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2권 지은이: 버넷 출판사: 옮김 1.코린의 울음소리 울음소리는 복도의 왼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벽을 더음으며 복도 를 따라 걸었다. 저만치서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으로 다가가 살며시 문을 열었다. 네 개의 기 둥으로 받쳐진 침대 안에서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남자 아이는 창백하고 마른 얼굴에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야?" 남자 아이는 메어리를 보고 두려워하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이마로 흘 러내린 곱슬머리 때문에 여윈 얼굴이 더욱 갸름하게 보였다. "유령이야?" 남자 아이는 몸을 움츠리며 침대에 드리워진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아냐, 너야말로 유령 아니니?" 메어리는 남자 아이의 까만 속눈썹과 터무니없이 커보이는 눈을 바라보며 조 그맣게 물었다. "난 유령이 아냐. 난 코린이야. 코린 클레이븐. 넌?" "난 메어리야. 클레이븐 씨는 우리 아저씨야." 코린은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어, 클레이븐 씨는 우리 아버지신데?" "네 아버지라구? 클레이븐 씨가?" 메어리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저택의 누구도 메어리에게 코린의 얘기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저씨께 아이가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메어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리 가까이 와 봐." 코린은 여전히 불안한 듯한 눈으로 시트에서 손을 꺼내 메어리에게 내밀었다. 코린은 손으로 메어리의 잠옷 소매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넌 정말로 유령이 아니구나. 난 가끔 진짜 같은 꿈을 자주 꿔. 그래서 네가 나타난 것도 꿈일 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도 아까는 네가 유령이 아닌가 생각했어. 내가 널 꼬집어 줄까? 내가 정말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말이야. " 코린은 메어리의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얼른 시트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 자 메어리는 조그맣게 웃었다. "그런데 넌 어째서 울고 있었던 거니?"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게다가 머리까지 너무 아파서." 코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니?" "이젠 괜찮아.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는 건 싫어." "왜?" 메어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난 병 때문에 늘 누워만 있거든. 아버지도 사람들이 내 얘기 하는 걸 싫어하 시고 말야. 난 아 마 아버지처럼 꼽추가 될거야." 코린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여긴 정말 이상한 집이야. 방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정원에도 그렇 고. 혹시 너도 이 방에 계속 갇혀 있었던거 아니니?" "아니, 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만 있는 거야. " 코린의 말에 메어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는 널 마나러 오시니?" "가끔 오셔. 하지만 거의 내가 자고 있을 때만 오셔. 아버진 날 만나고 싶어하 지 않으시거든." "그건 왜?" 코린의 얼굴에 화난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날 낳자마자 돌아가셨어. 그러니까 아버지는 날 보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메드로크와 피쳐 집사가 하는 말을 다 들었어." "그런 말은 믿을 수 없어. 아저씨는 그런 분이 아닐 거야." 메어리는 고개을 저었다. 그러나 코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야. 아버지는 날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 주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어째 서 돌아가신 걸까 까?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난 이렇게 몸 약한 아이로 살지는 않았을 거야." "그랬을지도 모르지. 넌 내가 몇 살 정도로 보이니?" 코린은 메개에 머리를 기댄 채 메어리를 쳐다 보았다. "날 왜 그렇게 쳐다보니?" 메어리는 코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응, 언제나 똑같은 꿈을 꾸어서 그래. 이렇게 눈을 뜨고 있어도 내가 자고 있 는 건지, 깨어 있 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어." "우린 확실히 깨어 있어. 꿈이 아니라구." 메어리는 힘주어 말했다. "정말 꿈이 아니라면 좋겠어. 메어리, 또 와줄 거지? 네가 와주면 정말 기쁠 거야. 난 내 또래 의 아이와 얘기하는게 처음이거든."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메드로크 부인이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날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코린은 입술을 꽉 다물고 말했다. "매드로크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우리집 하인이야." "하지만......." 메어리가 머뭇거리자 코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넌 오늘 날 만난 걸 비밀로 해 두면 돼. 나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 까. 난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간호사를 내보낼 수 있어." "간호사?" "응. 참 간호사는 잠깐 언니집에 갔다는 걸 있고 있었어. 메어리, 너 혹시 마르 사를 알고 있니?" 메어리는 얼른 고개를 끄던였다. "응. 잘 알아. 마르사가 날 돌봐주고 있거든." "그럼 널 마나고 싶을 땐 마르사에게 불러 달라고 할께. 간호사가 없을 땐 마 르사가 나를 돌봐주거든." 코린은 하품을 하며 몸을 시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함 피곤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말해본 건 처음이야." "이제 좀 쉬도록 해. 잘 자. 코린." 메어리가 몸을 돌리려 하자 코린이 다시 메어리의 잠옷 소매를 잡았다. "나......난 네가 이곳에 있을 때 잠들고 싶은데......." 메어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메어리는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럼 두 눈을 꼭 감아, 코린. 인도에 있을 때 유모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해 줄께." 코린이 눈을 감자 메어리는 시트 위로 내민 코린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작은 꽃잎들. 하늘의 별님 도 잠이 드는데.. 자장 자장 잘도 잔다......." 메어리의 다정한 자장가 소리에 코린은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메어리 는 살며시 코린의 손을 놓고 방으로 돌아 왔다. 다음날 아침, 메어리는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떴다. 마르사가 커 튼을 걷으며 메어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날씨가 무척 좋아요. 어젠 그렇게 바람이 불어대더니, 오 늘은 바람 한 점 없어요." 메어리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눈은 아직도 반쯤 잠긴 채로였다. "또 밤 늦게까지 안 자고 있었군요. 책이라도 읽으셨어요?" "아니, 코린이랑 얘기했어. 이상한 울음소리를 듣고 따라갔더니 코린이 울고 있었어." 마르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도련님을요? 그러시면 안되요. 아가씨가 그러시면 제가 곤란해져요." "왜 그래?" 마르사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링 것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메크로크 부인은 분명히 제가 도련님 얘기를 했다고 생각 하실 거예요. 그럼 전 이 저택에서 쫓겨나게 될 거라구요." "걱정할 거 없어. 네가 쫓겨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메어리의 느긋한 말에 마르사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메어리를 쳐다보았 다. "코린은 내가 찾아와 줘서 기쁘다고 했어." "정말이세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도련님은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모습 을 들키는 걸 아주 싫어하시는데." 마르사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어도 가만히 있던걸. 이 방으로 오기 전에는 코란에게 자 장가까지 불러서 재워 주었다구." "도련님이 가만히 계셨단 말이죠? 그렇게 짜증이 심하신 도련님이......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마르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아가씨가 요술을 부리신 거에요." "요술?" 메어리는 눈을 비비다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마르사는 쳐다보았다. "네, 요술이요. 요술을 부리지 않았다면 도련님이 그렇게 고분고분 하실 리가 없어요." "아냐, 난 요술 같은 건 부릴 줄 몰라. 마르사, 코린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 랑 만난 사실을 메드로크 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어." "아, 다행이에요." 마르사는 휴우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메어리도 마르사가 안심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코린은 날 또 만나고 싶대. 그러면서 나랑 만나고 싶을 때는 너한테 얘기한다 고 했어." 마르사의 얼굴은 다시 울상이 되었다. "저한테요? 전 분명히 쫓겨나게 될 거예요, 메드로크 부인이 절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구요." "걱정하지 마.메드로트 부인도 코린의 말에는 어쩔 수 없을 거야." 메어리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방 안으로 퍼졌다. "흠, 정 말 좋은 아침이야." 메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동물 모양의 구름들이 천천히 흘 러가고 있었다. "난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어. 마치 시파이어 같애. 맞아, 정원을 보러 가야지." 메어리는 옷을 갈아입고 줄넘기를 들었다. 2. 어린 임금님 메어리는 저택을 나오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양손에 줄넘기를 쥐었다. 그리고 줄을 뛰어넘으며 작은 길을 돌아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패티도 덩달아 깡총깡 총 뛰며 메어리를 따라 왔다. "오늘은 디콘이 와줄 거야." 메어리는 푸르게 돋아난 새싹들을 지나 비밀의 정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원 의 문 위에서 처음 들어보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여왔다. "이건 무슨 새 소리지?" 메어리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게 윤이 나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새가 덩굴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새는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메어리와 눈이 마주치자 정원 안으로 날아가 버렸다. "처음 보는 새야. 어디서 왔을까?" 메어리는 패티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문을 열고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콘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메어리." 메어리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가에 커다란 웃음이 번졌다. "어머, 디콘! 벌써 왔어?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어?" 디콘은 빙긋 웃으며 정원 구석에 있는 통로를 가리켰다. "아, 비밀 통로로 왔구나. 그렇지?" "응, 난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어. 이렇게 멋진 아침에 잠만 자고 있을 수는 업ㅅ잖아? 자, 저걸 봐." 메어리는 디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장미 나무 가지에 잎사귀 가 돋아나 있었다. "잎사귀야. 장미 나무에 잎이 돋아났어." "그것만이 아니야, 네 발밑을 보라구." 메어리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살펴보았다. "와, 꽃이 피었어. 여기도, 어, 저기도. 굉장해, 디콘." 크로커스 한다발이 메어리의 바로 발밑에서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보라색 꽃 과 오랜지색 꽃, 그리고 금색의 꽃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너무 예뻐. 크로커스가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는 줄은 몰랐어." 메어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꽃들에게 뽀뽀를 해 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 고 있는 메어리의 목덜미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다가와 스쳤다. "응? 뭐야?" 고개를 들어보니 귀엽게 생긴 망아지가 메어리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망아지는 또랑또랑한 맑은 눈으로 메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망아지야! 디콘, 네 친구구나! 그렇지?" 디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아지에게로 다가와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젖먹이 망아지일 때 들판에서 발견했어. 이름은 점프야. 워낙 뛰는 걸 좋아해 서 말이야." 저ㅁ프는 사랑스러운 털복숭이 망아지였다. 곱슬곱슬한 털이 눈 위에까지 늘 어져 있었다. 점프는 반들거리는 코를 메어리에게 밀어붙였다. "아이, 간지러워." 메어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그러자 코린이 점프의 앞발을 들어올렸다. "자, 점프. 메어리와 악수하자. 만나서 반가워, 메어리." 코린은 점프의 앞발로 메어리와 악수를 하게 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작은 코 로 메어리의 뺨에 뽀뽀를 하게 했다. "내게 뽀뽀를 해 주었어. 나도 반가워. 점프." 그때 까마귀 한마리가 디콘의 어깨와 내려와 앉았다. 까마귀는 탁한 소리로 까악까악 울었다. "어? 아까 문 앞에서 봤던 까마귀야." 디콘은 까마귀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 녀석이 샘을 내는 데? 널 먼저 본 건 자기인데 인사는 늦게 시켜준 다고 투덜거리고 있어." "정말이야?" 메어리는 기분이 좋아서 소리쳤다. 디콘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이 녀석은 검댕이야. 들판에서 널 찾으러 다닐 때 이 녀석도 같이 있었어." "검댕이? 정말 털이 까맣다." 디콘과 메어리는 정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정원은 놀랄 만큼 많이 달라 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ㅎ짝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디콘, 나 말이지. 비밀을 또 하나 발견했어." 메어ㅣ는 ㅂ이 발갛게 산기된 채 말했다. 디콘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밀?" "나 코린을 만났어. 어젯밤에 말이야." "코린? 아, 도련님 말이구나. 어른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 저택에 병을 앓고 있는 남자 아이가 있다고 말야. 어른들 말로는 그 애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하던데." "너도 알고 있었어? 그럼 나만 몰랐던 거네." 메어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코린을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난 그것밖에는 몰라. 정말이야. 메드로크 씨는 도련님에 대해 소문이 나는 걸 싫어하시거든. 주인님은 도련님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셔." "어째서?" 메어리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디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련님의 눈이 마님의 눈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래." 메어리는 코린의 커다란 눈을 생각했다. 매우 아름다운 눈이었지만 생기가 없 어 보였다 "너무해. 부인 생각이 나서 코린을 만나지 않으시다니. 그렇다면 코린이 너무 불쌍하잖아." 메어리는 코린이 가엾게 여겨졌다. 그리고 코린은 지금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콘, 나 코린에게 가봐야 해. 놀러 가기로 했었거든. 내일도 올거지?" "응." 메어리는 코린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마르사가 복 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다 메어리를 보고 작게 외쳤다. "아가씨, 어디 갔다 오셨어요?