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과학 미스테리 지은이: 콜린 브루스 출판사: 까치 봉사자: 한양 대학교 최 은하 1. 귀족 과학자 "왓슨, 통속적인 과학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게나." 나는 삽화로 가득한 교양 과학 잡지를 읽고 있었고, 홈스는 맞은편에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한가한 모습으로 앉아서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내 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내 안목을 조금 넓혀보려고 하는 것뿐인데, 어려운 과학 아야기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앉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왓슨, 그럴 리가 있나.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게! 그런 책을 통해서 보고서처럼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지성인답게 스스로 생각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한 것뿐이네..." 홈스는 잡지의 표지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읽고 있었나? 별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지구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 대답했다. "이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공상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 머신(The Time Machine)]을 대강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홈스는 내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왜 그러세요, 홈스. 나도 뭔가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나를 가르쳐주는 것은 좋지만 어려운 수학은 정말 질색입니다." 홈스는 웃으면서 오른손을 올리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좋아, 왓슨. 골치 아픈 수학 문제로 자네를 괴롭히지는 않도록 하겠네. 날 믿으라구. 사실 수학 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과학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네. 자세한 계산 내용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내 상각에 과학은 너무 딱딱해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거대한 우주와 비교해보면 그것들이 아주 사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딱딱한 과학보다는 더 흥미롭지 않나요?" "왓슨, 내가 어떤 사건을 맡는가를 보면 알겠지만 그점에서는 나도 완전히 동감하네. 그러나 언 제나..." 바로 그 순간에 낯선 사람이 등장해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어버렸다. 우리가 이야기에 너무 몰 두해서 아래층 소리에 신경을 쓰지 못한 모양이 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젊은 사람이 뛰어들어왔다. 좋은 옷을 입기는 햇지만 눈이 험상궂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셜록 홈스 씨입니까?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아 버지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아버님께서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버지께서 살해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 경찰이 살해범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홈스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지요?" "나는 포레이 자작이고, 아버지는 포레이 경입니다. 아마 아버지 성함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 버지는 유명한 고전학자이셨고, 최근에는 자선사업에도 관여하셨습니다. 여기서 2마일도 안 되는 곳에 짓고 있는 천체관이 바로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지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런던 사람이라면 템스 강 남쪽에 짓고 잇는 웅장한 건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커다란 기차역처럼 보여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대한 초록색 유리 돔은 강 건너편 의 성 바울로 성당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는 공교육을 위한 과학기구 와 모델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내부 구조는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다. 자작은 계속해서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아버지는 모레로 예정된 공식 개관일까지는 건물 내부를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작업 인부들도 모두 비밀을 지키기로 서약을 했습니다. 건물 출입문 열쇠도 두 개만 만들었지요. 하나는 아버지가 가지셨고, 하나는 내가 가졌지요. 다른 출입문은 전부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드나들 때는 반드시 아버지는 내가 출입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토요일인 오늘도 천체관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일찍 도착해보 니 출입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지요. 들어가면서 아 버지를 불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조금 늦으시는 모양이고 생각하고 혼자서 전시품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지요.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가서 보 니... 무거운 물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가 어깨를 떨면서 이야기를 멈추자 홈스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의 아버님께서 말입니까?" "예. 어딘가에 숨어 있던 범인이 힘껏 휘두른 곤봉에 맞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 으셨던 모양입니다. 홈스씨, 내가 아버지와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상속받게 될 재산을 너무 낭비하신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께도 그런 내 생각을 감추지 않았지요. 그래서 이 사건이 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스위스제 열쇠는 복제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은 아버지와 나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열쇠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목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즉시 체포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문을 잠가두고 이 리로 달려왔습니다." 홈스는 두 손을 비비면서 일어나서 소리쳤다. "살인사건이라! 잠긴 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보았지만, 잠긴 박물관에서 일어난 수수께끼는 처음이군요. 물론 곧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지만 우리가 먼저 가서 현장을 살펴보아도 상관은 없 겠지요. 당신 말처럼 경찰의 추리력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도 당신이 부당하게 구속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포레이 자작은 상화이 급하기는 하지만 먼저 대학교 가서 천체관의 과학 고문을 맡고 있는 서 멀리 교수에게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나 서멀리 교수가 연구실에 없었기 때문에 메모를 남기느라 조금 더 지체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유스턴가에서 오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그러나 지 하철의 신호에 문제가 생겨서 잠시 동안 다른 지하철과 함께 서 있게 되자 포레이 자작은 안절부 절못하는 못습이었다. "아! 드디어 다시 움직이는군요."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의 창문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아무도 내 말이 틀렸다고 부정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의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가 타고 있는 지하철은 제자리에 그냥 서 잇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움직인 것은 옆에 서 있던 지하철이었다. 내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자 자작이 말했다. "기차는 물론이고 우주를 관찰할 때도 흔히 하게 되는 실수지요. 사실 모든 별과 행성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거나 서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에 있는 우리는 화성이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움지인다고 생각하지만, 화성에 있는 관측자는 정반대로 자신은 가만히 서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고 믿을 겁니다. 당신 말이 맞을 수 도 있지요. 옆에 있던 지하철은 아직도 서 있고, 우리가 타고 있는 지하철과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살인사건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자작이 약간 돌아번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유 치한 철학적 의미에서는 그 이야기가 맞을지 몰라도, 수백만 런던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어느 지 하철이 움직이고 있는가는 분명할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서로 다른 관점이나 세계관이 사실은 모두 동등한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또 모 든 과학 문제에 명백하게 옳고 그른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서양 과학의 냉정한 환원주의를 대단 히 싫어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조들의 생각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셨지요. 예를 들어서 그리 스의 철학은 여러 면에서 현대 철학보다 우수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정확한 측정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 철학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만약 그들이 정확 한 측정기구를 사용할 수만 있었다면 현대 물리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더욱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실험보다 노리를 더 신봉했지요. 논리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어 떤 가설이 모순인가 아닌가를 알아낼 수 있었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적절한 측정기구가 없었다는 것이 그리스 철학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요." 홈스는 자작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대화라면 무엇이나 좋다 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체의 질량이 두 배가 되면 떨어지는 속도도 두 배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모든 물체는 크기나 밀도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물론 공기 저항은 무시하고 말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가 실제로 실 험을 해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이 사실인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해봅시다. 두 개의 벽돌을 접착제로 붙여서 떨어뜨리면 어떤 속도로 떨어지겠지요. 그런데 만약 접착된 부 분을 잘라서 벽돌을 다시 두 개로 만든 다음에 함께 떨어뜨리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벽돌 조각 은 합쳐진 덩어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두 개의 벽돌 조각은 함 쳐진 덩어리가 떨어지는 속도의 절반의 속도로 떨어질까요? 이런 이야기를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죠. 만약 두 개의 벽돌 조각을 머리카락 정도의 가는 실로 연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역설이지요! 그리스인들이 철학이나 정치 학에서는 뛰어났지만 과학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훌륭한 고전학자셨습니다, 홈스 씨, 나는 당신의 의견보다는 아버지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싶군요." 당황한 자작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홈스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천체관의 거대한 출입문 앞에 도착했을 때야 다시 정신을 차 리는 것 같았다. 