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지은이: 엘버트 허바드 지음 출판사: 경영정신 봉사자: 김연주. 김나래 옮긴이의 글 전세계 수천만 경영자들이 선택한 책 문자 그대로 한 세기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때론 전쟁터의 포연 속에서, 때론 작업장의 먼저 속에서 - 꾸준히 읽혀온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바로 이 책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A Message to Garcia)'이다. 이 책은 1899년 처음 발표되어 1913년까지 15년 동안 4000만 부가 팔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년에 270여만 부가 팔린 셈이니, 이 작은 책이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와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한 이 책은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맡은 일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 신뢰, 명예, 가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전형을 제시 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쿠바 반군 지도자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한 사람은 스페 인과 미국 사이에 전쟁인 발발했을 당시 미 육군에 복무중이던 앤드루 서머즈 로완 (Andrew Summers Rowan)중위였다. 그는 매킨리(Mckinley)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단신으로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가르시아 장군을 찾기 위해 쿠바에 파견 되었다. 그 자신의 겸손한 설명에 따르면, 그는 수많은 장애물과 부딪쳤지만 내륙을 관통하 여 결국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공로로 미군 사령관으로 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 놀라운 책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지만, 미국은 물론 러시아에서까지 애독 서가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지난 한세기의 양대 이데올로기의 시험 을 무사히 통과한 얼마 되지 않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터넷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 만능의 새 시대에도 이 책에 담긴 짤막한 메시지(결국은 그것이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가 아니었을까?)는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열심히 일하는 경영자가 우세했던 때가 있었고, 그 다음으로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리는 경영자가, 그 뒤를 이어 성과가 경영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매 니지먼트의 제4세대라 할 수 있는 '인적 관리에 능숙한 경영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 요한 내용이 100여 년 전에 나온 이 책에 담겨 있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책에 담긴 단순한, 그러면서도 (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강한 메시지는 앞으로 또 많은 세월 동안 삶을 영위하고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인간의 한전형으로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2000년 6월 옮긴이 한기찬 저자 서문 우리가 간절히 기다려온 진정한 영웅 이 짧은 글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A Message to Garcia)'는 어느 날 저녁식 사를 마친 후 한 시간 만에 쓴 것이다. 그날은 마침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1899년 2월 22일 이었으며, 우리는 "필리스틴(Philistine)" 3월호를 인쇄하려는 참이었다. 게을러터진 마을 사 람들로 하여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도록 단련시키느라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났을 때 이 책을 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책의 직접적인 아이디어는 차 마시는 시간에 아들 버트가, 로완이야말로 쿠바 전쟁(1895년부터 1898년 사이에 벌어진 스페인에 대한 쿠바의 독립 전쟁으로, 1898년 미국- 스페인 전쟁으로 확대됨-옮긴이)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었다. 로완은 단 신으로 쿠바에 들어가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임무를 완수한 인물이었다. 바로 그 순간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나의 뇌리를 스쳤다! 아들의 말이 맞 았다. 영웅이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 시지를 전달한 로완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단숨에 '가르시아 장군에세 보내는 메시지'를 써내려갔다. 그리곤 그 글을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던 나는 제목도 달지 않은 채 잡지에다 실었다. 잡지 는 매진됐으며, 얼마 후 "필리스틴" 3월호의 추가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추가 주문은 10부에서 50부가 되더니, 곧 100부에 이르렀다. 마침내 아메리칸 뉴스 사로부터 1000부의 주 문이 들어왔을 때 난 동료 한 사람에게 대체 어떤 기사 때문에 이런 소동이 일어난 것인지 물어 보았다. "가르시아에 관한 기사 때문이죠." 라고 그가 말했다. 다음날 누욕 센트럴 철도의 조지 H. 다니엘스라는 사람에게서 다음과 같은 전보가 도착 했다. "로완에 관한 기사를 팸플릿으로 10만 부 주문하는데 드는 비용(뒷면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익스프레스가 광고를 싣는다고 했다)과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을 알려주시오." 나는 비용을 알려주면서 팸플릿을 만들어 보내는데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인쇄 시설은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10만 부라는 엄청난 부수는 도저히 찍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나는 다니엘스 씨에게, 독자적으로 기사를 복제하도록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50만부를 소책자 형태로 발행했다. 다니엘스 씨는 이렇게 50만 부씩 두어 번을 발행했 고, 그 기사는 200개 이상의 잡지와 신문에 다시 게재 되었다. 또한 그 글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도 번역되었다. 다니엘스 씨가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배포하고 있을 무렵, 러시아 철도회 사 사장인 힐라코프 공(公)이 마침 미국에 와 있었다. 뉴욕 센트럴 철도회사의 주빈이었던 그는 다니엘스 씨의 안내로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었다. 힐라코프 공은 그 책을 보고 흥 미를 느꼈는데. 