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2권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펴낸이: 김훈 펴낸곳: 고려원미디어 @[ 기독교인과의 거래 이튿날 아침 모든 개들은 아직도 자랑스런 마음에 겅중겅중 뛰어다니거나 다리에 힘을 주어 걷곤 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주인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5,5,5^ 하지만 나는 그걸 갖고 뻐기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위스키 만드는 직업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늙은 링거의 행방이 묘연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연신 휘파람을 불어도 보고 소리쳐 불러 보기도 했지만 그 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두막 주변의 공터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개들을 내보내 찾아보게 하기도 했다. 우리는 개들과 더불어 골짜기 길과 "좁은 길"을 올라가며 샅샅이 훑어 보았지만 그의 종적은 여전히 묘연했다. 할아버지가 전날 밤에 내가 산에서 걸어내려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 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그 길을 다시 밟아 봤다. 우선 관목들이 마구 뒤엉킨 숲을 지나가면서 찾아보고, 이어서 산꼭대기로 올라가 보고. 그러다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가 링거를 찾아냈다. 링거는 어떤 나무와 부딪치고 그 곁에 쓰러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그 나무와 부딪치기 이전에 벌써 여러 차례 다른 나무들과 부딪쳤거나 아니면 어제 그 사내들 중 하나에게 머리를 곤봉으로 얻어맞은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머리 전체가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모로 누워 있었으며 그의 혀는 자신의 이빨 사이에 박혀 있었다. 링거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링거를 안아올린 뒤 천천히 그 산을 내려가셨고 우리는 뒤따랐다. 실개울 가에 이르러 링거를 내려놓은 뒤 할아버지와 나는 그의 얼굴에서 피를 씻어 주고 이빨 사이에 물린 혀를 빼내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덮인 회색 털을 보고는 링거가 아주 늙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찾아 산을 헤매는 일이 그에게는 아주 힘에 겨운 일이었으리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링거와 더불어 실개천 가에 앉았다. 이윽고 링거는 눈을 떴다. 그 눈빛은 초점이 없고 흐리멍덩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허리를 낮춰 링거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산에서 나를 찾아준 일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하며 그 때문에 이렇게 다치게 되어 아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링거는 그런 소리말라, 다시 또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자기는 지금이라도 다시 나설 용의가 있다는 듯이 내 얼굴을 핥아 주었다. 할아버지는 나로 하여금 당신이 링거를 안고 산길을 내려가는 일을 돕게 하셨다. 할아버지 품에 안긴 링거의 뒷다리를 내가 받치고 가게하는 식으로. 우리가 오두막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는 링거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링거는 죽었다." 그래 자세히 들여다보니 링거는 정말 죽어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내려오는 도중에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링거가 우리가 와서 자기를 데려간다는 걸,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았으므로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죽었으리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내 마음에 약간의 위안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슬픈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산악지방에 사는 모든 개들이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죽었다고 하셨다. 곧 자기네 식구를 위해서 숲속에서 죽는 것. 할아버지는 삽을 드셨다. 우리는 링거를 안고 골짜기 길로 올라가 그 개가 그렇게 자랑스런 마음으로 지켰던 옥수수밭 위의 산자락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할머니뿐 아니라 우리집의 모든 개들이 다 따라왔다. 그 개들은 모두들 다리 사이에 꼬리를 사린 채 처량하게 캥캥거렸다. 나도 그 개들과 꼭 같은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떡갈나무 발치께에다 링거의 무덤을 팠다. 그곳은 아주 조그마한 공터로 지난 가을에 떨어진 붉은 나무의 이파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봄철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한 그루가 그 바로 곁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무덤 바닥에 하얀 무명 자루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링거를 눕힌 다음 그걸로 링거의 몸을 말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링거의 몸 위에 커다란 널판을 덮어 너구리가 링거의 시체를 파내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무덤을 흙으로 덮었다. 주위에 둘러선 개들은 그것이 링거의 무덤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며 늙은 모드는 구슬프게 울었다. 모드와 링거는 함께 옥수수밭을 지켰던 동업자들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고 입을 여셨다. "잘 가거라 링거야." 나도 링거에게 작별의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링거를 떡갈나무 밑에 남겨둔 채 그의 곁을 떠났다. 나는 그 일로 크게 상심했으며 세상이 텅 빈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할아버지는 당신도 나와 똑같은 심경이시기 때문에 내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사랑하던 것을 잃을 때면 늘 이런 기분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으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늘 공허한 느낌 속에서 살게 되므로 그건 더 나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만일 우리가 링거를 충실한 개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뒷맛이 더 고약했을 거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를 먹어도 링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될 것이며 링거에 대한 추억을 즐기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묘한 것은 나이 들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떠올릴 때 나쁜 점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좋은 점만 떠오르곤 하는데 이것은 나쁜 것이 무가치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 주는 좋은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링거를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지름길을 통해 우리 제품들을 젠킨스 씨의 네거리 가게까지 운반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위스키를 꼭 "제품"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나는 그 지름길을 좋아했다. 우리는 골짜기 길을 내려가다가 차가 다니는 길에 이르기 전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름길로 들러섰다. 그 길은 마치 거대한 손가락들을 펼친 것처럼 평원을 향해 뻗은 몇줄기 산등성이들을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 산등성이들 사이로 난 골짜기들은 별로 깊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가로지를 수 있었다. 길이가 수 킬로미터 가량 되는 그 길 양쪽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감나무와 인동덩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가을에 서리가 내려 감들이 빨갛게 익으면 나는 네거리 가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감들을 따서 내 호주머니를 가득 채운 뒤에 허둥지둥 할아버지를 뒤쫓아가곤 했다. 그리고 봄이 되어 나무딸기가 익어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모처럼 걸음을 멈추고 내가 나무딸기를 따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마침 그때도 할아버지는 말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셨고 또 말들이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에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너는 (검붉은) 나무딸기가 (연두색)일 때도 (빨갛다)는 걸(원래 나무딸기의 영어명은 blackberry며 이것은 (검붉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옮긴이) 아니?" 이 말씀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음^5,5,5^ 거기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건, 에^5,5,5^ 색깔로 쉽게 그걸 알아보게 하기 위해 그렇게 된 거다. ^5,5,5^ 그리고 그게 익지 않았을 때의 색깔을 사람들은 (연두색)이라고 부른다. ^5,5,5^ 근데 거기에 그런 이름이 붙어버려 그게 익지 않았을 때도 그건 (빨갛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말을 지어내는 그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은 그따위 식으로 우리 같은 백성들을 정신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어떤 자식들이 남을 헐뜯는 (말들)을 늘어놓을 때는 그 자식들의 말뜻을 새겨들으려고 애쓰지 마라. 몽땅 개소리니까. 그 대신 그 (말투)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그 자식들이 얼마나 비열한 거짓말쟁이인가를 단박에 알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 말들이 넘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하셨다. 이치에 맞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가는 길가에는 또 히코리 나무 열매, 밤, 호도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네거리 가게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것들을 줍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곤 했다. 사실 네거리 가게까지 우리 제품을 운반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세 개의 위스키 항아리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메고 낑낑대며 할아버지를 뒤쫓아가다 보면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가 한참 앞 어딘가에서 짐을 내려놓고 앉아 계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간신히 할아버지 앉아 계시는 데까지 가면 할아버지는 나한테 쉴 시간을 주셨다. 우리는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는 식으로 제품을 운반하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도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런데 마지막 산등성이에 이를 때마다 우리는 항상 숲속에 들어가서 쉬곤 했다. 우리는 네거리 가게 문앞에 피클(서양식의 오이 장아찌: 옮긴이) 통이 나와 있지 않나 살펴보곤 했다. 피클 통이 문앞에 나와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안심하고 그 가게 안에 들어가도 좋았다. 그리고 그게 밖에 나와 있으면 가게 안에 법이 들어왔다는 걸 뜻하므로 거기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이 산악지대 주민들은 이 가게 부근에 올 대마다 모두들 먼저 피클 통이 있나 없나부터 확인하곤 했다. 그들도 역시 그 가게에 넘겨줄 제품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 앞에 피클 통이 나와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항시 거기로 접근하기 전에 먼저 그게 있나 없나부터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위스키 제조업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이 따르는 법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명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든 직업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 그 나름의 복잡한 일들이 따르는 법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말씀을 하시면서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의 입 속만 들여다봐야 하는 치과의사의 경우를 예로 드셨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직업을 가지셨다면 당신은 아마도 머리가 횟 돌아 버리셨을 거다, 위스키 제조업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따르기는 하지만 사나이가 한번 덤벼볼 만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나는 젠킨스 씨를 좋아했다. 그분은 체구가 크고 뚱뚱하며 항시 작업복을 입고 계셨으며 작업복 가슴 위까지 내려오는 하얀 수염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머리는 잔터럭 하나 없는 말끔한 대머리였다. 그건 소나무 옹이처럼 번쩍번쩍 윤이 났다. 그분의 가게에는 없는 게 없었다. 벽에 걸린 큰 선반들 위에는 셔츠, 작업복, 신발 등이 즐비했고 크레커가 담긴 통들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판매대 위에는 커다란 치즈덩이, 그리고 판매대 위에 설치된, 나무로 칸을 치고 유리 뚜껑이 달린 여러 개의 네모난 틀 안에는 사탕이 들어 있었는데 온갖 종류의 사탕이 칸마다 그득그득 들어차 저걸 언제 다 파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는 누가 그걸 사먹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누군가가 사먹으니까 저렇게 진열해 두는 게 아니겠는가 쯤으로 짐작하고 넘어갔다. 우리가 제품을 넘겨줄 때마다 젠킨스 씨는 나더러 가게 안에 설치된 커다란 난로에 때게 자기네 장작더미들이 쌓여 있는 데로 가서 장작 한 짐을 날라다 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늘 말없이 장작을 날라다 드리곤 했다. 처음에 그분은 수고했다고 얼룩덜룩하게 무늬진 커다란 막대사탕 하나를 주셨다. 하지만 나는 나뭇단 한번 날라다 줬다고 그걸 냉큼 받을 수가 없었다. 그건 전혀 힘드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분은 그걸 다시 집어넣고 대신 다른 것을 집어 주시면서 이건 너무 오래된 거라 마침 버리려고 했던 거라고 하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젠킨스 씨가 그걸 버리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며 또 그런 건 손님들도 사가려고 하지 않으니 네가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그걸 받았다. 매달 그곳에 갈 때마다 그분이 오래된 막대사탕 하나씩을 주시는 바람에 나는 내가 그분 가게의 오래된 사탕들을 거의 다 처분해 드린 게 아닌가 추측했다. 젠킨스 씨도 네가 먹어준 덕분에 참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오십 센트를 사기당한 것도 그 네거리 가게에 갔을 때였다. 내가 그 오십 센트를 모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건 매달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가게에 넘겨줄 때마다 할머니가 내 몫이라고 하시면서 단지 안에다 넣어 주셨던 오 센트나 십 센트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건 위스키 제조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내 몫의 돈이었다. 나는 네거리 가게에 갈 때마다 호주머니 속에 그 동전들을 전부 넣어 가지고 갔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걸 쓴 적이 없었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원래의 단지 속에 그걸 넣어두곤 했다. 가게에 갈 때 그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고 가면 그게 내 돈이라는 기분 때문에 여간 기분이 흐뭇하지 않았다. 가게에 갈 때마다 나는 진열장 속에 들어 있는 빨갛소 파란 사탕이 든 큼직한 포장상자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나는 그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는 할머니께 그걸 사다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5,5,5^.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두고두고 그걸 나눠 먹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사기도 전에 내가 가진 돈을 사기당했다. 그날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넘겨준 직후, 그러니까 점심 먹을 때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태양은 막 머리 위에 솟아올라 있었으며 할아버지와 나는 가게에 딸린 곁채 안에서 가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조금 전에 젠킨스 씨네 가게에서 할머니 드릴 설탕 약간과 오렌지 세 개를 사셨다. 할머니는 오렌지를 좋아하셨으며 나 역시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오렌지 세 개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그 중의 하나는 내 몫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나는 열심히 내 막대사탕을 빨고 있었는데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게 있는 쪽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정치가 한 사람이 이곳에 와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정치가가 올 때까지 이곳에 앉아 계시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라면 낯짝도 보기 싫어하셨으니까. 헌데 우리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그 정치가가 도착했다. 그는 큰 차에 탄 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그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 차를 모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어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나왔으며 그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숙녀 한 사람은 그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피우던 담배곽에서 담배 개비들을 뽑아내 밖에다 뿌렸다. 할아버지는 그게 미리 말아져서 나오는 담배라고 하시면서 부자들은 담배 말기도 싫어할 정도로 게으른 작자들이라 늘 저런 담배만 피운다고 하셨다. 그 정치가는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할아버지와 나한테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인디언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디언들은 투표장에 아^36^예 접근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그 정치가한테는 하등 이용가치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타당한 말씀 같았다. 그는 검은색 정장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었으며 밑으로 늘어진 검은 띠를 목에 매고 있었다. 그는 연신 껄껄거리고 웃었으며 아주 행복해 보였다. 저러다 혹시 미치는 거나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상자 모양으로 생긴 작은 단 위에 올라가 워싱턴 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했다^5,5,5^. 그는 워싱턴 시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곳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성서에 나오는, 죄악과 불의 때문에 멸망당한 도시: 옮긴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연설을 하면서 점점 더 흥분해 날뛰었는데 그 바람에 그의 목에 맨 띠가 다 풀어졌다. 그는 그 모든 죄악의 배후에는 가톩릭 교도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가톨릭 교도들은 모든 것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교황 씨를 백악관에 들어가게 하려고 광분하고 있다, 가톨릭 교도들은 동서 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비열한 인간 말종들이다. 가톨릭 교도들은 신부라고 하는 사람들과 수녀라고 하는 여자들을 짝짓게 하고는 거기서 생기는 애기들을 개의 먹이로 준다. 이것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그의 연설의 골자였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나는 워싱턴 시에 사는 가톨릭 교도라는 사람들이 그 지경이라면 이건 충분히 소리를 지를 만도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만일 자기가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들은 모든 걸 장악하고 우리가 사는 이 고장에까지 악의 씨를 퍼뜨리게 될 거라고 했다^5,5,5^.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건 아주 심각한 일이다. 그는, 만일 그들이 이 고장에까지 세력을 뻗치게 된다면 이 고장 여자들은 몽땅 수도원 같은 데 들어가게 될 것이고^5,5,5^ 다시는 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고장 사람들이 일치 단결하여 그를 워싱턴 시에 보내 가톨릭 교도들과 싸우게 하는 것 외에 달리 가톨릭 교도들을 제압할 방법은 없는 듯 했다. 그는, 자기가 워싱턴 시로 진출한다 해도 그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톨릭 교도들에게 돈으로 매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는 돈을 싫어하며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는 때로 그들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 우리들처럼 그저 편안하게 쉬면서 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떠난다는 말에 무척이나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연설을 끝낸 그는 연단에서 내려와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워싱턴 시에 가서 얼마든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할 자신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서 나는 그가 가톨릭 교도들을 무찌르기 위해 워싱턴 시로 다시 되돌아갈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그가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사내 하나가 줄에 매인 갈색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군중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는 사람들 뒤편에 서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그 정치가가 두 차례 곁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그와 두 번씩이나 악수를 했다. 그 조그만 송아지는 그 사내 뒤편에서 머리를 떨군 채 다리를 벌린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송아지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나는 송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줬다. 그러나 송아지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 사내는 커다란 모자의 챙 밑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는 길게 찢어진 눈을 갖고 있었는데 미소를 짓는 바람에 두 눈이 거의 다 감길 정도가 되었다. 나도 웃어 줬다. "우리 송아지가 좋으냐, 꼬마야?" "예." 나는 대답을 하고서 송아지로부터 몇 발짝 물러섰다. 괜시리 송아지를 괴롭힌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가봐." 그는 아주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까이 서서 송아지를 쓰다듬어 주렴. 넌 송아지를 괴롭힐 애 같지가 않구나." 나는 그의 말대로 송아지를 쓰다듬어 줬다. 그는 송아지 뒤편으로 씹는 담배의 진을 뱉었다. 그가 말했다. "난 알 수 있다. 우리 송아지가 널 좋아한다는 걸. 이제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도^5,5,5^ 이 녀석은 너랑 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나는 그 송아지가 그가 말한 것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송아지니까 당연히 그는 그 송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돈은 좀 갖고 있니, 꼬마야?" "예. 오십 센트요." 내 말에 그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게 별로 대단한 액수의 돈이 못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으며 내가 그것밖에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다. 잠시 후에 그는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이런 송아지를 사려면 네가 가진 돈의 백 배쯤은 있어야 할게다."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겠죠. 암만해도 난 안되겠어요. 돈 생길 데가 없거든요." 그 사내는 다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흠^5,5,5^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꽤 손해를 보기는 하겠지만 네가 이 송아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송아지는 너랑 함께 살아야 한단 말이다." 그러더니 그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그가 송아지랑 헤어질 생각에 가슴이 아파서 그러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전 이 송아지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 선생님." 그러나 그 사내는 손을 치켜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게 이 송아지를 주겠다. 단돈 오십 센트에. 그래야만 내가 기독교인 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난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겠다. 절대로. 그저 내게 너의 오십 센트만 주거라. 그러면 이 송아지는 네거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어떻게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오 센트와 십 센트짜리 동전들을 모두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그 송아지를 묶은 줄을 내게 건네주고는 어느 길로 갔는지도 모르게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비록 그 사람에게 손해를 좀 입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다소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송아지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나는 내 송아지를 끌고 가 할아버지께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만큼 내 송아지가 자랑스럽지 않으신 모양이다. 