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찾고 계세요. 얼른 도련님 에게 가 보세요.: "응, 알았어." 메어리는 코린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다. 코린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메 어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메어리, 찾고 있었어. 마침부터 줄곧 네 생각만 했거든." 메어리는 코린이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마르사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몰라. 우리가 만나는 걸 메드로트 부인이 알게 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래? 내가 마르사에게 말해 볼게." 코린은 침대 옆에 있는 줄을 잠아당겨 벨을 울렸다. 그러자 마르사가 금세 코 린의 방으로 들어왔다. "마르사, 넌 내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임무지?" 코린의 말에 마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드로트도 그렇지?" 마르사는 영문을 몰라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코린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메어리를 불러 달라고 명령한 사람도 나지? 그런데 어째서 메드로크가 널 쫓 아낼 수 있다는 거지?" "하, 하지만......." 마르사가 뭐라고 말하려 하자 코린은 마라사의 말을 잘랐다. "누구든지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이 저택에서 쫓아내 버릴 거야.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자, 이제 물러가도 좋아." 코린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마르사가 나가고 나자 메어리는 코린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코린은 얼굴을 쳐들고 메어리를 보았다.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뭔데?" "한 가지는 네가 어린 님그님 같다는 거야. 인도의 임금님 말이야. 인도에 있 었을 때 어린 임금님을 본 적이 있어. 임금님은 온몸에 루비랑 에메랄드, 다이아 몬드를 잔뜩 달고 있었어." 메어리는 단숨에 말을 이었다. "임금님이 뭐라고 명령하면 누구든지 그대로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 것 같았어. 네가 지금 마르사에게 얘기하는 말투를 듣고 있으려니까, 인도 의 어린 임금님이 생각났어." 코린은 메어리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보더지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럼 다른 하나는?" "그건 말이지. 넌 디콘과는 무척 다른 애라는 거야." "디콘? 이상한 이름이구나. 그 애는 어떤데?" 메어리는 디콘의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잠시 망설였다. 디콘의 이야기를 하면 비밀의 정원 이야기도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 디콘은 마르사의 동생이야. 디콘은 여우랑 까마귀랑 망아지란 그리고 올 새와도 모두 친구야. 그애는 모든 동물들과 다 친해." "동물과 친구라고? 이상한 애로구나." 메어리는 코린에게 디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디콘의 친구야. 디콘이 부는 피리 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그 애가 피리를 불면 그 주위로 온갖 동물들이 모두 모여들어. 피리소리를 들으려 고 말이야." "그 앤 요술을 부리는 거야?" 메어리는 고개를 저었다. "요술이 아냐. 디콘은 동물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 그 애는 자기가 망아지 나 양이나 까마귀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동물을 사랑한다고 했어. 그래서 동물 들이 그 애를 잘 따르는지도 몰라. 게다가 디콘은 들판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코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들판을 좋아할까? 정말 이상하다. 들판은 넓기만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야." "나도 들판을 처음 봤을 땐 그렇게 생각했어. 보잘 것 없고 아름 다운 것은 아 무것도 없는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구. 하지만 지금은 달라. 거기처럼 아름 다운 곳은 아마 없을 거야. 셀 수도 없이 많은 꽃들이 피고, 동물들은 부지런히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낳아서 길러. 땅 밑에서도 나무나 꽃들이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메어리의 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어?" 코린은 턱을 괴고 메어리를 바라보았다. "디콘한테 들었어. 디콘은 마치 내 눈으로 보고 잇는 것처럼 얘기를 해줘. 정 말 그 애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여러가지 것들이 눈에 보여." "난 병 때문에 누워만 /있어서 들판에 가 본적이 없어. 한번은 정원에 나갔다 가 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했던 적도 있어. 난 들판 같은 데는 가지 않을 거야." 메어리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왜? 너도 들판에 나가 보면 좋아할 거야. 너도 들판에 갈 수 있어." 그러자 코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가지 않아. 아니, 갈 수 없어. 난 이제 곧 죽게 될 건데. 뭘. 필요없어." 메어리는 코린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 코린은 마치 자기가 죽게 될 것을 자랑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누가 네게 그런 말을 했지?" "모드들 내 뒤에서 수근거리고 있는 걸 난 다 알아. 하인들이나 의사 선생이나 모두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메어리는 발끈 화를 냈다. "그만 해. 그럴 리가 없어. 그리고 만약 정말로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면, 나라면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의사 헨리와 메드로크 부인이 들어왔다. 메어리를 본 메드로크 부인의 눈은 놀라움으로 크게 치켜 떠졌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여길!" 메드로크 부인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의사 헨리도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이 아가씨는 누구요? 코린에게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러나 코린의 얼굴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코린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얜 내 사촌인 메어리야. 내가 와 달라고 부탁했어." 헨리는 메드로크 부인을 책망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인들에게도 절대 누구에게도 알리 지 말라고 확실히 말해 두었어요." 그러자 코린이 거만하게 말했다. "맞아,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어. 메어리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거야. 난 메어리가 와줘서 정말 기뻐.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줘, 메드로크." 헨리는 코린의 말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코린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맥박을 쟀다. "코린, 너무 많은 말을 하거나 흥분하는 건 몸에 좋지 않아." 헨리의 말에 코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메어리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난 진짜로 흥분하고 말 거예요." 헨리는 메어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쁘지도 않고 무뚝 뚝해 보이는 이런 아이의 어떤 점이 코린의 마음에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 다. 메드로크 부인과 헨리는 메어리를 쳐다보다가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코린은 방문을 노려보며 메어리에게 말했다. "헨리는 우리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야. 내가 죽게 되면 헨리는 나 대신 이 미 스르스웨트 장원을 물,려받게 될 거야." "그게 사실이야?" 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는 내 병이 더 악화되길 바라고 있어. 내가 죽게 되면 이 저택을 물려받 을 수 있으니까." "설마."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이야. 우리 아버지까지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뭐." 코린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3. 메어리의 땅 메어리는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패티와 한께 정원으로 나갔다. 패티는 메 어리를 졸졸 따라가다가 가끔씩 길 옆에 난 숲길로 빠지곤 했다. "패티, 자꾸 다른 데로 가면 난 숨어 버릴 거야." 메어리가 장난스럽게 흘겨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패티가 다시 숲길로 들어가자 메어리는 나무 뒤에 숨엇다. 패티는 숲길에서 나와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야옹, 야옹." 패티는 애처러운 울음 소리를 냈다. 한참 후에야 메어리는 나무 뒤에서 살그 머니 나왓다. 패티는 메어리를 보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놀랏지?" 메어리는 패티를 안아올이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때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 려왔다. "메어리, 패티가 놀랐겠다. 벤 할아버지가 널 찾으셔." 메어리는 그 복소리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 차렸다. 메어리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확 퍼졌다. "디콘, 벌써 왓어? 그런데 벤 할아버지가 왜?" "좋은 일인가봐. 네가 아주 기뻐할 거라고 하시던데." "그래? 무슨 일일까? 어서 가보자." 메어리와 디콘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채소밭 옆에 있는 벤 할아버지의 오두 막으로 갔다. "할아버지, 메어리를 데리고 왔어요." 디콘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벤 할아버지가 나왔다. "주인님께서 네게 땅을 주셨단다. 며칠 전 여행을 떠나시면서 내게 부탁을 하 고 가셨지." "와, 정말이에요? 어떤 곳인데요? 빨리 보고 ㅅㅍ어요." 벤 할아버지는 메어리와 코린을 데리고 정원의 작은 오솔길을 걸어 새 정원으 로 갔다. 새 정원은 채소밭의 옆에 있는 커다란 공터였다. "자, 여기가 네 땅이란다. 어떠냐?" 멘 할아번지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어리는 놀라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아저씨가 이렇게 넓은 땅을 제게 주셨단 말예요?" 디콘도 땅을 둘러보며 놀랐다는 듯이 가늘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 정도의 땅이라면 집이라도 지을 수 있겠다. 여기에 뭘 심을 거니?" "글쎄, 아! 잠미랑 수선화란 갈란투스를 심을 거야. 그리고 사과나무도 심고 말야." 그러자 디콘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메어리, 꽃들은 많이 있으니까 채소를 심는 게 어때? 양배추랑 오이랑 샐러리 를 심는 거야." "피, 난 채소 따위는 심지 않을 거야. 꽃이 훨씬 좋아." 메어리가 입을 삐죽이자 디콘은 벤 할아버지가 듣지 못하도록 귓속말로 속삭 였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이곳에서 우리가 키운 채소를 코린에게 갖다 주는 거 야. 싱싱한 채소를 먹으면 코린도 건강해 질지 몰라." 디콘의 말에 메어리는 손뼉을 쳤다. 그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좋아, 난 여기에 채소를 키우겠어. 벤 할아버지, 이곳에 심을 채소 씨를 구해 주세요." 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디콘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채소를 심겠다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다.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건, 꽃이 자라나는 것만큼 기쁜 일이거든. 내가 이곳 에 담을 쌓아 주마. 채소들이 바람에 뽑히면 안 되니까 말이다." 메어리는 새로운 떵을 가꿀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코린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면 무척 기뻐할 것 같았다. 그때 멀리서 마르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 다. "어, 마르사야. 디콘, 나 마르사한테 갔다 올게. 먼저 거기로 가 있어." 메어리는 숨을 몰아쉬며 저택으로 뒤어 들어갔다. 마르사는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발갛게 산기된 볼과, 바람에 날려 흐트러진 머리를 보자 얼굴을 찡그 렸다. "요즘은 계속 밖에만 나가 계시는군요." 가정교사가 왔으니 옷매무사를 단정히 하세요. 주인님께서 고용한 선생님이에요." "가정교사라고?" 메어리의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점점 찌푸린 얼굴이 되었다. "난 가정교사 따윈 필요없어! 혼자서도 공부 할 수 있단 말이야!" 메어리는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메크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팔을 잡았다. "고집 부리지 마세요. 아가씨도 이제 공부할 나이가 되었어요. 자,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메드로크 부인은 꼿꼿이 서서 입을 다물고 있는 메어리의 팔을 잡고 방으로 갔다. 가정교사는 메어리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가정교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오늘부터 아가씨를 가르쳐 주실 헬렌 멕코이 선생님이세요." 멕코이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러자 높이 올려 묶은 긴 머리가 팔랑거렸다. "멕코이예요. 메어리라고 했죠?" 메어리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메드로크 부인이 메 어리를 제촉했다. "뭐허시는 거예요? 어서 선생님께 인사하셔야죠." "안녕." 메어리는 마지 못해 퉁명스런 목소리로 인사했다. 멕코이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밀지 않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못마땅한 눈으로 메어리를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아가씬 예의 범절이 전혀 없어요. 배울 게 무척 많답니다. 선생님이 좀 엄 하게 가르쳐 주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맥코이 선생님에게 말을 마치자 메어리는 쌀쌀하게 말했다. "전 할일이 있어요. 밖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수업시간이 되면 절 부 르세요." 메어리는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메어리는 멕코이를 보자 인도에서의 가정교사가 생각났다. 가정교사들은 메어 리에게 늘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들만 가르쳤다. 그러다가 메어리가 말을 듣지 않자 모두 나가 버렸다. "가정교사는 싫어. 난 방에 앉아서공부하는 것보다 디콘이랑 정원에서 노는 게 훨씬 좋아." 메어리는 퉁퉁 부은 얼굴로 비밀의 화원으로 갔다. 그런데 디콘은 캡틴과 나 무 그늘에 숨어 뭔가를 살피고 있었따. "뭐 해, 디콘." 디콘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손으로 가까이 오라는 표시를 했다. "왜 그래?" 메어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디콘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걸 봐. 울새가 둥지를 짓고 있어. 여자친구와 함께 말야." 디콘은 손가락으로 울새가 늘 앉아 있던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울새는 주둥이에 작은 가지를 물고 바쁘게 운직이고 있었다. 울새의 옆에는 가슴이 빨간 또 한마리의 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리고 너무 빤히 쳐다봐도 안 돼. 안 그러면 저 녀석은 다른 곳에 둥지를 틀게 될지도 몰라. 우린 저 녀석 눈에 풀이나 나무처럼 보여야 해." 디콘은 거의 잘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메어리는 풀이나 나무 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메어리는 디콘을 힐끗 쳐다보았다. 디콘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디콘, 나 좀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 울새의 여자친구는 처음 보잖아." 메어리가 속삭이자 디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둥지를 다 지을 때까지는 가까이 가면 안 돼. 다른 얘기를 해봐. 얘기 를 하다 보면 금세 둥지를 다 지을 거야." 