 더러운 죽음을 가지고 왔단 말이오. 나의 형제들. 하나님의 은총과 더불어 돌아가십시오. 우리 마을에 파멸을 불러들이지 마시고." 이 한 마디의 말에 피난민 무리들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인들은 가슴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남자들은 초췌해져서 그들의 사제를 바라보았다. 일말의 공포가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불안 속에서 그 뻣뻣한 시체를 바라보고서는 콧구멍을 틀어막았다. 여기저기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가게 하라! 그들을 가게 하시오!" "회가루를 가져오라구. 이 여인에게 뿌려서 콜레라균이 전염되지 않게 하자!" 한 노인이 울부짖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형제들!" 포티스 사제가 소리쳤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오.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우리는 전염병을 몰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굶주려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굶어서 죽은 것입니다. 맹세합니다!"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에게로 몸을 돌렸다. "배부른 사제여" 그가 울분은 터뜨렸다. "이중턱을 가진 사제여. 하나님이 위에 계시어 우리가 당신을 용서하는 말을 들으시려 할지라도 나는 할 수 없소! 당신의 죄는 당신 머리 위에 떨어지리라!" "떠나시오. 하나님의 은총으로!" 한 리코브리시 마을의 늙은이가 외쳤다. "나는 자식들이 있고 손자들이 있소. 우리들의 파멸을 초래하지 마시오!" 공포가 온 마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돌처럼 차가와져 있었다. 그들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가라! 꺼져!" "이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오." 그리고리스 사제가 팔짱을 낀 채 외쳤다. "가시오!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하시기를!" "당신이 저지른 죄는 당신 자신의 머리로 돌아가 것이요!" 포티스 사제가 다시금 외쳤다. "우리는 떠날 것이오. 자, 용기를 냅시다. 일어들 나시오. 가련스런 신도들이여, 저들은 우리를 원치 않고 우리들 또한 저들을 원치 않습니다. 세계는 넓으니 좀더 멀리 가 봅시다!" 여인네들이 뒤뚱거리며 일어섰다. 그들은 다시금 그들의 짐을 걸머졌다. 남자들도 그들의 보따리와 행장들을 땅에서 집어 들었다. 기수가 나아가 다시금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마놀리오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백 살 먹은 노인이 일어나서 다시 유해가 담긴 주머니를 등에 메는 일을 도와 주려고 앞으로 나섰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할아버지." 그가 말했다. "절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노인은 준렬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래, 그분 외에 또 누구라고 자네는 생각하나? 사람을 믿으라고? 그들이 방금 어쨌는지 네놈도 보질 않았느냐? 응!" 그들이 막 출발하려 했을 때 포티스 사제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는 자기 쪽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흡사 해골 같은 모습으로, 그들의 의지력의 맨 앞에 서서. 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하였다. "리코브리시의 형제들이여." 그가 말했다. "내가 혼자라면, 단지 내 영혼 하나만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한다면, 거지처럼 민망스럽게 당신들에게 결코 손을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러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소. 그러나 나는 내게 붙여진 여인네들과 어린아이들이 가엾습니다. 저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저들은 배가 고파서 길 위에 쓰러질 것입니다. 저들 때문에 나는 위엄도 자존심도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손을 벌리면서 이렇게 '자선을 베푸십시오. 신도들이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담요를 펼쳐 놓을 테니 당신네들이 마음속으로 말한 것을 그 위에 던져 주십시오. 빵 한 조각. 우유 한 그릇만이라도 좋으니.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올리브 한웅큼만이라도... 우리는 굶주려 있습니다!" 두 사람의 남자가 담요 한 장을 풀어 활짝 펴들고는 그 행렬들의 앞장에 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제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앞을 향하여, 자랑스러운 그대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이 성사의 포도주를 우리는 비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우리는 이 마을을 지나갈 것입니다.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아, 슬프도다 우리가 이렇게 되다니! 우리는 외칠 것입니다. '자비를! 자비를! 당신들이 너무 많아서 개들에게나 던져 주는 것들을 우리들에게 주십시오.' 비탄의 이빨을 가십시오. 사랑하는 신도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스도는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리고리스 사제여! 심판날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둘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오. 그러면 그분이 심판하실 것이오!" 과부 카테리나가 제일 먼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커다란 붉은 장미꽃 무늬의 푸른색 새 쇼올을 끌러서 그 열려진 담요 안에 밀어 넣었다. 그녀는 다시금 가슴속을 뒤지더니 조그만 거울과 향수병을 찾아 그것들 역시 담요 안으로 던졌다. "전 이것 외에 가진 것이 없어요. 자매님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이것밖에 가진 것이 없어요. 용서하세요..." 코스탄디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사도의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된 것을 자각했다. 그는 앞으로 뛰어나가 가게 문을 열고는 설탕 한 봉지와 커피 한 깡통, 브랜디 한 병과 컵 몇 개, 비누 한 장을 꺼내 그들의 담요 위에 놓았다. "하찮은 것이지만..." 그가 말했다. "우정은 애틋합니다. 신의 가호를!" 그들은 모든 집들의 문을 두드렸다. 한 집, 한 집씩 손이 슬쩍 나와 얼마간의 양식과 몇 점의 옷가지들을 담요 안으로 던지고는 콜레라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재빨리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라다스 영감 집에 이르러 대문을 두드렸다. 문은 계속 닫혀 있었다.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사도와 함께 따라다니던 얀나코스가 더욱 크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라다스 영감님, 저들은 그리스도인이오. 그들이 굶주려 있소. 모든 사람이 빵 한 조각씩이라도 주고 있어요. 당신도 그들에게 뭔가 하나를 주시지요!" 그러나 라다스 영감의 화난 목소리가 안으로부터 들려왔다. "자네의 정원이 가물어 있을 땐 그 물을 밖으로 쏟지 말게나!" "내 당신과 언젠가 해결을 볼 것이오. 이 이교도 같으니라구!" 얀나코스가 두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쳤다. "계속해서 족장 파트리아케스 집으로 갑시다, 친구들이여." 미켈리스가 외친 다음 그의 세 친구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빨리." 하고 그가 외쳤다. "그 노인이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우리가 창고로 가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집어 오세." "그랬다가 영감님이 화내신다면?" 마놀리오스가 야유하듯 말했다. "그는 지금쯤 약간의 향초를 마셨을 테니 화내지 않을 거야."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빨리 하자!" 그들은 탐닉하듯이 달려갔다. 마치 그들이 원수의 마을을 강탈이나 하려는 듯이. 그러는 동안 과부는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양어깨가 떨렸다. 추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한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건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생각했다. 다른 여자가 그 쇼올로 몸을 감싸면 역시 춥지 않을 거야... 이때, 굵직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뜨거운 숨길이 그녀의 목위를 스치더니 육중한 두 손이 그녀의 목을 꽉 조였다. "개 같은 년, 내가 정성어린 마음으로 그 쇼올을 네게 사 주었는데, 네년이 - 그것을 주어 버리다니? 내, 네년 목을 조여 죽여 버릴 테다!" 그 길목은 인적이 뜸한 곳이었다. 과부는 깜짝 놀랐다. 그 남자의 술기운이 섞인 숨결 때문에 골치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으며 그와 함께 애원하는 듯한 두 개의 눈길이 그녀의 뇌리에 고정되었다. "파나요타로스."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은 사나운 짐승이야. 그러나 당신이 좋아요.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면 내 다시는 그러지 않을께요." "왜 날 유다라고 불렀지 엉? 너 내 가슴에 못을 박았어. 넌 내가 네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지만 넌 내게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잖아? 오늘 저녁 내가 가면 안 되겠어?"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남자의 부드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가도 좋은 거지? 난, 나에겐 너 이외에 다른 어떤 위안도 없다구, 카테리나." 과부는 그 남자의 온기를 느꼈고, 땀과 눈물에 젖은 채 자신을 감싸는 열망을 느꼈다. 그녀는 바르르 몸을 떨었다. "오세요."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두 입술을 씰룩거리며 그 길을 인도했다. 그의 거친 숨결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며, 파나요타로스는 그 집 쪽으로 발길을 내딛으며 어둠 속에서 뒤를 따라갔다. 피난민의 무리들은 족장의 집에 다다랐다. 네 사람 각자가 하나씩 가득 찬 광주리를 이고 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얀나코스가 외쳤다. "이 모든 것을 담요에다 넣지 말고 네 사람의 건강한 청년들이 등에 메시오!" "하나님이 당신들을 지키리라."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들을 용서하십시오. 파트리아케스도 또한 용서하시고!" "당신들은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기쁨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이미 한 꾸러미를 자루에 집어 넣었으며, 그들의 턱들도 게걸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뭐지, 자네들?" 기를 들고 가던 거인이 말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뭐지? 한 조각의 빵이야. 그것이면 그만이야!" 그는 커다란 빵 한 덩어리를 잡고서 말했다. "그는 코를 드르렁 골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계실 거야."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분 앞에 천사 넷이 그에게 길을 보여 주며 행진하고 있을 거야. 네 개의 광주리가 말이야!"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고 나니 한결 마음들이 밝아졌다. 그들은 마을의 끝에 이르렀다. 밤이 되어 있었다. 주위는 남빛이었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개들이 아직까지도 그들 뒤에 서성거리며 이따금씩 짖어 대다가 그들의 의무를 다 한 것에 만족이라도 한 듯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사라키나 산이 이 천대받은 사람들 앞에 갑자기 솟아올랐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온통 가파른 절벽들이 돋보였다. "사제님, 안녕히 가십시오." 마놀리오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분은 사제라기보다 자기의 백성을 사막으로 인도하는 모세야." 그들은 서둘렀다. 마놀리오스가 사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입을 맞추었다. "사제님." 그가 말했다. "저는 우리 마을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내려질 저주를 하나님과 더불어 속량해 주십시오." 사제는 자신의 바싹 마른 손을 부드럽게 그 금발머리 위에 얹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랑하는 아들이여." "마놀리오스라고 합니다." "나는 이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런 유감도 없다네, 마놀리오스. 그들은 단순해서 쉽사리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지도자들을 모시고 그들에게 곧잘 순종하지. 그것은 옳은 일이야. 하지만 그 성의를 입은 사제, 그들의 으뜸가는 지도자, 그를 악마라고 한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실 걸세." 그는 잠시 동안 회상했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야." 그가 계속했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비인간적인 위인이지. 불행이 닥치면 그도 부드럽게 될걸세. 그리고 자네, 젊은이 - 자네는 누구인가?" 마놀리오스의 손을 잡고 있는 미켈리스를 향해 물었다. "그는 미켈리스라고 합니다. 이 마을 족장의 아드님이시지요." 마놀리오스가 대신 대답했다. "자네 아버님께 말하게, 젊은이. 하나님께서 각자의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시는 생명록에 그대를 위해 네 개의 광주리를 적어 두실 것이라고, 언젠가 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그것도 아주 넉넉하게 이자를 더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는 방법이시지. 그분에게 말하게. 네 개의 광주리가 배가 될 것이라고. 그 위에, 다섯 개의 떡덩어리가 놀랍게 불어났듯이." 이번에는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가 다가섰다. "전 얀나코스라고 합니다. 보부장사꾼인데 죄 많은 인간입니다. 이 친구는 코스탄디스라고 하는데 카페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당신께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사제님." 포티스 사제는 그의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그들의 머리 위에 얹고는 그들에게도 역시 축복을 빌었다. "이제는 나의 사랑하는 신도들이다." 그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게.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축복할지어다!" 그는 돌아서서 그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은 깊어 고요했다. 풀잎 하나조차도 나뒹굴지 않았다. 하늘에는 무리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라키나 산이 그들 머리 위로 무한히 솟아올라 있었다. "저곳엔 동굴이 많습니다, 사제님."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 동굴에서 옛날에는 초기의 기독교도들이 살았다고 하더군요. 바위에 그려져 있는 동정녀 마리아와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님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교회였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리구, 물도 있습니다." 코스탄디스가 참견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바위에서 떨어지지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그 소리를 들으실 수 있죠. 게다가 자고새도 있구요. 그리고 꼭대기까지 똑바로 올라가시면 엘리야 선지자도 계십니다." "오늘 밤을 그 동굴 안에서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이 산은 온통 덤불과 오이풀들로 가들 차 있지요. 불을 지펴 음식을 마련하십시오. 그곳이 적당하시면 잠시 정착하여 쉴 수도 있습니다. 이 산의 수호자격인 선지자 엘리야께서는 박해당한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포티스 사제는 그 산을 향해 눈을 들었다. 잠시 동안 그는 깊은 명상에 사로잡혔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유심히 바라다보았다. 많은 생각들이 그 금욕주의자의 얼굴 위로 파도치듯 지나갔다. 그의 눈길은 끝없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갑자기 그는 하나의 어떤 결정을 막 내린 것처럼 성호를 그었다. "자네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네, 마놀리오스."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우리들을 내쫓았고, 그런 다음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저 동굴들을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하도록 하신 걸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계시네!" 그는 복음서를 들어서 그 산을 축복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여." 그가 중얼거렸다. "거대한 돌덩이, 너 잠을 모르는 물이여. 바위틈에서 흘러나와 흰털발제비들과 송골매의 목마름을 없애주려무나. 그리고 너, 나무 속에서 잠자는 불아. 사람들이 너를 그들의 일에 끄집어내려고 깨울 때까지 기다리고 있구나. 축복을 받았구나. 우리와 만날 시간이 되었으니! 우리는 사람들에게 내어쫓김을 당했던 거칠고 슬픔으로 가득 찬 영혼들이라. 흰털발제비와 송골매들이 우리를 환대하며 맞아들이는구나! 우리는 우리들 조상의 유골들과 일할 도구들과 인간의 생명을 이을 종자들을 가져왔도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랜 돌들 사이에 우리 종족은 뿌리를 내리리라!" 어둠 속을 더듬어 들어가, 그는 좁은 길 하나를 찾아 내더니 말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무리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나를 따르시오.!" 그리고는 네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네! 내 사랑하는 아들들 건강과 평안을!" "진정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이 화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기댄 채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피난민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무리들의 앞에는 사제와 교회기를 든 기수, 그리고 성상을 모시고 가는 노인들과 유골 주머니를 운반하는 백 살 넘은 할아버지가 섰고, 그 뒤에는 한 사람씩 팔에 아이들을 안은 여인들이 따라갔다. 남자들은 행렬의 꽁무니를 만들었다. 곧 그들은 어둠의 정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3 성자와 도적들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의 부활의 영광으로 일관된 부활제의 한 주간은 부활절 과자라든가 붉은 계란 따위로 주민들의 마음을 한결 맑고 정결하게 해주었다. 뜰마다에는 때맞추어 꽃들로 장식되었고, 그들 묵지근한 소작농들의 머리들은 잠시였지만 따분한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매일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자, 그들은 또다시 여느 때와 같이 고된 일들로 인해서 멍에에 얽매여 머리가 무거웠고 콧구멍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축제가 끝나자, 얀나코스는 아침 일찌기 그의 유일한 친구인 당나귀를 살펴보려 어둠침침한 마굿간으로 갔다. 마굿간은 오물 냄새와 애초부터 배어 있었던 악취의 습기가 흘렀다. 그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그 냄새리라. 그의 충직한 동료는 자신의 주인인 얀나코스가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크고 긴 눈썹을 한 눈을 슬며시 뜬 채 꼬리를 짤랑 흔들며 입을 한껏 벌리고는 히힝거리면서 반가와했다. 얀나코스는 당나귀한테로 가서 검고 빛나는 엉덩이를 어루만져 주고 흰 털로 싸인 배와 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는 한 손을 트럼펫같이 커다란 귀 속에 집어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랑하는 짐승의 주둥이를 잡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유소우화키야, 내 귀여운 유소우화키, 주일도 지났단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어! 우린 참 즐거웠지. 넌 불평이 없겠지. 난 너에게 먹이를 두 곱절이나 주었다고. 네 식욕을 돋구기 위해 신선한 풀을 큰 낫으로 배었잖아. 그리구 너한테 부활제 선물로 군데군데 푸른 보석이 박힌 황동석 목도리를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비해서 네목에 걸어 주었잖아. 뿐만 아니라 너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부적으로 마늘눈도 걸어 놓았단다. 사람들이 너무나 사악해서 시기심 때문에 너한테 눈을 흘길지도 몰라! 네놈이 없다면 난 어떻게 되겠니? 우린 한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너 외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구. 난 자식을 가질 수 없었어. 왜냐하면 마누라장이가 이집트 콩 때문에 죽었기 때문이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너밖에 없단다, 유소우화키야. 그리구 오늘은 너를 즐겁게 할 기쁜 소식 하나를 가져왔단다. 내년 부활절에 예수의 수난을 이 마을에서 공연하게 될 거래. 너도 이 말을 들었겠지만, 그때 사람들이 당나귀 한 마리를 필요로 할 것이거든. 그래서 내가 원로님들에게 부탁드렸지. 유소우화키, 너를 그 성스러운 수난절의 바로 그 당나귀로 쓰자구 말이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바로 네 등 위에 앉으실 거야. 너에겐 얼마나 큰 영광스런 일이냐! 사도들과 너와 함께 말이야. 너는 예수님을 태우고 맨 앞에서 행진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걸어가는 길에는 도금양과 야자나무로 만든 융단이 펼쳐질 거고. 하나님의 은총이 네 등뒤에, 배 위에 내리고, 나의 온 가족은 마치 비단처럼 빛나게 될 거야. 그리고 내가 죽었을 때 이 불쌍한 죄인인 나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천국에 데려가신다면, 그 문 앞에 멈춰 서서, 안내자의 손에 입을 맞추며 그에게 말할 것이란다. '제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그도 천국으로 들어오게 해서 우리들이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그렇잖으면 저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도께서 파안대소하면서 네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시겠지. '좋아. 얀나코스, 그대를 위해서 그렇게 하지. 유소우화키 위에 올라타게나. 안으로 함께 들어가라구. 하나님께서는 당나귀들도 사랑하고 계시니까.' 그렇게 되면 얼마나 기쁘겠니. 유소우화키! 영원한 기쁨이지! 너는 이런 무거운 바구니들을 걸머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신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길마도 없이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거닐게 될 거란다. 언제나 죽지 않는 토끼풀들이 네 입 있는 데까지 높다랗게 자라난 들판 위를 말이야. 그렇게 되면 몸을 구부리는 성가신 일은 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하늘나라에서 너는 매일 아침 천사들을 깨우려 울어 댈 것이고, 그들은 웃겠지. 솜처럼 가볍게 그들은 네 등에 올라타고 너는 파랗고 빨갛고 자줏빛 나는 천사들을 등에 태우고 풀밭 위를 뛰어놀 것이야. 그와 같은 당나귀를 전에 한 번 스미나에 있는 시장에서 보았지. 등에 장미꽃과 백합, 라일락 꽃들을 싣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말이야. 그날이 오면 그렇게 될 거야, 유소우화기. 걱정하지 말아라. 그렇지만 내 아들아, 우리는 빵을 얻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와서는 너에게 안장을 얹어야만 하고 네 등에 상품 광주리를 묶게되는 거다. 우리는 이 마을의 순회를 다시 시작해야만 된다. 명주 두루마리, 바늘, 낚시바늘, 빗과 향, 그리고 자질구레한 장신구와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책자를 팔면서 말이야. 우리 사업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나를 좀 도와다오, 유소우화키. 우리는 친구잖아. 그렇지 않니? 동료라구. 그러니 너도 알 거야. 우리가 벌어들이는 것마다 정직하게 나누잖니 - 나를 위해선 옥수수를, 너를 위해서는 밀짚들을 말이야. 그리고 내가 늘 말했듯이 사업이 잘 되면 너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끔 파나요타로스에게 길마를 주문하지. 빨간 장식술이 달린 새 마구를 말이야. 이제 가자꾸나. 내가 너에게 '성호를 그어라'하고 말해도 너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당나귀란 말이지. 그러니 몸을 쭉 뻗어 발굽을 벌려 편안히 와서는 내가 짐을 싣게 하거라. 날이 샜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더불어 떠나야만 한다, 유소우화키." 얀나코스는 그의 나귀에 짐을 싣고, 막대기와, 단골 손님들을 불러모으는데 쓰는 나팔을 잡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나서 상쾌함과 기쁨으로 그들은 나란히 서서 부활절 이후의 첫 순회길을 떠났다. 햇빛이 눈부셨다. 하늘에서 펄쩍 뛰어내려와서는 들판과 온 마을 위로 퍼졌다. 돌이며 문, 그리고 창문들과 자갈들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얀나코스는 식욕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가방 안에서 커다란 빵조각과 올리브 한 움큼과 양파를 꺼낸 다음 행복해서 먹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하나야!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 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 맛있는 빵조각처럼! 그의 이웃인 과부의 집 문이 열려 있었다. 카테리나가 스커트를 걷어올려 붙이고 웃옷을 풀어 젖힌 채 계단을 씻기 위해 바께츠로 물을 퍼붓고 있었다. 그녀의 매끈하고 탄력있는, 늘씬한 다리가 무릎까지 드러나 밝게 빛났다. 그리고 웃옷 보디스 속에서는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탄력있는 유방이 출렁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좋지 못한 광경을 보고는 얀나코스는 보다 빨리 지나치기 위해서 당나귀 엉덩이를 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본 과부는 우뚝 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온통 생기가 돌았고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섰다. "장사 잘 되나요, 얀나코스!" 그녀가 웃으면서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도 알고계시죠. 난 당신의 이웃이란걸. 당신을 존경해요. 당신은 뻐꾸기처럼 혼자 살아가면서도 항상 뭐라고 흥얼거리며 기분이 좋으시담. 무엇이 그리 좋으시죠? 난 도대체 그럴 수가 없는데! 난 할 수가 없어요. 나의 가련한 이웃 사촌. 나는 늘 나쁜 꿈들만 꾼답니다..." "나에게 무슨 주문이라도 있나요? 카테리나." 얀나코스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서 물어 보았다. "손주머니 거울이라든가? 라벤더 향수병을?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뭔가요?" 그때, 마침 과부의 암양이 걱정스러운 듯 매애거리며 문간에 나타났다. 목에는 빨간 리본을 달고 있었고 젖통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내가 젖을 짜 주기를 원하는구나." 과부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젖통들이 가득 찼으니 저것이 괴로운 거겠지. 아, 그렇지, 너도 여자니까. 불쌍한 것..." 그녀는 몸을 구부려 양을 한 번 쓰다듬어 주더니 "잠깐 실례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난 먼저 계단에 생긴 더러운 발자국부터 지워야겠어요." 그녀는 부드럽게 암양을 밀어 넣고는 다시금 얀나코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래요, 나는 나쁜 꿈들만 꾸지요, 이웃 양반."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되뇌였다. "생각해 보세요. 지난 밤엔가, 새벽녘엔가 나는 마놀리오스를 보았어요. 그는 달을 잘게 썰어서는 마치 그것이 빵인 양 나에게 먹으라고 주더군요. 얀나코스, 당신은 다른 나라에도 가 보았겠죠. 스미르나까지 갔었다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던데요. 그러므로 당신은 꿈들에 대해 알고 있겠지요." "아, 좋아요, 카테리나, 친철하시군. 하지만 짓궂게 굴진 말아요."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당신은 어젯밤 당신이 마놀리오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이제는 마놀리오스를 유혹할 작정이오? 그가 불쌍하지도 않소? 그는 이미 약혼한 몸이야. 가련한 사람이라구. 그를 괴롭히지 마시오. 그리고 만약 파나요타로스가 그런 추문을 듣는다면 당신을 살려 둘 것 같소? 자, 이젠 마음을 돌려요. 카테리나, 파트리아케스 영감이 당신에게 무슨 말이 없었소? 당신에게 내년 부활제 연극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을 맡기기로 의원들이 결정했다는 소식 못 들었소?" "전, 얀나코스씨, 전 이미 막달라 마리안걸요." 과부는 그에게로 열려진 보디스를 고쳐 입으면서 말했다. "저에겐 그런 소식을 전해 줄 족장은 필요없어요, 늙은 죄인같으니, 악마가 그 염감쟁이를 잡아가라지. 내가 아름다운 머리를 가졌기 때문이라구, 그가 말하더군요..." "아냐, 그건 그렇지 않소, 카테리나."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않아요. 도대체 내가 어떻게 얘기해야 내 말을 알아듣겠소? 자, 이것 봐요. 당신은 파나요타로스하고는 친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와는 친할 수 있어. 당신이 따라야 할 사람은 바로 그분이야. 당신은 예수의 발에 향수를 뿌리고 그 당신의 머리털로 닦는단 말이요. 알아듣겠소?" "하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예요. 바보같으니라구! 모든 남자들, 심지어 파나요타로스까지도 잠시는 하나님이 될 수 있지! 그렇지만 진정한 하나님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나중에는 그들은 뒤로 떨어져서 얀나코스 당신이나 파나요타로스나 파트리아케스 같은 늙은 개망나니가 되겠지. 알겠어요?" "그걸 이해한다면 악마가 나를 데려갈 것이오. 카테리나... 그렇게 되면 만사는 끝장이지. 파트리아케스 영감께서 말하셨듯이." 과부는 화가 나서 물통을 들어 계단에 뿌렸는데 그 물이 얀나코스의 발에까지 튀었다. 유소우화키도 그의 귀를 흔들어 댔다 - 그들 둘은 흙탕물에 더럽혀졌다. "아휴! 당신 역시 어쩔 수 없는 남자에요!" 카테리나가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한갓 남자일 뿐이에요. 가엾게시리!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 말을 이해하겠어요? 잘 가요. 그리구 장사나 잘 해요. 결국은 당신도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얀나코스는 가볍게 당나귀를 때리면서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는 당나귀 뒤에서 나팔을 불면서 그 사납고 요염한 과부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난 먼저 사제님 댁부터 가 뵈어야지, 혹시 무슨 부탁이 게신지. 그는 항상 내가 자기한테 먼저 들르지 않으면 화를 내시거든. '내 집부터 먼저, 그 다음에 원로들 집으로 가라구.' 그는 그렇게 말하지. '난 리코브리시 마을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대리잘세!' 그러니 시끄럽잖게 그 늙은 여우 같은 사제의 집부터 가자꾸나." 그는 고개를 돌려 거의 반나체로 계단에 물을 뿌리는 카테리나를 응시했다. 창녀 같은 것!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베푸신 저 종아리, 뭇 사내를 유혹하기에 넉넉한 저 젖가슴... 얀나코스가 혼자 중얼거리며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으로 가고 있는 동안, 사제는 까만 벨벳 허리띠에 가로줄 무늬가 있는 자주색 사제복을 걸치고 모자와 신을 벗은 채로 교구감독으로부터 선사받은 검정 호박으로 만든 묵주를 들고는, 마치 대장장이처럼 씨근거리면서 정원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마리오리가 슬며시 와서는 울타리 그늘 밑에 사제가 매일 즐겨 먹는 조반용 과자와 치즈를 쟁반에 담아 가져다 놓았다. 얼마 뒤에 그는 매일 먹는, 그의 귀빈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오래 묵은 술과 반숙을 먹을 것이었다. 바로 이 술을 이용해서 그는 모든 권력과 재력을 착실히 쌓아 온 터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공의를 위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아버지의 아침식사를 보살펴 준 다음 마리오리는 바질과 제라늄과 아프리카 산의 메리골드 등속의 꽃들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도 여전히 잠을 설친 것처럼 창백하고 여위어 보였다. 그녀의 편도 같은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으며 입술은 감미로와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 폐병으로 죽었다. 마리오리의 모습은 그녀의 어머니와 흡사했다. 결혼을 시켜야지, 그는 생각했다. 빨리 결혼을 시켜서 손자를 보도록 해야겠다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미켈리스라고 하는 잘생기고 건장한, 명문 집안의 부유한 신랑감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가 자기의 대를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꽃에 물 주기를 끝낸 마리오리가 그곳을 뜨려 하자, 사제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황급히 삼키면서 말했다. "거기 좀 있거라. 마리오리 어딜 가려고 그러니? 너에게 좀 할 얘기가 있다." 그는 자신의 노여움을 억제할 수 없어 폭발하고 말았다. 마리오리는 문에 기대 선 채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되어 바르르 떨었다. 파나요타로스가 방금 떠난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몇 마디의 불길한 말을 엿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 석고먹성이가 문에 막 들어섰을 때 그에게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자네 나에게 말하는 편이 좋을걸. 어서 말해! 난 필요하다면 그에게 혼줄을 내겠어!' "당신의 명령대로, 사제님." 하고 마리오리가 눈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너 아까 파나요타로스가 내게 한 말 엿들었지?" "아녜요. 그때 전 커피를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었는걸요." 마리오리가 대답했다. "네 신랑감인 미켈리스에 관한 얘기였다." 그가 한숨을 푹 쉬더니 핏대가 오른 것도 아랑곳없이 계속 말을 하려는 순간에,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오리는 휴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긍휼히 보시고 곤경을 피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녀는 달려가 문을 끌렀다. "게 누구냐?" 사제가 조금 남은 커피를 마저 들이키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접니다. 얀나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이제 막 행상을 떠나려구요. 사제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혹시 무슨 부탁 말씀이 계신가 하구요. 무슨 편지라든가..." "흥 어지간히 자상하시군! 문을 닫으라구!" 사제가 고함을 쳤다. 오늘은 저 양반이 기분이 썩 안 좋은 것 같군, 하고 얀나코스는 생각했다. 악마가 날 여기까지 데려왔을까? 그는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추려고 몸을 굽혔다. "잠깐 기다려, 이 악질 같은 녀석. 먼저 할 말이 있어, 묻겠는데 분명히 대답하라구. 자네에 관한 추문을 들었어. 어찌된 거냐? 내가 들은 바로는 자네가 주동자라는 거야. 왜 거기서 그렇게 놀라서 서 있는 거지? 자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떨지 말란 말일세. 누군가가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구구절절이 다 말해 주더군. 이런 개돼지 같은 놈 봤나, 이 도둑놈들!" "사제님..." "'사제님?' 자넬 봐줄 수 없어! 자넨 나의 재산을 도적질했다구. 자넨 내 집을 털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하려고 내 손에 입을 맞추려는 거였지. 이 위선적인 예수장이같으니! 자네 같은 친구를 내가 사도 베드로로 선택했다니! 이 도둑놈! 도대체 어떻게 사도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거지?" "제가요?... 제가?..." 얀나코스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말을 더듬거렸다. "자네 말이야, 자네. 그리구 그 고매한 세 놈들, 자네의 친구들 말일세. 코스탄디스와 마놀리오스 말이야! 자네들이 하나님의 순진한 양 같은 무고한 미켈리스를 꼬셨다구. 자넨 그의 마음이 착하고 어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네놈들이 기회를 잡았던 거야. 네놈들이 그의 집안을 광주리가 철철 넘치도록 털었던 거야. 이 도둑놈들! 오 하나님. 내가 이 도둑놈들을 사도로 선정한 것을 용서하소서..." "하지만 그건 당신의 저장고가 아니었습니다, 사제님." 얀나코스가 감히 말을 가로막으면서 대꾸했다. "그게 누구의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자네들의 것이었나? 입 닥치지 못해! 그건 바로 나의 것이란 말씀이야. 왜냐하면 미켈리스는 이제 나의 마리오리와 결혼하게 되고 그러면 두 집안이 하나가 되는 거란 말이다. 너희들은 나의 저장고에서 치즈며 빵, 기름에다가, 죽일 놈들, 술과 올리브, 설탕들을 바구니에 넘치도록 훔쳐서 달아났지! 그런데 도대체 그것들을 누구에게 주었나? 그 콜레라 전염자들에게 주었냐? 너희들 같은 악당들 때문에 내 사위가 재산을 다 잃게 되고 내 딸을 거지 꼴로 만들게 된단 말이다!" 그는 겁에 질려 눈을 들어 쳐다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 있는 딸을 돌아다보았다. "들었겠지, 마리오리? 너는 우리 집에 닥친 불행을 알겠지? 만일 너의 선량한 배우자가 자기 재산을 남에게 퍼다 주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니? 그러니 우리가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넘쳐 그녀의 여윈 뺨 위를 타고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때지 않았다. "마리오리, 너 듣고 있는 거냐?" 사제는 재차 다그쳤다. 앳된 쳐녀는 더욱 가련스럽게 머리를 숙였다. 마치 "듣고 있어요, 그리고 복종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시늉으로. 그때 문 밖에 매어 두었던 당나귀가 이힝 하고 울기 시작했다. 얀나코스의 출발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사제님, 이제 가 봐야겠습니다. 만약 부자의 물건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나쁜 일이었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빌겠습니다." "하나님은 곧 나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셔 나를 통해서!"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사제가 소리쳤다. "자네는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가 없어!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단 말이야. 자네들은 도둑놈들이야. 자네에게 말하지만, 자네와 코스탄디스와 마놀리오스 말일세. 내 원로들을 만나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을 세울거야. 콜레라 전염자들이 이곳에 왔던 이상, 이미 우리 마을은 감염되어 있는 거라구!" "하나님의 은총을, 사제님." 문 쪽으로 몸을 던지면서 얀나코스가 말했다. 너무 화가 치밀어 불그락푸르락해진 사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는 말을 향해 소리쳤다. "신발을 가져와. 모자와 지팡이도. 족장과 원로들을 만나야겠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급히 달걀을 삼켰다. 그 동안 마리오리는 이제 막 당나귀 고삐를 끄르고 있는 얀나코스를 만나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녀는 황급히 그에게 속삭였다. "얀나코스, 도와주세요. 도회지의 여성들이 볼을 빨갛게 할 때 쓰는 것 좀 구해다가 나에게 몰래 갖다 주어요. 가격은 얼마나 될지..." "걱정하지 말아요, 마리오리."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구해다 드리지요" 사제가 이들의 주고받는 양을 보고는 음식을 입 안에 가득 문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지껄일 거야, 이 불량한 녀석!" "악마 같은 성직자같으니라구!" 얀나코스가 문을 쾅 하고 닫으면서 씨부렸다.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흥, 웃기고 있네. 만일 하나님이 그와 같이 생겨먹었다면 우리들 가련한 족속들은 더없이 앞이 깜깜할 게다. 그는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 산 목숨까지도 빼앗아 가겠지."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지금까지 그는 오직 죽은 사람만 데려갔지만, 아마도 그는 산 사람까지도 데려가겠구먼. 한심하군!" 그는 당나귀를 가볍게 때리면서 말했다. "자, 가자꾸나, 유소우화키, 내 아들아. 저 들소 대가리가 우리의 출발을 지체시켰다구. 자, 경망 떨지마. 귀여운 것, 중요한 건, 넌 결백하다는 그 사실이야! 우리 카페에 주문받으러 들렀다가 가자. 도둑놈들이라고 그가 말했겠다... 지옥으로 가라지, 늙은 게걸장이!" 주막은 마치 성난 벌통처럼 사람들로 꽉 차서 왁자지껄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거기 모여 어젯밤 그들이 목격했던 비참한 광경을 - 피난민들, 복음서를 든 의분에 찬 사제, 여인의 죽음과 콜레라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시체 위에 호분을 뿌린 일 하며, 유골이 든 자루를 메고 있던 지독하게 늙은 할아범에 관한 얘기들을. 또 어떤 사람들은 역병으로부터 구해 줄 것을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갈망하기도 했다는 둥, 어떤 이들은 굶주린 여인들과 아이들의 가련함을 보고 죄를 회개했다는 둥 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한밤중에 사라키나 산에서 불빛을 보았다고들 저마다 지껄여 댔다. 파나요타로스가 마치 거친 황소처럼 눈을 찡그리며 들어와서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는 카페 주인을 부르더니 무뚝뚝하게 주문했다. "커피 한 잔, 설탕 넣지 말고." "자네 세수한 것 같구먼, 친구."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지난 밤은 괜찮았던 모양이군 그래. 그렇지?" 그 마구 상인은 털이 무성한 눈살을 찌푸렸다. "커피 한 잔, 설탕 넣지 말고." 그는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머리에 웅장하게 캘팍을 쓴 파트리아케스 영감이 손에는 큰 지팡이를 들고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모습을 나타내었다. 원로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깨어났는지 목소리가 꺼칠했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의 두꺼운 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하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코스탄디스가 농도 짙은 커피와 끈적한 사탕과자와 신선한 물을 한컵 갖다 드렸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족장 나리." 코스탄디스가 인사를 했다. 족장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탕과자를 물에 눅눅하게 풀어서 그것을 통째로 마시더니 손수건을 꺼내어 코를 감싸고는 실내가 울릴 정도로 팽하니 코를 풀었다. 기분이 나아지자 족장은 커피를 들면서 숨을 크게 가다듬었다. 그의 졸음이 덜 가신 눈꺼풀이 한결 풀리고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면서 무겁던 목청도 가벼워지는 듯해지자 담배를 피우도록 수연통이 전달되어 왔다. 족장은 점점 잠이 깨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위를 휘돌아보던 그는 교장 선생 하지 니콜리스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손짓을 했다. 교장 선생은 손에 수연통을 든 채 족장의 테이블로 건너와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이오?" 하고 파트리아케스가 물었다. "난 간밤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오. 헌데 몽중에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그러나 일어나진 않았소만. 방금 내 이곳으로 오던 중에 누군가가 어떤 유랑민이 이곳에 도착했었느니 하는 소리를 지나쳐 들었는데... 두 사제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고도 하고 어느 한 여인이 죽었느니 하는 소릴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있겠소, 교장 선생?" 교장 선생은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었던 일들을 몸짓과 함께 그것을 물어 준 것이 기쁘다는 표정으로 잠시 동안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은 족장은 저으기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편 파나요타로스는 수염을 잘근잘근 물어 뜯으면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늙은 족장의 무거운 주걱턱 얼굴을 노려 보았다. 그는 족장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지팡이를 휘저으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다운 의젓한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지 않도록 악마가 장난질을 한 모양이었다. "얼간이 같은 학교장!" 석고먹성이는 으르렁거리면서 마치 못방석 위에 앉은 사람처럼 몸을 비트적거렸다. "겁장이 같은 학교장같으니.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도 없다니. 내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불고 말아야지. 그렇게 하고 말겠어." 그는 두 사람 사이를 접근해서 비집고 들어섰다. "실례를 용서하세요, 족장님. 이 박학다식한 명사께서는 당신께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을 걸로 알고 있읍죠. 이분은 그런 용기가 없으니까요. 전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죠. 자리를 만들어 주신다면 모든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둘이서라면." "하지 니콜리스씨." 족장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자리를 옮겨주시겠소? 이 마구상께서 내게 할 말이 있다니 좀 들어 보구 싶소." 파나요타로스가 사의를 표했다. "자 말해 보게. 하지만 절대로 허튼 소린 말아야 해. 학교장이 내게 어줍잖은 소릴 했다네." "전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답니다." 파나요타로스가 감정이 상해서 대꾸했다. "나리께서 절 알다시피. 얘기를 대충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놀리오스가 나리의 아드님을 꼬셨어요. 그리고 이 카페 주인인 코스탄디스와 보부상 얀나코스 역시 모두 한패거리라구요. 그녀석들이 나리의 저장고를 네 개의 커다란 바구니에 넘치도록 털어 그 콜레라 전염자들에게 주었단 말예요. 그때 나리께서는 코를 골고 계셨기때문에 세상 무너지는 줄을 모르셨겠죠. 이것이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의 전부답니다." 그 순간 족장의 무거운 머리 끝까지 피가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또다시 그의 눈썹이 묵직해 오는 기분이었다. 그의 격노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악마에게로나 꺼져 버려. 아침부터 내 기분을 잡치다니!" 하고 소리쳤다. 그는 수연통을 내동댕이치면서 주위를 두루 살폈다. 그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카페 안은 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족장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계단을 밟고 문을 쾅 열어 젖히고는 비탄에 잠긴 표정으로 집을 향했다. "무슨 짓인가? 자네. 악마가 자넬 사주했군. 그의 귀에 악마의 노래를 속살거려 그를 미치게 하다니, 엉! 파나요타로스, 이 사람아!" 마을 사람 몇이 반 농담, 반 진담의 말투로 다그쳤다.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나? 그는 늙었고 너무 비대해서 혈압을 올리면 곤란해. 충격을 받고 뇌일혈로 쓰러질지도 모른다구." 멋진 익살을 부리며, 제법 거드름까지 뒤섞인 얀나코스의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들, 마을 양반들!" 얀나코스가 핏대 선 수탉마냥 광장 한복판에서 목을 길게 뽑으면서 소리쳤다. "이제 촌락과 도회지를 찾아서 출발하는 참이오. 부탁이 있는 분들은 이리 오시오. 뭐 전할 편지는 없는가요? 아니면 내가 돌아 다니는 마을들에 친지라든가 사업상으로 특별히 전갈할 용무가 있으시면 말씀하시라구. 여러분의 주문을 받는 대로 곧 떠날까 한다니까. 행상이 순조로우면 주일 안으로 여러분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너도 나도 얀나코스에게로 우르르 몰려들어 아양을 떨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나귀 귀에다 상체를 꾸부정하게 굽힌 채 그들의 온갖 부탁들을 머리 속에 적어 넣었다. 사람들 끝머리에 기다리고 섰던 코스탄디스가 다가와서 그의 귀를 빌어 은밀히 속삭였다. "자네, 화를 면하고 싶으면 파트리아케스의 집에는 들르지 말고 바로 가게나. 그 비열한 유다 같은 작자가 그에게 뭐라고 일러 바쳤다네. 그래서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뿔이 나서 집으로 돌아갔어. 틀림없이 그의 아들은 혼줄이 났을 걸세." "바구니들 때문에?" 얀나코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지. 우리가 구제한 그 바구니에 가득했던 원로네 물건 때문이지. 일이 우습게 돌아가는군. 우린 곤경에 빠지고 있다네." "나도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다네. 사제도 제 정신이 아니라구. 그는 분명히 내 약점을 잡으려 했어!...하지만 난 두렵지 않네. 걱정말게. 우린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일세." "나 역시." 하고 코스탄디스가 탄식했다. "나도 이미 곤경에 처했네. 자네 누이동생이 벌써 그것을 알아채고는 나에게 대어들어 나를 울리려고 했다네. '멍청이, 낭비군, 악당!' 하며 그녀가 뭐 별의별 욕지거리를 다 하더군. '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구요. 당신은 우리들에게 역병을 가져다 준 무리들을 위해 신앙을 빙자한 위선적인 도적놈들과 함께 가게를 망치려 했다구요. 우리도 배가 고프다구요. 아이들도 지실이 드는데 당신은 정말 악당이에요. 커피와 설탕, 비누들을 갖다 버리다니!?? "한데 도대체 누가 고자질을 했을까?" 얀나코스가 놀라서 물었다. "그 붉은 악마지 누구야. 그밖에 또 누가 있겠나? 자네도 기억하겠지. 그녀석이 그날 저녁 내내 우리 꽁무니를 지키고 있었던걸. 그는 사제한테나 내 마누라한테, 그리구 늙은 족장, 누구에게나 고자질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던 거야. 그때 우리들이 사도들의 배역을 맡았을 때, 그는 유다 역으로 선정되면서 미쳐서 노발대발했었지!" "참게나, 코스탄디스, 이 늙은이야." 얀나코스가 그의 누이동생으로 하여금 코스탄디스가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참게나. 일요일까지 모른 척하고 있자구. 그때까진 내가 돌아오겠네. 그때 우리 다시 얘기하세." 얀나코스는 회초리의 끝으로 당나귀를 때리면서 가파른 언덕길을 넘어 사라졌다. "자넨 행운아야. 자넨 자식도 없고 아내도 죽었으니 자유롭겠지.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자넨 정말 복받았어." 코스탄디스가 중얼거렸다. 얀나코스는 동료의 윤기나는 엉덩이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 유소우화키야. 우린 참 멋진 생활을 하는 거라구." 하고 중얼거렸다. "우린 친형제처럼 살자꾸나. 우린 언제 싸워 본 적이 있니? 천만에 말씀이지. 고맙기도 하지! 우린 둘 다 좋은 짝이니까. 아니 우린 둘 다 좋은 당나귀들이니까 말야. 다 같은 존재지 뭐.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해칠 수 없지. 자, 오른쪽으로 돌아. 길을 바꿔야지. 넌 코스탄디스가 우리한테 한 얘기 못 들었니? 족장에겐 미칠 것만 같은 날이란다. 곧바로 라다스 영감한테로 가자. 널 그렇게도 좋아하는 영감 댁으로 말이야. 가자. 어서 서둘러라. 곧 마을을 벗어나게 되겠지. 그러면 우린 원로들이나 사제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단다. 마침내 우린 홀가분하게 우리들만의 세계를 갖게 된단다!" 그는, 구두쇠 영감의 집으로 가기 위해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련한 마놀리오스를 만나야겠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출발하기전에 카테리나에 대해 그에게 얘길 해줘야겠어. 예수의 역을 맡은 그가 여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얘기해 줘야지. 암, 여자란 멀리 해야 한다니까! 라다스 영감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맨발인 채로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밝은 표정으로 돌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늙은 부인인 페넬로페가 깨진 사발에 이집트 콩과 아침 커피와 보리떡과 올리브 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 역시 의자에 앉아서 보리떡 조각을 얇게 준비하고 올리브 조각을 가지런하게 진설하였다. 그는 조반을 들면서 뭐라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그 앞에 앉아서 양말을 짰다. 그녀 역시 남편처럼 누더기 옷에다가 맨발을 한 지저분한 여자였으며 털빠진 늙은 황새처럼 길게 빠진 코를 달고 있었다. 그녀가 젊었을 때, 아주 오래 전 몇 해 동안은 남편에게 말대꾸도 했고 가끔씩 그와 싸우기도 했었다. 사실 그녀는 어여뻤고 사치를 즐기는 부유한 유지의 집에서 태어난 품위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그녀의 몸매는 무디어졌고 정신도 산만해졌으며 육체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들어 갔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미끄러져 가는 대로 두었으며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지도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라다스 부인은 점점 말이 없어져 갔었다. 때때로 듣는 비난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고 자기 자신을 억제해 가게 되었다. 특히 그녀의 하나뿐이었던 딸이 죽고 난 이후에는 라다스 영감의 홍수처럼 퍼부어 대는 언사에까지도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일종의 체념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마치 죽은 여자와도 같았다. 그녀는 조용히 걸었고 먹고 잠잤으며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나곤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녕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죽음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주는 무한한 기쁨과 위엄과 사심 없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라다스 영감은 앉아서 보리 주우스를 열심히 빨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체념한 표정으로 앉아서 양말을 짜고 있는 아내를 힐끗 쳐다보고는 지난 밤을 지새며 세운 거대한 계획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금고를 금귀고리와 반지, 그리고 목걸이라든가 다른 금붙이들로 가득 채워 온터였다. "내 계획에 대해서 준비는 다 됐어. 만반의 준비가 다 됐다니까. 페넬로페, 헌데 비밀리에 이 일을 하도록 누굴 고용해야 한담. 이 작업에는 대단한 위험이 따르거든. 지금 같아서는 꼭 세상이 끝장날 것만 같아. 인간이란 욕심 덩어리란 말이야. 탐욕과 사악하게 욕망을 추구하는 찌꺼기들이라구. 그러니 도대체 누굴 믿는다? 하지 니콜리스는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흉내내는 바보에 불과해. 그 학교장 - 그 사람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 도대체 그 사람한테 뭘 기대할 수 있겠나? 마치 미치광이처럼 사람들한테 돌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건 큰 다행이지. 만일 그의 형 그리고리스 사제라면 어떨까? 당신 생각해 보라구. 뭐든지 게걸스럽게 삼키는 그자 말이요. 자기 호주머니밖에 모르는 약삭빠르고 재능있는 악마로 통한단 말씀이야. 그는 내게 이롭지가 못해요. 왜냐하면 당신도 알다시피 난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이득을 갖고 싶거든. 이봐요, 페넬로페, 좀 의견을 말해 보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그 늙은 족장을 선택할 것 같은데. 휴! 그는 내 목을 맬 거라구. 올챙이 배란 말이야. 사내가 아니라구. 그의 집에는 다음 세대까지 먹고도 남을 재산이 있어요. 하지만 그는 평생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고생이라고? 그는 그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야! 큰 개미들과 여왕 개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내 들은 적이 있소. 그런데 그 개미떼들은 밤낮으로 사지를 뻗고 빈둥대고 있단 말이오. 이를테면 자기들을 벌어먹이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이 있어서, 그들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그들은 굶는다구. 그 뚱보가 바로 그런 흰개미란 말이오! 그도 내게 더 이상 도움이 안 돼. 원로 중에 한 사람인 포르투나스 선장은 어떨까. 역시! 그자도 남자가 아니야. 허구한 날 주정 속에서 사는 라키 술통이라구. 그러니까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다른 동업자를 찾아야 해요. 하지만 누가 있어야 말이지?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 없소. 페넬로페?" 그러나 그녀는 잠시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는 마치 무의식의 텅 빈공간의 세계에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하였을 뿐 그녀는 아무것도 들을 흥미가 없었다. 잠깐 동안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는데 기쁨은 아예 아랑곳 없었고 흥미없는 덤덤한 눈빛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라다스의 육체를 뚫고 나가서 집의 벽을 넘어 도로와 마을과 평야와 그리고 더 멀리는 사라키나 산을 넘어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바다 저편의 무한한 그 무엇을. 이를테면 고요하고도 음험한 암흑, 즉 공허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내리깔고는 재빨리 바느질을 시작했다. 묵묵하게 그리고 재빨리 얼마간 계속하더니 바느질을 끝냈다. 그때, 갑자기 얀나코스의 나팔 소리가 들렸다. 라다스 영감은 그의 도착이 자신의 골똘한 생각과 부딪치자, 뛸 듯이 기뻤다. 그의 작고, 사악한 눈이 야릇하게 빛났다. "이건 하나님께서 내게 사람을 보내 주신 거야!" 하고 그가 외쳤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 바로 여기 왔군! 아, 페넬로페? 그는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소. 방랑자이자 보부상인으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지. 반은 거짓말장인데다가 반은 도둑장수란 말씀이야. 그는 내 사람이야. 그는 어느 정도 챙겨 넣겠지. 그렇지만 끝내는 방! 해버리면 그만이지. 난 한몫 잡는다구!" 그는 너무나 기뻐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손을 비벼 대기 시작했다. 당나귀가 문 앞에 와서 멈췄다. 라다스 영감이 문을 열면서 뛰어나왔다. "어서 오게나, 얀나코스! 어서 오라구! 나의 친구여. 이거 하나님께서 자넬 보내 주셨구먼. 들어오게, 어서. 당나귀를 매어 놓고 어서 들어와. 내 자네와 긴히 할 얘기가 있다네." 도대체 이 여우 같은 늙은이가 왜 소매를 물고 늘어지는 거지? 얀나코스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경계하기로 했다. 그는 당나귀 고삐를 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단단히 닫고 빗장을 쳐. 아무도 못 듣도록! 내 자네와 긴한 비밀을 의논하고 싶다네. 자, 앉아요. 자넨 행운을 잡게 되었네. 얀나코스. 자네 역시 이제 부자가 된다구. 이젠 더 이상 남한테 목멘 소리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더 이상 걸인처럼 실꾸러미나 무명옷감을 팔러 자네 자신을 길거리에 내어몰지 않아도 된단 말이야. 내가 자네를 온통 황금으로 덮어 주지. 자네 듣고 있겠지? 이 귀한 사람아? 황금일세. 내가 자네에게 말하고 있잖는가?" 너무 엉뚱한 말에 얼떨떨해진 얀나코스가 외쳤다.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지 마십시오, 라다스 영감님. 말씀해 보세요. 무슨 금인가요?" "자, 귀를 크게 열고 들어 봐. 그 무리들은 - 콜레라를 전파한 그들 말이지 - 터어키인들이 탈취하기 전에는 적잖은 재물을 가졌었지. 그런데 지금 그들은 충분히 먹을 것이 없다네. 자, 들어 봐.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마을을 떠나올 때 귀고리라든가 팔찌, 결혼 반지들과 금붙이 같은 보석들을 숨겼을 것이란 말일세...그러니 자네가 가서 그것을 가져오란 말이야. 얀나코스, 알겠어?" "저, 도무지...무슨 뜻인지. 머리가 나빠서 아직 감을 못 잡겠는데요.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그건 좋은 일이야. 신의 계시야. 난 자네보다 앞서 계획을 잡고 있었어. 간밤에 난 사라키나 산에서 비치는 불꽃을 보았네. 그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굴을 찾았을 걸세. 자, 이봐, 자넨 당나귀를 타고 곧장 그 산을 향해 가라구. 그리고 자네 나팔을 불어서 그들을 불러내란 말이야. 남정네들과 여인네들과 어린아이들을 말이지. 그들은 자네 주위에 모인단 말씀이야. 그러면 자넨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야.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은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소. 여러분의 자식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분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밤새도록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당신들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형제 여러분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르침을 줬습니다. 나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지요. 당신들이 가져온 보석들을 가져오십시오. 그대신 나는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생활용품 - 즉, 옥수수라든가 보리와 기름, 그리고 술 따위 - 을 제공하겠소. 여러분, 여러분들은 실제로 별로 필요치 않는 장신용구들을 가지고 계신데 그걸 저에게 주세요. 만일 내가 손해를 본다 해도 별 상관않겠소. 여러분들은 그리스인들이며 또한 기독교인들이오. 그러므로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안 됩니다...' 하고 말하란 말일세. 지금에는 그것이 분명하다네. 이해하겠나? 이 답답한 사람아." "전 출발하는 참인데...떠나야 한다니까요..." 하고 얀타코스가 난처해서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는 라다스 영감의 귀 속에 이런 음모를 속살거린 것이 하나님인지 악마의 짓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신의 계시야. 내 말했잖는가!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돼! 아무에게도 바람이 잡혀서는 안 되지. 이리 오게, 나의 친구여, 생각해 보란 말이야. 자넨 부와 행운을 누리게 될 걸세. 자네, 자네의 가난한 악마까지도 말이야. 자네 같은 사람이 거리를 방황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파. 겨울이나 여름이나, 자네의 청춘을 다 보내면서 말일세. 자네 몇 살인가?" "쉰입니다." 얀나코스가 두 살을 속여 대답했다. "그래. 자네 보라구. 남자 나이로는 황금길세! 인생을 낭비하지 말게, 얀나코스! 자네 또한 친구들처럼 멋진 집을 짓고 마을에서 자네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아야지. - 아마도 사제의 딸은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겠네만. 그렇게 되면 자넨 친구들도 돕고 마을의 자선 사업가가 되는 거야. 그래서 자네가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서서 정중히 절을 하게 될 걸세, 얀나코스. 거지꼴 같은 생활이 아닌 고결한 새 생활을 말일세!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산다고 그래? 최소한 남은 생애라도 편하게 살아야 될 것 아닌가? 자네 그렇게 생각잖는가? 이봐, 마음을 결정하게. 자넬 위해서 하는 말일세. 그리고 이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돼. 난 사제가 가장 두려워." "난 하나님이 두렵소." 얀나코스가 우유부단하게 말했다. "난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라다스 영감님. 그토록 학대받는 형제들을 속이는 것이 옳을까요?" "우린 그들을 속이는 것이 아닐세. 이 바보야. 우린 그들을 도와 주는 거란 말이야. 이 얼간이 같은 친구야. 우린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제하는 거지... 그들은 먹을 것이 필요해. 그들은 살아야 한다구. 그들도 역시 우리의 한 형제들일세. 나 역시 양심은 있다네. 그래서 그들의 형편이 딱하게 느껴진다네. 이건 어디까지나 상호교환일 뿐이지. 우리가 그들로부터 훔치는 것은 아니야. 물론 가능한 만큼 이득을 보는 것이야 우리 쪽이지만. 우린 일종의 사업을 하는 거지. 우린 바보가 아닐세. 약간의 이득을 보는 것이 뭐가 나쁜가. 자, 이리 가까이 와. 빵 좀 들어. 올리브도 조금 있네. 들라구! 우린 이제 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친구야, 그래서 우린 이익금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단 말일세. 내가 커피를 좀 남겼군. 자, 마시게나!" "난 배고프지 않아요."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군요. 잠시 동안 의자에 앉아서 당신이 제게 한 말을 좀 정리해 봐야겠소. 당신은 저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어요, 라다스 영감님. 내 수완을 동원해서 결정에 앞서서 사업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군요." "허허, 시간이 없네. 급한 일 아닌가. 더 이상 무엇을 생각하기를 원하나? 사라키나 산으로 가게. 지체하지 말고. 사제가 겁난단 말일세. 내가 얘기했듯이 - 그 사제 말이지, 그 갈고리 주먹 말이야!" 얀나코스는 의자에 앉아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는 팔꿈치를 무릎에 고인 채 아무 말도 없이 긴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그의 머리는 마치 솥과도 같이 부글부글 끓었으며 관자놀이가 뛰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 뒤죽박죽이 되었다. 수천의 귀로부터 얻어진 귀고리들과, 수천의 목에서 얻어진 목걸이들, 그리고 손가락들로부터 얻어진 결혼 반지들, 굴러가는 금화들... 그리고 그는 그가 얻을지도 모를 귀금속들이 지금은 죽고 없는 아내의 옷으로 가득 차 있는 상자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커가는 집, 아니 정원이 있고 안뜰과 발코니와 부드러운 침대가 있는 궁전, 그리고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날리며... 일요일 아침, 웅장한 문이 열리고, 따사로운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교회의 종소리는 미사를 알리고, 그리고 얀나코스가 멋진 린네르를 입고 모자를 쓰고는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점잖게 교회로 향하노라면 마을 사람들이 절을 하고... 그리고는 또 그는 자기 자신인 얀나코스가 정원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의 앞에 존경에 넘치는 자세로 선 코스탄디스를 본다. 그는 돈으로 가득 찬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자, 나의 친구 코스탄디스, 이 돈을 가지도록 해. 그리고 자네의 얼굴에 웃음을 띄어 보게나. 자넨 나의 고양이 같은 누이로 해서 고달픈 세월을 보냈지. 자넨 그 돈을 가질 자격이 있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놀리오스를 부른다. "이리 오게나, 마놀리오스. 자네 역시 자격이 있네. 내가 자네에게 양떼들을 사줬지. 그것을 가지게.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 밑 빠진 독 같은 족장 영감의 종 노릇을 하지 말게." 얀나코스의 상상은 이런 외길로만 줄달음쳤다. 또한 그는 언젠가 스미르나에서 본 것과 같은 리코브리시 교회의 커다란 종루를 그려 보았다. 그 종루 정면 주위에 황금 글씨로 쓴 '의원이신 얀나코스 파파도풀로스가 드리는 선물. 우리의 위대한 은인이신!' 그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번쩍번쩍 빛나는 금으로 만든 벨벳 천의 안장을 얀나코스의 집사가 덮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손에 잡고 마굿간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친다. "유소우화키야, 내가 너한테 약속했던 길마를 사왔단다. 봐, 임금님도 이런 것을 갖진 못했을 거야. 네 고생도 끝났어! 이제는 먹어 주기만 하면 된단다. 나의 귀여운 유소우화키야. 주일이면 언제나 미사를 끝낸 후, 네가 새로운 안장을 얹고 광장을 행진하면 너 역시 족장의 당나귀와 같은 거지. 모든 사람들이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되겠지. 그리고 그들은 네가 무슨 사람이나 된 것처럼 인사를 하겠지." 얀나코스는 갑자기 파안대소하면서 깊은 상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우쭐대는 사람처럼 머리를 내저었다. 그는 무아의 경지에서 말없이 바느질을 하고 있던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라다스가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 내면서 그를 향해 눈을 고정시켰다. "반반으로 합시다." 하고 그가 말했다. "수락하시는 거죠, 라다스 영감님?" 라다스 영감이 그의 두꺼비 같은 손을 덥석 내밀었다. "자네의 손을 이리 주게, 얀나코스. 그렇게 하자. 반반씩으루 말일세. 이건 보편타당한 일이지. 저녁 안으로 자네가 취한 보물의 수확물을 내게 가져오겠지. 그럼 난 자네에게 콩과 기름, 그리고 술 등 자네가 그들과 타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주겠네. 그리구 우리가 그들 모든 것을 긁어 모으면 우리들은 몫에 대해 계산하게 될 걸세. 다만 자네가 충실히 해야 할 일은 자네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잘 기록하는 일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하도록 굽신거린다고 생각지는 말게. 자, 그럼 자네를 믿고 여기 계약금조로 터어키 파운드로 금화 세 닢을 줌세." 그는 주머니에서 튼튼한 실로 된 견고한 지갑을 끄집어내더니 그속에 손을 찔러 넣어 약간 떨리는 손짓으로 하나하나 셈을 하면서 천천히 세 파운드를 빼내었다. 얀나코스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 들었으며, 황금빛 때문에 눈이 부셔 그것을 바로 보지 못했다. "난 영수증을 준비하겠네." 하고 라다스 영감이 말했다. "돌아온 뒤에 싸인을 해주게. 자, 어떤가? 이젠 날 믿을 수 있겠지? 내가 방금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그건 황금이야. 기회를 놓치지 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그는 문을 열고 얀나코스를 밀어 내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네의 일을 지키실 걸세! 잘해 보라구!" 하고 소리친 후 황급히 문을 닫아 버렸다. 그는 그의 공범자가 배신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페넬로페." 입술에 손가락을 댄 채 그가 불렀다. "절대 비밀이야! 당신 내 솜씨를 보았겠지? 내가 얼마나 현명한지 보셨겠지? 내 두뇌는 면도날 같다구. 내 말했잖아! 당신도 보았지만, 페넬로페, 어떻게 내가 그에게서 황금의 갈고리를 빼앗을 수 있을까? 세 닢 잃었지만 반면에 수천 닢을 번단 말이오. 자, 내게 커피 좀 갖다 주시겠소. 임자? 어서!" 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뜨개질에만 몰두할 뿐 들은 척도 않으면서 뜨개바늘을 어긋 맺었다가는 코를 이어 나가고 또다시 바늘들을 서로 사귀게 하면서 라다스 영감을 위해 양말을 짜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양말 속에서 늙은이의 여윈 다리가 아닌 그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벌레들에게 반쯤 파먹힌 길고 깡마른 뼈 그 자체였지만. 그동안 당나귀는 간들락거리면서 행선을 재촉하고 있었고, 뒤에서는 얀나코스가 깊은 꿈에 젖어 있었다. 그의 마음속 일면에는 서글픈 감정이 잠재해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조끼 주머니의 금붙이로 하여 마냥 즐거움에 젖어 있었다. 그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이따금씩 그는 돌부리에 부딪혀 넘어지기도 하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서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당나귀는 깜짝 놀라 그를 향해 돌아다보면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죽은 듯이 멈춰 서곤 했다. "아무도 만나지 말 것을." 하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이리 온, 유소우화키, 서둘러라. 왜 그렇게 서 있는 거니? 자, 이쪽으로 행로를 바꾸었어. 내 귀여운 천둥아!" 당나귀는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어 댔다. 당나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터이었다. 그들이 갈 곳이 이 방향이란 말인가? 주인은 도대체 어쩌려는 것인지? 사람이란 참 변덕스러운 동물이라구 -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그들 자신도 모른다구! 하고 당나귀는 생각했다. "아무도 만나지 말았으면. 마놀리오스조차도.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길지 몰라. 그는 카테리나와 함께 지옥에라도 가겠지. 아서라! 가자꾸나, 유소우화키. 서둘러라!" 그런데 그가 마을의 끝에 있는 집을 돌아 들판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마놀리오스와 다른 두 명의 마을 사람들이 포르투나스 선장을 운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머리를 낮게 조아리고 종종걸음으로 선장을 들어 매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후세인이 붉은 페즈를 쓰고 반월도를 들고 앞장 서서 가고 있었다. 얀나코스는 그들이 지나가도록 당나귀 고삐를 죄어 길을 비켜 주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머리가 온통 피로 물든 붕대에 싸여 의식을 잃고 있는 선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봐, 웬일이지, 선장 나리께서? 말 좀 해보게나, 마놀리오스." "그가 아그하의 집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소, 가엾게도."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헌데, 구르면서 머리를 다쳤답니다. 혹시 만달레니아 아주머니를 보거든 급히 오셔서 붕대를 좀 갈아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 아주머니는 근력이 부치게 되기까지는 산파였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거요." "가여운 양반, 몹시 마셨던 게로군." 하고 얀나코스가 중얼거렸다. 후세인이 돌아보며 흥 하며 코방귀를 뀌었다. "걱정하지 마, 이 더러운 그리스 친구. 그는 머릴 좀 다쳤다구. 곧 나을 거라구, 그리스 족속 대머리들은 거칠다니까." "마놀리오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럽시다. 하지만 먼저 선장 나리를 침대에 눕혀야겠어요. 우리와 함께 가셔서 문 밖에서 잠깐 기다리시지요."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충격을 느낄 때마다 선장은 고통스러운지 신음 소리를 냈다. 선장의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선장을 안으로 옮겼다. 얀나코스는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 당나귀를 매어 두고 마놀리오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사실이지, 그날 밤, 그녀는 암소처럼 풍만하더라구. 지금은 무엇이 그녀의 구실이 되겠나? 맙소사!" 그는 담배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 그것을 말더니 올리브나무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맛있게 피웠다.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 불편스럽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이건 시간낭비일 뿐 아니라, 책임져야 할 중요한 임무를 자기가 맡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그는 주머니 속의 금화를 만지작거리면서 미소를 띠었다. 고맙기도 하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꿈꾸고 있는 게 아니지. 내손에 금붙이의 감촉이 느껴지는 한 어찌 꿈일 수 있단 말인가. 아침에는 내겐 그들이 바보 같았고 나의 베개처럼 여겨졌었다구.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저기 있지! 하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마놀리오스가 현관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올리브나무 밑에 있는 얀나코스 쪽으로 걸어왔다. "어찌나 힘이 드는지. 우린 지쳤소." "난 바쁘다네." 얀나코스가 말했다.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데. 그리고는 난 급히 떠나야 하네. 난 오늘 할 일이 많아... 들어 보게나, 마놀리오스. 오늘은 자네 주인 앞에 얼씬하지 말게. 그는 우리들이 한 일을 알아 버렸어. 그는 노발대발해서 지팡이를 휘둘렀지. 아마도 그의 아들을 족쳤을 걸세. 화가 풀리거든 들어 가도록 하라구." "아니오, 아무튼 난 가서 마땅히 벌을 받겠소. 그건 나의 잘못이니까요." "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난 가지 않겠어. 자넨 날 비겁하다고 하겠지? 하지만 어쩌나... 가지 말게. 아, 그리고, 기다려. 다른 얘기가 하나 있으니까. 카테리나, 그 과부에 관한 일인데 말이지. 그물을 쳐놓고는 자네를 낚아 채려 하고 있다네. 그녀가 꿈 속에서 자넬 봤다고 하더군. 헌데, 난 어저께 밤 그 광장에서 그녀가 자네한테 눈독을 들이는 것을 알았다네. 물론 자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조심해, 마놀리오스. 그녀는 악녀란 말이다. 카테리나는 교구감독까지도 파멸시켜 버린 여자야. 다음번 부활제 때는 자네가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게 되었음을 생각하라구. 자신을 더럽히지 마." 마놀리오스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도 역시 간밤 꿈 속에서 그 과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깨어서도 눈앞에 그 광경이 뱅뱅 돌면서 도대체 지워지지가 않았었다. "그리스도께서 도와 주실 거요."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분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마놀리오스. 아무튼 조심하라구! 자, 난 서둘러야겠네. 그런데, 자네 나에게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마놀리오스는 머뭇거리면서 그의 친구가 화를 내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하는 말을 용서해 주십시오." 마침내 그는 말을 끄집어 내었다. "우리들 네 사람이 하는 일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신성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젠 한몸이 되는 겁니다. 만일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잘못된다면 그건 바로 우리 모두가 잘못되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우린 파멸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말하게, 마놀리오스, 둘러 대지 말라구." 얀나코스는 당나귀 고삐를 풀면서 다그쳤다. "난 바쁘다네. 어서 말하게." "오늘 당신은 다시 일하러 가시지요." 마놀리오스가 팔로 얀나코스를 격려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다시금 순회길을 떠나시는 거지요. 잊지 마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저께 사제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충고를 잊지 마시기를..." "무슨 충고? 사제가 네게 무슨 충고를 했나?" 얀나코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얀나코스, 죄송하오. 나쁘게만 듣지 말아요. 저울 눈을 속이지 말라는...예를 들자면 말입니다. 그렇진 않겠지만..." 순간 얀나코스는 화가 치솟았다. 당나귀를 거칠게 다루면서 고삐를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좋아요, 좋아... 그는 그것을 그의 거룩한 행동처럼 쉽게 생각하는 거지... 내가 만일 사제에게 자신만 혼자 배를 채우지 말라고 한다면 그는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한다면? 밀가루 반죽을 섞지 말라구. 밀가루와 양념과 접시를 모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버릴 수 있겠나. 위선자같으니라구! 작년에 만토우디스가 죽었을 때 요금을 먼저 지불해 줄 것을 고집하느라고 악취가 풍기도록 그를 사흘 동안이나 방치해 두었잖아? 또 언젠가는 구두수선공인 가련한 예로니모스의 과수원을 팔아 치워 버렸잖아. 그가 빚을 갚지 못했다구 말이지. 그뿐이야? 금년에는 - 그렇지, 얼마 전 부활 주일 때였지 - 보조금도 내지 않았다구. 세례식때도 그 정도였다구. 장례식 때도 그 정도였으니까. 그는 말했지,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않았나, 결혼식을 집례하지 않았나, 장례식을 집전하지 않았나? 그런 얼굴로 그 뚱뚱한 배로 나에게 충고를 하다니..." "그런 투로 그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마놀리오스가 말을 가로막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사는 거라구요. 당신 또한 자신에게 유의하시오, 얀나코스! 금년은 우리들이 특히 정결하게 살아야 하오. 당신은 사도 베드로가 되어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공동체에 앞서서 하나의 개체로서의 사람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이는 단식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기나 기름 없이 먹고, 또 어떤 사람은 욕을 하지 않고, 어떤 이는 울화를 참아야 하는 것이오. 자, 우리들을 위해 그렇게 합시다, 얀나코스." 그러나 얀나코스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마놀리오스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마놀리오스의 온당한 말이 더욱 그를 화나게 했다. 그는 그의 동료 곁을 떠나면서 찢어질 듯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좋아, 자네 역시, 마놀리오스, 자네의 사도 이상의 역할을 잊지 말란 말이야. 그리스도 그 자체라는 걸. 두고 보라구. 여인에게 손을 대지 않겠느냐구? 아니지! 자넨 머지않아 곧 결혼하게 되겠지! 그렇지? 아니라구? 자넨 어떻게 그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거지? 예스냐, 노냐구! 그리고는 꺼져 버려. 성령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야." 마놀리오스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말해 보란 말이야." 얀나코스가 점점 더 심하게 다그쳤다. "자네가 레니오를 보면 군침을 흘리겠지. 그러면 악마는 그녀를 완전한 나체로 잠 속으로 데려오겠지. 나 역시 자네처럼 어리석었다구. 난 사탄의 장난질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악마는 자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를 자네에게 안겨 주지. 자넨 죄에 취하게 되고 아침에는 눈알이 뱅뱅 돌아서 일어나게 되는 거지... 자넨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연극을 하기 전에, 아마도 자넨 곧 결혼하게 되겠지. 그들은 자네를 십자가에 달 거야. 그런데 그 역할은 자네에게 큰 의미를 주겠지! 자넨 그 행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기실은 다른 사람 - 즉 그리스도 - 이 못박히는 거지만. 그리고 그 순간 자네는 십자가에 울부짖겠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십자가의 수난극이 끝난 후에 자넨 곧장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겠지. 그러면 레니오는 자네가 씻을 따뜻한 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지. 갈아입을 깨끗한 린네르도 말이지. 그리고 두 사람은, 십자가의 수난이 끝난 후의 뜨거운 침대로 가겠지. 작작하라구, 마놀리오스. 날 가르치려 들지 말란 말이야! 당치 않아! 당치 않단 말이야!" 마놀리오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이 옳다... 그가 옳아,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난 사기꾼이다. 그래 협잡꾼이다! "왜 말이 없는가, 자네? 사실이 아니란 말이지? 내 말이 틀렸어?" 얀나코스가 떨고 있는 마놀리오스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얀나코스, 어제는 당신이 조용했어요..." 마놀리오스가 허두를 꺼냈다. 얀나코스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어제는, 마놀리오스." 당나귀를 당겨 떠날 차비를 하면서 그가 대꾸했다. "어젠, 마놀리오스, 상황이 달랐어. 자네도 알다시피 주일이었잖아? 우리들에겐 먹을 것이 있었고 당나귀는 마굿간에서 단잠을 즐겼었지. 하지만 오늘은, 보라구, 당나귀는 짐을 잔뜩 실었고 우리들의 배는 텅텅 비었으며 부활절도 끝났어. 다시금 장사길을 떠나야 한다네...장사 말이야. 젊은이, 생각해 보게. 만일 자네가 뭘 먹기 원한다면 그것을 취하겠지. 만일 자네가 뭔가 갖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슬쩍하겠지. 그렇잖으면, 잡상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토스 산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안 그래?" 그는 잠깐 말이 없다가 다시금 활기를 띠었다. 당나귀를 잡아당기면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해 버린 흡족감에 마놀리오스를 쳐다 보았다. "행운을 비네, 마놀리오스. 내가 한 말을 잘 음미해 봐. 하나님의 가호를." 그러나 아직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 그의 동료에게 다시 한번 쏘아 대었다. "잡상인의 임무는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것이지, 마놀리오스. 성자의 임무는 그들로부터 빼앗지 않는 것이고. 이봐! 혼동하지 말란 말이야! 자네의 결혼식에 행복을 기원하네, 마놀리오스! 유소우화키야, 자 어서 길을 떠나자." 마놀리오스는 혼자 그대로 서 있었다. 태양은 이미 높이 떠올라 있었다. 남자들과 황소들과 개들과 나귀들까지 그들의 매일의 고된 일로 바빴다. 라다스 영감은 안경을 쓰고 세 파운드의 금화에 관한 영수증을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느긋하고 침착하게 작성하고 있었다. 그때쯤 사제는 매우 화가 난 늙은 파트리아케스의 추궁을 받고 있었는데, 그때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죽은 자를 위한 성사'를 부탁했으므로 그 상황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포르투나스 선장은 침대에 누워 신음하면서 자신의 깨어진 머리에 붕대를 갈아 매어 주고 있는 만달레니아 할멈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한편 레니오는 자수판 앞에 앉아 지참금 조로 가져갈 마지막 판을 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날 듯이 가벼웠다. 그녀의 목구멍은 흥겨웠으나 부푼 욕망을 애써 가라앉히면서 가슴으로 뛰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레니오는 위층에 있는 주인 방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고 아들은 대꾸를 하곤 하면서 마치 싸울 듯이 티격태격했기 때문에 천장이 울릴 정도였다. 그러나 레니오는 자수판에 기대어서 그들의 말다툼을 별로 괘념하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주인의 야단조차도 걱정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주인의 권위의 굴레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었다. 그녀는 산에서 양떼들 사이에 둘러싸여 마놀리오스와 새로운 삶을 출발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것이었다. 또한 그녀는 주인이 자신을 친딸처럼 사랑하고 후한 지참금을 지불한다 할지라도 파트리아케스는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지긋지긋한 존재였으며 그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 위층에서 더욱 격렬해진 언성이 들렸다. 늙은이가 더욱 분명하게 고함을 질렀으므로 레니오는 귀가 번쩍 뜨였던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하고 영감이 소리쳤다. "명령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네놈이 아니야! 말세로구나!" 그는 애써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언성을 낮추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안돼! 마놀리오스하고 더 이상 관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그녀석은 하인이란 걸 잊지 말아라. 그리고 넌 귀족이야. 네 자신의 위치를 지키란 말이다." 치사한 영감장이! 레니오는 혼자 중얼거렸다. 늙은 호색가! 머리가 백발이 성성한 것도 아랑곳없이 음탕한 카테리나를 여기 데리고 와서 침을 질질 흘렸지! 그리고선 마놀리오스를 업신여기다니. 그건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어리석은 일이야... 흥! 어디론가 가 버려야지. 늙은이를 더 이상 보기도 싫다구. 영감장이 말을 더 이상 듣기도 싫다구. 끔찍스러운 늙은이! 그녀는 분연히 일어섰다. 더 이상 방 안에 쳐박혀 있을 수가 없었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뜰로 나갔다. 늙은 야수! 그녀는 조용히 되씹어 보았다. 한번 따끔한 맛을 봤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뜰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우물에서 물을 퍼내어 얼굴을 담그며 시원한 쾌감을 즐겼다. 그녀는 체격은 자그마했지만 풍만한 육체와 두툼한 입술, 그리고 민감하고 웃음 머금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늙은 족장을 쏙 뺀 매부리코였다. 그녀는 가무잡잡하고 매혹적이었으며, 저녁때가 되면 으레 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남정네들에게 이상하게 목을 내밀고는 어떤 욕망과 연민의 몸짓을 하면서 그들을 설레게 했다. 마치 고양이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먼저 가까이 가서 그것을 노려보다가 막 뛰어오르기 전에 발톱을 내밀고서는 먹이에게 동정이라도 느끼는 듯이... 이런 무자비하고 변화없는 남자사냥은 매일 저녁 문간에서 시도되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는 이 싸움을 포기하고 레니오는 밤이 오면 지쳐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막 바께츠를 들어올려 거기 그녀의 불타는 듯한 얼굴을 담갔을 때, 마당 문이 열리면서 마놀리오스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마놀리오스." 그녀는 그를 향해 단번에 솟구치는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외쳤는데, 욕망에 불타는 눈빛과 자신의 방만한 움직임은 곧 저지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번개 같은 눈길로 그의 팔과 목, 가슴과 넓적다리, 그리고 무릎을 훔쳐 보았다. 그녀는 그와 함께 써클이라도 하듯이 그의 건장함과 지구력을 재어 보았다. 마놀리오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질러 구석에 그의 막대기를 비스듬히 세워 놓고 주인 방으로 가는 돌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길 쪽으로부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미켈리스와 족장의 노여움을 함께 나누려는 심산이었다. 마놀리오스는 몹시 피곤하고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는 레니오를 보자마자 완전히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를 이런 순간에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에 이르렀다. 그러나 레니오는 이 광경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 하고 그녀는 외쳤다. "왜 당신은 나를 못 본 척 하나요?" "안녕, 레니오." 마놀리오스는 가볍게 대답했다. "미안하오. 난 바쁘오. 난 주인나리를 만나야 합니다." "내버려 두세요. 당신은 그 더럽고 늙은 사람과 무엇을 할 건가요?" 레니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분은 지금 막 아드님과 다투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좋아요. 이리 와서 보세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내실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그의 냄새를 맡고 그의 주위를 돌면서 그에게 슬쩍 부딪치기도 하면서 투정을 하듯이 순간적으로 뒤로 밀쳤다. "우린 언제 결혼할 건가요? 마놀리오스. 그 늙은이가 안달이라구요."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마놀리오스는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전 그분의 위대하심에 무릎을 꿇어요." 하고 갑자기 엄숙해지면서 레니오가 말했다. "전 그분의 위대하심에 무릎을 꿇어요. 하지만 빨리 되어지기를 그분께 빌어요. 곧 5월이 될 거구 사람들은 5월엔 결혼하지 않아요. 우린 6월이나 7월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그것은 시간 낭비예요." "시간이 되면, 레니오. 너무 성급해 말아요. 그리구 난 먼저 끝내야 할 일이 있어.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면..." "무슨 일인가요?" 레니오는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죠? 양치는 일 이외에 다른 무슨 일이 있죠?" "그렇소, 내가 할 일이..." 마놀리오스는 돌계단을 향하여 천천히 발을 옮기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누구와 말예요? 왜 저에게는 말하지 않았죠? 전 머지않아 당신의 아내가 될 텐데. 전 알아야만 하겠어요." "먼저 주인을 만나야겠소. 그 다음에 당신에게 얘기하겠소... 나는 먼저 그분과 얘기해야만 하오. 레니오, 날 좀 내버려 두구료." "마놀리오스, 절 똑바로 보세요. 당신 딴전 부리지 말아요. 무슨 일이죠, 도대체? 이 고독한 날에 당신이 변했군요.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그녀는 그를 쳐다보면서 근심스러움과 함께 울화가 치밀어 재빨리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당신에게 음흉한 눈길을 던지고 있군요." 그녀가 외쳤다. "우리는 당신의 아주머니 만달레니아를 만나야 해요. 그녀는 수난일에 나무가지를 태울 것이구 그 악기 서린 눈을 매료시키기 위해서 마술을 외우겠지요. 마놀리오스, 이리로 오세요. 당신께 할 말이 있어요, 나의 귀하신 분..." 마놀리오스는 그의 목으로부터 그녀의 숨소리를 느꼈다. 지독한 냄새가 그의 착취당하고 있는 몸으로부터 풍겼다. 순간 그녀의 풍만하고 탱탱한 젖가슴이 그의 손에 스치며 부딪쳤다. 그의 내면을 흐르는 피들이 혈관을 급하게 흘렀다. "전 가서 만달레니아를 만날 거예요. 전 당신이 그처럼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다구요. 가지 말아요. 당신." 레니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아껴 둔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었다. 그녀는 머리를 스카프로 묶고 약간의 붉은 달걀과 커피, 설탕과 만달레니아 아주머니에게 수고비 조로 드릴 술을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그것들을 준비해서 돌아서 나올 때쯤, 마놀리오스는 벌써 돌계단을 올라 주인의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들어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그녀는 마놀리오스를 향하여 소리쳤다. "날 좀 보자구요!" 위층의 언쟁은 한결 풀이 죽어 있었다. 미켈리스는 족장의 방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문틈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늙은이와 무거운 발자국 소리였는데 그 소리는 큰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는 낌새였다. 마놀리오스는 문을 밀고 들어섰다. 늙은 원로가 그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네놈의 잘못이야." 그는 때릴 듯이 손을 들어올리면서 화를 버럭 내었다. "내 자식놈을 돌아 버리게 만든 것은 네놈이야. 너는 나의 존재와 내 심장의 피까지 폭발하기 위해 그를 충동질했지. 너는 불한당 같은 놈이야!" 그의 관자놀이의 혈관과 목과 손이 검어졌다. 그는 갑갑함에 셔츠를 들어올렸다. 그의 주인의 가슴은 헐떡거리고 있었으며 무너져 내릴 듯이 보였다. 파열될 지경이었다. 그는 구석에 놓인 소파에 넘어지면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의 목구멍에서는 딸깍딸깍 소리가 났다. 마놀리오스는 벽에 기대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늙은 족장을 지켜 보았다. 이 사람의 마음이 야수의 그것과 같구나. 당신, 그리스도 조차도 그것을 길들일 수 없다니. 발작적으로 늙은이가 일어서더니 다시금 힘을 내어 마놀리오스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건 네놈의 짓이야." 그는 마놀리오스의 뺨과 목덜미에 침을 튀기면서 소리쳤다. "그건 네놈의 잘못이라구. 난 너를 나의 레니오와 결혼시키기 위해 산으로부터 데리고 왔었어. 그녀는 내 딸처럼 내가 사랑한단 말이다. 나는 모든 주일 동안 너를 줄곧 여기서 지켰었어. 나는 네가 내 종복이란 것을 잊고 있었으며 부활주일에는 너를 나의 식탁에 앉혔다구. 그리고 지금의 보수를 생각해 봐, 이 반역자야! 너는 내 아들의 머리를 돌게 만들었다니까.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의 저장고에서 내 재산을 훔쳤어. 야, 이 도둑놈아, 넌 도둑이야, 도둑!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여기 난생 처음으로 나를 거역한 미켈리스가 이따위 말을 했단 말이다. '저도 이젠 남자예요.' 하고 말이야. '나는 이제 내 판단대로 행할 것입니다!' 라나. 네놈도 그걸 들었냐? 건방진 놈! 아들놈이 이젠 자기 생각대로 할 것이라고 했단 말이야. 뿐만 아니라 내가 큰소리로 추궁하니까 하는 말이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두렵지 않소?'하고 감히 내게 대어들었지. '이 철면피야! 나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이러는 거였어. 네 이놈 그 말 들었어? 아무도 두려워 않는다구! 그것이 모두 네놈의 계략이었지. 마놀리오스, 나와 함께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그날 다리가 부러져야 하는건데...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냐구? 말해 봐, 미쳐 버리고 말겠어!" "주인나리." 마놀리오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산으로 되돌아갈 윤허를 받기 위해 온 것입니다." 늙은이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으며 덧문을 굳게 닫았다. "너 뭐라고 했지? 산으로 되돌아 간다고? 낯짝이 있으면 그 말 다시 한번 해봐!" "산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인나리. 그것을 위해 온 겁니다." "그런데 결혼은?" 늙은이가 발악을 했다. 그의 목이 또다시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언제 예식을 갖지? 너는 바본가? 5월은 당나귀가 결혼할 때야. 그래서 4월에 할 예정이야. 그것이 내가 널 부른 이유야. 명령은 내가 한단 말이야!"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주인님..." "뭐라구? 무엇을 더 원하냐? 네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준비가 아직 덜 됐습니다, 주인나리." "준비가 아직 덜 됐다? 그건 무슨 뜻이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보십시오. 내가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낍니다, 내 영혼이..." "무슨 영혼? 네가 돈 모양이구나. 주의해서 들어 봐. 그의 영혼이라, 그가 그렇게 말하다니! 너 영혼을 가지고 있나?" "제가 당신께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요, 주인님? 나에게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닥쳐!" 마놀리오스는 문을 열기 위해 팔을 내밀었다. 늙은이가 그것을 재지했다. "어디로 가려고 그래? 여기 있어!" 그는 길고 폭이 넓은 방을 또다시 이리저리 큰걸음으로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손이 상할 정도로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탕 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너 오늘 나를 죽이는구나. 너희들 두 명이. 모든 것이 끝장이구나! 내 아들도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이, 이 더러운 종 녀석이 그의 영혼이 어떻고...하고 말하다니!" 그는 격렬하게 그 양치기에게로 돌아섰다. "나가! 아무 데로나 꺼져 버려. 나가라구. 내 눈앞에서 없어져! 이번 달에 결혼하지 않는다면 나의 보호 아래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어. 내 집에서 나가! 나는 레니오를 위해서 더 좋은 신랑감을 구하겠어. 넌 약속을 어겼어. 가 버려!" 마놀리오스는 문을 열고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내려 마당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레니오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지팡이를 집어들고 산으로 가는 길을 잡아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 밖에 있는 성 바질의 우물 근처에서 그는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추었다. 그것은 오래 되었고 매우 잘 알려진 우물이었는데, 키를 재는 죽순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고 수세기 동안 물통을 달아 오르내리게 했을 법한, 밧줄에 의해서 깊숙이 패여 윤이 나는 대리석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자 어린 소녀들이 차가운 물을 긷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이 물은 많은 병 - 위장병, 간장병, 신장병 - 을 고칠 수 있는 신비의 물로 알려져 왔었다. 해마다 십이야제 때가 되면 사제들은 그 물을 정하게 하기 위해서 모였다. 모든 곳의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가득 실은 가이사라의 성 바질은 이 우물을 지나고, 그들은 새해 전날 밤에 그의 순회가 있기 전에 이 물을 마셨던 것이다. 이것이 성 바질의 우물이라고 불리우는 동기가 된 것이었다. 또한 이 우물이 왜 신비스러운지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중천에 뜬 태양은 대지에 수직으로 열기를 내리쏟고 있었다. 들판에서는 황금빛 이삭이 섬세한 머리를 이고 있었으며 내리비치는 태양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모든 잎으로부터 빛을 발산하였다. 멀리 사라키나 산은 붉은 색을 띤 투명한 베일 속에 싸여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동굴들의 시커먼 구멍들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눈부신 빛으로 만들어진 성 엘리야의 예배당 꼭대기가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밧줄을 붙잡고 물을 길어올려 양동이에 얼굴을 담근 다음 물을 마셨다. 셔츠를 벌리고는 가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의 시선은 사라키나 산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포터스 사제를 보고 있었다. 금욕적이고 광폭한 태양과도 같은 불꽃과 화염이 그의 마음에서 일어났다. 마놀리오스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에 아무런 질문을 던짐도 없이,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불타는 듯한 햇빛 아래 있는 성 엘리야 예배당같이 자신을 녹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는 황홀경에 빠져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는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심장이 마치 빛으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과도 같은 지극히 무서운 고통 속에 빠졌었다. 몇 달 전 운명적인 시간에 그 우물가 앞에서의 황홀한 순간이 그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이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던 것이다. 아니다. 즐거움이 아니다. 좀더 깊고 좀더 잔인한, 모든 인간의 기쁨과 고통을 통한 그런 어떤 것이었다. 그가 성모의 산으로 올라가서 그의 양 우리로 되돌아왔을 때 서산에 해가 숨었다. "저녁이 왔구나. 자러 가야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밸트를 느슨하게 했다가는 다시 잡아당기고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는 고독에 절친한 동료인 양과 수양과 개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한 그의 양치기 소년, 젊고 야생적이며 햇볕에 그은 곱슬머리의 앳된 청년인 니콜리오스와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갑자기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에 막 출발하려 했다. 그의 뒤에서 산뜻하고 매혹적인, 애조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마놀리오스, 당신은 두려워서 우리로부터 떠나는 건가요? 기다려요. 당신에게서 말을 듣고 싶어요." 그는 돌아다보았다. 과부 카테리나가 어깨에 물동이를 이고 뜻밖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황홀한 목과 잘 다듬어진 노출된 팔과 붉게 웃음 머금은 입술을 재빨리 훔쳐보았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소?" 하고 그는 실망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쫓아다니지요, 마놀리오스." 고통과 번민이 가득한 목소리로 과부가 말했다. 그녀는 항아리를 우물가에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밤 난 꿈에서 당신을 봐요. 당신은 나를 잠들도록 버려 두지 않아요. 오늘 새벽녘에 나는 당신이 달을 잡아서 그것을 사과처럼 조각나게 잘라서는 나에게 먹으라고 주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죠.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인가요? 마놀리오스. 왜 당신은 내게 추근대지요? 내 꿈에 당신이 보이는 것은 곧 당신이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눈을 계속 땅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는 과부의 숨결이 그의 주위를 매우 열정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빨개졌군요. 얼굴이 말예요. 마놀리오스." 그 과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약간 쉰 목소리였다. "내가 옳았군요. 당신은 나를 생각하고 있었군요, 마놀리오스.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을 생각했다구요... 그리고 난 당신을 그곳, 나의 생각 속에 두었을 때 당신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럽답니다. 내가 벌거벗고 있으며 당신은 나의 형제처럼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예요." "난 당신을 생각했소." 마놀리오스는 눈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난 당신을 생각했소. 당신께 미안하오. 성주간 내내 당신은 내 마음속에 있었소. 용서하시오." 과부는 우물가에 앉았다. 그녀는 갑자기 극복하기 어려운 피곤 같은 것이기는 했지만 어떤 감미로움을 느꼈다. 그녀의 다리는 더 이상 그녀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우물에 기대어 그녀는 푸르고 검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모든 삶이 그녀의 머리에 휙 스치며 지나갔다. 소녀 고아 시절, 먼 곳의 상업 도시에서 사제의 딸로서 그녀는 동정녀 미어틀의 축제에서 남편을 만났던 것이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며 벌써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을 좀 모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난했었다. 그는 그녀를 아내로 데려갔다기보다는 취했던 것이다. 결혼 후에 그는 그녀를 리코브리시 마을로 데려왔다. 그는 아이들을 원했지만 자식 복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었다. 그 마을의 젊은이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밤이면 그녀의 문 앞이나 창문, 또는 그녀의 집 마당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으며 그녀를 위하여 소야곡을 부르면서 송아지들처럼 한숨 쉬곤 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집 안에서도 역시 한숨만 내뿜었었다. 그러한 고난은 일 년이 지나 이 년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토요일 밤엔가,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머리를 감고, 월계수 기름으로 머리에 향기를 풍기게 하고는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그녀를 슬프게 했었다. 그녀는 마침내 문을 열었고 우연히 집 밖을 기웃거리고 있었던 첫 번째의 젊은이를 끌어 들였다. 어슴푸레한 아침, 마을이 깨어나기 전 그는 과부의 집을 빠져 나갔었다. 과부는 그 후 커다란 안락감을 느꼈다. 그녀는 또한 삶이란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과 그것을 낭비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저녁, 그녀는 또 그녀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푸르고 검은 물 속에서 일그러졌다. "왜 당신은 제게 미안한가요? 마놀리오스?" 그녀가 다그쳤다. "난, 모르겠소, 카테리나. 묻지 말아요.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오. 난 당신이 내 누이처럼 생각되오. 미안하오." "당신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가요?" "모르겠소. 묻지 마십시오. 당신께 미안할 뿐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뭘 바라시죠?"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마놀리오스는 달아나려고 몸을 움직이면서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가지 말아요. 가지말아요. 마놀리오스!" 그녀는 마녀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돌아다보지 않은 채로 마놀리오스는 멈춰 섰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과부가 재차 말했다. "당신은 천사장 같아요, 내겐... 마놀리오스, 내 영혼을 갖기를 원하는 천사장 말예요." "가게 해주오. 난 당신에게서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소. 난 가고 싶소." "당신은 서두르시는군요." 과부는 화가 났으며 목소리는 조롱하는 듯하게 변해 있었다. "당신은 산을 몹시 그리워하고 우유를 마시고 고기를 먹고 당신을 고정시키고 싶어하는군요. 당신은 결혼하겠죠. 마놀리오스, 당신은 결혼할 거예요. 그리구, 레니오는 똑똑하답니다." "난 결혼하지 않을 거요!" 마놀리오스가 외쳤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결코 결혼하지 않아요. 죽고 싶을 뿐이오." 그 말을 하자 그는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되돌아서서 그는 과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마치 커다란 무게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을 발견하였다. "안녕. 난 가겠소." 그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과부는 그가 떠나갈 때, 시선으로 한참 그의 뒤를 좇았다. 그러는 그녀의 마음은 아팠다. "나를 생각하지 마세요, 마놀리오스." 그녀는 절망적으로 외쳤다. "더 이상 나의 꿈 속을 침범하지 말아요. 난 나쁜 길을 택했다구요. 나 혼자 남게 되었군요!" 당신께는 미안하오, 내 누이여. 미안하오. 그리고 나는 당신이 파멸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마놀리오스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않고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서 되뇌고 있었다. 그는 벌써 산으로 오르는 작은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4. 수양과의 싸움 태양이 떠올라 사라키나 산정을 내리쬐면서 성 엘리야 예배당을 붉게 물들였다. 산비탈에서는 자고새가 울기 시작했다. 산 전체가 밝아지면서 험준한 바위들 사아에 널려 있던 몇 그루의 왜소한 캐로브나무(풀이.지중해 지방에 서식하는 상록수의 일종' 들과 가시 줄기를 지닌 야생 배와, 바람에 찢기운 털가시나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사람들이 지난날에 그곳에 살았음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허물어진 담벽과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 가꾸던 사람들이 떠남으로써 다시 자연 그대로 돌아간 과일나무들을 아직 볼 수 있었다. 길은 잡초와 자갈에 묻혀 흔적이 지워졌다. 사람의 손길이 떠나 버린 수목들은 가시덤불이 되어 버렸으며,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던 늑대들과 여우들과 산토끼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옛집을 찾아와 있었다. 땅과 나무들과 짐승들은 그들의 자유를 다시 찾아 마음놓고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나타나서 영원한 사물들의 법칙을 변화시키고는 사라진 단명'短命' 의 두 다리를 가진 괴물들의 위협을, 이제는 더 이상 알지 못할성싶은 정경이었다. 자, 보라. 쉬임없이 상기어린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맹수들이 그를 보기 위해 큰 바위들 뒤에 숨었다. 태양이 떠오르자마자 사람들은 동굴에서 나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돌을 주워 모아 불을 피웠다. 그들은 밭머리에 서서 멀리 아래쪽 평원에 펼쳐진 풍요스러운 리코브리시 마을을 바라보았다. 주위에는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들이 임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더 멀리에는 많은 양과 염소들이 있는 황금빛 초원의 버어진 동산이 있었고 더 저쪽에는 장미빛과 푸른빛의 산들이 하늘과 어우러져 있었다. 포티스 사제는 성호를 그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지금은 여명의 시간. 오늘 우리들은 할 일이 많습니다. 이리들 모이십시오. 우리 다 함께 주님께 기도합시다. 그분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실 겁니다." 노인과 노파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포티스 사제가 서 있는 바위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낙네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왔으며 머리를 푹 숙인 낙담에 찬 모습의 남자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모였다. 그들은 맨발의 남루한 무리였으며, 피로와 배고픔으로 엉켜 있는 얼굴들을 하고 체념의 상태로 황폐한 돌들과 산재해 있는 열매 없는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이들이 탄원과 눈물을 뿌리고 하늘을 향하여 갈망의 손짓을 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환희에 충만한 비잔틴 교회의 승리의 찬송이 솟아나와 온 산을 적시며 퍼졌다. 오 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 당신의 자손들에게 축복을 축복을 내리소서 야만인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우소서!... 사제는 찬송에 맞추어 팔을 휘저으며 지휘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잘 다듬어져 아름다왔고 깊고 그윽하며 활기에 차 있었다. 힘없이 숙여졌던 무리들의 머리들이 들려졌고 여인들은 웃옷의 단추를 끌르고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어떤 사람들은 웅크리고 앉아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는 그 위에다 항아리를 올려 놓았다. "사랑하는 성도여," 포티스 사제가 준열하게 외쳤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뿌리를 내릴 곳은 이 가파른 산, 바로 여깁니다. 석 달 동안 우리는 방황했습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지쳤으며 남자들은 구걸 행각을 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인간은 나무와 같이 땅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뿌리를 내릴 곳입니다! 나는 어젯밤 꿈에서 우리의 깃발에 그려져 있는 우리의 보호자 성 게오르그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봄처럼 아름다운 머리를 하고 백마를 탄 젊은이로 보였습니다. 그의 뒤에는 언젠가 그가 무서운 샘의 괴물로부터 구해 낸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금잔을 내밀며 술을 부어 권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주는 누구겠습니까? 그대들이여!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혼이며 우리들의 영혼입니다. 성 게오르그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말을 건네 주었으며 지금 우리들이 서 있는 이 황량한 산으로 우리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지난밤, 나는 그분을 꿈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팔을 뻗쳐 내 손에 마을의 씨앗을 놓았습니다 -. 나의 작은 손바닥에다. 교회와 학교와 정원들이 있는 아주 작은 마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것을 가꾸어라' 라고." 갈대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같이 군중들은 웅성거렸다. 그때 포티스 사제는 그의 손을 펴 보였다. 몇몇의 여인네들이 마치 태양아래 부화한 달걀 같은 아주 작은 마을을 보았다. "바로 이곳이오." 포티스 사제는 팔을 벌려 산을 껴안는 몸짓으로 말했다. "이 돌들, 동굴들, 이 귀한 물 그리고 이 야윈 야생나무들... 이곳은 우리들이 성 게오르그 경이 나에게 확신으로 보여 준 씨앗을 가꿀 바로 그곳입니다. 용기를 가집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일어나서 나를 따르시오. 오늘은 우리들이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위대한 날입니다! 일어서십시오. 파나고스여, 유골을 담은 당신의 자루를 등에 다시 지고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백 세의 늙은 영감이 깡마른 얼굴을 쳐들었으며 그의 작고 강인한 눈이 번쩍 빛났다. "성도여!" 그는 말했다. "나는 세 번이나 마을이 일어나서는 몰락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첫 번째 마을을 파괴시킨 것은 대역병이었고, 두 번째는 지진이었으며, 세 번째는 이번의 터어키 족속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세 번 모두 인간이 뿌린 씨앗을 보아 왔습니다. 이제 이러한 처지에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사제님은 축복을 내리셨고 석공은 집을 짓기 시작했으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땅에 던져 땅을 일구었습니다. 그 해 안에 남자들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습니까! 옥수수 싹이 땅으로부터 솟아나고 연기가 집집마다 피어오르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올러 댔습니다 - 마을은 번창했지요. 힘을 냅시다. 성도여. 다시금 출발합시다." "만세, 피나고스 할아범 만세!" 성도들은 환희에 차서 외쳤다. "할아버지, 당신은 카론 (풀이.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도천의 나룻배 사공으로 용사의 상징' 보다 낫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어긴 용사요, 그렇지 않소?" "그렇구말구. 그 용사가 바로 나야." 하고 늙은이가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에 포티스 사제는 사제복을 차려입고 축수'祝水' 도구를 준비했다. 조롱박에 물을 채우고, 그가 찬송가와 문답사를 가르쳤던 대여섯 명의 복사들을 옆에 불러 세웠다. 모든 무리들이 일어서서 지도자 뒤에 둘러 섰다. 남자들은 오른쪽에 여자들은 왼쪽에 모여들었다. 그들 위에는 지칠 줄 모르는 힘의 상징인 태양이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찬연히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조국 앞에 맹세합니다." 하고 포티스 사제가 외쳤다. "우리들의 마을은 초토화되었으나, 다시금 세워지고 있습니다. 결코 우리 종족의 뿌리는 사멸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나의 형제여! 나도 사람이기에 기쁜 일이 생기면 즐겁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오히려 나는 더욱 소망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포티스여, 네가 진정한 인간이냐 아니면, 토끼 같은 존재인가를 보여 줄 때가 왔다' 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엄숙한 순간에 유머 넘치는 힘찬 그의 설교는 무리들의 무거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강인했던 이 투사는 가슴을 펴고 돌들과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들과 굶주린 입들을 돌아보고 소매를 걷러붙였다. "성도들이여, 모두들 나를 따르십시오. 나는 우리 마을의 경계를 만들겠습니다." 하고 그는 축복을 베푼 성수'聖水' 속에 축수 도구를 던지며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께 맹세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몸이 큰 사람이 성 게오르그의 깃발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연장인 삽과 끌과 곡괭이들을 들었다. 늙은이들은 그들의 팔로 성화상을 들고, 그리고 늙은 영감은 그의 등에 유골이 든 자루를 메고 앞장섰다. 그들과 동행했던 몇 마리의 개들도 즐겁게 짖으며 뒤따랐다. 온통 야단들이었다. 이때, 산 밑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사제는 싱싱한 나뭇가지를 꺾어 성수에 살짝 담갔다가 마치 허공에 마을의 경계를 긋듯, 돌에도 수풀에도 캐로브나부에도 휘휘 성수를 뿌렸다. 마을이 창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넘쳐 흐르는 마음으로 즉석 기도를 드렸다. "오, 주여! 나는 우리들 마을의 경계를 성수로 그었나이다. 터어키군대가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콜레라가 엄습하지 않게 하시며 지진이 이곳을 뒤덮지 못하게 도우소서. 우리는 네 개의 단단한 문으로 그것을 막겠습니다. 주여! 그들을 막기 위해 네 천사를 그곳에 두시옵소서." 그는 잠시 숨을 돌린 다음에 큰 바위에 성수로 십자가를 그리고는 그의 무리를 향해 돌아섰다. "동쪽,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문을 세우겠습니다." 사제는 하늘을 우러러 팔을 피고는 기도했다. "오! 주여, 여기 당신을 위한 문을 세웁니다. 당신께서 황송하옵게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때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땅에 임하실 때에 당신께서 들어오실 문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인간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다하여 소리를 발하여 당신께 간구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더라도 화를 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인간이며, 고통받는 생물이며 많은 근심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음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그것을 표출하거나 오만한 말을 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못난 놈들입니다. 주여, 인생이란 무거운 짐입니다. 만약 당신이 거기 계시지를 않는다면 우리는 맨손으로 지켜야만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남녀 모두는 절벽에 가서 몸을 던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계시오니, 당신은 우리의 구세주 되시며 기쁨과 위안과 해방자가 되십니다. 여기는 당신의 문입니다. 들어오십시오!" 그들은 남쪽으로 갔다. 다시 경계션이 공중에 그어졌다. 사제는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자 주위는 그의 굵은 목소리와 아이들의 가냘픈 제비같이 지저귀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사제는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찬 바위의 웅덩이 앞에서 멈췄다. "여기에다 우리는 인간의 보호 여신인 성 처녀의 문을 세우리라! 표시를 하시오!" 그는 말했다. 그는 두 팔을 벌렸다. "성모 마리아님, 시들지 않는 장미이시며 야생 오크로 장식된, 꽃 핀 산사나무 같으신 우리의 주여! 우리는 박해받은 그러나, 선량한 백성입니다. 우리의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당신은 여기, 우리들 가까이에 거하실 곳을 잡으셨습니다. 당신의 무릎은 인간이 안주할 수 있는 부드러운 둥우리입니다. 당신은 어머니시며 당신은 한숨과 배고픔과 죽음의 의미를 아십니다. 당신은 여인이시며 당신은 인내와 사랑의 의미를 아십니다. 성모 마리아여, 우리의 마음을 굽어살피시고 여인들에게 언제나 이 투쟁에서 견딜 수 있고 그들의 아버지와 형제들과 남편, 그들의 자식들에게 그리고 집안의 어려운 일에 불평없이 참을 수 있는 인내와 사랑을 내려 주소서! 남자들에게는 실망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그들이 죽을 때 자식과 손자들이 가득 찬 마당을 남기고 죽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성모 마리아여, 늙은 노인들과 노파들에게 평화스럽게 당신의 품 안에서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여기는 당신의 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님, 들어오소서!" 이때, 짐을 실은 당나귀가 성례의 행렬 끝에 나타났으나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나귀는 놀라서 갑자기 멈추었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물어 보기 위해 그의 크고 털이 난 눈을 주인에게로 돌렸다. 땅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면서, 작열하는 태양과 거친 돌들을 저주하면서 얀나코스가 당나귀 뒤에서 나타났다. 그 역시 자신의 사랑하는 나귀 유소우화키처럼 놀라면서 멈췄다. 그는 찬송가 소리와 사제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문이오." 그가 되뇌었다... 문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무슨 마을을 건설하려 하는가? 또, 무엇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 아니면 공중에? 그들은 지금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는데, 그런데도 지금 마을을 세우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지금 서 있을 기력조차 없으면서도 군인답게 찬송을 부르고 있다. 야만인들을 이기게 하소서...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이들은 미쳤나이다! 그는 나귀를 나무에 메고 조용히 보이지 않게 성례의 행렬에 끼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곤두세워 무리들을 따르며 사제가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성수를 뿌리며 마을의 경계선을 긋는 의식을 지켜 보았다. 그는 벌써부터 황량한 빈터로부터 미래를 향하여 난 길들과 집들, 그리고 교회와 원로들의 집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늙은이는 서쪽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문의 반대 쪽에서 세 번째로 멈췄다. 그리고 꽃이 만발한 야생 배나무에 의해 둘로 갈라진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섰다. "우리는 여기에다 헌신자 성 게오르그의 문을 세울지어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인간인 우리와 같이 땅을 일구고, 염소나 양이나 소들을 목장으로 안도하며, 나무의 가지를 치거나 나무의 접을 붙이시는 분입니다. 성 게오르그는 고귀한 투사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노동자이십니다. 우리 마을의 수호가이시여! 우리의 믿음을 당신의 은총 아래 둡니다. 우리의 염소와 어린 양을 번창하게 하시어 그들이 우리의 어린이들을 위해 우유를 공급하게 하시고, 그들이 우리의 몸을 위해 고기를 주게 하여 그것이 우리의 영에 유익이 되게 하시고,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그들이 우리에게 털을 주게 하소서! 성 게오르그여,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모든 동물들 - 소, 나귀, 개, 닭, 토끼 따위 - 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땅을 경작하시고 그 땅에 축복을 내리소서. 우리는 당신의 가슴에 씨를 뿌리겠습니다. 당신은 그 씨가 자랄 때 필요한 비를 내려 주소서... 땅과 인간과 성자, 우리의 머리 위에 계신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의 길을 내려 주소서! 성 게오르그여, 여기는 당신의 마을이며, 여기는 당신의 문입니다. 당신이 말을 타고 들어오실 수 있도록 우리는 문을 높게 설계했습니다. 들어오시옵소서!" 얀나코스는 입을 벌린 채 얼빠진 사람처럼 듣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그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만 바위와 가시덤불과 양골단초와 백리향...그런 것뿐이었다. 캐로브나무 위에서 까마귀 두 마리가 놀라서 푸드득거리더니 까악까악 애처럽게 울면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 창조물들은 무엇인가? 인간? 아니면 성자? 그는 무서움에 떨면서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오랫동안 깎지 못해서 축 늘어진 콧수염을 한 남자들과, 오랫동안 간수하지 않아 헝클어진 긴 머리를 감아 올린 넓적한 엉덩이를 한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아주 완전히 미쳤군. 오, 저들을 구원하소서! 성모 마리아의 문 반대편인 북쪽에서 사제는 잡초만 무성한 채 폐허가 된 벽 앞에 다시 한번 멈추어 섰다. 그는 성수를 뿌리고 돌들에게 세 차례 축수하고는 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형제들이여. 여기 우리의 마지막 비잔틴 왕 콘스탄틴 파라에오로고스의 문을 세우겠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여기는 언젠가 분명히 땀에 흠뻑 젖은 전령이 우리에게 '형제여, 다시 콘스탄티노플은 우리의 것이 되었소.' 라고 전하기 위해 들어올 곳입니다." 그들의 그 순간의 현실은 승리에 차 있었고 열광적인 함성으로 드높았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북쪽으로 돌아서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성도 '聖都' 콘스탄티노플을 응시했다. 그들은 벌써 바람과 함께 달려오고 있는 승리의 전령을 보고 있었다. "파나고스 할아범, 다가와서 유골이 담긴 당신의 자루를 파라에오로고스 왕의 문에 내려놓으시지요." 하고 사제가 외쳤다. 그리고는 연장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들은 삽질을 하여 사람 하나가 서 있기에 충분할 정도의 크고 깊은 무덤을 팠다. 노인장은 그 안으로 들어가서 자루에서 머리뼈와 정강이뼈, 갈비뼈 등을 하나하나 꺼내어 조용히 그리고 경건하게 무덤안 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포티스 사제는 남은 성수를 유골 위에 뿌리고 축수구를 무덤 속에 던지며 외쳤다. "아버지들이여, 죽지 말고 기다립시다. 전령이 올 때까지 좀더 참읍시다!" 얀나코스는 눈물을 닦았다.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파나고스 영감님, 이젠 나오십시오." 하고 사제가 명령했다. "나오시오. 무덤에 흙을 덮어야 합니다." 두 명의 젊은이가 그를 부축하기 위해 서둘렀다. "나를 남겨 두시오, 여러분." 늙은이는 그들에게 간청했다. "나는 여기가 좋소. 왜 당신들은 먹을 권리도 없는 내게 빵을 축내게 하려 하시오? 나는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소. 난 아무 쓸데 없는 사람이오.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파나고스 영감님, 당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소. 서두르지 마시오." 하고 사제가 엄하게 말했다. "사제여, 나를 여기에 남겨 두십시오. 나는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마을을 건설하는 데 사람을 봉인하지 않으면 그 마을은 곧 망한다고 하는 말을 나는 들어 왔습니다. 어디에서 내가 이보다 더 좋은 죽음을 찾겠습니까? 나를 묻어 주시오!" 하고 늙은이는 애원하다시피 했다. "당치 않은 말씀을." 사제가 단호히 거절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명령을 주셨소. 그리고 단지 하나님만이 그것을 거두실 것이오. 파나고스, 우리에게는 그 권한이 없소... 뭘 하고 있소? 어서 영감님을 끌어올리십시오!" 두 젊은이가 허리를 굽혀 그를 들어올리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노인은 이미 유골 위에 누워 결연히 소리쳤다. "여러분, 나를 남겨 주시오. 내버려 두란 말입니다. 나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겁니다." 얀나코스는 더 이상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무덤 안에 있는 늙은 노인을 보았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드러 누워 있었다. 그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나는 여기가 좋아... 나는 여기가 좋아." 하고 계속 중얼거렸다. 얀나코스의 메였던 목이 풀리면서 흐느낌이 솟아나왔다. 사제는 얀나코스 쪽을 돌아보더니 그를 알아보았다. "여러분, 여기에 리코브리시 마을의 착한 사람 얀나코스 씨가 왔습니다.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십시오. 그는 우리를 만나러 왔으며 역경의 시기에 처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분을 환영합시다! 그는 바구니를 든 우리에게 은헤를 베푼 네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환영합니다. 얀나코스씨!" 사제는 감격에 찬 어조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과 당신 친구들의 사랑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리코브리시 마을을 불로 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얀나코스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에 떨었다. "형제여, 그대는 왜 우십니까?"하고 그를 포옹하면서 사제가 말했다.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사제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에게로 가까이 오십시오." 사제는 그의 팔을 잡고 성도들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갔다. "왜 우시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형제여,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나에게 말해 주시오." 사제는 팔을 들어 미래의 마을을 가리키며 "당신은 우리 마을 설립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했다. 얀나코스는 다리에 힘이 빠져 돌 위에 주저앉아 버렸다. 사제는 그의 위에 서서 걱정스럽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당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하고 물었다. "울지 마시오!" "나는 죄를 범했습니다, 사제님. 나는 그 모든 것을 고백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횡설수설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 그가 왜 사라키나 산에 올라왔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수전노 라다스 노인과 한 밀약에 대해서, 또한 그 대가로 금화 세 닢을 받았다는 사실 등등을 고백했다. 사제는 잠자코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얀나코스는 겁먹은 얼굴로 사제를 쳐다보았다. "사제님,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나는, 인간은 짐승이란 것을, 아주 비열한 짐승이란 것을 생각합니다. 울지 마십시오. 나는 또한 하나님이야말로 위대하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 하고 얀나코스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구역질을 했다. "더러운 벌레 같은 놈들, 그런 사람들은 더럽고 쓸모없는 벌레들입니다... 저를 만지지 마십시오, 사제님. 나 같은 인간이 매스껍지 않나요?" 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움츠리고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얀나코스는 그가 주저앉았던 돌에서 일어나 그의 양복 조끼 주머니에 손가락을 집어넣더니 금화 세 닢을 꺼냈다. "사제님, 간청이 있습니다. 이 금화 세 닢을 받아 주시고, 이것으로 마을과 아이들을 위해 약간의 양을 사 주십시오. 그들은 우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시다면 나의 머리 위에 당신의 손을 얹어 용서를 빌어 주십시오." 사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이 이것을 받지 않으신다면 나의 영혼은 다시는 안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얀나코스는 덧붙였다. "인간은 비열한 짐승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들을 길들여 주십시오 사제님. 한 마디의 말이면 충분합니다. 이 순간 나의 구원은 당신의 입술에 달려 있습니다." 사제는 얀나코스의 팔에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 때문입니까? 당신이 우시는 것은 나 때문인가요?" 하고 얀나코스가 물었다. "당신과 나 자신과 이 모든 세상 때문입니다, 형제여." 눈물을 닦으며 포티스 사제는 중얼거렸다. 그는 얀나코스의 눈에 입맞춤을 하고 그의 갈색빛의 곱슬머리를 어루만졌다. "용서받을지어다, 얀나코스여! 베드로도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정하였었고, 세 번 모두 눈물에 의해 구원받았느니라. 눈물은 세례의 위대한 성수반이오. 나의 형제여...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이 죄의 금화를 받겠소. 당신의 죄는 우리의 굶주린 아이들의 우유로 바뀔 것이오. 얀나코스,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계실지어다!" 얀나코스는 사제의 무릎에 몸을 던져 그의 발에 입을 맞추려 하였다. 그러나 사제가 황급히 몸을 굽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닙니다. 저들이 우리를 봅니다. 저들이 이리로 오고 있소." 하고 사제가 말했다. "사제님, 사제님!"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시오. 나의 형제들이여?" 놀라움에 포티스 사제가 물었다. "파나고스 노인께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사제님. 우리가 그를 무덤에서 끌어올리려 했으나 그분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포티스 사제는 성호를 그었다. "하나님, 그를 용납하소서." 그는 간구했다. "그는 복되게 돌아가셨고 그는 우리 마을의 설립의 기초가 되셨습니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그와 같은 죽음을 우리에게도 내리실 것입니다. 내 곧 가서 그분에게 축복을 내리겠소." 그리고 얀나코스에게 말했다. "나의 형제여, 두려워하지 말고 이리 오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대와 함께 하십니다." 얀나코스는 인사를 하고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춘 후 당나귀를 찾으러 갔다. 환희는 그에게 날개를 선사하여 그는 마침 20대의 청년같이 돌을 뛰어넘었다. 그는 날개가 돋은 것처럼 등으로부터 이상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악마여, 늙은 라다스를 데려가라. 그의 황금을 가져가라. 나는 새와 같이 가볍도다." 하고 얀나코스는 중얼거렸다. 그는 오크나무 그늘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당나귀를 살짝 때렸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고삐를 풀었다. "자, 가자꾸나, 유소우화키! 우리의 사업은 잘되었다. 고마워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가파른 바위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두운 동굴들과 미래의 파라에오로고스 왕의 문 밑에 거한 그 노인의 무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하관식하는 소리에 성호를 그었다. 하나님, 당신의 마을에 형제를 내려 주소서. 나는 - 나는, 이 마을의 건립에 금화 삼 파운드를 헌납했습니다. 그는 노래부르며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비열한 짐승이라고 당신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래, 그는 그가 선택한 것을 다 할 수 있다. 만약에 그가 길을 갖고 싶다면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지옥의 문과 천국의 문은 모두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어떤 곳이든지 갈 수 있다... 악마는 다만 지옥으로 가고 천사는 다만 천국으로 간다. 그러나 인간은 그가 선택한 그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는 얼마나 오랫동안 잊어버렸던지를 하나님만이 아는 오래된 노래가 그의 입술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나는 번개의 아들이며 천둥의 천사 나는 번개와 천둥과 눈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라 그는 산 아래쪽 기슭에서 멈췄다.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다. 유소우화키도 배가 고프겠지. 내가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하지 않도록 녀석에겐 신선한 풀을 먹여야겠다. 형제같이 나란히 앉아서 음식을 먹어야지. 그는 몇 발자국 걸어가서 엉겅퀴들을 모으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양배추잎을 잘라서 한다발을 만들어 그의 친구에게 가져다 주었다. "여기 있다. 자 먹어라, 유소우화키. 나도 저녁을 먹어야겠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거라, 응?" 그는 가방을 열어서 빵과 올리브와 양파를 꺼내 토끼처럼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이 빵이 정말 맛있는데!" 하고 줄얼거렸다. "난생 처음 빵을 먹는 기분인데. 빵이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힘을 주어 단번에 바스러뜨리자꾸나." 그는 가방에서 머리 두 개 달린 독수리 모양을 조각한 술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당나귀를 보면서 "넌 내가 술을 먹는 것을 처음 보겠지." 하고 생각했다. 길은 내리받이였고 곧게 뻗어 있었다. 그것은 돌아가는 길을 즐겁게 했다. "하나님이 포도나무와 포도를 만드신 것은 훌륭한 생각이야. 그리고 포도로부터 술을 얻기 위해 즙틀을 밟는 것을 생각해 낸 사람은 축복을 받았을 거구. 여기서 한 잔 더 해야지." 그는 다시 술을 들이키고 눈을 감았다. "인생을 즐겨라, 유소우화키!" 하고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얀나코스는 눈을 들어 그의 시야에 나타난,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카테리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 뒤에는 목에 빨간 리본을 단 암양이 있었다. "어이, 카테리나, 여기서 뭘 하시지?" 하고 소리쳤다. "이 암양은 어디서 데려오는 거요? 그것 팔 거요?" "그래요." 과부가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만, 여기 와서 음식과 마실 것을 좀 드시우. 포티스 사제는 지금 어린이에게 우유를 제공해 줄 암양을 사기를 원하고 있소... 당신을 보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과부는 땅에 주저앉아 검은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의 땀을 닦았다.그녀의 눈은 즐거움으로 반짝거렸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더운지. 여름이 오나봐요, 얀나코스" "뭣 좀 드시오." 빵 조각과 올리브를 건네며 얀나코스가 말했다. "양파 좀 드시겠소?" "아녜요. 난 양파를 먹지 않아요." 빵과 올리브를 받으며 과부가 대답했다. "나쁜 냄새 때문이겠지, 말괄량이 같으니." "그래요." 하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이웃인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린 향기로운 비누 냄새와 향수 냄새가 항상 나야만 해요." 그녀는 빵과 올리브를 밀어 내면서 "난 배가 고프지 않아요. 죄송해요." 하고 말했다. 얀나코스는 수모감을 느꼈으나 꾹 참으면서 "죄송해야 할 쪽은 접니다, 카테리나. 나는 바보야." 하고 투덜거렸다. 과부는 풀 하나를 아무렇게나 뽑아서 말없이 그것을 씹었다. 그들은 잠시 동안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얀나코스는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가방을 챙겨 닫았다. "카테리나, 당신의 짐꾸러미에는 뭣이 들어 있소?" 그에게 중압감을 주는 침묵을 밀어 내기 위해 그가 물었다. "아이들을 위한 약간의 헌옷들이에요." "당신은 그것들을 그들에게 줄 작정이오?" "네." "그럼, 저 암양은?" "물론 우유가 필요할 테니 암양도 줄 생각예요." 얀나코스는 무안해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과부는 자신을 변명하듯 덧붙여 말했다. "나의 이웃인 당신도 아시다시피 난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모두 나의 자식 같다구요." 얀나코스는 목이 메어옴을 느꼈다. "카테리나, 땅에 엎드려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싶구료." 하고 목멘 소리를 했다. "늙은 호색가 파트리아케스가 그저께 오라고 해서 갔더니, 마을 의회에서 내년 부활제 때 내가 막달라 마리아 역을 맡도록 결정했다더군요. 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건 내가 그녀처럼 막달라 마을 출신이라는 거겠죠. 그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얀나코스, 이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요. 내가 만약 예수님을 만나고 라벤더 향수를 한 병 가지고 있다면, 나 또한 그분의 발을 씻기 위해 향수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구 내 긴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리겠어요... 그것은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구 성모 마리아님 곁에 부끄러운 마음 없이 서 있겠어요. 그러면 그녀도 그녀 곁에 있는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할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시겠죠, 얀나코스씨?" "물론 이해합니다, 카테리나." 눈물을 글썽이며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야 나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소, 카테리나." 그는 계속 말했다. "나는 당신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 카테리나. 그것이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있는 이유입니다. 사소한 일이었고, 흔하지는 않지만, 전에 나는 좀도둑이었으며 조금은 거짓말장이였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침묵에 빠졌다. 그의 마음은 날개가 달린 듯하였다. 그는 술병을 움켜잡았다. "건강을 축복합니다." 그는 술을 들며 말했다. "나는 지금 막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절 용서하세요. 바보들의 행동은 단지 바보만이 할 수 있습니다." 술을 삼킨 후 그는 조심스레 술병의 주둥이를 쓱 문질렀다. "술 좀 드시죠, 카테리나. 그러면 저는 당신이 나를 용서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다." "건강을 축원해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과부가 말했다. 그녀는 입을 씻고 일어섰다. "전 가 봐야겠어요. 암양이 견디기 어려운가 봐요. 불편한지 울고 있어요. 젖을 안 짜 줬군, 불쌍한 것. 나는 우유를 그곳까지 그냥 가져 가려 합니다." "나는 당신이 그 양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요. 카테리나, 당신은 그 양을 보내고 섭섭하지 않으시겠소?" "만약 당신이 당신의 당나귀를 그들에게 주었다면 당신은 당나귀를 보고 싶어하시겠죠?" 얀나코스는 몸서리를 쳤다. "말도 마시오. 그건 내 마음을 찢는 일이오." "마찬가지로 나도 내 마음을 찢는 아픔을 느낀다오. 얀나코스씨, 안녕히 가세요. 행운을 빌어요." 그녀는 잠시 동안 망설였다. "마놀리오스를 만나실 거예요?" 끝내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어 보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 예정이오. 돌아가는 길에 옆으로 지나면서 그에게 들르려고 합니다. 그에게 전한 말이 있소?" 과부는 짐을 다시 등에 지고 가기 싫어하는 암양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하고 그녀는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마놀리오스는 산에 도달했다. 개들이 멀리서 그의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그 뒤를 따라 뽀죡한 귀를 가지고 햇볕에 검게 탄 양치기소년 니콜리오가 그를 만나러 어린아이처럼 바위 위를 깡충깡충 뛰어왔다. 그는 산에서 양과 염소와 함께 자랐다. 검고 거친 놈이었으며 도대체 말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는 양처럼 맴맴하고 울곤 했다. 송진과 오물로 끈적끈적해진 그의 곱슬머리가 꼬여서 두 개의 작은 뾰족한 뿔이 붙어 있는 듯했다. 그는 이제 열 다섯 살로 수양처럼 성난 얼굴로 양들을 감시한다. 그들이 양 우리에 도착했을 때 니콜리오는 빵과 치즈와 구운 고기를 긴 의자 위에 내어놓았다. "드세요." "난 배고프지 않아, 니콜리오. 너나 먹어." "아니 왜요? 좀 드시지요." "생각 없어." "마을에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일을 시켰나요.?" "그래." "마을엔 왜 갔었나요?" 마놀리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짚으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건 사실이다. '왜 내가 갔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일요일 아침에만 마을에 내려갔었다. 