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25 부 제어탁자는 살아 있다. (1) 왜소한 회색인은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랫만에 새로운 활력을 되찾았다. 무기력하고 단조롭게만 보낸 지난 일 년 동안 잊고 있던 일이 이제서야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희망적 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지상에서 일어난 대폭발로 인한 섬광이 나, 지구로부터 올라오는 탁하고 더러운, 거대한 연기덩어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스크린에 스치듯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하나의 흔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텔레포테이션 전송이었다. 회색인으로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일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 는 상황이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다른 우주선에 있는 군인들이 순 간적으로 일어난 그 현상을 알아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이 논의하고 있는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틀림없는 핵폭발이었다구." 볼보드인이 내뱉은 한마디에 왜소한 회색인의 기대는 송두리째 무 너져내렸다. 볼보드인은 살기로 가득찬 얼굴을 옷깃에서 쑥 내밀며, 반론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위협하듯 모두를 둘러보았다. "즉시 저 혹성으로 내려가서 완전히 소탕해버립시다." 토르네프인 대위가 볼보드인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하우빈인 은 사태가 정치적으로까지 확대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회색인을 논의에 끌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사령 관들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만 했던 것이다. 회색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한 포크너인 상급 중위가 불쑥 나서며 상황을 요약 하려 하였다. 외눈안경을 걸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심한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 "제군들은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찰대가 조금 전에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한밤중에 지구를 습격했던 전부대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치분쟁의 마지막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판단하기엔 이번 사태로 정권이 교체된 것 같다. 제군들도 아록 있듯이 정치란 변화무쌍한 것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노란색 법의를 입은 승려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패배했고, 지금은 남반구에 있는 사원에서 도피중이다. 이 전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사태도 군사집단에 의한 핵폭발로 그 혹성의 수도가 파괴된 것임에 틀림없다. 두세 달 전에도 두 차례나 반란이 일어났었다. 지구혹성의 정치상황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빠 져 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이 총공격을 가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볼보드인이 악을 쓰듯 외쳤다. "지금 당장 쳐들어가 놈들을 때려부수자." 볼보드인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전리품이었다. 볼보드인과 포크너 인의 말을 듣고 있던 쟘비초인 사령관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나는 사양하겠네. 지금 당장은 말이야. 저 산의 정상 쪽을 보았 나? 수도 남쪽에 있는 산 말이야."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한결같이 숨을 죽였다. 쟘비초인 이 가리킨 산그늘에는 발진태세를 갖춘 열다섯 대나 되는 전투기와 해병대용 공격기가 은폐되어 있었다. "매복이다." "저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토르네프인 대위의 말에 볼보드인이 말했다. "저 화기들을 전부 합쳐봤자 우리들의 대형 전함 한 척분도 안된다 구." "아니다. 저것은 상당히 벅찬 상대다." 쟘비초인이 부르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동안 대화가 끊겼다. 그 순간 왜소한 회색인의 스크린에 얼굴 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한밤의 송곳니'의 루프 알제보거 기자로, 토르네프인의 텔리파이급 전투기 탑재 주력함, 캡춰 호에 있었다. "각하." 기자는 군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이틈을 이용해서 현재 상황에 대한 각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회색인은 언제나 내정하리만큼 침착했고,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내 전망스크린에서 사라져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각하. 실례했습니다.... 그럼, 즉시." 병에 찌든 그의 얼굴이 사라지자 왜소한 회색인은 혐오스럽다는 표 정을 지으며 다른 스크린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 은 결론을 내릴 것이고, 통일된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대 행스러운 점은 아직까지는 텔레포테이션의 흔적에 대해 언급하는 자 가 없다는 것이었다. 저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단 말인가. 혹시 서로들 상금을 독차지하려고 겉으로는 내 색하지 않는 것이 아날까. 하여간 지금은 관망하는 자세로 그들의 얘 기를 들으며 사태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연합군은 다시금 논의를 지작했고, 문제가 발생했던 곳의 상공으로 이동하기 위해 궤도상의 위치를 변경하기로 했다. 전함들이 발진하며 내뿜는 불빛들이 대기를 가르기 지작했고, 통신채널들은 각 우주선의 사령관들이 다급하게 외쳐대는 고함소리로 가득찼다. 그들은 모두 전 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가장 절실히 생각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있던 상금문제를 처음으 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하우빈인이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이 문제의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명백한 증거는 없다. 오늘 아침 일찍 거대한 사이클로인 이 걸어다니고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다." "그것이 사이클로인이었다고 한다면, 그녀석이 알고 있는 것이 아 닐까?" 쟘비초인 사령관의 말에 포크너인 상급 중위가 끼여들었다. "설사 모른다고 해도 그녀석이 문제의 그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 지." "하지만 그녀석이 문제의 그것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우빈인이 말했다. "그녀석은 모른다. 따라서 놈은 문제의 그것이 아니다." 스노래터 제독이 사려깊게 이빨을 두드리며 얘기에 끼여들었다. "이곳 지구인들이 문제의 그것일 가능성도 있다...." 다른 사령관들은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깜짝 놀라 제독을 쳐다보았다. "따라서 즉각 습격하여 전리품을 손에 넣고 재빨리 철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제독은 그럴듯하게 논리를 비약시켜나갔다. "만약 녀석들이 문제의 그것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기 때문에 처치해버려야만 한다. 그 진위야 어떻든 우리들은 이 혹성을 습격하여, 전리품을 분배한 후 철수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상금은?" 쟘비초인이 물었다. "그런 일이라면 포로를 혹독하게 심문하면 된다. 그것만이 저녀석 들이 문제의 그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따라서 나는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제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항의하는 소리가 빗발쳤다. 이 혹성 을 습격해서 약탈하고 철수하는 것까지는 찬성할 수 있지만, 제독을 최고 사령관으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모두들 강력하게 항 의하고 나섰다. 스노래터는 그들의 항의가 몹시 불쾌했다. 그는 단지 동승하고 있 는 루프 알제보거 기자에게 가능한 멋진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 이었다. 그들의 항의에 제독은 화를 벌컥 내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또다시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졌다. 근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 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은 계속될 것만 같았다. 회색인은 이들의 논쟁을 무시한 채 아래쪽 상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소규모의 차량들이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것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앞서 달려가고 있는 적은 수의 차량은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고, 뒤 쪽의 차량들은 그것을 추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기슭 에서 합류한 것을 보면 같은 집단임에 틀림없었다. 봄의 해빙으로 강 물은 상당히 불어나 있었다. 먼저 강가에 도착한 선두차량은 펌프를 설치하여, 차량과 지구인들에게 대량의 물을 끼얹고 있었다. 회색 ㅅ나이는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책을 찾아 조사해보았다. 그렇다. 방사능이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려면 대량의 물로 씻어내야만 한다. 방사능을 포함한 입자는 그 자신의 무게 때문에 씻겨나가게 되어 있다. 이들의 행동은 실제로 핵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옛날부터 사이클로인들은 핵무기 를 사용한 종족에 대해서는 혹독한 탄압을 가해왔다. 스크린의 상태를 좀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회색인은 연락장교에게 전망스크린을 조절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구름과 안개 로 뒤덮여 있어서 선명한 영상을 얻기가 무척 곤란했다. 게다가 때로 는 중단되기까지 했다. 그들이 차량과 자신들로부터 방사능을 씻어내 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저들은 과연 어떤 종족일까. 피난민인 가, 공격부대의 병사인가. 그 순간 회색인은 크레인으로 끌어올려진 돔 아래에 텔레포테이션 제어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회색 사나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어탁자를 가지고 있는 선두그룹은 텔레포테이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두세 명의 우주선 사령관들이 그의 의견을 묻고 있었지만, 적당히 얼버무려버렸다. 쓸데없는 논쟁에 관여할 만큼 마 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초조해 하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제어 탁자가 다른 전함의 사령관들 눈에 띄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 었다. 방사능을 씻어낸 지구인들은 부상자들을 간호하느라 여념이 없었 다. 모든 신경이 부상자들에게 쏠려 있는 까닭에 제어탁자는 방치된 채로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아주 똑똑하게 내려다보였다. 한참 후 여섯 대의 공격용 해병대 전투기가 나타났다. 왜소한 회색인은 지구 인들이 제어탁자를 써서 전투기에 싣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포크너인 상급 중위가 외쳐댔다. "놈들이 트럭에서 비행기로 옮겨실은 것은 제어탁자다. 스크린을 다시 돌려보겠다." 회색 사나이는 모든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듯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사령관들에겐 절대로 보여져서는 안된는 것이었다. 설령 발각되었다 해도, 제어탁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 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대는 포크너인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물거품 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저건 틀림없는 제어탁자다." 포크너인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소리치자, 사령관들은 성급하게 논의를 시작했다. 흥분으로 들뜬 그들의 말투 속에 이억 크 레디트의 상금을 나눠갖게 되었다는 타산성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지상에는 트럭, 펌프, 크레인, 그리고 관들만이 흩어져 있었다. 지구 인들이 떠나며 버려둔 것들이었다. 지구인들과 제어탁자를 실은 여섯 대의 해병대 전투기가 이륙했다. 이륙한 전투기들은 편대를 짜지 않고, 서로 교차하며 원을 그리거나 상하로 위치를 변경해가며 돌진해나갔다. 마치 곡예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혼동스러운 위치변경 때문에 스크린을 되돌려봐도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여섯 대의 전투기들 가운데 네 대만이 착륙했다. 제어탁자를 실은 비행기가 어느 것이었더라.... 사령관들 사이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들은 몇 번씩이나 스크린을 되돌려보면서 그 비행기를 찾으려 했으나 도무지 식별해낼 수가 없었다. 모두 혼란스 러워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포크너인이 그 수수께끼를 해결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착륙하지 않은 두 대는 호위기들을 거느린 채 느린 속도로 북동쪽을 향하여 날아가버렸고, 다른 네 대와 호위기들은 처음에 착륙했던 강기슭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함정이다." 상급 중위가 흥분하여 외쳐댔다. "북동쪽으로 날아간 비행기들은 우리들의 추격을 유도하기 위한 함 정이다." 그들은 두 대의 비행기가 날아간 북동쪽 항로를 스크린을 통하여 지도상에 여장시켜보았다. 그들은 북극을 통과하여, 남반구의 불탑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그 속도로 비행해나간다면 대략 아홉 시간 후면 기착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 포크너인의 예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강가에 착륙해 있던 네 대와 호위기들이 순식간에 화살처럼 발진했다. 비행기들은 시속 이천 마일을 유지하며 북서쪽으로 비행해 갔다. 그들은 서둘러 그 진 로를 연장해보았다. 그들의 목적지는 싱가포르 근처에 있는 오래된 채굴장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예측한 대로다." 포크너인 상급 중위는 우쭐대며 말했다. "그 지역에 플랫폼과 유사한 시설이 대지급으로 건설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놈들은 그 제어탁자를 싱가포르로 가져갈 생각이다." 제독은 상급 중위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했다. 포크너인 상관으로서 그에게는 명령할 권리가 있었다. 그는 제어탁자가 불탑이 있는 장소 로 옮겨지고 있다고 하며 상급 중위와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며 설 명했다. "광신도들은 언제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 는 이들 종교집단부터 박멸시켜야만 한다. 이번 사태는 분명 한 교단 이 이 혹성 정부를 전복하면서 제어탁자를 탈취한 것이다. 이것은 명 백한 종교폭동이다. 이 혹성이야말로 문제의 그것이다. 나는 전군에 게 불탑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한다." 그의 명령에 연합군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일제히 싱가 포르로 비행해 가고 있는 공격용 해병대 전투기를 추적하기 시작했 다. 그러나 전투기를 탑재하고 있어 막강한 위력을 지닌 텔레파이급 주력함, 캡춰 호만은 그 뒤를 쫓지 않았다. 루프 알제보거 기자로부 터 단독행동을 취하면 훨씬 멋지게 기사화될 수 있다는 언지를 받은 제독 스노레터는 괴전함 캡춰 호를 타고 불탑이 있는 카리바를 행했 던 것이다. (2) 조니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지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야를 가로막는 낯선 모습들에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아, 그렇다. 나는 카리바의 엄폐호 속에 있는 것이다. 그곳은 중국인 들이 조니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준 방으로 전송플랫폼이 있는 분지 의 내벽 속에 마련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황색 타일이 깔려 있었고, 침대와 의자 몇 개, 그리고 양복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은 분지 주변에 엄폐호를 구축하여 철저한 방어체계를 갖추어놓았으며, 조명으로 광산램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바닥이 또다시 흔들렸다. 조니가 침대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마침 닥터 알렌이 들어왔다. 그는 조니를 진정시켜 침대에서 뛰어내 리지 못하게 했다. "걱정할 것 없네, 밖의 일은 모두 잘되어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조니의 맥을 짚어보았다. 코에 붕대를 감은 로버트 경이 복도에서 진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난 일을 당했더군. 맥박은 이미 정상일세. 혈청 예방주사가 독이 퍼지는 것을 다소 지연시켜부었지. 그러나 자네의 목숨을 구한 것은 로버트 경일세. 경이 독을 빨아내고, 몇 방울 되지 않았지만 혈 청을 투여해주었다네." 조니는 탁자에 있는 거대한 사이클로인용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열네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 난 것일까. 닥터 알렌은 초조해 하는 조니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 다. "알고 있다네. 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마 취는 절대로 필요했었다네." 그는 조니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대고 조심스럽게 진찰했다. "심장장애는 없는 것 같군. 손을 내밀게." 조니는 그가 시키는 데로 했다. "음, 경련도 없군. 아주 건강하네. 며칠만 더 누워 있으면...." 그 순간 또다시 지면이 심하게 진동했다. 조니가 일어나려고 하자, 닥터 알렌이 만류하며 그를 다시 뉘었다. "로버트 경,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닥터 알렌은 이제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복도의 로버트 경에게 고개 를 끄덕여 보이고 방을 나갔다. 로버트 경은 대답 대신 침대 옆으로 걸어오더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조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조 니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되어가는 모습에 무척 기뻐하고 있었 다. 창백했던 얼굴엔 벌써 건강한 혈색이 감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조니는 한마디 한마디 똑똑히 끊어가면서 질문을 되풀이했다. "조금 전의 진동 말인가? 토르네프 전함이 바짝 다가와 있네. 고도 이백 마일 상공에 머물면서 계속 전투기를 보내 이곳을 폭격하고 있 네. 방공부대의 지휘는 스톰아롱이 맡고 있네. 현재 적의 주력부대는 싱가포르를 공격하는 중일세." 로버트 경이 말을 마칠 즈음, 앵거스가 문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조니는 그를 불러들였다. "제어탁자는 설치했나?" "물론입니다." 앵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지금은 당신이 활약할 틈이 없어요. 적의 폭격과 대공포화, 그리 고 요격기들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구요. 또다시 전송장치 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접속 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전송장소도 중국인들이 완벽하게 만들어놓 았구요." "다음 전송시에 스위치 위치는 아래쪽이다." "네, 로버트 경이 가르쳐주었어요. 이 전투만 끝나면 언제라도 전 송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느긋하게 쉬고 계세요." 앵거스가 나가자, 교대라도 하듯이 토르가 들어왔다. "기분은 어떠십니까?" 조니는 손을 흔들었다. "내 기분 같은 것은 괜찮으니까.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돔 안에 있는 동안뿐일세." 토르와 로버트 경은 그동안의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그렇게 엄청난 반동이 있었나요?" "엄청난 정도가 아니었다니까요." 토르가 그 순간을 회상하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명이나 당했는가?" "앤드류와 맥두갈일세." "그 밖에도 열다섯 명이 이곳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뇌진탕 이 두명, 손발에 골절상을 입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상환 장인데, 부상 정도가 상당히 심합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관의 납 덕분에 방사능에 의한 화상환자는 없었습니다. 앤드류는 브리칸트의 총검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여, 관뚜껑을 안쪽에서 잠글 수 없었기 때문에 뚜껑이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맥두갈은?" "그의 경우는 운이 나빴습니다. 그의 관은 정송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지면 위로 튕겨나왔던 것입 니다. 시체는 찾았지만...." 조니는 토르가 들고 있던 꾸러미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무거워 보 였다. 그는 그것을 테이블에 얹어놓고 손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시체는 사방에 흩어진 채, 대부분 불타 있었습니다. 폭풍의 방향 을 따라서 수색작업을 펼쳤습니다. 그의 시체가 플랫폼 반대방향으로 날려갔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수색작업 끝에 맥두 갈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이것과 함께 말입니다." 토르는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이것을 보면 당신도 한시름 놓을 겁니다. 불탄 시체들 가운데 척 추뼈가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그 척추뼈 속에 박혀 있었어요." 그것은 타르가 만든 폭탄 속에 들어 있던 콩알만한 문제의 물질이 었다. "브라운 린퍼로군." 조니는 기억을 더듬어 그 순간들을 기억해냈다. "타르가 린퍼에게 이것을 던졌지. 이 조그만 물질에 린퍼의 몸은 탄환처럼 날아가버렸어. 음, 아무튼 이것을 찾아내줘서 고맙네." "타르가 린퍼에게 건네줬던 꾸러미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앵거스 에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슨 작용을 하는 겁니 까?"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네. 하지만 타르가 만든 것이라면...." "우리들은 타르가 사용하던 문서절단기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들을 모조리 빼내 왔습니다. 놈이 그것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여 미리 절 단기의 전원을 끊어놓았거든요. 엄청난 양이었지만 모두 이동차에 실 어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요. 타르가 사무실을 나오는 즉시 회수해서, 방사능 보호 광산부대 속에 넣어 두 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이동차를 밀고 들어왔다. 서류들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그 소형 권총에 조심하세요." 토르가 서류더미 위에 올려져 있는 소형 권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가 탄환의 분사력과 반동을 역으로 조작해놓았기 때문에, 총알 은 뒤쪽으로 발사되어 사용자에게 맞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가 주의 하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본래대로 해놓겠다구요." 조니는 캐비닛의 이중선반과 이중바닥에 숨겨져 있던 몇 권의 책과 서류들을 건네받았다. 조니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도 상당수 있었 다. 그 많은 책들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제목에 시선이 모아졌다. '적 대종족의 방위기지와 그 본국의 개관'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책장을 들춰나가다 토르네프별 부분에서 멈추었다. 토르네프별은 2연성계의 혹성이다. 위치에 관해서는 좌표차트를 보 라. 이 성계의 혹성 중 주민이 살고 있는 것은 제7,8,9혹성 세곳에 불과하다. 토르네프인의 본국은 제9혹성이다. 제9혹성은 다섯 개의 달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사트이다. 그곳은 주력전함의 발신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토르네프 전함들은 모두 항성에너지 구동이며, 주동력원은 반작용 엔진으로 대기중에서는 매우 효율이 나쁘고, 막대한 구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그곳의 전함들은 아사트 위성을 본거지로 하며, 승 무원 및 보급물자는 본국혹성에서 운반된다. 지금까지 토르네프별을 점령해서 채굴하려는 계획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지만, 이 기사를 집 필하는 지금까지 위성 아사트가 공격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것이 기록된 날짜를 찾아보았다. 불과 이 년 전에 씌어진 것이었 다. 그 기록은 아사트 위성에 대한 부분 외에도 장황하게 이어져 있 었다. 조니가 그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다시 충격과 함께 지면 이 흔들렸다. 그 순간 조니는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움찔했다. 그들은 조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토르는 긴급호출을 받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통신원이 문서다발을 끌어안고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조니는 보고 서를 읽는 로버트 경의 표정 속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겼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걱정할 것 없네. 모두 잘되어가고 있으니까." "사실대로 얘기해주시지요." 조니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백발의 늙은 스코틀랜드인은 한숨을 쉬 며 말했다. "꼭 알고 싶다면 말하겠네. 전세가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네. 정확 한 원인은 파악할 수 없지만 적들은 총공격을 가해오고 있네." 그는 보고서를 톡툭 쳤다. "지금까지는 싱가포르 기지가 그런대로 견뎌내고 있는데, 현재 적 들의 전력 중 4분의 3이 그곳에 투입되어 있네. 그러나 놈들이 언제 까지나 그곳만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러시아는 거대한 전함 으로부터 발진한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네. 에딘버러도 같은 상황이네. 그 두 곳에는 대기보호망도 없다네. 그리고 이곳은...." 그는 천장을 가리켰다. "엄청나게 커다란 전함이 전투기를 출격시켜 폭격을 가해오고 있 네.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다네. 그것은 한 번에 천 명의 토 르네프 해병대원을 상륙시킬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들에겐 지 상 공격부대에 대처할 만한 장비가 없는 실정이네. 이제 알겠나? 상 황은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할 뿐, 좋아질 조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 다네." "닥터 알렌을 불러주십시요. 일어나야겠습니다." 로버트 경은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단념하고 의사를 부 르러 보냈다. 닥터 알렌은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아내곤 얼굴을 찌 푸렸다. "자네의 몸에는 다량으 설파제가 투입되어 있다네. 그것은 감염예 방과 혈액정화를 위한 약인데, 갑자기 몸을 움직이면 현기증이 일어 날 걸세. 당분간 쉬는 편이 좋을 것 같네." 하지만 조니는 자신의 뜻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전력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노력만으로 해결책을 구하기에는 너 무 긴박한 상황이었다. 병상에 누워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 다고 판단한 조니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려 했다. 조니가 일어나려 하고 있을 때, 준비위원이 나이 든 중국인을 데리고 왔다. "이쪽은 툰입니다." 준비위원이 중국인을 조니에게 소개했다. "툰은 당신의 방 담당자입니다. 완벽하진 못하지만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툰은 조니를 향하여 머리를 숙였다. 그는 지금의 위기에서 지구를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니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툰은 조 니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입고 있는 녹색 제복을 입히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움직이면 현기증이 일어난다고 한 의사의 말이 조니의 전신을 휘감았다. 옷을 입기만 하는데도 심한 현기증과 함께 양팔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조니가 괜찮다고 우겨댔기 때문에 툰은 왼 손용 권총집에 스미스 앤 웨슨 권총을, 바른손용 권총집엔 분사총을 넣어 조니의 허리에 채워주고, 녹색 헬멧을 건제주었다. "자아, 당신, 그들을 쏩니다." 툰은 손을 권총 모양으로 하고, 두 차례 쏘는 시늉을 했다. "땅, 땅!" 그리고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는데 하고 조니는 생 각했다. 조니도 머리를 숙여 그 왜소한 노인에게 절을 했다. 아이쿠, 지독한 현기증이다. 머리를 숙이니까. 방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만 같았다. 그때 지금까지 있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과 함께 지면이 심 하게 흔들려왔다. 아주 가까운 곳까지 위기가 닥쳐온 것이었다. (3) 지하에는 병원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플랫폼이 있는 분지 한가운데로 향하던 조니는, 부상자들이 치료받 고 있는 병원 앞에서 멈춰 섰다. 안에서는 금속의 마찰음과 유사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처럼, 짧고 날 카롭게 들려왔다. 조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서른 개가 넘는 병상에는 부상병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명의 중국인이 스코틀 랜드인 부상자들에게 분사라이플, AK47과 테르밋 탄약, 그리고 권총 조작법을 설명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서른한 명의 습격대원 중 사상자가 열일곱 명, 자신까지 포함하면 열여덟 명이었다. 게다가 부상자들은 모두 중상환자복을 입고, 어두 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좀더 철저한 작전을 세웠더라면 이토록 치명 적인 피해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상자들을 모두 살펴본 조니는 방공호를 나와 분지 안을 둘러보았 다. 분지 전체를 휩싸고 있는 연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흐릿하게 보 였다. 제3단계의 대기보호망의 냄새가 자극적인 석탄냄새에 섞여 희 미하게 느껴졌다. 분지 안은 아수라장처럼 매우 혼란스러웠다. 인프라빔의 도청을 방 해하기 위한 장엄한 종교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앙의 불탑은 플랫폼 전체를 완전히 뒤덮었고, 길들은 모두 포장이 되어 있었다. 조니가 처음 왔을 때는 인기척이 전혀 없는 황폐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부족들이 갖가지 활돌을 벌 이고 있는, 국제적인 모습을 갖춘 지구의 축소판으로 변해 있었다. 오른쪽에는 두 명의 전기기사가 방공호에 와이어를 덮으려 하고 있 었고, 조종사들은 이동차에 실린 공기마스크를 분류하고 있었다. 그 때 건너쪽의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두 명의 셀파가 아프리카 들 소의 고깃덩이를 이동차에 싣고 나타났다. 통신원들은 방공호에서 다 른 방공호로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지구인들의 현재 상황을 대변해주는 혼란된 모습이었다. 조니가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사이클로어로 말하는 소 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촌원 수장이었다. 중국인 부족의 수장이며, 이곳의 건축책임자였 다. 그가 머리슬 숙이자, 조니도 답례를 했다. "우리들은 호반마을에서 이곳으로 이동해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호수가 너무나 넓어서 대기보호망의 중앙까지는 보호력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폭탄이 보호망을 뚫고 댐에 떨어지기 때문에 마을은 늘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요리할 때 나는 연기 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기술자들이 보호망 밑을 통해서 언덕을 뚫고, 환기구멍을 계속 파내 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이 환기구멍을 뚫고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토시와 바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흡입구와 배출구 양쪽에 환풍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공기수납관 은 충분히 굴곡을 쥐서 폭풍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매우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군요. 조금 전에 폭탄이 댐위 의 호수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댐에는 피해가 없었습니까?" 촌원 수장은 중국인 기술자를 불러 잠시 동안 만다린어로 얘기를 나눈 후, 조니에게 말했다. "현재까지는 이상이 없습니다. 다만 몇 발의 폭탄 때문에 배수구의 수문에서 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호수의 수량이 너무 낮아지면 전력 공급에 지장이 생길 것입니다." 불탑의 바닥은 사방이 툭 터져 있었다. 실제로는 현란한 지붕뿐, 측면의 벽조차 없었고, 금속의 전송출하 플랫폼만이 중앙에 넓게 자 리잡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열심히 닦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은 어스 름한 빛 속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조니는 제어탁자를 자세히 보려고 높은 지붕 밑으로 걸어들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플랫폼 반대쪽에는 스탠드가 세 워져 있었고, 그 측면에는 거대하고 험상궂은 얼굴과 날개를 가진 동 물의 모형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제어탁자 옆에 있던 앵거스가 조니 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때요, 쓸만하지요?" 앵거스의 말 그대로였다. 거대한 머리부분과 날개 한 쌍, 활처럼 굽은 꼬리. 장갑금속제로 금속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용입니다." 촌원 수장이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고대 중국 제국의 문장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다충분자 장 갑으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용은 지붕까지 이어져 있었다. 제어탁자는 용의 등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비늘에 가려져 작동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작할 수 있었다. 지면보다 한 단 높은 제어탁자의 플 랫폼에는 두 개의 좌석과, 서류와 컴퓨터용 선반까지 만들어져 있었 다. 모든 것이 장갑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 제어탁자는 누구도 훼 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했으며, 그곳에서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놀랄 만큼 정교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회화나 예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물질만능의 사이클로인 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셨습니까?" 촌원 수장이 말했다. "다른 곳에도 같은 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불탑의 지붕 끝에 있는 용을 가리켰다. 사각지붕의 모퉁이마 다 용이 있었다. 수장은 경사면 옆에 있는 미완성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공호의 입구마다 용을 놓을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점토로 만들어진 훨씬 작은 용으로, 금색과 붉은색으로 칠 해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자 제어탁자가 나타났다. 보호커버 속에 들 어가 있는 제어탁자가 훌륭하게 보였다. 앵거스는 그곳에서 좌표리스트의 복사본을 가지고 조작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좌표 속의 숫자를 현재의 시간과 제어탁자의 버튼에 맞 도록 변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계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혹성마다 여덟 가지로 각기 다르게 운동한다고 기재 되어 있고, 또 혹성의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를 선택해야 되니까요. 그러나 특별히 어렵지는 않습니다." 조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어딘가에서 폭탄이 작력했던 것이 다. "이 소동이 끝나면 곧 일에 착수하세.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수 없지만. 그리고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검토도 못했지 만." 촌원 수장이 불탑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의 안쪽을 가리켰다. 그것은 제어탁자가 비에 맞지 않도록 가려주는 역할을 했 다. 또한 광산 스포트 라이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풀랫폼의 중앙을 밝 게 비춰주었다. "이 빛은 밤이 되어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조니는 사령부가 있는 방공호로 가려고 했으나, 수장은 분지의 내 벽에 있는 거대한 지하실로 안내했다. 그곳은 멋진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안쪽에 놓인 연단 앞에는 쉰 개의 의자들이 놓여져 있었 다. 그곳을 지나자 수장은 조종사와 직원들이 숙소 옆에 지어놓은 내 빈과 방문자용의 조그만 아파트를 보여주었다. 중국인 기술자들은, 목재, 타일, 그리고 석재를 이용한 건축에 능 했다. 특히 사이클로의 기계류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고도의 건축술 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니는 중국인들이 구축해놓은 대공진지에 관심이 쓸렸다. 그것은 플랫폼과 분지의 내부를 방위하기 위해 이 부근 일대에 배치되어 있 을 것 같았다. 문제는 전투요원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대공진지들을 모두 둘러본 조니는 곧장 사령부로 향했다. 아메리카 의 지하기지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작전실로, 중앙엔 지구전도가 그 려진 거대한 사령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 었다. 옆의 통신실에서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기다란 지휘봉을 든 사 람들이 궤도상에 놓여 있는 비행기나 전함의 모형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여가며 이동경로 및 전세를 파악하는 모습이 보였 다. 적의 우주선에는 빨간 깃발이, 아군비행기에는 녹색 깃발이 붙어 있었다. 흰 스카프, 가죽외투, 커다란 방진안경을 쓴 스톰아롱이 시 야에 들어왔다. 그는 양쪽에 불교도 통신원의 수행을 받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입에 밀착시킨 마이크를 통해 작전상황을 논의하고 있었다. 면도로 밀어버린 통신원들의 머리가 커 다란 헤드폰 밑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그들은 스톰아롱이 사용하는 전지구 전투채널과 로버트 경이 사용하는 전지구 지휘채널을 담당하 고 있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군 최고 사령관의 채널담당자는 열세살 의 소년이었다. 브리핑을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상황변화가 거대한 사령 판에 명료하게 나타나 있었다. 싱가포르는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었 고, 러시아 기지에서는 엄청난 수의 대공포화가 사용되고 있었다. 더 넬딘은 에딘버러 상공을, 토르는 카리바의 하늘을 방어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호와 그 밖의 채굴장에서는 아직 전투가 없었지만, 모든 전 투지역들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조니는 전투채널과 지휘채널의 교신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모든 채널은 파리어를 사용했으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통신실에 마련 된 스테이션에서는 스코틀랜드인 사관이 적들의 교신내용을 도청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랜캐논의 모습니 보였다. 그는 책상에 가득 쌓아놓은 사진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전투기의 전망스크린에서 공중 전을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그 스위스인 조종사가 살해되었을 때의 사진일까. 그랜캐논이 한뭉치의 사진을 더 뽑아냈다. 갓 촬영한 사진 들로 거대한 괴물 같은 전함이 찍혀 있었다. 그랜캐논은 몹시 동요한 듯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스톰아롱이 그를 전투기 부대에서 빼낸 것을 감안한다면, 아직 그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 다. 그는 조니가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사령판에 나타난 전황은 매우 불리했다. 그러나 명확한 대처방안이 없는 실정이었다. 양쪽 모두 전력을 최대로 소모해가며 난타전을 벌 이고 있었다. 문제는 대기보호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역들이 얼 마만큼 버텨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에딘버러는 이미 위험한 상황이었 다. 조니가 로크 성에 있는 크리시의 안부를 걱정하자, 로버트 경이 그곳 주민들은 이미 지하방공호에 대피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곳은 대공포화가 주력수비인데. 더넬딘이 폭격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공포화는 주로 폭탄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조니는 아군이 사용하는 사이클로인의 대공포가 어떤 것인지 보고 싶었다. 그는 지 금까지 가까이에서 그 포가 사용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 다. 조니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분지로부터의 출구는 길고 구불구불한 지하통로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드나들 때마다 대기방어망의 스위치 를 껏다켰다해야 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구부러 져 있는 것은 폭탄의 화염이나 파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 다. 조니는 대공포 진지까지 걸어갔다. 대공포는 보호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러시아제 방탄전투복을 입은 두 명의 포수가 포를 조직하고 있었다. 조니가 다가가가 스코틀랜드인 사관이 진지 안에서 뛰어나왔 다. "이런 것이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사관이 대공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대공포만으로는 호수까지 방위할 수가 없습니 다. 이 분지를 방위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조니는 대공포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바짝 다가갔다. 그것은 컴 퓨터 제어장치가 붙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자동으로 조 준하도록 되어 있었다. 포가 자체적으로 운동체의 속도와 방향을 계 산해내기 때문에, 방아쇠만 당기면 목표물에 명중되는 장치였다. 조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도 이십만 피트 근처에 적 전투기 한 대가 비행하고 있었다. 이 대공포의 사정거리는 그것에 오만 피트 가량 모자란다는 것을 조니는 알고 있었다. 적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적 전투기가 다섯 개 가량 폭탄을 투하하자 대공포가 불을 뿜었고, 폭탄은 상공에서 직격당하여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그 폭발의 충격은 지상에까지 미쳤다. "이곳의 지면을 흔들어놓고 있는 것은 호수 쪽에 떨어진 폭탄입니 다. 그곳까지는 방위력임 미치지 않습니다. 저것은 숲 쪽으로 벗나간 폭탄이기 때문에 현재는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인 사관의 말에 조니는 숲 쪽을 바라보았다. 칠팔 마일 건너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습기 때문에 불길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었다. 조니는 대공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 년 전 이 채굴장을 공격 했을 때, 그처럼 완벽한 기습작전을 펼치지 못했다면 이 대공포가 얼 마나 막대한 피해를 당했을까. 그리고 타르 보안부장이 황금에 눈이 멀어 회사의 방위대책을 소홀히 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십 마 일 가량 떨어진 언덕에 폭탄이 투하되어 연기와 나무들이 날려올라 가는 것이 보였다. 적 전투기들이 투하하는 폭탄은 강력한 위력을 가 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저 폭탄이 이 분지를 직격한다면, 대기보호망 이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조니가 입구로 되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랜캐논이 나왔다. 그는 걸 으면서 두꺼운 비행복의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통신원이나 부조종사 도 대동하지 않은 채, 모래자루로 은폐시켜놓은 비행기 쪽으로 향하 고 있었다. 조니는 그에게 특별한 임무라도 주어진 모양이라고 생각 했다. 그랜캐논은 중장갑 마크32를 고도비행용으로 개조한 전투기에 올라탔다. 순간, 스톰아롱이 달려오면서 다급하게 소리쳐 불렀다. "그랜캐논!" 그러나 그는 이미 이륙해 있었다. (4) 그랜캐논은 그때의 일로 번민에 싸여 있었다. 그는 밤마다 악몸에 시달렸고, 동료인 스위스인의 절규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빨리 가게. 나는 상관말고 가라구. 내가 놈들을 처치하겠어. 이곳 은 내게 맡겨두고 자네의 임무를 완수해주게." 긴급탈출 직후, 적탄에 명중되었을 때의 그 비명소리. 공중에서 산 산이 찢겨진 동료의 처참했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 때 전투기 부대를 출격시킨 외계인 전함의 영상기록을 입 수해놓고 있었다. 텔리파이급 전투기 탑재 주력함, 캡춰 호였다. 그 거대한 괴물은 지금 상공에 머물고 있었다. 저놈이 틀림없다. 동료를 학살한 전함이다. 그때 명령을 어기고라도 돌아갔어야만 했다. 둘이 합세했다면 토르 네프 전투기를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령만을 따 르느라 그를 사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전체적인 작전 때 문에 분노를 자제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 지금 그 괴물을 파괴하지 않으면 평생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할 수 없 을 것이다. 그는 지령용 단거리 무선기를 통해 스톰아롱의 명료한 사이클로어 명령을 들었다. "그랜캐논, 돌아와. 착륙할 것을 명령한다." 그랜캐논은 무전기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가 조종하고 있는 것은 스톰아롱의 마크32 전투기였다. 그것은 비상시에 대비한 예비기로, 고도용으로 개조되어 모든 문과 창은 철저히 밀폐되어 있었다. 또한 거대한 포와, 도시의 절반 가량을 파괴할 만한 위력을 지닌 폭탄을 장착하고 있었으며, 어떠한 포격에도 견뎌내도록 장갑이 씌워져 있었 다. 이 비행기에 장착된 화기로 캡춰 호의 장갑을 꿰뚫을 수는 없다 고 하더라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요격용 전투 기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계획을 제지시키지 못할 것이었다. 그랜캐논은 전투기를 상공으로 상승시켜나갔다. 대기권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대기권을 돌파하기 위해 공기마스크를 착용한 후, 정 확히 조절했다. 캡춰 호는 카리바 상공 삼백오십 마일 위치에서 천천히 타원을 그 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대기권의 경계에서 오십 마일 위쪽이었다. 캡 춰 호에서 발진한 공격을 끝낸 전투기들이 탄약보급을 받기 위해 귀 환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대가 그를 발견하고 공격해 왔다. 그랜캐논은 그 전투기에 포를 조준하여 발사버튼을 눌렀다. 반동으 로 마크32가 덜컹 흔들렸다. 포는 정확히 명중됐고, 토르네프 전투기 는 화염에 휩싸인 채, 혜성처럼 지구 쪽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랜캐논이 공격해 오는 것을 알아낸 캡춰 호는 포문을 열고 마크 32를 향하여 포격을 가했다. 그 중 한 발의 포탄이 전투기의 측면을 스쳐갔다. 비행석이 뜨거워졌다. 그랜캐논은 재빨리 후퇴하여 사정권 밖으로 벗어났다. 전함의 제트분사구가 불을 뿜고 있는 방향을 확인 하여 전함의 진로를 파악한 후, 전방 이십오 마일 지점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토르네프 전함의 사정거리에 근접한 위치였다. 그랜캐논은 전망스크린을 조정하여 전함을 세밀히 관찰했다. 검은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고, 아래쪽에는 지구가 활처럼 펼 쳐져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복수, 처참하 게 찢겨진 동료를 대신해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밖에 없었다. 그 는 그 거대한 전함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함은 그랜캐논기에 대한 폭격을 중지했다. 그의 임무가 공격이 아니라 정찰에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전함들의 특징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전력만을 과신하는 것이었다. 캡춰 호는 마크32를 무시한 채 전투기의 발진과 회수를 재개하였 다. 그랜캐논은 격납 갑판의 거대한 문이 열리기 전에 외부의 조그만 경고등이 켜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문이 열리고 전투기가 발 진하려고 할 때, 다른 비행기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 랜캐논은 문이 열릴 때마다 그 내부의 확대영상을 검토했다. 격납 갑 판은 전투기로 가득차 있었고, 우주복 차림의 토르네프인들이 분주하 게 오가며 급유와 폭탄을 탑재하고 있었다. 내부의 탄약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격납 갑판바닥에는 액체연료로 가득찬 연료통들이 굴 러다니고 있었다. 그랜캐논은 한 단 높게 되어 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함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두 명의 우주인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민간 인인 모양으로 제복을 입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해군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민간인에게 계속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놈들은 그랜캐논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경고등과 격 납 갑판으로 시선을 돌려 개폐시간과, 자신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그 순간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가게. 나는 상관말고 가라구. 내가 놈들을 처치하겠어. 제발 가주게."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놈들을 처치해주겠다. 흥분된 마음이 좀처 럼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후 냉정을 되찾자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졌 다. 나는 지금 반드시 완수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이번에 저것이 열린다면.... 불이 켜졌다. 조작판을 두드리자 마크32기는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캡춰 호의 포 가 불을 뿜었고, 오렌지색 불덩이가 마크32기에 빗발치듯 퍼부어졌 다. 그랜캐논의 전투기는 탄막 속을 단숨에 빠져나가 열려진 격납 갑 판으로 돌진했다. 그랜캐논은 마크32기의 모든 포와 폭탄의 발사버튼 을 눌렀다. 그 순간 태양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대폭발이 일어났 다. 조니와 스톰아롱은 분지 밖에 설치된 대공포 전망스크린을 통해 그 랜캐논의 전투기가 캡춰 호의 격납 갑판으로 돌입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은 전망스크린을 통하지 않고도 똑똑히 볼수 있 었다. 갑작스러운 대폭발과 함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섬 광에 한순간 태양빛이 어둡게 느껴졌다. 거대한 주력전함은 슬로모션 영상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전함의 추락속도는 가속화되어 대기권 으로 돌입하면서 강한 빛을 튕겨내며, 혜성처럼 하늘을 비스듬히 가 로질러 갔다. "큰일이다." 스톰아롱이 소리쳤다. "저 상태로 낙하하면 호수에 추락하고 만다." 스톰아롱은 양팔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마치 의지력으로 그 진로를 호수에서 빗나가게 하여, 언덕 쪽으로 밀어보내려 하는 것 같았다. 화염에 휩싸인 전함의 잔해는 무서운 속도로 댐에서 오 마일 가량 떨어진 호수에 추락했다. 낙하할 때의 열과 굉음이 공기를 갈라놓았 고, 추락과 함께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 속에 엄청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남아 있던 연료가 물 속에서 폭발한 것이리라. 그리고는 산 더미 같은 해일이 밀려들어와 이미 모두가 떠나버린 중국인 마을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그 충격파가 댐 뒤쪽을 강타했으므로, 댐에 서 넘쳐흐른 물은 수문을 부수고 맹렬한 폭포가 되어 댐의 전면으로 뿜어져나왔다. 그 엄청난 수압은 분지 일대를 뒤흔들어댔다. 두 사람은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감에 숨을 죽이고 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물결은 서서히 줄어들 고 있어, 댐이 붕괴될 위험은 없었다. 조니와 스톰아롱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즈음 도처에서 새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발전소에 있 던 경비병들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흘러넘친 물들은 강으로 이어져 무시무시한 기세로 제방을 무너뜨리면서 섬들을 삼켜버렸다. 마치 찢겨진 천조각들이 떠 있는 듯 보였다. 호수 부근에 있던 차량 들도 모조리 떠내려가고 말았다. 분지에서 기술자들이 밀려왔다. 경비병들은 뛰어다니면서 비행작업 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강기슭의 진흙 속에 파묻힌 비행작업대를 찾아내서 파낸 다음, 그 위에 올라탔다. 분지 위의 대기보호망은 아 직 제3단계로 쉭쉭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머지 경비병들은 발전소로 달려가, 댐의 대기보호망을 끄고, 분 지의 보호망을 제1단계로 조정했다. 길이 백이십 마일 정도의 가늘고 긴 댐은 수위가 저하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 옆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던 조니가 스톰아롱은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 기술자들이 달려와서, 촌원 수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하 였다. 조니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저들의 얘기로는 댐은 붕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류쪽 의 수문이 파괴되어, 통로 쪽에 접해 있는 콘크리트 가드레일 일부가 떠내려갔답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균열도 발생하지 않았답니 다. 다만 댐 가장자리의 접합점, 그러니까 댐 건너쪽 기슭과의 접합 점에 문제가 발생하여 물이 새고 있답니다. 물이 침식해서 댐의 접합 점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수위가 너무 내려가면 터빈이 회 전할 수 없게 될 경우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리까요?" 조니의 물음에, 촌원 주장은 다시 기술자에게 질문했다. "추측이지만 네댓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물을 멈추게 하고 누수 되는 곳을 막아야 하는데, 시멘트가 충분치 못합니다. 댐의 맨 가장 자리 부분은 기슭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대답을 마치자, 기술자들은 복구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현장으 로 달려갔다. 그대 앵거스가 통로에서 달려나와 조니에게 소리쳤다. "드디어 전송시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전송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톰아롱이 희미하게 말했다. 그는 그랜캐논의 희생에 넋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나 시간이 있을까요?" "최소한 그가 벌어준 시간만큼은 있겠지." 조니 역시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5) 왜소한 회색인은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투기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는 선장에게 전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려두었 다. 전함은 조종이 거칠어서 사고나기가 쉬웠고, 유탄에 맞을 위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채굴장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방위설비로 둘러싸인 분지 로, 대공포의 섬광이 차례로 목표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채굴장 바로 북쪽에는 수력발전댐이 있었다. 치열하게 뿜어대는 포화 때문에 인프라빔이 교란되어 있어서, 지구 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군사적 문가가 아니었으므로 군인들 같으면 한눈으로 알 수 있는 상황도 일 일이 조사해야만 했다. 특히 대공포를 식별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으 나 마침내 찾아냈다. 국지방위 컴퓨터식, 대공, 대기 비대기, 빔 투사포, 일 분 간에 만 오천 발, 최대 사정거리 십칠만 오천 피트, 최소 안전권역 이천 피 트. 포수 두 명, 포신 및 보호장비는 브레디컴성의 탄바트 무기 제조 회사제. 컴퓨터는 사이클로성 인터개랙틱 무기회사. 비용 사천이백육 십구 크레디트, 브레디컴성의 플랫폼에서 출하. 이런, 싸구려 대공포잖아. 역시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답군. '첫째도 이윤, 둘째도 이윤, 셋째, 넷째는 없고, 다섯째도 이윤.' 이것이 그 회사의 방침이었다. 지구인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당 연했다. 궤도포 정도는 보유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고도 이백 마일 상공에 있어도 안전하다. 고도 삼백오십 마일 지점인 비대기권에 주둔하고 있는 주력전함에서 발진 하는 전투기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선장에게 그렇게 명령하고, 통신원에게는 빔의 초점을 아래쪽 대기보호망 속의 전송플랫폼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맞추도록 명령했 다. 역시 그것은 제어탁자였다. 전송 제어탁자가 플랫폼 바로 옆에 있 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위에서는 지구인들이 전송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게 한가닥의 희망이 솟아올랐다. 그는 텔레포테이션의 작동기기를 찾아내기 위해 전망스크린을 유심 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텔레포테이션 작동기 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전함의 군인들은 텔레포테이션 작동기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텔레포테이션 작동기기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아니, 그들의 전망스크린은 구조가 다른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전쟁을 하고 있으니까. 전 쟁중에는.... 회색 사나이는 한숨을 쉬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니.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전송장치를 작동시킬 리가 없다. 그들은 포격 을 하고 있으며 자기네들이 비행기까지 뛰우고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족도 텔레포테이션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아니, 장치 자 체가 일그러져서 파열해버릴 것이다. 군인들은 채굴장에 전력공급을 끊기 위해서 발전댐의 호수를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다. 덕분에 채굴장 쪽은 잠시 조용해졌으므로 회색인은 제어탁자에 시선을 집중시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을 분석해보았다. 탄소였다. 밑에 있는 것은 불에 탄 제어탁자인 것이었 다. 그는 매우 실망했다. 그는 일단 후퇴하여 전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댐 호수 주위의 대기 장갑 케이블로 침입하려던 연합군 전투기들은 대공포화에 제지당하고 있었고, 지구인들은 요격기를 앞세워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치열한 공중전 끝에 두 대의 쟘비초 전투기가 산산조각이 났다. 외 색인은 우주선의 고도를 더욱 높였다. 남쪽에는 연합군 폭격기가 싱 가포르 지역의 폐허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불기둥이 치솟아올랐다. 무방비 상태인 데다. 군사적 가치도 없는 폐허를 폭격 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오히려 그곳에는 그처럼 탐내고 있는 전리 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순간 소화불량이 재발하기 시작 했다. 그는 북쪽 대륙에 있는 러시아에 기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장에게 그곳으로 우주선을 돌리라고 명령했다. 러시아 기지 상공에서는 전함이 수송기들을 발진시키고 있었다. 인 원수송기였다. 약 오백 명의 하우빈인 해병대원들이 기지 앞의 평원 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사격을 가하면서 전진 해나갔다. 기지로부터의 반격은 없었다. 그 기지는 거의 무방비 상태 인 것처럼 보였다. 해병대원들이 기지 가까이에 접근해 가자 그제서 야 산발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지하 방위기지의 입구가 있는 산의 경사면을 향해 돌 격해나갔다. 백 야드 지점까지 접근해 간 그들은 입구를 향하여 총탄 을 퍼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공격부대원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에 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지뢰였다. 그와 함께 가지 쪽에서 언덕을 향 해 일제히 사격을 가해왔다. 공격부대는 황급히 마을 건너쪽까지 후 퇴했다. 장교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고함을 쳐댔지만 이미 백여 명이 넘는 사상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살아 남은 공격부대는 전열을 가다듬어 기지를 향해 다시 돌진해 나갔다. 그러자 기지의 격납고에서 몇 대의 전투기가 화살처럼 솟구 쳐올라 공격부대에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북쪽 도시는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그의 광물분석기는 전지역이 방사능으로 뜨겁게 달궈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함장에게 스코틀랜드로 궤도를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아래쪽 지평선 부근에 드 로킨 전함이 있었다. 에딘버러라는 곳으로 도시 전체가 불길에 휩싸 여 있었다.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도시 바로 옆의 거대한 바위산으로부터 대공포화가 빗발치듯 올라오고 있었다. 바위산의암벽이 불바다 속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때 드로킨 폭격기 한 대가 공중에서 요격당하여 추락하고 있었 다. 그것은 불타는 도시의 오렌지빛 불바다 속에 녹색 불똥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불바다 속에 텔레포테이션 작동기기가 있을 턱이 없 었다. 그의 기분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로서는 뜻밖의 상황 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너무 긴장한 탓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아 닐까. 우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긴장을 풀면 머리가 맑아져서, 좀더 명료한 판단력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선실로 내려가 수 면을 취했다. 몇 분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구인 해병대 전투기들의 혼란스러운 비행이었 다. 그 정도이 속임수에 넘어가다니 정말 어리석군. 싱가포르로 향한 그룹은 속임수였으며, 불탄 제어탁자는 미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다. 그는 자신의 회색 사무실로 가서 그때의 영상을 다시 돌려본 다음, 또 다른 전투기들의 항로를 정확히 연장해보았다. 그 항로는 남반구 의 불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선장에게 명령하여 두 배 광속으로 긴급비행을 하였다. 그곳 에서 캡춰 호의 최후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회색인은 아연실색해졌다. 텔리파이급 전투기 탑재 주력전함이 궤도상에서 폭발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 단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색인은 함교에 후퇴 명령을 내리고, 그 전함이 파괴되어 대기권으로 빨려들어가 호수에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동안, 그는 댐을 지켜보았다. 댐은 강력한 충격을 받아 조금 후 서졌지만, 붕괴될 위험은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흘러넘치고 있었으나, 물이 넘치는 곳에는 중요한 시설물이 없었다. 하지만 일부분을 파손된 것 같았고, 거대한 물줄기가 댐의 왼쪽에 서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구멍이 크게 뚫린 것 같았다. 치열한 전 투가 벌어졌음에 틀림없었다. 숲이 불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불탑 근 처가 의심스러웠다. 뭔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인프라빔은 종교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색인은 전망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스크린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의 선이 나타났다. 제어탁자였다. 그는 영상을 다시 되돌려보았다. 틀림없는 제어탁자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제어탁자는 단 한 번만 작동할 뿐, 재생이 불가능한 기 기였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 그 잛은 순간의 기다림이 몇 년의 세 월처럼 길고 초조하게 느껴졌다. 제어탁자을 주시하고 있던 회색인은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제어탁자가 작동하고 있었다. 두번째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쁨에 젖어 있던 그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웃음을 거두었다. 도대체 요즘 내가 왜 이러는가? 불안, 초조, 그리고 이번에는 한기 까지.... 도무지 전문가답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해야만 하는 데.... 어떻게 하면 저들과 교신할 수 있을까. 저들은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그는 보코더를 집어들고 무선기의 스위치를 켰다. 영어? 그렇다. 영어로 지작하자. 그는 보코더의 마이크를 이용하여 말하기 지작했다. 기계가 영어로 통역했다. "나는 당신들과의 평화적인 접촉을 희망하고 있다. 나의 우주선은 비무장 상태이다. 당신들은 총이나 포를 겨냥하고 있어도 좋다. 적대 감은 전혀 없다. 나와의 화합을 승낙해준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이익 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우주선은 비무장 상태이다. 물 론 적대감은 전혀 없다." 회색인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지구인들이 응답에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26 부 의연하라, 유유히 초연한 태도로 대하라 (1) 조니와 앵거스는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제어탁자를 둘러싸 고 있는 작업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앵거스가 타르의 문서절단기에서 찾아낸 기술관련 편람서가 펼쳐져 있었다. 사이클로 의 기술관련 안내서들은 대부분 내용이 조접한데, 이것은 특별했다.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새로운 사실들은 조니을 전술적 딜레마에 빠 지게 했다. '전송출하의 제어탁자 조작원을 위한 주의사함 일람'이라는 그 책 은 기본적인 스위치들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술하지 않고, 동일공간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었다. 조니는 적의 거대한 전함으로 전술핵무기를 전송시켜 폭발시킬 계 획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만 오천 마일 이내의 위치에 있는 곳으 로 전송해서는 안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즉 동일공간 현상은 근접 해 있는 서로 다른 복수의 공간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설명 되어 있었다. 공간과 거리의 법칙에 의해서 이동되는 공간의 위치가 멀어지면 멀 어질수록, 그것은 본래의 위치와는 다른 것으로 변형되는 법인데, 완 전한 차이성이 나타나는 거리는 약 이만 오천 마일 이상 떨어져 있을 때이다. 텔레포테이션 모터는 이 원리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전송능 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모터는 동일공간의 변형에 저항하는 힘을 이용하는 원리로 작동하 도록 되어 있다. 