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5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뒤덮은 칠흑 같은 겨울의 암흑을 헤치 며 서서히 새벽이 찾아들자 헬렌 캐벗은 점차 잠에서 깨어나기 시 작했다. 빈혈에라도 걸린 듯 창백하기만 한 새벽 햇살이 루이스버 그 광장에 위치한 그녀의 부모님 집 3층에 있는 침실의 암흑을 가 르며 흘러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덮개가 달린 커다란 침 대의 푹신한 오리털 이불 밑에서 따스한 기운을 즐기며 몸을 뒤척 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자신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 운 사건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 소를 떠올렸다. 헬렌의 이번 방학은 그리 즐겁다고만은 할 수가 없었다. 지금 3학년으로 등록되어 있는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강의를 가급적이 면 하나도 ㅂㅂ』먹지 않기 위해 그녀는 크리스마스에서 신년으로 이 어지는 짧은 방학 동안 일렉티브(Elective, 응급 'Emergency'의 반 대 개념으로, 촌각을 다투지 않는 질병일 경우 스케줄을 미리 정해 놓 고 하는 수술) D&C(Dilatation and Curettage, 경관확장자궁소파 수술)를 받았던 것이다. 담당 의사들은 자궁 안쪽을 덮고 있는 비 정상적으로 살이 찐 내막 조직을 제거하면 매번 월경 때마다 그녀 를 몹시도 괴롭혀 왔던 심 한 경 련성 복통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거듭 다짐을 했었다 그들은 수술의 경과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아 니라는 듯 낙관적으로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수술을 받고 보니 그들이 했던 이야기는 하나도 맞는 것 같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헬렌은 레이스 커튼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아침 헛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재 곧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뒤덮 으리라는 것을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며 칠 만애 처음으로 좀 나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수술 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수술 후 동통도 거의 없다시피 했었지만 수술 후 사흘째가 되던 날 그녀는 머리가 터 져나가는 것 같은 심한 두통과 고열, 현기증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까지 경험했던 것 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증상들은 즉시 사라져버렸지만 그녀의 부모들은 그래도 예약했던 대로 MGH(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하버드 의과 대학의 가장 큰 부속 병 원)에 가서 신경과 의사의 진찰을 받아볼 것을 고집스럽게 종용하 고 있었다. 다시 잠으로 빠져들던 헬렌의 귓가에 아버지가 두드리는 컴퓨터 키보드의 ◎지막한 소리가 들릴락말락 조용히 흘러 들어왔다 그 의 서재는 헬렌의 침실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잠간 눈을 떠 시계 를 쳐다본 그녀는 이제 겨우 일곱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말 놀라을 정도로 부지 런한 사람 이었다. 세계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의 창립자요 대표이사인 그 는 이제 충분히 지위를 즐기며 편안히 지낼 만도 했다. 그러나 그 는 항상 정력적으로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 그의 가족은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가지 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헬렌이 자신의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안전감은 일시 적 인 부와 권력 등 인간사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자연의 이 치는 자신의 정해놓은 불변의 일정을 좇고 있었다. 주인인 헬렌 자 신도 모르게 그녀의 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그녀의 유전 자를 형성하는 DNA분자들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1월초의 바로 그날, 그녀의 뇌신경 세포에 들어있던 네 개 의 유전자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의 단백질을 생산해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신경 세포들은 헬렌이 영아기를 지 난 이후 단 한번도 분열해본 적이 없는 정상 상태였다. 하지만 이 제 그 네 개의 유전자들과 그들로 인해 생성된 단백질에 의해 신경 세포들은 불가피하게 또다시 분열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끊임없이 지속적인 분열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헬렌의 인생은 몹 시도 파괴적인, 유난히도 악성도가 높은 암종(혼83)에 의해 산산조 각이 날 참이었다.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헬렌 캐벗은 벌써 잠정 적인 말기 암 환자가 되어버렸는데도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 고 있었다. 1월 4일, 오전 10시 45분 나지막한 회전음과 함께 하워드 페이스는 세인트 루이스의 대학 병 원, 최신형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 영상) 기계의 동그란 입구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그는 평생 이렇게 무 서웠던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병원이나 의사들에 대해 막연한불 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막상 진짜 환자가 되고 보니 두려워 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올해 마흔일곱인 하워드는 벨버데어 컨트리 클럽의 연례 테니스 토너먼트의 준결승전에서 네트 앞으로 달려나갔던 작년 10월 중 순의 그 운명적인 날까지는 완벽한 건강을 누리고 있었다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그가 볼썽 사납게 바닥에 나◎굴자 공은 핑그르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워드의 오른쪽 무릎 안에서 전 방십자인대가 끊어져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이 모든불행의 시작이었다. 무릎자체는그리 말썽을 부 리지 않고 쉽게 치료가 되었다. 담당 의사들이 일반적인 전신 마취 의 후유증 탓으로 돌린 몇몇 경미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는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사실 빠른 시일내에 직장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왜나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 것은 항공기 생산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한 쉬운 일 이 아니기 때문이다 MRI 촬영용 두경부 고정장치에 아직도 머리가 꽉 조여 있던 터 라 하워드는 촬영기사가 입을 연 다음에야 그가 옆에 있음을 깨달 을 수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가 하워드의 머리를 풀기 시작하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하워드는 간신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의 심장은 공포에 질려 무섭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검사 결과가 어떻 게 나올지 몹시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유리로 된 칸막이 뒤에 서 있는 한 무리의 긴 횐 가운 차림의 사람들이 컴퓨터 스크린을 살피는 모습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은 그의 주치의 인 톰 폴저였다. 그들은 모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몸짓 들을 해대고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두가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전날의 일이었다. 하워드는 술을 마 시지도 않았는데 심한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실제로 그 는 섣달 그믐날 이후로는 한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아스 피 린 한 알을 먹고 아침식사를 한술 뜨자 통증은 이내 가라앉았다. 하지만 아침 이사회 도중 그는 전혀 어떠한 사전 증상도 없이 갑작 스레 구토를 했다. 한번의 메슥거림도 없이 어찌나 격렬하게 토해 냈는지 몸을 옆으로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민망스럽게도 소화도 되지 않은 아침식사 음식들이 이사실 책상 위로 흩뿌려졌다. 머리의 기계장치가 풀어지자 하워드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지 만 그 움직임은 다시 강렬한 두통을 유발시켰다. 다시금 MRI 테 이블에 몸을 눕힌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담당 의사가 다가와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톰은 벌써 20년 가까이 그의 가족들을 돌보는 내과 주치의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와 톰은 째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워드는 톰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쁘지? 그렇지 않은가?" "하워드. 난 자네에겐 항상 솔직히 이야기를 해왔었네‥‥‥‥ "그러니 이 번에도 그렇게 해주게 . 하워드가 탈진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는 톰의 나머지 말을 듣고 싶지가 않았지만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좋아 보이지는 않네 . 하워드의 어깨를 붙든 채 톰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다발성 종양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세 개일세. 여태까지 결과 로 봐선 적어도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네." "오, 하나님 1" 하워드가 신음소리를 냈다. "그럼 끝장이로군, 그렇지? "지금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시 점이 아닐세. 톰이 말했다. "제기랄, 아니 긴 뭐 가 아니 o◎" 하워드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방금 자네 입으로 나한텐 항상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질 않았나? 내가 뭐 어려운 걸 물었냐 말일세 내게도 알 권리가 있 11." "만일 자네가 그런 식으로 내게 강요한다면, 정말 자네 말대로 대답을 해주는 수밖에는 없네 회복 불능일 가능성도 있어 . 하지 만 절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야. 지금 이 시점은 그렇게 한가하게 절 망이나 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태산 일세 우리의 첫번째 과제는 그 종양이 과연 어디서 왔느냐를 밝혀 내는 것이라네 . 병소(톤봇)가 다발성인 것으로 미루어 다른 곳에서 부터 옮겨왔을 가능성이 왜 높네 . "그럼 . 빨리 시 작하게 , 하워드가 말했다 "만일 가망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놈의 병마를 이 겨보고 싶군 그래 ." 1월 4일, 오후 1시 25분 루이스 마틴이 회복실에서 처음 깨어나자 목구멍을 누가 아세틸 렌 용접기로 그슬려 버리기라도 한 듯 몹시도 쓰리고 아파왔다 전 에도 인후염을 앓아본 적이 있었지만, 수술이 끝난 지금, 침을 삼 키려 할 때 느껴지는 통증에 비하면 예전의 통증들은 통증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의 입은 사하라 사막의 모래 처 럼 바짝 말라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불쑥 그의 침대 옆에 나타난 간호사가 그가 느끼는 통증은 수술 전 마취과 의사가 삽입 했던 기관내 (준율 F8) 튜브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젖은 수건 한 장을 입 에 물려주자 목의 통증은 이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가라앉았다 이동 침대에 실려 다시 입원실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다리 사이 어딘가에서 시작되어 허리 뒤쪽으로 퍼져나가는 또 다른 종류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이번 통증의 원인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그곳은 그가 받아야 했던 전립선 절제술의 수술 부위였다. 그 망할 놈의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그는 매일 밤 대여 섯 번씩이나 소변을 보러 밤잠을 설쳐야 했었다. 그는 일부러 신년 연휴에 맞추어 수술 스케줄을 잡았었는데 그때가 그가 보스턴 북 부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컴퓨터 회사가 그나마라도 좀 한가할 때 였기 때문이 었다 통증이 견딜 수 없이 심해지려는 순간 또 한 명의 간호사가 그때 까지도 왼쪽 손에 연결되어 있던 정맥 주사선을 통해 데메를 (Demerol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 한 대를 놓아 주었다. 그의 침대 머리쪽에는 T자 모양의 주사용 폴(Pole. 작대기)에 수액병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데메롤에 취해 그는 다시 스르르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머리 옆을 스치는 움직임을 깨닫고 어렴풋이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납덩이처럼 무거운 눈꺼풀 을 들어올렸다 침대 머리맡에는 간호사이 한 명이 수액 병에서 내 려오는 플라스틱 주사줄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1녀의 오른 손에는 주사기 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게 뭐지요7" 루이스가 아직도 완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약에 취한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간호사는 그에 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도 좀 덜 깨신 것 같네요." 그녀가 말했다 루이스는 간호사의 가무잡잡한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 눈을 깜박 거렸다. 약효 탓인지 간호사의 모습은 그저 흐릿한 그림자로밖에 는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 진통제는 맞고 싶지가 않군요. 루이스가 간신히 입을 열며 말했다. 그는 팔꿈치로 몸을 버티고 안간힘을 쓰며 윗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 건 진통제가 아니랍니다. 간호사가 말했다. "오, 그래요?" 루이스가 말했다 간호사가 천천히 주사를 놓는 모습을 지켜보 던 그는 불현듯 아직도 자신이 그 주사의 용도를 모르고 있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 "무슨 약이지요?" 루이스가 물었다. "신비 의 명 약이 에요." 간호사가 재빨리 주사바늘에 뚜껑을 씌우며 대답했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마악 다음 질문을 던지 려던 순간 간호사가 선수를 치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를 "이 건 항생 제랍니다. "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루이스의 어깨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눈을 감고 좀 쉬세요 루이스는 다시 털썩 침대에 드러 누워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미 소를 지었다. 그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머 릿속에 서 그는 방금 간호사가 말했던 '신비의 명약'이란 말을 되풀이해보 았다 하기야 항생제들이 신비의 명 약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 지가 없었다 수술 후에 예방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할 수도 있다고 했던 닥터 핸들린의 말을 다시금 기억에 떠올렸다. 루이스는 항생 제가 없던 시절,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을 까 하고 막연히 상상을 해보았다. 그는 자신이 옛날에 태어나지 않 았던 게 너무도 다행스럽게만 느껴졌다 눈을 감은 루이스는 간호사가 시킨 대로 몸의 긴장을 풀기 시작 했다.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진통제 탓인지 그리 불편 하지는 않았다 진통제도 그렇고 마취제도 그렇고 모두가 현대 의 학이 만들어낸 신비의 명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는 통증 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겁쟁이였다. 만일 이 신비의 명 약들이 없는 시절이었다면 그는 결코 수술이란 것을 참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며 루이스는 미래에는 또 어떠한 신기한 약들이 나올까 상상을 해보았다 나중에 닥터 핸들린을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볼 생각이었다. 1월 4일 오후 2시 53분 노마 케일러늘 정맥주사 수액병 밑에 달린 주사 세트의 미세 필 터 쳄버로 떨어지는 약 방울들을 바라보았다. 정맥주사는 굵직한 플라스틱 주사줄을 통해 그녀의 왼팔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맞고 있는 약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 강력한 화학요법 제제(항암제의 일종)가 이미 간장과 폐로 전가 되어 버린 유방암을 낫게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약이 치료제인 동시에 종양 세포들만이 아닌 신체의 다른 정상적인 세 포에게까지 심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독약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 다 주치의인 닥터 클레런스가 그 약제의 끔찍한 부작용들을 일일 이 열거하며 경고를 해줄 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며 의식적으로 외면을 했었다. 그녀는 전부터도 질리도록 들어 이제는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기 일이 아니 기라도 한 듯 그저 멍하니 덤덤한 마음으로 치료동의서 에 사인을 했다 고개를 돌린 노마는 커다란 흰 뭉게구름들이 비누거품처럼 피어 오른 마이애미의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암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받은 이후 그녀는 왜 하필이면 내가?라는 부질없는 질문으 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몹시도 애를 써왔다 처음 그녀가 유 방에 멍울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과거 수많은 비슷한 멍울들이 그 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 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 멍을 위의 피부가 갑자기 움푹 딸려 들어 간 이후에야 부랴부랴 의사를 찾았던 그녀는 자신의 불안감이 현 실이 되어버린 데 대해 절망했다. 그녀가 걱정 했던대로 그 덩어리 는 악성이었다. 서른세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그녀는 광범위한 유방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그녀의 담당 의사들은 화학요법을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괴롭기만 한 자기 연민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결심에 소설책으로 손을 뻗는 순간 그녀가 누워 있던 일인용 병실 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녀는 눈조차 들지를 않았다 포베스 암 센 터에 입원한 이래 정맥주사를 조정하거나 주사를 놓거나 하려고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이제 일상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에 익숙해져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책에 열중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이번에 투여된 약이 종전의 것들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문이 다시 닫히고 난 다음이었다 희한하게도 약을 맞고 나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모 두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들고 있던 소설책마저도 스 르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약이 호흡에 미친 영향이었다. 마치 누군가 에 의해 질식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점점 더 숨쉬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내 양쪽 눈 을 제외한 전신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몽롱해져가 는 눈이 마지막으로 감지한 것은 조용히 열린 병실 문의 모습이었 다. 2월 26일 오전 9시 15분 "오, 맙소사, 그녀가 오고 있어 1" 숀 머피가 말했다. 그는 허겁지겁 자기 앞에 쌓여 있던 차트 뭉 치를 집어들고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 웨버 기념관 건물 7층에 있 는 간호사실 뒷방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이 갑작스러운 호들갑에 아연해진 하버드 의대 3학년생 피터 콜 버트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상해 보이 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고 분주한 내과계 병동으로 만 비칠 뿐,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 다. 간호사실은 병동 사무원과 네 명의 간호사들로 벌집을 쑤셔놓 은 듯 복닥거렸고 복도에는 잡역부 몇 명이 이동 침대로 환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7층 라운지의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는 낮 시간에 방영되는 연속극의 주제곡인 오르간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호사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상황과 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사람은 피터 생각에 10점 만점에 8, 9점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매력적인 여자 간호사 한 명뿐이었다. 그녀 의 이름은 자넷 리어든이었다. 피터는 그녀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오래된 보스턴 명문가의 딸로 도도하고 접근 불가 능하기로 정평 이 나 있는 여자였다. 피터는 앉아 있던 차트꽃이 옆 책상을 밀치고 일어나 뒷방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곳은 책상 높이의 카운터와 컴퓨 터 단말기, 그리고 자그마한 냉장고가 하나 놓여 있는 다용도실이 었다. 매번 근무 교대 때 간호사들은 이곳에 모여 업무 인계를 했 고,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이 곳을 간이식당으로도 이용했다. 방 뒤 쪽으로는 화장실이 하나 붙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괴터가 다그쳐 물었다. 그는 궁금해 긴 말을 삼가며 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숀은 가슴에 차트 뭉치를 꽉 껴안고는 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있었다 "문 닫아1" 숀이 다급하게 말했다 피터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정말 리어든이랑 일을 벌이고 있었단 말이야? 그의 말은 질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놀람에 겨 운 감탄에 가까왔다. 숀이 자넷을 처음 보고 피터에게 그녀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것은 피터와 숀이 3학년 임상실습을 시작했던 최근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저 여자가 도대체 누구야?" 숀은 다급하게 피터를 다그쳤었다. 그의 입은 경탄으로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여태까지 보아왔던 중 가장 아름답 고 매력적인 여인이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손이 닫지 않던 벽장 캐비닛 윗 선반에서 무엇인가를 꺼낸 뒤 올라섰던 책상에서 바낙 으로 내려서는 참이었다. 그는 그녀의 몸매가 어떤 잡지 모델들보 다도 감각적이고 빼어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너랑은 안 어울려 ." 피터가 말했다. "그러니 입이나 좀 다물어. 너랑 비교하면 저 여잔 왕족이나 마 찬가지야. 저 여잘 꼬시려다 헛물켠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불가 능한 일이야." "불가능이 란 없어 " 경탄의 눈으로 자넷의 몸매를 훌으며 숀이 한 말이었다. "너 같은 소시민은 홈런은 고사하고 1루에도 못 나갈 거야 " 피터가 말했다 "내기 할까?" 숀이 도전을 해왔다 "네가 지면 5달러 내. 우리가 내과 실습을 마칠 때면 내가 그리 워 안달을 하도록 해놓을 테니까 말이야." 그때 피터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이제 그는 다시 금 존경의 눈으로 실습 동료를 바라보았다. 지난 두 달 간 힘든 병 동 생활에 동고동락하며 숀을 안팎으로 다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 내과 실습 마지막 날 완전히 경악을 하고 만 것이다. "혹시 그 여자가 갔는지 문 좀 조금 열어봐." 숀이 말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 피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문틈을 벌려 밖을 내다보았다 자넷은 책상 앞에 앉아 수간호사 칼라 발렌타인과 이야기를 나누 고 있었다 피터는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바로 밖에 있어 . 그가 말했다. "제기랄!" 숀이 중얼거렸다 "난 지금 당장은 그녀를 만나면 안 돼. 할 일도 태산이고 여기서 소동을 벌일 생각도 없거든 그녀는 아직도 내가 마이애미에 있는 포베스 암 센터로 선택 과목을 하러 가는 걸 모르고 있어. 토요일 저녁 때까지는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녀는 굉장히 화를 낼 게 분명해 "그럼 진짜 그녀랑 데이트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물론, 아주 깊숙한 관계까지 갔었지 " 숀이 말했다 "참,그 말이 나오니 생각이 나는데 너 나한테 5달러 줄 게 있잖 아, 정말 쉽지는 않았어. 네 말대로 처음엔 말을 걸어도 코방귀도 안 뀌었어 하지만내 뇌쇄적인 매력과 집요함에 결국은 무릎을 꿇 었지. 물론 내가 보기엔 집요하게 따라붙었던 게 더 큰 역할을 했 던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따먹었어?" 피터가 물었다 "학생, 야하게 그게 무슨 소리야?" 숀이 말했다. 피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야하다구? 내가? 이거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뭐라 한다 더 니 정 말 웃기시 네." "문제는,그녀가 우리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거 야." 숀이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몇 번 같이 잤다는 것으로 그 이상의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 "오호, 새신랑 한 분이 생기게 되셨군 그래." 피터가 말했다. "난 아냐." 피터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럴 작정인 것 같아. 특히 그녀의 부모가 쌍수를 들어 반대를 하고 있는 판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정말 정신 나간 일이야. 게다가 난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밖에 안 됐잖아." 피터는 다시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아직도 간호사랑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지 . 아니면 휴식 시간중인가7" "잘났군!" 숀이 냉소적으로 툴툴거렸다. "그럼 하는 수 없이 여기서 일을 해야겠군 신환이 또 들어오기 전에 이 환자 인계 기록들을 마무리 지어 주어야 한다구." "내가 옆에 있어줄게." 피터가 말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자기 환자들 차트 몇 개를 집 어들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조용히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담당 환자들의 최근 검사 결과들이 적힌 3×5인치 카드들을 뒤적이며 차트 작업을 시작했 다. 그들이 작성하는 인계기록은 3월 1일부터 내과 실습을 나을 다음번 실습 학생들을 위해 그간의 치료 내용 등을 축약해두는 것 이었다 "이 환자가 내가 맡았던 중 제일 흥미로운 증례였어 ." 반 시간쯤 지나 숀이 입을 열었다. 그는 두툼한 차트 하나를 높 게 쳐들어 보였다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난 포베스 암 센터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도 못했을 거야." "지금 헬렌 캐벗 얘기야?" 피터가 물었다. "그럼 누구겠어?" 숀이 반문했다. "넌 재미있는 증례는 몽땅 다 쓸어갔어, 이 욕심쟁이 자식아. 게 다가 헬렌은 끝내주는 미 인이 기도 하잖아. 제길, 그녀 일이라면 다 들 누가 한번 불러줬으면 하고 침을 줄줄 흘리더군." "그래, 알았어 하지만 그 끝내주는 미인은 다발성 뇌종양 환자 란 말이야." 숀이 말했다. 차트를 펼친 그는 2백여 페이지 중 몇 장을 훌으며 뒤 적거 렸다 "슬픈 일이야,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데 벌써 어떻게 손도 써볼 수가 없는 말기 암 환자가 되어버렸어. 이제 남은 유일한 희망은 포베스 센터에서 그녀를 입원시켜 주기만을 바라는 것뿐이야. 들 리는 바로는 그쪽에서는 그녀가 걸린 것과 같은 종류의 종양에 획 기적 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더군." "최종 병리보고서가 나왔어?" "어 제 ." 숀이 말했다 "수아세포종(Medulloblastoma)이라고 적혀 있더군. 뇌종양 전 체를 합쳐서 2퍼센트밖에는 되지 않는 꽤 드문 축에 속하는 병이 야. 오늘 오후 회진 때 광을 한번 내려고 공부를 좀 해뒀지 대개가 어 린아이들에 게 생 긴다고 하더군." "그럼 그녀는 불행하게도 예외 적으로 걸렸네 피터가 말했다 "꼭 예외라고만은 할 수가 없지 ." 숀이 말했다. "수아세포종 환자의 20퍼센트 정도가 스무살 이상이라니까 말 이야 모두가 놀랐던 건, 그리고 아무도 어떤 세포 근원의 종양인 지 비슷하게조차 맞추지를 못했던 건, 그녀가 다발성인 병소를 가 졌기 때문이었지. 최초에 그녀를 보았던 의사는 난소에서 전이된 전이암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더군 하지만 그건 오진이었어. 지금 그 양반은 헬렌의 증례로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증례 보고 논문 을 쓸 준비를 하고 있어 ." "어디서 듣자니 그녀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엄청난 부자라 고도 하던 데," 그녀를 자기 환자로 만들지 못했었다는 데 약간은 아쉬움을 느 끼며 피터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최고경영자야." 숀이 말했다. "캐벗 집안 사람들을 알아둔다고 해서 해가 될 건 분명 없을 거 야.돈이 그만큼 있으면 포베스 센터 같은 데서 치료를 받는 건 문 제도 아니지. 게다가 그애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성격도 참 괜 찮아. 그애랑 시간을 꽤 가져봤거든." "이걸 기 억해둬 . 의사들은 자기가 맡은 환자랑 사랑에 빠지면 안 돼 ." 피터가 말했다. "헬렌 캐벗이라면 부처님도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걸. 자넷 리어든은 계단을 이용해 5층의 소아과 병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15분 간의 휴식시간을 숀을 찾아다니느라고 모두 허비해 버렸다. 7층 간호사들은 숀이 인계기록들을 작성하고 방금 전까지 도 보였었는데 그 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뿐이었 다. 자넷은 심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벌써 몇 주째 알람으로 맞추어 놓은 시간보다 훨씬 이른 새벽 네다섯 시에 잠을 깨며 전전긍긍,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녀를 그렇게도 괴롭히는 문제는 숀과 그 들 사이의 관계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넷은 그의 세련되지 못한,방자에 가까운 태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검은 머리칼이며 시리도록 파란 눈, 그리고 매력적인 지중해적 용모에 마음이 끌렸었다 그녀는 숀을 만나고 나서야 전설처럼 떠돌던 '검 은 아일랜드 인'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숀이 처음 그녀 를 귀찮게 굴었을 때, 자넷은 단호하게 거부의 뜻을 밝혔었다. 그 녀는 서로 비슷한 것이 너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출코 '노'라 는 대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찰거머리처럼 계속 귀찮게 굴 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의 번득이는 재치와 지성이 그녀의 호기심 을 자극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녀는 마침내 꼭 한번만 만나주기로 하고 데이트에 응했던 것이다 그녀는 한번 만나는 것으로 그가 발산하던 매력들이 시들어버릴 것으로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 렸다. 그녀는 이내 그의 반항아적인 태도가 강력한 성적 매력이기도 함을 알게 된 것이다. 자넷의 마음은 놀랍게도 급속도로 바뀌어 그 녀가 만나보았던 옛날 애인들 모두가 너무도 뻔한 생각에 너무도 근시안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자신의 자의식이 결혼 상대는 사회 통념상 번듯해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모들의 고루한 결흔관과 비슷한 그런 막연한 기대에 구속되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되 자 숀의 서민적인 투박한 매력이 강하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 고, 자넷은 급기야는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소아과 병동의 간호사실에 도착한자넷은 아직도 휴식시간이 몇 분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을 밀어 젖히고 뒷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 일과 시간을 버 티 려면 커피라도 한잔 마셔 정 신을 좀 차려두어야 할 것 같았다. "꼭 환자 하나를 잃은 것 같아 보여 ."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몸을 돌리자 그간 왜 친해진 병실 간호사 도로시 맥퍼슨이 스타 킹 신은 다리를 책상 위에 길게 뻗어 걸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 어왔다 "어쩌면 그것 이상일지도 몰라요." 자넷이 커피를 뽑아 들며 말했다. 그녀는 반잔만 마실 생각으로 반을 개수대에 쏟아부었다. 그녀는 발을 옮겨 도로시에 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책상 앞에 놓 인 철제 의자에 털썩 몸을 던졌다. "남자란 짐승들이란1" 그녀가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도로시가 말했다 "숀 머피 랑 관계가 어 쩌 파 이렇게 되 어버 렸는지 모르겠어요." 자넷이 뜸을 들이벼 말했다 "정말 심란해서 무슨 조치를 취하든가 해야겠어요 게다가." 그녀가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전 정말 그 사람에 대해 엄마가 했던 말들이 옳다는 걸 시인하 게 될까봐 아주 난감해요." 도로시 가 미소를 지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 "이젠 그 사람이 날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어 ." 요 자넷이 말했다 "둘이 얘기 를 해봤어?" 도로시 가 물었다. "그럴려고 노력 해봤어요." 자넷이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감정 얘기만 나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 려요 "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야." 도로시가 말을 이 었다. "어쩌면 오늘 저녁 때 만나서 나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는 게 좋을지도 몰라." "하 !" 자넷은 코방귀를 뀌었다. "오늘은 금요일이 잖아요. 만날 수가 없어요." "왜, 당직 이 래7" 도로시가 물었다. "아뇨 ." 자넷이 말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땐 그 사람이랑 찰스타운 친구들이 동네 술집 에서 회동을 한대요. 물론 여자친구나 부인들은 집에다 처박아두 고요. 말 그대로 남자들끼리만 노는 거지요. 게다가 그 사람의 경 우는요, 술 먹고 난장판을 치는 것까지 스케줄에 포함된 아일랜드 고전 그 자체라니까요." "정말 끔찍하군." 도로시는 말했다 "하버드에서 4년, MIT에서 분자생물학 1년, 그리고 이젠 의과 대학 3년이면 그 멍청한 짓거리는 안 할 정도로 철이 들었다고 생 각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떻게 된 게 가면 갈수록 이 금요일 밤 회동에 그렇게 집착을 하는 거 있죠." "나라면 가만 안 있겠어," 도로시가 말했다. "난 내 남편이 골프에 미친 게 내내 영 못마땅했었는데 그쪽 얘 기를 듣고 보니 정말 새발의 피네.그 금요일 밤 탈선에 여자 장난 도 친대?" "어떤 땐 리베어에 가기도 해요. 거긴 스트립쇼 하는 데가 있잖 아요, 하지만 대개는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가 대형 TV로 운동 경기나 보는 것 같아요. 적어도 그 사람 말로는 그래요.하지 만 한번도 실제로 가본 적이 없으니 어찌 알겠어요." "어찌 면 네 자신한테 왜 그 따위 사람이 랑 얽히게 되 었는지 물어 보는 것도 한 방법 일지 몰라.' 도로시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해보지 않은 게 아니에요.' 자넷이 말했다. "특히 최근 대화가 거의 두절푄 다음에는 자주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어요. 이젠 말할 시간조차 잘 내주질 않아요. 의과 대학 일 뿐 아니라 연구까지 한답시고 말이에요. 지금 하버드 의학박사 과정 에 있거든요 "똘똘하기는 한 모양이네 도로시가 말했다 "나한테 지금 그걸로만 버티는 거 예요 자넷이 말했다. "그거하고 몸하고만요. 도로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봐줄 게 한둘이라도 있으니 고민할 만하군 그래 하지만 나라면 그런 유치찬란한 금요일 밤 회동 같은 건 봐주지 않을 거 야. 제길, 나 같으면 그리로 와장창 쳐들어가서 망신을 시켜줄 텐 데. 남자들은 다 어 린애야.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는 두어야 해." "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서요." 자넷이 말했다. 하지만 도로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녀가 평생을 너무 수동적으로,즉 일이 일어나도 록 방관하다가 뒤늦게서야 그걸 수습하는 식으로 살아왔다는 데 있었다. 어쩌면 그게 이 모든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인지도 몰랐 다 이젠 더 적극적으로 굴도록 자신을 다그쳐야 하는지도 모르겠 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제기랄, 마시 !" 루이스 마틴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그 기 획안들은 어디 있는 거야? 내가 내 책상 위에 놓아 두라고 했잖아!" 자신의 상한 감정을 강조라도 하듯 그가 메모판을 내려치자 종 이 몇 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는 새벽 네 시 반,욱신거리는두 통으로 잠을 갠 이후 계속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통증을 진정 시키기 위해 욕실에서 아스피린을 찾던 그는 그만 세면대에 구토 를 하고 말았다. 그 일은 그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전혀 어떠 한 사전 증상이나 메슥거림도 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기 때문 이었다. 마시 델가도는 황급히 상관의 사무실로 달려 들어왔다. 그는 오 늘 하루 종일 유난스러을 정도로 그녀를 야단치며 소리를 질러대 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책상 너머로 손을 뻗어 그의 바로 코 앞에 놓여 있던 금속 클립으로 묶인 서류 뭉치를 그에게로 밀어주 었다. 그 서류철의 표지에는 큼지막한 대문자로 '2월 26일 중역회 의안'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과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거칠게 서류를 나러챈 루 이스는 획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그리 멀리 가지를 못했 다. 몇 발짝을 걸었을까 그만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애를 쓴 다음에야 마침내 자기가 이사실 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곳이 어 디인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을 "잘 있었나, 루이스. 뒤쪽에서 다가온 이사 한 명이 인사를 건네며 오른편에 달린 문 열었다 루이스는 식별력을 상실한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멍하니 그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주춤거리며 긴 회의용 탁자앞 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얼굴들을 힐끗 훌어또았다 하지만 난감 하게도 단 한 명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들고 들어간 서류철 을 내려다보려고 시선을 떨구는 순간, 서류들이 힘없이 손에서 스 르르 빠져나왔다. 그의 손은 이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회의실 안의 목소리들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 은 그의 귀신같이 창백해진 핏기 없는 얼굴에 따갑게 집중되어 있 었다. 그 순간, 루이스의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가며 허리가 휘청 뒤 로 꺾였다. 힘없이 뒤로 넘어간 그는 요란한 쿵 소리와 함께 카펫 이 깔린 회의실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순간 루이 스의 몸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더니 눈 깜짝할 사이 격렬한 간 질 대발작에 쉽싸여 버렸다. 난생 처음 눈앞에서 대발작 경련을 본 이 사진들은 모두가 경악 해 잠시 동안 입만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 명이 쓰러진 루이스 옆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제서야다른사 람들은 근처의 전화통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하며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앰율런스와 구조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발작은 끝나 있었 다. 힘이 쭉 빠지고 머리가 계속 징·징 울려댈 뿐 루이스는 큰 이상 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를 당혹하게 했던 식별력 상실(시간, 장소, 대인 관계.사물의 동일성에 대한 인식의 혼란 상태)의 증상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경련 발작을 했었단 말에 퍽 많이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그저 잠깐 기절을 했었던 것 같은데·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루이스를 진찰한 첫번째 사람은 자신을 조지 카버라고 소개한 내과 레지던트였다 그는 몹시 지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꼼꼼히 진찰을 해주었다 일차적인 검진을 끝낸 그는 루이스에게 그의 내과 주차의 클레런 스 핸들린에게는 아직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빨리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경 련 발작이 란 게 심 각한 겁 니까7" 루이스가 물었다 두 달 전 전립선 수술 때 병원 생활을 겪어보 았던 그는 다시 또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신경과에 자문을 해보아야 할 것 같군요." 조지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이 보시기에는 어떻소?" 루이스가 물었다. "성인에 있어서 갑작스런 경련 발작은 대뇌에 어떤 구조적인 질 병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 조지가 말했다. "제발 좀 알아듣게 말씀해주실 수 없겠소?" 루이스가 말했다. 그는 난해한 의학 용어로 떠벌이는 건 딱 질색 이었다. 레지던트는 잠시 사용할 단어들을 고르느라 안절부절하더 니 말을 이었다 "구조적이란 건 말이죠‥‥‥‥ 그가 우물쭈물 설명을 시작했다 "저 단지 무슨 기능적인 장애뿐만 아니라 대뇌 그 자체에도 이상 이 있다는 뜻입니다 " "뇌종양처 럼 말입 니 까?" 루이스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맙소사!" 루이스가 말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힘 닿는 대로 환자를 달랜 조지는 직원들 사이에 '구멍'이라고 불 리는 응급실 중앙부로 들어갔다. 먼저 그는 혹시 루이스의 주치의 가 전화를 하지 않았나 점검해보았다. 하지만 아직 전화는 오지 않 은 모양이었다. 다음 그는 무선 호출로 신경과 당직 레지던트를 불 렀다 아울러 응급실 직원에게 다음 입원 환자를 맡기로 되어 있는 학생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참 그런데 , 그 학생 이름이 뭐지요?" 그는 루이스 마틴이 대기하고 있는 진료실을 향해 발길을 옮기 며 응급실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숀 머피 예요." 직 원이 대답했다. "쌍!" 호출기가 삑삑 울려대기 시작하자 숀이 거칠게 욕지거리를 네 뱉았다 자넷이 벌써 오래전에 사라져버렸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 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조심을 해두자는 생각에 그는 살그머 니 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는 문을 밀고 밖으로 발을 옮겼다. 뒷방의 전화기는 최근 나온 검사 결과들을 확인하느라 피터가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걸 려면 저 밖 간호사실에 있는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전화를 걸기 전 숀은 우선 수간호사 칼라 발렌타인에게로 다가갔다 "절 찾으셨어요?" 숀은 은근히 기대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심 그렇다는 대답 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럴 경우 방금의 그 호출이 쉽게 처 리해버릴 수 있는 병동의 잡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응급실이나 입원계에서 온 호출이었다 "지금 당장은 하실 일이 없는데요 " 칼라가 말했다. 그제서야 전화기를 집어들고 숀은 교환에게로 다이얼을 돌렸다. 아니나파를까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호출한 응급실 에는 입원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급적이면 빨리 병력 청취와 진찰을 마쳐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아는 숀은 아직도 전화통에 매달려 있는 피터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래층으로 내러갔다 평소 숀은 항상 위기감과 긴장이 감도는 응급실의 분위기를 좋 아했다. 하지만 내과 실습이 끝나는 마지막 날 오후에까지 새로운 환자를 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록 학생이라고는 해도 하버드 의과 대학은 그들에 게 수시간씩 걸리는 정밀 검사와 네 장 에서 열 장까지의 상세하게 기술된 초진 기록을 요구했기 때문이 었다. "아주 재미 있는 증례야. 숀을 보자 조지가 입을 열었다. 조지는 방사선과에 전화를 걸어 놓고 잠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거야 항상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숀이 툴툴거렸다. "그렇긴 하지 ." 조지가 말했다 "전에 시신경울혈(Papilledema)을 본 적이 있나?" 숀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검안경으로 양쪽 눈 시신경 유두를 한번 들여다보라고. 조 그만 산처럴 불룩 솟아올라 있을 거야. 그건 두개강(죠쳔Tf)내 압 력 이 높아져 있다는 뜻이야 " 조지는 숀을 향해 카운터 위로 초진 기록이 끼워진 응급실 필기 판을 밀었다 "무슨 병에 걸렸어요?" 숀이 물었다. "내가 보기 엔 뇌종양인 것 같아. 조지가 말했다 "한참 일을 하는 도중에 경련 발작을 했어." 그 순간 방사선과로 연결된 전화에 누군가가 나오자 조지는 응 급 CT(컴퓨터 단층 촬영)를 예약하는 데로 주의를 돌렸다 숀은 검안경을 집어들고 마틴 씨를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숀은 그 기구를 사용하는 것에는 영 서툴렀지만 집요한 노력과 루 이스의 근질긴 인내 덕에 간신히 불거져 나온 시신경 유두의 모습 을 한번이나마 힐끗 관찰할 수가 있었다. 의과 대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자세한 병력 청취와 이학적 검사는 보통 때에도 몹시 시간을 잡아먹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응급실과 또 CT를 하기 위해 대기해야 했던 방사선과까지 따라가서 일을 하자니 평소보다 열 배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숀은 끈덕지게, 특 히 현재의 병력에 집중을 하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던져보 았다. 그 결과 숀은 전에는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던, 즉 루이스 마 틴이 1월초 전립선 수술을 받았던 1주 정도 뒤부터 가끔씩 두통, 발열, 메스꺼움과 구토를 경험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숀이 우연히 이 정보를 맞닥뜨린 것은 루이스가 마악 조영 CT (Enhanced CT, 조영제를 주입하여 조직 간의 대비를 향상시키는 단 층 촬영 방법)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는데 어찌나 집요하게 개뭍고 들었는지 결국은 짜증이 난 방사선과 CT 기사는 그를 제어실로 쫓아내고서야 검사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제어실에는 CT 기계를 운용하는 방사선 기사 외에 루이스 마틴 의 내과 주치의인 닥터 클레런스 핸들린, 담당 내과 레지던트 조지 카버와 당직 신경과 레지던트 해리 오브라이언을 포함한 여러 명 이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음극관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첫번째 단면 영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 다 숀은 한옆으로 조지를 끌어낸 다음 루이스가 이전에 겪었던 두 통, 발열과 메스꺼움 등의 증상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좋은 걸 찾아냈군 " 조지가 생각에 잠겨 턱 주위를 어루만지벼 말했다. 그는 손에게 서 들은 예전의 증상들을 현재의 문제와 연관시켜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열이 났었다는 게 좀 이상하군 그가 말했다 "고열이었다고 하던가?" "아주 높지는 않았다더군요 숀이 말했다. "102도, 103도? 그저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고 하더군 요. 하여튼, 금방 완쾌했대요. "어쩌면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조지가 말했다. "어쨌든, 이 환자는 중환(◎녔)이야 아까 했던 단순 CT에 종양 1 두 개나 보였어 병실에 있는 필만 캐벗이란 환자 기억해?" "물론이죠." 숀이 말했다. "루이스의 종양들 모습이 그녀의 것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 어 ." 조지가 말했다. 그때 음극관 스크린 주위에 모여 있던 의사들이 흥분된 어조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첫번째 단면 영상들이 스크린에 떠오르고 있었다. 숀과 조지는 뒤쪽으로 다가가 어깨 너머로 스크린을 쳐다 보았다. "여기 또 나왔군요." 해리가 진찰용 망치의 손잡이 끝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히 종양이로군요. 전혀 의심의 여B·1가 없어요. 그리고, 또 여기 조그만 게 하나 더 있군요." 숀은 실눈을 뜨고 스크린을 뚫어 지 게 바라보았다 "아마 전이암일 거예요." 해리가 말했다. "이런 다발성 종양은 어디 다른 데서 퍼져온 것일 수밖에 없띠 요. 전립선은 양성이었나요?" 그럼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어요." 닥터 핸들린이 말했다. "이 이전엔 아주 건강했답니다. " "흡연 경 력은 어때요?" 해리가 물었다. "전혀 없었습니다. " 숀이 말했다. 앞줄에 있던 사람들은숀이 음극관스크린을 더 작 볼 수 있도록 조금씩 몸을 비켜주었다. "전이암 정밀 검사들을 다 해 보아야겠군요." 해리가 말했다 숀은 음극관 스크린 앞으로 바짝 몸을 숙였다. 음영이 감소된 종 양 부위는 숙련되지 않은 그의 눈으로도 확연히 구별해낼 수가 있 었다. 하지만 진짜 그의 주의를 끈 것은 조지가 언급했던 대로 그 것들이 헬렌 캐벗의 종양들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그리 고 그녀의 경우와 똑같이, 모두 대뇌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 점은 헬렌 캐벗의 경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는데 그것은 수아 세포종이 대개의 경우 대뇌가 아닌 소뇌에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통계적으로, 미루어 폐나 대장 또는 전깁선에서 오는 전이암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된다는 건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 조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헬렌 캐벗의 경우와 비슷한 것일 수도'있지 않을까요?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수아세포종과 같 은 다발성 악성 뇌종양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해리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글쎄,말굽 소리가나면 말을 먼저 생각해야지 얼룩말을 생각한 다는 건 좀 어폐가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근자에 국내에 그런 비슷한 증례들이 몇 번 보고된 적은 있었지만 헬렌 캐벗의 경우는 아주 드문, 거의 예외에 가까운 경우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누구 라도 우리가 보고 있는 이것이 전이암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내 기 꺼 이 내기를 받아드리 겠습니 다. " "그럼 이 환자는 어1.;:.과에서 맡는 것이 좋겠습니까? 조지가 물었다. -어떤 과로 가건 여러 과에서 같이 진료를 해주어야 할 겁니다 " 해리가 말했다 "만일 신경과로 입원하면 전이암 정밀 검사에 내과 자문이 필요 하겠지요 반대로, 내과로 입원을 한다면 신경과 자문이 필요할 거 구요 ." "지난번에 캐벗은 우리가 맡았으니 말입니다 조지가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당신네들이 데려 가시죠. 어쨌든 신경외과랑은 그쪽이 더 가깝게 지내시니까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해리가 말했다. 숀은 내심 신음을 내뱉았다 그렇게 하면 병력과 신체 검사를 하 느라 고생을 했던 것 모두가 헛수고였다 환자가 신경과로 입원하 면 그가 땀 흘려 작성한 학생 초진 기록은 신경과 실습 학생 입으 로 덩굴째 굴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빠져도 된다는 반가운 뜻이기도 했다 조지에게 나중 회진 때 보자는 시늡을 한 숀은 살그머니 CT실 을 빠져나왔다. 인계 기록들이 한참 밀려 있기는 했지만숀은 시간 을 내 잠깐 병실 한 군데를 방문하기로 했다 계속 헬렌 캐벗에 대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불현듯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린 그는 곧장 708호실· 로 걸어가 반쯤 열린 문에 노크를 했다. 박박 깎은 머리에 두피 군데군데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지만 헬 렌 캐벗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가녀린 용모에 커다랗게 반짝이는 녹색 눈이 더더욱 선명하게 돋보였다. 그녀의 피부는 화장품 모델들도 시샘할 만큼 매끄럽고 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창백했고, 병색이 완연했다 그럼에도 숀이 모습을 비치자 그녀의 얼팔이 환히 밝아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 이시로군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숀이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진 짜 무슨 의사라도 되듯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고등 학교를 마친 이후, 그는 하버드 대학을 다닐 때도, MIT에서 연구 원 생활을 할 때도, 그리고 이제는 하버드 의과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치 처음 그 배역을 맡게 된 연극 배우처럼 그저 자신의 역할이 어 색하기만 했다. "그 좋은 소식 들으셨어요?" 헬렌이 물었다. 그녀는 그간 겪어왔던 수많은 경련 발직 시 쇠약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몸을 일으켜 앉았나 폭포 몹 "무슨 소식인지 말 좀 해봐요." 숀이 말했다. "포베스 암센터에서 절 받아주겠대요 헬렌이 말했다. "그것 참 잘됐군요 대단해요." 숀이 ◎했다. -그럼 이제 저 또한 그리로 가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려도 되 겠군 요. 혹시 나 혼자만 가게 될까 무서워 여태까지 일부러 말씀을 안 드리고 있었거든요. ·정 말이에요?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우연의 일치로군요 헬렌이 말했다 ‥이젠 거기 가도 친구가 있겠군요. 그쪽에선 제가 걸린 이런 종 류의 종양을 백 퍼센트 완치 시 킨대요. 그렇다는 걸 들어보신 적 이 있을 거예_S_." "저도 알아요. 숀이 말했다 ·그 사람들 치료 결과는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경이적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그리로 가게 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내 가 포베스 암센터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순전히 당신 때문이에요. 지난번에도 말씀트렸듯이 저는 악성 종양의 분자생물 학적인 면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특정 암을 백 퍼센트 완치시킨다는 병원을 발견했을 때 이만저만 흥분을 한 게 아니었어요.그런 얘기가 교과서나 저널에 실려 있지 않다는 게 믿어 지 지 가 않더군요. 어쨌든 전 그 병원에 가서 도대체 어떤 치료 를 하는지 꼭 한번 보고 싶어요." "그 사람들이 시 행하는 치료법은 아직도 실험적이 래요." 헬렌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제게 그 점을 누누이 강조하셨어요. 그 사람들이 아 직 논문으로 발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자기들 주장이 절대로 확실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보려는 까닭알 거예요. 하지만 논문 으로 나왔건 그렇지 않건 간에 빨리 가서 치료를 시작하고 싶어요. 이건 이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 후 처음 느껴보는 한 줄기 희망이에 요 "언제 떠나세요?" 숀이 물었다. "다음주 중 언제가 될 거 예요 헬렌이 말했다 "당신은요?" "일요일 새벽 동이 트자마자 떠날 작정이에요. 화요일 새벽까지 는 도착해야 하거든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숀은 손을 뻗어 헬렌의 어깨를 지그시 쥐었다. 헬렌은 미소를 머금으며 숀의 손에 손을 포갰다 보고를 마친 자넷은 숀을 찾기 위해 다시 7층으로 돌아왔다. 하 지만 이번 역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도무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는 실망스러운 대답뿐이었다. 간호사들은 무선호출 을 해볼 것을 권했지만 자넷은 불시에 그를 덮칠 작정이었다. 이 제 네 시가 넘었으니 가장 붙들 확률이 높은 장소는 닥터 클리포드 월 시의 실험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닥터 월시가 숀의 박사 학위 지도교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로 가기 위해 자넷은 병원을 나와 매서운 겨을 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롱펠로우 애비뉴를 반쯤 지난 다음 의과 대학 운동장을 가로질러 세 층이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실험실 문을 열기 전부 터도 그녀는 자신의 짐작이 옳았음을 알수가 있었다 뿌연 유리를 통해 손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알아본 것은 눈에 익은 그의 몸놀림 덕분이었다. 그는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에 비해 놀랄 만큼 우아하게 움직였다. 쓸데없는 동작이란 찾아볼 수가 없 었다. 그는 몹시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방안으로 들어서 문을 닫은 자넷은 잠시 손에게 매료된 눈길을 던지며 머뭇거렸다. 방안에는 손말고도 세 명이 분주히 일에 매달 려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고전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은 소프스혼(활석의 일종. 실험실용 테이블. 배전판 또는 보온 기 구 재료로 사용된다) 실험 대들이 놓인 왜나 어질러진 구식 실험실 이었다. 최신 기자재들이라야 컴퓨터와 책상만한 크기의 분석기들 이 고작인 것 같았다. 숀은 몇 번이나 자신의 박사 학위 연구 과제 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자넷은 자신이 그것을 명확히 알 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세포가 암성(흣딴)이 되 도록 하는 능력을 가진 옹코진(Oncogen, 발암유전자)라는 특수한 48 유전자를 찾고 있었다. 숀은 그 발암유전자의 기원이 레트로바이 러스(Retrovirus)라고 불리는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장래의 숙주 가 될 세포들에서 바이러스의 증식을 진작시키기 위해 공략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정상 '세포 조절' 유전자인 것 같다는 설명을 했었 다. 자넷은 그가 설명을 하는 동안 가끔씩 적당한 때에 고개를 끄덕 여 보였지만 언제나 관심이 끌리는 것은 연구의 주제 따위가 아니 라 숀의 그 열정 적인 태도 쪽이었다. 그녀는 숀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분사생물학의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 공부를 해 두어야겠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다. 숀은 항상 눈이 아찔할 정도 로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첨단 분야에 자넷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 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문 바로 앞에서 숀의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가 만들어내는 매 력적인 V자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자전은 갑자기 그가 지늴 무엇 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난 두 달 간 여러 번 찾아왔던 때와는 달리 그는분석기 가동을 준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 려 그는 물건들을 치우며 청소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가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며 몇 분을 지켜 보던 자넷은 마침내 앞으로 발길을 옮겨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비 교적 키가 큰 자넷은 특히 굽이 높은 힐을 신었을 때는 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있었다. "뭘 하고 계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자넷이 불쑥 입을 열었다. 숀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어찌나 일에 집중을 하고 있었 는지 자넷이 옆으로 다가온 것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좀 정리를 하는 거야 " 그가 계면쩍게 대답을 했다 자넷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의 놀랄 만큼 새파란 눈을 들여 다보았다. 그는 잠간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 다가 이내 눈을 돌렸다 "정 리를 한다구요7" 자넷이 물었다. 그녀는 눈을 돌려 이제는 기구들이 다 치워져 본 래 모습으로 돌아간 실험 대를 훌어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로군요." 자넷은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들렸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당신 자리가 이렇게 깨끗해 본 적이 없어요.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게 있어요?" "아니 ." 숀이 말했다. 이어 잠깐우물주물한끝에 그가말을 이었다. "사실,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가 없겠지. 난 두 달 동안 전택 과 목 파견을 나가야 해." "어디로요?" "플로리다 주 마이 애미야 " "나한텐 말도 안 할 작정이었어요?" "그럴 리가 있겠어 내일 저녁에 얘기를 하려던 참이야." "언제 떠나는데요?" "일요일." 자넷의 눈에 노기가 일었다. 무심결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실험 대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과연 자신이 정말 이런 푸대접 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았다. 다시 숀을 쳐다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떠나기 바로 전 날 밤까지 입을 꼭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할 생각 이었다. 이 건가요?" "그 이야기가 나온 건 이번주에 들어와서 였어. 게다가 이틀 전까 지만 해도 확정적인 게 아니었다구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었어 ." "우리 같은 사이라면 그런 이야기가 나 오자마자 알려주었어야 당연한 일 아니에요? 게다가 마이애미라구요? 왜 하필이면 꼭 지 금 가야 하죠?" "내가 일전 이야기했던 환자 기억해? 수아세포종에 걸린 여자 말이야." "헬렌 캐벗? 그 예쁜 여 학생 이오7" "그래 ." 숀이 말했다 "그 여자가 걸린 종양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도 알게 된 게 있어서‥‥‥‥ 그가 말꼬리를 흐렸파 "알게 된 게 뭔데요?" 자넷이 다그쳐 물었다 "사실 공부하다가 알게 된 건 아니야 손이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 환자를 맡은 간호사 중 하나가 환자 아버지가 백 퍼 겐트 완 치를 보이는 치료법에 대해 들어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대. 그 치료는 마이애미에 있는 포베스 암센터에서만 시행이 되고 있 어 ." "그래서 가기로 했다 이거지요? 그냥 그렇게 말이에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숀이 말했다 "닥터 월시께 말씀을 드려보았더니 우연히도 그쪽 병원장 랜폴 프 메이슨이란 분을 알고 계셨어. 수년 전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함께 근무하신 적이 있대 닥터 원시가 그분에게 내 이야기를 해서 초청을 받도록주선 해주셨어 ." '그런 파견을 나가기 엔 때를 잘못 고른 것 같군요 자넷이 말했다. "내가 우리 문제로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시잖아요 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 말 미안해 . 하지만 지금은 시간도 있고 결정 적으로 중요한 일 일 수가 있어서‥‥‥‥ 내가 하고 있는 연구는 암의 분자생물학적인 측면에 관한 거야 만일 그들이 어떤 특정한 암종에 대해 백 퍼센 트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악성 종양에 대해서 도 어떤 의 미를 가지 게 될 것이 분명 해 . 자넷은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이런 시점에서 숀이 두 달 간이 나 멀리 떠나버린다는 것은 가뜩이나 방황하는 그녀의 정신 상태 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최악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유는 치 도곤을 내기에는 너무도 숭고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간다거나 다른 엉터리 짓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화를 내거나 비난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1 그녀는 너무도 정신이 혼란 해졌다 "전화가 있잖아." 숀이 말했다. "내가 달나라에 가는 건 아니야. 그것도 그저 두 달 간일 뿐이 야. 이번 일이 굉장히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잖아." "우리 사이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에요?" 