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상대적 질투 허드슨 부인의 딸 안젤라가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들어와서 아침 식탁 위에 신문 뭉치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홈스는 한 손에는 젬을 바른 토스트를 들고 신문을 펼쳐보았다. "왓슨, 이 신문 기사들은 정말 한심하군. 이맘 때쯤이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노련한 편집자들 이 새로운 기분으로 일을 시작할 텐데 말이네. 신참 기자들이 지면을 메우는 한심한 여름 휴가철 이 끝날 때도 되었으니 괜찮은 기사가 있을 것라고 생각했는데, '이상 고온 때문에 디본 지역의 추수가 빨라질 것','브라이턴 해변에 죽은 고래가 밀려왔다','앨버트 왕자가 여왕과 함께 밸모럴에 가다'.... 정말 한심한 기사들뿐이로군!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이야기일까?" 그는 [타임스]의 첫 페이지를 페이지를 펴들었다. 보통 편집 상태가 완벽하기 마련인 1면에 어쩐 지 서둘러 편집한 흔적이 보였다. 발행인란 아래쪽에 실리는 개인광고 몇 줄이 삭제된 자리에 줄 간격도 제대로 안 맞고 방향도 비뚤어진 기사가 인쇄되어 있었다. "왓슨, 신문사에 정말 난리가 났던 모양이네. 편집자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었겠군. 신문 지면을 완전히 짜서 인쇄를 시작한 다음에 아주 중요한 기사가 들어온 모양이야. 그렇게 되면 인쇄기를 멈추고 인쇄기를 멈추고 인쇄실 바닥에서 신문판을 다시 짜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게 되지. 그래! 어떤 비상 사태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 몇 군데 틀린 글자도 있네. 실제 글자의 거울상 에 해당하는 활자에 익숙하지 않은 기자가 직접조판을 하면 이런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도대체 어떤 기사 때문에 신문사가 이렇게 허둥거렸을까?" 기사를 읽어내려가던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다 읽고 난 그는 신문을 나에게 건네주 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가벼운 이야기를 한 모양이군. 다른 기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네. 만약 이 기사가 사 실이라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 아마도 마이크로프트 형 은 외무부에서 흥분한 외교관들을 안심시키고 있을 테고, 우리도 곧 불려갈 것 같군.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엉성하게 쓰인 기사를 고쳐가면서 큰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중부 유럽의 왕위 계승 위기 발생. 30년 동안 크롤가리아를 다스려왔던 울만 2세가 사냥 중에 승마 사고로 갑자기 서거했다. 그는 사납게 날뛰는 말에서 떨어지만서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그 의 말이 왜 갑자기 날뛰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계획적인 살인사건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흑해 지역의 여름 휴양지에서 왕실 열차 편으로 귀향 중이었고 고위 관리가 그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역에 도착하 기 한 시간 전에 기차안에서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고,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에 두 사람은 각각 기차의 가장 앞쪽과 가장 뒤쪽 객차에 떨어져 있었기 때 문에 우연한 사고일 가능서은 아주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서거한 울만 2세의 뒤를 이어 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인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왕위 계승 서열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만 황태자와 황태자비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에 따라서 왕위 계승권자가 달라지게 된다. 만약 황태자가 먼저 사망했다면 황태자비의 동생이 왕위를 이어 받게 되지만, 황태자비가 먼저 사망했다면 황태자의 동생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모든 사실이 명 백하게 밝혀질 때까지는 이 지역에 상당한 긴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내가 홈스에게 신문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외무부에서 소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우리는 이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 까?" "황태자와 황태자비를 죽인 살인범을 빨리 찾아내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겠지. 물론 울만 2세의 죽음이 정말 사고 때문이었는지 밝혀내는 일도 중요할 테고. 그런데 크롤가리아 경찰은 이렇게 복잡한 사건을 해결한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일 거야. 영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요청 자체가 외교적인 수치가 되지.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대사관에 머무르면서 조용 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거야. 그러니까 마이크로프트 형이 우리를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외무부로 가보도록 하세 . 허드슨 부인에게 마차를 불러 달라고 하게나. 외무부에 들어가려면 그곳의 의전 규정에 맞도록 옷을 바꾸어 입어야겠지? 이런 옷을 입 고 그곳에 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자네도 모자와 연미복으로 갈아입도록 하게." 마차는 마블 아치를 지나서 벵이커라를 남쪽으로 달려간 다음 새로 단장한 서펜타인 호수가 내 려다보이는 웅장한 파크가로 들어섰다. 홈스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버킹검 궁을 지나서 컨스티튜션 힐에 도착했을 때는 울만 2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인지 조기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웰링턴 병영 근처의 버드케 이지가로 들어섰을 때 홈스는 갑자기 마차를 멈추도록 했다. "저기 신문 판매대를 보게나, 왓슨. 최신 판이 막 도착한 모양이야. 우리가 방금 프리트가를 지 나왔으니 잉크도 제대로 마르지 않았을 것 같군. 망이크로프트 형도 최근의 소식을 알고 있겠지 만, 우리도 게으리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걸세." 흔들리는 마차에서 신문을 일기는 아주 어려웠지만 1면에 실린 왕실 열차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었다. 홈스가 신문을 보면서 말했다. "좀더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네. 황태자는 일곱 개의 객실 중에서 제일 앞쪽에 타고 있었고, 황태자비는 가장 뒤쪽에 타고 있던 것이 확인 되었다네. 가운데 객실에는 시종들이 타고 있었군. 시종의 객실에서 양쪽 끝의 객실까지는 신호용 종에 연결된 전깃줄이 설치되어 있느데, 그 줄에 폭탄이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네. 암살범이 종에 연결된 전깃줄을 자르고 그곳에 솜화약 상자와 전기 기폭 장치를 연결해두었던 모양이야. 이렇게 계획적인 살인사건이라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를 알아내기가 쉽진 않을 것 같군, 왓슨. 중앙에 위치한 객실에서 전기 신호가 보내졌다면 불꽃이 전깃줄을 따라 가면서 느 려지는 정도도 같았을 것이고, 솜화약도 순식간에 폭발했겠지. 그렇다면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수 천 분의 일초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 군.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와는 달리 죽음의 순간은 서로 함께 한 셈이군." "홈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기차에 두 개의 객실을 만들어두고 시종이 객실을 통해서만 연 결되도록 해놓은 점이 정말 이상하군요. 더욱이 두 사람은 부부라면서 말입니다." 홈스는 긴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왓슨,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네. 나도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런 일은 전에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계속 있을 거야. 황태자는 아주 늦게 결혼을 했다네. 쉽게 짐작이 되겠지만 그에게는 여러 명의 여자 친구가 있 었지만 아무도 황태자비로 승인을 받지 못했지.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한 장난 수준이었던 모양이 지만, 그중의 한 여자와는 상당히 깊은 관계였던 모양이야. 그런데 황태자가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자 모든 일에 아주 냉소적으로 변해버렸다고 하더군. 결국 왕실의 원로들이 적당한 신붓감을 찾아내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참 으로 한심했던 모양이야. 신붓감은 과거에 어떤 남자와도 사귄 경혐이 전혀 없어야 했다는군.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10대의 아주 어린 소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네.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하는 기회가 마련되었고, 황태자는 결국 아주 매력적인 소년에게 청혼을 하 게 되었지.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 부부는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후에 일어난 일은 누구의 말 을 믿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황태자측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균형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군.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했던 황태자비는 결국 질투심 때문에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여인이 되어버렸다나. 그렇지만 황태자비 친군들의 말에 따르면 황태자가 처음부터 그녀에게 아 주 냉정하고 비협조적이었다고 하더군. 그녀를 황태자비로 여기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만 관심을 가졌다더군."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홈스." "나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절대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지. 아무리 부부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 때문에 결혼이 깨지 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 네. 어찌되었거나 그 두사람이 왜 그렇게 이상하게 여행을 했는가는 이해하겠지? 두 사람은 다른 사 람들 앞에서는 다정한 것처럼 행동해야 했지만, 사실은 서로를 엄청나게 미워했다네. 그래서 열차 에서도 각자의 객실이 팰요했지."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는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당행스럽게도 우리 신문은 공인의 위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관례를 따르고 있지. 나도 그런 이야기가 아무렇게나 소문으로 돌아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 각하네. 성공과 명예에 대해서 사회적인 보상이 아니라 직접적인 벌이 주어지는 사회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 마차가 외무부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장엄하게 차려진 접견실을 지나서 검소하지만 정교하게 장식된 측실을 거쳐 홈스 박사의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사무실에는 편안한 의자와 서류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홈스 박사는 우리에 게 조금 퉁명스럽게 자리를 권했고, 음료나 시가를 권하지도 않았다. " 셜록,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맙소사. 지금은 정말 바쁜 시간이라네. 무슨 일을 도와주면 되겠나? " 홈스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형이 나를 부를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아하! 크롤가리아 일 때문이로군. 이제야 알겠군.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네 도움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 문제는 몇 초만에 간단하게 해결되어버렸거든." 홈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예요, 마이크로프트 형? 형의 능력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발칸 반도의 복잡한 정치적 상 황을 생각하면 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범인은 수십 명이나 될 겁니다. 런던에 앉아서 누가 범인 인가를 알아낸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홈스 박사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냈단 말이냐?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고, 사실 그 부 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어! 황태자와 황태자비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아냈다는 말이지." "마이크로프트 형, 형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방금 나온 신문에 보 도된 것처럼 두 사람이 정말 동시에 사망한 것이 아닙니까?" 홈스 박사는 책생에서 우리가 방금 보았던 신문을 집어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정보를 근거로 일을 하고 있지. 그런데 그 정보만으로도 누가 먼저 사망했는가 를 명백하게 밝힐 수 있었네." 홈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홈스 박사는 한숨을 쉬면서 말을 계속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셜록! 너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구나. 우리가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내가 설명 해주었던 물리 문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야.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모든 기준틀은 동등할 뿐만 아니라 절대 정지 상태는 존재하지 않아. 그 래서 두 대상이 동일한 장소에 있다는 것은 동일한 시각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두 형제 사이의 논쟁에서 나는 셜록 홈스의 편을 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 열을 내어 말했다. "그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나는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사망한 토마스 아 베케트 대주 교를 기리는 비석 앞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300년 전에 일어났지만 나는 그가 살해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귀신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머리카락 이 곤두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홈스 박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왓슨 박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다른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네." 그러면서 그는 서랍에서 꺼낸 왕실 문양이 새겨진 서류 뒷면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두 행성이 우주 공간에서 서로 충돌할 정도로 가까이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한 행 성의 북극 바로 위쪽 1만 킬로미터 지점이 다른 행성이 남극 아래쪽 1만 킬로미터 지점과 일치한 다고 하세. 하나는 지구이고 다른 하나는 화성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물론 실제 행성들이 그 정 도로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우리 이야기를 위해서 그렇다고 가정해보기로 하자는 말 이지. 1년이 지난 후에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1년 전에 행성이 있었던 곳을 가리켜보라고 하면 연전히 북극 위쪽 1만 킬로미터 지점을 가리키겠지. 그렇지만 화성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고 수백만 킬로미터 움직여갔을 거야. 물론 화성인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들도 역시 남극 아래쪽 1만 킬로미터 상공을 가리키겠지만 지구는 벌써 수백만 킬로미터를 움직여가서 그곳에 없을 걸세. 이 처럼 '같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위치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곳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 내가 즉시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같은 장소'라는 말이 명백한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같은 시각'이라는 말도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네. 기차의 중간에 있던 시종이 알고 그랬거나 모르고 그랬거나 상관없이 황태자와 황태자비를 죽게 만든 단추를 눌렀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그 시종이 햇불로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면, 그 신호를 같은 속도로 앞쪽과 뒤쪽으로 전파 되겠지. 그러니까 신호를 보낸 시종은 그 신호가 동시에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게 도달했다고 생각 했을 거야. 그런데 기찻길 옆에 서 있던 사람의 바로 앞에서 횃불 신호가 켜졌다고 하세. 그의 입장에서 보 면 앞쪽의 객실은 멀어지고 있지만, 뒤졲의 객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일 것이고, 그러 니까 횃불 신호가 앞쪽보다는 뒤쪽의 객실에 먼저 도착한 것으로 보이겠지." 나는 그의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되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홈스는 깊은 생각에 잡겨 있었다. 홈 스 박사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차에 타고 있던 시종에 아니라 기찻길 옆에 서 있던 사람이 횃불 신호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네. 결국 시종에게는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 도 기찻길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시각에 일어나서 전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 이지.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앞쪽과 뒤쪽 객실이 동시에 폭파되었다고 했네. 그러니까 기찻길 옆에 서 있었던 셈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뒤쪽 객실 이 먼저 폭파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 않겠나? 물론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서 달리지지. 만약 다른 기차가 더 빠른 속도 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면, 그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앞쪽의 객실이 먼저 폭파된 것으로 보였겠지." 홈스 박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셜록.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겨을 내려줄 법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구 표면에 정지 된 상태로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황태자비가 황태자보다 먼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네. 물론 그 시간 간격은 아주 짧겠지만 말이야."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홈스는 확실하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의 입술이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무엇인가 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차가 아무리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아주 작겠지요. 어디 볼까 요? 실제로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은 10조 분의 1초에 불과할 겁니다. 과학적으로 표한하면 10의 13승 분의 1이지요." 홈스 박사는 가볍게 팔짱을 끼고 말해싿. "사실 황태자비의 남동생은 아주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그 사람은 아주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시종을 죽였지만 왕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야. 어쨌든 그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적 당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 그와는 달리 황태자의 동생은 천재라고 할 수는 없어도 왕족의 의무 를 성실히 수행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라 일을 엉망으로 만들 사람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네. 내가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었는가는 조금도 중요하 지 않아. 다만 주어진 정보를 근거로 황태자비가 먼저 사망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힐 수만 있 으면 충분하니까 말이야." 그는 확실히 동생을 무시하고 있었다. 홈스가 그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 는 이쯤에서 홈스 박사의 기를 꺾어두어야겠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전혀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사소한 시간 간격뿐이지 않습니까? 순조로운 왕위 계승은 아무 의미 없는 논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의 왕 위 계승 문제가 이곳 런던에서까지 중요한 문제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이나 대공이 암살되었 다고 세계 질서가 모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홈스 박사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각난 듯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입 속으로 무슨 기도문 같은 것ㅇ르 중얼거린 후에야 다시 기력을 찾은 듯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손님 대접을 잘못한 모양이네. 마실 것도 권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책상에 있는 벨을 누리다가 놀란 듯이 시계를 보고 나서 멈칫거렸다. "셜록,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점심 약속이 있다네.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이제 야 내 능력을 존경하게 된 모양이야. 서멀리 교수가 만자자는 연락이 왔다네. 과학 문제를 논의하 자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법률 문제에 직면한 그의 학생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문제라면 나보 다 네가 더 적격이 아닌가? 시간은 있겠지? 왓슨 박사는 어떤가? 좋아. 지금 출발하면 천천히 걸 어가도 될 것 같군." 