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스핑크스(하) 지은이 : 로빈 쿡 옮긴이 : 김기태 ----- 차 례 ----- 작가 소개 스핑크스 제 3 일 제 4 일 제 5 일 제 6 일 제 7 일 제 8 일 에필로그 옮기고 나서 작가 소개 * 로빈 쿡 외과 의사로 현재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 <스핑크스>는 이집트학에 대한 그의 평생에 걸친 열정이 낳은 대표작이다. 국내에 발표된 그의 다른 저서로는 돌연변이, 브레인, 바이탈사인, 바이러스 등이 있다. * 옮긴이 - 김기태 경희대 국어국문과 졸, 신문방송대학원 출판학 전공. 역서로 B.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외 다수 논문으로 '외국 번역물에 대한 연구'가 있다. 스핑크스 이집트만큼 경이로움이 많은 나라가 없고, 또 이집트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나라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이집트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길게 할 수밖에 없다. - 헤로도투스의 <역사> 중에서 제 3 일 카이로, 아침 8시 에리카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자기가 또 샤워기를 틀어 놓고 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리처드의 예기치 않은 도착을 기억해 내고 그가 물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는 누운 채로 열려 있는 발코니 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래 쪽에서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이 샤워하는 소리와 섞여, 먼 폭포수 소리처럼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다시 편안히 감으면서 어젯밤 그녀가 했던 결심을 회상했다. 그때 물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에리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리처드가 모랫빛 머리를 거칠게 털며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 에리카는 조심스레 돌아누웠지만 자는 척하면서 반쯤 눈을 뜨다가 그가 완전 나체인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물기를 닦으며 열려 있는 발코니 문 쪽으로 가서, 멀리 내다뵈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근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잘록한 허리께의 아름다운 곡선을 보았다. 그녀는 그이 잘 다듬어진 다리에서 힘을 연상했다. 리처드의 몸에서 느껴지는 익숙함과 매력이 자신에게 너무 많을 것을 의미하리라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 다음 그녀는 누군가가 살며시 자기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눈을 뜨자, 리처드의 아련한 푸른빛이 곧바로 바라다보였다. 장난스레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청바지와 몸에 딱 맞는 군청색 니트셔츠 차림이었다. 그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빗질이 되어 있었다. "가시죠,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 리처드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면서 말했다. "5분 후에는 아침식사가 이리로 도착할 겁니다." 에리카는 마지못해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다. 에리카는 샤워를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무심한 듯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확고하게 있을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는 이본이 전화를 걸지 않기를 바랐고, 그를 생각하자 세티 1세의 상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굳건한 맹세를 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 상을 찾기를 바란다면 어떤 종류의 계획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냄새가 좋지 않은 이집트산 비누로 거품을 내면서, 그녀는 압둘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이후로 계속되는 위험에 대해 처음으로 신중히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는 왜 자신이 묘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었는지 의아해 하면서 그녀는 서둘러 거품을 헹궈내고 욕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물론." 그녀는 큰소리로 말했다. "위험이 있다면, 그건 내가 목격자라는 사실을 그 살인자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날 보지 못했어." 에리카는 엉킨 머리카락을 풀려고 젖은 머리에 빗질을 하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턱에 있던 여드름 같은 것이 발그레한 점처럼 작아져 있었고, 이집트의 햇볕으로 얼굴은 이미 매력적으로 그을어 있었다. 화장을 하면서 에리카는 압둘 함디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는, 세티 1세 상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쉬고 있는 중이라고, 아마도 이집트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했었다. 에리카는 압둘 함디의 살인사건이 세티 1세의 상이 아직 이집트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를 바랐다. 그녀의 이런 추측은, 만일 세티 1세의 상이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서 겉모습을 바꿨다면 이본이나 제프리 라이스 혹은 이본이 얘기하던 그리스인이 그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때문에 가능했다. 그녀는 그 상이 아직도 이집트 그것도 카이로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에리카는 화장을 살펴보았다. 이만하면 괜찮을 듯싶었다. 그녀는 마스카라를 조금만 바르곤 했었다. 4천년 전의 이집트 여인들이 비슷한 식으로 속눈썹을 검게 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낭만적인 데가 있는 셈이었다. 리처드가 문을 두드렸다. "아침식사를 베란다에 대령했습니다." 영국억양을 흉내내는 말투였다. '너무 행복해 하는 목소리군'하고 에리카는 생각했다. 그와 얘기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에리카는 그 자리에서 문 밖을 향해, 조금 있으면 나가겠노라고 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면바지에 매는 허리끈이 없었다. 이런 더운 기후에서 청바지는 더 덥게 느껴지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통이 좁은 바지와 씨름하면서 그녀는 그리스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녀는 암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얼마간의 내부정보와 그가 원하는 것을 맞바꿀 수 있을 것이었다. 긴 시간이 걸릴 문제이지만 적어도 이미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었다. 블라우스 자락을 밀어넣으며, 에리카는 그 그리스인이 혹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다른 누구라고 그녀가 간밤에 번역해 내려고 애썼던 상형문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잃어버린 상을 보호하는 것은 세티 1세 자신의 신비함이었다. 이 고대이집트인이 살아 숨쉬었던 이후로 3천년이 지났다. 그의 집권 후 첫 10년 동안 중동과 리비아에로의 매우 성공적이었던 출정은 차치하고라도, 에리카가 그 강력했던 파라오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카르나크 사원 외에도 아비도스에 광범위 사원단지를 건설했으며, 왕묘의 계곡에 가장 웅장한 동굴무덤을 세웠다는 사실이었다. 에리카는 더 중요한 자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집트박물관으로 되돌아가서 지니고 있는 전문경력소개서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인이 그녀에게 연락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생길 터였다. 그녀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사람은 압둘 함디가 말했던 그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들은 룩소르에서 골동품 판매업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에리카는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빨리 나일강 위쪽의 룩소르로, 압둘 함디의 아들이 있는 곳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생각해 낸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확신했다. 리처드는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정찬을 주문했다. 어제 아침처럼 발코니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은제온열기 밑에는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신선한 이집트빵이 담겨 있었다. 얇게 썰어진 파파야는 얼음 위에 한 겹씩 겹쳐진 채 놓여 있었다. 커피는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리처드는 마치 긴장한 웨이터처럼 식기들과 냅킨의 위치를 조절하느라 식탁 곁을 왔다갔다 했다. "아, 공주님." 리처드의 말투는 여전히 영국 억양이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는 의자 하나를 뒤로 빼내고는 에리카에게 앉으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먼저 앉으시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접시들을 순서에 맞게 놓았다. 에리카는 정말 감동되었다. 리처드에게는 이본 같은 세심함이 없었지만, 그의 행동에는 호소력이 있었다. 보통때에는 거칠게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에리카는 그가 매우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말하려는 것이 그에게 상처를 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꺼냈다. "당신이 어젯밤에 우리가 나눈 얘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전부 기억하고 있지." 리처드는 포크를 집었다. "사실 당신이 얘길 더 진전시키기 전에 우선 제안을 하나하고 싶은데. 내 생각으로는 미국대사관에 곧바로 가서 당신한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자세히 말해야 될 거라고 여겨져." 그녀는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리처드, 미국대사관에서는 아무 일도 해줄 수 없을 거예요.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요. 제게 일어난 일은 실제적으로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일 뿐예요. 아뇨, 전 대사관에 가지 않겠어요." "좋아,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괜찮겠지. 자, 이제 당신이 말한 것 중에서 나머지에 대해서야. 우리 문제 말이지." 리처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 잔의 테두리를 손 끝으로 만졌다.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한 내 태도에 관해 당신이 하는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해. 저, 당신이 날 위해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는 눈을 들어 에리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여기 이집트에서 말하자면 당신의 영역에서 하루를 같이 보냈으면 좋겠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있도록 기회를 한 번 줘." "하지만, 리처드......" 에리카는 말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본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부탁이야, 에리카.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해 본 적이 없다는 건 당신도 동의했었잖아. 시간을 조금 줘. 오늘 밤에 얘기하자구. 약속하지. 마침내 나는 여기까지 왔어. 진지하게 고려해 봐." "진지한 문제죠." 에리카는 피곤한 듯이 말했다. 이런 감정의 순간이 그녀에게서는 점차로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심지어 그런 종류의 결정도 함께 내려야 할 성질의 것이었어요. 당신의 노력은 고맙지만, 난 아직도 당신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앞으로의 우리 관계를 각자가 아주 다르게 보고 있는것 같아요." "그게 우리가 얘기해야 할 부분이야." 리처드는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말고, 오늘 밤에.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내서 내가 이집트의 뭔가를 볼 수 있게 되고, 이집트학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해달라는 거지. 난 내가 그 정도의 배려는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좋아요." 에리카는 주저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에 얘기하는 거예요." "휴우." 리처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결정되었고, 이제 계획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는 걸. 난 정말 저 녀석들을 보고 싶어." 리처드는 토스트 조각으로 기자(이집트의 북부 도시)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가리켰다. "미안해요. 오늘은 일정이 이미 잡혀 있어요. 우리는 아침에 이집트박물관으로 가서 세티 1세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알아보고, 오후에는 첫번째 살인사건인 압둘의 살해장소로 되돌아가 볼 작정이구요. 피라미드는 나중이에요." 에리카는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불가피한 전화가 오기 전에 방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방문을 나서기 전에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그녀가 수화기를 들었을 때 리처드는 니콘카메라에 필름을 넣느라고 분주했다. "여보세요." 그녀가 나직히 말했다. 그녀가 두려워한 대로 그건 이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리처드에게 이 프랑스인에 대해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이본이 유쾌하게 어제 저녁은 즐거웠다고 했다. 에리카는 적당히 침묵을 지켰으나 자기가 경직된 느낌을 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에리카 양, 괜찮습니까?" 마침내 이본이 물었다. "네? 네, 전 괜찮아요." 에리카는 대화를 끝낼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말씀해 주시는 거죠?" 놀란 듯한 이본의 목소리였다. "물론이지요." 에리카는 재빨리 대답했다. 잠시 조용했다. 이본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우린 어젯밤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하고 둘 다 원했었죠. 그럼 오늘은 어떻습니까? 경치 좋은 곳에 당신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에리카가 말했다. "어젯밤에 미국에서 갑자기 손님이 오셨거든요." "상관없습니다." 이본이 말했다. "에리카 양의 손님이라면 환영입니다." "그 손님이......" 에리카는 머뭇거렸다. "제 남자친구입니다." 말하는 폼이 사뭇 어색했다. "연인인가요?" 이본의 목소리가 주춤하는 빛을 보였다. "남자친구예요." 에리카는 이 이상 미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본이 수화기를 탕하고 내려놨다. "여자들이란." 그는 화가 나서 입술을 마주 다물었다. 라울은 한 주가 지난 프랑스 잡지에서 눈을 떼고 웃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미국인 아가씨가 당신 속을 썩이는가 보군요." "시끄러워." 이본은 그답지 않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천장을 향해 연기를 뿜었다. 연기가 요동치는 파도 모양을 이뤘다. 그는 에리카의 손님이 예기치 않게 도착했다는 것은 확실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담배불을 비벼 끄고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여자에 관한 문제로 말썽이 생기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문제가 생길라치면 그는 떠났다. 그건 그만큼 쉬운 일이었다. 세상은 여자들로 가득하니까. 그는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며 남쪽을 향해 떠 있는 여남은 척의 펠리커선(지중해연안의 삼각돛이 달린 작은 배)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평온한 풍경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라울, 에리카 바론을 다시 미행했으면 해." 그가 말했다. "좋죠." 라울이 대답했다. "칼리파를 세헤라자드호텔에서 기다리도록 해놨습니다." "신중하게 움직이라고 말해 두게. 더 이상의 불필요한 유혈소동은 원치 않아." "칼리파는 자기가 쏜 사내가 에리카의 뒤를 쫓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자가 에리카를 뒤쫓고 있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글쎄요, 전 칼리파가 일류라는 점을 확신합니다. 전 그걸 압니다." 라울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좋겠지." 이본이 말했다. "스테파노스가 오늘 그녀와 만나기로 되어 있어. 칼리파에게 알려 둬.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사와트 파크리 박사님이 지금 만날 수 있으시답니다." 풍만한 가슴을 한 건강해 보이는 비서가 일러주었다. 그녀는 스무살 쯤 되어보였고 건강함과 열정이 넘쳐 흐르는 듯했다. 이 아가씨가 압도적인 분위기의 이집트박물관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주는지도 몰랐다. 박물관장의 사무실은 셔터가 내려진 침침한 동굴 같았다. 덜컥거리는 냉방장치가 방 안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있었다. 마치 빅토리아시대의 서재처럼 방 둘레에 짙은 색의 나무로 선반이 대어져 있었다. 한 쪽 벽에는 분명 카이로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모조벽난로가 있었고, 다른 쪽 벽은 책 선반으로 전부 덮여 있었다. 방 한복판에는 책들과 잡지류 그리고 신문들을 쌍아놓은 큰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책상 뒤쪽에 파크리박사가 앉아 있었고, 에리카와 리처드가 들어오자 안경 너머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예순 쯤 되는 나이에 체구가 작고 신경이 예민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얼굴은 뾰족했고 빳빳한 회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어서 오시죠, 바론 박사." 그는 일어서지 않은 채로 말했다. 에리카의 경력소개서가 그의 손에서 약간 떨렸다. "전 보스턴미술박물관에서 오신 분들은 언제나 기쁜 맘으로 환영하지요. 우린 라이즈너 씨에게 훌륭한 작품들을 신세졌답니다." 파크리 박사는 리처드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는 바론 박사가 아닙니다." 리처드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에리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가 바론 박사입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크리 박사는 혼란스런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당황하며 상황을 이해했다. "실례를 했군요." 그는 간신히 답했다. "소개서를 읽어보니, 박사께서 신왕국기념비에 대한 현장번역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반가운 일이지요. 번역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사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세티 1세에 관한 배경지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파크리 박사가 대답했다. 그이 목소리가 약간 바뀌었다. 마치 에리카의 요구가 그를 놀라게 했다는 듯 의아해 하는 빛이 더해졌다. "불행히도 우리는 세티 1세에 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사께서도 분명히 알고 계시듯이 말입니다. 세티 1세의 비문번역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으로 초기 원정을 떠났을 때의 서신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박사께서 현장번역으로 우리들에게도 지식을 더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아주 오래 된 자료들이지요. 많은 부분들이 제작되었을 때부터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의 미라는 어떻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파크리 박사는 에리카의 소개서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을 때 떨림이 한결 더했다. "네, 우린 그의 미라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라술의 가족들에 의해 불법으로 도굴되어 숨겨져 있던 유물 중의 일부였습니다. 위층에 전시되어 있죠." 그는 리처드를 힐끔 쳐다보았다. 리처드는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미라가 면밀히 조사된 적이 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그럼요." 파크리 박사가 대답했다. "부검을 했었습니다." 리처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미라를 부검한단 말입니까?" 에리카는 리처드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조용해졌다. 파크리 박사는 그의 질문을 못 들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미국팀이 그 미라의 X선 촬영을 했습니다. 제가 기꺼이 도서관에 열람하기 편리하게끔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파크리 박사는 다가가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는 부분적으로 몸을 구부리고 걸었기 때문에 손을 몸 쪽으로 움츠린 모양이 곱추같은 인상을 주었다.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투탄카멘의 무덤이 열린 것에 관한 자료가 많이 있나요?" 리처드는 에리카를 지나쳐 은밀히 곁눈질로 비서를 확인했다. 그녀는 타자기 위로 몸을 숙인 채 일에 여념이 없었다. "아, 저기서 당신을 도울 수 있겠군요." 대리석으로 된 홀에 그들이 들어서자 파크리 박사가 하는 말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투탄카멘의 보물'이라는 이름의 세계여행으로 형성되는 기금의 일부를 사용해서 그의 유물들을 보관할 특별전시관을 세울 계획입니다. 지금 우린 카터 자신이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한 '침입 일지'라고 불렀던 자료에서 얻어 낸 발췌문 전부를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카터와 카나본 그리고 무덤발굴작업에 관련된 다른 사람들과의 중요 서신모음집도 갖고 있습니다." 파크리 박사가 탈랏이라고 하는 조용하고 젊은 남자에게 리처드와 에리카를 소개하였다. 탈랏은 박사의 복잡한 지시 사항을 주의해서 듣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옆문으로 사라졌다. "그가 세티 1세에 관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가져올 것입니다." 파크리 박사가 말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도움이 더 필요하시면 알려주십시오." 그는 에리카와 악수를 하고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그의 입모양은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손을 들어 박자에 맞춰 빈 손을 쥐어 보이면서 자리를 떴다. "아, 정말 근사한 곳인데." 관장이 떠나자 리처드가 중얼거렸다. "좋은 사람이야." "파크리 박사는 마침 훌륭한 작업을 끝낸 참이에요. 그 사람 전공이 고대이집트의 종교와 장례관습 그리고 미라제작법이구요." "미라제작법이라! 미처 생각을 못했는 걸. 박사를 단 일분안에 고용할 파리에 있는 큰 교회를 내가 하나 알고 있는데 말야" "진지하게 행동해요, 리처드." 에리카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커다란 방안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길고 낡은 참나무탁자들 중의 하나에 앉았다. 모든 것이 카이로의 먼지로 한겹 덮여 있었다. 에리카가 앉아 있는 의자 밑쪽으로 바닥에 작은 발자국들이 나 있었다. 리처드는 쥐가 다녀갔나 보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탈랏이 각각 줄로 묶여진 두 개의 커다란 붉은색 봉투를 가지고 왔다. 그는 봉투들을 리처드에게 넘겨주었고, 리처드는 경멸하듯 미소지으며 그것들을 에리카에게 넘겨주었다. 첫번째 봉투에는 '세티 1세, A'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에리카는 그 봉투를 열고 내용물들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파라오에 관한 기사들의 사본이었다.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이 있었고, 두개는의 독일어였지만 대부분은 영어로 되어 있었다. "저." 탈랏이 리처드의 팔을 건드렸다. 리처드가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다. "옛날 미라에서 나온 갑충석을 원하죠? 아주 싸요." 탈랏이 움켜쥔 손을 내밀고 손바닥을 위쪽으로 했다. 그는 마치 50년대에 포르노잡지를 팔던 장사꾼처럼 어깨 너머로 넘겨보다가 천천히 손가락을 펴서 약간 축축해진 두 개의 갑충석을 드러냈다. "갑충석을 팔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분명히 가짜 갑충석들일 거예요." 에리카는 조사하고 있는 작업을 멈추지 않은 채로 말했다. 리처드는 탈랏의 펼쳐진 손바닥에서 갑충석을 하나 집었다. "1파운드예요." 탈랏이 말했다. 그는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에리카, 이것 좀 봐, 멋지게 생긴 작은 갑충석이야. 이녀석 용기가 대단한 걸. 여기서 장사를 다 하다니 말야." "리처드, 갑충석은 어디서나 살 수 있어요. 내가 이 일을 마칠 동안 박물관이나 둘러보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녀는 그가 자기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려고 그를 향해 눈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탈랏이 갖고 있는 다른 갑충석을 보고 있었다. "리처드." 에리카가 말했다. "처음 만나는 상인에게 넘어가지 말아요. 제가 하나 보죠." 그녀는 골동품 중에서 하나를 집어 아래쪽에 있는 상형문자를 읽으려 뒤집었다. "이게 진품일 것 같아?" 리처드가 물었다. "아뇨, 이건 진짜는 아니지만 교묘한 모조품인데요. 여기엔 투탄카멘의 소용돌이장식이 있어요. 난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압둘 함디의 아들이에요. 놀랍네요." 에리카는 25피에스타를 주고 탈랏에게서 물건을 사고 나서 그 청년을 멀리 보냈다. "난 이미 세티 1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함디의 아들 작품을 하나 갖고 있어요." 에리카는 이 갑충석을 이본에게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가 또 어떤 파라오의 이름을 사용하는지 궁금한 걸요." 에리카가 고집해서 그들은 기사 검토작업으로 되돌아갔다. 리처드는 사본을 몇 개 집어들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건 내가 읽어본 것 중에서 제일 딱딱한 글인 걸." 이윽고 리처드가 말을 꺼내며 읽던 자료를 탁자 위에 툭 던졌다. "그리고 병리학이 시원찮았던 것 같아. 나 참." "그건 문맥으로 읽어야 해요." 에리카가 짐짓 겸손하게 말했다.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은 3천년 전에 살았던 강력한 힘의 소유자에 대해서 수집한 자료들이라구요." "글쎄, 이 글들 속에 활동에 관한 부분이 좀더 들어 있다면, 읽기가 한결 수월할 텐데 말야." 리처드가 웃었다. "세티 1세는 이집트의 종교를 단일신교로 바꾸려 했던 파라오 바로 다음으로 통치했던 왕이에요." 에리카가 리처드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아케나텐이었어요. 나라는 온통 혼란에 빠져 들었죠. 그것을 세티 1세가 바꿔 놨어요. 그는 집안에서, 그리고 제국 전반에 걸쳐,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강력한 지도자였어요. 그는 30세 정도에 집권을 해서 대략 15년 동안 통치를 했어요. 팔레스타인과 리비아에서의 전투는 제외하고요. 불행한 일이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세부사항이 거의 없어요. 그건 그가 이집트 역사상 아주 흥미로운 시대를 다스렸기 때문이에요. 내가 말하는 것은 아키나텐으로부터 세티 1세까지의 5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가리키는 거죠. 그 때는 혼란과 대격변이 가득하고 감정도 풍부했던 환상적인 시대였음에 틀림없어요. 우리가 그 이상 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에리카는 사본 더미를 툭툭 두드렸다. "투탄카멘이 통치하던 때였어요.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투탄카멘의 웅장한 무덤을 발굴할 때 대단히 실망스런 부분이 있었어요. 모든 보물들이 발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료가 될 만한 게 전혀 없었어요. 단 하나의 파피루스도 발견되질 않았어요! 단 하나도." 리처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에리카는 그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녀의 흥분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탁자로 되돌아왔다. "다른 책자에는 뭐가 있는지 보기로 해요." 그녀가 말하고 나서, '세티 1세, B'의 내용물을 탁자 위에 흩뜨리며 쏟아 놓았다. 리처드가 다가들었다. 거기에는 세티 1세의 미라를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X선 사진과 수정 부검보고서와 두서너 개의 서류사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맙소사." 리처드가 짐짓 무서워하는 척하며 말했다. 그는 세티 1세의 안면 사진을 집어들었다. "이건 마치 대학 1학년 때 해부학 시간에 본 송장의 모습만큼이나 보기 흉하군." "처음엔 무서워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 볼수록 더 평온해 보이죠." "이봐, 에리카. 이건 무슨 귀신같아 보이잖아. 평온이라고? 이거 숨 좀 돌려야겠는데." 리처드는 부검보고서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에리카는 전신 X선촬영사진을 발견했다. 가슴 위에 두 팔을 대각선으로 겹쳐놓은 모양이 마치 할로윈 축제 때의 해골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세밀하게 그 사진을 관찰했다.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팔은 다른 파라오의 미라들처럼 겹쳐 있었지만 손은 펴져 있었다. 주먹을 쥐지 않은 채로였다. 손가락들이 ㅃ쳐 있는 상태였다. 다른 파라오들은 모두 도리깨와 직위의 표시인 홀을 쥔 채 묻혀 있었다. 그러나 세티 1세는 그렇지가 않았다. 에리카는 그 이유를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이건 부검이 아니야." 리처드가 말을 꺼내서 그녀의 생각이 흩뜨러지고 말았다. "내 말은 인체 내부기관이 전혀 없단 뜻이야. 그저 껍데기뿐인 육체인 걸. 만일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없다면 작업이 이루어질 때 엉성하게 조사된 거야. 부검이라는 건 내부기관들을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 조사를 하는 것이라구. 여기 관들을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 조사를 하는 것이라구. 여기 그들이 조사한 건 약간의 근육과 피부뿐이잖아." 그는 X선 사진을 에리카에게 가져와 팔을 뻗은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펴보았다. "폐 부분이 깨끗하군." 리처드가 소리내어 웃었다. 에리카가 알아보질 못해서 리처드가 손을 짚으면서 설명을 했다. 폐가 예전에 제거되었기 때문에 X선촬영에서는 가슴이 비어있는 상태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가 설명해 주는 것이 그리 우습게 들리지 않았으나 그의 웃음은 희미하게 계속되었다. 에리카는 리처드의 팔 너머로 사진을 바라다보았다. 세티 1세의 펴져 있는 손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그 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에는 글귀가 적혀진 두 장의 카드가 있었다. 시간을 때울 양으로 칼리파는 몸을 숙여 그것을 읽어 보았다. 한 쪽 카드는 낡은 것이었고 '투탄카멘의 금관, 기원 전 1355년경'이라고 씌어 있었다. 다른 쪽 카드는 새것이었고 '투탄카멘 보물의 세계여행의 일환으로 잠시 비어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칼리파는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비어 있는 진열장을 통해 에리카와 리처드의 모습을 보았다. 대체로 그는 목표물에 그리 가까이 다가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전날 그는 에리카를 어떤 위험에서 구해 냈다고 느꼈지만 이본 드 마르그로부터 싫은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드 마르그는 그에게 별 볼일 없는 공무원 하나를 꼼짝 못하게 해놨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칼리파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공무원은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으며, 칼리파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신선한 미국여인한테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큰 돈을 감지했다. 만일 드 마르그 자신이 소리질러 대는 것만큼 화가 나 있었다면, 그는 칼리파를 해고시켰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칼리파에게 일당 100 달러의 급료를 계속 주어가며 세헤라자드호텔에 그를 숨겨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새로운 진전이 있었다. 리처드라는 이름의 남자친구가 그것이었다. 칼리파는 이본이 자신에게, 자기는 리처드가 에리카한테 있어서 위험인물이 아님을 믿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이본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본이 칼리파에게 감시해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칼리파는 리처드를 없앨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게 여겨졌다. 에리카와 리처드가 다음 진열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칼리파는 '...일환으로 잠시...'라고 씌어진 카드가 있는 다른 빈 진열장 뒤로 걸어갔다. 안내책자를 펼쳐 그 뒤에 얼굴을 가린채 그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해봤다. 그가 알아들은 것은 위대한 파라오 중 한 명의 재산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칼리파에게는 돈에 대한 얘기로 들렸으므로 그는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는 거리를 좁혀가면서 생기는 흥분과 위험의 느낌을 좋아했다. 비록 그것이 상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에게 어떤 위협이 되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는 2초 안에 그들을 둘 다 죽일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생각이 그를 기분좋게 흥분시켰다. "아주 정교한 것들이 대부분 뉴욕에 전시되어 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하지만 저기 있는 목걸이를 보세요." 그녀가 가리켰다. 리처드는 하품을 했다. "이 모든 게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투탄카멘과 함께 묻힌 것들이에요. 세티 1세와 함께 무엇이 묻혀 있었을까 상상해 봐요." "상상할 수 없는데." 리처드가 다른 쪽 발에 몸무게를 실으며 말했다. 에리카는 쳐다보고 그가 지루해 하는 것을 알았다. "좋아요." 그녀가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까지 상당히 잘했어요. 우리 점심식사하러 호텔로 되돌아가서 혹시 연락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그런 다음 바자가 열리는 곳으로 가요." 칼리파는 그녀의 팽팽한 청바지의 곡선을 감상하면서 에리카가 걸어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폭력적인 장면을 연상하던 그의 생각이 개인적이고 음흉한 생각과 뒤섞였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 에리카가 전화해 줄 것을 바라는 연락과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또한 리처드를 위해 빈 방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는 머뭇거리면서 숙박부를 적으러 가기 전에 애원하는 눈빛으로 에리카를 쳐다보았다. 에리카는 공중전화 쪽으로 빠져나왔으나 이 복잡한 기계와 인연이 닿질 않았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전화를 걸겠다고 리처드에게 말했다. 남겨진 연락의 내용은 간단했다. "당신이 편리한 시간에 가능한 한 빨리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길 바랍니다. 스테파노스 마큘리스." 에리카는 암시장, 아마 살인사건에 실제로 관련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는 세티 1세 상을 팔아넘긴 상태였고, 만일 그녀가 다른 나머지 쪽의 상을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중요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공공장소를 택하라는 이본의 충고를 기억해 내고는 처음으로 리처드가 그녀 곁에 있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호텔 전화교환원이 확실히 로비에 있는 기계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었다. 전화는 빠르게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스테파노스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당당한 분위기가 있었다. "에리카 바론입니다." "아,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나보길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본 드 마르그라는 같은 친구를 두고 있군요. 멋진 분이죠. 그 분이 당신께, 제가 전화를 걸어 당신과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말을 드렸으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오후, 그러니까 2시 반쯤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생각해 두신 장소가 있으신가요?" 에리카는 이본의 경고를 염두에 두면서 물었다. 전화 저 쪽에서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께서 결정하시죠." 스테파노스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보다 더 크게 말했다. 에리카는 그의 익숙한 듯한 말투에 초조함을 느꼈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11시 30분이었다. 리처드와 그녀는 아마 2시 30분에는 바자에 가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 힐튼호텔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스테파노스가 제안을 했다. "전 오늘 오후에 칸 엘 칼릴리 바자에 가기로 했는데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리처드 얘기를 할까 하다가,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놀랄 만한 요소를 보류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에리카는 희미한 얘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스테파노스가 수화기를 잡았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미안하지 않다는 듯이 들렸다. "칸 엘 칼릴리 옆에 있는 알 아자르 사원을 아십니까?" "네." 에리카가 대답했다. 그녀는 이본이 그녀에게 가리켜 보이던 일을 떠올렸다. "거시서 만나기로 하지요."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찾기는 쉽습니다. 2시 30분에 봅시다. 정말 만나 뵐 일이 기다려지는군요. 이본 드 마르그 씨가 당신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에리카는 작별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분명 불안한 기분이었고, 심지어 약간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본 때문에 믿고 나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실제로 위험이 따른다면 그는 그녀가 스테파노스를 만나게 하지 않았을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일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룩소르, 오전 11시 40분 헐렁한 흰색 면셔츠와 바지차림의 아흐메드 카잔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직도 가멀 아브라힘의 폭력에 의한 죽음에 당혹스러움을 느꼈지만, 그 사건을 알라신이 한 수수께끼같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게 되자 죄책감이 줄어 들었다. 그는 자신이 문화재관리국의 책임자로서 언젠가는 그러한 일들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그는 부모가 살고 있는 집에 의례적인 방문을 했었다. 그는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지만, 그의 병든 아버지를 돌보려고 집에 남아 있는 그녀의 결정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학사학위를 받은 이집트의 첫번째 여성 중의 한 사람이었고, 만일 그녀는 자기가 받은 교육을 활용했다면 아흐메드는 그걸 더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대단히 지적인 여인이었으며 아흐메드에게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1956년 전쟁에서 심하게 부상을 당했고, 같은 전쟁이 그의 형의 목숨도 앗아갔다. 아흐메드는 이집트에서 많은 전쟁으로부터 비극의 참사를 겪지 않은 집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부모를 방문하고 나서, 아흐메드는 룩소르에 있는 무질서하게 지어진 진흙벽돌집에서 오랫동안 잠을 잤다. 그의 가정부가 막 구운 빵과 커피로 된 근사한 아침식사를 준비했을 때, 자키로부터 두 명의 특수형사가 사카라에서 급파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카이로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보였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그가 일어날지도 몰랐던 가족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이었다. 룩소르의 네크로폴리스 수문장으로 승진한 조카가 고집을 부려 카이로로 옮겨가고 싶어 했을 때, 조리에 맞게 설득하려 했지만 그게 소용이 없게 되자, 화가 나서 그에게 그냥 그 자리에 있으라고 해 버렸다. 아흐메드의 외삼촌인 그 조카의 아버지가 끼어들려고 했다. 아흐메드는 그 노인에게 왕묘의 계곡에서 구내매점을 경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을 쉽게 철회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문제가 해결되자 아흐메드는 자리에 앉아 서류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전날보다 더 나아지고 정돈이 잘 된 것처럼 보였다. 읽어보려고 서류 가방에 넣어왔던 메모철의 마지막 장을 내려 놓으면서 그는 일종의 성취감 같은 걸 느꼈다. 카이로에서라면 같은 분량을 읽어 내는 데 시간이 배로 들었을 것이다. 여긴 룩소르였다. 그는 룩소르를 사랑했다. 고대의 테베. 아흐메드에게는 공기 속에 그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마술이 있다고 느껴졌다. 넓은 거실에 있던 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집의 안 쪽은 시골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바깥 쪽은 눈부시게 흰 치장벽토가 발라져 있었고,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건물은 전에 있던 진흙벽돌 구조물들을 연결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좁다란 집이 되어 폭이 20피트밖에 안 됐지만, 왼쪽 곁으로 긴 홀이 있어 아주 깊숙히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오른편으로 손님용 침실들이 이어져 있었다. 부엌의 뒤쪽으로는 마굿간으로 쓰이는 작은 뜰이 있었는데, 거기엔 그의 자랑스런 소유물인 3살바기 검은색 아라비아종마가 있었다. 그는 그 종마를 '소다'라고 불렀다. 아흐메드는 집사에게 소다한테 안장을 올리고 11시 30분까지 대기시키도록 했다. 그는 점심식사 전에 압둘 함디의 아들인 토픽 함디를 그가 경영하고 있는 골동품상점에서 심문할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한낮의 햇볕이 누그러지면 나일강을 건너서 아무도 모르게 왕묘의 계곡으로 가 시행중인 새로운 보안제도를 조사해 볼 작정이었다. 그러고 나면 카이로에 돌아갈 시간이 될 것이다. 아흐메드가 나타나자 소다는 성급하게 땅바닥을 찼다. 이 젊은 종마는 각각의 근육이 마치 흠없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르네상스 시대의 서재 같았다. 얼굴은 끌로 조각해 놓은 듯 날카로웠고 코에서는 열띤 숨결이 뻗어나왔다. 종마의 눈은 검고 축축한 그 깊이가 아흐메드의 눈에 뒤지지 않았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아흐메드는 자기 아래 있는 이 원기왕성한 짐승한테서 완전한 힘과 생명력을 감지했다. 말이 굉장한 속력으로 폭발할 듯 박차고 나가는 것을 막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흐메드는 소다의 예측할 수 없는 기질이 바로 자신의 흥분하기 쉬운 열정을 그대로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유사점으로 인해 이 종마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아라비아 말로 날카롭게 소리치며 고삐를 세게 잡아당겨야 했다. 이윽고 나일의 강둑을 따라 나 있는 종려나무의 얼룩진 그늘 속을 기수와 말이 하나가 되어 달려가고 있었다. 토픽 함디의 골동품점은 룩소르의 고대사원 뒤로 나 있는, 먼지가 많이 나는 구불구불한 길의 안쪽에 자리잡은 여러 상점들 중 하나였다. 그 상점들은 모두 주요 호텔들과 가까이 있었고 발길이 잦은 여행객들 덕에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이 파는 골동품은 대부분이 웨스트 뱅크에서 만들어진 모조품들이었다. 아흐메드는 토픽 함디의 상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그 지역으로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거리명과 번지를 일러받고 그는 어렵지 않게 그 상점을 찾았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었다. 점심식사 때문에 닫은 게 아니었다. 밤까지 열지 않을 양으로 나무판으로 가로질러져 있었다. 소다를 그늘에다 매고 아흐메드는 이웃상점에 가서 토픽의 가게에 관해 물었다. 대답들은 한결 같았다. 토픽의 상점이 하루 종일 닫혀 있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토픽 함디는 여러 해 동안 하루도 장사를 거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상점 주인이 토픽이 보이지 않는 것은 카이로에 있는 부친이 얼마 전에 돌아가신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소다가 있는 쪽으로 가면서 아흐메드는 토픽의 상점 바로 앞을 지나쳤다. 나무판이 가로질러진 문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그는 한쪽 벽면에 새로 생긴 틈을 발견했다. 나무판의 일부가 쪼개져서 다시 댄 것처럼 보였다. 아흐메드는 나무판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로 댄 나무판의 맨 위를 올려다 보고, 아흐메드는 나무판들을 안 쪽에 걸어 놓은 게 아니라 문설주에 못질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토픽 함디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떠났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아흐메드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그 건물에서 물러났다. 그런 다음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토픽 함디가 카이로로 떠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 쪽으로 가는 도중에 아흐메드는 우연히 아버지의 오랜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려고 멈춰 섰다. 그리고 그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갑자기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토픽의 집이 못질이 되어 닫혀 있는 것에 특별히 의문이 생기는 점이 있었다. 아흐메드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양해를 구해 그와 헤어지고 나서 상점가의 언저리를 지나 상점들의 뒤쪽으로 연결되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정오의 햇볕이 치장벽토가 발라진 벽 위에 반사되어 내리쬐는 바람에 그의 이마는 금방 땀으로 얼룩졌다. 그는 등 뒤 허리께로 땀이 시내처럼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골동품 상가의 바로 뒤에서 아흐메드는 급하게 만든 천막이 가득 들어서 있는 곳을 지나갔다. 그가 계속 걸어가는 길에는 병아리들이 흩어져 있었고, 발가벗은 어린 아이들이 그를 쳐다보느라 놀기를 잠깐 그쳤다. 애를 먹어가며 몇 번이나 골목길을 잘못 돌아간 뒤에야 아흐메드는 토픽 함디의 골동품점의 뒷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문 틈을 통해 벽돌로 된 작은 뜰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서너 명의 사내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흐메드는 그의 어깨를 나무 문에 대고 밀어부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문이 열리게 했다. 