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안녕, 내 사랑아 (하) 지은이: R.챈들러 본 데이터의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 차 례 ----- ⊙ 작가 소개 제 20 장 제 21 장 제 22 장 제 23 장 제 24 장 제 25 장 제 26 장 제 27 장 제 28 장 제 29 장 제 30 장 제 31 장 제 32 장 제 33 장 제 34 장 제 35 장 제 36 장 제 37 장 제 38 장 제 39 장 제 40 장 제 41 장 ⊙ 작가 소개 - 1888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퀘이커 교도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일랜드계 미국인 - 영국 덜위치 칼리지 예비학교를 거쳐 파리와 독일에 불어와 독어 연구 - '아카데미', '스펙테이터', '웨스트민스터 가제트' 신문 등에 평론이나 수필 등을 게재 - 추리소설 <챈들러는 아내를 시시라고 불렀다> 발표 - 사립탐정인 필립 말로우가 처음 등장하는 처녀장편 <거대한 잠>로 유명해짐 - <협박자는 쏘지 않는다(Blackmailers Don't Shot)> 발표 - <거대한 잠> <안녕, 내 사랑아> <기나긴 이별> 발표 제 20 장 인디언은 사무실 가득히 특이한 냄새를 떠다니게 했다. 버저가 울렸을 때 이미 그 냄새가 흘러왔다. 내가 대기실 사이의 문을 열자 그는 동상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허리에서 윗부분이 거대한 남자였는데, 가슴이 무섭게 두꺼웠다. 갈색 옷의 윗도리나 바지도 너무 작고, 모자는 사이즈가 둘 정도 작았으며, 그보다 사이즈가 작은 누군가가 썼었기 때문에 땀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는 그 모자를 아내가 팔랑개비를 달아놓은 곳에 썼다. 칼라는 말고삐처럼 느슨하고, 역시 갈색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검은 넥타이가 단추를 끼운 조끼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더러운 넥타이가 묶여진 늠름한 목 주위에는 나이를 먹은 여자가 목에 색기(色氣)를 띠려는 듯 폭넓은 커다란 리본을 묶고 있었다. 커다랗고 펑퍼짐한 얼굴에 살집이 좋은 코가 순양함의 뱃머리처럼 보였다. 눈꺼풀이 없는 눈, 늘어진 턱, 대장장이 같은 어깨, 그리고 짧고 움직임이 둔할 듯한 침팬지 다리. 그러나 짧을 뿐, 움직임은 둔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더러운 곳을 씻겨주고 하얀 나이트 가운을 입히면 로마의 나쁜 관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냄새는 도회지의 지저분한 냄새가 아니라 미개인의 냄새였다. "곧 간다. 지금 간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안쪽 사무실로 돌아와 손가락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내 뒤에서 파리가 벽을 기어가듯이 소리를 내지 않고 따라왔다. 나는 책상에 앉아 맞은편 손님용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앉지 않았다. 작고 검은 눈에 적의가 나타나 있었다. "어디로?"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 세컨드 플랜팅. 우리, 할리우드 인디언." "앉으시오. 미스터 플랜팅." 그는 킁킁거렸다. 콧구멍이 크게 벌어졌다. 쥐구멍이 될 만큼이나 컸다. "이름, 세컨드 플랜팅. 이름, 미스터 플랜팅이 아니다." "용건은?"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급하게 간다. 백인 주인, 그렇게 말했다. 불마차로 데려오라고 했다." "알았소. 서툰 라틴어는 그만둬요. 뱀춤을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잖소." "음." 하고 인디언은 말했다. 우리들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엷은 웃음을 나누었다. 그의 엷은 웃음이 훨씬 솜씨가 좋았다. 그는 화가 난 듯이 모자를 벗고 뒤집어서 땀 밴드의 뒤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땀 밴드는 글자 그대로 땀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는 밴드 뒤에서 얇은 종이로 싼 것을 꺼내어 책상 위에 던지고는 화가 났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모자를 썼던 곳에서 층계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얇은 종이 꾸러미를 풀렀다. 명함이 한 장 나왔다. 러시아 담배의 물부리에 말려 있었던 명함과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인디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벽돌로 된 벽처럼 태연했다. "오케이. 그런데 용건은 뭐지?" "곧 간다. 주인님, 그렇게 말했다. 불마차를 타고......" "음." 하고 나는 말했다. 인디언은 그게 마음에 들었나보다. 농담이 아니라는 심각한 태도로 한쪽 눈을 감아 보이자 엷은 웃음을 떠올렸다. "그런데 계약금으로 100달러 받았으면 좋겠소." 하고 5센트 동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말했다. "예?" 하고 인디언은 다시 원래의 곤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100달러. 돈, 주지 않으면, 나, 가지 않겠소. 알았어요?" 나는 양손으로 백까지 세기 시작했다. 그는 모자의 땀 밴드에서 또 하나의 얇은 종이 꾸러미를 꺼내어 책상 위에 던졌다. 종이 꾸러미를 주워 풀어보니 손이 벨 정도의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였다. 인디언은 모자를 썼다. 땀 밴드를 원래대로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썼다. 나는 입을 벌린 채 100달러짜리 지폐를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신경전문의로군." 하고 나는 말했다. "무서울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해 저문다." 하고 인디언이 말했다. 나는 '슈퍼 매치'라고 하는 38구경 콜트권총을 책상에서 꺼냈다. 루인 로크리지 그레일 부인을 만나는 데에 가져갈 총은 아니었다. 나는 윗도리를 벗고 가죽밴드를 끼고서, 또 자동권총을 안쪽에 찔러넣고 끈을 조이고 윗도리를 입었다. 그러나 인디언은 내가 등을 긁은 정도로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차, 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커다란 자동차 있다." "커다란 자동차, 싫다. 내 차 있다." "우리 차, 쓴다." 하고 그는 위협하듯이 말했다. "알았소. 당신 차에 탑시다." 나는 책상을 잠그고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 여느 때처럼 대기실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보이까지도 인디언의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제 21 장 그가 타고 온 차는 다크 블루의 7인승 패커드로, 카스텀 빌트의 최신형이었다. 진짜 진주를 붙여놓은 차였다. 소화전이 있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외국인 같은 운전사가 핸들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인디언은 나를 뒷좌석에 태웠다. 나는 거기 혼자 앉아 있었는데, 장의사가 정중하게 다루고 있는 특별한 시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디언은 운전사 옆에 앉았다. 차가 움직여 도로 한가운데서 방향을 바꾸었다. 맞은편에 있던 경찰이 작은 소리로, "이봐." 하고 외쳤다가 당황해 하며 몸을 구부리고 구두끈을 맸다. 우리들은 선세트 대로를 서쪽으로 향하여 나갔다. 인디언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따금 그의 몸냄새가 뒷좌석으로 풍겨왔다. 운전사는 거의 자고 있는 것 같았지만, 컨버터블 세단의 스피드를 즐기고 있는 차의 무리들, 마치 로프에 이끌려가는 차를 앞지르는 듯 앞질러 갔다. 모든 신호가 그를 위해 파랗게 변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될 만큼 차는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일 없이 달려갔다. 이윽고 스트립 가(街)의 커브에 다달았다. 유명한 영화배우의 이름을 내건 골동품 가게, 유명한 요리사와 고급도박장으로 알려진 나이트 클럽, 할리우드의 인육시장(人肉市場)이라는 별명이 붙은 멋진 현대식 빌딩, 하얀 실크 블라우스에 통 모양의 군인 모자를 쓴 아가씨들이 허리 밑의 맨다리에 장화를 신고 서비스할 드라이브 인 카페 등을 지나 비벌리 힐스의 아름다운 거리로 완만하게 커브를 돌아, 안개 없는 밤에 일곱 가지 색깔로 빛나는 불빛을 남으로 보고, 북으로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맨션이 늘어서 있는 주변에서 비벌리 힐스를 지나자 갑자기 땅거미가 짙어지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냄새가 났다. 따뜻한 날이었지만 온도는 이미 내려가 있었다. 우리들은 환한 빌딩을 아득히 뒤로 하고서 언덕 위의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그 주변 저택의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커다란 폴로 경기장을 한 바퀴 돌자, 길이 비탈이 지고 아름다운 콘크리트 도로가 오렌지 밭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주변은 오렌지 산지는 아니다. 부자가 취미로 만들어놓은 오렌지 밭이 틀림없었다. 이윽고 커다란 저택의 불빛이 조금씩 줄어가고 길이 좁아졌다. 벌써 스틸우드 하이츠였다. 골짜기에서 산쑥 향기가 풍겨와 나에게 죽은 사람과 달이 없는 하늘을 생각나게 했다. 회반죽 벽의 집들이 도드라지게 조각된 것처럼 언덕 비탈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 집들도 얼마 안 있어 없어지고 초저녁 별이 하나둘 빛나고 있을 뿐, 조용하고 어두운 작은 언덕에 도달했다. 콘크리트 리본 같은 도로 한쪽에는 관목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고, 차를 세우고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메추라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차는 급커브를 돌아 커다란 타이어를 삐걱거리면서 야생 제라늄이 피어 있는 드라이브 길로 들어갔다. 드라이브 길 꼭대기까지 올라간 곳에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회반죽과 벽돌 건물이 서 있었다. 아담한 현대적 건물로, 확실히 신경전문의 간판을 내걸 수 있을 듯한 집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언덕 위라면 아무리 소리쳐도 고함소리가 들릴 염려가 없었다. 차가 저택을 따라 돌았다. 두터운 벽 속에 끼워진 검은 문이 보이고, 그 위에 어렴풋이 불빛이 켜져 있었다. 인디언은 무슨 일인지 기침을 하며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운전사가 전기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자 밤공기 속에서 강한 담배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우리들은 검은 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기분 나쁘게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거기서부터 좁은 복도가 계속되었다. 광선이 벽돌로 된 벽에서 빛나고 있었다. 인디언은 무뚝뚝한 태도로 말했다. "자, 들어가." "당신이 먼저요, 미스터 플랜팅." 그는 싫은 얼굴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또 소리도 없이 닫혔다. 복도 끝에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우리들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인디언이 버튼을 눌렀다. 우리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게 탔다. 인디언이 하는 일이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우리들은 작은 탑 같은 곳으로 나갔다. 아직 낮의 여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창이 사방에 열려 있었고, 멀리 저편에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어둠이 조용하게 언덕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창이 없는 곳은 유리를 끼워넣은 벽으로, 바닥에는 부드러운 파란색 융단이 깔려 있었고, 오래 된 교회의 조각을 훔쳐온 것 같은 접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 맞은편에서 젊은 여자가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만지면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억지로 만든 미소였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칭칭 머리에 동여매고, 아시아 인종 같은 거무스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귀에는 지나치게 짙은 색채의 커다란 보석을 늘어뜨리고, 손가락에는 커다란 반지를 몇 개나 끼고 있었다. 은바탕에 월장석과 에메랄드를 끼워넣은 그 반지는 진짜였을 테지만, 무슨 이유인지 10센트짜리 상점의 모조품같이 보였고, 손은 검고 꺼칠꺼칠한 느낌으로, 반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였다. "말로우 씨입니까? 잘 오셨습니다. 암사 씨가 기뻐하실 겁니다." 나는 인디언에게 받은 100달러짜리 지폐를 책상 위에 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디언은 이미 없었다. "후의는 알지만, 이것은 받을 수 없소." "암사 씨가 당신에게 부탁드릴 게 있는 게 아닌가요?" 하고 말하며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입술은 얇고, 종이를 울리는 소리를 냈다. "우선 어떤 일인지 들어봐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섰다. 인어 피부처럼 몸에 딱 맞는 옷이 아름다운 선을 보이고 있었다. 허리에서부터 아래의 선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안내해 드리지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벽의 버튼을 누르자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문 맞은편의 방은 엷은 우유빛 광선이 비쳐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를 한 번 더 보고 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내 뒤에서 소리도 없이 닫혔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에 검은 비로드를 씌운 8각형의 방이었다. 높은 천정에도 비로드가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새까만 융단을 깐 바닥의 중앙에 두 사람이 겨우 팔꿈치를 붙일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인 하얀 8각형 테이블이 있었고, 그 중앙의 검은 받침대 위에 유백색의전구가 빛나고 있었다. 방의 조명은 이 전구에서 나오는 빛에 의존하고 있었다. 어떤 속임수가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테이블 양쪽에 책상과 똑같은 8각형의 의자가 있었다. 한쪽 벽면에 또 하나 똑같은 의자가 있었다. 창은 없었다. 그밖에는 가구가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는 전등 스위치도 없었다. 내가 들어온 문 외에도 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내가 들어왔던 문도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15초 정도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딘가에 비밀창이 있는 게 틀림없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호흡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코에서 나오는 호흡은 작은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방 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문이 조용하게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문은 곧 닫혔다. 그 남자는 머리를 숙인 채 테이블 있는 곳으로 똑바로 걸어와 8각형 의자 하나에 앉으며, 내가 처음 보는 듯한 아름다운 손으로 나에게 가리켰다. "앉으시지요. 나와 마주보도록 앉으세요. 담배는 피우지 마시고-- 그럼, 어떤 용건이십니까?" 나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입술 사이에 굴렸다. 그 남자는 마르고 키가 컸으며, 강철로 만든 몽둥이처럼 자세가 좋았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백발이었다. 비단 가제를 꿴 것 같았다. 피부는 장미꽃잎처럼 생기가 돌았다. 35세로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65세로도 보였다. 발리모와와 같은 훌륭한 옆모습에서, 머리카락이 쪽 곧게 뒤로 빗질되어 매만져져 있었다. 눈썹은 벽이나 바닥이나 천정과 똑같이 새까맣다. 몽유병 환자의 눈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전에 읽은 적이 있는 '우물 이야기'를 생각나게 했다. 그것은 900년 전의 고성(古城)에 있는 우물로 돌을 던져넣어도 언제까지나 물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단념하고 돌아가려고 하면 아득히 먼 우물 밑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나는 그런 우물이었다. 그의 눈은 그처럼 깊었다. 그리고 또한 그 눈에는 표정도 없고 혼도 없었다. 사자가 사람을 잡아찢는 것을 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을 눈이었다. 사람의 눈꺼풀을 잘리고 뜨거운 태양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었다. 더블 브레스트(두 줄 단추 윗도리)의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화가가 디자인한 것처럼 몸에 꼭 맞았다. 그는 나의 손가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마십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방 공기를 어지럽히면 정신집중이 방해됩니다." "얼음을 녹이고 버터를 부려 고양이를 감동시키지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거의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웃었다. "무례한 말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겠죠?" "연극은 그만두시지요. 나는 그 100달러를 당신 비서에게 돌려줬지만, 실은 어떤 담배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마약이 들어 있는 러시아 담배인데, 물부리에는 당신 명함이 말려 있더군요." "그 담배에 왜 내 명함이 들어 있었는지 알고 싶군요." "바로 그겁니다. 내 쪽에서 100달러 값을 치르는 것이 진짜지요." "그럴 필요는 없소. 세상에는 나도 모르는 일이 있는 거요. 그것은 그 중 하나이고." 나는 이제 조금 그를 믿을 참이었다. 그의 표정은 천사의 날개처럼 온화했다. "그럼, 왜 내게 100달러를 주었습니까?-- 그리고 냄새나는 인디언을 -- 그리고 또 차를? 또 인디언은 냄새가 나지 않으면 안됩니까? 그가 당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라면, 목욕탕에 집어넣을 수는 없느냐고요." "그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중간다리입니다. 그들은 희소하죠 -- 다이아몬드처럼. 또한 다이아몬드처럼 이따금 더러운 곳에서 발견됩니다. 당신은 사립탐정이구먼?" "그렇소."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오. 어리석게 보이며,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소. 더구나 어리석은 용건으로 여기에 왔고." "확실히 하찮은 용건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제 이곳에 용건은 없을 것이오." "아니, 있소. 그 명함이 왜 담배 속에 들어 있었는지 알고 싶소." 그는 미미하게 어깨를 흔들었다. "내 명함은 누구 손에든 건네주지요. 그러나 나는 마약이 든 담배를 건넨 적은 없소. 당신 질문은 여전히 어리석군." "그럼, 이런 게 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담배는 중국이나 일본의 물건 같은 싸구려 대모갑 케이스에 들어 있었지요. 기억이 없습니까?" "없소." "그럼, 조금 더 얘기합시다. 그 케이스는 린제이 마리오라는 남자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지요. 그 남자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알고 있소. 카메라 공포증을 치유하러 온 적이 있거든. 영화배우가 되려고 했지만, 그건 소용없었소. 영화회사 쪽에서 거절했으니까." "그랬을 게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가 영화에 나가면 이사도라 던컨처럼 비칠 테니까. 그런데 당신은 왜 내게 100달러를 보냈나요?" "말로우 씨 -- " 하고 그는 차갑게 말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 나는 미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소. 나는 의사지만 평범한 의사는 아니지요. 나는 항상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겨냥이 되고 있어요. 위험에 처해 있는 겝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험한지 시험해 본 거요." "대단한 위험은 아니었다는 거로군." "위험은 거의 없소."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하고 왼손을 들어 이상한 동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손을 천천히 책상 위로 내리고, 잠시 손을 쳐다보고 나서 다시 눈을 들어 팔짱을 꼈다. "당신이 들은 것은 -- " "냄새로 알았소." 하고 나는 말했다. "인디언이 있다는 것은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았다. 벽 옆에 있는 의자에 인디언이 앉아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거무스름하고 늠름한 얼굴에 많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나는 암사를 뒤돌아보았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저 모습을 돈많은 미망인이 봤다면 의치까지 내뱉을 것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저 남자의 본업은 뭡니까? 당신 무릎에 앉아 프랑스 노래라도 부르는 겁니까?" 그는 몹시 불쾌한 듯이 말했다. "요점을 말하시오." "어젯밤 마리오는 어느 장소로 가서 돈을 지불하는 데에 나를 고용해서 데려갔지요. 나는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소. 깨어나 보니까 마리오가 죽어 있더구먼." 암사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외치지도 않았고, 벽을 기어 올라가려고도 하지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반응은 있었다. 팔장을 풀기도 하고 끼기도 하며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 동안에 그는 도서관 앞의 사자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담배는 그의 몸에서 나온 게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나 경찰이 발견한 건 아닌 모양이군. 경찰은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소." "100달러면......" 하고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하겠군......" "당신이 사고 싶은 것에 따라 다르겠지." "그 담배를 갖고 있소?" "한 개비 갖고 있지요.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되지 않소. 당신 말처럼 당신 명함은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나는 단지 왜 마리오가 그 담배를 갖고 있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을 뿐이오. 모르시겠소?" "당신은 마리오를 잘 알고 있소?" 하고 그는 조용히 물었다. "거의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남자인지 짐작은 가지요." 암사는 하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디언은 여전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베이 시티에 살고 있는 그레일 부인이라는 돈많은 여자를 알고 있나요?"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발성법에 대하여 치료를 한 적이 있지. 약간 언어장해가 있었거든." "완전히 나았소. 나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잘도 떠들어대는 걸 보면......"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도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암호 같았다. 그는 책상 두드리는 것을 그치고 팔을 꼬고 몸을 돌렸다. "이번 일에서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는데 -- " 하고 나는 말했다. "모두 서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레일 부인도 마리오를 알고 있었고." "어떻게 그걸 알았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담배에 대한 것을 경찰에 알려야만 할 것이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어깨를 흔들었다. "내가 왜 당신을 내쫓지 않는지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요." 하고 암사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세컨드 플랜팅에게 당신 목뼈를 부러뜨리게 하는 것은 문제없소. 나는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 게요. 당신은 무슨 생각이 있을 것 같지만, 협박이라면 난 한푼도 줄 수 없소. 협박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지. 나는 친구들이 많이 있소. 물론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 정신분석 전문의, 섹스 전문의, 신경전문의 등 고무 해머도 갖고 있고, 서재에 이상한 문학서를 늘어놓고 있는 하찮은 무리들이오. 물론 그들은 모두 의사지. 내가 돌팔이 의사인 것처럼. 당신의 생각을 듣겠다는 것은 아니오." 나는 그를 쳐다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입술을 핥고 있었다. 그는 미약하게 어깨를 흔들었다. "당신이 비밀을 자신만의 것으로 해놓으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이것은 나도 잘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오. 당신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르지. 나도 실수를 범하는 일이 있소. 일에는 언제나 의논이 첫째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구부리고 유백색의 전구를 양손으로 눌렀다. "마리오는 여자를 이용물로 하고 있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보석 갱을 안내해 주었지. 여자의 행동을 잘 알고서, 그 여자들에게 접근하여 사랑을 속삭이고는 금이나 보석을 몸에 지니게 하여, 밖으로 데려나와서 어디서 일을 하면 좋은가를 전화로 알리는데, 어떤 여자에게 공작을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은 다른 인물이 마리오에게 가르쳐 주었을 테죠?" "그게......" 하고 암사는 말을 조심하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는 마리오와 나의 모습이라면 나는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소." 나는 얼굴과 얼굴의 거리가 30cm 될 정도로 몸을 쑥 내밀었다. "당신의 직업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 아무리 외관을 꾸미려고 해도 나에게는 숨길 수 없요. 그 명함은 단순한 명함이 아니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누구라도 그 명함은 손에 넣을 수 있소. 마약에 관계된 일은 아니오. 그런 째째한 일에 손을 댈 당신이 아니지. 그 명함 뒤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소. 그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자가 감춰져 있었던 겝니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손이 유백색 전구 위를 덮었다. 불이 꺼졌다. 방은 캐리 네이션의 모자처럼 아주 캄캄해졌다. 제 22 장 나는 의자를 차고 일어나 옷 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질 않았다. 옷의 단추가 잠겨 있었기 때문에 늦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쏘는 것이었다면 어차피 너무 늦었다. 공기가 움직이고, 속이 언짢아지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어둠 속 등뒤에서 인디언이 나를 때리고 양팔을 비틀어올렸다. 그는 나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권총을 손에 넣고 있었기에 방안을 아무데나 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게 불리했다.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권총을 놓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기름으로 끈적끈적해 있어서 잡기 어려웠다. 인디언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내 머리에 일격을 먹이고 뒤에서 내 손목을 잡고는 등에 무릎을 대고 눌렀다. 그는 내 몸을 비틀어 굽혔다. 나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목이 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인디언은 나를 휙 내던지고 꽉 눌렀다. 그의 손이 내 목을 세게 졸랐다. 나는 이따금 밤새도록 눈을 뜨고서 그의 손을 느끼고 그의 냄새를 맡고, 거친 숨을 내쉬면서 기름기 많은 손가락으로 나를 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적이 있다. 그럴 땐 항상 일어나서 술을 한잔 마시고 라디오를 튼다. 내가 정신을 잃으려고 할 때 다시 불빛이 피처럼 빨갛게 번쩍였다. 내 눈이 충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 하나 눈앞에 아른거리고, 손 하나가 내 몸을 더듬었다. 또 하나의 손은 아직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숨쉬게 해줘." 손가락이 헐거워졌다. 나는 그 손가락에서 벗어났다. 그때 빛나는 물건이 내 턱을 쳤다. 조용한 목소리가 말했다. "일으켜 세워." 인디언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벽에 대고 밀었다. "풋나기로군." 하는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단단하고 빛나는 것이 내 얼굴에 날아왔다. 따뜻한 것이 얼굴에 흘렀다. 핥아 보니까 쇠와 소금의 맛이었다. 손이 내 지갑을 조사하고 주머니를 더듬었다. 얇은 종이에 싸여진 담배가 꺼내어지고 종이가 펼쳐졌다. 담배는 내 눈앞에서 어딘가로 없어졌다. "담배는 세 개비 있었지." 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말하고 빛나는 것이 또 내 턱으로 날아왔다. "세 개비다." 하고 나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나머지 두 개비는 어디 있나?" "책상 안에 -- 사무실의......" 빛나는 것이 또 나를 쳤다. "거짓말을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나 조사하면 알 수 있지." 열쇠가 내 앞에서 작고 이상한 빨간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목소리가 외쳤다. "좀더 조여." 강한 손가락이 내 목을 죄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악취와 그의 단단한 배 근육에 눌려 발버둥쳤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가락 하나를 비틀려고 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또 말했다. "놀랍군. 기억하고 있겠다." 빛나는 것이 또 공중에서 날아왔다. 그것이 내 턱을 세게 때렸다. "놔줘. 이젠 가자." 하고 목소리가 말했다. 커다란 손이 내게서 떨어지고, 나는 두세 번 비틀거렸다. 암사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여자처럼 아름다운 손으로 내 권총을 가슴에 들이대고 있었다. "당신에게 가르쳐 줄 수도 있었어." 하고 그는 그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가르쳐 줘서 뭐하나. 지저분한, 작은 세계의 지저분하고 작은 남자에 불과한걸. 단 하나 밝은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똑같은 거야. 그렇지 않은가?"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게! 나는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서 그를 후려갈겼다.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그는 뒤로 비틀거리고 코피를 흘렸다. 잠시 뒤 그가 몸을 일으키고 다시 권총을 나에게 겨누었다. "앉아."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지금 손님이 오고 있다. 나를 잘 때려주었어. 도움이 될 거야." 나는 하얀 의자를 손으로 더듬어 앉아 다시 부드럽게 빛나고 있는 유백색의 전구 옆 테이블에 머리를 댔다. 나는 얼굴을 테이블에 대고 전구를 옆에서 바라보았다. 빛이 아름다웠다. 기분좋은 빛, 기분좋고 부드러운 빛. 그때 나는 그대로 피로 물든 얼굴을 테이블에 대고서 내 권총을 손에 들고 미소짓고 있는 악마에게 감시받으며 잠에 떨어진 것 같았다. 제 23 장 "자, 일어나." 하고 커다란 남자가 말했다. 나는 눈을 뜨고 다시 앉았다. "밖으로 나가는 거야."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나는 문에서 방 밖으로 나왔다. 주위엔 창을 두른 대기실이었다. 밖은 이미 컴컴했다. 너무 큰 반지를 낀 여자는 여전히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한 남자가 그녀 곁에 서 있었다. "이쪽에 앉아." 그는 나를 눌러앉히려고 했다. 딱딱하지만 심지가 좋고 괜찮은 의자였는데 나는 앉을 기분이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는 노트를 펴고 큰소리로 읽고 있었다. 키가 작고 흰 수염을 기른 무표정한 중년 남자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암사는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득히 먼 저쪽, 부두 불빛의 저쪽, 세계의 저쪽인 바다의 고요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창 옆에 서 있었다.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을 때 피는 이미 닦여 있었지만, 코가 두 배 정도의 크기로 부어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찢겨진 입술을 오므려 쓴웃음을 지었다. "어때? 재미있었나?"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서커스단의 손님 부르는 소리처럼 잘 울려퍼지는 목소리였다. 이빨이 더럽고 90 킬로는 될 것 같은 몸집이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매일 밤 기도 대신에 곤봉에 침을 뱉을 모습의 경찰이었다. 그러나 눈만은 붙임성있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 지갑을 손에 들고 단지 물건에 상처를 내는 게 취미인 것처럼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가죽을 긁으면서 내 눈앞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 그것이 그가 맡고 있었던 전부일지라도 작은 돈이었다. 그렇지만 아마 얼굴이 흥미가 있었을 것이다. "살피러 온 거겠지. 그리고 이 기회에 협박까지도 하러 오신 건가?" 모자가 머리 뒤로 흘러내렸다.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의 땀으로 검게 더러워져 있었다. 붙임성있는 눈에서 빨간 혈관이 보였다. 내 목은 주름살 펴는 기계를 통과해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손을 올려 만져보았다. 저 인디안이다. 강철제의 손톱을 가진 손가락이었다. 여자는 노트를 다 읽었다. 회색 콧수염의 몸집이 작은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남자 뒤에 와 섰다. "경찰이오?" 하고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당신에게는 뭘로 보이나?" 경찰이 흔히 사용하는 말투였다. 몸집이 작은 남자는 한쪽 눈에 상처가 있었으며, 그 눈은 반쯤 찌부러져 있었다. "로스엔젤레스 경찰은 아니군." 하고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로스엔젤레스라면 그 눈으로는 근무하지 못하지." 몸집이 큰 남자는 나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속을 조사했다. 돈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명함도 그대로였다. 아무것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놀랐다. "말해 보시지." 하고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우리들이 당신을 좋아할 만한 것을 말해 주시오." "권총을 돌려주지 않겠소?" 그는 몸을 약간 앞으로 굽히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권총을 갖고 싶소?" 하고 말하고서 회색 콧수염을 한 남자를 곁눈질로 보았다. "권총을 갖고 싶다고?" 그는 다시 나에게 눈을 돌리고서 말했다. "어째서 권총이 필요하지?" "인디언을 죽이겠소." "뭐요? 인디언을 죽인다고?" 그는 또 콧수염 남자를 보고 말했다. "이자는 벅찬 상대요. 인디언을 죽인다고 하는데?" "이봐요, 헤밍웨이. 내가 한 말을 하나하나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자는 머리가 이상하군." 하고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나를 헤밍웨이라고 하다니. 머리가 돌았잖아." 콧수염 남자는 여송연을 물고서 잠자코 있었다. 창 옆에 있던 키 큰 남자가 천천히 돌아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상식을 벗어났어." "왜 나를 헤밍웨이라고 부르는 건지 모르겠군." 하고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내 이름은 헤밍웨이가 아닌데." 