자넷이 날카롭게 다그쳐 물었다 "우리 남은 생애보다도 더 중요해요7" 말을 마친 자넷은 즉시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군다는 것을 깨달 았다 그런 말들은 너무도 유치 했다. "자, 이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논쟁은 그 만두자구." 숀이 말했다. 자넷은 눈물을 참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나중에 얘기하도록 해요." 그녀가 간신히 말을 했다 "여긴 감정을 돋우며 싸울 장소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저녁은 안 돼 ." 숀이 말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그 멍청한 술집엘 가야 한단 말이죠?" 자넷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때 방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넷, 제발 목소리 좀 낮춰 !" 숀이 나무라며 말했다 "약속했던 대로 토요일 저녁 때 만나.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되 잖아 " "이 일이 날 얼마나 당혹하게 하는지 잘 알면서도 왜 그 쓰레기 같은 친구들이랑 만나는 걸 취소하지 않는지 난 도대체 이해할 수 가 없어요." "말 조심해 . 자넷 " 숀이 화가 난 듯 날카롭게 응수를 했나. "내겐 친구들이 아주 중요해 그 친구들은 내 뿌리나 마찬가지라 잠시 동안, 그들은 적의에 가득한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다음 순간 자넷은 몸을 돌려 실험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숀은 창피한 픗 동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대개는 그의 시선을 피했지만 닥터 클리포드 월시만은 예외였다 그는 수염을 텁수룩 하게 기른 우람한 체구로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횐 실험 가 운 차림이었다. "분란은 창의력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네. 그가 말했나. "이렇게 언짢은 기분으로 떠나는 게 마이애미에서의 자네 행동 에 영향을 리 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 숀이 말했다 "자네를 그리로 보내려고 내가 몹시도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기 억해주었으면 좋겠네 . 닥터 월시 가 말했다. "닥터 메이슨에게 자네가그 병원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누누이 강조해서 여러 번 말을 해두었어. 그 친구는 자네가 단종항체 (Monoclonal Antibody, 무성(폰쌀) 생식으로 증식한 동일 원종(◎ 굘)의 세포에서 생성된 항체.유전학적으로 항체 생산세포를 무성 증식 시켜 얻어냄) 연구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 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구요?" 숀이 난처 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쪽에 관심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 닥터 월시가 설명을 했다.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하지만 그건 제가 3년 전 MIT에 있을 때 했던 거잖아요 숀이 말했다 "단백 화학이랑 전 벌써 오래전에 결별을 했단 말입니다. " "나도 요새 자네 관심이 온통 옹코진에 쏠려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네 ." 닥터 월시 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그리로 가기를 꼭 원하던 터라 가장 초청을 받기 좋을 것 같아 보이는 일을 한 것뿐이라네. 일단 그리로 간 나음에 분자유전학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해볼 수도 있을걸세. 자 네 성격으로 보아 바라는 바를 피력하는 건 어렵지가 않을 거야. 하지만 제발 좀 사려깊게 행동을 해주게나 " "전 그쪽 수석 연구원이 발표한 논문들을 읽어보았습니나." 숀이 말했다. "제겐 아주 안성맞춤인 곳 같더군요. 그분께선 주로 레트로바이 러스와 옹코진 연구를 하시더군요." "닥터 데보라 레비 말이로군." 닥터 월시가 말했다. "어쩌면 자낸 그녀와 함께 연구를 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떻게 되건 간에 이렇게 급작스럽게 초총 요구를 수락해 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하네 ."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잡일에만 매달려 있고 싶지는 않습니 다" "말썽을 부리 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게 닥터 원시가 말했다. "제가요? 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피물었다 "절 잘 아시 잖아요." '너무 잘 알지 .' 닥터 월시가 말했다 "바로 그게 탈이야. 자네의 그 급한 성격은 좀 마음에 걸리네. 하지만 적어도 머리는 좋아 사리 분별을 잘하니 천만 다행일세. 2월 26일 금요일, 오후 4시 45분 "잠간만, 코리사." 니만 마커스(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점)의 화장품 카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캐서린 샤렌버◎가 말했다. 그들은 학교 댄스 파티 에 입고 갈옷을 고르기 위해 휴스턴 서쪽에 위치한 쇼핑센터를 찾 은 것이다 이제 쇼핑을 마친 코리사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캐서린은 갑자기 앞이 빙빙 도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카운터를 붙들자 어지러움은 사라져버렸다 이어 몇 차례 구토가 일며 온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지나가버 렸다. "괜찮니?" 코리사가 물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2학년 동급생이었다 "잘 모르겠어 ." 캐서린이 말했다. 지난 며칠 간 그녀를 괴롭혀왔던 두통이 다시 금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그게 지난 주말 몰래 피웠던 대마초랑 상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까 두려워 부모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를 못하 고 있었다 "넌 지금 귀신처럼 창백해졌어 코리사가 말했다. '그 퍼지 (버터 . 우유. 설탕과 초콜릿으로 만든 말랑말랑한 사탕의 일 종)를 먹은 게 잘못이었는지도 몰라 " "오, 하나님 맙소사1" 캐서 린이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저쪽에 있는 남자가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어 . 주차장에서 우리 를 납치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어 ." 코리사는 자신들을 음험하게 내려다보는 무섭게 생긴 남자의 모 습을 연상하며 재빨리 몸을 틀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라고는 그저 화장품 카운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선 몇 명의 온화하 게 생긴 여자 손넘들뿐이었파. 남자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남자 말이야7" 코리사가 물었다. 캐서 린은 눈도 깜박이 지 않고 앞을 노려보았나 "저기 코트 입은 여짜 옆에 선 남자야," 그녀가 왼손을 들어 손가락질을 했다. 캐서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린 코리사는 마침내 거의 5백 미터나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가 있었다. 그는 줄줄이 걸린 상품들을 뒤적이는 여자 손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들 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고 있었나 어 리등절해진 코리사는 다시 친구에 게로 얼출을 톡렸다 "우리보고 백화점을 떠날 수가 없대 " 캐트린이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얘가?" 코리사가 물었다. "겁난단 말이야." "빨리 여 길 빠져 나가야 해 . 캐서린이 가쁘게 말을 이었파. 갑자기 그녀는 몸을 돌려 반데 방 향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를 쫓기 위해 코리사는 달음 질을 쳐야 했다 캐트린의 팔을 잡은 코리사는 그녀를 당겨 돌려세 웠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코리사가 다그쳐 물었다 캐서린의 얼굴은 공포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패들이 더 왔어 "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고 있어. 우리를 잡아가겠다는 말 을 하면서 말이야." 코리사는 몸을 돌렸다. 실제로 몇 명의 남자들이 에스컬레이터 로 내려오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에서는 그 사람들의 말소리 는 커녕 얼굴 생김조차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캐서린의 귀를 찢는 비명소리에 코리사는 감전이라도 된 듯 펄 쩍 뛰어올랐다. 놀라 몸을 틀자 캐서린이 마악 쓰러지려 하고 있었 다 코리사는 엉겁결에 손을 뻗어 캐서린을붙들었다. 하지만둘은 몸의 균형을 잃고 팔다리가 엉망으로 엉켜 그만 바단에 나◎굴고 말았다 코리사가 몸을 빼내려는 순간 캐서린이 부들부들 떨며 경련 발 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백화점의 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 서 격 렬하게 요동을 쳤다. 주위 사람들이 재빨리 코리사를 일으켜 세웠다. 주위의 화장품 카운터를 지키던 여자 두 명이 캐서린에게로 달려들었다. 바닥에 머리를 찧지 않도록 붙든 그들은 간신히 그녀의 입을 벌려 이빨 사 이에 물건을 끼워 넣었다. 캐서린의 벌어진 입술사이로 한줄기 핏 물이 흘러나왔다 혀를 깨문 것이다. "오, 하나님 , 오 하나님 !" 코리사는 정신이 빠진 듯 그 말만을 중얼거렸다 "얘 이름이 뭐지?" 캐서린을 붙든 여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캐서 린 샤렌버그예요." 코리사가 말했다. "셀 정유 테드 샤렌버그 사장님 딸이에요." 그녀는 혹시라도 친구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될까 하고 서둘러 덧붙였다 "누가 앰율런스 좀 불러줘요." 그 여자가 말했다. "빨리 발작을 멈추게 해야 돼.5.." 자넷이 리츠 카페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이미 밖은 어두 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모자를 눌러 쓴 채 코트 깃을 움켜쥐고는 뉴버리 가를 바쁜 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도대체 뭘 보고 그 남자를 만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에 블린 리 어든이 말했다. "집에 처음 데려온 날부터 맞질 않는다고 얘길 하지 않았니." "그 사람은 지금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과 의과 대학 과정 두 가 지를 한꺼번에 하고 있어요," 자넷이 어머니를 상기시켜 주었나. "그건 그런 무례함에 대한 변명이 안 돼 " 에블린이 잘라 말했다 자넷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곧고 단아한 용모의 키가 큰 날씬한 여인이었다. 에블린과 자넷이 모녀 간이라는 사실은 누 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숀은 자신의 배경에 대해 아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넷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서민 출신이 란 사실을 좋아해요." "거긴 잘못된 게 없단다." 에블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게 문제야. 그 애는 버 릇이 너무 없어. 게다가 그 긴 머리 하고는‥‥‥‥ "그 사람은 사회 통념 같은 것에는 거의 신경을 안 써요 " 자넷이 말했나 또다시 피녀는 자신이 숀을 변호하고 나서는 전 혀 달갑지 않은 상황에 처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그에게 화가 나 있는데, 또 어쨀 수 없이 그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니 여 간 씁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바라던 것은 충 고였지 그 상투적인 틀에 박힌 험담이 아니었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에블린이 말했다. "그냥 보통 의사들처럼 개업을 할 생각이라면 그래도 좀 희망이 나 있지. 하지만 이 분자생물학인지 나발인지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연구하는 게 뭐 랬지7" "발암유전자요." 자넷이 말했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할줄 알면서 어머니에게 도움 을 요청했다는 게 너무도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게 도대체 뭔지 다시 한번 설명을 좀 해보거라." 에블린이 말했나 자넷은 파시 자신의 찻잔을 채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끔은 몹 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녀가숀의 연구에 대해 아 무리 설명을 한다 해도 이건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꼴밖에는 아 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시도를 해보았다. '발암유전자들은 정상 세포들을 암세포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 진 유전자들이에요." 자넷이 말했다. "그것들은 원(◎)발암유전자라고 불리는 모든 살아 있는 세포의 정상 유전자에서 유래되는 거예요. 숀은 이 모든 원발암유전자와 발암유전자들을 발견해서 밝혀내야만 암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바로 그게 그가 하고 있는 거 예요. 지금 발암유전자랑 어떤 특수한 종류의 바이러스에 대해 연 구를 하고 있어요 " "그건 왜 가치가 있는 일일지도 몰라 " 에블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굉장히 난해한 것들인 데다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그리 합당한 픽업이라고 할 수도 없어 ‥ 그렇게 단정지어 말씀하지 마세요." 자넷이 말했다. 손이람 bfIT동창생 몇 명이 석사 과정을 밟는 중에 단종항체 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었어요 '임뮤노테라피(면역치료) 주식회 사'라는 이름이었죠. 1년쯤 전에 에 팔았대요." '그건 고무적인 얘기구나 에블린 이 말했다 "숀도 이 익을 좀 봤다더냐?" 그 회사를 '제넨테크'라는 큰 회사 "모두 돈을 왜 벌었대요. 하지만 이익금은 모두 새로운 회사 설 립에 투자하기로 했대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밖에는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했거든요.- 자넷이 말했다. "엄마한테도 비 밀이냐?" 에블린이 물었다. "싸구려 연속극처럼 들리는구나. 하지만 네 아버지께선 절대 찬성하지 않으실 게다. 언제나 새회사를 창업할 때 을 넣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니까 말이다 · 자릿은 동문서 답만 하는 어머 니에게 좌절감을 느끼며 쉬었다 "지금 이건 모두 요점과는 먼 얘기들이에요 · 그녀가 말했다 거기에 자기 생돈 한숨을 내 "사실 제가 듣고 싶은 건 그 사람을 따라 플로리다로 가는 게 어 떨지에 대한 엄마의 의견이에요 숀은 거기 두 달 간이나 있을 예 정이거든요. 연구만 하면서요. 여기 보스턴에서는 연구에다 학교 까지 다녀야 해요. 어쩌면 그렇게 하는게 대화도 나누고 일도 제대 로 잡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럼 네 직 장은 어찌 고?' 에블린이 물었다 "휴가를 내면 돼요 자넷이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가 있어요. 간호사란 직 업의 이점이 바로 어디 가든지 금방금방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거 예요 -글쎄 , 내가 보기에 그건 그리 좋은 생각인 것 같지 않구나. 에블린이 말했다. '왜 요7' ‥그 남자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다닌다는 건 옳지가 않아. 에블린이 말했다 -너도 아빠나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잖 아? 우리 가족이랑은 절대 어울릴 수가 없을 거야. 게다가 지난번 알버트 숙부에 게 그런 말을 한 뒤로는 저녁 초대를 해도 어디에 앉 혀야 할지조차 모르겠어 ." ·알버트 아저씨가 먼저 그 사람 머리 스타일에 데해 핀잔을 줬잖 아요 ." 자넷이 말했다. "지겹도록 못 살게 굴었어요." ·그렇다고 해도 그게 연장자를 대하는 태도니? 아무리 해도 변 명의 여지가 없어 ." "하지만 알버트 아저씨가 가발을 쓰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잖아요 자넷이 말했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누가 피럭게 길집어 말한 사람은 없었잖 니?" 에블린이 말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그걸 '발닦개'라고 부르다니 도 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자넷은 차를 홀짝이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집안 사람들 모두가 알버트 숙부의 머리가 가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 역시 사 실이었다 자넷의 집안은 수많은 불문율들을 중시 엄격하게 엄수 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개인의 주장을 발표하는 것 은 거의 금기에 가까웠으며 무엇보다도 훌릉한 매너가 중시되었 다. "왜 작년에 마이오피아 헌트 글럽 폴로 경기에 널 데리고 갔넌 그 멋진 청년이 랑 데 이트를 해 또지 않는 거니?" 에블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은 후졌어요." 자넷이 말했다. "자넷 1" 그녀의 어머니가 눈을 부라렸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셨다. "그렇게도 그애랑 얘기를 하고 싶다면 말이다. " 에블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왜 떠나기 전에는 못하니7오늘 저녁에 만나피로 했니?" "오늘은 안 돼요." 자넷이 말했다 "금요일 밤은 남자들끼리만 만나는 날이래요. 자기가 다니던 고 등학교 근처의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요 " "그럼 네 아버지나 나나 모두 끝난 걸로 알면 되 겠구나 " 에블린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마무리지었다 모직 재킷 밑에 받쳐입은 후드 달린 티셔츠는 싸늘한 냉기가 감 도는 안개로부터 숀을 보온을 해주었다 그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농구공을 옮기며 하이 스트리트 가를 따라 찰스타운의 모뉴멘트 광장으로 조깅을 하는 중이었다 찰스타운 보이스 클럽에서 사람 들과 마악 농구 한 게임을 끝낸 참이었다. 그 동문회는 열여덟부터 예순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친교를 나누는 모임이었 다. 꽤 격렬한 게임을 한 탓인지 그의 몸에선 아직도 땀이 흘렀다. 벙커 힐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거대한 기등 모양의 기 념비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뉴멘트 광장 옆을 스쳐 지난 숀은 어릴 때 살던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배관공이었던 그의 부친 브라이언 머피 1세는 수입이 왜 팬찮았기 때문에, 시내에 사는 게 유행이 되기 훨씬 전인 먼 옛날에 벌써 커다란 빅토리아식 연립주 택을 구입 했었다. 처음 머피 일가는 1층에 있는 복층식 집에서 생활했지만 부친이 마흔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죽게 되)i 살던 집이라도 센 를 주어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버렸다. 숀의 형 브라이언 2세 가 학교로 떠나자 숀과 남동생 찰스, 그리고 어 머 니 앤은 단층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아들들이 모두 독립을 한 지클은 어머니 혼 자서만 그곳에 살고 있었다. 문에 다다른 숀은 자신의 사륜구동 이스즈 aT프 뒤에 낯익은 메 르세데스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형 브라이언이 #1고도 없이 찾 아왔음을 짐작했다 직감적으로 숀은 형이 자신의 마이애미 계획 에 반대를 하기 위해 들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에 두개씩 계단을 뛰어오른 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 다. 브라이언의 검은 가죽 서류가방이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집 안 가득히 찜 스테이크 요리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숀, 너냐f" 부엌에서 앤이 소리쳐 물었다 숀이 마악 외투를 벗어 거는데 그 녀가 부엌 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쌀은 앞치마에 수수한홈웨어 차림인 앤은 쉰넷의 나이보다도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알코올 중독 에 가까을 정도로 술을 퍼마시던 브라이언 머피와의 지긋지긋한 오랜 결혼생활 탓으로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었고 눈 은 항상 우수와 피로에 찌들어보였다. 구식으로 쪽을 진 그녀의 곱 슬머리는 원래는 매력적인 짙은 갈색이었지만 이제는 세월 탓으로 백발이 성성 했다 "브라이언이 왔단다. " 앤이 말했다 "저도 짐작했어요." 숀은 형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발길을 옮겼다 브라이 언은 술잔을 들고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재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친 그는 셔츠 바람에 페이즐리(부드러운 모직의 일종)로 만 1 1 6 ~ ~ ◎ ◎ ~ ◎ ◎ ◎ 1 ; ◎ ◎ ◎ ~ ~ 든 멜빵 차림 이었다. 숀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검은 머리와 반짝이 는 푸른 눈에 가무잡잡한 핸섬한 용모였다 하지만 형제로서 닮은 것은 그런 외양뿐이었다. 숀이 성마르고 덤벙대는 데 비해 브라이 언은 신중하고 꼼꼼하기 그지 없는 성격이었다. 숀의 부시시한 긴 머리와는 달리 브라이언은 짧게 자른 머리에 가르마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있었다 그는 손질을 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짙은 감색 줄무의 양복은 누가보아도 변호사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찾아주신 영광이 나 때문인가? 숀이 물었다 브라이언은 근처의 백 베이에 살면서도 자주 찾아 오는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 " 브라이언이 솔직하게 말했다 숀은 이내 샤워와 면도를 마치고 청바지와 헐렁한 럭비 셔츠로 갈아입었다. 그는 브라이언이 찜 스테이크 자르는 것을 마치기도 전에 벌써 부엌으로 돌아와 있었다. 숀은 식탁을 차리는 어머니의 일손을 거들었다. 일을 하며 그는 형을 쳐다보았다. 한때는 숀도 형을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아들들을 언 제나 훌릉한 장남 브라이언, 착한 막내 찰스, 그리고 수식어 없는 그냥 숀이 란 이름으로 소개를 하고는 했었다. 찰스는 지금 신부 수 업을 하느라 뉴 저지의 수도원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있다. 손만큼은 못했지만 형 브라이언 역시 탄탄한 체구에 운동에 소 질이 있었다. 하지만그는주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편을좋아하 는 공부벌레였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 에서 법학 공부를 했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 f8 가 술, 범죄, 우울증과 비극으로 점철된 아일랜드계 이민의 숙명과 도 같은 저주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의심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숀은 언제나 이웃의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싸움,좀도둑질과 남의 차를 몰래 훔쳐 돌아다 니면서 날이면 날마다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손에게 남다른 총명 과 하키 채를 다루는 걸출한 재능이 없었던들 그는 하버드 대신 브 리지워터 교도소에서 나머지 인생을 썩였을 것이파 아일랜드 이 민 구역에서 자라나는 모든 아이들은 그들의 격동하는 사춘기 내 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기회'라는 이름의 가느다란 줄 위에서 곡예를 벌여야 했다 저녁 준비가 마무리되는 동안 오가는 대화는 거의 없었다. 하지 만 일단 모두가 자리에 앉자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브라이언이 목청 을 가다듬었다. 저녁 때 우유를 마시는 것은 집안의 오랜 습관이었 다. "그 마이애미 건에 대해 어머니가 걱정을 하고 계셔. 브라이언이 말했다. 앤은 고개를 떨구어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남편 브라이 언 1세가 타계한 후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녀는 원래부터가 앞 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성격 이었다. 브라이언 1세의 난폭한 성격은 술에 의해 더욱더 폭압적으로 변모해 갔는데도, 불행하게도 그는 항상 입에다 술을 달고 살다시피 했었다. 막힌 하수도를 뚫거나 낡 은 보일러를 수리하거나 새로이 화장실을 설치한 다음이면 언제나 오후에 토빈 교 밑의 블루 타워라는 주점으로 달려가 술을 퍼마시 고는 했다. 거의 매일 밤 고주망태가 되어 귀가한 브라이언은 무엇 이 그리 불만인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식구들을 들들 볶았다. 어머 니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숀도 몇 대 얻어 터지기는 했지만 아들 의 그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 앤은 치도곤을 면치 못했다. 아침이 되어 술이 깨면 브라이언 1세는 죄책감에 사 로잡혀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늘에 대고 맹세를 주워섬겼 다. 하지만 그의 맹세는 단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다. 간암에 걸 려 죽어가며 체중이 34킬로그램이나 줄었을 때에도 그의 행동에 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전 단지 연구를 하기 위해서 가는 거에요 숀이 말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마이 애미에는 마약이 판을 친단다 " 앤이 말했다 그녀는 눈조차 들지 않았다 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팔렸다. 그는 손을 뻗어 어머니 T 팔을 움켜쥐었다. "엄마, 그 마약 문제는 벌써 고등학교 때 일이잖아요. 전 지금 의과 대학엘 다니고 있다구요." "넌 학부 1학년 때도 사고를 쳤었잖아 브라이언이 덧붙였다. "그건 퐈티에서 코카인을 조금 한 것뿐이었어." 숀이 말했다. "경찰이 거길 덮친 건 순전히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구요." "재수가 좋을려고 내가 네 어릴 때 전과 기록들을 없애버렸길래 망정이지 하마터면 감방까지 갈 뻔했어 " "마이 애미는 무서운 곳이야." 앤이 말했다 70 "항상 신문에 나는 걸 읽었다구 " "하나님 맙소사1" 숀이 탄성을 내질렀다.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마라." 앤이 쏘아붙였다. "엄마, 엄마는 TY를 너무 많이 보신 것 같아요. 마이애미는 좋 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석도 있는 그냥 똑같은 평범한 도시에 불과해요. 하지만 나쁜 구석이 있다 해서 문제가 될 건 전혀 없어 요. 어차피 전 연.구나 하고 있을 거니까요.설령 제가 원한다 해도 그런 일에 끼어들 시간조차 없을 거예요." "분명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거야." 앤이 말했다 "엄마, 난 이 제 성 인이에요." 숀이 짜증이 나는 듯 쏘아붙였다. "하지만 넌 여기 찰스타운에서도 아직도 괴상한 사람들이랑 어 울리고 있잖아 " 브라이언이 말했다 '엄마의 걱정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야. 네가 어울리는 지미 오 크너와 브래디 플래너간이 아직도 좀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건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야." "그리고 그 돈을 IRA(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독립군. 과격 테러 단체)애 럴낸다는 것도 말이죠." 숀이 말했다 "개네들은 정치 적 인 목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야." 브라이언이 말했다 "그저 좀도둑들일 뿐이지 그런데도 계속 친구로 지내다니 이해 할 수가 없어 ." "그저 금요일 오후에 맥주나 몇 잔 함께 할 뿐이에요." 숀이 말했다. "바고 그 말이 야 브라이 언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술집은 네게 또 하나의 집이 되어 버렸어. 그리고 어머니의 걱정 말고도 지금은 그렇게 훌쩍 떠나버 릴 때가 아니야. 프랭클린 은행이 옹코진 설립 기금의 나머지 부분 을 곧 대출해 주려할 거거든. 벌써 내게 서류들이 넘어와 있어. 조 만간 집 행이 될 거 야." "혹시 잊고 있다면 상기를 시켜드려야겠군요. 요즘은 팩스도 있 고 소포 속달도 있어요 " 숀이 의자를 뒤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접시 를 싱크로 날랐다. "누가 뭐래도 전 마이애미로 갈 거에요. 전 포베스 암센터가 뭔 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제 두 분 모자께서 친절하게 허락을 해주신다면, 전 제 못된 친구들과 한잔 하러 나가봐야겠어요." 짜증이 난 숀은 찰스타운 해군 기지가 폐쇄되기 전인 그 옛날. 아버지가 어디서 구해왔던 낡은 완두콩및 코트를 걸친 다음 모직 으로 된 방한모를 깊숙이 눌러써 귀를 가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 거 리 엔 차가운 겨울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동 풍으로 바뀌었는지 그는 소금기가 실린 바다 냄새를 맡을 수가 있 었다. 벙커 힐 가의 올드 스컬리스 주점에 가까워지자 부옇게 김이 서린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따스한 백열등 불빛에 일렁이던 숀 의 마음이 다시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 숀은 이내 침침하고 소란스러운 그 분 위기에 어우러졌다. 그곳은 그리 세련되고 멋진 곳이라고는 할 수 가 없었다 벽에 붙은 송판들은 담배 연기에 새까맣게 찌들어 있었 고,가구들은 딘두 여기저기에 흡집이 난 고물이었나 그나마도 깨 끗한 곳이라고는 수없는 발길들로 반질반질 닦인 바탁에 깔린 놋 쇠 풋레일(Footrail, 바닥에 끼워넣는 놋쇠 장식선)뿐이었다. 한쪽 구석 천장에 매달린 TV에서는 브루윈스 팀의 하키 경기가 방영되 고 있었다 그 복잡한 술집 안에 여자라고는 피트와 교대로 바텐더 일을 보 는 몰리 단 한 명뿐이었다 숀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찰랑찰랑 넘치도록 채운 커다란 맥주잔 하나가 그를 향해 카운터 위를 미끄 러져 내려왔다.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나오며 누군가가 그의 어깨 를 움켜쥐었다 브루윈스가 한 골을 넣은 것이었다 숀은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집에라도 돌아온 것 처 럼 마음이 편해졌다. 몹시 지 쳐 있다가 포근한 침 대 안으로 기어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미와 브래디가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으 며 지난 주말 마블헤드에서 했던 작은 일 하나를 가지고 장황하게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 얘기는 꼬리를 물어 숀이 '일당' 중 의 하나였던 시절의 우스꽝스러운 회고담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 다 경보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는 걸 보고 네가 머리가 좋다는 걸 알았지 " 브래디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정말 하버드까지 가게 될진 꿈에도 몰랐어. 어떻게 그 따분한 멍 청 이들이 랑 지내는 걸 견딜 수 있었지?"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자 주절거리는 것에 가까웠기에 숀 은 잠자코 아무런 대팝도 하지 않았지만,그의 말대로 너무도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 숀은 새로이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 는 아직도 올드 스컬리스 주점에 오는 것을 즐기고는 있었지만 점 차 국외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직도 하 버드 의과 대학 사회에 완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손에게 이것은 몹시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어디에도 의지할 바가 없는 사회적 고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었다 몇 시간이 지나 생맥주가 몇 잔 들어가자 숀은 국외자가 되어버 렸다는 씁쓸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명랑한 기분이 되어 리 베어 강변에 있는 스트립쇼 주점에 가느니 마느니 하는 열띤 논쟁 에 끼어들었다. 한참 그 광란의 논쟁이 정점에 도달하려는 순간, 갑자기 술집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사람 한사람씩 고 개들이 출입구 쪽을 향해 돌아갔다.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던지 라 모두가 놀라 얼이 빠져 있었다. 어떤 여인 하나가 그늘의 금녀 (짰윷)의 성역을 침범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여인은 흔히 볼 수 있 는 뚱뚱하고 껌이나 짝짝 씹어대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 는 찰스타운에는 정말 어울려 보이지 않는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 인이었다 탐스러운 긴 금발과 머리카락에 매달린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 는 물방울들은 그녀가 걸치고 들어온 짙은 마호가니 색 밍크 재킷 과 극적인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대담하게 방안을 훈어보는 그녀의 아몬드 같은 눈매는스마트하기 그지 없었다. 결의에 찬굳 게 다문 입술과 발갛게 상기된 두 빰, 그녀는 마치 상상 속의 여인 의 환생과도 같았다. 누군가의 애인이 찾아온 것으로 단정을 지은 손님 몇 명이 초조 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의 마누라나 되어 썩 어버 리 기 에는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 었다 숀은 거의 제일 나중에 가서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순간그의 입은 떡 벌어져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 그것은 자넷이었다! 거의 동시에 자넷 역시 그를 발견했다. 곧장 그를 향해 발길을 옮긴 자넷은 바 앞에 서 있던 숀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브래디는 마치 그녀가 무슨 무서운 괴물이라도 되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두 려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도 맥주 한잔 주세요 " B녀가 말했다. 아무 대답도 없이 몰리는 차가운 맥주잔을 가득 채워 자넷 앞에 내려놓았다. TY 소리를 uuW고는 방 안은 쥐죽은 듯 정 적에 쉽싸여 있었다. 한모금을 마셔 입을 축인 자넷은 몸을 돌려 숀을 바라보았다. 펌 프스(Pumps 끈 없는 가벼운 구두)를 신었던 까닭에 그녀의 머리 는 숀의 눈 높이에 와 있었다 "당신과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숀은 열여섯 살 때 아랫도리를 벗은 채 켈리 파넬과 함께 그녀의 부모가 쓰는 차 뒷자리에서 현행범으로 붙들렸던 때 이후 이렇게 창피 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맥주잔을 내려놓은 숀은 자넷의 팔꿈치 바로 위를 움켜쥐고 그 녀를 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보도로 나서자 숀은 이제 화를 낼 정 도로 충격에서 회복할 수가 있었다 그는 약간 술이 거나해진 상태였다 "도대체 여 기서 뭘 하는 거 야?" 그가 다그쳐 물었다 숀은 주위를 한번 힐끗 훈어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여기 오면 안 된다는 걸 당신도 잘 알 고 있잖아. "난 그런 쿨은 몰랐어요 " 자넷이 말했다. "당신 말로 미루어 그저 초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내가 온 것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 지도 못했어요.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이랑 꼭 이야기를 해보아야 한 다는 것이고, 일요일 새벽에 떠난다니 당신이 친구들이라고 부르 는 저 괴상한사람들하고 술이나 마셔대고 있는 것보다는 우리 얘 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결정 하는 거지?" 숀이 다그쳐 물었다. "어떤 게 더 중요한가를 결정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내 자신이야. 난 당신이 찾아온 게 영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구 " "마이 애미 건에 대해 당신과 꼭 얘기를 해봐야겠어요." 자넷이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털어놓은 건 분명 당신이 잘못한 거예 _5. "난 더 이상 얘 기 할 게 없어 , 숀이 말했다 "난 갈 거고, 그게 끝이야. 당신이건 우리 어머니건 형이건 누구 도 날 막을 수는 없어. 미안하지만 난 다시 안으로 들어가 당신이 형편없이 짓밟아 놓은 자존심의 일부라도 만회를 해야겠어 ." "하지만 이건 우리 남은 생애를 망쳐버릴 수도 있단 말이에요." 자넷이 말했다. 빰을 후려치는 빗줄기에 섞여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있 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을 모두 삼키고 찰스타운까지 야밤에 왕림 한 자넷은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숀의 모습에 정말 강물에라도 몸 을 던져버리고 싶은 비참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얘기는 내일 해 " 숀이 말했다 '잘 가, 자넷.' 테드 샤렌버그는 직사들이 자기 딸의 검진 결과를 이야기해주기 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상 출장을 나가 있었던 뉴을 리언스에서 아내의 급한 전갈을 받은 그는 회사의 걸프스트림 자 가용 제트기를 잡아타고 곧장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휴스턴의 여 러 병원들에 막대한 기금을 기부하는 석유회사의 최고경영자였기 에 테드 샤렌버그는 병원측으로부터 특별한 귀빈 대접을 받고 있 었다. 지금 그의 딸은 백만 달러짜리 거대한 MRI기계 안에서 응 급 뇌 사진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 팍터 주디 버플리가 말했다 "이 초기 영상들은 표층(촌타)의 영상들에 불과하거든요." 신경방사선과의 과장인 주디 버클리는 원장의 요청을 받고 기 꺼 이 병원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녀 외에도, 방안에는 샤렌버그 가족의 내과 주치의인 닥터 반스 마티네즈와 신경과의 과장인 닥 터 스텐튼 레이니가 불려와 있었다 이런 유명한 전문가들이 한 자 리에 모인다는 것은 어떤 때라도 쉽지가 않은 일이었는데,새벽 한 시인 지금 시간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테드는 불안한 듯 자그마한 제어실 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엉덩이를 붙이고 가만히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딸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정말로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끔 찍 한 것이 었다 "캐서린 양은 급성 망상성 정신장애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 닥터 마티 네즈의 설명 이 었다. "대뇌, 그중에서도 특히 측두엽(』래호톤)에 장애가 있을 때 그런 증상이 나을 수 있습니다 " 테드는 벌써 수십번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는 유리 칸막이 를 통해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MRI 기계를 쳐다보았 다. 사랑하는 딸의 모습이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가녀린 몸 통은 마치 거대한 기계 괴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듯 MRI입구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이 너무도 저주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딸애를 쳐다보며 하나님께 기도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몇 달 전 그녀가 편도선 절제술을 받으러 수술실 로 실려 들어갔을 때도 그는 똑같은 무력감을 느끼며 초조해 한 적 이 있었다. "무엇인가가 있군요." 닥터 버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드는 황급히 음극관 스크린 앞으로 달려들었다. "우측 측두엽에 방사선 음영이 몹시 증가된 국한성 병변이 있군 요." 그녀가 말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오?" 테드가 다그쳐 물었다. 의사들은 서로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런 검사를 할 때는 환자 보 호자를 입회시키지 않는 것이 상례였지만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 을 내보내기 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종창성 (◎151·또) 병 변인 것 같습니다 " 닥터 버클리가 말했다. "좀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실 수 없겠소7" 테드가 목소리를 진정시키 려 안간힘을 쓰며 물었다. "버클리 선생 말씀은 뇌종양인 것 같다는 뜻입니다. " 닥터 마티 네즈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성급하게 결 론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 입 니 다. 어찌 면 저 병 변은 이 번 증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년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쭉 빠지며 온몸이 휘청거렸다 가장 두려 워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딸애 대신 저 기계 안에 들어가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 1" 닥터 버클리는 그런 놀란 표현이 비탄에 젖은 테드에게 어떤 영 향을 미 칠지 깜박 잊은 듯 탄성을 내 짙첬L') "여기 병변이 또 하나 있군요" 의사들은 수직으로 재구성되는 스크린의 영상에 집중하며 기계 옆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동안 그들은 테드의 존재를 깜박 잊어버 리고 말았다 "이 영상을 보니 일전 보스턴에서 자네에게 말했던 그 환자가 생 각이 나는군요." 닥터 레 이 니 가 말했파 "전이암 정밀 검사에서 모두 음성으로 나왔던 다발성 뇌종양에 걸린 20대 초반 여자 환자말입니다 나중에 생검 결과를 보니 수 아세포종으로 나왔더군." "수아세포종이라면 대개가 후누강(lafHfE)에서 발생하지 않습니 까?" 닥터 마티 네즈가 물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 닥터 레이니가 말했다. "그리고 발생 연령도 훨씬 더 어리죠. 하지만 약 20퍼센트 정도 는 20대 이상의 환자에게도 발생하고,가끔씩은 소뇌 이외의 부분 에서 발견되기도 한답니다. 실제로, 만일 이 환자가 수아세포종으 로 판명이 난다떤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 "왜죠?" 닥터 버클리가 물었다. 그녀는 그 종양이 몹시도 치명적이라는 0()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나. "마이애미에 있는 어떤 병원에서 이 특정 종양에 대해 경이적인 완치 실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병원 이름이 뭡 니까7" 테드가 지푸라기라도 붙들듯 처음 들어보는 희망적인 얘기에 고 무되어 다그쳐 물었다. "포베스 암센터라는 곳입니다. 닥터 레이니가 말했다 "아직 정식으로 치료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건 아니지만. 그건 종류의 o'1야기는 발 없이도 천리를 간답니다. " 3월 2일 화요일 오전 6시 15분 톰 위디콤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여섯 시 15분 잠에서 깨어났을 때 , 아침 나절 포베스 암센터에 도착할 계획으로 집을 나 섰던 숀 머피는 벌써 몇 시간째 차를 달리고 있었다. 톰은 손이라 는 사람도, 그가 나타날 예정이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일 톰이 그들의 인생 궤적이 머지않아 교차하게 되리라는 사실 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가 느끼고 있던 불안감은 한층 더 증가했을 지도 모른다 톰은 환자들을 돕기로 마음을 먹으면 언제나 심한 불안감을 느 끼고는 했었는데, 전날 밤 그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여자 환자들 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기로 결심을 했다. 2층에 입원한 샌드라 블랜이 첫번째가 될 것이다 극심한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그녀는 벌써 정맥으로 화학요법을 받고 있었다. 또다른 환자 글로리아 다 마타글리오는 4층에 입원중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를 조금 82 부담스럽게 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구원 해주었던 환자 노 마 테일러 역시 4층에 입원을 했었기 때문이다. 톰은 어떠한 패턴 을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혹시 누군가가 자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그는 행퐁을 하 기로 한 날이면 몹시도 불안해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 만, 병동에 떠도는 쑥덕공론들에 귀를 기울여본 결과,아직 누구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그가 손길을 뻗치 기로 작정한 여인들은 말기에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회복 불 능의 상태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톰은 단지 모든 사람들 특 히 환자 본인들에게 더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것뿐이었다 샤워와 면도를 마치고 녹색 유니폼을 걸친 통은 어머니가 쓰던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항상 그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으며 언 제나 다른 아이들보다 몸이 약한 아들에게 아침을 든든히 먹어두 어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강요를 하고는 했었다 톰과 그의 어머니 앨리스는 톰이 네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계속 이 폐쇄된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세상에서 함께 살아왔다. 그와 그의 어머니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는데 그 이후 그의 어 머 니는 아들을 '내 작은 서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 다 "엄마, 오늘은 다른 여자 하나를 도와줄 생각이에요." 톰이 식탁에 놓인 달걀과 베이컨 알에 자리를 잡으며 입을 열었 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눈에 문제가 있는 외톨박이 어 린애였을 때조 차도 그의 어머니는 가능한 모든 찬사를 동원해 입에 침이 마르도 록 자랑을 하고 다녔었다. 그의 학효 친구들은 그의 사팔뜨기에 대 해 잔인하리만치 놀려대며 집에까지 따라오고는 했었다 "걱정말아요, 작은 서방님 ."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도망쳐 들어을 때면 앨리스는 언제나 따뜻하게 아들을 위로해주고는 했었다 "언제든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요. 우리끼리면 됐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필요가 없어요. 결국 모든 것이 그 말대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톰은 단 한번도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사 회에 발을 디딘 톰은 얼마 동안 동네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 지만 항상 의료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제안을 따라 EMT(응급 구조오원) 과정을 밟았다. 수련을 마친 그는 어떤 앰율 린스 회사에 취직했지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 애로를 겪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적은 병원 잡역 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그는 마이애미 종합병원에서 일 을 했지만 순번 근무를 담당하는 상급자와 다툰 끝에 직장을 팽개 치고. 장의사에 잠시 취직을 했다가 이번에 포베스 암센터로 자리 를 옮긴 것이다 "그 여 자 이름은 샌드라예요." 톰이 싱크대 수도꼭지 밑에서 접시를 씻어내며 입을 열었다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요. 통증이 몹시 심한 것 같더군요. '문 제'가 척추에까지 퍼졌대요." 어머니랑 이야기를 할 때 톰은 절대 '암'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녀가 병에 걸렸던 직후,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기로 무 언의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신 '문제'라든가 아니면 84 '장애'라든가 하는 덜 감정적인 우회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는 했 다. 톰이 석시닐콜린(Succinylcholine, 근육이완제의 일종)에 Tf해 알게 된 것은 뉴 저지의 어떤 의사 얘기가 실린 신문 기사를 통해 서였다. 응급 구조요원 과정을 이수하며 주워들은 기초적인 의학 지식으로 그는 그 얄의 생리적인 작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병원 의 잡역부로 어디든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가 있었펀 그는 마취제 가 보관되어 있는 마취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약을 손에 넣는 것은 전혀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필요가 생길 때까지 그 약을 안전하게 감추어둘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4층 청소 도구 보관실 벽장 위에 안성맞춤인 공간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기어 올라가 안을 살핀 그는 공간을 가득 메운 두툼한 먼지층을 보 고 자신이 숨길 약제가 절대 남의 눈에 띄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 인할 수 있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 톰이 나갈 채비를 갖추며 말했다 "되도록 빨리 돌아올게요.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사랑해요." 그것은 톰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항상 입에 붙어 있던 인사말이었는데, 단지 그가 3년 전 어머니를 잠들게 했다는 이유 만으로 그 친숙한 작별 인사를 수정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 았다. 숀이 자신의 지프를 끌고 포베스 암센터의 주차장으로 들어선 것은 아침 열 시 반이 다 된 시각이었다. 유난히 밝고 청명한 여름 같은 날이었다. 기온은 20도 정도로,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던 보스턴의 겨울비를·겪었던 숀은 마치 천국에라도 온 것 만 같았다 지난 이틀 간의 자동차 여행 역시 마이애미의 따뜻한 기후만큼이나 즐거운 것이었다. 더 빨리 을 수도 있었지만 병원측 이 그날 오후 늦게나 도착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 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는 95번 주경계 고속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노스 캐롤라이나,로키 산의 자그마한 모텔에서 첫날 밤을지냈다. 이튿날, 그는 춘색 (쏠펌)이 완연한 플로리다 중심부로 깊숙이 접 어들었다. 두번째 밤을 지 낸 곳은 플로리다 베로 해변 근처의 상큼 한 향기가 나는 동네였다. 모텔 직원에 게 공기에 가득한 황홀한 향 기의 출처를 물으니 근처의 오렌지 과수원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었 다. 가장 힘겨웠던 곳은 여정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팜 비치 남쪽에 서부터. 특히 포트 로더데일에서 마이애미로 들어오는 동안 그는 러시 아워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놀랍게도 편도 8차선인 95번 주경계 고속도로에서 마저도 차들이 뒤엉켜 출발과 정지를 내내 반복하는 거북이 걸음을 해야 했다. 차를 잠근 숀은 기지개를 켜며 반사 유리판으로 뒤덮인 포베스 암센터의 웅장한 쌍등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두 건물은 같은 재 질로 만들어진 보행자용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숀은 표지판을 보고 연구 및 행정 부서가 왼쪽 건물을 병원이 오른쪽 건물을 차 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출입구를 향해 발을 옮기며 숀은 자신이 받은 마이애미의 첫인 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뒤범벅이 되 어 있어 어떻게 딱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95번 주경계 고속도 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이 빠져나와야 하는 톨게이트로 86 다가왔을 때 그는 시내의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들을 볼 수가 있 었다. 하지만 그 고속도로 주변은 비 포장도로와 빈민가가 뒤엉킨 난장판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마이애미 강변에 위치한 포베스 암 센터 일대는 군데군데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평평한 지붕의 나지막한 콘크리트 벽돌 건물들로 구성된 초라한 구역 이었다. 커다란 반사 유리판으로 만든 현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던 숀은 이 두 달짜리 선택 과목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당 해야만 했던 고초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그의 어머 니는 그가 사춘기 때 입혔던 마음의 상처에서 영영 회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 리를 스쳤다 " "넌 네 아버지랑 너무 똑같아 " 그의 어 머니는 항상 그런 말을 하고는 했었는데, 그것은 사실 몹 시 심한 나무람이었다. 술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숀은 자신이 아버지와 비슷한 데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 면 그것은 그의 부친에게는 그에 게만큼 많은 기회와 선택이 주어 지지 않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 바로 안쪽에는 이젤 위에 검은 펠트로 만든 게시판이 놓여 있 었다. 그 위에는 흰 플라스틱으로 만든 글자로 그의 이름과 '환영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숀은 그 기발한 환영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현관 입구 바로 뒤에는 자그마한 라운지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 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회전문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문 바로 옆에는 가죽으로 덮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 뒤에 는 견장에 뽀족한 군대식 모자까지 갖춘 갈색 제복차림의 가무잡 잡한 잘생긴 히스패닉 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제복은 해병대 신병 모집 포스터와 헐리우드 게슈타포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연상시 켰다. 남자는 왼팔에 '경비'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왼쪽 주머니 위에 달린 명찰에는 '마티네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마티네즈가 심한 스페인어 억양이 섞인 말씨로 물었다 "제가 숀 머피입니다 " 숀이 자신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붙은 게시판을 가리키며 말했 다 하지만 경비원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잠시 뚫어 져라숀의 모습을 살괴더니 앞에 놓여 있던 전화기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빠른 스타카토의 스페인어로 통화를 한 뒤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근처의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숀은 의자에 걸터앉아 앞에 놓인 나지막한 티 테이블 위에서 사 이 언스 지 한 부를 집어들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 작했다. 하 지만 그의 온 정신은 포베스 센터의 삼엄한 경비에 팔려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대기실은 두꺼운 유리 차단벽에 의해 건물의 나머 지 부분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경비원이 지키고 앉아 있는 저 자그마한 회전문이 유일한 진입로인 것 같았다. 대개의 경우 병원이란 기구가 몹시도 허술한 경비 체계에 의존 하고 있었던 까닭에 숀은 왜나 감명을 받았고, 경비원에게 자신의 감명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근처에 좋지 않은 동네가 있거든요." a8 경 비원은 부연 설 명도 없이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곧, 첫번째 경비원과 똑같은 차림의 경비원 한 명이 모습을 드f'1 냈다. 회전문이 열리며 그를 라운지로 내보내 주었다 "제 이름은 라미 레즈입 니 나 " 두번째 경비원이 말했나 "저를 따라오십시오.' 숀은 몸을 일으켰다 문을 통과하는데도 마티네즈는 어떤 버튼 도 누르지 않았다. 그는 문이 책상 밑에 감추어진 페달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라미레즈에게 인도된 숀은 잠깐을 걸어 왼쪽편 첫번째 사무실로 들어갔다. 열려 있던 방의 문짝 위에는 커다란 글자로 '경비실'이라 고 적혀 있었다 문 안쪽은 한쪽 벽면 전체가TV모니터들로가득 한 통제실이었다. 모니터들 앞에는 메모판을 든 세번째 경비원이 앉아 있었다. 모니터들을 한번 힐끗 품어본 숀은 자신이 건물 구석 구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숀은 계속 라미레즈의 뒤를 따라 창문조차 없는 자그마한 사무 실로 들어갔다. 방안에 놓인 책상 뒤에는 제복 어깨에 두 개의 금 빛 별을 달고 모자에 금테를 두른 또 한 명의 경비원이 앉아 있었 다. 그의 명찰에는 '해리스'라고 적혀 있었다. "됐소, 라미 레즈." 해리스가 말했다. 숀은 군대에 끌려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해리스는 숀과 시선을 교환하며 찬찬히 그의 모습을 뜯어 보았다 거의 동시에 서로에 대한 반감을 느꼈다. 햇빛에 그을은 살집 두둑한 얼굴의 해리스는 숀이 어릴 때 찰스 타운에서 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그런 사 람들은 대개의 경우 쥐꼬리만한 권력을 가지고 허세를 떨며 거드 름을 피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또 대부분 끔찍한 주정뱅이들 이기도 했다. 맥주 두 잔만들어가면 TV경기에서 심판이 내린 판 정 같은 사소한 일들로 만일 그들의 의견에 동조를 하지 않는다면 일전을 불사하려고득 들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숀은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사람 하나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대치를 하 게 된 것 이 다. "우린 어떠한 말썽도 원하지를 않소." 해리스가 말했다. 그의 말씨에는 희미한 남부 억양이 섞여 있었 다. 숀은 그 말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건네는 말치고는 정말 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사나이가 하버드에서 오는 자신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출옥을 한 건달이라고 생각을 하는 걸까? 울퉁 불퉁 불거져나온 이두박근이 반팔 소매를 팽팽하게 메운 해리스는 분명 튼튼하게 잘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제대로 된 영양 섭취에 관해 일장훈시를 늘어 놓을까 생각하던 숀은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다고 마음을 고 쳐먹었다.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닥터 월시의 경고가 메아리를 치 고 있었다. "당신은 의사라고 들었소만 " 해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웬 머리가 그렇게 깁니까? 게다가 아침엔 면도도 하질 않은 것 같군요." "하지만 특별히 신경을 써서 와이셔츠랑 넥타이를 했잖아요." 숀이 말했다. "이 정도면 난정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랑 말장난을 할 생각은 말게 , 젊은이 ." 해리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로 미루어 그에게는 유머 감각이 란 털끝만큼도 없을 것 같았다 은은 피곤한 듯 발끌 바꾸었다. 그는 벌써 이 해리스란 작자나 그와의 대화에 진력 이 나 있었다. '날 여기까지 데려온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신분증에 붙일 사진 때문이오." 해리스가 말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책상을 돌아 옆방으로 이어 진 문을 잡아당겼다. 그는 손보다도 몇 센티미터는 더 컸으며 적어 도 10킬로그램은 더 나가 보였다. 하키를 할 때 숀은 이런 덩치 큰 친구들을 턱 밑에서 들이받으며 낮은 태클을 하고는 했었다 "내 생각엔 머리를 좀 깎는 게 좋을 것 같소. 해리스가 손에게 옆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띠 말했다. "그놈의 바지도 좀 다리고 말이오. 그러면 어쩌면 좀더 나아 보 일지도 모르겠소. 여긴 학교가 아니란 말이오." 문을 들어선 숀은 삼각대로 버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조절하다 가 고개를 든 라미레즈와 시선이 마주쳤다. 라미레즈가 파란 커튼 앞에 놓인 나지막한 의자를 가리키자숀은 그리로 걸음을 옮겨 의 자에 몸을 맡겼다. 사진실 문을 닫은 해리스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걸터 앉았다. 숀은 그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적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잘난 체나 하는 학생 녀석 하나가 파견을 나온다는 사실 이 처음부터도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않았었지만 이렇게 60년대 히 피 차림을 한 건달 녀석 이 옥지는 꿈에도 상상을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담배에 불을 붙인 해리스는 숀과 같은 종류의 인간들에게 욕지 거리를 퍼부었다. 그는 마치 자신들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젠체하는 방종스러운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 명문 대학들의 총칭) 타입들을 몹시도 싫어 했다. 해리스는 교도소들을 전전하다가 마침 내 군에 자원 입대함으로써 현실을 도피했고, 거기서 거친 훈련을 감내하며 특공대에 발탁이 되었었다 그는 군대에서 훌릉하게 적 응을 하며 걸프선 직후에는 대위 계급장까지도 달게 되었지만 소 련의 붕괴와 함께 감군 작업이 시작되면서 그만 탈냉전 시대의 희 생 양이 되어 버 리 고 만 것 이 다 해리스는 꽁초를 비벼 재떨이에 내던졌다. 그의 직감은 숀이 사 고뭉치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피는 손에게서 감시의 눈을 늦추 지 않기로 자신과 굳게 빠짐 했나 사진이 박힌 새 신분증을 셔츠 주머니에 끼운 숀은 경비실로 나 섰다 그가 겪은 일들은 문간에 버터놓은 환영 게시판과는 전혀 어 울리 지가 않았지 만 한 가지 사실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가 과묵한 라미레즈에게 왜 경비가 그렇듯 삼엄한지를 물었을 때, 라미레즈는 작년에 몇 명의 연구원들이 증발해버렸기 때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증발했다구요?" 숀이 아연해 하며 물었다 그는 가끔 실험실에서 고가의 장비들 이 증발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없어진 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럼 다시 발견되지 않았단 말인가요? 숀이 물었다 "전 모르겠어요." 라미 레즈의 대답이 었다 "저도 올해부터 일을 했거든요 "어디서 오셨죠?" "콜럼 비 아 메 데 인입 니 다 라미 레즈의 말이 었다 본은 더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지만 라미레즈의 대답은 숀의 불편한 마음을 너더욱 증폭시켰다. 욕구 불만에 가득한 특수 요원 같이 구는 사람을 경비 책임자로 앉히고,어떤 콜럼비아 마약 대부 의 사병으로 있었음직한 사람들로 경비실을 채우다니, 그건 아무 리 생각해도 좀 과한 것 같았다. 라미레즈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 고 7퐁으로 올라가던 숀의 마음속에서는 처음 포베스 센터의 경비 에 대해 가졌던 호의적인 첫인상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들어 와요, 어서 들어와요." 닥터 랜돌프 메이슨은 자신의 사무실 문을 붙든 채 거듭 숀을 안 으로 불러들였다. 거의 동시에 숀의 마음속 한구석을 어둡게 만들 던 불안감은 진심어 린 환대에 눈 녹듯 사라져버 렸다 "같이 일하게 되어 정말 반갑네."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클리포드가 전화를 해서 부탁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네 . 커피 좀 들겠나?"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숀은 이내 커피잔을 든 채 포베스 암센터 의 원장인 메이슨 건너편 소파에 앉게 되었다 닥터 메이슨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낭만적인 의사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큰 키에 귀족적 인 얼굴. 고전적 인 은발과 감정이 풍부해 보이는 단아한 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은 자상 했고, 코는 로마의 귀족처 럼 살짝 매부리코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 의 고민을 진심으로 경청해줌은 물론, 그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까 지도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자네를 우리 연구 책임자 닥터 레비와 만나게 해주는 거야." 그는 전화기를 집어들고 비서에게 데보라를 올려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자네는 분명 그녀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될 것일세. 난 그녀 가 지괌 당장 스칸피나비아에서 주는 큰 상 후보로 지명된다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거야 " "전 이미 그녀의 레트로바이러스 연구에 감명을 받고 있었습니 다. ' 숀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랄니다 " "커피 좀 더 들겠나?" 숀은 고개를 저었나 "전 좀 조심을 해야 돼요." 그가 말했다 "마시면 신경이 좀 예민해져서요. 많이 마시는 날이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며 칠이나 걸린답니다. " "나도 그렇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자, 그럼 자네 숙소 얘긴데. 혹시 누구랑 의논해본 적이 있나7" "닥터 월시는 그저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거라는 말씀만 하 셨습니다. " "그건 맞는 말이야."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안목이 있어 몇 년 전 좨 큼지막한 아파트 건불을 하나 사들 게 있거든. 코코넛 그초브에 있는 건 아 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멀지는 않아. 우린 센터를 찾는 방문요원들 이 나 환자 가족들에 게 거길 내주고 있지 . 자네가 머무는 동안 그곳 을 제공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군.분명 마음에 들 거야. 게다가 그로브에 아주 가까우니 동네에 나가 즐기기도 십상이구." "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기쁘군 요." 숀이 말했나. "그리고 즐기는 걸 말씀하시니 말인데요, 전 사실 관광객처 럼 놀 러 다니는 것보다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답니다 " "사람 사는 덴 어느 정도 균형이 있어야 해.'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고 우선 푹 쉬게. 자네가 할 일은 물리도록 많을 테니까 말이야. 우린 여기서 자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싶네. 그래서 나중에 개업을 하면 우리에게 환자도 보내주고 말이야." "전 계속 연구 분야에 남아 있을 계획입니다. " 숀이 말했다 "그래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숀의 말에 열정이 조팜 수그러드는 모인 이었나. "사실 제가 여기 오고 싶었던 이유는· 숀은 입을 열었지만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닥터 데보라 레비 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데보라 레비는 가무잡잡한 올리브 색 피부와 커다란 아몬드 모 양의 눈, 그리고 손보다도 더 까만 삼단 같은 머리칼을 지닌 눈이 번쩍 떠지도록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미끈하게 빠진 멋진 몸매에 짙은 감색 실크 블라우스를 실헌 가운 밑에 받쳐 입고 있었 다. 