메어리는 울새가 짓고 잇는 둥지를 쳐다보며 다시 얼굴을 찡그렸더. "나 가정교사가 생겼어.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이야." 디콘의 파란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가정교사라구? 정말이야?" 디콘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엿다가 손으로 입을 막앗다. 메어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난 정망 가정교사는 싫어.인도에 있을 때 만났던 가정교사들은 내가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한다며 모두 날 싫어했어. 멕코이 선생님도 남 싫어할 거야." "아니야. 울새가 널 좋아하듯이 맥코이 선생님도 널 좋아하실 거야." "그럴까?" 메어리는 맥코이가 자신을 좋아해 줄지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그래서 아까 더울 쌀쌀하게 대했던 것이다. 그때 멀리서 마르사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일까? 잘못하다간 걸릴 것 같아." 메어리와 디콘은 정원의 비밀통로로 빠져나와 숲으로 갓다. 그리고는 클레이 븐 씨에게 받은 새 땅으로 가서 땅을 일구는 척했다. "아가씨, 여기 계셨어요? 어서 집으로 가 보세요. 도련님께서 난리가 나셨어 요." 마르사는 정원에 있는 메어리를 발견하자마자 발을 동동 굴렸다. "왜 그래? 코린이 아파?" "아녜요. 아가씨가 오지 않는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셨어요. 오후 낸 달랬 는데 소용이 없어요. 식사도 안 하시고 계속 시계만 보고 계세요." 메어리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는 화난 걸음으로 코리느이 방으로 갔다. 코린은 소파에 앉아 있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일어나 있지 않아?" "오늘 아침엔 네가 와주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코린은 메어리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후엔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 등이 아프고 머리도 아팠어.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디콘이랑 정원에서 일하고 있었어." 메어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코린은 고개를 홱 돌려 메어리를 쳐다보며 소리질렀다. "나랑 얘기 하지 않고 그 애랑 같이 있었다구? 나보다 그 애가 좋단 말이지? 좋아 이제 그 아이를 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야." 메어리는 발끈 화를 냈다. "만약 디콘을 쫓아 버리면 난 다시는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오라고 하면 넌 와야만 해! 꼭!" 코린은 얼굴이 벌개져서 외쳤다. "흥 내가 올 줄 알아?" "오게 하고 말 거야. 억지로라도 끌고 오게 할 거니까." 메어리는 비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그러세요. 어린 임금님." 그리고는 콧방귀를 뀌며 코린을 쳐다보았다. "흥,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있어도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을걸. 난 앉은 채로 이 를 악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을 테니까. 널 쳐다보지도 않고 마루만 보고 잇을 거야." "넌 너무 자기 멋대로야!" 코린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넌 어째서 그래? 너야말로 제멋대로 굴면서. 난 너처럼 버릇없는 아이는 처 음 봤어!" "아냐! 난 달라!" 코린은 베개에 기댄 채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앗다. 굵은 눈물 방울이 뺨 위 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난 제멋대로가 아냐. 난 늘 병 때문에 누워 잇어야 하고, 등에는 혹까지 생길 거란 말야. 그뿐인 줄 알아? 난 이제 곧 죽게 될거야." "죽는다는 말 거짓말이야!" 코린은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눈에서는 계속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어렸을 때 간호사와 함께 해안가에서 갔던 적이 있었어. 난 유모차에 뉘 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날 힐끔힐끔 쳐다 봤어. 그리고 어떤 여자가 간호사와 소근거렸어.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어떤 사람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불쌍하다고까지 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메어리는 숨을 죽이고 고개를 저었다. 디콘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 높여 말했다. "난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 그 여자에게 달려들어 손을 물어 버렸어. 그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어. 난 계속 죽게 될거라는 말만 들어왔단 말이야." 코린의 어깨가 가늘게 들썩이고 있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가엾은 모습을 보자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끓어오르던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넌 살 수 있어. 내가 정원에도 데려가 줄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건강해질 거야." 코린은 잠시 메어리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저기 잇는 가구의 첫번째 서랍을 열어 봐." 메어리는 코린이 가리키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놓인 헝겊으로 만든 작고 예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이거?" 메어리가 상자를 들어 보이자 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이리 가져와서 뚜껑을 열어봐." 메어리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메어리는 너무 놀라서 '아' 하고 작 게 탄성을 질렀다. 상자 안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나비 모양이 그려진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코린, 이 머리핀 네 거니?"" 메어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머리핀은 메어리의 엄마가 메어리에게 물려주신 머리핀과 같은 모양의 것 이었다. 코린은 불빛에 반짝이는 머리핀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준 유물이야. 엄만 애게 그것만 남겨 주시고 돌아가셨어." "나도 이것과 똑같은 머리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분명히 엄마가 준 것과 똑같은 모양의 머리핀이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메어리는 머리핀을 급 히 등 뒤에 숨겼다.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가씨는 이제 방으로 돌아가셔서 쉬세요. 도련님은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주 무셔야 돼요." "난 잠이 오지 않아." 코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메어리는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내가 잠 재울게. 약속할게. 난 코린이 잠드는 것까지망 보고 금방 나갈 거야." "그래, 난 머리가 아파. 메어리의 노래를 듣고 싶어. 저번에 들려 줬던 노래 말 이야. 그 노래는 조용하니까 금방 잠들게 될거야.." 간호원이 나가고 나자 코린은 시트 위로 손을 꺼내 올려놓았다. "나탈리라는 내 간호사야. 어제 언니 집에 갔다가 돌아왔어." "응, 이제 자야지." 메어리는 시트 위로 내민 코린의 손을 잡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앞뜰과 뒷동산에 작은 꽃잎들, 하늘에 별님 도 잠이 드는데,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코린은 서서히 잠 속에 빠져 들었다. 코린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메어리는 코린의 머리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 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핀을 상자에 넣어서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다. 4. 코린을 정원으로 다음날 아침 마르사는 식사를 가지고 들어와 메어리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도련님이 몸이 좋지 않으신가 봐요. 얌전하게 계시긴 해도 몸에서 열이 나고 있어요. 마구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다음날엔 늘 그렇거든요." 마르사는 메어리의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코린의 말을 전해 주 었다. "도련님이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하세요. 참 이상해요. 어젠 그렇게 화를 내시 더니, 이젠 아가씨에게 제발 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고." "디콘에게 먼저 가봐야 하는데. 새 정원을 일궈 주기로 했거든." 메어리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 정원엔 뭘 심으실 거예요? 디콘에게 꽃씨를 부탁해 보지 그러세요?" "아냐, 채소를 심기로 했어. 벤 할아버지가 채소 씨를 주신 댔어." 메어리는 옷을 갈아 입다가 다시 뒤돌아 섰다. "아냐, 코린에게 먼저 가봐야겠다. 날 많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메어리는 모자를 쓰고 코린의 방으로 갔다. 메어리의 옷차림을 본 코린의 얼 굴에실망스런 표정이 스쳤다. "너 어디 나가니?" 메어리는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응, 아저씨가 땅을 주셨거든. 오늘 거기에 채소를 심을 거야." "아버지가?" 코린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내가 땅을 달라고 했거든.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면 너한테도 보여 줄게." "정말?" 코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메어리는 코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코린도 꼭 정원에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 정원에서는 디콘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돌맹이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디 콘 옆에는 몇 그루의 나무와 씨를 담은 봉지가 쌓여 있었고 망아지 점프는 흙을 발로 밟으며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디콘! 야, 점프도 왓구나." "응, 오늘은 이 녀석이 날 태워 줬어.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말이야." "와, 힘도 센가봐." 점프는 가늘지만 튼튼해 보이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디콘은 잘 길들여진 다람쥐도 데리고 왔다. 디콘은 웃옷의 주머니를 벌려 보였다. "이거 봐. 너트하고 쉘이야. 이 녀석들은 내 주머니를 좋아해. 자, 너트 나와 봐." 디콘이 너트를 부르자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다람쥐가 디콘의 어깨 위로 뛰어 올랐다. 너트의 작은 손에는 도토리 한 알이 들려 있었다. "쉘도 나와야지." 그러자 왼쪽 주머니에 있던 다람쥐가 디콘의 어깨 위로 뒤어 올랏다. "오늘은 널 찾아올 사람도 있어. 내 쌍둥이 동생들이 이리로 와서 채소 심는 걸 도와주기로 했거든." 메어리는 기뻐서 손을 모으고 팔짝팔짝 뛰었다. "재키와 제임스와 필이 온단 말이지? 보고 싶었어. 너희 집에 간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잖아." 얼마 후에 쌍둥이들이 정원으로 들어왔다. "메어리, 오랜만이야. 이 정원이 메어리의 땅이구나." 쌍둥이들은 함박 웃음을 머금고 메어리에게 인사했다. 재키는 땅을 둘러보며 손으로 흙을 비벼 보기도 했다. "씨앗을 뿌리면 좋은 채소밭이 될거야." 제임스와 필은 들고 온 모종삽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디콘은 봉지에서 씨앗 을 꺼냈다. "너희들은 여기에 구멍을 좀 파줘. 메어리와 내가 씨를 심을게." "응, 알았어." 쌍둥이들은 한 이랑씩 나누어 삽으로 구멍을 팠다. 메어리와 디콘은 한참 일 을 하고 난 뒤에야 씨를 다 뿌릴 수 있었다. 메어리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 이 맺혔다. "아, 힘들다. 여기서 내가 심은 씨앗들이 싹을 틔운단 말이지? 생각만 해도 행 복해." 메어리는 곧게 펴고 팔을 쭈욱 뻗었다. "제임스, 재키, 필, 도와줘서 고마워. 채소가 나면 꼭 가지러 와." 메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쌍둥이와 디콘을 따라 들판으로 나갔다. 오랜 만에 맡아 보는 들판의 냄새에서는 금잔화와 히드꽃의 향기가 함께 풍겨오고 있었다. "음, 이 좋은 향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 봄이 온걸 모두 기뻐하나 봐." 메어리의 말에 쌍둥이들도 모두 킁킁 코를 움직이며 냄새를 맡았다. "정말이야. 히드꽃 향기가 나고 있어." 메어리와 쌍둥이, 디콘은 들판을 달리며 크게 웃었다. 상쾌한 공기가 몸 속으 로 스며들어와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너트와 쉘은 디콘의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와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택을 꽤 지나쳐 있었다. "메어리, 그만 돌아가. 너무 멀이까지 왔어." 디콘과 쌍둥이는 손을 흔들며 들판을 내려갔다.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들판을 걸었다. 히드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곳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향기를 들이마시 기도 했다. 메어리는 눈을 조그맣게 보였다. "카멜라한테 가자, 패티. 어쩌면 스잔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메어리는 히든꽃과 금작화 무리를 지나 늪지로 갔다. 카멜라는 눈을 감은 채 늪지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메어리는 살금살금 카멜라의 등 뒤 로 다가갔다. "메어리?" 카멜라는 눈을 뜨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인 줄 아셨어요?" "네 냄새를 맡고 있었어.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향기가 있거든." "향기라구요?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어요? 꽃도 아닌데."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멜라 옆에 앉았다. 카멜라 옆에는 커다란 바구 니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뭐예요? 무슨 풀 같은 게 잔뜩 담겨 있네." "약초야. 약으로 쓸 풀을 캐어서 담아 놓은 거지." 카멜라는 눈을 뜨고 메어리를 보며 빙긋 웃엇다. "이걸 어디에 쓰시는데요? 카멜라가 쓸 거예요?" "아니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야. 스잔도 가끔씩 이곳에 약초를 얻으 러 오지. 동물이나 사람이 다쳤을 때, 이 약초를 쓰면 금방 낫거든." 메어리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약초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흠흠 냄새를 맡아 보고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향기도 없어요. 난 아픈 곳을 낫게 해 준다기에 좋은 향기가 날 줄 알았 는데." "향기가 나는 꽃만이 좋은 건 아니야. 약초처럼 아무 향기가 없어도 좋은 곳에 쓰일 수 있는 것들도 많단다." "나 사실은 궁금한 게 잇어요. 제겐 엄마가 물려주신 작은 머리핀이 있는데 코 린도 똑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코린을 마났다구?" 카멜라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코린을 아세요?" 카멜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 다. "왜 코린과 제가 똑같은 머리핀을 가지고 있을까요?" 카멜라는 멀리 들판에 시선을 주었다. "그 머리핀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란다. 세 사람이 그 머리핀을 가지고 있는 거지. 얄궂은 운명이야." "세 개라구요? 나머지 하나는 누가 갖고 있는데요?" "내가 가지고 잇단다." 메어리는 깜짝 놀라 카멜라를 바라보았다. "카멜라가요? 어떻게 된 거예요? 카멜라는 이유를 알고 있죠?" "클레이븐 부인과 네 엄마는 무척 사이가 좋았었지. 나도 그 분들과 친했었단 다. 너희 엄마는 인도로 가기 전 머리핀을 세 개 만들어서 하나는 코린의 엄마 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주었어. 서로 뿔뿔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잊지 말자는 의 미에서 말이야. 그리고 십년 후에 꼭 정원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했어." "정원?" 카멜라의 표정능 더욱 어두운 빛을 띠었다. 카멜라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했 다. "그런데 클레이븐 부인이 사고를 당하고 말았지. 그 후 네 엄마도 돌아가시고 말이야. 그래서 결국 세 명 중에서 나만 남게 되었단다. 머리핀 세 개와 함께 말 이야." "카멜라는 정원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잇어요?" 카멜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들판만 바라보았다. 