나는 그게 할아버지 것이 아니고 내 것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내가 동업자니까 그 송아지의 반은 할아버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혼자 뭐라고 툴툴대기만 하셨다. 그 정치가 주위에 몰려 있던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정치가가 곧바로 워싱턴 시로 진출해서 가톨릭 교도들과 싸워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 정치가는 종잇장을 하나씩 돌렸는데 내게는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길바닥에서 한 장을 주웠다. 그 종이에는 그의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사진 속의 얼굴은 워싱턴 시에서의 일에 관해서는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아주 젊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가자고 하셔서 나는 그 전단을 주머니에 넣고는 송아지를 끌고 할아버지 뒤를 따랐다. 헌데 그 송아지를 끌고 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척거리며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나는 그 송아지가 쓰러질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것을 우리 오두막까지 끌고 갈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내가 지불한 돈의 백 배의 가치를 가니 것이었지만^5,5,5^ 아마 어디가 좀 아픈 모양이었다. 내가 첫번째 산등성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는 벌써 저 아래 골짜기 맨 밑부분에 이르러 이제 곧 오르막으로 오르실 참이었다. 나는 자칫하면 할아버지를 놓치겠다 싶어 할아버지께 소리쳤다. "할아버지^5,5,5^ 할아버지는 가톨릭 교도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으세요?"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 틈에 나는 송아지를 더 힘껏 잡아끌면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송아지와 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옛날에 한번 본 적은 있지. 군청이 있는 읍에서." 송아지와 나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쉴 틈을 얻었다. "한 사람을 봤지. 뭐 특별히 비열하게 생긴 사람 같지는 않았어^5,5,5^.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5,5,5^. 그 사람은 자기 옷깃을 뒤틀고 있었는데 인사불성으로 취한 것 같더라. 뭐 그렇지만 아주 순한 인상이었어." 할아버지는 바위 위에 걸터앉으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그 일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신다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내심 아주 기뻐했다. 송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앞다리를 벌리고서 심하게 헐떡거렸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말이다, 칼을 들어 반나절 동안 그 정치가의 뱃속을 가르고 샅샅이 헤쳐 본다면 너는 진실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게다. 너는 그 개쌍놈의 새끼가 위스키 세금을 없애겠다는 소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게야^5,5,5^. 그리고 옥수수 가격에 대해서도." 그건 옳은 말씀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개쌍놈의 새끼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듣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개쌍놈의 새끼"란 욕은 요즘 유행하는 욕으로 할머니가 곁에 있을 때는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자가 신부와 수녀들이 과연 매일매일 짝짓기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갔으며 또 무수히 많은 수사슴과 암사슴들 역시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짝짓기를 하든 안 하든 그건 그들의 문제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또 그자가 신부와 수녀들이 자기네 애기들을 개들의 먹이로 준다고 했는데 몇천 년이 가도 암사슴이 자기 새끼를 개의 먹이로 주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여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자의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서 내가 가톨릭 교도들에 대해 갖게 되었던 나쁜 인상은 약간 가셨다. 할아버지는, 가톨릭 교도들이 지배권을 쥐고 싶어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5,5,5^. 하지만 네게 돼지 한 마리가 있으며 네가 그걸 도둑맞고 싶지 않아 열 명 가량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걸 지키게 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번에는 바로 그 녀석들이 그 돼지를 훔치고 싶어하게 될 것이다, 돼지는 너 자신의 부엌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워싱턴 시에 사는 자들은 하나같이 정직하지 못한 자들뿐이라 늘 서로서로를 감시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은 항시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들기 때문에 늘 개싸움이 벌어진다며 워싱턴 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곳에 망할놈의 정치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있다고 하셨다ㅣ. 할아버지는, "우리가 비록 비타협파 침례교회에 나가고는 있지만 그 비타협파들이 지배권을 장악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네들기리 약간씩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술마시는 습관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있어 그들이 지배권을 잡았다가는 이 세상에서 술이 싸그리 없어져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가톨릭 교도들 말고도 위험한 자들이 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일 그 비타협파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할아버지와 나는 그 당장 위스키 만드는 직업을 잃고 굶어죽게 될 테니까. 나는 통 냄새 나는 위스키를 만드는 거물급 제조업자들도 역시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애쓰지는 않느냐, 그리고 그들이 그걸 차지하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가 자기네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강제로 우리를 위스키 만드는 일에서 손떼게 하려 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은 분명 워싱턴 시에서 매일 정치가들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그렇게 하려고 미친듯이 광분하고 있으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으니 그건 인디언들만은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디언들만은 그럴 성싶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동안 송아지는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저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송아지는 죽었다." 할아버지는 송아지의 반에 대한 권리를 잃으신 셈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송아지의 머리를 받쳐주어 그것이 제발로 일어나게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축 늘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가로저으셨다. "작은나무야, 그건 죽었다. 무엇이든 숨이 넘어가면^5,5,5^ 죽은 것이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송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건 내 생애에서 최악의 순간 중 하나였다. 내 오십 센트와 빨갛고 파란 사탕 상자들이 날아간 건 물론이고 이제 내 송아지마저 날아갔다^5,5,5^. 내가 지불한 돈의 백 배나 가치 있는 송아지가. 할아버지는 당신의 가죽장화에서 길다란 칼을 뽑아내 그 송아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뽑아내셨다. 할아버지는 그 내장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건 상하고 병들었다. 먹을 수 없어." 이제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무릎을 꿇고 앉아 송아지의 가죽을 벗겨내셨다. "할머니가 네게 가죽 값으로 십 센트를 주실 게다. 이건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개들을 이리로 보내면^5,5,5^ 그것들이 이 송아지 고기를 먹을 게다." 내가 생각해도 그러는 것밖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했다. 나는 송아지 가죽을 짊어진 채 힘없이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할머니가 묻지도 않으셨건만 나는 자진해서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렸다. 내 오십 센트를 단지 속에 되돌려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송아지를 사는 데 쎳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송아지는 죽었다, 등등. 할머니가 나한테 송아지 가죽 값으로 십 센트를 주셔서 나는 그걸 단지 속에다 넣었다. 평소 나는 완두콩과 옥수수 빵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날 밤에는 먹기 싫은 걸 억지로 입 속에 쑤셔넣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할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이윽고 입을 여셨다. "작은나무야, 네가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런 교훈도 없는 법이다. 만일 내가 그 송아지를 사는 걸 말렸더라면 너는 그 뒤로 틈만 나면 그때 그 송아지를 사버릴 걸 하고 후회하게 될 게다. 그리고 만일 내가 너더러 그 송아지를 사라고 권했더라면 너는 그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리고서 두고두고 나를 원망하게 될거다. 네 스스로 직접 깨닫는 방법밖에 없었어." "예, 알아요." "그래, 넌 이번 일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지?" "음, 기독교인들과는 절대로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할머니가 먼저 웃으시기 시작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가 이윽고 폭소를 터트리셨는데 너무 웃으시느라 옥수수 빵이 목에 걸려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 나는 내가 뭔가 우스운 어떤 교훈을 얻었던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어떤 점이 그렇게 우스운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작은나무야, 네 말인즉슨 다음번에 어떤 사람이 네 앞에 나타나 자기가 아주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고 떠벌일 경우에는 조심을 해야겠다, 그 얘기지?" "예, 할머니,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다^5,5,5^. 내 오십 센트가 날아갔다는 것 말고는. 나는 이날 하루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로 아주 녹초가 된 나머지 식탁에 앉은 채 그대로 내 저녁밥 접시에다 코를 박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으깨진 완두콩들을 닦아 내셔야 했다. 그날 밤 나는 비타협파 침례교도들과 가톨릭 교도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온 꿈을 꾸었다. 비타협파들은 우리 증류기를 깨부셨고 가톨릭 교도들은 내 송아지를 잡아먹었다. 그때 거대한 기독교인 하나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곳에 서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 하나를 보여주며 이건 오십 센트의 백 배나 값이 나가는 것이지만 특별히 오십 센트에 네게 주겠다고 했다. 헌데 내게는 오십 센트가 없어서 그걸 살 수 없었다. @ff @[ 네거리 가게에서 할머니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해서 내가 그 기독교인과의 거래에서 잃은 총액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단지 사십 센트만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송아지 가죽으로 십 센트를 건졌으니까. 나는 그 십 센트를 내 단지 속에 넣어둔 채 다시는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지 않았다. 그 단지 속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번에 제품을 운반했을 때 나는 십 센트를 번 데다 할머니가 오 센트를 더 얹어주셔서 총 이십오 센트를 모은 셈이 되었으며, 이로써 다시 전에 가졌던 만큼의 돈을 다시 모으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제품을 나르는 것이 아주 힘겨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제품을 나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나는 매주마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다섯 개씩 익히곤 했는데 할머니는 우선 그 뜻을 풀이해 주신 뒤 그 단어들을 갖고 문장을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하게 하셨다. 나는 가게로 오갈 때마다 내가 익힌 문장들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즉, 내가 배운 단어들을 이용해서 어떤 문장들을 말하면 할아버지가 그 문장들에 대해서 생각하시느라 걸음을 멈추시게 되는데 그 틈에 나는 얼른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짐을 내려놓고 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때로 할아버지는 내가 익히고 있던 어떤 단어들을 더 이상 외울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하시면서 아^36^예 사전에서 지워 버리게 하셨다. 그 바람에 내 진도는 쑥쑥 나갔다. 내가 "증오하다 abhor"라는 단어를 익힐 때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때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쏜살같이 내달으셔서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느라고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들으시라고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나는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증오)해." 할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곁으로 다가와서 위스키 항아리들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셨다. "너 지금 뭐라고 했지?" "나는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증오)한다구요." 이렇게 대답을 하자 할아버지가 아주 딱딱한 눈길로 나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시는 바람에 나는 뭐가 잘못됐나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창녀들이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를 갖고 무얼 했다는 거지?"(영어로 창녀는 whore이며 이 단어는 증오하다라는 뜻의 abhor와 비슷하게 들려 할아버지는 엉뚱한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옮긴이) 나는 나도 무얼했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가 익히고 있는 단어는 "증오하다"이며 이것은 어떤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넌 왜 찔레꽃 가지와 노란색 윗도리가 아주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증오한다)라고 하는 거냐?"라고 반문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느 말을 쓰는 게 좋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그랬으며 사전에 나와 있으니까 그냥 연습해 봤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일로 아주 흥분하셨다. 할아버지는 쓸데없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 사전을 만든 개쌍놈의 새끼는 당장 잡아서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이런 놈들은 어떤 한 물건을 가리키는 말들을 대여섯개씩이나 만들어서 공연히 그 뜻을 흐리게 만들곤 한다시며, 정치가들이 사람들을 사기 처먹고는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정치가가 이런 저런 말을 해놓고도 안 했다고 발뺌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만일 네가 자세히 연구할 기회가 있다면 그 망할놈의 사전이 어떤 정치가의 추천을 받은 것이거나 정치가들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이 밝혀질 거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대위 단어는 머릿 속에서 당장 지워 버리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했다. 겨울철이나 대기철이 되면 네거리 가게 주변에는 자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기철"이란 통상 팔월달을 뜻하는 것으로 농부들이 쟁기질을 끝내고 또 대여섯 번 김매기를 한 뒤어 일정한 기간을 말했다. 이때가 되면 농작물은 농부가 쟁기질이나 괭이질을 하지 않고 가만히 두고 보아도 좋을 만큼 자라 있으며 이때 농부가 할 일이라고는 농작물이 다 자라 수확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제품을 넘겨주고 나서 할아버지가 돈을 받으시고, 또 내가 젠킨스 씨를 위해 나뭇단을 날라다 드리고 그 댓가로 아주 오래 되어 팔 수 없게 된 막대사탕을 받고 난 뒤면 할아버지와 나는 항시 그 가게에 딸린 곁채에서 벽에다 등을 기대고 앉아 느긋하게 쉬곤 했다. 그럴 때 할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으레 십팔 달러가 들어 있었으며^5,5,5^ 우리가 집으로 가면 그 가운데 적어도 십 센트는 내 차지가 된다. 그뿐이 아니다. 할머니를 위해 산 설탕과 커피도 곁에 있고 또 만사가 순조롭다는 생각이 들 때면 종종 거기에 더해 밀가루도 사서 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위스키를 만드느라고 아주 힘겹게 보낸 한 주 일을 방금 막 끝낸 참이다. 나는 항시 우리가 거기 앉아 쉴 때마다 젠킨스 씨에게서 받은 오래 된 막대사탕을 먹어치우곤 했다. 그것은 아주 기분좋고 느긋한 한순간이었다. 우리는 거기 앉아 사람들의 이런저런 얘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들은 불황에 대한 얘기며, 뉴욕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린 사람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자기 머리에 총을 쏜 사람들에 관한 얘기 등등을 했다. 할아버지는 한번도 입을 여신 적이 없었으며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한테만은 얘기를 해주셨다. 뉴욕에는 갈아먹을 땅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어간 바람에 도시가 온통 사람들로 북적대며 그 사람들 중의 반은 그 좁은 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사느라 거의 미쳐 버렸으니 그중에서 제 머리에 총을 쏘는 사람들이나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라는 얘기를. 그 가게 곁채에서는 머리를 깎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발사는 그들을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사람들이 "바네트 노인"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는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빨을 "튀어오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빨이 썩어 이것을 뽑아 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바네트 노인이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광경은 누구나 보고 싶어했다. 그는 자기 고객을 우선 의자에다 앉혔다. 그런 다음 철사를 불에다 빨갛게 달구었다. 그리고 그 철사로 썩은 이!빨을 감고 그 이빨에다가 못을 댄 뒤 망치로 후려쳤다. 그 노인네만 아는 비밀스런 방법으로. 그러면 그 이빨은 입 밖으로 튀어나와 마당에 떨어지곤 했다. 그는 자기 기술을 아주 자랑스러워했으며 자기가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사람들을 물리쳐 멀찌감치 떨어져 있게 했다. 그들이 그걸 보고 배우지 못하게 말이다. 한번은 바네트 노인과 비슷한 연배의 노인네 (사람들은 그를 레트 씨라고 불렀다) 한 분이 썩은 이빨하나를 튀어오르게 하려고 그를 찾아왔다. 바네트 노인은 레트 씨를 의자에 앉히고 철사를 달구었다. 그런 다음 늘 하듯이 레트 씨의 썩은 이빨에다 그 철사를 감았다. 헌데 그만 레트 씨가 자신의 혀를 그 철사에 대고 말았다. 그러자 레트 씨는 황소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며 바네트 노인의 배를 발길로 차버려 바네트 노인은 뒤로 벌렁 나가자빠지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바네트 노인은 의자로 레트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두 사람은 곧바로 엉겨붙어 흙바닥 위를 뒹굴면서 서로 치고받았으며 이 혈전은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떨어진 다음에도 한동안 서로 온갖 악다구니를 퍼부어댔다. 헌데 바네트 노인의 욕설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레트 씨가 퍼붓는 욕설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이었다. 혓바닥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밖에! 마침내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한떼의 사람들이 레트 씨를 붙잡고 그의 혀를 내밀게 한 뒤 거기다 테레빈 유를 부었다. 레트 씨는 그곳을 떠났다. 바네트 노인이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는 데 실패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질 못했다. 그는 자기 기술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자기가 어째서 레트 씨의 이빨을 튀어오르게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일일이 해명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그건 순전히 레트 씨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앞으로 썩은 이빨 같은 건 절대로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설혹 생긴다 해도 나는 바네트 노인의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가도록 하지는 않을 참이었다. 그 가게에서 나는 어린 소녀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애는 대기철이나 겨울철이면 자기 아빠를 따라 가게에 나타나곤 했다. 그애 아빠는 비교적 젊은 사람으로 다 헤진 작업복 차림에 대체로 맨발로 다녔으며 그 딸도 항시 맨발이었다. 아무리 날이 추울 때라도. 할아버지는 그들을 소작인이라 하셨다. 할아버지는 소작인이란 자기 땅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며 그들은 그밖에도 변변한 재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하셨다. 침대나 의자조차도 없을 정도로. 그들은 남의 땅에서 일하며 가끔 주인의 수확량의 반 정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삼분의 일 가량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들은 그걸 "반 타작" 또는 "삼분의 일 타작"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소작인들이 한해 내 먹은 식량, 종자대와 비료대 (이런 데 쓰이는 돈은 지주가 선불해 준다) 노새 사용료 등을 까고나면 항시 그들은 빈손 털고 일어서게 된다고 하셨다. 참새 눈물만큼의 곡식 정도나 받고서. 할아버지는 대가족이 딸린 소작인은 지주들에게서 일감을 얻는 데 그만큼 더 유리하다고 하셨다. 그 많은 가족들이 몽땅 들에 나가 일을 하게 되니까. 대가족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늘 애들을 많이 낳으려고 한다. 소작인 집안에서는 여자들도 들에 나가서 목화를 따고 괭이질 같은 걸 하며 그들이 일하는 동안 애기들은 저 혼자 여기저기 기어다니며 놀 수 있는 나무 그늘이나 풀밭 같은 데 놓아둔다고 한다. 헌데 인디언들은 소작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당신이라면 소작을 하느니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 토끼나 잡아먹고 살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소작일에 빠져들게 되며 일단 거기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하면 다시는 거기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게 다 자기네가 할 만한 일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지는 않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되지도 않는 말들을 주절거리는 데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망할놈의 정치가들 탓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모든 인간 사회가 다 그렇듯이 어떤 지주들은 비열하고 또 어떤 지주들은 그렇지 않은데 그들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건 수확이 끝난 뒤에 "정산을 하는"자리에서 결판이 나며 대체로 그 결과는 크나큰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소작인들이 해마다 딴 곳으로 올겨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겨울만 되면 소작인들은 새로운 지주를 찾아 해맨다. 일단 새로운 주인이 정해지면 그들은 그 주인의 땅 근처에 있는 새 오두막으로 이사한다. 그들은 저녁말 되면 새 오두막 집 부엌에 모여 앉아 "올해", "이곳"에서 자기네들이 이루게 될 꿈들을 부지런히 설계한다. 그들은 봄철 내내, 그리고 여름철 내내 이 꿈들을 먹고 사느라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는다. 그러다가 수확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참담한 환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해마다 소작지를 바꾸게 되는데 그들의 이런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지조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그들이 애만 자꾸 낳는다 (소작인들에겐 일손이 많아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이런 건 정말 다시 없는 몹쓸 욕들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산길에서 이런 얘기들을 들려주셨는데 할아버지가 이 얘기를 하시면서 너무나 흥분하시는 바람에 나는 근 한 시간 가량이나 길가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일로 흥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치가의 속성해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개쌍놈의 새끼들은 모조리 씨를 말려 버려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얼른 내 말을 끊으시고 그 "개쌍놈의 새끼"라는 욕은 당신이 최근에 입수한 아주 강력한 욕이라서 듣는 이를 거북하게 만들 소지가 있으니 사용할 때 몹시 신중을 기해야 하며 특히 할머니가 곁에 있을 때 그 욕을 입에 담았다가는 우리 둘 다 집에서 쫓겨나게 되니 이 점을 아주 유의하라고 하셨다. 나는 즉각 그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겨두었다. 어느 날 내가 가게 곁채에 쭈그리고 앉아 묵은 사탕을 빨아먹고 있는데 작은 소녀가 우리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애 아빠는 가게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애의 머리는 형편없이 헝클어졌고 이빨은 모조리 썩어 있었다. 