홈스 박사의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아서 천천히 걸었지만 우리가 성 제임스 공원을 지나 퀸스가 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시간이 조금 이른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메뉴를 살펴보 고 있는 동안에 서멀리 교수가 허버지겁 들어서서 웨이터의 안내도 무시한 채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홈스 박사." 그는 홈스와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홈스 박사에게만 인사를 했다. "시간이 있으셨던 모양이지요. 정말 대행입니다. 다른 교수와는 달리 나는 강의뿐만 아니라 학생 을 돌보는 의무도 아주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알지요?" 그가 챌린저 교수를 비웃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앨프레드 스미스라는 학생이 어려움에 처해 있답니다. 그 학생은 나한테 물리학을 배우고 있습 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서라고 하는 음악을 공부하는 쌍둥이 형이 있습니 다. 나는 그에게 그런 형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닯기는 했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답니다. 앨프레드는 모험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지요. 그는 흔히 젊은이들이 그런 것처럼 아주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공부는 열 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휴학을 하고 나서 유람선으로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들의 부모는 몇 년 전에 모두 돌아가셨지요. 그의 가족은 욱스브리지 경의 먼 친척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휴학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지 최근에는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지금도 가끔씩 정신이 나간 듯이 멍한 표정을 짓기는 합니다. 그가 겪었던 고약한 일이 자꾸 생 각나는 모양인지..."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앨프레드가 런던으로 돌아온 다음인 몇 주 전의 일이었습니다. 욱스브리지 경이 저택에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홈스가 말했다. "우연이라고 하기는 어렵군요." 서멀리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계속했다. "경찰도 앨프레드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폭행전과도 있는 모양이니까요. 아주 점잖은 형과는 달리 앨프레드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의 알리바이 를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앨프레드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순 간에 앨프레드는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서 내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단순한 살인사건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욱스브리지 경이 남긴 유서가 아주 이상합니다. 자식이 없었던 그는 집안의 젊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재산이 여러 사람에게 분할되어 상속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답니다. 재산이 여러 사람에게 분할되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특정한 인 물을 지명하지 않고, 그냥 집안의 젊은이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상속 받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 집안에는 쌍둥이도 많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절대 분할하지 말아야 한다고 유서에 명시했다는 군요. 쌍둥이의 경우에도 출생한 시각을 정확하게 따져서 형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건 아주 쉽지 않습니까? 나도 싸둥이의 출생을 도와준 적이 어려번 있었습니다. 쌍둥이도 태 어날 때는 한 아이씩 순서대로 태어나지요. 시간 간격이 몇 시간씩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까 두 아이가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태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앨프레드와 아서는 경우가 아주 특별합니다. 아하! 이제야 오는군요. 나란히 걸어오 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무엇인가 아주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서멀리 교수는 빠르게 말을 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본인들에게 직접 들으시죠. 이해하겠지만 두 사람은 상속 문제 때문에 상당히 어색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 문제를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사건이 신문에 흥미거리로 보도되면 훌륭한 가문에 치명적인 모욕이 될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누가 이기거나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재산은 변호사 비용으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만약 홈스 박사가 두 사람 중에 누가 옳은가를 가려줄 수 있다면 그런 비극은 막을 수 있을 겁 니다. 그런데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그는 메뉴를 가지고 온 웨이터를 밀치고 일어섰다. "앨프레드, 아서.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와 셜록 홈스 씨 그리고 왓슨 박사에게 인사드리게. 이 분들이 자네들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실 것으로 믿는다네." 젊은이들이 자리에 앉고 나서 우리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홈스에 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서는 날씨가 좋지 않은 이곳에 있었지만, 앨프레드는 배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했다고 들었 는데 조금도 타지 않았군요."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어른이 되면 조금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약간 마른 몸에 검은 머리를 짧게 깍은 모습이었다. "와슨, 포시라는 속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 인도 여행을 즐기는 돈 많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 행하는 '갈 때는 왼쪽, 올 때는 오른쪽이 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네. 배가 항구에서 출발할 때는 배의 왼쪽에 그늘이 지지만, 항구로 되돌아올 때는 오른쪽에 그늘이 지기 때문에, 열대 지방을 여 행할 때는 그런 쪽에 있는 선실이 인기가 높다고 하더군. 그런 선실을 차지하게 되면 햇빛을 완 전히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 말을 마친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상속권이 주어진다는 유언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문제입 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앨프레드의 목청이 조금 더 높았다. "우리는 아주 드문 샴 쌍둥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피부만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곧 분 리 수술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머니 뱃속에서도 한 몸으로 붙어 있었고,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세상에 나오게 된 셈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던 겁니다." 내가 샘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정말 형인가는 절대로 알아낼 방법이 없겠군요. 두 사람이 확실하게 합의를 하거나, 아니면 유언을 수정해주도록 법원에 요청해야겠군요." 앨프레드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왓슨 박사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태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의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홈스 박사는 고개를 끄덕어면서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최근에 세계일주 여행을 했습니다. 항구에서 내렸던 기간을 빼더라도 6개월 이상을 배를 타고 동쪽으로 항해를 했지요. 케이프타운과 마다가스카르를 지나서 인도까지 갔고,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서 파나마까지 갔답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를 어렵게 지나 대 서양이로 나와서 런던으로 되돌아왔지요." "그랬었군요." 나는 놀라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마, 홈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왓슨 박사는 과학에 대해 아주 낭만적인 꿈을 가지고 있지요. 최근에 공상소설가 베른에서 웰 스까지의 작품을 모두 읽었으니까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던 [80일간의 세계일주]도 분명히 읽 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 200일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런던의 집에 머물러 있던 우리보다는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거지요? 당신이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 지구는 200번을 회전했기 때문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는 200번의 일출과 200번의 일몰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간대가 다 른 지역을 지나갔기 때문에 당신의 하루는 보통의 하루보다 조금 짧아졌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같은 시간 동안에 지구를 중심으로 201번을 회전한 셈이지요. 그러니까 당신 스스로의 움직임 때 문에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았으니까 당신의 동생보다 일출과 일몰을 한 번 더 경험했다는 주장이 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분명히 형이고, 그래서 돌아가신 아저씨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홈스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은 옳지 않아요. 당신이 태어난 이후로 지나간 시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 기 때문이지요. 만약 당신이 탄광 속에 들어가 있다면 일출과 일몰을 보지 못하겠지요. 낮과 밤이 번갈아서 6개월씩 계속되는 북극과 남극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심장 박동수로 나 이를 측정한다면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앨프레드가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홈스는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았다. "이제 당신 동생의 주장도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아서는 부드러운 말투를 쓰기는 했지만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대 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멀리 교수님도 홈스 박사님의 설명에 깊은 감명을 받으셨다 고 하더군요.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 두 형제는 물론이고 과학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흥분했지요. 저도 우연한 기회에 그 문제에 대해 상당 히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수학적인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움직이는 물체에서의 시간이 정지해 있는 물체 에서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진행한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한 곳에만 있었던 셈이지요. 적어도 지구 표면에 대해서는 그렇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 동생은 그동안 10노트, 즉 초속 약 5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배 위 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속도는 빛의 속도와 비교하면 아주 느리지요. 그렇지만 그는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정지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동생은 나보다 조금 더 늙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형인 것이 확실하고, 그러니까 내가 상속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앨프레드는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애처롭다는 듯이 말했다. "내 동생의 전공은 물리학이 아니라 음악입니다. 물론 모든 움직임은 상대적이지요.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움직이고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서 있는 동안에 내 동생을 포함한 영국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옳지 않습니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덜 늙었다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내 동생이 덜 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논 리에서 보면 아주 대칭적이지요." 홈스 박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군요. 베른 씨가 상상했던 것처럼 당신이 신비로운 기계를 타고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별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당신은 형보 다 일초의 몇 분의 일이 아니라 몇 년이 더 젋은 상태로 되돌아오게 되겠지요. 당신의 형은 늙어 서 구부정하게 되겠지만 당신은 여전히 젊고 건강할 겁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 지만 상대적 차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상대적 차이가 있으려면 어딘가에 비대칭 성이 감추어져 있어야 하니까요." 말을 마친 그는 웨이터가 그릇을 모두 치우고 난 다음에도 꼼짝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 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웨이터가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신 다음에야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커피는 독성이 있으면서도 뇌에 유용한 자극제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 이제 내 설명을 들어보세요. 두 사람의 시계가 정확하게 일치 하려면 각자가 고유한 관성 기준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주선이 일정한 속 도로 날아가는 경우에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관찰자나 지구에 남아 있는 관찰자의 시계를 똑같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의 시계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비교가 불가능합 니다. 그래서 우주선이 어느 곳에 도착하는 순간이 두 관찰자에게 '동시'에 일어났다고 이야기한 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주선에 있는 관찰자는 시간이 주구에서보다 더 늦게 가고 있다고 느낄 것이고, 지구에 남아 있는 관찰자는 우주선에서보다 시간이 더 늦게 가고 있다고 느낄 뿐이니까요. 두 시계를 직접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주선의 관찰 자가 똑같은 기준틀에 머물러 있다면 우주선은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 구로 돌아올 수가 없지요.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력을 바꾸어야만 지구로 되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같은 관성 기준틀에 머물러 있다면 우주선은 결국 우주의 끝을 향해 서 똑바로 날아가버릴 겁니다. 물론 우주의 끝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고, 나도 그렇게 믿지 는 않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선이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언제가 우주선의 운동방향이 거꾸로 바뀐다 는 뜻입니다. 그런 우주선에 있는 관찬자는 확식하게 다른 두 개의 기준틀에 있었던 셈이고, 그런 경우에만 여행을 했던 사람이 집에 남아 있던 사람보다 덜 늙게 되는 겁니다." 홈스와 쌍둥이 형제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한 모양이었고,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 지만,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고 초조한 듯 홈스 박사가 말했다. "왓슨, 이렇게 생각해보게. 지구에 있는 쌍둥이가 우주선을 타고 있는 쌍둥이에게 1초에 한 번씩 일정하게 광신호를 보낸다고 하세. 우주선이 별을 향해서 가고 있을 때와 지구로 돌아올 때, 그런 광신호가 어떻게 보일까? 여행을 마친 뒤에 지구에서 보낸 광신호의 수와 우주선에서 관찰한 광신호의 수를 비교해보면 정확하게 일치하겠지. 그렇지만 우주선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광신호들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지 구에서보다 짧은 것으로 느껴질 걸세."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쌍둥이 형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앨프레드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어디에 있 었는가 하는 거라네. 간단히 말해서 지구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보게. 그렇다면 지구가 일정한 관성 기준틀을 가지고 있을까? 지구는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정지하고 있는 지역은 극지방뿐이지. 적도 상의 지점은 초속 약 480미터, 즉 대략 1,000노트의 속도로 움직이네. 그렇다면 10노트에 불과한 유람선의 움직임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지구의 중심이 고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 표면의 움 직임은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관성 기준틀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네." "그렇지만 회전은 절대적인 것이고 직선 운동은 상대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천체관에서 푸코 진자를 보았던 생각이 나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맞네. 그런데 아서는 이곳 런던에 있었네. 북위 50도 정도인 이곳은 초속 320미터 정도로 움직 이네. 앨프레드가 여행을 하고 있던 6개월, 즉 1,500만 초 동안에도 그런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겠 지. 같은 기간에 앨프레드는 그 속도의 1.5배의 속도로 움직이는 적도 부근에 있었네. 빛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경우에 시간이 느려지는 정도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지. 그러니까..." 그는 펜을 꺼내서 헝겊 냅킨에 몇 개의 숫자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웨이터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군. 아서, 내 계산에 의하면 당신이 동생보다 천만 분의 1초만큼 더 늙은 셈이군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초속 30킬로미터 정도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계산이 훨씬 더 복잡하게 되지만 대략적인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거요. 앨프레드가 여행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도 더 많았던 셈이네." 그 말을 들은 앨프레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 "말도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그런 쓸데없는 말을 믿지는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앨프레드는 훵하니 식당을 나가버렸고, 아서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위로해주어야겠군요. 앨프레드는 언제나 저렇게 충동적이랍니다. 결국은 내가 그 재산을 상 속받게 될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내가 앨프레드에게도 충분히 배려를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골치 아픈 송사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바로 그때 홈스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잠깐! 마이크로프트 형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렸군요." 홈스 박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야. 내 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홈스는 아서를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음악을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물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군요. 전에 내가 알 고 있던 쌍둥이 형제가 있었지요. 혹시 앨프레드가 가끔씩 자기 대신 강의를 듣고 출석부에 사인 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던가요? 마치 당신이 앨프레드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대답했다. "런던에는 앨프레드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강의 내용을 잘 적어주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홈스는 가차없이 계속했다. "가끔씩은 개인 교습 시간에도 대신 참석했겠지요? 서멀리 교수가 학생드르이 신체적 특징이나 습관을 그렇게 세심하게 살펴보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앨프레드가 술을 너무 마셔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날이 바로 욱스브리지 경이 살해된 날이었지요?" "어떻게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앨프레드에게 가보는 것이 좋겠군요." 아서는 밖으로 나갔고, 홈스 박사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치우는 동안 홈 스는 우리 두 사람을 향해서 웃었다. "와슨, 아직도 모르겠나? 앨프레드는 자신의 아저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지. 그가 결백함을 주장하는 증거는 쌍둥이인 아서가 만들어준 알리바이뿐이고. 명성이 높은 서멀리 교수가 증명하 는 알리바이를 누가 의심하겠나? 조금 더 알아보아야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가 알 듯도 싶군." 나도 홈스는 따라서 일어섰지만, 홈스 박사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셜록, 나도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역설 문제에 너무 신경을 쓴 모양이야..." 홈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과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기는 하지만, 과학만으로 우리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지요." 