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3권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펴낸이: 김훈 펴낸곳: 고려원미디어 @[ 교회에서 할아버지는 목사라는 이들이 대단히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어서 자기네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네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리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심지어 목사들이 자기네의 그런 권한에 대해서는 하느님도 간섭할 수 없다고 맏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사도 직접 노동을 해서 일 달러를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체험해 봐야 하며 일단 한번이라도 그런 체험을 겪고 나면, 마치 내일 아침에 세상의 종말이 오기라도 할 것처럼 함부로 돈을 쓰는 일 같은 짓은 하지 않게 욀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위스키를 만드는 일이든 뭐든 간에 힘겨운 노동에 종사해 보게 되면 목사들이 더 이상 터무니없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될 거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탓으로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생기게 마련이며 이로 인해 믿음을 달리하는 종파도 많아져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불화의 원인이 된다. 일례로 비타협파 침례교도들은 현재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현상이므로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믿고 있는 반면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파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맹렬히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각 무리들마다 믿는 바가 다 다르면서도 다들 이구동성으로 자기네의 믿음이 성경에 입각한 것이며 성경이 자기네 믿음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나로서는 성경이 진실로 주장하는 바가 뭔지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근본주의파고 비타협파고 간에 모든 침례교도들은 침례, 곧 시냇물 속에 온 몸을 완전히 담그는 행위를 아주 중요시했다. 그들은 그런 행위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반면에 감리교파 사람들은 그런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그저 세례받는 이의 머리에 물만 뿌려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제작기 자기네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교회당 안에서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곤 했다. 헌데 성경에는 침례교파적인 견해가 나오는 부분도 있고, 감리교파적 견해가 나오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견해가 나올 때마다 다른 식으로 세례를 받으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표현이 따라나온다. 사정이 이러니 그들이 같은 성경을 놓고 제각기 다른 주장을 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구세주교파 사람 하나가 있었다. 헌데 그는 목사를 "목사님(원어로는 Revernd, 곧 거룩한 이라는 뜻으로 성직자를 높여 부르는 말: 옮긴이)"이라고 불렀다가는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니 목사를 부를 때는 "^456,356,356,356,123^씨"라든가 "^456,356,356,356,123^형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주장의 근거로 성경구절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도 역시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여 목사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안 그랬다간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 구세주교파 사람은 불행히도 반대파의 숫자에 눌려 억압을 받았지만 아주 고집불통이라 절대로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매주 일요일 마침만 되면 교회로 나가 꼬박꼬박 목사를 "^456,356,356,356,123^씨"라고 부르곤 했다. 그 바람에 그와 목사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한번은 두 사람이 주먹다짐까지 벌일 뻔했으나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치고 만 적도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들을 보고 나는 종교와 관련하여 물에 대한 얘기가 화제로 오를 때면 절대로 입도 뻥긋하지 않을 거며, 또 목사를 어떤 식의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공연히 물세례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리거나 목사를 잘못 불렀다가는 그 즉시 성경 구절에 입각하여 지옥으로 떨어질 테니 잠자코 입다물고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는, 만일 하느님이 지극히 하찮은 문제들을 두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며 언쟁을 벌이는 그 바보 천지들만큼 편협하시다면 천국이라고 하는 데는 전혀 사람 살 만한 곳이 못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는 성공회파에 속한 한 가족도 매주 나오곤 했다. 그들은 부자여서 자동차를 타고 교회에 나왔다. 그 교회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남자는 뚱뚱했고 매주마다 다른 양복을 입고 나왔으며 여자 역시 뚱뚱했고 나올 때마다 모자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들에게는 조그만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애는 늘 하얀 드레스 차림에 조그만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 드레스와 모자 역시 자주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그애는 늘 콧대를 세우고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고 다녔는데 나는 그애가 뭘 쳐다보고 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들은 늘 헌금 쟁반에 일 달러짜리 지폐를 떨구곤 했다. 그 교회에서 일 달러를 내는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목사는 그들의 자동차가 교회 앞마당에 도착할 때마다 그 차 곁으로 다가가 차문을 열어주며 영접했다. 그들은 늘 교회당 맨 앞쪽 열에 앉았다. 목사는 설교하면서 어떤 주장을 펼칠 때마다 꼭 맨 앞쪽 열을 쳐다 보며 "그렇지 않습니까, 존슨 씨?"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존슨 씨는 그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다. 목사가 이렇게 물을 때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존슨 씨에게로 돌아갔으며 존슨 씨의 고개짓을 보고서야 목사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는 확신을 갖곤 했다. 할아버지는 성공회파 사람들은 세상 만사를 두루 통달하여 물세례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공연히 주위 사람들에게 담을 쌓고 지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그 길에 동참시키는 데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하셨다. 그 교회 목사는 아주 깡마른 사람이었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늘 똑같은 검은 양복을 입었다. 그는 늘 머리를 머리통에 찰싹 달라붙게 빗고 다녔으며 얼굴에는 항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기색이 떠돌곤 했다, 그는 얼굴뿐 아니라 실제 행동도 그랬다. 그는 늘 교회 신도들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나는 한번도 그의 곁에 서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가 설교단상에 서서 좌중을 내려다볼 때는 표정이 심술궂게 변했다. 이것은 그가 설교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자리에 일어서서 그에게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건 교회법상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걸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는 물세례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나는 은근히 실망했다. 나는 물세례 문제에 대해서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는 한 예를 그의 실수를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 인들(성경에 나오는 형식주의자 내지는 위선자들: 옮긴이)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다. 일단 설교가 바리새 인들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면 그는 흥분해서 설교단상을 박차고 내려와 예배당 통로 있는 데까지 육박하곤 했다. 바리새 인들에게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숨이 막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한번은 그가 바리새 인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통로를 한참 거슬러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바리새 인들을 향해 마구 짖어댔으며 그 때문에 그의 울대는 아래위로 미친듯이 요동을 쳤다. 이윽고 그는 우리가 앉은 자리 근처까지 와서는 손가락으로 할아버지와 나를 가리키면서,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대들은 (아나뇨)^5,5,5^"라고 소리쳤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와 나는 꼭 바리새 인들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목사를 무섭게 노려봤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 역시 사납게 눈을 치떴으며 그 때문에 할머니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팔을 꼭 붙잡고 계셔야 했다. 이에 목사는 얼른 손가락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당신은 일찍이 그 어떤 바리새 인과도 친분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며 바리새 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고 해서 어떤 개쌍놈의 새끼가 당신을 나무라기만 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목사가 앞으로 손가락질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 쪽을 가리키는 것이 제 신상에 이로울 거라고 하셨다. 그 후 목사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때 목사는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그런 뜻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목사가 살짝 돌아 큰일을 낼 뻔했다고 하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늘 긴 칼을 갖고 다니셨으니까. 그 목사는 또 불레셋 인들(구약시대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종족으로 유대인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옮긴이)도 아주 싫어했다. 그는 늘 틈만 나면 그들의 욕을 해댔다. 그는 불레셋 인들도 바리새 인들 못지 않게 천하고 야비한 자들이라고 했다. 목사가 이렇게 욕을 해대면 존슨 씨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할아버지는 목사가 "늘"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아주 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바리새 인들과 불레셋 인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렇게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러지 않아도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싸움과 분쟁들로 넘치는데 굳이 그들을 화나게 해서 말썽을 불러일으킬 건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목사에게 봉급을 주는 것에는 찬동하지 않으셨지만 늘 헌금 쟁반에 약간의 돈을 얹어놓으시곤 했다. 당신은 우리가 예배당의 의자에 앉은 값을 치르는 셈치고 그 돈을 낸다고 하셨다. 때로 할아버지가 내게 오 센트를 주셔서 나도 헌금 쟁반에 돈을 얹어놓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번도 돈을 내신 적이 없었으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아예 헌금 쟁반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그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계속 헌금 쟁반을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코밑에다 들이대고 있을 경우에 그분은 그들이 그 돈을 좀 집어가지시라고 권하는 걸로 알고 거기서 돈을 "집으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앙간증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 교인들은 한 사람씩 일어나 자기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번도 간증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것이 말썽만 야기시키는 짓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아는 몇 사람이 자기가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어떤 짓을 저질렀다고 고백한 뒤에 그 상대에게 총을 맞은 사실을 알고 계시며 총을 쏜 그 사람들은 교회에서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들은 그저 자기 가슴속에나 묻어 둘 성질의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와 윌로우 존 할아버지도 간증을 하기 위해 일어나신 적이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것 같으며 나 역시도 일어서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한번은 어떤 사내가 일어나 자기는 구원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술독에 빠져서 지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을 결심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개과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소리를 들은 신도들은 다 같이 기뻐하며 이구동성으로, "할레루야!" "아멘!"하고 외쳤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을 고백하기 시작할 때마다 예배당 어느 한구석에서는 늘 어떤 사내 하나가 "다 고백하라! 숨김없이 얘기하라!"고 외치곤 했다. 그는 고백하는 사람들이 조저하는 기미를 보이거나 자기가 저지른 또 다른 악행이 있나 생각하는 순간마다 이렇게 외쳐댔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 사내가 그렇게 소리치지만 않았더라면 털어놓지 않았을 아주 고약한 잘못까지도 솔직히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결코 간증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어떤 여자 하나가 일어서서 주님이 자기를 음란한 악행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그 사내는 소리쳤다. "다 고백하라!"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자기는 간음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자기가 이제 그런 짓을 그만둘 것이며 그런 짓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 사내는 다시 소리쳤다 "숨김없이 얘기하라!" 그녀는 자기가 스미스 씨와 몇 차례 간음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스미스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문쪽을 향해 걸어나갔으며 교인들은 웅성댔다. 그는 정말 번개같이 교회 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뒷자리 부근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두 명의 사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이내 문 밖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녀는 자기와 간음을 저지른 또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을 댔다. 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침으로써 그녀가 옳은 일을 했다고 찬양해 주었다. 예배가 파하고 나서 모두가 교회당 밖으로 나왔을 때 남자들은 하나같이 마치 무슨 위험물이나 되는 듯이 그녀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걸었으며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자들이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꺼려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몇몇 여자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걸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고 그녀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정말 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댔다. 할아버지는, 그녀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은 모두 자기 남편도 간음을 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속셈을 이렇게 고백을 하면 아주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는 걸 다른 간음한 여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녀들도 간음한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도록 유도하자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다른 여자들이 이에 넘어가 그 여자처럼 고백을 했다가는 온통 난리가 날 거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정말로 그렇게 될 성싶었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는 아마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곧 다시 간음을 하려고 들 거다, 헌데 쓰디쓴 실망을 맛보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술에 만취되었거나 넋이 나가지 않은 이상 절대로 그 여자와 간음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매주 일요일 설교가 시작되기 바로 전 시간은 교일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나 일어나 교일들에게 이에 관해 알려주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대상은 옮겨갈 지주가 결정되지 않아 가족들을 먹여살릴 길이 막연해진 소작인들이 될 수도 있었고 또 집에 불이 나서 가재도구가 모조리 타버린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이 얘기를 들은 교인들은 다음 주에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가져오곤 했다. 우리는 여름이면 우리가 직접 기른 채소들을 잔뜩 가져왔으며 겨울이면 고기를 가져오곤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화재를 당한 사람을 위해 히코리 나무로 틀을 짜고, 앉는 부분에 사슴가죽을 덮어씌운 의자를 만들어 주신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사람을 교회 마당 한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그에게 그 의자를 주면서 그걸 만드는 법을 한참 동안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는, 남에게 어떤 물건을 그냥 주기보다는 그걸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편이 그 사람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며, 만일 그가 스스로 만드는 법을 익힌다면 이후 그는 제 힘으로 그걸 만들어 쓰게 될 테지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어떤 물건을 주기만 한다면 주는 이는 남은 평생 동안 그에게 계속 그 물건을 대주어야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럴 경우 주는 이는 받는 이의 인격을 박탈하고 그의 인간됨을 도둑질하는 셈이 되니 오히려 받는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들은 그저 계속 주기만 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는 그들이 자기네가 받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맛보고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며, 그럴 때 그들이 한 행위라는 것은 고작 받는 이를 의존적으로 만든 것이 불과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우리는 마침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면서 너무나 흥분하시는 바람에 하마터면 물 속에 빠지실 뻔했지만 어떻게 간신히 균형을 잡고 둑 위로 기어올라오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모세가 어떤 사람이냐고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모세에 관해서는 목사가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떠든 얘기로밖에 들은 게 없다고 하셨다. 그 목사는 모세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했다 한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저 모세에 관해 남에게서 "전해 들은"것밖에 아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젊은 여자가 갈대숲이 우거진 강둑에서 무세를 발견했으며 그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신은 모세가 원래 그 강둑 부근출신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헌데 그 젊은 여자는 파로라고 하는, 아주 부자며, 또 아주 비열한 개자식의 여자였다. 파로는 늘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다. 파로는 모세도 죽이려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 젊은 여자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날에도 여자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모세는 파로가 죽이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몸을 피했다. 모세는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어떤 지방으로 도망갔다. 헌데 모세가 자기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치니까 거기서 물이 좀 흘러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 어쩐지에 대해서는 당신도 알지 못하며^5,5,5^ 그저 그렇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그후 노랜 세월 동안 정처없이 방황했다. 사실상 그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그 황야로 데려온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모세는 이렇게 방황하던 중에 죽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삼손이란 사람이 그 무렵에 태어나서 늘 말썽만 일으키던 불레셋 사람들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죽였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왜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불레셋 사람들이 파로의 졸개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적과 내통한 한 여자가 삼손을 취하게 만들고는 그의 머리털을 잘랐는데, 그 여자가 삼손을 밧줄로 묶어 버려 적들은 쉽게 그를 생포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이 면에서 성경은 대단히 유익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너는 항시 적과 내통한 여자가 너를 취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나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점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할아버지는 성경의 그러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단히 만족해 하셨다. 