나는 그애가 부디 바네트 노인과 부딪치지 않기를 바랐다. 삼베 자루로 지은 옷을 입은 그애는, 발끝으로 연신 흙을 긁으며 내 입 근처를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어쩐지 안된 느낌이 들어 내 사탕을 잠시 빨아먹어도 좋다, 단 깨문어 먹지 않고 빨기만 하다가 다시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애는 그 사탕을 받아서 아주 열심히 빨아먹었다. 그애는 자기가 하루에 목화 백 파운드를 딸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오빠는 이백 파운드를 따고 자기 엄마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삼백 파운드를 따며, 자기 아빠는 밤까지 일할 경우 무려 오백 파운드나 딴다고 했다. 그애는, 자기네는 무게를 속이기 위해 목화 자루 속에 돌 같은 걸 집어넣지 않으며 정직하게 일 잘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며, 이 고장사람들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목화를 얼마나 많이 딸 수 있느냐고 물어 나는 한 번도 목화를 따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애는, "그럴 줄 알았어, 인디언들이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나는 그애한테 내 사탕을 돌려받았다. 그런데 그애는 다시, 인디언들이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인디언들은 그저 사는 방식이 다르고 아마도 뭔가 인디언들에게 맞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 나는 다시 그애에게 내 사탕을 좀더 빨아먹게 했다. 그때는 아직 겨울철이었다. 그래서 그애는 자기네 가족은 요즘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안 들리나 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이 고장에서는 잘 알려진 얘긴데, 산비둘기가 어느 쪽에서 우느냐에 따라 이듬해에 자기네가 옮겨갈 방향이 결정된다고 했다. 그애는 자기네는 아직 산비둘기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곧 듣게 될 거다, 왜냐하면 지주가 자기네 식구들을 완전히 속여먹는 바람에 자기네 아버지가 지주와 대판 싸움을 해서 곧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애 아버지는 오늘, 정직하게 일만 하고 도통 말썽이라고는 부리지 않는 것으로 소문난 자기네 가족을 원하는 사람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그 가게로 나왔다고 한다. 그애는, 자기네 식구가 아마도 기대하던 것 이상으로 좋은 곳으로 옮겨가게 될 거다, 자기네 아빠 말에 의하면 자기네 식구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이 일대에 소문이 짜하게 났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내년에는 그들도 아주 형편이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애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수확이 끝날 때면 그애는 인형을 하나 갖게 되어 있었다. 그애 엄마가 진짜 사람 머리털이 달리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수 있는, 가게에서 파는 인형을 사줄 거라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애는 자기네가 부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그 밖에도 별의별 것이 다 생기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애에게 우리는 산골짜기에 있는 조그만 옥수수밭을 빼고는 전혀 땅을 갖고 있지 않으며 평야지대나 넓은 골짜기에는 익숙치 않은 산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애에게 내가 십 센트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애는 그걸 보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게 우리집에 있는 단지 속에 들어 있어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 전에 기독교인이 나한테서 오십 센트를 사기 처먹은 일이 있어서 그걸 갖고 다니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내 남은 십 센트마저 사기 처먹게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애는 자기가 기됵교인이라고 했다. 그애는 전에 한번 숲속으로 갔을 때 성령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네 아빠와 엄마는 그리로 갈 때마다 성령을 받으며 성령을 받을 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그애는 기독교인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며 그 숲속에 있는 순간이야말로 자기네 식구들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요, 성령으로 충만한 순간이라고 했다. 그애는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으므로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고 했다. 나는 그애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애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내 막대사탕을 막대가 다 드러나도록 빨아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얼른 남은 걸 돌려받았다. 나는 할머니께 그애 얘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사슴가죽으로 된 덧신을 한 켤레 만드셨다. 할머니는 내 송아지 가죽을 조금 잘라 털달린 부분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그 가죽 덧신 맨 위에 잇대셨다. 그리고 신발 두짝의 맨 윗부분에다가는 빨간 구슬을 한 개씩 다셨다. 그 다음달, 다시 그 가게로 갔을 때 나는 그애에게, 우리 할머니가 널 위해 이걸 만들어 주셨으며 돈을 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애는 가게 앞을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기도 하고 연신 자기 발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애는 그 가죽신을 여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애가 달리다가 자주 멈춰서서 맨 위에 달린 빨간 구슬을 어루만지곤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 가죽신의 맨 윗단의 털 달린 부분은 바로 내가 할머니께 판 내 송아지 가죽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애 아빠가 가게에서 나오자 그애는 깡총거리며 아빠 뒤를 따라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이 얼마만큼 걸어갔을 때 그애 아빠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그애를 내려다봤다. 그는 그애에게 뭐라고 얘기했고 그애는 돌아서서 내쪽을 가리켰다. 그는 길가로 가더니만 감나무에서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 한 팔로 그애를 잡더니만 다른 한 손에 쥔 회초리로 그애의 종아리를 호되게 갈기기 시작했다. 계집에는 소리내여 울기는 했지만 피하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는 그 회초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애를 때려줬다^5,5,5^. 그 가게 곁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5,5,5^.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계집애를 길바닥에 앉히고는 그 신발을 벗게 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우리 있는 쪽으로 되돌아왔다. 할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할아버지는 본 체도 하지 않고 내 앞으로 똑바로 걸어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두 눈은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그가 그 가죽신을 내밀어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동정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5,5,5^. 아무한테도^5,5,5^ 특히 이교도 야만인한테는!" 나는 무척이나 겁을 먹었다. 그는 획 돌아서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의 넝마 같은 작업복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가 계집애 있는 데까지 가자 계집애는 냄큼 그를 따라갔다. 그애는 이제 울지 않았다. 그애는 머리를 꼿꼿이 한 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애의 다리에 벌건 줄이 죽죽 간 게 누구의 눈에나 잘 보였다. 할아버지와 나도 그곳을 떠났다. 산길에서 할아버지는, 그 소작인이 가진 거라고는 자부심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그게 좀 엉뚱한 방향으로 과시되기는 했지만 - 그에게 전혀 나쁜 감정이 없다고 하셨다. 그 사람은 그 계집애고 그 밖의 다른 자식이고 간에 자기 애들에게 예쁜 걸 좋아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런 걸 사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자기애들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다^5,5,5^. 그리고 그들이 그걸 깨우칠 때까지 때려줬다. 그러면 이윽고 그애들은 자기네가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은 성령이 이듬해에 그들에게 행복한 순간들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자 내가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 당신도 여러 해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나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으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몇 해 전에 한 소작인의 오두막 근처 산길을 걸어가신 적이 있었다. 헌데 그 소작인의 뒷마당에서 어린 계집애 둘이 큰 나무 밑에 앉아 시어즈 로벅 회사(통신판매조직과 거대한 소매체인 조직을 갖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판매회사: 옮긴이)의 상품 안내문을 들여다보는 중에 한 사내가 갑자기 집 안에서 튀어나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내는 대뜸 회초리를 들고 그 두 계집애들한테 달려가서는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때려줬다. 그리고는 그 시어즈 로벅 안내문을 집어들고 헛간 뒤로 돌아갔다. 그는 마치 그 안내문이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발기발기 찢어서는 불살라 버렸다. 그런 뒤 그는 그 헛간에 기대 앉아 아무도 모르게 흐느껴 울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까 그 소작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남들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고투가 따라야 하므로.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의 게으름을 얼버무리기 위해 쓸데없이 많은 말들을 혹사하며 공연히 남들을 "지조없는 사람들"이니 어쩌니 해가며 함부로 입을 놀리곤 한다. 나는 그 가죽신을 집으로 가져왔다. 가는 그것을 내 작업복과 셔츠를 넣어두는 자루 밑에다 두었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것을 보면 그 계집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애는 다시는 그 네거리 가게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애 아빠도.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이사갔으리라고 추측했다. 아마도 그들은 멀리서 산비둘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ff @[ 위험한 고비 산에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맨 처음 알려주는 것은 이디언 바이올렛(제비꽃과의 식물: 옮긴이)이다. 아직 봄이 멀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어느새 피어난다. 삼월 바람을 닮아 싸늘한 푸른빛을 띠고 있는 그것들은 지면에 낮게 깔린 채 피어나며, 또 너무 작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우리는 산자락에 피어 있는 그것들을 캐 모으곤 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그것들을 캐는 일을 도와드렸는데, 한동안 그 일에 열중하다 보면 매운 바람에 손가락이 얼얼해지곤 했다. 할머니는 그것으로 몸을 보해주는 차를 만드셨다. 할머니는 내가 그걸 캐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칭찬해 주셨다. 실제로 나는 아주 빨랐다. 우리는 아직 얼음이 발밑에서 버석버석 부서지곤 하는 높은 산길에서 솔잎을 땄다. 할머니는 그걸 넣어 우려낸 뜨거운 물을 할아버지와 나한테 주셔서 마시게 했다. 그건 과일보다도 좋은 것이라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밖에도 우리는 갖가지 식물의 뿌리와 앉은 부채의 씨를 채취하곤 했다. 일단 요령을 익힌 뒤부터 나는 도토리 모으는 선수가 됐다. 처음에 나는 도토리 한 개를 주울 때마다 일일이 할머니 곁으로 가 할머니가 들고 계신 자루에다 넣었는데, 할머니가 한움큼씩 모인 다음에 넣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 그대로 했다. 나는 키가 작아 지면과의 거리가 가까우니 할머니보다 더 빠르게 주울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얼마 안가 할머니보다 더 많이 줍게 되었다. 할머니는 도토리를 갈아 노란 황금빛을 띤 가루를 내셨으며, 거기다가 히코리 열매와 밤을 섞어 튀김과자를 만들어 주셨는데 세상에 그렇게 기막히게 맛좋은 음식은 다시 없었다. 때로 할머니는 부엌에서 일을 하시다가 도토리 가루에다 설탕을 엎지르는 실수를 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이런 바보 같으니. 작은나무야, 내가 도토리 가루에다 설탕을 엎질렀구나 글쎄"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런 실수를 하실 때마다 나는 늘 특제 튀김과자를 맛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도토리 튀김과자 먹는 선수들이었다. 인디언 바이올렛이 핀 뒤인 삼월 말경 우리는 때때로 산에 올라 그걸 캐곤 했는데 올라갈 때마다 칼날같이 매섭던 바람결의 감촉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안 가 그것은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는 흙냄새가 떠돈다. 그럴 때 우리는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안다. 이때부터 우리는 두텁게 감쌌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하루가 다르게 부드러워진다는 걸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뺨에 좀더 오래 머물고 좀더 포근해지고 한층 더 강한 냄새를 동반한다. 높은 산등성이 위에서 얼음이 부서져 녹아내리면 지면은 질척해지고 그것은 작은 물줄기들을 이루면서 실개천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윽고 노란 민들레들이 낮은 골짜기를 따라 지천으로 피어나면 우리는 그 잎사귀들을 채취하는데 할머니는 그것들을 분홍 바늘꽃이나 아메리카자리공 이파리, 그리고 쐐기풀 이파리 등과 섞어서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쐐기풀 이파리를 으뜸으로 쳤는데 이건 표면에 억센 솜털이 하얗게 돋아나 딸 때마다 손가락이 따끔따끔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좀처럼 쐐기풀밭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귀신같이 찾아내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이것처럼 찾기 힘든 것도 다시 없다고 투덜거리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분홍 바늘꽃 식물은 탐스러원 새빨간 꽃을 피워내며 그것의 길다란 줄기는 껍질을 벗겨 날로 먹을 수도 있고 익혀서 먹을 수도 있는데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맛이 났다. 겨자는 산허리를 따라 무더기로 돋아나 밭을 이루는데 꽃이 피었을때 그 밭을 멀리서 보면 노란 담요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 크기가 자그마한 그 곷은 밝은 카나리아 빛(붉은 빛을 띤 노란색: 옮긴이)을 띠고 있으며 그 이파리는 매운 맛이 난다. 할머니는 그 이파리를 다른 식물들의 이파리와 섞어서 음식을 만드셨으며 때로 그 씨를 갈아 만든 걸죽한 죽 같은 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 음식에 넣거나 발라먹게 하셨다. 대체로 야생으로 자라난 식물들은 밭에서 사람이 재배한 것보다 맛이나 냄새가 훨씬 더 강한 법이다. 우리는 땅 속에서 야생의 양파를 캐내곤 했는데 그것 한 줌에서 나오는 맛과 향기는 밭에서 재배한 양파 삼사십 킬로그램에서 나오는 그것과 맞먹을 정도다. 대기가 따뜻해지고 빗줄기가 한차례 지면들긋고 지나가면 산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산허리는 마치 여러 색깔의 물감 양동이들을 엎지른 것처럼 갖가지 현란한 빛깔로 물든다. 파이어 크래커(폭죽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길쭉하고 둥근 모양의 빨간 꽃을 피워내는데 그 빨간빛이 너찌나 강렬한지 꼭 빨간 색종이를 보는 듯하다. 바위틈 같은 데서 자라나는 헤어벨(잔대의 일종: 옮긴이)은 종 모양의 파란 꽃을 피우며, 가지에 대롱거리고 매달려 있는 그 꼿들은 꼭 탐스러운 포도알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땅바닥에 바싹 달라붙어 자라는 쇠비름은 중심부는 노랗고 그 가장자리로 연보라빛이 감도는 분홍빛을 지닌 커다란 꽃들을 피워내며, 메꽃은 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서 피는데 그 긴 줄기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고 꽃잎은 붉은색에 가까운 핑크빛이다. 수많은 식물들에서 떨어져 나온 씨앗들은 모놀라의 자궁(대지의 여신의 자궁, 곧 땅을 말한다: 옮긴이) 속에서 열을 받는다. 모놀라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맨 먼저 가장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녀가 좀더 따뜻해지면 보다 큰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무들은 마치 아기를 가진 여자들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새순들을 터트리게 된다. 대기가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무겁고 끈끈해질 때 우리는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가를 안다. 그럴 때면 새들은 산등성이에서 날아내려와 골짜기의 바위틈이나 소나무 가지 밑에 숨어버린다. 시커먼 구름이 산을 넘어오면 우리는 우리의 오두막으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산꼭대기 위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일이 초 가량 하늘을 가르며 갈래갈래 찢어지다가 다시 허공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오두막 현관에서 지켜보곤 한다. 그렇게 번개가 치고 난 후에는 무엇인가 쩍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엄청난 우뢰소리가 산등성이를 덮치고 골짜기를 뒤흔든다. 나는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천둥이 칠 때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산들이 무너졌으리라고 단정하곤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음은 물론이다. 번개는 번번이 다시 찾아온다. 그 푸른 빛줄기는 한순간 천지를 환하게 밝히면서 산꼭대기의 바위를 내리친다. 느닷없는 돌풍에 나무들은 등을 구부리며 미친듯이 제 머리를 풀어헤친다. 그리고 진한 습기를 머금은 먹구름에서 폭우가 쏙아져 내린다. 그러면 골짜기에는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밀어닥쳐 개울가에 살던 온갖 것들을 휩쓸고 내려간다. 인간이 모르는 자연의 비밀 같은 건 없고, 자연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자연을 비웃는 사람들은 산악지대에서의 봄 폭풍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아기 낳는 여자들이 침대보를 쥐어뜯듯 온 산들을 뿌리째 뒤흔든다. 어떤 나무가 모진 겨울바람을 견디며 끈기 있게 버티었는데 자연이 그걸 없애 버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연은 맹렬한 바람을 통해 그것을 뿌리째 뽑아 산 밑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의 바람의 손가락으로 모든 나뭇가지들을 면밀히 훑고 지나가면서 약한 가지들이 걸리면 말끔히 훑어 버린다. 만이 자연이 어떤 나무를 없애 버려야겠다고 판단했는데 그 나무가 바람으로 제거되지 않으면 자연은 바로 불벼락을 내린다. 그러면 그 나무는 순식간에 불타는 횃불이 되어 버린다. 자연은 살아 있으며 끊임없이 진통하고 있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그걸 믿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연은 늘 지난해에 다 치우지 못하고 남겨둔 태를 말끔히 제거하곤 함으로써 청신하고도 강력한 새로운 봄을 탄생시킨다고 하셨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작고 귀여운 연초록 새순들이 모든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연은 사월의 비를 내려준다. 그 비는 부드럽고도 호젓하게, 속삭이듯 내리면서 골짜기와 산길에 뿌연 안개의 장막을 드리운다. 그리하여 우리가 봄비 내리는 날 그곳을 지날 때면 나뭇가지마다 맺힌 굵은 빗방울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리곤 한다. 사월의 비는 뭔가 감미롭고 설레이는 느낌을, 그리고 알싸한 슬픔같은 것을 가져다 준다. 할아버지는 사월의 비가 내릴 때면 항시 그런 느낌이 뒤섞인 어떤 감상에 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월의 비는 새로운 어떤 것이 탄생하기 때문에 짜릿한 설레임을 가져다 주며 그런 탄생의 순간을 오래 맛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글픈 느낌에 젖게 된다고 하셨다. 그런 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다. 사월의 바람은 아기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사롭다. 그 바람이 돌능금나무 위에서 머물면 그것은 연분홍빛이 감도는 하얀 꽃을 피운다. 그 향기는 인동덩굴보다도 짙어서 벌들이 까맣게 달라붙는다. 꽃의 중심부가 빨간 연분홍 미국 만병초와, 길고 뾰족한 노란 꽃잎파리들이 달리고 거기에 하얀 이빨(내 눈에는 이것이 항시 혓바닥처럼 보인다) 하나가 나와 늘어진 도그투스 바이올렛(얼레지 속의 식물. 도그투스라는 것은 곧 개이빨이라는 뜻: 옮긴이)은 골짜기에서 산등성이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핀다. 이윽고 날이 더욱 따뜻해지면 느닷없이 한파가 밀어닥쳐 사오일 간 머문다. 이 한파는 나무딸기를 꽃피우게 하므로 이른바 "나무딸기 겨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한파가 없이는 나무딸기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 간혹 가다 나무딸기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 건 바로 그 해에 이 한파가 닥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한파가 지나가면 산딸나무 꽃들이 눈송이처럼 산허리를 하얗게 뒤덮으며 피어난다. 그것을 미처 예상치 못한 곳, 소나무 숲이나 참나무 숲 같은 데서 느닷없이 소담스런 하얀 꽃을 피운다. 백인 농부들은 늦여름에나 수확을 하지만 인디언들은 겨울 지나 처음으로 새싹이 나는 식물을 거둬들이는 이른 붐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름 내내, 그리고 도토리나 밤을 거둬들이는 가을까지 끊임없이 수확을 한다. 할아버지는 만일 우리가 나무들을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들과 잘 어울려 살면 나무들은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하셨다. 헌데 그런 일을 할 때는 약간씩 머리를 써야 한다. 그게 가장 필요한 대표적인 예는 산딸기 따는 일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산딸기를 딸 때 허리를 굽혀 손을 길게 뻗느라 애쓰지 않고 아예 산딸기밭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산딸기 따는 일은 아무리 오래 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듀베리(나무딸기의 일종: 옮긴이), 나무딸기, 엘더베리(입딱총나무 열매: 옮긴이) 같은 걸로는 아주 맛좋은 과일주를 담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허클베리(월귤나무 비슷한 관목의 열매: 옮긴이)나 월귤나무 열매 같은 건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할머니는 그것 요리하는 데 이용하셨다. 나는 늘 월귤나무 열매를 미처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양동이에 가득가득 담아 날라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열매들을 딸 때마다 양동이에 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먹어대기도 했다. 그런 점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지금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마찬가지므로 상관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다. 헌데 아메리카자리공 열매는 독이 있어서 그걸 먹으면 대번에 죽는다. 새가 먹지 않는 나무 열매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나무 열매를 따먹는 철이 되면 내 이빨, 혀, 입 근처에는 늘 푸른 물이 들어 있었다. 그맘때 할아버지와 내가 네거리 가게에 제품을 넘겨주러 가면 네거리 근처에서 어정거리던 평지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서 내가 병들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처음 우리를 본 사람들은 나를 보고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둥 어쨌다는 둥 해가며 공연히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저것들이 산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저런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그러든 모르는 체 해버렸다. 새들은 벚나무 주위에서 곧잘 재주를 부리곤 했다. 칠월의 태양이 벚나무 위에서 작열할 때. 한여름에 점심을 먹은 뒤 나른해지면 할머니는 낮잠을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나는 뒷문 계단에 나가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산길로 올라가서 구경이나 하자"라고 말씀하지곤 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간다. 우리는 산길로 올라가 커다란 벚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 나무 줄기에 기대 앉아 새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번은 지빠귀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를 통통 뛰어 가지끝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놈은 나뭇가지가 점차 가늘어지자 마치 줄타기 곡예를 하듯이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하면서 마침내 그 맨끝에까지 이르는 데 성공했다. 또 무슨 일인가로 아주 기분이 좋아진 로빈(지빠귀과의 유리새류: 옮긴이) 한 마리가 할아버지와 나 있는 데로 뒤뚱거리며 다가와서는 할아버지의 무릎 위로 펄쩍 뛰어오른 적도 있었다. 그 녀석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서서 한참 동안 찧고 까불며 자기가 이 세상 만사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얘기했다. 마침내 모든 얘기를 다 쏟아낸 그는 노래를 한 곡조 뽑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려 했는데 그만 목청이 삑 하고 어긋나고 말았다. 그 녀석은 김이 샜는지 노래부르기를 포기하고는 뒤뚱거리며 걸어가 덤불 속으로 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다 아프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할아버지와 내가 그 나무 있는 데로 다시 가보니 그 나무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 녀석을 톡톡 쳐서 깨우자 그 녀석은 깨기는 했는데 어쩐지 안짢은 기색이었다. 그 녀석이 자꾸 할아버지의 머리 위로 내려 앉으려고 해서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모자를 벗어 모자로 그 녀석을 쳐 날아가게 했다. 그 새는 실개천가에 내려앉아 연신 머리를 물 속에 쳐박았다 뺐다 하고^5,5,5^ 연신 끅끅거리며 먹은 것을 토해냈다. 