나는 홈스를 따라서 햇빛이 밝게 비치는 곳으로 나왔다. 홈스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왓슨,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기 마련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나.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범죄를 저질러서 이득을 보게 되면 안 되지. 앨프레드가 교수형을 면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용서는 받을수가 없을 걸세. 사실 마이크로프트 형은 앨프레드의 피부가 검게 타지 않았다는 자네의 예리한 지적에서 실마라 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말했던 것처럼 적도를 항해하더라도 선실을 잘 선택하면 타지 않 을 수도 있겠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선실에만 갇혀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늘에만 앉아 있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니까 말 이야. 앨프레드는 상당히 오랫동안 알리바이를 계획했던 모양이군. 아주 꼼꼼하게 계획한 범죄야. 왓슨! 이제 그 단서를 하나씩 확인해보세. 저기 지나가는 마차를 불러주게나." 7. 더 빠른 사업가 찌는 듯이 더운 8월 어느 날 오후에 나는 메릴본가를 따라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 다. 내 환자들이 많이 사는 노팅힐 지역과 베이커가 사이에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개들이 혀를 길게 내놓고 헐떡거리는 좀 지저분한 지역이 있었다. 그 실을 걸어서 지나기로 한 것이 정말 후 회스러웠다. 사물실에 거의 다와갈 때는 편안한 안락의자와 시원한 음료수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내가 문 앞에서 마주친 광경은 정말 반갑지 않았다. 허드슨 부인이 팔짱을 끼고 서서 큰 키의 중년 남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비싼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몹시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허드슨 부인은 나를 보자 애원하듯이 말했다. "박사님, 이 분의 명함을 홈스 씨에게 분명히 전해드렸는데 홈스 씨가 지금은 몹시 바빠서 만나 실 시간이 없다고 하세요. 그런데도 이분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홈스 씨를 만나러 들어가야겠다고 떼를 쓰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박사님께서 해결 좀 해주세요." 나는 몹시 더웠지만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홈스 씨는 몹시 바쁘십니다. 저는 홈스 씨와 함께 일하는 왓슨 박사입니다. 용건을 말씀해주시 면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중에 홈스 씨를 만나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주소를 알려주시겠 습니까?" 내 말에 화가 나서 핏기가 사리져버린 그의 얼굴이 붉은 목과 대비되어서 더욱 보기 싫었다. 한 참을 씩씩거리던 그는 강한 뉴욕 브롱크스 억양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음 주라고요! 맙소사! 우리가 대서양 저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동안에 영국이 이렇게 쇠퇴해버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요! 시간이 돈이라는 사실도 모르십니까? 나는 바넘 룰 먼이라고 하는 미국 갑부 중의 한 사람입니다. 홈스 씨에게 지금 당장 나를 만나지 않으면 곧 후 회하게 될 것이라고 전해주시오!" 나는 더욱 냉정하게 말했다. "의사로서 충고 드리고 싶군요. 그렇게 흥분하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심장에 심한 무리를 주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 기를 원한다면..." 룰먼 씨는 너무 흥분해서 몸을 떨고 있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은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신을 위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최고의 자문을 받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 는 일이고, 나는 그런 자문을 받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 입니다. 사실 나는 지금 협박을 받고 있는데 경찰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협박범에게 돈을 빼앗기기보다는 유능한 탐정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상당한 액수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만약 내 요청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홈스 씨가 몹시 후회 할 겁니다." "홈스 씨가 협박범을 특별히 미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을 만나보도록 설득해보지요. 그러 나 만약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보일 듯 말 듯한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계단을 올라것 안으로 들어갔다. 홈스는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벌렁 누워서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어싿.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빈 정거렸다. "홈스, 정말 바쁜 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군요. 허드슨 부인이 왜 화가 났는지 알 만해요. 아 무 일도 없이 쉬고 있으면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갑부를 만날 시간은 없다는 말인가요?" 그는 아무 흥미도 없다는 듯이 팔을 저으며 말했다. "왓슨, 나는 지금까지 대기업가가 흥미로운 사건을 가지고 왔던 경우를 본 적이 없네. 그 사람들 은 주로 자금 유용과 같은 사고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사건은 탐정보다는 회계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적절하지. 내가 알기로는 마이크로프트 형이 그런 사건을 좋아한다네. 형은 주로 정부와 관련되 사건을 좋 아하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형은 자신의 재능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 편이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장부를 검토해주는 일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 "홈스, 오해를 하고 있군요. 저 사람은 지금 협각을 받고 있는 중이랍니다. 사건 내용을 들어보 지도 않고 미리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원하지 않는 사건은 맡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려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직접 의뢰자에게 그 뜻 을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홈스는 단호한 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좋네, 왓슨 박사! 사무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내 희생이 필요하다면 할 수 없지. 룰먼 씨더 러 들어오시라고 해주게." 나는 홈스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서둘러 나가서 아래층 북도를 서성이고 있던 롤먼 씨를 손짓으 로 불렀다. 그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와서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홈스는 우리를 보고도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지 않고 게으른 몸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롤먼 씨,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당신같이 귀한 분이 이렇게 누추한 곳을 방문하시다니 영광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롤먼 씨는 기분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 "맞아요. 내가 부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수한 재능을 가진 당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이 유를 분명히 알겠군요. 홈스 씨, 세상을 살아 가는 데는 재능보다 에너지가 더 중요하답니다. 에 너지와 재빠른 행동이 부와 성공의 열쇠지요. 잘하려는 노력을 더 빨리 하면 분명히 이기게 됩니 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빈정거렸다. "그렇습니까? 나는 정반대로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데요. 예 를 들어서 수레바퀴를 생각해보십시오. 수레바퀴를 발명한 사람은 야심에 찬 그런 사람이 아니라 무거운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질질 끌어서 동굴로 날라오는 일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이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일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쉴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수레바퀴를 발명하게 되었을 겁니다. 발빠른 사냥감을 쫓아다니기에 너무 게을렀던 사람은 '만약 창을 저 짐승보다 더 빨리 날아갈 수 있도록 던질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 다니는 동안에 나는 편안하게 쉬어도 살이 찔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활과 화살이 등장했겠지요. 그리고..." 인류 역사에 대한 홈스의 이상한 해석은 끊임없이 계속될 모양이었다. 마침 롤먼 씨가 그의 말 을 가로막은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홈스 씨, 창과 화살의 예는 아주 적절하군요. 그렇지만 내 왕국은 바로 속도의 향상으로 얻은 이득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돛단배보다 훨씬 빠른 증기 외륜선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상품을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재산을 모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후에 과학 기 술자들에게 외륜선보다는 스크루를 장착한 배가 더 빠르다는 것을 배워서 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차를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 동안 나는 증기 기관차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내 사업은 미국 전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순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주는 전보를 이용하면 경쟁자를 이길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었죠. 그래서 대규모 소개업자들에게 전기를 이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도 록 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구요. 그런데 바로 그런 성공 때문에 이제 는 협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찾아온 것입니다." 홈스는 이제야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아, 예....?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말씀을 계속하시지요." "내 사업 중에서 시카고의 슈피리어 익스체인지가 가장 이익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이곳 런 던 겅매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경매 를 중계해주는 일을 하는 회사지요. 이 사업에서는 공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입찰자들이 정확하 게 같은 시각에 정보를 받도록 해주어야만 합니다. 다른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같은 가력을 제시한 경우에는 입찰가력을 먼저 제시한 사람이 이기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전보만으로는 그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유렵에 있는 모든 입찰자들이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근에 마르코니 씨가 특별히 개발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카고로부터 입찰이 시작된다는 신호 가 에테르를 통해서 빛의 속도로 보내지면 정확하게 6분의 1초 후에 런던에 도착하게 됩니다. 입 찰에 참여하고 싶은 중개상들은 그 순간에 같은 방법으로 회신을 하게 됩니다. 입찰자들마다 다 른 주파수로 신호를 보내지요. 당연히 런던의 중개상들은 가능하면 빨리 신호를 보내려고 심한 경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몇 달 전부터는 손으로 전보를 치는 대신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입찰에 참여하고 싶은 중 개상들이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즉시 응답 신호가 자동으로 이용해서 수천 분의 일초라도 먼저 도착한 신호를 가려내고, 그 신호를 보낸 중개상이 누구인가를 전기 장치로 알려주게 되어 있습 니다." 홈스는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부자들이 그렇게 훌륭한 장치를 이용해서 훨씬 더 빠르게 시장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군요." 롤먼 씨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설명했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장치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었지요. 시카고에서 언제 신호가 올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중개상이 있다고 힙시다. 만약 어떤 중개상이 시카고 부근에 사는 공범을 시켜서 대서양 밑에 설치된 케이블을 이용해서 런던으로 전보를 보내도록 하면 우리가 사 용하는 무선보다 훨씬 빠르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힙니다. 그런데 유능한 미국 과학자들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전기 신호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에테를 통해서 전달되거나에 상관없이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런 사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의 설비가 완벽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런던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이 편지가 시카고로 배달되어왔습니다." 홈스는 그 편지를 받아서 큰 소리로 읽었다. 사장님께.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알아냈음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알아낸 방 법이 공개되면 사장님과 같은 중개상들의 명성은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사장님께서 내 발명품에 대해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신다면 내 발명품을 공개하지 않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준비 가 되시면 [타임스]의 개인광고란에 '매드레이크를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게재하시기 바랍니 다. 맨드레이크로부터 홈스는 롤먼 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협박 편지입니까?" "그래요." "이것을 법적으로 협박 편지라고 부르기는 어렵겠군요. 롤먼 씨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발명품을 팔거나 다른 사람이 비슷한 발명품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합법적이랍니다. 왜 맨드레이 크의 발명품을 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롤먼 씨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물론 그런 제안을 했지여. 몇 차례에 걸쳐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 신의 발명품을 팔 생각은 없고, 적당한 조건을 제시하면 자신이 그런 장치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렇지만 그 발명품에 대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해주 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그의 말을 무시해버리시죠."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런던에서 빛의 속도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 소 문을 들었습니다만..." 홈스가 말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맨드레이크의 주장이 정말 엉터리라고 하더라도, 그런 소문이 나게 되면 내 중개회사는 큰 타 격을 받게 됩니다. 아주 망해버릴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말하신 대로 순전히 장난에 지나지 않는 다면 그런 엉터리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과연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신호를 보낼 수 있는가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싶습니다. 반대로 그런 일은 절 대로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도 좋은 겁니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정도의 문제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과학자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롤면 씨는 야성적인 모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과학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나는 내게 의견을 제시해주는 사람에게 그 대 가를 지불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사업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변호사, 과학자, 회계사 같은 상담역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럴 듯 하 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근거도 없는 사상누각 같은 쓸데없는 충고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게 되었지요. 요듬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는 대신에 내기를 합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표책과 만년필을 꺼낸 다음에 수표를 한 장 써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셜록 홈스 씨에게 드리는 2만 파운드짜리 수표입니다." 나는 놀라서 숨이 막혀버렸다. "그런데 나와 내기를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만 이 수표를 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빛의 속도보다 빨리 보낼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더 빨리 보낼 수 있다는 쪽을 선택한다면 그 방법을 알아내서 내게 가르쳐주어야겠지요. 만약 당 신에 내기에 지게 되면 이 2만 파운드짜리 수표를 내게 돌려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금액을 추가로 내게 지불해주어야 합니다. 몇 사람의 과학자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 지를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나와 내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군 요." 홈스는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내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롤먼 씨. 그렇지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호텔에 머 무르고 계십니까? 사보이 호텔입니까? 좋습니다. 내일 전화를 드리지요. 왓슨 박사, 롤먼 씨를 전 송해드리게." 나는 롤면 씨를 전송한 후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되돌아와서 홈스에게 불만스럽게 말 했다. "어떻게 그런 내기를 하려고 합니까? 만약 내기에 지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죠? 도와주는 대 가를 지불하는 방법치고는 정망 고약한 방법이로군요." "무슨 말인가? 나는 아주 정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변호사나 회계사들의 자문비를 그런 식으로 지불하게 되면 무능한 변호사나 회계사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지 않겠나? 왓슨 박 사,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네. 나도 그렇게 경솔한 사람은 아니니까 말야. 우리는 런던에서 가 장 재능 있다고 알려진 세 사람과 상의할 수 있지 않나? 옷을 입고 올테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나는 홈스를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임은 확실했다. 그렇나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메시지를 보내 는 방법을 알아내기는 비교적 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옷을 입고 나오는 홈스에게 들뜬 목 소리로 말했다. "홈스, 모자와 장갑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외출할 필요가 ㅇ벗을 테니 말입니다. 내가 수수 께끼의 답을 알아낸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는 홈스 박사처럼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력했다. "홈스, 여기 중간에 있는 것은 등대입니다. 항해하고 있는 배에서 보면 등댓불이 일정한 시간 간 격을 두고 번쩍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등대의 불은 항상 켜져 있지요. 램프 주위를 회전하 는 렌즈나 거울 덕분에 램프의 빛이 좁게 비치는 빔으로 모아질 뿐입니다. 이 순간에는 램프의 빛이 서쪽을 비추고있지요. 등대가 1초에 한 번씩 번쩍인다고 해봐요. 램프 주위의 거울이 1초에 한 번씩 회전한다는 뜻이지요. 이제 등대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원형의 담이 있다고 해요. 벽의 길이는 6킬로미터가 조금 넘겠지요. 따라서 그 담에 비치는 빛은 1초에 6킬로미터를 움직이는 셈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총에서 발사되는 탄환보다도 빠른 셈이지요. 그런데 이제 벽까지의 거리를 1,000킬로미터로 늘여보세요. 불빛은 1초에 6,000킬로미터를 움직 이게 됩니다. 거리를 더 늘여서 10만 킬로미터가 되도록 하면 불빛은 60만 킬로미터를 움직이게 움직이게 되지요. 빛의 속도보다 두 배나 빠른 소도입니다." 홈스는 못마땅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그림은 잘못되었네, 왓슨. 우선 빛이 유한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 네, 왓슨. 등대의 불빛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실제로는 나선형으로 보일 거야. 잔디밭에 물을 뿌리는 회전장치와 비슷한 모습처럼 말이네." 그렇게 말한 그는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나는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어찌 되었거나 벽에 비춰지는 불빛은 여전히 빛의 속도보다 두 배나 빨리 움직이지 않습니까? 벽까지의 거리가 충분히 멀다면 얼마든지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그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야 하지 않나? 벽의 한 지점에서 다름 지점으로 어떻게 신호 를 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벽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거울을 이용해서 빛을 다시 등대 쪽으로 반사시킬 수 있지 않 을까..." 