할아버지가 성경의 교훈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할아버지와 나는 성경에 대해 지독히 무지했던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것도 따지고 부면 성경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아버지와 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서 해답을 얻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천당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만사를 포기하게 될 때는 초연한 방관자가 되는 법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천당 가는 문제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주장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일 때 바로 이 초연한 방관자의 입장에 섰으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다^5,5,5^. 천당 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물세례 문제에 관해 아예 잊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에 관해 따지기를 포기했으며 그 이후로는 여간 신간이 편치 않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도대체 지옥하고 물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하셨다. 그 점에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 때문에 물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ff @[ 와인 씨 그분은 겨울철이나 봄철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질 무렵에 우리 오두막으로 찾아와 하룻밤씩 묵어 가시곤 했다. 간혹 그분은 이틀밤을 묵었다 가실 때도 있었다. 와인 씨는 등짐장수였다. 그분은 읍내에 살고 계셨으나 그렇게 등짐을 지고 산길을 걸어다니며 장사를 하셨다. 우리는 늘 그분이 오는 날을 알고 있어 우리집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면 할아버지와 나는 으레 산길을 내려가 그분을 마중하곤 했으며 그분의 짐을 받아 오두막까지 날라다 드리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등짐을 나르셨으며 와인 씨는 대개 나에게 시계 하나를 주어 나르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집에서 시계를 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한테는 시계가 없었지만 우리는 그분이 부엌 식탁 위에서 시계 수리하는 걸 돕곤 했다. 할머니가 등잔불을 켜시면 와인 씨는 시계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내부를 열어 젖히셨다. 나는 키가 작아 의자에 앉으면 시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항시 와인 씨 곁에 놓인 의자 위에 올라서서 그분이 조그만 스프링들과 황금색 나사들을 빼내는 걸 지켜보았다. 그분이 시계 수리를 하시는 동안 할아버지와 그분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셨다. 와인 씨는 백 살 가량 되셨을 것이다. 그분은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르고 항시 검은 옷을 입고 다니셨으며 동그란 모양의 조그만 검은색 모자를 머리 뒷부분에 얹고 계셨다. 와인이란 이름은 그분의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와인으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름이 발음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길고 복잡해서 우리는 그분을 와인 씨라고 불렀다. 와인 씨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분은 이름이란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와인 씨는 당신도 어떤 인디언들의 이름은 발음하기가 아주 힘들어 당신이 발음하기 편리하게 지어 부른다고 하셨다. 그분은 늘 겉옷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 갖고 오셨다. 대개 사과인 경우가 많았지만 한번은 오렌지를 갖고 오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기억력이 아주 젬병이었다. 우리는 대개 저녁 어스름녘에 저녁밥을 먹었는데 저녁밥을 다 먹고 난 뒤 할머니가 식탁을 치우실 때면 할아버지와 와인 씨는 흔들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내 의자를 두 분 사이에다 끌어다 놓고 앉았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시다 말고 불쑥 "내가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애. 근데 뭘 잊어버렸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구먼"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항시 같은 일이 반복되므로 나는 그분이 뭘 잊어버렸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와인 씨는 당신의 머리를 긁으시거나 손가락들로 당신의 허연 수염을 빗질하곤 하신다. 할아버지 역시 그분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와인 씨는 나를 내려다보며 도움을 청하신다. "작은나무야, 너 혹시 그게 뭔지 알 수 있겠니?" 그러면 나는 말씀드린다. "예. 알 것 같아요. 호주머니에 뭔가 넣어갖고 오셨는데 그걸 잊어버리신 게 아닌가요?" 그러면 와인 씨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의 호주머니를 찰싹 치며 말씀하신다. "나 이거야 원! 기억을 살려줘서 고맙구나, 작은나무야. 도통 기억력이 없어놔서 늘 이 모양이다." 그분은 정말 기억력이 젬병이다. 그분은 이 산악지대에서 나는 그 어떤 열매보다도 큰 빨간 사과 한 알을 꺼내신다. 그분은 당신이 길을 가다 우연히 그걸 주웠는데 당신이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그냥 버릴까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늘, 버리실 거라면 나한테 달라고 말씀드린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눠먹으려고 하지만 두 분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바람에 사과를 좋아하는 나 혼자 그걸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씨는 따로 남겨두었다가 실개천 주위에다 심곤 했다. 그것이 나무로 자라나 그렇게 큼직하고 맛있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으면 하고 바라면서. 와인 씨는 또 당신의 안경도 잘 잃어버리시곤 했다. 시계 수리를 할 때 그분은 조그만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일하셨다. 그것은 철사로 엮어 귀에 걸치게 되어 있는 다리에 천이 감긴 안경이었다. 그분은 할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시려고 할 때면 작업을 중단하고 당신의 안경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셨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할 때면 으레 그걸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내지 못하셨다. 나는 그분의 안경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분은 식탁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시며 말씀하시곤 한다. "이눔의 안경이 또 어디로 가서 사람 속을 써이누 그래?" 그분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 것 하나도 찾지 못하니 자기네들도 참 한심하다는 듯이 멋적게 웃으신다. 내가 잠자코 그분의 머리를 가리키면 그분은, 바로 머리 위에 치켜올려 두고도 못 찾으니 이런 바보가 다 있느냐시며 당신의 머리를 찰싹 때리신다. 와인 씨는 내가 당신 곁에 붙어서서 당신이 안경 찾는 걸 도와주지 않는다면 시계 수리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그분은 내게 시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연신 시계 바늘을 돌려가면서 내게 지금이 몇 시냐고 물어보셨고 내가 틀리게 대답하면 껄껄 웃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시간을 척척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와인 씨는 내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내 나이 또래 중에서 맥베드 씨나 나폴레옹 씨에 과나해 알고 있는 아이도, 사전을 연구하는 아이도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게 셈하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나는 위스키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돈 계산하는 법은 약간 익혔었다. 그러나 와인 씨는 종이 몇 장과 몽당연필 한 자루를 꺼내 종이에다 숫자들을 적으셨다. 그리고는 그 숫자들을 이용해 더하는 법과 빼는 법, 곱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셈을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와인 씨는 내게 연필 한 자루를 주셨다. 그건 노란색의 길다란 연필이었다. 그분은 연필을 깎을 때 심을 너무 길고 뾰족하게 갈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심이 길게 나오게 했다간 심이 금방 부러져서 다시 깎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쓸데없이 연필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와인 씨는 연필을 알뜰하게 깎아 쓰는 방법을 직접 시범해 보여 주셨다. 그러면서 그분은, 알뜰하다는 것은 구두쇠 짓을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며, 인색하다는 것은 떼부자들이 돈을 숭배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것이며 마땅히 돈을 써야 할 때도 돈을 쓰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산다면 그건 돈을 하느님처럼 숭배하는 태도며 그러한 삶에서는 아무런 유익한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헌데 알뜰하다는 건 돈을 써야 할 때는 아낌없이 쓰되 절대로 낭비하지 않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와인 씨는, 한 가지 습관은 자동적으로 또 다른 습관들을 낳게 되며 만일 우리가 나쁜 습관들을 갖고 있을 경우에는 우리의 성격마저 나빠지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만일 우리가 돈을 낭비하는 습성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도 낭비하게 되고, 우리의 생각도 낭비하게 되며 나아가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낭비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적제 없이 살 경우에는 정치가들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며, 정치가들은 절제 없는 사람들을 지배하며 이내 독재자가 되어 버린다고 하셨다. 하지만 알뜰한 사람들은 결코 독재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그분이 정치가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할아버지나 내 생각과 비슷했다. 할머니는 와인 씨에게 실을 사시곤 했다. 작은 시패는 두 개에 오 센트이고 큰 것은 한 개에 오 센트였다. 때로 할머니는 단추도 사셨으며 한번은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 천을 사신 적도 있었다. 와인 씨의 등짐 속에는 벼라별 게 다 들어 있었다. 갖가지 색깔의 리본, 예쁜 천과 양말, 골무와 바늘, 반짝이는 연장들 등등. 그분이 마룻바닥에 짐꾸러미들을 펼쳐놓으실 때면 나는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구경했으며 그분은 내게 그 물건들의 이름을 일일이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분은 내게 셈본 책 하나를 주셨다. 그 책은 온통 숫자들로 가득한, 셈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달 내내 열심히 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진도는 쑥쑥 나아갔으며 그 바람에 와인 씨는 우리집에 들를 때마다 내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와인 씨는 계산법이란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교육이란 두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다. 그 하나는 기술적인 측면으로 이것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늘 보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허나 또 다른 측면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그분은 그것을 가치라고 부르셨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고 근검 절약하는 태도를 갖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타인들을 사랑하는 것 등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라 배웠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헌데 만일 우리가 이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술적인 면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참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어떤 목표에도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와인 시는 우리가 이러한 참된 가치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는, 자꾸 새로워지고 현대적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 현대적인 것들을 더욱더 파괴적이고 파멸적인 방향으로만 악용하게 된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말씀이 올다는 것이 증명되었다(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옮긴이). 간혹 가다 시계 수리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와인 씨는 이틀 밤을 묵어 가시기도 했다. 한번은 와인 씨가 이상한 검은 상자 하나를 갖고 오신 적이 있었다. 그분은 그걸 코닥 카메라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걸로 그림들을 찍어내실 수가 있었다. 헌데 당신은 그림들을 찍어내는 솜씨가 신통치 않다고 하시면서 어떤 사람들이 그걸 사다달라고 해서 그들에게 갖다주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그걸로 우리의 그림을 찍어내도 우리의 몸에는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분은 할아버지와 내 그림을 찍으셨다. 그 상자는 찍으려는 대상이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림을 찍어낼 수 없으며, 와인 씨는 당신도 아직 그 새로운 기계장치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셨다. 그 점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셨다. 할아버지는 그 상자를 수상쩍게 생각하셔서 그 상자 앞에 딱 한번 서시고는 더 이상 서려고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것들과 맞닥뜨릴 때는 세월이 흘러 그것의 정체가 확연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가급적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더러 나와 그분의 그림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헌데 그 그림 한 장을 찍는데 저녁 시간이 꼬박 다 갔다. 우선 와인 씨와 나는 그 상자 앞에 나란히 섰다. 와인 씨가 내 머리 위에 당신의 손을 올려놓으신 상태에서 우리 둥 다 함박 미소를 머금은 그런 자세로. 할아버지는 잠시 상자에다 눈을 대시더니 그 상자의 작은 구멍을 암만 들여다봐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곁으로 가셔서 그 상자의 높이를 조금 높이시고는 다시 돌아오셨다. 우리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팔 하나밖에는 보이는 게 없으니 조금 옆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슴하셨다. 할아버지는 여간 불안해 하지 않으셨다.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가 그 구멍 속으로 뵈는 것들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겁을 내신 게 아닌가 싶었다. 와인 씨와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햇빛을 정면으로 본 나머지 할아버지가 겨우 그림을 한장 찍고 난 후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았다. 헌데 그 그림마저 제대로 찍히질 않았다. 다음 달에 와인 씨가 그 그림들을 갖고 오셔서 들여다보니까 할아버지와 내가 나란히 선 그림은 잘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찍으신 그림 속에는 와인 씨와 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나무들의 맨 꼭대기 부분과 그 나무들 위의 허공에 박힌 까만 점 몇 개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한참 동안 연구하신 끝에 마침내 그 점들의 정체를 밝혀내셨다. 그건 새들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새 그림을 자랑스렇게 여기셨으며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네거리 가게로 들고 가서 젠킨스 씨에게 보여주시면서 당신이 손수 그 새 그림을 찍었다고 자랑하셨다. 헌데 젠킨스 씨는 시력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와 내가 수십 차례 그 새들이 있는 곳을 짚어 주어서야 겨우 그 새들을 발견했다. 나는 와인 씨와 내가 그 새들 밑으로 한참 내려간 곳 어디쯤에서 서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그림을 찍게 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말슴하시지 않으면서. 하지만 할머니가 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나는 할머니가 그 상자를 건드리기 싫어하시는 걸로 봐서 그 상자를 의심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와인 씨에게서 그 그림들을 받은 뒤 할머니는 그 그림들에 아주 매혹되셔서 홀린듯이 들여다보셨다. 그리고는 그걸 벽난로 위의 통나무 위에다 붙여놓고 틈만 나면 올려다보시곤 했다. 나는 앞으로 할머니가 틀림없이 당신의 그림을 찍게 하시리라 믿었는데 와인 씨가 그 코닥 카메라를 주문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바람에 그만 그걸 확인해 볼 기회를 잃고 말았다. 와인 씨는 당신이 다시 또 코닥 카메라 주문을 받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분의 마지막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계적의 막바지에서 나른한 나날을 보내며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작열하던 태양빛은 오후만 되면 안개처럼 뿌연 기운에 휩싸여 누르스름한 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 뜨거운 기운을 조금식 잃어갔다. 이에 대해 할머니는, 여름이 긴 잠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와인 씨는 당신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분이 통나무 다리를 제대로 건너시지 못해 우리가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고, 또 현관 앞의 계단을 오르시는 것도 힘겨워하셔 그분을 부축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아마도 알고 계셨으리라. 그분은 오두막 바닥에 등짐을 내려놓으시더니 거기서 노란 외투 한 벌을 꺼내셨다. 그분이 그 옷을 쳐들자 등잔불을 받아 황금빛을 발했다. 할머니는 그걸 보니 야생의 카나리아 떼가 연상된다고 하셨다. 그건 우리가 본 외투 중에 가장 예쁜 외투였다. 와인 씨는 등잔불 밑에서 그걸 이리저리 돌렸고 우리 모두는 그걸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걸 만져 보셨으나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와인 씨는 당신이 도통 정신이 없어 항시 뭘 잘 잊어버리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분은 큰 바다 건너에 사는 당신의 증손자 중에서 가장 어린애를 위해 그걸 짓게 하셨는데 그만 그애가 훨씬 더 어렸을 때의 몸크기만 생각하고 그 옷의 크기를 정해 주셨다고 한다. 그분은 그 옷이 다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그애의 나이에 생각이 미쳤고 그 옷이 그애에게는 너무 작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분의 증손자들 중에서 그 옷을 입을 만한 애는 아무도 없었다. 와인 씨는 아직 쓸모가 있는 어떤 것을 내버리는 것은 큰 죄라고 하셨다. 그 때문에 그분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연세가 많은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죄를 어떻게 다 감당하나 하는 생각에 도통 잠이 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그 코트를 입어주는 은혜를 베풀 만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느라고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와인 씨는 고개를 푹 떨구고 계셔 마치 그분이 금방이라도 쓰러지시는 거나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분께 내가 그 옷을 입으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와인 씨는 고개를 번적 쳐드시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와인 씨는 당신이 너무나 건망증이 심해 나한테 그 옷을 입는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것을 깜박 잊고 말았다고 하셨다. 그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분의 무거운 짐을 벗겨줬고 덕분에 당신이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분의 무거운 짐을 벗겨드린 건 사실이었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나한테 그 외투를 입혀주셨다. 할머니는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는 걸 도와주셨고 와인 씨는 등판을 고르게 펴주셨으며 할아버지는 맨 밑단을 잡아당겨 주셨다. 그것은 마치 맞춘 것처럼 나한테 꼭 들어맞았다. 내가, 와인 씨가 기억하고 계셨던 그분의 증손자의 어린 시절의 몸크기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불빛 속에서 몇 바퀴나 돌았다. 할아버지가 소매길이가 어떤가 보고 싶어하셔서 나는 두 팔을 쳐들어 보기도 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그것은 포근하고 보드라운 감촉을 지녔으며 무척이나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와인 씨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옷에 뭐가 튀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접시에다 코를 박고 밥을 먹었다. 나는 잘 때도 그 옷을 입고 자려고 했으나, 할머니가 그러면 구겨진다고 말리셨다. 할머니가 내 침대 기둥에다 그 옷을 걸어주셔서 나는 자리에 누워서도 그걸 볼 수 있었다. 내 방 창문을 통해 새들어 오는 달빛 속에서 그것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침대에 누워 그 외투를 바라보면서 나는 교회에 갈 때나 읍내에 갈 때 그 옷을 입고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우리가 제품을 넘겨주기 위해 네거리 가게에 갈 때도. 내 생각에 내가 그 외투를 입으면 입을수록 와인 씨의 죄는 자꾸만 더 가벼워질 것 같았다. 와인 씨는 할아버지 할머니 방과 내 방 밖으로 복도처럼 길게 난 "개 통로" 건너편의 부엌 겸 거실 방 안에서 짚을 넣어 만든 이부자리를 받ㄱ에 펴고 주무셨다. 나는 그 이부자리 위에서 자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와인 씨께 내 침대 위에서 주무셔도 좋다고 말씀드렸지만 와인 씨는 굳이 사양하고 거기서 주무셨다. 그날 밤 침대에 눕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비록 와인 씨께 은혜를 베풀기는 했지만 그 노란 외투를 주신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개 통로"를 가로질러 가 살그머니 거실 문을 열었다. 와인 씨는 이부자리 위에 무릎을 굻고 앉아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그분은 기도를 드리시는 것 같았다. 그분은 당신에게 무한한 행복을 안겨 준 한 작은 소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하느님께 전하고 계셨다. 