그리고 마치 뭐든 눈에 띄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는 그 홍관조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할아버지와 나 때문에 자기게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있으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전에 그 새를 본 적이 있으며 그 새는 버찌를 무척이나 밝힌다고 하셨다. 산사람들은 자기네가 사는 집 근처에 새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 새들 하나하나가 다 무슨 징조인가를 암시한다고 믿곤 했다. 당신이 그것 믿고 안 믿고는 당신 마음이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니까. 나는 그걸 믿었다. 할아버지도 그러셨고. 할아버지는 어떤 새가 어떤 징조를 암시하는지에 관해 상세히 꿰뚫고 계셨다. 자기 집에 굴뚝새가 들어와 깃들면 그건 길조다. 우리집 굴뚝새는 할머니가 부엌문 맨 윗구석에 네모난 조그만 구망을 뜷어 놓으셔서 그리로 들락거리면서 부엌 난로 위 서까래 밑에다 자기 집을 지어놓고는 거기서 잠을 잤다. 그러면 수놈이 날아다니며 그 암놈을 먹여 살리곤 했다. 굴뚝새는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기를 좋아한다. 우리집 굴뚝새는 자기 둥우리 속에 느긋하게 들어앉아 등잔불을 반사해 작은 검은 구슬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부엌에 앉아 있는 우리 식구들을 내려다보곤 한다. 내가 그 새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의자를 그 새집 바로 밑으로 끌어당겨 그 위에 올라서면 된다. 그럴 때면 그 새는 나를 향해 요란하게 지저귀기는 하지만 둥우리를 떠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 새가 나한테 딱딱거리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그렇게 하면 자기가 이 집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소쩍새는 황혼녘이면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 새의 이름은 바로 그것의 울음소리에서 나왔다(그 새의 영어식 이름은 Whippoorwill인데 그 이름은 그 새가 '맞을래, 잘래 whip-or-will'라고 말하는 식으로 울어대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옮긴이). 사람들이 등불을 켜면 소쩍새들은 점점 더 인가 가까이로 다가오다가, 마침내 그 특유의 소리로 울어대면서 사람들더러 어서 잠자라고 채근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날 밤은 잠자리가 편안하고 좋은 꿈을 꾸게 된다고 하셨다. 부엉이는 밤에만 우는데 그 울음소리는 꼭 뭔가 못마땅한 게 있어서 투덜거리는 소리 같다. 부엉이의 입을 닥치게 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부엌문을 열어 놓고 거기다 싸리비를 눕혀 놓는 것뿐이다. 할머니는 부엉이가 울 적마다 번번이 이런 방법을 쓰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실패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조레는 낮에만 운다. 그리고 그 새는 늘, 조^63^레, 조^63^레, 하면서 울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헌데 만일 그 새가 당신 집 가까이에서 울면 당신은 여름 내내 잔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블루 제이(어치의 일종: 옮긴이)가 당신 집 근처에서 놀면 당신은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새는 나뭇가지 끝에서 광대처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재주넘기도 하며 또 괜시리 다른 새들을 집적거리기도 한다. 홍관조를 보면 돈이 생긴다. 그리고 소작인들은 산비둘기가 이듬해에 이사갈 곳을 알려준다고 믿고 있지만, 산사람들은 산비둘기가 울면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하여 그 새를 보내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문상비둘기는 밤 늦은 시간에 울며 인가 가까이에는 오지 않는다. 그 새는 산 뒤편 먼 곳에서 울며 그 소리는 울림이 길고 서글프게 들려 꼭 초상집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할아버지는 그 새가 실제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에서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를 위해 울어줄 사람도 없으면 그 새가 대신 기억해 주고 슬퍼해 준다. 할아버지는 만일 어떤 산사람들이 어주 먼 곳, 일테면 큰 바다 건너편 어딘가에서 죽는다 해도 문상비둘기는 꼭 그를 기억해 주고 슬퍼해 준다. 그 새는 그렇게 하여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 준다. 나 역시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아버지는 만일 네가 사랑하던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네가 그 뒤에도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문상 비둘기는 그 사람을 위해 슬피 울어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럴 때 문상비둘기가 운다면 그 새는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구슬프게 들리지도 않게 된다. 그 뒤 밤늦은 시간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늘 엄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럴 때 나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새들 역시 당신이 그들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 주위에 몰려들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산과 골짜기는 새들로 가득했다. 앵무새, 딱따구리, 티티새, 인디언헨, 종달새, 칩--윌즈, 로빈, 파랑새, 번새, 흰털발제비 등등. 이밖에도 무수히 많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봄, 여름에는 덫을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인간이 짝짓기를 하여 아기를 가지면서 동시에 적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며 이 점은 짐승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짐승들이 새끼를 뱄을 때 그걸 자꾸 잡아들이면 짐승들이 새끼들을 번식시킬 수가 없으므로 인간은 결국 굶어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봄, 여름에는 주고 물고기잡이에만 열중했다. 인디언들은 재미삼아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는 일은 없다. 먹기 위해서만 잡을 뿐. 할아버지는 세상에 재미삼아 무언가를 죽이러 돌아다니는 짓처럼 분별없는 짓은 다시 없다고 하시며, 그런식의 짓거리들은 한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몸이 근지러워 못 견디는 정치가들이 생각해 낸 짓거리들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계속 죽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천치 같은 자들은 자기네가 무분별하게 살생을 하고 있다는 죄의식 같은 건 눈꼽만큼도 없다, 네가 만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면 정치가들이 그런 노름이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 같다. 우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길이가 구십 센티미터 가량 되는 물고기 잡는 바구니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름이 좁혀져 뾰족한 모양이 되며 맨 끝에는 조그만 구멍 하나만 나 있다. 그래서 물고기가 그 바구니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게 되면 작은 놈들은 바구니 뒤편의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지만 큰 놈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된다. 할머니는 그 바구니 안에 고기들이 꾀게끔 옥수수 가루 반죽한 걸 동그랗게 뭉쳐 그 안에 넣어두셨다. 때로 우리는 미끼로 지렁이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놈들을 잡을 때는 흙 속에다 나무 말뚝을 두드려 박고 말뚝 맨 위를 판자 같은 것으로 비벼댄다. 그러면 그놈들이 땅 위로 기어나오게 된다. 우리는 그 바구니들을 '좁은 길' 곁의 냇물로 운반했다. 그리고 그 바구니들을 큰 나무에다 일렬횡대로 붙잡아 매서는 물 속에 집어넣은 뒤 다음날 가보면 바구니들 안에는 갖가지 물고기들이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바구니들 속에는 대체로 커다란 메기나 노어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내 바구니 속에 무지개 송어 한 마리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거북이도 잡았다. 그것들은 겨자 잎사귀를 넣고 요리를 하면 아주 맛이 좋았다. 나는 바구니들을 물 속에서 끌어내는 그 순간을 아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이 방법을 써서 물고기를 잡다가 나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내 오년 평생에 두번째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첫번째는 물론 위스키를 만들다가 세무 공무원들에게 잡힐 뻔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만일 내가 그들의 손에 잡혔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나를 읍내로 데려가서 목매달아 죽였으리라고 확신했다. 헌데 할아버지는 그들이 나처럼 어린애를 잡은 경우는 처음이었을 테니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헌데 그때의 경우에는 나만 위기를 겪었을 뿐, 할아버지는 그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쫓기지도 않았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나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 그때는 한낮이었고 이 시간은 손으로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태양이 계곡물 바로 위에 떠서 수면을 내리쏘으로 물고기들은 둑 밑으로 숨어 들어가 서늘한 물 속에서 낮잠을 즐기는 때인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둑 쪽으로 다가가 살그머니 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둑 가장자리에 난 고기구멍들을 찾곤 했다. 구멍을 찾으면 조심스럽게 구멍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어 본다. 한참 구멍 속을 더듬거리다 보면 물고기의 옆구리가 손에 만져진다. 내가 손으로 더듬거려도 물고기들은 대게 꼼짝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 뒤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꼬리를 잡아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낸다. 이런 요령을 제대로 익히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날, 할아버지는 벌써 메기 할 마리를 잡아 그걸 들고 둑 위로 올라가셨고 나는 아직 물고기 구멍을 찾지 못해 둑 가장자리를 헤매로 있을 때였다. 내가 물 속에 손을 넣고 연신 둑 가장자리를 더듬거리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건 메마른 마찰음으로, 처음에는 느린 템포로 진행되다가 점차 템포가 빨라져 갈갈하는 위협적인 소리로 변해갔다.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방울뱀(살무사과에 속하는 독뱀의 하나.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4 미터에 달한다: 옮긴이)이었다. 그놈은 내 얼굴에서 불과 십오 센티쯤 쩔어진 곳에서 나를 공격하기 위해 똬리를 튼 채 머리를 바짝 허공이 치켜들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놈의 몸집은 내 허벅지보다 굵었다. 나는 그놈의 메마른 피부가 연신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놈은 바짝 독이 올라 있었다. 나와 그놈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놈은 길다란 혀를 날름거렸는데 그 끝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정도였으며 그놈의 길게 째진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놈의 꼬리 끝의 흔들림이 점점 더 빨라져 그놈의 방울소리도 점점 더 높아졌다. 이윽고 커다란 브이V자 모양을 하고 있는 그놈의 대가리가 내 얼굴에서 공격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앞뒤로 가볍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놈이 드디어 나를 공격하려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뱀과 내가 대치하고 있는 지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날씨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라도 하듯 짐짓 낮고 심상한 어조로 속삭이셨다. "고개 돌리지 마라. 움직이지 마, 작은나무야. 눈도 깜박이지 마." 할아버지의 말씀이 없어도 이미 나는 눈도 깜박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방울뱀은 나를 공격하기 위해 머리를 점점 더 높이 치켜올렸다. 나는 이제 이놈의 공격을 멈출 방법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내 얼굴과 뱀 대가리 사이의 허공에 떨어져 정지했다. 그 손은 거기 머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놈의 방울소리는 더욱 높아졌으며 슛슛, 하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만일 할아버지가 당신의 손을 치운다면... 혹은 약간이라도 주춤한다면, 뱀은 바로 내 얼굴을 공격할 것이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손은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등에서 굵은 정맥들이 불끈불끈 솟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구리빛 손등에는 진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 손은 떨리지도 흔들거리지도 않았다. 방울뱀은 빠르고도 세차게 공격했다. 그놈은 탄환처럼 튀어올라 할아버지의 손을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놈이 할아버지의 손을 반 정도 덤썩 물었을 때 그놈의 독니들이 할아버지의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한 손으로 방울뱀의 머리 뒷부분을 움켜잡고 있는대로 힘을 주셨다. 그놈의 몸둥아리는 땅바닥에서 솟구쳐올라 할아버지의 팔을 칭칭 감았으며 방울소리를 내는 그놈의 꼬리는 할아버지의 머리, 얼굴을 마구 때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놈을 울켜쥔 손의 힘을 늦추지 않으셨다. 방울뱀은 할아버지의 손아귀 힘에 눌려 숨이 막혀 죽어갔다. 나는 그놈의 등뼈가 빠지직 하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할아버지는 그놈을 땅바닥에 내던지셨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긴 칼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그걸로 방울뱀이 문 자리의 살에다 대고 죽 그었다. 칼은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일시에 피가 솟구쳐올라 순식간에 그 손을 뒤덮고 팔 있는 데로 흘러내렸다. 나는 할아버지한테로 기어갔다^5,5,5^. 나는 온몸의 맥이 빠져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사력을 다해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칼로 베어낸 자리에서 솟아나는 피를 빨아 연신 바닥에 뱉어내셨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씩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입 가장자리와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망할놈의 뱀 같으니라구! 우리는 그 개쌍놈의 새끼한테 본때를 보여준 거다. 안 그러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약간 마음이 놓이는 기분을 느끼며 얼른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할아버지. 우린 그 개쌍놈의 새끼한테 본때를 보여준 거예요."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본때를 부여주는 장면이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손은 점점 더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푸르딩딩한 빛으로 변해갔다. 할아버지는 긴 칼로 뱀한테 물린 팔쪽의 사슴가죽으로 된 소매를 죽 갈랐다. 그 팔은 다른쪽 팔의 배나 될 만큼 부어올랐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고 그걸로 당신의 얼굴을 활활 부치셨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염병하게 더워." 이런 말씀을 하시며 할아버지는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셨다. 이젠 할아버지의 팔까지 청동색으로 변해갔다. "할머니한테 가야겠어요." 나는 그 말만 하고는 번떡 일어섰다. 할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셨는데 그 눈빛은 초점이 없이 가물가물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뒤따라 가마." 할아버지는 낮게 웅얼대듯 말씀하셨다. 나는 '좁은 길'을 달려내려갔다. 나는 거의 지면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미친듯이 뛰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이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골자기 길을 들어섰을 무렵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바닥에 고꾸라져 길 옆으로 구르기도 했고 실개천 속에도 몇번이나 처박혔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다시 기어올라가 찔레밭과 관목숲을 뚫고서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죽어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우리 오두막이 있는 빈 터까지 달려갔을 때 우리 오두막은 내 시야 속에서 핑글핑글 돌아갔다. 나는 할머니를 소리쳐 부르려고 했지만^5,5,5^ 내 목구멍에서는 도무지 소리가 튀어나오질 않았다. 나는 단숨에 부엌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그대로 할머니의 품속에 안겼다. 할머니는 나를 안은 채 내 얼굴에다 찬물을 끼얹어 주셨다. "무슨 일이냐, 어디서 무슨 일이?" 나는 헐떡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죽어가요^5,5,5^ 방울뱀이 ^5,5,5^ 계곡물 둑 위에서." 할머니는 그대로 나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리셨다. 바닥에 부딪치는 타격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약간의 힘조차 빠져나가 버려 나는 마룻바닥 위에 쭉 뻗고 말았다. 할머니는 자루 하나를 움켜쥐고는 바로 뛰어나가셨다. 이제 나는 바닥에 누운 채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치마며 머리댕기가 뒤로 날리는 모습을. 그리고 가죽장화를 신은 할머니의 조그만 발이 지면 위로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할머니도 뛰실 수가 있구나! 할머니는 "오, 세상에!" 그 한마디만 남기고 곧바로 달려가셨다. 할머니는 머뭇거리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나는 두 팔로 바닥을 짚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할머니의 뒤꼭지에다 대고 소리쳤아. "할아버지를 꼭 살려내야 돼요!" 할머니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도 늦추시지 않고 빈 터를 벗어나 바로 산길로 달려올라가셨다. 나는 다시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할머니, 꼭 할아버지를 할려내야 해요!" 그 소리는 골짜기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나는 할머니가 틀림없이 할아버지를 살려내리라 믿었다. 내가 개들을 풀어놓아 주자 개들은 요란하게 짖어대며 할머니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죽을 힘을 다해 개들의 뒤를 쫓아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길게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받쳐주고 계셨고 개들은 그들의 주위를 돌며 낑낑거렸다. 할아버지의 눈은 감겨 있었고 뱀에게 물린 쪽 팔은 완전히 검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는 다시 할아버지의 손을 칼로 베어 거기서 연신 나오는 피를 빨아 바닥에 뱉으셨다. 내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할머니는 자작나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저 나무 껍질 좀 벗겨 오렴." 나는 할아버지의 긴 칼을 움켜쥐고 가서 그 나무의 껍질을 벗겨왔다. 그것은 종이처럼 불이 잘 붙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나무껍질을 이용해서 불을 일으켜 보닥불을 피웠다. 할머니는 깡통을 들고 냇물로 내려가 물을 길어오셨다. 그런 다음 그것을 불 위에 걸어놓고 거기다 식물들의 뿌리와 씨앗을 집어 넣으셨다. 그리고 자루에서 식물의 이파리들을 꺼내셨다.나는 그것이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말씀해 주셔서 그것이 로벨리아며 할아버지가 그걸 드시면 숨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그러나 아주 힘겹게 숨을 몰아쉬셨다. 깡통 속의 물이 끓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돌아보셨다. 나도 따라서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5,5,5^. 그러다 나는 오십 미터쯤 떨어진 산자락 밑에서 메추라기 한 마리가 둥우리 속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당신이 입고 계시던 풍덩한 치마끈을 풀었다. 그러자 그것은 땅바닥 위로 흘러내렸다. 할머니는 속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다리는 소녀의 그것처럼 미끈했으며 구리빛 피부로 덮인 길다란 다리 근육은 탄력으로 넘쳤다. 할머니는 치마 속에 돌멩이들을 넣고 치마 양 귀를 합쳐서 묶으셨다. 그리고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날렵하게 메추라기 둥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 메추라기가 막 둥우리를 박차고 뛰어오르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는 돌들이 담긴 치마를 메추라기에게로 날렸다. 할머니는 돌에 얻어맞고 쓰러진 메추라기를 집어들고 되돌아오셨다. 그리고는 그것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안 가슴으로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칼로 길게 가른 뒤에 그것을 할아버지의 뱀에 물린 상처부위 위에 대로 마구 발버둥치게 하셨다. 할머니는 한동안 메추라기가 난리치도록 내버려두셨다. 이윽고 할머니가 그것을 상처에서 떼어내자 그 메추라기의 뱃속 전체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방울뱀의 독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날이 어두워지도록까지 할아버지의 치료에 매달리셨다. 개들은 우리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어둠이 잦아내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할아버지를 따뜻하게 핻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더러 불을 피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치마를 벗어서 할아버지를 덮어드렸다. 나도 내 사슴가죽 웃도리를 벗어서 할아버지를 덜어드리고 바지까지 벗으려 했지만 할머니가 그걸로는 할아버지의 다리 하나도 덮을 수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모닥불에 나무를 집어넣었다. 헌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머리 곁에도 불을 피우라고 하셔서 나는 두 군데의 모닥불을 관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누우셔서 할아버지의 몸에 꼭 달라붙으셨다. 할머니 몸의 열이 할아버지의 몸을 덮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시면서^5,5,5^ 그래서 나도 할머니 반대 쪽의 할아버지 곁에 누워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나 내 몸이 작아 할아버지의 몸을 덮게 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나는 할머니께 방울뱀이 나타난 얘기부터 시작해서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가 방울뱀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탓으로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또 심지어 방울뱀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마음이 좀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죄책감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소년이 되어 산악지대를 뛰어다니시면서 그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주무시면서 먼 옛날의 일들을 회상하시기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셨다. 중간중간 쉬는 경우를 빼놓고는. 그리고 새벽이 되기 직전에야 입을 다무셨으며 마침내 보다 더 편하게, 그리고 고르게 숨을 쉬시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 같은 것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무사하실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겨드랑이 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나는 해뜰 무렵^5,5,5^ 그러니까 아침의 첫 해가 막 산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쯤 되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벌떡 몸을 일으키시더니 먼저 나를 내려다보시고는 다시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할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보니비, 나는 요새 당신이 옷을 홀랑벗고 내 곁에서 새우잠을 자주지 않으면 어디에서고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 말씀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뺨을 찰싹 때리시고는 배를 잡고 웃으셨다. 할머니도 일어나셔서 치마를 입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사하시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그 방울뱀의 껍질을 벗겨내신 뒤에야 귀가길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그 가죽으로 내 혁대를 만들어 주실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개들을 앞세우고 '좁은 길'을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다리가 떨리시는지 할머니에게 몸을 기댄 채 걸어가셨다. 나는 두 분의 뒤를 따라갔다. 이 산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로 이 순간처럼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후 나랑 뱀 사이에 당신의 손을 들이민 일을 한 번도 입에 올리신 적이 없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 말고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퍼렁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ff @[ 개간지 농장 그날 계곡의 실개천 옆에서 할아버지 곁에 누워 밤을 지내면서 나는 할아버지도 한때 소년이었던 적이 있으셨다는 걸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헌데 그건 사실이었다. 그날 밤 내내 할아버지는 다시 소년이 되어 과거 속에서 헤매셨다. 1867 년에 할아버지는 아홉 살 난 소년이었다. 그 무렵 할아버지는 매일 산속을 돌아다녔다. 할아버지의 어머니인 붉은 날개는 순수한 체로키 혈통을 타고난 분이셔서 할아버지를 다른 체로키 소년들과 똑같이 키우셨으며 이것은 할아버지가 마음대로 산을 헤매고 다녀도 좋다는 걸 뜻했다. 당시(남북전쟁이 끝난 지 이 년 쯤 지났다: 옮긴이) 이 나라 전체는 이미 연방군(남북전쟁 당시의 북군을 말함: 옮긴이)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으며 또 정치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헌데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과거에 패배한 편(남군: 옮긴이)에 서서 싸우셨으므로 자연히 사방에 적을 갖게 되셨다^5,5,5^. 