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원자론도 모르는 의사 "왓슨, 오늘은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군?" 피곤해서 진료 가방을 탁자 위로 던지면서 술병을 흘낏 쳐다보는 나에게 홈스가 물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따뜻한 위로는 언제나 반가운 법이었다. 그렇지만 저녁 다섯 시가 넘도록 잠옷 바 람에 슬리퍼를 신고 어린 아이나 즐길 만한 유치한 화학실험에 빠져 있는 사람의 그런 위로가 그 리 반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지쳐버린 나는 그에게 핀잔을 주는 대신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 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마지막 환자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았지요. 만성 위통으 로 고생하고 있다는 중년 여자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말예요. 그렇다고 아주 기막히는 일은 아니 었습니다. 다만 그 환자가 내 말대로 간단한 수술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의사의 말을 잘 안 듣는 환자를 만난 모양이로군." "그렇지도 않아요. 그 환자도 의사의 역할은 알고 있었거든요. 다만 아주 고약한 돌팔이 의사의 꾐에 빠져 있어서 문제였지요. 사이비 의술을 퍼트리는 그런 돌팔이 말입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침 그 돌팔이가 두 필의 말이 끄는 멋진 사륜마차를 타고 떠나고 있었어요. 그 돌팔이는 좋은 옷을 입고 있어서 부유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더군요. 저보다 훨씬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사 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잘 속아넘어가는 환자들이 좋은 옷과 멋진 마차를 제공한 셈이겠군! 그런데 그 돌팔이는 어떤 처방을 해주었나?" "그 환자가 어렸을 때 섭취한 독성물질 때문에 병이 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돌팔이의 처방입니다. 우리 모두가 독극물이라고 알고 있는 납과 비소 그리 고 가지과의 유독 식물인 벨라돈나를 묽게 타서 마시라는 겁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처방이지 만 그 돌팔이는 철썩같이 믿고 있던 그 환자는 이미 그 독약을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한심한 일이군. 왓슨, 그렇다면 그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 틀림없겠군. 내가 수사해보 아야 할 사건인 모양이네. 그 약을 물에 타서 마신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묽게 만든다고 하던 가?" "상당히 묽게 만들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겼겠지요. 그릇에 가득 담긴 독약의 90퍼센트를 덜어내고 물을 가득 부어넣습니다. 열 배로 묽히는 셈이지요. 그것을 잘 섞은 다음 다시 90퍼센트를 덜어내고 또 물을 채워넣습니다. 그러면 100배로 묽혀지겠지요. 그런 과정 을 서른 번 반복한답니다." "아주 조심스러운 처방이로군. 열 배로 묽히는 과정을 서른 번이나 반뵥해야 한다니 말이네. 결 국 1 다음에 서른 개의 0이 붙은 엄청난 숫자 만큼 묽힌 셈이로군. 백만 배의 백만 배의 백만 배 의 백만 배의 백만 배! 이렇게 큰 숫자라면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10의 30승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리하겠군. 그런데 그렇게 많이 묽히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1리터의 용액을 그렇게 묽 히기 위해서는 한 변의 길이가 100만 킬로미터가 되는 엄청난 크기의 통에 가득 차도록 물을 가 득 차도록 물을 넣어야 하는군. 맙소사! 왓슨, 그렇다면 처음의 약을 태평양에 부어넣은 후에 잘 저은 것보다도 더 묽은 용액이 되는 셈이로군. 아무리 독성이 강한 독약이라도 그렇게 묽힌다면 더 이상 독성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주 호의적인 해석이네요.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환자에게 정말 효과 적인 치료방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갑자기 머리를 젖히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린 것은 아닌 모양이군 그래. 그렇게 생각하지 않 았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네. 오늘 내가 한 일이 모두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야. 도 대체 오늘 내가 무얼 했는가를 짐작이라도 하겠나?" 의자 옆에 놓여 있던 과학책을 집어드는 홈스를 보고 내가 말했다. "안약을 넣을 때 사용하는 기구와 기름 같은 액체를 사용하신 모양이지요? 평소에 하던 실험보 다는 좀 깨끗하고 냄새도 그리 심하지는 않군요. 혹시 화장품 제조업자와 관련된 사건을 맡으셨 습니까?" "하하하.. 왓슨, 완전히 틀렸네. 오늘 나는 원자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준다는 실험을 해 보았다네. 최근에 발표된 실험이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 아무리 큰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네. 왓슨,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지. 소 위 원자론을 뒷받침하는 대부분의 증거는 정황적인 것들이야. 결정도 그런 증거라고 생각했다네. 대부분의 물질을 액체에 녹였다가 서서히 응고시키면 규칙적인 모양의 결정이 되는 경향을 가지 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물질을 물에 녹였다가 물을 천천히 증발시키면 결정이 만들어지 는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결정의 모양은 화학물질의 종류의 따라서 아주 독특해. 그런 사실로부터 과학자들은 물질이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기는 하지만 일정한 모양을 가진 미시적인 단 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네. 서로 다른 화학물질들이 반응할 때 일정한 비율로 반응한다는 것도 또 다른 증거라고 여겼지. 예를 들어서 수소와 산소를 무게비로 1:8로 태우면 물이 만들어지 고, 수소와 탄소를 1:3으로 태우면 메탄이 얻어지네. 이산화탄소의 경우에는 탄소와 산소의 무게 비가 3:8이 되어야 하지. 그런 무게비는 아주 정확하게 지켜진다네. 그런 사실이 원소가 일정한 비로 결합되어 화합물이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 기초의학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배운 기억이 났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지. 그런 증거들은 단순히 원자가 굉장히 작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질 않아. 이 물을 보세나. 순수한 증류수지." "돌팔이 의사의 약만큼이나 순수하겠군요." 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지만, 홈스는 상관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여기 약간의 기름이 있네. 기름 방울을 최대한으로 작게 만들어서 그 크기를 재어보도 록 하지. 왓슨, 확대경을 가져와보게. 더 배율이 큰 것이 필요하네. 이 기름 방울의 크기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지름이 0.2밀리미터 정도 되겠군요." "그 정도일 거야. 이제 이 기름 방울을 물 위로 떨어뜨려보겠네. 그러면..." "아하, 기름 방울이 없어져버렸군요. 물에 녹아버렸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네, 왓슨. 기름은 물에 녹지 않아. 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으므로 표면장력이 다 른 기름이 물 위에 아주 얇은 필름으로 퍼지게 되네. 비스듬한 각도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하! 필름이 보여요. 아주 희미하기는 하지만 가장자리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필름의 지름이 10센티미터 정도 되겠는 걸요." "아주 잘 보았네. 왓슨, 그럼 이제 기름 분자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겠나? 기름 방울의 부피를 기름이 퍼져 있는 면적으로 나누어주면 기름층의 두께가 얻어지겠지." 홈스의 설명에 따르면 공의 부피는 공이 담겨 있는 정육면체 상자 부피의 절반 정도이고, 원의 면적은 그 원의 바깥에 그린 정사각형 면적의 4분의 3 정도가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 서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아 보였다. "홈스, 기름층의 두께가 100억 분의 5미터 정도가 되는데, 뭔가 잘못되었겠지요? 분명히 눈에 보 이는 기름층의 두께가 그렇게 얇을 수가 있습니까?" "왓슨, 그 계산이 맞다네. 과학자들은 그렇게 작은 수를 표현하기 위해서 편리한 방법을 이용하 지. 10억은 1다음에 0이 아홉 개가 붙은 수이기 때문에 10의 9승이라고 부르네. 그러니까 10억 분 의 1은 10의 -9승이라고 부르지. 그런 표현방법을 사용하면 기름층의 두께는 대략 0.5 곱하기 10 의 -9승미터 또는 5곱하기 10의 -10승 미터가 되는 것지. 너무 엉성한 방법이라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숫자 하나를 얻었네. 적어도 기름 분자 하나의 크 기가 대강 어느 정도인가는 알게 되엇다는 말이네. 그런 분자를 널어놓아서 손톱 정도의 폭이 되 려면 대략 3,000만 개의 분자가 필요할 정도로 작은 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지." 나는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군요. 홈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당연히 기억하지, 왓슨. 우리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이 제 100밀리리터 정도의 시험관에 몇 개의 분자를 넣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세." 나는 재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10의 8제곱의 3제곱... 맙소사! 10의 24승개의 분자가 필요하네요? 백만 곱하기 백만 곱하기 백 만 곱하기 백만 개로군요. 그런데 그런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돌팔이 의사의 처방에서 희석 배수가 얼마였지?" "10의 30승이었지요. 맙소사.. 잠깐. 홈스, 희석 배수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독성 분자의 수보다 도 더 크군요." "바로 그거라네. 그 분자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희석한 다음에 원래의 독성 분 자가 하나라도 남아 있을 확률은 10의 6승 분의 1, 즉 100만 분의 1에 불과하지. 그 환자에게 이 런 사실을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그 돌팔이의 특효약이 사실은 깨끗한 막대기를 씻은 물과 조금 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바로 이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약효가 있는 분자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희석액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그 돌팔이도 해결하지 못할 역설일 테니까 말이네." 홈스가 우울증에 걸린 골치 아픈 환자를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면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베이커가의 사무실로 출 근했다. 사물실에 들어선 나는 코트를 벗으면서 말했다. "홈스,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그 환자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폰크랑크슈 박사라고 자칭하 는 돌팔이가 와 있었어요. 그 환자는 돌팔이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돌팔 이가 내 이야기를 조금도 믿으려고 하지 않더군요. 홈스, 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확실한 이야기 보다는 교묘한 말장난에 더 잘 넘어갈까요?" "왓슨, 내가 그 대답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의 어려운 사건의 절반은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걸 세. 너무 실망하지 말고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자세히 말해보게." 나는 의자에 앉아서 피곤한 다리를 쭉 폈다. "내 설명을 듣고 난 그 돌팔이는 원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름 방울 실험을 믿을 수 없다고 했어요. 물 위에 만들어진 기름층은 두 액체 사이의 인력 때문에 생긴 것이라더군요. 만약 원자를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 은 원자의 크기가 기름층의 두께보다 작아야 한다는 사실뿐이라고도 하더군요. 홈스, 내가 반론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포기하 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 환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원자의 존재를 보다 더 직접적이고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요. 원자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 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홈스는 내 말을 열심히 듣고 나서 말했다. "왓슨, 그 문제라면 내게 생각이 있네. 현미경으로 원자를 직접 보여주면 충분할까?" 그는 거의 망가진 형미경을 가리켰다. 그 현미경의 슬라이드 판을 놓을 자리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작은 튜브가 달려 있었다. 나는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미경 속에 는 상당한 크기의 검은 점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홈스, 이건 마술이에요! 그런데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에 따르면 원자의 크기는 너무나도 작 아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보다도 천 배가 더 작다고 하던데 요?" "사실이지."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기막힌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홈스가 그런 이야기 를 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현미경옆에 놓여 있는 회색빛 물질이 들어 있는 플라스크 에 붙어 있는 표식을 읽어보았다. "이것이 뭡니까? 홈스! 꽃가루를 보여주고 원자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병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더 좋은 치료법을 찾는 것은 절대로 장난이 아닙니다!" "내가 왜 자네를 놀리겠나! 왓슨 박사, 자네가 본 것이 꽃가루인 것은 틀림이 없네. 그렇지만 현 미경을 통해서 무엇이 보이는가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나는 다시 한 번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홈스, 자세한 모양은 잘 알 수가 없군요. 검은 점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보기가 더 힘들어요." "맞네. 왓슨! 그런데 그 검은 점들이 왜 그렇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나?" "빛이 있기 때문입니까? 꽃가루에도 박테이라처럼 편모가 있어서 편모를 흔들면서 움직이는 것 은 아니겠지요?" "그렇지는 않지. 그런 가능성은 간단하게 배제할 수 있어. 꽃가루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데는 근 본적인 이유가 있네. 열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입자들의 움직임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하 겠지? 고체가 진동하거나 기체가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충돌하고, 퉁겨나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가 바로 열이라는 거네. 기체의 그런 움직임 때문에 압력이 나타나게 되고, 기체 분 자가 한 곳에 모여 있지않고 상자 전체를 채우게 되지. 그런데 만약 통 속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가 상당히 무겁고 수도 많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 런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겠지요? 만약 공기 분자가 아주 무겹다면 공기 분자가 우리 살갗에 부딪칠 때마다 간지럽게 느껴지겠지요. 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바닥에 있는 분자의 진동 때문에 걸 어다니거나 앉아 있는 사람이 퉁겨나갈 수도 있겠구요! 물론 실제 분자들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 겠지요. 홈스, 1초에 충동하는 분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그런 충돌이 끊임 없이 일어나기 때문 에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통 속에 들어 있는 공기의 압력이 변하지 않고 일정한 것처럼 보이 는 겁니까?" "왓슨, 아주 훌륭하군. 이제 꽃가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세. 만약 공기 분자가 꽃가루 만큼 무겁다면 어떻게 될까? 공기 분자는 시속 1,000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으로 이리저리 퉁기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게나." "글쎄요. 그런 모습은 아주 희미하게 보이겠군요. 분자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돌아디닌다면 분자 한 개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말예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로 공기 분자가 정말로 작다면 어떻게 될까? 이 꽃가루보다 수백만 백의 수백만 배의 수백만 배나 작다면 말이지." "그런 경우에는 충돌할 때의 영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래서 꽃가루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 같군요." "좋아! 왓슨. 그런데 실제 공기 분자는 꽃가루만큼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작지도 않 다는 말이네. 그래서 그런 공기 분자와 꽃가루가 충돌하는 모습을 잘 관찬하면 공기 분자와 꽃라 루의 무게비를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즉 꽃가루 입자들이 얼마나 자주 충돌하는가를 헤아리면 꽃가루 입자 하나의 질량과 공기 분자의 질량을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공기 중에서 일어나는 화학적인 연소 현상을 관찰하면 공기 분자들 중의 80퍼센트가 질 소로 되어 잇다는 사실도 알 수 있네. 또한 질소 분자는 두 개의 원자로..." "현미경에서 본 것만으로 원자의 무게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요? 홈스, 당신이야말로 천재가 분명합니다." 홈스는 미소를 지었다. "진정하게. 이 실험은 내가 생각해닌 것이 아니라네. 그 테이블 위에 있는 잡지에 소개된 독일 화학자들의 실험을 흉낸낸 것일 뿐이야. 그들의 결과에 의하면 원자의 지름은 대략 2곱하기 10의 -10승미터라고 하네. 500만 분의 1밀리미터에 해당하는 크기지. 왓슨, 이제 자네는 그 환자에게 원자의 존재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도 있고 그 크기도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겠지?" 다음날 저녁 내가 사무질도 돌아왔을 때 홈스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홈스는 의자에 앉는 내 못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왓슨, 어떻게 되었나?" "겨우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씩이나 그 환자를 방문했지요. 아침에 찾아갔을 때는 환자와 지칠 정도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최악의 사태까 지 각오를 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이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어요. 하루 종일 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보 았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낮에 창가에 앉아 있다가 돋보기의 가장자리를 통해서 공기 속에서 춤 추고 있는 먼지를 보았다는 겁니다. 밝은 햇살 덕분이었지요. 그것 때문에 내 말을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분도 내거 지적했던 역설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 는 약의 효과가 잇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설명처럼 그 약에 약효가 있는 원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약효가 있을 수 없다는 역설 때문에 혼란스러웠답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역설인 셈이지 요. 그런데 그분은 전에도 이번처럼 역설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때까지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생각과는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경험을 하 게 되면 억설이라고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이라고 믿었던 생각은 실제로 확실하 게 증명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겁니다.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믿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셈이고, 자신의 생각을 모두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 게 생각하는 그분이 바보스러운 걸까요?" "왓슨, 사실은 정반대지. 유명한 학자들도 새로운 사실에 직면할 때마다 그분과 같은 능력을 발 휘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어쨌든 그분은 자신의 약이 기적 같은 약효를 가지고 있다는 크랑크슈 박사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었지요. 사람들은 자칭 전문가들이 떠드는 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분은 그 주장을 증명할 수 잇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크랑크슈 박사의 처방 대신에 내 처방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크랑크슈가 돌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약과 설명서를 모두 저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그것들을 꺼내어 난로 속에 던져보리려고 했지만, 홈스가 손을 저으면서 나를 말 렸다. "왓슨,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네.