나는 아마도 큰 바다 건너에 사는 그 증손자를 생각하면서 그런 기도를 드리는 거라고 짐작했다. 그분은 부엌 식탁 위에 촛불을 켜놓고 계셨다. 할머니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릴 때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고개를 쳐든 와인 씨는 문 앞에 선 나를 발견하셨다. 그분은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집에 등잔도 있는데 왜 촛불을 켜셨냐고 여쭤봤다. 와인 씨는, 당신의 가족 친척들이 모두 큰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지만 그들과 함게 이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그건 특정한 어떤 시간에 당신이 촛불을 켜시고 또 바로 그 시간에 바다 건너에 사는 사람들도 촛불을 켜면 그 순간에 그들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에 그분들이 한자리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 같았다. 나는 그분께 우리 종족들도 여러 나라(인디언 거주지역: 옮긴이)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제까지 그런 방법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그 촛불에 관해 말씀드려야겠다고 했다. 와인 씨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들으시면 단박에 이해하실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느라 와인 씨께 노란 외투를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걸 깜박 잊고 말았다. 그분은 이튿날 아침 떠나셨다. 우리는 그분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시는 걸 도돠드렸다. 할아버지는 히코리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와인 씨께 지팡이로 쓰시라고 드렸다. 그분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시며 불편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산길을 걸어내려가셨다. 그분의 짐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잔뜩 굽히고 걸으셨다. 그분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뭔가를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산길을 달려내려갔다. 그러나 그분은 벌써 저 아래 까마득히 먼 곳에서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소리쳤다. "노란 외투를 주셔서 고마워요, 와인 씨!" 그분이 고개를 돌리시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내 말을 듣지 못하신 게 분명했다. 와인 씨는 기억력만 좋지 않으신 게 아니라 귀도 좋지 않으셨다. 산길을 다시 걸어올라오면서 나는, 그분이 늘 뭘 잘 잊어버리시는 분이니 다음번에 오실 때, 나 역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는 걸 깜박했다는 말씀을 드리면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리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그분께 그 노란 외투를 입는 은혜를 베푼 입장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ff @[ 정든 산을 떠나다. 그해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왔다. 맨 먼저 산등성이 부근의 나뭇잎들이 빨닿게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나뭇잎들에 서리가 내렸다. 태양은 누렇게 변해 갔으며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날이 갈수록 기울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서리는 조금씩 산 밑으로 기어내려왔다. 소심한 서리는 단번에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여름은 이제 끝났으며 한번 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숨죽이고 있던 겨울이 곧 오리라는 걸 예고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가을은 자연이 베푸는 은총의 계절이었다. 죽음에 대비하여 모든 것들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계절. 그리하여 모든 것을 정리할 때 우리는 가려낼 건 가려내야 하고^5,5,5^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가을은 또 기억의 계절^5,5,5^ 후회의 계절이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후회의 계절. 그리고 가을은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나는 노란 외투를 주신 데 대해 와인 씨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달에는 와인 씨가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저녁 늦게까지 현관 밖에서 서성이며 산길을 내려다봤고 또 그분의 기척이 들리지 않나 해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분은 끝내 오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을 뵈러 읍내에 다녀오기로 했다. 서리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그머니 우리가 사는 계곡에까지 밀려내려왔다. 그것은 감을 빨갛게 물들였도 포플러와 단풍나무 이파리들을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먹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겨울을 나야 하는 생물들은 모두들 죽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랐다. 블루 제이(어치의 일종: 옮긴이)들은 이제 장난치거나 노래하는 일은 집어치우고 종일 상수리나무 주위를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도토리를 둥우리로 날라들었다. 골짜기에서는 더 이상 나비가 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옥수수 자루를 줄기에서 떼어내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비들이 옥수수 줄기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들은 날개짓도 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었따. 그들은 먹이를 저장할 필요가 없었다. 머지 않아 죽을 것이니까.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비들이 어리석은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고 하셨다. 그들은 죽기 싫어 안달을 하거나 난리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기다리기만 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할 일을 다 했으며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의 마지막 온기를 즐기며 거기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난로와 벽난로에 집어 넣을 나무를 날라들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여름 내내 베짱이처럼 잘 놀았으니 이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나무를 하러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산허리에서 죽은 나무 줄기들을 쓰러뜨려 우리집 마당으로 끌고 오곤 했다. 할아버지는 저녁 무렵이면 마당에서 우리가 끌고 온 나무들을 도끼로 패셨는데 석양녘에 도끼날이 한번씩 번쩍일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온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치곤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모양좋게 잘라내신 장작들을 우리집 오두막 한켠으로 운반하여 그 벽에다 차곡차곡 쌓는 일을 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 그 남녀 정치가가 찾아 왔다. 그들은 자기네가 정치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정치가가 틀림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권한 흔들의자들을 마다하고 굳이 딱딱한 보통 의자에, 그것도 꼿꼿한 자세로 앉았다. 남자는 회색 양복을, 여자는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드레스는 그녀의 목을 단단히 죄어 보는 사람에게마저 갑갑한 느낌을 주었으며 나는 그녀가 딱딱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바로 그 옷차림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마치 여자처럼 두 무릎을 딱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는 무릎 위에 모자를 올려놓았는데 그 모자를 가만두지 않고 계속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며 빙글빙글 돌려,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주 침착했다. 여자는 나를 밖에 나가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나는 늘 참여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작은 흔들의자를 까딱거리며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남자는 목철을 몇 번 가다듬더니, 사람들이 내 교육문제를 걱정하고 있다면 나는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제대로 교육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와인 씨가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들려주셨다. 그 여자는 와인 씨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와인 씨가 건망증이 심하다는 점만 살짝 빼고는 와인 씨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셨다. 그녀는 연신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스커트 자락만 쓸어내렸다. 마치 와인 씨가 어디 사는 말뼉다구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래 봤자 자기 발 밑이 아니겠느냐는 듯이. 나는 그녀가 와인 씨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듯이 말이다 그녀는 할아버지께 서류 한 장을 건넸고 할아버지는 그걸 할머니깨 넘겨드렸다. 할머니는 그걸 읽어보시려고 등잔불을 켜고는 부엌 식탁 앞에 자리잡고 앉으셨다. 할머니는 그걸 소리내어 읽으시다간 이윽고 입을 다무셨다. 할머니는 그 나머지 내용은 속으로만 읽으셨다. 그걸 다 읽으신 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셔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등잔불을 훅 불어 끄셨다. 그 정치가들은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았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침침한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더듬거리며 문 쪽으로 갔다. 그들은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도 없이 훌쩍 나가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그들이 가버린 뒤에도 한동안 어둠 속에서 묵묵히 제자리만 지켰다. 이윽고 할머니는 다시 등잔불을 켜셨으며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나는 키가 작아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에 어떤 내용이 씌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분이 나누시는 얘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서류는 법률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 했다. 그 서류에 의할 것 같으면 나는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있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너무 늙고 또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 나를 양육할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인디언이고, 할아버지는 반은 백인 반은 인디언으로서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서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이기적인 사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 내 장래를 망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이기적이라서 그저 자기네만 편하자고 나를 밖으로 내보내 이일 저일로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 서류는 그밖에도 나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그걸 속으로만 읽으셨다. 그 서류에 의할 것 같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법정에 나가서 이의를 제기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이의가 없으면 나는 자동적으로 고아원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완전히 넋이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는데 그 모자를 잡으신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신없이 모자만 문지르셨다. 나는 벽난로 가에 있는 내 흔들의자로 가서 앉은 뒤, 그것을 빠르게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깨 내가 앞으로 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일 주일에 열 단어 정도씩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놓고 나는 다시 그 정도보다 더 많이, 어쩌면 백 단어 정도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읽는 법을 배울 것이며 그걸 익힌 다음에는 읽는 데 능숙해지기 위해 한층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고 했다. 나는 또 두 분께 와인 씨가 내 계산 실력을 높이 평가해 주신 적이 있었으며 두 분도 그 말씀을 들으신 적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정치가들은 비록 와인 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지라도 어쨌든 그분 말씀에 의하면 나는 분명히 빠른 진보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다. 내 흔들의자는 점점 더 심하게 흔들렸으며 내 말은 점점 더 빨라지기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장래가 망쳐지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없을 거며 나는 모든 면에서 계속 향상되어 나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침묵만 지키셨다. 할머니는 그 서류를 집어들고 그걸 한참 동안 응시하셨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류에서 얘기하는 내용을 인정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절대로 그 서류에서 얘기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서류는 사실을 오히려 거꾸로 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편하게 해주셨으며 나는 두 분이 늘 신경을 써줘야 하는 골칫덩어리였다, 내가 두 분께 큰 부담이 되었으면 되었지 두 분이 내게 부담을 주고 나를 괴롭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법에게 이런 사실들을 분명하게 말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두 분은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가 공부 외의 다른 방면, 곧 위스키 제조 사업을 익히는 면에서도 큰 발전을 하고 있는 중이며,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 중에서 나처럼 직업 교육을 받는 아이는 아마 하나도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그 눈빛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그 눈빛은 법이 어떤 존재인 줄 잘 알지 않느냐, 법에게 위스키 사업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나는 식탁 쪽으로 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았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법을 따라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산악지대 더 깊숙이 들어가 법이 나와 관계된 일을 완전히 잊어버릴 때가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께 고아원이 뭐하는 데냐고 여쭤봤다. 할머니는 식탁 건너편에서 나를 쳐다보셨다. 할머니의 눈빛 역시 어두웠다. 할머니는 고아원이란, 엄마 아빠가 없는 애들을 법이 맡아서 기르고 있는 곳이며 그곳에는 그런 애들이 아주 많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법을 따라가지 않고 윌로우 존 할아버지 계시는 곳으로 가서 지내게 되면 법이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법이 나를 찾으로 오게 되면 증류기 있는 곳을 발각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 얘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 읍내로 가서 와인 씨를 만나보자고 하셨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집을 떠나 산길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그 서류를 와인 씨에게 보여줄 작정이셨다. 할아버지는 와인 씨 사는 곳을 잘 알고 계셔 읍내로 들어간 뒤 곧바로 큰 길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셨다. 와인 씨는 사료 가게 위층에 살고 계셨다. 우리는 그 사료 가게 옆으로 난 길다란 나무 계단을 올라갔는데 그것은 우리가 한발을 디딜 때마다 심하게 요동을 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셨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리창에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 할아버지는 먼지를 닦아내고 안을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봤다. 우리는 그 건물 모퉁이를 돌아 사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정오의 밝은 태양빛을 받다가 들어운 탓으로 가게 안은 몹시 어두워 보였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가게 안의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한 사내가 계산대 곁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쇼, 뭘 찾습니까?" 사내가 말을 건넸다. 아랫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사내였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와인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 가게 위층에 사시는 분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양반 이름이 와인이 아닐 텐데요." 그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는 이쑤시개를 몇번 빨다 뽑아내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그걸 들여다보았다. 마치 뒷맛이 고약하다는 듯이. "하긴 그 양반은 이제 이름도 없는 셈이죠. 죽었으니깐." 그가 말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넋을 잃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 휑하게 비는 느낌과 아울러 무릎이 휘청거리는 걸 느꼈다. 나는 현재 우리가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사람은 와인 씨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오 할 말을 잃은 채 망연자실하게 서 계신 것으로 미루어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오셨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댁의 이름이 혹시 웨일즈 씨 아닌가요?" 그 뚱뚱한 사내가 물었다. "맞습니다." 할아버지는 간신히 대꾸하셨다. 사내는 계산대 뒤로 돌아가더니 그 안에서 마대자루 하나를 끄집어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그것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몰라도 배가 잔뜩 불러 있었다. "그 노인네가 댁한테 주라고 이걸 여기다 맡겨놨어요. 그 꼬리표를 보세요. 거기에 영감님 이름이 적혀 있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여다보셨다. 글도 읽을 줄 모르시는 분이. "그 양반은 모든 물건에 일일이 표딱지를 붙여놨어요.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있었던 모양입디다. 심지어 자기 시체를 배편으로 어디어디로 보내주면 된다는 얘기를 적어놓은 꼬리표까지 자기 허리에다 붙잡아 매놓았으니 말 다했지요. 그리고 자기 시체를 실어나르는 삯을 정확히 계산해서 그걸 봉투 안에 넣어놨더라구요. 동전 한닢 틀리지 않게. 쌩노랭이 같으니. 그리고는 한푼도 남아 있는 게 없습디다. 유대인 놈들 지독한 거 다시 알아봤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쳐드시더니 모자챙 밑으로 사내를 무섭게 쏘아보셨다. "그분이 당신한테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았소?" 사내는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아뇨, 아뇨^5,5,5^ 다 받았습니다. 나는 그 노인네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구요. 어기서 그 노인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늘 저 산악지대만 헤매고 다녔으니까." 할아버지는 그 마대자루를 어깨에다 짊어지시고는 사내에게 물으셨다. "변호사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압니까?" 그 뚱보 사내는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요 앞 오른쪽 건물 이층에 있습니다. 저기 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건물 이층." "고맙소." 할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문쪽으로 가셨다. 뚱보사내는 우리 뒤를 따라나오면서 말했다. "우리가 그 유대 늙은이의 시체를 발견하고서 집 안을 살펴보자니까 그 영감이 표딱지를 붙이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습디다. 초 한 자루. 근데 그 망할 영감탱이는 자기 곁에다 그걸 세워놓고 불을 붙여놓았더라구요." 나는 그 촛불이 무얼 의미하는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이 돈을 왜 그렇게 정확히 계산해서 남겨놓으셨는가 하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와인 씨는 절대로 노랭이가 아니었다. 알뜰한 분이셨지. 그분은 당신이 갚아야 할 돈은 철저히 지불하셨으며 또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게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놓으신 것이다. 우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그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윗부분에 유리창이 달리고 그 위에 명패가 붙은 문을 노크하셨다. "들어와요^5,5,5^ 들어오시라니까요!" 그것은 마치 뭘 새삼 노크는 하고 그러느냐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내가 책상 뒤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머리가 허옇게 세어 꽤 늙어 보였다. 그는 할아버지와 나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으시고 걸머지고 있던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그 늙은 사내는 책상 앞으로 몸을 기울여 한 손을 내밀었다. "저는 테일러라고 합니다, 조 테일러." "웨일즈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나 흔들지는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을 놓고 우리의 서류를 테일러 씨에게 건네셨다. 테일러 씨는 자리에 앉아 조끼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는 책상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그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낯을 찡그렸다. 그는 한동안 그 서류를 들여다봤다. 마침내 읽기를 마친 그는 그 서류를 접어서 할아버지한테 넘겨줬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감옥에 가신 적이 있으시죠? 위스키를 제조한 것 때문에?" "한 번 간 적이 있소이다." 