중년남자가 입을 열었다. "권총은 없었어." 그들은 암사 쪽을 보았다. 암사가 말했다. "맞은편에 있습니다. 건네 드려요, 브레인." 몸집이 큰 남자는 허리와 무릎을 구부려 몸을 굽히며 내 얼굴에 숨을 내뿜었다. "왜 나를 헤밍웨이라고 부르는 거지?" "숙녀가 있소." 그는 몸을 일으키고서 콧수염 남자를 보았다. "이봐, 그것 때문인가?" 콧수염 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나서 방을 나갔다. 암사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무스름한 여자는 책상 위에 시선을 둔 채 잠자코 있었다. 몸집이 큰 남자는 내 오른쪽 눈썹을 쳐다보며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콧수염 남자가 되돌아왔다. 그는 모자를 나에게 건네주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내게 돌려주었다. 무게로 탄환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나는 권총을 집어넣고 일어섰다.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밖으로 나갑시다. 바깥 공기를 쐬면 조금 머리가 맑아질 게요." "오케이, 헤밍웨이." "또 그렇게 말하는 거야?" 하고 몸집이 큰 남자는 슬픈 듯이 말했다. "여자가 있는 곳이라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무슨 천한 의미가 있는 거아냐?" 콧수염 남자가 말했다. "자, 갑시다." 몸집이 큰 남자는 내 팔을 잡았다. 우리들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제 24 장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를 나와 좁은 복도를 지나 검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몸집이 큰 남자는 아직 내 팔을 잡고 있었다. 검은 칠을 한 세단이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몸집이 큰 남자는 프런트 도어를 열고 투덜거렸다. "당신 같은 작자에게는 과분한 거야. 그렇지만 공기를 좀 쐬면 좋을 게요. 당신은 상관없을 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인디언은 어디에 있소?" 그는 머리를 흔들고 나를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앞좌석 오른쪽에 앉았다. "인디언 말인가?"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녀석은 활과 화살로 쏘아야만 해. 그게 규칙이지. 뒷좌석에 있소." 나는 뒷좌석을 보았다. 비어 있었다. "없구먼." 하고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누군가가 채갔는데. 열쇠로 잠그지 않은 차에는 아무것도 둘 수 없다니까." "빨리 가지." 하고 콧수염 남자가 차에 타며 말했다. 헤밍웨이가 핸들을 잡았다. 차는 야생 제라늄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미끌어져 갔다. 차가운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왔다. 별이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드라이브 길의 끝까지 가서 콘크리트 산길로 나와 차를 천천히 달렸다. "어째서 차로 오지 않았소?" "암사가 사람을 보내왔었소." "왜?" "내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거겠지." "이 사람 머리가 좋군."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는 창밖으로 침을 뱉고 차를 미끈하게 돌리면서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신이 전화를 걸어와서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생각했다고 합디다. 때문에 그가 차를 보냈던 거요." "어차피 경찰을 부를 계획이었을 게요. 내 차는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요, 헤밍웨이." "테이블 밑에 딕터 폰이 있었소. 그 아가씨가 브레인 씨에게 들려준 것은 그것이오." 나는 뒤를 돌아 브레인을 보았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처럼 여유 있게 여송연을 피우고 있었다. "무엇을 읽어주었는지 알게 뭐야. 그전부터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 "왜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했는지 알고 있소?"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이런 얼굴이 되기 전의 얼굴 말이오?" "그만둡시다. 우리들이 한 짓이 아니잖소." "헤밍웨이, 당신은 암사를 잘 알고 있을 테죠?" "브레인 씨가 알고 있소. 나는 명령을 실행하고 있을 뿐이오." "어떤 사람이오, 브레인 씨라고 하는 사람은?" "뒤에 있는 분이오." "그건 알고 있소. 어떠한 사람이냐는 거요?" "브레인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소." "저런!" 나는 갑자기 피로를 느꼈다. 침묵이 계속되고, 콘크리트의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되며, 어둠이 계속되고, 아픔이 계속되었다.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이제 여자는 없소. 당신이 왜 그곳에 갔는지는 아무렇게 되든 상관없지만, 나를 헤밍웨이라고 한 것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요?" "농담이오." 하고 내가 말했다. "신소리였소." "그 헤밍웨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똑같은 것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말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누구라도 그것을 말하는 대로 믿어버리는 남자라오." "거기에는 시간이 걸릴 텐데." 하고 몸집이 큰 남자가 말했다. "사립탐정이란 하찮은 것을 생각하는군. 아직 당신 이빨이오?" "음. 조금은 충전물이 있지만." "운이 좋았다고 하는 뜻이오." 갑자기 뒷좌석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여기가 좋아. 다음 길을 오른쪽으로 돌게." "오케이." 헤밍웨이는 세단을 좁은 진흙길로 타고 들어가 언덕 기슭을 1.5 킬로미터 정도 나갔다. 산쑥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여기다." 하고 뒷좌석의 남자가 말했다. 헤밍웨이는 차를 세우고 손을 뻗어 내 옆의 문을 열었다. "모처럼 알게 되었지만 여기서 이별이오. 그렇지만 이젠 오지 마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돌아가는 거요?" 뒷좌석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빨리 해." "그렇소. 여기서부터 걸어서 돌아가는 거요. 불만 있소?" "없소. 걸으면서 생각할 것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 당신들은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아니오. 그렇지만 어느 쪽인지 한 사람은 경찰이오. 두 사람 다 경찰인지도 모르고. 베이 시티의 경찰일 테지. 그런데 어떻게 해서 베이 시티 외곽까지 당신들이 불려왔는지, 그것을 생각하는 거요." "생각해도 알 수 없을 텐데." "안녕, 헤밍웨이."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아무 말 없었다. 나는 아직 현기증을 느끼며 차에서 내리려고 발을 한 걸음 내딛었다. 뒷좌석의 남자가 번개처럼 몸을 움직였다. 갑자기 내 다리 밑에 새까만 구멍이 열렸다. 정말 새까만 구멍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멍에는 바닥이 없었다. 제 25 장 방에는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연기는 가느다란 실처럼 똑바로 오르고 있었다. 좁은 쪽 벽에 창이 두 개 있는 것 같았지만 연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본 적이 없는 방이었다. 창에는 철창이 둘러쳐져 있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1년 동안이나 자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그러나 연기가 걱정되진 않았다. 위를 향해 누운 채 연기를 생각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자 폐에 통증이 느껴졌다. "불이야!" 하고 나는 외쳤다. 외치고 나서 나는 웃어댔다. 뭐가 우스꽝스러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길게 누운 채 웃고 있었다. 내 목소리의 공허한 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번 외친 것만으로 효과는 충분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열쇠소리가 나더니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한 남자가 몸을 비스듬히 하고 들어온 뒤 뒤에서 문을 닫았다. 오른손이 허리에 올려져 있었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작은 남자인데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눈가에 회색 피부가 늘어져 있었다. 나는 딱딱한 베개에 얹은 머리를 움직이며 하품을 했다. "농담이었소. 무심결에 입에서 나온 소리였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오른손을 허리에 댄 채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공허한 검은 눈, 회색 피부, 조개 껍데기 같은 코. "더 혼나고 싶은가?" 하고 그는 코먹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건강하오. 잭! 정말 건강해. 잘 잤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꿈도 꾸었소. 여기가 어디죠?" "여기가 여기야." "좋은 곳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사람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좀더 자야겠소." "좋아." 그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열쇠가 찰가닥 하고 소리를 냈다. 발소리가 사라져 갔다. 그는 연기를 어떻게도 하지 않았다. 연기는 여전히 방에 남아 있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천 마리의 거미가 쳐놓은 회색 망처럼 일어나 있었다. 모직 파자마. 무료병원에서 입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어느 쪽이 앞인지 알 수 없고, 필요 이상으로는 한 바늘도 꿰매지 않았다. 촉감이 거칠고 목 둘레가 아팠다. 나는 아직 목의 통증을 기억하고 있었다. 겨우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손으로 목 근육을 만져보았다. 손이 닿자 아팠다. 단 한 명의 인디언. 오케이, 헤밍웨이. 어째서 당신은 탐정이 되고 싶은 거지? 좋은 돈벌이가 되더군. 감찰도 소개해 주던데. 목은 아직 아팠지만, 목에 대고 있는 손가락에는 감각이 없었다. 10개의 바나나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은 틀림없었지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우편으로 주문할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배지와 함께 보내져 왔을 것이다. 증서와 함께. 밤이었다. 창밖은 아주 컴컴했다. 유리 전등갓이 세 줄기의 놋쇠 쇠사슬로 천정에서 늘어져 있었고, 그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작은 색전구가 빙 둘러싸여 있었는데, 오렌지색과 푸른색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연기에 지쳐 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으려니 구멍이 열리고 머리가 튀어나왔다. 작은 머리지만 살아 있었다. 작은 인형머리 같았지만 살아 있었다. 요트 모자에 조니 워커의 코를 가진 남자. 챙 넓은 모자의 금발 아가씨, 나비 넥타이가 비뚤어진 마른 남자, 그는 해안 마을의 싸구려 레스토랑의 보이 같았다.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스테이크는 레어입니까, 미디움입니까?" 나는 눈을 꼭 감고 세게 눈을 깜박거린 뒤 다시 눈을 떴다. 역시 세 줄기의 놋쇠 쇠사슬에 매달린 볼품없는 전등이었다. 연기는 아직 똑바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감각이 없어진 손가락으로 거친 시트 끝을 잡고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침대 위에 앉아 발을 바닥에 댔다. 바닥은 맨바닥인데 핀과 바늘이 있었다. 잡화물은 왼쪽입니다, 마님. 특대 안전핀은 오른쪽입니다. 발이 바닥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일어섰다. 뼈가 부러졌다. 나는 웅크리고서 강하게 숨을 쉬며, 침대의 쇠장식을 잡고 있었으며, 침대 밑에서는 목소리가 몇 번이나 말했다. "정신착란이다......정신착란이다......정신착란이다." 나는 취한 듯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창과 창 사이의 작고 하얀 에나멜을 칠한 테이블 위에 위스키 병이 놓여 있었다. 아직 반 정도 위스키가 남아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상냥한 사람이 있구나. 조간을 대충 훑어보고, 영화관에서 옆자리의 남자 정강이를 걷어차며, 기분이 나빠져 정치가를 미워해도 그래도 세상에는 상냥한 사람이 있다. 여기에 위스키 병을 남겨놓고 가준 사람에겐 메 웨스트(섹시한 여배우)의 허리와 같은 박애주의가 있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금문교) 다리 끝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무거웠다. 나는 병째 들고 위스키를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병을 주의깊게 닦았다. 나는 턱 밑을 핥으려고 했다. 그 위스키는 이상한 맛이었다. 위스키의 이상한 맛에 정신이 들었을 때 방구석의 세면대가 내 눈에 띄었다. 나는 겨우 그곳으로 가서 뱉었다. 디지딘(유명한 강속구 투수)도 이 정도로 강한 볼을 내던진 적은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숙취의 괴로움과, 비틀거리는 다리와 현기증과, 세면대 끝을 붙잡은 손과, 동물 같은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신세. 나는 겨우 침대로 돌아와 뒤로 젖혀 몸을 내던졌다. 아직도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연기 같지는 않았다.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갑자기 연기가 보이지 않고 전등빛이 갑작스레 밝아졌다. 나는 다시 침대 위에 앉았다. 문 옆에 튼튼한 목재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그곳은 찬장 같았다. 내 옷이 그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닥엔 초록과 회색 리놀륨이 깔려 있었다. 벽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청결한 방이었다. 침대는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좁고 낮은 것인데, 버클이 붙은 두꺼운 가죽끈이 두 군데 달려 있었다. 빨리 나가고 싶은 방이었다. 몸속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머리와 목과 팔에서 격심한 아픔을 느꼈다. 왜 팔이 아픈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는 파자마 소매를 걷어올리고 팔을 보았다. 팔꿈치에서 어깨에 걸쳐 복숭아색의 반점이 나 있었고, 5밀리 정도 크기로 피부색이 변해 있었다. 깊은 잠을 재우기 위한 주사였다. 내가 설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입을 열게 하기 위한 스코포라민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약이다. 내 몸에 이상이 있었다. 몸에 따라 영향이 다른 것이다. 마약. 연기도 그 때문이었다. 손가락의 마비도, 몸 전체의 피로감도, 침대에 매달린 가죽 밴드도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위스키는 어쩌면 같은 목적을 위해 이용된 것일 게다. 내가 무엇이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병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나는 일어서려고 했다. 이제 막 반대편 벽에 배를 부딪친 참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오랫동안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몸속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땀방울이 이마에서 코 옆을 지나 입가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혀를 내밀어 그 땀을 핥았다. 나는 한 번 더 몸을 일으켜서 바닥에다 발을 힘껏 내딛었다. "오케이, 말로우." 나는 이빨 사이에서 목소리를 냈다. "너는 튼튼해. 180cm 정도의 키에, 85 킬로의 몸무게. 근육도 잘 발달해 있고 턱도 약하지 않아. 두 번 세게 얻어맞고 목을 졸리고 권총 손잡이로 냅다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항복하지 않았어. 그래서 주사로 잠재운 거야. 자, 이쯤에서 어떻게든지 혼내줘야 되잖아."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도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시계는 없었다. 이런 곳에서 이러한 시간은 시계로는 재지 않는다. 나는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누워 자는 쪽이 좋았다. 오랫동안 쉬어야 할 것이다. 완전히 약해져 있다. 졌다, 헤밍웨이. 나는 지금 꽃병을 쓰러뜨릴 힘도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걷고 있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네 번째로 일어섰을 때 어느 정도 기분이 나아졌다. 두 번 방을 왕복할 수 있었다. 나는 세면대로 가서 입을 헹구고 물을 손바닥으로 떠마셨다. 천천히 삼키고 나서 한 번 더 물을 마셨다. 겨우 기력이 생겼다. 나는 걸었다. 나는 걸었다. 나는 걸었다. 30분 걷자 무릎은 후들후들해졌지만 머리는 명쾌해졌다. 나는 또 물을 마셨다. 물을 많이 마셨다. 거의 울면서 물을 마셨다. 나는 침대로 돌아왔다. 걸어다닌 뒤였으므로 잠자기에는 기분좋은 침대였다. 캐롤 롬버드에서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방에서 빠져나가야만 한다. 제 26 장 찬장은 열쇠가 채워져 있었다. 의자는 무거워서 들어올릴수 없었다. 나는 침대 시트를 벗겨들고 매트리스를 젖혔다. 이중 철망 사이에 20cm 정도의 나선상의 강철 용수철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용수철을 망에서 떼내기로 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한 적은 없었다. 10분 뒤 나는 두 개의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한 줄의 용수철을 떼어내어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적당한 반동과 적당한 무게가 손에 전해졌다. 나는 또 물을 마시고 발가벗겨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나서 문으로 가서 문틈으로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곧 반응이 있었다. 복도를 달려오는 거친 발소리가 들려오고 열쇠가 열쇠구멍에 꽂히며 거칠게 돌려졌다. 문이 기세좋게 열렸다. 나는 문 옆의 벽에 몸을 착 붙이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권총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벗겨진 침대를 보고 눈을 휘둥그래지며 내 쪽으로 몸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용수철을 치켜올려 그의 머리를 옆쪽으로 때렸다. 그는 앞으로 넘어졌다. 나는 곧 뒤에서 바싹 쫓아가 다시 두 번 더 때렸다.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힘이 빠진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그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찼다. 무릎이 아팠다. 얼굴이 아팠는지 어땠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나는 권총으로 후려갈겨 기절시켰다. 나는 열쇠구멍에서 열쇠를 빼내어 안쪽에서 열쇠를 채워놓고 그의 몸을 뒤졌다. 그 밖에도 열쇠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찬장 열쇠였다. 찬장 안에는 내 옷이 들어 있었다. 옷 주머니를 조사해 보니까 지갑에서 돈이 없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잃고 있는 남자의 몸을 조사했다. 신분에 맞지 않는 돈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갖고 있었던 액수만큼의 돈을 되찾고서 남자를 침대에 눕혀 손목과 발을 밴드로 묶고는 시트를 반 미터 정도 둥글게 하여 그의 입속에 처넣었다. 그리고 숨쉴 수 있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잠시 상태를 지켜보았다. 나는 그 남자에게 동정을 느꼈다. 주급(週給)인 수표를 잃지 않으려고 묵묵히 일에 매달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 어쩌면 아내도 자식도 있을 것이다. 불쌍하다. 그를 돕는 것은 권총뿐이다. 공평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손을 묶이지 않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나는 마약이 든 위스키를 놓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를 위해 울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 옷에는 이상이 없고 권총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알은 없었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겨우 옷을 갈아입었다. 침대 위의 남자는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나는 그를 그곳에 남겨놓고 방을 나와 자물쇠를 채웠다. 넓은 복도는 아주 조용했다. 문이 세 개 있었지만 어느 문 뒤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보랏빛 융단이 복도 중앙에 깔려 있었다. 복도가 끝나자, 폭넓은 구식 출구 통로로 되어 있었고, 복도는 거기서 직각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계단 아래는 어두컴컴한 복도로, 막다른 곳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붙인 문이었다. 문 아래에서 희미한 빛이 복도로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요즘에는 아무도 짓지 않는 구식 건물일 것이다. 조용한 길 모퉁이에 여러 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잔디에 둘러싸여 지었는지도 모른다. 밝은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쬐며 고급으로 우아하고 점잖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발을 내딛는데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디딘 발을 움츠리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계단 출구 통로에서 직각으로 구부러져 있는 복도의 막다른 곳에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방이 있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곳까지 걸어갔다.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엿보고 있으려니까 또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두터운 가슴에서 나온 깊은 기침이었다. 아무런 거북함도 없는 편안한 기침이었다. 하긴 어떤 기침일 것이라고 내가 예상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건물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건물 안에서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신문이 펼쳐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방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보통 가구가 놓여 있는 보통 방으로, 내가 있었던 유치장 같은 방은 아니었다. 낡은 옷장 위에 모자 하나와 잡지가 몇 권 놓여 있었다. 창에는 레이스 커튼이 쳐 있었고 융단도 상당히 훌륭한 것이었다. 침대 스프링이 울렸다. 헛기침과 똑같이 몸집이 큰 남자였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문을 1인치(약 2.5--) 정도 밀어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이상 더 천천히는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천천히 머리를 돌려 들여다보았다. 한 남자가 침대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바닥 융단 위에까지 넘쳐 떨어져 있었다. 침대 위에 수십 종류의 신문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커다란 손에 잡힌 채 커다란 얼굴 위에 덮어씌워져 있었다. 신문 가장자리에서 새까맣고 짙은 머리가 보였다. 하얀 피부가 조금 엿보였다. 신문이 움직였다. 나는 바싹 긴장했다. 수염을 깎을 필요가 있는 얼굴이었다. 항상 그러한 것이었다. 나는 이미 센트럴 가의 플로리안이라고 하는 흑인 전문 도박장에서 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하얀 골프공 모양의 단추를 단 화려한 옷을 입고, 위스키 잔을 커다란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군용권총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었다. 그는 또 기침을 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거리며 하품을 하고 테이블 위의 고기작고기작한 담뱃갑에 손을 뻗었다. 그 중 한 개비가 입에 물려졌다. 엄지손가락 끝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연기가 코에서 나왔다. "아."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신문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를 그곳에 남겨놓고 계단 쪽으로 되돌아왔다. 큰 사슴 머로이는 더없이 안전한 장소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막다른 방에서 낮은 말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문에 몸을 기대고 귀를 기울였다.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낮은 목소리여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철커덕 수화기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나는 문을 밀고 조용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제 27 장 그곳은 작지도 않고 넓지도 않았으며 자못 사무적인 느낌이 드는 사무실이었다. 두꺼운 책이 가득찬 유리문 책장, 벽의 약품 선반, 하얀 에나멜이 빛나고 있는 소독장치, 낮고 큰 책상, 그 위에는 압지, 청동 페이퍼 나이프, 잉크 스탠드, 작은 노트 등이 있었고, 그 외에는 양손으로 얼굴을 묻고 있는 남자의 팔꿈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벌려진 노란 손가락 사이에서 젖은 모래 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엿보였다. 나는천천히 세 걸음 나아갔다. 그의 눈이 책상 너머로 내 구두가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는 얼굴을 들고 나를 보았다. 표정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파묻은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양손을 벌려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이는가 했더니, 한쪽 손을 책상 구석에 놓았다. 나는 다시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 손에 든 몽둥이를 보여주었다. 그의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이 조용하게 책상 구석 쪽으로 움직여 갔다. "벨을 눌러도 오늘밤엔 도움이 되지 않을걸." 하고 나는 말했다. "수위는 내가 잠재워 놨지." 그의 눈이 졸리운 듯이 깜박거렸다. "당신은 환자가 아니오? 아직 일어날 수 있는 몸이 아닌데." "오른손을 치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구석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의 손이 상처입은 뱀처럼 오므라들었다. 나는 책상을 돌아가서 서랍을 뒤졌다. 물론 권총이 들어 있었다. 38구경 자동권총인데, 내가 갖고 있는 것만큼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총알은 도움이 된다. 서랍에는 총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그의 권총에서 총알을 뽑아내려고 했다. 그는 희미하게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생기 없는 표정이었다. "융단 밑에도 벨이 있는지 모르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경찰서장 방으로 통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아. 한 시간 정도 나는 난폭한 사람이 될걸. 저 문으로 들어오는 놈은 관 속으로 들어오는 거다." "바닥에 벨은 없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의 말에는 약간이긴 하지만 외국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의 권총 탄창을 내 빈 탄창과 바꾸었다. 그의 권총에 들어 있었던 총알을 내 권총에 끼우고 다시 책상 옆에 되돌려놓았다. 문에는 용수철 장치의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문을 세게 밀어 닫았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빗장도 있었다. 나는 그것도 걸었다. 나는 책상 쪽으로 되돌아가서 의자에 앉았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위스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양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스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약품선반에서 녹색 수세인지가 붙어 있는 병과 잔을 하나 꺼냈다. "잔은 두 개."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위스키를 마신 적이 있지만, 너무 적어서 정신이 들지 않았었어." 그는 작은 잔을 두 개 들고 와서 병 뚜껑을 열고 잔에 위스키를 채웠다. "먼저 마시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리며 잔을 들었다. "당신의 건강을 축복하며 -- 조금 남아 있는 건강을." 그는 잔을 죽 들이켰다. 나도 죽 들이켰다. 그리고 위스키 병을 손 밑으로 끌어당기고서 심장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악몽을 꾸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어이없는 꿈이지. 침대에 붙들어매어 마취약을 주사맞고 어떤 방에 감금된 꿈이었어. 나는 완전히 쇠약해졌어. 나는 잠잤어. 음식도 없었고. 나는 병자였다고. 머리를 얻어맞고 끌려온 거야. 상당히 고생을 시킨 것 같아.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자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내 생명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드니 방은 연기로 가득차 있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착각이었지. 당신들 말을 빌리자면 시신경이 어떻게 됐다고 하는 것일 게야. 나는 크게 소리질러 외쳤지. 하얀 옷을 입고 몽둥이를 든 남자가 달려오더군. 놈의 몽둥이를 빼앗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 나는 놈의 열쇠를 빼앗았지. 그 뒤에 그가 갖고 있던 내 돈도 되찾았어. 그리고 겨우 여기까지 온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당신의 설명을 듣고 싶은데."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소." "없을 리가 없지." 하고 나는 말했다. "말할 게 있을 거야. 이놈은 -- " 나는 몽둥이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도움이 될 걸. 어떤 남자에게서 빌린 거지만." "그것을 내게 돌려주겠소?" 하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교수형 준비를 위해 죄수를 만나러 왔을 때와 같은 미소였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면 거절할 수 없는 미소였다. 나는 그의 손 안에 몽둥이를 놓았다. 그의 왼손 손바닥에. "권총도 돌려주시오." 하고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중태요, 말로우 씨. 침대로 돌아가서 자야 하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존더보그 의사요." 하고 그는 말했다. "의사로서 신중하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눈앞에 놓여 있는 책상 위에 몽둥이를 놓았다. 그의 미소는 냉동생선처럼굳어 있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빈사한 파리처럼 움직였다. "자, 권총을 돌려주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지금, 몇 시지, 형무소장?" 그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손목시계를 되찾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제 12시일 거요. 왜 그러죠?" "일요일인가?" "모르고 있었소? 일요일이오." 나는 책상에 손을 대고 몸을 지탱하며 생각하려고 했다. 그리고 권총을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가까이 댔다. "48시간이 넘게 지났군. 머리가 어찔어찔한 것은 당연해. 누가 나를 여기로 데려왔지?"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권총 쪽으로 조용하게 움직였다. 손을 잘 움직이는 남자였다. "나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야.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가르쳐 주지 그래?" 그는 용기가 있었다. 손을 뻗어 권총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권총은 거기에 없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권총을 무릎에 놓았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위스키 병을 잡고 잔에 따르더니 재빠르게 죽 들이켰다. 그리고 깊은 숨을 토하고 나서 몸을 떨었다.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술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여기를 나가면 당신은 곧 잡힐 거요." 하고 그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당신은 경찰의 손으로 이곳으로 데려와진 거요." "경찰이라면 그런 일은 할 수 없어." 약간 그의 비위에 거슬린 것 같았다. 노란 얼굴 표정이 변했다. "있다면 누구지?" 하고 나는 외쳤다. "누가 어떻게 해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냐고? 나는 오늘밤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빨리 말하는 게 좋아!" "당신은 마약중독이었소." 하고 그는 차가운 모습으로 말했다. "생명이 위험한 참이었소. 디기탈리스를 세 번이나 주사해야 했소. 당신은 날뛰기도 하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진정시키는 데도 뼈를 부러뜨렸소." 그의 말은 무섭게 빨랐다. "지금 이 병원을 나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오." "당신은 의사라고 했지?" "틀림없이 존더보그 의사요." "마약중독인 환자는 날뛰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 혼수상태가 될 뿐이지. 속이려 해도 소용없어. 나를 이 도깨비집으로 데려온 게 누구지?" "그러나 -- " "그러나고 뭐고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멈지 포도주의 큰 통에 쳐넣겠어. 아니, 내가 멈지 포도주의 큰 통에 쳐박히고 싶어. 셰익스피어에 그런 대사가 있지. 어떤 남자인진 모르지만 그가 술꾼이었기 때문이야. 우리들도 약을 마시려고 하는 게 아니야?" 나는 두 개의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자, 얘기해 봐, 칼로프(괴기영화 전문배우인 보리스 칼로프)." "경찰이 데리고 왔소." "어디 경찰이지?" "물론 베이 시티의 경찰이오. 여기는 베이 시티니까." "그 경찰은 이름이 있었나?" "틀림없이 갤브레이스라고 하는 이름이었소. 순찰경관은 아니오. 갤브레이스와 또 한 경찰이 금요일 밤에 거리를 몽유병자처럼 걷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 거요.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은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고. 나는 중독환자가 마약을 너무 마셨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잘못 알았는지도 모르지." "사리에 맞는군. 나로서는 반증을 들 수가 없어. 그렇지만 어째서 나를 감금시켜 놨지?" 그는 손을 펴보였다. "당신은 중태였다고 하지 않았소? 지금도 그렇고. 달리 방법이 있소?" "그럼 치료비를 내야 하겠군." "물론. 200달러요." 나는 의자를 조금 뒤로 비켜놓았다. "싸군.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보시지." "이곳을 나가면......"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곧 잡힐 거요!" 나는 책상에 엎드려 그의 얼굴에 입김을 내뿜었다. "이곳을 나가는 것뿐인데 잡힌다는 것은 우습지, 칼로프. 그 벽의 금고를 열어 보여주시지!" 그는 조용하게 일어섰다. "조금 말이 지나쳤소." "열지 않겠어?" "물론 열 이유는 없소." "내가 갖고 있는 건 권총인데?"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엄청나게 큰 금고군." 하고 나는 말했다. "게다가, 새거야. 이 권총은 성능이 좋아. 그래도 열지 않겠어?" 그는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놈이군!" 