말을하던 나는 갑자기 내 대답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 왓슨.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직접 전달되는 빛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더 오래 걸리지 않겠나? 아주 잘되면 같게 될것이고." 그런 지적을 받고 나서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빛을 사용하면 그런 문제가 있군요. 그렇다면 빛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가위입니다. 홈스 박사의 사고실험에 등잘할 정도로 거대한 가위입니다. 가윗날이 움직일 때 두 날이 만나는 점은 어떻게 되는 가를 생각해보세요. 가윗날이 만나는 각 도가 작아지면 두 날이 만나는 점은 가윗날보다 훨씬 빨리 움직이게 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가윗날은 빛보다 느리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두 날이 만나는 점은 훨씬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지 요." 홈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런 장치로 어떻게 잠겼다가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선 A의 위치에 작고 단단한 물체를 놓습니다. 진짜 가위에 그런 물체를 넣으면 가윗날이 망가지겠지만, 이 실험에서는 가윗날이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A까지 닫혀지면 이 물체에 부딪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 충격 때문에 여기 B의 위치에서도 가윗날이 멈춰진 사실을 바로 알게 되지요. 그런 방법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생각이군, 왓슨! 그런데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네. 우선 어떤 물체도 무한히 딱딱하지는 않다네. 예를 들어서 단단한 막대기를 생각해보게. 막대기의 한족에 충격을 주면 정확하게 같은 순간에 반대쪽에 그 충격이 전달되지는 않고, 몇 분의 1초라도 시간 간격이 있게 되네. 공기 중에 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가 있는 것처럼 고체 속에서의 진동도 일정한 속도로 전달된다네. 고체 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진동이 전달되는 속도는 기껏해야 공기 중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열 배 정도 빠를 뿐이라네. 그러니까 고체 속에서 진동이 전달되는 속도는 빛 의 속도의 10만 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지. 따라서 A에서 생긴 충격이 B까지 전달되려면 상당 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네." 홈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위로했다. "아무튼 열심히 노력했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나? 이제 나가보세. 우선 서멀리 교수를 찾아가보세." 홈스와 나는 유스턴가를 바쁘게 걸어서 높은 회색 담으로 둘러싸인 유니버시티 대학의 옆문으로 갔다. 그곳이 바로 과학 분야의 학과들이 있는 캠퍼스였다. 문 위의 돌에는 그리스 문자로 무엇인 가 개겨져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돌에 새겨진 비문을 읽었다.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 홈스가 그 글의 내력을 설명해주었다. "그 말은 2,000년 전에 플라톤의 논리 학교 정문에 새겨져 있던 글이라네. 그 당시의 수학은 아 주 쉬운 기본적인 것이었지. 그러니까 나눗셈을 할 수 있고, 피타고라스의 신비로운 식을 외우고 있는 자네는 분명히 자격이 있을 거야. 이곳의 수위도 자네의 수학 실력에 놀랄 걸." "그렇게 말하셔도 제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군요. 이교도가 성당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돌이 갑자기 떨어져서 나 같은 이교도를 덮칲 것만 같아요." 내가 농담처럼 말하는 순간에 옆문이 열리면서 파이를 가득 실은 수레가 자갈길을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깜짝 놀란 홈스가 소리를 치며 나를 끌어당겼다. "자네가 사고로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네, 왓슨. 이쪽에 있는 서멀리 교수의 연구실로 가보 세." 우리는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방 안의 세 벽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수식이 가득 써 있는 칠판이 걸려 있었다. 서멀리 교수는 불안한 자세로 우리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명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지요. 공간과시간의 생대적인 수축을 나타 내는 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칠판을 가리켰다. 그 칠판에는 홈스 박사가 가르쳐주었던 식이 그대로 옮 겨져 있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은 이 식에서 베타가 1보다 크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되면 공간과 시간의 수축을 나타내는 식에 음수의 제곱근이 들아가게 됩니다." 내가 그의 말을 막았다. "-1의 제곱근이란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 0보다 작은 음수의 경우에는 제곱근이 존재하는 않는 다고 알고 있는데요." 서멀리 교수가 설명했다. "더 정확하게는 실수의 제곱이 0보다 작을 수가 없다는 뜻지이요. 음의 실수와 음의 실수를 곱 하면 양의 실수가 됩니다. 양의 실수의 제곱도 마찬가지지요. 따라서 양수나 음수는 모두 제곱하 면 양의 수가 되기 때문에 어떤 수를 제곱해도 음의 수를 얻을 수는 없지요. 물론 수학에서는 제 곱하면 응ㅁ수가 되는 허수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학적인 소설에 불과한 겁 니다. 어쨌든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이는 경우에 이 식은 실제 세계와는 맞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관성틀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되지요."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당신들의 질문에 대한 확고부동한 수학적 대답입니다. 실례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부터는 내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겠군요." 우리는 하이드 공원을 가로질러서 30분 후에는 사방이 트인 곳에 있는 임피리얼 대학의 챌린저 교수 연구실에 도착했다. 닫혀 있는 연구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안에서 챌린저 교수의 흥분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나쁜 학생이 야단을 맞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참 후에 문이 열리면서 젊은이가 밖으로 나왔다. 홈스가 그에게 물었다.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챌린저 교수님을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젊은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하더니 자신의 입장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하게 가버렸다. 나는 연구실로 들어서면서 전율을 느꼈다. 홈스가 다시 내기의 내 용과 서멀리 교수의 대답을 자세하게 설명햇다. 의자에 깊숙이 않아서 이야기를 듣던 챌린저 교 수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다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정말 수학자다운 대답이로군요. 그 식이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 낼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식만으로는 왜 그렇고, 만약 빛보다 빠릴 움직이려고 하면 어떻 게 되는가를 아라낼 수는 없지요. 수학적인 증명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런 식이랍니다. 그런 증명 이 엄격한 의미에서 옳을 수는 있겠지만, 실제 상황에 대한 의미 있는 대답이 될 수는 없지요. 과학적 상식을 쌓기 위해서 지질학을 배우고 있는 수학 전공 학생에 대한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학생에게 어떤 지점이 섬에 속하는가 또는 육지에 속하는가를 알아내라는 문제가 주어졌습니다. 실제로 그 지점은 섬에 있었지요. 그는 구두끈을 뜷어져라 바라보면서 육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섬과 육지 사이에는 터널이 있었지요. 그 학생은 우연히 그 터널 숙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두끈만 쳐 다보고 걸었기 때문에 자신이 터널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런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그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신은 육지에서부터 땅 위를 걸어서 그곳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신이 도착한 지점은 당연히 육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그 학생이 옳을 수도 있지요 수학자에게 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으면 먼 저 그에게 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정의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섬에 터널이나 다리가 놓 이게 되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되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수학자의 그 런 대답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그런 문제를 풀더라도 스스로 살아가 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 문제를 좀더 실질적인 방법으로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어떤 사람이 탄환 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려보내고 싶어한다고 합시다. 성능이 아주 좋은 함포는 포탄은 초속 1 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대포를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 이는 자동차에 장치한다면, 탄환이 빛보다 더 빨리 날아가게 될까요? 홈스 씨의 형인 홈스 박사처럼 광속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가상적인 기차에 그 런 대포를 앞쪽을 향해서 장치했다고 합시다. 철길 옆에 서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대포에서 발사된 탄환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까요?" 나는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아하! 그렇군요! 철길 옆에 서서 보면, 기차는 움직이는 방향으로 수축되고, 기차 위에서의 시간 은 아주 느리게 지나갑니다. 내 기억에 의하면 5분의 4가 될 겁니다. 이런 효과를 고려하면 탄환 은 기차보다 초속 540미터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지요." 챌린저 교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술자는 끈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기차의 속도를 빛의 속도보다 초속 300미터만큼만 느리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빛의 속도보다 100만 분의 1만큼 느린 속도지요.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나는 칠판에 적혀 있는 공간과 시간의 수축을 나타내는 상대성 이론의 식을 바라보다가 대답했 다. "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기차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리게 보일 것 이고, 대포와 탄환은 머리카락 정도로 줄어들겠군요." "그렇지요. 탄환은 달팡이가 기어가는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게 되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움직이 지 못하게 되지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거처럼 두 물체의 속도를 더하는 것은 두 물체 중 하나 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훨씬 작을 경웨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일반적인 식도 아주 쉽게 유도할 수 있지요." 그는 칠판에 또 한 줄의 식을 썼다. "이 식에 의하면 초기의 베타 값이 얼마인가에 상관없이 그 값이 1보다 작기만 하면, 그런 베타 를 합하더라도 역시 1보다 작아지게 됩니다." 그는 뭉툭한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이제 탄환을 발사할 때 사용한 화약의 에너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겠지요? 실제로 그 에너지는 탄환에 전달이 됩니다. 다만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는 세상에서는 에너지가 단순히 속도의 제곱에 비ㅖ하지 않고,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탄환을 비롯한 물체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무한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 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기술자의 노력에 근본적인 한계가 되는 셈입니다." 나는 알마 전에 읽었던 [달에 착륙한 첫 인간] 이라는 웰스의 공상 소설이 생각났다. 별은 달보 다도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읽은 생각이 나서 과연 그런 별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능할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우리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서 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5년이 걸릴 정도로 별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니까 아무리 성능이 좋은 우주선을 이용하더라도 5년보 다 짧은 시간에 그런 별에 도달할 수는 없겠군요." 챌린저 교수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지요. 만약 당신이 가속되고 있는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반대로 우 주 자체가 우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수축되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는 빛 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을 인식할 수는 없지만 사실은 더 빨리 도착할 수는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휘어지기 때문에 말이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휘어지는 것은 아니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주 자체가 쭈그러든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거요."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거나 여기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볼 때 그런 별을 왕복하는데는 여전히 10년이 걸리겠 군요. 그점이 이번 내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어떤 물리적인 대상도 빛의 속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군요. 그렇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 분이 있습니다, 교수님.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는 새로운 종류의 전자기파나 물체가 발견될 가능 성은 앞으로도 전혀 없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겠군요.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능력에 한계 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달성하지 못한 일을 전혀 불가능하다고 여기 지는 않지요. 내일 무엇이 밝혀질 것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앞으롣 전혀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대학교를 나설 때 홈스가 말했다. "왓슨, 우리가 마치 야생 기러기를 쫓고 있는 것 같군. 이제 한 잔 마실 시간이 된 것 같네. 마 이크로프트 형이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있는 클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세. 형도 분명히 챌린저 교수와 같은 대답을 하겠지만 한번 만나보기로 하세." 그렇지만 이번에는 홈스가 틀렸다. 홈스 박사는 우리 이야기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빛보다 빨리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네. 박사, 자네는 웰스의 팬이지? [타임 머신]이란느 그의 작품을 읽어보았나?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지. 그 렇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다. 디오게네스 클럽에서는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을 무 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환상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지요. 내가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기도 전에 할머리를 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여기 에 있을 수가 없게 되지요. 어떻게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그런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절대 받지 않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게 되겠지요. 과거로 돌아 가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과거와 교신만 할 수가 있어도 그런 역설이 끝없이 생길 겁니다." 홈스 박사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네, 박사. 다시 길이가 빛이 1초 동안에 갈 수 있는 거리와 같은 가상적인 기차를 생각해보 세. 앞쪽의 기관사와 뒤쪽의 경비원 사이에 일종의 신비로운 전보 신호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세. 빛을 이용한 보통의 신호방법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 신호가 전달되려면 1초가 걸리지만, 이 신호장치를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 이제 철길 옆에 두 사람을 세워두네. 그리고 한 살마이 기관사와 나란히 있게 되면 두 번째 사 람은 경비원과 나란히 있게 된다고 하세. 물론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 일세.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도 똑같은 전보 신호장치가 설치되어 있네. 이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생각해보세. 앞쪽에 서 있던 사람이 지나가는 기관사에게 신호 를 보내면, 기관사는 그 신호를 뒤쪽에 있는 경비원에게 전달하는 거야. 이제부터 골치 아픈 부분이네. 지난번에 설명한 것처럼 만약 기관사와 경비원의 입장에서 볼 때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경비원에게 일어난 일이 기 관사에게 일어났던 일보다 먼저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되네. 똑같은 이유로 황태자비가 황태자보 다 먼저 사망했다는 결론을 얻지 않았나? 그러니까 철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경 비원은 신호가 보내지기 1초 전에 기관사에게서 신호를 받은 셈이 되지! 이제 경비원이 철길 옆에 서 있는 두 번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고, 뒤쪽의 사람이 그 신호를 앞쪽으로 다시 전달하네." 그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을 때 그런 게임을 한 적이 있지요. 앞사람에게서 전해들은 메시지를 다음 사람에게 계속 전해준 후에 그 내용이 얼마나 바뀌는가를 알아보는 중국식 신호 전달 게임 이었지요. '적군이 오고 있으니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에밀리 고모가 돌아가셨으니 3펜 스와 4펜스짜리 은화를 보내라'고 바뀌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고 하더군요." 홈스 박사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경우는 더 기막힌 일이 생기네. 아직도 모르겠나? 신호가 앞쪽의 사람에게 보내지기 1초 전 에 앞쪽의 사람에게 되돌아오게 되지 않나! 명백한 역설이지. 신호를 빛보다 조금만 더 빨리 보낼 수 있다면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와 두 사람의 신호수 를 이용해서 과거로 신호를 보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그러니까 그런 일은 영원히 불가능하 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라네." 홈스가 그의 형에게 감사의 말을 한 다음 우리는 곧 사보이 호텔로 갔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지금까지 홈스는 살인사건이 얼마나 흥미로운가에만 관심을 가졌고 수입에 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2만 파운드는 엄청난 수입임이 확실했다. 호텔 종업원이 우리를 롤먼 씨의 객실로 안내해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 답이 없었다.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히 안에 계실 텐데요. 조금 전에 그분과 마주쳤는데, 숨을 몹시 헐떡였던 것으로 보아서 몸 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 그러면서 방문을 열던 그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방 안에는 롤먼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 었다. 홈스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침입자의 흔적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동안에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홈스, 살인사건은 아닙니다. 아주 심한 뇌졸중이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도 그런 징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의사가 나뿐이 아니었을 텐데, 내 충고 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홈스는 호텔을 떠나면서 말했다. "'급할수록 천천히'라는 옛말이 옳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깨닫게 되는군. 자네도 나이가 들면 알 게 될 걸세. 어떻게 생각하면 롤먼 씨가 했던 말이 옳았던 것도 같네. 그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순진한 아마 추어였겠지. 내 재능을 다른 목적에 활용했던라면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단순히 내가 좋아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탐정 일만을 해왔거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네. 거기에다가 발에 아주 잘 맞는 구두처럼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정 도의 흥분과 모험을 양념삼아서 아주 편안하게 살아왔지. 우리도 결국 롤면 씨와 같은 운명을 맞 이하게 될 텐데 적당히 인생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 않나? 왓슨." 8. 정력적인 반체제주의자 오늘 배달된 [란세트]를 훑어보던 내가 놀라서 소리쳤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가요! 수학이 의학에도 쓸모가 있다고 하네요. 그것도 내가 이해할 수 있 을 정도로 쉬운 수학이 말예요! 홈스, 일년에 몇 사람 정도로 드물게 나타나던 질병이 하룻밤 사이에 전국적이로 번지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답니다. 