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변형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 기 때문에 그 힘을 더욱 강력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모터 자체 가 물체를 이동시키는 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모터가 들어 있는 상자의 위치만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동일한 구조물 안에서 일 시에 열 대 가량의 모터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모터들의 저항력은 서로 교차되지만, 기능에는 지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물체를, 그 물체 혹은 전송장치를 훼손시키는 일없이 이동시키는 데는 두 개의 공간을 서로 일치시켜야만 하는데, 공간은 변형되는 공간이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동일공간일 때는 아무 런 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아서 몸을 숙일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닥터 알렌이 찾아와서 설파제를 좀더 복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제어탁자로는 전함을 폭파시킬 수가 없다. 놈들의 본국혹성을 텔 레포테이션으로 공격한다 해도, 본국으로부터 광속으로 몇 개월이나 떨어진 위치까지 와 있기 때문에 놈들이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전함들은 모두 반작용 구동으로 운항되 고 있어서 더욱 늦어질 것이다. 지금의 전쟁을 멈추게 하는 데는 아 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한숨을 지었다. "결국 이 장치는 공격용으로는 쓸 수가 없다." 전송장치는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실험을 통하여 확인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들은 무인정찰기에서 회신검경 카메라를 꺼내왔다. 그것 은 무인정찰기가 수색에 사용하는 영상제어형 카메라로 설치방법에 따라 어떤 광각의 영상도 촬영할 수 있고, 어떤 타입의 영상기록기와 도 접속할 수 있었다. 전송장치는 물체를 보낸 후, 다시 회수할 수도, 혹은 보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었다. 물체를 보냈다가 회수하려면 공간을 전 송지점으로 옮겼다가, 다시 본래의 위치로 되돌리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공간을 다른 공간의 좌표까지 이동시키면, 변형된 공간은 물체 를 유지하게 되며, 이동시킨 공간을 비워둔 채 본래상태로 되돌릴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공간 속을 이동하는 것은 없었다. 처음의 공간과 변형된 공간이 일치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회전검경 카메라에 영상기록기를 집어넣어, 그것을 달의 표 면으로 보냈다. 그 작업은 매우 간단했다. 그들은 번쩍번쩍 빛나는 분화구를 촬영했다. 전송기가 작동하며 매우 명료한 영상을 스크린에 재현시켰다. 그것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실험에 만족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차 별 공격을 받고 있는 인류를 위해, 이 장치를 이용하여 구제책을 강 구해야만 했다. 영상 전송장치를 이용하여 침입자들에게 그들의 본국 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지구침략 야욕을 영원 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일시적으로 후퇴는 하겠지만 반드시 재침략해 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사령실로부터 내선전화벨이 울리며, 스톰아롱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전송실험을 중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확인된 우주선이 북쪽 상공 사백 마일 지점에 출현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곧 정확 한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령실에 있는 스톰아롱은 우주선의 영상을 잡기 위한 데이터를 영 상재생 프린터에 집어넣었다. 그때 불교도인 여성 통신원이 들어와 스톰아롱에게 보고했다. "전투채널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메세지가 들어오고 있습니 다. 당신과 로버트 경이 사용하는 언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기 에 녹음해두었습니다." 그 영성 통신원은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스톰아롱은 영상프린터에 서 용지를 빼내고 있었다. "틀어봐요." "나는 당신들과의 평화적인 접촉을 희망하고 있다. 나의 우주선은 비무장 상태이다. 당신들은 총이나 포를 겨냥하고 있어도 좋다...." 스톰아롱은 눈을 깜빡거렸다. 영어라.... 기계영어군. 스톰아롱은 프린터에서 영상을 빼냈다. 그것을 확인한 스톰아롱은 비디오 장치를 들고, 제어탁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니와 앵거 스가 긴장된 얼굴로 쳐다보았다. "전함과는 다른데요. 하지만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을 좀 보십시요." 스톰아롱은 그 사진을 펼쳐 보였다. 그것은 원통형 모양의 우주선 으로, 가장자리가 고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충돌했던 우주선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리 고 스코틀랜드 북부의 노부인을? 이것은 바로 그 우주선이라구요. 이 우주선에 응답을 해도 될까요?" "함정일지도 몰라." "이것이 그 우주선이란 증거가 없지 않은가?" 앵거스의 말에 조니가 스톰아롱에게 물었다. 불교도 통신원이 케이블 마이크를 들고 스톰아롱을 뒤따라와 있었 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헬로우, 헬로우, 상공의 우주선,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들린다." 기계영어의 답변이 들렸다. "그 노부인이 당신에게 내놓은 음료수는 무엇인가?" "야브차다." 스톰아롱이 히죽이 웃었다. "좋다. 북쪽 공터에 착륙하라. 그곳은 우리들의 사정거리 안이다. 지금 한 말을 잊지 마라. 당신 혼자만 내려와야 한다. 무장하지 말 것. 호위병이 당신을 마중나갈 것이다." 스톰아롱은 밖에 있는 대공포와 경비병에게 철저히 경비하라고 명 령을 내렸다. 그는 조니를 위해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그녀석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앵거스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왜소한 회색인은 양쪽에 경비병의 호위를 받으며 불탑이 있는 구역 으로 들어왔다. 그의 키는 조니의 어깨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단정 한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피부색깔이 회색이라는 것 외에는 인 간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앵거스가 그를 향해 말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인들의 스웨터라구." "알고 있다." 회색 사나이는 보코더를 통해 영어로 말했다. "시간을 가지고 서로를 알기 위한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일에 착수해야만 한다." 그때 경비병이 끼여들었다. "그의 우주선 꼭대기에서는 흰 라이트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로버트 경 소속의 통신원인 퀀이라는 소년이 로버트 경에게 속삭였 다. "그의 우주선의 무선통신은 국지에서의 일시적 안전통행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퀀은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회색 사나이는 청각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즉각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아아, 당신들은 사이클로어를 할 줄 아는가?" 그는 목에 건 보코더를 벗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필요없다. 보코더가 항상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 으니까. 때때로 중대한 부분을 오역해서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있으 니까" 말을 마친 그는 재빨리 제어탁자 앞의 계단을 걸어올라가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표준형의 전송 제어탁자로군, 당신들은 한 대밖에 갖고 있 지 않군." 조니는 웬지 모르게 그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 다. "우리들은 또다시 제작할 수도 있다." 이것을 훔쳐갈 생각은 마라. 금세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라는 의미를 은근히 암시했다. 그러자 회색 사나이의 얼구링 환하게 밝아졌따. 그는 계단을 내려 오자,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들은 서둘러야만 한다. 이 혹성 정부의 공식적인 대표자가 이 곳에 있는가?" "대표자라면.... 이곳의 대표자는 로버트 경이다." 조니가 로버트 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정부를 대표해서 서명할 권한을 갖고 있는가?" 회색 사나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로버트 경에게 물었다. 로버트 경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로버트 경은 한쪽 구석으로 통신원을 끌고 가 전투중인 에딘버러에 있는 피어거스 수장과 연락을 취하게 했다. 그들은 파리어로 교신하고 있었다. 피어거스 주장이 말했다. "괜찮지 않습니까? 현재로서는 우리가 유일한 정부이고, 그 밖에는 정부가 없으니까." 회색 사나이는 로버트 경을 불러서 말했다. "그의 말을 녹음해주지 않겠는가? 합법적인 수속을 밝고 싶다. 법 정소송이 발생할 경우 발생할 경우 통용될 수 있어야만 한다." 피어거스 주장은 그것을 녹음했다. 회색인은 명쾌하게 일을 진행시켰다. 그는 녹음테이프를 받아들고 말했다. "당신들 혹시 돈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니까 은하 크레디트 말이 다." 조니는 최소한 칠십만 크레디트가 보관되어 있는 곳을 알고 있었 다. 카의 짐 꾸러미였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빅토리아 호에 있었다. 금고에도 이십억 크레디트가 있지만 그것 역시 이곳에는 없었다. 그 래서 퀀이 조종사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격추한 적기의 조종사들로부 터 회수한 크레디트 지폐를 끌어모았다. 좋구 말구요. 물론 로버트 경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조종사들은 선뜻 가지고 있던 크레디트를 건네주었다. "아아, 천이백 크레디트!" 회색인은 크레디트를 건네받고 카드의 서식을 작성하였다. 스코틀랜드군 최고 사령관.... 글쎄, 이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 군. 그럼, 이렇게 해두자. '지구혹성 임시정부 대표자'라고. 그리고 위에는 '지구혹성의 임시정부'라고. 날짜, 주소, 정리번호.... 이곳 은 공백으로 놓아두자. 어차피 법적 가치는 없으니까. "자아, 이 밑에 서명해주시오." 로버트 경은 그곳에 서명했다. 회색 사나이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 첩을 꺼내 안쪽 표지에 '지구혹성 임시정부'라고 기록했다. 그리고는 다음 페이지의 맨 위에 '천이백 크레디트'라고 기입한 수, 사인을 하 여 로버트 경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당신의 통장입니다.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주시오." 그들은 악수를 나누었다. 회색인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웃옷의 옷깃을 뒤직고, 버튼형 무전기를 향해 중얼거 렸다. 밖에 있던 경비병이 내선전화로 보고했다. "그의 우주선 꼭대기 라이트가 방금 푸른색으로 변했습니다." 퀀이 말했다. "그의 무선신호는 '국지회의, 방해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 다." 회색 사나이는 그들에게 싱긋이 웃어 보이고는 양손을 바쁘게 비벼 댔다. "자아, 이제 당신은 나의 고객이 되었으니까 충고할 수 있게 되었 다. 나의 첫번째 충고는 신속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커다란 책을 끄집어냈다. 표지에는 사이클로어 로 '주소록'이라고 씌어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다음 주소로 전송해야 한다.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별들부터 해야 한다. 처음에는 포크너인이다.... 본국혹성은 포 크너성.... 좌표는.... 좌표는.... 여기 있다. 황제궁전 앞의 분수정 원.... 기본좌표는...." 그가 일련 숫자를 말했고, 앵거스가 서둘러 그것을 받아적었다. 그 것들은 타르의 책에 적혀 있던 순서와 동일했다. 앵거스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제어탁자를 조작할 수 있는가?"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조작할 수 있겠는가? 제작하는 것은 더말 할 나위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주소뿐이다." 그때 그는 앵거스가 종이와 펜으로 좌표를 현재지점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수가 있나. 좌표컴퓨터도 없단 말인가. 손으로 하다가는 해 가 저물어버릴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는 옷깃을 젖히려다 말고, 로버트 경에게 양해르 구했다. "내 부하에게 컴퓨터를 가져오게 해도 되겠는가? 빨간 종이상자도 필요하다. 그에게 경비병을 딸려 보내도 상관없다. 그것은 폭발물질 도 아니고, 어차피 이곳에는 내가 있으니까." 로버트 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회색 사나이는 버튼마이크에 대고 빠른 말로 지시하더니 경비병에게 빨리 나가라고 말했다. 그는 초조 한 듯이 기다리다가 제어탁자의 케이스 측면을 두드리며 싱긋이 웃었 다. "굉장히 호화판이군. 당신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슨 상 당히 단순한 것을 사용하던데...." 회색 제복을 입은 승무원이 경비병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 다. 그는 상당히 큰 컴퓨터를 회색인의 팔에 안겨주고, 빨간 종이뭉 치를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경비병과 함께 돌아갔다. 회색 사나이는 컴퓨터의 측면 스위치를 조작했다. 여러 가지 키보 드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자, 그것을 앵거스 앞에 놓고 말했다. "자아, 이것이 좌표컴퓨터다. 이 키에 정확한 전송 예정시간을 입 력시키면 된다. 그것은 실제로 전송스위치를 누르는 시간이어야만 한 다. '보낸다'든가 '보냈다가 회수한다' 아니면 '교환한다'를 이 버튼 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결정되면 당신의 혹성이름를 밝히고, 표 에 있는 제로상태의 여덟 가지 기본좌표를 이 키에 입력시켜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신규계약의 선물로 이 컴퓨터를 증정하겠다. 나는 몇 대 더 가지고 있으니까. 자아, 전송시각은 이천이백 항성시, 기본우 주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팔 분이다. 전송에는 이분이 걸린다. 우주의 종족들 가운 데 서른 개 혹성의 주요 인사들을 초빙하기로 한다. 단 사이클로별은 제외시킨다. 따라서 전송은 스물아홉 번이 되는데, 거기에 보라즈 경 을 추가한다. 그가 병으로 누워 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니 까 전송은 서른 번, 즉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나서 세 시 간 기다렸다가 '보냈다가 회수한다' 버튼을 누른다. 회수하는 데는 각각 육 분이 걸린다. 그들을 초청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각 혹성의 좌표와 시간을 정확히 입력시켜서 혼선을 일으키거나 중복되 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 서두른 나머지 그들이 화 가 치밀어 도착하는 일이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세 시간이 필요 하다. 따라서 지금부터 일곱 시간, 그리고 그들이 조직을 편성하는데 소요되는 약간의 시간 뒤에는 그들을 맞이할 수 있다." 말을 마친 회색인은 숨을 헐떡거리며 빨간 종이뭉치를 로버트 경에 게 내밀었다. "이 서류의 확인란에 서명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기입하겠 다. 가능한 한 빨리 서명해주기 바란다." 로버트 경은 그 서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이클로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긴급 통지서 삼가 아룁니다. 이 종족과의 정치적 관계에 관한 전권을 보유하고, 조약체결을 지 닌 사절을 파견해주도록 요청하는 바입니다. 사절의 안전은 보장됩니다. (회의시간과 회의장소를 기입하는 난이 있다.) 회의기간은 사절의 재량에 의하는 것으로 한다. (회의가 이루어질 혹성의 이름이나, 대기, 온도, 중력, 식량상태등 을 기입하는 난이 있다.) 사절은 안전하고 양호한 상태로 모든 의사관련 문서와 함게 귀환될 것을 보장한다. (서명란이 있다.) 로버트 경은 그 서식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회 색인이 다급하게 재촉해댔다. "자아, 빨리 서명하라." 그는 서류의 서명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군데뿐이다. 마지막 두 행만 서명하면 된다. 머리글자와 봉인 은 물론, 나머지는 내가 기입한다." 그는 두꺼운 종이판을 능숙하게 접은 후, 대각선 방향대로 눌러서 꽤나 큰 상자를 만들었다. 그리곤 상자 윗면에 점화되지 않은 발연통 과 조명탄, 그리고 계속 울려대는 작은 종을 달았다. 로버트 경이 서명난에 사인을 하자, 왜소한 회색인은 서명한 카드 를 건네받아 재빠르게 모든 난을 기입한 다음, 서명을 하고 인감을 찍어 상자 속에 던져넣었다. "포크너별이다." 그는 앵거스에게 그 상자를 전송플랫폼의 중앙에 올려놓으라고 했 다. 앵거스가 상자을 들고 플랫폼으로 향하자, 그는 즉시 다음 상자 의 제작에 착수했다. 조니는 시간을 확인항 수, 앵거스가 컴퓨터에서 꺼낸 테이프 위의 좌표와 마크를 대조해가며 제어탁자의 키보드르 두드려 입력시켰다. "시간이다." 그는 전송버튼을 눌렀다. 첫번째 상자는 한순간 흔들리는 듯하더니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렸다. "토르네프별, 약탈본부의 현관이다." 회색인의 지시에 앵거스가 컴퓨터를 작동시켰고, 조니가 제어탁자 에 좌표를 입력시켰다. 회색 사나이는 달려가서 두번째 장자를 플랫 폼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플팻폼을 떠난 순간, 조니는 전송버튼을 눌렀다. 두번째 상자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교도 통신원까지 합세하자 회색 사나이는 작업을 더욱 빠르게 진 행시켜, 마지막 상자의 출발시각 사십 분 번에 모든 전송준비를 완료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회색인은 작업을 계속 진행시켜나갔 다. 로버트 경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이 이 회의를 주관하는가?" "아나,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것을 도와줄 뿐이다. 그들이 도착 하면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 하기에 달려 있다." 조니와 로버트 경은 서로 마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부터 여섯 기간 삼십 분 후면 스물아홉 개 종족의 정식 사절단이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오만 개의 혹성을 구성하고 있는 스 물하홉 개 종족의 대표자들이다. 회색인이 옷깃의 마이크를 향해 뭐라고 말하자, 밖에 있던 경비병 이 내선전화로 보고해왔다. "우주선의 신화가 달라졌습니다. 푸른색 램프의 점멸이 빨라지면서 커다란 붉은색 램프가 켜졌습니다." 통신원은 계속해서 상황의 변화를 로버트 경에게 보고했다. "계속 발신중이던 무선신호가 지금 막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국지 휴전지역, 제군들의 본국혹성 대표자의 안전이 총포나 모터, 혹은 공 격에 의해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이 지대로부터 오백 마일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경이 말했다. "당신이 지구를 공격하고 있는 모든 전함의 사령관들을 휴전협상 테이블로 모잉게 할수는 없는가?" "어림도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거센 항의가 빗발쳐올 것이다. 국 가 권력의 침해다. 유감스럽지만 전투지역에 있는 당신의 동료들은 참고 견딜 수밖에 도리가 없다." 로버트 경은 작전사령실로 달려가 지휘채널을 통해 현재상황을 모 든 전선의 지휘관들에게 알렸다. 이것은 모두에게 힘을 주었으나, 침 략자들의 공격의 강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 다. 그들은 최대한 견뎌내고 있었지만 전세는 매우 불리했다. 그 동안에도 앵거스는 많은 양의 테이프를 치고 있었다. 회색인은 나머지는 자신이 처리하겠으며, 세 시간 대기 뒤의 '보냈다가 회수한 다'를 위해 필요한 계산도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조금 전부터 중국인 기술자 한 명과 촌원 수장이 머뭇거리면서 조 니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니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 앵거 스에게 제어탁자를 맡긴 후,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촌원 수장이 나직하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댐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발전기 의 취수구가 보일 정도입니다. 여기 있는 발전담당 후친의 얘기로는 앞으로 네 시간 후면 모든 전기공급이 중단된다고 합니다." (3) 조니는 전령을 시켜 토르와, 댐 주변의 지형과 시설물들이 나타나 있는 지도를 찾아오도록 했다. 거기에는 사이클로인의 낡은 방위지도 의 복사본도 포함하고 있었다. 전령을 기다리는 동안 조니는 제어탁자 옆의 컴퓨터로 계산에 열중 하고 있는 회색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마치 날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컴퓨터 조작능력은 숙련 된 조종사가 조작판을 다루는 기술과 흡사했다. 조니는 아직까지 이 왜소한 회색인의 신분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 고 있었다.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데는 틀림없이 깊은 이유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니는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이유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내야만 정확한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댐 문제가 시급했다. 만약 전력이 끊어진다면 모든 계획이 끝장나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 간은 실제로 두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 구해서라도 전력이 중단되는 사태는 막아야만 했다. 전령이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첫번째 지도는 중국인 기술자가 최근에 완성한 지형도로, 마을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호수를 정확하게 축소시켜놓은 듯한 지도로, 한자와 한문식 숫자를 빼놓고는 알아보기 쉽게 명기되어 있 었다. 또한 호수뿐 아니라 주변상황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사이클로인의 방위지도를 집어들었다. 사이클로인들 의 첫번째 측량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그들이 카리바 댐을 약탈하여 이곳에 방위기지를 건설했을 때, 댐 의 길이는 이천 피트나 되었다는 것이 나타나 있었다. 댐의 높이는 대략 사백이십 피트였고, 호수의 길이는 백칠십오 마일, 폭이 넓은 곳은 대략 이십 마일에 이르고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댐이었다. 댐 위에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조니는 다시 인간들이 제작하여 사용하던 이 지역의 지도를 끄집어 냈다. 강은 '잠베지'라고 명명되어 있었고, 전체 길이는 약 이천이백 마일로 세계적인 하천의 하나였다. 그것은 카리바 협곡을 따라 흘러 내려 오다가 이곳에서 발전을 위한 댐으로 막혀져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협곡은 모두 가파른 경사면이었다. 이 지도 에 의하면, 마를을 만들 만한 장소는 하나도 없었다. 도로가 만들어 져 있던 댐 윗부분은 전함이 그곳에 떨어지기 전부터 물에 잠겨 있었 다. 그리고 잠베지 강이 범람하면서 팔백 년 동안 끊엄없이 흘러내린 토사가 누적되어, 그 퇴적물이 현재 호반에 만들어져 있는 평지를 형 성하고 있었다. 댐의 수위가 이처럼 급속하게 낮아진 것은, 전함의 추락에 의한 폭발의 충격으로 호반에 퇴적해 있던 수천만 톤의 토사 가 날려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호수의 폭이 상당히 좁아져 있어서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으므로, 본래의 수위로 회복하기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한 강의 길이가 현재 백이십 마일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댐과 맞 닿아 있는 곳의 폭은 약 천 피트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나머지 는 모두 진흙이었다. 조니는 촌원 주장과 중국인 기술자에게 말했다. "이 댐에는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기 위한 취수구가 여덟 개 있습니 다. 지금 당장 여섯 개를 폐쇄시켜주십시오. 앞으로 이십오 분 후면 전송이 모두 끝납니다. 모든 전력을 전송종료와 함께 차단시켜주십시 오. 그리고 나서 수문을 전부 닫아주세요. 전송재개로 다시 전력을 필요로 할 때에는 방위케이블을 끊어 전력소비를 줄이고, 두 개의 취 수구만을 가동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기술자는 조니의 지시를 정확히 실행하기 위해 지시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약 이십오 분 후에 모든 전력을 끊고, 발전기 취수구를 전부 폐쇄 하고, 두 시간 정도 지나서 호수에 방위케이블을 끊고, 발전기 취수 구를 연단 말이지요? 토수구도 모두 닫습니까?"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댐은 여분의 물을 토수구를 통해 강아 래쪽으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최대한 물을 모아야만 했 다. 이것으로 상황 전체를 전환시킬 수는 없지만 직면한 문제는 해결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 토르가 조니를 향해 달려왔다. "드와이트를 불러주게." "드와이트는 병원에 있습니다. 팔이 부러졌어요." "그는 우리들 가운데 최고의 폭파전문가다. 당장 데려와야 한다." 앵거스와 회색인은 제어탁자에 앉아서 전송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 송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수리반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 드와이트가 왔다. 그는 팔에 깁스를 할 채 다리를 절고 있 었으나, 등대처럼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조니는 즉시 작업에 착 수했다. "드와이트, 천 피트의 로프형 폭약 두 개, 백 파운드의 액체폭약 세 개, 백 피트의 샤프트를 단 휴대 드릴장치 세 대, 그리고 퓨즈 등 의 폭파장비를 최대한 빨리 준비해주게." "무엇을 할 겁니까? 지구라도 날려보낼 셈인가요?" 조니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작업지시를 내렸다. "토르, 금괴채굴 때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중국인들을 모아주게. 그리고 스톰아롱은 폭약과 작업원들을 호숫가 로 수송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게." 작업지시를 마친 조니는 모두에게 말했다. "작업은 제1차 전송이 끝나는 즉시 착수한다." 조니는 메모를 써서 통신원에게 건네주며, 상자전송이 종료되면 즉 각 앵거스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앞으로 두 시간 후면 모든 전력공급을 중단한다. 1차 전송이 완료 되면 지시를 내리겠다. 그때 폭파를 시작한다. 모터는 그때까지 작동 시킬 테니까 모두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는 전송을 재개하 면 안된다. 나와 통신할 때는 광산무선기를 이용하도록." 지하방공호의 시람들은 모두 밖으로 옮겨졌다. 대부분은 최근의 습 격 때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닥터 알렌은 그러한 조치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조니가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려되었 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니는 밖으로 나와 댐 쪽을 살펴보았다. 예상한 대로 댐 주변은 모두 퇴적토로 뒤덮여 있었다. 작업은 진흙탕 속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파괴된 댐의 윗부분은 진흙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그곳에서 흘러내린 진흙이 경사면 아래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작 업에서 가장 큰 위험은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이리라. 조니는 광산무선기의 스위치를 켜놓은 채로 놓아두었다. 한 시간동 안 실시되는 첫번째 전송이 종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중국인들은 대형 창고에서 이동차를 끌어내 비행기에 폭약을 적재 한 수, 발진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선 작업원들이 두 대의 인원 수송기에 올라타고 있었다. 거대한 렌치를 손에 든 열 명 가량의 중 국인들이 발전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천 년 동안이나 녹슨 채로 방치되어온 레버나 제어장치를 움직이기 위해 렌치가 필요했던 것이 다. 조니가 댐의 가장자리 쪽으로 다가가 호수 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 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잔해였 다. 대기권으로 돌입하며 완전히 파괴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주력전 함의 거대한 잔해가, 댐의 밑바닥에서 오 마일 가량 되는 곳의 퇴적 토 속에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불타 일그러진 선체가 댐으로 흘러드 는 물을 막고 있어서, 그 위에 새로운 호수가 생겨나 있었다. 조니는 드와이트를 불렀다. "작업원 세 명과 함께 비행작업대를 타고 급히 저곳으로 가주게. 도착하는 즉시 저 잔해의 동쪽에 로프형 폭약을 장치하여, 새로운 수 로를 열도곡 하게. 폭약의 점화시기는 내가 지시해줄 테니 폭약장치 를 완료하거든 즉시 철수하도록 하게." 드와이트는 부하들과 함께 폭약을 찾으러 달려갔다. 조니는 댐 건너편 언덕의 가장자리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댐 은 크게 곡선을 그리듯 비스듬히 놓여져, 반달처럼 호수 쪽으로 돌출 되어 있었다. 어느 부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물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건너쪽 가장자리는 벼랑과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견고했다. 그렇다면 댐 밑바닥에 균열이 생긴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은 벽 건너편의 가장자리 아래쪽에서 거대한 소방호스처럼 분출되고 있었 다. 하지만 저 밑바닥의 균열은 퇴적토로 뒤덮여 있을 것이었다. 전 함의 폭발과 함께 토사가 갑자기 밀려내려왔을 테니까. 댐의 새는 부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백만 톤 가량의 바위와 토사를 상류 쪽에 쏟아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브레이트 차량 이나 크레인으로 작업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 그는 계곡 ㅓ너 편 언덕의 벼랑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있는 바위를 무너뜨려 균열을 막아버리면 어떨까. 그 충격으로 댐 자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닐 까. 더구나 저 벼랑에는 방위케이블이 매설되어 있는데. 그것을 파괴 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광산무선기에서 앵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송 제1단계 완료. 전력을 차단해도 좋다." "전력 차단." 조니가 무전기를 향해 말했다. "발전실의 모든 전력을 차단하라. 스톰아롱, 수송 개시하라." 쉭쉭거리던 대기장갑 케이블 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폭풍이 날아와 대기보호망 위에 달라붙어 있던 파편들과 죽은 새, 나뭇잎들이 일제 히 지면으로 떨어져내렸다. 대기이온화 케이블에 의해 보호망이 쳐져 있던 분지 일대의 상공이 활짝 열려졌다. 몇 대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면서 이륙하고 있었다. 조니는 낡은 비행작업대를 타고 건너편 언덕의 벼랑으로 날아갔다. 드와이트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조니는 벼랑의 바위 곁을 살펴 본 후, 호수 밑바닥의 기울기와 물살의 세기를 계산했다. 문제는 바 윗덩어리를 얼마나 떨어뜨려야 균열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계산이었다. 우선 발파점을 만들어 야만 했다. 드릴을 사용해서 정확한 각도로 백 피트 깊이의 구멍을 세 개 뚫고, 그 각각의 발파점에서 암벽이 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하 는 것이었다. 조니는 벼랑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면서 세 곳의 위치를 지정해 주었다. 댐으로부터는 이백 야드 정도 호수 쪽으로 들어간 곳으로서, 그곳을 약 15도 각도로 뚫어야 했다. 작업원들은 휴대드릴로 작업을 개시했다. 구멍를 파내려는데 드릴 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뭘까. 앗 그렇다. 케이블이다. 만일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폭발에 의해 절 단되어 호수로 떨어져버릴 것이었다. "스톰아롱!" 조니의 호출에 즉각 스톰아롱이 응답했다. 그는 인원수송기에서 내 리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비행기들 가운데 가장 큰 모터가 장착되어 있는 기종 은 어느 것인가?" 스톰아롱은 비행기들을 둘러본 후, 공격용 해병대 전투기를 가리켰 다. "옛날 방위지도에 의하면 그곳에 케이블 연결상자가 매설돼 있다. 기술자 몇 사람을 댐 가장자리로 파견하여 케이블 연결 상자를 떼어 내라고 지시하게. 그리고나서 자네가 케이블 끝에 튼튼한 로프를 매 고, 공중으로 끌어올려 이곳으로 가져오도록 하게." 그것은 스톰아롱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케이블 끝을 비행기에 매고, 남서쪽의 호수 방향으로 상승해서 케 이블을 뽑아내려는 것이었다. 스톰아롱은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그 는 일 마일 가량 되는 케이블의 중량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 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신속하게 작동하 는 해제장치를 부착해두어야만 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기술자들은 케이블을 떼어내기 위해 댐 가장자리 로 달려갔다. 조니는 암벽을 뚫고 있는 드릴을 바라보았다. 고열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장갑처리된 칼날이 연기를 뿜어올리며 고속으로 회 전하고 있었다. 구멍을 뚫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까.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구멍의 깊이와 소요시간을 비교해보았다. 타이밍 이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호수로부터 오 마일 가량 되는 곳에는 드와이트가 파견한 옛날의 광산동료와 두 명의 폭파전문가가 폭파장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전함 의 잔해 주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들은 허리까지 진흙탕 속에 빠진 채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행작업대가 진흙탕 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몇 분마다 부상시켜가며 작업하고 있었다. 추락한 캡춰 호의 잔해는 실로 엄청났다. 토르네프별의 대기 속에 서는 건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그들은 그 것을 중력이 약한 아사트 위성에서 조립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부품을 하나씩 하나씩 아사트까지 운반해 갔을 것이다. 순간 조니는 그랜캐논을 떠올렸다. 전함 어딘가에 그랜캐논이.... 마크32조차. 지옥을 연상케 하는 그 폭발에는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 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전함의 잔해 속에는 불에 탄 토르네프인 의 시체 천오백 구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저 전함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길이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이천 피트, 삼천 피트.... 거 의 모든 부분이 진흙 속에 파묻혀 있어서 크기는 예측조차 할 수 없 었다. 그러나 전함 자체가 거대한 댐이 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잔해의 길게 찢겨진 부분이 물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니는 드와이트 일행이 작업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주머니 에서 커다란 망원경을 꺼냈다. 작업은 예정대로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이중폭약을 만들어 한족 끝은 물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곳에 연결하고, 다른쪽 끝은 그 반대편에 설치하고 있었다. 드릴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암벽을 파들어갔다. 드릴을 식혀주 는 냉각장치마저 과열되어 뜨거운 수증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스무 명의 작업원들이 냉각수를 얻기 위해 광산펌프에 호스를 연결하여, 호수의 물을 퍼올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난 진흙이었 다. 댐 주위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진흙 때문에 작업원들은 모두 진 흙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만 같았다. 백 피트의 구멍을 세 시간 만에 파낸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한 시간 삼십분 만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업원들은 드릴의 손잡이에 온힘을 다하여 암벽을 뚫고 있었다. 조니는 회색인이 타고 온 우주선의 섬광신호가 요효하기만을 바랬 다. 댐의 복구작업 때문에 방위태세는 완전히 허술해져 있었다. 대기 보호망 없이는 무방비 상태나 진배없었다. 전함의 잔해에 있는 드와 이트가 광산무선기로 폭파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해왔다. 조니는 망원경으로 댐의 발전기 취수구가 닫혀 있는지 확인하려 했 으나 흙탕물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조니는 무전기로 댐 안에 있는 중국인 기술자를 불렀다. 그러자 촌원 수장이 응답했다. "수문을 전부 닫으려면 앞으로 오 분 정도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 지만 취수구는 모두 폐쇄했습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곳의 레 버와 톱니바퀴는 몇 년 동안이나 손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이 아니라 천 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일흔두 명입니다." 저런, 인원의 반이 댐 안에 있었구나. "정말 잘해주었습니다. 그 일을 끝내거든 전원 철수해주십시오. 이 번 폭파로 댐이 붕괴될지도 모릅니다." "서두르겠습니다." 갑자기 상공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공격용 해병대 전투기가 댐 가장자리의 상공에 떠 있었다. "전원 대피하거든 알려주십시오." 사람들은 서둘러 주위에서 떠났다. 조니는 드릴 작업반원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대피하라." 작업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도 진흙탕에 발목을 잡히면서 암 벽을 떠났다. 조니는 케이블이 지나가는 길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좋다. 끌어올려라." 비행기에 연결된 갈고리가 케이블을 낚아채자, 케이블이 연결상자 에서 떨어져나갔다. 다시 갈고리를 연결한 스톰아롱은 비행기를 전속 력으로 발진시켰다. 케이블은 거대한 뱀처럼 튀어나왔으나, 깊숙히 묻혀 있어서 좀처럼 뽑혀지지 않았다. 스톰아롱은 상승과 하강을 되 풀이하며 비행기의 속력을 높여갔다. 케이블이 서서히 지면을 가르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스톰아롱은 점점 고도를 올리며, 벼랑의 가장자 리를 따라서 비행을 계속해나갔다. 케이블을 절반 정도 지면에서 끌 어냈을 때, 탁 하고 소리가 났다. 케이블이 끊어진 것이었다. 스톰아롱의 비행기는 이백 야드나 되는 케이블을 매단 채, 상공을 향애 튕겨져 올라갔다. 그는 곧 비행기의 상승을 멈추고 수평을 유지 하였다. 스톰아롱의 조종술은 매우 훌륭했다. 그는 끊어진 케이블을 호수 건너편의 언덕 위에서 호반에 떨어뜨렷다.비행기를 상승시킨 스 톰아롱은 다시 갈고리를 내렸다. "이것을 다시 연결해주게." 몇 사람이 미끄러지면서 벼랑 가장자리로 다가가 갈고리를 끊어진 케이블 끝에 단단히 연결했다. 스톰아롱은 남은 케이블을 수세기 동 안이나 묻혀 있던 지면으로부터 끌어올려 폭파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떨어뜨렸다. 암벽작업반은 드릴작업을 재개했다. "모두 완료했습니다." 무전기에서 촌원 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소하셨습니다. 즉시 대피하고, 전원 대피 완료하거든 알려주십 시오." 조니는 녹색 제복을 입은 왜소한 사람들의 모습이 발전소에서 뛰어 나와 도로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댐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피했다. "전원 대피 완료했습니다. 조니." 촌원 수장이 보고했다. 폭파를 한다 해도 드릴작업에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조니 가 드와이트에게 신호했고, 그는 전함의 잔해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 업반에게 명령을 내렸다. "폭파하라." 드와이트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퓨즈를 장치하고, 신속 히 비행작업대로 올라갔다. 마지막 사람까지 올라타자. 작업대는 이 륙하여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갔다. 조니는 전함의 잔해에 시선을 모았다. 쾅, 쾅, 쾅, 로프형 폭약의 날카로운 폭발음과 함께 주위에 있던 진흙덩어리들이 일시에 솟구쳐 올랐다. 하늘 가득 솟구쳐오른 진흙과 폭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충격파가 지면을 뒤흔들었다. 폭연이 걷히며 거대하 게 일렁이는 파문이 호수 아래쪽으로 밀려가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전함의 잔해가 서서히 드러났다. 폭파지점의 양쪽 끝이 찢 겨져 있었다. 위쪽에 고여 있던 물이 소용돌이치며 그곳으로 흘러내 리기 지작했다. 조니는 그곳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초조해 하고 있 었다. 찢겨진 부분이 너무 작아 위쪽에 고인 물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폭발을 일으키기엔 이미 시간이 촉박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자아, 좀 더 빨리 흘러라.' 지금으로선 물의 가속과 압력에 의한 침식작용을 믿을 수밖에 도리 가 없었다. '자아, 더 빨리!' 전함의 윗부분은 댐의 수면보다 이 피트 가량 높았다. 그 정도의 양이면 수압이 상당할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촉발했다. 좁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는 물의 흐름은 조금씩 빨라져갔다. 조니는 그곳을 계 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물살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찢겨진 부 분이 바깥쪽으로 휘돌기 시작했다. 물살은 소용돌이치며 더욱 빨라져 갔고, 마침내 휘어진 부분을 떼어내버렸다. 그와 함께 위쪽에 고여 있던 탁류가 거세게 수로를 넓히며 흘러내렸다. 폭파지점이 완전히 뚫리며 물살을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과 진흙덩 이리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전함의 잔해들도 서서히 해체되어 갔 다. 물살의 굉음이 높아질수록 위쪽에 고인 물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수로를 뚫기 위한 폭파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일단 안심한 조니는 암벽작업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업반원들 은 드릴의 모터를 최대로 올려 전력을 다해 암벽에 쑤셔넣고 있었다.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십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래 도 시간이 부족할 것만 같았다. "얼마나 파들어갔나?" "칠십오 피트입니다." "좋아,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드릴을 전부 빼내게, 스톰아롱." 조니는 무전기를 향해 소리쳤다. "작업원과 장비를 모두 철수시켜주게." 촌원 수장의 모습이 보였다. 조니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수장, 앞으로 몇 분 뒤에 굉장한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댐 전체 가 붕괴될지도 모릅니다. 확인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전을 확 인한 후, 즉각 작업원을 파견해서 발전용 취수구 두 개만 열어주십시 오. 그리고 분지의 방어보호망과 불탑 지역에만 전력을 공급해주십시 오. 아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모두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켜주십시오." 드와이트 일행은 암벽에서 드릴을 빼내 비행기 안에 던져넣고 있었 다. "드와이트, 저 액체폭약 세 통을 모두 구멍에 쏟아붓고, 그 위에 빈 통들을 올려놓게. 서둘러야 하네." 드와이트는 즉시 시시를 내려, 액체폭약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은 폭발성 액체를 각기 구멍에 쏟아넣었다. 구멍 속의 공기가 폭발액이 들어갈 때마다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모두 쏟아붓는 데는 상당한 시 간이 걸렸다. 그동안에 조니는 그곳으로 달려가서 로프형 폭약을 설치했다. 그는 통들이 놓여질 장소에 폭약을 큰 고리 모양으로 둘러쌌다. 통 안에는 폭발성 증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을 가할 경우 폭탄처럼 폭 발할 것이었다. "도화선을 연결하라." 드와이트의 지시에 조니가 소리쳤다.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가 비행기의 포로 점화하겠다." "뭐라구요?" 토르와 드와이트는 깜짝 놀라 조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으므로 조니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빈 드럼통들을 로프형 폭약의 원속에 옮겨놓았다. 그것들 중 한 개에만 충격을 가해 도 이곳 전체가 폭발할 것이었다. "저 비행기를 이용하겠네." 조니는 그들이 타고 온 일인승 전투기를 가리켰다. "다른 비행기들은 즉각 대피하라." 스톰아롱은 뭔가 항의하려다 그만두고, 부하들에게 서둘러 비행기 에 탑승하라고 지시했다. 장비들이 비행기 안으로 옮겨지고 있을 때, 스톰아롱이 조니에게 소리쳤다. "멀리 떨어져서 쏘아요. 폭죽처럼 솟구쳐오를 테니까요."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구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장비들을 모두 철수시킨 드와이트가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비행기에 올라탔 다. 다시 한 번 폭발지역을 살펴보았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 다. 조니는 전투기로 뛰어들어 단숨에 이천 피트까지 상승시켰다. 거대 한 댐이 발 아래로 드러났다. 다른 비행기들은 벌써 언덕 위의 모래 자루로 둘러싸인 진지에 착륙하고 있었다. 촌원 수장과 그의 부하들 도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있었다. "점화한다." 조니가 광산무선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는 포를 '점화, 국지, 최대'에 세트했다. 자아, 다음은 포격이 다. 지상의 모든 것이 매우 평온하게 보였다. 물은 전함의 거무튀튀 한 잔해 속을 소용돌이치며 계속 흐르고 있었고, 전해로부터 떨어져 나온 표류물들이 댐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댐 아래쪽 에서는 많은 양의 물이 계속해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위쪽에서 흘 러드는 수압 때문에 구멍은 점점 더 커져갔다. 조니는 계기들을 점검한 후 모든 창을 닫았다. 삼천 피트까지 상승 하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아니다. 여기가 가장 적절한 사격거리 다. 전투기에는 이상이 없지만 백오십 갤런의 액체폭약이 폭발할 경 우, 그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천 피트 지점 에는 제5번 로프형 폭약이 장치되어 있었다. 조니는 목표물에 정확히 조준하여 신중하게 발사버튼을 눌렀다. 한 줄기의 섬광이 뻗어나갔다고 느낀 순간, 하늘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 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충격과 함께 전투기는 빙빙 돌면서 위쪽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마치 내던져진 장난감 같았다. 안전벨트가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조니는 그 충격과 함께 순간적 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삼 초 후, 기체가 뒤집힌 채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조작판의 키를 두드렸 다. 비행기의 밸런스 모터가 작동하여 겨우 수평을 유지시켰다. 그러 나 기체는 계속해서 뒤쪽으로 날아갔다. 방향주정 장치의 엔진이 굉 음을 내며 역회전하고 있었다. 조니는 모든 방향장치를 풀었다가 한 꺼번에 작동시켜 방향을 잡아나갔다. 전면유리가 대각선 모양으로 금 이 가 있었다. 수평상태로 유지시킨 조니는 크게 선회하여 댐 쪽으로 비행해 갔 다. 댐의 상공에 도달한 조니는 먼저 벼랑 쪽을 바라보았다. 벼랑은 미끄러듯 호수 속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오십 만 평방 야드에 이 르는 균열은 거대한 암벽처럼 보였지만, 안쪽의 바위돌은 미끄러져 내리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호수에 빠져들기 직전에 암벽은 산 산조각이 된 채, 물살에 휩쓸려 댐 쪽으로 흘러내렸다. 조니는 댐을 바라보았다. 호수 전체가 굉음을 내면서 협곡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조니는 충격파가 위쪽을 향하도록 장치해두었었다. 전투기가 튕겨올라간 것을 보면 충격파는 위쪽을 향한 게 틀림없었 다. 밀려내려오던 바위덩이들이 댐을 강타했다. 물보라가 댐을 넘어 백 피트나 치솟았다. 댐이 견뎌낼 수 있을지, 또한 밀려드는 바위조 각들이 뚫린 구멍을 메꿀 수 있을지 위문이었다. 조니는 댐의 뒤쪽으 로 비행해 갔다. 댐 밑에서는 여전히 굉음과 함께 물이 분출되고 있 었지만, 전보다 물살이 약해져가는 것 같았다. 그 때 발전소 쪽으로 성급히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녹색 제복을 입고 있었 다. 중국인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이 분 이내에 돌아가야만 했다. 조니 는 비행기를 선회하여 언덕 위에 착륙했다 삼십 초밖에 남아 있지 않 았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조니는 지하통로를 지나 분지 속으로 들어갔다. 완벽했다. 타일 하 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앵거스는 제어탁자 앞에, 회색인은 컴퓨터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조니를 보자 앵거스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전력이 들어왔어요. 전송을 시작합니다." (4)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사절단을 맞을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실 내에선 전과 다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매우 고상하고 위엄이 있는 곡으로,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젠가 들었던 음악처럼 .... 아, 그렇다. 그 곡이다. 어느 날, 한 훈련생이 레코드라는 것을 찾아냈었다. 커다란 원반으로, 종이상자에 붙인 바늘을 회전하는 원 형의 흠 위에 올려놓으면 갖가지 악기들의 연주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이었다. '클리블랜드 교향악단, 로엔그린'이라고 씌어 있었다. 사절 단을 맞이하기 위해서 선곡된 것인 듯했다. 그 밖에도 회색인이 우주선에서 가져온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 었다. 그것은 여러 각도로 나뉘어 있어서 전송플랫폼 전역을 모든 방 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닥터 알렌이 스크린의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니 옆으로 다가와 검역일세 하고 수수께끼 같은 소리 를 했다. 땀에 흠뻑 젖은 중국인 기술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벽의 환기구에서 기어나왔다. 환기설비를 수리하여 작동시킨 것이었다. 연기는 이미 깨끗하게 걷혀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른 별들과 플랫폼이 연 결되고, 갖가지 대기가 들어올 것이었다. 특히 반동 때는 유입되는 대기가 더욱 거세게 붙어닥칠 것이었다. 방공호 입구에선 의장병들이 옷의 주름을 펴거나 배지의 위치를 바 로잡는 등 정장에 마지막 손길을 하고 있었다. 각기 국적이 다른 여 섯 명의 의장병들은 모두 최고급 제복을 입었고, 손에는 총기 대신 의장검을 들고 있었다. 늙은 중국신가가 의장병 대열의 선두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아 니, 중국인 복장의 불교도 통신원이었다. 그는 수놓은 비단 두루마기 을 입고, 조그만 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절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이클로어를 구사할 줄 알며, 위엄을 갖춘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절단이 도착하려면 아직 삼사 분의 여유가 있었다. 조니는 작전사령실로 발길을 돌렸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갑자기 퀀이 작전실에서 뛰쳐나왔다. 로버트 경이 뒤따라나서며 소년 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스톰아롱에게 다른 확인도감을 가져오라고 전해라." 소년은 계속 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로버트 경의 등 뒤로 보이는 작전사령실은 소음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작전실 쪽을 바라보며 상황의 진척을 물으려 던 조니는, 로버트 경과 눈길이 마주친 순간 입을 다물어버렷다. 그 의 눈빛만 보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버트 경은 어두운 표정 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은 새로운 폭탄을 쓰고 있다. 대공포로 명중시켜도 폭발하지 않을 때가 있다. 게다가 그 얼간이들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빈도 시를 폭격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장소를 왜 그토록 맹렬히 폭격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라고 불리던 도시인데, 그들의 전술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작전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일세." 조니가 작전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로버트 경이 머리를 흔들 었다. "지금으로서는 사태를 지켜보는 것만이 최상의 작전이네. 그것보다 자네는 자절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나?" "아니오, 아무것도요. 피어거스 수장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이 좋 지 않을까요?" "안되네. 그럴 여유가 없어. 지금 에딘버러는 불타고 있다네." 순간 조니는 가슴속에서 쿵하고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시의 소식은 없었습니까?" "모두 방공호로 대피해 있네. 더넬딘이 그들을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네." 스톰아롱이 책을 끌어안고 달려왔다. 로버트 경은 조니를 보고 말 했다. "몸을 씻고, 옷도 갈아입고 오게나. 그리고 사절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주게." 로버트 경은 조니를 보내고, 작전사령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 안의 소음이 플랫폼 지역에 들리지 않도록 문을 닫았다. 조니는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 통로로 들어가려고 몸을 구부렸을 때, 음악소리에 섞여 있던 외이어 소리가 멎고, 붕 소리가 나고 있다 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가벼운 반동이 느껴졌다. 포크너인 사절이 플랫폼에 서 있었다. 코가 없고, 막대기로 받치는 외눈안경을 쓰고, 찬연하게 빛나는 외투를 입고 있었다. 옆에는 커다 란 금색 바구니가 놓여져 있었다. 스크린의 종이 땡 하고 울렸다. 스 크린 위에 라이트가 켜지자, 주위가 자줏빛으로 바춰졌다. 포크너인은 바구니를 집어들고, 안경 너머로 주위를 살펴보면서 종 종걸음으로 플랫폼을 내려왔다. 의장병들의 도열을 받으며 플랫폼 지 역을 벗어난 그는 검역스크린 앞에 멈춰 섰다. 대기하고 있던 한 소 년이 달려나가 그의 금색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중국옷을 입은 불교 도가 절을 한 후, 방문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포크너인은 거만한 말투로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브랑 제초, 포크너 황제의 특명 전권대사이다. 나는 정치 및 군사적 사항에 관해서 교섭하고, 최종적으로 유효한 협정, 혹은 조약 체결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나의 신병은 불가침이며, 만약 침해한다 면 모든 조약은 무효화될 것이다. 인질로 삼으려는 시도도 부질없는 일이다. 본국이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테니까. 온갖 고문 내지 협박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나는 제군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자살 할 것이다. 질병도 없고, 무기도 휴대하지 않았다. 자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인 복장의 불교도가 절을 하고, 간결한 환영의 말을 했다. 회 의는 세 시간 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휴식을 위해 그의 전용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용모나 차림새가 다를 뿐, 사절들이 도착하는 모습은 비슷비슷할거 라고 조니는 생각했다. 그는 사절들에게 할 말을 생각해내려고 했다. 로버트 경은 그 일은 조니가 맡아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었다. 조니로 서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저 백발의 백전노장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면.... 그는 온신경을 에딘버러에 쏟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5) 조니는 방으로 향하는 통로로 들어가기 위해 문지방 앞에서 몸을 숙였다. 순간 지독한 현기증이 온몸을 휘감아왔다. 댐을 수리하느라 의지력으로 버텨온 현기증이, 긴장이 풀리면서 한꺼번에 물려든 것이 었다. 또한 댐 수리와 에딘버러의 일로 급속히 쇠약해진 것이었다. 방 밖의 통로에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조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명의 중국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 다. 그들은 바닥에 놓인 낮은 벤치에 고개를 숙인 채, 날렵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작업중이던 툰이 조니를 보고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절을 했다. "조니, 제 아내를 소개하겠습니다." 친절해 보이는 백발의 노부인이 황급히 일어나 빙긋이 웃으며 머리 를 숙였다. 조니도 모리를 숙여 답례했다. 그 순간 다시 현기증이 일 었다. 부인은 앉아서 일을 계속했다. "제 딸아이입니다." 툰이 한 처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매우 아름다운 아가씨로, 머리레 꽃을 꽂고 있 었다. 그녀는 다소곳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조니도 머리를 숙였 다. 그것은 그의 현기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소녀는 앉아서 다시 일 을 시작했다. "제 사위입니다." 중국인 청년이 벤치에서 덜커덩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호남형의 젊은이로 기계공의 녹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도 절을 했다. 조니 는 현기증 때문에 머리를 조금만 숙였다. 툰의 사위는 쿵 소리를 내 며 앉아 다시 불꽃을 튕겨내며 일을 시작했다. 조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니는 복받쳐오르는 슬픔으 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번 회의가 실패로 끝나 자신들이 패배한다면, 예절을 중시하는 이 사람들, 그리고 인류의 마 지막 생존자인 삼만 오천 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리라.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조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많은 첨단방비들이 방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엥거스와 전기기사들이 갖다놓은 듯했다. 침대 옆 선반에는 세 대의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곳의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었 다. 사령실에서는 모두들 긴장된 얼굴로 마이크나 정찰기의 사진, 그 리고 작전사령판을 분주하게 조작하고 있었다. 또 한 대는 회의실에 설치되었는데, 그것은 제2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대는 플랫폼과 제어탁자를 향하도록 놓여졌으며 제3스크린에 접속되어 있었다. 조니가 제3스크린에 시선을 보냈을 때, 마침 토르네프인 사절이 도 착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녹색 옷으로 몸을 감싼 사절은 모자도 녹색 이었으나 신발만은 더러운 황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눈은 커다란 안 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왕권을 상징하는 화려한 손잡이가 달린 홀을 들고 있었으며, 옆에는 식량과 생활용품이 든 녹색 바퀴가 달린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직립보행을 하며, 얼굴, 팔, 다리가 달 려 있었지만 마치 파충류 같았다. 몸집은 작은 편이어서, 지성을 갖 춘 공료의 후예처럼 느껴졌다. 토르네프인 사절도 포크너인과 비슷한 도착성명을 발표하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은 다음, 외투 자락으 휘날리며 자신의 아파트로 안내되어 갔다. 웬지 그에게서는 좋지 않은 예감이 느껴졌다. 조니가 침대에 누워 현기증을 가라앉히려 하는데, 툰이 들어왔다. "안됩니다. 목욕부터 해야 됩니다." 그때 중국인 두 명이 툰을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목욕통을 광산이동차에 싣고 와서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난 지금 몹시 피곤하단 말이오. 세수 정도라면 모르지만...." 툰은 재빨리 거울을 집어들고 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아, 자세히 보십시오." 조니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폭발물 찌꺼기들로 얼룩져 있었다. 머리에 들러맨 검은 실크밴드는 연한 갈색의 넝마조각이 되어 있었 다. 게다가 머리칼과 수염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피부색깔조차 알 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몸을 비쳐보았다. 허리까지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당신한테는 못 당하겠군요." 조니는 귀찮은 듯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툰이 커다란 광산바구니를 갖다놓고 조니가 옷을 벗을 때마다 얼굴 을 찡그리며 바구니 속에 던져넣었다. 헬멧과 장화, 권총까지도 그 속에 집어넣었다. 조니는 목욕통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가슴까지 차올라왔다. 그는 지금까지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목욕은 항상 강과 계곡의 차가운 물로 했었다. 온몸의 피로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툰은 팔의 상처에 주의하면서 거품이 이는 비누로 정성스럽게 씻어주었다. 갑자기 손놀림을 멈춘 툰은 조니의 등 뒤에서 누군가와 소근소근 얘기를 나우었다. 잠시 후 조니의 어깨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는 다시 소근거리더니 조니의 한쪽 팔을 뻗게 했다. 누군가가 팔에 끈을 갖다댔다. 그제서야 툰의 딸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조니의 몸을 문질러대며, 머리칼과 수염을 씻었다. 목욕은 그 후에도 두 번이나 중단되었다. 한 번은 가슴둘레를 재기 위해서였고, 또 한 번은 다리길이를 재어보기 위해서였다. 목욕을 끝내자 툰은 머리칼과 수염을 타올로 말리고, 물기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푸른색 가운을 입혔다. 그제서야 침대에 눕 는 것이 허락되었다. 겨우 몸을 뻗을 수 있게 되어 누우려고 했을 때, 또 다른 방해자들 이 나타났다. 닥터 맥켄드릭과 닥터 알렌이었다. 그들은 조니의 팔을 걷어올렸다. 닥터 맥켄드릭은 반창고를 떼어내고, 상처부위를 알콜로 닦았다. 냄새가 지독한 것으로 보아 싸구려 위스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서 흰가루를 뿌리고, 그것을 일정량 복용하도록 권했다. 또 다시 살파제였다. 닥터 알렌이 반창고를 붙였다. 수프접시를 든 툰이 조니 겉으로 다 가왔다. 의사들이 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니는 그들의 행동에 서 치료 외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비해 지 나친 친절함이 불편하게 여겨졌다. "난 전부터 더넬딘과 스톰아롱의 행동이 난폭하다고 생각해왔네. 그런데 벼랑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니 정말로 난폭한 것은 바로 자네 더군, 조니 타일러, 자네는 폭약을 폭파시킬 때면 언제나 전투기를 사용하나?" 조니가 그때의 상황에서는 퓨즈를 장치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설 명하려 하자, 닥터 맥켄드릭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조니답다고 생각하는데...." 평소화 다른 그들의 행동이 자신이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가각한 순간, 맥켄드릭이 등 뒤에 감추고 있던 긴 주사기 를 꺼내 조니의 팔을 찔렀다. 이 인치나 되는 강철 주사바늘이 정맥 속으로 주사액을 담뿍 주입했다. 주사액이 정맥을 따라 온몸으로 퍼 져나갔다. "이것은 현기증에 잘 듣는 약일세." 닥터 맥켄드릭이 자연스럽게 바늘을 뽑으면서 말했다. "최근에 우리들이 발견한 물질로, 'B복합체'라는 것일세. 독이나 설파제를 중화시키는 성분이 함유된 것이네. 곧 기분이 좋아질 걸 세."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단 말입니다." 주사 맞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 조니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닥터 알렌이 조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달래듯 얘기했다. "내 말을 잘 듣게, 자네는 큰일을 해냈네. 당장 위험한 일은 해결 되었으니 걱정 말고 좀 쉬도록 하게. 도움을 받는 법도 배워야 한다 구.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헌할 기회를 주어야지. 기회를 줄 줄도 알 아야 하네." 조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두 사람은 방을 나갔다. 수프를 마시자 위의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머릿속도 한결 맑아진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어도 현기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플랫폼을 향한 제3스크린에는 두 세명의 사절들이 도착해 있었고, 작전사령실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난장판이었다. 조니는 외계 사절들과의 회의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툰, 옷장에서 가장 좋은 사슴가죽옷을 갖다줘요." 편안히 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회의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분은 방안으로 뛰어들어왔지만 조니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됩니다." 조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툰은 서투른 영어실력으로 자신의 의견 을 설명하려 했다. "저 사절들...." 뭔가를 말하려던 툰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니는 깜짝 놀 라 달려나가는 툰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중국어와 만다린어를 아는 준비위원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준비위원을 향해 열심히 떠들어댔다. 툰의 열변이 끝나자, 검은 수염의 스코틀랜드인 준비위 원은 한숨을 쉬며 그의 말을 통역했다. "맥타일러, 당신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외교관으로 임명되었 습니다. 중국인들은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습니다." 조니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가장 좋은 사슴가죽옷을 꺼내달라는 것이 잘못되었다 는 건가?" "바로 그 점입니다." 준비위원은 다시 한숨을 쉬고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툰은 청조 때 시종을 지낸 집안의 자손입니다. 청조란 천육백사십 사년에서 천구백십일년까지 중국을 지배한 왕조입니다. 아마 천 년전 쯤일 겁니다. 인민공화국이 결성되기 전의 마지막 왕조니까요. 그런 데 황제가 중국인이 아닌 만주인이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툰의 가문은 조언을 위해 쌓아온 교양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인내심이 매우 강한 민족입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어느 민족이 팔 백 년 동안이나 복직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툰은 얘기가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준비위원의 팔을 쿡쿡 짜르며, 좀더 중요한 것을 얘기하라는 몸짓을 했다. 준비 위원은 도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는 조니가 툰의 말을 납득해주리라 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조니 경으로서...." 망설이던 준비위원은 다음 말을 단숨에 해버렸다. "야만인 같은 모습으로 밖에 나가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고 있 습니다." 만일 다른 일에 신경이 곤두서 있지 않았더라면, 조니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툰의 말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확인 한 준비위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툰의 말에 의하면,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외계인들은 방자하고 거 만한 자들로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매우 화려하게 치장했 을 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도착한 외계인들만 봐도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호흡마스크, 번쩍이는 의상, 장신구, 보석이 박힌 외눈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모두 자신의위용을 과시하려는 허세입 니다." 준비위원은 잠시 멈추었다가 나머지 부분을 서둘러 말했다. "만약 생가죽옷을 입고 회의에 참석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야만인 으로 치부하고, 당신의 얘기는 들으려 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또다시 말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이 무식한 야만인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에게 경멸당할 거라고 합니다." 준비위원은 한숨을 돌리고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입니다. 부디 그의 말에 화내 지 말아주십시오. 삼만 오천 명, 아니 지금은 더욱 줄어들었겠지요. 하여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이 회의결과에 달려 있지 않다면, 나도 이 사람의 말을 통역하지 않았을 겁니다. 