테일러 씨는 몸을 일으켜 커다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한동안 그 창을 통해 거리를 내려다봤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댁의 돈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 봤자 댁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이런 일을 맡고 있는 정부관리들은 도무지 산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ㅖ 이해하려고 들질 않는 거죠. 그 개자식들은 도무지 뭘 이해할 능력이 없는 놈들입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어느 먼 곳에 붙박혀 있었다. "그놈들의 그런 태도는 인디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싸워봤자 질 게 뻔합니다. 그자들이 저 소년을 데려가고 말 겁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모자를 쓰셨다. 할아버지는 바지 앞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셔서 그걸 열고는 손으로 안을 더듬으셨다. 할아버지는 일 달러를 꺼내 테일러 씨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우리가 그 방을 나갈 때까지 테일러 씨는 여전히 창밖만 내다봤다. 우리는 읍내를 빠져나왔다. 할아버지는 그 마대자루를 걸머지신 채 앞장서서 걸으셨다. 와인 씨마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한테는 아무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할아버지 뒤를 쫓아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죽신을 질질 끌듯이 하며 느릿느릿하게 걸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피곤하시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골짜기 길로 들어섰을 때 나는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유대인 놈들이란 어떤 사람들이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지는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도 역시 진한 피로가 베어 있었다. "나도 잘 모른다. 성경 어딘가에 그 사람들에 관한 얘기가 씌어 있다는 것밖에는. 그 사람들은 먼 길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가 보더라."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셨다. "우리 인디언들처럼^5,5,5^ 그 사람들도 역시 나라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할아버지의 눈빛은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그 어둡고 퀭한 눈빛과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등잔을 켜셨다. 우리는 마대자루에 담긴 것들을 부엌 식탁 위에 쏟아놓았다. 식탁 위에는 할머니를 위한 빨갛고, 파랗고 노란 천들, 바늘과 골무, 실패 등이 가득 쌓였다. 나는 할머니께 와인 씨가 당신이 들고 다니시던 등짐 속의 물건들을 그 마대자루 속에 고스란히 쏟아부으신 모양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당신이 보시기에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가 쓰실 만한 온갖 종류의 연장들도 있었고 또 책들도 있었다. 셈본 책 한 권과, 조그만 검은 책 한 권 (할머니는 그 책 속에는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소중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소년, 소녀들과 개들의 그림과 함께 글이 쓰여 있는 책 한 권이 그것으로, 특히 그림이 들어 있는 책은 표지가 아주 매끄럽고 윤이 나는 것으로 보아 새로 사들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와인 씨가 다음번 장삿길에 오르실 때 그걸 갖고 다니실 예정이었으리라 추측했다. 와인 씨가 깜박 잊어버리시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자루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빈 자루를 들어 마루에다 던지자 쿵 하고 뭔가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다시 자루를 들어올려 헤쳐보니까 거기서는 빨간 사과 한 알이 굴러나왔다. 와인 씨가 사과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또 다른 것 하나를 끄집어내셨다. 그것은 초였으며 거기에는 표딱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으셨다. "윌로우 존"이라고 씌어진 글자를. 우리는 제대로 먹지도 않고 대충 식사를 끝내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읍내에 다녀온 이야기, 곧 와인 씨에 대한 뒷얘기며 테일러 씨가 한 얘기 등등을 해주셨다. 할머니는 등잔을 불어 끄셨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새들어오는 당빛에 잠긴 채 말없이 벽난로 주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벽난로 불도 피우지 않았다. 나는 연신 흔들의자를 까딱거렸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나 때문에 상심하실 필요가 조금도 없다, 나는 기분이 괜찮다, 나는 곧 그 고아원을 좋아하게 될 거며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생활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법을 만족시키게 될 거고 그러면 나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사을 뒤에는 나를 법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할 말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셋은 그저 흔들의자만 느릿느릿 움직였으며 그 삐걱이는 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그러나 입 속에 담요를 틀어박고 울었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셨다. 우리는 그 사흘 동안을 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보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오셨다. "좁은 길"에도 오르시고,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도 오르시고. 우리는 퍼렁이와 다른 개들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새벽에는 아직 깜깜한 상태에서 산등성이 길을 타고 올라가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거기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봤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내 비밀 장소를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음식을 만드실 때마다 매번 설탕을 엎지르는 실수를 저지르시곤 하셨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나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쿠키를 원 없이 먹었다. 떠나기 전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르게 지름길로 해서 네거리 가게로 갔다. 젠킨스 씨는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가 묵은 것이기 때문에 육십오 센트만 받고 팔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께 돈을 치렀다. 나는 또 할아버지 몫으로 이십오 센트짜리 빨간 막대사탕도 한 상자 샀다. 덕분에 청크 씨로부터 받은 일 달러는 십 센트만 남고 다 나갔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잘라주셨다. 할아버지는 인디언처럼 보이면 백인들 틈에서 지내기 힘들 테니까 머리를 자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아무래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곧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닮은 인상을 갖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이제까지 내가 신고 다녔던 가죽신은 따로 치워두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옛날에 신고 온 구두 속에 쇳덩어리를 집어 넣으시고 그 위의 가죽을 망치로 두드려 전체적으로 구두를 늘여 펴셨다. 그 동안 내 발이 자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내가 이내 돌아올 거니까 돌아와서 바로 찾을 수 있도록 내 가죽신을 내 침대 밑에 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사슴 가죽셔츠는 침대 위에 놔두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침대를 사용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거기다 놔둬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나는 할머니 몫인 그 빨갛고 파란 사탕 상자는 옥수수 가루를 넣어두는 통 속에 몰래 집어넣어 뒀으며 막대사탕 상자는 할아버지의 양복 윗주머니에 넣어 뒀다. 할머니는 하루나 이틀 내에 그걸 발견하시게 될 거고 할아버지는 일요일이나 되야 그걸 발견하시게 될 것이다. 나는 맛이 어떤가 알아보기 위해 할아버지의 상자에서 딱 한 개만 꺼내서 먹어봤다. 맛이 기가 막혔다. 내가 읍내로 가던 날 할머니는 그냥 집에 계시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먼저 집 앞 빈터로 나가셔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셨다. 할머니는 현관에서 무릎을 꿇으시고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껴안으실 때처럼 나를 껴안아 주셨다. 나도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만 눈물이 조금 새나오고 말았다. 나는 내 옛날 구두를 신었다. 헌데 그것은 할아버지가 늘여 펴주신 덕분에 발가락을 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나는 가장 좋은 작업복과 하얀 셔츠를 입었으며 그 위에 다시 와인 씨가 주신 노란 외투를 걸쳤다. 내가 짊어진 자루 속에는 할머니가 넣어 주신 두 벌의 셔츠와 아래위 작업복 한 벌, 그리고 양말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곧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루 속에 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께 곧 돌아올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현관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껴안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늑대별(시리우스 별을 말한다. 큰개자리의 으뜸가는 별로 붙박이별 중에서 가장 밝으며 지구에서 7.8광년 떨어져 있다: 옮긴이)을 기억하니? 초저녁이면 제일 먼저 보이는 별." 나는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 있든 간에 초저녁만 되면 늑대별을 쳐다보거라. 할아버지와 나도 쳐다볼 거니까. 우리는 늘 그걸 잊지 않고 있을 거다." 나는 할머니께 나도 잊지 않을 거라고 말씀 드렸다. 그 별은 와인 씨의 촛불과 비슷한 존재였다. 나는 할머니께 윌로우 존 할아버지한테도 늑대별을 봐달라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할머니는 그러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두 어깨를 붙잡고 나를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첼고키 사람들이 네 엄마와 아빠를 결혼시켰다. 작은나무야 그걸 기억할 수 있겠지? 누가 무슨 말을 하든^5,5,5^ 그걸 꼭 명심하고 있거라." 나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를 돌려세우셨다. 나는 내 자루를 들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빈 터를 떠났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현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당신의 두 손을 들어 가슴에다 대시고는 다시 그 두 손으로 나를 미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검은 양복 차림에 검은 구두를 신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둘은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산길을 내려갔다. 골짜기 길을 내려가려니 낮게 퍼진 소나무 가지들이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참나무 가지 하나가 손가락들을 길게 뻗쳐 내 어깨에 짊어진 자루를 잡아당겼으며 감나무 가지 하나는 내 다리를 붙잡았다. 실개천은 한층 더 소란스러운 소리와 더불어 거세게 치달리기 시작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까옥까옥 하고 울며 우리 앞에서 급강하하여^5,5,5^ 높은 가지 위에 내려앉아서는 계속 울어대었다. 그들 모두는, "가지 마, 작은나무야^5,5,5^ 가지 마, 작은나무야^5,5,5^"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바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바람이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거세게 일면서 내 노란 외투자락을 잡아당겼다. 길바닥을 온통 뒤덮은 시든 찔레덩굴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어디선가 문상비둘기 한 마리가 처량한 목소리로 길게 울어댔는데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는 그 새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산길을 내려오느라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읍내의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나는 내 자루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가 도와드리지 못하게 됐으니 혼자서 어떻게 위스키를 만드실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좀 힘들게 됐다며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할 수밖에 더 있느냐고 하셨다. 나는 내가 금방 돌아오게 될 거라고, 잠시만 두 사람 몫을 하시면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도 내가 곧 돌아오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대합실 안, 벽에 걸린 시계가 똑딱거리며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볼 줄 알아 할아버지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대합실 안에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불황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 쓰기를 무서워해서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가 사는 산악지대의 산줄기들이 내가 가는 고아원 있는데까지 뻗어 있느냐고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당신도 그 고아원에는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좀더 기다렸다. 이윽고 그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회색 드레스를 입고 우리 오두막에 나타났었던 그 여자. 그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녀는 할아버지께 몇 장의 서류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주머니에다 구겨 넣으셨다. 그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말썽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니 순순히 따르도록 하세요. 따라야 할 건 따라야죠. 그게 모두를 위해서 좋은 겁니다." 나는 그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아주 사무적이었다. 그녀는 자기 지갑에서 줄 하나를 꺼내 내 목에다 붙잡아맸다. 그 끝에는 와인 씨의 표딱지를 닮은 표찰이 달려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녀를 따라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대합실 뒤편으로 갔다. 나는 내 자루를 어깨에다 짊어졌다. 할아버지는 버스 문 곁에서 무릎을 꿇으시고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끌어안으실 때처럼 나를 끌어안으셨다.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나를 안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바로 돌아오게 될 거^36^예요." 할아버지는 알아들으셨다는 듯이 나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여자가 말했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나는 그게 할아버지더러 하는 소린지 나한테 하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돌아서서 걸어가셨다. 할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나 혼자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음에도 여자는 굳이 나를 들어 버스 발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버스 운전사더러 내 목에 걸린 표찰을 읽어봐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걸 읽을 수 있게끔 그의 앞에 똑바로 섰다. 나는 버스 운전사에게 나한테는 표가 없고 또 버스값도 갖고 있지 않으니 이걸 타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소리내어 웃으며 그 여자가 자기한테 내 버스표를 줬다고 했다. 버스를 탄 사람은 셋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 뒤편의 창가 쪽에 자리잡았다. 이윽고 시동을 건 버스는 서서히 정류장을 빠져나갔다. 그 회색옷을 입은 여자가 정류장에 서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거리를 달려갔다. 어디에서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버스 정류장 부근의 모퉁이에서 계셨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셨고 당신의 두 팔은 허리깨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버스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창문을 들어올리려고 애썼지만 들어올리는 방법을 몰라 아무리 해도 안 되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를 보지 못하셨다. 버스가 할아버지 곁을 지나치자 나는 버스 맨 뒤로 달려가 뒤창으로 내다봤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거기 서서 우리 버스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 곧 돌아올게요!"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금방 돌아올게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냥 서계시기만 했다. 석양빛 속에서 점점 작아지면서. 할아버지의 어깨는 구부정했으며 아주 늙어보였다. @ff @[ 늑대별 버스는 얼마나 먼 거리를 달렸는지 도통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오래 달렸다. 나한테 우리가 얼마만큼 왔는지 얘기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같이 타셨다 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나는 키가 작아 좌석 등받이 너머로는 볼 수가 없어 옆 차창을 통해서만 내다봤다. 집과 숲들이 무슴히 차창 곁을 흘러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서 이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통로 쪽으로 자리를 옮겨 고개를 옆으로 빼고 버스 불빛에 비치는 도로를 지켜봤다. 그렇게 한동안 지켜봐도 매양 보이는 건 도로뿐이었다. 우리는 어떤 읍내의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한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나는 버스에서 내리지도 내 좌석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는 편이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읍내를 떠난 뒤론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나는 내 무릎 위에 얹어 놓은 자루를 꼭 끌어안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안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퍼렁이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꾸벅꾸벅 졸았다. 버스 운전사가 나를 깨웠다. 벌써 아침이었으며 밖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는 고아원 정문 앞에 멈춰 서 있었으며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머리가 허옇게 센 부인 하나가 우산을 받고 서서 나를 맞았다. 그녀는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얼핏 보기에는 회색 옷을 입은 여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별로 닮은 데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서 내 표찰을 붙잡고 들여다봤다. 그녀가 버스 운전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는 버스 문을 닫고 떠나갔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한숨처럼 말을 뱉어냈다. "날 따라오너라." 그녀는 철문으로 해서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내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철문 양켠에는 커다란 느릅나무들이 서서 이파리를 살랑거리며 뭐라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앞만 똑바로 보고 걸었으나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걸로 미루어 나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나 싶었다. 우리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어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를 쫓아가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 건물 안의 어떤 방문 앞에 이르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너는 이제 목사님을 뵙게 된다. 목사님 앞에서는 입을 열어서도 울어서도 안 되고 항상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넌 목사님이 너한테 물어보실 때(만) 말을 할 수 있다. 알겠니?"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넓고 어둠침침한 홀을 가로질러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인은 나를 그의 책상 앞에 있는 밋밋한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발꿈치를 들고 소리나지 않게 그 방을 나갔다. 나는 내 마대자루를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그는 서류를 읽느라 분주했다. 그의 얼굴에는 붉으레한 빛이 감돌았는데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 틈만 나면 세수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귀 근처에만 터럭이 몇 오리 보일 뿐 거의 완전한 알대머리였다. 방 벽에는 시계 하나가 걸려 있었으며 나는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았지만 그걸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목사 뒤편에 있는 창문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목사는 고개를 쳐들었다. "다리 흔들지 마라." 그의 말투는 아주 딱딱했다. 나는 즉각 다리 흔드는 걸 멈추었다. 그는 서류에 대해 좀더 연구했다. 이윽고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연필 한 자루를 쥐더니 양손으로 그걸 빙빙 돌렸다. 그가 책상 위에 그의 양 팔꿈치를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바람에 나는 그를 쳐다보기 위해 얼굴을 바짝 치켜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요즘은 아주 어려운 때다." 그는 마치 이 어려운 시절과 그가 개인적으로 깊은 상관이 있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정부는 이런 사업에까지 돈을 대줄 만한 여유가 없다.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 본다면 도저히 너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단은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교단이 건전한 상식을 벗어나 나를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내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연필을 빙빙 돌렸다. 