하고 나는 말했다. "권총을 들이대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던데, 여기서는 통용되지 않나?" 그는 미소를 떠올렸다. 고통의 기쁨을 보이고 있는 듯한 미소였다. 나는 또 어지러워졌다. 책상에 한 손을 대고 지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잠자코 서 있었다. 나는 책상에 몸을 지탱하고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잘 있게."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어. 손이 더러워지기 때문이야." 나는 문이 있는 곳까지 뒷걸음질쳐서, 뒤로 손을 돌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을 나왔다. 바깥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지붕이 붙은 포치 끝에 화단으로 되어 있는 앞뜰이 있었고, 담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안개가 끼고 차가운 밤이었다. 달은 떠 있지 않았다. 길모퉁이의 표지판에는 데스카슨 가(街)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양쪽 집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사이렌에 귀를 기울였지만 경찰차가 올 기미는 없었다. 또 하나의 도로표지판은 23번가였다. 나는 25번가까지 걸어가서 800번대의 번지를 찾았다. 819번지는 앤 리어든의 아파트였다. 그곳보다 나은 피난처는 없다. 내가 아직도 권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상당히 걷고 나서였다. 그러나 사이렌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밤 공기는 나의 기력을 소생시켜 놓았고, 위스키는 이미 깨어 있었다. 거리에는 전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고, 벽돌 집이 늘어서 있어 캘리포니아 남부라고 하기보다는 시애틀의 캐피틀 힐을 생각나게 했다. 819번지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키 큰 노송나무 담을 따라 새하얀 차고가 있었다. 앞뜰에는 장미가 심어져 있었다. 나는 벨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였다. 역시 사이렌은 들려오지 않았다. 벨이 울리는 소리가 나고 전기통화장치에서 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말로우."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놀라 목소리를 삼켜버린 건지, 아니면 통화장치의 전류가 끊어진 건지 둘 중 하나였다. 문이 크게 열려지고 엷은 녹색 옷을 입은 앤 리어든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곧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처마 등에 비춰진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어머나!" 하고 그녀는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마치 햄릿의 아버지 같군요." 제 28 장 거실에는 모피 깔개, 흰색과 장미색의 의자, 키가 큰 놋쇠와 쇠 테두리가 붙은 대리석 난로, 벽에 붙박이로 된 책장, 크림색의 벽걸이가 있었다. 사람 크기만하게 큰 거울 외에는 여자냄새가 나는 가구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발 받침대에 발을 뻗고 깊은 의자에 반은 앉고 반쯤은 누워 있었다. 나는 블랙 커피를 두 잔 마시고 나서 위스키를 한 잔, 계란 반숙 두 개와 토스트를 한 장,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커피에 브랜디를 넣어 마셨다. 나는 이 전부를 식당에서 먹었지만, 어떤 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득히 먼 옛날 일 같았다. 나는 이제 기운이 회복되어 있었다. 거의 정상적인 기분으로, 내 위장은 센터의 깃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3루 쪽으로 번트를 대려 하고 있었다. 앤 리어든은 그 아름다운 턱을 양손으로 받치고,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머리카락 밑으로 그림자가 지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내 쪽으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연필 한 자루가 머리카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그녀는 내 일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금요일부터 발생한 일을 얘기했지만, 뭐든지 다 얘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큰 사슴 머로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당신이 그 금발머리 여자와 놀러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 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원고를 써서 이 아파트를 벌었다는 뜻은 아닐 테고." 하고 나는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설령 당신이 생각하는 게 돈벌이가 된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던 것도 아니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요즘 서장은 모두 뇌물을 받고 있지만......" "내가 알 바 아니오." "딜 레이에 토지를 갖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속아 팔았는데, 그 토지에서 석유가 나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들고 있는 아름다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잔 속의 음료도 용기에 어울리게 고상한 맛이었다. "여기라면 누구든 곧 안정되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다만 들어와야 좋은 거지. 뭐든지 갖추어져 있어!" "그런 기분에 익숙해진 남자라면 말이죠. 그리고 내가 그를 머물게 하려고 한다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인이 없군." 하고 나는 말했다. "어렵겠는데."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렇지만 당신은 -- 머리를 엉망으로 얻어맞고, 팔에 마약 주사바늘을 몇 대나 맞았는지 모르고. 턱은 농구공 백보드 대신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어쨌든 그 남자와 부딪쳐 볼 마음은 있어요. 애스터 드라이브에서 얘기했을 때의 상황으로는 사건을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명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남자가 경찰에게 당신을 때리게 하고, 두 번 다시 손대지 못하도록 이틀이나 잠재웠는데도 아직 그런 말을 해요! 훌륭한 증거 아녜요. 이만큼 확실한 것도 없어요." "그건 내가 말한 건데, 대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 잘난 체하는 신경전문의는 고급 갱이에요. 사냥감을 노려 고작 최면술을 걸어놓고 나서 갱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보석을 빼앗게 하는 거죠." "당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그녀는 잠자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잔을 죽 들이키고는 또 피로가 몰려온 것처럼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는 그런 것엔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이지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녜요?" "나는 이제 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소." 그녀는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동시에 비꼬는 미소이기도 했다. "실례가 되었군요. 당신이 탐정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요. 사건은 언제나 복잡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 단순한 사건은 경멸하는 거예요?" "아니오. 좀더 복잡한 것이오." "알았어요. 얘기해 주세요." "나로서도 단지 짐작만 하고 있는 건데 -- 이것을 한 잔 더 주지 않겠소?" 그녀는 일어섰다. "때로는 물맛도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되죠.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녀는 내 잔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음 덩어리가 잔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는 안되었다. 그들이 내 상상대로 내 행동을 죄다 조사해 냈다면 이곳으로 찾으러 올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일은 귀찮게 된다. 그녀는 잔을 들고 돌아왔다. 차가운 잔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차가워진 그녀의 손이 내 손에 닿았다. 나는 잠시 그 손을 잡고 있다가, 아침 태양이 얼굴에 맞아 행복의 골짜기에 있는 꿈을 파괴당했을 때처럼 조용하게 손을 놓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의자에 앉아 몸을 움직이며 몇 번이나 고쳐앉았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내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암사는 분명히 정직한 사람은 아니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리 해도 보석 갱의 끄나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만일 그가 보석 갱과 관계가 있고, 내게 뭔가 증거를 잡혔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그 도깨비집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무슨 약점을 갖고 있는 건 틀림없소. 그가 진짜로 태도를 바꾼 것은 내가 투명 잉크 문자에 대해 말을 꺼내고 나서였소." 그녀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뭐가 써 있었나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써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읽지 못했소." "그렇지만 비밀정보통신으로는 이상한 방법이로군요. 담배 물부리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염려도 있는데 말이에요." "마리오가 무슨 일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과, 만일 무슨 일인가가 생길 때엔 명함이 발견되도록 해놓은 것은 사실이오. 경찰이라면 못 보고 빠뜨릴 리가 없기 때문이지. 만일 암사가 범인과 한패라고 한다면 그런 것을 남겨놓을 리는 없는 거요." "암사가 그를 죽였든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그를 죽이도록 했다면 그 말대로일 테죠. 그렇지만 암사와 마리오는 살인사건에는 직접 관계가 없는 사이인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의자 등에 기대어 마실 것을 다 마시고 그 말을 생각하는 척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보석강탈사건은 마리오의 사건과 관계가 있소. 그리고 우리들도 암사가 보석강탈사건과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틀림없이 피곤할 거예요. 침대로 가지 않겠어요?" "여기서?" 그녀는 귓불까지 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래요. 나는 어린애가 아녜요.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마음대로예요." 나는 잔을 놓고 일어섰다. "내가 이런 기회를 거절하는 일은 드물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지쳐 있지 않으니까, 택시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지 않겠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하고 그녀는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당신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얻어맞고, 뭔지 알지도 못하는 마약을 몇 대나 주사맞았어요. 하룻밤 푹 자지 않으면 이제 탐정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나는 오히려 너무 잤다고 생각하는데......" "정말이라면 병원에 들어가 있을 정도란 말예요!" "자, 내 말 좀 들어주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오늘밤 그다지 머리가 명쾌하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소. 나는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증거를 잡지 못했지만, 그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소. 내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경찰을 상대로 해서 말해야만 하오. 그런데 이 마을의 경찰은 믿을 수 없어." "이 마을은 좋은 곳이에요." 하고 그녀는 강한 어투로 말했다.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알았소. 틀림없이 좋은 마을이지. 시카고 또한 그렇소. 언제까지 시카고에 살고 있어도 기관총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소. 이곳 또한 똑같소. 로스엔젤레스 역시 크게 다른 것은 없소. 그러나 큰 도회지라면 그 일부밖에 살 수는 없지. 하지만 이 정도의 마을이라면 구석에서 구석까지 전부 다 살 수 있는 거요. 그게 다른 점이오." 그녀는 일어서서 내 쪽으로 턱을 내밀었다. "당신은 여기서 자야 해요! 침실은 두 개 있고, 이제부터 곧......" "당신 침실에 자물쇠를 채우면 약속할까?" 그녀는 얼굴을 점점 더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난 당신처럼 볼품없는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따금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되는군요!" "그 중에서 택시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지 않겠소?" "여기에 있으세요!" 그녀는 호되게 나무랐다. "아직 몸이 시원치 않아요. 환자예요!"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의 환자는 아니오!" 하고 나는 말을 되받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홀로 달려가 긴 외투를 입고 돌아왔다. 모자를 쓰지 않았으므로 머리카락의 색이 얼굴색과 똑같이 빨갛게 보였다. 그리고 옆문에서 밖으로 뛰어나가 차고 쪽으로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려오는가 했더니, 곧 차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자 위의 모자를 집고서 전기 스탠드를 끈 뒤, 입구의 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기 전에 나는 한 번 더 방을 둘러보았다. 편안해 보이는 방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으면 아주 편안할 것이다. 나는 문을 닫고 차 뒤를 돌아 좌석에 올라탔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나를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말을 내뱉고는 곧장 차 방향을 돌려 내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고 있는 동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아파트 입구의 문은 11시에 자물쇠로 채웠다. 나는 문을 열쇠로 열고, 항상 곰팡내 나는 로비를 빠져나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 방이 있는 복도는 침침한 전등이 비추고 있었다. 우유병이 뒷문 앞에 놓여 있었다. 뒤의 비상구에 빨간 전등이 빛나고 있었다. 통풍장치는 있었지만 음식점의 음식냄새가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고 있는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자고 있는 고양이처럼 위험이 없는 세계로...... 나는 방에 들어가 불을 켜기 전에 잠시 문에 기댄 채 방의 냄새를 맡아보았다.먼지와 담배냄새. 남자가 살고 있는 방냄새. 나는 옷을 벗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지독한 꿈을 꾸고 땀을 흘렸다. 그러나 아침에는 일단 한 사람 몫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제 29 장 나는 파자마를 입은 채 일어날까 말까 생각하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정신이 상쾌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정상상태에 가까웠다. 샐러리맨이었다면 근무하러 나가는 것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열이 있고, 혀는 바싹 마르고 꺼끌꺼끌하며, 목은 근육이 땡기고, 턱은 흔들흔들하는 경향은 있지만, 오늘보다 더 기분이 좋지 않은 아침도 얼마든지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회색 아침으로, 아직 온도는 오르지 않았지만 따뜻해질 것 같은 기미가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배를 어루만졌다. 위스키를 토하고 나서부터 배의 상태가 시원치 않았다. 왼쪽 다리는 멀쩡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그 발로 침대 귀퉁이를 차야만 했다. 문에서 날카로운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5센티 정도 열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이고 나서 문을 꽝 닫아버리고 싶은 건방진 노크였다. 나는 문을 5센티보다 조금 더 열었다. 랜들 경감이 갈색 개버딘 옷에 부드러운 펠트 모자를 쓰고 산뜻하고 멋있는 복장으로 서 있었다. 경감은 손가락으로 문을 가볍게 밀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손을 등뒤로 돌려 문을 닫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틀간 당신을 찾았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눈은 나를 보지 않았다. 방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앓았었소." 그는 모자를 벗어 겨드랑이 옆에 끼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아름다운 백발을 빛내며 방안을 걸어다녔다. 경찰치고는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잠시 뒤, 한쪽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모자를 조심스럽게 책상의 잡지 위에 놓았다. "여기서 자지는 않았군." 하고 그는 말했다. "병원에 있었소." "어느 병원이오?" "가축병원." 그는 내게 손바닥으로 세게 맞은 것처럼 성난 기색을 나타내며 내 쪽으로 향했다. "아직 아침이오. 농담은 그만두시고." 나는 잠자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서 또 침대에 앉았다. "아무리 해도 그 버릇이 고쳐지질 않는군." 하고 그는 말했다. "한번 처넣어줄까?" "나는 병이 들었소. 게다가 아직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소?" "손을 떼라고 말했을 텐데?"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오. 예수도 아니고."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처넣겠다고 생각하면야 처넣을 수 있지." "알고 있소." "왜 처넣지 않는지 알고 있소?" "흠!" "왜 그렇지?" 그는 테리어 종 같은 눈으로 꼼짝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는 몸을 흔들고 밝은 표정을 보였다. "다르게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말했다면 입을 갈겨주려고 생각했었지." "2천만 달러를 봐도 당신은 놀라지 않아요. 그렇지만 명령이 내려왔는지도 모르겠군." 그는 담뱃갑을 천천히 꺼내어 셀로판 포장지를 뜯었다. 손가락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신중하게 불을 붙인 뒤, 성냥을 바닥에 버리지 않고 재떨이에 버렸다. "요전에 전화로 충고를 해놨었지." 하고 그는 말했다. "목요일이었는데." "금요일이오." "그래요, 금요일이었소. 도움이 되지 않았군. 왜 그런지 알고 있소. 그렇지만 그때 당신은 증거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소. 다만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어떤 증거 말이오?" 그는 아무 말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커피 마시지 않겠소?" 하고 나는 말했다. "조금은 인간다워지는군." "마시지 않겠소." "나는 마시겠소." 나는 일어서서 부엌으로 가려고 했다. "앉아요." 하고 랜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소." 나는 상관하지 않고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붓고 스토브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물을 두 잔 마시고, 세 잔째의 잔을 들고서 부엌의 경계선에 섰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레일 부인에게 불려서 만나러 간 것이 어째 좋지 않았던 거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그걸 말하고 있는 게 아니오." "하지만 아까는 그걸 말하려고 했을 텐데?" "그레일 부인이 당신을 부른 게 아니지. 협박이 많아진다고 얘기해서 당신이 무리하게 요구한 것이겠지." "그러나 대단한 얘기는 없었소. 단서가 될 만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소. 물론 부인은 이미 당신에게 얘기했을 테지만......" "들었소. 산타 모니카의 비어 홀은 나쁜 놈들의 소굴이었소. 그러나 그뿐이었소. 아무 단서도 잡지 못했지. 맞은편의 호텔도 수상했지만 크게 증거가 될 만한 말은 나오지 않았고." "내가 협박했다고 부인이 말하던가요?" 그는 약간 눈을 떨어뜨렸다.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소." 나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커피, 어떻소?" "필요없소." 나는 부엌으로 되돌아가 커피를 준비했다. 랜들은 내 뒤에서 쫓아와 이번에는 그가 부엌의 경계에 섰다. "이번 보석 갱은 11년 전부터 할리우드 부근을 휩쓸고 다니는 무리들이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얼간이 짓을 한 거요. 살인을 저질렀소.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나는 알고 있소." "그 살인이 갱의 주업인데, 당신이 범인을 잡는다고 하면 내가 이 도시에 산 이후 처음으로 범인이 잡힌 살인사건일 것이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갱 살인사건은 한 다스는 있었소. " "잘도 기억하고 있군." "틀렸으면, 고쳐 주시오." "빈정거리지 마시지." 하고 그는 말했다.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범인이 잡힌 것이 두 건, 기록에 남아 있지만 조작한 것이지." "어떻소, 커피는?" "커피를 마시면 남자와 남자로서 진지하게 얘기해 주겠소?" "얘기하겠소. 하지만 내 의견을 전부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는 없소." "당신의 의견을 묻겠다는 뜻은 아니오." 하고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좋은 옷을 입고 있군." 그는 또 얼굴을 붉혔다. "27달러 50센트 줬지." 하고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마음씨 좋은 경찰이군." 하고 말한 뒤, 나는 스토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좋은 향기로군. 어떻게 만든 거요?" "발이 거친 건데, 커피 여과기는 사용하지 않소." 나는 찬장에서 설탕을 꺼내고 냉장고에서 크림을 꺼내어 식탁에 그와 마주앉았다. "병원에서 잤다고 하는 건 농담이었소?" "농담이 아니오. 베이 시티에서 얻어맞고 갇혀 있었소.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마약과 술로 치료하는 병원이었소." "베이 시티라고?"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 쪽에서 맞을 만한 일을 한 것은 아니오?" "당치도 않소. 일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지.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한 건 처음이었소. 두 번째는 경찰. 상대는 두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사복이었소. 나는 내 권총으로 얻어맞았소. 인디언에게 목을 졸렸고. 정신을 잃은 나를 인티키 병원에 집어넣고 가둬놓았소. 아마 한 시간은 침대에 붙들려매여 있었을 게요. 하지만 증거를 대라고 하면 난 증거를 댈 수는 없소.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와, 왼팔에 주사맞은 흔적뿐이지." 그는 테이블 구석을 꼼짝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베이 시티라고 했지." 하고 그는 한마디 한마디 생각하듯이 말했다. "그 이름은 노래처럼 들려오는군. 더러운 욕조 속의 노래처럼." "그곳까지 뭣 하러 갔었소?" "내가 갔다는 뜻이 아니오. 경찰이 나를 데려간 거지. 나는 스틸우드 하이츠의 어떤 남자를 만나러 갔었소. 그곳은 로스앤젤레스였고." "쥴스 암사라는 남자겠지." 하고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왜 그 담배를 숨겼소?" 나는 커피 잔으로 눈을 떨어뜨렸다. 앤이 얘기한 것이다. "마리오가 담배 케이스를 두 개 갖고 있었다니 어쩐지 이상하더라고. 게다가 마약이 든 담배가 들어 있었고. 베이 시티에서 만든 것 같은데." 그는 빈 잔을 밀어 보내주었다. 나는 커피를 따랐다. 그 동안 그는 셜록 홈즈가 확대경을 들여다보듯이, 혹은 손다이크가 포켓 렌즈로 조사하는 것처럼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얘기를 듣고 싶었소." 하고 그는 대단히 불쾌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훌쩍거리고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하지만 당신이 숨겼어도 그 아가씨가 죄다 얘기해 주었소." "지독하군!" 하고 나는 말했다. "이 나라에서는 남자는 이미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구먼. 항상 여자가 설치고 있다니까!" "그 아가씨는 당신에게 반했소." 하고 랜들은 영화에 나오는 연방경찰관 같은 이해력 좋은 어조로 말했다. "그 아가씨의 아버지는 강직한 경찰이었소. 그 아가씨는 증거를 감춰버릴 만한 사람은 아니오. 당신을 위해 그런 거요." "마음씨 좋은 아가씨군. 그러나 내게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오." "마음씨 좋은 아가씨는 좋아하지 않소?" 그는 또 한 개비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얼굴 앞의 연기를 손으로 털어 없앴다. "좀더 개성이 강한 여자가 좋소." 하고 나는 말했다. "닳고닳은 여자, 거기다 조금 머리가 좀 희끗희끗한 게 좋지." "그런 여자와 사귀면 변변한 일은 없지." 하고 랜들이 말했다. "알고 있소. 어차피 나 역시 건실한 생활은 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데 사건은 어떻게 됐소?" 그는 그날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어쩌면 네 번 웃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아직 당신의 의견을 조금도 듣지 못했는데." "말해도 좋겠지만, 당신이 정통할 것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마리오라고 하는 남자는, 그레일 부인도 그렇게 말했지만, 여자를 공갈쳐서 생활해 나갔었소. 그러나 그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었소. 보석 갱의 끄나풀이었던 거요. 사교계에 출입하여 희생자에게 환심을 사서 무대를 만든 거지. 이번 '홀드 업'역시 그렇소. 만일 마리오가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면, 그레일 부인을 트로카델로로 유혹해 가지 않았다면, 다른 도로를 지나 비어 홀 앞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홀드 업'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오." "운전사가 운전했을 수도 있소." 하고 랜들은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 운전사가 '홀드 업' 일당에게 한 달에 90달러 받는다고 하여 납 탄환을 얼굴에 박게 할 수는 없소. 그러나 마리오가 항상 여자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는 것은 곧 소문이 나지 않겠소?" "그렇지만 이러한 사건은 대개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소. 도둑맞은 물건을 싸게 되살 수 있게 되면 말하지 않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오." 랜들은 몸을 돌리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수다를 떠는 법이오. 무엇이든 떠들고 싶어하지. 마리오와 교제하면 위험하다고 하는 게 화제에 올라 있었는지도 모르오." "아마 화제가 되어 있었을 거요. 때문에 놈은 죽음을 당한 거지." 랜들은 내 얼굴을 눈여겨보며 빈 잔을 숟가락으로 휘젖고 있었다. 내가 한 잔 더 커피를 따르려고 하자 손으로 눌렀다. "그 앞을 말해 주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놈은 이용당할 만큼 이용당하고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거요. 화제에 오르게 되면 이젠 도움이 되질 않소. 그러나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깨끗하게 발을 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최후의 '홀드 업'이 계획되었소. 사실 그 목걸이에 대해서 요구받은 금액은 의외로 적었소. 그리고 마리오가 거래를 책임지게 되었소. 그러나 마리오는 어렴풋이 위험을 느끼고 있었소.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되자 나를 데려가기로 했소. 게다가 하나의 계획을 생각해 놓았지. 만일 자기 몸에 사고가 생긴다면 갱 일당을 조종하고 있는 인물을 수상히 여기도록 그 담배를 몸에 지니고 갔던 거요. 어린애 속임수 같은 트릭이지만, 그게 효과를 나타냈소." 랜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갱의 짓거리였다면 몸에 걸친 것을 전부 벗겨버리고 시체를 바다에 가라앉혀 버렸을지도 모르지." "아니오. 아마추어의 범행처럼 꾸민 거요. 발을 씻은 건 아니기 때문이오. 마리오를 대신할 사람을 이미 발견했는지도 모르고." 랜들은 그래도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암사는 그런 일에 관계할 타입은 아니오. 그런 일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소. 당신은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의 눈은 표정이 너무 없었다. 너무나도 표정이 없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소. 무엇보다도 확실한 건 돈은 아무리 많아도 곤란하지 않다는 사실이오. 게다가 놈들의 장사는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있는 장사는 아니지. 유행할 동안은 좋지만, 일단 스러지고 나면 누구든지 상대조차 해주지 않게 되는 거요. 영화배우와 똑같은 거지. 장사를 이용해서 벌 수 있을 만큼 벌려고 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소." "나도 좀더 조사해 봐야겠소." 하고 랜들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는 나는 마리오를 조사해 봤으면 하는 거요. 대체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를 알았소?" "상대편에서 전화를 걸어왔었소. 내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찾았다고 합디다만." "그러나 당신의 명함을 갖고 있었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랬었지. 잊고 있었군." "어째서 당신을 불렀는지 의심해 본 적은 없소?-- 당신이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은 별도로 하고." 나는 커피잔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랜들이 좋아졌다. 그의 조끼 속에 있는 것은 셔츠만은 아니었다.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은 그 일 때문이었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의 것은 여담이었소." 그는 조용하게 미소를 짓고서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또 커피를 따랐다. 랜들은 몸을 일으켜 내 눈을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도 좋았을 테지만."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이 마리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도 옳다고 생각하고 있소. 금고에 현금으로 2만 3천 달러가 들어 있었소. 주식도 있었고, 웨스트 54번가에 가옥 권리도 갖고 있었소." 그는 커피잔 받침접시의 테두리를 숟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소, 흥미를 느끼지 않소?" 하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주소는 1644번지요." "흠!" 하고 나는 담담한 기분으로 말했다. "그렇소. 그 외에 보석도 있었소. 값 나가는 물건이지만 훔친 것은 아닐 게요. 아마 받은 물건일 테지. 그러나 팔기에는 두려웠겠지 -- 여러 가지가 생각났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분으로서는 훔친 것과 똑같았던 거겠지." "그렇소. 그런데 웨스트 54번가의 가옥 말인데, 처음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소. 그게 마음에 걸린 것은 이러한 경위에서였소. 우리들은 매일 여러 곳의 경찰서에서 살인사건이나 사인이 의심스러운 시체에 대하여 보고를 받고 있소. 그 보고는 그날 중에 읽어야만 하게 되어 있소. 그런 규칙인 거지. 영장을 갖지 않고 수색해서는 안된다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신체검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똑같은 규칙인 거요. 그러나 우리들은 이따금 규칙을 깨뜨리고 있소. 깨뜨리지 않을 수 없는 거지. 그런 뜻에서, 지난주 목요일 센트럴 가의 검둥이 살인사건의 보고를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읽었소. 범인은 큰 사슴 머로이라고 하는 전과자더군. 그리고 증인으로 당신의 이름이 나와 있습디다." 랜들은 잠시 말을 끊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떻소, 흥미가 있소?" "결론을 얘기해 주시오." "이것이 오늘 아침의 일이오. 누가 보고했나 조사해 봤더니 널티라고 하는 친구였소. 그 사건은 이미 소용없다고 생각했소. 널티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남자요 -- 당신은 크레스트라인에 간 적이 있습니까?" "있소." "크레스트라인 근처에 오래 된 화차를 선실로 한 곳이 있소. 나는 거기에 선실을 갖고 있소. 화차는 아니오. 화차는 트럭으로 운반해 가고 차 바퀴 없이 놓여 있소. 널티는 그 화차의 브레이크를 담당하는 데 꼭 알맞은 남자요." "심한 말을 하시는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도 당신의 동료잖소." "어쨌든 나는 널티를 불러 조사상황을 물어봤소. 그랬더니 머로이에게 옛날에 벨마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있었으며, 당신이 그 여자를 찾기 위해 그 도박장의 원래 주인인 미망인을 찾아간 걸 알았소. 그곳이 웨스트 54번가의 1644번지로, 마리오가 저당잡고 있는 가옥이었소." "그래서?" "우연이라고 해도 기막힌 우연이기 때문이오." 하고 랜들이 말했다. "그런 뜻이오. 나는 지금까지 무리한 일은 하지 않았소." "그렇지만 수확은 없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플로리안 부인이 말한 바에 의하면 벨마라고 하는 여자는 죽었다고 했소. 사진은 있지만." 나는 거실로 가서 윗도리에 손을 찔러넣고 주머니 속이 비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진은 잡혔다. 나는 사진을 꺼내어 부엌으로 가져가 피에로 모습의 아가씨 사진을 랜들의 눈앞에 내던졌다. "본 기억이 없는데." 하고 랜들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그것도 사진이오?" "아니오, 이것은 신문사에서 받아온 그레일 부인의 사진이오. 앤 리어든이 받아왔소." 랜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 여자라면 나도 결혼하고 싶어진다오." "그런데 얘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혼이 난 병원은 베이 시티의 디스커슨 가(街) 23번가에 있소. 존더버그라고 하는 남자가 경영하는데, 자기는 의사라고 했지만 그자는 범인의 은신처를 부업으로 하고 있소. 나는 거기서 큰 사슴 머로이의 모습을 보았소." 랜들은 고쳐앉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오?" "정말이고말고. 그 남자를 분간 못할 사람은 없소. 그런 괴물 같은 몸집이 큰 남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는 잠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뒤 천천히 일어서서 말했다. "플로리안이라는 여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소?" "머로이는 어떻게 하고?" 그는 다시 앉았다. "좀더 상세히 말해 주시오." 나는 상세하게 말을 했다. 그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들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은 테이블 끝을 조용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말했다. "그 존더버그라는 자는 어떤 남자였소?" "마약 장사를 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가능한 한 상세하게 그의 인상을 얘기했다. 랜들은 옆방으로 가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커피를 다시 끓이고, 계란을 두 개 부쳐서 토스트를 두 장 만들고 버터를 발랐다. 