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 할 수는 없지만 말엔. 몰 론 가짜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문제가 되겠지.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겠교, 어쨌든 다음에 레스트레이드 형사가 찾아오거든 이것을 꼭 전해주게." 그는 설명서에 무엇인가를 적어서 편지함에 넣어두었다. 밤이 깊었을 때, 나는 숨을 깊이 들여마시고 용기를 내어 홈스에게 말을 걸었다. "홈스, 바보 같은 이야기일는지 몰라도 확실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 환자가 말했 던 것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할 때마다 그때까지 믿어와던 생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동감입니다." 홈스는 고개를 끄덕었다. "그런데 나는 결정에 대해서 크랑크슈와 이야기하면서 아주 당황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지 도 말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는 원자의 존재가 결정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전혀 증명 되지 않은것이라고 우기더군요. 그는 결정으로 변하지 않는 물질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물질 이 전혀 다른 모양의 결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이네." "그런데 그는 결정에는 현대 과학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 다. 결정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은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결정과 공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물질을 처음 분리할 때는 결정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같은 실험을 반복하면 결정이 훨씬 더 쉽게 만들어진다고 하더 군요." "그것은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이네, 왓슨. 용액 속에 이미 그 물질의 결정이 들어 있을 경우에는 결정 형성이 훨씬 쉬워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 은 것이라도 상관없지. 그러니가 일단 결정을 만들게 되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실험을 하더라도 여기저기에 작은 조각들이 남아 있게 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결정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는 거라 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프랑크슈는 전혀 무관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 던데요? 영국에서 한 실험을 지구 반대쪽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반복하더라도 마찬가지랍니 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비로운 힘이 모든 물질을 관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어 떤 신비로운 힘이 실험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에서 실험을 반복하거나에 상관없이 일단 만들어진 적이 있는 결정은 훨씬 더 잘 만들어진다는 겁니 다. 그가 말하는 그런 공명 현상은 물론 엉터리겠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홈스는 고개를 저었다. "왓슨,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야. 그렇다고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네. 누군 가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자신있게 실험을 하게 되지 않겠나.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쉽게 그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 즉 심리적인 요인이 영향을 주게 된다는 말이네. 더 흥미로운 설명도 있네. 사람들이 '카이사르의 수수께끼'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느 것 지. 지극히 작은 원자의 존재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카이사르가 '부르투스 너마저...' 라고 신음하고 있는 로마 원로원에 자네가 서 있다고 생각해보 게. 왓슨, 의사인 자네 생각에는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뱉은 숨의 부피는 도대체 얼마나 될 것 같나?" "적어도 1리터는 되었겠지요. 물론 사람의 호흡량은 여러 요인에 따라서 상당히 많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결정이나 원자와 어떤 상관이 있다는 있다는 거죠?" "왓슨, 잠깐만 기다려보게. 공기의 밀도는 대략 1세제곱미터당 0.2킬로그램 정도이지. 그러니까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 1리터라면 그 무게는 약 0.2그램 정도 되었겠군. 그렇다면 지구를 둘러싸 고 있는 공기 전체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홈스, 그건 나 같은 문외한이 짐작도 못할 질문이로군요." "그런가? 왓슨. 나는자네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구의 지름이 얼만가?" "그건 알고 있죠. 아마도 8,000마일 정도일 겁니다." "지표면에서의 압력은?" "1제곱인치당 15파운드." "바로 그러라네! 지구의 표면적을 제곱인치로 나타낸 후에 15를 곱하기만 하면 되잖나! 몰론 미 터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겠지. 힌트를 하나 주겠네. 지구 표면의 면적은 대략 500만 제고 킬로미터 정도이고, 공기의 압력은 제곱센티미터당 1킬로그램 정도야. 아주 간단한 숫자지." "홈스, 1미터는 100센티미너이고, 1킬로미터는 1,000미터이니까..." "과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쓰면 훨씬 쉬워질 걸세." "그래요? 1미터는 10의 2승 센티미터이고, 1킬로미터는 10의 3승미터이니까, 1킬로미터는 10의 5 승 센티미터입니다. 홈스, 이 수들을 곱하기 위해서는 10의 지수들을 더하기만 하면 되는군요. 실 제로는 적당한 수의 0의 붙이기만 하면 되는 셈이지요." "왓슨! 훌룽하네. 계속해보게." "그러니까... 1제곱킬로미터는 10의5승 곱하기 10의 5승, 즉 10의 10승 제곱센티미가 되겠군요. 그것에 5곱하기 10의21승 그램. 마지막으로 백만 단위로 표시하면..." "훌륭하군. 왓슨. 이제는 되었네. 말을 새로 배우려면 그 말로 계속 생각해보는 것이 좋으니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계산 방법을 사용해보게. 곧 익숙해질 거야.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라네. 공기 분자의 무게는 10의 -26승 킬로그램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는 것을 기억 하겠지? 그렇다면 카이사르가 마지막 뱉어낸 0.2그램의 숨 속에는 몇 개의 분자가 있었을까요?" 나눗셈은 조금 더 어려웠다. "2곱하기 10의 22승. 즉 20 곱하기 10의 21승 보다 네 배나 되는 군요." "왓슨,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자네가 숨을 쉴 때마다 평균적으로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뱉었던 공기 붙자 중에서 네 개를 들여마시는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요. 그런데 아직도 나는 그 이야기가 결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모르 겠습니다." "잠시만 더 기다려보게. 와슨, 이제 이 시험관에 이상한 물질 10그램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세.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이 시험관을 창문 옆에 놓아두면 그중의 일부가 증발하겠지?"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합니까? 홈스. 말하기 뭐하지만 그 고약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언젠가는 허드슨 부인도 결국..." "잠깐만, 왓슨.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완전히 섞이도록 며칠을 기다린다면 1리터의 공기 속에 그 물질의 분자가 몇 개나 있을까?" "계속할 겁니까? 홈스. 그 골치 아픈 물질이 이 세상의 공기를 전부 오염시켜버리겠죠 뭐?" "애들레이드 지방의 실험실에서 어떤 화학자가 똑같은 물질을 결정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홈스, 정말 믿기 어려운 말을 하는군요. 시험관에 있던 분자가 공기를 통해서 다른 지방에 있는 시험관에 들어가게 되어서 결정을 만드는 씨앗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그것이 사실이야, 왓슨. 더구나 공기 분자는 아무렇게나 혼합되어 움직이만, 만약에 내 실험실 에서 소포를 보내거나 해서 직접적인 접촉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포의 표면은 수백만 개 의 분자로 오염되어 있을 텐데 말이네. 그런데 전 세계의 실험실들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교류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런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겠나?"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홈스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점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느 껴졌다. "홈스, 이제는 고백할 수밖에 없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나는 원자의 존재에 대한 주 장은 모두 단순한 짐작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원자가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라면, 원자에 대한 논쟁이 화성에 과연 생명이 존재할 것인가 또는 닭과 달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와 같은 쓸데없는 논쟁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논쟁은 결과에 상관없이 결국은 쓸데없는 수수께끼라고만 여겼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당신이 제 기했던 문제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걱정할 그런 문제라고 생각했답니다." 홈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왓슨,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지만 원자의 존재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완벽 하게 이루어져 있다네. 다만 나는 순수과학보다는 범죄 수사에 더 재능이 있었 제대로 자네에게 설명을 해줄 수가 없을 뿐이지. 그러나 자네는 의사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걸세. 자네도 질병의 독소 이론에 대해서 들어보았겠지?" "물론이지요. 질병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는 것은 일종의 전염 인자가 존재하 기 때문이라는 이론이지요. 그런 전염 인자는 일종의 '전염장' 또는 '전염기체'라고 부르기도 했고 '독소'라고도 불렀습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의사들 중에서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도 많습니 다." "플로지스톤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지 않나?"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질병이 아주 작은 병원체에 의해서 옮겨진다는 주장 도 있습니다. 현대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그런 병원체가 바로 박테리아라고 하더군 요." "그래서, 질병은 옮겨질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독소에 의해서 옮겨지는 것일까? 또는 미세한 병원체 때문에 생긴느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의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사실이에요, 홈스. 사실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현대 의삭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 나를 꼼짝도 못하게 몰고가고 있군요. 불공평합니다. 나는 이미 원자의 존재도 중요하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홈스는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아직도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네. 과거에는 원자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의문은 과학철학자들에게나 중요한 것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과학철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임이 밝혀졌다네. 저번 그 환자가 원자의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목숨 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 그런 예가 되지 않겠나? 이제 과학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식이 되었다는 뜻이지. 그것도 단순 히 교양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이웃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 필요 한 것이 되었다네. 이제 밤이 깊은 모양이네. 잠잘 시간이군." 4.과학실험의 방해공작 "왓슨, 어서 이리와보게. 저 사람 어떤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홈스의 재촉에 서둘러 창가로 갔다. "오늘은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요." "그렇지. 그런데 저쪽에 서 있는 사람을 살펴보게. 우리를 찾아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아주 귀한 손님인 모양인데." 홈스는 치장이 잘된 택시에서 방금 내린 남자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택시 기사와 언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에 택시가 떠나자 그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큰 키에 몹시 마른 그 사람은 수염이 덥수룩해서 좀 우숩게 보이기도 했다. 짙은 색의 옷이 비싸 보이기는 했지만 엉망으로 구겨져 잇어서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그는 금테 안경을 쓰고 나서 주머니에서 꺼낸 종 이 조각을 살펴보다가 던져버리는 동작을 한동안 반복했다. " 왓슨,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한 번 보면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네. 그런데 저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짐작을 못하겠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홈스를 따라서 말했다. "형편은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군요. 옷은 물론이고 구두도 아주 좋은 것인데요. 그런데도 저렇게 엉망인 모습인 것을 보면 뭔가 큰 일을 겪은 모양인데, 그래서 저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까?" "훌륭하네, 왓슨. 구두를 주목한 것은 아주 훌륭해.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을 과장하고 싶은 경우에 비싼 옷을 입기는 하지만 구두까지 신경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 그런데 비싼 옷이 저렇게 구겨졌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발도 못한 듯한 모습을 보면 오늘 아침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네." "홈스, 저 사람의 모습은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나간 과학자와 똑같지 않습니까? 웰스의 공 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닐까요? 무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내 생각에는 정 신병원을 뛰쳐나온 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마침내 찾고 있던 쪽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건물의 문패를 살펴보 고 있던 그 사람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바람에 지나가던 마차에 치일 뻔했다. 그가 다치지 않고 길을 건넌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럴까? 왓슨. 나는 오히려 ...아니로군. 내가 틀린 모양이네. 저 사람은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야. 괜히 허풍을 떨었나보네." 그 사람이 옆 사물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홈스도 창문에서 물러났다. "왓슨, 오히려 다행한 일이야. 오늘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있어서 하루 일정을 비워놓았었건 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홈스." 그 사람은 옆 사무실에서 나와서 초조한 모습으로 우리 사무실의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젠장! 왓슨, 허드슨 부인이 저 사람을 쫓아버려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만 그것은 헛된 희방일 뿐이었다. 아래층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그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 분이 명탐정 홈스 씨인가요?" "제가 셜록 홈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심각한 위급상황이 아니면 예약된 손님만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군요. 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의 희생자입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나는 일링워스 박사라고 합니다. 에든버러의 일링워스 박사인데 지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는 왕립천무대의 후임 대장으로 내정되어 있다고 소문이 난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홈스도 그의 이름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는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님,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십시오.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홈스, 일분이 아깝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모두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 니다.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가면서 말씀드리 면 어떨까요?" 홈스는 아직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최근에 과학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박사님, 홈스 씨도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분명히 도와주실 겁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결국 우리는 함께 대영박물관을 향해서 바쁘게 걸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홈스는 하루 계획이 엉 망이 되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참 후에 그가 마음을 돌린 듯 입을 열었다. "박사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방해공작이 있었습니다. 과학 발전에 중요한 실험에 대한 방해공작이었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렇군요. 지금 여기서 그런 말을 하는 것으느 적절하지 못하겠군요." 홈스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왓슨, 자네의 처음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서 일링워스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 우주에 대한 문제라면 내 전공은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먼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해보도 록 하지요. 정확하게 어떤 방해공작이 있었습니까?" "누군가가 내가 만든 판을 못 쓰게 망가뜨렸습니다, 홈스 씨.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판을 말입니다." "하녀가 깨뜨린 판 때문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농단이 지나치시군요. 내가 말한 판이란 사진 필름을 말하는 겁니다.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별 의 수를 정확하게 헤아리기 위해서는 성능이 아주 좋은 필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이곳 대영박 물관의 관장인 내 친구 애덤스 박사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훌륭한 화학자인 애덤스 박사가 아 주 약한 빛에도 반응하는 민감한 광학 활성 물질을 합성해주었지요. 나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 미터나 되는 큰 유리판을 그 물질로 코팅해서 실험 준비를 마쳤답니다." 우리가 박물관으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전에 본 적이 없었던 작고 둥근 구조물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박물관의 전망대에서 실험을 하고 계셨습니까?"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세요?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망원경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불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망원경 으로 사진 필름이 엉망이 되어번린 겁니다. 나는 누군가가 방해공작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박물관 계단에 다다랐을 때 홈스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 낮은 목소리로 불쾌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 그렇게 위급하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서 나를 여기까지 불러왔다는 말씀이세요?" "바로 그렇습니다! 