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램 수필선 지은이: 찰스 램 옮긴이: 양병석 펴낸곳: 범우사 (저자 약력) 찰스 램(1775--1834) 영국의 수필가, 비평가. 1807 년 누이 메리와 함께 번안하여 출판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면서부터 문필가로 인정받기 시작. 대표작으로는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기소 했다가 후에 책으로 엮은 '엘리아 수필집'과 '엘리아 수필 후기' 등이 있음. ---------- (연보) 1775 년 2월 10일 런던의 템플 법원가 2번지에서 존과 엘리자베스(필드) 램의 일곱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남. 1782--89 년 크라이스트 호스피털 재학. 1789--91 년 상인 조셉 페이스의 가게에서 일함. 1791 년 9월 1일 남해상회(South-Sea House)의 서기로 취직. 1792 년 2월 8일까지 근무. 엘리아(Elia)라는 필명은 이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이탈리아계 동료 서기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음. 1792 년 2월 초순 솔트의 사망으로 템플에서 이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음. 이해 4월 5일 동인도회사의 회계사무 서기로 취직. 3 년 무보수 수습서기였다. 이해 7월 31일 외할머니 필드 사망. 1796 년 9월 22일 메리가 정신증 발작으로 어머니를 살해함. 1797 년 2월 함께 살았던 고모 헤티(사라 램) 사망. 같은 해 스토오우이로 코올리지를 방문. 워즈워스와 그의 누이 도로시를 만남. 코올리지의 시집에 램의 소네트(14행) 네 편이 발표됨. 1798 년 첫 산문 '로자먼드 그레이와 늙은 장님 마거릿의 얘기(The Tale Rosamund Gray and Old Blind Margaret)' 출판 1799 년 4월 아버지 사망. 누이 메리 퇴원 후 함께 삶. 1800--03 년 여러 신문에 사소한 글들을 실음. 1802 년 '존 우드빌(John Woodvil)'판 1804 년 코올리지를 통해 윌리엄 헤즈릿을 만남. 1806 년 소극 'H씨-(mr. H-)'를 드루어리 레인 극장에서 상연. 1807 년 누이 메리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the tales from shakespeare)' 출판. 1808 년 '율리시즈의 모험 (the adventures of ulysses)'과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시인들의 표본(specimens of english dramatic poets who lived about the time of shakespeare)' 출판. 1809 년 자서전적 얘기들을 모은 '레스터 선생의 학교(mr. leicester's school)' 출판. 1810--11 년 리 헌터의 '리프렉터'지에 에세이를 기고. 1818 년 작품집 2권 출판. '존 우드빌', '로자먼드 그레이와 늙은 장님 마거릿의 얘기', 운문 '크라이스트 호스피털의 회상', 평문 '셰익스피어의 비극', '호가스의 천재성 및 성격(on the genius and character of hogarth)' 등 포함. 1819 년 배우 패니 켈리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함. 1820 년 '런던 매거진(london magagine)' 8월호에 '엘리아'란 필명으로 '남해상회(the south-sea house)'를 싣기 시작하여 1823 년까지 일련의 수필을 계속 발표했음. 이해 11세의 엘미 아이 소라를 수양딸로 삼아 양육. 1833 년 출판업자 에드워드 목슨(edward moxon)에게 출가시킴. 1821 년 10월 26일 형 존 사망. 1822 년 메리와 함께 파리 방문. 배우 텔머(talma)를 만남. 1823 년 '런던 매거진'에 실린 수필을 모아 '엘리아 수필집(essays of elia)' 출판. 1825 년 3월 29일, 33 년 근속 후 동인도 회사를 은퇴함. 1830 년 9월 18일, 친우 헤즈릿 사망. 시집 'album verses' 출판. 1833 년 '엘리아 수필 후집(the last essays of elia)'이 목슨에 의해 출판됨. 1834 년 7월 25일 코올리지 사망. 찰스 램은 12월 22일 낙상으로 12월 27일 사망. 1847 년 5월 메리 사망. ------------ (역자 소개) * 양병석 1934 년 전남 보성 출생. 광주고교와 원광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줄업. 현재 원광대학교 영문과 교수.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찰스 램의 인간과 문학 작가나 예술가의 생애를 음미할 때 우리는 흔히 가정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그의 고향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만일 워즈워스에게 누이 도로시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삶과 문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찰스 램에게 누이 메리가 없었더라면, 그녀가 정신발작을 일으켜 어머니를 살해했던 일이 그의 생애에서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과 문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의 수필 '꿈속의 아이들'의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통속적인 의미의 보다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요, 그의 문학적인 재능은 시에 응결되었을지 몰라도 그의 수필은 없었을지 모른다. 거의 모든 문학작품이 작가의 삶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램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독특한 인정의 여운이 감도는 그의 문학의 성격은 몽테뉴처럼 여유 있고 온화한 삶의 소산이 아니라 생애중의 비통하고 무서운 운명적 사건들로 인해 조탁된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램은 1775 년 런던의 이너 템플 법원가에서 존과 엘리자베스의 일곱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간부였던 사무얼 솔트(Samuel salt)의 서기 겸 가사를 돌보는 집사에 불과했다. 그들은 7 남매를 낳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찰스와 형 존(John, 1763 년생), 누이 메리 앤(Mary Ann, 1764 년생)뿐이었다. 부모의 양쪽이 병약했으니 찰스에게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이 유전된 것이다. 램의 정식 교육은 일곱 살이 채 못 되어 들어갔던 크라이스트 호스피털(Christ' Hospital)초등부 7 년이 전부였다. 재학중에는 수재로 글쓰는 재주도 뛰어나서 당연히 진학하여 성직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일찍이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말을 심히 더듬었고 그 언변 상의 결함도 결함이려니와 집안을 돌봐야 할 처지였다. 사실 램의 가정은 빚을 지고 살 정도로 극빈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살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솔트 시의 저택 지하 행랑에서 살았고 솔트 씨가 죽은 뒤에는 셋집으로 전전했다. 또 그가 다녔던 크라이스트 호스피털도 그 당시에는 일종의 구빈학교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세를 짐작할 만하다. 램은 상점의 사환일과 형이 일했던 남해상회(south-sea house)을 거쳐 17세의 소년 사원으로 동인도 회사 회계사무원으로 입사한 후 50세로 은퇴하기까지 33 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다. 그는 직업적인 문필가가 아니었으며 가계를 꾸려야 하는 생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독서를 좋아 했고 그가 학문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는 후일의 그의 수필 '휴가중의 옥스퍼드'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려서 솔트 씨의 서재를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된 것이라고 전해지거니와 거기에서 그는 많은 고전을 접할 수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가 살았던 허트포드셔(Hertfordshire)에 자주 갔었던 계기가 되어 귀족적인 저택의 공기에 친숙하게 된 것이다. 그의 외할머니 필드(Field)부인은 허트포트셔의 블레이크스웨어(Blakesware)에 플루머스(Plu-mers)라는 귀족의 저택 가정부였다. 그의 수필에서 앨리스 윈터턴(Alice Winterton)으로, 시에서 안나(Anna)로 나오는 앤 시먼스(Ann Simmons)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도 이 할머니 댁의 방문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그녀는 전당포업을 하는 바트럼(Bartram)에게 시집가고 말았다. 램은 혹스턴(Hoxton)의 정신병원에 6주 동안 입원했던 일이 있는데 그것이 파혼의 원인이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796 년은 램의 생애에 가장 비극적인 해였다. 이 무렵 램의 집에는 노망한 늙은 아버지, 병들어 누워 있는 병약한 어머니, 열 살 위인 누이 메리, 고모 헤티가 동거하고 있었고, 형 존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생계는 고모의 연금과 램의 급료에 메리의 바느질 보수로 충당하고 있었다. 메리는 몇 차례 정신 질환의 징후를 보였는데 그해 9월 22일 심상치 않은 징후가 있었다. 램은 출근길에 의사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바로 지난해에 자신이 정신병원의 신세를 졌던 램으로서는 염려가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는 믿기 어려운 끔찍스런 광경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저녁밥상이 놓인 채 방은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피가 낭자한 방바닥에 고모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고, 아버지는 이마에 상처를 입고, 어머니는 의자에 앉은 채 메리의 칼에 찔린 것이다. 그때도 메리는 칼은 쥐고 서 있었다. 램은 그 비운의 흉기를 메리에게서 빼앗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때 램의 나이 겨우 21세였다. 형 존은 메리를 국비요양원에 보내자고 주장했지만 램이 이를 극구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누이는 램이 맡게 되었다. 램은 그녀를 돌보는데 헌신하기로 결심을 했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그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형의 말을 따랐으면 벗어버릴 수도 있는 짐을 램은 떠맡은 것이다. 그녀를 돌보며 함께 산다는 것이 부양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는 것이요, 그의 표현대로 '메리는 딱지를 달고 있어서' 그들의 병력에 대한 끊임없는 주위의 수군대는 소리와 눈초리를 받는 고통까지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수히 집을 옮겨야 했다. 램의 인상은 '정답고 온순하다'. '연약한 몸체는 훅 불면 날아갈 듯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그 속에 강철같은 강한 의지와 투지가 들어 있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같은 환경에서 그의 마음을 지탱시켜준 것은 친구들의 우정과 독서였다. 그는 평생 런던에서 거주했던 덕으로 크라이스트 호스피털 시절의 동문들과 계속적인 교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화이트, 코올리지, 다이어와 친했다. 후에 램을 중심으로 그의 집에서 문학 동호인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당대의 일급 문인들 헤즈릿, 키인, 캠블, 고드윈, 헌트, 디 퀸시 등은 물론 워즈워스, 키츠까지도 참여했다. 그들 사이에 오고간 무수한 서신들의 수만 보아도 그들의 우정을 헤아릴 만하다. 특히 코올리지는 그의 필생의 친우였다. 그가 1834 년 7월 세상을 떠나자 램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끝마다 '코올리지가 죽었다'고 비탄을 하다가 그해 12월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램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문필가로 인정받기까지는 그는 그 어느 문필가보다 길고 힘든 노력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출생과 학력, 메리의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문학에 대한 열망과 생활이란 의무의 굴레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심한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했는지는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읽어볼 수 있다. 금요일 헤티(옮긴이 주: 늙은 하녀)가 죽었네. 과로와 근심으로 메리는 병에 다시 도졌네. 어제 병원으로 옮겨 가두어놓을 수밖에 없었네. 집에는 나 홀로 있네. 헤티의 시신이 곁에 있을 뿐이네. 마음이 참담하이.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네. 메리는 다시 좋아질걸세. 하지만 계속 재발될 게 두렵네. 나는 완전히 파산이 된 것일세. 내 머리도 아주 나빠졌네. 메리가 죽었으면 싶네. (1800 년 5월 12일 월요일. 코올리지에게 보낸 편지) 메리는 그 후에도 자주 병이 도졌고 그의 절망 또한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최초로 발표된 것은 코올리지의 시집에 함께 실린 4 편의 단시다. 혹스턴의 요양원에서 나온 뒤 코올리지에게 보낸 것이다. 메리의 비극적 사건이 있던 무렵 그 시집의 간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나자 그에게는 시인이 되겠다는 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과 생계가 앞서는 것이었다. 사건 직후 코올리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아주게. 그런 종류의 지난날의 허영을 완전히 부숴버렸네.' '지금 내게는 종교적인 것 이외에는 다른 말은 말아 주게'하고 절규했다. 그러나 역으로 램의 마음을 지탱시켜준 것은 문학공부와 종교였다. 이때에 그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문학과 고전을 탐독하고 그 속에서 위안의 요소들을 찾아던 것이요, 신학서적의 탐독에서 마음을 지탱할 수있었다. 한편 시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는 감상적인 소설 '로자먼드 그레이(A Tale of Posamund Gray, 1798)'를 내놓아 다소의 호평을 받았다. 그 후 코올리지의 소개로 '모닝포스트' 등 간행물에 여러 가지 산문들을 연재했던 것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한 것이다. 1 편에 6 펜스의 고료를 받았던 것이요, 회사 퇴근 길에 매일 동전 여섯 닢을 생각하면서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희곡을 시도하여 엘리자베스 시대풍의 시극 '존 우드빌(John Woodvil)'을 썼으나 상연을 거절당하는 고배를 마셨고, 이어 소극 'H^36,36^씨(Mr. H^36,36^, 1806)'를 써서 상연은 하게 되지만 그 또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관객속에 끼어 그 자신이 야유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문필가로서 인정을 받고, 그 문필이 그에게 생활의 안정을 주게 된 것은 누이와 함께 집필하여 출판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The Tales From Shakespeare, 1807)'이 나오면서다. 그 책의 희극편은 메리가 쓰고 비극은 램이 썼다. 램은 누이가 쓴 부분이 자기가 쓴 부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하곤 했다. 이어 '율리시즈의 모험(Adventure of Ulysser, 1808)' 이 나온 후에야 문예비평가의 위치와 명성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가 램의 나이 33세였으니, 긴 노력의 편력이었다. 그 후 여러 정기간행물에 평문들을 싣고 자서전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레스터 선생의 학교(Mr. Leicester's School 1809)'가 출판되고 리 헌트의 '리프렉터'지에 게릭(Garrick)과 호가스(Hogarth)를 비롯한 평문들을 실을 때에는 그들 중심으로 많은 문필가들이 모여 '찰스 램이 아니라 찰스 램 회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가 호평을 받은 것은 1820 년에서 1823 년말까지 '런던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발표하고, 후에 책으로 엮어진 '엘리아 수필집(Essays of Elia, 1823)'과 그 후의 것들이 모아진 '엘리아 수필 후집(Essays of Elia, 1833)'이요, 이것들이 그들 문학사에서 불멸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이다. 램의 수필에는 거창한 철학적 사색이나, 사회라거나 역사라거나 시대적인 시대적인 절박한 문제라거나, 위대한 인물이라거나 하는 크고 거창한고 센세이셔널한 것들이 다루어진 것이 아니다. 몇 편의 평론적인 글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작고 사사로운 자기와 자기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문학으로 자신을 발산하고 싶었던 충동이 시와 희곡의 표류를 거쳐 수필이란 항구에 정박한 것이다. 상흔을 지닌 노병이야말로 전기를 써내기에 가장 알맞듯이, 인생의 큰 상흔을 지닌 그는 자기의 이야기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신변적인 사소한 소재들이 그의 고아한 문체와 유머와 위트와 농소속에서 인생에 대한 예지와 인정의 온기가 독특한 색조로 확대 발효되어 독자에게 감동과 여운을 남겨둔다. 그의 수필에는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 친척, 친구, 직장의 동료, 거리의 행인, 아이들, 굴뚝청소부, 거지, 런던의 거리, 고궁, 고서, 고도자기, 극장, 화랑, 학교, 인간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 거의 모두가 (비록 이야기의 제목은 달리 붙여진 것일지라도) 인간의 삶과 인간의 성격이 주제가 되어 있다. 그의 수필에는 사물이나 자연이 주제가 되어 있는 것이 없다. 그는 자연보다도 사람을, 모든 계층의 사람을 그들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아니 완벽성보다는 기형, 기벽, 기행, 우행을 더욱 사랑했다. 그의 수필에는 차분하고 조용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탈속. 오도의 정조가 감도는가 하면 어느 것에서는 열렬한 투사적인 기개가 엿보이기도 한다. 문학에의 열망과 반복된 좌절, 처절한 사건과 뼈저린 고독, 정신증에 대한 공포와 재발의 두려움 속에서 생활해 나가야 했던 램에게는 이를 극복하기 의해 마음 곧추 세우는 자기 제어적 절제와 금욕적 싸움이, 한편으로는 인생이란 모름지기 조용한 담소와 악의 없는 희롱을 나누고, 고궁과 고서의 아치를 맛보는 한 모퉁이의 행복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체관과 공존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통찰력은 삶 속에서 숨어 있는 작은 정의를 찾아내고, 그의 감수성은 그것들에서 진정한 삶의 향기를 느끼고, 그의 마음은 그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건 아닐까? "태양, 하늘, 소슬바람, 홀로 걷는 산책, 여름 휴가, 푸르른 초원, 맛있는 주스와 고기, 친구들, 유쾌한 술잔, 불켜진 촛불, 노변의 이야기, 악의 없는 자만, 농담, 풍자, 이 모든 것들이 (죽으면) 삶과 함께 사라져버리는가?" 하고 그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의 말기의 수필에는 추풍낙조의 가락이 짙어져 인생의 고독과 허무함을 보이지만 감상과 비애에 치우침이 없이 리얼한 묘사와 유머로 삶의 향기를 풍겨준다. 그의 글은 언제나 애수 속에 기쁨이 있고, 재기 발랄한 농소 속에 애조를 띤다. 웃음과 눈물이 교묘하게 혼효되어 독특한 풍미와 향취를 풍겨주는 것이다. 램의 수필은 바로 이 기쁨과 슬픔의 조화, 우인애의 경지에 이른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램의 생애에서 그의 마음속에 이들을 가장 크게 발효시켜놓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누이 메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램의 친구 헤즈릿이 메리를 자기가 알고 있는 여인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이성적인 여인이라고 말했듯이 그녀는 발병하지 않을 때에는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리 밝은 여인으로 램에게는 다정한 누이요 문학의 조언자였다. 누이는 동생의 헌신에 그를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으로 보답했다. 상호이해와 의존의 상보적 생활을 하는 이 오누이가 얼굴을 맞대고 앉아 오순도순 글을 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흐뭇한 온정을 느끼게 했던 반면 가슴이 젖어오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면 웃음이 나오거나 울거나, 어쩌면 웃다가 울지 몰라. 길게 늘어뜨린 가엾은 얼굴을 하고 서로 바라보며 '괜찮아?'라고 묻고 '내일은 더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고선 울음을 터뜨리고 말지. '친구는 잇몸을 앓고 우리는 이를 않는 거와 같다'고 하지. 편안하지만 불안한 편안이야"라고 스토다트 양(Miss Stoddart: 헤즈릿의 부인 됨)에게 보낸 메리의 편지처럼 정신질환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연민의 정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누이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에는 그녀가 차라리 죽었으면 싶기까지 했던 램에게 그녀가 제정신을 되찾았을 때 그녀에 대한 측은함과 사랑과 생에 대한 긍정이 몇곱절로 증폭되었을 것이요, 그 연민의 정이 자신에게, 형에게, 친구에게,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어, 결함과 어리석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인간애로 발전되어 희비가 조화된 수필을 낳게 한 것은 아닐까? 메리는 1847 년 사망했으나 램보다 10여 년을 더 산 샘이다. 양병석(원광대학교 교수. 영문학) 정년 퇴직자 독자여, 지긋지긋한 사무실에서 인생의 황금기, 빛나는 그대의 청춘을 허송해야 하고, 그 속박의 나날이 중년을 거쳐 은발의 노령에 이르기까지 석방이나 유예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고 휴일이란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어린 시절의 특권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며 사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라면, 그대는 어쩌면, 아니 그 때에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민싱 래인에서 책상에 자리잡은 지가 30 년 하고도 6 년이 되었다. 그 많은 방과 시간이며 학기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휴가를 즐기는 일에서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하루 8시간 9시간 때로는 10시간씩 일하는 회계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로 옮겨 앉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다소간은 무슨 일에건 적응시켜주는 것이어서 나는 만족하게 되었지만 우리 속에 갇힌 들짐승과 같은 어쩔 수 없는 만족일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요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요일이란 그 제도가 예배를 위해서는 찬양할 만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마음놓고 오락을 하는 날로 택하기에는 음울하고 무거운 대기가 감돌았다. 런던의 활기찬 모습이, 생기 넘치는 소리를, 음악, 가수들 (버저 소리, 살랑이는 거리의 속삭임들이 그립다. 그 긴 교당의 종소리는 우울하고 문 닫힌 점포들이 싫다. 책들, 그림들, 화려하고 끝없이 늘어선 오밀조밀한 상품들이며 자랑하듯 진열된 장공들이 세공품들) 좀 한산한 도심가의 산책을 즐겁게 하는 이모든 것들이 일요일에는 닫혀버린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분주한 행인들, 이를 구경하는 소요객들, 용무가 있는 행인들의 긴장한 얼굴, 이를 구경하면서 잠시 긴장을 풀고 있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매력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기껏 볼 수 있는 것이래야 풀려나온 도제들과 소상인들의 따분한 얼굴들, 아니면 반고반락의 표정들이요, 외출 휴가를 얻어 하녀가 여기저기 가끔 있을 뿐이다. 그들은 주 내내 종살이를 한 나머지 바로 그 버릇 때문에 자유 시간을 즐기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하루를 즐기는 공백의 여유를 보여줄 생기마저 없는 사람들이다. 그날은 들을 산책하는 사람까지 결코 기분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요일 외에도 내게는 부활절에 하루, 성탄절에 하루가 있었고 여름에는 허트포트셔의 고향 산천에 가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일주일의 휴가가 있었다. 이 일주일은 크나큰 기쁨이었다. 이 휴가가 다시 돌아온다는 기대가 있었기에 한 해를 지탱할 수가 있었고 구속된 생활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막상 그 일주일이 다가왔을 때, 멀리서 반짝이던 화려한 영상을 계속 지닐 수 있었던가? 아니면 기쁨을 쫓기에 안절부절했던 7일의 불안한 나날이요, 그날들은 최대로 즐겁게 하는 방도를 찾아보려는 따분한 걱정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어디에 기대했던 휴식이 있었던가? 그것은 내가 맛보기도 전에 사라졌고,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똑같은 짧은 휴가가 있기까지 끼여 있기 마련인 51주일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 휴가가 돌아온다는 기대는 유폐된 어두운 생활에 무언가 밝은 빛을 던져주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말했듯이 나는 내 노역을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출근의 어려움과는 별도로 언제나 업무에 대한 무력감이, 어쩌면 단순한 기분일지 모르지만 나를 따라다녔고 근간에는 점점 심하여 내 얼굴의 주름살 곳곳에 나타나 보일 정도에 이르렀다. 내게는 남달리 어떤 위기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것이 줄곧 있어서 낮에 일하고 나서도 미진하여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밤새 다시 일을 하고, 회계장부에 기장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계산 착오는 없었나하는 따위의 걱정으로 잠을 깨곤 하였다. 나는 어언 나이 쉰 살이 되었고 이젠 해방의 기대감도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책상이 되어버렷고, 책상의 나무토막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앉은 것이다. 사무실 동료들이 내 안색에 나타난 병색을 가금 물었으나 그것이 사주의 어느 분에겐가 의심을사고 있었던 사실은 몰랐었다. 그런데 지난 달 5일, 나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회사의 부사장이 나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직접 나의 수척한 안색을 책망하고선 터놓고 그 원인을 캐묻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하게도 내 병을 고백했고 어쩌면 종국에는 사임해야만 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물론 나를 격려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꼬박 한 주일, 나는 말을 너무 분별없이 해서 어리석게도 불리는 단서를 주어 해고를 재촉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일을 했었다. 이렇게 한 일주일이 지났다. 정말 내 일생에 가장 근심에 싸인 한 주일이었다. 이윽고 4월 12일 저녁,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려던 때였다. 8시쯤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무서운 별실에서 회사총회가 열리니 출두하라는 두려운 소환명령을 받은 것이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두려움에 싸여 있는 나를 보고 L씨가 미소짓는 것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던 것인데 놀랍게도 회장인 B씨는 나에 대한 의례적인 장황한 연설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런 것을 어떻게 꼬치꼬치 알아냈을까? 나는 속으로 어림없는 찬사라고 항변을 했다. 그는 계속해서 생의 일정한 시기에 퇴직하는 이점들을 설명하고서 별로 가진 게 없는 내 재산상태를 묻고 연금에 대한 제의로서 말을 끝맺었다. 그에 대해 세 중역들이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충실하게 일한 보답으로 봉급의 3분의 2의 평생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수혜인가! 나는 놀랍고 고마워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으나 그들의 제의를 내가 수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시간부터 일을 그만두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듬더듬 인사를 하고 8시 10 분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아주 영원히. 이 너그러운 은혜, 너무나 고마운, 그분들의 존함을 나는 여기에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후한 회사, 볼데로, 메리웨더, 보샌퀘와 레이시 상사에 나는 은혜를 입고 있다. 만수무강하시길! 처음 하루 이틀 동안은 들떠서 나는 명한 기분이었다. 행복을 붙잡았을 뿐 너무 어리둥절하여 진정으로 맛볼 수 없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느껴져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30 년의 감금생활에서 갑자기 풀려난 바스티유 감옥의 수인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나 자신이 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믿을 수 없었다. 그건 시간이란 개념을 벗어나 '영원'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시간'을 온통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주체할 수 있는 시간 이상의 시간을 수중에 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시간에 궁한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서 거창한 수입이 있는 처지로 갑자기 끌어올려진 것이요, 내 소유의 한계를 알 수도 없어 내 대신 시간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청지기나 영민한 관리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 경고해 두고 싶거니와 활동적인 사업에 오래 종사한 분은 시간 관리의 재능을 헤아리지 않고 겅솔하게 평상시 하던 일을 한 번에 당장 그만두지 마시라. 