뜰은 15피트 정도의 길이였고 저 쪽 끝에는 또 다른 나무문이 있었다. 출입구는 왼쪽에 있었다. 아흐메드는 문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다가 짙은 갈색의 쥐가 출입구에서 나와 뜰을 가로질러 진흙 하수관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공기는 무겁고 뜨거웠으며 사방은 고요했다. 열린 출입구는 토픽이 있었던 것 같은 작은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흐메드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허름한 나무탁자 위에는 상한 망고와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조각이 파리로 덮인 채 놓여 있었다.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은 문이 열린 채 내팽개쳐져 있었다. 구석에 있는 캐비닛은 문이 뜯겨져 있었고, 서류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진흙 벽에는 구멍이 몇 개 파여 있었다. 아흐메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한편, 불안감이 커져감을 억누르면서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그는 방에서 문 쪽으로 몸을 움직여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자물쇠는 부서져 있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절망적인 초조감이 엄습해 왔다. 안 쪽은 어두웠다. 가느다란 빛줄기만이 나무판이 대어진 앞문의 틈새를 뚫고 들어올 뿐이었다. 아흐메드는 강렬한 햇빛 속에 있다가 왔기 때문에 어둠에 익숙해지느라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작은 발들의 종종걸음 소리를 들었다. 쥐들이 더 있었다. 상점 안은 침실보다 더 난잡했다. 벽을 따라 늘어서 있는 커다란 캐비닛들이 넘어뜨려지고 조각이 난 채 상점 한가운데 있는 큰 더미 위로 던져져 있었다. 그 안의 내용물들은 뭉개지고 흩뜨러져 있었다. 마치 거센 폭풍우가 상점을 강타한 것처럼 보였다. 아흐메드는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부서진 가구조각들을 집어올려야 했다. 계속 치워가면서 한가운데로 나아갔다가 그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토픽 함디를 발견한 것이었다. 고문을 당한 채 숨져 있었다. 토픽은 누군가에 의해 나무로 된 카운터 쪽으로 끌려왔었는지 말라붙은 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양쪽 손에는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긴 못이 박혀 있었고 팔은 벌려져 있었다. 토픽은 손톱이 거의 다 뽑힌 후 손목이 잘린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을 것이다. 핏기가 가신 그의 얼굴이 유령처럼 창백했고, 그의 비명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지저분한 깔개조각이 입에 틀어넣어져 있어 그의 뺨이 볼록한 채 괴상해 보였다. 아흐메드는 '쉬이'하고 파리들을 쫓아버렸다. 쥐들이 시체 위에서 잔치를 벌였다는 것을 그는 알아보았다. 현장의 야만스러움이 그를 역겹게 했고, 이런 일이 그가 아끼는 룩소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분노와 더불어 그는 도시 카이로의 병폐와 죄악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갈까봐 두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흐메드는 자신이 이 병폐의 유행을 저지시켜야 한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구부려 토픽 함디의 멍한 눈을 들여야보았다. 그 눈동자들은 자신의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을 때의 공포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아흐메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체에서 나는 악취가 지독했다. 조심스럽게 그는 잔해가 흩어져 있는 마룻바닥을 다시 가로질러 작은 뜰로 빠져 나갔다. 햇볕이 그의 얼굴에 뜨겁게 쏟아져내렸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는 카이로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의 생각이 이본 드 마르그에게 미쳤다. 그가 주변에 있을 때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했다. 아흐메드는 간신히 문에서 몸을 빼내어 골목길로 나와 다시 문을 밀어 닫았다. 그는 룩소르 철도정거장 근처에 있는 중앙경찰서로 곧장 가서 카이로에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카이로, 오후 2시 5분 "근사한 상점인데." 리처드가 부산한 골목길을 벗어나 상점 안으로 들어서면서 조롱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물건들이 좋군. 크리스마스 쇼핑을 죄다 여기서 할 수 있겠어." 에리카는 상점 안이 텅 빈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깨진 도자기 조각 얼마를 제외하고는 안티카 압둘의 물건 중에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상점이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심지어 앞 창의 유리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현관에는 주렴구슬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깔개나 커튼조차도 없었다. 천조각이나 캐비닛 종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못 믿겠어요." 에리카가 윗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었던 카운터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녀는 몸을 구부려 질그릇조각 하나를 주워들었다. "여기 큰 휘장이 방을 구분해 주고 있었어요." 그녀는 뒤쪽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리처드에게로 돌렸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 여기 있었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자객이 바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 서 있었어요. 리처드." 리처드는 자기 발 쪽을 내려다보고는 곧 그 참극의 장소에서 멀리 떨어졌다. "도둑들이 다 훔쳐갔나 보군." 그가 말했다. "여기는 가난한 지역이니까 모든 게 값어치가 있을 테지." "정말 당신 말이 옳아요." 에리카가 큰 핸드백에서 손전등을 꺼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선 단순절도 이상의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벽에 있는 이 구멍들을 좀 봐요. 전에는 여기에 이런 구멍이 없었어요." 그녀는 불을 켜서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손전등을 다 가져오다니," 리처드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준비성이 대단해." "이집트에 손전등을 가져오지 않는 사람은 아주 기본적인 실수를 하는 거예요." 리처드는 벽면으로 다가가 허술하게 마른 진흙의 일부를 바닥으로 긁어내렸다. "카이로인들의 예술품 파괴성이라니." 에리카는 머리를 저었다. "내 생각엔 이 곳이 아주 자세히 조사된 것 같아요." 리처드는 주위를 빙둘러 군데군데 바닥이 파헤쳐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 것 같군.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 말은 그들이 대체 무얼 찾고 있었느냔 뜻이지." 에리카는 뺨 안쪽을 깨물었다. 이것은 그녀가 정신을 한 곳에 모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리처드의 물음에는 일리가 있었다. 아마 카이로 사람들은 보통 벽 속이나 마룻바닥 밑에 돈이나 귀중품을 숨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런 거친 행동의 흔적들은 그녀 자신의 방이 조사당했을 때를 연상시켰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다 플래시를 부착하고 상점 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리처드는 에리카가 불안해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리로 되돌아와서 신경에 거슬려?" "아니에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리처드의 과잉보호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안티카 압둘의 남겨진 물건들 속에서 극도로 불안함을 느꼈다. 압둘 함디가 살해되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알 아자르 사원에 가기까지 10분 남았어요. 스테파노스 마큘리스 씨를 위해서 시간에 맞춰 갔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상점 밖으로 나왔다. 그 곳을 떠나는 게 후련했다. 그들이 번잡한 길로 들어서자 칼리파는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떼었다. 그의 겉옷이 다시 그의 오른손 위에 걸쳐져 있는 반자동소총을 감추었다. 총의 노리쇠가 당겨졌다. 라울이 그에게 에리카가 오후 중에 스테파노스를 만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바자의 혼잡함 속에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그리스인은 무자비한 폭력배로 알려져 있었고, 칼리파는 그로부터 에리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수를 후하게 지급받았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사람들이 붐비고 햇빛이 가득한 알 아자르 광장의 서쪽 끝에 있는 칼 엘 칼릴리로부터 나타났다. 먼지로 가득한 열기가 그들로 하여금 바자의 상대적인 서늘함을 고마워하게 했다. 그들은 광장을 가로질러 고대사원 쪽으로 향했고, 엷은 푸른 빛의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바늘 같은 3개의 첨탑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싸움이 붙었는지 가득 몰려 있는 군중 속을 지나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들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단단히 붙들어야 했다. 사원 바로 앞의 장소는 에리카에게 보스턴의 헤이마켓(번화한 극장지구)을 연상시켰다. 그 곳에선 손수레에 야채와 과일을 실은 수백의 행상인들이 손님들과 물건값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에리카는 그녀와 리처드가 사원에 다다르자 다소 안심을 하고, '이발사의 출입구'라고 알려진 중앙현관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주변이 대번에 바뀌었다. 번잡한 광장에서 나는 소리가 석조건물 안으로 뚫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건물 안은 시원하고 어두침침했다. 마치 웅장한 무덤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을 연상시키는 군." 리처드가 신발 겉으로 종이 덮개를 씌우면서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들은 현관을 지나 어두운 방들로 연결되어 있는 트인 입구들을 들여다보면서 지나갔다. 벽은 커다란 석회암 덩어리로 건축이 되어 있어 성전이라기보다는 토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만나기로 한 이 사원이라는 장소를 좀더 신중히 알아봤어야 했다는 기분이 들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아치로 만들어진 통로 아래를 지나면서 그녀와 리처드는 자신들이 다시 밝은 햇빛 속에 있는 걸 알고는 놀랐다. 그들은 뾰족한 페르시아 아치로 사면이 온통 둘러싸이고 기둥들이 여럿 늘어서 있는 넓은 사각형의 장소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이 넓은 뜰은 카이로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텅 빈 채 거의 완벽한 고요함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었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그늘에 서서 윗부분이 아라비아식의 들쭉날쭉한 모양으로 된 부채골 난간이 달린 이국적인 배 모양의 아케이드를 살펴보았다. 에리카는 불안했다. 그녀는 스테파노스 마큘리스와의 만남에 신경이 쓰였고, 이제는 낯선 주변환경이 그녀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리처드가 그녀의 손을 잡아 다른 것들보다 약간 높은 그래도 그 중 제일 높은 아치 쪽으로 사각형의 뜰을 가로질러 그녀를 인도했다. 그들이 뜰을 건너갈 때 에리카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주랑의 현관에 생긴 보랏빛 그늘 안을 흘끔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흰옷을 입은 채 석회석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에반젤로스 파파리스는 아주 천천히 대리석기둥 주변을 맴돌면서 에리카와 리처드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육감이 문제가 생길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뜰의 북쪽 구석에 아케이드의 그늘 안 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지금 대각선 방향으로 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에반젤로스는 에리카가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여자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동행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외양으로 봐서는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현관 아치에 다다랐을 때, 그는 아케이드의 중앙으로 되돌아가서 팔로 천천히 원을 하나 그려보이고는 손가락을 두개 펴보였다. 약 200피트 쯤 떨어져 위치한 기둥이 서 있는 넓은 기도실에 깊이 몸을 숨기고 있던 스테파노스 마큘리스가 맞받아 손을 흔들었다. 미리 정해 놓았던 신호라 이제 스테파노스는 에리카가 어떤 다른 사람과 같이 왔음을 알았다. 이 사실을 알고는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둥그런 기둥 주위를 걸었다. 그리고는 그 기둥에 기대어 기다렸다. 그의 왼편에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둘러선 일단의 이슬람 학생들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단조로운 노래조로 코란을 읽고 있었다. 중앙현관으로 걸어 내려가려고 할 때 에반젤로스 파파리스는 칼리파의 모습을 얼핏 봤다. 그는 그림자 속으로 다시 들어가 옆모습을 분간해 내려고 노력했다. 다시 쳐다보자, 방금 전의 모습이 벌써 사라져버리고 리처드와 에리카가 기도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에반젤로스는 기억해 냈다. 수상하게 팔에 겉옷을 걸친 그 사내는 암살자 칼리파 칼릴리였다. 에반젤로스는 아케이드 중앙으로 되돌아갔으나 스테파노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그는 돌아서서 칼리파가 아직도 건물 안에 있는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에리카는 베데커 여행안내서에서 알 아자르 사원에 대해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들이 기도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수많은 대리석과 설화석고 조각으로 정교하게 지어져 있어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기도실은 메카를 향해 있어요." 에리카가 속삭였다. "여긴 신성한 장소군." 리처드가 조용히 말했다. 희미한 빛 속에서 그는 가능한 한 멀리 좌우에 있는 대리석 원형기둥의 숲을 보았다. "지금 무슨 냄새가......" 리처드가 킁킁거리며 물었다. "향냄새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들어봐요!" 낮은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고, 서 있는 자리에서 그들은 선생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많은 학생들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사원이 더 이상 대학교는 아니지만 아직도 코란 공부를 위해 사용되고 있어요." 에리카가 속삭였다. "나는 저들의 공부방식이 괜찮은 것 같은데." 리처드가 바닥에 깔려 있는 동양융단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리카는 몸을 움직여 아치의 행렬을 거쳐 햇빛이 비치는 뜰을 돌아보았다. 떠나고 싶었다. 이 사원에는 무덤같은 불길한 분위기가 있었고, 그녀는 이곳이 누군가를 만나기에 적절하지 않은 장소라고 단정지었다. "좀 봐요, 리처드."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아 당겼으나, 기둥이 가득한 홀로 들어갈수록 흥미를 느끼던 리처드는 손을 빼냈다. "당신이 책에서 읽은 술탄 라만의 무덤을 한 번 확인해 보자구." 그가 햇빛쪽으로 나가려는 에리카를 불러세우며 말했다. 에리카는 리처드를 훑어봤다. "저는......" 그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리처드의 뒤편에 있는 기둥 사이에서 나와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녀는 그 사람이 스테파노스 마큘리스임을 알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시선을 좇던 리처드는 다가오고 있는 물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왜 동요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에리카 바론 양." 스테파노스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본이 말한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군요." 스테파노스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마큘리스 씨?" 그녀는 내심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의 상냥한 태도와 말쑥한 겉모습이 그녀의 기대와 일치했다.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목에 둘러진 큼지막한 금십자가였다. 사원 안에서의 십자가의 광택은 폭력을 유발시킬 것만 같았다. "스테파노스 크리스토스 마큘리스입니다." 그리스인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 분은 리처드 허비 씨입니다." 에리카가 리처드를 앞으로 끌며 말했다. 스테파노스는 리처드를 흘깃 보고는 그를 무시해 버렸다. "전 에리카 양과 단둘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스테파노스의 몸짓을 무시하고 에리카는 리처드의 손을 더 굳게 움켜 쥐었다. "전 리처드가 이대로 있는 게 더 좋아요." "좋으실 대로." "여긴 사뭇 멜로드라마 같은 분위기가 나는 장소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스테파노스가 소리내어 웃자, 그 소리가 기둥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정말 그렇군요.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힐튼에서 만나지 말자고 한 건 당신 생각이었습니다."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어요." 리처드가 말했다. 그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에리카가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스테파노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맞서는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질 못했다.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시죠?" 에리카가 말했다. "압둘 함디에 관해서입니다." 스테파노스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를 기억하십니까?" 에리카는 될 수 있는 한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네."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당신한테 뭔가 특별한 얘기를 하던가요? 그가 무슨 편지나 서류 따위를 주었습니까?" "왜죠?" 그녀가 도전적으로 말했다. "왜 당신한테 제가 알고 있는 걸 말해야 하는 거죠?" "아마 우린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겠죠."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골동품에 대해 관심이 있으십니까?" "네." 에리카가 대답했다. "아, 그럼,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겠군요. 어느 부분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실물 크기의 세티 1세 상." 에리카는 그녀의 말이 스테파노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가늠해보려고 앞으로 수그리고 말했다. 그는 놀랐는지는 몰라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당신은 매우 심각한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군요." 그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대략의 관련 사항을 알고 계십니까?" "네." 에리카는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함디가 당신한테 그런 상에 관한 얘길 했습니까?" 스테파노스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또 다른 심각함이 베어 있었다. "말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특히 민감하게 만들었다. "함디가 그 상을 누구한테서 구했으며, 혹은 그 상이 어디로 갈 예정인지도 말했습니까?" 스테파노스의 얼굴에 상당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에리카는 뜨거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조금 몸을 떨었다. 그녀는 스테파노스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지를 짐작하려 애썼다. 그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상이 어디로 갈 예정이었는가 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 상은 분명 아테네로 가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에리카는 나직히 말했다. "그는 누가 그 세티상을 자신에게 팔았는지 말하지 않았고......" 그녀는 유유히 스테파노스의 두 번째 질문을 대답하지 않은 채로 남겨 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효과가 있다면 스테파노스는 그녀가 어떤 비밀을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아마 그녀는 그로부터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는 짧게 끝났다. 갑자기 큼지막한 형체가 스테파노스 뒤에서 그림자로 나타났다. 에리카는 커다란 대머리를 보았다. 그 대머리에는 상처자국이 머리 위에서 콧마루를 지나 오른뺨 위로 길게 나 있었다. 면도칼에 의해 생긴 상처 같았다. 깊게 패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는 거의 흐르지 않고 있었다. 그 사내의 손이 스테파노스에게 닿았다. 에리카는 숨막힐 듯이 리처드의 손에 손톱자국을 내고 있었다. 스테파노스는 놀라운 민첩성으로 에리카의 경고에 반응했다. 그는 오른쪽으로 주저앉으면서 몸을 돌렸다. 그의 다리가 가라데의 발차기 동작처럼 공격태세를 취하다가 그 사내가 에반젤로스임을 알아봤다. "무슨 일이야?" 스테파노스가 놀라 발을 거둬들이면서 물었다. "칼리파예요." 에반젤로스가 초조해 했다. "칼리파가 이 사원 안에 있습니다." 스테파노스는 다친 에반젤로스의 엄호를 위해 기둥에 밀어 붙이고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왼쪽 팔 밑에서 그는 작지만 치명적인 베레타자동소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뽑아버렸다. 총을 보자 에리카와 리처드는 저들에 대한 강한 불신감으로 서로에게 밀착한 채 몸서리를 쳤다. 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한 비명소리가 넓은 기도실에 울려퍼졌다. 반향으로 인해 소리가 어디에서 났는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비명소리가 잦아들자 코란을 중얼거리고 읽던 소리가 그쳤다. 대학살 전야의 고요함 같은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선생님과 함께 몇몇 학생들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들도 혼란과 가중되는 두려움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튀어 날아가는 무서운 소리가 대리석으로 된 경내에 울렸다. 스테파노스와 에반젤로스 뿐만 아니라 에리카와 리처드도 위험이 어느 쪽에 도사리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채 엎드려 피하고만 있었다. "칼리파다." 에반젤로스가 소리쳤다. 다른 비명소리가 기도실을 관통하자 뒤이어 소리의 웅성거림이 있었다. 순간 에리카는 그것이 사람들의 발소리임을 깨달았다. 무리를 지어 있던 학생들이 일어서서 북쪽을 바라봤다. 별안간 그들이 돌아서서 달렸다. 기둥의 숲은 헤치고 도망가는 공포에 질린 일단의 사람들이 그녀에게로 밀어닥쳤다. 몇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군중은 놀라 도망치는 가축떼처럼 되어버렸다. 두 그리스인은 염두에 두지도 않은 채 에리카와 리처드는 남쪽으로 마구 달렸다. 그들 뒤에서 밀려 오는 겁에 질린 군중들의 앞에서 달리기 위해 그들은 손을 맞잡고 기둥을 비켜 가며 정신없이 뛰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두려움으로 눈을 크게 뜨고 마치 건물에 불이라도 난 듯 그들을 앞질러 갔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그 학생들이 낮은 문을 통해 몸을 피하고 돌로된 통로로 내려가자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 통로는 무덤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복도가 무거운 나무문이 열려 있는 입구를 지나 밖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먼지가 자욱한 거리로 달려 나갔다. 거기에는 흥분한 군중이 벌써 모여 있었다. 에리카와 리처드는 그 사람들에 합류하지는 않았으나 뛰던 것을 빠른 걸음으로 늦추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3일 연속으로 그녀는 기대하지 않은 폭력을 목격해야 했고, 때때로 그 폭력은 점점 더 그녀와 가까이 연관된 듯했다. 우연이라는 말은 더이상 그럴 듯한 해명이 되지 못했다. 리처드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뒤로 가게 밀고서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벗어났다. 그는 자신들과 알 아자르 사원의 거리를 될 수 있는 한 멀리 두고 싶었다. "리처드." 에리카가 마침내 그녀 쪽에서 발길을 세우며 입을 열었다. "리처드, 천천히 가요." 그들은 양복점 앞에서 발을 멈췄다. 리처드의 입이 화가 나서 다물어져 있었다. "그 스테파노스라는 사람말야. 당신, 그가 무장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 "난 그와 만나는 일에 신경이 가 있었어요. 하지만......" "질문에 대답만 해, 에리카, 그가 무장하고 있으리란 생각했었어?" "전혀 못했어요." 그녀는 리처드의 말투가 싫었다. "분명 이건 당신이 염두에 두었어야 할 일이야. 어쨌거나, 그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라는 사람은 누구지?" "그는 아테네에서 온 골동품상이에요. 틀림없이 암시장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만남은 어떻게 약속이 된 거지?" "한 친구가 내게 스테파노스를 만나겠냐고 물었어요." "그럼, 당신을 폭력배의 두 손에 보낸 그 멋진 친구는 누구지?" "그 사람 이름은 이본 드 마르그예요. 프랑스인이구요." "그는 어떤 종류의 친구인가?" 에리카는 리처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얼굴은 분노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들이 겪은 일 때문에 아직도 떨고 있는 에리카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그녀가 사과하는 감정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글쎄." 리처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내가 당신을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어젯밤에 사과하려 했을 때 당신이 내게 한 말을 되풀이할 수 있지. '미안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만사가 순조로워질 줄 알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야. 당신은 우리 둘을 죽일 뻔했어. 난 당신의 멋대로 구는 행동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봐. 우린 미국 대사관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필요하다면 내가 당신의 머리채를 붙잡아서라도 끌고 가면 당신은 보스턴으로 돌아가게 될 테지." "리처드......" 에리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빈 택시가 혼잡한 거리를 따라 길을 골라서 천천히 가고 있었다. 리처드는 그 차를 에리카의 어깨 너머로 보고는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갈라서자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들은 말없이 뒷좌석에 올랐고 리처드가 힐튼호텔로 가 달라고 했다. 에리카는 분노와 절망이 복합적으로 섞인 기분이었다. 만일 리처드가 곧장 대사관으로 갈 것을 마음먹었다면 그녀는 차에서 내려야 했다. 얼마동안 침묵이 흐르고 나서 리처드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당신이 이런 종류의 일에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건 사실이야. 당신은 그걸 인정해야 돼." "이집트학에 관한 제 배경지식으로는," 에리카가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상당히 준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교통체증에 묶여 택시는 카이로의 거대한 고대의 문들 중 하나를 지나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에리카는 처음에 길가를, 다음엔 뒤쪽 창을 살폈다. "이집트학은 죽은 문명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리처드는 그녀의 무릎을 다독거릴 듯이 손을 들어올렸다. "시사성 있는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에리카는 리처드 쪽을 바라다 봤다. "죽은 문명...... 관련성이 없음......" 이 단어들이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확실히 알게 했다. 그 생각이란 결국 화만 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신은 학자로서 훈련이 되어 있지." 리처드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난 당신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탐정놀이는 유치하고 위험하기 이를 데 없어.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상, 하나의 상을 위해 어리석게도 위험을 무릅쓰는 거라구." "이건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상이 아니란 말예요." 에리카가 화가 나서 말했다. "게다가, 이 문제의 중요성은 당신이 이해하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도 하구요." "내 생각엔 모든 게 너무도 자명한 걸. 거액의 가치가 있는 상 하나가 발굴된 것이고, 그런 거액의 돈이 모든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는 셈이지. 하지만 그건 당국이 관여할 일이지, 관광객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 에리카는 '관광객'이라는 명칭에 발끈해서 이를 꽉 물었다. 택시가 조금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본이 왜 그녀로 하여금 스테파노스를 만나게 해주었는지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아무 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다음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려 했다. 그녀는 리처드가 뭐라고 하든 간에 포기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 이 사건은 압둘 함디가 축이 되어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아들과, 그의 아들이 경영하고 있는 룩소르의 골동품점을 방문하겠다는 지난 번의 결심이 생각났다. 리처드는 앞으로 몸을 굽혀 운전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영어 할 줄 아십니까?" 운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미국대사관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네," 운전사가 대답했다. 그는 거울로 뒤에 앉은 리처드를 쳐다보았다. "우린 대사관으로 가지 않아요." 에리카는 운전사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소리로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내가 강제로 끌고 가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리처드가 말했다. 그는 운전사에게 부탁의 말을 했다. "당신은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요." 에리카가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그렇게 할 수 없죠. 운전사 아저씨, 차를 세워주세요." 그녀는 좌석 앞으로 당겨 앉아 그녀의 큰 핸드백을 어깨에 걸쳤다. "계속 가 주십시오." 리처드가 에리카를 도로 앉도록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세워 주세요!" 에리카가 소리쳤다. 운전사는 그 말에 따라 길 가로 갔다. 에리카는 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보도로 뛰어올랐다. 리처드가 택시요금을 내지 않은 채 뒤를 따라갔다. 성난 운전사는 천천히 길을 따라 떠나고 리처드는 에리카를 붙들어 팔을 잡았다. "어린 애 같은 짓은 그만둬야 할 때야." 그가 외쳤다. 마치 말썽을 피운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듯한 말투였다. "우린 미대사관으로 가는 거야. 당신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야. 다치고 말 거야." "리처드." 에리카가 집게손가락으로 그의 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가고 싶으면 당신은 대사관으로 가세요. 저는 룩소르로 가겠어요. 절 믿으세요. 대사관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설령 그들에게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예요. 난 북부이집트로 가서 내가 목적한 일을 하겠어요." "에리카, 당신이 정 그렇다면 난 떠나겠어. 보스턴으로 돌아갈 거야. 진심이야. 내가 여기까지 줄곧 달려 왔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군. 난 그저 믿을 수 없을 뿐이야." 에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그가 떠나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만약 떠난다면 우리 관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몰라." "리처드." 에리카가 조용히 말했다. "전 북부이집트로 가요." 오후의 태양이 기울자, 나일강은 은으로 된 납작한 띠처럼 보였다. 돌풍이 흔들어놓은 수면에서 물빛이 갑자기 반짝거렸다. 에리카는 시간을 초월한 피라미드의 모습을 분간하려고 태양으로부터 눈을 가려야 했다. 스핑크스는 마치 황금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그녀는 호텔의 자기 방 발코니에 서 있었다. 거의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호텔 예약부에서는 그녀가 방을 비우기로 결정하자 매우 반색을 했다. 여느 때처럼 호텔이 초과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짐을 꾸려 가방 하나로 준비를 마쳤다. 로비에 있는 여행담당부서에서는 그녀를 위해 7시 30분발 북행 침대열차를 예약해 주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최근 몇일 동안의 두려움을 그런 대로 덜어주었고, 리처드와 다툰 그녀의 심정도 다소 나아졌다. 카르나크의 사원, 왕묘의 계곡 -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이집트에 온 이유들이었다. 그녀는 북쪽으로 가서 압둘의 아들을 만나겠지만, 마음은 모조기념비를 보는 데에 가 있을 것이다. 리처드가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 그녀는 기뻤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그들은 만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욕실을 점검한 덕분에 에리카는 샤워 커튼 뒤에서 크림린스를 발견하는 보답을 얻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방에다 밀어넣고 시간을 확인했다. 15분전 6시였다. 그녀가 기차역으로 떠나려 할 때 전화가 울렸다. 이본이었다. "스테파노스를 만났습니까?" 그가 유쾌하게 물었다. "만났죠." 에리카는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그런 위험에 처하게 한 것에 화가 나서 전화를 걸지 않았었다. "그가 뭐라고 하던가요?" 이본이 물었다. "별로요. 중요한 건 그의 행동이었죠. 그 사람은 총을 가지고 있더군요. 우리가 알 아자르 사원에서 막 떠나려 할 때 어떤 상처를 입은 듯한 대머리 남자가 나타났어요. 그는 스테파노스에게 칼리파라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고 말했구요. 그 다음 모두가 도망쳤어요. 이본, 당신은 어떻게 저에게 그런 사람을 만나라고 할 수 있었죠?" "맙소사." 이본이 말했다. "에리카 양, 제가 다시 전화를 걸 때까지 방에 그대로 있길 바랍니다." "안됐지만, 이본, 전 막 떠나려던 참이었어요. 실은 카이로를 떠날 거예요." "떠난다구요! 전 당신이 공식적으로 체류하게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이본이 놀라서 말했다. "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게 돼 있을 뿐이에요." 에리카가 말했다. "아흐메드 카잔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룩소르로 떠나겠다고 알렸어요. 그 쪽에서 괜찮겠다고 했어요." "에리카, 제가 다시 전화할 때까지 있어주십시오. 당신의 남자친구도 함께 갈 겁니까?" "그는 미국으로 되돌아갈 거예요. 그는 저만큼이나 스테파노스와의 만남에 당혹스러워했어요. 전화 고마왔어요, 이본. 다시 연락드리죠." 에리카는 아주 여유있게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이본이 어느 면에서는 자신을 미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녀가 골동품 암시장에 대항하는 이본의 맹세를 신뢰하긴 했어도 이용당하기를 원치는 않았다. 전화가 다시 울렸지만 그녀는 무시해버렸다. 힐튼호텔에서 중앙기차역까지 택시로 가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행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블라우스는 15분만에 땀에 푹 젖어 그녀의 등이 뜨거운 좌석의 비닐덮개에 달라붙었다. 기차역은 람세스 2세의 오래 된 입상 뒤의 혼잡한 광장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간을 잊은 듯한 입상의 모습은 정신 없는 러시아워의 차량들과 예리한 대조를 이루었다. 역내는 서양식 옷차림의 사업가에서 농기구를 휴대한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붐볐다. 에리카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군중속에서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침대열차의 창문 앞으로 서 있는 줄이 짧아 에리카는 표를 사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발리아네흐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여행을 잠시 멈추고 관광을 하려고 계획했다. 큰 신문가판대에서 그녀는 날짜가 이틀이 지난 이탈리아 패션잡지 헤럴드 트리뷴과 투탄카멘의 무덤 발굴에 관한 인기있는 책을 샀다. 그녀는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는 데도 카터의 책을 또 산 것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기차의 발차안내방송이 들렸다. 보기 좋은 미소를 띤 짐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다가 그녀의 침대칸 밑에다 실었다. 그 짐꾼은 기차에 승객이 다 찰 줄 몰랐다며 좌석 두 자리에 걸쳐 물건들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바닥에 내려 놓고 나서 헤럴드 트리뷴을 펴들고 뒤에 기대었다. "안녕하십니까?" 기분 좋은 목소리가 그녀를 다소 놀라게 했다. "이본." 그녀는 정말 놀라서 말했다. "에리카 양, 잘 있었소? 당신을 찾아서 정말 기쁘군요. 앉아도 될까요?" 이본은 잡지들을 자리에서 집어들어 그녀 옆으로 가져왔다. "당신이 기차편을 이용해 북쪽으로 가실 거라고 생각해서 모험을 했습니다. 항공편은 모두 한동안 예약이 돼 있는 상태거든요." 에리카는 살풋 웃었다. 아직도 화가 나 있긴 했지만 이본이 분명 힘들여 그녀를 찾아왔으리라는 사실에 다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그의 머리는 흩뜨러져 있었다. "에리카, 당신이 스테파노스를 만났을 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모두 사과하겠습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제가 신경이 쓰였던 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지요. 무슨 생각이 있으셨던게 틀림없겠죠. 당신이 저더러 공공장소에서 그를 만나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정말 그렇긴 했습니다. 하지만 전 단지 여자들에 대한 스테파노스의 평판을 우려했을 뿐입니다. 전 당신이 어떤 불미스런 일을 당하게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기차가 약간 움찔했다. 이본이 일어서서 통로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기차가 떠나려는 게 아님을 알고 안심해서 그는 다시 앉았다. "아직 제가 당신한테 저녁을 살 게 있죠." 이본이 말했다. "우리가 약속했던 대로 부디 카이로에 머물러주십시오. 압둘 함디의 살인사건에 관해 뭔가를 알아냈습니다." "뭐라구요?' "그들은 카이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보여 드리고 싶은 사진들이 있어요. 아마 한 명은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사진을 가져오셨나요?" "아뇨, 호텔에 있습니다.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본, 전 룩소르로 떠나요. 마음을 정했어요." "에리카, 당신은 언제나 원할 때 룩소르로 갈 수 있어요. 제게 비행기가 한 대 있습니다. 제가 내일 그 곳에 모셔다 드릴 수 있습니다." 에리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분노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결심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보살핌을 받는 것에 싫증이 났다. "제안은 고맙지만 이본, 저는 기차로 가겠어요. 제가 룩소르에서 전화드리지요." 호각소리가 났다. 7시 30분이었다. "에리카 양......" 이본이 말했다. 그러나 기차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룩소르에서 전화주십시오. 거기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통로로 달려나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기차는 이제 속도를 내고 있었다. "제기랄." 기차가 역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던 이본이 말했다. 그는 붐비는 역대합실 안으로 돌아갔다. 비상구 근처에서 그는 칼리파와 마주쳤다. "왜 기차에 타지 않았어?" 이본이 눈을 번득였다. 칼리파는 교활하게 웃음을 지었다. "전 카이로에 있는 그 여자를 뒤쫓으라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북행열차를 타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지시받은 바가 없지요." "맙소사." 이본이 옆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날 따라와." 라울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본을 보자 시동을 걸었다. 이본은 칼리파를 위해 뒷문을 열고 그를 뒤따라 차에 올랐다. "사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차량이 많은 데로 들어서자 이본이 물었다. "그 아가씨가 스테파노스를 만났죠. 그런데 스테파노스는 경호원을 한 명 배치시켰더군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만남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위치가 좋질 않았습니다. 거의 어제 세라피윰에서 만큼이나 나빴어요. 하지만 당신의 민감함을 고려해서 살인은 없었습니다. 전 몇 번 소리를 지르고 총을 몇 방 쏴서 사원 전체가 비워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칼리파는 경멸하듯이 웃어제꼈다. "내 민감함을 고려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말해줘. 스테파노스가 에리카 바론을 위협하거나 어떤 특이한 행동을 취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자네가 알아보기로 되어 있던 일이었어" "전 그 아가씨를 보호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럼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아시겠죠." 칼리파가 말했다. "그 상황하에서는 그녀를 보호하는 데에 주의가 온통 쏠려 있었습니다." 이본은 고개를 돌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봤다. 그는 머리 위에 큰 빵상자를 올려 놓고 중심을 잡아가면서 차를 타고 있는 그들보다 더 빨리 갔다. 이본은 좌절감을 느꼈다. 일은 잘 안 되어 가고 있었고, 이제 세티 1세 상에 대한 그의 마지막 희망인 에리카 바론은 카이로를 떠났다. 그는 칼리파를 바라다보았다. "난 자네가 여행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길 바라네. 자네는 오늘 밤 비행기로 룩소르에 갈 테니까." "지시대로 하죠." 칼리파가 말했다. "일이 점점 재미있게 돼가는군요." 제 4 일 발리아네, 아침 6시 5분 "한 시간이면 발리아네에 도착합니다." 그녀가 있는 객실의 커텐을 통해 짐꾼이 말했다. "고마워요." 일어서서 작은 창문을 덮은 커텐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면서 에리카가 말했다. 밖은 이른 새벽녘이었다. 하늘은 자주빛이었고 그녀는 멀리있는 낮은 사막산들을 볼 수 있었다. 기차는 빨리 움직이고 있었고 약간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기차는 리비아 사막의 가장자리를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조그마한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 후 약간의 화장을 하였다. 전날밤에 역에서 샀던 투탄카멘에 관한 책 중의 하나를 읽으려고 했으나 기차의 진동은 그녀를 곧바로 잠들게 하였다. 독서용 전등을 끄기 위해 일어났을 때 기차는 한밤중 속을 달리고 있었다. 잠시동안 처음으로 햇빛이 서쪽 수평선을 밝혔을 때 그녀는 식당칸에서 영국식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밖을 내다보았을 때 하늘은 자주빛에서 연한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에리카는 온갖 짐들이 어깨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에는 자유의 행복감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기차가 과거로 돌진하고 있고 고대이집트, 파라오의 땅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발리아네에 도착했을 때는 6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얼마 안 되는 승객이 내렸고 마지막 승객이 플랫폼에 발을 내딪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에리카는 간신히 여행가방을 수화물보관소에 맡기고 역에서 나와 작은 시골읍내의 밝고 분주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곳에는 명랑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카이로의 숨막힐 듯한 분위기보다 발랄해 보였다. 그러나 날씨는 훨씬 더웠다. 심지어는 아침 일찍인데도 그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역의 그늘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낡은 택시들이 몇 대 있었다.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입을 벌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에리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에리카를 향해 지껄이기 시작했다. 결국 갸냘픈 한 사람이 에리카를 손님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정돈되지 않은 기다란 콧수염과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에 기뻐하며 1940년형 택시의 문을 열기 전에 에리카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였다. 그는 담배를 포함하여 영어를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에리카가 담배 몇 개를 그에게 주자 그는 오후 5시 룩소르행 기차를 탈수 있도록 역까지 데려다 준다는 약속을 하며 기꺼이 운전사가 되는 것에 동의를 표했다. 가격은 이집트 돈으로 5파운드였다. 그들은 읍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다 나일 강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택시가 질주함에 따라 차안의 휴대용 라디오 안테나가 창문 없는 오른 쪽 창에서 한 순간도 붙어 있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사내는 행운을 되새기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길의 양쪽에는 많은 사탕수수가 늘어서 있었고, 가끔 오아시스와도 같은 야자나무가 있었다. 그들은 더러운 냄새가 나는 용수로를 지나 엘 아라바 엘무드푸나 마을을 통과했다. 그것은 경작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진 비참한 진흙벽돌의 오두막촌이었다. 머리에 물단지를 이고 그것을 나르고 있는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 여자들은 베일을 쓰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2-3백 야드를 지났을 때 사내는 차를 멈추고 앞을 가리켰다. "세티." 담배를 입에 문 채 운전수가 말했다. 에리카는 차에서 내려 올라갔다. 도착한 곳은 바로 '아비도스'였다. 그곳은 세티 1세가 그의 웅장한 사원을 지으려 택했던 장소였다. 에리카가 막 그녀의 안내책자를 꺼내려 할 때 몇 명의 갑충석을 파는 청년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그녀는 그날의 첫 관광객이었고 입장료로 50피에스타(터키, 이집트, 베트남 등지의 화폐)를 지불하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청년들의 지껄여대는 소리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베데커의 안내서를 손에 들고 큰 석회암에 앉아 아비도스에 관한 부분을 읽었다. 