랜들은 나와 마주보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서 얼굴을 내밀었다. "위생과의 마약반 사람에게 중독환자로 가장하고 나가 보라고 했소. 뭔가 찾아내 올 것이오. 머로이는 이미 없을 테지만. 당신이 나오고 나서 10분 뒤에 그곳을 나갔소. 이것은 내기해도 좋소." "베이 시티의 경찰은 그대로 놔둘 거요?" 하고 나는 계란에 소금을 부리며 말했다. 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들어보니 그는 얼굴을 붉히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찰로서는 지독하게 신경이 예민하군." 하고 나는 말했다. "빨리 먹어버리시지. 나갑시다." "아직 샤워도 하고, 수염을 깎고, 옷도 입어야 하는데." "파자마 바람으로는 나갈 수 없소?" 하고 그는 차갑게 말했다. "이 마을은 그렇게 타락한 거요?" "레어드 블루넷 가(街)이기 때문이라오. 시장을 당선시키는 데에 그가 3만 달러 썼다고 합디다." "벨베디어 클럽을 갖고 있는 남자?" "게다가 도박선을 2척이나 갖고 있지." "그러나 우리들은 그 마을에 살고 있고."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아름답게 빛나는 손톱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 사무실에 들러 남은 담배를 갖고 갑시다." 하고 그는 말했다.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면 말이지만......" 그는 손가락 마디를 꺾어 소리를 냈다. "열쇠를 빌려주면 당신이 머리를 빗고 옷을 입고 있을 동안에 내가 가져오겠소." "함께 갑시다. 편지가 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은 뒤 랜들의 차에 올라탔다. 편지는 와 있었지만 읽을 필요가 없었다. 서랍의 두 개비 담배는 없어지지 않았고. 사무실을 뒤진 기미도 없었다. 랜들은 담배냄새를 맡고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당신에게서 명함을 한 장 되찾았소." 하고 그는 말했다. "명함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소. 때문에 남은 두 개비를 되찾으려 하지 않은 거요. 암사는 그리 신경이 쓰지는 않고 있소. 단지 당신이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나갑시다." 제 30 장 허풍쟁이 할머니는 입구의 문에서 1인치 정도 코를 쑥 내밀고서 올해 들어 처음 핀 제비꽃 냄새를 맡듯이 코를 움직이며, 거리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고는 백발의 머리를 끄덕였다. 랜들과 나는 모자를 벗고서 인사했다. 이 근처에 오면 나도 발렌티노(미남으로 일세를 풍미한 영화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모리슨 부인?" 하고 나는 말했다.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이쪽은 본서의 랜들 경감입니다." "저어, 어떻게 하나. 다리미질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우리들은 창에 레이스 커튼이 쳐져 있는 깨끗한 거실로 안내되었다. 뒷방에서 다리미 냄새가 났다. 그녀는 뒷방과의 사잇문을 가만히 닫았다. 오늘 아침의 그녀는 파란색과 흰색의 고무로 된 앞치마를 졸라매고 있었다. 눈은 변함없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서 30 센티 정도의 지점에 자리를 차지하고서 얼굴을 내밀며 내 눈을 보았다. "오지 않았다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랜들을 보았다. 랜들도 머리를 움직여 끄덕였다. 그는 창가로 가서 플로리안 부인 집을 엿보고는 부드러운 모자를 팔에 낀 채 학생 연극의 프랑스 백작같이 거드름피우는 태도로 되돌아왔다. "역시 오지 않았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안 왔어. 진짜 만우절이 되었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기쁜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앞치마로 입을 닦으려다가 고무 앞치마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멋적은 얼굴을 했다. "우편배달부가 왔다가 그대로 지나가자,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지만 머리를 흔들고 가버리더구먼. 문을 꽝 하고 닫더라구. 부서지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알았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할머니는 랜들을 향하여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배지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이 젊은 남자는 요전에 위스키 냄새를 풍겼어요. 나는 아직 믿지 못하겠어." 랜들은 금색과 청색의 에나멜 배지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진짜 같군요." 하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오. 술을 사러 나갔다가 4각 술병을 두 병 안고 돌아왔을 뿐이지." "진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알고 있소?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진은 마시지 않아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지."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월요일에도 -- 이거 결국 오늘이지만 우편배달부는 지나가 버렸소. 이번이야말로 그녀는 정말로 화가 났소." "듣지 않고도 알고 있다는 거유? 어째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어하지?" "미안합니다, 모리슨 부인. 중대한 일이라서 그만......" "하지만 이분은 이대로 조용하잖수." "결혼했기 때문이죠." 하고 나는 말했다. "연습을 쌓고 있는 거죠." 노파의 얼굴이 짙은 보랏빛으로 변했다. "내가 경찰을 불러올 동안 이 집에서 나가지 말아요!" 하고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경찰은 할머니 눈앞에 있습니다, 부인." 하고 랜들이 빠른 말로 이야기했다.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좋아요." 하고 그녀는 얌전하게 인정했다. 짙은 보랏빛이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남자는 처음부터 주는 것 없이 미웠으니까." "어쨌든 -- " 하고 랜들이 말했다. "플로리안 부인에게 오늘도 소포가 오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요." 하고 그녀는 목소리를 낮게 하여 말했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눈이었다. "어제 저녁에 손님이 왔었어요. 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에 유혹되어 돌아왔을 때 -- 아니, 그게 아니지. 집까지 바래다 줘서 내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라오. 차가 한 대 옆집에서 나가는 거였어요. 대단한 스피드로 불도 켜지 않고. 물론 번호는 못 봤지만......" 그녀는 여전히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곁눈질로 노려보았다. 나는 왜 그녀가 그런 눈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창가로 가서 레이스 커튼을 올렸다. 회색빛을 띤 푸른 제복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 남자는 어깨에 커다란 가죽가방을 걸치고서 차양 있는 제모를 쓰고 있었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창에서 얼굴을 돌렸다. "조금 솜씨가 떨어졌군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년에는 C급의 마이너 리그의 유격수라고 할 정도로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시오." 하고 랜들이 말했다. "이 창을 내다봐요." 그는 창가로 와서 내다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모리슨 부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단지 한 종류밖에 없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곧 그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의 편지통에 무엇인가가 들어가는 소리였다. 발소리가 문에서 거리로 멀어져 갔다. 랜들은 또 창에서 내다보았다. 우편배달부는 플로리안 부인의 집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무거운 가죽가방을 든 청회색의 그가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랜들은 그녀를 향해 무섭도록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이 동네에서는 오전 중에 몇 번이나 우편물이 배달됩니까, 모리슨 부인?" "한 번뿐이에요." 하고 그녀는 체념한 듯이 말했다. "오전중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침착하지 않은 눈이었다. 토끼 같은 턱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이 고무 앞치마 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 "오전 배달은 지금 끝난 거군." 하고 랜들이 말했다. "서류도 같은 배달부가 가져옵니까?" "항상 속달로 온다오." "그러나 토요일에는 배달부를 쫓아가 물어봤다고 말한 것 같은데요. 속달로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가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건 즐겁다 --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해서지만.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잠자코 있었다. 이가 빛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갑자기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앞치마로 얼굴을 덮고 방에서 뛰어나갔다. 랜들은 그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훌륭했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유쾌하지는 않았소. 상대가 할머니라는 건." 그는 아직도 쓴웃음을 계속 짓고 있었다. "극히 당연한 줄거리요." 하고 그는 어깨를 흔들었다. "경찰은 항상 이런 것 때문에 고생하지. 처음에는 사실을 말하지만, 아무것도 말할 게 없어지면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게요." 우리들은 정면에 있는 문을 조용하게 닫고서 스크린 도어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그머니 집 밖으로 나왔다. 랜들은 모자를 쓰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 어깨를 흔들고, 깨끗이 구석구석 손질한 손을 과장되게 펼쳤다. 아직도 뒷방에서 희미하게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편배달부의 뒷모습이 두 채 정도 앞에 있는 집 앞에서 보였다. "이것이 경찰의 일이오." 하고 랜들은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입술을 오므렸다. 우리들은 플로리안 부인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세탁물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완전히 마르고 노랗게 된 채로 철사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초인종을 울렸다. 반응이 없었다. 노크를 했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요전에 왔을 때는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았소." 하고 나는 말했다. 랜들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도록 몸의 그늘에서 문을 시험해 보았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우리들은 집 뒤로 돌아갔다. 뒷문은 쇠살문이었다. 랜들은 그 문을 노크했다. 반응이 없었다. 그는 거의 페인트가 벗겨져 버린 나무계단을 내려가서는 사용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히 들어선 길을 따라 목조로 된 차고 쪽으로 걸어갔다. 차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고 안은 잡동사니로 가득차 있었다. 장작으로도 쓸 수 없을 구식 트렁크가 몇 개, 녹투성이의 원예기구, 무수한 빈 깡통, 문 양쪽 벽에는 커다란 거미가 그다지 좋지 않은 거미줄을 쳐놓았다. 랜들은 나무토막을 주워 거미를 죽였다. 그는 차고문을 닫고 나와 수다쟁이 할머니 반대쪽의 이웃집 현관으로 걸어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은 역시 없었다. 그는 어깨 너머로 거리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되돌아왔다. "뒷문이 가장 쉽겠군." 하고 그는 말했다. "이웃집 할머니는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소. 너무 거짓말을 했거든." 랜들은 나이프로 뒷문의 빗장을 벗겼다. 그곳은 뒤쪽 포치였다. 빈깡통이 여기저기 뒨굴고 있었고, 파리가 가득 꾀어 있었다. "이거 정말 지독하군!" 하고 그는 말했다. 포치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의 자물쇠는 5센트짜리 기성 열쇠로 간단하게 열렸다. 그러나 아직 빗장이 걸려 있었다. "이상한데." 하고 나는 말했다. "도망갔을지도 모르겠소. 이렇게 문단속을 엄중하게 할 만한 여자가 아닌데." "당신 모자가 내 모자보다 낡았군." 하고 문의 유리를 바라보면서 랜들이 말했다. "빌려주시오. 유리를 깨뜨려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막일하러 가든가?" "발로 차서 부숩시다. 그쪽이 빨라요." "좋소, 그럽시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선 뒤 한쪽 발을 바닥과 평행으로 올려 문을 찼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문이 5 센티쯤 열렸다. 우리들은 문을 밀어 열고, 리놀늄에 흩어진 금속조각을 주워 돌로 만든 식기통에 조심스레 담았다. 그 곁에 진의 빈 술병이 9개 있었다. 파리가 몇 마리 완전히 닫힌 창가에서 날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랜들은 방 한가운데 서서 방의 상태를 주의깊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걸으며, 스윙 도어를 구두코 끝으로 조용하게 밀고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모습은 내 기억에 있는 것과 다른 게 없었다. 라디오는 켜 있지 않았다. "훌륭한 라디오군." 하고 랜들이 말했다. "싸지 않겠는걸. 돈을 지불했다면. 아니, 이것은......"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라디오 근처의 바닥에 뒨굴고 있는 코드를 발로 건드렸다. 코드 끝의 플러그가 보였다. 그는 라디오의 정면에 있는 다이얼을 돌려 손잡이를 조사했다. "흠!" 하고 그는 말했다. "매끄럽군. 게다가 크고. 머리가 잘 움직이는 놈이야. 가느다란 코드에는 지문은 남지 않거든." "라디오가 켜지는지 플러그를 꽂아 봐요." 랜들은 몸을 구부리고 플러그를 꽂았다. 꽈 전기가 흘러들어 왔다.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금세 큰소리가 스피커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랜들은 얼른 발로 플러그를 뽑았다. 소리는 금세 꺼졌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들은 급히 침실로 들어갔다. 제시 피어슨 플로리안 부인은 고기작고기작한 목면 실내복을 입고서 머리를 침대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침대 기둥에는 파리가 좋아하는 피가 흠뻑 묻어 있었다. 죽은 지 이미 몇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랜들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내려다보고 나서 내 얼굴을 보았다. "머리를 부숴놨군." 하고 그가 말했다. "이것이 이 사건의 주제가 같소. 다만 이놈은 맨손으로 했어. 그러나 큰 손은 아니야. 목에 남아 있는 손가락 흔적의 크기를 봐요." "당신이 봐요. 나는 보고 싶지 않소." 하고 나는 말했다. "널티가 가엾군. 이제 단순한 검둥이 살인사건은 없어졌어." 제 31 장 핑크 반점이 있는 검은 벌레가 랜들의 깨끗하게 닦여진 책상 위를 꾸물꾸물 기어가면서, 이륙을 위한 바람의 방향을 시험해 보듯이 두 개의 촉각을 실룩실룩 움직였다. 벌레는 노파가 물건을 너무 많이 들었을 때처럼 몸을 비틀거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한 경찰이 다른 책상에 앉아 구식 송화기를 향해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터널 속에서 작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 큰 흉터가 있는 손가락에 타고 있는 담배를 끼우고 있었다. 벌레는 책상 끝까지 가더니 거기에서 바닥으로 위를 향한 채 떨어져 가느다란 다리를 가냘프게 움직이다가 잠시 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고서 겨우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방구석을 향해 꾸물꾸물 기어갔다. 벽에 설치되어 있는 확성기가 남부 산 페드로 가(街) 44번가의 '홀드 업'을 알렸다. 짙은 회색 옷을 입고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중년남자라는 것이었다. 44번가를 동쪽으로 향해 달려가다가 두 채의 집 사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경계를 요합니다." 하고 아나운서가 말했다. 그 남자는 32구경의 권총을 갖고 있으며, 남부 산 페드로 가 3966번지의 그리스 인이 경영하는 음식집을 습격하고 도망친 것이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곧 다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단조로운 어조로 도난차량의 리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리스트는 두 번 반복되었다. 문이 열리고 랜들이 타이프라이터로 친 종이를 갖고 들어왔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와서 책상에 앉으며 내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네 장 복사해 놨소. 네 장 다 사인해 주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네 장의 복사물에 사인했다. 핑크 벌레는 방구석까지 기어가서 촉각을 움직이며 이륙장소를 찾았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는데 실망하고, 다음 구석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햇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송화기로 말하고 있던 경관이 갑자기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랜들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전히 냉정하고 침착하며 필요하다면 준열하게 때로는 온화하게도 길들여진다는 태도였다. "잠시 얘기를 해두고 싶은 게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의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서요. 이제 이 사건에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좋도록 해둡시다. 우리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소." 나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지문은 없었소." 하고 그가 말했다. "어느 장소인지 알고 있을 거요. 라디오는 코드를 잡아당겨 껐지만, 켠 것은 아마 그녀였을 게요. 이것은 틀림없을 거요. 술주정뱅이가 라디오 소리를 높여놓은 거지. 장갑을 끼고 죽였거나, 권총소리 등을 없얘기 위해 라디오를 켜놨다고 해도 같은 방법으로 끌 수가 있소. 그러나 그러한 일은 없었을 거요. 게다가 여자의 목뼈가 부러져 있었소. 머리를 맞기 전에 죽인 거요. 그런데 어째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단지 듣고 있을 뿐이오." 랜들은 쓴웃음을 떠올렸다. "어쩌면 여자의 목뼈를 부러뜨려 놓은 것을 깨닫지 못했을 거요. 그만큼 여자에게 화가 나 있었던 거지. 내 추리지만." 나는 연기를 내뿜고는 얼굴 앞에서 흔들어 없앴다. "그러나 왜 화가 나 있었을까? 그가 오레곤 주의 은행습격 사건으로 플로리안의 가게에서 검거되었을 때 막대한 현상금이 지불되었소. 현상금을 받은 사람은 엉터리 변호사인데, 그 사람은 이미 죽었소. 아마 플로리안 부부도 할당을 받았을 것이오. 머로이는 그것을 의심하고 있었소.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여자에게 자백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랜들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그녀의 턱을 한번 쥐었을 뿐이오. 그리고 잘못 잡지는 않았소. 그를 체포하면 손가락 자국의 크기로 그것이 증명될 수 있을지도 모르오. 의사는 어젯밤 초저녁에 발생한 일이라고 했소. 하여간 그땐 영화관이 문을 닫지 않을 때요. 지금 단계에서는 머로이가 그곳에 갔는지 안 갔는지 알 수가 없소.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근처를 자세히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알지 못하오. 그러나 틀림없이 머로이 짓처럼 생각되오." "그렇소." 하고 나는 말했다. "틀림없이 머로이요. 그렇지만 죽일 계획은 아니었는지도 모르오. 단지 힘이 너무 섶던 거지." "그러나 살인임에는 변함이 없소." 하고 랜들이 차갑게 말했다. "알고 있소. 나는 단지 머로이가 살인을 저지를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요. 절대위기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야 죽이겠지. 그러나 취미나 돈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소. 게다가 여자를 죽일 리는 더더욱 없소." "그게 중요한 거요?" 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요. 나로서는 알 수 없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나운서가 남부 산 페드로의 그리스 인 음식점의 '홀드 업'에 대하여 그 뒤의 경과를 발표했다. 용의자가 체포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용의자는 물총을 가진 14세의 멕시코 소년이었다. 랜들은 아나운서의 발표가 끝나기를 기다린 뒤 다시 말을 꺼냈다. "우리들은 오늘 아침에 친구였소. 이대로 친구로 있고 싶소. 집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쉬는 거요. 당신은 상당히 지쳐 있어요. 이젠 마리오 살인사건이나 큰 사슴 머로이를 찾아내는 일은 나와 경찰에게 맡겨주시오." "나는 마리오 사건에 관해서는 보수를 받았소." 하고 나는 말했다. "게다가나는 실수를 했고. 그레일 부인에게도 의뢰를 받았소.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거요 -- 은퇴해서 저금한 돈으로 생활해 나가라는 겁니까?" 그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알고 있소. 나도 무리한 말은 하지 않아요. 당신들은 당당한 감찰을 받고 있지. 사무실 벽에 매달려 조망만 하기 위해 돈을 받을 수는 없을 거요. 일을 하더라도 아무도 탓할 이유는 없소. 그러나 경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좋을 것은 없소." "그레일에게 붙어 있으면 시답잖은 짓은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오." 랜들은 무슨 생각인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것이 반만이라도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우리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소." 하고 그는 잠깐 사이를 두고 말했다. "이 사건에 필요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면 당신은 반드시 곤란한 입장에 처할 거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소. 점점 경찰에게 미움받게 되어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거지." "사립탐정은 모두 그 문제에 부딪치고 있소 -- 이혼사건만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는 사람 외에는." "살인사건을 다루어서는 좋지 않소." "당신이 말하는 것은 잘 알고 있소. 나는 경찰이 할 수 없는 큰일을 하려는 게 아녜요. 내가 하려는 것은 사립탐정에 어울리는 작고 사소한 일이란 말이오." 그는 천천히 몸을 내밀었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포인세티아가 제시 플로리안 부인 집 정면의 벽을 두드리듯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매끈매끈한 회색 머리카락이 빛났다. 그리고 냉정한 눈을 내 쪽으로 돌렸다. "아까 얘기의 계속인데......" 하고 그는 말했다. "암사는 여행을 떠났소. 마누란지 비선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는 행선지를 모른다고 했소. 인디언도 모습을 감췄소. 당신은 그 무리들을 고소할 계획이오?" "아니오, 증거를 잡기가 어렵소." 랜들은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당신 이름을 들은 적도 없다고 하더군. 베이 시티의 경찰 일은 -- 만일 경찰이었다고 하더라도 내 권한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어요. 나는 이 이상 사건을 어렵게 하고 싶지 않소. 한 가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암사는 마리오 살인에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이오. 암사의 명함이 들어 있었던 담배는 어쩌면 연극일 것이오." "존더보그는?" 그는 양손을 펼쳤다. "재빠르게 도망갔소. 열쇠가 채워져 있고 빈집이 되었소. 황급히 나간 것 같소. 지문은 많이 남아 있었소. 조사하는 데 일주일은 걸릴 게요. 벽에 금고가 숨겨져 있어서 지금 열고 있는 중이오. 아마 마약이 들어 있을 테지. 그 외에도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존더보그는 아마 어딘가 경찰에 기록이 남아 있는 친구일 게요. 낙태시켰다든가, 총상을 치료해 주었다던가, 지문을 바꾸는 수술을 했다든가, 마약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든가, 그런 것으로 반드시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오." "개업의라고 했는데." 랜들은 어깨를 흔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잡힌다고 하더라도 아마 유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5년 전에 할리우드에서 마약밀매로 고발되었다가 지금 팜 스프링스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를 난 알고 있소. 죄상은 명백했지만 아무리 해도 확증을 잡을 수가 없었소. 그 외에 알고 싶은 게 있소?" "블루넷이라는 사람은 어떤 남자죠?" "도박꾼인데, 돈을 많이 벌고 있소. 큰 고생도 하지 않고." "잘 알았소." 하고 나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러나 마리오를 죽인 보석 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하군." "얘기할 수 없는 일도 있소, 말로우." "그건 알고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제시 플로리안이 두 번째로 내가 갔을 때 마리오에게 고용된 적이 있었다고 했소. 매월 돈을 보내온 것은 그 때문이라는 거지. 그 증거가 있었습니까?" "있었소. 금고 안에 그녀에게서 온 감사편지가 들어 있었소." 랜들은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이젠 됐소? 빨리 돌아가서 쉬는 게 좋을 게요." "그런 편지를 넣어두다니 그 남자도 친절한 구석이 있군." 그는 눈을 치켜올리고서 내 얼굴을 보는 듯하더니 곧 눈꺼풀을 반쯤 감고 그대로 10초 정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미소를 보내는 일은 드물다. 일주일치의 미소를 하루에 다 써버린 것 같았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게 인간의 습성이라오. 마리오는 항상 어떤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던 남자요. 악인은 누구나 도박정신을 지니고 있지. 도박에는 미신이 따르는 법이고. 제시 플로리안은 마리오의 부적이었던 거요. 마리오는 그 여자를 돌보아주고 있는 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게요." 나는 얼굴을 뒤로 돌려 핑크빛 머리의 벌레를 찾았다. 벌레는 방의 두 군데 구석을 시험해 보고, 지금은 실망하며 세 번째 구석을 향해 기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일어서서 그쪽으로 가서 손수건으로 벌레를 싼 뒤 책상으로 갖고 왔다. "보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여기는 18층이오. 이 작은 벌레는 단지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것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요. 친구란 바로 납니다. 이 벌레는 나의 부적이오." 나는 주의깊게 손수건으로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랜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었다. 입이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오는 누구의 부적이었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의 부적은 아니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빈정거렸다. "당신의 것도 아니지." 내 목소리는 보통 목소리였다. 나는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나는 급행 엘리베이터로 스프링 가(街) 입구로 나와 계단 아래에 있는 화단의 풀섶 그늘에 핑크빛 벌레를 가만히 놓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 벌레가 한 번 더 살인과까지 올라가는 데 어느 정도의 시일이 걸릴까 생각했다. 나는 아파트 뒤의 차고에서 차를 꺼내어 할리우드에서 점심을 먹은 뒤 베이 시티로 향했다. 해안은 맑게 개이고, 바람이 시원한 아름다운 오후였다. 나는 알게로 대로(大路)를 3번가에서 돌아 시청으로 차를 달렸다. 제 32 장 마을은 풍족할 텐데도 그 건물은 볼품없는 것이었다. 정면의 잔디가 거리로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떠받치고 있는 벽을 따라 부랑자들이 쫓겨나지도 않고 긴 열을 만들고 있었다. 건물은 3층인데, 옥상에 종루가 있고, 종은 늘 변함없이 매달려 있었다. 옛날엔 이 종을 울려서 뜻있는 소방대를 소집했던 것이다. 금이 간 포석의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이중문이 좌우에 열려 있었다. 그곳 시청에는 어디에나 있는 사건실이 모여 있었고,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내밀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고급 옷을 입고 있는 무리들이 모두 허물없는 태도였다. 그들은 10 센티 정도 길을 열고서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매킨리 대통령(1843~1901)의 취임식날 이래로 청소를 한 적이 없는 듯한 길고 어두운 복도였다. 목제로 된 화살표가 경찰의 접수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형의 실내 통화기를 장치한 지저분한 책상 뒤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이 졸고 있었다. 윗도리를 벗은 사복을 입은 남자가 석간에서 눈을 떼고, 3 미터 앞의 타구(가래침 뱉는 그릇)를 울리고는 하품을 한 뒤 서장실은 2층 뒤쪽이라고 했다. 2층은 약간 밝고 청결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청결하고 밝다는 뜻은 아니었다. 복도 거의 막다른 바다 쪽의 문 하나에 '서장 존 웍스 -- 들어오시오'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방안에는 낮은 목제 울짱이 있고 제복 경찰이 그 맞은편에서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내 명함을 받아들고는 하품을 하고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서장 존 웍스 -- 무단 출입을 금함'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문 저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나타내어 문을 연 채 손으로 밀어 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나는 그 문에서 서장 방으로 들어갔다. 삼면에 창이 있는 커다란 방이었다. 무솔리니의 방처럼 아득히 먼 저쪽에 책상이 있었고,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파란 융단 위를 상당히 걸어야만 했고, 걸어가는 동안에 눈이 족제비 눈처럼 작고 동그랗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 '서장 존 웍스'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이 이름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상 맞은편의 남자를 보았다. 머리카락에 짚을 꽂고 있지는 않았다. 책상 맞은편에 짧은 핑크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핑크색 머리의 피부가 들여다보이는 비만한 작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눈꺼풀이 늘어진 작은 눈이 벼룩처럼 안정되지 못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담갈색의 모직 옷에 커피색의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하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클럽의 핀을 옷깃에 꽂고, 가슴 주머니의 손수건 끝을 가지런하게 세 개로 뾰족하게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3인치를 조금 넘고 있었다. 살집이 좋은 손가락에 내 명함이 끼어 있었다. 그는 명함의 글씨를 읽고서 뒤집어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또다시 앞면의 글씨를 읽고 나서 책상 위에 놓고 원숭이 형태로 된 청동 문진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혈색 좋은 손을 내게 내밀기에 내가 잡자,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말로우 씨. 무슨 용건이십니까?" "대수롭지 않은 사건입니다.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만......" "사건?" 하고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고 하셨소?" 그는 의자 속에서 몸을 비스듬하게 하고서 두꺼운 다리를 꼬며, 창문 하나에 시선을 보냈다. 손으로 짠 라일직(織) 구두와 포도주에 담근 듯한 색의 영국풍 생가죽 구두가 내 눈에 비쳤다. 지갑 속까지 볼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500달러는 들어 있을 듯했다. 하긴 부인의 지참금이라면 문제가 될 것도 없겠지. "이 마을에는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없소, 말로우 씨." 하고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마을은 작지만 매우 깨끗한 마을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서쪽 창에서는 태평양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런 깨끗한 곳은 없을 겁니다." 그는 결코 5 킬로미터 근해에 떠 있는 두 척의 도박선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것은 말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렇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북쪽 창에서 바라보면 알게로 대로의 번화가와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언덕이 보인답니다. 창 바로 아래에는 정연한 상업지구가 있지요.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랍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남쪽 창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설비와 환경은 어디에도 지지 않는 요트 정박항이 보이지요. 동쪽에는 창이 없지만 만일 창이 있으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상적인 주택지가 보인답니다. 사건이라는 것은 이 마을에선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그럼 제가 귀찮은 일을 가지고 왔다는 뜻이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의 부하 중에 갤브레이스라는 경찰이 있습니까?"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고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이런 남자는 어떻습니까?" 나는 또 한 사람,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내 얼굴을 때린 과묵한 남자를 설명했다. "항상 갤브레이스와 함께 다니는 것 같습니다. 브레인이라고 불리더군요. 아마 아무렇게나 부른 거겠죠." "아닙니다, 아무렇게 부른 게 아니지요." 하고 서장은 말했다. "수사과장인 브레인 경감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다시 내 명함을 집어들고는 쳐다보았다. 그리고 명함을 놓고 조용하게 손을 흔들었다.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만나게 할 수 없는데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렇겠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쥴스 암사라는 남자를 모르십니까? 신경전문의라고 칭하며 스틸우드 하이츠의 언덕 위에 살고 있습니다만." "모르겠는데 -- 게다가 스틸우드 하이츠는 내 관할이 아니지요." 서장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도대체 이상하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일 관계로 암사 씨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암사 씨는 내가 협박하러 온 듯이 생각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생각할 테죠. 