마치 산불이 번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서 몇 달 사이에 전 국민이 죽어버린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군요. 용감한 의사들은 전염병이 번지고 있는 나라에 직접 들어가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 는가를 조사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은 의사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한 런던 사 람이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군요. 그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씩 다른 생물에 기생하는 병균에 감염 되기도 한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나라에서 그런 경로로 매년 열 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한다고 해봐요. 그런데 그 질병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확률을 인간 전염 인자로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합시다. 만약 인간 전염 인자가 0.5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환자가 완치되거나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이 그 병에 감염될 확률이 50퍼센트가 되는 셈이랍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감염된 사 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질병을 전염시킬 확률은 0.5가 되고, 두 번째로 전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 에게 감염시킬 확률은 0.25가 되는 식으로 그 확률이 계속 감소합니다. 그런 확률을 모두 고려하 면 질병의 확대 인자는 놀랍게도 2가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열 명에서 시작된 환자의 수가 모 두 합해서 스무 명이 되면 더 이상의 환자는 생기기 않게 된다는 거지요. 전염 인자가 0.99가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질병이 결국은 사라져버리게 되요. 처 음에 감염된 열 명의 환자로부터 전염되어 생기는 환자는 모두 합쳐서 100명이 될 뿐이지요. 그 러니까 웬만한 크기의 나라에서는 처음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1,000명이 되더라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의 독성이 조금 더 강해서 전염 인자가 1.01이 되었다고 해봐요. 이 제는 전염되는 사람의 수가 한정되지 않고 사정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의 환자가 두 명에게 전염을 시키고, 이들이 다시 네 명에게 전염시키고, 이렇게 되는 거죠. 흑사병 은 바로 그런 종류의 전염 인자를 가진 질병이기 때문에 한 번 발생하게 되면 곧 온 나라에 번지 게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 나는 홈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홈스, 이런 이야기를 정말 중요한 과학 문제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례가 될지는 모르 겠지만 취미삼아 물리 문제에 흥미를 가진 홈스 박사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겁니다. 100만 분 의 1초 정도의 오차! 인간이 도저히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나타난다는 길이의 수축 현상! 홈스, 새로운 물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우스운 게임에 지나지 않아요. 상대성 이론의 발명이 획기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현상에 적용하면 한 푼어치의 차이도 없잖습니까?" 홈스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주말에 배달된 잡지를 뒤적이면서 지난주의 피로를 풀고 있었 다. 나는 의학 잡지를 읽고 있었지만 홈스는 돈을 주고 사기도 아까울 정도로 저질인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왓슨, 그것 참 좋은 지적이네. 사람들 사이의 소문도 그와 비슷하게 퍼져나가지?" 홈스는 테이블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는 '반체제주의자들, 파업 기도'라는 큰 제목 밑에 '당신의 친구도 비밀조직원일 수 있다!'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 기사 밑에는 뾰족 모자를 쓴 험악한 표정의 남자가 둥근 폭탄 위에서 성냥불을 켜고 있는 만 화가 실려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반체제주의라는 흑사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물론 사실은 아니겠지만 반체제주의자와 모략에 대한 소문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네. 그런 소문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조 금씩 과정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그런 소문에 깜빡 속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야. 어 제는 경찰청에서 이런 난국을 해결하도록 도와달라는 간굑한 편지를 받았다네. 도대체 누가 그런 반체제주의자일까? 과연 그런 사람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걸까? 어쩌면 소수의 학생들이 익명으로 신문에 편지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 왓슨,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 바로 그 순간에 전보 배달 소년이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아주 중요 한 전보를 가지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경찰청에서 홈스 씨에게 보내는 전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일요일에 무슨 전보람!" 그는 전보를 펼치면서 중얼거렸다. "왓슨, 정말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모양이네." 전보를 읽고 난 그는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하고, 배달 소년에게 6펜스짜리 은화를 주었다. "고맙네, 젊은이. 아, 됐네, 인사는 그만두게." 소년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는 전보를 내게 보여주었다. "[타임스]에 새로운 협박 편지. 화요일에 런던 중심에 솜화약 10만 파운드의 파괴력을 가진 폭탄 이 터질 것이라고 함. 도움을 바람. 안데일로부터." 내가 큰 소리로 전보를 읽었다. "안데일은 경찰청에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라면 그런 정도 의 협박에 속지는 않을 거야. 협박 편지를 쓴 사람도 어지간히 순진한 모양이군. 자신의 편지가 월요일에 공개되면 화요일에는 놀란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렇지 만 [타임스]는 그 편지를 월요일에 공개하지 않을 걸세."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해보게, 왓슨. 만약 자네가 엄청난 양의 폭약을 런더능로 가지고 오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 나?"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홈스,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우선 기차를 탈취해서 폭약을 싣고 난 다음에 아 침 일찍 도착하는 우유 배달 기차처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기차로 가장해서 런던 역에 들어 오면 되겠지요. 우유통 속에 정말 우유가 들어 있는지 아니면 폭약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할 사람 은 없을 테니까요." 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왓슨, 기막힌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을 것 같군. 신호수의 도움을 받아서 선로를 봉쇄해버리면 그 기차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겠지! 더욱이 성공을 하더라 도 그런 식으로는 기껏해야 수백 톤의 폭약을 옮길 수 있을 뿐이지. 나 같으면 바지선을 이용하겠네. 사람들은 템스 강을 오르내리는 많은 수의 바지선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도 바지선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바지선에는 1,000톤 정도의 화 약을 쉽게 실을 수가 있지. 더욱이 바지선을 이용하면 런던의 중심가에 훨씬 더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을 걸세. 원한다면 의사당 바로 옆까지 갈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런 계획을 심각하게 검토 할 것 같네. 그렇지만 10만 톤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야. 그런 엉터리 협박범을 즐겁게 해주려고 내 일요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군." 나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렇지만 솜화약보다 훨씬 더 강력한 폭약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왓슨, 지금까지 알려지니 폭약 중에서는 솜화약이 가장 강력하다고 알고 있네. 그렇지만 만약을 위해서 화학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래야 자네는 물론이고 내게 탐정 면허를 준 경찰청을 안심시킬 수 있을 테니까. 대영박물관에 있는 애덤스 박사가 좋을 것 같군."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박물관 지하에 있는 애덤스 박사의 서재로 찾아갔다. 그러나 혼자서 방을 지키고 있던 젊은 조수는 우리를 보자 흥분해서 물었다. "캔비 아일랜드 오신 분들입니까?" 그러더니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자 그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 다. "방금 아주 훌륭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우라늄 조각품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그가 말한 조각품은 바로 옆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젊은이는 바로 우리가 그 조각품의 신비로운 특성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나무 상자가 조류를 따라서 캔비 아일랜드의 데블스 포인트라는 곳으로 흘 러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상자에 생겨진 기호를 분석해보았더니 브라질에서 흘러온 것 같 은데 그 상자 속에 이 조각과 똑같은 것이 들어 있답니다. 이 조각품처럼 오목하지 않고 볼록하 게 튀어나온 점이 다를 뿐이라는군요. 만약 두 조각품을 함께 붙이면 완벽한 공 모양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두 조각품이 함께 제작되 었거나, 아니면 둘 중의 하나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다른 것을 만들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첫 조각 품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이 정말 브라질에서 흘러온 것이라면 고고학 적으로도 중요한 의마가 있을 겁니다." 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이는 설명을 계속했다. "애덤스 박사님은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발견된 조각품을 이리로 옮겨오도 록 조처를 했답니다." "애덤스 박사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그럿이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이 조각품이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에 너지를 방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이 박물관에 근무하는 화학자들은 모두 이 조 각품에서 방출되는 무한한 에너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임피리얼 대학의 챌린저 교수께서 우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자신이 그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애덤스 박사님이 그곳으로 갔습니다. 박사님이 돌아오시면 어떻게 전 해드릴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우리도 챌린저 교수를 잘 알고 있답니다. 우 리가 임피리얼 대학교로 가서 두 사람을 모두 만나겠습니다." 홈스와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챌린저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는 날카로운 목소리의 서멀리 교수가 터져버릴 것 같은 바리톤의 챌린저 교수와 격렬한 노쟁을 벌이고 있었다. 문으로 다가가자 서멀리 교수의 목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챌린저 교수, 단순히 식을 맞추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적인 것과 물리적인 실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신이 그런 가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야기는 독일의 유명한 수렵가 바론 문히하우젠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챌린저 교수의 분노한 고함이 터져나오자 홈스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방에는 챌린저 교수와 서 멀리 교수 그리고 애덤스 박사가 함께 앉아 있었다. 챌린저 교수가 우리에게 말했다. "잘 와주었습니다, 홈스, 왓슨 박사. 내가 기다리던 학생들은 아니지만 공짜로 배우기에 아주 좋 은 시각에 도착했군요. 지난번에 내가 설명해준 것을 기억하겠지요.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가 빛 의 속도에 접근하면 에너지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 면 속도가 느린 경우에도 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단순한 뉴턴 이론은 오차가 아주 작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옳은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속도가 대단히 큰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에 접근하게 되면 운동량도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서멀리 교 수와 나는 이런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쓸데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논쟁이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챌린저 교수가 머리를 흔들었다. "정확한 계산 결과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답니다.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 주 미묘한 의견 대립이 있을 뿐이지요."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끔찍하게 느껴졌던 복잡한 계산과 대수학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과학을 적당히 이해하기는 아주 쉽다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어려운 계 산 때문이 아닙니까?" 챌린저 교수는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성적인 해석이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해석이 과 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수학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지만 아주 골치 아픈 고생을 하지 않더라도 과학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설명하려고 하는 문제는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서멀리 교수를 잠시 쳐다보더니 곧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어떤 물체의 속도가 비츠이 속도에 근접하게 되면 더 이상 가속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서멀리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이유에선가 물체의 질량 자체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물체의 겉보기 질량, 즉 관찰자가 보는 속도의 함수로 표현되는 '가상 질량'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거지요." 그는 우리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인지 책상을 쾅 두드리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설명하겠습니다. 질량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수학적인 식으로만 나타 나는 공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질량과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같은 양이어서 움직임 때문에 나타나는 운동 에너지 자체가 질량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엉터리군요!" 서멀리 교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집어들었다. 그때까지는 평범하게 생긴 그 상 자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었다. "내 주장을 증명할 아주 묘한 장치입니다. 교수님께서 적접 시헙해보시겠습니까?"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 상자를 서멀리 교수에게 주었다. 서멀리 교수는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에 버튼을 눌러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뚜껑이 벌 컥 열리더니 갑자기 스프링 끝에 매달린 광대 모양의 인형이 튀어나와서 정확하게 서멀리 교수의 코를 쳤다.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으로 서멀리 교수는 깜짝 놀랐고, 챌린저 교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린 학생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서멀리 교수가 외쳤다. "챌린저 교수! 이제 무슨 장난입니까?" "예,예,설명해드리지요. 교수님께서는 그 상자가 스프링에 달린 인형이 들어 있는 평범한 것이라 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이 장치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상자를 집어들고 말을 계속했다. "보다시피 내가 인형을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넣은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프링이 늘어 난 상태 그대로 넣을 수도 있고, 인형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스프링을 눌러서 넣을 수도 있 지요. 물론 스프링을 눌러서 넣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서멀리 교수님, 이제 상자가 닫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로 ㄴ이 상자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이 상자를 일정한 속도로 가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정확하게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상자 속의 스프링이 눌령 있거나 풀려 있거나에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상자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가 일정할 테니까 상자 전체의 질량도 변화가 없을 겁니다." "존경하는 서멀리 교수님, 그렇다면 이 상자가 바로 영구기관이라는 훌륭한 장치가 되는 셈입니 다! 인형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도록 방향을 잡은 다음에 스프링이 눌려진 상태로 뚜껑을 닫은 상 자를 빛의 속도에 아주 가깝도록 가속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상자 전체의 움직임에 대한 기준틀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이 장치의 뚜껑을 열더 라도 상자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야만 하겠지요. 그렇지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상자에 붙어 있는 스프링은 인형을 가속시키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 문에 스프링에 저장해두었던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게 되겠지요. 모멘텀을 생각해도 마찬가지 결론을 얻게 됩니다!" 서멀리 교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입 속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모양이었지만 무슨 말인 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서멀리 교수님, 그런 영구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챌린저 교수는 연구실 한쪽의 책꽂이에 있는, 다음 그림과 같은 장치를 가리키면서 계속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보내준 발명품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평가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씩 신기한 장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엉터리지요. 이 장치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오른쪽의 공은 왼쪽의 공보다 회전축으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게 됩니다. 물론 이 장치는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 리 모든 힘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장치에서는 회전축의 양편에 작용하는 반작용이 존재하지 않아서 모멘텀 보존의 법칙 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몇 개의 날개가 달려 있는 복잡한 회전장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장치가 작동되면 위쪽으로 양력이 생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장치를 접시 저울 위에 놓아두면 접시가 오르내리기는 하겠지만 평균 무게가 조금 작아질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연구실 가까이에 있는 하이드 공원에 가보면 이런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사 람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답니다. 서멀리 교수님, 그런 사람들의 가두 연설을 듣고 설명해주실 용의 가 있으십니까?" 그는 말을 멈추었고, 서멀리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만약 스프링이 눌려진 상태의 상자를 가속하는 것이 더 어렵다면, 그것은 바로 상자 속의 스프 링을 누르면 상자 전체의 질량이 증가한다는 뜻이 됩니다. 원자의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자만 스 프링에 저장된 에너지가 여분의 잘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스프링이 눌린 상태로 들어 있는 상자 는 그렇지 않은 상자보다 가속하기가 조금 더 어렵게 되지요. 그래서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더 큰 모멘텀이 더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넣어준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영구기관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 서 나는 오컴의 면도날의 원리에 따라서 에너지와 질량은 실제로 같은 것이지만 서로 다른 모양 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답니다." 서멀리 교수는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참 후에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챌린저 교수,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가 옪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그렇게 기막힌 주장을 하 려면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햐만 할 겁니다." 