그녀는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곳의 각 부분이 세티 1세 시기의 상형문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사원은 세티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람세스 2세에 의해 완공되었다. 아비도스를 방문한 에리카의 계획을 모르고, 칼리파는 승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룩소르역의 플랫폼에 서 있었다. 기차는 정각에 도착했고 그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차를 환영했다. 삼등칸 기차의 열려진 창문을 통해 아스완(이집트남동부의 도시)까지 가는 사람들에게 과일과 차가운 음료수를 팔려고 하는 행상인들에 의해 온갖 외치는 소리가 진동했다. 하차하려는 사람과 승차하려는 사람 간에 서로 밀고 밀치는 혼잡한 몸부림들이 있었다. 출발하려는 경적이 막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의 기차들은 정시에 출발했다. 칼리파는 담배 연기가 그의 구부러진 코를 통해 나오도록 하면서 연거푸 줄담배를 피웠다. 그는 역의 주요 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랫폼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소동과는 상관없이 서 있었다. 조금 늦은 승객들이 기차가 역에서 떠나기 시작했을 때 기차를 타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에리카는 없었다. 마지막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칼리파는 출구를 통해 역을 떠났다. 그는 카이로에 전화를 하기 위해 중앙우체국으로 향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아비도스, 오전 11시 30분 에리카는 세티 1세의 신전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녀는 이집트의 모든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양각 세공은 아주 웅장했다. 에리카는 신전의 벽을 덮고 있는 다량의 상형비문을 번역하기 위해 며칠 있다가 아비도스에 다시 올 것을 계획했다. 그녀는 세티의 비문중에서 투탄카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지를 알아보려고 원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의 모든 고대이집트 파라오들이 연대기순으로 기록되어 있는 '왕들의 진열실'이라고 이름 붙은 방을 제외하고, 그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상형 문자를 보기 위해 내부 묘실을 지나갈 때 플래시를 사용하였다. 에리카는 조용히 세티 1세의 상에 있는 문구들에 대해 생략된 번역을 되풀이했다. "투탄카멘 후에 지배한 세티 1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녀는 이 문구가 세티 1세의 신전 안에 서 있는 그녀에게 힐튼호텔 방의 발코니에서 본 문구보다 더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에리카는 가방을 샅샅이 뒤져서 상에 있는 상형비문의 사진을 꺼냈다. 그녀는 똑같은 표시를 찾으려고 신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천히 들여다보았으나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그 상에 있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씌어 있는 세티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티 1세의 상은 오시리스신(고대이집트의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과 연결되어 있는데 신전에서는 보통 그 신을 호러스신과 동등하게 취급했다. 아침은 에리카에게 식욕과 더위도 잊게 한 채 지나가고, 어느덧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가 오시리스의 예배당을 지나 그 신의 내부신전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는 3시가 넘었을 때였다. 예배당은 한때 지붕을 네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던 매우 화려한 홀이었다. 지금은 태양이 방을 흠뻑 비추면서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의 예찬을 담은 장엄한 양각들을 환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덧 폐허가 되어버린 그 방에는 다른 관광객은 없었고, 에리카는 조각된 벽화를 조용히 음미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빈 홀의 거의 끝에쯤 도달했을 때 하나의 낮은 출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은 깜깜했다. 베데커의 안내서에는 방 너머가 '네 개의 기둥을 가진 내실'이라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걱정을 달래면서 에리카는 플래시를 비추고, 그 낮은 문 안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불빛을 벽, 기둥 그리고 죽음과도 같은 정적만이 흐르는 방의 천장을 비추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불규칙한 밑바닥을 지나 무거운 기둥들 주위를 움직였다. 바로 벽 반대편에는 이시스(고대농사와 수태를 관장하는 신), 세티 1세, 호러스 등의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들이 있었다. 에리카가 오시리스 신전 안에 위치한 세티 1세의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 그것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작은 방에는 한 가닥의 햇빛도 스며들지 않았다. 에리카의 플래시는 단지 조그만 부분밖에는 비추지 못했고, 그 나머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방 주위를 플래시로 비추다가 상형문자 중에서 '상'에 쓰여져 있던 것과 똑같은 세티의 소용돌이 장식(옛이집트왕의 이름, 신의 이름을 장식한 것)을 얼핏 보았다. 그것은 세티를 오시리스와 동일하게 간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에리카는 원판이 수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씌어졌다는 것을 추측하면서, 소용돌이 장식 근처의 상형문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일일이 번역하지 않고도 그 작은 방이 세티가 죽은 이후에 완공되었고 오시리스의 제식에 쓰였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 때 그녀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고유명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파라오의 유적에 고유명사가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에리카는 그 음들을 조합해 보았다. "네-네-프-타." 그녀는 가방 속을 확인하려고 불빛을 바닥으로 비추었다. 그녀는 그 진기한 이름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녀가 눈을 위로 돌리자마자 몸이 얼어 붙어옴을 느꼈다. 원형의 빛 안에 한마리의 코브라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꼿곳이 세우고 몸을 아치모양으로 비튼 채, 노란 눈은 검고 깊게 찢어진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혀를 조그마한 채찍처럼 갈래질하면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듯한 모습으로 에리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뱀이 머리를 아래로 내려뜨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올 때까지 에리카는 그녀의 뒤쪽에 있는 예배당의 낮은 문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뱀이 물러나는 모습이 그녀의 곁눈에 비쳤을 때, 그녀는 가까스로 햇빛 안으로 급히 도망친 다음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티켓 판매소로 돌아왔다. 관리인은 에리카의 이야기에 자신들이 몇 년 동안 그 코브라를 죽이려 시도해 왔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오시리스 신전은 그때 잠시동안 닫혀졌다. 그녀는 뱀과 관련한 무시무시한 순간을 경험했는데도 발리아네에 돌아갈 차를 타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실망은 오로지 '네네프타'라는 이름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더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에리카는 그 이름의 앞뒤를 참조해 볼 생각이었고, 혹시 세티 1세의 고관들 중 한 명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룩소르행 기차는 5분 늦게 출발했다. 에리카는 투탄카멘에 관한 책을 가지고 의자에 앉았지만 눈은 계속 창밖의 경치를 주시하고 있었다. 기차가 달리면서 나일강 유역은 좁아져 있었고, 그곳에 있는 경작지의 한 곳과 다른 곳을 구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태양이 서부수평선 근처에 드리워져 있을 때 에리카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소를 타고 가고 있었고, 짐을 가득 실어 혹사당하고 있는 당나귀를 끌고 가는 사내들이 보였다. 에리카는 시골집 안마당을 볼 때마다 그 진흙벽돌집에 사는 사람들이 안정 속에서 목가적이고 신비스런 사랑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계속 불확실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차용된 삶을 영원히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 함마디'를 지나며 기차는 서부에서 동부로 나일강을 황단하고 있었고, 길게 늘어진 사탕수수 속으로 들어가자 어떤 시골경치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책으로 돌아왔고 하워드 카터와 에이 시 메이스가 쓴 <투탄카멘 무덤의 발견>이라는 책을 폈다.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즉시 자신이 그 책에 도취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문체가 분명하고 세심한 카터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재능을 바탕으로 쓴 책으로 놀라움을 재현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발견에 대한 흥분은 페이지 곳곳에서 전달되었고 에리카는 마치 공포소설을 읽고 있는 것처럼 점점 더 빨리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책 안에서 발견의 흥분이 일어날 때마다 해리 버튼이 찍은 훌륭한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매장실로 가는 봉해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개의 실물 크기의 투탄카멘 상이 특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세티 상과 투탄카멘의 상을 비교해보면서 처음으로 그녀가 세티 상이 한 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똑같은 위치에서 다른 유물들이 발굴될 기회가 아주 많다 하더라도 똑같은 세티 상을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사탕수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그 상들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를 알아내는 최상의 방법은 그녀가 '순수 미술의 미술관' 소속의 조예 깊은 골동품 수집인으로 위장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녀가 최고의 가격으로 살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킬 수만 있다면 귀중한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될지도 모른다. 아마 더욱 많은 세티의 유물이 나타난다면 그녀는 그 출처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하고, 특히 압둘 함디의 아들이 별로 소용이 없을 경우에는 유용한 계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차가 룩소르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에리카는 짜릿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플로렌스가 이탈리아에 속히 있듯이 룩소르가 이집트에 속해 있음을 알았다. 그만큼 룩소르는 그녀에게 소중한 곳이었다. 역 밖에는 또다른 놀라움이 있었다. 남아 있는 택시들은 말이 끄는 마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에리카는 이미 룩소르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윈터펠리스호텔에 도착했을 때, 관광객이 많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왜 그동안 예약하기가 어렵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호텔은 신축공사중이었고 그녀는 방에 도착하기 위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공사용 벽돌, 모래, 회반죽으로 둘러싸인 이층 바닥의 카페트 없는 홀을 걸어가야만 했다. 단지 몇 개의 방만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공사가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호텔이 마음에 들었다. 정연한 정원을 가로질러 뉴윈터펠리스호텔이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빌딩 반대편이었고, 그 건물은 아무 특색도 없는 현대식 고층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에 만족하고 있었다. 에어컨디션 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리카의 방에는 상당히 높은 천장에 저속의 넓은 날이 장착되어 있는 선풍기가 붙어 있었다. 나일강의 경치를 볼 수 있는 우아한 발코니 위에는 한 쌍의 프랑스식 문(좌우로 열리는 유리문)이 열려 있었다. 샤워 시설은 없었지만, 에리카가 금방 꼭대기까지 물을 채울 수 있는 거대한 자기욕조가 돋보이는 타일로 만들어진 목욕탕이 있었다. 그녀가 막 신선한 물을 받고 있을 때 다른 방에서 구식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전화를 받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끝내는 호기심이 불편을 압도해 버렸고, 선반에 있던 수건을 손에 쥐고 침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룩소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스 바론." 아흐메드 카잔이었다. 잠시동안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두려움을 상기시켰다. 그녀 자신이 세티의 상을 찾을 결심을 하였지만, 순간 카이로의 배후에 있는 폭력과 위험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관계당국이 그녀를 추적해 왔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즐거운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예, 그럴 거예요." 에리카가 답했다. "내가 당신 사무실에 통보했을 텐데요." "네, 그 메시지는 받았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지금 전화를 거는 이유입니다. 당신을 환영하기 위해 당신이 언제 도착하는지 연락해줄 것을 호텔에 부탁했었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룩소르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자주 들르는 편이지요." "네, 알아요." 대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에리카가 말했다. 아흐메드는 결심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미스 바론, 당신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면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공무와 관련된 초대입니까, 아니면 사교적인 것입니까?" "순수한 초대이고 일곱 시 삼십 분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에리카는 빨리 생각해 보았다. 별 탈은 없을 것 같았다. "네, 좋아요. 초대받아서 기뻐요." "감사합니다." 아흐메드 역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미스 바론, 혹시 말타는 것 좋아하세요?" 에리카는 움찔했다. 사실 그녀는 몇 년 동안 말을 타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말을 좋아했었고, 말을 타고 고대 도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매혹시켰다. "좋아해요." 그녀가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아흐메드가 말했다. "말을 탈 만한 옷을 입고 오시면 제가 룩소르를 조금 구경시켜 드리지요." 필사적으로 말에 매달려 사막의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 에리카는 검은 씨말을 잠시 쉬게 해 주었다. 말은 최고속력으로 작은 모래언덕에 천둥이 이는 것처럼 산등성이의 꼭대기를 따라 질주해왔다. 에리카는 아흐메드를 기다리기 위해 말의 고삐를 잠시 늦추었다. 태양은 가라앉았지만 아직 주위는 밝았고, 에리카는 카르나크 사원의 유적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강을 지나 관개지 건너편에는 테베 산이 높이 솟구쳐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귀족들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몇 개의 입구를 식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경치에 매료되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신음하는 동물은 그녀의 기분을 마치 과거로 실려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아흐메드는 그녀 옆에 도착했지만 말을 시키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상태를 알아차렸고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에리카는 노을에 젖어 샤프하게 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흘깃 훔쳐보았다. 그는 헐겁고 하얀 면화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셔츠는 가슴 한가운데까지 열려 있었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말려 있었다. 그의 검고 빛나는 머리는 바람에 헝클어졌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들이 선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아직까지는 그의 뜻하지 않은 초대에 당혹해하고 있었고 그의 공적인 신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도착한 후에 계속해서 공손하게 대해 주었지만 사교적이지는 않았다. 그의 의도가 이본 드 마르그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죠?" 마침내 그가 말을 시작했다. "화려하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달리려고 하는 말 위에서 그녀는 잠시 버둥거렸다. "나는 룩소르를 사랑합니다." 그는 에리카 쪽으로 몸을 돌렸고 약간 당황한 듯이 보였다. 에리카는 그가 무슨 말을 더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몇분 동안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나일강 유역의 경치가 보이는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들이 침묵 속에 경치를 쳐다보고 있을 때 유적 안에는 그림자들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밤을 알리는 신호였다. "미안하군요." 그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식사를 안했을 텐데. 저녁을 먹으러 갑시다." 그들은 카르나크 사원을 지나 나일강을 따라 아흐메드의 집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내들이 밤에 돛을 감아올리면서 조용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펠리커선이 정박한 곳을 지나쳤다. 그들이 아흐메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에리카는 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마당에 잇는 목재통에서 손을 씻었다. 아흐메드의 가정부는 성찬을 준비했고 거실에서 그것들을 대접하였다. 강낭콩, 렌즈콩, 가지요리 등 에리카가 좋아하는 요리가 가득 하였다. 그것들은 참기름에 무쳐져 있었고 마늘과 땅콩 그리고 캐러웨이(회향풀의 일종)가 솜씨좋게 요리되어 미묘한 맛을 내고 있었다. 아흐메드는 그녀가 앞에 놓인 음식을 먹지 않고 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주요메뉴는 에리카가 영국산 암탉이라고 생각했던 새고기였다. 아흐메드는 그것이 '하마마' 또는 '비둘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숯불에 구워졌다. 그의 집에서 아흐메드는 안정되어 보였고 한결 대화가 편했다. 그는 에리카에게 오하이오주에서의 성장과정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유태인 가계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자의식을 느꼈는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아흐메드의 모습에 놀랐다. 그는 이집트에서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설명해주고, 그 문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이지 유태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흐메드는 특히 캠브리지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관심이 많았고, 그녀가 온갖 종류의 상세한 이야기까지 해주기를 바랐다. 그녀가 이야기를 다 마쳤을 무렵 그는 자신이 하버드에 다녔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그가 숨김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성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여건이 만들어져야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약간의 영국식 액센트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영어를 잘 구사했다. 영국식 액센트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옥스퍼드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생긴 것이었다. 그는 예민한 남자였다. 에리카가 미국여자와 데이트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파멜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에리카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이야기의 말미에 그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그는 보스턴을 떠나 잉글랜드로 갔고 그 다음에는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다. "당신이 연락을 끊었다는 얘기예요?" 에리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소." 아흐메드가 조용히 말했다. "왜죠?" 에리카는 불행한 결말을 싫어하고 해피엔딩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시 물었다. "나는 내 조국인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소." 아흐메드가 얼굴을 돌리면서 말했다. "나는 이곳에 있어야 했소.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해야 했고, 그 당시 나는 로맨스를 즐길 여유가 없었소." "다시 파멜라를 본 적이 없나요?" "한 번도." 에리카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파멜라에 관한 이야기로 아흐메드의 감정이 불편해진 걸 느꼈기 때문에 더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당신 가족 중의 누군가 메사추세츠에 있는 당신을 만나러 온 적이 있나요?" "아니오......" 아흐메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삼촌이 내가 떠나기 바로 전에 미국에 왔었소."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삼년 동안 집에도 가지 못했군요?" "맞아요. 이집트를 떠나서 보스턴에서 생활하기까지, 대부분을." "외롭거나 고향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엄청났죠. 파멜라가 있기 전까지는요." "삼촌이 파멜라를 만났나요?" 아흐메드는 흥분했다. 그는 찻잔을 벽을 향해 던졌고 그것은 산산조각이 났다. 에리카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 아랍인은 머리를 양손에 묻었고 그녀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었고 에리카는 공포와 동정심사이의 복합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파멜라와 삼촌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아직도 저렇게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용서하세요." 아직도 머리를 떨군 채 아흐메드가 말했다. "뭔가 제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네요." 에리카가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제가 호텔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군요." "안 돼요, 가지 마세요, 제발." 머리를 들어올리면서 아흐메드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오. 단지 내가 약간 긴장해 있었기 때문이오. 제발 가지 말아요." 아흐메드는 신선한 차를 에리카에게 따라주었고 자신도 새컵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서는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해 문화재관리국이 최근에 몰수한 몇 가지 유물을 꺼내놓았다. 에리카는 그것에 감탄했고, 특히 아름답게 조각된 목재 조상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짐을 느꼈다. "혹시 암시장에서 세티 1세의 유품이 몰수된 적이 있나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물건들을 테이블 근처에 내려놓았다. 아흐메드는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하고 그녀를 몇분 동안 쳐다보았다. "아니오. 몰수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왜 그것을 묻소?" "아! 오늘 아비도스의 세티사원을 방문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런데 당신은 거기에 코브라와 관련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코브라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문제거리이지만, 특히 아스완 지역에서 심각하지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는 못하고, 그것도 암시장의 문제와 비교해보면 별로 큰 문제는 아니오. 단지 4년 전에 덴데라에 있는 해더사원에서 환한 백주 대낮에 조각된 판목(인쇄하기 위하여 글자나 그림을 새긴 나무)이 약탈당한 사건이 있었소." 에리카는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이번 여행은 암시장의 엄청난 파괴력에 대해 가르쳐 주었어요. 그래서 번역작업을 하면서 암시장에 관련된 가치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아흐메드가 갑자기 쳐다보았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오.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소. 약 2년 전에 한 젊고 공상적인 미국인이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예일에서 이곳으로 왔었소. 결국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소." "글쎄요." 에리카가 말했다. "저는 영웅이 아니에요. 그저 단순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에요. 당신이 혹시 여기 룩소르에 있는 압둘 함디의 아들이 경영하는 골동품가게 위치를 아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아흐메드는 얼굴을 돌렸다. 테픽 함디의 일그러진 시체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가 에리카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다. "테픽 함디는 그의 아버지처럼 최근에 살해되었소.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관리국과 경찰이 추적하고 있는 중이오. 당신은 이미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소. 제발 번역작업에만 열중했으면 좋겠소." 에리카는 테픽 함디의 소식에 놀랐다. 또 다른 살인!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지금 그녀의 긴 하루는 무언가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아흐메드는 그녀가 피곤하는 것을 눈치채고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즉시 승낙했다. 그들은 열한 시가 되기 전에 호텔에 도착했다. 아흐메드의 친절한 대접에 감사한다는 말을 한 후 에리카는 문을 꼭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천천히 옷을 벗었다. 화장을 지우면서 그녀는 아흐메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의 강렬함은 그녀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순간적인 감정폭발에도 불구하고 그 밤을 완전히 즐길 수 있었다. 막 잠이 들기 전에 그녀는 아흐메드와 파멜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들을 압도하며 생생하게 머릿속을 지배해버린 것은 '네네프타'라는 고대의 이름이었다. 제 5 일 룩소르, 오전 6시 35분 룩소르에 머무른다는 흥분 때문에 에리카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그녀는 룸서비스로 아침식사를 주문한 다음 그것을 발코니로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아침식사와 함께 이본에게서 온 전보가 한 통 있었다. 오늘 뉴윈터펠리스 호텔 도착. 밤에 잠시 당신을 만나고 싶소. 에리카는 놀랐다. 그녀는 리처드에게서 전보가 오리라고 확신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흐메드와 밤을 보낸 후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일년 전, 간절히 리처드가 청혼하기를 바랐던 모습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세 명의 다른 남자에게 동시에 끌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처드와의 관계에 금이 가지 시작했을 때, 그때까지 걱정거리였던 것에 대해 그녀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못했다. 그녀는 단숨에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모든 감정적인 문제를 머릿속에서 털어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방에 돌아와서 하루를 설계했다. 핸드백을 비우고 그녀는 호텔에서 주문한 도시락상자, 플래쉬, 성냥, 담배, 압둘 함디가 준 1929년판 베데커 안내서를 대신 집어넣었다. 허술한 표지와 잡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종이에는 당국의 표시가 찍혀 있었다. 떠나기 전에 그녀는 표지 위의 이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카이로, 샤리 엘 타흐러 180, 나세프 말머드' 압둘 함디와 그녀의 인연은 테픽이 살해되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카이로에 돌아가면 꼭 나세프 말머드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표지를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윈터펠리스호텔에서 샤리 루칸다의 골동품 가게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많은데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꽤 있었다. 에리카는 아무렇게나 가게를 하나 골라서 들어갔다. 그 가게는 안티카 압둘을 생각나게 하였는데, 위조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에리카는 위조품 중에서 진품을 가려내면서 좀더 인상적인 표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비드 주란이라는 아주 체격이 큰 주인은 처음에 그녀에 대해 망설이는 듯했으나 카운터 뒤에서 태도를 바꾸었다. 선사시대의 것이라 추정되는 수십 개의 도기 중에서 에리카는 단지 두 개만이 진짜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하나를 집어들었다. "얼마죠?" "50 파운드입니다." 주란이 말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10 파운드입니다." 에리카는 그가 말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름다운 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것들은 나선형 장식었으나 선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 있었다. 이집트왕조 이전의 도자기는 종종 나선형이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시계 반대방향이었다는 것을 에리카는 알고 있었다. "나는 골동품에만 관심이 있어요. 사실 여기는 진품이 아주 조금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좀 특별한 것을 찾고 있거든요." 그녀는 위조자기를 내려놓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신왕조 시대의 진귀한 골동품을 구하러 이곳에 특별히 파견된 사람이에요. 얼마든지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다른 걸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다비드 주란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에리카를 잠시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몸을 돌리더니 작은 캐비닛을 열고 람세스 2세의 상처가 있는 청동 두상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코가 없어졌고 턱은 금이 가 있었다. 에리카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입니까?" "지금으로서는요." 주란은 깨진 상을 제자리에 다시 넣었다. "여하튼 여기 이름을 남기고 가겠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나는 윈터 펠리스호텔에 머무르고 있어요. 혹시 특별한 물건을 본다면 나에게 연락해 주세요." 그녀는 혹시 그 남자가 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다음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후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들어갔던 다섯 개의 다른 가게에서도 똑같은 대화가 반복되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특별한 물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가 보았던 최고의 것은 하트세수트 여왕 시대의 유약을 칠한 'U'자 모양의 작은 상이었다. 들렀던 가게마다 이름을 남겼지만 결국 그녀는 포기하고 나루터로 걸어갔다. 강을 건너오는 데 5센트밖에 들지 않는 낡은 배에서 카메라를 둘러맨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이 내리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택시운전사들, 안내를 지망하는 사람들, 갑충석판매상들이 덮쳐들었다. 에리카는 판지조각에 '왕들의 계곡'이라고 대충 칠해진 낡은 버스를 탔다. 나룻배를 탔던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버스는 정류소를 떠났다. 에리카는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막의 가장자리에서 갑자기 끝이 났던 평평하고 푸르른 경작지 너머에는 가파른 테베 절벽이 서 있었다. 절벽의 밑부분에서 에리카는 디어 엘 바흐리에 있는 하트세수트사원 등의 우아한 유적들을 볼 수 있었다. 하트세수트사원 등의 우아한 유적들을 볼 수 있었다. 하트세수트사원 바로 오른쪽에는 경사진 언덕 안쪽으로 지어진 '쿼나'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진흙벽돌 건물들이 개간지 너머 사막 위에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은 사암절벽의 색깔처럼 햇볕에 약간 그을린 색깔이었다. 몇 개의 건물은 하얀 도료로 칠해져 아주 두드러져 보였으며, 특히 땅딸막한 첨탑을 가지고 있는 작은 성원이 돋보였다. 건물들 사이에는 땅속으로 통하는 닫혀진 통로가 있었다. '쿼나'의 사람들은 귀족들의 무덤들 사이에서 살았다. 주민들을 딴 곳으로 옮기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완강히 저항하였다. 버스는 급선회하는 곳에서 기울었고 갈라진 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에리카는 세티 1세의 유골이 있는 사원을 잠깐동안 바라보았다. 볼 만한 것이 매우 많았다. 사막은 아주 뚜렷한 경계선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부식된 돌과 모래가 한 그루의 식물도 없는 푸릇푸릇한 사탕수수 밭을 대신했다. 길은 산이 있는 곳까지 곧게 뻗어 있었고 갈수록 좁아지는 계곡으로 향하면서 구불구불해졌다. 찜통 같은 더위 때문에 숨이 막혔지만 더위를 식혀줄 만한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돌로 쌓은 조그마한 역을 통과한 후, 버스는 다른 버스와 택시들로 가득찬 거대한 주차장에서 정지하였다. 섭씨 100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날씨인데도 그곳은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왼쪽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매점은 삽시간에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샀던 카키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투탄카멘 무덤의 발견지인 '왕들의 계곡'에 도착했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었다. 그 계곡은 들쑥날쑥한 산들로 둘러 싸여 있었고, 피라미드처럼 뾰족하고 삼각이 진 봉오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이 계곡 안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그것은 주차장에서 사방으로 흩뜨러져 있는 작은 돌들과 연결된 산뜻한 진입로와 만나고 있었다. 절벽과 길이 만나는 곳은 왕들의 무덤으로 가는 험악한 통로였다. 버스 안의 대다수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매점으로 향했지만 에리카는 서둘러서 세티 1세의 무덤 입구로 갔다. 그녀는 그 무덤이 계곡에서 가장 크고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네네프타 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다른 어느 곳보다 먼저 방문하고 싶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과거로 들어가는 문턱에 첫발을 대딛었다. 그녀는 무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으로 그것들을 확인했고, 원시적인 고대의 빛깔에 놀랐다. 장식들은 마치 어제 그린 것처럼 선명했다. 그녀는 벽화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입구의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집트의 신들을 모셔 둔 만신전과 함께 세티의 상들이 있었다. 천장에는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쫙 펼쳐진 날개를 가진 거대한 독수리들이 있었다. '사자의 서'(사후에 영혼이 겪게 되는 일들을 서술한 책)의 상형문자 원판이 상들과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에리카는 깊은 웅덩이 위로 놓여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기 위해 관광객들을 기다려야 했다. 웅덩이의 아찔한 깊이를 보면서, 그것은 도굴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너머에는 네 개의 튼튼한 기둥에 의해 받쳐진 진열실이 있었다. 거기에는 고대에 조심스럽게 감춰지고 봉해진 또 다른 계단이 있었다. 무덤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에리카는 암벽을 손으로 조각한, 즉 엄청난 힘이 요구되는 작업의 결과에 놀랐다. 그녀가 네 번째 계단에 내려왔을 때는 산밑으로 수백 야드를 들어왔을 때였고, 그녀는 공기가 부족해서 숨쉬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고군분투했던 고대 일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했다. 정신이 나간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통풍장치는 하나도 없었고, 에리카는 부족한 산소 때문에 질식감을 느꼈다. 그녀는 폐소공포증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막혀 있는 상태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에리카는 의식적으로 불안을 억눌러야 했다. 매장실에서 에리카는 견디기 힘든 호흡상태를 잊어버리려 애썼고 둥근 천장에 있는 거의 천문학적인 주제들을 감상하려고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녀는 특별한 밀실의 위치를 안다고 확신했던 어떤 사람이 비교적 최근에 팠던 터널 중의 하나를 주시했다.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무덤의 밀실에 계속적인 흥미를 느꼈지만, 암소 모양을 하고 있는 하늘의 여신 넛트의 유명한 조상이 있는 측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입구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러나 방 안쪽이 이미 관광객들로 가득찬 것을 보고 넛트여신을 보는 것을 포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갑자기 몸을 돌렸을 때, 그녀 뒤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와 부딪혔다. "실례합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그 남자는 몸을 돌려 매장실로 다시 들어가면서 잠시동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관광객들의 무리가 들어갔고, 에리카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은 방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그녀를 가로막고 있던 그 남자는 에리카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그녀는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박물관에서 검은 머리, 검은 옷, 기분 나쁜 뚜렷한 앞니를 드러낸 그 남자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똑같은 장소에 자주 오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에리카는 자신이 왜 그남자를 보고 그렇게 놀라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자신이 바보같이 행동하고 있으며 공포는 단지 지난 며칠동안의 사건들과 더위, 숨막힐 듯한 무덤의 대기상태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메고 있던 가방의 끈을 어깨로 바짝 당긴 후 매장실로 향했다.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계단들이 입구로 향하면서 방의 위쪽으로 나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계속해서 달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멈췄다. 아까 그 남자가 그녀 왼편의 사각기둥 중 하나의 뒤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에리카는 이제 그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그저 지나칠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가 그녀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그녀는 남아 있던 계단을 올라가서 기둥 뒤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그 방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었고, 각 면은 실물크기로 채색된 세티 1세의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앞에는 이집트의 신들이 하나씩 있었다. 에리카는 기다렸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고, 지난 며칠동안 그녀의 주위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애써 억눌렀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감할 수 없었다. 잠시후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그녀 앞의 기둥 주위를 걸으면서 거대한 벽화를 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조금밖에 벌려 있지 않았지만, 에리카는 그의 앞니가 뾰족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그녀는 발을 옮기자 마자, 처음에는 걷고 그 다음은 뛰어서 복도를 되돌아갔고 계단을 뛰어올라가 마침내 밝은 햇살이 비치는 곳에 이르렀다. 밖으로 나오자 그녀의 공포는 사라졌고, 그녀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의 나쁜 의도에 대한 그녀의 추측은 순전히 과대망상증처럼 보였다. 그녀는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세티의 무덤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네네프타라는 이름은 다음 날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정오가 지나 있었고, 매점과 휴게소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결과적으로 투탄카멘의 왜소한 무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좀더 빨리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리카는 사람들 틈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입구로 가는 유명한 열여섯 개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세티의 무덤 쪽을 되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통로로 내려 가면서 신왕조의 대다수 하찮은 무덤 중에 파라오의 가장 작은 무덤이 원래 모습대로 발견된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꼈다. 투탄카멘의 무덤조차도 오랜 옛날에 두 번씩이나 파헤쳐졌다. 그녀는 대기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로질러 가면서 무덤이 열리던 1922년 11월의 경이로운 그날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워드 카터와 그 일행들이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눈부신 고고학적 보물들을 찾았을 때 얼마나 흥분했겠는가? 에리카는 발견품들을 알고 있었기에 감각적으로 무덤에서 발견된 대다수의 문걸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녀는 투탄카멘의 실물크기의 상들이 매장실 입구의 양쪽에 서 있다는 것과 세 개의 장례용 침대가 벽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카터가 무덤에서 처음 보았던 '난잡한 모습'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설명된 적이 없는 미스테리였다. 그 혼돈은 도굴꾼이 만든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지만, 왜 장례용품들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있지 않았을까? 입구로 들어가는 프랑스관광객들의 행렬에서 벗어난 후 에리카는 매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그녀가 거기에 서 있는 동안 세티의 무덤에서 그녀를 놀라게 했던 그 남자가 펼친 여행안내서를 들고 들어왔다. 무의식적으로 에리카는 뻣뻣해졌다. 그러나 에리카는 단지 자신이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라고 확신하면서 성공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해 냈다. 게다가 그는 지나칠 때 그녀를 주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육식조를 연상시키는 그의 구부러진 코를 자세히 보았다. 용기를 내서 그녀는 사람들로 꽉찬 매장실로 향했다. 그 방은 난간을 기준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고, 난간에서 유일하게 그 방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곳 옆에 검은 옷을 입은 그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잠시동안 주저했지만 난간으로 다가가서 투탄카멘의 훌륭한 연분홍색 석관을 훑어보았다. 그 방에 있는 벽화는 세티의 무덤에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완성도에 있어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방의 여기저기를 보고 있을 때 에리카는 우연히 그 남자가 펼친 여행안내서의 페이지를 보았다. 그것은 카르나크사원의 평면도였다. 그것은 왕들의 계곡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갑자기 에리카의 모든 공포가 되살아났다. 난간에서 재빨리 물러난 다음 에리카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다시 햇빛과 신선한 공기의 편안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투탄카멘의 무덤까지 겨우 삼십 피트 정도 늘어선 매점은 앉을 만한 테이블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그녀를 안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기에 에리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차가운 캔 주스와 호텔에서 주문한 도시락 상자를 가지고 석축에 앉았다. 그녀는 투탄카멘의 무덤입구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금 그가 나타나서 주차지역을 지나 검은 차가 있는 곳으로 걸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을 조금 열어놓고 발을 땅에 댄 채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의 출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의 목표가 그녀를 해치는 것이었다면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에리카는 숨을 깊게 내쉬고 그를 잊어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좀더 사람들 속에 있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점심은 몇 개의 얇게 썬 양고기샌드위치였다. 