그 연필심이 너무 길게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알뜰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나는 그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절약할 줄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너는 우리 교단에서 부설한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리고 너한테는 자잘한 일들이 몇 가지 주어질 거다. 여기 있는 아동은 모두 다 자기 할 일을 갖고 있으니까. 아마 네가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일일 거다. 또한 너는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그걸 어길 때에는 벌을 받게 된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우리는 한번도 인디언이나 혼혈아 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생아도. 헌데 네 엄마와 아빠가 혼인을 하질 않았으니 우리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사생아를 받게 된 셈이다." 나는 그에게 할머니의 말씀을 들려줬다. 체로키 사람들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결혼시켰다는 사실을. 그는, 체로키 사람들이 뭘 했건 간에 자기네는 그런 건 도통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일로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네 교단은 만인에게 친절히 대하고 있으며 심지어 동물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푸는 걸 신조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경에 사생아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나와 있으므로 나는 교회의 낮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교회 맨 뒤편에 죽은 듯이 앉아 있기만 한다면 설교를 들으러 와도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이미 자잘한 교리 논쟁 따위는 무시하고 지내기로 했었으므로 나는 그의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책상 위의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할아버지는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당치 않은 사람이며 또 나는 거의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전혀 찬동할 수 없었지만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감옥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과거에 하마터면 교수형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내 말에 그는 연필 돌리기를 멈추었다.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네가 뭘 어쨌다구?" 그는 소리쳤다. 나는 과거에 법이 나를 목매달을 뻔한 적이 있었다, 허나 나는 날쌔게 도망쳐 버렸다, 만일 개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목매달려 죽었을 거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증류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할아버지와 내가 위스키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할 테니까. 그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울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어)." 그는 같은 소리를 두세 번 반복했다. 나는 뭐가 잘못된 일이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계속 머리를 흔들어서 나는 그가 울고 있으리라고 단정했다. 나는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만큼이나 유감스럽게 느끼기 시작했으며 공연히 교수형 당할 뻔한 얘기를 꺼냈다고 후회했다, 우리의 이런 상태는 한동안 계속됐다. 나는 그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로 인해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링거가 죽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를 치켜들더니 벼락같이 소리질렀다. "입 닥치지 못 해! 난 너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서류를 집어들고 말했다. "우린 지켜보겠다^5,5,5^. 주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애써 볼 거야. 그래 봤자 넌 감화원(불량 소녀 소년을 선도하는 기관: 옮긴이)으로 가게 될 테지만 말야."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만 초인종을 눌렀다. 아까 그 부인이 총알같이 나타났다. 그 부인은 계속 문 밖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자루를 들어 어깨에 짊어 지고는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님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아닌데 굳이 모험을 하는 건 어리석다는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비롯 내가 사생아라서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공연히 "목사님"이니 "^456,356,356,356,123^씨"라거니 하는 식으로 불러서 지옥에 가는 길을 앞당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방을 떠날 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뒤흔들었다. 그 바람에 부인은 걸음을 멈추고 창문 쪽을 쳐다봤고 목사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나는 산이 바람을 통해 내 안부를 묻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침대는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침대들과 뚝 떨어져 있었다. 내 침대와 바싹 붙어 있는 한 침대만 빼고는. 그 방은 스무 명 내지 서른 명쯤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켰다. 그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내가 할 일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방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일을 해냈다. 그러나 부인이 보기에 침대 밑이 깨끗하지 않을 때는 다시 한번 청소를 해야 했다. 이렇게 두 번 청소하는 일은 거의 일상사가 되다시피했다. 윌번은 내 바로 곁에 놓여 있는 침대의 임자였다. 그애는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 열한 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는 자기가 열두 살이라고 했다. 그는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얼굴이 주근깨 투성이였다. 그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자기를 양자로 데려가려 한 적이 없었으며 아마도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자기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해싿.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그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다시 돌아와 거기다 불을 확 싸질러 버릴 거라고 말했다. 윌번의 오른쪽 다리는 안짱다리였다. 그것은 안쪽으로 아주 심하게 휘어 그가 글을 때면 그 발긑이 왼쪽 다리를 스치곤 했으며 오른쪽 상체가 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곤 했다. 나와 윌번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어떤 놀이를 하고 놀든 간에 절대로 그대들 틈에 끼어들지 않았다. 윌번은 달릴 수가 없어서 그랬고 나는 또 내가 너무 어려 노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윌번은, 자기가 그런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며 놀이 같은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나느 그 참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가 속으로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윌번은 그걸 알지 못했다. 겨울이 오면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던 이파리들이 모조리 떨어져 버리자 이번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대신 말을 걸어왔다. 참나무는 자기가 무척이나 졸립지만 산에 있는 나무들에게 내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늘 깨어 있겠다고 했다. 참나무는 자기가 바람을 통해 내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나는 참나무에게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도 내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나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참나무 밑에서 파란 구슬 한 개를 주웠다. 그걸 한쪽 눈에다 대고 다른 한족 눈을 감으면 세상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인다. 나는 그때까지 구슬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구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는데 윌번이 그걸 가르쳐 줬다. 윌번은, 원래 구슬이라는 건 들여다보기 위하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서 굴리며 노는 것이다, 헌데 내가 그 구슬을 굴리며 놀다간 누군가가 와서 빼앗아 갈거다, 그건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이니까 굴리지 말고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게 좋을 거다, 라고 했다. 윌번은, 주운 사람이 임자며 잃어버리는 놈이 병신이다, 그러니 네가 가져도 상관없다, 라고 했다. 나는 그걸 내 자루 속에 넣어뒀다. 이따금 한번씩 고아원에 있는 모든 소년들이 사무실 곁에 딸린 넓은 방 안에 집합하여 일렬횡대로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점잖은 신사나 부인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소년들을 요모조모로 살펴본다. 그들은 바로 양자로 들일 아이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을 맡고 있는, 그 머리가 허옇게 센 부인은 나더러 그 대열에 끼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거기서 빠졌다. 나는 문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나는 누가 양자로 뽑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네가 원하는 소년이 발견되면 그애 앞에 서서 이런저런 말을 시켜보고는 바로 사무실로 직행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전 가야 윌번에게는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윌번은, 자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여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줄 서는 날만 오면 그는 늘 깨끗한 셔츠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곤 했으니까. 소년들이 줄을 서면 나는 윌번을 주시하곤 했다. 그는 줄을 선 상태에서 사람들이 자기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쌩긋 웃어 주곤 했으며 자기의 안짱다리를 성한 다리 뒤편으로 살짝 감추곤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줄을 선 날 밤에면 윌번은 늘 침대 위에다 오줌을 쌌다. 그는 자기가 일부러 그러는 거다, 그 쌍놈의 양자들이기 행사에 대해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고아원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 그러는 거다, 라고 했다. 윌번이 침대에다 오줌을 쌀 때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윌번에게 매트리스와 담요를 들고 나가 햇볕에 말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만일 고아원 사람들이 자기를 정 귀찮게 굴면 매일 밤마다 오줌을 쌀 거라고 말했다. 윌번은 나더러 어른이 되면 뭘 할거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나 윌로우 존 할아버지 같은 인디언이 되어 산에서 살 거라고 대답했다. 윌번은 자기는 은행이나 고아원 같은 곳을 털 거며 돈 넣어두는 곳만 알 수 있다면 교회도 털 작정이라고 해싿. 그리고 그는 은행에 있는 놈들이고 고아원에 있는 놈들이고 간에 자기 눈에 걸리는 놈들은 싸그리 다 죽여 버릴 작정인데 나만은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윌번은 밤이면 늘 울었다. 그러나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자기 입을 담요로 틀어막고 우는 것으로 미루어 남들이 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윌번에게 그가 그 고아원만 나가게 되면 그의 다리를 똑바로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 파란 구슬을 줬다. 그 고아원에서는 황혼 무렵, 곧 저녁밥 먹기 직전 시간에 저녁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나는 그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저녁식사도 덩달아 거르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저녁마다 늑대별을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스름녘만 되면 그것은 희미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다가 어둠이 짙어질수록 점점 더 밝아져 갔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윌로우 존 할아버지도 그걸 지켜보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윌번에게 그가 어느 하루 저녁식사를 거를 용의만 있다면 나와 함께 늑대별을 볼 수 있으리라고 얘기해 줬지만 고아원 선생들이 번번이 그를 교회로 끌고 가곤 했으며 또 그가 저녁식사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그는 끝내 그 별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처음 그 별을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낮 동안에 저녁에 별을 보면서 생각할 내용들을 미리 궁리해 두려고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불필요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른 생각할 필요없이 그저 그 별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별을 통해 당신과 내가 산꼭대기로 올라갔을 때의 추억을 내게 봬 주셨다. 아침이 탄생하는 광경, 아침의 첫 태양빛이 얼음에 부딪치면서 찬연한 광채를 발하던 그 광경에 관한 추억을. 나는 할아버지가 "아침이 태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곳 창가에 붙어앉아 말하곤 했다. "그래요 할아버지, 아침이 태어나고 있어요!" 할아버지와 나는 늑대별을 지켜보면서 여우사냥하던 시절로 되돌아 가기도 했다.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 리핏, 그리고 모드와 더불어. 할아버지와 나는 리핏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할머니는 식물뿌리를 캐러 다니던 시절의 추억, 도토리 가루에 설탕을 엎지르시던 때의 추억 등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내가 옥수수밭에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우리집 나귀 샘처럼 우는 시늉을 내는데 불쑥 나타나셨던 때의 추억도. 할머니는 내 비밀 장소 주변의 선연한 영상, 곧 갈색, 빨강, 노랑 이파리들이 모두 떨어져 내려 현란한 빛깔로 지면을 덮은, 그리고 붉은 거먕 옻나무들이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의 고리처럼 그곳을 빙 둘러싼 영상도 보내 주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고산지대로 몰려든 사슴들의 영상을 보내 주셨다. 그분과 나는 내가 그분의 윗저고리 주머니에 개구리를 넣어 두었던 때를 생가가하고 즐겁게 웃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분의 영상은 격렬한 소용돌이에 감싸이곤 했다. 그분이 무슨 일로 흥분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미친듯한 분노에 휩싸이셨다. 나는 낮시간이면 늘 구름과 태양의 움직임을 지켜보곤 했다. 구름이 끼면 늑대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깔리는 저녁이면 나는 창가에 서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곳에 있는 학교의 일학년 반에 들어갔다. 우리 일학년은 내가 이미 와인 씨에게 배워서 알고 있는 정도의 계산법을 익히고 있었다. 뚱뚱한 거구의 여자가 우리 반을 맡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엄숙하고 진지했으며 바보 같은 짓을 하거나 장난치는 짓 따위는 추호도 용납치 않았다. 한번은 그녀가 한 무리의 사슴들이 냇물에서 나오는 광경을 담은 그림 한 장을 우리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그림 속의 사슴들은 껑충껑충 뛰고 있었으며 마치 서둘러 물 밖으로 나오려고 서로를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그림을 쳐들고는우리에게 "이 사슴들이 뭘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하고 물었다. 한 아이가 그 사슴들은 뭔가를 피해, 일테면 사냥꾼 같은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사슴은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서 빨리 건너려고 서두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애 말이 옳다고 했다. 그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나는 그 사슴들은 짝짓기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건 수사슴이 암사슴 위로 뛰어오르는 걸 보면 알 수 있으며 또 그 사슴들을 둘러싸고 있는 덤불과 나무의 모양을 보면 그때가 바로 사슴들이 짝짓기를 하는 철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말에 그 뚱뚱한 여자는 벼락맞은 사람 같은 표정을 했다. 그녀는 입을 딱 벌리고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 아이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기 이마를 찰싹 갈기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으며 그 바람에 그림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두발짝 뒤로 비슬비슬 물러서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정신을 수습했다. 이윽고 그녀는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일순 교실 안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내 멱살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친듯이 소리쳤다. "나는 (알았어야) 했었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어! ^5,5,5^ 너한테서 그 추잡하고^5,5,5^ 음탕하고^5,5,5^ 더러운 수작들이 나오리라는 걸^5,5,5^ 알고 있어야 했어^5,5,5^ 이 더러운 사생아 같은 놈아!"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뭐라고 해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더욱 거세게 흔들다가는 내 목 뒤를 움켜쥐고 나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우리는 목사 방 곁에 딸린 넓은 홀로 내려갔다. 그녀는 나를 문 밖에 세워 두고 목사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들이 뭐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목사 방을 나온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휭하니 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목사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착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들어와." 나는 들어갔다. 그의 입술은 마치 히죽 웃기라도 하려는 듯이 벌어져 있었으나 그의 얼굴 어디에도 웃음기 같은 건 없었다. 그는 혀로 연방 입술을 핥았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어싿. 그는 내게 셔츠를 벗으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말했다. "너는 악의 종자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회개하는 마음 같은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너는, 이후 다시는 기독교인들한테 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끔 따끔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회개하는 마음 같은 걸 가지게 할 수는 없어도^5,5,5^ 울게 할 수는 있지!" 그는 길다란 막대기로 내 등짝을 후려쳤다. 처음에 그건 되게 아팠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전에 내 발톱 하나가 빠졌을 때^5,5,5^ 할머니는 인디언들이 고통을 참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인디언은 자기의 욱신을 벗어나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지켜본다). 육신의 마음은 육신의 고통만을 느끼며 영적인 마음은 영적인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육신의 마음을 잠재웠다. 그 막대기는 사정없이 내 등짝을 치고 또 쳤다. 잠시후 그것은 부러져 나갔다. 목사는 또 다른 막대기를 가져왔다. 그는 헐떡이면서 말했다. "악은 쉽게 굴복하는 법이 없지."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 그가 새로운 막대기로 미친듯이 내 등짝을 후려갈기는 바람에 마침내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사람이 두 다리로 버티어 설 수 있는 한 별일은 없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씀하셨었다. 마루바닥이 조금 기우뚱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목사는 심하게 헐떡였다. 그는 나더러 셔츠를 입으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셔츠가 등에서 흘러나온 피를 어느 정도 빨아들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내 신발 속에 흥건하게 괴었다. 바지 속에 속옷을 입지 않은 탓으로 중간에서 그걸 흡수해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신발 속이 질척해졌다. 목사는 나에게 일 주일 간 저녁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어차피 저녁은 굶고 있었던 터라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는 또 일주일 간 수업을 받을 수 없으며 그 동안 내가 있는 방을 떠나서도 안 된다고 선언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바지 멜빵을 어깨에다 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 어스름녘이면 내 작업복 바지 자락을 움켜쥐고 창가에 서서 늑대별을 쳐다보곤 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이번 일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 뚱뚱한 부인을 그토록 성나게 했는지, 그리고 목사를 그토록 격분하게 만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칠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목사는 내가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잘못을 고치는 방법을 모르므로 고칠래야 고칠 길이 없다는 소리를 했다고 그분들께 말씀드렸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로서는 현재의 이런 상황을 달리 어째해 볼 길이 없을 걸 같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늑대별을 보다가 잠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윌번이 창 밑에 쓰러져 잠이 든 나를 깨웠다. 그는 나를 보러오기 위해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엎드려서 잠이 들었었다. 윌번은 자기가 커서 고아원을 떠난 뒤에는 고아원과 은행 등을 닥치는 대로 털 건데 그때 우리 고아원의 목사도 죽여 버릴 거라고 했다. 