홈스 씨.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정말 놀라울정도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홈스는 화를 참기 위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박사,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 위급한 사건이 방금 생각났습니다. 브라이턴에 살고 있는 어떤 여자가 독물 중독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장 그리고 가야 합니다. 박사님, 좋은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나는 그의 건망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홈스 씨, 어제 밤에 브라이턴 경찰로부터 사건이 모두 해결되었다는 전보를 받지 않았습니까? 내가 전보를 분명히 전해드렸을 텐데요." 나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겨보는 홈스를 보고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 계단 위에서 우리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홈스 씨, 정말 반갑습니다. 당신처럼 유명한 분이 이렇게 사소한 사건을 도와주러 오실 줄은 몰 랐습니다." 박물과 관장인 애덤스 박사였다. 우리도 그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 면서 그를 따라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일링워스 박사가 말하던 사건 필름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복도로 갔다. 사소한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도 충격적인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 리판에는 사냥군 오리온 성좌의 모습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게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 는 아주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림자가 함께 찍혀 있었다. 흐릿하고 일그러져 있기는 했지만 사람 과 야수의 중간 정도로 보이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저 우주 공간 어딘엔가 마구 돌아다니며 싸움 을 벌이고 있는 이교도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사진처럼 으스스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진을 본 홈 스도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우연히 훼손된 것은 아닌 모양이로군요. 그런데 누가 저렇게 이상한 방해공작을 하고 싶었을까 요?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진 필름에 점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었습니까?" 일링워스 박사가 바로 대답했다. "외국인일 겁니다. 탐정님! 전망대로 통하는 문은 안전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사진 필름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서 올려가기 전에 하룻밤을 이곳에 놓아두었지요. 밤에는 박물관의 출입 문을 모두 잠가버립니다. 그렇지만 방문객으로 위장한 범인이 박물관의 문을 닫기 전에 숨어 있 기는 아주 쉬웠을 겁니다."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심한 경쟁 때문이지요! 얼마 전에 해왕성을 발견한 공로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인가 때문 에 심각한 논란이 있었지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경쟁을 벌였습니다. 마치 누가 천문학 적 발견을 했는가에 나라의 모든 위신이 걸린 것처럼 되어버렸답니다. 어찌되었건 나는 침입자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일링워스 박사는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홈스가 조용하게 말했다. "방해공작이라기보다는 어떤 학생이 장난을 한 것이겠지요.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덤스 박사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우연한 사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군요. 그렇지만 나도 외국인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기보다는 어린 학생의 장닌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비와 쓰레받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장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 나더니 사긴을 덮개로 가리면서 말했다. "이 사진을 청소원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군요. 지난 주에 박물관에 이상한 유물이 들어온 다 음부터 미신 같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이 사진을 보면 그런 소문이 더 심각하게 퍼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상한 유물이라니요?" "정말 이상한 유물입니다. 데인저필드 탐사 팀이 가져온 겁니다. 그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물론 우리도 그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중앙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데인저필드 탐사 팀은 그곳에서 아주 오래된 도시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상하게 생긴 금속 조각품들을 찾아 내었다. 그 조각품들이 영국 탐사 팀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누군가가 속임수로 만들어놓은 것이 라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탐사 팀이 겪은 불운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 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상을 입었고, 나머지 대원들도 대부분 이런저런 병에 걸렸다. 지금은 많 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탐사 팀이 피라미드 도굴 꾼들처럼 저주를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지만 홈스는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냈었다. 나는 그 들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열대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관장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조각품 중의 하나가 저 테이블 위에 있습니다. 저 조각품은 납보다 두 배가 더 무거운 금속 으로 만든 겁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흥미로운 유물이지요."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 조각품을 살펴보았다. 반구 모양의 조각품에는 속으로 패인 음각의 무 늬가 새겨져 있었다. 입체적인 무늬는 멀리서 보면 평범하게 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림 자가 바뀌기 때문에 아주 신기하게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런 유물이 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 유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유물을 살펴보고 있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옆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를 가지고 돌 아왔다. 상자 가운데에는 구리 막대가 달려있었고, 그 끝에 달린 노란색 금속 날개가 이리저리 흔 들리고 있었다. "어러분, 이것은 검전기라는 장치입니다. 검전기를 하전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그는 가죽 조각을 소매에 열심히 문지른 다음 상자 윗부분에 댔다. 그러자 구리 막대기 끝에 달 린 노란색 날개가 직각으로 벌어졌다. "전기의 개념은 모두 알고 있겠지요. 물질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들로 만들어져 있고, 보통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지요.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양 전하를 가진 입자 쪽으로 움직여가는 것을 전류라고 부릅니다. 어떤 물체에 양전하를 가진 입자 가 음전하를 가진 입자보다 조금 더 많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되면 그 물체는 정전기를 가지게 됩 니다. 이 가죽 조각을 무지르면 음잔하를 가진 입자들 중의 일부가 쫓겨나게 되어서 양의 정전기 를 가지게 됩니다. 양의 정전기를 가진 가죽 조각을 가운데 막대기에 대면, 전기적으로 연결된 이 막대기와 금박 조각은 모두 양전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전하들끼리는 서로 밀치는 설 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전기를 가진 금박 조각들이 서로 밀쳐서 이렇게 펼쳐지게 되는 겁니 다." "박사님의 설명은 아주 쉽게 이해가 되는 군요. 그런데 그것이 방해공작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 까?" "우연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장치가 멋진 도난 경보기 역할을 했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 에 이 검전기에 전기를 하전시킨 상태로 저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평소에는 박물관 내부 의 공기가 아주 건조하기 때문에 누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몇 시간을 두어도 하전되 전기가 사라 지지 않지요. 내가 이 검전기를 만지면 내 몸을 통해서 정전기가 흘러가버리게 됩니다." 정말 그가 상자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금박 날개가 아래쪽으로 늘어져버렸다. "어제 밤에는 이 검전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필름을 이곳에 놓 아두고 전망대에서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있던 사이에 검전기가 스스로 방전되어버렸답니다. 그 시각에는 박물관 안에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검전기가 방전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 침 입자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까요?" 갑자기 홈스가 흥분된 모양이로 양손을 비볐다. "여러분, 이제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왓슨, 자네는 과학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지?" "물론이죠, 홈스." "더욱이 이 박물관의 단골 손님으로서 이 보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반은 장난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일링워스 박사님, 이곳에 새로운 사진 필름을 미끼로 놓아두기로 합시다. 훌륭합니다. 왓슨 박사가 권총으로 무장을 하고 이곳을 밤새워 지킬 겁니다. 왓슨 박사가 외국 첩 보원이거나 장난꾸러기 학생이거나 상관없이 확실하게 범인을 체포하겠지요." 사태를 파악한 내가 서둘러 말했다. "홈스, 그런데 내 환자들은 어떻게 하지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날에는 환자들도 모두 휴가를 가버렸지요. 그래서 왓 슨 박사도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걱정하고 있던 중이랍니다. 오늘 밤 아홉 시 정각에 왓슨 박사가 다시 이곳으로 올 겁니다. 이제 우리는 그만 헤어지기로 하지요." 그날 저녁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박물관 입구 계단을 올라갔다. 거대한 출입문에는 초인종이 없었지만, 누군가가가 안에서 내다보고 있었는지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출입문이 열 렸다. 일링워스 박사는 썩 내키지는 않는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서 깜깜하게 어두워진 박물관 안 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그와 함께 새로운 사진 필름을 전망대로 통하는 계단 반대편으로 옮 겼다. "라보 그곳입니다. 왓슨 박사. 모든 것이 어제 밤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박물관 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당신이 앉을 의자를 가져다놓도록 했습니다." 그는 불편하게 보이는 작은 나무 의자를 가리 면서 말을 이었다. "권총은 가져오셨겠지요? 과학 연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범인에게 사정을 보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단순한 장난꾸러기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무리임을 말해주고, 그렇지만 파 수꾼의 책임은 열심히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 함께 있기가 그렇게 싫은 사람도 없을 것 같아싿. 그러나 일리워스 박사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일러주고 나서 훌쩍 떠나버리자 조금 무섭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담요 를 덮고 앉아서 홈스가 추천해준 윈우드 리드의 [인류 수난사]를 펴보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책 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옛날 지구를 휩쓸던 무시무시한 공룡을 뼈가 사방에 잔뜩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눈 앞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 면 단순히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나는 소매를 문질러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검전기를 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다짐을 하기 는 햇지만 나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전율을 느껴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하룻밤을 편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아무도 몰래 접근 할 수는 없도록 의자를 거대한 사진 필름 바로 앞으로 옮겨놓고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앉아 있 던 나는 갑자기 아까 보았던 조각품이 생각나서 ㅂ러떡 일어낫다. 그 유물은 2피트도 안 되는 곳 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악마 같은 모습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유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거나 헝겊으로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귀중한 유물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되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별을 쳐다보면서 일링워스 박사의 새로운 이론을 이해하 려고 애쓰느라고 한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 안에서 뭔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 거나 변하고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창문에서 눈을 돌릴 때마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마음을 고쳑먹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가 왜 그런 느낌을 느끼게 되었는가를 깨닫고 나자 머리카락이 곤두서버렸다. 검전기는 내가 앉아 있던 곳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조각상 옆에 놓여 있었다. 그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검전기의 날개가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고, 그 속도 도 점점 빨리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난 후에는 두 날개가 완전히 아래로 처져버렸다. 나는 일링워스 박사도 짐작하지 못했던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물관 안에서 희미하 게 발을 끌면서 걷는 듯한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두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쥐일 것이라고 생각하 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로 그때 뭔가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내 다리에 제법 커다 란 물체가 부딪쳤다. 기절할 듯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던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기가 막혔다. 어느새 고양이 한 마리가 발 밑에 다가와 있었다. 그것도 유령처럼 보이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아주 게을러 보이 는 얼룩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등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테이블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서 조각상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잠이 들어버렸다. 커다란 얼룩 고양이가 옆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조각상을 두려워 한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는 사실이 더 부끄 러웠다.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던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벼락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았다. 그런데 아미 사방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아주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얼룩 고양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잠결에 들었던 벼락 소리는 실제 로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청소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 고 있을 때 일링워스 박사가 애덤스 박사와 함게 들어오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졸지 않고 잘 지켰겠지요?" 나는 분명한 대답 대신 고양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칩입자가 하나 있었답니다." "아하! 저 고양이 말이지요. 박물관 작원들이 집 잃은 고야이들에게 먹이를 주었더니, 가끔씩 고 양이가 문 닫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리 내려오너라." 애덤스 관장은 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다가가서 고양이를 만져 보았더니 벌써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죽은 것이 분명했다. 깜짝 놀란 내가 말 했다. "놀라운 일잉군요. 저 조각 유물에 저주가 내렸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 고양이가 원래 건강하 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일링워스 박사가 비웃듯이 말했다. "죽은 고양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고양이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진 필름을 망가뜨리지는 못했 겠지요. 범인이 다시 침입하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군요. 어쨌든 이 필름을 현상해서 확인해보기로 합시다." 일링워스 박사는 사진 필름을 계단 밑에 마련된 작은 암실로 가지고 갔다. 내가 관장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홈스가 큰 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군. 왓슨! 자네 혼자 밤새워 고생하도록 해서 정말 미안하네. 물론 아무 일도 없었 겠지! 나도 자네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글록스테인을 지나오면서 먹을 것을 좀 사왔지. 관장 님!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겠습니까?" 홈스가 마련해온 아침을 먹고 있는 중에 갑자기 암실에서 놀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모두가 암실로 달려갔을 때 일링워스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필름을 가리켰다. 필름은 아직도 암 실 바닥에 놓여 있는 커다란 현상 탱크 속에 들어 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확실했다. 필름 속에는 뼈의 모습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었다! 언뜻 보았을 때 는 거대한 도마뱀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많이 일그러지고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사람의 골격이었다. 일링워스 박사는 나를 향해서 손을 떨면서 외쳤다. "당신 말처럼 어린아이의 장난이었다면.." 갑자기 홈스가 그의 말을 막았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박사님." 홈스는 사긴을 다시 살펴본 후에 나를 똟어져라 쳐다보았다. 일링워스 박사처럼 홈스도 나를 의 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홈스가 다시 말했다. " 왓슨, 저 의자를 이리 가져와서 앉아보게. 아니 조금 더 앞쪽으로 옮겨보게. 어제 밤에 권총은 어느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었나? 왼쪽 주머니였나? 내 짐작으로는 그랬을 것 같은데." 그는 현상 탱크에 담긴 필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도 뢰트겐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시지요? 그가 엑스선이라고 불렀던 빛을 이용해 서 사람의 몸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진 말입니다. 왓슨, 그 사진 덕분에 수술을 하지 않고도 뼈가 부러진 사실 뿐만 아니라 다른 결함도 알아낼 수 있게 되었지. 