그녀는 투탄카멘 무덤입구로 가는 길을 둘러보는 동안 생각을 하면서 샌드위치를 씹었다. 그것은 왕들의 계곡으로 가는 수천명의 귀족적인 관광객들 중에서 '세계의 가장 뛰어난 보물'이 매장된 곳으로 가는 숨겨진 입구로부터 1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레모네이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주었다. 두 번째 샌드위치를 씹으면서 그녀는 투탄카멘의 무덤으로 향하는 동안 람세스 6세의 무덤 근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로 위의 약간 왼쪽으로 허름한 건축물이 있었다. 에리카는 그것이 투탄카멘 무덤 입구를 지나 람세스 6세의 무덤을 건축하는 동안 만들어진 일꾼들의 막사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카터가 이 사실을 발견해 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가 열여섯 개의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에리카는 먹던 것을 멈추고 생각들을 모아보았다. 그녀는 카터가 문 안쪽으로 나 있는 갈라진 틈을 책에 기술했기 때문에 옛날의 도굴꾼들이 원래의 입구를 통하여 투탄카멘의 무덤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사의 위치 때문에 투탄카멘의 무덤입구는 봉해졌고 람즈 5세의 무덤을 건축하기 시작할 때까지는 잊혀져야만 했다. 이것은 투탄카멘의 무덤이 20세기 초나 아마도 19세기 왕조 시기에 도굴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투탄카멘의 무덤이 세티 1세의 통치기간 중에 도굴되었을지도......? 투탄카멘 무덤의 오욕과 투탄카멘의 이름이 세티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일까? 머리속이 온통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에리카는 한 마리의 매가 날개를 정지하고 나선형을 그리며 날고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샌드위치를 종이로 싸서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차 안의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블 부근을 치우고 에리카는 그녀의 소지품들을 땅바닥에 놓인 손가방 안으로 집어 넣었다. 두꺼운 담요처럼 계곡을 내리쬐는 무더운 더위에도 불구하고 에리카의 마음은 질주하고 있었다. 세티상이 도굴꾼들이 체포된 후에도 투탄카멘의 무덤 안에 놓여져 있었다면? 그녀는 즉시 앞뒤가 맞지 않는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게다가 상이 무덤 안에 있었다면 매우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카터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아니다, 에리카는 자신이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투탄카멘 무덤의 도둑들에 관한 모든 문제들이 카터의 발견 때문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왕의 무덤이 모욕당했다는 사실은 중요성을 지닐 수도 있고 그 무덤이 세티 1세 시기에 도굴되었다는 생각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갑자기 에리카는 이집트박물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닥터 파크리가 기록보관소의 마이크로필름에 있다고 했던 카터의 기록들을 자세히 훑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깜짝 놀랄만한 어떤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잡지의 좋은 기사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무덤이 최초로 열릴 때 참석했던 사람들 중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녀는 카터와 카나본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카나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그녀는 '파라오의 일대기'를 기억했고, 국민들의 무지와 그 책의 잔꾀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에리카는 다음 방문하고 싶던 많은 무덤들 중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베데커를 펼쳤다. 독일인 관광객들이 지나갔고 재빨리 그녀도 합류했다. 그녀 위에서 나선형을 그리고 있던 새매가 눈치채지 못한 먹이를 향해 덮쳐들었다. 칼리파는 에리카가 작열하는 계곡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서 빌린 차의 라디오를 껐다. 자동차의 그늘에서 몸을 빼내면서 그는 욕을 하였다. 그는 그녀가 왜 자발적으로 무자비한 더위속으로 들어가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기랄!" 룩소르, 저녁 8시 에리카는 윈터펠리스호텔과 새 호텔 사이를 가르고 있는 넓은 정원을 지나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부이집트에서 윈터를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무더운 날씨였지만 해가 지면서 시원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수영장을 지나며 소년들이 아직도 수영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굉장한 날이었다. 그녀가 무덤에서 보았던 고대벽화는 뛰어난 것이었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 에리카는 이본과 아흐메드에게서 온 두 개의 메모를 발견했다. 둘다 초대의 내용이었다. 결정 내리기가 어려웠지만 이본을 만나기로 했다. 그가 세티 상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기를 기대하면서 그에게 전화를 하자 그는 윈터펠리스호텔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8시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이본은 어두운 청색 더블 블레이저(화려한 스포츠용 상의)와 헐거운 하얀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의 아름다운 갈색 머리는 세심하게 빗질되어 있었다. 그들이 식당에 들어설 때, 그는 에리카의 팔짱을 끼었다. 식당은 지은 지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도 낡은 것같이 보였고 우아한 콘티넨탈 식당을 모방하다가 실패한 작품임을 암시하는 어울리지 않는 실내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에리카는 이본이 그의 유럽에서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며 그녀를 즐겁게 하자 주변의 환경을 곧 잊어버렸다. 그가 이야기했던 부모와의 차갑고 딱딱한 관계는 애처럽기보다는 아주 재미있게 들렸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소." 이본이 윗옷에서 담배를 찾으면서 물었다.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왔어요." 에리카는 내려다보며 그녀의 와인을 흔들었다. "나는 미국 중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의 어느 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우리 가족을 몇 안 되었지만 서로 친했어요." 에리카는 입술을 깨물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 저보다 훨씬 낫군요." 이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를 비참하게 하지는 말아요. 그리고 나한테 말해야 할 의무감을 갖지는 말아요." 그녀는 지금 이본이 오하이오 토레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행기 충돌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과 그녀가 어머니와 너무나 똑같기 때문에 함께 사는 데 조금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관해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본이 말하는 것을 더 듣고 싶었다. "결혼한 적 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이본은 웃은 다음 에리카를 쳐다보았다. "나는 기혼이오." 그가 별 생각없이 말했다. 이본은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실망의 빛이 비치는 것을 놓치지 않으며 눈을 돌렸다. 그녀는 일찍이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두 명의 귀여운 아이들이 있소." 이본이 말을 계속 이었다. "진 클라우드와 미첼. 나는 단지 그들을 만나지 못할 뿐이오." "전혀?"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리카는 눈을 치켜세웠다. 그녀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거의 방문하지 않소. 나의 아내가 세인트 트로페쯔에 사는 것을 택했소. 그녀는 내가 하지 말라는 쇼핑과 일광욕을 좋아해요. 아이들은 기숙사에 있고, 여름에 세인트 트로페쯔에서 지내는 것을 상당히 즐기고 있소." "그러면 당신은 별장에서 혼자 살고 있나요?" 마음이 밝아진 에리카가 물었다. "아니오. 그곳은 두려운 곳이오. 파리의 루 베르네일에 괜찮은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소." 이본이 세티 1세의 상과 압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을 때는 그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나는 당신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려고 가져왔소." 다섯 장의 사진을 주머니에서 꺼내 에리카 앞에 내놓으면서 그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압둘 함디를 살해한 사람들을 잠깐동안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혹시 이 사진들 중에서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소?" 에리카는 사진을 차례로 돌려가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니오." 마침내 에리카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범들이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이해하오." 사진을 집으면서 이본이 말했다. "사진은 단지 가능성을 뜻할 뿐이오. 북부이집트에 온 이후로 당신이 겪은 문제가 있다면 말해봐요." "확실히 내가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빼놓고는 없어요." "추적당한다구요?" 이본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에요. 오늘 나는 왕들의 계곡에서 이집트박물관에서 한번 본 듯한 남자를 봤어요. 그는 끝이 뾰족한 앞니와 경멸하는 듯한 웃음, 크게 구부러진 코를 가지고 있는 아랍인이었어요." 에리카는 입술을 드러내고 그녀의 오른쪽 앞니를 가리켰다. 이본은 그녀가 칼리파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것은 재미있는 게 아니라구요. 그는 오늘 나를 놀라게 했어요. 관광객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그는 여행안내서의 틀린 페이지를 읽고 있었어요. 이본." 에리카는 주제를 바꾸면서 말했다. "당신의 비행기는 어떻게 되었어요? 룩소르에 있어요?" 이본은 당황해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 있죠. 비행기는 룩소르에 있어요. 그런데 왜 그것을 물어보죠?" "나는 다시 카이로에 가고 싶거든요. 반나절 정도 걸리는 일을 몇가지 해야 되거든요." "언제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오늘 저녁은 어때요?" 그는 에리카가 카이로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다. 에리카는 그 제안에 놀랐지만, 그녀는 특히 이본이 기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믿었다. "왜 안 되겠어요?" 그녀는 소형 제트기를 타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은 다른 비행기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상상했다. 그녀는 기다란 가죽의자 중 하나를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에리카의 옆자리에서 라울이 대화를 걸려고 했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륙할 것인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비행역학의 원리를 믿지 않았다. 큰 비행기는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거대한 물건의 비행개념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그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단념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달갑지 않게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 이본은 비행사를 고용했지만 비행훈련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평소 자신이 직접 조종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행 교통신호는 없었고 그들은 즉시 떠날 수 있었다. 칼같이 생긴 작은 제트기는 천둥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벗어나 공중 속으로 뛰어 올랐다. 그들이 비행중일 때 이본은 비행기조종을 그만두고 에리카와 이야기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마음을 안정시킨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잉글랜드 태생이라고 말했었죠? 그녀가 '카나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요. 나는 지금의 백작을 만났거든요." 이본이 말했다. "그런데 그것을 왜 묻소?" "사실 나는 카나본 경의 딸이 살아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요. 그녀의 이름은 내가 알기로는 '에블린'이에요." "나도 확신하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소. 당신이 그것을 왜 묻는지. 당신은 '파라오의 저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소?" 그는 어슴프레한 실내의 불빛 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에리카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투탄카멘의 무덤에 대해 한가지 조사해 보고 싶은 이론이 있어요. 내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당신에게 그것을 말해 주겠어요. 당신이 나를 위하여 카나본의 딸을 찾아 준다면 정말로 고맙게 여길 거예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 혹시 네네프타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어디에서 나온 말이오?" "세티 1세와 관련된 거예요." 이본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머리를 흔들었다.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들은 착륙허가를 받기 전에 카이로의 복잡한 진입로를 비행해야 했다. 그러나 정식절차는 간단했다. 그 비행기는 출발하는 비행기가 아니라 도착하는 비행기였으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메리디언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막 넘었을 때였다. 관리인들은 이본에게 매우 친절하였고 호텔이 이미 꽉찼는데도, 그들은 이본의 옥상주택 옆에 방을 마련해주었다. 이본은 그녀가 자리를 정리한 후, 술한잔을 같이 하자고 그녀를 초대했다. 에리카는 화장품, 읽을 것들을 꾸린 손가방만을 가지고 왔다. 여행안내서와 플래시는 룩소르에 있는 그녀의 방에 두고 왔다. 마침 마음을 안정시킬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본의 방 거실로 연결되어 있는 문을 걸어들어갔다. 그는 에리카가 들어올 때, 재킷을 벗고 소매를 걷어부친 채 '돔페리 넌' 한 병을 따고 있었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었고, 잠시 그들의 손이 부딪쳤다. 에리카는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잘생긴 그의 얼굴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처음 만난 이후로 마치 이 밤을 향하여 달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기혼자였고 명백히 진지한 분위기도 아니었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결심했으나 밤은 깊어만 갔다. 그녀의 넓적다리 사이로 흥분의 맥박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마음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하여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그것은 내가 파리에서 아직 학생일 때부터 시작되었소. 내 친구 중 몇명이 에꼴 드랑제 오리엔탈에 가자고 말했는데, 그 후 나는 푹 빠지게 되었고 최초로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소. 나는 결코 대단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이집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아랍어와 콥트어(고대 이집트 어)를 공부한 거요. 나를 흥분시킨 건 바로 이집트였어요. 오! 이거 이유를 말하기보다는 설명이 길어진 것 같군요. 베란다에 나가서 밤 경치를 구경하지 않겠소?"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맥박이 빨라지면서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이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본이 자신을 이용하든지 그가 만났던 매혹적인 여자와 단순히 잠자리를 하든지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욕망에 흠뼉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본은 슬그머니 문을 열었고 에리카는 격자울타리 밑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하늘의 별들을 배경으로 널리 펼쳐진 카이로의 전경을 내려다 보았을 때, 장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뚝솟은 첨탑들이 있는 성채에는 아직도 불빛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들 바로 앞에는 나일강으로 둘러싸인 '게지라 섬'이 있었다. 에리카는 이본이 그녀 뒤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각이 진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다가서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진 다음 머리 뒷부분을 감싼 채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는 잠시동안 그녀에게 키스를 했고, 그녀가 흥분에 떨자 좀더 완전하게 그리고 진정한 감정을 가지고 키스했다. 에리카는 자신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본은 그녀가 리처드를 안 이후로 처음 안 남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반응을 나타내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와 함께 흥분을 느끼기 위해 이본에게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육체가 동양산 카페트에 쓰러지려고 할 때, 그들의 옷이 먼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이집트의 밤 속에서 고요한 불빛과 더불어 그들은 격렬한 흥분을 느끼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들의 열정에 대한 무언의 목격자인 도시도 흥분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제 6 일 카이로, 오전 8시 35분 에리카는 그녀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녀는 이본이 자신은 혼자 자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희미하게 기억했다. 밤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서 그녀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녀가 방에서 나왔을 때는 약 9시 경이었다. 이본은 푸른색과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로우브(깊고 품이 큰 겉옷) 차림으로 아랍신문인 <엘 아람>지를 읽으면서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아침 햇빛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약간의 밝은 색깔을 그곳에 흩뿌리면서 격자울타리에 의해 몇 갈래로 갈라졌다. 그는 그녀를 보자 일어서서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우리가 카이로에 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지 않소?" 의자를 그녀에게 내밀며 그가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즐거운 아침식사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유머는 에리카를 충분히 즐겁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먹고 난 후, 자신이 의도했던 조사를 계속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저는 박물관에 갈 거예요." 그녀가 냅킨을 접으면서 말했다. "나와 같이 가는 게 어떻겠소?" 이본이 물었다. 그녀는 이본의 참을성없는 성미를 기억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재촉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싫었다. 혼자 가는 게 더 좋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성격은 약간 지루한 거예요. 당신이 기록보관소에서 아침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면 저 혼자 가는 게 좋겠어요." 에리카는 테이블을 돌아가서 이본의 팔을 잡았다. "좋아요." 이본이 말했다. "하지만 라울을 시켜서 태워다 주겠소."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거부했다. 파크리 박사는 도서관의 본실 아래에 있는 작고 숨이 막힐 듯한 특별열람실로 에리카를 데리고 갔다. 벽 반대편의 싱글테이블에는 마이크로필름 영사기가 있었다. "당신이 원하시면 탈랏이 필름을 가져다 드릴 거예요." 파크리 박사가 말했다. "박사님의 도움에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파크리 박사가 질문했다. 갑자기 그의 오른쪽 손이 떨리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저는 옛날에 투탄카멘의 무덤에 들어갔던 도굴꾼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저는 발견의 단계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굴꾼 말이오?" 그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발을 질질 끌면서 나갔다. 그녀는 마이크로필름 영사기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통통 두드렸다. 그녀는 가능하면 이집트박물관이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기를 바랐다. 탈랏이 나타나서 필름으로 가득 찬 구두상자를 에리카에게 주었다. "갑충석 사시겠어요, 아가씨?" 그는 속삭였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에리카는 원형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아쉬몰린 박물관으로부터 온 카드가 들어있고 편리하게 영어로 표시가 된 마이크로 필름통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풍부한 자료에 정말 놀랐으며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것들을 살펴볼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영사기를 손으로 돌리면서 에리카는 첫번째 필름을 집어넣었다. 운 좋게도 카터가 산뜻한 필기체로 일지를 써놓았다. 에리카는 일꾼들의 막사를 설명하는 부분까지 대충 훑어내려갔다. 막사들이 투탄카멘 무덤입구 바로 위에 지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에리카는 도굴꾼들이 람세스 6세의 통치시대 이전에 투탄카멘 무덤을 약탈했었으리라 단정했다. 그녀는 카터가 투탄카멘의 무덤입구를 발견하기 전에 자신이 확신했던 근거들을 기재했던 부분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대강 훑어내려갔다. 그 중에서 에리카를 가장 매혹시켰던 물건은 투탄카멘의 이름을 둘러싼 타원형 윤곽이 있는 파란 파양스(광택이 나는 고급 색채의)컵이었다. 왜 그 작은 컵이 언덕가의 바위 밑에서 숨겨진 채로 발견되었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첫번째 필름이 다 돌아갔을 때 에리카는 다음 것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 그 자체에 관해서 읽을 수 있었다. 카터는 무덤의 내부와 바같쪽 문이 묘지와 더불어 옛날에 다시 봉해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장황하게 기술했다. 투탄카멘의 진짜 봉인은 각 문의 밑부분에서만 발견되고 있었다. 카터는 그 문이 두 번씩이나 부서지고 다시 봉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이 왜 확신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에리카는 잠시 쉬었다. 그녀의 상상력은 어린 파라오가 매장되었던 장엄한 장례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법으로 도굴꾼들을 불러내려고 하였다. 그들은 도굴을 하는 동안 자신이 있었을까? 아니면 저승사자들을 노하게 할까봐 두려워했을까? 그녀는 또한 카터에 대해서 생각했다. 카터가 무덤에 들어갔을 때에도 상황은 똑같았을까? 기록으로부터 에리카는 그가 그의 조수 칼렌더, 카나본 경, 카나본의 딸, 감독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사와트 라만이 발굴에 동행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몇시간 동안 에리카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카터의 경외감과 신비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상당히 노력을 기울여서 두 가지 물건의 위치를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로티모양의 석고잔과 기름램프에 대해 몇 페이지에 걸쳐 썼다. 그녀는 잔과 램프에 관한 자료를 자세히 읽다가 어디선가 그것들을 읽었던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발견 후의 순회강연에서 카터는 이 진귀한 두 물건이 그가 희망했던 더욱 위대한 신비가 무덤의 완전한 조사를 통하여 밝혀질 수 있게 하는 단서들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대범하게 버려진 채로 발견된 황금반지들은 도굴꾼들이 약탈행위 도중에 놀랐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기계를 통해 살펴보면서 에리카는 카터가 그 무덤이 두 번 열렸기 때문에 두 번 약탈되었다고 가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에 불과했고 좀 더 근거 있는 설명이 있어야 했다. 카터의 현장기록을 다시 한 번 본 후에 에리카는 '카나본경 : 문서와 편지'라고 표시된 필름을 영사기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대부분 고고학적 노력을 지원하는 사업과 관련된 편지들이었다. 그녀는 날짜가 무덤이 발견된 날과 일치하도록 필름을 빨리 돌렸다. 그녀가 기대했던 것처럼 카나본의 편지의 양은 카터가 계단입구의 발견을 보고 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증가했다. 에리카는 카나본이 1922년 12월 1일 영국 박물관의 월리스 벗지 씨에게 쓴 장문의 편지에서 멈췄다. 하나의 틀이 있는 완전한 편지를 갖추기 위해 크기면에서 그것은 신중하게 축소되어 있었다. 에리카는 편지를 읽으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편지는 카터의 편지만큼 산뜻하지는 못했다. 그 편지에서 카나본은 발견에 대해서 흥분감 있게 기술하였고 에리카가 투탄카멘 진열실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유명한 물건들에 대해서 기재하였다. 그녀는 편지를 빨리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한 문장에서 재빠르게 멈췄다. "나는 그 상자들을 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도 못하구요. 그러나 안에는 몇 통의 파피루스 편지들, 파양스 도자기, 보석, 화환, 앙크(이집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T자형 십자)형 촛대 위의 양초가 있었어요." 에리카는 '파피루스'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투탄카멘 무덤에서 파피루스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사실 그것은 실망 중의 하나였다. 투탄카멘의 무덤은 그가 살았던 핍박기를 통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 희망은 깨져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카나본은 월리스 벗쥐 씨가 파피루스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에리카는 다시 카터의 기록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무덤이 열린 날과 그 이후 이틀 동안으로 구성된 기록을 다시 보았다. 카터는 파피루스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실망스럽게도 어떠한 문서도 없었다고 언급했다. 이항하다. 벗쥐에게 보내는 카나본의 편지를 다시보면서 에리카는 카나본이 언급했던 다른 물건들에 관해 카터의 기록을 앞뒤고 참조해 보았다. 유일한 모순은 파피루스 뿐이었다. 에리카가 결국 황량한 박물관에서 나왔을 때는 이른 오후였다. 그녀는 북적북적한 타흐러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의 위장은 텅텅 비어 있었지만, 메리디언호텔에 돌아가기 전에 또 하나의 볼 일을 마치고 싶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베데커의 겉 표지를 꺼내서 이름과 주소를 읽었다. "샤리 엘 타흐러 180, 나세프 말무드" 넓은 광장을 통과하는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광장은 먼지투성이의 버스들과 사람들의 무리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세프 말무드." 그녀는 혼자 말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샤리 엘 타흐러는 맵시 있는 유럽식 가게와 사무실 건물들이 들어 있는 유행의 거리 중 하나였다. 180 번지는 대리석과 유리로 된 현대식 고층건물이었다. 나세프 말무드의 사무실은 8층에 있었다. 텅 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에리카는 한낮의 긴 휴식을 생각하고 혹시 나세프 말무드를 저녁 늦게까지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사무실의 문은 조금 열려 있었고 '나세프 말무드, 국제 법률 사무소 : 수입 수출 부문'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바라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접수처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호가니 나무책상 위의 올리벳트(모조진주) 타자기는 번창하는 사업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보세요?" 에리카가 외쳤다. 솜씨좋게 재단된 스리피스를 입고 체격이 단단해 보이는 남자가 입구에 나타났다. 그는 약 50살 쯤 되어보였고 보스턴의 증권가에서 할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는 사업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세프 말무드를 찾고 있습니다." 에리카는 대답했다. "제가 나세프 말무드입니다." "저와 잠시동안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에리카가 물었다. 나세프는 입술을 오므리고 사무실 안을 돌아보았다. 그의 오른쪽 손에는 펜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에리카에게 몸을 돌리면서 그는 그리 크게 결심하지는 않은 듯이 말했다. "저, 잠시 동안만." 에리카는 샤리 엘 타흐러에서 광장까지 그리고 나일강 너머까지 볼 수 있는 넓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세프는 등받이가 높은 사무용의자에 편히 앉아서 에리카에게 근처의 자리를 권하였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아가씨?" 그는 손가락의 끝을 모으면서 물었다. "압둘 함디라는 사람에 관해서 묻고 싶어요." 에리카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보려고 잠시 멈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무드는 생각을 더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에리카가 말을 멈추자 그는 말했다. "이름이 익숙하지가 않군요. 어떤 경위로 제가 이 사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혹시, 압둘 함디가 당신의 고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말무드는 그의 독서용 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저의 고객이라면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그는 악의없이 말했다. 그는 변호사였고 정보를 주기보다는 받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같았다. "그가 만약 고객이라면 당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어요." 그녀는 똑같이 둘러대려고 하였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아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압둘 함디에게 들었어요." 에리카는 일단 사실을 감추고 꾸며서 대답했다. 말무드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바깥 사무실로 나가 마닐라산 화일을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거기에는 대략적으로 훑어볼 수 있게 기록해 둔 한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그래요. 제가 압둘 함디를 고객으로 모시고 있었던 것 같네요." "압둘 함디는 죽었어요." 에리카는 '살해되었다'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말무드는 생각에 잠긴 듯 에리카를 쳐다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다시 읽었다. "그 소식을 가르쳐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의 부동산에 대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봐야겠군요." 그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문으로 걸어가면서 에리카가 말했다. "베데커가 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그녀를 사무실 밖으로 배웅하면서 그가 말했다.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가져보신 적이 있으세요?" 입구에서 멈춰 선 에리카가 물었다. "전혀 없어요." 에리카가 호텔로 돌아오자 이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에리카가 조사해야 할 또 다른 사진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렴풋이 한 남자가 기억났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매우 호리호리한 살인범들을 분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을 이본에게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그는 자기주장만 앞세웠다. "나는 당신의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게 협력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소." 아름다운 발코니 위로 올라가서 에리카는 어젯밤 일을 생각했다. 지금 이본의 관심은 순전히 사업에만 있는 것 같았고, 그녀는 적어도 훤히 알고 있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 기뻤다. 그의 욕망은 순간적으로 충족되었고 관심은 세티 상에게로 돌아갔다. 에리카는 침착하게 진실을 받아들였지만, 결론은 카이로를 떠나서 룩소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옷을 차려입고 이본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계획을 알렸다. 처음으로 그는 불평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를 부정하면서 어떤 즐거움을 얻었다. 그는 분명히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에리카에게 자신의 비행기를 이용하도록 허락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녀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룩소르로 돌아가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던 남자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에리카는 카이로의 음란한 야만적 행위에서 느꼈던 것보다 북부 이집트에서 더 큰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아흐메드로부터 온 많은 메모가 있었는데 대개가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그대로 전화기 옆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발코니로 통하는 프랑스식 문으로 가서 그것들을 활짝 열어 젖혔다. 다섯 시가 막 넘었을 무렵이었고 오후의 햇빛은 이미 그 열이 수그러든 후였다. 에리카는 비행기여행이 편안할 정도로 짧았지만 먼지와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목욕을 했다. 그녀는 목욕탕에서 나와서 아흐메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흐메드는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안심이 되고 행복한 것 같았다. "걱정했소." 아흐메드가 말했다. "특히 호텔측에서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하룻밤 동안 카이로에 갔었어요. 이본이 비행기로 데리고 갔어요." "알았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에리카는 그와의 첫번째 대화 이후부터 그가 이본에 대해서 이상하게 행동해 왔다는 것을 기억했다. 마침내 아흐메드가 말했다. "오늘 밤 카르나크사원에 가고 싶지 않은지 알아보려고 전화했소. 보름달이 뜰 거고 사원은 자정까지 열려 있을 거예요. 볼 만할 거요." "좋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아흐메드는 아홉 시에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카르나크사원을 방문한 다음 식사를 할 것이다. 아흐데드는 나일강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하는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꼼짝도 못할 정도일 거라고 장담했다. 에리카는 목이 파인 갈색 털로 짠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의 짙은 황갈색 피부와 머리 모양이 어울려 그녀를 매우 여성스럽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룸서비스를 통해 와인 한 잔을 주문했고 겉표지가 낡은 베데커의 여행안내서를 가지고 발코니에 앉았다. 압둘 함디가 준 여행안내서의 떨어진 겉표지 안에 주의깊게 쓰여진 이름은 나세프 말무드였다. 실수는 하나도 없었다. 왜 말무드가 거짓말을 했을까? 그녀는 그 책을 집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잘 만들어진 책이었고 아교로 붙인게 아니라 실로 꿰맨 것이었다. 그것에는 많은 그림과 다양한 유적들의 선화가 있었다. 에리카는 설명이나 간단한 도면을 읽기 위해 자주 멈추면서 각 페이지를 대충 훑어보았다. 몇개의 접었다 펼 수 있는 지도가 있었다. 이집트 지도, 사카라 지도, 룩소르의 네크로폴리스 지도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녀가 지도를 다시 접으려고 할 때 원래 모양으로 다시 접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그 종이가 다른 종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그것이 복사된 것이 아니라 얇은 조각으로 된 두 개의 종이가 합쳐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에리카는 그 책을 들어올려서 햇빛에 비쳐보았다. 어떤 문서의 일부가 룩소르의 네크로폴리스지도의 뒷쪽으로 비쳐졌다. 에리카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서 발코니 쪽의 문 중에 하나를 닫고 태양이 지도 뒤에서 비쳐지게 했다. 그녀는 편지가 안에 봉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세프 말무드 앞으로 씌어진 것이었다. 친애하는 말무드 씨, 이 편지는 내 말을 받아서 아들이 쓴 것입니다. 나는 글을 못 씁니다. 나는 살만큼 산 노인입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었다고 해서 나의 운명에 대해 슬퍼하진 마십시오. 보상을 하는 것보다 대신 나를 죽일 결심을 한 사람들에 저항해서 동봉한 정보를 사용하십시오. 다음 경로는 최근 몇년 사이에 가장 가치 있는 우리나라의 보물들이 사라지게 된 루트입니다. 나는 자신을 위해 보물들을 손에 넣으려고 나를 루트에 침투시켰던 한 외국관리(그의 이름을 쓰지는 않겠습니다)에게 고용되었습니다. 보물이 발견되면 큐리오 골동품 가게의 라히브 자이드와 그의 아들 파씨가 유력한 구매자들에게 사진을 보냅니다.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룩소르에 와서 물건들을 봅니다. 일단 거래가 이루어지면 구매인은 돈을 취리히 신용은행 구좌에 넣어야 합니다. 물건은 작은 보트에 실려 북부로 운반되어 카이로에 있는 할러데이즈 회사의 사무실로 옮겨지는데, 사장은 스테파노스 마큘리스입니다. 골동품들은 의심받지 않는 단체여행객들의 가방 속에 여러조각으로 분해되어 들어가고 유고슬벤스키 비행기로 아테네까지 흘러갑니다. 계속해서 벨그라데와 류블랴나까지 가는 비행기에 특별한 가방을 놓아두기 위해 비행기회사 직원들에게 돈을 줍니다. 보물들은 육로로 이송되기 위해 스위스로 보내집니다. 좀더 새로운 경로가 최근에 알렉산드리아를 경유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자이드 나큅이 경영하는 면화 수출회사인 퓨쳐스가 골동품을 짐짝으로 꾸려서 마르세이유의 피어스 파우베 겔러리로 그것들을 보냅니다. 이 경로는 편지를 쓰고 있는 현재 확인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충실한 압둘 함디로부터 에리카는 지도를 여행안내서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그녀는 매우 놀랐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제프리 라이스가 샀던 세티상은 그녀가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를 만났을 때 추측했던 것처럼 아테네를 경유했다. 보통 개인여행객들의 짐과는 달리 단체여행객들의 짐은 조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었다. 누가 욜리엣으로부터 온 63세의 노파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집트 골동품을 그녀의 핑크색 가방에 넣어 나르고 있는 중이라고 추측하겠는가? 발코니로 다가가서 에리카는 난간에 기댔다. 해는 먼 산 뒤로 넘어가버렸다. 서부제방의 개간지 한가운데에 자주빛 그림자로 가려진 멤논의 콜로시(Rhodes섬에 있었다는 청동의 거대한 Apollo상)가 서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흐메드나 이본에게 -아마도 아흐메드에게- 그 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집트를 떠날 준비가 끝날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이다. 암시장 통로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에리카는 세티 1세 상 자체와 그것이 도굴된 위치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이 있었다. 흥분 때문에 에리카는 똑같은 장소에서 다른 것들도 발견될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조사가 경찰에 의해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에리카는 그 책을 보관할 때의 위험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노인은 약탈자였고 무슨 일인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 명백하다. 에리카는 그의 계획이 최후 순간에 추가되었다는 것 또한 확신했다. 아무도 그녀가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불과 몇 분 전에는 그녀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날 때까지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밤이 나일강 계곡을 넘어 서서히 몰려드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박물관구매인으로 행동할 것이고, 골동품 명을 다양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미 보았던 것과 알았던 것을 위해 큐리오 골동품점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카터의 감독이었던 사와트 라만이 살아 있다면 그를 찾을 것이다. 그는 적어도 70대 후반쯤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첫날 투탄카멘의 무덤에 들어갔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고, 카나본이 월리스 벗지 씨에게 쓴 편지에서 보았던 파피루스에 관해 묻고 싶었다. 그동안 그녀는 이본이 카나본경의 딸에 대해 약속한 부탁들을 들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저게 시카고 하우스입니다." 아흐메드가 오른쪽의 인상적인 한 건축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의 마차는 나일강의 나무울타리가 쳐진 가장자리를 따라 편안히 샤리 엘 타흐러로 그들을 데려가고 있었다. 말발굽의 리듬감 있는 소리는 암석해변에서의 파도의 부딪힘처럼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보름달이 아직 야자나무와 사막의 능선에서 절정에 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어두웠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약했기 때문에 나일강의 거울같은 해면은 잔잔했다. 아흐메드는 오늘도 결코 나무랄 데 없는 하얀 면화옷을 입고 있었다. 에리카가 그의 진한 황갈색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의 빛나는 눈과 흰 이빨만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흐메드와의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는 동안, 그가 그녀를 보자고 한 이유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궁금했다. 그는 다정하고 따뜻했지만 아직 뚜렷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만졌던 것은 손을 잡고 등의 일부분을 약간 밀어주면서 그녀가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줄 때 뿐이었다. "결혼한 적 있나요?" 에리카는 그 남자에 관해 무언가를 알게 되길 기대하며 물었다. "아니오. 단 한번도." 아흐메드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 에리카가 말했다. 아흐메드는 팔을 들어 좌석의 위쪽에 앉았던 에리카의 등뒤로 얹었다. "괜찮소. 비밀은 아니니까." 그의 목소리는 다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로맨스를 느낄만한 시간이 없었소. 아마도 미국에 있을 때 망가진 것 같소. 물론 그 사실이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소리는 아니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변명일 거요." 그들은 하얀 도료로 칠한 높은 벽으로 둘러 싸여 나일 제방에 지어진 환상적인 서부주택을 지나갔다. 각 집의 문에는 군복을 입고 소형 경기관총을 휴대한 군인이 있었다. 그너나 군인들은 경각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심지어 어떤 한 군인은 보행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그의 총을 벽위에다 올려 놓고 있을 정도였다. "이 건물들은 다 뭐죠?" 에리카가 물었다. "몇몇 장관들의 집이오." 아흐메드가 말했다. "왜 군인들이 서 있죠?" "이 나라에서 장관이 된다는 것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당신은 만인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거기에서 당신이란 장관을 말하는 건가요?" 에리카가 염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문화재관리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달빛의 첫번째 빛줄기가 바스락거리는 야자나무 위로 떨어지고 있을 때 그들은 아무 말없이 말을 타고 있었다. "저게 카르나크 문화재관리국이에요." 아흐메드가 강가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으로 곧장가면서 에리카는 떠오르는 달에 비춰진 아몬 대사원의 첫번째 탑문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입구까지는 말을 타고 가서 그후부터는 마차를 타고 올라갔다.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들로 이어진 짧은 행길을 걸어가면서 에리카는 넋이 나간 듯했다. 달이 만든 어스름은 사원의 폐허가 된 부분을 아직도 그것이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뜰로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의 진한 자주빛 그림자를 통과하여 조심히 걸어야 했다. 그들이 넓은 안뜰을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아흐메드가 에리카의 손을 잡고 기둥이 많은 건물의 홀로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과거로 이동되고 있는 것과 같았다. 홀은 밤하늘로 솟아오른 거대한 돌기둥의 숲이었다. 대부분의 천장은 낡았고 기둥들과 그들의 상형원판, 뚜렷한 양각을 은빛으로 씻겨주면서 달빛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을 잡고 걷기만 했다. 약 30분 후에 아흐메드는 에리카를 옆문으로 밀었고 첫번째 탑문까지 그녀 뒤에서 따라왔다. 북쪽 측실에는 사원의 꼭대기까지 140피트 정도 되는 벽돌계단이 있었다. 그곳에서 에리카는 사각진 카르나크 사원의 전지역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에리카...." 그녀는 몸을 돌렸다. 아흐메드의 눈은 그녀를 쳐다보면서 머리는 측실에 대고 있었다. "에리카, 당신은 참 아름답군요." 그녀는 칭찬을 좋아했지만 항상 그것들은 그녀에게 약간의 자의식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아흐메드가 다가와서 그의 손끝으로 자신의 이마를 만지자 눈을 돌렸다. "고마워요. 아흐메드." 그녀는 간단히 말했다. 그녀가 쳐다보았을 때 아직도 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서 파멜라를 생각나게 해요." 그가 결국 말했다. "예?" 