그는 미사에 참여하고 성찬을 들고는 지체없이 산으로 돌아왔었다. 아래쪽 평지에서는 숨이 막혀 왔다. 여인들을 볼 때마다 그는 거칠어졌고,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는 카페 앞을 지날 때에는 담배 냄새가 그의 목을 조였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재빨리 지나서 신선한 곳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는 레니오를 기억했다. 그녀의 장난기 어린 눈과 미소, 그리고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 무엇보다도 분홍색 속저고리 아래 터질 듯한 그녀의 젖가슴. 그는 짚 위에서 일어나 앉았다. 너무 더웠다. 땀에 흠뻑 젖은 그의 상의를 벗어 던졌다. 나는 참아야만 한다, 하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순수성을 지켜야 하고 여자와는 접촉을 말아야 한다. 나는 유익을 주어야만 한다. 이 몸은 이제 더 이상 나의 몸이 아니라 예수께 속한 몸이다. 그가 언젠가 수도원에 도착했을때, 예배당의 성상대 위에서 보았던 그리스도의 영상이 그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리스도는 길고 푸른 튜닉을 입고 발은 맨발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가볍게 풀끝조차도 다치지 않게 땅을 딛고 계셨다. 그는 여위고 투명한 안개처럼 무게가 없어 보였다. 그의 손과 발에서, 그리고 노출된 옆구리에서 장미꽃 같은 가는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금발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한 젊은 여인이 예수를 만지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입으로부터 낱말들의 화환이 펼쳐져 나왔다. 마놀리오스는 그것들을 읽었으나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의 윗분에게 물었었다.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말하시는 건가요, 사제님?" "여인아, 만지지 마라." 라고 사제는 대답했다. "저 여인은 누굽니까? 사제님?" "막달라 마리아다." "여인이여, 만지지 말지어다." 마놀리오스는 눈을 감았다. 머리를 흔들자 그녀의 검은 손수건을 던지는 과부 카테리나가 불현듯 보였다. 그녀의 금발머리는 풀려서 그녀의 나체를 덮으며 그녀의 무릎까지 흘러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리면서 둥글고 탄력있는 두 개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사람 살려!" 마놀리오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목동은 게속 먹고 있었으나 그의 배고픔을 채우지는 못했다. 그는 음식을 한입 가득 채우고 무관심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꿈을 꾸셨나요. 주인님? 어떤 사람이 당신을 쫓아오던가요? 나도 전에 꿈 속에서 사람들이 막 쫓아온 일이 있었어요. 꿈은 거짓말예요. 바보처럼 굴지 말고 잠이나 주무세요!" "추운데 불이나 좀 피우렴. 니콜리오..."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데요!" 목동은 빵과 고기를 놓기 싫어서 대꾸했다. "난, 추워..." 마놀리오스가 다시 채근했다. 그리고 그는 이빨이 덜덜 떨리는 비음을 내었다. 어린 목동은 우적우적 먹던 것을 계속 먹으면서 일어나 투덜대면서 구석의 나무를 날라 왔다. 난로 위에 작은 가지들과 함께 놓고 불을 지폈다. 마놀리오스가 다가오자 그는 그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들은 당신에게 사악한 눈을 주었소, 주인님." 하며 목동은 되돌아가서 다시금 탐욕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마놀리오스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통나무집 구석으로 가서 담요를 몸에 두르고는 몸을 움츠렸다. 그는 나무가 타면서 발하는 불꽃을 보았다. 레니오, 막달라 마리아, 예수가 불꽃 속에서 춤추며 함께 나타났다. 멀리 보였다가 다시금 가까이 나타났다가 하였다... 불꽃은 춤을 추었으며 예수가 소생하여 잿무덤으로부터 나와 작아졌다. 두 개로 보였다, 커졌다 하다가는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놀리오스는 온몸에 힘이 빠져 무릎에 머리를 떨군 채 잠이 들었다. 무겁고 끈적끈적한 잠이었다. 밤이 새도록 마놀리오스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싸웠다. 그는 달라붙은 해초와 물뱀 속에 잡혀 있었으며, 새벽에는 아름다운 물줄기의 폭포가 뛰어올라 그의 위에 내리 쏟아지더니 주의를 에워쌌다. "사람 살려." 숨이 막혀 소리쳤다. 그는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악몽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사나운 강물에 몸을 내어맡기고 떠 있었다. 마놀리오스의 두서너 번의 날카로운 비명은 양치기를 깨웠다. "그는 아직도 쫓기는 꿈을 꾸고 있었나보군, 불쌍한 사람." 하고 그는 중얼거리고는 돌아누워서 다시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마놀리오스는 눈을 뜨고 창문을 통해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성호를 그었다. "밤이 지나가고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나이다." 하고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관절이 쑤시는 아픔을 느꼈고 충혈된 눈은 불을 지핀 듯하였다. 추워서 후들후들 떨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목이 말랐다. 그는 뜨거운 우유를 마시고 싶었으나 니콜리오는 이미 양떼에게 풀을 먹이러 나간 뒤였고 자신은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처음 보는 것처럼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정교한 기술로 자신이 직접 만들고 조각한 항아리들과 우유 바께츠, 나무 숟가락 등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나무 조각을 얻을 때마다 칼을 가지고 어린 소년같이 그 위에 새라든가 나무 따위를 새기려고 애를 썼다. 그 후 그는 여인을 조각했으며 다음에는 말 탄 사람들을 새겼다. 마침내, 그는 수도원을 다녀온 후에는 성자들과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그렸던 것이다. "여보시오, 나의 형제여." 언젠가 양 우리 곁을 지나던 수도사가 그에게 말했었다. "당신은 양치기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당신은 수도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나무를 드릴 테니 성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시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마놀리오스는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햇볕에 가서 앉았다. 그는 몸이 풀릴 즈음해서 어젯밤의 꿈을 다시 보는 듯싶었다. 금발 머리와 같은 강, 그는 몸서리를 쳤다. "오! 예수님." 그는 중얼거렸다. "나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는 일어나서 불을 지피고는 양동이에 가서 약간의 우유를 떠다가 데워 마셨다. 그는 어느 정도 힘을 얻어 밖으로 나가서 울타리 안에 돌로 만들어 놓은 의자 위에 앉았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온 세상의 만물이 깨어나고 있었으며, 산야 전체가 반짝거렸다. 저 멀리에서 니콜리오가 양을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괜찮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유혹이 엄습할 때는 태양이 사라진 밤이었어, 고맙게도!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는 문 앞 층계에서 회양목 둥치에서 잘라낸 통나무를 보았다. 그의 마음에는 즐거움이 일어났다. 그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어루만졌다. 그것은 튼튼하고 머리 모양으로 둥글었다. 나무 결은 머리의 핏줄같이 꾸불꾸불하고 복잡했다. 마놀리오스는 자신의 손 끈을 간지럽히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욕망을 느꼈다. 그는 불현 듯 일어서서 오두막으로 달려가더니 작은 톱과 끌과 줄을 가져왔다. 황급히 성호를 긋고는 나무에 입을 맞춘 후 작업을 시작했다. 태양이 중천에 떠올랐으나 마놀리오스는 아직도 나무를 가슴에 꼭끼고 구부린 채로 앉아 열심히 일을 계속했다. 그는 피로조차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였다. 들판의 바람은 하늘과 땅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모든 유혹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마놀리오스는 나무를 조각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았다. 그의 모든 정신은, 자신의 마음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얼굴과 모든 자애와 침묵, 그리고 슬픔을 응시하는 눈이 되었다. 마놀리오스는 움푹패인 볼과 고통받는 눈, 핏멍울이 맺힌 넓은 이마를 실제로 보기나 한 것처럼 충실히 재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성상에서 조차도 발견되어지지 않은 양미간 사이의 상처도 마놀리오스는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땀방울이 그의 관자놀이로부터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끌에 손을 다쳐서 피가 나무를 붉게 물들였다. 그래도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재빨리 성스러운 얼굴을 묘사하여 그것이 지워지기 전에 나무에다 새기는 것이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조각을 하고 있는 동안 두 여인이 길에 나타났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늙은 여인이 젊은 여인의 뒤를 따라왔다. 젊은 여인이 마놀리오스를 보자 늙은 여인에게로 돌아서더니 '쉬잇' 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두 여인은 마놀리오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래 다가섰다. 그러다가 늙은 여인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돌을 굴렸다.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얼마나 몰두해 있었던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젊은 여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걸음을 빨리해서 그에게로 가서 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안녕 마놀리오스!" 그는 놀라서 껑충 뛰었다. 그가 생각했던 성스러운 모습이 사라졌다. 힘이 기진하여 머리를 뒤로 젖히고 벽에 기대어 섰다. "무슨 일이죠, 마놀리오스? 왜 그런 매서운 얼굴로 절 쳐다보죠? 유령이라도 보았나요? 저예요. 레니오예요. 당신의 약혼녀. 그리고 이분은 당신의 아주머니이신 만달레니아님이세요. 당신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오셨어요. "넌 악마나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 상처를 받았다. 그것이 확실하구나." 하고 말하면서 늙은 여인이 한숨을 내쉬면서 다가왔다. 마놀리오스는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조각하던 나무를 밑으로 돌리면서 이윽고 그가 물었다. 늙은 여인이 대답하려 했으나 레니오가 옆구리를 꾹 질렀다. "만달레니아 할머니, 저희들을 내버려 두고 가셔서 필요한 풀이나 베세요. 전 그이와 할 얘기가 있어요." 늙은 여인은 투덜거리면서 풀을 베러 밖으로 나갔다. 레니오는 돌의자에 그와 가까이 마주 보면서 앉았다. "마놀리오스." 그의 손을 잡으면서 레니오는 부드럽게 말했다. "고개를 좀 돌리세요. 절 봐 줘요. 이젠 더 이상 절 좋아하지 않으세요? 더 이상 절 사랑하지 않느냔 말예요?" "당신을 사랑해." 마놀리오스가 재빨리 대답했다. "언제 우린 결혼할 건가요?" 마놀리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그의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왜 아무런 말씀도 않는 거지요? 주인님께서 모든 것을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당신이 오지 않는 편이 더 낫겠어." 마놀리오스가 일어서며 말했다. "어쩜 제가 먼저 당신의 떠남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레니오가 얼굴이 상기되어 말했다. "당신은 아직까지 제 남편이 아녜요. 난 아직 자유롭다구요." 그녀는 일어서서 그의 앞에 섰다. 팔을 뻗치며 그에게 다그쳤다. "가지 말아요." 마놀리오스는 벽에 몸을 기대며 기다렸다. 레니오는 그를 응시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미움과 사랑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제 어머니는 하녀였어요." 하고 레니오는 목멘 소리로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의 어머니는 하녀였지만 아버지는 귀족이라구요. 전 그 누구에게도 추근거리지 않겠어요. 전 젊다구요. 그리구 결혼 지참금도 있어요. 전 당신보다 더 훌륭한 남자를 얻겠어요." 마놀리오스는 조각한 나무로 가슴을 너무 세게 눌렀기 때문에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마음대로 해, 레니오." 하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터질 듯이 마구 뛰었다. 이런 무심한 말을 뱉어 놓고 그는 이내 후회했다. 그는 용기를 잃고 있었다. "레니오." 그는 눈을 지긋이 내리깔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도록 며칠 동안 만나지 맙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오." "당신,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군요. 누구죠? 그걸 말해 주신다면 전 가겠어요." "아니오. 아니오, 레니오, 맹세코 아니오!" "좋아요. 당신이 결정하게 되면 제게 알려 주세요. 기다리겠어요... 저는 당신을 평생토록 사랑할 수도 있고 또한 미워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결정하기에 달린 거에요. 선택하라구요!" 그녀는 늙은 여인 쪽으로 돌아섰다. "만달레니아 할멈, 돌아가요." 그들은 출발했다. 레니오는 몹시 화가 난 몸짓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내면에는 그녀 아버지의 강한 자존심의 피가 들끓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의자에 앉으며 그가 손에 쥐었던 통나무를 응시했다. 나무를 조각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열정은 식어져 버렸고 그가 생각했던 성자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렸다. 그는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마치 꺼지지 않도록 재로 불씨를 덮는 것처럼 헝겊으로 나무 조각을 쌌다. 그는 이제 혼자 남아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답답했다. 지팡이를 움켜잡고 니콜리오와 양들을 만나러 자리를 떴다. 태양은 산 위에 수직으로 폭염을 내리쏟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그림자들조차도 무서워하는 시늉으로 나무의 발목을 잡고 모여 있었다. 새들은 그들의 둥우리 안에 소리를 죽이고 웅크리고 앉아 공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니콜리오는 갑자기 솟구치는 힘을 느꼈다. 그는 이 흘러 넘치는 정력을 발산할 상대자나 사물들을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싸움을 걸 사람도 없었고 풀밭에는 등에다 대고 욕이라도 퍼부을 여자마저 없었다. 더위 때문에 얼이 빠진 양들이 털가시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었다. 그들을 공격한다면 수치스러운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 긴 나선형의 뿔과 두꺼운 기름기 있는 털과 목에는 큰 종을 단, 양들의 우두머리격인 수양 다소스가 있었다. 흐릿한 눈으로 그늘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양들을 보고는 '매애'하고 만족하는 울음 소리를 내면서 무겁고 신중한 발걸음과, 군주의 거만한 모습을 흉내내며 걸어갔다. 수양의 냄새가 공기를 갈랐다. 니콜리오는 갑자기 그 수양에게 몸을 던져 그놈의 뿔과 등과 배를 막대기로 사납게 때렸다. 무감각한 수양은 오만스럽게 돌아섰다. 녀석의 눈에 자신의 적은 뿔도 없고 양모도 없으며 단지 걸을 수 있는 네 다리만을 가진 풋나기처럼 보였다. 슬쩍 뿔로만 받아도 그는 나뒹굴어 떨어지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그놈은 양들 사이를 가볍게 산보나 게속했다. 니콜리오는 그놈의 뒤를 쫓아가서 녀석의 뿔을 잡고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다소스는 화가 치밀어 머리를 흔들어 버렸고 그와 함께 목동을 내동댕이쳐 버렸다. "이놈의 자식, 어디 본때를 보여 주겠어." 하고 일어나면서 목동이 소리쳤다. 팔꿈치에서는 피가 났다. 그는 어깨 사이의 목을 둥글게 구부리고 머리를 낮추며 머리로 응수하려 돌진했다. 디소스는 역시 정면으로 달려왔다. 박치기를 한 후 니콜리오는 얼마 동안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머리가 빙빙 돌았고 산천초목도 역시 빙글빙글 돌았다. 가까스로 그는 겨우 몸의 중심을 잡고 일어서서 나무를 집어들고 몹시 화가 나서 수양에게 달려들어 그놈의 뿔을 부숴 버릴 듯이 내리쳤다. 그 순간, 마놀리오스가 나타났다. 그는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어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어이, 니콜리오. 수양과 싸우고 있었군. 이리 와!" 욕설을 퍼부으며 니콜리오가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섰다. 어린 목동은 분노를 견딜 수 없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따금씩 분을 풀양으로 휘파람을 불다가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다소스는 승리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그에게 굴욕감을 안겨 준 결과가 되었다. 마놀리오스의 눈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였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그가 나무에 조각하려고 애썼던 성체를 다시 한 번 가슴 속에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의 활홀감!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고 잠시나마 어지러운 세상 일들을 떠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늘과 땅 사이에는 그와 한 조각의 나무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갑자기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말했다. "어이, 니콜리오. 허리춤에서 피리를 꺼내 노래를 좀 들려주렴.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지금 내 정신이 아냐. 피리를 좀 불어줘. 그러면 약간은 마음이 위로될 것 같군." 어린 목동은 웃었다. "나 역시 같은 심정이에요, 마놀리오스." 하고 목동이 대꾸했다. "나 역시 정신이 몽롱하고 지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그렇지만 난 피리를 불어도 그것이 조금도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한다구요. 그래서 난 그놈의 수양과 싸웠던 거예요." "턱에 수염도 안 난 녀석이 정신이 몽롱할 일이 뭐냐?" "빌어먹을. 낸들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어요. 마놀리오스와 함께 있으면 괜찮은데 여기 혼자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슬퍼집니다." 하고 목동은 흥분하여 볼멘 소리를 했다. 그는 피리를 꺼내서 그의 청록색 물이 든 손가락을 피리의 구멍에 맞추었다. "너의 생각 속에 있는 선율을 들려줄 수 있겠니, 니콜리오?" "싫어요. 언젠가 들려드릴 날이 있겠죠." 그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산 기슭은 염소와 양떼들과 방울 소리로 온통 뒤덮였다. 산이 목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초원이 움직이고 있었고 동물의 물결들이 맴 하고 소리를 내면서 돌들을 뛰어넘어 모여들었다. 점차 그 물결도, 양들의 방울 소리도, 산도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침묵을 지킨 것이 아니라 활기차고 즐겁고 구애됨이 없는 웃음 속에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선율적인 바다와 조개들이 널려 있는 해변이 거기 펼쳐져 있었고 미소 띤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여인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여인들을 엄습한 파도들이 짓궂게 굴었다. 그리고 여인들은 바다와 하나가 되어 간지러움을 태우며 깔깔댔다. 마놀리오스는 구부리고 앉아 헐떡거리며 미친 사람의 웃음처럼 메아리치는 여인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점차 커졌다가는 다시 조용해지더니 끝내는 파도 소리와 섞여서 들려왔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고 그리고 카테리나가 벌거벗은 채로 바다에서부터 나왔다. "그만, 제발 그만해." 하고 마놀리오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니콜리오는 피리를 계속 불면서 고개만을 그에게로 돌렸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음악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리를 더욱더 세차게 입에다 밀착시켰다. "그만두지 못해." 마놀리오스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한참 좋은데 당신이 분위기를 깨어 버렸어요." 하고 니콜리오가 피리를 입에서 떼어 무릎에 올려놓으면서 투덜거렸다. 마놀리오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그러세요, 마놀리오스? 울고 계시잖아요?" 어린 양치기가 놀라서 외쳤다. "이리 오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그것은 단순히 피리소리였을 뿐예요.모든 것은 실제가 아니라구요. 그건 단지 바람이었어요." 마놀리오스는 몇 걸음 떼어 놓으려 했으나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가봐." 하고 마놀리오스가 중얼거렸다. 물 소리를 들었나요?" 목동이 웃으면서 물었다. "무슨 물?" "나는 피리를 불 때 목이 말라서 물을 생각했어요." 하고 말하면서 술병이 걸려 있는 털가시나무 밑으로 갔다. 마놀리오스는 술병에 염소를 조각해 준 일이 있었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는데. 가서 누워야겠어, 하고 마놀리오스는 생각했다. "양떼들을 잘 지켜라. 나는 치즈 만들러 돌아가겠다." "내가 이미 불을 지펴 놓았어요." 입술과 가슴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으며 니콜리오가 대답했다. "곧 갈 테니 우유 좀 데워 놓으세요." 니콜리오는 마놀리오스가 돌밭을 비틀거리며 걷는 것을 보고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프면 내가 치즈를 만들 테니 놔 두고 누워 있어요!" "왜 그러지?" "다리가 비틀거리고 얼굴이 창백해졌는걸요, 주인님." "가련한 사람." 니콜리오는 마놀리오스가 털가시나무 뒤로 비틀거리며 사라지는 것을 보고 동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먼발치에서 레니오가 오는 것을 보았어. 저주 받을 년. 그녀는 당신의 골수가 마를 때까지 빨아먹을 거야, 교활한 여자." 그는 돌 하나를 집어서 멀리 던졌다. "죽일 년들!"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약을 올리며 그 앞을 지나가는 다소스를 보았다. 그는 수양의 뿔을 잡고 양의 긴 머리가 그에게서 떨어지도록 굽히고 양의 머리와 잔등을 공격했다. 마놀리오스는 오두막에 도착하여 치즈를 만들기 위해 불을 다시 피웠다. 그러나 그는 힘이 없었다. 그는 다시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햇볕이 비치는 의자 위에 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태양은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니콜리오가 돌을 던지면서 동물들을 몰기 위해 지르는 고함 소리와 휘파람 소리와 가까워 오는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놀리오스의 상상력은 마을에 몰래 미끄러져 내려가서 집들과 카페와 광장을 살금살금 지나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사제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의 원로들이 누가 베드로의 역할을 할것인가, 누가 유다를, 누가 그리스도를 할 것인가 하는 배역들을 분담하는 광경을 보았다. 또한 얀나코스의 뼈 있는 조롱투의 말이 새삼 경종으로 울렸다. '너는 곧 예수님 역을 맡을 거야. 그리고 동시에 너는 결혼할 준비와 자기 자신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 있지... 이 사기꾼아!' 그는 거실로 올라가서 족장을 만나고 다시 아래 마당으로 내려가니 레니오가 마치 간청하는 것처럼 그의 가슴에 젖가슴을 의지하며 매달렸다. 그녀는 달콤하고 가요하는 어투로 말했다. "마놀리오스, 우린 언제 결혼할 건가요? 언제? 언제 말예요?" 그리고... 그는 산에서 할 일을 위해 마을을 떠날 때, 숨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멈췄다. 그의 가슴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미안해, 레니오, 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사악한 길을 걷고 있어. 그녀는 정녕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녀의 자태가 그의 기억 속에 그려졌다. 검은 머릿수건, 하얀 목, 호도나무 잎으로 닦아서 반들거리는 이... 그는 그녀의 절망의 호소를 다시 한 번 들었다. "가지 말아요. 가지 말라구요. 마놀리오스." 그녀는 마치 마놀리오스를 그녀 자신의 유일한 구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앗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꿈의 의미도 그에게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래, 그렇다. 그녀가 옳았어. 불쌍한 여인. 그는 혼자서라도 그녀를 구해 낼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꿈속에서 그녀에게 그것을 예고해 주었다. 마놀리오스는 손에 달을 잡고 그녀가 먹을 수 있도록 사과처럼 얇게 썰었다. 순간 그는 꿈이 간직한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는 치를 떨었다. 달은 깨끗한 빛이고 밤을 비춰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놀리오스가 그것을 레니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다. 죄인 막달라 마리아를 구해 낼 사람은 바로 그이다. 나는 그녀를 만나야만 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래, 빨리 만나야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의 죄에 더 깊이 빠질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는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는 좁은 오솔길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집 대문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고 쇠로 만든 방울을 단 아취형이었다. 그는 문 층계가 깨끗하게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돌층계를 밟고 지나간 적은 없지만 일요일에 어떻게 문이 열려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가 작은 안마당을 힐끗 보니 크고 깨끗이 씻긴 자갈들과 몇 개의 꽃병으로 길을 꾸미고 향기로운 배질이 담 밑으로 빙 돌아가면서 심어져 있었고 우물 곁에는 붉은 두 다발의 카네이션이 심겨져 있었다. 마놀리오스의 상상력은 산길을 따라 내려가 마을에 도착하여 좁은 오솔길을 지나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그녀를 만나야만 한다, 그녀를 만나야만 한다... 하고 그는 되풀이 해서 중얼거렸다. 그것은 나의 임무다. 그는 이상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가 그녀를 만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령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 그는 깨닫고 안심했다. 그가 그녀를 보고 싶은 욕망에 의해 밤낮으로 사로잡혔던 이유를 그는 이제서야 알았다. 그를 몰아세우던 것이 사탄이라고 믿었을 때는 자신이 수치스러웠고 또한 고민스러웠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이젠 더 이상 춥지가 않았고 무릎도 떨리지 않았다.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솥을 올려놓고 우유를 끓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감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라도 취하시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했다. 이때 그의 의지는 다시 꿈으로 변하여 과부의 침실을 침범했다. 주위가 온통 양떼들의 소리로 가득해졌다. 니콜리오가 돌아와서 양들을 우리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도 끝나, 태양조차 조용히 만족하면서 저녁을 먹으러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여보게 니콜리오!" 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문간에서 마놀리오스가 소리쳤다. "가서 우유를 좀 짜오고 식사 준비를 하렴. 배가 고프구나." 그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목 안이 꽉 조여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젠 그것이 확 풀리면서 식욕이 다시 일어났다. 니콜리오는 그를 보자 웃음을 터뜨렸다. "기운을 다시 되찾았군요.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난 지금 배가 고파. 도와 줄 테니, 자 어서 하자구." 그들은 구리 양동이를 들고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차례차례로 암양에게서 우유를 짰다. 암양들은 그들의 거북스러운 짐을 벗어 버리는 것이 기뻐서 얌전하게 있었다. 숙달된 손가락이 양들에게서 우유를 빠는 사랑스러운 입술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젖을 다 짠 후 손을 씻고 니콜리오는 음식들을 탁자 위에 늘어 놓았다. 그들은 각자 기도를 드리고 몹시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빵과 고기와 하얀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 니콜리오는 힘센 수양과 레니오의 불쾌감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다. 양의 우두머리와 토실토실한 여인이 그의 분노를 부채질하더니 이제는 한덩어리가 되었다. 그는 양의 등에 타거나 혹은 양 밑에 깔려 웃음짓는 레니오를 보았다. "제기랄... 빌어먹을..." 그는 투덜댔다. 돌 하나를 주워 공중에다 힘껏 던졌다. "이봐, 니콜리오, 뭘 중얼거리고 있는 거야?" 마놀리오스는 웃으며 말했다. "누구한테 돌을 던지지?" "악마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요." 어린 목동이 대답하면서 그도 또한 열적게 웃었다. "그래서 그에게 던지는 거예요." "악마를 본 적이 있니, 니콜리오?" "그럼요. 보았지요. 지금 막 환상으로요." "어떻게 생겼든?" "그건, 비밀이랍니다." 목동은 그의 벌건 얼굴을 물통 속에 처넣으며 내뱉듯이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식사를 다 마치고서 성호를 긋고 일어났다. "니콜리오." 그는 말했다. "나 오늘 저녁에 마을로 내려갈 것이야. 잘 있어!" "또 마을에요?" 니콜리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거기 내려가서 뭘 하려구요? 주인님! 당신도 당신 주위를 맴도는 악마를 갖구 있는 것 같군요." "그것은 악마가 아냐, 착한 니콜리오. 하늘이 우리를 지켜 주시지. 그건 바로 하나님이야." 그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거울 하나를 끄집어 내서 머리카락을 적시고는 빗질을 했다. 그는 그의 가장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주일날에나 입는 나들이 옷이었다. 그는 작은 거울과 빗, 손수건을 허리춤으로 쑥 집어 넣었다. 왜? 그가 무엇에 쓰려고 그것들을 휴대하는가? 그가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는 솔직하게 그것들을 다 꺼내서는 이유도 없이 허리춤에다가 감추었다. "내가 당신께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악마예요." 목동은 마놀리오스를 쏘아보며 화를 내면서 되풀이했다. "하나님이라니까, 하나님." 마놀리오스는 거듭 되뇌이면서 다시 한 번 성호를 긋고 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분명히 레니오를 만나러 가는 거야. 둘 다 악마에게나 붙잡히라구!" 니콜리오스는 중얼거리고서 구역질이 나는 듯 침을 캭 뱉었다. 5 악마와 그리스도의 가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듯, 허기에 지친 듯 밤새들이 울고 하늘에는 커다란 초저녁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도록 기다려야 한다. 마을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꼬불꼬불한 샛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마놀리오스는 되뇌었다. 그는 걸어가면서 미리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과부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먼저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녀가 나와서 문을 열고,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리라. 우리는 내실로 들어갈 것이고, 그녀는 출입문을 잠그리라... 그는 벌써 카네이션과 향기로운 배질의 물씬 풍기는 냄새, 그리고 아름다운 두상화가 있는 안뜰을 지나쳤다. - 그는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마놀리오스는 섬ㅉ해졌다. 잠시 발을 멈추고 숨을 내쉬었다. 거기 내실에는 침대가 있으리라... 이런 상상을 하면서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마음은 이것저것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왜 이 밤중에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산길을 내려와서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려 하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상기되어 냉정을 잃어버린 그를 보고는 깔깔대고 웃을 것이었다. 마놀리오스! 당신이었구료. 그래! 왜 왔는지 당신 자신도 모른단 말이죠. 당신도 꿈을 꾸신 것 아니에요? 마놀리오스! 꿈 속에서 악마가 당신을 찾아 쫓아오던가요? 아니면 동정녀 마리아가? 그렇잖음 둘 모두가? 아, 또 그 일, 환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군요, 마놀리오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서는 나에게 하나님과 낙원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는 마놀리오스! 슬며시 당신이나 나나,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새 우린 하나가 되어 침대 위에 함께 휘감겨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거란 말에요. 당신은 남자, 그렇잖아요? 나는 여자구. 그것이 신이 우리들 앞에 만들어 놓은 운명적인 일이지요. 우리가 서로 밀착되어 황홀경에 빠지고 팔과 다리를 벌려 한덩어리가 되는 것이... 전적으로 우리들 잘못일까요...? 마놀리오스는 피가 머리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생각하기조차 민망한 상상의 말들이 주착없이 그의 뇌리를 휘감았다. 그는 아주 명료하게, 그녀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에게 다가오면서 속삭이는 말 소리들을 들었다. 그는 벌써 유향과 정향으로 흥건한 그녀의 찐득한 숨소리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녀의 코르셋으로부터는 끈적한 땀 냄새와 육두구가 뒤섞인 살 냄새가 물씬 피어 올랐다. 갑자기 그는 현기증 같은 피곤을 느꼈다. 무릎이 휘청거려 돌부리에 아무렇게나 덜썩 주저앉았다. 그 안에서 -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 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누가 웃었는가? 나를 사로잡아 내 무릎을 포개고는 겹쳐넣은 그 무릎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그는 분명히 사실적으로 그런 말들과 그 과부의 조소를 들었던 것이며, 그의 콧구멍에는 아직도 그녀의 욕기 풍기는 향취가 묻어 있었다. "오, 하나님, 도와 주소서." 하늘을 향해 두 눈을 치뜨고 그는 부르짖었다. 그러나, 왠지 오늘 저녁 따라 하늘이 너무나 높아만 보였고, 인간으로부터는 동떨어진 너무나 머나먼 곳에 위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요가 가득하며 무심한 듯싶었고 자신에겐 친구도 원수도 아닌 듯이 보였다. 마놀리오스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지난날, 그는 가끔씩 겨울이면 양떼 주위에서, 눈으로 뒤덮인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란 불을 켠 채 용을 쓰는 늑대들의 눈빛을 의식하면서 죽은 듯이 괴괴한 밤을 지샌 일이 있었다. 그 과부에 대한 기억이 다시금 꿀과 같이 달콤하게 핏속을 흐르기 시작했다. 그 세계가 주는 오싹함과 적개심을 느끼게 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위안이었다. 그녀는 이제 말하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큰 침대 위에 기분이 상쾌해진 채로 누워 있다. 그리고는 즐겁고 신나는 호도에 (풀이: 애조 어린 울음 소리로 유명한 새) 처럼 흥얼거린다. 마놀리오스는 귀를 막았다. 머리가 윙윙거렸다. 목에 핏대가 불거져 올랐다. 그는 끓어오르는 피가 머리 끝까지 솟구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관자놀이가 마구 뛰기 시작했고 눈거풀이 무거워지면서 온 얼굴이 뜨끔거렸다. 마치 수많은 개미떼가 뺨이며 턱, 이마를 마구 물어뜯어 씹는 듯이.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손으로 얼굴을 만지다가 흠칫하여 일어섰다. "오, 하나님." 하고 외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금 뺨과 입술과 턱을 닦았다. 그곳이 거의 부어올라 있었다. 입술은 너무 부르퉁퉁해져서 움쩍할 수조차 없었다. 어쩐 일인가? 왜 이렇게 부어올랐담? 그는 온 얼굴에서 목 부위 까지에 절망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자문했다. 얼굴이 온통 빙퇴구 같았으나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지 두 눈만은 벌겋게 되더니 눈물을 쏟아 내었다. 봐야지,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밖에 없어! 하고 그는 조바심을 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거울을 꺼내, 선 채로 엉거주춤 나뭇가지 하나를 취해 거기 불을 붙이고는 자신의 몰골을 비쳐 보았다. 타오르는 불꽃가운데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비쳐본 그는 으악! 하고 소스라치며 놀랐다. 얼굴이 온통 부풀어올라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은 아주 작은 공이나 다름없었고 코는 부풀어오른 두 뺨 사이에서 지워져 버렸고 입은 단지 그 자체가 하나의 뻥 뚫린 구멍 그것이었다. 이건 애당초 사람의 몰골이 아닌 불쾌하게 귀기어린 짐승의 그것이었다. 아! 그것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나의 이상한 낯선 형상이 그의 관념 속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하나의 어떤 생각이 그의 마음을 번득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님! 이것이 문둥병일 수 있습니까? 그는 땅위에 푹 쓰러졌다. 자그마한 손거울을 다시 고쳐 잡고는 순간 엄습한 공포에 휩싸여 머리를 돌렸다. 이것이 사람인가? 아니야, 악마다. 그는 일어섰다. 지금 나는 갈 수 없다... 그녀가 나의 이런 꼴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겠는가? 끔찍스럽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는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듯이 단숨에 오던 산길을 기어올랐다. 양떼들이 기다리는 우리 가까이 이르러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는 니콜리오가 일어나서 불을 켜고 자신을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떨면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기다시피해서 들어갔다. 내일 아침이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사가 잘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조금 안정시켰다. 마놀리오스는 밀짚 요에 꿇어앉아서 성호를 그으며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 하나님, 당신의 뜻이라면 나를 죽여 주옵소서. 뭇 인간들이 나에게 수치와 굴욕을 주기 전에 당신께서 심판하소서... 당신께서는 왜 이러한 살껍질을 내 얼굴에 붙여 놓으셨습니까? 거두어 주옵소서, 나의 하나님, 이 추악함을 멀리 던져 버리소서. 내일 아침이면 내 얼굴을 그전처럼 깨끗하게 하셔서 사람의 얼굴을 주소서! 그는 자신의 소망의 믿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는 다소 위안을 얻었다. 그는 눈을 감고 비몽사몽간에 꿈같은 환영을 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 - 성처녀임에 틀림이 없는 - 이 그를 굽어보면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이내 얼굴이 점차 시원해지면서 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놀리오스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자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준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기억에 생생한, 조롱하는 기분나쁜 웃음 소리가 터지더니 검은 베일이 벗겨졌다. 마놀리오스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바로 그 과부였던 것이다. 맞은편에 누워 있던 니콜리오가 그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그는 엉겁결에 일어나 앉아서 벽 쪽으로 얼굴을 외면하고 있는, 목자로서 자신의 상전격인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바심을 치면서 비웃기 시작했다. "왜 돌아오셨지요, 마놀리오스? 벌써 볼일이 끝났나요?"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린채 거기만 신경을 썼다. 절망적이었다. 부은 상태는 하나도 가셔지지 않았다. 상처라면 그 속의 것을 쥐어짜 낼 수도 있으련만, 그의 손가락 끝에는 응어리진 끈적끈적한 액체가 이미 묻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틀렸어... 난 이제 틀렸다구... 그는 낭패감에 빠졌다. 이것은 문둥병임에 틀림없다! 날이 뿌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니콜리오는 양떼를 몰고 목초지로 나가기 위해 황급히 일어났다. 이 어린 목동은 마놀리오스가 돌아누워 있는 틈을 타서 빠져 나가려는 요량이었다. 한 줄기 햇빛이 창을 통해 찾아들더니 금세 오두막 안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놀리오스 이따가 저녁에 봐요." 하고 목동이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지난밤의 자신의 처지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는 체를 하면서 목동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니콜리오는 그를 보더니만 화들짝 놀라 문 밖으로 펄쩍 뛰어나갔다. "맙소사!" 그는 되돌아오면서 외쳤다. 마놀리오스의 얼굴에는 온통 더러운 오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름 투성이였다. 그는 무슨 말을 해서든지 어린 목동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단 한 마디도 내어뱉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목동을 안심시키기 위해 손만을 휘저었을 뿐이었다. 니콜리오는 여차하면 달아날 수 있도록 몸을 문 밖으로 엉거주춤 빼내어 놓은 채 뺨만을 문설주에 갖다 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마놀리오스의 얼굴에서 뗄 수가 없었으므로 잠시 뒤엔 애써 대담해지면서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하늘에 걸고 감히 말하건데, 그 모습이 분명히 당신인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놀리오스?" 그는 간신히 말했다. "내가 믿을 수 있게끔 가슴에 십자를 그으세요!" 마놀리오스는 성호를 그었다. 니콜리오는 재차 용기를 얻어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엇다. "가여워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는 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일 악마가 당신에게 달려들어 그런 얼굴을 만들어 놓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거예요! 단언하건데 그건 분명히 악마의 장난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었다구요." 마놀리오스는 머리를 가로 흔들면서 어린 친구가 놀라지 않게끔 벽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에게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저녁에 봐요." 니콜리오는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누가 바짝 쫓기라도 하는 듯이 휭하니 달아났다. 혼자 남게 된 마놀리오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가 뿌듯한 것을 느꼈지만 아무 데도 뚜렷하게 아픈 곳은 없었다. 이상하게스리 더 이상 떨리지도 않았으며 야릇한 기쁨이 충만했다... 그는 조그마한 손거울을 다시 끄집어내어 창문 쪽으로 가서 얼굴을 비춰 보았다. 부은 살갗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응어리진 누런 액체가 흘러나와서 턱수염과 귀밑수염에 응고되어 있었다. 온 얼굴이 고기 덩어리같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그는 내심으로 뇌까렸다. 이 모습이 사탄의 저주로부터 되어진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게서 쫓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뜻대로 하옵소서. 당신께서 내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나는 압니다. 지금 나의 불행에는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당신의 은헤의 손을 나의 얼굴에 얹어 주실 때까지 견디며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이렇듯 자신의 믿음을 그의 시련과 연관시키자 마음의 평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불을 지폈다. 불 위에는 어제 저녁에 얹어 놓은 끓인 우유가 든 반합이 있었다. 허기를 느끼며 그것을 한 숟갈 떴다. 그러나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밀대롱을 그 속에 찔러 넣고는 기갈들린 사람처럼 마구빨아 내기 시작했다. 허기를 면하자 그는 밖으로 나가 돌벤치에 앉았다. 눈부신 태양빛에 잠을 깬 새들이 그 작은 목청으로 뭐라고 종알대는 듯했다. 마음은 산꼭대기 위로 올라가 산비탈과 평야를 휘감아 덮고는 마을 집집마다의 문을 연다. 그리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밤을 뜬 눈으로 지샌 후 아직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 과부를 본다. 그녀는 창백하다. 가만히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빠져들어간다. 뜰에서 꽃에 물을 주기에 여념이 없는, 마리오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목에 매달린다. 그는 온 마을의 여인들을 보러가서 같은 방법으로 은밀히 스며들어서는 서방이나 되는 듯이 그들을 애무한다. 그는 양 우리 앞 돌벤치에 아직 앉아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무언가 열렬히 환영하려는 자세로 양손을 우리 쪽으로 쭉 뻗쳤다. 지금 느끼는 이 환희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는 기이하게 생각했다. 이런 심적인 해방감 같은 구원은 대체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는걸. 그는 손수건으로 툭 불거지고 일그러진 얼굴을 문질렀다. 이해 할 수 없는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어. 손수건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그것을 양손으로 벌려 내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언젠가, 수도원에 있을 때 원장이 그에게 한 수도자에 관한 얘기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수도자 역시 피부가 갈라지고 일그러졌었다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수많은 벌레들이 기어나왔다는 것이었다. 기어나온 벌레들이 땅에 떨어지면 그는 몸을 굽혀 조심스레 그것을 잡아서는 다시 그 상처 속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벌레들에게 "벌레야, 먹어라, 살을 파먹으렴, 내 영혼이 빛나도록."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몇 년동안 마놀리오스는 그 자그마하고 징그러운 벌레이야기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위안이요 오히려 인내와 희망 중에 하나의 교훈이 되었다. 그는 일어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는 누덕누덕한 천으로 소중하게 감싼 나무 조각을 두 팔로 끄집어내고는 줄과 정을 잡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성스러운 영감이 떠올라 온 가슴이 충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것을 세밀히 관찰하여 모든 양태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헝겊을 끌려 내고는 벅찬 감정으로 그 성스러운 영상을 나무판에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몇 시간이 흘렀다. 태양은 중천에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땅 위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나무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 보였다. 고통스러운 듯하면서도 평온하고, 체념과 자상한 배려로 충만한 예수의 얼굴이 드러나보였다. 장시간 마놀리오스는 떨고 있는 예수의 입 부위를 조각하려 애썼지만 도저히 여의치가 않았다. 어떤 때는 그의 입은 웃고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구 파놓은 밭고랑같이 울고 있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고통을 나타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는 듯이 두 입술을 다물고 있는 듯도 하였다. 어슴푸레 저녁이 깔리자 니콜리오는 양떼를 몰고 돌아왔다. 그는, 여태 돌벤치에 앉아서 회양목 조각에 새겨진 에수의 완벽에 가까운 초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마놀리오스를 발견했다. 그 조각된 예수의 얼굴을 자기의 머리 위에 뒤집어쓰기 위해 머리의 안쪽을 파내는 일만이 남았다. 이것이 에수의 수난일에 그가 쓸 가면인 듯싶었다. 니콜리오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곧장 뒤로 물러섰다. 그가 마놀리오스인지 식별할 수가 없었다. 고름 덩어리가 얼굴과 수염에 달라붙어서 하나의 갑각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예수의 얼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악마와도 같았다. "당신이 도울 필요가 없어요. 제가 혼자서 젖을 짜지요." 니콜리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외쳤다. 마놀리오스는 고개를 쳐들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는 몹시 지쳐있었지만 영혼은 구원을 받은 그런 것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이 조각된 나무판을 꽉 쥐고는 그가 마음에 그린 대로의 이미지를 그런대로 충실히 표현한 것을 행복스럽게 여겼다. 그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공중에서의 그 아른거리는 모습, 그는 자신의 영혼을 나무에다 심어 놓은 것이었다. 마놀리오스는 천천히 두손으로 그 성스러운 얼굴의 균형을 잡고서 예수의 입에 경의를 표했다. 정면은 웃고 있었으며 오른쪽으로 돌려서 보면 울고 있는 듯했으며, 왼쪽으로 돌려 놓고 보면 체념과 당당함이 팽팽하게 결합된 상태를 보여 주었다... 마놀리오스는 눈을 감은 채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손가락 끝으로 그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정경은 마치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보듬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새겨진 나무 조각을 낡은 천으로 싸고는 잘 접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포대기로 싸서 팔에 안 듯이. 그러는 동안에 니콜리오는 젖 짜는 일을 끝마쳤다. 그는 마놀리오스쪽을 보지도 않고 곧장 오두막으로 돌아와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쯧쯧... 불쌍한 사람!" 그는 일면 은근히 기쁨을 느끼면서 혼자 생각에 빠졌다. "저런 얼굴을 해 가지고 어디 신랑감이 되겠나? 레니오가 그를 본다면 그녀는 기절초풍을 해서 달아나 버릴걸, 뭐!" 그는 문 앞 게단 위로 나갔다. "저녁 잡수러 오세요. 마놀리오스! 입을 벌릴 수 있을까요?" 마놀리오스는 일어섰다. 그는 점심도 걸렀기 때문에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접시에 우유를 가득 채우고 밀짚 빨대를 꽂고는 코로 들이키듯 훌쩍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우유를 가득 채웠다. 어두웠졌지만 그들은 램프에 불을 켜지 않았다. 마놀리오스의 흉한 얼굴이 어둠에 묻혀 버렸으나 니콜리오의 마음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밥을 다 먹자마자 장작불 가까이로 가 앉아서 막대기로 불무덤을 쿡쿡 쑤셨다. 그는 입가에 행복감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 살인과 절도와 그리고 추잡한 일을 한 뒤에 어떻게 수도사가 됐는지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었지요. 악령이 할아버지에게서 더욱 기승을 부릴 때 할아버지는 수도사로 돌변했다는 말을 언젠가 제게서 듣지 않으셨던가요? 하나님께서 용납하신 우리 할아버지는 가까이 있는 성 펜텔레이몬 수도원으로 가버렸지요. 당신도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수도사로 있었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던가요? 그 수도원 근처 위쪽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요. 그 마을에도 여인들이 많았대요... 그런 일이라면 어딘들 여자가 부족할라구요. 개같은 년들!" 어린 목동은 꼬챙이로 연신 불무덤을 쑤시면서 덧붙였다. "내 말 듣고 있나요?" 그는 고개를 돌려 불꽃에 달아오른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세심히 뜯어볼 양으로 물었다. 마놀리오스는 "그래 난 듣고 있어." 하는 암시가 담긴 머리짓을 했다. "그럼 계속 들어봐요. 내가 말했다시피 어느 날엔가 악마의 손길이 그의 등을 쓰다듬었던 거죠.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난 여자를 얻게 되었어. 여자를 알게 되었다구. 마을로 가서 찾아야겠어.충분히 갖고 말아야지! 처녀든 아니든, 늙었건 젊건 상관없어. 절름발이 곱추면 어때! 난 치마만 둘렀다면 상관없어!" 그래서 그는 다른 수도사들이 잠든 어느 저녁에, 아, 가련한 그는 무모하게도 수도원 담을 뛰어넘었지요. 그는 그짓을 은밀히 기대했던 거죠. 마놀리오스, 당신도 알고 있죠? 두어 시간도 채 못 돼서 슬쩍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리고 또 달렸대요. 마치 발정기의 암양을 찾아내려 울부짖는 몸살난 수양처럼... 그러나 하나님께서만은 그를 내려다보시며 가엾게 여기셨지요. 그래서, 야생마가 되어 마을로 달려가던 바로 그 순간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몹쓸 병을 내리셨던 겁니다. 그 문둥병 말이예요 - 당신도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그의 몸에는 개암 열매만한 종기가 온통 뒤덮였지요 - 내가 뭐라고 말했나요? 호두, 아니면 썩은 살구 같다구 했던가요... 그리고는 종기들이 터져서 진물이 뚝뚝 떨어지고, 게다가 고약한 냄새는 어쩌구요? 그래서 불쌍한 그 노인은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실것이라는 경외심 하나만을 갖게 되었대요. '지금 난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여잔들 나의 이런 꼴을 거들떠나보겠는가? 차라리 돌아가자...' 이렇게 그는 가신을 타일렀대요. 마놀리오스는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는 "어서 계속해." 하는 몸짓을 하면서 손으로 무릎을 가볍게 쳤다. "가련한 노친네의 이야기들을!" 니콜리오는 웃으며 말했다. "그 얘기를 내게 해주신 분은 가련한 우리 어머니였죠. 지금도 그 일을 잘 말씀하실 수 있을 텐데! 어머니조차도 그 이야기 끝에는 웃고 말았지요. 당신은 그 무뢰한을 상상할 수 있겠죠 - 수도사들이란 정말! 그는 수도원으로 되돌아와 다시 담을 뛰어넘어 자기 방으로 몰래 숨어들었지요... 다음날 아침 다른 수도사들이 물집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은 물론이지요. 마놀리오스는 다시금 목동을 재촉했다.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나? 그것이 궁금하다 그런 뜻이죠? 그 일이 어떻게 됐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그땐 내가 어렸으니까 그 얘기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구요... 그 불쌍한 어르신네가 짐을 싸서 어디론가 나가 버리신 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요. 분명한 것은 여자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분에게 다시는 없었다구요." 이렇게 말하고는 목동은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졸리는데요." 그는 말했다. "뜰에 나가 눕겠어요. 더워 죽겠어요." 결코 덥지 않았는데도, 그는 마놀리오스와 함께 이 오두막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일어섰다. "이부자리를 봐 두었으니 주무세요. 내일은 좀더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목동은 이불을 들고 나가 뜰에다가 폈다. 돌 하나를 주워 베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레니오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욕정이 타올랐으나 피곤했으므로 이내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마놀리오스는 재차 장작 더미를 불 위에 던졌다. 그는 무섭게도 어둠의 권세 속에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는 너울너울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열려진 문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는 밤의 속삭임을 들었다. 올빼미가 구슬피 울었고, 조그마한 동물들이 대지의 여기저기서 굴을 파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지붕의 석가래 위에서 쥐들이 찍찍거리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도 자신만이 들을 수 있을 자그마한 소리를 내어 보았다. 오직 적막 그 자체만이 가득 흐르고 있는 한밤중에 그는 홀로 그것을 지키고 앉아서. 이윽고 문 밖으로 나가서는 별들을 쳐다보았다. 은하수가 천연스레 흐르고 있었고 목성이 반짝거렸다. 보석을 박은 듯한 밤하늘이 아득히 먼 곳에서 빛을 토하고 있었다. 문득 목동의 말이 되살아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스도여, 이것이 기적이란 것입니까? 그 늙은 수도사처럼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려던 찰나, 바로 그 순간에 손을 내미신 분은 당신이었던가요?" 걷잡을 수 없는 감정도 두려움도 없이 그는 손을 얼굴에 가져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풀어오른 뺨과 갈라 터진 살갗을 어루만졌다. 누가 아는가?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고통을 달래며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구원의 빛을 진 것은 당신에게이리라... 그는 흡족한 마음을 안고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장작불에서부터 훈훈한 열기가 와 닿았다. 자고 싶었다. 때때로 그의 영혼이 어둠 속에서 다툴 때면 꿈이 그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오늘 밤에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 자비롭게 찾아오실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고는 이내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모닥불은 제풀에 사위어졌으며 그 긴 밤도 지났다. 아침의 냉기에 얼얼해진 마놀리오스가 눈을 떴을 때, 마침 수탉이 키드득 홰를 치며 밝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무런 꿈도 꾼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평온하였다. 그는 성호를 그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또 다른 상처가 재발이라도 하라는 듯이 말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애써 분명히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그는 가볍게 일어나 뜰에 있는 자신의 벤치로 가서 앉았다. 밝고도 붉은 태양이 지평선에 걸려 타올랐다. 그는 자신의 풍요한 영토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난 밤 그가 내버려둔 그대로였다. 광활한 평원과 푸르른 성모 마리아 산, 사라키나의 험준한 벼랑들, 거울같이 둥들게 빛나는 보이토마타의 호수와 화가 치민 듯이 사람들을 부르기에 바쁜 골목들이 있는 특히 사랑스러운 리코브리시 마을하며 모든 것은 한결같았다. 마놀리오스의 얼굴에는 따끈한 진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오, 영광의 주여." 마놀리오스는 그이 손수건으로 갈라 터진 얼굴을 닦아 내며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마놀리오스는 가금씩 조각한 나무 가면을 가지고 산 위에 올라가 그것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내면의 표정을 익히기에 힘썼다. 때로는 하나님과 악마를 상대로, 어떤 때는 레니오와 과부를 상대로. 그 무렵, 험준한 사라키나 산 위에서는 포티스 사제가 차근차근 무언가를 설치해 가고 있었다. 사제는 모든 무리들에게 그 역사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거기, 더러는 성긴 돌밭 가운데 남겨진 몇 조각 땅을 일구어 무언가 씨를 뿌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무엇을 꿰맞춰 짓기도 하였으며, 몇 사람들은 사냥을 나가서 가축용으로 야생토끼라든가 목도리뇌새 따위를 생포해 오기도 하였다. 그는 얀나코스의 금덩어리 세 개와 과부의 암양을 포함해서 세 마리의 양을 더 얻어 오기도 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우유가 배급되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성 게오르그의 낡은 성화상을 가지고 마을과 수도원들을 순회할 것도 계획했다. 그는 되새기곤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인이요. 게다가 기독교도요. 우리는 결코 파멸하지 않을 종족이며 절대로 사라질 수 없습니다." 아랫 마을 리코브리시에서는 선장 포르투나스가 여전히 병으로 침대를 떠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었다. 머리의 상처가 낫기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아그하는 그의 경호원을 통해 자주 효험있는 고약을 보내면서 성의를 베풀었다. 그러면서 신나는 큰 술찬지를 벌리도록 어서 서둘러서 완쾌하라는 전갈을 보내기도 하였다. 마을 원로들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았다. 선장은 기침이 심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으며 경련을 계속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침대에서 기를 쓰고 일어나 돼지처럼 먹어야 했으며, 그러고는 또 앓다가 다시 술을 마시곤 했다. 그는 카테리나에게 계속 사람을 보냈다. 와서 안마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코웃음치면서 자기도 아파서 안마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외동딸 마리오리에 대해 적잖게 걱정하고 있었다. 날마다 그는 양초처럼 녹아드는 딸을 보아야만 했다. 그는 딸년이 하루라도 빨리 손자를 낳아 주도록 미켈리스에게 보내지 못해 안달을 했다. 그것이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열렬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늙은 그리고리스 사제는 죽음의 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석고먹성이, 파나요타로스 역시 의기소침해 있었다. 사흘 밤을 그 과부가 문을 따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더 이상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눈꼬리를 다른 곳에다 두고 알랑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순간이라도 그녀는 교회로 도망치고 싶지 않을 때가 없었으며 - 이 성스러운 막달라 마리아가 - 그리고는 촛불을 밝히고 싶었다. 파나요타로스는 그녀를 잊어버리기 위해 술을 마셨다. 매일 저녁 그는 술통이 되어 집에 돌아갔으며, 마누라와 두 딸년을 죽어라 두들겨 패고는 마당에다 큰 댓자로 쓰러져 이내 코를 골아 대는 것이었다. 마을 개구장이들은 술 취한 그와 마주칠라치면 발을 밟으면서 "유다! 가롯 유다!" 하고 그를 괴롭혔다. 그는 꼬마들을 잡아족치려 달려들지만 번번히 비틀거리다가 벌렁 자빠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매일 아침 라다스 영감은 마누라를 앞에 앉혀 놓고는 양말 짜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도시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그가 지껄이는 것조차 듣지 않았다. "그녀석 아주 태평이군 그래. 페넬로페, 그놈의 얀나코스 말이야. 천하에 태평이야. 빌어먹을! 3파운드에 대한 영수증이 아직도 안 되었나? 귀고리 몇 개라도 들고 나타나야 하질 않겠나. 페넬로페, 당신 뭘 생각하고 있는 거요 ? 보석 한 개도 없는 아주 형편없는 여자 보게나? 아니, 아냐. 그렇잖다구!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도 알게 되겠지만 얀나코스가 곧 보석을 가지고 나타날거야. 여보, 너무 상심 말아요" 라다스 영감 귀에는 딸랑거리는 얀나코스의 당나귀 방울 소리만이 게속 들려왔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당나귀 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만 생각되어었다. 그는 맨발로 뛰어나가 문을 열고는 거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살펴보곤 하였으나 얀나코스가 돌아오는 기미는 없었다. 얀나코스는 마을을 돌아 다니는 일을 거의 끝마치고 있었다. 그는 빗 등속과 무명 두루마리 뭉치들과, 주머니에 넣을 만한 거울들, 그리고 성자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속세의 콩과 털옷, 그리고 닭고기 따위를 팔고 다녔다. 그는 자기 사업으로 다니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침으로 저울을 정확히 달고 정직하게 눈금을 매길 만큼이나 달라져 있었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구원을 받나요?" 라는 질문을 받은 어느 모슬렘 성자는 "바로 어느 때인고 하니 사고 팔고 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의 영혼은 비옥해 지는 거지요." 라고 대답했듯이 얀나코스의 영혼 또한 그가 물건을 팔고 사고 하는 그 순간의 비옥함을 맛보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나이가 아버지뻘 되는 라다스를 생각하고는 자신이 그의 집에 들르면 터져나올 라다스의 고함 소리와 욕지거리를 상상했다. 그는 또한 코스탄티스를 괴롭히는 바가지장이인 자기의 누이를 기억하기도 했다. 때로는 지금쯤 산으로 돌아가서는 마치 토끼와 사냥개의 관계처럼 예수역을 맡느냐 아니면 레니오를 취하느냐 하는 커다란 고민을 하고 있을 마놀리오스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단지 잠시 스쳐가는 단상들일 뿐이었다. 얀나코스의 모든 관심은 메마르고 황량한 산 위에 있을 포티스 사제에게 있었다. 온통 강팍한 돌들로 가득 찬 그 영혼 위에 있을 포티스 사제를. 카론조차도 그 영혼을 돌에서 떼어 낼 수 없었던 그 곳의. 마을 맨 끝에 카페가 있는 어느 마을에 도착한 그는 카페 주인인 치로기오르기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일면 코넬로스로도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얀나코스를 반갑게 맞으면서 짐을 부리는 일과 당나귀 매는 일을 도와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를 즐겁게 해줄 양으로 잡담을 나누기 위해 서둘렀다. 그러는 동안 온 마을 사람들이 보부상인 얀나코스를 주욱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의 새로운 소식들을 가져온 것이다. 그는 누구든 무엇을 물어 보고 누구는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여인숙 주인이 외쳤다. "여러분들, 이 사람은 내일 아침에 떠나는데 그때 물어 보시오. 커피 주문하는 것도 잊지말고."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를 겹겹이 에워싸고는 궁금증을 풀기에 바빴다 - 힘 센 나라들, 볼세비키, 전쟁, 지진 등등... 그들은 말 소리를 죽이며 몸서리를 쳤다. "얀나코스, 불꽃처럼 꺼져 버린 그리스 군대에 대해 뭐 아는 것 없나? 우리의 에브존(풀이: 엄선된 그리스 보병단)이 일어난 저기 저쪽 그리스 땅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무슨 학살이라든가 화재, 그리구 무슨 재난 같은 것이라두? 이곳, 당신네 리코브리시 마을을 중심으로 인근 몇몇 마을은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우린 도대체 감감 무소식이라우. 그들의 비참한 소리가 직접 우리들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얀나코스 당신은 들었을 게 아닌가. 그 중 몇 개라도 간추려서 대충 들려주게나. 궁금해서 죽을 지경일세." 얀나코스 역시 움찔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포티스 사제와 그의 마을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터어키 군대가 앙갚음으로 불을 질렀던 그마을을. 풍지박산 흩어진 마을 사람들... 스미르나에서부터 아피우루 - 하라 - 니자르까지 와 그 너머에 있던 전 그리스 마을은 페허가 되어 화염을 내뿜고 있었으며, 살륙당하는 그리스인들. 그리스는 곤경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얀나코스는 주민들에게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굳이 그들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답했다. "여러분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가 이미 걸어온 수천 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불과 몇몇 마을만이 불타고 있을 뿐이오. 즉 얼마간의 사람들이 죽어 갈 것이지만 에브존이 되돌아와서 다시금 마을을 재건할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자손들을 다시 한 번 아나토리아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그곳 고토로 보낼 것이오. 자, 모두들 한잔 합시다. 제가 한턱 내겠소." "하나님의 은총을, 얀나코스." 하고, 지팡이로 턱을 의지하고 구석에 앉아서 입을 헤 벌린채 보부상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던 한 노인이 소리쳤다. "그대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얀나코스! 자네가 우리 마을에 들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으로 쓸쓸할 걸세. 자넨 온세상 소식을 가져오기 때문에 항상 환영받는다네." 알리 아그하 솔라짜데스가 카페에 들어온 것은 이미 왁자지껄한 소란이 한풀 가신 뒤였다. 그는 이 마을의 통치자로서 그가 세운 모든 집들의 열쇠 꾸러미를 허리춤에 항상 차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코넬로스의 카페도 기실은 그의 소유였다. 그는 잘 알려진 여행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 보부상과 얘기하기 위해서 붉은 슬리퍼에다 터어키제의 긴 담뱃대를 들고서 늦게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적잖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 아마도 이 지독한 그리스인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었다. 얀나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자신의 가슴과 입술, 그리고 이마에 갖다 대면서 아그하에게 정중한 격식을 갖춘 인사를 드렸다. 그는 얀나코스의 가장 훌륭한 고객인 터였다. 그는 많은 첩을 거느리고 있었고 아내와 딸들과 손자 아이들은 향료라든가 입술연지, 향수, 사탕 같은 것을 매우 좋아했다. 얀나코스는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커피를 주문했다. "이 사람아, 자네가 미더워서 하는 얘길세마는,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는데..."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보시지요, 아그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여보게, 정확히 어디를 스위스라고들 하는가?" 얀나코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스위스에 대해서는 듣긴 들었지만 오래 전 일이어서 기억이 어렴풋 했다. "그건, 왜 그러시죠?" 하고 기억을 되살릴 시간을 벌기 위해 되물었다. "내 아들 녀석, 초우세이니스가 의사를 되기 위해 스위스에 가서 공부하고 있다네. 헌데, 걔가 쓸 쌀과 시금치 단지와 수연관에 땔 목탄통을 보내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가 스위슨지 알아야 어떻게 하지." 알리 아그하가 말하는 동안 얀나코스의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곳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스위스는 저 끝 쪽에 있는 나라지요. 그곳에서는 우유와 시계를 만들지요." "그곳에서는 의사도 많던가?" 알리 아그하는 불안스레 물었다. "물론 의사들도 있지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지요. 카론이 그들을 보았을 때 말이지요 - 아그하여, 제가 이 얘기를 끄집어내면 좌중이 온통 놀랄 텐데요? - 글쎄, 그는 바지에 오줌을 쌌다지 뭐예요." "좋았어, 이 착한 친구! 자넨 역시 인정미가 있다구. 헌데 아들놈을 위해 쓸 것을 반입할 수 있을까? "예, 말씀드리자면 목탄은 그 나라로 들여보낼 수 없지만 쌀과 시금치는 가능합니다.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얀나코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획이 짜져 있었다. 그는 초우세이니스가 먹을 쌀과 시금치를 가지고 사라키나로 가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얼마간 나누어 주려고 생각했다. "내 곧장 가서 그걸 가져옴세." 하고 늙은이는 일어섰다. 그는 카페 문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얀나코스에게러 왔다. "그런데 그것을 스위스까지 보내는 데 얼마나 들지?" "그건 제게 맡기세요." 얀나코스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알리 아그하께는 잘 해드리지요. "그런 일에 매달려 먹고 산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일세." 알리 아그하가 나가자마자 카페 주인이 외쳐댔다. "하나님이 용납하시겠지, 이 충직한 친구야." 얀나코스가 응수했다. 그리고는 모여든 농부들을 향하여 말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행을 했더니 피곤해서 좀 자고 싶습니다. 물어 보실 것이 있으면 내일루 합시다. 주문서라든가 편지들도 함께 주세요. 내일 트럼펫 소리가 들리면 부인들과 따님들도 불러서 함께 물건을 사도록 해주세요. 그럼, 안녕히들 주무십시오." 그는 벽에 기댄 채 두 다리를 쭉 뻗고는 잠이 들었다. 정오 무렵이 되었다. 얀나코스는 여러 마을을 돌면서 자신의 일을 끝낸후 리코브리시를 향하고 있었다. 당나귀도 긴 여정을 끝내는 것이 기쁜 듯 가볍게 걸음을 재촉했다. 그놈 역시 이미 자신의 안온한 마굿간과 튼튼한 대가 달린 사료 선반, 깨끗한 물이 가득 찬 구유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의 가슴도 마치 사람의 그것처럼 두근두근 설렐 터이었다. 벌써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듯이 울어 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당나귀 주인은 그놈을 꽉 붙잡고는 넘어뜨렸다. "너무 서두르지 마, 유소우화키. 산으로 길을 돌리자. 우린 먼저 마놀리오스를 만나야 한다구." 지금가지 얀나코스는 녀석을 심하게 다뤘었다. 쌍소리를 퍼부었고 좋지 않게 행동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잘못을 애써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옳았던가. 하지만 아직도... 마놀리오스, 그는 깃털 하나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 그런 민감한 청년이야. 지금 생각하니 내가 바보였어. 몽둥이를 들고 그에게 갔으니! 그는 차례로 그리고리스 사제와 라다스 영감, 마켈리스, 그리고 과부들을 그의 마음속에서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온 마을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끝내는 마놀리오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었군.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어...'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우리 넷 모두가 이런 처지에 있는 줄을 난 일 년 내내 잊고 있었군. 그대들은 머릿속에 그리며 말하리라. 돈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상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농짓거리에 스스로 피식 웃고는 이내 생각에 빠졌다. 그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제기랄! 물건과 미덕은 역시 같은 것이 아닌가? 구애될 필요가 뭐람. 어떤 경우엔 하나님과 악마가 같은 것인지도 몰라. 하나님, 이 불경한 생각을 용서하소서! 그는 당나귀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등뒤를 돌아다보았다. 마을에서부터 쭉 당나귀를 타고 그의 뒤를 따라온 사람은 바로 크리스토피스라는 영감이었다. 그는 늙었지만 건강하고 유머도 풍부했다. 그는 세 번이나 결혼해서 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하도 많아서 자신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중 몇은 죽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이제 그는 자유로운 몸이되어 여흥이나 즐기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형편이었다. 얀나코스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크리스토피스 영감님."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제 부탁 좀 들어 주시겠소? 좋은 일 하나 하고 싶지 않으세요?"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나. 한 번 생각해 볼 테니. 난 착한 일 하는데는 신물이 난다니까, 얀나코스." "사라키나에 잠깐 들러 주시면 좋겠는데요 -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버릇 남 주실 수 있나요? - 그리구 이 단지를 포티스 사제에게 전해 주십시오. 누가 주더냐고 묻거든 '어느 죄인' 이라고 전해 주시구요. 그것뿐입니다." "이 안엔 무엇이 있나? 얀나코스. 무거운데?" 영감이 당나귀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쌀과 시금치요." 그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크리스토피스영감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님의 은총을 비네, 얀나코스. 만약 하나님께서 자네 같은 사람만 만드셨다면 이 세상엔 굶주리는 아이들이나 절망에 빠진 과부들은 더 이상 없을 텐데. 내 곧 떠나지." "그렇게 급할 것은 없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제가 대엿새 동안은 없을 테니까요. 마을에 뭐 새로운 소식은 없나요? 라다스 영감은 아직 살아 있습니까?" "그 구두쇠는 죽음을 모면하려 하고 있지. 그렇게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런다 해도 결국은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말 걸세. 헌데, 지독한 포르투나스 선장은 형편이 더 나빠져 있다네." "라키 값이 더 떨어지겠군요." 얀나코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발장이들은 파산할걸?" 크리스토피스 영감이 응수했다. "음... 그리구 기름이 번지르르한 그리고리스 사제는요?" "귀신은 도대체 뭘 잡아먹고 사는건지. 그는 건재하게 잘 지낸다네. 그는 불임증의 여인네들을 위해 새로운 약을 만들었는데 소시지 처럼 길다네. 엘(풀이: 옛날 척도의 한 단위로 45인치 정도) 단위로 잘라서 팔지. 한 엘만 먹으면 다 늙은 암소도 새끼를 낳을 걸세"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크리스토피스 영감님, 오래 사십시오. 당신이 죽으면 그 웃음 소리도 사라질 거요. 잘 다녀오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 소시지 수백 엘을 사가지고 이 마을을 온통 처녀 총각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요." "얀나코스, 자네도 먼 여정을 무사히 다녀오게나. 그리구 자네 하는 일에 행운을 빈다구!" 그들은 헤어졌다. 그리고 난 후에도 잠시 종이 울리는 소리처럼 크리스토피스 영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기꾼같으니! 하나님께서 천 년 전에 그 소시지를 우연히 찾아내시어 아담에게 주셨지!"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웃음 소리가 비탈길을 넘어가면서 되울려 퍼졌다. 우뚝 서 있던 마놀리오스는 당나귀 고삐를 끌어당기면서 자신을 향해 올라오는 얀나코스를 바라보았다. 배에 잔뜩 힘을 주면서 그는 말했다. "마놀리오스, 지금 순교를 하려 하는가? 꾹 참고 있게나!" 그 순간 그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어두운 구석에 앉을 것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밝은 빛 아래 드러내 보이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날 아침에도 또다시 그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었다. 그러면서 그는 중얼거렸었다. "영락없이 악마로군. 악마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추한 몰골일 수 있담!" 겨우 입 주위의 부위가 좀 덜해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말을 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얀나코스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비탈길을 거의 다 올라와 있었다. 그는 마놀리오스를 봄으로써 평온을 얻으려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큰 코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구원되어야만 할 것이었다. 마놀리오스는 뛰는 가슴을 짓누르면서 오후 느즈막이 기우는 황혼 빛을 받고 서서 얀나코스를 기다렸다. 그는 고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팽팽하게 다물고 있는 예수의 입술을 생각했다. 그도 또한 가능한한 팽팽하게 입술을 다물고자 애썼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곧 익숙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차차 잘 되겠지... 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얀나코스의 노랫가락이 점점 분명해졌다. 갑자기 - 승리의 기쁨이듯 트럼펫이 울려 퍼졌다. 얀나코스가 바위 위에 올라 잠시 멈춰 서서 친구를 향해 자신의 방문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트럼펫을 불고 있었던 것이다. 마놀리오스는 생각했다. 그가 시야에 나타나고 있구나. 나의 몰골을 보겠지. 아 그러나 꾹 참자! "어이, 여봐,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상기어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자네 어디 있나?" "나, 여기 있소." 마놀리오스는 될 수 있는 대로 당당하게 대답하면서 앞을 향하여 걸어갔다. 얀나코스는 머리를 쳐들고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순간 그를 보자마자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을 딱 벌린 채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워 눈을 비비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어찌된 일인가?" 그는 마놀리오스를 껴안으려 했으나 두려워 떨면서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얀나코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견디기 어렵다면 돌아가세요." 마놀리오스는 자신의 얼굴을 얀나코스가 더 이상 보지 못하도록 우리로 들어갔다. 얀나코스는 당나귀를 너도밤나무 덤불에 매어 놓고는 친구를 쫓아 들어갔다. 마놀리오스는 그가 가까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듭 외쳤다. "얀나코스, 힘겨우시겠지요, 이 상황이. 돌아가줘요." "난 참을 수 있네. 참을 수 있어..."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난 괜찮아. 돌아가지 않겠네." 마놀리오스는 문지방을 넘어 오두막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닫고 어둠 속에 구석진 곳을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견뎠어. 하나님께 감사해! 얀나코스가 뒤따라 들어와서는 내실의 계단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는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아 내었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마놀리오스, 자네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참만에 얀나코스가 시선을 땅에 꽂은 채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얀나코스가 외쳤다. "악마가 찾아와서 자네의 얼굴에 뿌리를 내렸었나? 마놀리오스, 악마가 말일세. 그 모습은 분명 자네가 아니지?" "아뇨, 이것이 나요." 마놀리오스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삶은 순결한 얼굴을 가질 만큼 그렇게 진실했던 적이 결코 없었소."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삶 속에서! 지난 생애를 통해서 말이오!" 그는 손수건으로 진물이 흐르는 얼굴을 닦으며 되풀이해서 외쳤다. "자네의 몸 속에 악마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걸세!" 얀나코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공포와 싸우면서 다시 외쳐 댔다. "난 지금 자네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군. 일어나서 당나귀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세." "마을로? 거긴 왜요? 난 여기가 족하오." "자네가 그리고리스 사제를 가서 뵙는다면, 그는 악마를 추방하기 위해 미사를 드려줄 것일세." "아니오, 천만에요. 얀나코스,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오." "마놀리오스, 나는 사제님께만은 말하겠네.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부끄럽다면 그가 이리로 와서 여기서 미사를 올리도록 하겠네." "안 돼요! 안 된다구요!" 마놀리오스는 화를 내면서 펄쩍 뛰었다. "내가 이처럼 얼굴에 병을 얻었는데. 얀나코스, 병을 얻게 되었다구요."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이번에는 얀나코스가 펄쩍 뛰며 외쳤다.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구원을 위해서지요, 얀나코스. 이렇게 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오.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나조차도 이 일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비밀인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요" 마놀리오스는 구석에 가서 다시 쭈그리고 앉으면서 한결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일이죠. 우린 비밀스런 합의에 동의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악마의 짓이라면 어쩌겠나?" 얀나코스는 대담하게 물었다. "그건 악마의 짓이오. 얀나코스, 당신이 정확하게 생각했소. 나를 덮친 것은 바로 악마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걸. 이해할 수 없어!" 얀나코스는 자포자기에 빠져 중얼거렸다. "나 역시 처음에는 알 수 없었소.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얀나코스. 한참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죠.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이었으나 이젠 오히려 평온하다오. 평온할 뿐만 아니라 손을 들어 한나님을 찬미한다오." "자넨, 성자로군." 얀나코스는 순간 존경의 감정에 사로잡혀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죄인이오. 죄인의 괴수라오." 마놀리오스는 반박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그들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멀리서부터 여러 유형의 종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개들이 짖고 있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들고 있었고 오두막엔 완전히 푸르뎅뎅한 그림자가 뒤덮었다. 주인이 보이지 않자 초조해진 당나귀가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을 수는 있나?" 얀나코스가 물었다. "우유 정도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빨대를 이용해서." "어디 별달리 아픈 곳은 없는가?" "아니, 아무곳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거요. 돌아가요, 얀나코스. 아직 시간은 충분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오. 이해할 수 있겠지요? 내게는 여기 있으며 홀로 싸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악마와 말인가?" "그래요, 악마와." "그는 이길수 없소. 난 두렵지 않소. 내 편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까." "자네는 성자야." 얀나코스는 다시 중얼거렸다. "자네에겐 어느 누구도 도움이 될 수 없군. 강건하게! 다시 돌아와서 만나겠네. 자네와 더없이 얘기하고 싶어질 때." "견딜 수 있겠소? 얀나코스." "암, 그렇구말고... 곧 다시 만나세!" 잠시였지만, 그는 마놀리오스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느꼈으나 자신을 억제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서 꼬리를 흔드는 당나귀 고삐를 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통한 모습으로 산을 내려갔다. "세상 일은 참으로 묘하군." 그는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묘해. 하나님과 악마를 구별할 수 없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똑같은 것 같아. 하나님, 용서하소서!" 다음날 동이 트기 전, 마놀리오스는 기쁨에 충만해서 반듯이 누워 우리에서 자고 있는 니콜리오를 발로 차 깨웠다. "니콜리오, 일어나! 무슨 일 좀 하나 해줘!" 젊고 잘생긴 니콜리오는 엉겁결에 머리를 쳐들었으나 아직 잠이 덜깬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눈꺼풀이 열리면서 그의 겁먹은 흰 눈동자가 훤해져 가는 새벽 미명 속에서 빛났다. "무슨 일이신데..." 그는 하품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잠에서 깨어나면 이야기하겠어... 그때까지 뛰라구!" 소년은 툴툴대며 일어났다. 그가 기지개를 켤 때 갈색 배꼽이 드러나 보였다. 그의 팔이며 넓적다리, 장딴지는 시커멓게 탔지만 머리카락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에게서 사향과 염소 냄새가 풍겼다. "성호를 그어 주게나."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그 일은 난생 처음 하는 것처럼 오늘 자네가 그렇게 해야 해." "신경쓰지 마세요, 그 일에." 니콜리오가 여전히 기지개를 켜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면 무엇에 좋은가요?" 양떼와 같이 산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한 번도 성호를 그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교회에 안 다녔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니콜리오에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그가 원하는 것은 몸 건강해서 제 때 결혼이나 하고 자식놈 낳고 자기 소유의 몇 마리 양이나 가지고 그저 너도밤나무처럼 견고하고 무성하게 늙어 가는 것이었다. 성호라든가 성처녀란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애초부터 아주 동떨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놀리오스는 니콜리오가 세수를 하고 잠이 완전히 깨기를 기다리면서 문 계단에 앉아 있었다. 밤중에 그는 무서운 결심을 했었다. 그는 밤새도록 뜬눈으로 있었다. 동이 틀 무렵에야 하나님이 이겼으며 마놀리오스는 일어나서 목동을 깨웠었다. "여기 있어요." 니콜리오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넘기면서 말했다. "잠이 달아났어요. 제가 뭘 해야 하지요?" "니콜리오." 마놀리오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라. 날보는 것이 무서우면 먼 곳을 봐라. 그렇지만 내가 하는 말은 잘 들어." "듣고 있어요." 니콜리오는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말했다. "마을에 좀 내려갔다 와야겠어. 큰 마님 댁에 말이야. 문을 여는 날이니까 들어가서는 안뜰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베틀기가 있는 마룻바닥 위가 될 거야. 거기서 나의 약혼녀 레니오를 찾아." "레니오?" 니콜리오는 눈이 번쩍 띄여 재빨리 몸을 돌리며 말했다. "레니오를 찾아서 그녀에게 말해... 내 말 잘 들어. 명심하라구, 니콜리오. '마놀리오스가 당신에게 인사 전합디다. 당신이 괜찮으시다면 산으로 좀 올라와 주시기를 청하더군요. 그는 당신에게 몇 가지 할말이 있다더군요.' 이렇게 전하라구. 이게 전부야. 그렇게 이야기해. 즉시 떠나라. 알겠지?" "알겠어요. 어렵잖은 일이군요. 곧 다녀오겠어요." 그는 마을로 빨리 내려가고 싶어서 벌써 달아나려 하였다. "이봐, 기다려!" 마놀리오스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어떻게 지내냐고 묻거든 잘 있다고 말하게. 무엇보다도 내가 병에 걸렸다고 말하면 안 돼. 그렇잖으면 네게 좋지 않을 줄 알라구!" "걱정 말아요. 이봐요, 걱정 놓으시라구요. '그분은 아주 잘 계십니다.' 하고 말하겠어요. 부리나케 달려갔다 오겠습니다." "뛰어가!" 니콜리오는 휙 날 듯이 달아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레니오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럼주를 가미한 정기제를 만들어서는 그것을 그녀의 주인인 파트리아케스 영감에게 가져다 주려고 위층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푸석하게 부풀은 머리칼에다 한창 나이인 그녀는 박새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돌층계를 올라갔다. 푹신한 깔개 위에 앉아 있는 늙은 파트리아케스는 창문 밖으로 아래 마을의 지붕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했다. 그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생색을 내는 친절한 말을 하고 나왔다. 그의 상념은 산으로 치달았다. 양떼들을 지나 마놀리오스에게로 갔다. 울화통이 터졌다. 그 비슷한 일이라도 과거에 있었던가? 그 더러운 종복놈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그는 말한다. 그의 영혼이라고... 하지만 그 녀석의 마음은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아. 쯧쯧 불쌍한 녀석. 네깐녀석이 4월말까지 레니오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가 버려. 내가 베푼 음식을 짓밟아? 야비한 녀석! 내 아들 마음에 바람을 집어넣은 놈도 바로 너야. 가난한 놈들에게 동정을 베푼 것도 너야 거지 같은녀석, 너는 -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 동포라고 네놈은 말하지. 그런 것은 주일날 강단에서 목사가 선교할 때 교회에서나 언급된다면 아주 좋겠지. 하지만 이 저주받을 젖비린내야! 네놈은 그걸 연습하느라고 목이 완전히 쉬어 빠졌을 거다! 문이 열리면서 레니오가 정기제를 들고 들어섰다. 파트리아케스 영감의 생각은 순간적으로 그의 아들과 목동에게서 떠나 엉덩이를 흔들며 그에게 세이지차를 가져오는 명랑하고 고혹적인 계집아이에게 머물렀다. 그는 실눈을 뜨고는 그녀가 가까이 오는 것을 주시했다. 너무 커서 뻔뻔스러워 보이는 젖가슴, 부러질 듯한 허리, 튼튼하게 생긴 관절들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깜찍스런 계집, 널 내 딸로 여기는 한 네년과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네 어머니 역시 젊었을 때는 너처럼 쾌활했었지. 하나님이 그녀를 지키셨지! 그러던 어느 날 밤... 영감은 자신의 콧수염을 어루만지더니 한숨을 내뿜었다. "주인님,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세요?" 레니오는 부추겨 세우면서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한숨을 쉬시는지?" "한숨을 쉬는 데야 무슨 이유가 있을 수 있겠나? 귀여운 레니오. 그 유능한 내 아들녀석과 마놀리오스가 사람들 앞에서 날 망신을 시켰지. 네가 그저께 그녀석을 찾으러 산에 갔었다고 그러던데, 그 얼간이가 네게 뭐라고 말하더냐?" "그가 제게 무슨 말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주인님?" 이번에는 레니오가 한숨을 쉬면서 영감의 발꿈치 쪽 침대 끝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는 흡사 마법에 걸린 것 같았어요. 다른 남정네들처럼 절 빤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길을 땅바닥으로 던지거나 허공을 향해 쳐들고는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렸어요. 제가 무슨 말을 했겠어요? 주인님! 그에게서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주인님께서 그를 그리고리스 사제님께 데려가시면 어떨지요? 웃지 마세요. 마놀리오스는 결코 본래의 그가 아니어요, 주인님!" 그 영감탱이는 불안해 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레니오를 쳐다보았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그를 사랑하지, 응?" 차를 후루룩 들이키면서 영감이 물었다. "무엇을 바라시는가요, 주인님? 당신이 그를 제게 주셨으니 그는 저의 남자예요. 만약 다른 남자를 주셨다면 그 남자가 역시 내 남자가 되었겠지요. 제겐 이 남자든 저 남자든 다 같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늙은이라도 말이지, 레니오?" 그녀의 주인은 윙크를 하면서 슬쩍 물었다. "천만에요. 설마하니!" 소녀는 단호히 대답하면서 한계를 분명히 하는 듯이 말했다. "단지 젊은 남자여야 해요." "몇 살까지면 되겠니?" 늙은이가 빈정대면서 말했다. "어린애를 가질 수 있는 한에는요." 레니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예상한 듯 결론을 내리는 것 같았다. "좋아. 넌 아주 지헤로운 머리를 가졌단 말이야. 레니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 그러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돼. 잘될 거야." 소녀는 방그레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녀가 빈 컵을 들고 문 쪽으로 가려 했을 때 늙은이가 그녀를 멈추어 세웠다. "오늘이 며칠이지? 4월...?" 하고 물었다. 레니오가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일요일, 월요일, 화... "스무 이레군요, 주인님." "됐다. 마놀리오스 나리께서 답을 주실 때까지 사흘만 더 기다려야 하겠지. 그가 이 임금님이 베푼 밥 한 술 같은 것을 거절할 만큼 바보 일지라도. 걱정 말아라, 레니오. 내가 더 좋은 신랑감을 찾아 주마. 넋이 없어져 그처럼 얼빠지지 않을 좋은 남자루 말이야 - 뜰 안을 온통 어린애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왕성한 남자 말이다. 그만 가봐. 나는 오늘 일어나서 교회에 들른 다음, 마을을 한 바퀴 쭉 돌아봐야겠다... 새옷을 가져오너라." 레니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그 무서운 늙은이가, 이 계집애가 기쁨에 가득 차 있구나, 하고 착각하면서 혼자 낄낄대면서 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겠지... 맹세코 그가 내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추근대는 그늙은이에게 달걀 세레를 퍼부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테니 생각할 필요가 없지. 문제가 된다면 아이를 배게 할 수 있는 다른 작자들이지. 그러나 악마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있으니 생각하지 말자! 마놀리오스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으니까! 이때, 니콜리오가 문 계단을 밟으며 나타났다. 그는 급히 달려오느라 더웠기 때문에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으며 그와 함께 사향 냄새가 온 뜰 안에 가득 퍼졌다. 그는 마치 뒷다리로만 서 있는 수양 같았다. 어떻게 보면 분노에 찬 젊은 천사와도 같았다. 레니오가 그를 보자 섬뜩해져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누구세요?" 그녀는 머뭇거렸다. "참 좋은 냄새가 나는군요! 어떻게 오셨나요?" 그녀가 외쳤다. "니콜리오, 당신이군요!" "그렇소, 니콜리오요." 목동은 말을 제지하듯 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난, 당신이 지금은 진실한 남자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벌써 콧수염이 자라다니! 어떻게 여길 왔죠?" "마놀리오스가 나를 보냈소. 오늘 이른 아침에, 당신께 몇 마디 전갈을 하라구 해서 그래서 온거요! "마놀리오스가?" 레니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니콜리오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큰 소리를 내지 말아요. 당신이 지금 산위에 있는 게 아니니. 여기서는 좀 가만가만 말해요. 그가 내게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하던가요?" "네,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마놀리오스가 안부를 전하면서 괜찮으시다면 산으로 한 번 올라오라구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더군요." "그것이 전부예요? 그럼 가서 그분께 내가 곧 간다고 전해 주세요. 잠깐, 기다려 봐요. 그는 어떻게 지내는가요?" "잘 계십니다. 아주 잘 있어요!" 니콜리오는 은은한 향기를 남긴채 부리나케 돌아서면서 소리쳤다. 바로 이때, 미켈리스가 뜰로 나왔다. 멋진 나들이 옷을 입고 말끔히 면도와 빗질을 한채,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마리오리를 만날양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뜰 한가운데 서 있으니 그는 천사와도 같았다. 레니오는 아주 경탄하여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아버지가 젊었을 때와 똑같군. 그녀는 생각했다. 게오르그 성자처럼! "안녕! 레니오." 미켈리스는 손에 들었던 캘팍을 쓰면서 말했다. "난 예배보러 간단다." "그렇게 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죠." 레니오는 조롱하듯이 대꾸했다. "그곳으로 똑바로 가세요, 도련님. 잘못하다가 다른 데로 가지 말구요." "너나 확실히 잘못 돌아갈 거야. 마놀리오스에게로 갈 거라구 생각하는데." 슬그머니 그 전령을 보았던 미켈리스가 말했다. "빈정댈 것 없어." "빈정대는 것이 아니에요. 누가 그러던가요?" 그녀는 대뜸 톡 쏘아붙였다. "우리 노비들도 사람이라구요. 흥!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들은 불평할 필요가 없어요. 마놀리오스도, 도련님. 당신 옷을 입는다면 훌륭한 귀족이 될 수 있어요." "네 말이 맞다, 레니오."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물론 네 말이 맞아. 우리들을 구별짓는 것은 단지 옷뿐이니까."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자, 레니오, 내가 나가서 산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교회 안은 밀납과 향 냄새로 은은하였다. 단 위에는 성상들이 자애롭게 빛났다. 판을 밖은 마룻바닥으로부터 지붕 끝까지 벽면들은 성자들과 다채로운 색깔의 천사들로 훤했다. 이러한 고대 비잔틴 교회안에 들어가는 것 역시 흡사 낙원에 젖어드는 것과도 같았다. 환상의 새들과 사람 키만한 꽃들로 가득 차 있고 커다란 벌 같은 천사들이 무언가를 구하러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아 다니는 천국처럼. 둥근 천장위에는 무서우면서도 위엄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머리위에 임하시어 정좌해 계셨다. 아래 돌 위에는 성도들이 - 앞에서는 남자들이, 뒤에서는 여자들이 - 웅성거렸다. 그들은 마치 벌떼 같았다. 그들은 성상들 앞에 와서는 머리를 꾸벅이고 코방귀를 끼고는 이내 정신없이 잡담을 듣고 있었다. 접시들과 양초가 놓인 긴 의자 저쪽에는 의원석이 있었다. 아무도 파트리아케스 영감이 참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쌍한 친구 포르투나스 선장은 지금도 침대 위에 누워서 끙끙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 같은 날에만 출석하는 사람은 안경을 쓰고 흰깃을 한 교장선생과 그 옆에서 못마땅한 입술을 하고 있는 라다스영감이었다. 어제 저녁 얀나코스가 그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었다. 석 달동안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던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보석 전부를 이미 팔아 버리고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빈손가락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무엇에 쓰겠소? 라다스 노인! 귀고리 없는 맨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불운을 탓했다. 운이 없어. 그는 투덜댔다. 지금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것처럼 운이 없었다. 리코브리시 가까이에 폐허가 된 마을이 있었다니까 곧 거기서 얻을 수 있을 거야... 마을이 불타는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제기랄! 성도들은 연이어 들어가서 접시 위에 동전 한 닢을 던지고 초를 들고는 성호를 긋고 단 위로 올라갔다. 라다스 영감의 생각은 엉뚱한데 있었다. 운 좋게도 그녀석이 그 세파운드의 영수증에 사인을 했겠다. 바보녀석,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러나 그는 생각의 실마리를 계속 쫓을 시간이 없었다. 비계덩어리 하나가 들어와서 삐걱 소리를 내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역정내듯 몸을 돌려서는 창백하고 연악한 뺨과 죽어 가는 눈, 노랗고 메마른 입술을 한 파트리아케스 영감을 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기름진 저 돼지는 결코 죽지 않을 거야. 그는 주위를 적당히 둘러보고는 영감에게 인사했다. "더 건강하시기를, 족장님." 그는 충성스럽게 속삭이고는 주위를 다시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미켈리스가 들어오자 교회까지 온통 훤해졌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오리를 만나러 잠시 들렀기 때문에 늦었던 것이다. 그녀는 귀머거리들과 헌신적인 늙은 보모를 제외하고는 집에 혼자 있었다. "시간이 많이 됐지요." 마리오리가 바짝 문 뒤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그녀도 역시 훌륭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남겨 준 금 목걸이가 그녀 목에서 빛났다. 그녀는 그 전날 얀나코스가 가져온 연지로 가볍게 뺨 화장을 했다. 그녀의 눈은 울고 있는 듯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어둡고 푸르스름한 방울이 눈 주위에 맺혀 있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때때로 입을 막았다. "왜 날 부르러 보냈었지?" 미켈리스가 걱정되어 말을 먼저 꺼냈다. "당신 왜 날 당혹케 하는 거야, 마리오리?" "아버지가 서둘러요." 마리오리는 눈을 더욱 내려깔면서 대답했다. "그분이 서둘려요. 우리가 빨리 결혼하기를 원하거든요." "크리스마스로 날을 정했잖아, 마리오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아직 일 연도 안 되는데. 그것은 적당치 않아." "그분이 서두르는걸요." 소녀는 낮은 소리로 되풀이했다. "그는 매일 큰 소동을 피운다구요. 한밤중에 일어나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잠을 설친다구요." "뭣 때문에? 무슨 일로 그렇게 서두르지?" "저도 몰라요. 미켈리스, 모르겠어요." 마리오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 양반이 왜 그렇게 참을 수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점차 나빠지고 있는 그녀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옳았고 일들이 빨리 진행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내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셨지."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으셨지. 늙으신 분이었어. 아버지를 나무랄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는 그 때문에 병이 나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지도 않았었지. 그래도 아버지는 관습을 어기려하지 않아. 아직 일 년이 안 되었어. 게다가 아버지는 현재 마을의 족장이니 모범을 보여야 해. 알아듣겠소, 마리오리?" 알겠어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참지 못하고 저를 나무란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그녀는 기침이 막 나오려는 것을 참고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작은 손이 미켈리스의 축축한 손 안에서 떨렸다. 미켈리스는 갑자기 깜짝 놀라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끔직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피부 밑으로 뼈가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다. "마리오리..." 그는 손을 꽉 잡고 그녀를 자기 가슴에 껴안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마리오리..."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그로부터 떠나가고, 그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으며, 그녀는 이제 한웅큼 흙에 지나지 않은 채로 그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나의 미켈리스." 앳된 처녀는 울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나의 미켈리스, 당신은 지금 가야만 해요. 교회로 가요. 저도 곧 갈께요. 둘 다 늦겠어요. 가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빌고 싶어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는 잠시 동안 자기 가슴에 대었다. "하니님, 은총을 내리소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중얼거리고는 서둘러 나가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면서 보모의 팔에 안겼다. 미켈리스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바짝 죄어 드는 가슴과 목을 하고는 교회로 성큼서음 걸어갔다. 그는 자기 아버지 자리 가까이에 서 있었다. 그 노인은 아들을 돌아보고는 찬탄을 했다. 저 모습이 나와 꼭 닮았어. 그는 생각했다. 나와 꼭 같애. 넌더리나는 인생!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다 가버렸으니! 한편, 레니오는 머리를 단장하고 있었다. 머리와 몸에 오렌지 물을 흩뿌렸다. 머리에다가는 그녀 주인이 부활절에 준 붉은색 술이 달린 노란 머릿수건을 둘렀다. 그리고 마을 길들이 빠져 나와 버어진 산으로 통하는 작은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미사는 끝났고, 마을 사람들은 나들이 옷을 입고 주일날의 마음으로 광장에서 흩어졌다. 그들은 오르내리며 걷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코스탄디스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껄껄대고 있었다. 아그하는 발코니에서 그의 긴 담뱃대로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의 오른편에는 트럼펫을 들고 있는 후세인이 있었고 왼편에는 술을 따르는 유소우화키가 있었다. 그는 매스틱을 꿀꺽 삼켰다. 눈꼽이 낀 눈을 가늘게 뜨고 아그하는 마치 목동이 겸손과 근심으로 자기 가축떼를 내려다보듯이, 아래 광장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아그하가 그들에게 편안히 먹고 사는 것을 허락했으므로 그들은 그에게 양털이며 우유, 고기 따위를 바쳐야 했다. 레니오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 위까지 올라갔다. 그녀는 마놀리오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강 눈치채었다. 이번 주에 그들 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마무리져서 참다운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 대낮에는 집안 일, 부엌일, 한밤중에는 서로 껴안고, 그런 다음 아홉 달 뒤엔 아기가 아장아장... 나는 이제 계집종이 아니라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터이지... 그녀는 마놀리오스를 좋아했다. 온화한 청년이며, 일을 열심히 하고, 게다가 금빛 턱수염과 푸른 눈을 가졌으며, 풍채도 당당하고 말씨 또한 부드러웠다 - 진짜 예수 같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훨훨 날아 몸보다 더 빨리 산에 올라, 양 우리에 이르러 그곳을 빙빙 돌며 어깨 위에 사뿐히 앉아서는 사랑스럽게 그의 목과 목덜미를 쪼아 댔다. 이 순간 그는 이 오솔길 끝에서 불쑥 튀어나온 돌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릴 것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마음도 그녀의 마음같이 날아다닐 것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바랐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 마놀리오스는 튀어나온 돌 위에 앉아서 부은 얼굴을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상처가 다시 터져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혼자 뇌까렸다.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야. 불쌍한 것. 그녀에게 미안해. 하지만 이미 되어 버린 일인데. 나는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되찾았다. 내 영혼도 깨끗해졌고 육신 또한 정제되었다. 가치 있는 자가 되었어... 그는 귀를 세우고 가볍고 빠른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오렌지꽃 향기가 났다. 그녀의 향기다. 그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녀가 오고 있다. 그녀가 오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여기 그녀가 있군. 이곳에 그녀가 있어! 노란 머릿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레니오는 잠시 멈추고 눈이 부시지 않게 햇빛을 가렸다. 그녀는 뾰족한 돌 위에서 머리를 숙인 채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약혼자를 보고는 조금 더 천천히 걸어서 다가갔다. 여기 그녀가 왔군! 마놀리오스는 되뇌었다. 그는 머리를 들고 일어서서 가만히 있었다. 레니오는 그를 못 본 척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습관대로 앞으로 펄쩍 뛰어와서는, 올라오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껴안게끔... 그러나 오늘따라 마놀리오스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마놀리오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외쳤다. 마놀리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바위에 서 있었다. 레니오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머리를 쳐든 그녀는 그를 보자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성모님!" 그녀는 맥없이 쓰러졌다. 마놀리오스가 내려와서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는 왼팔로 눈을 가리고 오른팔로 그를 제어했다. "저리 가요! 저리 가!" 그녀는 귀에 거슬리는 어투로 소리쳤다. "가라니까요!" "레니오,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봐." 마놀리오스가 자애롭게 말했다. "나를 봐. 그러면 나를 영원히 싫어하게 될 거야. 나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 거야." "아니, 싫어요!" 가련한 처녀는 흐느꼈다. "저리 가요!" 마놀리오스는 뒤로 물러나서는 다시 바위 위에 앉았다. 그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레니오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하늘에 맹세코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봐요." "문둥병이..." 마놀리오스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레니오는 몸을 떨면서 머리를 마을 쪽으로 돌렸다. "나 가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 일 때문에 나를 부르러 보냈던 가요?" "맞았소. 이때문이오." 마놀리오스는 여전히 침착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나와 지금 결혼할 수 있겠소? 그럴 수는 없을 것이오. 문둥이 자식을 원하오? 그럴 수는 없소. 날 내버려두구료." 다시금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어린 소녀는 어깨를 추스리며 구슬프게 흐느꼈다. "잘 내려가시오, 레니오." 마놀리오스가 양 우리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안녕!" 레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랗고 고운 머릿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저 망연하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마놀리오스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아무 목적도 없이 돌아가는 사막과도 같았다. 태양이 중천에 떠올랐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다만 너도밤나무 그늘 밑으로 더위를 피하러 들어가는 양떼들의 방울 소리뿐이었다. 잠시 피리 소리가 쓸쓸히 퍼지더니 이내 애처로운 음조인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문둥병... 문둥병이라니..." 레니오는 공포에 사로잡혀 계속 뇌까렸다. 압도하는 듯한 정오의 햇볕 속에서도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얼마 동안 이 돌밭에 몸을 던진 채 파묻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백 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오랫동안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올라왔을때는 태양이 묵묵히 하늘 맨 꼭대기에 있었던 터였다. 피리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구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음험하게도 들렸다. 마치 고독을 참을 줄 모르는 하나의 다른 영혼처럼. 레니오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음율에 이끌리어 피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마치 자기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비틀비틀 걸어가며 숨을 헐떡거렸다. 두세 걸음 걸어가다가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피리 소리는 가까이에 있었다. 더욱더 자신을 애무하는 듯, 좀더 애원하는 듯이 그소리는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그녀를 끌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녀는 산 위 한곳에 자라난 커다란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서, 다소 서늘한 땅 위에다 목을 대고 누워 있는 양떼를 보았다. 단지 두 마리만이 서로 뒤를 쫓으며 머리를 치고 받으려는 듯이 서 있었다. 그들 가까이에는 양치기 소년이 반쯤 벌거벗은 채 서서 긴 피리를 두입술 사이에 물고는 그들과 춤추며 뛰어놀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피리를 입에서 떼고서 괴성을 지르며 손뼉을 치고, 우는 소리를 낸 다음 다시 떠들썩하게 놀기 시작했다. 점차 훨씬 더 시끄럽게. 레니오는 주문에 홀린 듯이 주춤거리며 나아갔다. 양치기 소년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볼 수 없었지만 레니오는 모든 광경을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검은 털이 더부룩한 수암양이 뿔을 흔들면서 암양을 뒤쫓고 있었다. 수양은 올라타려고 하고 암양은 달아나려는 것이었다. 수양은 격노한 듯 뒷발로 서서는 앞발로 암양을 꽉 껴안고 갈구하듯이 연약한 신음을 하는 암양을 다시금 덮쳤다. 젊은 목동은 이 사랑 싸움을 뒤쫓아다녔다. 그는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고는 다정한 소리를 내뱉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일에 수양과 한짝이 되어 있었다. "힘을 내라, 다소스! 올라타라니까 다소스!" 하고 외치고는 다시금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레니오는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어린 목동 뒤편에서 우측으로 올라왔다. 암양들처럼 그녀의 혀가 밖으로 빠져 나와서는 헐떡이고 있었다. 가슴에 통증이 오고 있었다. 암양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듯이 다소곳해졌다. 다소스는 단번에 암양 위로 올라타고는 완전히 정복하였다. 수양의 혀가 밖으로 삐져 나와서는 암양의 목을 핥고 깨물었다. 그의 온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암내가 공기 가득퍼져서 질식할 정도였다. 니콜리오는 그의 피리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남은 옷을 다 벗어 던지고 홀랑 벗은 채 땀에 뒤범벅이 되어서 수양처럼 춤추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레니오는 목의 힘줄이 곤두서면서 두 눈이 침침해졌다. 니콜리오는 한동안 춤을 추다가 갑자기 뒤로 휙 몸을 돌렸다. 그녀를 발견한 그는 야수처럼 달려들어 양떼가 있는 쪽에다가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6.선장의 죽음 "아그하여, 가련한 포르투나스 선장님의 건강이 아주 나쁩니다. 그의 머리뼈들이 아무래도 다시 붙을 것 같지 않군요. 우린 그 일을 위해서 여러 가지 처방을 했습니다만. 연고다, 향유다 -. 그리고 그리고리스 사제님까지 몸소 방문하셔서 기도문을 읽어 주셨습니다. 또 집시도 와서 카드 패를 돌렸읍죠. 그들은 치료를 주관하는 성자인 성 펜테레이몬 앞에 초를 켜기도 했구요. 게다가 포르투나스 선장은 아홉 개의 생명을 가졌다는 고양이 고기를 먹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영험이 없었읍지요. 신이건 악마건 죽을 우리의 선장의 회복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요." 그 "죽을"이라는 말이 그렇게 만달레니아 함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자기의 혀를 깨물었다. "마귀의 귀를 멀게 해주소서." 하고 중얼거리고는, 그녀의 혀가 다시금 유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그분은 족장의 아드님인 미켈리스에게 자신의 유언을 받아 적도록 사람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지금, 아그하여, 저는 그가 그리고리스 사제에게서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하려고 사제님을 모시러 가는 길입니다. 우리 선장께서는 자신의 운명의 닻을 올렸으며 이제 막 항해를 떠날 참이에요." 조금 전에 그는 절 불러 "만달레니아 아주멈", 아그하께 가서 "포르투나스 풋내기가 인사드립니다. 그는 이제 곧 항해에 오르려 합니다." -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아니, 그는 떠났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전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읍죠. 아그하여, 만달레니아 할멈이 바루 접니다." 졸음이 덜 가신 부은 눈과, 늘어진 볼, 그리고 맨발인 채 머리도 빗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아그하는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않아 있었다. 그는 빗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만달레니아 할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아그하는 게으름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친구의 뇌는?" 하품을 하면서 아그하가 물었다. "정상적인 시계처럼 잘 돌아갑니다, 아그하여." 그는 다시 아무 말도 없었다. 느긋함을 느끼면서 또 하품을 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던가?" 그는 아직 하품하던 입을 다물지 않은 채 말했다. "아그하여, 조금도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당신이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웃을 거예요. 그리고, 악마에 대해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 하나님, 절 용서하소서. 이를테면 그는 둘 다 대단찮게 여긴답니다." "술을 마시던가?" "마시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알았소.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면 가서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전하시오. 또 트럼펫을 불기 위해 내 경호원 후세인을 데리고 간다고 전하시오. 참, - 그도 알고 있지만 - 그가 제일 좋아하는 아마네스를 불러 주도록 유소우화키도 데려간다구 말이지. 나는 커피를 마셨으니 이제 치보크와 라키를 마시면 유소우화키가 내 발을 맛사지하러오지. 그러고 나서 내 잠자리에서 일어나 내려가리다... 기다려! 그에게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죽지 말라구 해. 꼭 그렇게 말해야 해. 그는 나를 꼭 기다려야 해. 빨리 가시오!" 선장은 누렇고 몹시 말라서 그을은 살껍질 위로 툭 불거져 나온 뼈가 돋보였으며, 머리에는 마른 피가 엉겨 붙었고, 넓은 붉은색 장식띠로 꽁꽁 묶인 체 두려움도 참회의 빛도 없이 조용히 침대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그의 작은 눈은 악의에 가득 차서, 그가 한때 오뎃사에서 본 적이 있는 원숭이의 그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옆의 작은 탁자에는 라키와 치보크가 놓여 있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작은 석고상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멀리 있는 항구에서 사 왔었다. 맘 좋아 보이고 뚱뚱하고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장부를 -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 그래서 그는 그것을 샀다. 그 후로는 항상 그곳에 그것을 두었었다. 그리곤 "그녀는 내 아내야." 하고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리곤 하였다. "그녀는 나보다 콧수염이 더 많아.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데." 그는 눈을 돌려 자기의 초라한 오두막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더러운 벽, 거미집으로 덮인 대들보, 텅 빈 선반들, 헌 옷으로 가득 찬 길다란 궤, 낡은 슬리퍼, 프란넬 조끼와 낡은 밧줄 토막, 벽감에 놓인 물주전자, 한 모퉁이에 놓인 바구니로 감싼 목이 좁은 라키병 그는 그것들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각 물건들에 잠시 동안씩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침대를 마주 대한 벽에 꽂힌 낡은 사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것은 온갖 항해를 감당했던 그의 잃어버린 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선미에는 그리스 국기가 있고 이물에는 앞가슴을 드러낸 사이렌상(풀이: 바다의요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은 사람이고 반신은 새인 마녀들로서 아름다운 노래소리로 지나가는 뱃사공을 꾀어 들여 죽었다고 함)이 있었다. 그 자신은 그 당시 서른 살 전후의 선장으로서 키를 잡고 거기 서 있었다. 상상 속에서 그는 배를 탔고 파리똥으로 더럽혀진 사진 속에서 배는 닻을 올리고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다가왔다. 섬들과 대양과 항구 위에 모자를 쓴 터어키 인, 가슴을 훤히 드러낸 뱃머리에 있는 것 같은 여인들, 그리고 항구에서의 담배 연기와 기름에 튀긴 생선 냄새로 질식할 것 같은 선술집들을 포르투나스 선장은 아주 희미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가 겪었던 고통과 기쁨들, 군수품과 식료품을 그리스로 밀수하기 위해 배를 가지고 자원했던 '97년 전쟁 때 받은 상처 등, 모든 기억들이 희미해져 갔다. 한때 그는 사랑에 빠져 거의 미쳐 있었던 일이 있었다 - 터어키 소녀였는데 그는 지금에 와서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또는 그 사랑의 장소가 어디였는지조차 전혀 기억해 낼 수없었다. 콘스탄티노플이었던가? 아니면 스미르나였던가? 아이발리? 혹은 알렉산드리아? 그녀의 이름은 치오울솜이었던가? 파티마? 아니지. 에르미네였을까? 도무지 그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무거운 안개가 이 세상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그의 전생애 중에서 단지 한 사건만이 유일하게 그 불투명한 안개를 밀어젖히고 빛 속에서 목욕을 한 듯이 나타났다. 때는 4월, 어느 해의 성 게오르그 기념일이었는데 바토움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는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커다랗고 진한 붉은 색 꽃들로 가득한 정원에 갔었다. 그들은 그곳의 자갈밭 위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꽃술이 달린 터어번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태양은 작열하였고 바다는 시원했었다.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그들 세 사람뿐이었다. 모두들 금발이거나 짙은 머리칼을 지닌 미남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는 게오르그라고 불렀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성 게오르그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라, 그들이 먹고 마시고 노래부를 때 가벼운 비까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늘고 부드러웠다. 그 비는 정원에 있는 커다란 잎을 깨끗이 적시고 자갈밭에 얼룩무늬를 만들었었다. 그렇게 되자 대지에서조차 바다와 같은 풍성한 냄새가 풍겼었다. 세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만돌린과 오보에와 챔버린을 들고 나타났었다. 그들은 짙은 꽃이 핀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자 아마네스를 노래하기 시작했었다. 얼마나 즐겁고 감미로운 순간이었던가! 인생은 사람의 손바닥에 있는 작고 따뜻한 해처럼 지저귀는 것... 포르투나스 선장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러나 더 이상 기억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어코 그의 전생애는 연기 속으로 흩어졌다. 바토움에서의 그 즐거운 파티와 간지럽게 내리던 비에 대한 기억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와 세 명의 친구와 약간의 붉은 꽃. 이것이 내 추억의 전부란 말인가? 그것은 삶을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내 생애에 다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단 말인가? 온 세상을 다 삼켜 버릴 것같이 생각되던 나에게! 그는 손을 뻗어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라키 잔을 잡았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면서 아그하가 들어왔다. 그는 붉은 바지에 은제권총을 차고 있었으며, 멋있고 산뜻한 각반이 있는 굉장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팔 아래에는 비단 손수건이 펄럭였다. 마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처럼, 그의 뒤에는 달콤한 빵처럼 하얗고 신선하게 생긴 유소우화키가 반쯤은 조는 듯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따라왔다. 그리고 그 뒤 사납고 찌푸린 듯한 얼굴을 한 경호원 후세인이 트럼펫을 꼬나잡고 들어왔다. "포루투나스 선장, 당신을 위한 고요한 바다와 순풍을 빕니다!" 하고 아그하가 기운차게 소리쳤다. "당신이 당신의 배에 올라 항해를 시작했다고 하더군!" "항해는 시작되었소, 바람에 순종하면서. 아그하여, 잘 계십시오." "그래, 어디로 떠나려 하오, 축복 받은 이 늙은 풋나기여?" 하고 아그하가 웃으면서 낡은 궤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세상을 두고 떠나면서 어떤 감회를 느끼오? 좀더 머물러 계시게나. 며칠 전에 사람들이 많은 라키를 가져왔다네. 벗이여, 굉장히 맛있다네. 그것은 검은 오디가 스며들어 있는 상당한 주정이라네. 그것은 바로 내가 말하려는 것이지. 좀더 머물면서 나와 그것을 즐기자구 당신은 좀더 있다가 갈 수도 있을 텐데."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소. 모든 것이 끝났소. 나는 이미 닻을 올렸고 키를 잡았다오. 나는 출범을 한 것입니다. 당신 혼자서 마십시오." "불쌍한 친구 같으니. 그대는 어디로 떠나려 하는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있소?" "아무도 모르지요. 나는 바람이 부는 대로 떠납니다. 그곳이 바로 거깁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네들 롬노이들의 종교인가? 그건 무슨 뜻이지?" "어어어!" 하고 손을 저으며 선장이 대답했다. "거 무슨 소리요. 만약 내가 종교를 믿을라치면 악마를 향해 똑바로 나갈 것입니다." 아그하가 웃었다. "무슨 소린가? 만약 내가 종교를 믿을라치면, 나는 천국을 향해 똑바로 갈 것인데. 그것은 - 나의 종교는, 밥과 여자와 유소우화키와 같은 미소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네. 그러나 선장, 나에게 말해 주게. 우리의 종교 둘 다가 우리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이 세상은 하나의 꿈이요, 인생은 라키 같은 것이지. 사람들은 마시고 또 취하지. 우리의 사고방식은 바람 부는 대로 바뀌고 있소. 당신은 롬니오스를 연주하고, 터어키인인 나 아그하는, 그건 상관하지 마세나. 이 얼간이 친구야 -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네." 그는 미소년에게 몸을 돌렸다. "이봐, 유소우화키, 저기 구석에 라키 바구니가 있구나. 그걸 우리들에게 따라 주어." 늙은 만달레니아가 들어와서 선장에게 몸을 굽혀 그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선장님, 잠시 후에 사제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올 거예요. 라키는 삼가세요." "뭐라고? 사제가? 이 늙은 마녀야! 수선 피우지 말고 라키 바구니를 가져와 대접이나 해!" 노파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잔을 채웠다. 아그하는 일어나서 침대로 다가가 선장과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 "순조로운 여행을 위해서." "당신 역시 순탄한 여행을, 아그하여!" 그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두 사람은 기분이 좋았다. "선장." 콧수염을 쓸어 내리면서 아그하가 말했다. "만일 우리의 마호멧과 당신네의 그리스도가 우리들처럼 라키를 마시며 술잔을 부딪힌다면 그들도 서로 좋은 친구가 될 텐데. 그리고 서로서로의 눈알을 파내려고 안달하지도 않을 텐데. 술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이라네. 생각해 보오, 어떻게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가를. 선장? 우린 즐겁게 지내지 않았소? 우리는 모든 일을 쉽게 잘 해오지 않았었나? "여기 사제께서 나에게 성찬을 주기 위해 오고 있습니다. 아그하." 그의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여 선장은 말했다. "잘 있으오." "벗이여, 기다려요. 그렇게 너무 서두르지 마오. 그대가 번거로운 일을 벗어나 느긋해질 때면 그렇게도 좋아했던 애창곡 아마네스를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유소우화키를 불러왔소. 노래도 없이 이렇게 떠날 수가 있겠나? 나의 사랑하는 오랜 벗이여... 유소우화키, 이리와서 아마네스를 불러 주렴. 내 귀여운 것아!" 유소우화키는 입안에서 매스틱 구슬을 꺼내 그것을 그의 무릎 위에 붙였다. 그리고는 예의 권태로운 몸짓으로 그의 오른손을 그의 뺨에 괴었다.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아그하는 팔을 내저으면서 "내 보물단지야, 기다려!" 하고 말했다. "처음엔 트럼펫이 가락을 뽑아내지." 그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문지방에 서서 멋드러지게 불라구." 하고 그는 명령했다. 후세인은 문을 열어 젖히고 트럼펫을 입에 물고는 터져나오는 큰소리로 불기 시작했다. "좋았어!" 아그하가 소리쳤다. "자, 네 차례다, 우소우화키, 우리에게 아마네스를 들려다오!" 다시 한번 작고 깔끔한 정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장은 절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은 지난날의 회오와 감미로움에 젖어 들었다. "도우니아 타비르, 로우야 타비르... 현실과 꿈은 한가지여라, 어쩔꼬 어쩔꼬 !" 선장은 현실과 이상이 결국은 한 가지라는 것을 그렇게 깊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분명 잠의 수렁에 빠져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선장으로서 백해와 흑해의 항구를 주름잡았었었고 전쟁에 참가했으며, 자신이 그리스인이며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꿈꾸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것이 그렇게 나타났으며 그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 그는 죽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깨어나려는 것이었다. 꿈은 끝났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선장은 조용히 의미 있는 손을 내밀었다. "고맙소, 나의 벗, 아그하여. 그대만이 나의 고뇌를 이해해 주었소. 유소우화키, 너도 잘있게나. 너의 작은 입이 절대로 썩지 말고 지하에서도 루비로 바뀌기를 기원하마." 아그하는 감동하며 눈물을 닦았다. "잘 가오, 사랑하는 선장님. 만일 내가 때때로 당신을 부를 때면 그것은 애정에서 우러난 것임을 알아주오. 나를 용서하오. 좋은 여정이 되시기를!" 그는 선장에게 입을 맞추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미처 몰랐었소, 사랑하는 아그하여."죽어 가는 사람이 슬픈 목소리로 뇌었다. "안녕히" 아그하는 선장의 곁을 물러나 그의 경호원에게 가서 말했다. "선장에게 나그네길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기 위해 한 번 더 나팔을 불어라. 마을 사람들이 그를 묻기 위해 와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이 마을의 기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늘에는 가벼운 여름 구름이 덮여 있었다. 비가 몇 방울 후둑거렸다. "자, 서두르자." 아그하가 소리쳤다. "난 새옷을 입었다." 세 사람은 모두 서두르기 시작했다. 포르투나스 선장의 부름을 받고 서류 뭉치와 잉크병을 들고 급히 달려오던 미켈로스가 그들과 마주쳤다. "아그하여, 선장께서는 좀 어떠하신지요?" "그래, 젊은이, 정말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좋아졌다네. 어서 서두르게나." 늙은 만달레니아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는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왔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제 대신에 미켈리스가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났던 것이다. "얘야,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노파가 그에게 속삭였다. "그분은 아직도 견뎌 내고 있단다. 한 번밖에 없는 생명줄을 꼭 잡고 있다." 미켈리스가 조용히 들어섰다. 그녀는 뒤에서 문을 닫았다. 선장은 기력이 빠진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피가 또다시 그의 뺨을 타고 흘러 이불 위에 방울져 떨어졌다. 노파는 다가가서 그것을 닦아주며 귀에다 속삭였다. "선장님, 미켈리스가 펜과 잉크를 들고 달려왔어요. 힘을 내세요." 선장은 유혈이 진한 머리를 가까스로 쳐들며 눈을 떴다. "젊은 양반 어서 오게."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미켈리스는 궤 위에 앉아 서류를 그 가까이 밑에 내려놓고는 기다렸다. "좋은 분인데... 안됐어." 하고 노파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 냈다. "식성은 까다로웠지만 그는 좋은 분이었지. 내 죽은 남편 역시..." 그녀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자신의 불행했던 지난날을 얘기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하나의 위안이었다. 미켈리스는 담배를 말아서 피우기 시작했다. 그 역시 혼자만이 아는 불행담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그것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는 그 노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나 그의 혼은 먼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개가 힘없이 짖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노파는 발끈 화를 내었다. "망할 놈의 개새끼! 저렇게 짖어 대다니. 카론(풀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을 지키는 개)이라고 본 모양이지!" 그녀는 문을 열고 돌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선장이 눈을 떴다. "미켈리스."하고 그가 나직이 불렀다. "어디에 있나? 가까이 좀 오게나. 나는 지금... 크게 얘기 할 수 없어. 종이에다 받아써 주게." "선장님,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미켈리스가 말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말할 테니 받아쓰게나. 그리고 자네의 위안을 기다리네. 아홉개의 생명줄 중에서 여덟 개가 끝났네. 이제 마지막 한 개가 남았는데 그것은 지금 내 입술 위에 있네. 이것 역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일세. 서두르게, 나에게 꺼져 가는 촛불 같은 생명이지만 남아 있을 동안에 받아써 주게." 미켈리스는 베개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종이를 준비하고 펜에 잉크를 적셨다. "준비됐습니다, 선장님." "우선, 내가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과 그리스 정교 신자라는 것부터 써 나가게. 나의 아버지는 데어도어 카판다이스였으며 나는 자식도 조카도, 한 마리의 개도 없다는 것을 기록하게.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나는 용케도 빠져 나왔었지. 하나님, 찬송을 받으소서! 나는 약간의 돈을 가졌었는데 그건 먹는 데 써 버렸지. 얼마간의 정작지도 팔아서 먹어 버렸어. 아니, 먹어 버린 것이 아니라 마셔 버렸어. 나는 저 사진 속에 있는 바로 저런 배 한 척도 가졌었는데 트레비존드에서 파선하여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렸었네. 이것들이 나에게 남아 있는 전부일세. 톡톡 털어서 전부야."그는 실내에 진열된 파선된 잔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저것들을 가난한 자들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네. 그러면 그들은 나를 기억하게 되겠지. 만달레니아 아주멈, 내 곁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나에게 불러 주오. 내가 잊어버리는 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자, 쓰게나, 미켈리스. 준비됐나?" "준비됐습니다. 선장나리." "여기, 구석에 라키가 든 술통이 있는데 이건 아그하에게 전해 주게. 내 영원한 건강을 축배 하면서 그것을 비우도록 말일세. 내 금이빨은 뽑아서 과부 카테리나에게 주어 귀고리를 만들도록 하게, 호박빛 끝을 가진 내 치보크는 카페 주인인 코스탄디스에게 주게나, 이름 없는 나그네가 오면 그는 그것을 태워 그로 하여금 자기 마을을 잊게 할 걸세. 내가 남긴 보리 십 킬로그램은 얀나코스의 당나귀에게 물려 주게. 그 당나귀가 그리스도를 등에 태우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저녁에 그것을 먹이도록 하게. 내 지갑에 남은 두 닢인가 세 닢의 동전은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주도록.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나를 묻어 주는 성사를 하지 않을 테니까. 그 늙은 염소수염장이에게 그러면 나를 썩도록 내 내버려두진 않겠지. 그것이 내 장례식을 위한 전부일세. 궤짝에는 약간의 누더기와 피부에 바르는 기름, 좀 낡은 모자들, 그리고 흰 옷들, 선장용 장화와 고장난 환등기, 나침반과 밧줄 동강이가 조금 있네. 그 몫들은 사라키나 동굴에 살고 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 주게. 그들에게 또 내 솥과 납작한 남비, 그리고 난로와 질그릇과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을 벗겨 함께 주게. 그렇지, 그리고 커피와 설탕, 양파, 기름 한 병, 남은 치즈와 올리브 한 솥도 함께 주게나. 그들이 서로 나누어 갖도록 했으면 좋겠네. 그 가난한 자들에겐 미안하네. 그걸 전부 받아썼는가? 미켈리스." 절"내가 다 쓸 수 있도록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천천히 말씀해 주시지요, 선장님" "젊은이, 할 말을 다 못 할까봐 그런다네. 서둘러 쓰게나. 난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아라비안 나이트란 걸세.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일요일이면 난 그 책을 읽곤 했었지. 그것은 시간 보내는 데 좋더군. 카페의 코스탄디스가 와서 그것을 가져가도 좋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카페에 모이는 일요일이면, 복음서를 읽은 다음 그 책의 이야기들 중 하나를 크게 읽어 주도록 해주게.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할거야. 그들은 가엾은 영혼들을 말일세. 나는 복음서가 매우 좋은 책이란 걸 부정하려고 하는 말은 아닐세. 하지만 아라비안 나이트는 그것보다 두 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걸 다 썼나, 미켈리스?" "다 썼습니다, 선장님. 계속하시지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만달레니아 아주멈, 주위를 둘러봐요. 집 주위의 모든 것을 챙겨봐 주오. 내가 혹 빠뜨린 귀중한 보물은 없는지?" "선장님, 당신의 슬리퍼는..." "쯧쯧! 그것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정도로 뒤축이 다 닳았어. 아, 잠깐만, 그건 라다스 영감에게 남겨 주겠어. 불쌍한 영감. 내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맨발이었다구. 그에게 그것을 갖도록 해주게. 그 늙은 구두쇠에게. 그 슬리퍼가 그를 감기에 걸려서 죽지 않도록 도와 줄거야. 우리 마을에서 귀중한 인물이지! 또 뭐 다른 것은, 만달레니아?" "사진은?" "아, 그건 내가 가지겠어요. 그것을 액자 그대로 내 무덤에 넣어 주게. 난 또 라키 잔도 갖고 가겠어. 그것이 날 아주 잘 대접해 주었거든. 그걸 두고 떠날 순 없지. 아, 여기 석고상이 있군 그래. 그걸 석고먹성이게 주게나. 그러면 그는 다른 것보다도 더 먹음직스러운 영국 여왕까지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군요." 하고 미켈리스가 말했다. "이 집 말입니다." "그렇군, 이 집은 여기 있는 만달레니아 아주멈에게 물려주겠소. 그녀는 친누이처럼 날 위해 주었다네. 이 불쌍한 여자는 나 때문에 여러 곤욕을 당했지. 난 그녀에게 툭하면 욕을 했고 아마도 지팡이로 여러 번 손찌검을 했던 것 같아. 만달레니아 아주멈, 날 책망하지 말아요. 울지 마오. 당신이 울어서는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없어요." 그는 애써 소리를 내어 웃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고통이 그에게 그런 자유를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미켈리스는 유언을 적은 종이를 그에게로 가져갔다. 노파는 선장을 부축했고 미켈리스는 그의 손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는 "선장 야코우미스 카판다이스, 데오도르의 아들" 이라고 서명을 했다. 성가가 들려 왔다. "성체를 모시고 사제가 오십니다." 하고 노파가 말하며 두 문을 활짝 열었다. "지루한 의식이 또 남아 있었군." 하고 선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라지. 어디 견뎌 봐야지." 불을 밝힌 등을 손에 든 교구관리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그리고리스 사제가 들어왔다. 그는 사제복을 걸치고 금빛으로 수놓아진 붉은 벨벳으로 덮은 성찬배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주님, 이곳에 임하소서." 사제는 문지방에 십자를 그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모두들 물러가 계시오." 미켈리스와 만달레니아는 성호를 긋고 사제의 손에 입맞추고는 물러났다. 교구관리들은 등불을 들고 밖에서 기다렸다. "포르투나스 선장님." 죽어 가는 그에게 다가가서 사제가 불렀다. "두려운 시간이 다가왔소. 당신은 주님 앞에 갈 것입니다. 당신의 죄를 고백하고 당신의 영혼을 정결케 하시오. 말씀하십시오." "사제님,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나의 죄를 말해야 합니까?" 선장은 언짢은 듯이 대답했다. "당신은 내가 이 순간에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선하신 하나님은 나의 죄를 기록한 책을 통해서 그것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분이 하시려고만 하신다면,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일은 거기에 쓰여진 나의 죄를 지우시는 일입니다. 지상으로부터의 선물로써 내가 그분께 가져가고 싶은 것이 있소. 하늘나라에서 그것과 같은 것이 발견될지 어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당황하면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선장의 어조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한 가지란," 하고 선장이 말했다. "내가 선하신 하나님께 선물로 가져다 드리고 싶은 바로 그것은..." "무엇이오?" 사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해면이오." "당신 부끄럽지도 않소? 경건치 못한 사람 같으니. 이 엄숙한 순간에 무섭지도 않소?" "우리들은 개미들이오." 하면서 선장은 침착하게 계속했다. "우리들은 곡식 낟알을 너무 많이 먹었소. 한 마리의 죽은 파리 새끼가 우리 몫보다도 더 많이 처먹었소. 그것이 어떻다는 거요? 문질러 버리라고요! 당신은 우리 개미들을 질책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당신, 이 뚱보 코끼리 같으니!" "선장!" 사제가 불안에 떨면서 말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오. 당신은 지금 그 분의 문 앞에 와 있소. 이 불쌍한 인간, 이제 곧 문이 열릴 것이고 당신은 곧 그분을 뵐 것이오. 