인디언 보디가드가 있었는데, 나는 그자에게 눌려 암사 씨에게 권총으로 얻어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경찰을 두 명 불렀죠. 그게 갤브레이스와 브레인이라는 말입니다." 웍스 서장은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눈을 거의 감고 있었지만, 두터운 눈꺼풀 사이에서 차가운 눈동자가 어렴풋이 빛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는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소?" 하고 그는 스톡 클럽의 보디가드처럼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차에 실려 어두운 길로 끌려가, 차에서 내리려는데 또 얻어맞았습니다." 그는 당연한 일을 듣고 있다는 태도로 끄덕였다. "그게 스틸우드 하이츠 사건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책상에 배가 걸려 내가 앉아 있는 곳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문은 저쪽이오." 하고 그는 왼손의 새끼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잠자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며 벨을 누르려고 했다.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리 서로 바보짓은 그만둡시다. 당신은 기껏 사립탐정인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불평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경찰이라고 해도 실수는 있는 법이니까. 나는 암사에게 빚진 것을 돌려주고 싶어서 갤브레이스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하려는 겁니다. 브레인 씨까지 번거롭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갤브레이스만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에 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후원자가 붙어 있지요." "어느 정도나?" 하고 서장은 물으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애스터 드라이브 862번지. 머윈 로크리지 그레일 씨의 저택이 있지요."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레일 부인에게 사건을 의뢰받았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문에 자물쇠를 채워 주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젊어요. 빗장도 걸어 주시오.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 주시겠소? 당신은 정직한 것 같습니다, 말로우 씨." 나는 일어서서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내가 책상 쪽으로 되돌아오자 서장은 아름다운 병과 잔을 두 개 책상 위에다 꺼내놓았다. 그는 과일 열매를 하나 장부 위에 던지고는 양쪽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우리들은 마셨다. 그가 과일 열매를 몇 개 갈라 우리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잠자코 그 열매를 깨물었다. "맛있군."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다시 잔을 채웠다. 이번에는 내가 열매를 가를 차례였다. 그는 껍질을 책상에서 바닥에 뱉어버리고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자, 들어봅시다." 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그레일 부인에게 의뢰받은 일은 암사와 관계가 있는 것이오?" "관계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그는 수화기를 들고 조끼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전화번호를 뒤지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의 헌금자 명단이오." 하고 한쪽 눈을 감아 보이며 그가 말했다. "시장으로부터 가능한 한 편의를 봐주라는 말이 있었지요." 그는 수첩을 놓고 다이얼을 돌렸다. 그때도 그랬지만 집사가 좀처럼 연결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서장은 귀가 새빨갛게 되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겨우 그녀가 나왔다. 귀는 새빨갛게 된 채였다. 그레일 부인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수화기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필입니다." 하고 서장에게 눈짓을 하며 나는 말했다. 침착하고 도발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뚱뚱보 있는 곳에서 뭘 하고 있어요?" "지금 술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술을 마셔야만 하나요?" "일인걸요. 그런데 뉴스는 좀 없습니까?" "없어요. 당신, 나를 한 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한 거 알고 있어요? 그런 일을 당하고 잠자코 있을 여자라고 생각하세요?" "엄청난 일에 걸려들어서 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밤은 어떻겠습니까?" "글쎄요. 오늘밤은 -- 대체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내 쪽에서 전화를 걸겠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약속하더라도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은 금요일이오." "거짓말쟁이." 하고 그녀는 부드럽고 쉰 목소리로 웃었다. "월요일이에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 -- 이번에는 꼭 오는 거죠?" "전화하겠습니다." "안 오면 안돼요."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소. 내 쪽에서 전화를 걸지요." "약올릴 생각이군요. 알았어요.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한 내가 바보지." "겨우 알았군요." "어머!" "나는 하찮은 사람이지만 직접 일하며 생활하고 있소. 당신처럼 놀러나 다닐 수는 없지." "지독한 사람! 이번에 만나면......" "전화를 걸겠소." 그녀는 체념한 듯이 말했다. "남자는 모두 똑같군요." "여자 역시 그렇소 -- 처음의 아홉 사람 다음은." 그레일 부인은 말을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서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놀라고 있었다. "연애중이잖아." 하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레일 씨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는 재미없는 얼굴을 하고 술잔의 술을 마셨다. 열매를 더없이 천천히 주의깊게 갈랐다. 우리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셨다. 그는 유감스러운 듯이 병과 잔을 집어넣고 나서 실내 송화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갤브레이스가 있으면 곧 들여보내 주게. 없으면 얼른 연락을 취해 주고." 나는 일어서서 문의 자물쇠를 풀었다. 잠시 뒤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헤밍웨이가 들어왔다. 그는 똑바로 웍스 서장 앞으로 걸어가서 책상 끝에 서더니 자못 경관다운 표정으로 서장을 보았다. "필립 말로우 씨라네." 하고 서장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사립탐정이지." 헤밍웨이는 얼굴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고 나를 보았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말로우 씨는 이상한 이야기를 가져오셨다네." 하고 서장은 벽걸이 뒤의 리슐처럼 교활하게 말했다. "스틸우드 하이츠에 살고 있는 암사라고 하는 남자에 관한 것이네. 점쟁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남자라고 하는구먼. 말로우 씨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자네와 브레인이 마침 그 자리에 있어 혼잡이 있었던 것 같네. 상세한 것은 잊어버렸지만." 그는 정말 상세한 것은 잊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가 잘못됐겠죠."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저는 이 남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야. 사실, 실수가 있었던 거야." 하고 서장은말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과실은 과실이라네. 말로우 씨는 그러나 그런 일엔 마음쓰지 않는다네." 헤밍웨이는 다시 나를 보았다. 역시 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 " 하고 서장은 말을 계속했다. "한 번 더 암사를 만나러 가는 데 대해서, 누가 함께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네. 그래서 자네를 보내려고 생각한 거지.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 암사 곁에는 인디언 보디가드가 있어서 말로우 씨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는 거야. 암사의 저택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그러나 스틸우드 하이츠는 관할외 구역입니다. 직무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그렇다네." 하고 서장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법률에 저촉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네." "알았습니다." 헤밍웨이가 말했다. "언제 가는 겁니까?" 서장은 점잖은 체하며 내 얼굴을 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좋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갤브레이스 씨만 좋다면." "저는 서장님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서장은 뭔가를 찾는 듯한 눈빛으로 헤밍웨이를 쳐다보았다. "브레인은 어떤가 ?" 하고 그는 열매를 베어먹으며 물었다. "역시 맹장이었습니다. 중태인 것 같습니다." 서장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나서 의자의 팔걸이를 잡고 일어서서 내 쪽으로 윤기 좋은 손을 내밀었다. "갤브레이스를 동행시키겠소."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오, 감사할 것까지는 없소.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친구를 위한 일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헤밍웨이는 서장의 표정을 더듬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서장에게 정중하게 전송받으며 복도로 나왔다. 문이 닫혔다. 헤밍웨이가 복도를 둘러보고 나서 나를 보았다. "잘했소."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들이 듣지 못한 것을 좀 알고 있군요." 제 33 장 차는 주택가를 조용하게 달리고 있었다. 양쪽의 가로수 잎이 머리 위에 겹쳐져 있어 녹색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녹색 잎사귀 사이에서 태양광선이 길거리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길모퉁이의 표지판에 18번가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헤밍웨이가 운전하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무슨 생각인가를 하며 천천히 차를 달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얘기했소?" 하고 그는 겨우 결심한 듯이 말했다. "당신과 브레인이 나를 차에서 내리라고 하고서 뒤에서 때렸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 뒤의 일은 얘기하지 않았소." "디스카슨 가 23번가의 일은 얘기하지 않았소?" "얘기하지 않았소." "어째서?" "그래야만 당신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래요?-- 정말로 스틸우드 하이츠로 갈 거요? 그렇지 않으면 구실인 게요?" "구실이오. 왜 나를 그 도깨비집으로 데려갔고, 또 왜 가둬놓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소." 헤밍웨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특별히 당신에게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점쟁이 선생과 친구요. 늘 협박하러 오는 놈이 있어서 이따금 우리들이 나가곤 했지. 당신이 놀랄 정도로 협박하러 가는 놈들이 많이 있거든." "놀랍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머리를 내게 향했다. 회색 눈이 얼음덩어리 같았다. 그리고 먼지쌓인 정면 유리창을 통해 거리의 경치로 얼빠진 눈을 던지며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이따금 사람을 때리고 싶어지는 법이지." 하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놀랐소. 당신은 시멘트 자루처럼 늘어난 것을 아시오? 나는 브레인에게 불평을 했소. 존더보그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 것은 마침 가까웠고, 또 친절한 남자라서 돌보아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을 암사는 알고 있었소?" "알지 못했소. 우리들의 생각으로 데려갔으니까." "그곳이라면 뒤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안 그렇소? 내가 고소하려 해도 진단서를 써줄 의사가 없기 때문이겠고. 하긴 정식으로 고소해 봤자 이 마을에서는 받아들여지지도 않겠지만......" "고소할 계획이오?" 하고 헤밍웨이가 물었다. "아니오. 고소하지 않겠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당신의 목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소. 서장의 눈빛으로 알았을 것이오. 내게는 유력한 후원자가 붙어 있어." "알고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창으로 침을 뱉었다. "다음은 뭐요?" "브레인은 정말로 병들었소?" 헤밍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도 동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께 갑자기 배가 아파오더니 맹장이라고 판명이 났소. 하지만 수술할 때가 맞지 않아서. 살아날 가망은 있지만, 확실히 말할 순 없소." "죽기에는 아깝군." 하고 나는 말했다. "어느 경찰서에서든 그와 같은 남자는 구하기 어려운 인재인데." 헤임웨이는 내가 말한 것을 잠자코 이해하며 차창 밖으로 침을 내뱉었다. "오케이, 다음 질문은?"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존더보그에게 데려간 이유를 얘기해 주었소. 그러나 왜 48시간이나 감금했고, 또 마약까지 주사했는지 그 이유는 얘기해 주지 않았소." 헤밍웨이는 조용하게 브레이크를 걸어 차를 길모퉁이에 세웠다. 그리고는 커다란 손을 핸들 아래쪽에 놓고 엄지손가락을 가만히 문질렀다. "나로서도 모르는 일이오." 하고 그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을 조사하면 사립탐정이라는 것은 곧 알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나는 말했다. "열쇠도 있었고, 돈도 갖고 있었소. 게다가 사진도 두 장 갖고 있었소. 만일 그 의사가 당신들과 연락이 없다고 하면 내가 머리를 얻어맞은 것은 나를 그 병원에 집어넣고 정세를 살피려는 트릭이라고 생각했을 게요. 그러나 결과를 보면 그 의사는 당신들과 연락이 있었던 것 같소. 나는 그 점을 잘 모르겠소." "모르는 게 좋소. 그쪽이 안전하니까." "그러나 마음은 가라앉질 않소." "이 사건에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관계하고 있소?" "어느 사건 말이오?" "존더보그의 사건." "관계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오." "그것으로는 대답이 안되는데." "내게는 그 정도의 힘이 없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손을 대고 싶으면 언제라도 손을 댈 수는 있을 것이오. 경찰이 방임한다고 해도 보안관이 있고, 검사도 있소. 검사국에는 내 친구가 있소. 나는 검사국에 근무한 적이 있거든. 친구는 바니 올스라고 하고, 조사주임이오." "그 남자에게 얘기했소?" "아니오, 얘기하지 않았소. 벌써 1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지." "얘기할 작정이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얘기하지 않을 거요." "비밀업무요?" "그렇소." "오케이. 뭐가 알고 싶은 게요?" "존더보그의 진짜 직업." 헤밍웨이는 또 창으로 침을 뱉었다. "이 근방은 좋은 곳이겠지? 멋진 저택이 늘어서 있고, 마당도 멋지지. 공기도 좋아요. 당신은 불량경찰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소?" "가끔 들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이러한 곳에 살고 있는 경찰이 몇 사람이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네댓 명 알고 있죠. 모두 풍기반 녀석들이지. 맛있는 국은 모두 그놈들이 마시고있답니다. 우리 동료들은 모두 더러운 거리의 낡아빠진 집에 살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보시겠소?" "보면 무엇을 알 수 있나?" "자, 들어보시오." 하고 헤밍웨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당신은 내 목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소. 가느다란 실이든 뭐든 틀림없이 지금은 연결되어 있지. 그러나 언제 끊어질지 몰라요. 경찰은 돈이 탐나서 나쁜 짓을 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나쁜 짓을 시키는 것은 돈이 아녜요. 조직이지.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으면 목이 날아간다오. 그 명령도 훌륭한 옷을 입고, 그 커다란 훌륭한 방에 들어가, 좋은 술냄새를 맡으며, 그 열매를 깨물고 있으면 제비꽃 향기가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린다는 뜻은 아니오. 알겠소?" "이곳 시장은 어떤 사람이지?" "어느 도시에서든 시장은 대체 어떤 사람이죠? 모든 명령을 그가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지금 미국이 어떤 나라로 되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소?" "동결자본이 너무 많다고 들었소." "정직하게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거요."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그게 이 나라의 병폐지.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다고요. 풀먹인 셔츠를 입고 작은 여행용 가방을 든 연방경찰관이 9만 명 들어오면 그것으로 무사태평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죠. 그자들도 역시 우리들과 똑같은 입장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을 한 번 더 다시 건설하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도덕적 재무장(再武裝)이라는 것 말이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베이 시티가 그 견본이라면 나는 아스피린이라도 먹어야겠소." "당신은 그런 말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군." 하고 헤밍웨이는 한심한 듯이 말했다. "재치 있는 이야기나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어. 나는 머리가 없는 경관이오.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소. 아내와 두 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겝니다. 브레인이라면 좀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오." "브레인은 틀림없이 맹장염이오? 세상이 싫어져서 배에 권총을 처넣은 건 아니고?" "지독한 말은 하지 말아요." 하고 헤밍웨이는 불평을 했다. "불쌍하게도." "브레인이 말이오?" "그 남자도 인간이에요.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 나쁜 일을 하지만 인간이란 말이오." "존더보그의 직업은 뭡니까?" "알았소. 지금 말하려고 생각했었소. 내가 틀렸는지도 모르겠군. 당신은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가 무슨 직업인지 모르는군." 하고 나는 말했다. 헤밍웨이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았다. "이런 건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 " 하고 그는 말했다. "좋소. 나나 브레인이 존더보그가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감시하고 있었다면 당신을 그곳으로 데려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당신도 역시 그곳에서 살아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오. 그렇지만 보통 직업은 아니오. 수정 구슬을 보고 할머니의 운세를 점치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살려보낼 계획은 아니었을 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스코포라민이라는 약이 있소. 의식을 잃게 하여 여러 가지 일을 떠들게 하는 약이지. 최면술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는 할 수 없소. 그러나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오. 틀림없이 내게서 캐어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설령 내가 그의 불이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을 알고 있었다 해도 존더보그가 어떻게 내게 초점을 맞췄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소. 암사가 그에게 얘기했던가, 큰 사슴 머로이가 내가 제시 플로리안을 만나러 갔었다는 것을 그에게 얘기했던가, 그렇지 않으면 나를 속이는 것이 경찰의 트릭이라고 생각했던가, 이 세 가지요." 헤밍웨이는 묘한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슨 일인지 통 모르겠는데." 하고 그는 말했다. "큰 사슴 머로이라는 자는 누구요?" "며칠 전에 센트럴 가에서 살인을 한 몸집이 큰 남자요. 인상착의서가 돌았을 텐데." "그자가 어떻게 됐는데?" "존더보그가 숨겨놓고 있었소. 내가 탈출하던 날 밤에 그가 침대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지." "어떤 방법으로 탈출했소?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간수를 침대 스프링으로 때려눕혔소. 뭐, 운이 좋았던 거지." "그 몸집이 큰 남자는 당신 모습을 보았소?" "보지 못했소." 헤밍웨이는 갑자기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가봅시다." 하고 그는 말했다. "이치가 맞는군. 존더보그는 지명수배자를 숨겨놓고 있었소. 돈을 갖고 있는 사람만을 숨겨놓는 거지. 그 병원은 숨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거든. 그런 녀석들은 돈이 되기 때문이오." 차는 길 모퉁이를 돌아 스피드를 냈다. "지금껏 놈은 마약을 팔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하고 헤밍웨이는 화가 치민 듯이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은 보잘것없는 장사였었군." "물론 보잘것없는 장사죠. 그것뿐이라면." 헤밍웨이는 또 길모퉁이를 돌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소. 핀볼이나 빙고나 장외마권실이나 다 똑같은 거지. 그렇지만 그놈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한 사람이라면 대단한 겁니다." "누굽니까?" 그는 돌처럼 잠자코 있었다. 입을 꽉 다물고서 이를 맞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디스카슨 가를 동쪽으로 달렸다. 벌써 저녁이 가까웠지만 그래도 거리는 조용했다. 23번가에 접근하자 어쩐지 거리의 공기가 조용하지는 않았다. 두 남자가 야자나무를 바라보며 어떻게 움직이게 할까 의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 한 대가 존더보그의 집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반 블럭 앞에서 한 남자가 수도계량기를 조사하고 있었다. 낮에 보니까 상당히 아름다운 집이었다. 거리로 향한 창 아래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베고니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카시아의 하얀 꽃 밑동을 팬지꽃이 에워싸고 있었다. 부채꼴의 쪽문에는 새빨간 덩굴장미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스위트 피의 화단엔 청동을 생각나게 하는 녹색의 벌새가 내려와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노부부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황혼이 가까워지자 태양이 조용하고 차분한 광선을 던지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그 집 앞을 천천히 지나쳐 갔다. 작고 단단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코가 실룩실룩 움직였다. 그는 다음 모퉁이를 돌아 백미러를 들여다보고 차의 속력을 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이오." 하고 그가 말했다. "야자나무 옆에 있었던 놈 중 하나는 드넬리라고 하는 친구고. 저택을 감시하고 있어요. 당신은 경찰에는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했소." "서장이 부루퉁해 있어요." 하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와서 단속을 하고 있으면서, 서엔 인사도 하러 오지 않았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큰 사슴 머로이라고 하는 자를 잡았습니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아는 한은 아직 잡지 못했소." "아는 한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잘은 모르겠소. 암사와 존더보그는 연락이 오갑니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아니오." "이 도시는 누가 좌지우지하고 있소?" 침묵. "나는 레어드 블루넷이라고 하는 도박집이 시장을 선거하는 데에 3만 달러를 냈다는 말을 들었소. 벨베디아 클럽의 경영자이며, 도박선 두 척이 다 그의 것이라고 합디다만......"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헤밍웨이는 열의가 없는 듯이 말했다. "어디로 가면 블루넷을 만날 수 있소?" "왜 내게 묻는 거요?" "이 도시에서 숨을 곳이 없다면 어디로 달아나지?" "멕시코." 나는 웃었다. "그렇겠군......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소?" "좋소." "번화가까지 되돌아갑시다." 그는 차를 출발시켜 수목이 울창한 도로를 해안 쪽으로 향했다. 잠시 뒤 차는 시청 앞으로 와서 경찰용 주차장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또 오시오. 나는 휴지통을 청소하게 될지도 몰라요." 헤밍웨이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쁘게는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소." "'도덕적 재무장'이오." 하고 말하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헤밍웨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내가 그와 헤어져 걸어가려고 하는데 헤밍웨이가 등뒤에서 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주위를 주의깊게 둘러보고서 내 귀 옆으로 입을 댔다. "도박선은 두 척 다 이 도시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정박하고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주의 법률도 미치지 않아요. 적(籍)은 파나마에 있어요. 만일 나라면......"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우물거렸다. "알았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오. 내 일은 염려하지 마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덕적 재무장'입니다." 하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제 34 장 나는 바다에 가까운 호텔의 침대에 드러누워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바다에 인접한 작은 방인데, 침대는 단단하고 매트리스는 담요보다 조금 두꺼울 뿐이었다. 스프링이 망가져 있었고 등 왼쪽이 아팠다. 빨간 네온사인이 천정에 반사되어 방의 공기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로 앞의 스피드 웨이라고 불리고 있는 도로에서는 차 경적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통행인의 발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공기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공기는 썩어가는 기름냄새를 함유한 채 잔뜩 녹슨 쇠살문에서 방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멀리서 물건을 팔러다니는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오세요, 맛이 기막히답니다! 핫도그, 오세요!" 밖이 어두워져 갔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생각했다. 입가에 검은 피가 엉겨붙은 채 달이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생명을 잃은 두 개의 눈. 부서진 침대 기둥을 피로 물들이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불결한 여자. 뭔가를 두려워하면서, 그것이 뭔지 모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도 내리지 못한 아름다운 금발의 남자. 마음대로 하려고 생각만 하면 문제없는 미모의 부인. 그것과는 다른 의미이지만, 이쪽이 나가는 태도대로 역시 마음대로 되는 이상한 아가씨. 헤밍웨이와 같은 본성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점이 있는 불량경찰. 웍스 서장과 같은, 경찰이라고 하기보다는 상공회의소의 고문을 생각나게 하는 경찰관. 랜들과 같은, 솜씨도 있고 직무에도 충실하면서도 그 민완과 성실을 공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경찰.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는 널티와 같은 경찰. 인디언. 신경전문의. 마약을 파는 의사...... 나는 언제까지나 생각하고 있었다. 밖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빨간 네온사인의 빛이 방안을 한층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발을 바닥에 대고 목뒤를 문질렀다. 나는 일어서서 방구석의 세면대로 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닦았다. 약간 기운이 났지만 마음속은 아직도 무거웠다. 나는 술이 필요했다. 고액의 생명보험이 필요했다. 휴가가 필요했다. 시골의 별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은 윗도리와 모자, 권총뿐이었다. 나는 그 세 가지를 몸에 지니고서 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나는 고약한 냄새가 떠도는 복도를 걸어 아래로 내려가 카운터에 열쇠를 내던지고는 나간다고 했다. 왼쪽 눈꺼풀에 사마귀가 있는 카운터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닳아 떨어진 제복을 입은 멕시코 보이가 내 가방을 가져오려고 뛰어왔다. 내가 가방을 갖고 있지 않자 그는 다만 정면의 문을 열고 미소를 지었다. 호텔 밖은 좁은 도로였다. 도로를 사이에 둔 맞은편은 빙고 게임 가게로, 게임은 지금 최고조였다. 그 옆의 사진관에서는 여자를 동반한 두 명의 수병(水兵)이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며 나왔다. 낙타에 올라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핫도그 판매원의 외침소리가 어둠 속으로 매우 소란스럽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청색 버스가 원래는 노면전차의 종점이었던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뒤 희미하게 바다냄새가 났다. 정말 희미한 냄새였다. 마치 여기가 일찍이 파란 파도가 밀어닥치고 차가운 바람이 분 아름다운 해안으로, 뜨거운 호흡과 차가운 땀으로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려는 듯한 희미한 냄새였다. 폭 넓은 콘크리트 산책도로에 자그마한 유람전차가 오기에 나는 그것을 타고 종점에서 내려 조용하고 시원한 벤치에 앉았다. 바로 발 밑엔 갈색 해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바다에서는 도박선에 불이 켜졌다. 나는 다음 유람전차를 타고 호텔 앞까지 되돌아왔다. 나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행하는 사람이 있는 기미는 없었다. 이 평온한 마을엔 탐정이 몰래 움직일 정도의 범죄는 없나 보다. 어두운 선착장이 서치라이트에 비춰져 그 길이를 보이고 나서, 다시 밤의 물과 어두운 배경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직도 값싼 기름냄새는 남아 있었지만 바다냄새가 코를 찔렀다. 핫도그 판매원이 여전히 소리지르고 있었다. "배 고프지 않으십니까! 맛있는 핫도그요!" 그 남자는 새하얗게 칠해진 간이음식점 안에서 긴 포크를 들고 소시지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아직 봄인데도 장사는 상당히 잘되고 있었다. 나는 손님이 없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저기 멀리 있는 것은 뭐라고 하죠?" 하고 코를 바다 쪽으로 쑥 내밀고 나는 물었다. "몬테시트."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돈만 있으면 놀러갈 수 있는 겁니까?" "어떤 놀이 말인가요?" 나는 웃었다. 차갑고 대담한 표정으로 웃을 작정이었다. "핫도그." 하고 그는 외쳤다. "핫도그를 맛보세요." 그리고 나서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잡니까?" "아니오, 조용한 방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쐬고 싶은 거요. 이를테면 휴양이지." 그는 내 곁에서 떨어졌다. "당신이 말하는 건 전혀 모르겠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핫도그!" 하고 외쳤다. 간이음식점에는 또 손님이 있었다. 왜 그에게 물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셔츠 차림의 젊은 두 사람이 핫도그를 사고, 남자가 여자의 브래지어로 팔을 돌려 서로 상대의 핫도그를 먹으며 걷고 있었다. 핫도그 간이판매점의 판매원은 내 쪽으로 발을 옮겨와 나를 살펴보았다. "지금 '피카딜리의 장미'를 휘파람으로 불어야 합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저기에 가려면......" "얼마나 필요하지?" "50달러. 그 이하는 안됩니다. 상대편에서 당신에게 볼일이 있다면 다르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마을이었다. "이곳은 좋은 마을이었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왜 내게 묻는 거죠?" "별 이유는 없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1달러짜리 지폐를 카운터 위에다 던졌다. "저금통에 넣어두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피카딜리의 장미'를 휘파람으로 부르는 거요." 그는 지폐를 들고서 잘게 접어 카운터 위에 놓고서, 오른손의 가운데손가락을 엄지손가락 안쪽에 대고 퉁겼다. 접혀진 지폐가 내 가슴에 가볍게 맞고 소리없이 땅에 떨어졌다. 나는 몸을 구부려 주워들고는 얼른 뒤를 보았다. 내 뒤에 탐정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서 다시 한 번 지폐를 놓았다. "돈을 내게 내던진 사람은 없소."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든 손으로 건네주지. 그렇게 주지 않겠소?" 그는 지폐를 집어 정중하게 편 뒤 앞치마로 닦았다. 그리고 나서 금전등록기를 울리고는 그 속에 지폐를 처넣었다. "돈은 더럽지 않아서 말이죠." 하고 그는 말했다. "이따금 이상하게 생각되죠." 나는 잠자코 보고 있었다. 몇몇 손님이 핫도그를 사고는 떠났다. 밤공기는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로열 크라운 호에는 가더라도 소용없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저 배로 가는 사람은 풋내기 손님들뿐입니다. 당신은 탐정이겠죠? 로열 크라운 호에 볼일이 있을 리는 없지요. 하지만 수영에 자신이 있습니까?" 나는 어떻게 이 남자가 나를 알아봤을까 생각하며 카운터를 떠났다. 육감으로 맞춘 것일 게다. 눈을 감고 메뉴를 내민 것만으로는 커피를 주문할 수 없다. 육감으로맞춘 것일 게다. 나는 이 근처를 걸어다니며 내 뒤를 미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고서 아무도 미행하고 있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기름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점을 찾았다. 보라색 네온사인을 내걸고. 발로 칸막이가 쳐진 칵테일 바가 있는 음식점이었다. 여자 같은 예쁘장한 남자가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힘없는 목소리로 '별로 향하는 계단'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드라이 마티니를 두 잔 마시고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85센트의 정식은 버려진 우편행낭과 같은 맛이었다. 내게 서비스를 한 종업원은 25센트로 나를 권총으로 쏘고, 75센트로 내 목을 꺾으며, 1달러 50센트로 나를 콘크리트 통에 처넣어 바다에 버릴 것 같은 남자였다. 제 35 장 25센트로 탈 수 있었다. 낡고 작은 증기선에 새 페인트를 칠하고, 4분의 3정도 넓이의 유리방을 만들어놓은 수상 택시는 정박해 있는 요트 사이를 빠져나가 방파제의 돌출된 끝을 돌아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다.