그녀에게 있어서 옛 여자친구가 생각난다는 말은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아흐메드가 칭찬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살짝 웃고 달빛이 비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아마 그녀가 파멜라와 닮았다는 것은 그가 그녀를 만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당신은 무척 아름답소. 하지만 나에게서 파멜라를 생각나게 하는 게 당신의 존재는 아니오. 그것은 솔직함과 따스함일 게요." "하지만 아흐메드. 이해할 수 없군요. 지난 번 우리가 만났을 때, 파멜라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의 삼촌이 그녀를 만났는지에 대해 순진한 질문을 했어요. 결국 당신을 컵을 박살냈구요. 지금 당신은 그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아흐메드의 긴장된 모습은 흥미를 자아낼 만했으나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부서진 찻잔에 대한 기억은 날카로웠다. "당신은 룩소르같은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오?" 아흐메드는 나일강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룩소르는 너무 아름다워요." "아름다운 것 이상이오. 아마도 영원할 거요." "나는 하버드광장을 항상 그리워했어요." 아흐메드는 긴장을 멈추고 웃었다. "하버드광장. 그곳은 열광적인 곳이오. 그건 그렇고, 에리카, 나는 암시장에 관해 무언가를 하려는 당신의 결정에 대해 생각했소. 내 경고가 당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하지만, 제발!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참을 수가 없소." 그는 사원 위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녀에게 부드럽게 키스했다. "당신은 반드시 달빛이 비치는 하트세수트의 오벨리스크를 봐야 해요." 그리고 그는 에리카의 손을 잡고 그녀가 계단 뒤에서 내려 오도록 이끌었다. 저녁식사는 훌륭했다. 카르나크의 웅장함 속에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으므로 그들은 11시가 넘을 때까지 식사를 못하고 있었다. 나일강 가의 작은 식당은 무르익은 야자나무의 우산 밑에 지어져 있었다. 열매들은 수확을 해야 할 정도로 무르익어서 자루 같은 주머니에 든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식당의 특별요리는 녹색 후추와 양파로 요리된 불고기와 마늘 파슬리 박하와 함께 마리네이드(식초 및 포도주에 향료를 넣은 양념 ; 여기에 고기나 생선을 담금)에 담겨진 양고기였다. 껍질이 벗겨진 토마토, 아티초크(엉겅퀴과)가 곁들여졌고 한 접시의 쌀이 나왔다. 그곳은 옥외식당이었고 대화시 손동작과 웃음이 따르는 룩소르의 신생 중산층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 아흐메드는 탑문에서의 대화 이후로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에리카가 최근에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 <신왕조 상형문자의 구문론적 발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콧수염을 한번 어루만졌다. 그녀가 주요소재로 이집트 연애시를 사용했다고 하자 그는 기뻐하며 웃었다. 고대의 신비를 다룬 주제를 위해 연애시를 사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에리카는 아흐메드이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그는 룩소르에서 아주 행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그것이 그가 룩소르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이유였다. 그의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카이로에 보내진 이후부터였다. 1956년 전쟁에서 그의 아버지는 부상을 당했고 형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룩소르에 살고 있고 외국은행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아흐메드는 한 명의 누이동생이 있고 그녀는 변호사 교육을 받았으며 지금은 내무국의 세관국에서 일하고 있다. 식사 후에 그들은 아랍커피를 약간 마셨다. 대화가 잠시 자연스럽게 멈추었을 때 그녀는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이 어딘가에서 본 듯한 누군가를 찾으려고 할 때 필요한 중앙기록관리소가 이곳 룩소르에 있나요?" 아흐메드는 즉시 대답하지는 않았다. "몇 년 전에 인구조사를 했지만, 내용이 썩 충실하지는 않아요. 그때 취합되었던 정보들은 중앙우체국 옆의 정부건물에 가면 이용할 수 있을 거요. 아니면 경찰서에 가는 방법도 있소. 그런데 그건 왜 묻소?" "단지 호기심일 뿐이에요." 그녀는 말을 둘러대었다. 그녀는 투탄카멘의 무덤의 옛날 도굴꾼들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이야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와트 라만을 찾고 있다고 그에게 말하면 그는 중지시키거나 심하게는 비웃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녀가 그 남자에 관해 갖고 있는 최근의 정보는 56년 전의 것이었다. 에리카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등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음식을 먹기 위해 등을 구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랍옷을 입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아흐메드는 그녀의 반응을 알아채고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뇨, 전혀." 에리카는 몽환의 경지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정말,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는 누구일까? 제 7 일 룩소르, 아침 8시 15분 룩소르사원 맞은편에 세워진 작은 이슬람사원으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통에 에리카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꿈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심하게 저지하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시무시한 생물체 때문에 시달려야 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침대 커버가 뒤엉켜져 있어서 심하게 뒹굴면서 잠을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 위에서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 때문에 간밤 꾸었던 악몽을 이내 잊어버렸다. 그녀는 커다란 물통에 서서 빠르게 스폰지를 놀려가며 목욕을 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목욕이 끝난 후 그녀는 벌벌 떨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한 후 에리카는 큐리오 골동품가게를 찾기 위해 회중전등, 폴라로이드카메라, 안내책자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세라피윰에서 찢겨진 옷을 대신해서 카이로에서 구입했던 면바지를 입은 편안함 차림으로 나왔다. 샤리 쿠칸다 쪽으로 걸어내려와 그전에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가게이름들을 적어 내려갔다. 큐리오 골동품가게는 적어 본 이름들 속에는 있지 않았지만, 얼굴이 낯익은 가게주인들 중 한 사람이 그 가게는 사보이호텔 근처에 있는 샤리 엘 문타즈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에리카는 그 지역과 상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큐리오 상점 옆 건물들은 허술하게 판자로 지어져 있었다. 비록 그녀가 그 상점의 간판명을 완벽하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 단어가 전에 주의깊게 살펴 보았던 '함디'라는 것을 알았다. 가방을 꼭 끼고서 그녀는 큐리오가게로 들어갔다. 어느 한 프랑스 부부가 이미 가게 안에서 작은 동상을 놓고 가격 때문에 승강이을 벌이고 있었다. 에리카가 본 것 중 가장 흥미를 끈 것은 세밀하게 그려진 얼굴을 가진 검은색 미라 모양의 어스합티상이었다. 버팀목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선반 끄트머리에 기대어져 있었다. 그 프랑스 부부가 결국 동상을 사지 못하고 나가자마자 그 상점주인은 에리카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가 은발머리에 콧수염을 깔끔하게 정돈한 것으로 보아 한눈에 아랍인임을 알았다. "저는 라히브 자이드입니다.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말했다. 에리카는 어떻게 그가 자신의 국적을 추측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예, 검은색 오시리스 모양의 저 상을 좀 주의깊게 보고 싶습니다." 에리카가 대답했다. "아, 그러세요. 우리 가게 최고상품 중 하나죠. 귀족들의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아주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그 상을 들어올렸다. 그가 등을 돌려 그 상을 집으려 할 때, 에리카는 손끝에 침을 묻혀서 그가 건네주는 물건을 시험해 보려고 했다. "조심하세요, 깨지기 쉽습니다." 자이드가 말했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뒤쪽에서 안쪽으로 비벼봤다. 손끝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채색은 안정적으로 잘 되어 있었다. 눈이 조각되고 그려진 방식을 가장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곳은 흠잡기 좋은 곳이었지만 그것이 골동품이라는 것에 만족했다. "신왕조"라고 자이드는 말하고서 에리카가 감상할 수 있도록 그것을 멀치감치 떼어놓았다. "저는 이런 물건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갖다 놓지 못합니다." "얼마죠?" "50파운드입니다. 보통은 값을 더 부르지만 당신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이 정도 부른 겁니다." 에리카는 미소를 지었고 그 주인이 50파운드를 다 받아내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40파운드에 하자고 말했다. 물론 그 액수는 그녀가 쓸 수 있는 돈을 좀 초과한 것이었지만, 그녀가 돈을 더 쓰고서라도 심각함을 증명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 상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그것이 후에 아주 정교하게 모조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장식적 가치가 있었다. 결국 41파운드에 합의를 보았다. "실제로 저는 이곳에서 규모가 큰 구매자들의 모임을 대표하고 있으며 특별하고 귀중한 물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밖에 다른 것이 있는지요?" 에리카가 말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몇 개 더 있을 겁니다.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좀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박하차 좀 드시겠습니까?" 에리카는 큐리오 골동품가게 뒷방으로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그녀는 압둘 함디의 목구멍이 찢어져 갈라지는 환영을 억눌러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 환영과는 달리 가게 안뜰은 햇볕이 잘 들어오게끔 지어져 있었다. 앤티카 압둘에서 느껴지는 강박관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자이드는 자신을 꼭 닮은 검은색 머리에 야윈 그의 아들을 불러서 손님을 위해 박하차 몇 잔을 주문하도록 시켰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서 자이드는 일상적인 질문들을 했다. 에리카가 룩소르를 좋아하는지, 카르나크에 다녀온 적이 있는지, 왕들의 계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었다. 그는 에리카에게 미국인들을 굉장히 좋아하며 미국인들은 친절하다고 했다. 에리카는 미국인들은 호인들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차가 나오자 자이드는 몇 개의 작은 동상과 깨졌지만 알아 볼 수 있는 아멘호텝 3세의 두상 그리고 나무로 된 상들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젊은 여인상이었는데 그것은 스커트 앞자락 아래로 그려진 상형문자들과 시간을 무시하는 듯한 고요하고 잔잔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인상은 400파운드에 값이 매겨져 있었다. 에리카는 그 가공품을 주의깊게 살펴본 다음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저는 목상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여유가 된다면 석두상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말투로 에리카는 말했다. 자이드는 꽤 흥분된 마음으로 손바닥을 비벼댔다. "내가 대표하고 있는 구매자들과 의논을 해 봐야겠습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무조건 샀으면 하는 좋은 물건이 하나 있지요." "그게 뭡니까?" 자이드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1년 전, 휴스턴의 어떤 사람에게서 산 실제 크기의 세티상입니다. 내 단골손님이 그 상과 똑같은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걸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자이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음, 만약 그런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연락해 주세요. 저는 호텔 윈터팰리스에 있을 겁니다." 에리카는 작은 쪽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내 고객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습니다. 나는 목상들을 좋아하지만 좀더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에리카는 말하고서 아랍신문으로 포장된 물건을 집어들고 상점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내었다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했다. 그녀가 가게를 나왔을 때 주인 아들이 어떤 한 남자와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로 그녀를 따라온 적이 있는 아랍인이었다.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 아랍인을 쳐다보면서 에리카는 빠져나왔지만, 그녀의 등줄기로 전율이 지나갔다. 상점주인 아들이 흥정을 끝내자마자, 라히브 자이드는 가게 앞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뒤로 들어와라" 하고 아들에게 이르면서 "저 여자가 바로 스테파노스 마큘리스가 일전에 여기에 와서 충고를 했던 바로 그 여자다."라고 말했다. 자이드는 안뜰에 있는 낡은 나무로 된 문도 닫아버렸다. "나는 니가 중앙우체국으로 가서 마큘리스에게 그 미국여자가 가게에 와서는 특별히 세티상에 대해 질문을 하고 돌아갔다는 말을 좀 전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무하마드에게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해 두라고 말해야겠다."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들이 물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여자가 다녀간 것이 꽤 거슬린다. 왜냐면 2년 전 예일에서 온 그 젊은 남자를 생각나게 하는 때문이지." "그들이 그 여자에게 똑같은 짓을 할까요?" "확실하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에리카는 룩소르행정관청에서 일어나 혼란 때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몇몇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어느 복도 구석에서는 마치 며칠씩 그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가족전체가 캠프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 뒤편에서는 시공무원들이 그런 무리들을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든 책상은 결재받지 못한 서류더미로 덮여 있었다. 정말로 끔찍했다. 그 때 에리카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누군가를 찾았고, 룩소르가 중앙행정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지역에 관한 자료는 아스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모든 인구조사 데이터가 그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에리카는 50년 전 서부제방에서 살았던 한 남자를 찾아보고 싶다고 담당 여자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혹시 이 여자가 미치지나 않았나 생각하면서 쳐다보았고 그런 일은 아무리 경찰과 협의를 통해서 알아본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에리카는 그 사람이 분명히 행정당국과 관계가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경찰이 시공무원들보다는 다루기가 쉬웠다. 적어도 경찰은 친절하며 신중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유니폼을 차려입은 그곳 경찰들은 에리카가 카운터 쪽으로 갈 때 모두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모든 표시들은 아랍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에리카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잘생긴 젊은 직원이 하얀 유니폼을 입고서 에리카를 돕기 위해 책상 뒤쪽에서 나왔다. 불행히도 그는 여행객 안내 담당업무 때문에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 한 사람을 찾아냈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웃으면서 그 경찰은 말했다. "저는 하워드 카터의 감독들 중 한 사람인 사와트 라만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는 서부제방에서 살았거든요." "뭐라고요?" 경찰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몇몇 이상한 요구들은 받아보기는 했지만 이런 일은 확실히 더 흥미롭겠는데요. 투탄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하워드 카터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까?" "그래요." 에리카가 대꾸했다. "그건 50년 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었을 겁니다." "저도 그건 알아요." 에리카는 말했다. "저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부인, 어떤 사람도 서부제방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지 모를 뿐더러 더군다나 어느 특정의 가족을 찾는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을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우선 서부제방으로 가서 쿼나라는 마을에 있는 작은 사원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 사원 이맘은 늙은 노인인데 그 분이 영어를 할 줄 압니다. 아마 그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마을과 노인을 찾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군요. 정부가 그 마을을 재배치시켰고 마을사람들을 고대 무덤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때 싸움이 벌어졌고 약간의 적대감정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조심하십시오." 라히브 자이드는 흰색으로 칠해진 골목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이 미행당하지는 않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서둘러 걸어내려가서 튼튼하게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두드렸다. 그는 무하마드 압둘라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정오에는 항상 낮잠을 자기 때문이다. 라히브는 문을 다시 두드렸다. 라히브는 자신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느 낯선 사람이 목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엿보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구멍이 열리고 충혈되고 졸린듯한 시선이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잠금쇠가 올려지고 문이 열렸다. 라히브는 문지방을 넘어 걸어들어갔고 문은 철컥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무하마드는 구겨진 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육중하고 풍만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콧구멍이 벌름거리면서 아치모양의 큰 풍선을 만들었다. "난 너에게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집에 온 데는 무슨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라히브는 말을 꺼내기 전에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 미국여자 에리카가 오늘 아침 골동품가게에 와서는 자신이 구매자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고 말하고 갔습니다. 그녀는 예리했습니다. 그녀는 골동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실제 작은 상 하나를 샀습니다. 그 때 세티 1세 상에 대해서 물었죠." "혼자였나?" 압둘라는 이제 화가 났다기보다 다소 조심성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라히브가 대답했다. "그녀가 세티상에 대해 물었다고?" "예, 확실히." "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준비를 해야겠다. 너는 그녀에게 혼자 와야 하는 것과 누군가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세티상을 보여주겠다고 알리고 황혼 무렵 쿼터사원으로 가라고 전해라. 내 말대로 그녀를 빨리 해치웠어야 했는데." 라히브는 무하마드의 말이 끝났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제가 제 아들 파시를 통해 스테파노스 마큘리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무하마드는 그의 머리끝을 치면서 뱀처럼 손을 뻗쳤다. "제기랄! 왜 스테파노스에게 알리는 일을 네가 하지 않았느냐?" 라히브는 또 한번의 질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움츠러 들었다. "그는 그 여자가 나타나면 알려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그도 우리만큼 신중합니다." "너는 스테파노스에게서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무하마드가 소리쳤다. "내가 너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다. 그걸 알아들어야지. 지금 여기서 나가자마자 그녀에게 지금 내가 한 얘기를 전해라. 그 미국 여자를 없애야만 한다." 쿼나의 룩소르 묘지, 오후 2시 50분 경찰이 오른쪽에 있었고 쿼나는 그렇게 호감이 가는 곳은 아니었다. 에리카가 아스팔트 길과 마을을 구분짓는 언덕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방문했던 다른 지역에서 받았던 환영의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고, 그녀를 지나쳤던 사람들은 등을 그림자 쪽으로 웅크리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심지어 개들까지도 지저분했고 모두 털이 헝클어진 똥개들이었다. 그녀는 운전기사들이 왕들의 계곡이나 더 먼 목적지까지 가는 것 대신에 쿼나에 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 택시 안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택시가 마을까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진흙과 모래투성이의 언덕 밑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100도가 넘을 정도의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그늘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집트의 태양은 돌이 그을릴 정도로 쏟아붓고 있었고 지면의 밝은 모래색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맹공습에 살아남은 풀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쿼나 사람들은 이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부와 증조부가 몇 세기에 걸쳐서 정착해서 살았던 것처럼 이곳에 살기를 원했다. 단테가 쿼나를 보았다면 그것을 지옥의 범주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진흙벽돌로 지어진 집들은 진흙 고유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흰 도료가 칠해져 있었다. 에리카는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집들 사이에 돌로 만들어진 입구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몇 개의 고대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많은 집들이 신기한 건축물을 안마당에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폭이 좁은 기둥에 의해 땅에서 약 4피트 정도를 지지하고 있는 6피트 정도의 단이었다. 그것들은 진흙벽돌과 유사하게 건조된 진흙과 짚으로 만들어졌다. 에리카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원은 거대한 첨탑이 있는 흰 도료가 칠해진 단층건물이었다. 에리카는 그것이 그녀가 쿼나에서 처음 본 건물임을 알았다. 마을과 같이 그것은 진흙벽돌로 만들어졌고 에리카는 비가 많이 오면 모래성처럼 건물 전체가 씻겨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낮은 나무문으로 들어가서 작은 뜰로 들어섰는데, 그 뜰은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얕은 현관과 마주하고 있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나무문이 있었다. 그녀는 들어가도 좋은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눈이 어둠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사원의 입구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내부의 벽은 복잡한 기하학적 방식으로 먼저 흰 도료가 칠해진 다음에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바닥은 값비싼 동양산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길게 늘어진 검은 옷을 입고 턱수염이 있는 한 노인이 메카(마흐메드가 태어난 도시)를 향하는 방의 후미진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빰 옆에 나란히 대고 있었다. 노인은 몸을 돌리지 않고서도 에리카의 출현을 감지하고 있었다. 노인이 곧 몸을 굽혀 펼쳐 있던 페이지에 입맞춤하고 그녀를 맞기 위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경건한 이슬람 사람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잠시 망설인 다음 머리를 약간 숙이고 말했다. "저는 한 노인에 관해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이맘은 움푹 들어간 검은 눈으로 에리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들은 작은 안마당을 지나 에리카가 보았던 입구로 들어갔다. 그녀는 한쪽 끝에 짚자리가 있고 또 다른 끝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 작고 간소한 방으로 인도되었다. 그는 에리카를 위해 의자 하나를 가리키고 그도 자리에 앉았다. "당신은 왜 쿼나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곳에 온 이방인들을 의심합니다." "저는 이집트학자이고 하워드 카터의 발굴감독 중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와트 라만입니다. 그는 쿼나에서 살았습니다." "예, 압니다." 에리카는 이맘이 말을 계속할 때까지는 한 가닥 희망을 느꼈다. "그는 20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전의 카페트는 그의 관대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에리카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일어섰다. "잘 알았습니다.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맘이 말했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나루터까지 가는 택시를 어떻게 잡을지 걱정하면서 눈부신 햇빛 속으로 다시 걸어나왔다. 그녀가 막 안마당을 떠나려 할 때, 이맘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에리카는 몸을 돌렸다. 그는 방 입구에 서 있었다. "라만의 부인이 아직 살아 있어요. 그녀와 이야기하시겠어요?" "그녀가 저와 이야기하려 할까요?" "예. 확신합니다." 이맘이 외쳤다. "그녀는 카터의 가정부로 일했기 때문에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합니다." 에리카가 이맘을 따라 언덕 중턱보다 좀더 올라갔을 때,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더위에도 저렇게 무거운 옷을 입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그녀는 옷을 가볍게 입었는데도 등 전체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이맘은 그 마을의 남서부 쪽에 있는 집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흰 도료가 칠해진 집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의 집 바로 뒤에는 절벽이 극적으로 치솟아 있었다. 에리카는 절벽의 정면에서 그 집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볼 수 있었다. 에리카는 그 길이 왕들의 계곡으로 통한다고 추측했다. 흰 도료가 칠해진 그 집의 정면에는 색이 바랜 유치한 그림들이 꽉 차 있었다. 기차, 보트, 그리고 낙타...... "라만이 메카로 가는 순례여행을 기록한 거예요." 이맘이 문을 두드리면서 설명해 주었다. 집 옆의 안마당에는 에리카가 조금 전에 본 적이 있는 단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의 용도를 이맘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여름 몇달 동안 밖에서 잡니다. 그들은 전갈과 코브라를 피하기 위해 저 단을 사용합니다." 매우 늙은 노파가 문을 열었다. 이맘을 알아보고 그녀는 웃었다. 그들은 아랍어로 이야기했다. 대화가 끝났을 때, 노파는 에리카에게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돌렸다. "반가워요." 에리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면서 그녀는 강한 영국식 액센트로 말했다. 이맘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작은 사원과 같이 그 집은 싸늘했다. 바깥은 천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내부장식은 아름다웠다. 목재 바닥은 화려한 동양산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가구는 간소했지만 잘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벽은 회가 발라진 위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세 군데의 벽에는 거대한 액자가 걸려 있었고, 네 번째 벽에는 손잡이가 길고 조각된 날이 있는 한 자루의 삽이 있었다. 노파는 자신을 아이다 라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4월에 80살이 된다고 말했다. 아랍인 특유의 접대방식으로 그녀는 차가운 과일음료를 꺼내왔고, 그것은 끓인 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세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에리카는 그녀의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얼굴 뒤로 빗어 넘긴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밝은 색깔의 깃털 장식이 새겨진 헐거운 면화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이었다. 그녀는 왼쪽 팔목에 오렌지색깔의 플라스틱팔찌를 끼고 있었다. 그녀는 종종 웃어보였는데 이가 두 개밖에 없는 것이 드러나보였다. 둘다 아랫니였다. 에리카는 자신이 이집트학자라고 설명했고, 아이다는 하워드 카터에 대해 말하는 것에 즐거워했다. 그녀는 카터가 약간 이상하고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그를 왜 존경하게 되었는지를 에리카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카터가 카나리아를 매우 좋아했고, 그 새가 코브라에게 먹혀 죽었을 때 매우 슬퍼했던 것을 회상하였다. 에리카는 음료를 한잔 마시면서 그 이야기들에 매혹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다도 에리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만남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투탄카멘의 무덤이 열리던 날을 기억하세요?" 에리카가 물었다. "예." 아이다가 말했다. "그날은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내 남편은 행복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날 이후 카터는 사와트가 계곡 안의 매점을 운영할 권리를 얻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요. 사와트는 카터가 발견한 투탄카멘의 무덤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을 추측했어요. 그리고 그는 옳았어요. 그는 무덤 일을 계속했지만 거의 모든 힘을 휴게소를 짓는 데 쏟아부었어요. 사실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그것을 다 지었어요. 밤에만 일해야 했는데도 말이에요." 에리카는 잠시동안 아이다가 두서없이 이야기하도록 기다린 다음에 물었다. "당신은 무덤이 열리던 날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물론이지요!" 갑작스런 물음에 약간 놀라면서 아이다는 말했다. "당신의 남편이 파피루스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노파의 눈은 갑자기 구름이 낀 듯이 흐려졌고 입은 움직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에리카는 몰려드는 흥분을 느꼈다. 그녀는 노파의 이상한 반응을 지켜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국 아이다가 말했다. "당신은 정부에서 왔나요?" "아니에요." 에리카가 대답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어느 누구나 발견된 것을 볼 수 있어요. 책이 있잖아요." 음료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에리카는 아이다에게 월리스 벗지 씨에게 보내는 카나본의 편지에는 언급이 되어 있었고 카터의 기록에는 파피루스에 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간의 모순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노파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정부사람이 아니라는 말과 단지 학문적인 관심에서 물어보는 것일 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없어요." 불안해 하면서 잠시 동안 가만히 있던 아이다가 말했다. "파피루스는 없어요. 내 남편은 결코 무덤에서 파피루스를 훔치지 않았어요." 에리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남편이 파피루스를 훔쳤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말했어요. 내 남편이......" "아니에요. 나는 단지 그가 파피루스에 관해 무언가를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에요." "내 남편은 선한 사람이에요. 그는 아주 평판이 좋았어요." "사실 카터는 감독하는 사람에 불과하고, 당신의 남편이 최고가 되었어야 했어요. 아무도 당신 남편의 명성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다시 아무 이야기도 없이 시간은 가고 있었다. 마침내 아이다가 에리카에게로 몸을 돌렸다. "내 남편은 20년 전에 죽었어요. 그는 나에게 파피루스에 관해 결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그렇게 해왔어요. 심지어는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한테 파피루스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나한테 질문했을 때 그렇게 놀란 거예요." "이제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이 안심이 되네요. 당국에 말하지 않을 거죠?" "예, 결코 하지 않을 거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파피루스가 있었고 당신 남편이 무덤에서 그것을 훔쳤다는 거죠?" "그래요." 아이다가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에리카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라만이 그것을 훔친 다음 그것을 팔았을 것이다. 그러면 찾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당신의 남편은 무덤에서 그것을 어떻게 훔쳤나요?" "그는 무덤 안에서 그것을 보던 바로 그 첫날에 훔쳤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보물에 흥분해 있었어요. 그는 파피루스가 일종의 저주의 상징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군가 안다면 저주의 상징인 파피루스는 발굴계획을 중단시킬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어요. 카나본 경은 신비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에리카는 열광적인 그 날의 사건을 상상하려고 했다. 카터는 매장실로 가는 벽의 보전상태를 조사하는 데 마음이 급해 있어서 파피루스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유물들의 화려함에 당황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파피루스는 저주의 상징입니까?" "아니에요. 내 남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는 어떤 이집트학자에게도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는 일부분들을 베껴 그것을 번역하는 전문가에게 가서 물어보았어요. 그는 마침내 상형문자들을 하나로 모아보았어요. 그러나 그는 그것이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는 그게 뭐라고 했나요?" 에리카는 물었다. "아니오. 그는 단지 투탄카멘이 세티 1세를 도왔던 것을 기록하고 싶어했던 한 현인이 파라오시대에 그것을 썼다는 이야기만을 했어요." 에리카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상의 비문에 나타났던 것과 같이 세티 1세를 투탄카멘과 관련시키고 있었다. "파피루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당신의 남편이 그것을 팔았나요?" "아니오. 그는 팔지 않았어요." 아이다가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어요." 에리카의 피가 거꾸로 솟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동안 아이다는 발을 끌면서 벽에 걸려진 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삽은 하워드 카터가 내 남편에게 선물했어요." 아이다가 말했다. 그녀는 금속 날에서 나무로 된 막대를 꺼냈다. 손잡이의 끝에는 움푹 파인 구멍이 있었다. "이 파피루스는 지난 50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았어요." 아이다는 부서지려는 문서를 꺼내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문진(책등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괴는 물건)으로 파피루스의 두 끝을 누르면서 테이블 위에 쫙 폈다. 에리카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그녀의 눈을 상형문자에 고정시켰다. 그것은 국가의 봉인이 찍혀진 공식문서였다. 즉시 에리카는 세티 1세와 투탄카멘원형의 장식테두리를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거의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인 에리카가 물었다. "내 남편의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요." 아이다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약속할 수 있어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더듬거려 찾으면서 에리카가 말했다. "나는 당신의 허락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잘 찍혔는지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일을 마치고 말했다. "다시 파피루스를 제자리에 갖다 놓으세요. 그리고, 주의해서 보관해 두세요. 이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고 당신 남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나는 남편의 명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어요." 아이다가 말했다. "게다가 나는 그의 성을 가지고 죽어요. 우리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다 전쟁에서 죽었어요." "당신의 남편이 투탄카멘의 무덤에서 그 외에 다른 것을 훔쳤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니요, 전혀." 아이다가 말했다. "좋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나는 파피루스를 번역해서 당신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드릴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파피루스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예요. 나는 당국에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절대로 보여주지 마세요." 에리카는 이미 그녀의 발견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집착하고 있었다. 아이다 라만의 집을 나오면서 그녀는 호텔까지 돌아가는 최상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루터까지 5마일을 걸어서 간다는 생각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다 라만의 집 뒤에 있는 오솔길을 통해 왕들의 계곡까지 걸어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곳에서는 확실히 택시를 탈 수 있을 것이다. 날씨는 매우 더웠고, 산등성이까지 힘들게 올라갔지만 경치는 장관이었다. 쿼나마을은 그녀 바로 밑에 있었다. 마을 바로 위에는 산에 바싹 달라붙은 여왕 하트 세수트의 장엄한 사원이 있었다. 에리카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녹색 계곡 전체가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태양을 피해 눈을 가리면서 에리카는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로 앞에 왕들의 계곡이 있었다. 에리카는 포장이 안된 오솔길의 험준한 지면에서 조심히 움직여야 했지만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은 쉬웠다. 길은 에리카가 고대 공동묘지 일꾼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폐허가 된 마을에서 오는 길과 합쳐졌다. 그녀가 계곡의 아래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너무나 더워서 굉장한 갈증을 느꼈다. 그녀는 호텔로 돌아가서 파피루스를 번역해야 했지만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북적대는 매점으로 걸어갔다.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서 그녀는 사와트 라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아랍인은 파피루스가 저주의 상징을 나타낼까봐 두려워서 그것을 훔쳤다. 그는 그러한 저주의 상징이 발굴을 정지시킬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에리카는 펩시콜라를 산 다음 베란다의 빈 의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매점의 구조를 둘러보았다. 그것은 지방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에리카는 라만이 그것을 지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녀는 그 남자를 한 번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녀는 수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특히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왜 라만은 파피루스가 저주의 상징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후에 그것을 제자리로 갖다놓지 않았을까?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그는 결과에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펩시를 마신 후 파피루스의 귀중한 사진 중 하나를 꺼냈다. 방향은 그것이 아래에서 우상향으로, 즉 보통방식으로 읽혀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첫 구절의 고유명사를 보고 자신의 눈을 믿지 않으면서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네네프타...... 오! 신이시여." 차를 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에리카는 그들과 함께 나루터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진을 가방에 집어넣고 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 입구를 찾았으나 지독한 오줌냄새에 불쾌해졌다. 그녀는 호텔로 돌아갈 때까지 참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있는 힘껏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룩소르, 저녁 6시 15분 발코니 난간에 서서 에리카는 머리 위로 손을 쭉 뻗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파피루스 해독을 다 끝냈다. 그것을 다 이해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리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일강 건너편을 응시하면서 호화롭고 커다란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파피루스를 해독하면서 옛 고대문화에 흠취한 후에 현대식 선박 한 척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은 비행접시를 보스턴 커먼스에 착륙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에리카는 그녀가 작업한 것들이 쌓여 있는 테이블로 가서 해독한 것을 읽어 내려갔다. 생존신(영원히 살 수도 있다), 파라오, 우리 두 나라의 왕, 위대한 세티 1세를 위한 나 건축감독인 네네프타는 이런 비천한 벽 속에서 생존하기에는 부족한 식량으로 소년왕 투탄카멘의 영원한 휴식을 방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속죄한다. 석공 이메니에 의해 계획된 파라오 투탄카멘 무덤의 약탈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신성모독이다. 우리는 그를 당당하게 참형에 처했고 그 시체는 재칼의 먹이로 서부사막에 버려 그에게 숭고한 결말을 제공했다. 그러나 석공 이메니는 탐욕적이고 부당한 수법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내 눈을 뜨게 했다. 그리하여 건축감독인 나 네네프타는 생존신(영원히 살 수도 있다), 파라오, 우리 두 대륙의 왕, 위대한 세티 1세의 영원한 안전을 확실하게 하는 '길'을 알고 있다. 생존신 조제의 건축가이자 계단식 피라미드의 설계자인 임호텝과 생존신 쿠푸의 건축가이자 그레이트 피라미드의 설계자인 네퍼호텝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들의 기념비에 이 '길'을 사용했다. 따라서 생존신 조제와 쿠푸의 영원한 안식은 첫번째 암흑기에 방해받고 파괴되어졌다. 그러나 나, 네네프타, 건축 일인자인 나는 그 '길'과 무덤 도굴범의 탐욕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 일이 행해질 것이고 소년왕 투탄카멘의 무덤은 그 날에 다시 보수되어 묻혀질 것이다. 파라오 세티 1세인 레의 10살된 아들 탄생 두 번째 달, 12일. 에리카는 테이블 위에 해독한 종이를 내려놓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길'이라는 단어였다. 상형문자로 표시된 것에서 보면 '방법', '양식' 또는 신비의 '술책'이란 뜻으로 되어 있었지만 '길'이라는 단어는 문장의 의미상 가장 최상의 의미를 나타낸 것임에도 그녀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파피루스를 번역하면서 에리카는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또한 놀랍게도 고대이집트의 생명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그녀는 네네프타의 오만함에 미소를 지었다. 무덤 약탈자의 탐욕스러움과 '길'이라는 단어를 그가 상상하여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세티의 거대한 무덤은 묻혀진 지 100년 만에 파괴되었고, 반면에 투탄카멘의 초라한 무덤은 그후 3천년 동안 훼손되지 않았다. 다시 해독한 것을 들고서 조제와 쿠푸를 언급한 단락을 다시 읽어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그레이트 피라미드를 찾아가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는 다른 여행객들처럼 기자 피라미드에 황급히 달려가지 않을 만큼의 편안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을 느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하길 바랐다. 어떻게 네퍼호텝은 전체를 다 이해하지 않고서 그레이트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 '길'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 에리카는 먼 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레이트 피라미드의 모양이나 크기에 영향을 끼친 모든 모호한 의미들에 대해 에리카는 더 오래된 다른 것을 펼쳐 보았다. 심지어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네네프타 시절에는 고대건물이었다. 사실, 에리카는 자신보다도 네네프타가 그레이트 파리미드에 관해 더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곳을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마도 그 피라미드 그림자 옆에 서 있거나 그 내부 깊은 곳으로 걸으면서 네네프타가 사용한 '길'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에리카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손쉽게 7시 30분 카이로행 침대차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열광된 흥분으로 그녀는 짐 가방에 폴라로이드카메라, 베데커여행책자, 회중전등, 진바지, 깨끗한 속옷을 넣고 짐을 꾸렸다. 