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저승으로의 여행과 죽음의 오솔길 지하세계의 이시타르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판본에 의하면 사랑과 아름다움, 생 식의 여신인 이시타르는 애인 타무즈를 찾으러 지하 세계로 간다. 이 이야기는 농업 신화이 기도 하다. 이시타르가 지하세계에 있는 동안에는 농작물이 전혀 자라지 않는다. 즉 신화상 에서는 겨울철이 이시타르의 부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사랑의 여신 이시타르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이시타르는 악독한 언니 에레시키겔이 다스 리는 죽은 자들의 나라를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시타르는 죽은 자들의 나라 를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른 신들에게 허락을 구했다. 신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이시타르는 저승으로 길을 떠났다. 저승의 첫 번째 문에 이르러서 이시타르는 말했다. '오 문지기여, 문을 열어 주오,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요. 그 대가 문을 열지 않아 내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산 사람들을 먹게 하겠 소. 죽은 자들의 수가 산 자들의 수보다 훨씬 많아지도록 말이요.' 문지기는 여왕 에레시키갈에게 가서 이시타르가 문 앞에 와 있다고 알렸다. 에레시키갈은 아름다운 동생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도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레시키갈은 얼굴 이 창백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의 마음을 나한테 쏠리게 한 게 누구지?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을 여기로 끌어 들였을까? 난 빵 대신 흙을 먹어야 하나? 맥주 대신 흙탕물 을 마셔야 하나? 아내를 남겨 놓고 떠나 온 남자들을 위해 애도해야 한단 말인가? 창창한 앞날을 두고 죽은 어린 것들을 위해 애도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에레시키갈은 문 지기에게 말했다. 이시타르가 지하 세계의 법을 따를 경우에만 들여보내라고. 죽은 자들은 지상에 거처했던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단 죽고 나면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지하 세 계에는 빛이라는 게 없다. 또 영혼들은 먼지와 흙만 먹어야 했다. 첫 번째 문에서 이시타르는 이 법에 따라 왕관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문에서는 귀거리를, 세 번째 문에서는 목걸이를, 네 번째 문에서는 가슴에 단 장신구를, 다섯 번째 문 에서는 허리띠를, 여섯 번째 문에서는 팔찌와 발찌를 풀고 일곱 번째 문에서는 옷을 벗었다. 마침내 이시나르는 알몸이 되었다. 이시타르가 마지막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에레시키갈은 동생에게 벌컥 소리를 질렀다. '여긴 뭐하러 온 게냐? 죽은 자들의 꼴이 어떤지 알고 싶은 게냐?' 에레시키갈은 부하들을 시켜 이시타르에게 60가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것은 죽은 자들의 죄를 벌할 때 사용하는 형벌 가운데 하나였다. 60가지 고통은 이 아름다운 여신의 신체 각 부위에 아픔을 주었다. 한편, 다른 신들은 천상의 옥좌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들의 근심은 갈수록 불 어났다. 이시타르가 죽은 자들의 나라에 있는 상태라 지상에서는 모든 생식 작용이 정지됐 다. 남자들은 더 이상 여자들에게 씨를 뿌리지 않았다. 소나 말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않아, 사람들이 먹을 게 없었다. 언제 기근이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농 업의 신 파프수칼은 달의 신 신에게 달려가, 이시타르가 지하세계에 오래 머문다면 지사의 모든 생물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이시타르의 오빠인 물의 신 에아는 아수슈나미르라는 거세된 남자를 창조했다. 에아는 아수슈나미르를 지상의 어떤 수컷보다도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수슈나미르를 지하 세계로 보내 에레시키갈을 즐겁게 해 줌으로써 아 름다운 이시타르를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아수슈나미르가 저승의 첫 번째 문에 도착하자, 문지기는 지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가 여왕을 찾아왔다고 에레시 키갈에게 보고했다. 에레시키갈은 너무 흥분하여 이시타르에 관한 일일랑은 모두 잊고 말았 다. 이시타르가 일곱 번째 문, 그러니까 저승에서 나오는 첫 번째 문을 니나자 문지기가 그녀 의 옷을 돌려주었다. 이와 동시에 아수슈나미르는 에레시키갈의 왕국으로 통하는 첫 번째 문을 통과했다. 이시타르는 여섯 번째 문을 나서면서 팔찌와 발찌를 돌려 받았다. 이와 동시 에 거세된 남자는 두 번째 문을 통과했다. 다섯 번째 문에서 이시타르는 마법의 허리띠를 돌려받았고, 아수슈나미르는 세 번째 문을 통과했다. 이시타르가 네 번째 문을 나와 가슴 장 신구를 돌려 받을 때 아수슈나미르는 네 번째 문안으로 들어섰다. 세 번째 문에서 이시타르 는 목걸이를 돌려받았고, 아수슈나미르는 다섯 번째 문을 통과했다. 이시타르가 두 번째 문 을 나와 귀거리를 돌려받음과 동시에 아수슈나미르는 여섯 번째 문을 지났다. 이시타르는 첫 번째 문, 즉 지하세계에서 나오는 마지막 문을 나와 왕관을 돌려 받음으로 써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한편 아수슈나미르의 몸에 남은 것이라고는 옷밖에 없었다. 