그건 위험하다. 나 혼자 생각이지만, 내 관리 능력은 무던한 것이어서 이제 그 처음 아찔했던 황홀감은 점차 가시고, 축복받은 내 처지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요일이란 일요일은 다 가지고 있지만 이를 즐기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시간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산책으로 몰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던 일요일에 그날을 최대로 이용하려고 하루에 30 마일을 걷곤 했듯이 온종일 걸을 필요가 없다. 시간이 귀찮다면 독서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을 켜야 하는 저녁 시간밖에 내 시간이 전혀 없어서 겨울철이면 머리를 짜고 눈을 상하곤 했듯이 그렇게 격렬하게 읽을 필요도 없다. 나는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아니면 발작이 날 때는 낙서를(지금처럼) 해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젠 기쁨을 쫓지 않고 기쁨으로 하여금 내게 오도록 한다. 어느 시에서 말했듯이 나는, 어느 푸른 황야에서 태어나 세월이 그에게 오게 하는 사람과 같다. '세월, 이 퇴직한 얼간이가 무슨 세월을 헤아리고 있단 말인가? 쉰 살이 넘었다고 이미 말하고선' 하고 독자들은 말할 것이다. 사실 나는 정말 액면상으로는 50 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 세월에서 나 자신에게가 아니고 타인에게 살아준 시간을 빼보라. 그러면 내 나이 아직 젊은 청년임을 인정할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것이 정히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밀할 수 있는 오직 진정한 시간이요, 전적으로 자신에 대해 갖는 시간이지 나머지는 어느 의미로는 그 시간을 살았다 할지라도 타인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내 가련한 여생의 남은 시간은 길든 짧든 내게는 적어도 세 배의 시간이다. 내 인생의 다음 10 년은, 그때까지 산다면, 앞에 보낸 생의 30 년과 같다. 이는 삼단 구구의 정확한 수치다. 자유가 시작되던 순간에 내가 사로잡혔던 그 야릇한 환상들 가운데서, 그 중에서도 그 흔적을 지금도 완전히 씻어버릴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그 계리사무소를 그만둔 사이에 엄청난 시간의 간극이 끼여들었다는 환상이었다. 나는 그것을 요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게도 여러 해 동안 연중 날마다 그렇게도 여러 시간을 그렇게도 가깝게 지내 온 그 중역들이며 사무원들, 금방 작별한 그들이 내게 죽은 것만같이 느껴진다. 어느 친구의 죽음에 부친 로버트 하워드 경(주1)의 '비극' 이란 시 속에 이와 같은 환상을 표현해 줄 훌륭한 구절이 하나 있다. 그대 떠난 지 촌각이라. 내 눈물 흘릴 틈마저 없었는데, 누천년 헤어진 양 그렇게도 그 사이가 먼 것만 같구나. 억겁의 영원이데 길고 짧음 있겠구나. 이 어색한 감정을 무산히기 위해 그 후로 한두번은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고, 나의 옛 사무실 동료들, 교전상태에서 내가 저버리고 떠났던 그 필경의 전우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친절을 베풀어 나를 반겨 주는데도 그때까지 함께 누렸던 그 흔쾌한 친밀감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예전과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마저 내게는 멀고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 책상, 모자를 걸던 옷걸이는 다른 사람에게 배당되어 있다. 그러리라는 것은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농담과 재담으로 나의 직업 험로를 부드럽게 해주던 30 년 하고도 6 년의 옛 동료들, 그 고된 일을 함께 나눴던 그 충실한 협동자들을 작별하는 마당에 다소의 회한을 느끼지 못한다면 악마가 나를 데려갈 것이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짐승이리라. 그런데 정말 그때가 그렇게도 험난했던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겁장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도 늦었다. 이런 경우 그런 후회를 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잘못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복받쳐오르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들 사이에 묶여 있는 끈을 나는 우지끈 끊어 버린 것이다. 그건 적어도 예의가 아니다. 이 이별이 진정되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잘 있거라! 깡마르고 빈정대기 좋아하면서도 친절했던 C군! 너그럽고 둔한 동작에 신사답던 D군! 지나치게 서두르고, 자청해 일하기 좋아했던 훌륭한 일꾼 P! 그리고 너, 육중한 지브 그레샴(주2)이나 휘팅턴(주3) 같은 시대의 당당한 상역관에나 어울릴 건물인 너, 미로의 통로들, 연중 절반은 촛불로 했빛을 대신했던 답답하고 음침한 사무실들, 내 건강의 가해자요, 내 삶의 준엄한 양육자였던 너 또한 잘 있거라! 나의 노작들! 떠돌이 책장수의 어두운 책더미 속이 아니라 그대의 품에 남아 있으라! 아퀴나스(주4)가 남겨 놓은 것보다 더 많은 내 육필의 회계장부들, 너의 빽빽한 선반에 가득히 쌓여 노역에서 풀려난 나처럼 쉬게 하라! 나의 의발을 그대들에게 남겨놓는다. 첫 회사 나들이가 있는 후 2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마음이 잔잔해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고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평온하게 된 것을 자랑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적인 것에 불과했다. 새로은 변화에 대한 불안감, 쇠약한 눈에 비친 낯선 광선의 현기증 같은 무언가 제 1차적인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전에 나를 얽어매고 있던 사슬들이 마치 내 옷에 없어서는 안될 어떤 부분처럼 정말 그리웠다. 나는 엄격한 독방 수도 생활에서 어떤 혁명으로 인해 갑지기 세상으로 귀환한 불쌍한 카르투지오(주5)의 수사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닌 적이 전혀 없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 늘 있어 왔던 일차럼 여겨진다. 대낮 11시에 홀연 본드 스트리트(주6)에 나왔지만 예전부터 그 시각에 그곳을 산책해왔던 것만 같다. 소호(주7)로 들어가서 서점을 뒤진다. 마치 서적 수집가로 30 년이 된 기분이어서 거기에도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홀연히 아침 풍경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다. 전이라고 다른 적이 있었던가? 피쉬 스트리트 힐은 어찌되었는가? 펜처치 가는 어디에 있는가? 30 년하고도 6 년 동안 매일 내 순례의 발걸음으로 닳아진 옛 민싱로의 돌, 일에 지친 사무원의 발걸음이 부딪칠 때마다 그 딱딱하던 부싯돌 소리가 이제 노랫소리로 변했는가? 나는 팰맬(주8)의 보다 즐거운 깃발로 마음이 쏠렸다. 때는 장날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즐비하게 늘어선 석상들(주9) 가운데에 서 있다. 내 처지의 변화를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내겐 시간이 멎어 있다. 나는 계절의 차이를 모두 잃었다. 요일도 모르고 날짜도 모른다. 전에는 하루하루가 아직 겪지 않은 생소한 날들에 관련된고 다음 일요일도 멀고 가까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느껴졌었다. 수요일의 느낌이 달랐고 토요일 저녁의 흥분이 있었다. 온 주일의 요일 하나하나의 특징이 내게는 분명했고 나의 구미와 기분 등에 영향을 주었다. 주말까지의 그 따분한 닷새를 보낼 월요일 날의 무슨 마력이 그 검정색(주10)을 하얗게 표백했단 말인가? 그 잿빛 월요일(주11)은 부엇이 되었는가? 모든 날들이 한결같다. 일요일. 덧없다는 아쉬움, 최대의 기쁨을 얻어내려는 지나친 걱정 따위로 번번히 실패한 억울한 휴일이었던 그 일요일 자체가 녹아내려 평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교회에 나갈 여유도 생겼다. 휴일을 동강내는 것으로 여겨지던 그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나는 무엇이든 가장 바쁜 시간에 훼방을 놓을 수도 있고, 이 5월의 화창한 아침에 윈저(주12)에 가서 함께 하루를 즐기자고 초청하려 상관없게 된 그불쌍한 노역자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로마의 전설에 나온 열녀 루크레티아(주13)를 대하고 있는 기분이다. 돌려도 돌려도 끝 없는 연자매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방앗간의 마소와 같다. 한데,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선가? 사람이란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많이 주면 줄수록, 할 일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가? 만일 내게 어린 자식이 있다면 그에게 불유노작(아닐 불, 있을 유, 힘쓸 노, 지을 작)이란 세례명을 붙였을 것이다. 아무일도 하지 않도록 말이다. 진정 믿거니와 사람은 활동하는 한은 사람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나야말로 전적으로 명상적인 삶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지진이라도 고맙게 일어나서 그 저주스런 면화공장들을 몽땅 삼켜버리지 않을 것인가? 거기 저놈의 책상을 가져다 멀리 던져 버려라! 천장지하 멀리 멀리 악마에게로 나는 이젠 상사 따위의 서기가 아니다. 나는 은퇴한 한유거사가 아닌가? 곱게 단장한 정원에거나 만나게 되어 있다. 나는 이미 텅빈 얼굴, 태평스런 거동, 일정한 걸음걸이로 정해진 목적도 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걷는 것이지만 실상 가는 데도 없고 오는 데도 없다. 사람들은 내 인품에서 보지 못했던 무언가 고상한 기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칭찬을 한다. 그동안 다른 기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이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알아보게 고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신문이란 것을 집어 들었다면 그것은 오페라 사정이나 알아보기 위함이다. 일은 끝나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 내게 할당된 노역을 마쳤으니 남은 날은 내 자신의 것이다. (옮긴이 주) 1. sir robert howard(1926--98): 영국의 연극배우, 극작가. 2. sir thomas gresham(1519--79): 영국의 재무관, 런던 거래소 설립자. 3. whittington(1358--1423): 영국의 견직물 상인, 자선가, 한 마리의 고양이로 거부가 되었다는 인물. 4. thomas aquinas(1225--74): 이탈리아의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 5. carthusian: St.브루소가 1086 년 프랑스 샤르트뢰즈에 개설한 엄격한 수도원의 수도사. 6. bond street: 런던의 고급상가. 7. soho: 프랑스, 이탈리아인 주민과 외국 음식점, 서점이 많은 지역. 8. pall mall: 클럽이 많이 있기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 9. 원문 elgin mables: 대영박물관 소장의 고대 그리스 대리석 조각물. 19세기초 earl of elgin이 사옴. 10. 원문 the ethiop: 에티오피아 흑인의 색깔을 가리킴. 11. 원문 black Monday: 쉬고 난 후의 첫 등교일을 가리키는 학생 숙어. 12. windsor: 잉글랜드 남부 버크셔 주의 도시. 13. lucretia: 로마 전설에 나오는 정녀. 오래된 도자기 나는 오래 된 도자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여성적이라고 할만큼 편벽된 애착 비슷한 것이다. 큰집을 구경하게 되는 경우, 나는 도자기를 보관하는 진열장이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고 그 다음에야 화랑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 좋아하는 순서에 대해 이유를 들어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누구나가 어떤 취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너무도 오랜 옛날에 비롯되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변호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어른들을 따라 맨 처음 구경했던 연극이나, 처음 보았던 전시회를 기억한다. 그러나 도자기 항아리와 접시가 언제부터 내 마음속에 끼여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때에도 (도자기 찻잔이) 저 원근법 이전의 세계에서 어떤 요소의 제약도 받지 않고, 남자니 여자니 하는 개념으로 둥둥 떠 있는 하늘색 물감으로 그려진, 저 귀엽고 법도 없는 기묘한 모습이 싫지 않았는데 어찌 지금이라고 싫어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이 옛친구들과 만나 보기를 좋아한다. 이들의 모습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허공에 모습이 떠 있지만(그렇게 사람의 눈에는 보인다), 여전히 대지 위에 서 있다. (왜냐하면 격식을 차린 화가는 터무니없는 것이 될까봐, 그들의 신발 아래 찍어 발라 놓은) 바로 그 짙은 남색 반점을 화가에 대한 예의로라도 대지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되도록이면 더욱더 여자다운 표정을 지닌 여자를 좋아한다. 여기 젊고 정중한 중국의 관리가 2 마일쯤 떨어진 거리에서 둥근 쟁반에 받쳐든 찻잔을 한 귀부인에게 바치고 있다. 보라, 거리가 얼마나 존경심을 돋보이게 하는가! 또 여기 그 여인이 아니면 다른 여인이 (찻잔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닮았으면 같은 사람일 터이니까) 고요한 정원의 시냇물 이쪽 기슭에 대 놓은 조그마한 요정의 배를 타려고 사뿐사뿐 단정한 걸음걸이로 발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내딛는 발의 정확한 각도로 보아서(이 세상에서 통되는 각도와 같다면) 어김없이 그 여자는 그 묘한 시냇물 저쪽 반 마장이나 떨어진, 꽃이 만발한 초원 한복판을 딛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좀더 먼 곳에는 (멀고 가까움을 그들 세계에서는 점치가 어렵지만) 말과 나무와 탑들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이쪽으로는 웅크리고 있는 암소나 토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큰 것과 작은 것이 크기가 같아 보인다. 아마 아름다운 중국의 맑은 공기를 통해서 보면 사물들이 그렇게 보이나 보다. 나는 간밤에 중국 녹차를 들면서(이따금 오후에 아무것도 섞지 않은 녹차를 마실 만큼 우리는 구습에 젖어 있다) 그때 처음 사용했던(최근에 구입한) 한 벌의 희귀한 고 청자 찻잔에 그려져 있는 위와 같은 몇 가지 아름다운 그림들을 사촌 누님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그러자니 이와 같이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이따금 우리 눈을 즐겁게 할 여유가 있다 싶어, 만년의 우리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런 처지가 되었느냐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마음속에 스쳐 지나는 감정이 누님의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 같았다. 나는 브리짓에게 나타난 이 여름철 구름과 같은 감정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의 형편이 넉넉하진 못했지만 행복했던 그 좋은 옛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누님은 말하였다. "가난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 정도라는 것이 있지." (그녀는 서슴없이 이것저것 말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우리는 훨씬더 행복했다고 확신하네. 이제 돈이 충분하고 여유가 생기니 물건을 사는 것도 그저 구입에 불과할 뿐이야. 전에는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은 하나의 승리의 기쁨이었지. 우리가 값싼 사치품을 가지려 했을 때(참, 그때는 자네의 승낙을 받으려고 얼마나 나는 법석을 떨어야만 했던가!) 2, 3일 전부터 토론을 하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조심스레 따져 보았고,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고, 쓴 돈의 해당되는 액수를 어떤 절약으로 메꿀 수 있을지를 궁리하곤 했었지. 물건을 사고 지불한 돈의 귀중함을 느끼던 그 시절에는 한 가지 물건을 사면 그만큼 보람있게 느껴지곤 했었지." "자네는 그 갈색 양복이 생각나나? 실밥이 나와서 친구들 모두가 창피스럽다고 말할 때까지, 자네는 그 옷을 걸치고 다녀야만 했었지. (그게 모두가 자네가 코벤트 가든(주1)에 있는 바커 서점에서 밤늦게 집으로 끌고 왔던 그 대형판 '보먼트와 플레처'(주2) 전집 때문이 아니었던가?) 기억이 나는가? 그것을 사기로 작정하기 전 여러 주일 동안 얼마나 눈독을 들였었는 지 말이야. 또 결정을 못하다가 토요일 밤 10시 무렵에야 겨우 작정을 했는데, 놓치지 않을까 두려웠던 나머지 자네는 그날밤으로 이스링턴을 출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늙은 책방 주인이 몇 마디 투덜대며 문을 비쳐 주던 때를) 그때 자네는 그것을 꾸려 들고 돌아오면서도 귀찮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무게가 갑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이 온전한가를 조사하고 있을 때(자네는 그것을 '제본'이라 했었지) 그리고 자네의 급한 성미가 밤새 놓아두는 것을 참지 못해서, 떨어진 책장들을 내가 풀칠하며 수선하고 있을 때 거기, 가난한 사람의 살림살이에 기쁨이 없었겠나? 아니면, 지금 자네가 입고 있는 말쑥한 검은 양복, 우리가 부자가 되어 깔끔해져서, 항상 솔질이 되도록 조심을 해야 하는 그 양복들이, 자네에게 말이야, 그 낡은 양복 (검푸른 자네의 그 자네의 그 옛날 양복을) 그 대형판 고본에 거침없이 써 버린 거금 15실링에 대한 (아니 16실링이었던가?) 그때는 그것을 엄청난 일로 여겼었지 양심을 달래기 위해 평상시보다 4, 5주일이나 더 낡을 때까지 펄럭거리며 입고 다녔지만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던 그 자부심의 절반이라도 뽐내게 해줄 수 있겠는가? 이제 자네는 사고 싶은 책은 어떤 것이라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네. 그러나, 이제는 그 고귀한 고서를 구입했던 것과 같은 기쁨을 자네에게서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네." "우리가 '블랜치 부인(주3)이라 이름지었던 레오나르도(주4)의 그 복제화에 15실링도 못 되는 돈을 쓰고서, 자네가 집에 와서 스무 번이나 변명을 하던 때, 또 사온 것을 보고는 돈을 생각하고 (돈을 생각하고 나서는 다시 그 사온 그림을 쳐다보곤 했던 시절만 해도)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 기쁨이 없었겠나? 이젠 서슴없이 곧장 콜나기라는 화상을 찾아가면 레오나르도의 복제화 정도야 몇십장이라도 살 수 있게 되었네. 하지만 그때 같은 기분이겠나?" "그리고, 휴일이면 엔필드, 포터의 바나 월담에 갔던 유쾌한 산책을 자네 기억하고 있나? (그리고 입맛이 당기는 냉 양고기와 샐러드 도시락을 담아 가지고 다녔던 작은 손바구니) 또 점심때가 되면 들어가서 가지고 간 도시락을 펴놓고 먹을 만한 적당한 주막은 없을까 하고 자네는 얼마나 살피곤 했던가? (미안해서 자네가 주문한 맥주 값만을 치르고서) 주막 마님의 안색을 살피고, 탁상보를 빌려줄 눈치인지 아닌지를 점쳐보곤 하면서. 또, 유명한 낚시꾼 아이잭 월튼(주5)의 수필에 나오는 그 마님과 같은 소박한 주인이 또 한 분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던가? (그리고 어떤 때는 그 주인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어떤 때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곤 하였지.)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서로서로 명랑한 표정을 짓고, '숭어장'을 별장으로 가지고 있는 낚시꾼 피스카토어(주6)가 부럽지 않게 가지고 간 평범한 음식을 맛있게 먹곤 하였지? 이젠, (우리가 어느 하루의 놀이를 떠난다면, 사실은 그런 기회도 거의 없지만, 우리는 중도에 차를 타고) 또 호사스런 휴게소에 들어가 비용 같은 것은 전혀 따질 것도 없이 최고급 음식을 주문하네. 그런데, 그 음식이란 우리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대접을 받아도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불안 속에서, 아무 데나 들어가 성급히 먹어치우던 시골 도시락 진미의 채 반에도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자네는 이제 자존심이 있어 특별석이 아니면 아무데서나 연극을 구경하지 못할 테지. 자네 생각나나? 우리가 '헥삼의 전투', '칼레이의 함락'(주7)이나 '숲 속의 어린이'(주8)에 나오는 베니스터(주9)와 블랜트 부인(주10)을 구경할 때, 앉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말일세, 그때 우리는 한철에 서너번씩 1실링짜리 싸구려 좌석에 앉기 위해서 각자 동전 한푼씩 짜냈었지, (그런 곳에서는 자네는 나를 데리고 올 곳이 못 된다고 항상 내심으로 생각했었고) 나는 그런 곳이나마 데리고 와준 데 대해서 오히려 고맙게 여겼었지. (또 약간 창피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재미가 있었고) 막이 오르면 극장에 들어 온 이상 장소가 무슨 상관이었으며, '아아든'에 있는 '로자린드'나 일리리아 궁전에 있는 '비올라'(주11)에 마음이 팔려 있을 때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다를 것이 무엇이었겠나? 자네는 말하곤 했지. 대중석은 남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연극을 구경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곳이라고 (또 이러한 구경거리의 진미는 구경 가는 빈도가 낮은 것에 비례하여 상승하는 것이라고) 또 그런 자리에서 만난 관객들은 대개 연극의 대본을 읽지 않으므로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에 그만큼 더 주의를 집중해야만 할 것이고, 또 그들은 그렇게 실제로 주의를 하더라는 이야기며, 한마디의 말이라도 놓치면, 그 한마디는 그들로서는 상상력으로 그 자리를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하였지. 그때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자부심을 달랬던 거지. 그리고 판단해보게나, 내가 한 여자로서 받았던 편의와 친절이 그 후 훨씬 값비싼 좌석에서 받은 것보다 그 극장에서 받은 것이 훨씬 못한 것이었겠나, 그렇지 않았겠나? 사실 비집고 들어가서 불편한 층계를 사람들을 헤치고 올라가는 것은 쉬운 건 아니었지, 하지만 그래도 여자에 대한 예의는 다른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볼 수 있는 정도와 다름없이 지켜지고 있었지, 그리고 하나의 아늑한 기분을 얼마나 북돋우어주었고, 결국은 그 연극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였던가! 이제 우리는 그저 돈을 내고 걱정 없이 걸어 들어갈 수 있지. 또 자네는 값싼 일반 관람석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 정말 그때 우리는 잘 볼 수도 없었고 또 잘 들을 수도 없었지. 그런데, 시력도 그 밖의 모든 것도 가난과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나는 생각하네." "아주 흔해지기 전에 첫물 딸기를 먹는더든가, 아직 값이 비쌀 때에 첫물 완두콩 요리를 먹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 그것들을 맛있는 저녁 식사로 먹는 것은 분명 특식이었지. 이제 우리는 무슨 특식을 먹을 수 있겠나? 혹 지금 우리 자신들을 특식으로 대접한다 치면 다시 말해 우리의 재력 한도에서 좀 벗어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지나친 이기요 천벌을 받는 사치가 될 것이야. 내가 소위 특식이라 하는 것은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것보다 조금 좋은 것을 허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들처럼,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양쪽이 같이 좋아하는 좀 비싸지 않은 사치를 가끔 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미안해하며 잘못에 대한 양쪽의 몫을 모두 혼자 몫으로 책임지려고 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자신들을 호사롭게 한다 해소 별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것은 오히려 남을 대접하는 방법을 시사해줄 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이제는 (내 말은) 우리 자신들에게 결코 호사스러운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날 우리들과 같이 궁핍한 상태를 조금 벗어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세." "아는 자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네. 연말에 계산을 맞추어보는 것이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는 거지 (그래 섣달 그믐날 밤이면 과용한 액수를 셈하기에 우리는 법석을 떨곤 하였지) 자네는 잘 들어맞지 않은 계산 때문에, 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썼나, 아니면 그렇게 썼을 리가 없다. 혹은 다음 해에는 그렇게 많이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등, 경위를 찾아보려 궁리하는 중에, 여러 차례 얼굴을 길쭉하게 늘어뜨리곤 하였지. 그러나 우리 재산의 보잘것없는 원금이 줄어들고만 있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었지. 그러나 어떻든 방법을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고, 이 항목 저 항목 등을 절충하고, 다음 해에는 이 비용을 줄이고, 저 비용을 없애고, 살아가는 것을 논의하는 사이에, 게다가 젊음이 가져다주는 희망과, 잘 웃어넘기는 활달한 기쁨이 (오늘에 이르도록 자네는 한 번도 그 점에 부족함이 없었지) 있어서 우리는 적자를 접어두었고, 결국에는 '그득히 넘실거리는 술잔'을 들고, '진정으로 유쾌한 코튼 씨'(주12)라고 불렀던 시구에서 자네가 인용하곤 했던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들이곤 했었지.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섣달 그믐이 되어도 결산할 것이 없고 새해에는 우리의 형편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즐거운 희망도 걸어볼 것이 없게 되었네." 브리짓은 평소에 지극히 말수가 적었지 때문에, 그녀가 일단 웅변조의 말문을 열었을 때에는, 말을 멈추게 하는데 조심을 한다. 하지만 일년에 불과 몇백 파운드를 가지고 그녀의 귀여눈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부에 대한 환영을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보다 가난했을 때 더 행복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다 가난했을 때 더 행복했던 갓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님, 우리가 그때는 더 젊었었지요. 미안하지만 그 과분하게 가진 것을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남아도는 돈을 바다 속에 처넣어버린다헤도 우리 자신이 조금도 나아질 리는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함께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한데 대해서는 크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우의의 결속을 돈독하게 해주고 한층 더 긴밀하게 해주었지요. 지금 누님이 불평하고 있는 충족된 생할을 전부터 항상 누렸었더라면 서로에 대하여 지금까지 지녀온 것과 같은 우의를 우리는 결코 지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곤경에 대항하는 힘, 저절로 부풀어올라 어떤 환경도 억누를 수 없는 그 젊음의 혈기가 우리에게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노경에 넉넉한 수입을 갖는다는 것은 젊음을 보충받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실로 섭섭한 보충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걸어가던 곳을 이제 치를 타고 가야만 합니다. 또 누님이 지금 말씀하신 그 좋은 옛 시절에 할 수 있었던 것보다는 좀더 호사도 하고, 좀더 편안한 자리에 드러누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누님과 내가 하루 30 마일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다면 베니스터와 블랜드 부인이 다시 젊어지고, 누님과 나도 젊어져 그들을 볼 수 있게 된다면, 1실링짜리 대중석에 앉던 그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누님 이제는 이것들은 모두 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순간 화려한 양탄자가 깔린 벽난롯가에서, 이 사치스런 안락의자에 앉아, 이렇게 조용히 말다툼을 하는 대신에, 누님과 내가 다시 한 번 그 불편한 층계를 비집고 오르며, 싸구려 관람석에 모여드는 가난뱅이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고 팔꿈치로 얻어맞고 있다면, 내가 다시 한 번 누님의 그 근심스런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비집고 올라간 맨 위층계를 점령하고서, 발 아래로 흔쾌하게 펼쳐진 극장 전경을 볼 수 있는 구멍이 트일 때면, "아^6,3^ 이제 살았구나!" 하고 부르짖던 누님의 그 유쾌한 음성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그 옛시절을 사오기 위해서라면, 크리서스(주13)가 가진 것보다, 거부 유태인 R씨(주14)가 가졌다고 생각되는 재산보다 더 큰 재산이라도 깊디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릴 용의가 있답니다. 그러니, 이제 저 즐겁고 작달막한 중국인 하인이 침대 덮개만큼이나 큰 양산을 들고 저 농청색 정자 안에 있는, 저기 귀엽고도 싱거은 성모 마리아를 반쯤 닮은 한 귀부인의 머리 위를 받치고 있는 저 찻잔의 그림이나 감상합시다." (옮긴이 주) 1.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지역 2. beaumount and fletcher: 영국의 극작가 francis beaumont(1584--1616)로 많은 작품을 함께 서술했기 때문에 흔히 병칭됨. 3. 이 보사품의 원화는 '바위 위의 처녀'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4. leonardo da vinci(1452--1519):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 5. izaqak walton(1593--1683): 영국의 수필가. 그의 '조어대전, the compleat angler'은 램의 애독서였음. 6. walton의 <조어대전>에 나오는 인물. 7. george colman(1732--94) 역사극들. 8. 1595 년경에 쓰인 밸러드 민요를 극화한 것. 잔인한 삼촌이 자기에게 맡겨진 어린 조카 남매의 유산을 탐하여 하수인을 시켜 그들을 없앤다. 오누이는 깊은 숲속에 버려져 굶어 죽었는데 그들의 시체를 새들이 나뭇잎으로 덮어주었다는 비극. 9, 10. 배우 11. 각각 셰익스피어의 희극 'as you like'와 'thetwelfth night'에 나오는 여주인공. 12. charles cotton(1930--87): 윌튼의 '조어대전' 5 판 2부의 'piscator와 venator의 대화'를 쓴 시인. 13. 