함께 안으로 들어간 자작이 벽에 있는 큼직한 스위치를 켜자 눈앞에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 나타났다. 천장 전체를 불규칙적인 모양으로 장식하고 있는 전등에 불이 들어오자 그 전등의 배열이 하늘 의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다만 별들이 어두운 하늘이 아니라 전체 가 밝에 칠해진 돔 벽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사냥꾼 자리, 가재 자리,게 자리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름 붙인 별자리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별자리 모양이 아 름답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교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천체관의 바닥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작을 따라서 방 가운데로 가 던 중에 갑지가 시야를 가로막으며 지나가는 거대한 물체 때문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방금 지나간 것은 시간을 상징하는 거대한 진동 자입니다." 우리가 가운데로 다가서자 진동자의 못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진종자는 허리 높이 정도를 지나가도록 돔 중앙에 50미터 정도의 줄에 매달려 있었다. 방 가운데에는 진동자의 경로를 따라 서 밝은 색으로 칠해진 버팀목이 놓여 있었다. 관객이 진동자의 경로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모양이었다. 방의 중앙에서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끔찍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한 남자가 머리를 옆 으로 향하고 엎드려 있었는데, 그의 머리 뒤쪽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시신을 살펴보니 적어도 여섯 시간 전에 사망한 듯했다. 주변에 육중한 기계들이 많기는 했지만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기계는 없었다. 남북 방향으로 진종하고 있는 진동자는 시신으로부터 10미터 안으로는 접근하지 못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충격으로 시신이 밀려나갔다고 하더라도 방 가운데로부터 동쪽에 있는 시신의 위치 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홈스는 주변을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여러 가지 전시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지름이 무려 2미 터나 되는 지구의 앞에 멈추어 섰다. "이 전시물은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로군요.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있고, 히말라야 산맥은 표면 에서 적어도 1밀리미터 정도 솟아 있고, 균형도 잘 잡혀 있어요." 그는 받침대에 걸려 있는 지구의를 살짝 돌려보았다. "그렇지만 이 장치는 고정된 채로 회전하기만 하니까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될 수는 없겠군요. 그 런데 이건 도대체 뭡니까?" 지구의 바로 옆에는 전체가 푸른색으로 칠해진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표면에 양각으로 대 륙의 모양이 새겨져 있였고, 가운데에는 하얀 마개로 막아놓은 파이프가 튀어나와 있었다. "홈스 씨, 그것은 옛날 유럽 사람들이 상상하던 납작한 지구의 모형입니다. 그 모형을 작동시키 면 가운데 파이프에서 물이 솟아오르게 되어있는데, 바로 북극의 얼음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상징 합니다." "그러니까 그 물이 지구의 가장자리로 넘쳐흐르면서 끝없이 이어진 둥근 폭폭가 되겠군요. 정말 멋집니다." 나는 홈스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었다. "참 황당한 생각이었군요.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자작이 냉랭하게 말했다. "지구가 납작하다고 믿었던 사람은 대단히 많았습니다. 왓슨 박사, 누가 감히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의 정당성을 분정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오 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세계관도 당신이나 나의 세계관만큼이나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으셨습니 다." 걸음을 옮기면서 홈스는 내 귀에 속삭였다. "저 삶은 지구가 납작하다고 믿는 항해사가 항로를 잘못 계산해서 어디로 항해하고 있는지 모르 는 상태에서 식량이 떨어졌다고 해도 저렇게 아량이 넓을까? 서로 다른 세계관의 정당성만 생각 하고 있군! 아마도 예술적 감성을 가진 귀족의 자만이겠지. 오, 그런데 이것은 또 뭔가요?" 우리 앞에는 큰 전구가 달린 회전축에 수평 방향으로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막대기가 붙어 있 는 기계가 있었다. 막대기 끝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유리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공들이 붙어 있 었다. "아, 그것은 태양계의 모형입니다. 가운데 전구는 태양입니다. 가장 짧은 막대기에 달린 붉은 공 은 수성이고, 푸른 공은 지구를 나타냅니다. 여러 색으로 칠해진 큰 공은 목성이지요. 어떤 유리 세공가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토성에 붙어 있는 고리는 멋진 장식품처 럼 보이지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행왕성이 틀림없습니다." 홈스는 그 장치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운데 톱니바퀴는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다른 어떤 모형보다도 훨씬 더 복잡해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홈스 씨. 이 장치는 행서으이 궤도가 정확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고, 행성이 움직이 는 속도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 정교한 모형입니다.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실제 행성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하게 재현했지요." 놀랍게도 홈스는 기계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지구를 나타내는 유리공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이 밀었다. 공의 아래쪽에 구멍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홈스 씨. 당신은 지금 지구에서 보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모양으로 배열된 행성 을 보고 계십니다. 원하신다면 화성이나 목성에서의 모습도 직접 볼 수가 있지요. 이 태양계 모형 은 앞으로 또는 뒤로 빠르게 돌릴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수천 년 전 또는 수천 년 후의 하 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치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여행도 보여주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훌륭한 천체관 개관식에는 과학추리 소설가인 웰스 씨를 초대하는 것이 좋겠군요." 내가 자작에게 말했다. 그때 홈스는 다음 전시품을 매우 의아스럽다는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태 양계 모형과 비슷하게 생긴 그 장치의 가운데에는 지구의 대륙이 그려진 큰 의자가 있었고, 그 의자에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로 연결되어 있는 팔이 달려 있었으며, 그 끝에는 행성을 나타내는 공이 달려 있었다. 그 장치는 아직도 제작이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주변이 매우 지저분했고, 제대 로 작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작은 난처한 듯이 말했다. "홈스 씨, 그것은 보통의 천체 모형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겁니다." 홈스는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오! 그렇군요. 정말 태양계 모형의 지구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 보이는군요. 훌륭합니 다." 그리고 나서 홈스가 내게 말했다. "왓슨,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앙에 정 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을 기억하나? 사람들은 일정한 자리에 별들이 붙어 있는 천구가 하루 에 한 번씩 회전하며, 행성과 달과 태양도 지구 주위를 완전한 원형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고 믿 었다네. 완벽한 원형 궤도가 일종의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여겼던 모양이야. 그렇지만 행성이 지구 주위를 완전한 원형 궤도를 따라 돌고 있지 않다는사실은 아주 초보적인 측정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행성의 움직임은 원형 궤도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거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기원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 의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당시의 천동설에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은 이런 것이라네. 먼저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형 궤도를 따라 움 직이고 있는 가상의 점을 생각해보게. 그리고 그런 가상의 점을 중심으로 또다른 원형 궤도를 따 라 움직이는 두 번째 점을 생각해보게. 물론 지구에서 보면 두 번째 점의 움직임은 매우 복잡하 게 보일테지. 원형 궤도의 중심이 다시 어떤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을 주전원이라고 하 네. 두 개의 원형 궤도가 합쳐지면 행성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속도도 일 정하지 않고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도 하는 아주 복잡한 결과가 생기네. 그렇지만 그런 궤도도 역 시 '완벽한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원형 궤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더 정밀한 측정을 해보니까 한 개의 주전원만으로는 행성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행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나타내려면 행성이 어떤 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고, 그 점은 다시 다른 점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고, 다른 점은 또 다른 점을 중시밍 로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여러 개의 주전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지. 결국 주전원 개념으로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 것이 아주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렇다고 주전원 이론을 완전히 버리기도 어려웠다네. 충분히 많은 주전원 이론을 이용하기만 한다 면 실제로 측정한 행서의 궤도 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전원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지. 그래도 결국은 꼴사나울 정도로 지저분하게 되어버린 주전원 대 신에 훨씬 단순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 그런 상황에서 수도사인 코페르니쿠스의 유명한 지동설이 등장했지. 지구가 한 곳에 가만히 있 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축을 중심으로 자전도 한다는 주장이었다네. 그렇게 생각하면 천체의 움직임을 모두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 "너무 복잡한 이야기로군요." "그런가?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동설을 적극적으로 설득시키고 노력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 다만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천체의 움직임을 더 쉽고 정확 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이라는 것야. 즉 그의 지동성은 마치 어려운 계산을 쉽게 만 들어주는 산수의 요령 정도인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지." "당시로서는 현명한 처세술이었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지동설을 훨씬 더 과격하게 밀어붙였던 갈릴레오가 결국 교황의 지시를 받은 종교 재판관의 고문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취소해버릴 수밖에 없 었던 것을 보면 코페르니쿠스는 오히려 현명했다고 볼 수도 있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교회의 지시나 교훈에 대한 저항이 쉽게 인정되지 않았거든. 천주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코페르 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부당한 탄 압에 대해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네. 그런 사실 때문에 교회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교황이 그럴 수 있는 배짱을 가졌으면 좋겠어." 