아수슈 나미르가 지하세계로 통하는 마지막 문을 통과하면서 옷을 벗는 순간, 에레시키갈은 그가 자기가 기대했던 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수슈나미르는 거세된 남자가 아닌가! 이 지하세계의 여왕은 자기 오빠와 동생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시타르가 땅 위의 세상으로 돌아오자 모든 생명체들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지하세계의 마르웨 옛날에 마르웨라는 처녀가 있었다. 마르웨와 그녀의 오빠는 원숭이들이 자기네 콩밭에 침 입하는 것을 책임지고 막아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오누이는 자기네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 다 보니 몹시 목이 말랐다. 오누이는 밭에서 나와 물을 마시러 연못으로 갔다. 물을 마시고 밭으로 돌아와 보니, 원숭이들이 콩을 전부 먹어 치운 게 아닌가. 마르웨는 부모님한테 꾸들 을 게 두려운 나머지 연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마르웨의 오빠는 집으로 달려가 이 끔 찍한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은 어찌나 놀라고 슬펐던지 콩밭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르 웨는 연못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마침내 눅은 자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 마르 웨가 도착한 곳은 어떤 노파가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 노파는 자기가 마르 웨를 죽은 자들의 나라로 안내할 사람이라고 밝혔다. 마르웨는 여러해 동안 그 노파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거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르웨는 심한 향수병에 걸려 부모님과 오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노파는 마르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 마르웨가 산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파는 어느 날 마르웨에게 찬 것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뜨거운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마르웨는 그게 뭘 묻는 건지 알지 못했다. 노파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결국 마르웨는 찬 것을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 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노파는 마르웨에게 찬 물이 든 흙항아리에 손을 담그라고 시켰다. 마르웨가 항아리에서 손을 꺼냈을 때 마르웨의 손은 보석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르웨는 발과 다리도 항아리 속에 넣었다가 꺼냈다. 그러자 발과 다리도 역시 보석으로 뒤덮였다. 노파는 미소 띤 얼굴로 마르 웨에게 아주 좋은 옷을 입힌 다음 마르웨를 지상의 집으로 보내 주었다. 노파는 또 마르웨 에게 예언도 해 주었다. 마르웨가 머지않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 사워예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었가. 마르웨가 좋은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족들은 마르웨가 오래 전에 죽었을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마 르웨의 좋은 옷과 보석들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지방에 혼기가 찬 부자 처녀가 있 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수백 명의 구혼자들이 마르웨의 집을 찾아왔 다. 마르웨는 아무리 잘생긴 남자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사워예라는 남자만은 예외 었다. 사웨여는 지독한 피부병에 걸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웨는 죽은 자들의 날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터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마르웨는 사워예가 가장 착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워예와 마르웨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첫날 밤 이 지나고 두 사람이 완전한 부부로 맺어지자 사워예의 피부병이 씻은 듯이 사라져, 본래의 얼굴이 나왔다. 사워예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마르웨에게 보석이 많이 있었으므 로 이들은 가축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웨와 사워예는 그 나라에서 제일 가는 부자 가 되었다. 이 얘기가 '마르웨와 사워예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 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마르웨에게 청혼했던 수많은 남자들이 사워예를 시기했다. 게다가 마르웨와 사워예의 친구나 이웃들까지도 태도가 돌변하여, 이 유복한 젊은 부부를 괘씸하게 여겼다. 두 사람에 대한 적개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사람들이 사워예를 습격해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죽어본 경험이 있는 마르 웨는 지하 세계의 비밀들을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 다시 살려 내는 방법까지도. 마르웨는 남편의 시신을 집안으로 옮겨다 놓고서, 죽은 자들의 나라에서 노파에게 배운 마법의 주문 을 외웠다. 