그래서 감히 산악지대 밖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그러니 읍내로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으레 할아버지가 가야만 했다. 인디언 소년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그날도 그 인디언 소년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작은 계곡을 발견했다. 그것은 높은 산들 사이로 깊숙이 자리잡은 계곡이었으며 그곳에는 잡초와 덤불이 무성했고 여러 가지 덩굴식물이 마구 뒤엉켜 자라고 있었다. 그 골짜기에서는 근래에 누가 농사를 지은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들이 말끔히 베어진 것으로 보아 한때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듯했다. 산으로 가로막힌 그 골짜기 맨 안쪽에는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헌데 그 집 현관은 지붕이 거의 아래로 내려앉았고 굴뚝은 반나마 무너져내려 소년은 한동안 그 집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헌데 어느날 그는 그 집 부근에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 집에서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산에서 내려와 살그머니 그 집 가까이로 접근한 뒤 덤불 속에 몸을 감춘 채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몇 안 되었다. 대부분의 백인들은 닭이나 젖소, 밭갈이용 노새 등을 키웠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것들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낡은 헛간 곁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망가진 농기구들 몇 개만 눈에 뜨일 뿐.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그 집 분위기와 적잖이 닮아 있었다. 소년이 보기에 그 집 여자는 탈진상태에 빠져 기운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여자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딸의 안색은 엄마보다 더 형편없었고 나이답지 않게 겉늙어 보였다. 그리고 그 딸들은 옷차림이 꾀죄죄했고 밧줄같이 성긴 머리에 다리는 꼬챙이처럼 가늘었다. 그 집 헛간에는 늙은 흑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머리 가장자리에만 흰 머리털이 조금 남아 있는 대머리였다. 소년은 그가 발을 질질 끌면서 간신히 걸어다니고 또 허리가 잔뜩 굽은 걸로 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소년은 그곳을 막 떠나려고 하다가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낡은 회색 군복을 입은 키 큰 사내였으며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잘려나간 다리 부위 끝에 붙잡아맨 히코리 나무로 된 목발로 땅을 찍으며 집 밖으로 나왔다. 그 외다리 사내와 여자는 헛간으로 걸어가 가죽으로 된 끌채를 자기네 어깨에다 잡아맸다. 소년은 그들이 그러고서 집 앞의 들로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그들이 무얼 하려는지 어렴풋이나마 집작이 갔다. 늙은 흑인은 그들의 끌채와 연결된 쟁기 자루를 붙잡고 비틀거리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집 앞에 이른 뒤 이윽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늙은 흑인은 그 뒤를 따라가며 쟁기자루를 제대로 조종하려고 애썼다. 소년은 그들이 노새처럼 쟁기를 끌려고 하는 걸 보고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한 번에 불과 몇 걸음씩밖에 전진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쟁기를 끌었다. 그들은 멈추었다간 다시 출발하곤 했다. 그들의 쟁기질 솜씨는 형편없었다. 늙은 흑인이 쟁기 자루를 지나치게 앞으로 숙일 경우에는 쟁기 날이 땅 속 깊이 박혀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면 그들은 할 수 없이 뒤로 후퇴해 주어야 했고 늙은 흑인은 땅 속에 박힌 쟁기 날을 힘껏 뒤로 잡아 뽑았다. 그렇게 해서 쟁기가 바닥에 쓰러지면 늙은 흑인은 그것을 바로 세워 다시 쟁기질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면서 쟁기질을 해도 갈아엎어지는 땅의 깊이가 너무나 얕아 거기다 뭘 심어 봤자 제대로 자랄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소년은 그날 저녁 이슥한 시간이 되어서야 그곳을 떠났는데 그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쟁기질을 계속했다. 소년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돌아왔다. 그가 전날 앉아서 지켜봤던 은신처에 자리잡고 보니 그들은 벌써 들에 나와 일하고 있었다. 무성한 잡초 사이로 얼핏 보기에도 그들이 갈아엎은 땅의 면적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침 쟁기날이 식물의 뿌리에 걸려 늙은 흑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한동안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겨우 일어섰다. 바로 그때 소년은 연방군들을 보았다. 소년은 양치식물로 이루어진 덤불 속으로 들어가 숨은채 그들을 지켜봤다. 소년은 이제 겨우 아홉 살이었지만, 자신이 인디언답게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얼마든지 그들 사이를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순찰 나온 연방 군일들은 열두 명쯤 되었으며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양쪽 팔 소매 윗부분에 몇 개의 노란 줄이 나 있는 군복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그 기마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소나무 숲 있는데 이르러 뒤돌아선 뒤, 이 기이한 쟁기질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지켜보다가는 이윽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소년은 골짜기 시냇가로 가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저녁 늦게서야 물고기들을 들고 은신처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쳐서 허덕이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흡사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소년의 매처럼 날카로운 눈은 소나무 숲속에서 노란 빛을 포착했다. 소나무 숲에 있는 사람은 바로 연방군 순찰대 대장이었다. 그는 혼자 와서 쟁기질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살그머니 은신처에서 물러나 집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그날 밤 소년은 곰곰이 생각을 하던 끝에 그 노란 줄무늬 군복을 입은 연방군인이 비열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그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연방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은 자신의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다시 은신처에 숨어들었다. 헌데 그는 좀 수줍은 성격이라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단 차분히 관망하면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들은 들에 나와 다시 쟁기질을 시작했다. 이윽고 소년은 그들이 일하는 들판으로 뛰어나가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리쳐 알리고는 그냥 달아나자고 결심했다. 헌데 소년의 그런 결심은 한발 늦었다. 노란 줄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벌써 와 있었던 것이다. 말 위에 탄 그는 쟁기질하는 사람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아무도 타지 않은 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소년이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건 말이 아니라 노새였다. 헌데 그건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몰골 사나워 보이는 노새였다. 엉덩이뼈와 갈빗대가 앙상하게 불거져 나왔으며 삐쩍 마른 얼굴 위로 두 귀가 축 늘어진. 하지만 어쨌든 노새는 노새였다. 이윽고 그 군인대장은 늙은 노새를 앞으로 몰고 숲 가장자리까지 나와 늙은 노새에게 채찍을 갈겼다. 그러자 노새는 들판으로 튀어나갔다. 그런 다음 군인대장은 다시 숲속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노새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 집 여자였다. 그녀는 끌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노새를 멀거니 쳐다봤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소리쳤다. "오 주여, 전능하신 주여! 노새야. 주님이 우리한테 노새를 보내주셨어!" 그녀는 끌채를 벗어 던지더니 노새를 쫓아 덤불을 뚫고 달려갔다. 그 늙은 흑인 역시 쟁기자루를 내던지고 달려가다 바닥에 고꾸라졌다. 노새는 곧바로 소년이 숨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것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소년은 벌떡 일어서서 두 팔을 벌려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노새는 뒤로 돌아 들판으로 달려가다가 모로 꺾어져 군인이 있는 숲 쪽으로 내달았다. 그 군인은 숲속에서 말을 달려 노새가 나아갈 길을 가로막았다. 군인에게 겁을 먹은 노새는 다시 들판으로 되돌아갔다. 여자와 늙은 흑인은 노새에게만 정신이 팔려 그 군인도, 소년도 발견하지 못했다. 외다리 사내도 히코리 나무 목발로 땅을 찍으며 달려보려고 했지만 몇 걸음 가다가 넘어지고 또 일어서서 달리다 넘어지곤 했다. 그의 두 딸들은 찔레덤불을 헤치고 달리면서 노새를 가로막으려고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 늙은 노새는 얼이 빠져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려고 했다. 헌데 그 집 여자가 재빨리 노새의 꼬리를 움켜잡았다. 노새는 그녀를 매단 채 냅다 달렸지만 그녀는 꼬리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노새가 그녀를 질질 끌고 덤불 속을 뚫고 달려가는 바람에 그녀의 옷은 사정없이 갈갈이 찢어졌다. 바로 그때 늙은 흑인이 노새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노새는 그를 떨치기 위해 마구 목을 흔들어댔지만 그는 사생결단하고 목만 잡고 늘어졌다. 결국 노새는 포기하고 달리기를 멈추었다. 외다리 사내와 두 딸도 노새 곁으로 달려왔다. 외다리 사내는 노새의 목에 고삐를 잡아맸다. 그들 모두는 그 늙은 노새를 빙 둘러싼 채 걸어갔다. 그것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좋은 노새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두드려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소년은 그 늙은 노새도 아주 흡족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들은 들판 한가운데서 노새를 가운데 두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떨군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그들이 노새를 쟁기에 비끄러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일이 끝나자 맨 첫 사람이 노새 뒤를 따라가며 쟁기질을 했고 곧 다음 사람이 그 일을 이어받았다. 그 집의 두 딸도 한 차례씩 쟁기질을 해봤다. 소년은 숲속에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군인을 시종 유심히 살펴봤다. 그 뒤로도 소년은 매일 한 번씩은 꼭 그 골짜기로 나가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오곤 했다. 그들의 쟁기질이 얼마나 진척되었나 보고 싶어 가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흘쯤 지났을 때 그들은 그 들판의 사 분의 일 가량을 갈아엎었다.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 소년은 그 군인대장이 들판 한쪽 끝에 하얀 자루 하나를 떨어뜨리는 걸 목격했다. 외다리 사내도 그를 보았다. 외다리 사내는 손을 반쯤만 들어올려 자신없이 흔들었다. 마치 그래도 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어 하는 사람처럼. 군인대장도 비슷한 동작을 하고는 말을 달려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자루 안에는 씨앗용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년이 그 골짜기로 가보니 군인대장이 말에서 내린 채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외다리 사내와 늙은 흑인하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ㄷ. 소년은 그들의 얘기를 엿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 후 그 군인대장이 직접 쟁기질하는 일에 나섰다. 그는 노새의 목에 가죽끈을 단단히 묶은 다음 거기다 고삐를 연결했다. 그의 그러는 모습만 보고도 소년은 그가 쟁기질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걸 담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쟁기질 하다 말고 이따금 한번씩 노새를 멈추게 하고는 허리를 구부려 막 갈아엎어진 흙 한줌을 집어 그 냄새를 맡아보곤 했다. 심지어 그는 가끔씩 흙을 입에 집어넣어 맛을 보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육군상사로서 군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일리노이 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다. 그는 통상 해가 진 뒤에야 쟁기질을 하러 이곳으로 나타났다. 그때에야 겨우 부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의 매일 나타나 쟁기질을 하곤 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비쩍 마른 군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 병사는 군대에 들어올 나이도 채 안 되어 보일 정도로 아주 앳된 인상이었다. 그는 그후부터 매일 저녁 상사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올 때마다 조그만 나무들을 갖고 왔다. 그건 사과나무들이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들녘 한끝에서부터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구덩이를 판 다음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흙을 잘 덮어 가볍게 꾹꾹 눌러주고 불필요한 가지를 쳐주었으며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주위에 버팀목을 대주었다. 그런 다음엔 으레 뒤로 물러서서는 그것이 생전 처음보는 사과나무이기라도 하듯이 요모조모로 뜯어보곤 했다. 그 집의 두 딸들도 그를 도왔다. 그리하여 한 달 만에 그는 사과나무로 그 들판을 완전히 한 겹 빙 둘러쌌다. 알고 보니 그는 뉴욕 주 출신으로 과수원 일을 하다 군대에 징집된 젊은이였다. 그가 자신이 가져온 사과나무를 다 심었을 즈음 나머지 사람들은 그 골짜기 전체를 옥수수밭으로 만들었다. 어느날 해진 뒤쯤 해서 소년은 그 집 현관에다가 열 마리 가량의 메기를 놓고 왔다. 다음날 저녁 그들은 그 메기를 요리에서 마당에 있는 나무 아래에 식탁을 내놓고는 거기서 그것들을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상사나 그 집 여자는 가끔 한번씩 몸을 일으켜 산쪽에다 대고 연신 손짓을 하곤 했다.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뜻으로. 그들은 어떤 인디언이 메기를 놓고 갔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소년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무작정 산쪽에다 대고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디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위의 나무들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식별해 낼 줄을 몰랐다. 소년은 그들에게 가지는 않고 몇 마리의 물고기만 남겨두고 가버렸다. 소년은 다시 또 현관으로 다가갔다가는 그들에게 들킬 것 같아서 두번째부터는 늘 그 집 마당 근처의 나뭇가지에다 물고기들을 걸어놓고 도망치곤 했다. 소년이 그들에게 물고기를 남겨 두고 오곤 했던 건 그들이 인디언이 아니어서 고기잡을 줄을 몰랐으므로 자칫하다가는 옥수수가 익기전에 굶어죽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 연방군인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비록 옥수수를 재배하는 일에는 참여할 수 없고 쟁기질 같은 것도 잘 할 줄 모르지만 말이다. 그 비쩍 마른 병사와 어린 처녀들은 매일 저녁 황혼녘만 되면 양동이를 들고 샘과 사과밭 사이를 오락가락하곤 했다. 그들은 모든 사과나무에 골고루 물을 주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옥수수를 솎아 주고 괭이로 옥수수밭의 김을 맸다. 소년은 그 연방군 상사가 쟁기질뿐만 아니라 괭이질도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옥수수는 순조롭게 자라 짙푸른 색깔을 띠었다. 그것은 옥수수 수확철을 기대해도 좋다는 걸 뜻했다. 사과나무에서도 연초록 이파리들이 돋아났다. 이윽고 여름이 찾아왔다. 날은 길어지고 어둠은 더디게 찾아왔다. 그 덕에 상사와 병사는 두세 시간씩이나 일하고는 다시 부대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어스름녘이 되어 기온이 선선해지고 소쩍새들이 울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들은 모두 앞마당에 서서 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럴 때면 으레 상사는 파이프를 뻐끔거렸고 두 어린 처녀들은 그 깡마른 병사에게 찰싹 달라붙곤 했다. 병사는 사과나무 주위의 풀을 긁어내고 흙을 다둑거려 줄 때 괭이 대신 손을 썼으므로 그의 양손은 늘 흙투성이였다. 상사는 늘 진한 애정이 배인 끈끈한 눈길로 그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좋은 땅이야." 외다리 사내도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렇구 말구요. 정말 좋은 땅이지요." 그러면 늙은 흑인도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내 평생 이렇게 옥수수가 잘 되는 건 처음 봅니다요." 헌데 그는 매일 저녁마다 이 소리를 반복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번번이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지만 그들은 매번 그저 멀거니 서서 이런 경이로운 장관은 처음 본다는 듯이 입을 헤벌리고 들을 내려다볼 뿐이었고^5,5,5^ 매일 저녁마다 늘 똑같은 감탄사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깡마른 병사 역시 늘 하는 말이 있었으니, "일년만 기다려요^5,5,5^. 그러면 사과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겁니다^5,5,5^. 꽅이 피면 그런 장관이 없어요"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그런 말을 하면 처녀들은 괜시리 킬킬거리며 웃었으며, 그럴때면 그녀들의 겉늙은 모습도 사라지곤 했다. 상사는 파이프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년에는 저기 산 밑의 조그만 덤불숲을 개간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면 옥수수밭 삼사 에이커(1에이커는 4,046제곱미터: 옮긴이)는 나올 겁니다" 소년은 그 작은 골짜기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점차 그곳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 단속반원들이 그곳에 찾아 왔다. 그들은 태양이 아직 높이 솟아 있는 저녁 나절에 열두 명이 무리를 이루어 나타났다. 하나같이 요란한 제복 차림에 총기를 휴대한 그들은 새로 제정된 법을 통과시키고 세금을 인상시킨 정치가들의 하수인들이었다. 그 집 마당으로 올라온 그들은 마당에다 붉은 깃발이 달린 깃대 하나를 꽂았다. 소년은 그 붉은 깃발이 무얼 의미하는가를 알고 있었다. 읍내 근처에서 그걸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정치가가 그 땅을 원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들은 탐나는 땅이 있으면 그것을 빼앗기에 앞서서 미리 그 땅에 대해 주인이 갚기 어려울 정도로 호된 세금을 부과한다.그렇게 해놓고는 그 세금을 물지 못하면 그 붉은 깃발을 꽂았으며 이는 그 땅이 접수되었다는 걸 뜻했다. 외다리 사내, 여자, 늙은 흑인, 그리고 두 딸들은 들에서 일하다가 단속반원들을 발견하고는 모두들 손에 괭이를 든 채로 들에서 뛰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집 앞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소년은 외다리 사내가 괭이를 집어던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그는 심하게 절룩거리며 튀어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낡은 구식 보병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걸로 단속반원들을 겨냥했다. 바로 그때 연방군 상사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깡마른 병사도 없이 혼자였다. 상사는 말에서 내려 단속반원들과 외다리 사내 사이에 뛰어들었다. 헌데 그 순간 단속반원 하나가 총을 쏘았다. 상사는 놀라움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과 함께 비척거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는 모자가 벗겨지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외다리 사내도 자신의 구식 보병총을 쏘아서 단속반원 하나를 쓰러트렸다. 그러자 단속반원들의 총구는 일제히 불을 뿜었다. 무수한 총탄의 표적이 된 외다리 사내는 맥없이 허물어져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여자와 딸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를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소년은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목이 힘없이 꺾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늙은 흑인이 괭이를 허공에 치켜들고 단속반원들에게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에게도 두세 차례 총을 쏘았다. 그는 자신의 괭이 자루 위로 쓰러졌다. 이윽고 단속반원들은 그곳을 떠났다. 소년은 그들이 목격자가 없나 확인해 보기 위해 주위를 포위하고 뒤질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소년은 아버지께도 그 일에 관해 말슴드렸으며 그 일로 큰 말썽이 날거라고 예상했다. 헌데 아무런 말썽도 일지 않았다. 나중에 소년은 그 일이 어떻게 해서 유야무야 되었는가를 읍내에 가보고 알게 되었다. 그곳의 정치가들은 그 사건이 폭동과 비슷했다는 식으로 선전을 해댔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반란으로 발전할지도 모르니 그 문제를 처리하고 더 많은 돈을 걷기 위해 선거를 다시 해야한다면서 일을 다른 방향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사람들은 정치가들의 말만 믿고 흥분하여 정치가들더러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일을 밀고 나가라고 했다. 덕분에 정치가들은 자기네 뜻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었다. 한 부자가 그 골짜기를 인수했다. 그 집 여자와 딸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소년도 결코 알지 못했다. 그 부자는 소작인들에게 그 땅의 경작을 맡겼다. 그리고 그곳의 토질과 기후가 사과농사에 적당치 않아 사과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 사과밭들을 갈아엎어 버렸다. 뉴욕 출신의 한 병사가 부대를 탈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그를 폭동이 일어난 현장에 파견되자 무서워 달아난 겁쟁이라고들 했다. 정치가들은 그 상사의 시신과 유품을 관 속에 집어넣어 일리노이로 보내버리게 했다. 사람들은 상사의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반듯이 펴려고 하다가 상사가 한 손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그 주먹을 펴보려고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연장의 도움을 얻어 겨우 그 손을 펼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헌데 거기서는 그들이 기대하던 귀중품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한 줌의 검은 흙뿐. @ff @[ 산 위에서의 하룻밤 할아버지와 나는 매사를 인디언의 방식으로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사람들은 나의 이런 면에 대해 고지식하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낱말들"에 관해 말씀하실 때 이 말뜻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좀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너더러 "고지식하다"고 하면 그건 좋은 뜻이기 때문에 신경쓸 거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러한 고지식함에 힘입어 항시 내가 뜻한 바를 성취하게 될 것이며^5,5,5^ 고지식함은 바로 그런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대도시 사내들이 우리 산을 방문했을 때처럼. 할아버지는 반쯤은 스코틀랜드 인이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늘 인디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계셨다. 저 위대한 붉은 독수리, 빌 웨더포드, 엠퍼러 맥길버리, 매킨토시 같은 인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은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을 정복하거나 악용하려들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그런 생각을 소중하게 여겼으며 그런 마음은 점점 더 자라나 자신들을 전혀 백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인디언들은 백인과 거래를 하려고 할 때면 우선 자기네가 가져온 물건을 백인들의 발 밑에다 내려놓는다, 그런데 백인들이 가져온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자기 물건을 집어들고 그냥 가버린다고 하셨다. 헌데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인들은 그런 행동을 일러 "인디언 식 증요"라고 하곤 하는데 이는 주었다가 도로 가져가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인디언들이 정말로 선물을 줄 때는 요란떨지 않고 조용히 와서 물건을 찾기 쉬운 곳에 놓고는 그냥 말 없이 가버린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인디언들의 인사법은 자신의 양손을 들어올려 활짝 펼쳐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평화"의 제스처라고 말씀하시면서 백인들에게는 그게 아주 우스꽝스러운 행동처럼 보일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아주 이치에 맞는 인사법이라고 하셨다. 헌데 백인들은 아주 사이가 나쁜 경우를 빼놓고는 대체로 상대편과 인사하기 위해 악수를 나누는데, 이는 친구라고 주장하는 상대의 옷소매에서 무기를 빠져나오게 하려는 짓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백인들의 이러한 인사법을 별로 좋게 보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입으로는 서로 친구라고 주장하면서 인사할 때마다 상대의 소매를 흔들어 무기를 빠져나오게 하려는 행동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이것은 상대의 말을 완전히 불신하는 데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만나면 "하우 How!"라고 하면서 인사해 놓고는 인디언들을 비웃곤 하는데 이것은 이백 년 이상이나 계속된 관행이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디언이 백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이런저런 인사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일테면 (하우 알 유 필링?- 기분이 어떻소?) (하우 알 유어 피플?- 당신네 부족은 두루 안녕하시오?) (하우 알 유 게팅 얼롱?-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하우 이즈 더 게임 훼어 유 컴 프롬?- 당신네 사는 데는 사냥감이 많소?) 등등. 