그래서 의료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이 박물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선을 내는 광원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어제 밤에 왓슨 박사가 그 광원과 필름 사이에 앉아 있었다고 합시다. 저 필름 속에 의자의 다리가 보이지요? 이쪽의 커다란 얼룩무늬가 바로 금속으 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투명한 권총입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뼈의 모습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왓슨, 자네는 정말 어제 밤에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군."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필름 속에 나타난 모습은 정말 그렇게 보였다. 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엑스선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전기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그런 엑 스선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홈스가 즐거운 듯이 대답했다. "여러분, 광원의 위치는 간단한 삼각 측량법으로 알아낼 수 있으니, 다시 복도로 나가봅시다. 여 기 필름과 의자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아직도 희미간 자국이 남아 있군요. 의자를 다시 그 자리 에 놓아봅시다. 그리고 왓슨 박사는 어제 밤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보게. 이제 필름의 위치에서 몇 가지 간단한 측량을 해봅시다." 그는 복도 바닥에 분필로 두 개의 선을 그어싿. 그런데 두 선이 만나는 점에는 바로 그 조각 유 물이 놓여있었다.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유물에 대한 두려움이 단순히 미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군요." "그렇지만 이 유물은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뿐이고 속에는 아무런 기계장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몰론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유물에서 엑스 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일링워스 박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홈스가 대답했다. "반드시 엑스선이 아니더라도 투과력이 있는 빛이면 되겠지요. 그것도 역시 어떤 형태의 전기적 인 현상 때문일 겁니다. 그 정체를 확실하게 밝히려면 필름보다 더 우수한 장치가 필요하겠지요. 원자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민감한 장치 말입니다." "그런 장치라면 정말 정교하고 색다른 것이겠군요." 내 말에 관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개발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공기와 물만 가지고 그런 장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빛을 알아내는 전문가입니다." 말을 마친 관장은 주사 바늘 대신에 아무 표시가 없는 얇은 유리판이 달린 커다란 주사기를 가 지고 왔다. 우리는 방금 커피를 타 마셨던 주전자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주사기에 넣고 있는 그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관장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공기는 팽창하면 차가워집니다. 그래서 주사기 안에 있는 수증기가 물방울로 바뀌게 되지요. 그 런데 그런 물방울이 아무 곳에서나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가 작더라도 다른 입자가 있거나 전하가 있는 곳에서 먼저 물방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작은 입자를 원자 와 충돌시킬 때, 원자가 부서져서 퉁겨나오는 조각들을 관찰하는데 사용하는 구름 상자가 바로 이런 것이지요." 그는 주사기의 끝을 조각 유물 쪽으로 대고 피스톤을 세게 잡아당겼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 모 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기는 했지만 엷은 안개 같은 것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나는 감탄했다. "조각 유물이 마치 자동소총처럼 입자살을 쏟아낸고 있는 모야이군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실험은 입자가 지나가는 경로를 따러서 물방울 줄기가 만들어 질 정도로 민감합니다. 입자가 지나가면서 공기 분자를 연속적으로 교란시키기 때문이지요." "놀라운 일이로군요. 이렇게 간단한 실험으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니 말입니다." 내가 놀라서 소리쳤다. 관장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균형의 법칙을 더 좋은 형태로 응용하는 것이 실험을 다자인하는 핵샘입니다. 쥐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원자 검출기에 적당한 시동 장치를 붙이면 그 효과를 훨씬 크게 증폭시킬 수 있 습니다. 자연현상을 관찰하려면 반드시 비싸고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지요. 머리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나도 공기와 물만으로 만든 망원경이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링워스 박사가 빈정거리듯이 말했지만 관장은 말은 계속했다. "이 작은 자석을 이용하면 문제를 더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관자은 홈스에게 자석을 주사기 가까이 들고 있도록 하고, 주사기 실험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 리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장 속에서 시계방향으로 휘어지는 입자도 있고, 그 반대방향으로 더 많이 휘어지는 입자도 있군요. 이 조각 유물에서는 적어도 두 종류의 입자가 방출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는 음전하 를 가지고 있고, 다른 것은 양전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전하를 가진 입자가 더 큰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더 많이 휘어지는 건가요?" 내 물음에 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입자가 가지고 있는 전하의 양이 비슷하다면 양전하를 가진 입자가 훨씬 더 무겁다는 뜻이 기도 하지요. 이제야 알겠군요. 여러분을 괴롭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범죄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몰랐던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를 출입문 쪽으로 인도하면서 관장이 사과의 말을 계속했다. "일링워스 박사의 태로를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도 사소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의 우연한 발견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처럼 평범한 화학자도 실험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 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홈스는 대영박물관의 독특한 문양이 새겨 진 편지를 읽고 있었다. "좋은 저녁이네, 왓슨. 일링워스 박사는 우리를 아주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박물관 관장은 자신 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자네에게도 좋은 소식이겠지? 우리에게 수사비를 보내 왔다네, 왓슨. 이 돈은 자네가 받아야 할 것 같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자네가 밤을 세워 일한 덕분에 사건을 해결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관장은 그 조각 유물의 종요성을 일깨워준 점에 대해서도 특별히 감사하다고 했네. 관장 은 그 유물의 재질을 연구해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는군. 자네도 유물에서 두 종류의 입 자가 방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 양전하를 가진 무거운 입자를 알파선이라고 부르고, 음전하를 가진 가벼운 입자를 베타선이라고 부르기고 했다는군. 뿐만 아니라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또다른 종류의 입자도 발견했는데, 그 이름은.." "감마선이겠군요." "그렇네, 왓슨. 그리스의 알파벳을 기억하고 있었군. 어쨌든 관장은 그 입자들의 성질을 모두 알 아냈다는군. 그런 결과로부터 원자가 양전하와 음전하를 가진 입자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 론을 밝혀내기도 했다네. 전류가 흐를 때는 음전하를 가진 가벼운 입자가 움직이고, 양전하를 가 진 무거운 입자는 그 자리에 정지하고 있어서 고정된 받침대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주장도 발표 하게 되었다는군. 관장은 무겅누 알파 입자들이 사실은 원자에서 양전하를 가진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알파 입자는 전자보다 두 배의 전하를 가진 헬륨의 원자핵이라고 하는군. 가벼운 베타 입자는 전자에 해당하고 감마선은 매우 짧은 파장을 가진 빛, 즉 엑스선이지." "그러니까 조각 유물에서 방출되었던 입자는 실제로 모두 세 종류나 되는 셈이군요?" "더 많은 종류의 입자가 방출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발견한 세 가지가 가장 많이 방 출되는 것이거나 가장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방출되는 입자들은 상당히 위험하겠는데요?" "위험한 정도도 모두 다르다는군. 무거운 알파선이 가장 피새가 크다고 하네. 살아 있는 조직을 잠깐 동안 알파선에 노출시킨 다음에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완전히 깨진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 라네." 나는 갑자기 두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런 입자를 방출하는 유물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던 말입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네, 왓슨. 다생스럽게도 자연에는 신비로운 균형이 존재흐는 모양이야. 그래서 알파선은 파괴적이기는 하지만 물질을 쉽게 뜷고 나가지는 못한다는 군. 알파선은 아주 얇은 카 드는 몰론이고 1피트 정도의 공기층에 의해서도 흡수되어버린다는 거야. 그러니까 조각 유물을 직접 만지지만 않는다면 알파선에 의해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아마도 화상을 입고 죽은 불쌍한 고양이는 알파선에 희생되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베타선은 알파선보다 토과력이 100배 정도 크고, 감마선은 다시 베타선보다 100배 정도 더 투과력이 크다고 하네. 관장의 편지에 따르면 감마선은 1피트 정도의 방탄 철판도 뚫고 지나 갈 수 있을 정도라는거야. 그렇지만 자네가 앉아 있었던 위치나 시간으로 보아서 자네에게는 아 무런 피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군. 그리고 전하를 가진 입자가 검전기로 흘러가게 되면 검전기를 방전시킬 수도 있더고 하네." "아주 흥미로운 과학 발견인 모양이군요, 홈스. 더구나 관장이 직접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었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뿐이 아냐,왓슨.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네. 관장은 정말 극적인 두 가지 발 견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첫째는 물질의 본성에 대 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는 거야. 그는 알파선을 아주 얇은 관에 통과시키면 어떻게 되 는가를 살펴보았다네.아주 얇은 금박을 이용했지. 금을 망치로 두들기면 아주 얇게 펴진 금박이 되네. 그리고 금박은 원자 몇 개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얇아서 검전기에 사용하기 적당하지. 실험을 하기 전에는 금박을 통과한 알파선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 것으로 생가갷ㅆ었다는군. 마치 권총 탄환이 두꺼운 담요를 통과하고 난 후에 속도가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하네. 대부분의 알파 입자들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을 통과하 는 것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지나가버렸는데, 그중에서 몇 개의 알파 입자들은 아주 심하 게 꺾여서 퉁겨나가더라는 거야. 심지어는 180도 뒤쪽으로 퉁겨진 것들도 있었다는군." "좀 이상한 이야기로군요." "좀 이상하다니. 왓슨! 자네가 15인치 대포의 탄환을 휴지를 향해서 발사했는데 그 탄환이 뒤로 퉁겨서 자네 코를 맞추었다는 것을 그냥 이상하다고만 하겠나?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지. 자네도 유명한 허드슨 부인의 젤리 푸딩 이야기를 기억하겠지. 오늘 저 녁 식사 후에 그것을 먹게 되면 정말 좋겠군. 자네, 권총으로 바로 앞에서 푸딩을 한방 쏘면 어떻 게 될 것 같은가?" "홈스, 내 생각에는 우리 집주인으로 놀라울 정도로 당신에게 관용을 베풀어주던... 잇단 불행 끝 에... 그리고.." "아직 내 질문이 끝나지 않았네, 왓슨. 탄환이 푸딩을 그냥 뚫고 나가지 않고 권총을 쏜 방향으 로 거꾸로 퉁기는 경우를 상상해보라는 것이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장난꾸러기가 푸딩 모양으로 만들어서 빨갛게 칠한 방탄 철판 모형 을 놓아두었다고 생각하겠지요." "만약 푸딩의 무게가 보통의 푸딩과 차이가 없었다면? 그리고 권총을 여러 번 쏘아보았더니 대 부분은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지나갔는데 그중의 몇 개만이 퉁겨서 되돌아왔다면 어떻겠나?" "그렇다면 푸딩 속에 아주 밀도가 큰 입자들 몇 개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스 코틀랜드의 할로윈 축제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인 동전을 숨겨놓은 순무처럼 말예 요." "훌륭하군, 왓슨. 그런데 그런 푸딩의 무게가 정상적인 것보다 조금도 더 무겁지 않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한 환상일 뿐이고 속에 감추어진 동전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 각도에 따라 서 퉁겨나오는 탄환의 수를 알아내면 전체 부피 중에서 동전이 차지하는 부피가 얼마인가도 알 수 있고, 동전의 평균 질량도 알 수 있게 된다는군."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발견이라고 하는지를 모르겠습니 다." "무슨 말인가? 왓슨. 우선 그런 발견은 원자론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지! 속에 감추어진 딱 딱한 물체의 무게가 원자의 무게와 정확하게 같다니까 말이네. 그렇지만 이 실험에서는 더 중요 한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고 하네. 어떤 의미에세는 모든 물질이 단순한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지. 금처럼 밀도가 큰 물질의 경우에도 그 속의 99퍼센트 이상이 텅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거야. 관장의 계산에 의하면 고체의 부피 중에서 실제 원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10의 15승 분의 1, 즉 백만 분의 백만 분의 천 분의 일에 지나지 않을 정도라는 거야." 나는 머리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입니까? 홈스. 이제 웰스가 공상 소설가의 왕관을 넘겨주어야겠군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면 내가 고체로 된 벽을 지나가더라도 벽의 원자와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군요! 그리고 보이 지 않는 사람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어야 할 것이구요! 어디 한 번 해보지요. 내 손이 테이블을 무사히 뚫고 지나갈 수 있는가 말입니다." 나는 소능로 식탁을 내리쳐서 접시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 왓슨, 원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 힘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네. 강력한 자석이 붙어 있는 두 개의 쇠스랑의 살 사이에 집어넣기가 매우 어렵게 되지. 원자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수백만 개의 작은 원자 자석들이 힘을 함쳐서 자네 무먹을 막아 버리는 셈이지. 힘을 더 주어서 애를 쓸수록 오히려 자네 주먹에 멍만 들 뿐이야. 이런 발견을 어떻게 직접 생활에 이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질의 본성에 대한 아 주 훌륭하고 놀랑누 발견인 것은 틀림이 없다네. 그리고 관장은 조각 유물의 재질을 화학적으로 분석해보았다는군. 조각 유물의 주성분은 우라늄 이라는 금속이고 다른 원소도 조금 섞여 있었다네. 그중에서도 강한 알파선과 베타선을 방출하는 원소를 분리해내고, 방출되는 에너지도 정확하게 측정한 모양이야. 놀랍게도 라듐이라고 이름 붙 인 이 활성물질 1 그램에서 물 1그램을 한 시간 정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 다는 설명이네." "그 물질이 서서히 연소되고 있다는 말입니까? 공기 중의 산소와 함께 말입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는군. 그런 변환느 산소가 없어도 끊임없이 일어날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 려진 어떤 화학반응보다도 수천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거야. 더구나 그런 변화가 몇 주일 동안 계속 일어난 다음에도 질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네. 그런데 첫 번째 실험에서는 알 아내지 못했지만 반복해서 분석해보았더니 시간이 지나면 라듐이 다른 원소에 의해서 서서히 오 염이 되어가더라는 거야." 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나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잔치를 벌이겠군요! 홈스. 소멸되지 않는 에너지원을 벌견했 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른 물질도 변환될 수 있는 꿈 같은 성질을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니 말 입니다. 관장이 그런 발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유명해게 되기커녕 지금까지 쌓아놓은 명성도 모두 망쳐버릴 것 같군요. 있지도 않은 바다뱀을 보았다고 소란을 피운 선원처럼 이런 말 도 안 되는 주장을 발표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욕을 먹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겠지요" "아니네, 왓슨. 이 실험은 독립적으로 반복해보아도 틀림없이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네. 다른 화학자들에게 이 조각 유물을 이용해서 실험을 할 수 있다록 해도 같은 결과를 얻 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지." "홈스, 아주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군요. 나는 최근에 자연과학자들이 언제나 철저하게 보존되 는 양을 이용해서 우주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에너지가 방출될 뿐만 아니라 원소들이 스스로 다른 원소로 바뀌기도 한다는 말씀입니까?" 홈스는 초조한 듯이 두 손을 비볐다. "왓슨, 알려진 법칙에 대한 예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지 않았던가? 수사관들은 그런 예 외 때문에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바로 그런 예외 때문에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 이 때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 되기도 하네. 지금까지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완벽한 것 같아서 아무도 의혹을 품지 않았네. 뉴턴은 오래 전에 질량과 힘과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냈고, 최근에는 맥스웰이 전 기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냈어. 그래서 이제 앞으로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알 려진 물리 상수들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그렇지만 이제 관장의 새로운 발견 때문에 그런 과학이 엄격한 시험을 받게 된 걸세. 자연법칙 을 약간 수정한다고 해결될 정도가 아닐세. 어쩌면 아주 새로운 과학이 출현할 수도 있겠지. 앞으 로 몇 달 동안 아주 흥미로운 결과들이 계속 밝혀질 거네." 그는 한숨을 쉬고 나서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이제 그런 문제는잠시 덮어두기로 하세. 허드슨 부인이 푸딩을 가져올 시간이 되었군. 근본적으 로는 이 세상은 환상적이고 텅 비어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내가 만족할 만큼 실존적이기도 하 지. 그렇지 않은가? 왓슨." 5.나는 탄환 "왓슨, 이걸 좀 보게 정말 재미있군." 홈스가 작은 갈색 봉투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지난 며칠 동안 홈스는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보였다. 나 는 그러다가 그의 옛날 나쁜 버릇이 되살아날까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떨쳐버려도 될 모양이라고 안심이되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봉투는 중앙우체국 소인이 찍힌 아주 평범한 것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이 글씨를 못 알아보겠나, 왓슨? 마이크로프트 형에게서 온 편지야. 형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재미있는 사건을 소개해주었다네. 더구나 형은 말을 길게 하지 않 는 편인데, 이 봉투가 상당히 두툼한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한 편지가 들어 있는 모양이야. 저기 있 는 편지 개봉기를 좀 집어주겠나?" 편지 개봉기로 봉투 속의 편지를 꺼내든 그는 빠른 속도록 편지를 읽어보더니 아주 실망한 표정 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아닌 모양이지요?" "그렇군. 형이 두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불평을 털어놓은 것인데, 그 사람들이 바로 내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사람들이 누군데요?" "자네도 알고 있는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라는군. 그 사람들이 어떤 과학 문제를 놓고 논쟁 을 벌이다가 형에게 도움을 청한 모양이네." "홈스 당신도 과학자라는 사실은 몰랐군요." "몰론 그렇지. 