아버지의 살인사건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에 지쳐버린 자작이 기침을 했다. "아버지는 앞에 있는 이 장치를 가장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 동설이라는 세계관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복잡한 주전원 궤도 장 치를 고안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자문을 해주는 서멀리 교수가 이 기계에 대해서 아주 냉소적이었던 것이 문제 였습니다. 서멀리 교수는 이 기계가 상당히 정확지 않아서 주전원의 수를 자꾸만 늘렸지요. 그래 서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자작이 안타까운 듯이 주변을 서성거리는 동안 홈스는 붙박이처럼 서서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도 옆에서 천체 모형을 보고 있다가 문득 어떤 영감이 떠올라서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 다. "홈스, 여기 천왕성이 매달려 있는 팔을 보세요. 지금음 거의 모든 연결 부위가 접혀 있는 상태 지만 시간이 지나서 무두 퍼지게 되면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집니다!" 나는 천체 모형이 정상적으로 움직였거나 고장이 생겨서 팔이 갑자기 쭉 펴지게 되었다면 무심 히 서 있던 포레이 경에게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네, 왓슨. 우선 팔이 너무 짧아 보이지 않나?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 다면 팔에 매달려 있는 유리공에 무슨 흔적이 남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군. 우리 는 포레이 경과 자작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도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증거보다는 가능성 이 높이 증거를 찾아내야 하네." 홈스가 좀 냉담하게 말하면서 자작에게 돌아섰다. "자작님, 벌써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원하신다면 저도 수사를 계속하겠지만, 이제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자작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바깥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렸다. 홈스가 문 쪽으로 가려던 자작을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자작님은 이곳에 있으세요. 왓슨, 자작님에게서 열쇠를 받아 문을 열어주게나. 경찰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네." 그러나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바깥에는 경찰 대신에 깡마른 노신사가 서 있었다. "나는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서멀리 교수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에 들어가보아야겠습니 다." 말을 마친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나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와서 사건현장 을 살펴보았다. "말썽꾸러기 진동자 때문이었군. 맙소사. 포레이 경께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충 고를 따라야 했었는데..." 서멀리 교수가 탄식을 하면서 외쳤다. 그는 자작의 팔을 잡고 있는 홈스에게 말했다. "자작을 놓아주시오. 범죄가 아니라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어수룩한 어린아이에게 말하듯이 물었다. "여러분은 진동지가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처음과 똑같은 방향으 로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내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진동자를 요의선상에서 제외시켯습니 다." 서멀리 교수는 콧웃음을 치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구는 언제나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요?" 그러자 홈스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서멀리 교수는 지구를 나타내는 커다란 공 위로 올라가서 말했다. "간단한 경우를 살펴봅시다. 북극에서 진동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진동자가 페가수스 자리에서 처녀 자리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는 돔 천장을 슬쩍 올려다보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진동자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지구도 회전을 계속하겠지요." "아하! 그러니까 지구의 자전 때문에 마치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뀐는 것처럼 보이겠군요?" 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여섯 시간이 지나면 처음 방향과는 직각이 되는 쪽으로 흔들리게 되지요. 돌아가고 있는 레코드 판 위에 앉아 있는 벌레처럼 말입니다." 서멀리 교수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여섯 시간이 지나면 처음 방향과는 직각이 되는 쪽으로 흔들리게 되지요. 돌아가고 있는 레코드 판 위에 앉아 있는 벌레처럼 말입니다." 서멀리 교수가 나를 쳐바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진동자가 북극이 아니라 중간 위도에 위치하고 있므면 그 움직임은 기학학적으로 더 복 잡하게 되겠지만 원리는 똑같습니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보 인다는 것이지요. 북반구에서는 진동자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남반구에서는 반 시계방향으로 회전합니다. 1891년 프랑스의 레옹 푸코가 처음으로 고안했던 이 진동자 덕분에 지 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내가 알기로는 포레이 경께서는 이 돔에 대해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 는 자주 그분의 황당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완벽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비판을 했지요.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포레이 경이 자신의 생각을 감추려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지요. 포레이 경은 어제 밤에도 진동자 부근에 뭔가 새로운 실험을 준비해두고 오늘 아침에 그 결과를 보려고 돌아왔을 겁니다. 그런데 밤 사이에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어버렸을 것이고, 원래의 진동방향 을 따라서 설치해두었던 안정장치도 넘어져버렸겠지요. 그런 사실을 몰랐던 포레이 경은 자신의 실혐결과를 살펴보고 있던 중에... 어제 밤의 진동방향만 생각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 서 있던 포레이 경은 진동방향이 바뀌 어버린 진동자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즉사한 겁니다!" 서멀리 교수가 몹시 흥분한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후로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진종자의 진종방향은 계속 바뀌었고, 오늘 아침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진동방향이 다시 사고현장에서 상당히 떨어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진동자 를 의심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서멀리 교수는 슬픈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포레이 경께서 스스로 자신의 지혜만을 너무 믿고 선조들의 가르침이 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직선운동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지만, 회 전운종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태양은 물론이고 별도 볼 수 없는 깊은 동굴에서만 지내더라도 지구가 어떤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가 있지요. 그런 사실을 알 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고 자전의 속도까지도 짐작할 수 있답니다." 내가 물었다. "물론이지요. 진동자의 진동방향이 바뀌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고, 짐벌에 회전판이 고정되어 있는 자이로스코프를 사용할 수도 있스빈다. 지이로스코프에 붙어 있는 회전판은 언제 나 일정한 방향을 향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이로스코프가 놓여 있는 지구가 자전을 하게 되면 자이로스코프는 회전축의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자이 로스코프에 작용하는 힘은 측정하기도 어렵고 계산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이 로스코프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지만 회전운동의 특성을 이용한 자이로스 코프는 장거리를 운항하는 비행기의 자동 항법 장치에도 사용된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회전 때문에 전기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기를 띤 물체를 회전시키 면 자기장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지요. 그런 예는 상당히 많습니다. 요즈음에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지구가 회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신고하기 위해서 우리 네 사람이 복스홀 경찰서로 걸어가는 동안에 나는 그의 거만한 말투에 기분이 상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고 합시다. 그래도 지구가 일정한 위치에서 회전을 하 고 있고, 태양이 다른 행성이 주전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서멀리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면서 설명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밤하늘의 별을 이용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더라도 별들의 상대적인 위치는 망원경을 사용해야 알아낼 수 있을 정보밖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측정을 하지 않더라도 주전원의 개념에는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행성에 대해서 별도의 주전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말이지요. 만약 주전원의 개념이 옳다면 가끔씩 나타나는 혜성의 경우에는 그 궤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겠지요. 어떤 주전원의 필요한가를 알아내지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혜성도 태양의 중력을 받는 궤도를 따라 움직일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정확하게 그 궤도를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정확하게 그 궤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 다. 주전원 개념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전원을 충분히 많이 도입하면 어떠한 궤도도 설명할 수 있다 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런던의 번화기인 피카딜리가를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는 주정꾼의 움 직임도 주전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설명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과학에서는 '경제성의 원리' 또는 '절약의 원리'라고도 부르는 '오컴의 면도날 원리'가 아주 중요하지요. 14세기 오컴의 원리의 윌리엄 공의 이름을 따서 붙이 이 원리는 실험으 로 관찰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설의 수는 최대하능로 적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 런 원리가 필요 없다면 참으로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겁니다.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서 너무 많은 수의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설명이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일반 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 되지요. 그러니까 인가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부정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사실은 우리가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적 인 여우가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한심한 대화를 계속하기 싫다는 듯이 성큼성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햇살이 밝은 저녁 무렵에 베이커가의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홈스가 말했다. "왓슨! 오늘은 정말 뭔가를 배운 것 같군."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까?" "아니지. 그것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거라네. 