할아버지는 그 때문에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어는 (하우)라고 믿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백인과 만나게 되면 으레 그자가 하우, 하우, 하기만 하리라 짐작하고는 그저 정중한 태도를 갖춘 채 그 빌어먹을 놈이 실컷 하우, 하우, 하우, 하게 내버려둔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말없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인디언을 비웃는 놈들은 예의바르고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인디언을 비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한번은 우리가 우리 제품들을 넘겨주려고 네거리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젠킨스 씨가, 대도시 사람 둘이 이곳에 와 있다며, 그들은 채터누가에서 길다란 검은 자가용을 타고 왔으며 할아버지와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모자 챙 밑으로 젠킨스 씨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세무서원들이오?" "아뇨, 그 사람들은 법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위스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랍니다. 당신이 만든 위스키 맛이 아주 좋다는 소문을 듣고 왔답디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커다란 증류기를 들여놓았으면 해요. 그래야 자기네들이 당신의 위스키를 갖고 돈을 벌테니까."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갖다드릴 커피와 설탕을 조금씩 사셨다. 나는 나뭇단을 날라다 드리고 젠킨스 씨한테서 묵은 사탕 하나를 받았다. 젠킨스 씨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듣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식의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가 곧 돌아올 거라고 했습니다." 젠킨스 씨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치즈도 좀 사셔따. 그 바람에 나는 아주 기뻤다. 치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 가게에서 나온 우리는 그 근처를 돌아다니지도 않고 곧바로 산길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아주 부지런히 걸음을 놀리시는 바람에 나는 산딸기를 딸 여유가 없어 묵은 사탕만 빨며 열심히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우리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대도시에서 온 사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는 내게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너는 여기 남아 있거라. 난 지금 증류기 있는 데로 가서 나뭇가지들을 좁더 얹어놓을 건데 혹시 그자들이 오걸랑은 나한테 와서 알리거라." 할아버지는 바로 나가셔서 산길로 올라가셨다. 나는 현관 앞으로 나가서 대도시 사내들이 오나 망을 보았다. 할아버지가 산길로 자취를 감추시자마자 멀리서 그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나는 할머니한테로 뛰어가서 그 사실을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얼른 개 통로 있는 데로 가서 서셨다. 우리는 그들이 산길을 올라와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정치가들처럼 아래위로 쪽 뽑아입었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사내는 연보랏빛 양복에 하얀 넥타이를 맸으며 깡마른 사내는 하얀 양복에 윤나는 검은 셔츠를 받쳐입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대도시 사람들이 즐겨 쓰는, 질좋은 밀짚으로 만든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계단도 밟지 않고 성큼 뛰어올라 현관 있는 데로 들어왔다. 덩치가 큰 사내는 땀투성이였다. 그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이 집 영감님을 좀 만나고 싶소." 나는 그가 어딘가가 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숨결이 몹시 거칠고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두덩이와 뺨의 살이 너무 부풀어올라 그의 두 눈은 길게 째져 보였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덩치가 큰 사내는 고개를 돌려 깡마른 사내를 쳐다봤다. "슬리크, 이 할망구는 영어 할 줄 모르는 모양이야." 슬리크 씨는 공연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는 째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망구를 족쳐 봐. 나는 어쩐지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 청크. 산속에 너무 깊이 들어박힌 게. 그만 가지." 슬리크 씨는 콧수염을 좀 기르고 있었다. "닥쳐." 청크 씨는 소리질렀다. 청크 씨가 그의 모자를 뒤로 제치자 터럭 하나 없는 알대머리가 보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이놈은 좀 종자가 좋아 보이는데. 어쩌면 영어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이 꼬마야, 너 영어 할 줄 아니?" 나는 대답했다. "알아요." 청크 씨는 슬리크 씨를 쳐다봤다. "들었지? ^5,5,5^ 할 줄 안다는구만." 그들은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고 웃었다. 나는 할머니가 슬그머니 뒤로 나가 퍼렁이를 내다보시는 걸 봤다. 퍼렁이는 골짜기를 타고 뛰어올라갔다. 청크 씨가 말했다. "꼬마야, 네 아빠 어디 갔니?" 나는 그에게, 나는 아빠를 기억하지도 못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기서 산다고 이야기해 줬다. 청크 씨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궁금해 하길래 나는 몸을 돌려 산길 쪽을 가리켰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일 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꼬마야, 우리를 네 할아버지 있는 데로 안내해 다우. 할아버지만 만나게 해주면 이 돈은 네 거다." 그는 손가락에 큼직한 반지를 몇 개나 끼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부자라서 일 달러쯤은 아무 데서나 쉽게 뿌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받아 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나는 재빨리 계산을 했다. 설사 할아버지와 길이 엇갈려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전에 그 기독교인에게 사기당한 오십 센트를 이 사람들에게서라도 돌려받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헌데 얼마쯤 걸어가다 생각하니 그들을 증류기 있는데로 인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산등성이 길로 끌고 갔다. 산등성이 길로 올라가면서 나는 좋지 않은 짓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다 에라, 될대로 되라 하는 기분으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청크 씨와 글리크 씨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들은 양복 웃저고리를 벗어들고 내 뒤를 따라왔다. 두 사람 모두 허리에 권총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다. 슬리크 씨가 물었다. "꼬마야, 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도통 없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전혀 기억나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슬리크 씨가 말했다. "그래서 네가 후레자식이 된 거로구나, 안 그러냐 꼬마야?" 나는 요즘 사전에 나오는 순서대로 낱말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직 후레자식이란 말이 나오는 부분까지 나가지 못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둘 다 배꼽을 잡고 웃었는데 너무 웃는 바람에 나중에는 재채기까지 해댔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들은 아주 유쾌해 보였다. 청크 씨가 말했다. "아무튼 이것들은 다 짐승이나 매한가지라구."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우리 산에는 짐승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5,5,5^ 살쾡이며 멧돼지 등등.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흑곰도 한번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슬리크 씨는, 그럼 근래에 곰을 본 적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요즘에는 본 적이 없지만 곰이 지나간 흔적은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길가의 포플러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나무에 곰이 발톱으로 할퀸 자국이 있어요." 그 말에 청크 씨는 마치 뱀이 덤벼들기라도 하듯 기겁을 하며 길가로 비켜났다. 헌데 그는 옆으로 몸을 피한다고 하다가 그만 슬리크 씨랑 충돌을 했고 그의 육중한 몸과 부딪친 슬리크 씨는 보기좋게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슬리크 씨는 몹시 화를 냈다. "이런 염병할, 하마터면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했잖아... 그렇게 됐다면 나는..." 슬리크 씨는 골짜기 밑을 가리켰다. 그와 청크 씨는 목을 쭉 빼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한 벼랑 저 밑을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정말 실처럼 가늘게 보였다. 청크 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맙소사! 높이가 얼마나 되지? 여기서 굴러떨어졌다간 뼈도 못 추리겠는걸." 나는,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 높다고 대꾸해 줬다. 계속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청크 씨와 슬리크 씨의 헐떡임도 심해졌으며 나중에는 기침까지 해댔다. 그들은 자꾸만 내 뒤로 처졌다. 한참 가다 보니 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다시 내려가 보니까 그들은 하얀 참나무 밑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 참나무 뿌리 주위에는 독담쟁이가 넓게 퍼져 자라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독담쟁이는 초록빛에 산뜻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 위에 앉거나 눕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그랬다간 전신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면서 몹시 쓰라리고 아프며 그 통증은 여러 달 계속된다. 헌데 그들은 이미 거기 누워 버렸으니 어쩌랴. 얘기해 줘 봤자 기분만 더 고약해져 버리리라. 가뜩이나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데. 슬리크 씨가 머리를 쳐들고 소리질렀다. "야, 이 빌어먹을 녀석아,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갈 심산이야.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해?" 청크 씨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독담쟁이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말씀을 해주셔서 할아버지가 곧 내 뒤를 쫓아오실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니까 일단 산능선 있는 데까지 가서는 슬리크 씨와 청크 씨에게 여기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곧 할아버지가 나타나실 거라는 얘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할아버지가 나타나실 거고 그러면 나는 어쨌든 그들을 할아버지와 만나게 해드린 셈이 되니 그 일 달러를 내것으로 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출발했다. 슬리크 씨는 청크 씨를 부축해서 그 독담쟁이 밭에서 일어나게 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독담쟁이 밭에다 그들의 웃저고리들을 놔두고 왔다. 청크 씨는 돌아가는 길에 그걸 집어들고 갈 거라고 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산 능선에 올라가 그들을 기다렸다. 우리가 올라온 산등성이 길은 수많은 길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곧 옛 체로키 부족들이 누비고 다녔던, 이 산능선을 따라 난 수많은 길들 중의 하나. 이 길을 산곡대기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다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한참을 내려가다간 또 갈라지곤 한다. 할아버지는 그 길들을 따라 그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아마 백오십 킬로미터 이상 걷게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덤불숲 속에 들어가 앉았는데 그곳에서는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능선을 따라 계속 달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나는 청크 씨와 글리크 씨에게, 여기 앉아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자고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나타났다. 청크 씨는 한 팔로 슬리크 씨의 어깨를 감싸안은 채 걸러오고 있었다. 심하게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는 걸로 보아 그는 다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청크 씨는 슬리크 씨에게 개자식이라고 욕했다. 헌데 나는 슬리크 씨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는 것에 놀랐다. 청크씨는 산에 사는 것들을 자기네 사업에 끌어들이자는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사람이 바로 슬리크 씨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슬리크 씨는 이 쌍놈의 인디언을 골라낸 사람은 바로 청크 씨라면서 청크 씨야말로 개쌍놈의 새끼라고 욕을 했다. 내가 앉아 쉬고 있는 덤불 곁을 지나칠 때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사움을 했다. 그 바람에 나는 그들더러 여기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건넬 기회를 잃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내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는 중간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들은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들이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로 난 깊은 골짜기를 향해 계속 걸어가다가 마침내 숲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줄곧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거기 그대로 앉아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퍼렁이가 산길을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퍼렁이는 연신 코를 큼큼거리며 내 자취를 따라 올라오다가 이윽고 나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달려왔다. 잠시 후 나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건 꼭 진짜 소쩍새 울음소리 같았다^5,5,5^ 하지만 아직 날이 어두워질 때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게 할아버지가 내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도 소쩍새 울음소리를 냈다. 거의 진짜 비슷하게. 나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숲을 헤치면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산등성이 길로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면, 여간 주의해서 귀기울이지 않고서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리라. 잠시 후에 할아버지는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는 몹시 반가웠다. 나는 할아버지께 슬리크 씨와 청크 씨가 산 반대편으로 내려갔다는 것과 아울러 산을 올라오는 동안 그들이 한 얘기를 기억나는 대로 전부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연신 혀를 차기만 하셨다. 할아버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할머니가 자루 속에 음식을 넣어 보내셔서 할아버지와 나는 삼나무 미티에 앉아 요기를 했다. 높은 산 위에서 먹는 옥수수 빵과, 옥수수 가루를 넣고 요리한 메기는 맛이 기가 막혔다. 우리는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일 달러짜리 지폐를 보여드리면서, 만일 청크 씨가 내가 내 할 일을 완수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그 돈은 내 것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잔돈으로 바꿔서 할아버지와 반씩 나누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청크 씨를 보러 이곳까지 왔으므로 나는 내 할 일을 완수한 셈이라고 하셨고, 또 그 돈을 나눌 생각 말고 다 가지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젠킨스 씨네 가게에서 본 그 파랗고 빨간 사탕상자에 관해 말씀드렸다. 나는 그게 아마 일 달러를 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도 그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 우리는 그 산의 골짜기 저 아래편에서 누군가가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소쩍새들과 칩윌즈(산새의 일종: 옮긴이)들이 산중턱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일어나셔서 두 손을 입가로 가져가 산 아래쪽을 향해 우렁차게 포효했다. "우워어^5,5,5^!" 그 소리는 맞은편 산봉우리에 부닺쳐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할아버지가 그곳에 계신 것처럼.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 무수한 골짜기들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다가 이윽고 희미하게 사라졌다. 수많은 골짜기들이 공명관 같은 작용을 하여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가 어디쯤에서 나왔는지 알 방법이 없을 듯했다. 할아버지의 외침이 막 사라질 즈음 저 아래 계곡 어딘가에서 세 방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들 역시 이곳저곳의 산봉우리에 부딪치며 수많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권총소리다. 권총소리로 응답하고 있는거야." 할아버지의 외침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우워어^5,5,5^!" 나도 할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외침이 한데 섞여 메아리치는 바람에 잠시 온 산이 시끌벅적해졌다. 또다시 권총소리가 세 번 울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계속 계곡을 향해 외쳐댔다. 우리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게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가 한번씩 소리칠 때마다 권총소리도 계속 응답을 보내왔다. 그러다 권총소리가 그쳤다. 우리가 계속 소리치는데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총알이 다 떨어진 모양이다." 이제 사방은 캄캄해졌다. 할아버지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셨다. "저 사람들을 찾으려고 밤새 내내 저 아래에서 헤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 사람들은 괜찮을 거다. 내일 찾으면 되니까."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스프링바우(야생풀의 일종: 옮긴이)를 뜯어다 삼나무 밑에 폈다. 만일 당신이 봄 여름에 산에서 잘 경우에는 스프링바우 위에서 자는 게 좋다. 안 그러면 레드벅(사면발이류의 기생충: 옮긴이)들에게 흠씬 뜯길 테니까. 레드벅은 너무 작아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풀잎이나 나무 이파리에 붙어 있다가 당신이 잠자리에 누울라치면 수천수백만 마리가 일제히 기어나와 당신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당신의 온 전신에 발진을 일으킬 것이다. 어느 해에는 거것들이 유난히 더 극성을 떨곤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런 해였다. 거기다 또 진드기도 덤벼든다. 할아버지와 나는 스프링바우 위에 누웠다. 퍼렁이가 내 곁에 몸을 바싹 붙인 채 엎드려 있어 대기의 쌀쌀함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스프링바우는 보드랍고 푹신푹신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것은 누런 보름달이었으며 먼 산 위로 두둥실 떠돌랐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달이 밝은 날이면 백오십 킬로미터 사방으로 들쑥날쑥하게 솟은 산과 진자줏빛 그늘이 드리운 계곡들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고 하셨다. 저 멀리 눈 아래로 안개의 띠들이 떠다녔다^5,5,5^. 느릿느릿 골짜기 사이를 헤엄치고 산허리를 뱀처럼 휘감으면서. 조그만 안개의 띠 하나가 마치 은빛 쪽배처럼 어느 산 모퉁이를 돌아나오더니 또 다른 안개의 띠와 부딪치면서 서로 뒤섞여 골짜기 하나를 소리없이 집어삼켰다. 할아버지는 그 안개가 꼭 생명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앵무새 한 마리가 우리 바로 곁에 있는 느릅나무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암수 두 마리의 살쾡이들이 서로를 외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헌데도 할아버지는 짐승들이 짝을 지을 때는 환희에 차서 저절로 그런 식의 비명이 나오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매일 밤마다 산에서 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 심정도 그렇다고 하셨다. 올빼미 한 마리가 우리 바로 밑에서 그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르 내며 울었다. 바로 그때 사람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내는 소리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잠자코 있지 않으면 온 산의 새들과 짐승들이 불안에 떨 거라고 하셨다. 나는 달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새벽에 일어났다. 높은 산에서 새벽을 맞는 건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퍼렁이는 산속의 새벽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감상했다. 하늘은 엷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으며 새로운 날을 맞은 새들은 나무 위에서 요란하게 지저귀었다. 백오십 킬로미터 사방의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우리 발 밑을 바다처럼 채운 안개 위에 섬처럼 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봐라." 세상 끝, 가장 머나먼 곳의 산등성이 위의 하늘에 거대한 붓으로 쭉 그은 듯한 핑크색 빛의 띠가 길게 가로걸려 있었다. 서서히 일기 시작하는 아침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이 탄생할 때마다 보이는 그 빛들을 알고 있었다. 그 빛의 띠들은 여러 겹으로 하늘을 가로지른다.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색의 겹으로. 세상 맨 끝으로 솟은 그 산능선에는 찬란한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윽고 태양이 숲을 밝게 비추기 시작한다. 그 빛은 우리 발 미티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파도치는 안개바다를 핑크 빛으로 물들인다. 마침내 아침 햇살이 할아버지와 내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세상은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새 날이 밝아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의 모자를 벗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묵묵히 서서 아침 풍경을 응시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한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다시 그 산 정상으로 올라와 이처럼 아침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햇살은 아침의 대기 속을 분방하게 떠돌면서 온 산을 환히 밝혔다. 할아버지는 부지중 탄식을 발하시고는 크게 기지개를 켜셨다. "흠, 너랑 나랑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너한테 말해 주마." 할아버지는 당신의 머리를 긁으셨다. "너한테 얘기할 게 뭔고 하니, 에, 오두막으로 가서 할머니한테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있다 내려간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너랑 나랑 먹을 걸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가져오는데, 그걸 종이봉지에다 담아 달라고 하고 그 대도시 녀석들이 먹을 건 마대자루 안에 담아 달라고 하거라. 기억할 수 있겠지? 종이봉지와 마대자루?" 나는 기억할 수 있다고 하고는 바로 출발했다. 헌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리고 작은나무야,"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다 말고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 두 녀석들이 먹을 걸 만드는 동안 그 두 녀석이 너한테 얘기한 걸 죄다 말씀드려라."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퍼렁이가 내 곁에 붙어서 따라왔다. 나는 할아버지가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우워어^5,5,5^" 하고 고함을 치셨다. 나도 할아버지 곁에 서서 같이 소리치지 못해 아쉬웠지만 산길을 뛰어내려가는 것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뛰어내려가는 것은. 이 시간은 모든 산짐승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자기 집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두 마리의 너구리들이 호두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 올라앉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연신 나를 흘끔거리다가 내가 그들 밑을 지나가자 뭐라고 소리쳤다. 다람쥐들이 찍찍거리며 산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들은 내가 달려가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하곤 했다. 우리가 가는 길가에는 어디에나 새들이 보였고 우리가 다가가면 그들은 일제히 날아오르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앵무새 한마리가 나와 퍼렁이를 줄곧 따라오면서 자꾸만 내 머리 위에 내려 앉으려고 했다. 앵무새들은 누군가 자기네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흔히 이런 짓을 하곤 한다. 나도 그 새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새가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 오두막이 보이는 빈 터로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뒷현관에 나와 계셨다. 할머니는 내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새들의 행동을 보고 내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시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혹시 냄새로 그걸 알아차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고. 어쨌든 할머니는 내가 나타날 때마다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으신 걸로 보아 항시 내가 오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계신 게 분명했다. 