맥타일러, 나는 당신을 존 경하고 있습니다." 조니는 신중하게 행동하겠다고 말함으로써 툰을 안심시키기만 하면 그의 간섭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툰은 물러설 기 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준비위원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의 견을 전달하려 했다. 준비위원은 그가 말을 멈추는 순간순간을 이용 하여 통역을 했다. "당신은 분명 위대한 전사입니다.... 당신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무수한 적들을 격퇴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승 리가.... 회의석상에서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었습니다." 그것은 조니가 가장 고심하고 있던 문제였다. 아직은 전투에서 승 리를 거두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설사 이제 까지는 승리할 수 있었다 하더라고 회의장에서 한꺼번에 잃어버릴 우 려가 있었다. 이미 아는 얘기였으나 조니는 툰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툰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은 시종으로서가 아니라 조언자로서 였던 것이다. 지금 조니에겐 진정한 조언자가 필요했다. 사실 회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신의 모습은...." 준비위원은 툰의 말을 부분부분 통역하고 있었다. "....상대방ㅇ르 위압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귀족 들은 부하를 다루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부하를 다뤄봄으로써 위 압적이고 오만해져야 합니다.... 영합해서는 안됩니다.... 냉정하고 조소적이어야 합니다.... 유유하고 초연한 태도로 대하십시오. 저도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의 궁정어인 정통 만다린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 다." 툰은 준비위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지 말라는 시늉을 해 보였 다. "어떤 말에 대해서도...." 스코틀랜드인은 부드럽게 통약을 재개했다. "동의하거나 동의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됩니다.... 경솔하게 말 해버리면 상대방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당신이 동의한 것으로 처리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좋다라는 말을 피하십시오.... 상대방은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청난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그것은 교 섭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 다.... 그러니까 당신도..... 그들이 동의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 어도,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잘만 하면 그것을 쟁취 할 수도 있습니다.... 외교협상이란 모든 것이 타협입니다.... 각각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지닌 두 개의 극단적인 의견에도 중간점은 있는 법으로.... 결국 그것이 최종적인 조약 내지 협정이 되는 것입니 다....따라서 언제나 유리한 조약 내지 협정이 되는 것입니다.... 따 라서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인은 잠깐 말을 끊었다. "툰은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을 전부 이해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알고 말고, 좋은 얘기다." 총고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비록 그가 필요로 하는 가장 핵 심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이번에는," 준비위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답니다. 툰을 보아주십시오." '흠, 우리들은 많은 종족들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방법과 중국 고대의 방법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니는 툰이 보여주려는 방법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 나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 다. 그 방법은 모든 종족에게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 때는 다리를 벌리고 등줄기를 세운 다음 몸을 약간 뒤로 젖힙 니다. 대지에 발을 힘껏 딛고서. 이것이 지배자의 자세입니다. 아시 겠습니까? 그럼 한번 해보시지요. 홀이나 지팡이를 들 때는, 한손으로 잡고, 그것의 한쪽 끝을 다른 손의 손바닥에 얹습니다. 한쪽 끝으로 손바닥을 가볍게 치는 것은 징 벌을 암시합니다. 기분이 조금 상했다는 것을 나타낼 때 씁니다. 양 쪽 끝을 쥐는 것은 제어를 나타냅니다. 공중에서 공연히 흔드른 것은 상대방의 주장이 별볼일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아, 여기에 지팡이가 있습니다. 직접 해보십시오. 아닙니다. 틀렸습 니다. 천천히 귀족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아, 처음부터 다시 해보십 시오. 걸을 때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에게 전혀 신경스지 않는 것처 럼 걷습니다. 권력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묵직하게, 누구도 제지할 수 없다는 듯이 위엄있게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시겠습 니까? 자아, 걸어보십시오." 툰의 교육은 반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조니는 자신의 걸음걸이 가 마치 표범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의에서는 위엄있는 태도를 보여야만 했다. 툰은 만족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자세와 걸음걸이를 가르쳤다. 조니는 지금까지 회교관 노릇을 햐야 한다는 생각에 무척 긴장하고 있었는데, 툰의 지도를 받자 얼마간 자신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 교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기술이 작용하고 있는 ㄱ덧이었다. 사냥 하는 방법과 비슷했지만, 다른 종류의 사냥감이었다. 그것은 전투였 다. 보이지 않는 전투. 스크린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절들이 도착하고 있엇다. 그러나 그 들은 회의장에서 첫 회합을 시작할 때, 신임장을 제시해야 하므로 시 간은 아직도 충분하다고 툰은 말했다. "전략을 생각해두셨습니까? 항상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외 교전에 임하는 자세, 작전구상 등을 말합니다. 당신이라면 훌륭한 전 략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회의에서의 당신의 말과 행동은, 야전에서의 보병부대나 기병대와 같습니다. 작전에 실패하면 패배합 니다. 그러나 당장은 다른 일부터 해야 됩니다." 툰은 그렇게 말하고 의아스러워하는 조니를 남겨둔 채 복도로 나갔 다. 조니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촌원 수장이 재빨리 들어왔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댐입니다." 그는 양주먹을 움켜쥐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구멍입니다. 댐 밖으로 흘러나가는 물이 줄어들었고, 호수의 수위 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보고를 마친 촌원 수장은 머리를 깊게 숙여 절을 하고, 방을 나갔 다. 이제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되었다. 전기공급이 중단되어 사잘들을 어뚱한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에 빠뜨릴 염려는 없어졌다. 이 제 남아 있는 문제는 불타는 지구와 전인류의 운명, 그리고 이 회의 뿐이었다. 주사가 효력을 발위했는지 현기증은 말끔하게 걷혀 있었다. (6) 툰이 말한 다른 일이란 이발이었다. 그의 딸은 조니를 스크린 앞의 의자에 앉히고, 작은 가위와 빗을 이용하여 머리칼을 자르기 시작했 다. 지금까지는 머리칼이 너무 낳이 자랐다고 생각되면 나이프로 싹 뚝싹뚝 잘라냈을 뿐이었다. 부드럽고 날렵한 손놀림에 잘려진 머리카 락들이 떨어져내렸다. 그녀의 이발솜씨는 매우 훌륭했다. 이발을 하는 동안 조니는 외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곧 시작될 외계인들과의 회의, 그것은 곧 전쟁이었 다. 모든 사절들은 한결같이 귀족적인 권위와 힘을 온몸으로 발산함 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지금 지구를 공격 하고 있는 자들은 우주의 부랑자에 지나지 않았다. 놈들은 기껏해야 이삼십 개의 혹성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착하는 있는 사잘들은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주에서 온 자들이었다. 조니는 드들의 정부는 수백 개의 혹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만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강대 혹성의 전권 자잘로, 엄청난 부와 막강한 권력의 상징처럼 느겨졌다. 그들은 한 혹성만으로도 몇 조가 남는 인구를 대표하고 있었다. 모두들 외교 의 베테랑이며, 이러한 회의를 수백 번이나 겪어온 프로였다. 툰이 말한 것들은 확실히 옳았다. 회의는 전투이며, 무력에 의한 전쟁보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로버트 경과 자신의 능력 으로 노련한 외교관들을 이길 수 있을 지 조니로서는 의문이었다. 자 신들은 야전의 전사일 뿐, 무수한 정치적 순모술수를 숨기고 있는 언 변 좋고 교활한 정치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곡을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까지 어떠한 전략도 갖고 있지 못했다. 조니는 자신이 압 도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발을 마친 툰의 딸은 조그만 거울을 비쳐주었다. 목 근처에서 일 직선으로 잘려진 머리칼은 정성스럽게 정성스럽게 빗질되어 끝부분이 둥글게 감겨져 있었다. 옛날에 본 적이 있는, 뒤쪽애 가드가 담긴 헬 멧 같은 헤어 스타일이었다. 조니는 거울을 건네받아 목부분을 비쳐 보았다. 상처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전에 보았을 때는 자국이 거의 엷어져서 굳은살만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마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고리로 인한 상처자국이 사라졌다는 것은 오ㅔ지 새로운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가슴속 깊이 상처로 남아 있던 그 흔적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미소를 지으려고 했을 때, 작전사령실의 스크린이 그의 시선 을 끌었다. 그는 거울을 돌려주고 음성스위치를 올렸다. "....어떤 속셈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스톰아롱이 정찰기용 영상프린트에서 한 장의 사진ㅇ르 빼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벌써 몇 대째인가?" "열다섯 대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이것 봐라 . 폭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무인의...." 그는 지도를 보았다. "디트로이트다. 무슨 이유로 그곳을 폭격하는 거지? 천 년 동안이 나 비어 있는 도시라구. 그곳으로 방위군을 유인하려는 계략일까?" 스톰아롱은 들고 있던 사질을 내팽개쳤다. "폐허를 지키기 위해 전투기를 파견할 수는 없다. 에딘버러의 상황 은 어떠한가?" "아직 대공포로 응전하고 있다." 사령판에 있는 누군가가 다답했다. "더넬딘이 조금 전에 열여섯번째의 하우빈 공대지 요격기를 격추시 켰다." 조니는 음성스위치를 껐다. 초조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온몸을 휘감 았다. 외교관들은 한 명씩 전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준비위원이 툰과 함께 들어왔다. 툰은 옷을 한아름 들고 있었다. 긴장되어 있는 조니를 보고, 툰이 노래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자, 준 비위원이 통역했다.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회의석상에서 승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고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교묘하게 대처해나가야 한답니다." 툰은 이발용 천을 조니의 목에서 걷어내고 웃옷을 보여주었다. 그 것은 얼핏 보기에 아주 단조롭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광택이 나는 검 은 실크로, 빳빳한 칼라가 달렸고, 몸에 딱 붙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니의 관심을 끈 것은 아름다운 은빛 버튼이었다. 조니는 그 버튼을 알고 있었다. 비상사태용 스위치에 쓰이는 금속이었다. 그 것이 비상사태용 스위치로 쓰이는 것은 아름다움보다는 견고하기 때 문이었다. 일 리디움의 합금이 1분자의 두께로 도금되어 있어 계속 눌러도 마모되지 않았다. 또한 어두운 갱도 안에서 조명이 거의 없을 때도 긴급버튼의 섬광처럼 반짝이는 빛이 주위를 밝혀주는 역할을 했 다. 조니는 툰의 사위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되었다. 그는 버튼 에 도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뜰 수가 없을 것이었다. 툰은 그에게 검은 실크 바지를 입히고, 웃옷의 단추를 전부 끼웠다. 그리고 장화를 신겨주었다. 칭코인의 장화였는 데, 그것에도 일 리디움의 합금이 도금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벨트가 채워졌다. 폭이 넓은 벨트로, 그것 역시 일 리디움의 합금이 도금되 어 있었다. 버클만은 옛날 아메리카 합중국 공군의 것이었는데, 금빛 으로 반짝반짝 닦여져 있었다. 조니는 우리 속에 갇힌 채, 자신이 까마득한 옛날에 멸망한 군대의 마지막 군인이라고 생각했던 때의 일들을 기억해냈다. 미지의 세계에 처음으로 도전할 때의 패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것은 새로운 힘 을 북돋아주었다. 조니는 툰이 마련해준 것들에 대해 흡족해 했다. 하지만 그는 웃옷 어깨부분의 주름과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그 것을 벗겨 다시 돌려보냈다. 툰은 그 밖에도 뭔가를 들고 있었다. 아프리카 토인의 곤봉인 노브 케리로, 조상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에도 일 리디움의 함금 이 도금되어 있었다. 회의석상에서는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휴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듣고 그는 고맙게 생각했다. 잠시 후 툰의 사위가 헬멧을 들고 들어왔다. 고대 러시아인들이 사 용하던 헬멧이었는데, 완전히 다른 것처럼 잘 손질되어 있었다. 턱의 끈에도 일 리디움의 합금이 도금되어 있었고, 머리를 전부 덮도록 되 어 있었다. 헬멧 양쪽에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황금날개를 가진 용이 헬멧의 아랫부분을 발로 움켜쥔 모양이었다. 비늘로 뒤덮인 푸른색 등에는 뿔이 돋아나 있었다. 불타오르는 듯한 두눈에는 루비가 박혀 있었고, 붉은색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 흰구슬을 물고 있었다. 전체적 인 형태는 제어탁자와 건물의 장식에 쓰이는 용과 비슷했지만, 입 속 의 구슬만은 매우 독특했다. 그것은 보통 용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 다. "무척 아름답군." 조니가 말하자, 준비위원은 그 말을 중국 청년에게 전해주었다. 아 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헬멧을 바라보면서 준비위원을 통해 툰에게 말했다. "이 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툰은 준비윈원을 통해 조니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왕좌는 '용의 의자'라 불리고 있었지요. 용포 내지 치프타 입의 외투는 궁정의상이었습니다. 그것은 황제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 "그에게 이 용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부탁해주지 않겠나? 보통 용들 과 다른 것 같은데...." 툰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에게 해줘야 할 훨씬 중요한 얘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 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신화나 옛날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하시는 대로 이것은 보통 용과는 다릅니다. 그 전설말 입니까? 꼭 듣고 싶다면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어느 곳 에...." 조니는 침대에 누워 헬멧을 배에 올려놓은 채 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길고 복잡한 옛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조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준비위원에게 말했다. "그렇다. 로버트 경을 불러주게." 조니의 갑작스런 행동에 툰은 매우 당황해 하고 있었다. "고마웠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 습니다." 몇 분 뒤, 로버트 경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회의를 위한 정장을 하고 있었다. 스튜어트 왕족을 상징하는 외투와 체크 무늬의 킬트 스 커트, 그리고 스코틀랜드풍의 흰 구두커버를 착용하고 있었다. 빛나 는 백발은 물결처럼 부드럽게 손질되어 있었다. 로버트 경은 완벽한 스코틀랜드 군인이자 귀족이었다. 군복으로 정장한 로버트 경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척 당당해 보였으나 노인의 눈은 공허했 고, 수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매우 힘든 문제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동감일세. 그 토르네프인을 보았나? 나는 외교단이 아니네. 그렇 다고 피어거스를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네. 걱정스러운 것은 나로 인하여 아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외계인들을 적으로 만들지나 않을 까 하는 것이네. 자칫 잘못하면 그들까지도 적으로 만들게 될 걸세." 그 역시 처음 대하는 사절들과의 회의에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 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당신 혼자 회의 에 참석해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버텨달라는 것입 니다." 로버트 경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조니의 말에 귀를 기 울였다. "당신의 얘기를 끝냈을 때, 혹은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생각될 때, 나를 불러주십시오, 나를 어떤 식으로 소개하든 괜찮지만, 너무 분명하지 않게, 가능한 한 애매모호하게 소개해주십시오." "접대일을 맡은 통신원이 참석자들을 소개하기로 되어 있다네." "그럼, 그에게 지금 말한 것을 전해주십시오." "알았네.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지. 내가 공격을 그치게 할 만 한 방법을 더이상 찾을 수 없을 때 자네를 부르란 말이지?" 늙은 최고 사령관은 뒤로 돌아서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고맙네. 자네에게도 행운을 빌겠네."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제 곧 회의가 시작될 것이었다. 시간 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촌원 수장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뛰어들어왔다. "댐의 구멍은 이제 완전히 막혔습니다. 물방울만 떨어지는 정도입 니다. 장갑케이블을 연결해서 수리해놓았습니다. 호수는 밤이 되기 전에 다시 장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양팔을 벌려 얼마 전에 조니가 일으켰던 폭발을 흉내냈다. "꽝, 꽝, 꽝" 수장은 그렇게 소리치며 사라져갔다. 그렇다. 꽝이다. 만일 이 회의에서 실패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꽝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이다. (7) 회의장에 들어선 로버트 경은 그곳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순간적 으로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아메리카에서 돌 아온 이래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그것이 커다란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여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인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판단력이 무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별명을 얻게 된 것은 목숨을 건 전투에서였지 회의석상은 아니었 다. 군대의 배치나 전술에 관한 문제였다면, 그도 대등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었을 것이다. 토르네프인은 침착하고 우아하게 한걸음 한걸음 로버트 경의 목을 조이며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도무지 극복해낼 대안 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매복해 있다가 놈을 화살로 꼬치 끼듯이 꿰 어 로커버 도끼로 토막토막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에딘버러의 전세는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었다. 이미 절반이 넘는 대공포들이 토르네프 해병대의 맹공에 파괴되고 말았다. 러시아로부 터는 교신마저 완전히 끊겨져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끝내야 된다는 쪽으로 끌고 가야만 했 다. 그런데 토르네프인은 천천히 몸을 흔들며 음흉한 포즈로 손장난 을 치듯 사절들과 한가롭게 떠들고 있었다. 마치 온세계의 시간을 독 점하고 있는 것처럼 여유있게 행동했다. 그의 이름은 슐레임 경이었 다. 킬킬거리는 웃음과 쉭쉭 하는 음흉한 소리를 교대로 내가면서, 투사가 검을 다루듯이 능숙하게 회담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토르네프인은 말도 천천히 하면서 더욱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이 회의가 무엇때 문에 열렸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귀중한 사간, 그리고 우주의 가장 막강한 권력을 대표하는 위엄있는 인격이, 이 보 잘것없는 국지적 분쟁을 일으킨 비천한 야만인 집단에 의해 공격받 고, 모욕당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 지적인 문제입니다. 야만인들의 조그만 분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조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정부를 자칭하는 이 소수의 무법자들에게 불려와서 이곳에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즉각 이 집회를 해산하고, 나머지 문제는 군 사령관들에게 맡깁시다." 위엄있는 인격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위엄있는 이 격'들이었다. 몇몇의 호흡마스크에서는 화려한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 다. 다른 몇몇은 자신이 최고 권력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휘황찬란한 관을 쓰고 있었다. 열여섯 개의 우주를 대표하는 스물아홉 명의 심판 자로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변경 의 작은 혹성쯤은 단번에 없애버릴 수 있다. 언제라도 신호만 보내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았 다. 그들은 슐레임 경의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서로들 킥킥거리 고 속삭이면서 즐기고 있었다. 오랫만의 재회를 반가워하면서 저속한 음담패설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각기 기원을 달리하는 여러 종족 들이 지성을 획득했을 때,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 었다. 왜소한 회색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와 많이 닮았지 만 훨씬 고급스러운 회색 양복을 입은 사나이도 도착해 있었는데, 그 들은 말없이 로버트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이상 이 싸움에 관여하 거나 지원할 의사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로버트 경은 귀족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나약하고 썩어빠진 위험한 녀석들, 그런 류의 인간에 대해 전부터 가지고 있는 견해였다. 그러 나 지금 상황에선 절대로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내색해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타이르며 말했다. "자아, 회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절들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형식적으로라도 일은 끝내버 리자, 일단 시작했으니까. 그게 무엇이든 완벽하게 처리하기로 하자, 그들은 이미 신임장을 제시했으며, 그것은 모두에게 승인되었다. 로 버트 경만이 아직 신임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슐레임 경은 자신이 그들의 리더로서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 럼 보이기 위해, 의자를 맨 앞줄 끝으로 밀어놓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직.... 이.... 군인인가? 이 회의를 요청한 이 사람의 신임장을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껏 위엄을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번 회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그를 의장에서 해임시키고, 나를 의장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의제를 제출합니다." 로버트 경은 그들에게 디스크를 제출하여 그것을 상정시켰다. 왜소 한 회색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흥미없다는 듯이 그의 신임장 을 승인했다. "유감스럽게도." 슐레임 경이 말했다.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 건방진 혹성이, 설사 이 회의가 소규모라고는 하지만, 이 회의의 비 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아무런 확증이 없습니다. 그것이 지불되지 않 는다면 각자 부담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그것을 용납할 리 없습니 다. 긴급통지문에서는 외교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보증했습니다. 그러 나 정말 지불할 수 있는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지불할 수 있소." 로버트 경이 큰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고철쪼가리로?" 슐레임 경이 비웃듯이 말했다. "은하 크레디트로." 로버트 경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슐레임은 경멸하듯이 말했다. "틀림없이 우리 승무원들의 주머니에서 훔쳐낸 것이겠군. 하여간 좋소, 위엄있는 여러분들, 당신들도 의사진행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으로서는 강대 혹성의 대표자가 하찮은 범 죄자들의 항복과 항복조건을 결정하기 위해, 이렇게 모였다는 것 자 체가 여러분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있음을 느낍니다마는...." "닥치시오." 로버트 경이 고함을 쳤다. "여러분들은 우리들의 항복을 논의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이곳에는 당신 말고도 많은 관계국 대표들이 참석하고 있다. 그들의 얘기는 아직 듣지도 못했소." "아아, 그렇군." 슐레임 경은 부채 모양의 홀을 공중에서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우리 혹성의 비행선이 가장 많이 파견되어 있다. 다른 혹 성의 한 대당 두 대꼴로 말이다. 그리고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은 공 교롭게도 토르네프인이니까. 제독 스노레터는...." "그는 이미 사망했다. 그의 주력함 캡춰 호는 이곳의 호수 속에 가라앉아버렸다. 당신네 제독과 부하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망했다." 로버트 경의 말에 슐레임 경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받았 다. "허어, 그런가? 잊어버리고 있었군.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겠지. 우주여행은 누가 뭐래도 위험한 모험이니까. 연료가 떨어졌던 모양이 군. 그러나 그것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로고레터 스놀 소령이 최고 사령관이다. 그는 바로 조금 전에 승진했 다. 역시 최고 사령관과 최다수의 함선은 토르네프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들이 일방적으로 시작한 전쟁에서 항복교섭 대표로서의 지 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좀전에 분명하게 밝혔지만 우리는 결코 패배하고 있는 게 아니 다." 로버트 경이 소리치자, 슐레임 경은 어깨를 추스려 보였다. 그는 이 야만인의 행동을 너그럽게 봐달라고 부탁하듯이 사절들에게 조소 섞인 듯한 시선을 보내며, 지겹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상관없다고 그들은 중얼거렸다. 슐레임 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에 달려 있는 둥근 부분에 몸을 구부렸다. 로버트 경은 깜 짝 놀랐다. 그것은 위장된 무전기였다. 놈은 줄곧 자기네 군대와 연 락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슐레임 경은 얼굴을 들고, 싱긋이 웃으며 안경에 가려진 눈으로 로 버트 경을 응시했다. "당신네 혹성의 열여덟 개 주요 도시가 불타고 있다." 그렇구나, 그래서 놈들은 폐허가 된 도시들을 폭격하고 있었구나.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대량의 화력을 퍼부 어 공포심을 유발시킨 후, 항복교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 하여, 로버트 경은 '그들이 공격하고 있는 곳은 폐허에 불과하다, 천 년 동안이나 비어 있는 도시들이다.'하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슐레 임경은 틈을 주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절들은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 데이타를 프린트해주게." 그는 무전기 밑에서 가느다란 실을 빼냈다. 그것은 지구인들의 무 인정찰기에서 보내오는 것과 똑같은 데이터 복사였다. "거절하겠다." 로버트 경이 말했다. 사절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 속에는 이 혹성이 패배 직전에 처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슐레임 경은 웃으면서 말했다. "증거 인멸은 범죄이며, 벌금이 부과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야 지. 당신의 그 오만한 태도를 버리는 것이 좋을걸, 물론 당신들한테 는 현대적인 장비가 없을 테지만...." 로버트 경은 할수없이 그것을 프린트하기 위해 복사기를 작동시켰 다. 즉시 사진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스물다섯 곳이나 되는 불 타는 도시를 촬영한 항공사진들이었다. 불길은 수천 피트 높이까지 치솟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오른쪽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면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불꽃의 열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공격의 포성과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들이 울려퍼지며, 시각적 효과를 올리고 있었다. 슐레임 경이 사진을 나눠주자, 사절들은 그것을 들여다보며 보석으 로 장식된 손이나 촉수로 소리를 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겠다. 약탈본부측으 로부터 지나치게 관대했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임을 명심하라. 내 조건은 다음과 같다. 이 혹성의 모든 인간들은 노예로 팔려간다. 지구가 일방적으로 전 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갚기 위해서다. 비록 노예로 팔 려가더라도 좋은 대우를 받도록 유도할 것을 보증할 수도 있다. 노예 들은 수송되는 도중, 평균 절반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하우빈, 쟘비 초, 드로킨, 케이얀 등의 다른 교전국들에게는, 일방적인 공격을 방 어하는데 소요된 장비 및 비용의 대가로 이 혹성을 분할하여 공정하 게 배분한다. 그대들의 국왕은 토르네프에 감금한다. 특별히 넓은 감 옥을 제공하겠다. 합법적이고 공정한 조건이다. 너무나도 관대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내가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다른 사절들은 어깨를 추스려 보였다. 자신들이 이곳에 불려온 것 은 단순히 이 시시한 항복조건을 승인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 었다. 로버트 경은 이 함정에서 벗어날 출구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회의 가 시작되었을 때, 전송출하 장치가 두세 번 소리내는 것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지쳐 있었다. 간악한 토르네프인을 결 투로 끝장내주고 싶다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러나 사절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점점 희박해지는 생존 가능 성마저도 치명적이 될 것이었다. 그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간파해낸 슐레임 경이 날카롭고 음흉하 게 쉭쉭 소리를 내며 말했다. "강대한 여러 사절들이 그대들에게 강압적으로라도 항복조약을 체 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전국의 대표 여러 분, 당신들은 모두 나의 제안을 찬성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 까?" 하우빈인, 쟘비초인, 볼보드인, 드로킨인, 그리고 케이얀인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관대한 조건에 동의한다고 각자 한마디씩 했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국지적 인 분쟁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것 때문에 허비해야 하는 시간을 줄일 수만 있다면, 토르네프인의 의견에 따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회의 를 종결시키고 싶다. 귀찮아하는 표정들 속에는 그렇데 씌어 있는 듯 했다. "내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당신들의 항복을 논의하기 위해서였 다. 따라서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전권을 부여받은 나의 동료를 소환 하겠다." 그는 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는 쪽으로 신호를 보낸 후, 자리에 앉 았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토르네프인 때문에 논의가 너무 일방 적인 방향으로 흘러버렸으므로, 도저히 뚜렸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로버트 경은 자신이 이 논의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해낼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이젠 모든 것이 조니에게 달려 있었다. 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27 부 여전히 에딘버러는 불타고 있었다. (1) 갑자기 회의장에 음악이 울려퍼지기 지작했다. 엄숙하고 위엄이 느 껴지는 웅장한 곳이었다. 사절들은 무슨 일이 시작되는지 궁금해 하 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회의에 매우 따분해 하고 있었다. 더 욱이 이 혹성에 온 이후로 '밤의 생활'을 전혀 즐겨보지 못한 상태였 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듯한 무희들의 접대도 전혀 없었다. 다 른 혹성에서는 사절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그런 곳부터 안내 하 는 것이 상례인데. 이 회의는 마치 긴급하고 중요한 안건이라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서둘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내용은 우주의 변경 에 위치한 조그만 교전국들간의 분쟁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신장이 육 피트 반이나 되어 보이는 거한이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상반신을 벌거벗은 황색인으로 어깨에 붉은 장식띠를 두르 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낸 머리는 번들번들 빛났고, 근육들 은 터저나갈 듯이 울퉁불퉁 불거져, 마치 엄청나게 무거운 물건을 짊 어진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마치 허상처 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힘겹게 떠메고 있는 듯한 등줄기 와 이두박근들은 산더미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음악에 맞춰 걸어오 는 그의 양다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절들에게는 아 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한은 연단으로 올라가 떠메고 있던 물건을 신중하게 내려놓았다. 그것은 사이클로인들이 세밀한 전자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테이블이 었다. 그 작업을 할 때는 모든 방향에서 빛이 비춰져야 하기 때문에, 제단유리로 만들어진 그 테이블은 렌즈 스프레이가 칠해져 있었다. 또한 모든 빛이 완벽하게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반사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나이는 조심스럽게 테이블의 위치를 바로 잡았다. 사절들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일고 있었다. 그들은 목을 길게 뽑거 나, 혹은 아예 일어서서 연단 쪽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접대를 맡은 통신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귓속의 마이크를 통 해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 회의장에는 살해와 파괴는 물론, 위험성이 있는 물건은 일체 가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구를 대표해서 엄숙하게 그 것을 약속하고, 이 약속을 어겼을 경우에는 어떤 액수의 배상금이라 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몇몇의 사절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재미있는 일이 군, 상당히 재치있는 조크가 아닌가. 연단에 무언가를 올려놓는 시늉 을 하고 그것은 위험하지 않다고.... 꽤나 재미있는 친구들이 아닌 가. 거한의 황색인인 물러나자, 곧바로 아름다운 긴 옷을 입은 무표정 한 중국 소년 두 명의 장엄한 가락에 맞춰 엄숙하게 걸어들어왔다. 금술을 늘어뜨린 화려한 빨간 방석을 받쳐들고 있었다. 방석 위에는 커다란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한 사람씩 접대를 맡은 통신원 앞으로 걸어나가자, 그는 방석 위의 책들을 표지가 사절들 쪽으로 향하게 하 여 보이지 않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거한의 제스처는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투명한 테이블이라.... 재미있군. 그 책들의 표제는 '사 이클로어 사전'과 '정부간 조약에 의거한 은하법전'이었다. 시력이 약한 토르네프인, 슐레임 경은 그 표제를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뜻밖의 일에 바짝 긴장하여 응전할 자세를 취했다. 유지한 웃음 거리일 뿐이다. 놈들은 나를 속이려드는구나. 좋다. 너희들이 어떠한 짓을 한다 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모두 궁지 속에 몰아넣고 말겠 다. 두 소년은 책을 얹었던 방석을 받쳐들고, 들어왔을 때처럼 엄숙한 걸음걸이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음악이 멎고, 큰 북을 두드리는 소 리가 회의장 안에 울려퍼졌다. 접대를 맡은 통신원이 일어나 북소리 에 지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모든 혹성의 지배자이며 열여석 개 우주의 위대한 사절단 여러분, 조니 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조니 경은 전 지구인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트럼펫의 팡파르가 큰북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맞춰 조니가 통로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엄숙하고도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그는 검은 실크에 은실로 수놓은 옷을 입었고, 홀을 들고 있었다. 그 의 움직임에 따라 홀은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한 무지개빛으로 반짝 였다. 홀은 정치가들의 권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었다. 연단으로 올라선 조니는 테이블 뒤로 돌아가서 사절들 쪽을 바라보았 다. 그 순간 문 위쪽에 장치되어 있던 스포트 라이트가 켜졌다. 검정과 은빛으로 장식된 조니의 모습이 강렬한 조명 아래 더욱 화려하게 빛 났다. 테이블이 투명했기 때문에 빛은 그의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홀의 양끝을 움켜쥔 채 위엄있는 표정으로 사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족적인 생활에 익숙한 사절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화려한 의식에는 익숙해 있어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지 만, 이번 연출에는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놀라워하고 있는 것은 조니가 쓰고 있는 헬멧이었다. 사절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찬란한 은빛으로 번득이는 그 짐승의 불타는 듯한 붉은 눈을 보면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 다. 그러나 슐레임 경만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는 통신원이 조니를 소개할 때 사용한 '정신'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말로 꼬투리를 잡아 조니를 야만인으로 몰아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음 이의어가 많았는데, 그 의미는 억양 내지 음조의 미묘한 변화에 의해 구별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이클로어의 '정신'이라는 단어 속에는 억 양의 변화에 따라 '마음' '천사' '악마'라는 각기 다른 의미가 포함 되어 있었다. 통신원은 이것을 정신을 나타내는 억양으로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슐레임 경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쉭쉭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절 여러분, 나는 이 악마의 발언권을 거부합니다. 그는 신임장 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당신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조니의 말에 화가 난 슐레임 경은, 불쾌한 표정으로 조니를 노려보 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이지...." "아아, 그렇군요." 조니가 홀을 휘두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요, 당신의 사투리. 그 토르네프어 때문이군요. 여러분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사절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슐레임 경의 말투에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불거져나온 송곳니 때문에 호흡이 새서 쉭쉭거리는 소 리가 섞인 탓도 있었지만, 실제로 토르네프는 지독히 외진 곳이었다. 혹성도 단 한 개뿐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중앙으로부터 머리 떨어진 변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악마 같은 놈!" 화가 치민 슐레임 경이 욕설을 퍼부었다. "말씀을 삼가하시지요. 당신이 여기서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 으니까요. 여기에 계시는 고귀한 사절 여러분들도 그런 일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슐레임 경이 다시 반격하려고 하자, 조니가 손바닥을 두드리던 은 제 홀로 재빨리 그의 발밑을 가리켰다. 홀 끝에 장치되어 있던 빔라 이트에서 광선이 뻗어나갔다. 그것은 갱도 속의 부유먼지를 조사하기 위한 라이트로써 가느다란 흰색 빔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조니는 자 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돌 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라이트를 껐다. 슐레임 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배가 심하게 무심히 튀어나와서 몸을 구부려야만 했다. 저 악마가 무 엇을 본것이지. 무심히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던 슐레임 경은 깜짝 놀 라고 말았다. 장화였다. 그가 싣고 있는 것은 반짝반짝하게 닦인 비 늘이 달린 녹색의 정장용 정화가 아니었다. 더럽고 낡아빠진 흐늘흐 늘한 황색 장화였다. 이 모든 게 하인놈 탓이었다. 출발을 서두르느 라고 그 바보 같은 하인놈이 엉뚱한 장화를 신겨준 것이었다. 본국으 로 돌아가면.... 그렇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얼간이 녀석에게 바람구 멍을 내주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거리를 끌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물어뜯게 해서 죽여버릴 것이다. 조니는 사절들을 보면서 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선 사과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회의에 늦어진 실례를 용서해주 시기 바랍니다. 법률문제를 검토하느라 늦었으니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친애하는 감정과 경의를 담은 눈빛으로 사절들을 둘러본 다 음, 투명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법전을 가볍게 두드렸다. 옛날 칭 코인들의 교육디스크에서 배운 작법과 표현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 다. 회의장에 들어왔을 때, 조니는 자신이 거만스러운 것만 같아 매 우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익숙해졌 고,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행동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숭고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정부의 전권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분들 이 먼 여행의 불편을 무릅쓰고, 이처럼 비천한 혹성에서 열리는 회의 에 참석해주신 것은, 미개의 혹성에서 발생한 자질구레한 분쟁을 조 정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사절들은 자세를 바로하고 조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 정 말이지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먼길을 고생해가며 찾아온 것은 아니 었다.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아예 참석조차 안했을 것이다. 로버트 경은 조니의 말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이 전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지구 도처에서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으며 동료들 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자질구레한 일이란 말인 가. 그는 두 명의 왜소한 회색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모두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조니와 미리 얘기를 나누었을리 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저들도 조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절들과 회색인들은 조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지금까지 따분해 하던 사람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 에 임하고 있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조니는 계속했다. "해적을 격퇴시키는 사소한 일 때문에 여러분을 소환했다고 한다 면, 그것은 여러분이 대표하고 있는 강대 국가들에 대한 모욕이 될 것입니다. 슐레임 경은, 의자에서 일어서기 위해 엉거주춤 엉덩이를 쳐들었다. 그는 악마에게 소리를 쳐서 지금 한 발언을 정지시키려고 했으나, 그 악마의 눈이 또다시 자신의 장화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나 슐레임 경이 생각을 바꾼 것은 단순히 장 화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련한 외교관인 그는 그 악마가 자신을 함정 에 빠뜨리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좋다. 이제 곧 네 녀석 을 저세상을 보내주겠다. 나에게는 상대거리도 안되는 녀석이다. "정부와 국왕을 대표하는 이처럼 고귀한 분들이 이곳에 모였다고 한다면." 조니는 계속해서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나갔다. "혹시 제가 한 말 중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 다. 이제 여러분들은 은하번, 혹은 여러 조약에 관한 중대 안건을 심 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 냉철한 견해와 고매한 인 격을 보여줄 때, 여러분들의 권위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사절들은 조니가 자신들의 진실로 원하는 내용의 요점을 정확히 꿰 뚫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전국을 제외한 모든 사절들은 자세를 가다 듬고 조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교전국의 사절들은 서서히 불안감을 느끼기 지작했지만, 슐레임 경 만은 점점 더 자신감을 굳혀가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그런데 저 악마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섬광을 번쩍이는 저 단 추는 도대체 뭘까. 그 빛은 토르네프인용 필터를 투시했으므로, 단추 가 빛날 때마다 슐레임 경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 든 조니를 비추고 있는 스포트 라이트를 끄게 할 만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조니는 아직도 유창하게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정규군과 해적의 차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조직, 급여, 규율이란 점에서 최고인 군대조차도 일부에서 반란을 일 으키거나 지휘관의 도덕성 결여로, 해적으로 전락하여 그들의 정부에 반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는 종종 상선에서도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사절들은 조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더욱 이 지금은 혼란의 시대인 만큼 그러한 일은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바로 한 달 전에도 옥센타브에서 우주함대가 반란을 일으켰었다. "따라서 여러분이 대표하고 있는 정당한 국가의 권위를 지키고, 실 제로 해적행위가 일어났을 경우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정의 를 명확히 해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처럼 권위있는 분들에 의해 체결된 정식조약의 형식을 취해야만 유효한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옳은말이라고 사절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교 전국의 사절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악마를 지옥에 떨어뜨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슐레임 경만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닌느 사이클로어 사전에 미리 표시해놓은 부분을 펼쳤다.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사이클로어는 합성어입니다. 갖가지 언어 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는 여러분들의 언어에서 훔쳐온 것도 많습 니다. 따라서 그것은 사이클로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 주의 모든 언어를 합성시킨 보편어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이클로어 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절들은 제각기 사이클로인은 다른 종족으로부터 모든 것을 훔쳤 다. 언어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조니의 해박한 지식을 칭찬했 다. "이 사전은 표준판임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사절들은 조니가 들고 있는 사전을 확인한 후, 표준판임을 인정했 다. 조니는 사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한구절을 큰소리로 읽었다. "이 사전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해적, 국가 또는 혹성 정 부의 법률에 따르지 않고, 전함 또는 우주선을 이용한 폭력집단으로 교역선반이나 도시, 혹은 혹성을 약탈하는 행위, 또는 그 사령관 및 승무원." 사절들은 조니가 읽은 해적의 정의에 동의했다. 하지만 슐레임 경 만은 거만한 태도로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니의 그러한 주 장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분쇄하여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 다. 지금은 잘난 체하고 있지만, 곧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마음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그는 모든 토르네프 함대는 토르네프 정부로부터 직 접 명령받고 있으며, 그 행동 또한 합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니는 은하법전을 펼쳤다. "대부분의 조약들과 은하법은 이것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정부간 조약에 의거한 은하법전'에 의한 정의는 이것과 다릅니다. 여러분의 승낙을 얻어 제가 관련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은하법 제 234, 352, 678조, 브롱크 성에서 조인된 사이클로별과 하우빈별 사이 의 조약 및 사이클로별에서 조인된 사이클로별과 컴코드사의 조약에 의거하면 해적이란 법을 위반하고, 광물자원을 도굴하는 자'로 정의 됩니다." 조니는 법전을 가볍게 두드리며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이와 같은 그릇된 정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해서, 또 무엇 때 문에 정해졌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절들은 모두 소리내어 웃었다. 사이클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 해서라면 어떤 불합리한 법이라도 통과시킨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 었기 때문에, 모든 혹성인들은 사이클로인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이 권위있는 회의에서 모든 성계 및 혹성간의 해적 행위 및 해적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적절한 심의를 거친 다음, 그것을 금지하는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경이 답답하다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지구 전체가 파괴되 어버릴 긴박한 상황에서 조약 따위나 심의하면서 며칠씩 회의를 끌어 가겠다는 조니의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토르네프인은 비밀무선으로 전쟁확대를 지시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 황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신음소리는 사절들의 찬성소리에 지워져버 렸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 조니는 책을 내려놓고, 조금 뒤로 물 러나 홀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들은 즉각 심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토르네프 함대와 사관 및 승무원을 개인자격으로 모두 기화시키느냐, 아니면 군인으로서 군법 회의에 회부하여 충살시키느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슐레임 경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그는 바로 뒤에 앉아 있는 교전국의 사절들을 분노에 가득찬 눈으 로 둘러보았다. 악마의 발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절은 아무 도 없었다. 모두가 당황해 하는 표정으로 멍청히 앉아 있을 뿐이었 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은 슐레임 경은 악마의 말 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렇다. 저 악마는 심의의 대상을 '연합군'이 라고 하지 않고 토르네프 함대라고 말했다. 그가 흥분하여 쉭쉭거리 면서 항의하는 소리를 내자 독을 품은 침이 튕겨져나왔다. 지독한 악 마 녀석. 당장이라도 악마를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당신은 우리 명예로운 토르네프군만을 거론하여 비열한 비판의 대 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편견에 근거한 발언이며, 본회의에 서 기각되어야만 한다. 이 전투에는 다른 국가들도 참가하고 있다. 나는 그 발언을 토르네프 혹성 정규전에 대한 악의와 편견에 가득찬 고의적인 모욕으로 간주하여, 의사록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조니는 슐레임 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잠시 동안 그의 장화에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슐레임 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난폭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범죄사실이 지워지는 것은 아 닙니다. 당신의 행동은 여기에 계신 여러 사절들을 모욕하고 있습니 다.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나는 회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슐레임 경이 소리쳤다. 조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그럼 대답하겠습니다. 하우빈, 볼보드, 드로킨, 쟘비초 및 포크너의 군대들은 허위정보에 속아 토르네프군에 협력하도록 강 요당한 것입니다. 당신이 증언했던 것처럼 토르네프군의 전함 수는 다른 혹성들의 전함 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또한 연합군은 토르네프 군의 사령관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전임 지휘관이 죽은 후에도 다른 토르네프인이 인계받아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로봤을 때, 다른 국가들의 군대는 토르네프 함대의 위압적인 군사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격에 참가하도록 강요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따라서 이들 다른 종족 및 군대는 아무런 죄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 은 고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해적이란 단어가 정당하게 정의 된다면 희생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지금이다. 슐레임 경은 악마를 때려눕힐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 았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자신감과 거만함으로 가 득찬 태도였다. "악마여, 그대는 지금 매우 방자한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 나 그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다. 그대는 토르네프군이 해적행위를 자 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르네프군 제독, 토르네프군 대위, 그리고 토르네프 군인들과 함대는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토르네프 중앙정 부의 명령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해적의 정의를 빙자하 여 인기를 끌려고 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고, 본의제인 항복교섭을 시 작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슐레임 경은 이것으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었다. 회색인들은 불안 한 모습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다시 신음소 리를 토해냈다. 그들의 어두운 표정 속에서 지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조니를 바라보았다. (2) 조니는 슐레임 경을 향해 서글픈 듯이 고개를 흔들어 보인 후, 사 절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 대고 있었다. 그 지루함 속에는 자신들과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 했던 의제가 아니었다는 허탈감이 뒤섞여 있었다. "여러분," 조니는 사절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가 목소리 를 좀더 높여 말했다. "잠시 본회의 의 중심 의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이 토르네프인은 평화로운 혹성에 대한 습격이라는 사소한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분명히 하고 싶답니다. 우선 이 조그만 장애부터 처리하 는 것이 좋을 듯한데, 괜찮겠습니까?" 사절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회의가 어떻게 전개되든 토르 네프 사절이 다시 끼여들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차라리 그때의 불편 을 덜어보자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분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조니는 슐레임 경 쪽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펴고 그를 똑바로 노려 보았다. 그는 홀을 들고 가볍게 손바닥을 두들기고 있었다. "슐레임 경, 분명히 정규군이라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당신네 군대 의 제독 및 함장들에 대한 명령서를 제출해주시오."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조니를 바라보았다. "사절이 모든 군대문서를 가지고 여행할 수는 없다. 당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신들 미개한 종족은 모르겠지만, 토 르네프의 사령관은 군사행동에 관한 자유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요. 그렇다면 정규명령은 없었다는 예기가 되는군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슐레임 경이 쉭쉭 소리를 내면서 외쳤다. "결국 같은 얘기가 아닐까요. 당신은 지금 중요한 심의를 지연시키 고 있소. 하지만 이 일을 마루리짓지 앟을 수 없군요." 조니는 홀을 들어 손바닥을 두 번 두들겼다. 그것은 권총의 발사음 처럼 회의장 가득히 울려퍼졌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기사들이 광산이동차를 말고 통로를 통해 달려들어왔다. 금도금이 된 이동차는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이동차와 같은 크기의 금도금이 된 공중영사기가 실려져 있었다. 그것은 보통 갱도나 터널의 영상을 비추는 기계로, 빛이 대 기의 이온을 비추면 이온이 응집헤서 그 빛을 반사하는 것이었다. 촬 영장면에 자를 놓아두면 투영되어지는 각 점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무형의 공간 속에 3차원의 영상을 연출시키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조니가 서 있는 왼쪽의 넓은 공간에 영상이 나타나도록 영사기를 설치하였다. 버튼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조작판을 투명 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들은 머리를 숙여 보잉고 밖으로 나갔다. 기사들이 행동이 너무나 신속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틈을 찾지 못하고 있던 슐레임 경은,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재빨리 입을 열었 다. "나는 이 멍청하게 생긴 장치가 이곳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에 대해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가 이 권위있는 회의를 더 이상 우롱하 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 "슐레임 경!" 조니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은폐하려고 해봤자 이젠 아무 소용 없 소." 사절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앉으시오, 슐레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소." "일단 구경이나 해봅시다." 조니는 두 개의 조작버튼을 눌렀다. 입구의 스포트 라이트가 꺼짐 과 동시에 영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놀랄 만큼 정교한 루프 알제보거 의 3차원 영상이었다. 음성은 없었으나 지금까지 비어 있던 공간에 갑자기 알제보거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사절들은 이 광상용 영사 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신기해 했다. 사이클로인들은 오락 기기의 개발이나 판매를 전혀 하지 않았고, 이 장치도 광산에서만 사 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에 나타난 루프 알제보거는 얼굴 전체에 종양이 나 있어 그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종곳니는 새카맸고, 그 하나는 부러져 있었다. 몸에는 빈민가의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 같은 누더 기를 걸치고 있었다. 이 영상기록은 타르가 전송되어진 날의 것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돔과 차량을 씻어내는 동안 강의 상공을 방위하고 있던 조종사들이 무선전송 카메라로 촬영한 기록의 일부였다. 조니가 치료받고 있는 동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보내진 것이었다. 조니가 입을 열었다. "슐레임 경, 이 사나이가 당신 정부의 일원입니까? 잘 보고 대답해 주기 바랍니다. 대신이거나, 혹은 군대의 고관 같은 인물입니까?" 몇몇의 사절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사나이는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만일 그가 토르네프 정부의 일원이라고 한다면.... 아나, 이럴 수가! 슐레임 경은 흠칫 놀라며 영상에 시선을 모았다. 말할 수 없이 추하고 역겨운 모습이었으나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토르네프 정부는 그런 녀석들의 집합체인 것 같은 느낌을 주 었다. 몇 명의 사절들은 아예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글의 웃음 소리 에 수치심을 느낀 슐레임 경은 강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아니다. 이런 지저분한 자가 토르네프 정부에 있을 리가 없 다. 당신은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정부와 혹성의 존엄성과 위대성을 격하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악랄한 선전공작을 꾸미고 있다. 나는 단호하게 항의한다." "진정하십시오." 조니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나이는 당신 정부의 일원이 아니며, 공적인 권한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당신은 말했습 니다. 그렇지요?" "그렇다, 만일 당신이." "그렇다면 그가 스노레터 제독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입니까?" 조니는 다른 버튼을 눌렀다. 영상이 역회전하며 다른 장면이 나타 났다. 다이아몬드에 슬래시하는 토르네프의 문장을 붙인 캡춰 호의 함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 스노레터 제독과 루프 알제보거가 마주보고 서 있었다. 조니가 버튼을 누르자 음성이 들려왔다. 함교 창유리의 진동을 음성으로 재생시킨 것으로 비대기권 주력전함의 낮 은 소리와 루프 알제보거의 목소리가 명료하게 들려왔다. "독자적인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스노레터, 당신 개인의 이익을 손에 넣을 기회를 잡아야만 합니다. 저 기지를 급습하여 점령하십시 오. 저곳이 이 혹성의 중앙 정부입니다. 일단 이 혹성의 지휘권만 장 악하게 되면 주민들은 모두 잡아서 팔아넘기고, 이 혹성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겁니다. 내가 지원해주지요.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을 겁니 다. 행동을 개시하십시오, 나에게는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둘 이서 이익을 나누는 겁니다." 스노레터는 빙긋이 웃으며 손을 제독모의 차양에 갖다대고 거수경 례를 했다. "좋소, 당신의 지시대로 하겠소." 조니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장면은 더욱 역회전하여 궤도상의 전 연합군을 비추었다. 음성은 꺼져 있었다. "이것이 당신네 나라의 제독과 함대요." 조니가 두 개의 버튼을 누르자, 영상이 사라지고 스포트 라이트가 켜졌다. 지금까지 공중영사를 본 적이 없는 사절들은 마치 눈앞에서 전개되 는 듯한 영상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토르네프 함대가 틀림없다는 것 은 슐레임의 태도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느닷없이 슐레임 경이 소리 쳤다. "합성영상이다. 영상기록을 합성하는 장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저 따위가 증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는 그만두시오. 폭언과 히스테리로 얼버무리려고 해도 소용없소, 당신은 이것을 합성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선명한 영상을 합성할 수 있단 말이오?" 조니는 그렇게 말하고 사절들 쪽을 돌아보았다.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습니다. 토르네프군의 제독은 정부가 아닌 일개 민간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낱 개인 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슐레임 경. 아무리 악을 써도 증거는 사라지지 않소. 여러분, 그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 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정의 여지도 있으니까요. 이 스노레터 제독은 대위 로고레터 스놀의 큰아버지로, 조카에게 유인당하여 이번 원정에 참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 일족의 사사로이 꾸며낸 일이며, 그 해적행위는 조카에 의해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 다." 조금 전에 상영된 영상에는 이 설명과 일치되지 않는 점도 여러가 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조니는 그것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 다. 결과적으로 제독을 충동질한 것이 루프 알제보거라는 것은 명백 하게 드러났다. "이제 해적행위라는 점은 명백히 증명되었습니다. 이곳에 와 있는 함대는 본국 정부와는 무관하게도 제3의 인물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그 함대에 대해 항 복권고를 하도록 슐레임 경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에 해적 의 정의 및 조약에 관한 본래의 문제에 착수할까 합니다. 