그것은 무어보다도 다니엘스 씨가 그렇게 엄청난 부수를 찍었기 때문일 것 이다. 아무튼 그 책을 가지고 귀국한 힐라코프 공은 그 것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게 한다음 러시 아의 모든 철도회사 종업원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었다. 얼마 후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 책에 관심을 보여, 결국 그 책은 러시아에서 독일, 프랑 스, 스페인, 터키, 인도, 중국 등지로 퍼져나갔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참전한 모든 러시아 병 사들이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품고 전선으로 나갔다. 포로가 된 러시아 병사가 갖고 있던 책자를 본 일본인들은 그것이 틀림없이 중요한 내용 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일본 천황의 지시에 의해, 일본의 모든 공무원과 군인, 민간인에게까지 이 책이 보 급되었다. 지금까지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4000만 부 넘게 인쇄되었다. 그것은 지금 껏 한 작가가 평생 동안 팔 수 있었던 그 어떤 부수보다도 많은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행 운이 겹친 덕분이다. E.H 1913년 12월 1일 이스트 오로라에서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쿠바에 관련된 이 모든 사건을 통틀어서 근일점(태양계 안의 모든 천체가 태양에 가장 가 까워지는 위치 - 옮긴이)의 화성처럼 기억의 지평에 우뚝 선 한 인물이 있다. 1893년 스페인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정부는 쿠바 반군 지도자에게 화 급하게 전갈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분투하던 반군 지 도자 가르시아 장군은 쿠바의 산채() 어딘가에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몰랐다. 그 곳은 우편과 전보가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가르시아 장군의 협력 을, 그것도 화급하게 보장받아야 할 처지였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 누군가 대통령에게 말했다. "로완 중위라면 틀림없이 각하를 위해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로완은 가르시아 장군에게 전할 편지를 품고 쿠바로 떠났다. 이 '로완이라는 사람' 이 그 편지를 받아서 방수포 주머니에 넣은 다음 가슴에 잡아매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 보트를 타고 쿠바 해안에 상륙하여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가 3주 만에 쿠바 섬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든가, 그가 적군이 들끓는 내륙을 도보로 가로질러 가르시아 장군에게 무사히 편지를 전했다는 등의 세부적인 내용은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자 하는 바가 아니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즉, 매킨리 대통령이 로완에게 가르시아 장군에 게 보낼 편지를 주었을 때, 로완은 그 편지를 받으면서 "그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상에! 이 땅의 모든 대학마다 불명의 청동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놓아야 할 인물이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에서 배우는 탁상공론이나 이런저런 일에 대한 교훈이 아니라. 바로 책임에 충실하고 즉각 행동으로 옮기며 자신의 정력을 집중시켜 임무 -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 를 다하는 굳건한 자세인 것이다. 이제 가르시아 장군은 죽고 없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가르시아 장군들이 있다. 많은 사람 들을 써야하는 사업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보통 사람들의 우둔함에, 어떤 일에 집중하여 임 무를 수행하는 데 대한 무능함 또는 나태함에 경악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일하기, 멍청한 부주의, 천박한 무관심. 열의 없는 작업이 이제 거의 하나의 규칙 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이제는 올가미나 갈고리나 협박으로써 남을 강 제하거나 뇌물을 쓰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천사라도 보내주시기를 기대하거나. 독자여, 한번 시험해보라. 지금 당신은 사무실에 앉아 있고, 주위에 여섯 명 정도의 직원 이 있다. 그 중 하나를 불러 이렇게 부탁해보라. "백과사전을 보고 코레지오의 삶에 관한 짤막한 메모 좀 작성해 주게." 그 직원은 과연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고는 바로 그 일을 하러 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당신을 쳐다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가 누굽니까? 어느 백과사전 말씀인가요? 백과사전이 어디 있는데요? 그게 제가 할 일인가요? 혹시 비스마르크를 찾으시려는 건 아닌가요? 찰리가 그 일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죽은 사람인가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인가요? 제가 백과사전을 갖다드릴 테니 사장님께서 직접 찾아보시겠어요? 뭘 알아보려고 그러시는데요? 그리고 당신이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그 정보를 찾는 방법과 그것을 왜 찾고자 하는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해도 십중팔구 그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가서 가르시아를 찾아 달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서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내 짐작이 틀 릴지도 모르지만 평균의 법칙에 의하면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조력자' 에게, 코레지오가 K 항목이 아니라 C 항목에 있다는 등의 설명을 하느라 골치를 썩이지 않고 그저 보기 좋게 미소를 지으며 "자네 할 일 이나 하게." 라고 한 다음 당신이 직접 그 항목을 찾아 볼 것이다. 독립적인 행동에 대한 이 런 무능함, 도덕적 우둔함, 의지 박약, 즐겁게 일을 떠맡으려는 자발성의 결핍 _ 이것들이 바로 지금껏 순수한 이상주의 사회의 도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이다.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노력만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과 연 어떻게 되겠는가? 무지막지한 몽둥이를 든 1등 항해사라도 필요할 것 같다. 노동자들은 오직 '해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속기사를 쓰겠다는 광고를 내보라. 응모자 가 열에 아홉은 철자법도 구두점 찍는 법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 각조차 하지 않는다. 과연 이런 사람이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낼 편지를 쓸 수 있겠는가? "저기, 경리가 보이시죠?" 하고 어느 큰 공자의 감독이 말했다. "네, 그런데요?" "글세, 저 친구는 훌륭한 경리이긴 하지만, 시내로 심부름을 보내면 어떤 때는 그런 대로 용무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가는 도중에 술집을 네 곳이나 들른답니다. 