나는 할머니께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했다. 나랑 할아버지 음식은 종이봉지에 싸고, 도시 사람들 건 마대자루에 담아 달라는 말씀을. 할머니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내가 먹을 것을 만드신 다음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먹을 물고기를 기름에 튀기기 시작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게 이야기 한 걸 할머니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그 얘기를 해드리자 할머니는 물고기를 튀기시다 말고 갑자기 프라이팬을 불 위에서 들어올리시더니 냄비를 꺼내 거기다 물을 부으셨다. 그리고는 그 냄비 속에 청크 씨와 슬리크 씨의 물고기를 집어넣으셨다. 나는 할머니가 물고기를 튀기는 대신에 끓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헌데 나는 할머니가 요리를 하시는데 실물뿌리를 가루로 낸 것을 집어넣는 광경은 생전 처음 봤다. 그들이 먹을 물고기는 식물뿌리 가루와 더불어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나는 할머니께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아주 유쾌한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 처음에는 내가 후레자식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어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슬리크 씨의 말 때문에도 웃어댄 것 같다. 청크 씨가 한참 웃다 말고 우리 인디언들은 죄다 짐승이나 매한가지라고 슬리크 씨에게 대꾸한거로 미루어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냄비 속에 식물뿌리의 가루를 다시 또 듬뿍 집어넣으셨다. 나는 할머니께 일 달러가 생기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내가 내 할 일을 다 했으므로 그걸 가져도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할머니도 그 말씀이 옳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 일 달러짜리 지폐를 내 항아리 속에다 넣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파랗고 빨간 사탕상자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집 근처에는 기독교인들이 없었지만 혹시 또 아는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할머니는 김이 폭폭 솟아날 때까지 그 물고기들을 끓이셨다.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할머니는 연신 코를 훌쩍이셨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려니까 할머니는 김이 얼굴에 서려 그렇게 된 모양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대도시 사내들에게 줄 물고기를 마대자루 속에 집어 넣으셨다. 나는 그 짐을 들고 다시 산등성이 길로 올라갔다. 할머니가 개들을 죄다 풀어 놓으셔서 나는 개들과 함께 산을 탔다. 산능선으로 올라가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휘파람을 불자 산 반대편 골짜기 쪽에서 할아버지의 응답이 날아왔다. 나는 그리로 내려갔다. 그 길은 비좁았고 숲이 하늘을 가렸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그 골짜기 밖으로 거진 다 유도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계속 할아버지께 응답하는 걸로 보아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줄 물고기 자루를 눈에 잘 띄는 길가 나뭇가지에다 걸어놓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그 기리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감나무 숲 밑에 자리잡았다. 태양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들을 조용히 엎드려 쉬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옥수수 빵과 물고기를 먹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 파악 할 수 없어 한동안 우왕좌왕했으나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결국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의 시야에 나타났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나는 그들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그들의 셔츠는 갈갈이 찢어져 걸레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과 팔뚝에는 온통 긁히고 패인 자국들 투성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찔레덤불을 헤치고 나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왜 그들의 얼굴에 커다란 붉은 반점들이 잔뜩 돋아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독담쟁이 덩굴위에 드러누운 탓으로 그렇게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청크 씨는 구두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고개를 푹 떨군 채 산길을 느릿느릿 걸어올라왔다. 길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마대자루를 발견한 그들은 얼른 그것을 벗겨내리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할머니가 요리해 주신 물고기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들은 그걸 먹는 동안에도 어느 쪽이 더 많이 먹었는가를 따지며 계속 툭탁거렸다. 그들이 다투는 소리는 우리가 있는 데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음식을 다 먹은 그들은 나무그늘로 덮인 길바닥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나는 할아버지가 내려가셔서 그들을 데리고 올라오시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잠자코 앉아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그들을 얼마 동안 그렇게 쉬게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오래 쉬지 못했다. 갑자기 청크 씨가 벌떡 일어섰던 것이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배를 잔뜩 움켜쥐고 길가의 덤불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바지를 까내리고는 바닥에 쭈그려 안장ㅆ다. 그는 소리소리 질렀다. "오, 이런 염병할! 창자가 다 빠져나오려나 봐!" 그에 이어 슬리크 씨도 똑같은 행동을 했고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은 끙끙 신음을 하고 고함을 질러대고 바닥을 대굴대굴 굴렀다. 잠시 후 그들은 덤불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길바닥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후에 다시 벌떡 일어서서는 방금 전에 밟았던 과정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들이 너무나 요란법석을 떨어대는 바람에 우리 개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지만 할아버지가 개들을 달래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게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들이 지금 독담쟁이 밭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또 그들이 독담쟁이 이파리로 밑을 씻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당신이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한번은 슬리크 씨가 길에서 독담쟁이 밭으로 달려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바지까내리는 동작이 조금 늦고 말았다. 그 뒤부터 그는 계속 자기 몸으로 달려드는 파리 떼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과 독담쟁이밭 사이를 거듭 왕복하는 일은 근 한 시간 가량이나 계속 되었다. 그 뒤 그들은 녹초가 되어 길바닥 위에서 완전히 뻗어 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자기 몸에서 받지 않는 무엇인가를 먹은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길 있는 데로 나가셔서 그들을 향해 휙, 휘파람을 부셨다. 그들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서 간신히 무릎을 꿇고 앉아 나랑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퉁퉁 부어올라 거의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청크 씨가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요!" 슬리크 씨의 외침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거기 서요! 제발 거기 좀!" 그들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의 기다시피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대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가 돌아보니 그들은 쩔뚝쩔뚝하면서도 열심히 우리 뒤를 쫓아왔다. 능선에 올라온 뒤 할아버지는, 이제부터는 그들도 대충 내려가는 길을 알고 있을 테니 우리는 바로 우리 오두막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할아버지와 내가 우리 오두막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도 꽤 기둘어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뒷현관 쪽에 자리잡고 앉아 청크 씨와 슬리크 씨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나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무렵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공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크 씨는 나머지 구두 한 짝마저 잃어버렸으며 발끝으로만 지면을 살살 딛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오두막 주위를 크게 한바퀴 돌았다. 나는 그들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왜 바로 올라오지 않고 저러고 있나 의아해했다. 그들은 그렇게 돌더니만 집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일 달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내가 내 할 일을 했으므로 그건 가져도 된다고 하셨다. 그들이 마음을 바꾼 건 내탓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옳은 말씀이시다. 나는 우리 오두막을 빙 돌아 그들 뒤를 쫓아갔다. 그들은 막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 뒤에다 대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안녕히 가세요, 청크 씨. 안녕히 가세요, 슬리크 씨. 일 달러 주신거 고마워요, 청크 씨." 청크 씨는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주먹을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그는 그만 발을 헛디뎌 실개천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헌데 그가 떨어지면서 슬리크 씨를 붙잡았기 때문에 슬리크 씨도 하마터면 같이 떨어질 뻔했는데 그는 용케 균형을 잡아서 간신히 통나무 다리를 건너갈 수 있었다. 슬리크 씨는 또다시 청크 씨에게 개쌍놈의 새끼라고 욕했으며, 이에 청크 씨는 실개천에서 허위적거리고 기어나오면서 채터누가로 돌아가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슬리크 씨를 때려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어째서 그들 사이가 그렇게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계곡 길로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는 개들을 풀어놓아 그들을 감시하게 하고 싶어하셨지만 할아버지가 반대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별일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청크 씨와 슬리크 씨가 할아버지와 나를 자기네 멋대로 판단하고서 자기네 사업에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도 그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는 꼬박 이틀 간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셈이 되었다. 나는 그 일 달러 지폐를 항아리에서 꺼내와서는 하아버지께, 우리가 동업자이므로 아직도 나는 기꺼이 할아버지와 그 돈을 나눌 용의가 있으며 또 그럴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가 그 돈을 위스키 사업과 관련된 일로 번 게 아니기 때문에 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만한 정도의 일로 일 달러를 받았다면 그리 박하게 받은 건 아니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았다. @ff @[ 윌로우 존 씨뿌리는 철이 되면 아주 바빠진다. 씨뿌릴 시기를 결정하는 분은 할아버지시다. 그걸 결정할 때 할아버지는 먼저 흙 속에 손가락을 찔러넣어 그 온기를 측정해 보신다. 이때 할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으면 그건 아직 씨뿌릴 대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는 위스키를 제조하는 주간이 아닐 때는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거나 딸기를 따러 나가거나, 숲을 헤매다니곤 한다. 일단 씨뿌리기를 시작할 때면 여러 가지로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씨앗을 심기에 가장 적당한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흙 속에서 자라는 것, 일테면 순무나 감자 같은 것들은 달 없는 밤에만 심어야 하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면 순무나 감자가 쥐알만큼씩밖에 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옥수수나 강낭콩, 완두콩 등과 같이 지상에서 자라는 것들은 달빛 속에서 심어야 한다. 안 그러면 수확량이 형편없이 적어진다. 씨앗을 심을 때 고려해야 할 게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력에 의지해 어떤 씨앗을 심을 때인가를 결정하곤 한다. 이리테면 사람들은 달력에 콩을 심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고 표시된 시기에 붉은꽃 강낭콩을 심는다. 그걸 따르지 않으면 꽃은 잔뜩 피지만 콩은 열리지 않는다. 달력에 어느 때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하는가가 자세히 나온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달력이 필요없다. 할아버지는 별자리를 통해 그걸 아신다. 봄밤이면 우리는 현관으로 나와앉곤 하는데 그럴 때 할아버지는 별들을 자세히 살펴보신다. 할아버지가 살펴보시는 것은 산등성이 위에서 별들이 어떤 모양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연구하시다가 할아버지는 문득 말씀하시곤 한다. "붉은꽃 강낭콩을 심기에 가장 좋은 때다. 내일 동풍이 불지 않으면 그걸 심도록 하자." 그러나 별들이 붉은꽃 강낭콩을 심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알려주었다 해도, 이튿날 동풍이 불어오면 할아버지는 콩을 심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동풍이 불어오는 걸 무시하고 심으면 콩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에는 의당 공기중의 습도가 고려되어야 한다. 너무 습하거나 너무 건조해도 안 된다. 그리고 새들이 도통 움직이지 않거나 우짖지 않을 때도 안 된다. 씨앗을 심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개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미 간밤에 어떤 식물의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미리 결정해 놓은 상태기 때문에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바람이 괜찮은가, 새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습도는 어떠한가만 살펴보면 된ㄷ. 만일 이 중의 어느 한 가지만 맞지 않아도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야 한다. 할머니는 간혹, 할아버지가 뭐가 안 좋고 또 뭐가 안 맞아서 오늘은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고 하시면 그게 순전히 물고기 잡으러 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핑계가 아닌가 의심하곤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여자들은 복잡미묘한 걸 이해할 줄 모르며 세상사를 그저 단순명쾌하게만 이해하려 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세상사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도. 그리고 할아버지는 여자들은 원래 날 때부터 그렇게 의심을 잘 하게끔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으며 딸꾹질만 해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할망구들도 있으니 뭐 더 이상 얘기 할 거 없다고 하셨다. 모든 조건이 다 잘 들어맞는 날이면 우리는 주로 옥수수를 심는 데 주력했다. 옥수수야말로 우리의 주식이요. 우리집 나귀인 샘의 먹이가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그것은 우리의 주 수입원인 위스키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샘을 앞세우고 쟁기질을 해서 옥수수밭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긴 골을 파나가신다. 나는 이렇게 골을 파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나는 당분간은 땅을 갈아엎을 때만 쟁기질을 해보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나는 그렇게 파인 골에다 옥수수 씨앗을 뿌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주는 일을 했다. 할머니는 또 씨앗 심는 체로키 식 지팡이를 이용해서 산허리에도 옥수수를 심으셨다. 그 작업은 아주 간단해서 그 지팡이로 땅을 한번 꾹 찌르고 그 속에다 씨앗을 떨궈 주면 된다. 우리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심었다. 강낭콩, 오크라(아욱과 닥풀의 일종. 꼬투리는 수프 같은 데 씀: 옮긴이), 감자, 순무, 완두콩 등등. 우리는 산짐승들이 접근하기 쉬운 밭 가장자리에다 완두콩을 심곤했다. 가을이 되어 완두콩이 익으면 사슴이 그걸 먹으려고 접근해 온다. 사슴은 완두콩이라면 사죽을 못 써서 삼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완두콩이 자라고 있어도 용케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 덕분에 우리는 늘 쉽게 사슴을 잡아 겨울철에 두고두고 그 고기를 먹곤했다. 우리는 또 수박도 심었다. 우리는 밭 가장자리의 그늘진 곳을 골라 거기다 수박씨를 잔득 심곤 했다. 할머니가 수박밭이 너무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고 불평하시면 할아버지는 우리는 한 알도 먹지 않고 모두 네거리 가게에다 내놓을 거며, 그렇게 되면 꽤 쏠쏠한 몫돈을 만질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셨다. 헌데 나중에 수박이 익을 철만 되면 할아버지와 나는 번번이 수박값이 현편없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곤 했다. 수박을 내놔 봐야 팔리지도 않을 뿐더러 설혹 팔힌다 해도 가장 큰 게 고작 오 센트밖에 안 되었다. 어느날 저녁 할아버지와 나는 부엌 식탁에 마주 않아 셈을 따져봤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1갤런이면 대략 3.4 킬로그램쯤 되는데 그걸로 우리는 2 달러를 받는다고 하셨다. 헌데 오 킬로그램 짜리 수박을 네거리 가게까지 낑낑대며 운반해 봤자 기껏해야 오 센트 받는게 고작이라시며, 우리의 위스키 사업이 망해서 달리 길이 없는 한 그건 정말 할 짓이 못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생각에도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인 것 같으니 그 수박을 우리가 다 먹어치우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고 말씀드렸다. 세상에 수박처럼 더디게 자라는 것도 없다. 강낭콩이 익고 오크라가 다 자라고, 완두콩이 여물어 땅바닥에 떨어져도 수박이란 놈만은 더무지 익을 줄을 모른다. 그놈은 그저 계속 퍼렇기만 하고 그저 끝없이 커지기만 한다. 수박이 익을 철이 가까워져 오면 나는 뻔질나게 수박밭으로 들어가 수박이 익었나 조사해 보는 게 일이다. 헌데 수박은 익을 듯 익을 듯 하면서도 익지 않는다. 다 익은 수박을 골라내고 그게 정말로 익었나 시험해 보려면 씨앗을 심을 때만큼이나 복잡한 과정을 저쳐야 한다. 나는 저녁식사 시간만 되면 번번이 할아버지께 익은 수박 하나를 발견했다고 보고하곤 했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저녁밥을 먹으로 오기 위해 수박밭을 지나칠 때마다 수박밭을 유심히 살피곤 했으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하면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를 끌고 수박밭으로 가서 내가 말씀드린 그 수박을 조사하시곤 했다. 그런데 내가 고른 수박은 늘 익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나곤 했다. 어느 날 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할아버지께 이번만큼은 진짜로 익은 수박을 찾아낸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에 조사해 보자고 하셨다. 다음날 나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앉아 할아버지가 일어나시기만ㅇ들 기다렸다. 이윽고 할아버지와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수박밭으로 나갔다. 나는 할아버지께 문제의 그 수박을 부여드렸다. 그것은 검푸른 색깔이 감돌았고 아주 컸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수박 곁에 쭈그리고 앉아 조사해 보았다. 나는 전날 저녁에 이미 마르고 닳도록 조사를 해봤음에도 다시 또 그것을 세밀히 살펴봤다. 잠시 수박을 조사해 보신 할아버지는 거의 다 익은 것같아 보이시는지 손가락 테스트를 해보자고 하셨다. 손가락 테스트는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손가락 등으로 수박을 치는 걸 말하며 그렇게 해보면 그것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를 대충 알 수 있다. 만일 수박을 손가락으로 쳐보아 (팅)하는 소리가 나면 그건 그 수박이 전혀 익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탱)하는 소리가 나면 그 수박은 익어가는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덜 익은 것이며, (텅)하는 소리가 나면 완전히 여문 수박이다. 할아버지는 한번 쳐보고 미심쩍으면 다시 한번 더 쳐봐야 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항시 맞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므로 수박을 고를 때는 누구든지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수박을 세게 쳐보셨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만 열심히 쳐다봤는데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젓지 않으셨다. 그건 희망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그 수박이 있었다는 게 판명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고개를 가로젓지 않으셨으니 할아버지가 아직 그 수박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때려보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귀에는 거의 (텅)소리처럼 들린다고 말슴드렸다. 할아버지는 몸을 뒤로 제끼고 다시 또 살펴보셨다. 나도 할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했다. 해는 이미 떠올랐다. 나비 한 마리가 그 수박 위를 맴돌다가 그 위에 내려앉아 날개를 폈다 접었다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비가 수박위에 내려앉으면 그 수박은 익은 것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러니 나비가 내려앉은 건 좋은 징조가 아니겠느냐고 여쭤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수박이 아주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리송하게 익었으며 그것이 내리는 소리는 (탱)도 아니고 (텅)도 아닌, 그 중간 소리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내 귀에도 그렇게 들리는데 그것이 (텅)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또 다른 방법을 써서 조사해 보자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사초줄기 하나를 따오셨다. 이 방법은 사초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놓이느냐를 두고 수박이 익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수박 위에 사초줄기를 가로 방향으로 올려놓았을 때 그것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 수박은 익지 않은 것이며, 사초 줄기가 빙 돌아서 세로 방향으로 바뀌면 그 수박은 익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초줄기를 그 수박 위에다 올려놓으셨다. 그러자 그것은 잠시 정지해 있는 듯하더니 이윽고 조금 돌아가다간 멈추었다. 우리는 꼼짝않고 그걸 지켜봤다. 그것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것이 너무 길어서 수박 속의 익은 기운이 그걸 돌리기에 힘이 드는 것 같다고 말씀드려싿.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 한 끝을 잘라내 조금 더 짧게 만드셨다. 우리는 다시 시도해 봤다. 이번에는 조금 더 돌아가 거의 세로 방향에 가까이 접근하다 멈주쳤다. 할아버지는 그만 포기하고 싶으신 모양이었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엎드려서 얼굴을 사초줄기 가까이에 대고 지켜보다가 할아버지께 그것이 움직이는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나마, 계속, 세로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숨결이 닿아 그것이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돌아가는 건 무효라고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그걸 따기로 결심하셨다. 지금이 아니고, 이따가 해가 바로 우리 머리 위로 올 때, 점심 먹을 때쯤해서.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해가 어디만큼 왔나 살펴봤다. 헌데 오늘따라 그놈의 해는 산 능선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한데 하주 기나긴 아침시간을 선사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해가 가끔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고 하셨다. 일테면 우리가 쟁기질을 하면서 저녁이 되면 개울가로 가서 온 몸에 묻은 흙과 땀을 깨끗이 씻어내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경우 같은 때. 할아버지는 우리가 그깟놈의 해야 느리게 가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으면, 해도 우리를 괴롭히기를 단념하고 얼른 제 갈길을 가기 마련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나는 할아버지 앞에 서서 오크라 줄기의 아랫부분에 달린 이파리들을 따면서 나아갔고 할아버지는 내 뒤를 따라오시면서 윗부분에 달린 이파리를 따내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또 줄기를 아래로 잡아당기지도 않으면서 산뜻하게 오크라를 따는 방법을 개발한 세계 최초의 팀이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아침 내내 오크라 이파리를 땄다. 우리가 그렇게 골을 따라 오크라 밭을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는 일을 계속하다가 어떤 골의 끝에 다다랐을 때 눈을 들어보니 밭둑에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점심시간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아버지와 나는 수박밭으로 달려갔다. 내가 먼저 도착하여 그 수박을 줄기에서 떼냈다. 헌데 그걸 들어보려고 했지만 그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고 실개천 가로 가신 뒤 나더러 그걸 굴려넣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텀벙, 하고 물 속에 떨어졌는데 너무나 무거워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우리는 오후 늦게서야 그것을 끄집어냈다. 