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보트가 흔들렸다. 아직 시간이 일렀으므로 승객은 나 외에 세 쌍의 아베크 족이 있을 뿐이었다.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로, 오른쪽 바지 뒷주머니에 검은 가죽으로 된 권총 주머니를 차고 있었기 때문에 왼쪽 엉덩이로 앉아 있었다. 세 쌍의 아베크족은 배가 벼랑에서 멀어지자 곧 서로 상대의 얼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베이 시티의 불빛을 뒤돌아보고는 배멀미를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흩어진 빛의 점을 연결하니 밤의 쇼윈도에 장식된 보석이 박힌 반지가 생각났다. 잠시 뒤 그 빛이 약해지고 부드러운 오렌지색으로 변하며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시작했다. 하얀 물마루가 서지 않는 크고 완만하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고 나는 식사에 바의 위스키를 섞어 먹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상 택시는 코브라가 춤추듯이 그 넘실거리는 파도 위를 미끈하게 미끌어져 갔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로열 크라운 호의 붉은 네온이 새 유리구슬처럼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희미하게 음악이 물 위로 흘러나왔다. 물 위를 흐르는 음악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로열 크라운 호는 선착장처럼 꼼짝않고 있었다. 트랩은 극장의 바깥처럼 전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얼마 뒤 불빛도 음악도 아득히 먼 저쪽으로 사라지고 또 하나의 낡고 작은 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다지 돋보이는 배는 아니었다. 금속판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나 있는 낡은 화물선을 개조한 것으로, 선체의 상부를 보트 갑판 높이까지 잘라놓고 그 위에 그루터기 같은 돗대가 두 개 튀어나와 라디오의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몬테시트 호도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음악이 어두운 바다에 흐르고 있었다. 서로 껴앉고 있었던 아베크족들은 상대의 목을 물고 늘어지던 이빨을 떼고서 배를 올려다보며 기쁜 듯이 웃었다. 수상 택시는 크게 커브를 그리며 승객에게 스릴을 맛보게 할 정도로 선체를 기울여 몬테시트 호의 트랩에 갖다댔다. 수상 택시 모터가 안개 속으로 예리한 소리를 냈다. 갑판의 서치라이트가 50미터 정도의 수면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금단추의 청색 예복을 입은, 눈이 예리한 젊은 사람이 여자들에게 손을 빌려줘 수상 택시에서 끌어올렸다. 나는 마지막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그의 눈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됩니다." 하고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돌아가시오."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는 수상 택시의 남자 쪽으로 턱을 치켜올려 신호했다. 수상 택시의 남자는 트랩 기둥에 보트를 묶어놓고 내 뒤로 올라왔다. "권총은 사절합니다. 유감이지만 돌아가 주시오." 하고 예복의 젊은 남자가 말했다. "맡기면 될 테죠. 블루넷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그런 사람은 모르오." 하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시오." 수상 택시의 남자가 내 오른팔을 잡았다. "블루넷을 만나고 싶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는 노파의 목소리처럼 가냘펐다. "말다툼은 그만둡시다." 하고 눈이 예리한 젊은 남자가 말했다. "여기는 베이 시티가 아니오. 캘리포니아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오. 돌아가 주시오." "배로 갈 수는 없소." 하고 수상 택시의 남자가 등뒤에서 말했다. "25센트를 돌려주지 않으면 말이오. 돌아갑시다." 나는 수상 택시로 되돌아왔다. 택시의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웃고 있는 얼굴에서 웃음이 없어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잠시 뒤 얼굴도 없어지고, 마침내 그의 몸 전체가 하나의 검은 점이 되었다. 돌아가는 수상 택시는 길었다. 나는 수상 택시의 남자에게 말을 하지 않았고, 그도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선착장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내게 25센트 은화를 건네주었다. "단념하시오." 하고 그는 열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이 되지 않소." 수상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6명의 손님이 그 소리를 듣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 사이를 헤치고 초라한 대합실을 빠져나가 해안으로 통해 있는 가교를 건너갔다. 얇은 고무창 구두를 신고, 너덜너덜한 바지에 볼품없는 선원의 파란 제복을 입은 빨간 머리의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가 기대고 있던 선반에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몸을 부딪쳤다. 뺨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나는 발을 멈추었다. 나보다 8센티 정도 크고, 15 킬로 정도 무거운 덩치가 큰 남자였다. 그러나 설령 팔이 마비되는 듯한 일을 당하더라도 잠자코 있을 수는 없는 기분이었다. 불빛은 어둠침침하고 거의 그의 등뒤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요?" 하고 그가 느린 어조로 말했다. "지옥선에서 우려먹힌 거요?" "그만두시오!" 하고 내가 말했다. "당신이 알 바 아니잖소." "더 지독한 일을 당할 수도 있소." "그게 당신과 관계가 있소?" "아니오, 다만 물어본 것뿐이오.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 "그럼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마시오." "알았소. 나는 여기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고 있을 뿐이오." 그는 생기없는 미소를 보냈다. 그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부드러워, 덩치가 큰 사람의 목소리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호의를 느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목소리, 상냥하고 몸집이 큰 큰사슴 머로이를 내게 생각나게 했다. "오해하지 마시오." 하고 그는 슬픈 듯이 말했다. "날 레드라고 불러 주시오." "비켜 주시겠소, 레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해요. 나도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는 조심스런 눈매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몬테시트 호에 가고 싶소? 뼈가 부러져도 좋소? 사리에 맞는 이유만 있다면." 화려한 옷을 입고 밝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우리들 옆을 지나 수상 택시에 탔다. 나는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이유는 얼마요?" "50달러. 내 보트를 피로 더럽히면 10달러 더 받소." 나는 아무 말 않고 걸어가려고 했다. "20달러로 합시다." 하고 그가 말했다. "친구들을 데려가 주면 15달러씩이라도 좋소." "친구들은 없소." 하고 말한 뒤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임신부도 놀라지 않도록 조그만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작은 전차가 운행되고 있는 콘크리트 산책도로를 걸어갔다. 조금 가니까 손님이 넘치는 떠들썩한 빙고 가게가 있었다.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벽을 뒤로 하고 섰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나란히 서서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전기장치의 표시판에 몇 개의 숫자가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고는 아나운서가 그 숫자를 큰소리로 읽는 것을 들으며 야바위꾼이 없나 둘러보았지만 누가 야바위꾼인지 알 수 없어 그대로 가게를 나오려고 했다. 콜타르 냄새가 나는 파란 옷을 입은 조금 전의 덩치가 큰 남자가 내 옆으로 왔다. "돈이 없는 거요 -- 그렇지 않으면 돈을 내고 싶지 않은 거요?" 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내게 속삭였다. 나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얘기는 듣고 있었지만 본 적이 없는 눈을 갖고 있었다. 제비꽃 빛깔의 눈이었는데 거의 보라색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아가씨의 눈 같았다. 피부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것 같았다. 희미하게 붉은기를 띠고 있었지만, 결코 햇볕에 탄 적이 없는 피부였다. 헤밍웨이보다도 몸집이 크고, 나이는 훨씬 젊었다. 큰 사슴 머로이만큼 몸집이 큰 남자는 아니었지만, 달리면 빠를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금색으로 빛나는 빨강이었다. 그러나 보라색 눈 외에는 평범한 사람의 용모였다. 연극에 나오는 것 같은 친밀감 있는 용모는 아니었다. "직업이 뭐요?" 하고 그가 물었다. "사립탐정이오?" "왜 당신에게 말해야 하지?" 하고 나는 거친 어조로 말을 되받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오." 하고 그는 말했다. "25달러면 비쌉니까? 실비는 따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소?" "받을 수 없소." 그는 깊은 숨을 토했다. "글쎄, 쓸데없는 참견인지도 모르지만 -- " 하고 그는 말했다. "그곳에 가면 무사하게는 돌아올 수 없소." "그런 건 알고 있소. 당신 직업은 뭐요?" "여기서 1달러, 저기서 1달러 하는 거지. 경찰에 근무한 적도 있소. 목이 잘린 거요." "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그는 놀란 것 같았다. "사실을 말하는 거요." "블루넷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소?" 그는 잠자코 미소를 지었다. 연달아 세 번 빙고가 터졌다. 그들이 하는 것은 재빨랐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볼이 움푹 패인, 키가 크고 얼굴이 뾰족한 남자가 우리들 옆으로 다가와 벽에 기댔다. 그는 우리들 쪽을 보지 않았다. 레드는 가만히 그 남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우리들에게 용건이 있는 거요?" 키가 크고 얼굴이 뾰족한 남자가 쓴웃음을 떠올리며 떨어졌다. 레드는 싱글싱글 웃으며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빙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에게 지지 않는 몸집이 큰 남자를 만난 적이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몸집이 큰 남자가 더 많이 있으면 좋죠." 하고 그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몸이 크면 돈이 들죠. 몸집이 큰 남자를 시간에 대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요. 밥을 먹거나 옷을 입어도 돈이 들고, 침대에서 다리를 오므리고 잘 수도 없죠 -- 말하기 거북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얘기를 하기에는 여기가 가장 좋아요. 형사는 내가 얼굴을 알고 있고, 다른 놈들은 모두 빙고에 정신이 팔려 있소. 그리고 보트는 내가 빌리겠소. 맞은편에 불이 켜지지 않는 선착장이 있소. 몬테시트 호의 화물선적 입구인데, 내가 열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소. 가끔 그곳으로 화물을 운반한 적이 있거든. 선창에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오." "서치라이트가 있고 파수꾼도 있을 텐데." 하고 나는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죠." 나는 지갑에서 20달러 지폐와 5달러 지폐를 꺼내어 작게 접었다. 보랏빛 눈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내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도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콜타르가 밴 손이 지폐를 받았다. 그는 소리도 없이 걷기 시작하여 바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코가 뾰족한 남자가 내 왼쪽에서 갑자기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선원 옷을 입은 남자는 본 적이 있어요. 친구요?"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벽에서 떨어져 밖으로 나왔다. 30 미터 정도 앞에 커다란 머리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2분 정도 미행하고 나서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터로 돌아갔다. 코가 뾰족한 남자가 모습을 나타내고 땅을 보면서 그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25센트로 당신의 체중을 알아맞출까?" 나는 몸을 그에게 꽉 눌렀다. 너덜너덜한 옷 속에 권총이 있었다. 그는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잡고 싶소? 나는 이 근처를 단속하러 온 거요." "잡을 이유가 있는 거요?" "그 당신 친구는 본 기억이 있소." "있을 게요. 경찰이니까." "그래요?" 하고 코가 뾰족한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건가? 그럼, 실례하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원래 왔었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커다란 남자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 남자에 대해선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제 36 장 작은 유람전차의 종점을 지나자 팝콘 냄새와 기름 끓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높다란 아이들의 외침소리나 가설흥행장의 손님 끌어들이는 고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바다냄새가 강해지며 물가에 작은 거품이 되어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들려왔다. 걷고 있는 것은 나 혼자로 좋았다. 소음은 아득히 먼 저쪽으로 사라지고, 칙칙하던 불빛도 빨갛게 물들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뒤 불이 켜지지 않은 검은 선착장에서 어둠의 바다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선착장을 바다 쪽으로해서 걸어갔다. 빈 상자에 앉아 있던 레드가 일어서서 말했다. "이 앞으로 가서 기다려 주시오. 모터보트를 이쪽으로 돌릴 테니까." "형사가 미행해 왔었소. 빙고 가게에 있던 남자요. 잠시 얘기를 하고 왔지." "올슨이라는 사람인데, 소매치기 담당이오. 좋은 사람이지. 다만 이따금 지갑으로 잔꾀를 부려 체포 기록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하죠. 그런 정도는 너무 좋은 사람인가?" "베이 시티라면 당연한 일이었을 거요. 나갑시다. 바람이 불고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안개가 걷히지 않을 동안에 나갑시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요." "서치라이트는 속일 수 있소." 하고 레드가 말했다. "그런데 보트 갑판에 기관총을 쌓아놓았죠 -- 그럼, 기다려 주시오." 레드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어두운 판자 위를 발을 미끌어뜨리며 걸어갔다. 지저분하고 낮은 난간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남녀가 일어서더니 남자가 즉석대사를 남기며 떠나갔다. 10분간 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어둠 속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회색 날개가 나의 눈앞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아득한 상공에서 비행기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먼 곳에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또 몇 분이 지났다. 나는 선착장의 돌출된 계단을 고양이가 젖은 바닥을 걸을 때처럼 조심해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이고, 무엇인가가 덜커덕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가 되었소. 타시오." 나는 모터보트에 타서 레드 옆에 앉았다. 배는 물 위를 미끌어지기 시작했다. 엔진은 규칙적으로 작은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베이 시티의 불빛이 멀어져 갔다. 또다시 로열 크라운 호의 눈부시게 화려한 불빛이 해면에 비춰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그 몬테시트 호의 모습이 어두운 태평양 속에서 나타나고, 해상을 어루만지며 돌아가는 서치라이트의 빛줄기가 등대의 불빛처럼 보였다. "무서워졌소." 나는 갑자기 말했다. "나는 무서워졌어." 레드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대로 배를 미끌어뜨렸다. 배는 정지한 채 파도가 움직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하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죽음과 실의가 두렵소." 하고 나는 말했다. "어두운 바다와 물에 빠진 인간의 얼굴과 눈알 자리가 텅빈 해골이 두렵소. 죽는다는 것과,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과, 블루넷이라고 하는 남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두렵소." 그는 웃었다. "무슨 말을 하나 했지. 스스로에게 좋게 들려주고 있는 거요. 블루넷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두 척의 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죠. 리노에 있을지, 슬리퍼를 벗고 저택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을지 -- 당신의 목적은 그를 만나는 것뿐이오?" "머로이라는 남자를 찾고 있소. 은행강도로 오레곤 주의 감옥에 8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던 몸집이 큰 남자요. 베이 시티에 숨어 있었소." 나는 머로이에 관한 것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까지도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눈이 그렇게 하게끔 시킨 것일 게다. 그는 내 얘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콧수염에 붙은 물방울과 같은 작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듯하게 들렸는지, 아니,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조리가 닿는 점도 있소." 하고 그는 말했다. "닿지 않는 점도 있고, 알고 있는 점도 있소. 만일 그 존더보그가 용의자를 숨겨주고, 마약을 판매하고, 부잣집 여자들의 보석을 노렸다고 하면 시의 높으신 분네들과도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높으신 분네들이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모든 경찰이 그와 당국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소. 브레인은 알고 있더라도 당신이 말하는 헤밍웨이는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브레인은 틀림없이 못된 짓을 했을 게요. 다른 동료는 단지 뻣뻣한 얼굴의 경찰인 거지. 선량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오. 정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악인은 아니오. 경쟁심은 강하지만, 나와 똑같이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 인간이어서 경찰을 하고 있으면 생활방도를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오. 그 신경전문의라는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도 말할 수 없소. 베이 시티와 같이 유혹하기에 적합한 장소에서, 돈을 잘 써서 세력을 만들고 필요할 때에 그것을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거죠. 그런 자는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아요.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우리들로서는 알 수 없소. 놈도 인간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열중하는 일도 있을 게요. 부잣집 여자를 맘대로 다루는 것은 종이 인형을 만드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죠. 그 점이 존더보그 집에 당신이 갇혀 있었던 이유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브레인이 존더보그를 위협하려 했을 거요. 당신의 정체를 알면 존더보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게 아니겠소. 내쫓아도 걱정이고, 죽여버려도 뒤가 두려운 거죠.때문에 브레인과 헤밍웨이가 존더보그에게 말한 것은 존더보그가 당신에게 말한 것과 똑같았을 것이오. 당신이 의식을 잃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는 것 말이오. 브레인은 가까운 시일 안에 그를 협박하여 강탈질하러 갈 계획이었을 게 틀림없소. 아마 그게 진상일 것이오. 당신이 협박의 재료가 되는 사람이었고, 재료로 사용되었을 뿐이지. 머로이에 관한 것도 브레인은 반드시 알고 있을 게요."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서치라이트가 천천히 해면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상 택시가 희미하게 오른쪽 해상을 왕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브레인과 같은 경찰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지 잘 알고있소." 하고 레드가 말했다. "그들은 나쁜 놈들일 테지만, 또 머리도 나쁘겠지만 그런 것은 대단한 문제는 아니죠. 경찰을 하고 있으면 뭔가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쁜 겁니다. 옛날에는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있어서는 안되죠. 하지만 머리가 좋은 놈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어요. 즉, 블루넷 같은 자죠. 블루넷이 시의 정치를 휘어잡고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가 하는 일에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시장 선거에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죠. 그가 말하는 일이라면 어느 것이든 통하지 않는 일이 없어요. 요전에 그의 친구인 변호사가 만취되어 차를 운전하다가 잡혔소. 그렇지만 블루넷이 한마디 거드니까 단지 속도위반으로 끝나 버렸죠. 모두 그런 상태랍니다. 블루넷의 직업은 도박이지만, 요즘은 암거래 장사와는 모두 관계가 있어요. 마약도 취급하고 있는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팔아 수수료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죠. 존더보그와도 연락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보석강도 같은 짓을 할 리는 없소. 기껏해야 8천 달러인데, 블루넷이 그런 잔손이 많이 드는 일을 할 리가 없지 않겠소?" "그렇지." 하고 나는 말했다. "게다가 사람까지 한 명 살해당했으니." "그 살인도 그는 아니오. 그가 죽이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블루넷이 한 일이라면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을 게요. 옷 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도 모를 거고. 시체를 그대로 놔둘 사람이오? 나는 25달러로 이 일만 하고 있소. 블루넷이 돈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일을 시킬 거라고 생각하오?" "사람을 죽이라고 할까?" 레드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럴 거요. 지금까지도 죽여 왔는지 모르지. 그러나 그는 그러한 타입의 인간은 아니오. 꼭 블루넷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옛날의 갱처럼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거요. 그들은 모두 비겁한 사람으로, 여자나 어린아이도 살해하고, 경찰을 보면 움츠러들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경찰이 국민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는 거지. 자존심 없는 경찰도 있듯이 비겁하고 미련한 갱도 있지만, 숫자로 표현하면 적을 것이오. 게다가 블루넷 같은 인간은 사람을 죽이고 세력을 만들 수는 없어요. 배짱과 두뇌로 뻗어 올라온 겁니다. 경찰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집단으로서의 용기를 갖고 있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우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비지니스란 말입니다. 실업가의 일과 똑같이 돈을 벌기 위해 그러는 거죠. 물론 거추장스러운 사람이 나타나는 적도 있어요. 오케이. 없애버리자 --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부득이한 일이죠. 나는 그런 설교를 할 분수는 못 되지만." "블루넷과 같은 남자가 머로이를 숨겨둘 리는 없소." 하고 나는 말했다. "머로이는 두 번이나 살인을 저질렀거든." "당신이 얘기한 대로입니다. 돈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모르지만 -- 되돌아가겠소?" "아니오, 돌아가지 않겠소." 레드는 모터보트의 속도를 더했다. "내가 그들을 두둔한다고는 생각 마시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들의 배짱을 싫어하니까." 제 37 장 서치라이트는 안개낀 해면을 30 미터 정도의 지점까지 느릿하게 어루만지며 회전하고 있었다. 장식으로써 외에는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 특히 저녁의 이 시간에는 그랬다. 도박선을 습격할 계획이라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손님이 줄고 승무원이 다 지쳐버린 새벽 4시 전후를 선택해야 틀림없는 법이다. 그래도 수지가 맞는 일은 아니다. 한번 시험한 사람이 있었다. 수상 택시가 트랩 옆에 정박하여 손님을 내리고 육지로 되돌아갔다. 레드는 모터보트를 서치라이트의 빛 바로 바깥쪽에 세웠다. 만일 무슨 일인가로 해서 서치라이트가 몇 피트 올려졌다면 --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검은 물에 빛이 원을 그리며 완만하게 흘러갔고, 모터보트는 빛이 지나간 뒤의 검은 수면을 몬테시트 호를 향해 똑바로 미끌어져 갔다. 그곳은 두꺼운 닻줄이 두 줄 매달려 있는 배의 뒷부분이었다. 선체의 기름투성이인 철판이 마치 호텔의 탐정이 강탈질하러 온 남자를 로비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들의 바로 눈앞에 있었다. 눈을 들자 이중 철문이 보였다. 그곳은 손이 미치지 않을 만큼 높고, 설령 손이 미친다고 해도 열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같이 보였다. 보트는 몬테시트 호의 선체에 정박하고 파도의 넘실거림이 느릿하게 몬테시트 호 선체를 닦고 있었다. 내 옆에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일어서더니 한 자루의 망이 머리 위 높이 던져지고, 선체에 맞고 걸리자 그 끝이 물 속으로 떨어져 물보라가 쳤다. 레드는 갈고리가 달린 장대로 그 망을 주워올려 단단히 조이고 나서 엔진 일부에 세게 붙들어맸다. 안개가 끼어 있고,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듯이 보였다. 축축한 공기가 식어버린 사랑처럼 차가웠다. 레드가 내 옆으로 몸을 기대었는데, 그의 숨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배가 수면에 너무 나와 있어요. 큰 파도가 오면 스크류가 수면에서 나와 버릴 게요. 그러나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철판을 기어 올라가야만 합니다." "올라가자는 게 아니잖소." 하고 나는 떨면서 말했다. 그는 내 손에 배의 키를 쥐게 하며 방향을 정하고, 스로틀(절기판)을 조절하고서, 키를 그대로 해놓으라고 내게 말했다. 철판에는 선체를 따라 곡선을 그리고 있는 쇠 사닥다리가 달려 있었다. 아마 기름을 칠한 장대처럼 미끌어지기 쉬울 것이다. 빌딩 벽을 오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레드는 양손을 콜타르가 묻은 바지에 문지르고 나서 쇠사닥다리의 난간을 잡고 소리도 내지 않고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고무 밑창의 신발이 난간에 걸렸다. 그리고 손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간 듯 몸을 거의 직각으로 떠받쳤다. 서치라이트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해면에 원을 그렸다. 해면에 반사된 광선이 내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관절이 삐걱거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노란 광선이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흘렀다가 곧 사라졌다. 그곳은 화물을 쌓아두는 곳이었다. 안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왜 잠겨 있지 않은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보통 목소리였다. 나는 쇠사닥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나 걸린 노력이었다. 괴로운 숨을 계속 토해내며 겨우 다 올라가자 포장용 상자와 나무통, 망과 녹슨 쇠사슬이 난잡하게 널려 있는 선창이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빛이 미치지 않는 구석에서 쥐가 찍찍거렸다. 노란 광선은 오른쪽의 막다른 좁은 문에서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레드는 내 귀에 입술을 댔다. "여기서부터는 기관실까지 똑바로 걸어갈 수 있소. 보조 엔진 하나에 증기를 때고 있죠. 디젤 엔진은 없어요. 아마 밑에 있는 사람은 하나일 게요. 승무원은 상갑판의 담당자나 보이를 겸하여, 혼자서 몇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선원다워 보이는 사람을 고용해야만 한답니다. 기관실에서 보트 갑판으로 통해 있는 환기장치가 있소. 거기에는 문짝이 끼워져 있지 않아요. 보트 갑판은 출입금지로 되어 있지만 거기까지 나갈 수 있으면 될 테죠. 그때까지 생명이 붙어 있다면 말이지만......" "이 배에 친척이라도 타고 있는 것 같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 기묘한 일이 발생한 게 아니잖소." 하고 그는 웃었다. "바로 돌아오는 겁니까?" "보트 갑판에서부터 저쪽까지 제대로만 갈 수 있으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지갑을 꺼냈다. "약속한 돈은 너무 싸군. 여기서 필요한 만큼 더 집어가시오." "계산은 이미 끝났소." "돌아가는 배삯도 지불하겠소 --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빨리 받아요. 내가 울어서 당신 셔츠를 더럽히기 전에 받으시오." "혼자서 괜찮겠소?" "혀만 있으면 괜찮소. 그러나 자신은 없는데." "무서워진 것 아니오? 돈은 넣어두시오." 하고 레드가 말했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단단하고 따뜻하며 강해 보이는 손이었다. "진짜 무서워진 거죠?" 하고 그는 속삭였다. "염려 말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레드는 이상한 눈을 보이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광선이 어두워 나는 그의 눈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뒤에 달라붙어 나무통이랑 상자가 쌓여 있는 사이를 빠져나가, 배냄새가 강한 어둠침침한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를 빠져나온 곳은 기름으로 쭉쭉 미끌어지는 강철바닥으로, 우리들은 그곳에서 쇠사다리를 내려왔다. 중유 타는 소리가 그 외의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우리들은 강철 숲 사이를 빠져나가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모퉁이를 도니 보라색 셔츠를 입은 구중중한 작은 남자가 철사로 수선한 의자에 앉아 발가벗은 전등 밑에서 할아버지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듯한 철테 안경을 쓰고서 석간을 읽고 있었다. 레드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 남자 뒤로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시오? 어떻습니까, 오늘의 경주는?" 그 이탈리아 인은 놀라 입을 벌린 채 순간적으로 한쪽 손을 보라색 셔츠 사이로 가져갔다. 레드는 지체없이 그의 턱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남자를 조용하게 바닥에 눕히고 보라색 셔츠를 자세히 뒤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보다 이것이 효과적이죠." 하고 그는 가만히 말했다. "그렇지만 통풍장치의 사다리를 오르는 남자는 밑으로 소리를 내죠. 위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그는 그 이탈리아 인을 말할 수 없이 솜씨좋게 묶고 나서 그의 안경을 접어 안전한 장소에 가만히 놓았다. 우리들은 문짝이 끼워 있지 않은 통풍장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안을 올려다보았지만 아주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실례합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나는 물에 젖은 개처럼 용기로 마음이 설레어 몸을 떨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해병대를 1개 중대 정도 갖고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러나 혼자서 하지도 않을 일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게요. 안녕."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몸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도 안 걸릴 거요."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간이 있으면 빙고 가게에 들려주시오." 그는 조용하게 떠나가더니 네 걸음 걷고 나서 되돌아왔다. "화물을 쌓아두는 입구가 열려 있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이용해 보시오." 레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져 갔다. 제 38 장 차가운 공기가 통풍장치 속을 내리불어왔다. 저 끝까지는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3분이 지나가고, 나는 나팔 같은 형태를 한 구멍에서 흠칫흠칫 머리를 내밀었다. 캔버스로 덮인 보트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어둠 속에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치라이트가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보트 갑판보다도 꽤 높은 곳에서 비춰지고 있는 것이리라. 아마 돛대의 정상에서 비춰지고 있는 것일 게다. 그곳에는 기관총을 갖춘 젊은 사람이 있는 게 틀림없다. 다루기 좋은 자동권총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음악이 싸구려 라디오의 음악처럼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돛대의 불빛이 보이고, 안개 속으로 불안한 별이 몇 개 빛나고 있었다. 나는 통풍장치에서 기어나와 권총을 어깨에서 풀어내어 윗도리 소매에 감춰 맸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세 걸음 나아가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낮게 속삭이던 목소리는 이제 들려오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두 척의 구명정 사이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은 어둡고,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기관총 한 대가 설치되어, 총구가 해면을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 두 남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있었다. 또다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목소리가 내 등뒤에서 확실하게 말했다. "보트 갑판에 손님이 올라와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고서 그 남자의 양손을 보았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트 뒤로 몸을 피했다. 그는 조용하게 내 뒤를 따라왔다. 축축한 갑판에는 구두소리도 나지 않았다. "길을 잃은 것 같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겠죠." 하고 그는 새파랗게 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계단의 어귀에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죠. 게다가 엄중한 자물쇠랍니다. 원래는 쇠사슬이 묶여져 있었죠.