그는 자기도 나처럼 지옥에 가는 것 따위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저녁나절 늑대별이 나올 때만 되면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이제는 그분들이 보내 주는 영상도 보이지 않았고 그분들의 말씀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분들께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했다. 늑대별은 불그스름해졌다가 하얘졌으며, 이윽고 다시 불그스름해졌다. 사흘밤이 지난 뒤 늑대별은 짙은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바람이 가느다란 장대를 쓰러뜨리면서 고아원은 일시에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나는 그분들이 내 말을 전해 들으셨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분들이 오시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계속 흘러갔다. 바람은 더욱더 날을 세웠으며 밤이면 고아원 건물을 온통 뒤흔들며 울었다. 어떤 애들은 그 소리를 싫어했지만 나는 좋아했다. 이제 밖에 나가면 나는 종일 참나무 밑에 서서 시간을 보냈다. 참나무는 잠든 듯했다. 하지만 참나무는 나 때문에 잠자지 않는다고 했다. 참나무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느릿느릿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얼핏 할아버지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커다란 검은 모자를 쓴 키 큰 사람이었다. 그는 고아원 밖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점점 나한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철책 있는 데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러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철책을 따라 달려갔지만 그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할아버지! 나예요, 작은나무예요!" 그러나 그는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허연 부인은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고 했다. 그녀는 그 날이 오면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될 거라고 했다. 윌번은, 자기네가 교회당 안에서 온갖 노래들을 다 부른다, 자기네는 여러 가지 노래들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하얀 악보들을 들고 병아리 새끼들처럼 목사 주위에 빙 둘러선 채 노래부르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나는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샌디 클로즈(연갈색 발톱이란 뜻. 주인공은 산타클로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알아들었다: 옮긴이)가 올거라고 했다. 그러자 윌번은 다 똥 같은 수작이라고 했다. 사내 둘이 나무 한 그루를 들고 왔다. 그들은 정치가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얘들아 여길 봐라. 너희들을 위해 갖고 온 거다, 멋있지 않니? 어때 멋있지? 너희들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게 된 거다!" 머리 허연 부인은 아주 멋있다고 말하고는 우리더러도 그 정치가들에게 "아주 멋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잘 자라는 그 나무를 벨 하등의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숫소나무였으며 홀에 우두커니 서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 정치가들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다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빈다고 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네가 들고 온 빨간 종이를 나눠주면서 그걸 나무에다 걸라고 했다. 윌번과 나를 빼고는 모두 그렇게 했다. 정치가들은 고아원 정문을 떠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소리쳤다. 우리 모두는 한동안 그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그 나무를 쳐다보았다. 머리 허연 부인은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내일 낮쯤에 샌디클로즈가 선물을 갖고 올 거라고 했다. 윌번은 "샌디 컬로즈가 크리스마스 이브 낮에 오는 건 웃기는 일 아녜요?" 라고 했다. 그러자 머리 허연 부인은 낯을 찌푸렸다. "윌번, 너는 해마다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샌디 클로즈가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그분과 그분을 돕는 분들도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낼 권리를 갖고 있는 거야. 너는 그분들이 밤시간이든 낮시간이든 간에 아무튼 시간을 내서 우리를 찾아와 선물을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윌번은 중얼거렸다. "웃기구 있네." 과연 다음날 낮이 되니까 네다섯 대의 차들이 몰려왔다. 차문이 열리면서 선물꾸러미를 한아름씩 안은 신사와 부인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머리에 우스꽝스럽게 생긴 조그만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들 중의 몇몇은 조그만 종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 종을 울리며 소리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들은 이 소리를 거듭 외쳤다. 그들은 자기네가 샌디 클로즈 조수들이라고 했다. 드디어 샌디 클로즈도 차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붉은 상의에 벙벙하게 부풀어오른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허연 수염은 와인 씨의 수염과는 달리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을 그의 입언저리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으며 그가 말을 해도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어흠! 어흠!"했다. 그는 자꾸 이 소리를 반복했다. 머리 허연 부인은 우리 모두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으며 그들의 "메리 크리스마스!"에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로 답했다. 우리 모두도 그녀가 한 말을 따라서 했다. 한 부인이 나한테 오렌지 한 개를 줘서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가지 않고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오렌지를 싫어하니? 맛있는데."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그걸 까서 먹었으며 그녀는 내가 먹는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그것은 맛있었다. 나는 다시 그녕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주 맛있는 오렌지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또 먹고 싶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윌번은 사과 한 개를 받았다. 그건 와인 씨가 늘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는 깜박 잊어버리시곤 했던 사과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내 오렌지를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둘걸 하고 후회했다. 그 부인이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그걸 먹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윌번이 사과를 먹을 때 서로 조금씩 쪼개서 바꿔 먹었을 것이다. 나는 사과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부인네들은 일제히 종을 흔들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샌디 클로즈가 선물을 주신답니다! 모두 둥그렇게 모여 서요! 샌디 클로즈가 여러분들한테 주실 것이 있답니다!" 우리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섰다. 샌디 클로즈가 한 사람씩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는 샌디 클로즈 앞으로 가서 선물을 받았다. 샌디 클로즈는 선물을 주고 난 다음에는 으레 아이들의 머리를 두드려 주거나 쓰다듬어 주었으며 그럴 때 우리는 잠자코 서 있다가 그런 동작이 끝나면,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말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선물을 받고 나면 부인네들 중에서 한 사람씩 꼭꼭 나서서 "선물을 펴보렴! 그 멋진 선물을 펴보지 않을 거니?"하고 소리치곤 했다. 그런데 선물 받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러한 행위는 큰 혼잡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부인네들이 선물 받은 아이들을 각각 하나씩 맡아서는 아이 뒤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그런 소리들을 외쳐댔기 때문이다. 나도 선물을 받고 샌디 클로즈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어흠! 어흠!"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부인이 튀어나와 나더러 그 선물을 펴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그걸 벗겨내려고 애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포장지를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포장지 않에는 짐승 그림이 그려진 마분지 상자가 들어 있었다. 윌번은 거기 그려진 게 사자라고 했다. 그 상자에는 구멍이 하나 나 있었고 그 구멍 밖으로 나와 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무슨 소리가 났다. 윌번은 그게 사자 울음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만 그 줄이 끊어져 버려 나는 그걸 다시 묶어쌌다. 그러자 그 줄에 매듭이 생겨서 그게 구멍에 자꾸 걸리는 바람에 사자 울음 소리가 신통치 않게 울려나왔다. 나는 윌번에게 그 소리가 꼭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윌번의 선물은 물청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새는 곳이 있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쏘아 봐도 별로 멀리 나가지 못했다. 윌번은 자기 오줌줄기보다도 안 나간다고 투덜댔다. 나는 윌번에게 향내나는 고무나무 수액만 있으면 그걸 때울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헌데 이 근처에서 향내나는 고무나무를 과연 찾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나는 이 근처에서는 그 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한 부인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우리들에게 막대사탕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나도 한 개 받았다. 헌데 그녀는 그렇게 돌아다니다 다시 나와 부딪치자 다시 또 사탕을 주고 갔다. 나는 그 두번째 사탕을 쪼개 윌번과 나눠 먹었다. 샌디 클로즈는 "안녕, 여러분! 내년에 봐요!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다른 남자들과 부인네들도 종을 울리면서 똑같은 내용의 말을 외쳐댔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가 차에 올라탄 뒤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사방은 아주 조용해졌다. 윌번과 나는 우리 침대 곁의 마루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윌번은 그들이 읍내의 컨트리 클럽 회원들이며 그들은 매년 그렇게 몰려와서 한껏 즐거운 기분을 맛본 다음 돌아가 실컷 술을 퍼마신다고 했다. 윌번은 그런 짓거리들을 보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크리스마스 따위는 완전히 무시해 버릴 거라고 했다. 어둠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당으로 몰려갔다.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으며 밖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을 때쯤 해서 나는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공기는 청량했으며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아이들이 별에 관한 노래를 불러 자세히 귀기울여 보니 늑대별에 관한 노래는 아니었다. 나는 늑대별이 서서히 밝아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들이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교회에 오래 머물러 준 덕분에 나는 늑대별의 밝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날 저녁 우리는 푸짐한 저녁상을 받았다. 우리는 각자 닭다리 한 개씩을 받았고 거기에 더해 닭 모가지에 내지는 모래주머니 한 개씩을 받았다. 윌번은 이것도 매년 똑같다고 하면서 그들은 아마도 다리와 모가지와 모래주머니만 달린 특수한 닭들을 키우는 모양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내 몫의 닭고기를 아주 맛있게, 하나도 남감없이 다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 우리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 밖은 추웠기 때문에 모두들 실내에서 놀았으며 나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내 마분지 상자를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참나무 밑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오랬동안 앉아 있었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나는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물 쪽을 흘끗 쳐다봤다. 그런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나오시는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막 건물에서 나와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나는 내 마분지 상자도 내던지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리셨다. 우리는 꼭 끌어 안았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날이 아주 어두워진 데다 할아버지가 큰 모자를 쓰고 계셔서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나를 보러 오셨는데 곧 가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정이 있어 오실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치도록.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했다간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실 것 같아 차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정문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껴안았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걸어가셨다. 할아버지는 아주 천천히 걸으셨다. 나는 잠시 거기 서서 할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시는 걸 지켜봤다. 헌데 할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하셔서 애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 역시도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할아버지는 줄곧 앞만 보고 걸어가시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할아버지 모르게 계속 뒤따라갔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넓은 길을 건너서 버스 정류장 뒤편으로 다가가셨다. 할아버지가 서 계시는 곳은 아주 밝아서 나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거리 한 모퉁이에서 서성거렸다. 크리스마스 날이라 정류장 근처는 아주 조용했으며 오고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이윽고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난 버스 표지판 글씨도 읽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는 내 느닷없는 외침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으였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오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갔다. 우리는 정류장 뒤에서 서성거렸다. 하지만 나는 버스 표지판을 보고도 그게 어디서 어디로 간다는 소린지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할아버지가 타셔야 할 버스가 어느 것이라는 걸 알려줬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그 버스 있는데로 갔다. 버스 문이 열렸고 우리는 그 곁에서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먼산바라기만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엄마의 장례식 때처럼 결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진 건 아니었지만 마음은 그에 못지않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셨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두 팔을 뻗어서 나를 번쩍 들어올리셨다. 할아버지는 버스 계단 맨 꼭대기에다 나를 내려놓으셨다. 할아버지는 계단을 밟고 올라오셔서 지갑을 꺼내셨다. "나하고 우리 애 요금을 내겠소이다." 할아버지는 약간 긴장된 어조로 말씀하셨다. 버스 운전수는 할아버지를 흘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비웃지는 않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버스 뒤편으로 가서 앉았다. 나는 버스 운전수가 어서 문을 닫고 떠나 주기만 바랐다. 마침내 그는 문을 닫았고 버스는 버스 정류장을 뒤로 하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들어올려 당신의 무릎 위에 앉히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가슴에다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잠을 자진 않았다. 나는 창문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버스 뒤편에는 온기라곤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으니까. 산들이 솟아오른 모습을 보아라. 등성이를 따라 불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침을 탄생시키고 자신의 무릎 주위로 안개자락들을 걸치고 자신의 손가락인 나무들로 바람을 켜고 하늘에 등을 비벼대는, 저 높이 높이 치솟은 산들을 보아라. 두터운 잿빛 구름 이 소용돌이치면서 혹은 탄식처럼 혹은 속삭임처럼 나뭇가지에서 물방울을 떨구며 산허리를 어루만지는 것을 보아라. 산의 자궁인 골짜기들이 생명의 웅얼거림과 함께 나직하게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라. 산의 몸의 온기를, 산의 향긋한 숨결을 느껴 보라. 그리고 번개와 천둥의 리듬을 느껴 보라. 산의 복부 깊숙이 핏줄처럼 맥박치는 가는 물줄기들. 산의 생명의 젖줄이 되는 나무뿌리들, 그리고 산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류들은 산이 사랑으로 어르는 산의 아이들에게 생명을 가져다 준다. 산의 요람 속에서 산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와 물이 흥얼거리는 가락을 들으며 평화롭게 숨쉬는 그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ff @[ 집으로 돌아오다. 우리는 여러 시간 달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잠을 자지도 않았다. 버스는 가는 도중에 두세 군데 버스 정류장에서 멈춰섰지만 우리는 제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우리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인 이른 새벽이 할아버지와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날은 추웠고 길바닥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아가다 이윽고 차바퀴 자국이 난 길로 들어섰다. 그때 나는 산들을 보았다. 그 거대한 산들은 우리 주위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을 거느린 채 내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산들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우리가 차바퀴 자국이 난 길을 버리고 산길로 들어섰을 때 어둠은 어느새 엷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불쑥,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시고 물으셨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작은나무야?"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내 구두를 벗겨냈다. 그러면서 나는 말했다. "이 산길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어서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땅바닥은 따뜻한 감촉을 주었고 그 온기는 내 발을 통해 몸 전체를 타고 흘렀다. 할아버지는 기분좋게 웃으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도 땅바닥에 앉으셔서 당신의 구두를 벗으셨고 양말고 벗어서 그 속에 구겨 넣으셨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서서 그 구두 한 켤레를 있는 힘껏 멀리, 우리가 버스를 타고 달려온 도로 쪽을 향해 던지셨다. "이 따위 것들은 너희들이나 가져라!"라고 소리치시며. 나도 내 구두를 그쪽으로 던지면서 할아버지와 똑같이 외쳤다. 할아버지와 나는 웃기 시작했다. 한번 웃음이 터져나오자 웃음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나는 허리를 잡고 주저앉았고 할아버지는 거의 길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르다시피하셨다. 할아버지의 뺨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우리가 왜 웃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 어느때보다도 모든 게 다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할아버지께,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면 위스키를 먹고 취해서 저러는가 보다고 말할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아마 그럴 거라고 말씀하셨다^5,5,5^. 하지만 어느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진짜 "취한"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산길을 오르자 동쪽 산능선 위에서는 아침의 첫 신호라 할 수 있는 엷은 핑크 빛이 나타났다. 산속은 훈훈했다. 우리 머리 위를 덮은 무성한 소나무 가지들이 우리 머리를 쓸기도 하고 얼굴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이게 진짜 (작은나무)인가 알아보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실개천이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리로 달려내려갔다. 나는 물 속에 두 발을 담그고 서서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 동안 할아버지는 잠자코 기다려 주셨다. 실개천은 내 발목을 가볍게 때리면서, 그리고 물 위에 비치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흘러내려갔으며 그의 노래는 점점 더 커져갔다. 우리가 통나무 다리가 보이는 데까지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훤해졌으며 바람이 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람이 신음하거나 탄식하는게 아니라 소나무 숲속에서 노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산속의 모든 식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드가 크게 짖어댔다. 할아버지는, "닥쳐, 모드!"하고 소리치셨다. 개들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 우리한테로 달려왔다. 헌데 개들이 일제히 나한테로 돌진해 오는 바람에 나는 그들에게 부딪쳐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개들은 내 온 얼굴을 핥아댔으며 내가 일어서려 할 때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내 등 위로 뛰어올라 나는 번번이 다시 엎어지곤 했다. 