메오리도 더 이상 묻 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코린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메어리는 함참 후에 입을 열었다. "코린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엿다. "나 코린한테 많은 얘길 해 주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동화책도 읽어 주고 요." "어떤 얘기였는데?" 카멜라는 메어리를 바라보앗다. 그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왕비의 얘기예요. 그 왕비는 아이가 없어서 매일 하나님에게 빌 었어요. 하나님, 아이를 하나만 갖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말예요. 그래서 왕비는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대요." 카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그맣게 소리를 질렀다. "메어리!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돼." "네? 왜요?" 메어리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몸이 약한 코린에게 건강한 남자 아이 얘기를 하다니, 그런 건 좋지 않아. 게 다가 엄마 얘기까지......." "저희 엄마도 돌아가셨는걸요. 하지만 그 얘긴 너무 재미있어요." 메어리는 볼을 불룩 부풀렸다. "넌 엄마와 함께 살았었지만 코린은 엄마의 얼궁조차도 몰라. 넌 코린이 불쌍 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네." 그러자 카멜라는 메어리에게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을 해 주었 다. "코린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동정하는 마음이 든다는건,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런 생각은 마음 속에서 보두 지워야 해. 그게 코린을 위하는 거야." 카멜라는 다시 말을 이었다. "코린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생각하지 마. 대신 그냥 함께 즐겁게 놀아 주는 게 코린에게 제일 좋은 거야." "전 코린에게 디콘과 동물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그리고 코린이 걸 을 수 잇게 도와주고 싶어요." 메어리는 진심으로 말했다. 카멜라는 한참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오두 막으로 들어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왔다. "메어리, 이건 릴리아의 사진이야. 코린의 엄마 말이야. 무척 아름다운 분이셨 지." 메어리는 빛이 바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의 여자는 금발의 긴 머리 를 푸른색 리본으로 묶고 있었다. 코린의 눈과 같은 커다란 재색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우울해 보이는 코린의 눈과는 달리 사진 속의 눈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새까만 속눈썹이 눈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름다워요. 정말 코린의 눈과 꼭 닮았어요." "릴리아는 마음씨도 아주 고운 분이었단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도와 주었지." 카멜라는 사진 속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 득 차 잇었다. "케어리, 코린을 걷게 하고 싶으면 비밀의 정원으로 데리고 가라. 그곳에는 릴 리아의 영혼이 숨쉬고 있지. 릴리아가 코린을 걷게 해 줄 거야. 그리고 이 사진 을 코린에게 갖다 주렴." 5.동물 친구들의 방문 메어리는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가 코린의 방문을 열었다. 메어리가 코린의 침대에 걸터 앉자 코린은 코를 킁킁거렸다. "너한테서 꽃 냄새가 나. 게다가 풀 냄새도....... 또 무슨 냄새야? 상쾌하고 달 콤한데." 메어리는 방긋 웃으며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들판의 바람 냄새야. 들판에서 오는 길이거든. 들판은 좋은 향기로 가득해." 메어리는 코린에게 새 정원에서 디콘과 세 쌍둥이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엇 다. "디콘은 점프하고 쉘과 너트를 데리고 왔어. 그것들은 망아지와 아주 귀엽고 작은 다람쥐야. 점프는 디콘을 태워 주기도 한대. 온몸이 곱슬곱슬한 털로 덮여 있는데, 내게 쪽 하고 뽀뽀도 해 주었어. 디콘이 그렇게 시켰거든." "와, 굉장해. 디콘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 듣는단 말이야?" "그런 것 같애. 디콘은 동물과 친구가 되면 그 동물과 얘기를 할 수 잇다고 했 어. 하지만 진정한 친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대." 코린은 잠시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나 여러 동물들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어." "내가 있잖아. 난 네 친구야. 코린, 내가 디콘에게 동물 친구들을 이곳으로 데 려오라고 할까?" 코린ㅇ 러굴에 확 웃음이 퍼졌다. "정말?" 그러다 갑자기 코린은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난 동물을 보면 막 기침을 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해." "왜?" 동불들의 털 때문이야. 내가 어렸을 때 사냥개들을 키우고 있었어. 덩치가 아 주 큰 개도 있었는데 그 개가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난 침대에 혼자 누워 있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마구 기침을 하고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어." 코린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였을 때 일이잖아. 봐 지금 넌 아무렇지도 않잖아. 난 조금 전까지 망 아지란 다람쥐란 함께 놀다 왔어. 그러니까 내 옴몸에 털이 붙어 있을 텐데도 넌 기침을 하지 않잖아." "그럴 리가......." "분명해. 넌 디콘의 동물들과 만나도 끄덕없을 거야. 네가 기침을 한다는 건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코린은 믿기지 안흔다는 듯 고개를 저어ㅆ다. "그럴 리가 없어." 코린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에, 에취! 이것 봐." "에이, 거짓말쟁이." 메어리는 코를 찡그리며 코린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두드렸다. "잠깐만 기다려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메어리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마르사가 방 벽난로 앞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마르사는 재를 긁어내 며 청소를 하고 잇는 중이엇다. "이제 봄이ㅡ 왔으니 벽난로를 청소해야 돼요. 벤 할아버지도 밖에서 굴뚝을 청소하고 있어요." 마르사는 일어서지도 않고 계속 재를 긁어냈다. "마르사, 나 코린에게 동물 친구들을 소개해 주기로 했어." 마르사는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도련님은 동물을 가까이 하면 안 돼요. 도련님은 동물을 보면 심하게 발작을 한단 말예요." "쉬, 메드로크 부인한테는 비밀인데, 난 지금 패티를 데려가서 코린에게 실험 을 해볼 거야. 걱정하지 마. 코린은 동물을 봐도 끄덕없을 테니까." 마르사는 방문을 나가는 메어리를 불러 세웠다. "참, 아가씨. 멕코이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곰부하실 시간이라고 하시던 데."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해. 금방 가겠다고 말이야." 메어리는 패티를 작은 상자에 넣어 코린의 방으로 갔다. 코린은 누워 책을 읽 고 있었다. "공부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 패티가 상자 안에서 몸을 부스럭거리며 야옹 울음소리를 냈다. 답답하니 빨리 꺼내 달라는 것이다. 코린은 침대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메어리는 시치미를 떼고 코린처럼 침대 근처를 둘러보앗다. "무슨 소리? 난 못 들었는데."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났어.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고." 코린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기침을 하지는 않았다. 메어리는 한 손으로 상자 를 꼭 누르고 코린과 얘기를 나눴다. 패티는 상자 안에서 나오고 싶어 자꾸 몸 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메오리가 책을 집기 위해 잠깐 손을 뗀 사이에 패티는 상자에서 뛰어나오고 말앗다. "야옹!" 코린은 패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패티는 코린의 침대 위에 뛰어 올랐다. "고, 고양이잖아!" 코린은 놀라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렷다. 그러나 코린의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오지 않앗다. "와! 성공이야! 성공이야, 코린. 넌 패티가 옆에 잇어도 기침을 하지 않앗어.!" 메어리는 기뻐서 손뼉을 쳤다. 코린은 살그머니 얼굴에서 손을 떼고 코를 씰 룩거려 보았다. "어, 정말이네." "잘됐어. 이젠 디콘의 친구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내일 당장 오라고 할게. 디콘 도 네게 동물 친구들을 보여주고 싶어하거든." 메어리와 코린은 동물 친구들을 데려올 계획을 짰다. 코린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잇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방에서 나와 맥코이에게 갔다. 맥코이는 메어리늬 책상에 앉아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메어리. 왔군요. 자, 공부를 시작해야죠. 글자는 어느 정도까지 읽을 수 있 지요?" 맥코이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무르었다.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조금은 읽을 수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시를 읽은 적이 있나요?" "시?" 메어리는 동화를 읽은 적은 있지만 시를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어 본 적이 없나 보군요. 시는 문자의 보속이예요. 그걸 알게 하기 위해서 제가 멎진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어요." 맥코이는 흠흠 목청을 가다듬고 감정을 듬뿍 넣어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 나 메어리는 그 시가 무었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함!" 메어리는 손으로입을 두드리며 하품을 했다. 그러자 맥코이는 읽고 있던 시를 멈추고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메어리. 지금 하품을 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지루해요. 다른 걸 가르쳐 줘요." 맥코이는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메어리에게 이 시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 같군요." "난 좀 다른 걸 배오고 싶어요." "어떤 고죠?" 메어리는 잠시 방설이다가 말했다. "음 간호사들이 하는 일이요. 환자를 돌본다는 건 확실히 중요한 일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메어리는 기대감에 차서 얼른 대답했다. 그러나 맥코이는 조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메어리에게 가르치기로 한 건, 예의범절이지 간호하는 일이 아니에요. 전 메어리에게 공부나 미술, 숙녀로서 몸에 익혀야 하는 예절을 가르치기로 되 어 있어요." "예의범절이아구요? 전 좀 더 쓸모있는 걸 배우고 싶어요. 병을 고쳐 준다든 가, 빵을 굽는다든가, 요리를 만든다든가 하는......." "그런 걸 배우고 싶다구요?" 맥코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또 있어요. 청소를 한다든가, 꽃을 가꾼다든가 하는 것들 말예요." "메어리는 이 저택의 아가씨예요. 그런 것들은 모두 하인들이 해 주는 거예요. 자, 오늘은 수업을 그만 마치겠어요. 다음 시간에 수 놓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어 요." 메어리는 맥코이 선생이 나가고 나자 정원에 나가 줄넘기를 했다. 수업시간 내내 몸을 꼿꼿이 하고 앉아 있느라 굳어 있었던 몸이 다시 활기에 넘쳤다. 메어리는 줄넘기로 백 번을 뛰어 넘은 뒤 다시 스무 번을 더 뛰어 넘었 다. 다음날 아침 메어리가 코린의 방으로 가자, 코린은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왔구나. 나 조금밖에 자지 못했어. 디콘과 동물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아서 말이야." "디콘은 지금쯤 들판에서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을 거야. 풀만 먹이고 나면 동물들을 데리고 금방 이곳으로 온댔어." 메어리는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 왔다. "아, 이 햇살 좀 봐. 공기도 무척 신선할 거야. 코린, 창문을 열어 줄까?" 코린은 햇살을 손등으로 가리며 눈을 찡그렸다. "추울 거야. 아직 바람이 찰 거라구." "아니야. 봄바람이 얼마나 상쾌한데. 너도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야." 메어리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흠흠, 봐. 좋은 냄새가 나지 않니? 달콤한 봄 낸새 말야." 코린은 메어리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응, 네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 같아." 그때 간호다 나탈리가 들어왔다. 나탈리는 열여 있는 창문을 보고 놀란 표정 을 지었다. 코린은 지금까지 더운 날도 창을 꼭꼭 닫아두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감기에 걸릴 거라며 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춥지 않으세요, 도련님?" 코린은 찬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응, 난 지금 신선한 공기를 잔뜩 마시고 있던 참이었어. 그렇게 하면 튼튼해 질 테니까. 아침밥은 소파에서 먹을 거야. 메어리와 함께 말이야." 나탈리는 마르사에게 부탁해 메어리와 코린의 식사를 가져오게 했다. 코린은 메어리와 함께 있어서인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아침을 먹었다. "디콘에게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했어. 마르사에게 뒷문을 살펴 달라고 부탁도 해놓았어. 메드로크 부인이 알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의사 선생님도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아침에 간호사가 다녀갔으니까 말이 야." 잠시 후 마르사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아가씨, 디콘이 왔어요." 코린은 숨을 죽이고 문을 바라보았다. 디콘은 멋진 웃음을 얼굴 가득 띠고 들 어왔다. 디콘의 팔에는 새끼 양이 안기어 있었다. 재색 털의 여우 캡틴은 종종걸음으 로 디콘을 따라 들어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람쥐 너트가 왼쪽 어깨에 앉아 있 고, 쉘은 웃도리 주머니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까마귀 검댕이는 오른 쪽 어깨에 앉아 있었다. "안녕, 난 디콘이야." 디콘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코린의 눈에는 신기함이 가득 담겨 잇었다. 코린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디콘의 인사에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응? 그래. 안, 안녕. 난 코린이야." 코린은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디콘이 신기하기낭 했다. 지금까지 메어리 에게 디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엇지만, 이렇게까지 동물과 잘 어울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얘들은 너트와 쉘이야. 너란 놀고 싶어서 재롱을 떠는 거야." 너트와 쉘이 어깨와 주머니에서 깡총 뛰어내려 방안을 돌자 디콘이 방긋 웃으 며 말했다. "이거 가까이 와도 괜찮은 거야?" 코린은 약간 머뭇거리며 메어리는 바라보았다. 메어리는 너트를 안아들고 활 짝 ㅇ었다. "그럼, 괜찮고 말고. 봐, 귀엽지 않니?" 디콘은 안고 있던 새끼 양을 코린의 무릎에 가만히 올여 놓았다. 새끼양은 코 린의 옷에 얼굴대고 자꾸만 파고들려 했다. "뭘 하는 거야? 응?" 코린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디콘에게 물었다. 디콘의 얼굴에는 한층 더 밝은 웃음이 퍼졌다. "배가 고파서 그래. 일부러 아침을 조급밖에 먹이지 않았거든. 네게 우유 먹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말이야." 디콘은 소파 곁에서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우유병을 꺼냈다. "꼬마야, 이리 온. 에가 찾고 있던 게 바로 이거지?" "디콘이 우유병을 물려 주자 새끼 양은 열심히 우유를 빨기 시작했다. 그때 너 트와 쉘이 코린의 무릎 위로 팔짝 뛰어 올랐다. "어!" 코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메어리는 코린을 보며 멍하니 입 을 벌렸다. "코, 코린." "응, 왜?" 메어리는 손가락으로 코린의 다리를 가리켰다. "너 지금 일어나 있어." 그 순간 코린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놀라움 이 뒤섞인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나 일어났어. 