할아버지가 실개천 둑위에 엎드리신 채 팔을 길게 뻗어 물 속에서 그것을 건져내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걸 들고 커다란 느릅나무 밑으로 가셨으며 할머니와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수박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앉아 수박의 진초록 껍질 위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굴러내리는 걸 지켜봤다. 그것은 일종의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긴 칼을 끄집어내어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 쥐셨다. 할아버지는 먼저 할머니를 흘끗 쳐다보시고는 다시 나를 쳐다보셨다. 할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헤 벌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수박에 칼을 대셨다. 그것은 칼이 지나가기도 전에 쩍, 하고 갈라졌다. 잘 익은 수박은 으레 그런 법이다. 반으로 갈라진 수박의 속살에서는 이내 벌건 물방울들이 뚝뚝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그걸 먹기 좋게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수박물이 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려 내 웃저고리를 벌겋게 적시는 것을 보고 연신 웃음을 터트리셨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수박이었다. 여름은 한가롭게 흘러갔다. 그것은 나의 계절이었다. 내 생일이 여름철에 들어 있는 탓으로 여름이 내 계절이 된 것이다. 그것은 체로키의 관습이었다. 그리하여 내 생일은 하루가 아니라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자신의 계절이 계속되는 동안에 자기의 탄생지, 자기 아버지의 행적,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 등에 관해 듣는 것 또한 체로키의 관습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만명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행운아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자연, 즉 모놀라로부터 태어났으며 그 덕분에 내가 이 산중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할머니가 노래불러 주신 모든 형제 자매들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무들과 새들, 물, 비, 바람의 지극한 사랑을 받도록 선택된 사람은 극소수라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늘 그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외로운 처지가 되지만 나는 언제든 외롭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름 저녁 어스름녘이면 으레 뒤현관으로 나와 앉곤 했다. 어둠이 소리없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할머니는 조근조근 얘기를 들려주셨다. 때로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시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시다간 이윽고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다시 입을 열곤 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그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골짜기 어둠 따위는 이제 두렵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특별난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할아버지보다 행운아라고 하시며 당신도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게 유감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늘 어둠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탓으로 밤에는 잘 나다니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둠 속에서 나다닐 때 나를 의지해서 다녀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두워질 때면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다닐거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나는 여섯 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 생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월이 흐른다는 걸 의식하신 듯했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등잔을 켜고 책을 읽어 주셨으며 사전 순서대로 낱말 공부를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이제 나는 사전의 A 항목을 다 끝내고 B 항목으로 들어갔다. 헌데 그 부분에서는 페이지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페이지에는 중요한 낱말들이 별로 들어있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다음번에 할아버지와 내가 읍내로 갔을 때 할아버지는 도서관에서 다른 사전 하나를 사주셨는데 그건 값이 자그만치 칠십오 센트나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돈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당신은 늘 그런 사전을 하나 갖고 싶었다고 하시면서.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생전 사전을 뒤적여 보시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뭔가 다른 목적을 갖고 계신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도 할아버지가 그걸 건드리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파인 빌리는 그 뒤로도 가끔 한번식 우리 집에 들르곤 했는데 수박이 익은 다음에는 더 자주 들렀다. 파인 빌리는 수박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그 대도시의 범죄자 덕분에 보상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레드이글 코담배 회사로부터 상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일로 전혀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일에 관해서는 캐묻지 않았다. 파인 빌리는 세상에 종말이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징조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 징조들이란 전쟁이 난다는 소문, 이 나라 전역에 기근이 닥친 일, 은행이 대부분 물을 닫았고 그나마 문을 닫지 않은 은행들은 자주 강도질 당한다는 사실 등이었다. 그는 시중에는 돈이 씨가 말랐고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창밖으로 뛰어내리며 오클라호마에서는 바람이 지면의 흙을 모조리 걷어가 버려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파인 빌리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구원을 받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헌데 그가 구원받는 데 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건 간음이었다. 그는 춤추고 놀 때마다 간음을 했다. 하지만 그 책임은 대부분 여자들 쪽에 있었다. 그는 구원받기 위해 늘 숲속에서 행해지는 기도모임에 참석하려 애쓰지만 그런 장소 근처에도 항시 여자들이 있어서 간음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는 한 늙은 전도사를 만났다. 파인 빌리가 보기에 그는 전혀 간음할 사람같이 보이질 않았다. 너무 늙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또 그는 숲속의 기도모임을 주재하면서 간음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설교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파인 빌리는 그 늙은 전도사를 만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완전히 간음하는 짓을 그만둘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들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순간 그런 기분이 드는 것, 바로 그런 기분 상태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다시 그 전도사에게로 돌아가 이번에는 기필코 구원을 받을 거라고 했다. 파인 빌리는, 그 전도사가 속한 근본주의 침례교파에서는 일단 한번 구원을 받은 사람은 늘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만일 구원받은 어떤 사람이 다시 또 (몇 차례쯤) 간음을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구원받은 상태 속에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파인 빌리는 자기가 그 근본주의 침례교에 무척이나 마음이 끌리며 그걸 자기 종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파인 빌리는 그 여름,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저녁 어스름녘만 되면 바이올린을 켰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서글프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여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과 더불어, 이미 여름이 다 지나갔지만 그걸 다시 되돌릴 수 있었으면,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가 바이올린을 켜지 말기를 바랐다. 그걸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울적하고 슬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듣고 있다 보면 그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연주를 해줬으면 싶은 마음이 깃들곤 했다. 그건 정말 가슴 저리도록 외로운 기분을 안겨주는 연주였다. 우리는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나갔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내가 우리 제품을 념겨줄 때마다 지나가곤 했던 길을 따라 교회롤 갔는데 그건 그 교회가 바로 네거리 가게에서 1.6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길이 멀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교회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아래 위 검은 양복에 할머니가 밀가루 포대를 하얗게 표백해서 지여주신 셔츠를 받쳐입으셨다. 나도 밀가루 포대 셔츠에 깨끗한 작업복을 입곤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교회에 가는 사람답게 늘 우리 셔츠의 단추를 맨 위에까지 단정하게 채우곤 했다. 할아버지는 또 소기름을 발라 광을 낸 검은 구두를 신으셨다. 그 구두는 걸을 때마다 쿵쿵, 하는 무거운 소리를 냈다. 나는 할아버지가 늘 사슴가죽신을 신고 다니시는 데 익숙한 분이시라 몹시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말씀은 입밖에도 내지 않고 그저 쿵쿵 소리를 내며 걷기만 하셨다. 할머니가 나는 사슴가죽신을 신고 갔기 때문에 다른 때와 똑같이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옷차림만 보면 자랑스런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할머니는 일요일만 되면 주황색, 황금색, 푸른색, 빨강색이 골고루 뒤섞인 화사한 드레스를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할머니의 발목가지 내려왔으며 버섯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아래가 동그랗게 부풀어올랐다. 그렇게 차려입고 걸어가실 때 부면 꼭 봄꽃 한 송이가 허공을 둥둥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가 그 드레스를 입고 외출하는 걸 무척이나 즐겨하시는 걸로 보아 만일 그 드레스만 없었다면 할머니는 교회에도 나가지 않으셨을 가능성이 컸다. 할아버지 역시 그 구두만 없었다면 교회에 나가는 걸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으리라. 할아버지는, 그 교회 목사와 집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해 질리게 만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과 가지 않을 사람을 결정하는 권한을 마치 자기네가 쥔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방심했다간 하느님을 경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경배하게 되기가 쉽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말을 싹 무시해 버린다고 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남들에게는 그런 얘기를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나는 교회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그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않아도 좋아도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지름길을 걸어가노라면 날이 훤하게 밝아오곤 했다. 햇빛은 골짜기 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기어올라오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을 영롱하게 빛나게 했으며 우리가 가는 길 위에 다채로운 나무문양들을 그리곤 했다. 그 교회는 길에서 좀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숲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그 건물은 비록 자그마하고 페인트칠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아주 산뜻하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매주 그 교회 앞마당에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부인네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곧바로 윌로우 존 할아버지께로 가곤 했다. 그분은 늘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숲 그늘 속에 서 있곤 했다. 그분은 할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위였으며 키는 할아버지와 비슷했다. 그분은 순수한 체로키의 피를 타고나신 분으로 하얗게 센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양 어깨 밑으로 늘어뜨리셨고 챙달린 모자를 눈 있는 데까지 푹 눌러쓰셨다^5,5,5^ 마치 눈을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허나 그분이 당신을 쳐다볼 때 당신은 그분이 왜 그렇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시는가를 깨닫게 되리라. 그분의 어두운 두 눈 속에는 깊은 상흔이 담겨 있었다. 생명의 기운에 거세된 공허한, 그리고 이미 아픔마저 사라져 버린 무감각한 상처가. 그 눈은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눈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눈앞에 있는 우리들 뒤편의 깊디깊은 어둠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훗날 아파치족 사람 하나가 나한테 한 노인네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고클라예, 즉 제로니모(아파치족 추장. 오랜동안 백인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백인들에게 투항한 뒤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의 신자가 되었다: 옮긴이)였으며 그의 눈빛 역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눈빛과 아주 흡사했다.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분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윌로우 존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인디언의 나라(Nations, 인디언 거주지역: 옮긴이)에 계셨던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차도, 기차도 타지 않고 산을 넘고넘어 그리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삼 년을 사시다가 되돌아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무셨다. 그저 이 세상에 인디언의 나라 같은 건 없다는 말씀 한 마디뿐. 할아버지와 그분은 만날 때마다 서로의 팔을 굳게 움켜잡고는 한동안 그런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묵묵히 서 계시곤 했다. 똑같이 키가 크고 거다란 모자를 쓰신 모자를 쓰신 두 노인네들이. 이윽고 할머니가 그리로 오시면 그분은 몸을 굽혀 할머니를 끌어안으시곤 했다. 그분은 교회를 지나 산악지대 깊숙이 들어간 데서 살고 계셨다. 그분이 사시는 데와 우리가 사는 데의 한 중간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어 교회는 일종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다. 나는 그분게 우리같은 애들이 크게 되면 체로키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질 거며 나 역시 체로키의 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숲의 정기를 타고났으며 타고난 산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내 양 어깨를 붙잡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셨다. 나는 그분의 두 눈 깊은 곳에서 번쩍이는 빛 같은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그분과 오래도록 만나곤 했지만 그분이 누구를 이처럼 쳐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다 들어간 뒤에야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항시 뒤쪽에 자리잡곤 했는데 맨 안쪽부터 그분, 할머니, 나의 순으로 앉고 통로에 면한 맨 바깥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거기 앉을 때면 할머니는 늘 왼손으로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고 할아버지는 내 등 뒤로 팔을 뻗어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어 놓으셨다. 나는 내 왼손으로는 할머니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손은 할아버지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자세로 한참 앉아 있다 보면 다리가 의자 모서리에 밀착된 탓으로 피가 잘 통하지 않아 다리가 저려오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하고 앉아 있는 게 좋았다. 한번은 막 교회당 안의 우리 자리로 가서 자리잡고 앉았는데 내 발치께 길다란 칼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칼만큼이나 길었고 가두리 장식이 되어 있는 사슴가죽 칼집 속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분이 그걸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인디언들이 선물을 주는 방식은 늘 이랬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물 같은 걸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준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주기보다 받는 이가 스스로 발견하게끔 그의 눈에 띄는 곳에 살그머니 놓아둔다. 만일 받는 이가 그걸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그걸 갖지 않으며, 따라서 자기가 받을 만한 어떤 것을 받았다고 해서 주는 이에게 고맙다고 한다거나 그걸 갖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들의 이런 관행은 이치에 맞는다. 나는 그분께 오 센트 동전 하나와 황소개구리(미국산 식용개구리: 옮긴이)를 드렸다. 개구리를 갖고 온 날, 그분이 나뭇가지에 당신의 웃저고리를 벗어서 걸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서 나는 그분이 안보는 틈에 살짝 그분의 웃저고리 주머니 속에 오센트 동전과 황소개구리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 개구리는 내가 실개천에서 잡은 것으로, 나는 그것의 몸집이 아주 커질 때까지 여러 가지 곤충들을 잡아다 먹이며 키웠었다. 그분은 내가 그런 것들을 집어넣은 걸눈치채지 못한 채 웃저고리를 입으시고는 바로 교회안으로 들어가셨다. 목사가 다 같이 기도하자고 하여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을 때였다. 옆 사람의 숨소리마저 똑똑히 들릴 정도로 교회당 안이 조용해지고, 이윽고 목사가 "주여^5,5,5^"하고 서두를 떼었을 때, 느닷없이 그 개구리가 낮고도 우렁차게 "가르르르륵!" 하고 울어댔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펄쩍 뛰었고 심지어 어던 사람은 교회당 밖으로 내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어떤 남자는 "오 주여!"라고 소리쳤고, 한 여자는 "주여 믿사옵나이다!"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그분도 여간 놀라시지 않았다. 그분은 당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셨다. 그러나 개구리를 꺼내진 않으셨다. 그분은 나를 넘겨다 보셨는데 나는 다시 그분의 두 눈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먼젓번처럼 저 깊은 어둠 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빛을. 이윽고 그분은 빙그레 웃으셨다! 그 미소는 얼굴 전체를 타고 점차로 넓게 번져갔다. 그리고는 폭소를 터트리셨다! 깊은 울림이 담긴 폭소를. 사람들은 놀라서 일제히 그분을 쳐다봤다. 그분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계속 웃으셨다. 나는 은근히 겁을 집어먹었으면서도 그분을 따라 웃었다. 이윽고 그분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은 그분의 얼굴의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분은 울고 계셨다. 교회당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목사는 입을 헤 벌리고 일어서서 그분을 주시했다. 그분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셨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러나 그분의 가슴은 심하게 물결쳤고 어깨는 흔들렸다. 그분은 오랫동안 그렇게 우셨다. 사람들은 고개 돌려 외면해 버렸다. 하지만 그분과 할아버지, 할머니만은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고 계셨다. 목사는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다시 설교를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개구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전에 한번 윌로우 존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설교를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목사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본 척도 하시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분은 목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늘 정면만 똑바로 쳐다보실 뿐이었으니까. 그때 목사의 설교 내용은 주님의 성전 안에서는 적절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윌로우 존 할아버지는 기도할 때 고개를 숙이지도 않으셨으며 모자를 벗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일에 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여러 해 동안 혼자서 그 이리에 관해 두고두고 심사숙고했었다. 그런 끝에 나는 그때의 그런 행동은 그분이 꼭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을 그분 나름의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분의 부족은 자기네 고향이었던 이곳 산악지대에서 백인들의 침략을 받고 쫓겨나거나 학살당했으며 결국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소리없이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향땅은 그 목사나 교회당 안에 앉아 있었던 백인신도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분은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분은 늘 모자를 벗지 않고 계셨던 것이다. 목사가 "주여^5,5,5^"하고 운을 뗐을 때 개구리가 "가르르르륵!"하고 소리친 것은 바로 목사의 말에 대한 윌로우 존 할아버지의 대답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은 우셨던 것이다. 그 소리는 그분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었던 비통한 심경을 대변해 준 것이다. 그 뒤부터 그분의 눈에서는 늘 생기가 넘쳤으며 그분이 나를 쳐다보실 때 음울한 빛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공연한 짓을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분께 개구리 드리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이면 우리는 교회 주변의 느릅나무숲 그늘 밑으로 가 우리가 가져온 점심을 펼쳐놓곤 했다. 그분은 늘 자루 속에 메추라기나 사슴 고기, 물고기 등을 가져오셨으며 할머니는 옥수수 빵과, 고기에 곁들여 먹을 야채들을 갖고 오셨다. 우리는 거기 앉아 그걸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사슴들이 산악지대의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는 얘기를 하시고, 할아버지는 물고기 바구니를 건졌더니 이런 저런 물고기가 잡혔다는 얘기를 하시고, 할머니는 그분께 꿰멜 옷이 있으면 가져오라는 말씀을 하시는 등등. 해가 꽤 기울고 엷은 이내가 끼기 시작하면 우리는 떠날 채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번갈아가며 그분을 한번씩 껴안았으며 그분은 내 어깨를 잡아주시곤 했다. 수줍은 태도로. 우리가 교회 앞마당을 가로질러 우리의 지름길을 향해 걸어갈 때면 나는 으레 고개를 돌려 그분을 쳐다보곤 했다. 그분은 결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그분은 양 손을 양 허리에 반듯하게 붙인 채, 그리고 정면만 응시하면서 긴 다리로 휘청휘청 걸어가시곤 했다.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몸담을 곳이 아닌 곳인데 어쩌다 발을 잘못 내디딘 곳이라고밖에 본 수 없는 이 백인문명의 변두리 땅을 뚜벅뚜벅 밟으시면서. 이윽고 그분은 길도 없는 숲 사이로 사라지셨고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뒤쫓아가려고 서둘러 달려가곤 했다. 일요일 저녁 어스름녘에 지름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쓸쓸했다. 우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그저 걷기만 했다.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 윌로우 존? 그리 멀지 않아요. 그래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당신의 생애가 다할 때까지 함께 살아요. 우리는 말하지 않을 거^36^예요. 당신이 겪었던 그 비통한 나날들에 대해서도. 아마 우린 때로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겠지요. 우리 둘이서 잃어버렸던 어떤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거구요. 저와 함께 머물지 않으시겠어요, 윌로우 존? 잠시만이라도. 당신의 몸이 지상에 뉘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우리는 가끔씩 서로를 쳐다보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알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36^예요.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서로 깊은 위안을 얻게 될 거^36^예요. 조금만 더 계시다 가지 않으시겠어요, 윌로우 존? 그저 저를 위해서. 좀더 오래 머무르시면서 당신과 헤어져야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세요. 그런 기억들은 먼 훗날 당신을 기억할 때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거^36^예요. 내 마음의 슬픔도 어루만져 줄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