슐레임 경,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초원으로 함대를 집합시키도록 명령을 내려주 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이곳의 제공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함대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들에게...." "해적행위를 중지시키는 일을 도와달라는 얘기요." 조니가 그의 얘기를 한마디로 잘라버리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절 여러분, 슐레임 경은 우리들을 계속 귀찮게 할 생각인 모양 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합니다만, 우선 이 지저분한 일부터 완전히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 까?" 사절들은 조니의 제안에 동의했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시오. 조약문제는 나중에라도 심의할 수 잇습 니다." 그러자 교전국의 대표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처한 일에 끼여들었군. 도대체 어떻게 될까?' 왜소한 회색인들은 얼마간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꼼짝도 안한 채 슐레임 경의 모습을 관찰하던 로버트 경은 그에 대해 아직 방심해 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선기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 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육탄공격이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주위의 사절들에게 목례를 보내고 서둘러 작전사령실 로 돌아갔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전군에게 전하고, 경계태세 강화와 반격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로버트 경의 뒤를 이어 회색인도 살 며시 회의장르 빠져나와, 자신의 우주선으로 가서 새로운 명령을 전 했다. 붉은색의 경고신호는 두 개가 되었고, 무선신호도 새로운 것으 로 변경되었다. "경고한다. 경고한다. 당지역에서는 현재 은하 및 혹성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을 침입하는 전함은 은하법에 의거하여 법외 방치자로 간주, 그 국가와 소유자에게 무거운 징벌을 내리겠다. 반복 해서 경고한다. 당지역은 현재 은하 및 혹성간 회의가...." (3) 슐레임 경은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고 매우 냉정하게 외교의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교가 실패했을 때는 군 사력을 이용한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악 마로부터의 패배를 만회할 길이 없었다. 그는 조니로부터 치명적인 공격을 받은 순간,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 작전 을 전면적으로 변경했다. 그것은 번복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는 회색인들의 권력이 이미 쇠퇴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보복쯤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의 전에 전은 하 사절회의가 개최되었던 것은 일 년 전이었다. 그 이후 사절들과 그 거대 정부의 권력은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다. 게다가 토르네프는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경에 위치하고 있어 공격받을 위험성이 매우 희박했다. 슐레임 경은 로고데터 소령에게 긴급통신으로 명령을 내렸다. 토르네프인만이 아는 초무방향성 전파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을 수신할 수 있는 것은 군장교와 외교관료의 무선기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초무방향성 전파를 고관용 암호 로 변경하여 발신했다. 슐레임 경의 명령은 토르네프 외의 교전국 함 대를 지구로 퍼견하고, 토르네프의 모든 함대를 회의 개최 지역으로 집결시켜라. 그리고 회의를 보호하기 위한 회색인의 경고는 일체 무 시하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토르네프 함대는 싱가포르에 있었기 때 문에, 두 시간 정도면 모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슐레임 경의 홀에는 마비음파 발생기가 부착되어 있어서, 그 끝을 비틀면 유효범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을 사용하여 회의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끌고 나가겠다고 생각하 고 있었다.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 사절들을 회의장 밖으로 끌어내 분 지로 유인하면, 호위병들까지 마비음파의 유효범위 내에 넣을 수가 있었다. 토르네프인의 외교단이 되려면 재치나 용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슐 레임 경 역시 단순한 문관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총을 쏘면서 대기 장갑 케이블의 조작판으로 뛰어들어 케이블을 해제하고, 토르네프 해 병대를 투입시킬 생각이었다. 텔레포테이션 제어탁자 따위는 아예 파 괴 해버리는 것이 토르네프군에게 유리했다. 경제기반을 노예매매에 두고 있는 국가는 항상 외적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성을 안고 있었 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포테이션 제어탁자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 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제어탁자를 파괴한 후 일반비행선을 타고 본국으로 귀환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교전국의 사절들과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하에 영 입시키거나, 모두 살해해버리려 계획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 떻게 귀국하든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절들을 죽여버 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체는 파묻어 중거를 없애 버릴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만약 실패한다 해도 저 악마의 논리대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로고레터 스놀은 해적이 되는 것 이며, 정부의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회의지역에 접근했다고 우겨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스놀 소령을 파면시켜 처형해버리면 아무 런 증거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불쌍하지만 그에게는 국가의 대의를 위해 희생물이 되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상으로는 흔히 있 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면 토르네프 함대에 명령하여 다른 교전국 들의 함대를 모두 처치해버리라고 해도 될 것이었다. 슐레임 경은 자 신의 계획에 스스로 격찬하며 흐뭇해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사절들을 어떻게 분지까지 유인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조니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지만, 슐레임 경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 다. 놈이 무슨 말을 하건 결국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의자에서 자세를 바로하고, 의사진행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분명히 외교는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 문제지만, 실페했다 해도 무력에 의한 해결책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슐레임 경은 홀 끝을 근 심스럽게 만지면서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토르네프군이 도착하기를 기 다리고 있었다. (4) 기술자가 들어와서 공중영상기의 카트리지를 교환하는 동안 회의는 잠시 중단되었다. 조니가 다시 얘기를 시작하자, 술렁거리고 있던 사 절들도 조용해졌다. "사절 여러분, 이 혐오스러운 토르네프 문제의 최종 결론을 얘기하 는 것을 허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인내심에 존경의 뜻을 보내며, 이제 곧 이 권위있는 회의에 걸맞는 심의로 돌아가도록 하겠으나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칭코인의 회의예법 학습디스크는 점점 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공손한 말투 때문에 교전국의 대표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조니의 편이 되어 있었다. 조니가 슐레임 경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의 몸놀림에 따라 웃옷의 단추들이 번득이면서 헬멧 위의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토르네프인이여," 조니는 위엄을 차리되, 말투 속에 경멸스러움을 담아서 얘기했다. "이번 회의에서 신임장을 심하하고 있는 동안, 우리들은 몇 가지 영상을 촬영했소, 당신의 확인을 얻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상관없네, 악마." 슐레임 경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이제 완전히 침착성을 되찾고 여 유만만하게 앉아 있었다. 조니는 그의 돌변한 태도를 바라보면서 뭔 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갑작스러운 여우 속에는 어떤 음모가 숨 겨져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것을 보면 슐레임은 우수 하고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외교관임에 틀림없다. 조니가 버튼을 조작하자 스포트 라이트가 꺼지고, 그의 왼쪽 공간 에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장대한 광경이었다. 사절들은 몸을 내밀 고는 흥미스러운 눈길을 모았다. 영상은 하나의 성계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토르네프성은 그 성계의 제9혹성이었다. 마치 우주선의 창을 통해 보는 것처럼 밝고 선명한 3차원 영상이었다. 중심에 있는 것은 2연성이고, 커다란 태양의 주위를 작은 태양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 러한 이류로 혹성군과 그 혹성군에는 이중으로 햇빛이 비춰져 이중 그림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성계의 명칭은 사이클로의 좌표표에 서는 바타포어, 인간의 고대 명칭으로는 시리우스, 즉 천량성이었다. "이것이 바타포어 성계지요?" 조니가 슐레임 경에게 물었다. 토르네프인은 웃었다. "당신이 촬영했다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내게 묻는 것인가?" 조니는 두번째 줄에 앉아 있는 하우빈인 사절을 홀로 가리켰다. "명예로운 하우빈 사절이라면 우리들을 도와줄지도 모르겠군요. 이 것이 바타포어입니까?" 하우빈이 사절은 이번 원정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들 은 역사적으로 토르네프인과는 적대관계에 있었다. 옛날부터 토르네 프인들의 노예사냥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놈들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처벌을 받고, 과징금을 물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에 처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구의 정신은 토르네프 외의 교전국 은 비난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니까 처벌을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비위를 맞춰두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이번 질문에 그에게 도움을 준다 해도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우빈 사절은 의자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나아갔다. 조니가 빔라이 트를 켠 홀을 건네주자, 그는 성계 전체를 가리켜며 말했다. "이것은 바타포어 성계가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고대 사이클로어의 명칭이며, 하우빈어로는 트위노, 즉 어머니와 아들이라고 불리웁니 다." 사절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혹성의 고리를 가리켰다. "이것이 쥬보, 견딜 수 없는 고온과 지나친 중력 때문에 아무도 살 지 않는 무인혹성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제2, 제3, 제4, 혹성의 고리를 차례로 가리키며 설 명했다. "이들 혹성에도 각각 명칭이 있습니다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지 진과 화산활동이 활발해서 모두 무인혹성에 불과합니다." 여섯번째 혹성은 거의 이중태양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이것이 토사트, 사이클로인의 채굴혹성입니다. 옛날, 이곳에 살던 종족은 전멸되어버렸습니다." 하우빈 사절은 포크너 사절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한 시선을 던졌 다. "사절각하, 얘기해도 상관없겠습니까?" 로크너 사절은 어깨를 들어 보이며, 억지로 미소를 보냈다. "친애하는 동료 각하, 그 정도까지 말했다면 이미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이 포크너의 영토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 셔도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일곱번째 혹성은 할로반이라고 하며 포크너 연방 에 속해 있습니다. 여덟번째는 벌로, 하우빈성의 영토입니다." 하우빈 사절은 빔라이트를 내리고, 슐레임 경 쪽을 바라보았다. 슐 레임 경은 어깨를 들썩거린 다음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천문학 강의로군요. 다만 동물 모양이라던가 식물 모양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게 섭섭한데요, 하지만 좋습니다. 계속 해주십시오." 하우빈 사절은 빔라이트를 아홉번째 혹성에 갖다댔다. "이것이 토르네프성입니다." 그는 눈을 그것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렇습니다. 주위에 반점 같은 것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다섯 개의 달입니다. 이 각도에서는 그 중 하나가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 지만 분명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토르네프성의 튼 특 징입니다. 이 성계에는 두 개 이상의 달을 가진 혹성은 존재하지 않 으니까요. 이 달들은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 독특한 반사작용을 일 으킵니다. 2연성으로부터 발산된 빛은 보통의 스펙트럼으로 되어 있 는데, 달에 반사되면 그 스펙트럼 전체가 위쪽으로 빗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토르네프인은 달빛 아래서 일하고 태양이 비치는 낮에는 잠을 잡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본래 다른 혹성에 있었다고 하는 설도...." "우리들에 관한 얘기는 그만하시지요." 슐레임 경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토르네프인의 계란교배에 대해 강의하실 생각인가요. 하 우빈 사절 각하." 사절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슐레임 경은 몸을 비틀면서 그들에게 목례를 보냈다. "열번째 혹성은," 하우빈 사절은 계속했다. "텅이라고 하며, 이것도 사이클로의 채굴혹성입니다. 옛날에는 어 떤 종족이 살고 있었으나, 사이클로인이 이곳을 점령하기 훨씬 전에 토르네프인에 의해 거의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열한번째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우빈 사절 각하." 조니가 연단 위로 올라서며 하우빈 사절에게 다가갔다.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우빈 사절은 제자리로 돌아가려다가 조니의 부탁으로 그자리에 맘춰 섰다. 조니는 다시 영상조작 버튼을 눌렀다. 도시의 선명한 영상이 미술 처럼 나타났다. 그 영상은 사절들로 하여금 각자가 그 도시의 상공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이것은 크리스, 토르네프의 수도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구불구불 휘어져 서로 뒤엉킨 가로망이 보이지요?" 하우빈 사절이 다시 빔라이트를 집어들며 말했다. "이곳에 있는 것이 약탈본부라고 불리는 토르네프의 국회의사당입 니다. 건물의 양쪽 날개는 원을 그리며 뒤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토르네프인들의 독특한 건축양식입니다. 이것은 그레이스, 유명한 공 원이며, 노예경매장이기도 합니다. 저 구멍투성이 바위산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아, 다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조니는 잠시 그의 말을 멈추게 한 후, 새로운 버튼을 눌렀다. 영상 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대된 영상이 공원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클 로즈업되었다. 사절들은 그 영상과 함께 자신들이 공중에서 낙하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공원 주위의 정경이 뒤쪽으로 휙휙 사 라져가며, 마치 그 공간 자체가 움푹 패여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영상이 한곳에서 멈춰졌다. 영상에는 공원 내부가 확대되어 나타나 있었다. 노예경매장의 경매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 보 였다. 그 옆에는 일찰상인을 위한 호화스러운 벤치와 박스석이 마련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경매장 옆의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시계였다. "시계를 보아주십시오." "아아, 저 시계 말이군요." 조니의 말에 하우빈 사절은 한숨을 내쉬며 슐레임을 바라보았다. 슐레임 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스크 밑의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시계는 노예들의 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열려진 창 쪽을 보아주십시오. 톱니바퀴들이 보이지요? 저 톱니바퀴들은 모두 대량의 뼈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시계의 케이스는 살해된 오만 팔천 명의 여자 노예들의 뼈가...."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날짜와 시각입니다. 토르네프 문자로 표시도 어 있는데 당신이라면 읽을 수 있겠지요?" "아아, 과연." 하우빈 사절은 안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슐레임 경이 언 제 반격해올지 몰라서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날짜와 시각 말입니까? 흠, 이 영상은 지금부터 두 시간 가량 전 에 촬영된 것이군요." 그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 덧붙였다. "정확하게는 한 시간 오십일 분 전, 대단한 일입니다. 저기 있는 텔레포테이션 장치를 이용해서 오늘 촬영한 것이군요. 그 방법이 아 니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촬영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조니는 하우빈 사절에게서 빔라이트를 받아들었다. 사절은 연단을 내려가면서 슐레임을 불안한 듯이 힘끔 바라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 갔다. 조니는 또다시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영상에는 토르네프성과 다섯 개의 위성이 나타났다. 영상은 놀랄 만큼 선명했다. "슐레임 경, 이것이 토르네프성과 다섯 개의 위성이지요?" 슐레임 경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정해도 소용없을 것 같군. 그렇소, 이것이 토르네프성과 다섯 개의 위성이라는 것은, 저기 있는 우리 친구 하우빈 사절 같은 천문 학 교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알 거요." 그는 다시 한 번 태평스럽게 웃었다. "아주 좋습니다. 당신은 토르네프성 출신으로서 의심할 바 없이 모 든 위성을 사랑하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위성은 어느 것인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화제가 갑자기 돌변하자. 슐레임 경은 한순간 움찔했다. 함대가 도 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사절들을 분지로 유인 해낼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 든 사절들과 경비병들을 한꺼번에 마비시켜야만 했다. "이것 보시오. 악마, 내겐 이렇게 멍청하니 앉아서 달이나 바라보 고 있을 시간이 없다구. 본국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그럼 가장 싫어하는 위성은 어떤 것입니까?" 조니가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 "모두 다지." 슐레임 경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조니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사 절들 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사절들의 눈에는 헬멧 위의 용이 번쩍 빛나며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슐레임 경께서 특별히 지명하시자 않았기에...." 조니는 빔라이트로 위성 하나를 가리켰다. "우리들은 이 위성을 선택합시다. 아사트입니다. 이 특이한 분화구 의 배치를 잘 봐주십시오. 다섯 개의 타원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 위 성의 특징입니다." 슐레임 경은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아사트의 지하에는 토르네프 해군의 전함조선소와 격납고가 있었다. 토르네프의 전함들은 모든 부 품들을 그곳으로 운송하여 건조되고 있었다. 토르네프의 강대한 비대 기권 우주전함은 혹성표면에서는 이륙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그 러한 장비들과 인원을 수송하거나 전함을 발진시키기 전에는 주변의 우주공간에 적의 함선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했으므로, 먼저 주변을 철저하게 정찰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전초기지로서의 아사트 의 역할을 토르네프인들에게는 최대의 기밀사항이었다. 저 악마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슐레임 경은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의 불안감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헬멧에 기괴한 동물을 얹고 있 는 악마의 말이 그를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사절 여러분, 그럼 모두 밖으로 나가주시겠습니까? 이미 자리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잠깐 재미있는 여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슐레임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저 악마는 스스 로 함정 속으로 기어들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고 있었다. (5) 슐레임 경은 자신이 맨 마지막으로 회의장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 다. 회의장의 입구는 하나뿐이고, 그것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다는 것 은 이미 확인해두었다. 맨 마지막으로 나가면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 가도 부자연스럽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경계해야 할 문 하나 가 줄어드는 셈이고, 거의 완벽하게 방음된 이 방에 숨어 있던 누군 가에 의해 기습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거리를 줄이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사절들은 이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었으므 로 그가 마지막 차례가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접대를 맡은 통신원이 아직도 회의장 안에 남아 있었다. 화려한 중국 옷을 입은 그 초로의 사나이는 의자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서류들ㅇ르 줍고 있었다. 사절들의 명단인 것 같았다. 그 한 장이 의자 뒤쪽에 떨어졌는지 그는 손을 뒤쪽으로 뻗어 여기저기 더듬고 있었다. 그가 뭔가를 집어드는 것을 보고, 겨우 찾아냈는가 했더니 선 채로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발음하기 곤란한 사절의 이름을 반복해서 읽어보는 것 같았다. 그가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도 무언가를 잃어버린 시늉 을 하며,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지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끌었 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속을 태우며 중국인이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중국인은 그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리 스트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중국인의 손가락이 느리게 하나하나 짚어나갈 때마다 슐레임 경의 심장은 초조 와 긴장으로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더이상 남아 있다가는 수장쩍게 보일 것 같았지만, 회의장에 누군 가를 남겨놓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즈음, 그 중국인이 태평스러운 발걸음으로 통로를 향 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걸으면서도 계속해서 리스트를 보며 중 얼거리고 있었다. 슐레임 경은 그를 밀어붙이듯이 바로 뒤에 붙어섰 다. 문까지 다가간 토르네프인이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중국 인이 갑자기 멈춰 섰다. 회의장을 막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슐레임 경의 주의력은 온통 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로 쪽에서 달려 오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조금 전에 영사기를 옮겨왔던 두 명의 시사들이었다. 통로를 달려 온 그들은 곧장 회의장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서로가 피하지 못하고 심하게 부딪쳤다. 순간 슐레임 경의 마스크가 비뚤어지며 홀이 그의 손에서 떨어져버렸다. 그들 중 한 명이 눈앞에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험악한 표정에 당황해 하며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너무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기사의 두꺼운 소매자락 이 슐레임 경의 입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토르네프인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물어버렸다.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매를 몇 번이아 씹어댔다. 그의 난폭한 행동에 기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갈갈리 찢어진 소매를 다른 한손으로 움 켜쥐고 비틀거리면서 통로 쪽으로 도망쳐버렸다. 남아 있던 기사 역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고 사이클로어로 몇 번씩 사과를 하면서, 바닥에 떨 어져 있는 황금 홀을 집어 떨리는 손으로 슐레임 경에게 건네주었다. 토르네프인은 그것을 받아들자 윗부분부터 살펴보았다. 윗부분의 구 멍들과 아랫부분의 고리들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마스 크의 위치를 바로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홀만 무사하면 아무 런 문제도 없었다. 중국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사죄의 말을 늘어놓으 며 그의 옷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기사는 그때까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중국인이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제서야 회의장으로 뛰어들어가 영사기를 이동차에 실어 밖 으로 옮겨갔다. 슐레임 경은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고개를 돌려 회의장이 빈 것ㅇ르 확인했다. 그런 다음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 는 중국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갔 다. 그는 약간 다리를 저는 시늉을 하면서 중국인에게 신경쓸 것 없 다고 말한 후, 앞서가고 있는 다른 사절들과 합류했다. 병원에서는 닥터 알레과 간호사가 중국인 기사의 재킷으 신중하게 벗기고 있었다. 닥터 알렌은 솜방망이가 들어 있는 기사의 소매를 잘 라내어 독이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병에 집어넣었다. 솜방망 이에서 스며나온 독액에 천이 얼룩져 있었다. 닥터 알렌은 팔을 들여 다보며 사이클로어로 말했다. "긁힌 상처는 전혀 없습니다. 미리 가죽을 대놓았기 망정이지 하마 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당신의 용기에는 탄복했습니다. 촌원 수 장." 촌원 수장은 닥터 알렌의 말리 끝나자, 가느다란 나이프와 소형 분 사총을 꺼내놓았다. "목 뒤에는 나이프가 있었고, 장화에는 이 총을 숨기고 있었습니 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곳에 무기를 휴대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요?" "그 밖의 다른 무기는 없었습니까? 더이상 조니의 몸에 상처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혹시 있다면 들고 있는 홀로 상대방의 머리 를 때릴 정도겠지요." "조니는 그 정도의 공격쯤을 쉽게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슐레 임이라는 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놈이라서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닥터 알렌은 독이 배어 있는 소매조직을 넣은 병을 가리키면서 간 호사에게 말했다. "이것을 잘 보관해두게. 그들의 독을 막아낼 수 있는 혈청을 만들 어야 하니까." (6) 이반 대령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옆의 모래 자루를 쌓아 만든 진지에는 화염방사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은 기지로 이어지는, 미로처럼 생긴 지하통로의 첫 모퉁이였다. 그 뒤쪽 의 모든 모퉁이에도 모래자루와 진지와 화염방사기가 설치되어 있었 다. 모든 군인들은 그 근처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었 다. 이반 대령은 양손은 화상을 입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오십 피트 전방에 있는 문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분사포에 연타당해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적의 포화는 이삼 초 간격으로 계 속해서 강력한 파괴에너지를 문에 쏟아붓고 있었다. 전투기들은 이미 격납고로 철수한 상태였다. 연료와 탄약이 떨어져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모두 화염방사기 진지에 배치되어 있 었다. 무전기의 안테나는 포격에 파괴되어 사용이 불가능했다. 기지 의 전방에 매설되어 있던 지뢰들도 모두 폭발해버린 것 같았다. 천 개 정도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던 앞은 갈기갈기 찢겨진 기괴한 외계 인의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 임없이 공격해오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달궈진 문은 계속되는 화염공격에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문은 이제 방어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하통로 는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열로 가득찼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 은 더해만 갔다. 죽음의 공포가 지하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피어거스 수장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채 눈앞의 바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수조차 불가능했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마련해놓은 후방의 터널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사용가능한 대공포는 한 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대공방어 기능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미 지상에 착륙하여 공격해오는 적 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은 적의 돌격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바리케이드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었다. 에딘버러는 계속 불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려드는 적 군을 저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전함이 막강한 화력을 퍼부어댔던 것이다. 새 로운 전함은 대공포의 사정거리 밖 상공에 머무르며, 지상군을 가득 실은 착륙정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상공을 방어할 수 있는 것 은 더넬딘이 조종하는 전투기 한 대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연 료가 바닥났기 때문에, 연료보급을 받으려면 콘월까지 가야만 했다. 그는 그곳으로부터 연료를 보급받아 조금 전에 도착해 있었다. 지하통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에 맥타일러가 콘월 채굴장으로 대패하라는 지시를 어겼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들의 고 집은 에딘버러에 대한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에딘버 러마저 재가 되고 말았다. 적의 공격부대는 계속해서 집결하며 다른 입구에 대한 돌격준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맥타일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상황이 급박해질수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조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조준을 낮추고 제1진을 겨냥하라." 이반 대령은 모든 포수에게 명령했다. "사용가능한 모든 화기를 동원하여 최후의 일각까지 기지를 사수하 라. 영광스러운 죽으밍 그대들을 감쌀 때까지 용감하게 싸워라." 싱가포르에서는 인프라임 망원경을 보고 있던 한 사관이 도저히 이 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통신원에게 말했다. "영문을 알 수 없군." 지금까지 토르네프 해병대는 북쪽으로 뻗은 대기장갑 케이블 밑에 구멍을 내기 위해 계속해서 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그 무리한 작전 에 토르네프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단지 구멍 하나를 뚫 기 위해 열두 대의 탱크를 잃었던 것이다. 그러자 육탄돌격으로 작전 을 바꾸어, 수백 명의 토르네프 해병대원들이 일시에 포화를 뚫고 돌 진해 왔다. 대부분이 중간에서 쓰러졌지만, 끝까지 돌겨해 온 해병들 도 있었다. 그들은 케이블에 도착함과 동시에 폭약을 이용하여 케이블 밑에 커 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한 곳이 무너지자 놈들은 그곳을 집중공격 하여 화력발전소까지 밀고 들어와, 모든 전력을 끊어버리려고 필사적 으로 화력을 퍼부어댔다. 만약 전력이 끊어진다면 그곳 전체가 순식 간에 무방비 상태에 빠져버릴 위기였다. 사관은 그 해결책을 강구해내려 매우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 르네프군들이 갑자기 철수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군 전투기가 쉴새없 이 공격을 가해도, 그들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부상자들과 무기 를 회수하여 후송하기에 모든 전력을 집중시켰다. 주력부대는 이미 착륙정을 타고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 선회하며 전함에 승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분 전 대공포 사령부의 사관이 전해온 보고에 의하 면, 토르네프함 외의 다른 모든 함선들도 철수를 시작했다고 했다. 한 척은 에딘버러 방향으로, 나머지 세 척은 러시아 방향으로 떠나, 상공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토르네프 함대뿐이었다. "놈들이 철수한다." 대공포 사령부의 사관이 외쳤다. 싱가로프 채굴장은 원래 목적인적의 주력부대를 이곳으로 유인하여 붙잡아놓은 임무를 완수한 것이었다. 얼마 안되는 손실로, 상당히 오 랜 시간을 벌게 했고, 적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이윽 고 아군 전투기들이 돌아왔다. 이곳의 전투기는 밀폐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기권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 전투기까지 모두 귀환하여 엔진을 끄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치열한 전투의 소음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든 정적은 고막 을 둔중하게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기보호망의 진동음만이 희미 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함대는 서남쪽의 중간지점으로 이동해 가고 있다." 대공포 사령부의 사관이 연락해왔다. "속도는?" 사관이 반문했다. "아직 가속중이군. 잠깐 기다리게. 지금 진로를 연장하고 있는 중 일세. 이대로 계속해서 날아간다면 카리바 기지로 가게 된다. 속도는 겨우 초속 이 마일이다. 태양에너지 충전이 충분치 않은 모양이다. 카리바 도착은 삼십칠, 팔 분 후다." 사관은 통신원에게 명령했다. "카리바의 사령실에 토르네프 함대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 해주게." 초토화된 주위의 모습들은 적함대의 공격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기보호망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전멸해버렸 을 것이다. 지금 조니가 있는 그곳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아무래도 카리바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너 무 지쳐 있었다. 토르네프군은 그들이 상대하기엔 너무 막강한 상대 였다. 만일 놈들이 갑자기 철수하지 않았다면 대기보호망의 전력이 끊어졌을 것이고, 그런 무방비 상태에서 싱가포르 채굴장은 채 이십 분도 견뎌내지 못하고 전멸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적들이 그곳을 향하고 있는 만큼, 모든 전력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카리 바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7) 회의를 재개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절 중 몇 명은 호흡가스 카트리지를 교환해야 했고, 대부분의 사절들이 시장기를 느 껴 음식물을 섭취하고자 했다. 또한 분지 안의 신기한 경치를 구경하 며 잠시 머리를 식이고 싶어했다. 밖으로 나오자 모두들 기분이 들떠 회의장에서의 긴장을 풀어놓고 있었다. 각자의 용무를 모두 해결한 후에야 한 명씩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기저기 바쁘게 걸어다니고 있던 슐레임 경도 자리로 돌아와 홀끝에 달린 구슬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사절들은 위험지역 바로 밖에 반원형으로 놓인 의자에 앉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니는 플랫폼의 중앙으로 나아가 얘기를 시작했다. "사절 여러분,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대단히 죄송 합니다. 그러나 슐레임 경과의 분쟁을 결말짓기 위해서는 조그만 실 험을 해야 할 모양입니다. 괜찮습니까?" 조니가 홀을 들어 손바닥을 두 차례 두들기자, 건물 뒤에서 두 명 의 기사가 호화찬란하게 장식된 광산이동차를 밀면서 신속하게 뛰어 나왔다. 이동차에는 용이 올라타고 있었다. 헬멧의 용과 비슷했지만 몰길이는 오 피트 정도였고, 날개와 긴 목을 지닌 무시무시한 형상이 었다. 커다랗게 벌린 새빨간 입 속엔 송곳니가 날카롭게 솟아 있었 고, 붉은 눈을 번뜩번뜩 빛내고 있었다. 또한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아 있었고, 황금색 비늘로 뒤덮인 등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일직선 으로 돋아 있었다. 기사들이 용을 이동차에서 내리려고 손을 내밀었다. 순간 조니가 그들의 행동을 다급하게 제지시켰다. 마치 그 용에 그들이 물리기라 도 한다는 듯이, 슐레임 경은 조니의 그 어처구미없는 행동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오직 귀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 었다. 악마 따위야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그 터무니없는 행 동은 묵과할 수가 없어 큰소리로 외쳤다. "저것은 진짜 동물이 아니야. 색을 칠한 점토공작물에 지나지 않는 다. 그곳과 똑같은 것들이 저곳에도 굴러다니고 있다." 그는 땅바닥에 놓여 있는 미완성의 점토공작물들을 가리켰다. "속은 텅빈 것이다." 모두 속임수다. 저 어리석은 놈은 사절들을 어린애처럼 간단하게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절들은 슐레임 경을 비난하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이제 시작될 여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었다. 슐레임 경의 바로 뒤에 앉 아 있던 사절은 일부러 몸을 내밀고 쉿 하고 주의를 주었을 정도였 다. 슐레임 경은 고개를 돌려서 그 사절을 보았다. 몸체가 거대한 사나 이였다. 그의 조상은 수목이었음에 틀림없다. 나무껍질 같은 피부, 무성한 잎사귀들을 연상케 하는 머리칼, 게다가 팔길이는 일 피트나 되었다. 행동을 개시할 때는 이녀석을 각별히 조심해야겠다고 슐레임 경은 생각했다. "슐레임 경을 용서해주십시오. 무척 긴장하고 있는 데다가 눈까지 나빠서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조니의 말에 사절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짐승은 용이라고 합니다. 저기를 보세요. 저 제어탁자 위에 그 의 모친이 있습니다." 사절들은 제어탁자를 덮고 있는 커다란 용에 시선을 보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로버트 경은 작전사령실 입구에 서 있었다. 서류뭉치를 든 스톰아 롱이 그에게 다가가 낮은소리로 얘기하자, 로버트 경은 고개를 흔들 었다. 하지만 스톰아롱이 계속해서 말을 건네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 다. "조니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스톰아롱은 작전사령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슐레임 경이 그러한 로 버트 경과 스톰아롱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 속에서 직감적 으로 뭔가 상황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토르네프 함대 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예정보다 행동개시를 앞당 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함대가 도착하거든 대기권으로 정찰기를 파견하여,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해 두었던 것이다. "이미 모두들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조니는 계속했다. "차 위의 용와 이 헬멧 위의 용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헬멧을 가리켰다. "이 작은 용에게는 먹이를 주었습니다." 분명히 헬멧에 있는 용은 입에 조그만 흰 구슬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 차 위의 용은 먹이를 주지 않아서 지금 공복상태입니다. 여러분, 우주의 온갖 식물과 동물 모양에 대한 여러분의 자료에 부디 이것을 추가해주십시오. 이것은 용들 중에서도 제왕으로, 혹성이나 달을 먹어치우는 용입니다." 사절들은 그 말은 단순히 기지에 넘치는 조크라고 생각했다. 지배 자들은 언제나 모두 혹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니까 혹성 은 제왕의 식사감이라구. 꽤 재치가 있군. 사절들은 소리내어 웃었 다. 결국 이런 것을 우화라고 하는 거지. 조니는 기사들에게 물러나라고 신호한 후, 점토용을 다정하게 쓰다 듬어주고는 다짜고짜 팔을 용의 목과 배 아래쪽에 집어넣어 들어올렸 다. 용을 플랫폼 위에 올려놓은 다음, 용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얘기 하기 시작했다. "그래, 착하지. 네가 공복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 가서 아사트를 잡아먹고 오너라." 조니는 용의 옆구리에 있는, 사절들은 볼 수 없는 쪽으로 손을 뻗 어서, 뱃속에 장치해놓은 시한폭탄의 뇌관을 오 분 후에 폭발해도록 조정해놓았다. 그리고 제어탁자 옆에 서 있는 앵거스에게 작은 소리 로 신호했다. "지금이다." 그런 후 조니는 반대쪽 손의 엄지손톱을 발연통에 찔러넣었다. 그 것은 갱도에서 공기의 흐름을 조사하기 위한 발연통이었다. 용의 입 에서 흰 연기가 세차게 뿜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용이 광란하듯 움직 이는 것처럼 보였다. 조니가 플랫폼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앵거스가 전송버튼을 눌렀다. 조니는 홀로 용을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가라, 아사트를 완전히 먹어치울 때까지는 돌아오지 말아라." 와이어가 울리기 지작했다. 용이 꿈틀대듯 흔들리더니 갑자기 연기 와 함게 사라져버렸다. 아주 약한 반동이 일어났다. 조니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삼 분이 남아 있었다. 조니는 다시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무척 추웠다. 전송시에 아사트의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공간과 겹쳐진 순간, 그곳의 대기가 밀려왔 기 때문이었다. "영상기록 장치를 가지고 계신 분 있습니까? 내가 우리의 것을 사 용한다면, 여러분은 그 기록을 신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이 손을 댈 수 없게 봉합한 영상기록 장치를 빌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만." 훠료팡 경이 자신의 영상기록 장치를 빌려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칠백 개나 되는 혹성을 거느리고 있는 대제국의 대표였다. 훠료팡 경 은 즉시 자기 방에서 기록장치를 가지고 와서는 디스크를 점검했다. 조니는 기록장치에 봉인용 금속실을 붙이고 손톱자국을 내달라고 그 에게 부탁했다. 이것으로 다른 사람이 기록장치를 손대는 것은 불가 능하게 되었다. 두 명의 기사가 플랫폼으로 뛰어올라가서 무인정찰기에서 떼어낸 이동식 촬영장치를 설치했다. 조니는 그 안에 기록장치를 넣으라고 훠료팡 경에게 말했다. 그는 제어탁자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 그것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와이어가 울리지 않 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플랫폼의 중앙으로 걸어나가서 기록장치를 케이지 안에 집어넣고, 조니가 시키는 대로 자물쇠를 채 웠다. 칠 분이 경과되었다. 그 용은 틀림없이 아사트의 지표에 도달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에 장치해놓은 폭탄은 이 분 전에 폭발했을 것이었다. 이 영상기록 장치는 아사트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점으로 보내지도록 되어 있었다. "간다." 앵거스가 모두에게 소리친 후 버튼을 눌렀다. 와이어가 울리기 시작했고, 영상기록 장치와 이동식 촬영장치가 잠 시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동은 없었다. 조니는 손목시계 를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삼십구 초가 흘러갔다. 외이어가 신음소리가 달라지고, 플랫폼 위의 공기가 흔들렸다. 영 상기록 장치와 이동식 촬영장치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와 함께 외이어 소리가 멎고 가벼운 반동이 일었다. 두 명의 기사가 영사기를 실은 이동차를 밀고 와서 사절들을 한가운데에 놓았다. "훠료팡 경, 수고스럽겠지만 이 기록장치를 꺼내서 영사기가 있느 곳까지 갖다주시겠습니까? 직접 봉합한 것을 뜯고, 당신의 디스크인 지 몇 마디 녹음하시고, 영사기 속에 다른 디스크가 들어가 있지 않 다는 것을 확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훠료팡 경은 조니의 말대로 했다. 조니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 폭탄의 효과에 대해서는 대충 상 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조니 는 리모트 스위치를 눌렸다. 스포트 라이트가 꺼지고, 기록기가 작용 되었다. 그러자 눈앞의 어둠 속에 아사트 위성의 3차원 영상이 나타 났다. 다섯 개의 타원형 분화구도 보였다. 사절들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히 봐왔던 것인 만큼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조니의 태도는 매우 냉정하고 정중했으며,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 기 때문에, 사절들은 더욱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얼마 동안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아사트의 오른쪽 윗부분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작은 구멍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상공에만 신경을 곤 두세우고 있던 슐레임 경은 흠칫 놀랐으나, 곧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폭탄 같았으면 벌써 작렬했을 것이었다. 영상은 그곳에서 끝 났다. "이것이 나의 디스크요." 휘료팡 경이 자신의 디스크임을 확인한 말소리가 울려퍼졌다. "코미디로군, 참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그래." 슐레임 경이 조소하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기록기를 빌려주실 분은 안 계십니까?" 조니가 다시 사절들을 향해 물었다. 이번엔 돔 경이 앞으로 나와서 조니가 시키는 대로 훠료팡 경과 똑 같은 작업을 했다. 그러자 앵거스가 좌표를 조정하고, 전번과는 다른 각도에서 아사트가 보이는 위치로 기록장치를 전송했다가 회수했다. 조니가 버튼을 누르자, 다시금 눈앞에 아사트의 영상이 나타났다. 구멍은 아사트의 100분의 1정도 크기가 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검 은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오른쪽 윗부분의 구멍 과는 별도로, 왼쪽 아랫부분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절들 사이에 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그 순간을 놓치기 않고 플랫폼 위로 뛰어올라가 모두를 향하여 소리쳤다. "아시겠습니까. 그 용은 공복상태에 있었습니다." 조니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게다가 그녀석은 매우 온순한 용이라서 달을 먹으라는 말을 듣고 지금 아사트를 먹고 있은 중입니다. 정말 말을 잘 듣습니다." 사절들의 표정은 얼어붙은 것처럼 창백해졌다. 조니를 바라보는 그 들의 눈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열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슐레임 경이 마치 주술의 힘으로 꼼짝못하게 만들어놓은 것을 깨뜨 리듯이 말했다. "모두 속임수다." 슐레임 경은 떨리는 목소리로 진정시키려 애쓰며 소리쳤다. "당신은 어느 언덕에 모형을 만들어놓고, 기록기를 그곳으로 보내 서 찍어오게 한 것뿐이다. 모형에 트릭을 써서 그것을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사기꾼이다." 슐레임 경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행동을 하 기 전에 분명하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게도 기록기가 있다." "좋습니다. 얼마든지 가지고 오십시오." 조니의 말에 슐레임 경은 자기 방으로 달려가서 가방 속을 뒤졌다. 가방 밑바닥에는 예비총뿐 아니라 예비홀까지 놓여져 있었다. 그 홀 의 아랫부분에는 마비음파 발생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전력선을 절단 하러 갈 때 한 개의 홀은 마비음파를 작동시켜 의자 밑에 놓아두고, 다른 홀을 들고 간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게다가 수류탄이 세 개나 있었다. 한 개는 마비음파의 스위치를 넣고 나서 작전사령실 에 던져넣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입구에서 나오는 놈들에게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완벽했다. 하우빈인 노예를 고문하는 일 따위는 그만 두자. 어차피 놈도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테니까. 슐레임 경은 그 커다란 가방을 들고 돌아와서 의자 옆에 내려놓았 다. 그는 다른 자들이 들여다볼 수 없도록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고, 영상기록기를 꺼냈다. 보통 것과는 다른 타입의 장치였으나, 역시 디 스크에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악마여," 슐레임 경은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것으로 그대의 연극도 끝장이다. 미개종족인 당신은 잘 모르겠 지만, 아사트 뒤쪽에는 슬래시가 들어간 거대한 다이아몬드 문장이 있단 말이다. 초파장 무화물질로 붙인 것이다. 그것은 위성 자체를 확인하기 위한 표지이며, 항주표지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해군장교외 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당신 들의 표준형 기록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기계처럼 가시광선뿐 아니라 그것보다 높은 파장도 포착할 수 있는 기록기가 아니면 안된 다. 내가 알기로 당신들의 모형에는 그 문장이 붙어 있을 리 만무하 다. 이것으로 나는 네가 대사기꾼이라는 것을 폭로하겠다." 슐레임 경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형이 아니라 진짜 아사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전송장치를 파괴하 기 전에 철저히 확인해야만 했다. 만약 그것이 진짜라면.... 저 악망 를 철저히 고문할 필요가 있다. 텔레포테이션의 비밀과 이 폭탄에 대 해서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한다. 가공할 만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슐레임 경은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기록기를 이동식 촬영장치 의 케이지에 넣고 봉합한 다음, 손톱자국을 내고 플랫폼에서 내려갔 다. 앵거스는 아사트의 뒤쪽과 구멍이 모두 보이는 위치에 좌표를 설정 하여, 기록기를 전송했다가 다시 회수했다. 반동이 끝나자 슐레임 경 은 기록장치로 달려가서 자신의 손톱자국을 확인했다. 자신의 디스크 가 틀림없었다. 그는 영사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다른 디스크가 숨 겨져 있는지 철저히 조사했다. 모든 확인을 마친 그는 '이것은 슐레 임 경의 디스크이다'라고 녹음한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영상이 비 춰질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8) 이제 곧 영상이 나타날 것이다. 절대로 슬래시가 들어간 다이아몬 드 문장이 들어 있을 리 없다고 슐레임 경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 은 토르네프인에게만 보이며, 토르네프의 수정형 기록기로만 촬영할 수 있었다. 다른 사절들은 스크린에 모든 정신을 빠앗기고 있었다. 작전을 개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희미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제 곧 함대가 머리 위 에 나타날 것이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역시 자신의 전술능력은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다. 최강의 무력사용은 최고 의 외교단에게 필수적이었다. 슐레임 경은 의자 밑에 숨겨둔 가방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목을 길게 빼낸 채, 영상만을 기다리고 있어다. 모두 들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그는 악마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확인한 후, 홀 아랫부분의 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당신이 거짓 모형을 찍은 새로운 사진을 보기로 할까?" 슐레임 경은 조소하는 듯한 말투고 말했다. 조니가 버튼을 누르자, 스포트 라이트가 꺼지고, 아사트의 3차원 영상이 나타났다. 이전과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위성의 뒤 쪽과 표면의 일부가 드러났다. 필터 때문에 푸른색이 섞여 있었지만 틀림없는 아사트였다. 그 거대한 모습이 실제로 눈앞의 공간에 떠 있 는 것만 같았다. 그 가운데에 커다란 문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위성 의 표면에 검게 그려져 있는 것은 틀림없는 토르네프의 문장, 슬래시 가 들어 있는 다이아몬드였다. 슐레임 경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틀림없는 아사트였다. 슬래시의 한부분은 격납고의 입구를 나타내는 기호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그곳이 열리며, 토르네프의 지하요새가 거대한 입구를 벌렸다. 아사 트는 조금씩 찌그러들고 있었다. 마치 바늘이 꽂힌 푸른 풍선 같았 다. 그리고 주름 같은 연막이 급속하게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함몰한 부분에는 검은 가스 모양의 연막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때 격납고 입구에서 거대한 전함이 튕겨져나왔다. 그것은 엄청난 고속으로 항진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거대했으므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삼만 톤이 넘는 토르네프 주력함이 우주공간으 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점점 커져가던 주름의 가장자리가 전함에 닿는 순간, 전함의 뒷부분이 몽땅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었다. 모든 사절들이 보는 앞에서 거대한 우주전함은 뒷부분에서부터 기수 가지 삼켜져, 서서히 기화되어갔다. 지하요새의 다른 문들이 튕겨지 듯 열리기 시작했다.... 영상은 그곳에서 끝나 있었다. 주력함의 마지막 부분이 삼켜지며 검은 가스가 되었을 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틀림없는 슐레임 경의 목소리였다. '이것은 슐레임 경의 디스키이다.'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슐레임 경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즉각 행 동을 개시했다. 그는 잽싸게 귀가리개를 착용하고 벌떡 일어서며 홀 끝을 비틀어, 기관총을 소사하듯이 사절들을 향해 왼쪽으로 마비전파 를 쏘아냈다. "마비맛을 봐라, 이 죽일 놈들, 모두 뒈져버려라." 그러나 마비음파는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슐레임 경은 사 절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가방에서 다른 홀을 꺼내 하단을 비틀어 사방에다 마비음파를 쏘아댔다. 몰론 주위에 있는 경비병들에게도 홀 을 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마비전파는 전혀 효력을 발휘하 지 못하고 있었다. 초조해진 슐레임 경은 재빨리 가방을 열고 수류탄 세 개를 꺼냈다. 그는 한꺼번에 새 개의 안전핀을 뽑아내 온힘을 다 하여 작전사령실의 입구와 분지 입구로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개 는 악마을 향해 던졌다. 수류탄이 떨어지기도 전에 권총을 뽑아든 그 는 삼십 피트 정도 떨어져 있는 악마의 얼굴에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 겼다. 그러나 총은 작동되지 않았다. 수류탄 역시 폭발하지 않았다. 거의 액체뿐인 별의 생물로서 몸체가 둥근 공 모양인 돔 경이 몸을 튕겨서 슐레임 경에게 다가서자, 슐레임 경은 권총을 치켜들었다. 토 프네프인의 힘을 감안한다면 돔 경을 묵사발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때 조니의 노브케리가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가 슐레임경 의 시각필터 한가운데를 명중시켰다. 그러자 슐레임 경 뒤에 있던 거 목과 같은 브라울 경이 직경 일 피트나 되는 양팔로 그의 온몸을 꽉 움켜잡았다. "꽉 잡고 있어요." 훠료팡 경이 그곳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그놈이 자기 몸에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훠료팡 경은 오른쪽 소매 속에 숨겨둔 새의 부리 같은 단도를 들 고, 슐레임 경에게 다가갔다. 그는 발광하듯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브라울 경의 완력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훠료팡 경은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토르네프인의 강철 목을 살펴보았다. "여기다 절개한 자국이 아직 남아 있군 그래." 훠료팡 경은 나이프로 슐레임 경의 목을 찔렀다. 회색 피가 솟구쳐 나왔다. 훠료팡 경은 재빨리 그 상처부분을 힘껏 눌렀다. 그러자 엷 은 투명막에 싸인 캡슐이 튀어나왔다. "자살용 캡슐이다. 최악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목을 두드려 목숨을 끊기 위한 것이다." 훠료팡 경은 조니를 나무라듯이 바라보았다. "당신의 홀이 이 부분을 스치기만 했어도 우리들은 피고를 잃어버 렸을 거요." 조니는 그때 비로소 계획이 묘한 방향으로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일이 난처하게 꼬일 것 같았다. 훠료팡 경은 주위에 몰려든 사절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 사절은 회의에 의해서 체포되고, 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생 각하는데, 회의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사절들은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서로가 다른 사 절들의 속셈을 탐색하려는 듯이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사절들 가 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이것은 제32조를 적용할 수 있겠군요." 조니는 매우 초조해 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의논을 그만두게 하고, 한시라도 빨리 전투를 종결시키는 쪽으로 끌고 나가야만 했다. 이 순 간에도 지구의 도처에선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 을 사절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슐레임 경 따위로 토론을 하며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조니로서는 도저히 사절들의 생각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정 치가나 귀족이라고 하는 자들은 아무리 긴급한 사태가 발생해도, 태 연스럽게 무의미한 논의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자신들의 품위를 지 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상공에서 들려오는 진동음은 차 츰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것은 조니의 가슴을 온통 불안과 초조로 가득차데 했다. "정규절차에 의한 재판을 제안합니다." 뒤쪽에서 한 사절이 발언했다. "찬성하는 분은?" 다른 사절이 외쳤다. 비교전국의 사절들은 전원 찬성했으나, 교전국 사절들은 반대했다. "나는 여기서 선언합니다." 훠료팡 경이 한껏 위엄을 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르네프 사절은 본회의에 의해 체포한다. 그는 제32조에 의거하 여, 본회의에 대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여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회 부한다." 하늘의 진동음은 매우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조니는 사절 들을 밀어내고, 슐레임 경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홀을 그의 얼 굴에 갖다댔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이것이겠지? 이것이 진짜 홀이고, 다른 것 은 전부 우리들이 만든 가짜다. 다른 무기들도 마찬가지다." 슐레임 경은 발버둥을 치며,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쇠사슬을 갖다주시오." 훠료팡 경이 소리쳤다. 조니는 토르네프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 나 훠료팡 경이 먼저 슐레임 경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입안을 들여 다보며, 다른 캡슐이 없는가를 확인했다. 그것이 끝나자, 조니는 다 시 얘기를 시작했다. "스놀 소령에게 철수하라고 명령하라, 슐레임, 그렇지 않으면 이무 전기를 당신의 목구멍에 쑤셔넣겠다." 돔 경이 조니를 옆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그는 피고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누구하고도 통신할 수 없다. 제 51조, 재판수속에 관한...." 조니는 북받쳐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돔 경, 지금 당장이라도 회의장은 폭격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 니다. 회의의 안전을 위해서 나는 요구합니다." "요구라니요? 그 말은 온당치 않아요. 우리에겐 지켜야 할 일정한 수속이라는 것이 있소, 게다가 당신 자신도 사절에게 물건을 던졌다 는 것을 여기서 명확히 해둡시다. 회의는...." "나는 그의 생명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내가 홀을 던지지 않았 다면 돔 경은 모리가 박살나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본회의의 경비주임으로서 행동했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경비주임에 임명되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요?" 조니는 호흡을 가다듬고 재빨리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생 각해냈다. "나는 회의 주최국의 임명을 받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주최국은 사 절들의 생명을 최대한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겠군." "나는 그에게 제41조, '사절을 초대하는 주최국의 책임'을 적용하 고 있는 것입니다." '흠, 그렇다면 그를 고발할 수는 없겠구먼, 그런데 쇠사슬은 어디 있소?" 훠료팡 경이 말했다. 중국인 경비병이 원치에 달린 쇠사슬을 끌어안고 뛰어왔다. 무거운 연결고리 뭉치를 든 두 명의 조종사도 뒤따라 왔다. "제41조에 의해 나는 피고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즉각 그의 함대를 항복시켜야만 합니다." 조니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의하고 나섰 다. 돔 경이 훠료팡 경을 보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제19조를 적용시킬 수밖에 없군요, 전투에 의해서 회의의 물리적 안전이 위협당하는 경우, 일시적 정전을 명할 수 있습니다." '살았다.' 조니는 첫번째 문제만이라도 해결된 것이 너무나 기뻐 속으로 외쳤 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사절들 의 태도도 전처럼 호의적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 는 수밖에 없었다. 전인류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조니는 무 전기를 슐레임의 입에 강제로 들이댔다. "일시적 정전을 선언하라, 슐레임. 상공에 있는 소령에게 퇴각명령 을 내려라." 술레임은 무전기에 침을 뱉아버렸다. 슐레임의 몸에 쇠사슬이 감겨졌다. 누군가가 가방 속에서 예비 시 각필터를 찾아내 부서진 필터 대신 그의 눈에 씌워주었다. 얼굴만 빼 놓고 온몬이 쇠사슬로 감긴 슐레임의 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에게선 분노에 찬 소리만이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니는 그 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용을 토르네프별로 보내겠다고 소리치 려 했지만. 그것이 어떤 조항에 저촉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망설 였다. 그때 돔 경이 말했다. "슐레임 경. 함대를 철수시킨다면, 재판에서 당신의 입장이 훨씬 유리해질 거라고 생각하오." 슐레임이 그 말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호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시험해봅니다. 스놀 대령이 내 명령에 따라 해적활동을 포기할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무전기를 빌려주시오." 조니는 무전기를 그의 입 앞에 내밀었다. 사실은 그것으로 이빨을 부러뜨려버리고 싶었다. "암호는 사용하지 마시오. '나는 일시적 정전을 선언한다. 모든 함 대는 전투지역을 이탈하여 궤도상으로 철수할 것을 명령한다.'라고만 할하시오" 슐레임경은 사절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조니가 숨겨져 있는 통 화버튼을 눌렀다. 그는 무전기를 향해 조니가 시키는 대로 되풀이해 서 말하고 있었으나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사전에 어떤 약속이라도 되어 있어던 것처럼 모든 상황을 알고 있 는 듯한 로고페터 스놀 소령의 목소리와 홀을 통해서 즉시 되돌아왔 다. "내겐 토르네프 사절의 신체적 안전, 혹은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지 물어볼 의무가 있습니다." 사절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토르네프 해군의 규칙은 갑자기 의심스러운 명령을 받았을 경우에 대비해서 어떤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할까?" 무거운 쇠사슬에 꽁꽁 묶인 슐레임은 싱긋이 웃고 있었다. "즉시 명령에 따르라고 말하라" 조니가 다시 목소리를 높여 말하며 그의 입 앞에 무전기를 들이댔 다. 사절들 앞에서 토르네프인에게 노골적인 협박을 하고 싶지는 않 았다. 슐레임이 무전기에 대고 다시 한 번 조니가 명령한 대로 말하 자, 스놀 소령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회의가 토르네프 사절의 안전을 보장하고, 그를 무사히 귀환시키 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나는 그 명령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훠표팡 경이 돔 경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사형판결은 불가능하다는 얘기군요." "제42조에 의하면, 그런 경우에라도 재판을 열 수가 있습니다." 브라울 경이 말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는 이 사절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할 거슬 제안합니다. 어떻습니까?" "찬성!" 사절들의 목소리가 일시에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전원 일치였다. 훠료팡 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에.... 어디 계시던가요?" 왜소한 회색인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조니에게서 홀을 받아들 었다. 사절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 한 후, 무선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그가 암호 같은 단어를 말하자, 그의 옷깃 뒤에서 기묘한 부저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말했다. "스놀 소령, 나는 보증한다. 토르네프 사절은 심의가 끝나는 대로 무사히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다." 스놀의 목소리가 즉각 되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각하, 나는 일시적 휴전을 준수하여, 즉각 전 전투지 역을 이탈하여 궤도상으로 철수 개시하겠습니다. 사절 여러분께 그렇 게 전해주십시오. 교신 끝." 조니는 다른 교전국의 사절들을 가리켰다. 에딘버러나 러시아를 파 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군대였다. "훠로팡 경, 일시적 정전이라고 말한 이상 모든 교전국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흐음." 훠료팡 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 동안 궁리했다. "이 상공에 있던 것이 토르네프 함대뿐이라는 확증은 없다. 