그렇지만 형은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에 어려운 문제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들을 잘 도와주었던 것으로 유명했었네. 형은 어떤 분야의 문제이거나 상관없이 문제 속에 숨겨진 논 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평범한 상식만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거든. 그 의 대학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그의 그런 재능을 잊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가 끔씩 있는 모양이야." "과학 문제도 말입니까? 홈스 박사께서는 역사학과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던가요?" "형은 골치 아픈 과학 문제 해결에 상당한 재능을 가졌던 모양이네. 언젠가 그 비결을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는데, 바로 사고실험이라는 것을 활용한다고 하더군." "홈스 박사께서 실험대에 서서 실험을 하고 계시는 모습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나도 마찬가지라네, 왓슨. 그런 육체 노동은 마이크로프트 형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 그대 신 형은 생각만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가상적인 실험을 고안하 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네." 그렇게 말한 그는 편지를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그 편지는 디오게네스 클럽의 편지지에 쓴 것이었다. 그 클럽은 비사교적인 은둔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햇다. "형의 편지에 따르면 두 교수는 빛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 양이야. 챌린저 교수는 빛이란 광원에서 연속적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네. 마 치 연못에 생기는 물결처럼 말이지. 그런데 서멀리 교수는 빛이 아주 작은 입자들의 흐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군." "홈스, 그런 이야기라면 며칠 전의 원자에 대한 논쟁과 아주 비슷하군요. 물질이 연속적인 것이 라는 주장이 원자론에 밀려나버렸지요. 마찬가지로 질병이 독소가 아니라 병원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예를 생각한다면 빛도 불연속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겠군요?" "왓슨, 그런 단순한 유추에 의한 추리는 아주 위험하다네. 그런 유추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 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면 아주 위험 해." "그렇지만 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알맹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기는 쉬울 것 같은데요? 작은 알맹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던지면 마치 고무공처럼 거울에서 퉁겨져서 반사되지 않겠습니 까?" "서멀리 교수가 바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네, 왓슨. 물론 그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 만 빛이 파동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라네. 예를 들어서 빛은 공기 보다 유리 속에서 더 느리게 진행하고, 공기에서 유리로 들어갈 때는 안쪽으로 휘어진다는 사실 을 알고 있지? 커다란 바위 위로 파도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도 있을거네. 바위가 있는 곳에서는 파도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 모양도 아주 자연스럽게 휘어지지 않던가? 빛이 파동이라고 생각하 면 바로 그런 식으로 렌즈나 프리즘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 빛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파동 이론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네. 즉 파동의 파장이 달라 지면 빛의 색깔이 변한다는 것지. 예를 들어서 붉은빛은 초록빛보다 파장이 길고, 초록빛은 푸른 빛보다 파장이 더 길지. 가시광선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야. 어떤 물체를 적당히 가열하면 적외선이 라는 빛이 방출되는데, 적외선은 붉은색의 가시광선보다 더 긴 파장을 가진 빛이네. 그런 빛이 우 리 몸에 닿으면 따뜻하게 느껴지지. 난로가 바로 그런 적외선을 많이 방출하는 장치라네. 요즈음 은 그런 적외선을 마치 무슨 신비로운 것처럼 주장해서 사람들을 우롱하는 잘못된 상인들도 있는 모양이더군. 그리고 의사들이 사용하는 엑스선은 푸른색의 가시광선보다 훨씬 더 짧은 파장을 가진 빛이네. 그렇지만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은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었지. 맥 스웰은 전기를 이용하면 빛과 같은 성질을 가진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마르코니파 또는 라디오파라고 부르게 되었다네. 라디오파는 그 파장이 적외선보다도 훨 씬 더 긴 빛이고.."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참 중요한 이야기로군요.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배에 라디오 장치를 설치하면 수 평선 너머에 있는 배에까지 조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아주 유용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왓슨, 과학 전문 서적이 아닌 책에서 읽은 내용을 모두 믿으면 안되네. 그런 주장이 모두 실현 된다면 세상이 아주달라지겠지.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하! 그렇군. 맥스웰은 전하를 가진 입자를 진동시키면 빛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 내가 직접 보여줄 테니 차 한잔 가져 다주겠나?"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조금 놀랐지만 허드슨 부인의 큰 딸에게 차를 가져다달라고 부탁 하고 돌아왔다. 허드슨 부인은 예정에도 없던 이상한 휴가를 떠나버렸다. 허드슨 부인의 큰 딸이 가져다준 찻잔에 차를 따르고 우유를 넣었더니 액체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홈스는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제 잘 보게, 왓슨. 내가 숟가락을 찾잔 속에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물결이 생기지요." "그렇지. 만약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물결의 파장이 바뀝니다." "잘 보았네, 왓슨. 맥스웰은 찻숟가락이 찻물에서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과 똑같이 빛이 방출되거 나 흡수되는 것도 전하를 가진 입자의 진동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네. 전하를 가 진 입자를 빨리 진동하도록 하면 파장이 짧은 빛이 나오는데 적당한 전기 측정장치를 사용해서 실험을 해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수직된 방향으로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군요, 홈스. 설명을 들어보니 과연 빛은 분명히 파동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리고는 편안한 자세로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서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홈스,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파동 이론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의사들 중에도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 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상당히 흥분했다. "홈스, 생각해보세요. 빛은 투명한 물질을 통과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리나 물이나 공기와 같은 물질 말입니다." "그렇지만 화강암이나 스틸턴 치즈 같은 물질은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말 훌륭한 생각이 로군." 나는 너무나 흥분해서 홈스가 나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빛이 통과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있지 않습니까? 홈스... 그런데 그것은 .... 아무것도 없는 무입니다. 땅에서부터 수십 마일을 올라가면 공기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끝없이 펼쳐지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반짝이는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물에서는 물이 있기 때문 에 파동이 생기게 되지 않습니까? 음파도 마찬가지로 공기가 있어야만 하지요." "왓슨, 반드시 그렇지는 않네. 음파가 벽돌이나 시멘트 겉은 고체를 통과하기도 하잖나? 그래서 이웃집에서 밤늦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자네가 불평을 하는 것 아닌가? " "그렇죠. 그렇지만 물과 공기와 벽돌도 모두 물질이 아닙니까? 즉 모든 파동은 운동의 한 형태 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움직일 것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빛은 아무것도 없는 진 공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빛은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내가 만일 [네이처]와 같은 학술잡지에 투고할 논문을 쓰게 되면 저와 함께 공동 저자가 되어 주겠습니까?' 홈스는 웃음을 참으면서 손을 들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왓슨. 자네 말차럼 빛이 진공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야. 우 리 인간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밤하늘의 별빛은 물론이고 세상을 밝게 비추어주는 햇빛도 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네. 그런데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과학자들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네. 그 문제를 알고 있 던 과학자들은 많았지. 그들은 우주 전체에 에테르라는 것이 군일하게 채워져 있다고 가정함으로 써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다네." "에테르라고 했습니까? 마취용으로 쓰는 약품을 말하는 겁니까?" "물론 아니네. 내가 말하는 에테르는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도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말하는 거야." 홈스는 두 팔을 활짝 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바로 그 에테르 덕분에 전자기 파동이 전달될 수 있다는 거네.기체와 고체가 비슷한 점이 있는 것처럼 에테르와 기체도 비슷한 점이 있지. 공기는 잠자리채의 망을 자유롭게 통과하잖나? 마찬 가지로 에테르도 아무 어려움 없이 단단한 물첼르 통과할 수 있다네. 물론 지구처럼 크고 무거운 덩어리도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주 특별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테르의 존재를 전혀 짐작도 못한다는 거야.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을 전달시켜주는 것이 바로 그런 특 별한 경우이지." "홈스, 빛이 진공 속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 으로 느낄 수도 없는 이상한 테네르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엉성하지 않습니까?" 나는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확실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은 에테르말고도 많지. 지구의 자 기장도 그렇지 않나?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존재한다는 에테르도 바로 그럴 거라는 말이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의도적으로 찻잔 속에 생기는 진동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면 결국 내 능력으로는 에테르를 이해할 수 없겠군요, 홈스. 그런데 홈스 박사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그런 것은 아니네, 왓슨. 그의 편지에 의하면 그 문제를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가지 증거들 때문에 답을 쉽게 알아낼 수가 없다고 하는군. 마이크로프트 형의 표현에 따르면 두 사람이 그렇 게 해달라고 협박을 했다는군." "정말입니까!" "놀라운 일이지? 알디시피 형은 사람 만나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이번에도 형 은 좋은 해결책을 찾은 셈이지. 형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언제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동생에게 슬그머니 떠넘겨버리는 고약한 버릇이 있거든. 물론 아주 기술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말 이야." 그는 자리에서 이러나서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내키지 않아. 어떻게 거절하면 좋을까? 형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 도 가끔씩은 인간이나 자연의 문제에 부딪쳐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런데 둘러댈 핑계가 잘 생 각나지 않네. 내가 정신 없이 빠져들어갈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누가 아주 흥미 로운 사건을 의뢰해주면 좋겠군, 와슨."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 초인종이 울리자 홈스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내 소원이 효력이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저게 누굴까? 맙소사!" 그는 갑자기 창문에서 돌아서더니 담배를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왓슨, 내가 외출 중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해주게."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지금 바로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왓슨!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네. 도대체 오늘은 왜 이 모양일까? 시 험 감독관이 잠깐 자리를 비웠거나, 도서관의 책이 제자리에 꼽혀 있지 않아서 당황스러운 날 같 군. 어쨌든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큰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그 순간에 문 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홈스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 히 하라는 신호를 한 후에 방문을 안에서 닫아버렸다. 나는 찾아온 사람이 누군인지를 알고 나서 야 홈스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일링워스 박사 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일링워스 박사의 표정에는 승리감과 분노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와슨 박사. 홈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방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 니다. 중요한 과학실험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비웃었던 홈스 씨에게 좋은 교훈이 될 그런 사건입니다." 나는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전정하시고 우선 이리 앉으십시오. 큰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요. 박사님께서 실험을 계속하기 어 렵게 된 모양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왓슨 박사,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젊은 사람의 인생이 비극적으로 망가져버렸습니다. 홈스 씨가 내 말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도 지금 그 젊은이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을 겁니다."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났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 일링워스 박사는 그것이 자신의 실험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어느 정도의 추리력은 있다 고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동정 어린 투로 말했다. "사망사고는 언제나 비극적이지요. 실험실에 아무리 완벽한 안전장치를 갖추어놓아도 위험요소 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 말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고라니요? 실험실은 또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화학 실 험실에서 살인사건이 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는 누군가가 쏜 고성능 소총에 맞아서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박사님.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홈스 씨는 지금 외출 중인데 오늘 사 무실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군요. 그러니까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가 연락이 되는 대로 박사님의 긴급한 용건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홈스가 나타났다. "무슨 말인가? 왓슨. 내가 여기에 없다니? 지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그래? 내가 벌써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나? 일링워스 박사님, 제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살인사건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요. 왓슨, 박사님의 외투를 좀 받아주겠나? 고맙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말씀해주 십시오." 내 입장이 정말 난처하게 되어버렸지만, 일링워스 박사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러니미드관에서 전에 말했던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그 건물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 니까?" "물론이지요. 80년 전에 돌아가신 러니미드 경이 천체학 발전을 위해서 케임브리지 대학에 기증 한 건물이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내 말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군요. 그렇습니다. 그 건물은 현재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 실험 에 꼭 알맞는 곳이죠. 그런데 내가 너무 바빠서 실제 실험을 맡아줄 조수를 채용하기로 했답니다. 이 실험을 맡게 되면 나같이 유명한 과학자와 개인적으로 사귈 수 있는 혜택이 있는데도 불구하 고 자원봉사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대하지도 않았던 젊은 여학생이 나타났 습니다. 그 학생은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박사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답니다. 물론 순전히 운이 좋았던 탓이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한 덕분에 꽤 유명한 아마추어 천 문가로 알려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정규 교육을 받기 않은 학생이 제대로 과학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자는 부엌일이나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다른 지원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녀를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내가 그녀에게 실험을 맡기 기로 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 젊은 남학생 두 명이 더 나타난 겁니다." "그래요! 그 여학생이 매력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홈스가 말했다.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렇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실험 을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이 번갈아 밤을 새우기로 했습니다. 세 학생이 공동으로 실험을 맡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메리 라탐 양이 실험을 하는 날이면 꼭 톰 핍스나 마틴 헤닝 스도 함께 일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남학생이 모두 함께 작업을 하는 날도 있었던 모양입 니다. 그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라탐 양이 혼자서 일하다가 실험을 모두 망쳐버릴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핑계였겠지요." 홈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세 학생 모두 케임브리지의 기숙사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남학생은 학칙 에 따라 반드시 기숙사에서 살아야 하지요. 다행히도 러니미드관은 런던과 펜랜드 사이에 있는 셸포드 역에서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야간에 운행되는 특급은 셸포드 역을 그냥 통과하지만 낮 에는 교통이 편리한 편입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헤닝스 군과 라탐 양이 일을 잘 해주었지요. 핍스 군도 두 번 결근을 하기는 했지만 열심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여섯 시 기차를 아깝게 놓쳐버렸기 때문 에 결근했다고 하더군요. 여섯 시 이후에는 특급만 운행되기 때문에 케임브리지와 러니미드 사이 의 교통이 아주 불편하게 됩니다." 