소아시아의 옛 왕국 리디아의 왕(BC560--546). 대부호. 14. 런던의 은행가 로스차일드(1777--1836)를 가리킴. 제야(오를 제, 밤 야) 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다. 자신의 생존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의 경과(지날 경, 지날 과) 주기(물돌릴 주, 기약 기)에 놓이는 때가 누구에게나 한 해에 적어도 두 번 있다는 거다. 한 번은 각별한 의식으로 자기의 생일이라고 이름한 날이다. 옛날의 의식들이 점차 단절되어감에 따라 우리의 고유한 생일날을 엄숙하게 지내는 습속이 거의 사라져버렸거나, 있다하더라도 그 의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케이크나 오렌지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나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새해의 탄생은 널리 관계되어 있어서, 임금이나 구두 수선공이라도 무시하지 않는다. 사길 어느 누구도 정월 초하루를 무심히 보내지는 않는다. 이날을 기점으로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셈해보고 남은 날을 헤아린다. 이날이 우리 인류 공동의 생일인 것이다. 모든 종소리들 (종소리, 그건 천계에 가장 가까이 임하는 음악인데) 그 중에서도 제야의 종소리는 가장 엄숙하고 가장 감동적이다. 그 종소리를 들을 때는, 나는 언제나 지난 열두 달에 걸쳐 흩어져 있는 모든 영상들, 그 아쉬운 기간중에 내가 행하거나 당했거나, 이루었더나 등한히 한 모든 일을 웅축시키는 데에 마음을 모두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가치를 깨닫듯 나는 가버린 시간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거다. 가버린 시간은 인간적 색채를 가지게 되어서 현대의 한 시인이. 저문 해, 그 치맛자락 나는 보았네(주1) 하고 외친 것이 비단 시적 환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두려운 고별의 숙연한 글픔 중에서 우리 누구나가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어젯밤 분명 그렇게 느꼈고, 분명 모두 나와 같았을 것이다. 하기야 내 지인들 가운데에는 떠나가는 한 해를 여의는 애절한 아쉬움보다는 한 해의 탄생에 대한 즐거운 환희를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찾아오는 손을 즐겨 맞고, 떠나는 객을 재촉한다.(주2) 는 사람들 축에 들지 못한다. 그 전부터 나는 본래 새것들이라면, 새 책, 새 얼굴, 새해 할 것 없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미래를 마주보는 것을 거북하게 하는 무언가 뒤틀린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을 나는 거의 중지해버렸고, 세월의 다른 쪽, 지나가버린 세월을 바라볼 때만이 생기가 돈다. 나는 지나간 환영과 결말이 나버린 일에 빠져 있다. 나는 지난날에 실망했던 일들과 이놈 저놈 마구잡이로 돌아가며 싸운다. 나는 빈틈없이 갑옷으로 방비가 되어 있다. 용서해주기도 하고, 굴복시키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 도박꾼의 표현으로, 내가 한때 비싼 값을 치른 유희를 하고나서 나는 다시 그것을 재연한다. 내 생애 중에 있었던 딱했던 일과 사건들 그 어느 것도 나는 이제 다시 고치고 싶은 생각이 거의 없다. 잘 구성된 어느 소설의 사건들처럼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싶다. 앨리스 W-n(주3)의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 그보다 더 더욱 아름다웠던 눈매에 사로잡혀 가장 귀중한 황금의 7 년이란 나의 젊은 세월을 연모로 흘려보내버리고 말았던 편이, 그 열정적인 사랑의 모험이 없었던 것보다 낫다고 생각된다.(주4) 우리집 가족들이 그 노회(늙을 노, 간교할 회)한 도렐(주5)의 속임수로 은행에 2천 파운드의 저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고, 그 능청스러운 악당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몰랐던 편보다 나은 것이다. 조금은 사내답지 않게 젊은 시절이나 회상하는 것이 나의 약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40이 넘으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도 자신을 사랑하도록 호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역설이 좀 지나친 것일까? 내 자신에 관해 내가 조금이가도 알고 있다면, 마음이 내성적인 사람치고 (나도 무척이나 내성적이지만) 자신의 현 존재에 대해 존경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엘리아(주6)라는 사나이에 대한 것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경박하고, 쓸모 없고, 변덕스럽고, 그 악명, 그 악벽(모질 악, 담 벽) 고집불통, 충고를 싫어하고,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고 더구나 말더듬이 광대, 무어라고 매도 해도, 나는 당연히 그 매도를 당할 만하고, 그 보다 심한 비난을 하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그러나 거기 그 배후에 있는 '다른 나', 그 어린 엘리아에 대해서만은 (내 항의하거니, 마치 남의 집 아이요, 내 부모의 자식이 아닌 것처럼 40 년 하고도 5 년이란 세월로 인해, 바꿈질이 된 이 어리석은 나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그 어린 도련님에 대한 추억만은은 소중히 간직하도록 허락해 주어야 한다. 다섯 살 때의 지겨운 그의 천연두, 그보다 힘든 쓰디쓴 그 약물들을 보고 나는 탄식 할 수 있어야 한다. 펄펄 끓는 그의 가련한 머리를 크라이스트 학교 병상의 베개 위에 누일 수 있어야 하고, 병상을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모습이 눈을 떠보니 의외로 낯모르는 사람이 잠든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임을 알고 문득 놀라 잠을 깨던 그와 함께 나도 잠을 깬다. 무엇이건 티끌 만한 거짓에도 그가 얼마나 두려워 몸을 움츠렸던가를 나는 알고 있다. 맙소사, 너, 엘리아여, 어찌도 그리 변했단 말인가! (너는 능청스럽기도 하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용감(허약한 몸에 비해)했고,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했고, 얼마나 희망에 차 있었던가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가 정말로 나였다면, 또 어느 가면을 쓴 여신이 나의 미숙한 인생의 행보에 규칙을 정해주고, 나의 도덕적 건강성을 조율하기 위해 그 아이를 가장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면, 어이 내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처럼 동경이 지나칠 정도로 내가 과거에 심취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병적인 기벽 증후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원인에 연유되는 것일까? 아내나 자식이 없기 때문에 나를 나 자신 밖으로 완전히 투영하는 것을 배운적이 없고, 희롱하고 놀 때 친자식이 없으니 추억으로 돌아가 나자신의 어렸을 때의 생각을 나의 상속자요 총아(사랑할 총, 아이 아)로 삼고 있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만일 이런 사색들이, 독자여, (어쩌면 무척이나 바쁘실) 그대에게 허황되게 생각된다면, 만일 내가 그대의 공감대를 벗어나 나 혼자서 들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나는 그대의 비웃음을 피해 엘리아라는 환상의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련다. 내가 성장할 때만 해도 어른들은 옛날부터 내려온 의식은 어느 것이건 신성하게 지키는 것을 조금도 허수히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송년의 타종은 각별한 의식을 갖추어 거행되었다. 그 시절에도 그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는 나의 온 주변에 환희를 일으키는 것이었이나 나의 마음속에는 어김없이 한 가닥의 구슬픈 영상을 심어주었다. 그렇다고 그때 그 종소리의 의미를 인식했다거나 그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에만 그랬덩 것이 아니라 30의 청년이 되어서까지도 자신이 죽을 숙명의 인간이아는 사실을 실로 전혀 깨닫지 못했다. 물론 그때에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고, 필요했다면 인생무상에 6월의 한 더위에 차가운 겨울날을 상상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가? 진실을 고백할까? 이 최후 결산의 날들이 너무도 강력하게만 느껴지는 거다. 나는 생존이 가능한 날들을 셈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구두쇠의 동전처럼 인색하게 굴게 되었다. 남은 해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시간이 더욱 빨라질수록 그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지고, 헛되이나마 그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어보고 싶은 것이다. '베틀의 북통이 지나가듯'(주7) 시간을 기꺼이 보내버릴 수가 없다. 그와 같은 비유에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요, 그 죽음이라는 쓰디쓴 약이 달콤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영원 속으로 유유히 실어가는 조수에 실려가고 싶지 않다. 나는 피할 수 없는 그 운명의 행로가 싫다. 나는 이 푸르른 대지며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사랑한다. 설명할 수 없는 전원의 고독, 도시 거리의 달콤한 안정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이곳을 내가 영원히 살 곳으로 삼고 싶다. 나는 내가 지금 이르러 있는 나이에 그대로 머물고 싶다. 나도 내 친구들도 더 젊어지지 않고, 더 부유해지지도 않고, 더 수려해지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로 인해 이 세상과 끊어지거나, 사람들이 말하듯 익은 과일처럼 무덤 속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나의 소유인 이 대지에서의 어떠한 변화도, 먹는 것이건, 사는 데서건 나를 당황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니 집 터주와 조상신들은 무섭도록 발을 견고히 틀어박고 있어서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뽑히지 않는다. 그들은 리비니아의 해안(주8)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삶의 새로운 상태는 나를 망연하게 한다. 태양과 하늘, 시원한 바람, 홀로 걷는 산책, 여름 휴가, 푸른 들판, 고기와 생선의 맛있는 국물, 친구와의 어울림, 유쾌한 술잔이며, 촛불이며, 노변(화로 로, 갓 변)의 정담, 순진한 자랑이며 농담들이며 빈정대는 이야기, 그것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생명과 함께 사라지는가? 귀신들과 정답게 지내면 그들이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가냘픈 옆구리를 비비꼬며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대, 나의 한밤중의 연인들, 2절판 책들은 또 어찌 되는 것인가! 내 품에 그대들을 한아름 안아보는 그 강렬한 기쁨과도 헤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그 세계에서도 도대체 지식이란 것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이 친숙한 독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느 괴상한 직관의 실험을 통해야만 하는 것인가? 나의 마음을 끄는 이 세상 친구들의 미소, 그 낯익은 얼굴, 그 감미로운 표정의 교차, 이런 것들이 없어도 저승에서 우정을 누릴까? 겨울철에는 유달리도 자주 죽음에 대한 (아무리 온건한 표현을 쓰려 해도) 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나를 붙어다니며 괴롭힌다. 쾌청한 8월의 정오, 찌는 듯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는 죽음은 거의 불확실하게 된다. 그런 날에는 나같은 가련한 파충류도 일종의 불멸감 같은 것을 느낀다. 이때는 몸이 부풀고 싹이 돋는다. 이때에는 우리는 다시 강해지고, 다시 씩씩해지고, 다시 현명해지고, 다시 더욱 장대해진다. 그러나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면 다시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죽음이라는 감정의 주인에게 시중을 든다. 추위, 멍멍한 느낌, 꿈속 같은 기분, 착잡한 분위기, 유령같이 으그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차가운 달빛까지도, 그 차가운 태양의 유령, 아니면 아가서(맑을 아, 노래 가, 글 서)에 나온 혈색 없는 메마른 여인(주9) 같은 그피보스(주10)의 병든 누이, 나는 결코 그녀의 총아(주11)가 아니다. 나는 페르시아인처럼 태양을 숭배한다. 생의 도상(길 도, 위 상)에서 나를 가로막거나 밀어내는 것은 무엇이건 죽음을 연상케 한다. 개개의 불길한 일 모두가 체액이 흐르듯 바로 그 대역병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삶의 종말을 피난의 항구처럼 기꺼이 영접하고, 무덤에 대해서도 베개처럼 베고 잠드는 부드러운 팔뚝인 양 말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죽음에게 구혼을 한 적도 있다.(주12) 그러나 나는 네게 말하노니, 사라지라! 너 추하고 흉한 유령이여! 나는 너를 혐오하고 미워하고 저주한다. 나는 너를 '수도사 존(주13)의 말대로' 12 만의 악마들에게 남겨주어 어떤 경우에도 용서나 묵인받지 못하게 하여, 누구나 싫어하는 독사를 보듯 너를 피하게 할 것이요, 낙인을 찍어서 추방하여, 네 흉을 보게 할 테다! 아무리 해도 나는 너를 소화할 수가 없구나! 너, 그 찝찝하고 음울한 존재의 부정, 아니 놀랍고 당혹스런 절멸의 긍정이여! 그대를 두려워하는 공포에 대한 처방들 또한 한결같이 그대처럼 쌀쌀하고 무례하기만 하다. 그는 '죽어서 황제와 제후와 함께 누워 있다'(주14)는 것이 생전에 그런 잠자리 친구를 탐한 적도, 원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만족을 주자는 것인가? 아니면 '눈부신 그 예쁜 얼굴 그대로 보이리'(주15)라는 말이 정말 무슨 위로를 주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나를 위오하기 위해 앨리스 W-n(주16)이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 무엇보다도 보통 비문에서 흔히 보는 그 무례하고 당치않은 상투적인 말에서 나는 더욱 역겨움을 느낀다. 망자(망할 망, 놈 자)는 모두가 '머지않아 나도 지금의 그와 같이 될 수밖에 없다' 는 그의 가증스럽고 뻔한 사실을 내게 훈계를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운 장래는 아니다. 우선 현재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 나는 망자가 된 그대들 스무 사람 값은 되는 거다. 그대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그대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대들에게는 신년이 없지 않는가! 나는 지금 살아남아 1821 년(주17)의 즐거운 후보자로 생존하고 있다. 다시 술 한잔을 그리고, 저 변절하는 종소리, 방금까지 1820 년의 장송을 구슬프게 노래하던 종소리는 사라지고, 곡조를 바꾸어 활기차게 후계자를 영접하고 있으니, 이런 경우에 지어 부른 명쾌한 코튼(주18)의 노래를 그 종소리에 맞추어 부르자. 신년 들어라, 닭은 울고, 저기 빛난 별, 알리누나, 밝은 날 머지않음을, 보아라 저기, 밤의 장막을 찢고, 금빛으로 서산 마루 물을 들인다. 노(늙을 로) 야누스(주19) 그와 나와서는 갸웃갸웃 살펴보며, '저쪽은 전망이 흐린데' 말하려는 듯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러면 따라서 그 속을 우리도 들여다보고, '우리 쪽이 아닌데' 예언을 한다. 그러나 어둠 앞질러 미리 말함은 최악의 무서운 일 당하기보다 더 더욱 괴로운 재난들을 불러들이고 더 더욱 심하게 영혼을 괴롭히는 쓰디쓴 고통 속에 빠져드는 법. 그러나 어디 보자! 그러나 어디 보자! 이제 좀 보이누나, 맑은 빛 돋아오니 이내껏 찌푸리던 그 이마에 청명(맑을 청, 맑을 명) 화창(화할 화, 화창할 창) 내 눈에도 보이누나. 지나간 궂은 일을 마주보는 저쪽 얼굴 달갑잖게 찌푸리나, 신년탄생 마주보는 이쪽 얼굴 맑고 밝게 미소만 짓네. 드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모든 세월 훤히 열렸고 햇님은 시시각각 세월을 모두 보는데, 그대로, 세시천역(햇 세, 시간 시, 옮길 천, 바꿀 역) 바뀔수록 더욱 더욱 미소만 짓네. 첫날 아침 우리 맞아 그렇게도 미소를 짓고 태어나는 그 순간에 다정히 말을 거는데, 우리 어찌 일년영기 겁을 내어 의심할손가? 저주로다, 지난해 액운이래도 올해는 보다 좋은 증거가 될 뿐, 아니면 최악으로 지난해를 보내듯 아무렴 올해 또한 겪어 보내지. 그러면 좋은 해가 다음에는 따라오는 법. 최악의 궂은 일도 (우리가 매일 보듯) 최선의 행운보다 수명이 길 순 없고, 궂은 일 흔적보다 좋은 일 남긴 자국 더욱더 오래 가니, 삼 년에 좋은 일 년 맞은 사람 운명을 불평함은 배은이리니, 그것조차 받을 자격 없는 이로다. 그러니 좋은 술 가득 부어 남실남실 잔을 들어 새 손님을 영접하세나. 언제나 즐거움은 행운을 불러들이고, 재앙도 감미롭게 바꿔주는 법. 만약에 행운의 공주님이 등을 돌려도, 들자꾸나 술잔을 가득히 그러면 공주님 다음해에 얼굴 다시 돌리실 그때까지 우리 더욱더욱 잘 참아내리니. 어떤가, 독자여? 이 시구 속에는 옛날 영국의 기질인 소박한 관용의 맛이 흐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종의 강심제처럼 소화되어 마음을 키우고, 신선한 피와 훈훈한 원기를 복돋아주지 않는가? 조금 전만해도 죽음을 이야기하고 두려워했던 그 울먹이는 공포가 어디 있는가? 맑은 시, 그 정화의 빛살에 흡수되고, 우울증의 유일한 영약인 순수한 헬리콘(주20) 광천의 파도에 말끔히 씻기어 구름처럼 사라졌다. 자 이제 그 훈훈한 또 한잔의 술을! 그리고 즐거운 신년을, 나의 주인이신 독자들, 그대 모두에게 신년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옮긴이 주) 1. 사무얼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er coleridge, 1772--1834)의 'ode to the departing yeas'에서 인용. 2.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나오는 말. Pope의 번역본 XV, 84. 3. alice W-n: 앨리스 윈터턴(alice winterton)으로 램의 애인이었던 앤 시먼스(ann simmons)를 지칭하는 가명. 4.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92)의 'in memoriam' 27 행에도 비슷한 표현이다. 'it 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사랑하고 사랑을 잃는 것을, 사랑이 아주 없는 것에 비하리.)' 5. dorrell: 당시의 악덕 변호사를 지칭, 램은 그의 시 'going or gone'에서도 이 이름으로 사기꾼과 유서변조사를 비유하고 있다. 6. elia: 램 자신의 필명. 7. 원문 like a weavers shuttle: 성경 욥기 7장 6절 'my days are swifer then a weaver's shuttle' (내 세월이 베틀의 북통처럼 빠르도다)에서 인용. 8. Lavinian shores: 버질(vergil)의 서사시 '아에네이스(aenis)'에 나오는 해변. 아에네아스(aeneas)가 트로이 성 함락 후 여러 나라를 유랑하고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된 이야기로 아에네아스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신의 명에 따라 이탈리아의 라비니움(lavinian) 해변에 도착했다는 고사. 9. 원문 csntacles: 솔로몬의 노래(songs of solomon)8장 8절에 나오는 여인. 10. phoeb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달의 여신 피비(phoebe)의 오빠. 11. 원문 I am none of her minion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피비가 사냥중에 미소년 엔디미온을 만나 사랑에 빠진 나머지 그를 잠들게하여 언제까지 바라보았다. 12. 원문 somer have wooed death: 키츠(keats, 1795--1821)의 'ode to nightingale' 같은 시를 말함. 13. john: 라블레(rabelais)의 풍자극 '가르강튀아(gargantua)'에 나오는 인물. 세빌(seville)의 호걸승으로 집사의 지팡이로 적을 쳐부수며 '지옥의 악마들에게 남겨 주겠다'고 버릇처럼 외쳤다 함. 14. 원문 lie down with kings and emperors in death: 토머스 브라운(thomas browne, 1605--82)의 '하이드리오타피아(hydriotaphia)' 5장, 성경 욥기 3장 13--14절에 나오는 말.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의 수필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의 무덤(the tombs in westminster abbey)'에도 이런 말이 있다. 15. 원문 so shall the fairest face appear: 데이비드 말렛(david mallet, 1705?--65)의 민요 '윌리엄과 마거릿(willian and margaret)'에 나오는 구절. 16. 주3 참조. 17. 당시 lamb은 46세. 18. 찰스 코튼(charles cotton, 1630--87): 램이 애독한 'the complete angler'의 저자인 아이잭 윌튼(izaak walton)의 절친한 친구로 'the complete angler' 2부를 씀. 19. janus: 로마 신화에 나오는 얼굴이 둘인 수호신. 20. helicon: 그리스 신화의 시신들이 살았다는 그리스 남부의 산. 시상의 원천. 회복기의 환자 지난 몇 주일 동안 나는 신경열이라는 고역한 병마의 포로가 되었다가 이제야 조금씩 풀려나고 있다. 이 병고를 치르고 나니 이와 관계없는 어떤 화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능력이 없게 되어버렸다. 독자들은 이달에는 내게서 좋은 글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아^36^예 갖지 마시라.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환자의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또 사실, 병고에 대한 이야기를 몽땅 털어놓는다 해도 하나의 몽상에 불과하다. 대낮에 커튼을 치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햇빛을 가리고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깡그리 잊는다는 것이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여린 맥박의 고동소리 외에는 삶의 모든 활동에 대해 무감각하게 된다는 것이 환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일 제왕의 고독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일 것이다. 누워서 침대를 다스리는 폼이 얼마나 제왕다운가! 환자는 얼마나 마음대로 변덕을 부릴 수 있는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는 관자놀이의 끝없는 요구에 응하여 베개를 엎었다가, 엎었다가, 밀었다가, 낮췄다, 높였다, 두들겼다, 폈다 하는 폼이 얼마나 제왕다운가! 정치인들이 자주 등을 돌린다고 하나 어찌 환자에 비기겠는가. 몸을 펴고 길게 누웠다가도 금세 반으로 웅크린다. 비스듬히 옆으로 등을 등을 돌리는가 하면 머리와 발은 침대를 가로지른다. 그래도 그 변덕을 탓하려는 사람이 없다. 사방을 가린 커튼 안에서 그는 절대 군주요, 그안은 그의 영해일 따름이다. 병이 들었을 때 인간은 그 스스로에게 자아의 폭을 얼마나 크게 확장시키는가! 환자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존재가 된다. 그는 이기심을 최대로 갖는 것만이 그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며, 이를 지키는 것만이 그가 받은 신의 율법인 것이다.(주1) 그는 어떻게 병을 이겨낼 것인가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집의 안팎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소란한 소리만 없으면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얼마 전만 해도 그는 한 소송사건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절친한 친구의 흥망이 걸려 있는 송사였다. 그는 그친구의 부탁을 받고 단숨에 시내를 이곳 저곳 뛰어 다니며 증인들을 붙잡고 사정하고 변호사에게 추가 사례금을 주어 가면서 일을 부탁해야 했다. 바로 그 공판이 어제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도 마치 북경에서 열린 재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판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그가 듣지 않도록 귓속말을 했겠지만 집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로 인해 어제 재판이 잘못되어 친구가 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 판결 내용을 주워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친구'라는 말, '망했다'는 말도 그에게는 의미없이 지껄이는 군소리에 불과하다. 어떻게 하면 병이 쉬 나을까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는 생각하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오로지 한군데로 향한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도 그 밖의 근심의 세계를 몽땅 환수해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병이라는 든든한 갑옷을 입고, 고통이라는 굳은 껍질에 싸여 있다. 그는 동정심을 오직 자기만의 용도를 위해 단단히 자물쇠를 채운 귀한 포도주처럼 간직해둔다. 그는 자기를 측은하게 여기며, 자기를 서러워하고 신음하며 누워 있다. 그는 자기를 몹시 그리워한다.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안에서 창자가 녹을 지경이다. 그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처지가 서러워 운다. 그는 억지로 고통을 덜어낼 사소한 책략을 꾸미면서 자기를 편하게 할 방도만을 끊임없이 획책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최대로 활용하다. 자기 자신을 쪼개어 아프고 괴로운 곳의 수와 동수의 독립된 개체들로 분할시켜보는 그럴 듯한 허구를 꾸민다. 그래서 때로는 그 골이 쑤시는 가엾은 머리를 향해, 자기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을 대하듯 명상에 잠기고서 자나깨나 지난밤 줄곧 그 속에 도사리고 있던 그 둔탁한 통증을 통나무 아니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인 양 잡아 빼내려면 머리통을 쪼개지 않고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때는 자신의 차깁고 가냘픈 여읜 손가락을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는 자기 봄의 모든 부분을 모두 동정하게 되고, 그의 침상은 자비와 온정의 수련장으로 변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동정자며, 그를 대신해서 아무도 그 일을 그처럼 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그는 자기의 비극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수프 국물이나 약을 들고 시간 맞추어 나타나는 노 간호원의 얼굴만이 반가울 따름이다. 그 얼굴은 무표정하기 때문에 좋고, 그 얼굴 앞에서는 침대 기둥을 대하듯 거리낌없이 열띤 비명을 쏟아놓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전혀 감각이 없다. 인간이 하는 일이나 직업이 무엇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의사가 회진할 때 그런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분주한 의사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을 보고서도 보살피는 환자가 많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오직 자기만을 환자로 생각한다. 얄팍한 사례금 봉투를 접어 넣고서 소리가 날세라 조심스럽게 병실을 빠져 나갈 때에도 마음에 걸린 환자의 병상이 어디에 또 있어 이 선량한 분이 서둘러 가시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도 현재 그로서는 도저히 가져볼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다만 내일 또 같은 일이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집안에서 수군대는 말들이 그에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들릴 듯 말 듯한 말소리는 집안에 생명이 지속되고 있다는 표시이기에 그에게 위안이 되지만,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지를 못한다. 그는 아무것도 몰라야 하고,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된다. 벨벳 비단을 밟듯 살슴살슴 층계를 오르내리는 하인들의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까지도 그의 청각을 깨워놓을 때가 있지만 어슴푸레 그들이 하는 일을 짐작해볼 뿐,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알려고 한다는 것은 부담이 된다. 그는 짐작해보는 것 이상의 심적 부담을 감내할 수라 없는 것이다. 조심해서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에 그는 살며시 눈을 감아버린다. 문병을 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나 결코 그 문병자의 이름을 알려 하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 내려앉은 정적과 무서운 침묵 속에서 그는 당당하게 누워서 자기의 주권을 즐기고 있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군주의 대권의 향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비교해보라, 조심스런 그 발걸음, 눈짓 하나로도 대령하던 공손한 그 시중과, 병세가 호전되었을 때 동일한 간호원이 취하는 부주의한 그 행동(문을 쳐닫거나 열어놓는 등), 함부로 병실을 출입하는 그 불손을, 그러면 병실의 침대(차라리 왕좌라 해두자)에서 회복기의 안락의자로 옮겨 앉는다는 것은 권위로부터의 몰락이요 왕좌로부터의 축출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회복의 차도에 따라서 사람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위축되어버리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혼자서 그처럼 독차지하던 그 영토는 이제 어디로 사라진 것이까? 그가 누워서 전제군주의 몽상을 실천하던 알현실이요 왕권의 현장이던 그 병실이 이제 얼마나 평범한 침실로 격하되고 말았는가! 침대가 말끔히 손질되어 있는 것조차 어쩐지 하찮고 시시하게 느껴진다. 침대가 매일 정돈될 수도 있다니, 거친 파도처럼 구겨진 좀전의 모습에 비하면 사정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때는 침대 손질이란 3, 4일만에 한 번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때마다 환자는 슬프고 괴로웠지만 잠시 동안 들려나와 그 달갑지 않은 청소니 정돈이니 하는 침범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아귀가 어긋난 몸뚱이는 그 화를 면해주기를 애원 했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침대로 옮겨져 3, 4일의 유예기간 동안 몸부림 치면 침대는 다시 흐트러지곤 했다. 침대 덮개에 새로 생긴 주름살 하나하나는 자세를 고쳐 누었다든지, 억지로 돌아눕기 아니면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취하려고 몸부림쳤던 역사의 기록이요, 쭈글쭈글해진 살갗인들 그 구겨진 침대 덮개만큼 환자의 고통을 진실하게 전하진 못했다. 