그리고 재빨리 목욕을 끝마쳤다. 호텔을 나오기 전에 에리카는 아흐메드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정도 카이로에 갔다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쿠푸의 그레이트 피라미드를 너무나도 보고 싶기 때문에 카이로에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흐메드는 순간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여기 룩소르에서도 볼 것이 많이 있소. 그걸 기다릴 수는 없소?" "기다릴 수 없어요. 갑자기 내가 그것을 꼭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본 드 마르그를 보러 가려는 건 아니오?" "글쎄요." 그녀는 얼버무렸다. 그녀는 혹시 그가 질투를 하는 건 아닌가 궁금했다. "당신은 내가 그에게 전해줬으면 하는 게 있나요?" 그녀는 자신이 그를 다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전혀. 내 이름도 말하지 말아요. 돌아올 때 전화나 하시오." 아흐메드는 에리카가 인사도 하지 전에 끊어버렸다. 에리카가 카이로행 기차에 탑승했을 때, 라히브 자이드는 호텔 윈터팰리스에 들어갔다. 그는 에리카에게 전해줄 메시지, 즉 확실하게 누군가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세티 1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말 때문에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에리카가 없었기 때문에 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하마드가 이 메시지를 그녀에게 전해주지 못한 데 대해서 핀잔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카이로행 기차가 출발한 후에 칼리파는 중앙우체국으로 들어가서 이본 드 마르그에게 에리카가 카이로로 가는 중이고 그녀가 매우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으며 자신은 사보이호텔에서 더 많은 지시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전보를 쳤다. 제 8 일 카이로, 아침 7시 30분 기자의 피라미드는 오전 8시에 열렸다.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에리카는 간단히 아침을 먹으러 메나하우스 호텔에 들어갔다. 검은 머리의 아가씨가 그녀를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에리카는 커피와 메론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고, 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녀 바로 앞에 야자수와 유칼립투스 나무가 늘어선 그 너머로 쿠푸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었다. 기본적 단순함을 갖춘 삼각형체는 아침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에리카는 어린시절부터 그레이트 피라미드에 대해 들어왔었기 때문에, 그 기념물을 눈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그 장대함과 균형미에 압도되어 감동을 받고 있었다. 피라미드는 준엄한 시간의 얼굴에 작은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인간의 시도를 상징한다는 사실에 비하자면 규모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베데커안내서를 꺼내 피라미드를 찾아 내부구조를 살폈다. 그녀는 네네프타를 생각하며 그가 저 디자인을 어떻게 보았을까를 생각해 내려 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쩌면 네네프타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대한 피라미드는 대부분의 다른 피라미드들과 마찬가지로 건축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변형이 있었다. 사실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3개의 분명한 단계가 있었다는 가설이 있었다. 첫 단계는 훨씬 더 작은 구조물로 계획되었을 때로, 묘실은 지하에 설계되어 있었고 그것은 반암을 파서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 구조가 확장되었을 때 구조물 내에 새 묘실이 계획되었다. 에리카는 구조도에서 이 방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여왕실이라는 잘못된 표지가 붙어 있었다. 에리카는 자신이 정부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특별허가를 받지 못하면 지하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왕실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체크했다. 여덟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에리카는 자신이 제일 먼저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었다. 일단 버스에 실린 관광객들이 도착하면 통로가 좁아져 불편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귀와 낙타를 타라는 끈질긴 요구를 거절하고 에리카는 길을 따라 올라가 피라미드가 서 있는 고원에 다다랐다. 피라미드에 다가가면 갈수록 그것은 더욱더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건축물을 짓는 데 쓰인 수백만 톤의 석회암을 통계학적 수치로 계산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수치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건물의 그림자 안에 있었고 그녀는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하얀 석회암 표면이 아니더라도 피라미드 표면에 내리쬐는 태양의 효과란 엄청난 것이었다. 서기 820년, 칼리프 마문이 파내라고 명령했던 무덤 안으로 다가갔다. 입구에서부터 점점 넓어지는 형태였다.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노려보듯이 하얗던 주변은 희미한 그림자와 약한 빛으로 바뀌었다. 칼리프의 터널은 화강암 문 바로 너머에 있는 좁은 오르막길과 합쳐졌는데, 그 화강암 문은 고대에 터널을 막던 역할을 하던 것으로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오르막길의 높이는 8피트가 조금 넘었고 에리카는 걸어올라가기 위해 몸을 구부려야 했다. 좀더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미끄러운 길에는 가로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통로는 길이가 약 100피트쯤 되었고, 대회랑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똑바로 몸을 펼 수가 있었다. 대회랑은 오르막길과 비슷한 각도만큼 위로 경사져 있었다. 그랜드 갤러리의 천장은 20피트가 넘는 기둥이 받쳐져 있었는데, 좁은 통로를 지나온 터라 그랜드 갤러리는 시원함을 느낄만큼 넓게 보였다. 에리카의 오른편에는 격자 하나가 지하 묘실과 이어지는 내리막 통로를 막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그녀가 찾던 문이 있었다. 에리카는 다시 몸을 굽혀 여왕실로 나 있는 긴 수평통로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똑바로 설 수 있었다. 공기가 텁텁해서 에리카는 세티 1세 무덤에서의 그 불편했던 느낌을 떠올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을 모으려고 해보았다. 방에는 피라미드의 내부벽이 모두 그렇듯 장식이 없었다. 그녀는 플래시를 꺼내어 방 주위를 쭉 비춰보았다. 지붕은 거대한 석회암 슬라브로 둥근 아치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에리카는 베데커여행안내서를 펼쳐 피라미드의 구조도를 보았다. 그녀는 건축가인 네네프타가 살았던 시대에도 이 구조물이 천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그 같은 건축가가 만약 그레이트 피라미드 안에 있다면 무엇을 생각했을까를 상상해보려 애썼다. 구조도에 의하면 여왕실은 원래의 묘실 바로 위인 왕실 아래에 있었다. 묘실이 좀더 높은 곳으로 옮겨진 것은 피라미드의 세 번째 변형 즉 마지막 변형 때였다. 새로운 방은 '왕실'로 표시되어 있었고 에리카는 그곳을 가볼 때가 되었다고 결정하였다. 그랜드 갤러리로 돌아가려고 낮은 통로로 몸을 구부렸을 때 에리카는 한 형체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다. 그 좁은 통로에서 서로 비껴가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다렸다. 비상구가 순간 막히는가 싶더니, 그녀는 밀실공포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갑자기 그녀는 그녀 위에 있는 수천 톤의 바위가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쉬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에게, 그냥 빈방이잖아." 금발의 미국여행객이 투덜거렸다. 그는 '블랙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씌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터널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랜드 갤러리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녀는 뚱뚱한 독일 남자 뒤로 가서 위쪽으로 올라가 '왕실'에 이르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거기서 그녀는 낮은 벽 아래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격자문을 봉하기 위한 홈통들이 보였다. 에리카는 약 15x30피트쯤 되는 분홍 화강암의 방으로 들어섰다. 지붕은 수평으로 놓여진 아홉 개의 슬라브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정교한 무늬의 장례용침대가 심하게 파손된 채 있었다. 방 안에는 스무 명쯤 되는 사람이 있었고 공기는 답답했다. 다시 한 번 에리카는 그 구조물이 어떻게 해서 도굴꾼들에게 길을 제시했을까를 상상해 보려 했다. 그녀는 격자문의 연대를 조사해 보았다. 어쩌면 그것이 네네프타가 의미한 것인지도 몰랐다. 화강암을 사용한 무덤폐쇄. 하지만 격자문은 많은 피라미드에 사용되었다. 격자문에 관한 한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독특한 점이 없었다. 더구나 격자문은 스텝 피라미드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네네프타는 그 '길'은 두 군데 모두 사용되었다고 말했었다. 왕실은 큰 규모의 방이었지만 위대한 파라오인 쿠푸의 수장품을 모두 저장할 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 에리카는 다른 방들이 아마도 파라오의 보물들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 그녀 밑에 있는 여왕의 방은 특히 그랬을 것이며, 어쩌면 많은 이집트학자들이 오르막길을 위해 봉합벽돌을 저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랜드 갤러리조차도 그랬을 것이었다. 에리카는 네네프타의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또다른 많은 미스테리를 품은 채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묵묵히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왕실로 몰려들었고, 에리카는 자신에게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안내책자를 덮어 버렸지만 방을 떠나기 전에 장례용 침대를 한번 보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방을 가로질러 가서 그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장례용침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거기에 원산지, 연대 그리고 목적에 관한 상당한 모순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왕족의 관을 놓기에는 너무 작아서 많은 이집트학자들은 그것이 장례용침대가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스 바론......" 높은 톤이었지만 울리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에리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을 죽 둘러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아래 쪽을 보았다. 천사같이 생긴 열살 쯤 된 소년이 진흙투성이가 된 갈라비아를 입고는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바론 양이시지요?" "맞는데." 머뭇거리며 그녀는 대답했다. "큐리오 골동품상에 가서 상을 보셔야 해요. 오늘 꼭 가보셔야 해요, 꼭 혼자서요." 소년은 휙 돌아서서 사람들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기다려." 에리카는 소리쳤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나가 그랜드 갤러리 쪽으로 난 경사길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이미 길의 4분의 3쯤을 내려가 있었다. 에리카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손잡이는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다루기가 더 어려웠다. 소년은 아무 어려움도 없는 듯 재빨리 오르막 통로의 문쪽으로 사라졌다. 에리카는 속력을 늦춰 천천히 내려갔다. 그녀는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소년이 전한 말을 생각하자 흥분의 물결이 밀려옴을 느꼈다. 큐리오 가게라! 그녀의 책략은 성공했다. 그녀는 상을 찾은 것이다! 룩소르, 오후 12시 라히브 자이드는 누군가가 자기의 발을 심하게 잡아당기고 있음을 느꼈다. 에반젤로스는 그의 멱살을 힘차게 움켜잡았다. "그녀는 어디 있지?" 겁에 질린 아랍인의 얼굴에 대고 그는 윽박질렀다.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는 셔츠의 윗단추를 풀어헤친 캐주얼 차림이었는데 살펴보고 있던 작은 금동모형을 내려놓고 두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라히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녀가 너희 가게에 들어와 세티상을 요구한 사실을 내가 알고 난 후, 그녀가 어디있는지 말해주기를 왜 꺼리는 거지?" 라히브는 공포에 질려 있었고 무하마드와 스테파노스 중 누가 더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지조차도 확신을 못했다. 그러나 에반젤로스의 손가락이 그의 갈라비아 위를 세게 누르는 것을 느끼자 그는 스테파노스라고 결정을 내렸다. "좋소, 말해주겠소." "그를 놔 줘, 에반젤로스" 에반젤로스가 그의 멱살을 갑자기 놓는 바람에 라히브는 비틀거린 후에야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래?" 스테파노스가 물었다. "그녀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숙박하는 곳을 알고 있고. 그녀는 윈터팰리스호텔에 머물고 있소. 하지만 마큘리스, 지금 누군가 그녀 뒤를 봐 주고 있어요. 우리가 알아보겠소." "내가 그녀를 돌봐주고 싶군."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걱정할 것 없어. 작별인사를 하러 다시 올 테니까. 도와줘서 고맙네." 스테파노스가 에반젤로스에게 몸짓을 하자 두 사람은 가게를 빠져 나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라히브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그는 문쪽으로 달려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여기 룩소르에 이제 큰 문제가 있을 게다." 두 명의 그리스인이 사라지자 라히브는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 오후, 네가 어머니와 누나를 아스완에 데려다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미국인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즉시 너와 합류하겠다. 지금 바로 가거라."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는 에반젤로스를 윈터팰리스호텔 바깥 로비에서 기다리도록 하고는 접수 데스크 쪽으로 다가갔다. 직원은 잘생긴 누비아인으로 흑단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 에리카 바론 양이 묵고 있나요?" 스테파노스가 물었다. 직원은 투숙객 명단으로 몸을 돌려 그녀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예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좋아요. 메시지를 좀 남기고 싶은데요. 펜과 종이를 쓸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직원은 공손하게 스테파노스에게 펜과 종이를 주었다. 스테파노스는 메모를 적는 척했다. 대신 그는 펜을 마구 갈겨쓰고서 메모지를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는 직원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직원은 그것을 218호 박스에 집어넣었다. 스테파노스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에반젤로스에게 갔다. 그들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218호 문을 노크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스테파노스는 에반젤로스에게 자물쇠를 손보게 하고 자신은 주위를 살폈다. 구식 자물쇠라 다루기가 쉬워, 마치 진짜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빨리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테파노스는 문을 잠그고 방을 둘러보았다. "찾아보자." 그가 말했다. "그 다음에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즉시 그녀를 죽여야 하나?" 에반젤로스가 물었다. 스테파노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우리는 그녀와 잠시 얘기를 할 거야. 그저, 내가 얘기를 좀 하지." 에반젤로스는 웃으며 장농의 제일 윗서랍을 당겨 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옷가지 속에 에리카의 나일론팬티가 있었다. 카이로, 오후 2시 30분 "확실하오?" 이본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라울은 보던 책에서 눈을 떼었다. "거의 확실해요." 이본의 놀라는 모습을 즐기며 에리카는 말했다.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 메시지를 받은 후 에리카는 이본은 만나야겠다고 결정했다. 이본은 그 상에 대해 기뻐할 것이고 기꺼이 그녀를 룩소르로 데려가 줄 것임을 알았다. "못 믿겠군." 파란 눈을 반짝이며 이본이 말했다. "그들이 당신에게 세티상을 보여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소?" "내가 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당신은 정말 대단하구려." 이본이 말했다. "난 상을 찾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소. 그런데 당신이 먼저 해냈구려."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글쎄요. 아직 상을 본 건 아니에요." 에리카가 말했다. "오늘 오전 중으로 큐리오 골동품상에 도착해야 해요. 그것도 저 혼자서요." "우린 한시간 내로 떠날 수 있소." 이본은 전화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상이 룩소르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어쩐지 좀 의심스러웠다. 에리카는 일어나 몸을 쭉 뻗었다. "나는 밤새 기차에 있었어요. 상관없다면 샤워 좀 하고 싶은데요." 이본은 옆방쪽으로 손짓을 해보였다. 이본이 그의 비행기 조종사와 이야기하는 사이, 에리카는 자신의 큰 가방을 집어들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이본은 이동에 대한 계획을 마무리지었다. 샤워소리를 체크하고 나서 라울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던 기회가 이건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극도로 조심해야 돼.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칼리파에게 의존해야 되는 때야. 그에게 연락해서 여섯 시 반쯤 도착할 거라고 알려줘. 그리고 에리카가 오늘 저녁 우리가 원하는 사람들과 만날 거라고 말해줘. 분명히 무슨 문제가 생길 테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녀가 죽으면 그도 끝장이라는 사실도." 작은 비행기는 가볍게 오른쪽으로 선회하며 우아하게 날았다. 비행기는 룩소르 북쪽 5마일 근방에서 크게 커브를 돌아 나일강 계곡 위로 날았다. 1,000피트 정도를 뚫고 지난 다음 정북방향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이윽고, 이본은 속력을 줄여 기수를 잡아당기고 공기쿠션으로 부드럽게 착륙을 시도했다. 엔진의 역추진장치가 작동되어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더니, 아래로 내려가 잠깐 사이에 활주속도로 떨어졌다. 이본은 조종사에게 조종을 맡기고 조종사가 공항쪽으로 활주해 가는 동안 다시 에리카에게로 와서 얘기를 시작했다. 비행석을 에리카 쪽으로 돌리며 "이제 한번 더 확인합시다."하고 이본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진지해서 그녀는 불안해졌다. 카이로에서 세티상을 보러 가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었지만 여기 룩소르에서는 겁이 났다. "도착하는 즉시 택시를 나누어 타고 당신은 큐리오 가게로 곧장 갔으면 하오. 라울과 나는 뉴윈터팰리스호텔 200호실에서 기다리겠소. 하지만 세티상은 가게에 없을 것이 확실하오." 에리카는 그를 쏘아보았다. "거기에 없을 거라니, 무슨 뜻이지요?" "아주 위험할 거요. 세티상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소. 그들이 당신을 거기로 데려갈 거요.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오." "그 상은 압둘에게 있었잖아요." 에리카가 따지듯 물었다. "그건 요행이었소." 이본이 말했다. "상은 운반중이었소. 이번에는 그들이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그 상을 보여줄 거요. 어딘지 정확히 기억하도록 해요. 그러면 당신은 되찾을 수 있소. 상을 보게 되면 당신이 그들과 흥정하기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당신을 의심할 거요. 하지만 나는 그들이 이집트 밖으로 운반해준다는 보장만 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소." "취리히 신용은행을 통해서요?" 에리카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소?" 이본이 물었다. "그 방법으로 큐리오 골동품상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죠." "어떻게?" 이본이 물었다.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어쨋든 아직은 아니에요." "에리카, 이건 게임이 아니오." "예, 저도 알아요. 이건 게임이 아니에요." 그녀는 발끈해서 말했다. 이본은 그녀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는 게 말하지 않으려는 이유예요." 이본은 당황해서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좋소." 그는 결국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가능한 한 빨리 호텔로 돌아오길 바라오. 우리는 상이 다시 지하로 가게 할 수는 없소. 그들에게 말해 주오. 돈은 24시간 이내에 송금할 거라고 말이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섯 시가 지났는데도 아스팔트에서는 여전히 열기가 뿜어 올라오고 있었다. 비행기가 멈춰섰고 엔진이 꺼졌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좌석벨트를 풀었다. 사설비행장 근처에 있는 전방관측소에서 칼리파는 경비행기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에리카를 보자마자 그는 돌아서서 대기하고 있던 차쪽으로 재빨리 걸어가 오토매틱을 점검하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오늘밤 일당인 200달러를 벌 것은 확실하다. 그는 기어를 넣고 룩소르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윈터팰리스호텔의 에리카 방에서 에반젤로스는 왼쪽 팔 아래서 자신의 베레타 권총을 꺼내 상아색 핸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 좀 치워." 침대에서 스테파노스가 그것을 낚아챘다. "니가 그걸 만지고 있는 걸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제발 긴장 풀어. 그 여자는 나타날 거야. 짐이 모든 여기 있잖아."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에리카는 잠깐 호텔에 들를까 생각했다. 카메라와 여분의 옷을 굳이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라히브 자이드가 가게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이본이 제안한 대로 곧장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운전수에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샤리 엘 문타즈에 차를 멈춰 세우도록 했다. 큐리오 골동품상은 반 블럭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에리카는 긴장이 되었다. 이본 때문에 이 일에 대해 품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세티상 때문에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것을 보러 가면 무슨 일을 겪게 되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가게가 여행객들로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쳐갔다. 가게 몇 개를 내려가다가 그녀는 멈춰서서 입구를 돌아다보았다. 곧 독일인 무리가 나타나더니 시끄럽게 농담을 하면서 늦은 오후의 쇼핑객과 배회객 사이에 끼어들었다. 때는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들어간다. 에리카는 오무린 입술 사이로 숨을 내쉬고 가게를 향해 성큼 발길을 옮겼다. 한참을 망설인 후 들어갔을 때 라히브 자이드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의욕에 넘치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데 놀랐다. 그는 카운터 뒤에서 나오며 에리카가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반갑게 맞았다. "바론 양, 다시 보게 되어 기쁩니다. 너무나 반갑군요." 에리카는 처음에 미심쩍었지만 라히브의 환대가 다정해 보여서 그가 포옹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차 좀 드시겠어요?" "아뇨. 괜찮아요. 소식 듣고 가능한 빨리 왔습니다." "아, 예." 라히브가 말했다. 그는 흥분해서 손뼉을 쳤다. "그 상 말이군요.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정말 놀라운 것을 보게 될 거요. 세티 1세상은 당신 키만큼이나 크다오." 라히브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키를 어림해보았다. 에리카는 그가 그렇게 들떠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그녀가 좀전까지 품고 있던 불안감을 멜로드라마의 유치한 감정으로 만들어버렸다. "세티상은 여기 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가씨, 아니에요. 우리는 문화재당국이 모르게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오." 그는 윙크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해요.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크고 엄청난 물건이기 때문에 여기 룩소르에 감히 둘 수가 없소. 그건 지금 서부제방에 있지만 당신측이 원하는 장소가 어디이건 운반해 줄 수가 있소." "어떻게 하면 그 상을 볼 수 있지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주 간단하지요. 하지만 먼저 당신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이런 종류의 물건은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요. 만약 다른 사람과 동행한다면, 아니 누가 미행이라도 한다면 그걸 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아시겠죠?" "예." 에리카는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나일강을 건너 택시를 잡아 쿼나라는 작은 마을로 가는 겁니다. 그 마을은......" "저도 그 마을을 알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럼 일이 더 쉽게 되겠군." 라히브는 웃었다. "그 마을에 작은 사원이 있어요." "예, 알아요." "놀랍군요. 그럼 아무 문제도 없어요. 오늘 저녁 어둑해질 때쯤에 그 사원에 도착하도록 해요. 나 같은 중간상인 한명이 당신을 만나 그 상을 보여줄 겁니다. 아주 간단해요." "좋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또 한 가지." 라히브가 말했다. "서부제방에 다다르면 택시를 대절해서 마을 아래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돈을 좀더 얹어주면 돼요. 대절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배 잡기가 힘들거요." "감사합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라히브의 배려가 그녀를 기쁘게 했다. 라히브는 에리카가 샤리 엘 문타즈를 걸어내려가 윈터팰리스호텔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한번 돌아보자 그는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재빨리 가게 문을 닫고 나무덮개로 막아버렸다. 마루청 밑 후미진 곳에 그는 자신의 가장 훌륭한 골동품과 고대자기들을 숨겼다. 그런 다음, 그는 뒷문을 닫고 역을 향해 떠났다. 그는 아스완행 7시 기차를 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에리카는 강가를 따라 호텔 쪽으로 가면서 큐리오 골동품상에 들르기 전보다 기분이 훨씬 좋아진 걸 느꼈다. 무슨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은 빗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라히브 자이드는 다정하고 솔직하고 사려깊었다. 그녀의 유일한 실망은 저녁이 될 때까지 세티상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에리카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일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보았다. 호텔로 돌아가 쿼나에 가기 전에 청바지로 갈아 입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현대식 도시에 둘러싸인 장엄한 룩소르의 사원이 가까워졌을 때 에리카는 갑지가 멈춰섰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만약 미행당하고 있다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그 남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보행자가 있었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매부리코 사내는 없었다. 에리카는 다시 한번 시간을 체크했다. 만약 미행당하고 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어야 했다. 다시 뒤로 돌아 그녀는 얼른 입장표를 끊어 전면의 탑문 사이로 난 통로를 가로질러 갔다. 두 겹으로 늘어선 파피루스 기둥으로 둘러싸인 람세스 2세의 전당에 들어가자, 그녀는 오른쪽으로 돌아 아몬신을 모신 작은 사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사람과 입구를 둘 다 지켜볼 수 있었다. 스무 명쯤 되는 사람이 왔다갔다 하면서 람즈 2세상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에리카는 15분 정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당 안을 힐끗 보니 양각으로 새긴 부조가 보였다. 그것들은 람즈 2세 시대에 새겨진 것이었고 아비도스에서 보았던 작품의 질보다 못하였다. 그녀는 아몬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에리카가 다시 사원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칼리파가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 5피트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탑문 주변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도 역시 놀랐다. 그는 손을 자켓 속으로 넣어 피스톨을 쥐었지만 곧 얼굴에 미소를 띄우려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가 버렸다. 에리카는 눈을 깜빡거렸다. 충격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사당에서 뛰어나와 두 겹의 기둥들 뒤쪽의 복도를 내려다보았다. 칼리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방끈을 잡아당겨 어깨에 메고 에리카는 사원 마당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곤경에 빠져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미행자가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일강을 따라 나 있는 둑에 다다랐다. 그녀는 그를 따돌려야 했다. 시간을 체크해 보니 부족했다. 칼리파를 따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쿼나에 도착해서 왕의 계곡으로 가는 산마루 너머로 가는 때뿐이었다. 에리카는 반대 루트를 이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왕의 계곡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마을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부탁하고 오솔길을 따라 쿼나마을로 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우스꽝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칼리파가 왕의 계곡으로 그녀를 따라오지 않을 유일한 이유는, 그는 그녀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고 있어 굳이 힘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러석은 자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칼리파를 정말 따돌릴 것이라면 그건 군중들 사이에서여야 했다. 다시 한 번 시간을 체크하고 나자 그녀에게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시간의 거의 7시였다. 7시 30분에 카이로로 가는 열차가 있었다. 어젯밤 그녀가 탔던 열차도 바로 그것이었다. 역과 플랫폼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그것은 이제껏 그녀가 생각해 낸 것 중 최고였다. 유일한 문제는 이본과의 연락이 끊기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역에서 이본에게 전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리카는 큰소리로 택시를 불렀다. 그녀가 예상한 대로 역은 여행객들로 붐볐고 그녀는 간신히 매표구에 다다랐다. 그녀는 꽥꽥거리는 닭들로 가득찬 닭장더미를 지나쳤다. 염소와 양 무리가 기둥에 메어져 있었고, 아파서 우는 소리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먼지투성이의 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낙 함마디로 가는 1등석 편도표를 끊었다. 7시 17분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것은 매표구에 이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에리카는 뒤쪽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밀고 끼여서 비교적 조용한 일등석칸 주변에 겨우 다다랐다. 그녀는 차표를 차장에게 건네고 2번칸에 올랐다. 7시 23분이었다. 에리카는 곧장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은 잠겨 있었다. 반대편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녀는 3번칸으로 가서 서둘러 중앙복도를 내려갔다. 화장실은 비어 있었고 그녀는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가능한 한 악취를 맡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면바지를 벗었다. 그러고 나서 팔뚝에 걸쳐놓았던 청바지를 꺼내 갈아입었다. 7시 29분이었다. 휘슬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에 떨며 파란 블라우스로 갈아입고 서둘러 화려한 머리를 올려 카키색 선캡을 머리에 눌러썼다. 거울을 보면서 그녀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기를 바랐다. 그런 다음 화장실을 나와 말 그대로 뛰어서 다음 칸으로 갔다. 2등석 칸이었기 때문에 더욱 붐볐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채였고 머리 위 그물에다 소지품들을 올려놓느라 분주했다. 에리카는 계속해서 칸을 옮겨갔다. 3등석 칸에 왔을 때, 그녀는 닭과 소들 때문에 더 이상 옮겨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깥을 보면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무리를 셈해 보았다. 7시 32분이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플랫폼에 내려섰을 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몇몇 사람들은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에리카는 플랫폼에서 역사쪽으로 걸어가며 우선 칼리파를 찾아보았다.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리카는 사람들에 밀려 거리로 나왔다. 일단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서둘러 건너편에 있는 작은 카페로 가서 역이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거피를 주문하고 역입구를 주시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거칠게 사람을 밀치며 칼리파가 역에서 뛰쳐나왔다. 그녀가 앉아 있는 곳에서 보아도 그가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얼른 택시를 잡아 나일강 쪽으로 향한 샤리 엘 마하타로 향했다. 그녀는 단숨에 커피를 마셨다. 해는 졌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서둘러 가방을 메고 카페를 나왔다. "맙소사." 이본이 소리쳤다. "왜 내가 당신에게 하루에 200달러 씩이나 주고 있는건지 잊었소? 말좀 해보시오." 칼리파는 미간을 찌푸리고 왼손의 손톱을 보고 있었다. 칼리파는 이런 장광설을 참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와의 계약은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에리카 바론은 자신을 속였지만, 그는 좀처럼 미행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면 오래 전에 죽었을 것이다. "좋소." 이본이 가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라울은 자신이 칼리파를 추천했기 때문에 칼리파보다도 더 책임감을 느꼈다. "한 사람 보내서 기차를 추적해야 합니다." 칼리파가 말했다. "그녀는 낙 함마디행 티켓을 샀지만 실제로 그곳에 갔다고 생각지는 않소. 단지 나를 따돌리려 했을 뿐일 거요." "좋소, 라울. 기차를 추적해." 이본은 단호히 말했다. 라울은 할 일이 생긴 것을 반가워하며 전화쪽으로 갔다. "잘 들어. 칼리파." 이본이 말했다. "에리카를 놓침으로 해서 모든 계획이 곤경에 빠졌소. 그는 큐리오 골동품상에서 지시를 받았소. 거기로 가서 그녀를 어디로 보냈는지 알아오시오.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 않겠소. 지금 당장 말이오." 한마디 말도 없이 칼리파는 몸을 기대고 있던 장농에서 떨어져 나와 호텔을 나섰다. 그는 가게주인을 죽이지 않는 한 그에게서 정보를 캐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에리카가 길에서 긴 언덕을 따라 올라왔을 때 높이 솟은 사암절벽 아래 쿼나마을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언덕 밑에는 그녀가 저녁나절 동안 세낸 택시가 문을 열어놓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안뜰에는 마른 쇠똥을 연료로 태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로테스크한 여름 원두막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에리카는 그것들이 지어진 이유를 기억해 내고는 - 코브라와 전갈 때문이었다 - 밤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흰색 회칠이 되어 있는 첨탑이 있는 사원은 어두워지자 은색으로 보였다. 그것은 약 100야드쯤 전방에 있었다. 에리카는 잠시 멈춰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계곡을 돌아보니 룩소르의 불빛 중 높이 솟은 뉴윈터팰리스호텔의 불빛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화려한 불빛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아불하가그 사원 지역에 비쳤다. 그녀가 계속해서 걸으려 하는데, 그녀 바로 앞 어둠 속에서 갑작스런 움직임이 있었다.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는 뒷걸음질치다가 하마터면 모래 속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녀가 막 뛰려 하자, 성난 그르렁거림에 뒤이어 짖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갑자기 개떼가 으르렁거리며 그녀를 둘러쌌다. 그녀는 몸을 굽혀 큰 돌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건 개들에겐 익숙한 동작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돌을 던지기도 전에 개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기 때문이다. 마을을 통과해 지나려 할 때 10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에리카 옆을 걸어갔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가운을 걸치고 한마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에리카는 낮에 쿼나를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밤에는 길을 잃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목쉰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더니 갑자기 뚝 그쳤다. 에리카는 걷고 있던 곳에서 산마루 높은 곳에 위치한 아이다 라만의 집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기름램프의 희미한 불빛이 창가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집 뒤에 솟은 산 위로 왕의 계곡에 이르는 오솔길 자국이 보였다. 사원까지는 50피트 정도가 남았다. 불빛이라곤 없었다. 그녀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녀는 자신이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저녁무렵이 아니었다. 이미 밤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 내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호텔로 되돌아가든지 아니면 아이다 라만의 집으로 찾아가서 자신이 파피루스에서 알아낸 것을 그녀에게 말해줘야 했다. 에리카는 멈춰서서 사원을 보았다. 그것은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라히브 자이드와 그의 허물없는 태도가 생각나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쪽을 향했다. 문은 천천히 열렸다. 안마당을 볼 수 있었다. 사원의 전면은 매혹적이었고 별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안마당은 거리보다 더 밝았다. 그녀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에리카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사원에서는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그녀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이라곤 가끔 아랫마을에서 나는 개짖는 소리가 전부였다. 마침내 그녀는 아치모양의 통로를 걸어내려갔다. 그녀는 사원 문을 밀어 보았다. 잠겨 있었다. 작은 주랑을 따라 걸어가면서, 그녀는 이맘의 뜰문을 노크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곳에는 인적이 없었다. 에리카는 안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그들은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거리로 난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장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는 다시 주랑 아래 쪽으로 되돌아와 앉아서 등을 사원의 앞쪽에 기대었다. 그녀 앞에는 검은 아치통로가 안마당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벽 너머 동녘 하늘은 달이 뜨려는 듯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뒤져 담배를 찾아냈다. 그녀는 용기를 북돋기 위해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이고 성냥불의 도움으로 시계를 보았다. 8시 15분이었다. 달이 떠오름에 따라 안마당은 그림자 때문에 반대로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에리카는 오래 앉아 있을수록 상상이 커져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을쪽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15분쯤 지나자 그녀는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나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런 다음 안마당을 건너 되돌아와 도로로 난 나무문을 잡아당겼다. "미슨 바론." 검은 버누스(두건 달린 아라비아 옷)를 입은 사람이 말을 했다. 그는 안마당 문 바로 바깥쪽의 지저분한 도로에 서 있었다. 그는 어깨에 달빛을 받고 있어서, 에리카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인사를 하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따라 오시지요." 그는 큰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예측컨대, 그 사람은 누비아 사람같았고, 그녀를 마을 위쪽에 있는 언덕마루로 인도했다. 그 두사람은 산에 난 많은 오솔길 중의 하나를 택해 걷고 있었고, 돌과 모래에 반사된 달빛 때문에 걷기가 수월했다. 그들은 무덤의 직사각형 입구를 지나쳐갔다. 누비아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고 산마루로 난 경사로에 이르러 멈춰서서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비탈 아래쪽에는 무거운 쇠격자로 닫겨진 입구가 있었다. 문에 37이라는 번호가 달려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당신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셔야 합니다." 누비아인이 말했다. 에리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쿼나 쪽으로 되돌아서 걸었다. 에리카는 그가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쇠문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돌아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누비아인은 이미 멀리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대로 있었다. 경사를 따라 내려가 에리카는 쇠문을 잡아서 흔들어 보았다. 37번호판은 덜컹 소리를 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겨 있었던 것이다. 에리카는 단지 벽에 붙어 있는 고대 이집트인의 장식품을 보았을 뿐이다. 다시 경사진 곳으로 올라오자 큐리오 골동품상에 들어가기 전에 느꼈던 것과 같은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그녀는 무덤의 입구에 서서 누비아인이 아래쪽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개가 짖었다. 그녀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녀는 뒤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금속성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공포 때문에 다리힘이 쭉 빠졌다. 다음 순간 그녀는 쇠가 갈리는 듯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뛰려고 했지만, 무덤에서 마술에 걸린 무엇인가가 뛰쳐나올 것 같은 상상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쇠문은 그녀 뒤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바론 양." 형체 하나가 비탈을 올라오며 말했다. 그는 아까 그 누비아인처럼 검은 버누스를 입고 있었지만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두건 밑에는 흰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제 이름은 무하마드 압둘라입니다." 그는 인사를 했고 에리카는 다소 평정을 되찾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상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당신이 당국의 미행을 받고 있지 않나 걱정스러웠던 겁니다." 에리카는 자신이 미행자를 따돌렸던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따라 오십시요." 그는 에리카 앞을 지나서 비탈을 따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리카는 아래쪽의 마을에 흘끗 마지막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아스팔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택시를 찾을 수 없었다. 무하마드를 따라잡으려면 서둘러 가야 했다. 그들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바닥에 다다르자 그는 왼쪽으로 돌았다. 바위표면을 올려다보려 했지만 그녀는 하마트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들은 50피트를 더 걸어서 커다란 둥근돌을 돌았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서둘러 무하마드의 뒤를 쫓아가야 했다. 바위 반대쪽에는 37번 무덤과 비슷한 경사가 있었다. 또 하나의 쇠격자문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숫자 번호판이 없었다. 그가 열쇠꾸러미를 더듬어 찾자 그녀는 그의 뒤에 멈추어 섰다. 그녀는 겁이 났지만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상이 이렇게 외진 곳에 보관되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쇠문은 돌쩌귀에 마찰되어 심한 쇳소리를 냈고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자......" 무하마드는 에리카에게 들어가라는 몸짓을 하며 간단히 말했다. 장식이 없는 무덤이었다. 그녀는 무하마드가 문을 닫는 것을 돌아보았다. 자물쇠가 채워지자 소리가 울렸다. 