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그는 손님 대접을 하는 건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계속해서 얘기를 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열어놓은 채 닫는 것을 잊어버렸더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어두운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는 나보다 작았다. "그러나 우리들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만일 누군가가 닫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보스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어디로 해서 이리로 올라올 수 있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잘 알아요. 아래로 내려가서 보스에게 이야기합시다." "친구들과 왔습니까?" "그렇소."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흔히 있는 일이지 -- 내 여자가 다른 남자가 사주는 술을 마시고 있어요." 그는 조용하게 웃었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는 몸을 구부리고서 옆으로 뛰며 홱 물러섰다. 몽둥이가 바람을 가르고 헐떡이는 소리가 조용한 공기 속에 울려퍼졌다. 키 큰 남자가 무슨 말인지 욕을 퍼부었다. 나는 외쳤다. "올 테면 와." 나는 권총의 안전장치에 손을 걸고 철커덕 소리를 냈다. 서툰 연출장면으로도 관객에게 호평을 받는 수가 있다. 키가 큰 남자는 몸을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몽둥이가 그의 손에 쥐어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얘기하던 남자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란을 피워봤자 아무 소용 없어." 하고 그는 차갑게 말했다. "어차피 배에서는 내리지 못해."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나올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것도 훌륭한 연출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나는 권총을 갖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쏠 생각은 없어. 나는 블루넷에게 할 얘기가 있어." "볼일이 있어 샌디에고에 갔는데." "그럼, 그의 대리 되는 사람에게 얘기하겠다." "상당한 배짱이군." 하고 그는 말했다. "아래로 내려가지. 문을 지나가기 전에 권총을 맡기고." "틀림없이 문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맡기지." 그는 가볍게 웃었다. "자네 자리로 돌아가도 좋아, 슬림. 내게 맡겨둬." 키가 큰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따라오시지." 다정한 목소리의 몸집이 작은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걸어갔다. 우리들은 갑판을 가로질러 놋쇠로 된 미끄러운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간 곳에 두터운 문이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자물쇠를 조사한 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을 한쪽 손으로 밀며 나를 안내했다. 나는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문을 빠져나왔다. 우리들 뒤에서 문이 닫히고 자물쇠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이곳은 평온한 밤이었소." 하고 그가 말했다. 우리들 눈앞에 전등으로 장식된 입구가 있었고, 그 맞은편이 도박장이었다. 그다지 혼잡하지는 않았다. 별로 이상한 점도 없는 평범한 도박장이었다. 막다른 곳에 작은 스탠드가 있었고, 다리가 여럿인 의자가 놓여 있었다. 홀 중앙에서 계단이 아래로 통해 있었고, 음악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룰렛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남자가 겨우 손님 한 사람을 상대로 파로(트럼프 게임의 일종)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전부해서 60명 남짓의 손님이 있었다. 파로 테이블엔 은행이 개업할 수 있을 정도의 지폐 뭉치가 쌓여 있었다. 파로의 손님은 백발의 노인인데, 자기 카드가 돌려지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예복을 입은 두 남자가 도박장에서 나오더니, 별 관심도 없는 모습으로 우리들 쪽으로 걸어왔다. 나와 나란히 서 있는 몸집이 작은 남자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 옆으로 다가오더니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물론 담배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두 분에게 데리고 와야만 했습니다." 하고 몸집이 작은 남자가 말했다. "괜찮으시겠죠?" "당신이 블루넷이군요." 하고 나는 느닷없이 말했다. 그는 어깨를 흔들었다. "그렇소." "갱같이는 보이지 않는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소."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이 조용하게 내게 바싹 달라붙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오." 하고 블루넷이 말했다. "천천히 얘기할 수 있소." 그는 옆문을 열었다.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선실 형태이면서 선실 같지는 않았다. 플라스틱 같은 검은 책상. 나뭇결이 나 있는 나무 침대. 상하 2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단엔 잠자리가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상단에는 몇 장의 레코드 앨범이 꽂혀 있었다. 방구석에 커다란 라디오와 레코드의 컴비네이션 세트가 있었다. 빨간 가죽을 씌운 의자, 빨간 융단, 재떨이, 전기 스탠드, 담배와 물주전자, 컵이 놓여 있는 낮은 테이블, 침대와 반대쪽 구석 벽에 끼워넣은 작은 스탠드 세트. "앉으시오." 하고 블루넷이 말하고 책상 맞은편으로 돌았다. 책상 위에는 계산기로 계산된 숫자가 잔뜩 기록되어 있는 종이가 몇 장 있어서 사무실 같은 공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는 키큰 중역의자에 앉아 조금 뒤로 움직여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일어서더니 윗도리와 스카프를 벗어 옆으로 던지고는 다시 고쳐 앉았다. 그리고 펜을 집어들고 귓불을 쿡쿡 찔렀다. 그의 웃는 얼굴은 고양이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는 젊지도 않았고 늙지도 않았다. 뚱뚱하지도 않았고 마르지도 않았다. 바다 공기를 쐰 적이 많아서 그런지 안색은 건강했다. 머리카락은 호두색으로 자연스럽게 곱슬거렸고, 이마는 좁았는데, 눈 깊숙이에 예리하게 빛나는 것을 갖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노란 맛을 띤 눈빛깔이었다. 손은 아름답게 손질되어 있었지만, 요란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예복은 검게 빛나고 있었는데, 아마 미드나이트 블루일 거라고 생각되었다. 진주반지가 조금 큰 것 같았지만, 그건 내 질투가 그렇게 생각케 했는지도 모른다. 블루넷은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권총을 갖고 있을 테지?" 함께 방에 들어온 남자가 내 척추 한가운데를 꽉 눌렀다. 틀림없이 낚시대 끝은 아닌 물건이 내 등에 닿았다. 그는 내 권총을 집어들고는 그 외에 더 갖고 있지 않나 하고 몸을 더듬었다. "그리고?" 하고 목소리가 물었다. 블루넷은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됐어." 보디가드 한 사람이 내 권총을 책상 위에 미끌어뜨렸다. 블루넷은 펜을 놓고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들고는 압지 위에서 권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모르겠나?" 하고 그는 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보내면서 말했다. "꼭 어떻게 하라고 설명해야만 하겠나?" 보디가드 한 사람이 당황하여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또 한 남자는 너무 조용해서 없는 것과 똑같았다. 침묵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얘기 소리가 낮은 속삭임처럼 멀리서 들려오고, 음악이 희미하게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마시겠소?" "마시겠소." 보디가드가 작은 스탠드로 가서 하이볼을 두 잔 만들었다. 잔을 손으로 감추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잔을 검은 유리 쟁반에 받쳐 책상 양쪽에 놓았다. "담배는?" "피우겠소." "이집트 것인데 괜찮겠소?" "좋습니다." 우리들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하이볼을 마셨다. 고급 스카치 위스키 같았다. 보디가드는 마시지 않았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잠깐만! 얘기는 나중에 해도 괜찮겠죠?" 고양이 같은 상냥한 미소에 반쯤 감긴 노란 눈. 문이 열리고 보디가드 한 사람이 예복의 젊은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트랩에 있었던 남자였다.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안색이 조개처럼 하얗게 되었다. "이 남자를 태운 기억은 없습니다." 하고 그는 입가를 오므리고 빠른 어조로 말했다. "권총을 갖고 있었어." 하고 블루넷이 권총을 페이퍼 나이프로 밀며 말했다. "이 권총이다. 보트 갑판에서 내가 이 권총으로 위협당했어." "저는 태운 기억이 없습니다." 하고 예복을 입은 남자가 역시 빠른 어조로 말했다. 블루넷이 노란 눈을 가볍게 들고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떻소?"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수상 택시 남자에게 물어보세요." 하고 예복의 남자가 항의했다. "5시 반 이후 트랩을 떠난 적이 없을 테지?" "1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대답이 되질 않아. 1분 동안에 나라가 망하는 수도 있어." "1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려눕혀 버릴 수 있다면 똑같이 되지." 하고 나는 말하고 웃었다. 예복의 남자는 권투선수처럼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그의 주먹이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를 냈다. 조금 더 있으면 내 머리를 때릴 판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내 머리를 때리려고 한 주먹이 공중에서 녹듯이 허위적거렸다. 그의 몸이 비스듬하게 쓰러지면서 손톱이 책상 모서리를 붙잡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져 바닥에 뒨굴었다.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맞는 것을 보는 것도 괜찮은 법이다. 블루넷은 여전히 내 얼굴을 향하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이 만일 이 남자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웠다고 하면 가엾지만......" 하고 블루넷은 말했다. "그러나 아직 계단 문의 문제가 남아 있소." "우연히 열려 있었던 거요." "다른 이유는 생각나질 않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생각할 수 없군요." "그럼, 당신과 단둘이서 이야기합시다." 블루넷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본 채 말했다. 보디가드 한 사람이 예복의 남자 팔을 잡고 바닥을 질질 끌며 갔다. 또 한 사람의 보디가드가 안쪽 문을 열었다. 세 사람 다 문에서 모습을 감췄다. 문이 닫혔다. "들어봅시다." 하고 블루넷이 말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그리고 용건은 뭐요?" "나는 사립탐정입니다. 큰 사슴 머로이라는 남자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립탐정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시오." 나는 증거를 보였다. 그는 지갑을 책상 위에다 되던졌다. 바닷바람에 물든 입술은 아직 미소를 띤 채였다. 그 미소는 무대의 미소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어떤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지난주 목요일 밤, 당신의 벨베디아 클럽 근처의 물가에서 마리오라는 남자가 살해당했습니다. 그 살인사건은 은행강도 전과자인 머로이가 어느 여인을 죽인 사건과 관련이 있죠."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아직 그 일이 어째서 나와 관련이 있는지 그것을 듣지 못했소. 결국 당신이 얘기해 줄 테지. 그러나 어떻게 내 배에 탔는지, 그걸 먼저 얘기하는 게 어떻겠소?" "그것은 이미 얘기했는데." "당신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오."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이름은 -- 말로우였던가? 사실이 아니오. 말로우 선생.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트랩의 젊은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지요. 나는 부하들을 신중하게 뽑았거든." "당신은 베이 시티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일에는 부자유스럽지는 않을 것이오. 존더보그라는 남자가 베이 시티에서 전과자를 숨겨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마약을 팔기도 하고 '홀드 업'에 관계하기도 하며, 전과자를 숨겨두기도 했지요. 물론 어떤 특수한 관계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배경 없이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머로이는 그의 집에 숨어 있었소. 그러나 어딘가로 도망가 버렸죠. 2미터가 넘는 몸집이 큰 남자이기 때문에 숨는 것은 상당히 어렵소. 도박선이라면 숨기에 안성맞춤이겠지만." "당신은 사물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군." 하고 블루넷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내가 그를 숨겨두었다 해도,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여기에 숨겨둘 이유는 없지 않겠소?" 그는 하이볼을 입에 댔다. "나는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소. 수상 택시를 지장없이 왕복시키는 일만으로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오. 전과자가 숨을 곳이라면 세상에 얼마든지 있소. 돈만 갖고 있다면 말이오 -- 달리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거요?" "생각하려고 해보지도 않았소." "내게 얘기해도 소용없소.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배에 올라탔소?" "말할 필요는 없소." "말하지 않으면 말하게 해보지. 말하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만일 내가 어떻게 배를 탔는지 얘기하면 머로이에게 내 말을 전해 주시겠소 ?" "어떤 말을?" 나는 책상 위의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그 뒷면에 연필로 글자를 다섯개 쓰고는 그의 눈앞에 놓았다. 블루넷은 명함을 집어들고 내가 쓴 글자를 읽었다. "나로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하고 그는 말했다. "머로이가 읽으면 알 겁니다." 그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대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로서는 당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소. 당신은 생명을 걸고 이 배에 탔소. 그리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과자에게 명함 한 장을 전해 달라고 하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닌 모양인데?" "당신이 그를 모른다면 그럴 거요." "왜 권총을 육지에 두고 당당하게 트랩으로 타지 않았소?" "처음에 왔을 때에 권총을 놓고 오는 것을 잊었던 거요. 다음에는 권총을 놓고 오더라도 태워주지 않을 게 뻔하잖소. 그런데 우연히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 남자를 만난 겁니다." 그의 노란 눈에 새로운 불꽃이 타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미소를 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악당은 아니지만 해안을 방황하며 귀를 기울여 모든 것을 듣고 다니지요. 이 배의 화물창고 입구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통풍장치의 섀프트에 격자가 벗겨져 있는 것이 있고요. 하지만 보트 갑판으로 나올 때까지 한 사람은 심하게 다뤄야 했지요. 선원명단을 잘 조사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여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겹치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내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머로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배에 없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화물창고 입구에 관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의 힘이 되어주겠소." "가보고 오는 게 좋겠군요." 그는 아직도 명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로이에게 전해 줄 방법이 있으면 전해 주겠소. 방법이 없으면 어쩔 수가 없지만." "화물창고 입구로 가보시죠." 그는 잠시 동안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몸을 일으켜 권총을 내 쪽으로 밀어 넘겨주었다. "내가 하는 일은......" 하고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을을 내 마음대로 하고, 돈을 써서 시장을 뽑으며, 경찰을 매수하고, 마약을 팔고, 전과자를 숨기며, 보석투성이의 할머니를 협박한다 -- 이런 일을 혼자서 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필시 바쁘겠군." 나는 권총을 집어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었다. 블루넷은 일어섰다. "나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소." 하고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믿소." "물론 약속받으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이만한 말을 듣는 데에 당신은 상당한 위험을 무릅썼다는 뜻이군." "알고 있는 대로요." "그럼......" 하고 그는 의미도 없이 몸을 움직이며 손을 내밀었다. "호인과 악수를 하고 싶군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작고 단단하고, 꽤나 따뜻한 손이었다. "그 화물창고 입구에 관한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았는지 얘기해 주지는 않을 테지?"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말하게 하는 방법은 있소." 하고 그는 말했지만 곧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당신을 믿고 있소. 한 번 더 믿어 봅시다. 술이라도 마시며 기다리시오." 그는 버저 단추를 눌렀다. 안쪽 문이 열리고 보디가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잠시 여기에 있게.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하면 따라주도록 하고. 난폭한 짓을 해서는 안돼." 보디가드는 의자에 앉아 내 쪽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블루넷은 방에서 나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잔에 들어 있는 하이볼을 다 마셔버렸다. 보디가드가 또 하이볼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것도 다 마셔버리고 두 개비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블루넷이 돌아와 방구석에서 손을 씻고 또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보디가드 쪽으로 턱을 치켜올렸다. 보디가드는 조용히 나갔다. 노란 눈이 나를 관찰했다. "당신이 이겼소, 말로우 씨. 선원은 164명인데......" 하고 그는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택시로 돌아가시오. 아무도 가로막지는 않을 거요. 전해 줄 말에 관한 것은 짐작가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오. 부탁해 봅시다. 오늘밤 일에 대해서는 내 쪽에서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일어서서 방을 나왔다. 트랩에는 새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조금 전과는 다른 수상 택시로 해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빙고 가게로 들어가 벽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섰다. 몇 분 지나자 레드가 들어와 나와 나란히 벽에 등을 기댔다. "잘 있었던 것 같군요." 하고 레드는 빙고의 숫자를 소리내어 읽는 높은 목소리에 싸여 말했다. "당신 덕분이오. 당신이 생각한 대로였소. 화물창고 입구에 관한 것을 걱정했소." 레드는 주의깊게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입술을 내 귓가로 가져왔다. "찾던 남자는 만났습니까?" "아니오. 하지만 블루넷이 전해줄 거요." 레드는 다시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여 빙고 테이블을 바라보며 하품을 했다. 코가 뾰족한 남자가 또 다가왔다. 레드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 "어떤가, 올슨." 그리고 거의 밀어 넘어뜨리듯이 그의 곁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올슨은 우거지상을 만들며 레드를 배웅하고는 모자를 다시 쓴 뒤, 재수없다는 듯이 침을 뱉었다. 나는 가게를 나와 주차장에서 내 차를 꺼내어 할리우드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신발을 벗고 발가락 끝으로 방안을 걸어다녔다. 아직도 발가락 끝에 감각이 없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침대에 앉아 시간을 재보았다. 내가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머로이를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며칠이 걸릴지, 경찰의 손이 미칠 때까지 찾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일 경찰의 손으로 체포할 수 있다고 해도, 그때는 죽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제 39 장 내가 베이 시티의 그레일 집에 전화를 건 것은 10시경이었다. 어쩌면 그녀를 붙잡기에는 너무 늦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여느 때처럼 하인과 집사를 상대로 실컷 입씨름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겨우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은 듯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건다고 약속해서 말이죠." 하고 나는 말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또 바람맞히는 거 아녜요?"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이번에는 틀림없습니다. 늦었지만 운전사는 아직도 운전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늦더라도 운전해 줘요." "내 아파트로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그때까지 옷을 갈아입고 있겠습니다." "편리한 말이군요." 하고 그녀는 어리광부리는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들러야만 하나요?" 암사는 틀림없이 그녀의 발성법을 정교하게 교정해 놓았다 -- 교정할 필요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내 부식 동판화를 보여드리겠소." "한 매?" "아파트는 원 룸입니다." "그런 아파트가 있다고는 들었어요." 하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어리광부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너무 점잔빼지 말아요. 당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모두 필사적이겠죠?......다시 한 번 번지를 가르쳐 주세요." 나는 번지와 아파트 호수를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입구의 문이 닫혀 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자물쇠를 풀어놓겠소." "부탁해요. 일곱 가지 도구를 가져가는 것은 큰일이잖아요."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실재하지 않은 사람과 얘기를 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로비로 내려가서 문의 자물쇠를 풀고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파자마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대로 자려고만 하면 일주일이라도 잘 수가 있었다. 나는 다시 지친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잊고 있었던 방문의 자물쇠를 풀고 옆쪽으로 세차게 부는 진눈깨비 속을 걷는 듯한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부엌으로 가 잔 두 개와, 특별한 경우를 위해 넣어두었던 스카치 위스키 병을 준비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기도하는 거야." 하고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기도하는 것밖에 이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나는 눈을 감았다. 방의 네 개의 벽이 모터보트의 엔진소리를 전하는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공기가 안개에 젖어 바닷바람 소리를 울리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인기척 없는 선창의 후텁지근한 악취를 맡았다. 엔진의 기름냄새를 맡으며 할아버지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안경을 쓰고 갓 없는 전등 밑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보라색 셔츠의 남자를 보았다. 나는 통풍장치관을 올라갔다. 히말라야 정상 꼭대기까지 다다를 정도의 노력으로 올라가자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를 에워쌌다. 그리고 나서 어딘지 인간미가 있는 노란 눈의 키가 작은 남자와 얘기를 했다. 사회의 안팎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못된 짓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나는 빨간머리에 보라색 눈의 몸집이 큰 남자를 생각했다. 이 남자는 어쩌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운 마음씨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감긴 눈꺼풀 뒤에서 무수히 빛이 움직였다. 내몸이 공중에 떴다. 나는 공허한 모험에서 돌아온 어수룩한 바보였다. 나는 전당포 지배인이 1달러짜리 시계를 보고 있을 때와 같은 비참한 소리를 내고 폭발한 보잘것없는 다이나마이트였다. 나는 시청 벽을 기어 올라가는 핑크색 반점이 있는 벌레였다. 나는 잠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뜨고 싶지 않은 눈을 떴다. 내 눈은 천정에서 반사된 전등 빛을 쳐다보았다. 방안에서 희미한 형체가 조용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은근하고 조용하고 무거웠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머리를 돌려 큰 사슴 머로이의 모습을 보았다. 방안에 그늘져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머로이는 예전에 내가 봤을 때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그늘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손에 든 권총이 검게 빛났으며, 무표정한 광택을 보이고 있었다. 모자가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뒤쪽으로 흘러내리고 코가 사냥개처럼 움직였다. 그는 내가 눈뜬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 침대 옆으로 천천히 걸어와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의 편지를 봤어." 하고 그가 말했다. "의심스러운 점은 없는 것 같더군. 밖에도 경찰은 없었어. 만일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연극이었다면 당신의 생명은 없어." 나는 침대 위에서 조금 몸을 움직였다. 그의 손이 재빠르게 내 베개 밑을 더듬었다. 변함없이 너글너글한 표정을 띠고 안색은 창백했는데, 우묵하게 들어간 눈의 어딘가에 다정한 빛이 숨어 있었다. 머로이는 오늘밤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는 너무 작은 외투였다. 한쪽 어깨의 솔기가 조금 터져 있었다. 아마 팔을 꿴 것만으로도 터진 것이 틀림없으리라. 가장 큰 사이즈의 외투가 틀림없겠지만, 그래도 머로이에게 작은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경찰은 아무도 모르오. 단지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었던 거요." "얘기를 들어보지."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몸을 내 쪽으로 향한 채 테이블 옆까지 물러서서 권총을 테이블에 놓고 외투를 벗은 뒤, 가장 고급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소리를 냈다. 그러나 부서지지는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서 권총을 오른손이 미치는 곳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손으로 흔들면서, 담배에는 전연 손을 대지 않고 입에 한 개비 물었다. 커다란 엄지손가락의 손톱 위에서 성냥불이 탔다. 담배의 예민한 냄새가 방안에 떠돌았다. "병이 났나?" 하고 그는 말했다. "지쳐 있는 거요. 하루 종일 일했거든."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는데 누가 오는 건가?" "여자."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오." 하고 나는 말했다. "와도 쫓아버리겠소." "어떤 여자?" "하찮은 여자죠. 쫓아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과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입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서툰 손짓으로 담배를 쥐고 연기를 뱉었다. 커다란 손가락에 담배가 너무 작았다. "어째서 내가 몬테시트 호에 타고 있다고 생각했지?" 하고 그는 물었다. "베이 시티 경찰에게 들었소. 얘기하자면 길지만, 그 경찰도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오." "베이 시티의 경찰이 나를 찾고 있다고?" "걱정이 됩니까?" 그는 다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금 머리를 흔들었다. "당신은 여자를 살해했소." 하고 나는 말했다. "제시 플로리안. 그건 잘못이었소." 그는 내가 얘기한 것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는 그만두시지."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살인은 중대한 과실이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당신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오. 그 여자에게도 죽일 마음은 없었소. 또 하나의 살인 -- 센트럴 가의 살인사건뿐이라면 어떻게 될 수도 있겠지만 여자의 목을 침대기둥에다 쥐어박아 머리를 엉망으로 깨버리고는 이제 도망갈 수 없소." "그런 말을 줄줄 떠들어대다니 목숨이 필요없는 건가?" 하고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몇 번이나 목숨을 걸었소. 새삼스럽게 목숨이 아깝다고는 생각지 않소. 당신은 그 여자를 죽일 마음은 없었던 거요, 그렇잖소?" 그의 눈에 침착성이 없어졌다. 그는 온순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자신의 힘을 깨달아야만 하오." "이미 늦었어." 하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그 여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그 여자의 목을 잡고 몰아세웠소. 그 여자의 머리가 침대 기둥에 부딪쳤을 때에는 이미 그 여자는 죽어 있었소."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그 여자에게 무엇을 묻고 싶었는지 나는 알고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말해 봐." "그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나는 경찰과 함께 있었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경찰에게 얘기해야만 했소." "어떤 것을 얘기했지?" "여러 가지를 얘기했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오늘밤의 일은 경찰은 모르오." 그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몬테시트 호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는 이것을 한번 물었었다. 하지만 잊어버린 것 같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오. 그러나 바다로 도망가는 것이 가장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 당신은 베이 시티에 숨어 사는 집을 갖고 있소. 거기에 숨어 있을 정도라면 도박선에 숨을 수도 있을 것이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는 거지." "레어드 블루넷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어." 하고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나 만난 적은 없어." "내 편지를 전해 준 것이 그가 아니오?" "그 남자가 가져온 것이 아니야. 그런데 그 명함에 쓰여 있는 것은 언제 하는 거지? 나는 어쩐지 당신을 믿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렇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야.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거지?" 그는 담배를 비벼끄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그림자가 벽에 비춰지고 있었다. 거인의 그림자였다. 실제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몸집이 큰 남자였다. "어째서 내가 제시 플로리안을 죽였다고 생각한 거지?" 하고 그는 갑자기 물었다. "그 여자의 목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소. 그 여자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 있었던 거요. 게다가 당신은 죽일 의사가 없어도 살인을 저질러버릴 만큼 힘이 세요." "경찰에서도 나를 범인으로 결정하고 있는 건가?" "그건 나로서는 알 수 없소." "내가 그 여자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뭐지?" "그 여자가 벨마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알지 못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벨마는 그 여자에게 꼬리를 잡힐 만한 여자가 아니오." 문에 가벼운 노크소리가 났다. 머로이는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서 미소를 띤 채 권총을 손에 들었다. 문의 손잡이를 시험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로이는 천천히 일어서서 등을 둥그렇게 구부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꼼짝않고 바라보았다. 나는 침대 위로 몸을 일으켜 발을 바닥에 대고 일어섰다. 머로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문가로 걸어갔다. "누구시오?" 하고 나는 문에 입술을 대고 물었다. 문 저쪽에서 틀림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어줘요. 윈저 공 부인이에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나는 머로이를 뒤돌아보았다. 그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달리 출구는 없소. 침대 뒤에 찬장이 있소. 거기 들어가서 기다려 주시오. 곧 쫓아버릴 테니까." 큰 사슴 머로이는 내 말을 듣고 생각했다.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현재의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공포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 거구 어디에도 공포의 그림자는 없었다. 잠시 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모자와 외투를 집어들고는 침대를 돌아 뒷찬장으로 들어갔다. 찬장문이 닫혔다. 그러나 꽉 닫히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그곳에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나 방안을 둘러보았다.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누구라도 피우는 담배였다. 나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서 자물쇠를 열었다.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았을 테지만, 머로이가 들어왔을 때에 그가 잠갔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루인 로크리지 그레일 부인은 언젠가 내게 얘기한 적이 있는 백여우털 외투로 몸을 감싸고서 반쯤 미소짓는 표정으로 복도에 서 있었다. 