그 영문 모를 한숨, 그 신음 소리, 얼마나 큰 고통이 들어 있는 동굴에게 터져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끔찍하기만 했던 그 소리들도 이제는 잠잠하다. 그레르나의 고통도 이제 사라지고, 병고의 수수께끼도 풀려 필록테테스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게 되었다.(주2) 자기 존대에 대한 환자의 몽상은, 어쩌면 가끔 찾아오는 의사나 간호원의 문안 속에나 그 흔적이 남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또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변해버렸는가! 이 사람이 그 사람을 수가? 새로운 소식이며 잡담이며 이야기며, 의학과 관계없는 것이면 무엇이든 말해주던 그 사람인가? 이 사람이 조금 전에 환자와 그의 잔인한 적인 죽음 사이에 끼여들어 조물주가 보낸 사자의 엄숙한 사명을 띤 양 높다란 중재자의 위치에 우뚝 서 있던 그 사람을 수가 있을까? 체! 이 사람은 어느 노파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병고를 호사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주었던 모든 것이 그대에게 하직을 고한다. 온 집안을 숨죽이게 했던 그 마력, 집안 구석구석 스며든 그 황량한 정적이며, 묵묵히 시중들어 주던 일, 표정만으로 문병하던 일이며, 자기만을 돌보던 보다 부드럽고미묘한 기분이며, 세상 생각이란 철저히 배제되고 아프다는 것에만 고착된 병고에 대한 유일무이한 눈이며, 온 세상이 매달렸던 인물, 그가 누렸던 그 독무대가 한 점, 작은 티끌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병고의 물살이 빠져 나가기는 했지만, 건강이라는 확고한 땅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먼, 회복기의 펑퍼짐한 늪속에 들어 있을 때, 존경하는 편집자여, 당신의 원고 청탁서를 받게 되었소. '죽어가는 순간에 무슨 글이냐'고 생각했었소.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언가 어려운 일이요, 또 핑계가 구차스럽기는 하오만 이렇게라도 강변을 늘어놓고 나니 한결 해방이 된 기분이오. 원고 청탁이 시의에 맞지 않기는 했지만 이 호출이 깡그리 잊고 있었던 사소한 인생사에 나를 다시 연결시켜주는 것 같소. 대단치 않은 것일지는 몰라도 이것은 활동에의 조용한 초대료, 자기 도취의 터무니없는 몽상과, 병고라는 허황스런 자만 상태에서의 탈출을 뜻하는 것이었소. 사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잡지라거나 혹은 군주 같은 존재들에 대해서, 또 법률이라거나 문학에 대해서도 무감각한 상태로 너무 오랫동안 드러누워 있었소. 이제 그 병적이 팽만한 상태도 가라앉고 있소. 또 내가 공상 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환자란 오직 아프다는 골똘한 생각 하나로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자신을 신화 속의 티티우스와 같은 거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그 넓은 땅도 한 뼘으로 줄어들고 있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듯 오만한 거인이었소만, 이제 다시 내 본래의 보습으로 돌아온 보잘것없는 수필가인 그 여위고 깡마른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었소. (옮긴이 주) 1. 원문 the two tables of the law: 모세에게 신이 내린 십계명이 세겨진 두 개의 명판을 말함. 2. 옛 그리스 남쪽 레르나 지방에 독사가 있었는데 헤리클레스의 부하인 필록테테스(philoctetes)가 그 뱀의 독이 발린 화살에 찔려 고통을 당했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 굴뚝 청소부 예찬 나는 굴뚝 청소부를 만나보고 싶다. 오해는 마시라. 어른 청소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이든 청소부는 아무래도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앳된 풋내기 청소부, 엄마가 씻겨준 세수 자국이 아직 볼에 남아, 갓 묻은 숯검정 사이로 발그레한 보조개를 드러내는 어린 청소부들이다. 그들은 동이 틀 무렵 아니면 더 일찍 일어나서 앳된 목소리로 "굴뚝 청소합쇼"(주1)하고 외치고 다니는데, 그 억양이 마치 어린 참새가 '짹짹'하고 지저귀는 소리와 같다. 아니, 흔히 해뜨기 전에 굴뚝 꼭대기에 올라 서 있으니 새벽 종달새라함이 어쩌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공중에 나타난 이 어슴푸레한 반점 (아니, 가엾은 얼룩이랄까) 이 철부지 검둥이들이 나는 진정 그립다. 우리와 혈통이 같으면서도 아프리카 토인처럼 까만이 아이들, 뽐내지 않고 검은 제의를 입고서 섣달 아침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며 그 작은 제단인 굴뚝 위에서 인류에게 인내의 교훈을 설파하고 있으니 아기 목사님들이라 해야 할 이 아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어렸을 때 본 그 아이들의 작업 광경은 얼마나 신기했던가! 우리 자신보다 크지 않은 어린아이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지옥의 목구멍'(주2) 같이 생긴 굴뚝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그 어둡고 숨이 막혀버릴 듯한 동굴, 그 끔찍스런 어둠 속을 탐색하면서 이리저리 더듬고 다닐 그들이 어디쯤 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추적하던 일, '이젠 정말 다시는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것이다'고 생각하고 몸서리치다가도 다시 햇빛을 보고 내뿜는 그 가냘픈 목소리를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문 밖으로 달려나가 까만 귀신처럼 멀쩡히 나타나서 정복한 성채 위에 깃발을 휘날리듯 의기양야하게 청소용 솔을 들어 휘드는 모습을 때 맞추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신묘한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청소를 잘못한 아이를 굴뚝에 올려놓은 채 풍향을 가리키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끔찍한 광경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저 '맥배스'에 나오는 '관을 쓴 아기 유령이 손에 나무를 들고 나타난다'(주3)라는 옛 무대지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독자여, 아침 산책을 하기다가 혹 이런 어린 양반들을 만나시거든 돈 한 푼 주어 적선하시라. 두 푼 주시면 더욱 좋을 것이요, 만일 때가 굶주린 겨울철이요 그들의 고된 직업 특유의 발뒤꿈치가 터서 벌어지기까지 했으면 (이런 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오) 당신의 인정으로는 여섯 푼 짜리 한 닢까지는 내줄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알기로는 주성분이 새서프레스(sassafras)라고 하는 향기 있는 나무로 된 혼합물이 있는데, 이것을 달여서 차를 만들어 우유와 설탕을 겉들이면 중국 고급차를 능가하는 묘한 맛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 차가 여러분의 구미에 어떨는지는 모르겠다. 브리지 가로 가다보면 플리트로 남쪽에 이 '몸에 좋고 상쾌한 음료'를 파는 가게가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 가게를 세운 리드 씨는 런던에서 오직 하나 있는 가게라고 주장을 하고, 또 그의 말이 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은 그 좋다는 재료를 닳여서 만든 차에 내 별난 입술을 가져다 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냄새가 후각에 부딪칠 때마다 뱃속에서 정중히 거절할 것이 틀림없다는 조심스런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음식의 경우 식도락의 교양이 없지 않은 미식가들이 이 차를 탐내어 마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신체 기관이 어떤 특수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에 이런 차이를 내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으나, 이 혼합물이 이 어린 굴뚝 청소부의 입맛에 놀랍게도 꼭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나는 눈여겨왔다. 날개도 돋지 않은 병아리라 할 이 철부지 일꾼들의 입 천장에는 응결된 숯검댕들이 (해부해보면) 가끔 발견되는데, 새서프래스에 약간 들어 있는 유질 입자가 이 응결물을 녹여서 부드럽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요, 아니면 자연의 여신이 이 어린 청소부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신고의 운명을 빚어주었음을 깨닫고서, 이 대지에 새서프래스를 키워 향기로운 진통제가 되도록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이 어린 굴뚝 청소부의 감각에는 세상의 어떤 맛이나 냄새도 이 혼합물에 필적한 만큼 묘한 입맛을 돋우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돈은 한 푼도 없는 데도 그들은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김 위에 검은 머리를 숙이고서 할 수만 있으면 한 가지 감각이라도 충족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마치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 (고양이)이 새로 찾아 낸 쥐오줌풀(주4) 가지를 놓고 기뻐서 가르랑거릴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와 같은 감정의 조화 속에는 철학도 가르쳐주지 못할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것이다. 리드 씨가 설러우프 찻집은 자기집뿐이라고 자랑을 하고,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도 부지런히 자기 장사를 흉내내는 다른 찻집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 만일 당신들이 잠을 웬만큼 자는 편이라면 이 사실을 아마 모르고 계시겠지만, 이들은 길가의 가게나 노천에서 비교적 가난한 고객들을 상대로 이 향기로은 차를 팔고 있다. 파는 시간은 인적이 없는 이른 새벽이요, 이때는 밤새워 술을 마시다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놈팡이들과 잠에서 일어나 이른 새벽 일감을 찾아 나선 손이 부르는 기공들이 마치 양극단이 마주치듯 길을 비키지 않고 서로 밀치지만 대개는 전자가 쩔쩔매기 일쑤다. 이 시각에는 집집마다 부엌에 불이 꺼져 있고, 아직 새로 불을 댕기지 않을 때여서, 여름에는 이 아름다운 도시의 하수도는 어느 때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놈팡이들이야 간밤에 진탕 마신 술기를 보다 고마운 커피로 속을 달래고 싶을 것이기에 이 새서프래스 차의 냄새를 저주하며 지나가겠지만, 기공들은 걸음을 멈추고 이 차를 맛보면서 향기로운 아침 식사나 되는 듯이 찬양을 한다. 이것이 바로 '설러우프'로서 새벽부터 일하는 약초 장수 아주머니들의 총아요, 동이 틀 무렵이면 해머스미스에서 코벤트 가든의 이름난 시장까지 김이 몽실 나는 양배추를 실어 나르는 채소 장수의 기쁨이요, 또한 돈 한 푼 없는 굴뚝 청소부의 기쁨인데 (아! 제발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그것마저도 그들에겐 한갓 부러움의 대상으로 그칠때가 너무도 많다. 만일 그대들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 그 흐뭇한 증기에 얼굴을 대고 있는 어린 굴뚝 청소부를 보시거든 가득히 담은 한 잔(기껏해야 3 펜스 반이다)에다 맛좋게 버터를 바른 빵 한 조각 곁들여서 흔쾌히 대접하시라. 그러면 잘 사는 사람들을 불러다 대접할 음식을 마련하느라 막혀버린 글뚝이 뚫려서 부엌 연기가 하늘로 가볍게 솔솔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재료로 만든 값비싼 수프에 검댕이 내려앉지 않을 것이요, "굴뚝에 불이야"하는 끔찍한 고함 소리가 거리에서 거리로 순식간에 퍼져서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덜거덕대는 소방차들이 달려오고, 우연한 불티 하나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거나 재물까지 손실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원래 길거리에서 당하는 모욕에는 극히 민감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야유나 조소라든지, 신사가 어쩌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다거나 양말에 진흙이 튀긴 것을 보고 교양없이 좋아라고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린 굴뚝 청소부가 즐겁게 웃어대는 곳은 무언가 관용 이상으로 참을 수 있다. 재작년 겨울 치프사이드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여는 때처럼 황급히 걸어가는 중에 얼음판에 미끄러져 순식간에 뒤로 벌떡 넘어지고 만 일이 있었다. 나는 아프고 창피해서 어쩔줄 모르고 일어나면서도 그래도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 어린 익살군 하나가 악동처럼 히죽 웃고 있는 광경이 눈에 비쳤다. 그는 저만큼 서서 검댕이 묻은 손가락으로 자기 패거리들에게, 특히 자기 어머니인 듯 싶은 초라한 부인에게 내 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기막히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음인지 그 가엾은 붉은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기까지 했다. 숯검댕 때문에 충혈이 되고 얼마나 전에 자주 울었던지 벌겋게 된 눈이었지만, 그 황량한 가운데서 이같은 기쁨을 갑자기 발견했기 때문인지 사뭇 반짝이고 있었으니 호가스(주5)라면 아니, 그는 이미 '핀츨리(finchley)로 가는 행군'이란 그림 속의 파이 장수를 보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어린 굴뚝 청소부를 그려놓지 안았던가? 호가스 같은 화가가 어찌 이런 장면을 놓칠수가 있으랴! 그 그림 속의 소년처럼 그 어린 청소부는 마치 자기의 익살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자세로 움직일 줄 몰랐다. 그의 웃음 속에는 최대의 환회가 있을 뿐 악의적인 장난기란 거의 없는 것이어서 (사실 순진한 청소부가 이빨을 내놓고 씩 웃는 모습에는 악의란 전혀 있을 수 없다) 나는 신사의 체통만 아니라면 한밤중이 될 때까지라도 거기 누워서 거기 누워서 그의 조롱의 대상이나 웃음거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나는 이른바 훌륭한 치열의 매력에 애해선 본래 냉담한 편이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분홍빛 한 쌍의 입술은 (부인들은 나의 이런 표현을 용서하라) 어쩌면 그같은 보석을 담아두는 그릇이긴 하겠지만, 나는 입술이 그 보석을 드러내는 일은 가급적 드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주6) 아무리 훌륭한 숙녀나 신사라 하더라도 이빨을 드러낸다는 것은 뼈를 내보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하얗게 반짝이는 치골이 다름아닌 청소부의 입에서 드러나 보일 때는 (고의로 내보일 때조차도) 나에게는 기분좋은 파격이요, 있음직한 일종의 멋부리기로 보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한 점 검은 구름이 밤을 맞아 은빛 속을 드러내는(주7) 경우와 같다. 그것은 아직 남아 있는 옛 양반 가문의 흔적 같은 것이요, 잘 살던 옛날의 상징이요, 귀족이었다는 암시 같기도 하다. 사실 그 연원을 가려낼 수 없는 연막과 검은 옷에 검은 피부로 변장된 이주의 암흑 속에는(주8) 흔히 잃어버린 선조나 사라져버린 가문에서 물려받은 훌륭한 혈통과 점잖은 신분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같이 어린것들을 일찍부터 도제로 삼는 일은 두렵거니와, 남몰래 어린 아이들을 유괴하는 것을 너무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좌우간 진정한 예의와 범절의 씨앗을 더부살이하는 이 어린 접목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니, 이는 무언가 이들이 강제로 다른 나무에 접지되었음을 분명히 암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잃은 자식을 슬퍼하는 고귀한 가문의 라헬(주9)이 오늘날에도 많다는 사실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요정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는 옛 이야기들은 이 슬픈 진실의 암시일 수도 있으며, 어린 몬테규(주10)를 다시 찾은 것은 아이를 잃고 되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수많은 어머니들 중에서도 정말 운좋은 사례에 불과하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애런들 성(주11)에서 굴뚝 청소부 하나가 행방불명이 되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찾지 못했던 것인데 결국 그가 어느 거창한 침대에 잠들어 있는 것이 정오에야 발견되었던 일이 있었다. 하워드 일가의 거처인 이 고성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은 주로 그 안에 있는 침대들 때문이요, 이 침대로 말하자면 고인이 된 공작님이야말로 각별한 감식가이기도 했던 것인데, 바로 그 침상 위에, 그것도 공작을 상지하는 천개 아래, 별처럼 왕관 무늬가 반짝이는 진홍색 커튼이 둘러친 속에서 비너스가 아스카니어스(주12.)를 달래 잠재우던 무릎보다도 희고 부드러운 한 벌의 시트를 몸에 감고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어린 녀석은 그 장엄한 굴뚝들이 어찌나 복잡하던지 그만 통로를 잃고서, 알 수 없는 어느 구멍으로 나가다가 이 화려한 방에 내려앉게 되었고, 지루한 탐색 끝에 지친 나머지 침대를 본 그는 조용히 시트 사이로 기어올라 그 시커먼 머리에 베개를 고이고 어린 하워드처럼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 성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와 같은 것인데,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가 앞에서 암시했던 바를 확인받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장담하거니와 잠재되어 있던 귀족의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험한 모습을 한 미천한 아이가 아무리 피로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배운 대로 처벌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공작께서 주무시는 침대보를 젖히고 감히 그 속에 들어가 눕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바닥에 깔린 융단이나 양탄자만으로도 훌륭한 잠자리요, 자기 신분에는 어무도 분에 넘치는 것으리 터인데도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묻고 싶거니와 내가 주장하는 그 타고난 귀골의 강한 힘이 심저에서 우러나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런 모험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의심할 나위 없이 이 어린 귀공자는 (이 애들을 보기만 하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언짢은데) 완전히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어렸을 때의 환경, 어머니나 유모가 그곳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고귀한 침대보고 자기를 감싸주던 기억에 이끌려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되었을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자기 본내의 강보나 안식처로 기어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이전에 존재하던 어떤 상태 (이런 말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이전에 있었던 어떤 상태에 대한 느낌이 아니고서야 달리 어떤 이론으로도 나는 이 엉뚱한 어린 청소부의 그처럼 대담하고도,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무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소행을 설명할 수 없다. 나의 명쾌한 친구 젬 화이트(주13)는 이와 같은 변신이 혼히 있는 일임을 확신한 나머지, 어떻게 해서라도 바꿔치기 된이 불쌍한 아이들의 잘못된 운명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매년 굴뚝 청소부들을 위한 잔치를 마련하여 자신이 그 잔치의 주인 노릇을 하고 급사 노릇을 하는 일이 그의 낙이었다. 그것이 매년 돌아오는 성 바돌로매의 장날(주14)에 스미스필드에서 벌어지는 엄숙한 잔치였다. 한 일주일 전에 런던 시와 그 부근의 청소부 우두머리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하되 초대는 어린 청소부들에게만 국한시켰다. 갓 어른이 된 청소부들이 이따금 끼여들어 선의의 윙크를 받기도 했으나 손님의 주류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어떤 운 나쁜 녀석이 거무스레한 검댕 옷을 빙자해 잔치에 끼여들기도 했으니 인상으로 보아 다행히 때늦지 않게 굴뚝 청소부가 아님이 판명되어 (검댕으로 보인다고 해서 다 검댕은 아니니까) 참가 자격(주15)이 없다는 만장의 꾸중을 들으며 자리에서 나가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잔치의 분위기는 최대로 조화를 이루었다. 잔치가 벌어지는 장소는 스미스필드 시장 북쪽의 목장들 가운데에 있는 편리한 장소로 들뜬 시장에서 기분 좋아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멀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시장에 모인 구경꾼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끼여들 만큼 가깝지도 않았다. 손님들은 7시경에 모여들었다. 임시로 만든 그 작은 거실 안에 세 대의 식탁이 놓이고 그 위에는 화려하기보다는 실용적인 식탁보가 깔렸다. 식탁마다 어여쁜 호스티스가 부글거리는 소시지 냄비 앞에 앉으면 그 냄새로 인해 그 어린 개구쟁이들의 코가 벌름거렸다. 제임스 화이트는 웨이터 우두머리로서 첫 식탁을 맡고 믿음직스런 친구 바이고즈와 나 자신은 으레 나머지 두 식탁을 돌보았다. 첫 번째 식탁에는 서로 앉으려고 아이들은 떠들면서 법석을 피웠는데 그 이유는 내 친구야말로 가장 열광을 받던 시절의 로체스터(주16)를 능가할 만큼 응해주어서 영광스럽다는 일반적인 사의를 표한 후에 세 호스티스 중에서도 가장 뚱뚱한 어슐라(주17) 노파가 서서 튀김질을 하면서 '이 양반이'하고 축복반 저주반의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녀의 비곗덩이 허리를 꼭 껴안고서 그 정결한 입술에 다정한 인사의 키스를 하는 것이 그의 웨이터장 취임식이었다. 그 순간, 장내의 모두는 하늘은 찌르는 환성을 지르곤 했고, 동시에 히히대는 수백의 이빨들이 반짝이는 밤의 어둠이 깜짝 놀라는 것만 같았다. 이 검둥이 어린 신사들이 기름진 고기에다 더윽 기름진 내 친구의 농담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정말 즐겨운 일이었다. 내 친구는 작은 입에 넣기 좋도록 고기를 잘게 토막내면서 비교적 긴 것은 나이든 아이들을 위해 한쪽으로 돌려놓기도 하고, 더러는 어린 폭식가의 입에 이미 들어간 고기를 가로채면서 "다시 냄비에 넣어 더 익혀야겠네요. 신사님이 잡수시기에는 알맞지 않아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이 흰 빵을 먹어 보라 하기도 하고 저 연한 빵껍질을 권하기도 하면서 이빨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최고의 유산이니 부러뜨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 그는 도수 낮은 맥주를 포도주 돌리듯 정중에게 돌리면서 그 술을 만든 양조장 이름을 대기도 하고, 술맛이 좋지 않으면 다시는 그 집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마시기 전에 입술을 닦도록 각별한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들은 축배를 들었느데 그때 "임금을 위해서"니 "검은 제의를 위해서"니 하느 말들을 그들이 알아듣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말에 모두가 한결같이 재미있고 신이 났으며 기분이 최고에 달했을 때는 어김없이 "솔이 월계수가 되기를"(주18) 하고 축배를 들게된다. 내 친구가 식탁에 올라서서 늘어놓는 이런 말들이며 여러 가지 허황한 이야기들을 그의 손님들은 뜻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육감으로 느끼는 것이었고 말을 할 때마다 "신사 여러분, 저는 감히 이러이러한 제의를 하고자 합니다만" 하는 식으로 정중한 서두를 늘어 놓았던 것인데 이런 것이 이 어린 고아들에게는 기막히게 큰 위안이 되었고 이따금씩 (이런 경우에 점잔을 뺀다는 것이 좋지 않으므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시지 토막을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마구 입에다 쳐넣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아이들을 무척이나 기쁘게 했다. 그 광경이야말로 이 잔치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대목이었을 것임은 여러분도 가히 짐작하시리라. 지복을 누리는 젊은이나 아가씨들은 굴뚝 청소부처럼 흙으로 돌아가리(주19) 이제 제임스 화이트는 죽었고 그와 함께 그 만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떠나면서 그는 이 세상의 재미를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반쯤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그의 옛 손들은 우리를 기웃거리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서 성 바르톨로뮤의 축제가 변해버린 것을 원망하니, 이제 스미스필드의 영광도 영영 사라지고 말닸다. (옮긴이 주) 1. 원문 professional notes: 영어로 '청소하십시오'하는 'sweep'는 참새의 지저귐 'peep-peep'와 비슷함 2. 원문 fauces avermi: 버질의 '아에니이드(aeneid)', vi. 201에서 인용 3. '맥베스(macbeth)', 4 막 1장, 85 행에서 나온 말. 4. 원문 valerian: 신경 안정제로 쓰임. 5. william hogarth(1697--1764): 영국의 풍속화가. 6. 원문 they should take leave to 'air' them as frugally as possible.: air는 앞에 나오는 'jewerls'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심벌린(cymbeline)' 11 막 4장에 나오는 "i beg but leave to air this jewel"의 구절을 암시하고 있음. 7. 원문 tums forth silver on the night: 밀턴(john milton, 1608--74)의 가면극 '코머스(comus)'. p. 222, 224에서 인용. "i did no err, there does a sable cloud turn forth her silver lining on the night." 8. 원문 under the obscuring darkness and double night of their forlom disguisement.: 여기에서 double night는 검댕이 묻은 검은 곳과 피부를 비유하고 있음. 이 표현은 체프만(george chapman, 1559--1634)의 '헤로와 레안드로스'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임. 9. rachels: 에드워드 워틀리 몬테규(edward wortley montagu, 1714--76)를 말함. 학교에서 도망친 후 청소부 노릇을 하는 것을 친지들이 발견하여 찾음. 10. montagu: 에드워드 워틀리 몬테규를 말함. 학교에서 도망친 후 굴뚝 청소부 노릇을 하는 것을 친지들이 발견하여 찾음. 11. anundel: 서섹스(sussex), 애언들(arundel)에 있는 고성. 하워드((howard) 공작 일가가 살았음. 12. ascanius: 비너스의 아들. 13. jem white: 'orugunal letters, etc, of sir john falstsff'의 저자. 14. 원문 the fair of st. bartholomew: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성 바돌로매의 축일에 열렸던 큰 장 . 처음(1133--1840)에는 런던의 웨스트 스미스필드(west smithfield)에서 후(1840--55)에는 이스링톤(islington)에서 열렸음. 15. 원문 wedding garment: (일반적으로)참가 자격. 신약 마태복음 12장 11절의 결혼잔치의 우화를 은유함. 16. rochester: 찰스 2세(charles II)의 동료로 재치와 방탕으로 유명했던 로체스터 백작을 말함. 17. ursula: 벤 존슨(ben jonson)의 '바돌로매의 장 (bar-tholomew fair)'에서 따온 이름. 18. 원문 may the brush supersede the laurel!: 솔은 굴둑 청소용 솔을 말함. 월계수는 영공을 상징. 19. 셰익스피어 '심벌린' 4 막 2장 263 행에서 변형. 꿈 속의 아이들(하나의 환상) 아이들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상상력을 펼쳐서 자기들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전설 같은 증조부라거나 할머니라는 분이 어떤 분인 가 알고 싶어한다. 요전 날 저녁, 내 어린것들이 내 곁으로 기어와서 그들의 증조모가 되는 필드(주1)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던 것도 이런 마음에서였을 거다. 필드 할머니는 노퍽(주2)에 있는 큰 (그들과 아빠가 살고 있는 집보다 백 배나 더 큰) 저택에서 사셨다. 그 집은 그들이 '숲 속의 아이들'(주3)이란 민요를 통해서 최근에 알게 된 비극적인 사건의 현장 (적어도 그 고장에서는 대체로 그렇게들 믿고 있다.) 이기도 하다. 사실 그 어린 아이들과 그들의 잔인한 삼촌에 대한 이야기 전부가 처음부터 방울새가 나오는 대목까지 그 커다란 홀의 벽난로 장식 나무판에 곱게 새겨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돈 많은 어느 어리석은 집주인이 그것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현대식 대리석 장식을 세웠던 것인데 거기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말이 여기에 이르자 앨리스는 사랑스런 엄마가 짓던 표정 하나를 귀엽게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이 어찌나 부드러워 보이는지 결코 나무라는 표정이랄 수 없었다. 그러자 나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필드 증조모께서 얼마나 믿음이 깊으셨고 얼마나 선량하셨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했던가를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사실 그 큰 저택의 마나님이 아니라(어느 면에서는 그 저택의 마나님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웃 고을 어딘가에 사두었던 보다 새롭고 유행에 맞는 저택에서 살고자 했던 주인이 위탁을 해서 그 저택의 관리를 맡으셨을 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느 정도는 자기집이나 다름없이 그곳에서 기거하셨고, 살아 계시는 동안에 그 집이 갖추어야 하는 위엄을 어느 장도는 유지하셨던 거다. 그 집은 후에 퇴락하여 거의 무너지게 되었고, 그 집의 옛 장식품들은 모두 떼어 주인의 다른 저택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곳에 맞춰놓은 그 장식품들의 모습은 어색하기가 마치 근래에 아이들이 웨스트 민스터 사원(주4)에서 본 옛무덤을 누군가가 번지르르하게 금박이 되어 있는 c부인의 응접실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 이 말에 존은 '거, 참 바보 같은 짓이구만'하고 말하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나는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는 수마일에 걸친 주변의 가난한 이웃 사람들은 물론 좋은 가문의 사람들도 상당수 찾아와서 그분에 대한 추모의 경배를 울렸었는데, 그건 할머니께서 그만큼 훌륭하시고 믿음이 두터은 부인이셨기 때문이었다. 