우리가 처음 만난지 얼마안 되었을 때 내가 코페 르니쿠스 이론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는 자네를 놀렸던 적이 있었지, 아마?" "그랬지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나도 지구가 태양을 돌거나 아니면 태양이 지구를 돌거나 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 관도 없다고 생각했었다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사건의 경우에는 내가 과학에 대해서 전혀 몰랐 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버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왓슨, 지금부터는 좀더 과학적인 자세로 사건을 다루어야겠네." 2. 사라진 에너지 어제 찾아왔던 사람이 계단을 올아오는 소리를 듣고 흠스가 말했다. "이 사람은 좀 이상하군. 어제 찾아왔을 때 허드슨 부인에게 모리슨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려 들지 않았다네." 나는 사무실로 들어서는 모리슨 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홈스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단 서를 찾아내는 데에 감탄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들이 종합진단이라고 부르는 종합적이고 직김적인 인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리슨 씨를 자세하게 관찰해보았지만 기억할 만한 특징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은 얼굴과 거친 손을 보면 노동자인 것도 같았지만, 훌륭한 옷과 주머니에 꽂혀 있는 만년필을 보면 전문 직업인인 것도 같았다. 약간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걸이와 한쪽 손을 조금씩 떨고 있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홈스는 그에게 난로 옆에 있는 의자를 권하면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군요. 즐거운 항해였겠지요? 잠수는 안전하게 즐기셨습니까?" 모리슨 씨를 안심시키려던 홈스의 이런 인사가 오히려 그를 아주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자 리에 앉으려던 모리슨 씨는 창백한 얼굴로 벌떡 일어서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내 여행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까? 내가 속았군요. 누가 당신에게 알려주었는지를 말해주 어야만 합니다." 홈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몸을 기울였다. "진정하세요. 모리슨 씨. 아무도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의 휘청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면 당신이 육지에 상륙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더욱이 손을 떨고 있는 것은 잠수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사실은 여기 왓슨 박사도 인정할 겁니다. 물 속에들어갔다가 너무 빨리 올라온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모리슨 씨는 안심이 된 듯이 태도가 누그러졌다.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입니다. 짐작하신 것처럼 나는 항해사입니다. 다른 사람들 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더라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지금은 내가 아주 비밀스러운 곳을 항해하고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예민했던 겁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게 항 해를 부탁했던 사람이 가차없이 나를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꼭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이 는 그 사람은 우리가 비밀을 지켜주기만 하면 엄청난 보물을 발견할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했답니 다. 그 사람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요. 만약 우리가 야생 거위를 쫓아다닌다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항해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를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일부 미신을 좋아하는 선원들이 믿는 것처럼 우리가 항해했던 삼각 해역은 정말 저주받은 곳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답니다." 모리슨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지만 벌써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린 후 였다. 나는 벌써 그가 말한 삼각 해역은 많은 선원들이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신비의 버뮤다 삼각 수역일 것이고, 항해의 목적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을 찾으려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적 도의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황금 덩어리가 실려 있는 스페인의 거대한 범선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홈스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금까지 탐정이라는 직업 때문에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해보기는 했지만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때문에 생긴 사건은 한 번도 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언제 나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줄 것을 의뢰인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왜 당신이 항해 목적지를 확실하게 말씀하지 못하는가를 이해하겠습니다. 이제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만 말해주십시오." "그러죠. 사건이 시작된 경위는 아주 황당합니다. 유명한 과학자 한분이 우리 회사를 찾아와서 바다 밑에 엄청나게 값비싼 광물질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스 씨도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잠수정을 비롯한 몇 가지 특수 장비를 빌리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 탐사에는 상당한 비용이들 텐데 거기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해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굉장한 부자의 후원을 받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분이 찾으려는 광물질과 의뢰인의 괴착한 성격만 제외한다면 우리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요청 이었지요. 아마도 그분처럼 공격적이고 오만하고 편협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확실히 바 보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만나본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전공 이외의 실용적인 기술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그분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정말 정열적인 분 이었지요."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후에 모리슨 씨는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로스토프트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다른 일이 생겨서 우리와 함께 항 해를 시작하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좁은 배에서 그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더라면 내가 그 사람의 목을 비틀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고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의뢰인이 적어준 지시에 따라 항해를 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바다에서 가끔씩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고이거 나 우연한 일이었지만 정말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강어귀를 지나려고 하는 순간에 배가 갑자기 멈추어버린 겁니다. 해류나 바람도 전혀 없었고, 엔진은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는 데 말입니다. 마틸다 브릭스호가..." "왓슨과 나를 믿으셔도 됩니다." 홈스가 모리슨 씨를 달래듯이 말했다. 모리슨 씨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마침내 결심을 한 듯이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았다. "당신을 믿을 수밖에 없군요. 우리는 마치 접착제 위를 항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대 10노 트까지 항해할 수 있는 마틸다 브릭스호의 강력한 엔진도 아무 쓸모가 없었지요. 그곳에서 꼼짝 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마치 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배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아주 어렵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수중탐사를 하기 위해서 잠수 정을 점검했습니다. 잠수정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모리슨 씨는 종이 위에 아주 익숙한 솜씨로 잠수정의 모양 을 그렸다. "이 잠수정은 아주 단순한 겁니다. 쇠사슬에 매다는 이 잠수정의 바닥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지 요. 그리고 배 위에서 강력한 펌프로 잠수정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서 압축 공기를 밀어넣게 됩 니다. 압축 공기의 압력을 충분히 높이면 잠수정 속에 물이 차지 않게 되는 거죠. 마치 큰 컵을 뒤집어서 물 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위에서 밀어넣은 압축 공기는 아래쪽 으로 계속 빠져나갑니다. 잠수정에 있는 잠수부가 질식하지 않고 호흡을 할 수 있으려면 압축 공 기의 압력을 충분히 높여서 잠수정 안에 이산화탄소가 축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잠 수정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아무 기계장치도 없고 연료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에 탈 물질도 없고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전기 배선도 없지요. 잠수정이 매달리게 되는 쇠사슬과 공기 를 밀어넣기 위한 튜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잠수정에 타고 있는 잠수부가 배와 교신할 수 있는 장치도 없습니까?" 홈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만약 교신이 가능했다면 내가 여기에 올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모리슨 씨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먼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잠수정을 시험해보았습니다. 압축펌프를 가동시키고 쇠사슬을 풀어서 잠수정을 바다 밑에 거의 닿을 정도까지 내려보냈다가 아무 문에 없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지요. 잠수정 안은 사막의 모래처럼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증거였지 요. 잠수정의 안정성을 확인한 다음에 우리는 경험이 충분한 잠수부 두 사람을 태우고 잠수정을 다 시 바다 밑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잠 수부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겪에 되는 심한 압력 변화에 적응하도록 자주 잠수정을 멈추어야만 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잠수부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서 압력 변화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것을 확실합니다. 특별히 깊은 곳으로 내려갔던 것도 아니고, 잠수정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의 잠수부들은 그 정도 깊이까지 내려간 경험이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수정을 끌어올 렸을 때의 광경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긴장 때문인지 손일 심하게 떨기 시작한 모리슨 씨를 위해서 홈스가 위스키를 권했다. 모리슨 씨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잠수정이 바다 밑에 있던 동안 배 위의 공기 암축 펌프는 물론이고 잠수정을 감아올리는 장치 도 아무 문에 없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수정을 끌어올려서 갑판에 설치된 받침대 위 에 올려놓은 다음에 두 사람의 잠수부가 아래쪽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밀실 공포증 을 일이킬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는 누구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가 잠수정 밑으로 기어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 경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두 잠수부의 피부에는 이상한 반점이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모습으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 다. 