그런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단 말이오?" "사제여." 그의 귀를 막으며 선장이 말했다. "나는 피곤하오. 아그하가 와서 나를 지루하게 만들더니... 미켈리스가 내 유언을 받아쓰기 위해서 여기 왔었소. 내가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당신에게 내가 남긴 모든 돈을 물려 줄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구술하였소. 그래야 당신이 나를 다른 사람처럼 썩게 내버려두지 않고 묻어 줄 테니까 말이오.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이, 보기 싫은 사람들과 같이 와 있소. 나는 지금 참을 수 가 없소. 나는 피곤하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잘 가시오." 그는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 쉬기 시작하고는 갑자기 쥐어짜는 목 쉰 소리를 내었다. "잘 가란 말이오!" 그는 간신히 말했다. 사제는 붉은 벨벳으로 성찬배를 덮었다. "나는 당신에게 주님의 몸과 피를 줄 수가 없소!" 하고 그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기를!" "잘 가시오." 선장은 임종이 임박해서 다시금 중얼거렸다. 그는 두 번인가 세 번쯤 발작적으로 꿈틀대고는 마치 숨이 막히는 듯이 조용히 신음했다. 그리고는 입이 벌어졌다. 피가 흥건하게 베개와 이불 위로 흘러 내렸다. 사제는 그 위에 성호를 그었다. "하나님이 그대를 용서하시기를."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어떻게 할 권한이 없어." 그는 문을 열고는 흩어져 놓인 것들을 치우도록 늙은 만달레니아를 불렀다. 다음날, 그들이 선장을 묻을 때, 그가 생전에 언젠가 정원 자갈 위에서 친구들과 노닐던, 바토움에서의 그 성 게오르그 기념일의 그날처럼 가랑비가 부슬거렸다. 얇은 구름이 하늘을 무심히 흘렀다. 교회의 종이 조종을 알리면서 울었다. 족제비쑥풀의 향긋한 내음이 그 작은 공동묘지로부터 피어올랐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맨 앞에는 그의 상속자인 만달레니아 할멈이 통곡하면서 걸어갔다. 얀나코스는 선장이 그의 당나귀를 위해 보리를 남겨 주었다는 소식을 미켈리스에게서 듣고는 행렬에 그의 당나귀도 따르게 하려 했으나 그리고리스 사제는 버럭 화를 내었다. "그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 중의 하나가 아닌가요?" 얀나코스는 그렇게 항의를 했다. "나귀는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소." 그리고리스 사제는 격분하면서 쏘아붙였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얀나코스가 투덜거렸다. "나는 모든 당나귀들도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할 텐데." "천국은 마굿간이 아니란 말이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오." 사제는 얀나코스를 떠밀며 소리쳤다. "나 같으면 그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할 텐데." 행렬을 따라가면서 얀나코스는 고집스럽게 불평을 했다. "나 같으면 나의 유소우화키를 들어오도록 허락할텐데 - 그리고 그곳의 상황에서라면 어쩜 그녀석이 똥을 흘려 천국을 더럽히지도 않을텐데." 의식이 끝나고 모두들 한 줌씩 흙을 집어 무덤 안에 뿌릴 때 얀나코스는 미켈리스를 붙들고 코스탄디스 곁으로 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비밀을 혼자서만 간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네들한테 할 얘기가 있네. 하지만 비밀은 꼭 지켜야 하네. 아무도 아직은 모르니까... 마놀리오스가 얼굴에 더러운 병을 얻었어. 마치 악마가 그의 얼굴을 덮은 것같이 얼굴이 온통 피로 덮었고 마치 문어 같더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젊은이들, 어쩌면, 마놀리오스가 성자일까? 다만 지금 우리들로서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내가 들은 바로는 그런 병은 오직 성자나 고행자뿐이라는 점일세." "그가 성자이기 때문임이 틀림없네."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그는 성자야, 그래, 그는 성자라니까. 요즘 몇 년 동안 우리는 그것을 몰랐어." "그렇게 쉽게 흥분하지 말아요. 코스탄디스." 하고 미켈리스가 그 소식에 불안을 느끼며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우리는 먼저 그것을 조사해야 해요. 그리고 의사를 모셔야 하겠어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얀나코스가 제안을 했다. "일요일 오후에 우리 셋이서 산으로 마놀리오스를 방문하세. 게다가 나는 그를 위한 선물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조끼 주머니에서 금테를 두른 작은 책자를 꺼냈다. "복음서일세. 어제 저녁에 이걸 나에게 보내 준 사람은 바로 포티스 사제라네. 그분은 우리 넷이서, 말하자면 광주리로 물건을 퍼내서 도둑이 된 우리들이 이것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그 분의 작은 우정의 정표일세. 그리고 그분은 이 복음서와 함께 그분의 은총을 전하라고 하셨어." 그들은 족제비쑥으로 덮인 무덤 위를 걸었다. 거기에는 그들의 조상들이 누워 있다. 비로 부드러워진 대지에서는 싱그러운 흙 냄새가 났다. 그들은 잠시 멈춰서 축축하고 따스한 향취를 흠흠거리며 들이마셨다. 그들의 머리는 흠뻑 젖은 족제비쑥으로 가볍게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미켈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약혼녀인 창백하고 여윈 얼굴과 파란색의 커다란 눈을 가진, 입술을 습관적으로 가리기 위해 하얗고 작은 손수건을 항상 지니고 있는 마리오리를 생각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에, 이 묘지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왜 이곳을 왔었는지를 기억해 보았다. 그때 그들은 그가 한때 그의 집에서 본 적이 있는 아름답고 활짝 핀, 파란 눈과 곱슬머리를 지닌 늘상 생글생글 미소짓던 어린 소녀의 유골을 파내고 있었었다. 그는 열린 무덤 한쪽 모서리에 서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으려 꾸물거리고 있었다. 인부가 무덤 주위에 쌓인 큰 흙무더기 쪽으로 파낸 흙을 던져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 어린 소녀의 유골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인부가 소녀의 뼈를 긁어 넣은 나무상자를 들고 거시 서 있었었다. 갑자기 그 무덤 파는 인부가 두 손을 흙 속에 넣고는 두개골을 끄집어 냈었다. 어린 미켈리스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것이 그토록 어여쁘던 그 어린 소녀의 고운 곱슬머리란 말인가?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의 입술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의 발그레하던 빰은?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그는 묘지를 찾을 때마다 언제나 그 예뻤던 소녀와 그 두개골이 되살아나곤 하였다. "왜 한숨을 쉬는 거요, 미켈리스?" 얀나코스가 물었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미켈리스는 십자가를 장식한 뽀족철책의 문을 밀었다. "갑시다." 그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마을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그들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파나요타로스다!" 하고 코스탄디스가 소리쳤다. "저 곰까지도 장례식에 오다니." "그는 선장이 그에게 무언가를 남겨 주었다는 것을 들었음에 틀림없네. 그래서 그가 저렇게 서둘러 가고 있는 거야. 영국 여왕의 조각을 또 집어 삼키기 위해서 말이지."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기다렸다가 그와 함께 가요."하고 미켈리스가 제의했다. "우리 그를 좀 구슬러 봅시다." 그들은 멈추어 섰다. 그러나 파나요타로스는 그들을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붉은 턱수염 -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 때문에 그가 가룟 유다 역으로 뽑힌 이후로는, 그는 충실하고 성스러운 사도들도 뽑힌 자들을 봐주지 못하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들이 사도역을 맡도록 해준 저 상판떼기들!" 하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비록 내가 좀 야단스럽기는 해도 그들보다야 났지. 나는 그들보다 많은 고통을 겪기 때문에 내 집에서고 집 밖에서고 나 자신 속에는 그들보다야 백배 많은 것을 갖고있다구. 나는 나 혼자 있을 때 운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만 운단 말이다. 난 뭐가 사랑인지를 안단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란 나를 웃기게 만드는 종류의 것들이야. 그들이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들은 행복해 하고 그것에 대해 농담한다. 메스꺼운 것들, 천벌이나 받아라! 한놈은 당나귀를 가졌고, 다른 놈은 카페를 가졌으며, 또 한 놈은 부자애비와 마리오리를 가졌지. 헌데 난 아무것도 없지. 내 가게에 불을 지르고 내 마누라와 애새끼들을 밖으로 쫓아내고 내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 우리들 중 어느 편이 진정 유다인가?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그들, 만족한 자들이 유다일까?아니면 나인가? "어이,파나요타로스" 하고 얀나코스가 소리쳐 불렀다. "너무 위대하셔서 우리를 보지 못했나?" "사도님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석고멍성이가 빈정거렸다. "우리의 사기꾼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나?"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그것은 연극일 뿐이네. 오직 그런 체하는 거야, 친구야. 자네는 아직 깨닫지 못했나?" "연극이건 아니건간에," 파나요타로스가 대꾸했다. "자네들은 내 가슴에 단검을 꽂았네. 내 아내는 나를 유다라고 부르네. 게다가 꼬마들은 나를 놀리네.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여자들은 그들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구. 저주나 받아라. 너희들은 나를 영원히 유다로 만들 거야!" "모두들 당신을 좋아하오."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것 때문에 화내지 마십시오. 왜 선장이 죽을 때 당신을 기억하여 당신에게 유산을 남겨 주었겠소?" 먹어 치울 석고 말이지? 내가 영국 여왕도 먹어 버리도록 말이지? 그 벼가 송진이나 흘리렴!" "당신, 영혼을 저주하지 마시오." 미켈리스가 항의했다. "그의 몸은 아직 식지도 않았소. 그런 말일랑 거두어들이시오." "그놈의 뼈들이 송진이나 흘려라!" 파나요타로스는 다시 악을 썼다. 그의 천연두 자국으로 흉한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너는 지옥에로나 꺼지라는 나의 욕을 듣고 싶냐?" 그렇게 으르렁거리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사라졌다. "자네가 어떻게 고통없이 해적 같은 사람과 알게 되겠는가?"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리가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는 쉬 감정이 상해 버리거든." 하면서 미켈리스가 애석하다는 듯이 말했다. "게다가 과부와 관계가 깊다구." 코스탄디스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에겐 술이 탈이야. 기분이 상하면 부인과 딸들에게 매질을 하지. 그는 항상 그들을 집밖에 쫓아내 버린다고 위협을 하지." "가룟 유다가 그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 안에서 발광을 하는 모양이지."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린 괴로움을 당할 거야. 마놀리오스가 걱정스러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좋으련만." "마놀리오스가?"하고 미켈리스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과부가 그에게 관심을 두었어. 내 생각에, 우리 마놀리오스에게 말일세."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지난번 언젠가 담 밑에서 그와 함께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누군가 봤대. 파나요타로스 귀에 그것이 들어가 화가 났었지, 그는 취할 때마다 "그놈을 죽여 버리겠어." 하고 소리를 지르지. "그 돼지 새끼를 죽여 버리겠어!" 하면서 돌에다 칼을 갈고 있다네." "우리 오늘 저녁에 마놀리오스에게로 가 볼까요?" 미켈리스가 제의했다. "얀나코스, 당신이 한 말이 두렵소." "그래, 곧바로 가세나!" 얀나코스가 말했다. "파나요타로스가 먼저 도착할까 걱정일세. 그자가 "버어진 산"을 향해 떠난 예감이 드는데"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 오솔길을 빨리 올라가는 길밖에 도리가 없네." 하고 코스냔디스가 말했다. "빠른 것이 상책이야." 그들은 옆길로 빠져 오솔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재난의 예감이라도 가진 듯이 서둘렀다. 그들은 산기슭의 바위 위에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깊은 생각에 잠긴 파나요타로스를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보지 않았고 그들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지나쳤다. 비는 그쳤고 구름이 찢기어 흩어져 갔다. 여기저기서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투명한 에메랄드 빛이었다. 태양은 아직 높이 솟아 타오르고 있었다. 딸랑딸랑 방울이 울리고 피리 소리가 쾌활하고 생기차게 퍼졌다. 그들은 몇 마리의 양떼 옆을 지나갔다. 니콜리오가 피리를 입에서 떼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이, 니콜리오." 미켈리스가 소리쳤다. "네 주인이 어디 있나? 우리 속에 있나?" "거기에 없을 거에요. 전 그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찾아보시지요." "그분은 어떻게 지내는냐, 니콜리오?" "계제일(풀이: 단식과 기도를 위한 날)을 통과하는 성미 까다로운 사람처럼 지내고 있어요." 웃음을 터뜨리며 목동이 대답했다. "요리할 때는 노래를 한다구요." "귀여운 염소야, 그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단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계속 가 보세!" 미켈리스가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나도 당신들에게 비밀거리를 가지고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어제 저녁 레니오가 나의 아버지를 뵈러 왔었어요, 그녀는 그녀의 귀를 땅에다 갖다 대더군요, 필시 마놀리오스의 병에 대해서 들었음이 틀림없었어요. "나는 마놀리오스를 원치 않아요" 하면서 노인에세 쏘아붙이더군요. "왜 원치 않지? 다른 남자를 알게 되었나?" "그래요." "누구냐?" "니콜리오. 그 젊은목동이에요." "그녀석을? 하지만 그는 풋나기인데. 콧수염도 안 났잖느냐? 그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녀석이 너에게 씨를 받게 할 수 있을까?" "그는 할 수 있어요. 있고말고요" 하고 그녀는 말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예요. 그는 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예요!" 그리고는 그녀는 그 노인을 어르고 구슬리기 시작했어요. "좋다" 하고 노인은 대답했지요. "그를 배우자로 맞이하렴. 그리고 그것이 너에게 유익한 것이기를 기원한다" 하고 말하더라니깐요." "그 여자가! 그 염소를 받아들였어? 하나님 맙소사."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그런 일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대. 하나님 찬송을 받으시기를!" 하고 코스탄디스가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면서 말했다. 양 우리에 도착하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주위를 모두 돌아보았다. 유난히 툭 불거진 바위에 올라가 그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나님, 마놀리오스를 보호하소서." 하며 얀나코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가 어쩌면 자살하지 않았을까?" "당신,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미켈리스가 나무랐다. "아무것도 아닐세."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맥빠진 걸음으로 고개를 떨구고 오솔길로 되돌아왔다.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산들은 그림자 속에 제 모습을 숨겼다. 그들은 옆길로 빠져 바위 위에 세워진 작은 부속 예배당을 가까이 지나쳐 갔다. 그곳은 버려진 채 일 년에 한 번, 성 미카엘 기념일에만 쓰여졌다. 그날이면 거기서 그 성인을 위한 정중한 예배가 베풀어지고 모인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그 촛불은 반쯤 빛 바랜 프레스코 벽화를 드러나게 해준다. 그러면 붉은색으로 테두리를 한 검은 대천사 미카엘의 날개들이 다시 허공을 친다. 저녁이 되어 순례자들이 떠나고 촛불이 꺼지면 천사들의 날개들은 전과 같이 도로 접힌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촛불이 켜질 다음해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기 들어섰다. 축축한 흙 냄새가 났다. 마치 무덤 같았다. 거의 지워진 그리스도의 성화상 앞에 커다란 촛불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지성소에까지 나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분명 여기 있었었군." 하고 얀나코스는 말을 계속했다. "촛불을 켠 사람은 바로 마놀리오스임에 틀림없네. 그런데... 어디로 갔을까?"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미켈리스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면서 성호를 그었다. 마놀리오스는 그 예배당을 찾아왔었던 것이다. 그는 촛불을 켜고 어슴푸레한 밝음 속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 종일 그리스도를 명상하였다. 그는 망설이면서 감히 그리스도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말씀드려야 할 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편에서 본다면 그분은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나 그가 놀랄까 저어하여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그는 서로를 마주 보면서 한 마다도 없이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그것은 마치 가슴이 충만하여 터질 것 같으나 감정의 고조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막역한 친구두들과도 같다고나 할까. 저녁이 찾아오자 마놀리오스는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며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애기가 없었다. 그래서 마놀리오스는 작은 문을 열고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내가 해야 할 말은 다했다, 하고 그는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서로 일치하고, 그분은 나에게 그분의 축복을 내려 주셨다. 나는 지금 다만 가기만 하면 된다. 그는 커다란 수건으로 얼굴을 둘러싸고 오직 눈만 남겨 둔 상태였다. 그가 마을에 들어섰을 때에는 밤이 이슥해 갔다. 그는 가장 외딴 골목길을 택해 아주 빨리 걸었다. 그는 결심한 듯이 손을 뻗쳐 카테리나의 집 문을 두드렸다. 즉시 마당에서는 그 과부가 나막신을 끄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세요?" "문 여시오." 고동치는 심장을 안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누구시죠?" 여인의 목소리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나요, 나. 마놀리오스요." 동시에 문이 열리더니 과부는 팔을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이었군요, 마놀리오스." 그녀는 기쁘레 소리쳤다. "무엇이 저에게 이런 영광을 안겨다 주었을까? 어서 들어가요." 그는 들어갔다. 그녀는 그 뒤에서 문을 잠갔다. 마놀리오스는 불안했다. 그는 잠시 발을 멈추고 희미한 불빛 사이로 피어 있는 카네이션 두송이와 마당의 하얀 자갈들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왜 당신은 얼굴을 그렇게 가렸나요?" 하면서 과부가 물었다. "눈에 뛸까봐 두려우세요? 아님, 부끄러운가요? 들어와요. 어서요, 마놀리오스. 두려워 마세요. 난 당신을 망치진 않을 거예요." 마놀리오스는 아직 한 마디도 않고 안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과부의 얼굴과 그녀의 하얀 팔과 반쯤 드러난 가슴을 볼 수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전 당신을 생각한답니다, 마놀리오스." 하면서 과부는 말을 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잠을 청할라치면 꿈 속에서 당신을 봐요. 언제나 전 당신을 향해 소리쳐요. "오세요! 저에게로 오세요!" 하고 말예요. 그랬는데 진짜 당신이 오셨어요. 아, 당신이 정말 오시다니! 기뻐요, 나의 마놀리오스!" "나는 당신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왔소, 카테리나." 마놀리오스는 침착하게 말했다. "더 이상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왔단 말이오. 난 당신이 내게 혐오를 느끼면서 달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왔읍니다. 카테리나, 나의 누이여." "제가 당신을 혐오한다구요?" 하고 과부는 소리쳤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인데요. 당신이 그 사실을 몰라도, 그것을 원하지 않더라도, 제 자신조차도 원치 않아도 당신은 나의 구원이 되었답니다. 놀라지 말아요, 마놀리오스. 지금 당신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저의 육체가 아니라 바로 저의 영혼이에요. 왜냐하면 저 역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죠, 마놀리오스." "당신은 호롱불을 켜두셨군요. 안으로 들어갑시다. 당신은 나를 봐야 하오." "네, 들어가요." 과부는 마놀리오스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말했다. 과부의 침대는 넓고 깨끗했으며 온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위에 성처녀의 초상화가 있었고 작은 호롱불로 밝혀져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는 기름 램프가 타고 있었다. "카테리나,놀라지 마십시오." 하고 마놀리오스는 램프 불빛 아래 가서 섰다.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보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천천히 수건을 풀었다. 그의 심하게 부푼 입술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부르튼 뺨이 나타났다.뺨에서 걸쭉하고 누런 액체가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그의 일그러진 이마가 나타났다. 고깃덩이같이 자줏빛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동그란 눈이 되어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며 마놀리오스 몸에 뛰어들었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내 사랑." 하며 그녀는 부르짖었다. 마놀리오스는 그녀를 부드럽게 물리쳤다. "당신은 그래야만 하오, 카테리나. 내 누이여, 당신은 날 혐오해야만 하오. 나를 잊기 위해서, 그리고 나 또한 당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잊혀지기를 바라지 마세요. 내가 당신으로부터 떠난다면 난 나를 잃어버립니다." 절망하여 침대 가까이 있는 걸상에 마놀리오스는 주저앉았다. "나를 도와 주오, 카테리나." 하며 그는 애원ㅎ다. "내가 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구료. 나 역시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소. 나를 도와 주오.내 영혼이 망쳐지지 않도록!" 흙빛이 되어 과부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는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위험에 직면해 있는 어린아이가 어둠속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는 것같이 그녀의 가슴을 찢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무엇을 해들릴수 있습니까?" 이윽고 그녀는 나직이 속삭였다. "내가 어떻게 하시길 원하세요?" 마놀리오스는 말이없었다. "당신은 내가 자살하기를 원하세요?" 과부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구제되기 위해서 내가 자살하기를 말이예요!" "아니오,천만에!" 공포에 질려 마놀리오스가 소리쳤다. "그러면 당신의 영혼은 지옥에 갈 것이오. 나는 그것을 원치 않소!" 그들은 다시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그대를 구원하기 원하오" 이윽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내 누이여, 바로 당신을 구원함으로써 나 스스로도 구원될 것이오. 나는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영혼을 맡은 것이오." "당신이 내 영혼을 맡았다구요, 마놀리오스?" 하고 과부는 떨면서 말했다. "그것을 맡으세요. 그리구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그것을 인도하세요. 그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그분 역시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을 맡으셨던 방법 아녜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가 바로 그분이오." 갑자기 고요함을 느끼며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밤이나 낮이나 내가 생각하는 이가 바로 그분입니다.나의 누이여." "그리스도와 똑같은 길을 따르세요. 마놀리오스, 그분이 어떻게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했었나요? 당신은 아세요? 나는 모릅니다. 나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마놀리오스는 일어섰다. "나는 가겠소. 나는 당신의 말에서 자유를 느꼈소." "마놀리오스. 당신도 역시 나를 구원하는 말을 해주셨었어요. 당신은 나를 "누이"라고 불렀어요." 마놀리오스는 다시 그의 얼굴을 감쌌다. 오직 눈만 내어놓았다. "잘 있으시오. 누이여." 그는 말ㅎ다. "다시 오겠소." 과부는 그의 팔을 다시 붙잡고 그를 인도하여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손을 뻗어 카네이션 한 묶음을 꺾었다. "이것을 가지세요."하고 그녀가 속삭였다. "마놀리오스,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빌겠어요." 그녀는 카네이션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고는 어둠 속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나의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겠어요." 마놀리오스는 대문을 넘어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7. 하나님은 토기장이, 흙으로 빚으신다. 5월도 초순. 여름이 오고 있다. 고요한 녹색 들판에 곡식은 벌써 황금빛으로 바뀌고 올리브 열매들은 제법 크게 영글고 있다. 포도나무는 작고 새콤한 포도송이로 단장을 하고, 머지않아 모두 꿀송이로 바뀌어질 파란 무화과 열매에서는 씁쓸한 즙이 흐른다. 리코브리시의 주민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마늘을 먹고 있다. 그래서 온 마을에는 마늘 냄새가 가득하다. 늙은 파트리아케스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배불뚝이가 되어 가고 피는 탁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이발사 안도니스는 뇌일혈로부터 그를 구하기 위해 흡각으로 방혈을 했다. 라다스 영감 또한 그의 정신이 채권과 채무 사이를 왔다갔다 하여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마늘의 여린줄기를 우적우적 씹는 것이었다. 그는 올해 또 얼마나 많은 기름과 포도주와 곡식을 거둬들일지? 그에게 누가 얼마나 빛을 졌으며, 그는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다시금 거둬들일 것인지? 거기다가 그는 얀나코스 화품들을 공매에 붙이고 그의 당나귀를 빼앗을 심산이었다. 약혼자들은 풀이 죽어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5월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6월에는 밭일이 바빠 결혼의 주연을 베풀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달 후에는 추수타작이 있고, 그 다음달에는 포도 수확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좀 한가해지는 9월의 성 십자가의 날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한 해의 수확물이 모두 가늠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제는 특별 배려를 한, 이를 테면 많은 빵과 기름 그리고 마실 포도주를 가진 새로운 부부에게 축복을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자식을 낳고 기르는 정력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걱정거리가 참 많았다. 딸 마리오리는 아직도 혼례를 치르지도 않았고 미켈리스는 침울에 빠져 갔다. 그는 한 번도 밝은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마놀리오스와 그의 친구들은 그럭저럭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잘익은 배와 같은 성숙된 인간미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 줄 아는 한 사람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는 그의 부친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난한 자들에게 밀가루와 기름을 베풀어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얀나코스의 신세 사나운 당나귀 - 그것이 처참하게 죽지나 않을지! - 는 사라키나의 피난민들에게 식량바구니 배달을 맡았다... 모든 것을 삐딱하게만 생각하는 그리고리스 사제는 바보 같은 미켈리스가 머지않아 그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내 딸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 염소수염을 한 사라키나의 사제가 산 위 동굴에서 매주일마다 미사를 드리면서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설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리코브리시의 몇몇 주민들은 그들의 그리고리스 사제를 버리고, 사람의 눈에는 반쯤 미친 듯한 방랑자 사제에게로 가서 설교를 듣는 것이었다. 온 마을이 온통 쑤셔 놓은 벌집 같았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자신을 향해서 말했다. 한 벌집에 두 여왕벌이 있을 자리는 없는 법. 그자를 쫓아내어 다른 곳으로 떼지어 방랑케 하자. 사라키나는 나의 벌집이란 말이야. 사라키나에도 전처럼 5월의 계절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곳에 피신한 무리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저기 돌더미 사이로 들장미와 산사나무 꽃 따위의 들꽃들이 피어났다. 그리고 푸르퉁퉁한 도마뱀들이 무수히 따뜻한 햇살을 받기 위해 밖으로 기어나왔다. 이곳에 올리브나무도 포도나무도 정원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거친 바위들만이 무수할 뿐이었다. 이따금씩 인간에 대해 증오심만을 가지고 있을 앙상한 씨와 가시뿐인 쓴 열매 - 야생 올리브, 캐로브나무나 야생 배 - 가 달린 나무들이 바람에 휘거나 뒤틀리며 시달렸다. 일요일이었다. 반쯤 마멸된 프레스코의 벽화가 환하게 복구되었다. 고난자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습기 때문에 턱과 수염이 닳아 부석해졌으며 어떤 사람들은 머리나 발이 절단되어 없어지기도 했다. 커다란 십자가상에는 녹청색 곰팡이로 덮인 그리스도의 얼굴과 피가 묻은 납빛의 두 발이 달린 십자가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아침이 되자 찬송을 부르며 남자와 여자들이 동굴을 메웠다. 그들은 길게 늘어서서 그곳을 나와 햇빛 아래 앉았다. 포티스 사제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매주 일요일, 미사를 마친 후에 그는 그에게 붙여진 양떼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습관이 있었다. 먼저 그는 그들에게 인사를 보내고 개개인들에게 좋은 말씀을 나누어 주곤 하였다.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에는 항상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조금씩 열도가 더해져서 그의 목소리는 어느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듯하곤 하여 듣는 사람의 영혼 속으로 더 진하게 파고들어 갔다.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이여, 축복을 받으십시오!" 사제는 그날따라 그들에게 더욱 평안을 끼치기 위해 명랑한 음성으로 한 번 더 강조하였다. 때때로 그는 우화를 인용하여 설교하였고, 때로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보아 왔고 겪어 왔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복음서를 들고 아무 곳이든 펼쳐서 몇 구절의 말씀을 읽어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그의 양떼들의 눈앞에는 별이 총총한 하늘이 열리는 것이었고 그들의 누더기는 가벼운 날개로 변하곤 하였다. 그들은 배고픔조차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진리를 어떤 면에서 전설이라고 부릅니다." 하면서 그날 포티스 사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전설 하나를 이야기해 드리지요. 자녀들이여, 가까이 오십시오. 이봐요, 울고 있는 여인이여,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당신 같은 분이에요. 이리 가까이 오세요!" 여인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그의 주위에 둥글게 모여 웅크리고 앉았다. 그들 뒤에는 남자들이 서 있었다. 노인들은 지팡이에 의지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옛날에," 하고 포티스 사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에 올라가서 생그물을 쳐 두었었지요. 다음날 그들이 다시 가 보니 - 아니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 그 그물에는 검은 비둘기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물들은 도망가려고 필사적으로 퍼덕거렸지만 그물코가 너무 촘촘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을 빠져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포에 질린 그들은 서로서로 뭉쳐서 다가올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그때 "썩정이 같은 것들, 뼈와 가죽뿐이잖아." 하고 한 사냥꾼이 말했어요, "이것들을 어떻게 시장에 갖다 팔지?" "며칠 동안 모이를 주고 길러 보자구. 그러면 살이 붙을 거야." 하고 다른 사냥꾼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검은 비둘기들에게 사료를 많이 주고 물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검은 비둘기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마리의 비둘기만이 먹지 않고 버텼습니다. 다른 놈들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료들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검은 비둘기들은 나날이 살이 통통하게 쪘지요. 그러나 오직 한 마리만은 점점 더 여위어 갔어요. 그놈은 억척스럽게도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놈의 그러한 발악은 사냥꾼들이 그것들을 시장에 내다 팔기 하루 전날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그 먹지 않고 있던 검은 비둘기는 너무 말랐기 때문에 필사의 노력 끝에 간신히 그물코를 빠져 나갈 수 있었으며 아주 멀리 날아갔던 것입니다. 그놈은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들려 드리고자 한 얘기올시다. 자녀들이여, 왜 내가 이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하였을까요? 그 의미를 발견한 자 있나요? 노인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머리를 써서 조금만 생각해 보시지요." 노인들은 모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체격이 건장한 기수가 벌떡 일어났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제님, 당신께서 우리들의 굶주림을 말하신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굶주림이 우리에게 자유를 얻도록 도와주리라는 얘기 같군요. 당신은 우리가 먹지 못한 비둘기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모르겠군요. 내 머리가 그 이상은 돌아가지 않는데요. 죄송합니다, 사제님." "자네가 정수를 바로 찔렀네, 루카스. 난 자네를 축복하네." 하고 사제가 말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남은 뜻을 말씀드리지요. 성도들이여, 지난날 우리는 부유한 마을에서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 위에 음식물을 과중하게 얹어 놓았었소. 우리는 너무 지나쳤던 것입니다. 평화와 안전, 편한 생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살은 두터워졌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영혼을 노예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다. 정의가 세상을 다스리고 굶주리는 사람도 없고, 추위에 떠는 사람도 없어.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동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멀리 쫓아낸, 터어키인을 보내어 우리를 길거리에 내어던지셨습니다. 우리는 박해를 받았으며 세상은 참으로 불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춥고 배고픕니다. 그러나 주연을 베풀고 난로에는 항상 불을 피우고 있는 사람 앞에서 누더기를 입고 굶주린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로 웃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불행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굶주림이 우리의 날개를 펴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불의와 안일로 가득했던 생활의 그물에서부터 빠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생활, 더 고상한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찬송을 받으소서!" 모두들 숙연해졌다. 노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듯 머리를 가로 저었으며 여인들은 나직이 흐느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들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인내가 깊이 내재해 있는 것을 느끼면서 사제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오직 기수만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사제님,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동정하시기 위해서 불운 속으로 우리를 몰아내셨습니다. 말이 헐떡거리며 고통스러워할 때 마부가 그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불운은 우리의 피에 채찍질을 하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므로 우리는 자유로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우리는 이 불운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겁니까? 당신께서는 그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불운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운이 우리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사제님!" 그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그 순간에 사랑스런 아들 게오르그를 기억했다. 그의 아들은 오래 전에 죽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두려워 마시오, 루카스. 우리는 불운에 멍에를 씌우게 될 것이오!" 사제가 대답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위해 일할 것이오. 자네는 보게 될 것일세. 노력과 인내와 사랑, 이것이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자신을 가집시다. 나는 눈을 감을 때마다, 내 주위에 온통 들집들과 종탑을 가진 교회와, 이층으로 지은 학교와 어린이들로 가득한 운동장, 그리고 마을 주변에 있는 공원과 포도밭, 그리고 곡식으로 가득한 들판들을 본다오. 우리는 이미 시작하였소. 우리는 바위들 사이에 조그만 땅을 발견했소. 우리는 그곳에 씨를 뿌렸소. 우리는 수로에서 역류하는 물줄기를 잡았소. 그리고 야생나무들을 접목시켜 개량을 시작했소. 우리는 건설을 시작한 것이오. "늑대의 우물"인 리코브리시라는 긍지있는 마을에는 몇몇 동정심있는 사람들이 있소. 그들은 우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전 재산 세 파운드의 금화를 가져왔소. 또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보내왔습니다. 또한 어느 죄 많은 여인이 그녀의 암양을 선사했습니다. 다른 한 죄인은, 그저께 죽었는데, 우리들을 위하여 옷가지와 물건들이 가득 찬 궤짝을 남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그의 죄 많은 영혼을 용서해 주시기를. 여러분, 우리는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자녀들이여, 우리는 다시 한번 흙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싹터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밑등과 가지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을 가집시다!" "우리는 별로 다를 바 없는 인간 다반사를 다시금 시작해야 하나요, 사제님?" 하고 허리에 넝마를 걸치고 있는 거칠게 생긴 젊은이가 소리쳤다. 그는 굶주림에 지쳐 창백해 있었다. "매일반의 일을 말입니까, 사제님?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당신은 잘 기억하시겠지요. 고향에서도 모두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지요. 역시 가난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어머님께서는 그 마을이 기름과 포도주 위에 떠서 헤엄칠 정도로 흥청거렸을 적에 유감스럽게도 굶어 죽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냄새가 제 어머님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런 만큼 그러한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노랫가락일 뿐이겠지요. 사제님, 또다시 부자와 가난뱅이가 생겨나겠지요?" 포티스 사제는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게나, 페트레스" 하고 그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에게 던진 반문 그것은 바로 밤낮으로 주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네. 그리고 나는 그분께 그것을 밝혀 알려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네. 난, 그분께 소리친다네. "새로운 기초를, 주여 우리는 마을을 위해 새로운 기초를 원합니다. 불의는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굶주리고 춥게 하시든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음식과 따뜻함을 누리게 해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이 지상에 정의를 실현할 수 없나이까?" 하고 말이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던가요?" 그 젊은이가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 분의 힘에 의해 나의 이 보잘것없는 영혼이 신성한 빛을 받고 있소. 정확히 말하자면 불운은 우리들을 마침내는 공동의 형편으로 만들었소.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이제는 아무도 빵을 구울 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 아무도 배고픈 자에게 베풀기를 거부하던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게 되었소.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이 그것을 위해 분발해야 한다는 사실이오. 성도들이여, 우리의 영혼은 만복으로부터 자유로와졌으니 이제는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오." 그는 두 손을 지팡이 손잡이 부근에다 포개고는 자신의 말에 머리를 가로젓고 있는 한 노인에게 머리를 돌렸다. "카릴라오스 영감님, 만약 석 달 전에, 우리가 화를 당하기 전에 당신의 포도나무들과 올리브나무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명령을 받았었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주었겠소?" "천만에! 오 하나님 용서하소서." 하고 그 노인은 대답했다. "당신들의 양팔과 두다리, 당신들의 폐를 잘라 이웃에게 줄 수 있겠소? 나에게는 나의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그것들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영주이신 파울레스여, 당신은 당신의 궤를 열어 빈곤한 사람들에게 금덩이들을 집어서 나누어 줄 수 있었을는지." 사제와 얼굴을 대하고 있던 한 늙은이가 얼굴을 찡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궤를 생각하고는 괴로운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고 포티스 사제가 갑자기 흥분하여 소리쳤다. "땅과 나무들을 가진 사람은 그 스스로가 땅이 되고 나무가되어 버림으로써 그의 영혼은 거룩한 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궤를 가진 자는 자신이 궤로 전락합니다. 가엾은 파울레스, 당신은 하나의 궤짝에 불과했소. 당신은 죽음 앞에서 나아오기까지 땅에 불과했단 말이오. 가엾은 카릴라오스! 하지만 주님이시여,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침내 혼자 힘으로 헐벗고 굶주린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부유하고 번영을 누렸던 주인들이여, 여러분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소." 하며 늙은 파울레스가 한숨지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모든 것들을 깨끗이 쓸어 버릴 것입니다." 하며 포티스 사제는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네 것, 내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울타리나 자물쇠나 궤가 필요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일하고 모두 먹게 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의 능력껏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보이도마타에 낚시질을 갈 것이고 어떤 이들은 밭에서 일하고 또 다른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동물들을 방목하러 들로 데리고 나갈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 형제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가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아버지를 가졌습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마음에 새로운 기초를 놓읍시다.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기초를 놓읍시다." 하고 그들 모든 무리들에게 두 팔을 벌리며 소리를 높였다. "기초를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나를 도와 주십시오. 형제들이여! 노력과 인내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최초의 기독교도들이 한 일 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땅 속의 카타콤(풀이: 지하의 무덤과 같은 장소로서 초기 기독교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예배처소로 모이던 비밀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새로운 기초를 세웠습니다. 대지의 한 배꼽인 이 동굴들은 우리들의 기초, 카타콤인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질서를 세울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페트레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지난날을 잊어버리시오. 그것이 물러가게 하시오! 우리 다 함께, 새로운 세상의 건설을 도웁시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손을 잡고 그들은 그들의 사제 주위를 파도처럼 둘러쌌다. "우리 다 함께!" 하고 다시 한번 사제가 소리쳤다. "모두 함께! 이것은 우리들의 새로운 구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구할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하고 남자와 여자들이 마치 맹세하는 것처럼 그들의 손을 쳐들고 소리쳤다. 늙은 카릴라오스는 성호를 그었다. "가난은 우리의 마음을 넓게 만들었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젖어 있었다. "오, 하나님, 나에게 부유함을 허락지 마옵소서. 그러면 나는 다시 사악해질 테니까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카릴라오스 영감님." 하고 페트레스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이 부유해지도록 하지 않을 테니까!" 사제는 자신의 사제복을 벗어 그것을 접어서 성물을 보관하는 늙은 여인에게 넘겨주었다. "나의 형제들이여,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을 누리십시오. 내일 다시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공놀이를 하게하고 남자들은 모여서 의논들을 하고 여자들은 모여서 잡담과 서로의 바구니를 제공한 우리의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이 되도록, 성도들이여,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오!" 그는 말을 마치고는 지팡이를 짚고 그곳을 떠났다. 마놀리오스를 둘러싸고 세 사도를,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은, 베드로 역인 얀나코스가 그날 아침 가져온 작은 복음서를 펼쳐 놓고 그것을 막 읽으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놀리오스의 흉한 얼굴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이 가졌던 첫 번째 공포는 지나가고 그들은 역겨움이라든가 두려움없이 그를 이제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얀나코스는 마놀리오스 몰래 포티스 사제에게 가서 마놀리오스의 비참한 형편을 살펴보아 달라고 부탁해 놓았던 것이다. 그 사제는 많은 것을 보고 겪었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의 온갖 장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치료의 비법을 알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마놀리오스에게 필요한 것은 연고나 내복약이 아닐 것이었다. 분명히 이런 갑작스런 병은 어딘가 다른 무엇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사탄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제는 깨끗하지 못한 영을 몰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그들 세 사람은 병든 친구를 위해 각자 선물들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왔었다. 얀나코스는 작은 복음서를 가지고 왔으며, 코스탄디스는 터어키제 기쁨의 상자를, 미켈리스는 작은 십자가의 화상을 가지고 왔었다. 그 초상화는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찌기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 그림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와 그 주위에 그려진 수많은 제비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천사들이 아닌 제비들은 그의 팔 위와 십자가 꼭대기에 마치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부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십자가 전체는 꽃으로 덮여 있었다.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활짝 핀, 편도같이 보이게 만든 작은 분홍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꽃들 한가운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미소짓고 있었다. 십자가 밑에는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서 그녀의 머리를 풀어 그리스도의 발로부터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양 우리 옆에 놓인 긴 야외의자에 앉아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는 머리를 감고 주일용 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가 조각한 그리스도의 얼굴을 들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면을 들여다보다가 왼편으로 돌려서 보기도 하다가 또 왼쪽으로 돌려서 눈물 흘리는 눈과 고통이 흐르는 입과 외로운 미소를 명상하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선물들을 받고는 복음서에 입을 맞추고 그 십자가 상을 살표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것은 십자가 상이 아니다. 이건 봄이야."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십자가 발치에 앉아 있는 금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을 보고는 한숨지었다. 그는 십자가의 발치에 그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공포에 휩싸였다. 그에게는 그가 창녀의 금발과 드러난 목에 키스한 듯이 여겨졌던 것이다. 얀나코스는 마놀리오스의 손에서 화상을 빼앗았다. "이리 오게나, 마놀리오스!" 하고 그가 말했다. "복음서를 펼치고 읽게나." "무엇을 읽을까요? 얀나코스?" "아무 데나 읽게!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이해할 때까지 토론해 보세." 마놀리오스는 복음서를 잡고 앞으로 몸을 굽혀 그것에 입을 맞추고 펼쳤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그는 말하고는 한 귀절 한 귀절씩 읽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것은 쉽네" 하고 기쁜 표정으로 얀나코스가 말했다. "주님, 찬송을 받으소서. 나는 그것을 이해했네. 그리고 자네는, 코스탄디스?" 코스탄디스는 의문스러웠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라니?" 하고 그는 물었다. "배우지 못한 자들 모두를 말한다네." 하고 얀나코스가 설명했다. "머리를 뽐내기 위해 큰 학교에 다닌 일이 없는 사람을 말하지" "아니오, 배우지 못한 자란 뜻은 아니오." 하고 마놀리오스가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대는 포티스 사제같이 지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대는 라다스 영감처럼 무식꾼이 되어 못들어갈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오, 얀나코스. 미켈리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악의가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미켈리스가 제안하였다. "마음이 단순하고 청결한 사람이지. 공연히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순수한 결ㅂ과 자신을 믿는 사람이지. 그것이 내가 이해한 내용이야. 아뭏든 포티스 사제에게 물어 보세. "그다음!" 하고 조급하게 얀나코스가 말했다.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다음을 읽어보세!" 마놀리오스가 천천히 계속 읽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오." "그것은 명백하네!" 하고 얀나코스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소리쳤다. "온유한 자는 복되다. 이것은 친절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것을 뜻하는 거지. 그들은 마지막에 가서는 이길 자들이지. 그리고 모든 세상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일세. 그들이 세상을 정복하게 되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전쟁은 없어 진다고! 전쟁은 사라져! 우리는 모두 한 형제들이야!" "터키인들도?" 하고 수긍하기를 주저하면서 코스탄디스가 물었다. "터키인들도 마찬가지지." 하고 자신 있게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아그하와 유소우화키, 그리고 후세인도 물론이구!" "그리고 포티스 사제의 마음을 파괴한 그자들도?" 하며 코스탄디스가 고집스럽게 물었다. 얀나코스는 다시 그의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걸." 하고 그가 대답했다. "포티스 사제에게 물어 보겠네. 그 다음을 읽어보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른 것임이오." 얀나코스가 흥분이 되어서 벌떡 일어섰다. "복이 있나니." 하고 소리쳤다. "옳은 일은 좇아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그것은 곳 우리들일세. 그건 그리스도게서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목마르고 배고프다구. 난 가슴에 날개가 돋는 것같이 느껴지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얼굴을 나에게 돌리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용기를 갖게나, 친구들! 마놀리오스, 다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파트리아케스 영감님이시여, 이것을 들어보시라!" 하고 얀나코스가 다시 벌쩍 뛰며 외쳤다. "이 말씀을 들으시오. 우리들이 어질고 가난한 자들에게 네 바구니의 음식을 주었다고 해서 거리에서 우리들과 더 이상 인사도 나누지 않는 폭식가여, 이 말을 들으시오. 그리고리스 사제여, 산해진미로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식탁에 앉아서 굶주린 자들을 내어쫓아 버리는 미천한 대식가여! 그대가 그대의 올챙이 배를 너무 채운 나머지 그것이 터지면 온 마을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라다스 영감쟁이, 그대의 수호 천사에게 조차도 물 한 컵 주지 않는 늙은 구두쇠여! 미켈리스, 자네는 부친을 닮지 않아서 다행일세. 자네는 네 개의 바구니와 함께 천국에 들어갈걸세. 왜냐하면 그 음식물들은 자네의 것이니까 말일세.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었지." "어디서 당신은 모든 걸 그렇게 척척 푸는 비결을 배웠나, 얀나코스?" 코스탄디스가 놀라서 물었다. "자네는 솔로몬의 지혜를 가졌군!" "나는 그것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세, 노인장." 하고 얀나코스가 대꾸했다. "나는 가슴으로 그것을 느낀다네. 그것이 솔로몬이지 뭐! 자, 계속하세. 마놀리오스, 다음은?"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그곳을 다시 한번 읽게나, 마놀리오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천천히 말이야. 부탁하네. 그곳은 나도 좀 어리둥절한걸. 주님, 용서하소서." 마놀리오스는 그 귀절을 다시 한 번 읽었다. "나에게는 명백하게 느껴지오." 하고 그는 말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원로들, 잘 사는 이들, 그리고 거짓말쟁이들, 불성실한 자들은 언젠가 우리들을 쫓아와 우리 넷을 추방할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그들이 온갖 추종자들을 몰고 올 것이오. 그들은 우리에게 돌을 던질지도 모르고 우리를 죽이기까지 할지도 모르오. 일찌기 사람들은 예언자들에게 그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그분의 생명을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이 귀절이 뜻하는 바이오." "자네 말이 옳아, 마놀리오스." 하고 얀나코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나는 그리고리스 사제가 가야바처럼 선두에서 행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네. 그 다음에는 라다스가 소리치며 그를 따르겠지. "그들을 죽여라! 그들을 죽여! 그들은 우리의 궤를 열고 우리의 금덩이들을 저희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하면서 말일세. 그리고, 다음에는 늙은 파트리아케스를 볼 수 있네 - 나에게 감정을 갖지 말게나, 미켈리스 - 빌라도 역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나는 그 일에서 손을 씻고 싶소. 나는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소. 그들을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 말일세. 그러나 그는 내심으로는 기뻤지.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방해했기 때문일세. 우리들은 그가 태평스럽게 젖먹이 돼지 새끼를 포식하도록 두지 않았고 하인들을 거칠게 다루도록, 그리고 과부 카테리나가 그를 맛사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거든 - 이것은 그가 한 말일세. 왜냐하면 그는 우리들 때문에 오싹해졌겠지. 이봐, 믿음이 얕은 구두쇠, 쾌락가, 그것이 올 것일세. 이제 막 올 것이야. 그것은 이미 여기 왔네. 하나님의 공의가!" 그는 자신의 말에 도취되어 있었다. 마을을 굽어보면서 팔을 쭉뻗쳐 마을을 압도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 그는 앞에 포티스 사재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죄송합니다,사제님." 하고 그는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은 복음서를 읽고 있었으며, 저의 가슴이 불이 일 듯하였습니다." 포티스 사제가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으나 네 친구들은 복음에 열중하여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을 그 자리에서 미소를 머금고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나의 아들들이여." 하고 가까이 다가서면서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그들은 뜻밖의 기쁨에 일제히 일어나 사제를 위하여 앉을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사제는 앉을 생각도 잊은 채 마놀리오스를 보고 소리쳤다. "이게 웬 일인가, 나의 아들이여? 무슨 일이 있었느뇨?" "하나님께서 저를 벌하셨습니다, 사제님." 마놀리오스가 고개를 떨구면서 대답했다. "절 바라보지 마십시오. 시선을 복음서로 돌리시고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들은 저희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당신의 성스러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배우지 않아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의 머리는," 하고 코스탄디스가 덧붙였다. "사각으로 된 형편없는 널빤지 입니다. 오셔서 그것을 직선으로 다듬어 주십시오, 사제님." "내가 자네들을 도우라고?" 하고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인들이 여기 서서 자네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할걸세. 그러면 그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말씀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걸세. 자네가 옳아, 얀나코스. 성서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닐세. 보잘것없는 머리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어. 자네는 그것을 마음으로 읽었네. 그것은 모든 것을 이해하지. 다음 어느 적당한 일요일에 얀나코스, 자네는 우리 교회에 와서, 우리의 카타콤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해 주게나. 웃지 말게나. 정말일세." 그리고 사제는 마놀리오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들아, 모든 병들은 영혼으로부터 온다네. 그리고 영혼이 육신을 지배하는 것일세. 자네의 영혼은 병들었네, 마놀리오스. 자네의 영혼이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네! 그러면 몸은 좋든 싫든 몸은 따른다네. 그러나 먼저 이야기하세 왜 자네는 나를 부르러 보냈나? 내가 어떻게 자네들을 도울 수 있겠나? 나에게 말해 주게. 그럼 자네와 나, 들어서먼 얘기할까, 마놀리오스?" "사제님" 하고 미켈리스가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모신 것은 마놀리오스의 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의논했죠. "아마 그의 얼굴에 기식하는 악마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제님의 성스러움은 그 악마를 멀리 쫓아내는 악마 추방법을 알고 계실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또한 사제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하고 얀나코스가 덧붙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예를 들자면 아그하라든가 그리고리스 사제나 혹은 라다스 영감의 얼굴이 아니라 마놀리오스의 얼굴에 이런 저주가 임하나요? 이것은 도대체 어떤 유형의 공의입니까? 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얼굴을 돌렸다. "왜 자넨 항의하지 않나? 왜 자네는 하나님을 향하여 목청을 돋구어 그분께 항변하지 않느냐구? 자네는 팔짱을 끼고 머리를 앞으로 떨구고는 하나님이 나를 징벌하고 계시다 하고만 푸념하면서 그냥 자족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외에 자네가 무얼 했는가? 왜 그분이 자네를 벌하고 계시는가? 대꾸를 좀 해보게나? 자네는 양이 아닐세. 제기랄. 그분께 질문하게! 그것이 인간이야. 대꾸하고 물어 보기도 하는 살아 있는 피조물이란 말이야!" 포티스 사제가 벌떡 일어서면서 손을 펴 얀나코스의 입을 막았다. "자넨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네." 하고 나무랐다. "자네는 너무 크게 목청을 돋구고 있단 말일세, 얀나코스 자네는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자네들에게 설명을 하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네. 자네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지상에 내려오게 만들고자 하는가?" "전, 저는 알고 싶습니다." 하고 얀나코스가 당황하여 갈팡질팡하였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고, 얀나코스?" 하고 사제는 몸서리를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발 밑에서는 한갓 눈먼 벌레일세. 그런데 어떻게 그분의 형언할 수 없는 위대성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가 젊었을 때, 자네처럼 반항하고 따지곤 했었다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네. 어느 날 나의 스승께서 아토스 산에서 내게 비유로 가르쳐 주시더군. 그는 가끔 비유로 교훈하셨다네.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지켜 주시기를!" "옛날에 하고 그는 말하였네. 사막에 외떨어진 한 작은 마을이 있었어. 그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장님들이었다네. 어느 위대한 왕이 군사를 이끌고 그곳을 지나갔다네. 그는 한 마리의 커다란 코끼리를 타고 있었지. 그 마을의 눈먼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코끼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 대단한 동물을 만져 보고 싶은 커다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들 중 십여 명의 원로들이 길을 나섰었지. 그들은 왕에게 코끼리를 만져 볼 수 있도록 간청을 했다네. 왕은 그들의 말에 "좋다. 허락한다. 그것을 만져 보라" 하고 말했었지. 그들 중 한 명이 코끼리의 코를 만져 보았지. 다른 사람은 발을 만졌고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져 보았지. 또 어떤 이는 그것의 귀를 만지기 위해 위로 번쩍 들려졌으며, 또 어떤 이는 코끼리의 등에 올라탔다네. 그 장님들은 아주 흡족해서 그들의 마을로 되돌아갔던 것일세. 마을의 다른 장님들이 그들의 주위에 몰려들어 그 환상적인 동물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자못 궁금해서 물어 보았지.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네. "그것은 제 마음대로 일어서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하고 자네들이 눈치를 챌라치면 우는소리를 내는 커다란 파이프더군." 다른 사람이 말했지. "그것은 털이 더 많은 기둥이네." 또 다른 이는 "그것은 요새같이 견고한, 역시 털이 많은 벽이더라구." 했다네. 또 귀를 만졌던 사람은 "그건 절대로 벽이 아니야. 그것은 거칠게 짠 두꺼운 모직물 양탄자야. 그리고 그것은 만지면 움직인다구." 하고 말했네. 그러자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소리쳤다네. "자네들은 무슨 터무니없는 소릴 하고 있나? 그것은 걸어다니는 거대한 산이라네." 하고 말했다는 거야." 사제의 얘기에 네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바로 그 장님들이로군."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제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그분의 작은 발톱을 살펴보고는 전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돌같이 딱딱하다" 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따질 권리가 없습니다." 하고 미켈리스가 말했다. "하나님은 마놀리오스를 내리칠 이유를 가지고 계심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을 뿐이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장님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님," 하고 마놀리오스는 머리를 들면서 말했다. "우리들 네 사람은 올해, 떨어질 수 없게 묶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모두 함께 왜 하나님이 저를 벌하시며 어떻게 치료하시는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저 자신은 아직 이 악마가 저의 얼굴에 있게 하는 동안에는, 그것은 제가 아직 참회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하나님 또한 저를 받아들이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생각이 옳아, 마놀리오스, 나의 아들아." 하고 사제가 말했다. "그것은 초대 기독교도들이 한 것일세. 그들은 모인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네. 모두들 함께 구원의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했었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마놀리오스 자네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있네. 우리들이 다 같은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리고 이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들 위에 계시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는 것일세." 마놀리오스는 오랫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의 전생애가 자신의 눈앞을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가정의 빈곤, 그리고는 고아로 남겨지게 되어 아주머니, 만달레니아가 많은 불평 속에서 그를 양육했다는 사실 등이 떠올랐다. 그 후 수도원에서의 아름다운 생활과 평화, 그리고 스승 마나세는 엄숙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데바이드에서의 금욕주의자들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 주었었다. 또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의 사도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의 못박히심에 대해 얘기해 주었었다. 지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란 얼마나 기쁜 것인지!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파트리아케스가 그의 시종과 함께 수도원 안마당에 노새들과 함께 행복에 겨운 목소리를 발하며 도착했었던 것이다. 마놀리오스는 머리를 치켜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제님." 하고 그는 말했다. "나의 지나온 생애가 다시금 내 뇌리 속을 관류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사제님. 나에게 질문해 주세요.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나에게 질문해 주오." "초두를 애써 찾으려 하지 말게, 마놀리오스." 하고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처음도 끝도 없는 것일세. 자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나 말하게, 눈을 감게나, 마놀리오스, 무엇이 보이나? 생각하지 말고 대답하게.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입니다. 모든 원로들이 회합 중에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내년의 성주간을 위해 각자의 배역을 선정했습니다. 교회의 난간 아래서 벌어질 두려운 성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나에게 와서, 내 머리에 그의 손을 얹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뽑은 자는 바로 자넬세, 마놀리오스."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십자가를 감당하라고 선택한 자가 바로 자넬세." 나의 심장은 수없이 쪼개어져서 흩어졌었습니다." 마놀리오스는 눈꺼풀을 떨며 두 눈을 떴다. 그의 생각들은 친구들에게로 돌아왔다. "사실입니다. 그 순간에 나의 심장은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터져 버렸습니다." 하고 그는 다시금 말했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들고 있다가 그리스도의 발 밑에서 깨뜨려 버린 향수병처럼 말입니다." "내가 어릴 때, 나는 많은 공상을 하였습니다. 나는 성인들의 생애에 관해 읽곤 하였지요. 나의 마음은 열망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성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내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일념뿐이었지요. 즉 수도사, 그것뿐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 데바이드에 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정확히 알겠지요. 나는 나 스스로를 학대하였으며 악마가 내 마음속에 불을 들쑤셔 놓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오. 그리고 나는 불타고 있었소. 나는 감히 기적을 행하고 싶었던 것이오. 나도 말입니다. 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내가 그날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을 물러나왔을 때 내 머릿속은 붕붕거렸습니다. 나에게는 마을이 작아 보였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늙은 파트리아케스의 비천한 양치기가 아닌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커다란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 즉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굉장한 추측이군!" 하고 코스탄디스가 중얼거렸다. "자네 마놀리오스는 아주 상냥하고, 매우 평범하며..." "코스탄디스, 나의 아들아." 하고 사제가 말했다. "지금 마놀리오스의 가슴은 충일해 있네. 그것이 넘치도록 두게. 그리고 후에 자네대로 판단하게." "형제들이여, 나를 용서하시오." 하고 마놀리오스가 중얼거렸다. "루시퍼(풀이: 성서 속에서의 사탄을 뜻함. 거만을 상징함)의 거만한 영이 내 안에 있었소. 나는 이런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소.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고백하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햇빛 아래 내놓아야 해요. 하나님이 듣고 계실 테니까." "어서, 말하게, 마놀리오스." 하고 사제가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말게. 인간의 마음엔 뱀과 두꺼비와 돼지들의 깊은 구멍이 있네. 자네의 마음을 비우고 그곳이 맑고 밝게 하게나!" 마놀리오스는 다시 용기를 내었다. "나는 칠면조처럼 부풀어 거만해졌었소. 나는 되풀이해서 자신을 거만으로 가득 채우면서 돌아다녔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바로 자네야. 마놀리오스, 바로 너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 당신에게 감사드리오, 얀나코스, 형제여." 그는 그의 친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입을 맞추려고 하였다. 그러나 얀나코스는 당황하여 손을 움츠렸다. "무슨 짓인가, 마놀리오스? 자네가 나의 손에 입을 맞추다니? 나의 손에 말이야." "당신의 손에, 얀나코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왜냐하면 나의 눈을 열어 준 것은 바로 당신이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는, 내가 위선자이며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았소. 얀나코스, 기억해 보구려. 당신이 선장의 집 앞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당신이 내게 말했었지요.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장이! 자네는 그리스도 같이 되기를 원하네. 그러면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네. 자네가 십자가에 오른 후에, 그 역이 끝나면 레니오는 자네를 더운물에 담그어 씻어 주고는 자네에게 갈아입을 깨끗한 아마천 옷을 가져다줄 걸세. 그리고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겠지!' 하고 말했었소." "나를 용서하게, 마놀리오스!" 하고 친구의 두 팔에 자신을 던지면서 얀나코스가 소리쳤다. "자넨 그날 어떤 악마가 나를 몰아 세웠는지 알지 못할 걸세. 언젠가 나도 고백하겠네. 그러면 아마도 자네는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었던 지를 알게 될걸세... 그 사제는 알고 있네." "그가 모든 것을 햇빛아래 내놓도록 하세, 형제들이여, 그가 구원될 수 있도록 말일세." 하고 포티스 사제가 얀나코스를 앉히며 다시 한번 말했다. "마놀리오스, 말하게. 자네는 이미 좀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네." "내가 이야기함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신빕니다. 고해란 커다란 신빕니다! 이제 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벗겨 내겠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는 듣고 있네, 나의 아들아." 하고 마놀리오스의 어깨 위에 그의 손을 얹으면서 사제가 말했다. 마치 그는 그에게 힘을 건네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말해 보게나, 나의 아들아!" "얀나코스가 나의 심장을 그렇게 벌겨벗겨 놓은 순간부터 나는 뒷걸음질쳤습니다. 나는 절벽을 보고 멈췄습니다. "너는 부끄럽지 않은가, 마놀리오스" 하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요. "너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연극이라고 생각하나? 너는 그렇게 신과 인간들을 속이려고 생각하나? 너는 네가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나를 좋아했던가? 부끄러워하라, 이 사기꾼아! 결정하라, 이 위선자야!" 하고 말입니다." 얀나코스는 다시 한번 자신을 억제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게 말했네. 마놀리오스, 자네는 성자야!" 하고 소리쳤다. "기다리시오. 기다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당신은 알게 될 것이오. 끝내는 당신의 머리칼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죄들의 끝을 잡지 않았소. 나는 레니오에 대해 결심했소. 나는 그 주인과 언쟁을 하고 산으로 떠났던 것이오. 고독을 위해서 유혹에서 멀리 떠나야만 했소. '거기에 올라가자' 하고 나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곳은 공기가 맑은 곳이다. 나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봉헌하겠다.' 하고 말이오. 그런데, 돌아오던 길에 내가 막 오솔길에 접어들어 마을 밖에 있는 성 바질의 우물을 바라보는 순간, 사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었소." 마놀리오스는 한숨 쉬었다.그의 얼굴에서는 다시 진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손수건으로 그것을 닦았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말도 없이 있었다. 그의 두 손에는 열이 있어 떨고 있었다. "용기를 내게, 마놀리오스." 하고 사제가 격려했다. "나는 자네보다 더 큰 죄인일세. 언젠가 나도 자네들 앞에서 고백하겠네. 아마 자네들은 공포에 떨 걸세. 자네들이 보고 있는 나는 한 인간의 피에 나의 두 손을 담그었었네. 어느 날, 사탄이 나를 사로잡았었네. 나는 젊었었고 더운 피를 가졌었지. 나는 목동이었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부활절을 기념하러 마을로 내려갔었지. 나는 쇠꼬챙이에 꿸 양을 등에 메고 있었다네. 그때가 정오였으며 나무들은 꽃으로 만발하였었고, 대지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었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풀밭에 앉았었지. 불을 붙여 놓고 우리들은 쇠꼬챙이에 부활절 양을 굽고 있었다네. 우리들은 메제스(풀이: 케너페이라고도 하는, 얇은 빵에 캐비아와 치즈 따위를 바른 야채빵의 일종)를 만들기 위해 내장을 등걸불위에서 요리하고 있었지. 우리들은 마셨으며 심장의 피가 한껏 더워 있었네. 그 양이 다 구워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풀 위에 뒤집어 놓았었네. 나는 큰칼을 집고 그걸로 구운 고기를 막 자르려 했다네. 그 중요한 순간에 악마는 크게 웃으면서 소리치게 했었네. "이봐, 만약 지금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사제가 있다면 나는 그의 목을 자르겠어!" 하고 말일세. 내가 그렇게 말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악마였던 것일세. 왜냐하면 나는 사제의 아들이었고 사제들을 존경했기 때문이지. 나는 길에서 사제를 만날 때마다 달려가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곤 했었네. 하지만 나는 그날 농담으로 그와 같이 말했을 뿐이야. 우리는 술을 마셨고 나는 취해 가고 있었지. 그러나 내옆에 한 농부가 나처럼 취해서 내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소리치더군. '바로 자네 뒤에 사제가 계시네. 자기가 남자라면 그 말을 한번 실현해 보시지.' 순간 나는 돌아서서 한 사제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잘랐었네. 포티스 사제는 성호를 긋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저마다 그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내려가 그의 영혼을 살펴보고는 떨었다. 어떤 살인들, 어떤 추행, 어떤 부끄러운 행동들이 우리들의 깊은 곳에서 끊고 있는가! 우리들은 두렵기 때문에 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들은 모든 우리의 삶을 감추고 조여서 화난 상태로 남아 있도록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피에 독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웃을 속이고 명예롭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죽는다. 햇빛 속에서는 우리는 일생동안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하고 마침내 미켈리스가 볼멘 소리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말했다. "나는 당신보다 더 나쁩니다. 사제님, 나는 아버지가 병에 들어 계실 때 악마의 희열같은 것을 느낍니다. 악마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서 춤을 춥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만 보면 싫고 나의 방해물같이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죽기를 갈망하고 있어요. 그를 죽게 해주십시오. 나를 이 세상에 데려다 준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죄인의 영혼이 무엇과 같은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 좋은 사람의 영혼은 지옥과 같습니다. 모든 악마들을 가지고 있는 지옥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악마가 그들 속에 잘 감춰져 있게 유지하는 사람, 그리고 악마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더러운 행위들, 이를테면 강도질하고 살인하는 것을 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좋은 사람, 성실한 기독교도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 - 하나님 용서하소서 - 범죄자들이며 살인자들이며 또한 강도들입니다!" 얀나코스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역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을 돌아다보고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제는 그의 손을 뻗쳤다. "나의 아들들이여."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고백할 차례는 또 올걸세. 자, 이제 마놀리오스의 차ㄹ세. 자네들의 마음은 듣기만 하도록 하게. 그는 자신의 마음을 열었네. 그로부터 얘기를 끝내도록 하세. 말하게나, 마놀리오스, 자네는 지금 알 수 있겠지? 이해하고 있겠지. 우리들은 사실 자네보다 더 악하네. 사제인 나와 미켈리스는 착하고 관대한 사람일세. 자네들 마을의 자랑일세!" 마놀리오스는 그의 눈물을 닦았다.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용길글 내어 말을 계속했다. "형제들이며, 악마는 우물가에 앉아 나에게 미소를 보냈었소. 우리 마을의 창녀, 과부 카테리나가 말이오. 입술을 칠하고 그녀는 윗도리 가슴팍을 살짝 벌리고 있었소. 나는 그녀의 가슴의 경사진 곳까지를 훔쳐보았소. 더운피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었소.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녀는 애원하듯이 나에게 말을 던졌습니다. 그때 나에겐 오직 한 욕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달려들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었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두려웠고 또한 하나님이 두려워 도망쳤었소. 나는 그녀를 두고 떠났지만 생각 속에서나 뜨거운 피 속에서 나는 그녀를 내 곁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야로 나는 그녀만을 꿈꾸고 있었소. 나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척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던 것이오. 거짓말이었단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였소. 어느 날 저녁,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몸을 씻고 머리도 단정히 빗고 산을 내려갔었소 - 나는 과부에게로 가고 있었던 것이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였소. '나는 그녀의 영혼을 구하러 가고 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고 그녀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러 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자위하였던 것이오. 아, 거짓말! 가증스러운 생각! 그녀와 자고 싶어서 서둘러 가고 있으면서 말이오. 그리고 나서..." 마놀리오스는 다시 한번 말을 멈췄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동정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마놀리오스의 얼굴은 변해 가고 있었다. 응어리진 진흙 같은 액체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콧수염과 턱수염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 다음엔 구원의 역사일세." 포티스 사제가 마놀리오스의 손을 맞잡고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마놀리오스. 나는 하나님이 자네를 구원하기 위해 놓아둔 비밀한 길 위에 떨며 서 있다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위대한 기적이로다. 구원이 우리의 영혼들에 임하기 위해 예비한 그 신비한, 인간의 지혜로는 먼저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길을 어떻게 상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다음엔, 뜻하지 않게도 - 마놀리오스, 내가 대언하도록 하게나. 자네는 너무 지쳤네 - 그 다음엔, 뜻밖에도 자네의 얼굴이 부풀었고, 그 지긋지긋한 살껍질을 쓰고 있음을 느꼈으며, 또한 엄청난 상처를 느꼈던 거지. 마놀리오스, 자네 위에 내린 것은 악마가 아닐세. 자네에게 이 가면을 휙 씌워 놓은 자는 자네를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분이신 것일세. 하나님은 자네를 불쌍히 여기셨던 것일세, 마놀리오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요." 하고 코스탄디스가 중얼거렸다. "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이해할 수 없는데요..." 하고 다른 두 친구들도 공허하게 지껄였다. 오직 마놀리오스만이 한숨을 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티스 사제는 마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몸짓으로 마놀리오스의 손을 어루만졌다. "자네는 혼돈 속에 자신을 빠뜨리고 있었네, 마놀리오스. 자넨 심연의 한가운데 처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하나님은 자네의 행동을 사전에 억제하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에 흉한 살을 붙여 놓았었네. 자네는 죄악을 자행하려고 했던 것일세. 과부의 침대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야. 그러나 지금 그런 얼굴을 하고 어떻게 자네가 그녀를 볼 수 있겠나? 그녀는 또 어떻게 자네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자네는 부끄러워서 뒷걸음질친 것이야. 자네는 그 길을 물러섰고 그와 함께 자네는 즉시 구원되었었네." 마놀리오스는 커다란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가슴은 흐느낌으로 떨렸다.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침묵 속에 빠졌다. 그의 세 친구들도 공포에 관류한 듯 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떨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사자와도 같이 우리들 각자를 둘러싸고 있다고 느꼈다. 때때로 그분의 숨결을 느끼고 노후함을 들으며 그의 눈이 어둠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고. 사제는 그들의 생각들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들이여." 하고 그는 말했다. "어떤 감찰하시는 눈이 우리 안에서 주야로 지켜보고 계시네. 또한 어떤 귀가 우리들 마음속 깊이에서 항상 열려 우리 내면의 소리를 듣고 계시네. 그분은 곧 하나님일세." 미켈리스가 소리쳤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상에 살도록 허락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왜 그분은 창조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우리들을 진멸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왠고하니 미켈리스," 하고 사제가 대답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기 때문일세. 그리고 그분은 질흙으로 빚으신다네." 그런데, 얀나코스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하신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사제님. 하지만 우리 여기 한 병든 사람을 데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을 그에게 얹고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읍니까? 우리 모두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함께 기도할 수는 없을까요?" "마놀리오스에겐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세." 하고 포티스 사제가 대답했다. "악마 추방식도 필요 없네. 다른 사람의 기도로 해서 그가 더 낫게 되는 것이 아닐세. 그의 내면에서는 주야로,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네. 나의 형제들이여, 자네들은 어떻게 겨울 동안 나비의 유충들이 단단히 싸인 장막 안에 들어가 숨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못했는가? 그때 그놈의 머리 모양은 변형되고 또한 모질게 되네.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지. 천천히, 그것의 중심부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것은 해방을 준비하는 거지. 모든 추함의 뒤에 그 유충은 가벼운 솜털과 아름다운 눈과 날개들을 감추고 있다네.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그것은 그 장막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거지. 한 마리의 나비가 어떻게 제한된 공간 속에서 어둠을 뚫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진행하는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일이지. 마놀리오스, 용기를 갖게나. 자네들의 길을 추구하게. 자네의 얼굴 뒤에서 구원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떨어지고 있네. 용기를 가지게!"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사제님?" 하고 마놀리오스는 사제를 향하여 탄원하는 눈으로 물었다. "자네는 조급한가, 마놀리오스?" "아니오, 아닙니다." 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시네." 하고 사제가 대답했다. "그는 침묵하고 계시네. 그분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기정 사실처럼 미래를 아신다네. 그분은 영원 속에서 역사 하시네. 내일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단지 하루살이 목숨의 동물은 불안 속에서 서두른다네.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말없으신 가운데 일하시도록 하세. 자네 스스로 머리를 들려고 하지 말게나. 질문조차 하지 말게. 모든 질문은 죄의 요소가 되네." 태양은 중천에 있다. 그것은 한자리에 모여 앉은 다섯 삶의 머리 위에 시시각각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의 애정을 느끼면서 서로를 강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산의 맞은편 비탈에서 니콜리오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흥겨운 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귀에 거슬릴 정도로 정렬적으로 들려왔다. "니콜리오는," 하고 미켈리스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도 역시 고통을 당하고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있군요." 그들은 모두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동이 구사하는 음조는 밝게 빛나는 공기 속에서 속삭이듯 웃는 듯 춤을 추었다. 한 마리의 하얀 바탕에 오렌지빛 점박이 나비가 잠시 동안 다섯 사람의 머리 위를 팔닥거리다가 포티스 사제의 머리카락 끝에 매달렸다. 나비는 나래를 파닥거리면서 사제의 회색 머리카락 속으로 주둥이를 박았다. 나비는 사제의 머리카락을 활짝 핀 찔레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윽고 나비는 나래를 펴고 높이 날아올라가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마놀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사제님, 형제들이여, 나를 용서해 주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하실거요! 나는 마치 커다란 짐이 나의 심장으로부터 덜어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사제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제님,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나의 질병은 내게 있어서 십자가인 것을 압니다. 그것을 감당하겠습니다. 나는 그 고난의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십자가의 수난 위에서 말입니다. 나는 압니다. 부활이 있음을. 나는 나의 힘을 다해 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벗들이여, 내가 실족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사제가 소리쳤다. "오늘 아침 나는 산에서 신자들에게 이야기했었네. 우리들도 역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역시 우리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기 때문에, 우리는 떨며 불평하고 참지 못해 한다네. 나는 그들에게 말했네. 그리고 그들에게 소리쳤네. '우리 다 함께, 우리는 구원될 것이오!' 하고 말일세."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고통과 질병, 그리고 죄..." "그렇게 많은 유충들이," 하고 사제는 말했다. "나비들로 변할 수 있네." 그는 그 네 사람의 친구들이 읽고 있던 복음서의 내용을 생각했다. "복되도다." 하고 그는 말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되리니. 반대로, 고통을 겪지 않는 자들은 결코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할 것일세. 고통이 얼마나 신성한 은혜인가를 알게나. 이해하겠나, 마놀리오스?"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지쳐서 미켈리스의 어깨에 기대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안온한 마음이 되어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부드럽게 그를 들어 그의 오두막 속 잠자리에 옮겨 눕혔다. 그리고는 그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하나님의 은총이 조용한 잠과 함께 마놀리오스 위에 내려왔네." 하고 사제가 말ㅎ다. "하나님의 천군천사에게 그를 맡기고 떠나세, 나의 아들들이여." 그들은 일렬로 오솔길을 내려갔다. 침묵 속에서 그들은 걸었다. 사제는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앞장서서 걸었다. 그의 회색 머리카락이 그의 양어깨 위에서 물결쳤다. 오후 늦게 마놀리오스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어스름한 석양 속에서 침대 곁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파나요타로스를 보았다. 그의 두눈은 매서 웠으며 핏발이 선채 이상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입은 강한 포도주 냄새를 풍겼다. "이거 웬 일이요? 파나요타로스 형제여, 어서 오시오." 하고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파나요타로스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한 무거운 머리로 마놀리오스를 굽어보면서 꼼짝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윗입술은 반쯤 벌어져 있었으며 커다랗고 날카로운 누런 이빨이 드러나 보였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하고 마놀리오스가 몸서리를 치면서 물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악몽의 노리개감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나요타로스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끈끈하게 더워 있었다.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너를 굽어보면서 관찰하고 있었어."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나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재차 물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소?" "난,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너를 쳐다볼 수 없기 때문이지." 하고 파나요타로스는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나는 평상시에는 널 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구!" 그리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너는 내 손에 죽을 거다, 마놀리오스!" "나를?" 하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나를? 내가 당신께 무슨 못할 짓을 했던가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을 했다구. 네가 말이다. 저주를 받아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기쁨을, 불쌍한 나에게서 너는 그것을 빼앗아 버렸어.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단 말이야. 나는 너를 위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일어나나. 나는 그것을 너에게 주어야 겠어. 그걸 받으라구!" 그는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커다란 칼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마놀리오스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도로 넣으시오." 하고 마놀리오스는 중얼거렸으니 파나요타로스는 마놀리오스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나를 만지지 마!" 하고 그는 고함을 질렸다. "너의 그 부드러운 말이 싫다구. 그것이 나를 역겹게 한단 말이야. 나를 죽여라. 분명히 말하지만 네가 시작한 일을 끝내 버리라구. 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나를 죽여 버리란 말이야!" 파나요타로스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걸 집어, 저주받을 놈. 나를 죽여라. 네가 시작한 일에 끝장을 내란 말이다. 너는 제가 좋아 할 일을 하게 되었잖아. 그걸로 나를 죽여라!" "파나요타로스 형제여." 하고 마놀리오스는 소리쳤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일을 했단 말이요?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나보고 당신을 죽이라구?" 마놀리오스는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나요? 내가 무슨 일을, 파나요타로스 형제여?" 그는 다시 한번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에겐 부하들이 있었어." 파나요타로스가 말했다. "그들은 카테리나가 어디로 가든지 그녀를 따라다녔지. 그녀의 옆집에는 늙은 여인이 살고 있지. 나는 그녀에게 돈을 주었어. 그 할멈이 밤낮으로 카테리나를 감시하도록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밤, 할멈은 네가 얼굴을 가리고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거야. 너는 한 시간 반이나 그녀와 함께 있었지. 그날 밤 이후로 카테리나는 나에게 문을 열어 주기를 거절하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집안에 틀어박혀 있단 말이다. 그 옆집 할멈이 내게 말해 주었어.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녀가 울고 있는 거지? 왜 그녀가 식음도 전폐하고 허구한 날을 보내고 있는 거냐구? 그녀가 나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냐? 바로 너를 위해서란 말이다. 널 위해서.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바라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너를 위해서란 말이야! 사람들이 나에게 네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해 주었어.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기뻤다. 그래서 나는 혼자 생각해지. "이제 나는 우리 앞에서 성자 행세를 하는 그 도둑놈을 없앨 수 있겠군. 카테리나가 그를 보면 그녀는 징그러워서 그를 잊어버리겠지. 그 방법이 내가 그를 없애는 방법이야." 하고 말이야. 하지만 넌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런 꼴로 그녀에게 갔었어. 그것도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말이야. 무슨 말을 그녀에게 한 거지? 응? 너를 혐오하기는 커녕 그녀는 널 잊지 못한단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네 이름을 부른다니! 이 더러운 문둥아! 매일 나는 내 아내를 구타하지만 소용도 없다구. 나는 위안을 얻을 수가 없단 말이다. 내 딸을 매질해도 재미가 없다구! 나는 상점 문을 닫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 나는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가슴을 찌르는 말을 던지며 놀려대는 장난꾸러기들을 달고서는 거리를 돌아다닌단 말이다. 너는 무슨 말인지 알고 있겠지. 너는 알고 있다구! 그 염소 수염을 한 사제가 나를 그의 더러운 일터로 부른 그 시간이 저주받기를! 그날 이후로 나는 망했어! 나는 망했다구!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 그리고 오늘 밤 나는 너에게 칼을 가져왔다. 일어나, 마놀리오스, 네가 남자라면 나를 죽여라. 나는 너의 손에 키스한다. 나를 죽여라. 그러면 나는 안식을 누리게 된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무릎 위에 머리를 떨구었다. 그는 흐느끼는 소리를 절제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가 사랑에 매달려 바둥대고 있는 이 사나운 영혼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따위 눈물일랑 치워, 이 허수아비 같은 친구야!"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분노에 겨워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 칼을 집어라. 내가 말하노니 두려워 말아라. 나는 그것을 잘 갈았다구. 여기 내 목이 있다. 이걸 잘라 버려." 그는 마놀리오스를 향해 자신의 긴 목을 내밀었다. "왜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소?" 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나?" 하고 파나요타로스는 절망에 빠져 대답했다. "나의 불운만 오직 더 악화될 뿐이지. 그 방법으로는 나는 카테리나를 영원히 잃을 뿐이야. 네가 나를 죽이는 방법만이 바로 내가 구원받는 길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너를 지옥으로 함께 데려가겠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송아지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그의 목을 아직도 내민 채 엉엉 울었다. 마놀리오스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두 팔로 껴안고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를 용서하시오, 파나요타로스, 나를 용서하세요. 나는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소. 이제부터 나는 절대로 그녀의 집 안에 얼씬하지도 않겠소. 죽을 사람은 바로 나요. 그리고 당신은 필시 나를 없앨 것이요. 죽어야 할 사람은 나요. 나, 나 말이오. 나는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죽을 사람은 바로 납니다. 당신은 내가 처해 있는 상태를 볼 수가 없습니까? 나는 썩어 가고 있소. 죽을 사람은 나예요. 형제여, 울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는 그의 목을 거칠게 마놀리오스의 팔에서 빼내고는 똑바로 일어섰다. 그는 휘청거리며 문 쪽으로 두어 발자국 걸어갔다. 그는 문지방을 넘으려 하다가 비틀거리면서 쭉 뻗어 버렸다. 마놀리오스는 급히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그는 이미 일어났다. 그는 몹시 취해 비틀거리며 오솔길에 다다랐다. 그는 울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니콜리오가 양떼를 데리고 나타났다. 파나요타로스는 그 양떼들에게 달려들어 돌멩이를 들고 양들을 내몰았다. 양들은 질겁을 하면서 우르르 도망쳤다. "헤이, 헤이!" 하고 니콜리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내 양들을 가만 두세요!" 그러나 파나요타로스는 계속 땅에서 돌멩이를 집어 그것들에게 던지며 욕을 했다. "그를 물어 버려, 물어라!" 하고 그 작은 목동이 두 마리의 개를 향해 소리쳤다. 개들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뛰어올랐다. 그 개들은 파나요타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바위에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개들에게 집어던지려 하였다. 그 개들은 악을 쓰면서 파나요타로스에게로 돌진했다. 그도 역시 악을 썼다. 그러면서 개들에게 달려들다가 넘어져 버렸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켰으나 또 넘어졌다. 개들은 이윽고 아주 사나와져서 그의 위에 뛰어올랐다. 한놈은 그의 넓적다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고 다른 놈은 그의 목 주위에 뛰어올라 턱을 깨물었다. "그를! 그를 물어뜯어!" 하고 니콜리오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마놀리오스가 그 외치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황급히 나왔다. 어린 목동은 웃고 소리치면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들을 내버려두세요, 주인님, 그들이 그를 물어뜯도록 두세요!" 마놀리오스는 개들을 불렀다. 지팡이를 집어 개들을 때려 쫓은 다음 파나요타로스를 도와 주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소리치면서 날아가듯 비탈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니콜리오는 두드리며 올라온 바위 위에 기어올라가 그의 두 손을 입에다 대고 소리쳤다. "유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 그 소리는 온 산에 메아리쳤다. "입 다물어!" 하고 마놀리오스가 소리쳤다. "그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유다." 하고 니콜리오는 힘껏 커다란 돌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벌써 달이 떠올랐다. 이미 산기슭은 어둠에 잠겼으면 산 전체가 점점 형태를 숨겨 가고 있었다. 세상은 어두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핥고 있었다. 커다란 수양, 다소스는 아버지답게 그의 방울을 크게 움직이고는 우리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의 뒤에 다시 모이는 양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그의 베개 밑에 날카로운 칼을 감추고는 그의 잠자리 위의 벽에 십자가의 화상을 매달았다. "오, 하나님."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당신의 손을 그의 가슴에 얹고 치료를 허락하십시오! 그도 역시 병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전능하십니다. 그로부터 그의 고통을 지워 주십시오. 그를 위로해 주옵소서!' 8. 마을에서의 살인 사건 훗날, 마을 사람들이 마놀리오스가 친구들 앞에서 마음을 열고 고백함으로써 구원받은 날이라고 부르게 된 그 고해의 일요일 이후 여러 날이 흘렀다. 그 동안 아래로는 대지와 위로는 태양이 곡식을 여물게 하기 위해서 쉬임없이 함께 일하였다. 물오른 이삭들이 점차 단단하게 되었다. 들판은 양귀비꽃으로 붉었고 지저귀는 새들은 지푸라기와 깃털과 진흙을 모아 둥지를 만들었다. 암놈은 벌써 깃을 펼쳐서 알을 품었으며 숫놈은 가지 위에 앉아 그녀를 북돋우어 주려는 듯 노래를 불렀다. 이따금식 그토록 기다렸던 드문 소나기가 약간의 서늘함을 몰고 왔으며 이내 해가 나타나서 구름을 몰아내곤 하면서 사람과 새들을 위하여 언제나 그랬듯이 오랜 은총을 계속하곤 하였다. 늙은 파트리아케스는 마냥 먹고 마시고 다투었다. 집안 일을 소홀히 하면서 가끔씩 산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고, 시집을 가기 위해 안달하는 레니오를 채근하거나 아들과 다투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은 늙마의 신사나 청빈한 수도승처럼 독서에 열중하였다. "독서란, 평범한 사람과 훈장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고 그는 잔소리를 하곤 하였다. "족장의 아들에게는 안락한 생활과 좋은 술과 여인이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미켈리스야, 넌 우리 집안의 불명예다." 그는 미켈리스가 때때로 그의 약혼녀인 마리오리를 만나기 위해 외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슬픔에 찬 표정으로 말없이 되돌아오곤 하였다. 늙은이는 자식을 경멸하는 투로 머리를 흔들었다. '내 아버지는'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암말을 타고 당신의 정부들이 있는 마을들을 돌아보곤 했었지. 그는 정부의 집 문간에 있는 말뚝에 버젓이 말을 묶어 놓고 했었지. 그러면 정부의 남편은 나의 아버지가 온 낌새를 알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가 떠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었지. 나도 정부들을 가졌었다구. 난 도둑처럼 야간잠입을 즐겼었지. 퍽 재미를 보았단 말이야. 약혼자 하나를 두고 - 주여 용서하소서! - 그놈은 그녀의 손가락 끝도 못 만져 보았겠지. 딱도 하지. 그러니 그녀가 어떻게 시들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여자란 향긋한 식물과 같아서 남자가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지. 파트리아케스 집안은 분명히 잘못되어 가고 있어. 다 끝장이야!' 하고 그는 혼자 생각에 빠졌다. 한편, 라다스 영감은 얀나코스를 불러 세워 놓고 얼르고 있었다. "얀나코스, 나에게 가져간 세 파운드를 내어놓게. 그것과 이자도 함께 가져오란 말이야.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이 딱한 사람아, 자네가 더 잘 알게 아닌가? 난 네 당나귀를 처분할 수밖에 없어. 나는 가난한 사람이야. 날 망하게 하지 말라구!"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안 일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몇 달 동안 마을에서는 결혼이나 세례식이 없었다. 주민들은 그 누구도 죽음의 재앙을 자초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장의자와 무덤을 파는 인부들은 마을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으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악마가 한두 명 정도는 잡아먹을 법도 한데."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을 거라니까." 과부는 빗장을 굳게 잠근 채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않고 두문 불출하였다. 파나요타로스는 연일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사람들에게 겁을 주면서 돌아다녔다. 마을의 하릴없는 젊은이들은 끊어 오르는 욕정을 태우며 이제는 성실한 사람들의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과부년에게 재앙이나 내리렴!" 하고 어여쁜 부인을 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투덜거렸다. "이젠 저년이 정숙한 부인인 양 행세를 하고 있으니 젊은 놈들이 우리 집 주위를 수캐모양 킹킹거린다니까. 우리 집 창문 아래에는 세레나데 만발이구나. 마을의 기풍이 말이 아니군!" 매일 마을 사람들은 오후 늦게 코스탄디스의 카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관개사업에 힘을 기울여 그들의 채소밭에 물을 끌어들이고 과수원을 적셔 주는 등 광활한 대지와 싸우느라고 지쳐 있었다. 그들은 지친 채 두어 마디 담소를 나누면서 수연통을 태웠다. 그리고는 이내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에겐 도대체 무엇 하나 그들을 신나게 해주는 일이라곤 없었다. 마을에는 미친 사람도 하나쯤 있을법 하련만. 그러면 그를 못 살게끔 짓궂음을 부리며 즐기련만, 귀를 번쩍 열게 하는 소문도 아구창 같은 전염병 소식도 없을 정도여서 마을 사람들은 그저 따분할 뿐이었다. 이따금씩 파나요타로스는 곤죽이 되어 갈짓자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가곤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겐 파나요타로스의 망나니 짓이 결코 흥미거리나 위안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사나왔고, 사람들이 그를 화나게 하면 돌을 집어 그들의 얼굴을 찍어 놓기 때문이었다. 어제만 해도 그는 교장 선생의 안경을 부스러뜨리지 않았던가? 교장 선생은 그때 우연히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파나요타로스가 던진 돌이 그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던 것이다. 때때로 아그하는 마을 사람들을 버짐나무 아래로 불러 모아 놓고 춤을 추게 하였다. 그의 영혼이 일말의 갈증을 느낄 때나 우울할 때면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유희가 마을 사람들에겐 유쾌하지 못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내 진력을 느꼈고 마지못해 하는 춤추는 일이 끝나면 수연통으로 모여들었다. 그럴 때면 카페는 갑자기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술에 만취가 되어 다리가 부러지거나, 채소밭을 설치는 좀도둑이 있어 순간 왁자지껄해지곤 하였지만 그것도 그때 뿐 마을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어느 날 아침, 마을에서는 무시무시한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그날 새벽녘 유소우화키가 그의 침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아그하의 늙은 노예인 마르다가 날이 밝을 무렵 아그하의 집을 몰래 빠져 나와 그녀의 오랜 친구인 만달레니아 할멈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벌벌 떨면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을은 이제 망했소!" 문을 굳게 잠그자 그녀는 울부짖었다. "망했어요. 만달레니아! 유소우화키가 피살체로 발견됐다오!" "마르다, 누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그대가 가져온 소식은 필시 재앙의 불일세. 그 불이 우리들 모두를 태워 버리겠구나. 도대체 누가?" "어제 저녁,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오. 아그하와 유소우화키와 후세인, 그리고 나밖엔 아무도 없었어요! 어서 가셔서 신도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세요.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도망치도록 하세요. 나는 어딘가 의심 가는 데가 있는데 장담은 못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에서 일체 말하지 마세요!" 그녀는 다시금 살그머니 빠져나가 몸을 웅크리고는 벽을 의지해서 아그하의 집으로 스며들었다. 만달레니아 할멈은 은밀한 희열 속에서, 공포의 씨를 뿌리기 위해 그녀의 검은 손수건을 들고, 이 집 저 집으로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당돌하게도 아그하의 저택 발코니를 기웃거리며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면서 카페로 모여들었다. 아그하의 저택의 문과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이따금씩 안에서는 사나운 고함 소리가 흘러나왔다. 권총 소리와 함께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는 다시 잠잠해졌다. 마을의 원로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으로 모였다. 촌장의 심장은 공포에 질려 터질 것만 같았다. "만약에 살해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하고 그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말을 더듬거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만약에 살인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망합니다. 아그하는 우리 모두를 감옥에 처넣을 것이오. 게다가 만약 그가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우리를 교수대에 보낼 것입니다. "그 범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 모두의 몸값을 요구할지도 모르지." 하고하다스 영감이 탄식했다. "그는 필시 학교와 교회를 폐쇄시키고 우리 종족을 박해할 것이오." 하고 교장 선생이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신경질적으로 기도문을 외면서 그의 뜰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는 온 마을의 운명이 자신의 목에 매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겐 책임이 있단 말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 마을의 영혼들을 맡겼는데. '내 양들을 맡느라' 하고 그 분은 명령하셨단 말이야. 그는 도대체 누가 그 소년을 살해 할 가능성이 있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조사했지만 어떤 혐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살해자는 기독교도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마을에는 아그하와 경호원 후세인과 유소우화키 이렇게 세 사람의 터어키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독교인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만약 범인이 기독교인이라면 마을은 불타고 주민들은 살육될 것이다. 코스탄디스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아그하가 총을 휘두르고 있고. 그는 걸상이다, 라키 병이다, 단지 같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 부수고 있소. 그리고 그는 유소우화키의 시체를 붙들고 울부짖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전해 준 이는 바로 늙어 비틀어진 마르다 할멈이었소." 문이 다시 열리더니 얀나코스가 들어왔다. "후세인이 발코니에 올라가서 트럼펫을 불고 있소!"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광장에서 어떤 자가 외치고 있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소!" "뭐라고 하고 있던가요?" "나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제님. 그런데 내가 알아들은 몇 명의 이름이 있었지만 너무 경황이 없어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뒈져라." 하고 늙은 파트라아케스가 투덜거렸다. 목에 핏대가 터질듯 불거져 있었다. "여러분들 중 어느 한 사람이 가서 그 소식을 듣고 오시오." 하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명령했다. "여기 얀나코스 당신이 다녀오시오." 그때, 광장에서 외치던 자의 목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들 문 쪽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 외치는 자는 십자로에서 멈추어 섰다. 그는 기침을 하고는 목청을 돋구면서 지팡이로 땅을 탕탕 때리면서 목을 쭉 뽑았다. 물결이 치듯, 찬송가처럼 그리고 단조롭게 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근처의 모든 창문들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들으시오, 마을 사람들! 이보시오, 라이아스! 귀를 열고 들으시라. 아그하의 명령이다! 그리고리스 사제와 원로들, 그러니까 파트리아케스와 라다스, 하지 니콜리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유다로 알려진 마구상 파나요타로스는 지금 곧 아그하의 집으로 오시오! 나머지 그리스 족속들은 집으로 돌아가시오. 집에서 기다리라구! 이 보시오, 그리스 족속들, 이 보시오, 마을 사람들이여, 내 말하지만 주의하시오!" 코스탄디스는 늙은 파트리아케스를 부축했다. 그는 하마터면 막 쓰러질 뻔한 찰나였다. 코스탄디스는 그를 돌의자에 앉혔다. 마리오리가 그에게 부채질을 하기 위해 달려왔다. 라다스 영감장이도 레몬처럼 노랗게 되어 가지고는 벽에 기대었다. 그의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얀나코스는 그가 불쌍해져서 가까이 다가갔다. "용기를 내세요, 영감님. 뭐 해드릴 일은 없나요?" "얀나코스, 자넨가? 이게 누구야?" 하고 그는 침을 흘리며 말을 던졌다. "물론입죠. 보따리 장사꾼 얀나코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이 혹시 내게 명령할 일이 있는가 하고 여쭙고 있읍죠." 라다스 영감의 눈동자가 생기를 띠었다. "이 더러운 녀석아." 하고 그가 소리쳤다. "금화 세 닢을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쫓아갈 테니까!" 그러는 동안에 사제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의 목에 은제의 십자가를 휘감고 있었다. 그 은제의 십자가는 조각이 되어 있었는데 한쪽 면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이, 그리고 다른 한쪽 면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길다란 은빛 손잡이용 지팡이를 잡고는 그리스도의 화상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주님." 하고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의 권속들을 도와주소서! 저희들의 마을에 당신의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들이 굴복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는 그 화상 앞에 납작 엎드리고는 그리스도의 고요하고 자애로운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주여." 하고 그는 다시 말했다. "제가 비굴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는 다시 성호를 긋고 안마당으로 나아갔다. "형제들이여, 우리 갑시다." 하고 그는 평화롭고 엄숙한 음성으로 말했다. "먼저 파트리아케스 어른께서 가시오. 당신은 족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족장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마을이 위험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두에 서는 사람이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족장이라는 사실을 보여 줄 순간이오. 그러므로 길을 인도하시오! 그리고 당신 라다스 영감, 우리 마을을 불명예스럽게 하지 마시오. 용기를 내시오. 아그하 앞에서 엉엉 쥐어짜지 마시오. 용감히 앞자리를 지키시오. 우리들은 죄가 없소. 그러나 우리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면 유종의 미를 거둡시다! 나 역시 이승에서의 삶을 좋아하오. 그러나 하늘나라의 삶을 더욱더 바라고 있소. 우리는 지금 그 문턱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뒤에는 지상이, 그리고 앞에는 천국이 있소. 전능하신 분이 결정하는 대로 따릅시다. 하지 니콜리스, 그대를 위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소. 그대는 매우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고대 그리이스의 영웅들과 기독교의 순교자들에 대해 가르쳐 왔소. 지금이 바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실행에 옮길 순간이오. 그대의 학생들에게 그대가 새하얗게 질린 꼴을 보게 하지 마시오. 영웅과 순교자가 그랬듯이 죽음 앞에 서시오! 나의 동포여! 준비가 됐습니까?" "준비됐소!" 늙은 파트리아케스가 고통스럽게 일어서면서 말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족장님. 몸은 두려워하고 있으나 영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리스 사제는 동행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라다스 영감님은 혁대가 풀려 바지가 흘러내릴 것 같군. 이봐요, 얀나코스, 그분의 혁대를 꼭 매어 잘 챙겨 주시오. 우리 모두 그 앞에서 먹칠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얀나코스가 라다스 영감의 혁대를 단단하게 죄었다. 라다스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팔을 올리고 옷을 입혀 주도록 기다렸다. "자, 영감님의 입을 훔쳐 주시오, 얀나코스. 침을 흘리고 계시군." 하고 사제는 다시 명령했다. "건강에 유의해라, 마리오리." "자, 갑시다." 하고 하지 니콜라스가 말했다. "우리는 마을의 원로들이오. 모든 사람들의 눈이 우리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알랙산더 대제의 이름 아래!" 그들은 성호를 긋고는 대문을 넘어섰다. 맨 앞에는 사제, 그 위에는 세명의 원로들이 따라갔고 맨 뒤에는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가 따라갔다. "이봐, 코스탄디스, 왜 아그하가 가엾은 파나요타스까지 호출했을까? 그가 원로들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러는데 어제 한밤중에 그가 우르렁거리면서 아그하의 집 주위를 배회하는 것을 누가 봤다고 합디다." "하지만 그것이 유소화키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 사람이 쫓아다니는 것은 바로 과분데 말일세." "얀나코스, 내가 어떻게 알겠소? 아ㅁ든 아그하를 고정시켜야만 합니다. 그는 이성을 완전히 잃고 있다구요. 그의 노예 마르다가 말하기를 그는 그의 암나귀를 타고 나가 만나는 이단자의 대가리들을 모두 잘라 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거요. 하나님 맙소사!" 집집마다 문들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사람들은 천천히 행진하고 있는 원로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마치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것처럼 십자가를 그었다. "나는 저들이 우리들의 범사에서와 같이 먹고 마시며 저지른 모든 과오를 용서하겠어." 하고 한 늙은이가 대답했다. "바로 이 순간, 그들은 단번에 지난날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심정이겠지. 암, 그들이 자신들의 빚의 갚고 있는 셈이지." 그들은 작별인사를 하듯이 엄숙하게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고 걸어갔다. 때때로 그리고리스 사제는 반쯤 열린 문을 향해 돌아서서는 그곳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기독교 신도들이여, 아무것도 두려워 마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의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가련한 라다스 영감은 늙은 파트리아케스의 팔에 꼭 매달려 있었다. "족장님." 그는 우는 소리를 했다. "내 곁에 꼭 있어 주시오. 나를 잡아 주구료" "두렵소?" 그를 딱하게 여긴 늙은 파트리아케스가 물었다. "그렇다오. 난 두려워요." 하고 라다스 영감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두렵소." 하고 족장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 거요. 그것이 내가 취해야 할 태도니까." 늙은 구두쇠는 머리를 끄덕거렸으나 더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과부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카테리나가 문을 열고 그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세요, 어르신네들, 용기를 내세요. 그녀는 두려움 없이 말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추한 골목길을 지나갈 때처럼 더 급히 걸었다. 그들은 거의 코를 막고 있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만이 멈춰 섰다. "잘 있었소, 카테리나?"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당신은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었소? 안으로 가만히 들어가 있으시오. 파나요타로스를 근일 본 적이 있었소? 하고 과부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마냥 마을 중심지를 배회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후세인이 그를잡아가려고 했거든요. "안으로 들어가시오" 하고 코스탄디스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문을 꼭 닫아 잠가요.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이 광장에 도착했을 때, 미켈리스가 뛰어와서는 그의 아버지 앞에 다가섰다. "미켈리스."하고 노인은 말했다. "잘 있거라!" "아버지, 용기를 내세요!" 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미켈리스, 그리고 자네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는 집으로 돌아가게. 우린 지금 사자의 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 안에 계실 것이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게나. 아그하의 집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사제가 말하면서 그의 오른발을 먼저 문지방 너머로 옮겨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들어갔다. 라다스 영감은 비틀거렸다. 족장이 그를 부축해 주었다. 장식들이 깔린 정원은 풀들이 자란 채 을씨년스러웠다. 왼편에는 아그하의 암말이 마굿간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면서 히잉하고 울었다. 털복숭이 개는 목을 쭉 빼고 으르렁거리며 버둥대었지만 일어날 요량은 하지 않고 있었다. 경호원 후세인이 나타나서 층게 위에 떡 버티고 섰다. 피부가 누런 사팔뜨기는 위엄을 과시하면서도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수염을 검게 염색할 틈이 없었던지 숱이 많은 하얀 수염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는 마치 축제 때의 그것처럼, 넓고 붉은 허리띠께로부터 긴 칼을 늘어뜨린 정장의 민속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얼굴을 찡그렸다. "신발을 벗으시오, 이단자들!" 하고 투덜거렸다. "아그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곱추 할멈 마르다가 나왔다. 그녀는 그들이 신발을 벗도록 도와 주었다. 현관 앞 층계 앞에 있는 공간에다가 그들의 신발을 두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면서 그들은 좁은 나무 층계를 올라 어느 방으로 인도되었다. 거기서 그들은 잠시 멈췄다. 모든 창문들은 밀폐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은 어디가 어딘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연하게나마 어떤 야만의 동물이 어딘가 숨어서 여차하면 달려들 준비를 하고는 그들을 노려보면서 감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라다스 영감은 더욱 심하게 떨면서 족장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눈길은 아그하가 어딘가 몸을 감추고 있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낌새가 있는 방으로부터 독한 라키 냄새와 담배 냄새 그리고 살이 썩는 무서운 악취가 풍겼다. 갑자기 오른편 구석진 곳에서 음흉하고 무서운 목소리가 울부짖었다. "저주받을 놈의 이단자들!" 그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소리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거기서 그들은 커다란 쿠션 위에 앉아 있는 아그하를 발견했다. 그는 그렇게 벽에 기대어 있었고 허리춤에서는 커다란 은제 권총이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라키 병이 있었다. "당신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아그하." 하고 사제가 조용히 말했다. "이단자들!" 하고 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울부짖었다. "후세인, 이리 와!" 경호원은 그가 대기하고 있던 위치를 떠나 아그하 앞으로 달려가 부동자세로 섰다. "넌 칼을 준비하고 기다려!" "아그하여..." 하고 사제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아그하는 그가 계속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야, 이 이단자들아, 너희들 중에 한 놈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나의 유소우화키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말을 뇌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질식할 듯한 흐느낌이 그의 목구멍을 막았다. 그는 화를 억제하려는 듯이 눈을 부비면서 라키 잔을 채웠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것을 비워 버렸다. 한숨을 내뿜으면서 술잔을 벽 쪽에 힘껏 던져 버렸다. 술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누가 그를 죽였지? 엉?" 하고 그는 소리쳤다. "이곳에는 이단자들만이 산다. 그러니 그를 죽인 것도 이단자 중 한 놈이야! 그놈이 너, 파나요타로스냐? 술고래인 너냔 말이다!" 그들의 반대편 어두운 구석으로부터 질식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구석 벽 쪽에 쇠사슬로 붙들어 매여 있는 파나요타로스를 발견했다. 그의 머리는 깨어져 있음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의 뒤에 서 있던 교장 선생이 그의 이마와 목으로부터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그하는 다시 원로들에게 폭언을 했다. "나는 당신들을 감옥에 처넣을 테다." 하고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매일 아침마다 버짐나무에 당신들을 목 매달 것이다. 너희들이 암살자를 찾아낼 때까지 먼저 나는 당신들 지도자들의 목을 매어 달겠단 말이오! 그 다음에는 다른 놈들을, 그리고 또 다른 놈들을, 다음에는 여자들까지도 목을 매어 달 테야. 나는 이 마을을 몰살시켜 버릴 것이다. 당신들이 암살자를 찾아낼 때까지! 당신 듣고 있나? 흰 수염장이! 당신들은 들었겠지? 이 그리스놈들 같으니라구! 나의 유소우화키가 너희들에게 무엇을 했기에? 그가 너희들 중 누구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느냐? 그는 너희들에게 무슨 거슬리는 말이라도 했더란 말이냐? 그는 매스틱을 씹으면서 향기나는 입으로노래하면서 이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구. 이단자들아, 도대체 그가 너희들에게 무슨 해라도 끼쳤더란 말이냐? 왜 너희들이 그를 죽였지?" "아그하여..." 하고 그리고리스 사제는 다시금 항의했다. "나는 하나님께 맹세코..." "입 닥쳐! 당신 수염 오라기를 하나씩 뽑아 줄 테다. 나는 당신을 목매달지는 않겠어. 나는 당신에게 말뚝을 박아 줄 테다. 이 육중한 밥통아! 나의 유소우화키가 당신에게 뭘 했었나? 엉?"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그하." 파트리아케스가 말했다. 그는 사제가 혼자서 발악하는 아그하와 맞서는 것이 민망스러웠던 것이다. "아그하여, 당신은 내가 항상 충성을 바쳐 온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입 닥쳐, 돼지야!" 하고 아그하가 소리쳤다. "너는 밧줄로 매어 달기는 너무 무거워, 이 배불뚝이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녹슨 칼을 가지고 너를 난도질할 테다. 일 주일 동안 내내 말이야. 알라여, 제발 내 손이 그짓을 하는 기쁨을 갖게 하소서! 당신들, 이단자들아, 나는 그를 죽인 놈이 너희들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옆방에서 나의 유소우화키가 죽어서 뻣뻣해 있는데 당신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내가 미치겠다구. 나는 나가서 마을 구석구석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 나는 당신들 모두를 태워 버릴 테다. 저주받을 것들!" 아그하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 "뒤에 움츠리고 있는 자는 누구냐? 얼굴을 드러내!" "접니다, 아그하님." 라다스가 털썩 주저앉으면서 더듬거렸다. "아하! 아하!" 아그하가 허튼 고함 소리를 발하면서 말했다. "나는 나의 유소우화키에게 호화로운 장례를 치러 주겠다! 나는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 줄 회교도 아도사를 멀리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오게 할 것이다. 나는 스미르나로부터 양초를 주문하고 그가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사이프러스 관도 주문하겠어. 그러자면 난 돈이 필요해. 많은 돈이 말이야. 나는 당신의 금궤를 열어서, 오랫동안 간직해 온 금광을 열고 당신이 아껴 온 금붙이를 써야겠어. 그 동안 당신은 그것을 누굴 위해 모았다고 생각했느냐? 엉? 결과적으로 나의 유소우화키를 위해서란 말이다!" 라다스 영감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그하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 하고 그는 애처롭게 울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아야 한다면 나는 그전에 죽여주십시오." 아그하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하지 니콜리스에게로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당신, 교장 선생, 조무라기 그리스 새끼들을 긁어모아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그 혀를 잘라서 나의 개에게 던져 줄 테다. 왜 당신들의 백성들은 살아 있는가? 엉? 왜냔 말이다! 지금 나의 사랑하는 유소우화키가 죽어 있는 이 순간에 왜 너희들은 살아 있어야 한단 밀인가? 나의 심장은 도저히 그것을 보아 줄 수가 없단 말이다. 그 사실이 나를 말라 죽게 할 테니까. 후세인, 채찍을 가져와!" 경호원은 채찍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아그하에게 건네 주었다. "창문을 열어라. 내가 저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아그하는 사납게 채찍을 쳐들었다. 햇빛 속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깊게 주름살이 잡힌 나이들어 보이는 납빛이었다. 유소우화키가 죽은 후 몇 시간 동안의 괴로움이 그의 얼굴을 갉아먹은 듯 하였다. 그의 콧수염은 하얗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밑으로 쳐져서 그의 입을 덮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소리 질렀다. 그는 네 사람의 라이아스들의 얼굴과 손과 가슴 같은 곳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라다스 영감은 단번에 바닥 위에 나동그라졌다. 아그하는 그를 깔아뭉개면서 그 몸뚱이 위에서 울다가 웃다가 하였다. 그는 사나운 괴성을 지르면서 오른쪽 왼쪽 사정없이 채찍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늙은 족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으나 그는 애써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는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교장 선생은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벽에 기대었다. 피가 그의 관자놀이와 턱에서 흘러내렸다. 그들의 한가운데서 사제는 팔짱을 낀 채 서서 채찍을 받았다. 그는 "주여, 주여, 나를 약하게 하지 마소서." 하고 중얼거렸다. 아그하는 입에 거품을 물고 그들에게 달려들어 미친 사람처럼 채찍질을 했다. 이윽고 그는 팔이 저려 오자 채찍을 내어 던졌다. "감옥으로!" 하고 그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교수형은 내일 집행하겠다." 그는 파나요타로스에게 다가가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이 석고먹성이 녀석! 널 먼저 죽여 주겠다!" 그는 후세인에게로 돌아섰다. "나의 유소우화키를 내게로 데려오렴..." 그는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호원은 문을 열었다. 곧이어 작은 쇠침대 끄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새벽녁에 피로 목욕을 한 채 발견된 소년의 시신이 있었다. 후세인은 파나요타로스의 쇠고랑을 풀면서, 채찍을 집어 예리한 소리를 내면서 휘둘렀다. "이단자들아, 감옥으로 꺼져!" 그는 다섯 사람을 한꺼번에 몰아냈다. 그들은 층계를 허둥지둥 내려갔다. 일순간에 마을은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거리는 텅 비었고 상점의 문들이 닫혔다. 그리스인들은 수군거릴 경황도 없이 자신들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거운 정적에 귀를 기울이면서 떨고 있었다. 이따금씩 어떤 그림자들이 문에서 문으로 살짝 빠져나가 풍문을 퍼뜨렸다. "원로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어." 이런 소문이 흐르는가 하면 꼬리를 물고 다른 소문이 퍼졌다. "원로들이 감옥에 갇혔대. 후세인이 광장에 내려왔어. 거기서 그는 밧줄과 비누 조각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버짐나무 밑에 놓았어." 조금 뒤에는 "아그하가 만약 살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을의 구석구석에 불을 놓겠다고 위협했대. 그러면 우린 모두 타 죽고 말 거야!" "우린 망했어! 망했다, 망했어!" 하며 여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가슴에 꽉 껴안으면서 소리 질렀다. 남자들은 몸부림을 치면서 자신이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날을 저주했다. 오직 페넬로페 할멈만은 그녀의 마당의 격자 울타리 밑에 앉아서 양말을 짜면서 조용하고도 담담하게 있었다. 그녀 역시 자기 남편이 잡혀갔다는 사실과, 아그하가 그의 목을 매달려 하며 - 버짐나무 밑에서라는 말을 들었다 - 또는 마을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말 따위를 들었다.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는 무감각하게 생각했다. 그것 역시, 끝나겠지. 그리고는 다시 뜨개질을 계속했다. 얀나코스는 마굿간에 앉아서 당나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너도,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만약 우리 둘이서 몰래 빠져 도망가면 어떨까? 처자식도 개새끼 한 마리도 우리에겐 매어 달려 있는 것이 없으니 우리야 구애될 것이 없지? 하지만 지금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을 두고 도망간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나의 유소우화키야?" 당나귀는 귀까지 오는 여물통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놈은 자신의 턱을 게걸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놈에게 있어서는 주인의 목소리가 속살거리는 샘물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그에게 친절한 말을 해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저녁이 되면서 집집마다의 문들이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몇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켈리스가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약혼녀를 위로해 주기 위해 사제의 집을 향해 떠났다. 코스탄디스 또한 카페 문을 열려고 나왔다. 그가 자물쇠에 열쇠를 끼우는 순간, 그는 버짐나무 밑에 어렴풋이 걸상과 함께 무언인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순간 공포에 질려 움찔하였다. 그것은 밧줄과 비누 한 조각이었다. 그는 열쇠를 허리춤에 다시 쑤셔 넣고 벽에 딱 붙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느 때 같으면 하루가 끝나는 이런 느긋한 시간이면 아그하는 그의 발코니 위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유소화키가 그의 마실 것을 따라 주거나 치보크에 불을 붙여주곤 했었다. 그날 밤엔 그의 저택 문과 창문이 꼭 닫혀 있었다. 발코니는 을씨년스러웠다. 아그하는 신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사랑하던 노래는 얼마나 쓰라리고 거짓스러운 것이었던가! "세상사와 꿈은 결국 하나여라..." 그는 그의 조그맣고 생명 없는 몸을 잡았다. "이것은 꿈이 아니야, 이것은." 그는 혼잣말을 했다. "아니야, 이것은 꿈이아니라구." 그는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후세인도 역시 그의 날카로운 사팔뜨기 눈을 훔쳤다. 그리고 왔다갔다 하면서 숨찬 듯이 통곡했다. "나의 유소우화키," 하고 그는 주인이 듣지 못하도록 중얼거리면서 부르를 몸을 떨었다. 다시금 그는 화가 솟구쳐 채찍을 들고 저택의 지하실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그하처럼 채찍질하면서 분노에 미쳐 날뛰었다. 그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는 다시 올라와 그 작은 쇠침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아그하가 어린 소년의 차디찬 시신 위에 쓰러져 슬픔과 취기에 젖어 잠에 빠져 있을 동안 그는 황급히 몸을 굽혀 유소우화키의 입술에다가 타는 듯한 키스를 하고는 아직도 매스틱 향기가 남은 통통하고 창백한 입술을 분노로 깨물었다. 그리고는 마룻바닥에 나뒹굴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그 방에서 일어났다. 그는 파나요타로스를 흔들었다. "망할 놈의 유다!" 하고 그는 말했다. "네가 유소우화키를 죽였지? 고백해라. 그러면 우리는 살 수 있고 마을도 화를 면할 수 있다. 고백하라니까. 나는 너에게 너의 죄가 사해지도록 기원을 하겠다. 깨어진 머리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면서 "모두 콱 뒈져라!" 하고 석고먹성이가 악을 썼다. "마을이 악마의 손에 떨어져버리라고. 모두들, 나도 물론. 이것이 축복 받은 구원이라니!" "네놈이 그를 죽였구나, 저주받을 놈!" 하고 이번에는 그의 등을 벽에 부딪치며 숨이 차서 파트리아케스가 중얼거렸다. "너, 네 이놈 유다야!" "돼지 같으니!" 마구상인 파타요타로스가 다시 소리쳤다. "내가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는 누그러졌다가 다시 분노가 끓어 올라 다시 소리쳤다. "그것은 당신들 잘못이오. 저주가 당신네들에게 임하기를! 당신들 모두 다! 염소 수염의 사제, 당신들 원로님들, 그리고 교장 선생! 당신들과 그년의 과부, 나를 들여보내지도 않는 엉큼한 계집. 당신들 전부 말이오!' 조금 후에 그는 또다시 발악을 했다. "당신들은 내가 유다가 되기를 윈했지? 그래요, 난 유다가 되었소!" 하고 그는 소리쳤다. "네가 그를 죽였다고 고백해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자넬 용서해 주실 걸세, 파나요타로스." 하고 사제가 애써 목소리를 상냥하게 누그러뜨리면서 얼었다. "지금까지, 나는 마을의 모든 영혼들에 대해 책임이 있네. 그리고 지금 파나요타로스, 자네 또한 그런 책임을 가지고 있네. 그러니 일어나서 그들을 구해 주게나!" 그 소리에 석고먹이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거창하시군! 당신이 나에게 부여한 그 의미가 마리오! 빌어먹을! 그를 죽인 자가 나였으면 좋겠소. 그랬다면 내가 당신들을 모두 나의 수렁 속으로 함께 끌고 갈 텐데 말이오. 하지만 내가 아니오. 그의 두 손을 정하게 하소서! 다른 누군가가 먼저 해치웠소. 아무튼 무언가가 있었소! 원로님과 사제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 모두들 나와함께 악마에게로나 가시지!" 늙은 라디스가 채찍에 맞아 피가 흐르는 머리를 치켜들었다. "와서, 고백하게나, 파나요타르스." 하고 그는 추근거렸다.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금화 세 닢을 주겠네. 나는 얀나코스의 나귀를 팔겠다구. 그는 내게 세 파운드의 빚을 졌거든. 나귀를 팔아 그것을 자네에게 주겠네. 듣고 있는가?" 파나요타로스는 그의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면서 그에게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던졌다. "여기," 그는 쏘아 붙였다. "늙은 구두쇠 영감, 당신을 위한 다섯 파운드가 있소! 