함머니는 시편을 모두 외우시고, 아니 성경의 대부분을 다 외우실 정도로 장말 훌륭하셨다. 이 말에 어린 앨리스는 양팔을 크게 펼쳐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필드 증조모께서 한때는 얼마나 키가 젊으셨을 때는 가장 훌륭한 무용가라는 평판을 받으셨던 일을 말했다. 이 순간 앨리스의 작고 귀여운 오른발이 무의식적으로 장단을 맞추듯 움직이더니 나의 근엄한 표정을 보자 뚝 그쳤다. 그 고을에서 가장 훌륭한 무용가셨는데, (나는 말을 잇고 있었다) 그만 암이라는 고약한 병에 걸려서 고통 때문에 꺾이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고약한 병마에도 그분의 훌륭한 기품은 걸코 굽히거나 숙이지 않고 줄곧 꿋꿋하셨다. 그만큼 선량하고 신앙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나는 말했다. 그 크고 호젓한 저택의 외롭고 큰방에서 할머니는 홀로 주무셨는데, 밤중에는 두 아기 유령이 나와 자고 있는 방 근처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믿으면서도 "그 철부지 어린것들이 해를 끼치진 않을 거다"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시에 함께 자는 하녀가 있었는데도 그 유령 이야기에 몹시도 겁을 먹곤 했었다. 함머니에 비해서 채 절반도 착하거나 믿음이 두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기 유령들을 내가 보지는 못했던 거다. 이 말을 듣고 존은 온통 눈썹을 펴보이며 용감한 척 내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손자들을 휴일이면 그 저택에 오게하여 친절히 대해주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 저택에서 특히 나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로마 황제들이었던 12 명의 시저들(주5)의 흉상을 혼자서 몇 시간이고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 오래된 대리석 머리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기도 사고, 내가 그들과 함께 대리석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커다란 저택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지칠 줄 몰랐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 크고 텅 빈 방들이며 낡은 벽걸이 장식들, 바람에 펄럭이는 그림무늬 융단들이며, 금발이 거의 닳아 없어진 목각 참나무 판화들을 구경하며 돌아 다니다가 때로는 그 넓고 고풍스러운 정원을 거닐었는데, 이따금 외로운 정원사가 그쳐 지나는 일 이외에는 그 정원을 거의 나 혼자서 독차지했었다. 담장 위에는 유도며 복숭아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금단의 과실이어서 나는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그 과실들을 따려 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 보다 더 즐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그보다 더 즐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울해 보이는 늙은 주목나무나 전나무 사이를 거닐거나, 쳐다보는 용도 이외에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빨간 열매나 전나무 방울을 따기도 하고, 사방 둘레에 온통 산뜻한 정원의 향기 가들찬 신선한 풀밭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기도 하고, 아니면 오렌지를 재배하는 온실에 들어가 햇빛을 쬐고 있노라면, 그 포근한 온기 속에서 오렌지와 라임 열매들이 익어가듯 나 자신도 익어가는 환상이 들기까지 했다. 혹은 정원 아래 구석진 곳에 있는 양어장에서 물속을 이리저리 쏜살같이 내닫는 황어들이며, 물속 중간쯤에 드문드문 꼼짝 않고 매달려 황어들이 자발없이 나댄다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큼직한 곤들매기들을 지켜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이와 같은 망중한의 기분 전환 속에서 나는 복숭아며, 유도와 오렌지며, 흔히 아이들의 미끼가 되는 따위의 것들에서 맛복 수 있는 달콤한 모든 멋보다 더 많은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존은 들었던 포도송이를 접시에 슬그머니 다시 놓았다. 앨리스의 눈에 띄지 않은 바 아니어서 그녀와 나누어 먹을까 했지만 당장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걱했음인지 두 오누이는 그것을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결 목청을 돋우어 이야기했다. 필드 증조모께서는 손자들을 모두 사랑하셨지만 그중에서도 큰아버지 존L을 각별히도 사랑하셨을 게다. 큰아버지는 용모도 아주 잘 생기셨거니와 기개가 대단한 청년이어서 다른 손자들에게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우리 몇몇 손자들처럼 구석진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짓을 하는 대신에 너희들보다 어린 개구쟁이 시절부터 주위에서 얻어 탈 수 있는 말들 중에서도 가장 억세 말을 잡아타고 아침이면 고을을 반쯤이나 돌아다니며 사냥꾼들이 나와 있으면 그들과 어을리곤 했다. 그러나 그분도 그 오래된 저택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혈기가 워낙 왕성하여 울타리 안에 줄곧 갇혀 있을 수는 없었던 거다. 큰어버지는 용모도 용모려니와 그에 못지않게 용감한 어른으로 성장해서 모든 사람들의 칭찬의 대상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증조모의 칭찬은 더욱 각별하셨다. 내가 다리를 쓰지 못하던 절름발이 소년이었을 때, 그는 나를 등에 업고 다니곤 했었다. 나보다 나이가 위였기 때문에라고는 하지만 내가 아파서 걷지 못할 때, 그것도 수 마일씩이나 그는 나를 업고 다녔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그가 또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나는 그가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그에게 충분한 배려를 해드리지 못했거니와(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내가 다리를 쓰지 못했을 때 얼마나 그가 나를 생각해주었던가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숨을 거둔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전에 죽은 것만 같았으니, 삶과 죽음 사이에는 바로 그와 같은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주6) 처음에 나는 그의 죽음을 썩 잘 견디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형제 중에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울며, 애통해하고, 내가 만일 죽었다면 나의 형은 내게 대해 그랬을 것인데, 나는 그의 죽음을 울며 애통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온종일 그가 그리웠고, 그제서야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알았다. 나는 그의 친절이 그리웠고, 그가 내게 화를 내던 일이 그리웠고, 그가 내 곁에 없기보다는, 그 가엾은 큰아버지가 의사에게 자기 다리를 절단당했을 때 마음 아파할 수밖에 없었듯이 그가 없어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그가 다시 살아나서 그와 싸움질이라도(우리는 가끔 말다툼을 했었으니) 했으면 싶었다. 이 말을 듣자 아이들은 그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들이 달고 있는 작은 상장이 큰아버지 존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제발 큰아버지 이야기는 그만하고 자기들의 돌아가신 어여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나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나는 7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서 때로는 절망 속에서 그 아름다운 앨리스 W-n7)에게 구애하던 일이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수줍음과 냉담과 거절이 처녀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때 앨리스를 향하니 홀연히 그녀의 눈에서 엄마인 앨리스의 혼령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현현이 어찌나 실제와 같던지 거기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어머니인지 딸인지, 그 빛나는 머리칼이 누구의 것인지 문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두 아이들은 차츰 뒤로 물러나 점점 내 눈에서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멀리멀리 아득히 먼 곳에 슬픔에 싸인 두 얼굴만이 보일 뿐이었고, 그들은 말은 하지 않는데 이상스럽게도 내게 언어의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앨리스의 아이가 아니요, 당신의 아이도 아니오, 도대체 우리는 아이들이 아니라오. 앨리스의 아이들은 바트럼(주8)을 아버지가 부른다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오. 아무것도 아닌 정도도 못 되오. 그저 꿈이라오. 우리는 단지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에 불과할 뿐이오. 세상에 나와서 이름이란 것을 지니려면 수백만 년을 지루한 레테(주9)의 강가에서 기다려야만 한다오." (이 말에 곧장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총각 신세의 안락의자에 않아 있었고, 거기에서 나는 잠이 들었던 거다. 충실한 브리짓(주10)은 예나 다름없이 내 옆에 있었는데) 그런데 존 L(일명 제임스 앨리아)은 영원히 볼 수가 없구나. (옮긴이 주) 1. field: 램의 할머니 메리 필드(mary field). 플루머 (plumers)가의 가정부로 있었음. 2. norfolk: 잉글랜드 동부의 주. 3. 원문 the children in the wood: 1595 년경에 쓰인 것으로 토머스 퍼시(thomas percy 1729--181)의 'relipues of ancient english poetry', ii 18에 수록되어 있는 민요. 어린 조카 남매에게 남겨진 유산을 탐낸 삼촌이 불량배를 시켜 그들을 없앤다. 사주받은 불량배 중 한 사람이 회개하여 다른 불량배를 죽이고 아이들을 숲속에 버린다. 숲속을 헤매다가 아이들은 죽고, 그들의 시채를 방울새들이 나뭇잎을 물어다 덮어주었다는 내용이다. 4. 런던에 있는 중세 사원으로 저명인사들이 묻힌 묘역이 있음. 5. 원문 the tweleve caesars: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에서 도미티안(domitian)까지의 황제들을 말함. 6. 램은 이와 같은 생과 사의 거리를 '정년 퇴직자(the superannuated man)'란 수필에서 로버트 하워드의 시를 빌려 표현하고 있다. T. was but just now he went away; I have not since had time to shed a tear: And yet the distance does the same appear A sif he had been a thiusand years from me. Time takes no measuar in eternity. (그대 떠난 지 촌각이라 내 눈물 힌 빙울 흘림 틀조차 없었느데 그 사이가 천년이나 지난 듯 멀고 멀구나 시간이 영혼 속에 척도가 있으랴.) 7. alice w-n: 램의 첫 애인 앤 시먼스를 암시하는 가명 앨리스 윈터턴. 그의 시에서는 안나(anna)로 나옴. 8. bratrun: 램의 첫 애인 시먼스는 런던 라이케스터 광장에서 전당포업을 하는 바트럼 집안으로 출가했음. 9. lethe: 그리스 신화의 망각의 강. 죽어서 혼령이 강물을 마시면 생존시의 모든 것을 다 잊는다고 함. 10. bridgnt: 램의 누님인 메리 램을 말함. 램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를 평생 돌보면서 자신도 독신으로 살았음. 기혼자의 행동에 대한 어느 독신자의 불평 결혼한 사람들은 내가 독신으로 살고 있어 보다 고차적인 즐거움을 잃고 있다고 말하는데, 나로서는 그 기혼자들의 약점을 기록해두는 것으로 그 고차적인 기쁨에 대해 스스로 위로를 해온 지 오래다. 그렇다고 남녀의 부부싸움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거나, 독신이라는 반사회적 결심을 강화시켰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결심은 훨씬 오래전에 보다 실질적인 고려를 한 끝에 취해진 것이다. 기혼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내 눈에 자주 거슬리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그것은, 즉 그들이 지나치게 사이가 좋다는 점이다. 아니, 지나치게 사이가 좋다는 점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말하면 나의 뜻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못된다. 더욱이 사이 좋은 부부가 어찌 비위에 거슬릴 이유가 되겠는가? 그들이 자신들을 여타 세계와 분리하여 자기들만이 서로 어울려 있음을 완전히 향유하는 행위 그 자체는 온 세상보다 서로 상대를 좋아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내가 불평하는 것은 자기들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들 그들이 조금치도 감추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네 독신자들의 면전에서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이를 드러내 보인다. 잠시라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바로 당신이란 사람은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오'하고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거나, 아주 대놓고 공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세상에는 같은 것이라도 암시만 하거나 묵인되는 경우, 별로 거슬리는 느낌을 주지 않는데, 일단 밖으로 나타나면 몹시 거슬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 법이다. 만일 어느 남자가 생김새가 평범하고 옷차림이 수수한 여자를 알게 된후, 그녀에게 다가가서 자기에게 어울릴 만큼 예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으니 결혼할 수가 없다고 퉁명스럽게 얘기를 한다면, 그 남자야말로 무례한 행동의 대가로 발길질을 당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할 경우와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이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그 말을 실제로 한 것에 못지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 젊은 여인은 그런 말을 직접 듣지 않고도 그 뜻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리를 아는 여자라면, 그것으로 시비의 이유를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결혼한 부부가 직접 말로나 표정(표정이라 했지만 그것도 말보다 분명하지 않을 때가 거의 없지만)으로 내가 여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행복하지 않은 남자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 사실이 끊임없이 상기되어 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월할 지식이나 부의 과시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다소 변명의 여지가 있다. 나를 모욕하기 위해 과시된 지식이 우연히 나를 개선시킬 수도 있고, 부잣집의 저택과 그 집에 소장된 그림들이며 그 집의 정원이나 뜰은 적어도 일시적인 용익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가 행복을 과시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완화제가 전혀 없다. 그것은 시종일관 순수, 무보상, 무제한의 모욕일 뿐이다. 결혼이란 아무리 좋게 본다 하더라도 하나의 독점이며 그것도 적지않이 비위를 거슬리는 독점이다. 독점적인 특권의 소유자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이점을 되도록이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계략을 쓰는 것이어서 그와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웃들은 그들의 이점을 보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들의 권리에 의문을 품어볼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결혼 독점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전유물들 중에서도 가장 불쾌한 전유물을 우리들의 면전에 들이대고 있다. 신혼 부부의 얼굴에서 번뜩이는 그 완전한 득의감과 충족감보다 내게 더 불쾌한 것은 없다. 특히 신부의 안색이 그렇다. 그 안색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운명은 결정이 되었으니 그 누구도 자기에 대해서는 기대조차 걸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내가 그녀에게 걸고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마 그럴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건 당연한 묵시여야지 결코 밖으로 드러내 보여서는 안되는 것의 하나인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지나친 태도는 우리네같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그들이 사리를 알 만한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더 거슬리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우러나는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네보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전문에 속하는 신비를 더 잘알고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은 이 한계를 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독신자가 기혼자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고 하면 그것이 결혼생활과는 무관한 것인데도 그들은 그를 무자격자로 몰아붙여 그의 말문을 막아버릴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젊은 부인은 결혼한 지가 겨우 두 주일밖에 되지 않은 처지인데도, 런던 시장에 나오는 굴을 양식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에 어쩌다 내가 의견을 달리하자, 가소롭게도 확신하는 태도로, 늙은 총각이 그런 문제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느냐고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말한 불평도 기혼자들이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으스대는 태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희귀한 존재가 아니라 길이나 골목마다 들끓고 가난한 집일수록 많으며, 결혼한 사람치고 아이 하나쯤 얻는 축복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또 애들은 얼마나 자주 질병에 걸리고, 또 나쁜 길로 빠져 패가망신을 시키거나 교수대에서 일생을 마치는 일도 있어 부모들의 기대를 망쳐버리는 일이 흔히 있음을 생각할 때, 나로서는 자식을 가졌다 해도 자랑할 만한 까닭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그들이 어린 불사조(주1)들이어서 한 해에 하나 밖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자랑할 구실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도 흔하지 않은가. 나는 여자들이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에 남편에게 내세우는 그 오만한 공로의 표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태도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의 신하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몰약이니 향료니 하는 찬미의 공물과 충성을 바쳐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린 아이들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으니"(주2) 이는 산후의 감사 예배에서 읽도록 정해진 기도서의 훌륭한 구절이다.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주3) 하지만 아무런 방비도 없는 우리를 향해 그 전통의 화살을 쏘지는 말라. 아이들을 화살로 삼는 것이야 상관하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으로 우리를 찔러 상처를 내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대체로 이 화살은 촉이 둘로 갈라져 있다. 두 갈래로 갈라진 촉이라 어느 한 촉 아니면 다른한 촉에는 어김없이 맞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많은 집을 방문했을 때, 어쩌다 그들을 소홀히 바라보았다면 (딴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그들은 우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몰인정한 어린이 혐오자로 치부해버린다. 이와 반대로 평소때보다 아이들을 더 귀엽게 보았다면, 그래서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끌려 그애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며 장난을 치는 데 정신이 팔렸다면, 그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아내어, 떠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 지나치다느니, 아무개 씨는 아이들을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러니 화살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언제나 우리를 해치도록 되어 있다. 내가 자기 아이들과 노는 것이 질투가 나서라면 마는 이해할 수가 있고, 또 그것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라면 나는 아이들과 장난하는 것을 언제고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만한 까닭이 없는데도 아이들을 사랑하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여덟이나 아홉 아니 어쩌면 열 명이나 되는 가족을 아무 차별 없이 한결같이 모두 사랑하라니 말이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귀여운 존재라는 이유로 그 귀염둥이 모두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다니! '나를 사랑하거든 내 개까지도 사랑해달라'는 속담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말대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개가 덤벼들어 괴롭힌다거나 장난으로라도 덥석 물기라도 하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마리의 개나 그보다 못한 것들 (어느 무생물) 기념품이라거나, 시계혹은 반지, 혹은 나무, 아니면 먼 여행을 떠난 친구와 헤어진 장소. 이런 것들이라면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와 같은 사물들이 그 자체의 본질에 마음을 움직이는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 의해서 그 색깔이 좌우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다르다. 그들은 실제로 성격을 지닌 인물이요, 그들 자체가 본질적인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본질상으로 귀여울 수도 있고, 귀엽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천성은 너무도 엄숙한 것이어서 그들의 존제를 다른 존재의 단순한 부속물로 생각할 수가 없고, 또 그에 따라 사랑과 미움이 좌우될 수가 없다. 나에게는 그들이 성인 남녀와 똑같은 독립된 존재인 것이다. '저런 하지만 아이들은 분명 매력적인 연령이요. 유년기에는 그 자체에 무언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데가 있는 것이 아니오?' 하고 모두들 말할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렇기에 나도 어린이들을 자별하게 대한다. 예쁜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존재임을 나는 알고 있고, 또 아이들을 낳은 귀여운 여성들을 또한 예외로 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사물이든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종류 중에서도 더욱 아름답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데이지꽃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다른 데이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한 송이의 오랑캐꽃이라도 송이에 따라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것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는 여자들이나 어린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언제나 성미가 까다로운 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난처한 점인 것은 아니다. 더욱 난처한 것은 사람이 친분을 인정하고 나서 무관심을 불평해야 하는데 기혼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불평을 피하려면 자주 찾아가거나 적절한 교섭을 해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편이란 사람이 결혼 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서, 아내의 치맛자락에 싸여서 그 집으로 스며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구혼할 생각조차 못했을 적부터 확고한 친교를 맺어온 친구라면, 정말 조심해야한다. 이때에는 이미 친교의 자격이 위태롭게 되어 있다. 결혼한 지 열두 달이 채 지났다고 생각되지도 않을 때부터 옛친구는 점점 차겁게 변하여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이윽고는 절교할 기회만을 노린다. 나의 지인들 중에서 결혼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우정을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그들의 결혼 이후에 처음으로 친교를 맺은 사람뿐이다. 그것도 제한이 있지만, 결혼한 부인들은 결혼 후에 남편이 새로 사귄 친구는 용납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선량한 남편들이 자기들과 상의없이 맺은 엄숙한 우정의 맹약에 대해서는, 비단 그것이 자기들이 서로 알기도 전에 (지금은 남편이요 아내인 두 사람이 만나기도 전에) 지금은 남편이요 아내인 두 사람이 만나기도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아내들은 이를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오랜 우정, 진정한 친분이 모두 하나하나 아내의 심사를 거쳐 검인을 받아야 한다. 마치 어느 군주가 자기의 등극 이전, 아니 아무도 그의 출생을 생각할 수 있기 이전부터 잘 통용이 되어온 화폐를 모조리 거두어 지기 권위의 상징을 새로 표지하여 주조케 한 후에 세상에 유통시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새로운 주조 과정에서 나처럼 녹슨 쇠조각 같은 녀석에게는 대체오 어떤 불행이 떨어질지 독자들께서는 짐작하시리라. 결혼한 부인들이 우리들에게 모욕을 주고, 우리를 자기 남편의 신임 밖으로 서서히 몰아내는 권모술수 또한 우수하다. 대화를 할 때 우리가 다소 경탄조로 말하면,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마치 괴상한 이야기나 한 것처럼 그 말들을 모두 비웃어버리는 것이 그 방법 중의 하나요,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독특한 눈초리를 지니고 있다. 그 눈초리로 인해 이윽고는 지금까지 우리의 판단력을 존중해주고, 이해력이나 태도가 좀 어긋난다 해도 그동안 우리게게서 감지한 총체적 견해의 맥락(전혀 저속하다고 생각하지 않은)이 있어서 그저 눈감아버리곤 하던 친그들이 이제는 우리를 괴상한 익살꾼, 총각 시절에는 서로 어울려 지낼 만했지만 아내에게 소개하기에는 너무도 부적합한 녀석이 아니가 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눈초리 작전'이요, 내게 가장 자주 시행된 공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과장책' 또는 '역설책'이 있다. 그 내용인즉 이렇다. 우리들이 자기 남편이 각별히 생각하는 존재요, 우리에게서 느끼는 존경심 위에 이루어진 우리와의 영속적인 교분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 모두를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치켜올린다. 그러면 드디어는 그 선량한 남편들은 이게 모두 자기에 대한 인사거니 생각하게 되고, 또 그처럼 아내의 솔직한 호의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나머지 자기편에서 먼저 우리에 대한 열의를 늦추고 경의를 감소시켜서 끝내는 그저 평범한 수준으로 내려앉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예절바른 애정과 자기 만족적인 친절(주4)'이라는 겉치레로 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내들은 자기들의 성실성에 무리한 억지나 침해를 주지 않고도 남편들과 합세할 수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무수하지만, 그 중 또 하나의 방법은 아주 천진하고 순박한 태도로 남편이 우리를 처음 좋아하게 된 동기에 대해 계속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도덕적 품격에 어떤 탁월성이 있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그녀의 남편과 우리를 결합시킨 고리가 되어 있고, 그 고리를 그녀가 깨부수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대화 가운데에서 조금만 예리한 맛이 없다 싶을 때는 곧장 "여보, 당신 말씀이 친구 아무개 씨는 굉장한 재사라고 하신 것 같은데요"하고 큰소리로 말한다. 반대로 우리의 대화에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가 우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우리가 도덕적인 처신에 약간 어긋나는 기미가 있어도 못 본 척하는 것이라면 아내는 이를 보기가 무섭게 "아니, 여보, 당신이 말씀하신 착한 아무개 씨가!"하고 고함을 친다. 