사워예는 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로 다시 살아났다. 사워예를 죽인 사람들이 사 워예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고 다시 나타나자, 사워예는 그들을 모두 죽였다. 마르웨와 사워 예는 여생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그리고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 다 이미 죽음을 겪어 보았으므로. 사비트리(인도) 고대 인도에 사비트리라는 아름답고 신앙심 깁고 보기 드물게 지혜로운 공주가 있었다. 사비트리가 자라 어엿한 숙녀가 되자 아버지인 아시바파티 왕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 다. 딸이 결혼해서 대 이을 자식을 낳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했 다. 사비트리는 청혼하러 찾아오는 젊은 왕자들보다는 철학적 문제들에 훨씬 더 관심이 많 았으니까. 사비트리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재물이나 보석, 권세 따위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 제들이었다. 당시에는 대개 왕들이 딸의 신랑감을 골랐다. 그러나 사비트리가 너무나 지혜로 웠기 때문에 왕은 남편감 고르는 일을 딸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비트리는 남편감을 부유한 왕자가 아닌 성자들 가운데서 고르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여, 아시바파티 왕을 깜짝 놀라게 했다. 왕은 처음에는 무척 충격을 받았지만, 딸이 왕자 정도의 수준은 충분히 되는 성자를 남편으로 선택하겠다고 설득했기 때문에 왕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야 비로소 딸이 남편을 맞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왕은 은근히 기뻐 흔쾌하게 딸의 청을 받아들였다. 사비트리는 사드후(sadhu, 성스런 고행 자) 차림을 하고 온 나라를 돌아다녔다. 사비트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영혼, 뛰어난 지혜, 자비심, 신앙심에 탄복했다. 한편, 딸이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우 자 왕은 점점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비트리의 선행에 관한 소식이 왕국 사방에서 쏟아 져 들어왔다. 사드후들까지도 사비트리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사비트리는 아버지의 궁전으로 돌아와, 궁전 대문 앞에 모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 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주었다. 아시바파티와 그의 조언자인 현자 나라다가 대문으로 사비트 리를 맞으러 나오는 등 궁전 안은 온통 떠들썩했다. 이것은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왕은 어떤 방문객도 문으로 나와 맞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사비트리는 남편감을 골랐다고 발표 했다. 완전히 두 눈이 먼데다 왕국마저 잃은 왕이 한 명 있었다. 사악한 찬탈자가 왕이 장님 이라는 점을 악용해 왕위를 빼앗았던 것이다. 이 왕에게 사트야반트(진리 탐구자)라는 아들 이 있었다. 사트야반트는 왕위를 되찾을 때를 기다리며 사드후들 속에 묻혀 지낸다고 했다. 사비트리는 성스런 고행자로 살아가는 사트야반트만이 지혜롭게 왕국을 다스릴 수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트야반트는 그 자신이 궁핍한 생활 을 해 보았기 때문에 미망을 꿰뚫고 매사에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 나 사비트리가 사트야반트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나라다는 시무룩해졌다. 현자 나라다는 사비트리에게 말했다. '공주님, 공주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만, 공주님은 그 사람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사트야반트는 공주님과 결혼하면 1년 안에 죽게 되어 있답니다.' 그때까지 사비트리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데 감격해하던 아시바파티 왕은 이 말을 듣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사비트리 말을 듣자하니 사트야반트가 완벽한 사윗감인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그러나 아시마파티는 사랑하는 딸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어쩌면 사비트리가 이기를 잉태하기도 전에 사트야반트가 죽을지도 모르 는 노릇이었다. 아시바파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비트리에게 절대로 그 왕자와 결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비트리는 현명했다. 사비트리는 단 일 년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편이 낫다며, 자기의 결혼을 축복해 달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사트야반트 가 죽게 되어 있든 말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트야반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신들이 어떻게 운명을 정해 놓았든 간에 자기는 거기에 따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사비트리는 말했 다. 