그녀는 진정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만이 발산할 수 있는 자신감 과 우아함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숀은 허등지등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렇게 일어서실 필요까진 없어요." 닥터 레비가 허스키한, 하지만 여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나. 그녀 는 숀을 향해 손을 내밀었파. 숀은 한손에 커피잔을 든 채 닥터 레비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 는 예상치도 못했던 강한 힘으로 숀의 손을 움켜쥐고는 반대편 손 에 들린 찻잔이 접시에서 덜그럭덜그럭 흔들리도록 세차게 그의 팔을 흔들어댔다. 그녀의 시선은 강렬하게 숀을 파고들었다. 나는 환영 한다는 말을 전달하라고 지시를'받았습니다 " 그녀가숀 반대편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당신의 방문이 그렇게 좋은 생각이었는지 자체가 좀 의심스러 워요. 난 실험실을 아주 타이트하게 운영해요. 고개를 처박고 일에 매달리든지 아니면 당장 다음 비행기 편으로 보스턴으로 돌아기1_ 지 하세요. 난 당신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전 차를 몰고 왔어요." 숀이 말허리를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벌써 도발적으 로 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만 도저히 어쩔 수가 없 었다 그는 연구 책임자로부터 이렇게 퉁명스럽고 매정한 대접을 받게 되 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닥터 레비는 잠시 숀을 무섭게 노려본 다음 서둘러 말을 이었나 "포베스 암센터는 일광욕이나 하러 오는 휴양지가 아니에요." 그녀가 덧붙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숀은 아직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닥터 메이슨에게 힐끗 시 선을 던졌다. "전 여기 놀러 온 게 아닙니다. 이 포베스 센터가 북극에 있었더 라도 왔을 접니다. 전 이 센터가 수아세포종의 치료에서 얻은 획기 적인 결과에 대해 소문을 들었습니다. " 헛기침을 한 닥터 메이슨은 찻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몸을 앞 으로 쭉 빼 앉았다. "난 자네가 우리 수아세포종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되 리라는 기 대는 하지 않았기를 바라네." 그가 말했다. 숀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실, 전 그걸 기 대하고 왔습니다 " 그가 언짢은 듯 응수했다. "닥터 월시랑 이야기를 했을 땐 말이지."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 친구는 자네가 쥐의 단종항체 개발에 폭넓은 성공적인 경i.!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네." "그건 제가MIT에 있었을 때 얘깁니다. " 숀이 설명 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제 관심 밖입니다. 그리고 전 그것이 벌써 케 케묵은 구식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우린 그 기술이 아직도 상업성이 있고 당분간은 그런 상태가 지 속되리라고 믿고 있다네.사실,우린 대장암에 이환된 환자들에게 서 어떤 당단백질(Glycoprotein,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화합물로 이 추어지는 복합단백질의 일종)을 분리, 제조해내는 자그마한 행운을 잡았다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장암의 조기 진단에 도움 을 줄 수 있는 단종항체일세.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 당단백질은 그리 만만한 물질이 아니지 . 우리는 실험용 쥐를 그 항원에 감작시 켜 면역 반응을 유발시키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물질을 결정화(찼틴In)시키◎ 데도 실패했다네. 닥터 월시는 자네가 그런 종류의 단백질 화학에 있어서는 가히 입신의 경지에 있다고 극구 칭찬을 하더군." "그랬었지요." 숀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벌써 손을 놓은 지가 왜 오래됐습니다 현재 제 주 관심 분야는 분자생물학, 그중에서도 특히 옹코진과 암단백질 (Oncoprotein) 쪽으로 바뀌었거든요." "제가 걱정하던 바로 그대로예요." 닥터 레비가 메이슨쪽으로 몸을틀며 말했다. "제가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지 않아요? 우린 학 생들을 받을 만한 처지가 아니에요. 전 풋내기 의과 대학 파견 실 습생들 보모 노룻이나 해주기 에는 너무 바빠요.실례지만 다시 일 로 돌아가 보아야겠어요." 닥터 레비는 몸을 일으켜 숀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건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에요. 난 몹시 바쁘고, 게다가 스트레스가 많으니 이해를 좀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 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선택과목을 택해 이 먼 곳까지 죽을 고생을 하며 달 려온 이유가 선생님의 수아세포종 치료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감 정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군요 " "솔직하게 말해서 그건 나랑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녀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날카롭게 쏘아붙였 다. "닥터 레비 1" 숀이 큰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 "왜 수아세포종 치료 결과에 대해 아무런 논문도 발표하지 않으 셨죠? 연구 기관에 계시면서 아무 논문도 발표하지 않으면 쫓겨나 기가 십상일 텐데 말이죠." 닥터 레비는 발을 멈추고 불쾌한 듯 숀을 노려보았다. "건방지 게 구는 끈 학생들에게 권장할 만한 미덕 이 아니에요." 가시 돋힌 말로 대답을 대신한 그녀는 문을 닫고 나가버 렸다. 숀은 닥터 메이슨을 쳐다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자고 먼저 세안을 한 건 그녀 쪽이었어 요. 정말 수년 간 논문을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잖아 요 "자네가 아주 고분고분한 실습생은 아닐 거라고 클리포드가 귀 띔을 해주더구만."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러셨단 말이죠?" 숀이 거만하게 되물었다 그는 벌써 플로리다로 오기로 한 자신 의 결정에 대해 일말의 후회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주위 사람 들 얘기가 결국은 옳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네가 혀를 찰 정도로 명석하다는 이야기도 하더군 내 가 보기에 닥터 레비는 자신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딱딱하게 나 찼던 것 같네. 어쨌든 그녀는 지금 굉 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이해를 하게 . 사실, 우린 모두가 초긴장 상태라네." "하지만 수아세포종 환자들에게서 올린 치료 실적은 실로 경이 적 이지 않습니까?" 숀은 형세를 뒤집어볼 요량으로 슬슬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암 전반에 대해 반드시 무엇인가 배을 게 있을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그 연구에 참여해보고 싶습니 다 어쩌면 참신한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연구진들이 그간 간과하 고 놓친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자낸 정말 자신만만하군 그래.'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어쩌면 언젠·가는 그런 새로운 참신한 눈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1(10 하지만 지금은 아널세. 솔직하게 자네에게 비밀사항 몇 가지를 알 려주지. 자네가 우리 수아세포종 연구에 참여할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네. 첫째는, 그것이 벌써 임상에서 운용이 되고 있는 반면 자네의 주 파견 목적은 기초의학 분야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일세. 그것은 자네의 지도교수와도 확실히 합의가 된 사항이 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두번째 oi유는, 우리가 개발한 독특한 생물학적 공정에 대해 아직도 적절한 특허권을 신청하는 중이기 때문에 외부 인사들에게 현재 진행중인 작업에 접근을 허락할 수 가 없다는 것이라네. 이 지침은 우리 연구비를 대주는 양반들이 직 접 지시를 한 사항일세 정부가 AIDS 이외의 다른 연구기금들을 모두 삭감해버 리는 바람에 우리도 다른 수많은 연구기관들처 럼 다 른 곳에서부터 운용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린 일본 사 람들에 게 손을 벌렸지 .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떵원처 럼요." 숀이 물었다. "비슷한 거지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우린 생명공학 쪽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쓰시타 산업과 4천만 달러 짜리 계약을 체결했다네. 몇 년 간 선금으로 연구비를 지급받 는 대신 그간에 생겨나는 특허권을 그들이 획득하는 조건으로 말 일세. 그것이 우리가 그 대장 항원에 대해 단종항체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라네. 만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시타의 연례 연구비 지원 을 받으려면 우린 무엇인가 상업성이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데, 그 점에 관한 한 우리는 여태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 하고 있다네 만일 우리가 그 연구기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는데, 그것은 물론 우리에게 치료를 받 으려고 기 대를 품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 되 겠 fl " "참 난처한 상황이로군요." 숀이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네." 닥터 메이슨이 동의 를 표했다. "그렇지만 이게 요즈음 연구 상황의 뼈아픈 현실인 걸 어쩌겠 나." "하지만 그런 단기 독점 계약은 머지않아 일본이 독주를 하는 결 과를 초래할 텐데요 " "다른 산업들도 다 마찬가지일세."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럼 추가 연구의 기금으로 그간 들어온 특허권료를 사용하시 면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처음의 연구자본을 마련할 데가 없다네.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글쎄, 그 말은 우리 경우에는 꼭 맞는 것만은 아니겠군. 지난 2년 간 우리는 구식 자선모금 모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지. 몇 명의 사업가들이 상당액의 헌금을 기탁했다네. 실제로 오늘 저녁 에도 우리는 자선 디너 파티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지 . 자네도 초청 하고 싶군 그래.스타 아일랜드에 있는 우리집에서 열기로 되어 있 다네 ." "전 적당한 옷을 준비하지 못했는데요." 닥터 레비와 한바탕 법석을 떤 이후인데도 초청을 해왔다는 사 1(12 실에 깜짝 놀란 숀이 대답을 했다. "우린 그런 걸 미리 생각해 두었지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우리가 턱시도 대여업체와 미리 약속해 두었으니 걱정 말게 전 화를 걸어 옷 사이즈를 불러주기 만 하면 아파트까지 배달을 해줄 걸세 ." "아주 사려가 깊으시군요." 숀이 말했다 하지만 숀은 이랬다 환대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저 했다 하는 이 자가당착적인 그때,갑자기 닥터 메이슨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흰 간호사 복 차림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여자가 뛰어 들어와 닥터 메이슨 앞 에 섰다. 그녀가 심한 고뇌에 시달리고 있음은 누가 보아도 확연했 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랜돌프 그녀가 불쑥 입을 열었다. "오늘까지 호흡 부전으로 사망한 유방암 환 에요. 제가 전fl도 말씀을‥‥‥‥ 자가 벌써 다섯 명이 닥터 메이슨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봐요,마가렛 손님이 있질 않소1- 한 대 얻어맞은 듯 몸을 움츠린 간호사는 그제서야 미안한 I 쇼 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등근 얼굴과 단단히 쪽을 지 회4f 머리칼을 가진 40대의 여 인 이 었다 "실례했습니다. "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가까스로 "정말 대단히 죄송합니다. " 말을 주섬거 렸다 닥터 메이슨에게로 고개를 돌린 그녀가 더듬거리며 덧붙였다. "닥터 레비께서 방금 들어오셨다는 건 알았지만 나가시는 모습 이 보이길래 혼자 계신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괜찮아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가 숀을 간호부장 마가렛 리치몬드에 게 소개하며 덧붙였다 "머피 씨는 앞으로 두 달 간 우리와 함께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 다" 리치몬드는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건성으로 중얼거리며 마지못 해 숀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어 팔꿈치로 닥터 메이슨을 찌른 그녀 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은 닫혔지만 빗장이 걸리지를 않 았는지 이내 문짝이 스르르 벌어져 열렸다. 리치몬드의 귓전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숀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말았다. 내용으로 미루어 표준 항암 치료 를 받고 있는 유방암 환자 또 한 사람이 예기치 않게 사망을 한 모 양이었다. 그 환자는 전의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시퍼 렇게 되어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이상 이렇게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그녀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이건 누가 고의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다른 걸로는 설랭이 되지를 않아요. 항상 같은 교대 시간에 일어나는데 그것 때문에 우 리 체면치 영 말이 아니에요. 검시관사무소측에서 먼저 의심하고 나서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야 돼요. 만일 언론으로 말이 새나가면 우린 아주 골치가 아파질 거라구요." "해리스를 만나보겠소." 1()4 닥터 메이슨이 달래듯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 다 접어두라고 말을 하겠소. 이런 일이 더이상 일어 나지 않도록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이오." "정 말이지 더 이상 이렇게 있어서는 안 돼요." 리치몬드는 다시금 강경하게 말을 되풀이했다. "해리스는 직원들 신상배경 조사나 하는 것 말고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구요." "나도 동감이에요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내 곧장 해리스에 게 이야기하겠소. 하지만 먼저 머피 씨가 우리 병원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사람을 수배할 시간을 좀 주시 오 ." 그들의 목소리는 점차 수그러들었다. 숀은 혹시라도 대화를 더 들을 수 있을까 소파에서 앞으로 나 앉으며 귀를 기울였지만 바깥 쪽의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왈칵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숀은 못 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계면쩍은 표정으로 다시 뒤로 물러 앉았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체크 무의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20대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까맣게 그을은 통통한 몸매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클레어 베링턴이에요." 숀은 이내 클레어가 센터의 홍보실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슨의 면전에 열쇠들을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카우 팰리스(암소들의 궁전)에 있는 당신의 멋진 아파트 열쇠 랍니다 " 그녀는 카우 팰리스란 별명이 빗 주민들 중 몇 명의 엄청난 짙가 슴 사이즈 때문에 붙은 이름이 란 것을 재미 있게 설명해 주었다 "제가 그리로 모셔다 드릴게요." 클레어가 말했다. "그건 단지 편히 머무르실 수 있도록 정돈이 잘 되어 있나만 확 인하러 가는 거니까 오해는 마세요. 하지만 먼저 , 닥터 메이슨께서 우리 병원 시설들을 한번 구경시켜 드리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생 각하세요?"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숀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가 포베스 센터에 머문 시간은 이제 불과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이 한 시간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앞으로의 두 달 간은 왜나 흥미로운 체류가 될 것이 분명 했다 물론,두달 간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풍만한몸집의 클레어 베링턴을 따라 닥터 메인슨의 사무실을 나서며 숀은 닥터 월시에게 연락을 하고 곧장 보스턴으로 되돌아가 버릴까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만일 자신이 단종항체에나 매달 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야 한다면 여기 머무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되돌아가는 편이 훨씬 이득일 것 같았다. "여기는,물론 우리 행정 부서들이 위치한 구역입니다. 클레어가 익숙한 솜씨로 안내를 시작하며 말했다. "헨리 폴워스 씨의 사무실은 닥터 메이슨 씨 사무실 바로 옆방이 에요. 폴워스 씨는 모든 비진료 직원들을 관장하는 인사 담당이랍 니다. 그 바로 너머가 닥터 레비의 사무실이에요. 물론, 그녀는 아 래층 초밀폐 실험실 안에 연구실을 또 하나 가지고 있지요." 숀은 귀가 중긋해졌다 10a "초밀폐 실험실까지 있다구요?" 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물론이죠 " 클레어가 말했다. "그걸 지어주는 조건으로 닥터 레비가 취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것 말고도 포베스 암센터는 거의 모든 첨단 장비들을 다 구비하 고 있답니다. " 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강력한 전염력을 지닌 미생물들을 취급할 목적으로 설치되는 초밀폐 실험실까지 갖추었 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과한 것 같았다. 이어 반대 방향으로 손을 쳐든 클레어는 진료부장인 닥터 스탠 월슨, 간호부장인 마가렛 리치몬드와 병원 행정부장 댄 셀렌버그 가 함께 사용하는 임상 사무실을 가리켰다. "물론 이 양밖들은 모두 병원 건물 꼭대기 층에 각기 전용 사무 실들을 가지고 있지요." "전 이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어요." 숀이 말했다. "연구실 구역이나 보여주세요." "이것 봐요, 순순히 이 25달러짜리 관람을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때려치우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요." 그녀가 준엄하게 말했다. 이어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에요. 하지만 전 이런 연습도 필요하답니다. " 숀은 미소를 지었다. 클레어는 여태까지 센터에 와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솔직 한 사람이었다. "비긴 셈이에요. 자 계속 안내해보세요!" 클레어는 사람들이 분주히 일을 하는 여덟 개의 책상이 놓인 ",1 방으로 은을 데리고 들어갔다. 방 한쪽에는 거대한 제본용 복사기 가 바ㅂul 돌아가고 있었고 그 옆에는 유리로 만든 커다란 케이느에 여러 개의 모뎀이 달린 커다란 컴퓨터가 트로피 처럼 서 있었다 한 쪽 벽면에는 식기용 승강기처럼 보이는 유리문이 달린 커다란 엘 리베이터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병원 차트로 보이는 것들 로 가득했다 "여 기 는 정 말 중요한 곳이에요. 클레어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여기서 병실과 외래 환자들의 진료비 청구서를 작성하거든요 바로 이 사람들이 보험회사들에게서 돈을 받아내는 중책을 맡고 있답니다. 제 월급 역시 여기서 나오죠." 지루하게 행정 부서들을 구경시킨 다음에야 클레어는 마침내 그 를 데리고 건물의 가운데 다섯 층을 차지하고 있는 실험 시설들을 구경시키기 위해 아래층으로 발을 옮겼다. "건물 1층에는 강당과 도서실 그리고 경비실이 있답니다" 클레어가 6층으로 발을 내디디며 조잘거쳤다. 숀은 클레어를 따 라 양쪽으로 실험실들이 들어서 있는 긴 복도를 견어 내려갔다. "여기가 주 실험 구역이랍니다. 대부분의 주요 장비들이 이 층에 비치되어 있지요." 숀은 여기저기 실험실들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 는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휘황 찬란한 최신 실험 기자재들로 가득한 멋진 디자인의 초현대적인 실험실이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들은 그저 일반적인 기구들로 만 채워진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험실들뿐이었다. 한 실험실에서 1(18 클레어는 그를 네 명의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데이비드 로 웬스타인, 아놀드 하퍼, 낸시 스프레이그와 히로시 규하마 네 명 중에서 손에게 그나마나도 관심을 보인 사람은 히로시뿐이었다. 히로시는 소개를 받자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그는 숀이 하버드 대학에서 파견되었다는 클레어의 말에 진심으로 감명을 받 는 것 같았다. "하버드는 정말 대단한 명문입니다. " 히로시는 심한 일본 억양이 섞인 영어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클레어와 함께 복도를 내려가던 숀은 대부분의 방들이 비어 있 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들 어디 갔어요'1" 그가 물었다. "우리 연구 직원들은 거의 다 만나보신 셈이에요 클레어가 말했다 "마크 핼펀이라는 기사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어디 있는지 눈에 띄질 않는군요. 곧 증원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현재는 직 원수가그리 많지 않답니다. 다른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좀 어 려 웠었거든요." 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설명은 그의 실망을 달래는 전혀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경이적인 수아세포종 연구 업적을 두에 두고 있던 숀은, 침식을 잊은 채 분주히 연구에 매달리는 대한 집단의 연구원들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과는 혀 딴판으로 텅빈 연구실들은 손에게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던 라미 레즈의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데 염 거 전 들 "저 아래 경비실에서 연구원들 몇 명이 증발해버렸다는 이야기 를 들었어요. 거기 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죠.' "많이는 몰라요." 클레어가 솔직히 대답을 했다. "작년 일이었는데, 대소동이 벌어졌었죠. "어 떻 게 된 일인데요?" "그 사람들이 사라졌었던 건 사실이에요. 클레어가 말했다 "집이고 차고 심지어는 애인들까지도 놓아둔 채로 종적을 감푸 었었죠." "그래서 , 결국 찾지를 못했나요?" 숀이 물었다 "나중에 나타나긴 했어요." 클레어 가 말했다. "행 정 부서 쪽에서는 절대 말을 안 하려 고 했지 만 일본 어디에 선 가 일본 회사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쓰시타 산업에서 말인가요? 숀이 물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클레어 가 탈했나 숀도 전에 다른 데서 몰래 직원들을 꾀어 데려가는 회사가 있다 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첩보작전 식으로 비밀 스럽게·끌어간다는 것은 금시 초문이었다. 게다가 일본으로 갔다 니 , 그것 역시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숀은 그것이 생명공학 분야의 판세가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또 하나 의 징후임을 깨달았다. 110 클레어는 더이상 복도를 따라 진행할 수 없도록 앞을 가로막은 두꺼운 간유리문 앞으로 숀을 데리고 갔다 문에는 커다란 글씨로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숀은궁금한듯클레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 안쪽으로 초밀폐 실험실이 위치하고 있답니다. " 그녀가 말했다. "들어가 볼 수 있나요7" 숀이 물었다. 그는 손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문 안쪽을 들여다보 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중앙 통로를 차단하는 커다란 문 하나뿐이었다. 클레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출입금지 구역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닥터 레비는 저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죠. 적어도 마이애 미에 있을 때는요. 그녀는 여기랑 키 웨스J~에 있는 기초진단실에 서 반반씩 근무를 한답니다. " "거기가 뭐하는 데죠?" 숀이 물었다. 클레어는 윙크를 하며 마치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라도 털 어놓듯 살짝 입을 가렸다. "거긴 포베스 센터가 부업으로 운영하는 검사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거기서는 우리 병원의 기초적인 정밀검사는 물론 키에 있는 몇 몇 병원들의 검사들까지도 대행을 해준답니다. 병원의 추가적인 수입을 올리는 방편 중의 하나죠. 한데 말썽은, 플로리다 법원이 이 자체 검사 의뢰를 문제 삼아 계속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거 예요." "왜 저기는 못 들어가게 하는 거죠?" 숀이 유리문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닥터 레비 말로는 무슨 위험이 있다던데 전 뭔지 잘 모르겠어 요. 솔직히 말하면 전 저런 델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하지만 한번 물어는 보세요. 어쩌면 들여 보 내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가시 돋친 첫 만남을 가졌던 숀은 과연 닥터 레비가 그의 부탁을 들어줄지 확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는손을 뻗어 문을살짝 당겨보았다 문이 벌어지며 공기가 새나오듯 자그마한 '쉭'소리가 들려 왔파. 클레어는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아챘다 "무슨 짓을 하는 거 예요? 그녀 가 허 옇 게 질려 날카롭게 외 쳤나 "잠겨 있는지 궁금해서요 숀이 말하며 다시 문을 닫았다 "당신은 정 말 못말리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밟아 한 층을 더 내려갔다. 5층은 중앙 복도 를 사이에 두고 한편은 커다란 실험실이 반대편은 자그마한사무 실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클레어는 커다란 실험실 안으로 숀을 데 리고 들어갔다 "당신한테 이 실험실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클레어가 말했다. 그녀는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것은 연구 원들이 조금이라도 공간을 더 차지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격 112 렬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하버드나 MIT의 게딱지만한 연구실들 에 익숙해져 있던 숀의 기준으로 볼 때 실로 엄청나게 큰 방이었 다. 방의 한가운데는 책상과 전화, 컴퓨터 단말기가 놓인 유리로 네 벽을 막은 사무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숀은 실험기구들을 만지작거리며 방안을 돌아보았다. 기구들은 황홀할 정도의 첨단 장비들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쓸 만해 보였 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형광-광분석기와 형광 물질을 볼 수 있도록 특수하게 고안된 쌍안 현미경이었다 숀은 적절한 상황에 서라면 이런 기구들을 가지고 재미를 좀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만 포베스가 과연 그런 적절한 환경을 보장해줄지를 알 수가 없었 다. 한 가지 그가 깨달은 것은 아마도 이 큰 방에서 혼자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시약이랑 그런 것들은 다 어디 있지요? 그가 물었다. 클레어는 손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한 층을 더 내려간 클 레어는 그에게 공급실을 보여주었다. 손에게는 이곳이 여태까지 보아왔던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공급실은 분자생물학 실험 실이 필요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곳에 는 심지어 NIH에서 가져온 다양한 종류의 실험용 순종 세포 (Cell line, 단일 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동종의 세포들)들까지도 넉넉 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나머지 실험실 구역들을 대충 안내해 보여준 클레어는 숀을 데 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녀는 코를 움켜쥔 채 동물 사육실 안으 로 숀을 인도했다. 낯선 사람들의 출현에 개들이 합창으로 짖어댔 다. 원숭이들은 눈을 부라렸고 실험용 쥐들은 우리 안에서 팔그락 달그락 소란을 피웠다 클레어는 숀을 동물 사육사 로저 칼벳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는 노틀담의 곱추 같은 심한 곱사등의 자그마 한 사람이었다. 잠깐 구경을 한 그들은 서둘러 사육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클 레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는 몸짓을 했다. "여기가 안내하기 제일 괴로운 부활이에요." 그녀가 고백을 했파. ‥짐승들이라고 이렇게 끔직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파요." 정말 마음이 "그 마음 알아요.' 숀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한 거예요 =)래포 어쩐지 쥐나 생쥐들은 개나 원숭이만큼 마음을 불편하게 하81 않더군요 -전 당신한테 병원도 구경시켜 뜨리라는 지시를 받았거든요." 클레어가 말했다. "어떠세요?" "그렇게 합시다. " 숀이 말했나. ◎는 사실 클레어와 함께 있는 것이 몹시 즐거웠 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2층으로 올라온 다음 구름다리 를 이용해 병원 건물로 건너갔다. 병원 건물의 2층에는 중환자실 과 수술장을 포함, 진단 부서와 치료 부서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 다. 화학 검사실과 방사선과도 의무 피록실과 함께 역시 2층에 자 리잡고 있었다 클레어는 의무 기록실 사서인 자기 어머니에게로 숀을 데리고 가 인사를 시켜주었다. 114 "톡시 제가 노을 일이 있으면 말이에요 베 링 턴 부인이 말했다 "그저 전화만 한 통 해주세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숀은 기록실을 나서려고 발을 옮 겼지만 베링턴 부인은 한사코 자기 부서를 구경시켜 주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녀가 센터의 훌릉한 컴퓨터 시설과 레이저 프린 터 . 지하의 보관 창고에서 차트를 올려보낼 때 쓰는 승강기와 창문 을 통해 보이는 유유자적한 마이애미 강의 정경들을 자랑삼아 이 야기하는 동안 숀은 애써 흥미로운 척해 보였다. 다시 ◎도로 나서 자 클레어는 얼굴을 붉히며 숀에 게 사과를 했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녀가 덧붙였다. "당신이 마음에 드시나 봐요." "제 운이 그것밖에 안 되근 걸 어쩌겠어요." 숀이 말했다 "중년이나 사춘기 전 애들은 절 좋아하지요. 문제는 그 중간에 있는 여자들이에요." "절 보고 그 말을 믿으란 얘기예요7" 클레어가 비꼬며 응수를 했다. 이어 숀은 허겁지겁 잰 걸음으로 80병상을 수용하는 현대식 병 원 건물 안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깨끗하고 세련된 디지인에 훌 릉해 보이는 직원들로 운영되는 멋진 병원이었다 열대 기후에 맞 는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꽃들로 단장이 된 병원 건물은 다수의 입원 환자들이 앓고 있는 병의 위 중함에도 불구하고 명랑하게까지 보였다 이 부분에서 숀은 포베스 암센터가 흑색종(Melanoma, 멜 라넌 세포를 만드는 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 악성도가 매우 높 음)의 치료에서 NIH와 공동 연구를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열대의 강렬한 햇살 때문에 플로리다에는 흑색종 환자가 빈발하는 모양이었다 병원 관람을 마치자 클레어는 손에게 이제 그를 카우 팰리스로 데려가 짐을 풀게 해주겠노라고 했다. 숀은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클레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꼭 붙어 쫓아오라는 엄한 명령을 받은 숀은 그녀의 차를 따라 포베스 암센터를 나선 다음 12번 애비뉴를 타고 남쪽을 향했다. 마이애미 사람들 대부분이 차의 장갑함에 권총을 넣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던 숀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세라 조심스레 차를 몰 았다. 마이애미는 가벼운 접촉사고의 치사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 은 곳이었다 칼레 오코에서 좌회전을 한 숀은 군데군데 마이애미에 깊은 영 향을 미 쳤던 짙은 쿠바 문화의 유산을 볼 수가 있었다. 브리 질에서 우회전을 하자 다시 창밖의 풍경은 그림을 뒤집은 듯 갑자기 바뀌 어 버렸다. 이제 그는 불법 마약 거래가 가진 재력의 산 증거인 하 늘을 찌를 듯 치솟은 은행 건물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카우 팰리스는 근처의 대다수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알루미늄 으로 미닫이문과 창틀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2층 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전면과 후면에 널찍한 아스팔트 주차장이 딸려 거의 한 블럭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마음 을 끄는 것이라고는 마침 꽃이 만개한 우거진 열대 수목들뿐이었 다. 숀은 클레어의 혼다 옆에 차를 세웠다 lla 열쇠에 적힌 아파트 호수를 확인한 클레어는 앞장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손에게 배정된 집은 뒤쪽으로 복도 한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클레어가 문에 열쇠를 끼우는 동안 복도 바로 건너편 마 주 보이는 집 문이 활짝 열렸다. "이사를 오시는 겁니까?"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벌거 벗은 상반신을 드러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것 같아요." 숀이 말했다. "내 이름은 게리예요." 그가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게리 엥겔스랍니다 방사선과 기사로 일하 고 있지요. 밤엔 근무를 서고 낮엔 집을 찾아다니죠. 당신은요?- "실습 나온 의과 대학생이에요." 숀이 대답을 하는 새에 클레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그 아파트는 왜 쓸 만한 주방과 가구들이 딸린 방 한 개짜리였 다 거실과 침실은 모두 미닫이 유리문으로 건물 전체에 된 발코니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걸쳐 연 결 "어 떠 세요?" 를레어 가 거실 유리 왔을 옅 며 숀에 게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나 힐 씬 좋군요." 숀이 말했다 "요샌 병원들이 직원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몰라요.- 클레어가 말했다 "특히 괜찮은 간호사들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죠. 다른 병원들 과 경 쟁을 하려면 괜찮은 임시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니 까요."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숀이 말했다. "또 한 가지가 있어요." 클레어가 말했다 그녀는 그에 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이건 닥터 메이슨이 말씀하셨던 그 택시도 대여업체 전화번호 예요. 오늘 밤엔 오실 거죠?" "그런 일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군요." 숀이 말했다 "정말 꼭 와보셔야 해요." 클레어가 말했다. -이런 건 포베스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특권 중의 하나예요." "이런 파티가 자주 있나요?" 숀이 물었다. "비교적 그런 편이죠 클레어가 말했다. "정 말 재미 있어요." "그럼 당신도 올 건가요?" 숀이 물었다. "거 의 틀림 없이요." "글쎄 , 그렇다면 저도 참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가 말했다. "사실 전 턱시도를 입어본 게 몇 번 안 되거든요. 재미있겠군 요." 띤 "정말 생각 잘하셨어요." 클레어 가 말했다. "지리를 몰라 닥터 메이슨 댁을 찾는 데 애를 먹을지도 모르니 제가 모시고 갈게요. 전 바로 요 아래 코코넛 그로브에 살거든요. 일곱 시 반 어때요7" "기다릴게요 " 숀이 말했다. 히로시 규하마는 동경 남쪽의 요코스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 친이 미국 해군 기지에서 일을 했던 관계로 히로시는 어렸을 때부 터 미국과 서양의 풍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 만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지 어린 히로시가 학교 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조차도 허락을 하지 않았다. 고분고분한 아 이였던 히로시는 한번의 반발도 없이 어머니의 뜻에 순종했다. 대 학에 들어가 생물학을 전공하던 그는 어머니가 타계한 다음에야 비로소 처음 영어를 배울 수가 있었지만 일단 시작을 하자 놀랄 만 한 속도로 이 낯선 언어에 유창해졌다. 학교를 마치자 히로시는 이제 마악 생명공학 분야로 사세를 확 장하던 쓰시타 산업 이라는 거 대한 전자회사에 취직 했다. 히로시의 뛰어난 영어 실력을 안 그의 상사들은 그를 포베스 센터의 투자 감 독관으로 임 명해 플로리다로 파견을 내보냈다. 협조를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은 응급수단으로 동경에까지 보내 거액의 봉급을 쥐어줌으로써 달래야 했던 초창기 두 명의 연구원 들 문제 이외 에 , 히로시는 포베스에 머무는 동안 이렇다 할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런 하지만 계획에도 없던 숀 머피의 출현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고는 해도 히로시 역시 다른 일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뜻밖의 일 은 딱 질색이었다 게다가 일본인들에게 하버드란 곳은 어떤 한 개 의 학교라기보다는 거의 신화에 가까웠다. 그것은 미국의 우월성 과 미국인의 명석함을 웅변하는 상징이었다 결국 히로시의 걱정은, 혹시라도 숀이 포베스의 성과 중 일부를 하버드로 가지고 돌아가 미국 대학의 뛰어난 역량으로 새로운 특 허권을 획득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쓰시타에서의 히로시의 미 래는 포베스 투자 건을 얼마나 잘 보호할 수 있는지의 능력에 달 려 있었기에 그는 숀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단 개인 전화선을 이용해 일본에 있는 상사에게 팩스를 보냈다. 처음에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일본측은 센터의 교환을 통 하지 않고 히로시와 직접 교신을 할 수 있는 독립 회선의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던 수 많은 요구 중 하나에 불과했나 다음 히펄시는 된장과 면담을 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기 위해 닥 터 메이는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두시에 만나기로 약속 을 얻어낼 수 있었다 7퐁 계단을 오르는 지금, 약속 시간 까지는 3분of 남아 있었다 히로시는 꼼꼼하기 그지없는사람이었다 그가 닥터 메이슨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원장은 화들짝 놀라 기 립 자세를 취했다. 히로시는 항상 훌릅한 경영자의 괼수 조건으로 강철 같은 의지를 꼽았다. 하지만 이 솜방망이같이 심약한 미국인 의사는 그런 면이 부족하다고 느껴 대수롭지 않게 여김에도 불구 하고 히로시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깊숙이 큰절을 했다 히로 시가 추측컨대 닥터 메이슨은 곤경에 처하면 그야말로 똥 오줌을 가리지 못할 것 같았다 "닥터 규하마, 이렇게 올라오시 다니 황송스럽습니다 " 닥터 메이슨이 손을 펼쳐 의자를 권하며 입을 열었다. "무엇 좀 드릴까요? 커피 , 홍차 아니면 주스를 좀‥‥‥7" "네, 주스로 하겠습니다. " 히로시는 예의 바츤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사실 그는 아무 것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괜히 청을 거절해 원장의 호의 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닥터 메이슨은 히로시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지만 평소처럼 편안 히 앉지를 못했다. 히로시는 그가 의자 모서리에 궁등이만 실짝 걱 친 채 양손을 비벼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불안을 알아차 린 히로시는 그러지 않아도 낮게 평가했던 그의 경영자로서의 점 수를 더욱 깎아버렸다.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저렇게 자신의 속을 드러내놓는다는 것은 커다란 단점이었다 "어쩐 일로,오셨습니까7" 이렇게 직설적으로 닉러쯔근 익본인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히로 시는 다시금 빙그레 미소를 기 었나. "저는 오늘 우연히 어떤 젊은 대학생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히로시가 말했다. "숀 머피를 만나셨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 친구는 하버드 의과 대학생이 랍니다 " "하버드는 아주 훌릉한 학교입니다. " 히로시가 말했다 "최고 명문 중의 하나죠."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특히 의학 관련 분야 연구에서는 아주 유명합니다. " 닥터 메이슨은 조심스럽게 히로시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히로 시가 절대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 다 메이슨은 항상 일본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만저만 난감한 일이 아 니었지만 이 히로시라는 사내가 병원의 사찰을 쥐고 있는 쓰시타 의 앞잡이임을 아는 닥터 메이슨은 그를 정중히 대접하는 것이 똔 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숀의 출현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바로 그때 주스가 도착하자 히로시는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는 한모금을 살짝 마신 뒤 잔을 테 이블 위 에 내려놓았다. '어 쩌 면 제가 왜 머 피 씨 가 여기 오게 되 었는지를 설명 하는 것 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건 참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 겠군요." 히로시가 말했다. "머피 비는 의과 .대학 3학년생 입 니 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3학년 학생들은 그 일련의 수업 과정 중에 자신들이 특히 흥미 를 느끼는 분야를 선택해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선택 실습기간을 몇 번 가지고 있습니다. 머피 씨는 연구 실습에 흥미를 느껴 이것 을 선택 과목으로 택했습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이곳에 머물러 연구를 할 계획 입 니 다. " "머 피 씨는 횡 재를 했군요." 히로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겨울에 플로리다로 오다니 말입니다. " "아주 훌릉한 제도입니다 " 닥터 메이슨이 동의를 표했다. "그 친구는 실제로 실험실이 어떻게 가동되는지를 볼 수 있을 테 고 우리는 직원이 한 명 더 생기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겠 습니까," "어쩌면 우리 수아세포종 연구에도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히로시가 말했다. "관심이 있다고 하더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하지 만 그 연구에 참여시키지는 않을 작정 입니다. 대신 그는 우 리 대장암 당단백질 연구를 도와 그 단백질을 결정화시키는 데 주 력을 할 것입니파. 만일 그가 우리가 여 태까지 성공하지 못했던 그 칠을 이루어 낸다면 포베스와 쓰시타 양자가 얼마나 큰 덕을 보게 될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 "저는 상관들로부터 머피 씨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답니 다" 히로시가 말했나 "그런 걸 깜박 하다니 참 이상도 하지요?" 문득 닥터 메이슨은 이 우회적인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쓰시타가 내걸었던 조건들 중에는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 모든 지원자들에 대해 히로시 측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대개의 경우 그 검토는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았기에 닥터 메이슨은 학생에 게다가 체류 기간이 극히 짧은 숀 머피에 대해서 그런 것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 했던 것이다 "머피 씨의 선택 과목 요청을 수락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 었습 니다. 쓰시타 측에 통보를 하지 못한 건 제 불찰이었습니다만 사 실 그 친구는 엄밀히 말해 직원으로 볼 수가 없거든요. 봉급을 주 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경험이 짧은 학생에 불과합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당단백질 샘플들을 맡을 게 아닙니 까?' 히로시가 말했다. "게다가 그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 조합 이스트에게도 접근 을 할 수 있을 것이구요." "그에게 그 단백질을 준다는 건 사실입니다. " 팍터 메이슨이 말했다. "하지만 그에 게 그 단백 질을 생산하는 유전자 조작 기법을 보여 줄 이유는 전혀 없습니파."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히로시가 물었다. "제가 잘 아는 동료가 추천을 한 학생입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어쩌면 우리 회사 측이 _)의 이력서를 받아보고 싶어할지 ):.~ 겠군요." 히초시가 말했다 "이 력서 같은 건 받지를 않았습니다.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124 "아직 학생에 불과한걸요. 만일 신상에 중요한 사항이 있었다면 제 친구 닥터 월시가 분명 사전에 이야기를 해주었을 겁니다 그는 머피 씨가 단백질 결정이나 쥐에서 단종항체를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입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상업 성이 있는 특허 품목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우린 꼭 그런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그 하버드라는 이름도 병원측에 상당한 도움 이 될 겁니다. 하버드 의과 대학생을 수련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나 면 득이면 득이지 절대 잃을 건 없습니다. " 몸을 일으킨 히로시는 계속 빙글빙글 미소를 지으며 절을 했지 만 이번에는 아까 처음 사무실에 들어을 때만큼 깊게도 오래도 하 지를 않았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가 말했다. 이어 그는 사무실을 나섰다. 히로시의 등 뒤로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닥터 메이슨은 지그시 눈을 감고 손가락 끝으로 감은 눈 위를 문질렀다. 그의 손 들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요새 초긴장 상태였는데 조심을 하지 않 으면 지병인 위궤양이 다시금 악화가 될 것 같았다. 지금 어떤 정 신병자가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을 도살하고 다닐지도 모르는 판국 에 쓰시타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제 그는 숀을 맡아 달라던 클리포드 월시의 부탁을 들어준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 그것은 괜한 골칫거리를 불러들인 셈이었 다 한편, 닥터 메이슨은 수많은 걱정거리들에도 불구, 일본인들에 게서 계속 연구기금을 타 쓰려면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숀이 그들이 분리해 낸 단백질에 대해 항체를 만들어내는 문제를 푸는 데 일조를 할 수 만 있다면 그의 출현은 정말 천우신조일 것이다 닥터 메이슨은 초조하게 머리칼을 매만졌다. 문제는 히로시가 깨닫게 해주었던 대로,숀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사실이었 다 하지만, 이제 숀은 그들의 실험 시설에 접근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컴퓨터에 접근을 할 수도 있 다. 게다가 닥터 메이슨이 보기에 이 손이란 친구는 굉장히 호기심 이 많은 그런 타입인 것 같았나 전화기를 나꿔챈 닥터 메이슨은 비서에게 보스턴에 있는 클리포 드 월시와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그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왜 진작에 클리포드에게 전화를 해 물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자신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닥터 월시와 전화가 연결되었다 "숀은 잘 도착했겠지7" 닥터 월시 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도착했네 " "벌써 무슨 말썽을 일으켰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그 래. 닥터 월시 가 말했파. 닥터 메이슨은 궤양이 도진 듯 갑자기 속이 쓰려 오기 시작했다 "그것 참 이상한 말이로군." 그가 말했다. "특히 자네의 찬사에 가득한 추천을 감안하면 말이야." "내가 그 친구에 대해 한 말은 모두 사실일세 " 닥터 월시가 말했다. "분자생물학에 관한 한 그 친구는 거의 천재에 가깝나네 . 하지만 도시 빈민가 출신이라 그런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비해서 사교술 은 턱없이 모자르지. 게다가 굉장한 고집 불통이라 가끔은 도대체 말을 들어먹지를 않아 힘도 황소처럼 세다네 하마터면 진짜프로 하키 선수가 될 뻔도 했었지. 혹시 무슨 패싸움이리노 나면 우군으 로 하고 싶은 타입의 녀석 이라구 " "하지만 여기는 패싸움이 그렇게 많지를 않다네. 닥터 메이슨이 짧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니 그 방면의 기술은 별로 소용이 없을걸세. 참, 다른 얘기 하나 물어보세 과거 숀이 어떠한 방식이로든 생명공학 산업과 관 련되었던 적이 있었나? 여름방학 동안 회사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든지 , 그런 비슷한 것이라도 말이야." "있고말고.' 닥터 월시가 말했다 "그저 잠간 일만 했던 정도가 아니라 회사를 하나 소유했던 적도 있다네. 친구 몇 명과 함께 쥐의 단종항체를 생산하는 임뮤노테리 피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 립 했었지 . 내가 아는 한 그 회사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 군" 메이슨의 복통은 한층 더 심해졌다. 그가 방금 들은 것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였다. 닥터 월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메이슨은 서둘러 전화기를 내려놓고 즉시 제산제 두 알을 삼켰다. 이제 그는 쓰시타가 숀과 임뮤노테라피와의 관계를 알게 될까까지도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파 만일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포베스와의 계약을 파기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닥터 메이슨은 왔다갔다 사무실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의 직 감은 그가 반드시 무슨 조치인가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닥터 레비 말대로 숀을 곧장 보스턴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이 상책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당단백질 연구에 혹시라도 일조를 할지도 모르는 숀의 잠재적인 공헌 가능성을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때 갑자기 팍터 레이슨의 머리에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적어 도 숀의 회사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 다. 그는 다시 전화기를 집어들어 스털링 롬바우어에게 직접 전화 를 걸었다 약속했던 대로 클레어는 일곱 시 30분 정각, 숀의 아파트에 나타 났다 그녀는 가느다란 어깨끈의 까만 드레스 차림에 긴 귀걸이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그녀의 갈색 머리는 양 옆으로 틀어올려 라인스톤(모조 다이아몬드)이 박힌 머리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몹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숀은 자신의 복장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서지를 않았 다. 배달된 대여 턱시도는 바지가 두 사이즈나 컸지만 바꿀 만한 시간 여유가 없어 결국 멜빵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신발도 반 사이즈가 컸다. 하지만 셔츠와 재킷은 그런대로 몸에 맞았기에 숀 은 친절한 이웃 게러 엥겔스에게서 빌린 헤어 젤로 단정하게 머리 를 다듬었다. 그는 정성들여 면도까지 했다. 클레어의 자그마한 혼 다는 너무도 비좁았기 에 그들은 숀의 지프에 올랐다 클레어의 길 128 fi 안내에 따라 그들은 시내의 고층 빌딩 숲을 헤치며 비스케인 대로 를 거슬러 올라갔다 거리는 무슨 인종 전시장처 럼 각양 각색의 사 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길가의 롤스 로이스 대리점을 지나는 순간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그곳에서 팔리는 차들 대부분이 현금 으로 거 래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20달러 지폐를 가방 가득히 가지고 온대요." "만일 내일 당장 마약 거래가 금지된다면 상당한 영향이 있겠군 요." 숀이 말했다 "아마 시 전체가 폭싹 주저앉을 거 예요." 클레어가 말했다. 맥아더 가도에서 우회전을 한 그들은 마이애미 해변의 남단을 향해 차를 몰았다. 달리는 차창 오른편으로 도지 아일랜느 항구에 정박한 몇 척의 호화 유람선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이애미 해변 직 전에서 좌회전을 한 그들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자 검문소를 지 키던 무장 경비원 한 명이 앞길을 막아 세웠다. "대단히 호사스러운 동네인 것 같군요." 경비원의 신호에 검문소를 통과하며 숀이 입을 열었다. "엄 청 난 곳이죠." 클레어가 대답했다 "병원은 어렵다던데 닥터 메이슨 자신은 왜 수입이 좋은 모양이 로군요." 숀이 말했다. 차창을 스치는 대귈 같은 저택들은 일개 연구센터 의 원장이 살기에는 좀 과한 것 같아 보였다 "제가 보기엔 부인이 돈이 많은 것 같더군요." 클레어가 말했다. "그녀의 처녀 적 이름이 포베스,사라 포베스거든요" "정 말이 에요7" 숀은 클레어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닐까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힐 끗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 포베스 센터는 ◎녀의 아버지가 설립한 거예요." "정 말 안성 맞춤이었겠군요." 숀이 말했다. "사위에 게 직장까지 마련 해주다니 참 착한 사람이 었나봐요."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니에요." 클레어가 말했다. "연속극 같은 얘기 였지요. 영감님은 병원을 설립했지만. 돌아가 신 뒤에 사라의 큰오빠 해롤드에게 재산 관리를 위임하셨거든요. 그런데 이 해롤드라는 양반이 무슨 중앙 플로리다 개간공사를 한 답시고 재단 폰을 거의 다 들어먹었었대요. 닥터 메이슨은 그후 센 터가 거의 도산하기 직전에 바톤을 넘겨 받은 후속 주자예요. 지금 이 정도라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와 닥터 레비 덕분이 에요." 그들은 길게 세로로 홈이 난 코린트식 기등이 현관을 받치고 있 는 거대한 흰 저택으로 이어진 진입로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주차 보조원이 재빨리 튀어나와 그들의 자동차를 맡아주었다 저택의 내부 역시 외관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흰 대리석 바닥, 흰 가구, 흰 벽에 심지어는 바닥에 깔린 카펫 마저도 흰색으로 모 든 것이 새하얀 백색이었다. "배색 문제로는 실내 장식 가한테 큰돈을 주진 않았겠군요." 130 숀이 말했다. 그들은 비스케인 만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테라스로 인도되었 다. 만은 섬들과 바다에 떠있는 수백 척의 배들이 발산하는 불빛 으로 점점이 수놓여 있었다. 만 너머로는 황홀하게 빛을 발하는 마 이 애미 시가의 모습이 보였다. 테라스 한가운데는 수면 아래로 조명을 설치한 커다란 콩팥 모 양의 수영장이 있었다. 그 왼편에 세워?: 흰색과 빨간색 줄무의의 천막 밑에는 음식과 음료들로 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긴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집 옆에 자리를 잡은 캘립소 밴드의 연주는 부드러운 밤 공기를 감미 로운 리듬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테라스 너머 물가에는 커다란 흰 색 유람선 한 척이 부두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유람선 뒷부분의 철 주에는 자그마한 보트 한 척이 매달려 있었다 "닥터 메이슨 부부가 이쪽으로 오고 계세요." 황홀한 경치에 넋을 잃었던 숀은 클라라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 릴 수가 있었다 황급히 몸을 돌리자 풍만한 엷은 금발의 여인을 인도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닥터 메이슨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대여품이 아닐 것이 분명한 턱시도와 매끈한 가죽 구두에 까 만 나비 넥타이를 한 닥터 메이슨은 아주 우아해 보였다 메이슨 부인이 입은 끈 없는 피치 가운은 어찌나 꽉 끼었던지 숀은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그 커다란 가슴이 그냥 터져나올까 봐 걱정이 되기 까지 했다. 그녀의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그녀가 한 화장 은 나이 어린 소녀들에게나 어울릴 것같이 요란스러웠다 그녀는 분명 좨 취해 있음이 분명했다. "어서 오게 , 숀."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클레어가 잘 돌봐주던가?"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 숀이 대답했다. 닥터 메이슨은 짙은 마스카라 화장의 눈을 깜박이는 부인에게 숀을 소개시켰다 숀은 혹시나 이 술취한 바람등이 여인이 빰에 키 스를 하겠다고 달려들 것만 같아몸을 사리며 정중하게 악수를 했 다 이어 몸을 튼 닥터 메이슨은 손짓을 해 한쌍의 부부를 그들쪽으 로 불러왔다. 그는 숀을 센터에서 공부할 하버드 의과 대학생이라 고 소개했다 숀은 자신이 무슨 전시품이나 된 것 같은 불편한 기 분이 되어 버렸다. 그 사나이의 이름은 하워드 페이스로, 닥터 메이슨의 소개에 의 하자면 세인트 루이스에 본부를 둔 굴지의 항공기 회사 최고경영 자인데 센터를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희사할 예정이라는 것이었 다. "이를테면 말이지 ." 페이스 씨가 숀의 어깨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내가 주는 선물은 자네와 같은 젊은 남녀들을 공부시키기 위한 걸세 포베스에서는 정말 훌릉한 일을 하고 있다네. 배을 게 많을 걸세 . 열심히 공부하게나." 그는 마지막으로 숀의 어깨를 한번 힘주어 두드린 다음 작별을 고했다 메이슨은 페이스를 다른 부부들에게 소개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서 숀은 갑자기 외톨이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마악 한 1.12 잔을 마시려던 숀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에 손을 "안녕 , 잘생긴 도련님 ." 고개를 돌리자 사라 메이슨의 흐리멍텅한 눈이 기다리고 있었 "뭘 좀 보여드릴 게 있어요." 그녀가 숀의 옷소매를 움켜쥐며 말했다. 당황한 숀은 클레어를 찾아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녀는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평소답지 않게 고집을 꺾은 그는 순순히 그녀에게 끌려 테라스 계단을 내려가 부두로 발을 옮겼다. 몇 발짝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는 연거푸 널빤지의 틈 사이로 뽀족 구두의 굽을 빠뜨리며 휘청거리는 사라를 부축해야 했다 요트로 이어지는 널판을 오르자 숀은 징 박힌 셔츠를 입은 흰 이빨의 커다 란 도베르만과 맞닥뜨렸다. "이 건 제 배 예요." 사라가 말했다. "레이디 럭(행운의 여인)이란 이름이죠. 한번 구경해보시겠어 _a_? " "제가 보기엔 갑판 위의 저 짐승이 방문객을 그리 반가워할 것 같지가 않군요. 숀이 말했나 "배트맨 발인가요?" 사라가 물었다 "저 녀석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어요. 저랑 함께 있는 한은 양처 럼 유순하게 굴 거 예요." "어쩌면 나중에 오는 게 솥겠어요." 숀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 전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거든요 " "냉장고 안에 음식이 잔뜩 있어요." 사라는 끈덕지게 숀을 종용했다. "그야 그렇겠죠. 하지만 전 그 천막 밑에서 보았던 굴요리를 먹 어보려고 단단히 작정하고 있었는걸요." "굴이라, 흠‥‥‥‥ 사라가 말했다 "괸찮은 생각인 것 같군요. 그럼 배는 나중에 보도록 해요." 사라를 데리고 다시 뭍으로 내려오자 숀은 그녀를 요트 구경을 나왔던 어떤 속 모르는 부부와 남겨둔 채 살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클레어를 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려니 억센 손 하나가 그 의 팔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돌린 숀은 경비 책임자인 로버트 해리 스의 푸석푸석한 얼굴과 마주쳤다. 해병대 식으로 머리를 짧게 깎 은 만인지는 몰라도 턱시도를 입었는데도, 그의 인상에는 별반 큰 변화가 느껴지질 않았다. 그의 눈이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셔 츠의 칼라가 너무 꽉 조이는 모양이었다. "자네에게 충고를 좀 해두고 싶네, 머피 ." 해리스는 완전 무시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숀이 물었다 "우린 이렇게도 비슷한 점이 많으니 정말 들어볼 만하겠군요." "자낸 정말 건방진 놈이로군." 해리스가 경멸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1.14 "그게 하시겠다던 충곤가요?" 본이 말했다. "사라 포베쓰한테서 떨어져 있어." 해리스가 말했다 "두 번 다시 잔소리는 하지 않겠어 "제기랄!" 숀이 말했다 "그럼 내일 소풍 가기로 한 걸 취소해야 되 겠군요." "날 자극하지 마." 해리스는 날카롭게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눈을 부라린 그 는 거들먹거리며 자리를 떴다 숀은 마침내 굴, 새우와 돌게들이 차려진 테이블 앞에서 클레어 를 찾아냈다. 접시에 음식을 담으며 그는 자신을 사라 메이슨의 손 아귀에 떨어지도록 방치해버렸던 것에 대해 클레어에게 야단을 쳤 다 "미리 경고를 해드렸어야 하는 건데.' 클레어가 말했다. "그녀는 술만 한잔 들어가면 바지를 걸친 것이라면 빨래줄이 라 도 쫓아다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답니다 " "그런 걸 난 또 내가 매력적인 것으로 착각을 했군요." 한참 바ㅂㅂ1 해산물 요리를 먹고 있으려니 닥터 메이슨이 연단으 로 올라와 마이크를 두드렸다. 손님들이 조용해지자 그는 하워드 페이스를 좌중에 소개하며 그의 관대한 헌금에 대해 거듭거듣 치 사를 반복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사그러들자 닥터 메이슨은 이 특별 초빙 내빈에게로 마이크를 넘겼다. "정말 끈적끈적하게 노는군요." 숀이 소관거 렸다. "제발 좀 착하게 가만 있어요." 클레어가 그를 나무랐다. 하워드는 으레 상투적인 문구로 말을 시작했지만 이내 그의 목 소리는 격앙된 감정으로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2천만 달러짜리 수표로 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는 못할 것 입니다 포베스 암센터는 제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습니다. 제 가 여기 오기 전, 저를 진찰했던 의사들 모두는 제 뇌종양이 도저 히 손을 쓸 수 없는 말기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거의 포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정말 다행 이었습니다. 제게 투병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시고 포베스 암센터 의 헌신적인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 립니 다. '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던 페이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공중 에 대고 수표를 흔들어 보였다 닥터 메이슨은 즉시 옆으로 다가가 혹시라도 칠흑 같은 비스케인 만으로 날아가 버릴세라 재빨리 수 표를 챙겨 넣었다. 또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와 함께 그날 저녁의 공식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손님들은 하워드 페이스의 격한 감격에 감동되어 앞으로 몰려나갔다. 그들은 그런 대단한 실력자가 이렇게도 인간 적인 모습으로 자신들의 심금을 울리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 던 까닭에 갑자기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숀은 클레어에 게로 고개를 돌렸다 "전 정말 따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13f 그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설쳤거든요. 점점 기운 이 빠지는 것 같아요." 클레어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저도 이만하면 됐어요 게다가 내일 아침에는 일찍부터 일을 해 야 하거든요." 그들은 닥터 메이슨을 찾아 초대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한참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어 그들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숀은 파행스럽게도 메이슨 부 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를 몰아다시 맥아더 가도로 나오자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연설은 왜 감동적 이었어요 " 그가 말했다. "그 덕분에 찰석 했던 가치가 있었어요." 클레어가 동의를 표했다. 숀은 클레어의 혼다 옆에 차를 대 주차를 시켰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후에 맥주를 몇 병 사들 게 있거든요." 그는 잠깐 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잠간 올라와 보실 생각 있으세요? "좋아요." 클레어는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대답을 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려니 혹시 자신이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는 선 채로 잠이 들 지 경 이 었다. 아파트 문 앞에 도착한손은 맞는 열쇠를 끼우기 위해 굼뜨게 열 쇠를 주물럭거 렸파 마침내 자물쇠가 풀리자 그는 문을 열고 스위 치를 찾아 벽면을 더듬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격렬한 비명 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얼 굴을 본 숀은 갑자기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조심해 1" 닥터 메이슨이 두 명의 앰율런스 구조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들은 특별한 들것을 이용해 헬렌 캐벗을 리어 제트기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계단을 조심하란 말이야1" 닥터 메이슨은 아직도 턱시도 차림이었다 그가 마가렛 리치몬 드로부터 헬렌 케벗을 실은 비행기가 착륙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 은 것은 마악 파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지체 없이 곧바로 자신의 재규어에 올랐던 것이다 구조원들은 극도로 조심을 하며 헬렌을 앰율런스 안으로 올려놓 았다 닥터 메이슨은 그 중병에 걸린 여자의 뒤를 따라 환자 칸으 로 올라탔다. "이 제 편안해졌어요?" 