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 전3권 중 제1권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 펴낸이: 김훈 펴낸곳: 고려원미디어 @[ (옮긴이의 말) 귀하고 소중한 것은 나누어야 한다. 작은나무의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 말씀하신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있으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다."작은나무의 할아버지는 작은나무에게 말씀하신다. "누가 너에게 말을 할 때는 그 말 뜻에 귀기울이지 말고 그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천마디가 넘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이 모조리 의미 없는 쓰레기같은 말일 수가 있으며, 단 한 마디, 혹은 침묵이 억만 마디의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할아버지의 친구인 와인 씨는 작은나무에게 말씀하신다. "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술적, 기교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가치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기술에 치우친 것만 익힌다면 그러한 지식은 세상을 오염시키고 문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만 쓰이게 된다." 한갓 떠돌이 유대인 등짐장수에 불과한 와인 씨는 2차 세게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백인문명의 파괴적인 결말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탈콘이라는 매는, 메추라기들 중에서 가장 느리고 약한 메추라기들을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작은나무에게 자연의 한 이치에 관해 가르쳐 준다. 자연은 약한 종류를 자꾸만 제거해 나감으로써 더 크고 강하고 빠른 것들로 온 산을, 그리고 온 자연을 보다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이러한 자연의 이치는 작은나무에게 슬픔을 안겨 주지만, 그것을 통해 작은나무는 가차없는 자연의 이법을 깨닫게 된다. 옮긴이가 예로 든 이러한 교훈들은 작은나무의 할머니, 할아버지, 와인 씨, 자연이 이야기해 준 것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 책은 사실상 이렇게 소중한 가르침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하여 아메리카 체로키 인디언의 피를 타고난 다섯 살짜리 소년은 이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 삶의 신비와 지혜를 낱낱이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남김없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책의 전편에 내재해 있는 중요한 가르침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의 무의미함에 관한 것이다. 특히 작은나무의 할아버지는, 언어는 우리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하나의 유익한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잡아 가두는 감옥이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을 지배하고 타인을 이용해먹는 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무학자이면서도 그 어떤 철학자나 언어학자보다도 더 명확하게 언어의 본질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이들 인디언들은 말은 불필요하며, 느끼고,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혀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고 영적인 언어, 즉 영혼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 영적인 언어로 인간뿐 아니라 온갖 자연물과도 이야기(교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뿐 아니라 바람, 시냇물, 참나물, 매, 천둥, 안개, 산, 노새, 사슴, 개, 여우, 제비꽃, 산비둘기, 소쩍새, 부엉이 등이 모두 그들의 친구가 된다. 이들 인디언 가족은 또 "법"으로 대변되는 정치나 제도, 관료기구등을 혐오한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유익한 도구가 아니라 소수의 인간들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학대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도구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기성종교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작은나무의 할아버지는, 침례교도들과 감리교도들이 물세례를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를 두고 서로 자기네가 옳다고 싸우는 것을 보고, 그리고 목사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하느냐를 두고 머리터지게 싸우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한심하게 여기면서 "만일 하느님이 이런 바보 멍청이들처럼 편협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천국이라는 데는 틀림없이 사람 살 만한 데가 못 되는 곳일 게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세속종교의 편협성과 독단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나아가서 인간 세상의 모든 이념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이 책은 또 아주 유머러스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 속의 유머는 독자들을 웃기기 위해서 일부러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세속의 정치 권력기구, 제도, 이념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우스꽝스런 면모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일테면 작은나무가 고아원 원장에게 얻어맞는 장면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작은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속에서 자유롭게 지내다가 정부관료들의 독단에 의해 강제로 고아원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 고아원의 선생 하나가 사슴들이 뛰노는 그림을 보여주며 이 사슴들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사슴들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그림이라는 둥, 사슴은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얼른 시냇물을 건너려고 하고 있다는 둥의 이야기들을 하지만 작은나무는 서슴없이 사슴들이 짝짓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작은나무는 산속에서 그런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아무 편견 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성적인 의미를 함축한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 경건한 기독교 신자인 그 여선생은 하마터면 졸도할 뻔한다. 그녀는 작은나무의 멱살을 붙잡고 미친듯이 뒤흔들며 "음란하고 더럽고 난잡한 사생아 새끼"라고 욕을 하며 뒷덜미를 잡고 원장에게 끌고 간다. 그리고 작은나무는 자기가 무슨 이유로 해서 매맞는지도 모르는 채 원장에게 잔인하게 두들겨 맞는다. 이처럼 작은나무의 자연스럽고 맑은 시선은 갖가지 저부와 자기부정적이고 생명부정적인 사고에 오염된 사람들에 의해 가차없이 매도당한다. 이 책의 유머는 대체로 이러한 두 가지 시각 사이의 거리감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작은나무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어떤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각에 의해서도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가르쳐 준다. 그것은 합리와 이성을 내세우는 백인들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가르침, 그리고 도구적인 이성을 강요하는 가르침과는 전혀 상반되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에게 절대로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스스로 우러나서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든다. 작은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시종 '옳은 말씀이시다'라고 긍정하곤 하는데 그것은 작은나무가 자신의 머리로 따져보아 사리에 맞고 이치에 맞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최종적인 판단은 작은나무에게 맡기고 그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다섯 살박이 어린이에게 모든 면에서 재량권과 선택권을 부여하고 제 발로 서게 만드는 이러한 뛰어난 가르침의 예들은,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기성의 가치관과 편견으로 가득한 교육 내용에 의해 세뇌되고 억압당하며 항시 애취급을 당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경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 책은 교육학에 관한 무슨 이론서 같은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거대한 백인문명의 한 변두리인 테네시 주 산악지대에 사는 인디언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작은나무라는 소년과 그 이웃들,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서 이루어 내는 조화로운 삶의 한 모습을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극적이고 센세이셔널한 감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작으면서도 깊이있고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다. 굳이 엔트로피 이론 같은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늘 거대한 것만을 추구하고, 소모적이고,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기만 하면서 우리의 단 하나의 삶의 장인 지구를 서서히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가는, 백인문명으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에 대해 이들의 삶은 하나의 자그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아메리카 체로키 인디언들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그들은 북아메리카 남동부 곧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곧 테네시 주 근방이 된다)에 거주하던 한 종족이었다. 1650 년경에는 인구가 2 만여 명에 달했으나 천연두 때문에 그후 반 이상으로 줄고 말았다. 그리고 이 책에도 소개된 것처럼 19세기 후반경에 오클라호마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책에서는 인디언의 나라로 표현된다)으로 강제 이주당하면서 다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헌데 이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들이 수많은 인디언 종족들 가운데 자기네의 문자(음절문자)를 지닌 유일한 종족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삶의 모습이 다른 인디언 종족들보다 더 자세히 소개된 이유의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으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작은나무의 교육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지만, 무슨 교육학 관계의 책 같은 딱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으로 바꾸었음을 밝힌다. 옮긴이 @ff @[ 작은나무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만에 엄마마저 세상을 뜨셨다. 그래서 나는 다섯 살 적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뒤 친척들이 나 땜에 꽤나 시끌벅적하게 언쟁을 벌였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살던 산비탈의 오두막 뒤편에는 개울이 흐르는 빈 터가 있었는데 거기서 친척들은 빙 둘러선 채 우리가 쓰던 탁자와 의자들, 그리고 곱게 색을 입힌 침대를 분배하면서 나를 어디로 보내는 게 좋을지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무리들과 좀 떨어진 마당 한 귀퉁이에 서 계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편에 계셨다. 할아버지는 체로키의 피가 반쯤 섞인 분이셨고 할머니는 순수한 테로키 혈통을 타고난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키가 백구십 센티가 조금 넘는 정도라 그 무리들 뒤편으로 우뚝 솟아올라 있었고 교회에 갈 때나 장례식에 참석할 때만 입는 윤나는 검은 양복 차림에 큼직한 검은 모자를 쓰고 계셨다. 할머니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계셨지만 할아버지는 그 무리들 너머로 줄곧 나를 응시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살금살금 마당을 가로질러 할아버지한테로 가서는 냉큼 할아버지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들이 아무리 나를 떼어놓으려고 하더라도 절대로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친척들이 한동안 나를 끌어당기느라고 난리를 치는 동안 내가 소리치지도 울지도 않고 그저 결사적으로 할아버지의 다리에만 매달렸었다고 하셨다. 이런 소동이 한참 진행되던 와중에 갑자기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히고 그 큰 손을 내 머리 위에 얹으셨다. 그리고는 비로소 입을 여셨다. "얠 그냥 내버려둬." 그러자 그들은 내 곁에서 물러났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으며 일단 입을 열었다 하면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침침한 겨울 오후의 산비탈을 걸어 내려와 읍내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내 옷가지들을 넣은 바랑을 어깨에 걸쳐멘 채 길가를 따라 앞장서 걸어가셨다. 할아버지의 뒤를 따를 때면 종종걸음을 쳐야만 한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 뒤편에서 연신 치마를 치켜올리며 열심해 쫓아오셨다. 읍내의 보도 위에 올라서서도 여전히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걷고 나랑 할머니는 정신없이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서 있었으며 그 동안 할머니는 오가는 버스의 앞 유리창에 부착된 노선 표시판을 열심히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누구 못지않게 글을 잘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땅거미가 잦아내릴 무렵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정확히 골라내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다 타고난 다음에 비로소 버스에 놀랐는데 그건 참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버스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말썽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맨 앞에 서고 나는 중간에 서고 그리고 할머니는 아직도 버스 계단의 맨 아래탄에 선 상태에서 여닫을 때마다 딸각 소리가 나는 조그만 지갑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 들고는 그걸 열고 돈을 끄집어 내셨다. "표는 없어요?" 버스 운전사가 벽력같이 소리치는 바람에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지금 돈을 내려고 하지 않느냐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뒤에서 할머니가 우리의 행선지를 알려주라고 속삭이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버스 운전사는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낼 차삯이 얼마인지를 알려 주었다. 버스 안이 침침해서 할아버지가 힘들게 돈을 세는 동안 버스 운전사는 손님들을 돌아보면서 오른손을 치켜들고는 "별 수 없잖아요!" 하고는 낄낄댔다. 그러자 모두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들이 호의적이며 우리가 표도 사지 않고 버스를 탄 것에 대해 별로 기분나빠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우리가 버스 뒤편으로 걸어가는데 얼굴이 엉망이 된 한 여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눈 언저리가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고 입 주변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여자 곁을 지나갈 때 그 여자는 돌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떼며 "아이구!" 하고 비명을 질렀다. 헌데 그녀는 금방 괜찮아졌는지 깔깔거리고 웃었으며, 이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어댔고 그녀 곁에 앉은 사내 역시 제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의 넥타이에는 빛나는 큰 핀이 꽂혀 있어 나는 그들이 부자며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의사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앉았다. 할머니가 한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셨으며 이에 할아버지는 내 무릎 너머로 팔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흐뭇한 기분과 함께 잠이 들었다. 우리가 버스에서 자갈길로 내려섰을 때는 이미 밤 깊은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걷기 시작하셨고 할머니와 나는 뒤따랐다. 날은 몹시 추웠다. 중천에는 잘 익은 수박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은 모양의 달이 휘영청 떠올라 저 멀리 휘어져 돌아가는 길을 하얗게 비춰 주었다. 우리가 자갈길을 버리고서 한복판에 긴 띠처럼 풀이 자라고 그 양 옆으로 차바퀴 자국이 깊게 패인 길로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그 산을 발견했다. 산등성이 바로 위로 솟은 반달을 등지고서 칙칙한 검은 그늘을 드리운 채 우뚝 솟은 그 산은 어찌나 높은지 그걸 바라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였다. 나는 그 산의 그 짙은 어둠에 몸을 떨었다. 내 뒤에서 오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여보, 애가 지친 거 같아요." 그 말씀에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큰 모자가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소중한 걸 잃었을 때는 녹초가 되는 것도 괜찮지"라고 말씀하시고는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를 따라가기가 좀 수월해졌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도 역시 지치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걸은 뒤 우리는 그 길을 벗어나 이번에는 차들이 다닐 수 없을 만큼 좁은 오솔길을 따라 곧바로 산의 어둠 속으로 파고 들어 갔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꼭 그 산과 부딪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우리가 계속 걸어감에 따라 그 산은 소리없이 열리면서 이내 우리를 제 품안에 맞아들였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사방에서 여러 가지 소리들이 일어났다. 흡사 모든 것이 잠 깨어 일어난 듯 숲속에는 가벼운 속삭임과 수런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곳은 포근했다. 우리 곁에서는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시냇물이 바위를 타고 뒹굴다가 평탄한 곳마다 웅덩이를 만들고는 다시 흐르는 일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온갖 소리들을 다 냈다. 우리는 이미 그 산의 우묵한 골짜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반달은 어느 틈에 산등성이 뒤로 숨어 버린 채 밤 하늘에 밝은 후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빛은 우리를 품에 안은 그 우묵한 골자기 위에 은은한 은빛 궁륭처럼 걸려 있었다. 할머니가 내 뒤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인디언의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아늑해졌다. 그때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나는 기겁을 했다. 밤 하늘을 타고 길게 고리를 끌던 그 구슬픈 외침 소리는 이내 흐느낌 같은 것으로 변했으며 그것은 다시 산울림을 타고 그 산속으로 되돌아갔다. "우리집 늙은 개 모드일 게다. 몸집이 작은 애완견들만큼 냄새를 잘 맡지는 못하지만 귀는 아주 밝지." 할아버지는 기분좋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잠시 후 우리는 사냥개들에게 에워싸였다. 그 개들은 할아버지 주위를 돌며 낑낑거리기도 하고 내게서 낯선 냄새를 맡고는 내 몸에 코를 대고 큼큼대기도 했다. 이때 늙은 모드가 바로 우리 앞에서 다시 짖어대었다. "그만 둬, 모드!"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시자 그 개는 그제서야 할아버지를 알아보고는 쏜살같이 달려와 우리 위로 펄쩍 뛰어 올랐다. 실개천 위에 걸린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바로 오두막 한 채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그 산을 배경으로 하여 큰 나무들 밑에 자리잡은 통나무집이었으며 그 집 전면에는 산듯한 모양의 현관이 나 있었다. 그 오두막은 중앙에 넓은 복도처럼 된 거실이 있고 그 양편으로 방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실은 양 끝이 그냥 틔어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걸 "복도"라도 부르지만 산사람들은 "개 통로"라고 부르곤 한다. 개들이 늘 그곳을 통해 자유롭게 들락거리곤 하기 때문이다. 한쪽에 자리잡은 큰 방은 부엌 겸 창고였으며 그 맞은편에는 침실 둘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하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는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방이었다. 나는 히코리 나무로 틀을 짜고 그 양 끝에 부드러운 사슴가죽으로 된 바닥 깔개를 연결시킨, 용수철처럼 탄력 있는 침대 위에 누웠다. 나는 열린 창문을 통해 실개천 건너 요요한 빛 속에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왈칵 솟구쳤고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설움에 가슴이 시렸다. 문득 손 하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곁 마룻바닥 위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 것이다. 바닥에 앉는 바람에 할머니의 치마는 풍덩하게 부풀어 올랐고 가지런히 땋아내려 은빛 띠처럼 된 머리는 어깨 위로 해서 앞가슴을 타고 무릎 밑으로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할머니도 역시 나처럼 창밖을 내다보시며 낮고도 부드럽게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그가 온 걸 알았답니다. 숲과 숲바람, 아버지이신 산은 자기네의 노래로 그들을 맞아들입니다. 그들은 작은나무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걸 알지요. 그들은 노래불러요, '작은나무는 외롭지 않다'고. 쉴새없이 재잘대는 철없는 레이나까지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며 즐겁게 춤을 추어요. '오, 내 노래를 들어봐요, 우리 형제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어요. 작은나무는 우리 형제, 그리고 작은나무는 지금 여기 있어요.' 어린 사슴 아우이 우스디와 암메추라기 미넬리, 그리고 까마귀 카구마저 노래불러요. '작은 나무의 마음은 굳세고, 그의 따뜻한 마음은 그의 힘이 되어 주어요. 그리고 작은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을 거^36^예요.'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바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실개천 레이나가 내 모든 형제들에게 내 얘기를 알리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작은나무'라는 걸 알았으며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환영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고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ff @[ 자연의 이치 할머니는 저녁마다 당신의 가벼운 몸 하나를 싣고도 연신 삐그덕거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일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시곤 했다. 그럴 때면 벽난로에서는 관솔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사슴가죽 장화 한 켤레가 마련되었다. 할머니는 부드럽게 휘어져 돌아간 칼로 사슴가죽을 잘라내 여러 장의 길다란 조각들을 마련한 뒤 그 끝을 바늘로 서로 엮어 장화 모양을 만들어 내신 것이다. 다 만든 뒤 할머니는 그걸 물에다 담그셨다. 그리고 나는 물에 젖은 그 가죽신을 신은채 거실을 왔다갔다했다. 마침내 그것이 다 마르자 그것은 공기처럼 가볍고 부드러웠으며 내 발에 꼭 맞았다. 이튿날 아침 나는 서둘러 바지를 입고 윗도리의 단추를 채운 뒤 그 가죽 장화를 신었다. 밖은 어둡고 추웠으며 너무 이른 시각이라 나뭇가지들을 뒤흔드는 새벽바람조차고 일지 않았다. 간밤에 할아버지는, 만일 내가 일찍 눈을 뜰 수 있다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따라와도 좋지만, 일부러 나를 깨워 주시진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사나이라면 아침마다 제 힘으로 일어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 방 벽에 쿵쿵 부딪치시는가 하면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말슴하는 식으로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다 내셨다. 그 바람에 나는 저절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으며 할아버지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 서서 할아버지가 나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어? 벌써 일어났니?" 할아버지는 놀라는 표정을 하셨다. "예, 할아버지." 나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껑충껑충 뛰는 개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희들은 여기 남아 있어"하고 명령하셨다. 개들은 엉덩이 밑으로 꼬리를 사려넣고 제발 좀 데려가 달라는 듯이 낑낑거렸으며 늙은 모드는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들은 차마 우리를 따라오진 못하고 맥빠진 몰골로 저희들끼리 한 무리를 이루고 서서 그 빈터를 떠나는 우리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실개천의 둑을 따라 올라가는 낮은 길을 과거에 가본 적이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휘돌아 올라가는 그 길은 얼마쯤 가다가 툭 터진 풀밭으로 연결괴며 그 풀밭에는 할아버지의 노새와 소가 자라는 헛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오르는 길은 가파른 산등성이 길이었으며 이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산허리를 타고 줄곧 올라가기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을 치면서 그 길의 경가사 얼마나 가파른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헌데 나는 할머니가 짐작하신 대로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죽신을 통해 어머니이신 대지, 즉 모놀라의 존재를 감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때로 불쑥 솟아오르거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아래로 움푹 꺼지기도 한 그녀의 존재를^5,5,5^ 그리고 그녀의 몸 전체로 퍼져나간 뿌리와 그녀의 내부 깊숙이 흐르는 체액과도 같은 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 말씀 마따나 아득하고 탄력에 넘쳤으며 그 싱싱한 가슴 위에서 나를 뛰놀게 했다. 공기가 싸늘해 숨을 내쉴 때마다 입과 코로 구름 같은 수증기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실개천은 우리 발 아래 까마득히 낮은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에 덧씌워진 날카롭고 투명한 얼음 결정들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으며 우리가 더 놓이 올라감에 따라 길 위에도 얼음이 깔려 있었다. 희뿌연 새벽 여명이 어둠을 주금씩 쫓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는 오솔길 한 곁을 가리키셨다. "저기를 좀 보렴. 