처음이야. 난 늘 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디콘이 외쳤다. "이 녀석들이 널 설 수 있게 해준 거야. 동물이 몸에 좋지 않을 리가 없어." 디콘은 코린에게 새끼 양을 발견하게 된 얘기와 양을 치는 얘기를 들려 주었 다. 디콘이 말을 하는 동안 코린의 눈은 신기함으로 반짝거렸다. 코린으로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였다. 디콘의 말이 끝나자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코린, 네게 보여줄 게 있어." 코리능ㄴ 금발의 긴 버리에 커다란 재색 눈을 가진 사진 속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네 엄마야." 코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더니 사진 속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분이 우리 엄마?" "응, 맞아." 메어리는 코린과 같이 사진 속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다. "참 아름다운 분이셔. 눈 좀 봐. 모양도 크기도 너랑 똑같애." 디콘도 가까이 다가와 사진을 보았다. 캡틴과 검댕이, 너트, 쉘도 모여들어 고 개를 갸웃거렸다. "와, 정말 코린과 닮았다. 클레이븐 씨 부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분인지 몰랐 어." 디콘도 감탄했다. 코린은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 겨우 눈을 떼고 메어 리에게 말했다. "이 사진을 머리핀과 함께 둬야겠어. 메ㅓ리, 네가 좀 보관해 둘래? 자." 코린이 사진을 내밀자 메어리는 이상하다는 듯 물엇다. "왜? 항상 볼 수 잇도록 가깡눈 곳에 두면 좋잖아." 그러자 코린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에게 내 아픈 모습을 보이는 건 싫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 주고 싶지도 않구." "알았어." 메어리가 사진을 서랍에 넣으려 하자 코린이 다시 메어리를 불렀다. "메어리,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메어리는 방긋 웃으며 코린에게 사진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코린에 게 속삭엿다. "콜니.네게 알려 줄 비밀이 있어. 이건 디콘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이야." "비밀?" "응, 하지만 그 전에 꼭 약속을 해야 돼.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 고." 메어리는 코린에게 다짐을 받고 난 후에 디콘과 자신의 비밀을 말해 주었다. "이건 비밀인데......." 메어리가 뜸을 들이자 코린은 믿어도 된다는 듯 가슴을 살짝 두드려 보엿다. "정말로 날 믿어고 돼. 난 지금까지 비밀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애게 비밀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킬 거야." 그러자 메어리는 숨을 크게 한 번 등리쉬다가 단숨에 말했다. "코린, 너의 엄아가 아끼셨던 정원을 아니? 비밀의 정원 말이야." "비밀의 ㅈ원?" "응, 아저씨가 잠가 놓으신 정원이 이 저택 안에 있어. 십년 동안이나 숨겨져 있던 정원이야." "십년 동안이나? 아버짐 왜 정원을 잠그셨지?" "너희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잠그신 거야." 디콘은 코린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도 얌전히 앉아 서 메어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원을 내가 발견했어." "뭐라고?" 코린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메어리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 정원을 디콘과 내가 살려 놓았어. 십 년 동안이나 버려져 있던 정원을 말 이야." "그 정원은 어떤 고이야? 엄마가 아끼셨다는 저원을 꼭 가보고 싶어." 코린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그래, 널 데리고 갈 거야. 그곳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름다워. 장 미 덩굴들이 벽을 뒤덮고 있고 수선화랑 갈란투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어. 그리 고 그곳에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손님이 잇어. 그건 바로 울새야. 울새는 그 정원에 둥지를 짓고 살고 있어. 여자친구랑 함께." "정말로 날 데려가 줄거지? 하지만 난 걸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지? 게다가 난 방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휠체어도 없어." 코린이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자 디콘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코린의 어깨를 다 독거렸다. "헛간을 찾아 보면 탈 만한 게 있을 거야. 내가 구해 볼게." 그 다음에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을 비밀의 정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계획을 세 웠다. "먼저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사람이 없는 길로 가는 거야. 참, 코린을 정원으 로 데리고 나가도 메드로크 부인이나 헨리 위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디콘은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다가 깜박 잊었다는 듯 코린 을 보며 물었다. "아마 암 될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정원에 나갔다가 심하게 앓은 적이 있거든. 막 열이 나고 기침이 계속 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 코린의 말에 메어리는 양손을 쥐고 힘주어 말했다. "그건 네가 너무 방에만 있었기 때문이야. 밖의 공기도 마셔봐야 해. 그래야 익숙해지지. 정원의 상쾌한 공기와 바람을 쐬면 병이 다 나을 거야." "그럼 호수 쪽을 통해서 가자.거기라면 메드로크 부인에게 들키지 않고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세 사람은 마치 전쟁에서 진군계획을 짜는 장군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 게 계획을 짰다. 코린은 비밀의 정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6.실패한 계획 아침 일찍 메어리가 코린의 방으로 건너가자 코린은 나탈리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싫어. 이제 약은 먹지 않을 거야." 코린은 나탈리가 들고 있는 약을 거들떠보지도 않앗다. "안 됩니다. 오늘은 꼭 이 약을 드시게 하라는 헨리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습니 다." "필요 없다니까! 어서 나가!" 그래도 나탈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탈리는 한 손에는 약을, 한 손에는 물컵 을 든 채 계속 코린을 타일었다. 그러자 코린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 먹을 테니까 뒤로 돌아 있어." "왜 그러는데요?" 코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묻는 거야! 내가 뒤로 돌아서 있으라면 돌아서 있어." 나탈리는 그제야 코린에게 약을 건네 주고 뒤돌아섰다 코린은 혹시나 나탈리 가 보고 잇지 않나 살피며 약을 슬그머니 침대 곁에 있는 꽃병에 쏟아 버렸다. "아, 쓰다. 자, 됐지?" 코린은 나탈리에게 빈 약봉투를 보여 주었다. 나탈리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코 린의 방을 나갔다. 코린은 문가에 서 있는 메어리를 보고 씨익 웃엇다. "어때? 감쪽 같지? 헨리 의사가 주는 약은 먹기 싫어." 메어리와 코린은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평소에는 시시해 보이던 사소한 얘기들도 모두 재미있게만 여겨졌다. 둘이 한참 즐겁게 웃고 있자 디콘이 바퀴 달린 위자를 끌고 들어왔다. 코린은 디콘을 보자 발을 구르며 장난스럽게 안달을 했다. "너무해. 디콘.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디콘은 위로 치켜올라간 코를 손으로 비비며 씨익 웃었다. "헛간에서 이걸 찾느라고 말이야. 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이건 어릴 때 쓰 던 바퀴의자래." 메어리는 바퀴의자를 보고 깔깔 웃었다. "정말 조그맣다. 코린이 조금만 더 커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 "악 나보고 이 바퀴의자에 타라구? 너무해." 바퀴의자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두 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다. "자, 가자! 우리들의 비밀의 정원으로!" 디콘이 팔을 높이 쳐들고 외치자 코린과 메어리도 팔을 들고 디콘을 따라 외 쳤다. "가자! 비밀의 정원으로!" 디콘이 침대 위에 베개를 놓고 시트로 그 위를 덮었다. 누눠 있는 것처럼 보 이기 위해서였다. 메어리가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망을 보고 그 뒤로 디콘이 바퀴의자를 밀며 뒤 따랐다. 정원으로 나오자 코린은 감자기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 다 그러다가 조금씩 천천히 눈을 뜨고 정원을 둘러보앗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나비와 새들이 꽃들 위를 날아다니고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움트고 있 었다. "와, 움직이고 있어. 모든 거들이 생기잇게 운직이고 있어." 코린은 신기한 듯 눈을 빛내며 외쳤다. "그래, 모든 것이 살아 잇어. 이걸 봐." 디콘은 땅을 가리켰다. 한떼의 개미들이 작은 씨를 들고 행렬을 지어 가고 있 었다. "개미들이 풀씨를 나르고 있는 거야. 저렇게 매일매일 자기들의 집까지 날라. 먹을 것이 없는 겨울 동안 살아가기 위해서야." 디콘은 쭈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지켜보며 말했다. "여기서는 나무나 풀, 새들, 동물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개미들까지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무, 풀, 새들, 동물들도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구......." 코린은 디콘의 말을 되받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응, 그래. 코린, 이 들판에서 나는 것들은 모두 살아 있어. 얼마나 아름답니? 모두 널 위해 만든 것들이야. 네가 빨리 건강을 되찾으라고. 그러니까 죽음 같은 걸 생각해선 안 돼." 메어리는 옆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엇다. "코린, 깊숙이 숨을 들이쉬어 봐. 나무랑 풀들, 꽃들의 향기로운 냄새가 날거 야." 코린도 메어리를 따라 팔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어때, 코린?" 코린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응, 참 이상하게도 기분이 무척 좋아져. 기침도 나오지 않구. 어쩐지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서 여러가지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날 데려 다 줘." 셋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디콘은 코린이 모든 걸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바 퀴의자를 천천히 밀면서 갔고 메어리는 앞으로 껑충껑충 뛰어가며 까르르르 웃 었다. "나비야, 나비. 기다려 봐. 코린. 잡아서 너 줄게." 메어ㅣ는 수손화 위에 앉아 잇는 호랑나비를 잡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 나 메어리가 손을 펼치는 순간 나비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메어리가 울상을 짓 자 코린과 디콘은 깔깔 웃어댔다. 그때 멀리서 울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찌르르 쫑 찌를 쫑 찌르르르." 메어리의 얼굴에 확 웃음이 퍼졌다. 메어리는 멈춰서서 새 소리에 귀를 기울 였다. "코린, 잘 들어 봐. 저 새소리 들리지? 저게 울새 소리야." "울새?" "응, 너랑 디콘이랑 내 친구야." 그러자 옆에서 디콘이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친구야. 비밀의 정원에 빨리 가보고 싶 어. 울새도 만나고 싶고. 디콘, 메오리, 날 어서 비밀의 정원으로 데려가 줘." "그래, 가자!" "와! 비밀의 정원으로 가자!" 메어리가 앞서서 달렸다. 그런데 멀리서 마르사와 메드로크 부이느이 목소리 가 들려왓다. "도련님! 코린 도련님!" 셋은 당황해서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디콘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주 위를 둘러 보았다. 아직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앗다. "어쩌지? 코린이 방에 없다는 게 발견됐나봐." 그러자 코린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난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괜찮아. 비밀의 정원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자, 어서 가자." 셋은 나무 뒤에서 나와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정원 쪽으로 갔다. 그런데 정원 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저만치서 걸어오는 메드로크 부인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 다. "큰일났다. 발견됐어. 어서 도망가자." 셋은 정원 반.대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메드로크 부인은 소리를 지르며 셋을 쫓아왔다. "도련님! 멈추세요! 아가씨! 멈추지 않으면 혼을 내줄 거예요!" 당황해하는 메어리와 디콘과는 달리, 바퀴의자에 앉아 있는 코린은 즐거워서 깔깔 웃엇다. "좀 더 빨리 달려, 디콘. 빨리." 디콘은 바퀴의자를 더 빨리 밀었다. 그러다 내리막길에서 디콘은 그만 바퀴의 자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어어, 위험해! 코린! 코린!" 디콘은 바퀴의자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렸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코 린의 바퀴의자는 매리막길을 굴러 그 아래 있는 호수에 풍던 빠지고 말았다. "으아! 사람 살려!" 코린은 고개를 내빌고 허우적거렸다. 디콘과 메어리는 깜짝 놀라 호수를 향해 달렸다. 메드로크 부인도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다행이도 디콘이 코린을 건져 내 주었다. "코린, 괜찮니?" 코린은 물에 흠뻑 젖은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냈다. "응, 괜찮아." 메드로크 부인은 손으로 코린의 물기를 닦아 주며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콘, 어서 도련님을 집 안으로 모셔야겠다. 물에 젖었으니, 혹 감기라도 걸리 시면 큰일이야." 디콘은 떨고 있는 코린을 등에 업었다. 메드로크 부인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메외를 쏘아보았다. "아가씨, 또 쓸데없는 짓을 하셨군요. 도련님께서 얼마나 몸이 약하신지 모르 세요?" 그러자 디콘의 등에 업혀 있던 코린이 콜록거리며 베드로크 부인의 말을 막았 다. "아냐, 메어리는 잘못한 게 없어. 밖으로 나가자고 한 건 나야. 메어리를 꾸짖 거나 혼내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코린은 말을 마치자 마자 얼굴을 찡그리더니 연거푸 기침을 하며 몸을 떨었 다. 디콘은 코린을 업고 저택 안으로 달려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저택으로 들어가는 코린을 보며 메어리에게 소리쳤다. "아가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도련님을 보세요. 저렇게 괴 로워하고 있잖아요. 이제 두번 다시 도련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차갑게 말하고 나서 뒤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메어ㅣ른 코린의 방으로 달려갔다. 코린이 심하게 기침을 하고 누어 있는 침대 곁에서 헨리 의사와 나탈리가 코 린의 맥박을 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메드로크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코 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코린, 제발 아프지 말아 줘." 메어리는 혼자 문가에 서서 중얼거리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 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코린을 도와주세요. 코린이 다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코린 대신 저 를 아프게 해주세요." 메어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메어리는 두 손을 꼬옥 쥐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해서 기도하다 잠이 들어 버렸다. 메어리가 눈을 떴을 때 밖은 칠 흑처럼 깜깜해져 있었고 괘종 시계에서 열한 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열한시나 되었으니까 나탈리도 메드러크 부인도 다 잠들어 있을 거야. 어서 코린에게 가 봐야지." 메어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계단을 올랐다. 코린의 방에 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마르사그 꾸벅꾸벅 졸다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야?" "쉿, 나야, 메어리." 