결국 아시바파티는 딸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아시바파티는 딸이 혼례를 성대하게 치를 작정으로 이런 저런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비트리는 왕가의 풍습에 따 르지 않고 고행자들의 방식대로 식을 올리겠다고 고집했다. 사비트리는 사치는 헛된 미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아시바파티는 딸의 청을 받아들였다. 사비트리는 사드후들이 생활하는 숲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고행자의 옷을 입고 사트야반트 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비트리는 세상에서 제일 깊고 어두운 숲에서 남편의 묵상 생활에 동 참했다. 사비트리는 남편에게 이미 정해져 있는 죽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 비트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줄 때면, 사람들은 '당신이 과부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하고 말했다.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 갈 무렵, 사비트리는 남편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신들에게 기도했다. 결혼 1주년이 되기 전날 밤, 사트야반트는 아내에 게 깊은 숲으로 같이 나무를 베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점점 울창한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짐승들은 사트야반트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도망쳤다. 작은 새들은 자기들의 노래가 사트야반트가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최선 을 다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두 사람은 더 깊이깊이 숲으로 들어갔다. 숲이 너무 울창 해 햇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트야반트는 어깨에 도끼를 둘러 맨채 사비트리와 나란히 계속 걸었다. 드디어 사트야반 트가 어떤 커다란 나무에 대고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끼를 떨어뜨리 더니 얼굴이 종잇장처럼 아얘졌다. 사트야반트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사비트리에게 말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늘이 머리를 찌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고(뇌출혈 이었을까?). 사트야반트는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땅바닥으로 쓰러져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 다. 그 순간 사비트리는 낯선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검푸른 피부에 빨간 눈동자를 가 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지배자인 야마였다. 당연히 사 비트리는 이 낯선 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너는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야마는 줄을 꺼내 사트야반트의 몸에서 영혼을 빼냈다. 야마가 그 영혼을 자기 왕국으로 가지고 가 려고 돌아서자 사비트리는 야마 앞에 엎드려 길을 막았다. 야마는 그래 봐야 소용 없다고,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의 시간이 온 거라고 사비트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사비트리는 야마에 게 사트야반트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야마는 사비트리에게 이제 길을 비켜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러자 사비트리는 일어나서, 저승으로 가는 야마를 뒤쫓기 시작했다. 야마는 사비트리에게 여기는 죽은 자들의 땅이지, 산 자들의 땅이 아니니 돌아가라고 말 했다. 좋은 아내가 되려면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어서 가서 장례식이나 제대로 치르라는 것이었다. 매몰차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야마에게도 일말의 동정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심한 병을 앓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고 그들의 영혼을 가져가는 일도 종종 있 으니 말이다. 죽은 자들의 왕은 사비트리의 집요함에 감동했다. 야마가 말했다. '남편에 대한 너의 사랑이 참으로 극진하고 용기 또한 대단한니, 내 한 가 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 사비트리는 주저않고 '사트야반트의 아버님이 왕국을 되찾을 수 있 게 해 주세요.' 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야마가 사비트리에게 말했다. '그렇게 해 주마. 이제 산 자들에게 돌아가거라, 사비트리야.' 그러나 사비트리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사비트리 는 야마의 왕국 입구까지 와 있었다. 하늘은 깜깜했고, 죽은 자들의 문을 지피는 머리 넷 달린 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야마의 나라에 이렇게 가까 이 와 본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니까!' 야마가 명령했다. '산 사람은 절대로 내 왕국에 들어올 수 없 느니라!' 사비트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야마에게 말했다. 야마는 다시 한 번 돌아가라고 간청했으나 사비트리는 거절했다. 