칠면조가 지나간 자국이 보이지?"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한 점을 중심으로 해서 가는 나뭇가지들이 부챗살처럼 뻗어나간 형국의 조그만 발자국들을 여럿 찾아냈다. "덫을 놓기로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오솔길을 벗어나 얼마쯤 걸어간 끝에 큼직한 구덩이 하나를 찾아내셨다. 우리는 우선 그 안에 들어찬 낙엽을 걷어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긴 칼을 끄집어내 스폰지처럼 무른 구덩이 속의 흙을 잘라내셨으며 다시 우리 둘이서 그 흙을 밖으로 퍼내 낙엽 사이에 골고루 흩뿌려 놓았다. 그 구덩이가 꽤 깊어져서 내가 똑바로 선 상태에서도 머리 끝까지 푹 파묻힐 정도가 되자 할아버지는 나를 구덩이 밖으로 끄집어내 주셨다. 우리는 나뭇가지들을 끌어와 그 구덩이 위에 덮어 놓고 다시 낙엽을 한아름씩 안아다가 나뭇가지달 위에 골고루 뿌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그 긴 칼로 구덩이 있는 데서부터 아까 칠면조 발자국들이 보이던 데까지 조그만 길을 내셨다. 길이 완성되자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불그스름한 인디언 옥수수 알들을 꺼내 그 길을 따라 점점이 뿌려 놓으셨으며 구덩이 안에도 한줌 던져 넣으셨다. "자, 그럼 가보기로 할까?" 할아버지는 이렇게 훌쩍 한마디 던지시고는 다시 아까 그 길을 내쳐 올라가시기 시작했다. 서릿발처럼 흙을 뚫고 솟아오른 얼음들이 우리의 발 아래서 바삭바삭 부서져 내렸다. 우리의 눈아래서 계곡이 마치 칼날에 깊게 패인 상처 자국처럼 보이고 그 맨 밑에 흐르는 실개천이 날선 칼날처럼 가늘게 보일 정도로 우리가 높이 올라오자 어느 틈에 우리 맞은편의 산봉우리는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아침의 첫 햇살이 계곡 건너편의 산봉우리 위에서 막 고개를 내밀 무렵 오솔길을 벗어나 낙엽 위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신맛이 나는 비스킷과 사슴고기를 꺼내 내게 건내주셨다. 우리는 산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먹었다. 아침 해는 바야흐로 건너편 산봉우리 위에서 폭발하면서 그 찬란하고 눈부신 빛발로 대기를 가득 채웠다. 얼음으로 덮인 나뭇가지들 위에서 섬광처럼 튀어오르는 그 빛발 때문에 눈이 아릴 정도였다. 햇살이 밤의 어둠을 산 아래로 밀고 내려감에 따라 숲에 반사되는 빛의띠도 파도처럼 산허리를 훑고 내려갔다. 정찰차 나온 까마귀 한 마리가 세 번에 걸친 날카로운 경고음을 대기에 실어 보내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알렸다. 이제 산은 일시에 깨어 일어나 대기중에 엷은 증기를 내뿜으며 살아 숨쉬고 있었다. 햇살이 죽음의 얼음 갑옷으로부터 숲을 해방시키자 산은 여기저기서 얼음들이 튀는 소리로 소연해졌다. 할아버지로 나와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지켜보셨고 숲사이로 나직하게 휘파람을 부는 아침 바람소리와 더불어 점점 높아져 가는 산의 숨결에 귀기울이셨다. "산이 살아나는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부드럽고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할아버지. 산이 살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할아버지의 말씀을 받는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와 내가 사물에 대한 똑같은 이해의 순간을 체험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체험은 여느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음산한 밤의 그늘은 자그마한 풀밭을 가로질러 그 아래로 후퇴해 내려갔으며 그 풀밭을 빽빽이 메운 무성한 마른 풀들은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그 풀밭은 맞은편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 풀밭에서는 메추라기들이 분주히 날개짓을 하고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풀씨들을 골라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싸늘한 푸른 하늘을 가리키셨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으나 나는 뒤늦게서야 그 한 귀퉁이로 작은 점 하나가 날아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점점 커져갔다. 그 새는 자기 앞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러고 해를 마주 보는 자세로 날아오다가 풀밭이 있는 산허리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높이 솟아오른 스키 선수처럼 양 날개를 반즘 접은 채^5,5,5^ 갈색 탄환처럼^5,5,5^ 메추라기 떼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할아버지는 껄껄대며 웃으셨다. "저개 늙은 매, 탈콘이다." 메추라기들은 질겁을 하며 일제히 흩어져 숲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동작이 좀 굼떴다. 매는 그놈을 강타했다. 그것의 깃털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그것은 곧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매는 번개 같은 속도로 그것을 쪼아대었다. 잠시 후 매는 죽은 메추라기를 두 발로 움켜쥐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슬픈 표정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것이 자연의 이치란다. 탈콘은 느린 놈을 잡았고 그 때문에 저처럼 느린 놈들은 저를 닮은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내지 못하게 되는 거란다. 또 탈콘은, 빠른 놈의 알이거나 느린 놈의 알이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메추라기 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들쥐 수천 마리를 잡아 먹지. 이런 식으로 탈콘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있다. 그는 메추라기를 돕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칼로 흙 속에 묻힌 어떤 식물의 달콤한 뿌리를 캐내어 껍질을 벗겨 내셨다. 그러자 거기서는 겨울에 대비하여 저장해 둔 생명의 즙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할아버지는 그 뿌리를 반으로 잘라 굵은 쪽을 나한테 주셨다.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제일 훌륭한 놈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훨씬 더 강건해지고 늘 네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표범 파코가 알고 있으니 너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셨다. "벌 티비만이 제가 쓸 수 있는 것 이상을 갈무리하고 있다^5,5,5^. 그러니까 곰, 너구리^5,5,5^ 그리고 체로키들한테 빼앗기게 되지.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서만 잘 먹고 지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빼앗기게 마련이지. 그 때문에 전쟁도 벌어지고^5,5,5^ 그들은 제 몫 이상을 가지려고 별별 허튼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내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소리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어지지는 않아." 우리는 산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우리가 칠면조 덫 있는 데 당도 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와 있었다. 덫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우리는 칠면조들이 내는 소리로 그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놀라서 칠면조 특유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푸드득 거렸다. 나는 "할아버지, 나가지 못하게 하는 문도 없는데 왜 저것들은 머리를 낮추고 기어나오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구덩이 안으로 한껏 팔을 뻗어 연신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는 큼직한 칠면조 한 마리를 끌어내 가죽끈으로 다리를 묶은 다음 나를 쳐다보며 씩 웃으셨다. "이 늙은 칠면조, 텔키는 우리 인간들 중의 어떤 사람들과 비슷하다. 제가 만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낮추어 제 주위를 살펴보려고 하는 법이 없어요. 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대가리를 높이 치켜세우고만 있으니 무얼 알 턱이 없지." "그 버스 운전사같이 말이죠?" 나는 괜스레 할아버지에게 딱딱거렸던 그 버스 운전사를 잊을 수 없었다. "버스 운전사라니?"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셨다. 할아버지는 다시 구덩이 쪽으로 바싹 얼굴을 디밀고 또 다른 칠면조를 꺼내면서도 연신 쿡쿡거리셨다. "그렇구나. 그 버스 운전사랑 비슷하지. 생각해 보니 그 녀석은 지금 이 칠면조들처럼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꽥꽥거렸어. 헌데 그 녀석이 그렇게 하고 다니자면 그 머리가 여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게다. 우리야 우리 머리가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껄껄거리고 웃으셨다. 할아버지는 다리를 묶은 칠면조들을 땅바닥에 눕혔다. 모두 여섯마리였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모두 나이가 비슷하다^5,5,5^. 깃털의 두께로 알 수 있거든. 작은 나무야, 우리는 세 마리 밖에 필요 없으니 네가 할번 골라 보거라." 나는 땅바닥에서 퍼덕이는 칠면조들 주위를 돌면서 살펴보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살펴보기도 하다가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무릎을 꿇고 그놈들 사이를 기어다녔다. 마침내 나는 그 중 작아 보이는 세 마리를 골라냈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냥 다른 놈들의 다리에서 가죽끈을 끌러 주기만 하셨다. 풀려난 놈들은 날개를 휘저으며 허겁지겁 산비탈을 굴러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칠면조 두 마리만 어깨에 걸쳐 메시고는 나한테 물으셨다. "저걸 메고 갈 수 있겠니?" "네, 할아버지." 나는 제대로 골랐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어 얼떨떨한 상태에서 대꾸했다. 여윈 편이라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소리없이 미소가 번져갔다. "네 이름이 작은나무만 아니라면 널 작은매라고 부르고 싶구나."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칠면조는 무거웠지만 어깨에 닿는 그 뿌듯한 감촉에 마음이 여간 흥겹지 않았다. 해는 저 멀리 떨어진 곳의 산쪽을 향해 기울어져 가고 있었고 그것이 흩뿌리는 빛발이 우리가 걸어가는 오솔길 가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내려 길바닥에 진한 황금빛의 다채로운 문양들들을 그려 내고 있었다. 겨울의 늦은 오후라 바람은 잠잠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할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싶었다^5,5,5^. 내가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자연의 이치를 터득했던 것이다. 겨울 저녁 해를 받으며 산길을 간다. 통나무집으로 내려가는 길 위의 숲 그림자를 밟으며, 칠면조들의 발자취를 좇을 때면 체로키들은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산등성이 위로 아침이 탄생하는 것을 보라. 숲을 스치는 바람노래에 귀기울이라. 어머니이신 대지 모놀라가 내뿜는 생명을 호흡하라. 그러면 그대는 체로키의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되리. 나날의 삶 바로 이곳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리. 다른 것들이 없다면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모놀라의 지혜를 배우라. 그러면 그대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리니. 그리고 모든 체로키의 영혼과 맞닿게 되리니. @ff @[ 오두막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해 겨울, 우리는 밤만 되면 돌로 된 벽난로 앞에 앉곤 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속에서는 썩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뽑아낸 아벼운 옹이들이 걸쭉한 붉은 나무진을 내면서 지글지글타올랐으며, 그 널름거리는 불꽃으로 인해 우리들이 앉은 방 벽 위에서는 우리들의 그림자가 펼쩍 솟구쳤다가는 움츠러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 냈다. 우리들이 그 불꽃과 춤추는 그림자들을 지켜보는 동안 방 안에는 으레 긴 침묵이 자리잡았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읽은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셔서 그 침묵을 깨시곤 했다. 일 주일에 두 번, 그러니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이면 할머니는 석유 등잔을 켜고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셨다. 사실 등잔을 켠다는 건 우리에겐 사치스런 일이었음에도 그렇게 한 건 순전히 나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 때문에서였으리라. 우리는 석유를 아껴 쓰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와 나는 석유를 사러 읍내로 가곤 했는데 한 방울이라도 흘러나오지 않도록 나무뿌리로 주둥이를 단단히 틀어막은 석유 깡통을 들고 오는 일은 나한테 맡겨졌다. 그걸 한 통 가득 채우는 데는 오 센트가 먹혔다. 할아버지는 이런 일을 나한테 맡김으로써 나에 대한 굳은 신뢰를 말없이 보여주셨다. 읍내에 갈 때면 우리는 늘 할머니가 만들어 준 도서목록과 반납할 책도 함께 가지고 갔으며 도서관에 가서는 할아버지가 그것들을 여자 사서에게 들이밀곤 하셨다. 할머니는 현대 작가들의 이름은 잘 모르시지 않았나 싶다. 그 도서목록에는 항시 "미스터 세익스피어"라는 이름만 씌어 있었으니까. 할머니는 저자 이름만 아셨지 제목은 모르셨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 중에서 우리가 읽지 않은 것이면 뭐든지 좋다고 하셨다. 이 때문에 가끔 할아버지는 사서와 함께 우리가 읽지 않은 책을 고르느라 한참 고심을 하셔야 했다. 사서는 서가로 가서 미스터 셰익스피어의 책 몇 권을 골라 와서 제목을 읽어 주곤 했는데, 다행히 안 빌린 책이라는 걸 알면 다행이지만 제목만 듣고 그걸 알 수 없을 때면 사서가 한 페이지를 읽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할아버지는 계속 좀더 읽어봐 달라고 하셨고 그녀는 몇 페이지를 내리 읽어 줬다. 이런 식으로 몇 권을 읽는 과정에서 가끔 내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줄거리를 알아챌 때도 있었으며 그럴 때면 나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겨 그건 우리가 읽은 책이라는 신호로 고갯짓을 하곤 했다. 헌데 그러다 보니 그건 일종의 경쟁 비슷한 것이 되어 할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알아내려고 기를 쓰셨다. 그래서 괜히 안 읽은 것도 읽었다고 그러셨다가는, 다시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번복하셔서 사서를 혼란에 빠트리시곤 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사서는 약간 짜증을 내면서 글도 '읽을' 줄 모르면서 책은 빌려서 무얼 할거냐고 할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그 책들을 읽어 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겪은 뒤 그녀는 아예 우리가 읽은 작품들의 목록을 준비해 놓았다. 그녀는 친절한 성품을 지닌 여자여서 우리가 도서관 문으로 들어설 때면 늘 밝게 웃어주곤 했다. 한번은 그녀가 내게 빨간 줄무늬 막대사탕을 주었는데 나는 그걸 금방 먹지 않고 갖고 있다가 도서관 밖으로 나와서 둘로 쪼개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었다. 나는 그걸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 못해 작은 쪽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내가 사전의 앞 부분부터 시작하여 매주 다섯 개씩의 낱말을 새로 익혀야 했으므로 우리는 늘 사전을 뒤적거려야 했다. 헌데 이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었다. 낱마라을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주일 내내 이 다섯 단어를 골고루 응용해 가며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주일 동안에 익혀야 할 말이 에이A로 시작하는 말뿐이거나 비B로 시작하는 말뿐이라면 이런 단어들을 응용하여 말을 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셰익스피어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읽은 책 중에는 할머니가 잘 알지 못했던 기본의 "로마제국의 성장과 몰락"이란 책^5,5,5^ 그리고 셸리나 바이런과 같은 저자의 책들도 끼어 있었는데 이런 책들은 사서가 알아서 골라 보내 주었다. 할머니는 책에다 얼굴을 바싹 들이대신 채 길게 땋아내린 머리로 바닥을 쓸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셨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느린 템포로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귀를 기울이시곤 했다. 헌데 나는 어디가 흥미진진한 대목인가를 금방 알아차리곤 했는데 그건 그런 대목에 이를 때마다 할아버지가 흔들기를 멈추시곤 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맥베드"를 읽으셨을 때 나는 우리집 오두막 벽에서 맥베드의 성과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마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그 바람에 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흔들의자에 앉으신 할아버지 곁으로 살그머니 전진해야 했다. 할머니가, 사람을 찔러 죽이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장면을 읽으셨을 때 할아버지는 문득 흔들기를 멈추셨다. 할아버지는 맥베드 부인이 여자가 할 일에나 신경을 쓰고 맥베드 씨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그 여자는 도무지 레이디(귀부인을 이르는 말: 옮긴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여잔데 이 책에서 왜 그여자의 이름 앞에 그런 호칭을 붙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불평하셨다. 할아버지의 이런 견해는 모두 첫번째 낭독을 다 듣고 나신 후의 흥분상태에서 나왔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을 다시 곱씹어 보신 뒤 틀림없이 그 여자(할아버지는 그녀를 레이디라고 부르기를 거부하셨다)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옛날에 암사슴 한 마리가 발정이 났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수사슴이 보이지 않자 나무들을 들이받으며 미친 듯이 날뛰다가 결국 강물 속에 빠져 죽고 만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며, 셰익스피어 씨도 "맥베드"에서 이런 식으로 원인을 설명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그 여자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문맥에서 암시하는 바에 따르자면 맥베드 씨가 제 주관대로 행동하지 못한 걸로 봐서 일차적으로 모든 책임을 그 사내 쪽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도 할아버지는 이 문제를 두고 꽤나 골머리를 썩이시다가 마침내 잘못의 가장 큰 부분은 맥베드 부인 쪽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미친 듯한 피의 열기를 해소할 만한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최소한 제 머리를 벽에다 짓찧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에서. 헌데도 그녀는 제 머리를 짓찧지 않고 부자비하게 사람들을 살해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줄리어스 시저의 죽음을 둘러싼 문제에서는 시저의 편을 드셨다. 할아버지는, 시저가 그 전에 더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모든 면에서 다 공명정대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브루터스와 그 일당이 그지없이 비열하게 행동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둑놈들처럼 살그머니 시저에게 다가가서 일 대 일이 아니라 떼로 덤벼들어 그를 찔러 죽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할아버지는, 만일 그들이 시저 씨와 의견이 달랐다면 자기네의 입장을 솔직히 밝히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너무나 흥분을 하시는 바람에 부득불 할머니가 나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다 시저 편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할아버지의 견해가 틀리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또 그 사건은 너무나 노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 지금 와서 달리 어찌 해 볼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할아버지를 달래 드려야만 했다. 헌데 정말로 우리를 난처한 지경으로 몰아 넣은 건 조지 워싱턴에 관한 문제였다. 이 문제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산사람들에게 적이 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할아버지에게도 적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할아버지는 적들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가난했으며 또 인디언적인 기질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볼 태 그 적들이란 "기존체제"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보안관이나 세무서원, 정치가들이 바로 적으로 비쳤으며 할아버지는 그들을 모두 "법"이라 불렀다. 일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강력한 괴물이라는 의미에서의 법. 할아버지는 당신이 한 사람의 당당한 사내가 되고 나서도, 그리고 세상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한테는 위스키 만드는 게 불법이란 걸 끝내 알지 못한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촌 한 사람이 있었다. 헌데 그 사촌은 늘 자신이 "제대로" 투표하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법이 자신을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어떻게 투표를 해야 제대로 한 것이 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시 그 사촌이 이 문제로 너무나 애간장을 졸인 탓에 죽게 되었다고 믿고 계셨다. 그는 선거철만 다가오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올바로 투표하는 법에 대해 알려고 오만가지 궁리를 다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로 너무나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꼭 술에 만취된 상태가 되곤 했으며 그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그 사촌의 죽음을 정치가들 탓으로 돌리셨다.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적인 인물의 죽음치고 정치가들과 무관한 죽음은 하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건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훗날, 내 눈으로 직접 역사책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나는 할머니가 조지 워싱턴이 인디언들과 싸운 대목들은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높이 평가하고 찬양할 만한 정치가도 있다는 걸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기 위해 조지 워싱턴의 좋은 점을 드러내 주는 대목들만을 읽으셨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앤드류 잭슨(테네시 주 민병대장 출신으로 서부개척에 공로가 많았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인디언을 살상했다. 훗날 미국의 칠대 대통령이 되었다: 옮긴이)은 싹 무시하셨다. 그러나 내 기억이 미치는 한 그 밖의 청치가들이라 해서 할아버지로부터 앤드류 잭슨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의 그런 낭독법에 넘어간 탓으로 어느 때부터인가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들먹이시기 시작했다^5,5,5^. 정치가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조지 워싱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헌데 할머니가 아차 실수하여 위스키 세에 관한 대목을 읽어 버림으로써 할아버지의 머리에는 갑자기 혼란이 왔다. 할머니는 그만 조지 워싱턴이 의스키 제조자들에게 세금을 매기고 또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만들 수 없는 사람을 규정하는 법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는 대목을 읽어 버리셨던 것이다. 헌테 토머스 제퍼슨(훗날 미국의 삼대 대통령이 된 인물: 옮긴이)은 그건 부당한 처사라고 반대했다. 제퍼슨은, 산악지대의 가난한 농민들은 산비탈의 작은 밭뙈기밖에 없어 평원의 대지주들처럼 많은 옥수수를 생산할 수 없고, 따라서 자기네들이 생산한 옥수수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걸 위스키로 만들어 파는 길뿐이며, 또 위스키 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도(사실, 스카치 위스키는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재료를 볶다 말고 왕이 파견한 사람들에게 번번이 쫓기는 바람에 그것을 볶던 용기가 지나치게 가열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특유의 씁쓸한 맛을 띠게 되었다)에서도 많은 말썽거리들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끝내 위스키 세 법안을 관철시키고 말았다. 이런 내용을 들은 할아버지는 깊은 충격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흔들의자를 까딱거리는 일도 멈추신 채 초점 잃은 눈길로 벽난로 속의 불꽃을 말없이 응시하기만 하셨다. 그 내용을 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당신의 실수를 깨달으신 할머니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이윽고 할아버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고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한팔로 껴안은 채 침실로 인도했다. 나 역시도 할아버지 못지않게 마음이 울적했다. 그로부터 한 달 가량 지난 뒤 나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할아버지가 이 일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는가를 새삼실감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우리가 읍내로 가기 위해 산길을 타고 내려가다 차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길로 들어섰을 때 일어났다. 이 길에서는 이따금 차들이 지나가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차가 오나 해서 두리번거리시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권한다 해도 절대로 차를 탈 분이 아니셨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차 한 대가 갑자기 우리 곁에서 멈춰섰다. 그것은 지붕이 캔버스 천으로 된, 창문도 없이 훤히 트인 차였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가뜩이나 정치가 같은 차림새로 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할아버지가 절대로 타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덜덜거리는 엔진소리 때문에 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타겠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서서 생각하시는 눈치더니만 불쑥 "고맙소"하는 말씀과 함께 앞좌석에 올라타셨다. 그리고는 내게 뒷좌석에 타라고 손짓하셨다. 차는 쏜살같이 내달렸으며 나는 그 빠른 속도에 신바람이 났다. 할아버지는 원래 앉으나 서나 항시 허리를 꼿곳이 하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모자를 쓴 채 차 안에 똑바로 앉아 계시자니 머리가 차 지붕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상체 전체를 차 앞의 바람막이 유리 쪽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것을 꼭 눈앞의 길을 살핌과 동시에 그 정치가의 운전솜씨를 살피는 것 같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 정치가는 꽤나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할아버지야 그가 무얼 하건 손톱만큼도 신경 쓰실 분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참다못한 그 정치가가 입을 열었다. "읍내로 가십니까?" 