옛따!"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아그하가 나타났다. "이단자들아." 하고 그는 소리쳤다. "교수형은 내일 집행될 것이다. 나는 밧줄과 비누와 걸상을 버짐나무 밑에 준비해 두었어. 내일은 수요일이야. 니는 너희들 중 가장 쓸모없는 놈부터 처치하겠다. 먼저 석고먹성이 파나요타로스를 매달겠다. 목요일에는 당신, 더러운 늙은 구두쇠 차례야. 금요일에는 당신, 학자 중위 학자임을 자처하는 훈장 차례다. 토요일엔 그대들의 지체 높으신 늙은 멍청이 파트리아케스를 모시겠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그대들의 거룩한 미사 시간에 당신, 염소 수염을 처단하겠다. 다섯 개의 목이 되는 거지. 나는 버짐나무 아래, 잡아당기면 조여드는 다섯 개의 올가미를 준비해 놓았단 말이다. 이건 겨우 첫밥이지. 다음에 또 다섯 명을 뽑아 잡숴 버리겠단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또! 살인자가 발견될 때까지 계속 처형하겠다. 그리고 나의 유소우화키를 버짐나무 아래 놓아 둘 테다. 나는 살인자를 잡을 때까지 그를 땅에 묻지 않겠어. 그ㄸ까지 그의 눈을 감게 할 순 없어. 그가 죽어서라도 비참한 꼴을 당하는 그대들의 몰골을 보게 하겠다. 그러면 그의 영혼도 기뻐하겠지!" 아무렇게나 실컷 지껄여 대더니 그는 문을 거칠게 쾅 당아 버렸다. 그는 후세인이 회초리를 가지고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후세인." 하고 그는 말했다. "너 역시 울고 있구나, 불쌍한 친구. 눈물을 닦아. 우리가 눈물 흘리는 것을 이단자들이 보는 것은 좋지 않아. 가서 짐꾼 얀나코스를 찾아라. 그에게 큰 마을로 가서 벤자민을 가져오라고 해. 가장 비싼 품질루. 그리고 양초와 검은 벨벳 천과 달콤한 과자들도. 그것들을 내일 아침까지 내게 가져오도록 해라. 아! 그리고 두꺼운 동아줄도. 왜냐하면 턱수염이 달린 사제는 특별히 무겁기 때문이야. 그리고 늙은 염소 파트리아케스는 더 무게가 나가거든. 어서 가 봐!" 그러나 그 무렵, 이미 얀나코스는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후세인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으나 헛수고였다. 얀나코스는 거기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마을로 내려와 억울하게 체포되는 일이 없도록 전갈을 하기 위해 산행을 떠나고 없었던 터였다. 마놀리오스는 암양의 우유를 짜서 담은 냄비를 불 위에 얹어 놓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니콜리오가 커다란 나무 주걱을 들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유를 젓고 있었다. "넌 무엇이 좋아 항상 노래를 부르니, 니콜리오? 그리고 무엇이 너로 하여금 산이 좁아라고 염소 새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드는 거지?" 하고 마놀리오스는 그의 조수의 유머와 민첩성에 놀라 가끔 그렇게 물었었다. "마놀리오스" 하고 어린 목동은 대답했다. "당신은 내가 열 다섯이란 사실을 잊으셨군요! 그런데 나에겐 이 세상이 너무 작다는 사실을 왜 몰라주시나요?" 그러나 레니오만은 그에게 그렇게 작은 성싶지가 않았다. 그녀가 가끔 산으로 와서 몰래 그를 만날 때면, 니콜리오는 그녀의 팔 안에 폭 안겨서 도대체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우유가 끓었다. 그리고 이제 마놀리오스는 불가에 않아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그는 조그마한 복음서를 넘기면서 그것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외의 다른 즐거움이 없었다. 가끔씩 단어들의 의미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에 관한 완전한 깨달음이 분명하게 밖으로 솟아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지를 자라게 하고 샘에서 솟는 물처럼 안으로부터 그를 활기차게 했다. 영감이여! 그것은 그의 영혼을 얼마나 다시금 젊게 만드는지! 그는 새삼스레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것 같았고, 처음으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무렵 실제로, 당신의 눈길을 들어 그를 바라보고는 고요하고도 황홀한 목소리로 "나를 따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마놀리오스는 말없는 가운데 행복에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때로는 갈릴리의 신선한 풀밭 위를, 때로는 게네사렛의 모래 기슭을, 또 때로는 유대 땅의 척박한 돌밭길을 거닐곤 하였다. 저녁이면 그는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발치에 누워, 은빛 잎사귀가 흔들리는 것을 응시하곤 하였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하늘이 얼마나 파랗고 깊을 것인지, 바람은 마치 순수한 영혼처럼 얼마나 가벼운지 몰랐다. 그리고 대지는 또 얼마나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지! 그때, 어느 하루는 그리스도와 일행이 함께 '가나'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혼인 잔치 집엘 갔었다. 그리스도는 새신랑처럼 그 집에 들어갔고 모든 영혼들은 그를 보자마자 기쁨에 넘쳤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혼한 처녀들처럼 얼굴을 붉혔었다. 신랑과 신부는 일어서서 서약 응했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방석 위에 앉아서 먹고 마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잔을 들어 새로운 부부에게 축배를 들고 몇 마디 축복의 말씀을 하셨다. 매우 간단명료했으나 젊은 부부는 갑자기 결혼이란 굉장한 수수께끼라는 것을 느꼈다. 아내와 남편이란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그것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두개의 기둥일 것이다. 연회는 흥겨웠다. 그런데 포도주는 벌써 바닥이 났다. 그리스도의 모친은 아들에게 말했다. "나의 아들아, 포도주가 더 이상 없구나." 처음으로 그분은 손을 뻗쳐 자연이 그 진로를 변화시키도록 명령할 마음이 생겼다. 최초의 비행을 위해 몸을 창공에 띄우고 가냘픈 날개를 파닥이며 두려워하는 새끼 독수리같이 그리스도는 천천히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여섯 개의 물항아리를 굽어보았다. 거기 그의 얼굴이 비치자 그물은 포도주로 변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분을 따라 마당으로 나와 있던 마놀리오스를 돌아보고는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마놀리오스가 기억하기로는 몹시 더운 날이었다. 수천의 사람들이 호숫가에 모여 있었다. 그리스도는 배 위에 올랐었다. 마놀리오스도 그분을 따라 배에 올랐었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가슴속에 낱알같이 좋은 말씀을 긁어모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이 씨가 자라는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씨앗은 잎사귀가 되고, 잎사귀는 꽃이 되고, 꽃은 열매를 맺어 이삭이 되고, 그리고 이삭은 빵이 되고, 빵 위에 깊은 홈으로 파진 십자가 새겨졌었다. 또 어떤 때는, 그들은 보리밭을 지나가고 있었다. 정오 때였고 그들은 배가 고팠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손을 뻗쳐 이삭을 땄다. 제자들도 각자 이삭을 땄고 마놀리오스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했다. 그들은 보리 알맹이를 하나씩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파란 낱알은 젖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몸과 영혼을 흡족케 했는지 모른다. 머리 위에서 제비들이 지저귀었다.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발 밑, 들판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들꽃들도 솔로몬의 황금기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자신을 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떤 때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그들을 그의 입에 초대했었다. - 바리사이파 사람이 어떤 경멸스러운,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가 보려고 마놀리오스는 문간에 서서 자세히 살펴보았었다. 그는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지도 않았고, 손에 향유를 부어드리지도 않았으며, 그분께 평화를 기원하는 키스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 그들이 말없이 먹고 있을 때, 갑자기 향기 넘치는 가슴을 드러낸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금발이었고 향유가 가득 든 나드 상자를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놀리오스조차 놀랐다. 그는 이 여인을 어디선가 많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 어디에선지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 여인 은 그리스도의 발 아래 무릎을 끓고 옥합을 깨뜨려 그 성스러운 발에 향유를 부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풀어 울면서 그것을 닦았다.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몸을 굽혀 그의 손을 금발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음률과도 같이 울렸다.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누이여. 그대는 많은 것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마놀리오스는 작은 복음서를 덮었다. 그의 가슴은 충만해 있었다. 주위를 들아보았다. 불은 아직도 밝게 타고 있었으며 오두막은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니콜리오는 여전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주하게 저녁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마놀리오스의 가슴은 사랑과 온유함과 행복으로 충일했다. 그는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했다" 그의 주저할 수 없는 가슴은, 밖으로 뛰어나가서 돌들에게 그리고 양떼들에게, 사람들에 복된 말씀을 안겨다 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으로 가득했다. "어이, 니콜리오" 하고 그는 소리쳤다. "음식은 그만두고 내 옆에 와 앉아라. 너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이번에는 네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넌 말하자면 무지한 상태에 있었어." 목동은 마놀리오스를 돌아보고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원치 않아요, 마놀리오스, 나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대로가 좋아요. 당신은 내가 좋은 유머를 버리기를 원하세요? "나는 너에게 복음 귀절을 읽어 주겠다. 너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가를 알게 될 거야." 내가 아플 때나에게 그것을 읽어 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 나는 아주 건강해요. 식사 준비를 다해 두었으니까, 가서 먹읍시다." "나는 배고프지 않아. 너나 막으렴." 마놀리오스는 이 말을 던지고는 작은 복음서를 다시 펴서 불길을 향해 몸을 구부린 채 다시 읽기 시작했다. "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신의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그의 생명을 버기는 자는 정녕 얻으리라.' '만일 사람이 천하를 다 얻고도 자신의 영혼을 잃는다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뇨? 사람이 무엇과 자신의 영혼을 바꿀 수 있겠는가?' " 마놀리오스는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복음서를 닫고 눈을 감았다. - 왜 죽음이 두려운가? 왜 지상의 권세 앞에 굴복하는가? 왜 지상의 목숨을 잃을까 하여 몸을 떠는가? 우리는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얀나코스는 오랫동안 문간에 숨어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니콜리오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저녁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정력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먹었다. 레니오는 바로 그날 저녁에도 올지 몰랐다. 누가 알랴? 그녀에게 힘을 쓰려면 여간 강하지 않아서는 안 되곤 하였다. 마놀리오스는 두 눈을 감고 형언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에 잠겨 있었다. 사람은 천국에서야 진정 행복하구나, 하고 얀나코스도 동시에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그곳에서 내려오지 않겠지. 나는 그에게 말해 주어야만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이, 마놀리오스." 하고 그는 문지방에 서서 성호를 그으며 소리쳤다. "어이, 마놀리오스, 다시 만나서 기쁘네!" 마놀리오스는 인기척에 놀라며 일어섰다. "누구요?" 하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대는 벌써 내 목소리를 잊었나? 마놀리오스? 나 얀나코슬세." "이거 용서하구료, 얀나코스. 나는 방금까지도 복음서 속을 따라 이스라엘의 들판을 헤매면서 아주 먼 곳에 가 있었소. 당신이 온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구료. 무슨 바람이 불어 이 시간에 이곳을 찾아왔읍니까?" "좋지 않은 바람일세, 마놀리오스. 자네는 천국을 누리고 있구먼. 용서하게. 난 지옥으로부터 소식을 가지고 왔네." "마을로부터?" "마을로부터지. 오늘 아침 유소우화키가 피살체로 발견되었어. 아그하가 분노에 완전히 미쳐 버렸어. 그래서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와 원로들과 파나요타로스를 체포했네. 그는 그들을 감옥에 쳐넣고 내일부터 교수형을 시작할 걸세 밧줄이 이미 광장의 버짐나무에 걸려 있어. 그는 내일 가련한 파나요타로스부터 처형하려고 하고 있네. 그가 말하기는 앞으로 나머지 사람들도 매일 한 사람씩 차례차례로 해치울거라는 거야. 그는 살인자가 발견될 때까지 죽음의 씨를 뿌릴 것이라네. 마을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황폐하다네. 집집마다 빗장이 채워져있고. 우린 망했어! 헌데 내가 온 것은 자네가 혹시 정황도 모르고 마을로 내려올까봐 걱정이 되어서 온 것이야. 왜냐하면 자넨 체포되면 안 되기 때문일세. 여기 있으면 자넨 아주 안전해!" 마놀리오스의 두 눈은 갑자기 광채를 발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너의 불멸의 영혼을 보여 주어라! 그는 그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동료가 그에게 하는 말을 가슴 두근거리며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자신에게 혼자 말하고 또한 되풀이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이것이 그 순간이야. 만일 네가 이 순간을 놓쳐 버린다면 너는 절망이다! "식사했소. 얀나코스?"하고 그는 물었다. "아니, 난 배고프지 않네." "나도 배고프지는 않소만, 식욕이란 먹는 중에 생기는 법이지요.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오. 내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하신다면, 그때 봅시다. 얀나코스는 놀라움을 가지고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자넨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가, 마놀리오스? 자넨 우리 마을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듣고 있나?" "나는 살인자를 알고 있소." 하고 마놀리오스는 말했다. "두려워 마시오. 마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요." "자네가 살인자를 알고 있다고?" 하고 그는 너무나 뜻밖이라 놀라서 다그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가 그를 알고 있다니. 그가 누군가? 도대체?" "그렇게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왜 그렇게 서두르시오? 당신은 내일이면 모든 것을 알게 될 텐데. 조금만 참으시오. 지금은 식사나 합시다. 그리고 이야기나 하고 잡시다. 모든 것이 잘될 거요.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합시다. 어이, 니콜리오, 우리들을 위해서 잠자리를 마련해 주렴. 우리도 배가 고프다." 그들은 다리를 포개고 앉아서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이따금씩 얀나코스는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 속에서 고요하고 행복하게 빛나는 푹 패인 두 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이해할 수 없다구,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무거운 침묵을 더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다그쳤다.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마놀리오스?" "나는 혼자가 아니오." 하고 복음서를 가리키며 마놀리오스는 대답했다."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시오." "그리고 자네의 병은?" 마놀리오스는 순간 놀라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는 그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병 말인가요? 아, 그래요. 나는 아직도 죄인이오, 얀나코스. 그것은 멀리 가지 않았소. 그것은 나의 생각 속에 아직도 죄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오. 자비로운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나는 밖으로 나가겠어요." 하고 식사를 끝낸 입을 닦으면서 니콜리오가 말했다. "초승달이 떴어요. 나는 잠이 안 와요. 산책하러 나가겠어요." 그는 지팡이를 들고 그것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얀나코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자러 갑시다. 내일 우리는 일찍 일어나야 해요. 밤은 사람에게 충고와 반성을 가져다 주지요. 나는 여기 산에 혼자 있으면서 그걸 배웠소. 주님은 깨어 있는 자보다 잠자고 있는 자에게 더 자주 이야기를 하신다오." 밤공기가 차가왔으므로 그들은 광 위에 커다란 깔개를 펴고 누웠다. 밤공기 속에는 백리향이 있었다. 정적이 깊어지면서 밤의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 초승달이 막 하늘 한가운데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불쌍한 파나요타로스를 생각하고 있네." 하고 잠이 오지 않는지 얀나코스가 말했다. "나도 그렇소." 하고 마놀리오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모든 사람보다도 그가 더욱 생각나오." "나도 그러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가 생각나니 웬일일까?" "그것은 너무 지나친 인간적인 사랑이 그를 망쳐 왔기 때문이지요, 얀나코스. 그것은 거만하지만 저주받을 영혼이오. 그는 그 자신을 정욕의 지배 아래 두었소. 그는 함정에 빠졌소. 그것이 그를 사납게 만든 것이오. 그는 저돌적으로 덤비고 있소. 그러면서 그는 어디론가 빠져 나가려 노력하고 있소. 그는 운이 없소. 그는 단지 더 단단히 얽힐 뿐이오. 그는 좌충우돌 들이받고 술을 마시고 그리고는 구원을 갈망하지요. 그러나 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오. 만약 그가 사랑을 절제한다면... 아니 덜 사랑한다면, 그게 아니라," 하고 마놀리오스는 뱉은 말을 주워 담으면서 정정했다. "만약 그가 좀더 사랑을 했다면, 아마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오." "난 그가 유소우화키를 죽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는 대화를 계속하고 싶었다. "제발 나에게 말해주게, 마놀리오스. 나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말이야. 범인은 파나요타로스지?" "얀나코스, 자, 이젠 잡시다. 범인은 그가 아니오." "주님, 찬송을 받으소서." 하고 얀나코스가 중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침묵이 흘렀다. 마놀리오스 역시 혼자 생각하기를 갈망하였으므로 눈을 감고 조용히 평온한 정적을 누렸다. 요즘 얼마 동안, 대낮에도 그는 두 눈을 감고 있기를 즐겼다. 그렇게 하면 마치 그는 자신의 영혼을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극히 짧은 순간, 마나세 사제의 말씀이 날카롭게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어느 날, 한 고행자가 그를 만나러 와서 하루 종일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그는 잠시 동안 눈을 뜨고 있다가 다시 감았다. "눈을 뜨시오, 수사여." 하고 마나세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다. "눈을 뜨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들을 보시오." "나는 눈을 감고 그것을 봅니다." 하고 그 고행자는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만물을 지으신 분을 봅니다." 그래서 마놀리오스는 눈을 감고 그리스도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복음서의 귀절들을 외어 보곤 하였다. 그리고는 슬며시 잠이 들곤했다. 그때 그는 분명하게 차가운 어둠 속에서 제자들 앞에서 하얀 옷을 입고 걸어가는 그리스도를 보곤 하였다. 그는 몰래 그 행렬의 맨 끝에 끼어서 말없이 그분을 보위하였던 것이다. "내일 우린 할 일이 많다." 하고 그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던 것이다. "어려운 일이구나. 그리스도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그리스도여." 마치 어둠 속에서 그리스도를 그에게로 끌어당기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는 다시 한숨지었다. 그리스도가 오셨다. 날이 밝을 무렵, 마놀리오스가 깨어 성호를 그렸을 때, 그 꿈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른 새벽별처럼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파란 하늘빛, 호수의 끝을 거닐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조급하게 그는 갈대와 버드나무 잎들을 헤치면서 매우 바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갈대와 버드나무는 그를 따라오는 수천의 남자와 여자들이 되었다. 바람이 불자, 그들은 모두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그는 도망치려 하였다. 어떤 손이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믿느냐?" "믿습니다, 주님!" 하고 마놀리오스는 대답했다. 즉시 바람은 멈추고 남자들과 여자들은 다시 갈대와 버드나무로 변했다. 제비로 가득 찬 버짐나무가 음악 소리 속에서 그 앞에 나타났다. 그것의 한 나뭇가지에 목을 맨 채 죽어 있는 몸뚱이하나가 흔들거렸다. 마놀리오스는 온 몸이 섬뜩해져서 멈춰 섰다. 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멈추지 말라. 행진하라!" 마놀리오스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멈추지 말라. 행진하라! 이것은 여호와의 목소리다. 가라!" 순간적으로 그는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빗고는 축제용 옷을 입었다. 복음서를 조끼 주머니에다 넣었다. 그리고는 얀나코스를 흔들어 깨웠다. "이보시오, 얀나코스." 하고 그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꾸러기 같으니. 일어나시오!" 얀나코스는 눈을 뜨고 그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자네는 새신랑같이 차렸구먼, 마놀리오스. 그런데 그대의 두 눈은 빛나고 있구료. 무슨 아름다운 꿈이라도 꾸었소?" "갑시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맙시다. 파나요타로스가 당할 고통을 생각해 보시오.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 어서 내려갑시다." 9. 희생의 제물 중대한 결정을 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기쁨이란 얼마나 큰 것인지? 마놀리오스는 천사처럼 가볍게 산을 내려갔다. 그는 땅을 딛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대천사들이 그들의 나래를 펼치고 그가 바위에서 바위로 사뿐히 나는 것을 도와 주는 듯이 빨랐다. 그는 한 조각 구름이 되었고 가벼운 바람이 그를 몰아가고 있었다. 뒤에서는 얀나코스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자네는 날개가 달렸군, 마놀리오스! 좀 천천히 걷게나. 자넬 따라 잡을 수가 없다니까!"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발 아래 날개를 단 듯하였다.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어찌 그가 날개더러, 자 멈춰라, 얀나코스를 기다리자, 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기다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얀나코스." 하고 그는 소리쳤다. "당신도 부지런히 재촉하세요." 그것은 마치 그가 눈을 감고 명상의 세계에서, 비옥한 토양 위나 돌 사이에 좋은 말씀을 뿌리러 다니며 그리스도를 따라갔던 그때에 그가 경험했던 바로 그런 방법 같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게네사렛에서 유다 땅까지 - 말씀 속에서 - 그가 그리스도를 따라다닐 때 그는 어떻게 날았었는지! 그분의 충실한 친구 일행과 함께 작고 사랑스런 마을들의 창공을 즐겁게 날며 자나갔었지 - 가버나움, 가나, 막달라와 나사렛 등등 - 그는 단숨에 사마리아 땅을 가로질러 그가 가장 좋아하는 땅 예루살렘 근체에 도착했었다 - 베다니와 베데스다, 그리고 여리고와 에마오... 그것이 오늘 마ㄴ리오스가 날아가는 방법이었다. 마치 그가 다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같이 그의 발걸음은 리코브리시로 인도되어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짐에 따라, 그는 얼굴이 온통 따끔거려옴을 느꼈다. 그와 함께 그의 얼굴에서는 헌딱지들이 하나씩하나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빰과 입술로부터 흉한 비늘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피부가 딱지들을 떨어뜨리며 마치 대나무 순처럼 부드럽게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가슴은 고동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이 얼굴을 스치면서 아침의 미풍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는 어떤 확신에 찼으나 감히 그의 손을 얼굴로 옮겨 다시 한먼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적이로다! 기적! 그는 다만 기쁨에 떨면서 생각했다. 얀나코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쫓아왔다. 그는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쳐다보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그리고 그는 마놀리오스의 가슴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진물이 흘러내리던 살이 밀초로 메꾼 것같이 반반하게 녹아 있었으며 터져 나오던 피부도 거짓말처럼 말끔히 아물어 다시금 예전처럼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오, 하나님, 찬미를 받으소서!" 하고 나직이 중얼거리며 그는 성호를 그었다. "하나님! 찬양을 받으소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음이여." "성스러운 마놀리오스." 얀나코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당신의 손에 입맞추게 해주오. 당신은 사탄을 이겼소. 당신의 영혼은 순결하게 되었으며 당신의 얼굴은 사탄을 물리쳤소!" 얀나코스는 그의 억센 손으로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오랫동안 아무말도 없이 어루만졌다. 그 순간부터 그의 눈에는 마놀리오스가 성스럽게 보였다. "어서 갑시다!" 하고 마놀리오스는 말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태양이 떠올랐다. 그들은 평원 저 아래서 수탉이 우는 소리와 마을의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희미한 안개 속으로 뿌옇게 마을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친구에게 모모을 돌렸다. "얀나코스."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내가 지금 마을에 도착해서 행하고 말하려는 것을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하오. 당신은, 말하게하는 이는 내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야 하오. 나는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일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오. 얀나코스, 알아듣겠소?" "무엇을 하려는 건가? 할 말이 뭔가?" 하고 얀나코스는 초조하게 물었다. 순간 막연하게나마 그의 친구가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말해 드리겠소.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르오. 나 자신도 자세히 모르오. 그러나 확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도 역시 그렇게 믿어야만 합니다, 얀나코스, 그리고 미켈리스와 코스탄디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오. 그래야 그들은 탄식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가?" 얀나코스가 다그쳐 물으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 - 이것이 지난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그리스도가 나에게 주신 말씀이오. 걸음을 멈추지 마시오. 용기를 가집시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얀나코스. 악마의 딱지가 더 이상 내 몸을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음을 당신도 보았지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시오? 그것은 내가 새벽녘에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들었으며, 그 부르심의 명령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의지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계속 소리치고 있소. '멈추게!' 하고 말이오. 어떻게 내가 멈출 수 있겠소. 얀나코스?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계시는데 말이오." 그러나 얀나코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마놀리오스, 그대에게만은 확신을 가지고 있네. 나는 이 손으로 자네의 몸에서 일어난 기적을 직접 확인해 보았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을 가질 수가 없어. 만일 당신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일을 한다면 나는 혼비백산이 되고 말 것일세. 나는 그럴 수밖에 없네, 마놀리오스. 나는 인간이오. 그리고, 만일 어떤 일이 그대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자네를 두고 떠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항거를 할 거라구!"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나는 기어코 항거할 걸세." 라고 얀나코스는 되뇌었다. "오, 하나님 용서하소서!" "부끄럽지도 않소? 두렵지도 않습니까? 조용하세요." 마놀리오스가 단호히 말했다. 그들은 서둘러 걸었다. 그들이 마을 가까이 왔을 때 콘스탄디스가 허겁지겁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하고 그는 그들을 보자 소리쳤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즉시 되돌아가게나. 난 지금 자네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이야기하러 산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오." "파나요타로스는?" 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그를 매어달 밧줄이 버짐나무 위에 달려 있다네. 새벽녘에 경호원이 트럼펫을 불었네. 그는 모든 주민들에게 광장에 모여 남자와 여자 모두 참극의 전말을 구경하라고 명령했다네. 공포 분위기를 조상하기 위해서 말이지." "되돌아가세!" 얀나코스가 미칠 듯한 공포에 사로잡혀 소리치면서 산을 향해 돌아섰다. "코스탄디스, 자네도 가세!" "나는 처자식이 있는걸. 난 그들을 두고 떠날 순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가능하겠군요.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어서 떠나시오!" "안 되오!" 마놀리오스는 결의에 찬 말을 하면서 그의 길을 계속 걸었다. "우리들은 주님의 이름에 맹세코 앞으로 나아가야 하오. 그리고 우리는 꼭 가고 말 것이오. 얀나코스, 갑시다. 두려워 마시오, 우리들 앞에는 우리를 손짓해 부르는 분이 계시오. 당신들은 그분을 볼 수 없소? 그분을 따릅시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코스탄디스는 처음으로 마놀리오스의 청결해진 얼굴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마놀리오스!" 그가 소리쳤다. "어떻게 된 기적인가?" "기적이 다 그러하듯이 그렇게 되었소." 마놀리오스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매우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그대가 그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 그때에. 하지만 꾸물거리지 말게나. 자 형제들, 어서 갑시다!" 그는 코스탄디스의 팔짱을 끼고는 성큼성큼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얀나코스는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코스탄디스." 하고 마놀리오스는 말했다. "두려워 마오. 마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거요. 나는 살인자를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서두르고 있는 거요." "그것이 누군가? 누구야?" 하고 코스탄디스는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자네에게 보여 주기라도 했나? 그게 누군가?" "묻지 마오. 걸음을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갑시다!" 하고 마놀리오스는 위엄과 사랑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은 마치 내닫는 야생마와도 같이 앞으로 돌진해 마을에 도착하였다. 후세인의 트럼펫이 노도와 같이 다급하게 울어 댔다. 문들이 열리고 남자나 여자나, 주민들이란 주민들은 모두 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성호를 긋고는 두려움에 떨며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형제들이여, 용기를 내시오!" 하고 얀나코스가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주님은 위대하시오." "사탄에게나 잡혀가거라, 미친 놈!" 손자 녀석의 손을 잡고 뛰어가던 늙은이가 으르렁거렸다. "만약 하나님이 위대하다면 지금이 바로 그 위대함을 나타낼 순간이야. 그분께 살인자나 적발하도록 부탁하렴!" 크리스토피스 영감은 황급히 지나가면서 소리쳤다. "그들이 초와 벤자민과 단 과자들과 함께 유소우화키를 버짐나무아래 가져다 놓으려 하고 있어. 외톨이가 된 아그하는 정신이 나갔다구." 무리를 지어 기독교도들이 서둘러 지나갔다. 미켈리스가 멀리서 그의 친구들을 알아보고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맥이 빠진 채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마놀리오스를 보자마자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그를 포옹하였다. "마놀리오스, 자네, 깨끗해졌군. 자네가 깨끗해졌어! 주여 찬송을 받으소서!" "그런데, 파나요타로스는?" 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그는 이제 곧 밖으로 끌려나올 것인데, 그자들이 몽둥이로 그를 족쳐 기절을 시켰다네. 가련한 친구!" 그들은 광장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태양은 하늘 위로 한 뼘쯤 되는 높이에 떠 있었다. 한줌의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참으로 향긋했다. 마을의 정경은 주민들의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아주 상쾌한 빛으로 충만했다. 늙은 버짐나무의 보드라운 잎새들이 가벼운 산들바람에 아무렇지도 않은 양 흥겹게 살랑거렸다. 늙은이들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그러한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아침에 눈을 뜨고 보면 자유를 외치던 기독교도들이 당당하게 머리를 치켜든 채 그 나무에 매달리는 것을 보아왔던가! 경호원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비켜, 이단자들아!"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상여꾼들이 살해된 소년이 누워 있는 쇠침대를 운반하며 따라왔다. 아그하는 그의 머리에서 발 끝까지를 장미와 자스민으로 덮어 놓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곱슬머리를 한 그의 핏기 없는 얼굴과 상처난 입술뿐이었다. 아그하는 그의 시체 옆에 한줌의 매스틱을 갖다놓았다. 그로 하여금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그것을 우적우적 씹게 하기 위해서였다. 파나요타로스는 등뒤로 손을 묶인 채, 상처난 머리와 채찍에 찢기고 멍든 살갗으로 다리를 질질 끌며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의 두 눈만은 아직 살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하면서 증오에 가득 찬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너는 아녀자들에게는 한치의 동정심도 없지? 안 그러냐?" 하고 누군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자백하라!" 파나요타로스는 으르렁거리면서 걸음을 멈췄다. "너희들 중 누구가 날 동정해 준 일이 있었더냐?" 하고 그는 악을 썼다. 버짐나무 밑에 도착한 그는 기진해서 늙은 그 나무의 밑둥치에 기대며 늘어졌다. 그는 어깨를 움추리면서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상여꾼들은 유소우화키를 버짐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다 옮겨놓았다. 그들은 커다란 초 두 개를 그의 발치에 켜 놓고는 타고 있는 석탄 위에 한줌의 벤자민을 뿌렸다. 마놀리오스와 그의 친구들은 군중들을 뚫고 나아가 죽은 소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순간 파나요타로스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다. 그는 결박을 풀려는 듯이 손을 비틀면서 한 발자국 성큼 다가서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마놀리오스, 이놈, 저주나 받아라!" 그는 지쳐서 다시 버짐나무에 기댔다. "형제여, 용기를 가지시오!"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주님을 믿으시오!" 파나요타로스가 재차 막 입을 뗄려는 순간에 드디어 아그하가 행차하신다는 무서운 소리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공중에 울려 퍼졌다. "아그하다!" 그는 은실로 수놓인 바지를 입고 넓고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르고 은제 권총과 검은 손잡이의 터어키 칼을 차고 있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울어서 부은 눈을 하고는 애써 초췌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무겁게 발을 내려다보면서 걸어왔다. 모인 그리스인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터어키인인 그가 술에 취했거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걷지도 못함을 모인 그리스인들에게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콧수염과 눈썹은 검은색으로 진하게 물들어져 있었다. 이따금씩 그의 오른손으로 그의 콧수염을 잡아 뜯기도 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여차하면 돌격할 준비가 된 황소같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머리칼과 겨드랑이에 사향 향수를 뿌리고 있었으므로 마치 발정한 맹수의 냄새 같은 것이 지나가는 그의 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 두려웠던지 아예 유소우화키 쪽으로는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버짐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경호원은 파나요타로스에게 손을 뻗쳐 그를 아그하의 발 밑에 난폭하게 집어 던졌다. 그런 다음 꼼짝하지 않고 있는 그를 발로 짓이기고 있었다. 아그하는 손을 들고 쉰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단자들! 나는 매일 너희들 중 한 명을 교수형에 처하겠다. 너희들이 살인자를 스스로 단죄할 때까지 온 마을은 이 버짐나무 밑에 매달리는 운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저울의 한 쪽에는 나의 유소우화키가, 다른 한 쪽에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달아 보리라. 나는 전 세계를 매달아 버리고 말겠다. 이 이단자들아!" 그는 말하는 중에 제풀에 더 화가 나서 야생마처럼 발로 땅을 땅땅쳤다. 그의 두 눈은 남자와 여자들에게 고정되어 그들에게 어서 끝장을 보여 주려는 그의 성급함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입과 머리카락과 겨드랑이 부근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그는 파나요타로스를 짓이기며 발길질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누리끼리한 액체가 거품과 함께 흘러나왔다. "더러운 이단자." 하고 그는 파나요타로스에게 소리쳤다. "나의 유소우화키를 죽인 것이 바로 네놈이지? 그를 죽인 것이 바로 네놈이지! 자백해!" 파나요타로스는 신음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그하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후세인에게 돌아섰다. "그놈을 매어달아!" 하고 아그하는 고함을 질렀다. "잠깐! 멈추시오! 내가 살인자를 알고 있소!" 경호원은 밧줄로 묶어 두었던 파나요타로스의 목을 풀었다. 군중들은 순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웅성거렸다. 아그하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다 보았다. "방금 말한 사람이 누구야?" 하고 그가 소리쳤다. "얼굴을 내밀라구!" 마놀리오스는 지극지 조용히 앞으로 걸어나가 아그하의 앞에 멈췄다. 경호원이 본능적으로 화들짝 놀라면서 귀를 쭈뼛하게 세웠다. 그의 턱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완연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살인자를 알고 있단 말이지?" 아그하가 물었다. 그는 마놀리오스의 팔을 잡고는 거칠게 흔들어 댔다. "그렇소, 나는 살인자를 알고 있소." "그게 누구지?" "나요." 전혀 얘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한 이상한 안도의 물결이 군중들 사이에서 일고 있었다. 여인네들은 성호를 그었다. 저마다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렸다. 마을 사람들은 숨막히는 상황으로부터 해방감을 얻었던 것이다. "조용히 해. 이단자들아!" 채찍을 후려치면서 아그하가 고함을 질렀다. "그건, 사실이 아니오!" 얀나코스가 소리치면서 팔을 흔들었다. "사실이 아닙니다!" 코스탄디스와 미켈리스는 아그하 쪽으로 달려 갈 몸짓을 하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군중들은 아무튼 일이 그들에게 고통스럽게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외침을 함몰시켜 버렸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살인자는 그놈이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구! 우리들이 구원되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단 말이다!" 갑자기 후세인이 몸을 흔들면서 파안대소를 했다. 그는 지체없이 앞으로 달려가서 마놀리오스를 낚아채 그의 목에 밧줄을 감았다. 그때 아그하가 후세인을 뒤로 밀어내고는 마놀리오스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두 눈을 쏘아보았다. "죽일 놈, 네 놈이?" 하고 아그하는 고함을 질렀다. "그렇소. 납니다." "그를 죽인 놈이 바로 너란 말이지?" "그렇소. 분명히 내가 죽였소. 나를 목 매다시오. 그리고 파나요타로스는 놓아주시오. 그는 죄가 없습니다." 파나요타로스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마놀리오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입을 훼 벌렸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그는 지금 마놀리오스에게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마놀리오스가 진짜 살인자일까? 아니다! 아니야! 그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부르짖음이 울려나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가 나를 구하기 위해 하는 짓이라면, 에라, 염병에나 걸리렴! 나는 구원받고 싶지 않아. 그는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경호원이 채찍을 움켜잡았다. "작작해, 이 이단자야!" 경호원이 소리쳤다. 아그하는 완전히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뭔가 전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마놀리오스를 노려보았다. "헌데, 왜였지? 그가 네넘에게 무슨 일을 했지?" "그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소. 아그하. 다만 사탄이 나를 사주해서 그를 죽였습니다. 밤에 내가 잠들어 있을 때, 그 잠 속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를 죽여라!' 그래서 나는 새벽 미명에 마을로 내려와 그를 죽였습니다. 나에게 더 이상 물어 보지 마십시오. 나를 처형하시오!" 후세인은 밧줄을 들고 서둘러 앞으로 뛰어나가 마놀리오스의 팔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여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 어떤 날카로운 절규가 들려왔다. "그는 죄가 없어요, 아그하님, 그의 말을 믿지 마세요. 그는 무관하다구요, 무죄예요! 무죄!" "입닥쳐! 더러운 매춘부야!" 카테리나 주위에 모여 있는 여인들이 표독스럽게 그녀를 윽박지르면서 소리쳤다. "그분은 우리 마을을 구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과부는 다시 소리쳤다. "당신들은 그에게 자비심도 베풀 수 없나요?" 그러나 벌써 여인들은 그녀를 넘어뜨려 놓고 짓밟기 시작했다. "마놀리오스, 나의 마놀리오스!" 하고 과부는 몸부림을 치면서 부르짖었다. "그는 죄가 없소! 죄가 없어요! 죄가 없다구요!" 하고 세 친구들도 소리쳤다. 그들은 가까스로 아그하의 앞에까지 다가갔다. "아그하님." 미켈리스가 말했다. "만약 이 사람이 살인자라면 나는 기꺼이 당신이 내 머리를 자르도록 하겠소. 그는 우리의 목동이요, 진짜 성자입니다. 그에게 절대로 손대지 마십시오!" 아그하는 더없이 화가 치솟아 마놀리오스를 노려보다가 군중의 함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는 죽은 유소우화키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그의 머리는 실꾸러미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살인자일까? 마놀리오스를 노려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아니면 미친 놈일까? 아니면 성자일까? 제기랄! 알 수 없군. 그는 계속 생각해 볼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후세인 쪽으로 돌아서서 마놀리오스를 가리켰다. "감옥으로!" 하고 그는 명령했다. "내일 결정하겠다." 그런 다음 아그하는 군중들을 향해서 소리 질렀다. "꺼져! 아단자들아, 내 앞에서 썩 꺼져!" 군중들은 놀람과 안도에 찬 마음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살인자가 발견된 것을 신에게 감사하면서, 저마다의 심경을 지껄여데기 위해서 삼삼오오 짝지어 모여들었다. "자넨 범인이 마놀리오스라고 생각하나?" 하고 그들은 서로들 물어 보았다. "모르긴 해도 그는 진짜 성자야." "자질구레한 일에 구애되지 마시오. 형제들이여, 그가 범인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아무튼 그는 자백했소. 그것으로 충분하오. 그는 교수형을 당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들은 구원될 것이오. 이 엄연한 사실 밖의 것은 무제될 게 없는 게 아니겠소?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받아 주시기를!" "헌데, 왜 그가 그런 일을 했을까? 이해할 수 없는걸. 왜냐하면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이지. 비록 그가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마놀리오스 그 친구, 자네들은 그를 모르나? 때때로 환상을 보는 가련한 친구라고. 그는 생각하겠지. 마을을 구하기 위해 그것을 하고 있다고 말이지. 하지만 웃기는 생각이지. 자네들은 그런 일을 들어 보기나 했었나?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만약 그가 미쳤거나 바보가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지. 내버려 두라지.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내버려 두라고." 세 명의 친구들은 미켈리스의 집에 모였다. 얀나코스는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계속 쥐어박고 있었다. "그것은 내 잘못이야, 내 잘못! 난 멍텅구리야. 정말 바보 짓을 했다구! 나는 그가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 건데. 그에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는 성자요." 하고 미켈리스가 중얼거렸다. "그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고 있어요." "우린 그를 구해야만 하네!" 하고 코스탄디스가 소리쳤다. "우리는 해야만 하네. 우리는 해야만 한다구!" "만약 나에게 마놀리오스와 같은 힘이 있다면 나 역시 목숨에 연연하지는 않을걸요." 하고 미켈리스가 말했다. "그의 눈이 빛을 발하고 있던 것을 보았어요? 그의 얼굴 전체에서 광채가 나던 그 모습을 말이요. 그는 이미 천국을 소유하고 있었어요. 왜 그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와야 한단 말인가? 우리도 그와 함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할 수 있다네!" 얀나코스가 열렬하게 외쳤다. "우리는 지체없이 가기만 하면 돼. 우리 모두가 오늘 밤중으로 아그하에게 가서 유소우화키는 내가 죽였다고 말하면 된다구. 그래서 그로 하여금 우리 모두를 버짐나무에 목 매달게 하세나! 우리 모두 그의 뒤를 바짝 좇아서 천국으로 가세!" 미켈리스가 머리를 흔들었다. "나에겐 그럴 힘이 없소, 얀나코스." 하고 그는 고백했다. "어떻게 내가 마리오리를 두고 떠날 수 있겠는가?" "나도 그래."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내겐 처자식이 있는걸." 나도 마찬가지로군, 하고 이번에는 얀나코스도 혼자 생각했다. 나는 나의 당나귀를 두고 떠날 순 없지.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네 사람의 원로들은 감방의 벽에 기댄 채 초조하게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곤욕의 지하 감방에서는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중들의 웅성거림을 도시 알아챌 수조차 없었다. 다만 실오라기 같은 침침한 광선만이 높이 있는 둥근 채광창을 통해 들어올 뿐이었다. "배고픈데." 하고 파트리아케스가 한숨지었다. "우린 모두 배고프고 목마르오." 하고 그리고리스 시제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내력을 시험받고 있소. 주님이 이 사자의 굴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오." "이 순간에 그들은 가련한 파나요타로스를 처형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게요." 교장 선생이 장담했다. "내일은 우리들 차례요. 남자답게 임합시다.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합시다." 그런 다음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용기를 내요. 라다스 영감." 하고 말했다. "지금 당신은 내가 옳았다는 것을 알겠소? 지금까지 얼마나 여러 번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가요. '무엇하러 돈을 필요 이상으로 쌓는가, 라다스 영감? 죽어서 무덤에까지 돈궤를 안고 가려는 거요? 선을 베푸시오. 그것만이 심판의 날에 주님 앞에서 죄를 탕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하고 말했지 않소. 지금 당신은 무슨 말을 하겠소? 아무런 미련도 여한도 없소?" 라다스 영감은 탄식했다. 머리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길다란 머리를 교장 선생 쪽으로 돌리고는 증오에 가득 찬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일은 당신 차례일 거요, 라다스 영감님." 그리고리스 사제가 말을 걸었다. "당신은 주님 앞에 서게 될 거요. 그러므로 사전에 고해를 하셔야 합니다. 엎드리십시오. 당신이 행한 죄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시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난 그 누구에게도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단 말이오." 늙은이가 언짢은 듯이 중얼거렸다. "물론 누구에게도 선한 일을 한 적도 없지만, 난 누구를 죽인 일도 없어요. 나는 결백하오." "아무에게도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라다스 영감!" 파트리아케스가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무덤 한복판에 서 있는 이 순간에, 난 당신에게 적나라하게 진실을 말해 주고 싶소. 늙은 구두쇠라고 말이오. 당신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구? 그래? 과부 카테리나의 집을 매각처분한 자가 누구였지? 그리고 누가 늙고 가련한 아네스티의 포도밭을 경매에 붙였던가? 그뿐 아니라 아이들을 거리에 내어쫓아 고아를 만든 자가 누구요? 당신, 바로 당신이란 말이오. 당신의 탐욕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언제나 그랬듯이 주님 앞에 가서 그 이유을 대 보시오." 라다스 영감은 분통을 터뜨리며 갑자기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나무라는 격이로군! 주제에 다른 사람을 책망하다니 당신의 격에 어울리는군. 하지만 내가 당신의 치부를 폭로하기만 한다면 당신 앞날이 웃겨질 거라구! 이 땅에서 당신이 한 일이란 게 뭐요. 이 고귀한 돼지 새끼야! 당신은 가능한 대로 무엇이든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으며, 술통처럼 마셔 대었고, 부녀자들을 강간해서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을 사생아로 가득하게 했지않나? 당신은 일평생 빈둥거리며 하릴없이 돌아다녔지. 한편으로는 '보잘것없는 파이를', 한편으로는 터어키인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추잡을 떨고 아양을 부리면서 키스와 애무를 즐겼었지. 원로들에게와 그리고 사제들과 주교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항상 터어키족속들의 비위를 맞춰 주었지 않소? 경건했던 당신의 아내를 죽인 것이 누군가? 당신이란 말이요. 그녀는 당신이 여자 꽁무니를 쫓아 다니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었지. 당신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단 말이야. 가련한 일이었지." 파트리아케스는 그의 목을 조이려고 벌떡 일어났으나 다른 두 사람이 끼어들어 그들을 떼어 놓았다. 라다스 영감은 거의 미친 듯했다. 평생 동안 사실상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든지 내버려 두고 못 들은 체해 왔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권세있는 자들과 사귀기 위해서 굴욕도 참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해왔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죽음에 직면한 입장에서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버리고 평소 꿍쳐 놓았던 것들을 토해내 버림으로써 마음을 비워 내고 싶었다. 이를테면 피장파장인 작자들이 자기보다 더 도덕적인 양 이러쿵저러쿵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집스럽게 대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판에 그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사제를 휙 쳐다보고는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집적거렸다. "그리고 당신, 이 사기꾼아! 누가 우리를 고해시킬 수 있다고 했든? 네 모습이 주님 앞에 어떤 종류의 가면을 쓴 존재로 보일지 궁금하군. 당신은 마을에서 수탉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어스렁거렸지. 그리고 당신의 성직이란 이름은 당신 배를 올챙이 배로 만들어 주었지.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문을 두드리면 당신은 삐딱하게 앉아서 허튼 수작을 부리며 그를 따돌렸다구. 그러면서 당신은 가장 달콤하고 그럴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지. '주님의 가호가 계시기를, 나의 형제여. 나도 배가 고프다네!' 하고 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그 염소 수염에서 개기름이 뚝뚝 떨어지는군! 불쌍하게 죽은 자들과 장례 치를 비용이 없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으렷다. 당신은 그런 자들을 괄시해서 시체가 썩도록 내버려 두니까 말이요! 당신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변한 대가를 돈으로 요구하면서 손을 내밀고 있단 말씀이야. 무슨 축복기도나 세례, 결혼식, 그리고 종부성사에 대해서도 역시 그랬잖소. 심지어는 등급까지 매겨서 개시하기까지 했소. 한 마디로 당신은 흡혈귀요. '라이아, 돈을 지불해요. 그렇잖으면 자네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하고 말이오. 나, 라다스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한 보복이오. 성직자는 일생 동안 배 곯는 사람이며 진짜 사도처럼 맨발에다가 허기진 배에 누더기를 걸치는 사람 아니오. 바로 나처럼 헐벗고 살아온 사람을 말하는 거지. 아시겠소? 그것이 바로 내가 기름 낀 밥통에게 고백하는 말의 전부란 말입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머리를 굽힌 채 기독교적인 인내를 가장하고 듣고 있었으나 속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그는 순간 그의 비쩍 마른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어디에 그렇게 지독한 독살과 썩은 고기를 챙겨 넣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이 몇 년 동안 이 늙은 사생아 자식이 속속들이 간직해 둔 것일 게다. 그래서 그는 지금 그의 영혼을 토해 내면서 공공연하게 그것을 모두 씨부려대는 것이렷다! "계속하시오, 계속해요, 나의 친애하는 라다스." 그는 가장된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주님은 죄 많은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은 억울한 소리를 겪으셨소. 모욕당하고, 중상당하고, 거기다가 채찍질까지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하셨지만 그분은 결코 입을 열지 않으셨소. 하물며 나 같은 존재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요? 계속하십시오. 계속해요. 사랑한는 라다스!" 라다스 영감은 가차없이 그를 몰아세우려고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교장 선생이 끼어들었다. "형제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살아있는 순간이 몇 시간 남아 있지 않다오. 그런데 주님을 향해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기는커녕 세속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그것을 질질 끌고 있다니, 조용히 합시다. 라다스 영감님, 당신은 싫도록 지껄였소. 당신의 마음을 비워 냈을 것이오. 당신 그리고 여러분들, 조용합시다. 사람의 죄는 말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오." 라다스 영감은 비양거렸다. "이 딱한 훈장아,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주랴? 깨끗하고 추함이 당신에게 있어서는 결국 같은 것이지. 자네의 존재가 그리 크지 않다구. 당신은 적당히 선행을 했고 또 적당히 악행도 하면서 살아왔을 뿐이야. 당신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싶었겠지. 당신은 결과도 없는 허드레 일이나 할 수 있을 뿐이라구. 말하자면 당신의 영혼은 구멍가게의 점원일 뿐이야. 그 가련한 영혼은 고작 석판이나 분필, 베낀 그림따위나 인도 고무, 공책 등속을 싸게 팔아먹기나 하지. 훈장은 그런 족속일 뿐이지. 당신은 또한 당신이 철석같이 신봉하고 있는 말을 분필 끝에 묻혀서 팔아먹는다구! 당신은 그것을 간직할 수야 있겠지." 그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해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서 서두르는 꼴이었다. 그래서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렸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시지?" 하고 라다스 영감은 시끄럽게 떠들었다. "암탉은 자기 눈을 뽑을 때까지 후벼판답니다. 이것 보시오, 당신들이 너무 심했던 것 아니오? 스스로 상처를 받았소? 하지만 그것이 당신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리스 사제는 눈짓으로 파트리아케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에게 아예 말을 걸지 말게!" 하고 족장은 자신의 화를 삼키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입을 다물었다. 교장 선생은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기, 그들이..." 하고 그는 더듬거렸다. 그의 굵은 정맥에 핏줄기가 툭 불거졌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라다스에게 축사하기 위해 손을 뻗쳤다. "형제들이여, 죄사함 받기를." 하고 그는 경건하게 말했다. "당신이 한 모든 말이 용서받게 되기를. 아신은 당신 영혼의 악취를 모두 몰아내었소. 그것이 악취를 제거하기에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련만. 의도적이지는 아니었지만, 불쌍한 영혼이여, 당신은 결과적으로 고해를 했소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일생 동안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하시기를. 일어나시오, 라다스. 자, 당신의 차례가 왔소!" 라다스 영감은 경련을 일으키며 넘어지기 시작했다. 욕지거리와 고함 소리와 짓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호원이 어깨로 난폭하게 문을 열면서 파나요타로스와 마놀리오스를 감방으로 몰아놓었다. 그들은 쓰러지면서 벽에 부딪쳤다. 이내 문이 굳게 잠겼다. "마놀리오스!" 하고 파트리아케스가 소리쳤다. "자네, 무엇하러 여길 들어왔나? 왜 자네가 이렇게 끌려오게 된 거지?" "파나요타로스!" 하고 교장 선생이 소리쳤다. "아니 자네, 아직도 살아 있었군! 그들이 자넬 처형하지 않았나? 오 주여, 찬양받으소서!" "난 살아 있소. 죄인에게 저주를!" 하고 파나요타로스는 으르렁거리면서 말하고는 구석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라다스 영감은 머리를 들고 파나요타로스를 유심히 노려보고는 꿈결처럼 그를 만져 보았다. "자네가 아직 살아 있군. 정말이야? 어떻게 그들이 자네를 목 매달지 않았나? 혹시 아그하가 자신이 너무했다고 후회하고 있던가? 하지만 그가 마음을 바꿀 리가 있겠나?" 라다스 영감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억제했다. "눕게나, 마놀리오스." 하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말했다. "자, 숨 좀 돌리게." "말해 주게, 마놀리오스." 하고 족장이 명령하였다. "우린 궁금해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네. 그들이 진짜 범인을 발견했던가?" "그들은 범인을 찾아냈습니다."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게 누구야? 누구? 도대체 누구지?" 그들은 동시에 그의 주위를 에워싸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범인입니다."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자네라고?" 그들은 열린 입을 닫지 못한 채 마놀리오스를 바라보면서 움찔해졌다. 오랫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고 족장이 마음속으로 마놀리오스의 지난날을 돌이켜본 후 마침내 소리쳤다. "불가능한 일이라구! 아니야. 절대 아니야. 세상 말세로구나!" "나 역시 그걸 인정할 수가 없네." 하고 교장 선생이 참견했다. "어떻게 자네가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자네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니? 마놀리오스, 자넨 할 수 없네." 다만 그리고리스 사제만은 아무 말 없이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왜 자넨 대답이 없나? 마놀리오스." 파트리아케스가 물었다. "무엇을 말하란 말입니까? 족장님." 하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나는 살인자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딴은 그렇다구." 라다스 영감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충분하네, 젊은이! 그들은 범인을 찾았고 우리는 살았다구. 주님은 과연 살아계시네!" 마놀리오스는 채광창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광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조끼 주머니에서 복음서를 꺼내 아무 것이나 잡히는 대로 펴서는 주위의 상념들을 잊어버린 채 읽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한 배를 탔다. 제자들과 섞여 있었다. 그들은 게네사렛 호수를 향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면서 사나운 바람이 일었다. 그리스도는 온종일 무리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선미에 있는 고물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잠이 들어 계셨다. 북풍이 사납게 불어왔다. 바람은 길리앗 산에서부터 불어 내려와 호수의 수면을 강타했다. 파도가 사납게 그 작은 고기배를 덮쳤다. 제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창백해졌다. "우리들은 이제 죽었구나!" 하고 제자들은 웅성거렸다. "우린 끝장이다!... 주님이 깨시기만 한다면!"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그분의 거룩한 잠을 방해할 수 없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께로 가서 몸을 굽혔다. 섬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미소 어린 얼굴을 보았다. "주님을 깨우게. 그분을 깨워!" 하고 그의 뒤에서 제자들이 밀치락거리며 소리쳤다. "주님." 하고 그가 말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우리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눈을 뜨고,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한심한 듯이 탄식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너희들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너희들은 나를 믿지 않고 있구나!" 그분은 한숨짓고는 일어나 선미에 나가 섰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고 "잠잠하라!" 하고 바람을 향해 명령하였다. 그는 성난 호수를 향해 팔을 낮추고는 "잔잔해져라!" 하고 말씀했다. 즉각 바람이 자고 파도가 고요해졌다, 별들이 다시 빛났다. 세상이 다시 한번 미소짓는 모습을 나타냈다. 마놀리오스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다섯 사람을 향해 눈을 들었다. 그의 푸른 눈은 마치 게네사렛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고 행복하게 빛났다. 라다스 영감은 금세 생기가 나고 있었다. 그는 마냥 안도감에 젖어 손을 비벼 대면서 왔다갔다 했다. "그들은 살해자를 찾아냈네. 주님이여, 찬송받으소서! 우리들은 목숨을 구했단 말이오. 가련한 마놀리오스, 나는 정말이지 자네가 안됐어.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냐. 자네는 가난했고 고용인이었으며 아직 젊은 나이야. 자넨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지 않았네. 그러므로 자네의 죽음은 별반 중요하지 않단 말씀이야. 정말이지 자넨 운좋게 자백을 해주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나게 되었다네." 라다스 영감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동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입술을 쪼볏하게 오므렸다. 도대체 어떻게 일을 수습한다? 그는 생각했다. 이젠 목숨을 다시 얻었으니 그건 잘되었고, 한데 저 염소 수염과 '고귀한 돼지' 라고 함부로 안면몰수하고 불러 버린 파트리아케스와의 일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교장 선생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어.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나는 너무 성급했어. 거위를 이미 요리를 해 버렸으니. 엎질러진 물이야. 다 끝났어! 하지만 목숨을 건졌으니 운이 좋다구, 하고 내심 생각했다. 파트리아케스는 복음서를 읽기에 여념이 없는 마놀리오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순간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가 놀라면서 사제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제,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리고리스 사제는 눈치를 채고 헛기침을 했다. "질문하지 마시오, 족장님. 그냥 두시오. 그러면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오." 하고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결백하다면? 만약 그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면? 우리가 모른 척하고만 있을 수 있겠소? 당신은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요?" "주님은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진의야 어떻든 주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요." "주님은 당신을 용서하실지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도 당신을 용서할까?" "만약, 내가 주님의 뜻대로라면..." 하고 사제는 가슴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두렵지 않소." "그렇다면..." 그들 가까이 접근해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교장 선생이 말참견을 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주님께 맡깁시다. 그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계시오. 게다가 마놀리오스는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이것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있소." "굉장한 섭리요!" 하고 사제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무상한 생명을 포기하려 하고 있지만 반면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하고 있소. 그것은 마치 당신이 한 페니를 지불하고 일만 파운드어치의 금을 얻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걱정하지 말아요. 마놀리오스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소." "그는 참으로 작고 영리한 원숭이요." 교장 선생이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과 얼굴은 생기로 빛나고 있었다. 후세인이 들어와서 마놀리오스에게 달려들면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리 나와. 이단자야!" 하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아그하께서 널 보고 싶어한단 말이야." "주님의 이름으로." 하고 마놀리오스는 조그마하게 중얼거렸다. 아그하는 그의 방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정오 무렵이어서 열기로 타는 듯했다. 그리고 유소우화키는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노예인 마르다는 숨을 죽이고 곱사등을 더욱 굽히고 들어왔다. 그녀는 한아름의 싱싱한 장미들과 자스민과 인동넝쿨을 나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다발로 묶어 그것을 반쯤 ㅆ은 시체 위에 놓고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어 황급히 뛰어나왔다. 슬픔과 분노에 겨워 아그하는 아무것도 냄새 맡을 슈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쓰라린 회상에 잠겨 치보크를 빨아 대고 있었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으므로 더욱 적막해 보이기고 했다. 그것은 - 운명적으로 -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 유소우화키가 죽은 아침, 그 자신에게 말했었다. 그것은 예정되어 있었구나...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마음은 누그러졌었다. 그는 인간의 죄를 신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한결 마음이 완화되었다. 누가 신을 책망할 수 있는가? 그는 - 신은 - 그렇게 할 결심을 하고 그것을 예정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일어난다. 그의 - 신의 - 의지에 의해서 무든 것은 되어진다. 그러므로 머리를 숙이고 침묵을 지켜라. 리코브리시의 아그하가 스미르나에서 유소우화키를 만나도록 예정해 둔 것은 신이 아니었던가? 또한 누군가가 유소우화키를 죽이도록 기록해 둔 것은 신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살인자가 발견되도록 예정해 둔 것도 또한 신이 아닐까?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렷다... 그는 마놀리오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의 치보크를 그가 앉아있던 쿠션 위에 내려놓고는 팔짱을 꼈다.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잘 들어라. 마놀리오스." 하고 아그하는 조용히 말했다. 그는 경호원에게 얼굴을 돌렸다. "자넨 문 밖에 나가 있어." 그는 마놀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이봐, 난, 나의 유소우화키를 죽인 자가 자네가 아니라는 꿈을 꾸었네. 이단자야, 조용히 해, 내가 말할 테니까. 자네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자넨 미치지 않았으면 성자임에 틀림없어. 하지만 그것은 자네 문제야. 걱정 말라구. 자네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난 널 목 매달거란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어. 마놀리오스, 자네가 나의 유소우화키를 죽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마놀리오스는 아그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런 비통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더 이상 맹수가 풀려나온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고통이 한 맹수를 인간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자신을 되찾고는 머리를 들었다. "아그하여." 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그짓을 하도록 나를 사주한 것은 바로 악마요. 그것은 그렇게 하게끔 기록되어 있었소. 그를 죽인 것은 바로 납니다." 아그하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알라, 알라여!"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세상사는 하나의 꿈이어라..." 그는 눈을 치뜨면서 손뼉을 쳤다. 후세인이 들어왔다. "이 자를 끌고 가!" 그가 말했다. "해질 무렵에 버짐나무에 그를 매어달아라." 그러는 동안에 세 친구들, 그러니까 미켈리스와 코스탄디스 그리고 얀나코스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결백한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였다. "마놀리오스는 무고합니다. 결백하다구요! 그는 우리 마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얀나코스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거요?" 하고 한 늙은이가 말했다. "가서, 아그하에게 마놀리오스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하랴? 그러면 어떻게 되겠소? 아그하는 차례차례로 우리들을 교수형에 처해 온 마을을 쓸어 버릴 것이오.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무수한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할 수야 없지 않소? 수백 명보다는 다만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소? 게다가 그는 그것을 원하고 있소. 우리를 위해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시오. 후일에 우리가 그를 위해 성화상을 만들어 줄 테니까. 우리는 그를 위해 촛불을 켤 걸세. 지금은 그를 죽도록 내버려 두게." 대가족의 가장되는 사람은 미켈리스에게 화를 내면서 따졌다. "당신은 처자식이 없지 않는가? 젊은 족장이여, 그렇잖소?" "그렇소." "바로 그거요. 그러므로 당신은 할 말이 없소. 우리를 그냥 두시오." 어떤 늙은 여인은 그녀의 손자를 무릎에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는데 얀나코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왜 당신은 여기서 질질 울고 서 있나요? 얀나코스. 일천 명의 마놀리오스가 죽도록 놔 두구료. 내 손자가 살아 있도록 말이요." "그들은 맹수들이고 늑대들이며, 여우들이오." 하고 그는 눈물을 닦으며 신음했다. "그들은 맹수가 아니오, 얀나코스." 하고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사람들일 뿐이오. 우린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주님이 하실 일을 하시도록 내버려 둡시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구료." 얀나코스가 야속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방법이 그 노인장이 살아날 방법이겠지." 미켈리스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미켈리스." 하고 얀나코스가 소리쳤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소." 그들이 광장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 머리를 상쾌하게 감고 제일 아끼던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카테리나를 보았다. 제왕의 범선과도 같이 돛을 모두 펴고서 그녀는 그들을 향해 곧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소, 카테리나?"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겁장이 무리들아, 그대들은 마놀리오스를 죽게 내버려 둘 건가요?" 하고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서 과부는 소리쳤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난 지금 아그하를 만나러 갑니다." "슬픔이 당신마저 미치게 했군요. 카테리나." 하고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아그하는 노여움에 필시 당신을 죽일 것이오. 가엾은 여인이여, 그만 돌아가시오."하고 연민에 사로잡혀 미켈리스가 말했다. "이젠 내 생명을 가지고 무엇에 쓰겠어요?" 과부는 그녀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아그하의 정원으로 사라지면서 말했다. 숨 막힐 듯한 무더위와 장미 냄새와 썩어 가는 살 냄새... 아그하는 그 작은 쇠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필시 자신의 불행이 꿈에 불과하며, 잠에서 깨어나면 그는 다시금 전날과 같이 발코니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볼 것이라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유소우화키가 요전히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라키로 잔을 채워 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두 마리의 비둘기가 발코니에 내려앉아 서로서로 부리를 쪼면서 애무하고 있었다. 안마당에서는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개는 돌위에서 혀를 늘어뜨리고 헐떡거리고 있었다. 크고 살찐 검정 고양이는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고양이의 초록색 눈은 기분 나쁘고 유혹적인 모습으로 은근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테리나는, 혹시 경호원에게 들킬가봐 또는 개가 짖을까봐 염려하면서 안마당을 바쁘게 가로질렀다. 그러나 후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개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그녀를 알아보고는 기뻐하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그 집의 안팎을 훤히 알고 있었다. 마르다는 여러 번 아그하가 혼자 있는 밤에 그녀에게 문을 열어 주었었다. 그것은 그가 스미르나로 여행하기 전, 그러니까 아그하가 유소우화키를 발견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그의 경호원은 유소우화키를 볼 때면 과부 카테리나가 생각났던 것이다. 아그하는 큰소리로 웃었다. "보게나." 어느 날 아그하는 후세인에게 말했다. "예전에 주지사가 라키를 같이 마시려고 친구를 초대한 이야기가 있네. 그는 올리브 한 남비와 검은 캐비아 (풀이: 철갑상어의 알젖, 귀한 고급 요리)를 대접했었지. 그의 친구는 그 캐비아만을 손댔지. '올리브도 좀 들게나' 하고 주지사가 말했다네. '나는 캐비아만을 좋아하네.' 하고 친구가 대답했지. 자넨 이해하겠나, 후세인? 나의 유소우화키는 바로 캐비아란 말이야." 경호원은 입을 다물고 그날 이후로는 그에게 과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안마당을 지나서 카테리나는 집 안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그런 그녀는 깜짝 놀랐다. - 커다란 거울과 잠자는 침상, 그리고 의자들과 무거운 청동과 우피들이 아그하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산산조각이 나 쓰러져 있었다. 파나요타로스는 나에게 이와 똑같은 짓을 했었지. 과부는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그녀는 부서진 침상 뒤에 숨었다. 경호원이 문턱에 나타났다. 진짜 도깨비 같은 - 그의 볼은 깊게 주름잡혀 있었고 두 눈은 퀭한 동공으로 박혀 있었다. 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휙 둘러보고는 한숨 쉬면서 그리고 마당으로 견들거리며 나갔다. 그는 개 옆에 앉아서 혼자 울기 시작했다. 과부는 성호를 그었다. "구주 되신 예수여."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당신만이 여인을 이해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여인이 무엇을 행하든지간에. 저는 당신 앞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깨끗한 속옷과 제일 좋은 옷을 입었고 오렌지 꽃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향기롭게 단장하였다. "구주 예수님." 하고 그녀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전 준비가 되었습니다." "카테리나, 이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즉시 네 오두막으로 돌아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과부는 돌아서서, 한아름 꽃을 들고 윗층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던 마르다를 보았다. 그녀의 몰골은 창백하니 말이 아니었다. "마르다. 나는 아그하를 만나고 싶어요." 하고 과부가 말했다. "유소우화키의 몸이 아직 채 식지도 않았네. 그런데 당신은 얼굴을 내밀고 싶단 말이라니... 아마도 그는 절인 고기처럼 당신을 잘게 썰어 버릴걸. 불쌍한 것!" "마르다. 나는 아그하를 만나고 싶어요." 하고 그녀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할 큰 비밀이 있어요. 난 살인자를 알고 있어요!" 그 늙은 노예는 비웃음쳤다. "마놀리오스?" "아네요. 다른 사람이에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그 노예는 꽃다발을 층계에 내려놓고 과부에게 바짝 다가섰다. "누구지? 그게?" 하고 그녀는 속삭였다. 그녀의 두 눈은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너도 역시 그를 생각했어? 나도 그랬어, 나도야!" "누구를 말인가요?" 하면서 과부는 깜짝 놀랐다. 늙은 여인은 그녀를 주의깊게 바라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꽃다발을 집어들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네. 나는 가서 그 망할 놈 위에 이 꽃을 놓아야 해. 그는 썩기 시작했다네. 사탄에게나 잡혀 가렴!" 그녀는 메스꺼움을 느끼며 마룻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갑자기 그녀의 악담이 터져 나왔다. "너도 벌레들로 꽉 찼어, 너도 말이야. 이 얄미운 것아."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래. 나 역시 벌레로 가득 차 있어. 넌 얌전 빼면서 걷기 좋아하지만, 우린 모두 마찬가지야." 그때, 안으로부터 난폭하게 무엇을 쾅 하고 치는 소리와 함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밑에 누구야?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나? 늙은 곱추야! 입닥치지 못해?" 이 키 작은 늙은 여인은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과부는 용기있게 계단을 올라갔다. "저예요, 카테리나예요, 아그하님." "음탕한 암컷!" 하고 아그하는 소리를 질렀다. "꺼져 버려!" 과부는 그녀의 어깨를 으쓱하면서 계속 걸어 앞으로 나갔다. 갑자기, 아그하는 그 앞에 불쑥 나타난 그녀를 보았다. "아그하님, 절 용서하세요!" 하고 과부는 그의 발밑에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 아그하는 화가 치밀어 그녀를 발로 차고 쫓아내로고 애쓰면서 계단 아래로 던져 버리려고 덤볐다. 과부는 난간 기둥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땅에다가 얼굴을 대고 소리쳤다. "아그하님, 내 말 좀 들어요. 난 더 이상 비밀을 간직할 수 없어서 당신 발 앞에 엎드린 거예요. 아그하님, 그를 죽인 것은 바로 저예요!" "너, 매춘부, 네가?" 하고 아그하가 으르렁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눈은 긴 칼을 찾기 위해 벽을 샅샅이 쓸었다. "네, 그래요. 나예요, 아그하여. 나라구요. 내가 망할 년이에요. 그를 죽인 것은 나예요. 사랑 때문에... 아니 질투 때문에. 나는 질투를 느꼈어요. 그가 당신의 저택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당신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어요. 당신은 마르다를 통해 나를 부르러 보내는 일도 중단했다구요. 나는 울었습니다. 허구한 날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 수척해졌어요. 낮이나 밤이나 당신의 전갈을 기다리면서 앉아 있었어요. 그러나 끝내 아무 소식도...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유소우화키만을 끼고 나를 잊으셨지요. 나는 온갖 부적을 써주는 점장이들을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당신 문에 주문을 놓고 기다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유소우화키만을 가지고 계셨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잊혀졌구요. 나는 너무 질투를 느꼈던 거예요. 그것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저께 밤. 나는 칼을 들고..." 그녀는 아그하의 발에 달려 질질 끌렸다. "아그하님." 하고 그녀는 울부짖었다. "아그하님, 나를 죽여 주세여! 살아서 무얼 하겠어요? 날 죽여주세요!" 아그하는 아직 긴 칼을 찾아 벽을 뒤지고 있었다. 집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두 눈은 희미해져 갔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과부는 그녀의 조끼에서 칼을 끄집어냈다. "여기 있어요. 이것이 그를 죽인 칼이에요."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 아그하에게 칼을 내밀었다. "여기, 이것이 그 칼예요..." 그녀는 자기의 목을 내어밀면서 거듭 절규했다. 아그하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는 몸을 돌려 유소우화키가 거기에 검푸르게 뻗어 있는 것을 미친 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커다랗고 검푸른 쉬파리들이 그의 입술과 콧구멍을 드나들며 그의 죽음을 야유하고 있었다. 그는 재차 그의 앞을 바라보았다. 과부가 서 있는 것이 커다랗게 보였다. 순간, 그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가 내밀고 있는 칼을 낚아채어 가지고 그것을 공중에 휘둘렀다. 일격에 그는 그것으로 그녀의 가슴 한복판에다가 자루 밑까지 깊숙이 꽂아 버렸다. 그리고는 쓰러진 그녀를 발로 차서 그녀를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려 버렸다. 10. 떠오르는 길 과부의 피는 아그하로 하여금 다시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피를 보았을 뿐 만 아니라 여전히 칼을 쥐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팔꿈치까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후세인을 불렀다. "지하실에서 마놀리오스를 끌어내어 버짐나무 아래로 데려가라. 트럼ㅍ을 불어서 이단자들이 모여들게 하라. 구경꾼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유소우화키를 버짐나무 아래 옮겨 그도 역시 구경할 수 있도록 하라. 살인자든 아니든 그 비열한 놈을 목 매달아라. 채찍을 가져와라. 직접 지하실로 내려가겠다. 그놈들의 뼈다귀를 부숴 놓겠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겠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들 다섯 명을 모두 오늘 아침에 차례로 해치워 버리겠어. 죄가 있든 없든! 그들을 전부 목 매달아 버리겠단 말이야. 모두들 말이다! 나의 유소우화키가 거기 뻣뻣하게 굳어 누워 있는데 그것들은 살아 있다니 말이 되냐? 어서 서둘러!" 그의 두 눈은 다시금 눈물로 가득 찼다. 피 묻은 칼을 유소우화키의 몸을 장식한 장미들 사이에 올려놓았다. "칼을 가져라. 나의 유소우화키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 작은 쇠침대에 기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은 들과 산과 마을들을 지나갔다. 그의 추억은 어느덧 리코브리시에서 스미르나로 여행하는 노정에 있었다. 어느 때는 마차를 타고, 어느 때는 노새의 등을 타고, 또 어느 때는 서쪽 사람들이 가지고 온 그 악마의 기계를 타고 - 그것들에게 저주가 있기를! - 여행했었지. 어느날 아침, 그것은 일종의 기적이었다고나 할까? 궁전들과 회교사원들, 그리고 삽화상들, 많은 사람들과 음악과 정원, 그리고 바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다만 물가의 카페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문이 열렸다. 날씨는 더웠다. 해가 막 질 참이었다.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들과 수연관, 검게 염색한 콧수염들, 깔끔하게 세수를 한 아그하들이 방석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다. 한가운데, 높은 걸상이 오두마니 올라앉아 있는 무엇을 리코브리시의 아그하가 발견했던 것인가? 그 때, 유소우화키는 노래하고 있었다. "도우니아 타비르, 로우야 타비르, 이만, 이만!" 그 카페 또한 아그하들과 방석들과 수연관과 함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스미르나의 모든 추억들 중에서 오직 그와 그의 유소우화키만이 남았다. 한쪽에서는 무릎을 꿇고 간청하고 다른 한쪽은 그동안 매스틱을 씹으면서 당혹감에 열적은 웃음을 지었었다. 후세인이 채찍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주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그하는 머리를 숙여 무표정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깔고 그것을 응시하였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찌하여 유소우화키와 같이 그 추억의 바닷가에서, 그가 있는 곳을 떠나야만 하는가? 그는 그런 상념에 사로잡혀 눈을 지그시 감고 스미르나로 다시금 날아갔다. 바깥에서는 경호원의 트럼펫이 전쟁 때처럼 울려 퍼졌다. 해는 이미 기울어 있었으나 열기는 여전했다. 하나의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은 그런 정경이었다. 작열하던 태양의 열기 아래서 납덩이처럼 마을은 시들어 죽어 가고 있었다. 집집마다의 문들이 하나둘 열렸다. 트럼펫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버짐나무 주위로 모여들었다. 침울한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어떤 이들은 너무 흥분해서 뭐라고 지껄여 대며 서성거렸다. 마놀리오스가 과연 그를 죽였느냐, 아니냐? 그는 죄인이냐, 아니냐? "잔잔한 물을 절대 믿지 말랬잖아!" 하고 그들 중 한 명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난 항상 마놀리오스를 의심했다구, 첫째는 그 과부와의 관계에서이고, 그리고 지금은 유소우화키와... 우후! 더러운 것! 악마에게나 잡혀가렴!" 늙은 교구관리가 혀를 늘어뜨리고 도착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그는 내심 그것을 전하는 것이 하나의 재미인 듯이 보였다. "이제 막 아그하의 집을 지나쳐 왔는데, 아주 가까이 말이오. 헌데, 마당에서 무엇을 봤는지 아시오? 그 늙은 곱추, 마르다 말이오. 그녀가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고 있었다오. '웬 일이오, 할멈?' 하고 물었었지. 그랬더니 그녀의 말이 '그들이 과부를 죽였어요' 하더군. '아니 그들이 누구요?' 했더니 왈, '아그하지, 누구긴! 그가 양의 목을 자르듯이 그녀의 목을 잘랐어요. 그리고는 그녀를 층계 아래로 던져 버렸어.' 하더란 말씀이야. 그러니, 그 불쌍한 것을 묻어 줍시다. 그녀 역시 기독교인이었소. 그녀도 역시 영혼을 가졌다니까요." "그 여자를 묻자구요? 그 다음엔 무엇이지, 교구관리?" 하고 노란 피부의 노인이 조소를 던졌다. "그 여자 같은 것은 지옥에나 가서 더 죽게 하게!" 해가 막 지려 하고 있었다. 새들이 버짐나무 주위에서 밤 동안 쉴 곳을 찾기 위해 재잘되고 있었다. 그러나 새들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고, 그것에서 느낀 일말의 불안이 가슴을 일그러뜨려 놓았던지 소스라쳐 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여기저기로 흩어져 날아갔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서 사라지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그하의 저택,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을 돌아보았다. 마놀리오스는 두 손을 등뒤로 묶인 채 고요하게 미소지으면서 문에 나타났다. 피가 그의 얼굴과 두 팔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잠시 문턱에 서서 멈추어 졌다. 경호원이 화가 나서 그를 난폭하게 채찍으로 후려쳤다. 마놀리오스는 태연하게 문턱을 넘어섰다. 그 뒤에는 유소우화키가 한아름의 꽃에 덮여 자그마한 쇠침대에 누워 상여꾼들에 의해 따라오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 작별을 위하여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주위의 얼굴들 위와 마을의 집들 위에, 그리고 나무들과 멀리 고래를 숙여 절하면서 석양의 마지막 화염 속에서 황금같이 타오르고 있는 옥수수밭 위에 마지막 시선을 주고 있었다. 주님, 찬송을 받으소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는 올해 풍작을 하게 되겠지. 가난한 이들도 먹을 것을 충분히 얻게 되겠지. 순간 그는 버짐나무 아래에서 그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세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마놀리오스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가볍게 목례를 보냈다. 그는 잠깐 멈춰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들이여, 나는 작별을 고합니다." 그는 다시금 세 친구를 바라보았다. "형제들이여." 그는 말했다. "미켈리스, 코스탄디스, 그리고 얀나코스, 나는 작별을 고합니다. 잘 있으시오!" "무죄요! 무죄! 무죄요!" 비록 그들의 목소리는 군중들의 위력에 눌려 있었지만 분명하게 절규하고 있었다. "당신네들은 이젠 자존심도 없어져 버렸소?" 얀나코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대어들며 난폭하게 말했으나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신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겠소? 돼지 같으니.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려 하는 것이오.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오. 이해 못 하겠소? 그는 우리 모두의 죄를 자신이 스스로 지고 있소. 그리스도처럼 말이오. 나의 형제들이여..."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의 채찍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두어 바퀴 휘어감았다. 아그하가 나타났다. 일시에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군중들은 그가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무겁고도 침울하게 두 눈을 땅에다 고정시키고 아그하는 걸어서 들어왔다. 그는 버짐나무 아래에 멈추어 섰다. 그는 마놀리오스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경호원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을 매어달아라!" 하고 아그하가 명령했다. 거인 후세인은 즉각 마놀리오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낚아채었다. 바로 그 순간, 어떤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그하님! 아그하님!" 마르다 할멈이 두 팔에 무슨 옷뭉치 같은 것을 껴안고 헐떡거리며 뛰어나왔다. 그러자 후세인이 창백한 얼굴이 되어 매듭을 만들고 있던 밧줄을 떨어뜨리고 후들후들 떨면서 버짐나무에 기댔다. 그 늙은 곱추 여인은 아그하의 발 밑에 쓰러졌다. "아그하님." 하고 그녀는 소리쳐 말했다.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제발!" 그녀는 아그하의 발 밑에 보따리를 펼치고 피가 튄 저고리와 바지와 각반들 그리고 한 켤레의 터어키식 슬리퍼를 땅 위에 한 줄로 늘어놓았다. 아그하는 몸을 굽혔다. "이게 전부 누구의 것이지?" 하고 아그하가 소리쳤다. "후, 후세인의 것이에요!" 하고 늙은 마르다가 대답했다. "당신의 경호원의 것이랍니다." 아그하가 무섭게 몸을 돌리며 후세인을 노려보았다. 후세인은 버짐나무 아래에 맥없이 쓰러졌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듯이 숨을 죽였다. 번개처럼 아그하가 그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소리치며 그를 뒤흔들었다. "후세인 모우크타! 이놈!" 경호원은 따바닥에 흡사 공같이 몸을 구부리고는 털북숭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비를..." 하고 그는 송아지같이 조아렸다. 세 친구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군중들은 밀물처럼 아그하와 경호원과 마르다 할멈 주위로 밀려들었다. 얀나코스는 몰래 마놀리오스에게 다가가서 그를 풀어 주고는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아그하는, 기쁨과 안도를 머금은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채찍을 거칠게 휘둘렀다. "야, 이 이단자들아! 꺼져라, 꺼져! 내 눈에서 사라져. 그렇잖음 너희 자신의 꼴이나 돌아보아!" 그는 군중들에게 달려들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광장은 텅 비었다. 모두들 앞을 다투어 집으로 도망쳐 버렸다. 대담한 자들은 구석진 곳에 숨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엿보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멀리 이끌려 갔다. 그들은 맞은편 벽에 가서 기댔다. "바로 네놈이었냐, 그놈이? 바로 네놈이었냔 말이다! 엉?" 그 경호원의 배 위에 올라타 춤을 추고 그에게 침을 뱉으면서 아그하가 소리쳤다. 긴 칼을 빼내어 들었다가는 다시 칼집에 꽂았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 자갈돌을 들어 후세인의 두개골을 향해 내리쳤다. 그는 완전히 눈이 뒤집혀 이녀석을 어떻게 요리해서 죽일까 하는 생각에 몰두했다. 마르다 할멈은 간여린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황망하게 뛰어다녔다. 그녀는 증거의 옷뭉치를 공중에 높이 들고 흔들다가 땅 위에 펼쳐 커다란 핏자국을 가리키기도 하고 다시 흔들다가 또다시 펄쳐 보이곤 하였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그녀는 마치 후렴처럼 같은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나는 그가 한밤중에 윗층으로 올라가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그하님. 새가 죽는 것 같은 갸냘픈 비명을 들었지요, 아그하님.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 입을 열 수가 있었겠어요. 저같이 미천한 여인이? 이것 보세요. 전 이것들과 핏자국을 발견했읍죠." 그녀는 또다시 그것을 끌러 핏자국을 보이면서 따 위에 펼쳐 놓았다. 아그하는 그녀의 반복하는 소리에 울화가 치밀어 그녀를 성질나는대로 힘껏 걷어차 버렸다. 그 작달막한 늙은 여인은 멱이 잡힌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주인집 문께로 잘룩거리면서 달려갔다. 그녀는 아그하와 경호원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고정시키고는 박쥐처럼 문간 층계에 구부리고 엉기주춤 서 있었다. "이젠 서로의 눈깔들을 빼내라지, 더러운 터어키놈들!"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난 내가 찾던 것을 발견해 냈단 말이야. 그것으로 범인을 잡아 목 매달기에 족하겠지!" 아그하는 땅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후세인에게 일격을 가해 그와 마주 보게끔 꿇어 앉도록 했다. 그들은 서로 코가 마주 닿을 정도로 얼굴을 맞대었다. 한참 동안 그들은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있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흩어졌던 새들도 군중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대담하게도 늙은 버짐나무의 둥지로 돌아왔다. 네 명의 친구들은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들은 무언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가엾고 불쌍한 후세인."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조용히 하시오. 주님은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오." 하고 얀나코스가 대꾸했다. 아그하는 벌떡 일어나더니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일어나! 개새끼야!" 경호원이 벌떡 일어났다. 아그하는 그의 긴 칼을 뽑아 그것을 한 번, 두 번, 세 번 내리쳤다. 두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갔다. 그는 그것들을 멀리 날려 보냈다. 그 기인은 움직이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잘려지고 있는 나무처럼 그의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진흙물 고인 연못처럼 거품을 내면서 피가 쏟아졌다. 아그하는 채찍을 찰싹거렸다. "나무 주위를 뛰어!" 그는 으르렁거렸다. 후세인은 비틀거리면서 버짐나무 주위를 뛰기 시작했다. "멈춰!" 하고 아그하가 다시 고함을 쳤다. 경호원은 우뚝 멈춰 섰다. 아그하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바지를 찢어내리고는 그의 국부를 움켜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단칼에 잘라 유소우화키의 시체 위 자스민 꽃 가운데 던졌다. 그러자, 그 야수는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아그하는 그의 등가죽을 잡아채어 의자 위에 세워 놓고는 고리밧줄로 그를 목 매달고 받쳐 두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그 경호원은 피투성이로 무시무시하게 절단된 채 공중에 매달렸다. 아그하는 그의 붉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 전체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썩은 나무 토막처럼 풀썩 쓰러져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입을 헤벌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후세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그의 영혼이 바야흐로 포식한 듯이 일어나서는 목을 맨 사람이나 유소우화키를 쳐다보지도 않고 경련을 일으키는 걸음으로 그의 집을 향해 흐느적거리면서 발을 옮겼다. 그는 발작적으로 문을 걷어찼으나 미끄러져 돌 위에 쭉 뻗어 버렸다.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하고 족장 파트리아케스가 그 순간, 동료들에게 물었다. 땅바닥으로부터 길게 벽을 의지하여 등을 기댄 채 그들은 머리를 문 쪽으로 향하고 앉아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말해 주겠소, 족장님." 하고 라다스 영감이 추파를 던졌다. 그는 재빨리 권세있는 이들과 다시금 화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말이오, 오, 주님이 그의 영혼을 지키시기를! 지금쯤 공중에 매달려 있을 것이오. 옳든 그르든 그것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 아니오. 곧 경호원이 나타나 알려 주겠지. '이단자들아, 나와서 집으로 썩 꺼져!' 하고 말이오. 그는 우리를 발로 걷어찰 것이고 우린 빛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러면 예전같이 우리의 일로 돌아가겠지요. 우리가 서로 살인한 것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족장님, 그리고 그리고리스 사제님, 과거는 묻지 맙시다." 너의 두 눈을 뽑아 버릴 테다, 더러운 돼지야! 하고 그리고리스 사제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사제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얼굴과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말했다. "라다스 영감,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소. 그러므로 그 외에는 우리 잊어버리겠소. 우린 남자요. 우리들의 어려운 순간은 지나갔소. 다만 약간의 언쟁을 했을 뿐이오. 자, 난 이미 잊어버렸소." "나는 당신이 나를 '고귀한 돼지' 라고 불렀던 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오." 하고 파트리아케스가 말했다. 이 불명예스러운 별명은 그에게 마치 장갑처럼 꼭 들어맞는 것이어서 그의 폐부를 찔렀던 것이다. "내가 그런 단어를 썼던가요, 족장님?" 하면서 라다스 영감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취소하겠소. 난 공포 때문에 머리가 잠깐 어떻게 되었던 모양이오. 날 가엾게 보아 주구료. 말이 뒤죽박죽이었지. 내가 뭐라고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난 애당초 '고귀한 족장' 이라고 표현하기를 의도했었는데 어쩌다 '고귀한 돼지' 라고 말해 버렸는지 모르겠소." 파나요타로스는 그의 상처난 머리를 들었다. "악마에게나 가라지, 이 겁쟁이들아!" 하고 소리쳤다. "당신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소. 그리고 서로를 혐오하고 있지만 그것을 애써 묵살하려 하시지. 당신네들 하릴없이 인생을 빈둥대는 족속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서만 서로 공존할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나, 나 같은 죄인을 당신들은 결코 놀라게 할 수는 없소. 사제, 족장과 원로님들, 그리고 훈장 나리들, 난 그대들에게 침을 뱉는 바이오, 퉤퉤!" 교장 선생이 험구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할 때, 문이 열리면서 마르다가 들어왔다. 그들은 어슴푸레한 속에서 그녀의 두 누이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르다, 바깥으로부터 우리를 위해 무슨 전갈을 가져왔는가?" 족장이 일어서면서 외쳤다. 늙은 노예는 히죽거리며 웃더니 손을 쭉 내밀었다. "만약 당신들이 제 손바닥에 금붙이를 채워 준다면,"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난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더러운 왈패." 라다스 영감이 우는 소리로 불평을 했다. "우리에게 동정심도 없나? 우린 가난해. 당신은 우리의 피를 빨려는가?" "아니, 좋건 나쁘건 우리에게 무슨 소식이나 있는 거요?" 하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물었다. "우리는 그것을 먼저 알아야겠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등을 돌리지 않겠다구요, 사제님. 이것이 당신의 성스러움이 성사를 집전하면서 손을 내미는 것과 같은 방법 아니던가요? 왜? 내가 당신보다 거룩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요, 당신도 그짓을 하는데? 자, 지갑을 여세요, 나리님들. 선행의 이름아래 난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드립니다!" 족장 파트리아케스는 그들 중 제일 먼저 지갑을 열었다. 그는 금조각 한 닢을 꺼냈다. 그리고는 사제를 향해 "사제님." 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당신을 '고상한 교황님' 이라고 부르지요. 값을 가지고 승강이를 하지 마시오. 당신도 어서 지갑을 열라구, 라다스 영감. 당신은 나를 '고귀한 돼지' 라고 불렀지. 좀 출혈을 하는 것이 자네를 위해 좋을 걸세. 당신은 공격을 해도 좋으니까 말이오. 이 불쌍한 사람아, 훈장. 자네도 지갑을 가지고 이리 오게. 자네는 부자가 아니지. 그저 낼 수 있는 만큼 내게나. 어서 결말을 짓자구요. 아무래도 이 늙은 여인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 모양인데. 그녀의 눈빛에 쓰여 있질 않소?" 사제와 교장선생은 주머니 속을 뒤적거렸다. 라다스 영감은 한숨지었다. "내가 그것을 당신에게 빚으로 일시 주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마음 착한 마르다 할멈?" 하면서 라다스는 간청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쪽지를 써 주면 어떨지?" "아니, 당신의 목숨이 보잘것없는 금붙이만도 못 한가요? 구두쇠 양반? 큰마음 먹으시라구요. 어서 돈주머니를 끌러요." 그녀는 파나요타로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불쌍한 석고먹성이." 하면서 그녀는 빈정거렸다. "난 자네 같은 위인에게는 엽전 한 푼도 원칠 않아. 과부가 자넬 빈털터리로 만들었음이 틀림없을 테니까." "입 닥쳐, 이 늙은 암당나귀야!"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고함을 질렀다. "내가 당신 등에 붙은 혹을 재서 다치지 않게 할 안장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 더러운 마귀 할멈!" "흥분하지 말래두, 가엾은 석고먹성이야. 난 너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왔단 말이야. 넌 살았어! 넌 살았다니까. 넌 운이 좋은 애인이라구! 그 과부 카테리나는 지하에 내려갔단다!" 파타요타로스의 눈이 휘둥그래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그하가 그녀를 죽였단다. 그는 그녀의 심장에 칼을 꽂았어. 그리고는 악마에게 보내는 선물처럼 그녀를 던져 버렸지!" 파나요타로스는 바닥 위를 구르면서 벽에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는 과부의 이름을 부르면서 야수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문간 층계 위에 몸을 굽히며 그 늙은 곱추 할멈은 그를 몰아붙였다. "누가 그녀를 예쁘다고 했지? 주가 그녀에게 창녀라고 했지? 도대체 누가 아그하에게 가라고 했었나? 꼴 좋다. 그는 그녀의 심장에 칼을 꽂고 층계 밑창으로 굴려 떨어뜨렸어." 하지만 파나요타로스는 그녀의 말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는 땅바닥을 치고 과부를 부르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파트리아케스 영감이 돈을 갹출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곱추의 손바닥에 채워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혀가 느슨해져서 전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야기하고 웃고 춤추면서 아그하 흉내를 내기도 하다가 경호원에 대해 울부짖고 비웃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성호를 그었다. "이리 오시오들." 하고 그는 말했다.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소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로 여기 들어왔다가 그리스도를 위한 영웅과 순교자들로서 나가는 것이오!" "내 말은," 하고 늙은 족장이 대꾸했다. "우리는 무사히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이지." "이 거래가 나에게 금덩어리를 치르도록 했군." 라다스 영감이 괴로워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갈 때는 내 본연의 일로 되돌아가는 거라구. 그리고 그놈의 망할 얀나코스부터 시작해야겠어. 난 그의 당나귀를 팔아 버리고 말겠어!" 그리고리스 사제는 문지방에서 성호를 그었다. "내일, 형제들이여."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은밀하게 테.데움 (풀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바치는 노래, 찬송가'을 부르며 경축해야 하오. 우리는 영웅과 순교자들처럼 의연하게 행동하였다오. 우리는 무시무시한 시험으로부터 당당하게 자신들을 지켰답니다.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나는," 하고 교장 선생이 말했다. "그리스 민족의 고난과 영웅주의에 대한 수필을 어린이들에게 쓰라고 할 거요." 그리고리스 사제는 머리를 높이 쳐들고 앞장서서 양떼 앞을 인도하는 수염소같이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나갔다. 그 뒤에는 늙은 파트리아케스가 더러움과 굶주림을 느끼며 따라갔다. 그 다음에는 교장 선생이 용감하게 선조들의 긍지와 이름을 어렵히지 않을 양 자부심있게 나갔다. 맨 마지막엔 행렬의 꽁무니에 바싹 붙어서 혁대 풀린 바지를 다시 한번 추스리면서 라다스 영감이 뒤를 따랐다. "어이, 석고먹성이." 하고 늙은 곱추 할멈이 소리쳤다. 그녀는 문 가까이에 열쇠를 거머쥐고 서 있었다. "나와서 자네도 가라구. 어서 무리들을 뒤따르란 말이야." "큰 당나귀들이 먼저 떠나도록 두라지." 하고 마구상이 소리쳤다. "난 혼자 갈 거니까."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사제들 나부랑이나 주교들, 족장 같은 위인과 명사들, 훈장 따위, 난 그대들에게 침을 뱉는단 말이다!" "유다 같은 친구!" 사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재빨르게 달아나 버렸다. 파나요타로스는 그의 턱수염을 낚아채려고 뛰어갔으나 사제는 이미 도망쳐 버렸다. 그는 벌써 밖으로 나가서 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의 세 동료들이 급하게 그를 좇았다. 저녁이 되었다. 거리는 한적했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닫고 모두들 집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념할 만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둥글게 모여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귀한 술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놀리오스와 후세인, 과부, 아그하와 유소우화키와 마르다 할멈에 대해 얘기하면서 떠들썩했다. 늙은 파트리아케스는 그의 잘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어서 말쑥해졌다. 건강미 흐르는 레니오는 닭을 졸이고 있었다. 그의 주인나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달걀과 레몬을 넣어 만든 수프를 준비했다. 미켈리스는 그의 아버지 맞은편에 앉아 그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심하게 충격을 받아 쇠진해진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땀을 흘리며 조급하게 굴고 있는 꼴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씹어 삼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기쁨을 느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내 아버지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저분이 나의 아버지야. "우린 모두 무사히 그곳을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입에 먹을 것을 잔뜩 처넣고는 말했다. "그땐 카론 (풀이: 지옥을 지키는 개)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단다. 미켈리스야, 난 이제서야 인생이 무엇인지 알았단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아들아. 그리고 인생이 시들기 전에 먹고 마시고 흥청거려라. 그리구 내가 나오지 못했다면 이 병아리 요리도 쓸데없는 것일 거라는 걸 생각해 봤냐?" 미켈리스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나의 아버지다. 저 사람이 나의 아버지야. 그는 오싹해짐을 느끼면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그리고리스 사제는 과일송이로 무거운 격자 울타리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는 식사를 끝내고도 색욕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부드러운 여름날의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달콤한 풀과 자스민 향기가 상쾌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다리 사이를 비벼 대면서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마리오리는 술주전자를 들고 서서 기쁨의 눈물을 창백한 두 뺨 위로 흘리면서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잔뜩 배를 채운 사제는 먹고 또 마시면서 마구 처넣고 있었다. "한순간도 내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단다. 나는 지도자와도 같이, 리코브리시의 하나님의 훌륭한 대변자같이 행동했단다. 나는 아그하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었지. 난 기독교를 수호했단다. 감옥에서 나는 죽음에 직면해서는 나 자신을 의연하게 했었지. 마리오리, 넌 네 아비를 자랑할 수 있단다." 또한 라다스 영감은 맨발인 채, 혁대도 없이 그의 마당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보리빵을 우물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올리브 열매를 씹어먹은 후 인심좋게 아내 페넬로페에게 말했다. - 그는 이것을 했고 그들은 그에게 저것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고 그들은 그에게 저렇게 말했다, 등등. 그리고는 그 할망구와의 거래가 자신에게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도록 했다는 따위를 씨부려 댔다. 그는 홧김에 한숨을 쉬면서 그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돈궤를 열고 원부를 꺼내더니 토막난 촛불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누가 그에게 빚을 졌는지, 얼마나 받을 것이 있는지, 차용마감 기일은 언젠지 또 얼마만한 이익이 들어오게 될지를 확인하기 위해 치부책의 페이지를 휙휙 넘기기 시작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아침에는, 사랑하는 페넬로페, 난 나의 것들을 다시 찾을 거야. 나는 죽음의 손아귀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쳤지. 이제 나는 살았으므로 그 이상 은혜가 없지. 난 그대에게 의무가 있고 그댄 나를 먹여야 하고. 또한 당신은 내게 의무가 있고 난 그대를 먹이게 될 거라구. 그래서 서둘러야지.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 말이오. 당신 어떻게 생각하오, 내 사랑?" 페넬로페는 그녀의 공허한 눈을 차분하게 뜨개 바늘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녀 앞에서 카론을 본 듯이 서둘러 제시간에 끝마치려 했다. 그는 다시금 바지를 움켜잡고 긁적거리면서 쉴새없이 이야기하면서 마당을 걸어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기쁜 마음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처럼 그녀의 남편이 붙잡혀 갔을 때도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었다. 그날 밤의 대화는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집집마다의 램프들이 한밤중까지 타올랐다. 그리고는 하나둘씩 불을 끄고 마을 사람들은 코를 골면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미켈리스는 서둘러 그의 아버지를 만나 보려고 일찍 동료들과 헤어졌었다.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식사하세." 하고 코스탄디스가 그의 두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우리는 자네의 부활을 기념할 수 있을 걸세, 마놀리오스!" 그날 저녁 코스탄디스 부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그들을 보았을 때, 그녀는 여느 때처럼 못마땅해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불을 켜고 저녁식사 준비에 바빴다. 그리고는 식탁을 보살피랴, 포도주를 가져오랴, 물주전자를 시원하게 하려 우물에 집어넣으랴 부산스러웠다. "당신 누이 같은 여자는 없다오." 하고 코스탄디스가 얀나코스에게 속삭였다. "그녀가 기분이 좋을 땐, 주부로서 저만한 여자가 다시는 없다니까. 그녀가 기분이 나쁠 때도 그녀 같은 사람은 없지. 주님, 찬양을 받으소서. 우리는 오늘 저녁 행운이라구. 축하합시다, 형제들이여." 하고 그는 큰소리로 덧붙여 지껄였다. "그대의 집과 아내와 자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코스탄디스!" 하고 손님들은 답례했다.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은 모두들 허기가 져 있어서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 뒤에 서서 여주인은 시중을 들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는 마놀리오스와 잔을 부딪으며 건배를 했다. "주님이 부활하셨네!" 하고 그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놀리오스는 아무 말도 없이, 미소도 짓지 않았다. 그렇다, 틀림없이 그는 살아 있어서 친구들과 목고 마시면서 초저녁 산들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 주는 것이 기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날 저녁 다른 곳에 가 있기를 기대했었다. 그래서 지상의 일을 초월한 슬픔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슬퍼하지 말게, 마놀리오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천국은 좋지만 세상도 또한 그 속에 좋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네. 천국에서는 코스탄디스와 얀나코스 같은 친구들을 발견하지 못할 걸세." 하고 그는 웃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코스탄디스 여보게, 우린 지금 세상의 길, 이를테면 지옥으로 가는 길을 가깝게 가고 있기 때문일세. 하지만 아직 그 바닥에 이른 것은 아니지. 다만 그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라네!" 그들 셋은 모두 큰소리로 웃고 잔을 다시 채웠다. "내 마음이 아픈 것은 그 과부야. 참 안됐어." 하고 코스탄디스가 부인이 듣지 못할 정도로 소리를 죽여 말했다. "안됐다구. 그 먹음직스럽고 훌륭한 것이!" "누가 알아?" 얀나코스가 말했다. "혹시 지금쯤, 우리가 얘가하고 있는 이 시간에 그 과부 카테리나는 천국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있을지. 그 두 사람은 영생의 잔을 들고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면서 바로 아래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겠지." "그들 둘 다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했었으니까 아마도 한숨짓고 있을 거요, 얀나코스 형님." 하며 콘스탄디스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마놀리오스?" "나는 과부가 부럽다오." 하고 마놀리오스는 대답했다. "난 그녀가 부러워요. 그녀가 조금도 불쌍하지 않소. 왜 내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야 하겠소? 그녀는 이 순간에 천사들과 함께 천국을 거닐고 있을 것이고 세상을 생각하면서 한숨도 미소도 짓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오. 그녀는 세상 일 같은 것은 완전히 잊고 있을 거요. 이 세상은 그녀에게서 망각되었소 -. 그렇소, 문둥병이 내 얼굴에서 사라져 버렸듯이 말이오." 코스탄디스의 부인은 이 마지막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으로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문둥병이 엄습하여 흉하게 되었다고 들었던 그의 얼굴이 이제는 말끔하게 빛나고 깨끗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냐고 막 물어 보려 하였지만, 그날따라 그녀는 기분이 흡족했고 남자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애써 참견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만 하는 데 만족했다. 과부 얘기가 그들의 화제거리가 되었을 때는 부드럽게 트집을 잡을 준비를 했지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불쌍한 후세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마놀리오스?" 하고 코스탄디스가 물었다. "그는 사악한 개였지. 하지만 항상..." "만약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그리고 잘못을 뉘우쳤다면,"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누가 알겠소, 코스탄디스? 주님은 그분의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고 그에게 '네가 많이 사랑했으므로 너는 사함을 받았노라' 하고 말씀하셨을지..."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하고 얀나코스가 큰소리로 말했다. "만약 당신 말대로 하자면 결국에는 죄인이건 도둑이건 살인자건...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거요." "천국은 죄인들을 위하여 있소." 하고 마놀리오스는 중얼거렸다. "그럼, 후세인의 건강을 위해 건배!"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그는 술기운에 거나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 홀아비 아그하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 역시 많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억울하게 죽은 유소우화키를 위해서 건배합시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나. 안됐잖소? 그는 단지 매스틱을 씹고 아마네스를 노래했을 뿐이지. 그가 무슨 다른 일을 했던가요?" "설사 그가 다른 무엇을 했다 하더라도," 하고 얀나코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을 텐데!" 그녀는 열린 창문을 통해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체했다. 얀나코스는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 라다스 영감이나 그리고리스 사제의 건강을 위해 마시자고 청하지만을 마오!" 하고 코스탄디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만은 못 하겠소!" "자네의 술이 아주 맛있군, 코스탄디스." 하고 얀나코스는 소리쳤다. 그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마시고 싶네." 그는 잔을 재차 채웠다. "라다스 영감의 건강을 위해서. 악마에게 붙잡혀 가라지!" 하고는 그는 쭉 들이켰다. "축하해야 할 또 다른 어떤 죄인이 있나?" 포도주는 넉넉했고 마음은 풍요로움이 흘러 넘쳤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전세계가 그 안에 들어간다. 그것이 그분이 천국의 문을 여는 방법이다. 그래서 모든 죄인들이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는 가만히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팔을 부둥켜안고 떠들며 웃고 하였다. "그리고 파나요타로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린 유다를 잊고 있었군. 그의 건강을 위해서, 페이터 야곱!" "그의 건강을 위해서, 사도 베드로!" 하고 코스탄디스가 대답했다. 그들은 잔을 비웠다. 코스탄디스 부인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들이 그녀가 제공한 포도주를 다 비워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너무 많이 마시고 있어요, 코스탄디스." 하고 그녀는 다부지게 말했다. 코스탄디스는 움칠하였다. "알았다구." 하고 그는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마나님. 좀 정신을 가다듬게 물 한 주전자 가져와요." 여인은 우물로 갔다. 그러자 코스탄디스는 입숙에 손가락을 갖다대면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조심들 하시오. 이 눈치없는 양반들." 하고 그는 숨을 죽여 말했다. "주의하지 않으면 그녀는 화낸다구." "우린 그만 가겠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린 가겠어. 자네가 곤란해져서는 안 되지." "아니오. 아니, 풋내기들. 조용하기만 하면 돼요. 자, 이젠 그녀의 건강을 위해서도 건배하시지. 아마 그녀는 한결 마음을 누그러뜨릴걸. 당신들은 여자의 심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코스탄디스 부인이 물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잔을 집어 거칠게 헹구고는 찬물을 따르었다. 남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그녀에게 건배했다. "그대의 건강을 위해서, 귀여운 누이여."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대가 오늘 저녁 우리의 목을 시원하게 축여 준 것처럼 자비로운 주님께서 그대의 영혼을 시원하게 해주시기를. 그대보다 더 좋은 누이도, 더 훌륭한 주부도 없군. 코스탄디스는 어디에 가나 널 칭찬한다네!"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마나님!" 하고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나 혼자 천국에 가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지옥에 가는 편이 낫다고 난 믿고 있소!"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윙크를 보냈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부인!"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용납해 주셔야 합니다. 오늘은 굉장한 날이오. 우리 마을이 구원을 받았다오. 주님께서 우리가 당신께 끼친 폐를 언젠가는 보상해 주시기를 바라오." 그들은 물을 마시자 다시금 생기가 나는 것을 느꼈다. 열기가 좀 가라앉았다. 코스탄디스는 그의 담배 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친구들에게 건네 주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돌의자에 가서 앉았다. 여인은 불평을 하면서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들판으로부터 익어가는 곡식 냄새가 풍겨 왔다. 마당 한가운데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밤의 기운이 무화과들을 향긋하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코스탄디스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나야, 코스탄디스, 미켈리스요. 문을 여시오." 코스탄디스는 뜻밖의 기쁨에 놀라며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미켈리스 특유의 모습이 나타났다. "난 따분한 영감 곁을 빠져 나왔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진탕 먹고 마셨소. 그래서 그는 식곤증에 졸고 있지. 난 지겨워서 나와 버렸지." 그는 간이의자에 자리를 잡아 그들 곁에 조용히 앉았다. 그는 그들의 주위에 떠도는 부드러운 침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같이 침묵을 지켰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머리를 벽에 기댔다. 그리고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은 별이 무수한 하늘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마놀리오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이 제안을 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결정하십니다." 하고 말했다. "하나님은 오늘 밤, 내가 죽어서 당신들 곁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소. 형제들이여, 누가 알겠소? 주님은 확실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오. 그러므로, 우리의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지 않은 만큼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게속 열심히 일해야 하지요. 바로 오늘 밤, 형제들이여, 나는 결심했소."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머리 위의 은하수를 향해 다시금 눈을 들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는 술이 깨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로 올라갔던 술기운이 이제는 그들의 몸으로 확산되어 가면서 멋진 생각들처럼 그들을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미켈리스는 마놀리오스에게 "나는 그대와 함께 있겠소!" 하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무릎을 만졌다. 어둠 속에는 그들만이 있었다. 그들의 주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매우 감미로왔다. 그들의 머리 위에 뜬 별들이 그들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형상을 알아 볼 수는 없엇지만 느낌으로 서로를 뚜렷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놀리오스는 애써 침묵을 뭉개 버리려고 애썼다. "내가 수도원의 초년생이었을 때," 하고 그는 이야기했다. "파트리아케스 족장이 나를 데리러 오기 전, 그러니까 내가 세상으로 끌려 나오기 전에 내 스승이신 마나세 사제님께서 - 그가 아직도 살아 계신다면 그분께 행운이 깃들기를. 혹 세상을 떠나셨다면 주님께서 그분을 신성한 향기 속에서 안식토록 해주시기를 - 어느 날 나에게 당신의 친구분이셨던 어느 수도사의 모험담을 얘기해 주셨소. 나는 참으로 여러 해 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오늘 저녁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는군요. 주님은 그 이유를 아실 거요. 그것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졸립니까?" 하고 그는 잠시 이야기를 중단했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들은 너무 잠잠했을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들의 표정을 잘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보호하소서!" 하고 코스탄디스가 볼멘 소리를 했다. "왜 그대는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는가, 마놀리오스?" "지금까지 우리들의 마음이 이처럼 크게 깨어 있은 적은 없다네. 마놀리오스." 하고 이번에는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리의 감정을 아프게 하지 말게. 계속 말씀하시구료!" "알았소, 이 수도사는 내 스승의 친구였는데, 그의 일생의 꿈은 생전에 자신이 예수의 성묘(풀이: 예루살렘에 그리스도가 장사되었던 무덤)에 가서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정성을 모아서 수년 후 그가 이미 늙었을 때는 그럭저럭 삼십 파운드를 모으게 되었답니다. 바로 그것은 순례에 필요한 비용이었소. 그는 자신을 참회하고 수도원 원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성묘를 찾아 출발했다는 겁니다. 수도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누더기를 입고 창백한 얼굴로 슬픈 빛을 띤 채 약초를 뽑으면서 땅바닥에 구부리고 있는 사람을 발견 했습니다. 돌멩이를 굴리며 지나가는 순례자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은 머리를 들었다오. "어디 가시오. 사제여?" 하고 그 사람이 물었다오. "주님의 성묘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가오. 형제여. 나는 그곳을 찾아 세 바퀴 돌고 엎드려 경배하려는 거요." "얼마의 돈을 가지고 계시나요?" "한 삼십 파운드 되오." "내게 그 삼십 파운드를 주십시오. 나는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이 굶주리고 있소. 그 돈을 내게 주시고 내 주위를 세 바퀴 도십쇼. 무릎을 꿇고 내 발에 엎드려 내게 절하시오. 그리고 당신은 수도원으로 돌아가구료." 그 수도사는 그의 자루를 열고 삼십 파운드를 꺼내 그것을 모두 그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는 그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무릎을 꿇어 그에게 경배하였더란 겁니다. 그리고는 수도원으로 되돌아왔다는 얘깁니다." 말을 마친 마놀리오스는 머리를 숙여 침묵에 잠겼다. 세 친구들은 한동안 그들 내면 속에서 그의 얘기를 되씹고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다시금 머리를 들었다. "그 후..."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예루살렘 성묘를 찾아 떠났던 수도사가 바로 나의 스승 마나세 자신이었던 것을 알았소. 겸손 때문에 그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기를 꺼렸던 것이었지요. 오늘 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나는 그가 수도원을 떠나 만났던 가난한 이가 누군가를 알게 되었소." 마놀리오스는 말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앉아 "그가 누구였지?" 하고 다그쳐 물었다. 마놀리오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마침내 조용하게, 밤중에 떨어지는 잘 익은 정원의 과일과도 같이 그의 말이 떨어졌다. "그리스도였소." 세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순간 그들은, 그들 사이에 어둠 속을 걸어서 피가 흐르는 발을 끌고 인간에 의해 단죄받은 몸으로 남루한 행색을 한 처절한 모습의 그리스도가 나타난 것같이 느껴졌다. 그들은 저마다 그들 안으로부터 공포와 기쁨을 느끼면서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꼈다. 오랫동안 그들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누구를 돌아보며? 도대체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의 내면에 부딪쳐 온 이 보이지 않는 거룩한 존재처럼 그렇게 구체적이고 분명한 존재는 그들에게 결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들의 침묵을 깨뜨린 것은 얀나코스였다. 그는 어둠 속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거기 누구요?" 마치 누군가가 문 밖에서 두드리는 것처럼 말했다. "거기에 누구요?" 하고 그는 손을 내밀며 되풀이했다. 무화과 잎들이 흔들렸다. 다시금 밤은 밤만이 풍기는 향취로 가득찼다. 곡식, 풀, 그리고 잘 익은 무화과들. 그들은 다함께 이러한 밤의 냄새를 맡으면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온몸을 통해 퍼지며 엄습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꼈다. 그들은 그들이 천진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였을 때,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들이 성찬을 받은 성 금요일 때면 어떻게 그들 안에 들어와 그들을 사로잡곤 했던가를 기억해 보았다. "마놀리오스." 하고 미켈리스가 불렀다. 그는 친구를 껴안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마놀리오스, 오늘 그대가 손을 등뒤로 결박당한체 마을을 구하기 위해 아그하의 문턱을 의연히 걸어나와 죽음의 시간으로 고요하고 성스럽게 다가가는 것을 본 순간부터, 나는 그대 주위에 어떤 새로운 기운과 이상한 후광이 감돌고 있음을 느꼈소. 흡사 그대가 우뚝 솟아 있는 것 같았고 더 수척해진 것 같았으며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소. 그 순간부터 나는 결심했다오. 그대가 어디를 가든, 난 그대를 따르겠다고. 그대가 나를 이끄는 곳은 어디든지 가겠다고. 그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지 난 그렇게 하겠소."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망설이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한 듯이 "이제 나는 분명히 보았소." 하고 반쯤은 속삭이듯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먹고 마시고는 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어. 나는 그러한 사람에게서보다 그대에게 내 마음이 더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소. 마놀리오스, 지금 내가 순종해야 할 의무를 느껴야 하는 쪽은 그분에게가 아니라 그대에게요."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 또한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울기 시작했다. 코스탄디스의 부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들의 흐느낌을 듣고 머리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놀리오스는 미켈리스의 손을 양손으로 꽉 부둥켜 잡았다. "형제여."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더 착하고 순수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더 가깝소. 당신을 괴롭히는 사탄의 소리는 없소. 당신은 더 간단하고도 확실하게 그 길을 발견할 것이오. 내가 수년 동안 도달하려고 힘들게 고투한 것, 그리고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것을 당신은 평탄한 걸음으로 몇 발자국 걸어서 단숨에 거기에 .도달했다오. 당신의 희생은 참으로 큰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은 전통적인 족장으로서의 귀족의 집을 가지고 있으며, 족장인 아버지와 재물, 그리고 명성을 가지고 있소. 나는 주님께 희생할 그 아무것도 없소. 그리고 아직도 그것은 그 아무것도 없는 그것조차 바치라고 내 자신을 괴롭히고 있소. 나의 스승이신 마나세 사제와도 같이, 무용지물인 나도 큰 계획이 있었소. 양치기의 일이란 나에게 사실 너무 시시했소. 마을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의 소원은 큰 배에 올라 나의 구원을 발견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여행하는 것이었소. 나는 주님의 성묘가 저 세상 끝에 있어서 오랫동안 머나먼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나를 놓아 두신 이 세상의 구석인, 내가 처한 이 자리를 멸시했었소. 이제야 나는 깨달았소. 그리스도는 어디에나 게시오. 그분은 우리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사랑을 구하며 우리 마을 앞에 멈추십니다. 그분은 가난하시고 굶주리시고 거처도 없으시지요. 그리스도는, 아그하와 라다스, 그리고 그리고리스 사제 같은 사람들을 번영케 하는 이 마을 앞에 서 계신단 말이오. 그분은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들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들 마음마다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리고는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쫓겨 다니시고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쫓겨 다니십니다!" 마놀리오스는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하고 그는 외쳤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들 마음의 문을, 우리의 마음들을 열어야만 합니다. 처음에는 나는 그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그분을 보고 듣습니다. 지난밤 얀나코스가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 그를 통하여 분명하게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소. 그래서 나는 마을로 내려왔소. 나는 그분께서 나를 죽음의 자리로 부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부르셨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소. 나는 이제야 그분께서 왜 나를 부르셨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소."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코스탄티스의 목소리 같았다. "어떤 결심인가, 마놀리오스?" "어떤 결심?" 하고 마놀리오스는 반문하면서 잠시 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것을 말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나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군요. 나는 그것이 행동에 있다고 믿고 있소. 만일 주님이 원하신다면 나는 그것을 하겠소. 형제들이여, 나는 나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결심을 했소. 과거를 칭찬하고 길가에서 주님을 맞을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경호원처럼 나팔을 들고 그분 앞에 걸어가려오. 나는 외칠 것이오 - 내가 무어라고 외칠지는 나도 모르오.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지요. 내가 입을 열면 그리스도께서는 내 입술을 주장하셔서 올바른 말씀을 하도록 하실 거니까요. 형제들이여, 그것이 내가 한 결심이란 것이오."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무화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외에 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데, 나는? 나와 당나귀와, 나의 거래처에서 받을 채권은? 그리고 나의 생활비는 어쩐다?" 하고 얀타코스가 물었다. "나는, 아내와 어린애들과 나의 카페를 어떻게 하지?" 하며 코스탄디스가 부르짖었다. "나는 물어 볼 것도 없소." 하고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나의 결심은 섰소. 오늘 저녁, 내가 당신들에게로 오기 전에 나는 결심을 했소. 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겠다고 말이오." 마놀리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별빛을 통해 아직도 질문과 답변을 구하면서 몸을 굽히고 궁색해 하는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의 얼굴들을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어떤 대답을 그들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가 그들을 위해 그들의 인생을 뒤엎을 결심을 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에게 구원의 시간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개개인만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그가 구원을 얻게 될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리라. "형제들이여." 그는 이윽고 말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결심이란 나무 열매와 같은 것이고. 천천히 그리고 참을성있게, 태양과 비와 바람에게 감사드리면 그 과일은 익어서 떨어집니다. 기다리십시오. 형제들이여, 아무에게도 질문하지 마시오. 그 축복의 시간이 당신들에게도 올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더 이상 질문하지 말아야겠지요. 점차 고요한 중에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당신은 아내와 자녀들과 친척과 일로부터 떠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은 이런 모든 조그마한 진주들로부터 자유로와질 거요. 그리고는 진정한 큰 진주를 찾게 될 겁니다. 그분은 곧 그리스도요."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있는 이는 바로 자넬세, 마놀리오스." 하고 얀나코스는 말했다. "나는 자네와 같이 가고 싶네." "서두르지 마시오, 얀나코스." 하고 그의 충동적인 친구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같이 출발하기 위해서는 내가 혼자 투쟁하면서 괴로움을 겪도록 두시오." "그대는 멀리 가지 않을 건가?" 하고 코스탄디스가 마치 마놀리오스를 만류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손을 내밀었다. "그대는 우리를 떠나면 안 되네!" "어디를 가겠소, 코스탄디스. 그대는 나의 스승이 성묘를 찾은 곳이 어디였는지 잊어버렸소? 인간은 한 덩이의 흙 위에서 투쟁하고, 괴로움을 겪는 자는 온 대지 위에서 투쟁하며 고투를 겪는 것이오. 나는 당신과 있을 거요. 언제나! 여기 말이오. 우리의 땅 이에, 리코브리시와 그 산 위에. 이곳이 자비로운 주님께서 나를 두신 곳이오. 이곳이 바로 그 분이 내가 싸우도록 명령하신 곳이오. 모든 이 세상 땅이 성묘인 것이오." 다시 한 번 코스탄디스 부인이 현관문께로 나와서 뭐라고 불평을 했다. 마놀리오스는 일어나서 별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이여." 그는 말했다. "밤이 깊었소. 나는 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들과 함께 계시기를. 나는 이제 그만 가 보겠소." "우리들도 떠나도록 하지."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내 누이가 졸리는 모양이군." "밤이 이슥해요." 하고 코스탄디스 부인이 대답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정중한 말로 사의를 표하려 애쓰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코스탄디스에게 무척 미안해졌다. 그들은 그녀의 손아귀에 동료를 내버려 두고 떠나는 심정이었다. "곧 다시 봅시다, 친구들이여." 하고 그들을 문간까지 바래다 주면서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가엾은 코스탄디스! 나는 그를 정녕 나의 피부처럼 느낄 수가 없다니!" 하고 그 문이 굳게 닫혔을 때, 얀나코스가 중얼거렸다. 고요한 봄의 부드러움이 감돌았다. 마을은 벌써 깊이 잠들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별들이 예리하게 세 친구들의 머리 위에서 번쩍였다. 그들은 한 마디도 없이 걸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이윽고 혼자가 된 마놀리오스는 마치 다시 한 번 천사의 날개에 의해 들려지는 것과도 같은 가볍고도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11. 불을 단 수레바퀴 대자연은 무심하다고나 할까? 인간의 고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양 어느덧 영글어 가고 있었다. 그들 중 얼마간의 무리들은 인간적인 열정과 번민에 젖어 움막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무리들은 인간의 번민의 속성을 뛰어넘어 영원한 세계로 치닫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뿌려 놓았던 옥수수의 씨앗은 어김없이 잘도 자라 일이 꽉 틀어 박힌 머리를 땅을 향해 다소곳이 숙인 채 농부의 낫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받이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마을 처녀들은 동틀 무렵부터 낫을 들고 삼삼오오 들판으로 나갔었다. 