다른 교전국이 정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변칙이다." 그러자 볼보드인, 드로킨인, 하우빈인 등의 교전국 사절들은 모두 작전사령실 입구에 서 있는 로버트 경을 가리켰다. "물론 동의합니다." 로버트 경이 노골적으로 짜증스러움을 나타내 보이면서 외쳤다. 교전국의 사절들은 통신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이크를 든 통신원들이 사절들을 넘어뜨릴 것 같은 기세로 뛰어왔다. 잠시 후 회의장은 각양각색의 언어가 뒤섞인 대혼란이 벌어졌다. 교전국 사절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네 나라의 함선에 일시적 정전명령 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니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어처구니가 없는 불필요한 짓이라고 생 각했다. 사절들은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도, 형식에 얽매여 자신들의 품위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겨우 정전을 시켜놓긴 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전쟁은 종결된 것이 아 니며 더욱 큰 규모의 전투가 또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 는 상황이었다. 회의장을 나서려던 조니는 언뜻 스쳐가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회색 인 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절들에게 그 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저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노리고 있단 말인가. (9) 사절들이 슐레임을 연행해서 안으로 들어가자, 퀀이 조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불교도인 소년 통신원은 현재 로버트 경에게 소속 되어 있었다. "곧 대이동이 시작되는데 놀라지 말라는 로버트 경의 전언입니다. 삼십 분 전부터 작전사령실에서 협의하고 있었는데, 이제 곧 명령이 내려질 거라고 합니다. 에딘버러의 대피호에 수백 명이 갇혀 있답니 다. 대형 폭탄 때문에 지하도와 입구가 막혀버렸답니다. 생존자가 어 느 정도 되는지도 불분명하답니다. 광산의 낙반사고와 같은 상황이라 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몇 분 내에 출발해야 되는데, 당신은 이곳에 남아 있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곳 상황이 위태로워지면 언제든 지 즉각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조니는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리시 와 패티도 그곳에 갇혀 있을 것이었다.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나도 가야만 한다." "아나, 그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해 달라고 로버트 경이 말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전쟁터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로버트 경이 작전 사령실에서 뛰어나왔다. "안녕히 계세요, 조니." 퀀도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로버트 경이 통로에 멈춰 서서 손 을 흔들어 고함쳤다. "서둘러라, 자아, 빨리." 병원구역에서 맥켄드릭과 알렌이 달려나왔다. 닥터 알렌이 뒤를 돌 아다보며 간호사에게 뭔가 소리치고는 다시 서둘러 달려갔다. 부상자 들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출구 쪽으로 가고 있 었다. 건물 뒤에 숨어서 슐레임을 감시하고 있던 중국인 경비병들도 소리를 질러가며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배낭을 잔뜩 끌어안은 병사가 그들 쪽으로 달려갔고, 경비병들은 그 병사들과 함 께 눈 깜짝할 사이에 떠나버렸다. 그 뒤를 이어 작전사령실에서 수많은 장교와 통신원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분지에 있는 출구 쪽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와 함께 세 명의 스코틀랜드인 조종사가 작전사령실에서 뛰어나왔다. 로버트 경 이 출구 통로에 서서 고함치고 있었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빨리 해라." 잠시 후, 세 대의 비행기에서 일시에 울려퍼진 모터소리가 분지 전 체를 뒤흔들었다. 작전사령실에서는 스톰아롱이 무전기에 대고 계속 해서 외쳐대고 있었다. "빅토리아, 빅토리아, 응답하라.... 무얼 하고 있는 것야? 무전기 앞에는 항상 인원을 배치해두라고, 알겠나? 그곳에 있는 모든 에어호 스와 펌프를 끍어모아라.... 암호를 사용하라고? 젠장, 알았네." 여성 통신원이 스톰아롱으로부터 무전기를 건네받아 파리어로 얘기 하기 시작했다. "빨리 서두르라니까!" 로버트 경이 뒤늦게 나온 두 사람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뭘 하는 거야? 에딘버러가 불타고 있단 말이다." 첫번째 비행기가 굉음과 함께 솟구쳐올랐다. 그 뒤를 이어 두 대의 비행기가 거의 동시에 이륙해 날아갔다. 쏜살처럼 멀어져가는 그들의 출정이 마지막 출격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조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돔 경이 망연히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조니 옆으로 다가왔다. 퉁퉁하게 부은 것 같은 그의 얼굴엔 근심스러움이 가득 서 려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요? 이 지구에서 철수하는 건가요? 일시적 정 전기간을 이용하여, 다음 전투에 대비해 부대의 배치를 재정비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알고 있겠지요? 나는 엄숙히 경고합니다...." "그들은 무너진 대피호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구출하려 간 것 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규칙은 비전투원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 것니 다. 만일 적용할 수 있가고 해도, 저 스코틀랜드인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자기네 민족의 마지막 생존자들을 구해내려하 고 있으니까요." 조니는 작전사령실로 들어갔다. 어지럽게 널려진 방안이,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가를 애기해주고 있었다. 불교도인 여성 통신원와 스 톰아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신원은 의자에 걸터앉아서 머리를 떨군 채 잠들어 있었다. 모두들 며칠 동안이나 밤을 새워가며 일하느 라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어떤가?" 조니가 스톰아롱에게 물었다. "삼십 분 전에 싱가포르 분견대 전원을 러시아로 보냈습니다. 사용 가능한 장비는 최대한 가져가게 했습니다. 히말라야만 넘으면 되니까 앞으로 두 시간 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세는 짐작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이틀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으니까요." "에딘버러는?" "한 시간 전부터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조금 전의 얘기로는 빅토리아 호에 있는 전대원을 스코틀랜드로 보내는 것 같던데, 그곳의 포로는 어떻게 했나?" "총을 주어 카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스톰아롱은 조니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보며 얘기 를 계속했다. "카는 눈썹만 움직여도 놈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합니다. 걱정없습니다. 그들의 식사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월광산맥에서 온 노부인을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당신의 중요 서류들도 무사히...." 스톰아롱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려 했을 때, 입구에 돔 경의 모습이 보였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당신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스. 당신들은 회의지역의 방위체제를 포기해버리고 다른 곳으로 전투력을 이동시켜버린 것 같군요. 여기뿐만 아니라 이 대륙, 혹성 전체가 무 방비 상태가 된 것 아닙니까?" 조니는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스톰아롱을 가리켰다. "저 친구와 내가 있습니다." 돔 경은 조니의 말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자 스톰아롱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이것도 옛날에 비하면 두 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저 사람 혼자서 싸웠으니까요." 돔 경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조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젊은이는 최악의 사태가 닥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돔 경은 곧바고 작전사령실을 나와 다른 사절들에게 현재의 상황과 조니에 대하여 얘기했다. 그들은 한 참 동안,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그들이 내린 결론은, 조니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그의 모든 행동을 철저히 관찰해보자는 것이었다. (10) 조니는 작전사령실 입구에 서서 분지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슐레임 경의 감시임무를 맡고 있는 사절들을 제외한 모든 사절들은 각자 객실로 돌아가 있었다. 경비원들마저 모두 떠나버린 분지 주변 은 그다지 늦은 시각이 아닌데도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치 열한 소용돌이에 휩쓸려오다 오랫만에 맞이하는 정적은, 오히려 조니 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것은 마치 폭풍전야의 정적처럼 감 당할 수 없는 무게를 느끼게 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기 때문에, 조니는 잠시도 마음이 편안할 틈이 없었다. 사절의 재판결과가 어떻게 도리 지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니는 그들을 신용하지 않았 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침묵 뒤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 까. 에딘버러와 러시아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그러나 이 두 곳에 관 한 생각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과 슬픔으로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사이클로별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태가 너무나도 어지럽게 전개된 탓으로 사이클로별의 문제는 의식의 포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보복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전송장치의 성능은 최상의 상태이고, 전송ㅇ 르 방해할 비행물체나 작동하고 있는 모터는 하나도 없다. 사이클로 별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하는 데는 지금이 최적기였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조니는 제어탁자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갔다. 그곳에는 엥거스가 조명을 환하게 밝혀놓고, 금속 막대기와 톱 니바퀴를 사용해서 뭔가를 열심히 조립하고 있었다. 엥거스는 다가오 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조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 슐레임을 처치하고 있는 동안에." 앵거스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토르네프별의 산 위에 영상기록 장치를 보냈습니다. 아사트 를 계속 관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동엔진은 전송을 방해하지 않았 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게 처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동식 촬 영장치는 그것 한 대밖에 없어서 지금 예비로 하나를 더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앵거스, 사이클로별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세. 지금이 라면 시간이 있으니까 말야." "그럼 삼십 분만 기다려주십시오." 특별한 도울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모든 것을 앵거스에게 맡겨두고, 숙소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서던 조니는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툰 이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전부 떠났을 것라고 생각 하고 있던 조니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일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니가 들어서자 툰은 밖으로 달려나가 통역을 할 수 있는 촌원수 장을 데려왔다. "당신도 남아 있었군요, 이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 습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준비위원은 모두 갔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손님이 와 있으니까요. 나 외에도 주방장과 전기기사, 그리고 대공포 수가 두 명...." 그는 손가락을 꼽으면서 계산했다. "열두 명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곤란한 문제가 있 습니다. 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사절들을 대접할 생각으로 최고급 중 국요리를 장만했는데,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겁니다. 우리들로 서는 온갖 정성을 들여 장만했는데 이건 너무합니다." 수세기 동안 눈으로 뒤덮인 산속에 갇혀 지내면서 기아에 시달려 온 중국인에게는 엄청나게 심각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먹였습니다. 개한테까지 주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 다. 그래서 의논한 결과, 당신을 멋진 만찬에 초대하기로 한 것입니 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요?" "별로 상관없습니다. 밤 늦게 먹는 것은 요즘 유행이니까요. 주방 장도 좋아할 것입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수장은 그렇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서 수프와 조그만 고기파이를 얹 은 쟁반을 들고 왔다. "이것을.... 사이클로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자아, 우 리들을 도와주십시오." 조니는 웃고 말았다. 모두들 이러한 것들을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매일 봄날의 일광욕처럼 평화롭 기만 할 텐데. 조니는 의자에 걸터앉아서 파이를 집어들었다. 그때 툰이 쟁반을 얹은 작은 탁자를 그의 앞에 옮겨놓고는 절을 하였다. "툰은 왜 절을 하는 겁니까?" 조니는 촌원 수장에게 물었다. 수장은 방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회의장과 연결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당신이 연단에 있는 모습을 여기서 빠짐없이 보고 있어습니 다. 그들은 당신의 모든 행동을 입력해두었습니다. 또한 그것을 모두 통역하여 음성까지 녹음해놓았습니다. 그 스크린은 당신과 사절들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몇 개의 스크린을 연결하여 만든 것입니다. 나 도 두세 번 보았습니다만...." 그대 툰이 수장의 말을 가로막았지만, 주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 서 말했다. "당신처럼 빨리 배우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답니다. 당신이 중국 왕 조의 왕자였고, 그의 일족이 추방당하지 않고 조언자로서 궁궐에 남 아 있었다면, 중국은 멸망하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조니는 싱긋이 웃고는 마주 절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툰은 숨도 쉬지 않고 얘기를 계속하며, 소매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이 서류에 당신의 인감을 받고 싶다고 합니다. 사인을 해달라는 뜻이겠지요." 수장은 그것을 펼쳤다. 한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조니에 게 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여기에 씌어 있는 것은, 당신이 툰 일가에 대하여 궁궐로부터의 추방조치를 해제하고, 지구와 당신의 조언자로서 추천한다는 내용입 니다." "하지만 나는 정부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서명을 받고 싶답니 다." "그러나 나는...." 조니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당신은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여간 서명을 해주십시 오.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전쟁도 끝나지 않은 상 태입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까마득하게...." "전쟁과 외교는 별개의 것이고, 이러한 일은 절대로 명확하게 끝나 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이라면 서명을 해주겠습니다. 그 에게는 천백 년이나 기다리고 있던 숙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인것입 니다." 분명히 툰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지.... 그 러나 이것은....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조니는 그가 내민 붓을 받아들고 서류에 서명했다. 촌원 수장이 그 증인이 되었다. 툰은 공손하게 서류를 비단보에 싼 후, 귀중한 보물 처럼 소중하게 챙겨넣었다. "아, 그렇군." 두 사람이 나가려고 했을 때, 조니가 말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툰에게 전해주십시오. 달을 먹는 용의 이야 기는 정말로 재미있었다고 말입니다." 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28 부 진짜 싸움터는 저 회색인들이 있는 곳이다 (1) 사이클로별! 이십만 별 세계의 중심이며, 삼십만 년 동안 열여섯 개 우주를 파 괴하고 지배해온 제국, 전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바로 그 제국, 과 연 그 별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면 왜 지구 에 대한 보복이 행해지지 않고 있는가. 지난 일 년 동안은 치열한 전투와 숨막히는 긴장 속에 살아오면서 도 조니 일행은 그것을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언제나 의식의 밑바닥을 무겁게 내리누르며 불쑥불쑥 떠올라 모든 생각을 마 비시켜버리곤 했다. 조니는 이제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분지를 비추고 있는 창백한 별빛은 금속에 반사되어 둔탁한 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별이 밝게 빛나는 상공은 텅 비어 있었고, 전송에 장애가 되는 모터소리도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앵거스와 조니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마침내 때가 왔다. "우선 채굴장을 확인해보고, 전송장치가 가동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게, 아마 경보장치가 있을 걸세, 어떤 것에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 지 않도록 조심하게." 좌표에 나타난 것을 보면 사이클로인만이 살고 있는 채굴혹성 루자 이트에 전송출하장이 있었다. 그 혹성은 거대한 별로서, 사이클로별 로부터는 훨씬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두 사람은 새로운 이동촬영 장치를 루자이트의 전송출하장에서 사십 마일 떨어진 지점의 좌표를 입력하여 전송시켰다. 이윽고 와이어가 울리고, 기록장치가 되돌아왔다. 조니는 전에 사 용하고 그대로 놓아두었던 공중영사기에 디스크를 넣고 버튼을 눌렀 다. 영상이 나타난 순간 두 사람은 한순간 좌표를 잘못 계산해서 카 메라를 채굴갱 속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했 다. 하지만 사십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서 자신들이 잘못 봤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조니는 카메라의 초점을 조정했다. 그곳에는 분명히 구멍이 나 있었지만 광산은 아니었다. 비틀린 모 습으로 서 있는 한 개의 전송용 기둥과 구멍일 뿐이었다. 기지에 있 어야 할 돔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성마다 본부돔의 배치가 다 르기 때문에 루자이트별의 전송플랫폼은 다른 시설로부터 몇 마일 정 도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표준배치를 고집하는 종족이다. 그러한 사이클로인들이 기지의 표준배치를 바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성의 중앙 기지는 전송장치가 있는 장소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곳에 혹성 전체에서 채굴된 광석이 집적되기 때문이었다. 모든 서류와 자료들은 그곳에 보관되 며, 주요 작업을 모두 그곳에서 하기 때문에 간부직원들도 그곳에 거 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영상에는 구멍밖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사 람은 다른 전송출하장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제5우주의 혹성 머코그 랑에 있는 것으로, 크기는 지구의 다섯 배나 되었지만, 밀도는 훨씬 낮았다. 두 사람은 똑같은 방법으로 그곳에 이동촬영 장치를 전송했 다가 회수했다. 그곳의 양상은 루자이트와는 달랐다. 확대된 영상 속의 머코그랑은 전송플랫폼의 산기슭 같은 곳에 설치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산사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오른쪽 아랫부분에 뒤집혀진 본부돔이 보였다. 채굴장 본부까지 삼켜버릴 정 도로 엄청난 산사태였던 모양이었다. 산사태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 그곳엔, 불에 탄 와이어가 엉킨 전송용 기둥 한 개가 서 있을 뿐이었 다. 지금까지 보아온 채굴장 본부과 전송장치들은 모두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이 확인됐으나, 그들은 좀더 정확히 하기 위해 무작위로 또 하나의 혹성을 골랐다. 브렐로톤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그 혹성은 원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육만 년 전부터 사이클로인들의 통치구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송출하장으로부터 사십 마일 지점의 좌표를 계산해서 기록장치를 보냈다. 되돌아온 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전송플랫폼은 도시 중앙 의 언덕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일찍이 백만 명 이상이나 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음 에 틀림없었다. 이천 피트나 되는 고층건물이 주변부를 향해서 도미 노처럼 겹쳐진 채 쓰러져 있었다. 플랫폼이 있었던 전송출하장 주변은 깊이 패인 지면에 커다란 구멍 이 뚫려 있었고, 기둥은 모두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충격으로 날아가보린 채굴장의 본부돔이 있던 자리엔 낯익은 지하구조가 노출 되어 있었다. 좀더 자세히 보려고 채굴장 본부 주위를 확대해보았지 만, 시멘트 조각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뿐, 인기척은 전혀 느껴 지지 않았다. 조니는 의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얼마 후,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앵거스에게 타르 를 전송할 때 조종사들이 촬영한 디스크를 가져오도록 부탁했다. 조 니는 아메리카 채굴본부의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곳 역시 플 랫폼이 있던 지면은 움푹 패여 구멍이 뚫렸고, 서 있는 기둥은 바깥 쪽을 향해 비틀어져 있었으며, 오십 마일 이상 떨어진 도시까지 파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야 알겠군. 사이클로의 모든 채굴위성 을 촬영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군, 그 컴퓨터를 빌려주게, 작년 제구십이일의 사이클로별을 보세." 빛은 일 년 동안에 오조 육천육백구십칠억 천삼백육십만 마일을 달 렸다. 그날 그 시각에 사이클로별을 떠난 빛은 아직도 우주공간을 날 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바로 앞에 촬영장치를 놓아두면 되었다. 무인 항성탐사기의 영상기록 장치로 확대비율을 육십억 배로 하면, 그 순간의 사이클로별의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작년 이맘때보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촬영기의 각도를 조 절하여 촬영장치가 과대한 중량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커다 란 천체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또한 배율을 변환하고, 열검출기를 미세하게 조정해서 다른 전 체로부터의 빛을 차단해야만 했다. 그들은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여 이동촬영 장치를 시간의 흐름 속으로 전송했다. 와이어는 계속 울어 대고 있었다. 십오 분 뒤, 그들은 이동촬영 장치를 회수했다. 그것은 플랫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조니는 빨리 보고 싶어서 엉겁결에 손을 내밀었다. 순간 앵거스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금속면은 엄청나게 차가워져 있을 것이기 때문 에, 피부가 닿으면 금새 달라붙어버릴 것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열면 급격한 온도변화로, 디스크가 일그러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조하게 몇 분 동안을 참아낸 끝에 그들은 영상장치를 조작할 수 있었다. 훌 륭한 영상이었다. 적외선 사진처럼 희미할 줄 알았는데, 일 년 이상 이나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빛은 일그러진 곳이 전혀 없이 선명했다. 사이클로 제국의 수도가 비춰졌다. 환상의 전차궤도, 벨트 컨베이 어처럼 벼랑을 타고 내려가는 매끈한 포장도로, 사이클로인들은 도시 계획까지 광산스타일을 도입하고 있었다. 이 거대하고 활기에 찬 도 시는 전우주의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고 있는 중심지이며, 모든 혹성 과 종족을 수탈하여, 그 뼈를 긁어모은 잔학한 폭력의 매커였다. 그 것은 삼심만 이천 살이나 먹은 괴물이, 그 잔인하고 추악한 힘을 과 시하듯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조니와 앵거스는 그 방대한 규모의 도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순간 숨을 죽였다. 나선을 그리며 달리는 전차에는 승객이 가득타 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거리나 수많은 군중들로 넘치고 있었다. 모 든 거리들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처럼 많은 생명체를 본 적이 없는 그들은 그 광경을 자신들의 거리나 고대의 폐허와 비교 해보려고 했으나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공격하려고 했던 것은 그토록 거대한 문명을 지닌 은하제국이었다. 도시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전송플랫폼을 쳐다보는 것도 잊고 있던 조니와 앵거스는 서둘러 디스크를 뒤로 돌렸다. 플랫폼을 찾아내자, 사이클로별의 전송플랫폼이 영상의 중앙으로 오도록 조정한 다음, 배 율을 높였다. 그리고 조니와 윈드스프리터가 텔레포테이션이 일어나 기 직전, 지구의 플랫폼을 빠져나온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 았다. 처음에는 반년에 한 번인 지구로부터의 전송을 받아들이기 위해 플 랫폼에서 서둘러 떠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플랫폼 옆에는 관과 인원을 운반하기 위한 트럭이 한줄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대 기가 흔들리고, 조니에게 맞아 쓰러진 사이클로인들의 모습이 희미하 게 나타났다. 그때 작은 불꽃이 튀고 연기가 치솟았다. 깜짝 놀란 사이클로인 노 동자가 뒷걸음을 쳤다. 역장스크린이 작동되면서, 돔 위의 스크린이 즉각 플랫폼을 둘러싸고 그 작은 폭발을 봉쇄했다. 그것은 대기보호 망과는 별개라는 것이 명백했다. 반짝반짝 빛나고 투명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 다. 잠시 후 한줄로 늘어서 있던 트럭들이 대피했고, 한 대의 커다란 긴급출동 트럭이 플랫폼으로 다가갔다. 그 작은 폭발을 처리하기 위 해서일 것이다. 일 분이 지났다. 첫번째 관이 폭발했다. 지하탄약고 안쪽 깊숙히 보관되어 있던, 방사능 농도가 매우 높은 핵폭탄인 혹성 파괴탄이었다. 그러나 역장스크린이 그것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것은 지옥 같은 불길을 단단하게 봉쇄시키고 있었다. 엄청난 폭발에너지를 받아도 스크린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두번째의 혹성파괴탄이 폭발했다. 스크린은 아직도 견뎌내고 있었 다. 이토록 강한 스크린을 만들어내다니.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기술문명이었다. 저 정도의 파괴력을 막고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힘 이 필요할까. 스크린의 돔 안에서 다시 세번째의 혹성파괴탄이 폭발했다. 그러나 스크린은 그것을 봉쇄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사이클로 인 몇몇이 플랫폼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물론 플랫폼 근처에 있던 자들은 충격으로 땅바닥에 내던져졌다. 다시 네번째의 폭탄이 폭발했다. 스크린은 여전히 견뎌내고 있었 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에 의해서 긴급출동한 트럭이 날아가고, 가까 이 빌딩의 유리창이 깨졌다. 지면이 대지진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빌 딩 한 채가 갑자기 땅속으로 빨려들어가듯이 함몰했다. 이어서 다른 건물들도 차례차례로 가라앉고 있었다. 뒤이어 다섯번째 폭탄이 폭발했다. 플랫폼 근처에서 조금씩 원자불 길이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그 전체가 소용돌이치는 불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서 작렬하는 불길이 뿜어오 르기 시작했다. 조니는 그곳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후진시켜 넓은 지 역을 볼 수 있도록 주정했다. 사이클로 제국의 수도는 환상전차와 군중, 빌딩숲, 그리고 우뚝 솟 은 벼랑까지도 모든 것을 용해시키면서 집어삼키는 불바다 속으로 침 몰하고 있었다. 그가 시야를 더욱 확대하자 사이클로별은 핵반응에 의해 불타는 불타는 태양으로 번해가고 있었다. 영상은 그곳에서 끝 났다. 두 사람은 그 엄청난 광경에 서로를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니는 착잡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작년에 자신들이 계획하고 실행 에 옮긴 마지막 결과였다. 조니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설사 상대가 사이클로인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거대한 파괴력을 일으키리라고는 상 상조차 못했었다. 폭탄이 회사 본부와 제국의 수도까지는 전멸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하나의 혹성을 모두 파괴하여 새로운 태양을 창조해낼 줄은 몰랐다. 앵거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니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그 열 개의 관에 이어진 끈을 잡아당겼지, 전송이 늦어지면 지구가 날아가버릴 테니까. 시한퓨즈는 쓸 수가 없었네. 폭탄의 방사 능이 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폭탄 자체도 케이스가 낡아 있 었으니까.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작업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네." 조니는 손으로 던지는 시늉을 했다. "전투 때 나는 플랫폼에 끈을 던져버리고, 그것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지 그 끈에 약간의 방사능이 묻어 있었네. 그래서 사이클로 별의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작은 폭발이 일어난 거야. 작년의 조그 만 반동은 그 때문이었어. 결국 사이클로별에서는 참코 형제가 말하 던 역장스크린이 즉각 작동된 것이지. 그 역장스크린은 핵폭발을 충 분히 봉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네. 전에 챠의 책에서 읽은 것인데, 그들의 세미코어 채굴법이라는 광 산기술 때문에 사이클로별의 지각에는 갱도나 터널이 미로처럼 뚫려 있어서 벌집처럼 되어 있다고 했네. 그런 이유로 지반이 약해서 폭발 의 힘은 밑으로 향하고, 한발 한발 폭발할 때마다 그 충격은 지각을 뚫고 내려가서 사이크로별의 마그마층으로 접근해간 것이지. 결국 다섯번째의 폭발력이 지핵에 도달했고, 계속된 다섯 차례의 대폭발이 일어난 것일세. 핵폭탄은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폭탄이 사이클로별의 지핵을 파괴한 다음에도 핵융합 반응은 멈추 지 않았던 것이지. 아마 지금까지도 반응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몇 백만 년은 계속될 것일세. 사이클로별은 이미 혹성이 아 니라 불타는 태양인 셈이네." 앵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클로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그런 줄도 모르고 예정대로 전송 출하가 행해졌는데, 그것들은 태양을 향해 전송하다가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어버렸다는 얘긴가요?" "일 년 전에 우리들이 덴버에서 경험한 것처럼 말일세." 조니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타르는 불바다를 향해 자신을 전송시킨 거야. 불쌍한 놈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앵거스는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타르가 불쌍하다구요? 놈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했는지 벌써 잊었 단 말입니까? 조니, 나는 이따금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 다. 당신은 얼음처럼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 는 감상적으로 나약한 소리를 늘어놓곤 한다니까요." "그러나 너무 비참한 죽음이 아닌가?" 앵거스가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천만다행이군요. 사이클로별은 완전히 소멸됐고, 제국은 이미 존 재하지 않는다니. 이것으로 걱정거리 하나가 줄어든 셈이군. 오흐, 통쾌해라." (2) 조니는 뒤쪽에서 몰래 숨어들어오는 듯한 인기척을 느꼈다. 재빨리 뒤를 돌아다보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왜소한 회색 인이 서 있었다. "그랬었군, 당신들은 모르고 있었구먼." 조니는 총으로 가져갔던 손을 내렸다. "하지만 덕택에 지금까지 의문스러웠던 일들이 여러 거지 밝혀졌 다. 그렇다. 사이클로별은 소멸됐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앵거스가 끼여들었다. "이제 사이클로인은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요?" 회색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전송되어 온 다른 회색인은 그때까지 뒤에 물러서 있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사이클로별이 사라진지 이 주일 뒤에 우리들의 정보망은 그 사실을 포착했다. 우리들은 도처 에 우주선을...." 처음부터 있던 회색인이 경고하듯이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 사 나아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전송장치는 어느 혹성이든지 중앙 본부나 총독부에 있다. 그리고 관리직이나 고위 간부들은 모두 전송플랫폼 근처에 살고 있다. 그렇 게 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없이, 급송문서를 즉시 입수할 수 있 으니까. 그만큼 게으른 자들이지. 그 부근에는 대량의 호흡가스를 비 축한 장소도 있었다. 그들은 텔레포테이션을 독점하고 있었으므로, 우주선으로 여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겠지만, 그것을 모르고 사이클 로별로 전송한 것이다. 물론 우리들도 모든 우주를 조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이클로인 의 수법으로 봐서 모든 전송장치와 중앙 대책본부가 파괴되고, 관리 직은 전원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사는 오 개월 전에 중단되었다. 호흡가스 저장량은 어느 혹성이든 육 개월이 최대치니까 육 개월 전에 이미 모두 사망했을 것이다." 조니는 왜소한 회색인들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그들은 뭔가를 숨기 고 있다. 분명히 다른 속셈이 있다. 조심해야 한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자못 태평스러워 보였고, 태도도 우호적이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사이클로인 기술자가 전송장치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 는지도 모르잖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그는 즉각 우리들을 찾아왔을 것이다." 조니의 말에 사절로 온 회색인이 대답했다. "만일 그가 사이클로별로 전송하는 따위의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 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혹성에 있던 전송장치도 산산조각으 로 부서져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어버렷다. 우연히 그날은 가족과 함 께 요트로 향해하고 있었다 하긴 우리들의 사무실은 지하 십호층에 있어서 피해는 없었지만 말이다." 앵거스가 말했다. "사이클로별과 같은 대기를 지닌 혹성은 우리 리스트에 찾을 수가 없었다. 호흡가스가 있는 혹성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가?" 회색 사나이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회색인 사절이 말했 다. "포비아라는 혹성이 있다. 사이클로인은 그 혹성을 리스트에 기재 하지 않았겠지만." 두 명의 회색인은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처음부터 와 있던 회색 인이 말했다. "이것은 농담이다. 우리들은 사이클로별의 최고 기밀도 모두 알고 있다. 포비아를 리스트에서 삭제시킨 것은 제법 사이클로인다운 조치 다. 지금부터 이십육만 천 년 전, 사이클로인은 그들을 지해하던 하 크 왕을 포비아로 추방시켰다. 그것은 성계에 있는 사이클로별을 제 외한다면, 사이클로별과 같은 대기를 가진 유일한 혹성이다. 그 혹성 은 사이클로별보다 훨씬 바깥쪽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사이클로별에서 는 보이지 않는다. 초저온이기 때문에 대기가 액화되어 호수처럼 되 어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 작은 돔을 세우고, 하크와 그 공모자들의 유배지로 삼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었던지 마침내 자객을 보내서 그들을 몰살해버렸지. 매우 사이클로인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사 실을 교과서에서도 말소시켜버렸다. 당신들의 천문표를 보여주지 않 겠나?" 그는 그것을 힐끗 바라보고 웃으면서 동료에게 보였다. "역시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네 성계의 혹성을 삭제시켜버 리다니." 조니의 의심스럽다는 시선에 답이라도 하듯이 사절인 회색인이 말 을 받았다. "아나, 그곳에는 사이클로인이 없으며 누군가 호흡가스를 채취하러 왔다는 흔적도 없다. 그곳의 호흡가스는 얼어붙어 있다. 이 주일 전 의 탐사선 보고에서도 확인되었지만 그곳은 완전한 무인혹성이다. 사 이클로인이 전멸한 것은 확실하다. 기록디스크를 모두 조사해보니, 이 혹성엔 사이클로인 생존자가 약간 남아 있더군. 그러나 그들에게 이 제어탁자를 만들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제어탁자를 넣은 용의 옆구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계속했 다. "그들은 자살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사실은 얼마간 살아남은 자들도 있었다. 지부채굴장의 기술자들이다. 그들에게서 제어탁자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한 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살해버렸다." 처음부터 와 있던 회색 사나이는 화제를 바꾸려고 하였다. "정식 회의 전에 꼭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 의논해야 될 것이 있 다." 드디어 속셈을 털어놓는다고 조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정부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 다. 당신은 정부와 우리들과의 회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믿는다." "진지한 대화를 하기 위한 예비대화다." 또 한 사나이가 동료의 말을 보충하듯 말했다. 조니는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처음부터 와 있던 사나이가 야 브차를 마셨다는 기억이 난 것이었다. "나는 심십 분 후에 저녁식사를 한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들의 음 식을 먹을 수 있다면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은데." "우리들은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다." 사절이 재빨리 말했다. "음식이 무엇이든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다." "그럼, 삼십 분 후에." 조니는 촌원 수장에게 만찬에 초대된 손님에 대해 알리기 위하여 숙소 쪽으로 향했다. 어쩌면 이것으로 두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 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두 명은 주의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3) 회색인들은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굉장한 대식가였다. 식사 전에 촌원 수장은 멋지게 장식하였다. 광산램프를 넣은 채색 된 등이 곳곳에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두 장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각각 눈밭에서 불쑥 뛰쳐나온 듯한 호랑이와 하늘을 나는 새가 그려 진 그림이었다. 중앙의 식탁에는 식탁보가 덮여 있었고, 그 옆에는 보조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식사하는 동안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으며, 춘원 수장이 운반하는 접시 부딪치는 소리와 회색 사나이들이 음식 먹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조니는 앵거스를 초대했으나, 그는 아사트 관찰용 촬영장치로부터 눈을 뗄 수 없다고 말했고, 스톰아롱은 너무나 피곤해서 직전사령실 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결국 조니와 두 회색인만이 식사를 하게 되 었다. 음식이 이처럼 풍부한데 세 사람뿐이라는 것도 정말 유감스러웠다. 촌원 수장은 어디서 이런 재료들을 구했을까 하고 조니는 궁금해 했 으나, 사냥할 짐승은 얼마든지 있었고, 호수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밭을 일구어 야채와 과일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 들은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밭을 지키기 위해 대기보호망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니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다. 툰이 오늘밤의 요리는 대부분이 중국 남부식으로, 정통 중국요리가 아니라고 경멸스럽게 말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두 손님은 삼십 명분으로 준비한 만찬을 깨끗이 먹 어 치웠다. 드디어 차를 마실 시간이 되었다.차가 나오자 처음부터 와 있던 회색인이 물었다. "이것은 야브차가 아니겠지?" 보통의 녹차라고 하자 회색인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두 회색인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조니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이처 럼 맛있는 요리를 먹어본 것은 참으로 오랫만이라고 말하자, 촌원 수 장은 주방장에게 그 말을 저내야 겠다며 방을 나갔다. 세 사람만이 남게 되자 두 회색인은 조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 니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의 음식을 모두 먹어치운 그들이 이 번에는 자기를 먹어치우려 덤벼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그것보다 그들이 어떤 종족이고, 어떤 목적으로 이 곳에 왔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미리 알고 있겠지만." 먼저 와 있던 회색인이 말했다. "당신들의 방위태세는 문제투성이고 엉망진창이다. 그것은 곧 사이 클로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데, 그들은 방위시설을 충실하게 갖 추는 데는 조금도 투자하지 않았다. 실력을 갖춘 직원 또한 없다. 무 기를 사는 것보다 예닐 곱 명의 여자나 카방고 일이 톤을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녀석들뿐이다." 그는 방법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니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쓰고 있는 저 대공포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가? 오천 크레디트도 안되는 것이다. 지독한 구식으로, 사정거리도 이십 만 피트밖에 안된다. 바켄세일 코너나 중고품 시장에서 팔고 있는 낡 아빠진 무기에 불과하다. 아마 어떤 전쟁에서 불하된 중고품을 사온 물건일 것이다. 관리직 가운데 누군가가 신제품가격을 장부에 올려놓 고, 그 차액은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다." "제대로 된 신식 대공포는 얼마나 하는가?" 조니가 물었다. 그가 얘기를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절로 온 회색인이 잠 시 생각에 잠겼다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회색 책을 끄집어냈다. 한순 간 열려진 페이지가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그는 작은 독서용안경을 쓰고 그 책을 읽어나갔다. "오, 여기 있다. '지상 우주 동시영격 다중컴퓨식 방위포, 최장 영 격거리 오백구십구 마일. 만 오천 발분. 백삼십 대의 비행물체 또 는, 이천삼백 개의 폭탄을 동시추적 가능. 최대 파괴능력 A-13, 즉 주력급 전함을 관통. 정가 십이만 삼천사백칠십오 크레디트. 단 수송 및 설치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음'. 이 포열을 당신들의 기지에 갖 추고 있었다면, 저 연합군 전체를 격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기권 용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고도에 정박해 있는 전함의 공격용으로, 또는 방어나 반격에는 그 대공포가 최고다." 처음에 온 사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이클로인은 장래 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더구나 비용이 드는 문제에는 잔소리가 많은 자들이었다. 이곳 역시 방위태세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니도 그 말에는 동감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얘기를 계속 나누다 보면 그들의 정체도 밝혀질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 들이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해야만 했다. 조니는 짐짓 그들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척하며 물었다. "이 혹성에 필요한 방위력을 갖추려면 대충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 같은가?" 회색인들은 의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온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여 러 가지 자료를 꺼내 그것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데이터를 읽어나갔 다. 사절로 온 사나이는 외손에 낀 커다란 반지를 비틀거나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처음에 조니는 그냥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보 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반지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느다란 실이 나왔다. 열심히 조작하며 중얼거리는 두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조니에게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우주탐사선이 서른 척.... 반송파 탐지, 경계신호 발진장치의 관리유지.... 신호 미확인 비행물체 영격성능을 지닌 무인 우주 정찰 기 열다섯 대.... 지구에 있는 비행물체의 확인표식을 장비하는 비 용.... 대기권 내 무선표식이 이천 대.... 마크30 전투기 이백쉰여섯 대.... 비행가능형 대인탱크 사백 대.... 대인 바리케이드 칠천 대.... 분리가능한 케이트 첨부 도시방위 케이블 백 대.... 열, 색상 탐지형 무인정찰기 쉰 대.... 목표물 자동공격형 대기권 무인기 쉰 대...." 그들은 작업을 끝냈다. 사절이 반지에서 실을 끊어내고, 그 끝을 툭 치니까 실이 확대되면서 기다란 종이테이프가 되었다. 그는 그 테 이프를 먼저 온 사나이에게 던져주었다. 먼저 온 사나이가 테이프를 받아들고 숫자를 훑어보더니, 마지막에 나와 있는 합계부분을 보면서 말했다. "예비부품과 수송비를 포함해서 연율 11분의 2로 오천구억 육천이 백팔십칠만 팔천사백삼십일 크레디트, 그것에 군사요원과 정비요원의 급료, 주거, 보급물자가 일 년에 이억 팔천오백만 육 크레디트가 가 산된다." 회색인은 테이프를 맞은편에 앉아 있는 조니에게 던져주었다. "대충 이 정도다. 능률적이고 경제적인 혹성방위 시스템으로 모든 장비들은 일류품이다. 백 년은 사용할 수 있다. 당신들도 이런 시스 템을 갖추고 있었다면 걱정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 다." 그것은 지구의 전재산액의 사천구백팔십구억 육천팔십칠만 팔천사 백삼십일 크레디트나 상회하는 금액이었다. 조니는 지구가 얼마나 가 난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두 사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야 될 것 같았다. "가르쳐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알려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만. 무기상인가요?" 회색 사나이들은 한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 질문 에 꽤나 당혹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나서 웃음을 터 뜨렸다. "아아, 죄송합니다." 처음에 온 회색인이 말했다. "우리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이 분야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고 있지요. 게다가 당신에 대해서는 무척 많이 알고 있어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던 탓에 소개하는 것도 잊어버렸 군요. 나는 드리스 글로튼입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 다. 조니 타일러 경." 조니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건조하고 상당히 거친 손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보라즈 경입니다." 조니는 보라즈 경과 악수를 나누면서 말했다. "나는 그냥 조니 타일러입니다. 칭호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 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요?" 보라즈 경의 말에 이어 드리스가 말했다. "보라즈 경은 은하은행의 총재이며, 중앙 본부장도 겸하고 있습니 다." 조니는 깜짝 놀라 눈을 껌뻑거리면서 다시 한 번 절을 했다. 보라즈 경이 말했다. "드리스는 풋내기 상환담당 부사장이라고 말하지만, 이 지역을 맡 고 있는 은하은행 지점장입니다. 지점장은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는 전권을 부여받고 있지요. 당신도 눈치챘겠지만, 나도 실수로 그의 영역을 침범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라즈 경은 싱긋이 웃었다. "당신네 혹성은 그의 담당지역에 있으니까 당신들과의 교섭은 모두 그에게 일임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익을 올리는 것이 그의 임 무지요. 내가 온 것은 다만 사절회의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 금은 매우 혼란된...." 드리스 글로튼이 서둘러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보라즈 경 정도의 지위에 계시는 분은 지구지점의 수지에 대한 세 부사항 따위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추세를 알아두려는 것뿐 입니다." 보라즈 경이 웃었다. "당신에게 쓸데없는 심려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우리들이 찾아온 것은...." 드리스가 다시 가로막았다. '조니 경, 우리들의 목적은 오직 당신들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 런데 구좌를 개설할 생각은 없습니까? 개인구좌로 말입니다." 드리스는 주머니 속을 뒤졌다. "특별 취급을 짧은 번호로, 완벽한 비밀을 보장하겠습니다." 그때 조니는 자신이 한푼도 없는 알거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당 초 돈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조종사로서의 급료도 받 지 않고 있었다. 조니는 완전히 무일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다음에 돈이 생 기면 생각해보겠습니다." 회색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드리스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들은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만은 기억해주시기 바랍 니다." "당신들을 적으로 삼으면 무서운 상대가 되겠군요." 조니는 더욱 탐색의 손길을 뻗어보았다. "당신이 얘기하지 전까지 스놀 함대는 철수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번에도 드리스가 말했다. "그것 말인가요? 은행은 광범위한 고객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 다. 당신이 본 것은 공증서비스지요. 틀림없는 정식결정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들은 무선에 의한 공증기록이 필요했던 것이지 요. 물론 군인들은 사절들의 말만으로는 신용하지 않지만, 은행은 신 용합니다." "사절들을 불러모은 것도 은행 서비스업무의 일종이란 말인가요?" "음,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보라즈 경이 끼여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없소이다." 드리스가 그의 말을 보충했다. "서비스의 일환으로 회의준비를 할 때도 있습니다. 문명혹성 상호 간의 원활한 교역은 은하은행에게도 유리한 일이니까요." 알고 싶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으나, 그러한 기색이 드러나지 않 도록 조심하며 조니는 질문을 계속했다. "사절들조차 당신들이 말하는 것을 따르는 것 같고, 그들은 당신을 각하라고 부르고, 보라즈 경을 예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만일 사절 들이 당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가령회의에 나오지 않는다는가....?" 보라즈 경은 그런 생각에 충격을 받은 모양으로, 드리스가 미처말 리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소, 그런 짓을 한다면 은행은 융자를 회수하고 구좌를 폐쇄합니다. 그렇데 되면 그 혹성의 경제는 붕괴될 것입니다. 즉 파산이지요. 그리고 혹성 자체가 그들의 손을 떠나 경매에 붙여집 니다. 결국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보라즈 경은 그제서야 드리스가 제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드리스가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보라즈 경이 이 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 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나의 담당구역이며, 이 혹성에 관한 문제는 나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과격한 표현을 용서 해주십시오. 조니 경은 은하은행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 다. 은하은행은 이미 수세기 동안 업무안내 책자를 발행하고 있지 않 으니까요. 조니 경, 당신은 은하은행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 까?"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알고 싶었다. 조금 전의 '혹성 자체가 그들의 손을 떠나 경매에 붙여진다'고 하는 말이 몹시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4) 촌원 수장이 다시 차를 따랐다. "우리들이 폭력적이라고는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드리스가 그렇게 말하고 차를 꿀꺽 미셨다. 그렇지, 강력하고 집념 이 강한 것뿐이겠지 하고 조니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우리 종족은 실레이키라고 합니다. 글레디데스 성계에 있는 생물 생식이 가능한 세 개의 혹성이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세 혹성은 모두 표면이 대부분 돌로 덮여 있습니다. 평균적인 해면과 육지의 비율은 3대 1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산업은 오로지 은행업뿐 입니다." 드리스는 빙긋이 웃고 다시 차를 들이켰다. "우리들은 은행가로서 이상적인 종족입닏.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모든 대기를 호흡할 수 있으며, 어떤 중력 아래서도 살아갈 수 있으 니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적 관습은 오로지 정직한 것과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 이 두 가지를 가장 소중한 것으로 삼고 있습니 다."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조니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해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정직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진실을 전부 털어놓는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말하지 않은 내용 속에 중요한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니는 예의바르 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세 개의 혹성에 각각 오십억의 실레이키인이 살고 있습니다. 엄청 난 인구지요. 대부분 은행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기술자와 그 밖의 전문직, 혹은 수학자도 많이 있어서, 오십만 년 전쯤에 우주여행 기 술을 개발했습니다. 대체로 그런 정도겠지요, 보라즈 경?" 보라즈 경은 그가 하는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혹성 이 은행에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아직도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리스가 부르는 소리에 곧 프로답게 은행가의 미소를 되 찾 았다. "정확하게는 이 우주의 항성일인 내일, 즉 제백삼일로 사십구만 칠 천사백삼십이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보라즈 경을 다시 대화 속에 끌어넣은 드리스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삼십만 이천 년 전." "삼십만 이천삼 년 정이오." 보라즈 경은 드리스의 말을 정정했다.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사이클로인과 만났습니다. 아나, 특별히 우리들이 정복당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우 리들에게는 가치있는 광물자원이 없습니다. 지표의 대부분이 바닷물 로 덮여 있기 때문에 채굴하는 것도 몇 배나 어렵지요. 우리들은 금 속을 필요로 했고, 사이클로인은 우리들의 컴퓨터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양국은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사이클로인에게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지요. 그들은 재무나 무역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 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시 사이클로별의 경제상태는 형편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혹 성의 무슨 물고기.... 그래요, 청어처럼 번식합니다. 그러면서도 다 른 혹성에 식민지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식민혹성이 모 성보다 강력해져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 니다. 인구는 과밀해지고 실업자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심각한 불황 과 경제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지요. 우리들은 그들을 도와서 금속시장을 개발시켰습니다. 그들은 테레 포테이션에 의한 수송시스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간단했습 니다. 사이클로는 여러 가지 채굴기술을 개발하여 나날이 번영했고, 우리들도 그들의 경제가 안정되도록 금융혜택을 주었습니다." 드리스는 숨을 크게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이클로인에게는 대단 한 사건어었지요, 지금부터 약 이십만 년 전의 일입니다." "이십만 구천사백육십이 년 정이오." 이번에도 보라즈 경이 정정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종족이 텔레포테이션의 비밀을 훔쳤는 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개발했는지, 그것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6우주의 벅스나드인이었지요." 보라즈 경이 다시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그 뒤의 일은 분명치 않소." 드리스가 다시 말을 받아서 계속 얘기했다. "우리들은 모든 군사자료를 볼 수 있었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아 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벅스나드인은 텔레포테이션을 군 사적으로 이용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이클로인 쪽이 재빨리 그것을 실용화하여, 텔레포테이션 병기로 벅스나드의 일곱 개의 혹성 을 전부 파괴해버렸지요. 몇 년 동안에 벅스나드인은 한 명도 남김없 이 살해되었습니다." "삼 년하고 열엿새 동안이오." 이번에도 보라즈 경이 보충설명을 했다. "사이클로인은 더 나아가서 벅스나드와 동맹관계에 있던 종족들까 지 점멸시켜버렸습니다. 그 후 그들 종족을 본 자는 아무도 없습니 다. 그 전쟁 때문에 사이클로인들도 완전히 달라져버리고,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그들은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끊어버렸습니다. 그것 은 우리들에게 어려운 시대였지요. 우리들의 경제는 사이클로의 경제 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거든요. 그들은 혹성 내부에서도 집단살육 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자료가 입수되었을 때의 인구통계를 보 면, 사이클로의 인구는 그사이에 이전의 11분의 4로 감소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이클로인이 다시 활약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백 년이 필요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완전히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 다." 그랬었구나. 조니는 생각했다. 그 무렵 사이클로인은 텔레포테이션 시술과 수학을 지키기 위해 갓난애의 머릿속에 캡슐을 집어넣는 방법 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든 책들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때까지 존재했던 갖가지 예술도 모두 폐기시켜버렸습니다. 사이클로어 사전을 보면 폐어가 많 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감이라든가 연민이라든가 하는 말 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았지요. 양식이라는 말조차 거의 들을 수 없었 어요. 그들이 수세기 동안 사용해온 말들이 그때부터 사라져버린 것 입니다." "현재 그들을 사이클로인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그렇게 부르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왕의 이름을 따서 종족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 몇 세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대였 지만, 특히 사이클로인에게는 최악의 시대였지요. 사이클로인은 우주 역사상 가장 냉혹하고 잔인한 압제자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말 않겠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들의 내정에는 분규가 끊이지 않았었지요.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 가했고, 경제는 혼란상태에, 열한 명 중 아홉 명은 실업자였습니다. 왕실은 혁명의 위협에 겁먹고 있었지요. 분명히 네댓 명의 왕자들이 암살당했고...." "일곱 명이오. 그리고 왕비 두 명이 암살당했고...." 보라즈 경이 다시 끼여들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속수무책이 된 사이클로인은 클레디데스 에 있는 우리들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들은 군인을 고용 하고 무기를 사는 데 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의회 인 신용의회는 열여섯 개 우주의 모든 종족과 마찬가지로 사이클로인 의 거래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따라서 글레디데스와 사이클로 사이는 험악해졌지요. 거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용의회 의원 중 한 사람이...." "피니스터 경이오." 보라즈 경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피니스터 경이 현명하게도 사이클로인과의 거래를 은 행에 일임한 것입니다. 은행은 그당시 이미 거대한 규모로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총재는...." "룽거 경이오." 보라즈 경이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룽거 경은 사이클로인과 교섭하여 마침내 계약을 체 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단순한 차관계약이 아니고, 은하은행의 기 초를 만든 계약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은행은 사이클로인과 다른 종족의 경제관계를 처리하고 사이클로인 자산의 이송을 모두 보증하는 대신, 실레이키인 소유의 모든 혹성 및 글레디 데스 성계는 불가침으로 한다. 그리고 사이클로인이 직접 우주 전역 에 있는 은행을 위해 텔레포테이션 장치를 설치해준다.' 사리클로인 은 그 계약에 서명했고, 융자를 받아 경제적 안정을 이룬 것입니다." 보라즈 경이 끼여들었다. "사이클로인이 그 계약을 위반하려고 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소. 하지만 그때마다 비참한 사태가 벌어지자 황급히 마음을 바꿨지오." "자아, 이상이 은하은행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은하은 행'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열여섯 개 우주 전체에 영업망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은 모든 은하계의 은행이란 뜻으로 '전은하은행'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은하'로 해두면 고객들은 이것을 자기 은하 의 은행이라고 생각하여, 보다 친근하게 느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 까?"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은 사이클로인에게 명령하고 복종하게 할수 있었던 강력한 범은하조직인 것이었다. 조니는 긴장했다. 은하은행은 무엇인가를 획책하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니가 말했다. "당신들은 지구 정부와 텔레포테이션 서비스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 는 건가요?" 드리스와 보라즈 경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조니에게 시선 을 되돌렸다. "정부와는 아니오." 보라즈 경이 말했다. "정부가 텔레포테이션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텔레포테이션은 별개 문제이고, 우리들이 회담하 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조니는 보라즈 경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더이상 추궁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중요한 문제가 텔레포테이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여유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사절들에 대한 사례문제인가요?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큰 액수일지도 모르니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드리스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반문하고, 자신의 반지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실이 나오고, 그것이 테이프가 되었다. 드리스는 그것을 보았다. "대단한 금액은 아닙니다. 사례는 사절에 따라서 다릅니다. 대표하 는 국가의 규모가 다르고, 그들의 급료도 각양각색이니까요. 총액으 로 하면 팔만 오천 크레디트 정도입니다. 물론 회의가 지연되면 금액 도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얼마 안됩니다. 은행의 수수료는 표준액, 그러니까 고작 이만 오천 크레디트지요. 그리고 내 요트의...." "스페이스 요트의 경비는." 보라즈 경이 다시 끼여들었다. "그것이 은행업무로 쓰여진 경우, 은행이 지출하기로 되어 있소. 당신이 조사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만 은행에 청구하는 것이 공정하다 고 생각하는데, 드리스...." 드리스는 보라즈 경의 말을 날카롭게 막았다. "물론 바타포어 성계의 벌로별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든 비용만을 청구하겠습니다." 드리스는 조니를 위해서 덧붙였다. "바타포어는 이 지역의 은하은행 지점이 있는 곳으로, 하우빈인의 혹성입니다. 하우빈은 그렇게 나쁜 종족은 아닙니다. 모두 정직한 자 들이지요. 그러니까 그 비용을 육만 크레디트라고 해둡시다. 합계는 겨우 십칠만 크레디트입니다." 드리스는 망설이면서 말을 이었다. "다만 당신들이 실제로 이 청구서를 받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확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의결과에 달려 있으니까요." 드디어 근본의제로 들어가고 있다고 조니는 직감했다. (5) 왜소한 회색인들은 두꺼운 눈꺼풀 밑으로 조니를 바라보았다. 그들 은 매우 진지했다. 드리스 글로튼이 몸을 쑥 내밀었다. "문제는 소유권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애매할 경우, 은행은 절대로 거래하지 않습니다." "그렇소." 보라즈 경이 동의했고, 드리스는 말을 계속했다. "은행의 신용, 또는 종족으로서 실레이키인의 신용 그 자체가, 오 로지 철저한 정직성과 완전한 법률 준수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법을 따릅니다." 보라즈 경이 강조했다. "만일 우리들이 법률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 는 짓입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법을 어기지 않기 때문에 무수한 수백 수천경의 종족들로부터 신용받고 있는 겁니다." 조니는 그 수백, 수천경의 종족들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조금도 없 었다. 