홈스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핍스 군에 대해서 더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핍스 군은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더군요. 누군가와 심하게 싸웠는데 다행스럽게 도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 사건 때문에 가족들이 그를 인도의 친 척집으로 보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잘 적응해서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사 냥술이 뛰어나서 호랑이 사냥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사냥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코끼리를 이용하지요. 일류 사냥꾼이 된 그는 호랑이를 많이 잡아서 그 지역의 호랑이 수 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답니다. 인도에서 아무 탈 없이 1년을 지낸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지요.아주 어렸을 때 저질렀던 사 고가 오히려 그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시험관도 그의 합격에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핍스 순이 아주 뛰어난 것은 사실 입니다. 그렇지만 학교의 불도그들과 몇 차례 마찰이 있었답니다. 퇴학시킬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 았지만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나를 위해서 홈스가 설명해주었다. "불도그는 대학의 규율부와 같은 거네, 왓슨. 볼링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들은 일단 체포한 범인 을 절대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지. 계속 말씀해주시지요, 일링워 스 박사님." 일링워스 박사는 머리를 저었다. "사실 핍스 군은 이번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핍스군의 평소 행동을 보면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사건이 일어났던 어제 저녁에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답니다. 어제 저녁 에는 라탐 양이 일을 하고 있었고, 헤닝스 군도 함께 있었습니다. 라탐 양은 필름을 전망대에 설 치한 후에 바깥으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러니미드관과 인접한 건물의 옥상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 가는 계단은 시골 경치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장소랍니다." "밤에 그런 경치를 볼 수는 없겠지요." "글쎄요. 그렇지만 그것이 라탐 야의 설명이었습니다. 란탐 양과 헤닝스 군이 함께 서 있을 때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라탐 양이 설명을 들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은 그녀 가 심한 충격 때문에 사고 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레스트레이드 수사관도 이 사건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 사람은 훌륭한 수사관 인데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지요? 그래서 제게 오셨군요." "시실입니다. 그 사람은 이 사건을 삼각관계 같은 사랑싸움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과학 분야에 서의 심한 경쟁이나 방해공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내 주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군요." 홈스가 고개를 끄덕었다. "그렇습니까? 사건을 넓은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요. 왓슨, 함께 갈 수 있겠지? 좋습니다, 일링워스 박사님. 먼저 내려가 계십시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일링워스 박사가 나간 다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홈스를 바라보았다. "홈스, 정말 이 사건을 맡을 작정입니까?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의 짐작이 맞는 것 같은데요. 아까 운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홈스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왓슨,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를 보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내리면 절 대 안 된다는 것은 기억하겠지? 그것말고도 또다른 이유가 있네. 마이크로프트 형이 나를 찾아올 지도 모르지 않나? 어쩌면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가 함께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고 말야. 좁 은 방에서 하루 종일 고약한 과학자들과 골치 아픈 물리 문제로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자네처럼 좋은 사람과 한적한 시골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나?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의 의견 에 동의를 하더라도 나와 경찰의 관계가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왓슨, 이제 나와 함께 러니 미드로 가보세." 우리는 셸포드 역에서 기차를 내린 다음 이륜마차를 빌려서 2마일 정도 떨어진 러니미드로 갔 다. 마차가 평평한 펜랜다 지역을 여유롭게 달려가도 있는 동안에 일링워스 박사는 매우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홈스는 아무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 를 걱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지평선 너머로 번개가 쳤고, 10초가 지난 후에 큰 천둥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두 사람이 과학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겄이라고 생각했다. "번개와 천둥 사이의 시간 간격을 측정하면 폭풍우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답 니다. 소리는 1초에 330미터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저 폭풍으는 3.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에 있는 모양입니다. 서두르는 것이 좋겠군요." 일링워스 박사는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을 보듯 한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몰론 그런 결과는 번개 빛이 무한히 빨리 전달되는 경우에 맞습니다. 만약 빛의 속도가 소리보 다 10배 정도만 빠르다면 그 거리는 10퍼센트정도 줄어들어야겠지요." 일링워스 박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런 이야기가 옳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빛의 속도는 소리보다 100만 배 정도 빨 라서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답니다. 그래서 그런 오차는 아주 작을 겁니다."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하고 대답했다. "정말입니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군요. 어쨌든 소리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잘 알 지 못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일링워스 박사는 불괘한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차가 러니미드에 도착 할 때까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한 직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 했다. 우리가 육중한 현관으로 다가가자 관리인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안에는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레드스레이드 수사관이 검고 긴 머리에 강한 인상을 풍기는 여자와 함께 서 있었다. 레드트레이드 수사관은 우리를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홈스 씨. 왓슨 박사. 일링워스 박사께서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지만 사 건은 벌써 해결된 것 같습니다. 방금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증거를 설펴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는 손을 뻗어 두 개의 총알을 보여주었다. 그 모양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총알과도 달 랐다. 홈스가 총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독일산 마커 소총용 총알이 확실하군요. 두 발의 탄환은 같은 공장에서 함께 생산되었고, 같은 총에서 발사된 것이 분명합니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가볍게 말했다. "핍스 군이 전문 사격수라면서요?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구고 싶지만 저는 이제 가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군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핍스군의 알리바이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렇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우리와 함께 현관으로 가면서 수사관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라탐 양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으면 좋겠는데,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 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 다음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일링워스 박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젊은 여자를 불러세우면서 말했다. "메리 라탐 양, 여기 셜록 홈스 씨와 왓슨 박사에게 인사하고, 어제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 세히 이야기해주게. 나는 비가 더 내리기 전에 망원경을 살펴보아야겠네." 그렇게 말한 일링워스 박사도 바쁘게 사라졌다.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는 그 여학생이 우리를 방 으로 데려가서 의자를 권한 후에 말했다. "홈스 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와 마틴 그리고 톰과 함께 한 팀이 되어 일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계시지요?"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면 말했다.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진 모양이지요? 그렇지만 일링워스 박사와 친해지기는 그렇게 쉽 지 않지요? 나도 전에 그와 함께 빛의 속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사귈 수 있는 교수님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라탐 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잘못된 문제였군요. 얼마 전에 교수님은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달에 대한 자세한 관측을 했답니다. 이미 알려진 궤도가 정말 정확한가를 확인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최근에 발견된 목 성의 달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목성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시각을 정확히 측정했습니다. 달이 행 성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시각은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궤도 의 정확성을 확인하기에는 아주 좋은 자료가 된답니다. 그런데 우리 측정의 결과는 이미 알려진 궤도로부터 계산한 것과는 10분 이상 틀렸습니다. 그래 서 일링워스 박사는 목성의 궤도를 밝혀냈던 사람들이 형펀없는 능력을 가진 바보들이라고 주장 하는 논문을 학술잡지 [네이처]에 보냈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측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관측했을 때보다 목성이 지구로부터 2억 킬로미터 이상 더 먼 곳에 있었답니다. 일링워스 박사는 그런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답니다. 빛이 2억 킬로 미터의 거리를 도달하는 데는 10여 분의 시간이 걸리지요. 우리 측정이 10분 정도 틀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알려져 있었던 관측 결과는 정확했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일링워스 박사의 이번 실수는 더욱 부끄러운 것이었지요. 몇 년 전에 밝혀졌던 비슷한 차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유한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군요. 우연히도 왓슨 박사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었군요. 그런에 여기서 일하던 세 학생들은 서로 친했던 모양이지요?" "사실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가 나와 친구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바란다는 신호를 보낸 적 이 있었습니다." 홈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일에는 지장이 없었습니까?" "절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두 사람에세 동료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 지를 명백하게 볅혔답니다. 사실은 톰보다는 마틴을 더 좋아했지만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까지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홈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제 어제 밤의 일을 이야기해주겠습니까?" 그녀가 긴장한 태로로 대답했다. "홈스 씨, 제 말을 자세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은 내 이야기를 믿기 않더 군요. 저는 어제 밤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제 기억이 틀렸다면 천문 관측가 훈련을 받은 저에게는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지요. 어제 저녁에는 마틴과 내가 관측에 사용할 사진 필름을 준비했습니다.우리가 준비를 마쳤을 때 는 아직도 초저녁이어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옥상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서 있던 모습은 바깥에서도 잘 보였을 겁니다. 우리 둘은 아주 가까이 서 있었지요." "두 사람이 포옹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에 심한 총격이 가해진 것을 저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총소리가 들렸지요. 충격을 받은 그는 몸이 반바퀴 정도 빙그르 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이초 후에 다시 총성이 들리고 두 번째 충격이 있었습니다." "어는 쪽에서 총알이 날아왔는지는 기억합니까?" "아니오. 어느 쪽에서 발사된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그렇지만 옥상에 서 있었던 우리 모습 은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을 겁니다." 그녀는 아주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여러분. 제가 이곳의 주인인 셈인데 마실 것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녀가 나간 후에 홈스는 격렬하게 웃었다. "왓슨, 저 여학생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군요." 홈스는 머리를 저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서가 아주 이상하군, 왓슨. 총알의 충격이 있은 다음에 총소리가 들렸다고 하 지 않았던가?" "홈스,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 숨어 있던 병사가 쏘았던 총소리 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총알이 소리보다 더 빨리 날아가는 총이 있답니다. 그런 총을 사용했다면 총알이 목표물에 닿 은 다음에 총소리가 들리게 되지요. 그런 총은 아주 위험한 무깁니다. 몸을 움츠릴 수 있는 몇 분 의 일초의 여유도 없기 때문에 정말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와슨, 나도 그런 총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네. 그런데 두 번째 총알의 경우는 정반대였 잖나? 그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두 번째 총알은 총소리보다도 늦게 도달한 셈이로군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정말 이상한 이야기네, 왓슨. 그 여학생의 말이 맞다면 첫 번째 총알은 총소리보다 적어도 10분 의 1초 이상 먼저 빨리 도달했고, 두 번째 총알은 10분의 1초 이상 늦게 도달한 셈이네. 그렇지 않다면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겠잖나?"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어쩌면 총알이 아주 엉터리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는 않지, 와슨. 소음총에는 일반 탄환 대신 특별히 제작된 탄환을 사용하건든. 그런 특제 탄환은 발사 때의 속도가 정확하게 음속이 되도록 정굑하게 제작된, 품질이 아주 우수한 것이지. 그래야 탄환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발사음이 먼저 도달하지 않게 되거든. 뿐만 아니라 탄환 이 날아가는 동안에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게 되도록 그 모양이 유체동역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 다네. 그러니가 메리 양의 이야기와는 전혀 같을 수가 없지.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왜 그녀의 말 을 믿지 않는가 알겠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믿고 싶군." 그때 문 앞에 다가온 일링워스 박사가 말했다. "그 사람은 고집이 너무 세어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홈스 씨 는 이미 파악하셨겠지요?" 내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탄환의 발사 속도가 서로 다른 총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어쩌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탄환이 더 있을 수도 있고요. 만약 질투심에 정신이 나간 연인이 저지른 사건이라 면 범인이 하나뿐이 었을 텐데, 범인이 두 사람이 이상이라면 다른 이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 는 뜻이겠군요." 일링워스 박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메리 양이 차를 가지고 돌아오자 복도로 사라져버 렸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모종의 방해공작일 것이라는 일링워스 박사의 망상 같은 주장이 옳을 지도 모르겠군 요. 만약 일링워스 박사가 정말 획기적인 발견을 할 것이 확실했다면 경쟁자들이 무슨 일을 저질 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메리 양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렇지요. 저도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톰은 범인이 아니겠지요? 톰은 성격이 괴팍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신이 나갔군요. 어제 저녁에 톰이 여기 없었던 것을 밝혀줄 확실한 증거가 있답니다." 홈스는 그녀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레스트레이드 수사관이 확인하겠다는 알리바이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알리바이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케임브리지 학생들은 특별한 이 유가 없을 때는 해가 진 후에 교내에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겠시겠지요? 그런데 어제 저녁 열 시 경에 누군가가 올드 칼리지 기숙사의 쪽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기숙 사의 경비원이 문을 열었을 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괴한이 갑자기 그를 밀치고 안으로 뛰어들 어왔답니다. 경비원이 두 사람의 불도그와 함께 괴한을 붙잡아서 머플러를 벗겨보았더니 그 괴한 이 바로 톰 핍스였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 얼굴을 가리고 침입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셈이지요. 시내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늦게 돌아오는 학생들이 사감에게 들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가끔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런 정도는 아 주 경미한 사건이기 때문에 경비원은 톰의 이름을 적어놓기만 하고 그를 방으로 돌려보냈다고 합 니다. 창피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톰의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톰의 얼굴을 잘 아는 경비원이 잘못 보았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톰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경비원이 그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없겠지요. 더욱이 여섯 시 이후에는 런던에 서 오는 기차가 셸포든 역에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톰이 사건을 저질렀다면 그렇게 빨리 케임브 리지로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겁니다." 홈스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메리 양의 알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군요. 여기 어디에 잠시 동안 파이프를 피우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왓슨, 내게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줄 수 있겠지? 