에메랄드 귀걸이가 양쪽 귓불에 매달려 있었는데 부드러운 순백의 털 속에 거의 파묻혀 있었다. 한쪽 손의 손가락이 아름답게 구부러져 작은 이브닝 백을 잡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자마자 부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내 모습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 차가운 표정이 떠올랐다. "역시 이런 계획이었군요." 하고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파자마 바람으로 가운만 걸치고 -- 판화를 보여주겠다는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어요."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문을 밀었다. "아니오, 그런 게 아닙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할 때 경찰이 왔다가 지금 막 돌아갔소." "랜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끄덕인 것만으로도 거짓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고생이 필요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모피 냄새를 남기며 내 앞을 지나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문을 닫았다. 그녀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가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서로 오해가 없도록 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 이런 거 싫어요. 바로 침대가 나오는 것에 아주 취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 시대를 생각해 보고 싶진 않아요. 불장난이라도 로맨스의 향기를 맡고 싶어요." "나가기 전에 한 잔 어떻습니까?" 나는 아직 입구의 문에 기댄 채였다. "나가요?" "이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데?" "한마디 해두고 싶었을 뿐이에요. 누구에게라도 몸을 맡기는 여자라고 생각되고 싶지 않았어요. 몸을 맡기는 것은 상관없지만, 안기만 하면 항상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은 거예요 -- 좋아요. 술 주세요." 나는 부엌으로 가서 하이볼을 두 잔 만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하이볼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 그 중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찬장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호흡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레일 부인은 잔을 입으로 가져가 잠깐 입술을 대고 나서 정면 벽에 시선을 보냈다. "난 파자마 차림으로 나를 맞이하는 남자는 싫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웬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 좋아졌어요. 참을 수 없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스키를 마셨다. "남자란 모두 하찮은 동물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본시 세상이 하찮은 거지만." "돈이 있으면 다를 것이오." "돈이 없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돈이 생기면 새로운 고생이 생긴답니다."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돈이 없었을 때의 고생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금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나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서 성냥을 켰다. 그녀는 조용하게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연기의 행방을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요." 하고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그전에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소." "무슨 얘기?-- 목걸이에 관한 얘기?" "살인사건이오." 그녀는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조용하게, 천천히. "재미없는 얘기를 하는군요. 꼭 해야만 하나요?" 나는 어깨를 흔들었다. "린 마리오는 결코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난 그 사람 일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언제까지나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열려져 있는 핸드백에 손을 찔러넣고 손수건을 꺼냈다. "나도 그 남자가 보석 갱의 안내를 맡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오." 하고 나는 말했다. "경찰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소. 경찰이 말하는 것은 언제든 믿을 수 없거든. 나는 그가 여자를 협박했었다고는 생각지 않소.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이 놀랄지도 모르지만......" "놀랄까 모르겠군요." 더없이 냉정한 목소리였다. "아니죠, 당신은 그런 일로 놀랄 여자는 아니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잔에 남아 있던 위스키를 다 마셔버렸다. "그레일 부인, 당신이 이곳에 와준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각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소. 예를 들면 나는 마리오가 갱에게 살해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소. 프리시마 캐년에 간 것도 목걸이를 되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소. 아니, 목걸이를 도둑맞았다는 것조차 나에게는 믿기지 않았소. 내 추리에 의하면 그는 살해당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던 거요. 하지만 그 자신은 살인을 할 계획으로 갔었던 것일 게요. 그러나 마리오는 솜씨 좋게 살인을 할 수 있는 남자는 아니었소." 그녀는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는 생기 없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어디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닌데 그녀의 아름다움이 없어졌다. 백년 전이었다면 위험한 여자, 2천 년 전이었다면 대담할 뿐인 여자, 현재라면 할리우드의 B급 영화에 나오는 평범한 여성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핸드백의 물림쇠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살인을 하기에는 확실히 솜씨가 좋지 않은 남자였소. 아직 얼마간의 양심이 남아 있었소. 그러나 돈은 탐이 났소. 그런데 나중까지도 죽일 결심이 서지 않았소. 그러한 사람에게 청부살인을 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오. 그러한 사람은 쇠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죽여버리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그가 죽이려고 한 것은 누구였나요?" "납니다." "그런 얘기는 믿을 수 없어요 -- 당신이 그 정도로 미움받았다니. 그리고 당신은 목걸이를 도둑맞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증거가 있나요?" "증거가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단지 믿지 않았다고 말한 것뿐이오." "증거가 없다면 말해도 소용없잖아요." "증거라고 하는 건 항상 상대적인 거지." 하고 나는 말했다. "개연성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에 따라 증거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증거를 들이대서 어느 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는 들이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죠. 나를 죽이려고 한 동기는 상당히 빈약한 것이오. 큰 사슴 머로이가 출옥해서 센트럴 가의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던 어떤 가수를 찾기 시작했을 때에 나도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했소. 단지 그뿐인 거요. 그게 아니면 내가 손을 댔기 때문에 머로이가 그녀를 찾아낸 결과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그녀를 찾아내는 것은 분명히 가능했었소. 그렇지 않았으면 마리오에게 나를 죽여야만 한다고 말했어도 효과가 없었을 거요. 그녀를 찾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마리오는 나를 죽여야만 한다는 말을 믿었던 거요. 그러나 마리오를 죽이려고 한 동기는 더 강한 것이었소. 그런데도 그는 허영 때문인지, 애정 때문인지, 탐욕 때문인지, 아니면 그 세 가지가 섞인 감정 때문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소. 그는 틀림없이 공포를 느끼고 있었소. 그러나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서 겁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오. 그도 일역을 맡고 있는 범행이 두려웠고, 또한 범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그도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요. 그러나 그 반면 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소. 그래서 위험을 무릅쓸 생각을 했던 거지." 나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흥미 있는 얘기군요 --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시 오른손을 핸드백 안에 넣었다. 그녀의 손이 무엇을 잡고 있는 건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핸드백에서 꺼낼 기미는 없었다. 여러 가지 일에는 절차라고 하는 게 있다. "우리 서로 연극은 그만둡시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여기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소. 무슨 얘기를 하든 달리 듣는 사람도 없소. 서로 책임을 갖지 않아도 좋아요. 나중에 취소하면 되잖소 -- 태생이 천한 한 여자가 꽃가마를 타고 부호의 부인이 되었소. 그렇지만 옛날의 그녀를 알고 있는 여자가 있었소. 신세를 망친 칠칠치 못한 제시 플로리안. 라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즈음에 그 노래를 듣고 방송국으로 만나러 갔었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그 여자의 입을 막아야만 했소. 거기에는 큰 돈은 들지 않았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 여자와의 사이에 서서 매달 돈을 건네주고 그녀 집의 저당권을 갖고 있는 남자는 모두 알고 있었고, 또 돈도 들었소.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두 사람뿐이라면 아무리 돈이 들더라도 걱정하지는 않았을 게요. 그렇지만 큰 사슴 머로이라고 하는 전과자가 감옥에서 나와 옛날 여자를 찾기 시작했소. 그 몸집이 큰 남자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었소. 지금도 그녀를 찾고 있소. 그것이 일을 귀찮게 해버렸소. 게다가 사립탐정 하나가 주제넘게 나서서 그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소. 이렇게 되자 마리오의 존재가 불안해졌소. 어떤 계기에 무엇을 떠들어댈지 모르는 남자였으니까. 뜨거워지면 녹아버릴 남자인 거지. 그렇기 때문에 녹기 전에 죽여버린 거요. 당신에게 맞아 죽었지." 그녀는 핸드백에서 손을 꺼냈다. 그 손에는 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권총을 내게 향하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단지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일어난 일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큰 사슴 머로이가 커다랗고 텁수룩하고 징그러운 손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45구경 자동연발권총을 들고 찬장에서 뛰어나왔던 것이다. 그는 내게는 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루인 로크리지 그레일 부인 쪽으로 거구를 구부리고는 미소를 떠올리며 상냥하게 얘기를 걸었다. "당신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8년 동안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 게다가 그 빨간 머리카락에도 참을 수 없는 추억이 있어. 정말 오래간만이구려." 그녀는 권총의 방향을 바꾸었다. "옆으로 다가오면 용서 않겠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는 엉겁결에 그 자리에 못박혀 서서 권총을 든 손을 축 늘어뜨렸다. 그녀와의 사이에 아직 50 센티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머로이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랬었나?" 하고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방금 알았어. 당신이 나를 경찰에 보냈었군. 벨마, 당신이......" 나는 베개를 던졌다. 그러나 시간에 대지 못했다. 그녀는 머로이의 복부를 겨냥하여 연달아 다섯 발 쏘았다. 손가락을 장갑에 넣을 정도의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권총을 나를 향해 쐈다. 그러나 이미 총알은 없었다. 그녀는 곧 바닥에 떨어진 머로이의 권총을 주우려고 했다. 나는 또 베개를 던졌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침대를 돌아, 얼굴에 맞은 베개를 부리치려고 하는 그녀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자동권총을 주워서 또 침대를 돌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큰 사슴 머로이는 아직 서 있었다. 커다란 몸이 힘없이 흔들리고 입을 축 늘어뜨리며 양손으로 몸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무릎을 떨고 침대 위에 옆으로 쓰러졌다. 괴로운 숨결이 방안에 울려퍼졌다. 그레일 부인이 다음의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나는 수화기를 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반쯤 얼어붙은 물처럼 회색으로 잠겨 있었다. 그녀는 문 쪽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복도로 나갔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문을 닫으러 가야만 했다. 나는 침대 옆으로 되돌아가서 엎어져 있는 머로이의 머리를 옆으로 향하게 하여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숨이 있었다. 그러나 배에 총알을 다섯 발이나 맞아서는 큰 사슴 머로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고 랜들을 집으로 불렀다. "머로이가 여기에 있소." 하고 나는 말했다. "내 아파트요. 그레일 부인에게 배에 총알을 다섯 발 맞았소. 병원에는 전화를 걸었소. 부인은 도망갔고." "결국 나를 앞질렀군." 그는 그렇게 말했을 뿐 곧 전화를 끊었다. 나는 침대 옆으로 되돌아왔다. 머로이는 침대 옆 바닥에 무릎을 대고서 한손으로 시트를 잡고는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굴에 땀이 번져 있었다. 눈꺼풀이 실룩실룩 움직이고, 귓불이 거무칙칙해져 있었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대고 일어서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들것에 그의 몸을 싣는 데에 무려 네 남자의 힘이 필요했다. "어쩌면 살지도 모릅니다." 하고 구급차를 타고 온 의사가 방을 나가기 전에 말했다. "25구경 권총이라면 살아날 가망은 있어요. 내장 어디를 맞았는지가 문제지만 희망은 있소." "그는 살고 싶다고 생각지 않을 겁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역시 희망은 없었다. 그는 그날 밤에 죽었다. 제 40 장 "파티를 열어야 할 거예요." 하고 앤 리어든은 갈색 융단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식기, 촤불, 청결하고 새하얀 테이블보 -- 하지만 파티를 여는 장소에서 아직도 테이블보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거기에 온통 보석을 박은 여자들과 하얀 나비 넥타이의 남자들이 늘어서 있는 거예요. 내프킨으로 싼 포도주 병을 들고 그럴싸하게 손님 사이를 걷고 있는 하인들. 빌린 예복으로 거북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경찰들. 억지로 웃음을 만들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이고 있는 용의자들. 그리고 긴 테이블 상석에 당신이 앉아 매력 있는 미소를 떠올리며 파일로 밴스(밴 다인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와 같은 적당한 영국풍 액센트로 조금씩 사건의 수수께끼를 설명해 나가는 거예요." "멋있겠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당신의 대사는 얼마든지 들을 테니까, 그 동안 내 손에 뭣 좀 쥐게 해줄 수는 없겠소?" 그녀는 부엌으로 모습을 감추고서 잠시 뒤 얼음 부딪치는 소리를 낸 뒤 키가 큰 잔을 두 개 들고 와서 다시 앉았다. "당신과 교제하는 여자는 어지간히 술을 사야겠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잔에 아주 조금 입술을 갖다댔다. "그리고 갑자기 하인 한 사람이 졸도하는 거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살인범이었다는 뜻은 아니고, 재치있는 연극이었소." 나는 위스키를 마셨다. "그런 줄거리가 아니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교묘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소설적인 사건도 아니오. 어둠뿐이고 또한 피비린내 난다오." "그런데 그 부인은 자취를 감추어버렸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행방불명이 되어 있소. 저택으로는 돌아가지 않았지. 아마 옷을 바꾸거나 얼굴을 변장할 수 있는 은신처를 갖고 있었을 거요. 늘 신변에 위험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 나를 만나러 왔을 때는 혼자였소. 운전사는 없었지. 작은 차를 타고 왔었는데, 그 차는 3 킬로미터 정도 끝에 버려져 있었소." "그렇지만 꼭 붙잡아야 해요 -- 경찰이 붙잡을 마음만 있다면." "빈정거려서는 안돼요. 와일드 검사는 진지한 남자요. 나는 그의 밑에서 일해 본 적이 있소. 그런데 체포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소? 2천만 달러의 재산과, 아름다운 얼굴과, 리 파렐인지 레넨칸프(둘 다 고명한 변호사) 어느 쪽이든 상대를 해야만 하오. 그녀가 마리오를 죽였다고 하는 증거를 대는 건 어렵소. 살인동기 같은 것과 그녀의 과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그 과거에서조차 어디까지 더듬어가야 할지 알 수 없소. 어쩌면 경찰에 신세를 진 적이 한 번도 없을 것이오. 경찰에 기록이 남아 있으면 이런 줄거리를 쓸 리가 없소." "머로이에 대한 건 어떤가요? 당신이 그에 관한 걸 내게 얘기해 주었다면, 나는 그 부인의 신분과 경력을 알아냈을 거예요.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 두 장의 사진은 같은 여자의 사진이 아니잖아요." "물론 다르지. 플로리안 부인도 사진이 살짝 바꿔쳐진 것은 몰랐소. 내가 벨마 바렌트라고 사인이 되어 있는 사진을 내밀었을 때 놀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오. 하지만 마리오가 살짝 바꿔친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나중에 내게 팔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사진을 숨겼는지도 모르지. 그리 중요할 것도 없는 사진이란 건 알고 있었소. 마리오가 바꿔친 다른 여자의 사진과." "그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소. 마리오가 나를 불러 목걸이를 되찾는 일이라고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은 것은, 내가 플로리안 부인을 찾아가 벨마에 관해 여러 가지 물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마리오가 살해된 것은 그를 살려두면 위험했기 때문이고. 플로리안 부인은 벨마가 루인 로크리지 그레일 부인이 되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소. 거기까지 알고 있을 리는 없지. 그레일은 일부러 유럽까지 가서 결혼했다고 했소. 그리고 그녀는 본명으로 결혼했소. 어디서 언제 결혼했는지 그레일 씨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오. 그녀의 본명도 말하지 않을 것이오.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그에게서는 알아낼 수 없소. 사실 그는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에서는 그것을 믿지 않고 있소." "왜 말하지 않는 걸까요?" 앤 리어든은 아름다운 손등에 턱을 괴고, 그림자 있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누구의 무릎에 안겨 있든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에게 몹시 반해 있기 때문이지." "당신의 무릎에도 안겼죠?" 하고 앤 리어든은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그건 연극이었소. 그녀는 내가 두려웠던 거요. 그러나 나를 죽이려고는 하지 않았소. 경찰과 잘 아는 직업의 남자를 죽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기 때문이오. 하지만 최후의 순간이 되면 죽이려고 했을 게 틀림없소. 머로이가 결말을 내주지 않았다면 제시 플로리안도 죽였을 것이오."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을 상대한다는 건 즐겁겠군요." 하고 앤 리어든이 말했다. "조금 위험은 있어도, 불장난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 아녜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로이를 죽인 것은 죄가 되지 않아요. 머로이는 권총을 갖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만큼 유력한 배경이 있으면 유죄가 될 리가 없지." 금색으로 빛나는 눈이 내 표정을 진지하게 더듬었다. "정말로 머로이를 죽일 생각이었을까요?" "부인은 머로이가 두려웠던 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8년 전에 그를 경찰에 밀고했거든. 머로이가 그걸 알아차렸던 거지. 그러나 그는 용서할 생각이었을 거요. 그만큼 그는 그녀를 사랑했었소. 하지만 그녀는 죽일 계획이었소. 죽여야만 할 사람은 누구든 죽여버릴 계획이었던 거요. 그럴 만한 일이 있었소. 그러나 그런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었소. 그녀는 내 아파트에서 나를 쐈소 -- 그러나 이미 총알이 없었지. 애당초 마리오를 죽였을 때 나를 죽여버려야만 했던 게요." "상당히 그녀를 사랑했었군요." 하고 앤은 조용하게 말했다. "머로이 말예요. 6년 동안 편지를 한 통도 보내지 않았는데도, 또 감옥에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는데도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어요. 오히려 그는 그녀가 상금을 받고 밀고한 것도 용서할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출옥하자마자 곧바로 아름다운 옷을 사서는 그녀를 찾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인사는 다섯 발의 권총 탄환이었어요. 머로이도 그녀 때문에 두 사람을 살해했지만, 최후까지도 그녀를 사랑했어요. 세상은 역시 불가사의한 것인가 봐요." 나는 위스키를 다 마셔버리고서 아직도 목이 마르다는 표정을 지었다. 앤은 내 표정을 무시하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그레일에게 신분과 경력을 털어놓고 얘기해야만 했겠지만, 그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어요. 유럽으로 가서 다른 이름으로 결혼하고서, 그녀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방송국을 남의 손에 넘겨버렸죠. 그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녀에게 주었어요.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 준 것은 뭘까요?" "어려운 질문이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잔 밑에 남아 있는 얼음 덩어리를 흔들었다. 역시 반응은 없었다. "그녀가 그레일에게 준 것은, 이미 노인이라고 해도 좋을 그가 젊고 아름답고 정력적인 아내를 가졌다는 자기만족 아니었을까? 그레일은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소 -- 대체 우리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잖소. 그녀의 경력이 어떻든, 과거에 어떤 남자가 있었든,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잖소. 그레일은 그만큼 사랑하고 있었소." "큰 사슴 머로이처럼요." 하고 앤은 말했다. "드라이브하지 않겠소?"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블루넷 일이나, 대마초 속의 명함 일이나, 암사에 대한 일이나, 존더보그 의사에 대한 일은 아직 듣지 못했어요. 어떻게 단서를 잡았는지 중요한 곳을 듣지 못했어요." "나는 플로리안 부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소. 그녀는 그 명함 위에 젖은 잔을 놓았었지. 마리오의 주머니에서 나온 명함은 지저분한 명함이었소. 젖은 잔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마리오는 무엇이든 깔끔하게 하는 남자였소. 그것도 하나의 단서였소. 실이 한 올 풀리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지. 마리오가 플로리안 부인의 집을 저당하여 돈을 융통하고 있었던 것은 그녀를 붙잡아두기 위함이었소. 암사는 나쁜 놈이었소. 뉴욕 호텔에서 붙잡았지. 국제적인 마약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디다. 런던 경시청에 지문이 있었고. 파리에도 있었고. 증거를 잡은 것이 어제껜지 그저껜지 나는 모르오. 경찰은 본격적으로 일하면 눈부신 활동을 보이는 법이라오. 잘 생각해 보니 랜들은 내가 입을 열지 않도록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그러나 암사는 살인사건에는 손을 대지 않았소. 존더보그와도 관계는 없었소. 존더보그는 아직 잡히지 않았소. 경찰에서는 전과가 있는 사람으로 의심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잡히기 전에는 알 수 없소. 블루넷에게는 아무도 손을 쓸 수 없을 거요. 법정으로 끌어낸 곳에서 헌법상의 권리를 주장해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을 게 뻔하지. 이름이나 지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는 거요. 그러나 베이 시티에서는 환영해야 할 인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소. 서장은 휴직되었고 형사들 반수가 일반 순경으로 강등되었소. 그리고 나를 몬테시트 호로 데려다 준 레드 노가드라는 훌륭한 남자는 복직되었소. 모두 시장이 한 일이오. 결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시간마다 바지를 갈아입는 거지."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가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필법이오. 드라이브나 합시다. 한 잔씩 더 마시고 나서." "내 것을 마시세요." 앤 리어든은 일어서서 거의 줄지 않은 위스키 잔을 손으로 받치고 내 눈앞에 와서 섰다. 눈이 크고 아름다웠다.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용기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며, 조금밖에 되지 않는 보수로 목숨을 걸기도 하시잖아요. 머리를 얻어맞고, 목이 졸리고, 턱이 깨지고, 몸이 모르핀 투성이가 되어도 상대가 녹초가 되어 소리를 지를 때까지 태클과 엔드 사이를 몇 번이나 돌파하려고 하는 분이에요.(미식 축구의 포워드라인을 돌파하려 한다는 뜻.)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알았소." 하고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당신은 날 칭찬하는 거요, 조롱하는 거요?" 앤 리어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시겠어요? 난 당신에게 키스하고 싶은 거예요." 제 41 장 벨마의 행방은 그 뒤 3개월 이상이나 알지 못했다. 경찰에서는 그레일이 그녀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도 신문기자도 돈의 힘으로 그녀를 숨길 만한 장소를 이잡듯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돈의 힘으로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몸을 숨기고 있었던 장소는 사실 누구라도 상상이 가는 장소였다. 어느 날 밤 핑크색의 얼룩말처럼 희귀한 안력을 가진 발티모어의 한 형사가 어떤 나이트 클럽에 들어가 밴드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멋진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는, 머리카락도 눈썹도 새까만 아름다운 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꼼짝 않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무엇인가가 그의 육감의 실에 닿았다. 그 실은 곧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곧 경찰서로 돌아가서 조사중인 사람의 수배사진을 한 장씩 조사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목적한 사진이 발견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모자를 다시 쓰고 나이트 클럽으로 되돌아가 지배인을 붙잡았다. 그들은 분장실로 갔다. 지배인이 분장실 문을 두드렸다.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형사는 지배인을 밀어젖히고 방으로 들어가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는 곧 대마초 냄새를 알아차린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때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는 그런 것엔 주의를 두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카락과 눈썹 언저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썹은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형사는 미소를 떠올리며 똑바로 그녀 옆으로 걸어가서 수배사진을 건네주었다. 형사가 경찰에서 그 사진을 보았을 때처럼 그녀도 오랫동안 수배사진을 보며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형사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좋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눈을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너무 사용했다. 여자를 보는 눈으로서는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잠시 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젊은데도 좋은 솜씨로군요, 내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죠. 라디오로 들었을 뿐인데도 나라는 것을 알아차린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이 밴드에서 1개월이나 노래를 불렀고, 일주일에 두 번은 라디오에 중계되고 있는데도 내 목소리를 알아차린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었어요." "나는 당신 노래를 들은 적이 없소." 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 미소지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과 타협을 할 수는 없을 테죠? 만일 타협할 수만 있다면 돈은 아끼지 않겠어요." "상대가 틀렸소." 하고 형사가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럼, 나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핸드백을 집고 양복걸이에서 외투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형사 옆으로 가서 외투를 내밀고 입혀 달라고 했다. 그는 신사답게 일어서서 그녀의 뒤에서 외투를 입히려고 했다. 갑자기 그녀는 몸을 홱 돌려 핸드백에서 권총을 꺼내어 그가 양손에 들고 있던 외투를 향해 세 발 쐈다. 권총소리를 듣고 모두 문을 부수고 방으로 뛰어들어 왔을 때 그녀는 아직 권총에 총알을 두 발 남겨놓고 있었다. 아무도 옆으로 접근하지 못할 동안 그녀는 그 총알을 사용했다. 두 발 다 사용했지만 두 발째의 총알은 다만 반사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는 이미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형사는 다음날까지 살아 있었소." 하고 랜들은 내게 말했다. "입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 그는 사정을 얘기했소. 모든 사정은 그의 입을 통해 알았소. 왜 그가 경계를 게을리했는지 나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소. 여자와 흥정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오. 흥정하려는 속셈이 아니면 경계를 게을리할 리가 없지. 물론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똑같은 의견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멋지게 심장을 꿰뚫었소 --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하고 랜들은 말했다. "사격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데 아직도 숨은 이야기가 있소." "어떤 거요?" "그녀는 형사를 쏘고 어리석은 짓을 했소. 그 아름다운 얼굴과 돈과 일류 변호사의 지원만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유죄로는 되지 않소. 작은 술집에서 고생하던 처녀가 큰 부자의 부인이 되었소. 과거를 알고 있었던 독수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를 희생물로 하려 했소. 그런 식으로 줄거리를 만들어 동정을 모으는 거지. 레넨칸프는 거리의 할머니들을 반 다스 정도 법정으로 데리고 나와 몇 년에 걸쳐 그녀를 협박했었다고 울며 고백시켰을 게요. 그 할머니들이 죄가 되지 않도록 연극을 꾸밀 방법은 또 얼마든지 있소. 배심원들에게 눈물로 애원하면 되는 거지. 그녀는 그레일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신의 힘으로 자취를 감추었소. 거기까지는 교묘하게 피해 다녔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 잡혔으면 그레일에게 돌아가는 게 상책이었을 거요." "그럼, 당신도 그녀가 그레일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그녀의 그 마음에는 특수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랜들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어떤 이유였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소." "그녀는 살인범이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머로이도 살인범이오. 그러나 머로이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소. 발티모어 경찰의 형사는 기록이 나타내고 있는 만큼 정직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건 내 상상이지만 그녀는 하나의 기회를 발견했소 -- 멀리 도망치는 기회는 아니오. 이미 사람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끈기는 없어졌을 것이오. 그녀에게 정말로 기회를 준 유일한 사람에게 답례를 할 기회였던 거요." 랜들은 입을 벌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은 내가 한 말을 승복하기 어려운 듯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죽이지 않았어도 좋지 않았겠소?"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녀가 훌륭한 여자라고는 말하지 않았소. 선량한 여자라고도 말하지 않았소. 지금껏 말한 적이 없소. 막다른 곳까지 몰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는 자살도 하지 않은 여자요. 그녀가 자살한 것은 여기서 재판할 필요를 없애버렸소. 그걸 잘 생각해 보시오. 여기서 재판이 열리면 누가 가장 타격을 받겠소? 가장 괴롭게 생각되는 게 누구겠소? 재판의 결과가 이기든 지든 무승부로 끝나든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것은 누구겠소? 사랑하는 방법이 현명치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가장 깊은 애정을 바쳤던 노인인 것이오." 랜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했다. "그건 감정에 사로잡힌 사고방식이오." "맞았소. 내가 말하면 더욱 감정적으로 들릴 게요. 아마 내 생각은 틀렸을 게요 -- 그럼, 나는 돌아가겠소. 내 핑크색 벌레는 아직 이 방까지 올라오지 않았소?" 랜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가 시청의 정면 계단에 섰다. 한 점 구름도 없이 맑게 개인, 공기가 차갑고 맑디맑은 날이었다. 아득히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 그러나 벨마가 간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