이에 할아버지는 "예"하고 대꾸해 주셨다. 그러자 약간 사이를 두고 그 정치가는 다시 물었다. "농삿일을 하십니까?" "좀 하는 편이죠." "난 주립사범대 교숩니다." 나는 그가 정치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헌데 나는 그의 말에 약간의 거드름기가 배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인디언입니까?" 교수의 말에 할아버지는 "예"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교수는 "오,"하고 짤막하게 반응했다. 마치 이로써 나와 할아버지를 완전히 파악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가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불쑥 질문을 던지셨다.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세를 매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교수는 이 느닷없는 질문에 흡사 따귀라도 맞은 사람처럼 어리벙벙한 표정을 했다. 그러다 그는 아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위스키 세요?" "예, 위스키 세." 교수가 갑자기 낯을 붉히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게, 내게는 꼭 위스키 세와 관련해서 뭔가 할 말이 많은 사람의 그것처럼만 비쳤다. "잘 모르겠는데요. 조지 워싱텅 장군에 대해 말하는 거지요?" "그럼 조지 워싱턴이란 사람이 여러 명 있단 말인가요?" 할아버지는 깜짝놀라 되물으셨다. 나 역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니요. 어쨌든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교수의 말은 좀 수상쩍게 들렸으며 그런 기분은 나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라는 걸 나는 할아버지의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교수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바람막이 창을 통해 앞의 길바닥만을 응시하셨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할아버지가 왜 이 차에 순순히 올라타셨는가를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다시 입을 여셨는데 이제 그 어조에는 기대감 같은 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혹시 워싱턴 장군이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내말은, 그렇게 많은 싸움을 치렀으니 그 와중에서 머리 한 옆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는 일도 있을 수 있잖냐는 거지요." 교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아까보다 한층 더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저어, 나는^5,5,5^." 그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조지 워싱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느 틈에 우리는 읍내 변두리 가까이에 와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교수에게 내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길가로 내려선 뒤 할아버지는 교수에게 사의를 표하기 위해 모자를 벗으셨으나, 그는 우리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자욱한 먼지 구름 속으로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는, 저런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행동하니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교수가 의심쩍게 행동했으며 그가 사실 교수 행세를 하는 정치가일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동의하셨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들 중에는 자기가 정치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정직한 사람들 틈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설혹 진짜 교수를 만난다 하더라도 무조건 가볍게 보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교수 중에는 멀쩡한 사람보다 미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할아버지는 조지 워싱턴이 수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리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위스키 세를 매기는 것 같은 괴상한 행동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아저씨의 경우를 예로 드셨다. 그분은 노새에게 한번 머리를 걷어채인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영영 온전하질 못하셨다 한다. 헌데 할아버지는 아저씨가 때로 자신의 그런 상태를 이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얘기는 누구한테도 하신 적이 없었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 한번은 어떤 사내가 제 집으로 돌아왔다가 할아버지의 아저씨가 그 사내의 아내와 한 침대 속에 들어가 있는 현장을 붙잡았다. 헌데 그때 할아버지의 아저씨가 갑자기 네 발로 기어 마당으로 나가더니만 돼지처럼 쭈그리고 앉아 흙을 파먹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그분이 일부러 꾸며대느라 그러시는 것인지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러시는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럴싸하게^5,5,5^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든지 간에 최소한 그 사내로서는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그 아저씨는 제 수명을 다하고 고요히 침대에 누워 세상을 뜨셨다. 할아버지는, 어쨌든 그건 자신이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어서 얘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결론지으셨다. 나로서는 조지 워싱턴이 머리 부분에 총상을 입어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할아버지의 견해가 꽤나 그럴싸하게 들렸으며 그로써 그의 다른 괴상한 행동들고 어느 정도 납득이 될 수 있었다. @ff @[ 여우와 사냥개들 어느 겨울날 늦은 오후, 할아버지는 늙은 모드와 링거가 다른 사냥개들 면전에서 창피한 꼴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시며 그것들을 오두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셨다. 나는 이제부터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리라 짐작했다. 할머니는 이미 그걸 알고 계셨다. 오늘 따라 할머니의 검은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았다. 할머니는 내게 할아버지의 사슴가죽 상의와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혀 주셨으며 할아버지께 하듯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주셨다. 그 바람에 나는 어른이 다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을 서성거렸다. 할머니는 내게 비스킷과 고기를 담은 자루를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밤엔 문간에 나가 앉아 있어야겠다. 그래야 네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휘파람을 불어 개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런 뒤 우리는 실개천을 따라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사냥개들은 연방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아버지가 개들을 키우시는 건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 하나는 옥수수밭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매해 봄 여름마다 할아버지는 늙은 모드와 링거를 옥수수밭으로 보내셔서 사슴, 너구리, 멧돼지, 까마귀 등을 막게 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모드는 냄새를 맡는 데는 젬병이어서 여우의 뒤를 쫓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귀와 눈은 아주 밝아서 나름대로 제 몫을 했으며 그 늙은 암캐 자신도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데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건 사람이건 간에 자신이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그건 아주 비참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후각이 뛰어난 좋은 몰이개였지만 이제 꽤 나이가 들었다. 이 수캐는 꼬리가 뭉툭하게 잘려나가 볼품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으며 잘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할아버지는 링거에게 자신이 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기분을 안겨 주기 위해 이 개를 모드에게 붙여 줬다고 하셨다. 그 덕분에 링거는 어느 정도 위엄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특히 옥수수밭에서 일하는 철만 되면 다리에 힘을 주고 의젓한 걸음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옥수수 농사철만 되면 모드와 링거를 골짜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헛간에 갖다 두셨으며 그것들은 거기에 머무르면서 충실하게 제 일들을 해냈다. 모드는 링거의 눈과 귀였다. 모드는 옥수수밭에 뭐가 어른거리기라도 하면 마치 그것이 제 옥수수밭이라도 되는 양 요란하게 짖으며 달려나갔다. 그러면 링거도 같이 짖어대며 모드의 뒤를 쫓아간다. 그들이 침입자를 발견하고 옥수수밭으로 돌진해 들어갈 때 모드는 후각이 좋질 않아서 바소 옆에 너구리가 웅크리고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마련이다^5,5,5^. 그러나 모드의 뒤를 쫓아가는 링거는 냄새로 너구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연신 코로 땅바닥을 킁킁거리며 너구리의 뒤를 쫓는다. 그가 냄새로 계속 너구리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견디다 못한 너구리는 나무 위로 쫓겨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링거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맥빠진 걸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네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할아버지가 개들을 키우시는 또 다른 이유는 순전히 여우몰이를 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짐승 사냥을 나갈 때는 결코 개들을 이용하는 법이 없으셨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모든 짐승들의 생각과 성격, 습관과 자취, 그리고 그들이 물마시고 먹이를 먹는 장소를 그 어떤 사냥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훤히 꿰뚫고 계셨다. 그 붉은 여우는 사냥개들에게 쫓길 때면 원을 그리며 달아난다. 그 녀석은 제가 사는 굴을 중심으로 하여 지름이 일이 킬로미터쯤 되는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다. 그 녀석은 달리는 동안 줄곧 속임수를 쓴다. 되짚어 달려가기도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며 가짜 발자국을 남기는 등등. 하지만 결코 그 원을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다. 차차 기운이 빠지면 그 녀석이 도는 점점 안으로 졸아붙으며 결국에 가서는 제 굴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제 굴 속에 들어가 박혀 버리는" 것이다. 여우가 오래 뛰면 뛸수록 몸은 더워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그의 입에서는 짙은 체취가 뿜어 나오며 개들은 그 뒤를 쫓는 과정에서 그 강해져 가는 체취 때문에 점점 더 크게 짖어댄다. 사람들은 그걸 일러 "강력한 체취"라 한다. 회색 여우가 달아날 때는 보통 8자를 그리는데 이 8자가 교차하는 지점에 그의 굴이 자리잡고 있다. 할아버지는 너구리의 생각도 훤히 꿰뚫고 계셔서 그 녀석이 음훙한 짓을 할 때면 코웃음을 치셨으며, 아마 그 녀석도 자신을 비웃었을 거라고 단정하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칠면조가 어디로 도망치는지 잘 알고 계셨고 벌떼가 나는 모습을 흘끗 보시기만 하고도 벌이 물에서 제 집으로 가는 길을 추적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사슴의 묘한 성질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슴이 제 발로 할아버지께 걸어오게 하실 수도 있었고, 메추라기 떼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면서도 메추라기들을 날아가지 않게 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필요할 때가 아니면 결코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셨으며 나는 그 짐승들도 그걸 알고 있었으리라는 걸 "안다". 할아버지는 짐승들을 "쫓아야 할" 목표물로써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들로 보셨다. 백인들은 거칠고 무례한 자들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그들의 존재를 잘 참아내셨다. 하지만 그들은 개들을 끌고 들어와 시끌벅적하게 온 산을 들쑤시며 다니곤 했다. 그 바람에 산짐승들은 그들만 나타났다 하면 제 집으로 숨어 들어가기에 바빴다. 그들은 열두 마리의 칠면조를 봤다 하면 그 열두 마리를 모조리 잡아죽이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백인들은 할아버지를 뛰어난 산사람이라 해서 존경했다. 나는 네거리 가게에서 그들이 할아버지와 마주칠 때마다 모자챙에 한손을 대는 동작을 통해서나 그들의 눈빛에서 그들의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사는 계곡이나 그 근처의 산에는 접근하는 걸 삼갔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드나드는 산에 점점 짐승들의 씨가 마른다고 연신 불평을 해댔다. 그들이 그런 불평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시곤 했다. 하지만 내게만은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체로키들의 이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겅중겅중 뛰는 개들을 뒤에 거느린 채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 뒤에 바싹 따라붙어 갔다. 이 시간은 바로 태양이 막 산등성이 너머로 침몰하고 선홍빛의 놀이 진힌 핏빛으로 변하며 날빛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그리하여 모든 순간순간 변화하면서 서서히 어둠 속에 가라앉는 신비롭고도 으스스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모의 여린 바람조차도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얘기하기라도 하듯 내 귓전에서 낮고 음험한 속삭임을 발했다. 낮짐승들은 잠자리로 찾아들고 밤짐승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슬슬 제 집에서 기어나오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헛간이 있는 풀밭을 지날 즈음 할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는 바람에 나는 할아버지의 가랑이 사이에 선 꼴이 되고 말았다. 부엉이 한 마리가 계곡에 낮게 붙어 우리 쪽으로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울음소리도, 날갯소리도,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우리 바로 곁을 스치고 지나 헛간 속에 유령처럼 사뿐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부엉이다. 밤에 가끔 여자가 앓는 소리를 들었지? 그게 바로 이 녀석이 내는 소리다. 지금 쥐를 잡으로 내려온 거야." 나는 그 부엉이가 쥐를 잡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 헛간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지나쳐 갔다. 어둠은 훨씬 더 빽빽해졌으며 우리가 계곡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산들은 점차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두 갈래 길에 이르렀는데 할아버지는 왼편 길로 들어서셨다. 이제 길이라고 해봐야 실개천 가장자리의 좁은 때 같은 공간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길을 "좁은 길"이라 부르셨다. 양쪽의 산이 어찌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두팔을 뻗으면 꼭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무들을 깃털처럼 머리에 인 검푸른 산들은 수직의 단애처럼 가파르게 솟아올라 있었고 그 위의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흩어져 있었다. 길에서 꽤 떨어진 곳에 문상비둘기(야생 비둘기의 일종: 옮긴이) 한 마리가 청승맞을 정도로 구슬프게 울어대자 산들이 그 소리를 거듭 반향했다. 헌데 그 울음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고 퍼져가면서 작은 메아리들이 무수히 되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무수히 많은 산봉우리와 계곡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해주었다. 결국 그 울음소리는 저 먼 곳에서 희미하게 사그러들었으며 이제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내 속에서 메아리쳤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고 적막하여 나는 할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 쫓아갔다. 나는 개들이 내 뒤에 붙어 따라와 줬으면 했지만 내 뒤에 남은 개는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 앞에서 달려가다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로 다시 돌아와서는 어서 여우를 뒤쫓게 해달라는 듯이 낑낑거리곤 했다. 그 "좁은 길"은 위쪽으로 자꾸 올라갔고 오래지 않아 나는 수량이 풀부한 냇물이 달려내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하늘에 걸린 골짜기"라고 부르는 곳을 가로지르는 계류였다. 우리는 산길을 버리고 그 냇물 위쪽으로 솟은 산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여우를 쫓으라고 개들을 풀어주셨다. 할아버지가 하신 일이라고는 그저 손가락질하며 "갓!"하셨을 뿐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개들은 컹컹 짖어대며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그 모습은 꼭 딸기 따러 흩어지는 애들 같았다. 우리는 냇물 바로 위쪽의 빽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숲속은 따뜻했다. 소나무 숲이 더운 기운을 내보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소나무는 열을 방사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여름철이라면 참나무 숲이나 히코리 나무 숲 같은 데 앉는 것이 좋다. 별들이 냇물의 잔물결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더러 제자리서 맴돌기도 하고 산산이 흩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조금만 더 있으면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거머 그건 곧 개들이 늙은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냈다는 걸 뜻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여우를 반들이라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늙은 반들이의 영토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놈을 알게 된 지도 어언 오 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하셨다. 대체로 사람들은, 여우 사냥꾼들은 으레 여우를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는 일평생 단 한 마리의 여우도 죽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여우 사냥을 나서는 이유는 개들이 여우몰이하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여우가 지쳐 제 굴 속으로 들어가 박힐 때쯤 되면 개들을 도로 불러들이시곤 했다. 반들이는 아주 심심하고 따분해지면 할아버지와 개들로 하여금 자기 뒤를 쫓게 하기 위해 일부러 오두막 빈 터 가까이까지 내려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때로 그 녀석은 개들을 달고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버리거나 개들을 시끄럽게 짖게 만들어 할아버지를 신경쓰게 만들곤 했다. 할아버지는 별로 쫓을 기분도 나지 않고 괜히 심통이 날 때면 반들이의 존재를 모르는 척해 버리신다고 하셨다. 여우가 자기 굴 속에 털어박히고 싶을 때면 개들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교묘한 술수들을 쓴다. 그리고 장난기가 동하면 온 데 사방을 헤매고 돌아다닌다. 제일 재미난 대목은 늙은 반들이가 할아버지의 오두막 근처를 배회하면서 할아버지를 괴롭히면 그 앙갚음을 당하게 된다는 걸 제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사 분의 일 가량을 어둠에 파먹힌 달이 어김없이 산등성이 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소나무 숲 사이를 뚫고 들어와 바닥에 다채로운 문양들을 그려 냈으며 냇물 위에도 떨어져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좁은 협곡에 걸린 쪽배 모양의 안개의 띠는 달빛을 반사하면서 천천히 흘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으신 할아버지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음식 자루를 내 곁에 바싹 끌어당겨 놓은 채. 문득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개 한 마리가 건조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낮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리핏이다. 저건 말짱 거짓말이야. 저놈은 어떤 때 짖어야 하는지 알면서 저래^5,5,5^. 기다릴 수가 없어서지. 그래서 마치 제가 여우 냄새를 맡은 척하는 거야, 망할 놈의 자식 같으니. 들어봐라. 저 녀석이 짖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가식적으로 들리나. 저도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 내 귀에도 그 소리는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맞아요, 저놈의 자식은 거짓말을 하는 거^36^예요."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할머니가 곁에 없을 때는 곧잘 욕설을 입에 담곤 했다. 잠시 후 리핏 주위에 있던 다른 개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려 리핏을 윽박질렀다. 산골에서는 그런 개를 "허풍쟁이 개"라고 부르곤 한다. 이윽고 주위는 다시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깊고 낮은 울부짖음이 길게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는 아주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나는 이번에는 진짜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그 울부짖음 속에는 맥박치는 흥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냥개들이 그 소리를 받아 함께 울부짖었다. "저건 퍼렁이다. 이 산중에서 가장 원기왕성하고 가장 냄새를 잘 맡는 놈이지. 고 다음 짖는 소리는 꼬마 빨강이^5,5,5^ 그리고 저건 베스야." 할아버지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또 다른 소리 하나가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리핏이다. 제일 나중에 끼어든 주제에 시끄럽기는." 이제 모든 개들이 합창하듯 한꺼번에 짖어댔으며 그 소리는 점차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울부짖음이 사방의 산에 부딪쳐 공명하는 바람에 마치 온 산에 개들이 쫙 깔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그 소리들은 침묵 속에 파묻혔다. 할아버지가 설명해 주셨다. "이제 개들은 클린치 산 뒤편으로 넘어 갔다." 나는 그들이 짖어대는 소리를 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뒤편의 산허리에서 쏙독새 한 마리가 튀어나와 "쉬이익!"하는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그러자 냇물 건너편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부엉, 부엉, 부엉!" 하고 이에 화답했다. 할아버지는 낮게 웃으셨다. "부엉이는 골짜기에서 살고 매는 산등성이 위에서 산단다. 헌데 이따금씩 매가 골짜기의 냇물에서 먹이를 찾기가 더 수월하다고 보고 골짜기로 내려올 때가 있지. 그러면 부엉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냇물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물보라를 날리며 튀어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잠겼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개들이 (길을 잃으면) 어쩌죠?" 나는 할아버지께 속삭였다. "그럴 리 없다. 곧 소리가 들릴 게야. 클린치 산의 다른 쪽으로 나와 우리 앞의 저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올 거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먼 데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며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들은 요란하게 짖어대며 우리 앞의 산등성이를 타고 달리더니 우리 아래쪽 어딘가에서 냇물을 건넜다. 그리고는 우리 뒤편의 산허리를 따라 달리다가 다시 클린치 산 쪽으로 방향을 꺾어 이번에는 클린치 산허리를 타고 달려갔다. 우리는 그들이 짖는 소리로 그들이 클린치 산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들이는 원을 죄어 가고 있는 중이야. 반들이는 이번에 저 냇물을 건넌 뒤에는 개들을 우리 바로 앞으로 끌고 올 거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맞았다. 우리는 개들이 우리 아래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냇물을 절벅거리며 가로지르는 소리를 들었다^5,5,5^.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냇물을 건너오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키시더니 내 팔을 잡으셨다. "저 녀석이 왔다." 할아버지의 낮은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뭔가가 어른거렸다. 냇물 둑 위에서 자라는 버드나무 줄기 사이로 달려오는 것은 반들이었다. 그 여우는 혀를 빼물고 털복숭이 꼬리를 덜렁거리며 종종걸음 치고 있었다. 그놈은 두 귀를 추켜세운 채 뻣뻣한 걸음새로 한가롭게 덤불을 돌았다. 그러다 그놈은 잠시 멈추어 앞발하나를 들어 혀로 핥았다. 그리고는 계속 짖어대는 개들 쪽을 흘끗 돌아보더니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바로 아래의 냇물에는 대여섯 개의 바위들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반들이는 바위들이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둑까지 가서는 걸음을 멈추고 마치 개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해 보기라도 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얌전히 주저앉아서는 물을 내려다봤다. 냇물 표면에는 그의 붉은 모습이 어른거렸다. 개들은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내 팔을 꽉 움켜쥐며 속삭이셨다. "이제부터 잘 봐라!" 반들이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개울 둑 위에서 몸을 날려 첫번째 바위 위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그대로 서 있더니 이윽고 그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음 바위로 건너가 춤을 추고, 또 다음 바위 위로 건너가 춤을 추고^5,5,5^ 그렇게 해서 그는 냇물 중간쯤에 있는 마지막 바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그놈은 다시 아까와 정반대 순서로 바위들을 하나하나 건너뛰어 냇물둑에 가장 가까운 바위에까지 왔다. 그리고는 바위 위에 멈추어 선 채 다시 귀를 기울이다가 이윽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냇물을 절벅거리며 달려갔으며 결국에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여우는 정확히 시간을 가늠한 게 분명했다. 그것이 사라져 버리자마자 바로 개들이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퍼렁이가 땅바닥에 코를 박은 채 맨 앞에서 달려왔다. 