그가 물었다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겪었던 여정은 사실 너무도 고 생스러웠다 다량의 약제를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경련 발작은 완전히 진정되지를 않았었고 설상가상으로 워싱털 시 상공 에서는 좋지 않은 기상 조건과도 씨름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리로 오게 되어 정 말 기뻐요." 138 그녀가 힘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닥터 메이슨은 안심 하라는 듯 그녀의 팔을 꽉 쥐어 다독거린 다음 앰율런스를 내려 제 트기에서부터 내내 들것의 뒤를 따라왔던 그녀의 부모들과 대면을 했다. 상의를 한 끝에 그들은 캐벗 부인이 헬렌과 함께 앰율런스를 타고 존 캐벗은 닥터 메이슨과 한차를 타기로 결정을 했다. 닥터 메이슨은 공항에서부터 계속 앰율런스 뒤를 따라 차를 몰 았다 "이렇게 직접 나오셔서 맞아주시 기까지 하시다니 정말 감격 했습 니다" 캐벗 말했다. "옷차림으로 미루어 저희가 괜한 폐를 끼친 것 같군요." "사실은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답니다. " 메 이슨이 말했다. "혹시 하워드 페이스란 분을 아십니까?" "항공 산업의 거물 말씀이십니까?" 존 캐벗이 물었다 "네, 바로 그 분입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페이스 씨가 우리 포베스 센터를 위해 관대한 기부를 하셔서 작 은 기념 파티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답니다 하지만 제게 전갈이 도 착했을 땐 거의 다 끝나 있었지요."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 다니 정말 마음이 든든 합니다 " 존 캐벗이 말했다. "요새 대다수의 의사들은 자신들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환자들보다는 자신들에 더 관심이 많지요. 제 딸애의 병 덕 분에 그런 사실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 "유감이지만, 선생 같은 불평을 토로하시는 분들을 정 말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 포베스 센터에서는 항상 환자들이 최우선입니다. 만일 우리 가 이렇게 자금난에 허덕이지만 않는다면 더더욱 잘해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연구비들을 삭감하기 시작한 이후 로는 이렇게 발버등을 칠 수밖에 없답니다. " "만일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고쳐주시기만 하신다면 저 역시 기꺼이 연구비에 일조하겠습니다. " "환자분을 도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입니 다. "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캐벗이 말했나. "우리 애의 회독률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진실을 알고 싶습 니다 " "완치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우리는 헬렌이 이환된 것과 같은 종류의 종양에 대해 놀랄 만한 행운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헬렌을 이리로 이송 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보스턴에 계시는 선생들께서는 이상하리만 큼 선뜻 보내주지를 않더군요." "보스턴 의사들이 어떤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각종 검사란 검사 14(1 는 다 하고 싶어하고 더할 검사가 없으면 옛날에 했던 것을 다시 반복해보자고 하지요." "우리는 종양 생검을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탁을 했 었습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요즘은 조영 MRI로도 수아세포종 확진을 할 수가 있거든요 하지만 도대체 말을 들머주지를 않더군요. 그쪽에서 생검을 하건 말건 간에 어차피 여기 와서 다시 생검을 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헬렌의 종양 세포를 일부러 떼어내 조직 배양을 해야 하거든요. 그 것은 치료를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 중의 하나 입니다. " "그럼 언제쯤이나 그 생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캐 벗이 물었다 '가급적이면 빨리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비명을 지를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 숀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스위치를 올렸을 때 맛보아야 했던 공 포에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전 비명을 지른 게 아니에요." 자넷이 말했다 "저는 당신 놀래켜 주려고 그저 '에비' 하고 소리쳤을 뿐이에요 그런데, 전 저랑 당신이랑 그 여자중에 누가 더 놀랐는지 알수가 없더군요." "그 여자는 포베스 암센터의 직 원이야." 숀이 말했다. "벌써 열 번도 더 말했잖아.그녀는 홍보과 직원이란 말이야.날 보살펴주라는 임무를 받았다구." "보살펴주라는 게 밤 열 시에 당신 아파트까지 따라 들어오라는 뜻이었나 보죠?" 자넷이 코방귀를 뀌며 물었다. "날 어린애 취츱하지 마세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도착한 지 스물네 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아파트로 여자를 끌어들이 다니 ." "사실 들어오라고 할 생각은 별로 없었어 " 숀이 말했다. "하지만 그러자니 좀 어색한 것 같았어. 오늘 오후 여기까지 친 절하게 데려다 주고 더구나 저녁 때는 포베스 행사에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말이야. 그녀를 내려주려고 차 옆에 주차를 시키는데 문 득 고맙다는 표시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맥주나 한잔 대접할까 한 것뿐이었어 벌써 그녀한테는 내가 몹시 지쳐 있다는 말까지 다 한 시점이었다구 제기랄, 당신은 내가 사교술이 부족하 다고 항상 불평을 했었잖아! "참 편리하게도 그런 젊고 매력적인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여 태까 진 있지도 않던 예의 범절이 생겨났다니 정말 묘한 우연이로군 요. 자넷은 분통을 터뜨렸다. "전 제가 이렇게 의심을 하는 게 비이성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 아요 "어쨌든, 당신은 필요 이상으로 법석을 피우고 있는 거야. 142 숀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여긴 도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그들이 여기서 두 집 건너 있는 아파트를 줬어요 " 자릿이 말했다. "당신이 베란다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열어놓고 나갔더군요." "어떻게 여기 머무르게 됐지?" "제가 포베스 암센터에 취직을 했기 때문이지요." 자넷이 말했다. "그것도 놀래켜줄 소식 중 하나예요. 전 여기서 일하게 됐어요." 그날 저녁, 벌써 두 번씩이나 자넷은 숀을 놀라게 만들고 있었 다. "여 기서 일을 해?" 그는 귀를 의심하듯 되풀이해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포베스 병원에 전화를 했었어요." 자넷이 말했다 "한창 간호사를 모집중이더군요. 전 그 즉시로 채용이 되었어 요. 병원측은 곧바로 플로리다 간호협회에 연락을 해서 제 플로리 다 주 간호사 면허 서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120일짜리 임시 확인서를 발급받게 조치를 해주었어요." "그럼 보스턴 메모리 얼 병원은?" 숀이 물었다. "그건 걱정마세요." 자넷이 말했다 "즉시 임시 휴직을 허가해주더군요.요사이 간호직에 있으면 좋 ┼ 은 것 하나는 간호사들이 딸리기 때문에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수 가 있다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다른 대부분의 병원 직원들보다 훨씬 자유롭게 고용 조건을 협상할 수가 있어요 "글쎄 , 어쨌든 참 재미 있게 됐군." 숀이 말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말이 고작 이 었다 "그런 고로,우린 또 함께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이런 일을 저지르려 면 사전에 나랑 한번 상의를 해볼 수도 있었 잖아7" 숀이 물었다 "그럴 수가 없었어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은 벌써 길바닥에 있었으니까요.' "그럼 내가 떠나기 전에는?" 숀이 물었다 "아니면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잖아? 내가 보기 에 이건 미리 의논을 했어야 할 문제 같아." "글쎄 그게 요점이라니까요. 자넷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제가 여기까지 이렇게 따라온 건 당신이랑 의논을 하기 위해서 예요." 자넷이 말했다. "제 생각엔 이게 우리들이 '우리'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요. 보스턴에 있을 때 당신은 연구 니 학업이니 해서 눈코뜰새가 없이 바빴잖아요. 여기선 당신 스케 줄이 훨씬 편해질 거예요. 그러니 보스턴에서는 낼 수가 없었던 시 간을 충분히 가질 수가 있을 거예요 숀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열어 젖힌 미닫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플로리 다에 온 것 자체가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점점 더 이상하게 틀어지 고만 있었다. "어떻게 왔어?" 그가 물었다 "비행기로 와서 차를 한 대 빌렸어요." 자넷이 말했다 "그럼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는 건가?" 숀이 말했다. "만일 날 그냥 되돌려 보내려고 생각한다면 마음을 고쳐 먹으세 요." 자넷이 다시 목소리에 날을 세우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번이 어쩌면 제 생애 처음으로 무엇인가 제게 중요하다고 생 각한 것에 단호하게 행동을 취해본 걸 거예요 "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성난 듯했지만 숀은 그녀가 금세라도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 생각엔 '우리'라는 게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진 모르지만‥‥‥‥ 숀은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며 입을 열었다 "절대 그런 게 아니야, 문제는 내 자신조차도 여기 있게 될지가 확실치가 않다는 거라구. 놀라움에 자뎃의 입이 딱 벌어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넷이 물었다 숀은 다시 돌아와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는자릿의 갈색 눈을 똑 바로 들여다보며 그가 센타에 도착해 받은 심기 불편한 절대에 대 해 말해주었다 사람들 반은 친절하고,나머지 반은 거의 무례하기 까지 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닥터 베이슨과 팍터 레비가 수아세포종 연구에 참여하고 싶다던 그의 부탁에 대해 영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당신한테는 무슨 일을 하라는 거 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저 바쁘기만 한 잡일 나부랭이들일 뿐이야 " 숀이 말했다. 그들은 내가 어떤 특정 단백질에 대해 단종항체를 만들어주었 으면 하고 있어 만일 그게 안 되면 그 물질의 삼차원적인 분자 형 태를 판별할 수 있도록 그 단백질을 결정화시켜라도 달라는 거야.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하면 괜히 내 시간만 낭비하는 거라구 아무 것도 새로 배우는 게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러느니 차라리 보스턴으 로 돌아가 논문 제목으로 정한 발암유전자 연구나 계속하는 게 낫 겠어 ." "어쩌면 둘 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자넷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단백질 연구에 있어 도움을 주는 대신 그 대가로 그들에게 수아 세포종 연구에 참여시켜 달라고 하세요." 숀은 고개를 저었다. 14E "그들은 아주 단호하게 못을 박았어. 절대 생각을 바꾸진 않을 거야. 그들 말에 의하면 그 수아세포종 연구는 벌써 임상 실험 단 계에 들어갔는데 나는 여기에 기초 연구를 위해 파견된 것이라더 군 우리끼리 얘긴데, 내가 보기엔 그들이 날 끼워주지 않으려는 게 일본 사람들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더군." "일본 사람들이라뇨?" 자넷이 물었다. 숀은 자넷에게 포베스 센터가 모든 상업성 있는 생명공학 산물 들에 대해 특허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일본 기업에서 얻어 쓴 거 액의 연구 기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쩐지 이 수아세포종 연구도 그 계약에 묶여 있는 것 같은 생 각이 들어. 그렇지 않고서는 이 약삭빠른 일렬 사람들이 포베스에 그렇게 많은 돈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거든. 그들은 분명 언젠가는 자신들이 투자한 돈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 할거야 글쎄, 늦게 보다야 일찍 받는 편을 더 좋아하겠지?" "정 말 끔찍해요." 자넷이 말했다 하지만그 반응은 자신이 처하게 된 난처한상황 에 대한 것일 뿐, 숀의 사면초가가 된 연구 계획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플로리다로 오는 데만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반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 가 되어 있질 않았던 것이 다. "게다가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야 숀이 말했다. "나한테 제일 냉랭하게 굴었던 사람은 연구실장이었는데, 그녀 는 내 직속 상관이라구 " 1 자넷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벌써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이 포 베스 센터로 오기 위해 취했던 조치들을 원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또다시 물론 잠시 동안뿐 이기는 하겠지만,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의 밤 근무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앉아 있던 깊숙한 팔 걸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미닫이문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보스턴에 있었을 땐 플로리다로 간다는 게 너무도 좋게만 느껴졌었지만 이제 막상 도착해보니 이 것은 가장 멍 청하고 어리 석 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여겨 졌나. 갑자기 자넷이 몸을 홱 돌렸다 "잠간!" 그녀가 말했다. "묘안이 있을 것 같아요." "뭔데?" 자넷이 계속 침묵을 지키자 애가 탄 숀이 다그쳐 물었나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는 손에게 잠간 조용히 기 다리라는 시늡을 하며 소근거렸 다. 숀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낙심한 표정이 역력했었지만, 이제 그녀의 눈망울은 초롱 초롱 빛을 발했다 "됐어요, 자, 제 생각 좀 들어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 여 기 함께 머무르면서 그 수아세포종 일을 조사해 봐요. 한 팀이 되어서 말이에요." 148 "도대체 무슨 말이야?" 숀의 목소리는 영 미덥지가 않은 듯 통했나 "간단해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이 그 연구가 벌써 임상실험 단계로 들어갔다고 말했잖아 요. 그럼 문제 없어요. 내가 병실에 있을 테니까요 병실에 있으면 투약 시간이나 용량,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 치료 절차에 대해 알아낼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럼 당신은 실험실에서 몰래 그 정보를 이용해 연구를 할 수 있잖아요. 그 단종항체 연구에 모든 시간을 다 ◎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에요." 숀은 질겅질겅 입술을 씹으며 자넷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 다. 사실 그 역시도 그런 비슷한 수법으로 수아세포종 연구에 대해 염탐을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장 큰 장애 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지금 자넷의 위치라면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는 이른바 임상 정보라는 항목이었다. "그럼 몰래 차트들을 복사해 나한테 보여주어야 할 텐데?" 숀이 말했다. 그는 자넷이 과연 그런 짓까지 해주려 할까 한번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자넷은 병원 절차 나 규칙은 물론이요, 어떠한 규칙에도 단 한번 위반을 해본 적이 없는 철두철미한 준법 정신의 소유자였다. "복사기만 있다면 그런 건 전혀 어려을 게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투여되는 모든 약제들의 샘플도 필요할 거야." 숀이 말했다. "아마 내가 그 약들을 취급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그것도 문제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계 획인 것 같아." "오, 용기를 내요 자넷이 말했다. "도대체 뭔가요. 항상 나한테 너무 온실에서만 자랐느니 모험심 이 없느니 하며 면박을 준 게 바로 당신이 아니었나요?그런데 갑 자기 내가 모험을 하라니까 이번에는 당신 쪽에서 몸을 사리는군 요. 항상 뻐기고 다니던 그 잘난 기질은 다 어디로 숨었나요?' 숀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히는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당신 말이 맞아 해보기도 전에 포기를 해버리다니 정말 나답지가 않았어 . 그럼 한번 덤벼보자구 " 자넷은 몸을 던져 숀을 얼싸안았다 그 역시 팔을 벌려 그녀의 몸을 부등켜 안았다 한참이나 서로 포옹한 그들은 서로의 눈을 들 여다보며 입을 맞추었다 "자. 이제 음모는 다 짰으니 침대로 가자구." 숀이 말했다. "잠깐만요." 자넷이 말했다. "혹시라도 그런 뜻이었다면, 다시 말해두겠는데, 전 같이 잘 생 각은 추호도 없어요.우리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해보기 전 1 ,iO 에는 다시는 꿈도 꾸지 마세요." "오, 자넷, 그러지 마." 숀은 처 량한 울음소리로 애원을 했나 "당신도 아파트가 있고, 나도 있어요." 자넷이 그의 코를 잡아 비틀며 말했다. "난 정말 진지하게 의논을 해보아야겠다구요 " "너무 지 쳐 당신 설득시 킬 힘도 없다구." 숀이 말했다 "잘됐지 뭐 예요 " 자넷이 말했다.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감언이설로 꼬셔보아야소용이 없을 테니 까요 ." 밤 열한 시 30될, 히로시는 정문 앞 자기 책상에서 잠에 골아떨 어졌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경비원 하나를 제외하고, 포베스 의 연구동 건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데이비드 로웬스 타인이 떠난 아홉 시 이후로 히로시는 줄곧 혼자서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히로시는 연구 때문에 밤늦게까지 남아 있던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 전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시각이 동경에 서는 다음날 오후 한 시 30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그의 상사들은 히로시가 전한 정보들에 대해 점심 시간이 지 난 시각에 고위 간부들에게서 지시 사항을 하달받곤 했다. 사전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팩스에 달린 수신 표시들이 깜 박거리며 액정판에 '수신중'이란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계에서 종 이가 미끄러져 나오자 히로시의 손가락은 재빨리 그것을 나꿔챘 다. 약간의 떨림과 함께 의자에 깊숙이 눌러앉은 그는 동경에서 보 낸 메시지를 읽어 내려 갔다. 메시지의 첫부분은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쓰시타의 경영진은 전혀 예측지 못했던 하버드 대학생의 출현에 대해 몹시도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포베스와의 계약에 위배되는 중대한 위약사항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메시지는 계속해 암의 진 단과 치료 분야가 21세기 최고의 생명공학 및 제약업의 총아가 될 것이라는 회사의 굳은 신념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것이 20세기에 노다지 밭을 이루어왔던 항생 물질들을 훨씬 능가 하는 경제적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히로시를 근심스럽게 한 것은 그 메시지의 두번째 부분이었다. 그곳에는 경영진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의향이 없다는 것과 히 로시가 다나카 야마구치에게 연락을 취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다나카에게 숀 머피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또 한숀 머피가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면 그를 즉시 동경으로 보내라 는 내용이 아울러 적혀 있었다. 길게 팩스 용지를 접은 히로시는 싱크대 위로 종이를 들고 가 불 을 붙였다. 그는 수돗물을 틀어 태운 재들을 깨끗이 씻어내렸다. 싱크를 씻어 내던 히로시는 자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히로시는 동경에서의 메시지로 평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이제 메시지를 받아보고 나니 더욱더 마음이 산 란해지고 있었다. 히로시의 상사들이 히로시가 혼자 힘으로 적절 히 그 상황을 처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결코 좋은 152 징조가 아니었다 그들이 대놓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 나카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지시는 그런 뜻을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그것이 히로시에게 암시하는 바는 자신이 중요 사안에서 신임을 받지 못한다는 뼈아픈 사실이었는데, 만일 실제로 신임을 잃게 되었다면 그가 기대하던 쓰시타의 상층부로의 상승은 자동적 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었다. 히로시가 보기에 그 자신은 벌써 몹시도 체면이 깎여버린 것 같았다. 불안감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만 요지부동의 복종심으로 히 로시는 1년여 전, 포베스 센터로 오기 직전 건네 받은 응급 전화번 호 명단을 끄집어냈다. 그는 다나카의 전화번호를 찾아내 다이얼 을 돌렸다. 전화선을 타고 벨소리가 들려오자 히로시는 그 하버드 견습생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만일 그 의사 지망생이 포베스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상사들에 게 능력 테스트를 받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빠른 일본말로 녹음된 송신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는 메시지에 이어 ㅂㅂ1-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히로시는 지시에 따 라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긴 다음 회신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덧붙 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히로시는 다나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히로시는 이 다나카란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나카는 어떤 산업 첩보가 필요할 때마다 일본 상사들이 단골로 이용하는 인물이었다. 히로시가 걱정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은 그가 잔인하 기 짝이 없는 일본 마피아, 야쿠자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풍문 때 문이었다. 몇 분 뒤, 쉰 듯한 벨소리가 텅 빈 실험실의 적막에 부)i연스러 울 정도로 요란하게 울렸다. 깜짝 놀란 히로시는 첫번째 벨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수화기를 나러 챘다 "모시모시 . 히로시는 너무 서둘러 허겁지겁 전화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초조 함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응답을 한 목소리는 단검처 럼 날카롭고 예리 했다 다나카였다 3월 3일 수요일, 오전 8시 30분 여덟 시 반, 눈이 떠지자 숀은 곧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나꿔챈 그는 즉시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아침 일찍 실험실에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만일 자넷의 계획대로 일을 꾸밀 작정이라면 각별한 노력 이 필요할 것이다. 짧은 반바지를 걸친 숀은 발코니로 걸음을 옮겨 자넷의 미닫이 문에 가볍게 노크를 했다. 문에는 아직도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노크를 반복하자 창문 뒤에 그녀의 졸음 가득한 얼굴이 나타났다 "나 보고 싶었지?" 자넷이 미 닫이문을 열자 숀이 장난스럽 게 입을 열었나 "몇 시 예요?" 자넷이 물었다 그녀는 밝은 아침 햇살에 눈을 깜박거렸다. "아홉 시가 다 됐어 ." 숀이 말했다 "난 15분이나 20분쯤 뒤 엔 출발을 할 거야. 같이 갈까?" "각자 따로 차를 가지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자넷이 말했다.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하거든요. 전 여길 며칠밖엔 쓸 수가 없어 요 "그럼 저녁 때 봐." 숀이 말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숀 !" 자넷이 그를 불렀다. 숀은 몸을 돌렸다. "행운을 빌어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도." 숀이 말했다 옷을 갈아 입은 숀은 즉시 포베스 센터로 달려가 연구동 건물 앞 에 차를 세웠다. 그가 현관을 통과한 것은 아홉 시 30분을 갓 지난 시각이었다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로버트 해리스가 책상에 서 몸을 곧추세웠다 그는 그 책상을 맡은 경비원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침 울함으로 구겨 져 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기분이 좋은 때란 한번도 없는 것 같 았다 "느긋하시구만 해리스가 화라도 돋구듯 도전적으로 쏘아붙였다 "아! 군발이 아저씨 . 15E 숀이 말했다. "어제 메이슨 부인은 잘 막으셨소? 당신이라도 레이디 럭 구경 을 시켜주겠다고 필사적으로 잡아끌진 않던가요?" 로버트 해리스는 눈을 부라리며 숀이 회전문에 기대 책상에 앉 은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는 모습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해 리스는 재빨리 적절한 반격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은 경비원이 빗장을 풀어주자 숀은 재빨리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어 떻 게 하루를 시작할까 망설이던 숀은 먼저 엘리 베이터를 잡아 타고 7층으로 올라가 클레어의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어색하고 찜찜하게 작별을 고해야 했던 까닭에 사실 그녀와 대면 을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숀은 자초지종을 설명하 고 화해를 하고 싶었다. 클레어는 두 개의 책상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된 사무실을 상사 와 함께 쓰고 있었다. 하지만 숀이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클레어 는 혼자였다 "안녕 하세요 !" 숀이 명 랑하게 인사를 건넸다. 클레어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숀을 올려다보았다. "어젯밤엔 잘 주무셨겠지요. 그녀는 빈정대며 가시 돋친 응수를 했다. "어젯밤은 정 말 미안하게 됐어요." 숀이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런 게 얼마나 어색하고 불쾌한 일인지 잘 알아요.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데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말이 죠 맹세컨대 자넷의 방문은 전혀 예측도 못했던 것이었답니다. " "물론 그랬겠죠." 클레어가 차갑게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숀은 애원을 했다 "저한테서 등을 돌리지 말아주세요.당신은 여기서 저를 따뜻하 게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사과를 드리고 있잖아요. 제 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당신 말이 옳아요." 클레어는 마침내 조금 부드러워지며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다 지난 일로 생각해요. 자,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 요?" "닥터 레비와 이야기를 좀 해보아야 할 것 같거든요." 숀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가 있을까요? "무선 호출을 하시면 돼요." 클레어가 말했다 "여기 직원들은 모두가 호출기를 가지고 다녀요. 당신도 어서 하 나 장만하세요." 전화를 집어든 그녀는 교환에게 닥터 레비가 원내에 있는지를 확인한 다음 그녀의 무선 호출을 부탁했다. 클레어가 손에게 어디로 가면 무선 호출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비서 중의 한 명으로 닥터 레비가 클레어의 사무실에서 불과 몇 걸음 안 떨어진 자기 사무실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158 2분 뒤, 숀은 이번에는 또 어떤 대접을 받을까 가슴을 졸이며 닥 터 레비의 사무실에 노크를 했다. 들어오라는 닥터 레비의 목소리 가 흘러나오자 그는 닥터 레비가 어떠한 태도로 나오더라도 자신 만은 끝까지 예의를 지키자고 단단히 다짐을 했다 닥터 레비의 사무실은 숀이 센터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 이 익숙해져 있던 학구적인 연구실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여느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사무실은 학술지와 책들, 현 미경. 아무렇게나 놓인 현미경용 슬라이드, 유리 현미경 사진, 흩 어진 칼라 슬라이드, 엘렌마이어 플라스크, 배양 접시, 조직 배양 실험과 실험 노트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상쾌한 아침 이 에요." 숀은 전날보다는 조금이라도 잘해보려는 듯 명랑하게 인사를 건 ㅁ다. "당신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마크 핼펀한테 올라오라고 부 탁을 했어요." 닥터 레비는 숀의 인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곧바로 본론으 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우리 연구실 수석인데, 지금 당장은 유일한 기사이기 도 해요. 당신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줄 거예요.공급실엔 웬 만한 게 다 있지만 혹시라도 더 필요한 게 있으면 그가 시약이나 물품 청구도 해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요청은 먼저 내 승인을 받 도록 하세요 그녀는 책상 위로 손에게 조그마한 시약병 하나를 밀어 건네주 었다. "이게 그 당단백질이에요. 절대 이 물질이 연구소 건물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아시리라 믿어요. 재가 어 제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에요. 맡은 일을 열심히 하세요 ◎것만 해 도 딴데 한눈을 팔 시간이 없을 거예요 행운을 빌어요. 당신이 닥 터 메이슨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만큼 훌릉한 재주꾼이었으면 좋 겠군요." "서로 조금씩만 더 친절하게 굴면 지내기가 한결 더 편안해질 것 같지 않으세요?" 숀이 물었다. 그는 손을 뻗어 책상 위의 시약병을 집어들었다 닥터 레비는 이마 위로 흘러 내려왔던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 몇 가닥을 뒤로 쓸어넘 겼다 "솔직하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당신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어요. 만일 당신이 열심 히 만 한다면 사이 좋게 지 낼 수가 있을 거 예요." 바로 그 순간 마크 핼펀이 닥터 레비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낙터 레비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숀은 세심히 상대방을 살폈다 그는 한 서른 살 쯤 되어 보였다. 그는 손보다 조금 큰 키에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양복 위로 얼룩 한 점 없는 깨끗한 흰 가운 을 걸친 그는 실험실에서 일을 하는 기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백화 점 화장품 판매대의 점원 같아 보였다. 다음 30분 동안 마크는 숀을 거들어 전날 클레어가 구경을 시켜 주었던 5층위 커다란 빈 실험실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마크가 떠날 무렵이 되자 숀은 자신에 게 허용된 물질적 인 면에 대해 흡족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자신이 진짜 흥미를 느끼고 있는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IfO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닥터 레비가 건네준 시약병을 집어든 숀은 뚜껑을 열고 안쪽에 담긴 미세한 흰 분말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하 지 만 그것은 아무런 냄새도 없는 흰 가루일 뿐이었다 실험 대 옆으 로 바짝 의자를 당겨 걸터앉은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용해도를 가늠해보기 위해 각종의 용매에 그 분말을 녹여보 았다. 그는 그 물질의 분자량을 측정해볼 생각으로 전기 이동 설치 도 해보았다 한 시간 가량 정신 없이 일에 몰두해 있던 숀은 곁눈에 힐끗 비 친 어떤 움직임에 갑자기 주의가 산만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계단으로 통하는 비상 출 입구까지 휑하게 펼쳐진 실험실의 텅빈 공간뿐이었다. 숀은 작업 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냉장고의 콤I 레서가 돌아가는 나지막한 회전음과 숀이 용액을 과포화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던 진동 플랫폼의 가드다란 진동음뿐이었다. 혹시 익 숙지 않던 쥐죽은 듯한 정적에 환각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머리를 스친다. 숀은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들고 있던 기구들을 내려놓은 그는 실험실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연결된 복도들을 유 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주위를 살피면 살필수록 숀은 자신이 진 짜 무엇을 보았었는지 자신이 없어졌나. 계단으로 이어진 비상구 앞에 도착한 숀은 문을 당기고 계단을 살펴볼 생각으로 앞으로 발 을 내디◎다 사실 그는 무엇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갑작스런 행동으로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어떤 사람과 거의 얼굴을 맞닥뜨리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깜 짝 놀라 숨을 멈추었다. 숀은 이내 그의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이 히로시 규하마라는 사실 을 깨달았다. 숀은 전날 자신이 클레어의 소개로 그와 인사를 나뒀 음을 기억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 히로시는 민망한 듯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괜찮습니다 숀은 같이 허리를 굽혀 답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문을 열기 전에 창문으로 내다보았어 야 하 는 건데 ." "아뇨, 아는, 잘못한 건 접니다. 히로시가 고집스럽 게 우겨댔다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 숀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실없는 논쟁인 것 같군요 "내 잘못이 라니까요." 히로시는 끝내 후퇴를 거부했다. "이 리로 들어오시는 길이 었나 보죠?" 숀이 어깨 너머로 자신이 차지한 실험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아는." 히로시가 말했다. 그의 미소는 어느새 함박 웃음으로 변해 있었 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162 하지만 그는 말과는 달리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연구를 하시고 계세요? 숀은 그저 대화를 이어갈 생각으로 질문을 던졌다 "폐암에 대해서죠." 히로시가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저 역시 감사를 드립니다. " 숀은 반사적으로 응대를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왜 자신이 히로시에게 감사한단 말을 하고 있는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었다 히로시는 몇 번이나 깊숙이 머리 숙여 절을 한 후에야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한 다음 다시 실험대로 걸음을 옮겼다. 어 쩌면 그가 애초 보았던 그 움직임이 비상구에 달린 자그마한 창문 을 통해 비쳤던 히로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지만 그것은 히로시가 내내 거기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인데,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언짢은 일이었다 일단 정신 집중이 무너졌던 터라 숀은 그것을 기회 삼아 로저 칼 벳을 만나러 지하실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하지 만 그와 대면을 하 자 숀은 자신의 흥측한 등 기형에 대한 자학으로 말할 때조차 상대 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칼벳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 너무도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벳 씨는 숀이 항체 반 응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당단백질을 주사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실험용 생쥐들을 골라주었다. 숀은 포베스 센터의 다른 연구원들 역시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리라는 사실을 뻔 히 알고 있었기에 여기서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리라는 기대는 전 혀 하지도 않고 있었지만, 자신이 자신만의 방법들을 동원하기 전 에 일단시작은 남들처럼 처음부터 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 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른 숀은 5층 버튼을 누르려다 이내 생각을 바꾸어 6층 버튼을 눌렀다 자신도 명확히 느끼고 있지는 못했지 만, 숀은 어쩐지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고 급기야는 외로움 까지도 맛보고 있었다. 포베스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실로 괴롭기 그지없는 경험이었는데 그것은 단지 적대적인 사람들이 우글거리 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 얼굴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정말 견 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숀은 지난 연구 환경들이 제공했던 연구원 들과의 교분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따뜻한 인간 관계를 찾아 방황을 하게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6층을 향했던 것이다 숀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사람은 데이비드 로웬스타인이었다. 그 는 호리호리하고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마침 조직 배양 시험관들을 살피느라 실험대 위로 깊숙이 몸을 숙이고 있었다. 숀 은 그의 왼쪽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습니까7" 데이 비드가 실험 대에서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잘돼 갑니까?" 전날도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숀은 혹시 데이비드가 자신을 까 맣게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금 자신을 소개했다 "아주 잘되어 가고 있어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164 "무슨 연구를 하고 계세요?" 순이 물었다 "흑색종에 관한 거 예요."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오 ." 숀이 말했타. 왠지 어색하기만 한 대화를 피해 숀은 어정정하게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히로시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 았지만 계단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의도적으로 그를 피해 대신 배 기구 밑에서 분주히 작업을 하던 아놀드 하퍼에게로 발길을 돌렸 다. 숀은 그가 이스트로 모종의 유전자 조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놀드와 대화를 나누어보려던 노력은 데이비드 로웬스타인에 게 접근했을 때만큼이나 별로 성과가 없었다. 숀이 아놀드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장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는 짤막 한 한마디뿐이었다 그가 숀의 연구 과제로 주어진 당단백질의 공 급원이었음에도 불구,그는 전혀 그것에 대해 표출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슬렁어슬렁 실험 구역을 돌아다니던 숀은 출입금지 표지가 붙 은 검사실의 유리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날 했던 것처럼 동그 랗게 손을 오므린 그는 다시금 유리문에 붙어 서 안쪽을 들여다보 았다 하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문들이 여러 개 줄지어 늘어선 복도 하나뿐이었다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 본 숀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발을 내디◎다 등 뒤로 문이 닫히며 공기의 흐름이 차단되었다 실험실의 이 출입구 부분은 문을 열 때 밖으로 공기가 새나가지 않도록 유압이 걸려 있었다. 문 바로 안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은은 흥분으로 맥박이 빨라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10대 때 지미, 브래디와 함께 스웡스코트나 마블헤드 같은 부유한 주택가 동네를 털러 갔 을 때 느꼈던 바로 그런 짜릿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TV나 그런 류 의 물건들에는 손을 댔지만 진짜로 비싼 것들은 한번도 훔쳐본 적 이 없었다. 일단 보스턴까지만 가지고 나오면 장물 처리는 식은죽 먹 기 였다. 물건을 판 돈은 아일 랜드 공화군(IRA) 연락병에 게 건네 졌지만, 사실 숀은 그 중 얼마나 진짜로 아일랜드에 송금이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 왔음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를 않자 숀은 계 속 앞으로 전진을 했다.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초밀폐 실험실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가 처음 들여다본 방은 빈 실험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비어 있었다 방안에는 실험 기 구조차 하나도 들여 놓지를 않았다. 안으로 들어선 숀은 실험대 표 면을 살펴보았다. 한때 사용한 흔적이 있었지만.그리 많이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실험 대 위에 비치되었펀 기구들이 남긴 고 무 자국들을 가늠해낼 수가 있었는데 그 실험대가사용된 적이 있 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은 그것들뿐이었다. 허리를 굽힌 숀은 캐비닛 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 에는 반쯤 채워진 시 약병들과 일부는 파손이 되어버린 유리 실험 기구들이 몇 개 들어 있었다. "거 기 멈춰 !" 고함 소리에 숀은 방향을 돌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을 허리에 짚고 문간에 버티고 선 사람은 다름아닌 로버트 해 166 리스였다. 그의 퉁퉁한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이 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당신 까막눈이야, 하버드 선생?" 해리스가 으르렁거렸다 "빈 실험실 하나 들러봤다고 그렇게 법석을 떨건 없잖소.- 숀이 말했다 "여 긴 출입금지 구역 이 야." 해리스가 말했다. "여긴 군대가 아니 란 걸 기 억 했으면 좋겠군." 숀이 말했다 해리스는 험악하게 숀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 신의 거대한 체구로 숀을 위협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숀은 꼼 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그저 온몸을 긴장시켜 힘을주었을뿐이었 다. 10대 때 길바닥을 휘어잡던 경험으로 숀은 본능적으로 만일 그가 손을 들어 위협을 하고 나선다면 어디를 어떻게 강타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해리스가 정말 손을 대지 않을 지 자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정말 사고뭉치로군." 해리스가 말했다. "난 널 처음 보는 눈간부터 네가 말썽을 피을 거라는 걸 알고 있 었어 ." "참 재미 있군 나도 당신을 보고서는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말이 오." "나한테 장난칠 생각은 말라고 했을 텐데." 해리스가 말했다 그는 숀의 코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코에 여드름이 몇 개 있군요" 숀이 말했다 "혹시 모르고 계실까 얘기해주는 거 예요." 해리스는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숀을 내려다보았지만 잠시 꿀먹 은 벙어리처럼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더욱더 붉게 변해 있었다 "너무 과로를 하는 모양이로군요. 숀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여기 들어와 뭘 하는 거야7' 해리스가 성난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그저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숀이 말했다 "초밀폐 실험실이라는 얘기가 들려서 어떤 덴지 한번 보고 싶었 거든요." "둘 셀 동안에 빨리 꺼져 " 해리스가 말했나.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가락으로 유리 문을 가리켰다 숀은 터 덜터 덜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데가 더 있는데 숀이 말했다. "함께 구겋 이나 할까요?" "꺼져 !" 해리스는 유리문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자넷은 아침 나절 느지막이 간호부장 마가렛 리치몬드와 면담을 168 가졌다. 그녀는 숀이 깨웠을 때부터 출발을 하기 직전까지 정성들 여 샤워를 하고, 다리에 난 털을 깎고 머리를 말린 다음 옷을 다리 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포베스 병원 취직이 이미 다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첫 면담인지라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아직도 숀이 곧바로 보스턴으로 돌아가 버리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걱정거리가 태산 같았는데, 그중의 또 하나는 앞으로 며칠 간 어떻게 생활아 급변해버릴지 도저히 감 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가린 리치몬드는 자넷의 예상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녀의 전 화 목소리는 여리고 자그마한 여인의 이미지를 갖게 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그녀는 강렬한, 어떻게 보면 포악해 보이기까지 한 커다 란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친절하고 사무적이었으며 자넷이 포베스 병원의 한 식구가_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 해주었다. 그녀는 심지어 자넷 마음대로 근무 순번을 고르도록 하는 친절까지도 베 풀었다. 자넷은 낮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기뻤 다 그녀는 사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밤 근무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실 근무를 하고 싶다고 했지요7" 리치몬드가 메모장을 뒤적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 자넷이 말했다. "병실 근무를 하는 게 환자도 접할 수 있고 해서 제일 보람이 있 는 것 같아요." "4층 병실에 낮 근무 자리가 하나 있군요." 리 치몬드가 말했다. "마음에 들 것 같아요." 자넷이 명 랑하게 말했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고 싶으세요? 리치몬드가 물었다. "내일부터면 어떨까요?" 자넷이 말했다 사실 그녀는 적당한 집도 구하고 일들도 대충 정 리를 하려면 며칠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시바 ㅂㅂ1 그 수아세포종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긴박감은 그녀를 바삐 채 찍 질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돌아다니며 근처에 집들을 좀 보아둘 생각이거든 리치몬드가 말했다. ·,나라면 해변 쪽을 얻겠어요. 이젠 멋지게 복원을 했거든요. 아 마도 코코넛 그로브가 좋을 거예요 다 자넷이 덧붙였다 ·,내가 보기 엔 이 근처에 집을 얻는 건 그리 좋지가 않을 것 같아 "말씀대로 해볼게요." 자넷이 말했다. 면담이 끝난 것으로 "병원 한바퀴 둘러볼까요?" 리치몬드가 물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 자넷이 말했다. ' 170 생각한 자넷은 몸을 일으켰 리치몬드는 먼저 자넷을 데리고 복도를 건너 행정부장인 댄 셀 렌버그에 게 인사를 갔다. 하지만 마침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신 1층으로 내려가 외래 시설과 병원 강당 그리고 식당 을 둘러보았다. 2층으로 올라온 자넷은 중환자실 수술장 화학 검사실, 방사선 과와 의무 기록실을 차례로 구경한 다음 4층으로 올라갔다. 자넷은 병원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은 생각과는 달리 명랑한 분 위기였고, 현대식 설비와 간호하는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인 적절한 인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환자들 모두가 암 환자일 거라는 사실과 자신이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 그저 생명 연장의 보존적인 치료나 해야 하는 암울한 암 병동에 근무해 야 한다는 것에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병원 분위기에는 호 감이 갔다 환자 중에는 늙은 사람도 있고, 중환자도 있고, 어떤 사 람들은 겉으로는 환자 같지도 않아 보였다 환자들의 구성으로 봐 서는 포베스 병원은 분명 일을 한번 해볼 만한 곳이라고 느껴졌다. 여러 면으로 이곳은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과 비슷했다. 단지 건물 이 더 새롭고 화려하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4층은 다른 병실 층들과 똑같은 구조로 꾸며져 있었다 그것은 한 개의 중앙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1인용 병실들이 배치된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였다 엘리베이터 옆, 병동 한가운데 위치한 간호사실은 커다란 U자형 카운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뒤로 다 용도실 하나와 상하 2단으로 된 네덜란드식 도어가 달린 벽장처 럼 생긴 약품실이 딸려 있었다. 간호사실 건너편은 환자들 휴게실이 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에는 청소용 개수대가 달린 청소도구 보 관실이 있었고 긴 중앙복도의 양 끝에는 각각 계단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한바퀴 구경이 끝나자 리치몬드는 자넷을 낮 근무 수간호사 마 조리 싱글턴에게로 인계했다. 자넷은 금세 마조리를 좋아하게 되 었다. 그녀는 콧등에 깨알 같은 주근깨가 박힌 자그마한 체구에 빨 간 머리였다. 그녀는 시종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결 코 미소를 잃은 적이 없었다 자넷은 다른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 었지만 수가 너무 많아 이름을 제대로 기 억 할 수가 없었다. 리치몬 드와 마조리 외에 그녀가 기억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병동 사무원 인 팀 카첸버그뿐이었다 그는 병원의 병실 사무원이라기보다는 비치보이 같아 보이는 금발의 미남이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 학위 가 살아나가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야간학 교에서 의 예과를 다니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같이 일을 하게 돼 정말 기뻐요." 자그마한 응급 상황 하나를 해결하고 돌아온 마조리가 입을 열 었다 "보스턴은 섭섭해 하겠지만, 우리측으로 보아선 대단히 즐거운 일 이 에요.' "저도 오게 되어 정 말 기쁘답니다 " 자넷이 말했다 "사실 셀라 아놀드가 일을 당한 이후론 손이 좀 모자랐어요." 마조리가 말했다 "무슨 일이 었는데요?" "집에 괴한이 들어와 불쌍한 셀라를 강간하고 총으로 와버렸어 요 마조리가 말했다 172 "병원에서 멀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말이에요. 하여튼, 이 도시 생활fl 동참하게 된 걸 환영해요." "정 말 끔찍하군요." 자넷이 말했다. 어쩌면 그것이 리치몬드가 병원 바로 근처에 오 지 말라고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침 지금 병실엔 보스턴에서 온 환자들이 몇 명 있답니다. - 마조리가 말했다. "한번 만나 보실래요?" "네, 좋아요." 자넷이 말했다. 마조리는 고무공처럼 통통 정기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넷은 그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거의 뜅박질을 해야 함께 병원 서쪽에 위치한 한 병실로 들어갔다. 했다 그들은 "헬 렌 ." 침대 옆에 걸음을 멈춘 마조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환자의 이 름을 불렀다. "보스턴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밝은 초록색 눈이 번쩍 떠졌다. 그 강렬한 눈빛은 환자의 창백한 안색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병실에 간호사 한 명이 새로 오셨어요 " 마조리가 말했다. 그녀는 이어 두 여자들을 인사시켜 주었다 헬렌 캐벗of란 이름은 즉시 자넷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보 스턴에 있을 때는 가벼운 질투까지도 느꼈던 자넷이었지만 포베스 에서 헬렌을 발견하니 적잖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존재 는 숀을 플로리다에 붙들어 두는 데 분명히 일조를 할 것이다. 자넷은 헬렌과 몇 마디를 나눈 다음 마조리의 뒤를 좇아 병실을 나섰다. "슬픈 일이에요." 마조리가 말했다. "저렇게 귀여운 애가 오늘 생검을 받을 예정이에요. 치료에 잘 반응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전 당신네들이 그녀가 이환된 것과 같은 종류의 종양에 대해서는 백 퍼센트의 완치 성과를 올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자넷이 말했다. "그녀라고 치료가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마조리는 걸음을 멈추고 자넷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말 놀랍군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 수아세포종 치료 성적은 물론이고, 보자마자 진단까지 맞 추었어요. 혹시 무슨 초능력이라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천만에요." 자넷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헬렌 캐벗은 제가 일하던 보스턴 메모리얼에 입원해 있었어요 오가는 얘기로 그녀에 대해 들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요." 마조리가 말했다. '아까 잠깐은 내가 초능력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리등절했어 요."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헬렌 캐벗에 대해 걱정하는 건 그녀의 종양이 상당히 진전 174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왜 보스턴에서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어 요? 벌써 수주일 전에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거든요." "저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자넷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음 환자는 루이스 마틴이었다. 헬렌과는 대조적으로 루이스는 전혀 환자 같아 보이지를 않았다. 실제로 그는 정장 차림으로 의자 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그날 아침 도착해 아직도 입원 수속을 하는 중이었다. 비록 병색은 완연하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미루어 그가 몹시도 불안해 하고 있다글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마조리는 다시금 둘을 인사시키며 루이스 역시 헬렌과 같은 문 제를 가지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훨씬 더 순조로운 상태라고 덧 붙였다 루이스와 악수를 나눈 자넷은 그의 손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음 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슨 위안의 말이라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공포에 질린 눈을 들여다보았다. 자신 이 루이스의 병명이 수아세포종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기뻐하고 있 음을 깨달은 자넷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병실에 수아 세포종 치료를 받는 환자가 둘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치료법 에 대해 알아낼 기회가 많다는 뜻이었다. 숀이 기뻐할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다시 간호사실로 돌아오자 자넷은 수아세포종 환자들이 모두 4층으로 입원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절대 그렇진 않아요 " 마조리가 말했다. "우린 종양별로 환자를 모아놓지는 않아요. 그냥 무작위로 방을 정해주죠. 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 세 명이 우리 병동에 입 원해 있어요 지금 한 명이 더 수속을 하고 있어요. 휴스턴에서 온 캐서린 샤렌버그라는 젊은 여자 환자예요." 자넷은 자신의 흥분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보스턴에서 온 환자가 한 명 더 있어요." 마조리가409호 앞에서 발길을 멈추며 말했다. "매력적인 여잔데 어찌나 쾌활한지 다른 환자들한테 활력을 불 어넣어 주기까지 한답니다. 노스 엔드라는 동네에서 왔다고 했던 것 같아요." 마조리는 노크를 했다 조용한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대답이 흘 러나왔다. 마조리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자넷은 마조 리의 뒤를 바짝 따랐다. "글로리아." 마조리가 환자를 불렀다 "화학요법은 좀 어때요7" "정 말 마음에 들어요." 글로리아가 농으로 대답을 했다. "방금 정맥주사를 맞기 시작했어요." "새로온 간호사를 소개시키려고 데려왔어요. 보스턴에서 왔어 요 마조리가 말했다 자넷은 병상에 누운 여인을 차다보았다 그녀는 자넷과 동갑쯤 되어 보였다. 몇 년 전이라면 자넷은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암이 노인들에게나 생기는 병 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자 176 그녀는 그 병이 공평하기 그지 없게도 만인을 대상하고 있다는 반 갑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 었다. 글로리아는 까만 눈망울과 윤기나는 짙은 머리칼을 가졌음직한 가무잡잡한 올리브 색 피부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 리는 가느다란 검은 솜털로 덮여 있었다 왜나 풍만했을 것으로보 이는 몸매이긴 했지만 이제 환자복에 가린 그녀의 한쪽 가슴은 절 벽 처 럼 납작했다. "위 디콤 씨 1" 마조리가 깜짝 놀란 듯 신경 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여 기서 뭘 하시는 거 예요?" 환자에게만 정신을 팔고 있던 자넷은 병실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돌리자 코가 약간 휜 녹색 유니폼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톰을 나무라진 마세요 " 글로리아가 말했다. "그저 도와주려 던 것뿐이었어요." "내가 417호실을 치우라고 했잖아요!" 마조리는 글로리아의 말은 아랑곳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 "여긴 왜 들어온 거 예요?" "화장실 청소를 좀 해드리고 싶었어요." 톰이 얌전하게 대답을 했다. ◎는 애써 마조리의 날카로운 시선 을 피하며 양동이 밖으로 튀어나온 대걸레의 자루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자넷은 이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요 정같던 마조리가 갑자기 위압적인 폭군으로 돌변해버린 것에 놀라 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방 준비도 안 하고 새 환자를 어떻게 받으란 말이에요7' 마조리가 다그쳐 물었다 "당장 가서 치워놓으세요.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문 밖을 가리켰다. 사내가 나가자 마조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저 톰 위디콤이란사람이 이 포베스 센터 최고의 골칫 덩 어 리 예요 " "하지만 나쁘게만 생각하진 마세요 글로리아가 말했다 "나한테는 아주 천사처럼 잘 대해줘요. 매일 들러 인부를 물어주 곤 해요.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런 일을 하라고 고용된 게 아니에요." 마조리가 말했다 "먼저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게 도리잖아요." 자넷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똘똘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능 력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병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 음이 흡족해졌다 어쩐지 이 마조리 싱글턴과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톰은 양동이에서 비눗물을 흘리며 허겁지겁 복도를 달려 417호 실로 뛰어들었다 문 버팀최를 푼 그는 문을 닫은 뒤 문짝에 몸을 기 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은 글로리아의 병실 문에 처음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그를 사로잡았던 그 숨막히는 공포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때 그는 마악 그녀에게 석시닐콜린을 주려던 참이었다 만일 마조리와 그 새로온 간호사가 조그만 늦게 나타났 178 더라면 그는 영락없이 현장에서 붙들려 버렸을 것이파 "모든 게 다 잘됐어요, 앨리스 " 톰이 어머니를 달래며 말했다.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어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두려움이 수그러들자 이제 톰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처음 보았 던 순간부터 마조리를 단 한번도 좋아한 적 이 없었다. 그녀가 내보 이는 등글등글한 원만한 성격은 그저 가식적인 겉치레였을 뿐 실 상 그녀는 남의 일에 성가시게 참견을 하며 달려드는 암캐에 불과 했다. 앨리스가 그녀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톰은 그 이 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 망할 년도 지난번 마취실 주변 을 기웃거린다고 쓸데없이 참견을 하던 셀라 아놀드에게 했던 것 처럼 처치를 해버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해야 할 일 이라고는 행정 부서들 청소를 할 때 그녀의 주소를 알아두는 것뿐 이었다. 그 다음엔 누가 진짜 보스인지 확실히 알게 해주면 되는 것 이 었다 마조리를 혼내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달래 평정을 되찾은 톰은 기대섰던 문짝에서 몸을 일으키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이 잡 역부란 직책으로 얻을 수 있는 행동의 자유는 좋아했지만 실제 청 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만일 동료 응급 구조원들과 함께 지내는 일만 없었더라면 그는 앰율런스 일을 선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원으로 있으면 아까 마조리와 마주쳤 던 것처럼 가끔 우연히 사람들을 맞닥뜨리기는 해도 고정적으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 일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직책 이 직책이니만큼 원할 때 병원 안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유일한 단점은 가끔 실제로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 만 특별히 감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경우 그저 청소 수레만 똘고 다니면서 시 간을 때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을 한다면 사실 톰은 저 옛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한때 가졌던 일을 여 태까지의 직업들 중 가장 좋아했었다. 그는 어 떤 수의사의 동물 병원에서 일을 했었다. 톰은 동물들을 좋아했다. 조금 일에 익숙해지자 수의사는 톰에게 동물들을 안락사시키는 일 을 맡겼다. 그들은 대개가 고통에 시달리는 늙고 병든 짐승들이었 는데 폼은 그 일에서 상당한 만족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앨리스에 게 자랑을 했을 때 그녀가 보이던 탐탁지 않은 반응에 실망했던 것 을 기 억 할 수가 있었나 문을 연 통은 살그머니 복도를 훌어보았다. 그는 청소도구가 실 린 손수레를 가지러 엘리베이터 앞 보관실까지 가야 했지만 또다 시 잔소리를 듣게 될까 두려워 마조리와는 가급적이면 맞닥뜨리고 싶지가 않았다 톰은 혹시라도 자제력을 잃게 될까 마음이 놓이지 를 않았나. 가끔 그는 마조리를 두들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P: 적 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너 무도 잘 알고 있었다. 통은 이제 자신이 글로리아의 병실에서 목격되었기 때문에 그녀 를 돕는 일이 그리 수월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후로 는 평소보다 더욱 신중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적어도 하루 이틀은 더 차분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틀었 다. 그는 그때까지도 그녀가 정맥주사를 맞고 있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혹시라도 검시관의 눈에 띄면 금방 발각이 될 것 이 뻔했기에 그는 석시닐콜린을 근육으로 주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180 병실을 ㅂㅂ1져나온 통은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409호실 옆을 지나며 그는 힐끗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다행스럽게 도 마조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새로 왔다는 그 간호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은 새로운 두려움에 사로잡혀 걸음을 늦추었다. 혹시 셀라 자 리로 들어온 저 새 간호사가 병원측이 나를 찾아내기 위해 고용한 사람이라면 어쩌지? 어쩌면 저 여자는 스파이인지도 몰라,1 그렇지 않다면 마조리와 함께 갑작스레 글로리아의 병실에 나타날 이유가 없잘아? 새로 온 간호사가 아직까지도 글로리아의 병실에 버티고 사실에 통은 점점 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유방암이라는 끔찍한 악마와 맞서 싸우는 그의 외롭고도 전쟁을 방해하기 위해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걱정 말아요, 앨리스." 그가 어머니를 달래듯 중얼거렸다. "이번엔 말을 잘 들을게요." 있다는 그녀는 신성한 앤 머피는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좀 명랑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 는 숀의 마이 애미 행 계획을 알게 된 이후 떠칠 동안 심한 우울Al태 에 빠져 있었다. 