그리고 중심 가까지 가서는 자기가 왜 거기 갔는지를 잊어버리죠." 과연 이런 사람에게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낼 메시지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최근 들어서 '싸구려 공장에서 학대받는 노동자'나 '정직한 일자리를 찾고 있는 무주택 자' 에 관한 동정 어린 말이 종종 들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힘있는 자들에 대한 욕설을 퍼붓 곤 한다. 그러나 지적인 일을 처리할 쓸 만한 직원을 구하느라 때이르게 늙어버리고 만 고용주에 대해서, 그리고 '조력자'를 애써 구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기만 해서 결국 해고 를 결심해야만 하는 고용주의 오랜 인내와 노고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상점과 공장에서 끊임없이 잡초 제거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고용주는 끊임없이 사업에 이 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조력자'를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뽑고 있다. 시적이 아무 리 좋더라도 이런 솎아내기는 계속된다. 다만, 시절이 어렵고 일자리가 희귀해지면 좀더 잘 솎아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능하고 무가치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쫓겨난다. 그것이 바 로 적자생존이다. 이익의 추구 때문에 모든 고용주는 최상의 직원 -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 시지를 전할 수 있는 인물을 쓰려고 한다. 나는 아주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를 한 사람 알고 있는데, 문제는 그에게 혼자서 일을 처 리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혹시 고용주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건 아 닌지, 또는 그럴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품고 지내기 때문 에 아예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지시를 내리지 못하는 그는 남의 지시를 받 아들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으면, 십중팔구 "그런 일은 당신이 하시오!" 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밤도 이 사름은 바람에 너덜너덜한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 를 헤매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를 고용하려들지 않는데, 그는 이제 불만에 찬 말썽꾼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사리 판단을 못하는 그를 감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밑창이 두꺼운 만능 구두뿐이다. 물론 나는 도덕적으로 기형인 사람도 육체적인 불구 못지 않게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 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연민을 하는 동안 거대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 들에 대해서도 눈물 한 방울쯤을 흘려줘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일은 근무 종료를 알리는 호 각 소리에도 끝나지 않고, 천박한 무관심과 무성의한 바보짓과 무정한 배신 속에서 버티려 고 애쓰다 머리만 하얗게 세고 만다. 회사가 아니라면 배를 곯고 집을 잃기 꼭 알맞은 무심 한 태도들 때문에 말이다. 내 어조가 지나치게 강경했던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세상이 빈민가로 변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성공하는 사람을 위해, 강적과 맞서서 타인의 노동을 지휘한 사람, 그리 고 일단 성공한 뒤에도 거기엔 헐벗은 식탁과 옷가지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 는 사람에게 동정의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저녁 밥통을 지고 다니며 하루하루의 노임을 위해 일한 적이 있으며, 한때 사람들을 부린 적도 있어서, 양쪽 모두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난 그 자체에는 아무런 미덕도 없다. 넝마는 결코 권할 만한 것이 아니 다. 그리고 모든 고용주가 다 탐욕스럽고 고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고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상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는 물 론 자리에 없을 때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사람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가르시아 장군 에게 보낼 편지를 받았을 때,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또 가장 가까운 시궁창에다 편 지를 쑤셔넣거나 딴짓을 할 생각도 않고 '미루는 법' 도 없이 또 임금을 더 받으려고 파업 을 일으키지도 않은 채 조용히 문서를 받아드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낀다. 문명이란 바로 오랜 세월 간절하게 이런 개인들을 찾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런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허락될 것이다. 모든 도시와 촌락에서 모든 사무실과 작업장과 상 점과 공장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온세상이 그런 사람을 소리쳐 구하고 있다. 모두가 간절 히, 간절히 원하고 있다. 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할 인물을. 덧붙이는 글 앤드루 로완 중위의 투철한 임무 수행에 힘입어 1898년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 취하였다. 앤드루 로완은 미 육군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가르시아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일)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943년 6월 1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죽었다. 그의 나이 85세였 다. 로완은 1881년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미육군 정보부 요원들과 함께 중앙 아메리카에서 소규모 병력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유명해졌을 때에도 그는 41세 의 나이에 여전히 육군 중위에 불과했다. 로완은 훈장을 수여받은 이후 필리핀 주둔 미군기 지에서 복무했으며 캔자스 주립 농경대학에서 군사학과 전술학을 가르쳤다. 또한 캔자스에 있는 릴리 요새와 켄터키에 있는 웨스트 포인트, 그리고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 호(湖)에서 도 근무했다. 그가 필리핀 작전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수많은 지상에 인용되었다. 그는 은퇴 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