그러자 야마는 남자도 자기 왕국 에 들어와 본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언제나 지혜로운 사비트리는 자기는 남자가 아니라 여 자라고 대꾸했다. 야마는 이번에는 사비트리의 지혜에 감동하여, 두 번째 소원을 들어 주겠 다고 했다. '제 남편의 생명을 돌려 주세요.' 야마는 이 소원도 들어 주었다. '네 소원은 벌 써 이루어졌다. 이제 돌아가거라. 죽은 사트야반트가 아니라 자고 있는 사트야반트를 보게 될 것이다.' 사비트리가 그곳을 떠나기 전, 야바가 그녀에게 말했다. '딱 한 가지만 더 주겠다. 내 축 복이 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넌 신들의 지혜를 터득했더구나. 신들의 보호를 받지 않고서 야, 살아서 내 왕국 문 앞까지 나를 따라올 수 있는 여자는 없지.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축복까지 내려 주는 것은 네가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 야마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란다. 이제 사트야반트를 두고 온 곳으로 돌아가 서 잘 살도록 해라.' 사비트리는 사트야반트가 누워 있는 숲속으로 돌아갔다. 야마가 약속한 대로 사트야반트는 죽지 않고 자고 있었다. 사비트리가 사트야반트에게 입을 맞추자 사트야 반트가 눈을 떴다. 사트야반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야마가 자기 영혼을 가져갔 는데 사비트리의 사랑이 자기 영혼을 구해 주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꿈이 아니 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사비트리는 여러 해가 지난 뒤 사트야반트에게 얘기해 주었다. 두 사람이 깊은 숲을 떠날 때 전령들이 와서 사트야반트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의 아버지가 왕위를 되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연로한 왕은 마따오히 그가 앉아야 할 옥 좌에 오르자마자 시력까지 되찾았다는 것이 아닌가! 젊은 부부는 왕궁으로 달려갔다. 사트 야반트의 아버지는 몇 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왕 은 아름다운 며느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늙은 왕의 마음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왕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운을 되돌려 놓은 것은 바로 사비트리라고. 사트야반트와 사비트리는 소행자로서 소박한 삶을 꾸리고, 가난 속에서도 자녀들을 겸손 하고 정직하고 지혜롭게 키우면서 숲에서 몇 년을 더 보냈다. 훗날 사트야반트의 아버지가 장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자, 사트야반트와 사비트리는 사트야반트 아버지의 나라와 사비 트리 아버지 아시바파티의 나라를 평등하게 다스렸다. 두 사람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야마 는 두 사람을 오랜 친구로 맞이하며 이들의 영혼이 자기한테 잠시 들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 다. 두 사람의 영혼은 최고천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이승을 떠날 때 이 승에 남은 이들의 후손은 백 명이 넘었다. 파레와 후투(뉴질렌드) 아름다운 처녀 파레에게는 후투라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파레는 후투에게 몸을 주려하지 않았다. 파레에게 딱지를 맞고 마음 깊이 상처를 입은 후투는 화가 나 멀리 도망 가 버렸다. 파레는 몹시 당황한데다 죄책감까지 느껴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파레는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나라 포(Po)로 내려갔다. 포의 지배자는 최초의 여자 히나였다. 여전히 파 레를 그리워하고 있던 후투는 히나의 도움을 받아 지하 세계로 파레를 따라갔다. 히나는 왜 후투를 도와 주었을까? 히나 역시 사랑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지하 세계에서 후투는 파레의 관심을 끌고 애정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 나 파레가 수많은 죽은 자들의 영혼 속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후투는 파레를 찾을 수가 없 었다. 후투는 어린 나무를 아래로 구부렸다가 그 나무에 매달려 공중 높이 날아오름으로써 마침내 파레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파레는 후투가 하는 모양을 보더니 자기도 그 놀이 에 동참했다. 두 사람은 점점 높이 몸을 날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땅 위의 아오(Ao)세계에 서 파고 내려오는 나무 뿌리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그 뿌리를 타고 죽은 자들의 나라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산 자들의 세계 아오에서 영혼이 없는 사람은 아오와 포가 만나 는 동틀녘과 해질녘이 아닌 때에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후투는 파레의 영혼을 그녀의 발 뒤꿈치를 통해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해서 파레의 몸이 다시 생명을 얻자, 파레와 후투는 결혼하여 큰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파레의 영혼을 몸 안에다 집어 넣는 마법을 후 투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죽은 자들의 나라에 간 사야디오(이로쿼이) 전사 사야디오에게는 목숩을 잃은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사야디오는 동생을 잃은 것이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래서 사야디오는 영혼의 나라에서 동생을 찾아 다시 살려내기로 결 심했다. 