그녀에게 대도시란 단어는 마약이나 좌와 같은 뜨 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 소식에 그리 놀라지 않았었다 쇼 은 아주 어릴 때부터도 착한 것과는 아예 건 리가 먼 아이 였기에 고 등학교 고학년 때나 대학 시절에 놀랄 만큼 우수한 성적을 받기는 했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로 미루어 쉽사리 바뀌리라 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의과 대학엘 간 다는 소리를 했을 때 그녀는 일말의 희망을 느꼈었지만 그 희망은 이내 의사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독단적이고 고집스럽기 짝 이 없는 선언에 의해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살아오는 동안 겪어 왔던 수많은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앤은 그것 역시 참으며 기 적이나 일어나기를 비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숀이 ◎라이언이나 찰스처럼 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게 했다. 도대체 무 엇을 잘못했을까? 분명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기 때 모유를 먹이지 못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혹시 아버지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릴 때 두들겨 패지 못하도록 막아주지 를 못해서 그렇게 되어버린 건 지도 몰랐다 숀의 출발 후, 그녀에게 한 점이나마 즐거운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은 막내 아들 찰스였다. 뉴 저지에 있는 수도원에서 전화 를 한 찰스는 이튿날 저녁쯤 집에 들르겠다는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훌릉한 찰스! 그의 기도로 온 식구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찰스가 온다는 사실에 들뜬 앤은 아침 나절 쇼핑을 나갔었다 그 녀는 낮 동안은 내내 빵 굽는 것과 저녁 준비로 시간을 보낼 생각 이었다. 브라이언에게 연락을 했더니 저녁에 중요한 모임이 있어 좀 늦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참석을 하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가 있 었다. 냉장고를 연 앤은 그날 저녁에 있을 즐거운 일들에 대한 기대로 가슴을 설레며 음식 나부랭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182 그녀는 자신을 나무랐다. 그녀는 그러한 생각들이 위험한 것이라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즐겁고 기쁜 일에는 꼭 마가 끼기 마련 이었다. 잠시 그녀는 혹시라도 찰스가 보스턴에 오는 길에 다치기 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기우로 자신을 괴롭혔다 혹시라도 질투할 짓궂은 마귀들을 달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문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인터폰의 구인가를 물었다. "다나카 야마구치라는 사람입니다 어떤 낯선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왜 그러시죠?" 앤이 물었다. 사실 그녀의 집에 초인종이 아니었다 스위치를 누른 앤은 누 울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드님 숀에 대해 의논을 좀 드렸으면 합니다. 다나카가 말했다 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즉시 그녀는 그 따위 즐거운 생 각들로 화를 자초해버린 자신을 꾸짖기 시작했다. 슨이 또다시 말 썽을 일으킨 것이다 내 이 럴 줄 알았어 ! 버튼을 누른 앤은 문간으로 건너가 이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기 위해 활짝 아파트 문을 열어 젖혔다. 누가 집에까지 찾아왔다늪 사 실에조차 깜짝 놀랐던 앤은 그 방문자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에 대 경 실색을 해버렸다 그것은 그녀가 그의 이름이 동양식이라는 사 실을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 낯선 방문객은 앤 정도의 키였지만.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에 석탄처럼 까만 머리와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는 약간 번쩍거리는 짙은 색 정장에 흰 셔츠를 받쳐 입고 짙은 넥 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벨트가 달린 바바리 코트가 걸려 있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다나카가 말했다 그의 말씨에는 동양식 억양이 아주 조금밖에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 명 함에는 간판히 '나나카 야마구치, 산업 고문'이라고만 적혀 있었 다. 한 손은 목을 또 한 손은 건네 받은 명함을 움켜쥔 앤은 당황한 나머지 무어라 말을 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드님 숀에 대해 꼭 의논을 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 다나카가 말했다 마치 무슨 충격에서라도 회복하듯 앤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또 무슨 말썽을 저질렀나요?" "아닙니다. " 다나카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전에 무슨 말썽을 일으키신 적이 있나 보지요? "사춘기 땐 종종 그런 적이 있었답니다" 앤 이 말했다. "아주 고집이 세서요. 게다가 장난이 대단했답니다 " "미국 아이들은 가끔 골치를 썩 이죠 " 다나카가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선 어린애들이 어른들을 존경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지요." "하지만 숀의 아버지도 다루기가 어 렵 긴 마찬가지 예요." 앤이 자신도 모르게 숀을 비호하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과연 이 손님을 안으로 청할지 말지조차 하고 있었다. "저는 아드님의 사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다나카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하버드 대학의 수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생물학적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들과 관련을 했던 적이 있는 지 알고 계시는지 해서요." "아들애가 친구들of랑 임뮤노테라피 란 회사를 설 립 했던 적 이 어 요." 앤은 대화가 숀의 얼룩진 과거 중 그나마라도 좀 나은 부분에 한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아직도 그 임뮤노테라피 사 일을 하고 있습니까7- 다나카가 물었파 "그애는 그런 것들에 대해선 나랑 별로 이야기를 결정을 내리지 못 대 하지 않는답니 다" 앤이 말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다나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앤은 그 사나이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 라보았다. 이 갑작스런 대화의 종결은 그녀를 아까의 예상치 못했 던 방문만큼이나 놀라게 하고 있었다. ·그녀가 복도로 나서자 두 층 아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온 그 녀는 문을 닫은 뒤 단단히 빗장을 질렀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마음의 평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방문은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는 괴상한 사건이었다. 다나카의 명함을 다시 한번 훌어본 그녀는 그것을 앞치마 주머니에 부서넣 었다 이어 그녀는 다시 냉장고에 음식을 넣는 일로 돌아갔다 브 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 이상한 일본 사람의 방문에 대해서는 이따 저녁 때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았 다. 물론 브라이언이 온다면 말이다. 그녀는 그가 오지 않을 경우, 전화를 하리 라 작정을 했다. 한 시간 뒤, 케이크를 만드는 데 열중해 있던 앤은 다시금 울려 온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랐다. 처음 그녀는 혹시 그 일본인이 더 물어볼 게 있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순간 생각했다. 브 라이언에게 연락을 해둘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의 두려 운 마음과 함께 그녀는 인터컴의 버튼을 누른 뒤 누구인가를 물었 다. "스털링 롬바우어 입니다 " 묵직 한 남자의 음성 이 대답을 했다 "앤 머피 여사십 니까?" "그런데요." "여사의 아드님 되시는 숀 머피 씨에 대해 몇 가지 여쭈어볼 것 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앤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까의 일 본인으로는 부족해 또 다른 낯선 사람이 자신의 둘째 아이에 대해 탐문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는사실이 영 믿어지지를 않았다. "개가 어때서요?" 앤이 물었다 186 "가능하다면 직접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 스털링이 말했다 "제가 내려갈게요." 앤이 말했다. 손에 묻은 밀가루를 씻어낸 앤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예 의 그 사나이는 낙타털 코트를 벗어 팔에 걸치고 현관에 서 있었 다. "귀찮게 해드려서 정 말 죄송합니다. " 스털링이 유리문을 통해 말했다 "왜 제 아들에 대해 물어보시겠다는 거죠7" 앤이 다그쳐 물었다. "저는 마이애미에 있는 포베스 암센터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 스털링 이 설명을 했다. 은이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곳의 이름을 들은 앤은 문을 열고 낯 선 방문객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넓은 얼굴에 오똑한 코를 가진 매 력적인 인상의 남자였다. 그의 머리칼은 옅은 갈색에 약간 곱슬이었다. 앤은 그가 이름은 그렇지 않아도 어쩌면 아일랜드 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큰 키에 자신의 아들만큼이나 새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숀이 내가 알아야 할 만큼 큰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나요?- 앤이 물었다. "제가 아는 한은 그런 건 없습니다 스털링이 말했다. "그 병원측은 항상 새로 같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배경 조사를 한답니다. 그들에게는 보안 유지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항 목이거든요.그저 몇 가지 질문에만 대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 "어떤 것들인 데요?" 앤이 물었다. "혹시 아드님께서 어떤 생명공학 회사와 관련이 있었던 적이 있 습니까?" "한 시간 간격으로 똑같은 질문을 두 번씩 이나 받는군요." 앤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스털링이 말했다 "혹시 그 비슷한 질문을 했던 사람이 누군지 여쭈어보아도 될까 요7" 앤은 앞치마 주머니를 뒤져 다나카의 명함을 꺼냈다. 그녀는 그 것을 스털링에게 건네주었다. 앤은 그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후 그녀에게 다시 명함을 돌려주 었다 "그래서, 이 야마구치 씨한테는 무슨 얘기를 해주셨습니까?" 스털링이 물었다 "아들애란 친구들이 같이 자기들 나름대로 생명공학 회사를 하 나 설립 했다는 말을 해주었지 요." 앤이 말했다. "임뮤노테라피라는 이름으로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머피 여사 " 스털링이 말했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앤은 그 우아한 모습의 낯선 방문객이 집 앞 계단을 내려가 검은 세단의 됫좌석에 올라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가 타 고 온 차에는 말쑥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운전사가 딸려 있었다. 더욱 혼란스러워진 앤은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간을 망설인 끝에 그녀는 전화기를 집어들고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 다. 바쁜 데 방해를 해서 미안하다는 수줍은 사과의 말을 전한 뒤 그녀는 집에 찾아왔던 두 명의 이상한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를 털 어놓았다 "정 말 이상하군요." 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브라이언이 말했다 "숀 걱정을 해야 할까?" 앤이 물었다. "네 동생이 어떤지 잘 알잖니." "제가 전화를 걸어 알아볼게요." 브라이 언이 말했다. "혹시라도 그동안에 또 누가 찾아와 질문을 하면 아무 말도 해주 지 마세요. 그냥 저 한테로 보내주세요." "내가 혹시라도 말 실수를 한 건 아닐까?" 앤이 말했다. "절대 그렇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브라이 언이 그녀를 안심 시 켰L·) "나중에 올 거니?" "되도록이 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중이 에요 " 브라이언이 말했다. "하지만 혹시 제가 여덟 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먼저 식사를 시 작하세요." 옆 자리에 마이애미 시가 지도를 펼쳐놓은 덕택에 자넷은 큰 고 생 없이 포베스 사옥으로 돌아을 수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숀의 지프를 보자 자넷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보기에 좋은 소식들을 잔뜩 품고 있던 터라 그가 집에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마이애미 해변 남쪽 끝에서 널찍한 가구 달린 집을 하나 찾 아냈는데, 비록 욕실에서 조금뿐이기는 하지만 바다까지도 내다보 이는 집이었다. 그녀가 처음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지금이 '성수 기'라는 사실에 적잖이 낙담을 했었다. 그녀가 빌린 집은 벌써 1년 전부러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갑작스레 입주자들이 입주 결정을 취소해버리는 바람에 자넷에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의 취소 결정은 자넷이 부동산 중개소에 발을 디디기 불과 5분 전에 통보된 것이었기에 자넷은 그 행운을 움켜쥐게 된 것이 다 핸드백과 임대계약서 사본을 집어든 자넷은 자신의 아파트로 올 라갔다. 그녀는 잠깐 시간을 내 세수를 하고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 지로 갈아입었다. 이어 계약서를 집어든 그녀는 발코니를 따라 숀 의 집 미닫이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숀은 뽀로통한 표정으로 소파 에 깊숙이 몸을 묻고 꾸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좋은 소식 이 있어요,r" 자넷이 명랑하게 말했다 그녀는 숀 건너편에 놓인 팔걸이 의자 에 털썩 몸을 던졌다 "그런 거라도 있어야겠지 ." 숀이 말했다 "드디어 집을 구했어요." 그녀는 큰소리로 말하며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아주 기가 막힌 곳은 아니지 만 해변에서 겨우 한 블럭이고 게다 가 제일 좋은 건 포베스에서 고속도로로 곧장 갈 수 있는 데예요 ·, "자넷, 난 정말 여기 있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 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우울에 지친 듯 축 늘어져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자릿이 일 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이 포베스란 곳은 정말 황당한 곳이야.- 숀이 말했다. "분위기가 영 기분 나빠. 게다가 괴상하게 계속 날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것 같아 내가 다 코 앞에 어른거리고 있어 ." 있었다 생긴 쪽발이 하나가 매번 몸을 돌릴 때마 "그 외 에는요7" 자넷이 물었다. 그녀는 적절한 대응책을 찾기 위해 그의 불만 모 두를 들어보고 싶었다 방금두 달 간의 임대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돌아온 터라 그만큼 더 마이애미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어 .- 숀이 말했다. "사람들이 친절한 사람들하고 영 불친절한 사람들하고 딱 반으 로 갈라져 있어. 완전 극과 극이야. 이건 너무도 부자연스러워. 게 다가, 난 거대한 실험실에서 외톨이이고 혼자 일을 하고 있어. fl 말 미치 겠어 ." "하지만 당신은 항상 실험 공간이 너무 있었잖아요." 협소한 것에 불평을 하고 자넷이 말했다. "내가 혹시라도 다시 불평을 하면 이 일을 상기시켜줘 ." 숀이 말했다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역시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 그리고 또하나는 센터에 출입금지 구역으로 되어 있는초밀 폐 실험실이란 곳이 있어. 난 그 표지를 무시하고 그냥 한번 불쑥 들어가 보았어. 내가 뭘 봤는지 알아? 아무 것도 못 봤어 . 그곳은 텅 비어 있었어. 물론, 방마다 다 들여다보았던 건 아니야. 사실, 경비 책임자로 있는 그 군발이 같이 생긴 녀석이 갑자기 뛰어들어 위협을 하는 바람에 별로 많이 보진 못했어 " "뭘로 위 협을 했어요?" 자넷이 대경 실색을 하며 물었다 "똥배 장으로." 숀이 말했다 "정말 요만큼 코 앞까지 다가와 기분 나쁘게 째려보는 거야. 하 마터면 그 자식 불알을 걷어찰 뻔했어 ." 숀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2센티미터 가량 벌려 자넷에게 내보 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자넷이 물었다. "별일은 없었어 숀이 말했다 "뒤로 물러서더니 나보고 빨리 꺼지라고 소리를 빽 지르더군 빈 방에서 내몰면서 마치 내가 진짜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 럼 호들갑이었어 . 정말 괴상한 일이었다구 " "하지만 다른 실험실들은 못 봤다면서요?" 자넷이 말했다 "어쩌면 당신이 들어갔던 방은 마침 수리중이었는지도 모르잖아 요 "그럴 수도 있겠지." 숀도 인정을 했다 "구태여 설명을 하자면 이유로 댈 건 많아. 하지만 정말 이상해. 이상한 것들을 전부 더해보면 그 장소 돌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래도 그건 전체가 정말 "당신한테 하라는 일은 어때요?" "그건 그런대로 괜찮아." 숀이 말했다. "사실, 난 왜 그들이 계속 실패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오 후에 닥터 메이슨6l 찾아왔길래 내가 하는 일을 보여 주었지. 벌써 조그만 결정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다음주쯤이면 쓸만한 결정체들 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는 왜 기뻐하는 것 같았 어 하지만 그가 떠난 다음 곰곰of 생각을 해보니 그들이 분석을 하도록 결정을 추출해 보았자 일본놈들 회사가 돈을 벌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팍 나빠지더군 " "하지만 그게 당신이 할 일 전부는 아니 잖아요‥ 자넷이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얘기지?" '당신은 수아세포종 치료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게 될 거 아니 에요?" 자넷이 말했다 "전 내일부터 4층 병실에서 일을 하게 되어 있어요. 누가 입원했 는지 한번 알아맞춰 보세요." "헬렌 캐벗?" 숀은 짐작을 해보았다. 그는 발을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맞았어요," 자넷이 말했다 "아울러 보스턴에 서 온 환자가 하나 더 있어요. 루이스 마틴이 란 사람이에요." 그 사람도 같은 진단이야?" 숀이 물었다. "그럼요." 자넷이 말했다. "역시 수아세포종이에요." "정 말 놀랍군 !" 숀이 말했다. "그 사람을 이렇게 빨리 데려오다니 말이야." 자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베스 측은 보스턴이 헬렌을 그렇게 오래도록 붙들고 있었다 는 데 약간 심기가 불편해 하고 있어요.' 자넷이 말했다. 수간호사가 걱 정을 하더군요." "하기야. 과연 생검을 할지, 그렇다면 어떤 종양 부위를 공략해 야 할지 , 보스턴에서도 논란이 많았지 " 숀이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잠깐 거기 있는 동안 또 다른 젊은 여자 환자 하나가 입원 을 했어요." 자넷이 말했다 "그 사람도 수아세포종이야?" 숀이 물었다 "그렇대요." "그래서 제가 맡은 병실에 당장 치료를 시작할 환자가 세 명이나 돼요. 참 순조롭다고나 할까‥‥‥‥ "그 환자들 차트 사본이 필요해." 숀이 말했다. "실제 치료를 시작하면 투여되는 약제의 샘플들도 다 필요할 거 야. 물론 약품명이 명시되어 있는 건 그럴 필요가 없지 하지만 이 경우는 그럴 것 같지 않아. 그들은 화학요법을 받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전적으로 화학요법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게 분명해 약제 들은 아마 무슨 암호명으로 불리게 될 거야. 또 각 환자에게 들어 가는 처방 명 령도 필요해."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어요 " 자넷이 말했다. "제 병실에 있는 환자들 거라면 그리 어렵진 않을 거예요. 어쩌 면 제가 그 환자들 중 적어도 하나를 담당하도록 조정할 수 있을지 도 몰라요. 게다가 손쉽게 쓸 수 있는 복사기도 한 대 봐놓았어요 의무 기록실에 있는 걸로요." "거기선 좀 조심을 해야 될 거야 숀이 귀◎을 했다. "지난번 보았던 홍보실 여직원의 어머니가 의무 기록실 사서 중 한 사람이더라구 " "조심 할게요." 자넷이 말했다 그녀는 말을 잇기 전 조심스레 숀의 표정을살폈 졌다. 그녀는 숀이 나름대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 그를 몰아세우 는 것이 얼마나 큰 실 책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꼭 알아야만 했다 "그럼 이젠 당신이 여기를 떠나지 않는 걸로 생각해도 돼요?" 그녀가 물었다. "여기 계실 거죠? 단백질 연구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또 일본 사람들이 못살게 굴어도 말이에요." 숀은 팔꿈치로 무릎을 버티며 앞으로 몸을 숙여 뒤통수를 문질 렀다. "잘 모르겠어 ." 그가 말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얼토당토 않는 거야. 꼭 이런 식으로 연구를 해야 하다니 말이야!" 그는 자넷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라도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연구 보조비를 삭 감해버리면 우리 연구 기관들이 어떻게 되어버릴까 단 한번이라도 신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어. 다른 어떤 때보다도 국 가가 연구를 필요로 할 땐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러니 우리라도 더더욱 매진을 할 이유가 있는 거 예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 정 말 심각하게 하는 말이야?" 숀이 물었다 "물론이 에 요." 자넷이 말했다. "똘똘하게 행동해야 한다는거 알지? 숀이 물었다. "알아요." "규칙도 몇 개는 위반을 해야 할 거야 " 그가 덧붙였다. "정 말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넷이 말했나. "일단 시작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 . 쏟은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거야 " 숀이 말했다. 자넷이 마악 대답을 하려는 순간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요란스럽 게 울려 댔다 "도대체 누구야7"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계속 벨을 울리도록 내버 려푸었다 "전화를 받지 않을 작정이에요?" 자넷이 물었다. "생각 좀 해보고 " 숀이 말했다. 그가 말하지 않던 것 하나는 혹시 저게 사라 메이 슨이 아닐까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후에 전화를 걸어왔 었는데 해리스의 분통을 돋구어주고 싶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숀은 그 여자와의 어떠한 관계도 원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이 받아봐." 숀이 제안을 했다. 자넷은 펄쩍 뛰어 일어나며 수화기를 나러챘다. 숀은 누구인가 를 묻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별 반응없이 그 에게 손을 뻗어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당신 형님이세요." 그녀가 말했다 "제길, 또 무슨 일이지7" 숀은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안부 전 화를 해주는 건 형 스타일이 아니었다. 실상 그런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을 뿐더러 바로 전주 금요일날 서로 얼굴을 보기까지 했는 데 말이다. 숀은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또 뭐가 잘못됐어요?" 그가 물었다. "나도 너한테 그걸 물어보려는 참이었다 " 브라이언이 말했다.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면 그냥 상투적인 안부 를 묻는 거 예요?" 숀이 물었다. "쓸데없는 소릴랑 말고 툭 털어놓고 이야기해봐 " 브라이 언이 말했다 "여긴 정 말 괴상하기 짝이 없어요." 숀이 말했다. "과연 머물고 싶은지 조차도 확신이 안 서요. 어쩌면 그냥 시간 낭비나 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숀은 자넷의 눈치를 힐끔 보며 말했다. "여기서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 브라이언 달했다. 그는 손에게 어머니를 찾아와 임뮤노테라피에 대해 물어보았던 두 명의 남자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임뮤노테라피는 벌써 옛날 일이에요." 숀이 말했다 "엄마가 뭐라고 그랬대요?" "별로 얘기 할 건 없어 ." 브라이언이 말했다. "적어도 엄마 말에 의하면 그래. 하지만 좀 당황하셨던 모양이 야. 그저 너랑 친근들 몇이 그 회사를 차렸었단 얘기만 하신 것 같 아" "우리가 회사를 처분해버 렸다는 말은 안 하셨단 말이죠?- "그야 물론이지." "옹코진 얘기는요?" "엄마 얘기론 우리가 철저히 입단속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 에 대해서는 아는 척도 하질 않았대." "그건 다행이로군요." 숀이 말했다 "왜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엄마한테 그런 걸 물어보지?- 브라이언이 물었다 "롬바우어란 친구는 자기가 포베스 센터의 부탁을 받았다는 말 을 했다더군. 그 사람 말로는 센터가 보안 유지 이유로 의 례적으로 직원들 배경 조사를 한다고 했대. 혹시 너 무슨 의심받을 만한 일 이라도 한 건 아니냐?" "제길. 내가 여 기 온 지는 이제 겨우 만 스물네 시 간이 조금 지났 을 뿐이에요." 숀이 말했나. '네 취미가 말싸움 일으키는 것이라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야. 너 정도 말썽이면 부처님도 돌아앉을 거야.' "내 말썽은 형 수다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구요." 숀이 놀려 댔다. "제길, 형이 소질을 살려 변호사가 된 게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 될 뿐이에요," "기분이 썩 나쁘진 않으니, 네 헛소리는 그냥 눈 감아 주겠어. 하지만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보자. 도대체 무슨 일일 것 같아7' "나도 전혀 모르겠어요 " 숀이 말했다. "어쩌면 그 친구 말대로 그저 의 례적인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전혀 모르는 것 같던데." 브라이언이 말했다 "그래서 의 례적 인 것 같지가 않아. 첫번째 찾아온 사람은 명함을 남기고 갔어. 여기 있는데, 다나카 야마구치, 산업 고문이라고 씌 어 있군." '산업 고문이란 건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어요." 숀이 말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끼어든 건 쓰시타 산업이란 일본 전자회사의 거인이 이 포베스 센터에 거액의 투자를 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 을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수익성 있는 특허를 따내려고 혈안이 되 어 있거든 " "왜 카메라나 전자 기기나 자동차에만 만족하질 않는 거야?" 브라이언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벌써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잖아 " "그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기 엔 너무 머 리가 좋아 서 탈이라구요." 숀이 말했다. "그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어요. 하지만 왜 그 사람들이 그 나자빠진 임뮤노테라피와 나와의 관계를 캐고 드 는진 전혀 감도 못 잡겠어요." "그래? 난 너라면 혹시 알까 했지 ." 브라이언이 말했다. "평소의 네 행동으로 미루어 네가 거기서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있 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영 속이 상하는데." 숀이 말했다 "프랭클린 은행에서 옹코진 건이 통과되면 즉시 연락을 해줄 fT . 브라이 인이 말했다 "제발 말썽 좀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 "누구? 내 얘기 하는 거야?" 숀이 모르는 척 물었다 브라이언이 작별을 고하자마자 숀은 수화기를 전화통 위로 떨어 뜨렸다. "다시 생각을 바꿔 먹었어요?" 자넷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얘기야?" 숀이 물었다 "아까 형한테 있을지 말지 확실치가 않다고 말했잖아요 자넷이 말했다 -난 우리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합의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 "그했잖아." 숀이 말했다 ·하지만 브라이언한테는 우리 계획을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이 돼 잠도 제대로 못 잘 거거든. 게다가,아 마도 어머니한테까지 떠들어댈 텐데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단 말이야. "정말 솜씨가 좋군 그래 " 스털링이 마사지 걸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테니스 복 처럼 생긴 짤막한 옷차림에 잘생기고 건강한 핀랜드 출신의 스칸 디나비아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추가로 5달러의 특별 팁을 얹어 주었다. 리츠 호텔의 지배인을 통해 마사지를 부탁했을 때 그 는 요금에 덧붙여 충분한 액수의 봉사료를 지급했지만 그녀가 정 해진 시간 이상으로 봉사를 했음을 깨닫자 그는 그렇게라도 사의 를 마사지 걸이 가지고 온 테이블을 접고 도구들을 챙기는 동안 스 털링은 두툼한 테리 천 가운을 걸치며 허리춤에 둘렀던 수건을 풀 어 내렸다. 창문 옆에 놓인 긴 의자에 몸을 맡긴 그는 오토만(쿠션 표하고 싶었다. 이 달린 발판) 위로 발을 올리며 서비스로 나온 샴페인을 한 잔 가 득 따랐다. 스털링은 보스턴 리츠 칼튼 호텔의 단골 손님이었다. 문간에서 마사지 걸이 인사를 하자 스털링은 다시 고맙다는 말 을 건넸다. 다음번에 부를 땐 꼭 이름을 알아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정기적인 마사지는 스털링의 고객들이 당연히 제공 해야 하는 추가적인 부담의 하나였다 가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 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면 스털링은 자기 조건대로 일을 시키 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퉁명스럽게 일축을 해버렸 다 하지만 예외없이 그들은 그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게 되었는 데 그것은 그가 하는 일, 즉 산업 첩 보전에서 엄청나게 뛰어난 능 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털링의 업무는 무역 상담역이니 산업 고문이니 하는 더 듣기 좋은 단어들로 표현될 수도 있었지만, 스털링은 산업 스파이라는 명칭을더 좋아했다. 물론 그의 명함에는 그저 '고문'이라고만적혀 있었다 그는 그 '산업'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괜히 제조업 쪽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별로 좋아하지를 않았다. 사 실 스털링은 모든 종류의 사업에 다 손을 대고 있었다 홀짝홀짝 샴페인을 마시며 스털링은 창밖으로 펼쳐진 훌릉한 경 치를 내다보았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의 방은 한 보스턴 공원을 굽어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햇빛이 점차 사라지자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척로를 따라 가로등들이 깜박깜박 켜지며 작은 현수교가 걸린 백조 보트들의 호수를 비추기 시작했 다. 3월초였음에도 불구하고 호수는 최근 몰아닥쳤던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거을 같은 호수 표면에 시원스레 아치를 그리는 스케이터들의 모습이 점점 이 아른거렸다. 눈을 든 스털링은 이제 황혼녁의 아스라한 햇살에 반짝이는 매 사추세츠 주 의사당 건물의 금빛 돔을 볼 수 있었나 그는 미 의회 가 근시안적으로 반사업적인 법안들은 통과시킴으로써 자신의 소 득원을 구조적으로 붕괴시 켜버 렸던 슬픈 사실을 회상하며 원망 가 득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고 인해 스털링은 좀더 사업적 인 정책들을 펴기 위해 다른 주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사업 자체 를 포기해버린 상당수의 고객들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스털링은 보스턴에 들르는 것을 좋아했다. 보스턴은 몹시도 마음에 드는 문화적 인 도시 였다. 스털링은 저녁 식사에 임하기 전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을 생각 으로 테이블 가로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것은 그가 일에 부남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스털링은 현재 하고 있 는 일을 몹시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특히 자신 이 실제로는 거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배운 다음 수년 간 정부 일을 하다가 이어 자신의 성공적인 컴퓨터 칩 회사를 창립했는데. 이 모든 것이 그가 채 서른도 되기 전에 이루어낸 일들이었다.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는 벌써 별 보람이 없어 보이는 생활과 신통치 않은 결혼,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틀에 박힌 사업 경 영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는 먼저 이혼으로 결혼에 종지부를 찍은 다음 자신의 회사를 공개, 주식 시장에 내놓아 거액의 돈을 손에 쥐었다 이어 그 회사의 지주들을 매수함으로써 그는 또 한번 거금 을 벌어들였다. 마흔이 되었을 때 그는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캘리 포니아 주의 상당 부분을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의 재 력을 갖추게 되 어~ 그후 한 1년 동안 그는 자신이 어쩐지 놓쳐버린 것만 같던 청소 년기로 돌아가 마음껏 방황하며 살아보았다. 하지만 점차 그는 아 스펜 같은 곳이 지루해져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 떤 사업 친구 한사람이 혹시 개안적인 일을 조사해봐 줄 수 있겠 냐고 부탁을 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이후로 스털링은 자극적이고 정형이란 것도 없으며 결코 지루하게 느껴본 적이 없 는 동시에 자신의 엔지니어링에 대한풍부한지식과사업 수완,상 상력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이 새로 운 직 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스털링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랜돌프 메이슨에게로 전화를 걸 었다. 닥터 메이슨은 서재에 있는 개인 전화선으로 연락을 받았다 "내가 알아낸 사실에 대해 기뻐하실지 확신이 서지를 않는군 요." 스털링이 말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그런 일이라면 일찍 아는 게 낫겠 죠." 닥터 메이슨이 대답을 했다. "이 젊은 숀 머피라는 사람도 대단한 젊은이더군요." 스털링이 말했다. "하버드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임뮤노테라피란 이름으로 자신의 생명공학 회사를 하나 차렸더군요. 그 회사는 진단용 기기들 판매 로 거의 문을 연 첫날부터 흑자를 올렸습니다. " "지금은 어떻습니까7" "대단히 훌릉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그 회사는 아주 성공적입니다. 어찌나 잘됐던지 제네테크 사가 1년 전쯤에 회사 전체를 매입 했답니다 "그랬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이제 한줄기 햇살이 어둠을 뚫고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숀 머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와 그의 친구들은 상당한 이익을 거머쥐었더군요 스털링 이 말했다 "처음 했던 투자를 감안해보면 정말 엄청난 수익이었습니다. "그러면 은이 더이상은 관계가 없다는 말인가요7" 닥터 메이슨이 물었다. "그는 완전히 손을 례었습니다. ' 스털 링이 말했다 "그게 좀 도움이 됩니까7"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사실 우리는 그 친구의 단종항체 생산 경험 덕을 좀 볼 생각인 데 만일 그가 물질 생산이 가능한 설비들을 갖추고 있다면 일을 맡 길 수가 없지요. 그러면 너무 위험 부담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사람에 게 정보를 팔 수는 있지요." 스털링이 말했다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고용이 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구요." "그런 것까지도 알아낼 수 있겠소?" "아마 그럴 겁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그럼 계속 일을 할까요?" "물론입 니 다.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 친구를 쓰고 싶기는 하지만 혹Al라도 그가 모종의 산업 스파 이라면 절대 그럴 수는 없지요." "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다른 걸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 스털링이 다시 샴페인 잔을 채우며 말했다 "저 말고도 숀 머푀에 대해 조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하나 더 있더군요. 다나카 야마구치라는 사람입니다. " 닥터 메이슨은 뱃속의 토르텔리니(이태리 국수의 일종)가 모두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이름을 들어보신 적 이 있습니까?" 스털링of 물었다 "아뇨 . "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비록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어도 그런 이름이 암시하는 바는 너무도 분명 한다. "제 생각으로는 그 사람이 쓰시타 일을 봐주고 있는 것 같습니 다" 스털링이 말했다 "그는 벌써 숀과 임뮤노테라피와의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숀의 모친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이 숀의 모친을 만나러 갔었단 말이에요?" 닥터 메이슨이 놀라며 물었다 "그랬더군요." 스털링이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숀이 누가 자기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 잖아요." 닥터 메이슨은 다급한 듯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거기 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스털링이 말했다. "만일 슨이 진짜 어떤 산업 스파이라면 이 일로 조금 더 조심을 하겠지요. 만일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호기심을 자 극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라도 조금 기분이 상하는 게 고작일 겁니다. 숀의 반응은 선생께서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선생께서 진 짜 걱 정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다나카 야마구치 입니다. "무슨 뜻이죠?" "전 직접 다니카를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저와는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에 대해서는 왜 많은 것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유 학을 하기 위해 여러 해 전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듣기로는중공 업 계를 주름 잡는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장남이라고 하더군요. 그 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타락한'미국식 생활 양식에 너무 쉽게 적 응해버려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순식간에 미국화가 되어 일본인들 취 향으로 보아서는 너무 개인주의 적인 사 람이 되어버렸습니파. 가족들은 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여기다가 근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한 살림을 떼어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일종의 유배나 마찬가지였는 데, 이 친구는 똘똘하게 도 제가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에 뛰어 들어 용돈을 추가로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일본계 회사들 일만 맡는다는 것이 저와의 유일한 차이 점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종의 이중 간첩으로, 합법적인 회사의 일 을 보는 동시에 종종 야쿠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도 한답니다. 그 는 똑똑하고 효율적인 데다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이 일을 맡았다는사실은 당신의 쓰시타 친구들이 정말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럼 당신은 그가 당신이 일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쓰시타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밝혀낸 우리 두 연구원들의 증발 사건과도 관 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7"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스털링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하버드 학생이 사라지는 건 감당할 수가 없어 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런 일이 벌어서 매스컴을 타면 이 포베스 센터는 끝장이에 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제 정보원들 얘기로는 다나카가 아직도 여기 보스턴에 머무르 고 있답니다. 그 친구 역시 제가 얻은 정보는 대부분 다 접근할 수 가 있었을 테니 아마도 숀이 무슨 다른 일을 벌이고 있지나 않은가 하고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 "어떤 일 입니까?" 닥터 메 이슨이 물었다 "저도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조사를 해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젊은 친구들이 임뮤노 테라피 매각으로 얻은 수익금을 어디로 감췄는지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손이나 그 친구라는 사람들도 개인 구좌에는 별 돈이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비싼 차나 고가의 물건으로 돈을 낭비한 사 람도 없거든요. 제가 보기 엔 무슨 꿍광이가 있는 것 같은데 다나카 란 친구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 "맙소사!"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친구를 곧장 되돌려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 "만일 숀이 지난번 말씀하셨던 그 단백질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 로 생각하신다면 말입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그 친구를 꽉 붙들어두십시오. 제가 보기엔 모든 게 다 제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수소문을 해보았는데, 여기 컴퓨터 산업 계통 덕에 정보를 많이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선 생이 하셔야 할 일은 저한테 일을 맡겨놓으시고 계속 제 임금이나 꼬박꼬박 보내주시는 겁니다. " '계속 일을 좀 맡아주십시오."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리고 자주자주 연락을 해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 210 5 3월 4일 목요일, 오전 6시 30분 근무 시간이 일곱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였던 까닭에 자넷은 흰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일찍이 집을 나섰다. 아침 이른 시각이어서 인지 95번 주간 고속도론는 한산했고 특히 북쪽을 향하는 차선에 는 차가 거의 없었다. 그녀와 숀은 함께 출근하는 것에 대해 의논 을 해보았지만 결국은 각자가 기동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 낫겠다 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포베스 센터 정문을 통과하려니 자넷은 속이 울렁거려 오기 시 작했다 그녀의 불안감은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을 한다는 그런 상 례의 두근거림 훨씬 이상이었다. 병원의 규칙을 어겨야만 한다는 생각은 자넷을 과민한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르려 하는 일 이 실수나 우연이 아닌 의도적인 범법이기 때문이었다. 자넷은 근 무 시간보다 훨씬 넉넉하게 4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커피 한잔을 따라 든 그녀는 차트와 약품실, 그리고 물품 공급 실의 위치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았다 병실 간호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이런 것들이 어디들 있는지 몸에 익혀놓을 필요가 있 었다 그녀가 근무를 인계받기 위해 낮 근무 간호사들 틈에 끼어 이제 업무를 마친 밤 근무자들과 마주 앉을 때쯤 되어서는 아까 처 음 병 실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가라 앉아 있었다. 명 랑한 마조리월 존재가 그녀를 안심시키는 데 일조를 했음은 물론이었 다. 근무 인계 보고는 헬렌 캐벗의 병세 악화라는 한 가지 사항만 빼 고는 여느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불쌍한 여자는 밤새 몇 번이 나 경련 발작을 겪었는데 담당 의사들은 그것이 그녀의 두개강 내 압 상승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선생들이 그 문제가 어제의 CT유도 생검과 관계가 있다 고 생각하던가요?" 마조리가 물었파. "아는 ." 밤 근무 간호감독인 후아니타 몽고메리가 말했다. "새벽 세 시에 또다시 발작을 해서 닥터 메이슨께서 오셨었는데 1문제가 아마도 현재 받고 있는 치료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벌써 치료를 시작했어요?" 자넷이 물었다. "물론이죠." 후아니타가 말했다 "그녀의 치료는 그녀가 여기 도착한 화요일 밤부터 시작되었는 212 걸요." "하지만 생검은 겨우 어제였잖아요." 자넷이 말했다. "그건 치료의 세포 면역적인 부분을 위해서 였어요." 마조리가 명랑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오늘 혈장 분리(혈액내의 일정 성분만을 분리해 내는 조 작)를 받을 거예요. 7임파구를 추출해 배양을 한 다음에 그녀의 종양에 대해 감작(어떤 항원을 예민한 상태로 만듦)을 시키는 거죠. 하지만 치료의 액성 부분은 그녀가 도착한 즉시 바로 시작이 되었 어요."(인간의 면역체계는 세포 면역과 항체 면역 두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한다. 항체(액성) 면역은 대상 세 포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세포 면역은 대상 항원의 파괴를 주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녀의 두개내압을 떨어~E리기 위해 만니톨(Mannitol)을 썼어 요," 후아니타가 덧붙였다. "효과가 좀 있는 것 같더군요. 그 이후로는 다시 발작이 없었으 니까요. 가능하다면 스테로이드(Steroid 부신 피질 호르몬의 총칭) 나 션트(Shunt, 우치술 두개내압 상승시 두개골을 천공해 튜브로 정 맥과 연결을 시켜줌으로써 압력의 강하를 도모하는 방법)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혈장 분리도 하고 하니 이 환자는 잘 보 셔야 할 거 예요." 인계 보고가 끝나고 흐리멍텅한 졸린 눈의 밤 근무자들이 자리 를 뜨자 낮 근무자들은 열정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자넷은 갑자기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빠졌다 병동에는 각종 암에 걸린 수많은 환 자들이 각기 다른 개별적인 치료안에 따라 치료를 받으며 누워 있 어다. 자.11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한 환자는 기능을 상실해버린 골-r 에 조혈 세포들을 재충전하기 위해 골수 이식을 기다리면서 역예 환자에게서 병이 옮지 않도록 하는 조 방 조치 (Reverse Precaution, 록 하는 조치)를 받고 있 치 의 반대로. 환자에 게 댕군 등을 옮기지 않도 느 처사 같은 모습의 아홉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그는 본래의 백혈 toff 골수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리기 위해 강력한 방사선 및 항암 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금 그는 보통 때 인체에 전혀 해를 끼치 지 않는 비 별 원성 미 생물에 게도 완전 저항을 잃은 상태였다. 아핏 한중턱이 되어서야 자넷은 마침내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발을 걸칠 수 있는 간호사실 뒤켠의 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지친 자넷은 그 짬을 이용해 팀 카 요도실로 들어가 휴식시간을 보냈다. 첸버그한테 포베스 센터의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워두기 로 마으을 먹었다. 모든 환자들이 보통의 전통적인 진조 차트에 덧 붙여 컴퓨터 파일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넷은 대학 시절 fl퓨터 과학을 부 전공으로 선택했었기에 컴퓨터에는 왜 자신 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제대로 컴퓨터를 만지기 위해 서는 이 포베스의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에게 조언을 받는 것이 도 움이 될 것이다. fB이 71사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잠시 한눈을 파는 틈-」 타 자.11은 헬렌 캐벗의 파일을 불러보았다. 헬렌의 입원 기간이 불 과 48시간 남짓이었던 탓에 그녀의 파일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파일에는 그들이 그녀의 종양 세 개 중 어 와 오른쪽 귀 위쪽 두개골에 천공을 한 부 래괵이 들어 있었다. 생검 표본의 육안적 114 느 것에서 생검을 했는지 분을 표시하는 컴퓨터 그 소견은, 단단하고 흰색에 적당한 양이라고 기술이 되어 있었다 표본은 도착즉시 얼음에 채 워져 기초 진단실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치료 섹션에는 그녀가 MB300C와MB303C를 하루kg당 100mg씩 분당 매 kg에 대해 0.05m1씩 맞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넷은 아직도 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팀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녀는 조그만 종이 조각 위에 헬렌의 치료에 대한 정보를 끄적거렸 다 그녀는 아울러 T-9872라는,다발성 수아세포종이라는 진단명 옆에 명기된 진단 부호도 적어두었다. 그 진단 부호를 이용해 자넷은 현재 병원에 입원중인 수아세포 종 환자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4층에 입원중인 세 명을 포함, 병 원에는 모두 다섯 명의 수아세포종 환자가 있었다. 다른 두 명은 3층에 입원중인 마가린 드마스와 소아과 병동에 수용된 여덟 살 난 루크 킨즈먼이었다. 자넷은 그들의 이름도 살짝 적어두었다 "혹시 어디 막히는 데라도 있나요7" 팀 이 자넷의 어깨 너머로 물었다. "아뇨, 전혀요." 그녀는 팀이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보지 못하도록 재빨리 스크 린을 지웠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괜히 의심을 사서는 안 되었 다 "이 검사 결과들을 입 력해야 되거든요." 팀 이 그녀에 게 말했다. "잠깐이면 될 거 예요." 팀이 컴퓨터 단말기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자넷은 캐벗과 마 틴, 샤렌버그의 차트를 찾아 차트 걸이를 훌어보았다. 하지만 유감 스럽게도 그들의 차트는 하나도 눈에 띄지를 않았다. 그때 마조리가 약품장에서 마약성 진통제들을 꺼내기 위해 간호 사실로 들어왔다. "좀 쉬어요, 휴식시간이에요." 그녀가 자넷에 게 소리쳤다. "쉬고 있는 중이에요." 자넷이 종이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마음속으로 그녀는 머그 잔을 하나 가져다 두리라 다짐을 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개인 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벌써 당신한테 놀라고 있어요." 마조리가 조제실 안에서 자넷을 놀려 댔다 "휴식시간까지 죽어라 일을 할 필요는 없어요. 아가씨, 떨치고 일어나 저기 들어가 발 좀 쉬게 해주지 그래요." 자넷은 미소를 지으며 병실에 완전히 익숙해진 다음부터 그렇게 쉬겠노라고 대답했다. 팀이 컴퓨터 작업을 마치자 자넷은 그에게 찾을 수 없었던 차트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2층으로 내려가 있어요." 팀이 말했다. "캐빗은 혈장 분리중이고 마틴과 샤렌버그는 생검을 받고 있어 요. 차트가 따라 내려가는 게 당연하지요." "당연하지 요." 자넷은 그 마지막 한마디를 되뇌었다. 마침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공교롭게도 차트 세 개 모두가 내려가 있다는 사실은 어쩐 지 좀 불길한 예감이 들게 했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실행에 옮 기 기로 한 첩보 행위가 숀에 게 자랑스럽 게 계획을 말했을 때 자신 했던 것만큼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210 잠시 차트 건을 덮어둔 자넷은 다른 간호사 돌로레스 호지스가 약품실 일을 마치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돌로레스가 복도로 내 려가자 자넷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핀 다음 살그 머니 그 작은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각 환자에게는 각자에 게 처방된 약품을 비치해두도록 자그마한 사각형의 칸들이 배정되 어 있었다. 약품들은 1층의 중앙 약제실에서 배달되는 것이다. 헬렌의 칸을 발견한 자넷은 재빨리 수많은 약병들과 시험관들을 훌어보았다. 항경련제, 일반 진정제, 항포심제와 비마약성 진통 제. 하지만 MB300C나 MB303C라는 라벨이 붙은 용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그 약들이 마약성 약품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지 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넷은 마약장을 열어보았지만 그곳에는 일상의 마약성 약품들뿐이었다. 다음 자넷은 루이스 마틴의 칸을 살폈다 그에게 배정된 칸은 바닥쪽으로 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 었다 자넷은 쭈그리고 앉아 안쪽 뒤 적 이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먼 저 앉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네델란드식 문의 아래쪽 반을 닫아 야 했다. 헬렌의 칸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넷은 라벨에 MB계의 이 름이 적힌 약병들을 한 개도 발견해낼 수가 없었다 "맙소사, 깜짝 놀랐어 !" 돌로레스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는 허겁지겁 돌아왔던 터라 루이스 마틴의 칸 앞에 쪼그리고 앉은자넷에 걸려 거의 앞으로자 빠질 뻔 했던 것 이다 "정말 미안해요." 돌로레스가 말했다. "누가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답니다 " "제 잘못이에요." 자넷은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말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이 하던 일이 탄로나 돌로레스가 의심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 듯 안으로 들어 왔다. 그 녀는 금방 다시 사라져버렸다. 자넷은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리며 약품실을 나왔다. 비록 오늘 이 일을 시작한 첫번째 날로 별 끔찍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벌써 그녀는 자신에게 이 스파이라는 직책이 필요로 하는 비밀스 러운 행동을 실행할 만한 용기가 있는지 자신을 잃고 있었다 헬렌 캐벗의 방에 도착한 자넷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병실 문 은 고무 스토퍼로 버터진 채 활짝 열려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선 자넷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록 약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를 않았지만,그래도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예상 대로 약제들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가까스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자넷은 도중 글로리아 다마타글 리오의 병실을 지나치며 다시 간호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자넷은 열린 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글로리아는 손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콩팥 모양의 용 기를 든 채 팔걸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팔에는 아 직도 정맥 주사가 달려 있었다 전날 대화를 나누며 자넷은 글로리아가 자신과 같은 웰레슬리 대학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넷은 그녀보다 바로 한 해 위였다 자넷은 글로리아가 혹시 그 학년에 다녔던 자넷의 친구를 아는지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자신에게로 주의를 돌리자 자넷은 준비 했던 질문을 던졌다. "로라 로웰을 아신다구요!" 218 글로리아가 기쁜 척을 하며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저 랑은 아주 친한 사이였거든요. 전 개 네 부모님들과도 아주 친해요." 자넷은 글로리아가 사교적으로 굴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뚜렷이 볼 수가 있었다 그녀가 맞는 화학요 법제들이 그녀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혹시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넷이 말했다. "로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자넷이 글로리아를 쉬게 해주려고 마악 자리를 뜨려는 순간 등 뒤쪽에서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틀자 잡역부 한 사 람이 문간에 힐끗 모습을 비쳤다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방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그의 일에 방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릿은 글로리아에게 나중에 시간이 나면 또 들르겠다는 인사를 건넨 뒤 잡역부에게 방이 비었음을 알 리 기 위해 복도로 나섰다. 하지만 그 사나이는 종적을 감추어 어디 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녀는 복도를 위 아래로 훌어보았다 그녀 는 심지어 주변의 병실들 몇 개까지도 살펴본았다. 하지만 그는 하 늘로 솟기라도 한 듯 종적 이 묘연했다. 자릿은 다시 간호사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도 휴식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넷은 혹시라도 차 트들을 볼 수 있을까 희망을 품고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2층으로 내려갔다. 헬렌 캐벗은 아직도 혈장 분리중으로 시간이 한동안 더 걸릴 모양이었다 결국 그녀의 차트는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하 지만 루이스 마틴의 경우는 행운의 여신이 손짓을 해주었다. 그의 생검은 캐서린 샤렌버그의 검사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자넷 은 복도의 이동 침대 위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는 수술 전 처치로 맞은 강한 진정제 덕분에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차트는 침 대 매트리스 밑에 끼워져 있었다. 검사실 기사에게 물은 결과 루이스의 생검이 적어도 한 시간 정 도는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자넷은 용기를 내 그의 차트 를 뽑아들었다 마치 무슨 범죄 현장에서 증거물을 들고 내빼는 양 허겁지겁 걸음을 옮긴 자넷은 의무 기록실로 차트를 들고 들어갔 다. 미친 듯 달음질을 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었다. 자넷은 자신이 이런 일을 하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아까 조제실 약품장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금 섬광처 럼 그녀를 사로잡았다 "물론 복사기를 쓰실 수 있지요.' 그녀의 질문에 사서 중의 하나가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 었다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저 장부에 간호과라고만 적어주세 요 자넷은 혹시 이 사서가 그녀가 도착한 날 밤 숀의 아파트에 찾아 왔던 그 홍보실 여직원의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조심 스럽게 굴지 않으면 안 돼! 복사기로 걸음을 옮기며 자넷은 어깨 너머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 여자 사서는 자넷에게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자넷이 들어왔을 때 하던 일에 다시 정신을 팔 고 있었다 자넷은 재빨리 루이스의 차트 전체를 복사했다 입원한 지가 불 과 하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차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두꺼웠다 복사물의 일부를 훌어본 자넷은 차트의 대부분이 보스 턴 메모리얼 병원에서 보내준 의뢰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일을 마친 자넷은 서둘러 차트를 이동 침대로 가지고 갔 다. 루이스가 꼼짝도 않고 계속 쿨쿨 자고 있다는 사실에 자넷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넷은 원래 있던 대로 매트리스 밑으로 차트를 밀어넣었다. 루이스는 꼼짝도 하지를 않았다 다시 4층으로 돌아오던 자넷슨 갑자기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는 다른 데에 신경을 쓰느라 이 복사한 차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번 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부피가 커서 핸드백에는 도저히 들 어갈 것 같지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 었다. 다른 간호사들이나 간호보조원들이 가지 않을 만한 장소에 임시 은닉 처를 찾아야만 했다 휴식시간이 다 끝나버렸기 때문에 자넷은 빨리 생각을 해내야만 했다. 그녀는 결코 출근 첫날부터 규정된 이상의 휴식시간을 취함 으로써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미친 듯 자넷 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녀는 얼핏 환자 휴게실을 떠올려 보았지 만 그곳은 지금 환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다음 그녀는 약품장 의 아래 칸들을 생각해보았지만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침내 그녀는 청소도구실을 생각해냈 다. 자넷은 복도를 위아래로 훌어보았다.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 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 일에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청소 도구 손수레가 근처의 병실 밖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청소원 이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깊게 숨을 들이 쉰 자넷은 청소도구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자동으로 닫히게 되 어 있는 문이 뒤로 닫히며 칠흑 같은 어둠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 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더듬어 전등을 켰다. 그 자그마한 방은 커다란 청소용 싱크대로 꽉 찬 것처 럼 보였다. 그 반대편 벽에는 아래쪽에 캐비닛이 달린 카운터가 하나 놓여 있 었다 카운터 위로는 나지막한 캐비닛들과 청소도구함이 달려 있 었다 그녀는 청소도구함을 열어보았다 빗자루와 대걸레를 넣는 곳 위로 선반이 몇 개 있었지만 그것들은 너무도 눈에 잘 띄었다. 이어 벽장들을 살핀 그녀는 계속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청소용 싱크 모퉁이에 발을 올려놓은 그녀는 카운터 위로 올라 섰다 그녀는 손을 뻗어 캐비닛들 위를 더듬어보았다. 생각했던 대 로 캐비닛과 천장 사이에는 좁고 깊숙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자신이 찾고 있던 곳을 찾아냈다는 확신에 그녀는 복사한 차트를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차트가 뒤편으로 넘어가며 뽀얀 먼지 구름 이 솟아올랐다 만족한 자넷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손을 및은 다음 복도로 나 왔다. 그녀의 행동을 눈여겨본 사람이 없었는지 그녀에게 내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료 간호사 중의 하나가 그녀의 앞을 스치며 명 랑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간호사실로 돌아온 자넷은 재빨리 일에 달려들었다. 5분이 지나 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10분이 지나자 이제는 뛰던 맥박마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몇 분 뒤 마조리가 다시 모습을 드 러냈을 때 자넷은 헬렌 캐벗의 암호 같은 처방에 대해서 질문할 정 도로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각 환자들이 어떤 치료를 받나 살펴보았거든요 " 222 자넷이 말했다 "어떤 환자를 맡게 되던지 미리 대비를 해두려면 들어가는 약제 들에 대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MB300C랑 MB 303c란 것들을 보았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요. 그런 약들은 어디 서 탈 수 있죠?" 마조리가 책상 위로 굽히고 있던 몸을 곧추세웠다. 그녀는 은빛 이 나는 목걸이에 걸려 있던 열쇠출 집어 밖으로 내보였다. "MB 부호의 약은 저한테서 타면 돼요 " 그녀가 말했다. "그 약들은 바로 여기 간호사 실내에 비치된 냉장 보관함에 보관 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작은 캐비닛을 열어 안쪽의 자그마한 냉장고 하나를 보 여 주었다 "그 약은 각 근무의 수간호사 책임하에 있어요. 우리는 MB 제 재들을 마약성 약품들처럼 취급하고 있어요.조금 더 철저히 감시 를 하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조제실에서 찾을 수가 없었군요." 자넷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갑자기 자넷은 이 약 제들의 샘플을 구한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백 배나 더 힘들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그게 정말 가능이나 한 일인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톰 위디콤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는 생전 이렇게 난감하기는 처음이었다 대개의 경우 그는 어머니 와의 대화로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그녀조차 그와 이야기를 하려 들지를 않았다. 그는 작심을 하고 그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했던 것이다. 그는 자넷 리어든이 병동에 처 음 모습을 나타낸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감시의 눈길을 뗀 적이 없 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뒤를 밟으며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 을 지켜보았다. 한 시간 퐁안이나 그녀를 미 행 했던 톰은 자신의 의 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단정을 지어버렸다 다른 간호사들 과 똑같은 그녀의 행동에 통은 안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다시 글로리아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통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악 마음을 놓자 마자 다시 또 가로막고 나서다니! 