그들에게는 비정하고 소름끼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서 회담을 준비한 것이라면 나도 그 회담의 주 제에 대해 알아두고 싶군요." 드리스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당연하지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할까요? 그렇지, 지구가 발견 되었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제16우주는 가장 늦게 발견된 우주였습니다. 발견된 지 이만 년이 채 안됩니다. 이 우주에는 아직 조사되지 않은 지역도 많이 있습니 다. 사이클로 제국 정부는 이 우주를 탐색하기 위해 탐색기를 보냈으 나 오랫동안 쓸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구는 은 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성계에 속해 있으며, 말하자면 변경 항성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간괴되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쏘아올린 탐색기가 사이클로 제국의 탐색기 에 포착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구가 은하역사에 등장하게 된 셈 입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자인 사이클로 제국 정부가 지구혹성의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리곤 처음으로 이 항성 계의 소유권 등기부에 기재되었지요. 제국 정부는 이 혹성을 인터캐 랙틱 광산회사에 매각했습니다. 당시 인터개랙틱 회사는 현금이 부족 했기 때문에 구입자금을 은하은행으로부터 빌렸지요. 그것은 매우 흔 한 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인터개랙틱사는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이런 차관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대부의 경우, 혹성의 권리증서는 담보로서 은행에 맡겨집니 다. 이자는 통상 11분의 2, 즉 비사이클로 숫자로 말하면 연리 십퍼 센트 정도죠. 기간은 이천 오백 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개랙틱 회사는 대부금의 반제를 한번도 미룬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 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것을 담보대출 대부라 고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조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대로 얘기의 전개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덧붙여 말하면 담보대출은 그 뒤에도 한 차례 더 있었습니다." 드리스는 계속했다. "그것은 인터개랙틱 회사가 군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자는 훨씬 비쌌지만 대수로운 액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오 년 만에 반체를 완료했지요." 그랬었구나. 은하은행이 지구침략 자금을 제공하고, 무인 가스폭격 의 비용을 댔다는 얘기로군. 회색 사나이들은 조니의 태도가 미묘하 게 변하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보라즈 경이 말했다. "이것은 순수한 비즈니스입니다. 은행은 자금을 융자해주고, 그 고 객은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은행이 당신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 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상적인 은행업 무입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드리스는 보라즈 경이 끼여든 것에 기분상한 기색도 없이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첫 담보대출에 대한 반체가 아직 사백 년분이나 남아 있는 것입니 다." 조니는 그 말으리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전쟁이 일어난 경우, 그러한 저당권이 말소된 적은 없었나요?" "아니.... 절대로 없습니다." 드리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력충돌에 의해서 주권자가 바뀌었다고 해도 정부가 교체된 것일 뿐, 그 채무는 변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전은하의 정부 가 공모해서 매일이라도 서로의 지배권을 교환하여 채무에서 벗어나 려고 할 테니까 말입니다." 드리스는 웃었다. "정부가 교체되건 군사적으로 정복당하건 간에 그 별의 채무는 변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소유자가 그것을 반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터개랙틱 회사가 지구를 정복했을 때는, 채무의 인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조니가 신중하게 얘기했다. "애당초 채무가 없었던 것입니다. 국내적인 채무라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국제적 채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 혹성의 발견도, 인터개랙틱사에 의한 사이클로 제국으로부터의 구입도 모두 정규수속을 거친 것입니다. 저당관계의 증서도 모두 정식으로 기명조 인되어 있으며, 법적으로 미비한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소." 보라즈 경이 끼여들었다. "따라서 지금은 채무의 유효성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요." 드리스가 말했다. "문제는 누가 지불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당신들은 채무반제자를 결정하기 위해 이 회의를 소집했단 말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합니다." 드리스가 말했다. "이 혹성은 지금까지 전쟁상태에 있었고, 더구나 정당한 주권을 지 닌 정부가 어느 쪽인지, 혹은 최종적으로 어느 쪽이 될 것인지 명확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로서는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 문서를 송달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드리스는 증서로 보이는 커다란 서류를 집어들었다. 조니가 손을 내밀어 받으려고 하자 드리스가 말했다. "안됩니다. 당신은 정부의 대표자가 아니니까요. 당신 스스로 그렇 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이것을 송달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채무자와 만나서 반재가능성 및 반제조건을 의논할 겁니다. 그곳 에서 합의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저당권을 행사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혹성은 경매에 붙여지고, 가장 높은 가격을 써넣은 입찰자에게 매 각됩니다." 조니는 처음부터 뭔가 의심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면 이 혹성의 주민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매각자의 마음대로지요. 그는 이 혹성을 전면적으로 소유하 게 됩니다. 주민을 어떻게 하든 새로운 소유자의 자유지요. 그것은 은행이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혹성의 매입자는 어떤 수속을 밟게 됩니까?"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보통 현금으로 지불하든가, 융자를 받아서 지불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매입자는 신용이 있으니까 융자한 도액도 크고, 다른 저당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요. 그들은 즉 시 이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에는 은행의 단 기대부를 이용해서 즉각 진압합니다. 원주민을 노예로 매각하여 지불 금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지요. 매입자가 자기네 별의 주민들을 대량 으로 그곳에 이주시키려는 경우에는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조니는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들은 그처럼 간단하게 지구를 비워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 입한 놈은 후회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저런저런!" 드리스는 조니의 말을 비웃듯이 얘기했다. "이 혹성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방위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 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원도 극소수입니다. 첨단무기를 가져오면 이 삼 일 내에 결판이 날 겁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연합군 따위는 파 리새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전국들도 주력함대는 전투에 투 입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까? 냉정하게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이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이며, 저당을 인수하고, 채무를 대신 떠맡는 다 는 것뿐입니다. 통상적인 운행업무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과연 그랬었군요. 그래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승폐 여부를 지켜보 고 있었다는 얘기군요. 그 서류를 송달하기 위해서...." "아니, 나는 당신들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밤 이렇게 당신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네 정부가 실제로 승리를 거두는 즉시, 교섭을 개시할 수 있도록 당신네 정부와 의 중개를 부탁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서류를 송달하고,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나에게 회담의 중개를 부탁할 생각이라면, 정부에게 얘기할 수 있 도록 그 서류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송달할 문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라면 괜찮지 않습니까?" 조니는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곳에는 혹성의 발견에서 융자 및 그 지불에 대한 세목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조니는 그 한장 한장이 조명에 잘 비치도록, 그리고 처음부터 천장 한구석에서 만찬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버튼 카메라에 잘 비치도록 조 심스럽게 읽어나갔다. 그 마지막 장에 커다란 양식이 첨부되어 있었 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체납통지서 ----귀하 (본 문서 송달시의 법적 보유자 및 점유자) --월--일 귀하를 은하은행으로부터 파견된 담당자와의 회담에 소환한다. 회 담목적은 당채무가 반제기한을 일 년--일 초과했을에도 불구하고, 어 떠한 형태의 반제, 혹은 지불연기 내지 소환조건에 관한 협약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당채무의 반제조건에 대해 즉각 협의하 는 데 있다. 이 협의에 있어서 채무자와 은하은행이 합의점에 도달하지 않았을 경우, 채무자는 상기 날짜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소유권, 점유권 및 사용권을 인도할 것을 요구당한다. 이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벌 칙이 가해진다. 전기한 담보대출의 미상환액은 사십조 구천육백이억 천칠백육십오 만 오천이백백십육 은하 크레디트이며, 이것은 원금 미지불분 및 원 금이자의 합계금액이다. 한편 원금 육십조 은하 크레디트는 사이클로 별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에 신용대부되고, 동회사의 지시에 따라 전기 혹성 제16우주 태양계 지구 구입을 위하여 은하은행 어음에 의해 전 액 사이클로 제국 정부의 구좌에 입금된 것임. 제16우주 제4섹터 본부, 바타포어 성계 벌로별 은하은행 지점장, 드리스 글로튼 (서명 및 날인) "당신들의 상환조건이라는 것은 뭡니까?" 조니의 질문에 드리스 글로튼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즉시 지불금으로 오조, 그리고 매달 오천억씩 분할 지불이라는 선 이지요. 지불이 밀린 경우에는 법적으로는 즉각 대부금 전액을 요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만 봐 도 은행이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당신들의 친구입니다. 절대적인 정직성 과 고결함을 업무에 핵심으로 삼고 있지만, 고객과의 관계도 매우 소 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조, 그리고 매달 오천억씩, 엄청난 금액이었다. 우리들은 현재 오십억 이천만 크레디트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다할 산업도 수입도 없다. 광물자원을 채굴한다고 해도 그런 돈을 당장 마 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니는 마음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리스는 이미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의외라는 듯이 드리스가 말했다. "아직도 일주일이나 유예기간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파격적인 대우입니다." "그렇다면 사절회의에서 슐레임의 신병문제와 다른 교전국과의 관 계가 결정되는 대로...." "오, 이 혹성의 소유권이 명확해지겠군요." 드리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당신이 회담준비를 해준다면, 우리들은 정부에 이 문서를 송달하 여 이 건을 처리하겠습니다." "당신네 정부에게는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자금 조달방법을 생각할 며칠 간의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보라즈 경이 말했다. "우리들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않을 건가요?" "그건 무리입니다. 이미 빌려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지구를 매각할 건가요?" "교전국들 가운데 어느 나라라도 기꺼이 살 겁니다. 당신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산업이란 담보도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들은 싸움에 승리한대 해도, 즉시 전면적인 패배를 당하 게 된다는 얘기군요. 토르네프인에게까지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구 요." "글쎄,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드리스 글로튼은 과장되게 양손을 펼쳐 보였다. "은행업무란 다 그런 것이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요." (6) 작전사령실 책상에 엎드려 잠자고 있던 스톰아롱은 깜짝 놀라서 눈 을 떴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는 긴장감에서 조니를 올 려다보았다. "일어나." 조니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잠자코 있는 불교도 통신 원 티니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무슨 일입니까?" 스톰아롱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적의 공격이 재개되었나요?" "그보다 더 나쁘다." 조니가 말했다. "그 왜소한 회색인들.... 티니, 빨리 일어나라니까." 그녀는 송장처럼 깊이 잠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 한 숨도 못자고 전투지휘의 통신업무를 맡아왔기 때문이었다. 조니는 만찬손님을 돌려보내고, 어둠에 휩싸인 분지의 내벽을 따라 서 걸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맥애덤이다. 룩 셈부르크의 지구혹성 은행의 맥애덤을 한시라도 빨리 불러와야만 했 다. 회색 사나이들을 정부와 회담시킨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은행업무에 정통한 사람에게 맡겨야만 한다. 티니가 부시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맥애덤이다." 조니가 외쳤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조니가 이처럼 당황해 하는 것을 보면 예삿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없습니까?" 조니는 스톰아롱에게 디스크 두 장을 내밀었다. 만찬내용이 처음부 터 끝까지 기록된 것이었다. "이것을 복사해주게. 만찬내용이 기록되어 있네." 스톰아롱으로서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시키는 대로 디스크 복제기에 넣고 복사했다. 그동안 티니가 아직 잠이 덜 깬 목 소리로 파리어의 콜 사인을 반복하여 룩셈부르크를 부르고 있었다. "룩셈브르크를 부르고 있는 건가?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스톰아롱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조니가 아직 전황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때문입니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있던 사람 들이 달려갔지만, 온통 불바다라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러시아의 지하기지에 화제가 발생했단 말인가. "당신도 그곳에 가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중앙 입구의 바로 밖에 검은 가연성 물질을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뭔지 알겠습니까?" 석탄이었다. 겨울철에 대비해서 쌓아둔 석탄더미였다. "그것은 석탄이다. 불타는 검은 돌이다." "그 기지를 건설한 것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석 탄광맥 바로 위나 그 근처에 세웠기 때문에 전투중에 불이 붙었던 것 입니다. 싱가포르에서 달려간 사람들은 기지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습 니다. 인원수가 적고, 광산펌프도 없기 때문이지요. 펌프가 있다해도 근처에 물이 없으니까 어떻게 도리가 없을 겁니다. 그들은 구원을 청 해왔습니다. 기지로 들어가려면 우선 불을 꺼야 합니다. 룩셈부르크는 공격을 받지 않은 유일한 방위기지로, 그곳에는 탱커 수송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방위조가 탱커에 물을 가득 싣고 러시아로 날아간 겻 입니다. 두 시간쯤 전입니다. 그 이후로 러시아 기지에 관한 아무런 연락도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방위조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구요." "하지만 지구혹성 은행에 무선이 있지 않은가?" "있기는 있습니다." 스톰아롱은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나 이런 한밤중에 누가 무전기에 붙어 있겠습니까. 그곳은 방 위 네트워크 안에 들어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가는 수밖에 없겠군. 남아 있는 비행기는....?" "안됩니다." 스톰아롱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로버트 경으로부터 당신을 이곳에서 절대로 내보내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쪽에 조종사가 없다면 맥애덤은 이곳에 올 수가 없다. 룩셈부르크에는 조종사가 한 명도 없을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에딘버러에 조종사를 파견하여 맥애덤을...." "말도 안됩니다. 에딘버러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암반 밑의 터널망이 전부 붕괴되어 방공호 속에 생존 자가 있는지 조사 확인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생종자가 있을 경우에 대비해서 호스와 펌프로 터널에 공기를 들여보내는 데는 성공 했답니다. 현재 콘월에서 굴착기를 수송하고 있는 중인데, 차량운전 을 위해 조종사가 필요합니다. 바록 한 명이라고 해도 보내줄지 어떨 지...." "이곳에는 비행기가 있는가?" "물론 있습니다. 다섯 대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낼 수는 없 습니다." 티니가 조니 쪽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안됩니다. 룩셈부르크 채굴장에서도, 은행에서도 응답이 없습니 다. 저쪽은 지금 새벽 두시니까요." "내가 가겠다." "안됩니다." 스톰아롱이 말렸다. 스톰아롱은 눈을 껌뻑거렸다. 두 시간 정도 잤으므로 졸음이 문제 되질 않았다. 그러나 조니를 이곳에 혼자 남겨놓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니, 당신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혼자 처리해야 됩니 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면 전투기를 조종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전세 계의 전투를 지휘하지 않으면 안된다구요." "티니를 데리고 가서 비행기 안에서 전투채널로 지시하면 되네." 조니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공중전을 해야 할 경우는 없을 거야. 진짜 싸움터 는 하늘이 아니다. 저기, 저 회색인들이 있는 곳이다. 룩셈부르크까 지 가는 동안 깨어 있을 수 있겠나?" 스톰아롱은 어깨를 추스려 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자네가 복사한 만 찬기록 디스크를 가지고 룩셈부르크로 달려가서, 맥애덤을 찾아 이렇 게 전해주게. 즉시 그 카피를 보고, 어떻게든 채무 처리방법을찾아봐 달라고 알겠나?" "채무라구요?" 스톰아롱이 의아해 하며 반문했다. "그래, 채무일세, 그것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이번 전쟁 에 패배하게 되네. 설사 싸움에 이겼다고 해도 진 것이나 다름없게 된단 말일세." 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29 부 돈과 황금은 영혼을 지배할 수 있다 (1) 그 후 이틀 동안은 조니의 생애에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우 리 안의 생활, 무인폭격기의 격투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고통스러웠다. 비행기를 타고 떠난 스톰아롱이 실종되 어버린 것이었다. 조니는 계속해서 무선으로 그를 찾았지만 헛일이었 다. 룩셈부르크의 은행사무실은 열려 있어서 무선으로 부르면 응답은 했지만, 그곳에는 여직원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고, 카리바에는 그녀 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프랑스어라고 하던가. 조니가 맥애덤을 찾자 그녀가 응답했는데 그 말 자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회의실의 사절들은 재판일로 바빠서 그에게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지만. 조니는 직전사령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긴급사태에 대비해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촌원 수장에게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몇 분 동안 밖에 나가는 일 외에는 사령실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 나 사실 조니가 꼭 해야 할 특별히 중요한 일은 거의 없었다. 설사 긴급사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원도 방위전력도 없었고, 지구방위에 임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조 니 한 사람뿐이었다. 여성 통신원 티니는 많은 도움이 되었으나, 불 교도의 여승이라 하더라도 잠을 견뎌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앵거스는 이따금 전송장치를 조작해서 아사트 위성의 운명을 마지 막까지 추적하기 위해 토르네프의 산에 이동촬영 장치를 보내놓고 있 었다. "나는 토르네프에 지진이 발생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앵거스가 조니에게 말했다. "어떤 성계의 질량을 변화시킬 경우, 중력의 분포에도 변화가 일어 날 거라고 추측해볼 수가 있어요.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만일 달이 파괴된다면 지구에서 지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토르네프에 있는 우리들의 이동촬영 장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조니는 분지에서 모터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나왔다. 앵거스가 브레이드 차량으로 케 이블 밑의 터널을 통해서 호반에 떨어진 주력전함의 거대한 파편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앵거스가 찾아왔다. 조니와 함께 국수를 먹으면서 그 는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 금속파편을 아사트에서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놓아두었어 요. 내 예측으로는 그것은 가스 속을 낙하해서...." "가스라고?" "네, 아사트는 이미 가스덩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한동안은 거무 스름했는데 점점 투명해졌습니다. 지금도 가스구름은 눈에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빛을 통과시킵니다. 사이클로인이 이 폭탄을 좀처럼 쓰 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들의 주요 산업은 광산업이니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금속이지 가스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금속조각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이 가스 속을 통과해서 계속 떨어지다가 결국에는 토르네프의 지표에 충돌할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낙하는 했지만 가스 구름의 중심에 가서 멈추어버렸습니다. 사진을 보시겠어요?" "흐음, 그 구름 속에 뭔가를 보낸 생각은 아예 말게. 반동 때 그곳 의 물질이 이곳으로 튕겨져 올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물론 그런 실험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최종 폭탄이 모든 것을 가스로 바꿔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용하는 대상이 아무것도 없어져버리는 셈이고, 그 반응이 일단 완료되면 다 시 한 번 자연발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분석기의 검출결과에 의하 면, 그것은 질이 아주 낮은 가스입니다. 즉 수소라구요." "최종 폭탄은 저차원의 핵분열을 일으키지. 그것은 중금속의 원자 를 분열시키거든,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네가 한 말을 추측해보 면 대강 그런 얘기로군. 그래." "그런데 달의 질량변화가 지금까지는 중력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 정도의 차가움이라면 가스는 일종의 액체가 되고, 달은 직경이 훨씬 큰 기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속을 통 과해서 비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건 굉장하군, 하지만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게." 앵거스는 국수그릇을 비웠다. "나는 다만 달이 파괴되었을 경우, 좌표에 혼란이 일어나는지에 대 해 당신이 알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질량의 이동은 좌 표를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있는 좌표는 무용지 물이 되는 셈이지요." "그렇군, 좋은 것을 착안했군 그래" 조니의 말에 앵거스도 동의했다. 다른 지역에셔 들어오는 소식들은 그다지 고무적인 것이 못되었다. 상황이 특별히 악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소식으로는 크리시나 스코틀랜드 사람들, 그리고 러시아 기지에 가 있는 고향마 을 사람들 소식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피어거스 수장은 빈사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는 긴급수혈을 받은 후, 애버딘의 동굴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소생할 가망은 거의 없었다. 에딘버러에서는 터널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방공호 속에 에어호스를 집어넣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는 소눔이 떠돌고 있었지만, 방공호 속에는 무전기가 없었고, 드릴과 펌프가 굉음을 내고 있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에딘버러의 시가지는 피어오르는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로크 성도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 해 터널을 뚫는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되고 있었다. 러시아 기지로부터 들어온 소식도 비슷했다. 지상의 화재는 꺼졌으 나 지하는 아직도 불타고 있었으며, 그것이 방공호가 있는 지층까지 도달했는지는 불분면하였다. 거대한 철문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고, 호나기터널은 구불구불한 데다가 장갑과 팔터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 래서 구조대는 철문 옆에 새로운 구멍을 뚫기고 하고, 지하의 불 때 문에 뜨거원진 지표면의 굳은 바위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드리스 글로튼이 자취를 감춘 것도 조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근 무중이던 대공포 사수의 얘기로는 그는 새벽녘에 자신의 우주선이 놓 여 있던 근처로 와서 새로운 한 쌍의 신호등과 무선표지를 설치해두 도록 명령하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그의 행방을 추적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빨갛게 점멸하는 신호등 과 회의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모든 함선에게 경고하는 무선표지 만이 있었다. 보라즈 경에게 그 일을 묻자, 태연하게 그것은 아마 지 점장의 권한에 속하는 일일 것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 조니를 가장 놀라게 만든 것은 로고데터 스 놀 소령의 갑작스런 내방이었다. 사절단이 그를 증인으로 소환한 것 이었다. 조니도 대공포 사수도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통고받은 바가 없었다. 조니가 처음으로 그것을 안 것은 대공포가 불을 뿜었을 때였 다. 액체 타입의 돔 경이 해파리처럼 작전사령실로 굴러들어와서 포 격을 중지하라고 고함쳤기 때문에, 조니는 포수에게 사격을 중지시켰 었다. 다행스럽게도 포격은 유효 사정거리 밖이었고, 앵거스는 전송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소형 함정으로 착륙허가 수속 도 생략한 스놀 소령은 하마터면 격추당할 뻔했던 것이다. "그는 증인으로 소환된 것이다. 재판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가?" 돔 경이 외쳐댔다. 재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조니는 허리춤에 테르밋탄을 장전하 한 스미스 앤 웨슨 권총을 차고, 귀가리개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밖 으로 나가서 토르네프인이 이곳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직접 휴대용 무전기를 들고 소함정을 유도했다. 조니는 스놀을 본 순간, 그자리에서 사살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 꼈으나, 일단 그의 시각필터만을 압수하는 데 그쳤다. 예비필터가 없 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직접 회의실까지 데리고 갔다. 토르네프인을 회의실에 남겨놓고 나오면서 조니는 사절들에게 말했다. "로고데터는 카리바에 있는 동안은 완전히 장님상태입니다. 그의 임무가 끝나면 작전사령실의 나를 부르십시오. 그를 소함정까지 직접 호위하겠습니다." 다섯 시간 뒤, 사절들은 조니를 불러 로고레터를 소형 함정까지 데 리고 가게 했다. 조니는 미리 촌원 수장에게 명령해서 소형 함정의 내부에 검은 칠을 해놓도록 했다. 그것을 본 로고데터는 뭐라고 입을 움직였다. 유리를 닦지 않으면 궤도상에 있는 자기의 우주선으로 돌 아갈 수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겠지만, 귀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조 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조니는 로고레터에게 필터를 돌려주었다. 입술의 움직임으로 추측 하면, 토르네프인은 그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또, 너로구나." 조니는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그래, 나다. 너에게 한마디 해둘 것이 있다. 이다음에 지구 위에 서 만났을 때는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다. 알겠느냐? 자아, 썩 꺼져 버려라." 소형 함정이 떠난 뒤, 조니가 귀가리개를 벗자 대공포 사수가 '사 고였다'고 둘러대고, 소형 함정을 격추시켜버리도록 해달라고 했다. 조니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자신도 똑같이 느 꼈으나 참아야만 했다. 조니는 작전사령실로 향했다. 스톰아롱에게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룩셈부르크와의 교신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크리시 에 대해서도, 고향사람들로부터도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가까운 사 람들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이 이틀 간은 끔찍하게 괴로운 기간들이 었다. 지금까지의 폭풍 같은 생활보다, 꼼짝 못하고 대기하고 있는 쪽이 훨씬 괴롭다는 것을 조니는 실감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과 지구의 운명이 마음에 걸려서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날 밤 여덟시, 보라즈 경이 찾아와서 조니를 고용하고 싶다는 제 안을 했다. 그것은 조니의 기분을 더욱 상하게 했다. 보라즈 경은 그 에게 연봉 오천 크레디트에 글레디데스 성계로 와서, 평생 텔레포테 이션 제어탁자를 제작할 수 있는 직장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조니 는 자신도 모르게 울화통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이틀 이었다. (2) 그 이튿날, 사태는 약간 진전되어 있었다. 그날 밤, 작전사령실의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잠자고 있는 조니를 돔 경이 흔들어 깨웠다. "앞으로 두 시간 후에 재판의 심리결과가 낭독되고, 투표가 행해질 겁니다." "나는 정부요원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그러나 이 재판은 당신이 개인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으 니까 출석해야 합니다. 배상에 대한 발표도 할 예정이니 꼭 참석하시 오." 배상이라는 말에 조니는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 그것은 은하은행에 대한 부채를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일까. 아니면 최소한 첫 회 분의 지불금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까. 어젯밤에는 통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티니도 의자에 앉아서나마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조니는 작전사령실을 그녀에게 맡기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툰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조그맣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꼭대기에는 푸른색 단추가 달려 있었다. 오랜 숙원이었던 시종자리를 얻은 그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다녔다. 그는 조니를 보자 절을 하 고, 광산수레에 욕조를 싣고 와서는 전처럼 조니의 몸을 씻겨 몸단장 을 시키고, 식사를 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가느다란 끈으로 목에 매단 작은 상자에 대고 속삭였 다. 그러자 그곳에서 단조로운 전자음으로 영어가 흘러나왔다. 조니 가 깜짝 놀라 그것을 바라보자, 툰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것은 회색 사나이, 드리스 글로툰이 출발하기 전에 은하은행 구 좌를 개설한 기념으로 선물한 것입니다. 드리스 글로툰이 그의 우주 선 문서창고에서 만다린 궁정어 회로를 찾아내 복사해준 것입니다. 이 조그만 스위치가 보입니까? 이것을 위로 올리면, 만다린어가 영어 로, 중간에서는 만다린어가 사이클로어로, 밑으로 내리면 영어가 사 이클로어로 나옵니다. 하지만 영어를 중국어로 바꾸니까 이상한 음이 되더군요.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한 보코더입니다. 끝에 있는 작은 빛이 보이지요? 만다린 문자를 이 빛 위에 통과시 키면 영어와 사이클로어를 읽어주고, 사이클로어나 영어를 만다린어 로 바꿔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어떠한 언어라도 알아듣지 못하 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것은 체온에너지로 작동되어서 건전 지도 필요없습니다. 이제 나도 당신과 직접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입 니다. 물론 영어공부는 계속하겠습니다. 내 말이 이렇게 외마디 기계 음으로 울리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요. 드리스 글로툰은 매우 좋은 사람 같더군요." 준비위원 없이 툰과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고마웠지만, 자신이 은하 은행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씻어버릴 수가 없었다. 툰은 스위치의 위치를 다시 되돌렸다. "당신은 재판을 방청하러 가야 합니다. 그 판결에는 당신도 관려되 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유죄가 될지 무죄가 될 지는 모르고 있으니까. 다만 예의바르게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계십 시오. 만일 뭔가를 물어오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겁니다. 대답을 해서는 안됩니다. 머리만 약간 숙이십시오. 그러면 나중에 새로운 재 판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테니까요." 그것은 매우 좋은 충고였으나 조니의 긴장감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회의장으로 가는 도중에 작전사령실에 들러서 상황을 물었다. 촌원수 장은 스톰아롱은 물론 에딘버러나 러시아에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고 대답했다. 사절들은 전부 모여 있었다. 그런데 회의장의 좌석배치가 바뀌어 있었다. 정면의 한 단 높은 곳에 커다란 책상을 갖다놓고, 훠료팡 경 이 그곳에 앉아 있었고, 그 밖의 사절들은 그와 마주보는 형태로 정 연하게 앉아 있었다. 또한 벽 쪽을 따라서 의자나 나란히 놓여 있었 고, 윈치용 쇠사슬로 온몬을 묶인 채 얼굴만 내밀고 있는 슐레임은 연단의 책상과 사절들 사이에 놓인 광산이동차에 얹혀져 있었다. 돔 경은 조니에게 벽 쪽에 있는 의자에 앉도록 지시했다. 보라즈 경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조니를 사절단의 일원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 들은 조니 쪽으로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슐레임 과 함게 광산이동차에 실려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조니는 스스로를 달랬다. "이미 심리는 끝나 있소." 보라즈 경이 조니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모든 심리결과를 총괄해서 표결해야 되는 거요. 이것은 사 실 재판이라기보다는 조약이오. 지구의 사절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군. 그러나 서명하게 될 때까지는 그가 없어도 진행에는 차질 이 없소." 훠료팡 경의 신호에 따라 보라즈 경이 개회를 선언했다. "해적행위의 정의변경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합리점에 도달하여 조 약형식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의변경은 이번의 심리 결과와 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이 변경은 이번 심리가 끝나는 대로 행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요, 여러분?" 사절들은 훠료팡 경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재판을 현행 심리결과에 조문에 의거하여 전 행하겠습니다. 로고레터 스놀 소령의 중언이 청취되었고, 그것은 모 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회의장이 성역임을 무시하도록 그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토르네프의 전 사절인 슐레임이며, 본회의 는 상기한 스놀의 증언과 증거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특히 그가 토 르네프 사절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신빙성이 있다고 간주됩니다. 따라서 스놀은 무죄입니다. 여 러분의 표결은 어떻습니까?" 사절들은 모두 동의했고, 훠료팡 경은 계속 진행해나갔다. "그런 이유로, 상기한 전 토르네프 사절, 슐레임이 고의적으로, 그 리고 악의를 가지고 토르네프군에게 회의지역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는 것이 본회의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전원이 동의했다. 다만 사슬에 묶인 슐레임만이 쉭쉭 소리를 내며 침을 뱉았다. "또한 다음의 사실도 목격되고, 입증되어 있습니다. 상기한 토르네 프 사절이 합법적 임무를 수행중인 다른 사절들을 마비시키고, 발포 하여 살해하려고 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조항에 위반되는 일 입니다. 그가 위반한 조항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여기서 낭독하는 것은 피하겠지만, 이 점에 대한 표결을 부탁합니다." 전원이 찬성했다. 그러나 슐레임은 여전히 쉭쉭 소리를 내며 침을 뱉았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조직된 본회의에 의해, 그리고 여기서 체결된 혹성간 조약의 효력에 의해서, 앞으로 백 년 간 토르네프를 법외 방 치 종족으로 치부할 것을 선업합니다. 여러분의 표결을...." 모두들 분노심을 나타내며 찬성했다. "토르네프 종족 및 토르네프별의 모든 대사관, 공사관, 영사관은 폐쇄당하며, 그 외교단은 추방되고, 앞으로 백 년 간 일반 외교업무 는 하우빈 대사관, 공사관, 영사관에 의해 대행됩니다. 여러분, 이 안에 동의합니까?" 사절들은 동의했다. "상기한 슐레임의 신병안전과 토르네프별로 송환하는 문제는 본회 의에 의해 보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회의는 유감의 뜻을 표명하 기 위해, 상기한 슐레임을 벌거벗긴 채 쇠사슬로 묶어 토르네프별 크 리스 시의 공공 노예시장으로 전송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본회 의의 유감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에 동의합니 까?" 사절들은 모두 동의했다. 슐레임은 쉭쉭 소리를 내며 침은 탁탁 뱉 고 있었다. 조니는 오로지 배상문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실 현성이 매우 희박했지만 희망임에는 틀림없었다. 훠료팡 경은 계속했다. "토르네프별은 많은 전함을 가지고 있고, 또한 토르네프의 장교가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이므로, 연합군에 참가한 토르네프 외의 교전국 은 국가 차원의 죄가 면제됩니다. 본회의는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 러나 본회의장의 상공에 그들의 군사력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위협 이 되기 때문에, 면제는 이하의 조건에서만 인정됩니다. 첫째, 연합군은 토르네프 함대가 모든 포로를 어떠한 위해도 가하 는 일 없이 지구군 사령관이 지정한 장소에 석방하도록 조치할 것, 둘째, 각 종족이 포획한 포로를 어떠한 위해도 가하는 일 없이 같은 장소나 인접한 장소에 석방할 것, 셋째,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동원하 여 강제로라도 토르네프 함대를 토르네프별까지 호송할 것, 넷째, 토 르네프 함대를 토르네프별의 지표에 착륙시킬 것, 본회의의 결정에 의해서, 토르네프 함대는 두번 다시 이륙할 수 없게 된다. 다섯 째, 연합군은 각각 본국으로 귀환할 것. 이상입니다. 이 조건에 해당되는 것은 볼보드, 하우빈, 포크너, 쟘비초, 드로킨 의 군대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모든 군사력 및 다른 혹성, 혹은 다른 국민의 군사력은 이 성계 밖으로 철수해야만 됩니 다. 이 건에 대한 표결을 부탁합니다." 그때 이들 교전국을 대표하는 사절도 투표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내 생각에는, 지구군 사령관도 정부대표도 없으니까. 당신이 포로 를 반환할 장소를 지정해야 할 것이오." "알았소." 보라즈 경의 말에 조니는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잡은 저들의 포로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도 없는 데요." "이것은 평화조약이 아니오. 이 회의에 대한 모욕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오. 내가.... 그.... 지구인 포로에 대한 조항을 집어넣게 한 것 이오. 그것은 혹성의 재산에 속하니까요. 당신들이 잡은 연합군 포로 가 문제되는 것은 평화조약의 경우뿐이오. 게다가 저들이 포로를 다 시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 병에 감영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즉 그들은 당신들이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 소, 그러나 당신들은 안심해도 좋소, 조문에 '어떠한 위해도 가하는 일 없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재산? 당신은 회수할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밖에는 관심이 없군, 하 고 조니는 생각했으나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구인 포로가 모두 반환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사절들은 결국 교전국의 사절에게도 투표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쪽이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표결은 만장일치였 다. "회의법에 따라서, 전 사절인 슐레임에 대한 개인적 폭행애 관해 언급해야만 됩니다." 보라즈 경이 조니의 팔꿈치를 찔렀다. "당신에 대한 일이오." "조니 굿보이 타일러라는 자는 앞에서 언급한 슐레임에 대해 홀내 지 곤봉을 던져서 그를 쓰러뜨렸소. 하지만 본회의는 상기한 타일러 를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표결하시겠습니까?" 사절들은 그것에 찬성했고, 슐레임은 몇 번씩이나 침을 뱉았다. "자아, 다음이 기분좋은 장면이오." 보라즈 경이 속삭였다. "조항 103, 즉 회의참가자를 보호하고, 그 생명을 구한 공로에 관 한 조항에 따라서, 조니 굿보이 타일러에게 붉은띠 훈장을 수여합니 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슐레임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한 공적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회의의 의향으로 간 주해도 되겠지요?" 박수소리가 울렸고, 사절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옆에 서 보라즈 경이 속삭였다. "팔만 삼천이백육십이 년 전에, 차토바리아의 베어즈 여왕이 이 훈 장을 제정했소, 그 유래는 회의에 출석하고 있던 그녀의 애인이 암살 당하려고 했을 때, 수행원이 그것을 저지하여 생명을 구해준 사건이 었소, 수행원은 그때 단검으로 경미한 상처를 입었지요. 그때 붉은띠 로 그 상처를 치료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에서 유래된 이름이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책을 꺼내 펼쳐들고 무엇인가를 찾았다. "이것으로 당신은 '경'이란 칭호를 부여받고, 이천 크레디트의 연 금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은 당신을 위해서 그 기금을 운영하겠소. 메모를 해둬야겠군." 박수소리가 계속되자, 브라울 경은 조니에게 일어나서 절을 하도록 지시했다. 조니는 그 지시에 따랐으나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 훈장은 윈드스프리터의 목에나 걸어주자. 이 친구들이 수여하는 명예 따위는 원치 않는다. 그것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배상금 의 의제에 오르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앗, 그 얘기가 나온다. 훠표팡 경은 숫자가 적힌 기다란 두루마리 종이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사절과 이 혹성의 존엄성이 앞에서 언급한 슐레임의 괘씸한 공격, 혹은 공격미수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것도 명백합니다. 벌금 및 배상금으로, 본회의는 토르네프별에 일조 은하 크레디트를 부과할 것입니다." 훠료팡 경은 서류를 들춰보았다. "교전국의 사절은 고의, 또는 의도하지 않은 공모에 의한 혐의에 대해서, 배상금의 수취인으로부터는 제외됩니다. 먼저 협의한 대로 그 총액은 각 사절들이 대표하는 국가의 인구비율로 배분됩니다." 그는 각 사절들이 대표하는 국가의 인구 수를 나타내는 많은 숫자 를 낭독했다. "본회의는 그렇게 합의합니까?" 사절들이 몇 개의 숫자를 수정했다. "이래 가지고는 지구는 거의 아무것도 못 받게 되지 않소?" 조니가 보라즈 경에게 속삭였다. "이 사절들 가운데는 몇천 억이나 되는 인구를 대표하는 자들도 있 소." 보라즈 경이 마주 속삭였다. "차토바리아는 칠백 개의 혹성에 사십구조에 가까운 인구를 가지고 있소, 당신들은 몇 명이나 있지요? 삼만 삼천 명 정도지요?" 사절들은 수정된 숫자를 승인했다. 조니는 숨을 죽였다. 지구가 입 은 손해에 대해서도 업급될 것인가. "재정상의 모든 조치는 은하은행의 관행대로 행해집니다." 훠료팡 경은 이 점에 대해서는 참가자의 합의의 구하지 않았다. 보 라즈 경은 고개만 끄덕였다. "이것으로 심리결과의 확인을 마칩니다. 이상 표결된 것을 정식문 서로 작성되어, 서명 및 입회인의 연서를 얻어서 유효화하는 것이 본 회의의 의도입니다." 조니는 서둘러 보라즈 경에게 속삭였다. "잠깐 기다려요. 그들은 수많은 도시를 불태웠다고 주장했소. 우리 들은 막대한 전쟁피해를 입었단 말이오." "나도 그것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했소, 그러면 지구의 가치가 올라 갈 테니까 말이오." 보라즈 경도 마주보며 속삭였다. "그러나 이것은 평화회담이 아니고, 회의 자체를 위반한 것에 대한 재판이고 조약이란 말이오." 지구에 대한 배상금은 없단 말인가. 조니는 박차고 일어나서 소리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만일 로버트 경이나 맥이덤이 이곳에 있어 주었다면.... "일조 크레디트의 과징금은 중벌이오. 그것은 토르네프별의 경제전 체를 붕괴시킬 거요. 설사 지구가 파괴된 도시에 대해 손해배상을 얻 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징금을 지불하고 나면 토르네프별은 지 구에 보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까 이것으로 만족 하시오. 어쨌든 적군은 없어지지 않았소?" 그리고 이곳의 소유권을 주장할 도전자도 없어진 셈이었다. 조니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제 우리들 앞에는 은행저당물의 공매 처분 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자금은 전혀 없다. 훠료팡 경이 조니에게로 다가왔다. "당신들의 대표가 없군요.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오. 이것이 심리결과를 무효로 만들거나 변경시킬 수는 없소. 하지만 그가 여기 에 있으면서 서명하지 않으면 조약은 무효가 되어 전쟁은 종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정부에 연락해서 즉시 대표자를 이곳으로 불러오 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내일 오후면 이들 서류가 정식으로 작성돼 서명만이 남게 됩니다. 그가 이곳으로 오도록 준비해주시겠소?" "나는 대표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소." 조니의 말을 잘라내며 훠표팡 경이 말했다. "그것을 활용하시오. 우리들도 빨리 결판은 내고 고국으로 돌아가 고 싶소." "그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아요." 보라즈 경이 속삭였다. 얼굴을 든 조니는 드리스 클로툰이 문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돌아와 있었다. 조니가 밖으로 나갔을 때, 드리스가 보라즈 경에게 물었다. '지구의 대표는 옵니까?" 보라즈 경이 조니를 가리켰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올 건가요?" 드리스가 조니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해봅시다." 조니의 말에 드리스와 보라즈 경은 얼굴을 마주보고 싱긋이 웃었 다. 조니는 지구에 대한 배상금 문제에 너무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웃는 것을 못 보고 지나쳤다. (3) 조니는 가슴 가득 분노가 치밀었다. 전쟁! 저 사절들이나 정부가 그렇게 한마디 하면, 저들의 함대가 달려와서 누군가를 박살내려고 머리 위로 공격해 온다. 박살을 내고 나면 의기양양하게 철수할 뿐, 그들이 지구의 생명이나 재산, 그리고 생활에 어떠한 피해를 입혔는 가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그리고 좀더 철저하게 때려부수기 위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조니는 분지의 제방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한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공기를 교환하는 환풍기가 부드러운 산들 바람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사격호 안에 있었다. 그 아이들은 주워모은 천조각 으로 만든 차일의 그늘 속에서 조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끈에 묶여진 몇 마리의 개가 코를 킁킁거리며 조니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 다. 아기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난 어린이들은 발을 포개고 앉아서 식 사하고 있었는데, 조니가 지나가자 싱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보 였다. 그것을 보면서 조니는 생각했다. 어째서 이 어린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왜 이 아이들은 행복하고 안전한 미래를 맞이 할 수 없는 것일까. 전쟁!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정부는 무슨 권리가 있어서 우리들의 약하고 무력한 동포를 살육하는 것일까. 그들은 무 엇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고 생활을 엉만진창으로 파괴하는가. 그것을 국가의 정책, 국가의 존속, 또는 뭐라고 하든간에 결국은 살인인 것 이다. 그렇다. 저 사이클로인들! 그들에게는 무슨 권리가 있어서 지구를 습격한 것인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육을 하고 도둑놈처럼 훔 치는 것이 그들이 방식이었다. 조니는 지금의 방문자들이 찾아오기 전, 그들이 압제자로부터 해방 되었을 때의 일을 생각해냈다. 사람들은 삶터를 복구하려고 모두들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방문자들이 은행과 함께 찾아왔다. 확실히 조직은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비인 각적이고 비정한 정부를 만들 권리는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다. 조니는 브라운 린퍼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수많은 어리석은 짓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저 사절들에 비하면, 그는 분별력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조니는 다시 한 번 어린 아이들에게 시선을 보 냈다. 그리고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끝장내겠다. 어 떤 일이 있더라도. 조니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촌원 수장이 손을 잡고 흔 들지 않았으면, 부르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주장은 조니를 작전사령실로 끌고 들어갔다. 티니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녀의 헤드폰에선 파리어의 통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고는 조니 쪽으로 돌아앉았다. "러시아에서 구출활동을 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인 장교의 통신원입 니다. 그들은 환기구에서 녹색 연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답니 다. 내부에 있는 누군가아 환기구의 샤프트를 떼어낸 것입니다. 지금 윈치로 사람들을 구출해내고 있답니다." 보고는 일 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어왔다. 보고를 받던 티니가 조 니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이반 대령이, '조니 원수에게 용감한 붉은군대는 아직 건재하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조니는 대답하려고 했지만 감격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티니가 말했다. "당신에게 또 한 통의 통신이 와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합니다." 그녀는 예비헤드폰와 마이크를 조니에게 주었다. 보안조치 따위는 상관없이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조니예요? 여기는 톰 스마일러 타운젠입니다." 조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니, 마을사람들은 모두 무사해요. 모두 건강합니다. 조니, 듣고 있나요. 조니?" "천만다행이군 그래.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고 마을사람들 모두에 게 전해주게. 정말 무사하기 다행이야." 조니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조니는 의자에 앉았다.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자신이 마을사람들의 일을 이처럼 근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그것을 강철 같은 의지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보고에, 조니는 바빠졌다. 정전조약에 대한 기 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해야 했다. 고함소리와 환성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러시아 기지에는 부상당한 조종사가 다섯 명, 그 리고 회상환자가 상당수 있어서, 스코틀랜드로부터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조니는 에버딘의 옛날 지하병원이 개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상처가 심한 화상환자는 그곳까지 비행기로 데려가게 했 다. 그리고 간호사 한 사람을 타시켄트로 보내 비교적 가벼운 화상환 자나 부상자들을 간호하도록 준비시켰다. 그러한 일들에 너무나 바쁜 나머지, 조니는 로버트 경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때 드리스 글로툰이 촌원 수장을 통해서 재촉을 해왔다. 조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피하고 있었다. 로크 성에서는 아직 구출대책 이 세워지지 않았으므로, 웬만한 일로는 로버트 경을 이곳으로 오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훠료팡 경에게 부탁해서 서명을 하루 연기시 켜달랄 수는 없을까 하고도 생각해보았다. 로버트 경을 설득하는 데 는 애를 먹을 것 같았다. 조니는 무선으로 연합군에게 붙잡혀 있던 포로들을 에버딘의 서쪽 오십 마일 지점에 있는 발로럴 성에 내려놓도록 준비시켰다. 그곳을 상공에서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근처에 높은 언덕 세 개와 강이 있었고, 또 그곳은 거대한 폐허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에버딘 에서 오십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과거의 형태가 잘 보존된 도로가 뚫려 있었다. 무선연락을 끝낸 조니는 밖으로 나가서 하우빈인 사절과 만났다. 현재 궤도상의 함대와 지상과의 연락은 하우빈인이 맡고 있었던 것이 다. 그는 하우빈인 사령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현지의 지도데이터 를 건네주었다. 사절에 따르면, 함대는 마지막 서명 전에 포로를 반 환해도 좋다고 말하며 오늘 오후에라도 끝낼 수가 있다고 했다. 포로 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불분명했으나, 각 함대에서 착륙선을 내보내 기로 되어 있었다. 조니는 그 일에 관해서는 함대와 스코틀랜드의 토 르에게 맡겼다. 수습대책이 지연될수록 스코틀랜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게 치닫 고 있는지 통감되었다. 로버트 경을 부르는 일이 점점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드리스 글로튼은 다시 한 번 촌원 수장을 통해서 조니에게 재촉을 해왔다. 회색 사나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로버트 경을 불러 들이고 싶은 것 같았다. 조니는 할수없이 스코틀랜드의 통신원에게 로버트 경의 행방을 수 소문하게 하여, 마침내 로버트 경과 무선으로 통화했다. 예상했던 대 로 로버트 경은 굉장히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더러 그곳으로 오라고?" 로버트 경은 통신원을 통해서 말했다. 중간에 통신원의 파리어가 들어가 있었으나, 그는 조니를 호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자네는 로크 성 밑의 방공호에 이천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더구나 그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단 말일세. 대형 폭탄이 모든 입구를 막아버렸네.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에어호 스를 집어넣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장담할 수가 없네. 로크성의 벼 랑 쪽은 산산조각이 나 있어서 착공기를 집어넣을 때마다 벼랑이 무 너져내린단 말일세. 드와이트는 여기에 있네. 드와이트 콘월에서 터널의 틀판을 가져와 낙반을 막아보려 하고 있네. 자네는 우리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하니 서 있는 줄만 생각하나? 자네는 그 태평스러운 사절들과 차 라도 마시고 있을 테니까 속편한 소리를 할 수 있겠지. 계속 그렇게 차나 마시고 있게나. 그러나 여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만은 작업을 계속하도록 해주게. 방해는 하지 말라구...." 그의 서명을 없으면 방문자 문제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로버트경 에게 납득시키는 데 꼬박 반시간이나 걸렸다. 마침내 로버트 경은 굴 복하여, 통신원의 파리어로는 통역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많은 욕설 을 퍼부어대면서도 어떻게든 조종사를 찾아내어 그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무선이 끝나자 조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버트 경을 설득 하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그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 문이었다. 엘렌 큰어머니와 크리시도 그 방공호 속에 갇혀 있을 것이 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맨손으 로 땅바닥을 파헤쳐서라도 구출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의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색 사나이는 촌원 수장에게서 로버트 경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4) 북쪽 밤하늘로부터 별빛 같은 섬광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비행 물체가 카리바를 향해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대공포 사수로부 터 내선으로 이 비행기가 아군기이며, 착륙허가를 요청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니는 그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보러 갔다. 문이 열리자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어둠 속에 흰 얼굴이 어렴풋하 게 떠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에 온통 붕대를 감고 있었다. 더 넬딘이었다. 두 사람은 재회의 기쁨에 서로 얼싸안았다. 더넬딘은 조 니를 밝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신은 수염을 절반이나 깎아버렸군요. 보기 좋은데요. 사실은 내 수염이 절반쯤 타버려서 난처해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이발사를 소개해주지 않겠어요?" "격추당했나?" 조니는 더넬딘의 얼굴을 온통 감고 있는 붕대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내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더넬딘은 펄쩍 뛰듯이 말했다. "볼보드인이나 드로킨인, 포크너인 따위에게 에이스 중의 에이스인 내가 격추당할 리가 있나요? 아니예요, 조니. 불 끄는 일을 도와주다 가 당한 것라구요.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화상은 아니예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닥터 알렌은 환자를 어린애처럼 둘둘 감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이니까요." "그쪽 상황은 어떤가?" "좋지 않습니다. 다만 불길은 그럭저럭 잡았습니다. 드와이트와 토 르가 터널을 뚫으려 하고 있었는데. 낙반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어요. 뚜렷한 전망은 전혀 세울 수 없지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데 회색 사나이는 이곳으로 돌아왔나요? 저쪽에 있는 것이 그의 우주 선인가요?" "그가 에딘버러에 있었나?" "네, 그래요. 여기저기 질문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 바쁜 와중에 말입니다. 결국 그가 찾던 것을 발견했는지, 에버딘으로 날아 갔습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격추당할 뻔했다구요. 그는 국왕을 찾 고 있었어요. 피어거스 수장 말입니다." "수장은 어떤가?" "네, 그는 혈우병에 걸려 있어서 한 번 상처가 생기면 좀처럼 출혈 이 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싸움터에 나가는 것은 피하라고 항상 만류했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상처는 치명적인 것이니까요. 우리 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부상당해 있었습니다. 서둘러 애버딘 의 병원으로 옮겨 수혈을 했었지요. 회색 사나이는 안으로 들어오려 고 했는데 호위병들이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닥터 알렌은 그의 얘기를 듣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더넬딘은 깜짝깜짝 빛을 내고 있는 우주선을 가리켰다. "그 사나이는 지구 전역의 서적이나 장서를 수집하고 있는 것 같았 습니다. 닥터 알렌에게 국왕의 용태를 묻고, 둘이서 고대인의 방대한 장서들을 조사한 모양이더군요. 닥터 알렌이 혈액을 응고시키는 비타 민 K라는 복합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두 사람은 그 물질을 합성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압니까? 출혈이 멎었단 말입니다. 수 장은 회복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 회색 사나이는 도대체 뭘 하는 사 람입니까? 의사인가요?" "아나, 천만에. 그는 이 지역의 은하은행 지점장일세. 지구 정부를 안정시키기 위해 에딘버러까지 갔던 거라구." 조니는 수장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할 수 있었지만, 점점 더 은 행에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더넬딘에게 그들이 지구를 저당물 공매처분하려 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스톰아롱은 만나지 못했는가?" 더넬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로버트 경을 비행기에서 내려오게 합시다. 그는 죽은 듯이 자고 있어요." 로버트 경은 아직도 깊은잠에 빠져 있었다. 검게 변한 얼굴은 군데 군데 불에 그을려 있었고,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옷들은 모두 불에 타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로버트 경이 그 동안 지옥의 불길 속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를 광산용 이동차 에 태우고 병원으로 옮겨 진찰하게 했다. 손 외의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간호사가 B복합체를 주사하려고 주 사침을 찔러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툰과 그의 가족 이 급히 달려와 로버트 경의 상태를 보고는, 그의 방을 준비하기 위 해 서둘러 뛰어나갔다. 얼마 뒤, 그들은 로버트 경을 방으로 옮겨 목욕시킨 후, 불에 탄 수염과 머리칼을 다듬고 침대에 뉘었다. 그때까지 로버트 경은 의식 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니는 더넬딘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으 로 돌아갔다. 더넬딘은 상처를 치료받은 후 의자에 앉은 채 깊이 잠 들어 있었고, 간호사가 새로운 붕대를 그의 얼굴에 감고 있었다. 얼 굴의 화상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수염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조니는 새로운 붕대를 감고 있는 간호사를 제지하고, 툰의 딸을 불 렀다. 그녀는 가위를 들고 더넬딘의 수염을 조니의 수염처럼 꼼꼼하 게 손질했다. 조니는 더넬딘을 무전기 담당으로 앉혀놓고 스톰아롱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더넬딘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태 였다. 할수없이 그를 툰의 가족에게 맡기기로 했다. 에딘버러는 지옥 같은 상황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조니는 우선 무전기로 러시아를 불러냈다. 그곳에서는 기지에 갇혀 있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구출되고 있었다. 화상을 입었다고 해도 그 가운데 몇명은 활동할 수 있을 것이었다. 조니는 그들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러시아 기지에는 중국 본부에서 온 이백이십 명의 중국인, 시베리아인, 셀파 등이 있었다. 티니가 연락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통신임무에 종사하 지 않는 승려들이나 불교의 장서, 중국의 장서 등은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조니는 타시켄트와 에딘버러가 모두 밤깊은 시간임에도 구조대의 교대조를 에딘버러로 보내기 위한 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스톰아롱과 맥애덤의 행방을 알아내는 일이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여성 통신원의 '쥬느 콩파랑 파'라는 말만이 되 돌아오고 있을 뿐이었다. 뚜렷한 대책을 강구해내지 않으면 스톰아롱 이나 맥애덤의 소재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해야 되는 것일까. 조니는 또 다시 엄습해오는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5) 조약의 서명은 그날 오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돔 경과 드리스 글로튼이 작전사령실로 찾아왔다. 드리스는 무척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지구 대표자가 어젯밤에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서명 때는 반드시 그를 참석하게 하시오." 서명 예정시간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조니는 노령의 군사령 관과 더넬딘이 있는 방으로 갔다. 더넬딘은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었 지만, 건강을 회복해가는 듯했다. 그러나 로버트 경은 눈만 뜨고 있 을 뿐,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목한 상태였다. 할수없이 더넬딘만을 작전사령실로 데리고 갔다. "자네에게 이곳을 맡기고 싶네. 조약의 서명이 끝나는 즉시 나는 스톰아롱을 찾으러 가야 하네." 조니는 더넬딘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두 사람이 다시 로버트 경에게로 돌아갔을 땐, 늙은 스코틀랜드인 은 상처입은 곰처럼 저기압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른 체구에 팬티만 걸친 모습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촌원 수장이 갖다준 음식을 먹고 있 었다. "조약 서명이라고?" 그는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투덜거렸다. "시간낭비다. 놈들은 조약 따위는 지키지는 않는다구. 지구는 아름 다운 혹성이니까 어떻게든 자기네들 것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내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애딘버러의 그 가엾은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거 란 말이야. 아아, 자네 말이 모두 옳았어. 맥타일러. 모두 콘월로 대 피했어야 했다고." 조니는 로버트 경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가 차를 마시는 동안에 공중영사기를 옮겨왔다. 