동생을 찾느라 몇 년을 보낸 끝에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사 야디오는 우연히 연로한 현자를 만났다. 그 현자는 영혼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노인은 사야디오에게 마법의 호리병을 하나 주었다. 어쩌면 그 호리병 속에서 사야디오가 동생의 영혼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노인과 더 얘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사야 디오는 이 노인이 자기 동생이 있는 영혼 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사야디오가 영혼의 나라에 도착하자 영혼들이 그를 보고 무서워 도망쳤다. 사야디오는 타 렌야와곤을 알아보았다. 지상에 살던 시절, 타렌야외곤은 다섯 부족의 위대한 스승 히아와타 였다. 이제 타렌야외곤은 영혼들의 여러 가지 의식을 집행하는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 고 지상에 있을 때나 다름 없이 여전히 인정이 많았다. 타렌야외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곧 큰 춤잔치를 벌일 것이라고 사야디오에게 말했다. 그 잔치에 사야디오의 동생도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영혼들이 춤을 추기 위해 대열을 형성했을 때 사야디오는 동생의 영혼을 알 아보았다. 그러나 사야디오가 가서 끌어안자 동생의 영혼은 사라져 버렸다. 사야디오는 다시 타렌야와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스승은 사야디오에게 마법의 딸랑 이를 주었다. 동생이 노래와 마법의 딸랑이 소리에 취해 있는 사이에 사야디오는 동생의 영 혼을 붙잡아 마법의 호리병 속에 넣었다. 사야디오는 동생의 영혼이 든 호리병을 가지고 마 을로 돌아왔다. 동생의 영혼과 몸을 다시 결합시키는 의식이 막 시작되었을 때 호기심 많고 미련한 처녀가 호리병을 열어, 동생의 영혼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유령 신부(알공킨) 옛날에 젊은 전사가 한 명 있었다. 그 전사는 결혼식을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 혼식 전날 밤 신부가 죽고 말았다. 전사는 남달리 용맹스럽고 착한 사람이었지만, 신부의 죽 음으로 인해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전사는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남들이 사냥을 하러 나간 사이에도 그는 신부의 무덤 앞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사는 노인들이 영혼 세계로 가는 길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전사는 노인들의 얘기를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들으며 영혼 세계로 가는 길을 머리 속에 담아 두었다. 영혼 세계는 남쪽 멀리에 있다고 했다. 전사는 즉시 길을 떠났 다. 두 주일이 지났건만 가도가도 끝없이 숲만 이어질 뿐, 영혼 세계가 가까워졌다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숲에서 벗어나니, 여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평원 저 멀리에 작은 오두막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는 늙은 현자가 살고 있었 다. 전사는 그 현자에게 길을 물었다. 노인은 그 전사가 누구이며 누구를 찾고 있는지 정확 하게 알고 있었다. 노인은 바로 전날 신부가 그곳을 지나갔다고 알려 주면서, 전사에게 신부 를 따라가려면 몸은 두고 가야 한다고 했다. 영혼 세계는 커다란 호수에 있는 섬인데, 호숫 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를 타야만 그 섬으로 무사히 갈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은 두 사람이 모두 영혼들의 섬에 무사히 도착하기 전에는 신부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전사에게 경고했 다. 노인이 무슨 마법의 노래 같은 것을 부르자, 전사는 자기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영혼이 된 전사가 호숫가를 따라 걷다 보니,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배가 보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그의 신부 역시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었다. 전 사는 배를 저으며 신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기가 한 번 노를 저을 때 신부는 두 번씩 젖는게 아닌가. 왜 배를 같이 타고 가면 안되는 것일까? 영혼의 세계에는 누구나 혼자서만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 개인의 공적만으로 상이나 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길을 반쯤 갔을 때 폭풍우가 몰아쳤다. 여태껏 그렇게 심한 폭풍우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배에 타고 있던 어떤 영혼들은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생전에 악한 일을 많이 한 사 람들의 영혼이었다. 전사와 그의 신부는 둘 다 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무사히 폭풍을 견 뎌 낼 수 있었다. 