그리고 리핏이 퍼렁이 바로 뒤에서 퍼렁이를 재촉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 베스와 꼬마 빨강이가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중의 한 마리가 코를 허공이 치켜들고는 "우워어어어어어어!"하고 울부짖어 듣는 이의 피를 뛰게 하곤 했다. 이윽고 그들은 개울 속에 자리잡은 바위들 있는 데까지 왔다. 퍼렁인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어 곧바로 바위 위로 뛰어내려 하나하나 건너뛰기 시작했으며 다른 개들은 곧 그의 뒤를 따랐다. 개들이 냇물 중간즘에 있는 마지막 바위 위에 이르렀을 때 퍼렁이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리핏은 참지 못했다. 그놈은 여우가 냇물을 건넌 게 분명하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냇물 속으로 뛰어들어 반대편 둑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베스 역시 리핏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갔다. 퍼렁이는 허공에 코를 치켜들고 연신 코를 큼큼거리기 시작했으며 꼬마 빨강이는 퍼렁이 곁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다. 잠시 후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는 바위들을 되짚어 하나하나 건너뛰어 왔다. 우리가 있는 쪽의 둑 위에 이른 뒤 퍼렁이가 앞장서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고 꼬마 빨강이는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퍼렁이는 냄새로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내고는 길고도 우렁찬 울음을 토해냈으며 꼬마 빨강이도 그에 합세했다. 한편 퍼렁이가 반들이의 자취를 찾아내기 전, 베스는 건너편 둑으로 헤엄쳐가다가 말고 되돌아왔고 이미 건너편 둑 위로 오른 리핏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둑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난리를 쳤었다. 그 녀석은 연신 낑낑거리거나 캥캥대면서 코를 땅에 박고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는 퍼렁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냅다 냇물 속으로 뛰어들어 온 사방에 물보라를 날리며 죽을둥 살둥 헤엄을 쳐 다시 이쪽 둑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물을 털어낼 사이도 없이 미친 듯이 다른 개들을 쫓아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꼴이 너무나 우스워 대굴대굴 굴렀으며 그 바람에 나는 내 몸을 지탱해 주는, 발판으로 삼고 있던 어린 소나무 줄기에서 미끄러져 그만 도꼬마리 덤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구덩이 속에서 기어나왔으며 할아버지는 내 머리에 달라붙은 도깨비 바늘을 하나하나 떼어 주셨다. 헌데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연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할아버지는 반들이가 그런 장난을 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으며 할아버지가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반들이는 틀림없이 가까운 곳에 숨어 개들이 하는 짓을 지켜 보았을 거라고 하셨다. 반들이가 한참을 기다리면서까지 개들의 접근을 허용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기 냄새가 바위 위에 생생하게 배어 있는동안에 개들이 달려와 그 짙은 냄새를 맡음으로써 흥분한 나머지 학오를 일츠키게 하자는 속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리핏과 베스에게는 그런 계산이 순순히 먹혀들어갔지만 퍼렁이와 꼬마 빨강이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경우들을 무수히 목격했었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람들의 분별력이 감정에 져, 늙은 리핏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 같은 것을. 내 마음에도 사람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날이 꽤 밝아온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아침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와 나는 냇물 둑 위의 빈터로 내려가 시큼한 비스킷과 고기를 먹었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것들이 우리 앞의 산등성이를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산 위로 솟아올라 냇물 건너편의 숲은 환하게 비췄으며 그 바람에 굴뚝새와 홍관조들도 깨어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칼로 삼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그 껍질의 한끝을 구부려 국자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걸 사용해 차가운 냇물을 떠마셨다. 냇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삼나무 맛이 섞인 물이 내 허기를 자극했지만 이미 비스킷은 다 먹은 뒤였다. 할아버지는 늙은 반들이가 이번에는 건너편 개울 둑 위에 나타날 "성싶으니" 그 녀석을 다시 보려면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개미들이 내 발을 타고 올라와 그걸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에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도 내 발목 위의 개미 떼를 발견하시고는 조용히 털어 버리면 반들이도 눈치채지 못할 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다. 잠시 후 개울 아래쪽에서 다시 개 짖는 소리들이 들리더니 이어서 건너편 둑위에서 혀를 쑥 빼문 채 유유자적하게 달리는 반들이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자 반들이는 우뚝 서서 맞은편 둑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노려봤다. 그놈은 마치 우리에게 히쭉이 웃어 주기라도 하듯 눈을 가늘게 뚜고 잠시 그렇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흥, 하고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잰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이 자기한테 온갖 고생을 다 시킨다고 삐져서 저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가 자초해 놓고 그러니 우스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여우가 "서로 교대로 추적을 따돌린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은 그걸 직접 목격했다고 하셨다. 여러 해 전 할아버지는 개들에게 여우의 뒤를 쫓게 하고는 탁 트인 풀밭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앉아 계셨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붉은 여우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구멍 뚫린 어떤 나무 앞에서 가볍게 캥 짖었다. 그러자 그 나무 구멍에서 또 다른 여우가 튀어나왔으며 먼저번 놈은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두번째 여우는 멀찌감치서 달려오는 개들을 유인하듯 슬슬 도망쳤다. 할아버지가 그 나무 가까이에 다가가자니까 그 여우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나무 바로 곁으로 사냥개들이 요란하게 짖으면서 달려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여우는 너무나 자신만만하여 개들이 오건말건 아^36^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윽고 퍼렁이와 다른 개들도 건너편 둑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한층 더 요란하게 짖어댔다^5,5,5^. 공기 중에 아직 여우의 체취가 생생하게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잠시 후에 개들 중의 한 목소리가 유난히 돌출하면서 요란하게 짖어대고 또 길게 허공을 찢는 소리를 냈다. 할아버지는 투덜거리셨다. "저 빌어먹을 놈의 자식! 리핏이란 놈이 또 반들이의 자취를 찾은 것처럼 속임수를 쓰려고 하구 있는 거다. 거 혼자 멋대로 뛰어가다 길을 잃고서 말야." 산골에서는 그런 개를 "사기꾼 개"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러 리핏을 우리 있는 데로 오게 하자고 하셨다. 이것은 여우몰이를 그만 끝내자는 뜻이었다. 리핏을 부르면 다른 개들도 우리 있는 데로 되돌아올 테니까. 할아버지의 길게 외치는 소리는 요들과 아주 비슷했다. 나도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개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리핏은 제가 한 짓 때문에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그 개는 다른 개들 맨 뒤편에 처져 비실거리며 다가왔다. 제가 한 짓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 줬으면 하고 바라는 꼴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은 기가 죽어도 싸다며, 이번 일을 통해 속임수를 쓰다가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게 된다는 걸 그 녀석이 깨우치게 되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도 그 정도면 벌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늘에 걸린 골짜기"를 벗어나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는 벌서 해가 약간 기울어 시간이 오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개들이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걸 보고 나는 그들이 몹시 지쳤다는 걸 알았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역시 지쳐서 천천히 걸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할아버지를 쫓아가느라 꽤나 혼났으리라. 우리가 오두막의 빈 터와 할머니의 모습이 시야에 보이는 곳까지 이른 것은 해거름녘이 다 되었을 때였다. 할머니는 우리를 마중하러 산길로 올라오셨다. 나는 집에까지 갈 힘이 있는데도 할머니는 굳이 만류하시며 한 팔로 나를 들쳐업으시고는 다른 한 팔로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감싸안으셨다. 나는 어지간히 기진맥신했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들쳐업으시자마자 할머니의 등에 얼굴을 대고 그대로 곯아떨어져 언제, 오두막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내처 잤으니까. @ff @[ 아이 킨 예, 보니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나나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말주변이 없었고 말에 대한 감각이 둔했었지 않았나 싶다. 할아버지의 경우에 예외가 있다면 산이나 짐승들이나 날씨 등에 관해 말씀하실 때 정도라고나 할까. 헌데 낱말 뜻이라든가 책에 관해서 논란이 빚어질 때면 나나 할아버지는 최종적인 판단은 으레 할머니께 맡겼으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맵시있게 교통정리를 해주시곤 했다. 일테면 어떤 부인이 우리에게 방향을 물었던 경우 같은 것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읍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짐이 꽤 많았었다. 특히 책만 한짐이라 우리는 그걸 나눠 들었다. 할아버지는 책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셨다. 그리고 달마다 도서관 사서가 너무나 많은 책들을 안겨주는 바람에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켜 적잖이 혼란을 안겨 준다고 불평하셨다. 그 전달 할아버지는, 알렉산더 대왕이 대륙회의(미국이 독립하기 이년 전에 미국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영국에 대한 대책을 협의한 회의. 이때 독립선언문도 채택했다: 옮긴이)에서 금융계의 거물들의 편을 들어 제퍼슨 씨를 찍어 누르려 했다고 주장하셨었다. 이에 할머니는 그 당시 알렉산더 대왕은 정치활동에 참여하지도 않았거니와 실은 그 당시에 살아 있지도 않았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그런 생각은 변할 줄을 몰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부득불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책을 다시 한번 빌려와야 했다. 할아버지도 그 책을 가져오면 할머니의 말씀이 옳다는 게 밝혀지리라는 것쯤은 알고 계셨다. 그리고 나 역시도 책의 내용에 관해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할머니가 틀려 본 적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늘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할머니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러한 혼란은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진 탓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일리있는 생각 같았다. 어쨌든, 그날 나는 석유 깡통과 셰익스피어 씨의 책 한 권과 사전 한 권을 들었었고, 할아버지는 나머지 책 모두와 커피 깡통 하나를 들고 걸으셨다. 할머니는 커피를 좋아했으며, 나와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에 얽힌 문제를 푸는 데 그 커피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한 달 내내 집안의 온갖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시느라 좀처럼 한가롭게 쉴 틈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커다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멈추었다. 나는 그렇게 큰 승용차는 생전 처음 봤다. 그 차 안에는 부인 두 사람과 신사 두 사람이 타고 있었으며 그 차의 유리는 문짝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차 유리창이 문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은 나나 할아버지나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인 하나가 손잡이를 돌려 차창을 내리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차 곁에 붙어서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문짝에 좁은 홈이 패여 있어서 그 홈을 타고 유리가 미끄러져 내려가게 되어 있더라고 하셨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걸 못 봤는데 그건 내 키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화사한 옷차림을 한 그 부인은 손가락에 여러 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고 양쪽 귀에는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채터누가(테네시 주 남부에 위치한 큰 도시: 옮긴이)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죠?" 그 차의 엔진소리는 아주 작고 부드러워 그녀의 말소리를 듣는 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남이 말을 걸 때는 정중하게 응대하고 또 상대방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평소 지론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대답하시기에 앞서 먼저 커피 깡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책들을 먼지 묻지 않게 그 깡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셨다. 나도 석유깡통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모자를 들어올려 부인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게 오히려 그 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한 모양인지 그녀는 빽 소리를 질렀다. "채터누가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잖아요! 귀머거린가요?" 할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아닙니다 부인, 듣는 데 아무 지장 없고 또 오늘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부인은 어떠십니까?" 이건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기분이나 건강이 어떠냐고 묻는 건 세상에서 널리 통용되는 관습이었으니까. 헌데도 이렇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데 대해서 그녀가 신경질을 내는 것에 나나 할아버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그녀의 어떤 점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우리는 저 여자가 좀 괴상한 여자인가 보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녀는 다시 더 크게 소리질렀다. "채터누가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는데 뭘 그렇게 뜸을 들여요? 알려줄 거^36^예요 말 거^36^예요?" "말씀드려야죠." "그럼 빨리 말해요!" "에^5,5,5^ 우선, 댁들은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그건 동쪽입니다. 서쪽으로 가야죠. 헌데 곧장 서쪽으로 가서는 안 되고,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방향으로 가야지요. 저기 저 산등성이 너머거든요^5,5,5^ 내 말대로만 가면 바로 그리로 가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당신의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은 다음 짐을 들기 위해 허리를 굽히셨다. 헌데 그녀는 이제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소리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어느 길을 따라가란 소리죠?" 할아버지는 놀라서 몸을 일으켜 세우셨다. "어느 길이든 간에 서쪽으로 가는 길이면 다 됩니다, 부인. 북쪽으로 살짝 치우친 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서."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죠? 외국인들인가요?" 그녀가 소리쳤다. 이 말에 할아버지는 멍한 표정이 되셨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역시 그러셨으리라 짐작된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멀거니 부인의 얼굴만 쳐다보시다가 이윽고 확고한 어조로 대답하셨다. "그런 것 같소이다." 그 큰 차는 출발했다. 헌데 그것은 아까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려갔다. 그건 동쪽이라 그 차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셨다. 그러면서 칠십 평생에 미친 사람들을 여럿 보았는데 저 여자도 그 사람들 못지않게 미쳤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여자가 정치가같이 보이지 않느냐고 여쭤 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여자 정치가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정치가의 아내일 수 는 있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차바퀴 자국이 패인 길로 들어섰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이 정도 오면 늘 할아버지께 물어 볼 거리를 찾아내려고 애쓰곤 했다. 누가 말을 걸면 할아버지는 상대방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으레 걸음을 멈추곤 하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무렵 내 머리 꼭대기가 겨우 할아버지 무릎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내 또래(대여섯 살)보다도 키가 작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할아버지를 따라다닐 때는 항시 종종걸음을 쳐야 할 수밖에. 이때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한참 뒤처져서 쫓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고함치듯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아버지, 채터누가에 가보신 적 있어요?"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셨다. "아아니, 하지만 거의 갈 뻔한 적은 한번 있었지." 나는 얼른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내 석유 깡통을 바닥에 내려놨다. "이십 년 전쯤^5,5,5^ 아니 삼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게다. 그 무렵 에노크라는 삼촌 한 분이 계셨지. 우리 아버지 형제들 중 제일 막내. 헌데 이 양반이 나이가 들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술기운에 가끔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시는 버릇이 생겼어. 한번은 에노크 삼촌이 사라졌는데 우리는 으레 혼자서 어디를 쏘다니시다 우리가 사는 산골로 다시 돌아오시려니 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삼사 주일이 지나도록 종적이 묘연하신 거야. 그래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물어봤지. 그러던 중 삼촌이 채터누가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누가 전해 주더구나. 그래 내가 가서 삼촌을 빼내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떠나려니까 삼촌이 우리 오두막으로 쑥 들어오시는 거야."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시고서 그때 일을 회상하다 말고 갑자기 웃기 시작하셨다. "헌데 삼촌은 맨발인 데다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거라곤 낡고 흐늘흐늘한 바지 하나뿐이셨어, 그것도 움켜쥐고 있지 않으면 그냥 흘러내리게 되어 있어서 한 손으로 꽉 붙잡으신 채로 말이야. 꼭 멧돼지란 놈한테 정신없이 쫓기다 온 사람 같더군^5,5,5^ 몸 여기저기에 마구 긁히고 까진 상처가 있는 것이. 알고 보니 저 산들을 넘어 오느라 그렇게 되셨던 거야." 할아버지는 웃음을 그치셨다. 나는 다리가 아파 석유 깡통에 걸터앉았다. "에노크 삼촌은 술에 만취한 탓으로 어떻게 해서 채터누가까지 가게 됐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구나. 그냥 눈을 뜨고 보니까 당신이 어떤 방 안에서 두 여자와 한 침대 안에 들어가 있더래. 그래 깜짝 놀라서 그 여자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려는데 느닷없이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몸집이 거대한 사내 하나가 뛰어들어오더라는 거야. 그 사내는 한 여자는 자기 마누라요, 또 한여자는 자기 여동생이라고 하면서 미친듯이 흥분하더래. 에노크 삼촌은 자기도 모르게 한 가족 전체와 한 방 안에서 뒤얽히게 된 거야. 그 순간 여자들도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삼촌더러 그자에게 돈을 집어 주라고 소리치더래. 그 녀석도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그래서 삼촌은 바지를 찾으려고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찾아보셨대. 주머니에 돈이 있을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칼이 들어 있다는 건 알고 계셨거든. 그 거인 녀석이 꼭 무슨 일을 벌일 것처럼 설쳐댔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바지는 눈에 띄지 않고 거기서 달리 무사히 빠져나갈 방도도 떠오르지 않고 그래서 알몸인 상태로 냅다 창문으로 달려가 뛰어내려 버리셨대. 헌데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그 방은 일층이 아니고 이층이어서 자갈과 굵직한 돌멩이 투성이인 마당에 큰 대자로 나가떨어지셨더란다. 삼촌의 몸에 난 상처자국들은 그래서 생긴 거야. 삼촌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뛰어내릴 때 창 가리개를 붙잡은 상태에서 떨어지셨대. 그래 그걸로 당신의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서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데나 숨어 계시려고 했더란다. 근데 난감하게도 숨을 곳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 거야. 그래서 별수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시다가 우연히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대요. 근데 삼촌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그 사람들이 도무지 예의라고는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다시 다른 곳으로 뛰려고 하셨더란다. 헌데 결국 거기서 삼촌은 법(경찰 등을 말함: 옮긴이)한테 잡혀 그 길로 감옥으로 들어가셨대. 이튿날이 되자 그 사람들은 삼촌에게 옷 한벌과 엄청나게 큰 구두 한 켤레를 주고는 몇 녀석들과 함께 거리를 쓸라고 내보내더라는 거야. 헌데 열 명도 안 되는 숫자가 죽어라고 쓴다 해도 도무지 시내가 깨끗해질 것 같지 않더라는구나. 쓸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내버리니까. 그래 삼촌은 가망 없는 일을 하고 있지 말고 튀어 버리자고 결심하고는 기회가 오자마자 냅다 도망쳐 버리셨대. 근데 도망칠 때 어떤 녀석이 윗도리를 붙잡고 늘어지길래 그걸 벗어던지고, 또 잘 맞지 않던 신발도 없어던져 버리고 바지자락만 꼭 움켜쥐고 도망치셨대요. 삼촌은 어느 숲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질 때까지 숨어 계시다가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아 곧바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하셨대. 근데 저 산들을 넘는데 꼬박 삼 주일이 걸렸다는구나. 그 동안 삼촌은 멧돼지처럼 도토리와 히코 열매로만 배를 채우셨대요. 그런 뒤 에노크 삼촌의 고약한 술버릇은 싹 없어져 버렸어^5,5,5^. 내가 아는 한 그 뒤로 어느 읍내든 간에 읍내라고 하는 데는 전혀 발을 들여놓지도 않으셨고. 일체 발을 끊어 버리신 거야. 나는 채터누가에 가본 적도 없지만 앞으로 가볼 생각도 없다." 나도 결코 채터누가에는 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날 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나는 얼핏 생각이 떠올라 할머니한테 여쭤봤다. "할머니, 외국인이란 게 뭐^36^예요?" 할아버지는 문득 수저질을 멈추셨다. 시선은 접시에다만 고정시킨 채. 할머니는 먼저 나를 쳐다보셨다간 다시 할아버지를 쳐다보셨다. 할머니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음^5,5,5^ 외국인이란 자기가 태어난 고장이 아닌, 낯선 곳에 와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우리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신다고 그랬어요." 이 말과 함께 나는 큰 차에 탄 부인이 우리에게 외국인들이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할머니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접시를 뒤로 밀어 놓으셨다. (어쨌든 우리는 그 길 근처에서 태어난 게 아니니가 그곳에서는 외국인이 되는 거지 뭐. 어쨌든 그 말 역시 없어도 상관없는 망할 놈의 할아버지는 할머니 앞에서는 항시 '쌍놈의'라는 표현 대신 이 '망할 놈의'라는 표현을 쓰곤 하셨다) 말 중의 하나라구. 항상 얘기하지만 이 세상에는 말들이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할머니는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말에 관한 논쟁에 휩쓸려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때로 문법에 어긋난 어법을 사용하시면서도 끝까지 당신이 옳다고 주장하시곤 했으니까. 이럴 때는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말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면 골치아픈 일들도 월씬 더 줄어들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한테만 살짝, 이 세상에는 말썽을 불러 일으키는 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만들어 내는 똥같은 자식들이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하셨는데,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의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 높이 치셨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느냐보다는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느냐에 더 관심이 있으셨다. 할아버지는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도 음악 "소리"를 들을 때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 말씀이 옳다고 수긍하셨다. 그분들이야말로 말뜻보다는 말소리에 의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분들이셨으니까.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비였다. 나는 어느 날 밤 늦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아이 킨 예, 보니비 I kin ye, Bonnie Bee. (여기서 kin은 이들 두 사람끼리만 뜻이 통하는 동사며 ye는 '당신'을 뜻하는 말이다: 옮긴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그걸 알았다. 