잠수부들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그 옷들은 어디 로 갔는지 없어져 버렸고 모두 발가벗은 모습이었습니다. 자리에 깔고 앉았던 코르크 방석도 없 어져버려서 차가운 철판 위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남은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홈스 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를 바보라고 하겠지요? 나는 옆에 있던 스칸디나비아 출신 선 원들이 '크라켄'이라고 속삭이는 말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바다 밑에 살고 있다는 거대한 전설적 인 괴물의 이름이지요. 누르웨이의 전설인 미드가르드 악마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바다 밑을 전 부 휘감을 정도로 길고, 꼬리가 자신의 입 속에 물려 있다고 전해지는 괴물입니다. 그들이 속삭이 던 말에 따르면 그런 괴물이 나타나서 운수가 나빴던 잠수부를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육지에서 의사를 데려왔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 은 잠수부들이 모두 열병으로 죽었다는 겁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속에서 열병으로 죽었다니! 그것도 뜨거운 것이라고는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잠수정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닷속에 악마뱀 이 있다는 말이 더욱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깊은 바닷속에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물리법칙이 성립되니 않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겪은 사건은 정말 황당한 것이지요. 혹시 19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 었던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내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젖자 모리슨 씨가 설명을 계속해싿. "플로지스톤 이론에 따르면 열은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기 체와 같다고 합니다. 물체의 내부에서는 자유로은 형태의 플로지스톤이 새어나옵니다. 두 물체가 접촉하고 있는 경우에는 기체와 마찬가지로 그런 자유 플로지스톤이 한 물체에서 새어나와서 다 른 물체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물체와 뜨거운 물체가 서로 접촉하면 차가운 쪽이 뜨겁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연료와 같이 연소될 수 있는 물체는 갇힌 형태의 플로지스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플로지스폰은 연소 과정에서 불꽃으로 방출된다고 하지요." "아주 일관성 있는 이론이 모양이군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언뜻 보면 상당히 일관성 있는 일관성 있는 이론처럼 보이기도 할 겁니다. 현대적 인 의미의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보는 올바른 방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자들 은 맷돌을 돌리면 마찰 때문에 새로운 플로지스톤이 무한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반박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망치질을 계속하면 물체가 뜨거워지는 것도 같은 경우가 되지요. 이처럼 플로지스톤 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있다면 플로지스톤이 불변의 물질이라는 생각과는 확실이 모순 이지요. 그런 역설적인 현상 때문에 결국 플로지스톤의 개념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에너 지의 보존법칙으로 일반화되었답니다. 에너지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런 다양한 에너지를 모두 함치면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물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운동 에너지', 높은 곳에 있는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줄어드는 '위치 에너지', 뜨거 운 물체가 가지고 있는 '열 에너지' 등이 그런 에너지의 예입니다. 또한 열 에너지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에너지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전문 기술자인 나로서는 원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면 원자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번 생각해봅시다. 믿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플로지스톤이 존재한다고 합시다. 우리 배가 바다 위에서 완전히 멈추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우리가 목표로 했던 잠수 지점에 도착 할 때까지도 배의 스크루는 끊임없이 힘차게 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크루의 에너지는 도대 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요?" "플로지스톤이 구름이 되어 사라졌다는 겁니까?"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소리치다가 갑자기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스크루에서 방출된 플로지스콘 구름이 물 속에 떠돌아다니다가 잠수정과 접촉하게 되면 서 잠수정을 뜨겁게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잠수정의 온도가 올라가니까 잠수부들 은 옷을 벗어버렸고, 몸을 식히기 위해서 바깥쪽의 차가운 바닷물과 접촉하고 있는 철판에 몸을 밀착시켜보았지만 결국은 높은 열에 의해서 사망한 것이 아닐까요?" 모리슨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홈스는 조금도 동의하는 기색이 없이 말했다. "솔직히 말씁드면, 내 전공은 물리법칙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법률을 어 긴 사건을 수사하는 겁니다. 내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물리법칙보다는 인 간의 법칙이 깨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답니다. 그런데 모리슨 씨가 생각하는 두 번째 가능성이란 어떤 겁니까?" "나는 두 번째 가능성으로 악마처럼 교활한 훼방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 그 런 이유 때문에 최고 수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런던으로 돌아온 겁니다." 모리슨 씨가 말을 계속했다. "이제 런던에 돌아와서 겪은 일을 모두 말씀드리지요. 나는 먼저 이 항해를 의회했던 임피리얼 대학교의 챌린저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분이 유별나기는 하지만 아주 유능한 분이라고 여 겼습니다.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마침 해외여행 중이어서 만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아주 훌륭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왕립학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믿을 만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말에는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열심히 설명하는 나를 경멸하 는 표정으로 바라보더군요.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너무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그 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플러지스톤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바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얄궂은 일이었군요. 1847년에 제임스 프레스콧 주링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 정할 수 있는 실험을 소개했던 곳이 바로 그 왕립학회였답니다. 그는 기계적인 일뿐만 아니라 전 기 에너지나 위치 에너지도 결국은 열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했지요." 나는 그의 말을 조금도 믿을 수가 없어서 물었다. "위치 에너지도 열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렇다네. 줄은 폭포의 위와 아래에서 물의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해 보았더니 물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온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발견했지. 그는 물의 온도를 1도 올리기 위해서 얼만큼의 일 을 해주어야 하는지도 측정했었네. 그런데 플로지스톤 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던 왕립학회는 줄의 천재적인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을 돌려보내고 만 거야. 그후에 줄은 맨처스터의 성 앤 교 회에서 유명한 강연을 시작으로 일반인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파하기 시작했다. 줄과 같이 천재적인 과학자는 당시 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과학적 진리보다는 자기 자신이 직접 발견 한 논리를 더 믿었던 셈이라네. 줄의 이야기는 우리와 같이 과학 분야의 문외한들도 과학 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 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어. 수학으로 무장한 과학자보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 더 현명한 판단 을 내릴 수도 있다는 거지. 이제 모리슨 씨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계속 들어볼까요?" "그러지요, 홈스 씨. 그런데 왕립학회에서 내 말을 들어보겠다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서멀리 교수였지요. 그렇지만 그분도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그저 조사해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분은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그저 조사해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분은 내가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 라고 여기는 모양인지 내 이야기 중에서 허점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답니다." 홈스가 말했다. "우리도 서멀리 교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챌린저 교수에 대한 수문도 들었지요. 유머도 없고 자제력도 없는 그 사람이 자신의 황당한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런던 사람들 대신에 외국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과학적인 문제를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두 번째 가능성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사건이 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수수께끼가 아니라면 훼방꾼이 있었다고 보는 것 이 옳겠지요. 그런 훼방꾼은 틀림없이 상상력이 뛰어난 재주꾼일 겁니다. 그런 가능성을 정확하게 수사해줄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추천해주더군요." 홈스는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수사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런던에서의 일이 바쁘기 때문에 지금 장장은 항애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왓슨 박삭가 다녀올 수 있다면 되겼군요. 왓슨 박사, 잠시 바다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떤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든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언제나 상당한 시간이 걸 리는 모양이지요? 버뮤다의 삼각 수역 밑에 가라앉은 금 덩어리를 찾으러 가는 겁니까? 두렵다니 요?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겠습니다." 모리슨 씨는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금 덩어리라니요? 그리고 버뮤다의 삼각 수역은 또 무슨 말입니까? 왓슨 박사님, 내가 지금까 지 이야기했던 곳은 노르웨이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몹시 추운 바렌츠 삼각 수역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금 덩어리가 아니라 검은 금이라고도 하는 석유를 찾고 있답니다. 내일 오후에 출항할 예정인 아이시스호로 함께 떠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모리슨 씨가 떠나자 나는 근심에 잠기게 되었다. "홈스,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게 돼서 기쁘기는 합니다만... 내가 수사를 해서 실패한 적이 많았 다는 점이 걱정이군요." "왓슨, 그런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장난이 아니네. 