똑같은 사람이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글로리아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자신의 시도를 방해한다 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연거푸 이틀씩 이 나1" 톰이 청소도구실의 적막속에서 씩씩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여자는 스파이가 분명해 !" 그가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번에는 자신이 그녀 가 있는 데 불쑥 나타났던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 다 사실이지,그 편보다는 이것이 훨씬 나았다 그는 하마터면 그 녀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뻔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보았는지 는 확실치가 않았지만 아마도 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후. 그는 또다시 그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나 하나 행퐁을 하면 할수록 그는 그녀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왔다 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결코 보통 간호사 같지 가 않았다 그녀는 여느 간호사들과는 달리 여기저기 몰래 돌아다 니며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최악의 것은 그녀가 몰래 그의 청소도 224 구실까지 들어와 캐비닛들을 열어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복도 에서 그녀의 행동을 엿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그녀가무엇을찾고 있을지 알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그녀가 그 물건을 찾아낼까 걱정 이 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청소도구실을 나서자마자 그는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카운터 위로 기어 올라간 그는 구석에 놓 인 캐비닛 위를 더듬어 석시닐콜린과 주사기들의 위치를 확인해보 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아무 탈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 다 카운터를 기어 내려온 통은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 땀을 흘렸다 그는 석시닐콜린이 제자리에 있으니 아직은 안전하 다고 거듭거듭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그가 셀라 아놀드를 처리했 던 것처럼 자넷 리어든도 손을 봐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추호도 의 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성스러운 전쟁을 방해하 도록 그냥 놓아둘 수가 없었다. 만일 그런 일을 용납한다면 앨리스 를 잃게 될지도 몰랐다. "엄마, 적정마세요." 톰이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 다 잘될 거 예요." 하지만 앨리스는 들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녀는 겁을 먹고 있었 다. 15분이 지나자 톰은 다시금 세상과 대면할 수 있을 정도로 침 착해졌다 깊은 숨을 들of켜 용기를 되찾은 그는 문을 열고 복도로 발을 내디◎다. 그의 청소 수레는 오른쪽 벽에 붙어 세워져 있었 다 손잡이를 움켜쥔 그는 앞을 향해 손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바닥만을 내려다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 다. 간호사실 앞을 막 지나치려는 순간 방을 하나 치워 달라고 고 함을 지르는 마조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정 부서 쪽에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을 했다. 2층은 익래 밤 근무자들 의 담당 구역이었지만 매번 커피를 쏟았다던지 하는 사소fl사고 에도 그는 청소를 해달라는 호출을 받곤 했었다. "그럼 빨리 마치고 돌아와요. 마조리가 소리를 질렀다. 톰은 들릴락말락 나지 막한 소리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행정 부서들 층에 도착한 톰은 곧장 주 비서실로 수레를 밀고 들 어갔다. 그곳은 항상 분주한 곳이었기에 그에 게 두 번 시선을 던지 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손수레를 포베스 사옥 배치도 차트 가 붙은 벽 바로 앞에 세웠다. 사옥 배치도에는 매퐁 열 채의 아파트가 그려져 있고 그 각각에 는 거주자들의 이름이 적힌 자그마한 딱지가 붙어 있다 톰은 재빨 리 207호 칸에서 자넷 리어든의 이름을 찾아냈다 누가 돕기라노 한 듯 배치도 아래 벽에는 열쇠 보관함까지 달려 있었다 과 안에 는 라벨이 붙은 여러 개의 열쇠뭉치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 자물통 에는 항상 열쇠가 꽃혀 있었다. 청소 수레로 열쇠함을 가린 통은 조심스레 207호 열쇠뭉치를 집어들었다. 자신의 출현을 정당화하기 위해 휴지통을 몇 개 비운 톰은 수레 를 밀고 다시 엘리 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엘리 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던 통은 안도감을 느꼈다 앨리스가 다시금 그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가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자신이 그를 몹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새 간호사 자넷 226 리어든 때문에 걱정을 했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걱 정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톰이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순 없어요." 스털링 롬바우어는 항상 그의 담임 선생과 어머니가 입을 모아 신봉했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금언을 좋아했다 그 는 자신이 수년에 걸쳐 키워온 호텔 종업원 일을 하는 정보원들을 통해 보스턴 시내에 다나카 야마구치가 좋아할 만한 호텔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다나카라는 사내가 같은 직 업 에 종사함은 물론,호텔에 대한 안목도 엇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털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보스턴 리츠 칼튼에 단골로 투 숙했던 덕에 호텔내에 있는 스털링의 정보원들은 정말 노다지 같 은 정보들을 제공해주었다. 그는 몇 개의 신중한 질문들로 귀중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 첫번째는 다나카가 스털링 그 자 신이 애용하는 자동차 서비스 회사에서 교통 수단을 제공받았다는 것이었는데, 그 회사가 업계 최고인 것을 감안할 때 그 사실은 그 리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두번째는 그가 적어도 하루 이상 더 호 텔에 투숙하리라는 소식이었다. 마지막 것은 그가 리츠의 카페에 두 사람 자리를 예약했다는 정보였다. 스털링은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테이블들이 오밀조밀 배열되어 있는 리츠의 카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건 그는 야마구치 일행을 카 페 안쪽 깊숙한 곳의 테이블에 앉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자동 차 회사의 사장에게 건 전화는 야마구치의 차를 운전할 운전사의 이름은 물론 그의 행선지 일체를 적어 넘겨주겠다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전해 주었다 "이 쪽발이 놈은 뒤가 든든한 모양이에요." 스털링의 전화를 받은 자동차 회사사장의 귀◎이었다. "우리가 그 녀석을 공항서부터 데려 왔거든요. 자가용 제트기로 왔는데, 정말 으리으리하더군요." 공항으로 전화를 건 스털링은 쓰시타 걸프스트림 I[I 기가 아직도 기착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그것의 호출 부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워싱턴 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미국 연방항공 f)의 정보원에게 전화를 걸어 호출 부호를 알려주고 그 제트기의 움직임에 대해 계속 소식을 전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호텔 방을 떠나지도 않고 점심 약속 전의 자투리 시간으로 그렇 게도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는 데 기분이 좋아진 스털링은 버버 리 상점에서 새 셔츠 몇 벌을 구입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치하할 생 각으로 뉴 버리 가를 가로질렀다. 다리를 꼬아 앞으로 뻗은 숀은 병원 식당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 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왼쪽 팔꿈치를 식탁에 기대 턱을 받치고 오 른팔은 의자 뒤쪽으로 대롱대롱 늘어뜨린 채 우두커니 생각에 잠 겨 있었다. 기분상으로 본다면 그의 마음은 어젯밤 자넷이 거실 미 닫이 문을 통해 들어 왔을 때와 거의 비슷한 상태였다. 오늘 아침은 전날의 악몽을 재연이라도 하듯이 이 포베스 센터가 이상하고, 일 을 하기에는 결코 적합치가 않을 것 같다는 그의 생각을 새삼 확인 시켜주고 있었다. 히로시는 아직도 서툰 흥신소 직원처럼 숀의 뒤 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숀이 5층에 없는 기구를 이용하기 위 해 6층에 갈 때마다 몸을 돌려보면 이 일본 친구의 모습이 그림자 228 처럼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숀이 그에게 눈길을 줄 해마다 히로 시는 마치 숀이 그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 도로 멍청이라도 되는 듯 재빨리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숀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자넷과는 열두 시 반 정각에 만나기 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벌써 약속 시간이 5분이나 지나 병원 직원 들이 하나 둘씩 식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자넷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숀은 곧장 주차장으로 달려가 이스즈 지프에 몸을 실은 뒤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면 어떨까 공상의 나래 를 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자넷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 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숀의 기분은 훨씬 나 아졌다. 자넷은 플로리다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창백한 편이었 지만 마이애미에서 지낸 며칠 덕에 이제 그녀의 피부는 벌써 눈에 띌 정도로 홍조를 띄고 있었다 숀은 그녀가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 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다가오는 그녀의 육감적인 모습에 황홀한 눈길을 던지며 숀은 자 신들을 각자의 아파트에 따로따로 떨어져 살게 만드는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도록 자넷을 달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 다. 그녀는 인사를 건네는 등 마는 등 허검지겁 그의 건너편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겨드랑이에는 마이애미 판 신문이 접혀 끼워 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지친, 위험에 처한 연약한 참새처럼 쉴새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 그녀가 몹시도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넷,무슨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러지 말아. 숀이 말했다 "제발 좀 진정해."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걸 어떻게 해요." 자넷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애쓰며 조심스럽게 몰래몰 래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어쩐지 모든 사람들이 다 내가 무엇을 하 는지 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 숀은 황당하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기껏 구한 조수가 이런 터무니없는 풋내기라니‥‥‥‥ 그는 혀를 차며 농담을 했다 이어,숀은 약간 더 진지해진 어조 로 덧붙였다 "벌써부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 을지 모르겠어, 자넷. 이제 겨우 시작인데 말이야. 앞으로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볼 때 아직은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셈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좀 샘이 나 적어도 당신은 무엇인가는 하고 있잖아 그런데 나는 아침 내내 생쥐에게 포베스 단백질과 프 로인트 보조시 약(Fl·eund Adjustment, 면역 작용을 항진시킬 목적 으로 사용되는 보조제)을 주사하느라 다 허비해버렸어 흥미를 느 낄 만한 일도, 긴장을 느낄 만한 일도 하나 없었어 여긴 아직도 날 정 말 미치 게 해 " "당신 단백 질 결정들은 어때요? 자넷이 물었다. "그건 일부러 지연을 좀 시켜놓고 있어 . 숀이 말했다. "너무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디까지 진척이 23H 긴 ◎ . . . . . ~ .~ ~ ~ t긴 ◎ 딘 ) .. . 되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이야. 그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어떤 실험이던 조사를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때 시간을 끌어다 쓰고서는 그들에게 방패막이로 보여줄 결과를 들고 있을 수가 있거든. 그래 성과는 좀 있었어?" "대단치는 않아요." 자넷은 솔직히 고백을 했다 "하지만 시작을 하기는 했어요. 차트 하나를 복사해 왔어요." "한 개?" 숀은 역 력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겨우 차트 한 개 가시고 지금 이렇게 안절부절하는 거야?" "날 그렇게 닥달하지 마세요." 자넷은 짜증을 냈다. "나한텐 이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구요." "난 '그러길래 내가 뭐 랬냐'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어 " 숀이 빈정 거 렸다 "절대. 난 그런 말은 안 해. 내 스타일이 아니 거든." "오, 제발 좀 닥쳐요." 자넷이 식탁 밑으로 손에게 신문뭉치를 건네며 말했다.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구요." 숀은 신문을 들어 식 탁 위에 올려놓았다. 신문을 펼친 그는 재빨리 복사한 페이지들을 꺼냈다. 이어 그는 신문을 한쪽 귀퉁이로 밀쳤다. "쇼 1" 자넷은 당황해 번잡한 식당을 두리번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이라도 더 조심스럽게 굴어줄 순 없어요?" "난 이제 조심스럽게 구는 데 신물이 나버렸어." 그가 말했다. 그는 복사된 차트를 훌어내리기 시작했다. "저를 위해서라도요?" 자넷이 물었다 "여기 우리 병실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내가 당신에 게 이 복사물을 건네는 걸 보았을지도 몰라요 " "당신은 사람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숀이 자넷의 걱정에 건성으로 응수를 했다. "사람들은 당신 생각처 럼 그렇게 관찰력 이 뛰어나지 가 않아." 이어 . 그는 자넷이 가져온 복사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루이스 마틴의 차트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보내온 환자 의뢰 자료에 불과할 뿐 아무런 알맹이는 없어. 이 병력과 이학적 검사는 내가 해놓은 거 야. 신경과를 돌던 게으름뱅이 자식 이 내 정밀 검사 를 그대로 베낀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자넷이 물었다. "문구를 보면 알 수 있어 ." 숀이 말했다 "이것 좀 들어봐 '환자는 3개월 전 전립선 절제술을 견뎌냈다. ' 나는 누가 내 것을 읽어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기 위해 이 런 '견뎌냈다' 같은 표현을 써본다구 이건 내가 내 자신과 하는 일 종의 게임이야 병력에다 이런 식의 말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 든. 왜냐하면 병력에는 그저 사실만을 적도록 되어 있지 이렇게 자 신의 판단 따위를 적으면 안 되는 것이거든." "모방이란 것은 최고 형태의 찬사예요. 그러니 기쁘게 생각해도 232 ~보4.』거포근』f~~.ll 될 거 예요." 자릿이 말했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볼 만한 것은 처방 명령뿐이야." 숀이 말했다. "이 환자는 두 종류의 암호로 적힌 약제를 투여 받았어. MB 300M. MB305M." "그 암호는 제가 헬렌 캐벗의 컴퓨터 파일에서 본 것과 비슷해 .5.. " 자넷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컴퓨터에서 입수한 치료 적은 종이 쪽지를 건네주었다. 숀은 그곳에 적힌 용량과 투여 속도를 훌어보았다. "그게 무엇인 것 같아요?" 자넷이 물었다 "전혀 감도 안 서 " 숀이 말했다 "약들은 얻어찼어7" "아직은요." 자넷이 고백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요. 특수한 냉장 정보를 보관함 안에 들어 있는데 수간호사들만이 그 열쇠를 가지고 있어요." "이 건 재미 있군." 숀이 계속 차트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여기 적힌 날짜와 시간으◎ 보면 그가 이곳에 도착한 즉시로 치 료가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군 " "헬렌 캐벗도 그래요." 자넷이 말했다. 그녀는 마조리가 자신에게 이야기해주었던, 즉 세포 면역 치료는 생검과 T세포 추출 후에야 시작되는 반면 항체 면역 치료는 도착 즉시 시작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빨리 치료를 시작한다는 게 좀 이상해. 숀이 말했다. "사용되는 약제들이 단지 림포카인(Lymphokine, 임파구가 생산 하는 화학 물질로 면역의 항진에 도움을 준다)이나 다른 일반적인 면 역 자극제들일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건 새로운 종류의 화학요법제나 새로운 약품일 수는 없어 ." "왜 _5.7" 자넷이 물었다. "인체에 쓰는 약제들은 모두 FDA(미 식품 의약국)의 허가를 받 아야 하기 때문이지 ." 숀이 말했다. "어째서 루이스 마틴의 차트만 달랑 들고 나왔어? 헬렌 캐벗 것 은?" "마틴의 차트를 얻은 것만도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자넷이 말했다. "캐벗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혈장 분리 를 받고 있고, 또 다른 환자 캐서린 샤렌버그는 생검중이에요. 마 틴이 캐서린에 이어서 생검을 받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트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던 거 예요 " "그럼 이 환자들이 지금 이 순간 2층에 있단 말이야?" 숀이 물었다. "우리 들 머 린 바로 위 에7" 234 "그럴 거 예요." 자넷이 말했다. "그럼 점심을 건너뛰더라도 한번 올라가봐야겠군 " 숀이 말했다. "대개 진단이나 치료 부서들은 소란스럽고 혼잡하기 때문에 차 트들이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굴러다니기가 십상이지. 어쩌면 슬쩍 한번 훌어볼 수 있을지도 몰라." "당신이나 올라가보세요 " 자넷이 말했다 "이런 일에는 저보다 당신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당신 일까지 떠맡겠다는 건 아니야." 숀이 말했다 "나머지 차트 두 개도 마저 복사를 해줘 매일매일 새로운 추가 내용들도 포함해서 말이야. 또, 여태까지 치료를 했던 수아세포종 환자들 명단도 하나뽑아다 줬으면 좋겠어 그 사람들의 치료 결과 가 특히 관심이 가거든 또, 그 암호로 적힌 약제들 샘플 좀 구해 봐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야. 그 약이 꼭 있어야 돼. 가급적이면 빨리 구해다 주는 게 좋겠어 ." "최선을 다 할게요." 자넷이 말했다. 그저 루이스 마틴의 차트 하나를 복사해오는 데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통감한 자넷은 숀이 바라는 만큼 신속하게 원하는 것 모두를 손에 넣을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숀에 게 그런 걱정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그냥 보스턴으로 돌아가버릴까 적잖이 두려웠기 때 문이다. 숀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넷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쉽지가 않다는 건 잘 알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 이건 전부 당신 발상이었어." 자넷은 숄의 손을 어루만졌다 "우린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따 카우 팰리스에서 봐. 그가 말했다. 숀은 식당을 나서 계단을 통해 2층을 향했다 그가 나온 곳은 건 물의 남단이었다. 병원의 주 업무들이 이루어지는 2층은 그의 예 상대로 몹시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진단 목적의 방사 선 조작은 물론 방사선 치료까지도 행해지고 있었고, 모든 수눌과 함께 병상에서 간단히 처리할 수 없는 치료 조작들이 시행되고 있 었다 어찌나 혼잡했던지 숀은 이리저리로 왕래하는 이동 침대들 틈을 비집고서야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복도 벽에는 환자들 이 실린 수많은 이동 침대들이 세워져 있었고,의자에는 환자복 차 림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병원 직원들,환자들과 부딪혀 거듭사과 를 되풀이하면서도 숀은 계속 그 번잡한 틈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 는 지나는 문들마다 안쪽을 기웃거리며 고생스럽게 중앙 복도를 지나쳐갔다. 방사선과와 화학 검 사실들은 복도 왼편이었고, 치료 실, 중환자실과 수술장들은 오른편에 있었다. 혈장 분리에는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 필요가 없으며 왜 긴 시간을 잡아먹는 조작이란 23a 사실을 아는 숀은 헬렌 캐벗을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녀의 차트도 차트였지 만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 리 띠 에 고무 터 니 켓(채혈 등을 할 때 쓰는 고무줄 지 혈대)을 꽃 은 혈액학과 기사를 발견한 숀.은 그녀에게 혈장 분리가 어디서 시 행되는지를 물었다. 그 여자는 숀을 인도해 옆으로 이어진 복도로 데리고 간 다음 두 개의 방을 가리켰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숀은 첫번째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남자 환자 하나가 이 동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살며시 다시 문을 닫은 숀은 다음 방의 문을 열었다. 그는 멀리 문간에서도 환자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헬렌 캐벗이 었다. 방안에는 헬렌 혼자뿐이었다. 그녀의 왼팔에는 유출선과 유입선 이 부착되어 있었고,그 선을 타고 그녀의 혈액 분리기구(분리기구 를 통해 혈액은 혈액의 구성 성분들을 분리해 임파구들은 추출하고, 나머지 부분은 다시 체내로 주입한다)로 흘러들고 있었다. 헬렌은 붕대를 칭칭 동인 머 리를 숀 방향으로 돌렸다. 즉시 그를 알아본 헬렌은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지만 그녀의 커다란 녹색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그녀의 안색과 초췌해진 외양으로 숀은 그녀의 상태가 몹시도 악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속적으로 시달려 왔던 경 련 발작의 폐해는 실로 극심했다.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숀이 몸을 숙여 그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그는 그녀를 부등켜안고 달래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 다. "어떻게 지 냈어요?" 그가 물었다. "좀 힘이 들었어요." 헬렌은 간신히 입을 떼 대합을 했다. "어제 생검을 또 한번 했거든요. 정말 괴로운 일이었어요. 병원 사람들이 치료를 시작하면 일시적으로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는 말을 했는데 정 말 그 말대로 됐어요. 절대 꼭 나을 수 있다는 신 념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도 해주더군요. 하지만 정말 힘이 들어 요.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심지어는 말하는 것조차도 힘 이 들어 요." "하지 만 마음을 굳게 먹고 참아내야만 해요." 숀이 말했다. "약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병원이 모든 수마세포종 환자들을 다 완치해 회복시켰다는 사실을 기 억해보세요." "저도 계속 그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헬렌이 말했다 "가급적이면 시간을 내 매일 들러볼게요." 숀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당신 차트는 어디 있지요?" "대기실에 있을 거 예요. 헬렌이 주사가 달리지 않은 오른손을 들어 또 하나의 문을 가리 키며 말했다. 숀은 그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어깨를 다독 인 그는 이어 복도로 연결된 자그마한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 기실 카운터 위에는 그가 그토록 찾던 헬렌의 차트가 놓여 있었다. 숀은 차트를 집어들고 처방 명령이 적힌 부분을 뒤적였다 마틴 238 의 차트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약제들의 이름이 또박또박한 글 씨로 적혀 있었다. MB300C, MB303C. 차트 첫머리를 펼치자 의 뢰 자료들의 일부로 함께 전달되었던 자신의 정밀 검사 사본이 눈 에 띄었다. 재빨리 페이지를 넘긴 숀은 진행 노트(일단 초진 기록을 적은 뒤 환자의 진행 상태를 기입한 병록) 부분에 이르렀다. 그는 생검 사실 을 기 입한 부분을 읽어보았다. 노트에는 우측 귀 상부로 개두술(떠 SHfS)을 했다는 것에 아울러 환자가 시술을 잘 견뎌냈다는 짤막한 기술이 들어 있었다. 혹시 생검 검체의 동결 절단(Frozen Section, 수술장에서 얻어진 검체를 급속 동결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즉석 병리 검사)이라도 해 보았을까 궁금해 마악 검사 결과지들을 훌기 시작하던 순간 숀은 갑작스런 훼방에 몸을 움츠렸다 복도 쪽으로 연결된 문이 벌컥 열리며 손잡이 자국이 나도록 세 차게 벽면을 때렸다 그 요란한 소리에 깜작 놀란 숀은 그만 들고 있던 차트를 플라스 틱 표면의 카운터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는 문간을 가득 메운 위압적인 모습의 리치몬드가버티고서 있었다. 숀은즉 시 그녀가 닥터 메이슨의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왔던 간호부장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들어오는 것이 그녀의 몸에 밴 습관인 모양이었다 "여 기서 뭘 하시는 거죠?" 그녀가 다그쳐 물었다. "그리고 또 그 차트는 대체 왜 들고 있는 거예요?" 그녀의 널찍한 등근 얼굴은 분노로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숀은 그저 아무렇게나 둘러대건려근 생각을 해보았지만 눈간 마 음을 고쳐먹었다 "친구한테 잠간 들러본 중이었습니다. " 숀이 말했다. "캐벗 양은 보스턴에 있을 때 제가 맡았던 환자였거든요." "하지만 당신에겐 그녀의 차트를 볼 권한이 없어요." 리치몬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환자 차트는 환자 자신과 담당 의사만이 볼 수 있는 기밀 서류 예요 그 점에 있어 우리는 우리가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 각해요." "저는 환자가 기꺼이 제게 차트를 읽어보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 숀이 말했다. "함께 옆방으로 건너가 직접 물어볼까요?" "당신은 여기 임상 연구원 자격으로 온 게 아니에요 리치몬드는 숀의 제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악을 써댔다 "당신은 여기서 연구 활동 이외에 다른 것들을 할 수가 없어요. 뻔뻔스럽게도 병 원내에까지 함부로 쳐들어오다니 도저히 용납을 할 수가 없어요." 그때 리치몬드의 우악스러운 어깨 너머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성난 해병,로버트 해리스의 푸석 푸석한 밉살맞은 얼굴이었다 숀은 이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가 감시 카메라 중 하나에 잡힌 것이 분 명한데, 아마도 2층 복도를 헤매다가 그랬던 것 같았다. 해리스는 리치몬드에게 연락을 한 뒤 이어 숀이 작살이 나는 것을 구경하러 240 군~◎ ◎건렸 ◎~긴.럴켜킨긴. 1 올라온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숀은 특히 이 리치몬드라는 여자가 이성적 인 해결을 모색하는 자신의 의도에 전 혀 반응이 없음을 깨닫자 한번 따끔하게 반격을 해주고 싶은 충동 을 더이상 억 제할 수가 없었다. "당신네들이 다 자란 어른들처럼 이성적으로 의논할 기분이 아 니라면 말이죠. 손일 입을 열었다 "다시 연구동 건물로나 쭐레쭐레 가보아야겠군요." "당신이 무례하게 굴수록 일은 너 악화가 될 뿐이에요 리 치몬드가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무단 칩 입에 사생활 침 해죄를 저 질러놓고는 뻔뻔스럽 게 미 안해 하는 기 색도 하나 없군요. 하버드 대학 당국자들이 당신 같은 사람 을 받아들였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하군요. "비밀옳 하나 알려 드리죠." 숀이 말했나. "그 양반들은 내 매너를 보고 뽑아준 게 아니랍니다 날 뽑은 건 내 하키 실력 때문이었어요. 자 정말 당신네들이랑 앉아 더 이야 기를 나누고 싶기는 하지만, 내 쥐새끼 친구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수가 없으니 돌아가보아야겠군요.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그 친구 들이 여기 포베스 직원들 대부분보다는 훨씬 훌릉한 성격들을 가 지고 있거든요." 숀은 점차 보라색으로 변하는 리치몬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그를 짜증나게 하는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 결과 그는 마이애미 돌핀스(마이애미를 근거지로 삼 은 미식 축구프로 팀의 이름)의 수비도 어렵지 않게 소화해낼 수 있 을 것처럼 생긴 이 여인을 자극해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데서 또한 쾌감을 얻고 있었다. "경찰을 부르기 전에 어서 여기서 썩 나가요. 리치몬드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숀은 경찰이 오면 정말 재미있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제복 차림의 풋내기 경관이 불려와 숀의 죄목을 어디다 분류해야 할지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숀은 신문에 실릴 기사도 상 상해보았다. 하버드 실습생 자기 환자의 차트를 실제로 홈쳐보다! 숀은 리치몬드와 눈을 맞닥뜨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 는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함박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랑 함께 있고 싶다는 건 잘 알겠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전 정말 가봐야 해요." 해리스와 리치몬드는 함께 병원과 연구등 건물 사이를 잇는 구 름다리가 나을 때까지 숀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들은 걷는 동안 내내 목청을 높여 현대의 젊은이들의 타락상을 성토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숀은 동네 밖으로 끌려나가 추방을 당하는 것만 같은 기 분을 느꼈다 구름다리를 건너며, 숀은 만일 여기에 머무를 생각이라면 수아 세포종에 대한 임상 정보는 전적으로 자넷의 손에 의존해야 할 것 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5층의 실험실로 돌아온 숀은 자신이 처하게 된 이 웃기지도 않 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의 업무에 몰두 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위층의 텅 빈 실험실과 마찬가지로 헬렌 242 의 차트에는 그들이 법석을 떨며 제지하고 나설 만한 사항이란 단 한가지도 적혀 있지는 않았나 하지만 점차 마음이 차분해지자 숀 은 리치몬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는 싫은 일이었지만, 이 포베스 병원은 사립병원임 에 틀림이 없었다. 이곳은 교육과 환자의 치료가 병 행되는,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 같은 교육 병원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는 헬렌의 차트가 기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리치몬드의 분노는 그의 사소한 법칙에 대한 것치고는 너무 과한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숀은 완전히 자신의 결정 증식 작업에 푹 빠져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플라스크를 들 어 천장 불빛에 비추어보던 숀은 시야 밖에 어른거리는 어떤 움직 임을 감지했다 그것은 첫날 사건의 재연이었다. 이번 역시 그 움 직임은 계단 쪽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계단 쪽으로는 한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숀은 조용히 의자에 서 일어나 마치 무슨 물품이 필요한 듯 물품 창고 안으로 걸어 들 어갔다 창고는 중앙복도로 연결이 되어 있었기에 숀은 건물을 가 로질러 그 움직임을 보았던 계단의 반대편에 있는 계단으로 달려 갈 수가 있었다 한 층을 달려 내려간 숀은 4층을 가로질러 반대편 계단으로 돌 아왔다.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발을 옮기며 그는 5층의 플랫폼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계단을 올라갔다. 짐작했던 대로 그곳에는 왜 숀이 창고에서 나오지 않을까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히로시가 은 밀히 유리창을 통해 실험실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숀은 살금살금 나머지 계단들을 올라 히로시 등 뒤에 붙어섰다. 다음 그는 목청 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사방이 꽉 막힌 계단에 서 그가지른 소리의 효과는 자신도 놀라 기절할 정도의 굉음이었 다 척 노리스의 무술 영화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던 숀은 히로시가 갑자기 반사적으로 가라데 고수로 돌변해버릴까 봐 약간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히로시는 거의 뒤로 나자빠질 뻔했 다. 그가 문의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사 실이었다 그렇지 않았었더라면 그는 바닥에 '옷'자로 나◎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자 히로시는 문에서 뒤로 물러서 중얼중얼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 다. 뒷걸음질을 치던 그는 발이 첫번째 계단에 닫자마자 황급히 몸 을 돌려 계단 위로 도망을 치며 시야에서 사라져버 렸다 진저리를 친 숀은 히로시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히로시를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닥터 데보라 레비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이제 숀은 히로시의 염탐이 지긋지 긋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문제를 연구실 총책임자인 닥터 레비와 상의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장 7층으로 올라간 숀은 닥터 레비의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에늪 아무도 없었다. 공용 비서(한 명이 여러 명을 맡도록 되어 있는 비서) 들은 그녀가 어디쯤 있을지 전혀 알수가 없다고 했지만 무선 호출 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하지만 숀은 그들 의 말대로 하는 대신 6층으로 내려가 언제나와 같이 티 한점 없는 흰 실험 가운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마크 핼펀을 찾아갔다. 숀이 보기에 그는 매일매일 실험 가운을 빨아 다리미질을 하는 것 같았 244 컨t◎..f~◎◎◎◎ Cf ~◎ Y I ~ . 1 . 긴◎근 , ◎길 다. "전 지금 닥터 레비를 찾고 있습니다 숀이 신경 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 안 오셨는데요." 마크가 말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그럼 나중에는 돌아오실까요?‥ 숀이 물었다. "오늘은 안 나오실 거예요." 마크가 말했다. "아틀란타에 가셔야 하거든요 주 다니시지요." 있으세요7" "언제쯤이 면 돌아오실까요?"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마크가 말했다. "아마 내일 늦게나 오실 거예요. 돌아오는 시설물들을 둘러보신다고 했거든요.-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내시나요7‥ 숀이 물었다 "그런 셈이죠." 마크가 말했다 "원래 여기 포베스에 계시던 박사님들 몇 분이 키 웨스트로 예정이었는데 그리로 안 가시고 그냥 센터를 그만두어 버 리셨거 요. 덕분에 닥터 레비만 산더미같은 일을 더 맡게 되었답니다. 일까지도 몽땅 그녀 차지가 되어버렸지요. 제가 보기엔 공석을 닥터 레비는 일 때문에 출장을 자 길에 우리 키 웨스트 ┼ 우기가 좨 힘이 드는 것 같더군요." "돌아오시면 제가 좀 꾑고 싶어한다고 전해주세요." 숀이 말했다. 사실 그는 포베스의 인력 보충의 어려움 같은 것에 는 추호도 관심 이 없었다. "정말 제가 도와드릴 게 없으세요?" 마크가 물었다 잠시 숀은 마크에게 히로시의 이상한 행동거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 얘기는 어 떠 한 권한을 가진 사람에 게나 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다 마크 같은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 분명했 다 자신의 분노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자 한풀 꺾인 숀은 다시 자신의 실험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거의 비상구 에 다 다다랐을 때 갑자기 마크에 게 하고 싶은 질문 하나가 그의 머 리를 스쳤다 다시 마크의 사무실로 돌아온 숀은 그에게 병원의 병리과 의사 들이 연구원들과 긴밀한 협조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가끔은 그럴 때도 있지요." 마크가 말했다. "닥터 바튼 프라이드버그는 병리학 판독이 필요했던 몇 편의 연 구 논문에 공저자로도 일을 하신 적이 있지요 "그 사람은 어때요7" 숀이 물었다. "친절한가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내가 보기엔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그 양극단 중 하나로 분류되는 것 같더군요." 246 │ ┴ "그럼 그 양반은 분명 친절한 편에 들 거 예요." 마크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f!: 당신이 불친절하다는 것과 진지하고 바쁘 다는 것을 크게 혼동하고 있는 것 같군요." "당신 생각엔 그 양반께 내가 전화를 걸어 댄 가지 여쭈어보아도 될 것 같으세요?" 숀이 물었다 "그 정도로 친절하세요?" "물론이죠." 마크가 말했다 숀은 자신의 실험실로 내려가 유리벽의 사무실 안에 놓인 책상 에 걸터앉아 닥터 프라이드버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병리의가 직접 전화를 받아든 것이 어쩐지 좋은 징조인 것만 같았다. 숀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 자신이 전날 시 행되었던 헬렌 캐벗 의 생검 소견에 관심이 있다고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닥터 프라이드버그가 말했다. 숀은 그가 실험실내의 들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헬렌 캐벗의 생검 조직은 이리로 안 왔답니다 그가 다시 전화에 대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어제 생검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숀이 말했다. "그럼 곧장 기초 진단실로 간 모양이로군요." 닥터 프라이드버그가 말했다 "궁금하신 게 있으면 그리로 직접 연락해보셔야 해요 다른 사람 그런 조직 ┼ 들은 아예 이쪽으로 오지도 않는답니다. " "그럼 , 그쪽 누구한테 여쭈어보면 될까요? 숀이 물었다. "닥터 레비한테 물어보세요." 닥터 프라이드버그가 말했다. ·폴과 로저가 그만둔 뒤론 그녀가 그쪽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누구한테 표본 판독을 시키는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 한테는 보내지를 않아요." 숀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포베스에서는 쉽사리 되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는 것 같았다. 닥터 레비에게 헬렌 캐벗에 대해 물 어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일 그런 어설픈 행동을 하면 그녀는 그가 헬렌의 차트를 훈쳐보고 있었다는 리치몬드의 고자질을 접하 는 순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에 알아내버릴 것이었 다. 은은 한숨을 내신떠 포베느 단백질의 결정을 양생하기 위해 자 신이 차려놓은 실험 실비들을 내려다보았다. 연구고 뭐고 다 뒤집 어 개수대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뎃에 게 , 오후 시 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치 로와 진단 검사들을 받기 위해 줄곧 환자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어 이들을 정시에 약속된 장소로 보내고 되찾아오는 일은 한시도 마 음을 놓을 수가 없는 기술적 인 문제를 수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 라, 그녀가 맡은 일에는 정확한 용량과 투여 시간을 지켜야 하는 복잡한 치료 스케줄을 따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서도 자넷은 환자들이 간호 248 사들 간에 어떻게 배정이 되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별 큰 수 고를 하지 않고도 그녀는 다음날 헬렌 캐벗, 루이스 마틴, 캐서린 샤렌버그의 담당이 되도록 조정할 수가 있었다. 약들을 직겁 취급해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는 그날 수아세포종 환자 담당인 간호사들이 마조리로부터 약병들 을 배분받을 때 암호명으로 적힌 약제들을 볼 수가 있었다. 일단 약병을 넘겨 받은 간호사들은 각각을 주사기에 옮겨 담기 위해 약 품실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MB300은 loco짜리 주사약병에 MB303은 더 자그마한 5cc주사약 병에 들어 있었다. 그 약제들 이 들어 있는 용기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병들은 다른 수많은주사약들이 들어 있는 용기들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오후 한중간이 되면, 병동에서는 오전처럼 약간의 휴식을 취하 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다. 자넷은 그 휴식시간을 이용해 의무 기록실로 내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녀는 팀에게 했던 것과 같 은 계략을 또 한번 써먹었다. 그녀는 사서의 하나인 벨라니 브록이 라는 젊은 여자에게 자신이 새로 취직을 하였으며 포베스의 컴퓨 터 시스템에 대해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로 운을 뗀 다음 컴퓨 터에 대해서는 왜 익숙한 편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자넷의 열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그 사서는 기꺼이 의무 기록 접근 코드를 가르쳐주며 자신들의 파일 포맷을 보여주었다.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쳐준 델라니가 자리를 뜨자 혼자 남은 자 넷은 병실의 간호사실에서 현재 입원중인 수아세포종 명단을 뽑을 때 사용했던 T-9872라는 진단 부호를 이용, 그 진단 부호하의 모 든 환자들을 스크린에 불러냈다. 지난번과는 다른 명단 하나가 스 크린에 펼쳐졌다 이번에 나타난 것에는 지난 10년 간의 의무 기 록상에 기재된 38례 환자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이 명단에는 현재 병원에 입원중인 다섯 환자는 들어 있지가 않았단· 최근 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자넷은 컴 퓨터를 두드려 연도별 증례수를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그래프로 그리자 그 결과는 놀랄 만큼 눈에 현저하게 나타났다. 그래프를 본 자넷은 처음 8년 간에는 수아세포종 증례가 불과 다섯 건뿐이었던 것에 반해 최근 2년 간에는 33례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것이 참 이상하기도 하 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포베스가 수아세포종의 치료에서 그런 놀랄 만한 성과를 올린 것이 이제 불과 두 해 남짓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머 리를 탁 쳤다. 성과가 좋으면 여기저기서 의뢰 환자가 몰 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들의 인적 사항이 궁팜해진 자넷은 환자들의 연령 및 성별 로 분류해보라는 명령을 입력시켰다. 성별 분포상 최근의 33례는 남자 스물여섯에 여자 일곱으로 남자가 압도적인 우위를 나타냈 다. 그 이전의 다섯 환자의 분포는 남자 두 명에 여자가 세 명으로 여자가 더 많았다. 환자들의 나이를 살핀 자넷은 처음 파섯 환자 중 한 명만이 20대 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나머지 네 명은 모두가 열 살 아래의 어 린이들이었다 그에 반해 최근의 33례에서는 열 살 이하가 일곱 명, 열 살에서 스무 살 사이가 두 명, 그리고 나머지 스물네 명은 모두 스무 살 이상이었다. 치료 결과면에 있어 자넷은 최초의 다섯 증례 모두가 진단을 받 은 지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 세 2,i(1 증례는 불과 몇 달을 견뎌내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 었다. 하지만 최근의 33례에 있어 새로운 치료의 효과는 너무도 극적인 대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세 명 중 불과 세 명만 이 진단을 받은 지 2년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들 모두는 현재까 지 생존하고 있었다. 서둘러, 자넷은 손에게 전해주기 위해 이 새로운 정보들을 적어 내려갔다. 다음 자뎃은 명단에서 임의로 이름 하나를 골라잡았다 도널드 맥스웰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의 파일을 불러냈다 파일의 내용을 살핀 자넷은 그 안에 실린 것들이 매우 간략하게 축약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파일에는 심지어 '더이상의 정보가 필요하면 직접 차트를 조회 해보시오'라는 메모까지 들어 있었다. 자신의 탐구에 너무도 몰두해버렸던 자넷은 시계를 내려다보고 는 그만 대경실색을 해버렸다 아침과 똑같이 휴식시간은 물론 업 무시간까지도 일부 잡아먹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컴퓨터를 만져 그 서른여덟 증례의 연령, 성별과 병록 번호가 기재된 명단을 프린트하도록 명령했다. 불안한 마음 으로 그녀는 명단을 토해내는 레이저 프린터 옆으로 걸음을 옮겼 다. 그녀는 꼭 누군가가 뒤에 버티고 서 그녀의 행동에 대해 설명 을 요구하며 다그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프린터에서 몸을 돌 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 는 것 같았다. 다시 병실로 올라가기 전,자넷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기 위해 멜라니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넷은 복사기 앞에서 멜라니를 발견했다 "퇴원한 환자의 차트를 열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7" 자넷이 물었다. "우리 사서들ft테 부탁하시면 돼요." 델라니가 말했다. "그저 우리늘한테 허가증 사본 한 장만 건네주시면 돼요 델라니가 말했파 "당신은 간호사니 까, 간호부에 부탁을 하시면 허가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엔 한 10분 가량이 걸리지요. 차트들은 양쪽 건물 지하로 길게 연결된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거든요. 왜 효율 적 인 관리 체계로 운영 이 되고 있어요. 우리들은 환자 진료 목적으 로. 즉 환자가 외 래로 오거나 비슷한 경우에 차트를 찾아야 하거든 요. 반면 행정 부서 쪽에서는 진료 계산서 발부나 보험 통계 등의 목적으로 차트 열람을 할 필요가 있지요. 차트들은 화물용 엘리베 이터로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멜라니는 손가락을 들어 벽면에 장착된 유리문의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자넷은 멜라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다음 황급히 의무기록실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그녀는 허가가 있어야만 차트를 열람할 수가 있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 는 아무리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감춘 채로 그런 허가를 얻어낼 방법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손에게 무슨 묘안이 있기만을 빌었다. 초조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자넷은 또 지각을 한 것에 대해 마조리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까 걱정이 되 기 시작했다. 그녀는 계속 이런 식으로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정당치가 못한 일로, 마조리는 분명 불만 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252 스털링은 하루가 너무도 술술 잘 풀려 나가는 것에 몹시 기분이 좋아 있었다. 보스턴 시내의 프랭클린 은행 본점의 유려하게 단장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날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실적을 올린 탁월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게다가 금상첨화격으로 그 후한 보상이 단지 그 자신을 즐기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을 더 더욱 즐겁게만 했다. 리츠에서의 점심식사는 식당의 포도주 창고에서 백(또) 메솔트 와인까지 가져다주는 지배인의 친절한 배려 덕으로 가히 환상적이 었다 다나카와 그의 손팀 곁에 바짝 붙어앉았던 그는 펼쳐 든 월 스트리트 저널 지 뒤에서 그들 대화의 대부분을 엿들을 수가 있었 다 다나카가 초대한 손님은 임뮤노테라피의 인사 담당 간부였다 제네테크는 합병 이후 그 회사를 거의 원상으로 보전한 모양이었 다. 스털링은 다나카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흰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을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 인사 간부가 눈 깜짝할 새에 그 봉 투를 자신의 재킷 주머니로 쑤셔넣는 광경은 놓치지를 않았다 스 털링이 엿듣게 된 정보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숀과 다른 창업 파트너들은 완전히 새로운 벤처 기업의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 해 임뮤노테라피를 매각한 것이었나 다나카의 손님 그 자신조차 도 백 퍼센트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한은 이 새 로운 기업도 역시 생명공학 회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 만 그는 그 새 회사의 이름이나 또 어떤 생산 라인과 연계가 될 것 인지는 알지를 못했다 그 손님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이 새로운 회 사의 창업은 숀과 그의 파트너들이 자신들이 가진 돈만으로는 자 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 벽에 부닥친 모양이었다. 그는 애당초 회사를 매각할 때 새로 창업되는 회사로 옮기기로 약 조가 되어 있었지만 충분한 자금이 마련될 때까지 창업이 좀 지연 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게 되어 이러한 속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 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던 인사 간부의 격양된 목소리로 스털링은 그 예기치 않던 지 연이 그와 회사의 새로운 경 영 진 간에 상당한 불 화를 초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신사가 마지막으로 전해준 작은 정보 하나는 새 회사의 추가 창업 자금 대부 교섭을 담당하고 있는 프랭클린 은행 간부의 이름 이었다. 스털링은 프랭클린 은행에 아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허 버트 데본쉬어와는 면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스털링은 그 사람 을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니 상황은 곧 바필 것이다. 리츠에서의 점심은 스털링에게 다나카를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특히 사업에 관한 일본인의 성격과 일 본 문화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던 스털링은 다나카의 행동에 매 료되었다. 보통의 경험 없는 미국인이었다면 흠잡을 데 없이 정중 하고 예의바른 그의 태도에서 다나카가 명백히 그의 점심 상대를 경멸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알아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털링은 이내 그 미묘한 표현들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스털링에게는 다나카와 데본쉬어의 회동 내용까지 염탐할 방도 는 없었다. 스털링은 그것까지는 아예 고려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데본쉬어와 대화를 할 때 마치 그 내용을 아는 것처럼 암시하 기 위해 그 회동의 장소를 알아두고 싶었다. 그 때문에 스털링은 리무진 서비스 회사의 사장에게 다나카의 운전사에게 그의 위치를 수시로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했던 것이다. 다나카의 행선 154 지를 보고받은 사장은 이어 그 정보를 스털링의 운전사에게 전달 해주었다. 정보를 입수한 스털링은 페뉴일 홀 시장의 남쪽 건물에 위치한 시티 사이드로 들어갔다. 그곳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인기 있는 바 떴다. 다나카가 점심 때 옆자리에 앉았던 스털링을 알아볼 가능성 이 있기는 했지만 스털링은 그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멀찌감치서 다나카와 데본쉬어를 지켜보며 그들의 식탁 위 치와 그들이 무엇을 주문했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다나 카가 식사 도중 전화를 하러 한 차례 자리를 비우는 것까지도 마음 속에 기억해두었다. 이런 정보들로 무장한 스털링은 자신있게 데본쉬어의 문턱을 두 드렸다 그는 즉시 오후에 만나주겠다고 약속했다. 데본쉬어의 바쁜 스케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잠간의 대기 후,스털링은 은행가의 화려한사 무실 안으로 인도되었다. 북쪽과 동쪽을 조망하도록 설계된 그 사 무실에서는 보스턴 항과 동 보스턴의 로건 국제공항, 그리고 젤시 의 미스틱리버 브리지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데본쉬어는 반 짝이는 대머리에 가느다란 철테 안경과 보수적인 정장 차림의 자 그마한 사람이었다. 그는 째나 값이 나갈 것 같은 책상 뒤에서 몸 을 일으키며 스털링과 악수를 나누었다. 스털링이 보기에 그는 겨 우 165센티미터 정도나 되는 것 같았다 스털링은 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들은 함께 자리에 앉았 다. 데본쉬어는 명함을 메모판 한가운데 올려놓은 뒤 그것을 메모 판 가장자리와 평 행이 되도록 위치를 조정 했다. 이어 그는 손을 깍 ┼ 지 끼워 책상 위에 단정히 올려놓았다. "만나뵙 게 되어 반값습니다. 롬바우어 씨 ." 데본쉬어가 반짝이는 눈으로 스털링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프랭클린 은행이 오늘 어떤 일을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저는 사실 프랭클린 은행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스털링 이 말했다 "제가 관심이 있는 쪽은 당신입니다 데본쉬어 씨, 저는 당신과 사업상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 "항상 일을 자기 개인 일처럼 생각하자는 것이 우리 프랭클린 은 행의 신조랍니다. " 데본쉬어가 말했다. "거두절미 하고 본존부터 말씀을 드리 됐습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저는 우리 상호 간의 이익을 위해 당신과 비밀 동업 관계를 맺 고 싶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는 반면 당신 상관들이 알아서는 안 될 정보도 있으니 말입니다 " 데본쉬어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 았다. 스털링은 데본쉬어를 굽어 내려다보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였 다. "사실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당신은 오늘 오후, 제가 감히 평범 한 사업상 면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시티 사이드 바에서 다나카 야마구치 씨를 만났습니다 당신은 보드카 지물및(칵테일 의 일종)을 시킨 다음 이어 야마구치 씨에게 모종의 정보를 전해주 었습니다 그것은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윤리상 문제가 좀 있는 행위였습니다 잠시 후 보스턴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쓰시타 산업 의 예금 중 상당부분이 당신을 담당으로 지명하며 프랭클린 은행 으로 전송되었습니다 " 스털렁의 말에 허버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저는 재계에 광범위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그는 다시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저는 당신을 이 긴밀한 몹시도 익명적이면서도 동시에 몹시도 광범위한 정보망의 일원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지내다 보면 서로 서로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 제 가 드리는 질문은, 여 기 동참하실 의향이 있으신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켜야 할 유일한 의무는 제가 당신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출처를 절대 밝히지 말라는 것 하나뿐입니다. " "만일 가담하지 않는다떤요?" 데본쉬어가 발끈하는 목소리로 물었나. "당신과 야마구치 씨의 회동 얘기를 당신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 게 전하게 되 겠지요." "이건 공갈 협박이오." 데본쉬어가 말했다. "저는 이런 걸 자유 무역 이라고 부른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당신을 정보망에 동참시켜 드리는 대가로 우선 당신이 야마구 치 씨한테 우리 공통의 관심사인 숀 머피 군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 셨는지 그대로 들어보고 싶군요." "이 건 정 말 터무니 없는 일이오." 데본쉬어가 말했다 ┼ "어서 ." 스털링이 경고했다. "이 대화가 그저 수박 겉 한기로나 끝나게 하지 맙시다. 사실, 정말 터무니없는 건 당신의 태도랍니다. 데본쉬어 씨, 제가부탁드 리는 건 당신이 쓰시타 산업 같은 엄청난 고객을 유치하는 것으로 얻게 되는 이익에 비해서는 정말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자그마한 대가입니다 게다가 전 앞으로 당신에게 왜 도움이 될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 "내가 제공한 정보는 정말 별게 아닙니다. " 데본쉬어가 말했다. "전혀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편하시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스털링이 말했다. 잠시 어 색한 침묵이 방안을 감쌌다. 두 사람은 거대한 골동 마호 가니 책상 너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스털링은 흡족한 마음으로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내가 한 말은 머피 씨와 그 동료 몇 명이 새로운 회사를 하나 설 립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 전부예요." 데본쉬어가 말했다. "얼마를 벌리려는지 따위에 대해서는 전혀 입도 뻥긋 안 했어 요 "그 새 회사의 이름이 뭐죠?" 스털링 이 물었다. "'옹코진'이 라고 하더군요." 데본쉬어가 말했다. 258 "어떤 것들을 생산할 생각이라고 하던가요?" 스털링이 물었다. "암과 유관한 의료 품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소." 데본쉬어가 말했다. "진단과 치료용 양쪽 모두라더군요 " "언제쯤이 지요?" "곧 시작을 하게 될 거 예요." 데본쉬어가 말했다. "아마 몇 달내가 될 겁니다 " "다른 특기할 만한 건 없나요? 제가 당신이 제공한 정보를 확인 해볼 만한 방법을 또 여럿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부언해두고 싶군 요." "더 이상은 없소." 데본쉬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롭게 가시가 돋아 있 었다 "만일 당신이 고의로 날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죠." 스털링이 위협적으로 말을 이었다 "결과는 당신이 협조를 거절한 것과 똑같이 되어버릴 겁니다. . "약속이 더 있으니 이.제 돌아가주셨으면 좋겠소" 데본쉬어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스털링은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강요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줄은 잘 압니다 "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신세를 지면 항상 적절한 보상을 해드린다는 사실 을 기 억하십시오. 연락 주십시오." 스털링은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1층으로 내려가 기나기넌 세 단으로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운전사는 문을 모두 잠근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뒷문을 열어 달라고 창문을 두드렸다 일단 차 안에 몸을 실자 스털링은 FAA에 있는 정보원에게로 전화를 걸었 다 "난 지금 무선 전화를 쓰고 있어 ." 그가 친구에 게 주의를 주었다. "그 새는 오늘 아침에 떠나기로 되어 있어. 그 사나이가 말했다. "목적지는 어디야? "마이 애미 . 그가 말했다. 이어 그 사나이가 덧붙였다 "나도 그런 데나 갔으면 좋겠군 그래.' "자, 당신이 보시 기 엔 어때요?" 숀이 침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자 자넷이 물었다. 자넷은 마이 애미 해변으로 숀을 데리고 나와 자신이 빌린 아파트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훌릅한데 . 그가 거실 쪽을 되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색깔들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정말 플로리다에 온 기분이 나는군 그래." 집의 벽면은 밝은 노랑이었고 바닥에 깔린 카펫은 연한 녹색이 었다. 가구는 열대 꽃무의의 쿠션이 달린 흰 고리버들로 되어 있었 다 2fO "두 달만 지내면 되 잖아요." 자넷이 말했나 "욕실로 들어와 바다 구경을 해보세요 "저 기 보이는군." 숀이 창문을 가린 발 틈새로 밖을 내나보며 말했다. "적어도 보인다는 말에는 틀림 이 없죠." 창을 통해서는 앞을 가로막은 두 채의 건물 사이로 바다 fl 조각 을 볼 수가 있었다. 일곱 시가 넘어 해가 벌써 져버렸기 때문에 바 다는 밀려오는 어둠에 청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깝게 보였나 "부엌도 이만하면 아주 고약하진 않아요." 자넷이 말했다. 숀은 그녀를 따라 들어가 그녀가 창을 열어 보여주는 접시와 유 리 그릇들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간호사 유니폼을 벗고 짧은 바지 와 소매 없는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다 숀은 그 옷차림에 자넷이 유난히도 섹시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그릇들과 팬들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굽히자 숀은 자신이 몹시도 불리한 처 지에 놓여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넷의 몸매가어른 거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논쟁이라도 벌이면 승산은 전무한 것이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겠어요."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정말 안성 맞춤이군. 숀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다른 원초적 '식욕'에 정신이 팔 려 있었다. 그들은 함께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이것과, 난 오늘 저녁이라도 이사 올 준비가 돼 있다구 " 숀이 말했다. "여 기 가 정 말 마음에 들어 " '잠깐." 자넷이 말했다 -내가 우리가 그냥 그렇게 쉽사리 동거를 시작할 것이라는 인상 을 심어준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우린 진지하게 의논을 해볼 게 있어요. 잊지는 않으셨겠죠? 그게 내가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잖아 요 -좋아. 하지만 우리는 우선 그 수아세포종 건을 계속 추진해야 돼. 숀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두 가지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자넷이 말했다. ·나도 그렇다는 뜻으로 얘기를 한 건 아니야. 숀이 말했다. ·.단지 당분간은 내가 포베스에서 맡게 될 역할과 과연 내가 진짜 여기 죽치고 있어야 할지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말이 었어.지금 내 머릿속은 그런 생각으로 꽉 차 있어 당신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거야." 자넷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게다가, 지금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어 .' 숀이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내가 배가 고프면 도저히 대화를 할 잘 알지?" 262 수가 없다는 사실 "그럼 한동안은 참아 드릴게요." 자넷은 한 걸음 뒤로 양보를 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정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절 대 잊지 말기를 바래요. 이제, 저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부동 산 중개인이 콜린스 대로 바로 위에 유명한 쿠바 음식점이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쿠바 음식점?" 숀이 물었다. "저도 당신이 맨날 먹는 고기랑 감자 이외에는 감히 다른 걸 먹 어보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요." 자넷이 말했다 "하지만 마이애미까지 왔으니 한번 모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 음식점은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을 가까운 곳에 있었 기 때문에 그들은 아파트 건너편 주차장에 숀의 차를 세워놓은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손을 맞잡은 그들은 멀리 황혼에 물들어 금빛, 은빛으로 번쩍이는 커다란 뭉게구름 밑으로 콜린스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해변가 동네 전체는 거리를 활보하 는 사람들이며 현관 계단에 올라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롤러 블레이드와 드라이브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떤 차들은 스테레오를 어찌나 크게 틀어 놓았던지 숀과 자넷은 차들이 쿵쾅거 리며 옆을 스칠 때마다 가슴에 그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은 서른도 되기 전에 소음성 난청으로 귀가 먹어버릴 거 야." 숀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음식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식탁과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광 란의 도가니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식당의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 은 검은 치마나 바지에 흰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앞에 두른 앞치마 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얼룩투성이였다. 그들은 스무 살부터 환갑이 넘어 보이는 사람까지 각양 각색이었다 그들은 비좁은 식 탁들 틈을 헤집고 다니며 주방과 서로 간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재빠른 스페인어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 번잡한 소동 위로 입에 군침을 돌게 하는 구운 돼지고기와 마늘, 그리고 짙은 커피의 향내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인파에 쉽쓸린 숀과 자넷은 다른 손님들 틈바구니에 끼어 커다 란 식탁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치 요술에라도 걸린 듯, 레몬 조 각이 꽃힌 성에 낀 차가운 코로나(음료의 일종) 병들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내가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어 ." 