내가 아는 어느 훌륭한 부인 한 분이 자기 남편의 옛 친구인 나에게 당연히 보여야 할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나는 감히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인즉 결혼 전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인 아무개 씨를 통해 자주 들었기 때문에 나와 알게 되는 것이 큰 소망이었던 것인데, 막상 나를 알고 보니 기대에 크게 어긋나더라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남편의 이애기로는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장교 같은 사나이(나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를 만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만나고 보니 그와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솔직한 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의 친구에 대한 평가기준을 어찌하여 남편의 것과 그렇게 사뭇 달리 생각하게 되었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예의 없는 짓일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실은 내 친구의 체격도 나와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신고 5 피트 5인치였으니 그 점에서는 오히려 내가 반 인치쯤은 유리했고, 그도 다름없이 행색이나 용모 그 어디에서도 군인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내가 기혼자들의 집을 방문하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당한 곤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곤욕들을 모두 열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혼한 부인들이 저지르는 공통된 잘못, 즉 우리를 대함에 있어서 그들은 주객을 전도하여 우리가 남편이고, 남편을 찾아온 손님인 것으로 친숙한 사이처럼 허물없이 대하는 반면에 남편에게는 오히려 깍듯이 예절을 갖춘다는 거다. 예를 들어서, 요전날 저녁에 있었던 일인데, 테스타세아(주5)는 정상적인 저녁식사 시간이 두세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내게는 저녁상을 차려줄 생각을 하지도 않고, 남편이 귀가를 하지 않아서 초조하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는 장만해놓은 굴이 모두 상하기에 이르렀는데도 남편이 없는 사이에 단 하나라도 먼저 입에 대는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결국 굴이 제맛을 잃게 되기까지 하였다. 이는 훌륭한 예의의 요점을 뒤엎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의는 우리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음에 있어서 같은 동료인간으로서 타인보다 못한 대상임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 일어나는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서 창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의를 지키는 것은 사소한 일에서 남이 시새움을 받기 쉬우나 부득이 거부하고 택해야 하는 편애에 대해 보상하는 노력이다. 테스타세아가 만일에 손님인 나를 위해 굴을 아껴두고, 저녁을 먹자는 남편의 집요한 요구를 거역했다면, 그녀는 예의범절의 엄격한 규범에 따라 처신한 셈이 될 것이다. 나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지켜야 하는 예절로서 겸손한 행위와 단정한 몸가짐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세라시아(주6) 부인의 남편을 통해 대리 탐식에 대해서도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체리(주7)를 식탁 건너편에 있는 자기 남편 앞으로 보내버리고, 그내신 나와 같은 총각의 입맛에는 별로 달갑지도 않은 구스베리 접시를 권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또 용서할 수 없는 경박하고 무례한 소행을 말하자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결혼한 부인들 모두를 이렇게 로마식 라틴어 명칭을 붙여서 주워대는 일도 따분한 일이다. 차라리 그들 스스로 행실을 바로 잡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낫겠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스스로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 내 기어코 그들의 이름을 영어로 완전히 다 밝혀서 앞으로 이와 같은 극단적인 무례를 범할지도 모르는 모든 부인네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고서 무서워 몸을 떨도록 할 테다. 옮긴이 주 1. phoenixes: 아라비아의 전설에 나오는 새. 5백년 만에 한 번씩 불에 타서 죽었다가 그 재에서 되살아나기를 거듭하되 한 번에 한 마리씩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함. 2. 시편 127장 4절. 3. 시편 127장 5절. 4. 겉치레의 친절을 의미. 존 홈(john home, 1722--1808)의 비극 '더글러스(douglas)' 1 막 1장에서 인용. 5. testacea: 조개류를 뜻하는 라틴어. 굴과 연결시켜 희화적으로 쓴 이름. 6. cerasia: 체리(cherry, 앵실)류를 가리키는 라틴어로 희화적인 인명으로 사용. 7. morellas: 모레라 체리(morella cherries)를 말함. 앵실류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스페인의 바렌시아(valencia)의 모레라(morella)에서 주로 수출된다. 빈곤한 벗과 친척들 빈곤한 벗이나 친척과의 관계, 소위 궁교빈족의 관계란 실로 어색한 것 중에서도 어색한 것이다. 그것은 한 통의 무례한 편지요, 얄미운 접근, 꺼림직한 양심, 번영이 한창일 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달갑지 않은 추억물, 끝없는 고행의 반복, 밑 터진 지갑, 아니 자존심에 달라붙은 채귀, 성공에 장애, 승진에 견책, 혈통에 오점, 명패에 흙칠, 외투자락의 헤어진 구멍, 연회장에 효수, 아가도클레스(주1)의 독 그릇, 문안에 버티고 있는 모디카이(주2), 문 앞에 서 있는 나사로(주3), 길목의 사자, 방에 뛰어든 개구리(주4), 죽 그릇에 빠진 파리(주5), 눈에 박힌 티(주6), 적에겐 승리, 친구에겐 사죄해야 하는 것, 아무래도 없어 좋은 것, 추수에 우박, 단 것 한 근에 쓴 것 한 냥(주7)이다. 노크 소리만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안다. '그건 아무개 씨' 하고 가슴이 말해준다. '뻔하지', '그래도'하고 귀를 기울이는 사이, 또닥또닥하는 문소리는 절망과 동시에 영접을 강요한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데 어리둥절한다. 그는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가도 슬그머니 다시 거둔다. 그는 식사를 할 무렵에 그것도 밥상을 벌여놓았을 때에 불쑥 나타난다. 손님이 와 있음을 보고서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권에 못 이기는 척 주저앉는다. 그가 의자를 차지하니 데려온 손님의 아이들에게는 딴상을 차려야 한다. 어쩌다 아내가 기분이 나서 '여보, 아무개 씨가 어쩜올지도 모르겠소' 하고 물을 만큼 여유있는 날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생일날임을 알고 왔으면서도 와서 보니 운 좋게도 생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자미 고기가 너무 작아서 생선은 아^36^예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한 점 먹고 싶어하면서도 참는 괴로움을 겪는다. 그는 포트와인(달콤한 붉은 포도주)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권하면, 사양하지 않고 남은 크라렛(단맛이 없는 포도주) 술잔을 비워버릴 것이다. 그의 존재는 알쏭달쏭해서 하인들은 그에게 지나친 아첨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예우가 부족한 건 아닐까 두려워한다. 집에 온 손님들은 '전에 그를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저마다 그의 신분을 점쳐 보는데, 대부분은 그를 무슨 운수 좋은 기회를 노리는 사람쯤으로 간주해버린다. 그는 주인의 이름을 일부러 세례명으로 불러서 자기가 주인과 서열이 같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그는 지나치게 허물이 없을 정도로 친근하게 행동하나, 주인은 좀 덜 소심하게 굴었으면 한다. 친근한 태도가 반만 되었어도 그저 이따금 들리는 집안 친척으로 통할지도 모르고, 조금만 더 당당해도 본색이 드러날 위험에 빠지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친구로서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부살이 식솔 이상의 신분이 주어진다. 도조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니 시골 소작인보다 못한 손님이기는 하지만 차림새와 행동 때문에 손님들은 그를 작인으로 봄직도 하다. 카드놀이에 들어오라고 하면 그는 돈이 없으니 거절한다. 그러면서도 놀이에 끼여주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손님들이 헤어질 때, 그는 마차를 부르러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가지 않고 하인을 시킨다. 그는 주인의 선조들을 상기시킨다. 그러고는 하찮고 시시한 일화들 그것도 집안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이제 알게 되니 축복이로다'라고 그런 이야기를 자신은 감지덕지 들었지만 별로 귀기울이는 사람조차 없었던 것임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는 소위 '호위적 비교'를 내세우기 위해 옛날 집안 형편을 환기시킨다. 그는 넌지시 축하를 하면서 가구의 값을 물을 것이요, 창문 커튼에 대해 격외의 찬사를하여 주인을 무안하게 한다. 그는 새 항아리의 모양이 한결 우아하다고 견해를 말하면서도 끝내는 옛 주전자가 더 간편한 데가 있다고 품평을 하는가 하면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한다. 그는 자가용 마차 덕에 큰 편의를 누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까지 하려고 할 것이요, 그는 지금까지 가보의 휘장을 양피지에 간수해 왔느냐,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문장이 이러이러한 것임을 최근까지 몰랐던 것은 아니냐고 힐문한다. 기억력은 엉뚱하고, 칭찬이 심술이요, 말마다 말썽인데, 밑자리는 무거워 떠날 줄을 모른다. 그가 사라지고 나면 주인은 황급히 그가 앉았던 의자를 구석에 처박고서야 그 성가신 사람과 의자가 시원하게 없어진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밝은 태양 아래 거북스러운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빈곤한 여자 친척인 것이다. 그래도 남자의 경우는 무언가 대처할 방법이 있고, 아니면 웬만큼은 얼버무려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빈곤한 여자 친척의 경우는 속수무책이다. 남자라면 "그분은 허술한 옷을 입기 좋아하고 익살스런 노인이라오. 보기보다는 형편이 좋은 사람이라오. 식탁에 특별한 분을 모시기를 좋아한다면 그분이야말로 적격자지요"하고 둘러댈 수도 있는데, 여자의 궁색에는 거짓이 없다. 멋으로 자기 신분 이하의 옷을 입는 여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여자는 L씨 댁 친척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 댁에서 무얼 하겠어?' 하고 신분이 쉽사리 드러난다. 이런 여자 친척은 십중팔구 아내의 사촌이기 십상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외투는 숙녀와 거지 중간이라 하겠으나 그래도 숙녀인 쪽이 분명하다. 그녀는 겸손이 지나쳐서 화가 날 정도요, 자기의 열들에 너무도 민감하여 남의 눈에 드러난다. 자기의 열등에 너무도 민감하여 남의 눈에 드러난다. 남자의 경우는 '내노라'하고 고자세가 지나치는 때도 있어서 때로는 기를 좀 꺾어줘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한데 여자의 경우는 위신을 좀 세워주려고 해도 그럴 방도가 없다. 손님이 초대된 만찬에서 그녀에게 수프를 주면(자기 차례인데도) 그것도 남자들 다음에 주었으면 좋겠다고 애원한다.(주8) 남자 손님이 그녀에게 술을 함께 드는 영광을 갖고 싶다고 청하면, 포트(주9)를 들까 머디러(주10)를 들까 망설이다가 포트를 들기는 하나, 눈치를 챈 남자가 포트를 들었기에 따라서 택했을 뿐이다. 그녀는 하인에게 경칭을 쓴다. 그러고는 자기 음식 접시까지 들어다주는 수고를 그에게 끼치지 말아달라고 고집하다. 식모가 그녀를 후견하고, 가정교사는 그녀가 숙맥불변의 우를 범할 때마다 시정해주는 일까지 해야 한다. 연극에서는 리처드 앰릿 경(주11)이야말로 '친척은 알고 지낼 권리가 있다'는 이 도깨비 같은 생각이 신사의 기백에 손상을 입히는 두드러진 본보기의 하나다. 그와 노파 사이에는 쑥스러운 한줄기 작은 핏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의 운명은 독기가 있는 모정 대문에 '내 아들 딕'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하다. 그를 침몰시키는 것이 줄곧 그녀의 일리요 기쁨이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그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다시 밝은 세상에 부상시킬 재력이라도 그 노파에게는 있었던 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딕과 같은 성격이 아닌 것이 문제다. 나는 앰릿 같은 실재의 인물을 알고 있었다. 그는 딕과 같은 활달한 성군은 크라이스트 학교(주12) 시절에 나와 같은 신분의 학생으로 얌전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그에게 결점이 있었다면 지나친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은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성질의 것도 아니요, 남에게 매정한 느낌을 준다거나 열등감을 느끼게하여 거리감을 갖게 하는 그런 성질의 자존심도 아니었다. 그의 자존심은 반대로 남에게서 받는 모멸을 피하기 위한 자존심에 불과했다. 그것은 가능한 한 지녀아 하는 자기 존중 원리였다. 이 점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가져주기를 바랐을 것이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나이 든 편에 속하는 소년이었다. 멀쑥해진 키에 남색 제복(주13)을 입고 남의 시선을 받는 것이 더욱 역겹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와 꽤나 싸움질을 했었다. 일요일에 함께 외거리에 나왔을 때,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사잇길이나 뒷골목으로 가자는 그를 내가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들로 괴오워했던 @군은 옥스퍼드로 갔었다. 그곳 학차의 권위와 감미로은 향기는 겸손한 신입생의 성격과 결합되어 그의 마음속에 학교에 대한 헌신적인 정열과 함께 사회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동시에 빚어놓았다. 서비터 가운(주14) '제복보다 훨씬 못한'이 그에게는 몸에 달라붙은 네서스의 독물(주15)이었다. 라티머(주16) 같은 사람도 당당히 걸치고 다녔을 것이 틀림없고, 후커(주17)도 젊은 시절에 어쩌면 뽐내는 기분으로 펄럭이고 다녔지만 전혀 흉이 될 것이 없었던 옷인데도 그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이 가련한 학생은 학교의 그늘 으슥한 곳 아니면 자기 독방에 틀어박혀 사람의 눈을 피했고, 멸시하는 일이 없는 책속에서, 빈^5,23^ 부를 묻는 일이 없는 학구 가운데서 그의 피신처를 구했다. 그는 서재의 제왕이 되어 그 영역 밖을 거의 보려고 하지 않았다. 학구열이라는 치유력이 마음을 달래고 기분을 전환시켜주어서 그는 거으 건강한 사람이 되었던 것인데 운명이 그에게 또다시 갑작스런 변덕을 부린 것이다. 이번에는 더욱 해로운 것이었다. @군의 아버지는 그때까지 옥스퍼드에서 멀지 않은 N^36^에서 한낱 건물 도장공으로 일해 왔었다. 그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 간부들과 줄을 대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거처를 옥스퍼드로 옮기게 되었고, 소문으로 알게 된 어느 관공서 일감이라도 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안색에서 끝내는 학업과 영원히 결별하겠다는 그의 결심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의 소위 가운스먼(대학 관계자)과 타운스먼(일반 사람), 그 중에서 손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신분 차별은 지나치게 지켜졌던 것이어서 대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으리라. @군의 아버지는 아들과는 정반대였다. 늙은 @씨는 부단히 굽실대는 왜소한 공인이었다. 그는 아들이 옆에 있을 때에도 가운 같은 것만 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손을 비비며 큰절을 하곤 했다. 아들이 눈짓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들의 기숙사 동료나 동급생들에게까지도 아첨하듯 허리를 굽실거렸다. 이와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었다. @군은 옥스퍼드의 공기를 바꾸어버리든가 아니면 질식을 당하든가 그 어느 한쪽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자를 택하고서 자식의 도리라는 점을 끝까지 잡아채고 있는 그 완고한 도덕주의자로 하여금 그 도리를 저버리는 자기를 탓하시려면 탓하시라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인데, 아버지는 그 고민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그의 아버지의 거처가 있던 집 처마 밑에서 그를 만났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집은 아주 작은 골목에 있었다. 큰길에서 대학, 그것도 @군의 방이 있던 건물 뒤로 이어진 길이었다. 그는 사색에 잠겨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그가 기분이 좀더 좋아지기를 기다려 나는 걸려 있는 성화를 가리키며 감히 그의 주의를 끌었다. 사도요 예술가인 누가(주18)의 초상화였다. 일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했던 그 노인이 사업 번영의 상징 혹은 성자에 대한 감사의 증표로 고이 사진 틀에 넣어 자기의 멋진 가게에 걸어놓게 되었던 것이리라. @군은 누가의 초상화를 쳐다보더니 사탄이 그의 초상화를 보고 달아나듯 '도망쳐 달아나버렸다'(주19)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버지 책상에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포르투갈로 출동하는 연대에 입대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성 세바스티안(주20)성 전투의 사망자 명단 속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반 농담으로 시작한 화제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고통스런 이야기를 되뇌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한 친척이라는 주제에는 희극적인 연상을 일으키는 소재도 많거니와 비극적인 것들 또한 많아서 이들을 섞지 않으면 그 윤곽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어렸을 때 받은 최초의 인상을 회고할 때에는 고통이나 수모 같은 것이 따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의 아버지의 책상(별로 신통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칠흑같이 검은 옷에 서글프면서도 점잖게 보이는 한 노인의 불가사의한 모습이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그의 태도는 엄숙의 극치였고, 말이란 거의 혹은 전혀 없었다. 그분 앞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사실 침묵 속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 나의 기호였기 때문이었다. 그분에게는 따로 팔굽 의자가 정해져 있었고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어김이 없었다. 다른 때에는 결코 나오는 일이 없는 독특한 푸딩(쇠고기를 다져 넣은 순대요리)이 나오는 날이 그분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그분을 굉장한 부자로 생각했다. 내가 그분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이란 그분과 아버지가 아주 오래전 링컨(주21)에 있었던 학교 동창이라는 것과 그가 민트(주22)에서 오셨다는 것이 전부였다. 민트라면 내가 알기로는 돈을 만들어내는 곳이요, 그 돈 전부가 그분의 것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분이 나타나실 때는 런던 타워(주23)에 대한 무서운 생각들이 그를 휘감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허약성이라거나 인간의 감정을 초월해버린 것 같았다. 우수의 장중한 분위기 같은 것이 그분을 감싸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이로 인해서 언제난 상복을 입고 다녀야 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유폐된 수인 아니 토요일에나 성 밖으로의 외출이 허용된 당당한 신분을 지닌 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분에 대한 극진한 공대는 우리 집의 관례가 되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이따금 아버지께서는 감히 그분에게 대들곤 하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아버지의 무모함이 이상스럽게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런 일은 그분들이 자기들이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아는 바와 같이 옛날의 링컨 시는 집들이 산쪽과 계곡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현저한 특징은 같은 학교의 학생들까지도 위쪽에서 사는 학생들과 부모의 주거가 평지에 사는 학생들 사이를 뚜렷이 가라놓았었다. 어린 학생들의 율법으로는 적대 원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의 아버지는 산쪽 패의 향도격이었고, '위쪽 아이들'(자기 패인)이 재능과 인내면에서 자기 동기생이 두목격이었던 '아래쪽 아이들'(그렇게들 불렀다)보다 대체로 우월함을 고집하곤 하셨다. 이런 화제 (그 노신사의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그것도 마천한 가문 출신임이 밝혀지는 유일한 화제에서는 옥신각신하고 충돌이 여러 번 일어나고 또 열띤 것이어서, 때로는 정말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버지는 대체로 그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기민하게 옛 성직자를 은근히 칭찬하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셨고, 그새 화제가 대체로 채택되는 중에 산쪽 주민과 그 평지 태생은 조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그들의 사소한 논쟁은 끝이 나고, 국내의 다른 모든 사원들이 화제가 되는 것이었다. 단 한 번 나는 그 노인이 정말 화내시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이젠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이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아팠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앞에 언급했듯이 그의 방문에 으레 따라 잊혀지지않는다. 앞에 언급했듯이 그의 방문에 으레 따라 나오던 문제의 푸딩 요리를 한 접시 더 들라고, 그때 옛날 링컨 사람인 고모님이 잊을 수 없는 말을 한마디 하시고 말았다. '빌렛 씨, 한 점 더 드셔야해요, 당신은 푸딩을 매일 드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아요'하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고모님은 무언가 내 사촌 누이 브리짓과 공통된 데가 있어 아따금 친절이 지나칠 때가 있었다. 그 노인은 당시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데, 그날밤 무슨 입씨름이 그들 사이에 오고가던 중에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여봐, 당신도 별 볼일 없는 할망구라구"하는 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그 소리는 좌중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고, 지금 그때 일을 쓰고 있는 나의 마음까지도 싸늘하게 한다. 이런 모욕을 삭히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인데, 그는 오래 살지를 못했다. 그러나 평안한 마음이 정말로 회복되었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은 사셨고, 내 기억이 옳다면 그의 감정을 해치게 한 문제의 푸딩이 놓였던 자리에는 다른 푸딩이 신중히 대치되어 있었다. 그는 소위 안락한 독립이란 것을 오랫동안 향유해 온 민트에서 세상을 떠났고, 죽은 수 그의 책상 서랍에서는 5 파운드 14실링 1 페니가 발견되었으니, 그것이 그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 전부요, 이로써 그는 자신의 장례를 치르기에 충분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동전 한 푼 빚지지 않은 것을 신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이것이 궁교빈족의 관계다. (옮긴이 주) 1. agathocles(BC361--289): 도공의 아들로 시실리(sicily)섬 시라큐스(synacuse)의 폭군. 독물이 발린 이쑤시개로 암살되었음. 도자기 그릇 보기를 싫어했다 함. 2. mordecai: 성경 에스더(esthdr) 2장 15절에 나오는 인물. 모든 사람이 하만(haman)에게 굴복했으나 그는 굴복하지 않고 대궐 문안에서 버티고 서 있었음. 3. lazarus: 성경 누가(luke) 16장 20절에 나오는 인물. 온몸에 부스럼투성이의 거지. '밥을 얻어 먹으려고 어느 부잣집 문앞에 나타났다.' 4. 성경 출애굽기(exodus) 8장 3--4절. 5. 성경 전도서(ecclesiastes) 10장 1절. 6. 원문a mote in your eye: 성경 마태복음(mathew) 7장 3--5절. 7.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의 '선녀여왕(faerie queene)'에 나오는 말로 당시 리 헌트(leigh hunt)의 잡지 'the indicater'의 모토. 8. 여자 우선의 서양격에 맞지 않는 겸양. 9. port: 단맛이 있는 여성용 포도주 10. madeira: 독한 맛이 나는 남성용 포도주. 11. richard amlet: 존 밴브루(sir john vanbrugh, 1664--1726)의 희곡 '공모(the confederacy)'의 주인공. 딕(dick)은 그의 아명. 돈 많은 고리대극업자인 그라이프(gripe)와 머니트랩 (moneytrap)은 아내에게 인색하다. 그라이프의 아내 클라리사(clarissa)는 빚 때문에 목걸이를 화장품 장사 앰릿(amlet) 부인에게 전당잡히고 남편에게는 분실했다고 속인다. 그라이프와 머니트랩은 서로 상대의 아내에게 반하여 환심을 사기 위해 큰돈을 서슴없이 쓰면서도 아내에게는 무척 인색하게 군다. 두 아내에게는 이를 알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여 남편을 이용한다. 한편 대령으로 귀족 행세를 하는 난봉꾼인 앰릿 부인의 아들 딕은 그라이프의 딸 코리나(corinna)의 환심을 사려 한다. 어느 날 그라이프와 머니트랩 부부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이때 전당잡힌 목걸이가 나타나 모든 것이 드러난다. 코리나에게 돈을 쓰기 위해 딕이 자기 어머니에게서 밝혀져 딕의 본색이 드러난다. 클라리사는 자기 남편의 입을 막기 위해 머니트랩 부인에서 남편이 준 돈을 은근히 암시한다. 남편은 하는 수 없이 아내의 입을 막기 위해 그만한 돈을 그녀에게 줄 수밖에 없다. 한편 딕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한다는 내용의 회극. 12. christ's hospital: 램이 다녔던 학교. 13. blue clothes: 크리이스트 호피스털의 학생들은 긴 남색 외투를 입고 노란 스타킹을 신었다. 14. servitor's gown: 옥스퍼드 대학의 학비 면제 급비생들이 교내 식당에서 시중을 들 때 입는 옷. 15. nessian venom: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믈 네서스(nessus)에서 나온 독. 16. hugh latimer(1485?--1555): 종교개혁기의 영국 사제. 17. richard hooker(1554--1600): 영국의 신학자. 옥스퍼드의 서비터였음. 18. 원문 artist evangelist: 성 누가를 말함. 신약성서의 제 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필자. 바울의 친구며 의사이고 화가였다고 함. 19. satan(악마)이 성화를 보고 달아났다는 말을 밀턴의 'paradise lost' iv, 1013에서 인용. 20. st. sebastian: 스페인 북쪽에 있는 항구. 1813 년에 영국 웰링턴(weliington)에게 점령당함. 21. lincoln: 잉글랜드 동부의 도시. 22. the mint: 조폐국. 런던 타워 근처에 있음. 23. tower of london: 템스 강 기슭에 있는 옛 성. 헨리 3세 때 궁전이었으나 그 후 국사범을 가두는 감옥이었다가 지금은 병기고 및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음. 두 가지 인종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이론에 의하면, 인류는 뚜렷한 종족, '빌려가는 인간'과 '빌려주는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트족이라느니 켈트족이니 백인종, 흑인종, 하는 당치 않은 모든 분류는 이 두 가지 근본적인 분류로 축소될 거다. 이 땅에서 서식하는 모든 사람들, '파르티아'(주1) 사람, '메디아'(주2) 사람, '엘람'(주3) 사람들이 여기에 모이고(주4) 자연히 이 기본 분류의 이쪽 아니면 저쪽 그 어느 하나에 들어가게 된다. 내가 '위대한 인종' 으로 지목하고 있는 전자의 무한한 우월성은 용보상에서, 거동에서, 또 그 확연한 군자다운 천성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후자는 보다 천하게 태어난 거다. '그로 하여금 그의 동포의 종이 되게 하노라'(주5)로 점지받은 것이다. 이 계급에 속한 사람의 풍모는 상대 계급의 툭 트이고 믿음직스럽고 너그러운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무언가 빈약하고 미심한 데가 있다. 관찰해보라, 고금을 통해 가장 위대한 '빌려가는 사람들'을 알키비아데스(주6), 포스태프(주7), 리처드 스틸경(주8), 비길 데 없는 우리의 고 브린즐리(주9)를 넷 모두 얼마나 한 식구처럼 닮았는가! 빌려가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얼마나 태평스럽고 의젓한가! 그 불그레한 턱밑 살결! '근심 걱정 없기 백합과 같으니', 자연의 섭리에 내맡긴 얼마나 아름다운 태도인가! 돈은(특히 네것, 내것) 그저 쇳물 찌꺼기로 간주해버리니 그 얼마나 호쾌한 경멸인가! '내것'이니 '네것'이니 하는 그 경우 밝은 구분에 대한 그 자유로운 혼동! 아니 정반대의 것을 하나의 명료한 형용 대명사로 용해해버리니 그 얼마나 고성한'투크(주10)를 능가하는' 언어의 단순화인가! 그 얼마나 원시사회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인가! 적어도 그 본질의 절반에는 미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온 세상으로 하여금 세금을 물게 하는' 진짜 징세자다. 그와 우리네 같은 사람과의 차이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페하와 예루살렘에 몇 푼의 공물을 바치는 극빈한 유대인 사이에 있는 거리만큼이나 엄청나게 크다. 거두어가는 데도 어찌 그리도 명랑하고 자발저인 분위기란 말인가! 면전 박대를 알면서 잉크병을 들고 찾아 오는 그 침울한 교구세나 국세 징수원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찾아 오고, 영수증 같은 것으로 수선을 피우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지정된 기간이 따로 없다. 그에게는 어느 날이나 성촉절(주11)이요, 성 미카엘 축제일(주12)이다. 그가 상냥한 표정을 지어 우리의 지갑에 부드러운 온기를 쪼이면 (마치 햇님과 바람의 옷 벗기기 내기에 걸린 길손의 외투처럼) 비단지갑 입술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이 아닌가! 실로 그 사람이야말로 썰물 없는 진짜 프로폰티스(주13)의 바다, 누구의 손에서나 멋지게 씻어가는 바다가 아닌가! 