모리슨씨가 말하던 훼방꾼 이야기 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해밑에 엄청난 유전이 있을 것이라는 챌린저 교 수의 주장을 괴짜의 단순한 헛소리라고 여길 거야. 그런데 그런 주장을 믿고 살인을 할 이유가 있을까?그런 가능성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거지.아마도 아주 간단한 실수였거나 단순한 자연현 상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을 꺼야." "만약 그렇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군요! 최고의 과학자의 경험이 많은 기술자도 이해하지 못한 일을 내 능력으로 어떻게 알아낸단 말입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적임자야.자산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문재에 대해서는 당연한 사실 을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거든. 몇 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 아주 유명한 과학자가 자문 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 누군가 납을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계를 가져와서 그에게 사라고 요청을 했던 모양이야. 자네도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겠지.어떤 원소가 다른 종류의 원소로 아무렇게 나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은 화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잖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의 종류는 100가지도 안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금과 같은 원소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거나 사라 지지는 않지. 그런데 그 과학자는 스스로의 재능에 희생되었네. 그는 현대판 연금술사가 주장하는 엉터리 기 계의 작동원리에 유혹되어서, 세 면이 금으로는 그 납 덩어리를 이용한 요사한 마술에 완전히 속 아버렸지.그 기계는 그 납 덩어리의 겉을 진짜 금으로 덮어씌우는 장체 불과했다네.아마추어 마술 사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엉성한 수법에 훌륭한 과학자가 감쪽같이 속아버렸던 거야. 사건을 해결할 때 상상력과 재능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방해가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 이네. 그보다는 신뢰와 진실서잉 더 중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런 것 같네, 왓 슨." 나는 다음날 아침 로스토프트로 가서 조그마한 증기 화물선인 아이시스호에 올랐고, 이틀 동안 의 항해 끝애 북해에 정박하고 있는 마틸다 브릭스호에 도착했다. 나는 거친 바다에 익숙하지 않 은 탓에 첫날은 꼼짝도 못하고 선실에 갇혀서 지내야만 했다. 다른 승객이 소란을 부리는 소리를 듣고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출항하기 직전에 선원을 위협해서 배에 올랐던 승객이 소란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그가 선원들에게 선장을 만나도록 해달라고 우기는 황소 같은 목소리가 자주 들려왔지만 그 숭객과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당행스럽게도 둘째 날에는 날씨가 좋아져서 나는 갑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갑판에 올라가보 았더니 어제 소란을 부리던 승객이 난간에 기대서서 졸고 있는 듯 더부룩한 머리를 끄덕이고 잇 었다. 그는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나를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율리시스처럼 짙은 포도주색 바다를 바라보고 계시는군요." 내가 용기를 내서 조금은 바보처럼 말하자, 그 사람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한 잔의 포도주 안에 우주가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곧 당신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큰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저 앞에 있는 수평선을 봐요. 옛날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지구가 납작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렇지만 수평선을 바라보면 지구의 곡선이 확실하게 보잊 않습니까?" 나는 그가 가리키는 쪽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화물선의 위쪽 갑판에 올라가면 모르겠지만, 바 이킹 선원처럼 파도 바로 위에 서 있던 나는 파도가 거의 없었는데도 그런 곡선을 알아 볼 수는 없어싿. 어쨌든 사람의 눈은 완만한 곡선을 인식하는 데에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래서 그리스 건물의 기둥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가운데를 약간 불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내 이야기 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당신은 남들이 말해주는 것을 무조건 믿지 않고, 스스로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확인 해볼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말을 마친 그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바이킹들은 지구가 납작하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는 있었을 겁니다. 당신은 지구 의 표면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끝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 바닷물이 흘러넘치는 그런 끝 말입니다." "아무리 바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옛날의 스칸디나비아 사람에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구의 표면이 끝이 있는 것도 아니 고 그렇다고 끝없이 이어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나는 갑자기 소리쳤다. "설명을 듣고보니 바로 그것이 역설이로군요! 평면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없이 이어짖도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역설이지요." "그렇습니다. 수평선의 모양을 관찰하거나 다른 실마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생각이 역설이 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아주 중요한 결론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역설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역설이 나오게 된 가설 중에 뭔가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수평 선의 정확한 모양을 관찰하는 못하더라도 지구가 편편하다는 가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그런데 지구가 둥그렇게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무한히 큰 평면이나 또는 유한한 평면의 경계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모두 해결되어버립니다." 그는 갑지가 화제를 바꾸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하는 역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아무렇게나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동안 내 대답을 기다 리던 그가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말해드리죠. 내가 바로 이 탐험을 주도했던 챌린저 교수입니다. 내게는 마음놓 고 말해도 좋습니다. 나는 어제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조지 에드워드 챌 린저의 일을 조사하는 탐정이 있다니! 이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들어봅시다." 나는 머뭇거니다가 대답했다. "당분간은 추측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모리슨 씨의 플로지스톤 이론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의 의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콧웃음을 쳤다.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생각이로군요.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 로 실제로 아무 관련도 없는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렇다면 교수님은 과학계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배척하는 데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말을 들은 그는 의기양양해 보였다. "현명한 살마들이 믿는다고 무조건 믿으면 안 되지요! 지금까지 과학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학식 있다는 바보들이 결정적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이 밝혀졌을 때 진정한 발전이 이룩되었습니 다." "그렇다면 인습타파주의만을 믿어야겠군요." 나는 그를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용감하게 주장했던 새 이론이 완전히 틀렸던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았지요.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이론을 제안한 사람의 명성 때문에 그 이론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과학에서 성공한 기록을 남긴 과학자가 제안한 이론을 더 쉽게 믿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뉴턴이 믿었던 황당한 이야기가 그런 예가 될 겁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모두 천재였지만 때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스러 운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천재들에게는 무척 다행스럽게도 보통 전기 작가들은 그런 점 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을 처음 접할 때는 그것을 주장한 사람의 정직성을 비롯한 인간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들 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조작했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식물의 번식에 대한 멘 덜의 업적도 그런 예가 됩니다. 동전을 1,000번 더지면 앞면과 뒷면이 정확히 500번씩 나온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멘덜의 데이터의 그런 정도로 정확했다는 군요.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의 이론은 옳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론을 제안한 살마이 아니라 그 이론 자체에 대 해서만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이 제안될 때마다 그 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고안해야겠군 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적절하고 완벽하게 생각하는 것 이 더 중요합니다. 행동으로 옮기기에 앞서서 그 이론이 이미 알려진 다른 이론과 모순되지는 않 는지와 그 결과가 무엇일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실험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진실을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챌린저 교수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그래도 대부부느이 경우에는 새로운 이론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 어 회전축을 빠른 속도로 계속 돌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지 않고는 회전운동에서 열이 발생된다 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실험 때문에 플로지스톤 이론을 배척할 수 있었 던 것이 아닙니까?" 챌린저 교수는 화가 난 표정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윈시인들이 어떻게 불을 피웠는지 알고 있어요? 원시인들은 나무 껍질 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뾰족하게 만든 막대기를 나무 껍질에 대고 빠르게 돌려서 생기는 열을 이 용했어요. 원숭이에 가까운 원시인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을 왕립학회의 고명한 학자들이 정말 모 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런 뜻은 아니겠지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지구의 모양에 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새로 운 실험이나 관찰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뜻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가 역설이라 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은 플로지스톤이 존재할 수는 없으면서도 그 양은 언 제나 보존되는 진짜 원소인 것처럼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축이 회전하거나 망치를 두들기면 플로 지스톤이 무한히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그것이 역설 아닙니까? 