숀이 몇 분 동안이나 세심히 메뉴를 살핀 다음 입을 열었다. 자 넷의 말대로 그는 입에 익은 음식들 외에는 거의 입에 대지를 않는 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자릿이 말했다. 그녀는숀의 것까지 도맡아 주문을 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숀은 도착한 음식에 즐거운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마리네이드(Marinade. 요리하기 전 생선, 고기 따위를 담그 는 식초, 포도주, 향료 등의 혼합액)로 조리한 짙은 마늘향의 구운 돼 지고기는 정말 감칠맛이었고, 다진 양파를 얹은 노란 쌀밥과 검은 콩 요리 역시 놀랄 만큼 맛이 있었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라고는 유카(Yucca. 북미의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상록 관 264 목)뿐이었다 "이건 꼭 끈끈한 점액성 삼출물로 범벅을 한 감자 같애." 숀이 소리를 질렀다. "정말 괴상망측한 소감이로군요 " "제발 그 의과 대학생 티 좀 내지 마세요.- 그 소란스러운 음식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식사를 마친 그들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션 드라이 브를 건너 루머스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널찍한 익사귀의 벵갈 보리수 아래 자리를 잡은 자넷과 숀은 상선들과 유람선들의 불빛 으로 점점이 수를 놓은 어두운 대양을 바라보았다 "보스턴이 아직도 겨울이라는 사실이 영 실감이 나지 않는데‥‥ 숀이 말했다. "여기 며칠 있다 보니 우리가 왜 그 구질구질한 진눈깨비 랑 차가 운 겨울비를 참으며 살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아요.- 자씻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서론은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군요 만일, 당신 말 대로 지금 당장 우리들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면, 우리 포베스 센 터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봐요. 오후엔 어땠어요? 다 좀 나아졌나요?" 숀은 잠간 쓸쓸한 웃음을 지었파. "천만에 . 더 끔찍 했어 " 그가 말했다. "2층에 간 지 5분도 되지 않아 그 오전보 간호부장이 란 여자가 미 친 황 소처럼 쳐들어와 내가 헬렌의 차트를 무단으로 훔쳐보고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더군 " ┼ "마가린 리치몬드가 화를 냈단 말이에요?" 자넷이 물었다. 숀은 고개를 끄덕였다. "100킬로그램이 넘어보이는 그 여자의 몸에 붙은 살 전체가 으 르렁거리더군.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분통을 터뜨리던데 " "나랑 있을 때는 아주 점잖던데 ·.. " 자넷이 말했다 "그녀를 본 건 불과 두 번뿐이었지만 말이야." 숀이 말했다. "점잖다고 할 만한 때는 전혀 없었어 ." "당신이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요?" 자넷이 물었다. "그 해댕 특공대처럼 생긴 녀석이 같이 왔더군" 은이 말했다 "내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잡혔던 것 같아." "그래요? 그렇단 말이죠1" 자넷이 말했다. "또 걱정거리가 생겼군요. 전 감시 카메라 같은 건 생각도 못하 고 있었어요." "당신은 걱 정 할 게 없어 " 숀이 말했다. "경비 책임자란 녀석이 독기를 품고 감시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나야. 게다가 카메라는 병동이 있는 층들이 아니라 왕래가 잦은 공 동 구역에나 설치가 되어 있을 거야." "헬렌 캐벗 이 랑은 얘기를 해봤어요?" 266 자넷이 물었다. "잠간 동안 " 숀이 말했다.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를 않더군." "그녀의 상태는 계속 악화 일로에 있어요 " 자릿이 말했다 "션트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어요. 그녀의 차트에서 무엇을 좀 알아냈나요?" "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어 그 사람들은 연구동 건물로 이어지 는 구름다리까지 따라와 날 쫓아냈어. 그 다음에는 마치 기다렸다 는 듯이 그 일본놈이 나타나 몰래 주변을 돌아다니며 계단 쪽 문에 서 내가 연구실 안에서 일을 하는 걸 훔쳐보더군 그쪽 얘기는 들 어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아주 혼구멍을 내줬지.그 녀석 뒤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귀가 옌어지게 고함을 질러 생똥을 싸게 놀래 주었어 바지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말이야."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구 " 자넷이 말했다. "불쌍하긴, 제기랄, 뭐가 불쌍해 !" 숀이 말했다. "그 자식은 내가 온 날부터 줄곧 나를 감시하고 "어쨌든. 나는 좀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 자넷이 말했다 "정말? 그것 참 신나는 일이로군. 그 기적의 말이야?" "아뇨, 약 얘기가 아니에요." 있었단 말이야." 명 약을 좀 얻어 냈단 자넷이 말했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컴퓨터 프린트 용지 와 자신의 글씨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지난 10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 모두가 수 록된 명단을 가져왔어요. 전부 서른여덟 명이에요. 그 중 서른셋은 최근 2년내의 환자였어요. 제가 그 데이터를 이 종이에 정리해놓 았어요." 숀은 재빨리 그 종이를 잡아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읽기 위해서 는 종이를 쳐들어 오션 드라이브를 따라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비 추어보아야만 했다. 그가 종이를 훌어보는 동안 자넷은 환자들의 연령 및 성별 구성비에 대해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아울러 컴퓨터 파일들이 간략하게 축약되어 있었음과 더이 상의 정보가 필요하면 직접 차트를 열람해보라는 메모가 들어 있 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에게 정당한 허가 만 받으면 불과 10분 이내에 차트들을 찾아줄 수 있다는 멜라니의 말을 전했다. "그 차트들이 필요해." 숀이 말했다 "차트들이 의무 기록실 안에 있대?" "아뇨 ." 자넷은 멜라니가 언급했던 두 건물 지하에 설치된 차트 보관용 창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단 말이지 1" 숀이 말했다. "그럼 훨씬 더 쉬워지 겠는데 ." "무슨 얘기 예요?" 268 자씻이 물었다 "무슨 뜻인고 하면, 연구동에 앉아서는 차트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야." 숀이 말했다. "오늘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내가 병원에 가면 절대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야 만일 연추동 건물과도 통하게 피어 있 다면 리치몬드나 그 괴상한 녀석들과 기분 상하게 맞닥.=~리지 않 고서도 차트에 접근을 시도해볼 수가 있어 " "창고에 몰래 침입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7- 자넷이 깜짝 놀라 물었다 "날 위해서 친절하게 문을 따줄 리가 없잖아 " 숀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 자넷이 말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건 병원 규칙은 물론 실정법 에도 위 배가 되는 거 예요." "그러길래 내가 경고를 했잖아 " 숀이 말했다. "병원 규칙을 어긴다는 말은 했어도 범법 행위까지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자넷이 다시 한번 숀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자, 우리 말장난은 그 만두자구." 숀이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하지만 거 긴 정말로 큰 차이가 있어요." "법이 란 것은 명문화된 규칙 일 뿐이야. 나는 어떠한 방식이나 형 태로건 범법을 해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건 당신도 마찬 가지일 거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우리들 행동이 정당한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 포베스 사람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수아 세포종에 대한 류시도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해 냈어. 하지만 불 행하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을 발견해내 기 전에 자신들의 치료법으로 특허를 따두기 위해 이렇게 비밀스럽게 꼭꼭 감추기만 하는 거야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이런 점들 때문에 의 학 연구에 사적인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어. 그럴 경우, 연구의 목적은 대중들의 복지증진이라기보다는 투자 비용을 뽑는 데로 전도되어 버리거든. 대중들의 복리라는 것은 아예 안중 에도 없거나 혹시 고려가 된다 해도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야 이 수아세포종의 치료 방법은 의심할 나위 없이 모든 암 치료에 도 움이 될 만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도 대중들에게는 그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를 않는 거야. 이런 사설 연구소들은 자신들 업무의 기초 가 되는 기초 과학이 다른 연구기관에서 대중의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운영되는 연구로 이용된다는 사실 따위에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어. 이런 사설 기관들은 그저 받기만 할 뿐이야. 전혀 주 는 것도 없이 그 과정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의 정당한권리를사기 당하는 거야."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다고 해도 사용하는 수단 전부를 정당화 시킬 수는 없어요." 자넷이 말했다 "잘난 체는 가서 혼자나 해. 숀이 율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신은 이게 전부 당신 발상이었다 270 는 사실을 깜박깜박 잊는 것 같군. 좋아, 그럼 다 때려치우자구. 난 보스턴으로 를아가 학위 논문거리나 들춰 보아야겠어 ." "알았어요!" 자넷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알았다구요. 그럼 일은 계속하면 되잖아요. "그 차트도 필요하고, 그 기적의 약도 필요해." 숀이 말했다 그는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러니 어서 가자구 " "지금 말이에요?" 자넷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저녁 아홉 시가 다 됐단 말이에요 "도둑질을 할 때의 제일 수칙은 말이야, 집이 비어 있을 때 덮치 라는 거야. 지금은 아주 좋은 시간이야. 게다가 난그럴 듯한 핑계 거리도 있거든. 생쥐들 몇 마리한테 위탁받은 당단백질 1차 를 좀 해두어야 해." 다. 주사 "주님 , 도와주세요!" 숀의 손에 이끌려 벤치에서 일어나며 자넷은 기도를 중얼거렸 톰 위디콤은 포베스 사옥 주차장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빈 자리 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는 바퀴가 보도 블럭에 닿을 때까지 조 금씩 차를 앞으로 가져갔다. 그는 커다란 검보림보 나뭇가지에 가 려지도록 차를 세웠다. 앨리스는 혹시 누가 그의 차를 알아볼지도 모르니 그곳에 주차시켜 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가 끌고 온 라임 그린 1969년형 캐딜락 컨버터블은 앨리스가 생전에 사용하던 자 기차였다 주위를 살펴 아무조 없음을 확인한 그는 차문을 열고 밖 으로 발을 내디◎다. 다음 운전석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톰은 집에 서 가져온 주방용 칼을 움켜쥐었다 매끈한 칼날이 어스름 불빛에 번득였다 처음에 그는 총을 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총에서 날 굉음 과 사옥들의 방음장치 없는 얄팍한 벽들에 생각이 미치자 칼로 마 음을 바꾼 것 이다 칼의 유일한 단점은 좀 지저분하게 끝이 난다는 것뿐이었다. 조심조심 칼날을 피해 칼을 셔츠의 오른쪽 소매 안으 로 밀어넣은 그는 손을 동그랗게 오무려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 의 왼손에는 207호 열쇠가 들려 있었다. 그는 207호에 도착할 때 까지 아파트의 창문들 수를 세며 건물의 뒤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 간호사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던지 아니면 외출 을 한 또양이었다. 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두 상황 모두가 장단 점 이 있었다 다시 건물 전면으로 돌아온 톰은 입주자 중 한 명이 집을 나와 차를 향해 다가가는 동안 잠시 행동을 멈추어야 했다 그 사나이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자 톰은 가져온 열쇠 중 하나를 사용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07호 문 앞에 도착한 그는 날렵한 연속 동작으 로 열쇠를 꽃아 문을 연 다음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몇 분 동 안 그는 혹시 자그마한 기척이라도 놓칠세라 문에 붙어서 주의 깊 게 귀를 기울였다. 몇 호인가 가느다란 TV 소리가 들려왔다. 주머 니에 열쇠들을 집어넣은 그는 소매에서 스르르 주방용 식칼을 꺼 냈다. 그는 단도처럼 칼을 뒤집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천천히 ,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으로 새 들어오는 주 차장의 불빛으로 그는 가구들의 윤곽과 침실 문을 알아볼 수가 있 111 었다 침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커튼이 닫혀 거실보다 한층 어두웠 기 때문에 통은 침대가 비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실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다시 걸음을 멈춘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멀리 서 들려오는 숨죽은 TV소리와 방금 전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냉 장고의 나지막한 회전음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 든 사람이 내는 조용하고 규칙 적인 숨소리는 섞여 있지 않았다 반 걸음씩 , 반 걸음씩 방안으로 걸어 들어간 통은 가볍게 침 대의 모서리에 부닥쳤다. 손을 뻗은 그는 몸을 찾아 침대를 더듬었다. 그때서야그는 침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여태까지 긴장감에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 했던 통은 그제서야 몸을 곧게 펴며 긴 숨을 내뿜었다 한편으로는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한 실망감이 밀려왔다. 광포한 폭력에 대한 기대로 한껏 흥분이 되어 있던 그의 몸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사실 에 그만 맥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시각보다는 감각과 손끝에 의존한 톰은 욕실 쪽으로 걸음을 옮 겼다. 욕실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는 전등의 스위치가 손에 만져 질 때까지 위 아래로 벽면을 더듬었다. 전등을 켜자 그는 갑작스러 운 불빛에 눈을 찡그려야 했지만 자신이 발견한 것에 기분이 좋아 졌다. 욕조 위 가느다란 빨랫줄에는 엷은 파스텔 색조의 레이스가 달린 브레지어와 팬티 한 쌍이 걸려 있었다. 톰은 세면대 모퉁이에 식칼을 내려놓은 다음 팬티들을 집어들었 다. 그것들은 앨리스가 입던 것들과는 전혀 비슷하지조차 않았다 그는자신이 왜 그런 물건들에 매료당하는지 알수가 없었지만,그 런 물건만 보면 강한 욕구가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욕조 언저리에 걸터앉은 그는 손가락으로 그 부드럽고 매끄러운 천 조각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즐길 것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칼과 전등 스위치를 가까이 둔 채 무아 지 경에 빠져들었다. "잡히면 어떻게 해요7' 포베스 센터를 향해 이동을 하며 자넷이 초조한 듯 질문을 던졌 다. 그들은 마악 홈 데포트 철물점을 나선 참이었다. 숀은 그곳에 서 열쇠쟁이들이 자물쇠를 열 때 쓰는 도구나 양쪽 끝에 동그랗게 구슬이 달린 철사 같은 일련의 도구들을 구입했다 "절대 잡히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숀이 말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아무도 없는 지금 시간에 들어가는 거야. 글 쎄,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지만 확인을 해보면 되지 않겠어?" "병원 쪽에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릴 거 예요 자넷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니까 병원 쪽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거야. 숀이 말했다. "경 비원들은 어떻게 할 거 예요7" 자넷이 물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봤어요?" "누워서 떡 먹 기 야." 숀이 말했다. "그 성난 해병 말고는 전혀 무서워할 사람이 없어. 넋을 놓고 앞 274 문이나 지키고 앉아 있을 거야." "전 이런 덴 영 소질이 없어요." 자넷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모르는 얘기 좀 해보지 그래 1" 숀이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열쇠니 철사니, 경보기계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 죠?" 자넷이 물었다. "내가 자란 찰스타운은 순전히 노동자 계급들만 사는 동네였 어 ." 숀이 말했다. "그때는 주민들이 의사니 변호사니 하며 신분 상승을 하기 훨씬 전이었지. 내 또래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각각 다른 노동을 하며 생 활을 영위했지. 우리 아버지는 막힌 하수도가 전문인 배관공이었 어. 티모시 오브라이언의 부친은 열쇠공이었지 오브라이언 영감 이 자기 아들에게 사업 기술을 몇 가지 가르쳐주었는데 티미가 우 리한테 자랑을 하며 보여주더군. 처음에는 무슨 게임 같았지. 일종 의 경쟁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동네의 모든 열쇠를 다 열 수 있 다는 사실을 몹시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 찰리 설리번의 부친은 대단한 기술을 가진 전기공이었어 . 그는 보스턴, 그중에서도 특히 비콘 힐 일대에 별별 희안한 경보기들을 설치 해주었지. 그는 일을 나갈 때 종종 찰리를 데리고 나갔었지 그래서 이 경보기에 대한 건 찰리한테 주워들을 수가 있었지 " "그런 건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엔 너무 위험한 것들이에요." 자넷이 말했다. 명문 사립학교에 비싼 음악 레슨, 그리고 케이프 휴양지에서 여름 방학들을 보냈던 그녀의 어린 시절과 숀의 유년 기는 정말 다르기가 하늘과 땅 차이 였다 "물론 그렇긴 해." 숀이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 동네에선 아무 것도 훔치 지를 않았어 . 우 리들은 그저 장난질로 자물쇠를 따고 그냥 열어놓고는 했지 하지 만 그 다음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지 . 우리는 운전을 할 줄 아는 좀 나이든 아이 하나와 함께 스웡스코트나 마블헤드 같은 교외로 원 정을 나가기 시작했어 . 잠깐 집을 감시한 다음에 몰래 들어가 술을 마셔 버리거나 가전 제품들을 들어내기도 했지 . 스테레오니 TV니 하는 것들 말이야 "실제로 물건들을 훔쳤단 말이에요?" 자넷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질문을 던졌다 숀은 잠간 그녀를 쳐다본 파음, 다시 달리는 노면으로 시선을 던 졌다. "물론 훔쳤지 ." 그가 말했다. "그때는 그게 스릴이었고 우리 모두는 북쪽 해안가에 사는 사람 들이 다 백만장자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숀은 계속해 자신과 친구들 일당이 보스턴으로 나와 물건을 처 분해 운전사에게 수고비를 준 일, 그리고 맥주를 사 마신 다음 나 머지 돈을 아일랜드 공화군의 군자금을 마련한다는 친구에 게 건네 준 일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들은 북아일랜드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도 잡고 있지 못하면서도 우리 자신들이 젊은 정치적 행동주의자들이 BIS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철이 없었지." "맙소사1 전 전혀 그런 일까지는 상상을 못했어요." 자넷은 숀의 사춘기 때의 패싸움이나 자동차 됫좌석의 도둑 섹 스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전문가 같은 도둑질의 경험까지 있 다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논쟁으로 우리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 % 들지 말자구." 숀이 말했다 "내어린 시 절은 당신 어린 시 절과는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 야.- "전 단지 당신이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걸 배웠을 까봐 걱정하는 거 예요." 자넷이 말했다 "혹시 습관이 되면 어쩌나 해서요." "내가 그런 짓을 마지막으로 해본 것은 열다섯 살 때였어 ‥ 숀이 말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엄청나게 변해버렸으니 안심을 해도 될 거 야." 포베스의 주차장으로 들어간 그들은 연구동 앞으로 차를 몰았 다. 차를 세운 숀은 엔진과 헤드라이트를 껐다. 잠시 동안 둘은 꼼 짝도 않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숀이 마침내 침묵을 깨며 물었다. "정말이지 당신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난 여기서 잡 일이나 하고 어정거리며 두 달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그 수아세 포종 치료법에 대해 조사를 하든지 아니면 보스턴으로 돌아가든지 둘 중에 하나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 도저히 혼자서는 일을 추진 할 수가 없어 . 그 우람한 리치몬드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더더욱 자 신이 없어졌어. 당신이 도와주든지, 아니면 아예 포기를 해야 돼. 하지만 이 말만은 들어줘. 우리는 정보를 얻으러 들어가는 것이지 TV따위나 훔치러 가는 게 아니야. 게다가 우리가 이런 짓을 하는 데는 훌릉한 대의명분도 있어 ." 자낏은 잠시 말없이 앞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리저리 고민을 할 만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게 만 감이 교차하며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드디어 자넷은숀을 향해 고 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에 대한 애정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좋아요1" 자릿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럼 실행에 옮기도록 해요." 숀은 종이 가방 속에 홈 데포트 철물점에서 산 연장들을 넣고 손 에 꼭 쥐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안녕 하세 요." 숀은 계속 눈을 깜박이며 자신의 신분증을 쳐다보는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연필로 그린 듯한 가느다란 콧수염의 거무튀 튀한 스페인 계였다 그는 자넷의 짧은 바지와 늘씬한 다리에 마음 이 동한 듯 계속 곁눈질을 해댔다 "쥐들한테 주사를 놓아주어 야 해요." 숀이 말했다. 경비원은 그들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 지를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자넷의 하반신을 끈적끈적 휘감은 채 Bl8 떠날 줄을 몰랐다 차단기를 통해 안으로 발길을 옮기던 숀과 자넷 은 그가 경 비용 모니터 화면들 위에 자그마한 휴대용 TV 하나를 괴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축구 경기 채널에 맞추어져 있었다. "경비원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던 내 말뜻을 알겠지?- 숀이 층계로 지하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내 신분증보다는 당신 다리에 더 관심을 보이더군 내 신분증에 찰리 맨슨의 사진이 붙어 있었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게 분명 해." "왜 실험용 생쥐라는 말 대신 그냥 '쥐'란 말을 썼어요7·. 자넷이 물었다. "사람들은 쥐를 싫어 하거든." 숀이 말했다. "실험용 생쥐라고 하면 내려와보겠다는 마음이 들지도 몰라서 그랬어 ." "정말 철두철미하군요." 자넷이 말했다 지하층은 복도와 문들로 복잡하기가 미로 같았지만 다행스럽게 도 조명만은 제대로 되어 있었다. 숀은 동물 실험실까지는 여러 번 와본 적이 있어 그 구역에 익숙하기는 했지만그 너머로 가본 적은 없었다 그들이 걸음을 옮기자 아무 것도 깔리지 않은 콘크리트 바 닥에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쳤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요7" 자넷이 물었다 "대 충." 숀이 말했다. 몇 번의 굴곡과 모퉁이들을 거치며 중앙 복도를 걸어 내려간 그 들은 T자형으로 된 길에 도달했다. "이건 병원으로 가는 길일 거야." 숀이 말했다 "그걸 어 떻 게 알아요7" 은은 천장의 복잡한 파이프 라인들을 가리켰다 "동력실이 병원 쪽에 있거든." 그가 말했다. "이 라인들은 연구소 건물에 동력을 제공하러 건너오는 거야. 이 제 차트 창고가 어느쪽에 있는지 알아봐야 해." 그들은 복도를 따라 병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50미터쯤 내 려 가자 좁은 복도 양편으로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숀은 문에 덤 벼보았다. 하지만 문은 모두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자, 한번 해보자구." 그는 가방을·내려놓고 안에서 보석 세공용처럼 기다랗게 생긴 앨런 렌치와 짤막한 굵은 철사 몇 가닥 그리고 몇 가지 기구들을 더 끄집어냈다. 한손에 앨런 렌치를,또 한손에 굵은 철사 한 가닥 을 집어든 숀은 두 개를 동시에 자물쇠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 게 기술이야." 그가 말했다. "일명 핀을 긁는다고도 하지 . 숀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손끝에 오는 감각에 의존, 일을 진행 시켰다. "어때요?" 280 자넷이 혹시라도 누가 나타날까 복도를 위아래로 두리번거리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나. "누워서 떡 먹기야." 숀이 말했다 잠시 후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펀등 스위치를 더듬은 숀은 방안의 불을 켰다. 그들이 침입한 잡은 벽면 만큼이나 커다란 변압기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는 변전실이었 다 전등을 끈 숀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어 그는 반대편에 달린 문에 매달려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첬번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문을 열었다. "이 기구들도 좨 쓸 만한데." 그가 말했다 "진짜 열쇠 공들이 쓰는 기구에는 턱도 없지만 나쁘지는 않아."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자 그와 자넷은 자신들이 철제 선반들로 빼 곡이 메워진 기다란 좁은 방 안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반 위 에는 차트들이 가지런히 꽃혀 있었다. 선반에는 빈 공간이 아직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여 기야." 숀이 말했다. "아직도 빈 데가 많군요 " 자넷이 말했다. "잠간만 꼼짝 말고 있어 ." 숀이 말했다. "경보 장치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하니까 말이야." "맙소사1" 자넷이 말했다 "왜 그런 말은 미리 해주지를 않는 거예요1" 숀은 적외선 감지기나 동작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지 재빨리 방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지만 경보 장치는 어디에도 눈에 띄 지를 않았다 "서로 분담해 차트를 찾도록 해. 옛날 것들은 필요가 없으니 최 근 2년 간의 차트만 찾도록 하자구. 그것들을 보면 어떻게 성공적 으로 치료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 자넷은 명단의 윗부분을, 숀은 아랫부분을 각각 나누어 가졌다 10분 후, 그들은 서른세 권의 차트를 찾아 쌓아놓을 수가 있었다 "여기가 교육 병원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군 그 래 ." 숀이 말했다. "교육 병원이었다면 서른세 개 모두는 고사하고 한 개 찾기도 쉽 지가 않았을 거야." "이 차트들은 어떻게 할 셈이에요7" 자넷이 물었다. "복사를 할 거야." 숀이 물었다. "의무 기록실에 복사기가 있어 . 문제는 의무 기록실이 과연 열려 있을까 하는 거야. 경비원 녀석한테 열쇠 따는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거든. 아마 거기는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을 거야." "그럼 가서 확인을 해봐요." 자넷이 말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가고만 싶었다 282 "잠깐만 기다려봐." 숀이 말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 그는 차트 창고의 연구소 건물 쪽 끝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 했다 자넷은 허겁지겁 뒤를 쫓.았다 마지막 철제 선반들 뒤를 돌 1 자 막다른 벽이 나타났다. 벽의 한가운데는 유리로 만든 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문의 오른편에는 두 개의 버튼이 달린 널빤지가붙어 있었다. 숀이 앞쪽의 버튼을 누르자 나지막한 회전음이 정적을 갈 랐다 "운이 따라줄지 도 모르겠는데 ." 숀이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물 수송용 엘리베이터가 유리문 안쪽에 모 습을 나타냈다 문을 열어 젖힌 숀은 엘리베이터 안의 선반들을 들 어내기 시 작했다. "뭘 하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잠깐 실험을 해보는 거야 " 숀이 말했다. 선반 몇 개를 치워낸 숀은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던 관계로 그는 무릎이 턱에 닿도록몸을웅 크려야 했다. "문을 닫고 버튼을 눌러줘 ." 그가 말했다. "진심 이에요7" 자넷이 물었다. "자, 빨쾨 ," 숀이 말했다 "하지만 모터가 멈추면 몇 박자 기다렸다가 '다음' 버튼을 눌러 나를 다시 내려줘야 해 . 자넷은 숀의 말에 따라 행동을 취했다. 손을 흔들어 보이며 올라 가기 시작한 숀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손의 모습이 사라지자 자넷의 불안감은 한층 더 심해졌다 숀이 곁에 있었을 때 자넷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의 심각성을 미처 실감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소름이 끼치는 정적에 쉽싸이자 자신이 어 디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현실감이 무겁게 그녀의 마음을 짓 누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포베스 암센터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터의 회전음이 멈추자 자릿은 열을 센 다음 '다음' 버튼을 눌렀 다 다행스럽게도 숀은 이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었다 "기가 막히 게 작동을 하는데 그래.' 숀이 말했다 "올라가보니 바로 경리과가 나오는 거야. 더더욱 마음에 드는 건 거기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복사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이야." 그들은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차트들을 화물용 승강기 앞으로 가 져다 놓을 수가 있었다 "먼저 올라가." 숀이 말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군요." 자넷이 말했다 숀이 말했다 "그럼 내가 차트들을 복사할 동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한 30분쯤 걸리게 될 거 야." 그는 다시 승강기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넷은 재빨리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생각을 바겠어요. 여기서 혼자 기다리기보다는 그 편이 낫겠어 요." 숀은 눈알을 굴리며 승강기를 빠져나왔다. 자넷은 화물 칸으로 기어 들어갔다 숀은 그녀에게 차트의 대부 분을 건네고 문을 닫은 다음 버튼을 눌렀다. 모터가 멈추자 그는 다시 버튼을 눌러 승강기를 불러 내렸다. 나머지 차트들을 집어든 숀은 또다시 승강기 안으로 기어 들어가자넷이 위에서 버튼을 눌 러줄 때까지 불편하게 몇 분을 기다렸다. 자넷이 문을 열자 은은 그녀가 공포에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이젠 또 왜 그래?" 그가 승강기를 비집고 나오며 물었다. "여긴 불이 모두 훤히 켜져 있어요." 그녀가 초조하게 대답을 했다 "당신이 켰어요?" "아니 ." 숀이 한아름 가득히 차트들을 얼싸안으며 말했다. "내가 올라왔을 때도 이렇게 켜져 있었어 청소원들이 켜둔 거겠 aT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화가 난 듯했다. 숀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릴 때 충분한 실습을 해봐서 그런지도 모르지 ." 복사기로 다가간 그들은 재빨리 일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 차 트들을 낱장으로 분리하여 복사기가 자동으로 차트 용지들을 복사 하도록 만들 수가 있었다 근처 책상에서 찾아낸 스테이플러를 이 용, 그들은 복사가 끝나는 대로 사본과 원본을 원상태로 정리해나 갔다. "저 유리 칸막이 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를 보았어요?" 자넷이 물었다 "첫날 병뭔 구경을 시켜줄 때 본 적이 있어." 숀이 말했다. "지금 모종의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자넷이 말했다 "당신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안쪽을 들여다봤어요. 모뎀 몇 개와 자동 다이얼 기기가 연결되어 있더군요. 무슨 서베 이를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숀은 놀란 눈으로 자겟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컴퓨터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치곤 좀 특이하군 " "웰레슬리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았 어요." 자넷이 말했다 286 "컴퓨터 수업을 여러 개 받았어요. 한때는 전공을 바꿀 벨까지도 했지요." 차트 몇 개를 더 복사기에 건 다음,숀과 자넷은 유리 칸막이로 걸음을 옮겨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모니터 스크린 상에는 숫자들 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숀은 문을 당겨보았다. 그것은 열려 있었 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유리로 만든 방 안에는 컴퓨터를 놓아두었는지 모르 겠어 ." 그가 말했다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서 예요." 자넷이 말했다. "이런 큰 기기들은 담배 연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거든요. 이 사 무실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여 럿 있을 거 예요." 그들은 스크린에 반짝거리는 수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홉 자리의 숫자였다. "지금 컴퓨터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 같아7" 숀이 물었다. "전혀 감이 안 잡혀요." 자넷이 말했다 "전화번호들은 아닌 것 같은데‥‥ 만일 전화번호라면 아흡 자 리가 아니라 일곱이나 열자리 숫자일 거예요. 게다가, 저렇게 재빨 리 전화번호를 돌릴 수 없어요." 그때 갑자기 스크린이 깨끗이 지워지더니 이어 열 자리 숫자 하 나가 떠올랐다. 즉시 자동 다이얼 기기가 에어콘 팬(fan)의 나지막 한 소리 위로 신호음을 발산하며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나온 게 전화번호예요 " 자넷이 말했다 "저 지역 번호는 저도 알아볼 수가 있군요. 코네티컷이에요." 다시 깨끗이 지워진 스크린은 이어 다시 몇 개의 아홉 자리 숫자 들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났을까. 계속 바뀌던 숫자들이 어떤 한계1;서 조정되며 컴퓨터의 프린트 기기가 작동을 시작했 다. 숀과 자넷이 프린터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아홉 자리 숫자가 프린트 돼 나오며 그 뒤로 '피터 지글러, 55세, 밸리 종합 병원,사 로테 , 노스 캐롤라이나, 아킬레스건 복원술 3월 11일'이라는 내용 이 찍혀 나왔다. 그때, 갑자기 경보기가 울렸다 컴퓨터가 다시 아 홉 자리 숫자 색인 작업으로 돌아가자 숀과 자넷은 서로를 쳐다보 았다 숀은 어리등절해 하고 있던 반면 자넷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어 있었다 "어 떻 게 된 거 예요7" 그녀가 다그쳐 물었다 경보기는 계속 귀가 따갑게 울려대고 있 었다. "모르겠어 ." 숀이 솔직 히 고백을 했다. "하지만 이 건 도난 방지용 경보기는 아니야." 그가 사무실 안쪽을 살펴보려고 몸을 트는 순간 복도로 이어지 는 문이 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나. "엎드려 ." 그가 자넷을 납작 엎드리도록 떠밀며 소근거렸다. 숀은 방 안으 로 들어온 사람이 컴퓨터를 살피러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 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자넷에게 계기판 뒤로 기어 들 288 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총포에 질린 자넷은 뒤엉킨 컴퓨터 전선들 위로 몸을 끌며 그의 지시를 따랐다 숀은 바짝 붙어 자넷의 뒤를 따랐다 마악 시야를 벗어났을 때 유리 칸막이의 문이 활짝 열렸 다. 웅크리고 숨은 자리에서 그들은 두 개의 다리가 안쪽으로 들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 만, 들어온 사람 이 여자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사건의 발단이 되 었던 경보기 의 스위 치를 내렸다. 이어 전화기를 집 어든 그 여 인은 다이 얼을 돌렸다. "잠재적인 제공자를 한 명 더 찾아냈어요." 그녀가 말했다 "노스 캐롤라이나예요 " 그 순간 레이저 프린터가 다시 한번 출력을 시작한과 동시에 경 보기가 또다시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인이 있떴넌 까닭에 이번에는 그리 오래 울리지를 않았나 "저 소리 들었어요7" 그녀가 물었다. "우연히도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또 한 명을 찾아냈 군요 ." 그녀는 프린터 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잠시 뜸을 들였라 "괘트리셔 서덜랜드, 나이 47세, 산 호세 캘리포니아 유방 생 검 . 역시 괜찮아 보이는군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팀이 나간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직도 시간이 절 믿으세요. 여 긴 제가 운영을 하는 부서 예요 " 있어요 여인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방금 프린트 돼 나온 종이 를 찢어내는 소리가 숀과 자넷의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이어 몸을 돌린 그녀는 발길을 옮겼다. 몇 분 동안 자넷과 숀은 침묵을 지키 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 잠재적 제공자라니?' 마침내 숀이 침묵을 깨며 귓속말로 물었다 "몰라요, 관심도 없어요." 자넷이 소근소끈 대답을 했다. "빨리 여길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제공자라?" 숀이 중얼거렸다 "정말 무시무시하게 들리는군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데지? 장 기들을 거래하는 장물 취급소인가? 갑자기 옛날 보았던 영화가 생 각 나는군.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어? 여긴 정말 괴상한 곳이 야. "그 여잔 갔어요?" 자넷이 물었다 "확인해볼게 ." 숀이 말했다. 천천히 뒤로 이동해 은신처를 빠져나온 숀은 살그 머니 책상 위로 머리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 다 "간 것 같은데 " 숀이 말했다. "왜 그 여자가 복사기는 보지를 못했는지 알 수가 없군 " 자넷은 뒤로 기어나와 조심스레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 역시 방 290 안을 훌어보았다 "들어을 땐 경보기 소리에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묻혀버렸었 나 봐." - 숀이 말했다. "하지만 나갈 때는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어쩌면 너무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어 그랬는지도 몰라요.- 자넷이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생각이 맞는 것 같군." 수없이 많은 아홉 자리 숫자들을 깜박이던 컴퓨터의 스크린이 갑자기 말끔히 지워졌다. "그 프로그램이 끝난 모양이야." 숀이 말했다 "빨리 여길 빠져나가요 " 자릿이 부들부들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유리 방을 나서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 다 복사기는 벌써 걸린 차트들을 끝내고 조용해져 있었다 "이제 그 여자가 복사기 소리를 못 들은 이유를 알겠어 ." 숀이 건너가 기계를 점검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마지막 차트들을 복사기에 넣었다 "난 빨리 나가고 싶어요." 자넷이 말했다. "내가 차트를 다 복사하기 전에는 안 돼 ." 숀이 말했다. 그가 복사 버튼을 누르자 복사기는 다시금 소음과 함께 작동을 시작했다. 이어 그는 복사물들을 정리하고 차트를 다 시 원상으로 복구하며 원본들과 사본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처음 자릿은 그 여자가 금방 이리로 불쑥 들어올까 공포에 떨며 그저 숀을 지켜보71만 했다. 하지 만 일을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더 빨리 이곳을 떠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팔을 걷어 붙 이고 숀의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들 은 짧은 사이 모든 차트들을 복사해 묶을 수가 있었다 작은 화물 용 승강기 앞으로 돌아온 숀은 혼자서도 문을 살짝 열면 버튼을 누 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어 문을 닫으면 승강기가 작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당신이 혹시라도 깜빡 잊고 버튼을 누르지 않을까 걱정 하지 않아도 되 겠는데." 그가 놀리듯 말을 했다 "지금 난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에요 " 자넷이 안으로 기어들며 날카롭게 응수를 했다. 그녀는 팔을 벌 려 가지고 갈 수 있을 만큼 한껏 차트와 복사 물들을 껴안았다. 7층까지 올라왔던 과정을 반복해 그들은 차트들을 다시 창고로 가지고 내려갔다. 자넷에게는 유감이었지만 숀은 시간을 할애해 차트들을 원래의 위치에 꽃아두어야만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일을 마치자 그들은 차트의 복사본을 들고 동물 실험실로 들어갔 다. 숀은 차트 그것들을 자기가 쓰고 있는 생쥐 우리 밑에 감추어 넣었다 "이 녀석들에 게 주사를 해야 돼 ." 숀이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말 그럴 기분이 들지를 않는군 그래." 자넷은 이제 떠날 수가 있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그녀의 긴장이 풀 어지기 시작한 것은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온 다음부터of "이번은 제가 사는 동안 겪어본 제일 끔찍한 경험이었어요 ·, 차가 리들 아바나를 건너자 자릿oT 입을 열었다 "당신이 시종 그렇게 침착하게 있을 수 있었다는 게 를 않아요." "나도 맥박"7 빨라Rl기는 했었어 ‥ 숀이 솔직 히 고백을 했다. "하지만 컴퓨터 방에 틀어갔온 때◎ 그 로운 편이었어 이제 다 끝났으니 말인데, 기분 안 들어?" "천만에 1" 자넷이 힘을 주어 강조를 했다.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차를 몰던 에는 비로소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 영 믿어지지 일을 제외하고는 왜 순조 재미 있지 않았어? 그런 숀이 다시 입을 열고서야차안 "난 아직도 그 컴퓨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수가 없어. 게 다가 그게 장기 이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없 어 . 사망한 암환자들와 장기는 절대 그런 목적으로 사용을 할 수가 없어. 장기 이식과 함께 암세포까지 이식될 위험이 있거든 혹시 무슨 뽀족한 생각 없어?" "지금 이 시 점에선 아무 것도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자넷이 말했다. 그들은 포베스 사옥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와, 저 구닥다리 캐딜락 컨버터블 좀 봐.- 숀이 말했다. "항공모함만한데 내가 어릴 때 배리 던헤건이란사람이 저 차랑 꼭 같은 걸 몰고 다녔지. 그건 분홍색이었지만 말이야. 책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우리 꼬마들은 그가 아주 멋지다고들 생각했 었지 " 자넷은 열대 수목의 그림자 쪽에 세워진 그 날개 달린 커다란 괴 물에게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숀이 그렇게도 가슴 떨리는 일을 겪 은 직후에도 자동차 따위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기 만 했다 숀은 차를 세운 뒤 핸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묵묵히 사옥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숀은 자넷과 밤을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다. 경비원이 계속 자넷의 다리 에 곁눈질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자넷 뒤를 따 라 층계를 오르던 숀은 다시 한번 그녀의 미끈하게 빠진 우아한 다 리에 군침을 삼켰다. 그의 집 문 앞에 다다르자 숀은 손을 뻔어 그녀를 당겨 품안에 얼싸안았다 잠시 동안 그들은 그저 포옹만 하고 있었다. "오늘 밤 함께 지내는 게 어때?" 숀이 용기를 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 다 혹시라도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낏은 즉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숀은 점점 더 낙관적이 되었다 마침내 그가 왼손으로 열쇠뭉치를 끄집어냈다. "전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자, 그러지 말아." 숀이 재촉을 했다 가까이 붙들고 있었던 까닭에 숀은 그녀의 향 긋한 체취를 맡을 수가 있었다. "안 돼요!" 294 잠시 뜸을 들인 자넷은 단호하게 말했다 었지만, 이제 그녀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저도 그게 아주 괜찮을 거라는 것도, 또 달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도 잘 알아요. 얘기를 해봐야 해요." 실망한 숀은 민망한 듯 눈알을 굴렸다. 그녀는 도저히 회유할 수 없는 고집불통인 "좋아. " 그가 기분이 나빠진 척하며 대답했다.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 오늘 저녁 놀란 가슴을 하지만 우리들은 먼저 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 마음대로 해 ."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 기 전 그는 힐끗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결코 화를 낼 입장이 아닌 자신이 오히려 화를 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신경질뿐이었다. 자넷은 몸 을 돌려 자리를 떠버렸다 문을 닫아버린 은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미닫이로 걸음을 옮 긴 숀은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몇 집 건너 자릿의 거실에 불 이 켜지는 모습이 보였다 숀은 어찌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망설이며 서 있었다. "남자들이 란 !" 자넷은 노여움과 신경질에 의 문 앞에서 오갔던 대화를 머뭇거렸다. 그에게는 그녀에 이 아닌가 말이다. 그 위험한 큰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숀 곱씹으며 문간에서 참시 말을 멈추고 게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계획에도 순순히 동참을 했고, 그가 원하는 대로 거의 다 들어주었잖아? 왜 내 뜻은 전혀 이해를 하려 하지를 않는 거지? 하지만 그날 저녁 당장은 아무 것 고 노력조차 침실 자넷은 도 해결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을 하게 되겠 로 걸음을 옮겨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나중에야 기억 염두에 두지 실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전혀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문을 닮아두는 적이 없 지만, 그때 그녀는 욕/ 않고 있었다 자넷은 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티셔츠를 걷어올린 자넷 대 옆에 놓인 팔걸 핀을 뽑아낸 그녀는 기 진맥진한 데다 신경 질 말했픗 완전히 '기름에 튀겨진' 듯한 는 바함에 피냥 침대 위에 던져놓았던 헤어 넷은 욕실문을 열어 젖히고 안으로 들어 갔다 ffBE에 선에 없던 커다란 물체가 도사리고 적으로. 자넷의 손은 마치 침입자에게 일격을 가하기 쪽으로 자전의 목에 서는 은 브래지어의 고리를 풀고 옷가지를 침 리를 묶었던 이 의자 일로 벗어던졌다. 이어 머 =고개를 흔들어 머리칼을 해쳐 내렸다. 그녀는 까지 곁쳐 그녀의 대학 친구가 입버룻처럼 기분이었다. 아침에 서두르 드라이어를 집어든 자 . 불을 켠 순간, 그녀는 있음을 깨달았다. 본능 라도 하듯 그 재빨리 뻗어 나갔다.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코 앞에 나타난 혀 버리고 말았다 욕실 안에는 헐렁한 가 들어와 있었다. 머 리 위르 뒈집어쓴 나일론 은 흥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깨 높이까지 하게 생 긴 커다란 식 칼이 무섭게 번득였다 = 비명이 용트림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미처 입 끔찍한 형상에 그만 가로막 검은 옷을 걸친 사내 하나 스타킹에 그의 얼굴 F)깐. 푸 사람은 놀라 꼼짝도 하지를 않았다. 자넷은 온몸을 떨며 플고 있던 헤어 드라이어의 주등이를 마치 296 쳐든 손에서는 험악 부들부들 1것이 매 그넘 권총이라도 되는 듯 그의 귀신 같은 얼굴에 조준을 했다 침 입자는 실색을 하며 자넷이 들이댄 물체를 내려다보았다 삐죽한 주등이 안쪽을 들여다본 그는 자신이 권총의 총구가 아닌 헤어 드 라이어의 열선 코일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손을 뻗어 자넷의 손에서 헤어 드라이 어를 잡아챔으로써 먼처 행동을 개시했다. 자신을 놀라게 했다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는 그 기구를 옆으로 세차게 집어던졌다. 날아간 헤어 드라이어 는 약품장의 거울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네버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자넷은 허등지등 욕실 밖으로 뛰 어나갔다. 통은 재빨리 손을 뻗어 자넷의 팔을 움켜쥐었지만 뛰쳐나가던 자렛의 힘에 그만 균형을 잃고 침실 안으로 끌려나오고 말았다. 그 는 애당초 자넷을 욕실 안에서 해치워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녀가 헤어 드라이 어를 들이대는 바람에 놀라 그만 주춤거리고 말 었다. 톰은 그녀를 욕실 밖으로 도망쳐 나가게 할 생각이 아니었 다. 비명 역시 지를 여유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계획은 제대 로 맞아들어 가지가 않았다. 그녀는 비명을 질러댔다. 자넷의 첫번째 비명은 충격에 가로막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 었지만 두번째 비명은 자신의 작은 집을 뒤흔들어 놓으며 건물의 싸구려 벽돌을 날카롭게 투과함으로써 첫번째 시도의 불발을 완전 히 만회해버렸다. 건물 전체를 뒤흔든 비명에 톰은 등골이 오싹해 졌다. 분노에 사로잡히기는 했어도 그는 자신이 심각한 위험에 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있었다. 자넷의 팔을 잡고 있던 통은 그녀를 벽으로 집어던졌다. 벽에 부 닥친 자넷은 침대 위로 길게 쓰러져 버렸다. 통은 그녀를 바로 죽 일 수도 있었지만 감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미닫이문 쪽으로 몸을 던졌다 허등지등 커튼과 자물쇠를 풀어헤친 그는 화 들짝 문을 열고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 렸다 숀은 자넷의 활짝 열린 거실 미달이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 자 신이 자넷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려 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 기 위해 용기를 짜내려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 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익래 사과 같은 것은 잘하지를 못하는 성격이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숀의 망설임은 거울이 깨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잠깐 동안, 그는 방충망을 열어젖히려 실랑이를 벌 였다. 그때 자넷의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에 이어 커다란 둔탁한 쿵 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그는 방충망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방충망 위로 몸을 날렸다. 그는 방충망을 뚫고 거친 카펫 위로 나 ◎굴었다 황급히 철사에서 발을 빼낸 숀은 침실 안으로 달려 들어 갔다. 자릿은 공포에 질려 눈이 등잔만해 진 채 침대 위 쓰러져 있 었다. "무슨 일이야?" 숀이 다그쳐 물었다. 일어나 앉은 자넷은 눈물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욕실에 칼을 든 괴한이 들어왔었어요." 이어 그녀는 활짝 열린 침실 미닫이문 쪽을 가리켰다. "저리로 도망쳤어요." 숀은 재빨리 미닫이 유리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제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은 거칠게 . 298 르 숀을 다시 방안으로 밀어붙이며 연달아 안으로 뛰어들었다 모두 가 방안으로 들어온 다음에야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새로 나 타난 사람들은 게리 엥겔스와 손처럼 자넷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 려나온 또 한 명의 주민이었다 침입자가 방금 뛰쳐나갔다고 허겁지겁 설명을 한 숀은 두 사네 를 데리고 발코니로 뛰어나갔다. 마악 난간에 도착을 하려는 순간 건물 뒤켠 주차장에서 요란한 타이어 소리가 들려왔다 게리와 또 한 사람이 층계를 향해 달음질을 시작하자 숀은 자넷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자넷은 어느 정도 회복을 했는지 티셔츠 하나를 찾아걸 치고 있었다. 숀이 방안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침대 모퉁이에 걸터 앉아 마악 경찰에 응급 신고를 마치는 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 은그녀는 앞에 서 있던 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맙소사, 정 말 끔찍한 날이로군요!" "그러길래 나랑 함께 있자고 했잖아." 숀이 옆에 앉으며 자넷을부드럽게 안았다. 자신도 모르게 자넷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상황이 어찌되었건 정말 끔찔하게도 유머 감각을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은 좋았다. 있었다 숀이 란 사람은 잃지 않는다는 너무도 기분이 "마이애미가 소란스러운 곳이라는 이야기는 전에도 들었어요‥ 그녀가 그에게 몸을 맡기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숀이 물었다 "제가 거실 미닫이문을 열어두었거든요 자넷이 고백을 했다 "따끔하게 교훈을 받는군 그래 ." 숀이 말했다. "보스턴에 있었을 땐 최악의 경우라 해봐야 음란 전화가 고작이 었는데‥‥‥‥ 자넷이 말했다. "그래, 하지 만 그건 벌써 사과를 했잖아1" 숀이 말했다 자넷은 미소를 지으며 숀에 게 베 개를 집 어 던졌다 경찰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근 20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그 들은 형광등 불빛이 번쩍 이는 순찰차로 나타났지만 사이 렌은 울리 지를 않았다 마이애미 경찰국의 표지를 단 두 명의 정복 경관이 자넷의 집으로 올라왔다. 한 명은 수염이 텁수룩한 커다란 흑인이 었고, 또 한 명은 콧수염을 기른 깡마른 스페인 계 사람이었다. 그 들의 명찰에는 각각 피터 제퍼슨과 후안 토레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정중하고 동정적인 동시에 사무적인 태도로 30분 동안 느 긋하게 자넷의 진술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침입자가 라텍스 고 무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말을 하자, 그들은 전화를 걸어 피살 현장 검증을 마친 다음 오기로 되어 있던 현장 감식반의 출장의뢰를 취 소해버렸다. "아무도 다치지를 않았으니 사안이 좀 달라지 겠군요." 300 후안이 말했다 "사실 살인 사건 쪽이 더 급하거든요." "하지만 이것도 자칫하면 살인 사건이 돼버릴 뻔했어요 " 숀이 항의를 했다 "이것 보시오, 젊은 양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오." 피터가 말했다 경찰들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으려니 또 다 른 사람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로버트 해리스였다 로버트 해리 스는 마이 애미 경 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 다 그는 그들이 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1년이면 그냥 몸에 배어 버 리는 특성들, 즉 규율 부족과 엉망으로 저하된 체력에 대해 늘 험 담을 늘어놓고는 했지만 ◎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는 사실을 항상 열두에 두고 있을 만큼 실용주의적이었다. 이 포베 스 사옥의 간호사 피습 사건은 적 절한 실례였다. 만일 그가 그처 럼 관계를 터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내일 아침이나 되어서야 이 사 건에 대해 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명색이 경비 책임자인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건 도저히 용인할 수가 없었다. 해리스는 집 에서 TV 앞에 앉아 솔포플레스 기 계로 장난을 하던 중 경찰의 당직 사관에게서 전갈을 받았나 불만스럽게도, 그것은 순찰차가 급파된 지 거의 반 시간이나 지난 뒤였지만 해리스는 이 렇다 저 렇I◎ 불평을 할 만한 입 장은 아니었다. 늦더라도 얼굴을 보 이는 게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해리스는 그 저 자신이 끼어들기 전에 상황이 모두 끝나버리지 않았기만을 바 라고 있었다. 포베스 사옥으로 차를 물며 해리스는 셀라 아놀드의 강간 살해 사건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좀 얼토당토 않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놀드의 죽음이 유방암 환자들의 연쇄 사망 사 건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 었다 해리스자신은의사가아니었던 까닭에 닥터 메이슨이 몇 달 전 해주었던, 즉 이들 유방암 환자들이 의도적으로 살해된 것으로 생각된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단서는 환 자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퍼렇게 변해 있었다는 사실로,그것은그 들의 사인이 모종의 질식임을 암시하는 징후였다. 닥터 메이슨운 이 문제를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것이 해리스의 제1과업임을 명백히 강조해 말했었다. 만일 이런 소식이 언론으로 흘러나간다면 포베스는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심한 상처를 입을 것 이 분명했다 실제로, 닥터 메이슨은 이 잠재적인 수치스러운 문제 를 신속하고 은밀하게 해결하는 것에 해리스의 목이 달린 것처럼 이야기를 했나. 사람이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으려면 문제는 가급 적 빨리 해결을 해버려야 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지난 몇 달 간 이 일에 아무런 진전도 보이지를 못했다 닥터 메이슨은 혹시 범인이 의사나 간호사 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했지만 해리스는 그것 역시 아무도 집어내지를 못 했다. 직원들에 대해 광범위한 뒷조사를 했지만 의심스럽거나 이 상한 점은 전혀 드러나지가 않았다. 게다가 포베스의 유방암 환자 들에 대한은밀한감시 시도마저도 꾸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 론 환자 모두를 철저하게 감시하지 못했음도 인정해야 했다. 아놀드의 죽음이 유방암 환자들의 연쇄 사망과 관계가 있을지도 ,1(12 모른다는 의심이 문득 해리스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그녀가 피살 된 다음 날 직 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운전을 하는 도중이었다. 그제 서야 그는 그녀가 살해당하기 하루 전, 그녀가 일하던 병동의 유방 암 환자 한 명이 퍼렇게 죽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한 것이다. 혹시 셀라 아놀드가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해리스 의 머리를 스쳤다 혹시 그녀가 의미도 모르고 우연히 목격하거나 엿들은 어떤 것이 범인을 자극해 그런 행동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 아닐까? 과연 그런 행동이 단지 불안한 기분에 충동적으로 저질러 진 일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해 리스는 자신의 관점에도 일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는 했지만, 해리스의 의심을 뒷받침해줄 만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경찰에 문의를 해본 결과, 그는 목격자 하나가 사건 당일 저녁 어떤 남자가 아놀드 양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지만 그 증언은 정말 모호하기 이를 데 없었 다. 중키에 보통 체격 , 갈색 머리의 남자. 목격자는 그 사내의 얼굴 까지는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포베스 센터 같은 대형 기관 전체 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그런 정도의 묘사는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또다시 포베스 센터 간호사가 피습을 당한 사건이 일 어났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그는 다시금 유방암 환자들의 사망 과의 연관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렸다 지난 화요일에도 의심스러 운 유방암 환자의 사망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스는 자릿과 이야기를 해보려는 마음에 들떠 그녀의 아파트 로 들어섰다. 하지만 유감스럽기 그지 없게도 그녀는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의학도, 숀 머리판 녀석과 함께였다 아직도 간호사는 경찰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기에 해리스는 그 틈을 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욕실의 부서진 헤어 드라이어 와 박살난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파편들 사이에는 요염한 모양의 팬티들이 떨어져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발을 옮기 니 방충망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구멍은흔 적으로 보아 도망쳐 나간 자리가 아니라 진입로로 사용되었음이 명 백 했다 "자, 증인들 출두합니다. " 피터 제퍼슨이 거실로 돌아오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파트너는 1림자처럼 피터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해리스는 과거 피터를 몇 번 만났던 적이 있었다. "뭣 좀 알아내셨습니까? 해리스가 물었다.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건 없군요 피터가 말했다 "범인이 머리에 나일론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더군요. 중 키에 중간 정도 체격이래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던 것 같더군요. 재수가 좋았어요. 칼까지 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 "어떻게 하실 작정 이오7" 해리스가 물었다 피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통대 로죠." 그가 말했다 "조서를 받아 보고를 한 다음에 위에서 뭐라는지 봐야죠 어떻게 되었던 사건은 수사팀한테로 넘어갈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쩔진 3()4 두고 봐야죠 " 피터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다친 사람도 없고, 특별히 없어진 물건도 없으니 그리 큰 주목 을 받진 못할 거예요. 만일 그녀가 실제로 칼부림을 당했다면 달라 졌겠지 만서도‥‥‥‥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경관들에게 고맙파는 인사를 전하자 그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라리를 떴다. 해리스는 침실로 걸 음을 옮겼다 자넷은 짐을 꾸리고 있었다. 숀은 욕실에서 그녀의 물건들을 챙기는 중이었다. "포베스를 대신해 이런 일이 생겨 몹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 고 싶습니다 " 그가 말했다 "고맙군요 " 자넷이 말했나 "여기까지 경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해리스가 덧붙였다 "저도 이해를 해요." 자넷이 말했다. "이런 일은 어디에도 생길 수 있는 일이에요. 저도 잘못이 있어 요. 문을 그냥 열어두고 나갔었거든요." "경찰들한테 듣자니 침입자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제대로 못하셨다고 하더군요." 해리스가 말했다. "그 사람이 머리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거든요." 자넷이 말했다. 보지를 "그리고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혹시 그 사람을 전에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 던가요?" 해리스가 물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자넷이 말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단언을 하기는 어렵군요."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해리스가 말했다. "아, 그전에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기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봐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최근 포베스 센터에서 당신에 게 좀 이 상한 일이 생기거나 했던 적이 있습니까?" 질문을 받자 자넷의 입은 순식간에 바짝 말라붙어 버렸다 해리스와의 대화를 넘겨 들은 숀은 즉각 자뎃의 머릿속에서 무 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짐작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차트실 침입사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1 "자릿은 정 말 싱한 일을 겪었습니다. " 숀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해리스가 몸을 틀었다 "난 자네한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알았어?" 그가 험악하게 쏘아붙였다. "내 말 들어봐, 이 장구야." 숀이 말했다. "우린 해병대 따위는 부르지도 않았어. 자넷은 벌써 경찰들한테 다 이야기를 했어.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30f 구 그녀는 당신이랑 이야기를 할 의무가 없어. 내가 보기에 그녀 는 오늘 저녁 이만하면 충분히 시달렸어. 당신한테까지 괴롭힘을 당할 필요가 없다구." 두 사람은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bBl발 1 " 자넷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새로이 샘솟고 있 었다. "전 지금 더이상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를 감싸안은 숀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와 이마를 맞댔다 "죄송합니다. 리어든 양." 해리스가 말했나 "저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제게 몹시 중요한 것입 니다. 