희미한 달빛이 쇠창살을 통해 들어왔다. 무하마드는 성냥을 켜고 그녀를 지나쳐 좁은 복도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무하마드 바로 뒤에 딱붙어 가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불빛이 드는 작은 공간에서 움직였고 그녀는 자신이 사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들은 곁방으로 들어갔다. 에리카는 벽에 있는 연한 선화를 알아볼 수 있었다. 무하마드는 몸을 구부려 성냥을 켜서 기름램프에 불을 붙였다. 불이 깜박거리며 붙었고 그림자가 벽에 있는 이집트 왕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예리한 금빛 반사광이 에리카의 눈을 사로잡았다. 거기에 있었다. 세티상의 윤택한 금빛이 램프빛보다 훨씬 강력하게 발산되었다. 경건함이 두려움을 압도해 에리카는 조각상 앞으로 걸어갔다. 희고 부드러우면서도 녹색빛이 나는 장석의 눈은 최면을 거는 듯해서 그녀는 간신히 눈을 떼어 아래쪽 상형문자를 보았다. 세티 1세와 투탄카멘의 상형문자가 있었다. 문구는 휴스턴상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투탄카멘의 뒤를 이어 통치한 세티 1세에게 영생을' "굉장하군요." 에리카는 진심으로 말했다. "얼마를 원하죠?" "우리는 다른 것도 있소." 무하마드는 말했다. "선택을 하기 전에 다른 것을 보여줄 테니 기다리시오." 에리카는 돌아서서 그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렸다. 무하마드가 두건을 벗자 턱수염과 금박한 이가 드러났다. 그는 압둘 함디를 죽인 살인자들 중의 한명이었던 것이다! "우린 옆방에 또 다른 상을 가지고 있소." 무하마드가 말했다. "가시지요." 그는 반쯤 고개를 숙이고 좁은 통로쪽으로 몸짓을 해보였다. 식은땀이 그녀의 몸을 오한에 떨게 했다. 무덤의 문은 잠겨 있었다. 그녀는 잠시 연극을 해야 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통로쪽으로 나갔다. 무덤 안쪽으로 더 깊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무하마드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어서 가시죠." 그는 점잖게 말하면서 그녀를 앞쪽으로 밀었다. 경사진 통로 아래로 내려가자 그들의 그림자가 벽에서 그로테스크한 모양으로 춤을 추었다. 앞쪽에서 에리카는 통로의 양쪽면이 넓으면서 후미진 곳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한 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올라와 움푹 패인 그곳에 서 있었다. 에리카는 기둥을 지나치면서, 그 기둥은 거대한 돌격자문을 받치고 있는 것임을 감지했다. 바로 그 너머에서 통로는 끝났고 바위를 깎아 만든 층계가 아래쪽 어둠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더 남았죠?"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이제 다 왔습니다." 빛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에리카의 그림자는 그녀 앞에 있는 층계로 드리워져서 시야를 가렸다. 그녀가 등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것이 무하마드의 손 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무하마드가 그의 발을 그녀의 등에 조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에리카가 계단 벽으로 손을 내뻗으려고 하는 순간의 일이었다. 일격을 받고 그녀는 자빠져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엉덩이를 땅에 찧었지만 계단이 워낙 가파라서 어둠속으로 계속해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무하마드는 재빨리 기름램프를 내려놓고, 후미진 곳에서 커다란 돌망치를 꺼냈다. 그는 몇번이고 세차게 내리쳐서 그 받침기둥을 제거한 후, 균형을 잡고 있던 격자문을 작동시켰다. 느린 동작으로 45톤의 석회벽돌은 약간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다가 고대의 무덤을 봉했던 틈을 메우며 제자리에 가서 박혔다. "낙 함마디에서 내린 미국인 여자는 없습니다." 라울이 말했다. "그리고 에리카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기차에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속인 것 같습니다." 그는 발코니로 향하는 문에 서 있었다. 강 건너 달빛이 무덤너머에 있는 산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본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앉아 있었다. "나는 항상 성공의 문전까지 갔다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걸 보아야 하는 운명인가?" 그는 칼리파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위대하신 칼리파는 무엇을 알아내셨나요?" "큐리오 골동품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른 가게들은 여전히 열려서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에리카가 떠난 뒤 바로 문을 닫은 것이 분명합니다. 주인 이름은 라히브 자이드인데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끈덕지게 물었는데도요." 칼리파는 미소지었다. 이본은 혼자 남게 되자 발코니로 나갔다. 밤은 평화롭고 포근했다. 식당에서 울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야자나무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는 작은 테라스를 초조하게 왔다갔다 했다. 에리카는 계단 바닥에서 한쪽 다리를 겹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손을 심하게 긁힌 것을 제외하면 다친 곳은 없었다. 가방 안에 있던 소지품은 대부분 쏟아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캄캄한 어둠에서 주변을 둘러보려 애썼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신의 손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 먼 사람처럼 가방을 더듬어 플래시를 찾았지만 플래시는 없었다. 그녀는 손과 무릎을 힘겹게 움직여 바닥돌을 더듬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찾아냈다. 특별히 손상된 곳은 없는 듯했다. 안내책자도 찾아냈지만 플래시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힘껏 벽을 두들겨보다가 겁이 나서 움찔했다. 그녀가 예전에 뱀, 전갈을 보며 느꼈던 공포가 돌연 그녀를 괴롭혔다. 아비도스에서 본 코브라 이미지도 갑자기 떠올랐다. 벽을 더듬어가다가 모퉁이에 다다르자 그녀는 그것이 층계로 난 길임을 느꼈고 거기서 담배 한 갑을 발견해 냈다. 셀로판 커버 속에서 성냥 한 갑이 잡혀졌다. 에리카는 성냥을 그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10평방미터쯤되는 정사각형 형태의 문이 두개 있는 방에 갇혀 있었고, 그녀 뒤쪽으로는 계단이 나 있었다. 벽은 석회칠이 되어 있었고, 고대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귀족무덤 중의 하나에 갇힌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벽쪽을 향해 에리카는 성냥불을 비춰 보았다. 성냥불이 다 타들어갔다. 그녀는 하나를 더 켜서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 걸어가다가 플래시를 찾아내었다. 앞쪽 유리가 깨지기는 했지만 전구는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생각도 않은 채 그녀는 즉시 계단 끝까지 올라가 플래시 빛을 격자문 주위로 비춰보았다. 그석회격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구멍에 끼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밀어보았다. 그것은 차가웠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산처럼. 다시 계단바닥으로 내려와 그녀는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측실로 난 두개의 문 중 왼쪽 것은 묘실로 이어져 있고 오른쪽의 것은 보관실로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먼저 묘실로 들어갔다. 부서진 석관만이 방에 있을 뿐이었다. 천장은 진청색으로 칠해져 수백개의 금빛 별 모양이 있었고, 벽은 '죽은 자의 책'에 있는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뒤쪽 벽을 보고서 에리카는 자신이 갇혀 있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파라오 아멘호텝 3세 시대의 서기이자 귀족이었던 아흐모제의 무덤이었다. 석관 주위로 플래시를 옮겨 비추자 에리카는 바닥 누더기 중앙에 누워 있는 해골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주저하며 가까이 가 보았다. 눈은 검게 패인 구멍이 되었고 아래턱은 탈골상태였으며, 입에는 비통함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빨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해골 위로 일어나며 에리카는 자신이 전신시체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신은 마치 잠을 자는 듯이 석관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에리카는 금빛이 반짝하는 것을 보았다. 주춤거리며 그녀가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들었다. 1975년 예일대학 반지였다. 몸을 떨며 그것을 제자리에 놓고 일어섰다. "옆방으로 가 보자구." 그녀는 짐짓 큰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기운을 북돋우려 했다. 그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살펴볼 장소가 남아 있을 때까지는 자신의 처지를 마음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객처럼 행동하면서 그녀는 옆방을 지나 마지막 방으로 갔다. 그 방은 묘실과 비슷한 크기였고, 돌 몇 개와 모래를 빼면 텅 비어 있었다. 장식도 옆방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품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오른쪽의 벽은 수확장면을 그리려고 한 듯 커다랗게 준비되어 있었고 형상들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거기에는 아래쪽에 상형문자를 적기 위해 마련해 둔 넓은 흰색의 석고밴드가 있었다. 방을 쭉 둘러 비추고 난 후, 에리카는 옆방으로 돌아갔다. 할 일이 다 떨어져 가자 차가운 공포가 표면에 떠올라 그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남은 소지품들은 주워 가방에 넣었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단을 올라 석회암 문이 있는 곳까지 갔다. 엄청난 밀실공포증이 밀려와서는 감정을 조절하려는 그녀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두손으로 돌을 밀어내려 했다. "살려줘요!" 그녀는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목소리는 돌표면에 부딪쳐 깊은 무덤에 메아리쳤다. 다시 침묵이 찾아들자, 엄청난 고요가 그녀를 숨막히게 했다. 공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석회암문을 힘껏 쳤다. 세게, 더 세게...... 고통스러웠다. 눈물이 넘쳐 흘렀지만 계속해서 돌을 쳐댔다. 흐느낌으로 몸이 떨렸다. 그녀는 지쳤고,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고립감이 그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올라 다시 한 번 흐느낌과 떨림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생매장된 것이었다! 자신이 처한 처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이자 에리카의 이성적 사고가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녀는 플래시를 집어들고 긴 돌계단을 내려와 곁방으로 갔다. 그녀는 이본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걱정하게 될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그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는 아마도 큐리오가게에 갈 것이다. 하지만 라히브 자이드는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까? 그녀가 대절한 택시운전사는 자신이 미국인여자 한 명을 쿼나까지 태워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고 신고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에리카는 이 두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이런 의문을 던지기만 했는데도 한가닥 희망이 생겨나 그녀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그녀는 플래시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스위치를 끄고 가방을 뒤져 성냥 세 갑을 찾아냈다. 충분한 양은 아니었지만 성냥을 찾다가 그녀는 우연히 붓펜을 발견했다. 펜을 만지다 보니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완성되지 않는 방에 기록을 남겨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감금한 자들이 그 중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상형문자의 형태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행동이 큰 의미가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해 볼만한 일이었다. 이미 공포는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런 절망을 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플래시를 바위에 받쳐놓고 에리카는 자신의 메시지를 적을 석고밴드를 나누었다. 간단할수록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띄어 쓸 칸을 정해놓고 그녀는 윤곽을 그려나갔다. 반쯤 완성되었을 때, 플래시가 갑자기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다시 환해지는가 싶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점점 더 희미해져서는 붉은 빛만 조금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곤경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성냥을 켜 상형문자 그리기를 계속하였다. 그녀는 왼쪽 벽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고 문장은 바닥에서 시작되어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아래쪽까지 기둥모양으로 씌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똑똑치 못해서 이런 심각한 곤경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 한번씩 눈물을 흘려야 했다. 모두 그녀가 이 일에 말려드는 것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녀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리석었다. 이집트학 공부는 그녀에게 범죄자들, 특히 무하마드 압둘라같은 이들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성냥도 겨우 한 갑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산소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새를 그리려고 바닥쪽 가까이로 몸을 구부렸다. 미처 윤곽을 그리기도 전에 갑자기 성냥이 꺼져 버렸다. 너무 빨리 꺼져버린 것이다. 에리카는 "이 망할놈의 어둠" 하며 욕을 해댔다. 그녀가 다시 하나를 켜서 윤곽을 그리려고 몸을 구부리자 또 곧바로 꺼져버렸다. 에리카는 세번째 성냥를 켜서 자신이 작업하고 있던 자리로 가져가 보았다. 불꽃은 잘 타다가 갑자기 바람 속에서처럼 흔들렸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자, 그녀는 바닥 근처 석회벽의 작은 수직틈에서 공기가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플래시는 아직도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에리카는 그것을 표적으로 하여 플래시를 받치고 있던 돌 중의 하나를 가져왔다. 그것은 석회암조각이었다. 아마도 석관뚜껑 조각이었으리라. 에리카는 그것을 틈새쪽으로 갖다놓고 성냥을 켰다. 그 힘없는 빛을 왼손에 쥐고 틈새가 있는 주변을 석회암으로 쳐 보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있는 힘껏 성냥불이 꺼질 때까지 쳤다. 그러고서 어둠속에서 감각으로 그 틈새의 위치를 찾아 1분도 넘게 미친듯이 내리쳤다. 마침내 조금 진정이 되자, 그녀는 다시 성냥을 켰다. 틈새가 있던 그 자리에 이제는 손가락을 집어놓을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그 크기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원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살피지도 않은 채 에리카는 그 작은 석회암으로 그 주위를 계속 찧었고, 그녀는 돌 아래쪽에서 희미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성냥을 켰다. 이제 틈은 바닥연결선과 아치 앞쪽에 있는 벽과 이어져 서서히 넓어지는 입구를 이루고 있었다. 에리카는 왼손에 성냥을 든 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찧었다. 갑자기 커다란 석회덩어리가 깨져서 없어져 버렸다. 잠시 후에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 구멍의 지름은 1피트쯤 되었다. 그녀가 성냥을 켜려 했지만 약한 바람이 자꾸 불을 꺼뜨렸다. 주춤거리며 그녀는 야생동물의 입속에 넣는 듯한 느낌으로 구멍에 손을 넣어보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석회표면을 느낄 수 있었다. 손바닥을 위로 돌리자 그녀의 손은 천정에 닿았다. 그녀는 자신이 있던 방 아래 비스듬하게 지어진 또 하나의 방을 발견했던 것이다. 의욕이 솟아 올라 그녀는 천천히 구멍을 넓히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성냥을 쓰고 싶지 않아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작업을 했다. 마침내 구멍은 그녀 머리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돌조각들을 옆으로 치운 후 그녀는 바닥에 몸을 구부려 머리를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돌조각들을 떨어뜨려 보아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 보았다. 방은 그리 깊지 않은 듯했고 바닥은 모래에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에리카는 성냥갑에서 성냥을 비워 빈 성냥갑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자, 그녀는 그것을 구멍 속으로 떨어뜨렸다. 불길은 꺼졌지만 연기와 타고 남은 불빛이 나선형을 그리며 내려 앉았다. 돌을 몇개 더 찾아서 머리를 구멍 속에 집어 넣고 여러 방향으로 던져서 방에 대한 감각을 좀 얻어낼 수 있었다. 방은 정사각형인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기쁘게 했던 것은 그 곳에는 계속적인 공기의 흐름이 있다는 점이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앉아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골몰했다. 만약 그녀가 발견한 방으로 내려간다면 다시 원래있던 이 무덤으로 되돌아 올 기회는 없어진다. 하지만 그게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정말 중요한 문제는 구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갖는 일이었다. 성냥도 이제 겨우 반 갑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가방을 집어들었다. 셋까지 세고 그녀는 구멍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삼켜 먹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아래로 몸을 내리자 발가락 끝이 부드러운 석회벽쪽에 닿았다. 다이빙 선수가 찬 물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처럼 에리카는 자신의 몸을 구멍을 통과해 검은 허공속으로 던졌다. 영원인 것 같은 순간 그녀는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떨어졌고 발을 먼저 바닥에 닿으려고 시도했다. 균형을 잃고 떨어졌지만 다친 곳은 없었고 자갈이 군데군데 깔려 있는 모래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을 때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발부리에 걸려 다시 균형을 잃고 기어 나갔다. 엄청나게 많은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손을 뻗치자 나무막대 같은 것이 그녀의 손에 닿았다. 그녀는 그것에 불이 붙기를 바라면서 집어들었다. 에리카는 겨우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녀는 성냥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기 위해 그 나무막대를 왼손으로 옮겨 집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막대 같지가 않았다. 두 손으로 자세히 만져보다가 그녀는 자신이 미라의 팔뚝을 쥐고 어둠속에서 그 거죽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역질이 나서 그것을 멀리 던져 버렸다. 에리카는 손을 털고 성냥을 주머니에거 꺼내 그었다. 먼지속에서 불빛이 앞쪽을 비추자, 그녀가 자신이 벗겨지고 아무 장식도 없는 벽에 미라로 가득한 지하묘지에 서 있음을 알았다. 시체는 부숴져서 동강이 나 있었고 귀중품들은 다 벗겨져서 무참하게 버려져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며 에리카는 천장 일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구석에서 낮고 어두운 문을 발견했다. 가방을 움켜쥐고 그녀는 무릎 깊이의 조각을 헤치며 나갔다. 성냥이 다 타들어가 그것을 흔들어 끄고 손으로 벽을 더듬어 옆방으로 갔다. 성냥을 켜자 그녀는 똑같이 그로테스크한 미라들로 가득찬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는 목이 베어져 미라로 만들어진 머리들로 꽉 차 있었다. 더 많은 묘지가 있다는 증거였다. 에리카 맞은 편 벽에는 두 개의 넓은 문이 있었다. 그녀는 방 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앞쪽에 성냥을 쥐고 더 작은 문쪽에서 공기가 들어오고 있다고 결정을 했다. 성냥은 꺼졌고 그녀는 손을 앞쪽으로 내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굉장한 진동이 있었다. 낙석이다! 에리카는 돌조각이 머리와 어깨에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붕괴되지는 않았다. 큰 진동 대신에 주변은 온통 먼지와 끽끽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무언가 에리카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것은 생물의 발톱이었다. 그녀가 손으로 그것을 쳤을 때 그녀는 날개를 느꼈다. 낙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청난 수의 박쥐였다. 그녀는 팔로 머리를 감싸쥐고 벽에 몸을 움추리며 기대 앉아 될 수 있는 대로 숨을 깊게 쉬었다. 점차 박쥐들은 조용해졌다. 그녀는 다음 방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에리카는 차츰 자신이 고대 테베 일반서민들 무덤의 미로에 빠져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하묘지는 수백만의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미궁형태로 산기슭쪽으로 파들어 갔다. 가끔은 뜻하지 않게 다른 무덤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아모제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었고 거기에 에리카는 갇혀 버린 것이었다. 석회로 발라져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버린 것이다. 에리카는 앞으로 나갔다. 박쥐가 있다는 것이 그녀를 두렵게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힘을 솟게 만들었다. 바깥과의 연결구가 있어야만 했다. 무심코 그녀는 미라 거죽에 불을 붙여 보았는데 굉장히 잘 탔다. 에리카는 싸여진 미라 조각들이 횃불처럼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몇 개를 집어들었다. 팔뚝 부분은 쥐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제일 좋았다. 좀더 나은 불빛을 가지고 그녀는 많은 방들을 지나 마침내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불을 끄고 에리카는 달빛을 받으며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무더운 이집트의 밤공기를 느꼈을 때 그녀는 무하마드와 함께 들어갔던 산에서 수백야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 바로 아래에 쿼나마을이 있었다. 마을에는 불빛이 거의 없었다. 에리카는 지하묘지 입구에서 몸을 떨며 달과 별에 대해 전에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마움을 느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장소와 마실 것이었다. 먼지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그녀는 목이 쓰렸다. 또한 그녀는 목욕을 하고 싶었다. 마치 그 경험들이 더럽게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다정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아이다 라만의 집이었다. 그녀는 산허리 쪽을 올려다 보았다. 창문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격리된 지하묘지에서 나와 에리카는 절벽바닥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녀가 룩소르로 되돌아올 때까지 무하마드나 누비아인의 눈에 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본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능한 한 자세히 상이 있는 곳을 말해주고 어서 빨리 이집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이미 겪을 만큼 겪은 것이다. 그녀는 아이다 라만의 집 바로 위에 다다랐다. 처음 100야드 쯤은 깊은 모래였고 그 다음은 성근 자갈밭이었는데, 밝은 달빛 아래에서 돌이 시끄럽게 움직여 그녀는 무서웠다. 마침내 집 뒤꼍에 도착했다. 에리카는 그늘에 숨어 잠시 기다리며 마을을 살펴보았다.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주변을 다 살피고 흡족한 마음으로 앞쪽으로 와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아이다 라만이 아랍어로 무어라 말했다. 에리카는 자신의 이름을 대며 얘기 좀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세요." 아이다의 단호한 목소리가 닫혀진 문을 통해 들렸다. 에리카는 놀랐다. 아이다는 정말로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저, 라만 부인." 그녀는 문을 사이에 두고 말했다.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요." 빗장이 끌리고 휙 문이 열렸다. 아이다 라만은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면드레스 차림이었다. "고마워요." 에리카는 말했다.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만 목이 몹시 말라서요." 아이다는 이틀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늙어 보였다. 활달한 유머감각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요. 하지만 여기 문에서 기다려요. 머무를 순 없어요." 라만 부인이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방안을 둘러보았다. 낯익은 광경들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선반에는 자루가 긴삽이 올려져 있고, 액자에 든 사진들이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하워드 카터가 터번을 두른 아랍인과 찍은 사진이 많았는데, 그 아랍인은 바로 라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액자와 액자 사이에는 작은 거울들이 있었는데 에리카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다 라만은 에리카가 처음 방문했을 때 대접했던 주스를 가져왔다. 에리카는 천천히 마셨다. 주스를 마시자 목이 따가웠다. "우리 가족들은 당신이 나를 속여 파피루스 내용을 알아냈다고 몹시 화가 나 있어요." 아이다가 말했다. "가족이라니요?" 에리카가 말했다. 주스를 마시자 몸이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는 부인께서 라만 가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예, 맞아요. 두 아들은 죽었지만 딸이 둘 있어요. 그 딸들에겐 또 가족이 있구요. 내가 당신이 왔었다는 사실을 말해준 사람은 내 손자녀석이지요. 그 아이는 화가 나서 파피루스를 가지고 가버렸어요." "그걸로 어떻게 했죠?" 놀라서 에리카는 물었다. "몰라요. 단지 그건 주의해서 다루어야 하니 자기가 안전한 곳에 두겠다고 했어요. 또 당신이 그걸 보아 파피루스의 저주를 받았으니 당신은 죽어야 한다고도 했지요." "그걸 믿으시나요?" 에리카는 아이다 라만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잘 모르겠어요. 그건 제 남편이 말한 것은 아니에요." "라만부인," 에리카가 말했다. "나는 그 파피루스를 모두 해독했어요. 당신 남편은 옳았어요. 그건 저주에 관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 파피루스는 파라오 세티 1세 시대의 건축가가 쓴 것이예요." 마을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뒤이어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가야 해요." 아이다 라만이 말했다. "내 손자가 돌아온 것 같아요. 가세요. 제발." "손자 이름이 뭐죠?" 에리카가 물었다. "무하마드 압둘라." 에리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그 아일 아세요?" 아이다가 물었다. "오늘밤 그를 만난 것 같아요. 그는 여기 쿼나에 사나요?" "아니오. 룩소르에 살아요." "오늘밤 그를 봤나요?" 초조해진 에리카는 물었다. "오늘 보긴 했지만 밤에는 아니에요. 제발, 가셔야 해요." 에리카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아이다보다 더 초조해 했다. 하지만 문가에서 그녀는 멈춰섰다. 어설픔 마무리는 새로운 문제의 시작인 것이다. "무하마드 압둘라의 직업은 무엇이지요?" 에리카는 압둘 함디의 비밀문서에 정부관리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음을 생각해 내었다. "네크로폴리스의 경비대장이에요. 그리고 그 애 아버지를 도와 왕의 계곡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대장이라면 지하시장 운영을 배후에서 지휘하기에 최적의 자리이다. 그러고 나서 에리카는 매점과 라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매점이란 당신 남편 사와트 라만이 지은 바로 그것 말씀이지요?" "예, 예, 바론양. 제발 어서 가요." 이제 모든 것이 명백졌다.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왕의 계곡에 있는 매점에 달려 있었다. "아이다." 그녀는 흥분으로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제 말 잘 들으세요. 당신 남편이 말한 대로 '파라오의 저주' 같은 것은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도와주신다면 제가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어요. 시간이 좀 필요해요. 제가 부인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한 가지, 제가 다시 와서 부인을 만났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그들은 묻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가 확신해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말씀만 안하시면 된다는 거예요. 제발 부탁이에요." 에리카는 아이다의 팔을 붙잡아 자신이 진지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당신은 내남편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나요?" "확실히." 에리카가 말했다. 아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참 또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에리카가 말했다. "플래시가 필요해요." "가진 거라곤 기름램프뿐인데." "그거면 좋아요." 에리카는 떠나면서 아이다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이다는 소극적으로 있다가 뒤로 물러났다. 기름램프와 성냥 몇 갑을 들고서 에리카는 집 그림자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았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달은 이제 서쪽 하늘에 걸려 있었다. 이틀 전에 왔던 그 길을 택해서 그녀는 산으로 올라갔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것이 찌는 태양 아래서 걷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에리카는 나머지 미스테리를 이본과 경찰에게 넘겨주겠다던 결심을 자신이 지금 깨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다와의 대화가 꺼져 버린 열정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아모제 무덤에서 나와 민간이 지하공동묘지로 간 것은 그녀에게 흩어져 있던 사건과 상에 새겨 있던 상형문자, 파피루스의 의미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무하마드 압둘라는 자신이 도망친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터이니 그녀는 안전한 것이다. 그가 아모제의 무덤을 살펴보고 싶다 해도 격자문을 들어올리는데 며칠이 걸릴 것이다. 에리카는 자신에게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왕의 계곡과 라만의 매점에 가보고 싶었다. 그녀가 옳다면 투탄카멘의 무덤이 그 중요성을 잃게 된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산마루 정상에 오르자 그녀는 멈춰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사막의 바람이 벌거벗은 정상 봉우리 사이로 소리를 내며 지나가 고독감을 더해 주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 어둡고도 황폐한 왕의 계곡에 이르는 길자국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지점을 볼 수 있었다. 매점과 휴게소는 작은 바위봉우리 위에 뚜렷하게 서 있었다. 그것을 보자 힘이 솟아난 에리카는 자갈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계속 나갔다. 그녀는 계곡에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그녀가 네크로폴리스의 노동자마을로 난 길에 들어서자 길이 평평해져서 걷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 두 무덤 사이로 난 정성스레 닦인 오솔길에 들어서기 전에 에리카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보았다. 가끔씩 바람소리와 박쥐가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리카는 계곡 중앙으로 걸어들어가 매점의 앞쪽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의 예상대로 매점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뒤로 돌아나가 베란다로 가서 투탄카멘 무덤과 세티 1세 무덤 그리고 매점이 만들어 내는 삼각구도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바위건물의 뒤쪽으로 돌아가 심한 냄새를 맡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다 라만이 준 기름램프에 불을 붙여 바닥선을 따라 살펴보았다. 구조에 있어 이상한 점은 없었다. 남자용화장실은 쏘는 듯한 지린내가 더욱 심했다. 그건 앞쪽 벽을 따라 구운 벽돌을 쌓아 만든 긴 변기에서 나는 것이었다. 변기통 위에는 베란다 쪽으로 확장된 2피트 높이의 수통이 있었다. 남자 화장실은 건물의 앞바닥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에리카는 변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수통의 입구는 어깨높이쯤에 있었다. 기름램프를 들고 입구 쪽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지만 빛은 단지 5-6피트 정도만 비출 수 있었다. 뚜껑이 열린 정어리캔과 병이 몇 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버려진 드럼통을 밟고 그녀는 그 수통으로 올라갔다. 구석에 가방을 놓았다. 널린 조각들을 피해가며, 그녀는 게처럼 기어가 앞쪽 돌벽에 닿았다. 화장실 냄새는 막힌 공간이라 더욱 심했고 에리카의 의욕은 빠르게 식어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에 그녀는 있는 힘껏 그 거친 돌벽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머리를 팔에 깊게 묻고서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영리한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한숨을 깊게 쉬고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쳐 화장실 쪽으로 기어나오려 했다. 한 손에 기름램프를 들고 있어 뒤쪽으로 나가려면 다른 한 손에 힘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아랫바닥에 힘을 주자 힘없이 흔들거렸다. 문득 무언가 좋은 단서가 바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눌러보자, 먼지 아래에서 매끄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에리카는 몸을 틀어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오른손은 금속질감이 나는 물질의 표면을 더듬고 있었다. 먼지를 좀 긁어내자 금속판이 나타났다. 그녀는 두손으로 램프를 잡고 아래를 비추어 바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철판 끝을 잡아 들어올리기 전에 그녀는 먼지를 제거해야 했다. 철판 아래에는 입구가 큰 통로가 바위 아래 쪽으로 나 있었다. 구멍 쪽에 불빛을 갖다 대고 살펴보자, 그것은 깊이가 4피트쯤 되고 건물 앞쪽으로 난 터널의 입구였다. 그녀가 옳았던 것이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만족감과 흥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하워드 커터가 1922년 11월에 느꼈을 감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자신이 있는 수통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다음 그녀는 몸을 돌려 낮은 구멍으로 구부렸고 램프로 터널입구를 비추었다. 터널은 아래쪽으로 경사를 이루다가 이내 넓어졌다. 깊게 숨을 쉬고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진짜 네 발로 기어가야 했지만 곧 그녀는 몸을 조금 구부리고 걸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가면서 길이를 가늠해 보고자 했다. 그 터널은 곧장 투탄카멘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시프 불로스는 인적 없는 왕의 계곡 유원지를 지나고 있었다. 그는 열일곱 살이었고 3명의 저녁조 경비대 중 제일 어렸다. 그는 걸어가면서 1차세계대전 중에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던 구식권총의 어깨띠를 치켜올렸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 계곡 끝쪽으로 올라갈 당번이 아니라 초소에 돌아갈 당번이었기 때문이었다. 초소에서는 쉴 수도 있고 마실 것도 있었다. 또 한 번 동료들이 그가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서 계곡순찰을 강요한 것이었다. 달빛이 환한 밤은 곧 그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어 이제는 좀 싱숭생숭할 뿐, 무언가 이 지루함을 없애줄 일이 일어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계곡은 조용했고 묘지는 모두 쇠문으로 굳게 닫혀져 있었다. 도둑이라도 하나 들어 권총을 쏘아보았으면 하는 그의 마음은 계곡에 들어온 도굴범들에 대항해 계곡을 지키는 환상 속으로 떠돌았다. 그는 투탄카멘의 무덤 입구를 지나다 멈췄다. 그는 그 무덤이 반 세기 전이 아니라 지금 발견된 것이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매점을 올려다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카터 기념일에 그곳에서 경비를 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란다 난간 뒤에 숨어 있었고, 그의 총 앞에 굴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무덤에 접근할 수 없었다. 위를 올려다보다가 나시프는 화장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에는 한번도 열려 있은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내곤 자신이 화장실 쪽으로 올라가야 할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계곡 쪽을 올려보다가, 돌아오는 길에 체크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자신이 체포한 사람들을 카이로로 이송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에리카는 자신이 투탄카멘 무덤에 아주 근접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짐작했다. 터널이 꾸불꾸분하고 울퉁불퉁해서 속도는 느렸다. 그녀 앞에서 왼쪽으로 급격히 꺾여서 모퉁이를 돌아서야 앞을 볼 수 있었다. 통로의 바닥은 아래로 급하게 경사져서 방으로 이어졌다. 거칠고 돌이 박힌 터널 벽에 손을 꽉 대고서 아래로 조금씩 움직여 가자 그녀의 발이 부드러운 바닥에 이르렀다. 그녀는 지하실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 에리카는 투탄카멘 묘의 측실 바로 아래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기름램프를 머리 위로 들어올려 매끄럽게 마무리는 되었지만 장식이 없는 벽을 두루 비추어 보았다. 그 방은 길이 25피트에 너비가 15피트쯤 되었고 천장은 거대한 라임빛 돌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에리카는 눈을 바닥으로 돌려 엄청나게 많은 해골들이 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어떤 것은 자연적으로 바싹 말라버린 조직이 덮여 있었다. 불을 좀 더 가까이 갖다 대자, 그녀는 둔중한 기구로 관통되어 완전히 부서져 있는 해골을 볼 수 있었다. "맙소사." 에리카는 낮은 소리롤 중얼거렸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녀가 지금 서 있는 방을 파던 고대노동자들의 대량학살의 흔적이었다. 천천히 그녀는 당시의 잔인성을 상기시키는 소름끼치는 방을 통과해 벽돌을 쌓아 만든 벽으로 이어진 긴 계단을 내려갔다. 라만에 의해 큰 구멍이 열렸고, 에리카는 또 하나의 훨씬 더 큰 방으로 들어갔다. 빛이 어둠을 꿰뚫자 에리카는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기대 섰다. 그녀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건축학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방은 4개의 육중한 정사각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벽에는 고대이집트 판테온의 형상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각 판테온 신들 앞에는 세티 1세의 형상이 있었다. 에리카는 파라오의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네네프타는 보물 한 개를 저장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또다른 무덤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주춤거리며 에리카는 앞으로 가서 세심하게 방에 보관되어 있는 수만 가지 물품 위로 기름램프를 비추었다. 투탄카멘의 작은 무덤과는 달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금도금이 되어 있는 전차는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 말에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는 것 같았다. 삼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흑단으로 상감이 되어 있는 큰 금궤와 금고가 오른쪽 벽에 쭉 늘어서 있었다. 중앙 기둥을 돌아보다가 에리카는 또 하나의 계단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 계단은 같은 크기의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거기 또한 보물로 가득 차 있었다. 통로가 몇개 더 있어 더 많은 방들과 연결되고 있었다. "맙소사!" 에리카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닌 놀라움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방향이 뒤죽박죽되어 위아래로 이어지는 광대하고도 복잡한 구조의 방에 있음을 알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물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죽 돌아보면서, 1800년대 말기에 발견되었지만 라술 일가에 의해 10년 동안 비밀리에 약탈된 그 유명한 디어 바흐러의 은신처를 상기했다. 바로 라만의 일가 그리고 압둘라 일가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명백했다.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 에리카는 멈춰섰다. 그 방은 다른 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어 있었다. 오시리스의 형태로 만들어진 흑단 돈궤가 네 개 있었다. 벽 장식은 '죽음의 서'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둥근 천장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금빛 별무늬가 있었다. 에리카 앞에는 벽돌로 주의깊게 쌓여 고대 네크로폴리스 봉인이 찍혀 있는 문이 있었다. 문 양 옆에는 초석이 있고, 그 앞면에 상형문자가 양각으로 깊게 새겨져 있었다. 에리카는 곧 그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투탄카멘 아래에서 쉬게 될 세티 1세에게 영생을!' 단번에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그 동사는 '통치하다(rule)'가 아니라 '쉬다(rest)'였으며, 전치사는 '후에(after)'가 아니라 '아래(under)'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 개의 세티상이 원래 있던 자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두 개의 상은 벽돌벽 앞에서 3,000년 동안 서로 마주보며 서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에리카는 자신이 강력한 통치자였던 세티 1세의 열리지 않은 묘실 입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단지 매장물을 발견한 것일 뿐 아니라, 파라오 무덤 전체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가 보았던 세티상은 투탄카멘 묘지에서 발견된 역청칠이 된 상과 마찬가지로 묘실을 지키는 수호상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세티 1세는 신왕조의 다른 파라오의 무덤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무덤에 묻힌 것이 아니었다. 그 것은 네네프타의 책략이었다. 가짜 세티 1세의 시신이 세티 1세 묘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묘에 묻혔고, 실제 세티는 투탄카멘 아래 있는 비밀묘지에 묻혔던 것이다. 네네프타는 양쪽을 다 기쁘게 했다. 전문 도굴범에게는 약탈할 수 있는 무덤을 제공했고 그가 모시던 왕에게는 다른 파라오들은 받지 못한 영원한 안식처를 바쳤던 것이다. 네네프타는 또한 누군가 투탄카멘의 무덤을 도굴한다 하더라도, 그 무덤이 아래 있는 무수한 보물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된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는 '탐욕한 자들과 불손한 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램프를 흔들어 남은 기름의 양을 점검하고서 에리카는 나중에 다시 조사를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돌아서기가 싫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가며, 네네프타가 설계한 구조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실로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오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투탄카멘 무덤에 파피루스를 남겨 놓은 것은 그가 애써 만든 계획의 최대 실수였다. 파피루스는 자신만큼 똑똑했던 라만에게 그 미스테리를 풀 열쇠를 제공했다. 에리카는 그 아랍인이 그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레이트 피라미드에 갔었는지 아닌지, 그는 그 묘실이 다른 묘실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귀족의 무덤 하나를 팠다가 우연하게 그 아래 있는 무덤을 발견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좁은 통로를 걸어 올라가며 수많은 발굴물들과 그에 따르는 엄청난 상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살인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에리카를 멈춰 세웠다. 얼마나 많은 살인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예일대 출신의 젊은이...... 갑자기 파라오의 저주라는 것과 연관된 의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마도 사람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해되었을 것이다. 로드 카나본도 그랬을까? 제일 윗방에 다다르자, 에리카는 멈춰서서 상아 돈궤에서 꺼내온 보석에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무덤의 건축학적 측면을 손상시킬까 두려워 아무 것도 만지지 않으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지만 이미 누군가의 손이 닿았던 것들을 만져보자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금 한덩어리로 만들어진, 세티 1세의 상형문자가 있는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이본과 아흐메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려 할 경우를 대비해 무엇인가를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팬던트를 가지고 불운했던 고대노동자들의 해골로 가득찬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널을 올라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마침내 그녀는 기름램프를 먼지 위에 놓고 매점 아래 있는 좁은 공간으로 몸을 잡아 빼었다. 그녀는 룩소르로 돌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자정을 막 지난 때여서 무하마드나 누비아인들에게 들킬 가능성은 적었다. 