그는 로버트 경에게 지금까지의 상황 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 대책을 얘기했다. 그동안에도 로버트 경은 스코틀랜드에서 억지로 끌려온 것 때문에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 다. 설명을 끝낸 조니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로버트 경의 말을 기 다렸다. "나는 외교단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증명됐다. 하물며 법률가나 은행가는 더더욱 아니다.... 전혀 가망이 없구먼 그래. 하지만 자네 말대로 하겠네." 조니는 그것으로 일단 안심했다. 오후 두세시경에 그들은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로버트 경은 군복으 로 정장햇고, 조니는 헬멧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 사람에 게 주의를 기울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란 두루마리에 정서한 조약이 테이블에 펼쳐져 있었다. 조니가 이미 들었던 그 조약이었다. 모든 사절들은 그곳으로 가서 서명날인 후, 은행대표가 연서한 조약 서를 받아들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드리스 글로튼과 훠표팡 경은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로버트 경은 이런 짓은 시간낭비라고 계속 투덜대며 앉아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 은 자신이 내뱉는 욕설이 조니에게만 들리도록 조그맣게 말한 만큼의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절들의 서명은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지구는 마지막 서명 국이었다. 로버트 경은 테이블로 걸어가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성냥 불로 밀납을 약간 녹여 반지도장을 두루마리 위에 눌렀다. 드리스가 서명된 곳에 은행도감을 찍어서 봉인하고, 두루마리를 높 이 쳐들었다. "나는 여기에 은하은행이 지구 카리바 조약의 신빙성을 확인했음을 증언합니다. 조약은 체결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그 복사본을 모든 관 련 함선에 전달해주기 바랍니다." 그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안주머니에서 소형 촬영기록기를 꺼내 그 것을 주사했다. 조니는 그 기록기를 작전사령실의 더넬딘에게 건네주 고, 자신들과 은행을 위한 카피를 뜨게 했다. 하우빈인 사절이 일어섰다. "나는 포로 전원이 약속장소로 옮겨져서, 그곳에서 지구대표자에게 인계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드리스가 조니를 바라보았다. 조니는 이미 오전중에 토르로부터 보 고받아 알고 있었다. 조종사 일곱 명, 러시아 병사 세 명, 셀파 두 명, 그리고 스코틀랜드인 한 명, 합해서 열세 명이었다. 중상자는 없 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주선에는 지구인이 먹을 만한 음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굶주려 있었다. 만일 몇 달 간 우주여행이 계 속됐다면 모두 굶어죽었을 것이었다. 그들은 정맥주사로 영양공급을 받고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즉시 에버딘의 병원에 수용되었다. "우리들의 장교는 포로 전원이 반환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조니의 말에 궤도상에 전함을 가지고 있던 사절들은 각자의 사령관 에게 사실을 확인해보라는 명령을 전달하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때 더넬딘이 달려와서 보고를 했다. 러시아로부터의 관측에 따르 면, 궤도상의 함대는 모두 토르네프 함대를 포위해서 떠났다는 것이 었다. 조니가 그 사실을 사절들에게 전하자, 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사절들은 밖으로 나가, 벌거벗기운 채 쇠사슬에 묶인 슐레임을 앵거 스가 크리스의 노예시장으로 전송하는 것을 입회하고, 다시 회의장으 로 돌아왔다. 로버트 경은 그곳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 만 그는 여전히 투덜거리면서 앉아 있었다. 드리스 글로튼은 미소를 지으면서 로버트 경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두꺼운 서류를 끄집어냈다. "여러분," 드리스 글로튼이 사절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은 지구의 소유권에 대해 더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을 승인했습니다. 이 혹성의 정부는 완전합니다. 왕은 지금 회복중에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지구대표는 법적으로 정부를 대표하고 행동할 권한을 완벽하게 부여받고 있습니다. 이제 지구의 소유권은 명확해졌 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외치고는 다시 로버트 경 쪽으로 돌아섰다. "지구 사절 각하, 나는 당신에게 지불체납 통지서를 전달합니다. 만약 회담 후 일주일 이내에 이 저당증서에 대한 조치가 없을 경우에 는, 즉 지불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에는, 이 혹성은 저당물 공매처분 을 받게 됩니다." 그는 서류를 로버트 경의 무릎에 얹어놓았다. "법률에 따라 수속을 밟아서 합법적으로 통지했다는 것을 잊지 마 십시오." 이 조약에는 기묘한 여파가 있었다. 토르네프별로 돌아간 슐레임 경은, 일급기자인 알제보거의 죽음에 격노한 크리스의 신문, 토르네 프의 지도적 일간지인 '한밤의 송곳니'를 이용해서 로고데터 스놀을 비난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는 이 파국에 대한 모든 책임이 스놀 소령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자신과 토르네프별의 불명예를 가져다준 것은 그의 위증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로고데터 스놀은 크리스의 도로 한복판에서 폭도에게 습격당해 물려죽었다. 살해된 장교의 친척인 아지터 스놀은 그 사건에 대해 슐레임을 선 동과 살해죄로 공격했다. 그와 몇 명의 해군장교는 슐레임 경이 정부 에서 연설할 때를 기다렸다가, 급습하여 그와 참석한 의원들을 약탈 본부와 함께 전부 폭파해버렸다. 그것이 널리 알려진 '슐레임 대음모 사건'이다. 아사트 위성의 소멸과 함께 모든 함대를 잃은 토르네프별은 경제의 근본을 이루고 있던 노예무역이 불가능해져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부터 부패해 있던 국세청은 고급 관료에 대한 뇌물이 밀 리자, 시민을 한사람 한사람 붙잡아서 이빨을 뽑고 단종수술을 한 다 음, 노예로 매각해갔다. 결과적으로 하우빈인이 토르네프인을 전멸시켰다. -'은하은행 고객서비스 적요' 43562798 A에서 발췌 로버트 경은 앉은 채로 서류를 응시하고 있었다. 드리스 글로튼은 조니에게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를 이 공식적인 장소에 데려다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덕택 에 그에게 공식적으로 서류를 전달할 수 있었소. 나는 이 지역의 지 점장일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내 고유업무인 상황부문을 대표해서도 행동하니까요." 그는 의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 있던 일 피트나 되는 소책 자 뭉치를 가지고 연단으로 돌아갔다. 드리스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 했다. "위대한 여러분, 이 회의의 첫번째 목적, 즉 지구의 소유권을 명확 하게 한다는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 모두 자국 을 위해서 영토를 획득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는 것입니다." 사절들은 어깨를 들어 보였다. 전쟁 쪽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누군 가가 말했다. 국민의 정신위생은 전쟁에 달려 있다고 또 다른 사절이 말했다. 브라울 경은 국가의 힘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전쟁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하은행도 전쟁채권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 것 이라고 돔 경이 놀려댔다. 지배자가 유명해지는 것은 전쟁을 수행했 을 때뿐이라고 조소하듯이 말하는 자도 있었다. 모두 기분이 들떠 있었다. 공포심을 가지고 그들이 내뱉는 말을 듣 고 있던 조니는 거대한 정부의 비인격적인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꼈 다. "계속하시지요, 각하." 훠료팡 경이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드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소책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것은 간단한 팜플렛입니다. 소유권이 결정되는 동안 내 가 작성한 것입니다. 이 혹성의 질량, 지표면적, 기상, 바다 수, 산 들의 표고와 같은 데이터가 기재되어 있고, 약간의 풍경사진도 삽입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대단히 아름다운 혹성입니다. 게다가 수십억 의 인구를 부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주민들이 공기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이 공기가 충분한 식 민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이미 인구과잉 상태에 빠져 있습 니다." 그가 소책자를 다 배포하자, 사절들은 컬러 페이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담보는 물론 신용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현금을 가지 고 있습니다. 이곳을 점령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용병으로도 충분합니 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곳의 방위시설은 엄청나게 낙후되 어 있으며, 침공에 저항할 수 있는 주민수도 매우 적습니다. 소유권 의 양도는 모든 주민 및 재산을 포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이곳에 체류할 것을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일주일 후에는 이 혹성이 저당물 공매처분을 받고, 은행이 이곳을 다시 소유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이 혹성에 대한 경매가 열립니 다. 물론 적법한 절차에 의한 부채의 지불이 행해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여러분도알고 있 다시피, 그들에게는 현금도 담보도 신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소책자를 검토하고 있었다. 모두들 휴 일기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체류를 연기할 계획인 것은 명백했다. 먼 우주에서 온 사절들도 마찬가지였다. 조니는 드리스 그로튼에게 말했다. "결국 모든 것이 현금문제로군요." 드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들은 당신들에 대해서 손톱만큼의 적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 다. 은행업무란 본래가 그런 것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입니다. 돈 을 빌렸으면 갚아야만 합니다." 드리스는 로버트 경 쪽을 돌아다보았다. "가능한 한 빨리 교섭을 준비해주시오. 그래야만 우리들도 이 건을 처리하고 떠날 수 있으니까요." 로버트 경과 조니는 밖으로 나왔다. (6) 분지 안은 떠들썩한 소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조니가 러시아 기지 에 있는 북중국인들을 에딘버러에 있는 사람들과 교대시키기 위해 파 견했기 때문에, 에딘버러에 가 있던 촌원 수장과 중국인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곳곳에 화상을 입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촤악 의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휴식을 취했는데도 아 직까지 축 늘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가족들을 만나자 얼 굴에 밝은 웃음을 띄고 아이들에게 달려가 끌어안으며 기뻐하고 있었 다.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정 말 아름다운 재회의 광경이었다. 조니는 그들을 교대시켜주길 잘했다 고 생각했다. 이 중국인들이 처음부터 구조작업대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이상 계 속한다면 이들이 먼저 쓰러졌을 것이었다. 아이들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얘길르 나누고 있는 가정들을 향해 식사나 수면은 제대로 취 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아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며, 조니는 저 경멸스러운 자절들과 그 정부의 비정함에 대해 생각 했다. 그들은 이들이 어떻게 되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 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정부도 나름대로 정의를 내 세우고, 사회복지 정도의 흉내를 내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냉 혹하고 오만한 권력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양심도 없고, 죄책감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산산조각으로 짓밟아버리는 것이었다. 촌원 수장은 돌아온 중국인들을 재조직하고 있었다. 그는 조니에게 자신들은 모두 옛 채굴장의 돔으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곳 은 모두 정리되었으며, 지하실이 있고, 대기보호망도 작동되고 있다 는 것이었다 간신히 회의에서 풀려난 조니는 더넬딘에게 업무를 인계해주고, 스 톰아롱을 찾으러 갈 계획이었다. 조니는 작전사령실로 가서 더넬딘에 게 물었다. "저 부족한테서 에딘버러에 대한 소식을 들었나?" 더넬딘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니는 공기마스크와 비행복을 집어들 었다. "그럼, 나는 스톰아롱을 찾으러 가겠네." 급히 분지 밖으로 나가려던 조니는, 뛰어들어오는 누군가와 부딪쳤 다. 아, 그것은 스톰아롱이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자네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 나?" 스톰아롱은 그를 엄폐호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곳이라면 도청당할 염려가 없었다. "줄곧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싸웠단 말입니다. 말도 마십시오. 죽을 뻔했다구요." 스톰아롱의 모습이 그의 말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눈이 움푹 들어 간 그의 얼굴은 핼쑥해졌고, 흰 스카프와 옷에는 땀과 그리스가 뒤엉 켜 있었다. 어깨에는 총에 맞은 듯한 상처까지 있었다. "부상까지 당했잖아." "가벼운 상처입니다. 드로킨인 장교한테 당했어요. 그녀석이 항복 을 거부했기 때문에 해병대 공격기로 추격했지요. 글쎄, 산의 경사면 을, 벤로몬드 산입니다, 타고 걸어서 도망치는 놈을 그 덩치 큰 비행 기로 따라갔다구요. 게다가 죽이면 안된다고 해서 분사포로 기절시켜 야 했다구요. 녀석이 쓰러지길래 안심하고 착륙하여 비행기에서 내렸 습니다. 그런데 놈은 기절한 척하고 있었던 겁니다. 갑자기 사격을 가해오길래 재빨리 권총으로 기절시켜버렸지요. 정말 큰일날 뻔했다 구요." "그래,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지?" "포로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병과 조종사들을 싱가포르에 분산시켜놓은 채 팽개치고 가벼렸더라구요. 부상병들은 있었지만, 온 전한 자들도 있었어요. 러시아에서도 부상병들을 내버려둔 채 떠나버 렸어요. 더넬딘은 에딘버러 주변에서 서른 대 가량의 적기를 격추시 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격추당한 적기의 조종사들은 탈출장치로 뛰어내려서 서쪽과 하이랜드 지역에 흩어져 있었어요. 정말이지 녀석 들을 포획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놈들은 붙잡히면 고문을 당 하던가, 바이러스를 뿌린 다음에 살해당하는 줄 믿고 있었으니, 사력 을 다해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요." "그 많은 일을 혼자서 했단 말인가?" "여섯 명의 은행경비병이 있었지만,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어요. 금 고를 지키는 일이나 귀중품 운반은 잘할지 모르지만...." "스톰아롱, 나는 무선으로 전세계에 연락을 취했었네. 자네도 무전 기의 스위치는 켜놓았을 것 아닌가? 자네와 만난 사람들도 있었을 것 이고, 그런데 그처럼 연락이 되지 않다니...." 조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맥애덤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무선연락을 금지시켰어요. 우리들 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을 무선으로 보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함구령을 내렸어요. 당신이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 우겨댔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정말 걱정을 끼쳐드려서 미안합니다." 조니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기해주게. 나와 회색인과의 회담기록을 녹음 한 디스크는 전해주었겠지?" 스토아롱은 탄약상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훔쳐보거나 엿듣는 자 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새벽녘에 도착해서 곧장 맥애덤의 침실로 달려갔습니다. 당 신의 심부름으로 온 것을 알리자, 그는 즉시 디스크를 영사기에 걸었 습니다. 디스크를 모두 살펴본 그는 독인인을 불러, 여섯 명의 은행 경비원을 집합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트렁크 가득 은하은행 지폐를 담고, 여성 당직원에게 절대로 정보를 누설하지 말라고 다짐 하고는 즉시 비행기로 출발했습니다. 나는 반강제적으로 조종해야만 했었다구요. 나는 그에게 유괴당한 것이나 진배없었다구요. 우리들은 적군의 장교들을 포로로 잡기 위해 여러 싸움터를 돌아 다녔습니다. 맥애덤은 각 종족의 장교와의 면담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프랑스인인 은행경비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더군요. 비행 기 조종은 물론 전투와 포로를 잡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그런 데 맥애덤과 독일인의 사이클로어 실력은 아주 유창하더군요. 그들이 그처럼 열심히 공부한 줄은 몰랐었습니다.... 하여간 두 사람이 포로 를 심문하는 동안 나는 수면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포로 전원을 한데 묶어 비행기로 운반했습니다. 은행경비원이 총을 겨누고 그들을 감시했습니다. 심문을 끝내고 나서 포로와 함께 우린 다음 전투지역 으로 향했지요." "그는 포로에게 무엇을 묻고 있던가?" "나는 모릅니다. 고문은 하지 않고, 이따끔 녀석들에게 한웅큼씩 은하은행 지폐를 집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맥애덤의 질문에 술술 대답하더군요." 조니는 비행기의 옆문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그곳에는 회색 제복을 입은 은행경비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를 감시하는 것이 아 니라 비행기에서 상자만을 내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몇 대의 광산 이동차로 그 상자들을 황급히 분지로 옮기고 있었다. "포로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물론이지요. 우리들은 룩셈부르크도 돌아가서, 상자 몇 개와 은행 경비원을 싣고, 빅토리아 호의 채굴장으로 행했습니다. 그곳에서 나 는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요. 맥애덤과 독일인이 다시 포로들 을 심문하기 시작했거든요. 아주 오랫동안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나 서 우리들은 포로를 그곳에 남겨두고 이곳으로 비행해 온 겁니다." 조니로서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스톰아롱에게 휴 식을 취하라고 말한 후, 조니는 그들을 찾으러 갔다. 왜소하지만 단 단한 체격에 희끗희끗한 검은 수명, 액애덤은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 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니를 보자 그는 일을 중단하고, 힘차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 고 다른 쪽을 돌아다보며 손짓으로 한 중년남자를 불렀다. "당신이 폰 로스 남작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지구 혹성 은행의 동업자입니다." 맥애덤이 조니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 독일인은 거대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신장은 조니와 비슷했으나 몸집이 훨씬 컸다. 붉으스레한 얼굴의 솔직하고 친절해 보이는 사나 이였다. "당신이 그 유명한 조니군요. 당신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 니다." 독일인은 큰소리로 말하며, 조니를 거대한 팔로 끌어안았다. 맥애덤이 분지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독일인도 커다란 상자를 집 어들고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조니는 그 독일인에 대한 약간의 정보 를 가지고 있었다.그는 일용품과 식료품을 취급해서 엄청난 재산을 벌어들인 사람으로, 사이클로이이 침략하기 몇 세기 전에 유럽의 은 행업무를 지배하고 있던 가문의 후예였다. 성격은 매우 거칠지만 유 능한 사람이었다. 해병대 공격기에서 마지막 상자가 이동차에 실려져 입구 속으로 사 라졌다. 조니는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 었다. 분지 안쪽에서는 중국인인고과 은행경비원들이 촌원 수장의 지 휘아래 불탑의 차양 전체를 조심스럽게 방수포로 가리고 있었다. 전 송플랫폼 전역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다른 중국인들 은 광산케이블을 매고, 그곳에도 방수포를 덮어씌워 엄폐호에서 제어 탁자로 가는 통로가 보이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플랫폼 전체를 보이지 않도록 감추려는 것이었다. 맥애덤은 앵거스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니가 다가오자, 두 사 람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맥애덤은 웬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궁금해 하는 조니에게 빠르게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모든 화물은 뚜껑이 달린 엄폐호 속으로 옮겨졌다. 몇몇의 사절들 이 어슬렁거리며 방수포 씌우는 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들은 특별히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팜플랫 속의 사항을 서로 대조해 가며 자리를 떠났다. 더넬딘은 작전사령실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스톰아롱에게 수명을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타입으로 자르 라고 권했지요, 아닙니다. 에딘버러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 다. 북중국인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 정도밖에는요. 그런데 북중국인 이 남중국인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아아, 그렇지. 빅토리아 호에서는 카와 은행원 두 명이 분사라이플로 쉰 명 의 새로운 포로를 감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여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운명을 건 대도박이었지만 반드시 해야 만 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직 며칠 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구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릴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결코 넉넉한 시가니 아니었다. 마지막 대 결, 최후의 싸움은 이미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7) 닷새 후, 드디어 은하은행과의 운명적인 결정의 날이 찾아왔다. 조니는 조그만 회의실에서 홀로 앉아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 다리고 있었다. 이번 싸움은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전투 가운데 최대 의 격전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조니는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이 준비하는 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송장치의 작동소리가 분지 를 울렸다. 그때마다 방수포에 가려진 플랫폼 위에서는 쉴새없이 물 체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바쁜 와중에서도 도청을 우려해서인지 필요한 말 외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 었다. 들려오는 것은 단지 '모터 정지' '접근하는 비행기 없음' '준 비 완료' 그리고 '발사'라는 말뿐이었다. 누군가가, 특히 사절이나 회색인이 방수포로 들러쳐진 엄폐호를 통 해 통로에 접근해 오면 엄숙한 표정의 은행경비원이 그들을 단호히 제지시켰다. 조니가 맥애덤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중 에 나중에'뿐이었다. 앵거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 조니는 며칠 간의 여유는 있을 거라고 예상 하고 있었다. 툰은 재정 및 은행업무에 관한 교섭은 매우 전문적인 비즈니스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말은 조니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돈과 황금은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만큼 경이로운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애덤이 도착한 다음날 이른 새벽, 조니는 비행기를 타고 카리바 로 출발했었다. 그는 카리바의 남동쪽 칠십오 마일 지점에 위치한 솔 즈베리라는 폐허도시 가까이에 있는 대학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있었 다. 그는 로버트 경도 데리고 가려 했지만, 늙은 스코틀랜드인은 애 딘버러의 구조작업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작전사령실의 무선기에 매달려 있었다. 조니는 로버트 경 대신 두 명의 중국인 병사와 함께 갔었다. 페허 가 된 대학에서 조니는 먼지와 벽돌더니을 헤치며 도서관을 찾기 지 작했다. 다행히 도서관 건물은 남아 있었다. 그는 폐허 옆에 캠프를 치고, 엉겨붙은 안내책자 카드를 한장 떼어내 그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해냈다. 그곳은 장서가 충실하게 보관된 도서관으로, 많은 경제 학 영어원서들이 있었다. 그것은 경제사와 은행 분야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부여해주었다. 툰이 말한 대로 그러한 부문들은 완전히 전문 분야였다. 조니는 그 책들을 통하여 국가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국민들은 노동을 통하여 물건을 생산하고, 각자가 생산한 물 건을 필요에 따라 서로 교환한다. 화폐를 사용하면 교환이 더욱 원활 해진다. 그러나 화폐 자체가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조작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그때부터 잘못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니는 지난 닷새 중 나흘 간을 책 속에 파묻혀 먼지를 마시며 지 냈다. 회의실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조니는 얼마간 만족 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지금부터 시작되는 전투가 어떠한 것인지는 대충 파악해낸 것이었다. 로버트 경이 기분이 잔뜩 상한 얼굴로 투덜거리면서 들어와 조니옆 에 걸터앉았다. 회색인은 로버트 경이 이 일을 처리할 대표자라고 말 하고 있었지만, 스코틀랜드군 최고 사령관은 큰 칼과 로커버 도기로 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전 문가에게 맡길 심산이었다. 로버트 경의 모든 관심은 에딘버러에 쏠려 있었다. 곳곳의 방공호 에는 가느다란 호스로 식료품과 물을 들여보내고 있었으나 터널 굴착 작업은 별진척이 없었다. 다시 바위가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며칠 전 부터 거대한 파이프 골조를 터널에 끼워넣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었지 만, 또다시 바위가 무너진다면 전망은 절망적이었다. 회색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드리스 글로튼과 보라즈 경이 들어 왔다. 네 명을 위한 테이블이 방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그 한쪽에 앉았다. 그들은 양팔 가득 끌어안고 있던 서류뭉치와 서류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회색인들은 굶주린 식인상어처럼 보였 다. 조니도 로버트 경도 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저기압인 것 같군요." "우리들은 전사요." 보라즈 경의 말에 로버트 경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외계의 환전상 따위와는 거래하지 않아요." 로버트 경이 갑자기 영어로 말했기 때문에, 두 명의 회색인은 황급 히 보코더로 향했다. "이곳으로 올 때 깨달은 것인데." 드리스 글로튼이 말했다. "분지의 사격호 근처에 흰 상의에 빨간 바지를 입은 병사들이 있더 군요." "의장병들이오." 로버트 경이 말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소, 그리고 그 가운데 유 달리 키가 큰 거한은 의장병을 지휘하는 장교라기보다 브리간트처럼 보였소." "이반 대령에 대해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요." "당신을 알고 있소?" 드리스 글로튼이 말했다. "만일 사절들이나 우리들을 살해하면 당신들은 법외 방치 국민이 되어버리는 거요. 우리들의 소재는 이미 알려져 있으니까. 즉각 수십 대의 함대가 날아와서 지구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 거요." "종이쪽지 따위한데 당할 바에야 함대에게 당하는 편이 훨씬 좋지 요." 로버트 경이 테이블 위의 서류를 가리키며 내뱉듯이 말했다. "당신들이 진실을 말하고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러시아인들을 두려 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소.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이 모두 속임수라는 것을 알고 있소." 보라즈 경은 조니 쪽으로 돌아앉았다. "어째서 당신들은 그렇게 적의로 가득찬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있 소, 조니 경? 우리들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소, 이것은 진실이오. 당신들은 존경하기까지 하오. 우리들을 믿어 주기 바라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은행업무란 그런 것이며, 비즈니스라.... 그런 얘기겠지 요?" 조니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렇고 말고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그렇지만 때때로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는 경우도 있소. 당신의 경 우가 바로 그렇소. 이 회담 전에 당신과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유감스럽소. 우리들은 실제로 당신의 진실된 친구요." "어떤 점에서요?" 조니가 냉담하게 물었으나 보라즈 경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어떤 혹성이 맥가될 때는 그 주민과 기술이 모두 함께 매각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요? 당신은 은행담보물 처리에 대한 안내서를 읽지 못했갰지만, 당신과 당신의 협력자, 그 밖에 당신이 개발한 모든 기 술은 매각에서 제외되어 있소." "참으로 관대하군요." 조니는 야유하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그런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고, 다른 자들이 늦어지는 것 같으니까 지금 여기에 그것을 당신에게 전해두겠소, 우리들은 당 신에게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고 싶소, 우리들은 은하은행의 기술부 를 창설하여 당신을 그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하겠소, 우리 성계의 수 도인 스나우치에 훌륭한 공장을 건설하고, 당신과 종신계약을 맺어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제공할 것이오. 당신이 자금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요." "돈이 전부라는 얘기군요." 조니는 항변하듯이 말했다. 두 회색인은 그 말투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보라즈 경이 외쳤 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소? 모든 것에는 가격이라는 것이 있고, 돈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것이든 다 살 수 있으니까 말이오." "고귀함이라든가 성실함 같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소." "이봐요, 당신." 보라즈 경이 엄숙한 말투로 얘기했다. "당신에게는 훌륭한 재능이 있고, 그 밖에도 뛰어난 점이 많소, 그 러나 당신에게는 근본적으로 결여된 부분이 있는 것 같소." "조니에게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은 용서할 수 없소." 로버트 경의 경고에 보라즈 경은 당황한 듯이 주춤했다. "미안하오. 용서해주시오. 당신을 도와주려고 생각한 나머지 말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소." "그러는 것이 좋을 거요." 로버트 경이 고함을 치고 큰 칼을 쥐었던 손을 내려놓았다. "내 말을 잘 듣기 바랍니다." 보라즈 경이 말했다. "과학자는 회사에 고용되게 되어 있소. 따라서 과학자가 개발한 것 은 모두 회사의 소유가 되지요. 과학자가 자기 혼자서 추진해나가려 하고, 자신의 개발품을 스스로 처리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동시 에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오. 모든 회사, 모든 은행, 그리고 모든 정 부는 이 점에서 완전히 일치할 것이오. 과학자는 얌전하게 급료를 받 고, 자신의 특허를 회사에 넘겨주고, 일을 계속하도록 되어 있는거 요. 만일 그가 다른 방법을 선택하려고 한다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 게 될 거요." "그러니까 구두장이가 만든 구두는 그의 것이 되는데, 과학자가 개 발한 것은 회사나 국가의 소유가 된다는 얘기지요? 알겠소. 대단히 단순한 논리군요." 보라즈 경은 그 말에 담긴 야유를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고의 적으로 무시해버렸는지 태연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그 점을 이해해줘서 대단히 기쁘오. 돈이 전부이고, 모든 사물 및 재능은 매물이 되는 거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은행업무의 마음이고 영혼이며, 비즈니스의 초석이자 그 기본원리요." "나는 오로지 이윤추구일 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물론 그것도 있소. 그것이 정당한 이윤인 경우에는 말이오. 그러 나 믿어주기 바라오. 비즈니스는 마음이고 영혼이며...." "은행업무에 마음과 영혼이 있다니 기쁘군요. 지금까지 그런 것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아아, 당신은 야유하고 있는 건가요?" "선량한 사람들은 파괴하는 자에게 마음이나 영혼이 어디 있겠소? 은행업무, 비즈니스, 그리고 정부는 모두 같은 목적을 추구해야만 된 다고 생각하오. 이러한 것들은 오직 국민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 요. 그들의 필요나 요구에 봉사해야 된단 말이오." 보라즈 경은 그를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았다. 조니 경의 말에 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한참 동안 생각했으나 결국 단념했다. 누가 뭐래도 보라즈 경은 은행가였다. "정말로 당신은 별난 젊은이군요. 아마 좀더 나이를 먹으면 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요...." 로버트 경이 보라즈 경에게 다시 경고하려고 했을 때,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이 도착했다. "누가 별난 젊은이라고요?" 폰 로스 남작이 말했다. "조니 말인가요? 그래, 정말로 그는 별난 존재지요. 고맙게도 말이 오. 당신들은 일찍 왔군요." 그는 드리스 글로튼과 보라즈 경을 향해 사나운 눈빛을 하며 번갈 아 보았다. "일 파운드의 고기 때문에 이토록 혈안이 된 사람들은 본적이 없 소, 자아,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요." 제 4 권 하이피크 신화 제 30 부 그것이 없으면 당신들은 파산이오 (1) 앤드류 맥애덤고 폰 로스 남작은 옆 테이블에 서류뭉치와 서류가방 을 내려놓고, 드리스 글로튼, 보라즈 경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았다. 조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랍게도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은 회 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고급 모직천으로, 섬유 한올 한올이 빛나고 있었다. 네 명은 마주보고 앉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 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조니는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 속에서 회색 늑대들의 결투를 연상했 다. 늑대들은 대개 송곳니를 마주댄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방의 힘을 탐색하면서 슬슬 위치를 바꾼다. 서로의 탐색이 끝나면 포효를 내지르며 죽음을 건 송곳니와 발톱의 싸움이 지작되는 것이다. 그것 은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이었다. 만일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이 패배한다면, 전인류와 그들이 사랑 하는 모든 것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이 지 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조니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맥애덤이 먼저 싸움을 걸었는데, 그것을 듣는 순간 조니는 맥이 확 풀려버렸 다. "신사 여러분, 우리들에게 좀더 시간을 줄 생각은 없습니까? 가령 앞으로 한 달을 기다려준다든가?" 드리스의 입술이 말려올라가며 이빨을 모두 드러났다. "무리요. 당신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답을 미뤄왔소. 이제 더 이 상 유예할 수 없소." "상황이 대단히 나쁘오." 이번에는 남작이 말했다. "도처에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소." "그런 것은 알고 있소." 보라즈 경이 말했다. "그것은 변명거리도 안되는 말이오. 만일 부채를 상환할 수 없다면 며칠 전에 그것을 통고했어야만 했소. 그러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 도 없었구요.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나는 본국으로 떠난 우주선들이 내버리고 간 승무원들을 심문하고 있었소." 맥애덤이 딴전을 피웠다. "지구를 공격한 모든 종족의 장교들을 찾아내는 데는 매우 애를 먹 었지만 말이오." "그리고 그들이 경제적 혼란에 대해 털어놓았다는 얘기군요. 당신 이 지금 당장 이 혹성에 대한 권리포기 증서에 서명해준다면 이 문제 를 끝낼 수도 있소." 드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한 장의 서류를 로버트 경 쪽으로 밀어보 냈으나, 로버트 경은 그것을 집어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맥애덤은 그 서류를 다시 밀어보냈다. "그 함대의 승무원들은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소. 그 들은 모두 강제적으로 징병되어 군복무를 하고 있었소. 본국으로 돌 아가면 혁명이나 내란에 가담하겠다고 하는 자도 많았소. 돌아가면 제대를 하게 되어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자가 있었구 요. 어디에서나 굶주린 실업자들로 넘쳐흘렀고, 대부분의 수도 한복 판에서는 빈번하게 폭동이 일어나고 있었소." "별로 새로운 소식도 아니군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은 사회불안이 끊이지 않았소. 그렇기 때문에 여 기에 모인 사절들은 민중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외침략을 계획하고 있소. 진작 나한테 물어보았더라면 친절하게 해결방법을 가 르쳐주었을 텐데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드리스가 말했다. "여러분이 얌전하게 혹성을 양도해줄 것을 권하고 있는 저 사절들 은, 이 혹성을 구입하기보다 군사력을 동원하여 탈취하려 하고 있소. 궤도상에 있던 함대 같은 것은 저 사절들이 파견할 함대에 비한다면 어린애 장난감 같은 거요. 그러니까 우물쭈물하지 말고...." 남작은 짜르는 듯한 시선으로 드리스가 더이상 떠벌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이곳에서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데이타를 수집한 뒤, 우리들은 직 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었소." 조니는 긴장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쉴새없이 전송장치가 작동하 고 있었구나. 이 두람의 턱에 아직까지 어렴풋이 남아 있는 공기마스 크자국을 보았다. "그야말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소.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는 금속공급을 중지하였고, 금속이 품귀현상을 나타내자 그 가격은 천정 부지로 폭등했소, 실업자는 늘어남 갔고, 민중들은 폭동을 일으켰소, 민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부는 전쟁을 계획하고 있 지만, 그 정책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소, 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금속 을 손에 넣기 위해 정부는 민중의 수레나 주부의 가마솥까지 모두 징 발하고 있었소." 남작의 말에 드리스는 어깨를 추스렸다. "그것은 별로 새로운 뉴그가 아니고, 여러분이 차입금의 상환시기 를 미루고 있는 당면문제와는 전혀 무관하오. 그것보다 지구대표가 이것에 서명을 하든가. 아니면 우리들이 다른 수단을 이용하여...." 그는 말을 중단했다. 한순간 팽팽한 공기가 감돌았다. 남작의 연한 회색 눈동자가 드리스 글로튼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은 상당히 괴로운 상태에 빠져 있소." 지역지점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것은 은행의 내부문제요. 당신들이 당연히 갚아야 할 부채를 지 불하느냐, 하지 않느냐와는 관계없소." 폰 로스 남작은 로버트 경 쪽을 돌아다보았다. "드리스 각하는 바타포어 성계에 있는 사이클로령 토사트 및 턴의 고위관료에게 개인적인 융자를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 부근 네 개의 성계에 있 는 열다섯 개 사이클로령 혹성의 사이클로인 총독에게도 그 이상의 거액의 융자를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보물은 사이클로별에 있는 부동산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냈지요?" 드리스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것은 은행의 기밀정보란 말이오." "당신에게 파면당하여 불만을 품고 있는 전 은행원이 가르쳐주었 소." 남작이 말했다. "사이클로별의 부동산은 연기로 사라져버렸고, 채무자는 죽었으니 현명하지 못했군요. 사이클로인은 계약 불이행으로 유명하니까요." "예금주는 은행에 압력을 가할 수 있소. 그러나 그 일은 당신들이 의 부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오...." 보라즈 경이 지점장을 변호하고 나섰다. "실제로 그들은 지점장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었소." 남작이 말했다. "은하은행의 수익은 대부분 사이클로별의 자금이동으로부터 얻어지 고 있었기 때문이오. 융자가 아니라 송금환에 대한 고율의 수수료가 중요한 재원이었소. 그런데 사이클로별의 위임통치 혹성간의 기금이 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당신 지역의 은행지점은 직원을 해고하고,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소. 벌로 성계 지점인 당신의 본거지는 거의 모든 직원을 해고했소." 남작은 로버트 경을 돌아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로버트 경, 당신은 이런 이유 때문에 혹성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드리스 각하는 파산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지구를 재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인터개랙틱 광산회 사가 아직도 대금을 완불하지 않은 혹성은 전우주에서 지구 하나뿐이 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구를 경매에 붙여 얼마간의 현금이라고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완전한 지불불능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약점을 지적했다고 해서 당신의 입장이 더 나아질 것은 없 소. 여기에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 자신이 파멸할 뿐이오." 약점을 지적당한 드리스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지불하라구요. 지금 당장." 그는 서류를 집어들어 로버트 경 앞에서 흔들어댔다. 그러자 경기 관총 같은 소리가 났다. 맥애덤은 손을 뻗어 드리스의 손을 점잖게 테이블로 돌려놓았다. "그 문제는 나중에 의논하기로 합시다." 회색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처럼 당 황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에 저지른 실수는 그의 인생을 참당하게 만 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놈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만일 돈을 가지고 있 지 않다면, 왜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신경쓰지 말자. 결국에는 마찬가지 가 될 것이다. 멋대로 하라고 내버려두자. "그 다음은 글레디데스 성계의 은하은행 본부요." 남작이 말했다. "우리들은 그곳도 방문했소, 제1우주의 한가운데에 있더군요. 수도 스나우치는 전송의 반동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다른 두 곳의 실 레이키 혹성의 수도도 마찬가지였소, 은행건물의 맥 꼭대기층 전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더군요." "우리들은 곧 복구할 수 있소." 보라즈 경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폭발의 여파고 거대한 은하은행의 간판이 날아가버렸더군요. 세 곳의 수도에 있은 은행 모두가 말이오. 은행 간판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부서진 채로 매달려 있단 말이오." "다시 달면 될 거 아니오." 보라즈 경이 태연스럽게 받아넘겼다. 남작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라즈 경을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났는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고쳐달지 않고 있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레이키인의 세 혹성은 모두 은행없으로 수 억의 주민생활을 유지시켜주고 있었소. 그런데 만일 당신들이 텔레포 테이션을 사용할 수 없다면 앞으로 열다섯 우주에는 갈 수 없게 될 거요. 우주여행이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요. 수억의 실레이 카인이 우주 전역의 은행지점에 산재해 있소. 은행인 드리스 글로튼 각하의 지점처럼 파산해버리면 그 실레이키인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킬 수 없을 겁니다. 가족이나 진척들은 두번 다시 아버지와 형과 자식을 만날 수 없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들의 은행 현관 앞에서 군 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소. 큰소리로 외쳐대며 피 터지게 아우성 을 치고 있소." 보라즈 경은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은행경비원들이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들에게 급료를 지불할 생각이지요?" 보라즈 경의 의연하려는 태도를 비웃기나 하듯 남작은 말을 계속했 다. "당신네 은행의 수익이 실제로 융자이익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으 나, 사이클로별과 인터개랙틱 광산회사가 날아가버린 그 순간부터 이 미 자금의 흐름은 물론 수익금까지 모두 날아가버린 거요. 당신들의 경영은 악화되기 시작했고, 차츰차츰 직원을 해고해야 했소. 드리스 글로튼에 의해서 많은 지점이 이미 폐점된 것을 당신도 알고 있을 텐 데요?" "우리들은 이전에도 경제적인 위기에 부딪쳤던 적이 있었소." 보라즈 경의 말을 들으며 남작은 그에게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처럼 심각한 곤경에 처해본 경험은 없었을 거요, 보라즈 경. 그런데 또 다른 난처한 일이 있소. 사이클로인들은 다른 모든 종 족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소. 당신들의 지폐에 새겨져 있는 초상의 장 본인 룽거 경은, 이십만 년 전쯤에 사이클로인과 거래를 시작한 이래 그들의 모든 재무관계를 취급해왔는데도, 사이클로인을 은행의 이사 혹은 중역으로 취임시키기를 단호히 거부해왔소." "당연한 일이지요. 사이클로인을 간부로 끌여들였다면 은행의 평판 이 나빠졌을 테니가요. 그랬다면 모두들 우리 은행을 사이클로인의 은행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맞아요. 그러나 그 이후에 사이클로인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 신 영원히 은행의 상비금을 사이클로별의 금고에 보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소, 그런데 사이클로별이 사라지면서 상비금도 함께 사라져버렸소." 보라즈 경은 한참 동안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깔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잠시 후, 뭔가 결심한 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며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모두 맞아요. 그러나 당신들이 채무자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아니, 바꿀 수 있소." 남작은 자신있게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지불능력이 없소. 당장 새로운 대체자산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신들은 파멸할 수밖에 없을 거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분명히 그렇소,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지구를 재소유해야만 된 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오." "이 혹성 하나로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거요." 맥애덤이 덧붙여 말하자, 남작이 소리쳤다. "어째서 당신들은 옛날 사이클로인의 광산이라든가. 그들 명의의 혹성은 차지하려 들이 않는 거요. 그런 별이 이십만 개 이상이나 존 재할 텐데 말이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들의 신용을 트집잡고, 우리들의 약 점을 폭로하는 것은 당신들 마음대로지만, 명예로운 은행에게 남의 재산을 약탈하라고 충동질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소." 보라즈 경이 몹시 화가 난 말투로 소리치자, 드리스도 분개하여 맞 장구를 쳤다. "어처구니없는 일이군. 그들 혹성들은 이미 상환을 완료했단 말이 오. 우리들은 절대 도둑질은 안합니다." 로라즈 경이 덧붙여 말했다. "우리들이 그런 일에 관여하면 은행이 전쟁에 말려들고 말 것오. 은행은 절대 군사조직이 아니오. 게다가 사이클로성의 혹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소. 누구라도 차지하려고 덤 벼들었다가는 즉시 법정에 소환당할 거요. 당신들은 모든 종족 위에 군림하는 전은하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군요." "허허, 나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맥애덤이 여유있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인터개랙틱 광산회사가 받아낸 최초의 사이클로 제국 인가 증을 읽은 적이 있소?"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다 읽었소." 보라즈 경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인가증을 등록하지 않은 회사와는 거래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은 삼십만 이천구백육십일 년 전에 사이클로의 다스 왕에 의해 인가된 것이오.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모든 지부에는 본부건물에 그것이 걸 려 있소. 법률로 정해져 있는 겁니다. 물론 나는 빠짐없이 읽었소." 남작은 그 사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제대로 인쇄된 것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는 보라즈 경이 읽을 수 있도록 그것을 돌려놓았으나, 보라즈 경 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내용을 거의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조항을 보아주기 바라오. 109항이오. 한 명 내지 여러 명의 중 역이 부재인 경우에는 앞에서 기록한 인터개랙틱 광산회사 소유의 혹 성장관이 결재권한을 가지며, 그의 결재는 구속력을 지닌다고 되어 있소." 보라즈 경이 의아한 듯이 말했다. "물론 알고 있소. 당신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혹성은 하나밖에 없 었고, 그 장관은 왕자였소. 그 무렵의 중역들은 업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소. 그것이 어쨌단 말이오?" "그러나 유효한 조항이겠지요." 남작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아, 그렇소." 보라즈 경은 이젠 넌더리가 난다는 투로 얘기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지불을 미루고 있다 는 것뿐이오...." "그런, 다음 조항을 볼까요? 110항이오. '긴급사태 및 회사에 대한 위협, 특히 중대한 재해에 직면했을 때는 혹성장관은 회사의 소유물 을 처분할 수 있다.' 알겠소? 여기에는 아무런 한정 내지 제한이 부 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주의깊게 읽어주기 바라오."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는지요?" 보라즈 경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109항 110항의 최고 결재권자는 동일인물이며, 그는 스코 왕자였 오. 애당초 그가 본국을 떠나 그런 지위에 취임한 것도 이 때문이었 소. 그는 혁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본국으로부터 독립된 거점을 확 보해두고 싶었던 거요. 그렇게 해두면 본국 밖에서 많은 자산을 확보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유효한 조항이라는 것을 인정하겠지요?" 남작의 다짐에 드리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 이 혹성을 재소유할 수 있지요? 이 인가증 어 디에도 당신들을 사십조 크레디트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만한 것은 없 소." "사십조 구천육백이억 육십만 오천이백육 크레디트요." 보라즈 경이 정정했다. "그러니까 이 왕실인가증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는 점은 인정하는 거지요." 남작이 계속해서 다그쳐댔다. "...." 보라즈 경은 도대체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 문제라구 자꾸 다그치 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이오." 순간 폰 포스 남작과 앤드류 맥애덤이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을 터 뜨렸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회색인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맥애덤은 의자 옆에 놓인 서류뭉치에서 두툼한 문서를 꺼냈다. "이것은 사이클로별이 파괸된 지 십일 개월 후에, 증인입회하에 정 식으로 서명된 것입니다." 그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커다란 인장으로 장식된 서류뭉치는 공식문서를 상징하는 붉은 리 본과 분홍색과 금색 원반이 빛나고 있었다. 타르와의 계약서였다. 그곳에는 인터개랙틱 광산회사 전체를, 즉 설비, 보유금, 혹성, 예 금, 그 밖의 모든 자산을 매각한다고 씌어 있었다. 맥애덤은 그 위에 또 한 장의 서류를 얹었다. "이것은 회사의 마지막 혹성장관에 의한 증명서로, 정확하게 서명 되어 있소. 이것은 사실이며 유효한 계약서라는 것과, 회사 전체를 양도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소, 이 서류는 며칠 전에 최종 확인을 끝낸 것이오." 그는 그 위에 또 한 장의 서류를 시세좋게 얹어놓았다. "이것은 수령증인데, '전액을 영수함'이라고 씌어 있소." 드리스와 보라즈 경이 입을 쩍 벌리고 서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숱한 일들을 겪어왔지만, 이처럼 놀란 것은 처음이었다. 잠 시 명한 상태에 빠져 있던 회색인은 동시에 서류를 집어들고 세밀하 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구멍이 뚫어질 정도로 꼼꼼하게 살펴 보았다. 결국 보라즈 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확실히 모든 것이 유효합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지구의 정당한 정 부가 이 증서를 융자 대가로 지구혹성 은행에 양도한다고 되어 있소. 한치의 빈틈도 없소. 모든 법정에서 완벽하게 통용될 거요." 하지만 드리스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이것은 아직 유효하지 못합니다. 지구를 재소유하기 위해 담보로 사용하려면 스나우치 법률원에 제출해서 등기를 해야만 됩니다." "이것은 이미 등기가 끝난 거요." 남작은 빙긋이 웃어며, 법률원의 등기증명 사본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들 앞에 던져주었다. "바로 사흘 전에 정식으로 등기했소.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군중사 이를 비집고 처음으로 간 곳이 바로 거기였소." 드리스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꺼냈다. "당신들은 많은 혹성과 설비를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그것은 융자를 받기 위한 담보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만, 은행은 마 구잡이로 융자해주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신용을 얻어내야 만 합니다. 우리들은 미납된 융자금이 있는데도 또다시 융자해줄 생 각은 없습니다. 그 문서는 당신들이 진짜 채무자라는 것을 증명할 뿐 이오. 나는 현금으로 즉각 지불할 것을 요구합니다." "글쎄요, 그 문제는 조금 있다가 검토해보기로 합시다." 남작이 말했다. "보라즈 경, 은하은행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요? 최근의 대 차대조표로 그 자산과 부채를 생각해보았는데...." 보라즈 경이 벌컥 화를 냈다. "우리들은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공개할 의무른 없소, 특히 채무자 에게서 채무를 거둬들이고 있는 도중에는." "당신은 이 주일 전의 대차대조표 사본을 가지고 있겠지요?" 남작의 말에 보라즈 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내 트렁크를 훔쳐보았소?" "설마!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구요. 어떤 곳 에서 둘었으니까요. 여기에 당신네 은행의 회계부가 집계한 최신 대 차대조표 사본이 있소." 그는 서류뭉치에 숫자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두툼한 서류를 빼내 어 보라즈 경을 향애 테이블 위로 밀어보냈다. "모든 건축물, 은행 소유의 부동산, 실제로 환수가능한 대부금으로 지불해야 할 미불금, 미납 세금 등을 제외하고 약 천조 가량이 되겠 군요." "회계부는 이것을 밖으로 유출시킬 권한이 없지만, 이것이 정확하 다는 것을 인정하겠소. 약 천조가 맞소." "당신들이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별도로 하더라도 말 이오." 맥애덤이 여유있는 태도로 지적했다. "은행은 그것을 정산할 수 있소." 보라즈 경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만일 전우주의 모든 지점에 갈 수 있다면 말 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오." 그 말을 들은 남작은 커다란 손을 즐거운 듯이 흔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단히 관대하오. 안 그렇소, 앤드류?" 그는 맥애덤에게 말을 건네면서 조니에게 웃어 보였다. "그렇지요?" 조니의 시선은 줄곧 그들의 대화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투우경 기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 있는 우리의 친구들은 그다지 관대한 것 같지 않지만." 맥애덤이 회색 사나이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우리는 치사한 소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오." 남작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보라즈 경, 당신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오. 당신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자산을 필요로 하고 있단 말이오. 그것이 없다면 파 산하고 말 거요, 안 그렇소?" 보라즈 경은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들은 당신들을 궁지에서 구해내고 싶은 거요. 그렇지 않소. 조니?" 맥애덤은 조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조니는 어깨를 쳐들어 보였다. 그들에게 맡겨두자. 일이 재미있게 진행될 것 같군. 보라즈 경은 맥애덤에게서 남작에게로 시선을 옮겼 다 몹시 긴장된 표정이었다. 남작이 한마디 했다. "그래서 지구혹성 은행은 은하은행의 지분을 3분의 2가량 매입할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뭐라고요!" 보라즈 경이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 정도의 지분이면 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지 않은가. 당 신들이 방대한 은하은행 제국을 지배하겠다는 건가?" 그는 한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무엇을 가지고 그것을 매입하겠다는 거요?" 남작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들은 천조의 가치가 있는 혹성군으로 3분의 2를 매입하고 싶 소." 그는 옆에서 다른 서류를 꺼냈다. "지금 시세로도 혹성 한 개당 최소한 육십조 크레디트의 가치가 있 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혹성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소." 보라즈 경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고, 현재 당신들의 통화유지에 결여되어 있는 배경을 획득하게 될 것이오. 사이클로인들 은 당신들이 혹성을 소유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지만 지금 당신들은 혹성을 소유할 수 있소. 우리들은 은하은행의 전자산과 부 채를 모두 포함한 금액의 3분의 2의 대가로, 육십조 크레디트의 값어 치가 있는 열한 개 혹성을 당신에게 양도하겠소." 남작의 말에 보라즈 경은 동요하고 있었지만, 수락하지는 않았다. 맥애덤은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십구만 구천구백팔십구 개의 혹성과 그 회사의 자산관리를 은하은행에 위탁하겠소.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자금회전에 의한 수익 을 회복할 수 있고, 채굴권을 대여할 수도 있소, 이것으로 당신들의 은행은 확실히 구제될 겁니다." "잠깐만요." 보라즈 경이 다급하게 말했다. 모두들 그가 이 제안을 거부할 거라 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정확하게 대하고 싶소. 여러분은 혹성리스트를 전은하 전송좌표를 보고 만들었소. 그러나 그것에는 예비 채굴혹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이클로 제국 정부는 팔아먹을 수 있는 한 모든 혹성을 팔아먹었습니다. 회사로부터 최대한으로 돈을 긁어내기 위해 하나의 제국조례를 정했소. 즉, 인터개랙틱 광산회사는 실제로 채굴하고 있는 혹성 하나당 다섯 혹성을 소유하도록 되어 있었소. 법 률원에는 인터개랙틱 광산회사가 소유하는 미채굴 혹성 천만 개가 좌 표와 함께 등록되어 있소. 당신들은 지금 그 혹성의 실제 매매계약서의 단면만을 얘기하고 있 소. 드리스는 말하지 않았겠지만, 이 매매계약서는 이 성계에 있는 다른 아홉 개의 혹성 및 모든 위성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오. 그것들은 가치가 없다고 판정되었기 때문에 언급만 약간 되어 있을 뿐이지만 말이오. 또한 태양이나 성운, 소혹성군도 매매계약에 포함되어 있소. 아무래도 당신들은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막대한 자산을 전부 파악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들이 그것을 조사해서 그것도 은행운 영에 돌릴 것을 허가해주겠소?" 맥애덤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겠소. 만작?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있소, 조니?" 조니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구은행의 두 사람이 모르고 있던 사 실이 드러난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리할 일이 아니었다. 조니는 불만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맥애덤은 보라즈 경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동의합니다." 보라즈 경은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내민 손을 잡으 려다가 얼른 손을 거두었다. "이러한 거래는 은하은행의 이사회에서 재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남작은 웃었다. "좋습니다. 이사회를 개회합시다. 당신들의 헌장에 의하면, 열여섯 개 우즈 가운데 어디서나 열 수 있으니까요." "잠깐만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우리 외에도 열두 명의 이사가 있소.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는 실 레이키인인 그들은...." "그들은 죽고 싶을 정도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소." 남작이 말을 가로챘다. "은행의 상태와 폭동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오. 그들은 은행 이 파산하면 자신의 소유물과 모든 재산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 하고 있소. 그래서 우리의 의견을 멋진 제의라고 찬성해주었소." 보라즈 경은 말문이 막혔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사회를 개최할 수는 없소." "물론 이사회를 연 것은 아니오. 모두들 나에게 대리위임권을 넘겨 주었소, 위임장도 있소.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투표할 권리를 얻었 단 말이오." 남작은 이렇게 말하고, 또 다른 서류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 았다. 보라즈 경은 이사들의 인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것들은 이 미 법률원에 제출됐던 것이다. "자, 의장으로 즉각 은하은행의 이사회를 열어, 지구혹성 은행이 3 분의 2를 매입한다고 하는 동의서를 제출해주시오." "타이핑된 결의서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기서 이사회를 개최하 겠소. 나는 내 인감도 지참하고 있소. 그러나...." "결의서라면 여기에 있소. 모두 타이핑한 것들이오. 당신이 이사회 를 열어준다고 하니 무척 기쁘오. 스나우치까지 돌아가서 당신을 해 고시켜야 할 수고가 덜어질 테니까 말이오." 보라즈 경을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들은 참 웃기는 사람들이군요. 이것을 타이핑한 것은 내 비서 가 아니오? 여기에 그녀의 서명이 있군요." "그렇소,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이더군요. 그녀는 당신의 지위와 자 신의 직장을 구하려고 했던 거요. 자아, 이사회의 의장 및 은행총재 로서 여기에 서명하시오...." "잠깐 기다려주시오." 보라즈 경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들의 제안은 모두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들이오. 그러나 이 거 래로 우리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문제가 세 가지 있습니다." 그때 드리스가 끼여들었다. "첫째는 어떻게 돈을 손에 넣느냐 하는 거요. 즉 이 혹성의 저당권 을 해제하려면 즉각 지불할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오." "아아, 그것 말인가요?" 맥애덤이 그의 말을 받으며 거대한 용지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펼 치자 일 야드나 되었다. "이것은 은하은행이 취급하던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자금회전표 요. 이것에 의하면, 작년 제구십이일에 송금중이던 인터개랙틱사의 자금이 얼마간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은 스나우치 은행으로 옮겨져, 다른 지점으로 송금될 예정이었으나, 그 갑작스러운 일로 송금이 불 가능해졌소. 금속대금, 급료 등.... 모두 이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직 당신들의 은행에 보관되어 있소. 모두 인터개랙틱사의 돈이오. 우리들은 스나우치에 갔을 때, 지구혹성 은행의 구좌를 개설 하여 그곳에 입금시켜놓았소. 에에, 그러니까. 작년 그 달에 이만 개 의 혹성으로부터 수령되어, 송금되지 않은 자금의 총액은 이백구조 사천삼백팔십구억 사천삼백칠십일만 팔천육백사십삼 크레디트입니다. 그 금액에서 저당액을 빼시오. 그래도 우리에게는 백육십팔조 크레디 트가 남아 있소." 맥애덤은 서류들을 뒤적여 다른 문서를 찾아냈다. "이것이 당신에게 그 권한을 부여하는 문서요. 그리고 이것이 당신 이 서명해야 할 영수증이구요. 드리스" 왜소한 회색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구인들이 지불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경매에서 십조 이상의 배상금을 마련해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되어버렸고,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세를 가다듬고, 펜을 집어들었다. 영수증에 서명하려는 순간 보라즈 경이 제지하고 나섰다. "아직 두 가지 문제가 남아 있소."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니를 바라보았다. "조닉 경, 당신을 작업부로 고용하려고 했던 일을 용서해주시오. 사실 우리들은 전송장치와 제어탁자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나갈 수가 없소, 모든 통신과 수송이 단절되기 때문이오. 지금까지 우리들은 모 든 은행업무에 은행전용 케이스와 사이클로인의 전송장치를 이용해왔 습니다. 우주선으로 긴급문서를 보내려면 오만 크레디트의 비용은 물 론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송장치가 필요한데 당 신들이 도와주겠소?" "전송장치에 관한 것은 모두 조니가 담당하고 있소." 회색 사나이들이 요청을 조니 쪽으로 돌린 맥애덤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지구혹성 은행은 그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소. 조니, 우리들 은 당신이 원한다면 낮은 이자로 융자금을 주어, 전송장치 제조 회사 를 설립하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하는 별개의 회사지요. 어떻소?" (2) 조니는 맥애덤이 제안한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줄곧 재정문제만을 고심하느라 그것을 기술적인 문제와 결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전송장치를 열여섯 개의 우주 전체에 분산시킨다면, 지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수천 수만의 전송장치가 반드시 우호적이라거나 선량하다고만은 할 수 없 는 외계 종족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제어탁자만 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인원이 나 긴급 문서를 보낼 수 있으며, 광석이나 제품의 출하는 물론 식량 도 운반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폭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조니 자신도 이것을 이용해서 사이클로별을 멸망시키고, 토르네프 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었다. 지금까지 긴박한 일들이 끊임없이 몰아닥쳤기 때문에 전송장치가 역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십만 개가 아니라 단 한 개의 제어탁자라도 외계인의 손에 넘어가면 언제 폭발당할지 모르는 위험 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조니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회의를 중단한 틈을 이용해서 툰이 차와 간식을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벌써 정오가 가까워져 있었 다. 