메어리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마르사에게 다가갔다. 마르사는 메어리를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여기 오시면 안 돼요. 저도 들여 보내고 싶지만, 메드로크 부인께서 아가씨를 들여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단 말예요. 도련님은 지금 안정이 필요하 데요." "미안해, 마르사. 잠깐이면 돼. 부탁해." 마르사는 옆방의 문쪽을 쳐다보았다. "옆방에서 나탈리가 자고 있어요. 저희는 두 시간씩 교대를 하고 있거든요." "그냥 살짝 들어갔다가 나오면 되잖아." "그게 안 돼요. 방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거든요." "자물쇠라구? 정말이야?" 메어리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옆방에서 나탈리의 졸리운 목 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사, 누가 왔어? 무슨 일이야?" 마르사는 당황해하며 얼른 둘러댔다. "으응, 누가 온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니었어. 어서 더 자. 시간이 되면 깨울 게." 마르사는 메어리를 재촉했다. "아가씨, 제발 돌아가 주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오실지도 모른다구요." 메어리는 자물쇠로 잠긴 코린의 방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대신 하나만 가르쳐 줘. 그러면 돌아갈 테니까." "약속하신 거죠? 궁금한게 뭐예요?" 마르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코린은 어때? 아까보다 좀 좋아졌어?" "조금 좋아졌어요. 아까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열이 높았는데 지금은 기침이 좀 그쳤어요. 하지만 열이 아직도 높아서 몸이 축 늘어져 있어요." 메어리는 가슴이 아팠다. 코린의; 병을 낫게 해주려고 정원에 나갔다가 오히려 더 아프게만 해버린 것이다. "점점 좋아지겠지? 그렇지?" "그럴 거예요. 아가씨, 어서 가세요." 메어리는 힘없는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혼자 아파하고 있을 코린을 생각 하니 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코린, 아프지 마." 메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벽 난로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 가까이 갔다. "코린이냐. 코린의 울음소리야." 울음소리는 벽난로의 굴뚝을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메어리가 비오던 날 들었 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가는 울음소리가 간간이 끊기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코린이 괴로운가봐.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메어리는 안타까워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코린의 방으로 갈 수가 없었다. 메드로크 부인이 코린과 메어리가 만날 수 없도록 코린의 방문에 자물쇠를 채 워 놓았기 때문이다. 7.다람쥐 연락병 메어리는 아침이 되자 코린의 방문으로 통하는 복도를 살펴보았다. 복도에서 는 나탈리와 메드로크 부인이 서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방문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디콘에게도 이 일을 알려 줘야겠어. 디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을까?" 메어리는 정원으로 나가 디콘을 찾았다. 디콘은 씨앗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메어리의 새 따으로 오기로 했었다. 메어리가 새 정원으로 가자, 디콘은 팔을 걷어 붙이고 땅을 힘차게 일구고 있었다. "디콘!" "야! 메오리!" 디콘은 팔을 걷어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았다. 날씨가 졸아서 씨앗들이 금방 싹을 틔울 것 같애. 어ㄸ넌 건 벌써 삐죽 솟아 오른 싹도 있어. 얼마 안 있으면 파란 채소들을 볼 수 있을 거야." "정말이네." 쭈그리고 앉아 삐죽 솟아나 싹들을 쳐다보니 연두빛 새싹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디콘, 나 어젯밤에 코린의 울음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찾아가도 만날 수가 없 어. 메드로크 부인이 코란의 방문을 자물쇠를 채워 버렸거든." "자물쇠를 채웠다구? 널 만나지 못하게 하려교?"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은데. 함께 정원에도 가고 싶고 말이야. 코린은 괴로 운가봐. 어제도 흐느끼며 울고 있었어. 혹시 옛날처럼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디콘은 쟁기를 놓고 저택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지, 그 울음소리가ㅣ 벽난로를 통해서 들리고 있었어." "벽난로에서?" 그때 디콘의 주머니에서 너트와 쉘이 고개를 내밀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냈다. 두 다람쥐는 메어리가 손으로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지 메어리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날 잘 따르네? 날 잊지 않고 있었나봐." "응. 반가운가 본데." 디컨은 너트와 쉘의 줄무뇌가 새겨진 몸에 /입을 맞추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 다. 그 바람에 너트와 쉘의 균형을 잃고 뒤뚱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잘하면 이 녀석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몰라. 벽난로의 굴뚝을 이용해서 이 녀 석들을 코린의 방으로 보내느 거야. 네 방과 코린의 방 굴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울음소리가 들렸던 거야." 메어리는 너트와 쉘을 양쪽 주머니에 넣고 저택 안으로 돌아왔다. 한편, 코린은 힘이 빠진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코린은 메 드로크 부인이 들고 온 식사를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안항ㅆ다. "도련님, 조금이라도 좀 드세요. 드시지 않으면 기운을 차리실 수가 없어요." 코린은 메드로크 부인의 간곡한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메드로크 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 제발 식사를 하세요." 코린은 고개를 돌린 채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메어리......메어리를 불러줘. 메어리를...... 불러줘." 메드로크 부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돼요. 메어리 아가씨는 만나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가씨 때문에 도련님 이 이렇게 되신 거예요." 코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메어리는 청소를 하고 있는 마르사에게 물었다. "코린의 방을 마탈리 혼자서 망을 보고 있어?" "아뇨. 메드로크 부인과 둘이 보고 있어요." 메어리는 마르사 쪽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코린의 방 안에는 언제 들어가는데?" "아홉 시와 열한 시에 도련님의 상태를 보러 들어가요." "메드로크 부인이 지키고 있다구? 조심해야겠는걸." 메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마르사가 이상하다는 눈빛으 로 메어리를 보았다. "뭘 조심해요?"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혼자 해본 소리야." 열한 시가 조금 지나고 나자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다람쥐를 꺼냈다. "열한 시가 넘었으니까 괜찮겠지? 직ㅡ 정도의 시간이라면 코린의 방에는 아 무도 없을 거야." 메어리는 너트와 쉘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둘 중에서 누가 코린에게 가 주겠니? 너트, 네가 가 주겠니? 코린이 널 보면 무척 기뻐할 거야." "부탁해, 너트." 메어리는 너트를 쓰다듬어 주고는 벽난로의 굴뚝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너트 는 굴뚝을 타고 빛이 보이는 쪽으로 또르르르 기어올랐다. 메어리는 벽난로 속에 얼굴을 넣고, 편지가 묶인 꼬리를 흔들,며 굴뚝을 오르 는 너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너트는 빛을 따라가다가 코린의 방 벽난로로 톡 떨어졌다. 너트는 잠시 사방 을 두리번거리더니 코린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응......응......뭐야?" 코린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가슴 위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코린은 눈을 비볐다. 그러자 너트의 꼬리에 묶인 편지가 눈에 띄었다. 코린은 너트를 안아올리고 편지를 풀었다. "메어리한테서 온 거야." 편지를 펼쳐본 코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코린은 메어리의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너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편지야. 무사히 도착했다면 네가 읽었다는 표시로 편지를 길게 찢어서 너트의 꼬리에 리본으로 ㅁ어 줘.> 코린은 너트를 보았다. "그래, 지난번에 봤던 그 다람쥐야." <코린,열도 많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며? 먹고 싶지도 않아도 뭐든지 먹어야 해. 그래야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잖아. 네가 기운을 차려야 비밀의 정 원에도 갈 수 있지 않겠니? 다람쥐;를 보내서 편지를 주고받자는 생각은 디콘의 생각이야. 네 방 굴뚝과 내 방 굴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애. 내가 네 울 음 소리를 들었건든. 얼마 전에 마르사가 봄을 맞아 벽난로와 굴뚝 청소를 했어. 그때 그을음이 제거돼서 네 소리가 들렸나봐. 이제부터는 다람쥐를 통해서 서 로 연락하자. 안녕, 또 연락할게.> 코린은 크게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길게 찢어서 너트의 꼬리에 묶은 후 너트 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전해줘, 너트." 코린은 벽난로 속으로 들어가는 너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있는 끈을 잡아당겼다. 종이 울리자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메드로크 부인 이 급히 들어왔다. "그래. 나 뭐가 먹고 싶으니까 어서 먹을 것을 갖다 줘." 메드로크 부인의 눈은 놀라움으로 휘둥그래졌다. "먹을 거라고 하셨나요?" "그래.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져 오라니까!" 메드로크 부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음식을 가지러 나갔다. 초조하게 너트를 기다리고 ㅇ;ㅣ던 메어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벽 난로 앞을 왔다갔다했다. 그때 벽나로 안에서 너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너트는 벽난로를 타고 내령 하 넓게 펼친 메어리의 손바닥 위에 뛰어 내려 앉았다. "어서 와, 너트. 코린에게 갔다 왔그나. 고마워. 정말 잘했어. 다행이야." 너트는 메어리를 쳐다보며 찌지 울음소리를 냈다. "디콘이 있었음년 좋겠다. 네가 뭐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있게 말이야. 별닌, 코 린의 병이 빨리 나아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메어리는 밤하늘 별들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을 보벼 기도했다. 메어리는 매일매일 코린에게 편지를 썼다.코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비밀 의 정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 되었다. 메어리는 하얀 종이 에 한줄 한줄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코린, 메드로크 무인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해. 비밀의 정원에 가려면 바 깥 공기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니까. 하지만 밤에는 안 돼. 곡기가 차가워서 감 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리고 바람이 불 때도 안 되고.......> 메어리는 편지를 너트의 꼬리에 묶어 코린의 방으로 보냈다. 코린은 하루 종일 메어리의 편지를 기다라고 있다가 너트의 소리가 들려오면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메어리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서 메어리의 방으로 보 냈다. 8. 클레이븐 씨의 편지 메어리는 잠에서 깨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하늘은 높고 맑게 개어 있었다. 작은 뭉게구름이 새처럼 듬성듬성 떠 있었다. 메어리는 정원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와,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 상쾌한 바ㄹ소리......." 메어리는 줄넘기를 가지고 정원으로 나갔다. 패티도 붕붕거리는 벌을 쫓으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비밀의 정원에 가보자, 패티." 메어리는 줄넘기를 하며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정원의 문을 돌리자 안에서 여우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캡틴의 울음소리야. 디콘도 와 있어." 디콘은 캡틴과 한께 정원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디콘은 메어리를 보자 활짝 웃었다. "어때? 편지는 성공했니?" "응, 너트와 쉘 덕분이야. 아, 잠깐 기다려봐. 보여줄 게 있어." 메어리는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 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갓은 코린이 메 어리에게 보낸 편지였다. "디콘, 이걸 봐. 코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지를 써본 거래." 코린의 편지 글씨는 비툴비툴했다. 그래도 메어리는 삐툴삐툴한 코린의 편지 가 좋았다. "코린을 정원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메드로크 부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아 저씨가 코린을 메드로크 부인에게 부탁하고 가셔서 그렇대." "그럼 클레이븐 씨가 허락을 하시면 정원으로 나올 수 있는 거야?" 메어리의 얼굴에 갑자기 확 웃음이 퍼졌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는 거야. 정원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클레이븐 씨에게 편지를? 네가? "아니, 코린이. 코린에게 편지를 쓰라고 해야겠어." 메어리는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쉘의 꼬리에 묶어 코린의 방 으로 보냈다. 코린은 침대에 누워 벽난로를 쳐다보고 있다가 쉘이 쪼르르르 나오자 침대 아 래로 팔을 내렸다. "왔구나, 쉘. 자, 이리로 올라와." 쉘은 코린의 팔을 타고 친대 위로 올라왔다. "이거 먹어. 내가 너 주려고 모아둔 거야." 코린은 침대 머리맡에 있던 비스켓을 집어 쉘에게 주었다. 그리고 쉘의 꼬리 에 묶인 편지를 풀었다. <코린, 너희 아빠에게 편지를 써.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이야. 그럼 내가 편 지를 붙여줄 테니까. 쉘의 꼬리에 묶어서 보내.> "아빠에게 편지를? 그래, 아빠의 말이라면 메드로크 부인도 꼼짝 못할 거야." 코린은 침대에 팔꿈치를 괴고 엎드려 아빠에게 모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처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린은 정성을 들여 한자 한자를 써 내려갔다. "부탁한다, 쉘." 코린이 쉘의 꼬리에 편지를 묶어 주자, 쉘은 비스켓 조각을 물고 벽난로 속으 로 들어갔다. 메어리는 편지를 가지고 온 쉘을 보자 얼른 꼬리에서 편지를 풀어냈다. 코린 이 아빠에게 모낼 편지를 적어 보낸 것이다. "됐어. 이젠 이 편지를 부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마르사한테 봉투와 우표를 얻어야지." 메어리는 마르사가 가져다 준 봉투와 우표로 코린의 편지를 봉했다. "그런데 주소를 모르잖아.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메드로크 부인밖에 없는데." 메어리는 태연한 척 메드로크 부인이 있는 주방으로 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하인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메드로크, 나 양말이 없어. 마르사가 알고 있을 텐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혹시 마르사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정원에 있어요. 벤이 바빠서 마르사가 대신 화초에 물을 주고 있어요." 메어리는 주방을 나가는 척하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클레이븐 아저씨가 있는 곳은 어디야? 나 책을 좀 사다 달라고 하고 싶은데." "주인님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실 시간이 없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딱 잘라 말.했다. "꼭 일고 싶은 책이라서 그래. 맥코이 선생님도 그 책이 좋다고 했단 말이야." 