이 사람이 기꺼이 하사하는 선택의 영예를 받는 희생자는 운명과 싸운들 허사요, 그물 안에 들어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니 빌려주도록 숙명지워진 자여! 기꺼이 빌려주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 하찮은 세속의 돈 몇 푼 때문에 약속된 보상마저 잃으리라. 어리석게도 살아서는 '라자로'(주14), 죽어서는 '데이비스'(주15)의 벌을 한몸에 지려 들지 말고, 그 위풍 당당한 분이 거동하는 것을 보거든 마중나온 양 미소로 맞이하라. 어서 멋진 희생을! 보라, 그 희생을 그는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가! 숭고한 적에게는 예의를 소흘히하지 말지어다. 나의 옛친구 랠프 바이고드 경(주16)의 죽음을 당하고 보니 위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수요일 저녁 그는 삶을 하직했다. 살았을 때처럼 그느 큰 고통 없이 눈을 감았다. 그는 이 나라 공작의 위엄을 누대에 걸쳐 누려온 가문의 당당한 후예임을 자랑했고, 그의 행동과 마음 또한 자신이 내세운 혈통에 위배됨이 없었다. 인생의 초년에는 넉넉한 세수입이 있었지만, '위대한 인종'에 속한 사람들의 천품은 바로 그 고상한 무관심 때문에 재산을 삽시간에 전부 탕진해버리고 무일푼이 되었다. 어느 임금님의 개인 소유의 지갑을 들고 있다면 무언가 역겨운 데가 있기 때문이요, 바이고드의 이와 같은 사상은 전적으로 제왕다운 것이었다. 무든 것을 벗어던진 바로 그 행위로 인해 모든 것을 갖추게 되어 더욱더(누군가 노래하듯), 덕망을 재촉하여 칭찬받게 하기보다 그를 늦추고 그의 날을 무디게 하는(주17) 성향이 있어,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된 듯 '빌려가고 또 빌려가는' 대업에 나선 게 아닌던가! 그가 이 섬나라를 주유하면서, 아니 승리의 행군을 하면서 주민의 10분의 1에게 헌금을 시킬 계산이었다. 나는 그 계산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믿으려 들지 않았다. 한데 이 방대한 도시를 그가 순시할 때, 여러 번 그 친구와 동행하는 영광을 얻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크게 탄복했었음을 고백한다. 우리와 만난 엄청난 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존경하는 구면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고맙게도 그 까닭을 설명해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헌금을 하고, 그의 금고를 채워 주는 사람들이요, 그가 종종 돈을 빌려 쓰는(그 자신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훌륭한 신사들이요, 좋은 친구들이었던가 보다. 그 빚쟁이들의 엄청난 수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그 수가 불어난는 것을 헤아리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며 코머스(주18) 신과 더불어 '귀여운 양떼를 거느리는'(주19) 일을 기뻐 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세원이 있는 데도 용하게도 어떻게 금고를 늘 비워둘 수 있었는지 궁금한 일이었다. 그건 금언의 덕이었다. 그 말을 그는 늘 입에 담고 있었다. '돈을 3일 가지고 있으면 썩어서 구린내가 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썩기 전에 그는 써버린 것이다. 대개는 술로 없앴고(그는 대단한 주객이었다) 일부는 남에게 주어버렸고, 나머지는 내던져 없애머렸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돌팔매질하듯, 아니면 병이라도 전염하는 것인 양, 연못이나 개울, 아니면 깊은 동굴 속으로 힘껏 내던져 버리거나, 아니면 (다시는 찾지 못할) 강변, (그가 농담으로 말하곤 하던) 이자를 주지 않는 둑(주20) 밑에 묻어버리곤 했었고, 어무튼 광야로 내쫓긴 하갈(주21)의 자손들처럼 돈이란 썩기 전에 단호히 그와 결별하게 되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섭섭해한 일도 없었다. 그의 금고를 채우는 물줄기는 사철 그치지 안았다. 새 보급이 필요할 때는 구면이건 초면이건 맨 먼저 그를 만나는 행운을 차지하는 사람이 그 부족분을 언제고 헌금하게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고드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데가 있었다. 그는 유쾌하고 툭 트인 외모, 기민하고 명랑한 눈매, 반백의 머리(진실의 증표인)가 드문드문 있는 휜칠한 이마를 지녔다. 그는 상대가 거절의 변명을 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변명을 들어본 적도 없다. 한데 그 '위대한 인종'에 대한 내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이와는 전연 상관없는 독자에게 묻고자 한다. 가끔 자유로이 재량할 수 있는 돈이 수중에 있을 때 어느 쪽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겠는가? 애처롭게 애원하는 부랑자('빌려가는 사람' 축게도 못들어가는 서자 같은)에게 '안 되오'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과 같은 삶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자기의 본성적인 친절로 보아서는 더욱 마음에 꺼리는 일이 아닌가? 전자의 수심에 찬 표정은 스스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요, 그럼으로써 거절한다 해도 그가 미리 알고 있으니 그만큼 충격이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 바이고드를 생각하면, 그의 불타오르는 듯한 마음, 그의 부풀어오르는 감정, 그의 호방한 모습, 또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일 때의 그의 위대한 모습이 떠오르고, 그가 죽은 뒤, 그를 사귀어온 친구들과 비교할 때, 나는 변변치 않은 금화 몇 닢의 저축을 놓칠까봐 집착으 하고 있으니 별수없이 '빌려주는 사람'이요, 소인배 축에 드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재물을 쇠로 된 금고 속에 묻어두기보다는 가죽 책갈피에 끼워두기를 좋아하는 이 엘리아(주22) 같은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언급해온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약탈자들이 있다. 바로 책을 '빌려가는 사람', 장서를 불구로 만들고, 서가의 균형을 깨뜨리고, 낙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런 약탈자로서 비길 데 없는 사람으로 캄버배치(주23)가 있지 않는가! 마주보이는 내 서가의 밑 선반에는 큰 송곳니를 잡아 빼놓은 것처럼 보기 흉한 틈이 있고 (독자께서는 이제 블룸스베리의 내 작은 골방 서재에 들어와 있는 거다) 그 양쪽에(마치 런던 시청의 석조 거상들이 지킬 것도 없는데 자세를 고쳐잡고 있듯이) 장승 같은 책이 서 있는데 그 사이 빈자리에 한때는 나의 두꺼운 신학 선집, 폴리오판 보나벤투라(주24) 전집이 가장 우뚝 서서, 그 양쪽에서 떠받치고 있는 책들을(이 또한 스콜라 신학 책들로 그보다 크기가 작은 벨라마인(주25)과 성 토머스(주26의) 저술이다) 난쟁이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그 스스로 하나의 아스카파트(주27)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을 캄버배치가 뽑아가버린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이론인 즉, "책을 소유할 자격은(나의 보나벤투라를 예로 들어서) 그 책에 대한 소유자의 이해럭과 감상력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고백하는 바지만 나로서는 그의 이론을 반박하기보다 참는 편이 속편한 일이다. 이런 이론을 내세워 행동한다면 어느 서가가 안정하겠는가? 왼쪽 책장, (천장에서 두 번째 선반에 있는) 약간의 빈 자리는 책으 잃은 사람의 민첩한 눈이 아니면 거의 식별할 수 없지만, 원래 브라운(주28)의 '유골 단지의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그 책에 대해서만은 캄버배치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에게 그 책을 소개한 것이 나였고, 그 책의 아름다움을 최초로(현대인 중에서는) 발견한 것도 사실은 나였던 거다. 그러나 자기보다 자격이 월등한 경쟁자에게 자기 애인을 칭찬하는 어느 어리석은 연인의 짓이나 같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밑에는 도드슬리 출판사의 회곡집들이 있는데 넷째 권이 빠져 있다. 바로 비토리아 코롬보나(주29)가 있던 곳이 아닌가! 나머지 아홉 권은, 마치 운명의 여신에게 총아였던 헥토르를 빼앗긴 프라이엄에게 남은 아들이 탐탁하게 새각되지 않았듯이(주30) 별로 그미가 당기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여기에는 '우울의 해부'(주31)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서 있었고, 도 저기에는 '조도전서'(주32)가 한가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그 저자가 실제로 어느 시냇가에서 한가로이 거닐 듯이. 또 저쪽 구석에는 홀아비 신세가 된 존 번클(주33)이 '눈을 감고'(주34) 빼앗긴 짝을 서러워하고 있다. 이 나의 친구에게 나는 공정한 말 한마디는 해야겠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바다처럼 가끔 재물을 쓸어가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쓸어간 것에 버금가는 재물을 바닷물처럼 내던져놓는다는 점이다. 나는 이와 같은 종류의 제2의 장서 (나의 친구가 여기저기에서 거두어들인 책들) 를 가지고 있다. 어디선가 주워왔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고, 내 집에 두고 갔지만 그것을 기억해두려 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두 번 버림받은 고아들을 나는 수용하고 있는 거다. 이 외래의 개종자들도 본래의 헤브루 사람돠 똑같이 내 서재에선 환영을 받고 있다. 저기 그들, 토박이와 귀화자들이 나란히 서 있다. 나도 그렇지만, 이 귀화자들은 자기 본래의 족보를 알아보고 싶은 것 같지 않다. 나는 이 속죄봉납물에 보관료를 받을 생각도 없고, 그 비용을 건질 생각으로 판매 광고를 내는 신사답지 못한 일을 할 생각은 더욱 없다. 그래도 C에게 책 한 권을 잃는 데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고, 거기에는 의미가 있다. 남의 음식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그가 진정 맛있는 식사를 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있다. 비록 먹고 난 다음 그 요리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대 고집 세고 짓궃은 K씨(주35)여, 그것만은 삼가해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는데 그 공주 같은 마거릿 뉴캐슬(주36)의 서간집을 그렇게도 앙탈을 해서 가져가버리다니 그 무슨 심뽀란 말인가? 그대는 그 화려한 폴리오판 책갈피를 단 한 장도 넘기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한데 그대는 당시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또 내가 그것을 알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그저 단순한 반항심이여, 친구보다 좋은 것을 가져보다 싶은 동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그것을 갈릴리(주37) 땅으로, 고귀한 그 모든 사상들, 순결, 다정, 고매한 마음 담긴 그 감미롭고 덕스러운 것 머물러 있을 곳이 못되는 갈릴리 땅으로 가져가시다니, 이 아니 무엇보다 애석하지 않은가! 그대가 재치 있고 유쾌한 이야기로 온갖 친구들을 거느릴 정도로 그대를 즐겁게 할 그대가 쓴 희곡집들이며 익살과 환상으로 된 책들이 있지 않은가? '분장실의 총아'(주38)여, 그건 너무하셨소. 그대의 부인(주39) 또한, 그렇지 그런 쪽으로는 프랑스인, 보다 좋은 쪽으로는 영국 부인! 우리를 기억해두겠다는 정표로 하필이면 꼭 비루크 겅 풀크 그레빌(주40)의 작품집을 고집하여 가져가다니, 지금까지 어느 프랑스인이, 아니 여성으로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인 할 것 없이 어느 여성이 그 책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만한 천송적인 기질을 지녔단 말인가! 거기에는 짐머만(주41)의 '고독론'이 없는가? 독자여, 웬만한 장서를 지닌 축복을 어쩌다 누리고 있다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삼가하라. 그래도 빌려주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거든 빌려주돠 S. T. C.(주42) 같은 사람에게 주라. 그는 책값을 세 배로 올리고 풍부한 주석을 단 이자를 붙여(대체로 약속한 기일 안에) 되돌려 준다. 나는 이를 경험해왔다. 이와 같은 값진 그의 주석들이, 양으로는 거의, 때로는 질에서까지 원작에 버금가는 그의 친필의 원고들이, 사무적인 글씨체는 아니지만 읽어 알아볼 수 있는 그의 필적이, 나의 다니엘(주43)의 저서에, 들어 있고, 아뿔싸! 지금은 이교의 낯선 땅에서 방황하고 있을 그보다 난해한 그레빌의 사상집에도 가득 들어 있다. 내 조언하거니와 S.T.C.에 대해서만은 그대의 마음과 서재의 문을 닫지 마시라. (옮긴이 주) 1. parthia: 카스피해 동남쪽에 있던 옛 나라. 지금은 이란 북부에 해당. 2. media: 카스피해 서남부에 있던 나라. B.C.550 년에 페르시아에 합병되었다. 지금은 이란 서북부에 해당. 3. elam: 페르시아만 북쪽에 있던 왕국. 4. 원문flock hither: 사도행전 2장 9절에서 인용. 5. 원문 he shall serve his brethren: 창세기 9장에서 25절에서 인용. 6. alcibiades(B.C.450--404): 아테네의 정치가. 7. falstsff: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henry IV)'와 'the merry wives of windsor'에 나온는 주인공. 희화적인 인물. 8. sir richard steele(1672--1729): 영국의 희곡작가. 수필가. 9. richard brinsley sherdan(1751--1816): 영국의 희곡작가. 10. john home tooke(1736--1812): 영국의 정치가, 언어학자. 11. candlemas: 2월 2일, 스코틀랜드의 4반기 지불일. 12. michaelmas: 9월 20일, 잉글랜드의 4반기 지불일 세금, 임대료, 대차관계를청산 또는 갱신하는 날. 13. propontis: 현재는 모르노라(momora) 해협. 조수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흘러 이곳에는 간조가 없다. 14., 15. lazarus and davis: 신약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나오는 거지(lazarus)와 부자(davis)의 이야기. 살아서는 거지, 죽어서는 지옥으로 가는 불행. 16. ralph bigod, esq: 존 펜비크(john fenwick)를 지친한다고 보는 설이 있다. 동명의 인물은 그의 수필 '굴뚝 청소부 예찬'에도 나온다. 17. 밀턴의 '복낙원' 2권 455 행에서 인용. 18. comus: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잔치의 신. 밀턴의 '가면극(comus)'에서 인용. 19. 원문 stocked with so fair a herd: 밀턴의 'comus' 151 행. 20. 원문 bank: 은행이란 뜻이 있어 이중 의미로 씀. 21. hagar: 아브라함의 첩.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쫓김. 창세기 21장 9--15절. 22. elia: 찰스 램의 필명. 23. comberbatch: 사무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해학적인 별명. 승마에 서툰 자신을 일러 붙인 이름. 24. bonaventure: 13세기의 고승이며 학자. 25. robert bellamine: 16세기 예수파 교단의 북이탈리아 신학자, 추기경. 26. st. thomas aquinas(1227--74): 이탈리아의 성자. 신의 은총과 운명예정설 주장. 27. ascapart: 성 베비스가 정복한 키가 30척이나 되는 거인. 28. sir thomas browne(1605--82): 영국의 작가, 의사. 29. vittoria corombona: 존 웹스터(john webster)의 비극. 1612 년 출판. 램은 이 작품에 대한 비평문을 쓴 일이 있다. 30. 호모의 '일리아스' 24권에 있는 이야기를 비유. 트로이의 왕 프라이엄은 아들이 죽은 수 남은 자식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31. anatomy of melancholy: 로보트 버튼(robert burton, 1576--1640)의 저서명. 32. conpleat angler: 아이잭 월튼(izaak walton, 1593--1683)의 저서. 33. john buncle: 18세기 영국의 해학적인 작가 토머스 애모리(thomas amory)가 쓴 '존 번클의 일생(life of john buncle, esq)'에 나오는 주인공. 34. 원문eyes closed: 존 번클은 결혼을 일곱 번 했는데 그중 한 아내가 죽었을 때 삼사 일 동안 눈을 감고 꼼짝 않고 있었다. 35. 극작가 제임스 케니(james kenney, 1780--1849)를 지칭. 36. margret newcastle(1624--1673) 뉴캐슬 공작부인. 전기, 시, 철학 등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김. 37. gallican land: 프랑스. 38. child of the green-room: 배우들의 극장 분장실의 아이. 극작가인 케인를 칭함. 39. 케니의 부인은 프랑스인으로 그들 내외는 베르사이유(versaille)에서 살았고, 1822 년 램이 그곳으로 그들을 방문함. 40. fulke greville, lord brook(1554--1628): 영국의 시인 . 철인 . 비극작가. 필립 시드니경의 친구로 그의 전기를 씀. 램은 그의 비극 '아라함(alaham)'과 '머스태프(mustaph)'에 대한 자신의 평문을 씀. 41. johann george von zimmerman(1728--1795): 프랑스의 의사. 문학자. 그의 '고독(on solitude)'(1784)은 전유럽에 유행. 램의 애독서였음. 42. samuel taylor coleridge(1772--1834): 영국의 시인. 비평가. 43. samuel damiel(1562--1619): 영국의 시인. 극작가. 44. robert burton(1577--1640): 영국의 목사. '우울의 해부'의 저자. 식사에 대한 감사기도 식사를 할 때 감사기도를 올리는 습관은 아마 그 연원이 저 상고시대에 있을 것이다. 인간이 수렵으로만 살던 상태에서는 제때에 끼니를 먹는 일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요, 정찬을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보통의 축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에는 배불리 먹는 일은 뜻밖의 횡재요, 신의 각별한 섭리로 여겼을 것이다. 몹시 굶주린 끝에 얻어진 사슴이나 염소고기 같은 행운의 전리품들은 당연히 환희의 함성과 개선가와 더불어 집으로 옮겨졌을 것이니, 오늘날의 감사기도의 싹은 아마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하늘이 내린 그밖의 많은 여러 가지 선물들이며, 생존상의 고마운 물건들을 향유하는 데에도 의당 있을 무언의 감사 표시와는 달리, 왜 음식 먹는 행위에만 특별한 감사의 표시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 달리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식사 이외에도 하루에 한 스무번은 감사기도를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즐거운 산책을 나설 때, 달밤의 소요, 정다운 모임, 아니면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다든가 할 때에 그에 적절한 감사 기도문이 있었으면 싶다. 왜 우리는 영혼의 음식인 책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밀턴(주1)을 읽기 전의 감사기도, 셰익스피어를 읽기 전의 기도 '선녀여왕'(주2)을 읽기 전의 알맞고 경건한 의식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인가? 하지만 세상이 인정하는 전례에는 유일하게 음식을 먹는 의식에 대해서만 감사기도의 형식이 규정되어 있으니, 내 이야기도 특히 식사 전의 감사기도라고 일컬어지는 기도에 대한 내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국한시키기로 하고, 기도를 다른 일에도 확대시켜야 하겠다는 내 새 계획은 라블레(주3)류의 기독교인들이 장소에 구애없이 모일 조촐한 예배에 쓸 수 있도록 지금쯤 내 친구 호모 휴마누스(주4)가 편집하고 있을 철학적이고 시적이고, 또 어쩌면 이교적인 것이 될 방대한 기도서에 모시도록 권하는 것으로 그치련다. 그런데, 이 식사 전에 축복을 비는 의식은 가난한 사람의 식탁이나 조촐하고 담담한 아이들의 식사에서 행해질때, 기도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때에 축복이 축복다워진다는 것이다. 내일 먹을 것이 입에 들어오게 될지 모를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음식을 대하고 앉으면, 곧장 은혜의 마음을 느끼게 되지만, 부자에게는 그와 같은 축복감은 회미하게 작용할 뿐이다. 부자들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은 아예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먹이, 말하자면 동물적인 물질의 고유의 목적을 그들은 거의 생각할 수가 없다. 가난한 사람의 빵은 일용의 정식만찬이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감사기도에는 가장 평범한 식사가 오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미각을 가장 작게 자극하는 식사일수록 마음을 자유롭게 하여 식사하는 일 이외의 생각을 가질 여유가 있게 한다. 무를 곁들인 소박한 양고기 요리를 놓고는 고마움을 그것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먹는 것에 대한 성찬의 의식이나 예배를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만, 사슴고기나 자라고기가 있어 마음이 동요된다고 고백하게 될 때는 이미 기도의 목적에 배치되고 만다. 나는 부자들 집이 식탁(이런 자리에는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지만)에 앉아 있을 때에는 맛있는 국이며 여러 가지 음식에서 콧구멍으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먹고 싶은데 무엇을 고를지 몰라하는 손님들의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어서, 이런 때 그런 의식을 들여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군침이 흐르는 입으로 찬미를 중얼댄다는 것은 기도의 목적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식도락의 흥분이 기도의 부드러운 불꽃을 삼켜버리고,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냄세는 이단이요, 뱃속 귀신이 이를 자기의 것으로 가로챈다. 바로 그 필요 이상의 과다는 목적과 수단의 균형감을 앗아가버린다. 우리가 감사를 드리는데, 왜?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는 지나치게 먹을 것이 많다고 감사를 드리고 있으니, 그 부당성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건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 빗나간 것이다. 나는 기도를 드리는 선량한 사람들이 어쩌면 태반이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모순을 느끼고 있음을 관찰한 적이 있다. 성직자는 물론 그 외의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을 보았다. (일종의 수치감 같은 것이라할까) 축복을 더럽히는 상황과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말이다. 기도의 경건한 목청이 몇 초 동안 지속된 다음, 얼마나 신속하게 본래의 평범한 목소리로 급변하는가! 그리고서 곧장 자기도 먹고 옆 사람에게 집어주는 폼이 마치 무언가 위선이란 불안한 기분을 떨쳐버리려는 것만 같다. 그 선령한 사람이 위선자거나 예배에 극도로 조심해서가 아니라 그 차분하고 도리에 맞는 감사의 의식과 눈앞의 장면과 음식이 양립할 수 없음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꼈기 때문인 거다. 누근가 외쳐댈 것이다. 당신은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음식을 하사하신 하느님을 기억하지도 말고 돼지가 구유를 대하듯 식탁에 주저앉도록 할 셈인가 하고, 천만에, 나는 그들이 하느님을 기억하고, 돼지가 아니라 크리스천답게 식탁에 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의 식욕이 왕성해서 동서를 뒤져 진미를 찾아 포식해야 할 지경이라면, 식욕이 잔잔해진 적절한 시기가 될 때까지 감사기도를 미루어주었으면 하는 거다. 그때에는 차분하고 나직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때에는 은총에 대한 이성이 회복된다. 절제된 식사와 제한된 식단과 더불어서 말이다. 폭식과 포식은 감사기도를 드릴 적절한 때가 아니다. 예수란(주5)은 살이 찌면 발길질을 했다고 들었다. 또 버질(주6)은 탐욕스런 하피(주7)인 실래노(주8)의 입에 아^36^예 축복의 말만을 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하피 같은 탐욕스런 성격을 보다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음식이 다른 음식에 비해 맛이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좀 천하고 저급한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기도의 고유의 대상은 생명유지를 위한 영양이지 맛이 아니요, 일용의 양식이지 진미의 성찬이 아니며, 생명의 수단이지 육신의 욕망을 실컷 채우게 하는 수단이 아니다. 어느 큰 연회장에서 소속 목사가 찬미의 기도를 올릴 때, 자신의 경건한 시도의 종언이 십중팔구 자신이 설파하는 그 성스러운 이름이, 그저 그 많은 참을성없는 하피들로 하여금 버질의 욕심꾸러지 새들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란 신호를 불과함을 안다면 그의 심상과 마음의 균형이 어떨까 궁금하다. 그 선량한 당사자가 자신의 기도가 좀 흐려지고, 그 무럭무럭 올라오는 감각적인 김이 뒤섞여서 정결한 성찬의 기도가 혼탁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야 좋은 일이다. 이 진수성찬과 포식에 대한 가장 신랄한 퐁자로는 '복낙원'(주9)에서 사탄이 유혹하기 위해 광야에 마련한 향연일 것이다. 제왕의 격식으로 풍성한 차린 식탁, 쌓아올린 접시들, 향기롭고 진귀한 고기, 사냥한 짐승, 쏘아 잡은 새, 반죽으로 산적으로 혹은 삶아서, 용연향으로 쪄서 익혀내고, 가지가지 민물고기, 바닷고기, 강변과 바다에서, 시내와 개울에서 포투스(주10) 바다, 루크린 만, 아르리카 해안, 물을 퍼내 잡은 고기.(주11) 유혹자인 사탄은, 내 장담을 하거니와, 기도를 권하는 말 한마디 없어도 이와 같은 진귀한 음식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었을 것이 틀림없다. 악마가 주인노릇을 하는 식사에서의 기도는 짧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 시인도 평소를 예절을 잃고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옛 로마의 사치 아니면 케임브리지의 호화스러운 축제일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런 식사는 헬리오가발루스(주12) 같은 미식가에게나 알맞은 유혹이었다. 전체 연회가 지나치게 도시풍이요 너무나 거창하게 장만한 것이요, 그에 따르는 것들도 모두가 바로 그 취식이라는 의미 심장하고 성스러운 장면에 대한 모독이다. 요리의 마신이 주술로 빚어놓은 그 강력한 맛은 그 소박한 손님의 욕구와 단순한 허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꿈으로 마음이 소란해졌을 때에는 꿈에는 더 잘깨우쳐진다고나 할까, 하느님의 허기진 아들의 절제된 환상엔 어떤 잔칫상이 나왔던가? 정말 그는 꿈을 꾸었다. 식욕은 달콤한 자연의 회복제, 고기와 물을 꿈꾸는 버릇 있어.(주13) 한데 무슨 고기를? 그를 생각하고, 케리스 개울가에 서서 깨달았다. 까마귀들 뿔 같은 부리로, 엘리야(주14)에게 음식을 아침 저녁 가져와서, 아무리 굶주렸지만, 가져온 음식을 삼가하라고 가르치던 것을. 그는 또한 깨달았다. 그 예언자가 광야에 들어가서 로뎀나무 아래에 잠이 들고. 그러다 깨어보니 숫불 위에 조녁이 마련되어 있고, 천사가 일어나 먹으라 하니 잠을 자고 나서 두 번 먹고 40일에 충분한 기운을 얻었다. 그가 때로는 엘리야와 함께 먹고, 때로는 다니엘의 객이 되어 콩을 함께 먹었던 것을.(주15) 밀턴의 환상들 중에서 이 굶주린 성자들의 금욕적인 꿈보다 더 아름다운 환상은 없다. 이 꿈 같은 두 향연 중 어느 쪽에 소위 감사기도를 올리는 것이 그대 생각에 가장 알맞고 적절한 기도가 되었으리라 여기는가? 근본적으로는 내가 식사 전의 기도에 적대자가 아니라, 실제로는 기도들이(특히 고기를 앞에 놓고서는)무언가 어색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점이 있어 보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식욕은 어떤 종류의 것이 되었건 이성에 대한 훌륭한 자극제요,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의 이성이 종족의 지속과 보존이라는 대업을 달성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식욕은 멀리서 적절한 감사심을 지니고 정관하기에 알맞은 축복이다. 그러나 식욕이 발동하는 순간은(사려깊은 독자는 내 말을 알겠지만)아마도 그와 같은 의식을 행하기엔 가장 알맞지 않은 시기일 것이다. 우리네보다 매사에 차분한 마음으로 임하는 퀘이커 교도들은 이와 같은 축도의 서장을 울릴 자격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무언의 기도를 찬양해온 터인데 그들의 음식을 대하는 폼은 우리들처럼 열을 내거나 감각적이 아님을 보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대식을 하거나 대음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게 썬 건초를 먹는 말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고 조촐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한다. 기름이나 국물로 옷을 더럽히는 일도 없다. 식사를 할 때 턱받이 천을 두른 사람을 보고 횐 법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음식에 대해 퀘이커 교도가 아니다. 나는 솔직히 기름진 사슴고기를 입에 넣는다는 것이 무심한 일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음식을 꿀꺽 삼켜버리고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모르는 체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 그이 미각은 보다 고상한 일에서도 그처럼 무감각하지 않을까 두렵다. 잘게 다진 송아지 고기를 좋아한다고 공언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본능적으로 흠칫해진다. 음식에 대한 취향은 하나의 생리적인 성격이다. C^36^(주16)는 사과 경단을 거부하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가 옳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의 순진성이 사라지면서 기름기 없는 소박한 음식의 맛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 모든 야채 종류에 대한 맛이 없어진 거다. 유일하게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맛만은 그렇지 않다. 그것만은 이직도 부드러운 옛맛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요리에 실망을 할 때, 예를 들어 맛있는 식사를 기대하며 식사 때에 집에 왔는데 구미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왔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불평을 한다. 잘못 녹은 버터, 흔히 있는 부엌의 실수인데 이런 것은 기분을 상하게 한다. '램블러'의 저자(주17)는 마음에 드는 음식을 대할 때에는 무슨 짐승 같은 애매한 소리를 내곤 했다고 한다. 기도에 이어 이런 음악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적절하겠는가? 아니면 좀더 침착하게 축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기까지, 믿음이 깊은 그분께서 연기하셨던 것이 더 좋았던 것이 아닐까? 