혹시 오늘 일을 하시는 도중에 무슨 이상한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도 오늘이 근무 첫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 다. " 자넷은 고개를 저었다. 은은 해리스를 올려다보며 제발 나가 달 라는 눈짓을 했다 해리스는 저 애송이 녀석을 두들겨 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심지어는 숀을 깔고 앉아 머리를 박박 깎아버 리는 상상까지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 신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 버렸다.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톰 위디콤의 불안은 점차 강도 를 더하기 시작했다. =)는 차고 옆에 붙은 창고 한구석, 냉동고 옆 에 쭈=)리고 앉아 있었나. 그는 마치 춥기라도 한 듯 무론을 세워 양팔로 끌어안았다 포베스 사옥에서의 참담한 실패가 거들 머릿 속을 맴돌며 그의 자아에 고문을 가하자 그는 심지어는 이따금씩 온몸을 떨기까지 했다. 이제 그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글로리아 다마타글리오를 잠재 우근 데 실제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방해한 간호사마저도 제거하는 데 실패를 해버린 것이다. 나일론 스타킹을 뒤집어썼나 고는 해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맛닥뜨리다니‥‥‥ 어 쩌면 그녀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하지 만, 무엇보다도 톰은 그 멍 험한 헤어 드라이 어를 권총으로 착각해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 분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아둔하기 짝이 없는 굼뜬 행동 때문에 앨리스는 도무지 그 와 대화를 하려 들피 않았다. 그는 그녀를 실망시켜버리고 만 것이 다. 그는 더이상 그녀의 '작은 서방님'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다른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마땅했다. 통은 날이 밝는 대로 글로 리아를 재우고, 시간이 나는 대로 그 성가신 간호사 계 집 애를 처 치 해버리겠다고 거듭 약속을 하며 앨리스를 설득해보려 고 애를 썼 다. 그는 맹세도 하고 심지어는 눈물로 호소하기까지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나. 앨리스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 파 뻣뻣하게 몸을 일으킨 통은 저린 근육들을 펴기 위해 커다랗게 기지개를 켰다 그는 엄마가 불쌍한 마음으로 점차 화를 풀까 몇 시간이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 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308 1 그녀와 직접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찬장 모양으로 생긴 냉동고 앞으로 발을 옮긴 그는 열쇠를 푼 다 음 뚜껑을 올렸다 습하고 따뜻한 마이애미의 공기가 흘러 들어가 자 냉장고 안의 얼어붙은 수증기가 뿌옇게 소용돌이를 쳤다 점차 뿌연 김이 흩어지자 안개 속에서 바짝 말라붙은 앨리스 위디콤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염색한 붉은 머리칼은 뒤죽박죽 인 채로 뻣뻣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움푹 꺼진 그녀의 피부는 군데 군데 얼룩이 진 채 퍼렇게 변했고 감지도 못한 눈가에는 얼음 방을 들이 매달려 있었다 눈알이 쏘그라들어 쭈글쭈글해진 각막 표면 에는 군데군데 성에가 끼어 혼탁해 보였다. 입술의 수축으로 누런 이들이 드러나 그녀의 얼굴은 마귀처럼 흥측한 미소를 짓고 있었 다 톰과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등져 그들만의 완벽한 고립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기에 통은 그녀를 잠들게 한 뒤 별 어려움이 없이 사 후처리를 해낼 수가 있었다. 그의 유일한 실책은 좀더 일찍부터 냉 동고 생각을 하지 못해 그녀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는 것뿐이 었다. 며칠이 지나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이웃 사람 들 중 하나가 그 이야기를 하자 톰은 완전 두려움에 빠져버렸다. 그제서야 그는 냉동고를 떠올린 것이다.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앨리스의 연 금 수표까지도 꼬박꼬박 제 날짜에 도착했다 이 생활의 유일한 위 기라고는 어느 무더운 여름 금요일 냉동고의 압축기가 터져버 렸을 때 뿐이었다. 톰은 월요일이 되어서야 적당한 수리공을 부를 수가 있었다. 통은 혹시라도 냉동고를 열어야 수리가 될까 몹시도 걱정 을 했지만 문을 열지 않고도 무사히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수리 공은 냉동고 안에 들은 고기가 다 상해버 린 것 같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뚜껑을 받친 톰은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 는 아직도 한마디도 하려 들지를 않았다. 그녀는 왜나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오늘 다 해결을 할게요." 톰이 애원하듯 입을 열었다. "글로리아는 아직도 정맥주사를 맞고 있을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도를 취할게요. 그리고 그 간호사도요. 처치해버리 겠어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아무도 엄마를 데려가진 못해 요. 저랑 있으면 안전하실 거예요. 제발 말씀 좀 해보세요!" 하지만 앨리스 위디콤은 아무 대합이 없었다. 폼은 천천히 뚜껑을 닫았나. 그는 혹시라도 어머니간 마음을 바 꿀까 잠깐 동안 악에 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피의 애절한 마 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마지못해 그는자리 를 떠나 부엌을 거쳐, 그들이 여러 해 동안 함께 썼던 침실로 들어 갔다. 그는 침대 옆 테이블에서 앨리스의 총을 꺼냈다. 그것은 원 래 그의 아버지의 물건이었지만 그가 죽은 뒤 앨리스가 넘겨 받아 파끔 통에 게 자랑 삼아 촤시를 하며 혹시 누구라도 그들 사이를 갈 자놓으려고 한다면 자신은 주저없이 그것을 사용하겠노라고 말하 고는 했던 추억어린 유품이었다. 톰은 해가 지나며 점차 이 자개 손잡이가 달린 권총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도 우릴 갈라놓진 못할 거 예요, 앨리스." 톰이 말했다. 여태까지 그가 이 총을 사용했던 것은 단 한번,그 아놀드라는 여자가 그를 한구석으로 데려가 자신이 그가 마취 카 ,lIft 트에서 약제들을 훔치는 것을 보았노라고 협박을 하며 방해를 하 려 했던 때뿐이었다. 이제 그는 이 자넷 리어든이라는 성가신 계집 애가 더이상의 말썽을 부리지 못하도록 다시금 이 총을 사용해야 만 하는 것이다 '내가 엄마의 작은 서방님 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 겠어요." 톰이 말했다. 총을 주머니에 쑤셔넣은 그는 면도를 하기 위해 욕 실로 들어갔다. 3월 5일 금요일, 오전 6시 30분 맥아더 가도를 따라 차를 몰며 자넷은 비스케인 만의 유려한 장 관을 감상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녀는 심지어는 도지 아일랜드 항구에 줄지어 늘어선 눈 부시게 흰 유람선으로 숀과 함께 뱃놀이를 나갈까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를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녀의 생각은 자꾸만 전날밤의 끔 찍한 사건으로 되돌아가기만 했다 욕실에서 괴한과 마주쳤던 자넷은 도무지 그 207호 집에서 밤을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숀의 집조차도 그녀에겐 안전 하게 느껴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빌린 마이애미 해 변가 집으로 가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혼자 있기가 무서워 손에 게 집까지만이라도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던 자넷은 그가 흔쾌 히 부탁을 밭아주고, 심지어는 소파에서 자며 그녀를 지켜준다고 312 했을 때 정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일단 집에 도착하 자 그렇게 굳게 다짐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넷은 자신의 결심을 허물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숀이 '플라토닉'이라고 묘 사한 방법으로 동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랑까지는 나 누지를 않았지만, 자넷은 과의 곁에 꼭 붙어 있는 것이 몹시도 안 심되고 기뚠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넷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에는 피한의 침입도 침 입 이었지 만, 전날 숀과 함께 저 질렀던 비 행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 었다. 전날 밤 행정 부서에서 있었던 일은 그녀를 몹시도 괴롭혔 다 그녀는 만일 그들이 현장에서 붙들려버렸너라면 어떤 일이 벌 어 졌을까 두려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빅만 아니라, 설상 가상으로 숀에 대한 의구심이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그가 똑똑하 고 재치가 있다는 사실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도둑질까지 했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접하고 보니 진짜 그의 윤리관에 대해 다시 한번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던 자넷은 엎친 데 덮 친 격으로 강련한 통제를 받는 약제의 샘플을 몰래 배내야만 하는 과제를 짊어진 채 또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만일 실패를 한다면 그녀는 은이 짐을 꾸려 마이애미로 떠나버리는 난처한 상황에 직 면하게 될지도 몰랐나 병원이 가까워지자 자넷은 자신이 첫번째 비번으로 쉴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는 일요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이틀째 되는 날 아침부 터 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그녀가 받고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의 양을 극명하게 대 변하고 있었다 병실의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는 자넷의 고민 에 시달린 마음에는 신의 선물과도 같은 효과◎ 발휘했다 그녀는 도착한지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병원의 법석에 =1만 정신없이 쉽 쓸려 들어가 버렸다. 간호사 업무 인계 보고는 이제 마악 출근을 한 낮 근무 간호사들에게 그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의 양이 실로 엄 청나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그 수많은 검사 절차와 치료, 그리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치료 스케줄을 제대로 맞추어 내려면 쉴 시간이 거의 없을 성 싶었다 보고 내용 중 가장 자넷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헬렌 캐벗이 치료진들의 희망과는 달리 밤새 전혀 상태의 호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침울한 소식 이었다. 실제로 간밤 그녀를 담당했던 밤 근무 간호사는 캐댓이 새벽 네 시경 경련 발작을 시작했을 때 그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자릿은 낮 근 무 동안 헬렌 캐벗을 간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브리핑에 이 이야기가 나오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통제하에 있는 약제들을 손에 넣기 위해 자넷은 이미 치밀한 계 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약제들이 분출되어 나오는 용기들을 눈여 겨보아 두었던 자넷은 그와 비슷한 종류의 빈 약병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제 괼요한 것은 약제들을 옮겨 담을 혼자만의 시간이었 다 인계 보고가 끝나자 자넷은 재빨리 일에 달려들었다 최우선적 으로 해야 할 일은 글로리아 다마타글리오에게 정맥주사선을 하나 확보해두는 일이었다 오늘은 글로리아가 이번 화학요법 주기 중 정맥으로 항암제를 맞는 마지막 날이었다. 일찍부터 정맥주사에 자신이 있던 자넷은 자신이 그 일을 맡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보고 시간에 그 이야기가 나와 글로리아에 게 정맥주사를 시작한다는 것 314 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넷은 자신이 대신 주사를 놓아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글로리아를 맡은 담당 간호사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흔쾌히 승락을 해주었다. 필요한 기구들을 챙겨 든 자넷은 글로리아의 병실로 들어갔타 글로리아는 전날보다는 훨씬 나아 보이는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등 뒤에 쌓은 베개들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추억어린 눈빛으 로 웰레슬리 대학 캠퍼스 안에 있던 자그마한 연못의 아름다운 모 습과 주말마다 벌어지던 파티의 낭만적인 정경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넷은 청 맥주사를 놓았다. "바늘 들어가는 걸 느끼지 못했어요. 글로리아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니 기뻐요. 자넷이 말했다. 글로리아의 방을 나선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음을 가l·) 들던 자넷은 긴장에 위가 뭉치는 것 같았다. 다음 임무는 통제하에 있는 항암 약제들을 타는 것이었다. 그녀는 왕래하는 이동 침대들 을 피해 이리저리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고 청소원과 그의 양동이 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게걸음을 해야만 했다 간호사실에 도학한 자넷은 헨렌 캐벗의 차트를 꺼내 처방 명령 이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헬렌에게 오전 여덟 시부터 시 작해 MB300C와MB303C를 놓아주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먼 저 정맥주사 수액병과 주사기를 챙겨놓은 자넷은 그녀가 은밀히 감추어두었던 빈 약병들을 꺼씬나 준비가 다 되자 마지막으로 그 녀는 마조리에게로 건너가 헬렌의 약들을 분출해 달라고 부탁했 다. "잠간만 기다려줘요 " 마조리가 말했다. 그녀는 환자 하나를 방사선과로 데리고 내려 가는 잡역부에게 X레이 의뢰서를 가져다 주기 위해 복도를 달음 질 쳐 내려 갔다 "저 친구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의뢰서를 잊어버리고 다닌 답니다. " 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마조리는 헉헉대며 간호사실로 되돌아왔다. 카운터를 돈 그녀는 벌써 목에 걸린 특수 약품 보관함 열쇠를 꺼 내 들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날이에요." 그녀가 자넷에 게 말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말이에요!" 그니는 병동의 아침 일과를 시작할 때 쏟아져 나오는 태산 같은 일더리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는 모양이었다. 작지만 튼튼하게 생긴 냉장고 하나를 연 그녀는 손을 뻗어 헬렌 캐벗에게 투여할 약 들이 늑은 약병 두 개를 꺼냈다. 냉장고 안에 비치되어 있던 장부 를 렬친 그녀는 자넷에게 큰 병에서 2cc, 작은 병에서 0.5cc를 꺼 내라고 말해주었파 그녀는 자넷에게 약들을 투여한 다음 자넷이 서명을 해야 할 장소와 자넷이 서명을 한 뒤 자신이 서명을 하도록 되어 있는 난을 보여주었다 "마조리, 닥터 라센한테서 전화가 와 있어요 " 팀이 그들의 대화로 끼어틀며 입을 열었다. 누명 한 액 체들이 담긴 약병들을 조심스레 움켜쥔 자넷은 약품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그녀는 자그마한 세면대에 뜨거운 물 ,11 f 을 받았다. 주위를 살펴 아무포 두 개의 MB 약병을 들어 더운 느슨하게 떨어져나오자 자넷은 그 였다. 그녀는 다음, 라벨이 떨어진 량컵, 연필, 메모지와 고무줄들이 곳으로 감추어 넣었다.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분주한 간호사실 개의 빈 약병을 u 렸파. 두 개 모두가 조그마한 조각으로 각들 위로 나갔다.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물에 담갔다. 풀로 붙인 라벨들이 것을 벗겨 빈 약병 위로 옮겨 붙 두 개의 약병들을 플라스틱 계 들은 다용도 서랍 안쪽 깊숙한 안쪽을 살핀 자만은 두 1리 위로 치켜들어 타일이 깔린 바닥으로 떨어뜨 박살이 나버렸다 유리 조 소량의 물을 부은 자넷은 몸을 돌려 약품실 밖으로 뛰어 마조리가 아직도 통화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 자넷은 그녀가 ∼ 화기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 I자마자 자낏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fill "큰일났어요 " 자것이 말했나 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가장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느끼고 있던 불안과 초조 덕에 너무도 "무슨 일 이 에요?" 마조리는 눈이 휘등그래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 약병 두 개를 그만 바낙에 떨어뜨려 버렸어요‥‥ 자넷이 말했다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서 박살이 났어요‥‥ "알았어요, 알았으니 걱정 말아요.∼ 마조리가 자넷과 자신의 놀란 가슴을 달래며 "너무 그렇게 안달복달하지 자연스러웠다. 입을 열었다 않아도 돼요. 사고란 건 일어나기 마 ::.l.이에요. 특히, 지금처럼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학 때는 말 이에요. 자 그냥 나한테 보여주기만 하면 돼요." 자넷은 그녀를 약품실로 데리고 들어가 투 약병의 잔해를 가리 켰나 마조리는 쭈그리고 앉아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라벨이 붙 은 유리 조각들을 집어올려 확인을 했다. "정 말 죄솔해요 " 자넷이 말했다 "괜찮아요 " 마조리가 말했나. 그녀는 몸을 일으킨 뒤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 였나 '아까 말했듯이 사고란 늘 생기기 마련이에요. 리치몬드한테 전 화해 줍시 디 " 자반은 마포리의 뒤를 따라 간호사실로 나갔다. 마조리는 간호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고를 설명한 그녀는 약품 냉장고에서 예의 장부를 끄집어냈다 그 사이 자넷은 그 안에 다른 두 환자의 약들도 들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른 병에는 6cc, 작은 병에는 4cc가 들어 있었습니다. " 라조리가 선화를 대고 말했다. 그녀는 귀를 기울이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 다음 수화기를 내려◎았다 "자, 이제 나 해결이 피었으니 안긴해요." 마조리가 말했나. _)녀는 장부에 무엇인가를 기입한 다음 자넷 에 게 펜을 건네주었다 "내가 '분실'이라고 기 입을 한 칸 뒤에 서 명 만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자넷은 자신의 이름 머리 글자를 적어넣었다. .1 1% "다 됐으니 이제 연구동 7층에 있는 리치몬드의 사무실로 올라 가 보세요." 마조리가 말했나 "이 라벨들을 가지고 가세요 " 그녀는 라벨이 됨은 유리 조각들을 봉투에 넣어 자넷에게 건네 주었다. "새 약병들 몇 개를 주실 거예요. 알았죠7" 자넷은 고개를 』1덕이며 다시금 사과의 말을 중얼거 렸나 "괜찮아요." 마조리가 재삼 자넷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그런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거예요." 이어 그녀는 팀에게 톰 위디콤을 호출해 조제실 바닥 청소를 시 켜 달라고 부탁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얼굴까지도 벌겋게 상기되어 있음을 깨달은 자넷은 가능한 한 침착해 보이려 안간힘을 쓰며 엘리베이터를 향 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략이 성공했는데도 그녀는 전혀 기분이 좋지를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마조리의 신뢰와 좋은 성품을 배신,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 다 뿐만 아니라 혹시 누구라도 그 서랍 속 깊숙이 감추어둔 라벨 없는 약병들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 럽게 뒤흔들었다. =1것들을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자넷은 그것들을 식접 손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가 아니면 몸에 지 니고 다니는 것이 너무도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헬렌의 치료 약제들 생각에 몰두해 있던 자넷은 글로리아의 병 실 앞을 지나던 중 병실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 금 그녀에게 정맥주사를 놓았던 자넷은 왠지 마음에 걸렸다. 마조 리가 자렛을 글로리아에게 인사시켜 주넌 그때 단 한번을 제외하 고 그녀의 병실 문은 항상 조금은 열려 있었다. 글로리아는 심지어 자신의 입으로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항상 문 을 조금 열어둔다는 말을 하기까지 했었다. 궁금해진 자넷은 발을 멈추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며 문을 쳐다 보았다 벌써 일이 많이 뒤쳐져 한시라도 빨리 리치몬드에게 올라 가 보아야 했다 하지만 글로리아의 병실 문은 영 석연치를 않았 다. 혹시 글로리아가 별로 몸이 좋지를 않아 일부러 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자넷은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는 더 크게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자넷은 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글로 리아는 한쪽 다리를 매트리스 옆으로 대롱대롱 내 걸친 채 침대에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낮잠을 자는 자세로는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글로리아?" 자넷은 큰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글로리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를 않았다 문짝 아래 달린 고무발로 문을 받쳐 놓은 자넷은 침대로 다가갔 다 침대 열에는 물걸레가 꽃힌 청소용 양동이가 하나놓여 있었지 만 침대 옆으로 다가갔던 자넷은 글로리아의 얼굴이 짙구른 청색 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에 놀라 미처 그 사실을 알아차리 지 못했다 "위츰 409호." 부리나케 수화기를 집어든 자넷은 교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녀는 유리 조각들이 든 봉투를 옆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재빨리 320 글로리아에 게로 달려들었다. 글로리아의 머리를 뒤로 제쳐 입 안에 이물질이 들어 있지 않다 는 사실을 확인한 자넷은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글로 리아의 코를 쥐어 콧구멍을 막은 자넷은 몇 번 힘껏 그녀의 폐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쉽사리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아차린 자넷은 기도 폐쇄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손을 뻗 은 자넷은 글로리아의 맥박을 더듬었다. 약하기는 하지만 맥박이 만져졌다. 자넷이 몇 번 더 숨을 불어넣자 사람들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 어오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도착한 사람은 마조리였지만 다른 사 람들도 간발의 차이로 따라 들어왔다. 자넷이 다른 간호사와 인공 호흡을 교대할 때가 되자 벌써 병실 안에 저마다 도움을 주기 위해 열 명이나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자넷은 병동 직원들이 보이는 기민한 반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심지어는 청소부까지도 일조 를 하러 들어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글로리아의 안색은 이내 좋아지기 시작했다. 3분 도 지나지 않아 2층에 있던 마취과 의사를 포함하여 몇 명의 의사 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그때가 되자 벌써 심장 모니터가 켜져 좀 느리기는 하지만 정상인 심박동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는 능숙한 솜씨로 글로리아에게 기관내 튜브를 삽입한 다음 앰뷰 백(Ambu Bag, 인공호흡시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으로 그녀의 폐를 부풀렸다 이것은 구강 대 구강호흡법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 글로리아의 혈색은 더욱 좋아졌다 하지만 좋은 징후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취과 의사가 들고 있던 플래시로 글로리아의 산동된 눈동자를 비 추어보았을 때 그녀의 동공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다른 의사 하나는 반사작용 을유발시켜보려 했지만 글로리아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20분이 지나자 글로리아는 호흡을 하기 위해 가슴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몇 분 뒤, 그녀는 혼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반사 작용 역시 돌아왔지만 그 양태는 그리 썩 좋지를 않았다 그녀는 팔과 다리를 길게 늘여 뻗으면서 손과 발을 구부러뜨렸다 "어 어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이건 제뇌성 경직(Decerebrated Rlgidity. 대뇌가 파괴되거나 기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경직의 양상)의 증상 같아 보이는데요. 좋지가 않군요." 이것은 자넷이 나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던 말이었다. 마취과 의사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뇌에 산소 공급이 너무 오랫동안 차단되었던 모양이에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다른 의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엇이 들어가고 있었는 가를 확인하기 위해 정 맥주사병을 기울여보았다. 요 는 닥터 메이슨에게 연락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자신의 봉투를 집어든 자넷은 비틀비틀 병실을 나섰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병동이란 곳에 흔하게 일언나는 일임을 알고 있었지 "이 약제에 호흡 부전이란 합병증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 " "화학요법제들은 예기치 못한 일들을 야기시킬 수 있어요."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어쩌면 뇌혈관 장애가 생겨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제가보기에 322 . ~.~ 1 1 노 .. 긴 .) 긴 대 만 그렇다고는 해도 결코 견디기가 쉽지는 않았다. 글로리아의 병실을 나온 마조리는 자넷을 보자 그녀에게로 걸.9_ 을 옮겨 다가왔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 유방암 환자들과는 영 운이 맞지를 않는군요 그녀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윗분들이 현재의 치료만을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자넷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저런 현장을 발견한 첫번째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항상 쉽지가 않 은 일of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한 거 예요." 자넷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파. "고마워요."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다른 일들이 더 생기기 전에 어서 가서 헬렌 캐벗의 ot 들을 타오세요." 마조리가 말했다 그녀는 다정하게 자넷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자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내려가 연구동으로 건너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리치몬드를 부탁해 그녀의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간호부장은 손을 뻗어 자넷의 봉투를 넘겨 받았 다. 봉투를 연 그녀는 책상 메모란 위로 내용물들을 쏟아냈다. 그 녀는 집게손가락으로 유리 조각들을 뒤적이며 붙어 있던 라벨을 확인해보았다. 자넷은 그동안 부동 자세로 책상 옆에 뻣뻣이 드의 침묵에 그녀는 이 여자가 자신이 한 짓을 두려워졌다 자넷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 ·이것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 마침내 리치몬드가 놀랄 만큼 부드러운 지는 않았어요? "무슨 말씀이 신지 자넷이 물었다. -이 병들을 깨뜨렸을 때 말이에요.' 리치몬프가 말했다 ·,혹시 유리 조각에 베이지나 않았어요?" "아뇨. 자넷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바닥에 떨어뜨렸었거든 "이런 일이야 늘상 있는 이에요 육중한 체구인데도 리치몬드는 놀랄 만큼 기민한 앞에서 휘어 일어나 천장 높이의 캐비닛을 열었나. 잠금장치가 달린 커파란 문을 연 그녀는 자넷이 들었다 그 냉장고는 그런 리치몬드는 책상 앞으로 돌아 서 있었다. 리치몬 눈치챈 것만 같아 요. 저는 조금도 다치지를 거예요 어쨌든, 다치지 냉장고가 있었다. 자물쇠를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 않았습니다. " 않았다니 다행 동작으로 책상 캐비닛 안에는 풀어 냉장고 꺼내 깨뜨린 것들과 비슷한 약병 두 개를 약병들로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t와 의자에 앉았다 옆 서랍 안 상자 똑같은 라벨을 a 뒤진 그녀는 책상 위 유리 조각들에 붙은 것과 그녀는 각 바이얼에 해당 라벨을 붙 울 렸다. 전화를 받아든 리치몬드는 어깨를 올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린 채로 계속 손을 놀렸다 하지만 전화는 즉시 그녀의 주의를 사 로잡았다. "뭐라구요?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부드럽기만 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새 험악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어디 예요?" 리치몬드가 다그쳐 물었다. "4층이 라구요 !" 잠깐 뜸을 들인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건 더 끔찍하군요1 끝장이에요!" 리치몬드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는 한동안 눈도 깜빡 않고 앞쪽을 노려보았다. 이어,깜짝놀라며 자겟이 앞에 있다는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약병들을 건네주었다 "전 좀 나가보아야겠어요." 그녀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약들은 조심해 다루어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자넷은 대답을 하려 했지만 리치몬드는 벌써 문 을 향해 허등지등 달려나가고 있었다 리치몬드의 사무실 문간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자넷은 그녀가 잰 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 본 자넷은 잠긴 냉장고가 감추어진 캐비닛에 시선을 던졌다. 이 모 든 일이 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얼핏 그녀의 머 리를 스쳤지만자넷은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 다. 너무도 많은 일이 봇물처럼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었나. 랜돌프 메이슨은 스털링 롬바우어가 정말 이상한 친구라는 생각 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애초부터 스털링의 부(◎)와 그의 전설적인 사업 수완에 대해 들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도대체 그가 어떤 퐁기로 일을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만일 메이 슨 자신에게 스털링이 가진 재주들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남의 청 탁으로 전축 방방곡곡을 누비는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 지만 메이슨은 스털링이 선택한 직업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 었다 매번 스털링에게 일을 맡길 때마다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 었다 "제 생각에는 그 쓰시타 비행기가 여기 마이애미에 나타나기 전 에는 별로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 스털링 이 말했다 "그 비행기는 보스턴에서 다나카를 쭈다려 마이애미로 오려고 했다가 갑자기 그 친구는 내버려두고 뉴욕을 들러 워싱턴으로 돌 아가 버 렸습니다. 다나카는 이리로 올 때 일반 상업 항공편을 이용 해야 했습니다 " "그럼 그 비행기가 혹시라도 돌아오면 언제쯤 도착하게 될지 알 아내실 수가 있단 말이죠7" 메이슨이 물었다. 스털링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때 닥터 메이슨의 인터폰이 작동을 시작했다 "성가시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닥터 메이슨." 그의 비서 패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f "하지 만 혹시 리치몬드 라고 부탁을 하셨었지요? 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양께서 오신다고 하면 미리 연락을 해 달 지금 이리로 오시는 중인데 몹시 당황하 닥터 메이슨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마가린을 그렇게 당황시 킬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는 스털링에게 잠시 실례 하겠다고 사과의 말을 전한 뒤 간호부장을 중도에서 붙들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패티의 책상 근처에서 그녀와 맞닥뜨린 메이슨은 한쪽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또 그런 일이 생겼단 말이에요!" 리치몬드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또 한 명의 유방암 환자가 호흡 부전으로 요. 랜돌프,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해요!" "또 죽었단 말이오7" 닥터 메이슨이 물었다. "아직까지 죽지는 않았어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하지만 더 골치가 아프게 됐어요. 만일 러나가면 죽은 것보다 못한 꼴이 되어버릴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맙소사!" 닥터 메이슨은 경악의 탄성을 내질렀다 "당신 말이 옳소. 혹시라도 보호자들이 자초지종을 하면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소.- '가족들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리가 없어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시퍼렇게 되어 버렸어 언론 매체로 소식이 흘 거 예요 그 환자는 뇌 캐묻기 시작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지만 이런 일들은 여태까지 우리가 힘들 여 이룬 모든 것들을 일시에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어 요." "알고 있으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이젠 어떻게 하실 작정 이 세요?" "솔직히 말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뽀족한 대안이 없소 닥터 메이슨이 고백을 했다. "해리스를 불러봅시다. " 닥터 메이슨은 패티에게 로버트 해리스를 불러 달라고 지시한 다음, 그가 도착하면 즉시 통보해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지금 내 사무실에 스털링 롬바우어가 와 있어요." 그가 리치몬드에 게 말했다 "어쩌면 당신도 함께 =1가 우리 의과 대학 파견 학생에 대해 알 아온 정보를 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 말썽 꾸러 기 1" 리치몬드가 말했다. "병원에서 헬렌 캐벗의 차트를 훔쳐보는 것을 잡았을 때 정말 목 을 졸라버 리고 싶은 기분이 들더군요.' "진정하고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들어봐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리치몬드는 마지못해 닥터 메이슨의 뒤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오자 스털링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곧추세웠다. 리치몬드는 자기 때문이라면 그렇게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스털링에 게 자리를 권했다 ,128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자, 닥터 메이슨은 리치몬드에게 여태까 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스털링에 게 부 탁했다. "숀 머피는 매우 흥미로운 동시에 몹시도 복잡한 사람입니다. " 스털링은 태평하게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 학부 과정에 진학한 후 극적인 변화를 보였지 만 계속 자신의 노동자 계급 아일랜드 계 뿌리에 집착하는, 어떻게 보면 째나 이중적인 성격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 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현재 그와 그의 친구 몇 명은 '옹코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설립 목적은 발암유전자인 옹코진의 과학기술을 기초로 한 진단 및 치료 제재 를 생산, 판매하는 것입니다. " "그럼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는 분댕해지는군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특히 그가 지독하게 건방진 것까지 감안하면 말이에요." "스털링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세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는 생명공학에 관한 한 대단히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 다' 스털링 이 말을 이 었다. "사실, 그는 천재에 가깜다고밖에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이미 짐작을 하시고 계신 바와 같이, 사교 분 야밖에 없습니다 그는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거의 없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과 마찰을 빛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을 해왔습니다. 그는 이미 제네테 크 사에 의해 매입된 성공적인 회사를 창업한 바 있었고, 현재 두 번째 실험기업의 창업에도 그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 다. " "정말 갈수록 태산이로군요. 걱 정이에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하지만 사실 걱정은 딴데 있습니다. 스털링이 말했다. "문제는 산시타측도 제가 아는 만큼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입 니다. 제 직업적인 견해로 보아 그들은 숀 머피를 자신들의 여기 포베스 센터 투자에 위협이 될 것으로 간주할 것이 분명합니다. 일 단 그렇게 생각을 하면 그들은 분명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머피 씨에게는 동경으로 데려가는 것. 즉 매수 작전은 통하지를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여기 머무른다면, 제가 보기에 그들은 당신네들 연구 자금의 재승인 계약을 파기할 지도 모릅니다. " "저는 왜 우리가 그를 보스턴으로 돌려보내지 않는지 아직도 이 해를 할 수가 없어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난 얘기 아니에요?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쓰시타와 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나요? 스털링은 닥터 메이슨을 쳐다보았다. 닥터 메이슨은 헛기 침으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오," 닥터 메이슨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경솔하게 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3.1(1 그 친구는 자기가 맡은 일을 아주 훌릉하게 수행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 난 그 친구 가 일하는 실험실에 내려가 보았어요 생쥐를 한 세대 전체를 당단 백질을 수용하도록 만들어 놓았더군요. 뿐만 아니라 그 친구는 자 신이 양생해낸 유망한 결정 몇 개까지도 보여 주더군요. 다음주까 지는 훨씬 나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하면서 말 이에요. 이렇게까지 성공적으로 일을 진행시킨 사람은 이 친구뿐 이에요. 지금 문제는, 이리냐 범이냐 하는 건데, 내가 보기에 쓰시 타 측에서 연구비를 받아내는 데 더 심각한 위협 이 되는 것은 우리 가 여태까지 단 한 개도 상업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지금쯤이면 하나 정도는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위험 부담은 있지만 이 말썽꾸러기 녀석이 꼭 필요하단 말이죠?" 리치몬드가 다그쳐 물었다 "꼭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까지는 없잖소?" 닥터 메이슨이 말했나 "그럼 왜 쓰시타측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으세 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그건 그리 바람직하지 알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직설적인 방법보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 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게 다짜고짜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면 그 들은도저히 이해를 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은득보다실 이 훨씬 더 많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 "하지만 벌써 히로시한테는 넌지시 암시를 해주었거든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또 자체적으로 머피 씨 조사를 하고 다닌 다니 , 원." "일본 사업자들은 '불확실성'이 란 것을 몹시 두려워 한답니다 " 스털링 이 덧붙였다. "그래서 , 당신은 그 애송이 녀석을 어떻게 보세요?" 리치몬드가 물었다. "스파인가요? 그런 목적으로 여기에 잠입 한 건가요? "아닙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전형적인 의미로 생각을 한다면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가 당신네들이 수아세포종 치료에서 이룬 획기적인 결과에 대해 관심 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학문적인 관점에서이 지 병 원측에서 우려 하듯 상업 적 인 면 때문은 아님 니 파." "그 친구는 아주 노골적으로 우리 수아세포종 연구에 대해 관심 을 표명 했었어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수아세포종 연구에는 참여를 허락할 수가 없다고 말을 하자 몹시도 실망을 하는 표정이었어요. 만일 그가 모 종의 스파이였다면 그렇게 눈에 띄게 팔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 각이에요 호들갑을 떨수록 더 의심을 사게 되는 거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스털링이 닥터 메이슨을 거들며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아직도 이상주의에 가득 차 행동 332 을 하고 있어요. 그는 아직은 과학 전반과 특히 이 의학 연구 분야 에 팽배한 상업주의에는 오염이 되지를 않았어요." "하지만 벌써 자기 회사를 창업한 적이 있다면서요 리치몬드가 그 사실을 지적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그건 상당히 상업 적 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와 그 동료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거의 원가에 판매했 답니다 " 스털링이 말했다 "회사를 매각할 때까지도 이익이 되는 동기는 거의 없었습니 다" "그럼 어떻게 하실 작정 이세요?" 리치몬드가 물었다 "스털링이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우리한테 매일매일 보고를 해주면서 말입니다. 스털링 씨는 숀 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한 일본 사람들의 손에서 그를 보호해줄 겁니다 만일 스털링 씨가그 친구가 스파이 짓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 면 우리에 게 연락을 해줄 거예요. 그러면 곧바로 그 친구를 보스 턴으로 되돌려 보냅시다 " "째나 비싼 보모가 되 겠군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스털링은 미소를 지으며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월의 마이 애미는 아주 상쾌한 곳이죠." 그가 말했다 "특히 그랜드 베이 호텔에서는 말입니다. " 짧은 잡음에 이어 닥터 메이슨의 인터컴에서는 패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해리스 씨가 오셨습니다 " 닥터 메이슨은 스털링에게 감사의 말을 전함으로써 회합이 끝났 음을 넌지시 암시했다. 스털링을 배웅하러 사무실 밖으로 나서며 닥터 메이슨은 리치몬드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털 링은 정말 비싸기 짝이 없는 보모였다. 하지만 동시에 닥터 메이슨 은 그가 돈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하 워 드 페이스 덕 에 돈은 넉 넉 했다 해리스는 패티의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예의상 닥터 메이슨은 그 를 스털링에게 소개, 인사를 시켜주었다. 인사를 시키던 그는 그 두 사감이 모든 점에 있어 완전히 양극단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 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스를 사무실 안으로 들여보낸 닥터 메이슨은 다시금 스털링 의 노고에 치하를 하며 계속 연락을 취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스 털링은 그러마고 굳게 약속을 하며 발길을 옮겼다. 닥터 메이슨은 이제 현재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사무실 안으 로 걸어 들어갔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닥터 메이슨은문을 닫아 걸었다 해리스는 금줄이 달린 가죽 차양의 모자를 왼쪽 팔 밑에 끼워 든 채 부동자세로 뻣뻣하게 방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었다. "쉬세요." 책상을 돌아 의자에 앉으며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옛 1" 해리스의 입에서 날카로운 군대식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를 않았다 334 "제발 좀 앉으라구요!" 그가 계속 서 있는 것을 본 닥터 메이슨이 입을 열었다. 해리스는 아직도 팔 밑에 모자를 끼운 채로 의자에 앉았다. "유방암 환자가 또 하나 사망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그 환자는 적어도 실제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옛 " 해리스가 빳빳하게 군대식 대답을 했다. 닥터 메이슨은 약간의 짜증을 느끼며 그가 고용한 경비 책임자 를 쳐다보았다. 그는 로버트 해리스의 투철한 직업관을 높이 평가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과장된 군대식 행동거지가 몹시 도 눈에 거슬렸다. 그런 행동은 포베스 센터 같은 의료기관에는 도 무지 어울리지 가 않았다. 하지만 이 유방암 환자들의 사망 사건 이 전에는 경 비 부서가 맡은 바 임무를 실수 없이 잘 수행해내고 있었 기에 그는 한번도 그런 것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말이오," 닥터 메이슨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어떤 정신 나간 미친 놈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젠 도저히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요. 반 드시 더이상의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저지를 해야돼요. 이 문제를 최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라고 부탁을 드렸지 않아요? 혹시 뭐라 도 알아낸 게 있습니까?"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 문제는 제가 계속 주목을 하고 있습니 다. " 해리스가 말했다 "원장님 말씀대로, 진료직원 모두에 대해 광범위한 뒷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수백 개의 관련 기관에 연락을 취해 자료들을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아직까지는 특이한 사항이 나타나지 를 않고 있습니 다. 이제부터는 환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조사를 확장해볼 생각입니다 저희들은 유방암 환자 몇 명을 계속 감시하는 것까지도 시도해보았습니다만 지속적으로 환자들을 감 시하기에는 인력이 너무 모자랍니다 어쩌면 병실 모두에 감시 카 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하겠습니다 " 하지만 해리스는, 이들 환자들의 사망과 간호사의 피살 사건, 그 리고 또 한 간호사의 피습 미수 사건 간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의 의심까지는 털어놓지 않았다. 그것들은 아직 그저 가정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말대로 유방암 환자들 병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 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군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상당한 비용이 더 필요하게 될 겁니다 해리스가 경고를 했다 "카메라 구입비와 설치 비용은 물론 모니터를 감시할 요원들이 추가로 필요하게 됩니다. " "비용 따위는 문제가 되지를 않아요." 리치몬드가 말했다 "만일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해서 언론기관으로 말이 새 나가면 이 포베스 센터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거 예 요 "그럼 제가 구체적인 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336 해리스가 약속을 했다. "혹시라도 인력이 더 필요하면 알려주세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얼마가 들건 이것은 반드시 저지를 시켜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 해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 다. 그는 혼자서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고 싶었다. 이제 이 것은 그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다. 어떤 정신나간 미친 놈 때문에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참, 어젯밤 관사에서 벌어졌던 폭행 사건은 어떻게 된 거예 3_? " 리치몬드가 물었다. "가뜩이나 간호사들 구하기가 어려운데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제공한 임시 숙소에서 피습이나 당하게 되면 아주 곤란해 요" "관사에서 이런 경비 문제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해리스가 말했다. "어쩌면 저녁 시간에는 그쪽에도 경비원을 세울 필요가 있을지 도 모르겠어요." 리치몬드가 제안을 했다 "기꺼이 추가 비용을 계산해 올려 드리겠습니다. - 해리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환자들 일이 더 중요할 것 같군요.- 닥터 메이슨이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힘을 분산할 때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 해리스가 말했다. 닥터 메이슨은 리치몬드를 쳐다보았다 "다른 얘기가 더 있습니까7' 러 치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돌렸다 닥터 메이슨은 다시 해리스에 게로 "당신만 믿겠어요.' 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 해리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은이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널찍한 실험실 한가운 데 1치한 유리벽 사무실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빈 철제 책 상 위에 서른세 부의 차트복사본들을 펼쳐놓고 검토를 하는 중이 었다. 그가 이 사무실을 선택한 것은 혹시라도 누가 갑자기 나타날 것을 염두에 두어서였다 만일 누군가가 불쑥 나타난다 해도 사무 실 안에 들어가 있으면 차트들을 빈 파일 서랍 안으로 쓸어넣을 충 분한 시간을 벌 수가 있었다. 책상 위를 치운 다음에는 생쥐들에 게 포베스 당단백질을 접종하기 위해 자신이 고안한 공정표가 적힌 장부를 펼치면 그만이었다. 숀을 그렇게도 놀라게 한 것은 수아세포종 환자들에 대한 통계 자료였다. 포베스 암센터는 최근 2년 동안, 그전 8년 동안 백최센 트의 사망률을 냈던 것과는 몹시도 대조적으로 진짜로 백퍼센트 완치라는 기 적 적 인 위업을 달성하고 있었다. MRI로 확인한 결과. 338 커다란 크기의 종양까지도 성공적 인 치료 후에는 완전히 사라져버 렸다. 숀이 아는 한 극히 작은 크기에 한 곳에만 국한이 되어 있어 완전히 절개해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제거해버릴 수 있는 잠재암 (Cancer in sixty, 일부분에는 악성 종양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간질에 대한 침식성 증식이 없는 것)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암 치료에 있어 이러한 일관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것은 정말 미증유의 사건 이었다 포베스 센터에 온 지 처음으로, 숀은 마음에 드는 아침 시간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무도 귀찮게 구는 사람이 없었다. 히로시나 다른 연구원들의 모습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는 차트 사본을 사무실로 가지고 올라을 기회도 얻을 겸 더 많은 생쥐 들에게 주사를 놓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었다. 이어 그는 파 터 메이슨을 한 일주일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몇 개 결 정들을 양생하며 단백질 결정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심지어 는 원장에게 연락해 실험실로 내려와 결정 몇 개를 관찰하게까지 했다. 숀은 그가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 이 제 누가 불쑥 방문을 해 귀찮게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숀은 차트들을 점검해보기 위해 유리 사무실 안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다. 우선 그는 개괄적인 인상을 얻기 위해 차트 모두들 대충 훌어보 았다 그리고는 다시 역학적인 측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 들이 광범위한 인종. 연령 집단에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성별 분포 역시 남성과 여성을 고루 이환시키고 있었 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최다의 환자를 구성한 군은 수아세포종의 전형적인 환자군의 양상과는 달리 중년의 백인 남자 그룹이었다. 숀은 이 통계 자료가 치료비를 댈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 때문에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포베스는 결코 치료비가 싼 병원이 아 니었다. 이런 병원에 입f=.을 하려면 고급 의료 보험이나 상당한 액 수의 예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는 아울러 환자들이 국내 각 주요 도시 출신으로 거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일반화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인 것인가 를 경고라도 하듯 남서 플로리다의 작은 도시, 네이플스 출신으로 기록된 증례 하나가 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숀은 지도에서 그 도 시를 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플로리다와 서부 해안 최남단, 소택 지 바로북쪽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였다. 환자의 이름은 맬컴 베텐 코트로 치료를 받은 지 거의 2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숀은 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숀은 그와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양들 자체에 대한 기록에서 숀은 대다수가 훨씬 빈도가 높은 단발성 병소가 아니라 다발성 병소였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이 다발성 병소의 양태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 대개의 경우 처음 환자 를 맡았던 의사들은 이 종양들이 폐나 신장 또는 대장 같은 장기에 서 발생을 해 대뇌로 퍼져나간 전이성 암으로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런 증례들 모두에서 환자를 의뢰했던 담당 의사들은 이 병소가 원시 적인 신경 조직에서 발생한 원발성 뇌종양으로 판명이 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숀은 아울러 이들 종 양이 유난히 악성도가 심하고 고속의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가 있었다 만일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환자들은 하나같이 급속히 사망해버 렸을 것이 분명 했다 치료면으로 넘어간 숀은 모든 환자의 치료가 천편일률적으로 똑 340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중에 맞추어 전체적인 용량에는 약 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kg당 용량과 투여 속도 등은 모든 환자에 대해서 완전히 똑같았다. 환자 모두는 약 1주일 간을 병실에 입원 한 다음 퇴원해 2주 4주, 2개월, 6개월, 그다음 1년 간격으로 외 래에서 투시를 받았다 현뀨 전체 환자 서른세 명 중 열셋은 벌써 1년 간격 추가 시험 단계에 와 있었다 이환되었던 병이 몹시도 위 중한 중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의 후유증은 거의 없었는데 후유 증이라는 것도 치료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치료 전 팽창하는 종기 때문에 2차적으로 발생한 경미한 신경학적 장애가 고작이었 다 숀은 차트 그 자체에 대해서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적어도 충분히 소화를 해내려면 일주일 이상이 걸릴 엄청난 양의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료 읽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던 숀은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 게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전화가 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잘못 걸린 전화려니 생각하며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놀랍게 도 그것은 자릿이었다 "약을 입수했어요." 그녀가 짤막하게 말했다 "훌릉해 !" 숀이 말했다 "식당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7" 그녀가 물었다. "물론이지 ." 숀이 말했다. 그는 왠지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 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긴장에 떨리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 "모두 다요." 자넷이 말했다. "만나서 얘기해줄게요. 지금 나을 수 있어요?" "5분내로 내려 갈게 ." 숀이 말했다. 차트들을 숨긴 다음, 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병원으로 연결되는 구름다리를 건넜다. 자신이 감시 카메라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숀은 손이라도 흔들어 감시자들에게 그 사 실을 알려줄까 생각을 했지만 애써 유혹을 물리쳤다 식당에 도착하자 자넷은 벌써 와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전혀 기분이 좋아 보이지를 않았다 숀은 그녀 건너편에 놓인 의자로 재빨리 몸을 밀어넣었다. "무슨 일이야7" 그가 물었다 "내 환자 하나가 혼수 상태에 빠져버렸어요 자넷이 말했다. "제가 정맥주사를 놓은 직후에 말이에요. 금방 괜찮더니 순간 호 흡을 멈추어버 렸어요." "정 말 유감이로군 " 숀이 말했다. 병원 생활에서 갖가지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 험이 있는 숀은 어느 정도 그녀에게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약들만은 손에 넣었어요 " 자넷이 말했다 342 "그래 , 어디 있는데7" "내 백 속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혹시 누구라도 자신들을 보고 있지 않나 확인을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탁 밑으로 약병들을 건네 드릴게요." "그렇게 멜로드라마치 럼 굴 건 없어 " 숀이 말했다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게 그냥 보통 때처럼 건네주는 것보 다 훨씬 남의 눈에 잘 띈단 말이야." "웃기지 말아요." 그녀는 백을 뒤 적 이 기 시 작했다 숀은 무릎께 에서 자넷의 손길을 느꼈다. 그가 식탁 밑으로 손을 뻗자 약병 두 개가 손 안으로 쥐어졌다 자넷의 감수성을 존중해 그는 한 개씩 각각 한쪽 주머니로 슬쩍 집어넣었다 이어 바닥을 긁는 의자 소리와 함께 숀은 몸을 일으켰다. "숀 1" 자넷이 불만 가득한 볼멘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왜?" 그가 물었다. "꼭 그렇게 눈에 띄게 굴어야 해요? 대화를 하는 것처럼 5분 정 도만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되나요?"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우리를 보는 사람은 없어 " 그가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좀 똘똘하게 굴 수 있겠어?"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단정지을 수가 있어요?" 숀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잠깐 기분 전환도 할 겸 재미있는 얘기 좀 해요 자넷이 말했다. "전 지 금 스트레스로 머 리 가 돌 지 경 이에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7" '이번 일요일날 무슨 일을 할까에 대해서요." 자넷이 말했다. "전 병원이랑 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고 싶어 요. 뭔가 재미 있고 긴장을 풀 만한 걸 하고 싶어요." "좋아, 그럼 데이트나 하지 ." 숀이 약속을 했다 "하지만,지금은 이 약을 가지고 실험실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내가 지금 일어서는 것도 그렇게 남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 "가세요1" 자넷이 쏘아붙였다 "당신이 란 사람한테 정말 손들었어 요 " "이따 해변의 아파트에서 봐 " 숀이 말했다. 그는 자넷이 혹시 오지 말라는 말을 할까 무서워 재빨리 발길을 옮겼다. 식당을 나서며 그는 뒤를 돌아 자넷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서둘러 두 건물 사이의 다리를 건너며 숀은 호주머니 안쪽으로 손을 넣어 약병을 움켜쥐었다. 한시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넷 덕택으로 그는 포베스 암센터에 오기로 결정을 했던 때 기대했던 왕성한 연구 열정을 일부나마 되찾을 수가 있었 344 다 로버트 해리스는 창문도 없는 자신의 자그마한 사무실로 직원들 의 신상명세 파일이 들어 있는 마분지 상자를·들고 들어가 책상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책상에 앉은 그는 상자의 윗부분을 열고 첫번 째 파일을 끄집어냈다. 닥터 메이슨과 리치몬드와의 대화가 끝난 직후 해리스는 곧장 인사부로 직행했던 것이다. 인사 담당자인 헨리 폴워스의 도움으 로 그는 환자와 접촉할수 있는 위치에 있는 비전문 직원들의 명단 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그 명단에는 메뉴를 나누어주고 음식 주문 을 받거나 음식 배달 및 식기 환수를 담당하는 식당 서비스 요원들 이 포함되어 있었다. 명단에는 이따금씩 궂은 일로 병실에 호출을 받는 관리 및 설비 담당 직원들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명단의 끄 트머리에는 병실, 복도와 병원 라운지들의 청소를 맡는 청소과 직 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쨌든, 명단에 적힌 사람들의 수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불행 하게도 그는 감시 카메라의 설치 이외에는 이들을 감시할 만한 다 른 묘안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그 자신도 그런 것이 너무 돈 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가격을 조사해 기안 서를 올리기는 하겠지만 닥터 메이슨이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것은 거의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해리스의 계획은 재빨리 쉰 여남은 개의 파일들을 훌어보고 혹 시라도 이상하거나, 의심이 가는 것이 있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만일 의심이 가는 것을 찾아내면 그는 그 파일을 우선적으로 점검 해볼 대상으로 분류해둘 생각이었다 해리스는 의사도, 그렇다고 심리학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환자들을 살해할 만큼 제정 신이 아닌 사람이라면 분명 전력상 무엇인가 잡히는 것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 첫번째 파일은 식당 직원으로 있는 라몬 콘셉시온의 것이었 다. 콘셉시온은 서른다섯 살의 쿠바 계로 열여섯 살 때부터 각종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음식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해리스는 그의 이력서와 신원조회 서를 훌어보았다. 그는 심지어는 그의 의료보험 지출 내역까지도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특이하게 보이지는 않았 다 해리스는 파일을 바닥으로 던져 내려놓았다. 하나씩 하나씩 해리스는 상자에 든 파일들을 검토해나갔다. 내 내 아무런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던 해리스는 식당 직원 게리 워너메이커의 파일을 보는 순간 꼿꼿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력 서의 경력난에 뉴욕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서의 5년 동안의 주방 경력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에는 갈색 머 리칼의 사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리스는 파일을 책상 한모퉁 이에 따로 ruIn놓았다. 해리스가 또다시 주목할 만한 파일을 찾아낸 것은 게리 이후 겨 우 다섯 개의 파일을 검토한 다음이었다 톰 위디콤은 청소과소속 이었다. 해리스의 주의를 끈 것은 그가 응급 구조요원의 수련을 마 쳤다는 사실이었다. 응급 구조요원 수련 후. 마이애미 종합병원에 서어 파트타임 직을 포함하여 몇 군데서 청소원으로 일을 했다는 경력이 붙어 있었지만 응급 구조요원 자격까지 구비한 사람이 허 드렛 일이나 하는 청소원으로 일을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이상해 보였다. 해리스는 이 력서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갈색 머 리 였 다 해리스는 위디콤의 파일을 워너메이커의 파일 위에 올겨놓았 다. 몇 개 파일이 지난 다음 해리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일 하나 를 더 찾아냈다. 랠프 시버는 관리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디애나에서 강간으로 구속되어 형을 산 적이 있었다. 그것 이 파일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파일에는 심지어 인디애나에 있는 그의 전 보호관찰관의 전화번호까지도 기입되어 있었다. 해리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런 대어를 낚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전문직 직원들의 파일은 이들 비전문직 사 람들의 것에 비하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종일 눈이 빠지게 전문직 직원들의 파일들을 읽어보았음에도 몇 건의 약물 남용과 한 건의 미성년자 약취 기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찾아낸 것 이 없었다. 하지만 겨우 파일의 사분의 일 정도밖에는 검토해보지 앉았는데도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람을 셋이나 찾아낸 것이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