이 말은 그 속에 담겨진 느낌으로 봐서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말씀하실 때 곧잘 "두 유 킨 미, 웨일즈?"라고 묻곤 하셨으며 이에 대해 할아버지는 "아이 킨 예"라고 대답하곤 하셨는데 이때의 킨은 '이해한다'는 뜻으로 할아버지의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는 것이 되었다. 그분들에게 있어 사랑과 이해는 같은 뜻을 담고 있었다. 할머니는 곧잘, 이해할 수 없다면 사랑할 수도 없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할 수도 없으며, 또 신을 이해할 수 없다면 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를 이해하셨고 따라서 서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그 이해의 도가 더욱 깊어져 간다고 하셨으며, 그러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이해의 개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그분들은 그러한 이해의 상태를 "킨"이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킨폭스kinfolks(혈족, 동족, 친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옮긴이)"라는 말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으며,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뜻했다고 말씀하셨다. 헌데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되다 보니 그 뜻이 그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격하되었지만 그건 절대로 친척을 의미하는 정도의 하찮은 뜻을 담은 말이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 할아버지 집에는 증조 할아버지의 친구 한 분이 하릴없이 찾아와 빈들거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쿤 잭이라고 하는 늙은 체로키였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쿤 잭의 어느 면을 좋아하여 함께 어울리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어느 골짜기 입구에 자리잡은 조그만 교회의 예배식에 심심하면 한번씩 참석하시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일요일 신앙간증 때에 조그만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이 신앙간증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증언하는 것을 뜻했다. 헌데 바로 이 시간이 되었을 때 쿤 잭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이 내 등뒤에서 내 얘기를 소근거린다는 얘기를 들었소. 난 나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분명히 얘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일어났소이다. 난 그 사람들이 뭣 때문에 그러는 가 잘 압니다. 집사회의에서 나한테 찬송가책을 넣어두는 상자의 열쇠를 맡긴 것 때문에 시기해서 그러는 거요. 아무튼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만일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분명히 이야기하시오. 바로 이 자리에서 해결해 주겠소." 그러면서 쿤 잭은 사슴가죽 셔츠를 들어올려 권총 손잡이를 보여 주고는 어서 빨리 나오라는 듯이 마구 발을 굴렀다. 그때 교회당 안은 증조 할아버지를 바롯하여 거칠고 사나운 사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날씨만 좀 이상해도 쉽게 총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헌데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로 이때 증조 할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입을 여셨다. "쿤 잭,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네가 이제까지 찬송가 상자 열쇠를 아주 잘 관리해 왔다고 해서 모두들 자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잘해 왔다고 말일세. 헌데 자네가 어떤 사람의 말을 곡해하여 기분 나빠한다면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가슴 아파할 거라는 점을 감히 말하고 싶네." 증조 할아버지의 이 말씀에 쿤 잭은 마음이 누그러져서 조용히 제자리에 앉았으며 그곳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쿤 잭 못지않게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께, 쿤 잭이 그런 말을 하고도 그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쿤 잭이 찬송가 상자 열쇠 같은 하찮은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좀 우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자 증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얘야, 쿤 잭을 비웃으면 안된다. 너도 알다시피 쿤 잭이 어렸을 때 우리 체로키들은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각처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쿤 잭은 이 산악지대에 숨어지내면서 계속 백인들과 싸움을 했단다. 그러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정부와 싸워 땅과 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지. 그래서 그는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그는 두 차례의 싸움에서 모두 졌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끝나자 정치가들이 들어와 그나마 남은 우리 땅마저 빼앗으려고 했단다. 그러자 그는 싸우다가 달아나서 숨고, 다시 싸우고 하는 일을 거듭했다. 결국 쿤 잭은 평생을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지금 그 사람에게 남은 거라곤 그 찬송가 상자 열쇠 하나밖에 없다. 쿤 잭이 심술궂고 싸움이나 일삼는 사람처럼 보인다면^5,5,5^. 글쎄 그건 그 사람에게 달리 싸울 거리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게다. 그 사람은 싸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할아버지는 그때 쿤 잭 때문에 거의 울 뻔하셨다고 했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쿤 잭이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개의치 않고^5,5,5^ 그분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분을 이해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킨"이며 사람들 사이에 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 서로가 이러한 사이가 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치가들이야말로 "킨"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요, 이런 말썽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원흉들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킨"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나 역시 쿤 잭 때문에 울고 싶은 심경이 되었다. @ff @[ 네 뿌리를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네가 과거를 모른다면 네게는 미래도 없으며, 네 조상들이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면 제 종족이 어디로 갈지도 모르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우리의 과거를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부군이 들어온 얘기, 체로키들이 그 비옥한 골짜기들을 경작하던 얘기, 땅에 생명의 씨앗을 심는 봄철에 짝짓기 춤을 추던 얘기, 수사슴과 암사슴이나 수탉과 암탉이 언제 발정이 나서 서로를 미친듯이 찾아다니는가 하는 얘기 등등을. 서리가 호박을 노랗게, 감을 빨갛게 물들이고 옥수수 알을 단단히 영글게 하는 계절이 되면 체로키 족들이 사는 모든 마을에서는 추수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겨울 사냥 채비를 했으며 하늘의 이치를 따르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들이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정부군이 들어와서는 그들에게 종이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것이 새로운 백인 정착민들에게 체로키 족들이 사는 어느어느 지역에는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어디어디에 정착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문서라고 하면서. 이 서류에 체로키 족들이 서명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숫자의 정부군들이 길다란 대검을 꽂은 총들로 무장을 한 채 다시 찾아왔다. 그 군인들은 서류에 적힌 내용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인즉슨 이제 체로키 족들은 자기네가 살던 골짜기와 집과 산들을 몽땅 내주고 해가 지는 쪽으로 멀리멀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체로키 족들을 위해 마련한 다른 땅, 백인들은 원치 않는 머나먼 땅으로. 그들은 총칼로 체로키 족들이 사는 커다란 골짜기를 에워싸서 밤만 되면 골짜기를 빙 둘러싼 그들의 모닥불이 보였다. 그들은 그 골짜기 안에 체로키 사람들을 가둬 두었다. 그리고 다른 산악지대나 골짜기들에서도 체로키 사람들을 짐승 떼처럼 몰고와 자신들이 포위하고 있는 이 골짜기 속에 한데 모이게 했다. 한참 시간이 경과된 끝에 거의 모든 체로키 사람들을 그 골자기 안에 모은 그들은 노새와 수레들을 가져다 주면서 체로키 사람들에게 해가 지는 땅으로 갈 때 그걸 타고 가도 좋다고 했다. 이제 체로키 사람들은 빈 껍질뿐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인들이 준 수레를 타지 않음으로써 무언가 소중한 걸 지킬 수 있었다. 그건 볼 수도, 입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걸 지켜냈다. 그들은 수레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말을 탄 정부측 군인들 역시 그들과 함께 갔는데 군인들이 그들의 앞뒤, 그리고 양 옆을 호위하여 체로키 사람들은 마치 군인들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었다. 체로키 사내들은 똑바로 앞만 보고 걸을 뿐 땅바닥을 내려다보지도 군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체로키 여자들과 아이들 역시 곁눈질 한번 하지 않은 채 앞선 어른 남자들만을 묵묵히 따라갔다. 그들의 한참 뒤편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어진 빈 수레들이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체로키 사람들은 그깟 수레 때문에 영혼까지 빼앗기지는 않았다. 비록 땅과 집은 빼앗겼지만 말이다. 백인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백인들은 체로키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기 위해 길가로 나와 섰다. 그들은 체로키 사람들이 수레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광경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이 그들의 비웃음에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가자 그들의 웃음소리는 곧 사라져 버렸다. 체로키 사람들이 자기네가 살던 산악지대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면서 하나둘씩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혼은 죽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죽는 것은 아주 어린 아이나 아주 늙은 이들, 그리고 병자들 뿐이었다. 처음에 군인들은 시신이 나올 때마다 파묻을 시간을 주기 위해 제자리에 멈추어 줬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하나둘이 죽는 정도가 아니라 몇백, 몇천이 연속해서 죽어 넘어지자 그대로 행군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결국 이 수난의 길에서 전체 체로키 족들의 삼 분의 일 이상이 사망했다. 군인들은 한시바삐 체로키 족들의 일을 매듭짓고 싶어 겨울 사흘에 한 번식만 시신을 매장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체를 수레에 싣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은 자기네의 그 무거운 시신들을 수레에 싣지 않고 그대로 안거나 들쳐멘 채 걸어갔다. 어떤 어린 소년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죽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안고 가다가 밤이 되면 누이동생을 자기 곁에 눕힌 채 잠을 잤으며 아침이 되면 다시 누이를 두 팔로 안고 행군길에 나서곤 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아들이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어머니가 죽은 아기를 안고 가는 참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은 이들을 안거나 업고 걸어갔다. 그들은 군인들을 쳐다보는 일도, 그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러 길가로 나온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는 일도 없었다. 이들의 참경을 목도한 백인들 중에는 간혹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은 울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백인들 앞에서 자기네의 영혼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레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불렀다. 그러나 자기네가 울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건 아니었다. 체로키 사람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눈물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은 죽음의 행진이었고 이러한 행진에 낭만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넋잃은 사람처럼 걸어가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채 두 눈을 퀭하게 뜨고 영원히 지지 않을 하늘을 노려보는, 뻗뻗하게 굳은 아기 시체에서 시가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밤 동안 무거운 아내의 시체를 내려놓고 그 곁에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들쳐업는 남편, 큰아들에게 막내의 시신을 들쳐메고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서 노래가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두고 온 고향산천을 기억하지도 않는 일뿐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불렀다. 모든 체로키 사람들이 다 이 길을 밟은 건 아니었다. 산생활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은 물줄기를 따라 산골짜기 깊숙이 달아나 여자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항상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들은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았지만 때로 군인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덫 있는 데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흙 속에서 단맛이 나는 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빻아 음식으로 만들었으며 나무에서 속껍질을 벗겨내어 식용으로 썼다. 그들은 차가운 계류 둑 밑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으며 매사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존재하기는 하되 보이지도 않고 (환상처럼 얼핏 스쳐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살고 있다는 흔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저기서 자기네의 친구들을 찾아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 사람들은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땅을 탐하지도 이익을 탐하지도 않았고 오직 체로키의 본성 그대로 산이 부여해 주는 자유만을 사랑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증조 할아버지가 나중에 나의 증조 할머니가 된 자신의 아내와 그 일가를 만난 얘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날 증조 할아버지는 계곡을 타고 흐르는 냇물 둑 위에서 인간이 머물다 간 희미한 자취들을 발견하셨다. 증조 할아버지는 집으로가 사슴 뒷다리 하나를 들고 되돌아오셔서는 그 근처에다 내려놓고 그 곁에 총 한 자루와 칼 하나를 남겨두셨다. 헌데 이튿날 그 자리로 되돌아와서 보니 사슴고기만 없어지고 총과 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인디언들이 쓰는 전투용 도끼 한 자루와 길다란 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것들에 손대시지 않고 다시 집으로 가셔서 옥수수 자루 여러 개를 가져와 그 곁에다 놓아두셨다. 그리고는 그곳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들은 오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숲 사이를 뚫고 나오다 걸음을 멈추었고, 그러다간 다시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증조 할아버지는 앞으로 두 손을 뻗으셨다. 그러자 남자, 여자, 아이들 해서 모두 열두 명 가량 되는 그들도 앞으로 손을 뻗고 증조 할아버지께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증조 할아버지와 그들의 손은 맞닿았다. 할머니는, 증조 할아버지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었는데도 그들은 줄곧 그렇게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채 다가왔으며 마침내 서로 합류했을 때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키가 훌쩍 자란 증조 할아버지는 그들 일가의 막내딸과 결혼하셨다. 그들은 결혼서약으로 히코리 나무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함께 붙잡았으며 그것을 당신네의 오두막 안에 두고 죽는 날가지 잘 간수하셨다. 증조 할머니는 이 혼례식 때 머리에 검은 새의 빨간 날개 깃털을 꽂았기 때문에 나중에 붉은 날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증조 할머니는 버들가지처럼 날씬했으며 저녁나절만 되면 노래부르기를 즐겨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증조 할아버지의 만년의 삶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증조 할아버지는 늙은 전사로서 전쟁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증조 할아버지는 존 헌트 모건이 지휘하는 남부군 특공대에 소속되어 머나먼 곳에 있는 "정부"라고 하는 얼굴 없는 괴물, 그의 종족과 그의 오두막을 위협한 그 괴물과 싸우셨다. 전쟁에서 돌아오셨을 때 증조 할아버지의 수염은 새하얘졌고 그분의 수척한 몸 전체에는 나이가 가져다 주는 위엄있는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헌데 겨울 바람이 당신 오두막의 갈라진 틈을 뚫고 새어 들어오기만 하면 당신이 입은 옛상처들이 도졌다. 군도가 그분의 왼편 팔뚝을 베고 지나갔었는데 그 강철 칼날은 푸줏간의 도끼처럼 그분의 뼈를 내리쳤었다. 다친 팔뚝의 살은 아물었으나 골수는 통증으로 욱신거렸으며 그때마다 "정부" 사람들을 떠오르게 했다. 증조 할아버지가 카인턱에서 부상을 입던 날 밤 그분은 젊은 병사들이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상처를 지지고 피를 멈추게 하는 동안 반 조끼나 되는 독한 술을 마시면서 그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그 일이 끝났을 때 그분은 다시 말 안장에 오르셨다고 한다. 헌데 이보다 더 심했던 건 발목의 부상이었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 발목을 내려다보기조차 싫어하셨다. 박격포탄의 파편이 지나가면서 짓씹어 놓아 증조 할아버지의 그곳에는 엄청나게 크고 몰골 사나운 흉터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전투가 한창일 당시에는 발목을 다쳤다는 것조차도 모르셨다고 한다. 오하이오에서의 그날 밤 증조 할아버지는 사나운 격정 속에 휩싸인 상태였으니까. 그분의 혈관 속에 맥박치는 체로키 특유의 전투적인 기질은 미친 듯한 돌격과 더불어 점점 더 고양되어 갔다. 말이 지면을 박차고 화살처럼 나아갈 때, 바람이 그분의 얼굴을 폭풍처럼 후려치며 지나갈 때, 그럴 때는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터질 듯한 흥분과 걱정뿐이었다. 폐부와 목구멍에서 날카롭고도 야성적인 인디언의 노호 소리가 터져나오게 만드는 미칠 듯한 격정. 무릎 밑이 날아갔는데도 그걸 모르고 말을 달렸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 뒤 증조 할아버지는 어떤 산골짜기의 어둠 속을 정찰하기 위해 삼십 킬로 가까이 말을 달린 뒤에야 비로소 말안장에서 내리다가 무릎을 푹 꺾으며 주저앉으셨다. 증조 할아버지가 발목을 내려다보시니 당신의 군화는 마치 물이 가득 들어찬 양동이처럼 피로 흥건했다는 것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때 적진으로 돌격하던 그 순간을 두고두고 되씹으며 즐거워하셨다. 그때의 추억에 젖을 때면 당신의 불편한 다리나 당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 대한 불쾌감도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허나 가장 무서운 상처는 그분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엉덩이 가까운 옆구리 속에. 그곳에 박힌 납탄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쥐가 곳간을 쏠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분의 배를 갉아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속을 파먹히고 있었으니 무사하실 리가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분을 오두막 바닥에 눕히고 도살장에 눕혀진 소처럼 그분의 배를 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마취제도 쓰지 않은 채 그분에게 그 산골에서 빚은 독주를 드시게 한 연후에 그분의 배를 가르고 뱃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살덩어리를 끄집어냈다. 증조 할아버지는 피범벅이 된 마룻바닥 위에 누우신 채 그대로 죽어가셨다. 말씀 한마디 못하신 채. 하지만 그분이 죽음 의 진통을 겪고 계시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그분의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졌음에도 아직도 강건한 그분의 몸은 여러 사람들의 압력을 이기고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올랐으며 증오스런 정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 사납고 야성적인 노호가 터져나왔다. 그러다가는 서서히 돌아가셨다. "정부"가 그분을 죽이는 데는 꼬박 사십 년이 걸린 셈이었다. 그분의 죽음과 더불어 피와 전투와 살륙으로 얼룩졌던 19세기도 숨을 거둬가고 있었다. 그분이 온몸으로 부딪쳤고 그분이 열심히 파악해 보려고 하셨던 그 시대가.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자기네의 시신을 들쳐업고 행군할 새로운 세기가 닥쳐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오로지 과거, 체로키의 과거밖에는 모르셨다. 그분의 큰아들은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떠났으며 둘째 아들은 텍사스에거 죽었다. 그리고 이제 붉은 날개와 막내아들만 남았다. 그분은 사망하기 직전에도 여전히 말을 타실 수 있었으며 모건 특공대 시절의 말을 타고 다섯 칸 울타리를 뛰어넘으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습관대로 덤불에 꼬리털을 남겨 추적당하지 않도록 덤불을 지난 때마다 말고리를 추켜들고 다니게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통증은 점점 더 악화되었으며 이제 그것은 술로도 다스려지지 않았다. 오두막 바닥에 큰 댓자로 누워 배를 갈라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분도 그걸 잘 알고 계셨다. 그해 가을도 거의 끝나갈 무렵, 곧 그들이 살던 테네시 산속에서 날선 바람이 히코리 나무와 상수리 나무의 마지막 이파리들을 뒤흔들던 어느 오후, 증조 할아버지는 당신이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지 않은 채 아들과 함게 계곡을 올랐다가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들은 하늘을 등지고서 앙상하게 헐벗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산등성이의 나무들을 한참 쳐다봤다. 마치 겨울 햇살의 기울기라도 살펴보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걸 애써 피했다. 증조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시며 말문을 여셨다. "네게 남겨줄 게 별로 없구나. 그 오두막에거 찾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래야 손을 쬐기 위해 불쏘시개를 뒤적거리는 즐거움 정도일 게야." 그분의 아들은 여전히 산쪽에만 눈길을 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겠죠." "너는 가족을 거느린 당당한 사내야. 네게 많은 부담을 지우진 않겠다^5,5,5^. 다만 우리가 믿는 바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그 누구와도 손잡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내 시대는 갔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맞이하게 될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될는지 난 모른다.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5,5,5^ 쿤 잭이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빈 손으로 그 시대를 맞게 되리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5,5,5^. 하지만 산은 변덕을 부리지 않을 게야. 또 너는 산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 감정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사람들이니까." "잘 알겠습니다." 아들이 말했다. 열기 없는 태양이 어느새 산등성이 뒤로 넘어갔으며 칼날처럼 매서운 바라밍 그들의 옷깃을 파고들었다. 노인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떼셨다. "흠^5,5,5^ 그리고^5,5,5^ 난^5,5,5^ 너를^5,5,5^ 잘 이해하고 있다. I kin ye (앞장 참고: 옮긴이)." 아들은 말없이 아버지의 앙상한 몸을 얼싸안았다. 이제 계곡에 드리워진 그늘은 한층 더 짙어졌고 그들의 양 옆으로 치솟은 산봉우리의 윤곽선도 희미해졌다. 그들은 이렇게 얼싸안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지팡이로 조심스럽게 지면을 두드리면서 오두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앞장서 가셨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요, 마지막 산책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의 무덤가에 여러 번 간 일이 있었다. 그분들의 무덤은 흰 참나무들이 솟아 있는 높은 산등성이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을만 되면 나뭇잎들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수북하게 쌓였지만 뒤이어 닥쳐오는 겨울 바람에 모조리 날려가 버리곤 했다. 봄철이 되면 그곳에는 가장 강인한 인디언 바이올렛들만이 지면을 뚫고 나와 자기네 시대를 가장 험난하고도 끈질기게 살다 간 영혼들 앞에 그 작고 푸른 꽃망울을 다소곳이 드리우곤 했다. 그분들의 무덤 앞에는 결혼 지팡이, 곧 울퉁불퉁하게 생긴 히코리 나무 지팡이가 아직도 꽂혀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그분들이 슬픈 일이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마다, 또는 싸움 끝에 화해할 때마다 새겨둔 눈금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은 그분들의 머리맡에 자리잡고서 여전히 두 분의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그 지팡이에는 두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씨가 너무나 잘아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두 분의 이름은 "에탄"과 "붉은 날개"였다. @ff @[ 파인 빌리 겨울이면 우리는 나뭇잎들을 져다가 옥수수밭에 뿌리곤 했다. 옥수수밭은 골자기를 거슬러 올라가 헛간을 조금 지난 곳의 실개천 양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개울 양편의 산비탈을 깎아내어 밭을 일구어 내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옥수수밭들을 "비탈밭"이라 부르셨으며 거기서 나는 옥수수의 양은 보잘것 없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그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시곤 했다. 