이내 물은 유리처럼 잔잔해지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이렇게 축복받은 사람들의 섬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계절은 늘 따사로운 봄날과 같아, 너 무 덥거나 추운 일이 없었으며 청명한 하늘 아래 온갖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전사는 호숫 가에서 신부를 만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열 걸음도 채 가지 않았을 때 부드럽고 은은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의 임자는 다름 아닌 생명의 주인이었다. 젊은 전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명의 주인이 말했다. 전사는 아직 이 섬으로 올 때가 되지 않았으니 그의 몸을 두고 온 곳으로 조심스럽게 되짚어가서 몸과 결합한 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전사는 생명의 주인 말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 훌륭한 추장 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자기 신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행복하게 살 았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이집트) 아직 죽음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전,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죄라는 것을 몰랐다. 세사에는 폭력도, 탐욕도, 시기나 증오도 없었으며, 사람들 사 이에 불화나 분열 같은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늘 정직하고 관대했고, 얘기를 나눌 때는 시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말을 사용했다. 왕인 오시리스도 백성들을 사랑하여, 백성들 에게 농작물 재배하는 법과 논에 물 대는 법을 가르쳤고, 지혜와 신들의 법을 가르쳤다. 게브(땅)와 누트(하늘)가 오시리스와 그의 아내인 이시스의 부모였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는 둘 다 신이었기 때문에 오빠와 동생으로서는 물론 남편과 아내로서도 서로에게 죄를 짓 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땅을 풍요롭게 다스렸다. 나일강을 둑으로 넘쳐 흐르게 하여, 토지 가 축축하고 비옥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땅에서는 넉넉한 식량이 생산되었다. 지혜의 신 토트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토트는 문자와 숫자를 고안해 최초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신들에게도 사악한 형제가 하나 있었는데, 황폐한 사막 을 다스리는 세트가 바로 그였다. 오시리스가 생명의 창조주라면 세트는 파괴의 신이었다. 세트는 천성이 얼마나 포악했던지, 태어날 때 어머니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놓았을 정도 였다. 사람들이 관개 시설을 이용해 땅을 개간하자, 세트는 오시리스가 자신의 사막 왕국 면 적을 줄이고 있다고 노발대발했다. 세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형을 시샘하게 되었다. 세트가 자기 왕국을 내다보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 언덕과 전갈과 바위들뿐이었다. 그 왕국에서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트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 었다. 세트는 일단 형 오시리스의 그림자를 관찰하여 오시리스의 몸 크기를 잰 다음, 오시리 스 몸 크기에 맞추어 향내 나는 나무로 아름다운 관을 짰다. 건기가 시작되기 전에 (세트는 당연히 건기를 좋아한다.) 세트는 모든 신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잔칫날 세트 는 그 관을 현관 회랑 한가운데에 갖다 놓았다. 신들은 그 관을 보더니 저마다 향유 냄새가 난다느니, 삼나무 향기가 난다느니, 향나무 냄새가 난다느니 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신들 은 장난 삼아 차례로 돌아가며 그 관 속에 누워 보았다. 오시리스는 잔치에 늦게 도착했다. 다른 신들은 벌써 다 연회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현관 회랑에는 세트와 오시리스밖에 없었 다. 세트는 형더러 관 속에 한 번 누워 보라고 권했다. 오시리스는 정직하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별 생각 없이 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 그 순간 세트의 부하들이 나타나,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은 다음 뜨거운 납으로 관을 봉했다. 다른 신들은 잔칫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가 망치 소리를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 어 나와보니, 세트와 그의 부하들은 이미 관을 가지고 어두운 사막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신 들은 오시리스가 관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세트 일행을 추격하려 했다. 그러 나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악의 무리들은 관을 나일강으로 던졌고, 그 무렵 오시리스는 질 식사한 상태였다. 여태껏 재앙이라는 것을 몰랐던 이집트는 오시리스가 죽는 그 순간부터 온갖 재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세트의 사막이 비옥한 농토를 잠식하여 땅을 모두 말려 놓 았고, 그로 인해 기근이 생겼다. 사람들은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과 도둑질을 일삼았다. 어머니들은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 소리 때문에 밤에도 잠을 이 루지 못했다. 