그럼 두 사람 모두 이따가 다시 만납시다." 내가 건물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또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 다. 러니미드관은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아주 실망스럽게 보였다. 주변에 있는 큰 건물과 어울리지 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석조 건물 옥상에 설치된 금속제 돔도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나는 잠시 후에 밖으로 나온 라탐 양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와 라탐 양이 프랑스식으로 만들어 진 웅장한 현관 앞을 지나고 있을 때 현관 문이 벌컥 열리먼서 홈스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라탐 양, 이곳을 지나는 철길이 있는 곳이 정확하게 어딥니까?"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부근의 지형은 풀밭 위의 오소리가 다니는 길까지도 확실 하게 보일 정도로 편평했고 어디에도 철길의 흔적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라탐 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50걸음 정도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깊고 좁게 파인 계곡이 있었고, 그 계곡에 철길이 있었다. "홈스 씨, 이곳에 철길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철길이 이런 계 곡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차가 지나가더라도 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는답니다. 사실은 그나마도 이곳에 철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주의깊 게 보고 있어야만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홈스는 자신 있게 말햇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나도 철길이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않았습니까? 철길이 가 까이 있어야만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세 요. 탄환은 정확하게 초속 330미터로 발사됩니다. 공기 중에서 음속도 초속 330미터이지요. 이번 사건에서는 두 발의 탄환이 발사되었습니다. 물론 두 발의 탄환이 발사될 때 총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처음 발사된 탄환은 음속보다 더 빨리 날아갔고, 두 번재 탄환은 그 반대로 음속보다 느리게 날아갔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 총은 어느 곳에 있었을까요?" 라탐 양과 나는 어리둥절해서 홈스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환이 발사될 때 총 자체가 움직이고 있었 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어제 오후에 핍스 군은 런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특제 총을 취급하는 상점에 가서 소음총을 구입했지요. 물론 가명으로 위조된 면허증을 제시했을 겁니다. 그후에 그는 리버플 역으로 가서 케임브리지행 여덟 시 특급 열차의 승차권을 구입했습니다. 특 급 열차의 빈 객실에 승차한 그는 기차가 달리고 있는 동안에 창문을 통해서 기차 지붕으로 올라 갔습니다.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진 젊은이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기차가 이 근처의 계곡을 지나갈 때 지붕에 앉아 있던 그는 이 건물의 옥상을 잘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기차가 지나갈 시간에 라탐 양이 전망대 바깥에 나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가 선택한 시간은 자신이 총을 겨누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밝지만, 옥 상에서 주변을 자세히 알아보기에는 너무 어두워진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기차가 건물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적당한 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 을 겁니다. 그 순간에는 목표물의 각도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라 하더 라도 정확하게 조준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목표물이 정확하게 기차의 앞쪽에 있게 되는 때 는 가장 좋은 순간이었을 겁니다. 저격수는 바로 그 순간에 총을 쏘았겠지요. 탄환이 총구에서 발사되었을 때는 초속 330미터에 기차의 속도를 더한 속도로 날아갔을 겁니다. 기차의 속도는 대락 초속 30미터 정도였겠지요. 그 래서 탄환은 총소리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발사된 셈입니다." 내가 홈스의 말을 막고 물었다. "잠깜만요, 홈스. 어쩌면 음파도 마찬가지로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게. 음파를 비롯한 모든 파동의 진행속도는 파동이 처음 발생되는 곳의 속도에 의 해서가 아니라 파동을 전달해주는 매질의 기준으로 결정된다네. 그래서 만약 바람이 뒤쪽에서 불 어온다면 땅을 기준으로 측정한 음파의 진행속도는 빨라지지. 그렇지만 총이나 트롬본과 같은 음 파 발생 장치가 움직이는 속도는 음파의 진행속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네. 그대신 음 파 발생 장치가 움직이게 되면 파동의 파장이 바뀌게 되지. 바로 우리가 도플러 효과라고 부르는 거야. 우리가 기차길 옆에 서 있을 때 다가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멀어져가는 기차의 기적 소 리보다 높은 음정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효과 때문이라네. 음파의 파장이 짧을수록 음 적이 높게 느껴지지." "그렇군요. 두 번째 총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탄환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사되었겠지. 다만 이번에는 기차가 건물로부터 멀어지고 있 었을 뿐이네. 그러니까 탄환은 기차의 속도만큼 느리게 날아갔지. 몰론 그 이후의 알리바이도 아주 간단하게 설명된다네. 핍스 군은 기차의 지붕에서 객실로 기어 내려갔고, 기숙사에 돌아간 시각이 기록에 도록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소동을 벌였던 거네. 핍스 군이 러니미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기숙사로 그렇게 빨리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을 테니까." 다음날 아침, 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특급 열차에서 홈스가 설명했다. "왓슨, 이 사건 때문에 마이크로프트 형이 제기했던 문제도 함께 해결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 었군." 그는 두 손을 비볐다. 홈스가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알려진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와 맞설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뻐했다. "우리 함께 생각해보세, 왓슨. 만약 빛이 입자라면 그 입자는 빛을 내는 광원의 속도와 같은 속 도로 진행하겠지. 그렇지만 빛이 에테르 속을 진행하는 파동이라면..." "그렇다면 빛의 속도는 에테르가 움직이는 속도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바로 그렇지. 그런 상황을 기차를 예로 들어서 설명할 수 있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기관차와 열차의 끝에 달려 있는 감시용 객차 이외에는 모두 높이가 낮은 화물차로 구성되어 있는 기차를 생각해보세. 그리고 감시용 객차에 타고 있는 감시원이 어떤 이유로 기관사를 저격 하려고 하네. 만약 기차가 정지하고 있을 때 총을 쏘면 기관사에게 탄환이 도달하는데 1초가 걸 린다고 하세. 즉 총을 발사하면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 동안 살아있게 되는 셈이지." "이해가 됩니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싶은 기관사가 기차를 가속한다면 감시원이 쏜 탄환이 기관사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네. 기관사는 날아오는 탄환을 피해서 도 망가고 싶어하지만 총과 탄환도 기차와 정확하게 같은 정도로 가속이 되기 때문이지. 즉 기차 위 에서 탄환이 날아가는 속도는 기차가 움직이지 않을 때와 정확하게 같기 때문에 기차가 아무리 빨리 가속되어도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 후에 죽게 되네." 내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기관사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리고 있는 기차에 타고 있는 감시원의 기분은 어떨까요?" 홈스는 내 말을 무시했다. "이제는 감시원이 기관사를 위협하려고 공포탄을 쏘는 경우를 생각해보기로 하세. 기차의 길이 가 330미터이고 기차가 정지해 있다면 기관사가 감시원의 총소리를 듣게 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겠나?" "다연히 1초가 결리겠지요." "만약 기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하!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차는 공기 속으로 달리고 있는데 소리를 전달해주는 역할 을 하는 공기는 정지하고 있는 셈이로군요. 그러니까 기관사가 총소리에 놀라게 되는 것은 1초가 약간 지난 다음이 됩니다." "아주 훌륭하네, 왓슨. 이제야 탄환과 소리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한 모양이군. 이제 감시병이 총 대신에 사진사가 사용하는 플래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가해보세. 플래시에서 번쩍 하는 빛이 기관 사에게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해보면 어떻게 될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측정을 한다고 해보세. 기차가 가만히 서 있는 경우와 아주 빠른 속력 으로 달리고 있는 경우 말이야. 두 경우에 걸리는 시간이 정확하게 같다면 빛이 입자라는 뜻이 될 거야. 총에서 탄환이 발사되는 것처럼 플래서에서 입자들이 발사된 셈이겠지. 만약 기차가 달 릴 때 걸리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다면 빛은 에테르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라는 뜻이 되 네." "참으로 절묘한 실험이로군요, 홈스." 홈스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말로 마이크로프트 형이 놀라게 되었군. 정말 놀랄 거야." 기차가 런던 역에 도착하자 그가 다시 말했다. "사무실로 가기 전에 형에게 들러보아야겠네. 나중에 만나세." 30분쯤 후에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마이크로프트 홈스 박사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좋은 아침이네, 박사. 베이커 부인이 친절하게도 여기서 동생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네. 그런데 셜록은 함께 오지 않았나?" "정말 안타깝게 되었군요. 홈스 씨는 자주 가시는 클럽으로 바로 갔답니다." "그래! 정말 잘되었군. 사실은 디오게네스에 있으면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를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여기로 온 것이라네. 지금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말이네." "그렇다면 더 잘되었군요. 홈스가 파동과 입자의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 답니다. 홈스가 직접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면 더욱 잘되었군요." 홈스 박사는 눈썹을 꿈틀했다. "정말인가? 박사. 그렇다면 정말 잘된 일이군. 도대체 어떤 방법이라던가?" 나는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홈스가 보여준 그림을 그려놓고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런데 홈 스 박사는 조용히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 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박사. 아주 잘 설명해주었네.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놀 랍고,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재미있군. 그런데 사실은 그런 실험은 오래 전에 끝난 것이라네." "정말입니까? 진짜 기차를 이용해서 실험을 했나요?" "기차를 이용해서 그런 실험을 할 수야 없지. 빛의 속도아 비교하면 기차가 너무 느리거든. 기차 의 속도를 빛의 속도와 비교하면 천만 분의 일도 안 되니까. 그래서 시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 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실험도구가 전혀 없다네. 그런데 자연현상을 이용하서 똑같 은 실험을 할 수가 있지. 펜 좀 빌려주겠나?" 그는 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 중에는 이중성이라는 별들이 상당히 많다네. 이중성이란 두 개의 별이 모여 서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 두 별은 크기가 아주 달라서 지구가 태양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작은 별이 큰 별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경우도 많네. 그런 별들은 지구에서 아주 멀 리 떨어져 있어서 별빛이 지구에 돌달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리지. 그렇지마나 현대의 졍교한 망 원경을 이용하면 그런 이중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네. 그런 관측에 의해서 이중성 의 움직임이 잘 알려진 뉴턴의 법치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 두 별 중에서 작은 별은 초속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었네. 그런데 이제 빛이 입자라고 생각해보세. 작은 별이 회전하는 궤도를 살펴보면 한쪽에서는 별이 우리에게서 멀어지지만, 반대쪽에서는 거꾸로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게 되네. 그 래서 빛의 속도는 아주 작기는 하지만 한쪽에서는 느려지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빨라지게 되겠 지. 그 속도의 차이는아주 작지만 별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지구에 도착하는 시 간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네. 즉 우리에게 다가오는 쪽에서 방출되는 빛은 빨리 도달하게 될고, 멀어지는 쪽에서 방출되는 빛은 늦게 도달하게 되겠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망원경으로 관찰한 궤도의 모양은 뉴턴의 법칙에 맞을 수가 없게 되는거야." "아하! 그러니까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셈이로군요!" 홈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바로 얼마 전에 이루어진 실험 결과가 알려질 때까지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네. 그런데 알다시피 지구는 태양 주위를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회전하고 있네. 그러니까 봄과 가을에 같은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비교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러면서 그는 두 번째 그림을 그렸다. "만약 태양도 역시 에테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생각해보세. 그 속도를 미리 알 수는 없겠지 만 만약 그렇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할 때 봄과 가을에 지구가 별을 향해서 움직이는 속력 의 차이는 초속 60킬로미터보다 훨신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무시할 수 없을 걸세. 다시 말해서 우리가 측정하는 빛의 속도는 에테르 속에서의 상대적인 속도에 따라서 다를 것이 기 때문에 봄과 가을에 한 실험의 결과도 서로 다를 거란 말야. 바로 그 차이를 알아내면 에테르 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가를 밝힐 수 있다는 거지." 아마도 내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역력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실험이 바로 셜록이 고안했다는 기차 실험과 똑같은 것이라네, 박사. 다만 기차의 경우 와는 달리 지구가 움직이는 속력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좀 불편할 따름이지." "실제로 어떤 결과가 얻어졌습니까?" "봄과 가을에 했던 실험에서 빛의 속도는 정확하게 똑같다고 밝혀졌다는 군." 나는 골치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에테르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효과라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로군요. 방금 빛은 입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제는 에테르 속에서 전파되는 파동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빛이란 무엇입니까?" 홈스 박사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했군, 박사.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이 하나 있기는 하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빛은 에테르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구와 지구를 둘 러싸고 있는 공기처럼 빛이 투과하는 에테르도 움직임에 따라 뒤쳐지는 빗물질적인 특성을 가지 고 있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에테르에 의한 마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지만 에테르가 그런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는 정말 어렵네. 만약 그렇다면 에테 르에 의한 마찰이나 소용돌이가 에테르에 의해서 전파되는 빛이 전파되는 방향에 영향을 줄 거 야. 그런면 균일하지 않은 유리로 만든 창이 달린 기차에서 바깥 경치를 내다보는 것처럼 지구에 서 바라보는 별자리의 모양도 물결치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달라져야만 할 거네." 홈스 박사의 이야기는 너무 기가 막혀서 도저히 심각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혼란에 빠진 내가 말해싿. "더 정교한 실험을 하면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네, 박사.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 라는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정확하게 해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거야." 나는 좀더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녹초가 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다른 화제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더욱이 홈스 박사처럼 훌륭한 학자에게는 내 이야기가 하찮게 들릴 것이 확실했다. 바로 그 순간에 조간신문이 눈에 띄었다. 신문 뒷면에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수수께끼가 있었다. 나는 답ㅇ르 짐작도 못할 그런 문제였지만 홈스 박 사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도 같았다. 만약 홈스 박사도 쉽게 풀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면 내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도 같았다. 나는 신물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한 젊은이가 술도가의 마차에 치였습니다. 중상을 입은 젊은 이는 마차로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져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메스를 들고 환자를 내려다본 외과 의사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는 '내가 직접 아들 을 수술할 수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이제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가 아 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고 웃었다. 바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몇 시간이나 애를 썼던 나는 기분이 몹시 상해버렸다. 나는 이혼이나 입양 또는 이상하게 얽힌 가족 구조도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내가 말했다. "이 문제에 어떤 속임수가 감추어져 있는 모양이군요?"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무척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네. 아무런 속임수도 없다네, 박사. 사실 그런 사고는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술도가의 일꾼들은 배달을 갈 때마다 술을 한 잔씩 대접받는 것이 관행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이 도 시의 모든 시민을 마차로 치어 죽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지. 그렇지만 박사, 아주 그렇듯한 문제이기는 하네. 답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선입견 때문이라네. 일단 답을 알고 보면 너무나도 쉬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지. 박사가 그런 선입 견ㅇ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심도 하 지 않는 것이 문제지. 힌트를 하나 줄까? 미국인처럼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그 답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수수께끼라고 할 수도 없을 걸세. 50년 정도 지나면 영국도 마찬가지가 되겠지."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그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는 아니지. 그녀는..." "환자의 어머니였군요." "그렇지. 지금까지 박사의 경험에 의하면 외과의사는 언제나 남자였을거네. 그러나 여자 외과의 사도 있을 수는 있지 않나?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선입견 때문에 혼란에 빠지게 되 지." 나는 다시 신문을 집어들었다. 방금 풀었던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제 이 문제를 풀어보시지요. 