그 계곡 안에는 달리 밭을 만들 만한 평탄한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낙엽을 모아 자루 안에 담는 일이 즐거웠다. 그건 다 채워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로서로 자루들을 채우는 일을 거들곤 했다. 할아버지는 대개 자루 두 개를 메고 가셨지만 때론 세 개를 메로 가실 때도 있었다. 나는 번번이 자루 두 개를 가지고 가보려고 했지만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곤 했다. 내 무릎 길이로 쌓인 낙엽들은 흡사 지면을 가득 덮은 갈색 눈 같았으며 그 눈 위에는 단풍 나뭇잎의 노란빛과 가먕 옻나무나 고무나무 이파리의 붉은 빛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숲을 빠져나와 옥수수밭에다 그 이파리들을 골고루 폈다. 그 낙엽들 속에는 솔잎도 끼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땅에 산성기를 주기 위해 솔잎을 조금 뿌려주는 건 괜찮지만 너무 많이 줘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진력이 날 정도로 오래, 힘들여 일하는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씀마따나 우리는 으레 다른 일에 "넋을 빼앗기곤"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낙엽을 끌어모으시다 말고 곧잘 노란 뿌리를 찾아내 캐곤 하셨다. 그리고 그걸 찾다보면 산삼, 개능쟁이^5,5,5^ 칼룸바^5,5,5^ 사사프라스^5,5,5^ 혹은 개불알꽃 등이 계속 눈에 띄곤 할머니는 그 모든 식물을 한눈에 알아보셨으며 그것들은 내가 들은 온갖 질병들을 낫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의 약제들은 효험이 있긴 했는데 어떤 것들은 너무나 맛이 고약해 먹기가 좀 힘들었다. 나와 할아버지는 흔히 히코리 열매나 밤, 도토리 등을 주웠는데 간혹 호두가 걸려들 때도 있었다. 우리는 특별히 어떤 것을 줍겠다고 생각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은 그저 가다가 우연히 걸려드는 셈이었다. 우리는 낙엽을 나르면서 한편으로 열매와 뿌리를 줍거나 캐고, 캔 것을 먹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구리나 딱따구리를 지켜보기도 하였으므로 자연 낙엽 나르는 일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어스름녘에 골짜기를 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나무 열매와 식물뿌리 등속을 한아름씩 안고 내려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안 듣게 쌍소리가 섞인 푸념을 내뱉으시며 다음번에는 절대로 이런 하찮은 것에 "넋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낙엽 모으는 데만 열중하겠다고 선언하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재미있는 일도 이제 끝이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곤 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날 거듭 일한 덕분으로 우리는 낙엽과 솔잎으로 우리는 낙엽과 솔입으로 옥수수밭을 골고루 덮을 수 있었다. 한 차례 가벼운 비가 와 낙엽들이 흙에 착 달라붙었을 때 할아버지는 노새인 늙은 샘에게 쟁기를 지워 밭을 갈아엎음으로써 낙엽이 흙 속에 파묻히게 하셨다. 할아버지가 내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나도 쟁기질을 해볼 수 있었다. 나는 내 머리 위로 두 손을 뻗쳐야 겨우 쟁기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으며 쟁기 날이 땅 속에 너무 깊이 박히지 않도록 내 온 몸의 무게를 실어 손잡이를 당기느라 악전고투했다. 그러다 보면 너무 힘을 주어 당기는 바람에 쟁기 날이 땅 위로 솟아 흙 위를 그냥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이런 난리를 치르는 와중에서도 샘은 참을성 있게 나를 상대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쟁기 날을 바로 꽂기 위해 쟁기 손잡이를 당기거나 밀어부치는 동안에는 잠자코 서 있다가 내가 "이랴!" 해야만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나는, 쟁기날을 흙 속에 바로 꽂기 위해 손잡이를 밀거나 당기는 동안에는 가급적이면 턱을 쟁기 손잡이들을 연결해 주는 가로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 그러면 손잡이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턱을 사정없이 얻어맞게 되어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나와 노새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오시기는 했지만 나의 쟁기 다루는 일을 거들어 주시지는 않았다. 원래 밭 가는 짐승을 왼편으로 돌게 하려면 "워!"하면 되고, 오른편으로 돌게 하려면 "지!"하면 된다. 헌데 샘은 내가 "지!" 하는데도 왼편으로 돌려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계속 우물쭈물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 할아버지가 나서서 "지! 지! 지! 이런 염병할 놈의 자식아! 지!"하고 호통을 치곤 했으며 그때서야 샘은 겨우 오른쪽으로 돌곤 했다. 헌데 문제는 샘이 과거에 이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지"해서는 말을 안 듣고 할아버지가 하듯이 몇번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거기다 "염병할 놈의 자식아!"라는 욕설까지 섞어줘야 말을 듣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샘은 그걸 다 듣기 전까지는 절대로 오른쪽으로 돌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도 쟁기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걸핏하면 "염병할 놈의 자식아!"란 욕설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뭐 아무튼 이렇게 욕설을 하더라도 쟁기질만 잘 되면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그만 내가 욕하는 소리를 할머니가 듣고 말았다. 또 샘은 왼편 눈이 먼 탓으로 밭 가장자리까지 다다랐을 때는 자신이 뭔가를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돌기를 꺼려하고 늘 오른편으로만 돌려고 했다. 따라서 쟁기질을 할 때 밭 가장자리에서 오른편으로 돌게 하는 일은 수월했지만 왼편으로 돌게 하려면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샘을 한 바퀴 돌게 하기 위해 쟁기를 질질 끌고 밭 가장자리 너머의 잡목 숲이나 가시덤불 속을 빙 돌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샘은 늙고 한쪽 눈도 먼 짐승이니 샘한테 참을성 있게 대해야 한다고 하셔서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했다. 헌데 밭 가장자리까지 가서 왼편으로 돌아야 할 때마다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가시투성이인 나무딸기 숲이 있는 곳은 돌아야 할 때는 특히 더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왼편으로 돌기 위해 쟁기를 끌고 밭 가장자리를 타넘어 쐐기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시려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 구멍 속에 발을 잘못 디디신 적이 있었다. 헌데 마침 날도 따뜻한 데다 그 구멍 속에는 말벌집이 하나 있었다. 그리하여 말벌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바지로 감싸인 할아버지의 다리를 마구 공격했다. 이에 놀란 할아버지는 쟁기고 뭐고 다 내던지고 고함을 지르시며 냅다 실개천 쪽으로 달아나셨다. 말벌들이 구멍 밖으로 따라나오는 걸 본 나도 후닥닥 달아났다. 할아버지는 샘개울 속에 반즘 드러누우신 채 바짓단을 찰싹찰싹 때리며 늙은 샘한테 마구 욕설을 퍼부으셨다. 그때 할아버지는 거의 참을성을 잃을 뻔하셨다. 그러나 샘은 참을성 있게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골치 아픈 일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말벌들의 대군이 쟁기 근처를 계속 맴돌고 있어서 우리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밭 중간쯤에 서서 늙은 샘을 우리 쪽으로 오게 하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소리치셨다. "어이, 이리 와, 샘. 이리 오라구." 그러나 샘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샘은 쟁기를 모로 눕힌 채 끌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샘에게 별별 욕을 다 퍼부으셨고 그래도 안되자 이번에는 네 발로 엉금엉금 기면서 연신 나귀 우는 소리를 내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할아버지의 나귀 울음소리는 점점 진짜 나귀 울음소리와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딱 한 번 샘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할아버지를 흘끗 쳐다봤다. 그러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열심히 나귀 울음소리를 내어 봤으나 할아버지를 따라가려면 어림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 둘이 열심히 네 발로 기어다니며 나귀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오셨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귀 울음소리를 뚝 그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숲속으로 들어가셔서 관솔 하나를 따낸 뒤 거기다 성냥으로 불을 붙여 벌집이 있는 구멍 속으로 던져 넣으셨다. 그러자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쟁기 근처에서 맴돌던 말벌들을 쫓아내 주었다. 그날 저녁 오두막으로 돌아온 뒤 할아버지는 늙은 샘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노새인지 아니면 가장 영리한 노새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며 이 문제는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골치 아프게 한 수수께끼의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건 나로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름에도 나는 옥수수밭을 가는 일을 좋아했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할아버지를 따라 골짜기를 내려갈 때마다 내 보폭은 조금식 넓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 식탁에 앉을 때면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께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셨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맞짱구를 쳐주셨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개들은 서로 엉켜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문득 집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우리 모두는 현관 밖으로 나갔다. 웬 사내 한 사람이 통나무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는 아주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키는 거의 할아버지만했다. 나는 그의 구두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건 연노랑 부츠 모양으로 운두가 높았으며 맨 윗부분은 하얀 속가죽이 드러나게 동그랗게 말아 감쳐져 있었다. 그의 바지 맨 밑단은 구두의 하얀 속가죽 맨 윗부분과 딱 맞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검은 반코트에 하얀 셔츠를 받쳐 입었으며 머리에는 둥그런 챙이 달린 모자를 단정하게 쓰고 있었다. 그는 길다란 케이스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를 잘 알고 계신 듯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파인 빌리 아저씨란다." 파인 빌리는 손을 흔들었다. "들어와 쉬었다 가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파인 빌리는 현관 층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그가 어디로 가던중인지 궁금해졌다. 우리집 뒤에는 험준한 산밖에 없는데 말이다. "들어와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파인 빌리를 한 팔로 감사안고 현관으로 이끌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긴 케이스를 받아 들어셨다. 우리 모두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파인 빌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신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맛좋게 생긴 감자 네 알을 꺼내 할머니께 건넸다. 할머니는 즉석에서 그걸 파이로 만들어 넷으로 나눈 뒤 파인 빌리에게는 세 쪽을, 내게는 한 쪽을 주셨다. 나는 그가 마지막 한 쪽을 남겨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파인 빌리가 식탁 위에 놓인 접시에 아직 파이 한 쪽을 남긴 상태에서 우리는 모두 벽난로 앞으로 옯겨갔다. 파인 빌리는 껄껄거리고 웃으며 내가 장차 할아버지보다 크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는 또 할머니가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 고와진 것 같다고 말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파인 빌리가 감자 파이를 세 쪽이나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해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거야 그 사람이 갖고 온 감자였으니까. 우리는 불 가에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당신의 흔들의자에 앉아 계셨고 할아버지는 불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인 자세로 앉아 계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슨 이야기인가가 나올 듯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말문을 트셨다. "어때? 뭐 새로운 소식 같은 것 없나, 파인 빌리?" 파인 빌리는 의자 앞다리가 들어올려질 정도로 상체를 깊숙이 뒤로 젖혔다. 그런 다음 조그만 깡통 하나를 꺼낸 뒤 그걸 거꾸로 기울여 길게 뺀 아랫입술 속에 코담배를 털어 넣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도 코담배를 권했으나 두 분 다 도리질을 하셨다. 파인 빌리는 꽤나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벽난로 속에다 침을 뱉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뭔가가 잘 풀려갈 것 같습니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만났거든요." 그는 다시 벽난로 속에 침을 뱉고는 우리 모두를 차례차례 돌아보았다. 나는 그 기회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그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재촉하듯 물으셨다. "어떤 기회를 만났단 말인가, 파인 빌리?" 파인 빌리는 다시 의자 앞다리를 들어올려 몸을 뒤로 제끼고는 천장의 서까래를 올려다봤다. 그는 자신의 배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난 수요일이었을 겁니다^5,5,5^. 아니, 아니, 화요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월요일 밤에 춤을 추고 논 다음날 일이었으니까 화요일이 맞아요. 그날 전 읍내로 들어갔었습니다. 거기 경찰관 스모크하우스 터너를 아시죠?" "그럼, 그럼. 알다마다." 할아버지는 조급하게 대답하셨다. "음, 그러니까," 파인 빌리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날, 제가 거기 거리 모퉁이에서 스모크하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삐까번쩍하게 빛이 나는 큰 차 한 대가 길을 가로질러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더라구요. 스모크하우스는 그걸 못 봤죠^5,5,5^ 하지만 전 봤어요. 그 안에는 한 녀석이 타고 있었는데 꼭 갱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습디다. 대도시의 갱 같은 냄새를 풍기는 녀석 말예요. 그자는 차 안에서 나오더니 조 홀콤에게 휘발유를 채워 달라고 그랬어요. 그래 저는 계속 그자의 거동을 지켜봤죠. 그자는 거기 서서 남의 눈을 꺼리는 사람처럼 괜히 사방을 흘끔거리데요. 그때 팍, 하고 직감이 오더라구요. 저자는 대도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자다! 정신차리고 잘 지켜봐라. 전 스모크하우스에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네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전 스모크하우스에게는 이렇게만 얘기했어요. (스모크하우스, 저자가 좀 수상쩍은 거 같은데요^5,5,5^. 대도시의 범죄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거든요. 저기 저자한테서는 아주 의심스런 냄새가 풍겨요.)" "스모크하우스는 그자를 한참 뜯어보더니 얘기합디다. (자네 말이 옳은 것 같네, 파인 빌리. 가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지.)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길을 건너 그자의 차 쪽으로 다가갔어요" 파인 빌리는 이제까지 들어올려졌던 의자 앞다리를 원상태로 돌아오게 하면서 벽난로 속에 침을 뱉고는 불타고 있는 통나무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치 통나무를 연구하는 사람처럼. 이윽고 파인 빌리는 통나무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아시겠지만 스모크하우스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글을 제법 쓸 줄 알거든요. 그래 저는 스모크하우스의 쥐를 따라갔어요. 제가 팔요하다면 도움을 주려구요. 그자는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보더니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갑디다. 스모크하우스는 그 차의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정중하게 물었어요. 여기서 뭘 하고 있냐는 식으로. 그때 제가 보니까 그자의 얼굴이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자는 플로리다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럽디다. 헌데 그 말이 아주 수상쩍게 들리더라구요." 내 귀에도 그 말은 수상쩍게 들렸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니 할아버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파인 빌리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 스모크하우스가 다시 물었어요. (어디서 온 양반이슈?) 그러자 그자는 시카고에서 왔다고 그럽디다. 스모크하우스가 나중에 얘기하기를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어쨌든 그자가 읍내 밖에서 온 건 분명한 사실이고 또 그자 입으로 그렇다고 그랬으니까^5,5,5^ 그런데^5,5,5^" 파인 빌리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데 말입니다^5,5,5^. 암만해도 수상쩍어 제가 차 뒤로 돌아가서 번호판을 들여다봤지 뭡니까. 그리고 전 스모크하우스를 살짝 끌어당기곤 말했어요. (저자는 시카고에서 왔다고 그랬잖수? 근데 번호판을 보니까 이게 일리노이 찹디다.) 스모크하우스는 시럽 속에 빠진 파리에게 덤벼들듯 그자에게 덤벼들어 그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차 안에서 끌어냈어요. 그런 다음 그자를 차 곁에다 세워 놓곤 꼼짝못하게 몰아세웠죠^5,5,5^. (시카고에서 왔다는 사람이 왜 일리노이 번호판을 달고 있는거지?) 스모크하우스는 자기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는 걸 알았어요. 그 범죄자는 꼼짝없이 몰리고 있었거든요. 그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눈칩디다. 뻔뻔스런 거짓말을 하다 잡혔으니까. 그자는 궁지에서 빠져나가려고 뭐라고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스모크하우스는 사기꾼에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구요." 파인 빌리는 이제 아주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스모크하우스는 그자를 경찰서 유치장에 처넣고는 애게 말했어요. 이 일로 자기가 큰 포상을 받을 거라면서 받으면 내게도 보답을 하겠다고 그럽디다. 받은 돈의 반을 주겠다고. 그자가 풍기는 냄새로 봐서 나나 스모크하우스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큰 포상을 받게 될지도 몰라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시며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대도시 범죄자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는 이제 파인 빌리가 부자가 된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파인 빌리는 그 일로 잘난 체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각만큼 큰 상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둥우리 안에 자신이 가진 달걀 전부를 넣지도 않았고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기도 전에 병아리 수를 세지도 않았다. 그건 현명한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이 뜻대로 잘 안 풀려나갈 것에 대비해서 또 다른 일을 하나 벌였다고 말했다. 즉, 레드 이글 코담배 회사에서 자기네 회사 제품에 대한 소감문을 모집하는데 가장 우수한 글을 쓴 사람에게는 오백 달러의 상금을 준다, 이 정도의 돈이면 사나이가 자신의 생애를 걸고 덤벼들 만한 일이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는 그 회사 담당자에게서 소감문을 적을 용지를 받았는데 거기다가는 그저 자기가 어떤 연유로 해서 레드 이글 코담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적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그 용지를 채우기 전에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당선을 맡아놓을 만한 근사한 대답을 생각해냈다고 했다. 그의 말인즉, 대부분의 사람들은레드 이글 코담배의 질이 좋아서 그걸 이용하게 되었다고 쓸거라 했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말을 적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서 한술 더 떴다고 했다. 즉 그는, 레드 이글 코담배는 자기가 이제까지 맛본 코담배 중에서 "최고의" 코담배이며 자기는 앞으로 평생 동안 레드 이글 코담배 외에 다른 코담배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적어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머리를 좀 썼다고 했다. 레드 이글 회사의 우두머리들은, 파인 빌리가 쓴 소감문을 통해 그가 남은 평생 동안 계속 자기네 코담배만 이용할 거라는 걸 알게 될거고, 그렇다면 결국 자기네가 파인 빌리에게 준 돈이 다시 자기네 수중으로 굴러들어올 거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만일 그들이, 단순히 레드 이글 코담배가 좋은 코담배라서 이용한다는 식으로 쓴 사람에게 그 상금을 준다면 그들은 모처럼 굴러들어온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된다. 파인 빌리는 큰 회사의 사장들은 자기네 돈이 걸려 있는 한, 절대로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이 부자가 된 것도 바로 그처럼 신중하게 행동한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레드 이글 회사가 내건 상금은 바로 자기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할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가 분명 그 상금을 받을 거라고 하셨다. 파인 빌리는 문밖으로 나가서 그가 씹고 있던 코담배를 뱉어낸 다음 식탁으로 돌아와 그 맛좋은 감자 파이의 남은 한 쪽을 마저 먹어 버렸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먹고 싶었지만 그의 그런 행동을 그리 섭섭하게 생각지 않았다. 파인 빌리는 부자니 의당 그걸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할아버지가 위스키가 가득 담긴, 돌로 된 커다란 잔을 내오셔서 파인 빌리는 두세 번 벌컥벌컥 들이켰고 할아버지는 컵을 한 번만 기울이는 것으로 그치셨다. 할머니는 기침이 나와 감기 치료용 시럽을 한 모금 드셨다. 할아버지는 파인 빌리에게 바이올린을 꺼내 "붉은 날개"를 연주해 보라고 하셨다. 파인 빌리가 연주를 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발로 박자를 맞추셨다. 그는 근사하게 연주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오늘 밤 달은 빛난다, 붉은 날개 위에. 미풍은 속삭이고 밤새들은 우짖는다. 희미한 별빛을 받으며 용감한 그녀가 잠들어 있는데, 붉은 날개의 마음이 중천을 떠돌며 흐느끼고 있는데. 나는 마룻바닥에 누운 채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할머니가 나를 안아다 침대에 눕혔다. 이날 밤 나는 파인 빌리가 부자가 되어 어깨에 자루 하나를 둘러멘 채 우리 오두막으로 찾아온 꿈을 꾸었다. 그가 들고온 자루 속에는 맛좋은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ff @[ 비밀 장소 실개천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거인이라서 그 실개천의 굽이굽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곳이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거인이다. 육십 센티가 넘는 존재인 나는 거인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그 시리개천 물이 낮은 데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조그마한 저습지를 연구한다. 그곳에는 개구리들이 알을 까놓았다. 속에 무수히 많은 검은 점들을 담고 있는, 젤리처럼 투명한 큰 덩어리^5,5,5^ 그 점들 하나하나는 미래의 올챙이로서 부지런히 먹이를 먹으며 부화되어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실개천 속에서는 연준모치들이 수면을 가로지르며 종종걸음 치는 사향벌레들을 사냥하기 위해 번개처럼 움직인다. 그 사향벌레들을 손에 쥐면 그것은 정말로 짙은 향내를 발산하곤 한다. 어느 날, 나는 사향벌레들을 잡느라 오후 시간 전부를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애썼지만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건 몇 마리 되지 않았다. 그건 잡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가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벌레들을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잿물비누를 만들 때도 늘 거기다 인동덩굴을 첨가하시곤 했으니까. 내가 그걸 갖다 드리자 할머니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 본다며, 이렇게 좋은 냄새를 풍기는 벌레가 있는지를 왜 이제까지 모르고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저녁식사 시간에 할머니는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께 사향벌레 얘기를 꺼내셨으며 그렇게 향내가 짙은 벌레는 생전 처음 본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놀라는 표정이 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벌레를 갖다 드리고 냄새를 맡아 보시게 했다.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그렇게 희한한 냄새는 처음 맡아 본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좋은 것을 얻게 되면 먼저 자기 이웃과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좋은 것은 말없이 퍼져가게 된다. 그것이 옳은 일이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실개천 속을 첨벙거리고 다녔기 때문에 옴팡 젖어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체로키 사람들은 자기네 아이들이 숲속에서 아무리 심한 장난을 치고 놀아도 절대로 그걸 갖고 나무라는 일이 없었으니까. 나는 때로 실개천의 맑은 물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흐르는 물 속에 가지 끝이 잠길 정도로 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무성한 초록색 장막을 허리를 낮게 구부린 채 뚫고 지나가기도 하면서 실개천 위쪽으로 한참 거슬러올라가 보기도 했다.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실개천 양편 가장자리에서 무성하게 곡선을 그리며 늘어져내려 아름다운 초록색 레이스를 펼치는 양치식물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작은 우산거미들은 이러한 식물의 가지를 버팀목으로 삼아 거미줄을 펼치곤 한다. 이 우산거미들은 양치식물의 가지에 엷은 실 한 끝을 붙인 뒤 공중으로 도약하여 우산의 형태로 거미줄을 펼치면서 건너편 물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가지에 다다르려고 시도하곤 한다. 만일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 거미는 실의 다른 한 끝을 그 줄기에다 붙이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도약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뛰다 보면 결국 그 실개천 위에는 영롱한 진주빛 거미줄 하나가 걸리게 된다. 