그들은 마을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 엄청난 사건을 벌써 잊어버리기라도한 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종알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얼굴이 빨개진 과부와, 버짐나무에 반쯤 발가벗겨진 채 추악스럽게 절단되어 매어달려 있던 후세인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따금씩 더운 열풍이 휙휙 불면 썩은 육진이 혀를 깨문 채 흔들거리는 끔찍한 광경을 생각할 것이었다. 푸르죽죽한 자줏빛 혀를 빼문 그 광경을. 그러나 그들은 마놀리오스에 대해 생각을 돌리자 한결 얼굴이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날, 아그하에게 쫓겨 달아났던 처녀들의 어머니들은 광장으로부터 집으로 달려와서는 이구동성으로 마놀리오스의 당당함에 대해 얘기의 꽃을 피웠었다. 그가 마치 천사처럼 금발을 하고. 가냘펐지만 당당하게 아그하의 집 문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었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그들은 말했다. "나쁜짓 하는 놈들은 얼굴이 문둥병으로 추하게 된다더니 말짱 거짓말이야. 그를 봐요. 새빨간 거짓말이라니까. 그의 얼굴은 태양처럼 밝았어." 처녀들은 낫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한아름 옥수수 열매를 안아 묶어서 쌓곤 하였다. 그들은 계속 재잘거리며 마을 총각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익살스럽게 입방아질을 하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깔깔대고 있었다. 아무개는 곱추고 아무개는 절름발이며 누구누구는 말더듬이라는 둥 하면서. 파나요타로스의 아내와 두 딸 펠라기와와 크리소울라도 그들의 황량한 들판에서 농작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거기 있었다. 생활에 찌들어 코가 석자나 빠져 버린 찌푸린 얼굴에다가 겉늙어 버린 그 불쌍한 어미는 과부처럼 검은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씁쓸한 행색으로 앞서 걸었다. 도대체 그녀는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범했길래 기구하게 태어나 가지고 그토록 타락하여 술고래가 되어 비참한 모습으로 마을의 웃음거리가 되었는가? 그러한 그였지만 젊었을 때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는 말이 적었고 열심히 일했었다. 그때는 그녀의 집 문 앞을 지나칠 때면 어디 감히 그녀를 보기 위해 눈이라도 쳐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며 그는 가난한 집안의 청년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다. "파니요타로스, 나는 자네가 좋네. 자네는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근면하고 정직하단 말이야. 자네가 내 딸을 좋아하는 것을 내가 알고 있네. 내 딸을 취하게나. 잘해 보게!" 하고 그에게 말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결혼했었다. 과부가 그의 눈을 멀게 했던 그 저주받은 운명의 날이 있기까지는 그의 가정의 모든 것은 순조로왔었다. "저주받을 년, 쌍년! 그년이 바로 화근이야! 오, 하나님. 정직한 여편네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까? 그러시다면 저의 기도도 들어주소서. 그년을 지옥으로 던져 버려 유다와 함께 태워 죽이소서!" 그러나 그녀는 그 과부의 이름을 뇌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유다라고 부르던 그녀 남편을 지옥에서조차도 영원히 그 과부와 떨어지지 말도록 하나님께 청하는 것 같았다. 그녀 뒤에서는 새까만 머리에 짙은 갈색의 두 볼과 윗입술의 윤곽이 뚜렷하며 스웨터를 입은 두 딸이 조롱하듯히 씩 웃으며 재잘거렸다. "저 늙은 여편네가 또다시 상념에 빠졌군. 죽은 듯이 우뚝 서 있는 꼴 좀 봐!" 나이가 아래인 크리소울라가 말했다. "맞아. 그 과부를 생각했었단 말이지!" 펠라기아가 마음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웃음 소리로 깔깔대며 맞장구를 쳤다. 맨발에다 꾸부정한 모습으로 생각에 사로잡힌 라다스 영감이 그들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는 머쓱하게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낫을 들고 그들의 척박한 들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봐요, 당신네 밭 말이지. 여기말고 다른 것은 없소?" 라다스 영감이 늙은 어미에게 물었다. "이게 우리가 가진 것의 전부요, 라다스 영감님! 다 팔아먹고 이것뿐이라오." 파나요타로스 부인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라다스 영감은 그 손바닥만한 한뙈기의 땅에 눈독을 들이고 눈어림 짐작으로 재보는 것이었다. 얼마만큼의 소출이 있을까 하고 셈을 해보고 난 뒤 뼈만 남은 앙상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무 말도 없이 자기 길을 갔다. 파나요타로스가 그에게 퍼부었던 치욕스러운 말들이 여전히 독사처럼 머리를 쳐들고 그의 귀를 들쑤시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그것들이 마음속에 되살아나서 그는 그의 남아 있는 땅과 포도원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작심했던 것이다. "정직이 무엇인지 내가 네놈에게 가르쳐 주마. 그러고말고. 개 같은 놈, 라다스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는 모든 들마다 그 앞에 멈추어 서서는 셈을 하였다. 매년 추수때가 되면 그는 이런 셈놀이를 하기 위해 들녘으로 나들이를 했었다. 그는 이러한 게걸스러운 땅뺏기 놀이에 탐닉하기 위해 포도원에서도 올리브 수확기에 접어든 들녘에서도 닥치는 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두뇌는 이런 일로 잘 발달된 계산 장부책 같아서 그는 그 속에다가 마을 사람 하나하나씩 그들이 거둬들인 옥수수라든가, 포도, 그리고 올리브 등의 수확량을 기록해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해 동안 거둬들인 것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느냐, 아니면 빌어먹지나 않을까 하는 것을 저울질해 보기 위해서 였다. 라다스 영감을 자신이 얼마나 많이, 어느 정도 이자를 빌려 주어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해마다 그랬듯이 이때쯤이면 라다스 영감은 소작농들의 형편을 기웃거렸지만 올해는 그러한 기웃거림의 은근함, 그 이상의 마음으로 집요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했었고 그 후 그는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많은 들과 포도원과 올리브 경작지를 손아귀에 집어넣어야 되겠다는 격앙심과, 금고를 온통 금화로 가득 채우겠다는 광포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전보다 더 처절하게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 그 전날 저녁에는 심지어 올리브 전채를 먹는 것조차 삼갔었다 - 게다가 오늘은 맹물만 마셨다. "시간이 없어. 사랑하는 페넬로페!" 그는 자신의 무감각한 동반자에게 계속 지껄여 댔다. "난 곧 죽을지도 모르오. 서둘러야만 되겠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페넬로페?" "이봐요. 라다스 영감.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삼켜 버릴 작정인가요?" 하고 조롱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오는 듯했다. "선한 일이 무엇이지? 땅 속 당신의 무덤에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소? 썩은 육신을 칭칭 감은 길다란 붕대, 그것이 고작이지.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거나 좀 남겨 놓으시오!" 구린내 나는 늙은이가 마치 굴러가듯 뒤뚱뒤뚱 걸어왔다. 파트리아케스는 배꼼이 빠져 달아날 지경이 된 앞산만한 배에다가 선명한 색상의 옷을 걸친 채, 따가운 열기로부터 목을 보호하기 위해 흰천의 베일을 단 밀짚모자를 쓰고 그 앞에 우뚝 다가섰다. 그도 역시 추수하는 처녀들을 쭉 훑어보러 자신의 경작지로 가고 있었다. 그가 행차함으로써 낫질을 하는 일손들이 더욱 속력을 내게 마련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그는 엉덩이를 쑥 뒤로 빼고는 끈이 늦추어진 옷 속의 땀에 젖은 젖가슴을 드러내어 보이며 몸을 구부리고 있는 여인들의 육체를 찬찬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들에게 천한 농짓거리와 다른 농담을 던져 그들과 자신의 웃음을 섞으면서 끈적한 자극을 즐기곤 하였다. 화들짝 놀란 라다스 영감이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를 응시하였다. 파트리아케스는 그 초라한 늙은 구두쇠가 초라한 모습으로 누덕누덕 기운 바지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그 영웅, 석고먹성이가 감옥에서 당신에게 아주 통쾌하게 일격을 먹였었지." 그는 라다스의 아픈 곳을 찌르며 집적거렸다. "그러시다면! 내가 나리에게 몇 가지 뜨끔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네?" 라다스 영감이 쉬쉬거렸다. "만일 잊어버리셨다면?" "당신은 그 '고귀한 돼지'를 말하는 거로군? 이 늙은이, 내 그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더욱 집요하게 과녁의 초점을 내게 던지는 것 같단 말이요. 그것을 정히 알고 싶소! 그 늙은 독사! 믿건 믿지 않건 간에 내가 감옥에서 나온 이후로는 걸식 귀신이 붙었소. 정말 고귀한 돼지같이 난 먹고 또 먹고 한다니까. 레니오가 내가 먹을 닭의 모가지를 비틀기가 무섭게, 또 니콜리오가 채 익지도 않은 럼주와 치즈나 내 정원의 과이로가 야채를 가져오기가 무섭게 말이오. 난 그래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오. 라다스. 게다가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소만, 배가 가득 차면 그리고리스 사제가 보내온 구토제를 먹고는 고통을 면하고 다시 뱃속이 텅 비면 마구 집어넣는 거지. 알겠소?" "암, 알고말고요." 라다스 영감을 침을 탁 뱉으면서 대답했다. "조그만 벌레들이 있어서 머리들을 구멍 속에서 쑥 내밀고는 나리께서 먹고 살찌는 것을 보고는 '그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는가!' 하고 말할 거요. 당신께서는 마구 채워 넣고 나는 굶기 바쁘지만 사탄은 결국 둘 다 잡아갈 거요!" 그는 다시 한 번 침을 탁 뱉고는 자기 갈 길을 갔다. 라이아스들이 농작물을 거뒤들이기 위해 들판 이리저리로 흩어져 있는 동안 아그하는 두문불출 하면서 방 안만 왔다갔다 맴돌았다. 술에 만취가 되어 비틀거리다가 방바닥에 자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서 커다란 방석에 발을 포개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긴 담뱃대로 연기를 뻐끔뻐끔 내뿜으면서 이 세상의 공허함에 사로잡혀, 마치 나선처럼 피어오르다가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담배연기를 슬픈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그는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는 곱추 할멈을 불렀다. "이봐, 잘 들어, 말에 안장을 얹고 빵과 고기를 얼마간 안장 주머니에 넣어. 라키 병도 잊지 말고, 내가 마을로 가서는 그곳에서 스미르니까지 그 괴물 기계 (풀이: 자동차를 뜻하는 듯함)를 탈 참이야. 집 잘 보라고. 아무도 집에 들이지 말고. 무엇보다도 어느 놈에게도 내가 간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이 할망구야, 내 돌아와서 두 귀와 불룩등이 군살과 코까지 잘라 놓아 버릴 테다. 알겠나?" "알겠어요, 아그하님, 잘 다녀오시기를 빌겠어요!" 마르다 할멈은 굽신거리면서 속으로 웅얼거렸다. 그는 스미르나 출신의 또 다른 유소우화키를 데리고 오겠지, 망할 놈의!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아그하는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말에 올라 살그머니 마을을 빠져 나왔다. 생각해 보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 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단 말씀이야! 이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 아닌가! 그는 얼굴을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며칠 후, 수확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농부들은 탈곡 널빤지에다 낫가리를 쌓아 올리고는 타작 키질을 해서는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파나요타로스는 거두어들인 자기 몫을 방앗간으로 가지고 가서 그것을 빻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아내와 두 딸에게 떡반죽을 해먹도록 주었다. 그리고는 권총을 가지고 마당 한가운데로 가 자리를 잡고는 허공을 향해 공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그는 아그하가 출타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총성을 말하면서 그는 아내와 딸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도 나가! 꺼져 버려. 내 눈앞에서 없어지라구! 나는 혼자 있고 싶단 말이야!" 이웃집 아낙네들이 가운데 끼어들어 그의 발을 붙들면서 말렸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아내와 딸들은 줄곧 구슬피 울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혈기등등할 뿐이었다. "너희들도 나가! 꺼져 버려!" 그는 사납게 날뛰며 발광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의 머리채를 낚아채어 집 밖으로 내동댕이치고는 문에 빗장을 걸고 자물쇠를 채워 버렸다. 그는 저장고에서 목이 긴 큰 라키 병을 들고서 소시지와 치즈를 조금 가지고 마당 한쪽 올리브나무 아래로 가서 주위에 뜨끈뜨끈한 안주 덩어리를 놓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먹고 마시면서 이따금씩 권총을 쏘아 댔다. 그리고는 옷을 반쯤 벗어 제치고 등을 기댄 채 하늘을 향해 혀를 널름거렸다. "이런, 돼지 같은 놈!" 하고 외쳤다. "이 돼지 같은 놈!"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밤낮으로, 간헐적으로 총을 쏘아 대며 그가 울부짖는 소리를 이웃 사람들은 들었다. 가끔 그는 노래까지 불렀다. 그러나 점차 그의 목소리가 쉬어 갔고 권총 소리도 뜸해졌다. 어느 날, 이웃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그는 완전한 알몸으로 번듯이 누워, 붉은 턱수염에 게워 낸 오물을 덕지덕지 쳐바른 채 깔깔한 목소리로 줄곧 하나님을 향해 향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봐요. 돼지같으니! 이봐, 이 야속한 놈아!" 다음날 아침 그들은 기는 듯한 울부짖음과 한숨 끝에 잇달은 총소리를 들었고 그 후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다음 모든 것은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웃 사람들은 문앞에 모여 저마다 문구멍을 통해 안을 살펴 보았다. 파나요타로스는 먹다 남은 음식과 게워 낸 것들 사이에 배를 깔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봅시다." 이발사 안도니스가 제안했다. "그가 죽었다면 부패해서 질병을 온 마을에 퍼뜨릴 것이니까." "먼저 그리고리스 사제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교구관리가 이렇게 말하고는 즉시 사제를 부르러 달려갔다. "문을 부숴 버려요. 그는 확실히 귀신에게 잡혀 죽었소. 그를 묻어 버리시오. 나는 그것과 아무 상관도 없소." 전날 감옥에서 파나요타로스에게 당한 모욕을 아직도 되새기고 있는 그리고리스 사제가 차갑게 대꾸했다. 파나요타로스의 아내와 딸들이 문을 부숴 열고는 그를 들어서 방안으로 옮겨다가 침상 위에 눕혔다. 그는 죽어서 반쯤 녹은 듯이 창백했다. 깨어진 유리 조각 위에 뒹굴었던 것 같았다. 온몸이 예리하게 베인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말에 솔질을 하듯이 그를 씻기기 시작했다. 두 딸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아버지의 몸에 끼얹었다. 그러자 그는 정신이 드는지 꺼져 가는 두 눈을 떴다. 그러더니만 그를 지켜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보고는 또다시 버럭 화를 낼 차비를 하였다. "나가! 꺼지라구." 가까스로 소리를 치고는 총을 잡기 위해 몸을 휘저었지만 기진맥진해서 푹 꼬꾸라지고 말았다. 이발사 안도니스가 기운을 차리게 할 심산으로 술잔을 갖다 대려했지만 이웃집 아낙네들이 그를 제지시켰다. "그에게서 무슨 피가 나오는지 알우? 안도니스! 그는 레몬 껍질처럼 노래요. 우리가 만달레니아 할멈을 부르겠어요. 그의 몸 속에 있는 악마를 내쫓아야 한다구요." 한 꼬마가 늙은 악령 추방자를 찾으러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낙네 하나가 그를 위해 설탕을 넣지 않은 레몬 주스를 만드는 동안 다른 아낙네는 그의 배 위에다가 뜨거운 벽돌을 올려놓았다. 한 늙은이가 모인 사람들에게 저마다 세 번씩 그에게 침을 뱉으면 악마가 놀라 달아나 버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들은 만달레니아 할멈이 낡은 처방 기재를 들고 황급히 달려올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녀는 치료 도구로 쓰이는 세 개의 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향기로운 식물로 가득 찬 흰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에는 파우다와 작은 병들이 들어 있었으며, 나머지 파란 가방에는 까만 콩 비슷한 열매와 푸른 유리 조각 같은 것과 약간의 타르, 작은 십자가 하나와 그리스도 수난일 의식 때 쓰는 몇 가지 꽃들과 박쥐 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파나요타로스에게 몸을 굽히고 주의깊게 그를 들여다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의 아내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당신은 운이 없는 사람이오. 파나요타로스 부인." 그녀는 숨을 죽이고 말했다. "진심으로 안됐어요. 그는 사람이 아니오, 그는 악마요. 지금 그가 다소곳하니 있는 것은 실컷 발광을 했기 때문에 얌전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다시 일어날 때는 다시 미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번 나의 남편도 이와 똑같았는데 단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악마가 그에게서 빨리 달아났지요. 내가 당신에게 몇 마디 일러 줄 테니 우선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세요. 하나님말고도 또 누가 들을지 모르니까!" "맹세하겠어요." 가련한 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이걸 들여다봐요." 늙은 여인은 검은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는 기적의 가루가 들어 있어요. 그에게 이것을 조금 먹이고 트럼펫이나 드럼 소리가 없는 조용한 곳에 한 사흘 정도 내버려 둬요. 그렇게 하실 수 있나요? 당신이 그를 없애 버리는 방법이에요. 이 가련한 사람아!" "아서요! 그따위 얘기는 아예 마세요!" 그 가련한 여인이 소리쳤다. "좋으실 대로." 늙은 여인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양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다만 당신을 도우려는 것뿐이지만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안됐군!" 그녀는 화가 나서 검은 가방을 웃도리 속에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약초가 들어 있는 흰 것을 꺼내서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약초즙을 만들어 그 병든 남자의 목구멍에다가 따라 붓고는 성스러운 램프(풀이: 혹은 성녀의 램프)속에서 기름을 꺼내 후추와 섞어 그의 몸에 발랐다. 그러고 난 다음 그녀는 그의 배 위에 뜨거운 벽돌을 올려놓았다. 그녀는 파란 가방에서 타르를 약간 집어내 그것을 녹여서는 문지방에 십자가를 그렸다. 그런 다음,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근 다음 죽어 가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그에게 세 번 침을 뱉었다. "악마여, 이 사람을 잡아 가거라. 유다를! " 그녀는 세 번 외치고는 밖으로 휭하는 나가 버렸다. "그를 방해하지 말아요." 그녀는 말했다. "내가 막 악령 추방 주문을 외웠어요. 사흘 동안 그를 원기왕성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노고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해 그녀는 마당에 남아 있던 빵 조각들과 올리브나무 가지에 아직 걸려 있는 긴 소시지를 먹어치웠다. 그런 다음 성호를 긋고 조심스럽게 떠났다. 남자들이란 사나운 짐승이야. 빌어먹을! 그녀는 계속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아, 할 수만 있다면 그들 모두에게 번갈아 가며 그 가루를 줄 텐데. 그러면 뒈져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녀가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열쇠를 따고 있을 때 얀나코스가 당나귀 고삐를 잡고서 얼굴을 찌푸리면 지나갔다. "이봐, 잠깐 서 봐. 얀나코스, 빌어먹을!" 그녀가 외쳤다. "자랑스러운 내 조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네놈이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었던가? 그를 우쭐대게 만들었지. 그래서 지금은 복음서를 읽으며 산 위에서 바보처럼 혼자 있을 테지. 글쎄 그렇다니까. 네놈도 그런 적이 있지? 복음서 말이야! 레니오의 애를 갖는 대신에." "그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것이 당신 덕인가요?" 얀나코스가 화난 듯이 대답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 중에 누가 그의 발 밑에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출 생각이나 했겠소! 없어져 버려, 이 더러운 늙은이들, 개 같은 것들!" 노파는 이미 집 안에 들어간 뒤였다. 단숨에 그녀는 문 밖으로 튕겨 나왔다. "이놈아, 언젠가 한 번 아파 드러눕기만 해봐!"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땐 손톱으로 할퀴어 버릴 테니까! 그때야 내가 좀 직성을 풀 것 같군!" 크게 한 번 웃어 보이더니 그녀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얀나코스는 입씨름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사라키나 산 위에 가 있었다. 그는 이제 막 그곳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곳에 오두막 몇 채는 얽어 매어 놓았으나 피난민들은 지붕을 덮을 나무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위고 창백한 아이들은 동굴 입구에 앉아 있을 뿐 뛰어놀 의욕조차 상실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늙은이들처럼 멍한 눈으로 심각해 있었다. 몇몇 어미들은 돌아다니며 향료풀을 뜯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름도, 올리브 열매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음식이라고는 물에 삶은 향료가 고작이었다. 남자들은 일자리를 얻으러 이웃 마을로 떠났었다. 포티스 사제는 복음서와 배낭 하나를 가지고는 그의 교구민들을 모으러 걸인처럼 마을들을 죽 순회하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노인 어른?" 얀나코스가 바위 틈의 웅덩이에서 물을 길어 조그만 땅ㅁ기에 뿌리면서 채소를 돌보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이 새마을에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 노인이 대답했다. "하나님 덕택에 우리는 계속 버티어 가고 있지." "어린아이들이 좀 아픈 것 같군요. 몇 명은 다리가 막대기처럼 뻣뻣해요." "그 아이들은 앞으로 튼튼해질 거야. 걱정 말게. 얼마간은 죽을 것이고, 가련스럽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른 녀석들이 태어나겠지. 인간의 종자란 끝없이 번성한다는 것을 알지. 자네도 자식이 있지?" "아니오." "그런가? 그러면 자네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나? 가서 좀 구해 보라구. 결혼한 여자는 말고, 허 참 ! 모자라기는. 자네가 나무를 불 속에 집어넣을 차례야 !" 얀나코스는 더 멀리 걸어갔다. 그들 중 몇 명이 그를 알아보고는 그를 만나려고 뛰어왔다. 여인들은 가득 찬 광주리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면서 당나귀를 빙 둘러쌌다.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손을 뻗어 빨간 리본을 풀어서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고는 한숨을 지었다. 피부가 검고 배가 불룩한 젊은 여인은 광주리에서 뿔빗을 꺼내어 들고 그것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팔릴까 싶어 안절부절 못하였다. 잠시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환상으로 가득 찼다. 마치 그 빗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달아나서는 햇빛 아래서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머리를 빗으며 동굴 앞에 앉아 있었다. 얀나코스는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당나귀 주위에 있는 아낙네들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들의 손이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몰래 뒤지다가는 빈손으로 주춤 빠져나가곤 하였다. 얀나코스가 발을 구르자 그들의 눈이 빛났다. 그는 허리춤에서 트럼펫을 끌러 내어 불었다. 빵빵 경적을 울리면서 외쳐 대기 시작했다. "빗이오, 리본이요. 손거울, 솜이 있어요. 뜨개 바늘도 있구요. 장신구도 있어도! 갖고 싶은 것은 사 가세요. 아주머니들! 돈은 필요 없어요. 저 세상에 가서나 갚으세요. 여인들은 귀를 의심하였다. 그리고는 놀란 망아지들처럼 광주리 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들은 망설였다. "농담이시겠지."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뭐 바본 줄 아나 보지. 손들 대지 말아요. 멀개지는 수가 있다구요." "난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배부른 젊은 여인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 빗을 가슴에 끌어안고 가 버렸다. 이번엔 어린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빨간 리본을 움켜잡았다. "나도 하나 가져가겠어!" 그렇게 열적게 외치고는 새끼 염소처럼 돌을 디디며 뛰어갔다. 얀나코스는 그 정경을 바라보며 의미있게 웃었다. 그는 돌 위에 올라섰다. "용기 있으신 분은 광주리를 통째로 가져가구려. 아가씨, 아주머니들. 내가 말한 것은 사실이오. 나는 돈을 원치 않습니다. 저 세상에서나 갚으세요. 나는 당신들을 신뢰합니다!" 그러자 아낙네들은 광주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것 저것 고를 것도 없이 잡히는 대로 챙겨서는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달아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다. "당신 미쳤군요? 뭐 성인군자라도 되나요? 어느 쪽이오, 얀나코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소리쳤다. "난 고리대금업자요." 얀나코스가 웃음을 띄며 대답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자를 붙여 되돌려 주실 겁니다." "이 사람아, 나도 그런 말을 들었었지. 우리 선조들이 돈을 빌려 준 다음, 종이에 사인을 해서는 저 세상에 가서 되돌려 받는다고 말일세. 그러나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지." "나도 믿음이 있습니다." 얀나코스는 당나귀 고삐를 끌러 당기며 대답했다. "잘들 게시오." 그는 한 마디 남기고 기쁨에 넘쳐 그곳을 떠났다. 사라키나 산기슭에서 만달레니아 할멈을 만난 후,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있는 니콜리오를 만났다. "어이 니콜리오." 얀나코스가 그를 불렀다. "마노리오스는 요즘 어떤가?" 니콜리오는 돌아서서 웃었다. "그는 책을 읽고 지내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요즘 책만 읽고 지내지요. 딱한 양반. 그리고는 생각하지요. 나는 주인 어르신께 양 한 마리를 갖다 드리고 있어요. 나는 곧 결혼할 겁니다." 그는 먼지를 일으키면서 흥에 겨워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는 양을 목에 둘러멘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황동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입이 헤벌어져 있어서 반짝이는 이빨이 드러나 보였다. "나는 레니오와 결혼할 거예요! 들었나요? 레니오와 말입니다." 그는 밝게 웃으며 마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놀리오스는 주야로 성경만을 읽고 묵상하면서 지루하고 긴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는 성스러운 말씀을 향해 상체를 다소곳이 구부린 채 조용히 않아서 그것을 상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땀에 흠뻑 젖어 끙끙거리면서 씨름을 했었다. 그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때까지 한 자 한 자 인내하면서 읽어 나갔다. 그 얼마나 힘든 싸움인 것인가!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이 그에게는 깨뜨려야만 하는 진주 조개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사랑 위에서 말씀의 조가비들은 덜 어려워졌고 그것들은 타오르는 숨길 아래에서 열려져 왔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에게는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므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보잘것없는 마음을 지닌 인간을 위하여 세상에 내려오셨다. 이 사실로부터 시작해서 마놀리오스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한 발자욱씩 하나님의 뒤를 따라갔다. 어떤 때 그는 목자들과 함께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호산나!"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주님께서 걸으신 피로 얼룩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 보았고, 무덤에서 일어나서서 그의 마음 곳에 임하신 영광된 부활의 길을 그는 똑바로 따라갔다. 때때로 그는 예수의 얼굴을 조각한 나무판을 꺼내어 자신의 얼굴에 맞게 하기 위하여 안쪽을 파내는 작업을 하곤 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박학다식한 신학자를 생각했다. 그 신학자는, 그가 아직 수련 과정에 있는 수사였을 때 수도원에서 있었던 부활절 찬양 예배를 위하여 왔던 분이었다. 성스러운 토요일 아침에 두툼한 책을 끼고서 설교단에 올라섰었다. 그는 장장 두 시간 동안 부활의 신비성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낱말들을 구사해 가면서 어린 수사들에게 설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사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그저 자연스러운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어떻게? 라는 의문을 결코 품은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에게는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처럼 단순하게 여겨졌었다. 그랬는데, 그의 풍부한 지식과 독서로 그들의 단순한 믿음을 뒤헝클어 놓으려는 신학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각자 방으로 돌아갔을 때 늙은 마나세 사제가 마놀리오스에게 말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걸세. 어린 수도사. 올해, 처음으로 나는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느끼지 못했네." 매번 마놀리오스는 조각된 나무가 자기 얼굴에 맞는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얼굴에 대어 보곤 하였다. 어느 날엔가 니콜리오가 그의 얼굴에 있는 가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아세요, 마놀리오스? 당신은 두 번째 어린 시절을 맞고 있군요. 가면과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면서! 당신은 확실히 지난날의 당신이 아니어요." 마놀리오스는 흐뭇하여 웃었다. "아니, 이것은 장난이 아니야." 그는 부드럽게 반박했다. "나는 놀고 있는 게 아니야, 니콜리오." 여러 날 동안 니콜리오는 마놀리오스 주위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몇 마디 하려고 했지만 그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오지를 않았다. 오늘 그는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그 옆에 않아 기대면서 파고 있는 나무 조각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은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끝내 마놀리오스의 무릎을 자기에게로 확 끌어당기며 구실을 붙였다. "말해 봐, 니콜리오. 그처럼 조바심하지 말고 좀 더 부드럽게 털어놓아 봐, 난 귀머거리가 아니니까." "할 말이 있어요. 화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시겠죠?" "나는 결코 화내지 않겠어. 니콜리오. 털어놓아 봐. 무릎을 치지말고. 아프단 말일세." "저... 레니오와 결혼할 거예요!" 니콜리오는 마놀리오스가 달려 들기라도 하면 자신을 방어할 심산으로 묵직한 막대기를 움켜잡고 내어뱉었다. 마놀리오스는 입가에 자애로운 웃음을 띄웠다. "나도 알고 있었네." 니콜리오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신도 알고 있었다구요? 당신이 알고 계셨다면 왜 나를 가만 내버려 두는 거지요? 음식을 이용해서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자, 내가 자네에게 복이 내리기를 기원해 주겠네. 그대들 두 사람에게 건강과 행복을! 오래 오래 살게나. 살다 보면 나이도 먹게 되고 자식도 많아지지. 그들은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걸세." "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데요." 니콜리오스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우물거렸다.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을 거예요?" 마놀리오스는 두 팔을 뻗어 어린 목동을 끌어안았다. "당신은 나를 죽이고 싶지 않으세요, 진정? " 니콜리오는 불안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외쳤다. "아니, 니콜리오.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단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니콜리오는 놀라서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는 나무 조각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마놀이오스에게 마지막 눈길을 던졌다. 불쌍한 사람, 그는 제 정신이 아니군, 미쳐 버렸어. 내가 차라리 떠나는 편이 낫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위돌들을 건너뛰면서 그는 두 손을 입에 갖다 대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개들이 뛰어나와서 양들의 뒤를 좇았다. 서로 익숙해 있는 개들 사이에서 니콜리오는 냉정을 되찾았다. 마놀리오스의 마음속에는 지극히 짧은 순간 생기있고 발랄한 레니오의 보조개 패인 얼굴이 지나쳤다. 그는 나무 조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에게 축복을." 그는 이윽고 중얼거렸다. "그들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을 위해 오셔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었으며. 나는 다른 길을 취하려는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 아내도 없고 아이들도 즐거움도 없다. 나는 이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세속으로부터 발을 끊어 버리고 있다. 내가 옳은 것일까요? 주님만이 옳으십니다. 당신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닙니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는 신중한 순간에도 그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다. 그는 이와 같은 확신을 일찍이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날, 등뒤로 양손이 묶인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갔었던 그 순간 이후의 훨씬 더 순수한 행복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더 이상 불탈 수 없었을 때 그는 자신을 의심했으며 모든 사물을 신중히 생각하면서 주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그는 며칠간 날을 잡아서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포티스 사제를 찾아갔었다. 그도 역시, 아마도 똑같은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었을 것이므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사제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의연금을 모으러 이웃 마을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마놀리오스는 자신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 와서는 성경책을 다시 잡았다. 그것이 대답해 주리라. 그는 아주 무더운 여름날, 사람들이 문을 활짝 열고는 바다를 향하듯, 그 조그마한 책을 펼치고 그 안을 향했다. 그는 그 거룩한 책 속에 푹 빠지고 나서 비로소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는 자신을 아프게 찔렀던 회의의 요소들을 떨쳐 버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의문이 생기지 않았으며 그의 가슴은 긍정적인 해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스도의 가면에 마지막 손질을 했다. 아직 미흡한 부분을 파내고는 얼굴에 써 보았다. 그것은 딱 들어맞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외쳤다. "이제 끝났구나." 그 나무 가면에 입을 맞추고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아픔을 억누르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오래 된 예수의 그림 가까이에 그것을 걸어 놓았다. 올해의 성대한 엘리야의 축제를 필시 그 호사한 과부 카테리나는 볼 수 없으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그녀는 머리를 자르르 윤이 나도록 빗고 밤새 월계수 기름을 잘 발라 두곤 했었다. 그리고는 호두 잎사귀로 이빨을 깨끗이 닦고 목에는 불길한 눈매에 대비한 푸른 보석 박힌 목걸이를 걸고 예언자 엘리야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곤 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상 앞에 그녀의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엘리야는 격노하여 그녀를 내려다보곤 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숨막힐 정도로 갖다 쌓아 둔 그림들과 은으로 된 봉한물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과부는 당돌하게도 욕정의 루즈가 묻어 있는 입술을 그에게 갖다 대고 입맞출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땅 속에 누워 있다. 그녀의 모든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향기로운 머리카락과 곱게 칠해진 두 입술, 그리고 발그스레한 양볼과 아름답고 미끈한 목... 지금은 이빨들만이 강변의 흰 자갈처럼 빛날 것이었다. 파나요타로스 역시 올해는 그 축제를 보러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침대 위에 누워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의 두 딸은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서둘러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비록 무지한 아버지를 만났어도 근본 바탕이 훤하고 가무잡잡한 멋진 처녀들이었다. 거무스름하게 입술을 칠하고 짙은 사향 냄새와 땀으로 젖은 겨드랑이를 하고서 그들은 마치 사랑에 굶주려 끙끙거리는 두 마리의 걺은 암늑대들 같았다. 그들은 사내를 찾으려는 강렬하고도 애원에 가득 찬 눈길을 주위에 계속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만일 어린 암소였다면 음매 하고 울었으리라. 아니 그들이 암사자였다면 짝을 찾기 위해 숲 속의 한가운데서 야밤을 아랑곳하지 않고 포효하였으리라. 또는 그들이 암코양이였다면 등을 땅에 대고 발광을 하다가 지붕 위에 올라가 야옹 하고 외로운 몸짓을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인이었다. 젊은 사내가 지나칠라치면 교태스럽게 두 눈을 내리깔고는 깔깔거리며 추파를 던졌다. "저 남자 좀 봐. 불쌍한 것. 무슨 등이 저렇게 둥글지. 고작 핀의짝 (풀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뜻의 풍자)으로 걸맞겠네. 옛날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청년이야!" 그들이 자기들에게로 접근하지 않고 지나쳐 갈 동안 분노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이발사 안도니스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출발했다. 남의 수염은 말끔히 밀어 주면서도 자신은 면도도 하지 못한 채였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미쳐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예언자 엘리야를 높이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마을 남자들은 축제에 가기 전에 머리를 단장하러 그에게로 찾아왔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치통으로 오한을 하면서 흡각(풀이: 피, 고름을 빨아 내는 종모양의 유리 기구로 환부를 치료함)에 의한 방혈법으로 이를 치료하기 위해 다시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수입의 원천인 셈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가 예언자 엘리야를 높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는 만인이 다 알아 주는 돌팔이 아닌 돌팔이 치과의사인 셈이었다. 혹 동료들 중에는 편도 열매를 깨뜨릴 만큼 튼튼하고 건강한 치아들을 갖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그들 중 누군가 치아가 흔들거릴라치면 그들은 그놈을 끈으로 묶어서 비틀어 빼는 법을 알고 있었다. - 도대체 그런 방법은 누가 가르쳐 주고 있었는지? - 그런 다음에 그들은 큰 잔으로 한 잔씩 라키를 들이키고는 고기 덩어리를 위해서 한시간 이내에 편도 열매를 깨기 시작하곤 하였다. 세 친구들, 미켈리스와 코스탄디스와 안나코스는 행렬의 맨 꽁무니에서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처음엔 미켈리스와 얀나코스가 그리고리스 사제를 호위하며 걸었었다. 얀나코스는 마리오리가 타고 있는 자기 당나귀에게 계속 눈길을 주면서 애정어린 부름으로 이따금씩 격려를 했다. 미켈리스는 마리오리와 같이 있으면서 기대에 부푼 눈길을 그녀와 서로 교환하고 있었다. 미켈리스는 자기 약혼녀의 순백함과 우아함에 감탄사를 발했으며 그녀는 약혼자의 그 친절해 보이고 온화한 얼굴과 검은 곱슬머리와 당당한 태도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어루만지고 부추기는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올라와 계속 모여드는 군중들 사이에서 약혼한 한 쌍의 남녀는 앞으로 있을 포옹을 말없이 맛보고 있었다. 마리오리는 희미하게 잦아드는 양눈의 나른함 속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의 마리오리를 보았다. 그녀는 어린아이 하나를 안고서 젖을 먹이고 있었다. "선지자, 엘리야여!" 그녀는 가파른 산꼭대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의 자비를 원합니다. 제게도 아기를 갖게 해주세요!" 코스탄디스도 가족과 함께 그들 행렬의 바로 뒤를 따랐다. 그의 부인은 그의 바로 앞에서 노새를 타고서 두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갔다. 그 뒤를 코스탄디스가 따랐다. 그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들이 서로 무슨 말을 해야만 하겠는가? 그들은 때로 애정어린 말투로, 때로는 다투면서 모든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곤 했었다. 그녀는 아직도 이따금씩 격렬한 상황에서는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는 오래 전에 두 손을 들고 천국 같은 침묵 속으로 빠졌었다고 말했다. 거의 제자리 걸음이나 다름없이 세 친구들은 행렬의 꼬리를 만들며 자신들이 무리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느꼈다. "마놀리오스는 어디 있지? 그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소?" 코스탄디스가 물었다. "그는 이 잔치에 오지 않으려나?" "내가 어제 오후에 그의 양 우리 있는 곳에 가 보았는데 그를 찾지 못했소."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니콜리오를 불러 물어 보았더니 '오늘 아침 동틀 무렵에 물 한 통과 월계수 한아름을 가지고 선지자 엘리야에게로 떠났어요'라고 내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도련님도 그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도련님. 그는 정신을 잃으면 끝장날 거예요. 그는 이미 정신을 잃었어요. 내가 레니오를 낚아챘다고 그랬는데도 그는 나를 죽이지 않았어요. 잠시 그는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지만 내일이라도 그는 욕지거리를 퍼부어 댈 겁니다'하고 말하더군요." 세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정말이요?" 얀나코스가 말했다. "마놀리오스가 그와 같이 하지 않은 것이 말이오. 형제들, 그대의 말이 정말이라면 아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어느 날 밤 그와 함께 있었는데 그는 머리를 벽에 기대고 돌의자 위에 앉아 있었지. 그때 나는 그의 머리 둘레에서 밝은 빛을 보았소. 그것은 성상들에나 있는 빛과 같은 일종의 후광 같은 거였소. 당신은 믿소?" "그렇소.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어요." 미켈리스가 말했다. "나도 믿어요."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잠잠했다. 커다란 바위 틈 사이 저 멀리, 새로 말끔히 단장한 조그마한 교회가 눈 속에 들어왔다. 이것은 두 개의 바위가 양손 날개처럼 성화 속의 무시무시한 예언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높이 우뚝 솟아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은 정녕 날개가 되어 그를 하늘 끝까지 데려 올라가고 있었다. 교회 아주 가까이에는 지금이라도 금방 부서져 없어질 듯이 옛날 한 선조가 속죄하였던 오두막 하나가 드러나 보였다. 그가 앉아 있었던 벌레 먹은 의자가 그대로 있었고 바위에 튀어나온 못에는 끝이 검은 재료로 만들어진 작은 십자가가 달린, 기름 때 투성이인 그의 로자리오가 걸려 있었다. 바깥에는 쇠로 된 십자가가 꽃힌 무덤이 있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었다. 늙은 교수 관리는 동이 틀 무렵, 이 조그마한 교회를 정돈하기에 항상 많은 애를 썼었다. 등잔에 불을 붙이고 월계수 가지로 그 안을 치장했었다. 그가 밑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멈춰 섰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그는 애써 십자가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그 교회는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고 먼지도 털려 있었으며 촛대들도 윤이 나도록 닦여져 있었다. 등잔에는 기름이 가득했고 성화들은 월계수로 꾸며져 있어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불은 이미 커져 있었고 향기가 피어올랐다. 온 교회 안이 향취로 가득했다. 관리는 앞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면서 선뜻 안으로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재단 뒤에 천사가 여전히 지키고 있는지 두려웠던 것이다. 언젠가 마을 교회 안에서 정돈하러 갔었던 그날 아침에 칸막이 벽 왼쪽 편에서 두 날개를 펴고 있는 미카엘 천사를 보고는 놀라 질겁을 했었다. 그때 이후로 그는자신을 놀라게 하는 기적이나 천사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이따금씩 교회 안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천사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용기를 다시 냈다. 배가 고팠다. 가방을 열고 빵 한 조각과 치즈 한 토막을 꺼냈지만 목구멍이 막혀서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작은 포도주 호리병을 잡고 몇 모금 삼키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목구멍이 풀어지자 그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나니 용기가 한층 더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는 성호를 긋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지방을 넘어섰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 앞에 엎드려 성가대 장막을 겁이 나는 듯 슬슬 끌어당기고서 앞쪽을 빙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생각했다. 그가 와서 모든 것을 똑바로 하고는 다시 나갔구나.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그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시 촛대들을 모두 말끔히 청소하며, 먼지를 털고 문질렀다. 그리고 명사들 좌석에 접시들을 가지런히 하였다. 늙은 관리는 이 작은 교회를 좋아했다. 이것이 그의 생활과는 친근하게 묶여져 있었다. 이 교회가 한 번은 아주 파괴되었는데 그때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아버지가 자기의 새 아기를 다시 낫게 해준다면 이곳을 복원시키겠노라고 선지자 엘리야와 약속했었다. 오늘에 와서는 이곳에 그와 똑같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늙은 관리였다. 그는 건강이 회복되었었고 그의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었다. 관리는 지난 일을 생각해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특별한 전조가 그의 출생에 뒤따랐다. 그는 칠십 오 년 전, 예수 수난일 정오에 태어났다. 정확히 예수님이 못박히는 시간이었다. 산파가 한 번 말하기를 이 어린아이는 언젠가 주교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죽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가정적인 그의 아버지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 운이 이루어지도록 공부시키려 했었다. 이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모든 일이 가능한 한 잘되어 나갔다. 이 장래의 주교는 학교도 잘 다녔고, 똑똑했으며, 신앙심도 깊었다. 그가 '매우 우수한'성적으로 고등학교로 떠나려는 그때, 콘스탄티노플에서 큰 신학교에 다닐 준비를 다 갖춘 그때, 바로 어느 맑은 날 저녁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그 앞에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의 이름이 키리아 코울라였다. 키는 작았고 가무잡잡한 피부에다 코르셋에 꽉 끼는 가슴과 입술 위와 코 양쪽에 아름다운 점 세 개를 가진 열 두 살 난 소녀였다. 미래의 주교는 정신을 잃었다. 아찔한 경련이 일어나 그는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무엇보다도 세 개의 아름다운 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에게 정해 놓은 하나님의 길에서 비뚤어지지 말라고 탄원하면서 불쌍한 아버지는 헛되이 눈물을 흘렀었다. 이 불운한 소년은 자신이 아내로 택할 여자는 다름아닌 바로 그녀이며 그녀와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 버리겠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습관이 붙어서 종종 혼자 중얼거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교구 관리가 되어 저는 그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관리는 되돌아나와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순례자들이 벌써 오솔길 위로 올라오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오늘이 마치 자신의 날이라도 되는 듯, 친구들이 만수무강을 빌면서 자기 집으로 오고 있는 것처럼 그는 거기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당나귀 울음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일어나 줄을 잡자 조그만 종이 잔치의 곡조로 울리기 시작했다. 맨 처음 나타난 사람은 노새 위에 앉아 있는 그리고리스 사제였다. 관리는 그가 내리는 데 도움이 되게 받침을 받쳐 그를 일현하려 달려갔다. "촛대들을 말끔히 청소했나? 먼지 털고 윤이 나게 문지르고?" 사제는 발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물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제님." 주교가 될 뻔한 그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모든 칭송을 자신이 혼자 받으려고 그는 기적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시한 대로 명사석에 접시들을 갖다 놓았겠지? 세 개라고 했지. 하나는 사제, 하나는 성자, 나머지는 양초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모두 잘 되어 있습니다. 사제님." 그는 순종하는 말투로 되풀이 했다. 이러는 동안 순례자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명사석 위에 옥수수 낱알 몇 개와 포도 한 송이를 올려놓고, 그리고 지갑을 꺼내 접시 위에 봉헌금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양초들을 갖고 와서는 무시무시한 예언자 앞에 얼굴을 푹 수그렸다. 그는 네 마리 자줏빛 말이 이끄는 화염 마차 안 절벽 끝에서 나타났다. 그가 입고 있는 의복도 자줏빛이었다. 그의 머리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산위로 치달으며 그 마차는 공중으로 나가 머물러 있었다. 둘 사이에 엎드려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수도자 하나가 떨면서 그를 응시했다. "태양이다!" 한 젊은 여인이 예언자를 우러르며 속삭였다. "태양이로구나. 오 내 사랑!" "성자 엘리야시다. 불손하게 굴지 마라. 착한 마리오리." 다른 사람이 말했다. "결국 다 마찬가지야."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다 집어치우고 무릎이나 꿇읍시다." 해는 기울어졌다. 별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빛은 쇠잔한 자신을 마지막으로 태우고 있었다. 빛은 물체 꼭대기 끝으로 가 버렸지만 밤은 지면에서 솟아올라 이 들 저 들 빛의 마지막 참호를 곧장 쫓으며 바로 산꼭대기의 선지자 엘리야의 작고 하얀 교회까지 덮었다. 마침내 더 이상 저항을 할 수 없게 되자 하늘 위로 뛰어오르더니 사라졌다. 이때, 사라키나의 피난민들이 이번에는 가엾게 누더기로 초췌한 볼들을 해가지고 이 잔치에 왔다. 포티스 사제가 수도자의 짧은 쇠막대를 손에 잡고 그들을 앞장섰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접시 위에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빈손으로 그저 성자에게로 다가가서는 엎드렸다. "예언자시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포티스 사제가 성자를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당신도 우리들처럼 가난하지 않았습니까. 누더기 옷을 입고 말이오. 당신은 가지신 것은 다만 타오르는 불꽃뿐이었습니다. 우리 사라키나 피난민들은 그 불꽃 조그만 불똥만 가졌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맞이해 기쁘오, 영혼의 벗이여!" 땅바닥에 절하고서는 밖으로 나가서 그들은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 뒤 바위 사이로 흩어졌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미켈리스가 수치심을 느끼며 말했다. "이들의 행낭은 모두 꽉 차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실 거야." 격렬한 포티스 사제가 되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는 용서치 않을지라도." 그는 아무 말이 없다가 불길로 눈길을 던졌다. 그날 아침 그는 의연금 가방이 텅 빈 채로 돌아왔었다. 격노하여 울통불통한 바위 위에서부터 추수한 들을 찬찬히 보고 있는 그는 정녕 화염 속에 걸터앉은 선지자 엘리야처럼 보였다. "이 땅이 그들 것이군."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그들은 이것으로 마음껏 즐기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마 우리 몫으로 천국을 우리가 갖도록 하셨을 거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순례자들은 그 작은 교회 주위에 다채로운 색깔의 융단을 깔고 음식이 가득 찬 가방을 열어서는 열심히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리병들을 뒤로 제켜 목구멍 속으로 그것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포도주가 콸콸 흘렀고 예언자의 근엄한 고상함도 깔깔대는 소리와 난잡한 소동으로 지워져 버렸다. 둥근 돌들 사이에 두서너 개 등잔이 켜져서는 홍조가 된 여인들의 얼굴, 소녀들의 반짝이는 목덜미와 숲 같은 수염 위로 빛을 던졌다. 교회 벽에 걸린 부리가 세 개인 커다란 칸델라가 파트리아케스의 거만한 얼굴과 삼중 턱을 드러내 보였고, 그의 가까이에는 두 갈래 턱수염이 오물거리기에 바쁜 입놀림을 따랐다. 이 마을의 두 거두인 족장과 사제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따금씩 불고기를 저미며 이 두 탐욕스러운 명사를 대접하는 마리오리의 가냘프고 재빠른 손이 불빛으로 드러났다. 그런 후 하나씩 등불이 꺼졌다. 어두운 그림자가 성스러운 바위 둘레로 한꺼번에 엄습해 와서는 순식간에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간드러진 소녀들의 웃음 소리만 들렸다. 이내 모든 것이 침묵으로 빠졌다. 전갈처럼 돌틈에서 사람들이 짝을 지어 그들 나름대로 불꽃의 예언자를 찬미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루가 지났다. 엘리야 선지자와도 같은 불의 마차 안으로 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일어나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펴고는 쿨럭쿨럭대며 눈을 비비면서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교회의 은빛나는 작은 종이 정신을 바짝 차린 음률로 즐거운 듯이 울렸다. 그 가느다란 소리는 물보라로 흩어지는 물처럼 산의 이곳저곳을 퉁기면서 평원으로 퍼져나갔다. 양치기 막대기를 짚고 마놀리오스가 조용히 웃으면서 돌 사이로 나타났다. 그는 자기 주위를 응시하고는 한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서서 그의 산 쪽 방향에서 애써 그를 찾고 있는 그의 동료들을 보았다. 반가운 듯이 그는 그들에게 가기 위해 순례자들에게로 발을 디뎌 올렸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그들을 자기 가슴에 껴안았다. 그들은 탄성을 발하였다. "우리는 자네를 밤새도록 기다렸네." 얀나코스가 말했다. "왜 오지 않았나?" "모두들 준비가 되어 있겠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그들 세 사람의 동료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라니, 무엇을?" 그들이 말했다. "영혼이 깨어날 준비 말이오." 마놀리오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등허리에 몇대 맞을, 그리고 소리쳐 울 준비..." "무슨 깊은 생각이라도?" 얀나코스가 그의 친구의 팔을 꽉 잡으며 물었다. "나는 죽든 살든 자네와 함께 하겠네!" "내 머리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소."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당신의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우리는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난 후 말했다. "나는 이 산의 성스러운 산정을 사랑하고." 그는 말했다. "또한 그의 산에서 큰 화엄에 휩싸여 땅을 박차고 일어나 떠나 버린 그 선지자도 사랑합니다. 모두들 깨끗하고 빛나는 눈빛을 하고서 그들의 옷중에서 가장 좋은 나들이 옷을 입은 그 마을 사람들까지도 그지없이 사랑스럽군요. 그들은 준비가 다 된 것 같군요. 몇 사람은 불 붙일 감을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불을 붙일 준비 말이다. 우리들도 준비가 되었겠지요?" 이때, 성전으로부터 우뢰 같은 그리소리스 사제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미사가 시작되고 있는 참이었다. 그들은 조용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협소한 교회당으로 들어갈 자리를 찾으며 서성거렸다. 좀 운이 괜찮은 사람들은 그래도 바위 위에 올라서서 건너다 볼 수 있었다. 성가의 은은한 멜로디가 문과 작은 창문을 통해서, 그리고 먼 태고의 인류들이 역시 하나님을 위하여 드렸던 구슬픈 찬미처럼 메아리가 되어 펴져 나갔다. 미사가 거행되었고, 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 얼굴이 퍽이나 창백한 교장 선생은 둥근 돌 위로 올라갔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선지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 전조도 없이 계속하고 갑자기 말을 뛰어넘어 선지자 엘리야를 아폴로에 비유하며 그리스 민족의 찬사를 했다. 그런 다음은 성현에게로, 끝으로 야만의 무지를 추방한 그리스인의 영원한 정신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교묘하게 터어키 점령지에로 말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러웠으나 갑자기 핏대를 세우며 흥분하더니 노골적으로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피가 끓어오르더니 모두들 감정을 넣어 씩씩하게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자유여, 나는 그대의 무서운 칼 끝으로써 그대를 아노라." 선지자 엘리야는 갑자기 차로우치 (풀이: 미려한 가죽구두)를 신고 카빈총을 멘 아마톨 산의 클레프트로 변했던 것이었다. 마놀리오스는 몸을 세 친구에게로 기울였다. "준비되었소?"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갑시다!" 그들은 마놀리오스가 무슨 의도를 지녔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영혼이 일어나서는 마음이 단단히 준비되고 있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교장 선생은 이윽고 연설을 마치고는 자신의 연설에 도취된 채 바위에서 내려왔다. 파트리아케스는 두 눈이 흠뻑 젖어 있었고 그리고리스 사제는 두 손을 들어 무리들을 위하여 축도했다. 그들이 하나님께 의무를 맹세한 이상은 그 축연 위로 자신들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마놀리오스가 앞으로 걸어나가서 사제에게 몸을 굽혀 손에 입을 맞추고는 말할 기회를 청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이 날을 위해 성일과 같이 거룩한 영혼을 예비하고 있었던 듯 마놀리오스를 보자 고운 머릿결 같은 이 젊은이가 종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았었구나 하고 벅찬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를 환영하는 기쁨에 찬 웅성거림이 모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에게 몸을 굽혔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그가 언짢다는 듯이 물었다. "자네가 말을 할 수 있겠어? 무슨 말을?" "그리스도에 대해서요."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리스도라고?" 사제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소관이 아닌가!" "그리스도께서는 제게 얘기하라고 하셨소." 마놀리오스가 반박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네가 할 말을 은연중에라도 말씀해 주셨던가?" 그리고리스 사제는 비꼬면서 말했다. "아니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시작할 때마다 말씀을 주실 거요." 마켈리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사제님." 그는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온 마을이 위험했을 때 마놀리오스가 나서서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말할 권리가 있어요." "그에게 허락하십시오. 사제님." 이번에는 파트리아케스가 거들었다. "그는 훌륭한 청년이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대어드는 거요." 사제가 쏘아붙였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얀나코스가 뛰어들었다. "당신의 성스러움이 그것을 알고 있소. 그를 깨우쳐 줄 것이오!" "그에게 말하게 하시오! 말하게 해요! " 코스탄디스가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용기를 얻었다. 푸줏간 주인인 디미트리가 일어났고 이발사 안도니스와 크리스토피스가 일어섰다. 그들은 손벽을 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에게 말하게 하시오. 말하게 하시라구!" 화가 치민 그리고리스 사제는 마음대로 하라는 시늉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요, 좋아." 그는 말했다. "조용히들 하시오!" 못마땅한 눈빛으로 쏘아붙이고는 그는 자신의 손을 마놀리오스 머리 위에 얹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밝히 인도하시기를!" 하고 사제는 말했다. "말하게나!" 그런 다음 그는 듣기 위해 팔짱을 꼈다. 마놀리오스는 한 발 앞으로 나서더니 군중들 가운데로 나가 섰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모든 남녀가 그를 빙 둘러 앉았다. 포티스 사제 역시 그 무리들 가까이로 나갔다. 그는 자기를 못 본 체하고 있는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다. 마놀리오스는 동쪽을 향해 몸을 돌려서 성호를 긋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나는 배우지도 못했으므로 좋은 말씀을 구사할 줄도 모르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며칠 전 내가 양우리 옆에 앉아 있었는데, 해가 진 후 한 시간 정도 됐을 겁니다. 주님께서 조용히 내 곁 벤치에 와 앉으셨습니다. 마치 이웃과도 같이 말입니다. 그분은 빈 자루를 가지고 오시더니만 한숨을 쉬시고는 그것을 땅에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발은 먼지투성이었습니다. 못이 박혔던 네 군데 상처가 선명히 드러나 보였습니다. 피를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가?" 그는 저에게 슬픈 어조로 말씀하시더군요. "오, 내 주여." 나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죽게 하시옵소서."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그대를 있었습니다. 저는 두려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나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주님, 피곤하십니까? 당신의 발은 먼지와 피로 얼룩져 있나이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나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서 왔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리코브리시 마을도 지나왔어. 사랑스러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더군. 의연금을 모으러 이 자루를 가지고 갔었는데, 보게나. 여기 그대로 가져왔어. 텅 빈 채로 말이야. 난 지금 몹시 피곤하다." 그리고 그분은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그분과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았지요. 갑자기 그의 언성이 무섭게 변하여 튀어나왔습니다. "왜 너는 여기 그대로 있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너는 왜 여기서 팔짱을 끼고 조용히 쉬고만 있느냐? 너는 먹고 마시며 편안히 내가 말한 글만 읽고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는 잠자리로 가서 잠을 청하지. 너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러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너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가? 일어나라!" 나는 일어나서 그분의 발 아래 엎드려 울며 외쳤습니다. "주여, 저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당신의 명령을 내려 주옵소서!" "너는 양치기 막대기를 잡고 가라. 가서는 사람들을 찾아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에게 말해라." "제가 가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주여!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도 없는 겁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무서워서 달아납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알수 없나이다.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세요!" "가서 그들에게 전하라. 나는 굶주려 있다. 그들의 문을 두드리며 자비를 베풀라고 하라! 신도들이여! 자비를 베풀라고 외치며 주님은 손을 내밀고 계시다고 전하라." "그리고리스 사제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를 옮겼다. 파트리아케스는 하품을 하며 그가 어떻게 가 버리지나 않을까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팠다. 라다스는 사제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거... 일이 좋지 않게 끝나겠군요." 그가 중얼거렸다.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해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감정에 이끌리어 가다가 그들은 점차 이상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맨발로 방황하면서 그들의 문을 두드리며 의연금을 구걸하는 주님을 보는 듯하였다. 한편 그들은 내면으로부터 주님께 외쳤다. "물러가게 하소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일전에 포티스 사제가 자루를 가지고 맨발로 되돌아왔을 때 그들이 그를 그렇게 쫓아 보냈었는데 마놀리오스의 말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마놀리오스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주위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한 사람씩 오랫동안 직시하여 보았는데 그러한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 듯하였으며, 씁쓸하고도 숭엄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한 나이든 여인이 성호를 그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녀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중얼거렸다. "저분이 정말 파트리아제스의 목동이며 만달레니아 할멈의 조카인 마놀리오스일까요? 어떻든 그럴 리가 없어. - 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 우리들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몸소 다시 이 땅에 오신 것일까? 이봐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조용히 하세요. 페르세폰 어멈. 잠자코 들어 봐요. 그가 다시 말하려 하잖아요." 마놀리오스는 좌우로 두 팔을 널따랗게 벌렸다. "형제들이여." 그는 외쳤다. "리코브리시 사람들이여! 여기 와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비천한 종인 내가 감히 어찌 부유한 사람들과 고매한 인격의 여러 선배님들에게 교훈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내 자신이 온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그 말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그는 여러분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외치고 있다고. '나는 굶주려 있다. 자비를, 신도들이여!'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입니다. 일전에 우리 마을 사람 한 분이 사라키나에 은거하고 있는 피난민들, 우리의 형제들을 보러 갔습니다. 그들은 굶주려 있었고, 입을 옷도, 잠 잘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갔었는데 그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형제들이여, 와서 내가 가진 것을 모두들 나눠 가지시오. 나는 돈을 원하지는 않소만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 빌려드리고 저 세상에 가서 되돌려 받고 싶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라다스 영감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이 막혀 왔다. 그는 눈짓으로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그의 말을 멈추게 하러 했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끼어들었다. 그는 소리쳤다. "그래서 자네 얘기는 우리가 정직하게 피땀을 흘려서 얻은 모든 것을 분배해야만 저 세상에서 차용증서의 내용을 되돌려 받게 된다는 건가? 돌았군! 뚱딴지 같은 소리 작작 하라구! 이봐, 젊은 친구, 내 자네한테 한 말씀 하겠는데 당황하지 말라구. 자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똑바로 이해하지 못하는군. 손 안에 있는 새 한 마리가 덤불 속에 있는 두 마리 새의 가치를 가지고 있단 말씀이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일세." "라다스 영감님. 그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십시오." 얀나코스가 끼어들었다. "그를 보내신 분이 누구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요. 그의 입을 빌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얀나코스, 자네가 왜 안달인가, 안달이?" 라다스 영감이 격분해서 소리쳤다. "걱정하지 말게, 기다리라고. 우리가 계산을 밝힐 테니까." 교장 선생이 부드러운 분위기로 가라앉히기를 바라는 듯 약간 말참견을 했다. "자네의 말은 아주 좋고 훌륭해. 마놀리오스. 그러나 이것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허공의 궁전들이니 하는 것 말이야. 가엾은 친구.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거든. 우리를 헤아려 보려면 인간의 자로 해야 할 걸세." "그것이 내가 지금 취하고 있는 자요."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내가 판단하고 있는 자도 그것에 의한 겁니다. 오늘 이 잔치에 애써 오신 분 중에 누가 기독교인입니까? 모든 기독교인들은 내세를 믿습니다. 천국을 믿는다는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땅 위, 이 세상에서 하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늘나라에서 재어질 것입니다. 나쁜행위에 대해서는 벌이 내려지고 선한 행동은 보상받을 것입니다. 이 무상한 생활속에서도 형제 동포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보상으로써 영원한 생을 가질 겁니다. 그런 만큼 라다스 노인, 덤불 속에 있는 두 마리의 새가 손 안에 있는 한 마리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자네 제법 재치있군." 새의 밥이 된 늙은이가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몇 명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외쳤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어라 말했소, 마놀리오스? 쉽게 말해 봐요. 그래야 우리가 그것이 가능한지 어떤지를 알고 이해할 수 있잖겠어요?" "나에게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라고 말하지 말게나!" 늙었지마는 원기 왕성한 노인이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말일세." "추수 때입니다, 형제들이여."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일 년을 잘 보냈습니다. 이삼 일 동안에 포도 수확도 끝날 겁니다. 이제 곧 우리는 올리브 열매를 따기 시작해야 합니다. 자, 내 마음을 쥐어뜯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리코브리시의 주민들이여, 바로 여기 우리 땅에, 핍박받은 형제들이 도착해있습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슬픔에 겨워 죽을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장부를 펼치고 리코브리시 사람들을 눈여겨 보고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이름과 날짜와 얼마나 많이 가지고서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었는지를 적고 계십니다. 그는 기록하고 계십니다. 미카엘의 아들 아나스타시오스 라다스는 어느 날짜에 얼마만큼 봉사하였다, 그는 최후의 심판 날에 그만한 이자와 더불어 돌려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이오." 다시금 라다스 영감이 비양거리면서 쏘아보았다. "거기에 집착한다면 아무것도 못하지!" 그는 고함을 질렀다. "그러므로," 마놀리오스는 계속했다. "교장 선생님, 여기 당신이 요구한 인간의 척도가 있습니다. 각자의 추수가 끝난 다음 모든 소유자들은 그것의 십분지 일을 떼어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듯 하나님께 빌려드려야 합니다. 사라키나의 형제들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일이 년 동안만 그들을 우리가 도와 줍시다. 또한 이럴 수도 있겠지요. 우리들 중 몇 사람은 놀고 있는 들판과 씨 뿌릴 겨를이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둔 황야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이것들도 그들에게 주어 씨를 뿌리고 쟁기질하게 하여 절반씩 나누어 먹도록 합시다. 마을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입니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라키나의 어린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서 자기만 충분히 먹는 것은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에 매달려서는 우리를 지옥까지 끌고 갈 것입니다. 여기 리코브리시 마을에 그러한 무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라키나에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은 2천 구의 시체로 변하여 우리들의 목에 목걸이처럼 매달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바로 이 시체 목걸이를 걸고 서게 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온몸을 떨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목에 갖다 대면서 만져 보았다. 용기 있는 자들은 눈을 들어 공중에다 2천 명의 리코브리시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 최후의 심판대에 다가가면서 모든 사람들은 로자리오처럼 열 개, 혹은 스무 개, 서른 개의 시체를 자신들의 목에 걸고, 그들을 호송하는 천사들은 악취 때문에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이발사 안도니스가 단지 두세 그루의 포도나무와 손바닥만한 밭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소리쳤다. "옳습니다! 마놀리오스, 당신도 역시 장부를 갖고 적으시오. '나, 안도니스 우니디스, 트라시볼로스의 아들, 리코브리시의 이발사는 수확의 십분의 일을 사라키나의 형제들에게 줄 것을 약속한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 빌려 드린다. ' 이렇게 적으시오, 마놀리오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도 적으실 겁니다. 나는 믿습니다!" 적지 않은 함성이 터져 나오면서 손들을 들었다. "나도 내겠소! 나도 말이오. 적으시오, 마놀리오스!" 많은 무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다른 자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서 마놀리오스를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흘겨보았다. 파트리아케스는 슬며시 꽁무니를 빼더니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교회당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방을 열더니 지난밤부터 남겨 놓았다가 구운 살찐 돼지고기를 레몬 잎사귀에 얹기 시작했다. "그놈은 싹수가 노랗다구. 불쌍한 마놀리오스." 그는 우적우적 소리를 내어 그것을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머지 않아 그들은 그를 썩은 토마토 따위로 박대하면서 내쫓을걸." 순간 그리고리스 사제는 화가 나서 눈썹을 아래위로 치뜨고 내리깔고 하더니 손을 들었다. 혹 누군가가 그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스치기라도 했다면 불똥이 튀었으리라. "보시오들, 리코브리시의 후예들이여." 그가 외쳤다. "내 말을 들으시오. 이 유혹의 덫에 빠지지 마시오. 조심들 하시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은 네 개의 기둥에 떠 받혀 있습니다. l믿음과, 나라와, 영광, 그리고 네 번째로 큰 기둥은 재산입니다. 그것에 손을 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법률에 따라서 재산을 분배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정의는 별개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도 만드시고 가난한 자도 만드십니다. 감히 명령을 방해하는 그가 불쌍할 뿐이오. 그는 하나님의 의지를 거역하고 있소! 건방진 놈의 마놀리오스! 나는 네놈에게 말할 기회를 준 것을 후회한다. 거기서 내려와! 가서 네 양떼들이나 돌보라고. 그곳이 하나님께서 네놈에게 허락한 과분한 직책이니 높이 올라가려고 하지 말란 말이다. 일개 목동 녀석이 분수 넘게 놀지 말란 말이다. 네놈이 한 모든 말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소리야. 결정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범사는 그분의 뜻에 따라 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구." 그는 스스로 도취되기 시작했다. 머리를 숙인 채 지금까지의 모든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포티스 사제에게로 휙 몸을 돌렸다. "포티스 사제." 그는 소리쳤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지금까지 잘 지냈소. 질서와 화합을 이루어 왔었소. 그런데, 당신이 당신의 무리를 이끌고 온 이후, 우리의 평화는 끝나 버렸소. 지금에 와서는 불만과 풍문, 그리고 좀도둑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소. 가난한 자들은 대담해지고 간덩이들이 굵어져서 부자들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소. 그러나 걱정 마시오. 아그하가 돌아오면 마을 원로회의를 열어서 당신들을 내어쫓도록 하겠소. 그러면 우리는 다시 평화를 찾게 되겠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다른 데로 가시오,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가야만 하오. 내 할 말은 다 했소." 포티스 사제는 조용히 머리를 들었다. "사제여."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이 옳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마놀리오스가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라셨습니다. 몇몇 리코브리시 사람들은 우리의 고통을 듣고 가슴이 아팠으며 또 어떤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했소. 또 다른 사람들은 마음의 창고를 열었습니다. 이것도 다 하나님의 원하심 때문이오. 당신이 거룩하게 말한 대로 우리가 당신의 평화로운 마을에 고난을 가져왔다면 그 일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이오. 흐르지 않고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폭풍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어 이 물을 다시 생기 있게 만들고 영혼도 되살아나게 하도록 해주소서! " 그는 리코브리시 사람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형제들이여, 우리도 한때, 우리의 재산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걸하는 형편이 되었소. 나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가 빈손으로 형제들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게 내버려두시오! 늙은이들을, 그들은 많은 세월을 살았소. 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도 죽게 내버려두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생명들에게는 유감입니다. 매일 한두 명씩 굶어 죽고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아이들은 자기 발로 스스로 일어설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빵 껍질 한 개와 한 방울의 기름, 그리고 입을 누더기 한 벌입니다. 만약 그들이 당신네들이 개에게 던지거나 먹다가 쓰레게통에 버린 과자 부스러기를 그 어린것들이 먹는다면 그들은 살아날 것입니다. 내가 구걸하는 것은 바로 이 어린것들을 위해 섭니다. 내가 손을 내밀며 '자비를 베푸소서, 형제들이여!'하고 외치는 것도 그들을 위해 섭니다." 포티스 사제는 머리를 다시 숙이고는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밀랍같이 노래지고 두 눈은 퀭하니 크게 되어 있었으며 가슴 위에 포개 얹은 두 손이 두드러져 보였다. 게다가 뼈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살갗 아래서 앙상한 모양이었다. 이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리오리는 애써 감추려 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결혼한 젊은 여인 하나가 마치 자신이 훔치기나 한 듯이 부끄러워하며 목걸이를 끌렀다. 푸줏간 주인인 거대한 디미트리의 가슴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살찐 송아지가 한 마리 있소" 그가 말했다. "다음 주 일요일 마을을 위해 이것을 잡을 계획이었는데 지금 내가 가서 사라키나에서 분배하겠소. 당신이 옳습니다, 마놀리오스. 우리 동포들이 굶어 죽고 있는 동안 우린 먹고 있었다니 부끄럽소." 이발사 안도니스도 열이 올랐다. "나는 토요일 저녁에 사라티나로 가서 공짜로 그들을 면도해 주겠어요. 충치도 무료로 빼 드리고요!" 이번에는 넋을 잃은 교장 선생이 두려움을 잊은 채 분연히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위한 알파벳과 책들을 가지고 있소. 또한 석판 몇 개와 연필, 그리스 지도도 하나 있소. 사라키나의 공동체를 위해 이것들을 내놓겠소." "빌어먹을 놈들!" 라다스 영감이 격노하여 투덜댔다. 그리고시스 사제는 그의 아우에게 매서운 눈길을 던졌으나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마놀리오스는 포티스 사제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사제님, 보세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아직 살아 계시어 이 땅위를 걷고 계시니 이처럼 마음들이 열려서 그분을 환영하는군요. 용기를 내십시오!" 세 친구들이 그들 가까이 갔으며 푸줏간 디미트리와 이발사 안도니스도 겁먹은 듯이 그 뒤를 따랐다. 다른 마을 사람들이 주저하며 뒤를 따랐다. 마침내 교장 선생도 겁먹은 듯하다가 애써 결심하는 결의를 보였다. 포티스 사제가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는 성호를 그었다. "갑시다, 사랑스러운 형제들이여." 그가 말했다. "우리도 우리의 작은 예배당이 있습니다. 오래된 동굴이 있는데 그곳은 이미 교회로 개조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오늘은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크게 움직인 날입니다." 그는 무거운 가방을 열고서 흩어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여러분들, 건강하기시를! 리코브리시 사람들이여, 건강하세요! 당신도 축복 받으시기를, 그리고리스 사제여!" "저주받아라. 이 반역자들!" 잘 차려입은 사제가 울부짖었다. "당신 따라가는 자들, 모두 저주받았네, 죄인 놈들!" "염소로부터 양을 갈라 옳은 하나님께서." 포티스 사제가 담담히 반박했다. "그분께서 판단하실 것이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뿐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말라빠진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12. 사제의 저주 포티스 사제와 네 명의 친구들은 피난처의 예배당 앞의 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고대 기독교도들이 이방신 숭배자들로부터 쫓겨 은신처로 삼았던 동굴을 예배처소로 개조한 것이었다. 산 속은 박하와 백리향 냄새로 그윽했다. 밤은 더욱 깊어 반쯤 투명한 푸른빛이 흐르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들은 밤새들이 벌레나 새앙쥐나 달팽이 따위를 사냥하면서 찍찍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별들이 너무 낮게 떠서 그들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다섯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은 무아지경 속에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날 저녁 그들은 마치 여러 곳으로부터 추방되어 동굴 앞에 몰려와 어떤 음모를 꾸미기라도 하는 듯이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의 음모란 무엇인가? 자신들도 알 수 없었다. 이 단순한 다섯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들이 무엇을 뒤집어엎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을 에워싼 주위의 공기는 힘이 있었고 불이 붙는 듯했다. 그들 모두 자신들 가운데 눈에 띄지 않는 최고 위엄의 존재를 느꼈다. "좋은 밤이군. 오늘 밤따라." 얀나코스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과감히 말했다. 그들은 저마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도 떨었다. 영혼들은 위축되어 각기 원래 있었던 가슴속으로 들어가고 그 마력은 깨지기 시작했다. 애써 대담성을 과시하면서 코스탄디스가 이야기했다. "사제님, 마을 원로회의에서 우리들을 소집하여, 내년 부활제 때 교회의 현관 밑에서 그 신비의 연극을 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각자 배역을 정해 준지도 벌써 넉 달이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을 매일 걱정거리들 때문에 그 일은 등한히 여겼고 어쩌면 그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정신차릴 때가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만 하지요? 당신은 성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아실 겁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포티스 사제는 미소를 지었다. "코스탄디스, 자네는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지? 그곳에서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게. 그 외엔 아무것도 없소. 그대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상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과정을 바로 택해야 하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사제님." 마놀리오스가 겸손하게 반문하였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미켈리스도 탄식하며 말했다. "미켈리스, 자네는 그 바구니에 가득했던 구제의 물품을 잊고 있군 그래." 사제가 젊은 귀족의 손을 다정스럽게 꽉 잡으며 대답했다. "얀나코스, 자넨 바로 얼마 전에 가난한 자들을 한데 불러 놓고는 기꺼운 마음으로 자네의 물품들을 나눠 가지라고 했다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는가? 그리고 코스탄디스, 이 순박한 친구, 어제까지만 해도 천한 카페의 주인이었지만 불의에 항거해 일어나 당신의 일을 떠나지 않았는가? 또한 마놀리오스는 마을 사람들의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파나요타로스 조차도. 가엾은 친구 - 유다의 그 끔찍한 역할을 준비하는 것 외에 그밖에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대들도 자신들을 준비하고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일세. 그것이 순수하고 올바른 길일세." 한참 동안 긴 침묵이 흘렀다. 마놀리오스는 중천에 높이 떠서 미소를 머금은 채 춤추고 있는 듯한 별 하나를 응시하며 한숨지었다. 이 목자는 그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양치는 소년이었을 때, 그 별이 새벽별임을 확신시키며 그 얼마나 자주 그에게 윙크를 보냈던가. 그는 그토록 많은 날의 이른 새벽이면 풀을 뜯도록 양떼들을 몰고 들판을 헤맸던 것이다! 코스탄디스는 머리를 숙였다. 커다란 슬픔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혀 아무것도. 그는 끝내 괴로움에 휩싸였다. 유다조차도 그보다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얀나코스가 그의 옆에서 한풀 머리를 꺾고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게 없다, 사고 그는 혼자 뇌까렸다. 돈을 주고 물건들을 선물로 준다는 것 -.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스러운 유소우와키를 준다는 것. 그것이 희생일까? 얀나코스, 나는 그대를 기대하고 있다! 넌 그것을 할 수 있을까? 그 모든 나머지는 허세란 말이다! 다시 한번 포티스 사제의 머릿속은 먼데로 나래를 폈다. 정겨운 고향집에서부터 사라키라고 불리우는 고독한 산으로 오기까지의 먼 여정을 그려보았다. 밤이었으므로 그는 희미한 별빛으로써 바위를 뒷배경으로 하고 있는 네 개의 사랑하는 얼굴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숙하면서도 애정이 담겨 있었다.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여, 때때로 나에게는 사람의 영혼이란 불꽃처럼 생각된 다오. 진종일 닫힌 채로 있다가 다만 밤이라는 은신처가 있어야 꽃잎을 열어 펼치는 것이라오. 오늘 저녁도, 어둠 속에서 당신들을 보는 것 이상으로 추측하면서 나는 내 영혼이 전개되는 것을 느꼈소. 어느 날인가 마놀리오스가 사는 산에서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얘기를 당신들에게 들려주기로 약속하였소. 그대들은 기억나오? 오늘 저녁 나는, 당신들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당신들이 입맞추는 것을 보고는 부끄러웠소." "우리의 영혼들이, 오늘 저녁 비로소 열리고 있습니다, 신부님." 마놀리오스가 감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포티스 사제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이야기꾼들이 하는 듯이. "마르모라 바다 가까이, 콘스탄티노플 맞은 편에, 해변을 따라 화려하게 잘 가꾼 정원을 가진 조그만 마을이 있었지. 꽃을 아르타키라 부르오. 그곳이 내가 태어난 곳이오. 나의 아버지는 사제였는데 엄격하고 말이 없으며, 사나운 사람으로 얼굴은 마치 옛날 교회 벽에 걸려있는 금욕주의자들 같았소. 나의 조부 역시 사제였다오. 그 두 분은 나까지도 사제가 되기를 원하셨소. 난 그것이 싫었소. 내 꿈은 단지 여행과 장사를 하며 금괴들을 모아 장총들을 사고 사람들을 무장시켜 터키로부터 아츠타키를 해방시키는 것이었소. 나는 반역자로 태어났소. 그대들도 알겠지만 내 머릿속은 새어나오는 정보들로 가득 찼었지. 나의 전 생애에 있어서 아버지만 제외해 놓고 난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소. 나는 아버지가 두려웠소. 만약 내가 정규적으로 학교를 쭉 다녀서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였을 거요. 학교를 마치자 거룩하신 나의 어머니 -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 는 가방을 꾸려 주었지. 그녀는 가방 안에 셔츠랑 세례 받는 그리스도의 그림과 비스킷, 호두와 건포도 그리고 참깨를 뿌린 무화과를 넣어 주었지. 나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커다란 신학교로 보내졌던 것이오. 그러나 가련스럽게도 나는 인내력이 부족했고 내 스스로 신학을 할 만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소. 이를테면 난 구제불능의 탕아였지. 무엇에 사로잡힌 것처럼 콘스탄티노플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콘스탄티노플을 누볐소.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소. 터어키로부터 이 땅과 신성한 바다를 해방시키는 것이오. 그러던 어느 날 진저리나는 '97전쟁 (풀이: 그리스가 터키의 지배를 거부하면서 항거한 1897년의 독립전쟁)이 터졌지. 나의 머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서 나를 울부짖게 하였소. 터키를 지옥으로 몰아낼 순간이 왔구나. 나는 용케 몰래 배를 탈 수 있었지. 나는 그리스 해안에 내렸는데 술주정꾼 같은 옷을 걸치고 장총으로 무장을 하고 탄띠를 매고 차로우치(풀이: 그리스인의 고유한 신발류)를 신고서 터키인과 싸우기 시작했소!" 포티스 사제는 한숨을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혹독하고 신랄해졌다. "아! 우리는 그 제국을 무너뜨리려고 작당한 일곱 명의 염소 도둑놈들이었소! 여보게나, 그러한 행위는 저주를 받았지, 저주를. 그것이 우리 종족 파멸의 화근이었어." 그는 다시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서 마치 온 국민의 수치를 그의 뒤로 밀쳐 버리듯이 손을 내저은 다음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자신의 모험을 위해서였소. 그리스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모험을 무릅쓸 이유가 있소. 이 나라는 상처를 복구할 만한 필요한 시간을 앞에 두고 있소. 그러나 내가, 내가 바로 불쌍한 하루살이가 될 수 있겠소? 그래서, 긴 얘기를 간단히 줄이자면 차로우치는 입을 떡 벌리고 창자는 굶주려 구멍 뚫린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며 나는 아르타키로 나를 보내 줄 배를 찾으며 피라우스의 선창가를 배회했지. 그러던 어느 날 몇 명의 유태인 피난민들이 범선으로부터 상륙하는 것을 보았소. 사제의 아들이자 손자인 내가 유태인을 보자 그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장본인임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었소. 그래서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르더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는 방파제에 남아서 그들 유태인을 즐겨 지켜보았소. 매부리 코에 숱이 적은 턱수염, 깊이 파고드는 듯 불타는 눈, 유행이지만 낡아빠진 푸른 외투를 걸친 그들, 그들은 일시에 저마다 소리를 계속 지르며 서로 먼저 내리려고 밀고 팔꿈치로 밀치고 했지. 그런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왔어. 어린 유태인 소녀 하나가 바다에 떨어져 돌처럼 가라앉았던 거였소. 하지만 소녀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지. 나는 생각했소. 그녀도 인간이다. 비록 유태인이지만 그녀 역시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옷을 입은 그대로 물 속에 뛰어들어가 그녀의 머리를 붙들고 선창가로 끌어올렸소. 곧장 한 여인네가 도우려고 달려와서는 그녀를 담으며 자기 등에 업으려 했었소. 나는 햇볕에 몸을 말리면서 눈을 그녀 쪽으로 돌렸소. 그녀의 머리칼은 붉은 색이었고 굉장한 매부리코에 주근깨가 있는 피부를 갖고 있었지.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생명의 은인이 나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커다란 청록색의 눈은 뜨고 나를 쳐다보았소.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공포심이 나를 사로잡았죠.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청록색 바다'눈동자'에 떨어져 빠져들었소." 사제는 말을 중단했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세상은 불가사의 한 것이라오." 그는 잠시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나님의 의지의 역사는 인간의 좁은 머리로는 복잡한 것같이 보이는 것이지. 구제나 파멸은 기대하지 않은 길로 다가오기에 우리는 결코 지옥에 이르는 길인지 천국에 이르는 길인지 알 수가 없소. 나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나는 똑바로 지옥에 이르는 길 위에 서게되었지. 그때부터 나는 결코 여자로 내 몸을 더럽히지 않았어. 그대들은 나보다 더 젊어요. 나는 당신들 앞에 창피한 죄를 이야기하기가 부끄럽소. 나는 이것만을 고백하오. 나는 그 어린 소녀와 죄를 범했소. 그때 이후로 모든 맛이 달라지더군. 물맛, 포도주, 빵, 낮과 밤이 새로운 맛을 띠었소. 하나님은 사라졌소. 하나님과 더불어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미덕과 희망도 다 사라졌소. 마을 사람 하나가 내가 빠져 있는 상태를 보고서는 가서 아버지께 말했다오. 그래서 그 늙은 사제는 화난 표시로 네 귀퉁이가 태워진 편지 한 통을 내게 보냈더군. '네가 그 계집애와 어울려 죄를 짓는다면 내 저주를 내릴 것이며 너는 내 목전에 결코 보이지 말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편지를 읽고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지. '어느 날엔가 - 내가 그대들에게 이야기했을 거요 - 우리는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의 친구가 있었던 조그만 마을에 갔었지. 그 유태인 소녀는 나와 함께 있었소. 우리는 정원 한가운데서 먹고 마셨지. 내가 양을 자르는 칼을 잡고는 농쪼로 외쳤지. '내 앞에 사제 한 놈이 있다면 나는 그자의 목을 베겠어! ' '당신 뒤에 한 사람이 있소.' 가까운 곳에서 어느 한 사람이 소리쳤소. 나는 돌아서서 그 사제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베었소. 왜냐구? 유태인 소녀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에 내가 흰소리만 하는 허풍선이로 보이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었지. 나는 투옥되었소. 그 유태인 소녀는 매일같이 나를 보러 왔고 셔츠를 빨아 주었으며 먹을 것과 담배도 가져왔지. 그녀는 창살을 통해 내 얼굴과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흐느꼈어. 그녀는 점점 마르고 수척해 갔소.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나타나지 않더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말일세. 그때 나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를 보았던 거요. 그녀는 아주 멀리서 조그맣게 보이더니 점점 더 다가옴에 따라 커져 가는 것 같았소.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며 무엇인가 중얼거렸지만 그녀는 아직도 아주 멀리 있었소. 그래서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더 높아 갔으며 마리아의 모습도 여전히 커져 갔소. 마침내 그녀는 내 앞에 서 있었으며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 '그녀는 죽어 가고 있다. 죽어 가고 있어. 그녀는 죽어 가고... , 그녀는 죽는다! ' 나는 흠칫 놀라 벌떡 일어났지, 나는 깨달았소. 죽음의 밤이었소. 비가 오고 있었지. 나는 겨우 빠져 나와 감옥 뜰로 갔어요. 나는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소. 인간의 힘의 한계란 것이 나에게는 없었어요. 나는 단번에 감옥 담을 뛰어 넘어가 나를 보고 총을 쏘았다 하더라도 맞지 않았을 거요. 사랑과 슬픔으로 말미암아 나는 정신이 돌아 버렸지. 며칠 전에 나는 그 땅의 형세를 기억해 두었고 나처럼 미친 사람이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오르려고 하는 벽 부분도 점찍어 놓았소. 나는 어둠 속에서 이 작은 벽부분을 찾아내고서는 돌들을 움켜잡고 마치 들고양이처럼 올라가기 시작했어. 대낮의 밝음 속에서였다면 두려웠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계속 강행했소. 사람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겨우 다 올라가 벽 다른 쪽으로 뛰어 내려갔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군. 거기서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나는 필사의 각오로 달아났지. 내가 그녀의 집에 다다랐을 때 날이 새고 있었소. 문을 두드렸지만 그 폭우 가운데 어느 누가들을 수 있었겠어? 나는 담을 뛰어넘어 뜰을 가로질러서는 슬그머니 위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방문을 열었소. 그녀를 나직이 불렀지.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나는 성냥을 그었어. 그 유태인 소녀는 뒤틀린 입과 크게 떠져 있는 두 눈,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 놓고서 창백한 모습으로 침대에 쭉 뻗어 있었소. 그녀는 바로 그 밤에 독약을 먹었던 거였소. 떨어져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없어서 그녀는 자살을 했던 것이오." 포티스 사제는 일어서서 그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그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는데 아주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이 세상 끝에서 온 것처럼 지쳐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는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은요, 사제님?" 네 친구가 숨을 죽이고 물었다. "끝났소." 사제가 대답했다. "당신은 어떻게 됐나요?"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은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나요?" "사람의 영혼이란 불가사의 한 것이지! 사랑이 나를 하나님에게서 갈라놓았었지만 감사하게도 슬픔이 나를 그에게로 되돌려 놓았소. 나는 아토스 산으로 갔었지. 처음에는 고독이 내게는 오히려 좋았지. 내 영혼은 다소 안정되었소. 그러나 점차적으로 고독은 다시금 환희와 흐느낌인 유태인 소녀로 가득 차게 되었소.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수도원장에게로 가서는 마음을 바꾸고 세상에 다시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는 축복을 내려 주었고 나는 그곳을 떠났지. 나는 한참 동안 걸었소. 어느 작은 마을에 이르렀소. 어떤 계시의 목소리가 내 마음속으로부터 울렸다오. '여기서 머물러라!' 그래서 나는 머물렀고 결혼을 했으며 사제로 임명되었지. 나는 지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이세상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내던질 결심을 했었고, 또한 그렇게 했어요. 병마가 찾아와 아내와 자식들을 앗아갔지. 또다시 나는 혼자가 되어 상처를 받은 채 주님을 행하여 더 가까이 서게 되었소. 그때, 그리스 사람들이 왔으며 그 다음은 터키인들이 왔지. 그 뒤의 이야긴 그대들이 알고 있소. 하나님께서는 내게 준 모든 악과 선을 위해 찬미받으실지어다!" 네 사람의 친구는 머리를 숙여 그 희생된 손에 입을 맞추었다. "피곤하오." 포커스 사제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피곤하오. 나는 내 삶을 새롭게 살고 있습니다. 이 대지의 감미로움이 얼마만한 형벌이며 황량함이며 괴로움인가! 나는 때때로 혼자 중얼거리오. '오 하나님, 만일 천국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없다면 이 삶은 얼마나 지옥 같겠습니까!" 그들 중 아무도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었다. 포티스 사제가 일어나 동쪽을 바라보며 십자를 그었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날 밤이 새도록 파트리아케스는 침대에 앉아서 앞문 소리와 뜰을 밟으며 오는 아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분명히 소리가 나는 듯하여 행길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창문을 열어 젖히며 상체를 굽히곤 하였다. 아무도 아니군! 그는 담배를 꼰아 물었다. 그리고는 또 피워 물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침대에 가서 몸을 쓰러뜨렸다. 동틀 무렵이 되자 졸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매 한 마리가 느닷없이 뜰로 날아들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씨받이용 흰 수탉을 낚아채는 것을 보았다. 매는 그놈을 발톱으로 낚아채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는 동안 수탉은 마치 날이 밝듯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두려움에 벌떡 일어났다. 등으로부터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 악마의 전조를 피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손뼉을 쳐서 레니오를 불렀다. 그녀는 선잠을 깬 얼굴로 나타났다. 눈은 뜬 상태였지만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매무새가 허술한 상태였다. 그녀의 젖가슴은 그녀의 흰 슬립에서 튀어나오려는 듯이 출렁거렸다. "이리 와, 레니오. 미켈리스는 돌아왔나? 도대체 밤새 어디 있었지? 어디서 밤을 샜느냐 말이야?" "그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내가 그의 방을 지나쳐 오면서 들여다 보았는데요, 인기척이 없었어요. 그의 침대에는 아무도 자지 않더군요." 한참만에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빙그레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그 과부는 죽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밖에서 잠자는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그가 돌아오면 곧 내가 보잔다고 일러라. 거기 서 있으라구! 잔치 동안 어제 넌 무얼 했지? 내 눈엔 안 띄던데!" 래니오는 얼굴을 붉히고 킥킥거렸으나 대답을 안했다. "네 이년, 뻔뻔스러운 년! 이삼일 동안 네 몸하나 붙잡아 놓을 수도 없어? 우리는 네가 다음 일요일에 결혼하게끔 결정했으니 그것을 견뎌내야만 해. 그 길만이 네가 평안해지는 것이야, 이 가엾은 것아! 니콜리오는 그렇지 않을 거야. 더 이상... 내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겠느냐? 내 눈은 멀리 다른 데 있구나. 네 정신이 방황하러 가는 곳이 도대체 어디야. 이거 뒤죽박죽이로군?" 레니오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마치 어떤 사람을 사랑스럽게 매만지는 듯했다. "산에 가 있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사실상 그녀의 생각은 산 위에 가 있었다. 큰 너도밤나무 아래에 니콜리오는 어제 그녀가 땀에 흠뻑 젖어 두 빰이 벌개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뒤돌아 서서 보았을 때 수양처럼 우는 소리를 냈다. 그는 아무 말없이 수양처럼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는 땅위로 쓰러뜨렸다. 길잡이양인 다소스가 냄새로 그녀인 줄 알고는 올라 왔다. 그는 주인처럼 소릴 내더니 그들 가까이 와서 자기 몸을 핥았다. 갑자기, 레니오는 늙은 주인의 거친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냐? 정말 복도 많은 년이군. 내가 네게 말하고 있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정신은 콩밭에 가 있다니?" "분부를 하세요." 레니오의 정신은 산에서 돌아와 다소곳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듣질 못했어요." "좀 달게 해서 진한 커피 한 잔 가져오라고 내가 말했잖아. 머리가 빙빙 돌고 몸이 좋지 않아. 아마도 배가 고픈 것 같애. 레니오는 이미 문 밖으로 나가 달각달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노인은 눈을 감고 다시금 꿈을 불러들였다. "매라... 그게 무슨 의밀까?" 그는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데. 하나님, 내 집을 보호하소서!" 태양은 이미 높이 떠 있었다. 마을 골목들은 사람 소리로 가득했다. 재잘거리는 소리들, 당나귀 울음소리들. 사람과 짐승들이 일하려고 나와서는 이 새로운 날에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레니오가 설탕을 많이 탄 커피를 가져왔다. 그 늙은 족장은 창문 가까이에 앉아 그 마법의 음료를 한 방울씩 음미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한결 맑아져 갔다. 그는 눈을 앞문에다 고정시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매번 콧수염을 비틀고는 측은한 듯 신음거렸다. 어제 저녁, 그가 살찐 돼지를 뜯고 있을 때 그리고리스 사제가 찾아 왔었다. 그는 마놀리오스가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의 수입의 십분지 하나를 사라키나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라고 명하셨다고 선언하면서 농부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더욱 나쁜 것은 몇몇 열이 오른 놈들이 그를 믿었다는 것이었다. 그 여우같은 포티스 사제놈, 금욕주의자인 체하는 비열한 그놈도 가입해서 엉뚱한 의견을 폈다는 것이었다. "헌데, 놀랍게도, 더욱이 좋지 않은 것은 당신 아들 미켈리스 말이오. 그가 마을을 위협하는 그들 편을 들어 작당한 맨 첫 사람이었다는군요! 그렇게 되면 우리도 이 자리에서 꼼짝없이 그 젖비린내 나는 저주받을 마놀리오스놈의 반란에 가담하는 격이 됩니다. 내 말 알아듣겠소, 족장? 제발 하나님, 이 일을 다스려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틀렸습니다!" "이 보시오, 만약 내가 그것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하고 족장은 중얼거렸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세세히 개입하지 않으실 거야. 게다가 그분은 한사람 한 사람씩 돌볼 시간이 있을까? 나는 이곳 리코브리시 마을에서 모든 것을 잘 처리하려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아들녀석의 귀를 뒤틀어 놓으려고 기다리고 있지. 나중에는 그 우둔한 마놀리오스놈이 돌아올 거요." 바로 이때 바깥문이 열리더니 미켈리스가 몰래 들어왔다. 노인은 벌떡 뛰더니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네 놈을 행복하게 일깨워 주지. 멋쟁이 젊은이." 그가 외쳐 댔다. "올라오는 게 좋겠어. 우리도 네놈을 좀 보자꾸나!" 미켈리스는 조심스럽게 혀를 놀리며 혼자 자신에게 뇌까렸다. 그는 너의 아버지다. 잊지 말아라.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는 대답했다. 그는 돌계단을 오르면서 자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 노인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그는 화를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때까지 그는 자기 아들에게 욕설만 퍼부었었다. 그러나 마치 자신이 그 나이 때에 여자에게 빠졌다가는 돌아와 아버지의 집인 이 집안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아들이 들어오는 것을 격분하면서 보니까 그 노인은 자신의 가슴이 그 안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나와 똑같군,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야생 너도밤나무 씨를 뿌리고 있느라고 밤을 보냈었는데, 그는 미친 녀석들과 선한 하나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았단 말이야. 맹세코, 그 누가 알아, 그것도 역시 야생 너도밤나무의 일종인지. 그는 젊었어. 그것을 극복할 거야. 자기 아들에게로 생각이 다시 미치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자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는 울화통을 터뜨리지 않았던 것이 억울해서 외쳐 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냐, 응? 너는 부끄럽지도 않아? 네 채신을 그렇게도 돌아볼 줄 모르냐? 내가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손잔지 잊어버렸냐?" 그는 자신이 말하면서 열을 올렸다는 것을 알고는 흐뭇해했다. 그는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네가 마놀리오스를 더 이상 만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미켈리스는 주저했다. 그는 너의 아버지다. 그는 참으며 속으로 말했다. 강한 자란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을 조종할 줄 안다. 너를 억제하라!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거지? 밤새도록 어디를 건들거리며 돌아다녔냐구? 사라키나 산인가? 너의 그 누더기 사제와 종놈인 그 반역자 마놀리오스와 함께 있었지? 꼴 좋은 짝이로군! 이 불쌍한 자식아, 그놈들에게 빠졌니?" "아버지." 미켈리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늙은 족장이 화를 내면서 펄펄 뛰었다. "네놈이 무어라고 말하는 거냐? 이것 봐, 온통 제정신이 아니군? 뭐, 우리보다 낫다고? 누더기를 입은 사제놈과 우리 종놈이!" "아버지가 부르는 대로 그 누더기 사제는 성자와 같아요. 족장 파트리아케스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의 발끈을 풀 가치조차 없어요!" 늙은이는 담배를 내던졌다. 피가 그의 무거운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다. "마놀리오스에 관해서 알고 싶으시다면" 미켈리스는 조용히 냉담하게 계속했다. "아버지도 잘 아실 겁니다. 여러분 모든 명사들, 원로들, 사제, 학교장들이 감옥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벌벌 떨면서 마을을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 까는 생각하지고 않고 자신들 몸뚱이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종, 마놀리오스가 사람들을 구하러 봉기했었잖아요. 누가 마을의 진정한 족장이라 자신을 드러내 보입니까? 족장인 파트리아케스, 아버지였나요? 아니면 성스러운 사제 그리고리였습니까,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그것은 마놀리오습니다. 그때 그 순간부터 우리들은 종복이며 그가 족장인 셈입니다!" 노인은 숨을 헐떡거리며 침대로 벌렁 자빠졌다. 그는 숨이 막히는 듯하였다. 미켈리스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자신에게 준 교훈들을 잊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말대꾸만 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아버지를 위해 침구를 바로 정리했다.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버지?" 그는 물었다. "레니오에게 레몬수(풀이: 레몬의 과즙에 설탕과 물을 탄 음료수)를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 "너는 네 어미와 똑같군 그래." 노인은 혼수 상태에서 그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네 어머니와 같애. 모든 달콤한 것은 다 내보내고 모든 독들을 안으로 끄집어 들인단 말이다." 미켈리스는 두 눈을 껌뻑거렸다. 그와 아버지의 사이가 희미해져가더니 갑자기 그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창백하고 슬픔에 차 있으나 숭고하고 겸허함으로 충만해 있었다. 어머니! 미켈리스는 갑자기 나타난 환상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한순간이 가시고 불빛이 흔들거리더니 그 성스러운 모습은 사라졌다. "너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니?"노인이 물었다.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요." 아들이 대답했다. "어머니를요. 아버지, 당신은 어머니를 호되게 다루셨지요." "나는 남자야." 노인은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나는 여자들을 거칠게 다룬다. 여자들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네놈이 어떻게 알 수 있겠냐? 넌 그때 어미의 젖을 먹고 있었는데." "오, 주님, 언제나 내 입술 위에 그 젖을 적셔 주소서." 다시금 그들 사이에는 어머니의 영상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그녀는 자기 아들을 보고 머리를 흔들고는 그에게 축복을 주려고 손을 쭉 내밀어 뻗었다. 그의 어머니의 음성이 미켈리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나왔다. "머리를 들어라, 내 아들아. 너는 남자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무서워하지 말라. 미켈리스, 내가 두려워서 그에게 하지 못한 말을, 내 어미의 한을 풀어 주렴. 그에게 그걸 말해." 결심이 선 아들을 창턱 위에 팔꿈치를 기대었다. 노인은 일어나 한숨을 쉬고는 그도 역시 창문 가까이로 갔다. "들어 봐라."그는 말했다. "듣고 있습니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두 눈을 보며 대답했다. "나는 결심했으니 너도 역시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든, 마놀리오스든 한 쪽을 택해라. 넌 마놀리오스 일당과 손을 끊든지 아니면 매 집을 나가라." "아버지의 집을 나가겠습니다." 미켈리스가 단호히 대답했다. 노인은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랐다. "너는 네 아버지인 나보다도 그 종놈을 더 사랑한단 말이냐?" 그는 소리쳤다. "나는 마놀리오스를 더 이상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전혀. 마놀리오스가, 도대체 무얼 어쨌다는 겁니까?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시는 아버님께서 나에게 구하신 답변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내 대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방을 성큼성큼 걷더니 그의 아들 앞에 다시 멈춰 섰다. "너는 나에 대해서 무슨 반감을 가지고 있나?" 그는 꾸짖는 듯한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에게 선택을 강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택한 것입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은 또다시 그 육중한 몸무게로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열이 난 듯 머리에 두 손을 갖다 댔다. 그는 창자가 찢겨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가려무나." 그는 마침내 말했다.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끔!" 아들은 돌아섰다. 그는 기진맥진해진 노인을 보고는 죄송스러웠으나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절박한 목소리가 솟구쳤다. "가라!" 그는 아버지에게로 가까이 가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그가 말했다. "전 가겠습니다. 저를 축복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절대로!" 노인이 소리쳤다. "아니, 난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 미켈리스는 일어나 문으로 향해 갔다. "내 아들아!" 하고 그는 그렇게 울부짖고 싶었으나 아버지로서의 위신이 실추될까 하는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참고 있었다. 아들은 문을 열고서는 다시 한번 뒤로 돌아섰다. "아버지." 그가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나서는 문지방을 넘었다. 얼마 후, 레니오는 싸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몰래 올라가서는 열쇠 구멍에 귀를 갖다 댔다. 그녀는 코가 찢어질 듯한 깊은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침대가 신음하고 있는 듯하였다. 노인은 잠에 빠져 악몽을 꾸고 있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소동은 끝났군. 정오가 되어서야 늑대처럼 굶주림을 느끼며 일어나겠지. 나가서 닭 목이나 비틀어야겠구나. 먹는 이야기라면 난 감당할 수가 없다니까. 그 배를 충분히 채울 수가 없거든.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거지. 계속 퍼넣어도 마냥 같은 웅덩이야! 그녀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죽일 닭을 고르려고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볏이 주홍빛 나는 흰 수탉 한 마리가 거만스럽게 점잔을 빼며 걷고 있었다. 그 주위로 암탉들이 땅을 쪼아대며 꼬꼬 울었다. 레니오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한 암탉이 아래로 쭈그리고 수탉이 위로 올라타는 것을 보고 싶은 열망에 불타 올랐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이러한 것을 기쁨에 사로잡혀 보아 왔었다. 한 남자의 체중을 느끼며 기분이 나른해져서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느 남자의 몸무게일까? 처음 그녀가 아주 앳되었을 때 분명히 알 수 없는 남자는 뻔뻔스럽기도 했었지. 그 후에는 마놀리오스의 체중을 받았고 그리고는 니콜리오. 몇 달째 한결같이 그의 몸을 취해 왔었지. 그녀는 둘러보다가 늙고 반점이 있는 암탉을 골랐다. 그녀가 손을 뻗자 그 반점박이 암탉은 수탉의 날개 밑으로 쪼그리고 파고들었다. 레니오는 그러는 암탉이 안스러워서 다른 닭을 골랐다. 정오 가까이까지 그녀는 수프에 달걀 하나를 던져 넣고는 탁자에 누워 주인이 부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르게 늑장을 부렸다. "그 뚱뚱보 영감, 정말 사람 좀쑤시게 하는군." 레니오는 중얼거렸다. "어쩜 저승에라도 갈려나?" 그녀는 걱정스러웠다. "그가 일요일 저녁까지만 끌고 간다면, 가장 좋기는 월요일 아침까지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언제 결혼할 것인가?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녀는 다시 올라가서 가만히 문을 열고는 방을 자세히 살폈다. 원로는 침대 위에 쭉 뻗어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열린 두 눈은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숨도 쉬지 않았다. 레니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죽은 걸까? 하지만 노인의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님." 레니오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말했다. "수프에다가 달걀을 넣어 두었어요. 벌써 내려놓을 시간이어요." "난 배고프지 않아." 그가 신음하듯 말했다. "몸이 좋지 않다구. 너도 알지, 레니오. 그리고리스 사제를 불러와." 노인은 겨우 일어나 않았다. 그의 얼굴은 주홍빛 줄이 그어진 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레니오는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난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난 단지 그 사제와 이야기하고 싶다. 미켈리스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냐?" "아녜요.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평상복을 다시 입고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가 버렸어요." "아무 말도 않더냐?" "네, 아무 말도." "마놀리오스를 잡아오도록 산으로 사람을 보내라. 염병할 놈을! 그놈이 해 지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나를 보러 와야해 너 듣고 있냐? 거기로, 너도 함께 가라!" "뭘 좀 드시지 않겠어요?" 노인은 잠시 망설였다. "무얼 준비했냐?" "좋아하시는 삶은 닭예요." "수프에다 레몬을 많이 넣었냐? 내려가마." 레니오는 기쁜 듯이 계단을 몇 개씩 딛으며 뛰어내려갔다. "그가 확실히 월요일 아침까지는 버틸 거야. 그의 얼굴을 보니 걱정이 되는데. 안도니스에게 가서 홉각을 하도록 부탁해야겠다. 그가 빨리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단 말이야." 한편, 그 동안 미켈리스는 보따리 하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산에 도착했다. 그는 양 우리에서 마놀리오스를 찾을 수 없어서 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 있는 데로 내려갔다. 그림자가 짧아지면서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산 반대편에서 자그마한 엘리야 선지자 교회가 곧추선 햇빛 속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미켈리스는 눈을 감았다. 그는 지쳐 있었고 가슴은 슬픔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군."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시금 시작된다. 주님, 당신이 그 길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길 끝까지 가게 절 도와 주소서. 당신이 그 끝에 계셔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전 압니다." 그는 보따리를 풀고 어머니가 남겨 준 성경을 꺼냈다. 그것은 두꺼운 돼지 가죽 안에 싸여 있고 쇠사슬 걸쇠로 묶여 있었다. 그 페이지 한 곳에는 책갈피용의 월계수 잎사귀 하나가 꽂혀 있었다. 그는 그 성스러운 책 위로 머리를 조아리고 읽기 시작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며칠 동안 그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처음에는 이 말이 어렵고도 비인간적인 냉혹한 소리로 들렸다. 이것보다 좀더 인간의 심경과 일치되는 길이란 없을까? 그는 자문해 보았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혈연 관계를 끊어 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장애물이 된단 말인가? 인간이 부모를 사랑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미켈리스는 점점 더 많은 의문이 생겼으나 그 어느 것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어찌 된 일인가. 점차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속세의 짐에서 가벼워지더니 서서히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벌써, 지난날 이후로 그는 자신이 천상과 지상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정오가 지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마놀리오스가 목초지에서 돌아왔다. 그는 친구가 그 시간에 산을 찾아온 것을 보고 놀랐다. "마놀리오스, 난 아버지의 집을 떠났소. 아버지께선 나에게 선택하라고 했소. 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택했소." "그건 굉장히 험난한 길일 것이오, 미켈리스." 마놀리오스가 신중히 대답했다. "부자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도 어려운 길이지만 아무튼 잘했소." 그는 나지막한 식탁 위에 식사를 준비했다. 미켈리스가 아버지와 있었던 일들과, 그리고 그가 택한 결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난 더 이상 그런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갈 수가 없었소, 마놀리오스. 그 동안의 내 생활은 너무나도 안일한 것이었어요. 난 부끄러울 뿐이오." "환영합니다." 마놀리오스가 말을 받았다. "그 길은 험난하고 오르기가 가파르며 처음에는 발도 다칠 것이요, 미켈리스. 그러나 점차 그대는 날 수 있을 것이며, 천사들의 팔에 안기어 그 깎아지듯 가파른 하나님의 산을 기꺼이 즐겁게 노래부르며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일어서서 양치기 막대기를 집어들었다. "당신 부친께서,"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즉시 날 오라고 하는 전갈을 보내셨더군요, 난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는지 짐작할 수 있소. 오늘 저녁 일까지도!" "주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레니오는 안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소매를 걷어올린 채 주인인 족장이 결혼 예물로 준 구리 그릇을 윤이 나도록 닦고 있었다. 레니오는 노래를 부르며 온 힘을 다하여 그릇을 문질렀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산 쪽으로 날아 올라갔고 니콜리오는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 서서 쫑긋이 두 귀를 세우고서는 그의 길잡이 피리를 집어들고 말했다. 마놀리오스가 길모퉁이에 나타났다. 그는 레니오의 노래가락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야생마 같은 레니요, 그는 생각했다. 정말 야생마야. 오직 어린아이만이 그녀를 길들일 수 있을 텐데. 레니오는 상기된 얼굴을 들어 문턱을 넘어오는 마놀리오스를 보았다. "잘 있었소, 레니오." 그녀의 첫 번째 약혼자가 말했다. "나는 그대의 결혼 준비가 다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행운을!" "당신두요!" 레니오가 조롱하듯 대답했다. "누군가 어여쁜 아가씨가 당신을 낚아채기를 빌겠어요! 서둘러 이리로 오세요. 주인나리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마치 더 좋은 약혼자를 만난 뒤부터는 옛 애인이었던 마놀리오스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 더욱더 흥겹게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으로 그를 노엽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파트리아케스는 마놀리오스를 기다리는 동안 담배를 연거푸 말아 피워 물고 연기를 날려보내면서 가득 우겨 넣은 닭고기를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는 기다란 족장옷을 입고 맨발인 채로 였다. 그는 열에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흥분하여 자줏빛을 띠고 있었고 그의 목에는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그는 끊어 오르는 분노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때때로 지치시는 몸을 침대 위에 던졌다. 내 잘못이야... 그건 내 불찰이야. 그는 계속 되뇌었다. 그놈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수도원에서 데려온 것이 잘못이었어. 그는 그 곳에서 진실된 한 인간으로 성장하여 수도자처럼 온유하게 살았었을 텐데. 내가 미쳤지! 그 지독한 구두쇠 라다스가 옳았어. 그가 얼마나 여러 번 내게 이야기했던가. "악마처럼 행동하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당신을 존경할 거요. 인자하게 행동하면 당신은 고통 이외에 아무것도 갖지 못하오!" 나는 그를 비웃곤 했지. 그런데 그 고통이 여기 이렇게 엄습해 오지 않은가! 마침내는 레니오의 노래 소리조차 그의 신경에 거슬렸다. 저 복도 많은 계집애, 꺼져 버리잖구. 아무쪼록 그년을 결혼시켜야겠어. 그래야 조용해질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애가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겠지. 그가 창가로 달러가 그녀에게 닥치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그는 몸을 돌렸다. 마놀리오스가 문간에 나타났다. 그는 펄쩍 뛰면서 분노의 눈을 번뜩였다. "들어와." 그는 소리쳤다. "들어오라니까!" 그는 마놀리오스 뒤에 있는 문을 새차게 꽝 닫고는 그를 벽 쪽으로 거칠게 떠밀었다. "이것이 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가, 응? 난 네놈을 내 집안으로 끌어들였는데, 너는 우리 가정에 불행을 끌어들였어! 네가 오기 전에는 우린 모두 잘 지냈고, 집안도 조용했고 마을도 평온했다구. 비열한 예언자같으니, 네놈이 이 모든 질서를 뒤엎었어. 왜냐구? 지난날, 네가 무슨 권리로 이 마을을 구하겠다고 나섰었지? 그게 네 일이야? 네놈의 일은 눈꼽만큼 하면서 상관없는 일에만 쓸데없이 끼어들어야 하는가 말이다! 내 그 이유를 말해 보마. 네놈은 성자 행세를 하여 바보들에게 너를 믿게끔 하고서는 엘리야 선지자 축제일에 혁명을 선포하려는 거였지." "혁명이라구요?" 마놀리오스가 아연실색하여 외쳤다. "그럼 그저께 네가 산에서 우리들에게 말했던 그 뻔뻔스럽고 바보같은 얘기는 다 무엇이더란 말이냐? 어째서 우리가 그 벌레 같은 자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한단 말이냐? 어떻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그 비열한 자들까지도 모두가 한 형제란 말이야. 이놈아! 그럼 네 말이 무슨 뜻이냐? 또 우리 토지들도 반반씩 나누어 주라고 - 무슨 권리로? 그러나 그 토지는 우리들 것이야. 그것은, 그것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우리들의 피와도 같은 거야! 뭐, 또 우리는 그들과 고기도 나누고 먹을 것도 주어야 한다고? 만사는 다 끝장이군!" 그는 마놀리오스의 멱살을 잡고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우리가 이곳을 제 2의 러시아로 만들려 한다구요?"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웃을 짓밟으며, 더 이상 주인과 하인의 구별이 없는 나라, 이들이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거북이만큼이나 크게 자라나는 그런 나라를요? 그리고 그런 이 - 당신은 그것을 내 침대 속으로 데려와 나를 잡아넣게 하시렵니까?" 이러한 이에 대한 생각으로 놀라움에 사로잡혀서 그는 공포에 가득 차 마놀리오스를 뚫어지게 바라다보았다. "지난 어느 날엔가 - 그 누구도 당신에게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오. 당신은 머리가 아닌 딴 것으로 명령을 내립니까? 복부가 혁명의 기치를 들고는 지휘하기 위해 머리로 기어올랐습니다. 그 후, 그 인간의 추악함이 코, 입, 양눈을 통해 그로부터 튀어나와서는 그로 인해 그는 죽었소.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방해하지 마시오. 그 배가 제자리에 있게끔 해주십시오. 머리도 그 자리에 있게 해주시오. 나는 머리외다!" 그는 우리 안의 사나운 야수처럼 왔다갔다 하며 막대기로 벽을 치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침을 뱉곤 하였다. "더 이상 부자가 되는 것도 안 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그러나 만일 부자가 없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누가 도와 준단 말이냐? 그것을 생각해 봤느냐? 너의 만달레니아 아주머니는 누구 집으로 일거리를 구하러 가겠느냐? 그리고 너는 누구의 하인이 되지?" 그는 분노를 터뜨렸다. "이 더러운 벌레 같은 놈아!" 그가 외쳐 댔다. "네놈은 한치의 땅도 가지고 있질 않아, 그리고서 이렇게 외치지.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왜? 그래야만 우리는 형제들처럼 함께 나누어 가질 수가 있거든. 네가 그런 말을 늘어놓은 대로 네놈이 우리 재산의 절반을 가로챌 수 있잖아. 도대체 누가 네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을 쑤셔 넣었느냐. 응, 이 망나니 놈아?" "그리스도입니다."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빌어먹을 놈! 뭐, 그리스도라고? 그건 네놈의 그리스도지, 나에게는 상관없어. 네놈은 네놈의 모습과 꼭 닮은 그리스도를 만들었지, 야비하고 굶주린 폭도를 말이야. 한 명의 볼셰비키를. 그렇지! 네 마음에 드는 말은 뭐든지 그의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그를 교회의 표상처럼 높이 들어올리고서 부르짖지. '우린 모두 같은 아버지의 자식들이니, 그 유산을 내놓아 함께 나누어 가집시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니 고기를 가져와 함께 먹읍시다.' 그러나 안 되지. 네놈은 그것을 먹지 못하게 될걸!" 그는 담배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고서, 마당에다 침을 탁 내뱉은 다음 마놀리오스에게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내 앞에서 썩 꺼져. 어서!" 그는 고함을 쳤다. "당장! 오늘 저녁에! 가서 네놈과 똑같은 그 거지들과 어울려라! 네놈의 추잡한 것, 이 같은 것들, 하늘나라의 왕국을 함께 누려라!"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마치 주교 같은 풍채를 한 그리고리스 사제가 나타났다. "족장님." 그가 말을 건넸다. "미안하외다. 내 딸년 마리오리가 건강이 좋지 못해서, 이렇게 늦었소." 돌아서서, 그는 마놀리오스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사제여." 파트리아케스는 말했다. "이젠 그 무엇 하나도 온전한게 없소. 세상이 뒤집혔고 마놀리오스 족장께서 혁명을 선포하셔서 세상에 불을 지르려 하고 있소이다. 게다가 내 훌륭한 아들놈도 합세하였다오. 오늘 아침, 내게 엄포를 놓았지요. '저는 이 집을 떠나, 늙은 파트리아케스여, 나는 당신을 떠나 그리스도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라고 말이오. 마치 내 길은 반 그리스도의 길인 것처럼 말이오! 만사는 끝장이오! 사제여, 잘 와 주셨소. 우리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팔을 내뻗쳐 마놀리오스를 손가락질했다. "여기 그리스도의 적이 있군! 네놈이 바로 우리들 사이에서 내분의 씨를 뿌리고 있는 놈이지. 사람들의 머릿속에다 혼미한 생각을 불어 넣은 게 바로 네놈이다. 축제 때 네놈이 이리들 앞에 쏟아 놓은 그 부질없고 어리석은 소리는 다 무엇이란 말이냐. 네 이놈. 악당아! 맹세코 그건 머리되신 주님에 반역한 족속들의 반란이었다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두벌의 옷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한 벌을 가난한 이웃에 나누어 주라. 우리 모두 형제니라. 그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니라.'하셨소." 그리고리스 사제의 눈에서 분노가 일었다. 그는 하인과 논쟁을 벌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늙은 족장에게 말했다. "이놈은 위험한 인물이오. 이 자를 내쫓아야만 합니다. 이 녀석이 우리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을 밖으로 내쫓아야만 하오! 당신 아들의 머리를 돌게 한 것도 바로 이놈이외다. 이놈은 술책을 부려 자신이 중요한 인물인 양 행세해서는 우리들의 많은 것을 가로챌 것입니다. 이놈을 내쫓으시오! 이놈은 양치기가 아닙니다. 양치기가 아니라 양을 해치는 늑대요." 마놀리오스는 벽에서 물러나 기슴에 한 손을 얹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족장님, 그리고 사제여. 나는 떠나가겠소." "썩 꺼져! 하나님의 저주와 함께! "사제가 손을 쳐들고는 고함을 쳤다. "높으신 양반과 사제님의 저주도 함께 가지고 가겠소." 마놀리오스가 받아넘겼다. "사제님,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오. 그분께서 다시 이 지상으로 내려오신다면 당신은 또다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이오. 안녕히들 계십시오." 그는 조용히 문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고는 돌아서며 다시 한번 차분히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즐겁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13 볼세비키 마놀리오스가 산을 향해 출발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으며, 따스한 동풍이 불며 빗방울이 몇 줄기 그의 손 위랑 얼굴에, 그리고 메마른 대지 위에 떨어졌다. 목마른 대지처럼, 마놀리오스의 육신은 기쁨에 차 있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는 산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눈을 뜨면 산이며, 구름,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이러한 산과 구름이며 비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보이는구나. 어느 곳에서고, 밝은 곳이든, 어두운 곳이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를 감싸고 있구나! 그는 어느덧 족장과 사제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헛된 근심들도 떨쳐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찮은 기쁨과 고통도 초월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세속적인 기쁨과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바로 그의 하나님과 직면해 있었다. 그가 그렇게도 충실히 섬기던 주인에게서 쫓겨나서, 그는 내일 동틀무렵 그토록 사랑하던 산과 작별할 것이었다. 그는 등에 보따리를 둘러메고, 양치기 지팡이를 짚으며, 끊임없이 외로운 길을 홀로 기약없이 출발할 것이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멀리서 우뢰 소리가 둔탁하게 울리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바람이 그의 등뒤에서 앞으로 밀어 대고 있었다. 마치 바람이 손과 인간의 숨결을 지니고 있는 듯이 그에게 느껴졌다. 그는 멀리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이 양치기 오두막의 작은 창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쯤은 이미 니콜리오가 젖짜기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하고선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저 불빛은 미켈리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이 그의 친구에 머물자 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귀족의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어. 맛있는 음식과 펀안한 잠자리. 가정의 안락하고 따스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거야. 그를 참을 수 있게 하자. 그의 신간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어. 그가 좋아하든 아니하든 간에 부가 그의 영혼을 내리누르며 자유로이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마리오리도 또한 자신도 모르게 그를 속세에 얽매어 놓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단호하고도 분명한 말씀을 기억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해 가는 것이 더 쉽다.' 그는 미켈리스가 불을 응시하며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의 젊은 족장님께 인사드리오." 그는 그의 머리칼과 땀이 흐르는 얼굴을 닦으며 쾌활히 말했다. "내일 아침 나는 이 사랑하는 오두막과 작별하고 떠날 것이오. 그대의 아버님께서 나를 해고하셨소." 그는 불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침착한 목소리로써 분노로 끊어오르던 늙은 족장이 그에게 한 가혹한 말, 해고된 자신과, 사제가 퍼부은 악담들을 얘기했다. "이 모든게 내가 일어나리라고 예상 했던 것입니다." 그는 결론지어 말을 맺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소. 당신의 아버지께선 나를 해고 할 수 밖에 없었고 사제님은 나에게 악담을 하실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나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려 하오?" 미켈리스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친구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밤이 지혜를 가져다 주겠지요.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잠 속에 내려오시어 꿈의 형태로 그 길을 보여 주시곤 하시지요. 아직 나는 아무런 결심도 하지 못했소. 하나님이 선택하실 것이고, 우리는 알 수 있게 될 거요. 걱정하지 마오." "그대는 코스탄디스 집 뜰에서의 그 저녁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미켈리오스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했지요 - 기억하겠소? - 마놀리오스, 그대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함께 가겠다고. 내가 오늘 저녁 그것을 다시 이야기하오." "그렇게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미켈리스, 너무 서둘지 마시오. 내일 봅시다." 그들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하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빗줄기가 격렬하지만 즐겁고 세차게 내렸다. 산의 메마른 초원은 향기롭고 신선하게 되었으며, 부드러운 동풍 속에서 바람은 먼 곳으로부터 소나무의 송진냄새를 몰아왔다. 대지는 그 향내를 발산하였다. 흙덩어리와도 같은 마놀리오스의 머리는 비를 반기며 그것으로 부터 신선함을 끌어내었다. 저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나? 주님이 오늘 밤 이 자비로운 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일까? 마놀리오스는 하나님을 기꺼이 맞아들였으며 전신으로 기쁨을 느꼈다. 밤새들도 또한 나무의 빈 구멍이나 바위 틈에 성급히 들어가서는 그들의 젖은 날개 위로 하나님이 내려오심을 느꼈다. 미켈리스는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축축히 젖은 대지의냄새를 맡았다.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마리오리의 생각이 떠오르자 그의 가슴은 젖어 가는 대지와도 같이 근심스레 뛰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은 화장기가 없이, 창백하고 지쳐 있었다. 그녀는 입에다 손수건을 대고 계속 기침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손수건은 핏빛을 내보이는 것을 감추기 위해 흰색이 아닌 붉은색이었다. "미켈리스." 그녀가 말했었다. "읍내에 있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기 위해 아버지께서 저를 데려다 주실 거예요. 저는 건강이 좋지 않아요." 흙 냄새를 맡았을 때 미켈리스는 자신의 가슴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속세에 애착을 가지고 있구나. 아직도... 그 비오는 한밤중에, 다정하게 미켈리스와 마놀리오스는 껴안고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에 그들이 잠에서 깼을 땐 신선하게 씻긴 산이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며 웃고 있었다. 하늘에는 양털 같은 구름이 일고 있었고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반짝거리며 떨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미켈리스가 자기에게 주었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그림을 벽에서 떼었다. 그런 다음 그는 조각한 예수의 가면을 끄집어내리고 옷가지를 챙기고선 보따리를 만들어 돌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미켈리스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다 보았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앉아 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나자 마놀리오스가 일어섰다. 그의 눈길은 오두막, 의자, 주위의 바위들에, 산 위에, 무언의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머물렀다. 그는 구석에 있는 양치기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미켈리스도 일어났다. "마음이 정해졌소, 마놀리오스? 떠나는거요? 어디로 가려는 건지?" "잘 있으오, 미켈리스" "어디로 가는지 말해 주구려." "사라키나로. 나는 그들과 굶주림을 함께 나누러 가는 거요." "내가 함께 가는 걸 원하지 않소?" "아직은 안됩니다. 참아야 해요. 당신에겐 그대 아버지와 약혼녀가 있잖소. 나는 아무도 없소.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나 이렇게 쓰여 있잖소. '자기 아버지와 아내, 자식들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나도 알고 있고. 미켈리스. 그러나 속세, 아버지와 아내한테 애착을 가진 당신 마음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렸는지? 아직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니 참아야 됩니다. 당신의 때가 올 것이오.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오. 그것은 자고새처럼 소리없이 다가올 것이오." "나는 아버지에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소." "좋아요. 돌아가지 말아요. 사라키나와 리코브리시 사이인 여기에 머물면서 그대의 때, 자고새를 기다려요. 곧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미켈리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로 손을 꽉 잡았다. "마놀리오스," 그가 말했다. "오래지 않아 나도 가서 그대와 함께 하지요. 맹세하오. 곧 다시 만납시다!" 마놀리오스는 그의 작은 보따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성호를 긋고는 떠났다. 천사의 날개가 다시 돋아나 마놀리오스는 나는 듯이 바위를 건너 뛰며 갔다. 