챌린저 교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존경하는 서멀리 교수,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창틀 위에 놓여 있던 엉터리같이 생긴 또다른 장치를 가리켰다. 작은 바람개비를 전구처럼 생긴 유리속에 넣어든 장치였다. "전자기파가 힘이나 압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맥스웰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물론 그런 사실은 실험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장치의 경우에는 회전축의 양쪽에 같은 정도 의 햇빛이 닿기 때문에 바람개비가 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볼록 렌즈로 만든 돋보기를 사용하 면..." 그는 커다란 돋보기를 창문 옆으로 가지고 가서 햇빛이 바람개비의 한쪽에 모여지도록 했다. 놀 랍게도 바람개비가 서서히 돌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 모습을 본 내가 감탄하면서 소리쳤다. "맙소사, 정말 신기하군요. 적도 부근의 돌드럼 해역에서 좌초한 배도 햇빛을 반사하는 재질로 직각이 되도록 하기만 하면 심술궂은 바람을 이기고 배가 움직일 수 있게 되겠는데요!" 챌린저 교수는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방법으로 생기는 힘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작습니다. 이 장치가 작동하는 이유는 유리통의 내무가 진공이기 때문이지요. 병 속에 공기가 들어 있으면 공 기 저항 때문에 회전 운동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창문 반대쪽에 있는 칠판으로 다가가서 도형과 식을 썼다. "이것은 밀봉된 금속 튜브인데 지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 있다고 합 시다. 바람도 없고 중력도 없기 때문에 어떤 힘도 미치지 않는 곳에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움 직이지 않는 상태로 있게 되겠지요. 그렇기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것을 움직이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 튜브 속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무거 운 물체가 들어 있다고 합시다. 만약 그 물체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튜브는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 여야겠지요. 그래야만 물체와 튜브의 무게 중심이 일정한 위치에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이제 튜브의 한쪽 끝에 자전거 전조등과 같은 장치가 붙어 있다고 합시다. 전지와 전구 그리고 반사경으로 만든 전조등 말입니다." 그는 칠판에 그 모양을 그렸다. "전조 등의 불을 잠깐 동안 켜면 그 빛이 튜브의 반대쪽에 있는 검은 천에 흡수됩니다. 그런데 빛이 비치게 되면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불이 켜지는 순간에 반사경은 왼쪽으로 조금 밀려나게 되겠지요." 서멀리 교수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그렇지만 그 빛이 다시 반대쪽에서 흡스되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힘이 오른쪽을 향해서 생기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 때문에 왼쪽을 향한 힘이 발생한 후에 어느 정도 의 시간이 지나야만 오른쪽으로 향한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 동안에는 튜브가 약간 왼쪽으로 움 직입니다. 튜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가 옮겨가는 현상은 정확하게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이는 것과 같지요. 순수한 에너지가 질량과 같은 효과를 타나내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빛의 형태로 나타나는 에너지만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지 않지요. 어떤 형태의 에너지로도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화학 반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회전하는 바퀴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스프링에 저장되어 있는 에너 지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튜브의 오른쪽에서는 빛을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너지는 어떤 형태이거나에 상관없이 그것에 대응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사고실험을 이용하면 질량과 에너지의 비, 즉 1킬로그램의 질량에 대응하는 에너지가 몇 줄이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빛의 에너지와 모멘텀의 비는 맥스웰의 법칙과 실제 실험으로부터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요. 모멘텀은 에너지를 빛의 속도로 나눈 겁니다." 그는 설명을 하면서 칠판 위에 그 내용을 휘갈겨 썼다. "빛의 속도를 c라고 하지요. 튜브의 길이가 L이라면 빛이 튜브를 가로질로가는 데 걸리는 시간 은 L을 c로 나눈 값이 됩니다. 그리고 튜브의 질량이 M이라면 튜브가 움직이는 속도는 빛의 모 멘텀을 M으로 나누어서 얻어집니다. 그래서 빛의 에너지가 E라면 튜브가 움직이는 속도는 E를 c 로 나누고 다시 M으로 나눈 값이 되지요. 그래서 튜브는 d만큼의 거리를 움직이게 되는데..." 그는 칠판에 식을 썼다. 나는 머리가 어지럽게 느껴져서 말했다. "대수학입니까?" "잠까만, 우리는 물리에서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식을 유도하고 있는 중이라오. 곧 밝혀지겠지만 현대 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지요. 박사, 이번 한 번만 참아봐요. 이제 실제 질 량이 m인 물체를 튜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면 튜브가 같은 거리 d를 움직인다고 합시 다. 그 질량 m은 M 곱하기 d 나누기 L로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질량이 에너지를 빛의 속 도의 제곱으로 나눈 것과 같다, 즉 m=E/c^2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설명을 들은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어진 에너지와 대등한 질량은 엄청나게 작겠군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도 결국은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 는 이론적인 결과에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론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로군 요!" "무슨 말이오? 박사. 이 식에서 c의 제곱을 다른 쪽으로 옮겨서 다시 써보지요." 그는 칠판에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더 썼다. "주어진 질량에 대응하는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이 되죠. 즉 E=mc^2이 되지요. 이 식에 의하면 물 1킬로그램은 10의17승 줄의 에너지에 해당합니다. 그양은 웨일스 지방 에 있는 탄광에 매장된 석탄에서 얻을 수 있는 전체 에너지보다도 더 많은 것입니다." 서멀리 교수는 코방귀를 뀌었다. "조금 전에 당신은 내가 영구기관을 믿는다고 모함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물에서 에너지라니 요! 챌린저 교수, 만에 하나라도 당신 이야기가 옳다고 합시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 겠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물질로부터 꺼낼 수 있는 가를 아 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서멀리 교수. 내가 알기로는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 바 로 그런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말을 마친 챌린저 교수는 애덤스 박사를 쳐다보았다. 애덤스 박사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 간 신히 말을 했다. "맞습니다, 챌린저 교수. 나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겪었던 사소한 일이 그 렇게 중요한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향해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신비로운 조각상의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지요. 첫째 문제는 그 조각상이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거의 무한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것 같 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조각상 속의 우라늄 원자가 스스로 원자량이 적은 다른 원소로 변해버린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 원자보다 더 작은 이상한 입자들의 질량을 고려하더라도 질량이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조슴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제 그 두 가지 문제가 모두 설명이 됩니다. 우리가 원자핵의 질량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사실 은 결합 에너지에 해당합니다. 결합 에너지는 장난감 상자 속의 눌린 스프링처럼 전하를 가진 입 자들을 서로 붙잡아매는 결합에 저장된 에너지입니다. 원자핵이 파괴되면 양전하를 가진 알파 입자들이 마찬가지로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으로부터 퉁 겨나가버리기 때문에 가벼운 원자핵만 남게 되지요. 결합 에너지가 알파 입자의 운동 에너지로 바뀐 셈입니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었다는 표현이 더 쉬운 표현일 수도 있겠지요. 교수님, 교수 님이야말로 정말 천재입니다." 챌린저 교수는 당연한 말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게서 겸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 다. "나는 단순히 천재가 아니지요. 나는 우리의 생활을 상상도 하루 수 없을 정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바로 무한한 에너지원을 발견환 겁니다." 애덤스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 습니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조각상의 우라늄이 붕괴하는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수천년이 걸릴 정도지요. 그 조각상은 광산에서 얻을 수 있는 우라눔보다 더 빨리 붕괴하는 특별한 종류의 우라늄으로 만든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각상에서 시료를 조금 채취해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떼어낸 시료를 강한 열이나 강 한 산으로 처리해도 붕괴 속도가 바뀌지 않았고, 전기를 이용해도 붕괴 속도를 변화시킬 수 없었 습니다. 그리니까 쓸모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얻을 정도로 붕괴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멀리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자핵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을 붙잡고 있는 힘은 보통의 화학 결합돠 엄청나게 강하겠지요. 열을 가해서 그런 결합을 끊으려고 하는 것은 오줌 줄 기로 거대한 전투함을 침몰시키려는 것과 같을 겁니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인지 자신있게 말했다.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총이 있지요." 서멀리 교수가 즉시 반박했다. "말도 안 됩니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가를 계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만..." "그런 에너지는 엄청나답니다. 사실 그런 정도의 에너지는 엄청난 위력으로 폭발하는 원자핵에 서 얻을 수밖에 없지요." 챌리저 교수는 간단하게 대응했다. "자전거 선수가 언덕에서 굴러내려오면서 얻은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더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높이의 언덕을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마찰이나 공기 저항을 무시하 고 말입니다. 마찬가리로 원자핵에서 퉁겨나온 알파 입자의 에너지는 알파 입자가 다른 원자핵으 로 충분히 접근해가는 게 필요한 정도의 에너지가 됩니다. 서멀리 교수, 달리 말하면 일종의 전염 효과와 같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라늄 덩어리가 충분 히 커서 방출된 알파 입자의 대부분이 우라늄 덩어리를 벗어나기 전에 다른 우라늄 원자핵과 충 돌하게 되면 열이 방출되는 속도도 증가할 겁니다. 그 열을 이용해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릴 수 있겠지요. 온 인류가 영원히 저에게 감사할 겁니다..." 그는 아주 오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홈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음산하게 들리는 외마다 소리를 지르고는 미친 사람처럼 방에서 뛰어나갔다. 그 는 엑스비션가로 뛰어가더니 지나가는 마차를 급하게 세웠다. 나도 헐레벌떡 따라가서 겨우 마차 에 함께 뛰어오를 수가 있었다. "10분 내에 과학관까지 우리를 데려다주면 금화 하나, 아니 다섯 잎을 주겠소. 사람의 생명이 달 린 일이오!" 그는 놀란 마부에게 소리쳤다. 다행히 그 마부는 눈치가 빨랐다. 그는 말에게 채찍질을 해서 전 속력으로 서펜타인 연못을 건너갔다. 주변에서 산보를 하던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홈스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정신적인 발작에 대한 대처 방 법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점이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홈스, 무슨 일인가 말해보세요."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홈스는 그런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나? 왓슨. 전염 인자! 조각상의 반쪽은 상당한 상호 전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크기 야. 붕괴하는 원자들이 방출하는 알파 입자들은 다른 원자들의 붕괴를 일이킬 수 있다고 하지 않 았는가! 만약 두 개의 조각상을 붙여서 하나로 만들면 전염 인자가 1보다 커질 수도 있겠지. 그러면..." "전국적인 유행병이 되어버리겠군요!" 내가 감탄하여 소리쳤다. "그렇지, 왓슨. 전염병이 번지들이 점점 더 많은 원자들이 분열되겠지. 그런데 이 전염병은 잠복 기가 없어서 측정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엄청나게 번져버리네. 1초도 안 되는 시 간에 모든 원자들이 붕괴되어버리겠지. 조각의 질량 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에너지의 형태로 바뀌 게 될 것이고, 그 위력은..." "수십만 파운드의 솜화약의 위력에 해당하겠군요." 내가 놀라서 말했다. 엄청난 공포가 엄습해오는 동안에도 홈스는 마부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홀본 박물관 자라에서 번지기 시작한 엄청난 폭발과 화염 때문에 하이드 공원 건너편의 훌륭한 호텔이 산산이 부서지고 벽돌 조각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 는 것 같았다.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심한 사람들도 죽거나 다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엄 청난 재난을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런 대학살이 시작되면 인류 역사의 어떤 전쟁 에서 희생된 규모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가 특별히 상상력이 풍부하거나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 로 떨고 있었다. 홈스는 마차 삯을 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박물관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도 마부의 욕설에 상관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는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갔지만, 방에는 조각상도 없었고 조수도 없었다. 흰 가운을 입고 있 는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조각상과 우리가 아침에 만났던 젊은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주 중요한 용건이 있습니다." 홈스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캔비 아일랜드의 데블스 포인트에 갔습니다. 그 친구는 두 개의 조각상이 정확하게 서로 맞는 가를 알아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런데 데블스포인트에서 조각상을 이곳으로 옮겨오 는 일이 지연되었습니다. 초조해진 그 친구가 관장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조각상을 가지고 펜 처치가의 역으로 갔습니다." 홈스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리를 태우고 왔던 마부는 박물관의 수 위와 언쟁을 하고 있었다. 홈스는 한 움큼의 금화를 꺼내서 그에서 보여주었다. "12시 10분발 기차를 탈 수 있도록 펜처치가의 역까지 데려다주면 원하는 만큼 드리겠소!" 마부는 돈을 쳐다보더니 마차에 뛰어올랐다. 우리는 유스턴가를 달려서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 리가 울리는 순간에 펜처치가에 도착했다. 역무원이 소리치는 것도 무시하고 서둘러서 간신히 출 발하고 있는 기차에 뛰어오를 수 있어싿. 그 기차는 객차들 사이에 연결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객차를 살펴볼 수는 없어싿. 홈스는 시계를 보더니 입슬을 깨물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젊은이가 이 기차의 어디엔가 타고 있다면 쉽게 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먼 저 출발한 기차를 탔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야기의 증거는 모두 간접적인 것뿐이었다. 그런 주장을 하던 두 사람 이 모두 극심한 과대 망상증에 함께 감염되어서 똑같은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챌린저 교수가 우리를 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자 다금 한 느낌이 조금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캔비 아일랜드의 작은 역에서 내린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고, 아침에 만났던 젊은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홈스는 역장에게로 달려갔다. "데블스 포인트가 어느 쪽입니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팔을 들어 보였다. 기차역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바닷가에 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 긴 모래톰이 있었고, 그 끝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먼 곳으로 직접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서두르게, 왓슨. 아직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 바로 그 순간에 태양보다도 더 밝은 무시무시한 섬광이 번쩍하면서 순간적으로 내 눈이 멀어버 렸다. 우리가 손을 더듬어서 서로의 팔을 잡고 몸을 지탱하지 않았다면, 수초 후에 몰아닥친 엄청 난 진동에 휩쓸려 넘어져버렸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서서히 시력이 회복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불그스름하게 보였고, 바 닷가에서는 끓어오르는 구름이 보였다. 그 구름은 서서히 저녁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고, 밑 에서는 길쭉한 뭉게 구름이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구름의 전체 모습은 독성이 아주 강한 독버섯처럼 기괴했다. 조금 전가지 데블스 포인트였던 곳의 바닷물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여싿. 바로 옆의 해변에는 거대하게 부서지는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파도라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파도가 갑자기 흠터져버렸다. "마침내 우리가 자네의 코끼리 발을 찾은 셈이군. 왓슨." 나는 어리둥절해서 홈스를 바라보았다. 사고가 난 다음날 우리는 베이커가의 사무실에서 사고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다.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신속한 조처를 취한 모양이 었다. 플리트가의 모든 신문이 탄약을 적재한 배가 데블스 포인트에서 좌초하여 폭발했다는 꾸며 진 이야기를 믿는 모양이었다. 그런 소문을 믿지 않은 편집인들은 아예 아무런 기사도 싣지 않았 다. 그렇지만 아무도 범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왓슨, 자네는 소설이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으라고 했지? 그리고 코끼 리가 자네 발을 밟지 않는다면 집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절대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 지. 결국 자네는 새로운 물리 전부에 대해서 상당한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렇 지만 이제는 새로운 이론을 직접 눈으로 확인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발명이 아주 중요한 결과 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확실한 경험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홈스, 그렇지만 아직도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빛의 속도는 어떤 기준틀에서나 일정하다 는 고전 물리의 작은 문제에서 파생된 결과 치고는 너무나도 엄청나군요." 홈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왓슨, 내가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 레스트레이드 형사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겨버렸을 사소 한 실마리가 단순하게 보이는 사진 전체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중요한 경우도 많다네. 이제 아 주 단순하게 보이던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되었다.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문제 하나가 해결 되면서 우리의 생각 전부가 바뀌게 되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힙니다. 그런데 무한한 에너지원을 찾으려는 챌린 저 교수의 꿈이 정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시간이 걸리겠지, 왓슨. 우선은 조각상이 파괴되어버렸으니 그런 독특한 우라늄을 다시 찾아내 거나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야.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전염 인자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번질 수 있는 것 같네. 전염 인자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번질 수 있다고 그랬 지? 마찬가지로 우리늄에 서 유용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려면 우선 전염도를 1에 아주 가깝도 록 만들어야만 하네. 0.99 정도로 말이지.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어제 보았던 것과 같은 폭발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나라도 그런 시설 근처에 살고 싶지는 않을 걸세. 그래서 그런 시설을 설 계하려면 현재보다는 훨씬 신뢰도가 높은 기술이 필요할 거야." 우리는 편안한 기술이 필요할 거야." "홈스, 지금까지의 사건을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니 정말 내 정신이 온전한지 모를 지경이에요. 