작은 빨강이는 네 다리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허공에서 몸을 뒤흔드는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모드도 같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으며 리핏도 그걸 흉내내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발을 삐끗하여 실개천 속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소리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개들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면서 통나무 다리 있는 데까지 왔다. 나는 현관을 바라봤는데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불길한 생각이 깃들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낮았다. 혹시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나 아닐가. 그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날이 싸늘한데 할머니는 헐렁한 사슴가죽 옷 한 장만 걸치고 계셨다. 아침 햇살에 할머니의 머리가 하얗게 빛났다. 할머니는 산허리에 솟은 하얀 참나무의 헐벗은 나뭇가지 아래 서 계셨다. 할머니는 마치 거기 숨어서 누가 오나 살펴보고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우리를 주시하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하고 있는 힘껏 소리질렀으며 그 반동으로 통나무 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물 속에 거꾸로 떨어졌다. 아침 공기의 싸늘함에 비하면 물 속은 오히려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두 다리를 벌린 채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시며 소리치셨다. "우워어어어어어어!" 그리고는 그대로 물 속으로 낙하하셨다. 할머니는 번개같이 산에서 달려 내려오셨다. 단숨에 실개천으로 달려오신 할머니는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곧바로 다이빙하셨다. 우리는 물 속에서 뒹굴고 첨벙거리고 소리지르고, 그리고 울었다. 할아버지는 실개천 바닥에 주저앉으신 채 마구 허공에다 물을 뿌리셨다. 개들은 통나무 다리 위에 서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멍청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할아버지는 저 녀석들은 우리가 좀 돌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개들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소나무 맨 꼭대기 위에 올라앉은 채 까악까악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급강하하여 바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 골짜기 위쪽으로 날아갔다. 할머니는 그 까마귀가,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모든 산식구들에게 알리러 가는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 노란 외투를 말리기 위해 벽난로 곁에다 걸어 놓으셨다. 할아버지가 고아원으로 오셨을 때 마침 나는 그걸 입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내 사슴가죽 셔츠와 바지를 입었고^5,5,5^ 사슴가죽 장화를 신었다. 나는 곧바로 밖으로 튀어나가 골짜기 길을 달려 올라갔다. 개들이 나를 따라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뒷현관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맨발이셨고 한 팔로 할머니의 어깨를 끌어안고 계셨다. 나는 달렸다. 내가 헛간 곁을 지나가자 늙은 샘은 히히힝 하고 울어대며 마구 발을 굴렀다. 나는 (좁은 길)을 지나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까지 이르는 동안 줄곧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바람은 내 귓전에서 노래불렀고 다람쥐와 너구리와 새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다 내가 지나가자 환성을 질러댔다. 아주 맑은 겨울 아침이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그 골짜기 길을 걸어 내려오다 내 비밀 장소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곳의 풍경은 할머니가 보내주신 영상과 똑같았다. 벌거벗은 나무줄기 밑의 지면에는 적갈색 이파리들이 수북하게 쌓였고 붉은 거먕 옻나무들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그곳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푹신한 낙엽 위에 드러누워 한가롭게 졸고 있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나무가 소런거렸고 바람은 속삭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작은나무가 돌아왔다^5,5,5^ 작은나무가 돌아왔다! 우리 노래를 들어 봐! 작은나무가 우리와 함께 있어! 작은나무가 돌아왔어!"그들의 낮은 흥얼거림와 청아한 노래에 실개천의 흥겨운 노랫가락도 끼어들었다. 개들이 연신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던 짓을 멈추고 귀를 바짝 세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개들도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개들은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와 얌전히 앉은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 짧은 겨울 한낮을 나는 고스란히 내 비밀 장소에 보냈다. 내 영혼은 이제 고통받지 않았다. 나는 내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바람과 나무와 실개천과 새들의 영적인 노래에 의해 새롭게 정화되었다. 그들은 육신의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는 것처럼 육신의 마음 따위는 돌아보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게 지옥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도 않았고, 내가 어떤 출신인가 묻지도 않았으며, 악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러한 말 뜻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이윽고 나 역시도 그러한 말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태양이 서쪽의 산등성이로 넘어가면서 (하늘에 걸린 골짜기)에 마지막 빛을 뿌릴 때쯤해서 나는 개들과 함께 그 골짜기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골짜기가 어슴푸레한 빛에 감싸일 무렵 나는 우리집 뒷현관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기 나와 앉아서 내가 오나 보시려고 골짜기 쪽만 열심히 바라보고 계셨다. 내가 뒷현관으로 가자 두 분은 허리를 굽히시고 한번씩 나를 껴안아 주셨다. 우리에게 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걸. 그날 밤 내가 셔츠를 벗었을 때 할머니는 내 등에서 상처자국을 발견하시고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 얘기를 해드렸다. 하지만 나는 별로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보안관 대장한테 찾아가서 이 얘기를 하고 이후 다시는 누가 날 데릴러 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마음을 정하셨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난 아마도 그들은 날 데릴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윌로우 존 할아버지한테는 매맞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우리가 벽난로 가에 앉았을 때 할아버지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 할아버지가 늑대별을 지켜보시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얘기를. 두 분이 나한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에 울적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하루는 저녁 무렵이 되었는데 느닷없이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우리집 문 앞에 서 계셨다고 한다. 그분은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우리집 오두막으로 걸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시종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벽난로 불빛을 받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묵묵히 저녁 진지를 드셨다. 그분들은 등잔도 켜지 않고 앉아 계셨으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모자도 벗지 않으셨다. 그날 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내 침대에 누워 주무셨으며 할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서 들여다보니 그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오두막을 떠나셨던 것이다. 그 주의 일요일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회에 가셨지만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항상 만나곤 했던 커다란 느릅나무 가지에서 소식을 알리는 띠 하나를 발견하셨다. 그 띠는 그분이 무사하시며 곧 돌아오실 거라는 것을 뜻했다. 그 다음 일요일에도 그 나뭇가지에는 먼젓번과 똑같은 띠가 걸려 있었다. 세번째 일요일이 되어서야 그분은 그 나무 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은 당신이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도통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할머니 할아버지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헌데 어느 날 보안관 대장이 할아버지께 고아원에서 할아버지를 뵙자고 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고아원을 찾아가셨다. 고아원 원장인 목사는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보였으며 나를 내보내 준다는 포기각서에 서명을 하겠다고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틀 동안 어떤 야만인이 한시도 쉬지 않고 자기 뒤를 미행하더니 어느 날에는 마침내 자기 사무실에까지 침입해 들어왔으며, 들어와서는 작은나무를 산악지대에 있는 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단 한마디만 던지고 훌쩍 나가 버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목사는 그런 야만스럽고 미개한 이교도들하고 공연히 분쟁을 일으키기 싫어 그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고아원의 참나무 밑에 서 있다가 고아원 옆길로 걸어가던 사람을 할아버지라고 착각하고 뒤쫓아 갔던 그 사람이 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라는 걸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고아원 사무실에서 나와서 나를 만났을 때 이미 원장이 나를 넘겨 주기로 결정했다는 걸 알고 계셨다. 헌데 당신은 내가 아이들하고 어울려 지내는 걸 더 좋아하는지^5,5,5^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5,5,5^ 그 결정권을 나한테 맡기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고아원에 가자마자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윌번에 관한 얘기를 해드렸다. 내가 떠나올 때 사자 그림이 그려진 마분지 상자를 그 참나무 밑에다 놓고 왔는데 아마 윌번이 그걸 발견했을 거라는 얘기도. 할머니는 윌번에게 사슴가죽 셔츠를 한 벌 보내겠다고 하셨으며 며칠 후 그 말씀대로 하셨다. 할아버지가 윌번에게 긴 칼 한 자루를 보내겠다고 하신 데 대해 나는 윌번이 그걸 받으면 아마 그걸로 목사를 찔러 죽일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긴 칼을 보내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후로 다시는 윌번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주 일요일에 우리가 교회로 갔을 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도 앞서서 교회 앞의 빈 터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낡고 검은 모자를 반듯이 눌러 쓰신 채 숲속에 홀로 서 계셨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려가 그분의 다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고마워요, 윌로우 존 할아버지."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두 손을 뻗어 내 어깨만 어루만져 주셨다. 내가 고개 들어보니 그분의 두 눈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ff @[ 죽음의 노래 우리는 순조롭게 겨울을 났다. 할아버지와 나는 겨울 내내 나무를 해대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일했으며 할아버지는 당신이 나한테 뒤처지자 내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겨울을 벌벌 떨면서 보낼 뻔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해 겨울은 꽤 추운 겨울이었다. 날이 너무 추워 위스키를 증류할 때 증류기에서 밖으로 연결된 관들이 얼지 않도록 늘 불을 피워 주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할아버지는 가끔가다 한번씩 추운 겨울이 닥쳐올 필요도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자연이 자신의 세계를 정리하고 보다 더 진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얼음은 나무의 약한 가지들을 부러뜨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강한 가지들만 남게ㅡ된다. 그리고 그것은 연약한 상수리나무나 밤나무, 호두나무들을 정리해 버리고 튼튼한 나무들만을 남겨둠으로써 보다 크고 풍성한 열매들을 맺게끔 도와준다. 그해 겨울은 어려운 계절이었다. 젠킨스 씨는 다른 사업은 하나같이 경기가 좋질 않은데 유독 위스키 사업만은 번창 일로에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잊기 위해 위스키만 마셔대서 그런 모양이라고 하셨다. 이듬해 여름에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 아빠의 결혼 지팡이를 내게 주셨다. 엄마 아빠가 함께 사신 기간이 짧아 거기에 새겨진 눈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그걸 내 방 침대 머리판 있는 데다 반듯하게 눕혀뒀다. 여름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인 어느 일요일,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교회 옆 숲에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그분이 서 계시던 느릅나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 숲을 뚫고 달려가며 "윌로우 존 할아버지!"하고 소리쳐 불러봤다. 그러나 그분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그길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일로 몹시 걱정을 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그 느릅나무 주변을 열심히 찾아봤었지만 그분은 아무런 표적도 남겨 놓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을 찾아뵙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월요일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길을 떠났다. 아침의 첫 햇살이 비칠 무렵 우리는 네거리 가게와 교회 곁을 지나쳤다. 이윽고 우리는 산으로 난 곧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그렇게 높은 산을 오르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걸음을 늦춰 주셔서 나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 기리에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얼핏 보면 길처럼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산능선을 타고 계속 올라가다가 다시 또 다른 산능선을 타고 걸었다. 간신히 한 봉우리를 타넘었다 싶으면 다시 높은 봉우리가 눈앞을 가로막곤 했다. 갈수록 나무들의 키가 낮아졌고 바람도 더욱 거세게 불어왔다. 마침내 그 산 꼭대기에 이르자 그 산 한 옆에 움푹 패인 곳이 보였다. 골짜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얕은 우묵한 지형이었다. 그 낮은 지형 양옆으로는 숲이 빽빽이 들어찼으며 한가운데는 솔밭이 부드러운 카페트처럼 깔려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오두막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 오두막은 우리집처럼 굵은 통나무가 아니라 훨씬 더 가는 나무로 지어졌으며 그 우묵한 골짜기 한쪽 벽과 그 부근에 울창하게 자란 숲을 바람막이 삼아 기댄 형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도 데리고 왔다. 헌데 오두막을 발견하자 그 개들은 코를 치켜들고 처량한 목소리로 캥캥거렸다. 그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할아버지가 먼저 오두막으로 다가가셨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할아버지는 허리를 잔뜩 굽히셔야 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 오두막에는 방이 딱 한 개뿐이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스프링바우(야생풀의 일종: 옮긴이) 위에 사슴가죽을 덮어서 만든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계셨다. 그분의 누르스름한 몸체는 늙은 나무줄기처럼 바짝 시들었으며 한 손은 침대 밑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리치셨다. "윌로우 존!"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눈을 뜨셨다. 그 눈빛은 가물가물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싱긋이 웃으시며 입을 여셨다. "자네가 올 줄 알았지. 그래서 기다렸어." 할아버지는 쇠냄비를 찾아내셔서 나더러 물을 떠오라고 하셨다. 나는 오두막 뒤꼍에서 바위 틈으로 쫄쫄쫄 새나오는 물줄기를 찾아냈다. 문 바로 곁에 아궁이가 있어 할아버지는 거기다 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냄비를 걸어 놓으셨다. 할아버지는 냄비 속의 물에다 사슴고기를 잘라넣으셨다. 어느 정도 고기국물이 우러나자 할아버지는 한 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머리를 받치시고는 수저로 그 국물을 떠먹이셨다. 나는 방 한구석에서 담요 몇 장을 찾아냈으며 할아버지와 둘이서 그것들을 그분의 몸에 덮어 드렸다. 그분은 통 눈을 뜨지 않으셨다.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궁이에 계속 불을 지폈다. 산곡대기에서는 바람이 맹렬하게 포효했으며 그 한 자락이 우리 잇는 오두막에까지 스며들어와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아궁이 불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계셨다. 아궁이 속에서 일렁이는 불길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반사되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다^5,5,5^. 두 개의 거대한 광대뼈의 그늘 속에 가린 울퉁불퉁한 바위 덩어리와 무수히 갈라진 틈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과 같은 모습으로. 그 그늘은 더욱 짙어지면서 마침내 거기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불을 바라보는 두 눈밖에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시꺼멓게 타들어가면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등걸불을 반사하는 두 눈. 나는 그 불 곁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아궁이에서 일렁이는 불길이 실내를 떠도는 안개를 몰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어젯밤 자세 그대로 앉아 계셨다. 마치 한밤 내 꼼짝도 하지 않으신 분처럼.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밤새도록 계속 불을 때면서 지새우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뒤척이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분 곁으로 갔다. 그분은 눈을 뜨셨다. 그분은 한 손을 들어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나를 밖으로 데려다 주게." "밖은 추운데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알고 있네." 그분은 나직하게 속삭이셨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몸이 축축 늘어지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그분의 몸을 들어올리시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으셨다. 나도 곁에서 도왔다. 할아버지는 그분을 안고 문 밖으로 나가셨으며 나는 침대 자리에 쌓인 스프링바우를 한아름 안고 따라나갔다. 할아버지는 그 오두막 뒤편으로 솟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셨다. 우리는 스프링바우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눕혔다. 우리는 그분의 몸을 담요로 덮어 드렸고 그분의 두 발에는 가죽 신을 신겨 드렸다. 할아버지는 사슴가죽을 차곡차곡 접어 그분의 머리 밑에 괴어 드렸다. 우리 뒤편에는 바야흐로 태양이 찬란하게 솟구쳐오르면서 안개를 쫓아 골짜기 구석구석의 그늘을 훑고 있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시선은 서쪽 멀리, 무수한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를 넘고넘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디언의 나라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두막으로 가셔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긴 칼을 들고 되돌아오셨다. 할아버지는 그걸 그분 손에 쥐어 드렸다. 그분은 그 칼을 들어올려 구부러지고 뒤틀린 늙은 전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셨다. "내가 가거들랑 내 몸을 저 나무 곁에다 묻어 주게. 저 나무는 무수히 새끼를 쳐서 그 숲으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보호해 줬으니까. 그게 좋을 게야. 내 한 몸이면 저 나무의 이 년치 양식은 될걸세."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비(할머니의 이름: 옮긴이)에게 얘기해 주게. 이다음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분은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분 곁에 앉으셔서 그분의 손을 잡으셨다. 나는 할아버지 반대편에 앉아 그분의 다른 손을 잡았다. "먼저 가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우리도 곧 뒤따라 갈겁니다." 나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 당신이 독감에 걸리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독감은 누구나 흔히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이렇게 잘 간호하기만 하면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자리에서 잇어나실 거로 확신하며 그 다음엔 이 산을 내려가 우리와 함께 지내실 수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거며 그러면 만사가 다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분은 나를 향해 싱긋이 웃으시며 내 손을 꼭 쥐어 주셨다. "너는 착한 마음을 가졌구나 작은나무야. 하지만 나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만 떠나고 싶다.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 나는 울었다. 나는, 오래 머무실 생각이 없으면 내년 봄, 날이 좀더 따뜻해진 다음에나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 올 겨울에는 히코리 열매가 무진장 열려서 조금 있으면 사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걸 보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분은 싱긋이 웃으셨다. 그러나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산너머 멀리 서쪽을 응시하셨다. 마치 산상에 홀로 계시는 분처럼. 그분은 영혼에게 당신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임종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죽음의 노래였다. 그것은 낮게 깔리듯이 시작되다가 점점 높아져 갔으며 마지막에는 설날처럼 가늘게 허공을 휘어돌았다. 