메드로크 부인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이번 한 번만이예요. 아셨죠?" 메드로크 부인은 마지 못해 클레이븐 씨가 있는 곳의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메어리는 기뻐서 계단의 난간을 타고 쭈욱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때 뒤에서 메드로크 부인이 불,ㄴ,ㄴ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호텔 이름이 잘못됐어요. 런던 호텔이에요." 메어리는 메드로크 부인을 뒤돌아보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히고 말 았다. "아이쿠!" "그러길래 왜 얌전하게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으세요?" 메드로크 부인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메어리를 부축 하다가 메어리의 옆에 떨 어져 있는 편지를 발견했다. 메어리가 벽에 부딪히면서 주머니에 있던 편지가 떨어진 것이다. "이게 뭐죠? 아치볼드 클레이븐 씨 앞?" 메어리는 얼른 메드로크 부인에게 편지를 빼앗았다. "내가 말했잖아. 아저씨에게 책 부탁을 하러 편지를 보낸다고 미리 다 써 놨거 든." 메드로크 부인이 여정히 의심스런 표정으로 메어리를 쳐다보자 메어리는 시치 미를 뚝 뗐다. "정말이야. 화초를 키우는 법에 대한 책인데, 내 정원을 가꿀 때 꼭 필요하단 말이야." "혹시 또 도련님을 종원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건 절대로 안 돼요. 제겐 도련님을 지켜 드릴 책임이 있어요. 주인님과 굳게 약속을 했으니까요." 메어리는 뒤돌아서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려내고 메드로크 부인을 보 았다. "하지만 아저씨가 코린을 저렇게 가둬 놓은 걸 보면 뭐라고 하실까? 기뻐하실 까?" 메드로크 부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건 아가씨 때문이에요. 아가씨가 도련님을 정원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이라 구요. 도련님은 아가씨를 만,나는 한 병을 고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코린을 꼭 가둬 놔야 하는 거야? 코린의 방문을 열어 줘. 그 렇지 않으면 아저씨에게 이를 거야. 메드로크 부인이 나와 코린을 만나지 못하 게 방해하고 있다고 말이야." "뭐,라고요?" 메드로크 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메어리를 쳐다보았다. 케어리도 지지 않고 메드로크 부인을 마주보았다. 한참 동안 메어리를 쳐다보 던 메드로크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좋아요. 도련님의 방문을 열어 드리지요. 하지만 다른 곳에 데리고 나갈 생각 은 하지 마세요." 메드로크 부인이 코린의 방문을 열어 주자 메어리는 코린의 핌대로 날려갔다./ "코린!" 코린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코린은 메어리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메어리? 설마 꿈은 아니겠지?" 코린은 시트에서 손을 빼내 메어리에게 내밀었다. 메어리는 코린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꿈이 아냐. 메드로크 부인이 문을 열어 줬어." 코린의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내가 작은 초록색 잎사귀로 가득한 곳에 서 있었어. 여기저기에 새들의 둥지가 있었어. 새들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아,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 메어리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코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잿빛 눈 가득 행복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 지금이라도 당장 비밀의 정원에 가고 싶어." 메어리는 코리느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 널 데리고 않겠다는 조건으로 이 방문도 열어주었는걸. 메드루 크 부인의 눈이 무섭게 빛나고 있는 한 나갈 수 없어." 코린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번졌다. "너무 실망하지 마. 네가 아저씨한테 보낸 편지를 내가 가지고 있어. 주소도 알아냈어. 오늘 꼭 이 편지를 부칠게. 아저씨는 네가 종원에 나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걸 좋아하실 거야." 메어리와 코린은 편지를 부치고 나서 매일 클레이븐 씨의 답장을 기다렸다. 메어리는 코린에게 비밀의 정원에 대힌 여러가지 얘기를 들려 주었다. 울새는 만났던 자리와 정원의 열쇠를 찾게 된 얘기, 그리고 입구를 가르쳐 준 카멜라의 얘기 등. 편지를 부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날 클레이븐ㅆ로부터 답장이 왓다. "주인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아가씨가 주인님께 편지를 보냈나요?" "아니, 코린이 직접 썼어. 아ㅈ니 뭐라고 쓰셨어?" "주인님은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라고 하셨어요." 메어리는 기뻐서 팔짝 뛰었다. "정말이야? 그럼 이제 동물 친구들을 만나도 되고, 정원에 나가도 되는 거지?" "그래요. 대신 주의하셔야 해요. 이번처럼 다시 병에 걸리게 되면 주인님께 말 씀드려서 나가지 못하시도록 하겠어요." 메드로크 부인은 팔짝거리는 메어리의 모습을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가씨가 예의범절을 배우는 건 질색이야. 그런 건 인도에 있을때도 얼마든지 배웠어." 메어리는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 코린에게로 갔다. 메드로크 부인은 메어리의 뒷모습을 보며 끌끌 혀를 찼다. "코린! 코린! 드디어 아저씨한테서 편지가 왔어. 메드로크 부인이 정워ㅓ에 나 가도 된대." "정말?" 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외쳤다. 그러나 코리느이 얼굴은 금세 시들해 졌다. "편지를 쓴 건 난데, 어째서 아빠는 내게 답장을 보내시지 않은 걸까? 역시 아 빠는 날 사랑하지 않으셔." 메어리가 고개를 힘차게 흔들었다. "아냐. 그렇지 안항. 네가 걱정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도 않으 셨을 거야." 그럴까?" 코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메어리는 눈을 크게 떠 보이며 구ㅡ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마나 잘된 일이이? 이제부터는 메드로크 부인 신경쓰지 않고도 얼마 든지 나갈 수 있잖아. 우리 셋이 함께 비밀의 정원에 가는 거야. 아, 좋은 생각 이 있어." "뭔데?" 메어리는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씨익 웃었다. "혹시라도 비밀의 정원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우 리가 정원에 나갈 때는 아무도 정원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도록 말이야. 넌 사람 들의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하니까. 어때, 좋은 생각이지?" "그래, 그럼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비밀의 정원애 갈 수 있겠다." 메어리는 디콘과 함께 코린을 정원으로 데려갈 계획을 짰다. "시간은 내일 아침으로 하는 거야. 내가 다시 그 바퀴위자를 가지고 올게. 벤 할아버지가 다시는 바퀴가 빠짖 않도록 바퀴의 나사를 조여줬어." 코린은 메드로크 부인을 불러 말했다. "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게 싫으니까, 내가 정원에 있을 때는 아무도 정원 근 처에 오지 않도록 해줘." 셋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다음날이면 코린도 비밀의 정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 9. 비밀 화원의 새로운 손님 다음날 아침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을 바퀴의자에 앉혀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 에는 세 사람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코린은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파란 하늘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단 말이지?" 코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셋은 그래도 비밀스러운 설레임을 떨치고 싶지 않 았다. 그래서 계획해 두었던 코스를 따랐다. "이쪽으로 가면 우리가 말했던 초목들이 우거진 곳이 있어." 코린은 길게 자란 풀들이 얼굴을 스치며 간지럽히자 까르르 웃어댔다. 초목이 우거진 숲을 빠져나오자 코린이 빠졌던 년못이 나왔다. "코린 네가 저기에 빠졌을 땐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메어리의 말에 코린은 몸서리를 쳤다. "나도 놀랐어. 어찌나 물이 차던지, 그곳에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는 줄 알 았다구." 셋은 담쟁이 덩굴이 뒤덮인 벽을 따라 걸었다. "이곳은 내 산책길이야. 난 여기를 지나면서 줄넘기를 해. 이 길이 바로 비밀 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야." "여기?" 코린은 무심결에 외치고 덜굴 사이를 열심히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 정말로 이 덩굴 사이에 문이 숨겨져 있단 말이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어. 봐, 저기가 울새가 ㅇ아소 흙을 파고 있던 곳이야." 메어리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 밑의 솟아오른 흙더미를 가리켰다. 바퀴의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담 위에 울새가 앉아서 나랑 얘기를 나눴어." 메어리는 입을 다물고 웃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코린은 더욱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응?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가르쳐 줘." 그러자 옆에 잇던 디콘이 하하하 웃었다. 마치 메어리와 코린의 실라이가 재 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사실은 말이지. 메어리 내가 말해 줘도 돼지?" 메어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였다.그러나 디콘은 계속 웃으며 코린에 게 말.했다. "저 채소들은 메어리가 널 위해서 키우는 거야. 네가 싱싱한 채소를 먹고 얼른 건강해지라고 말이야." 코린의 얼굴에 붉은 빛이 돌았다. "날 위해서라고? 날 위해서 메어리가 이 채소밭을 가꾸고 있는 거야?" "응, 널 위해서야. 그러니까 넌 빨리 건강해져야 해." 코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ㄱ ㅡ날 오후는 코린뿐만 아니라 메어리와 디콘에게도 행복한 하루였다. 순간 순간마다 새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볼이 당길 정도야. 모든게 즐겁고 재미 있어. 난 내일도 올 거야. 그리고 모레도, 또 그다음날도 올거야." 코린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메어리가 힘주머 말했다. "그래, 너도 다른 사람과 맡찬가지로 걷기도 하고 흙을 파일굴 수도 있어." 걷는다구? 흙도 일구고?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디콘도 주먹을 꼭 쥐며 소리 높여 말했다. "분명히 걸을 수 있을 거야. 네게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았잖아. 우리가 널 도와줄게." 코린은 바퀴의자 밑의 가느다란 다리를 바라보았다. "내 다리도 특별히 나쁜 곳은 없어. 하지만 너무나 가늘어 힘을 쓸 수가 없어. 일어서려고 해도 멀리서 금방 주저앉고 말야." 메어리와 디콘은 한숨을 휴우 하고 내쉬었다. 코리느이 다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걷는 연슴을 하면 꼭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코린의 손을 꼬옥 잡았다. 10. 카멜라의 이야기 메어리, 디콘, 코린 세 사람에게는 매일매일 비밀의 정원에ㅐ 가는 일이 즐거 운 일과가 되었다. 코린은 정원 안에 있을 때는 편상실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보였다. 이 아이가 그렇게 짜증을 많이 내고, 베개를 쥐어뜯고, 울부짖으며 신경질을 부리던 아이라 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날 맨 처음 정원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던 게 누구야?" 코린은 몸을 등받이에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햇볕을 받으면서 물었다. "응, 그건 카멜라야. 정원으로 데려가면 걸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카멜라가 말 했어." "정말?" 코린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정말이야. 카맬라는 너의 엄마와도 친했던 것 같았어." "엄아 사진도 카멜라가 보여 줬던 거지? 우리 엄마는 어떤 분이셨을까? 난 엄 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디콘은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돌리고 있던 나뭇가지로 소리나게 땅을 쳤다. "좋은 생각이 있어. 클레이븐 씨 부인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방법 말야." 코린과 메어리가 디콘을 쳐다보았다. "카멜라에게 가서 물어 보는 거야. 카멜라는 많은 걸 알고 있잖아. 게다가 코 린의 엄마와 친했다면서?" 셋은 들판을 지나 늪지에 있는 카멜라의 오두막으로 갔다. 카멜라는 늪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들판에 앉아 약초를 캐고 있었다. "메어ㅗ리! 디콘!" 메어리와 디콘이 오두막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카멜라가 먼저 둘을 불 렀다. 카멜아의 어머니는 이리저리 점을 치며 돌아다니느 집시였다. 가족 이라곤 카 멜라 하나뿐이었다. 카멜라의 어머니는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마을에서 사람들 에게 많은 멸시를 당하고 굶주림과 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카 멜라의 어머니는 이 들판을 지나던 중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쓰러지고 말았 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요." 카멜라가 아무리 울먹이며 불러도 어머니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릴리아가 발견하게 되었다. 카멜라의 어머니가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본 것은 따뜻함과 자애심이 가득한 커다란 눈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코리늬 엄마, 릴리아였다. "자, 내 손을 잡아요." 릴리아가 손을 내밀었지만 선뜻 손을 뻗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받 았던 차가운 냉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필요 없어요!" 카멜라의 어머니는 릴리아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런데도 릴리아는 카멜라 의 어머니를 설득해 마차에 태우고 클레이븐 ㅆ의 저택으로 갔다. 카멜라와 그 녀의 어머니는 릴리아의 간호를 받으며 저택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ㄴ의 어머니 는 워.낙의 깊은 병이 든 카멜라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숩을 거두고 말 았다. 릴리아는 숨을 거둔 카멜라 어머니의 손을 잡고 통곡을 했다. 그 후로 카멜라 는 릴리아의 잔심부름을 하며 저택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메어리의 엄마를 알게 되엇다. 메어리의 엄마는 릴리아의 오빠인 레녹 스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카멜라와 메어리의 엄마, 그리고 릴리아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무척 사이가 좋았다. 세 사람은 마치 친 자매 같았다. 카멜라의 얼굴에는 조용한 미소가 떠올라 잇었다. "릴리아는 그 정원을 무척 사랑했어. 정원에서 장미꽃들과 어울려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지. 정원에 있을 때의 리리아는 장미꽃보다 더 화사해 보였 어." 카멜라는 코리느이 빛나는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릴리아는 아주 건강했었단다. 넌 릴리아를 닮았으니까,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12.요술의 힘 다음날 아침에도 세 사람은 비밀의 정원에 갔다. 코린은 다른 날보다 유나히 들떠 보였다. 코린은 메어리와 디콘을 둥글게 모 아놓고 말했다. "난 어젯밤 잠도 잘자지 못했어. 새로운 생각을 해냈기 때문이야. 너희들도 이 말을 들으면 놀랄 거야." "뭔데?" 메어리와 디콘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찼다. "그건, 이 세상엔 요술의 힘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거야. 단지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모르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지?" 디콘은 코린의 흥미로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음.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랄 때, 계속 그 일이 일어난다고 외우는 거야. 그러 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그러자 메어리가 ,소리 높여 말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인도에서 엄마가 해 준 말인데, 어떤 승려는 같은 말을 천 번이나 되풀이해서 외운대." 