앞 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새 물리 때문에 더 이상 놀라는 일이 없었으면 합시다.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려고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으니까요." 9. 불충스러운 하인 "바다에서 발생한 불가사의한 실종사건!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보다도 더 이상한 사건입니다. 이 기사를 읽어보세요!" 베이커가의 모퉁이에서 신문 판매원이 신물을 파고 있는 모습은 정말 모범적이다. 그 사람은 그 날 신문의 톱 뉴스가 재미없으면 신문 어느 구석에서라도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내어 큰 소리로 알리기 때문에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사람의 유혹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의 기억 때문에 해상에서 일어 난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 한 나는 동전을 주고 신물을 사서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열심히 살펴보았다. 소형 범선인 알리시아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사는 황당할 정도로 간단했다. 일주일쯤 전 의 어느 맑은 날 아침에 시 이글호는 10여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알리시아호가 안개 속을 항해하고 있는 모습을 목겨했다. 안개는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 퍼져 있었는데 알리시아호가 영원히 사라 져버렸다는 것이다. 시 이글호는 아침 해가 떠올라가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부근 해역을 훑어보 았지만 어디에서도 알리시아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알리시아호의 갑판에서 떨어진 것으 로 보이는 잡동사니와 알리시아호의 마크가 새겨진 구명대를 찾았을 뿐이었다. 시 이글호는 항구 로 되돌아와서 이상한 사건을 당국에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전부었다. "홈스, 아주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말했지만 홈스는 나를 쳐다보기만 하고 내가 내미는 신문은 받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 이글호의 이상한 사건 말이군. 벌써 오늘 아침 [타임스]에서 읽었네." "[타임스]의 기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감 시간에 쫓겨서 속보를 실으려고 너무 서둘렀던 모 양이군요. 여기 석간에는 더 정확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사라진 배를 알리시아호이고, 시 이글 호는 그 사고를 목격했을 뿐이랍니다." 홈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타임스]에도 그렇게 보도되었지. 그런데 둘 중의 어느 것이 사라졌다고 했지요. 사고를 목격 한 배였나? 아니면 다른 배였나? 배가 실종된 것은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 잖나? 이상하게도 보이는 것은 시 이글호가 겪었던 일이겠지." "그런데 맑은 날씨에 잔잔하고 깊은 바다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에야 그의 말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홈스, 만에 하나라도 시 이글호의 선장과 선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홈스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게, 왓슨. 존경하는 영국의 해운가를 해적으로 몰거나, 시 이글호의 선원들이 함께 항해 하던 배를 침몰시켰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다만 두 배의 운명이 서로 상관이 없다고 생 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사건도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라네. 사실은 오늘 아침 자네가 나간 후에 챌 린저 교수가 들러서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네. 챌린저 교수 말에 의하면 알리시아호 정도의 배를 한 번에 삼켜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 있다고 하더군. 해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해일은 주로 바다 밑에서 일어나는 지진에 의해서 생기기도 하고, 조류가 해저의 계곡이나 산맥 과 부딪쳐서 생기기도 하지만, 단순히 통계적인 우연에 의해서 생기기도 한다는군." "그렇지만 근처에 있던 시 이글호는 그런 거대한 파도를 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챌린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두 파동이 서로 합쳐지는 방법은 보통의 물체가 합쳐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네. 하나의 사과와 또 하나의 사과를 합하면 두 개의 사과가 되지. 그렇지만 바 다에서 생기는 두 파도를 생각해보게. 두 파도는 두 개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서로 겹쳐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파도로 보이기도 하잖나. 더 이상한 경우도 생길 수가 있지. 한 파동의 골이 비슷하게 생간 다른 파동의 마루와 겹쳐지면 수면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 이지 않게 된다네. 두 파동이 서로 상쇄되어버린 셈이지. 챌린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파도가 서로 스쳐지나가거나 갈로질러가면, 어느 곳 에서는 파도가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곳에서는 골이나 마루가 서로 겹쳐져서 큰 배를 삼켜 버릴 정도로 큰 파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군." 나는 그의 설명에 코웃음을 쳤다. "아주 훌륭하게 꾸민 이야기 같군요, 홈스. 언제나 그렇지만 신문 판매원이 나보다 뛰어난 이유 를 알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사건이 메리 셀레스티호 사건만큼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정말 불가사의한 사건이라는 말이지요. 당신도 셀레스티호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 지요?" "그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불가사의하다고 하는 점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 선장과 그 가족을 포함해서 몇 명이 타고 있던 배가 표류하고 있었는데, 화물은 모두 그대로 있고 구멍 보 트와 항해 장비만이 없어졌어. 이런 사건에 대해서 가능한 설명은 모두 일곱 가지가 넘네. 나는 어렸을 때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탐정 일에 흥미를 느꼇다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아주 어려운 사건이지만 그 배를 직접 볼 수 있었더라면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을 거야. 요즘에는 사건과 관련된 한 점의 옷이나 휴대품에서도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많 아졌지. 하물며 항해하는 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많겠나? 로프와 그릇과 항해 장비 의 위치까지도 모두 중요한 단서가 되었겠지. 그 배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만 있었다면 그 배의 역사를 책을 읽는 것처럼 볅혀낼 수 있었을 걸세." "그 사건에 대한 책을 쓸 걸 그랬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읽은 적 이 없는데 말입니다." 홈스는 파이프에 담배를 담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 배가 공업용 알코올을 운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실마리 가 되겠지.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에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홈스는 벌떡 일어나서 재빠른 동작으로 창 쪽으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타고 온 마차를 보면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왕실 문 장을 가린 사륜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일반 승객용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보다 지위도 높고 용무가 급한 경우도 많다네." 내가 문을 열자 문 앞에는 수수한 민간인 복장이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군인 냄새가 물씬 풍기 는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절도 있게 인사를 했다. "제임스 팔커크 근위대장입니다." "왕실의 소환장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제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 죄송스럽지만 두 분께서는 이 나라의 충성스러운 시민으로 서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사실에 대하여 신중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서약해주시기 바랍니 다." 나는 그의 무례한 요구에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러나 홈스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왕궁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이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숨이 막혀버렸다. "혹시..." 그는 내 엉뚱한 짐작을 알아챘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왕실 가족이나 손님은 아닙니다. 마부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에 몹시 불명예스러운 처벌을 받게 되었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젠킨스가 왕궁에서 일한 지는 10여 년 정도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고약한 문제 때문에 주방에서 일하던 하녀가 해고되었습니다. 그 하녀는 상대 남자가 누군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젠킴스가 아이의 아버지임이 밝혀지게 되 었습니다. 젠킨스는 때늦게 그녀에 대해서 얄팍한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생활비를 대주려고 했지요. 그렇지만 그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예날에 경마장을 드나든 경험이 있었던 그는 노름으로 그 돈을 벌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흔히 그런 것처럼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마저 노름판에서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그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플리트가의 형편없는 기자 세 사 람에게 접근해서 왕실의 생활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왕실에 흥미로운 소문이 있 는 것 같은 암시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다음날 아침에 그런 음모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내게 그런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를 용서해줄 수가 없었지만 그의 반성하는 모 습을 보고 그 여자와 아이를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홈스가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좋은 해결책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군요. 마음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아주 다른 문제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요구가 협박처럼 들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사람을 파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다른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추 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사람은 마구간 옆방에서 스스로 머리를 쏘아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홈스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안전하게 모든 일이 끝나버린 셈이겠군요. 그런데 아직도 그 여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까?" "탐정님, 저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그 여자에게 사실을 알려주고, 지 방으로 보내주려고 합니다. 발모럴이 어떨까하고 생각 중입니다. 실제로 그 여자는 미망인이 되고 말았지만, 모든 일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부의 자살에 대한 진실이 전부 밝혀지지 않 고 의문이 남게 되면 전례 없이 고약한 스캔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홈스가 이제야 흥미를 느낀 모양인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물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사람은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커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우선 그는 아주 희귀한 특제 총을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제작된 그 총은 왕자님이 프로이센 의 사촌에게서 선물받은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그 사람이 자살한 곳은 베란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마침 그가 자살을 했을 때는 여왕 페하께서 정원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왕실 가족들과 함께 베란다에 모여 계셨을 때였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자살을 비밀로 감추어두기는 어려웠겠군요." "원했다면 비밀로 감추어둘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 총은 무성 공기총에 가까운 것이었거든요. 손님들 중에서 총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베란다에 계셨던 여왕 폐하와 여왕 폐하의 사촌 인 몰스테인 왕 폐하뿐이었습니다." 홈스가 예리하게 물었다. "들었다고 주장했다니요?"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베란다에는 두 분의 손님이 더 계셨는데, 그 분들은 아무 소 리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만약 그 마부가 돈을 받고 왕실의 이야기를 팔아넘겼더면 정말 창피한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마부가 자살한 것이 아니 라 누구에게 살해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왕 폐하와 폐하의 사촌께서 마부의 사 망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에 총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진짜 살인범의 알리바이는 쉽게 증명이 될 테니까 밀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왕실 가족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물론이고 폐하께서 범 인을 은폐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장고하려는 듯이 목청을 높였다. 나는 토마스 아 베케트 대주교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런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수백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팔커크 대장이 말을 계속했다. "단순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왕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공식적 인 해명서를 발표하기 전에 모든 일을 한 점 의혹도 없이 완벽하게 밝혀내야만 하게 되었습니 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군요. 함께 현장에 가보도록 합시다." 홈스는 말도 안 된다고 머리를 저었다. "내가 저렇게 엉터리로 위장한 마차로 왕궁에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 마차를 타고 돌아가고, 우리는 허름한 마차를 빌려서 가도록 하지요." 근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황급히 문 쪽으로 가면서 물었다. "저 마차를 그렇게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눈치챈 사람도 있겠군요." 홈스는 놀란 근위대장의 표정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글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왕실의 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왔던 것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요. 누가 물어보면 당신의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지요." 우리는 30분 후에 왕궁에 도착한 다음, 작은 문을 통해서 왕궁으로 들어갔고, 하인들이 다니는 긴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갔다. 길쭉한 방에는 한족 벽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창을 통해서 희미 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벽 밑에는 이상하게 생긴 총을 들고 있는 불행한 마부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방바닥에는 붉은색의 두껑누 융단이 초라한 하인 숙소에서 살던 마부가 왕족이 사용하는 훌륭한 방에서 인생을 마무히란 셈이었다. 홈스는 시신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아귀에서 총을 떼어내었다. "독일의 유명한 맹인 총 제조공인 폰 헤르더의 작품이군요. 아주 훌륭한 총입니다. 한 번 살펴보 겠습니다." 그는 총에 탄환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공기총에 펌프질을 한 다음에 방아쇠를 잡아당 겼다. 짧고 깊게 느껴지는 격발음이 들렸을 뿐인데 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오르간 소리와 흡사한 165사이클 정도의 순수한 음정이로군요. 정말 훌륭한 총입니다. 보 통의 소음총의 소리보다 작기는 하지만 창문이 열려 있었다면 분명히 소리가 들렸을 것 같군요." 그러면서 그는 두꺼운 방범창이 장치된 창문을 살펴보았다. 두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이렇게 열려 있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청소를 하러 왔던 하녀가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녀가 시신을 발견하기 전에 창문을 열었던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그 하녀는 아직도 충격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횡설 수설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바깥에 있는 베란다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홈스의 요구에 팔커크 대장은 우리를 옆방을 통해서 베란다로 데리고 갔다. 베란다는 난간이 둘 러져 있는 발코니로 꾸며져 있었고, 군데군데 꽃밭이 있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내려다 보여싿. 근위대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왕실의 정원 파티가 시작되면 주빈들이 이 베란다로 나와서 수님들을 맞이합니다. 오늘 파티에 는 네 분의 주빈이 있었습니다. 서열 순으로 말씀드리면 여왕님과 그녀의 사촌인 몰스테인 왕, 요 크 대주교 그리고 오스왈드 로턴 경이었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사와 주교와 왕과 여왕이라. 그런 분들이 졸개에 지나지 않는 사람 때문에 살인사건 용의자 가 되어버렸군요. 나는 체스 수수께끼를 좋아합니다.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분이들이 정확하게 어 느 위치에 서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근위대장은 홈스의 경솔한 표현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지만, 그의 요청에 따라 네 곳의 위치를 가리켰다. 다음 그림에 그 위치를 만화처럼 나타내었다. "네 분이 모두 난간 바로 뒤에 서 계셨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가운데에 계셨고, 오른쪽에는 오스 왈드 경이, 왼쪽에는 주교님이 서 계셨습니다. 왕 폐하는 주교님의 왼쪽에 계셨습니다. 창문이 열 려 있었으면 네 분이 모두 확실하게 총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홈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론 창문 하나는 닫혀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니까 만약 오른쪽 창문이 닫혀 있었다면 기 사님이 소리나는 곳에서 가장 멀리 서 있었던 셈이고, 왼쪽 창문이 닫혀 있었다면 왕 폐하가 듣 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실제로는 여왕 폐하와 왕 폐하는 총소리를 들었지만 기사님과 주교님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더니 두 창문 사이의 간격과, 난관과 벽 사이의 걸리를 측정했다. 두 창문 사이의 거리는 대략 3미터 정도였고, 난간과 벽 사이 의 거리는 4미터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근위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집을 사려고 살펴보고 있는 것 같군요. 이 집을 팔련느 것이 아님을 알고 나 면 무척 실망하겠는데요." 바로 그 순간에 홈스가 탄성을 지르며 일어서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총소리가 정확하게 165사이클이었지! 왓슨. 소리는 파동이고, 그 파동은 초속 330미터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렇다면 그 소리의 파장은 얼마겠나?" 홈스가 가끔씩 나를 너무 얕본다고 느꼈던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2미터겠지요." "그렇네, 왓슨. 그런데 오늘 아침에 물에서 전달되는 두 파동의 마루와 골이 겹쳐지게 되면 파동 이 서로 상쇄되어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렇지만 음파는 물에서 생기는 파동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네. 음파의 경우에는 공기가 압축된 부분과 희박한 부분이 서 로 번갈아 있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압력이 최대가 되는 부분 또는 최소가 되는 부분 사이의 간격이 2미터라는 말이지.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한 음파의 압축된 부분이 다른 음파의 희박한 부분과 겹쳐지면 두 음파가 서로 상쇄되어버릴 것 같군요. 그렇지만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겠는데요." 홈스는 내 말에 웃음을 지었다. "왓슨 박사, 참 단순한 생각이로군요. 여왕 폐하는 두 창문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위치에 서 계셨 네. 그러니까 파동의 마루가 두 창문에서 동시에 출발했다면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여왕 폐하가 서 계셨던 위치에 도달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두 파동은 서로 상쇄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났겠지. 그러나 기사님이 서 있었던 위치는 오른쪽 창움에서는 파장의 2.5배에 해당하는 5미터만큼 떨어 져 있었네. 그러니까 오른 쪽 창문에서 나온 파동의 마루는 왼쪽 창문에서 나온 파동의 골과 겹 쳐지게 되어서 두 음파는 정화하게 상쇄더어버렸을 거렛. 따라서 기사님이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한 것은 당연하지." 그의 설며에 근위대장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왼쪽 창문에서 4미터, 오른쪽 창문에서 5미터 떨어져 있었던 주교님은 기사님과 같은 이유 때 문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왕 폐하가 서 계셨던 위치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왕 폐하는 왼쪽 창문에서 4미터, 오른쪽 창문에서 6미터 떨어진 곳에 서 계셨지요. 