그게 바람 소리인지 그분의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목젖의 움직임이 약해지면서 그분의 눈빛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할아버니와 나는 그분의 영혼이 그분의 두 눈 저 깊숙한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걸 지켜봤다. 우리는 그분의 영혼이 그분이 육신을 떠나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이윽고 그분은 숨을 거두셨다. 우리 사이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그 늙은 전나무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그게 윌로우 존 할아버지라고 하시며 그분은 저토록 강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 바람이 산등성이의 숲을 휩쓸고 지나가 산허리를 타고 파도처럼 밀려 내려가며 까마귀 한 떼를 허공으로 날리는 광경을 지켜봤다. 까마귀들은 까옥까옥 울면서 윌로우 존 할아버지와 더불어 산 밑으로 날아 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바람이 눈 아래 보이는 산등성이와 봉우리들을 무수히 타고 넘으며 이윽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거기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되돌아오실 것이며 우리는 바람 속에서 그분 존재를 느끼게 될 것이며 나무가지의 속삭임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각자 자신의 긴 칼을 꺼내 그 늙은 전나무의 뿌리를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과 가장 가까운 땅에 구덩이를 팠다. 우리는 깊이깊이 팠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몸에 다시 담요 한 장을 더 두르신 뒤 나와 함께 그분의 몸을 구덩이 속에 눕혔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보자도 구덩이 속에 넣으셨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쥐고 계시던 칼을 무덤 속에서도 그대로 굳게 쥐고 계셨다. 우리는 그분의 육신 위에 돌들을 쌓아 올렸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당신의 육신을 그 전나무의 먹이로 주기로 결정하셨으니 너구리들이 시신을 훔쳐가지 못하게 돌을 아주 높이, 그리고 단단히 쌓아 올려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야 산꼭대기에서 오두막으로 내려왔으며 그기서 다시 올 때와 똑같은 길로 해서 산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드리기 위해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사슴가죽 셔츠 하나를 들고 오셨다. 우리가 집 앞의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나는 문상비둘기가 멀리서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나는 그 새가 윌로우 존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는 등잔불을 켜셨다.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셔츠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시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사태를 짐작하시는 데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후 우리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나오시지 않는데 가든 안 가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후 우리는 이 년 동안 함께 지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아마도 우리 모두는 때가 임박해 오고 있음을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걸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셨다. 우리 셋은 똘똘 뭉쳐 살았다. 우리는 가을이면 가장 빨갛게 보이는 나뭇잎들을, 그리고 봄이면 가장 파랑 바이올렛을 가리킴으로써 다른 두 사람들도 그걸 꼭 보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느낌을 함께 맛보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할아버지가 걸으실 때 그분의 가죽신은 가끔씩 땅에 질질 끌리곤 했다. 나는 내 마대자루 속에 더 많은 위스키 항아리를 넣어 운반했으며 힘겨운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도끼를 아래로 내리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셔서 나는 통나무를 빠르고 쉽게 팰 수 있었다. 나는 다 익은 옥수수 이삭을 옥수수 대에서 딸 때도 할아버지가 따기 가장 편한 곳에 달려 있는 옥수수 자루들을 남기면서 따는데도 할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얘기는 일체 입에 담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늙어서 노쇠해진 링거에게 자신이 아직도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집 노새 샘은 그 마지막 가을에 죽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또 다른 노새를 알아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봄까지는 아직 멀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우리 세 사람은 전보다 훨씬 더 빈번히 산등성이 길을 올라가 보곤 했다. 두 분이 올라가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두 분은 그 산꼭대기에 올라 산능선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미끄러져 넘어지신 건 바로 그 산등성이 길을 타고 오를 때여싿. 한번 넘어지신 할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질 못하셨다. 할머니와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간신히 산을 내려왔다. 내려올 때 할아버지는 "곧 좋아질 거야"라는 말씀을 거듭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좋아지지 않으셨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침대에 눕혔다. 때마침 파인 빌리가 우리집에 들렀다. 그는 우리와 머물면서 할아버지의 기운을 돋궈 드렸다. 할아버지가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싶어하셔서 그는 연주를 했다. 머리칼이 귀를 덮을 정도로 더부룩한 모습 (그 머리는 그가 손수 깍은 것이다) 의 그는 희미한 등잔불빛 속에서 자신의 긴 목을 바이올린 쪽으로 기울인 채 연주를 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 바이올린으로 떨어지고 그것은 다시 그의 작업복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할아버지가 말슴하셨다. "울음을 그치게, 파인 빌리. 음악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난 자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싶단 말일세." 파인 빌리는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우는 게 아닙니다. 가, 감기에 걸려서." 그러더니 그는 바이올린을 떨어뜨리고 할아버지 침대 발치께에 주저앉아 자신의 머리를 침대보에다 박았다.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파인 빌리는 무슨 일에서고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들고 힘없이 소리치셨다. "이런 바보 멍청이같으니라구. 이 사람, 내 침대 시트를 레드 이글 코담배로 뒤발을 해놓고 있구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 역시도 울었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울었다. 할아버지의 육신의 마음은 어지럽게 뒤척이다가 잠들었으며 할아버지의 영적인 마음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할아버지의 영적인 마음은 오랫동안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당신의 두 팔로 할아버지의 머리를 껴안고서 할아버지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이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당신의 육신의 마음으로 되돌아오셨다. 할아버지가 당신의 모자를 갖다 달라고 하셔서 나는 그걸 갖다드렸다. 할아버지는 그 모자를 쓰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렸다. 할아버지는 싱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이제까지 난 잘 지내왔다. 이제 난 더 좋은 세상으로 간다. 거기서 만나자꾸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두 눈에서는 정기가 사라졌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았다. 그러나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의 침대 위에 누우셔서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으셨다. 파인 빌리는 침대 발치께에서 마구 몸부림치며 울었다. 나는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개들도 캥캥거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개들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골짜기 길을 따라 내려가다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 그때 나는 세상에 종말이 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졌다가는 일어나서 걷고 그러다 다시 넘어지곤 했다. 그러면서 결국 나는 네거리 가게 있는 데까지 왔다. 나는 젠킨스씨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다. 젠킨스씨는 너무 연로하셔서 먼 길을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장성한 아들 한 사람을 보내셨다. 그와 나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는 마치 어린애를 데리고 가듯이 내 손을 잡고 갔다. 나는 길을 볼 수도 없었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젠킨스 씨의 아들과 파인 빌리는 관을 짰다. 나도 거들려고 나섰다. 할아버지가, 남들이 너를 도울 때는 너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파인 빌리도 역시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그는 망치로 자기 엄지손가락을 내리쳤다. 그들은 관을 들고 산등성이 길을 올라갔다. 할머니가 앞에 서시고 그들은 관을 들고 따라갔다. 나와 개들은 맨 뒤에서 쫓아갔다. 파인 빌리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해서 눈물을 억제하려고 애썼지만 그가 우는 바람에 덩달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개들도 연신 킹킹대며 울었다.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는 어디로 모시려는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 할아버지가 아침이 탄생하는 걸 지켜보시던 곳, 가고 또 가도 싫증을 내시지 않던 곳, 아침의 첫 태양이 솟아오를 때마다 해뜨는 걸 생전 처음 보신 분처럼 번번이 "아침이 태어나고 있다!"는 외침을 터트리시던 곳. 산꼭대기 능선길. 아마도 아침이 태어나는 매순간은 할아버지께는 항시 생애 최초의 순간들이었으리라. 그 순간은 매번 모양을 달리해서 나타났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아침이 한번도 똑같은 모양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셨을 것이며, 또 당신의 두 눈으로 그걸 똑똑히 목격하셨으리라. 그곳은 할아버지와 내가 처음으로 영적인 교감을 느꼈던 곳이었고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신다는 걸 알게 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할아버지의 관을 땅 속에 안치했을 때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계셨다. 할머니는 저 먼 곳의 산들을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그곳 산꼭대기에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으며 그 때문에 두 갈래로 땋아내린 할머니의 댕기머리는 사정없이 바람에 날렸다. 파인 빌리와 젠킨스 씨의 아들은 서둘러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나와 개들은 한동안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능선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산등성이 길 중간쯤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앉아서 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어둠이 잦아내리기 시작할 무렵 내려오셨다. 나는 내 일에 더해 할아버지가 하시던 일까지 맡아서 해보려고 애쎳다. 나는 혼자서 위스키 증류하는 일을 했는데 내가 만든 제품의 질이 그다지 신통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와인 씨가 주신 셈본책들을 모두 꺼내 와서 내게 주시고는 틈나는 대로 그것들을 부지런히 익히게 하셨다. 나는 혼자 읍내로 나가서 책들을 빌려 왔다. 이제 나는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벽난로 가에 앉아 그 책들을 소리내어 읽으면 할머니는 거기에 귀기울이시면서 물끄러미 타오르는 불길을 응시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번번이 내가 잘 읽는다고 칭찬해 주시곤 했다. 리핏이 죽었다. 그리고 그 겨울이 끝나갈 무렵엔 모드도 죽었다. 그해, 봄이 오기 직전의 어느 날 나는 산에 올랐다가 (좁은 길)로 해서 골짜기 길을 타고 내려왔다. 나는 할머니가 뒷현관에 나와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내가 골짜기를 내려오는데도 나를 쳐다보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내 머리 위 저 높은 산능선 길쪽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주황, 초록, 자주, 황금빛이 골고루 뒤섞인 드레스를 입고 계셨다. 할머니는 종이에다 또박또박 글을 써서 그걸 당신의 가슴에다 핀으로 찔러 놓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작은나무야, 나는 가야만 한다. 네가 나무들과 교감할 때처럼 주의 깊게 귀기울이면 우리의 영혼과도 만날 수 있게 될 게다.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으마.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게 될 게다. 평화롭고 행복한 곳에서. 할머니가. 나는 할머니의 자그마한 몸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침대 위에다 눕혀놨다. 그리고는 날이 저물도록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퍼렁이 작은 빨강이와도 함께. 그날 저녁 나는 읍내로 가서 파인 빌리를 찾아냈다. 그는 그날 밤을 할머니하고 나와 더불어 보냈다. 그는 울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는 바람을^5,5,5^ 늑대별을^5,5,5^ 산능선을^5,5,5^ 아침의 탄생을^5,5,5^ 그리고 죽음을 연주했다. 파인 빌리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귀기울이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관을 짜서 할머니의 시신을 그 안에 안치한 뒤 둘이서 그걸 들고 산등성이 길을 올라갔다. 우리는 할머니의 시신을 할아버지 무덤 곁에서 묻었다. 나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두 분의 결혼 지팡이를 파인 빌리와 내가 두 분의 무덤 앞에 각기 하나씩 세워 놓은 돌비석 사이에다 잘 꽂아 놓았다. 나는 두 분이 나를 위해 파놓으신 눈금들을 들여다보았다. 지팡이 맨 끝부분에 난 그 눈금들은 두 분이 느꼈던 깊은 행복감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나는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만을 데리고 묵묵히 그 겨울을 견뎌냈다. 이윽고 봄이 왔을 때 나는 (하늘에 걸린 골짜기)로 올라가 증류기의 구리솥과 구리관을 그곳의 땅 속에 파묻었다. 나는 데대로 증류 기술을 배우지 못한 탓으로 그걸 쓸 만한 적격자가 되지 못했으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우리 이외의 딴 사람들이 그걸 이용해서 엉터리 제품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으시리라는 걸 알고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주신 돈을 갖고 산맥을 넘고넘어 서쪽에 있는 인디언의 나라로 가기로 결심했다.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도 함께 데리고. 우리는 어느날 아침 우리 오두막 문을 잠가둔 채 길을 떠났다. 나는 서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농장들을 찾아들어가 일거리가 있나 묻곤 했다. 그들이 퍼렁이와 작은 빨강이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나는 그 농장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사람은 늘 개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옳은 말씀이시다. 작은 빨강이는 아칸소 주의 오재르크스에 있는 어느 계곡의 얼음구덩이 속에 떨어져 죽었다. 그 개는 사냥개가 마땅히 죽어야 할 장소, 곧 산에서 죽었다. 퍼렁이와 나는 다시 인디언의 나라로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인디언의 나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면서 평원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목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에 퍼렁이는 내가 탄 말 곁을 따라오다가 푹 주저앉더니 일어서질 못했다. 그 개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퍼렁이를 들어올려 내 안장 위에 얹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시메런의 붉게 타오르는 일몰을 등에 지고 돌아섰다. 우리는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일하던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동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탄 말과 안장은 내가 이미 십고 달리를 주고 산 것이었으니까. 퍼렁이와 나는 산을 찾아 헤맸다. 동트기 전에 우리는 산을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웠다. 그러나 퍼렁이는 그곳을 보자 반갑다는 듯이 낑낑댔다. 해가 떠오를 무렵 나는 그 산곡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퍼렁이의 무덤을 팠으며 퍼렁이는 내 곁에 앉아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퍼렁이는 고개를 쳐들 힘도 없었지만 내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또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내게 알려주었다. 한쪽 귀를 바짝 치켜들고 두 눈으로 줄곧 나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땅바닥에 앉아 퍼렁이의 머리를 잡아 주었다. 그는 내 손으 핥았다. 이윽고 그는 별다른 고통 없이 죽었다. 내 팔에 자신의 머리를 떨군 채. 나는 그를 깊이 파묻은 뒤 다른 짐승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게 그 위에 돌을 잔뜩 쌓아올렸다. 나는 그가 자신이 지닌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서 이미 우리가 살던 테네시의 산악지대로 가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쉽사리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갈 수 있으리라. @ff @[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며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는 포리스트 카터Forrest Carter가 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다시 펴내기로 했다. 할머니가 어린시절의 작은나무에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충고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출판부는 한 권의 소중한 책을 함께 나누려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대가 나올 때마다 어느 시기에 가서는 반드시 찾아내어 읽고 또 읽어야 할 보기 드문 책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결코 시들지 않을 훌륭한 책이며, 놀랍도록 재미있고 가슴속 깊이 파고들 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지은 포리스트 카터는 인기를 모았던 "무법자 조시 웨일즈"를 비롯하여 귀중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 가운데서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위대한 책이다. 당초에 이 책의 제목은 "나와 할아버지"였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카터가 이스턴 체로키 힐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의 추억을 자서전처럼 엮어 놓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30 년대, 대공황기의 생활을 감동적으로 그려 놓은 작품 이상의 무엇, 그보다 훨씬 큰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보편적인 의미를 담은 인간 기록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 접근하는 책이다. 어느 땐가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던가를 기억하고 있다. 어느 서점의 "자서전부"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텔리비전의 신간소개에서 "이주일의 책"으로 비평^5,23^소개되는 장면을 보았음직도 하다. 또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가다 어느 기념품 가게의 선물 탁자 위에서 찾아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의 독자들은 그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번만이라도 읽은 사람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마음속에서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이 세상을 두번 다시 똑같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 1977 년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나왔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비평의 글과 말을 남겼고,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에서 지방의 산악 주간지에 이르는 실로 다양한 평론가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은 어느 인디언 소년의 자서전적인 추억을 담고 있으며, 기계적이고 물질주의적인 현대 세계에 전혀 새로운 눈길로 다가가싿. 그러므로 젊은이들과 "자라남", 인디언과 이 땅, 그리고 사람과 땅과의 관계에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읽었고, 이들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독자들이었다. 오래지 않아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은 다른 집단에서도 열렬한 독자를 찾을 수 있었다. 10 대들이 이 책에 매혹되었다. 여느 때에는 책을 읽지 않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의 빼어난 글과 거기에 배어 있는 가치관에 감동했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이 책을 찾아나섰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이 책이 서가에 돌아올 짬이 없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생활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이 책이 신비롭고도 낭만적인 것에 못지않게 내용이 정확하다는 데 감탄했다. 국민학교 교사들은 얼핏 보기에 세상에 찌든 아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에 빠져드는 것을 반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 대한 사랑은 이 독자에서 저 독자로 옮아갔고, 그에 따라 이 책을 빌려보기란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에서 이번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을 다시 펴냄으로써 이 책은 다시 목마른 독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가슴에 젖어들고 우리 영혼을 적시는 지극히 감동적이고 심오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과거의 독자와 새로운 독자들이 다시 한번 이 지혜의 잔치에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레나드 스트리클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