그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하마드 아래서 일하고 있는 정부경비대였다. 계곡으로 향하는 아스팔트 길에서 그녀는 언젠가 초소를 본 것이 기억났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도로를 따라 갈 수는 없었다. 쿼나로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좁은 공간에서 철판을 교묘히 처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에리카는 먼지 위로 철판을 끌어와 원래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나서 들어갈 때 보았던 정어리캔으로 먼지를 퍼서 철판 덮개를 덮었다. 나시프는 매점에서 백여 피트쯤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돌과 철판이 마찰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곧 어깨에서 총을 뽑아 들고 반쯤 열린 화장실로 뛰어갔다. 총 앞머리로 문을 완전히 밀어젖혔다. 달빛이 작은 입구에 비쳐 들었다. 에리카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손으로 기름램프를 껐다. 에리카는 남자 화장실 구석에서 10피트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는 눈은 재빨리 어둠에 익숙해져서 입구를 볼 수 있었다. 리처드가 그녀의 호텔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그녀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데 그 검은 형체는 살며시 들어왔다. 그 희미한 빛에서도 에리카는 권총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곧장 그녀쪽으로 움직이자 공포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는 먹이를 쫓는 고양이처럼 움직이며 몸을 구부렸다. 그 남자가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한 채 그녀는 바닥을 꼭 끌어안았다. 변기가 있는 벽에 다다르자 그는 그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멈춰섰고 몇 시간은 지났음직한 시간 동안을 서서 주의깊게 응시했다. 마침내 그는 다가와서 먼지를 한 줌 움켜쥐었다. 그는 팔을 세워 먼지를 움푹 들어간 곳에 던져넣었다. 먼지가 눈에 들어가 에리카는 눈을 감았다. 그는 계속 그 동작을 반복했다. 돌 몇 개가 아직도 드러나 있는 철판에 떨어져 잘그럭거렸다. 나시프는 몸을 세웠다. "빌어먹을!" 그는 중얼거렸다. 총을 쏠 만한 것이라곤 쥐새끼 한마리도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에리카는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그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깨에 총을 맨 채 어둠 속에서 그녀를 보며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에리카가 당황해 하고 있는데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펠리커 배의 돛에서 반사된 달빛은 에리카가 시계를 보기에 충분했다. 세벽 한 시가 지나 있었다. 나일강 건너의 길은 평탄해서 그녀는 졸음이 왔다. 강을 건너는 것은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그녀는 좀 쉬기로 했다. 룩소르는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발견의 흥분 때문에 무덤에서의 무시무시한 경험은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발견한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부제방을 돌아보자 에리카는 기뻤다. 그녀는 계곡부터 올라가기 시작해 쿼나의 잠든 마을과 밭을 지나, 나일강의 방둑까지 아무 문제없이 헤쳐온 것이다. 개와 마주쳤을 때는 단지 몸을 숙여 돌을 집어들었을 뿐인데 해결되었다. 그녀는 지친 다리를 쭉 뻗었다. 배는 바람을 맞으며 거슬러 올라갔고 에리카는 고개를 들어 별빛 가득한 하늘에 돛이 우아하게 꺾여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듣고 누가 좋아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본, 아흐메드, 리처드. 이본과 아흐메드는 감사해 할 것이고 리처드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조차도 진심으로 기뻐할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컨트리클럽에서 자신의 딸이 선택한 직업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부제방으로 돌아와 그녀는 윈터팰리스호텔 로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자 기뻤다. 그녀는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직원을 깨워야 했다. 잠자던 이집트인은 그녀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한마디의 말도 없이 열쇠와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직원이 그녀의 뒤를 눈으로 쫓으며 무얼했길래 저렇게 더러워졌을까 궁금해 하는 사이 그녀는 카페트가 깔려 있는 넓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에리카는 편지봉투를 내려다 보았다. 그것은 윈터팰리스호텔 사무용품으로, 볼드체 글씨로 수신자가 그녀로 적혀 있었다. 그녀는 복도에 다다랐을 때 손가락을 봉투 사이로 집어넣었다. 봉투를 찢어 열며, 그녀는 호텔 건축의 장식을 둘러 보았다. 문 앞에서 편지지를 펼친 것은, 자신의 방 열쇠를 꽂으려 했을 때였다. 편지지에는 아무런 뜻도 없이 무언가 휘갈겨져 있었다. 봉투 겉면을 다시 살피며 에리카는 그것이 장난인지 궁금했다. 만약 장난이라면 그녀는 그걸 이해하려 애쓰거나 뜻을 되새길 필요는 없었다. 그건 전화기를 들자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좀 맥빠지는 일이었다. 에리카는 방문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여행 중에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호텔은 절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아흐메드를 만났던 일과 리처드가 방으로 찾아왔던 일 그리고 누군가가 방을 뒤졌던 일들을 생각했다. 경각심을 새로 다지며 열쇠를 밀어넣었다. 그녀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녀의 현재 상태에서는 그 소리는 바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전부였다. 구멍에 열쇠를 꽂아둔 채로 그녀는 복도로 도망쳐 내려갔다. 서두르는 바람에 가방이 바닥에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녀는 뒤에서 방문이 안쪽으로부터 급하게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에반젤로스는 열쇠소리를 듣고 풀쩍 뛰어 문쪽으로 달려가며 "그녀를 죽여" 라고 스테파노스에게 말했다. 에반젤로스는 베레타 권총을 꺼내며 문을 획 열었고, 때마침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에리카는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방안에 누가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잠자는 직원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데스크에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뉴윈터팰리스에 있는 이본에게로 가야 했다. 그녀는 호텔 뒤로 뛰어나가 정원쪽으로 갔다. 에반젤로스는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공격할 때는 매처럼 날렵했다. 특히 집중할 때와 파괴의 명령을 받았을 때의 그는 미친 개 같았다. 에리카는 꽃밭을 가로질러 뛰어가 풀장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풀장을 돌아가려 했지만 젖은 타일 위에 미끄러져 옆으로 넘어졌다. 그녀는 가방을 버리고 다시 달렸다. 발걸음에 가속이 붙었다. 에반젤로스는 쉽게 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멈춰." 그는 소리를 지르며 권총을 에리카의 등에 겨누었다. 에리카는 별 수 없음을 알았다. 뉴윈터팰리스호텔까지는 아직도 50야드나 더 남아 있었다. 그녀는 멈춰섰다. 탈진상태였고 가슴이 막혀왔다. 다음 순간, 뒤로 돌아 자신을 쫓아오던 사람을 보았다. 겨우 30피트쯤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알 아자르 사원에서 보았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가 그날 당한 큰 상처는 이제 봉합되어 그를 프랑켄슈타인 괴물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총을 그녀에게 겨누고 있었고 총구멍은 방음장치에 숨겨져 있었다. 에반젤로스는 어떤 방식으로 에리카를 쏘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마침내 그는 총을 든 손을 쭉 내뻗어 에리카의 목을 겨누고 서서히 방아쇠를 당겼다. 에리카는 그가 팔을 내뻗는 것을 보고는 그가 명령한 대로 멈춰섰는데도 자신을 쏘려 한다는 사실에 눈이 커졌다. "안돼요." 소음방지장치에 둘러싸인 총은 둔탁하게 탕 소리를 냈다. 에리카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그녀 눈 앞의 광경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작고 빨간 꽃이 에반젤로스의 이마에 피어났고 그는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들고 있던 총이 에반젤로스의 손에서 떨어졌다. 에리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손은 양옆에 붙어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 뒤 잡목사이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나를 따돌릴 만큼 영리한 것이 문제였소." 에리카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 앞에는 매부리코의 사나이가 있었다. "아슬아슬했소." 칼리파는 말했다. "무슈 드 마르그가 있는 곳까지 당신을 안내하겠소.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거요." 에리카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칼리파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녀의 탄력있는 다리의 걸음은 불규칙적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이본의 방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프랑스인이 문을 열자 그녀는 그의 팔에 쓰러졌고 총격사건과 무덤에 갇혔던 일, 상을 발견한 것 등에 대해 중얼거렸다. 이본은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다독거려 주며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했다. 말을 하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칼리파입니다." 이본이 문을 열자 칼리파가 스테파노스를 방으로 밀어넣었다. "저 여자분을 보호하고 그녀를 죽이려는 자를 잡기 위해 날 고용했죠. 이 자가 바로 그 자입니다." 칼리파는 스테파노스를 가리켰다. 스테파노스는 이본을 보고, 그 다음에 에리카를 보았다. 에리카는 칼리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본이 고용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본은 그녀가 처한 위험들을 일부러 대수롭지 않아했기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불안해졌다. "이봐, 이본." 스테파노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와 내가 이렇게 사이 나쁘게 지내야 한다니 우습군. 자네는 내가 세티 1세상을 휴스턴에서 온 자에게 팔았다고 해서 내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 하지만 내가 한 일은 그 상을 이집트에서 스위스로 가져간 게 전부일세. 우리가 경쟁할 필요는 없어. 자네는 암시장을 장악하고 싶겠지. 좋다구. 난 단지 내 구역을 지키고 싶을 뿐이야. 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방법으로 네 물건을 이집트 밖으로 빼낼 수 있어. 우린 손을 잡아야 해." 에리카는 재빨리 이본을 보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그가 웃으며 스테파노스에게 당신은 착각하고 있으며 자기는 암시장을 없애려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본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었다. "왜 자네는 에리카를 위협했지?" 그는 물었다. "그녀가 압둘 함디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지. 나는 내 루트를 지키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자네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이였다면 상관없네." "자네는 함디의 죽음과 두 번째 상이 사라진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나?" "없네." 스테파노스가 말했다. "난 맹세해. 나는 두 번째 세티상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네. 그게 바로 내가 걱정했던 것일세. 내가 제외되고 함디의 편지가 경찰 손에 들어가는 것이 난 두려웠던 거야." 눈을 감으며, 에리카는 진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본은 개혁가가 아니었다. 지하경제를 장악하려는 그의 생각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지 이집트, 세계, 과학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골동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도덕적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에리카는 자신이 여전히 멍청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녀는 살해될 수도 있었다. 그녀의 손톱이 소파를 파고 들어갔다. 그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흐메드에게 가서 세티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스테파노스가 압둘 함디를 죽인 것이 아니에요." 에리카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압둘을 죽인 사람들은 골동품의 출처를 장악하고 있는 룩소르인들이에요. 세티상은 다시 이곳 룩소르로 옮겨졌어요. 나는 그것을 보았고, 그것이 있는 곳으로 우리 모두를 안내할 수 있어요." 그녀는 '우리'라는 단어를 신중히 골라 썼다. 이본은 뒤를 돌아 에리카를 보았고, 그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기운을 차린 것에 좀 놀랐다. 그녀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가 가진 자기보호 본능이 예상치 못했던 힘을 솟게 했다. 에리카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유고슬라비아를 통과하는 스테파노스의 루트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는 물건들을 면직화물에 속여 싣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스테파노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똑똑한 아가씨군. 저 여자 말이 옳아. 내 방법이 골동품을 면직화물 속에 포장하는 것보다 안전해. 그게 바로 자네가 진짜 계획했던 일 아닌가? 맙소사. 기껏해야 한 두번 싣는 거야." 에리카는 몸을 쭉 폈다. 그녀는 골동품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이본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티상이 있는 곳을 내일 알려 줄 수 있어요." "어디지?" 이본이 물었다. "서부제방에 있는데, 입구가 닫혀있지 않은 귀족묘 중의 하나죠. 정확히 위치를 설명하기는 좀 어려워요. 내가 안내를 해야 할 거예요. 쿼나마을 너머예요. 더구나 거기에는 다른 흥미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어요." 에리카는 바지에서 세티의 금장 팬던트를 꺼내보였다. 그것을 무심하게 탁자 위에 놓았다. "내가 세티를 찾은 수고료로 스테파노스에게 이 팬던트를 이집트 국외로 빼가게 해줘요. 이제 좀 쉬고 싶네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벌써 한밤중이었을 텐데." 에리카는 이본에게로 다가가 그의 빰에 키스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껏 한 일 중에 제일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칼리파에게 정원에서의 일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하고 당당하게 문으로 걸어갔다. "에리카......" 이본이 조용히 불렀다. 그녀는 돌아섰다. "왜요?" 아무 말도 없었다. "당신은 여기 있어야 하오." 이본이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그녀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오늘 밤은 너무 지쳤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내심이 무엇인지 분명했다. 스테파노스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라울." 이본이 불렀다. "자네가 오늘밤 바론 양의 안전을 책임졌으면 좋겠네." "좋습니다." "전 괜찮아요." 문을 열며 에리카가 말했다. "확실히 해두려는 것뿐이오." 이본이 말했다. "라울이 당신과 동행했으면 하오." 에리카와 라울이 윈터팰리스호텔로 되돌아오고 있을 때, 에반젤로스의 몸은 여전히 풀장 옆에서 달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나와 풀장에 퍼져 버린 검붉은 피만 아니었다면 그는 잠자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라울이 에반젤로스가 정말로 죽었는지는 살피러 갔다. 문득 그녀는 타일에 떨어져 있는 에반젤로스의 반자동 피스톨이 눈에 띄었다. 에리카는 흘끗 라울을 훔쳐보았다. 그는 에반젤로스의 몸을 제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에리카를 보지도 않은 채 그는 중얼거렸다. "와, 칼리파의 솜씨는 환상적이야. 정확히 양눈 사이를 쏘았군." 에리카는 몸을 구부려 총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녀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쥐었다. 그녀는 총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그녀는 한번도 총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었으며 총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위력은 그녀의 몸을 떨리게 했다. 그녀는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되돌아서서 라울을 응시했다. 그는 손을 비비며 일어서고 있었다.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죽었소." 라고 말하며 에리카쪽으로 돌아섰다. "그의 총을 찾아냈군요. 제게 주시지요. 그의 손에 쥐어줍시다." "꼼짝 마." 천천히 에리카는 말했다. 라울의 눈은 총과 에리카의 얼굴을 번갈아 왔다갔다 했다. "에리카, 무슨......" "입 다물고, 재킷이나 벗어." 라울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라 윗옷을 벗어 땅에 내려 놓았다. "이제 셔츠를 머리 위로 올려." 에리카는 명령조로 말했다. "에리카!" 라울이 말했다. "어서!" 그녀는 에반젤로스의 총을 든 팔을 쭉 뻗쳤다. 라울은 바지에서 그의 셔츠를 잡아 빼 올렸다. 셔츠 속에 그는 런닝을 입고 있었다. 그의 왼쪽 팔 아래는 작은 피스톨이 가죽 끈에 묶여 있었다. 에리카는 그의 뒤쪽으로 가서 총을 빼내어 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풀장으로 던졌다. 수면에 총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라울이 화를 낼 것이 두려워 주춤했다. 곧 그 생각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는 화가 날 것이다. 그녀는 그를 향해 총을 들었다. 그녀는 라울에게 셔츠를 제대로 입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그에게 호텔 아래쪽으로 걸어가도록 지시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갱 영화에서는 머리를 단 한 대만 쳐서 상대방을 쓰러뜨려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쉽던 생각이 났다. 하지만 실제에서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라울이 뒤로 홱 돌아 총을 빼앗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호텔 앞으로 난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고풍스런 가로등이 굽어진 도로를 따라 늘어선 택시 위에서 창백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택시운전사들은 주로 호텔과 공항을 왔다갔다 하는데, 밤이 되자 모두 떠나고 없었다. 그녀의 손에 들리 총은 떨렸고, 그녀는 늘어서 있는 낡은 택시를 따라 시동 상태를 살피며 앞으로 나갔다. 대부분 시동키는 제자리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아흐메드에게 가고 싶었지만 라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맨 앞의 차는 다른 것과 비슷했지만 뒤창에 장식술이 늘어져 있었다. 시동이 걸려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에리카는 명령했다. 호텔에서 사람이 나올까봐 겁이 났다. "어서." 그녀는 화가 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손바닥으로 몸을 받쳐 그는 엎드렸다. 그는 손을 몸 아래 두고 있어 언제고 튀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의 당황스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팔을 뒤로 돌려."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택시문을 열어 비닐코팅이 되어 있는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엔진은 짜증이 날 정도로 서서히 작동되며 검은연기를 내뿜었다. 라울쪽으로 총을 계속 겨눈 채, 에리카는 헤드라이트 스위치를 찾아 켰다. 그런 다음 총을 옆자리에 던져놓고 기어를 넣었다. 차가 앞쪽으로 기우뚱하더니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라울이 벌떡 일어나 택시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가 뒷범퍼에 달려들어 잠겨져 있는 트렁크를 잡으려 했을 때, 에리카는 엑셀러레이터와 클러치를 눌러 툴툴거리는 것을 진정시키고 속력을 내었다. 에리카가 넓고 환한 도로로 나왔을 때 차는 2단기어 상태였다. 다른 차량은 없었고, 룩소르의 사원을 지나쳐가며 가능한한 속력을 내었다. 모터가 제대로 돌자, 에리카는 기어를 3단으로 놓았다. 속력계가 고장이 나 있어 속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라울이 트렁크에 매달려 있는 것이 백미러로 보였다. 그의 검은 머리가 바람에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예리카는 그가 차에서 떨어지길 바랐다. 그녀는 핸들을 급하게 꺾어댔다. 차는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기울었고, 타이어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라울은 몸을 차 뒤에 바짝 붙이고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에리카는 기아를 4단에 두고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택시는 앞으로 휙 나갔지만 오른쪽 앞바퀴에 심한 진동이 있었다. 진동이 너무 커서 그녀는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잡아야 했다. 그녀는 두 채의 장관저택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보초를 서던 군인들은 트렁크에 사람을 매달고 툴툴거리며 달리는 택시를 그저 웃으며 구경할 뿐이었다. 에리카는 브레이크를 눌러 차를 급정거시켰다. 라울이 뒷유리창으로 미끄러져 왔다. 1단으로 기어를 옮기고 다시 속력을 냈지만 라울은 여전히 뒷문틀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에리카는 거울로 라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길 가장자리로 달리며 움푹 패인 곳을 찾았다. 움푹 패인 곳을 달리면 차가 덜컹거릴 것이다. 오른쪽 문이 튀어 열렸다. 빨간색 주사위가 떨어졌다. 라울은 이제 유리가 떨어져 나간 문틀을 잡은 채로 뒷유리 창에 그의 팔을 붙이고 트렁크 위에 누워 있었다. 충격 때문에 머리와 몸이 심하게 차체에 부딪혔지만, 그는 에리카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흐메드의 집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서자 길 옆에 진흙벽돌로 쌓인 벽이 택시 헤드라이트에 비쳤다. 에리카는 차를 멈춰세웠다가 후진했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라울은 차의 지붕으로 미끄러져 올라갔다. 그의 왼쪽 손은 에리카 얼굴 옆에 있는 문틀을 움켜 쥐고 있었다. 에리카는 속력을 내어 후진했다. 차는 심하게 떨다가 벽에 가서 부딪쳤다. 그녀의 목이 갈대처럼 뒤로 휙 꺾였다. 오른쪽 앞문은 있는 대로 제껴져 거의 떨어질 지경이었다. 라울은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기어를 옮겨 에리카는 앞으로 차를 몰았다. 갑자기 속력이 빨라져 오른쪽 앞문이 휙 닫혔고 문틈에 라울의 손이 끼였다. 라울을 고통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손을 뒤로 휙 잡아 뺐다. 그 순간 차는 길가의 괸 돌에 부딪치며 몹시 흔들려 라울은 보도 옆의 모래더미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는 그 즉시 그는 일어섰다. 아픈 손을 받치며 에리카의 뒤를 쫓아가서 그녀가 흰색칠이 된 진흙벽돌집으로 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멈춰서서 그녀가 차에서 내려 앞문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자 그는 돌아서서 이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에리카는 아흐메드의 집 대문에 도착하자 라울이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그녀는 문을 열어둔 채 뛰어들어갔다. 그녀는 아흐메드에게 최대한 빨리 그들의 음모를 알려 경찰보호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했다. 거실로 뛰어들어가 아흐메드가 잠들지 않고 친구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뛸듯이 기뻤다. "난 쫓기고 있어요." 에리카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흐메드는 그녀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서요." 그녀는 계속 말했다. "우리는 도움을 받아야 해요." 아흐메드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 옆으로 뛰어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눈이 커졌다. 아흐메드는 문을 닫고 에리카 팔을 잡으며 외쳤다. "에리카가 확실하군. 당신 안전하군요. 내가 당신을 보고 있다니 믿을 수 없소. 기적이야." 에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몸이 굳어져 아흐메드의 어깨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피가 얼어붙었다. 그녀는 무하마드 압둘라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그녀와 아흐메드는 죽을 것이다. 무하마드도 그녀를 보고 똑같이 놀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고서 화난 듯이 아랍어로 무언가 소리를 질러댔다. 처음에 아흐메드는 무하마드의 소리를 무시했다. 그는 에리카에게 쫓아오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무하마드는 무어라 말했고, 그것이 아흐메드를 자극해 아흐메드도 찻잔을 집어던질 정도로 난폭해졌다. 그는 아랍어로 말했는데 처음에는 낮고도 위협적이었지만 점차로 톤이 높아져 나중에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에리카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하마드가 무기를 꺼내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무하마드가 점차로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아흐메드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왜냐하면 아흐메드가 의자를 가리키자 무하마드는 거기에 가서 앉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자 그녀는 안심스러우면서도 겁이 났다. 아흐메드가 에리카를 돌아 보았을 때, 그녀는 그의 눈에서 무서우리만큼 깊은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일까? 아흐메드는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 되돌아오다니 이건 정말 기적이군요." 에리카는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흐메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되돌아오다니...... "이건 당신과 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알라의 계시요." 그는 계속 말했다. "나는 신의 결정을 받아들이겠소. 나는 당신의 일을 무하마드와 몇 시간 동안이나 의논하던 중이었소. 나는 당신께로 가서 이야기하고 청혼할 생각이었소." 에리카의 심장이 고동쳤다. 그녀는 현실감각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내가 무덤에 갇힌 걸 알고 있었나요?" "그렇소. 그건 내게 어려운 결정이었소. 하지만 당신을 손을 떼었어야 했소. 나는 당신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소. 나는 무덤으로 가서 우리와 협력하자고 간청할 생각이었소. 에리카, 당신을 사랑하오. 예전에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해야 했소. 나의 아저씨께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었지요.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오. 나는 당신이 우리 가족이 되길 바라오. 나의 가족이면서 무하마드의 가족!"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이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자신이 지금 듣고 있는 말들도 모두 믿을 수가 없었다. 결혼? 가족? 그녀의 목소리는 불확실했다. "당신은 무하마드와 친척간인가요?" "그렇소." 아흐메드가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큰 의자로 몸을 끌고 가 앉았다. "나와 무하마드는 사촌간이오. 아이다 라만이 우리 할머니지요. 내 외할머니요." 아흐메드는 사와트와 아이다 라만에서부터 시작되는 복잡한 가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에리카는 두려운 눈길을 무하마드에게 던졌다. "에리카......" 아흐메드는 에리카의 주의를 끌어보려 했다. "지난 50년 동안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당신을 해낼 수가 있었소. 우리 가족 이외에는 그 누구도 라만의 파피루스를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희미하게라도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처치됐소. 사람들은 그 죽음들을 모두 '파라오의 저주' 탓으로 돌렸지.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럼 모든 학살은 무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흐메드와 무하마드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떤 무덤을 말하는 거요?" "투탄카멘 무덤 아래 있는 진짜 세티 무덤 말이지요." 무하마드는 벌떡 일어나 아흐메드에게 거친 어조의 아랍어를 늘어놓았다. 아흐메드는 이번에는 듣기만 할 뿐 그의 입을 다물게 하지 않았다. 무하마드가 말을 마치자 아흐메드는 에리카를 돌아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정말 대단하군, 에리카. 이제 당신은 기둥이 왜 그렇게 높이 있는 줄 알겠군. 그렇소. 우리는 위대한 이집트 파라오의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을 지키고 있소. 그것을 보았을 테니,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당신을 알겠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요. 그러니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당신이 나와 결혼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당신 소유가 되오." 에리카는 다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이본에게서 겨우 빠져나오자 이제 아흐메드였다. 그리고 라울은 아마도 이본에게로 가고 있을 터였다. 아마도 곧 끔찍한 대결전이 일어날 것이다. 세상은 미쳤다. 시간을 좀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물었다. "왜 진작에 무덤을 비우지 않았죠?" "무덤에는 진귀한 것들이 가득 차 있어 하나라도 움직이려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오. 무덤에서 보물들을 꺼내기 위한 장비들을 마련하고 가족들이 그 진귀한 물건들을 이집트 밖으로 빼돌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면 한 세대는 족히 걸릴 것이라는 것을 할아버지 라만은 잘 알고 있었소. 그의 인생 말년 동안 우리는 교육을 받을 정도의 보물만을 빼냈을 뿐이오. 내가 문화재당국 책임자가 되고 무하마드가 경비대장이 된 것도 작년에 와서야 가능했소." "마치 19세기 라술 가 같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우리는 매우 치밀한 수준에서 작업하고 있고 건축학적인 면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소. 사실, 에리카 당신이 그 방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오." "카나본 경도 그 '처치된 사람들' 중에 한 명인가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랬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오." 무하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카." 아흐메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알아냈소?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떠......" 집안의 불이 순식간에 모두 꺼졌다. 달도 이미 져서 집안은 무덤 안처럼 깜깜했다. 에리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다시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에리카는 이본과 라울이 전선을 끊었을 거라 추측했다. 그녀는 아흐메드와 무하마드가 아랍어로 다급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잠시 후에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희미한 형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형체가 그녀쪽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아흐메드였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의 이빨과 눈만 보였다. "다시 한 번 묻겠소. 당신을 쫓아오던 사람은 누구지?" 그의 목소리는 다급하고도 낮았다. 그녀는 말해주려 했지만 목이 메었다. 그녀는 공포로 질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두 세력 사이에 끼여 버린 것이다. 에리카는 무하마드의 손에 있는 권총을 보았다. 그녀는 사태가 다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무 말 없이 아흐메드는 에리카를 잡아끌어 거실을 가로질러 길고도 어두운 복도로 내려가 집 뒤쪽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아흐메드는 강철처럼 굳게 잡고 있었다. 무하마드가 뒤를 쫓아왔다. 그들은 집에서 빠져 나와 마당으로 갔다. 마당은 조금 더 밝았다. 그들은 장애물을 헤쳐가며 뒷문에 다다랐다. 아흐메드와 무하마드는 급히 무언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흐메드는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열었다. 오솔길은 황량했고 두 겹으로 늘어선 야자나무 때문에 더욱 어두웠다. 무하마드는 밖을 내다보고 주의깊게 총을 쏠 자세를 한 채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는 뒤로 빠져 아흐메드에게 길을 내주었다. 에리카의 손목을 잡은 채 아흐메드는 앞으로 가서 그녀를 좁은 길로 밀쳐넣었다. 그는 바로 뒤를 따라왔다. 먼저 그녀는 손목을 잡은 아흐메드의 손이 갑자기 꽉 조이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총성이 들렸다. 그것은 난폭했던 에반젤로스와 마주 대하고 있을 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둔탁한 소리였다. 바로 방음장치가 채워진 총소리였다. 아흐메드는 문 뒤로 난 곁길에 쓰러졌다. 희미한 빛 아래로 내려다보니 그는 에반젤로스처럼 두 눈사이에 총을 맞았다. 뇌세포 조각들이 그녀 얼굴 옆으로 흩어졌다. 긴장이 되어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무하마드는 그녀 곁을 지나쳐 길을 가로질러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에리카는 그가 가는 것, 그의 총이 길 아래쪽을 향해 불을 내뿜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멍하니 그녀는 일어섰다. 그녀는 생명이 끊어진 아흐메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집그림자가 있는 쪽으로 되돌아 올라갔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쉬었다. 집 앞쪽에서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에 이어 문을 부수는 소리가 났다. 그녀 뒤쪽에서 싸움소리와 난폭하게 집안을 휘젓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녀 앞, 오솔길로 난 문간에서 에리카는 누군가 몸을 굽힌 채 달리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오른쪽에서 총알이 튀었다. 다음에 그녀 뒤에 있는 집 안쪽에서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마비된 감각에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이본이 찾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에리카는 뒷문이 휙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그 말없는 형체가 시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라울이었다. 그녀는 그가 아흐메드에게로 몸을 숙이고 나서 오솔길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리카는 5분 정도 더 몸이 굳은 채 그대로 있었다. 오솔길에서의 총격소리는 멀어져갔다. 갑자기 그녀는 벽에서 몸을 떼고 어두운 집을 통해 왔던 길을 거슬러 앞문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길을 건너 진흙벽돌이 깔린 보도를 따라 아래로 뛰었다. 그녀는 쓰러질 듯하면서도 계속 달렸다. 나일강에 다다라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보려 했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하마드 압둘라가 경비대장이라는 것을 알자 그녀는 경찰조차 두려웠다. 에리카가 그 태평스러운 군인들이 경호를 서고 있던 두 채의 장관저택을 생각해 낸 것을 그때였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끌고 남쪽으로 걸었다. 그녀는 길가의 그림자를 밟으며 겨우 그 집에 당도했다. 그리고 자동인형처럼 불빛이 비치는 보도로 걸어나와 첫번째 집의 벽을 따라 앞문 쪽으로 갔다. 군인들은 거기 있었다. 그들은 50피트 떨어져 있는 입구를 지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가 곧장 첫번째 집을 향해 걸어오자 그 두 명은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 그들은 어렸고 헐렁한 갈색 제복차림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기계소총이 그들 어깨에 메어져 있었다. 그들은 총을 돌려 내렸고 에리카가 다가오자 무언가 말하려 했다. 멈출 생각도 없이 에리카는 놀란 젊은 군인 앞을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 아프 안단!" 에리카의 뒤를 쫓아오며 군인이 소리쳤다. 에리카는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크게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캄캄안 집안에서 불이 켜질 때까지 계속 소리를 쳤다. 곧 잠옷을 입은 사람의 형체가 문에 나타났다. 그는 대머리였고 뚱뚱한 몸집에 신발은 신지 않은 채였다. "영어를 할 줄 아세요?" 헉헉거리며 그녀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는 놀라움과 불쾌함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정부에서 일하시지요?" "예, 저는 국방장관 대리보좌관입니다." "골동품이나 문화재와 관련이 있나요?" "전혀" "됐습니다." 에리카는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에필로그 TWA 747은 조용히 선회하며 로간공항에 우아하게 접근했다. 그녀는 코를 창에 대고 늦가을 보스턴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풍경은 참 포근해 보였다. 그녀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거대한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자 객실에 약한 진동이 전해졌다. 어떤 승객들은 오랜 비행이 끝났다는 걸 거뻐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비행기가 국제청사 건물로 접근하자 에리카는 보스턴을 떠난 이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학문의 틀에 있다가 실제 세계로의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이집트정부로부터 세티 1세 무덤 발굴작업에서 한 몫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비행기가 게이트로 갈 때 마지막 진동이 있었다. 엔진소리는 작아졌고 승객들은 머리 위에 있는 사물함을 열었다. 에리카는 시트에 앉은 채로 뉴잉글랜드의 보송보송한 구름을 내다 보았다. 그녀는 카이로에서 자신을 전송해주던 이스칸더 중위의 하얀 제복을 떠올렸다. 그는 룩소르의 밤에 있었던 그 엄청난 사건결과를 전해주었다. 아흐메드 카잔은 총상으로 죽었다. 이것은 그가 총에 맞던 그 순간, 그녀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무하마드 압둘라는 계속 뇌사상태라고 했다. 이본 드 마르그는 어떤 방법을 썼는지 국외로 도망쳐서 이집트 입국금지자가 되었다. 스테파노스 마큘리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보스턴에 있는 지금, 그 모든 것들은 현실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집트에서의 일 중 특히 아흐메드의 일은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다. 또한 그 경험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사람 판단능력이 의심스러워졌는데, 그건 바로 이본 때문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조차 그는 카이로에 돌아와 있는 그녀에게 파리에서 전화를 걸어, 세티 1세의 무덤에 관한 내부정보를 알려주면 크게 보상하겠노라고 제의해 왔다. 그녀는 실망하여 고개를 저었고 짐을 챙겼다. 에리카는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그녀는 얼른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서 대합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리처드가 달려와 그녀를 끌어 안는 바람에 에리카는 가방을 떨어뜨렸다. 그녀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은 그것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서로에게 매달렸다. 그들은 벅찬 감정을 조금 수습했다. 마침내 에리카가 몸을 떼며 말했다. "리처드, 당신이 옳았어요. 출발부터 이해할 수 없었지요. 내가 살아 있다니 운이 좋았어요." 리처드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의 눈물을 그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야, 에리카. 우린 둘 다 옳았고 둘 다 틀렸지. 단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더 많다는 뜻이야. 날 믿어줘. 난 해 낼테니." 에리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순 없었지만 그 말은 그녀의 기분을 좋게 했다. "아, 그런데." 그녀의 가방을 집어들며 리처드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려고 휴스턴에서 누가 와 있어." "그래요?" "응, 그는 로리 박사를 알고 있나봐. 로리 박사가 그 사람한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군. 저기 오는군." 리처드가 가리켰다. "어머나" 에리카가 말했다. "제프리 존 라이스 씨" 지시라도 받은 듯이 제프리 라이스가 다가와서는 장식이 붙어있는 군모를 벗었다. "이럴 때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 미안합니다. 하지만 바론 양, 이건 세티상을 찾은 데 대한 수고비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이제 세티상은 이집트정부 소유예요. 당신은 그걸 살 수 없는데요." "바로 그거요. 그 덕에 내가 소유한 상은 이집트 국외에 있는 유일한 상이 되었소. 당신덕에 이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 거지요." 에리카는 10,000달러짜리 수표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리처드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에리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따라 웃었다. 라이스는 수표를 여전히 손에 든 채 어깨를 흠칫해 보이고는, 그 두 사람을 보스턴의 밝은 태양 아래로 데리고 나갔다.( * ) 옮기고 나서 일찍이 나일강을 중심으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이집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의 신비로 인해 숱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이집트는 온갖 소설 속에서도 예외없이 중요한 무대로 등장하곤 했다. 우리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유산들이 많이 있지만 이집트의 그것만큼 문학 속에서 신비와 흥미의 대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곧 우리 문학인들이 문화적 유산을 문학의 일부로 수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허구로 인한 본질의 손상을 두려워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문화적 노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핑크스>는 국내에 '의학 스릴러의 거장'으로 소개되어 탄탄한 독자층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는 로빈 쿡의 초기작품에 해당한다. 로빈 쿡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마>를 비롯하여 <바이러스>, <돌연변이> 등과는 배경 자체가 판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과 함께 이집트 문명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울러 문화적 유산의 도굴에 따른 사건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그것을 지키면서 본질을 파헤치려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와 극적인 반전을 통한 예측불허의 상황전개로 인해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내막을 알 수 없는 독특한 추리기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하는 동안 <스핑크스>가 로빈 쿡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타의 작품들보다도 이전에 발표되었으며, 의학세계를 배경으로 한 최근의 작품들에 비해 구성이나 기법에 있어서 결코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또한 외과의사로서 작가가 당연히 의학적 관점에서의 추리소설에 집착할 수도 있었겠다는 선입관은 단숨에 깨트리는 기발한 착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민족의 문명이지만 세계 전체가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공동의 유산으로 이집트를 파악한 작가의 소신이 빚어낸 결과물이 곧 <스핑크스>라고 할 수 있겠다. - 김기태 - 스핑크스에 얽힌 모든 의혹은 세티상의 바닥에 있던 상현문자가 적힌 파피루스의 해독으로 그 실마리가 풀린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에리카가 해독한 파피루스 전문을 여기 실어둔다. - 편집자 주 - I, Nenephta, chief architect for the Living God (may he live forever), Pharaoh, King of our two lands, the great Seti I, do reverently atone for the disturbance of the eternal rest of the boy king Tutankhamen within these humble walls and with these scant provisions for all eternity. The unspeakable sacrilege of the attempted plunder of Pharaoh Tutankhamen's tomb by the stonecutter Emeni, whom we have rightfully impaled and whose remains we have scattered on the western desert for the jackals, has served a noble end. The stonecutter Emeni has opened my eyes to understand the ways of the greedy and unjust. Thus I, chief architect, now know the way to ensure the eternal safety of the Living God (may he live forever), Pharaoh, King of our two lands, the great Seti I. Imhotep, architect for the Living God Zoser and builder of the step Pyramid, and Neferhotep, architect for the Living God Khufu and builder of the Great Pyramid, used the way in their monuments, but without full understanding. Accordingly the eternal rest of the Living God Zoser and the Living God Khufu was disturbed and destroyed in the first dark period. But I, Nenephta, chief architect, understand the way, and the greed of the tomb robber. So it will be done, and the boy king Pharaoh Tutankhamen's tomb is resealed on this day. Year 10 of Son of Re, Pharaoh Seti I, second month of Germination, day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