실제로 역설 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당연히 플로지스톤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어쨌든 플로지스톤 이론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는 이해하겠습니다.그것은 오히려 과학적 신화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해야겠군요." 대화를 조용히 이어가려고 했던 내 노력이 오히려 챌린저 교수를 흥분 시킨 모양이었다.잔뜩 화 가 난 그가 소리쳤다. "정말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을 하면 서 즐겁게 살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입니다. 증기기관 덕분에 사람들은 힘든 노역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그후에 증기기관은 더욱 발전해서 증기 기관차, 견인 엔진, 발전소로까지 이어졌습니 다. 백 년 후의 사람들은 그런 장치를 별로 신기하게 여기지도 않을겁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에 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인류가 고통에서 해방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 하세요. 무지와 배은망덕은 과학자들이 견뎌야 할 누명인 모양입니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렇게 말한 그는 획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다행스 러운 일이었다. 다음날 뱃멀미에서 완전히 회복된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라운지에서 선장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은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표현대로 내가 섭취한 화학 에너지를 운동으로 무산시키기 위해서는 갑판을 몇 바퀴 뛰어다녀아먄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갑판으로 올라가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바람이 그렇게 세지는 않 았지만 아주 차가웠다. 우현쪽으로 멀리 눈 덮인 노르웨이 해안이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서 당여한 일일 것이다. 어제 만났던, 말씨름을 좋아하던 챌린저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따뜻하게 반겼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아주 좋군요. 그렇지요?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 답니다.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에너지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싿. 내가 보기에는 배 주위에 아무런 에너지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열과 같은 에너지는 확실히 없었다. 그렇지만 챌린저 교수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릴 생각해봅시다. 이 배는 초속 5미터에 가까운 시속 10노트로 항해하 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한 양의 줄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나는 왕립학회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이 틀리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주었다는 줄이라는 아마추어 과학자의 이름을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챌린저 교수는 당황하고 있는 나를 비웃듯이 바라 보면서 말했다. "제임스 프레스콧 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에너지의 단위를 말한 것입니다. 그의 주장을 무시 하는 실수를 범했던 과학계는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이름을 에너지의 단위로 사용하기로 함으로써 사과를 한 셈이지요. 에너지의 소비 속도를 나타내는 동력의 단위에도 증기기관을 발명했던 와트 의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우연이기는 하지만 와트의 이름도 제임스였습니다. 어쨌든 어떤 기계가 1초에 1줄의 에너지를 소비하면 1와트의 동력을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 "옛날 단위가 더 좋은 것 같군요." "새 단위로 환산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1마력은 대략 750와트에 해당합니다. 그 러니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3,000와트의 동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고, 그것을 줄여서 3킬 로와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요즈음에는 작용하는 힘의 크기와 그 힘이 작용하는 동안에 물체가 움직인 거리를 곱한 것을 에너지라고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봅시다. 1킬로그램의 추를 1미터의 높이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는 약 10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편, 열의 개념을 이용하면 이렇게 되지요. 물 1킬로그램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려면 대략 4,200줄의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러니까 1킬로그램의 물을 어는 점인 섭씨 0도에서 끓는 점인 100도까지 가열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는 그 물을 42킬로미터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와 같은 셈이지요. 이제 재미로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가가 움직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운동 에너지를 알아봅시 다. 배의 무게가 100톤, 즉 10만 킬로그램이라고 하고, 초속 5미터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시다." "에너지는 속도와 질량을 곱해서 50만 줄이 되는 겁니까?" 챌린저 교수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성에 의해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에는 모멘텀이라는 물 리량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모멘텀이 질량과 속도에 비례하지요. 그렇지만 에너지는 모멘텀과는 달리 속도가 아니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시속 10노트가 아니라 20노 트로 움직이면..." "가장 빨리 항해할 수 있는 증기선을 선발하는 대서양 경기에 참가해야겠지요." 챌린저 교수는 내 농담을 무시하고 말을 마쳤다. "운동 에너지는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됩니다." "그런 정의는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됩니까? 에너지가 속도에 비례한다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변환시켜보면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움직이는 물체를 기계적인 브레이크로 멈추도록 하면 마찰열이 생기지요. 그런데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두 배가 되면 마찰열은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됩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려면 아주 정교한 실험을 해야겠군요?" 나는 아주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도 않답니다. 어제처럼 역설을 알아채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 는 물체를 생각해봅시다. 물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들어올린 높이에 비례하는 만큼의 일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의 양은 질량에도 비례히지요?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일의 양은 높이와 질량을 곱해서 얻어집니다. 물체를 어떤 높이까지 끌어올린 후에 다시 떨어뜨려봅시다. 떨어지는 물체가 얻게 되는 운동 에너지는 같은 높이까지 물체를 들어올리 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정확하게 같아야겠지요? 그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랍니다." "그렇겠지요." "떨어지는 물체는 지구의 중력 때문에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어떤 물체나 1초 동안 떨어질 때마다 초속 10미터의 속도가 증가하게 된답니다. 자유 낙하를 시작해서 1초가 지나면 초속 10미 터가 되고, 2초가 지나면 초속 20미터, 3초가 지나면 초속 30미터가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군요." 내가 다시 농담을 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다시 내 말을 완전히 무식해 버렸다. "그렇다면 1초 동안에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얼마나 될까요?" "정지해 있던 물체가 1초 후에는 초속 10미터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평균 속도는 초속 5미터 일 것이고... 그러니까 5미터 정도 떨어지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2초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2초 후에는 속도가 초속 20미터가 됩닏. 평균 속도는 초속 10미터가 되기 때문에 20미터를 떨 어지게 되겠군요. 그러니까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단순히시간의 제곱만큼씩 늘어나는군오. 그러니 까 물체가 떨어진 높이는 단순히 시간의 제곱만큼씩 늘어나는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5미터를 떨어졌지만, 그 다음에는 20미터를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떨어지 는 물체가 지구 중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에너지도 네 배만큼 커지게 되지요. 그러나 속도는..." "두 배만 증가합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에너지는 속도의제곱에 비례하는 셈이로군요." 채린저 교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제야 확실하게 애해했군요. 게으르기는 하지만 똑똑한 당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진실을 알아낸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갑판을 계속 돌아다녔던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약간은 과장된 것이었다. 챌린저 교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런 식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물체의 운동 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질량을 곱하고, 그것을 절반으로 나눈 값이 된다는 식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도 완벽하게 정확한 측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실험을 하지 않고도 그 런 식이 맞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식을 정확하게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물체를 위쪽으로 들어오렸다가 떨어뜨리면 운동 에너지가 완정하게 회복되는 장치를 만 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장치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영원히 움직이는 영구기간이 되겠군요." 내가 감탄해서 말했다. "우리 경험을 근거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역설임을 곧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에너지는 언제나 완벽하게 보존됩니다. 지금까지 어떤 예외도 발견된 적이 없지요. 만약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세상은 지금과 전혀 다를 겁니다." "우선 석탄의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가겠지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만약 이 황량한 바다 밑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챌 린저 교수의 주장이 옳다면 석탄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챌린저 교 수는 다시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금 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시다. 지금 이 배의 운동 에너지는 대략 백만 줄 정도이겠지만, 그것을 열로 환산하면 겨우 한 주전자의 물을 끓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적은 양의 에너지 때문에 잠수부가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 확실하겠지요! 그렇다면 배 주변에 어떤 에너지가 또 있 을까요?" 나는 육지 쪽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파도와 같은 바다의 움직임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파도의 꼭대기에 해당하 느 ㄴ마루 위에 있는 물은 배보다도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파도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챌린저 교수는 머리를 저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 입자는 사실 파도와 함께 춤직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물 입자들은 원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고, 파도가 움직여가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면서도 마치 움직여가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경우는 흔히 있습니 다. 