농사와 논에 물대기가 중단된 상태라, 세트 왕국의 모래는 점점 불어나 나일강 둑까지 거의 모래로 뒤덮이기에 이르렀다. 어찌나 절망이 심했던지, 사람들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 할 지경이었다. 이시스와 그녀의 동생인 네프티스(세트의 아내), 그리고 지혜의 신 토트는 오시리스를 찾 으려고 나일강 줄기를 따라 온 이집트를 뒤지고 다녔다. 관은 강물을 타고 삼각주를 지나 지중해로 떠내려갔다. 관이 가서 멈춘 곳은 멜카르트 왕과 아스타르테 왕비가 다스리는 비 블로스 땅이었다. 한편, 관 근처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솟아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 무는 거목이 되어 관을 줄기 안으로 삼켜 버렸다. 나무 안에 향내나는 관이 들어 있는 탓에 그 나무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배어 나왔고, 이 향기 때문에 그 나무는 아주 유명해지게 되 었다. 이시스는 어떤 나무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향기 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들으니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관에서 나는 향기과 비슷한 것 같았다. 관을 찾아 비블로스로 가는 동안 이시스는 애도의 표시로 자기 머리채를 잘랐다. 토트는 이 시스에게 조언해 주었다. 나일 삼각주의 파피루스 늪지대에 있는 어떤 섬에서 휴식을 취하 면 기운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이시스의 여행길에는 전갈 일곱 마리가 동행하고 있었다. 이시스가 어떤 신앙심 돈독한 여자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전갈 한 마리가 그 여자의 아기 를 물어 죽였다. 아기 어머니의 통곡 소리에 감동하여 여신 이시스는 아기를 다시 살려 주 었다. 이시스가 비블로스에 도착하기 전, 멜카르트 왕과 아스타르테 왕비는 그 유명한 나무가 자기네 왕국의 보배라 생각하여 그 나무를 베라고 명령했다. 그 나무는 이제 왕궁의 기둥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시스가 비블로스에 도착했을 때 나무는 그루터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시스는 몇 달 동안 말을 잊은 채 그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멜카르트와 아스타 르테는 여신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객지 여인이 그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다는 소식을 듣 고 즉시 그 여인을 데려 오도록 했다. 왕궁에 도착한 이시스는 왕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아스타르테의 몸에서 달콤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보통 여자들이 아이에게 젖을 물 리듯이 이시스는 왕비의 아이에게 자기의 손가락을 물려 젖을 빨아 먹게 했다. 이시스는 왕 자의 유모로 왕궁에서 살았다. 밤중에 이시스는 남몰래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기둥을 잘라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 나 무는 오시리스의 관을 삼킨 순가부터 신기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 나무가 탈 때 불 꽃 속을 통과해도 전혀 화상을 입지 않았다. 이시스는 어린 왕자를 따뜻하게 해 주려고 불 꽃 속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도 아기는 멀쩡했다. 아스타르테 왕비는 회랑으로 나와 자기 아 이가 불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왕비는 재빨리 아기를 불 속에서 끌어 냈다. 이시스는 제비로 변신하여 기둥 주위를 날고 있었다. 제비의 모습을 한 이시스가 아스 타르테에게 말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불 속에 있었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 거라고. 하지 만 지금 상태로도 장수를 누릴 수는 있게 되었다고. 그런 다음 이시스는 다시 사람의 모습 을 취하고서 아스타르테에게 오시리스에 대한 얘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아침이 되자 멜카르 트 왕은 기둥을 갈라 관을 꺼내라고 명령했다. 이시스는 그 관을 가지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관을 열어 보니 오시리스는 아직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몸은 완벽하게 원형대로 남아 있었다. 이시스는 그 생명 없는 남편의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춰, 남편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오시리스는 다시 살 아났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악독한 동생이 두려워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나 세트는 오시 리스가 다시 살아났음을 알아냈다. 사막이 점점 줄고 농작물이 다시 열매를 맺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전의 평화로운 생활로 돌아갔다. 당연히 세트는 다시금 형을 죽일 음 모를 짜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세트는 영야 사냥을 핑계 삼아 돌아다니다가 잠자는 오시리스 를 발견하고는, 오시리스의 몸을 열 네 조각으로 잘라 이집트 이곳 저곳에다 뿌려 놓았다. 오늘까지도 이집트에는 오시리스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 열 네군데나 있다. 오시리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