조니는 다시 처음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사이클로인들은 그들 외에는 누구도 제어탁자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비밀장치를 설치해놓았다. 전송플랫폼과 장치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 다. 문제는 오직 제어탁자였다. 제어탁자에 사이클로인들이 했던 것 보다 더욱 철저한 보안장치를 설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제어탁자 장갑케이스의 전면에 모든 화물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치해두 면 어떨까. 그렇다. 금속분석기다. 그것을 플랫폼 속에 설치해놓으면 화물을 상하좌우 모든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제어탁자 속의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비밀회로에 접속해놓으 면.... 그렇다. 짐 속에서 금지된 물질, 가령 우라늄이라든가. 최종 폭탄처럼 무거운 원소 같은 것이 검출되면, 즉각 차단기가 작동하여 전송장치가 작동을 멈추도록 장치해두면 된다.... 모두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 서 결론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은하은행과 지구혹성 은행의 운명이 그것에 달려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래를 무효화시킬지도 모르다는 세번째 문제란 또 무엇일까. 알렌과 맥켄드릭의 도움을 받아 전염병 문제도 해결해야만 한다. 그들의 얘기로는 정염병인 아우라가 있다고 한다. 아우라는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바이러스균이나 박테리아균을 검출하는 방법은 연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서 그것이 검출되면 역시 차단기가 내려져 전송장치가 작동되지 못하도록 해놓으면 된다. 또한 플랫폼에 지구좌 표를 입력시켜, 그러한 것들이 지구행 화물 속에서 검출되면 제어탁 자가 폭발하도록 장치해놓아도 된다. 그리고 모든 제어탁자가 잘 보 이는 곳에 이렇게 경교표시를 해두자. 이 제어탁자를 이용하여 불법 물품을 정송할 경우, 제어탁자는 작 동불능이 된다. 불법 품목은 적어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검사 자체를 속이려는 자 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렇게 써두자 이 제어탁자를 지구침략에 이용할 경우, 제어탁자는 폭발한다. 제어탁자는 나쁜 의도를 검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써놓는 것 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확실하고 안전한 제어탁자를 제작하 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제어탁자의 마지막 조립작업은 비밀리에 행해진다는 것을 명시해놓으면 되는 것이다. 제조공장 지역에는 엄중 한 보안시설을 갖추어놓는다. 절대로 신뢰할 수 있는, 뇌물이 통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마지막 단계의 조립을 할 수 있게 한 다.... 지구에 조작기술학교를 개설하지만, 그곳에서는 조작방법밖에 가르치지 않는다.... 됐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조니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조니의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제작비는 다소 비싸게 책정될 것 같습니다. 또한 제어탁자 는 매매하지 않고 대여만 할 예정입니다. 제어탁자는 오 년마다 새로 운 것으로 교환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실질적으로 산업이 전무한 상태인 지구도 얼마간의 수 입을 얻게 되고, 출하된 제어탁자의 검사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케이스와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지구 밖에다 공장도 여럿 건설해 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작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 니다." "그럼 제어탁자는 제공할 수 있는 거요?" 보라즈 경이 물었다. "조니가 그러겠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남작이 조니 대신 대답하며 더한층 강조했다. "그가 한다고 하면 틀림없이 이루어질 거요. 두고보라니까요." "좋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가장 큰 장애에 대해 얘기하겠소." 보라즈 경은 대회의장 쪽을 가리켰다. "저 사절들이오." 보라즈 경은 매우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러분은 결의서에 서명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전은하의 은행업 무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친구들이 아주 골치아픈 존재라는 것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앞으로 일을 해나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 만, 현재 저들의 혹성에서는 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들의 경제는 붕괴 직전에 놓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진실 은 보려 하지 않고,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의 오만한 주장만 고집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들은 위기에 처한 경제와 국가를 구하는 방법 은 전쟁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쟁의 힘과 전쟁 히스테리로 민 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야 자신들의 지위가 안전해진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은행은 비록 모든 은하의 증오의 대상이긴 해도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사이클로인의 그늘 밑에서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 이클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는 조그만 혹성입니다. 그리고 글레디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은 강력한 군사세력은 아닙니 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 사절들은 당신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입니 다. 가랑잎 한 장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찾아온 것을 안다고 하잖습 니까? 슐레임의 경우가 바로 그 표본입니다. 그는 은행이 예전처럼 강력한 힘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침법해도 별일일 없 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만간 저 사절들 가운데서도 슐레임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거주가 가능한 백이십만 개 이상의 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거대한 물고기들에게는 군침을 돌게 하는 먹이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전쟁뿐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에, 인터개랙틱의 소유권, 지구 혹은 은행을 무시하기 위한 구실들을 찾아내 이들 혹성을 둘러싸고 서로 다툴 것입니다. 양식과 질서는 당하면 당할수록 그들의 무모한 행동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 다." 조니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은 조니가 가장 고심 하고 있던 문제였다.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무모 한 짓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내지 못한다면, 기껏 열 려고 했던 모든 문들이 눈앞에서 일시에 쾅 닫혀버릴 것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후로 저 우아한 귀족들은 나에게 전쟁융자를 받게 해달라고 협박하듯이 졸라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전쟁융자를 해주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 은행은 그들 을 위해서 채권을 발행하고, 그들끼리 매매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 니다. 전쟁융자 속에는 실질적인 돈은 없습니다. 경제가 이토록 불안 정한 상태에서는 융자금이 반제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전쟁을 원하는 것은 전선에서 싸우는 민중이 아니라, 전쟁을 유도하여 그것 에 의해 이익을 얻으려는 지배층들입니다. 혁명 발발 여부는 모르지 만, 혁명가들은 빚을 안 갚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이 사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그들의 실체를 이해해야 될 것입니 다." 보자즈 경이 말을 마치자, 조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시시 한 궤변을 늘어놓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상황이 되 어버렸다. 이것은 확실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헬멧과 은제 홀을 집어들었다. "로버트 경과 나는 저 사절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미 생각해 두었소. 위험한 방법이지만 달리 묘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일시적인 권한을 부여해주기 바랍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만 은행 의 방침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 만일 성공하면 당신들은 패 배를 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당신들은 아무것도 잃을 게 없습니다." "당신이 은행의 방침을 정한다고요?" 보라즈 경이 깜짝 놀라 묻자, 남작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시오." "그러나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지 않소." "잠자코 따르는 것이 좋을 거요, 보라즈 경." 맥애덤이 말했다. "조니 굿보이 타일러가 그렇게 말하고 있소." 보자즈 경은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맥애덤에게서 남작에게로 시선을 돌려버렷다. "나는 아직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드리스 글로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남작이 손을 뻗어 보 라즈 경의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게 했다. 그것은 마치 인정한다는 몸 짓처럼 보였다. "보라즈 경도 고개를 끄덕이잖소. 조니 경, 당신의 계획대로 하십 시오." "그가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보라즈 경이 투덜거리며 항의했다. "그는 진짜 괴상한 젊은이니까요." 조니는 이미 로보트 경과 함께 방을 나가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3) 분지의 전송구역을 덮고 있던 방수포는 모두 걷혀 있었다. 모든 사 격호에는 러시아 병사들이 한 사람씩 있었고, 정오의 강한 태양이 그 들의 흰 상의와 잘 닦여진 무기를 내리쬐고 있었다. 몇몇 사절들이 불탑 그늘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고 있었다. 조니는 접대담당인 승려 를 불러 사절들을 회의장에 모으도록 명령했다. 급송문서를 손에 들 고 작전사령실에서 뛰어나온 스톰아롱이 로버트 경과 조니가 있는 곳 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반 대령의 굵은 팔과 붕대를 감은 손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마시오." 이반 대령은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그는 명령을 엄수해야 했으므 로 스톰아롱을 통과시킬 수가 없었다. 이반 대령은 그곳에 서서 회의 장으로 들어가는 사절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곧 조니가 안 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할 계획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장 에는 경호원이 없었으므로 그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이반 대령은 눈 치채지 못하도록 하며 사절들을 면멸히 관찰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절들은 우아한 옷차림과 오만한 태도로 보였으나 은밀 히 무장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조니가 충격을 주었을 때, 그들은 폭 력으로 맞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번 작전은 마치 악어가 우글 우글거리는 강에서 헤엄치는 형상이었다. 이반 대령은 결심을 굳혔다. 저 우아한 사절들이 조니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은행사절은 물론 단 한 명도 산 채로는 지구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앵거스는 공중영사기 옆에서 몸을 구부리고 마지막 정밀조정을 하 고 있었다. 사절들이 서서히 모여들고, 작업을 더욱 서둘렀다. 이제 곧 영중영사기가 출현할 차례였다. 스톰아롱은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손에 든 급송문서를 흔들어 보였 으나 다시 이반 대령에게 제지당한 채,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사절들 의 마지막 행렬을 보고 있었다. 로버트 경과 조니가 그들의 뒤를 따 르고 있었다. 회의장 안에서는 접대를 맡은 사람들이 의자의 위치를 바로잡으며, 사절들이 의자에 앉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두 명의 회색인, 그리 고 맥애덤, 폰 로스 남작이 차례차례 들어와서, 벽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로버트 경은 조니와 나란히 연단에 서 있었다. 로버트 경은 사절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들 강대한 권력자들이 순순히 계획에 따르도록 해야만 했다. 로버 트 경은 그들과 충돌이 일어날 것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최후의 결과가 파멸적인 것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웅장항 음악이 회의장 가득 울려퍼지자 접대담당이 벌떡 일어섰다. "사절 여러분, 이 회의의 마지막 회합은 지구 대표인 로버트 경에 의해 개최되었습니다. 로버트 경을 소개합니다." 시작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사절들 사이에서 불평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보라즈 경을 흘겨보았다. 그들의 눈빛 은 경매가 벌어질 줄 알았는데, 새삼스럽게 지구 대표가 우리에게 무 슨 얘기를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었다. "사절 여러분." 보라즈 경이 침착하게 울리는 저음으로 말했다. "경매 외에 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며칠씩 기다리고 있었 단 말이오?" 훠료팡 경이 쏘아붙이자 돔 경도 따라서 소리쳤다. "우리들은 이제 식량과 호흡가스마저 바닥나가고 있단 말이오. 더 구나 우리는 예정된 체류기간을 훨씬 초과하고 있소.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지 않소?" 상황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보라즈 경은 무표정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마치 자신은 이번 일에 전혀 무관하다는 듯이. "사절 여러분." 갑자기 로버트 경이 전쟁터에서 의쳐대던 우렁찬 목소리로 사절들 을 향하여 소리쳤다.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던 상금에 대해 얘기하고 싶소." 소란스럽던 회의장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상금이라는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하여 탐욕스러운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니까 각각 일억 크레디트이 상금이 걸린 두 가지 문제는, 어 떤 것의 발견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것은 '문제의 그것'의 발견에 대한 상금입니다." 사절들은 긴장했다. "저곳에 '문제의 그것'이 있습니다." 로버트 경은 손을 쑥 뻗어 조니를 가리켰다. 그것은 대단한 충격이 었다. 사절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이것은 조니가 계획했던 것이 아 니었다. 로버트 경이 상황의 급변에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것은 대단한 효과를 나타냈다. 로버트 경은 힘차고 의기양양한 목 소리로 외쳤다. "그는 몇몇의 동료들로부터 협력을 얻어서 열여섯 개의 우주 가운 데 최강의 제국을 완전히 멸망스켰습니다. 이 사나이는 여러분들의 국가를 정복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여러분 은 오천 개의 혹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만 개 이상 의 혹성을 가진 제국을 파괴시켜버린 것입니다." 사절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도대체 어떻게 전개될 런지 짐작도 못한 채, 로버트 경의 연설에 온신경을 모아 귀를 기울 이고 있었다. "여러분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이 사이클로별을 완전히 파괴 해버렸는지 보고 싶지 않습니까?" 대답할 틈도 없이 즉각 네 명의 러시아인과 이반 대령이 공중명사 기를 실은 광산이동차를 말고, 재빨리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은 능숙하고 재빠르게 그것을 설치했다. 그러자 로버트 경이 리모컨 의 버튼을 눌렀다. 스포트 라이트가 꺼지고 공중영사기가 작동되었 다. 대폭발 직전의 사이클로 제국의 수도전경이 연단 위에 영상으로 나 타났다. 훌륭하게 조각된 당당한 성벽, 강대한 사이클로 제국의 성벽 이 틀림없었다. 마치 실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이클로 제국 의 전경을 본 사절은 아무도 없었다. 만일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지금까지 생명이 붙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 장을 보고서 그것은 틀림없는 사이클로별의 돔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후 영상이 바뀌며 드디어 대파국이 시작되었다. 사이클로별은 그들의 눈앞에서 지옥 같은 불길에 휩싸인 채 녹아 내리며 무시무시한 섬광을 발산하면서 타오르는 태양으로 변해버렸 다. 영상은 그곳에서 끝났으나 스포트 라이트는 계속 꺼져 있었다. 로버트 경의 목소리가 채찍소리처럼 그들의 등 뒤에서 울렸다. "사이클로인들의 잔혹한 압정을 상기하시오. 그것이 모든 종족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를. 그 포악함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그리고 그 제국은 영원히 끝나고,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나이에게 빚을 졌습니다." 스포트 라이트가 천천히 조니를 비추기 시작했다. "여러분을 괴물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빛." 좀처럼 공포를 느낀 적이 없는 사절들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 렸다. 로버트 경은 조니의 지시를 완전히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 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힘이 팽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고국을 멸망시켰을지도 모르는, 이 오만한 사절들을 죽도록 증오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그가 사이클로처럼 잔혹한 혹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 았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해결한 또 다른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로버트 경은 스포트 라이트를 끄고 공중영사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토르네프 위성이 나타났다. 사절들이 전에도 본 영상이었다. 이번에는 슐레임 경의 사건 뒤에 촬영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서, 아 사트가 완전히 소멸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눈앞에서 오므라들 기 시작했다, 도망치려고 하던 거대한 전함이 그들의 눈앞에서 잡아 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토르네프 산에서 촬영한 영상이 나타났다. 조니도 이 영상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고 있으려니까 달 이 가스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스는 극도로 차가운 공간에서 액화되어갔다. 그 가스 속으로 강철파편이 낙하해갔다. 그것이 달표 면에 도달하기 직전, 무시무시한 번갯불이 그것을 향해 뻗어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강철판에 작렬했다. 그러자 그것은 액화된 가스의 표 면을 강타하고, 차츰 무너지면서 핵의 중심으로 휘돌아갔다. 핵의 중 심은 아직도 유동하고 있었다. 그 달은 지금 몇 핵 메가볼트나 되는 전기를 지닌 가스 모양의 원 형을 이루고 있었다. 원자의 분열이 엄청나게 거대한 부하를 발생시 키고 있었으나, 그곳에는 산소도,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제2의 국도 없 었고, 대기권의 엄청난 자온 때문에 얼어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조니는 그것이 사이클로인의 연료 원료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곳에는 중금속이 없었고, 좀더 저차원의 금속만이 있었지만, 어떠 한 우주선이라도 그곳에 접근하면 즉시 파괴되어버릴 것이었다. 그때 마침 그곳에 운석이 다가왔다. 그러자 번갯불이 번뜩이면서 그것을 녹여버렸다. 바로 전에 사절들은 사이클로 혹성이 작렬하여 태양으로 변하는 것 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달이 사라지고, 차갑게 얼어붙은 죽음과 파괴의 덩어리로 응고하는 것을 목격했다. 로버트 경의 목소리가 충격파처럼 그들 사이에 울려퍼졌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여러분의 본국혹성에 대해서도 같 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절들을 기절총으로 쏘았다. 해도 지금 같은 효과를 얻지는 못했 을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공포로 얼어붙어 있었다. "이것을 저지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니의 계획은 이렇게까지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로버트 경은 복 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포트 라이트의 빛이 조니를 완전하게 비 추었다. 로버트 경은 사절들에게 외쳤다. "그는 스물여덟 개의 전송플랫폼을 스물여덟 개의 장소에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이 혹성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혹성의 좌표가 세트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명이라도 우리 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한다면, 이들 스물여덟 개의 전송플랫폼마다 이런 폭탄이 전송될 것입니다." 조니는 로버트 경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스물여덟개 의 플랫폼에 대해서만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여러분의 본국혹성 전체가 저 달처럼 될 것입니다." 사절들은 충격으로 마비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 우리들과의 전쟁, 그리고 여러분들끼리의 전쟁을 일체 금 지하겠다는 조약에 서명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혹성은 모 두 저 달처럼 붕괴되고, 그것과 함께 여러분의 국민도 모두 소멸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는 다시 조니를 가리켰다. "그는 그것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완벽하게 처리해버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즉시 조약을 작성하고 서명하십시오." 회의장은 싸움터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 모든 사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사람들처럼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반 대령과 그의 부하들은 사태의 돌변에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로버트 경은 의기양양해서 그들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조니 가 연단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스포트 라이트가 그를 따라서 움직여 졌다. 조니가 손을 들어서 그들을 제지시키자, 소동은 약간 가라앉았 다. 브라울 경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그것은 그들 모두의 감 정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것은 선전포고다." 조니는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조니의 당당함에 위압당한 사 절들은 차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조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선전포고가 아니라 평화선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경제가 전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 는 자신의 나라가 인구과잉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최 상의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러나 전쟁을 하면 교전국 중 어느 한쪽은 반드시 패배하기 마련입니 다. 어느 쪽도 지기 위해서 싸우지는 않겠지만, 그 가능성은 양쪽이 똑같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를 선언함으로서 우리들은 여러분 들이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훠료팡 경이 갑자기 소리쳤다. "우리는 귀국하는 즉시 당신들에게 대함대를 파견할 것이오. 당신 들의 우리들의 혹성을 전멸시킨다고 해도, 그 함대는 이곳에 도착해 서 당신들을 파멸시킬 겁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면, 당신들은 앞으로 언제 암살당할지 모릅니다." 로버트 경이 재빨리 조니 앞을 가로막고 섰다. "여러분의 함대는 여러분 자신의 혹성을 방위할 수 없습니다. 저 플랫폼에 대해서 여러분은 자신을 지킬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 사나 이만이 그 소재지를 알고 있소. 만일 그가 다시 세트하지 않은 채, 한 달이 경과한다면 그 플랫폼들은 자동으로 폭탄을 전송하게 됩니 다. 만일 그에게나 지구에 무슨일이 일어난다면, 여러분들의 본국혹 성은 파괴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대리인이 있습니다. 대리인 은 그와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별할 수가 없습 니다. 여러분이 그를 암살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그의 대리인을 죽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리인 중 누군가가 습격당하면 플랫폼은 모든 폭탄을 전송할 것입니다. 지구를 공격하고, 그를 암살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당신들의 자유입 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지배자와 국민의 생명이 그것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함대가 이곳에 와서 우리들을 파괴한다고 했던가요? 분명히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본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함대가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함대가 이곳을 공격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돌아갈 기지도 국민도 지 배자도 없을 겁니다. 그것을 생각해보시오." "당신은 지금 사절들을 협박하고 있는 거요?" 브라울 경이 날카롭게 말했다. "여러분의 전쟁산업은 설비를 확대해가며 조업에 전력하고 있습니 다. 그렇게 되면 정복당하는 일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 둘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가항력이라는 원리를 알아야 만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저항불능의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군인이지만 여러분은 외교관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이 불가항력에 대 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외교관이 아니라 바보입니다. 그것도 자기 손으 로 자기의 목을 조르는 바보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힘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이오?" 뒤쪽에 있던 왜소한 사절이 말했다. 조니는 로버트 경을 살며시 옆으로 물러나게 했다. 로버트 경이 독 단적으로 얘기를 진행시켰기 때문에 계획과는 상당히 빗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방식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사절들은 온통 넋을 빼앗 기고 있었던 것이다. "플랫폼에서 폭탄이 전송되기 전에 사절들의 회의가 열릴 것입니 다. 그곳에서 모든 불합리한 행동이나 오해를 처리할 수가 있습니 다." 조니의 이 말은 사절들의 흥미를 끈 것 같았다. "플랫폼은 그러한 회의의 무기로 이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절들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으 로 미뤄보건데, 그 가운데 최소한 몇 명은 이 회의를 정부 내에서 자 신의 세력을 확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역시 능숙한 사절들다운 발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 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손가락이나 손톱을 들여다보거나,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조니는 아직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 다. "그래도 이것은 무시무시한 위협이오." 사절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것은 우리들이 현재 직면해 있는 경제문제를 조금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오. 오히려 한층 더 혼란만 가져다줄 거요." 조니는 그들의 말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진짜로 대결하고 있는 것의 정체를 차츰 깨달아갔던 것이다. 사절들과 그 국 민은 모두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클로인의 영향을 받아왔다. 정치적인 자유는 유지하고 있었겠지만 사이클로인의 철학이 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온 것이었다. 사이클로인의 철학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동 물적이며, 탐욕, 이윤, 그리고 부패가 개인의 본질이다. 품위나 미 덕, 양심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이클로인은 모든 외계인들의 인생을 그들의 철학으로 길들였으 며,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강요 아닌 협박을 했던 것이 다. 자, 봐라. 역시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않는가라고. 어떻게 하면 사절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조니는 넘을 수 없는 새로운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우리들의 경제는 전쟁을 필요로 하고 있다구요." "전은하의 평화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뿐입니다. 한 평도 남김없 이." 사절들 사이에서 외쳐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사이클로인 들의 철학에 길들여진 저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그것이 최상의 방법일 것이라고 조니는 생각했다. 사이클로인은 그들의 모든 거래혹성을 상 호간의 전쟁상태에 놓아두려고 했다. 이들 자유혹성이 금속을 사주는 한,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방해가 되면 언제든지 때려부수면 되는 것이었다. 사이클로인은 그들이 눈앞 의 이익을 놓고 짐승처럼 다투기를 원했다. 실제로 사이클로이들은 그들을 단순히 동물이라고 믿고 있었다. 조니는 다시 사절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경제에는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 산업을 이른바 소비재산업으로 전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산업의 부활은 국민들을 위한 제조산업 부분에 활력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국민이 여러분의 산 업에 있어서 최고의 고객이 되고, 가까운 장래에 여러분의 세계에서 상호교역이 행해질 것입니다. 사이클로인은 모든 무역품이 사이클로 별에 가장 먼저 출하되도록 파행적인 무역거래 원칙을 설정해놓았습 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역의 급소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 으로는 모든 성계에서 신속하고 공정한 무역이 행해질 수 있도록 관 장하는 기구가 결성될 것입니다. 전은하계가 번영하려면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국민은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폭동을 일으키고 있지 만, 제조관련 산업이 재개되면 모두 그 평화산업에 고용될 것입니다. 국민들의 소득은 증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생활수준도 향상될 것입 니다. 모두 보다 나은 음식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여 러분은 번영과 풍요로운 시대의 선구자가 될 황금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절들은 모두 조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특별히 호의 적인 반은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조니의 말은 사이클로 철학에 길들 여온 그들의 생각을 진정으로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것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폭동을 진압할 수 없습니다." 돔 경이 말했다. 조니는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보라즈 경은 기절초풍을 하겠지만. "은하은행은 여러분의 정부에 대해 기꺼이 거액의 유리한 융자를 해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융자는 차입금으 로 국밍의 식량을 구입하고, 평화산업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사용하 게 될 정부에게 부여됩니다. 또한 더이상 전쟁이 없다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 인식되면, 폭동은 가라앉고 정부는 안정될 것입니다." 브라운 경이 보라즈 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한 말이 사실입니까?" 보라즈 경은 양옆에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 다. 두 사람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승낙을 재촉했으나, 그는 잠자 코 앉아 있었다. 조니는 다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은행은 여러분의 산업을 소비재 산업으 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자금을 빌려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은행은 개인적으로도 대부산업을 개시할 것입니다. 즉, 소기 업 혹은 개인에게까지 대부를 해줄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구매력 을 높이게 됩니다." 보라즈 경은 옆구리를 찔리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조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젊은이는 상업은행 업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개 길거리의 조그맣고 비천한 행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 크레디트, 혹은 반크레디트씩 여기저기에 마구 빌려주었다 가 수거하는 상업은행이 취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나는 많은 새로운 혹성이 시장에 나와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 게 알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 혹은 여러분의 이른바 과잉인구를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듬뿍 빌리 수 있습니다." 조니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냉정한 말투로 보라즈 경에게 얘기를 건넸다. "그것이 틀림없겠지요, 보라즈 경?" 은하은행 총재의 머리는 매우 혼란해져 있었다. 마치 성난 파도 한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젊은이가 은행의 방침을 결정하게 하는 데 전면적으로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일어나서 그것을 거 부해야 할까. 은하은행은 그런 자질구레한 장사는 해오지 않았다. 국 가하고만 거래를 해왔다.... 그때 자신들이 사이클로인에게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보라즈 경의 머리는 맹렬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혹성도 거 대한 인구를 갖고 있었으며, 그 대다수는 항상 실업상태에 있었다. 보라즈 경의 머리에서 하나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모든 혹성, 모든 대륙, 모든 도시에 있는 은하은행의 조그만 사무소, 그곳에는 설레이키인 직원이 있다. 이웃 은행이다. 그들은 소기업주는 물론 노 동자에 까지도 융자를 해준다. 우리들도 옛날에는 그런 방식을 쓰지 않았던가. 룽거 경 이전의 시대에는.... 그렇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수의 실레이키인을 고용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이들 혹성을 식민지화하여 그 구입자금을 그들에게 대 부해준다.... 그는 백이십만 개의 혹성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방치해주고 모르는 체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그 혹성을 생산에 활용한다면 자금공급과 생산이 보조를 맞 추게 될 것이고,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젊은이는 이 들 과잉자산을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생각을 자제하려고 했다. 국민을 위해서 식량을 사들이고, 그 것을 무상으로 나눠주기 위한 자금을 정부에 공급해도 좋을까. 이것 은 사회은행 업무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행기간 은 오래 걸릴 것이고, 그 동안에 모든 정부는 목까지 빚더미 속에 잠 겨버릴 것이다. 순간 보라즈 경은 존경과 공포가 뒤섞인 시선으로 조니를 바라보았 다. 이 젊은이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일까. 이들 오만한 사절들과 그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일까. 지금 조니의 눈엔 자신감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 던 것이다. "대답해주시오. 보라즈 경." 브라운 경이 대답을 재촉했다. "정말로 당신은 그러한 융자를. 더구나 그 정도의 규모로 해주실겁 니까?" 보라즈 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절 여러분, 얼마 전에 은하은행은 지금까지 관리하던 최대의 자 산보다도 이천 배 내지 그 이상에 이르는 자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 다. 은행은 이들 자산을 활용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으며, 여러분들 의 신용상태는 모두 양호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입니다. 적법 한 서류와 수속과 담보가 있다면 은하은행은 지금 얘기한 융자를 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사절들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은행의 확대방침은 매우 철저한 것이었다. "자아, 사절 여러분, 이제 전은한 평화조약에 관한 논의로 들어가 도 괜찮겠습니까?" 보라즈 경의 확인까지 받았지만 그들은 조니의 말에 아직까지 주저 하고 있었다. 오히려 몇몇은 거부할 기세였다. 그때 툰의 인용구가 조니의 머리를 스쳐갔다. '돈과 황금은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 경이로운 마력을 지니 고 있습니다.' 이 사절들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툰이 말한 것의 표본들이었다. 장기간에 걸쳐서 사이클로인들의 물질만능의 실리주의에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면 그들을 사이클로인처럼 취급하여 그 개인적 탐욕에 호소하는 것이 가장 자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것이었다. 이제까지 지켜온 조니의 윤리관으로는 그렇게 하기까지 약 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든 이번 회 의는 성공시켜야 했다. 너무나 많은 생명과 운명이 이번 회의에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조니는 연단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무릎을 꿇었 고, 그의 얼굴이 사절들의 얼굴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 "스포트 라이트와 모든 레코더를 꺼주시오." 조니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조니는 사절들을 응시했다. "여러분이 가진 기록기도 모두 꺼주시오." 그리고 회색 사나이를 향해서 말했다. "은행의 기록도 중지해주십시오. 그리고 중지했다는 것을 확인해주 십시오." 회색 사나이는 웃옷의 옷깃을 두들겼다. "기록기가 멈춘 것을 선언합니다." 사절들의 시선은 모두 조니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여러분의 주요 기업은 무엇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조니는 속삭이듯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병기입니다." 역시 작은 소리가 되돌아왔다. "이들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은 어떻게 될 꺼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절들은 의아해 했다. 그처럼 쉬운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폭락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조니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그 대처방안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은 귀국하는 대로 모든 전쟁을 금지하는 조약에 대해 곳곳데 떠들고 다니십시오, 그렇게 되면 무기회사의 주식과 채권은 밑바닥까지 폭락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소비재 산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라 는 것, 혹은 충분한 자금을 제공한다는 은행의 약속에 대해서는 절대 로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가 폭락한 이들 주식이나 채권을 모두 사들 인다면.... 돈이 없으면 은행융자로 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 분은 그 산업을 독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후 굶주려 있는 민중 에게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어 여러분이 그들의 영웅이 되면, 폭 동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지배자로서의 위 치를 확립한 시점에서 은행은 전환융자를 시작합니다. 기업은 번창할 것이고, 부유한 자는 백만장자가 되고, 백만장자는 억만장자가 될 것 입니다." 조니는 얘기를 끝내고 잠시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을 했다. "여러분은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 혹은 그것을 암시했다는 것조차도 잊어주기 바랍니다." 조니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반응을 기다렸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 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이클로인에 의해 길들여진 것뿐이다. 사절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손을 입에 갖다대고 킬킬 거리며 웃거나, 머리를 맞대고 수근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갖가지 숙 덕공론이 조니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새로운 애인을 가질 수가 있다." "우리 마누라는 그 낡은 집을 싫어하고 있지." "나는 요트를 팔지 않아도 되겠군 그래." 그들은 계속 머리를 맞댄 채 의논하고 있었으나, 조니는 무슨 얘기 를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훠료팡 경이 자 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니 경, 우리들은 당신이 지금 얘기한 것을 모두 잊었습니다. 어 느 누구도 지금 한 말을 누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훠료팡 경의 몸이 한층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부디 플랫폼을 건설해주십시오. 우리들은 보다 엄중하고 강철처럼 단단한 반전조약을 체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 을 정도의 완벽한 조약을." 조니는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불을 켜세요. 기록기의 스위치를 켜주십시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쳐댔다. "조니 경 만세! 조니 경 만세! 조니 경 만세!" 그것은 귀청이 터질 것처럼 큰 합창이었다. 사절들은 조니의 등을 마구 두들겨주었다. 그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리면서 당장이라도 쓰러 질 것만 같았다. 이반 대령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대고는 황급히 병사들을 정열시켰다. 조니를 안전하게 소회의실로 데려가기 위해서 였다. 이반 대령은 조니가 뭐라고 말했는지, 혹은 어떻게 해서 상황을 역 전시켰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다만 조니가 사절들의 축복을 받느라고 부상이라도 당하기 전에 무사히 호의하고 나가야만 한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조니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역전에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조니 굿보이 타일 러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면 이런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4) 이반 대령이 모두를 무사히 소회의실로 안내하자, 그들은 자기들만 의 자리를 만들었다. 드리스 글로툰은 인터개랙틱사 보유자산의 송금수표 문면과 서명을 검토하면서 군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거액의 수표는 처음 다뤄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한 수표가 아니라 지불능력의 회복, 많 은 지역사무소의 영업재개, 그리고 직원들의 직장복귀 등, 모든 것을 부활시켜주는 것이었다. 드리스 글로튼은 그 수표가 유효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검토해볼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너무나 기뻐서 몇 번씩이나 다시 읽어보았다. 그는 거창한 몸짓으로 영수증을 꺼내서 익숙한 솜 씨로 서명했다. 그리고 나서 저당서류를 집어들고, 커다란 글씨로 이 렇게 써넣었다. '전액 지불완료' 지난 몇 개월 동안 걱정하면서 기다 린 보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는 수표를 주머니 깊숙히 집 어넣고,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영수증과 서류를 맥애덤에게 건네주었 다. "우리들의 거래는 완료되었소. 여러분과의 거래가 성사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오." 맥애덤과 악수를 끝냈을 때, 드리스는 보라즈 경이 자리에 앉은 채 멍하니 테이블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렷다. 드리스는 약간 불안 해졌다. "각하,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보라즈 경은 드리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생각에 깊이 몰두해 있었 기 때문에 그는 조니가 있는 것도 잊고 말했다. "자네는 그 젊은이가 한 말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겠나?" "투기적 융자에 대해서 말입니까? 사절들은 주식이 폭락했을 때, 그것을 매입하기 위한 자금을 빌리러 오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소 한 일입니다. 그 융자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닐세, 그게 아니란 말일세. 그가 하려는 일은 사절들이나 그 정 부을 위한 일일세. 아니, 자네는 모르고 있군. 설명해주기. 그는 광 범위한 고용을 제공하여 매우 평범한 서민들까지도 돈을 빌리 수 있 게 했네. 그렇게 함으로써 독립된 노동자 계급을 창출해가고 있는 것 일세. 앞으로 그들은 경제적 독립을 얻게 될 걸세. 국가는 경제기반 으로서의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더이상 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걸세. 그리고 은행업무의 대부분이 그들 노동자 계급을 상대로 하게 될 걸세." "물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 든 정부는 이미 우리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정부 도 은행에는 거역할 수 없을 겁니다." "바로 그 점이다. 은행은 점점 더 정부에게 노동자 계급의 입장을 고려하도록 압력을 넣게 될 걸세. 노동자 계급이 은행의 주된 수입원 이 되기 때문이네. 저 사절들과 같은 귀족들의 세력은 차츰 작아져 서, 결국 그와 같은 특권 계급은 소멸하게 될 것이네." "아아." 순간 드리스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생각해냈다. "사회적 은행업무군요." 조니는 벽 쪽에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는 그들의 문제를 빨 리 매듭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기엔 너무 초조했다. 혹시 그들의 생각이 바뀌지나 않을까.... "그것은 사회민주주의라고 불리웁니다." 조니는 다시 설명하듯 천천히 말했다. "개혁해야 할 대상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훌륭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그것을 무한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 으로 몇천 년이 지나면 누군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겠지만." 보라즈 경은 맥애덤과 남작에게 눈길을 돌렸다. "여러분은 그가 조금 전에 저 회의장 안에서 해낸 일을 알고 있나 요? 불과 몇 시간 동안에 그는 역사 속에 존재헷던 모든 혁명이 성공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국민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덕택에 우리가 저 사람들을 누를 수 있었 다는 것이오." 맥애덤이 이제 모두 끝난 일이 아니냐는 듯이 말했다. "은행결의서를 작성합시다. 그러면 이 회의를 끝낼 수 있을 테니까 요." 보라즈 경이 자신을 되찾고, 위임장을 집어들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결의에 대해 씌어 있군요."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남작이 입을 열었다. "이것은 룽거 경에 대한 사항이군요." "그렇군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그가 죽은 지 얼마나 될까요? 이십...." "내 말을 좀 들으시오." 남작이 말했다. "사이클로인들은 우주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증오의 대상이 되었 던 종족이었소. 이십만 년 전쯤에 당신들의 룽거 경이 은행을 이용해 서 그들을 구했소, 하지만 그렇개 했던 일들은 오늘날 좋은 평가를 받 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오." 그러자 남작이 말했다. "통화의 정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념으로.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지폐에 룽거 경의 얼굴이 찍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조니는 섬뜩했다. 지구지폐에도 전례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 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로버트 경의 거대한 손이 그의 입을 가로막 아 발언을 저지시켰다. 그동안 계속해서 조니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던 드리스가 여전히 그 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각하, 이 젊은이에게서 실레이키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습니까?" 그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니는 로버트 경의 커 다란 손 위에서 그들을 험상궂게 노려보았다. 로버트 경과 다툴 생각 은 없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의 눈 말입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회색이 섞여 있습니다. 분명 히 다른 색깔도 있어요. 바다 같은 색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눈을 좀 보십시오. 회색입니다." "자네 말대로군 그래. 실레이키인과 닮아 있구먼." "나는 그의 영상기록을 몇 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여러 각 도에서 찍은 그의 영상이 들어 있습니다. 화가 렌스핀에게 그것들을 참고로 해서 이상적인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겁니다. 버튼을 빛나게 하는 특수 잉크도 있습니다. 그리고 헬멧은 총천연색으로 입체화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초상 밑에는 뭐라고 쓸가요? '조니 굿보니 타 일러, 사이클로인의 정복자'라고 할까요?" "안되네, 그것은 안돼." 보라즈 경이 말했다.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자라고 하는 것은?" 보라즈 경의 말에 남작이 제안했다. "아니, 그것도 안됩니다." 보라즈 경이 말했다. "해방이란 단어는 사절들로부터 반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한번 정하면 정정할 수 없으니까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든 지폐를 다시 인쇄해야 하고, 옛날 지폐를 전부 회수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밑에는 '지구혹성 및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자산에 의해 서 보증된다'라고 집어넣을 필요가 있소. 초상을 중앙에 넣고...." 그는 말을 중단했다. 맥애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자리에는 그가 이룩한 업적을 기록해야 합니다. 폭발하는 사이 클로별을 배경으로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씁시다. '조니 굿보이 타 일러' 그 바로 밑에 '모든 종족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인물'이라고 하 는 겁니다." "바로 그거요." 보라즈 경이 말했다. "그것이라면 사이클로별을 파괴한 것만을 가리키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공적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의 인기는 이들 별뿐만 아니라 열여섯 개 우주 전체에 있는 별과 모든 혹성에 퍼저나갈 것입니다." 보라즈 경은 앉은 채로 몸을 구부려서 결의서를 끌어다가 지폐에 써넣을 말을 기입했다. 그리고는 거창한 몸짓으로 결의서에 서명했 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매듭지어졌다. 두 명의 회색인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넘치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화가 난 조니를 놓아주고, 그들과 악수를 교환했다. 보라즈 경이 맥애덤과 남작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매우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은행업무였습니다." 회색 사나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류를 모은 다음 방을 나갔다. "만세! 드디어 해냈다.!" 맥애덤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띄며 말했다. "우리들은 자유다. 이제 부채는 없다. 새처럼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조니를 보며 한마디 했다. "모두 당신 덕분이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조니." (5)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은 서류들을 정리하여 다시 한 번 조인된 서 명을 확인한 후,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조 니가 말했다. "스나우치의 이사들이 용케도 당신들의 얘기를 들어주었군요. 어떻 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들은 약간 변칙적인 방법으로 구좌를 개설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은 몇 초 사이에 모든 은행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이클로인 들이 황금을 전부 긁어모으는 바람에 그것이 희소해졌기 때문에, 글 레디데스에서는 황금 일 온스당 오십만 크레디트라는 엄청난 고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황금으로 구좌를 개설했습니다. 물론 그 것은 당신들의 황금이죠, 얼마 전에 일 톤 쯤 되는 양을 녹여서 금괴 로 만들어 두었었습니다. 그것을 은행에 반입하는 데 등뼈가 부러질 뻔했어요. 그들은 지난 일 세기 동안 그렇게 많은 황금은 본 적이 없 었던 모양입니다." 남작의 대답에 조니는 소리내어 웃었다. "결국 타르의 황금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군요." "당신들이 지하갱에서 엄청난 고생을 해가며 힘겹게 모은 황금이니 까요." 맥애덤이 말했다. "그것은 모두 당신과 작업반이 캐낸 것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을 이곳으로 가져와도 좋습니다. 지금 그 황금은 파산을 면한 스 나우치 은행의 금고실에 철저한 보안장치가 된 유리 속에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하의 역사를 뒤바꿔놓은 황금입니다." "또 한 가지, 어떻게 카에게 서명을 받아냈습니까?" "카 말입니까?" 조니의 물음에 남작이 대답했다. "우선 그는 당싱의 친구입니다. 서명하면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톰아롱이 당신들이 촬영한 사이클로별의 영상 기록을 보여주면서 안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사이클로인에게 쫓기 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는 기꺼이 인터 개랙틱 광산회사를 처분해주었습니다. 그는 최후의 정식 혹성장관으 로서 임명장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들은 그에게 보통의 고용계약을 맺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단 시체를 사이클로별로 전송한다는 조항만 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가 선임자의 재산에서 횡령한 수십만 크레 디트는 묵인하기로 하고, 평생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호흡가스를 보장 했습니다.이 마지막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조니는 위성 포비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다. 그곳에서 몇 톤의 호흡가스를 퍼올린 다음 병에 담아, 전송장치를 이용해 이곳으로 옮 겨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조니는 그들이 짐을 모두 챙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 "당신들 두 사람은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통쾌 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그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우리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 다." "그런데 타르에게 서명시킨 인터개랙틱 광산회사의 매매계약서를 그러한 내용으로 할 것을 어떻게 생각해냈습니까?" 조니의 물음에 맥애덤이 웃었다. "브라운 린퍼는 자신의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기 위한 담보로 타르 의 계약서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것이 정식 계 약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지요. 타르는 자신의 서명조차 속이고 있었거든요." 그는 원본의 사본을 한 장 꺼냈다. 그것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문 서였다. "나와 남작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그 폭탄을 사이클로별로 보낸 지 십일 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격이 없었습니다. 만일 사이클 로별이 소멸됐다면 사이클로인은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 가 카의 얘기로는 다른 채굴위성에도 호흡가스가 충분히 보유되어 있 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충격을 줄 수 있도록 말을 엄선한 거지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지요. 당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 니다. 사이클로별을 파괴시키기로 마음먹은 이상, 당신은 그것을 성 공시켰을 거라고 우리는 믿었고, 그것에 도박을 건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의 판단이 적중한 거죠." "도박을 할 때 조니 쪽에 걸면 틀림없으니까요." 그들은 서류뭉치로 부풀어오른 가방을 들고, 잊은 물건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됐소,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군요." "아니오. 아직 아니오." 갑자기 로버트 경이 제지하고 나섰다. 그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기 때문에 모두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이 불쌍한 젊은이를 이용한 방법이 약간 치사하다고 생 각되는데요." 로버트 경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맥애덤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들은 지구지폐에 그의 초상을 사용했고, 그의 에너지와 아이 디어를 이용한 덕택에 열여섯 개의 우주를 손에 넣었소, 더구나 그의 얼굴을 은하은행의 통화지폐에 인쇄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소. 그런데 조니로 말하자면, 교회의 쥐만큼 가난하다구요. 내가 아는 한 조니는 조종사로서의 급료도 받지 못하고 있소. 당신들이 그의 공장에 융자 를 해줄 계획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그게 뭡니까? 그에게 빚 을 뒤집어씌울 계획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부끄러운 줄 알라고요. 부끄러운 줄을!" 그것은 로버트 경의 진심이었다. 맥애덤과 남작은 멍하니 서 있었 다. 조니는 로버트 경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예감한 순간, 그를 제지하려고 했다. 조니는 자신에게 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 다. 배가 고파지면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로버트 경은 그를 손으로 제지했다. 남작과 맥애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 다. 분명히 두 사람은 무척 당혹해 하고 있었다. 로버트 경은 계속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 고, 급기야 로버트 경이 말했다. "당신들은 최소한 조니에게 초상권을 인정하고 그 사용료 정도는 지불해야 하지 않소?" 맥애덤은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서류뭉 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잔뜩 부풀어오른 서류가방 속의 문서를 들추기 시작했다.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자, 그것을 집어들고 그들 앞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렇군요, 조니. 제발 우리들을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당신이 이 것을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군요." 그는 서류를 펼쳤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 신이 그것을 공표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옆에 있던 남작이 변명하듯이 얘기했고, 맥애덤은 은행인가증의 공 보를 내밀었다. "지구혹성 은행은 본래 서른 명의 수장평의회에 의해 인가를 받았 습니다. 이것은 그것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발행된 공보입니 다....." 그는 두번째 서류를 펼쳤다. "그러나 평의회에서 통과된 실제의 인가증은 이것입니다. 이 실제 의 인가증만이 법적으로 유효한 유일한 것입니다. 남작과 나는 왜 두 개의 문서가 서로 다른지 줄곧 이상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당 신은 당신 평의회의 서기를 맡았던 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요?" 인가증에 대한 공보에는 맥애덤과 폰 로스 남작의 이름밖에 없었 다. 남작과 맥애덤은 얼굴을 마주보고 동시에 말했다. "브라운 린퍼 스태퍼였습니다." 맥애덤이 계속 말을 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공표하는 결의문을 잘못 배낀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당신이 그 일을 숨기고 싶어서 그 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진짜 인가증을 펼쳐 보였다. 맨 꼭대기에는 폰 로스 남작과 앤드류 맥애덤의 이름 위에 커다란 글씨로 '조니 굿보이 타일러'라고 씌어 있었다. "지금까지 중요한 거래가 있을 때마다 우리들은 항상 당신의 의견 을 물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몰랐습니까?" 남작은 후회하는 얼굴로 물었다. "우리는 단지 당신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 해하지 않으려 했던 것뿐입니다." 맥애덤이 다시 말을 받았다. "하지만 로버트 경, 이젊은이는 지구혹성 은행의 3분의 1를 소유하 고 있습니다. 그것도 합법적인 인가증에 의해서입니다." 남작이 로버트 경에게 말했다. "조니는 이제 은하은행의 9분의 2, 그러니까 이십삼 펴센트외 ㅇ니 터개랙틱 광산회사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맥애덤 쪽으로 돌아섰다. "어쩌면 우리들은 그의 몫을 좀더 늘려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맥애덤이 로버트 경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이 이 젊은이를, 당신의 표현대로 교회의 쥐새끼처 럼 가난하게 내버려둘 줄 알았습니까? 그는 또 일 톤짜리 황금의 일 부를 소유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의 재산 총액을 계산하려면 컴퓨터 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억조 단위가 된다구요. 지금 이 젊은이는 열 여섯 개 우주가 시작된 이래, 가장 부유한 인간일 것입니다. 사이클 로의 황제도 그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지 못했단 말입니다." 로버트 경은 조니를 놓아주며 웃기 시작했다. 그는 조니의 등을 두 드렸다. "그랬군, 그랬었군. 그럼 잘해보게. 변장한 교회의 쥐새끼군." 로버트 경은 다른 두 사람을 보았다. "알겠네. 여러분. 그런 됐네. 그만하면 충분하겠지." 그는 덧붙여 말했다. "자네들, 저 화려한 사절들을 모두 조니의 하인으로 고용하면 어떻 겠나?" "그는 이미 그들을 완전히 매수해버렸습니다." 맥애덤이 말했다. "장화에 달린 싸구려 장식까지 모두 말입니다." 맥애덤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조니는 어리둥절해하 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억조? 조 니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숫자였다. 조니는 윈드스프리 터에게 가죽끈으로 된 고삐를 사주고 싶어했었다. 크리시에게는 새로 운 가구를.... 크리시를 떠올린 순간 조니는 흠칫 놀랐다. 지금까지 일 때문에 그 녀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맥애덤과 남작은 서류들을 모두 챙겨 가방에 집어넣은 후, 입속말 로 중얼거리며 방을 나갔다. "정말 브라운 린퍼는.... 끝가지 속을 썩히는군...." 그때 갑자기 화가 복받쳐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니와 로버 트 경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스톰아롱이 로버트 경을 보자 긴박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로버트 경, 빨리 오세요. 몇 시간 전부터 급송문서가 당신을 기다 리고 있다니까요." 로버트 경은 러시아인 병사를 밀어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두 가 떠난 텅빈 회의실에 혼자 남게 된 조니는 쓰러지듯이 의자에 기대 어 앉았다. 계속해서 닥쳐오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갈등과 긴장 속 에 동분서주해왔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무엇이 가장 급한 일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조니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젠 이곳 에 남아 있어야 할 뚜렸한 이유가 없었다. 스코틀랜드로 날아가 구조 활동을 도와야 할 것이었다. 조니는 바닥에 놓인 헬멧을 집어들고 입 구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는 러시아인 경호원을 지나 밖으로 나가려던 조니는 하 마터면 달려오는 로버트 경과 부딪칠 뻔했다. 로버트 경의 손에는 긴 급 전송되어 온 용지가 들려 있었다. 조니를 바라보며 문서를 건네주 는 로버특 경의 표정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차라리 울 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아, 조니 잘됐어. 저 낡은 로크 성이 모두를 구해주었다네." 그 통신은 애딘버러로 부터 온 것이었다. 그 긴급문서엔 그들이 오 늘 새벽녘에 마지막 터널을 관통했다고 씌어 있었다. 또한 방공호 속 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굶주림과 부상의 고통에 거의 실신상태에 빠 져 있었지만 모두 구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천백 명 전원이. 조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분지 밖으로 나와 작전사령실로 향했다. 그때 분지 건너편에서 조니 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니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고도비행용 원형 헬멧을 쓰고 있는, 아, 그렇다. 그것은 토르였다. 토르는 즐거 운 듯이 그를 손짓해 부르면서 소리쳤다. "당신을 위해 데리고 온 사람이 있다구요, 조니!" 그와 동시에 한 여자가 그에게로 달려오면서 커다란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크리시였다. 야위고 창백해져 있는 그녀의 눈에는 눈무링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아, 조니, 조니. 이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나 를 안아줘요, 조니." 조니는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조니는 너무나 기뻐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