엘리야 선지자의 작은 교회가 산꼭대기의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에서 번쩍거리며 가까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놀리오스는 지팡이를 쳐들며 "오!" 하고 외쳤다. 파트리아케스는 온종일 그의 아들을 기다렸다. 이 삼일의 시간이 헛되이 흘러갔다. 자포자기하여 그 늙은이는 설득하라고 친척들을 보냈다. "내 아들놈을 가서 만나게. 자네가 그에게 말좀 해봐. 자네는 같은 무리잖아. 아마도 자네 말에는 귀를 기울일 걸세." 얀나코스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제 생각에는, 일들이 되어가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저도 머지않아 산으로 갈 것입니다, 족장님."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파나요타로스가 그를 만나러 왔었다. "족장님, 몇 마디 자세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마놀리오스가 사라키나에 정주하였습니다. 그가 피난민들을 한데 불러모아 설교를 하며 그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공공연히 말하길 가난한 자들은 배부른 자들이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 말을 잘 기억하십시오 - 굶주림에 견딜 수 없게 될 때 그들은 늑대와도 같이 마을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머뭇거리는 듯하였다.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 노인의 귀쪽으로 구부렸다. "수상한 것을 눈치챘습니다, 족장님." 그가 낮은 소리로 넌지시 비추었다. "거리낌없이 말해 봐라. 파나요타로스, 내가 듣고 있다. 자네는 아마도 사랑하지 않을 때 무엇을 확실히 보거든. 자, 털어나 보라!" "마놀리오스는 볼셰비키입니다!" "볼셰비키?" 족장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뜻이지?" "그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배가 고프면 마음껏 먹어라. 갖고 싶은게 있으면 그것을 빼앗아라! 이런 뜻이죠. 지금 이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파헤쳐 놓은게 바로 이 약탈자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네가 생각하기에는..." "확실합니다. 그들은 어느 나라이든, 가장 조그만 마을 안에, 그리고 아주 먼 세상 까지도 그들의 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황무지로 가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각 가정에서도 그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돌이라도 들춰 보십시오. 그들을 발견할 겁니다. 이제 그들은 리코브리시에까지 마놀리오스를 보낸 것입니다." "그 말은 현기증을 일으키도록 아주 잘 꾸며낸 이야기군. 파나요타로스! 나를 오싹하게 만드는군. 나는 그것으로 인해서 죽게 되겠군. 확실히 말해 보게!" "그건 사실입니다, 죽음을 면치 못할 문제지요. 악마의 자식인 그들이 술책을 부리고 있어요. 마놀리오스를 봤지요? 그는 성자인 체하고 고기도 먹지 않고 자신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군요. 여자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도 없고 요즘에는 그 작은 복음서를 손에서 놓는 일조차 없다나요. 언제나 그는 어느 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복음서를 펴들고 그가 읽고 있는 것을 믿게 만들지요. 모두 속임숩니다! 며칠 전, 그가 목이 달리려고 했을 때,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압니까?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아마 소름이 끼칠겁니다. 그는 후세인의 피묻은 옷을 발견했던 마르다 늙은이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대요. 그래서 그녀는 오직 마지막 순간에 그것들을 보이려고 했지요. 왜냐구요? 그래야만 마을 사람들이 마놀리오스가 마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었다고 믿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한 한 방편이죠. 사람들도 확보해 가지고 있다가 때가 오면 모스코로부터 지령을 받아 그들을 몰아대어 원로들, 저명인사들의 목구멍을 찢어 버리려고 합니다. 파트리아케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손 안에 파묻어 버렸다. "자비로운 하나님." 그가 중얼거렸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여, 모든 것이 끝장 나고 있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별안간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아들은...?" 그는 일그러진 입으로 더듬거렸다. "마놀리오스가 그를 속였습니다. 파트리아케스, 그가 미켈리스를 움직여서, 그 자신도 알지 못하게 볼셰비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집을 떠나 산에 있는 그와 한패가 되는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곧 아시겠지만 얀나코스도 떠날 것이고, 그 뒤를 따라 코스탄디스도 집을 떠나 그들과 한패가 되기 위해 가 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전염병과도 같은 것입니다. 족장님, 한 사람이 그것을 다른자에게 전합니다. 이발사 안도니스도 역시 그것에 사로잡힌 듯합니다. 그리고 푸줏간 뚱보 디미트리도요. 게다가 제가 생각하는 것을 알고 싶으시다면 교장 선생까지도." "네가 말하고 있는게 도대체 무엇이냐, 파나요타로스? 모든 게 끝장인가! 내가 가서 그리고리스 사제를 찾아봐야지. 그러면 모든 사실을 밝혀 내겠지!" "포티스 사제와 그 가난한 자들도 그가 자기 주위로 끌어들이고 있어요. 알고 싶으시다면, 그들을 곧장 리코브리시로 보낸 것도 바로 모스코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터어키 사람들이 그들을 내몰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보낸 것은 바로 모스코에 있는 적들입니다.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놀리오스는 그들에게 보내는 전달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리코브리시에는 먹을 것도 부족하지 않고 모든 것이 풍족하게 있습니다. 오십시오. 우리가 이 마을을 자루에다 집어넣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족장은 완전히 노망한 늙은이니,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시다시피, 이것이 마놀리오스와 포티스 사제가 장터의 도둑떼처럼 즉시 한패가 된 이유입니다. 한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당신이 그를 쫓아 버린 그 이전이었습니다. - 그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곧장 사라키나로 입니다! 족장님, 이것은 분명합니다!" 파트리아케스는 방 안을 천천히 왔다갔다 하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결심한 듯이 말했다. "가서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말씀드려라. 무조건 내가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바로 오늘 저녁에!" "그리고리스 사제님은 오늘 저녁에 따님을 데리고 읍내로 떠나셔서 아마 내일 돌아오실 겁니다. 그분은 그녀를 한두 명의 의사에게 보이려고 데려갔습니다. 그녀는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합니다. 사실상 그녀의 건강은 매우 심각합니다." "썩 꺼져 버리라구!" 노인은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놈은 오늘 동틀 때부터 그런 걱정거리만 떠벌리고 다녔더냐?" "족장님, 저는 단지 제가 알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믿으시건 말건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나리의 문제입니다. 제가 너무 오래 귀찮게 해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가겠습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유다 이스가리옷, 이놈아! 노인은 마음속으로 저주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잘 가게, 파나요타로스. 그리고 무슨 소식 듣거든..." "걱정 마십시오, 족장님. 다시 오겠습니다." 그는 쿵쿵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사악한 미소가 그의 얽은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파트리아케스는 침대에 푹 파묻히어 몸을 쭉 뻗고는 파나요타로스가 자신에게 말했던 것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고 그는 그것들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아주 오래된 곤경 속으로 거의 빠져 버린 것 같군!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어. 맹세하건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었어. - 그 늙은 여우 사제도, 학식 있는 그 교장도, 심지어는 나조차도. 내 수중에 첩자를 가졌었다니. 생각만해도! 그들이 이 마을에 불을 놓으려는 도화선을 당긴 것이 바로 우리 집부터였다니! 족장으로서 이 늙은것이 현명하지 못했구나! 무례하고 난폭한 짐승 같은자가 와서 내 눈을 열게 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니! 비열한 마놀리오스를 당장에 내몰고, 그 야비한 악당놈들, 더러운 볼셰비키 놈들을 사라키나로부터 내쫓아야만 한다. 이웃을 정화하고 다시한번 마을을 영예와 정의로 사스려야 한다! 내일, 사제가 돌아오면 이 모든 것은 바로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자 그는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레니오가 노래를 비둘기처럼 꾸르르거렸다. 그녀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혼수감을 자랑할 친구들을 기다리며 여기저기로 뛰어다녔다. 그녀는 온 물건들을 늘어놓기에 정신이 없었다. 긴 복도에다 아주 솜씨좋게 늘어놓았기에 원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설탕을 넣은 아몬드와 커다랗고 흰 양초들 사이에는 레몬꽃으로 엮은 결혼화관이 놓여 있었다. 오늘 저녁에 니콜리오가 주인님의 결혼선물인 새옷을 입고, 레니오가 그에게 준 붉은 수건을 머리에 묶고선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 일요일인 내일 결혼식이 거행될 것이고 니콜리오 부인인 신부는, 붉은 옷을 입은 마부가 이끄는 노새를 타고 그들의 새 보금자리인 산의 양우리로 갈 것이다. 침대 위에 누워서 노인은 레니오의 노래 소리와 도착한 도착한 친구들의 즐거운 함성과 웃음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로하여금 자신의 결혼식을 생각나게 했다. 그가 성 게오르그(풀이: 그의 이름이 게오르그 파트리아케스로서 작자가 그를 성 게오르그에 빗대어 풍자한 듯) 마냥 늘씬하고 호리호리했던 22살의 젊은이였을 때 약혼녀를 데려오기 위해 백마를 타고 달려갔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집 문간에서 그녀를 다시금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풍습대로 흰 베일을 쓰고 있었으므로 얼굴이 가리져 보이질 않았었다. 신랑인 그는 참지를 못하고, 그녀의 부모님께 외쳤다. "구름을 걷고 태양을 보이게 하십시오!" 그러자 늙으신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 고인 눈으로 발 끝으로 서서 그녀의 베일을 젖혔다. 그 즉시 그 모든 행렬이 - 신랑, 신부, 부모님들, 친구들, 말이며, 노새, 색색가지의 쇼올 - 마치 정말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빛났다. 그리고 나서 파트리아케스의 상념은 그 커다란 날개짓으로 시간을 가로질러 넘어갔다. 몇년이 흘러갔고 태양은 어두워졌다. 성 게오르그도 체중이 늘어 몹시 뚱뚱해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혈기왕성하였다. 족장의 저택에는 까로우프라고 불리는 건강한 하녀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온세계를 휘감은 듯한 엉덩이, 그리고 빨간 사과와도 같은 발뒤꿈치에 새삼스럽게 눈독을 들였다. 어느 날 밤 그는 층계가 삐걱거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이보다 늙게 보이는 그의 아내 게으르그 부인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었다. 그는 까로우프가 잠들어 있는 작은 방으로 슬쩍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그녀의 침대에 기어 들어서 레니오가 출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레니오가 지금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늙은 족장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파나요타로스가 한 이야기도, 집을 나간 그의 아들도 잊고 있었다. 지나간 세월들이 그의 마음에 되살아나 일깨워져 다가왔다. 기뻤던 일들, 부정한 행위, 토끼, 자고새, 숭어 닭이며, 새끼돼지, 쇠꼬챙이에 꿴 양고기, 육반 파이, 꼬치고기, 굴, 과일을 넣은 파이들, 과자빵, 웨이퍼(풀이: 살짝 구워서 만든 양과자의 일종. 보통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음), 샤베트, 묵은 술, 캐비아(풀이: 철갑 상어의 알을 소금에 절인것), 그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던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도 신의 은총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확실히 좋은 시절을 보냈었지." 그의 머릿속이 혼미해져 가더니 그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한편, 회색 노새를 탄 그리고리스 사제와 얀나코스의 당나귀 위에 탄 마리오리는 미켈리스가 물러가 있는 산을 향애 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 아버지께 청을 들어주십사 하고 애원하였던 것이다. "저는 그이를 만나야 해요. 아버지 전, 읍내로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해요."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얘야." 그녀의 아버지는 목메어 흐느끼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므로 넌 나을 수 있을 거다. 크리스마스 때면 우린 네 결혼식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날 난 널 기쁘게 하려고 춤을 추겠지." "산에 들르세요. 그래서 그를 다시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 그녀가 애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이 어린 것아, 내가 언제 너의 청을 거절 한 적이 있었느냐?" 이러한 말과 함께 그는 노새를 산으로 향하게 했다. 미켈리스는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니콜리오가 결혼 예복을 입고, 곱슬곱슬하고 아주 깨끗한 머리털은 빨간 비단 수건으로 공들여 묶은 채, 목 뒤 양어깨 사이에 지팡이를 메고선 산을 배경으로 나타나더니 길을 떠났다. "안녕히 계십시오, 도련님." 그는 미켈리스를 향해 외쳤다. 미켈리스는 속으로 그를 축하하였다. "잘 가게. 결혼을 축하하네. 점잔을 빼는 사람들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게!" 그러자 그의 웃음 소리가 산 주위로 울려 퍼졌다. 그는 양떼에게로 다가가서 두 집게손가락을 입 속에 넣어 양들에게 작별인사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나선형의 뿔을 가지고 방울을 달고는 양떼를 이끄는 수양 다소스가 일어나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는 그 양의 뿔을 붙잡고 승부를 겨루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늙어빠진 놈아!" 그는 자기의 바램이 이루어지고 있는 행복감에 그에 대고 소리쳤다. "가서 너의 암양들을 찾아봐라. 나는 레니오를 찾아가는 길이란다! 월요일 아침에 보자꾸나. 다소스야, 나에게 축복을 해주렴!" 그리고 나서 그는 비탈길을 내려가 요란한 발소리를 덜커덕덜커덕 내었다. 사람의 목소리기 들려오자 미켈리스는 벌떡 일어났다. 바위 사이로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와 그 뒤에 사랑하는 마리오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가슴은 심하게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일까? 왜 이리로 오는 걸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에 틀림없어! 그는 중얼거리고서 그들을 맞으러 달려나갔다. "내 사랑하는 미켈리스." 사제가 말했다. "홀로 쓸쓸히 있는 자네를 만나니 참으로 반갑군. 우린 읍내로 가는 중인데 마리오리가 자네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는 떠나려 하질 않아. 마리오리는 건강이 좋질 않다네. 무슨 병인가 진찰을 받으로 가는 중일세." "안녕, 미켈리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미켈리스는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도아 주었고 그들은 의자에 앉았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으나 멀리서는 안개가, 그때까지 빛 속에 잠겨 있던 평원 위로 벌써 퍼지고 있었다. 두 마리의 까마귀가 시끄럽게 머리 위로 날아갔다. 사제는 그것을 보고선 눈살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두 젊은이는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미켈리스가 금반지가 반짝이는 약혼녀의 가냘픈 손을 잡았다. "자네의 저택을 들여다보겠네." 사제가 말하고는 그 약혼한 한쌍을 두고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귀여운 마리오리." 미켈리스가 물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니? 하나님은 위대하시오. 내사랑, 하나님께 맡겨요. 당신은 곧 나을 수 있을 거요.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용기를 가져요. 금방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것이오." "네." 마리오리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어요." 잠시 후 마리오리가 물었다. "당신, 아버님하고 다투셨나요?" "아버지 일은 잊어요. 그 일은 너무 고통스러우니 그것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맙시다. 마리오리, 당신을 사랑해요.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소. 오직 당신만이 나를 현실과 맺어 주고 있소. 그밖엔 아무것도 오직 당신분이오. 알겠소?" "제가 더 이상 가까이 있을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켈리스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그가 말했다. 마리오리는 그의 손바닥에 키스를 할 시간을 가졌다. "내 사랑." 그녀는 절망하고 있었나, 이렇게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문간에 다시 나타났다. "마리오리." 그가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이리 오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그리고리스 사제는 미켈리스에게 말했다.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미켈리스, 그러나 돌아와서 하기로 하지. 자넨 언제쯤 아버지한테 돌아갈 건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사제님." 미켈리스가 허리를 구부려 그의 손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의 마음이 먼저 당신께로 신호를 보내 주기를 기다린다네, 미켈리스." 사제는 그를 준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더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억제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미켈리스가 외쳤다. "주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그는 잠시 마리오리의 작은 손을 잡았다. "마리오리." 그가 속삭였다. "나에겐 오직 당신뿐이오! 잊지 말아요!" 그는 얼굴을 돌려서 그녀가 눈물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선 가파르고 험한 바위산을 기어올라가 그들이 내려가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래, 내 마음은 아직도 세속에 애착을 가지고 있구나. 그는 산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평원을 향해 내려갔다. 포도 수확기가 시작되었고, 포도향 내음에 취해 추수하는 부인네들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잘 익은 포도송이를 따 바구니에 던져 놓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는 붉은 포도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여인들은 포도를 수확한 바구니를 나르면서 한숨을 짓거나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는 젊은 남정네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위한을 얻고 있었다. 미켈리스는 멈춰 섰다. 그의 마음은 억제할 길 없는 슬픔으로 짓눌리고 있었다. 아니다. 저것은 수확의 즐거운 노랫가락이 아니라 장례식의 애도의 노래이리라. 그는 거기에 서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결코 멈추지 않고서 냉혹하게 돌고도는 인생살이를 맛보앗다. 대지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포도 수확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는 올리브 차례가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 탄생 시기인 것이다. 포도나무는 새로이 꽃을 피울 것이며, 옥수수 씨앗도 뿌릴 것이고, 그리고는 다시 수확기가 돌아올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미켈리스 자신이 세월의 수레바퀴에 얽매여 밝은 태양 아래서, 또는 궂은 비 아래서 일어났다가 쇠잔하는 것처럼 돌고 돌았으며, 밤과 낮도 그렇게 나타나서는 가라앉곤 하였다. 이 모든 것들과 함게 그리스도도 다시 태어나시어 인간으로 성장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의연히 세상에 나섰다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부활하신 후 그 다음 다시 강림하셔서는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이라는 상념에 빠져 있었다. 미켈리스는 관자놀이가 윙윙거리며 현기증이 엄습해옴을 느꼈다. 그는 이 시간의 수레바퀴를 막아 멈추게 하려는 듯이 바위에 매달렸다. 그는 땅 위로 미끄러져서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날인 일요일 파트리아케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시 그가 잠이 들었지만 악몽이 엄습하여 피가 그의 머리 위에 솟구쳐 질식해 있는 자신을 의식했었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레니오의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보냈으나 그의 아들은 이렇게 회답했다. "만일 장례식이라면 가겠습니다만 결혼식이라면 가지 않겠습니다." 늙은이는 이 답장을 받고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겼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도대체 내가 어쩌면 좋으냐 말이다? 불쌍한 노인은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중얼거렸다. 그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사랑하는 아들인데 왜 참석하기를 거절하는 것일까? 내가 그애에게 무엇을 해주면 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전생애를 되돌이켜보다가, 만년에 가서는 화가 나서 다시는 입을 열지 않으려 했으며, 손에 채찍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남녀 하인을 때리거나 돌을 집어들고선 우물가로 물을 길러 가는 젊은 처녀들에게 돌을 던져 물동이를 박살내곤 했었다. 그는 사람을 먹는 도깨비처럼 게걸스럽게 먹고, 물고기처럼 또 마셨었다. 어떤 병마도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대경실색하여 얼이 빠지게 만드는 새로운 이빨이 돋아나고 있었다. 어느 쾌청한 날 그는 벼랑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지금에 이르러서조차도 이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파트리아케스는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당신 아버님이 자살 하셨소" 라는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그에게 왔을 때 그는 크고 힘차게 세상이 떠나갈 듯이 웃어 댔었다. 온 마을 사람들은 자식으로서의 그런 무정함을 보고 치가 떨릴 만큼 반감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것이 마치 자신이 이때까지 바위에 짓눌려 있다가 그 바위가 갑자기 굴러 없어진 것처럼 그에게는 여겨졌던 것이다. 이제 그 아들이 자유롭게 숨쉴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가! 그는 그의 기쁨을 억제할 수가 없었었다. 그때의 웃음을 기억하면서 늙은 족장은 몸을 떨었다. 미켈리스 역시, 바위가 그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그럼 이번에는, 미켈리스가 굴레를 벗어난 해방감에 웃기 시작할 차레인가? 그는 공포에 질린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그랬지. 미켈리스도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의심의 여지가 없어. 정말 그렇다면? 뭐가 뭔지 모르겠군! 모든 자식들이 결국에는 그들을 낳아 준 부모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어디 쓰여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왜? 도대체 왜? 알 수가 없군! 파트리아케스는 이 모든 것들을 회상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 위에서 돌아누우려 뒤척뒤척거렸다. 그의 육중한 몸무게로 인해 마룻바닥이 진동을 했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열어 둘 대문에 점차 저녁이 깃들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도착하였고, 결혼식이 막 거행되려고 하였다. 그때서야 늙은이는 겨우 일어나 마치 많은 걱정거리를 안은 황소처럼 헐떡거리며,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는 몸치장을 했다. 그는 코밑수염과 눈썹을 물들였으며 그의 머리카락에 오렌지 향수를 뿌리고는 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갔다. 그 결혼할 한쌍은 눈부시게 빛났으며 말쑥하고 아름답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 둘은 땀을 흘리며 말들이 바다에서 떠올랐을 때 풍기는 그런 냄새를 발산하고 있었다. 만일 이 세상에 이 한 쌍만이 홀로 남게 된다 할지라도 이 세상은 곧 새로운 인간들로 다시 가득차게 되리라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들었다. 늙은 족장은 그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주고, 결혼예물을 교환할 것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벌써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교구 관리들이 때를 맞춰 은향로를 흔들고 있었고 손님들은 모두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을 자람스럽게 생각하면서, 정렬하여 방 주위에 빙 둘러서 있었다. 어린 두 소녀가 맛있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나르며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더듬거렸다.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그날 아침 그의 딸애를 진찰하고는 고개를 흔들던 의사에게로 날아가 있었다. 그는 너무 서둘렀기에 해야 할 부분의 절반을 생략해 버린 채 억지로 노래를 불렀다. 신랑과 신부 역시 이러한 것들이 자신들이 잘 살기 위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오금이 쑤시도록 기다렸다. 파트리아케스도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예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그는 이를 악물고 꼿꼿이 서 있었다. "친애하는 여러분." 결혼식이 끝나자 그가 말했다. "오늘 저녁, 레니오와 니콜리오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희 집에 잘 오셨습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십시오. 우리는 많은 양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술도 많이 있습니다. 포도 수확기가 되었으니 술통은 곧 다시 찰랑찰랑 넘칠 것입니다. 그러니 허리의 단추를 풀고 마음껏 드십시오." 그는 그 젊은 부부에게로 돌아섰다. "오래 잘 살아라, 귀여운 것들." 그가 그들에게 당부했다. "이 땅의 백성으로서 자식 낳고 백년해로 하기 바란다. 사람의 종족은 번성하게 마련이다. 벽난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라. 카론(풀이: 저승으로 가는 나룻배의 사공. 그리스를 침략한 터어키를 일컫는 듯) 앞에서 깃발을 내려서도 안 된다. 우리가 씨뿌리면 그가 거두어 들이지. 우리는 누가 승리하는지 보게 될 것이야. 알겠느냐, 복받은 니콜리오야? 화약에 불을 당겨 봐! 네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뿌려 보아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쉬어야겠습니다. 몸이 좀 좋지 않아서. 그러나 여러분들 - 계속하십시오! 먹고 마시고, 오늘은 휴일이니 동이 틀 때까지 마음껏 즐기십시오! 아직 턱에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청년들과 처녀들, 곧 여러분께서 결혼할 차례가 오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다시 한번 젊은 성 게오르그가 되어서 여러분들께 큰 병에다 포도주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족장은 오른손을 들어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린 소녀 하나가 그를 위해 문을 열려고 달려나갔다. 문간에서 그는 멈춰 서서는 사제의 사제복을 벗고 있는 그리고리스 사제에게로 돌아섰다. "사제님." 그가 말했다. "식사가 끝나신 후 올라오십시오. 우리 이야기나 나눕시다." 사제가 즉시 일어섰다. "당신과 함께 가겠소이다." 그가 말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여러분!" 그리고 나서는 신랑 신부에게 말했다. "머리 장식을 깨끗이하고 풍성하게 하기를!" 그 두 인사가 가 버리자 손님들은 휴 하고 숨을 내쉬고는 잔치상으로 다가갔다. 마을의 그 두 우두머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아래층에서는 축제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술과 고기가 노래와 춤을 따라 들려지고 있었으며 웃음 소리가 터지고, 즐거움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윗층에서 중요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두 노인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쭉 누워서는 파트리아케스가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계속 늘어놓았다. 그는 볼셰비키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볼셰비키를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쇠 장을 박고 나막신을 신은 채 북쪽에서 밀려내려온 것으로 상상하여 이야기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은 불꽃을 일으키며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다는 둥, 선두에는 마놀리오스가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도 또한 반괴물이 되어 있었다는 둥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그의 입으로부터는 불길이 나오고 있었으며, 팔을 쭉 뻗어 리코브리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파문당한 사제 포티스도 그들과 함께 있지요." 그리고리스 사제가 말했다. "그가 우두머리입니다." "사제여, 포티스 사제 역시도 사라키나에 있는 모든 불량배들과 한패요. 온 사라키나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급습하기 위해 진격중일 거요. 당신이 '발들이 머리를 거슬려 반란을 일으켰다' 라고 말했을 때 당신의 말이 정말 옳았어요. 그것이 내가 당신을 뵙자고 한 이유입니다. 사제, 여기 있는 우리 둘이서 이 문제를 논의하여 사태를 다시 바로잡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야만 하오." 그리고리스 사제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분노가 치밀어올랐으나 즉시 그의 생각은 마리오리에게로 돌아가선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전이 윙윙 울렸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한밤중까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마침내 엄습해 오는 피로를 느겼다. 그들은 서로를 충분히 알게 되었으며, 싫증이 난 듯 서로를 바로보았다. 그의 혀에 종기가 나게 해서 좀 조용히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리스 사제는 생각했다. 이제는 그만 물러갈 때가 되지 않았나? 파트리아케스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루해 죽을 지경이군. 살찐 돼지같으니라구!' 그리고리스 사제는 다시금 마리오리를 생각했다. 그녀를 좁은 안뜰이 있는 진료소의 자그만 방에 홀로 남겨 두었다. 그곳은 더워서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리라. "따님은 잠시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의사들이 엄포를 놓았다. "좀더 지켜보고서 우리가 당신께 알려 드리지요." "위험합니까?" 불쌍한 아버지가 몸을 떨면서 물었다. "생명이 위태롭습니까?" "위험은 합니다만 희망은 있습니다. 사제님, 우리는 기다려야만 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당신 딸의 핏속에서 두마리 사나운 짐승이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지요. 어느 것이 이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제게 모든 사실을 말해 주십시오." 사제는 애원했다. "우리는 당신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사제님, 한 달 있다가 다시 오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제가 말했다. "당신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십시오. 저희도 저희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오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서둘러 그를 보내고 다른 환자를 맞아 들였다. 사제는 기운을 내서 일어나 파트리아케스에게 손을 내미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족장님." 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이 모든 것을 다시 이야기합시다." "좀더 있다 가시지 않고서, 사제?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제가 실수를 했군요. 마리오리에 관한 소식을 여쭈어 본다는 게 그만 잊었습니다. 의사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외관상으로 그애에게 아무 일도 없다 합니다. 그앤 아직 어린데다가 좀 쇠약해지고 있지요. 의사들 말에 의하면 그애는 곧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미켈리스 - 그는 어떻습니까? 저는 그가 좀 걱정이 돼요, 파트리아케스."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노족장은 화가 나서 대답했다. "그는 젊어서 옷 속에 벌떼를 지니고 있지요. 허나 곧 열풍은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마놀리오스만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사제여!" 이런 말을 하고선 그는 홱 몸을 돌려 벽을 마주 보았다. 그는 사제가 쿵쿵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눈개승마같으니라구. 그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들이 걱정스럽다구? 나는 네 딸년 마리오리가 걱정스럽다. 이 늙은이야! 만일 내 아들이 폐병장이와 결혼하여 내 가문을 더럽히게 되는 것보다 차라리 네 딸이 죽는 편이 더 낫겠다. 그래야 우리가 평안해지지. 그 가엾은 애에게는 안됐지만 맹세코 그녀가 죽는 게 더 낫다구! 리코브리시의 원로들이 마놀리오스를 없애버리기로 결정내리고 있을 그때에, 마놀리오스는 포티스 사제와 함께 사라키나의 피난만들이 추위와 기근을 견디며 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방도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는 오직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일을 하고 사랑을 하십시오." 그들은 일할 수 있는 남자와 여인네들을 모아서는 그들을 두 패거리 - 조합 - 로 나누고 각각에게 연장자나 어머니로 책임자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는 그들을 이웃 마을로 보내 일거리를 찾도록 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사라키나에는 단지 노인들과 어랜애를 돌보는 부인네들만이 남겨졌다.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사랑스러운 신도들이여." 포티스 사제가 그들의 여정을 몇 발자국 따라가면서 축복했다. "일해서 할 수 있는 한 과일이며, 식용류, 포도주, 옷가지를 모두 모으십시오. 마음속에는 항상 새로운 가정을 생각하시고, 벌들이 자신의 벌통을 갖고서 꿀을 모으러 들판이며 산위로 흩어져 나갈 때 꿀을 가득 싣고 그들의 작은 밀납 구멍으로, 그들이 남겨 놓고 간 애벌레에게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 꿀벌들처럼 하십시오. 성도들이여, 잘 가십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마놀리오스는 자주 그들과 동행을 했다. 가는 도중에 그는 그들을 격려하며 주위에 있는 마을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떤 집 대문을 두드려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선 사라키나로 돌아왔다. 포티스 사제와 그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교장 선생인 하지 니콜리스가 준 석판을 이용해 그들에게 철자법을 가르쳤다. 밤이 되면 그들 두 사람은 교회 옆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작은 자갈돌 안에서조차도," 어느 날 저녁엔가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가장 보잘것없는 짐승 안에조차, 가중 우둔한 영혼 안헤서조차도 주님이 온전히 살아 계신다네. 마놀리오스, 우리 이 작은 마을, 우리의 세계를 위해 우리 최선을 다해 봅시다. 거룩한 영혼으로써 모든 것을 빛나게 하고 부지런해져서는 번성하여 하나가 됩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한 선행은 비록 그것이 가장 멀리 떨어진 황야에서 행해진 것일지라도 온 세상을 통애서 메아리쳐질 것입니다." 마놀리오스는 눈을 들어 포티스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야위었으나 굳센 모습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듯이 보였다. 하늘로 쭉 뻗은 그의 두 손이 불꽃처럼 너울거렸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놀리오스가 힘차게 응답했다. "누구나 스스로도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제님, 그러나 지금은 두렵습니다. 그러면 그런 커다란 사명을 우리가 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어떤 길을 우리는 따라야 합니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밤은 깊었다. 나이든 부인네들은 불을 지펴 음식을 준비했다. 굶주린 어린아이들은 그들 주위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한 손을 포티스 사제의 무릎 위에 얹고 명상에 사로 잡힌 사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사제님?"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인간을 사랑함으로써일쎄, 나의 아들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을 사랑해야 하나요?" "바른 길을 가도록 그들을 힘써 인도함으로써라네." "그럼 그 올바른 길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가고 있는 바로 이 길이지." 14 네가 그를 죽였다 - 네가 다음날 정오 무렵, 아그하가 스미르나로부터 돌아왔다. 그는 동행이 있었다. 밤색 망아지를 탄 터어키 소년이 그 뒤에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쾌활했고 그의 행동은 야수처럼 거칠었다. 그는 죽은 유소우화키처럼 매스틱을 씹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을 꿈이라고 노래하기보다는 차라리 소리치고, 저주하며, 또 싸우고 명령하는 그런 위인이었다. 그의 가련한 연인 아그하는 그를 감싸주었고 그의 모든 행동을 참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브라히마키였다. 그는 두툼한 입술을 가진 열 다섯 살의 장난꾸러기였다. 아그하는 그를 지저분하고 평판이 좋지않은 스미르나 거리에서 발견했다. 그곳은 사창가의 표시로 모든 집이 빨간 등을 켜고 있었다. 그는 볶은 해바라기씨, 고무덮개, 구운 게, 자스민꽃 등을 양동이에 넣어 팔고 있었다. 매일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그 골목은 사람들의 행렬로 붐볐다. 젊은이들, 늙은 사람들, 유태인과 회교도인과 기독교인, 모두들 하루 동안의 괴로운 일을 잊고 쾌락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모여들었다. 문 앞에 반나체의 여인들이 화장한 입술 위에 요염한 미소를 띠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그하는 브라히마키를 보자마자 당장 매혹되어 버렸다. 그는 다가가서 잠시 동안 흥정을 한 후 결정을 내려 그에게서 밤색 말과 좋은 천으로 만든 새옷, 은시계와 은목걸이 그리고 사향 단지와 정향가방, 그리고 계피꽃 등을 샀다. 그 후 그는 그를 하맘으로 데려가 기름에 덮여 있는 물로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는 그를 이발소에 데려가 머리를 깍이고 라벤더(풀이: 향기로운 꿀풀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말려서 향기를 씀) 향수를 뿌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르자에 데려가 남의 일 잘 봐주는 그의 오래된 친구가 그에게 약간의 예절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아그하는 깨끗하고 향내 나고 숙련된 브라히마키를 인수하였던 것이다. 마르다는 투덜대며 주인이 총애하는 사로운 사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를 자세히 관찰한 후 그녀는 이미 알겠다는 듯이 조롱하는 웃음을 머금었다. 이 녀석에게 빠져있군, 아그하가! 하고 생각했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었나, 마르다" 하고 안마당으로 내려서며 아그하가 물었다. "누가 죽었나" 그 동안 누가 결혼했나? 곡물 생산과 포도 수확은 괜찮은가? 늙은 삼나물과 같은 파트리아케스와 그리고리스 사제는 아직 살아있나? 그리스놈들이 싸움을 하지는 않았냐? 그들은 서로 눈들을 찢어 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멀리 있다 온 것 같군." 그리고 브라히마키를 향해 돌아서며 "이 사람은 충실한 노예 마르다다" 라고 그가 말했다. "좋은 여인이고 뛰어난 가정부지,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지는 말아라. 약간 곱사등이인데 곧 익숙해질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녀에게 하렴. 그녀를 때리든 죽이든 그녀와 함께 잠자리를 하든지... 그녀는 네 소유야." 브라히마키는 얼굴을 찌푸리며 늙은 여인의 잔등에 난 혹에 손을 웃으며 웃었다.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낙타인걸요. 아그하님이나 그녀를 가지십시오." 라고 브라히마키가 말하고는 집을 둘러보기 위해 큰 걸음으로 걸었다. "무시해 버려, 마르다." 라고 아그하가 말했다. "그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야. 그가 달리고자 하거나 물고자 하더라도 조용히 해야 돼. 나도 역시 조용히 할 거야. 참으라구, 마르다. 그는 곧 익숙해질 거야." 브라히마키가 마당으로 돌아왔다. "당신의 우리에는 새들(풀이: 앳된 그리스 처녀들)이 있지요?" 라고 그가 아그하에게 물었다. "언젠가 그들에게 춤을 추게 하세요. 그러면 내가 그들을 보고서 선택하겠어요." 아그하는 펄쩍 뛰며 말했다. "내 말 들어. 그런 것은 없어. 알겠나!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이야, 나는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러니 너는 너의 달걀 위에서 알이나 품으며 기다려!" "그들이 알을 품을 거예요." 라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풋나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 늙은 곱사등이 식사 준비해. 배가 고프다." 아그하는 한숨지으며 유소우화키를 생각했다. 그는 입이 있었지만 말을 안 했다.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를 불렀고 담뱃불을 붙이라면 불을 붙였고 잠을 자러 가자면 따라왔다. 이건 인간의 탈을 쓴 악마구나.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이놈이 그러한 매력을 가졌는데! "좋아, 브라히마키." 아그하가 말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거야. 조금만 참아라! 물러가, 불쌍한 마르다. 가서 병아리 목이나 비틀어라." 한 시간 후 아그하와 그의 풋나기는 배부르게 먹고 마신후 그들의 방문을 잠갔다.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저녁때 아그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기진맥진하여 나타나 마르다를 불렀다. "가서 파트리아케스를 좀 오라고 해라. 그에게 할 말이 있다. 브라히마키가 여인의 춤을 보기 원한다. 우리가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있겠니? 빨리 다녀와!" 마르다는 파트리아케스의 집이 엉망이 된 것을 발견했다. 개들이 제 집마냥 마당을 배회하였고 두세 명의 하인들이 잔치가 끝난 후 휴지를 줍고 식탁을 씻고 닦으며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레니오와 새남편은 마놀리오스의 새 우리를 인수하기 위해 이미 떠나 있었다. 만달레니아 할멈은 하인을 감시하며 집안일들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루를 하나 가지고 이따금씩 슬며시 혹은 공공연히 그가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가끔씩 이층에 올라가 주인이 무엇을 하나 엿보았다. 사실 늙은 족장은 몸이 편치 못했다. 그는 그의 오른쪽 발과 팔을 쓸수 없었고 그의 입은 한쪽으로 돌아간, 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일어나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라고 만달레니아 할멈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흥분하시면 몸에 해로워요, 족장님. 안마해 드릴께요. 그러면 좀 나아질 거예요. 날씨가 차요." 그러나 늙은 족장은 침대에 기대어 침을 흘리며 멍청하게 창문을 응시했다. 만달레니아 할멈은 늙은 마르다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녀를 막기 위해 달려갔다. 그녀는 늙은 곱추의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엇하러 왔어요, 마르다" 어떤 새로운 불행이 마을에 일어났나요? 아그하가 돌아왔나요? 말 좀 해요. 답답해 죽겠어요!" "안녕, 잠깐만 기다려요. 당신은 나를 목졸라 죽일 작정인가요, 이 더러운 마녀야. 나는 족장님을 만나고 싶어요. 만나야만 한다니까." "안 돼요. 당신은 그를 만날수 없어요. 그는 지금 몹시 아파요. 반신불수 상태라구요. 그의 아들을 데리러 보냈어요. 그는 충격을 받아 말을 거의 할 수 없고 웅얼거리며 침만 흘려요. 그를 만날 수 없다니까." "내 눈으로 직접 그를 봐야겠어요." "허락할 수 없어요." "그래? 정 그렇다면 손톱으로 할켜 버리겠어!" 그들은 싸움을 시작했다. 하인들이 달려와서 그들을 떼어 놓았다. 늙은 곱추는 이럭저럭 계단에 도달하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공을 다루듯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거미처럼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늙은 족장은 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족장님." 하고 작은 노파가 말했다. "저 마르다예요. 아그하께서 당신에게 안부 전하셨어요. 당신을 모시고 오라 합디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이번에는 노인이 머리를 천천히 돌리고 그의 입술을 움직였지만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만달레니아 할멈이 들어서자 마르다가 일어섰다. 그녀는 마르다를 사정없이 밀어제치면서 노인을 부축하였다.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족장님?" 노인은 고개를 삐뚜름하게 돌리며 입술를 씰룩거리며 무언가 웅얼거렸다. "뒈져 버려라. 이것이 그가 말한 것이요." 라고 만달레니아 할멈이 말했다. "아그하에게 무어라고 전할까요, 족장님?" 라고 작은 노파가 물었다. 노인의 입이 씰룩거렸고 만달레니아 할멈이 다시 다가왔다. "그 또한 뒈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셨소." 작은 노파는 머리를 가로젓고서 침대에 뛰어올라 허리를 굽혔다. "족장님." 그녀가 속삭였다. "아그하는 나쁜 짓을 꾸미고 있어요. 들려요? 그는 스미르나로부터 우리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킬 새로운 마귀를 데리고 왔어요. 그 불량배는 마을의 모든 처녀들이 광장의 버짐나무 밑에 와서 춤을 추기를 원해요. 그리고 그 중 한 여자를 택하겠대요. 당신은 고통스런 순간을 맞이했어요, 족장님"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얼굴에 핏발을 세웠다. 그는 힘을 모아 소리쳤다. "안 돼!" 하고 소리치고는 침대에 쓰러졌다. "그를 죽일 셈인가, 이 곱추야, 제길할, 뒈져라!" 라고 만달레니아 할멈이 큰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마르다의 등에 있는 혹을 잡고 그녀를 밖으로 내쫓았다. 그녀는 침대로 돌아와서 기름과 장뇌로 노인을 마사지했다. 이것이 그를 어느 정도 안정시켰고 그는 눈을 떳다. "사람을 보내 그리고리스 사제를 오라고 해!" 라고 매우 힘들게 말했다. 그 후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미켈리스가 들어왔다. "저리 가." 그는 침대에 다가가며 노파에게 말했다. 그녀는 치료도구들을 챙겨 사라졌다. 미켈리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고 서 있었다. 노인의 얼굴은 부어올라 창백했다. 그의 삼중턱은 살이 빠져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입의 오른쪽이 아래로 쳐져 있었다. 노인이 눈을 떴다. 그리고 아들을 보고 미소를 띠었다. "어서 와라." 그는 왼손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미켈리스는 몸을 구부려 손에 키스를 했다. 노인은 마지막 말을 하는 것처럼 침울하고 절망적인 눈길을 아들에게 고정시켰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그가 손을 다시 뻗으며 중얼거렸다. 노인은 힘을 모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했다. "나의 아들아, 나는 떠난다. 나는 이제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나는 이제 식탁 냅킨이 필요없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너에게 못할 말을 했다면 용서해다오. 아버지로서 너를 사랑한다. 가끔 사람은 말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니. 너에게 청이 하나 있다." "말하셔요, 아버님." "마리오리..." 그는 말을 끊었다. 땀이 앞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그의 아들이 몸을 구부려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았다. "마리오리는 나쁜 병이 있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아라. 우리의 피가 더럽혀진다. 듣고 있니?" "듣고 있어요, 아버지." "내가 말한 대로 행하겠니?" 미켈리스는 말이 없었다. "내가 너에게 부탁하는 마지막 청이다. 그렇게 하겠지? 내가 평화롭게 죽을 수 있도록 '예'하고 대답해라." 몇 분이 지났다. 노인은 그의 아들을 근심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예." 라고 미켈리스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럼 됐다." 노인은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사가 끝났다!" 미켈리스는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농부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포도 농장으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어깨에 물동이를 진 두 젊은 여인이 수다를 떨며 지나갔다. 맨발과 손이 포도즙으로 얼룩진 라다스 영감이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는 포도를 거둬들이고 있군. 노인은 약간 움직이더니 한숨을 지었다. 미켈리스가 돌아섰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손짓으로 "가지 말아라. 기다려." 라고 말했다. "가지 않아요. 주무세요, 아버지." 멀리 성 바질의 우물 근처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노래를 불러 단조로운 사랑의 한탄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것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마치 어떠한 남녀도 결합된 적이 없고 어느 누구도 포옹의 쾌감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소녀의 목소리는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다. 미켈리스는 그의 약혼녀를 생각했다. 그도 또한 그 소녀와 같이 그의 울분을 터뜨리고 싶었다. 갑자기 그는 아래 안마당 입구에서 하얀 턱수염을 휘날리며 들어오는 그리고리스 사제를 보았다. 그는 발 끝으로 걸어서 그의 아버지가 깨지 않도록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층계의 맨 위에서 기다렸다. "의사가 뭐라고 그러던가요, 사제님?" 사제가 느리고 장중한 발걸음으로 마침내 층계의 맨 위까지 도달했을 때 미켈리스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녀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어. 한 달 내로 그녀는 다시 원기를 찾을 거야." 그는 열려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족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그가 나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어." "매우 악화됐습니다. 사제님, 들어가 보시지요. 그분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늙은 족장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어서 오시오, 사제님." 그가 더듬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니예요. 힘을 내십시오!" "아무 일도 아니지요, 내가 죽는 것은 사제님, 앉으시오. 당신에게 할말이 있어요. 미켈리스, 이리 오렴!" 침을 튀기고,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씰룩거리면서, 아그하가 왜 그에게 사람을 보냈는가를 그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새로운 유소우화키가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를 수 있도록 마을의 모든 처녀들이 그 앞에서 춤을 추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치도 않은 말." 그리고리스 사제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그들 모두를 죽게 하는 편이 낫지!" "우리 모두가 죽는 편이 낫지요." 분개한 미켈리스가 정정했다. "당신의 책임을 다하시오." 라고 죽어 가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있지 못할 것 같소. 미켈리스가 나의 자리를 맡을 것이오." 그는 힘이 부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리고리스 사제의 손을 잡았다. "오늘밤 와서 성찬식을 베풀어 주시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문 쪽을 향해 갔고 미켈리스가 뒤따랐다. "그를 떠나지 말게나. 미켈리스, 자네의 아버지 건강이 대단히 나쁘네.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기를 빌겠네!" 그는 잠시 곰곰히 생각한 후 "나는 곧 아그하를 만나러 가겠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수치를 주셔야만 했는지 그에게 물어 보겠소!" 미켈리스는 돌아와서 그의 아버지 곁에 앉았다. 그는 밤새도록 비뚤어진 입술과, 축 늘어진 볼 하며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의 모습을 한 그의 가련한 얼굴에 눈을 고정시키고 바라보았다. 이분이 나의 아버지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젊었을 때 성 게오르그처럼 날씬하고 용감했던 위대한 파트리아케스였다. 심지어는 걸어가도 흡사 말을 탄 것만 같았다. 그는 가장 좋은 음식들과 최고급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숙녀들과 하녀들, 두 명의 수녀, 그리고 수도원장과 관계를 맺어 다른 사람들의 집에 아들과 딸들을 안겨 주었다. 시간이 흘러 마을 사람들은 거의 잠이 들었다. 사제가 돌아와서 늙은 족장의 고해를 듣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고 성찬식을 집행했다. 그래서 미켈리스는 다시 한번 무겁고 거북살스러운 자기 아버지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다. 날이 샐 무렵 이웃집 개가 짖기 시작했다. 미켈리스는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이미 하늘은 장미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무와 새, 그리고 사람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모든 사물들은 조용했고 단지 개만이 컹컹대면서 적막을 깨뜨렸다. 늙은 족장은 개짖는 소리에 눈을 떴다. 검은 날개를 가진 대천사가 그의 침대 위에 있었다. 그의 영혼은 몇 번 흐느끼다가 육신을 떠나갔다. 문이 열리며 그리고리스 사제가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다가가서 족장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심장의 고동이 멎어 있었다. 사제는 거칠게 미켈리스 쪽으로 돌아서며 "자네가 아버지를 죽였어!" 쉰 목소리로 외쳐 댔다. "너야!, 너." 미켈리스는 두려워졌다. 그는 사제의 눈을 바라보았다. 입을 열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리코브리시 마을을 지탱해 온 기둥 하나가 이제 막 무너져 내렸다. 소문이 집집마다 전해지자 마을 전체가 흔들렸다. "족장이 죽었어!" 아그하는 막 일어나서 눈을 반쯤 감고 발코니에 앉아서 밤새 꿈 속에서 나타났던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르다가 그 소식을 전하자 대경실색하였다. "뭐, 그가 죽었어? 정말인가? 탑이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마을을 절름발이로 만들었구나!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니, 나는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음이 틀림없어!" "어젯밤에는 마을의 모든 개들이 짖어 댔어요." 하고 작은 노파가 말했다. "저는 즉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어요. 대천사가 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내려왔음이 틀림없다 하고 속으로 말했지요. 개들이 대천사를 보고 놀랐던 거예요."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 하고 아그하는 커피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그는 천국에 갈 좋은 사람이야. 그는 훌륭한 생애를 살고자 원했었고 어떻게 돈과 시간과 여자를 다루는지 알았지. 유감스럽게도 그는 회교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고기덮밥과 소년들과 여인들로 가득찬 우리의 낙원으로 바로 갔을 거야. 비록 늦었지만 그곳은 당신이 가야만 할 곳이야. 불쌍한 파트리아케스!" 브라히마키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에는 눈곱이 끼고 옷소매를 풀어헤친체 왔다. 아름다운 점이 목의 돌출부에서 보였다. 아그하는 탐욕스럽게 손을 뻗어 까만 곱슬머리와 부드러운 목을 애무하고 아름다운 점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낙원에라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여인들이 언제 춤출 건가요?" 무지막지한 소년이 아그하의 손을 잡아 거칠게 뿌리치면서 물었다. "제발 그렇게 서두르지를 말아라, 좀. 네가 부탁한 것을 해줄 테니. 그러나 나는 온 마을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아. 어제 저녁 사제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이러한 모욕을 우리에게서 거둬주십시오. 아그하여, 걱정을 가라앉히고 조금만 참으십시오. 우리가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라. 브라히마키야. 곧 강압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춤을 출 축제가 있을 것이다. 그때 보자꾸나." 그는 말을 계속하면서 제풀에 흥분되었다. "그리고 사실이지 내가 널 결혼시키기 위해서 여기 데려온 것은 아니야!" 한편, 파트리아케스 집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고인은 마당 한가운데 놓여졌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의 생전의 결점들은 생가해 내지 않고 단지 그의 친절함만을 기억했으며 고인의 미덕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파나요타로스조차도 그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러 와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를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하나님, 그를 용서하소서." 그가 그의 거친 입술을 죽은 사람의 차가와진 이마에 대며 중얼거렸다. 라다스 영감도 와서 그에게 입맞추었다. 그리고는 족장의 저택을 휘둘러보았다. 화려한 장례 행렬 속에서 그는 마음속으로 포도원, 들판, 올리브 과수원과 고인의 정원들을 계산해 보았다. "이 모든 재산이 아깝구나! 미켈리스는 이 모든 재산을 곧 폐허로 만들 거야.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하겠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제라구." 만달레니아 할멈은 혼자 슬픔에 잠겨 있기를 원했다. 그녀는 이미 그의 머릿수건을 던져 버리고 머리를 풀어 늘어뜨렸다. 그러나 미켈리스는 손으로 그녀를 옆으로 밀며 말했다. "울지 말아요! 조용히 해!" 매장을 하기 전에 교장 선생이 위로으 말을 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과 예수님이 오시기 전인 고대 그리스와, 밀티아데스(풀이: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샤를 격파한 아테네의 장군)와 데미스토클레스(풀이: 살라미스에서 저크시스가 거느린 함대를 격파한 아테네의 정치가, 장군)를 이야기하고, 비잔틴 제국을 회고하였으며, 땀에 흠뻑 젖어 가면서 정신이 아찔하도록 터어키 군대에 짓밟힌 콘스탄티노플을 이야기 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마음이 착잡하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격력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용기를 가지시오, 형제여, 콘스탄티노플은 다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성 소피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억압의 시대를 숨가쁘게 말했다. 그리고는 대담하게 관을 안치한 무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안에서 그는 파트리아케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김이 어린 안경을 닦기 위해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힘을 모아 고인에 대한 찬사를 시작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게오르그 파트리아케스는 고대 그리스인의 진정한 자손이며 비잔틴 제국의 진정한 손자이며 1821년의 영웅들의 참된 아들중의 한 분입니다. 이 위대한 족장은 불굴의 의지로 그리스 종족의 전파를 수행하였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위기의 시간에는, 그는 첫째로 그의 가슴을 내어놓았고 그의 생을 희생할 준비를 했었습니다. 게오르그 파트리아케스는 알렉산더대왕같이 아시아의 심장부인 이 마을의 영혼의 횃불을 지켜 주실 것이며 야만인들이 그리스의 불빛을 끄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훌륭한 그의 아드님 미켈리스를 남겨 두지 않았다면 게오르그 파트리아케스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불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영웅적 전통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이때, 모든 조객들은 교장 선생의 말에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훌륭한 영웅을 잃었는지를 새삼 느끼면서 울기 시작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가 무덤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땅으로 내려가는 관을 바라보고 있는 미켈리스를 데려갔다. 그의 머리에는 사제의 말만이 맴돌았다. "자네가 그를 죽였어, 자네가..." 그들은 그를 만류하면서 말없이 되돌아서서 왔다. 그들은 이제는 텅 비어 버린 크나큰 집에 돌아와서 문을 닫았다. 미켈리스는 마당 한가운데로 가서 아침까지만 해도 그의 선친의 시체가 누워 있던 땅에 주저앉았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의연히 일어섰다. 그의 은밀한 마음 한구석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어떤 쾌락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그도 그의 죽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섭섭하게 생각하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비인간적인 쾌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만달레니아를 불렀다. "여기 커피와 술을 좀 가져와, 그리고 흰 수탉을 잡아 식사를 빨리 준비해요!" 친구들이 놀라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으나 그의 목소리는 맑고 유쾌했다. 그는 자기의 집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광 문을 밀고 들어가 항아리 뚜껑을 들쳐 보고 통이 가득 찼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두들겨 보고 금고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는 준비된 식탁에 앉으면서 오른쪽에는 얀나코스를, 왼쪽에는 코스탄디스를 앉도록 했다. 그리고 잔에 가득 술을 부어 건배를 했다. "묘소에서 교장 선생이 지껄여 대던 나의 아버지에 관한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었소." 하고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영웅도 아니었고 위기의 시기에 생명을 바치지도 않았고 용감한 결단을 내린 적도 없소. 그게 전부요. 하나님, 그의 영혼을 지키소서! 그러나 착한 교장 선생이 우리 그리스 종족에 관해 말한 모든 것은 사실이요.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 사람들 중에 가장 비천하고 가장 무식한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위대한 족장이오. 그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소. 영웅적 결단을 내리지 않은 모든 그리스인들은 만약 그러한 경우를 맞이하면 그의 종족을 배반할 것입니다. 나는 그 불쌍한 현학자연 하는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면, 그에게는 비록 가장 평범하고 가장 편리하지만 내가 나의 아버지와 같은 길을 어떻게 걸을까 하고 두려움으로 쳐다보았소. 갑자기 나는 부끄러워졌소. 나의 아버지 묘소 앞에서도 나는 수 천 년전에 우리의 선저들이 걷던 고귀하고 험한 길을 택하기로 내 자신에게 맹세했어요." "어떤 길이오?" 친구의 말을 감동적으로 듣고 있던 얀나코스가 물었다. "어떤 길인가요, 미켈리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길이오. 그것이 내가 동료이며 친구인 그대들에게 청하는 이유요. 저녁이면 우리는 마놀리오스와 포티스 사제를 만나러 사라키나 산으로 갈 거요. 나는 지난밤 나의 선친의 임종을 지켜보았소. 그리고 이제 다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하오. 나는 결심했소. 오늘 저녁 우리 다섯이 함께 모였을 때 이야기하겠소. 형제들이여, 난 도움이 필요하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와 함께 가겠소, 미켈리스." 하고 두 친구가 말했다. 그는 건강을 위해 축배를 하고 간단히 닭고기를 들었다. 날이 저문 후,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는 그들의 동굴 앞에서 평화롭게 이야기를 하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 막 이웃 마을에서 돌아왔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들을 도와 주러 갔던 것이다. 그들은 그곳까지 걸어서 갔다가 돌아왔다. 그들은 더위와 먼지에 시달려 지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토피스 노인을 만나 늙은 족장이 세상을 떠나 이미 땅에 묻혔다는 것을 알았다. "똥과 사생아를 만들어 내던 기계가 끝내 작동을 멈췄군!" 하고 욕설을 잘하는 노새 몰이꾼이 빈정거렸다. "우리들이 오래 살다 보니 그는 마을에 있는 많은 과부들 곁을 떠나 버렸어." "언제 어떻게 죽었지?" "글쎄요, 엊저녁 그의 딸 결혼식에서 돼지 새끼를 두마리나 먹었다나요. 그는 야비한 터어키인들을 쫓아내기를 원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만 보시라구. 그는 오른쪽이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침에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잖소. 교장 선생이 조사를 했고 그에 관한 많은 선행을 말했다오. 하지만 제길할! 그가 그 저주스러운 말들을 알아듣기나 했겠소. 그래서 나는 남들과 같이 행동하기 위해서 계속 울기만 했다오. 그리고 흙을 한 줌 떠서 무덤 위에 뿌렸지. 그것은 마치 그가 삼킨 새끼돼지의 마지막 음식 같았소. 전능하신 하나님, 그의 영혼을 쉬게 하소서!" 그 말을 하고서는 그는 다시 제 갈 길을 재촉했다. 그들이 작은 길로 가 버린 후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천국의 문은 바늘 구멍보다 작다고 나는 포티스 사제로부터 들었소. 뚱뚱한 사람은 뚫고 들어갈 수가 없소. 그래서 족장은 어려울 것같아. 그러나 우리 셋은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요. 청빈에 축복이 있기를!" "그는 크리스토피스 영감처럼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야비한 방법을 썼소. 그러나 그는 그래도 진실된 면이 있어." 하고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그리고 부자가 구원되기는 어려워요. 배가 고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들에게 그의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없지. 그는 아무것도 보지 ㅇ는 것처럼 하면서 그의 나쁜 습관은 그의 모든 올바른 용기를 빼앗아 버리지. 이제 미켈리스가 어떻게 행할 것인지 보여 줄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그를 만나러 기다릴 것이오!" "나는 그를 믿습니다."하고 미놀리오스가 말했다. "하나님이 그대의 말을 들어주기 바라오. 그러나 나는 내 생애를 통애 여러 가지 일을 보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친구가 작은 동굴 위로 올라왔다. 사제와 마놀리오스가 일어섰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라오, 미켈리스." 하고 그들이 말했다. 다섯 명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미켈리스가 말문을 열었다. "사제님, 그리고 나의 동료들이여, 나는 나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슬퍼했고 그의 육신과 헤어졌으며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겼습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소서-마치 그것은 내가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모든 나의 행동에 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가지의 길이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말한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내게 제시한 보다 험난힌 길입니다. 어떤 길을 내가 선택해야 할까요? 오늘 아침 장례식에서 나는 오늘 저녁 사제님께 가서 나의 결심을 말하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마치 '도와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두손을 포티스 사제의 무플 위에 놓았다. 포티스 사제는 미켈리스의 손을 그의 깡마른 손으로 잡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우리는 이 어려운 때에 그대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들은 믿을 말한 사람이니 말해 보시오!" "많은 땅과 나무들을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붇았고 또, 할아버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마음껏 재물을 즐겼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 조각을 던져 주고 그들의 의무를 다 했다고 만족해하며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 믿었고, 나 또한 그것을 믿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 눈을 뜨게 해주셨으며 내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내가 한 결심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치겠다는 것이며, 결코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자들에게 빵 조각이나 던지는 나의 선조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모든 재산을 당신의 마을 사라키나에 바치겠습니다. 그것을 받아 주십시오. 사제님!' 그들은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숙연히 듣고 있었다. 미켈리스의 말이 끝났을 때까지 아무도 머리를 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포티스사제의 목메인 흐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얀나스코는 더 이상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서 미켈리스에게 달려가 두 팔을 벌려 포옹을 했다. 그는 말을 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소리 내어 웃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포티스 사제는 일어나서 미켈리스의 숙인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말했다. "내 아들이여, 나의 인생은 쓴 잔을 마셔야만 했었소.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미켈리스 그대에게 축복이 내릴 것이요. 그대는 지금 이 도망자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의 수천의 영혼을 수치와 죽음으로부터 구했소. 그대에게 축복이 있기를!" 마놀리오스는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그는 깊은 희열을 느낄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아그하의 문을 나섰던 그때나 그가 하마터면 목을 매었을 버짐나무를 보던 그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말씀은 전능이 있으시고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난할 때, 이 가진 것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부유할 때 그것으로 희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켈리스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압도되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어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일어서서 미켈리스를 포옹하면서 울었다. 코스탄디스는 목이 멘 채로 쳐다보면서 듣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내를 위해서도 남겨 놓은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저녁 날씨는 좋았다. 달은 하늘에 서서히 떠올라 사라키나 위에 취하게 하는 감미로움을 붓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미켈리스는 산을 부드럽게 하는 달을 보았다. 그의 마음속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쓸모가 없는 놈이야, 하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호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가 나의 아버지를 죽였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무서운 죄의 짐을 지고 있어. 나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 잠을 자기 위해서 '네가 그를 죽였어' 라는 무서운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저버린 것이 아닐까? 다음날, 그 소식은 폭탄처럼 마을에 퍼졌다. 미켈리스가 그의 모든 재산을 사라키나의 거지들을 위해 내놓았다는 엄청난 폭탄 선언이, 그리고리스 사제는 슬리퍼를 끌며 혁대도 매지 않고 모자도 안 쓰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는 미켈리스를 만나기 위해 족장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층계를 급히 뛰어올라, 창가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미켈리스를 발견했다. 그는 오랫동안 얼마나 마리오리를 사랑했던가를, 그리고 왜 그녀를 떠나야만 하는가를 쓰려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몇 번째 다시 쓰고 또 쓰고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글들은 그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만 같았다. 그 글들은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비통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항상'이라는 말과 '결코'라는 말은 별개의 두 단어이며, 미켈리스가 찾고자 한 것은 두 마음을 나타내 줄 수 있는 함축된 정확한 단어였던 것이다. 이때, 그리고리스 사제가 사제복을 나부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문인가! 미켈리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그리고리스 사제가 소리쳤다. "자네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사라키나의 거지들에게 준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것은 죄악이야, 죄악! 알아듣겠나? 수치라고!" 미켈리스는 그가 쓴 편지를 들고 말없이, 미친 듯이 날뛰는 사제를 쳐다보았다. "죽은 자네 선친의 뜻은 관심에도 없나? 그를 죽인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이제는 그를 토막내어서 한 조각씩 거지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이 망할 놈의 자식? 넌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하지만 사제님, 내가 이러는 것은 하늘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계율을 지킨다고 해서 너희에게 족하겠는가?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너희가 천국에 들어가기 원한다면 너희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명령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제님,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놀라서 그러십니까?" 그리고리스 사제는 자신도 모르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큰걸음으로 왔다갔다하였다. 그리고 분노를 못 이겨 주먹을 깨물었다.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사제님? 나는 지금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어떠냐니까요? 대답해 보십시오!" "자네는 지금 마을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며, 내 딸의 정혼 반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 내 대답이야. 이제 더 이상 이 혼인을 성사시키고 싶지 않아. 곧 나는 길거리에서 네가 등에 자루를 메고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되겠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미켈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세에 무슨 큰 가치가 있나요, 사제님?" "넌 미쳤어. 너는 전혀 네가 말하고 있는 것의 뜻조차 모르고 있어!" "아니오. 나는 단지 기독교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님!" "나는 너와 마놀리오스를 교계로부터 출교시키겠다. 너희들은 반역자야. 염소 턱수염을 한 포티스 사제도 포함해서 너희들 셋은 반역자란 말이다! 그래, 그래, 너의 눈을 굴려도 소용이 없어, 나는 너희들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우리의 비밀?" 미켈리스가 의아스럽게 말했다. "어떤 비밀 말인가요?" "볼셰비키! 너는 모스코로부터 종교와 나라와 가족과 재산, 그리고 세계의 큰 네 기둥을 버리라고 지령을 받았어. 저주받을 마놀리오스 놈이 너희들의 고수야. 그리고 새로운 복음을 위해서 세상의 다른 끝에서 온 포티스 사젠가 하는 놈은 모스코로부터 지령을 가지고 왔다구!" "그것은 그리스도가 볼셰비키라고 하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켈리스가 항변했다. "무어, 그리스도가? 너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은 강도들의 것이야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 그리스도란 말이다!" 미켈리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펄쩍 뛰었다. "자기 편할 대로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당신을 포함한 사제들과 주교들, 그리고 귀족들이 하는 수작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위선적이고 부정적이고 거짓말을 하며 겁이 많고 터어키와 영국 금화가 가득 담긴 금고를 가지고 있는 고리대금업자 라다스 영감으로 변질시켜 놓았소. 당신의 그리스도를, 당신은 도망가서 재산이나 긁어모으는 왕들의 공범자로 만들었소." "자네는 나에게 지금 전쟁을 선포하는 건가, 미켈리스?" 사제가 벽에다 침을 뱉으며 고함쳤다. "나는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만약에 당신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을 방어할 것이오. 진정한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있으며, 그는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난한 사라키나 마을이 당신의 풍요로운 리코브리시 마을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사제는 펄쩍 뛰면서 갑자기 이제야 이해하겠다는 듯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때렸다. "아아, 그것이 네가 너의 논과 집들을 사라키나 놈들에게 선물한 이유로구나. 그놈들이 알몸으로 리코브리시 마을에 들어와서 언젠가는 우리를 지배하겠다고! 안 되지, 안 돼, 어림도 없다구. 그들은 결코 우리 마을에 침투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어. 만약 그들이 온다면 쫓아 버릴 거야. 그리고 또한 너의 올리브 밭과 정원, 그리고 논들은 물을 댈 수도 없고 경작도 할 수 없어. 그것들은 모두 말라서 황폐할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 맹세하건대 다음주 일요일 날 나는 교구에 가서 너의 파문을 공포하겠어. 이 배신자!" 이 말을 하고서 그는 문을 꽝 닫으며 나갔다. 미켈리스는 그가 낡은 슬리퍼를 끌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휘날리는 사제복은 그가 지나갈 때 문을 가로막을 정도였다. 그 후 미켈리스는 그의 눈길을 끄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창문가에 앉아 마리오리에게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샘물에서 물이 넘쳐흐르듯이 글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지금 그에게 어떻게 하고 돌아갔는지를, 그리고 나, 미켈리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재산을 나누어 갖는 것에 대해 얼마나 화를 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약혼반지를 되돌려 주더라는 것 등에 대해 썼다. 그는 계속해서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그녀를 밤낮으로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그녀가 없는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일인가를 덧붙였다. 그는 편지를 쓰는 중에 예기치 않게 밀려드는 사랑으로 포근함을 느꼈다. 마리오리를 위로하기 위해 동원한 사랑의 언어들은 쓰기 전에는 몰랐던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마리오리가 없는 인생이란 참을 수 없는 아픔의 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녀를 이처럼 사랑하고 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그리고리스 사제는 교장 선생과 라다스, 그리고 다른 마을 원로들을 찾으러 갔다. 그가 그들에게 사태를 설명할 때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릇된 생각들이 마을에 퍼져 오염되기 전에 모든 마을 사람들은 반그리스도파와 정면으로 싸우기 위해 뭉쳐야 하고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결의했다. 단지 교장 선생만이 머뭇거리며 반대를 했다. 그러나 그의 형인 그리고리스 사제는 입닥치라고 소리쳤다. 사라키나 사람들이 족장의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올 때는 무력으로 그들을 쫓아내고 일요일 미사 후 그리고리스 사제가 파문을 선언한다는 것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지도자인 마놀리오스를 단단히 혼내 주어야 한다. 그래도 그 악질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들의 한 패거리인 미켈리스와 얀나코스, 그리고 다른 놈들도 혼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을의 암적인 존재들을 쫓아 내고 단지 좋은 사람들만 남아야 한다고 그리고리스 사제가 노기충천하여 말했다. 그는 재빨리 그의 딸에게 약혼자인 미켈리스의 행동과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는 그녀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마을에 다시 돌아올 때는 보다 신중하게, 보다 훌륭한 남편감을 다시 고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참으로 그들은 미켈리스가 결혼 전에 가면을 벗고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그는 파나요타로스를 데려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정신 바짝 차려라, 파나요타로스. 때때로 사라키나 마을에 가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우리에게 정보를 물어다 다오." "나는 당신네들에 대해 구역질나지만 돼지 같은 마놀리오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자기들이 마치 예수와 그 제자인 체하는 것 때문에 당신들과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는 거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 대한 반감이 없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인 아니오."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대답했다. 사제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려 하자 파나요타로스는 등을 돌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더러운 손과 옷에는 입을 맞추지 않겠소." 다음날 일요일 아침,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다. 어떤 사람들은 걱정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쁘게 담소를 나누었다. 심지어 병약자와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운명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교회는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웅성거렸다. 라다스 영감이 원로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 엄숙한 날을 위하여, 결혼할 때 도시에 가서 사 가지고 왔던, 일 년에 한 번씩 부활절에나 신는 아끼는 신발을 특별히 신고 나왔다. 그 신은 너무 작아서 발을 고통스럽게 했으므로 그는 까마귀 걸음을 걸었다. 집을 떠날 때는 신발을 손에 들고 와서 교회 앞에 와서야 신을 신었고 미사가 끝난 후 다시 벗어서 겨드랑이에 끼고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가져가곤 하였다. 여러 달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던 파나요타로스조차 눈에 띄었다. 그의 곰보 얼굴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는 미켈리스의 파문이 선언되면 그 기쁨의 쾌재를 날려 보기 위하여 귀에다 담배까지 꽂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만달레니아 할멈도 그녀의 명예로운 집안에 수치를 가져온 반그리스도교도인 조카가 추방되는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흥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일찍이 그에게 쓸데없는 일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경고했었다. 그래서 내심 한편으로는 내 말이 옳았지 뭐냐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지옥으로 가는 것을 은근히 기뻐하는 것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미켈리스가 창백한 얼굴에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도착했다. 그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약간 눈을 붙였으나 꿈 속에서 그의 아버지가 그를 노려보며 저주하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가 그와 같은 시간에 도착했으며 이발사 안도니스와 푸줏간 주인 디미트리가 그 뒤를 곧장 따라왔다. "나는 양을 죽이러 갈 예정이오." 하고 디미트리가 이발사에게 몰래 속삭였다. "나는 양을 잡아 그의 파문을 기념하기 위해 사라키나 마을로 가져가겠소. 나와 함께 가서 덫을 놓읍시다." "나도 마놀리오스의 수염을 깎아 주고 질 좋은 라벤더 향수를 뿌려주기 위해 거기에 갈 예정이었소." 하고 이발사가 대답했다. "나는 주머니 속에 면도칼과 향수병을 이미 준비하고 있어요." 교장 선생은 교독문을 낭송하기 위해 성가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런 우울한 날에 예배의 한 의식을 맡게 되어 얼굴을 펴지 못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예식은 전혀 그의 기호에 맞지 않았다. 그의 견해는 그것은 부정한 행위이며 개인적인 원한과 사소한 이익에 치우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것에 대해 반대할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그의 형인 그리고리스사제를 거북살스러워했었다. 형은 그들이 어렸을 때 무자비하게 그를 때리곤하였다. 그는 비록 지금 예순 가까운 나이의 독신자이지만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선지자처럼 굽실굽실하고 여러 갈래가 난 턱수염을 하고 거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서둘러서 미사를 끝내고 강단에 올라섰다. 그러자 모든 무리들은 고개를 쳐들고 조심스런 눈초리로 사제를 바라보았다. 강단에 놓인 미사용 종소리가 나자 그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사제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몹시 화가 난 양 목소리를 높였다. "믿음의 형제여." 그는 성작 반지의 덮개를 만지면서 소리쳤다. "믿음의 형제여, 교회란 것은 양의 우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의 양들은 충실하고 양떼로 보호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사제는 땅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대행잡니다. 양이 전염병에 걸렸을 때는 목자는 다른 양들에게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그 병든 양을 우리에서 쫓아냅니다. 그 양은 가능한 한 멀리서 죽이기 위해 절벽들 사이로 보내어집니다. 사제의 입장에서도 사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므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기 우리의 기독교도들의 세계 속에 한 더러운 양이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여, 그것은 바로 마놀리오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거역하였습니다. 그에게 벌을 주는 것은 우리들의 의뭅니다. 그는 우리 가족과 재산과 마을을 배반했고, 우리들을 유혈의 참극 속으로 몰아 넣기 위해 반란의 붉은 기치를 들었습니다. 그는 모스코로부터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믿음과 우리 마을, 그리고 우리의 명예가 위태롭습니다. 그는 볼셰비킵니다. 우리의 임무는 그를 추방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그를 건강한 양들과 격리시켜 사탄의 절벽으로 쫓아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절벽에 떨어져 죽을 것이고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강단에서 내려가 그를 쫓아 내겠습니다!" 그가 강단에서 내려오자 교구 관리가 그에게 성수를 건네 주려고 다가섰다. 그는 성수에 손을 축였다가 그것을 허공에 뿌리며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서 나가라, 여기서 나가라, 추방이다!" 그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가 성수를 뿌리며 다시 소리쳤다. "여기서 나가라, 여기서 나가, 추방이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은 허공에 마놀리오스가 있어서 그를 내어 쫓는 시늉과도 같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언자는 그를 쫓아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해서 공중에다 성수를 뿌리며 교회 문까지 다다랐다. 뒷걸음치며 교회에서 쫓겨나는 저주받은 영혼이 몸에 닿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사렸다. 교회 문 앞에서 사제는 싱싱한 나뭇가지를 꺾어 성수에 담갔다가 힘있게 흔들면서 마을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세 번 외치시오. 믿음의 형제들이여, 모두 함께 외치시오. '마놀리오스는 추방되었다' 라고 말이오." 왁자지껄한 소음이 일었다. 교회는 그 소음으로 떠나갈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은 그의 손을 들고 세 번 외쳤다. "마놀리오스는 추방되었다!" 사제는 그의 싱싱한 나뭇가지로 마지막 성수를 뿌리기 위해 그것을 서서히 흔들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나가라, 여기서 나가라, 파문이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는 문을 거세게 닫았다. 모든 사람들은 마귀가 물러가고 공기가 정화된 것처럼 크게 숨들을 쉬었다. 강단 한가운데 사제는 멈춰 섰다. "믿음의 형제여, 앞으로는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 가지 말고 누구도 그와 악수를 하지 말 것이며, 그 누구도 그에게 빵과 술을 주지 마시오. 누구도 그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마시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세 번 침을 뱉고 그로부터 돌아서시오. 그가 주님을 거역했으니 주님도 그를 버리실 것이오. 그가 종교와 마을과 재산 등을 거부했으니 이제는 반대로 그것들이 그를 거부할 것입니다. 부디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지어다. 아멘!" "아멘" 마을 사람들은 미움과 안도가 뒤섞인 소리로 답했다. "아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파나요타로스가 외쳤다. 이때 한 조용한 목소리가 회중의 한복판에서 들려왔다. "사제님, 마놀리오스는 혼자가 아닙니다. 나도 그와 한패입니다. 나 미켈리스 파트리아케스는 그와 함께 파문당하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목소리가 화를 발하며 들렸다. "그리고 보부장사꾼이며 배달부인 나 얀나코스도 그와 함께 하겠소." "그리고 나 코스탄디스도 그와 함께 하겠소." 회당 안은 갑자기 큰 소용돌이 속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벽 쪽으로 물러섰으며 세 사람의 동료만이 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머리끝까지 솟구친 화를 발하며 소리쳤다. "너희들의 차례가 곧 올 것이다. 사탄의 사자인 너희들은 기다리고 있어! 용서와 자비가 가득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너희들이 회개할 기회를 준다. 그리스도의 진노하심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평화롭게 잠시 머무르고 계시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노라."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자입니다. 사제여."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아닌 하나님께 말이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너희들을 심판하신다!" 하고 사제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소리쳤다. "리코브리시 마을의 사제인 나는 하나님의 대행자란 말이다!" "오직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대행자가 될 수 있소." 하고 미켈리스가 반박했다. "우리의 마음은 순수하오. 사제님이시여." 그리고는 두 동료에게 말했다. "자, 갑시다. 형제여. 우리의 발에서 리코브리시의 더러움을 떨쳐 벌립시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그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인들은 두려움에 성호를 그으면서 "키리에 일레이션, 키리에 일레이션(풀이: 가톨릭교나 그리스 정교의 미사 때에 외우는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라는 기도문') 이라고 중얼거리며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 미켈리스는 되풀이했다. "우리의 주님은 가엾게도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문 밖에서 노크를 하시지만 아무도 그에게 문을 열어 드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주님은 바로 아그하와 친하게 사귀는 부유한 병사들입니다. 그는 그의 문에 방책을 쌓고 빵 부스러기조차도 자기가 먹다가 버릴지언정 남에게는 주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주님은 배불리 먹고 말하기를 '이 세상은 정당하고 정직하고 인정이 많다.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은 추방돼야 한다' 고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배고픔에 지친 육신과 두려움에 떠는 영혼을 바라보는 거지이며, 그분은 '이 세상은 부당하오. 정직하지 못하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오. 오, 가증스럽도다!' 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그의 사제복을 거머쥐고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볼셰비키!" 하고 그는 고함을 질렀다. "하나님의 집에서 나가라." 모인 사람들이 노발대발하였다. 라다스 영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며 파나요타로스는 주먹을 흔들어 댔다.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나가라! 나가! 썩 꺼져!" 얀나코스가 싸울 태세를 하면서 앞으로 나가려 하자 미켈리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자, 갑시다. 하늘이 심판해 주실 것이오!" 그는 교회 문에서 성호를 그었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가 슬며시 무리들 사이를 빠져 그의 뒤에 섰다. 그러자 멀리 서 있던 이발사 안도니스와 뚱뚱한 정육점 주인 디미트리가 다가왔다. "당신은 우리를 떠날 작정이오, 코스탄디스?" 순간 뒤에서 마음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버려 두고 추방당할 작정이오?" 코스탄디스는 뒤돌아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그에게로 달려오는 아내를 보았다. 그것을 보자 그는 잠깐 망설이며 멈춰 섰으나 얀나코스가 완력으로 그를 잡아끌었다. "가자, 뒤돌아보지 말게!" 15. 최초의 충돌 그리고리스 사제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불덩어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화가 치솟아 미칠 지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번개를 막 집어 던진 것과도 같았다. 대체로 사제란, 그 말의 위엄으로써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저주받아라" 하고 말할 때, 저주받을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적들은 제거될 것이고 평화와 정의가 널리 퍼질 것이었다. 그는 그가 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무엇보다도 첫째는 마놀리오스를 떠올렸다. 그자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결점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술도 안 마시고 도둑질도 안 하고 헛된 맹세나 거짓말을 한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여자를 탐내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 녀석을 제일 먼저 제거해야지. 다음으로는, 아니면 그와 동시에 죄인 포티스 사제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는 포티스 사제가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꼽고 미웠다. 그의 모든 것이 그를 신경질나게 했다. 그의 고행의 자국이 역력한 얼굴, 그의 불타는 눈, 그의 깊은 목소리, 거기다가 그는 거의 먹지도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를 죽이고 싶었다. 이 두 사람은 사악한 길을 걸었고 나쁜 전례를 남기고 있으니 이들을 억압하기보다는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미켈리스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좀더 기다려 보자..." 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라다스 영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를 죽이고 싶었다. 그가 구두쇠이며 길거리에다 고아의 무리들을 내쫓는 죄인일 뿐만 아니라 그는 감옥에서 그를 눈개승마라고 불렀었다. 이 다섯 사람이 그가 처치해야 할 첫번째 무리였다. 그 후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서 그에게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겠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는 몇 명의 수도원장과 고참 사제, 그리고 교구 감독 자신까지도, 그는 그들 모두를 모조리 없애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학생이었을 때 그를 괴롭혔던 깡패들도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다른 무리나 마찬가지로 제거하겠다고... 그리고리스 사제는 한숨을 지었다. 그래, 사제들은 그런 힘을 가져야만 해. 나도 물론 가져야만 해. 하고 속으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흩어져서 약간은 광장에, 약간은 교회마당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들은 열정에 가득 차서 흥분해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의미를 되찾고 있었다. 그들은 교수형과, 유명한 명사의 죽음, 그리고 젊은 터어키 소년의 살해, 과부의 목에 꽂힌 칼을 보아 왔다. 그리고 오늘 그들은 동족의 추방이라는 새로운 것을 목격했다. 파나요타로스는 담배에 불을 붙여서 느긋하게 빨아대면서 버짐나무 밑에 앉았다. 계략과 음모들이 엇갈리어 가고 있는 상황을 생각했다. 예수와 사도인 양 능청을 떠는 그들을 악마가 데려가도록 하겠어! 그는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 콧구멍으로 뿜어낸 다음 사라키나 마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러 가기 위해 손을 털면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만이 아는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불을 피울 나무들을 바쁘게 주우면서 오고 있는 사라키나 마을의 작달막한 노인을 우연히 만났다. "안녕하세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우?"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물었다. "이럭 저럭 살지. 소식들었는가? 어쩌면 우리의 기갈을 풀어줄 농토와 포도농장을 우리가 기부받게 될 것 같다니까. 우린 내일 포도를 수확하러 리코브리시 마을에 내려갈 예정이야." "주민들 중 몇 명이나 포도 수확에 갈 예정이란 말인가요? 할아범?" "물론 우리도 역시 일할 수 있는 소년 소녀들이 있어. 자네가 내일 그들을 보면 놀랄걸?" 파나요타로스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런 큰 소식을 줍다니 운이 좋았어. 눈개승마에게 가서 말해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조망대라고 불리우는 바위에 다다랐다. 거기에 서면 동굴들 사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는 배를 바위에 대고 엎드려 자세히 보았다. 포티스 사제가 미사를 끝냈음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노인과 노파, 그리고 어린이의 무리들이 동굴교회 앞에 모여 있었다.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가 그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파나요타로스는 그것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렸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명확치 않았다. 그러나 대충 말을 엮어보니 그 희미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놀리오스가 말하기를 "나를 추방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리고리스 사제입니다. 이것은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될 성질의 일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불이 지펴져 있었고 뚱뚱한 디미트리가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꼬챙이에 찌른 양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칼을 손에 든 얀나코스가 이따금씩 고기가 익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찔러 보고 있었다. 그들은 농담을 나누며 담소를 즐겼다. 그 옆에는 안도니스가 노인의 얼굴에 비누거품을 칠하고는 면도를 해주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머리를 깎기 위해 달여와서 발장난질을 하며 차례를 기달렸다. 코스탄디스와 두세 명의 여인이 물을 길어 나르면서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걱정 하나 없이 태평하구나,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투덜거렸다. 그리고리스 사제, 여기를 보시오. 당신이 내렸던 벼락은 어디에 떨어졌소. 그리고 죽음의 불은 어디에 있는 거요? 제길할! 그는 좀더 자세히 듣기 위해 가까이 기어갔다. 그리고 바위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미켈리스는 어디 있는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바보 같은 그의 행동에 신음 소리를 내며 어디에 있을 텐데, 하고 의아해 했다. 미켈리스에게는 계속 불행이 겹쳤다. 그는 고귀한 돼지인 그의 아버지를 잃어버렸고, 또한 그의 재산은 미친 친구들에게 주어졌으며 사제로부터 종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그래서 그는 결과적으로 외로운 자가 되었고 빈털터리에다가 홀아비가 되어 버렸다.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피난민 중의 한 사람이 만돌린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는 그것을 켜기 시작했다. 얀나코스와 몸집이 큰 디미트리가 양고기를 불에서 꺼내어 돌 위에 놓았다. 사라키나 마을의 굶주린 무리들이 달려와서 구운 고기 주변에 빙 둘러섰다. 그들 중의 몇 명은 남비와 그릇을 두둘기며 춤을 추었다. 포티스 사제가 다가와서 성호를 긋고 양에게 축복을 하고 성탄절기에 나누는 빵처럼 작은 조각으로 나누었다. 모든 사람은 땅에 앉아 웃음꽃을 피웠고 만돌리는 지저귀듯 떠들었다. 갑자기 마놀리오스가 일어서서 근심스레 그의 주위를 둘러보며 미켈리스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포티스 사제는 큰 몸짓을 하면서 유쾌한 기분으로 크게 얘기했다. 이제는 파나요타로스도 명확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성도여, 오늘은 축복받을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언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 축복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너희들을 헐뜯고 박해하며 나의 이름을 팔아 악한 일을 할 때, 너희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며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셨습니다. 성도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우리들을 모욕하였고 욕설을 퍼부으며 박해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친구 마놀리오스가 배불뚝이 사제에 의해 추방되어 이곳에 왔습니다. '오 감사할진저!' 우리들은 바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그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이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질그릇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단숨에 마셨다. 이 사람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야생 동물이구나. 파나요타로스는 거칠게 중얼거렸다. 사제의 직권에 의해 그들은 교계에서 추방당해 이곳으로 밀려왔는데도 오히려 저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어떻게하여 그렇게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믿음에 의하면 그들은 악마에 사로잡혀 있음에 틀림없다.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 그는 좀더 잘 듣기 위해서 목을 내밀었으나 갑자기 어떤 손이 족집게 같이 그의 목덜미를 잡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미켈리스가 거기서 몸을 구부리고 웃음을 띠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뭘 보고 있나? 파나요타로스?" 그는 점잖게 물었다. "왜 함께 가서 같이 식사나 하지. 자 같이 가자구." 하며 그의 팔을 끌었다. "그들이 너를 스파이로 여기에 보냈지?" "난 누구와도 협조하지 않아! 나는 늑대같이 내 피 속에는 나 혼자 있을 뿐이야. 내 몸 안에는 아무도 없다구. 내가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니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해 줘!" "무슨 일이 있었나, 가련한 파나요타로스?" 그러나 파나요타로스는 고슴도치처럼 몸을 사렸다. "이러지 마, 나는 안 가겠소." 하고 소리쳤다. "나는 너희 메제스(풀이: 고기 덩어리, 상대방을 경멸하면서 비양거리는 투의 은어) 와는 상면하지 않겠어. 난 배신자인 너희 친구들과는 만나고 싶지 않아. 나를 그냥 여기에 내버려 두라구. 혼자 있고 싶으니까!" "너같이 마음 넓고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돼지 같은 그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것이겠지 여러 달 동안 자넬 볼 수가 없었어. 너는 항상 거칠게 행동을 했지만 해를 끼치지는 않았어. 어떤 사람이 너에게 해를 끼쳤나. 파나요타로스? 누구지?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아주 많은 일이. 제길할, 너도 잘 알면서 왜 물어 보냐?" "그것은 네가 유다의 역을 맡았기 때문인가?" 미켈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연극이야. 신성한 배역이란 것은 연극에서 뿐이고 실제는 아니야. 마놀리오스가 예수의 역을 맡았다고 예수가 되겠는가? 또한 내가 진정으로 사랑받은 제자 요한이겠는가? 어떻게 해서 자넨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진짜 죄악이야! 또한 네가 빨간 턱수염을 가졌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도 않아!" "나는 그것을 깎아 버릴 거야."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나는 그것을 깎아 버리겠다니까, 이 개자식아!" 미켈리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 같이 가지, 여기에 이발사가 우리와 함께 있어. 자, 가지. 그가 그것을 깎아 줄 걸세. 그것이 자넬 진정시켜 줄 걸세." "내가 직접 불로 태울 테야. 불로 태우겠다구. 그것을 악마한테나 줄 떼야." 하고 파나요타로스가 막 결심이라도 한 듯이 껑충 뛰면서 말했다. "그럼 즉시 실천에 옮겨야지!" "우리들에게로 함께 가자." 라고 미켈리스가 점잖게 다시 요청했다. "나와 함께 가면 모든 사람들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거야. 그리고 너는 우리가 온전하게 행복해지는 것을 도와 줄 수 있을 걸세." 그러나 파나요타로스는 이미 바위로부터 도망을 쳐서 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돌아섰다. 미켈리스는 위에서 슬픈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모두 지옥으로나 꺼져!" 그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의 커다란 한쪽 손으로는 사라키나를, 다른 한 쪽 손으로는 리코브리시를 가리켰다. 그날 밤 미켈리스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마놀리오스와 함께 같은 동굴에 누워 있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요와 옷들을 가져와 없는 사람을 위해 나눠 주었다. 그리고 포티스 사제에게 약속하기를, "신부님, 오늘부터 나는 리코브리시 마을을 떠나 당신의 지붕 밑에서 머무르겠습니다. 나는 당신들과 같이 일을 하고 싸우겠습니다. 나는 당신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습니다. 평원의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군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환영하오, 사랑하는 아들이여." 하고 사제가 대답했다. "우리 함께 산에 올라가 봅시다. 정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은 부유하게 자랐지만 훌륭한 정신과 웅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당신은 가장 훌륭한 투사가 될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미켈리스는 그의 소지품과 음박한 커다란 복음서를 동굴로 가져왔다. 그날 밤은 거기서 잤다. 그리고는 공포에 가득 찬 꿈을 꾸었다. 그는 사나운 개들이 감시하고 있는 높은 탑 안에 갇혀 있는 마리오리를 보았다. 미켈리스는 탑 밑에 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의 노래 소리를 듣고 나타나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곧 탑의 철문이 열리고 마리오리가 바다색 로우브(풀이: 긴 원피스의 부인 옷)를 입고 옷자락을 땅에 끌며 나타났다. 그녀는 세 송이의 장미로 장식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가슴에, 하나는 허리에, 그리고 하나는 무릎에 꽂았다. 그녀는 혀가 잘려 있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들이 그녀의 앞과 옆으로 달려왔다. 마리오리는 그녀의 작고 하얀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닦아 내고 있었다. 탑 밑에는 관같이 길고 가느다란 카이크(풀이: 보스포러스 해에서 쓰는 가늘고 긴, 양끝이 뾰족한 2-10개의 노를 갖춘 배) 가 놓여 있었다. 마리오리는 카이크 쪽으로 가서 줄을 끌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그를 돌아보며 빨간 피로 물든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비명을 질렀다. 미켈리스는 비명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무슨 일이오, 미켈리스?" 마놀리오스가 잠에서 깨어나며 물었다. "악몽을 꾸었오, 마놀리오스. 나는 검은 개와 카이크, 그리고 멀어져 가는 마리오리를 보았어." 마놀리오스는 치를 떨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공중에서 천사장 미카엘이 날아 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동굴 속에 들어온 희미한 불빛이 그들의 얼굴과 은색의 복음서를 비추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아." 하고 마놀리오스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밖에서 일하던 약 20명의 우리 동료들이 당신의 소유였던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한다는 소리를 들었소. 당신은 많은 영혼을 구했소, 미켈리스," "내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바친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오. 나는 그것이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생각지는 않소. 마놀리오스, 희생은 가치 있는 일인데, 나는 그것을 하지 못했소. 얀나코스가 그의 노새를 바친 것이 더 고귀한 일이오." 잠시 동안 마놀리오스는 그의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대가 옳다고 믿소, 미켈리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스무 나믄여 명의 남녀들이 동료 앞에 모여서 즐겁게 담소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켈리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의 손을 잡으려고 달려왔다. "당신은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을 다시금 재활시켰소." 하고 그들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 선친의 유해 위에 축복하실 것입니다." 잠깐 동안 인정미 넘치는 장미빛 나는 그의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그를 꾸짖고 있는 것 같았다. 뒤틀린 입이 씰룩거리며 '왜 나를 죽였느냐. 왜?'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침묵일 뿐이었다. 그것은 그를 위한 행동이었어. 미켈리스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하나님, 그의 영혼을 쉬게 하소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것은 그분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라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당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어요." 마놀리오스는 친구를 돌아보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미켈리스는 눈물을 숨기려고 고개를 돌렸다. 포티스 사제가 가까이 왔다. "성도여, 성호를 긋고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포도밭에 가서 우리의 포도를 거둬들입시다. 마놀리오스가 여러분을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땅과 그 위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나무들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꿈으로 생각되어지던 것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땅과 나무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가꿀 것이고 그것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것입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부유한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가난한 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결된 한 가족을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정의가 세상을 다스리는지를 보이기 위해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은총과 더불어 이 역사적인 시작을 성공시킵시다. 자, 갑시다. 마놀리오스, 그대가 알고 있는 포도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시오. 나는 미켈리스와 함께 원로의 선물로 인하여 되어진 우리들 공동체인 우리 마을의 소유자 등기를 수속하러 도시에 다녀오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성호를 그으면서 마놀리오스를 따라 길을 떠났다. 그들은 리코브리시 마을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의심도 하지 않으며 즐겁게 포도수확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전날 저녁 파나요타로스는 사라키나 마을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으로 달려갔다. "사라키나 마을 사람들이 내일 포도수확을 하러 온답니다. 서두르셔야 하겠어요." 하고 보고하였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저녁을 들다 말고 포크를 떨어뜨렸다. 이 소문은 그를 몹시 신경질나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을 마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어." 하고 버럭 고함을 쳤다. "그들이 한 알의 포도도 따가지 못하게 하겠다구, 결코! 용납할 수 없어. 아그하한테 다녀와야지." 그는 축제일에나 입는 사제복을 입고 목에 커다란 은제 십자가를 걸고 상아 지팡이를 가지고, 아그하의 집에 천천히 근엄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아그하는 저녁을 막 끝내고 커피를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새로운 유소우화키라 할 브라히마키가 앉아서 그로부터 등을 돌린 자세로 담배를 말고 있었다. 딱한 아그하가 커피를 마시면서 똥 먹은 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은 벌써 말다툼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문을 열고 정중한 인사를 하면서 나타났다. "안녕하셨습니까? 아그하님!" 아그하는 귀찮다는 듯이 머리도 돌리지 않고 "난 이미 목소리만 듣고서도 사제, 당신인줄 알겠소." 하고 불쾌한 듯이 말했다. "어떤 새로운 골치거릴 가지고 왔소? 내가 볼 수 있도록 내 앞으로 오시오. 그리고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으시오." 그가 손뼉을 치자 곱사들이 노파가 나타났다. "사제 선생을 위해 커피 한 잔 가져와." 그리고는 사제를 향했다. "자, 말해 보시오." "아그하님! 나리의 통치력은 세인이 다 아는 바와 같이 훌륭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줄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이 줄이 끊어진다면 이 세상은 무너지고 수천 조각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그런 것은 곱사등이 마르다 조차도 알고 있소." 아그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계속해 보시지." "예, 아그하님. 어떤 자가 이 줄을 끊으려고 합니다." 아그하는 곧장 덤벼들 자세로 반쯤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서 손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그 녀석이 누구냐?" 하고 소리쳤다. "그 놈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버리겠다. 누구인지 말하시오. 마호멧의 이름으로 본때를 보여 주겠소." "러시아인입니다." 사제가 대답했다. 아그하는 그의 칼을 뒤에다 기대놓으며 "눈보라 속을 헤치고, 그 러시아 놈을 찾아서 목을 베기 위해 내가 리코브리시 마을과 브라히마키를 떠나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아니 내가 안락한 상태를 저버리고 불어오는 돌풍을 헤치고 악마를 찾아나서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이오?" 사제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 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악당들은 너무 멀리에 있어. 당신은 내가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오? 당신은 나를 믿고 사제의 직임이나 충실히 감당하시오. 나는 마음속에 당신들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있소. 그리고 나는 노아의 홍수가 온다해도 우리들의 평화는 지속시킬 수 있단 말이오!" "그러나 나리께서 리코브리시 마을을 어지럽게 할 필요는 없소. 러시아인이 이미 사람을 우리들에게 침투시켰습니다. 그들이 이 줄을 자르기 시작하려는 곳이 바로 리코브리십니다. 나는 오늘 아침 교회에서 나의 책임을 수행했습니다. 이제는 나리께서 나설 차롑니다." "그래, 곱사등이 노파가 내게 그 일에 관해서 뭐라고 약간 이야기 했으나 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나는 족장의 양치기인 마놀리오스를 추방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우리에서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무슨 일로? 사제! 그는 비록 약간 정신이 돈 놈이기는 하지만 선량한 청년이며 불쌍한 사람이오. 그는 기꺼이 마을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렇게 행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오. 사제 양반!" "그놈이 한 모든 일은 위선이며 거짓입니다. 아그하님. 나리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놈은 사람을 속이려고 고의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그하는 머리를 긁었다. 그의 신경이 날카로와지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알았소. 그만하시오, 사제!" 그가 소리쳤다. "당신네들 그리스 사람들은 벼룩 다리에다 말굽을 붙이려고 한단 말이야.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어떻게 당신이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을 하겠소. 당신의 말과 행동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아요. 사제, 이제 더 이상 나를 어지럽게 하지 말고 나 혼자 있게 해 주시오. 나는 오늘 아침 내내 혼자 있지 못했소. 가뜩이나 덤으로 악마 같은 브라히마키가 있는데 말씀이야." 하고 소년을 응시하며 덧붙여 말했다. 브라히마키는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천장으로 담배연기를 뿜으며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그는 사납게 아그하 쪽으로 돌아섰다. "사제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스미르나로 돌아가서 죽어 버리겠소!" 그가 일어서려 하자 아그하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앉아라, 이야기할 테니 제발 앉으렴." 그리고는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사제 선생,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오? 당신은 나에게 청이 있어 왔지요. 무슨 부탁이오? 말해 보시오. 그리고 상의해 봅시다. 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하시오. 간단하게 요점만 이야기하시오. 그럼 들을 테니, 어서 말해 보시오." "아그하님." 그리고리스 사제는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말을 다시 시작했다. "죽은 족장의 바보 같은 아들이 그의 재산을 사라키나 마을의 거지들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아그하가 말을 가로채면서 "그래요? 그는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소. 그것은 그의 것이니까. 그렇잖소? 그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것이오." "그렇지요. 하지만 알아 두셔야 할 것은 그 불량배가 모두 사회주의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사회를 무너뜨릴려고 왔어요." "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말했소, 사제?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말해 보시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지도자는 포티스와 마놀리오습니다. 내일 그들은 마치 포도를 심은 자들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포도를 거둬들이려 올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지요? 그들은 우리 마을에 발판을 만들고 차츰 우리 마을을 좀먹을 것이고 마침내는 마을을 전복시키고 말 것입니다." "그래? 당신은 무엇을 바라오?" "내일 모스코의 앞잡이들이 올 때 마을 입구에 서서 그들을 쫓아 버려 주십시오." "하지만 왜 당신은 내가 그들을 쫓아 버리기를 바라오? 그 포도원은 그들의 소유가 아니오?" "아닙니다!" "어떻게 아닌가요? 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소. 미켈리스가 그들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소? 그래서 지금은 그것이 그들 소유가 아니오?" "다시 말씀드리건대 결코 아닙니다. 아그하여! 우리는 미켈리스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 그는 정신이 없습니다. 그는 지금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증여는 무효입니다." "그럼, 그가 정말 미쳤단 말이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정신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리석음과 분별력을 서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아그하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켈리스가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그하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소, 알겠어. 당신은 원숭이만큼이나 영리하군. 당신은 이 세상을 하나의 알약으로 만든 후 그것을 단번에 삼키려 하는군." "무슨 말씀을, 아그하님?" "내 말을 들어 보시오, 그리고리스 사제. 탁자 위에 있는 카드를 서로 주고받는 격이지. 나는 마을 어귀에 지키고 서 있다가 당신의 원대로 사라키나 마을의 사악한 악마들을 쫓아 버리겠소. 그러면 당신 쪽에서는? 에... 말하자면 주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이 말씀이오. 내 말 알아듣겠소?" 사제는 아그하의 말뜻을 간파하고는 새파랗게 질렸다. "알아듣겠소?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리다. 그럼 당신도 내 요구를 들어주구려." "그게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아그하님." 입을 씰룩거리며 사제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주 간단한 일이오. 겁먹지 마시오. 여기 있는 브리히마키가 여자를 고를 수 있도록 언제 하루, 마을 처녀들이 춤을 추었으면 좋겠소." "그건, 그것은 파멸이오, 아그하님." "파멸이든 아니든 다른 방도가 없소. 알아듣지 못하겠소. 누가 저 날뛰는 열 다섯 살 난 친구를 다스리겠어. 당신이? 내가? 그러면 그는 우리들을 단숨에 삼켜 버릴 것이오. 단지 여자만이 그를 휘어 잡을 수 있소. 자 그를 길들일 어떤 여자를 물색해야만 하오.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 같단 말이오. 그 위에 타려고 하면 그는 당신을 뒷발질해 버릴 것이오. 하지만 그가 길들여지기만 하면 당신도 그를 탈 수 있고 게다가 꼬리까지 칠꺼요!" 브라히마키는 듣고 있다가 킥킥거리며 웃어 댔다. "유감스럽게도 과부가 죽었는데." 하고 사제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사제." 브라히마키가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나는 젊고 포동포동하고 곱추가 아닌 여자를 원합니다." 하고 소리쳤다. "빵처럼 희고 그녀와 싸울 수도 있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헝크린 채 울고 있는 그녀를 부둥켜 세울 수 있도록 저항하는 기질의 여자여야 한다구요. 그렇게 되면 재미있을 거예요. 알겠나요. 사제님?" "소문을 피하기 위해 마을에 보호자가 없는 고아 소녀를 찾아야만 합니다." 하고 사제가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문입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아그하님." "뭐라구, 뭘 원한다구?" 브라히마키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네 놈이 원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며칠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 개 자식아! 사제 영감이 옳아. 넌 그들이 병아리같이 돌아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가 그들 중에 네가 원하는 여자를 고르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 네가 고른 어떤 것보다도 너를 반하게 만들 거야. 그러면 우린 너를 휘어잡아 평화를 찾게 되겠지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어. 그런데 만약 네 놈이 너무 서두르면 마르다를 줄거다." "악!" 브라히마키는 벽에다 침을 캭 하고 뱉었다. "난 그녀는 질색이에요." "좋아요, 사제. 그에 대해서는 걱정말아요. 며칠 간의 시간을 줄테니, 그가 원하는, 젊고 참하고 흰 피부에 순결하고... 주문서를 알겠지요." 사제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아그하님." 그는 허락하며 웃었다. "그리고 내일 모스코 앞잡이 놈들이 보이자마자..." "알았소. 그럼 당신 쪽에서도..." "찾도록 노력해 보죠... 하나님, 용서하소서..." "걱정하지 마시오, 사제. 그는 확실히 당신을 용서하실 거요. 그는 사람의 운명을 주관하고 마음이 넓으시니까!" 하고 아그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그하의 집을 나선 사제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런 흥정을 하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마을이 포티스 사제의 손에 떨어지는 운명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 마을, 개인 재산 등이 위험에 처해 있으니... 그래서 그는 마을 유지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 그 기생충 같은 무리들이 미친 가련한 미켈리스의 포도원에 포도를 거두러 나타날 거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맹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켈리스는 어려서부터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는 미쳤어요. 제 정신이 아닌 그를 내가 어떻게 합니까? 한 가지 예로서 교활한 포티스 사제는 그를 쉽게 사로잡아 그가 원하는 모든 일을 그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이 헌납은 무효이며 이제 더 이상 포도밭이나 논, 정원과 집 등은 사라키나 마을의 부랑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족장은 다른 아들이 없으므로 그의 모든 재산을 우리 모두의 공동재산으로 하겠습니다. 어떻소? 찬성입니까?" "찬성합니다." 마을 유지들이 그들 사제의 치밀한 머리에 감탄하면서 대답했다. "나는 지금 막 아그하의 집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와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어요. 한참 옥신각신 한 후에 나는 그가 마을 어귀에서 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직접 나타나도록 설득을 했습니다. 그는 야비한 족속인 볼셰비키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그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하인과 개와 몽둥이들을 가지고 모여 주십시오. 피를 흘리거나 얼굴을 할퀴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우리는 기독교도임을 잊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적조차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는 파나요타로스를 부르러 보냈다. 그는 저녁 때 아무도 모르게 돌아와서 숯불로 턱수염을 태워 뺨에 물집이 생겼다. 또한 머리를 양털 깎는 데 사용하는 큰 가위로 잘랐다. 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사제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모습이 어떤지 보았나?" "그것은 당신이 간섭할 바 아니오!" 파나요타로스가 벌컥 화를 내었다. "귀찮은 질문을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 버릴 테요. 나는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화내지 말게나, 파나요타로스. 마치 자넬 곱추라고 부른 것처럼 화를 내는구나. 들어 봐. 내일 나는 자네가 필요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서 마놀리오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면 그들을 때려라. 그는 추방되었으므로 자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을 거야. 너는 그를 죽여도 좋다구. 가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일세." "이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지 마시오. 사제님, 부디 우리의 약속에 하나님일랑 상관시키지 마십시오. 당신은 포티스 사제를 두려워하고 나는 마놀리오스를 미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소.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를 끌어들이지 말란 말이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오. 당신은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충분히 알 만큼 교활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문을 열다가 말고 잠깐 멈춰섰다. "우리는 늙은 한패의 악당이오. 그건 지워 버릴 수 없는 사실이오!"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사라키나 마을 사람들은 산으로부터 노래를 부르며 내려왔다. 마놀리오스는 앞장서서 행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 그곳에서 저항이 없게 도우시사 유혈 소동이 없도록 하소서"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사람들이 성 바질의 우물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몇몇 사람들은 땅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큰 몽둥이를 가지고 이리 저리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과 욕지거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마놀리오스는 멈춰 서서 그의 동료들을 향해 돌아섰다. "여러분, 내가 생각하기로는 저들이 우리에게 저항할 모양입니다. 여인들은 여기 남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남자들이 다녀오겠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우러 오실 겁니다.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정의는 우리 편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어떠한 대가를 바라더라도, 싸우기를 원한다하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라도 우리의 형제입니다. 우리는 가서 마을의 통치자인 아그하를 만날 것입니다. 그가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의심할 것 없습니다. 포도원은 이제 우리의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지할 것입니다. 자, 여러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갑시다." 여인들은 큰 돌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았고 남자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백여 걸음도 채 못 가서 돌 하나가 마놀리오스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또 다른 하나가 보다 가까이 날아왔다. 불의의 돌팔매질은 행렬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물 곁을 떠나 그들을 대항하기 위해 다가왔다. 선두에는 털수염과 머리털이 탄 파나요타로스가 그의 무거운 곰의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큰 몸집을 가진 기수 루카스가 소리쳤다. "우리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돌팔매질의 목표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돌을 집어 배불뚝이 놈들에게 던집시다." 그러나 마놀리오스가 가로막으며 "멈춰요. 피를 흘리지 맙시다. 형제여." 성 바질의 우물 곁에서 사나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라, 돌아가. 이 더러운 놈들아,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돌아가!" 마놀리오스는 협상을 청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형제여, 형제여,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추방당한 녀석이! 날강도! 이 암살자! 이 볼셰비키놈아!" 분노에 찬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왔다. 파나요타로스가 그의 큰팔을 내뻗치며 "아무도 마놀리오스를 건드리지 마. 그는 내거야. 내가 그를 맡았다구." 하고 마놀리오스에게 달려들며 그가 소리쳤다. 그러나 사라키나 마을 사람들이 재빨리 그들의 지도자를 에워쌌다. "만약에 누구라도 마놀리오스에게 손을 대면 그의 골통을 수박처럼 깨어 놓고 말 테다!" 루카스가 큰 돌을 집어들고 외쳤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부리는 교구 관리가 앞으로 나와 소리치기를, "그는 추방되었어. 그를 쳐라. 파나요타로스. 너의 손은 성별되었다!" 그때 교장 선생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멈추시오! 무슨 일이오?" "저자들이 우리 마을을 침범하여 점령하려 하고 있습니다." 교구관리가 소리쳤다. "우리는 우리의 포도원에서 포도를 거두려는 것이오." 사라키나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오. 미켈리스가 우리에게 그것을 주었소." "미켈리스는 미친 사람으로 판명되었어. 그의 헌납은 무효야." 라다스 영감이 교장 선생 뒤에 숨어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헌납은 무효야. 물러가라. 물러가, 볼셰비키들! 강도놈들! 이 악당들아!'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파나요타로스가 황소같이 마놀리오스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루카스가 손에 들고 있던 큰 돌을 힘껏 던졌다. 돌은 파나요타로스의 무릎에 맞아 비틀거렸다. 루카스는 그에게 몸을 던져 미끄러지듯 그의 등에 올라타고 가차없이 그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파나요타로스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흔들다가 루카스의 허리를 낚아챘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엎치락뒤치락 구르며 격투를 벌였다. 교구 관리가 돌을 집어 마놀리오스를 향해 던졌다. "추방자! 볼셰비키!" 그는 악을 썼다. 돌은 날아가 마놀리오스의 이마에 가서 맞았다. 순간 선지피가 솟구치더니 그의 얼굴을 덮어 흘렀다. "저들이 마놀리오스를 죽인다. 쳐라!" 동료들이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사라키나 사람과 리코브리시 사람들이 뒤엉켰다. 라다스 영감은 뺑소니치고 교장선생은 양편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채이면서도 싸움을 말리려고 애를 썼다. 한 개구장이 소년이 마을로 달려가면서 신바람이 나서 외쳤다. "추방자 마놀리오스가 죽었다! 기뻐하세요. 볼셰비키 마놀리오스가 죽었어요!" 코스탄디스는 그의 카페에서 나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몽둥이를 잡고 달려갔다. "어디? 어디냐?" 그는 지나가는 개구장이에게 소리쳤다. "성 바질의 우물가에서요." 코스탄디스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달려가던 도중에 얀나코스를 만나 말없이 함께 달렸다. 우물 주위에는 사라키나 사람들과 리코브리시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돌들 사이에서 뒤엉켜 구르고 있었다. 사라키나 여자들이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합세했다. 그녀들은 전쟁에서 단련되고 농촌 일에 의해 단단해진 팔로 남자들처럼 치고받았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수심에 찬 쉰 목소리가 들렸다. 바위 위에 앉아 상처에 응급처치를 하고 있던 마놀리오스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이, 여기야, 걱정하지 마!" 그와 동시에 바위를 기어오르던 라다스 영감이 명랑하게 소리쳤다. "아그하님, 여기 있어요, 아그하님, 여기예요." 암말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길 위의 자갈들이 튀더니 아그하가 은으로 장식된 권총과 큰 칼, 그리고 그의 크고 붉은 모자를 쓰고 취한 얼굴로 우물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는 말의 갈기를 잡음으로써 가까스로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총을 뽑아 허공을 향해 한 방 쏘고는 벽력 같은 소리로 "이단자들!" 눈 깜짝할 사이에 싸움은 끝났고 사라키나 사람들은 그들대로, 리코브리스 사람들은 그들대로 갈라섰다. 그들의 옷은 찢어져 넝마가 되었고 흙과 피가 뒤범벅이 되었다. 교장 선생이 한복판에 넘어져 있다가 아그하에게 일어나 인사를 하려다가 심하게 다친 듯 다시 쓰러졌다. "이단자들?" 아그하가 눈에 핏발이 선 사라키나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소리쳤다. "뭣 때문에 우리 마을에 왔나? 돌아가라, 돌아가! 이 방랑자들!" 마놀리오스가 몇 걸음 앞으로 나가 말했다. "아그하여, 우리는 리코브리시 마을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도를 거두러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것이 너희들의 것이 되었나? 너희들은 어디서 그것을 주웠나, 이 더러운 무리야?" 바위 위에서 라다스 영감이 목을 길게 뽑고는 눈을 홀겼다. "미켈리스가 그것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건 무효야, 이 바보야. 그의 서명은 효력이 없어. 그는 올바르게 판단할 나이가 아직 아니야." 하고 아그하가 말했다. "나이가 아직 안 된 것이 아니라 정신 상태가 부족한 것입니다." 라고 라다스 영감이 바위 위에서 고쳐 말했다. "같은 뜻이오. 입 좀 닥쳐! 이 구두쇠 영감!" 그는 권총을 꺼내 라다스 영감에게 겨냥했다. "제발, 살려만 주시우." 영감은 바위 뒤에 숨으며 소리쳤다. "나으리 말씀이 맞소이다. 아그하님, 그는 아직 어려요." 아그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권총을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사라키나 사람들에게 "당신들 중에 누가 마놀리오슨가? 날씨가 흐려 분명히 볼 수 없으니 앞으로 나와 봐!" "나요." 마놀리오스가 아그하가 타고 있는 암말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래, 그들이 뭐라 말했든지 간에 자넨 착한 청년같군. 사람들이 볼셰비키 어쩌구 하며 수다스럽게 말들을 하는데, 사실을 나에게 말해봐라. 그것이 사람이냐? 아니면 동물이냐? 콜레라 같은 병이냐? 사실은 나도 모르겠어, 넌 아느냐?" "예 압니다, 아그하님."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그럼 하나님께 맹세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해 봐." "초대 기독교들을, 아그하..." "나를 혼란시키지 말고 말해, 거기 이교도들 중에서 기독교도들은 물러가라. 초대 기독교들이 어쨌다는 거지? 난 볼셰비키의 의미를 물어 보고 있다." "제가 설명해 드리지요. 아그하." 라다스 영감이 콧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초월해서 단지 가난한 사람만을 원한답니다. 주인과 종복들도 없고, 다만 종들만 있습니다. 또한 내 마누라 네 마누라도 없이 모두 공동입니다.' "주인과 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아그하가 버럭 화를 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뒤엎으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마놀리오스, 너의 얼굴을 이쪽으로 돌려!" 그는 마놀리오스를 조롱하며 "램프를 가까이 하고 손을 들여다봐, 모든 손가락의 길이가 다 같으냐? 하나님은 손가락을 만들 때 큰 것도 만드신 반면에 작은 것도 만드셨어. 또한 인간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사람이 있고 주인이 있으면 하인이 있어. 큰 동물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라고 물고기를 만들었고,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늑대 옆에 양을 놓았다구.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야. 볼셰비키, 이리와... 뒈져라!" 그는 이 말을 마치고 칼을 뽑아 들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사라키나 사람 쪽으로 나아갔다.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길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들도 대경실색을 하여 뒤로 물러났다. 단지 마놀리오스만이 꿋꿋하게 서 있었다. "너 이단자는 너의 무리를 이끌고 이곳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베어 버리겠다. 무섭지 않은 모양이로군?" "아니오, 무섭소. 하지만 무서운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신앙이 너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었구나." 아그하가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너는 저주받은 재미있는 친구로구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이야기나 좀 나누자. 우리의 종교에서는 바보와 성자는 구별되지 않는 같은 사람이다. 성스러운 농담을 하는 너는 미친 사람이 아니면 성자다. 나와 함께 가면 음식과 술과 옷을 주고 너를 즐겁게 해줄 테다. 그러지 않겠나? 나는 마음을 바꿔먹었어. 널 죽이지 않겠다." 그는, 그들의 입장을 지켜 주는 자신의 말을 주위깊게 듣고 있는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서 "너희들 이단자들은 미치지도 못했고 성자도 못 되는 것들이야. 지옥에나 갈 놈들, 식충이, 게으름뱅이들, 내 눈앞에서 썩 꺼져!" 