디콘은 동그란 눈을 재미있다는 듯이 깜박였다. 디콘의 어깨에는 너트와 쉘이 올라타 있었고 가슴에 안긴 새끼양은 기분이 좋은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난 이제부터 매일 이렇게 되풀이해서 외울 거야." 코린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 듯이 말했다. "난 요술의 힘을 믿는다. 내 속에는 요술의 힘이 있다. 요술이 나를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코린은 주문을 마치고 메어리와 디콘을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매일 그렇게 말해 줘. 그럼 난 혼 자 외우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질 거야." "응 약속할게. 매일매일 외울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실험해 보자. 날 부축해 줘. 저기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자." 셋은 배꽃 나무 아래 둥글게 모여 앉았고 너트와 쉘, 새끼양도 세 사람 사이 에 끼여 앉았다. "자, 내가 주문을 외울게." 코린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메어리와 디콘은 숨을 죽이고 코린의 모습 을 지켜보았다. 코린은 숨을 한본 크게 들이쉬고 주문을 외었다. "살아 있는 것은 요술의 힘, 강하게 되는 것은 요술의 힘, 요술은 내 속에 있 다. 내 속에, 내 속에. 요술의 힘이여, 내게 힘을 달라." 코린은 노래를 부르 듯 주문에 가락을 붙여 와웠다. 메오리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코린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다. 코린은 같은 말을 몇번씩 되풀이했다. 담ㄴ장 위를 날아다니던 검댕이와, 둥 지에 있던 울새와 울새의 여자친구도 코린의 주위에 몰려 들었다. "까악까아." 검댕이가 탁한 소리로 울자 디콘은 입에 손/가락을 대ㅑ며 검댕이를 쳐다보았 다. 검댕이는 울음소리를 멈추고 메어리의 어깨에 얌전히 앉았다. 코린은 한참 후 애 주문을 멈추었다. "이번엔 정원을 돌아보자." 메어리와 디콘은 모리능ㄴ 일으켜 세웠다. 코린은 둘의 부축을 받으며 한발짝 한발짝을 땅에서 땠다. "요술의 힘이 나를 강하게 한다. 난 걸을 수 있다." 코린은 계속 주문을 중얼거렸다. 콜ㄴ이 중심을 잃고 비툴거리자 디콘이 코린 의 팔을 힘껏 밥아 주었다. "그래, 넌 할 수 있어. 넌 건강해." 메어ㅗ리도 코린의 왼쪽 팔을 부축해 주며 힘주어 말했다. 코린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몇번이나 도중에 쉬기도 했지만 걷는 것 을 그만 두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조그만 더 걸으면 돼." 메오리와 디콘은 코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코린은 결굴 자신의 발로 정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해냈어! 처음으로 걸어 본 거야. 요술의 힘이 날 걷게 해 ㅈ어!" 코린은 처음에 앉아 있던 배꽃 나무 밑에 도착하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메 어ㅗ리와 디콘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성공이야! 굉장해, 코린." 코린은 배꽃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정원을 바라보았다. "다음엔 꼭 부축을 받지 않고도 헌자서 걸을 거야. 혼자서 이러나 이 정원을 걸을 거야." 15.홉킨스의 진실 메어리는 비밀의 정우너에 모인 코린과 디콘에게 서재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이야길,ㄹ 들려주었다. "저택이 홉킨스라는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대. 아저씨가 메드로크 부인과 말하 는 걸 들ㅇ었어." "저택이?" 콜;ㄴ의 몸은 꼿꼿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저택이 팔렸다구? 아니야, 거짓말일 거야!" 코린은 감자기 고개를 마구 흔들며 소리쳤다. "벤을 불러와! 벰에게 물어봐야겠어." 디콘이 벤을 불러 왔다. "벤, 이 저택이 헙킨슨 이라는 자의 선에 넘어간게 사실이야?" 코린은 벤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벤의 주름진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 다. :사실입니다. 저택도 미르스웨트 정원도 모두 홉킨스의 손에 넘ㄹ어가게 되었 답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야 메드로크 부인에게 들었습니다." 코린의 얼굴이 하얗게 됐다. "홉킨스란 자가 대체 누구야? 응 ? 어서 말해 봐!" "옛날에 이 저택에서 살았던 하닝입니다. 불쌍한 사람.이죠." 디콘이 나섯 물었다. "어째서요? 정원지기 아저씨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홉킨스는 저택의 돈을 가 로채서 쫓겨난 거라고 하던데." 벤 할아버지는 무서운 얼굴로 디콘을 쳐다보았다. "아냐, 그건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사람들이 아무리 홉킨스르 이러쿵 저러쿵 해도 난 홉킨스의 억울함을 안다." 벤 할아버지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파였다. "난 홈킨스가 마님에게 하는 얘기를 들엇지. 아마 마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해 였을 거야. 그 해는 추위가 오랬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농사가 흉작이 되었어. 마님은 토지 대금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지. 그래서 마 님은 홉킨스에게 사람들에게 대금을 받을 때까지 장부상으로는 지불한 것으로 해주자고 하셨던 거야." 메어ㅗ리는 안타까운 소리를 터트렸다. "그 장부를 기록한 사람이 홉킨 스였구요?" 벤 할아버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마님이 돌아가신 후에 일이 벌어진 거야. 주인님께서 장부와 돈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차렸거든." 메어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울상을 지엇다. "아주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저씨에게 얘기해 주셨을 텐데. 아, 불쌍한 홉킨 스." "험킨스는 자신의 결백을 증먕하지도 못한 채, 이곳을 떠나고 말았지. 토지대 금을 횡령한 것으로 오해를 받고 말이야." 메어리는 가슴이 아팠다. 그 일로 행복까지 무참히 깨져 버린 카멜라가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래, 카멜라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 카멜라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 줘야지." 메어리는 패티를 안고 정원을 달려 나갔다. "메어리! 메어리, 어딜 가는 거야?" 코린과 디콘이 소리쳐 불러도 메어리는 멈춰 서지 않았다. "잠깐만! 다녀올 데가 있어." 메어리는 홉킨스의 얘기를 하며 괴로워하던 카메라를 생각했다. 홉킨스의 결 백을 빨리 카멜라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카멜라! 카멜라!" 메어리는 오두막집 낭으로 뛰오 둘어갔다. 카멜라는 카드로 점을 치고 있었다. 얼굴이 무척 수척해 보였다. :홉킨스는 곧 이곳으로 올 거야. 점에 그렇게 나오하 있어." "카멜라, 홉킨스는 죄가 없어요. 저택의 돈을 빼돌린 게 아니었어요. 아저씨는 모든 걸 오해하신 거예요." 메어리의 말으 ㄹ들은 카멜라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역시 홉킨스는 죄가 없었어. 아, 다행이야. 하지마......." 카멜라의 표정이 다시 어두우ㅠㅓ졌다. "홉킨스가 미스르스웨트 정원을 차지해 린다면....... 아, 릴리아가 얼마나 슬펴 할까? 그리고 또 너희들은 어떻게 되는 ㄱ서지?" 메어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메어니는 디콘이나 코린과도 헤 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또 다지 예전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ㅈ;ㅣ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16.저택에 찾아온 봄 홉킨스는 미스르스웨트의 정원에 도착하자 맨 먼저 늪지에 있는 카멜라의 오 두ㅁㄱ을 찾았다. 들판은 10년전과 멸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금,작화나 히드꼿이 흐드러지게 피 어 있고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코끝을 간지럽혔다. 홉킨스는 카멜라의 오두막집 앞에서 말을 세웠다. 저만치에 카멜라의 모습이 보였다. 카멜라는 약초를 캐고 있었다. "카멜라........ 카멜라!" 홉킨스는 반가움으로 목이 메었다. 카멜라는 약초를 캐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카멜라의 눈이 놀라움 과 기쁨으로 크게 벌어졌다. "홉킨스? 홉킨스!" 카멜라는 홉킨스에게 달려갔다. 홉킴스도 말에서 내려 카멜라에게로 달려갔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흐렬ㅆ다. "날 기다려 줘서 고마워. 생각보다 너무 늦어 버렸어." 홉킨스의 목소리에는 카멜라를 향한 사랑이 담뿍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카멜 라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야? 이유가 뭐지? 카멜라는 10년 동안이나 날 기 다린 게 아니었어?" 카멜라는 누믈 자국이 묻어 있는 눈으로 홉킨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저택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돌아오신 거예요. 난 당신이 부자가 되어 올아오는 걸 원치 않았어요. 차라리 당신이 가난하여도 날 빨리 맞 으러 와 주었다면 그게 훨씬 기뻤을 뻔 했어요." "죄도 없는 날 누명을 씌워 쫓아낸 건 클레이븐이야. 그 사람 때문에 카멜라와 나느 10년 동안 떨어져 살았어." 홉킨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카멜라는 얼굴을 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릴리아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한시도 그 분 은혜를 잊은 적이 없어 요." 카멜라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저택을 다시 돌려 주세요. 그 저택은 우리보다 클레이븐 가족에게 더 필요 해요. 릴리아도 그걸 바랄 거예요." "카멜라." 홉킨스는 눈물을 글써이는 카멜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메오ㅓ리와 디콘은 비밀의 정원에서 코린의 걷는 연습을 도와주고 있었다. "자, 이제 혼자서 걷는 거야." 디콘은 부축해 주던 코린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코린은 몸의 중심을 잃 고 비틀거렸다. "어어, 조심해." 디콘은 콜니의 몸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팔을 놓았다. "할 수 있어. 코 린! 할 수 있어! 넌 요술의 힘을 믿잖아." 메어리는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코린은 입술을 깨물며 다리에 힘을 모았다. "난 요술의 힘을 믿는다. 내 속에는 요술의 힘이 있다. 난 걸을 수 있다." 코린은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메어리와 디콘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코린은 열 발짝 정도를 혼자서 걸었 다. 코리느이 얼굴은 발갛게 물들었고 커다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메어리! 디콘! 날 봤지? 혼자서 걸었어." "그래! 굉장해, 코린!" 메오리와 디콘은 팔짝팔짝 뛰었다. 한편 클레이븐 씨는 저택의 서재에서 슬픔에 잠겨 있었다. 클레이븐씨는 주머니에서 팬던트를 꺼내 뚜꺼을 열었다. 그 속에는 릴리아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릴리아, 미안하오. 이 저택을 처분하게 되었소. 당신이 그렇게도 아끼던 이 저 택을 말이오." 클레이븐 괴로운 듯 머리를 양선으로 감싸쥐었다. 클레이븐 씨의 머릿속에는 콜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코린이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콜닝이 2, 3일 밖에 살지 못할거라고 했다. 그러나 코린은 일주일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코린이 잠들어 있을 때 외에는 그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다. 클레이븐 씨가 알고 있는 코린은 신경질이 심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몸이 매 우 약한 환자라는 것뿐이었다. 클레이븐 씨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이븐 씨, 저 홉키느입니나." "홉킨스?" 클레이븐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홉킨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ㄴ다." "그게 뭔가?" 홉킨스는 클레이븐 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클레이븐 씨의 돈을 훔치치 않았습니다. 벤이 바로 그 증인 입니다." 그러자 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 그때 홉킨스와 마님의 대화를 들었습니다ㅓ. 마닌은 간난에시달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위헤 장부에 이름을 기입해 준 것입니다." 벤은 그때의 상황을 자ㅅ; 설명했다. "그런 일이, 그게 사실인가?" 클레이븐 씨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릴리아가 그랬으리라고는 생각ㅈ;도 못했네. 난 단지 자네가 돈을 빼돌린 것 으로만 알고.......자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클레이븐 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기네 온 이유는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 정원을 보고 싶었습니다.마님께서 아끼셨던 정원 말입니다." "내게 그 정원을 보여 달라고? 난 못 가겠으니 벤을 데리고 가게." 클레이븐 씨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홉킨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전 클레이븐 씨와 함께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은 클레이븐 씨 니까요." "그곳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네. 내가 그 정원의 열쇠를 땅에 파묻어 버렸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정원의 입구라도 보고 싶군요." 하는 수 없이 클레이븐 씨는 홉킨스를 데리고 비밀의 정원으로 갔다. 덩굴을 헤치던 클레이븐 씨는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안에서 소리가 들리고 있어. 설마 누가 안에......." 클레이븐 씨는 입구의 손잡이를 잠아 당겨 보았다. 문은 자연스럽게 열렸다. "아니!" 클레이븐 씨는 잣;ㅣ의 눈을 의심했다. 정원의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우뚝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너,너는." 클레이븐 씨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빠......." "코린! 네가 정말 코린이냐?" 코린은 클레이븐 씨 앞으로 걸어와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팔을 만졌다. "아빠 저 코린이에요. 전 이제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기쁘지 않으세요? 전 건강해졌다구요." 클레이븐 씨는 꼿꼿이 서 있는 코린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서 있을 뿐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클레이븐 씨는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날 정원 안으로 데려가 주지 않겠니?" 정원 안에는 꽃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장미꽃들이 덩굴을 뻗고 이름답게 활짝 피어 있었다. 나무잎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아, 이 정원은 이제 영여 못 쓰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클레이븐 씨는 우두커니 서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메어리와 디콘이 정원을 살려 놓았어요." 코린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아아, 이 정원을 ." 클레이븐 씨의 눈은 기쁨과 놀라움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콜ㄴ은 바퀴의자를 조만큼 밀어 버렸다. "아버지, 저랑 함께 집까지 걸어가요." 코린과 클레이븐 씨가 앞장을 서자 메어리와 디콘이 그 뒤를 따랐다. 벤은 정 원에 서 있다가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는 저택으로 뛰어가 사 람들에게 외쳤다. "어서들 나오하서 이 모습을 보시오! 저기 잔디 위를 걸어오는 두 사람을 말 이오!" 메드로크 부인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칸성을 터뜨렸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하인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달려갔다. "세상에, 저 분은 도련님 아냐?" 모두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잔디 위를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은 클레이븐 씨와 코린이었다. 코린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저택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 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