이 녀석들은 덩치는 작아도 여간 의지가 굳센 놈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물 위에 떨어지면 급류에 떠내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연준모치가 덤벼들기 전에 둑 위로 오르고야 만다. 어느 날 나는 실개천 중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자신의 실을 개울 양편으로 연결하려고 애쓰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실개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은 진주빛 거미줄을 갖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은 그가 개울이 가장 넓은 곳을 선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엷은 실 한 가닥을 개울 한편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가지에다 붙인 뒤 공중으로 도약했으나 그만 물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물에 떠내려가면서도 악착같이 헤엄을 쳐 다시 원래의 양치식물 가지 위로 되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세번째 시도에도 역시 실패하고는 원래의 가질 되돌아온 뒤 가지 맨 끝으로 내려와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턱 밑에 다리를 엇갈리게 받치고는 한참 동안 물을 내려다보며 고심했다. 나는 그 녀석이 결국 포기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며 그 실개천에서 찬참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느라 물에 젖은 내 엉덩이는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얼해졌다. 그런데도 그 녀석은 거기 앉아 연구에 연구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녀석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고는 그 가지 위에서 뜀뛰기를 시작했다. 제자리에서의 뜀뛰기. 그에 따라 그 양치식물의 가지는 서서히 아래위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짓을 한동안 계속했다. 그러다 그 가지가 가장 높은 지점으로 솟구쳐오른 한 순간 그 녀석은 펄쩍 뛰어 자신의 우산을 좍 펼쳤다. 결국 그 녀석은 해내고야 말았다. 건너편으로 뛰는 데 성공한 그 녀석으로 자랑스러운 마음에 미친듯이 그 실개천을 뛰어건너는 일을 반복했다. 거의 지쳐 떨어질 정도로. 그렇게 해서 그 은빛 거미줄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넓은 것이 되었다. 나는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것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양버들 위에 둥우리를 마련하고 사는 제비들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나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여간 안타깝게 하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 낯이 익자 둥우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곧잘 나한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실개천과 나란히 달리는 개울 둑에서는 개구리들이 즐겁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노래를 뚝 그치곤 했다. 그러다 나는 개구리들이 땅이 울리는 느낌으로 사람이 다가오는 걸 쉽게 알아차린다는 얘기를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해주시면서 체로키들이 걷는 방법, 즉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지면을 살짝살짝 딛는 방법을 직접 보여 주셨다. 그 다음부터 나는 이 방법을 써서 개구리들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의 바로 곁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실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 비밀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실개천 너머 산자락 쪽으로 약간 올라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울창한 월계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풀이 가지런히 자란 아담한 동산인 그곳에는 허리가 굽은, 향내나는 늙은 고무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그 순간 나는 그곳을 내 비밀 장소로 정했으며 그 뒤로는 틈만 나면 그곳으로 찾아갔다. 나는 그곳으로 갈 때면 으레 늙은 개 모드를 데리고 가곤 했다. 모드 역시 그곳을 좋아했으며 우리는 그 향기로운 고무나무 밑에 앉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또 여기저기를 바라보곤 했다. 모드는 그 비밀 장소에만 가면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드 역시 그곳이 비밀 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늦은 오후, 나와 모드가 그 향기로운 고무나무에 기대 앉아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거기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안 그랬다면 무슨 말이고 한 마디 건네셨을 테니까. 할머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숲 사이를 뚫고 지나가실 수 있었다. 살그머니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식물 뿌리를 캐시는 중이었다. 나는 할머니 일을 거들어 드리기 위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나랑 할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뿌리들을 분류했다. 나는 비밀을 지키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서 그 일을 하는 동안 결국 참지 못하고 할머니께 내 비밀 장소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할머니가 내 얘기를 들으시고도 전혀 놀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모든 체로키들은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갖고 있으며 그 점에 있어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가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으며 산등성이 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산꼭대기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짐작하고만 있을 따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할 수는 없지만 체로키 족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갖고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비밀 장소를 하나씩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서 나는 나도 비밀 장소를 하나 갖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해졌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하나는 육신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통해 잠자리나 먹을 것, 그리고 그 밖에 우리의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남녀가 짝을 짓고 아이들을 갖는 등의 행위를 하는 데도 그러한 마음이 작용한다. 우리가 계속 생존하려면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들과 전혀 무관한 또 다른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적인 마음, 곧 영혼이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을 통해 탐욕스럽고 비천한 생각에만 몰두해 있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항시 그러한 마음을 통해 남들을 공격하고 남들에게서 이익을 취할 방법을 생각하는 데만 몰두한다면^5,5,5^ 우리의 영적인 마음은 히코리 열매만하게 졸아붙어 버릴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도 함께 소멸되어 버린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일평생 만사를 육신의 마음을 통해서만 바라본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뿐일 것이다. 당신의 다른 모든 것이 죽을 때 살아남는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태어날 때 -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다. 당신은 이 세상 만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이 당신의 모든 걸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완두콩만하게 졸아붙어 버리거나 아^36^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인간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인간이 된다. 할머니는 당신(이때의 '당신'은 할머니를 가리키는 존칭어다: 옮긴이)이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 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아름다움에는 눈이 멀어 여자를 볼 때도 추잡한 것밖에 볼 줄 모르고,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며, 나무를 볼 때도 목재나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들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영혼은 근육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자꾸 이용한다면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강해진다. 영혼을 크고 실팍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육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계속하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다행히도 당신이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의 이해의 과정은 시작되며 당신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혼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리고 당연히, 이해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따라가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사랑하는 척하려고 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내가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 정도를 갖고서 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의 영혼이 크고 강대해지게 되면 나는 어느 날엔가 내과거의 육신의 삶들이 거쳐온 과정을 모조리 알게 될 것이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내 비밀 장소에서 그러한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봄철이 되어 만물이 탄생할 때(그리고 상념까지를 포함한 모든 것이 새로 탄생할 때는 항시), 거기에는 으레 진통과 소동이 따른다. 피와 고통 속에서 아기가 탄생하듯이 봄철에는 봄의 폭풍우가 일게 마련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러한 폭풍우는 영혼이 다시 물질적인 형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소동이라고 말씀하셨다. 봄에 이어 여름이 오면서 우리의 삶은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되고 다시 가을이 그 뒤를 잇는데 이때 우리는 나이가 들대로 들면서 조만간 우리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늙은이들 특유의 느낌을 갖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감정을 향수, 혹은 슬픔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되면 우리의 육신이 죽듯 만물은 죽거나 혹은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봄철과 더불어 다시 소생하게 된다. 할머니는 체로키들은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며 이미 오래 전에 그러한 이치를 터득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때가 되면 내가 내 비밀 장소에 있는 그 향기로운 늙은 고목나무 역시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나무의 영혼을. 그리고 할머니는 할머니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아버지, 즉 외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은 "갈색매"였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그분은 세상 만물을 깊이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러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느끼실 수 있었다고 한다. 헌데 어느날 외증조 할아버지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근처의 산에서 자라는 하얀 참나무들이 몹시 흥분에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하시면서 몹시 걱정을 하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이니 아주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다. 그분은 평소에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또 그 참나무 숲을 수시로 지나다니셨다. 그 나무들은 줄기가 쪽 곧고 키도 컸으며 아주 아름다웠다. 또한 그 나무들은 산에서 사는 뭇짐승들의 먹이를 대주는 거먕 옻나무나 감나무, 히코리 나무나 밤나무들이 자기네들 틈에서 한데 어울려 살도록 허용해 줄 만큼 관대하고 아량이 있었다. 이렇게 이기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닌 탓으로 그들의 영혼은 크고 강해졌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그 참나무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어 밤에도 그 나무 주위를 돌아다니시곤 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해가 산등성이 위로 막 고개를 내밀 때쯤해서 그분은 벌목꾼들이 그 하얀 참나무 숲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은 베어낼 나무들을 조사하고 또 가장 효과적으로 나무들을 베어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이 그곳을 떠나자 하얀 참나무들은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외증조 할아버지는 밤에도 주무시지 않고 벌목꾼들이 오지 않나 지켜보셨다. 벌목꾼들은 차가 다닐 수 있게 참나무가 자라는 산에다 길을 냈다. 외증조 할아버지는 체로키 사람덜에게 그 얘기를 전했으며 이에 그들은 하얀 참나무들을 구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밤 벌목꾼들이 평소처럼 읍내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 도로를 마구 파헤치고 또 도로를 가로지르는 깊은 구덩이들을 내어 차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 일에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참여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산으로 돌아온 벌목꾼들은 하루종일 망가진 도로를 고쳤다. 그러나 그날 밤 체로키 사람들은 다시 도로를 파헤쳐 버렸다. 이런 일이 다시 연이틀 계속되자 견디다 못한 벌목꾼들은 총을 든 경비들을 데려와 그 도로를 지키게 했다. 그러나 경비들이 모든 도로를 다 지킬 수는 없었으며 체로키 사람들은 그들의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곳마다 나타나서 할 수 있는 한껏 도로를 깊이 파헤쳤다. 이 일은 몹시 힘겨운 일이어서 며칠을 그렇게 하다 보니 체로키 사람들도 기진맥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벌목꾼들이 도로를 고치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하얀 참나무 한 그루가 그들이 몰고온 차 중의 어느 한 대에 쓰러져 버렸다. 그 바람에 그 차는 완전히 파손되고 노새 두 마리까지 덤으로 깔려죽었다. 그것은 아직 싱싱하고 건강한 참나무여서 전혀 쓰러질 이유가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벌목꾼들은 도로를 내는 일을 포기했다. 거기다 봄비마저 내리기 시작했고^5,5,5^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꽉 차 환한 보름달이 되었을 때 체로키 사람들은 하얀 참나무들이 가득 들어 찬 드넓은 숲속에서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보름달의 환한 빛 속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하얀 참나무들은노래를 부르고 서로서로 가지를 비벼댔으며 체로키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들은 다른 참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그 하얀 참나무를 찬양하는 노래를 볼렀다. 할머니는 그때 크나큰 감동을 받아 그 산을 떠난 다음에도 그 감동이 오래오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작은나무야, 백인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하등 도움이 안 될 테니 이런 얘기는 그저 가슴속에 묻어두거라. 하지만 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얘기해 주는 거란다." 그제서야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벽난로를 지필 때 영혼이 떠나간 통나무들만을 사용하시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숲의 생명에 대해서 눈뜨게 된 것이다^5,5,5^. 그리고 산의 생명에 대해서도. 할머니는, 외증조 할아버지가 그렇게 깊은 이해의 경지에 다다랐으므로 그분이 강해졌으리라는 것을^5,5,5^ 후생의 육신의 삶 속에서도 깊은 이해심을 갖고 계시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만큼 강해지기를 소망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할머니는 그분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두 분의 영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 테니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그러한 이해의 경지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셨고, 두 분의 영혼은 항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늘 함께 머물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여쭤 봤다. 내가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면 나만 뒤에 홀로 남겨진 채 잊혀진 아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그러냐고. 할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산길을 걸어내려오기만 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입을 열어 나더러 항시 이해하려고 애써 보라고 하셨다. 나 역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어쩌면 내가 이해하는 면에 있어서 할머니보다 더 앞설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할머니를 앞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저 할머니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뒤쫓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뒤에 홀로 남겨져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쓸쓸한 일이니까. @ff @[ 할아버지의 직업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에 공식적인 직업을 가져 본 일이 없으셨다. 산사람들에게 있어 "공식적인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급료를 받고 고용되어 일하는 "모든" 종류의 직업을 의미했다. 할아버지는 고용되어 일하는 걸 아주 혐오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만족도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의 온 시간을 다 바쳐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걸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옳은 말씀이었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인 1930 년에 옥수수 일 부셸(36리터, 두 말 가량에 해당된다: 옮긴이)의 가격은 이십오 센트였다. 옥수수 일 부셸을 살 사람이 있다면 그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살 사람을 과연 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헌데 일 부셸에 십 달러라 한다 하더라도 나와 할아버지는 그걸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옥수수밭은 너무 작았으니까.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공식적인 직업이 아닌 직업을 갖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져야 하며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실제로 그러셨으니까. 할아버지의 직업은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인의 피를 타고난 데서 유래했다. 그 가문은 몇백 년 동안 그 직업을 자손들에게 물려줘 왔다. 그 직업이란 곧 위스키 제조업을 뜻했다. 헌데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면 산악지대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금방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선입견은 대도시의 범죄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대도시의 범죄자들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위스키를 제조하며 위스키의 품질이야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단시간에 많이만 만들려고 든다. 그런 자들은 술밥을 빨리 "발효"시키고 위스키 빛깔을 "곱게"하기 위해 양잿물이고 산화칼슘이고를 가리지 않고 집어 넣는다. 그리고 그들은 위스키를 증류할 때 철판이나 생철로 만든 관, 또는 트럭의 라지에터 따위를 이용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독성을 가진 것들이며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자들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장 고약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는 자들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어떤 직업도 나쁘게 보일 수 있고 충분히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는 일이라 하셨다. 일례로 할아버지가 요즘에도 어쩌다 한번씩 입으시는 양복은 오십년 전에 결혼을 하실 때 맞춰 입은 양복인데도 아직 제 모양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양복장이는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못한 양복장이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양복을 짓는 작업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양복장이를 만나느냐에 달린 문제며, 위스키를 제조하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시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위스키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설탕조차도. 설탕은 위스키를 걸쭉하게 만들거나 그 양을 늘리는 데 이용되곤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설탕을 넣은 위스키는 순수한 위스키가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순수한 위스키만을 만드셨다. 순 옥수수만을 사용한 위스키. 할아버지는 또 오래 묵은 위스키를 아주 싫어하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이 위스키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떠벌이는 소리를 들어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번은 당신이 직접 실험을 해보셨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약간을 제조하여 일 주일 가량을 묵혀 둔 다음 맛을 보니 방금 만든 것과 전혀 맛에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위스키를 갖고 수단을 부리는 사람들은 일부러 오랫동안 통 속에 위스키를 저장하여 위스키에 그 통 냄새와 색깔이 배게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굳이 통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하는 병신머저리 같은 놈들이 왜 통 속에 자기 머리를 처박고 실컷 그 냄새를 맡은 다음 순수한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는 방법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통 중독자"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흙구덩이 속에 괸 물을 통 속에 담아서 오래 묵혀 둔 후 그런 놈들에게 팔면 그놈들은 그래도 통 냄새가 나서 좋다고 하면서 희희낙낙 처마실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위스키 통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관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은 한꺼번에 여러 해 치의 위스키를 저장할 수 있는 거물급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하셨다. 그런 자들이 통 냄새가 배도록까지 자기네 위스키를 저장할 여력이 없는 군소 제조업자들을 억누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들은 자기네 위스키를 팔아먹기 위해 자기네 위스키가 다른 어떤 위스키보다 통 냄새가 짙다고 선전을 해대느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며, 그 바람에 수많은 닭대가리 같은 멍청이들이 그선전에 속아 넘어가 그런 술을 마셔대게 된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그래도 아직 세상에는 통 냄새에 중독되지 않은 분별있는 사람들이 일부 남아 있어 그런 사람들 덕분에 군소 위스키 제조업자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기술이 위스키 제조 기술이고 또 나도 어언 여섯 살이 다 되어가므로 이제 그걸 배울 만한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업을 바꾸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이 기술을 익혀 두면 달리 생계를 유지할 방도가 없을 때마다 이 기술을 써먹을 수 있으니 좀 좋으냐고 하셨다. 나는 나와 할아버지가 통 냄새가 나는 위스키를 마실 것을 권하며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거물급 제조업자들과 맨주먹으로 싸워야 한다느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 기술을 전수해 주신다는 데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위스키 증류기는 실개천이 비좁은 골짜기 사이로 흘러나가는 "좁은 길" 부근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월계수들과 인동덩굴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솥과 빗장쇠가 달린 뚜껑, 그리고 "나선형 관"이라 부르는 길고 좁은 대롱이 달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순수한 구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류기치고는 좀 작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큰 것이 필요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단지 한 달에 한 번씩만 증류를 하셨으며 그때마다 그것은 항시 11갤런(1갤런은 3.8리터, 도는 8분의 1부셸: 옮긴이)의 위스키를 생산해 냈다. 우리는 그 중의 9갤런을 사거리 가게의 젠킨스 씨에게 갤런당 2 달러씩을 받고 팔았는데 우리가 생산하는 옥수수 양을 생각한다면 이만한 액수의 돈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일용품들을 샀으며 할머니는 쓰고 남는 약간의 돈을 꼬박꼬박 담배 자루 속에 넣어 유리항아리 속에 간직해 두시곤 했다. 할머니는 내가 위스키 만드는 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고 또 그 기술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의 일부는 내 몫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따로 떼어놓은 2갤런의 위스키는 우리 식구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심심하면 그걸 마시곤 하셨으며 친구들이 찾아올 때도 그걸로 대접을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것의 상당량을 감기약으로 쓰셨다. 