남의 구미를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요, 주연이나 잔치에서 나오는 맛있는 음식에 금욕의 표정을 짓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럴 때의 기도는, 그것이 아무리 칭찬할 만해도, 거기에 고상한 마음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깃들여 있지 않을 때에는 그처럼 기도의 위엄을 갖추려들기 전에 확인해봐야 한다는 거다. 한쪽으론 기도하는 체하면서, 다른 쪽으론 슬그머니 어느 큰 생선, 데이곤(주18)의 어신에 손을 얹고, 방주(주19) 대신, 앞에 놓인 기름진 국그릇을 각별한 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식전의 감사기도는 천사와 어린이들의 잔치에, 샤트르우스(주20) 수도승의 초근조식에, 가난하고 겸허한 사람들의 보다 보잘것없는, 그러나 보잘것없다고 여겨지지 않는, 소찬에는 참으로 감미로운 식사의 서곡이다. 그러나 배불리 벅는 자와 호사하는 사람들의 식탁에서는 하나의 불협화음이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호그스노튼(주21)의 돼지 풍금 소리에 어울리는 것만도 못하지 않나 싶다. 신의 은총에 얌전히 감사기도를 올리기엔 우리가 지나치게 식탁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거나, 지나친 호기심으로 음식을 가리거나, 음식을 먹는 데 지나치게 무질서하거나 좋은 음식에 지나치게 집념한다. 분에 넘치게 얻은 것을 감사한다는 것은 부정에 위선까지를 추가하는 것이다. 마음 깊이 잠재되어 있는 이와 같은 진실에 대한 감정이 대부분의 식탁에서 하는 예배 향사를 무척이나 싸늘하고 흔이 깃들여 있지 않는 의식이 되게 한다. 식탁의 냅킨처럼 감사기도를 빠뜨리지 않는 집에서 선량한 집주인과 찾아온 신부님, 혹은 연령과 권위로 보아 그 다음 서열쯤 되는 손님이 인사의 미덕으로 기도하는 일을 서로 떠넘기는 중에 "누가 기도하실까요?" 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 각자 그 모호한 의례의 어색한 짐을 자기 어깨에서 떠넘기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아서는 아닐까? 나는 언젠가 교리를 달리 하는 두 감리교 목사님과 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그분들을 서로 소개시킨 건 우연이었다. 첫 찻잔이 다 놓이기도 전에 그 중 한분이 다른 분에게 아주 근엄하게 "무슨 말씀을 좀 올려주시지 않으시럽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이런 음식을 들기 전에도 간단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관습이었던 것 같다. 성직자인 상대의 교도형제는 처음으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설명을 듣고서는 그에 못지않게 근엄하게 자기 교회에서는 그런 관습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점잖게 회피하니 다른 한쪽은 예의에서였는지 아니면 자기 교리보다 엄격하지 못한 교우에게 순응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든지간에 그 부차적인 감사기도, 말하자면 끽다전 기도는 완전히 생략되었다. 어찌 풍자가인 루시안(주22)이 두 사제들, 그것도 자기 교파의 사제들이 제물을 집전하자커니 말자커니 서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 양보하는 모습을 그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굶주린 신이 냄새가 수상하여 두 사제들에게 코를 대보고는(이쪽인가, 저쪽인가 하다가) 결국 저녁식사를 얻어먹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에는 기도가 짧으면 경건의 부족이요, 길면 주제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까 두렵다. 엉뚱한 데가 있던 장난꾸러기(하지만 나의 유쾌한 학우) C.V.L.23)은 기도를 해달라고 조르면, 먼저 슬쩍 식탁을 곁눈으로 훑어보고선 "여기 성직자는 안 계십니까?"하고 물은 뒤에 바로 심각하게 "감사합니다. 하느님" 하고 끝맺는 것이었다. 나는 이처럼 경구적으로 축약된 기도를 전적으로 찬성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하던 옛날 형식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학교에서 빵과 치즈로 된 소박한 식사를 들기 전에 기도를 드리곤 했었는데, 그 소박한 축복을 놓고, 종요적인 영감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은전을 연상토록 하는 것이었다. '차제엔 부적이다.'(주24) 지금도 기억하지만 우리는 그 기도에 으레 나오는 '거룩한 창조물'이란 구절을 우리 앞에 놓인 음식과 일치시키도록 강요되었고, 우리는 그 표현을 우리 멋대로 저급한 동물의 먹이란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전설 같은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황금 시절에 크라이스트의 학동들은 저녁에는 으레 연기가 피어오르는 불고기 조각을 들었는데, 어느 신앙심이 깊은 학교 후원자께서 먹는 것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옷이 없음을 딱하게 여겨, 고기를 외투로 바꾸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우리에게 양고기 대신에 바지를 주었다는 거다. (옮긴이 주) 1. john milton(1608--74): 영국의 시인. '실낙원'의 저자. 2. faerie queene: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sncer)의 최대 걸작 서사시. 3. francois rabelais(1483--1553): 프랑스 신부로 쾌활한 성격의 저술가. 청교주의에 매이지 않고깆 풍자, 유머를 마음껏 발휘. 승려와 현학자를 풍자한 '가르강튀아(gargantua)'가 유명. 4. homo humanus: 현세 인간이란 뜻으로 비특정인임. paine cary나 친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음. 5. geshurun: 성경 신명기(deuteronomy)에 나오는 인물. 6. 버질(virgil, B.C. 70--19): 로마의 시인. '아에네이스(the aeneis)' 의 저자. 7. harpy: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얼굴과 몸이 여자 모양이며 새의 날개와 발톱을 지닌 욕심꾸러기 괴물. 8. 버질의 서사시 '아에네이스'에 나오는 인물. 로마의 건국 시조 아에네아스가 트로이를 함락하고 유랑을 할 때 하피들이 그와 그의 일행들의 음식을 빼앗아가고 실래노가 홀로 남아 예언적인 비난을 한다는 내용을 비유. 9. paradise regained: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의 속편으로 예수님이 사탄을 물리쳐 이김으로써 이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져서 잃은 낙원을 다시 찾는다는 내용. 10. pontus: 흑해의 옛 이름. 11. '복낙원' 2장 337--347 행 인용. 12. heliogabalus: 미식가로 유명한 로마 황제 아비투스(avitus)에 붙여진 이름. 13. '복낙원' 2장 264--265 행. 14. elijaah: 기원전 9세기의 히브리의 예언자. 성경 열왕기(kings) 17장 48절. 15. '복낙원' 2장 226--279 행. 구약 열왕기 상권 17장 4--8절 및 다니엘서 1장 12절의 내용임. 16. 사무얼 테일러 코올리지. 17. 사무얼 존슨(samuel johnson, 1709--84). 영국의 사전 편집자. 비평가. 18. dagon: 팔레스타인 남부인들의 어업과 농업의 신. 19. 성경 사무엘서 5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하느님의 방주를 데이곤의 신전이로 운반했다'는 고사를 비유하였음. 20. chartreuse: 프랑스 그르노블 근교에 있는 수도원. 21. hog's norton: 옥수퍼드셔(oxfordshire)에 있는 한 촌락인 혹 노튼(hock norton)에소 호그(hogg)란 사람이 풍금을 쳤던 까닭으로 그 지명이 호그(돼지)의 노튼으로 불렸음. 그곳 주민의 유벌난 익살스러운 성격으로 유명. 22. lucian: 2세기 그리스의 풍자 시인. 23. 찰스 발렌타인 레스라이스(charles valenrine lesrice). 24. 원문non tunc illis erat locus. 돼지구이에 관한 이야기 내 친구 M(주1)이 어느 중국 문한을 읽고 내게 친절하게도 설명해준 일이 있었다. 그 문헌에 의하면 인류는 처음 7 만 년 동안, 오늘까지도 아비시니아(주2)에서 볼 수 있듯이, 살아 있는 짐승의 날고기를 할퀴고 물어뜯어내어 생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공자께서도 '세속의 변화'(주3)하는 책의 2장에서 문자대로 옮기면 '요리사의 휴일'이란 뜻을 지닌 '초팡'(주4)이란 말로 일종의 문화적 황금기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 보면, 이럼 시기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서 그 문헌은 구기를 불에 굽은 요리법, 혹은(그보다 손위 형벌이 되는)불에 그슬리는 요리법이 아래와 같은 방법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돼지를 기르는 호티라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돼지에게 먹일 도토리를 주우려고 숲으로 들어가면서 움막집을 맏아들인 보보에게 맡겼다. 보보는 몸집은 컸지만, 동작이 서툴고 둔한 소년이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불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던 것인데, 그날은 불똥이 짚단에 튀겨 순식간에 불이 붙게 되었고, 가련한 그들의 저택은 온통 불길에 휩싸였고, 결국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타버린 집이야 짐작할 수 있듯이 노아의 홍수 이전의 보잘것없는 임시변통의 움막이었을 것이지만, 그보다 휠씬 아까운 것은 갓 태어난 돼지 새끼 한배였다. 족히 아홉 마리나 그 집과 함께 불에 타 죽은 것이다. 돼지 모양의 도자기가 동양 곳곳에서 귀중한 집안 장식품으로 존중되어온 것은 아주 멀고먼 옛날부터였음을 우리는 책을 통해 알고 있다. 독자께서 짐작하시겠지만 보보는 몹시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집도 집이었지만 돼지들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은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 몇 시간 일을 하면 아버지와 함께 어느 때나 다시 쉽게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궁리를 하며 불시에 죽음을 당한 돼지 새끼들의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두 손을 맞비비고 있었는데 전에 경험한 냄새와는 다른 어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불탄 움막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다. 그런 냄새는 전에도 맡아본 경험이 있었다. 사실은 이번의 사고가 결코 처음은 아니었다. 이 불행한 불장난꾼의 부주의 때문에 전에도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냄새가 알려진 어느 약초나 잡초라거나 꽃이 타는 냄새는 더 더욱 아니었다. 그때 마침 무엇인가를 예시해주듯 그의 아랫입술에 침이 흘러내렸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혹시 살아 있는 기미가 있나 해서 돼지를 만져보았다. 손가락이 뜨거웠다. 그는 이를 식히기 위해서 얼간이처럼 입에다 대었다. 그때 불에 탄 껍질 부스러기가 손가락에서 묻어나왔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 처음으로(아니 그 사람 이전에는 맛본 사람이 없었을 테니 이 세상 처음으로) 그 바삭거리는 구운 돼지 껍질을 맛보게 된 것이 아니던가! 그는 다시 돼지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렇게 뜨겁지도 않았지만 일종의 버릇으로 손가락을 핥았다. 무척이나 무딘 녀석이었지만 이윽고 그는 서서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냄새와 그 훌륭한 맛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돼지였다는 거삳. 그는 새로 얻은 기쁨에 휩싸여 불에 탄 껍질을 뜯어내어 이제 살점이 붙은 채 한움큼씩 짐승처럼 입에 몰아넣어 살키고 있었다. 이 때 숲에서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징벌의 매를 들고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는 서까래들을 헤집고 들어와서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서 그 어린 악동의 어깨를 무수히 매질하기 시작했다. 우박같이 쏟아지는 매질이었지만 보보는 마치 파리떼가 덤비는 것만 큼 개의치 않았다. 깊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쾌감 때문에 그와 멀리 떨어진 다른 신체 부위에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통 따위에는 완정히 무감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리 매질을 했지만, 그를 돼지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가 돼지를 거의 다 먹어치웠을 때에야 그의 아버지는 비로소 심상치 않은 사정을 어느 정도 눈치채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야 다음과 같은 대화가 부자간에 오고 가게 되었다. "이 못된 녀석, 저기서 무엇을 우적우적 처먹고 있는 거냐? 그 못된 장난으로 집을 세 채씩이나 태워먹고도 모자라는 거냐! 이 망할 녀석! 한데 그건 무어냐? 불을 먹고 있는 게 아니냐? 먹고 있는 것이 무언지를 말해봐!" "아버지, 돼지예요, 돼지. 불에 탄 돼지가 얼마나 맛이 있는 건지, 와서 먹어보세요." 끔찍한 소리에 호티는 귀가 멍멍했다. 아들을 저주했음은 물론, 부렝 탄 돼지를 긁어내더니 쭉 찢어서 작은 토막을 아버지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며 "잡숴보세요, 잡숴보시라구요, 아버지. 그저 맛만 보세요. 얼마나 기막히다고요!"하고, 짐승처럼 계속 소리를 질러대면서 숨이 막힐 듯이 돼지고기를 입안으로 줄곧 몰아넣는 것이었다. 호티는 그 끔찍한 고기 토막을 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 망칙한 어린 괴물을 그만 죽여버릴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인데, 그때 손가락이 뜨거운 돼지 껍질에 닿았다. 그의 아들이 했듯이 손가락을 식히기 위해 입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이번에는 그가 그 돼지고기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아들 앞에서는 맛이 고약한 척 했지만 결코 싫지 않았전 것만은 분명했다. 결론으로(이 대목을 그 분헌은 좀 지루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두 부자는 아예 차분히 앉아 돼지를 먹기 시작했고, 이 한배의 돼지새끼들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자기를 떠날줄 몰랐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보보에게 이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엄히 당부를 했다. 이 두 부자는 하늘이 내리신 훌륭한 고기를 감히 개량할 생각을 했으니 이웃 사람들은 그들을 고약한 놈으로 몰아 돌로 쳐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호티의 움막은 전보다 자주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걸핏하면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대낮에 나는 경우도 있었고 한밤중에 나기도 했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호티의 움막은 으레 불길에 싸였고, 더욱 이상한 것은 호티 자신이었다. 그는 불을 낸 아들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오히려 전보다 더욱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결국 두 부자는 감시를 받게 되었고 그 가공스런 비밀은 탄로되고 말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은 당시에는 보잘것없는 소읍에 불과했던 북경으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았다. 배심원들의 판결이 내릴 참이었다. 그때 수석 배심원이 기소 이유인 불에 탄 돼지고기를 배심원석으로 보내주기를 요청했다. 그가 그 고깃덩어리를 만져보자 다른 무든 배심원들도 따라 만졌다. 그들도 보보 부자처럼 손가락을 데었고 자연은 그들 모두에게 똑같은(손가락을 식히기 위해 입으로 가져가는) 처방을 촉구했다. 모든 정황과 재판장의 분명한 문책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무슨 협의 같은 것도 없이 동시에 일제히 '무죄'를 선고했다. 온 법정의 사람들, 읍내에서 사는 사람들이며 객지 사람들이며, 입히 서기 할 것 없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판사는 눈치 빠른 사람인지라 명백히 잘못된 이 판결을 슬쩍 넘겨버리고 법정을 해산한 뒤, 슬그머니 빠져나가 얻을 수 있거나 돈을 수고 사들일 수 있는 돼지란 돼지는 모조리 모아들였다. 그 후 며칠 뒤 사람들은 그 판사의 관저에 불이 난 것을 보았다. 소문은 날개돋힌 듯 퍼지게 되었고, 이젠 사방 곳곳에서 불이 났다. 온 고을의 땔감과 돼지의 값이 엄청나게 폭등했다. 화재 보험회사는 하나같이 모두 문을 닫았다.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이 짓는 집은 점점 빈약해졌고, 이윽고 이러다가는 모든 건축물이 머지않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게 되었다. 그 문헌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집에 불을 지르는 풍습이 계속되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위대한 철인 로크(주5)같은 현인이 나와서 집을 통째로 태워 없애지 않고서도 돼지고기나 그 이와의 다른 짐승의 고기를 요리(그들의 말로는 불태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조잡한 형태의 석쇠가 나오게 되었다. 철사나 쇠꼬챙이에 끼워 법은 1, 2세기 지나서 나왔다는데 어느 왕조 때 였는지는 잊었다. 가장 유용하고 또 외견상 뻔해 보이는 기술이랄 수 있는 이 돼지구이 기술도 이처럼 서서히 우리 인류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 그 문헌의 결론이었다. 위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만일 어떤 요리의 목적을 위해서 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위험스런 실험을(특히 오늘에도) 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그실이 주어진다면, 아마 그런 핑계나 구실은 이 돼지구이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모든 가식불의 모든 맛 중에서도 나는 구운 돼지야말로 진미 중의 진미라고 주장하련다. 내가 말하는 돼지는 독자들께서 알고 있는 포크감이 될 정도로 다 자란 돼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들만의, 다시 말해서 풋내기 중돼지가 아니라 한달 미만의 어리고 부드러운 젖먹이 아직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조상의 유전적인 결함인 '오물애호'의 원죄를 찾아볼 수 없는 (울음 소리를 겨우 벗어난) 꿀꿀대는 울음 소리의 부드러운 전조랄까, 서곡이라 할까 하는 울음 소리를 내는 돼지를 말하는 거다. 이런 돼지는 구워야 제맛이 난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찌거나 삶아서 먹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요리를 하면 그 바삭바삭한 껍직의 맛은 얼마나 희생되어 버리는가! 나는 감히 주장하려니와, 알맞게 정성들여 구워낸 그 누르스름하고 사각사각한 구운 돼지 껍질, 이름도 그럴싸하게 붙여진 '크래클링'(주6)에 견줄 만한 맛은 이 세상에는 없다. 이 음식을 먹을 때에는 그 쉽게 부서지면서도 좀은 딱딱한 성질에서 오는 그 수줍은 항거를 정복하기 위해 이빨들이 동원되고, 그로 인해 씹히는 마승ㄹ 즐기는 기쁨까지 더해준다. 달라붙는 유질성 어찌 그것을 기름덩이라 하랴! 아니 형언할 수 없는 감미가 피어나는 기름이라 할까, 부드러게 꽃피어 나는 꽃망울에서, 새순에서, 천진무구에서 생겨난 기름이요, 순수한 새끼 돼지의 먹이가 응축된 진수요, 살은 살인데 살코기가 아닌 일종의 고기 만나(주7)다. 아니 그 보다는 기름과 살코기(이런 속된 말 밖에 없으니)가 서로 섞이고 어우러졌기에 그 두 물질은 하나의 천신이 먹는 음식이 되는 결과(주8)가 된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흔한 물질에 불과한 것이 되었을 거라고 하는 게 옳겠다. 불에 굽고 있는 새끼 돼지를 보라. 작열하는 열기를 다소곳이 받고 있으니 몸을 불태우는 열기를 받고 있아기보다 오히려 상쾌한 훈기를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꼬챙이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균형이 잡혀 있는가! 이제 다 익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도 감수성이 있단 말인가! 그 귀연운 눈은 울어서 눈물마저 말라버리고 유성이 남기는 운석 같은 젤리가 되었다.(주9) 그의 두 번째의 요람인 접시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을 보라. 그 얼마나 양순한가! 이처럼 천진한 것을 큰 돼지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흔히 보아온 그 천박하고 거친 성질이 되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도 자라면 십중팔구 탐욕스럽고, 세으르고, 고집세고 불쾌한 짐승이 되어 추잡한 행동을 하며 오물 속에서 빈둥댈 것이다. 이런 죄들을 짓지 않도록 다향스럽게도 그는 그 위험에서 간신히 구제가 된 것이리라. 죄악에 시달리고 슬픔에 시들기 전에, 죽음이 때맞추어 찾아와 덜봐주나니(주10) 그에 대한 주억 또한 향기롭다. 기름진 베이컨을 과식하고 욕하는 시골뜨기도 없고, 석탄광부조차도 그를 냄새나는 소시지에 넣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워버리는 일도 없다. 그는 고마워할 줄 아는 현명한 미식가의 위장속에 자신의 아름다운 무덤을 가지게 되며, 그런 무덤이라면 족히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진미 중에서도 최상의 진미다. 파인애플의 맛도 대단하다. 그러나 그 맛은 거의 세상을 초월하는 듯한 것이어서 이를 먹는 즐거움은 비록 죄악이랄 수는 없어도 마치 죄를 짓고 있는 듯한 기분이어서 정말로 민감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좀은 망설일지도 모를 정도고, 인간의 미각에는 지나치게 황홀하여 이를 먹으려 드는 사람의 입술에 상처를 낼 정도로 여인과의 키스처럼 강렬하다. 그 풍미는 광기랄 수 있을 정도로 신랄하여 그것을 먹는 맛은 고통에 가까운 기쁨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입에서 그치는 맛이요, 결코 식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몹시 배가 고픈 사람은 언제라도 그 맛을 버리고 양고기 토막 따위를 취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돼지구이는 (나는 이에 찬사를 보내련다) 까다로운 미각을 지닌 사람의 예리한 입맛을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식욕을 돋우어준다.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양껏 먹고, 허약한 사람들도 입안에 도는 그 부드러운 즙액을 사양하지 않는다. 인간의 성미란 복잡하여 선과 악이 몹시도 뒤엉켜서 쉽사리 풀리지 않지만, 그는 선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의 어느 부분도 더 낫다든가 못하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 허용하는 한 그는 두루 맛좋은 부분을 제공해준다. 모든 부분이 한결같이 좋으니 연석의 어느 손님으로부터도 불만을 사는 일이 결코 없다. 그는 실로 모든 이웃에 우애를 돋우어주는 음식인 것이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중에 자기 몫으로 떨어진 좋은 물건을 아낌없이 친구에게 나누어주는 욕심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럴 만한 행운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친구들의 즐거움이며, 그들의 기호며, 적절히 만족해하고 그들의 모습을 내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이 흥미있게 지켜보는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선물은 자리에 없는 사람을 그립게 한다'(주11)는 말을 애용한다. 토끼니, 꿩이니, 자고니, 도요새니, '길들인 농촌의 새'(주12)인 시골닭, 거세된 수탉이니, 물떼새니,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니 몇 통의 굴따위들은 손에 들어오는 대로 선선히 나누어 먹는다. 말하자면 이것들을 친고들의 혀를 빌려서 맛보기를 나는 즐기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디선가는 제동을 걸어야만 한다. 사라미 리어왕처럼 '이것 저것 다 주어버릴 수는'(주13) 없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돼지구이에서 그 제동이 걸릴 것이다. 내 개인의 입맛에 각별히 알맛게 운명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축복을 우정이니 뭐니 하는 구실을 붙여 경솔하게 집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모든 진미를 하사해 주신 신에 대한 배은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또 불감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일종의 그와 비슷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이 지긋하시고 선량하셨던 내 숙모님께서는 내가 휴일이 끝나 작별 인사를 드릴 때에는 언제나 호주머니에 초콜릿 과자나 그 외의 맛좋은 것들을 채워넣어 주시고서야 나를 보내 주시곤 하셨다. 어느 날 저녁에는 오븐에서 갓 구워내어 김이 우럭무럭 나는 건포도를 넣은 과자를 주셨었다. 이것을 가지고 런던 브릿지 건너에 있는 학교로 가는 중에 백발이 성성한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내게 절을 하며 구걸을 했었다(지금 생각하니 그가 거짓으로 내게 절을 하며 그걸을 했음이 분명하다). 나는 그를 위로할 돈이 없었고, 이타라는 허영심, 어린 학생들이 흔히 그러하듯 자선심을 베풀어보겠다는 허세가 동하여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만 그 과자를 그에게 모두 주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사뭇 흐뭇한 자기 만족감에 젖어, 이런 경우 누구나 흔히 그러하듯이, 들뜬 기분으로 얼마 동안을 걸어갔었다. 그러나 다리를 다 건너기도 전에 나는 좀 제 정신을 차렸고, 선량한 내 아주머니께 배은망덕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눈물이 났었다. 그 훌륭한 선물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더욱이 악당일지도 모르는 거지에게 몽땅 내주어버리다니! 그녀는 자기가 준 선물을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먹는 것을 상상하시며 얼마나 기뻐하셨을 것인가? 다음에 뵐 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그 좋은 선물을 그렇게 없애 버리다니 내가 얼마나 무모한 녀석인가! 게다가 그 향기로운 과자 냄새가 떠오르고, 아주머니가 과자를 만드시는 광경을 지켜보며 느꼈던 즐거움과 호기심이며 과자를 오븐에 넣으시며 기뻐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 그런 과자를 결국 한 점도 내 입에 넣디 않았으니 이를 아시고 실망하시는 모습이 눈에 떠올라 나는 나의 주제넘은 자선정신, 격에 맞지 않는 위선을 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는 그 음흉하고 아무짝에도 못쓸 노회한 사기꾼을 두 번 다시 만날까 싶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 여린 새끼돼지를 잡는 방법에서도 퍽 괴팍스럽웠다. 없어져버린 낡은 풍습에 괸한 아야기는 어느 것이건 다소 충격적이듯이 돼지를 몽둥이질로 잡는다는 이야기도 좀은 놀라운 것이다. 몽둥이질로 단련을 하는 시대는 사라졌지만, 어린 돼지처럼 본래 연하고 맛좋은 고기에 이 방법이 어떤 효과를 지닐 수 있는가(오직 철학적인 견지에서) 탐구해 보는 것은 흥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오랑캐꽃에 향수를 뿌리는 격이다.(주14) 하지만 우리가 그 비정함을 책한다 하더라도 그 실용적인 슬기는 함부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맛을 추가해주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성 오메르하교(주15)에 있을 때 젊은 학생들간에 토론이 벌어졌던 논제가 생각난다. "몽둥이질로 죽임을 당한 돼지의 맛이 사람의 미가겡 강렬한 기쁨을 주고, 또 그 기쁨이 그 동물이 당하는 수난을 사람이 생각하며 느낄 수도 있는 괴로움을 능가한다 치더라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돼지를 죽이는 것이 옳은가?" 하는 토론이었다. 찬반 양쪽에서 온겆 지식과 익살이 동원되었던 것인데 그때의 결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돼지를 요리하는 데에는 양념도 고려되어야 한다. 약간의 빵 부스러기에 돼지의 간과 골을 바싹 굽고, 약간의 연한 샐비어를 곁들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친애하는 쿡(주16) 부인, 제발 양파 족속은 모두 추방해 주시라. 당신의 입맛에 맞는다면야 돼지를 있는 대로 몽땅 구어라. 골파 속에 푹 파묻고, 냄새 독하고 고약한 마들을 가득 채워라. 하지만 어린 돼지에 독을 드리거나 원래의 맛보다 진하게 하지 말고, 그는 여린 짐승이요, 오묘한 향기를 풍기는 하나의 꽃이라는 점을 유념하라. (옮긴이 주) 1. 토머스 머닝(thomas manning, 1774--1840): 영국의 동방 여행가. 언어학자. 2. abyssinia: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아프리카의 왕국. 3. 원문 mundane mutation: 주역을 말한다는 설이 있으나 가공적으로 지어낸 책 이름이란 설도 있다. 4. chofan: 부엌을 회화적으로 '요리사의 휴일'로 쓰고 있다. 5. john lodke(1632--1704): 영국의 철학자. '인간의 오성(human understanding)'으로 유명. 6. crackling: 바삭바삭하다는 뜻으로 구운 돼지 껍질 요리를 말함. 7. animal manna: 성경 출애굽기 16장 14, 15절에 나오는 하늘 나라의 음식. 원래 곡식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곡식이 아니고 고기로 되어 있는 만나라는 뜻. 8. 원문 one ambrosian result: ambros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만나(manna)와 같은 신의 음식. 9. 원문 radian jellies: 별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젤리를 남긴다는 미(ben jonson)'(bartholomew fair)' 10. 시무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갓난 아기의 묘비명(epitaph on an infant)'에서 인용. 11. 원문 presents endear absents: presents는 '선물'이란 뜻과 '참석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참석한 친구는 자리에 없는 친구를 그립게 한다'는 뜻도 되어 언어의 익살이 들어 있음. 12. 원문 tame villatic fowl: 밀턴의 'samson agonistes'에서 'tame villatic fowl'이라고 쓴 말을 인용. 13. 셰익스피어의 '리어왕(king lear)', 2 막 4장 246 행 '그대에게 모든 것을 다주었다.'에서 인용. 14. refine violet: 셰익스피어의 '존 왕(king john)', IV, 2, 11: "to gild refine gold, to throw a perfume on the violet,"에서 줄여 인용. 15. st. omers: 프랑스 카레 동남부에 있는 예수회 학교(jesuit college). 램이 이 학교에 다녔던 적은 없음. 16. cook: 요리사란 뜻을 지닌 고유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