이 호령 한 마디에 리코브리시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얀나코스와 코스탄디스는 교장 선생을 일으켜 세워 부축하며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딱한 사람은 다리를 절며 몹시 아파했다. "나를 정당하게 대접해 주시오." 그는 털어놓고 말했다. "나는 양도 아니고 늑대도 아닙니다. 나는 사생압니다. 늑대들이 나를 물어뜯고 양들이 나를 토하게 했습니다. 나는 바른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어디에 진실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두렵습니다. 가난하고 비열한 사람인 내가 감히 어떻게 머리를 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두렵습니다... 리코브리시 마을과 사라키나 마을은 나를 무자비하게 매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옳습니다. 나의 신앙에 의하면 그들은 나를 옳은 길로 가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여 주는 두 친구를 돌아보았다. "무섭지 않는가?" 그는 감복해서, 물었다. "물론 우리도 무섭소."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이 계시니 용감한 척하는거요. 우리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하겠습니까? 여기 보세요. 나는 나의 가슴을 미친 듯이 치면서 용감한 척했소. 그러나 이상하게도 용감한 척했더니 점차 무서움이 없어졌소.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겠소? 훈장님? 당신의 책들이 그런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나도 이해할 수 없어요. 난 바보요!" 교장 선생은 고통을 이겨 가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자네와 같이 되는 것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겠네, 얀나코스." 그는 말했다. "그리고 코스탄디스, 자네는?" "나요? 얀나코스보다 더 겁장이에요.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고, 내 가슴은 터질 것같이 뛰었어요. 나는 부끄럽습니다. 만약에 언젠가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버렸다면 그것은 덕과 용기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무서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겠습니다. 이해하시겠지요?" "마놀리오스는 우리 모두보다 훌륭해요." 얀나코스가 덧붙였다. "그는 절대로 용감한 척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는 진정 용감한 사람입니다." 16. 맨발의 여로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미켈리스는 분노로 씨근거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먼저 사제의 집엘 찾아가야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자의 수염을 쥐어뜯어 주어야지. 다음엔 마을 유지를 모두 찾아가야 해. 교회 종을 울려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한 후 얘기해야겠어. 그는 분노로 끓어올랐다가 다시 가라앉히곤 하면서, 강력한 얘기를 하기에 적합한 말들을 찾았다. 그는 간밤에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새벽에 _지금은 분명히 눈을 뜨고 있지만_ 그는 또 아버지를 보았었다. 죽은 아버지가 다시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 아버지가 침대 옆에 와서 서더니 힐책하는 듯한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입술이 움직이자 마치 저승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사라져 가듯 희미하게 울렸다. "왜? 왜? 왜?" 그 말뿐이었다. 미켈리스는 펄쩍 뛰어 일어나서 지팡이를 찾아 들고는 부르르 몸을 떨며 마을을 향해서 나아갔다. 그는 곧장 사제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가로지르자 유리창 옆에 앉아 있는 사제가 눈에 띄었다. 사제는 몸을 구부리고서 무슨 편지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두 눈에선 눈물까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사제는 미켈리스를 보자, 읽고 있던 편지를 얼른 사제복 속에 숨겼다. 하지만 미켈리스가 벌써 알아챈 후였다. 그는 무슨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분노가 사라져 갔다. 공기 속에서 그는 죽음의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마음이 꼭 죄어드는 것 같았다. 사제는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눈물을 감추고 미켈리스를 바라다보았다. "무슨 일로 여길 찾아왔지, 젊은이?" 하고 조롱하듯 말했다. "사라키나 산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겠지? 수도사의 생활은 고달픈 거야. 그러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구. 마을로 돌아와서 자네가 물려받은 부귀영화를 맘껏 누리게. 어서, 이 불쌍한 젊은이야. 설마 아직 서류에 서명을 해주진 않았겠지?" 하고 그는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전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요. 전 자유로와요." "그럼 서류에 서명을 해줬단 말인가?" 하고 근심에 찬 목소리로 사제가 다시 물었다. "그래요." "미쳤군!" 하고 사제는 주먹으로 창턱을 쾅쾅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넌 이제 망했어, 이 불쌍한 놈. 기어코 사기꾼 사제의 노예가 되고 말다니! 난데없이 횡재를 한 그놈들이 가엾을 뿐이구나!" "제가 자유스러워졌을 뿐입니다." 하고 미켈리스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거듭 말했다. "사제님, 노예는 바로 당신입니다. 가엾은 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성스러운 습관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다지도 애를 써온 것은 모두가 다 자네의 이익을 위해서 였어. 또 내 딸의 이익을 위해서였구." 하고 사제는 무서운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희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 "따님의 편지엔 무슨 얘기가 씌어 있던가요?" "자, 읽어 봐!" 하고 그는 편지를 꺼내 주며 말했다. 미켈리스는 편지를 움켜쥐었다. 편지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 아버지의 눈물일까? 아니면 딸? 그걸 어찌 알랴? 그는 천천히, 간신히,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 지금 제 몸은 무척 좋지 않군요. 용서하세요. 정말 제몸이 안 좋아요. 매일 조금씩 자꾸만 더 나빠져 가고 있어요. 여위고 쇠약해져 갑니다. 이젠 의사들도 제 침대는 그냥 지나쳐가 버립니다. 이젠 더 이상 저를 쳐다보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저는 벌써 환자 리스트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 천장만 쳐다보며 이곳에 누워 있습니다. 천장이 마치 하늘인 것처럼요. 이제 제가 마지막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은 저 천장뿐인가봐오. 저는 평온을 되찾을 수도 있고 어쩌면 행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떠나온 후로 물 한 컵 갖다 줄 사람 없이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군요. 제가 슬픔을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버님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저와 약혼을 했던 그분에 대한 생각 때문이구요. 내가 죽어도 그분은 슬퍼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전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참을 길 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왜? 왜? 제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다 말인가요? 전 오직 집 한채와 어린애 하나를 원했을 뿐인데... 그리고 지금은... 미켈리스는 더 이상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는 편지를 창턱위에 올려놓은 후 문을 향했다. "좋습니다. 전 가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원하는게 뭐야? 뭣 때문에 여길 왔나?"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제가 당신에게 도대체 무얼 원하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하나님도 참 잔인하시군. 무자비하게 인간을 두들겨 패신단 말이야. 도대체 내가 하나님에게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미켈리스는 벌써 정원문을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분노로 잔뜩 몸을 추스려 세우고 돌아다보았다. "사제님,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입니다. 비천한 욕망으로 가득 찬, 바로 당신 자신에게 내리는 것이지 당신 따님에게가 아니예요!" "내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이런 가혹한 짓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셔. 그러면서도 나에게 이런 처사를 내리다니..." 하고 중얼거리며 사제는 다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제는 분노로 발작을 일으키더니 맨발로 마당 한가운데에 껑충 뛰어내려왔다. "이건 너희들 잘못이야, 너희들 모두 말이다." 하고 그는 으르렁거렸다. "사라키나 산의 마놀리오스와 또 그 염소 수염장이 그리고 바로 너의 잘못이야! 너희들이 그동안 저지른 협잡과 배신이 이 모든 사고의 화근이었단 말이다. 그러기 전에 우리들은 이곳에서 아무 일도 없이 편안하게 살고 있었어.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었지. 내 딸은 건강을 회복했을 것이고, 너도 못된 짓을 해서 친아버지를 죽이진 않았을 거고, 나는 한 일 년뿐 기다렸다가 팔에 손자를 안고 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아, 그 마놀리오스라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불량배놈이 네 머리를 돌게 만들어 버렸어. 그런데 그때 그 늙은 여우 같은 염소 수염장이까지 오다니,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통에 너의 아버지는 마음의 고통을 받아 죽었고, 넌 이제 재산까지 한푼 남기지 않고 거덜내고야 말았으니, 나도 약혼반지를 네 얼굴에 던져 버렸을 수밖에. 내 딸년은 그 소식을 듣고 상태가 악화되었지.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 난 그애를 잃어버렸어. 너도 그애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구, 이 불쌍한 녀석아! 넌 네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내 딸도 죽였어. 그앤 병과 싸워 이길 용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불쌍한 것, 하지만 지금은..." 그는 안뜰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면서 온갖 악담을 퍼부어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또다시 분노에 사로잡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일은 마땅히 사방에 공포해서 알려야 돼. 넌 사리분별력을 읽은 미친 녀석이니까 네가 한 서명은 아무런 효력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야. 나는 네게서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아다가 우리 마을로 가져오겠어. 그 저주받을 사라키나 놈들이 포도 한 알 입에 못 넣게 할 테니까 어디 두고 보라구! 올리브 한 개, 밀 한 톨도 어림없지! 안 되구말구, 아무것도 네 맘대로는 되지 않을 걸! 맹세하건대, 나는 이 일을 바로 너 자신을 위해서 해주는 거야. 네가 네 애비를 위해서 또 내 딸을 위해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 똑똑히 알게 될 것이야. 주교님을 찾아가서 이 모든 사실을 고해 바쳐야 되겠어. 마을 사람 모두가 증인이 돼 줄 것이다. 아그하께서도 우리편이야. 너의 운명은 내게 달렸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손아귀에 달려 있겠지요." 하고 미켈리스가 대답했다. 사제의 슬픔과 증오를 역력히 눈에 보면서 그는 가슴이 찢어져 가는 기분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사제님 곁에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라키나 산 위에서 굶어 죽도록 만들 작정이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세요?" "만일 마리오리가 죽으면 난 야만인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아무한테도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지. 나는 성직을 버리고 총을 들고서 사람들을 죽이겠어. 왜 하나님이 내 딸 마리오리를 죽여야 하느냔 말야? 그애가 하나님께 무슨 일을 했다구! 그처럼 순진하고 명랑하고 훌륭한 애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더란 말이냐? 글쎄 나는 맨 먼저 마놀리오스를 죽일 것이다. 그놈의 망종이 이 모든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니까. 아그하는 그놈을 교수형에 처하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죽일 거야. 그놈은 우리들 앞에서 성자 흉내를 내고, 순교자 행세를 하고, 배교자, 볼셰비키놈!" 광분 상태가 된 사제는 미켈리스의 머리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으르렁거렸다. "꺼져 버려!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내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죽는 꼴을 보기 싫거든 어서 썩 꺼져 버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안마당의 땅바닥 위에 벌렁 쓰러져 버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켈리스는 허리를 굽히고 온 힘을 모아서 그 무거운 노인을 들어올려서 집 안으로 옮긴 후 소파에 눕혔다. 그리곤 부엌에서 물 한 컵을 떠 가지고 왔다. 사제는 물컵을 움켜쥐고서 조금씩 꿀꺽꿀꺽 들이마시더니 이윽고 눈을 떴다. "미켈리스!"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낙심을 한 사람이야. 하나님이 내 가슴을 두드리지만 나는 분노를 멈출 수가 없어. 난 그렇겐 못해. 난 아무도 용서할 수가 없어. 아무도 말야! 그러니 어서 가라구,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 마!" 그는 몸을 회복하고는 일어서더니 안뜰을 가로질러 가서 정원문을 열었다. "나가, 그리고 다시는 우리집에 발을 들여놓지 마!" 이렇게 쏘아 대면서 미켈리스를 밀어내고 거칠게 문을 닫았다. 미켈리스는 마을 골목 사이를 마치 꿈 속을 걷는 것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전혀 낯선 곳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집들과 상점들 그리고 그 버짐나무가 꼭 처음 보는 것만 같았다. 자기 집 앞을 지나가다가 그는 문득 멈춰 서서 한참 동안 그 건물을 찬찬히 바라다보고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문지방을 넘어서서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의 키 큰 시체가 마당에 누워 있다가 자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불쑥 팔을 뻗어 올 것만 같아서 섬짓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얼른 그곳을 지나쳐 버렸다. "너는 네 아버지를 죽였어, 바로 네가..." 하는 사제의 저주 섞인 목소리가 그대로 죽은 사람의 행렬이 되어 자기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마을이 끝날 때쯤에야 걸음을 멈췄다. 내가 이곳에 온 건 무엇 때문이었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왜였지? 그래, 나는 화가 났었어. 그런데 그런 감정이 이젠 죽어 버렸어. 그건 또 왜지? 갑자기 마리오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영상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두 눈이 커다랗게 열린 창백한 모습으로, 조그맣고 빨간 손수건을 입에 꼭 누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망령들로 뒤덮여 있어. 이곳을 떠나야 한다!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이면서 태양이 어두워졌다. 돌연 바람이 일었다. 나무들이 가지를 떨자 누르끄레한 헝겊 조각들이 땅을 뒤엎었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 두서넛이 못 본 체하며 걸음을 빨리해서 사라져 버렸다. 어린애 하나가 그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한 나이든 여인이 문 앞의 층계에 나왔다가 그를 보더니 성호를 긋고 얼른 대문을 닫았다. 여인은, 노구를 따스하게 녹여 줄 햇볕 한 줄기를 찾아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남편에게 다가가더니 가만히 속삭였다. "죽은 족장의 아들 미켈리스가 마을에 왔어요. 그 몰골이 어떤지나 아세요! 정말 불쌍하게 됐어요. 행색이 정말 가련한 지경이어요. 비쩍 마른데다 핏기라곤 전혀 없고, 두 눈은 꼭 죽은 사람 같았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뭐." 하고 그는 사악하게 말했다. "바보천치처럼 재산을 모두 팽개쳤으나, 그렇게 길거리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그래 맨발입디까?" "아녜요. 다 떨어진 신을 아직 신고는 있습디다. 가엾은 것, 실성을 했다고 사람들이 하던 얘기가 그대로 맞아요." "파트리아케스 집안의 마지막이지!" 하고 노인은 배시시 웃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다 마시고, 품고 싶은 거 다 품고, 그리고 지금 바로 그 꼴이 된 게야! 참으로 하나님은 공정하셔. 안 그래, 여보? 뭐라고 얘길 해봐요! 그리고 이제 좀 있다 그가 우리집 문을 두드리면 빵조각을 줘 보내도록 하우. 그래야 우리도 파트리아케스 집안에다 적선을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 아니오!" 그는 성호를 그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지어다!" 하고 그는 만족한 듯 중얼거렸다. 멀리서 천둥 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들려왔다. 바람은 더욱 차졌고 비가 올 낌새를 몰고 왔다. 미켈리스는 몸을 떨고 있었다. "얀나코스를 찾아가야지." 하고 그는 문득 그런 마음을 먹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서 다시 마을로 들어갔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길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과부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그는 걸음을 멈추고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썰렁하게 버려져 있는 안뜰에서 카네이션꽃들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침구들과 의자 그리고 문갑들은 벌써 다 도둑맞고 없었다. 나무로 된 침대의 뼈대만이 조각조각 팽개쳐져 있고 덧문들도 거의 부서져 달아나고 없었다. 꼭 하나 남은 덧문짝이 돌쩌귀에 걸린 채 바람이 불어제칠 때마다 벽에 쾅쾅 부딪치고 애처롭게 끽끽거리는 품이 비감스러운 기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손들이 들어와 묵으면서 마음대로 더럽혀 놓은 방구석과 네 개의 벽... "가엾은 카테리나!" 하고 미켈리스는 중얼거렸다. "이 방 안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쾌락을 주고받았던가! 이 속에서 그녀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이젠 이토록 황량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아! 이 세상의 비참함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인가!" 생쥐가 무언가 갉아먹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생쥐는 골풀로 천장속에 보금자리를 틀고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이 생쥐를 고용하여 과부의 하루에 얼마씩 갉아먹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을 닫고 얀나코스의 집으로 향했다. 성스러운 사제복을 걸친 그리고리스 사제보다는 오히려 방종한 생활을 했던 카테리나가 어쩌면 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하고 그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 여인은 벌써 아마 막달라 마리아 옆에 앉아 있을지도 몰라! 마음이 조금 밝아진 미켈리스는 얀나코스네 집 대문을 두드렸다. 얀나코스는 날이 새고서부터 줄곧 마굿간에 붙어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당나귀와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라키나 산에 있는 빈민들을 위해서 당나귀를 내놓겠다고 약속을 해놨는데, 난데없이 어젯밤 라다스 영감한테서 이런 통보를 받은 참이었다. "꾸어간 세 파운드를 못 갚으면 네놈의 당나귀는 내가 가져가겠다. 그러니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잘 생각해 보도록 해!" 그는 자신의 사랑하던 동반자의 목에 두 팔을 걸치고 있었다. 얼마나 튼튼하고 따스한 목인가! 그는 당나귀에게 얘기를 하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정이 뚝뚝 묻어오는 듯한 말만 골라가면서... "나의 유소우화키! 사람들은 사악하단다. 그 사람들이 우리 둘 사이를 질투하나봐 꼭 우리 둘을 갈라 놓으려고 하는구나. 이제 누가 매일 아침 너에게 말을 걸어 주고, 이렇게 몸을 쓸어 주고, 물통 속에 깨끗한 물을 부어 주고 여물통 속을 맛있는 꼴로 채워 주지? 누가 너를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기운이 부쩍 나게 실컷 부드러운 풀들을 뜯게 해주지? 너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었어. 사람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건, 무슨 말을 하건, 난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어. 사람들이 별 소릴 다 해도 난 그저 듣기만 하고 미소를 띠었지. 그건, 내가 집에 돌아오면 착하디착한 두 눈을 초롱거리는 네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 주리라는 위로감 때문이었어. 그리고 우리 둘이 집을 나서면 네가 앞장서고 내가 뒤를 따르며 이런 물건도 사고 저런 물건도 팔면서 마을을 한 바퀴씩 돌곤 했었지. 우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정직하게 빵을 벌었어. 하지만 결과가 뭐야? 넌 이제, 우리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그 늙은 수전노에게 고삐를 맡겨야 될 운명에 처했으니! 그리고 난 또 뭐야? 이 험한 세상에 또다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해 버렸잖아! 나의 유소우화키. 우린 이제 망했어. 사악한 자들에게 저주 있으라, 그놈들이 차고 다니는 금화 자루에도! 우릴 이 꼴로 만든 공평하지 못한 운명에도 저주 있길! 잘 가게, 잘 가! 나의 유소우화키..." 그는 몸을 굽히고 벨벳 같은 당나귀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며서 하얀 솜털처럼 푹신푹신한 당나귀의 배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곤 궁둥이를 어루만지더니, 꼬리를 당기면서 훌쩍거렸다. 주인의 애무를 받으면서 행복에 잠긴 유소우화키는 목을 쳐들고 느긋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리를 쭉 빼고 부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얀나코스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미켈리스인 것을 알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별일 없었나, 미켈리스?" 하고 그는 안도감을 느끼며 물었다. 눈이 충혈된 채로였다. "얀나코스는 부끄러워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양이지. 실은 내 당나귀놈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네. 라다스 영감이 이놈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더니만 기어코... 귀신이 물어 갈 놈!" "뭐 먹을 것 좀 없나요?" 하고 미켈리스가 물었다. "배가 고픈데요. 새벽에 산을 내려왔는데 벌써 점심 때가 다 되어 가니, 그런데 얀나코스! 요기를 좀 한 후에 곧바로 난 라다스 영감을 찾아가겠어요. 저 당나귀는 사라키나 산에 있는 사람들의 거예요. 그 노인의 소유물이 될 순 없어요!" 얀나코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이미 그리고리스 사제가 아그하의 승낙을 얻어 놓았으며, 주교에게 편지를 띄워서 재판 결과 미켈리스의 사인이 유효인가 무효인가가 가려질 때까지 유산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써 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허위증언을 하여 족장의 아들에게 정신이상에 의한 금치산 선고를 내려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 당나귀를 뺏아가기만 해봐." 하고 그가 돌연 말했다. "이 얀나코스는 꼭 그놈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 버리고 말 테야!" 그는 집 속으로 들어가더니 수란 몇 개를 뜨고, 빵과 치즈와 포도를 내왔다. 비는 멈춰 있었다. 그들은 마굿간 앞 마당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그들 옆에서 나귀도 여물질을 하며 무척 만족스러운 듯 서 있었다. "우리 셋이 이렇게 앉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고 얀나코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 늙은 도둑놈이 우릴 떼어 놓으려고 하다니!" "이제 그자를 만나러 가 봐야겠어요." 하고 미켈리스가 일어서면서 입을 닦았다. "나귀를 그자한테 넘겨줄 순 없어요!" 라다스 영감과 그의 처는 나즈막한 식탁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페넬로페 부인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의자 위에 뜨개질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음식덩이를 아주 조그맣게 하여, 마치 구명 속에 들이밀 듯, 입속에 집어넣고는 아무런 신명도 없고 말도 없이 천천히 씹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한창 기분이 좋아 있었다. 그는 계속 혼자서 지껄이고 있었다. "모든 건 잘 돼가고 있소, 여보, 하나님의 은혜야! 그리고리스 사제는 사제복에 몸을 감춘 철저한 악마야! 그 사람은 이미 아그하에게도 손을 써 놓았고 주교에게는 편지를 보냈어. 이제 두고 보라구, 파트리아케스의 재산이 내 손에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젤 테니까. 그 재산이 마을 공동소유가 될 거라고 말들은 하고 있지만 말야. 흥! 그렇게 될 것 같아, 여보? 그래서 나나 사제와 모든 각본을 미리 짜둔 거라구. 모든 재산은 경매에 붙여지게 되어 있어. 사제는 제 몫만 받을 뿐이야. 그 돼지는 자기 혼자서 모든 재산을 몽땅 차지하려고 하더군. 하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내버려 둘 줄 알아? 반씩 가르기로 그놈과 타협을 해두었지만 말야. 그리고 이제 며칠 있으면 그 파문을 당한 얀나코스의 노새도 우리 것이 된다구. 그건 당신 거야. 그 당나귀 등에 타구서 우리 땅을 한 번 돌아보구려. 아주 온순하고 길이 잘 들어 있다구. 그 부드러운 깃털 안장을 당신도 보았겠지. 그 위에 앉아 있는 당신은 마치 여왕 같을 거야. 우린 어린애도 없고 개도 기르지 않으니 돈도 그만큼 덜 드는 거야. 그게 다 단둘이만 사는 덕분이지. 여보, 우린 임금님과 왕비와 다름없어! 오 여보, 우리 마누라여, 내가 만일 이백 년만 더, 아니 일백 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리코브리시 마을의 전 재산을 내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당신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오? 당신까지 머리를 짜낼 필요는 없다니까. 사람들은 모두가 다 바보 천치들 같아서 매일 새 옷이나 새 신발을 사고 애들을 기른단 말이오. 그러자면 자연히 많은 돈을 써야 하거든. 그런데 돈이란 동그랗게 생긴 탓에 잘 굴러가지. 그리고 우린 그런 사람들관 반대니까 결국 저절로... 여보, 당신도 오래 살구료!" 그는 사발에 맹물을 채워서 쭉 들이키더니 즐거운 듯이 혀로 입맛을 다셨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물맛에 비하면 포도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여보?" 하고 그가 덧붙였다. 미켈리스는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청년의 모습을 보자 라다스 영감은 인상을 찌푸렸다. 또 무슨 난동을 부리려고 찾아 왔을지 몰라, 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녀석의 상판이 어쩐지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바보처럼 행동을 해야지. "어서 오게, 미켈리스 도련님!" 하고 그가 말했다. "자, 앉지. 식사는 물론 하고 오셨을 테니." 페넬로페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치웠다. 그리곤 뜨개질감을 집어들고 방 구석에 가서 앉더니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이 지독한 구두쇠 영감님!" 하고 미켈리스가 말을 꺼냈다. "당신이 가진 그 많은 전답과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과 그리고 여지껏 긁어 모은 부동산과 가득 찬 돈궤들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는 겨요? 그걸 가지고 무덤 속에라도 들어갈 작정이오? 벌써 한 발을 무덤 속에 들여놓구서도 아직 만족을 못 하신단 말입니까? 거기다 이젠 불쌍한 얀나코스의 노새에게까지 손을 뻗쳐야 되겠소. 당신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아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노인은 원추형의 머리를 긁어 대면서 속으로 재빨리 중얼거렸다. 이놈이 필시 미친 게 틀림없군. 아직도 내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다니! 머리가 아주 돌아 버린 놈이니까 할 수 없이 내가 참아야지. 부드럽게 얘기를 걸어야 되겠군. 그렇지 않으면 금세 발끈해서 행여나 내게 주먹세례를 퍼부을지도 모르니까. "오, 점잖으신 미켈리스 도련님." 하고 그는 속으론 배가 아프지만 억지로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나로서도 그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정의는 정의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하겠나? 나 역시 돈 쓸 데가 많으니..." "그럼 내가 그 돈을 빌린 셈으로 치고 다시 차용증을 써드리겠소." 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말씀이지만, 젊은 도련님. 해괴한 소문을 듣지 하니까, 나야 뭐 자네를 믿고 있지만, 우선 당장은 _그러니까 자네가 서명한 것이... 아, 절대로 화는 내지 말라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 하건대! 나 자산은 그런 얘기는 한 마디도 믿지 않는 바이지만, 우린 그저 인간에 불과하니까 _ 인간이란 게 하두 미묘한 기계가 돼나서, 만일 나사 한 개가 닳아지면 말씀이야..." 미켈리스는 벌떡 일어나서 앉아 있던 의자를 집어들어서 그 자리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정말 이놈들 때문에 미쳐 버릴 것 같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라다스 영감은 구석으로 몰려가서 움츠렸다. 그리곤 유리창에 달라 붙더니 마당을 살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마침 대문은 열려 있군 그래. 만일 일이 잘못되면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서... "그야 자네가 대신 금화로 변상을 해준다면야..." 하고 그는 코멘 소리로 낑낑거렸다. "집에 가서 당신에게 줄 물건을 찾아보겠소, 이 늙은 악당!" 하고 미켈리스는 노인을 여전히 몰아세우며 소리쳤다. "구두쇠! 수전노! 돼지!" "자네 아버지의 집은 오늘 벌써 아그하께서 차압을 붙여 버렸는데."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리곤 급히 입을 꽉 다물었다. 이크, 큰 실수를 했는걸, 부지중에 안 할 말을 해 버렸어. 어떡하지, 저놈이 발끈하면!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난 망하는데! 미켈리스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금세라도 두 개골이 터져 벌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정말 날 미치게 만들 작정이오?" 하고 그는 소리쳤다. "라다스 노인, 바른 대로 말해요! 그자들이 나를 우리 아버지 집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나도 가만 두지 않겠어. 석유를 한 통 가져다가 마을에 불을 질러 버리겠어! 이리와, 이 수전노, 어딜 가는 거요? 이리 오라니까, 이 돼지 같으니!" 그는 라다스의 멱살을 움켜쥐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노인은 약삭 빠르게 한 번 껑충 뛰더니 문께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미켈리스가 쏜살같이 덮쳐서 목덜미를 나꿔챘다. 노인은 무릎을 끓더니 깩깩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누가 그런 짓을 했어? 사제? 그럼 아그하? 아니면 당신이?" "아, 아니네, 그래! 난 안 그랬어, 우리 집사람에게 물어 보게나. 난 그저 집 안에서 문을 잠그고 듣기만 했다구. 내 처한테 물어 보라니까. 오늘 아침에 아그하가 그리고리스 사제와 함께 그곳에 갔었나봐. 난 그냥 들은 얘긴데, 읍내에서 주교님도 이곳에 오신대. 의사들을 데리구..." "의사들이라구?" 하고 미켈리스가 소리쳤다. 머리카락이 쭈뻣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의사들을 데리고 온다구?" "미켈리스, 제발 좀 놔주게. 그렇게 너무 꼭 쥐지 말어! 다 얘기 해 줄게. 날 목 졸라 죽일 셈야!" 미켈리스는 라다스의 목덜미를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어서 말해요, 이 추악한 늙은이! 사실대로 얘기해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으라구!" "여보, 물 한 대접 주구료... 목이 막혀 죽겠소!" 하지만 페넬로페 부인은 아무 소리도 못 들은 듯 뜨개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미소를 띄운 채 뜨개질만 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한 것이 마치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 대문을 닫고 얘기하자구.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겠어!"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리곤 행길로 껑충 뛰어나가더니, 소리를 지르며, 다리야 날 살려라는 듯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동네 사람들아, 사람 좀 살려요! 미켈리스란 녀석이 내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해!" 겁을 집어먹은 마을 사람들이 대문에 빗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라다스 영감은 계속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을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의 집 앞까지 왔다. 사제가 대문 계단에 나타났다. "살려 주세요, 사제님. 그놈이 발작을 일으켰어요. 제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해요! 절 좀 들여보내 주시오!" 하지만 사제는 두 팔로 대문을 가로막아 서며 라다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더 뛰어!" 하고 사제가 말했다. "계속 소리를 지르시오! 마을 전체에 비상을 올리시오! 자, 가시오, 라다스! 모든 사람이 듣도록 하시오. 그럼 모두가 믿을 거요. 자,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뛰어가시오!" 그리고는 라다스의 코 앞에다 대문을 쾅 닫아 버렸다. 빗줄기가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눈치 빠르게 사제의 계략을 째달은 라다스 영감은 마을을 온통 누비기 시작했다. 골목마다 샅샅이 ㅎ고 다니며 끔찍한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땅바닥에서 새끼줄 하나를 주어서 사람들에게 보이고 다녔다. "미켈리스가 나를 목 졸라 죽이려고 왔어요. 이게 바로 그 노끈이오! 살려주시오, 형제들! 누가 좀 대문을 열고 나를 숨겨 줘요! 미켈리스가 뒤따라오고 있어요. 석유 한 통을 가지고 있어요!" 대문 하나가 열리자 단숨에 뛰어들어가더니 더욱 멀리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미켈리스가 석유통을 들고 와서 마을에 불을 지르려고 하고 있어요! 도와 주시오! 도와 주시오!" 곧 마을에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낡은 총을 꺼내 들고 문 뒤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드디어 발코니 위에 아그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정 둘을 보내어 그자를 체포해 와라! 파나요타로스는 어디 있나?" 파나요타로스가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대령했습니다. 아그하님!" 아그하가 밧줄 하나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자, 그걸 받아! 그걸로 그자를 묶어서 내게 데리고 와! 그리고 잠깐 잘 듣도록 ! 파나요타로스, 오늘부터 너를 내 부하로 고용하겠다. 넌 신체가 건강하고 성미가 사나워. 매스티프(풀이: 사나운 개의 일종) 처럼 으르렁거리길 좋아하는 성미도 꼭 내게 필요한 점이야. 내 호위병이었던 그 저주받을 후세인이란 놈이 쓰던 터어키 모자를 던져줄 테니까 기다리라구! 지금부터 그걸 쓰고 다니도록 해. 가라, 행운을 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모자걸이에서 터어키 모자를 획 걷어 채 와서 던져 주었다. "자, 이걸 쓰고 잘해 보라구!" 그리곤 뒤에서 느긋이 앉아서 콧구멍으로 담배연기를 뿜어 내고 있는 브라히마키에게 돌아갔다. "나의 귀여운 브라히마키, 저놈들이 이젠 아주 그 청년을 본격적으로 미쳐 버리게 만든 모양이군 그래, 불쌍한 녀석!" "그놈들이 언제 내게 여자를 갖다 줄 거죠?" 하고 새파란 애숭이는 흥분을 하면서 말했다. "정말 미칠 지경이란 말예요!" 파나요타로스는 밧줄과 터어키 모자를 집어들고는 라다스 영감 집을 향해서 나아갔다. 하지만 미켈리스는 벌써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미켈리스는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제일 다니지 않는 골목으로 해서 달렸다. 그가 지나가면 금세 대문이 닫히고 놀란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곤 했다. 산으로 가는 길에 다다랐으나 그는 숨이 가빠서 걸음을 늦추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가늘고 촘촘했다. 산은 옅은 안개 속에 싸여 있었고 평지는 물로 덮여 있었다. 미켈리스는 바위 밑으로 기어들어가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입은 바싹 말라 있었다. 눈길은 빗줄기에다 고정시키고, 바위에서 바위로 흐르며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점점 빗물과 함께 흐르면서 대지 위로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구르고, 커지고, 부풀더니 사방에서 흘러내려오는 지류들과 합해져서 큰물을 이루어 마을을 범람시켰다. 미켈리스의 가슴은 몹시 팽창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이 진흙을 뒤집어쓰고 비가 내리는 땅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더니 평지를 떠나 엄숙한 걸음으로 자신을 향해서 똑바로 올라오고 있었다. 한 죽은 사람이 맨 앞에서 우두머리처럼 걸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키, 호리병처럼 불룩한 배가 몹시 튀어나온 뚱뚱한 몸매 그리고 녹색을 띤 푸르스름한 얼굴 _ 족장이었다. 그것은 꼭 최후의 심판과도 같았다.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인간의 형상을 한 벌레들이 진흙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며칠 전에 미켈리스는 계시록을 읽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천사들과, 트럼펫과, 거품을 일으키며 해변을 향해서 흐르고 있는 바닷물 위를 항해하고 있는 창부들과 흑, 녹, 적, 백의 말을 타고 핏속을 헤엄치고 있는 기사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미켈리스는 빗물을 바라보며 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관자놀이가 고동을 쳤고 그 흙덩이들은 부서져 사라져 가는 듯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쓸쓸하고 규칙적으로 내리는 비는 세상을 온통 물에 잠기게 하고 땅을 모두 쏠아먹기로 결심한 듯이 계속 질척질척 내리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오직 당신만이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하고 미켈리스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녹아 없어지고, 지나가 버리고 있는 지금 만일 당신이 안 계신다면 인간은 무엇에 매달려야만 합니까?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인간들에게? 모든 것이 시들어 가고, 부서져 없어지고, 미끄러져 갑니다. 오 하나님, 오직 당신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께 기댈 수 있게하여 주소서! 오 하나님, 꼭 붙들어 주소서. 저의 이성은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동굴 속에서는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가 오랜 시간 동안 근심스럽게 미켈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제님, 이러한 싸움에 이긴다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투쟁이 될 것 같군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이곳에서 이런 생활을 하면서 이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할 가치가 있을까요?" "가치가 있구말구, 마놀리오스. 그럴 가치가 있지!" 하고 포티스 사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게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지. '왜 이런 곳에서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싸우는 건가? 이 세상이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천국에서 내쫓긴 유랑자에 불과하거늘 다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내와 열정으로 쉬지 않고 그것과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이 땅 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인간이 천국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올라설 수 있는 도약대는 오직 이 땅 위일 뿐이지. 그리고리스 사제, 라다스 노인, 아그하 _ 그런 사람들이 우리가 싸워야 할 악의 군대라고 할 수 있겠지. 만일 우리가 무기를 내던지면, 우린 이곳 땅 위에서도 저 위 천국에서도 모두 패배하는 것이야." "미켈리스는 겸약한 성격인데가 그다지 어려운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어쩌면 이겨 낼 수 없을지도..." "할 수 있어. 그 청년은 해낼 수 있어요. 오늘 저녁에 그가 가지고 올 소식을 한 번 기다려 보자구. 만일 나쁜 소식이면, 내가 내일 이곳을 떠나 주교님을 찾아 뵙고 공정한 판결을 부탁해 보도록 하겠어. 겨울이 오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곳도 없이 헐벗고 굶주리게 놓아 두지는 않으시겠지."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제 피를 바칠 수 있었으면..." 하고 마놀리오스가 중얼거렸다. "단 한 번으로 목슴을 바치는 것보다는 매일 매일의 싸움에서 조금씩 피를 흘리는 것이 더 어려운 법.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 어느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더 어려운 쪽' 이라고 대답하겠네. 그러니, 마놀리오스, 용기를 가져야 해요!" 마놀리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제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목숨을 바치러 가던 그날 경험했던 초인간적인 환희를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열정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그의 가슴속에 실락원처럼 아스라하게 살아 있었다. 매일 매일의 투쟁은 그에겐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따금씩 번개의 섬광이 어둠을 찢으며 동굴 속을 관통하면 창백한 두 얼굴과 목 하나, 팔 하나가 불빛에 드러났다간 다시 모든 것이 어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돌멩이 위를 서둘러 걸어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미켈리스인가 봅니다!" 하고 마놀리오스가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두 친구는 어둠 속에서 포옹했다. 그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미켈리스" 하고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리코브리시에서 무슨 소식을 가지고 왔나?" "저의 서명은 무효가 됐습니다. 저의 아버지의 집엔 아그하가 차압딱지를 붙여 놓았구요. 내가 미쳤다는 것을 공포하려고 의사들이 진단하러 오고 있어요. 마지막으론 마리오리가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가지고 온 소식입니다! 절 나무라시진 못할 거예요! 제가 가지고 온 소식이 어쨌든 제가 가지고 간 돈값을 했을 테니까요. 하나님께 고마운 일이죠!" 그는 쓰러지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바윗돌에 등을 기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그는 농담을 하듯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절 나무라시진 못하시겠죠. 빈손으로 돌아오진 않았으니까요." "그럴 리가 있나." 하고 포티스 사제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야 _ 고통을 당하고, 비리를 참고 견디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야! 미켈리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거야. 내일 나는 읍내로 들어가서 부딪쳐 보겠네." 미켈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제님께서는 하나님의 계시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전 포기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을에 내려가 있을 때 얼마 동안 저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전 라다스 노인을 당장에 목졸라 죽이고 마을에는 석유를 뿌려 불을 질러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짓을 해버린 것처럼 돌연 피곤감을 느꼈고, 용기가 빠져 달아났고, 두려움이 생겨서 피해 와 버리고 말았어요." "미켈리스, 우린 싸워야 하오." 그림자 속에서 친구의 손을 움켜쥐며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그 손은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비가 그쳤고 포티스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게." 하고 그가 말했다. "이제 그만 가서 내일 할 일 준비를 해야겠군. 마놀리오스, 우린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지." 그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삶은 왜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 하고 미켈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마놀리오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소? 내일 읍내에 가면 마리오리를 찾아가서 대신 안부를 좀 전해 줘요. 그것뿐이오." 그리고 그는 깔개 위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리라 생각하면서... 다음날 바로 똑같은 자리에서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는 서로 몇 마디 말만을 주고받았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비는 이제 내리지 않았다. 그렇긴 했지만 어제 내린 호우 때문에, 그들은 맨발로 진창에 빠지면서 어렵게 걸음을 떼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렬종대로 서서 고통스럽게 전진을 했다. 그들은 수목들과 포도나무로 뒤덮인 비옥한 땅 사이를 지나갔다. 그런 땅들은 보통 널따란 평지에 펼쳐져 있었지만 기복이 심한 땅에도 있었다. 마침내 구름들이 실올을 풀기 시작하자 태양이 다시 나타났다. 한 무리의 부드럽고 푸른 하늘이 신선하게 반짝였다. 높은 언덕 위에 두 개의 해묵은 대리석 원주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 땅이 그전에 모두 우리 그리스인의 것이었는데..." 하고 마놀리오스가 한숨을 쉬었다. 포티스 사제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부서진 두 개의 기둥을 바라보더니 마치 교회당의 폐허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성호를 그었다. 정신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그들은 어깨에 초라한 바랑을 메고 말없이 걸음을 계속했다. 사제는 헝겊조각으로 누덕누덕 기운 사제복을 입었고 마놀리오스도 거친 옷감으로 지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어떤 마을에 이르자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 두 나그네를 보고 짖어댔다. 문들이 열렸고 사람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자기들을 바라보는 있는 눈길을 느꼈다. 어쩌다 그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서 오시오! 어디로 가십니까? 행운을 빕니다! 그리곤 곧 문들이 닫히고 그 두 가난한 사자는 황량한 길위에 다시 외롭게 버려졌다. 점심때쯤 그들은 요기를 좀 하고 원기를 붇돋우기 위해 포플라 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덩이 위에 주저앉았다. 향신초, 백리향, 페니로열, 박하, 샐비어 같은 방향성 식물들이 전날 내린 거센 비에 으스러져서 주위에 향기를 품어 대고 있었다. 날씨는 개었고 하늘엔 거대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포티스 사제는 비온 뒤에 펼쳐진 땅과 하늘의 경이로움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하고 수심에 사득찬 그리고 진지한 그의 얼굴위에 환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어느 날 성산에 가서 소프로니오스 사제님에게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네. 그분은 자기 수도원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낭떠러지 꼭대기에 암자를 짓고 살고 있는 수도사이었지. '소프로니오스 사제님, 어떻게 구원의 길을 찾으셨습니까?' 그랬더니, '그건 내 자신도 잘 모를 일이야.'하고 대답을 하시더군.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비가 내렸더군. 그래서 나는 창 밖을 바라보았어. 그리고 그것이 전부야.' 그래서, '소프로니오스 사제님, 그것이 전부예요?'하고 물었더니 다시 이렇게 대답하시더군. '무엇을 더 알고 싶나? 나는 창가에 서서 하나님을 보았어.' 그때부터 나는 꼭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 온 뒤의 대지를 볼 때마다, 그 수도사에 대한 생각이 뭉클 떠오르곤 하지. 지금쯤은 틀림없이 천국을 거닐고 계시겠지. 하나님도 어쩌면 그분을 생각해서 천국에서도 밤에 비가 내리도록 해주시겠지..." 마놀리오스는 전율했다. 포티스 사제로부터 이러한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비에 젖은 대지가 더할 수 없이 숭고한 의미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마놀리오스는 가슴이 한결 상쾌해졌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하고 마놀리오스는 얼마 동안 깊은 침묵에 잠긴 후에 말문을 열였다. "저는 어쩔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경우에만 하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사제님께서는 지나가는 모든 순간마다 제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군요. 저는 잔혹한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지만, 사제님께서는 매일 매일 겸허하게 투쟁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가 그분을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저는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왜 읍내에 가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누구와 함께 그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가를 말입니다." "우린 우리가 내심으로 찾고 있는 것은 절대로 찾을 수가 없을 거야, 마놀리오스. 대신 우린 우리가 가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되지. 그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현시된 하나님 - 행복에 넘치는 표정으로 양털 같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장미꽃 같은 뺨을 가진 노인이 아닌, 오늘도 우리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존재로부터 튀어나와 전쟁을 선포하는 목소리의 형태를 지닌 하나님을 만나야 되지. 그 전쟁의 상대란 어제는 그리고리스 사제와 라다스 노인이었고, 오늘은 주교일 뿐, 내일은 또 다른 상대를 만나야 돼. 전쟁은 항상 계속되지, 성스러운 전쟁, 마놀리오스." 그들은 다시 걷기를 계속했고 황혼녘에 읍내에 도착했다. 저 멀리에 회교사원들과 둥근 지붕들이 보였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두 개의 뾰족탑은 힘이 넘쳐 흐르고 있었고 우아해 보였다. 그들이 누벽 사이에 뚫린 문을 지날 때, 무애친(풀이: 회교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큰소리로 알리는 사람)이 명령조로 하지만 공손하게 회교 신도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회교 마을의 정경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 수연통에서 연기를 품어 대며 돗자리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높은 관리들, 탬버린을 치면서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통통한 사내들, 기다란 베일을 쓰고 지나가는 여인들, 기름에 튀긴 케이크와 구운 옥수수를 늘어놓고 맨발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터어키의 장사치들. 두 사람의 여행자는 기독교인이 하는 여인숙을 찾아들었다. 일층은 땅바닥으로 되어 있었는데, 당나귀와 노새들이 우글거렸고, 밀집을 넣은 매트리스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에라시모스라고 하는 여인숙 주인은 포티스 사제가 그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선장 출신으로 늘그막에 내륙 깊숙이에다 닻을 내리고 예쁘고 튼튼한 소아시아 여자와 결혼해서 애들을 낳고 그곳에다 여인숙을 차렸는데 우악스러우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주방일은 마누라가 맡아 하고 있었고, 자기는 손님 접대와 가축 치닥거리를 하느라고, 여기서 한번 허풍을 떨고 저기서 한 번 농짓거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머리에다 거대한 배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마따나, 허리를 잘 굽히지도 못하겠고 자기가 보아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포티스 사제를 보자마자 카운터에서 곧장 달려나왔다. "사제님,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었나요?" 하고 그가 유쾌한 듯 소리쳤다. "그렇잖아도 꼭 제게 한번 오셔야 될 일이 있었는데, 제가 또 무거운 죄를 한 가지 저질렀거든요. 얼마 전에 도부상인이 우리집에 왔다가 지갑을 잊어버리고 가길래 제가 금화가 가득 찬 그 지갑을 돌려주었지요. 아 그랬더니, 바로 그날부터 전 어떻게 온몸이 불편하게 지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내 마음이란 놈이 죄를 지어 버렸나봐요!" 하지만 포티스 사제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예라시모스 선장, 우리 두 사람은 이곳에서 이틀쯤 묵어가야 될 것 같은데 뭐 좀 요기할 것과 깨끗한 매트리스 두 장만 주지 않겠소? 우린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요. 하지만 숙박비를 달아놓으시면 언젠간 계산을 해드리리다, 선장." "사제님, 누가 돈 얘기를 했습니까?" 하고 노선장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제님은 돈이 없지만, 우리집에 와서 묵고 가는 뚱뚱한 상인들에겐 돈이 많지요. 그분들에게 돈을 두 배로 물리게 하면 되지요. 그럼 전 돈도 받고 기분도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더욱이 이번에 또 지갑을 발견하면 돌려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두 분 모두 잘 오셨습니다. 오늘 저녁엔 저와 같이 저녁을 먹지요. 두 분께서는 저의 집 손님이 아니고 저의 손님이십니다. 여보, 크론스탈레니아!" 둘레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커다란 눈을 가진 건강한 동양 여인이 손에 프라이팬을 든 채로 부엌에서 나왔다. "사제님의 손에 키스를 하라구." 하고 예라시모스 선장이 명령했다. "오늘 저녁엔 이분들과 함께 식사를 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돼지고기를 얇게 저민 커틀렛을 맛있게 해야 돼!" 크론스탈레니아가 으슥거리며 다가오더니 사제의 손에 키스를 하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 그런데 어디로 자꾸 도망가려구 그래, 마누라?" 하고 유쾌하게 소리쳤다. "아무도 당신을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잠깐 그대로 서 있으라구. 자, 얼굴 좀 볼까?" 그리곤 포티스 사제에게 윙크를 한 번 하더니 덧붙였다. "자, 우리들에게 얘길 해봐! 자루 속엔 배가 몇 개 들어가지?"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그 나이에!" 하고 여인숙 주인의 예쁜 마누라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리곤 키득거리며 부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에라시모스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핫 - 하, 사제님, 역시 여자란 모두 똑같다구요! 성서엔 이떻게 씌어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전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요.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했고 악마는 여자를 창조했다. 바로 이겁니다. 누구한테나 자루 속에 배가 몇 개 들어가냐고 물어 보지만,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장난꾸러기 왈패 마누라는 알고 있더라니까요! '두 개 들었어요.'하고 대답을 했답니다. '두 개!'라고 말예요! 아시겠어요? 그게 바로 악마가 만든 짝이니 잘 알 수밖에요! 우리 마누라가 정곡을 찌른 말을 했다구요!" 다음날 아침 포티스 사제는 성호를 그으며 주교가 사는 집을 향해 걸었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한 젊은 시골 처녀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사제의 빈손을 힐끔 보더니 상을 찌푸렸다. "너무 일찍 오셨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주교님은 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포티스 사제는 마당에 있는 밴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차츰 방문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자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주교에게 줄 선물들을 싸들고 있었다. 계란, 바구니, 토끼, 치즈 단지, 수탉 따위를... 그 젊은 시골 처녀가 미소를 띠면서 사람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곤 가져온 진상품들의 중요성에 따라서 등받이가 있는 의자와 없는 의자를 골라서 내주었다. "저 아가씨가 주교님의 질녀라오." 하고 포티스 사제의 앞에 앉아 있던 조그만 노인이 속삭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주교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어떤 사람이 주교가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이제 목을 가시는 소리가 꼴깍꼴깍 들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아직 셔터가 내려져 있는 창문을 흘금흘금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 요란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엔 목구멍 세정식을 하는 그 인상적인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리곤 굼뜨게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마지막으로 물을 내뱉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제 세수를 하고 계시군요." 하고 노인이 말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이 하나님을 모시는 야수가 세수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15분쯤 후에 컵, 접시, 포크, 나이프 등을 식탁 위에 차려놓는 소리와 의자를 끄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침식사를 하고 계시군요..." 다시 30분이 지나자 섬ㅉ한 고함 소리가 터져나오고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제 질녀에게 벌을 주고 계십니다..." 그다지 오래지 않아 의자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코를 팽 푸는 소리도 났다. "이제 내려오고 있어요!" 하고 마침내 노인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모두가 일어서서 문을 응시했다. 힘이 끌어넘치는 저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안젤리카, 첫째 사람 들여보내!" 문이 열리고 아까 그 시골 처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울어서 눈이 발그레져 있었다. 그녀는 포티스 사제에게 손짓을 했고 사제가 뚜벅뚜벅 집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주교는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땅딸막하고 정력적인 사나이였다. 짧은 회색 수염을 매끈하게 말아 올리고 있었고 코에는 사마귀가 하나 붙어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무소를 연상시켰다. "듣고 있으니까 간단히 하도록." 하고 주교가 말했다. "이전에 한 번 본 것 같은데... 그래, 피남민이었지? 말을 해!" 순간적으로 포티스 사제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저 사람이 그리스도의 대변자란 말인가? 저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인간이란 말인가? 우리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을 저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자재를 하고 있었다. 사라키나 산 위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과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했다. 그래서 막 입을 열고 말을 꺼내려 하자 주교가 갑자기 그의 말을 가로막고 손짓을 했다. "다음부터 주교의 관저를 찾아올 때에는 신발을 신고 오도록 해." "제겐 신발이 없습니다. 그전엔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어요. 죄송합니다. 주교님, 그리스도께서도 맨발로 다니셨지 않습니까." 주교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리스 사제에게서 벌써 얘기를 들었어!" 하고 그는 위협적으로 머리를 내흔들면서 으르렁거렸다. "우리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면서 이 세상에 정의와 평등을 세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부끄럽지도 않아?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는 세상을 만들려 한다면서? 그렇다면 틀림없이 주교도 없어야겠군 그래? 이 반역자놈!" 사제는 관자놀이가 옥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생각했다.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입을 다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콘스탄티노플 신학교를 나왔나?" "아닙니다, 주교님!" "그렇다면 무슨 권리로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야! 너 같은 사제하곤 다투고 싶지도 않아. 내 신세를 지려고 찾아온 모양인데.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빨리빨리 말을 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조심하면서!" "주교님, 신세를 지려고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정의를 구하려고 왔을 뿐입니다." "아주 무례한 얼굴을 하고 있군. 내게 얘기를 할 때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라구!" 포티스 사제는 문득 다른 곳에 눈길을 돌렸다. 그는 주교의 등뒤에서 십자가 위에 못박혀 있는 그리스도의 성상을 보았다. 그리고 금박으로 장정을 한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도 보았다. 머리엔 번쩍이는 사교관을 쓰고 한 손엔 금도금을 한 십자가를 든 주교의 법의에는 그리스도의 그림이 금무늬로 성상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었다. 주교는 포티스 사제의 침묵에 울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사제, 말을 하기 싫거든 빨리 나가라구. 난 시간낭비를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하고 주교가 말했다. "주교님, 제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돌아가지요. 저는 정의를 구하러 왔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분'에게 그와 같은 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하고 사제는 십자가 위에 처형된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에게라고?"하고 주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게 말입니다." 그러자 주교는 돌쩌귀에서 빠져 나와서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꽝 내리쳤다. "그리고리스 사제 말이 맞아, 넌 볼셰비키야!" "만약 그분이 그렇다면 저 역시!" 하고 사제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책형을 당한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안젤리카!" 하고 주교가 소리를 질렀다. 조카가 달려왔다. "이자를 잘 봐둬! 그리고 이 자가 다시 또 오면 절대로 들여보내지 말아!" "주교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심판하실 테니까요. 그날이 오면 우리 두 사람도 그분 앞에 나가야 하겠지요. 맨발로..." 하고 포티스 사제는 평온함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곤 문을 열고 작별의 말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여러 시간 동안 그는 거리를 방황했다. 돗자리로 차양을 한 시장거리에도 들어가 보았고, 회교사원의 안마당에서 걸음을 멈추고 쉬기도 하였다. 당나귀 등과 같은 다리를 건넜고, 그러다가 어떤 광장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주교를 생각했다. 그러자 사라키나 산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를, 점점 가까워 오고 있는 겨울을 느꼈다. 모르는 사이에 그는 자신이 어느새 에라시코스 산장의 여인숙 앞에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여인숙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놀리오스는 어디 나가고 없었다. "새는 날아가 버렸어요!" 하고 여인숙 주인이 알렸다. "산보를 하겠다면서 일찍 나갔는데요." 포티스 사제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방금 이 세상 끝에서 걸어온 것처럼 지쳐 있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마놀리오스는 친구와 약속한 대로 마리오리의 병실을 찾아갔다. 그는 침대가에 서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꼼짝도 않지 않고 그녀가 잠을 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의 가슴은 더욱 죄어드는 것 같았다. 이미 육체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두 눈꺼풀에는 커다랗고 푸르스름한 테가 끼어 있었다. 바짝 마른 양피지 같은 피부는 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죽음이 벌써 그녀의 얼굴을 찾고 있는 것이 완연했다. 마리오리는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토해 내며 눈을 떴다. 그녀는 마놀리오스를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마놀리오스. 그이가 당신을 보냈나요?" "그래요, 마리오리. 미켈리스가 나를 보냈어요." "그이에게서 무슨 소식을 가져오셨나요?" "안부를 전해 달라더군요." "그것뿐이에요?" "그렇다오." 마리오리는 아픈 미소를 지었다. "지금 제가 무얼 더 기대하겠어요? 안부말이면 족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마놀리오스, 저도 그이에게 보낼 소식이 있어요." 그녀는 배개 밑을 손으로 더듬더니 가위를 끄집어냈다. "좀 일으켜 주실래요?" 마놀리오스는 두 팔로 그녀를 일으킨 후 배개를 토닥여 푹신하게 만들어서 조심스럽게 등을 기대게 해주었다. 마리오리는 머릿수건을 벗고, 밤색 머릿단을 묶고 있던 검은 비단 리본을 풀었다. 그런데 머리칼을 자르려고 했지만 가윗날을 움직일 힘이 없어서 안간힘을 써봐도 좀처럼 되지 않았다. "못 하겠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못 하겠어요. 마놀리오스, 절 도와 주세요." "머리를 자를 작정이세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놀라서 물었다. "잘라 주세요!"하고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몸을 떨면서 그 젊은 처녀의 머리칼에 손을 갖다 댔다. "잘라 주세요!" 하고 마리오리가 재촉했다. 마놀리오스는 마리오리의 삼단 같은 머리칼에 첫 번째 가위질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육체를 베어 내는 것처럼 몸이 떨렸다. 마리오리는 잘라진 기다란 머릿단을 들고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에 그득 쥐어지는 머릿단을... 그리곤 머리칼이 잘려 나간 머리를 고통스럽게 흔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떨며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베어 낸 자신의 머리칼 위에 몸을 굽히고 눈물을 닦더니, 마치 사랑하는 어린아이의 시체를 포대기로 싸듯이 머릿수건으로 칭칭 감아 묶어서 마놀리오스에게 건네 주었다. "자, 받으세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이에게 갖다 주고 이렇게 전해 주세요. 마리오리도 소식을 보낸다고... 그렇게만." 17.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구나,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어." 돌아오는 길에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면서, 포티스 사제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되어가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을!"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마놀리오스는 바랑 속에 들어 있는 두 타래의 머릿단 때문에 허리가 두 배나 더 휘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등에 꼭 죽은 여인을 짊어지고 가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소리가 들리면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잘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 포티스 사제는 걸음을 빨리하면서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밖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빗줄기는 채찍처럼 그의 얼굴을 때렸고, 그는 거의 달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한 무리의 두루미가 머리 위를 날아 지나갔다. 하지만 두루미떼를 바라보기 위해서 머리를 들지는 않았다. 차츰 그러다가 그는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저녁이 가까워오고 사라키나 산의 뾰족한 꼭대기가 눈에 보이자 그제서야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놀리오스, 우린 싸워야 해." 하고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한쪽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 - 주교들, 사제들, 유지들 그리고 눈먼 백성들과 싸워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바로 우리들 두세 명의 거지들 자신과 싸워야 해. 그리스도 뒤에 서서. 마음을 단단히 먹게, 마놀리오스. 우린 꼭 이겨 낼 거야!" 그는 진창길을 헤치며 웃으면서 다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나보고 왜 신발을 신지 않았느냐고! 가야바도 그리스도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들은 사라키나 산의 등성이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 동안 미켈리스는 고뇌하는 영혼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감히 누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이 들기만 하면, 자기 아버지가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힐난하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서 자기를 움켜쥐는 것이었다. "이곳에 혼자서 며칠만 더 있다간 아주 미쳐 버릴 것만 같아." 하고 그는 독백을 하곤 했다. 그는 복음서를 읽음으로써 이 흉악한 환상을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글자들이 춤을 추고, 도저히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는 책을 덮고 일어서서 다시 또 동굴 속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날 해가 진 후에, 교장 선생이 그를 찾아왔다. 그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청년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며, 약혼녀에 대한 얘기,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과 사라키나 산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서, 이토록 나쁜 날씨에 어떻게들 견디고 있는지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그리곤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고, 인간의 의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좀더 심각한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미켈리스는 다시 또 혼자 있기가 두려워서 마지못해서 억지로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교장 선생이 자기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다 보자, 미켈리스는 금세 무엇인가 깨닫고 분노를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정말로 미쳤는지 확인하려고 오셨군요?" "미켈리스,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교장 선생은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교장 선생님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 때문에 선생님의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것두요. 선생님이 오늘 저녁에 저를 찾아오신 것은, 거짓말장이고 죄인인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당신의 형님이라는 것을 알아보려고 오신 건가요? 그럼 정직하신 하지 니콜라스 선생님, 결론을 어떻게 내리셨습니까?" 교장 선생은 말이 없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겁쟁이 신거지요." 하고 미켈리스는 연민에 어린 눈으로 교장 선생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정직하게 말하면, 선생님은 두려워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아냐, 아냐." 하고 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감히..." "그 사람들이 옳지 않는 것을 주장하면, 선생님은 진실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겐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그러면 아무도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나셔서 진실을 밝히지는 않으시겠다는 건가요?" 교장 선생은 기침만 하고 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못할 거야." 결국 그는 부끄러움에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미켈리스는 애석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분노는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계신가요?" 하고 소리쳤다. "새로운 세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모셔온 분이 바로 선생님이었군요." 교장 선생은 일어섰다. 그는 극도로 피곤해 보였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하고 그가 말했다. "마음이 진실로 하고자 하면, 육신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육체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을까요?" 미켈리스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자기가 이토록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이 바로 교장 선생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영혼에 채찍질을 하고 더욱 부끄러움을 깨닫기 위해서 이토록 가혹하게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세상은 사악한 자들이 더욱 힘이 세고, 선량한 사람들은 이토록 약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지혜로운 선생님, 제게 설명을 좀 해주세요." 고 미켈리스가 말을 계속했다. "나도 모르겠어." 그리곤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 부끄러워. 미켈리스, 자네에겐 그럴 권리가 있어. 하지만 나의 형인 그리고리스 사제는 나보다 더 힘이 강해. 언제나 그랬었지. 어렸을 적에 그분은 나를 때리곤 했지. 그리고 지금도 나는 형님에게 대들 힘이 없단 말야. 만약 그분이 없다면..." 미켈리스는 잠시 주저했다. "제 말을 들어 보세요." 하고 미켈리스는 무감각하게 얘기를 꺼냈다. "하지 니콜라스 선생님,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없었나요? 그분을 죽인다는 무서운 유혹을?" 교장 선생님은 기겁을 하고 펄쩍뛰었다. "가끔은... 가끔은..." 하고 그가 우물거렸다. "어쩌다, 꿈에서나." 그는 그런 얘기를 꺼내고 나서 곧 질겁을 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비밀을 털어놓은 후, 그는 동굴의 입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밖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둠은 한없이 깊었다. "난 가겠어. 잘 있게." "밖이 역청같이 어둡습니다, 교장 선생님." 하고 미켈리스가 빈정대듯 말했다. "가세요. 두려워 마시고. 선생님이 사라키나 산에 오셔서 형님에게 가져갈 정보를 얻어간 일은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잘 살펴 가세요!" 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교장 선생은 누군가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 인기척을 느꼈다. 나의 형은 협잡꾼이다. 그리고 난 사실 가련하고 덜 된 겁쟁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도 이젠 대담하게 나서야 돼. 오늘 밤 당장 형님을 찾아가야지. 그리고 그의 얼굴에다 진실을 퍼부어 주는 거다. 주여, 저를 도와 주소서! 미켈리스는 동굴 입구에서 답답하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그의 가슴은 다시 굳게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죽은 아버지의 명령은 사라졌다. "어서 오세요. 고독은 정말 무서웠어요."하고 그가 말했다. "우리들의 여행도 역시 그랬다네." 하고 포티스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고 이젠 우리에게 날개를 빌려 주셨어." 몇 마디 말로 그는 주교를 만난 일과 그와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럼 그건 바로 전쟁이었군요." 하고 미켈리스가 두려움을 느끼며 물었다. "전쟁이지!" 하고 포티스 사제가 단언했다. "성전이라네. 처음엔 터어키인들과 그들의 아그하들과의 싸움이었고, 지금은 우리 민족 자신 - 부유한 유지들과의 싸움이지. 하지만 우리와 같은 민족이 더욱 어려운 상대야. 그런데 지고한 걸인이셨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네." 그는 마놀리오스에게 몸을 돌렸다. "마놀리오스, 내 말을 믿게. 주님께서는 언젠가 자네가 나무에다 새기던 그런 모습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항상 친절하기만 하고, 태평스럽고, 평화스러우셔서 한 쪽 뺨을 때리면다른 쪽 뺨을 내놓기만 하는 그런 분은 아니라는 뜻이야. 그분은 이 땅 위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앞장에 서서 싸우며 나아가고 계시는 굳건한 전사이시기도 하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이것이 누구의 말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이야. 이제부터 우리들 주님의 말씀은 바로 그와 같은 것이야. 마놀리오스!" 사제의 두 눈은 깊은 동굴 속에서 마치 두 개의 석탄덩이처럼 붉게 불타올랐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러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이 나는 정말 행복해. 양처럼 순하게만 사는 것도 무척이나 좋은 일, 하지만 늑대에게 포위당했을 때는 사자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법." 동굴 입구에서 누군가가 부르고 있었다. 얼굴 하나가 불빛에 반사되어 붉게 드러났고 두 손은 앞으로 내벌리고 있었다. "누구시오?" 하고 미켈리스가 경계하며 외쳤다.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외치고 있는, 분노와 슬픔에 잠긴 얀나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형제들! 그 더러운 마을을 떠나서 여러분들의 산에 피난을 하러 이렇게 찾아왔어요." "어서 오시오, 얀나코스!" 하고 세 사람이 동시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얀나코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런 시각에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이곳까지 오시다니?"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얀나코스는 포티스 사제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마지막에 하시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제님, 저도 동감입니다! '양처럼 순하게만 사는 것도 무척이나 좋은 일, 하지만 늑대에게 포위당했을 때는 사자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법!'" 그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짐꾸러미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마침내 얀나코스가 입을 열였다. "오늘 저녁에 파나요타로스가 아그하의 직인이 찍힌 차압증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그자는 이번에 아그하의 새 호위병이 되었지요. 그놈들은 제가 그 돼지 같은 라다스 영감에게 빚을 진 것을 구실로 제 나귀를 빼앗아가 버렸어요." 그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기운을 되찾고 벌떡 일어섰다. "밤에 그놈의 집엘 찾아가서 불을 질러 버려야겠어요. 내 꼭 불을 질러 버릴 테요!" 하고 그가 소리쳤다. "안 돼요, 얀나코스, 참아야 합니다. 아무도 혼자서는 안 돼요. 우리 모두가 함께 내려가야 합니다." 하고 사제가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닙니까?" 하고 얀나코스가 조급하게 물었다. "이제 멀지 않았소, 그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부터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물매(풀이: 돌팔매질 하는 기구)를 다루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자, 여러분들, 오늘 저녁은 이것으로써 충분합니다. 오늘 우린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온갖 종류의 독을 마셨소.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합니다. 지금은 자야 할 시간이요. 자고 나면 독약에 의한 상처가 아물겠지요. 내일은 또 무슨 독약을 마셔야 할지 모르니까. 자, 얀나코스, 나와 함께 내 거처로 가서 쉽시다. 우리를 찾아와 주어서 정말 기뻐요!" 얀나코스는 다시 짐꾸러미를 집어들고 사제의 뒤를 따랐다. 이제 그곳엔 두 사람의 친구만이 남아 있었다. 미켈리스가 마놀리오스에게 몸을 돌리며 손을 잡았다. "어찌됐소?" 하고 미켈리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놀리오스가 바랑에서 그녀의 머릿수건을 꺼냈다. "마리오리가 안부를 전해 달라더군요." 미켈리스는 그 슬픈 선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그는 이내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두 타래의 머릿단을 풀더니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면서 그녀의 머리칼에 한없이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이렇게 있다가 비로소 고개를 쳐들었다. "죽어 가고 있소?" 마놀리오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당장에 그리고리스 사제를 찾아갔다. 미켈리스가 한 말은 그에게 더욱 심한 부끄러움을 심어 주었고 용기를 북돋았다. 난생 처음으로 그는 자기 형님에게 대들어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사제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정찬을 잘 먹고 난 참이었다. 요리도 훌륭했고 포도주 맛도 최상급이었다. 그는 궐련에 불을 붙이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전날, 그는 아그하로부터 자신이 부탁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 그 젊은 애송이를 사라키나 산으로 쫓아내고 파트리아케스의 집에는 차압딱지를 붙였다 - 전갈을 받았다. 이제 그러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자기 쪽에서도 브라히마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좋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아 며칠 밤 며칠 낮을 속을 태우며 궁리를 하고 있었다. 스캔들을 일으키지도 않고 아그하의 주문에 꼭 맞는 젊은 여자를 찾아내기가 무척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 보시라! 드디어 오늘 저녁에 식사를 잘 하고 담배를 피웠더니 멋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여지껏 그걸 몰랐단 말야, 하고 그는 술잔에 포도주를 채우며 중얼거렸다. 하나님이 내리신 영감이야! 정말이지, 그애라면 잘 해낼 거야. 아주 적격이야.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어. 아그하는 만족할 거고, 그럼 자연히 우리 편이 되는 거지. 모든 게 신의 은총이야! 바로 이 순간에 교장 선생이 들어왔다. "잘 있었나, 니콜라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진흙투성인데 그래!" 하고 사제가 일어서지 않고 물었다. "사라키나 산에서 오는 길이에요!" 하고 교장 선생은 용감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사제가 의자에서 어디가 불편한 듯 움직였다. "무엇 때문에 그 끔찍한 나나니벌의 소굴엔 찾아갔지? 사라키나와 리코브리시는 서로 서슬이 시퍼렇게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냐?" 용기를 내요, 교장 선생! 하고 하지 니콜라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당신도 역시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오! "미켈리스를 만나러 갔지요." 하고 그는 과감하게 얘기를 시작했었다. "그 청년이 정말 미쳤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갔지요." "아!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하고 사제가 으르렁거렸다. "그 청년과 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지요." "그랬더니?" "아주 정상이었어요." 이 말에 사제가 펄쩍 뛰어 일어섰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 선생." 하고 그가 소리쳤다. "누가 널 보고 남의 일에 간섭하라고 그랬어! 내가 거기에 가라고 했나? 누가 널 충동했지?"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그랬어요." 하고 교장 선생이 중얼거렸다.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죠. 그건 옳지 않아요." "나한테 뭘 따지려 들 셈이냐, 이 멍청이 녀석! 미켈리스는 미쳤어, 그렇다고 믿는 게 옳은 거야!" "하지만 그 애는 그렇지가 않아요." 하고 선생도 제법 대들었다. "갠 미쳤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넌 한 치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어. 개인을 초월해서 세상사를 볼 줄 모른단 말야. 난 개인의 문제엔 관심도 없어. 내가 신경을 쓰는 건 오직 전체에 대한 일이야. 나는 민중의 지도자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알아듣겠어? 이 얼뜨기 같은 것아!" 교장 선생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 개인이 어떤 불의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불의가 전체의 이익에 유리하다면 그 개인은 이 불의를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내 머리가 하도 작아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듣고 있는 자기 동생 앞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질문을 받았으면 대답을 해야 되는 거야. 대답을 할 수 없으면 잠자코나 있어!" "전 가만히 있겠습니다." 하고 교장 선생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하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제는 냉소적인 웃음을 보였다. "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내면적으로는 완전한 자유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잘 알아서 행동하라구!" 그리고 나선 좀더 따뜻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넌 내 동생이야, 니콜라스. 우린 형제라구. 그러니깐 사람들 앞에선 우리들이 똑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돼! 잊지말아, 내 말 알아듣겠어?" 교장 선생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나도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난 당신에게 찬성할 수 없어요. 나는 불의에 동조하진 않을 겁니다. 마을 광장으로 달려가서 소리를 지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뿐, 그는 문께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다시 혼자 남자, 그는 포도주잔을 비우면서 투덜거렸다. "멍텅구리 같은 녀석 그저 허튼 생각만 하고 있군!" 그는 냅킨을 접고, 가슴에 성호를 그으면서, 이토록 맛있는 음식과 술을 인간에게 이처럼 풍부하게 내려주신 데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곤 침대에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내일은 날이 새자마자 마르다를 부르러 보내야겠어." 다음날 아침 일찌기, 허리가 두 배나 더 구부러져 보이는 곱추 여인이 저주 섞인 농담을 중얼거리며 사제의 집에 도착했다. 또 무슨 짓을 시키려고 그 늙은 숫염소가 꼭두새벽부터 나를 부른담! 지금쯤은 그 저주받을 악당이. 먹고 싶은 것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꼭 애 밴 여자처럼 눈을 뜨기가 무섭게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하며 설치고 다닐 시간인데... 조심해야 해. 이 불쌍한 늙은 것아! 그 숫염소가 하는 말 뒤에는 모두 악마가 숨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 테니까! 그녀가 방에 들어가자 사제는 조그만 소파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자고 난 후의 그의 눈은 한층 부풀어 있었다. 마르다는 방바닥이 꺼지게 인사를 하고 사제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방구석으로 가서 팔을 접고 섰다. 사제는 자기가 그 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면 좋을까 하고 거듭거듭 생각하고 있었다. "이봐요, 마르다!" 하고 그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그날이 오면 굽어진 허리를 양초처럼 똑바로 피고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소? 그대는 여러 해 동안 터어키 사람 밑에서 종살이를 해왔지만, 아직도 기독교를 잊어버리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꼭 그대를 찾는 거지. 오늘 내가 그대에게 설교를 해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오." 저 악마 같은 사제가 내게 또 무슨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군. 하고 꼽추 여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닥에 치즈칠을 해놓고 걸어들어오라는군. 정신 똑똑히 차려라, 이 불쌍한 여인아, 걸어들어가면 안 돼! "사제님, 사제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시키시는 대로..." "브라히마키가 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겠지. 그놈은 마을 처녀들을 자기 앞에서 춤을 추게 하고 그 중에서 골라잡을 모양이오, 개 같은 놈! 그것은 커다란 치욕이오. 죽음보다도 더 지독한! 그렇지 않소, 마르다?" "죽음보다도 더 지독하죠." 하고 늙은 꼽추 여인이 복창했다. "그렇다고 아그하하고 말다툼을 할 수도 없고 말이오." 하고 사제가 말을 계속했다. "마을의 이익을 생각하면, 아그하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어야 하는데... 하여튼, 브라히마키에게 여자를 찾아 주지 않으면 우리 마을에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아그하가 노골적으로 선언한 이상은... 마르다, 알아듣겠소? 우리들을 파멸시킨다는 거요! 그러니 어쩌면 좋겠소? 브라히마키에게 여자를 구해 주느냐, 아니면 마을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느냐? 바로 이런 문제야! 마르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을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어야죠!" 하고 늙은 여인은 사제의 의견도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 그랬소, 마르다? 주여, 우릴 보호하소서! 마을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기독교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주여,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안 되지 안 돼! 자, 마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아,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 하고 마르다가 황급히 다시 말했다. "여자를 구해 주어야 하죠!" "좋소, 꼭 그대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소. 그럼 그녀석이 어떤 여자를 원하는지 알고 있소? 살이 토실토실하고, 고급빵처럼 피부가 하얗고, 순진한 여자애를..." "살이 토실토실하고, 고급빵처럼 피부가 하얗고, 순진한 여자애를... 음... 사제님, 제가 무어라고 대답을 하면 좋죠? 전 그저 아무것도..." "자, 조금만 더 생각을 해봐요. 내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면." "뭐라고 말해야 좋나요, 신부님? 맘속으로 이 애 저 애 다 생각해 보았는데요, 살이 좀 통통하고 순진하다 싶으면 피부가 하얗지 않고, 피부가 하얗고 순진한 애는 또 살이 덜 올랐고..." "그대는 내가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아오? 바로 펠라기아, 파나요타로스의 큰딸이오. 내가 왜 그런고 하니..." "하지만 사제님, 걘 피부가 하얗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걜 '다키'라고 부르는걸요. 심지어는 '블랙키'라고 까지..." "그건 문제가 아니오. 다 방법이 있다구! 내가 분첩을 하나 줄 테니까 그걸 아침 저녁으로 문질러요! 고급빵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말요." "정말 그렇게 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되겠네요, 사제님." "하지만 그 애가 - 잘 하려고 할까?" "걔가요? 사제님, 걘 아무도 못 말리는 애예요! 브라히마키를 여자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걘걸요. 남자인 브라히마키가 여자를 원하고 여자인 펠라기아가 남자를 원하면 말 다했죠. 브라히마키는 남자니까 여자인 펠라기아는 그래도 여자니까 그런 일은 숨기려들 거예요. 하여튼 그 야수들 둘이서 침대 위에서 사랑을 하면 어찌될까요? 아마 틀림없이 지붕이 무너져 내릴 거예요!" 늙은 꼽추 여인은 히죽이 웃으면서 소매 등으로 콧물을 문질렀다. "그렇담 잘 될 거요." 하고 사제가 엄숙하게 말했다. "절대로 일을 그르쳐선 안 되오. 일이 잘 되도록 그대와 내가 함께 머리를 짜내는 게 좋겠소. 파나요타로스는 이제 아그하의 호위병이 되었으니까, 펠라기아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하고 아그하의 집엘 가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게요. 그대는 그런 일에는 도가 텄으니까 이번 일도 아주 잘 해내야 하오. 걔가 아그하의 집에 오면 당연히 브라히마키의 눈에 뛸 테니까 그대는 그전에 걔한테 분칠을 잘 시켜 두어야 하오." 그는 일어서서 조그마한 찬장을 열더니 분통 하나를 꺼냈다. "자, 받아요!" 하고 그는 길게 내민 마르다의 손에 분통을 쥐어 주었다. "걔한테 밀가루 좀 섞어 발라도 괜찮아고 그러시오. 분도 아껴야지." 늙은 여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사제가 자기를 집어넣으려는 구덩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그녀는 망설였다. 마침내 마음을 작정한 여인이 물었다. "사제님, 모든 게 다 좋은데요. 한 가지 잊어버리신 게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데..." "그게 뭐요, 마르다?" "파나요타로스는 어떻게 합니까? 만일 그 사람이 알면 맨 먼저 저를 죽일 거고, 그 다음엔 브라히마키, 그리고 나면 사제님 차례일거예요. 마지막엔 마을에다 온통 불을 지르고 말 텐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사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대 말이 맞소. 그놈은 나도 죽일지 몰라.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한단 말이오? 아! 좋은 생각이 있소! 아그하에게 얘기해서 파나요타로스를 잠시 멀리 보내 버려야 되겠소." "애기라도 배면 어떻게 하죠?" "누가?" "누구겠어요. 펠라기아지!" "그러고 보니! 그대는 왜 재수없는 소리만 자꾸 하는 거요. 이 더러운 늙은 것 같으니라구! 그러진 않을 거요." 하고 사제는 분통이 터져서 꽥 소리를 질렀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은 위대하시오." 하고 대답할 말이 없어진 사제가 이렇게 외쳤다. "음음..." 하고 꼽추 여인이 말했다. "그런데 사제님, 하나님이 그런 더러운 짓들을 하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요?" "걱정 마시오. 그리고 만일 애를 배면 만달레니아하고 상의해서 해결하시오! 그 여자는 낙태약을 잘 알고 있으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그 늙은 꼽추 여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축복받은 사제는 하나님의 대변자인가, 아니면 악마의 신하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사제님은 하나님의 대변자이십니다. 제 말은 그게 전부예요. 사제님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리스도교의 복지를 위해서 싸우고 있소. 하나님은 아시지. 그분이 우릴 도와 주실 테니 모든 건 다 잘 되어갈 거요. 자, 용기를 가져요. 그대의 고통은 곧 보장을 받을 것이오." 늙은 여인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떴다. 숫염소 같으니, 그래서 나를 불렀구나. "잘 알았습니다." 하고 그녀는 결론을 지었다. "제 목숨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겠습니다. 사제님 쪽에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사제님께서 모두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비천하고 가련한 여인입니다. 혼자뿐이에요." "걱정하지 마오, 마르다, 그 때문에 손해는 보지 않을 테니. 지금은 가서 할 일을 하고, 행운을 비오. 나중에 또 얘기하오. 내가 항상 곁에 있소. 나를 믿으시오!" 늙은 여인은 허리를 굽혀 절을하고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사제님, 제게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사제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사제님께서도 제가 바라는 것을 아셨겠지요.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서 펠라기아를 만나지요. 기뻐서 껑충 뛸 것입니다." "잘 가오. 어서 서둘러 뛰어가서 일을 마치고 내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시오." 그는 여인의 어깨와 등에 난 혹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그대에게도 아주 좋은 사내를 하나 찾아봐 주지. 그리고 터어키인의 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겠소. 그러니 어서 가시오!" "사제님의 은혜만 바라겠습니다. 전 이 세상에서 혼자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제님께 은총을 내리시기를!"하고 늙은 여인은 감동을 한 듯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그녀는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콧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문을 닫자마자 사제가 중얼거렸다. 저 늙은 천치가 내 말을 정말 믿는군! 여자란 참 알 수가 없어. 주여, 우릴 보호하소서! 그는 하루 이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삼 일째가 되자 문이 열렸다. 파나요타로스가 자줏빛 터어키모를 스고 들어왔다. 그를 보고 사제는 움찔했다. "무슨 일인가, 파나요타로스?" 하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아그하께서 보내서 왔어요, 사제님." "내게 전할 말이 무언데?" "내 참, 저두 모르겠어요. 브라히마키가 양보다 더 순해졌다고 전하시라던데요." 18. 늑대도 제 힘으로 사냥을 한다.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 자연은 적의에 찬 공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산으로부터는 얼음처럼 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노랗게 시든 나뭇잎들이 땅 위에 뿌려지고 있었다. 땅 속에서는 물로 목욕을 하고 부풀은 씨앗들이 봄에 새 싹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마뱀들은 땅굴 속에 틀어박혔고, 벌들도 벌집 속에서 침묵을 지켰고, 박쥐들은 떼를 지어 처마 속에 매달렸다. 삼라만상이 모두 물러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은 일찍일찍 집에 돌아와 벽난로 구석에서 몸을 녹였다. 그들은 수확한 옥수수와 기름과 포도주들을 창고 속에 쌓아놓고 가져다 먹고 있었다. 창고 속에 저장된 먹을 것과 마실 것들은 겨울 내내 그들이 먹고 마시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다. 여인네들은 기름 램프를 켜 놓고 물레질이나 뜨개질을 했고 또 캐캐묵은 전설 얘기나 음담패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니콜리오는 양을 우리 속에 집어넣고 난롯가에 와서는 레니오와 무릎과 무릎을 마주 대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벌써 양털 한 더미에서 모두 실을 짓고 지금은 아기에게 입힐 옷과 모자를 만드느라고 한창 바빴다. 그녀의 배는 점점 동그랗게 되어가고 있었고, 니콜리오는 비가 와서 땅이 쟁기질과 씨뿌리기에 꼭 알맞게 되어갈 때 농부들이 짓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 이름은 게오르그라고 지어요, 게오르그. 걔 할아버지인 파트리아케스님의 이름을 따서요." 하고 레니오가 말했다. "안 돼, 우리 아버지 이름을 따서 하라디모스라고 해야 돼." 하고 니콜리오가 주장했다. "안 돼요. 꼭 이름을 게우르그라고 해야 돼." "명령은 남편이 하는 거야. 그러니 아기 이름은 하리디모스라구!" 그리고 이쯤 해서 그들은 재미로 말다툼을 했고 난롯가에 하는 침대 위에서 뒹굴었고 마음껏 포옹을 했다. 날씨만 좋으면 그리고리스 사제는 어김없이 노새를 타고 읍내에 있는 마리오리를 보러 갔다. 읍내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는 점점 더 말수가 적어지고 힘이 빠져 가고 있었다. 얼굴에 낀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고 마음은 돌멩이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 갔다. 어느 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맨발로 진창길을 걸어가고 있는 펠라기아를 만났다. 토실토실 살찐 그녀의 뺨은 사월의 장미꽃 같은 분홍빛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비난했다. "주여, 당신은 저에게 너무나 잔인합니다. 주님의 정의는 어디로 갔습니까? 주님은 우리 마리오리에게는 춧불처럼 꺼져 가는 생명을 주시면서도 저런 나쁜 여자들에게는 장미꽃 같은 뺨을 주시는 겁니까?" 브라히마키 역시 벽난롯가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좀더 여위고 더욱 점잖아진 브리히마키가 아주 유순하게 아그하의 장죽에다 불을 붙이고 술잔에 라키를 따르고 있었다. 아그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런 브라히마키를 바라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한 쪽 눈가로 흘리고 있었다. "여기서 사는 게 좀 어때, 브라히마키? 스미르나로 돌아가고 싶나?" "이젠 리코브리시도 나쁘지 않아요. 이젠 야단 부리지 않을 거예요!" "넌 그 여자에게 폭삭했구나. 이 불쌍한 놈아, 내가 뭐라고 그랬어. 여자는 조심하라고 그랬잖아! '난 여자가 필요해요. 여자를 줘요. 지금 당장!'하고 보채더니만 그만 꼴 좋구나!" 라다스 영감은 탐욕으로 들떠서 날이 밝기가 무섭게 포도밭을 맨발로 걸어다녔다. 얀나코스의 나귀를 탄 그의 마누라가 앞장서 가고..." "여보, 정말 하나님은 정당하시다구! 그분도 나와 같은 훌륭한 대금업자이셔. 그래서 대금업을 하는 사람들의 애로를 잘 이해하시지. 그래서 그토록 걱정했던 그 삼 파운드도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지금은 이렇게 당나귀가 생겨서 당신이 그 위에 높이 앉아 세상일을 음미하고 있는 거야. 아! 이백 년만 더 살 수 있으면 당신을 아주 여왕으로 만들겠는데!" 코스탄디스의 카페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점잖게 술을 마시며 수연통을 빨아대고 있었다. 그들은 장기를 두거나 젊은 축들은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카페의 실내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항상 교장 선생이 들렸다. 사람들은 그를 한복 판에 앉히고 옛조상들의 얘기를 하다 보면 그는 점점 열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일어서서 손짓 몸짓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수연통을 피우는 사람들과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한쪽으로 비켜 주어야 했다. "여기서 정말." 하고 그가 고함을 질렀다. "오른쪽으로는 페르샤 군들이 전투태세로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으로는 우리 그리스 군입니다. 제가 밀티아데스 장군(풀이: 마라톤 전투에서 희랍 군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라고 가정합시다. 페르샤 군은 몇 명입니까? 백만대군. 그럼 우리 그리스 군은 몇 명입니까? 단지 만 명뿐입니다. 1:100! 자,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 교장 선생은 의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흔들었다. 수연통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코스탄디스가 뛰어들어 떨어진 수연통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적들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하고 교장 선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우리는 그들을 마라톤에서 바다 속으로 쳐넣었습니다. 희랍 만세!" 게임이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은 웃음을 트뜨리며 놀려 댔지만, 점점 얘기에 빨려들어가서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페르샤 군이 전열을 펼치고 있는 오른쪽으로는 아무도 잘 가려 하지 않고, 하지 니콜리스의 등듸에 있는 밀티아데스 진영 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 했다. 전투가 끝나면 모두가 밀티아데스 장군 만세를 부르고 승리의 영웅을 위해서 뜨거운 샐비어를 시키곤 했다. 어느 날 얀나코스는 산을 내려와서 '늑대의 우물' - 리코브리시로 들어갔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고, 길거리들은 황량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굴뚝들은마치 연기로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부엌에서 주부들이 만들고 있는 음식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로도 다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여긴 감자 프라이, 저기선 등걸불에다 소시지를 굽고 있고, 또 저쪽에선 터어키식으로 쌀밥을 짓고 있군... 조금도 나누어 먹을 줄은 모르고 그저 자기네 배들만 장구배처럼 불리고 있다니, 돼지 같은 놈들! 그러자 방금 오븐에서 꺼내고 있는 따근한 빵 냄새가 콧구멍 속을 간지럽혔다. 빵... 빵... 하고 입술에 침이 스며나왔다. 샐비어의 맛을 느끼면서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해서 라디스 영감 집에 도착했다. 그는 먼저 집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집 주위를 돌면서, 벽과 유리 창문의 위치 그리고 집 뒤에 있는 정원의 생김새 등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이쪽 벽은 좀더 낮군, 음...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때 그가 돌연 흠칫하고 있다. 뒤뜰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사랑하는 유소우화키가 나직이 울고 있는 소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새 자기 주인의 냄새를 맡았던 모양이었다. 얀나코스는 벽에 몸을 붙이고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토록 가슴 설레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랴! 유소우화키 역시 여지껏 그렇게 달콤한 울음 소리는 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회상했다. 젊었을 때 사랑하는 소녀의 창문 아래서 꼭 그런 심경으로 세레나데를 불렀었지 - 그 후 자기의 아내가 된 소녀도 지금은 죽고 없지만, 하지만 지금 듣는 저 소리는 더욱 정열적이고 한층 슬픔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의 유소우화키야! 하고 중얼거리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걱정하지 마, 유소우화키! 널 절대로 넘겨 주진 않을 테니까! 그가 산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춥고 배가 고팠다. 그는 동굴들을 한 바퀴 돌았다. 여인들이 한데 모여서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추위를 막아 주고 있었다. 얀나코스는 그런 동굴마다 들어가서 따뜻한 말 한 마디씩을 던졌다. 여러분들, 용기를 냅시다! 이를 꼭 무세요. 자, 이렇게! 사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볼멘 소리를 냈고 아낙네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지었다. "애기 어머니들, 주님을 믿으세요?" "언제까지나요, 얀나코스!" 그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고 그 자리를 떠나 또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내려갔다 오셨지요, 얀나코스.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굴뚝에선 연기가 오르고, 잘들 먹고 있지요. 저주받을 것들! 그놈들은 우리 포도밭에서 수확을 하여 빚은 포도주를 마시고 있어요. 우리들의 올리브를 따서 그 기름으로 잔뜩 배를 채우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눈을 가지고 있고, 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쪽으로는 언제나 눈길을 돌려 주실까요?" 얀나코스는 다른 곳으로 또 옮겼다. 어떤 동굴 속에 들어가자, 세 사람의 사내가 서로 몸을 부비며 웅크리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인 기수 루카스였다. "애들이 어떤지 보셨어요?" 하고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굶주림 때문에 모두 누렇게 부어 있습니다. 우리 애는 이제 그 가느다란 다리로는 며칠 못 견딜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희망을 걸어왔어요.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더군.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움직이지 않으실 거야." 하고 루카스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마을로 내려가서 먹을 걸 훔쳐오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런 짓을 누가 하랴?" "바로 나요, 젊은이들."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우리들 사이로 들어오십시오. 서로 몸을 부비면 좀 더워지실 겁니다." 사람들이 얀나코스를 보고 말했다. "내 몸은 끓고 있어요. 아주 불타고 있습니다." 하고 얀나코스가 대답했다. "나는 춥지 않아요. 방금 리코브리시에서 돌아왔으니까요." "그럼 우리가 한 얘기를 언제 실행할 겁니까?" "아마 오늘 밤, 괜찮겠소, 젊은이들?" "우린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하고 세 사람이 똑같이 외쳤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요." "좋습니다. 오늘 밤이 꼭 알맞아요. 밤은 숯검댕이처럼 어둡고 게다가 차거운 비까지 내리고 있소. 그러나 딸그랑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다들 이불 속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배는 부르니까 괭이처럼 잠이나 자겠지요. 길에서 사람을 만날 염려도 없습니다." "우린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고 그 세 사람이 다시 외쳤다. "우린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소. 언제든지 우릴 데리러 오시오." "좋소. 가죽 부대와 자루들을 준비하시오. 그리고 루카스 당신은 램프를." "여기 모두 준비됐습니다, 얀나코스. 어서 서두릅시다." 얀나코스가 밖으로 나가서 마놀리오스가 있는 굴 속으로 갔다. 가다가 문득 미켈리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팔에 무언가를 안고서 모닥불빛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얀나코스는 발 끝으로 다가갔다. 지난 얼마 동안 미켈리스는 입을 봉한 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 동굴 저 동굴을 혼자서 거닐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얘기는 걸지 않았다. 얀나코스는 허리를 굽히고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미켈리스가 안고 있는 것은 세 살 가량 된 조그만 어린애였다. 아이는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다. 배는 볼록하게 부어오르고 사지는 갈대처럼 가늘었다. 턱에는 솜털이 길게 자라 있었다. "미켈리스..." 얀나코스는 자기의 젊은 친구가 놀랄까봐, 아주 가만히 불렀다. "보지 말게나." 미켈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걸 좀 보세요. 얀나코스."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솜털이 자라고 있어요. 겨우 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 굶주림 속에서도 솜털이 자라고 있군요. 길에서 안아 왔어요." "보지 말라니까." 하고 얀나코스가 다시 말했다. "마을 길에서 발견했어요." 하고 미켈리스가 다시 말했다. "전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구요! 얀나코스, 당신은?" "이리 오게." 하며 얀나코스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 이게 보이지 않아요? 죽어 가고 있는데." 아이는 울려고 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조그만 입만이 마치 물에 끌어올려놓은 묽고기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그만 두 손이 미켈리스의 가슴속에서 움직이다가 갑자기 빳빳하게 굳어갔다. "이리 오게."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거기 그냥 두게. 내일 무덤을 만들어 주자구."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얀나코스, 당신은?" 하지만 얀나코스는 그의 팔을 꼭 쥐고 억지로 끌고 나갔다. 마놀리오스는 동굴 구석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무슨 소식이 있었나, 마놀리오스?" 하고 얀나코스가 물었다. "얀나코스, 나쁜 소식이오. 이 일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품일을 하던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겨우 빵 한 덩이를 얻어 왔을 뿐입니다. 그걸로는 너무나 부족해서 라다스 노인에게 보냈는데, 우리보고 굶어 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랍니다. 또 그리고리스 사제는, 우리들의 포티스 사제가 기적을 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는군요. 푸줏간집 디미트리가 고기를 조금 보냈고, 코스탄디스는 자기 집 창고를 털었지만, 한 아이에 한 입 꼴밖에 되지 않아요." "사제님은 어디 계세요?" "여기 있소." 포티스 사제가 들어오더니 묵묵히 주저앉았다. 그는 방금 어린 두 형제를 묻고 오는 길이었다. 그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로 굶어서 죽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그 두 자식들의 시체를 풀잎으로 싸서 바께츠에 담아 들고 갔다. 사제는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아이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서 끄집어낸 후 땅 위에 눕히고 기도문을 암송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애들의 아버지가 조그만 무덤 하나를 파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했다. 사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마음의 자로 하나님을 재려는 사람에겐 화가 있을진저, 그건 그가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이오. 분별을 잃어버리고 불손한 언사를 쓰며 신을 부정하려 하게 되는 것..." 그는 아직 입 속에 남아 있는 말들에 돌연 섬ㅉ하여 하던 말을 다시 멈췄다. 하지만 그는 자제하질 못했다. "하나님은 왜 어린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가?" 하고 그는 일어서면서 외쳤다. "사제님."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저는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단지 리코브리시 사람들을 비판할 뿐입니다. 그들을 판단하고 비난할 뿐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밤 마을에 내려가서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받아 올 작정입니다." 사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둥켜 안은 채로 죽은 그 조그만 두 개의 시체가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 기도를 하리다." 하고 드디어 사제가 중얼거렸다. "마을로 가시오. 그 죄는 내가 맡을 테니." "사제님, 죄는 제가 짊어지겠어요." 하고 얀나코스가 나섰다. "사제님께 떠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일어섰다. "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자, 전 떠나겠습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이제 곧 우리 모두 대낮에 함께 내려가게 될 것이오." "나도 같이 가겠소!" 하고 미켈리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요, 미켈리스. 마음의 녹을 벗겨 버릴 기회요!" 그는 미켈리스의 손을 잡았다. 밤은 먹물과도 같았다. 그들은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갔다. 얀나코스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시작이 괜찮은 것 같군, 미켈리스. 우리들은 묵은 녹을 좀 벗겨 버려야 해!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만족을 해왔지. '어서 이리 조금만 와 봐, 착하지, 그럼 내가 너를 먹어 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네. 그러니 손을 내밀어서 잡아야 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항상 계산에 넣고 있으면 안 되지.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그분 역시 당신의 근심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어. 그러니 모든 곳에 다 와 주실 수는 없지 않겠나! 조금은 우리 스스로도 부딪쳐야 해. '늑대야, 너의 목은 왜 그렇게 두껍니?', '나는 내 힘으로 사냥을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도 오늘 밤 우리 힘으로 사냥을 하러 가는 것일세. 자, 친구들, 출발합시다!" 그는 동굴 속 조그만 화롯불 주위에 모여 앉아 있는 동료들을 불렀다. 세 사람은 다들 벌떡 일어났다. "주님의 이름으로, 앞으로!"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사제님의 승낙도 얻었겠다, 자, 갑시다! 그리고 다들 무거운 신발이나 장화같은 건 신지들 마쇼! 소리가 요란해서 들킬 염려가 있으니까, 그냥 두고 가자구요." 그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신발이라는 게 어디에 있었던가? 모두들 걸레조각을 발에다 동여매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램프는 준비됐나, 루카스?" "걱정 말아요, 여기 있잖소!" 얀나코스는 그 램프를 바라보며 썩 웃었다. "그건 포르투나스 선장의 선물야. 아마 지금쯤 지옥에서 그걸 바라보면서 한바탕 웃고 있을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얀나코스와 루카스가 앞장을 서고 다른 두 사람은 뒤를 따랐다. 미켈리스는 혼자서 따로 걷고 있었다. "제 걱정은 말고 맡은 일만 하세요. 제게 신경쓰지 마세요. 전 혼자서 마을을 한번 살펴볼 테니까요." 하고 미켈리스가 그들에게 말했다. 두 발 앞이 보이지가 않는 어둠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졸졸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모여서 바위 사이에서 조그만 폭포를 만들고 있었다. 움푹움푹 꺼진 산골짜기에서 얼마쯤 간격을 두고 밤새가 구슬픈 울음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선지자 엘리야 교회가 있는 산꼭대기 멀리에서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늑대로군. 저놈도 굶주리고 있군."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아마 선지자 엘리야인지도 모르죠. 그분 역시 굶고 있어요." 하고 루카스가 말했다. "늑대 성자여, 저희들을 도와 주소서!"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자, 힘을 냅시다, 친구들! 양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은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루카스가 얀나코스의 팔을 잡았다. "맨 먼저 쳐들어갈 곳은 정해놓았나요?" "물론! 그곳에서 제일 부자고, 제일 더럽고, 제일 나쁜 수전노 - 라다스 영감의 집이야. 가지고 온 자루마다 병마다 가득 채워 와야해. 그럼 가난한 사라키나 사람들도 먹을 게 생겨서 늑대 울음을 그칠 테니까." 그리곤 조금 후에, "인제 다시 한번 내려와서 석유를 훔쳐내야지."하고 덧붙였다. "빵과 석유! 당신이 맞습니다, 얀나코스. 인간은 살아 남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살아 남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을 어귀에 이르자 얀나코스는 걸음을 멈추고 동료들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내가 앞에 가겠소. 길은 내가 익숙하니까. 한 줄로 멀찌감치 차례대로 서서 나를 따르시오. 내가 먼저 기어올라가리다." 그들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정을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아서 마을 전체는 아직 첫잠에 취해 있었다. 유소우화키가 또 내 냄새를 맡고 울지 않아야 할 텐데... 라다스 노인의 집에 도착하자 얀나코스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발 그녀석이 잠을 깨지 말았으면... 그는 몸을 벽에 착 달라붙이고 동료들을 기다렸다. 한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정원을 돌아갑시다." 하고 얀나코스가 숨을 죽이고 말했다. "저쪽 담이 좀더 낮아. 램프를 이리 줘, 루카스. 자, 어서, 조심하고!" "개가 있나요?" 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 영감이 어떻게 개를 길러? 개는 밥을 먹잖아! 어떤 노랭인데!" 하고 얀나코스가 대답한 다음 루카스에게 말했다. "이봐 전봇대, 자넨 바깥쪽에 있으면서 사다리 노릇을 해줘야겠어. 우리가 자네 어깨를 딛고 담을 넘어갈 테니까. 위험이 있으면 부엉이 소리로 신호를 해! 준비됐소, 친구들?" "됐어요!" 거한은 벽에 몸을 기대고는 얀나코스를 등에 태워 천천히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늑대 성자의 이름으로, 뛰어내리세요!" 하고 그가 말했다. 얀나코스는 담 위에 걸터앉았다가 울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동료들을 기다렸다. 모두가 등에 자루와 병을 지고 한 사람씩 넘어왔다. "나를 따라와요. 내가 집 안을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고!" 그들은 정원을 가로질렀다. 뒷문은 열려 있어서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위층에서 집주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들었군, 잘됐어!"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그는 램프에 불을 켜고 식료품 창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름과 포도주 냄새와 말린 무화과와 마르넬로 열매의 냄새가 났다. 랜턴의 불빛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배가 불룩한 항아리들과 포도주 통들이 나타났다. "자, 서둘러서 어서어서 주워 담아요!" 하고 얀나코스가 속삭였다. 한 사람은 술통의 마개를 따고 가죽 부대에 포도주를 담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루에 옥수수를 부었다. 얀나코스도 병에 기름을 채우고 자루에 옥수수를 쑤셔 넣고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벽에 사다리 하나가 기대어져 있었다. "사다리까지 있어. 오, 고마우신 하나님. 만일 저게 없으면 이것 모두를 어떻게 위로 올리겠어! 도둑의 신이 우릴 돕고 있나봐. 자, 친구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갑시다!" 마치 산적들처럼 짐을 짊어진 그들은 다시 정원을 가로질러가서 담에 사다리를 기대어 놓고 노획품을 실은 그 무겁고 귀중한 몸으로 기어올라갔다. 루카스가 팔을 벌리고 자루와 부대들을 받아 담 밖의 땅위에 쌓아놓았다. 그리곤 그의 넓은 어깨를 타고 한 사람씩 담을 넘기 시작했다. 얀나코스가 마지막이었는데 담 위에 걸터앉아서 머뭇거렸다. 그는 내려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동지들, 잠깐만 기다려요. 내 얼른 가서 내 당나귀를 한 번만 보고 오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당나귀는 그냥 두고 어서 내려오세요.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고 루카스가 제지했다. "난 그럴 수가 없네." 하고 얀나코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난 그럴 수가 없어요. 친구들, 잠깐만 기다려 주구료!"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정원으로 내려갔다. 그의 동료들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말문이 막혔다. 귀를 바짝 곤두세우고 혹시 누가 길로 나오는가 창문을 열지 않나 살폈다. "자네 두 사람은 먼저 떠나게. 아무래도 흩어지는 게 좋겠어. 내가 기다릴 테니까." 하고 루카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짐을 지워 주고 먼저 보냈다. 혼자 남은 루카스는 빗속에 몸을 웅크리고서 기다렸다. 갑자기 나귀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기쁨과 승리감에 찬 울음 소리 - 마치 최후의 심판날에 부는 트럼펫 소리 같았다. 저놈의 당나귀들... 이그, 이러단 마을 사람들을 모두 깨워 놓고 말겠군, 하고 루카스가 속을 끓였다. 창문이 열리더니 라다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자우? 여보, 나귀가 왜 저렇게 울고 있지?"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울음 소리도 그쳤다. 그러자 다시 마당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담장 위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며 인기척이 들렸다. 그는 발을 쭉 뻗고 얀나코스를 끌어내렸다. "이제 갑시다, 루카스. 이제 뛰어요! 그놈의 영감이 잠을 깼소!" 가죽부대들을 등에 메고 그들은 자리를 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셨군요." 하고 마을을 벗어났을 때 루카스가 말했다. "그래 당신 나귀를 보셨소?" "봤지." 하고 얀나코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귀란 놈이 사다리를 탈 수만 있었다면 꼭 함께 데리고 오는 건데, 꼭! 그런데 미켈리스는 어떻게 됐소?" 하고 조금 뒤에 그가 걱정스럽게 덧붙여 물었다. "마을을 살펴보고 꼭 돌아올 거예요. 자, 갑시다!" 포티스 사제와 마놀리오스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마을에 내려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날이 밝고 있었다. 희끄무레하게 동쪽 하늘이 빛을 발했다. 비는 멋었지만 하늘은 아직도 험악했다. 그때 돌연 기쁨에 찬 휘파람 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달려나갔다. 잔뜩 짐을 짊어진 네 사람의 도둑이 나타났다. 그들은 램프를 켜들고 있었고, 그 불빛에 얼굴들이 어둠 속에서 발그랗게 드러나고 있었다. 앞장을 선 사람은 포도주 부대를 등에 멘 얀나코스였다. "그 선량하고 자비로운 라다스 노인이 심심한 안부를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자기의 마음이 담겨 있는 술이니까 받아 주시면 얼마나 고맙겠냐고 하시면서!" "그리고 여기엔 뱃속을 부드럽게 감싸줄 기름이 있습니다." 하고 사제의 발밑에 다른 가죽 부대 하나를 내려놓으면서 루카스가 말했다. "자기 항아리엔 아직도 기름이 가득하니까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고 하던데요." "이건 옥수숩니다. 가엾은 어린것들에게 빵을 만들어 먹이라고 하시면서!" 하고 다른 두 사람은 불룩한 자루들을 내려놓았다. "그분에게 감사를 드리네." 하고 포티스 사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부디 그분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곧 그분에게 편지를 쓰겠소. 지난밤에 네 명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분의 집으로 들어가더니, 귀중한 선물을 날개에 싣고 나와서 사라키나 산으로 오셨노라고. 그래서 라다스 씨가 저 세상에서 변재를 받을 때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차용증서를 첨부한다고." "이 말도 쓰십시오, 사제님." 하고 얀나코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중 천사 한 분은 그분의 항아리와 통들을 박살내고. 기름을 다 쏟아 버리고 싶어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렸노라고, 그것은 그분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었고 포도주와 기름이 아까워서였노라구요!" "마놀리오스, 잔을 하나 가져와서 천사님들에게 포도주를 한 잔씩 권하도록 하게나! 천사님이시여, 어서 들어오셔서 젖은 날개를 말리십시오!" "선량하신 라다스 노인의 건강을 위해서!" 하고 사제가 잔을 들면서 말했다. "천사님들의 건강을 위해서!"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늑대 성자의 건강을 위해서!" 하고 루카스가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우리들이 산을 내려갈 때, 사라키나 산의 꼭대기에서 길게 울부짖으시던 소리를요? 우리 그 소리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미켈리스는?" 하고 얀나코스가 말했다. "우리완 헤어졌더랬는데..." "돌아왔소."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진흙투성이가 되어 왔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지금 자고 있지요." 다음날 아침, 라다스 노인이 정원으로 내려갔을 때 어쩐 일인지 담장에 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는, 벌써 일어나서 창가에 앉아 흐리멍텅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 마누라를 불렀다. "여보, 누가 사다리를 벽에다 기대 놨지? 당신이 그랬소?" 패넬로패는 들은 척도, 남편이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짜던 양말을 집어들고 말없이 뜨개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노인이 사다리를 등에 지고 식료품 저장실로 옮겼다. 그는 혹시 이상이 없나 살폈다. 항아리들과 통들, 무화가 말린 것과 마르멜로 열매 따위를... "하늘이 도우셨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다행히 도둑은 들지 않았다구. 집사람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내가 잘 살피는 수밖에 없지. 불쌍한 여자. 아마 집에 불이 나도 모를 거야." 그리고는 마굿간으로 갔다. 당나귀도 그대로 있었다. "너, 어젯 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쓸데없이 울어서 사람 잠만 깨워 놓다니!" 하고 성이 나서 대뜸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나귀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은 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간밤에 진짜 주인이 오셔서 목과 베와 등을 옛날처럼 부드럽게 쓸어 주던 일이 마냥 꿈만 같아서 아직도 멍청하게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기뻐서 꼬리를 치켜들고, 히힝거리며 울었다. 그러자 주인은 소리를 못 지르게 입을 꼭 막으면서 두귀와 목에 따스한 키스를 퍼부어 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리곤 조그만 창문을 타고 사라져 버리시다니... 나귀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자기의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다. 자기의 하나님은 털이 무성한 커다란 꼬리를 가진 하얗고 거대한 당나귀였는데 벨벳 같은 황금의 길마와 은으로 장식된 마구가 별들처럼 반짝거렸다. "오, 하나님, 지난밤의 꿈이 정말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고 그는 기도를 드릴 것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간밤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사라키나 산 전체에 울려퍼졌다. 지난밤에 네 명의 천사가 나타나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옥수수와 기름과 포도주를 가져다준 것이다! 그들 중에서 단순한 사람들은 그 말을 진실로 믿었고 성호를 그었다. 여인네들은 옥수수 위에 엎드려서 낟알을 손에 쥐고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기 시작했었다. 아기를 잠재우듯, 어린 예수를 안고 어르듯, 부드럽게 자장가를 부르면서... 곡식이 한 알이라도 땅에 떨어지면 그들은 황급히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서 주워올렸다. 그것은, 흙이 행여나 묻어서 더러워져서는 되지 않는, 하나님의 귀중한 일부가 아니었던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곡식의 일부를 돌 위에다 갈아서 납짝한 케익을 만들어 등걸불 위에다 구웠다. 그리고 거기다 기름을 조금 발라서 좀더 맛을 내게 한 후, 마치 성병을 돌리듯 모두가 한입씩 나누어 먹었다. 그러자 그들은 곧 속이 따스해지면서 육신에 기운이 스며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 빵이 정말 그리스도의 몸인 것처럼. 그리고 나서 그들은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여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오, 주여! 한입의 빵, 한 모금의 포도주만으로 저희들은 영혼에 날개가 돋는 기쁨으로 충만하나이다!" 오후에 두 사람의 사나이가 옥수수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방앗간으로 가지고 갔다. 여인들은 그 곡식 자루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자꾸만 호위하면서 따라왔다. "언제면 올 수 있나요?" 하고 짐을 진 남자들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 너무 걱정 말아요!" 하고 그들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얀나코스는 사라키나 산의 창고지기가 되었다. 그는 식량을 관리하면서 아침마다 하루분씩 여인들에게 배급했다. "겨울이 끝날 때까지는 허리끈을 더 졸라들 매셔야 해요. 천사님들은 아주 바쁘셔서 저번처럼 또 우릴 찾아주기가 힘이 들어요." 꺼져 가는 생명이 불꽃을 되살리는 데는 소량의 빵과 기름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은 차츰 부기가 빠져 가기 시작했고 뺨의 혈색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여인들의 유선에도 유액이 고여서, 젖먹이들이 밤새도록 울며 보채지는 않게 되었다. 남자들 역시 기운을 되찾아 갔다. 팔에도 다시 기운이 돋기 시작했다. 짓다가 중단된 오두막들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비품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따금 웃음 소리도 들렸고 농담하는 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그 기이한 동굴 속에서도, 이제 서로 키스를 하고 껴안을 수도 있을 만큼 원기를 회복한 부부를 만날 수가 있게 됐다. "이 모든 옥수수와 기름과 포도주가 우리들의 피가 되어 아직 남은 험로를 해쳐갈 힘으로 모아 두어야 하네." 하고 그날, 포티스 사제가 마놀리오스에게 말했다. "우린 계속 굶주리고 훔치면서 살 수는 없어. 마을로 내려가서 우리에게 속한 땅을 되찾아야 하네. 필요하다면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이 불모의 산에서 살아나갈 길이 없지." "포도밭은 곧 전지를 해주어야 하고, 밭에는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올리브나무도 마찬가지구요. 그대로 방치해 두어야만 합니까? 그러면 일 년 동안 수확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제님,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나는 내 자신에게 내려질 주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네. 마놀리오스, 내게 그러한 지시를 하는 주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어. 난 그러한 주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 본 적이 없었어. 마놀리오스, 그리고 자네가 얘기한 그러한 결단은 너무도 심각해. 피를 흘려야 하니까..."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 하지만 이처럼 부패하고 부정한 세상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그런 일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십니까? 전 자신에게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구요. 부어오른 배들, 푹 꺼진 뺨, 가죽만 남은 다리들을 그 사람들이 보면 가엾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구요. 그래서 그저께 전 아이들 몇몇을 마을에 내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막대기를 집어 대문에서 쫓아냈구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마치 개처럼 마른 빵 조각 하나를 던져 주었답니다. 그런데 오직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동정심을 가졌어요. 사제님,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아그하입니다! 곡식 부스러기나 감자 찌꺼기와 레몬 껍질을 주으려고 땅을 훑고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발코니에서 바라보던 아그하가 소리를 쳤어요. '저게 뭐야? 조그만 원숭이들인가? 아니면 사람들인가?' 아그하가 내려오더니 문을 열어 주고 아이들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리곤 마르다를 불러서 지시를 내렸지요. '마르다, 식탁을 차리고 이것들한테 먹을 걸 좀 줘라! 조그만 원숭이들 같구나. 무얼 좀 먹여서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놔!'" "나는 몰랐었네. 왜 얘기해 주지 않았나, 마놀리오스!" 하고 사제가 말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일부러 사제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어요. 사제님의 가슴속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갖다 붓는 독물만으로도 가득합니다. 거기다 더 독을 부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내게 얘기를 해줘야 했어, 마놀리오스. 나의 가슴은 넘쳐 흘러야만 돼! 인간의 가슴이 사랑으로나 분노로 넘쳐 흐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선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가 않아요!" 그리곤 갑자기 힘이 빠진 듯 바윗돌 위에 주저앉아 머리를 가슴에 파묻고 침묵에 잠겼다. 마놀리오스도 그의 앞에 마주 앉아서 들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대지 위에는 한창 겨울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벼운 바람이 불자 올리브나무가 때론 은빛으로 대론 암록색으로 물결쳤다. 시커멓게 보이는 포도밭에도 겨울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매 한 마리가 성 엘리야 교회에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들판 위를 선회했다. 포티스 사제가 일어섰다. "내 가슴은 이제 넘쳐 흘렀어. 자, 난 가네." 하고 그가 말했다. 마놀리오스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제의 육체가 붕괴점에 이를 만큼 긴장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아. 말을 걸지 않는 것이,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포티스 사제는 바윗돌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산꼭대기로 이르는 길을 잡았다. 성 엘리야 교회가 그곳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사제는 온몸을 칼날처럼 곧추 세우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가끔 바위 뒤로 사라졌다간 더 높은 곳에서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간 다시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정상을 향해서 오르고 있었다. 머리에 쓴 빵모자를 벗어든 사제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곧 그 작은 교회 앞에 선 사제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의 몸은 한 마리 매보다 작게 보였다. 교회의 문이 검은 입처럼 열리고 사제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놀리오스는 곧 자기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떡갈나무 토막 하나를 집어들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얼굴을 새기기 시작했다. 19. 그리스도의 성난 얼굴 밤이 깊어 가고 있었지만 사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친 바람이 일면서 하늘은 험악해지고 있었다. 어둠 속 멀리서 또다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님이 어찌되었는지 가 보지 않겠소?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미켈리스가 말했다. 여러 날 만에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점점 더 쓰라린 명상에 잠겨들어가고 있었다. 이따금 한숨을 쉬며 그 조그만 산 위에 있는 겨울 교회를 망연히 바라보다가는 조용히 미소를 띠우기도 했다. 그는 마리오리의 머릿단을 항상 가슴속에, 피부 가까운 곳에 꼭 품고 다녔다. 행여나 잃어버릴새라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가슴을 졸이며 전율했다. 때로는 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깜짝 놀서 일어나곤 했는데 그런 다음에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일어서서 그 길을 따라 올라가시는 그분의 몸가짐을 보아서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요. 잠시 동안 나는 그분이 불멸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소." "하지만 그분은 이토록 오랫동안 - 너무 오래도록 - 무얼 하고 계시는 걸까?" 미켈리스는 친구의 말에도 안심이 안 되는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미켈리스, 성 엘리야와 우리 사제님, 그 두 분은 지금쯤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계실 거요. 두 분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죠. 어쩌면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그 두 분 사이에 들어갈 순 없죠. 혹시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고 계시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오늘 저녁엔 아무것도 먹지 않으시려는 걸까요. 잠도 한숨 안 주무시려는 건가? 몸이 얼어붙는 듯 추워지고 있는데." "먹지 않으실 거요. 잠도 자지 않고, 그리고 춥지도 않으실 거요. 지금 그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소. 그분은 지금 죽은 것도 죽지 않은 것도 아니오. 지금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바로 그때 얀나코스가 나타났다. 시무룩하게 무엇인가 투덜거리고 있었다. "또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군요. 무슨 일이 있어요, 얀나코스?" 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사라키나 산에 큰 가게를 차리면 어때요?" "까마귀씨, 어린 것들은 좀 어때요?", "네, 점점 더 까매져 가고 있지요." 얀나코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식량이 다 떨어져 가고 있어. 문제라면 그것뿐이지. 이제 곧 바닥이 날 텐데, 큰일이야. 무슨 수가 없을까? 장정들을 데리고 다시 마을로 내려갈까? 그럼 이번엔 그리고리스 사제의 차례지." "리코브리시의 차례예요. 그러니 기다립시다." 하고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얀나코스는 몸을 떨면서 기쁜 듯이 손바닥을 쳤다. "이제 그때가 왔나?" 하고, 그가 외쳤다. "사제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 "아직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가까워 온 것 같아요. 마음의 봇물이 터졌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는 그는 사제와 함께 나눴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기다린다면, 내게도 준비할 시간을 주게, 챙겨 놓을 게 있어서." 하고, 이번에는 얀나코스가 우물거렸다. 두 사람의 청년은 몸을 돌리며 어둠 속에서 얀나코스의 얼굴을 살폈다. "얀나코스, 뭐 잃어버린 게 있어요?" 하고 마놀리오스가 물었다. "그럼." "무엇인데요?" "석유야. 라다스의 집을 태워 버리겠으나 하나님께 맹세했거든." "당신은 흥분하고 있어요. 야만적입니다." 하고 미켈리스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정당하네." 하고 얀나코스가 대꾸했다. "지금 주님이 땅 위에 오신다면, 이곳과 같은 땅에 내려오신다면 말이야... 당신의 어깨에 무엇을 메고 오실 것 같은가? 십자가? 아니야, 그건 석유통이네." 마놀리오스가 벌떡 일어서더니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곧추섰다. "왜 그래, 마놀리오스? 무슨 생각을 하나? 말을 해야지." 하고 얀나코스가 물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었소, 얀나코스?" 하고 마놀리오스가 몸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니까. 내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네." 그리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얘기를 계속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또다시 리코브리시 마을 거리를 헤매고 다닐 거야. 목발과 지팡이를 짚고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닐 거라구. 