시계를 읽을 줄 모르는 별난 귀족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시각 을 알고 싶을 때면 언제나 하인에게 물어보아야 했답니다. 그러나 외출 중에는 남들이 자신의 그 런 비밀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그 하인에게 시각을 물어보곤 했답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가 전화를 걸어서 '판쇼우, 몇 시인가? 여섯 시? 고맙네'라고 말하는 것을 다른 귀족이 우연히 듣게 되었답니다. 그는 '아닙니다. 지금은 일곱 시입니다.'라고 고쳐주었답니다." 나는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런데 시각을 말해주었던 하인도 옳았고, 시각을 고쳐준 다른 귀족도 역시 옳았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홈스 박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도 역시 선입견에 대한 거군. 박사, 역시 50년 정도가 지나면 어떤 바보라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걸세.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야.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이곳 영국이 낮이면 오스트레일리 아는 밤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걸세. 사실 해가 뜨는 시각은 그 지방의 경도에 따라서 다르 네. 그리고 그 지역에서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오는 시각을 정오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 리하겠지. 그리고 최근에는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의 해협에 설치된 전보용 케이블에 전화용 케이블도 함 께 가설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몰랐나? 사실이라네. 그리고 프랑스로 여행을 가면 승무원이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돌리도록 당부하는 것을 기억하겠지?" "아하! 그러니까 그 귀족은 그 귀족은 프랑스에 있었고, 하인은 영국의 집에 있었던 것이로군 요." 홈스 박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네, 박사. 또다른 수수께끼가 있나? 내가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 지 않다네." 나는 드디어 그의 약점을 알아냈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 있습니다." "누군가?"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지요. 빛의 속도에 대한 수수께끼 때문에 궁지에 빠지지 않으셨습니 까? 그 문제도 역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선입견 때문에 어려운 것이겠지요?" "훌륭하군, 박사." 그렇게 말한 홈스 박사는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입을 반쯤 다물고 손가락으로 의자의 손잡 이를 초조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온 몸이 굳어지면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나는 점점 넌처한 입장이 되었다. 런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을 너무 혼 란스럽게 만든 것일까? 다생스럽게도 바로 그 때 홈스가 돌아오는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 방으로 돌아오자 홈스 박사도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셜록! 너의 기차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왓슨, 박사에게서 들었는데, 정말 고맙군." "그렇습니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실험이 이미 오래 전에 고안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요? 사실입니까?" "사실이야. 정말이지. 그렇지만 기차와 같이 익숙한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이 천재들의 재주지. 기리고 왓슨 박사에게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네. 왓슨 박사는 문제의 핵심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 니지만 대화를 통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모 양이야. 왓슨 박사의 그런 재주 덕분에 지금까지 생각해보았던 과학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을 해결하게 되었어."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까? 길이가 정확하게 똑같은 기차가 나란히 서 있다. 두 기차 모두 제일 뒷칸에는 플래시가 설치되어 있고, 앞쪽에 타고 있는 기관사는 초시계를 가지고 광신호가 기차의 길이만큼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다.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기차의 길이는 빛이 1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와 같다고 생각해보고..." 내가 끼여들었다. "엄청나게 긴 기차겠군요. 30만 킬러미터나 될 테니 말입니다." 홈스 박사가 웃었다. "그것이 바로 사고 실험의 장점이네, 왓슨 박사. 어떤 장치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 지 않나? 나란히 놓여진 선로 위에 두 기차가 서있네. 한 기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고, 다른 기차는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 서 있는 기차를 지나가는 걸 세. 그 속력이 빛의 속력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하세." 홈스도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기관사들이 부러워하겠군요." 홈스 박사는 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이 그림에서처럼 달리는 기차의 신호수와 서 있는 기차의 신호수가 나란히 서 있게 되는 순간 이 있을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플래시가 번쩍..." 나는 그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하! 그런데 그 플래시는 서 있는 기차에서 터진 겁니까? 아니면 달리는 기차에서 터진 겁니 까?" "어느 경우라도 좋네, 박사. 원한다면 서 있는 기차에는 붉은색 플래시를 설치하고, 달리는 기차 에는 푸른색 플래시를 설치한 다음 두 플래시를 동시에 터뜨려도 좋네. 기차의 움직임과는 상관 없이 붉은빛과 푸른 빛은 같은 속도로 전파되겠지. 관찰자가 어느 기차에 타고 있거나 상관없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찰자가 움직이는 속도와는 무관하게 붉은빛과 푸른빛이 정확하게 같은 시 각에 도달하는 것을 보게 될 거야. 그런 사실은 이미 실험으로 확인되었지. 이제 두 사람의 관찰자에게 두 색깔의 빛이 도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물어보세. 서 있는 기 차의 기관사는 '정확하게 1초'라고 할 것이고, 달리는 기차의 기관사도 역시 '정확하게 1초'라고 말하겠지."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어서 외쳤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마이크로프트 박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 이제야 이 역설의 핵심을 알아채셨군.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실험으로 확인된 사실이라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몇 가지 들어 있지. 나도 조금 전에 왓슨 박사가 읽어주었던 수수께끼 덕분에 그 실마리를 찾게 되었네. 적어도 두 가지 가설이 문제가 되지. 하나는 과연 시간이 두 관찬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관찰자에게 거리도 똑같은가 하는 거야. 우리가 흔히 빠지게 되는 편견은 제쳐두더라도, 내가 방금 이야기한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만약에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줄어든다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겠지. 또는 달리는 기차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물론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 로 일어나도 되겠지." 내가 물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우리의 경험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홈스 박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실 우리의 경험은 극도로 제한된 것이지. 박사는 평생을 지구 위의 한 곳에서만 살아왔네. 박 사의 그런 경험 때문에 시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이고, 지구 중력도 일정한 크기와 방향을 가지 고 있으며, 박사가 서 있는 땅이 안정한 상태로 정지하고 있는 편편한 것이오 생각하게 되었네. 만약 먼 곳으로 여행을 가보면 그런 경험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이해하게 되지. 지구는 평 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고, 시각도 지역에 따라 다를뿐만 아니라, 해수면보다 산꼭대기에서의 중력 이 더 작고, 지구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맴돌고 있네. 그러나 그 런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내려고 노력해야만 하고, 보통보다는 훨씬 더 정교한 감 각으로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하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 대한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아내게 된 것은 수백 년전이었다네. 그렇지만 아 직도 우리가 사용하는 측정장치는 엉성한 면이 있고,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도 제한되어 있지. 우리가 '보편적 상수'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정말 보편적인 것은 몇 개나 되겠나? 우리가 더 멀리, 더 빨리 여행하더라도 그 값이 변하지 않는 그런 상수 말일세. 내가 방금 설명한 공간과 시간의 수축은 인간이 현재 달성할 수 있는 속도에서는 그 정도가 지 극히 작아서 우리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다네. 이제 다시 우리의 사고실험으로 되돌 아가서 구체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거나 갈이가 줄어든다고 생각했지. 어 쩌면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일어날 수도 있을 테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일까를 생각해보는 걸세.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길이가 줄어들거나 실계가 느리게 가는 현상은 자 신이 타고 있는 기차가 아니라 정지하고 있는 기차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 에 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절대적으로 정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어. 그렇기 때문 에 관찰자가 어느 기차에 타고 있거나 상관없이 서 로 동등한 상대적인 시각을 가질 수가 있는 거지. 아주 중요한 사실이야! 그것을 바로 '상대성의 원리'라고 한다네. 그런데 기차가 아무리 빨리 움직이더라도 기차의 폭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만약 달리는 기차의 길이가 줄어든다면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는 것처럼 서 있는 기차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걸세. 그런데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서 있는 기차가 자신이 타고 있는 달리는 기차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러니까 관찰자가 어 느 기차에 타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이는 현상이 서로 모순되는 역설이 되는 셈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새로운 종이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달리는 기차의 벽에 거울이 달려 있고, 그 반대쪽은 창문이라고 하세." "그런 장치를 갖춘 왕실 전용 기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최근에 보았던 사진을 기억하고 말했다. 그 기차를 디자인한 사람은 아주 유명한 실내장식 전문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홈스 박사는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플래시를 들고 기찻길 옆에 서 있네. 우리가 들고 있는 플래시에서 나온 빛이 적당한 각도로 달리는 기차의 창문을 통과해서 벽에 걸린 거울에 반사된 후에 다시 창문을 통과해서 되 돌아나온 빛을 기찻길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찰자가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거네." 나는 감탄해서 소리쳤다. "어렸을 때 그와 비슷한 장난을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통학 열차에서 내린 후에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고무공을 적당한 각도로 창문으로 던져놓어서 다른 창문으로 퉁겨나오도 록 했었지요. 물론 실수를 해서 고무공을 영원히 잃어버린 경우도 있었지요. 마음씨 좋은 승객이 공을 다시 던져주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마이크로프트 박사는 말을 계속했다. "이 그림에 몇 개의 숫자를 적어보세."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싫증이 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수학 이야기라면 내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이만 실례해야겠군요. 방금 할 일이 생각났답니 다..." 그런 나를 보고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왓슨, 수학 문제로 자네 골치를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을 약속하지." 홈스 박사는 꼼짝 않고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피타고라스의 직각 삼각형 정리도 너무 어려운가?" 나는 안심하고 대답했다. "그 정도라면 다행이군요. 학교에서 배운 수학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겁 니다." "그런가, 그러면 피타고라스 정리만을 이용해서 설명하도록 하지. 기차의 폭이 4미터라고 하지. 플래시에서 나온 빛이 창문을 통과해서 거울에 닿을 때까지의 거리가 5미터가 되는 각도로 비추 어졌다고 하고. 그럼 그 빛이 다시 창문을 통해서 나올 때까지는 모두 10미터의 거리를 지나가겠 지. 그리고 기차가 빛의 속도의 10분의 6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인다면 기차는 빛이 거울에 닿을 때까지 3미터를 움직이고, 거울에서 반사되어서 창문으로 돌아나올 때까지 다시 3미터를 움직여 서 모두 6미터를 움직이게 되겠지." 그는 그림에 그 숫자들을 적어넣었고, 그 그림을 본 내가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변의 비가 3:4:5가 되는 삼각형이로군요. 3의 제곱 다하기 4의 제곱 은 9 더하기 16, 즉 25가 되고, 그것이 바로 5의 제곱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직 각삼각형이로군요. 그렇게 멋진 숫자가 나오다니 정말 행운이로군요." 홈스도 웃으면서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형, 정말 멋지군요. 이제부터 형은 장난 같은 이런 이야기가 기차를 타고 있는 여 왕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를 설명하겠군요. 왓슨 박사가 젊었을 때 고무공을 던졌던 것과 같은 경우겠지요?" 내가 놀라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난 짐작도 못했는데요!" 홈스 박사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셜록. 기차에 타고 있는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빛이 창문으로 들어와서 열차 안을 지나 간 다음에 거울에 수직으로 반사되어서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 빛은 기차 안에서 최단 경로를 따라서 진행한 다음에 다시 수직으로 반사되었기 때문에 빛이 진 행한 실제 거리는 모두 8미터에 지나지 않게 되네." 홈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빛이 10미터를 진행한 것으로 느껴지지만, 기차 안에 있는 여왕에게는 8미터밖에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단느 이야기로군요. 한편 빛의 속도는 누 구에게나 같기 때문에 기차가 빛의 속도의 10분의 6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인다면 시간은 보통 속도의 5분의 4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군요." "셜록, 정확하게 이해했구나. 피타고라스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일반적인 식을 이용해서 설명해줄 수도 있지. 저 흑판에 써 있는 낙서는 지우면 안 된느 거냐?" 그렇게 말한 그는 홈스가 나와 허드슨 부인에게 전할 메모를 적어두기 위해서 사용하는 작은 흑 판 앞으로 걸어갔다. 망설이던 홈스가 말했다. "잠깐 살펴봅시다. 파머스턴 독살사건이라. 그 사건은 벌써 마무리 된것이니까, 좋습니다. 지워버 려도 되겠군요, 마이크로프트 형." 홈스 박사는 흑판을 깨끗하게 지운 다음 복잡한 식을 쓰면서 말했다.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경우에 시간이 흘러간느 속도를 계산하는 식은 이렇게 쓸 수 있지."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계속했다. "모든 관찰자에게 빛의 속도가 같다면 움직이는 관찰자에게는 거리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어야만 할 거야." 그러면서 그는 두 번째 식을 썼고, 나는 그 식들을 이해해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기차역에서 서 있는 사람이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 길이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차 를 타고 있는 사람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까?" 마이르코프트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네, 박사. 그런 효과는 보통 기차에서도 일어나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작아서 특별한 장치 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감각만으로는 느낄 수가 없을 뿐이지. 사실은 박사도..." 바로 그 순간에 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찾아왔는지 알아맞춰볼까요, 마이크로프트 형? 내가 클럽에 갔을 때 챌린저 교수와 서멀 리 교수가 곧 그곳으로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형이 내 사무실로 갔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두 분을 이리로 오시라고 내 마음대로 부탁했습니다. 형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분들에게 직접 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형은 아직도 빛이 파동인가 아니면 입자인가에 대한 논란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빛이 보 통의 입자나 파동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확살하게 밝혔군요. 두 교수 중에서 어느 분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것인가는 형의 마음이지요. 두 분이 모두 틀렸다고 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형과 내게 그렇게 심한 거부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왓슨과 내가 형을 도와드면 좋을 텐데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답니다. 왓슨! 아 무 말도 하지 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벌써 늦었군. 아!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들. 허드슨 부 인에게 다과를 준비하도록 부탁하겠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내가 홈스와 함께 스트랜드의 심슨 씨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형님께서 머리가 약간 이상해지신 것 같지 않아요? 기차가 달리면 공간과 시간이 엄청나게 변 형이 된다거나, 또는 심오한 과학 측정에서의 사소한 오차에 불과한 것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 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홈스는 내 말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나? 왓슨. 자네는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증거를 좋아하지? 그래서 코끼리의 발자 국만 보고 코끼리가 가까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자네는 믿지 않겠지. 긴 코와 펄럭이는 귀를 가진 거대한 회색 동물이 바로 눈앞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거야. 몰론 그 동물이 자기 발로 서 있으 면 더 좋을 테고 말이야. 교활한 사기꾼보다 그런 사람을 속이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 그러나 적당한 시가가 되면 자네도 만족할 만큼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공 상 소설가인 베른과 웰스의 꿈들이 100년 이내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야. 인공적으로 만 든 환상적인 비행체가 하늘을 날아다니게 될 걸세. 그렇게 되면 공간과 시간의 뒤틀림도 아주 단 순하고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게 되겠지. 지금은 그런 증거를 보여줄 수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믿겠나?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자네가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도 말일세! 자기 북극이나 달의 뒷면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지. 그런 자네에게도 희망은 있 다네. 어쨌거나 자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전세 마차를 조심하게. 그렇지 않으면 그 마차의 존재 증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