할아버지는 뱀에게 물렸을 때나 거미에게 물렸을 때, 그리고 발에 상처를 입었을 때 위스키가 좋은 약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위스키를 증류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제대로 과정을 밟아 제조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옥수수를 써서 위스키를 제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얀 옥수수는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우리가 재배하는 인디언 옥수수만을 썼다. 그것은 진빨강색을 띠고 있어서 우리가 만드는 위스키도 엷은 붉은 빛을 띠게 마련이었다^5,5,5^.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위스키 중에 이런 색깔이 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위스키 색깔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위스키 색깔만 보고는 그것이 순수한 인디언 옥수수만을 써서 만든 것이라는 걸 안다. 옥수수 알을 자루(올수수 알이 달린 대를 말한다: 옮긴이)에서 떼내는 작업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동원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자루에서 떨어져 나온 옥수수 알의 일부를 마대 속에 담는다. 우리는 그 마대 위에다 따뜻한 물을 붓고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다 내놓는다. 겨울철에는 벽난로 곁에다 놓아두고. 그리고 자루 속에 담겨진 옥수수 알들이 잘 섞이도록 하루에 두세번씩 자루를 뒤집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사오일이 지나면 옥수수 알들은 길다란 싹을 내게 된다. 마대에 담지 않고 따로 치워둔 옥수수 알은 빻아서 가루로 만든다. 우리는 제분업자에게 그걸 맡기지 않는다. 비용이 너무 비싸게 먹히니까. 그래서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미 곡식 빻는 기구를 만들어 두셨다. 그것은 바위 두 짝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손으로 돌려 옥수수를 빻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빻은 옥수수 가루를 들처메고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좁은 길" 가에 안치해 둔 증류기 있는 데까지 운반한다. 우리는 실개천의 물이 자동적으로 증류기의 솥까지 흘러들어가도록 길다란 나무 수로 시설을 해놓아 위스키를 빚을 때마다 그걸 이용해 물을 댔다. 솥에 물을 채울 때는 항시 솥 높이의 사분의 삼까지 물이 차도록 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옥수수 가루를 솥 속에다 들이붓고는 솥 밑에다 불을 때기 시작한다. 불을 땔 때 우리는 연기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꼭 숯만을 사용한다. 할아버지는 생나무를 때도 위스키를 빚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허가받지 않고 위스키를 빚는 것은 불법이었으니까 가급적 연기를 내지 않으려고 숯을 쓰는 것이다: 옮긴이).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할아버지는 증류기 옆에 박힌 나무 그루터기 위에 나무 상자를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나를 올려놓아 주신 뒤 옥수수 죽을 휘젓게 하시곤 했다. 나는 키가 닿지 않아 솥 속의 내용물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무조건 휘젓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죽이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잘 젓고 있다고 칭찬하시곤 했다. 그러시니 나야 무조건 팔이 떨어져나가라고 저을 수밖에. 옥수수 죽이 적당히 익으면 우리는 솥바닥에 난 관을 통해 그것을 통 속으로 뽑아내며 그 통 속에 싹틔운 옥수수를 첨가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통에 뚜껑을 덮어 그대로 놔둔다. 그렇게 해서 사오 일을 경화하게 되는데 우리는 매일 한번씩 거기로 올라가 통 속의 내용물을 휘저어 주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그 과정을 "발효"라고 하셨다. 사오 일이 경과하게 되면 통 속 내용물 위에는 단단한 막이 형성된다. 우리는 그 막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부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증류작업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 할아버지는 큰 양동이를 들으시고 나는 작은 것을 든다. 우리는 통에서 내용물을 떠 양동이에 담은 뒤 그것에 증류기의 솥 속에다 들어붓는다. 내용물이 솥 속에 다 들이차면 할아버지는 솥뚜껑을 잘 닫아 고정시킨 뒤 솥 밑에다 숯을 지피신다. 솥의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증기는 솥 윗부분에 난 관과 연결된 나선형의 사리 모양으로 된 길다란 구리관을 통해 나오게 되어 있다. 그 구리관은 통 속으로 들어가며 우리는 나무 수로를 통해 실개천에서 끌어낸 찬물로 계속 통을 식힌다. 그렇게 하면 그 증기는 액체로 변하여 통 바닥에 괴게 된다. 우리는, 몸에 들어가면 두통이 일게 하는 기름 성분을 걸러내기 위해 그 액체 위에 히코리 나무 숯을 띄운다. 이런 작업 끝에 얻어 내는 위스키의 양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고작 2갤런 정도의 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2갤런의 위스키를 따로 치워두고 증기로 되어 나오지 않은 "찌꺼기"를 빼낸다. 그런 다음 우리는 솥과 관 등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우리가 얻은 2갤런의 위스키를 할아버지는 "싱글즈"라고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그것이 200 도가 넘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찌꺼기"와 싱글즈를 솥 속에 붓고 다시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거기다 약간의 물을 덧보탠 뒤 먼젓번 증류작업때 밟았던 과정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렇게 하여 이번에는 11갤런의 위스키를 얻어낸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고된 작업이었으므로 나는 일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건들건들 놀면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게으른 건달들이나 위스키를 만드는 법이라는 견해에는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 힘들이지 않고도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위스키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할아버지는 이 분야에서는 단연 최고셨다.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절대로 좋은 위스키가 나오지 않는다. 불을 너무 세게 때도 좋지 않으며 너무 오래 발효시키면 맛이 시어진다. 그리고 발효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류작업에 들어가면 싱거운 위스키가 나온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관에서 떨어져 내리는 위스키 방울만 들여다보고도 농도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기술에 대해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술을 전수받으려고 애썼다. 할아버지와 내가 증류기 곁에 머물러 있을 때면 할머니는 개들을 집 안에 가두어 두셨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가 사는 골짜기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퍼렁이를 풀어놓아 산길을 달려 올라가게 하셨다. 퍼렁이는 기막힌 코를 갖고 있어서 우리의 냄새를 쫓아서 마침내 증류기 있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가 산길을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리핏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이 녀석이 그만 술 지게미를 먹는 데 맛을 들였다고 했다. 그 뒤부터 이 녀석은 증류기 근처에만 나타나면 술 지게미를 훔쳐먹고 취해 버리곤 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먹고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헤롱헤롱 취하도록 먹엇다. 그리고 한번은 모드까지 증류기 있는 데로 끌고 와 함께 취해 버렸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퍼렁이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되었다고 하셨다. 산에서 살면서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 나가려면 그 밖에도 알아 두어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증류를 한 뒤에 주변을 깨끗이 치우는 일도 그중의 하나에 속한다. 안 그랬다가 시큼한 술 지게미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게 될 테니까. 할아버지는 법(여기서는 경찰, 관리 등을 의미한다: 옮긴이)이 흡사 사냥개 같아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술 지게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비상한 코를 가졌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법을 맡고 있는 개들"이란 말이 나온 것도 다 이런 연유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하시면서, 자세히 조사해 볼 수만 있다면 그런 자들은 과거에 왕이나 귀족들의 명령을 받고 사냥개처럼 사람들의 뒤를 추적하곤 했던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할아버지는, 훗날 만일 내가 그런 자들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자들도 역시 그들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5,5,5^ 바로 이런 냄새 때문에 어떤 산사람들은 그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걸 냄새만으로 알아챌 수 있다고 하셨다. 양동이를 솥 가장자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산에서 솥과 양동이가 부딪치는 소리는 적어도 삼 킬로미터는 산다. 이 때문에 나는 양동이를 들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나는 통 속에서 술 지게미를 양동이에 떠 담아서 솥 속에 붓는 일을 할 때마다 나무 그루터기와 그 위에 놓인 상자 위로 올라가서는 그것을 솥 속에 들이붓고 내려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법을 익혔다. 이 일을 할 때는 또 노래를 불러서도, 말을 주고받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나는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산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정도의 말소리가 아주 멀리 날아가는 데도. 그건 우리 체로키들이 산소리, 즉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과 거의 구별이 안 되게끔 교묘하게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그런 음역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덕분에 할아버지와 나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위스키 증류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들이 후다닥 날아가고 나무 위에 사는 귀뚜라미들이 울기를 멈춘다면 사방을 잘 살펴봐야 한다. 할아버지는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지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어 있으니까 그걸 한꺼번에 다 담아두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하셨는데 결국 그 말씀대로 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위스키에 표시를 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그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표식으로서 위스키가 담겨진 유리항아리 뚜껑에 전투용 도끼 문양을 대충 새겨 넣음으로써 완성되었다. 그 산악지역에서 위스키를 제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문양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고유의 상표들을 갖고 있었으니까. 할아버지는 당신이 언젠가는 돌아가시게 될 텐데 그때는 내가 그 표식을 물려받아도 좋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표식을 물려받으셨다. 젠킨스 씨네 가게에 들르는 사람들 중에는 할아버지의 표식이 새겨진 위스키만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금 나와 할아버지가 동업자나 마찬가지이므로 현재 그 상표에 대한 권리의 반은 나한테 있다고 하셨다. 내가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소유해 보기는 이게 처음미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상표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음 우리 상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나쁜 품질의 위스키는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런 위스키는 만들지 않았다. 내 평생에 가장 충격적이고 무서웠던 일은 바로 위스키를 만들 때 일어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일이 일어난 건 겨울도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그때 할아버지와 나는 두번째 증류작업을 막 끝내고 반 갤런짜리 유리항아리들을 밀봉해서 그것들은 자루 속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항아리를 넣은 자루들을 메고 가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쳐 깨지지 않도록 항시 마대 속의 항아리들 사이사이 마다에 낙엽들을 두둑히 넣어서 들고가곤 했다. 나는 반 갤런짜리 항아리 세 개가 들어가는 작은 자루를 메곤 했으며 할아버지는 늘 나머지 항아리들을 두 개의 큰 자루 속에 나누어 넣고는 한꺼번에 자루 두 개를 메고 내려가시곤 했다. 나는 나중에는 항아리 네 개까지도 졌지만 이날은 자루 속에 세 개만 넣었다. 그 정도도 나한테는 아주 힘에 부쳐서 나는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그걸 바닥에 내려놓고 한참 동안 쉬었다 가곤 해야 했다. 내가 쉬면 할아버지도 쉬셨다. 우리가 막 항아리들을 자루 속에 넣는 일을 끝냈을 때 돌연 할아버지가 소리치셨다. "이런 염병할! 퍼렁이다!" 고개들어 보니 정말 퍼렁이가 혀를 빼문 채 증류기 옆에 엎드려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 개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여간 당혹하지 않았다. 그 개는 아주 조용히 다가와서 거기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소리질렀다. "망할 놈의 개새끼 같으니!"(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할아버지와 나는 할머니가 곁에 없을 때면 곧잘 상소리를 입에 담곤 했다.) 어느새 할아버지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별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새들도 날아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는 네 자루를 지고 먼저 내려가거라. 가다가 인기척이 나거든 얼른 길가로 숨었다 가. 그것들이 지나가걸랑. 나는 여기 남아 뒷정리를 하고 증류기를 숨겨 놓은 담에 저쪽 산허리를 타고 내려갈 테다. 집에서 보자꾸나." 나는 내 자루를 번적 들어 횟 어깨 뒤로 돌렸는데 자루가 너무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대로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나는 용케 중심을 잡은 뒤 번개같이 "좁은 길" 위로 올라섰다. 혼자서 산길을 내려가자니 오금이 저렸다^5,5,5^. 그러나 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증류기를 먼저 숨겨야 하니까. 평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산사람들에게 증류기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시카고 사람들에게 있어 시카고 전체가 불이 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할아버지의 증류기는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것으로 할아버지가 지금 이 연세에 그걸 잃는다면 다시는 증류기를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잃는다면 할아버지와 내가 직업을 잃는 건 물론이요, 할머니까지를 포함한 우리 식구 모두가 먹고 살 길이 막연해지게 될 것이다. 설혹 시장에 내놓을 만큼의 옥수수가 있다 해도, 그리고 그걸 내다 팔 수 있다 해도 부셸당 이십오 센트 받고 팔아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내다 팔 만큼의 옥수수도 없고 또 그걸 살 만한 작자를 만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굳이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증류기를 구하는 것이 우리 식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말 않고 먼저 떠난 것이다. 세 개의 위스키 항아리를 지고 서둘러 걷자지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할아버지는 퍼렁이를 나한테 딸려보내셨다. 나는 내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퍼렁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퍼렁이는 인기척이 들리기 훨씬 전에 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르 통해 누군가가 접근해 오는 것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좁은 산길은 양 옆으로 가파른 산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어 실개천 둑 위로 난 좁은 공간 외에는 달리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나와 퍼렁이가 그 "좁은 길"을 반 정도 내려왔을까 싶을 때 산길 아래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집에 잇는 개들을 다 풀어 놓아 그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퍼렁이도 제자리에 우뚝 섰다.이윽고 우리 집 개들이 일제히 산모퉁이를 돌아 우리가 있는 좁은 길로 달려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내 앞에 선 퍼렁이가 두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더니 허공에 대고 코를 큼큼거렸다. 그는 등 뒤의 털을 곤두세우고 빳빳하게 긴장된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퍼렁이가 얼마나 뛰어난 후각을 지닌 개인가를 직접 내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내가 미처 피할 사이도 주지 않고 산모퉁이에서 바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나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추어 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분명 네 명을 넘지 않았는데 그때 당시의 내 눈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몰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때까지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덩치들이 컸으며 하나같이 셔츠 위에 빛나는 견장을 달고 있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제자리에 못박힌 채 그들을 주시했다. 입 속이 바싹 타올랐고 무릎이 힘없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중의 하나가 탄식처럼 내뱉었다. "맙소사^5,5,5^ 어린애잖아!"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인디언 꼬마 녀석이야!" 나는 가죽장화를 신은 데다 사슴가죽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고^5,5,5^ 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데다 검은 빛이었으니 인디언 애가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대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어이 꼬마야, 그 자루 안에는 뭐가 들었지?" 또 다른 자가 소리질렀다. "저 개 조심해!" 퍼렁이가 그들을 향해 살그머니 다가가고 있었다. 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리며 여차하면 바로 덤빌 자세였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한발한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뚫고 달아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실개천으로 뛰어든다면 금방 그들의 손에 잡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달아난다면 그건 그들을 증류기 있는 데로 안내하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나 할아버지는 직업을 잃고 만다. 증류기를 구할 책임을 할아버지뿐 아니라 나도 지고 있다. 나는 바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산쪽으로 달아나는 편을 택했다. 산을 뛰어오르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다. 당신이 산을 뛰어올라가야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나는 당신이 뛰어서 산을 오르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니까. 할아버지는 체로키들이 산을 뛰어다니는 방식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우선 곧바로 산을 오르지 말고 비스듬히 지그재그로 달려야 한다. 그런데 달릴 때 가급적이면 땅을 밟지 말고 주고 자잘한 나무의 상단, 나무줄기나 뿌리 등을 디디는 것이 좋다. 이런 것들은 좋은 발판 구실을 하기 때문에 당신은 헛발을 딛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다. 나는 바로 이런 방식을 썼다. 그런데 나는 산허리를 타고 달리되 그 사람들과 반대 방향이 아니라 그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반대 방향으로 갔다간 점차 높아져가는 "좁은 길"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 바람에 나는 그들의 바로 머리 위를 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들은 길을 버리고 마구 덤불을 헤치며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는 내가 그들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내 다리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는 내가 디뎠던 관목을 움켜쥐려 했으며 내 바로 곁까지 다가왔던 탓으로 이제 그가 주먹 한방만 휘두르면 나는 그대로 박살이 날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퍼렁이가 그의 발을 물어뜯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 뒤편에 있는 사내에게로 벌렁 나자빠졌으며 나는 그대로 달아났다. 나는 퍼렁이가 마구 으르렁거리며 그와 격투를 벌이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왔기 때문에 나는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리를 통해 퍼렁이가 마구 그를 공격하다간 잠시 주춤하고서 짖어대기만 하다가 또다시 그에게로 돌진해 들어가 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자세히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다. 나는 계속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러나 위스키 항아리의 무게 때문에 생각만큼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나는 그 사내들이 내 뒤를 따라 산을 기어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쯤 다른 개들도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들의 으르렁거림과 울부짖음 속에서 리핏과 모드의 목소리를 분명히 식별해 낼 수 있었다. 거기다 사내들이 으르렁거리고 고함치고 욕설을 해대는 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오는 바람에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내 맞은편 산을 기어 오르시면서 그소리를 들었는데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하셨다. 나는 계속 있는 힘껏 달리다가 얼마쯤 후에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지쳤다 해도 오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계속 걸었다. 산꼭대기 부근쯤에 와서 나는 기진맥진한 나머지 내 위스키 항아리들이 든 마대를 질질 끌면서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나는 그 산 정상에 올랐다. 나는 개들과 사내들의 아우성을 여전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들은 "좁은 길" 아래쪽으로 점차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골짜기 길로. 그것은 고함, 욕설, 짖어대는 소리 등이 한데 뒤엉킨 요란한 아우성으로 흡사 거대한 소리의 공처럼 골짜기를 진동시키며 산길을 굴러내려가면서 점차 희미해지다가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나 지쳐 제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기분은 아주 흐뭇했다. 그 사내들이 증류기에 접근하지 못했고 또 할아버지가 이 일로 몹시 기뻐하시시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5,5,5^ 나는 맥없이 낙엽 더미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났을 때 사방은 어두웠다. 그러나 거의 만월에 가까운 달이 먼 산 위에 휘영청 걸려 있어 골짜기와 바로 눈 아래 보이는 "좁은 길"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그때 나는 개들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개들이 여우몰이를 할 때와는 다르게, 곧 나더러 거기 있으면 대답을 하라는 듯이 낮게 낑낑대는 소리만을 내는 것을 듣고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보라고 그 개들을 보내셨다는 걸 알았다. 이윽고 그들은 내 자취를 찾아냈다. 그들이 산길을 지그재그로 뛰어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길게 휘파람을 불어주자 그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러댔다. 잠시 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내게 온 몸으로 덮쳐오고 내 얼굴을 핥고 내 위로 뛰어오르는 식으로 온통 난리를 피웠다. 심지어 거의 장님이 다 된 늙은 링거까지 올라왔다. 나와 개들은 천천히 그 산을 내려왔다. 모드는 한시바삐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먼저 왕왕 짖으며 뛰어내려갔다. 나는 그 녀석이 냄새도 제대로 맡지 못하는 주제에 제가 모든 공을 차지하고 싶어 그런다는 걸 알았다. 그 골짜기를 내려왔을 때 나는 산길까지 마중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는 손에 등잔을 들고 계셨다. 마치 나를 위해 집으로 가는 길을 환히 비춰주셔야겠다는 듯이. 할아버지도 거기 서 계셨다. 그분들은 산길을 올라오시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내가 개들과 함께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계셨다. 나는 그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직도 내 위스키 항아리들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등잔불을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나를 맞았다. 할머니가 어찌나 세게 나를 끌어안는지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위스키 항아리들을 떨어뜨릴 뻔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그걸 들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칠십 평생을 지내면서 이번처럼 여유만만하게 일을 처리해 본 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장차 이 근방에서 가장 뛰어난 위스키 제조업자가 될 소질이 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당신보다 더 뛰어난 솜씨를 갖게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수는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여간 마음이 뿌듯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그저 묵묵히 나를 집까지 안고 가셨다. 나는 내 힘으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었지만 잠자코 할머니 품에 안겨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