과일 껍질이나, 먹다 버린 찌꺼기를 주워 먹으려고 말야. 그러면 또 그 기름진 돼지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재미있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래, 우리 아이들은 꿈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주님을 보고 있다네. 이 땅 위에 주님이 내려와 주시기를 그런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그래도 아침이 되면 그랬던 걸 잊어버리고 잠을 깨, 아직 어린애들이니까. 그리곤 다시 쓰레기더미를 헤치러가는 거지." 마놀리오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숨 가쁘게 그의 얘기를 또한 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고동쳤다. 어느 날 밤 꿈에 자신도 꼭 그와 똑같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감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었다. 사라키나 산과 똑같이 태양이 내려쬐이고 벌거벗은 산 위에서, 맨발로, 어깨엔 십자가가 아닌 석유통을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는 보았었다. 슬프고도 분노에 가득 찬 그의 굳은 얼굴이 리코브리시를 향하고 있었다. 얀나코스를 바라보면서 마놀리오스는 말했다. "당신이 옳아요. 십자가가 아닙니다. 석유통이었어요." "난 이제 성난 맹수들을 모아야겠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그는 동굴 입구에서 멈춰서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네 집엔 석유 램프가 있지. 그러니까 창고 속엔 석유통도 있을 거야. 어쩌면 두 개나 있을지도 몰라. 루카스를 데리고 가야지. 아주 좋은 사다리 구실을 할 테니까. 내일 봅시다!" 마놀리오스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포티스 사제를 본 것은 날이 훤하게 샌 다음이었다. 그는 사제복 자락을 검은 날개처럼 휘날리면서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펄쩍펄쩍 뛰어 건너오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치렁거렸다. 그의 모습은 흡사 선지자 엘리야 같았는데 여느 때보다 훨씬 빨간 동녘의 해를 등에 지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사제는 불길의 고리에 휩싸여 내려오는 있는 듯했다. 주전자로 물을 길러 갔던 아낙네 몇 명이 그를 발견하고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하나님 맙소사, 선지자 엘리야님께서 산에서 나오셨구나. 내려오고 계시지 않아!" 사내들이 달려나왔다. 그들은 마놀리오스를 필두로 사제를 향해 달려 갔다. 그들은 사제가 굉장한 소식을 들고 오고 있음을 예감했다. "여보게들, 사제님이 들고 오시는 게 뭔가?" 밤잠을 설쳐 퀭한 눈을 하고 얀나코스가 물었다. 씻지도 않은 그의 손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정말인데, 들고 오시는 게 뭐지?" 미켈리스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성상이다. 성상!" 앞서 달리던 루카스가 소리쳤다. 그에게서도 석유 냄새가 났다. "사제님은 엘리야 선지자님을 만나시고 지금 우리에게로 모셔 오는 거야. 좋은 조짐인데." 마놀리오스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들도 사제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엄숙해 보이면서도 우울한 얼굴이었다. 사제는 그들을 보지도,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직 그의 영혼은 선지자의 불타는 독거를 떠나지 않은 듯했다. "비켜서서 사제님이 지나가시게 합시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사제님께 말을 걸지 않도록 합시다. 아직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니까." 사제는 성큼성큼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내려오느라고 그의 발 밑에서 돌멩이가 굴렀다. 이제 모두들 사제가 어깨 위에 똑바로 세우고 내려오는 것이 무엇인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선지자의 저 기적을 행하는 성상이었다. "화약 냄새라도 나는 것 같아." 얀나코스가 밤일을 함께 한 루카스에게 말했다. "저분의 얼굴좀 보게." "제 때에 일을 치렀으니 다행일세." 루카스가 대답했다. "집은 모두 목조니까 두 깡통이면 넉넉할 거야." 여자들이 사면까지 올라와 있다가 기적과 성자들과 꿈 이야기를 재잘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목을 빼고, 산을 내려오는 사제를 바라다보았다. 그에게 날개가 있어서 날아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여자도 있었고, 날개가 아니라 사제복 자락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의 어깨 위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있어서 부리에다 벌겋게 단 석탄을 물고 그에게 먹이려 하고 있었다. 돌연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날 따라오시오!" 그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여자분들도 마찬가지요." 선지자의 성상을 똑바로 든 채 성큼성큼 지나가며 그는 여자들에게도 말했다. 모두 다, 흡사 사나운 새가 옆으로 지나가며 날개로 쓸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물러섰다. 그러나 곧 흥분을 가누지 못한 채 남자들이 먼저 그리고 아낙네들이 조용히 사제의 뒤를 따라갔다. 이미 중천에 올라 구름 사이에서 빛나는 태양은 하얗게 달아오른 공 같았다. 눈 아래로 평원은 아직 짙은 안개에 묻혀 있었다. 늦게 입산한 나이든 여자들이 동굴 속에서 나오며 손으로 눈을 쓸고 놀라운 듯이 산에서 내려오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동굴 앞에 이르자 포티스 사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성상을 바위 위에 놓자 남자, 여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그를 둘러쌌다. 팔을 벌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거칠어 목이 잠 긴 것 같았다. 말을 한꺼번에 뱉어 내려니 다급하고 떨렸다. 한 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목이 풀리면서 목소리는 분명하고 조리있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소리쳤다. "여러분, 귀담아 들으시오. 부인네들은 아이를 안아올려 내 말을 듣게 하시오. 나는 불의 병거에서 내렸소. 나는 그 불의 병거가 인도 하던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하겠소. 이 병거가 내게 맡겼던 일을 여러분에게 드러내어 보일 것이오. 인생은 고인 물이 아니요. 굴종과 체념이 최고의 미덕은 아니며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요. 훌륭한 사내라면 상대가 하니님일지라도 주먹을 쥐고 일어나 보지도 않고, 그 책임을 물어 보지도 않고 눈앞에서 자식이 굶주려 쓰러져 가는 꼴도 보지 못할 거요. 나는 산으로 올라가 이 산의 선지자에게 우리의 결심으로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알아 보았소. 우리의 아이들 역시 그분의 아이일진데, 그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요!" 두 팔을 내뻗고 그는 성상에게 소리쳤다. "불의 선지자시여, 당신에게도 이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당신의 성채로 올라갔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주에게 그 해의 땅세를 바치러, 밭과 포도원에서 수확한 선물을 싣고 가는 소작인 농부처럼 저 역시 백성의 고통과 슬픔을 가져가 당신의 발 앞에 바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밤새도록 선지자 앞에 서서 말씀드렸읍니다. 나는 그분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언제, 어떻게 해서 이 산에 이르러 그분의 지붕 아래 몸을 의탁하게 되었던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그 모든 걸 아셨으나 - 내가 이미 말씀드렸던 까닭입니다 - 다시한번 들으시는게 좋을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들어주셨으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어서 나는 그분에게 저 아래 리코브리시 마을에 사는 우리 이웃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곳의 성직자와 귀족과 주민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며, 우리를 쫓아낸 경우며, 우리의 은인 미켈리스가 우리에게 준 땅에서 일마저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구박하는 이야기도 다 고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말씀드려 내 분노를 덜었습니다. 역시 그분은 들으셨으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 백성들이 기아와 추위와 질병으로 인한 순교자의 운명도 상기시켜드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수호선지시여, 부자의 오만은 도를 넘었습니다. 넉넉한 자의 배는 터질 듯이 부풀었습니다. 칼날은 시신에 닿고 있습니다. 두렵습니까? 불의 병거를 타신 사나운 선지자시여, 일어서소서! 말의 끌채를 매시고 내려오소서!" 여전히 그분은 내 말을 들으시었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그분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분의 가슴은 아프지 않으시단 말인가. 이분은 어쩌면 이런 많은 고통을 참으시고 이런 많은 부정을 받아들이시며 이런 무례를 관용하실 수 있을까? 성상 속에서 뛰쳐나오지 않으실 건가, 말의 끌 채를 매시고 내 목덜미를 냉큼 잡아올려 옆자리에 태우시고 리코브리시로 내닫지 않으실 건가?" 나는 성상을 덥썩 붙잡고 그분의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시여, 엘리야 대장이시여! 이 말씀도 좀 들어 보시오! 저희 애들은 너무 배를 곯아 이제는 서 있을 힘도 없습니다. 혹은 목발을 짚고 혹은 지팡이를 짚고 이것들은 수탉처럼 기우뚱거리며 리코브리시로 구걸하러 떠났습니다. 들으셨으니 필시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고만 계시는군요. 수염을 리코브리시의 지붕 위로 나부끼며, 문전에서 울고 있는 우리 애들을 그저 보고만 계시는군요" 내 눈앞에서 선지자의 몸이 따뜻해지며 살아나는 것 같아 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의 마차에서 몸을 구부려 아래를 보십시요. 리코브리시 마을이 애들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보십시요. 저것 보십시요. 문전에서 아이를 쫓으려고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자도 있습니다. 보입니까? 어떤 자는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기고 있군요!" 이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나는 그만 깜짝 놀라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성상이 꼭 나를 때린 것 같았습니다. 네 마리 불의 말이 살아 나고 선지자의 입술이 움직인 것 같았고, 나는 '가자'는 그분의 말씀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 성상이 내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모두가 놀라 침을 삼켰다. 아낙네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 기적을 일으키는 성상 앞에 무릎을 꿇었곡 사내들은 사제의 말에 힘을 얻어 고개를 들고 후광을 진 채 산위에서 내려오는 선지자를 바라보았다. "오소서. 엘리야 선지자시여!" 아낙네들이 그를 맞았다. "사제님, 명령만 내리십시요!" 얀나코스가 부르짖었다. "먹을 빵이 남아 있을 동안은 저희에게도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놀리오스가 사제에게 다가가 손에 입을 맞추었다. "사제님, 손을 들어 주십시오. 때가 왔습니까? 저희 준비는 끝났습니다." 사제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가 소리쳤다. "사흘만 있으면, 여러분, 사흘만 있으면, 빛이 태어난 날, 즉 선지가 엘리야가 태어난 12월 21일이 됩니다. 그날이 거사의 날입니다. 준비하시오. 남녀 전우들이여, 우리는 산을 내려갈 것입니다!" 모두가 성상 앞을 지나가며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의 눈에 선지자는 살아 있었고, 그분의 의발은 바람에 딸그락거리는 놋화로로 보였다. 아낙네들은 그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보았고, 성상에 입술을 누르며 아이들은 입술 아래로 선지자의 체온을 감촉했다. 지친 사제는 동굴로 들어가 누웠다. 그는 잠을 재촉하여 꿈 속에서 하나님이 내려와 말을 걸 수 있도록 눈을 감았다. 마놀리오스는 불의 선지자 성상을 들어 동굴 뒤 어둠 속, 십자가 옆에다 두었다. 그 순간부터 사라키나 산은 병영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없는 사람들은 꺾어 쓸 만한 털가지 나뭇가지를 찾으러 산으로 들어갔다. 물매 쓰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포티스 사제는 힘꼴이나 쓰는 사람들에게 쓸 만한 무기를 나누어 준 다음 사용법을 가르쳐 주느라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저녁 때쯤 마을에 도착한 코스탄디스는 왁자지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물매로 돌멩이 감아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몽둥이 감이 될 만한 나뭇가지 자르는 걸 가르쳐 주느라고 분주한 사내들을 보고, 아직은 준비 단계지만 남녀가 함께 전장에 뛰어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적잖이 놀라서 서둘러 그리스도의 새로운 얼굴을 조각하고 있는 마놀리오스를 찾았다. 그리스도 상이 그의 무기였다. 그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완성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완성되면 준비가 끝나는 셈이었다. 코스탄디스가 한숨을 쉬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가 말을 걸었다. "마놀리오스, 그리 바쁘지 않거든 잠깐 고개를 들고 내 말 좀 들어 봐. 좋지 못한 소식이야." "어서 오세요, 코스탄디스. 산에는 늘상 눈이 많이 내리니, 그걸로 겁을 먹는 사람은 없소. 말해 보시요." "마리오리가 죽었네! " 마놀리오스는 깎고 있던 나무 조각을 떨어뜨렸다. 그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죽었어요?" 그는 부고를 난생 처음 받는 사람처럼 몹시 놀라며 물었다. "어제 정오쯤 들었네. 영감이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질렀다더군. 즉시 노새를 타고 외쳐며 다녔다니까. 이 양반이 읍내에 도착했을 때는 매장이 끝났다던가. 그러니 딸아이 눈도 감겨 주지 못했다네. 오늘 아침에 그 양반이 돌아왔어. 자네는 그 양반을 몰라. 슬픔에 겨워 제 정신이 아니더군. 마을 사람들의 대문을 마구잡이로 두드리는 걸 봤는데 겁나더군. 내 보기에도 딱했어. 그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맨발로 돌아다니고 있었어.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모았어.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야. 교구 관리를 시켜 조종을 치게 했어. 모두가 일손을 놓고 갔지. 이 양반은 우리를 교회 마당에 모으더니 석제 의자 위로 올라가더군. 그러나 턱이 떨려 말을 못 하더군. 하지만 핏발이 선 눈에서는 불풀이 일었어. 결국 힘을 차리자 쉰 목소리가 터져 나오더군. "여러분, 딱 두 마디만 하겠소.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더는 못 하겠습니다. 사라키나 놈들이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 사라키나 놈들이 우리를 죽일 겁니다!" 이 양반은 여기서 말을 끊고 숨을 고르더군. 한참 뒤에 다시 말을 계속했어. "일어나 무장하시오. 내가 여러분의 선두에 서겠소. 일어 서시오, 여러분. 우리는 이 야만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처럼 평화롭던 우리 마을에 흉안을 던진 것도 놈들입니다. 놈들이 여기에 발을 디딘 저 저주의 순간부터 불행과 죽음은 쉴새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고 누구보다 비난을 받아야 할 자는 저 파문당한 놈, 마놀리오습니다! 이 자가 미켈리스를 세뇌하여 돌아버리게 했습니다. 미켈리스가 내 딸 마리오리와 파혼을 선언한 것도 마놀리오스 때문이었습니다. 내 딸, 내 딸 마리오리를 죽인 것도 결국은 이놈입니다." 사제는 말을 계속하려 했지만 현기증이 나는 모양이더군. 팔을 뻗어 벽을 짚고 몸을 가누었어. 하지만 앞이 안 보였던지 중심을 잃고 석탄 바닥에 풀썩 쓰러지더군." 코스탄디스는 입을 다물었다. 마놀리오스는 터번처럼 머리에 감고 있던 수건 자락을 끌어다 울음을 참느라고 꼬옥 깨물었다. "마리오리가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그래서요?" 잠시 후에 그가 물었다. 마음은 방황하고 있었다. "마놀리오스,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자네에게 알리러 온 거라네. 마을 사람들은 사제의 말을 들은 뒤부터 웅성거리며 이리로 달려와 자네들을 공격할 준비를 서둘고 있네. 이들은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듯한 이유를 찾은 모양이더군. 자네를 볼셰비키라고 믿기 때문에 돈 많은 사람들은 자네를 두려워한다는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자기네들을 속였다고 해서 또 자네를 미워해. 이들은 틈만 나면 들고 일어나려 해. 이들은 수가 많고 무기도 있어. 아그하도 이자들 편이지, 조심하게." "코스탄디스, 가서 불쌍한 미켈리스를 찾아 이 소식을 전해요. 나는 할 수 가 없소. 알듯 모를 듯 일러줘야 하오, 이 젊은 족장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오. 이 친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소. 당신을 보아도 마음은 딴 데 가 있을 거요. 말을 붙여도 대답을 하지 않아요.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어서도 벌벌 떨어요. 잠자는 게 겁나는 거요, 어느날 내가 물어 보았죠. "미켈리스, 당신 무엇이 두렵소?" 입을 여는 게 몹시 힘드는 모양이더군요.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이... "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자, 코스탄디스, 용기를 내시오. 가서 미켈리스를 찾아봐 줘요. 나는 사제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이제 다 끝났다." 미켈리스가 읽고 있던 복음서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코스탄디스, 이제는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소. 하나님은 칼을 들어 내 목숨을 둘로 갈랐소. 이미 반쪽은 그분이 흙 속에다 처넣었소. 이제 나머지마저 팽개친 것이오. 이제 내 모든 것은 땅 속으로 들어간 거요." 코스탄디스는 이 무서운 소식을 접하는 미켈리스의 태도가 너무 조용한 게 몹시 괴로왔다. 미켈리스의 엄숙한 얼굴 뒤로 그는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 한 때 젊은 족장이었던 사내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일어섰다. 그는 바위 틈에서 밧줄을 꺼내어 복음서를 묶었다. 흡사 사람을 물지 못하도록 야수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았다. 그는 코스탄디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스탄디스, 내 어디로 돌아서야 하죠? 인간 쪽으로? 그건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 하니님 쪽으로? 하나님은 라다스 영감 같은 자를 살려 놓고 마리오리를 죽인다. 나 자신 쪽으로! 나란 햇볕 아래 몸을 비트는 벌레, 좋아, 햇볕을 쬐니 좋아, 따뜻해,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구두바닥에 밝혀 죽는 벌레 같은것. 코스탄디스, 내 말 뜻 알겠소?" 그러나 코스탄디스에겐 애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뜻을 알 것인가? 그는 일어섰다. "나는 가서 얀나코스나 좀 만나겠소." 그가 말했다. 얀나코스는 창고로 쓰는 동굴 안에서 남은 기름과 밀가루 따위를 계량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포도주 한 방울 없이 지내 온 것이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틀은 견디겠군, 기껏해야 사흘, 그것밖에는 버틸 수 없겠어. 이것마저 끝나면 전쟁이지. 그 다음은? 두고 봐야지. 인생이란 고칠 수 있는 병 같은 것. 살아 있는 한, 내가 살아 있고 유소우화키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한은 힘이 난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고칠 수 없는 건 죽음뿐이다." "여보게, 얀나코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 어떻게 된 거야? 마을로는 돌아오지 않나!" 얀나코스가 고개를 돌리고 코스탄디스를 발견했다. "이 사람, 코스탄디스 아닌가!" 얀나코스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래, 자네들의 그 축복받은 마을이라면 가야 하고말고, 하지만 자네가 날 볼 수 있을 턱이 없지. 내가 마을에 갔을 때는, 칡흑같이 어두웠으니까." 얀나코스는 웃으면서 늑대처럼 두 번이나 마을로 숨어들어가 두 집을 약탈해 온 이야기를 했다. "이것 보게." 그가 결론삼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져온 식량도 이젠 작별을 고하시는군. 하지만 석유가 있네. 보게, 구석을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어. 기적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무슨 기적?" 코스탄디스가 뛸 듯이 놀라며 물었다. "코스탄디스, 불로 화하는 기적이지. 그게 석유의 임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하느님이 왜 석유를 이 땅에 내려보냈을까?" 그는 함참 생각하다 이마를 철썩 때렸다. "자네 마침 잘 왔네. 다행히도 하느님께서 자네를 보내셨군, 내 대신 일하나 해주지 않겠나? 오늘은 주일이야. 모레, 화요일에 라다스 영감 댁에 있는 내 나귀 좀 끌어다 놓아 주지 않겠나? 자네가 필요 하다고 말하게. 구두쇠 영감에게 돈을 주면 내어줄 거야. 이걸 자네 집에 좀 몰아다 놓으란 말일세. 알겠나? 털 한 오라기 그을려 먹으면 안돼. 자네 집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야." "아니, 라다스 영감 집에 불을 지르려는 게로군." 코스탄디스가 혀를 내둘렀다. "그래, 실컷 듣고도 그러네. 그게 석유의 사명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라다스 영감이 하는 짓을 잘 알고 계신다네." "얀나코스, 앞뒤 좀 재어 보고 하게, 그러다 자네 아주 고약하게 될지도 몰라." "코스탄디스, 신물이 날 만큼 재어 봤네. 재는 일이라면 내가 도사 아닌가. 선지자 엘리야 - 우리 사제님은 엘리야 대장이라고 부르네만 - 께도 여쭈어 봤지. 좋다고 하시더군." 코스탄디스는 머리를 긁었다. "나는 모르겠는걸." 그가 말했다. "자네에겐 카페가 있고 마누라가 있고 애들이 있으니까 알 턱이 없어. 자네는 배가 고프면 어떻게든 변통해 먹지? 그러니 어떻게 알겠나? 그러니 자네는 밤낮 멍청한 짓이나 하고, 아그하 나으리나 그리고리스 사제의 더러운 손에다 입을 맞추지 않는가. 하지만 코스탄디스, 빈손 쥔 사람들은 누구 손에도 입을 맞추지 않는 법이네. 어때, 대단한 비밀 아닌가? 이 사람, 생각할 것 없네. 때가 오면 자네도 알 테니까 참고 기다려!" "얀나코스, 나도 자네들 편이야. 그러니 너무 그러지 말게." 코스탄디스가 한참 듣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응수했다. "나도 안도니스나 정육점 하는 뚱보 디미트리에게 이 이야기를 했네만, 우리는 어쩌면 좋을까?" "가서 포티스 사제께 여쭈어 봐! 일러 주실 테니까. 내가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뿐이야. 화요일에 우리 유소우화키를 자네 집에 있게 해줘, 알겠지? 말은 낼 필요없고."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정오무렵부터 굵은 눈발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산꼭대기는 곧 하얗게 덮이고 말았다. 엘리야 선지자도 눈속에 묻혔다. 주린 까마귀가 평원 쪽으로 날아갔다. 하늘은 적동빛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참나무에 코를 박고 마놀리오스는 전력을 다해 나무를 깎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조각 연장이 되어 자르고 파고 쪼으며 나무 속에 갇힌 그리스도의 얼굴을 해방시키느라고 땀을 흘렸다. 전날 꿈 속에서 보았던 신성한 얼굴이 떠올랐다. 강인하면서도 슬픔과 분노에 찬 얼굴이었다. 깊은 흉터가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턱으로 지나갔다. 흉터는 수염과 짙은 눈섭을 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새벽부터 그는 이 엄숙한 형상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꽤 서둔 모양이었다. 저녁 때가 되자 마침내 신성한 모습이 나무위로 떠올랐다. 마놀리오스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때 몹시 지치고 절망에 빠지 채 미켈리스가 들어왔다. 그는 깎아 놓은 나무를 보고 음찔했다. "이게 뭐야, 전쟁이군!" 미켈리스가 외쳤다. "아니오, 그리스도시오." 마놀리오스가 아마의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 형편에 그분과 전쟁은 뭐가 다르지?" "다를 게 없소."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날은 저물었다. 눈송이는 모든 것을 가리며 조용히 떨어졌다. 눈 아래서 평원은 점점 사라져 갔다. 마놀리오스가 등잔에 불을 켜고, 고리에서 전에 깎은 그리스도 상을 벗겨 새것과 나란히 놓았다. "이렇게 다를 수가!" 미켈리스가 두려운 듯이 속삭였다. "같은 거요?" "같소. 전에 이분은 오래 참으시고, 온유하시고 조용하셨소. 지금은 이렇게 거칠어지신 거요. 미켈리스, 내 말 알겠소?" 미켈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알겠군." 그리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화요일, 날이 채 새기도 전에 사라키나 산은 이미 잠에서 깨어났다. 산꼭대기는 하얗게 빛나고 선지자의 성상은 두꺼운 두건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첫 햇살이 비치자 성상은 생명을 되찾아 장미빛으로 깨어 났다. 포티스 사제가 사람들을 모았다. 그가 소리쳤다. "여러분, 오늘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참을수 있는 데까지 참았습니다. 우리는 지옥 근처까지 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아마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떨어지고, 이어서 남정네들과 아낙네들 순서로. 우리는 죽음과, 삶을 위한 투쟁 중에 어느 한 쪽을 택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투쟁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사제님! 모두 동의합니다!" "나는 저기 우리 위에 계시는 우리의 수호자, 엘리야 대장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분 역시 동의하셨습니다. 나는 내 가슴에게도 물어 보았습니다. 역시 동의했습니다. 오늘의 거사는 맹목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인답게 부릅뜬 눈과 냉철한 이성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몫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비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정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평원에는 우리의 포도원과 채소밭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올리브 과수원이 있고 집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이걸 받아 냅시다! 우리는 남의 소유로 된 밭에 손을 대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하고 살 밭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란군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의에 의해 짓밟힐대로 짓밟힌 희생자들의 군대입니다. 우리는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공격하면 우리에겐 하나님이 주신 손이 있습니다. 그 손으로 받아칠 것입니다. 무장하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이 불의와 불명예의 세계에서 제 몸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정의로 무장하려 합니다. 저들은 이미 불의로 무장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미덕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온유한 양일 뿐만 아니라 사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실 그리스도는 사자로서의 그리스도십니다.! 마놀리오스는 나무로 그분의 얼굴을 조각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이분이 우리 선두에서 우리의 지도자가 되실 그리스도십니다!" 이 말과 더불어 그는 그리스도의 성난 얼굴을 높이 들어올렸다. 군중의 머리 위, 아침의 산뜻한 공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험상궂은 얼굴이 흔들렸다. 마지막 순간에 마놀리오스는 관자놀이에서 턱에 이르는 상처에다 붉은 칠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흥분 한 군중에게 진쟁에서 부상을 입은 투사가 되어 전투를 독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제가 호령했다. "여기 우리 지도자가 있소! 손을 들어 경의를 표하시오!" 이어서 그는 깃발을 든 루카스에게 명했다. "루카스! 이 거룩한 얼굴을 깃대 꼭대기에 달아 선두에서 우리의 진군을 독려케 하라! 자,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하나님의 날이 밝았으니, 맨 앞에 깃발을 든 루카스, 그 다음에 무장한 남자들, 그리고 바로 뒤에 물매를 든 여자분들과 아이들을 따르게 하시오!" 대열이 정비되자 모두 성호를 그었다. 포티스 사제가 두 팔로 엘리야 선지자의 성상을 들었고 마놀리오스는 다른 몇 사람들과 함께 선봉에 섰다. 얀나코스가 석유 깡통을 겨드랑에 끼고 바로 뒤를 따랐다. 미켈리스는 바위 위로 올라가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제님, 저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미켈리스는 이미 포티스 사제에게 그렇게 말해 놓았던 것이다. "보십시요, 제 팔에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는 멀어져 가는 대열을 바라보았다. 무리의 누더기 옷이 바람에 나부꼈다. 대개가 맨발이었고 양피나 천조각을 감은 자가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들의 뺨은 움푹 들어가 있었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뺨과 턱사이에서 반짝거렸다. 눈은 흡사 검은 구멍 같았다. 모두 춥고 배가 고파 몸을 덥히느라고 뛰기 시작했다. 얀나코스가 잠시 석유 깡통을 내려놓고 언 손을 문질렀다. "여보게들, 노래는 안 부를 건가!" 그가 소리쳤다. "입을 바늘로 꿰매고 축제에 간다던가? 노래하세, 진군가를 부르던지 아마네스를 하든지 찬송가를 하든지 좋을 대로 부르지! 여보게들 노래해! 그래야 몸이 녹지!" 갑자기 가슴들이 부풀어 오르면서 입이 열렸다. 포티스 사제가 신호를 보내자 모두들 의기양양하게 선조들이 야만인을 상대로 싸우러 나갈 때 부르던 옛 군가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시고 당신의 유산을 축복하소서 주여, 저희를 도우시어 이방인들을 물리치게 하소서 20. 오직 한 길 리코브리시 마을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시각이었다. 몹시 추운날씨였다. 주위의 산들은 모두 흰눈을 쓰고 있었다. 마을 사내들은 따뜻한 침대 위에서 꾸물럭거리면서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전날 밤 그들은 돼지 몇 마리를 잡아 털을 그슬려서는 내장을 비운 다음 깨끗하게 말려 여자들에게 인계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젤리를 준비하고 소시지 만들 내장을 골라내고 조그만 항아리와 오지그릇에 살점이며 베이컨이며 소금친 가슴팍 살을 저며넣으려면 여자들이 한 바탕 바쁠 차례였다. 따라서 안식구들은 먼저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 솔을 불 위에 올린 다음 새벽부터 소시지 만드는 데 쓸 후추와 회향 풀씨를 갈고, 젤리를 만다는 데 필요한 광귤과 레먼즙을 짜내었다. 살이 오른 핑크빛 돼지는 말씀히 씻기고 털이 깎인 채 거꾸로 고리에 꿰여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부정한 고기를 내 집에 들인다면 마르다여, 네게 화 있을 지니라!" 아그하는 전날 밤에 이미 하녀에게 못을 박아 놓은 터였다. 전날 하루 종일 아그하는 마당에서 도살당하는 돼지의 비명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종일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오, 더러운 이단자! 돼지고기로 살찌우며 소시지 만드는 냄새로 공기를 더럽히는 자들이여!" 그러나 아그하는 은밀하게 돼지고기 소시지에 맛을 들이고 있었다. 소시지가 라키 술에는 더없이 좋은 안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엉큼한 꼽추 하녀는 매년 낙타고기로 만든 거라고 속이고 그에게 돼지고기 소시지를 대접해 왔던 것이다. 아그하도 그게 낙타고기가 아닌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했다. 이런 식으로는 그는 모하켓의 율법을 따르면서도 돼지고기를 먹고 손카락을 ㅎ을 수 있었다. 미식가이면서도 이 맛있는 고기의 정체만은 알지 않기로 그는 단단히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부정한 고기를 내 집안에 들여놓으면, 마르다여, 네게 화 있을 지니라!" 무슨 뜻이냐 하면, '가서 네가 먹는 양하고 저 소시지 좀 듬뿍 사오너라, 그리고 내게 가져와서는 낙타고기라고 우기거라' 하는 암시였다. "아그하님, 염려 놓으십시오." 곱사등이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올해도 낙타고기 소시지를 잔뜩 구해다 놓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브리히마키도 좀 사올 거시굽쇼." 한편, 누더기를 입은 굶주린 무리들은 걸음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 오고 있었다. 얀나코스가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사제님이 마을로 진군하는 날은 제대로 잡으셨네. 오늘이면 돼지도 이미 고리에 척 꿰여져 걸려 있을 것일세, 그리고 아낙네들은 불을 지펴 우릴 먹이려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드디어 주린 뱃속에 기름기를 좀 칠할 때가 온 것이네." 그러나 얀나코스 옆의 동료는 군가 소리 때문에 이 말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대열은 이미 산기슭을 벗어나 평원으로 나와 있었다. 마을은 지붕위에 눈을 뒤집어쓴 채 그들 앞에 엎드려 있었다. 굴뚝마다 연기가 올랐다. 굶주린 무리의 콧구멍은 셀리를 만들려고 끓이는 돼지고기 냄새를 맡고 벌름거렸다. 여자들은 버리고 떠난 집을 생각하고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며 같은 날에 하던 짓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성 바질 우물 앞에 이르기 직전에 포티스 사제는 걸음을 멈추고 할말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외쳤다. "여러분! 내 말을 들이시오. 먼저 파트리아케스 영감의 집으로 달려가 그 집을 접수합시다. 문이 잠겨 있으면 부셔 열어야 합니다. 그 집은 우리의 것이니 마땅히 들어가야 합니다. 연 후에 피를 나누어 우리의 과수원, 우리의 포도원, 우리의 밭으로 달려가 깡그리 접수 합시다. 그자들이 와서 우리를 습격하지 않을 것임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그러나 습격을 받는다면 대처할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니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실 것입니다. 마을은 잠을 깨었습니다. 멀리서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종소리가 들리니 조심들 하시오, 앞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닌게아니라 종이 죽어라고 울려 대고 있었다. 마을이 발칵 뒤집힌 것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파나요타로스가 무슨 낌새를 눈치채고 새벽에 아그하의 집 발코니로 달려가 산 쪽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니나다를까 미명에 그는 사라키나 무리가 산을 내려오는 걸 보았다. 황급히 계단을 내려온 그는 광장에 있는 교회로 달려가 종줄을 찾아쥐고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비슷한 시각에 만달레니아도 주전자를 들고 성 바질 우물로 물을 길러 왔다가 멀리서 거지떼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오는 걸 보았다. 이 여자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마을로 다시 뛰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와요, 볼셰비키가 와요. 불한당들이 옵니다. 마을 사람들이여! 무기를 잡아요." 그때까지도 자리에 누워 있던 마을 주민들은 종소리를 듣고 뛸 듯이 침대에서 내려섰다. 만달레니아 할멈의 고함 소리가 그들 귀에도 들렸다. 그들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을 열고 담요를 뒤집어쓴 채 교회로 달렸다. 여자들은 닭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문간이나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남정네들에게 소리쳤다.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예요! 어째서 종소리가 이렇게 요란합니까?" 그러나 남정네들은 한 마디 대답도 없이 식식거리며 달려갔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이미 교회에 이르러 숨을 고르며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여러분! 무장하시오. 사라키나 산에서 불한당들이 내려오고 있소. 마을에 들여놓아서는 안 됩니다. 집으로 가서 무기를 들고 성바질 우물 곁에 모이시오, 하나도 빠지지 말고!" 그는 미친 사람처럼 종줄을 잡고 당겨 대는 파나요타로스를 돌아보고 명령했다. "파나요타로스, 가서 아그하를 깨워라! 속히 말을 타고 성 바질 우물 곁으로 오시라고 일러라! 불한당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이다!" 교장 선생도 숨을 헉헉거리며 도착했다. 이 양반은 안경을 놓고 와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무기를 들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가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내 가서 저들과 담판해 보리다! 내 저들을 설득시키고 말겠소. 우리는 형제들이오, 마을을 피바다로 만들어서는 안 되오!" "네 일이나 걱정해라, 이 병신아!" 사제가 고함을 질렀다. "협상이 어디 있어! 저것들을 쓸어버려야 할 때가 왔다. 젊은이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이나 슬 놈들에겐 죽음이 마땅하다!" 불이 붙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달려가 몽둥이, 피스톨, 낫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그 중 기운 좋은 마을 사람들은 전 날 밤 돼지를 잡은 칼을 들고 나섰다. 모두가 성 바질 우물로 몰려오며 치를 떨고 고함을 질렀다. 파나요타로스도 달려와 사제 옆에 섰다. 그는 피스톨을 휘두르다 공중에 한 발 쏘며 고함을 질렀다. "앞으로! 여러분, 놈들은 마귀가 들렸소!" 아그하는 잠결에 총소리를 들었다. 그는 채찍으로 마루를 쳤다. 마르다가 나타났다. "이보아라! 저 총소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 "아그하님, 볼셰비키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볼셰비키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 병신 같은 할망구, 러시아에서 내려온단 말이냐?" "아닙니다, 아그하님. 사라키나 산에서 내려온 볼셰비키올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달려와, 주인님께서 말을 타고 오셔서 좀 도와 줍시사고 했습니다." 아그하는 웃음을 떠뜨렸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그는 브라히마키 쪽으로 돌아누웠다. "러시아에서 진짜 볼셰비키가 내려오거든 날 깨우라. 그러니 너는 가서 자거라." 포티스 사제는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이 달려오는 걸 보고는 무리를 떠나 무기 없이 엘리야의 성상만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소리쳤다. "형제들이여, 내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소. 걸음을 멈추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컨데, 내 말을 들으시오. 듣고 한 방울의 피도 흐르치 않게 하시오!" 말이 떨어지자 양쪽 무리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포티스 사제는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리스 사제여, 당신이십니다. 바로 사제님이십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상대는, 좀더 가까이 와 주십시오!" "이 염소 수염아.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사제는 이렇게 대답하며 몇 걸음 달려나왔다. "나 여기 있다!" 두 사제는 이제 양쪽 무리 한가운데서 마주 섰다. 한 쪽은 키가 크고 몸집이 비대한데다 황소처럼 기름기도 번지르르했고 다른 쪽은 피골이 상접한데다가 볼은 옴푹하고 맨발은 피투성이여서 흡사 마르고 상한 말 같았다. "사제님!" 포티스 사제는 양쪽 무리 모두에게 들릴 만한 우렁찬 목소리로 호령했다. "사제님, 형제간에 전쟁을 사주하면 그 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흐르는 피는 우리 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사제님, 내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들도 모두 내 말을 들으시오. 무기를 놓으시오. 싸우지 말고 기다리시오. 각자 자기 무리를 대표하는 우리 둘, 나와 그리고리스 사제님이 여러분들 앞에서 맨손으로 여러분을 대표해서 싸우겠소. 여기 한 가지 서약을 세웁니다. 만일 그리고리스 사제가 나를 집어던져 내 등을 땅에 닿게 하면 우리는 빈손으로 순순히 사라키나 산으로 돌아갈 것이고 만일 내가 그리고리스 사제를 던져 그 등을 땅에 닿게 하면 우리는 마을로 들어가 미켈리스가 우리에게 준 것들을 차지하겠소. 우리 둘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 모두 위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오!" 포티스 사제의 말을 들은 리코브리시 사람들은 환호작약했다. 그들은 포티스 사제의 잿빛 얼굴과 귀뚜라미 같은 팔다리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 방 놓으세요. 그리고리스 사제님. 한 방 놓아 벌렁 뒤집어 놓으세요!" 사라키나 산 사람들은 당황했다. 루카스가 소리쳤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사제님. 저놈들 중에서 제일 용감한 놈이 나와서 저와 씨름하게 하십시오. 싸움군 파나요타로스, 피스톨을 차고 페즈를 쓰고 으시대는 저 더러운 터어키 놈, 용기가 있다면, 저놈을 제 앞으로 썩 나서게 하십시오." 파나요타로스는 깃발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넘겨 주고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냐, 간다, 이 쓰레기 같은 놈. 내 여기 있다, 이 볼셰비키야." 파나요타로스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목을 분질러 주마, 이 돼지 같은 자식!" 파나요타로스는 허리춤에서 피스톨을 뽑아 앞으로 던졌다. 그러나 그리고리스 사제가 팔을 쳐들었다. "잠깐!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 우리 사제들 둘이서 심판을 받기로 한다. 이 거지 같은 사제야, 내 너의 도전을 받아 주기로 하마. 내 하나님께 맹세코, 네가 나를 던지면 너희들이 저 우둔한 미켈리스가 네놈들에게 선사한 물건을 집어가도 방해하지 않으마. 하지만 내가 이기면 너희 모두 이곳에서 조용히 물러가야 한다. 내 하나님께 바라건데 오셔서 우리 가운데 서시고 우리를 심판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포티스 사제가 성호를 그었다. 그는 돌아서서 나이든 사람 하나를 손짓으로 불러 선지자의 성상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는 다 헤어진 법의를 벗어 정성스럽게 개어 바위위에다 놓았다. 누더기가 된 검은 셔츠와 너덜거리는 바지가 드러났다. 앙상한 정갱이는 상처투성이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다리를 벌리고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그는 흡사 금방이라도 달려나가려는 군마처럼 발로 땅을 박찼다.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었다. 그러나 누더기 차림의 해골 같은 포티스 사제가 우물처럼 깊고 검은 눈으로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그는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포티스가 죽음의 망령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성호를 그으시지요, 사제님. 나는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포티스 사제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상스럽게 대충 성호를 긋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오너라, 이 너절한 방아개비 같은 놈아. 와야 목을 비틀어 줄 것 아니냐?" 그리고리스 사제가 으르렁거렸다. "사제님, 욕을 안 하면 말이 안 됩니까? 하나님도 찬송도 바로 그 입으로 사십니까? 성배도 바로 그 손으로 받드십니까?" "오냐, 염소 수염의 목을 분지르는 것도 바로 이 손이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이렇게 호령하고 나서 황소처럼 머리를 내리고 상대를 노려 돌진해 들어갔다. 그는 주먹을 들어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나 포티스 사제가 살짝 옆으로 부켜서는 바람에 주먹은 허공을 찔렀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제풀에 바닥에 나동그라져 뒹굴었다. 잔뜩 골이 난 그는 다시 한번 포티스 사제를 공격했다. 그는 화를 내며 자기 수염을 한줌 쥐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포티스 사제가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그리고리스 사제의 아랫배에다 꽂아 넣었다. 노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눈동자가 돌아가더니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 골이 날 대로 난 참이어서 힘 또한 있는 대로 다 솟았다. 그는 포티스 사제에게 달려들어 목, 코, 귀 할 것 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리고리스 사제의 먹이를 뜯는 야수의 울음 소리 같은 절규 뿐이었다. 사라키나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숨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목을 빼고 위험에 처한 자기네 사제를 바라보았다. "우리 사제님 큰일났구나. 저 쳐 죽일 놈이 사제님을 죽이겠다." 얀나코스가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얀나코스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가, 저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시오." 마놀리오스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포티스 사제는 그리고리스 사제의 턱수염을 단단하게 말아쥐고 다른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턱을 갈겼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고꾸라져 이빨과 피를 뱉었다. 포티스 사제는 그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허리춤을 붙잡고 좌우로 몇 번 흔들다가 훌쩍 올라타고 전 체중을 실어 눌러 입으로 바닥의 흙을 핥게 했다. 포티스 사제는 무릎을 꿇은 채 그리고리스 사제를 뒤집어 놓을 참이었다. 그러나 틈이 없었다. 파나요타로스가 달려와 발광한 사람처럼 포티스 사제를 두들겼다. 루카스가 달려 나갔고 이어서 얀나코스, 마놀리오스가 달려갔다. 양쪽 무리가 서로 어울리며 주먹이 날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몽둥이가 나는 소리, 총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칼은 상대편의 살 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처음엔 고함과 욕지거리가 들렸지만 차츰 그 소리는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와 신음으로 변했다. 코스탄디스, 이발사 안도니스, 푸줏간 주인인 뚱보 디미트리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와 싸움에 가세했다. 얀나코스가 친구들을 발견하고 난투극 속을 빠져 나오며 코스탄디스에게 소리쳤다. "이봐, 코스탄디스, 내가 부탁한 대로 했나?" 코스탄디스는 입을 해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잠시 잊어먹은 것이었다. "이런 병신..." "얀나코스, 걱정 마. 우리 집에 있다." "불질러 버리자, 그럼!" 얀나코스가 소리치며 석유 두 통 중 한 통을 어깨에다 둘러메었다. "힘을 내시오! 힘을 내시오, 놈들이 맥을 못 춰요, 이 돼지 같은 놈들이!" 루카스가 미친 듯이 몽둥이를 좌우로 휘두르며 독려했다. 실제로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은 밀리고 있었다. 그들은 차츰 물러서며 마을 쪽으로 피신했다. 그 중 몇몇은 이미 자기 집에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그동안 사라키나 사람들은 포티스 사제를 우물가로 데려가 상처를 씻었다. 깨어진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힘을 내시오! 형제들!" 마놀리오스가 달려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파나요타로스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들고 퇴각하는 마을 사람들을 추격하며 공중에다 쏘고 있었다. 교장 선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렸다. "그만두시오, 형제들, 서로 죽이지 마시오. 곧 협상할 수 있을 것이오. 나를 믿으시오. 우리는 헬레네 사람들이오, 기독교인들이오. 한형제간이오!" 그러나 교장 선생은 곧 이 두 무리 한가운데 갇히고 말았다. 동료와 적이 한덩어리가 되어 그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미친 듯이 짓밟았다. 누군가가 큼지막한 돌로 그를 쳤다. 불쌍한 온건파는 도랑에 처박히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리코브리시 사람들은 이미 모조리 마을로 퇴각하고 난 뒤였다. 루카스가 달려나가 하나 남은 석유통을 들고 마을로 돌진하며 문과 창문과 벽에 석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아녀자들은 나를 따르시오. 불을 지르시오" 그가 달려나가면서 고함을 질렀다. 곧 불길이 집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리코브리시 마을의 아녀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비명을 질러 대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의식을 되찾기 전에 가까운 만달레니아의 집으로 운반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마당 한 가운데 눕혔다. 늙은 여자가 약초와 연고를 내어 와 상처를 씻고 진통제와 함께 발라주었다. 이 불쌍한 사제는 자존심도 별로 남은 게 없었던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한편 마놀리오스는 남자 몇을 거느리고 앞서 달렸다. 그들은 파트리아케스의 넓은 집 앞에 이르자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여기에다 우선 진지를 만듭시다." 마놀리오스가 선언했다. "거기 두 분은 우리 사제님을 이리 모시고 오시고, 딴 분들은 어서안으로 들어가시오. 우리는 이제 안전합니다!" 이발사 안도니스와 코스탄디스가 자원해서 포티스 사제를 모시러 가겠노라고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양동이로 물을 퍼날라 불길을 잡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온 마을이 벌집을 쑤셔 놓은 꼴이었다. 그 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다스 영감 댁에 불이 났다!" "놈들이 항아리를 몽땅 깨뜨려 기름이 길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술통을 깨뜨려 포도주 홍수가 났다!" 이 싸움에서 파나요타로스는 페즈를 잃었다. 그는 우왕좌왕 절룩거리면서 여전히 총을 쏘아 대며 마놀리오스에게 나타나라고 고함을 질러 대었다.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그 시간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포티스 사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제는 파트리아케스의 집안으로 들려와 주인의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여자들이 붕대 감기를 마치자 그는 눈을 뜨고 동료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 자들이 맹세를 깨뜨렸구나." 그가 중얼거렸다. "하나님께서 벌하시리라. 나는 그 사제를 거꾸러뜨렸다. 나는 만족스러워." "고통은 어떻습니까, 사제님!" "물론, 마놀리오스, 고통이야 있지. 그래도 나는 만족스럽다.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신 것이네. 우리가 이긴 거야!" 마당에서 함성이 일었다. 루카스와 무리들이 집에다 불을 지르고는 안으로 들어가 갓 잡아 깨끗이 털을 깎은 돼지 세 마리를 내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돼지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마을 족장 파트리아케스의 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여자들은 불을 지피시오!" 남정네들이 외쳤다. "나무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창고를 열고 밀가루를 내어다 빵을 만들고 돼지를 구워요. 한바탕 싸웠더니 시장한데, 배가 고파!" "강림절이야, 금식기일이면 기름도 못 먹어! 나이 많은 여자가 꾸짖었다. "자네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나?" "사제님께 여쭈어 봅시다." 루카스가 나섰다. "그 죄는 내가 책임질 테니, 먹게들!" 포티스 사제가 대답했다. 얀나코스가 수염을 그을리고 옷에 포도주와 기름을 잔뜩 묻힌 채 들어왔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형제들 드디어 해치웠소. 만족스럽소. 늙은 구두쇠의 집이 불타고 있소. 하나님을 찬양할진저!"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코스탄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어요, 열어요, 여러분. 교장 선생이 죽었소!" 그들은 문을 열었다. 이발사 안도니스와 푸줏간 주인이 교장 선생의 축 늘어진 몸을 떠메고 들어왔다. 뇌수가 깨어진 머리틈으로 새고 있었다. 커다랗게 뜬 눈이 흐리멍텅했다. 턱을 너덜거렸다. "도랑에서 발견했소." 코스탄디스가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보고도 지나쳤던 거요." 사내들과 아낙네들이 묵묵히 시체 쪽으로 허리를 구부렸다. 몇몇이 그에게 키스했다. 마당에 있던 마른 꽃 몇 송이를 꺾어와 그의 손에 들려 주기도 했다. "이 분은 우리를 화해시키려 했는데 우리는 이 분을 죽이고 말았구료." 마놀리오스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그하는 부드러운 장의자에 앉아 장죽을 물고 브라히마키를 애무하며 총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총소리를 듣자 피가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그하를 뿌리치고 있는 힘을 다해 아그하의 손아귀에서 빠져 거리로 나가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그하는 소년의 발목을 쥐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말아라, 브라히마키." 아그하가 말했다. "지아우르 놈들(풀이: 이단자. 특히 터어키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를 멸시하여 부르는 말), 저희들끼리 뼈다귀를 분지르라고나 해. 그래야 저 못된 것들이 좀 없어지지 않겠냐. 저것들을 길들이느라고 땅과 피를 얼마나 흘렸냐. 그런데 결과는 뭐야! 물에다 구멍뚫기지. 롬노이 한 놈의 목을 자르면, 맙소사 열 놈이 더 생겨. 내 말 명심해, 저것들이 저희들끼리 싸워 죽지 않으면, 저것들 없앨 장사는 없구. 그래서 나는 놈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야. 제풀에 떨어지면 그때 말을 타고 나가 질서를 잡으면 되지. 알아듣겠지? 이 돌대가리야. 내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네가 운이 좋아 언제 그리스 마을의 아그하라도 되는 날을 위해서다. 그때 가면 너도 지아우르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될 게다." "저도 한두 놈 죽이게 해줘요." 브라히마키가 외쳤다. "손이 근질거린단 말이에요." "귀찮게 하지 말래도. 저희들끼리 찢고 죽이고 하게 내버려 두렴. 우리가 끼어들면 골치 아프게 돼. 그랬다가 프랑크(풀이: 서 유럽사람)의 배가 다시 스미르나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봉쇄라도 선언하면 단단히 골치 아프게 돼. 브라히마키, 지금이 좋지 않으냐. 밖은 춥다. 내 너를 내보내지 않으리라. 마르다가 꿀이랑 호도를 가져올 거다. 내 말 알겠느냐?" 그가 손뼉을 치자 늙은 마르다가 나타났다. "밖이 왜 이리 소란하냐, 할망구야?" "아그하님, 저자들이 서로 목을 따고 있습니다, 사제 둘은 서로 상대의 수염을 잡고 싸움을 했고 파나요타로스는 페즈를 잃은데다 무릎까지 다쳤습니다. 라다스 영감님의 집에는 불이 붙어 기름과 포도주가 홍수처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그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잘하는 짓이다, 계속하거라. 곧 망조가 들거다. 마르다 할멈, 여기 꿀과 호도 좀 가져다 주게, 어서!" 그는 브라히마키 쪽을 돌아다 보았다. 브라히마키는 욕지거리를 해대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바보 같은 짓 말래도 룸노이 놈들 일에 끼어들지 말랬잖아. 저것들은 저주 받은 족속, 알라 신의 실수야. 돌아가신 우리 조부님이 내게 늘 하시던 말씀을 들어볼 테냐? 잘 듣고 뜻을 새겨 보아라. 알라신이 만드신 것은 모두 온전했다. 그러나 어느 날은 그만 깜박 하셨더란다. 불과 똥덩어리로 룸노이를 빚으신 게야. 만드신 걸 보시고는 그만 아찔해지셨지. 이 거지 같은 것은 눈이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 왜 그 송곳처럼 찌르는 듯한 눈 있지? 알라 신께서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셨다? '아뿔사, 실수로구나. 이 일을 어쩔고! 그렇지, 다시 소매를 걷고 이번에는 터어키인을 만들자. 터어커인이 룸노이를 죽여 주면 만사 제대로 되겠지.' 알라 신께서는 꿀과 화약을 내어다 제대로 반죽하여 터어키인을 빚으셨다. 그리고는 바로 터어키인과 룸노이를 접시 위에다 올려놓았지. 그랬더니 곧 맞붙어 싸우는 거야.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싸웠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만만하게 쓰러뜨리지는 못했지. 그러나 밤이 오자 이놈의 룸노이가 어둠속에서 터어키인을 쓰러뜨렸대요. 알라 신은 화가 나서 투덜거리셨지. '이런 떡을 칠, 내가 왜 이러지? 이러다가 이놈의 룸노이가 내가 만든 세상을 다 들어먹겠어. 자 어떻게 한다?' 알라신은 가엾게도 밤새 눈 한 번 못 붙이셨어. 그러나 아침이 되자 이 분은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려오며 소리를 쳤겠다. '이제 됐다, 이젠 됐어.' 그는 다시 한번 불과 똥덩어리로 룸노이를 하나 더 만들어 둘을 접시 위에다 올렸지. 또 싸움이 벌어졌지. 한 놈이 다른 한 놈을 쓰러뜨리면 딴 놈이 이놈을 쓰러뜨리고 이 놈이 칼로 찌르면 저놈이 찌르고, 이놈들은 밤새 싸우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곤 했지. 그러다가는 힘을 차려 다시 치고 다시 쓰러지고, 일어나고, 또 싸우고... 이 싸움은 아직 까지 계속되고 있다. 브라히마키야, 세상이 평화로운 건 이 싸움 덕분이란다..." 마르다 할멈이 꿀과 호도를 들고 돌아왔다. "마르다, 창문을 열어, 활짝 열어!" 아그하가 명령했다. "저놈들의 비명 소리며 총소리를 어디 좀 들어보자. 그래야 내 마음이 기쁘겠다. 술병을 라키 술로 가득 채워라.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놈들이 모조리 죽거든 내게 와 알리거라. 내말을 타고 달려가 질서를 잡을 것이다." 저녁 때가 가까와서야 총소리가 멎었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상처를 씻고 기름을 바른 다음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준비해 놓은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그들은 등잔을 켜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귀가 찢어져 너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빨이 빠져 달아난 사람, 손가락이 날아간 사람, 갈비뼈가 한두 대씩 부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을의 다른 집들도 찾아가 보았다. 덧문은 불타 버렸고 문은 부서졌으며 고리에 꿰어 매달려 있던 돼지 세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라다스 영감의 집은 그때까지도 타고 있었고 기름과 포도주도 여전히 길로 흘러 내리고 있었으며 옥수수는 까맣게 탄 채 마다에 뒹굴고 있었다. "당신도 알지, 성인 같은 그 집 마누라 페넬로페 할멈 말이오. 그 할마시 어떻게 되었지?" 만달레니아 할멈이 물었다. "이웃집 마누라들 복도 많지, 남정네들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할마시를 구했지. 이 가엾은 할마시는 사지가 뻣뻣하게 굳은 채 의자에 앉아 비명만 지르고 있었더래요. 일어나 도망쳐 나올 생각도 않고 말이지. 짜고 있던 양말로 죽어라고 뺨을 문지르면서 뭐라고 꽥꽥거리고 있더라나." "서방이란 양반이 할멈을 구하러 불 속으로 안 뛰어들었던가?" "기가 막혀서. 아, 물론 그 구두쇠 영감이 불 속으로 뛰어들긴 했지. 하지만 마누라 구하려고 뛰어든 게 아니랍니다. 금덩어리가 든 상자를 가지러 간 거지요. 이 작자는 상자를 안고 길로 뛰어나와서는 땅바닥에 그걸 놓고 깔고 앉더니 훌쩍훌쩍 웁디다. 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페넬로페 할마시를 데리고 나왔는데, 안 믿어질 겁니다. 할마시도 땅바닥에 퍼지고 앉더니 양말 뜨개질을 계속하더랍니다. 그래요, 만달레니아 말이 맞아요, 성인은 성인입디다." 만달레니아는 바삐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의 피를 뽑아주었다. 소리를 죽이고 남자들의 수를 세며'저주나 받으라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건달들!' 부상자들을 돕고 있는데 별안간 문이 열리며 손 하나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우리 양반 못 봤소. 아이고, 할마시. 이 양반이 또 어떻게 되었는지 피스톨을 들고 나가 동네를 들었다 놓았다 한답니다. 만달레니아 할머니, 이 말이 정말이오?" "가루필리아, 임자 서방님은 못 봤고, 내가 본 건 바질 우물가에 있는 그 양반 페즈뿐이오. 이 불쌍한 할마시야, 당신 서방님 머리와 페즈는 따로따로 노는 모양입디다. 자, 그러니, 그만 내 치맛자락 일랑 놓으소!" "에이, 빌어먹을 놈의 영감." 가루필리아가 문을 쾅 닫으며 외쳤다. 이 어쭙잖은 여의사는 서둘러 그리고리스 사제 집으로 달려갔다. 사제는 집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그에게 커피며 레모네이드며 보리차를 갖다 주고 있었다. "사제님, 사제님 잘못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누더기 차림의 조그만 노파가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노파의 메부리 코에서 사제의 점잖은 수염 속으로 콧물이 떨어져 들어갔다. "사제님에겐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러니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드셨으니 몹시 시장하셨을 거예요. 그것뿐입니다. 사제님."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한숨까지 쉬었다. "제 말씀을 믿으세요. 모든 화는 배고픈데서 오는 거예요." 늘 배를 곯는 이 조그만 노파가 덧붙였다. "그러니, 잡수시면 곧 좋아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제에게 음식을 내어왔다. 음식이라야 강림절이어서 고기가 안 든 요리였다. 사제는 앉아 고통스럽게 음식을 오물거렸다. 빌어먹을 놈의 포티스 사제가 그의 앞니를 부숴뜨려 놓아 그리고리스사제는 건성으로 씹어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깨어진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제는 만달레니아 노파와 그녀가 가져올 약을 기다렸다. 고통은 좀 가라앉는 것 같았으나 가슴은 분노로 들끓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매부리코에게 속삭였다. "어디 말을 해요, 내 기어이 알아야 겠으니까. 저 죽일 놈의 사제가 나를 집어던질 때 본 사람이 있소?" 거 조금만 물러서시오, 콧물이 또 떨어지는구먼." "사제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런 모기 다리 같은 게 감히 거룩하신 사제님을 매치다니요?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리 없습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세요. 없어요. 없고말고요. 맹세코 본 사람은 하나도 없고말고요." 그러나 그리고리스 사제는 미심쩍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다시 주먹을 거머쥐었다. 분노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저놈의 불한당, 배신자 마놀리오스. 이 모든게 다 그놈 탓이다. 저놈이 스스로 사라키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마을을 태웠다. 반역자 망나니, 볼셰비키는 그놈이다. 내 기어이 그놈의 눈알을 뽑고 말지." 사제가 이웃 사람들을 보고 한숨을 쉬자 모두 가까이 다가왔다. "강림절이 원수로다. 고기를 못 먹다니." 사제가 한탄했다. 조그만 노파가 사제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사제님, 사제님은 편찮으십니다. 편찮으시니까 고기를 잡 수셔도 괜찮을 거예요." "나는 성직자,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럴 수는 없지." 사제가 거드름을 피우며 잘라 말했다. "기름이 안 든 빵하고 올리브, 야채나 좀 더 가지고 와요, 몹시 배가 고프니까." 음식을 잔뜩 담은 쟁반이 들어왔다. 포도주 잔도 채워졌다. 사제는 다시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사제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많이 먹어 둬야지, 잔뜩 마셔 둬야지, 힘을 차리려면.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아그하를 찾아 보리라. 아그하께서 스미르나의 파샤에게로 급사를 보내어 화급으로 무장한 터어키 군을 불러다 주시겠지. 볼셰비키들이 리코브리시 마을을 습격했으니 빨리와서 막아 줍시사! 정의와 질서가 이땅을 다스려야 할때가 아니냐고 말이지! 문이 열리자 사제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소, 만달레니아. 내 할 말이 있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제가 속삭였다. 노파가 가까이 다가와 사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물리고," 사제가 만달레니아에게 속삭였다. "닭이나 한 마리 잡아 주소." 21 헛되도다, 오, 헛되도다 다음날 아침 아그하는 일찍 일어났다. 귀를 귀울여 보았지만 고함소리도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는 몹시 속이 상했다. 그는 혼자 투덜거렸다. "이 못된 지아우르 놈들, 싸움을 그친 모양인데? 서로 더 죽이지 않고 왜 그만들 뒀지?" 그는 마르다를 불렀다. "더러운 기독교도들 같으니, 이제 더 안 싸우나? 끝난 것이냐?" "끝났습니다. 아그하님. 더는 싸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볼쎄비키들이 파트리아케스의 집을 점령하고 있어서 물러갈 생각을 안 합니다. <이집은 우리것이다>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가엾은 교장 선생님 - 이 분은 그만 세상을 떠났답니다." "죽었어?" 아그하가 뛸 듯이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다. "거 잘됐구나.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어디 좀더 듣자꾸나, 사제놈들은?" "아그하님, 두 분 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둘 다?" "네, 두 분 다. 아시다시피 사제들이란 고양이 같습지요. 모가지가 아홉 개나 붙어 있으니까요. 겨우 얼굴이 조금 갈리고 수염이 반쯤 뽑히긴 했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죽어 가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안됐어. 그것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아그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머지않아 또 한 바탕 붙을 것이니까. 내 말 안장을 매어 두어라." 늙은 곱추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아그하는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브라히마키는 어디 있느냐, 날새기 전에 잠자리에서 빠져 나갔는데." "저 화냥년 펠리기아가 새벽에 꼬리를 쳤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악마가 그년을 물어 가야지. 이놈은 아직 그년에게 혼구멍이 덜 났다더냐? 에라, 이 놈팡이 같은 놈, 네놈도 지옥에나 떨어져라. 가서 냉큼 말에다 안장을 얹어." 포티스 사제 역시 아침 일찍 잠을 깨었다. 상처가 아팠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입밖으로 아무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가 마놀리오스를 불렀다. "여보게, 마놀리오스." 그가 이렇게 일렀다. "서두르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을 보내서 우리의 채소밭, 우리의 포도밭, 우리의 올리브 과수원을 차지하게 해. 거기 오두막을 매고 경비를 세워 아무도 우리를 쫓아내지 못하게 해야 하네. 나는 동료들 몇 명과 여기 남아 있겠어. 가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제님, 아직도 고통스러우십니까?" "여보게 마놀리오스, 나야 고통스럽든 고통스럽지 않든 그게 대순가? 우리 무리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자네는 내 걱정이 급한가? 가게. 동료들을 불러 우리가 차지한 우리 땅으로 가게. 조만간 아그하가 나타날 것이야." "마놀리오스는 마당으로 내려갔다. 교장 선생은 그때까지도 마당 한가운데 있는 돌 위에 눕혀져 있었다. 눈꺼풀이 이내 굳어져 감길래야 감길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뜬채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낙네들이 월계수 가지를 꺽어다 시체를 덮어 준 다음이었다. 아낙네들 몇몇은 그때까지도 시신 옆에 웅크리고 앉아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그의 손에다 나륵풀 한 줄기를 쥐어 주었는데 혹 명부에서 만나면 그녀의 굶어 죽은 아들에게 갖다 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리코브리시 학교에 다녔고 하지 니콜리스도 그 아이를 퍽 좋아하던 터였다. 마놀리오스는 동료들을 불러 세 패로 나누었다. 모두가 몽둥이로 무장하고 창고에서 꺼낸 식료품을 나누어 떠났다. 한 패는 파트리아케스의 채소밭을 향해서 떠났고 또 한 패는 그의 포도원, 나머지 한 패는 올리브 과수원으로 갔다. 마을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세 패는 인적이 없는 거리를 지났다. 라다스 영감의 집에서는 아직 연기가 나고 있었다. 평원의 눈은 녹았고 하늘은 투명했다. 선지자 엘리야 봉우리는 눈을 쓴 채로 빛에 씻기어 말끔했다. 교구 관리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창문을 열었다. 그는 사라키나 산의 패거리를 별견하고 사태의 추이를 직감했다. 그래서 황급히 옷을 입고 그리고리스 사제에게 이 불행한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갔다. 교구 관리는 썩 기분이 좋았다. 가면서도 그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제의 귀에다 화약을 한주먹 집어 넣는 꼴이겠군. 내가 사제고 저자가 교구 관리였어야 하는 건데 운명의 여신이 눈이 멀었지." 그는 사제의 집으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문 몇개가 마지못해 열리고 닭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사제의 집에 이르러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침대에 앉은 채 날이 새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난밤에 사제는 잘 먹은 터였다. 닭이 아주 맛이 있어서 그는 귀까지 파묻고 뜯어 먹었던 것이다. 게다가 만달레니아 할멈이 상처에다 진통제를 고루 바르고 머리고 정성스럽게 싸매어 준 덕분으로 통증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좀 뭣한 게 있다면 턱수염이 헤싱 헤싱해진데다 코밑수염의 오른쪽이 깡그리 뽑혀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뚱뚱보 사제는 불에 덴 고양이 처럼, 이빨이 빠지고 한 풀 완전히 꺽 인 만신창이의 싸움에서 용약 소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고통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뒷전으로 물린지 오래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 오직 한 가지 욕망뿐이었다. 마놀리오스를 박살내는 것이었다. 마놀리오스에게 내린 파문선고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제는 마놀리오스의 눈을 후벼내어 씹어먹고 싶었다. 그의 내부에서 고대의 식인간헐유전의 본능이, 야만스러운 인간 이전의 욕망이 되살아났다. 오냐, 마놀리오스 이놈을 땅바닥에 내팽개쳐 놓고 그 위를 덮쳐 목줄을 물어 뜯고 피를 빨아 먹으리라. 아득한 옛 고대로부터 되살아난 늑대 한마리가 그의 온 영혼을 들쑤셔 놓았다. 늑대는 마놀리오스를 노려보며 울부짖었다. 기독교적 사랑, 기독교적 친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지옥, 천당 - 이 모든 것이 그리고리스 사제의 가슴속에서 사라졌다. 그의 잔혹한 오장육부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늑대의 그것뿐이었다. 교구 관리가 침을 삼키며, 자기 말이 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킬지, 어떤 말이 사제에게 가장 심한 상처를 입혀놓을지 알지못한 채 그에게로 다가왔다. "사제님." 그는 짐짓 겸손을 가장하고 허두를 떼었다. "용서하십시오. 가장 큰 배가 가장 흉폭한 폭풍의 적이 되는 법입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번개를 맞는 법입니다. 사제님, 사제님은 가장 큰 배요, 가장 높은 봉우리십니다..." "이 늙은 여우같으니, 능청떨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이실직고 하게." 사제가 거만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내 자네를 잘 아네. 이리와. 자네에겐 주교가 되고 싶은 염치가 있는 모양이네만 자네에겐 그럴 자격이 없네. 자네 입은 독을 뱉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대지 말고 바로 말하게. 어떻게 된 것인가?" 교구 관리는 속에 불이 났지만 태연한 척했다. 그는 독을 한 방울씩 천천히 사제에게 뱉을 작정이었다. "포티스 사제님은," 교구 관리가 애써 볼멘 소리를 했다. "이 싸움에서 안전하십니다. 아직 살아 계시고, 이번 싸움에서 의기양양해졌습니다." "헛소리 집어치워, 이런 건달같으니! 자네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야. 분통 터뜨리지 말고 하려던 말이나 해!" "사라키나 무리가 -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 아침 일찍 파트리아케스의 재산을 차지하느라 흩어졌습니다. 지금쯤은 아마 다 차지 했을 겁니다. 우리는 이제 끝난 것입니다." "이런 염병할 놈의, 알았다구!" "오, 사제님, 또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말해 봐!" "마을 전체가, 포티스 사제가 사제님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무릎으로 사제님 가슴을 짓이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리 가까이 와, 이 잡놈. 가까이 오래도!" 그러나 교구 관리는 겁이 나서 구석으로 피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계속했다. "설상가상이라니? 말해. 그 살무사의 혓바닥으로 네 보따리를 비우려무나. 너는 내가 죽기를 바라느냐? " "사제님, 더더욱 어찌할 수 없는 것은 - 자, 용기를 내자. 아시다시피 우리는 모두 죽을 목숨 - 가엾은, 필멸의 목숨 - 우리 모두 죽을 것입니다..." 사제가 쇠로 만든 코담배갑을 들어 교구 관리의 머리를 겨냥하고 던졌다. 그러나 교구 관리가 몸을 돌려 피해 버렸기 때문에 코담배갑은 창유리에 맞았다. 유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말하라, 말하지 않으면 내가 일어나겠다. 이 무례한 놈, 일어나서 피멍이 들도록 두들겨 주겠다. 그래 더 나쁜 소식이란 게 뭐냐?" "뭘 말입니까? 아니, 사제님, 그걸 모르셨던가요? 그걸 제가 어떻게 말씀드립니까? 이러다 제가 쓰러지겠습니다. 실은 사제님의 계시께서 ..." 사제도 더 이상은 자제하지 못했다. 그는 잠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에서 뛰어 일어나 교구 관리를 덮쳤다. 그러나 교구 관리는 의자 둘을 자기와 사제 사이에다 놓고 그 뒤로 몸을 피했다. "계씨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 교구 관리가 우는 소리로 말했다. "누가 죽었느냐! 누가? " 사제가 외쳤다. 이마의 부어오른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언제? 어디에서?" "모릅니다. 사제님.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불쌍하신 양반, 머리가 부서진 채로 도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숨을 거두시고 몸이 굳어 지신 채 파트리아케스의 마당에 불한당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것 보게, 어디 짚이는 놈 없나? 이리 와, 생각해 보고 대답해봐!" "그런 대답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사제님 짐작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날 것 같기도 한데...글쎄...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혹시..." "혹시? 자, 여보게, 생각해 봐. 생각나면 까놓고 말해. 겁내지 말고. 자네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알 걸세..." 사제는 식탁과 의자를 치우고 다정스럽게 교구 관리의 어깨를 손으로 다독거렸다. "그래, 틀림없이 자네는 알 거야. 혹시?" 사제가 그를 구슬렸다. "흠... 저는 잠깐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 본 것도 같고 - 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게 두렵고, 사제님, 지옥이 두렵습니다." "여보게, 자신을 갖게. 지옥을 두려워 말게. 내 거기서 자네를 보호해 줄 터이니 어디 터놓고 말해 봐! 나 역시 자네가 생각하는 자에게 의심이 가네. 저주받을 볼셰비키! 자네는 그 눈으로 봤지? 그렇지? 이 사람아?" 가엾은 교구 관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지옥이 두려웠고 사제 역시 두려웠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사제가 난폭하게 교구 관리의 몸을 잡아 흔들었다. "내 자네를 증인으로 삼아도 좋겠지? 이리 와서 내 옷 입는 것 좀 거들어 주게.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잘 알지? 가서 아그하를 만나겠네. 그 분에게 복수를 부탁드려야겠어. 그래, 자네 그자 봤지? 그 눈으로 똑똑히 봤지, 이 사람아?" "사제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딱 부러지게 보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사제가 미친 듯이 교구 관리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교구 관리는 무서워 몸을 움츠렸다. "자네 봤지? 그래, 자네는 봤어." 사제가 소리를 질렀다. "왜 부정 하려드나? 자네도 저 볼셰비키와 한팬가? 자네 역시 불한당인가?" 교구 관리는 눈을 들어 제 머리위에 떠 있는 사제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사제님." 그가 사정했다. "저에게 생각을 가다듬고 기억을 환기시킬 시간을 좀 주십시오..." "오냐, 기다려 주겠네." 교구 관리는 속으로, 보았다고 말은 뱉아 버렸지만 그러나 누굴 보았단 말인가? 말하지 말아야지. 말하지 말아야 하고말고. 그런 식으로 죄를 짓고 싶지는 않아,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다소 홀가분했다. 그래서 고함을 질렀다. "그 자를 보았읍니다. 사제님, 그 자를 보았어요. 이제야 기억납니다. 사라키나의 포티스 사제가 사제님을 집어던지고 무릅으로 사제님의 가슴을 짓이기려 하던 그 순간에 제가 그 자를 보았읍니다." "닥쳐. 옷 입는 거나 거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가 그 반기독교도를 보았다니 다행이야. 증인을 설 수 있겠지? 이것 보게, 자네가 기독교의 왕국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는지 모를 것일세, 이 사람아." 교구 관리는 사제의 바지, 양말 셔츠, 그리고 사제 복을 집어다 그 거구의 성직자에게 옷을 입혔다. 뿐만 아니라 구두도 신기고 허리띠도 매어 주고 제모자까지 씌워 문 쪽으로 부축해 갔다. "팔을 이리 주게, 가면 안 돼, 이 사람아. 아그하의 집까지 날 부축해 주게. 천천히 가야지 그렇게 빨리 가면 쓰나. 다녀와서 시신을 교회로 모셔다 놓았는지, 어디 보세.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네가 그 자를 보았다는 사실, 그건 잊지 말게!" 아그하는 마침 말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그는 그리고리스 사제가 머리에 붕대를 두른 채 비틀거리며 절룩절룩 걸어오는 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제! 어쩌다 그 꼴이 되었소이까!" 아그하가 물었다. "누가 감히 당신 얼굴을 뭉개어 놓았단 말이오?" "아그하여! 정의를!" 사제가 팔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정의의 복수를 부탁합니다. 누구냐고요? 마놀리오스지요! 사라키나 무리를 일으킨 것도 그 놈이오! 볼셰비키를 당신의 마을로 몰고 내려와 불을 지르고 내 머리를 부수고 내 아우, 교장 선생을 죽인 것도 바로 그 놈이오! 증인이 있습니다. 당신은 리코브리시 마을의 터어키 정부를 대표하는 관리올시다. 아그하여! 내 여기 찾아와 두 팔을 벌리고 정의의 복수를 부탁합니다! 내게 마놀리오스를 데려다 주시오. 내 손으로 심판하겠습니다. 온 마을이 목소리로 탄원하는 바입니다!" "축복받은 사제님, 너무 그렇게 떠들지 마시오. 그러다 고막 떨어지겠소. 앉으시지. 마르다가 커피를 준비할 거요. 마시고 힘을 차리셔야지, 가엾게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너무 염려 마시오. 당신은 롬노이. 당신 머리도 롬노이의 머리지. 그자들이 함께 어울려 달걀 깨듯이 서로 부숴놓은 것뿐이잖소. 그러니 너무 떠들지 마오!" "내게 마놀리오스를 데려다 주시오!" 사제는 쓰러지는 몸을 벽에다 의지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마르다가 의자를 가지고 달려와 사제를 부축하여 의자에 않혔다. 그동안 아그하는 천천히 야타간 혁대를 매고 은제 피스톨을 널찍한 적색 띠에다 꽂고 겨드랑에다 채찍을 꼈다. 문이 열리면서 조그만 늙은이 하나가 맨발로 들어섰다. 허리가 굽은데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반쯤 불에 그을리고 뺨과 손등에 화상을 입은 늙은이였다. 늙은이는 마당을 가로질러 아그하의 발 밑으로 무너졌다. "아그하여! 자비를!" 노인이 부르짖었다. "이런, 자네 라다스 염감 아닌가!" 아그하가 발로 노인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 무도회 가면은 또 무엇인가? 어디서 주웠나?" "아그하여! 놈들이 제 집에 불을 질렀읍니다. 제 항아리를, 술통을, 괘짝을, 가구를 부수고, 제 가슴을 갈기 갈기 찢었습니다." "누가? 누가 했다는 것인가. 자네가 보았나?" "마놀리오습니다! 마놀리오스! 저 볼셰비키놈이!" "우리에게 증인이 있읍니다. 아그하여!" 그리고리스 사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파나요타로스가 보았읍니다. 교구 관리가 그 자를 보았읍니다. 나 역시 그 자를 보았읍니다!" "아그하여! 그 자를 태워 죽이십시오! 저를 태웠듯이 그 자도 태워 죽이십시오! 자비를 베푸소서. 아그하여!" 늙은 구두쇠가 염소처럼 울었다. "저희들이 광장 한복판에 나무를 쌓아 역청을 부어 두겠읍니다. 그 자를 거기에 올려 태워 죽이소서!" 아그하는 머리를 긁으며 어쩔 줄 몰라 침을 탁 뱉았다. "어렵구나... 어려워. 이 롬노이 놈들, 악마나 물어 가거라!" 그가 투덜거렸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마당을 오르내리며 허공에다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는 점점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가 호령했다. "선지자 마호멧의 이름으로 사제고 귀족이고 볼셰비키고 모조리 잡아들여 느릅나무에다 하나씩 차례로 목매달고 싶구나!"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그가 돌아다보았다. 파나요타로스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페즈도 쓰지 않은 채였고 혁대에는 파스톨이 한 자루밖에 없었다. 옷은 찢기어 군데군데 피와 진흙이 묻어 있었으며 얼굴은 부어오르고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그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뿔다구도 꼬랑지도 없는 이 웃기는 괴물은 또 무엇인가! 무어라고 불러줄까? 털 빠진 곰이라고 할까, 옴 오른 낙타라고 할까, 아니면 파나요타로스라고 할까?" 파나요타로스는 벽에 기대어 투덜대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다쳐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무너져 마당의 돌 위로 굴렀다. 아그하는 세 방문객을 차례로 노려보았다. 사제는 의자에 몸을 반으로 접고 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어서 커피가 사제복 위로 쏟아졌다. 아그하의 발 밑에 엎드린 라다스 영감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혼수상태에 빠진 듯 입만 뻐끔거렸다. 파나요타로스는 한 덩어리의 누더기나 진흙을 방불케 했다. "도저히 못 참겠군." 아그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거야말로 난파선인 데다가 찢어진 깃발이며 제 바지에다 오줌을 깔긴 해군 제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 집 마당을 유리하는 이것이 기독교국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봐라, 마르다, 행주를 가져와서 이것들을 모조리 닦아 내 버려!" 사제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그하여! 당신의 신성한 정부에 대해 당신이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저기 이 리코브리시에 무스코비트(풀이: 러시아) 외교관이 와 있소. 의 임무는 터어키 제국을 유린하고 거기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웃지 마십시오, 너무 좋아하지도 마십시오. 주먹을 들어 쳐야 합니다. 늑대가 양떼에 들면 어떻게 합니까? 죽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마놀리오스를 데려다 주시오. 아그하께서 몸소 여기에 끼어들려하지 마시오. 이 더러운 일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맡겨 주시오.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당신의 집 문 앞으로 올라와 정의를 외칠 것입니다. 민성은 천성입니다! 보십시오. 백성이 소리칩니다. '당신은 마을의 아그하, 정의를 지키라'고!" 아그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리는 당장 마당에서 벌어진 일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착잡했다. 파나요타로스가 고개를 들었다. "아그하님,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파나요타로스가 과감하게 나섰다. "결정하십시오. 저를 마놀리오스가 커다란 돌멩이로 교장의 머리를 내려치는 걸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는 그 놈이 얀나코스에서 석유 깡통을 넘겨 주는 것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읍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읍니다. '얀나코스, 먼저 아그하의 집에다 불을 질러라. 아그하, 그 자도 태워 죽이고 개도 태워 죽여라. 우리 마을을 터어키 놈들에게서 해방시키자!'" "너 맹세해라, 알았나? 맹세해, 파나요타로스!" 아그하가 눈에다 핏발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맹세합니다, 아그하님!" "아그하여, 마놀리오스는 위험한 볼셰비키 분잡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필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 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오토만 제국을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자 뒤에 무스코비트가 있어서 그 자를 사주합니다. 그 자를 살려 두면 우리 모두 파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제! 당신은 꼭 거리까지 걸어 넣는구먼!" 아그하가 머리를 긁으며 나무랐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잠시 후에 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사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 짜내어 아그하에게로 다가갔다. "사실이 아니라구요?" 사제가 속삭였다. "아그하여! 당신의 생각이 그러하다니... 그러나 사태는 명백합니다. 불을 보는 만큼이나 명백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마놀리오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겠죠. 천한 목동녀석입니다. 제 양 한 마리 없는, 땅 한 뼘 없는 파트리아케스의 하인, 건달, 비천한 종놈이었읍니다. 그놈이 몇 달 동안 잔꾀를 부리더니 무스코비트의 비호에 힘입어 지금의 마놀리오스가 된 것 입니다. 아주 괴물 같은 놈이지요. 놈은 기치를 높이 들고 사람을 죽이고 남의 가정을 파괴하고 어디에서 끌어들였는지 거지 같은 포티스사제와 거러지 무리들과 손을 잡고 사라키나를 장악하고 우리 코 앞에다 볼셰비키들의 새로운 마을을 구축하기 시작했읍니다. 아그하여, 이놈은 나리의 집을 불태우고 나리를 시해하기로 맹세하고 우리 마을을 유린하고는 무스코비트를 불러들여 놈들에게 넘겨 주려 하고 있읍니다. 아그하여, 나리는 나리의 목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간과하지 마십시오. 늑대가 나라의 양떼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늑대를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여야 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그하는 다시 머리를 긁었다. 이제야 사태가 제대로 파악되기 시작한 듯싶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미친 롬노이들, 저희들끼리 찧고 까불게 내버려 둘 일이다. 나는 담배나 피우면 된다. 라키 술이나 마시면 된다.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오토만 제국이 여기에 상관된다. 무스코비트 역시 그렇다. 일이 아주 묘하게 꼬이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 내가 이 덜 떨어진 마놀리오스를 살려두면 오토만 제국이 위험해진다. 내 형편이 아주 고약하게 되는 것이다. 저 염소 수염의 말이 옳구나. 늑대가 양떼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놈이 날 죽이리라! 그는 거들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가거라, 거기 셋 다! 날 혼자 있게 해다오. 이 문제는 예삿 문제가 아니니 내 생각 좀 해보아야겠다. 나가라, 이 불한당들!" 그는 채찍을 들어 세 사람의 머리와 등을 갈기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어깨 사이에다 파묻고 서로 떠밀면서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를 뒤에서 채찍이 바람을 갈랐다. 아그하는 발로 문을 걷어차 닫고 홀로 남았다. "라키 술병이나 가져오너라!" 마르다에게 호령했다. "생각 좀 해야겠다!" 그리고리스 사제와 라다스는 마을 쪽으로 갔다. 사제는 교구 관리에게 조종을 울리게 했다. 마을 사람들이 곧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복수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거지떼들에게 얻어 맞은 치욕을 견디지 못했다. 사제가 그들 한가운데 섰다. 그는 힘을 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치욕을 당했습니다. 기필코 이 원수는 갚아야 합니다. 나는 아그하와 상의했고 우리는 합의점에 이르렀습니다. 이 불행의 씨앗은 누가 뿌린 것입니까? 단 한 사람, 우리가 파문한 마놀리오스 그 놈입니다. 그러나 이제 때는 왔습니다. 아그하께서 그 놈을 우리에게 데려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놈을 심판하게 됩니다. 울는 놈을 처단할 수 있읍니다. 놈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놈을 족칩시다. 여러분 모두 아그하의 집으로 달려가 그 집 앞에 모여 손을 들어 외치십시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우리에게 마놀리오스를 내어주시오'라고. 그것뿐입니다. 뒷일은 내가 책임지겠읍니다." 그는 교회로 달려가 아우의 주검에 마지막 키스를 보내고는 사자를 위한 기도문을 서둘러 읽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마놀리오스 생각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교장 선생의 시체를 들어 묘지로 옮겼다. 아우의 주검이 무덤 속으로 내려가는 걸 보며 사제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마을 사람들이 교장 선생의 추억을 위해 사람들에게 라키 술 한 잔씩을 돌리고 빵 한 조각, 올리브 한 줌씩을 나누어 주었다. 곧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 아그하의 집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정오경 아그하는 깜박 취해 있었다. 마침내 마음을 정했던 것이었다. 그는 문지방 밖에 웅크리고 앉아 매맞은 개처럼 기다리고 있는 파나요타로스를 불렀다. "이리 들어오너라. 에이, 이 허풍장이 같으니. 아직 걸을 수 있느냐, 아니면 아예 절름발이가 되어 버린 것이냐,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마놀리오스 일이라면 아직 걸을 수 있읍니다." "네 대가리는 보인다만 페즈는 보이지 않으니, 이 못난 지아우르야, 페즈는 어떻게 했느냐?" "아그하님, 어제 성 바질 우물가에다 두었읍니다. 만달레니아가 주웠다고 합니다. 곧 사람을 보내어 찾아오게 하겠습니다." "페즈를 쓰고 너 혼자 벅차겠거든 건장한 놈을 두엇 데리고 가서 마놀리오스를 내게로 데리고 오너라. 빨리 가거라!" "죽여서 끌고 올까요, 살려서 데리고 올까요?" "산 채로 잡아 오너라!" 파나요타로스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만 무릎 다친 것도 잊어버렸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그는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마놀리오스 이놈아, 너도 갈 데까지 갔다, 갈 데까지 갔어. 부라보, 유다 파나요타로스! 신나는구나, 내가 그놈을 잡게 되다니!" 마놀리오스와 무리들은 동구 밖 보이도마타 호수 가까이 있는 파트리아케스의 채소 밭 오두막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놀리오스는 그 동안 경비를 세워 두고 포티스 사제의 용태를 살피고 상의도 할겸 마을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조종소리를 듣고 행동을 삼가했던 것이었다. 정오 조금 지나 코스탄디스가 소식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또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아그하의 대문 앞에 모여 '마놀리오스를 내어놓아라, 우리에게 마놀리오스를 달라, 마놀리오스에게 죽음을!' 이렇게 외치라고 선동하고 있네. 마놀리오스! 놈들은 자네를 체포하여 모든 사람의 죄를 자네에게 덮어씌워 강도, 방화, 살인죄로 자네를 다스리려고 하고 있어. 아니 놈들은 그런 것보다 볼셰비키로 자네를 제거하려고 해. 말을 타고 사라키나로 피하거나 멀리 떠나게. 자네 목숨이 위험해. 놈들은 모두 자네를 찾고 있어." "내가 있을 곳은, 위험에 처한 내 형제들과 함께 있는, 바로 여기요!"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코스탄디스, 도망이라니 당치 않소. 우리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소, 자네 우리 동료들을 보았소?" "얀나코스가 자기 나귀를 찾아 올리브 과수원에다 숨겨 놓았네. 그 친구는 자기 동료들과 더불어 거기에 진치고 있어. 포티스 사제님은 걱정 말게. 내일 몸소 아그하를 찾아가 만나시겠데. 이러시더군. '아그하는 야만인이지만 근본이 사악한 건 아니다. 그 사람도 우리가 정당하다는 건 알 것이다. 그러니 만사 제대로 되어갈 게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하지만 마놀리오스, 나는 겁이 나네. 놈들은 모두 자네 피에 목말라 있어!" "코스탄디스,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내게 내리시기로 하셨다면 그자들에게 나를 내어맡기겠소. 그러면 우리 동료들에게는 아무 일 없을 게 아니오. 그 사람들이 내 죄를 논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그렇소, 강도질 한 건 나요, 나 혼자 했소.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른 것도 바로 나요. 그렇소, 나는 볼셰비키요!' 라고. 나로 인하여 우리 동료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내 발로 달려가 아그하 앞에 자복 하겠소, 지금." 코스탄디스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마놀리오스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장엄했다. 흡사 빛의 기둥처럼 그는 채소 밭 한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코스탄디스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의 눈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 마놀리오스." 그가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충고할 일은 아닐세만, 내 영혼은 나 자신과 내 가족까지 밖에는 미치지 못하네. 기껏해야 몇몇 친구들 정도지. 더 이상은 미치치 못하네. 그러나 자네의 영혼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미치고 있어. 자네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 것이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데로 하게, 오, 마놀리오스여!" "이리 오시오!" 마놀리오스가 입구의 문 쪽으로 걸어가며 속삭였다. 코스탄디스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채소밭을 벗어나 호수 가까이 갔다. 하늘에는 겨울 날씨답게 구름 한 점 없었고 공기는 투명했다. 짙푸른 호수가 햇살을 받아 빛났다. 수면에 갈대와 버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황새 한 마리가 외다리로 서서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두 마리 다른 황새가 다리를 배 밑으로 접고 물을 내려다보며 소리없이 날았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마놀리오스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호수와 벌거벗고 있는 나무와 사라키나 산의 보라색 그림자에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의 시선은 평원으로 내려와 이윽고 올리브 과수원을 넘었다. 모과나무는 이미 꼿을 피우고 있었고, 레몬은 검은 잎새 사이에서 핍나고 편도나무는 봄을 예고하며 움을 틔우고 있었다. "세상은 참 아름답지..." 마놀리오스가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사람의 혼이란 때로 그보다 더 아믈다울 수도 있어, 콘스탄디스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끝내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을로 갔다. 그때까지도 조종이 울리고 있었다. 멀리서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이 울었다. "날씨가 궂은 모양이오. 저 닭 우는 소리 좀 들어 보시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코스탄디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을 터뜨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문 채 마놀리오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성 바질 우물에 이르자 파나요타로스와 건장한 불량배 둘이서 굵직한 몽둥이를 휘두르며 관목 숲 속에서 뛰어나왔다. 파나요타로스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있었던지 두 동료를 앞서 달려왔다. "이 빌어먹을 놈,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파나요타로스가 위협적인 자세로 마놀리오스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를 질렀다. "파나요타로스, 아그하를 만나러 가오.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아그하가 날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내 발로 걸아가는 것이니까." 파나요타로스가 입을 헤벌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무섭지도 않나? 아그하와 그리고리스 사제님과 마을 사람들이 두렵지도 않나? 너는 사람의 탈을 쓴 귀신인 게로구나!" "파나요타로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겐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는 법이요. 두려워하지 않는 내 비결은 거기 있소. 자, 갑시다." "앞서서 걸어. 도망치는 건 질색이니까?" 그가 데리고 온 불한당들은 돌아다 보았다. "자네들은 그냥 가게. 이 자는 내가 직접 몰고 갈 테니까. 코스탄디스, 너도 꺼져, 이 더러운 볼셰비키 같은 놈!" 코스탄디스는 망설였다. 그는 마놀리오스를 보았다. "코스탄디스, 가시오!" 마놀리오스가 말했다. "당신 집으로, 당신 아이들에게로 돌아가시오. 날 혼자 내버려 두고." 마놀리오스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달려가 버렸던 것이다. "파나요타로스!" 마놀리오스가 한껏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시오? 왜? 내가 그대에게 무슨 몹쓸 짓을 했길래?" "그따위 목소리로 말하지 마!" 파나요타로스가 으르렁거렸다. "너는 내 속을 갈가리 찢어 놓았어. 잘 알 텐데 그러는군." 과부의 모습이 산뜻한 웃음 소리와, 붉은 입술, 새하얀 치아, 꿀물 처럼 달콤하게 흐르는 머리카락으로 다시 파나요타로스 앞에 나타났다. 그는 다시금 속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다. 파나요타로스가 외쳤다. "마놀리오스, 너를 죽이고 나면 나 역시 다 사는 것이야. 나는 오직 너를 요절내려고 사는 거야. 너를 죽이고 나면 내 목숨이 어디 쓸데 있겠어? 피스톨 한 방으로 나는 악마에게 가는 거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섰다. 조종은 그때까지도 울리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버짐나무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아그하의 집 대문 앞에 모여 있었다. "뭐라고들 소리치고 있소?" 마놀리오스가 그 소리를 알아들으려고 걸음을 멈춘 채 물었다. "곧 알게 돼, 임마. 빨리 걷기나 해!" 아우성 소리가 커졌다. 말 소리가 점점 분명하게 들려왔다. 마놀리오스도 몇 마디는 알아들었다. 그는 내용을 짐작하고 쓰디쓰게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간다, 내 이렇게 가고 있으니, 아무 소리도 지르지 말라, 내가 가고 있으니...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놀리오스가 광장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에게 달려 들었다. 파나요타로스가 성큼 나와 두 팔을 벌렸다. "아무도 이 자에게 손 대면 안돼. 이 자는 내 거야!" 그가 고함을 질렀다. "도둑놈! 살인자 볼셰비키!" 달려들어 그를 갈가리 찢을 듯한 기세로 군중들이 열을 올리며 부르짖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멀리서 마놀리오스를 알아보고 새빨갛게 약이 오른 채 달려왔다. "여러분! 저놈을 죽이시오. 파문당한 놈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이오!" 그러나 아그하의 집 문이 열리자 파나요타로스는 마놀리오스를 마당으로 차 넣었다. 문은 곧 다시 닫혔다. 아그하는 벨벳 방석에 다리를 꼰 채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무감각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석탄이 타고 있는 녹화로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방 안은 따뜻했다. 라키 술과 돼지고기 소시지 냄새를 풍기며 아그하는 느긋하게 눈을 감은 채 취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 몰려와 외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를 내놔라!"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빙긋 웃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그리스 놈들은 악마의 종자들이야. 암, 여우 같은 놈들, 불한당들, 악마 찜 쪄먹을 놈들, 늑대도 제 무리는 잡아 먹지 않는데 이 그리스 놈들은 다르단 말야. 이놈들은 지금 무슨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놀리오스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왜 이 자가 저희들에게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데, 이 친구는 아무 죄도 없다. 불쌍한 놈. 살짝 돈 것뿐, 남들에게 해를 끼친 일은 없다. 그런데도, 마놀리오스를 내놔라, 놈을 씹어먹고 말겠다? 이 잡것아, 기도나 올려 두어라. 그리고 네 운명을 맡아라. 저토록 야단들이니. 이 녀석을 잡아먹게 해주자. 내가 알 게 무엇이냐. 이 친구를 보호해줘? 백해 무익이지. 말썽만 생길 뿐이지. 이것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오냐, 이 축복받은 롬노이 잡것들아! 여기 그놈이 있으니까 데려가 잡아 처먹어라. 나는 손을 씻으면 그만이다. 나야 라키 술이나 마시며 낙타 소시지나 씹으면 그만이다. 그뿐인가, 브라히마키를 얻었고, 채찍도 있겠다. 원하는 건 다 있지, 알라 신을 찬양할지어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자 아그하는 고개를 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파나요타로스가 나타났다. 그는 문을 닫고 아그하에게 절한 다음 다리를 약간 절면서, 그러나 밝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아그하 나으리! 이놈을 붙잡아 왔읍니다. 부하들 20여 명을 거느리고 이빨까지 단단히 무장한 채 저기 채소 밭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갔던 두 놈은 그걸 보자마자 꽁무니를 빼고 말았읍죠. 제가 썩 나서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비켜라, 이 겁보들아.' 그리고는 앞으로 나섰읍니다. '손 들어라, 이 돼지 새끼 같은 것들아, 내가 바로 피나요타로스다!' 제 목소리를 듣더니 놈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마놀리오스 혼자 남았었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놈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읍니다. 제가 이놈의 목줄을 붙잡아 이렇게 몰고 왔습니다." "잘했다. 이 싸움패야!" 아그하가 새로 까맣게 물들인 수염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내 들으니 네놈이 이야기에 살을 좀 붙이는 것 같다만 까짓 어차피 너는 그리스 놈이고, 거짓말쯤은 당연지사. 마놀리오스를 이리 데리고 오너라, 좀 데리고 놀자꾸나." 파나요타로스가 밖으로 나가 마놀리오스의 팔을 끌고 주먹으로 갈기며 방으로 쳐넣었다. 마놀리오스의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아그하 앞에 서서 기다렸다. "파나요타로스, 문을 닫고 문 밖에 서 있거라." 아그하가 명령했다. 그는 술을 따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소시지를 한 입 베어물고 천천히 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그러면서 눈을 반쯤 감은 채 마놀리오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모처럼 기분이 느긋했다. "마놀리오스, 이 놈." 아그하가 멋대가리없이 말했다. "네가 내 손에 붙잡힌 게 이번이 두 번째지. 그러나 이번에는 좀 빠져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한심한 친구야, 이번에는 등 짝에다 중죄를 걸머졌다며? 들리는 말로는 노략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던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아그하님." 아그하는 얼굴을 붉히며 성질을 내고 말았다. "내 말 잘 들어라!" 그가 호통을 쳤다. "넋 빠진 짓 좀 작작해! 지난번에 하던 짓 다시는 하지 마, 성자 흉내를 내지 말라는 말이다. 내 말 들려? 내 말 안 들으면 악마가 요절을 낼 것이야, 내 말 알아듣겠어? 너 같이 순진한 친구가 노략질을 하고 불을 질러? 내 슬쩍 일러주거니와, 남들 핑계도 좀 댈 줄 알아야 해. 나는 못 속인다. 알겠어? 악마가 씌워 그랬다고 해도 나는 믿을 수가 없어." "아그하님, 내가 했습니다. 전부 내가 했습니다. 나는 성자의 흉내를 내고 순진한 체하며, 눈을 내리깔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나는 바보 같은 체 합니다만 속은 악마나 마찬가지입니다." 광장에서 아우성 소리가 높아졌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 마놀리오스를 죽여라!" "들리느냐? 저 자들은 날더러 너를 내어달란다. 나가면 묵사발을 면치 못해. 그러니 마음을 달리 먹어!" "나는 결심했습니다, 아그하님. 나는 이제 포기했습니다. 부탁드릴 말씀은 하나뿐입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해가 돌아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라키나 무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읍니다. 어차피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힘으로 하려 했고 지금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 불상사는 오직 나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아그하님, 사라키나 무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냐, 그럼 내가 일러주지, 놈들은 볼셰비키들이야. 놈들은 오토만 제국을 뒤집어 엎으려고 했다." "아그하님, 그 말만은 믿지 마십시오. 그건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평화롭게 이 땅에 뿌리박고 살고 싶어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아그하는 두 손에다 머리를 처박았다. 방 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 롬노이 놈들이 내 심장에다 불을 붙이는구나. 이놈 말을 들으면 이놈이 옳고, 저놈 말을 들으면 저놈이 옳으니, 나도 더는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알라 신께 맹세코, 언젠가는 네놈들을 떼거리로 목 매달고 말 게야, 그래야 이놈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조용하고 평화로울 게 아니냐. 저 아래 문 쪽에서 고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마놀리오스를 죽여라! 마놀리오스를 죽여라!" "도대체 날더러 어쩌라는 것이냐!" 아그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순진한 친구야, 안됐다만 내 다시 말하건대 너는 살짝 돈 데다가 성장의 가운데 토막 같은 놈이다. 너는 암탉처럼 세상의 모든 죄악을 네 날개로 감싸려 하는 놈이다. 내, 너에게 미안하다만 난들 어쩔것이냐. 저들이 원하는 데로 해주지 않으면 내 입장이 난처해진다. 결국 네가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할 방법이 없구나. 저 악마 같은 사제 말이다.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서 내 집 앞으로 몰고 온 놈은 능히 스미르나의 파샤(풀이: 터어키의 문무 고관의 존칭)에게 불평을 늘어놓을 놈이다. 내 말 알겠느냐, 마놀리오스? 내 입장도 이해해라. 어쩔 것이냐. 나로서야 너를 포기하고 저 놈들에게 내주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래봐야 밤이고 낮이고 목에 싸늘한 칼 끝이 날아들어오는 기분은 매한가지다." "아그하님, 그 말씀이 옳습니다. 나를 저들에게 내어주십시오!" "이런 빌어먹을, 제발 그 따위 목소리로 말하지 마. 너 날 미치게 만들 요량이로구나. 어서 네가 볼셰비키라는 걸 자복해라. 그래야 나도 화가 나서 너를 저 놈들에게 내어줘도 속이 덜 아플 일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양새끼를 늑대에게 던지는 것처럼 속이 찜찜해.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겠느냐? 나는 좀 마음이 편하고 싶을 뿐 이다. 그렇게 해주면 너나 저 놈들이나 다 잊어버릴 수 있어... 알겠느냐, 네가 볼셰비키라는 것만 인정하면 끝나는 거란 말이다." "좋습니다. 아그하님. 저는 볼셰비키올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마놀리오스가 대답했다. "나는 오토만 제국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오토만 제국을 하늘 높이 날려버릴 것입니다." "잘한다, 잘해. 자, 고백해, 나쁜 짓을 했다는걸. 어떻게든지 내화를 좀 돋구어주렴." "아그하여, 이놈의 세상은 불공평하고 도대체 사악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착한 자는 주리고 고통받는데 나쁜 놈들은 마음대로 퍼먹고 마시면서, 믿음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는 채 통치랍시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놈의 세상은 마땅히 멸망해야 합니다. 저는 거리로 뛰어나가서, 지붕 위로 올라가서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오너라, 주리고 박해받는 자들이여. 뭉치자, 불을 지르고 세상이 스스로를 정화시켜 성직자고 귀족이고 아그하고 모조리 쓸어버리게!'" "오냐, 잘한다, 잘해. 마놀리오스 너 이놈. 바로 그거야. 슬슬 화가 치밀어오르는구나." "아그하여, 나는 온 세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백인이고 흑인이고 황인종이고 모두 들고 일어나게 하여 강력무비한 군대를 만들어 더러운 도시, 치욕을 모르는 왕궁, 콘스탄티노플의 사원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려 했습니다." "오냐, 오냐, 잘한다. 좀더 열을 내어, 옳지, 잘하는 짓이다. 그대로 계속해!" "그러나 나는 올 데 갈 데 없는 건달, 힘도 없이 아나톨리아 골짝에 내던져진 하찮은 불한당일 뿐, 내 목소리는 리코브리시와 사라키나 저쪽까지도 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리코브리시와 사라키나 중간에서 일어나 외친 것입니다. '일어서라, 굶주린 형제들이여, 박해받는 무리들이여, 언제까지 노예로 살아야 하느냐, 언제까지 아그하의 야타간(풀이: 회교도가 쓰는 날 밑이 없는 긴 칼)에 목을 들이대야 하느냐! 일어나라, 때가 왔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다! 놈들은 호락호락 우리의 권리를 내어놓지 않을 것이다. 전쟁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 무장하라, 짓밟힌 형제들이여, 포식한 마을을 짓밟고 저항하는 자는 죽이고 저 더러운 구두쇠 라다스 영감의 집에 불을 질러라. 파트리아케스의 집은 여러분의 것이다. 들어가 거기 포진하라! 부자와 귀족을 요절낸 다음에는 다시 일어나 아그하를 쳐라! 아그하를 우리 따에서 내몰아 불 속으로 처넣어라. 그리고는...'"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아그하가 펄쩍 뛰어올랐다. 입가에 거품이 일고 있었다. 그는 마놀리오스의 목을 움켜쥐고 잡아 흔들다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문을 열어 밖으로 차내었다. 마놀리오스는 계단을 비트적거리며 굴러내리다 머리부터 계단 아래로 고꾸러졌다. 아그하는 다시 그를 따라 내려와 목을 잡고 마당으로 끌고 들어가 발로 대문을 활짝 열었다. 군중은 기가 질려 물러섰다. 아그하는 입에 거품을 문 채 마놀리오스의 목줄을 붙잡아 흔들었다. 뒤에서 파나요타로스가 나타나 피멍이든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마을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맨 앞에서 금방이라도 마놀리오스를 붙잡을 듯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아그하의 목소리가 분노에 떨면서 호령했다. "이놈을 끌고 가라, 이놈을 죽여라. 천토막 만토막으로 갈가리 찢어라. 네 놈들 모두 악마에게나 물려 가거라!" 그리고는 쾅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사제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가 마놀리오스의 한쪽 어깨를 낚아채자 파나요타로스가 다른 쪽 어깨를 붙잡았다. 군중들이 몸을 비집고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그를 두들기고 얼굴에다 침을 뱉았다. 군중은 그를 교회 쪽으로 몰았다. 어둠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다. 서쪽 하늘 멀리 검은 구름 한덩어리가 떠 조용히 별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버짐나무를 지났다. 숨을 헐떡거리며 군중은 마놀리오스를 짓밟았다. 아우성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교구 관리가 달려와 허리띠에 찬 수십개의 열쇠 꾸러미를 풀어 문을 열었다. 군중들은 사제와 마놀리오스의 뒤를 따라 교회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은제 램프 세 개가 밝혀져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성상 앞에, 또 하나는 성모 마리아 성상 앞에, 마지막 하나는 세례 요한의 성상 앞에 있었다. 다른 순교자들과 성자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다만 찬양대석으로 통하는 조그만 문가에 영혼의 찬탈자 미카엘 대천사의 벌린 날개 한 쌍이 인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교회 안에는 향내와 밀토 냄새가 났다. 이제 사제는 두 손으로 마놀리오스의 목을 잡고 있었다. 그는 마놀리오스를 찬양대석까지 끌고 가 바닥에 팽개친 다음 죽음의 천사 앞에 무릎을 꿇렸다. 그는 마놀리오스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게 되고, 이제 복수는 시간 문제인데다가 그 순간이 너무 달콤하고 코 앞으로 임박한데 흥분한 나머지 입을 열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이 목구멍에 갇혀, 나오는 것이라고는 다만 거친 숨소리 뿐이었다. 파나요타로스가, 고개를 들고 대천사의 발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마놀리오스를 레이스 달린 빨간 장화발로 걷어찼다. 라다스 영감이 군중을 밀치고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와 마놀리오스에게 침을 뱉었다. 희생자 하나를 빽빽하게 둘러싼 군중은 흥분으로 몸을 떨며 그리고리스 사제가 신호할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황금빛 술이 달린 제복을 목 위로 두르고 그리스도의 성상 앞에 섰다. 머리 위의 등잔 세 개가 땀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마의 상처가 다시 찢어져 사제의 수염은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신호하자 파나요타로스는 마놀리오스의 겨드랑에 손을 집어넣고 사제의 발치 아래로 끌고 갔다. 군중이 침을 삼키며 한 발짝씩 다가섰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사제의 목소리가 회당 안에서 엄숙하게 울렸다. "아멘!" 군중이 성호를 그으며 응답했다. "형제들이여!" 그리고리스 사제가 외쳤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내려오시어 심판하시도록 기도드립시다. 주님, 이자, 파문당한 자가 당신의 빌치에 있나이다. 이 자는 떨며 당신의 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나이다. 이 자는 노략질하고 살인하고 방화하고 형제를 이간하고 부부를 갈라놓으며 아비와 자식 사이에 증오의 불길을 붙여 놓았나이다. 이 자는 거지떼를 몰고와 불법을 저지르고 모반을 획책했나이다. 이 자는 무리를 저희 마을로 몰고와 저희 재산을 약탈하게 했나이다. 이 자가 살아 있는 한, 주님이시여, 종교와 명예가 위험을 면치 못하나이다. 이 자가 사랑 있는 한, 이 땅의 두 가지 위대한 희생인 기독교 나라와 그리스 민족이 위험을 면치 못하나이다. 이자는, 주님, 당신의 이름을 이 땅에서 소멸시킬 목적으로 사탄의 자식인 무스코비트의 뇌물을 받았나이다. 오늘 날 저희들은 이 범죄자, 독신자를 심판하러 주님의 교회에 모였나이다. 전능하신 주님이시여, 교회의 천장에서 내려오셔서 이 자를 심판하소서! 주여 저희 손을 주관하시어 이 자에게 주님의 심판을 내리게 하소서!" 그는 마놀리오스의 등에다 발을 얹고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딸과 아우를 잃었습니다! 이 자가 죽인 것입니다. 반기독자들인 무스코비트가 우리 마을로 들어왔고, 그들에게 문을 열어 준 자가 지금 내가 발을 얹고 있는 바로 이 자입니다! 사라키나는 벌떼처럼 몰려왔었고, 이 악독한 무리를 몰아와 대적하게 한 자가 바로 이자인 것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며 하나님의 목소리인 기독교도 형제들이여! 이 자를 심판하시오!" 이 말에 군중들은 분노의 외마디 소리를 질러 댔다. 세 개의 등잔아래로 그들의 핏빛이 선 눈과 피에 굶주린 이빨과 손, 뒤틀린 입술이 드러났다. 파나요타로스는 마놀리오스 옆에 쪼그리고 앉아 행여나 그가 도망칠까봐 감시하고 있었다. 혹 마놀리오스가 가볍게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면 그 역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마놀리오스가 왼쪽으로 움직이며 여차하면 덮칠 기세로 그도 왼쪽으로 따라 움직였다. 라다스 영감은 교회의 판석 위에 웅크리고 앉아 불타 버린 집이며 쏟아져 버린 기름과 포도주를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마놀리오스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저주받은 자여!" 그가 소리쳤다. "일어서라! 네가 마을에 끼친 불상사는 익히 들었을 터이다! 네 죄상을 알고 있겠지? 변명할 말이라도 있는가?" "없소." 마놀리오스가 조용히 대답했다. "너는 노략질하고 불을 지르고 살인한 것을 자복하느냐?" "모든 불상사가 나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오." "네가 볼셰비키라는 것도 시인하느냐?" "사제여,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볼셰비키적인 것이라고 몰아붙이다면, 그렇습니다, 나는 볼셰비킵니다. 그리스도와 저는 볼셰비킵니다." 교회가 군중의 고함 소리로 뒤흔들렸다. 라다스 염감이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 놈 죽이자! 저 놈을 죽여! 다른 증언은 소용없다. 제 입으로 시인했다. 저 놈을 죽여라!" 군중이 더욱 대담해져서 주먹을 쳐들었다. "죽여라! 죽여!" 그들이 고함을 질렀다. 마놀리오스가 파나요타로스의 순아귀에서 풀려났다. 사람들의 길을 내었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두 팔을 벌렸다. "나를 죽이시오." 그가 말했다. 그는 무방비, 무저항 상태로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죽이시오!" 하고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고 버린 군중이 자기를 위해 비워 놓은 길로 나섰다. 그 순간 마놀리오스가 문을 열고 뛰쳐 나간다 해도 누구 하나 막아설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놀리오스는 교회 한가운데, 천장에 단청으로 그려진 전능한 하나님 바로 아래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다시 팔을 벌렸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나를 죽이시오!" 하고 말했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나서며 파나요타로스에게 눈짓하여 그의 뒤를 따르게 했다. 교구 관리가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고 거기에 기대어 섰다. 사제의 목소리가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군중은 원수가 자신들로부터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두려워하면서 그들은 마놀리오스 가까이로 다가섰다. 그들의 뜨거운 숨결이 마놀리오스의 얼굴에 가 닿았다. 순간, 마놀리오스 역시 숨이 막혔다. 그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는 세 개의 등잔과 그 아래 봉납물이 놓인 성상을 바라보았다. 붉은 뺨에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질한 그리스도가 웃고 있었다.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설교하고 있었다. 그는 고래를 천장으로 들고 무자비한 모습으로 인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희미한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자신을 둘러싼 군중을 돌아보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번쩍거리는 단도를 본 것 같았다. 라다스 영감의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나왔다. "저 놈 죽여라!" 그 순간 누군가가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입구쪽을 바라보았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열어라, 열어!" "포티스 사제의 목소리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얀나코스의 목소리야. 사라키나 무리가 이놈을 빼앗으러 왔다!" 문이 세차게 흔들리며 돌쩌귀가 삐걱거렸다. 밖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목소리가 어울어져 말했다. "열어라, 살인자들아!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냐?" 포티스 사제의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왔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수리쳤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죄는 내가 진다! 파나요타로스! 해치워라!" 파나요타로스는 단도를 뽑아들고 그리고리스 사제 쪽으로 돌아섰다. "사제님, 당신이 이 피값을?" "내가 피값을 지불한다. 쳐라!" 이미 군중은 마놀리오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피가 튀면서 그들의 얼굴로 날았다. 따뜻하고 짭짤한 몇 방울의 피가 그리고리스 사제의 입술로도 튕켰다. "형제들..." 마놀리오스의 희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꺼질 듯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교회의 판석 바닥 위로 무너지며서 한숨처럼 신음을 토했다. 흥분한 군중들이 피 냄새를 맡으려고 무너져 가는 몸 위로 몰려들었다. 피에 젖은 입술들이 번들거렸다. 라다스 영감은 이빨이 부러져나간 입으로 마놀리오스의 목을 물고 살점을 뜯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파나요타로스는 그의 숱많은 머리카락에 단도를 닦았다. 우악스러운 턱에 피를 바른 채 그가 외쳤다. "마놀리오스! 네가 내 가슴을 찢어 놓았지. 내가 너를 죽이면 피장파장인 셈이다." 그리고리스 사제는 허리를 구부리고 손에 피를 ㅈ셔 군중에게 뿌렸다. "이 피값이 그대들의 머리 위에 떨어질지어다!" 군중은 그 핏방울을 맞고는 몸을 떨었다. "열어라, 이 살인자들아, 어서 열어라!" 새로운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리스 사제가 비틀거리며 다가온 교구 관리에게 손짓했다. "문을 열어라." 그가 명령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빨리 판석을 닦아라. 오늘 밤 자정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하해야 하니 잊지 말도록 해!" 그리고는 군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갑시다, 내 형제, 기독교도 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동참하심에 힙입어 우리 사명을 완성했소! 이제 포티스 사제를 들어오게 하여 친구의 주검을 장사지내게 합시다." 교구 관리가 문을 열었다. 남자와 여자들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마놀리오스는 어디 있느냐?" 얀나코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가서 찾아라, 여러분 비켜 주시오." 그리고리스 사제가 말했다. "너희들이 마놀리오스를 죽였다면." 포티스 사제가 외쳤다. "그 피가 너희들과 너희들 자식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시신을 찾아 가라!" 그리고리스 사제가 되풀이했다. "이놈들이 기어이 저질렀구나." 얀나코스가 소리치며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러 교회로 오라고 기독교인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문이 하나씩 열리면서 기독교인들은 추위에 몸을 떨면서 서둘러 교회로 향했다. 조용하고 싸늘하게 얼어붙은 밤이었다. 별하나 보이지 않았다. 파트리아케스의 집 대문만 굳게 잠긴 채 남자들의 목소리, 찢어지는 듯한 아낙네들의 고성이 들릴 뿐이었다. 마놀리오스는 파트리아케스의 커다란 침대 위에, 미켈리스의 어머니가 마련한 혼수감에서 꺼낸 비단 시트로 갓 태어난 아기처럼 싸인 채 누워 있었다. 얀나코스는 마놀리오스의 발에 머리를 대고 어린 애처럼 울었다. 울며 가슴을 치다가 지쳐 친구의 발에 머리를 대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코스탄디스는 미켈리스를 찾으러 사라키나로 가고 없었다. 여자 두셋이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벽을 향한 채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고 있었다. 포티스 사제는 사랑하는 형제의 주검 위로 몸을 구부린 채 등잔 불 빛에 의지하여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고요하고 창백했다. 칼자국이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뺨을 가르고 지나가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팔을 뻗쳐 죽은 형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손을 거두고 다시금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마르다 노파가 얼마 전에, 아그하가 도시로 전령을 보내어 보병과 기병연대의 급파를 요청했다고 경고한 바 있었다. 아그하는 볼셰비키들이 리코브리시로 들어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보고했던 것이었다. 포티스 사제는 주먹을 쥐고 생각했다. 포병을 끌고 오겠지. 어떻게 대항해? 우리를 깡그리 쓸어 버릴 것이야. 우리는 다시 길바닥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것도 곧. 오, 주님, 언제까지나? 당신은 선하신 분이 아니신가요? 당신은 의로우신 분이 아니신가요? 저는 알 수가 없나이다... 그는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마놀리오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오, 마놀리오스, 그대는 헛되이 목숨을 버렸구나. 놈들은 그대가 우리 죄를 혼자 짊어졌다고 해서 그대를 죽이고 말았다. 그대는 이렇게 외쳤다. "노략질한 것은 나요, 살인하고 방화한 것도 바로 나요! 오직 나일 뿐, 다른 사람은 아니요!" 라고. 그럼 그 자들이 우리를 이 땅에 뿌리를 박게 해줄 줄 알았지... 마놀리오스여! 덧없구나, 그대는 덧없이 제 몸을 희생시킨 것이야... 포티스 사제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왔음을 알리는, 명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헛된 일입니다. 그리스도시여, 헛된 일입니다. 당신이 고난을 당하신 지 2천 년이 훌렀건만 인간들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그리스도시여, 언제 이 땅에 태어나 다시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 영원토록 저희들 가운데 거하시겠나이까. 새벽녘에 포티스 사제는 마놀리오스가 누운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선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그는 노란 카나리아를 쫓아 작은 관목 아래까지 따라갔다. 그는 조그만 아이였다. 새를 쫓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세월은 흘러갔다. 그는 자라서 청년이 되고 이윽고 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탐스러운 어른이 되었다. 다시 세월은 흘러 그의 머리는 잿빛으로 변하고 이윽고 백발이 되었다. 그는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할일없이 노란 새를 쫓고 있었다. 이 끝없는 추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카나리아는 이 가지에서 저가지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날며 처량하게 울어 대었다. 포티스 사제는 잠깐 눈을 붙였던 것이지만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는 수백 년을 살면서, 수천만 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늘 새로운 기력으로 작은 카나리아를 쫓아다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새였을까? 자기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포티스 사제는 이따금씩 자기를 놀리는 듯이 휘파람을 불어 대고 이따금씩은 사로잡힌 새처럼 머리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노란 새가 어쩌면 카나리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솟구치는 것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게 뭐든, 무슨 상관이냐, 죽을 때까지 쫓으리라." 포티스 사제는 중얼거렸다. 그는 일어서서 소리쳤다. 남녀를 불문하고 동료들을 모조리 파트리아케스의 널찍한 마당에 모이게 했다. 그날 밤으로 채소밭, 포도원, 올리브 과수원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마당이 붐볐다. 사제가 외쳤다. "여러분,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쥐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당부하려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참아 낼 수 있고 이번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젯밤, 포병을 포함한 터어키 육군의 보병과 기병이 우리를 목적삼아 진군해 온다는 소식이 날아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이곳을 떠납시다. 시간이 없습니다. 질 수 있는 대로 등짐을 지고 이곳을 뜨는 겁니다. 리코브리시와 사라키나를 떠납시다! 우리는 이제 더도 덜도 아닌, 이 땅위의 초라한 그리스인입니다. 이를 악물고 나아갑시다. 안 되지요, 그들은 우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사제님." 루카스가 이미 성 게오르그의 깃발을 들고 문을 열면서 외쳤다. "어림없습니다, 사제님. 우리 민족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값진 물건으로 가득 찬 파트리아케스의 창고로 몰려갔다. 얀나코스는 밀가루와 기름, 포도주를 나누어 주었고 포티스 사제는 옷과 시트와 담요를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또 돌쩌귀에서 문을 떼어 내어 마놀리오스의 시체를 그 위에 올렸다. 건장한 젊은이 넷이 어깨로 그 문짝을 운반했다. 노인들이 성상을 받들고 포티스 사제가 앞장 선 채 그들은 담담한 걸음으로 사라키나를 바라보고 나아갔다. 포티스 사제가 외쳤다. "먼저 사라키나 근처로 갑시다. 거기에다 마놀리오스를 묻읍시다. 그런 다음 땅을 파 우리 조상의 유골을 파내어 다시 한번 떠나는 겁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시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오. 각오를 새롭게 합시다. 우리는 불사신인 것입니다!" 그들은 성 바질 우물가에 이르렀다. 포티스 사제는 거기에 잠시 기대 서 있었다. 그가 다시 호령했다.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리셨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떠납시다. 우리에게는 그분에게 젖을 먹일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얀나코스는 대열의 후미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나귀에서 내려 묵묵히 그 옆을 걷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에게는 세계가 차츰 어두워져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얀나코스가 눈을 문지르자 세계는 다시 겨울아침의 창백한 광채로 빛났다. 가볍고 부드럽게 그가 나귀의 엉덩이를 쓸어주자 이 사랑스러운 짐슴은 즐거운 듯이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돌려 자기의 길동무를 바라보았다. 나귀는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주인님은 어떻게 된 것일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왜 오늘은 배를, 목을, 긴 귀를 쓰다듬어 주지 않을까? 그들은 사라키나로 통하는 좁은 길로 접어들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문짝 위에 실린 마놀리오스가 가고 있었고 그 뒤로 남자와 여자들이 따랐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날씨는 청명했고 조그만 선지자 엘리야 교회는 첫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교회 뒤로 멀리서 산들이 혹은 장미빛으로 혹은 창백한 남핍으로 빛났다. 코스탄디스는 동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포티스 사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말했다. "사제님, 미켈리스는 선지자 엘리야 봉우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은제 복음서와 마리오리의 머릿단을 가지고 가 수도사의 독방에 자리를 잡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이곳이 좋아. 사람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 절대로 만나지 않겠어. 나는 여기 살다가 여기서 죽겠어.'" 포티스 사제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코스탄디스, 어쩌면, 어쩌면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미켈리스의 평화를 방해하지 말자. 그게 그 친구의 길이라면 우리는 우리 길을 가자." "사제님, 제 길은 어떤 것입니까?" 코스탄디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놀리오스를 매장하는 대로, 코스탄디스, 자네는 집으로 돌아가게." 사제가 그의 머리에다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아내와 애들에게로 돌아가게. 그게 자네의 길일세." 그들은 지금까지 교회로 써오던 동혈 앞에다 마놀리오스의 시체를 내렸다. 사제가 사제복을 입고 장례식을 집전했다. 이따금씩 무리들 가운데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포티스 사제가 울음을 참지 못해 간간이 말을 끊기도 했다. 모두가 이 사랑하던 자의 주검으로 다가와 아쉬운 듯이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무덤 자리가 만들어지자 사제는 가장자리로 나아가 마놀리오스에게 몇 마디 작별인사를 고하려 했다. 그러나 목이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별안간 포티스 사제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조그만 노파 한 사람이 대담하게 앞으로 나서더니 머리를 풀고 울면서 마놀리오스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 선한 젊은이 이름은 눈 위에 새겨졌는데 해가 뜨고 눈이 녹자 물에 떠내려가 버렸네. 얼마 후 포티스 사제가 손을 들고 출발 신호를 보냈다. 그가 소리쳤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행군은 다시 시작됩니다. 여러분, 힘을 냅시다!" 그들은 다시 동쪽으로 끝없는 방랑길에 올랐다. 옮긴이의 말 겨울에 오신 그리스도 그렇게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뿐만 아니라 역자 개인적으로도 맹위를 떨친 혹한보다 더한 좌절과 아픔을 견뎌야만 했던 겨울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서는 일시 외도였던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이로 인하여 여러 날을 사경을 헤맬 정도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육신과, 이의 회복도 무시한 채 '나는 다시금 일어서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출발했던 유학의 길마저 다시금 육신이 쓰러져 돌아오게 되기까지 실로 악몽 같은 한 해를 보내고 그 해 겨울을 사뭇 누워 있었다. 하나님의 진정한 섭리와 긍휼하심이 계시다면 이렇게 엉뚱할 수 있느냐면서 깨닫지 못한 자다운 항변의 침을 하늘을 향해 뱉아 내며 누워 있을 즈음, 어느 날 예고없이 외우 이형이 낡은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왔다. 실의에 차 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고 약값이라도 만들어 보라면서 가지고 온 카잔차키스의 영역판 소설 '그리스인의 수난, The Greek Passion'을 번역해 보라고 두고 갔다. 이 소설의 희랍어판 원제목은 '그리스도의 재수난, X?????????????????????'이며 불역판이 되면서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로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병상에서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거짓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나는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난날을 깊이 반추하면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글이 짧고 붓이 둔하지만 감히 용기있게 말하건대, 내가 이 책을 한국어판으로 번역하게 된 것은 영적인 차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결코 스스로 무슨 자고함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작품 속의 고뇌하는 인물들, 이를테면 마놀리오스라든가 포티스 사제의 영혼적 투쟁이 마침 그즈음의 역자의 영적 방황과 부딪혀 격렬한 스파크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역을 각오하면서도 그만큼 어떤 기이한 전율 같은 것을 느끼면서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궤적을 탐색해 보려고 애를 썼다. 독자의 자유로운 이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독자를 위해서 - 이 작품이 비록 그리스도의 수난을 오늘에 재 조명한 것이기는 하나 이는 결코 기독교 전유물격인 진부한 내용이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외적인 입장의 독자들에게서 보다 적나라하게 탐독되어야 할 것으로 확신한다. - 몇 마디 도움말을 사족처럼 달아보고자 한다. 그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을 영역한 P. A. 비엔은 그 책의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잠깐 이 작품에 대해 대략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의 '오딧세이'는 1938년에 발표되었다. '이 '오딧세이'는 호메로스의 동명 작품이 아님, 이 작품에는 Odyssey; a modern sequel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현대 속편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나이 65세 되던 해, 친구들과 부인의 격려를 받아 용기를 얻은 그는 본격적인 형태의 장편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두 달에 걸쳐 '그리스인의 수난'을 완성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죽을 때까지 9년 동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왕성한 창작력으로 '자유냐 죽음이냐',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하나님의 사람 - 성 프란시스' 등 여덟 권의 작품을 썼다. ...'그리스인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리스 내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파문을 당할 곤경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나이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쓴 것이며, 내용상 혁명적인 요소들과 종교 현실의 치부를 참회적으로 발가벗긴 작가 정신은 발표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을 낳았던 것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이 작품에서 상징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재수난'Recrucifixion'이 결코 신학적 교리 문제로까지 비화될 성질의 쟁점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들의 반 진리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행위는 시시각각 진리를 거부하거나 그것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얘기해 본다면 진리와 사랑의 길을 인류 앞에 제시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은 그리스도를, 우리가 그의 사랑의 법대로 살지 못하고 여전히 어둠의 자식으로서의 행위를 일삼음으로 말미암아 시시각각 그리스도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는 죄악을 범한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품 속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발아서 권위와 부를 축적할 뿐 아니라 터어키 군대의 학살을 받아 헐벗고 굶주린 동족의 참담한 현실조차 외면하는 살찐 성직자 그리고리스와 그의 교주 주민들의 비정 같은 것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헛되이 돌리면서 그 분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한 전형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굶어 죽어가는 동족을 보고 내면에서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좇아 그들과 고난을 함께 하는 주인공 마놀리오스를 살해하는 일에 앞장서는 파나요타로스 같은 인물이 또한 이의 한 모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시시각각 들려오는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진리의 편에 서는 올바른 선택적인 삶을 거부하면서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불의의 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일까? 카잔차카스는 이처럼 단단하고 식어져 버린 양심의 문을 통렬하게 두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위에서 소개한 P. A. 비엘 역시 "카찬차키스는 그리스도를 '오딧세이'처럼 정의와 사람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물로, 또한 그런 자유민의 전형으로 보았다" 고 하였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일관된 그리스도관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그리스도관이 결코 옳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자초하면서까지 인류의 양심을 일깨운 그리스도의 사랑법은 결코 투쟁의 방법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은 이른바 죽음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작가는 작가 특유의 필치로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디어가는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게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사랑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주인공 마놀리오스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며칠 전 내가 양 우리 옆에 앉아 있었는데, 주님께서 조용히 내 곁 벤치에 와 앉으셨읍니다. 그 분은 빈 자루를 땅에 내려놓으시면서 한숨을 쉬셨읍니다. 그분의 발은 먼지투성이었읍니다. 못이 박혔던 상처가 선명히 드러나 보였읍니다. 피를 흘리고 계셨읍니다. '그대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서 왔다'... '리코브리시 마을도 지나왔어. 사랑스러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더군. 의연금을 모으러 이 자루를 가지고 갔었는데, 보게나, 여기 그대로 가져왔어. 텅 빈 채로 말이야. 난 지금 몹시 지쳤고 배가 고파...'" 작가는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사는 성직자의 전형으로서 그리고리스라는 인물을 설정하고는 성직자의 비행을 다음과 같이 무섭도록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 그는 약방을 벌여 놓고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면서 무게에 따라 그리스도를 분배한다. 그는 돌팔이 의사처럼 무슨 병이든지 고친다고 허풍을 떤다. '당신은 무엇이 탈났습니까?' '거짓말을 했어요.' '좋습니다! 그리스도 3그램을 쓰십시오. 그만한 피아스터를 내십시오.' '나는 도적질을 했습니다.' '4그램의 그리스도를 사용하세요. 그만한 돈이 되겠어요?' '난 살인을 했고.' '오, 이 가엾은 사람. 당신은 매우 중병이오. 오늘 저녁 당신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그램의 그리스도를 복용해야 하오. 값은 굉장하오.' '조금 깍을 수 없을까요? 사제님.' '안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죄값에 당연한 값이요. 지불해야 하오. 아니면 지옥 아랫목으로 가게 될 거요..." 어려웠던 그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이형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은 사실 그가 번역한 것이었다. 또 그랬으면 더 좋았을 법하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주님께서는 이 못난 당신의 종에게 깨달음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해 결울 병상을 찾아오셨음을... 좋은 책을 찾고 있는 고려원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의도하는 카잔차키스전집에 가능하면 '하나님의 사람 - 성 프란시스, Saint Francis'를 넣고 싶다. 끝으로 여러 차례 친절하게 그리스 정교의 의식과 그곳 풍속에 대한 자문에 응해 주신 한국정교회의 다니엘 신부님께 사의를 표하면서 모쪼록 본서가 진정한 독자들에게 사랑받게 되기를 소망한다. 1982. 7. 1. 김 성 영 지은이의 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5: 크레타 섬 헤라클리온에서 출생.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 대해 크레타가 혁명을 일으켰던 시기로, 그의 초급 교육은 모친 마리아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2 - 06: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률학을 공부. 1907 - 09: 아테테 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 희곡 '동이 트면'과 '뱀과 백합'의 발표로 그리이스 문학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 파리로 유학, 프랑스 대학과 소르본느 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송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09: 단막극 '코미디'를 발표.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에 열중. 1911: 첫번째 부인 갈라테아와 결혼. 1910 - 13: 니체의 '비극의 탄생'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케르만의 '괴테와의 대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천한자의 보배', 다윈의 '종의 기원', 베르그송의 '웃음' 등의 작품을 그리이스어로 번역. 1914: 아내의 이름으로 국민 교육상이 공모한 교과서 채택에 5권의 교과서를 제출, 모두 채택이 됨. 1933: 단테의 '신곡 Divine Comedy'을 번역. 1936: 괴테의 '파우스트 Faust' 완역. 1938: '오뒷세이아 Odysseia'를 발표. 1942: '그리스 인 조르바 Zorba the Greek'를 발표, 이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됨. 1945: 그리스 내무부 장관에 취임. 엘레니 사미오스와 재혼. 1947 - 48: 유네스코'UNESCO'에서 고전 번역부장 역임. 1948: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The Greek Passion'를 발표, 이후 스웨덴어, 독어, 영어 등으로 번역됨. 1950: '자유냐 죽음이냐 Freedom or Death' 발표. 1951: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발표. 노벨상 후보로 오름. 1953: '자유냐 죽음이냐'가 그리이스 정교회의 규탄을 받았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독일어로 번역된 후 그리이스 교회의 금서목록에 오름. '성 프란치스코 Saint Francisco'를 발표, 서바이쩌에게 바침. 1956: '영혼의 자서전 Report to Greek' 발표. 1957: 마지막 작품 '동족상잔'을 발표. 시, 소설, 전기, 희곡, 철학, 논문, 여행기 등 평생에 걸친 다양한 방면의 문학활동에 막을 내림. 1968년 아내 엘레니 카잔차키스에 의해 편지를 중심으로한 자서전 '인간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