그래서 음파의 압력이 최대가 되는 부분이 함께 도착하기 때문에 두 파동이 서로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서 총 소리를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홈스의 설명이 끝나자 근위대장과 함께 말했다. "이제는 로턴 경께서도 편히 쉴 수 있게 되었군요." "그렇지요. 여왕 폐하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여왕 폐하를 보로하기 위해서 당신 이 거짓말을 해서 명예를 더럽힐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기사님과 주교님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여왕 폐하와 왕 폐하는 총소리를 들은 것이 확실하고 그분들의 그런 주장 에 아무런 문제도 없지요." 파크레인 호텔의 건너편에 있는 하이드 공원 안의 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말했 다. "홈스, 당신의 전공 분야와는 전혀 다른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해결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왓슨, 이번 사건이 자네 생각처럼 내 전공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라네. 사실은 챌린 저 교수가 아침에 잠깐 사무실에 들렀을 때 아주 비슷한 과학 실험에 대해서 설멍을 해주었다네. 챌린저 교수는 파동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면 빛이 정말 파동인가 아닌가에 대한 서멀리 교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 챌린저 교수는 오늘 저녁 다섯 시에 시작되는 서멀 리 교수와의 공개 토론에 나를 초청하기 위해서 왔었네. 존경할 만한 지성인과 함께 자신의 승리 를 자축하고 싶은 모양이야." 그러면서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곧 공개 토론이 시작되겠군. 사실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네. 그런에 우연이기는 하지만 이 번 사건의 해결을 도와준 빚은 갚아야 할 것 같군. 여기서 가깡누 거리에 있는 벌링턴가의 왕립 학회 강의실에서 공개토론이 개최된다는데 잠깐 들렀다 가면 어떻겠나?" 우리가 강당에 들어서자 서멀리 교수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찾아려고 했지만 강당의 좌석이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챌린저 교 수는 강단의 오른쪽에 허리를 곧게 펴고 오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고 있던 우 리를 발견한 챌린저 교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전자기 파동을 전달해주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드렸습 니다." 서멀리 교수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싿. 이제는 내 전공이 되어 버린 빛의 속도에 대한 실 험에서 그런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서멀리 교수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제 생각이 옳다는 증거는 그런 이론적인 주장뿐만이 아닙니다. 물질이 불연속적인 원 자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도 불연속적인 입자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두 가지의 아주 쉬 운 실험을 통해서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입자를 '광자'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우선 적당히 준비한 금속 표면에 빛을 쪼여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빛 이 금속 표면을 통해서 흡수되면 그 에너지 때문에 금속 표면에서 전자가 방출됩니다. 그렇게 방 출된 전자의 수와 속도는 아주 쉽게 측정할 수 잇지요. 그런 현상을 이용해서 빛의 세기를 측정 하는 간단한 전기 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빛의 색깔을 일정하게 하고 밝기를 두 배로 증가시키면 아떤 일이 일어날까요? 내 동료 인 챌린저 교수가 주장한느 파동 이론에 따르면 방출되는 전자의 수와 속도가 모두 증가할 겁니 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을 해보면 전자의 속도는 변하지 않고 방출되는 전자의 수만 두 배로 늘 어납니다. 표면에 도달하는 광자의 수가 두 배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빛의 세기를 일정하게 하고 색깔을 바꾸어주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구에 있는 필라멘트의 온도를 두 배로 올리면 전구에서 나오는 빛의 이론에 따르면 빛의 색깔이 바뀌는 것은 빛의 파장이 줄어들기 때문입니 다. 그렇지만 내 이론에 따르면 필라멘트에서 방출되는 광자라는 입자의 에너지가 늘어나기 때문 이랍니다. 그런데 용량이 일정한 전구를 사용해서 금속의 표면에 쪼여지는 빛의 에너지를 일정하게 유지하 면서 붉은색 대신 푸른색 빛을 쪼여주는 실험을 해보면 방출되는 전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지 만 전자 하나의 에너지는 두 배가 됩니다. 바로 그런 사실에서 내 이론이 옳다는 사실을 확실하 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설명한 실험 결과는 모두 광자 하나가 표면에 충돌할 때마다 전 자가 하나씩 방출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설명이 됩니다. 표면에 충돌하는 광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지만 그런 광자 하나의 에너지는 두 배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실험 결과는 파 동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더욱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엑스선이라는 빛을 결정에 쪼여주는 실험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반사된 빛의 색깔은 쪼여준 빛의 색깔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사실은 어떨까요?" 이렇게 말한 그는 주머니에서 고무 공을 꺼내어 강강의 뒤쪽을 향해 던지고 나서 뒤쪽 벽에서 되퉁겨나온 공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강당의 뒤쪽에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서멀리 교수 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 공이 완전한 탄성체라고 합시다. 내가 퉁겨나온 공을 잡을 때의 속력을 처음의 속력과 비교 하면 어떨까요?" 서멀리 교수는 손을 번적 든 학생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퉁겨나온 공의 속도가 조금 느릴 겁니다, 교수님. 벽은 무한히 무겁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습 니다. 그러니까 벽이 약간 뒤로 후퇴하면서 공의 에너지를 빼앗기 때문이지요." 서멀리 교수는 격려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강연대 밑에서 럭비 공을 꺼내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챌린저 교수에게 주었다. "교수님께서 직접 이 공을 수직으로 던져올려주시겠습니까?" 그리고는 강단의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챌리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멀리 강단의 반대쪽 으로 걸어갔다. 챌린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멀리 교수의 요청대로 공을 던져올렸다. 서멀 리 교수는 럭비 공이 최고의 높이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무 공을 힘껏 던져서 정확하게 럭비 공을 맞추었다. 서멀리 교수가 50년 전 어린 시절에 훌륭한 투수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 다. 럭비 공은 고무 공의 충격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고무 공이 럭비 공에 맞은 후에 조금 느린 속도로 서멀리 교수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동안에 럭비 공은 다른쪽으로 떨어졌다. 엄 청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고, 챌린저 교수도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멀리 교 수가 흥분해서 말했다. "방금 여러분께서 직접 보셨습니다. 이제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엑스선이 결정에 충돌하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엑스선은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물체에 충돌했던 것처럼 에네지가 줄어든 상 태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전자기 파동의 모멘텀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기 파동의 모멘텀은 결정 전체 는 말할 것도 없고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원자들을 뒤로 밀어버리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빛이 표면에 충돌하는 것을 광자가 결정의 표면에 노출된 전자와 충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엑스선이 잃어버린 에너지는 전자가 뒤쪽으로 퉁겨나갈 때의 에너지와 정확하게 같은 겁니다. 광 자가 전자에 충도하게 되면 전자가 럭비 공처럼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광자는 적은 양이기는 하 지만 약간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후에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의 설명에 또다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와싿. 그러나 이번에는 뒤쪽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앞쪽 에 있던 흰 수염을 기른 남자들까지도 함께 박수를 쳤다. 내가 보기에는 서멀리 교수가 이번 논 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멀리 교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챌린저 교 수는 위압적인 자세로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동안 강단을 서성거린 후에 말을 시 작했다. "여러분, 서멀리 교수께서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빛과 물질이 상 호 작용을 할 때 빛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덩어리처럼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 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는 빛의 색깔에 따라 달라집 니다. 그런 색깔을 나는 빛의 파장이나 진동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실험을 보면 빛이 불연 속적인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 매우 똑똑한 사람들도 그런 실험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챌린저 교수는 잠깐 말을 멈추고 강당을 둘러보 았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학생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선술집에서 주인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고 합시다. 주인이 정확하 게 한 잔씩의 맥주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맥주 한 잔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덩어리로 되 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맥주는 훨씬 더 작은 부피로 분할할 수 있 는 유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요." "교수님은 우리 동네 술집에 와 보신 적이 없으시지요? 그곳에서는 맥주를 반 잔씩도 준답니 다." 젊은 학생이 야유하듯 말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멀리 교수의 극단적인 주장을 반박하기보다는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이 좋겠 습니다. 그대신 나는 빛이 공간 속에 연속적으로 퍼져 있는 파동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 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강단 한쪽에 놓여 있는 장치를 가리켰다. 나는 목을 길게 빼고 그 장치를 살 펴보았다. 강단 앞쪽에는 두 대의 당구대가 놓여 있었다. 한쪽의 당구대는 나무판으로 칸을 만들 어 놓은 것 이외에는 평범한 것이었고, 다른쪽의 당구대도 거의 같은 것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당구대의 표면에 물감을 탄 액체가 두껍게 덮여 있어서, 학기말 시험이 끝난 저녁의 대학가 술집 분위기 처럼 느껴졌다. 챌린저 교수는 물감이 덮여 있지 않은 당구대로 다가가서 평범한 큐를 집어들었다. 그가 다가간 쪽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공이 놓 여 있었다. "이 공들을 아무렇게 쳐봅시다. 서멀리 교수님께 부탁드려볼까요? 교수님께서 이 공들을 저쪽으 로 쳐주십시오." 챌린저 교수는 말을 하면서 중간의 칸막이에 뚫린 두 개의 틈을 가리켰다. 공을 반대쪽으로 보 내려면 그 틈을 지나가도록 정확하게 맞추어야만 했다. 서멀리 교수는 거리낌 없이 당구대로 다가가서 챌린저 교수가 던져주는 공을 쳤다. 서멀리 교수 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큐에 문제가 있는지 몰라도 공들은 완전히 무질서 한 방향으로 퉁겨나갔다. 얼마 전에 보았던 길버트와 설리반의 새 오페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속임 당구에 대한 익살맞은 조롱을 담은 다음과 같은 시가 기억났다. 당구채로 기막힌 경기를 한다. 비뚤어진 당구대 위에서, 타원형으로 생긴 당구공으로. 대부분의 공이 중간 칸막이에 맞았고, 챌린저 교수는 그런 공을 집어 내버렸다. 몇 개의 공이 틈 을 통과하기는 햇지만, 그 공들도 틈 근체에 발라놓은 푸른색과 붉은 색의 끈적끈적한 페인트 때 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퉁겨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 보니 아무렇게나 퉁겨나간 공들이 균일하게 늘어서게 되었다. 서멀리 교수가 마지막 공을 치고 나자 챌린저 교수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모르셨겠지만 이 실험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두 개의 틈을 지나가도록 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실험과 같은 것이랍니다. 서멀리 교수께서는 스스로 주장한 빛의 광자 이론에 따라서 실험을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다시피 이쪽에는 공, 즉 광자들이 대체로 균일하게 늘어서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두 틈 중에서 하나를 막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서 푸른 색 페인트로 표시한 틈을 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붉은 색 페인트가 묻은 공은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퍼져 잇을 것이고, 푸른색 페인타가 묻은 공은 없어질 뿐이겠지요. 내가 당구대나 공을 아무리 다른게 디자인하거나 한 개의 틈을 막아버리더라도 공이 한쪽에만 모이도록 만들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실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액체가 담겨 있는 당구대로 다가가서 한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켰다. 그러나 추가 오르 내리면서 당구대 위에 물결 무니가 만들어졌다. 물결 무늬는 두 구멍을 지나서 반대쪽으로 번져 가면서 수면의 높이가 이상한 모양으로 오르내렸다. 당구대의 끝에는 기름을 먹인 종이를 세워놓 았기 때문에 액체가 흘러넘치지는 않았지만 수면이 최고로 올라갔던 위치가 기름 종이 위에 검은 색으로 표시되었다. 검은 띠가 2센티미터 정도까지 올라간 곳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었지만, 그 사이 부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홈스, 저것은 왕궁에서 일어났던 자살사건의 상황과 똑같지 않습니까? 당구대 위에서 오르내리는 추는 소리가 발생된 총에 해당되고, 가운데 벽은 두 개의 창문이 있는 벽에 해당되는 군요." 홈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정말 그렇군. 당구대 끝에 나타나는 파동에서 높은 곳과 낮은 곳에 체스 말을 놓아두면 완전히 똑같겠네." 이제 챌린저 교수는 아주 어려운 묘기를 머치려는 마술사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제 아주 잘 보십시오. 내가 두 틈 중의 하나를 막아보겠습니다. 저 쪽 끝에 수면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지점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챌린저 교수가 한 틈을 막아버리자 당구대 끝에 나타났던 물결의 패턴이 전부 사라져버리고, 열 려 있는 틈을 통과한 물결이 그대로 당구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쪽 틈을 막고 나니까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지점에서도 액체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 습니다. 당구공으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현상이지요." 챌린저 교수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천으로 가린 사진이 놓여 있는 강당의 뒤쪽으로 걸어갔 다. "그런데 빛을 이용해서 똑같은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빛이 두 개의 틈을 지나가면 서로 상쇄 되면서 비슷한 패턴이 생기지요. 그런 현상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파동의 간섭'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친구인 애덤스 박사가 고안한 아주 민감한 필름으로 실험을 해보 았습니다. 서멀리 교수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 번에 기껏해야 한 개의 광자가 나올 정도로 약한 광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광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파동과 같은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겠지요. 우선 한 개의 틈새만을 열어두고 실험을 했습니다. " 그는 가장 왼쪽에 놓여 있는 사진의 덮개를 제쳤다. 사진은 온통 회색 빛뿐이었다. "보다시피 빛은 넓은 각도에 걸쳐서 균일하게 퍼져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두 개의 틈을 모두 열어두고 실허을 했지요." 그러면서 두 번째 사진의 덮개를 열자 밝은 띠와 어두운 띠가 확실하게 찍힌 사진이 나타나싿. "명백한 간섭 패턴이지요. 이런 패턴이 만들어지는 사실을 서멀리 교수의 표현을 빌려서 설명하 자면 각각의 광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두 틈새가 모두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사진에서 광자가 전혀 닿지 않아서 검게 나타난 부분은 두 틈새로부터의 거리가 정확 하게 빛의 파장의 절반만큼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다시 한 번 박수의 물결이 강당을 메우고 난 후에 챌린저 교수가 손을 들어서 조용히 하도록 신 호를 보냈다. "보다시피 빛이 물질과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빛은 그 자체가 진정한 파동입 니다. 이 실험은 금세기 초에 이미 확인된 것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실 험의 결과가 무엇을 뜻하는는 명백할 겁니다." 그는 서멀리 교수를 쳐다보면서 계속했다. "내가 오늘 여기에 나오기로 한 것은 이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 히려 오늘날의 과학계를 뿌리부터 흔들어버릴 엄청난 발견의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침묵을 지켜보았다. 그가 만일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배 우나 연사로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빛 대신에 입자를 이용해서 똑같은 두 틈새 실험을 해보면 있는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적당한 장치를 사용해서 전자나 원자 또는 분자를 일정한 속도로 날아가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덤스 박사의 사진 필름은 서멀리 교수의 광자뿐만 아니 라 그런 입자들의 충돌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이 실험에 서 지금 본 당구대에서와 같은 결과를 기대했었습니다. 전자는 파동이 아닌 입자이기 때문에 두 틈새를 동시에 지나갈 수는 없고 어느 한쪽의 틈새만을 지나가야 하겠지요. 물론 이 실험에서도 여러 전자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파동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한 번에 한 개의 전자만 나오도록 전류의 양을 조절했습니다. 틈새를 하나만 열어두면 전자가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사진 전체가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버립니 다. 기대했던 그대로지요. 두 개의 틈새를 모두 열어두어도 마찬가지로 뿌연 사진을 얻게 될 것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밝기는 두 배가 되겠지요. 당구공으로 보여드린 실험의 결과가 정확하게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내가 얻은 사진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세 번째 덮게를 열었다. 청중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놀랍게도 그 사진에도 광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밝고 어두운 패턴이 찍혀 있었다. "전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아주 작은 입자를 사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전자가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두 틈새를 모두 지나간 것이 확실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자도 파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 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가 마치 어떤 특정한 위치에만 존재하는 입자처럼 보이는 것은 환상 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원자와 분자를 이용해서 같은 실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경우에 파동과 같은 패 턴을 얻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나는 모든 종류의 고체 물질은 사실은 전부 단순한 환상 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우주는 파동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마저도..." 그는 동료 교수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단순히 파동이 복잡하게 뭉쳐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 간이 지나면 넓은 바다에 생각 작은 물결처럼 서서히 사라버릴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서멀리 교수에서 등을 돌리고 왼쪽, 오른쪽 그리고 가운데의 청중을 향해서 차 례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강당 전체가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가 우외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많은 전문 과 학자들은 챌린저 교수의 설명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양인지 깊은 생각 에 잠겨 있었다. 아무도 챌린저 교수의 권위적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 어싿.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사람들이 일어나서 강당을 떠날 때 홈스와 나도 함께 강당을 나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