무대에 줄을 선 합창단원들이 파란색의 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파도를 흉내내는 것을 본 적이 있겠지요? 조명이 비치면 정말 파도가 움직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합창단원이 들 고 있는판의 움직임은 파도보다 훨씬 작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없 지요." "그렇다면 파도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런 질문은 과학자보다는 철학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군요. 그러나 나는 그렇 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실존'이라기보다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파도 는 그 자체로서 존재합니다. 실제로 파도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의 마루가 평균 수면 보다 위로 올라가면 위치 에너지를 가지게 되고, 물 입자가 회전하기 때문에 운동 에너지도 있지 요." 그렇군요. 그런데 물 입자가 옆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니까 에너지가 옆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니까 에너지가 옆으로 전달되지는 않겠군요.?"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물체가 직접 옆으로 움직여가지 않더라도 움직임을 일으키는 힘이 옆 의 물체에 영향을 주어서 결국은 에너지를 전달하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얼마 전에 나는 스코 들랜드 서쪽 해안에 부표와 도르래를 설치하면 대서양 파도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무한정의 에너 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에 건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제안이 허무맹랑한 것 이라고 비웃고 무시해버렸지요. 코페르니쿠스, 줄 그리고 칠린저, 이런 과학 선구자들의 길은 순 교의 길이라고 할 정도로 험난하답니다." 나는 칠린저 교수의 기발한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칠린저 교수는 심각한 표정 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우리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기로 합시다. 이번 사고에서 배는 에너지를 모소했고, 잠수정에 서는 에너지가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챌린저 교수의 태도는 매우 거칠었지만, 나를 심각한 대화의 상대로 여기는 것 같아서 우쭐하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나 역설에 직면하게 되면 처음에 생각했던 가정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챌린저 교수는 나의 조심스러운 말을 듣더니 격려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교수님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두 가지 가정에 문제가 있을 것 같군요. 첫째는 자연법칙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양들이 정확하게 보존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인 간은 절대로 정학환 측정을 할 수 없고, 측정에는 언제나 오차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자연이 어떻게 그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 까요? 둘째로 물리법칙이 장소에 상관없이 어느 곳이에서나 같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화성이나 목성 또는 멀리 떨어진 별에서의 물리법칙은 지구에서의 물리법칙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 까?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편안한 런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이 점점 가까 워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챌린저 교수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왓슨 박사,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곳에 따라서 자연법칙이 서로 다르고, 한 곳에서도 임의성 때 문에 일정한 자연법칙이 성립되지도 않는 그런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과학자들은 얼마나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런 정도 로 일관성이 없는 곳에서는 지능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자연법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아주 정밀하게 확인되었답니다. 우선 우리 우주에서는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방법이 완벽하게 대칭적입니다. 즉 자연법칙은 당신 이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더라도 그대로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방향에도 상 관없이 일정합니다. 멀리 떨어진 별의 상태와 운동에 대한 지식은 망원경과 분광기를 사용해서 얻는데, 만약 자연법칙이 거리에 따라서 딸진다면 그런 정보도 모두 틀린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자연법칙은 불변이기 때문에 태양은 물론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이 수 십억 년에 걸쳐 진화를 했으면서도 아주 안정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광학장 치와 기계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것도 자연법칙이 방향에 상관없이 똑같이 때문입니다. 특히 회 전운동을 이용하는 장치가 그렇지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보존될 수밖에 없는 양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요. 물론 그런 양 은 매우 그런 양느 매우 엄밓하게 정의됩니다. 하찮은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플로지스톤과 마 찬가지로 당신 무릎의 위치도 보존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질량이나, 에너지, 모멘템이나 전 기량과 같은 기본적인 양들은 수십억 분의 수십억 분의 일이라는 엄청난 정밀도의 수준에서 보더 라도 변함없이 보존이 되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런 사실을 즉시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보존되는 양의 수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대칭성의 수와 비슷하다빈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지요." 챌린저 교수는 긴 설명을 마치고 나더니 입을 다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도 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서 말했다. "과학이 발전하면 보존되는 양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비 교적 최근에 발견된 전기량이 그런 예가 되지 않겠습니까?" 챌린저 교수는 내 말이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던 자신을 방해했다는 듯이 화가 난 표정으로 고 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실은 그 반댑니다. 플ㅈ로지스톤을 생각해보시오. 과학의 발전 덕분에 개발된 장치를 이용해 서 플로지스톤이 훨씬 일반적인 개념이 에저지의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시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지요. 더욱 정교한 실헙방법이 알려지게 되면 지금까지 서로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양들도 사실은 똑같은 것이 다른 형태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기술 수준이 낮을수록 보존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들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도르래와 지레가 유일한 실험장치라면 지구 중력 때문에 나타나는 위치 에너지도 보존 되는 것처럼 보이겟지요. 1킬로그램의 추를 2미터 높이로 들어올리려면 2킬로그램의 추를 미터 만큼 끌어내려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실험방법이 발전하면서 위치 에너지와 열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포함한 전체 에너지만이 보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왓슨 박사, 이제 우리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보지요. 배는 에너지를 잃어버렸고, 잠수정은 에너지 를 얻었습니다. 몇 가지 실마리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저 구름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 까?"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 었다. 비슷한 모양을 가진 두 조각의 구름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서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하! 높이에 따라서 바람의 속력과 방향이 다르군요!" 챌린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높은 돛을 달고 있는 배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작은 배 옆으로 항해하는 아야기가 기 억납니다. 수면에는 바람이 전혀 없지만, 큰 배의 높은 돛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였 지요." 챌린저 교수는 격려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교수님, 마틸다 브릭스호는 마스트와 돛이 없는 증기선입니다. " 챌린저 교수는 내 항의에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왓슨 박사, 정말 당신에게 신세를 많이 졌군요. 나는 특별히 바보스럽게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내게 강의를 부탁하는 경우 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덕분에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를 알게되었습 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학생들에게 좀더 관용을 베 풀 수 있을 것 같군요!" 그의 말뜻을 생각하는 동안에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높이에 따라 바람의 움직임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바다 속에 흐르는 해류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노르웨이 해안 주변에서의 해류 흐름은 아주 이상하지요. 무시무 시하다는 메일스트럼 소용돌이에 대해서 들어보았겠지요? 해류의 흐름이 깊이에 따라서 전혀 다 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면은 조용하더라도 배 밑바닥에서 아래로 빨려내려 가는 강한 흐름이 나타나면 배가 뒤로 끌리게 되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해류는 봄철에 스코들랜드와 셰틀랜드 군도를 가로지르는 펜틀랜드 해협에 나타나는 것으로 16노트에 이 른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빠른 해류라면 확실한 효과를 보여줄 겁니다." 그 순간에 챌린저 교수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왓슨 박사, 당신이 내 실험을 좀 도와주어야겠군요. 내 선실로 와주겠습니까?" 그의 선실 탁자 위에는 파라핀 램프가 위험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큰 유리 어항이 있었다. 항해 중에 잡은 고기를 넣어두기 위한 어항인 모양으로 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선실 바닥에는 풀무가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챌리저 교수는 내가 선실로 들어가자 선실 문을 잠가버렸다. "왓슨 박사, 만약 당신이 단열도 되지 않은 쇠로 만든 잠수정을 타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몇 시 간을 지내야 한다면 따뜻한 열을 내는 난로를 가지고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파라핀 난로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모리슨 씨의 말에 따르면 그런 것은 절대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엄한 규정이 있답니 다. 선장이 철저히 확인을 한다고 한던데요?" "그래요? 선장도 신처럼 염격하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사람의 법과 물리법칙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쉽게 어길 수 있는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선원들이 원한다면 잠수정에 작은 난로를 가지고 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겠지요. 선원들은 잠수하자마자 가지고 간 난로에 불을 켰을 겁니다. 이제 그 사람들이 겪었던 일을 직접 보여주겠습니다." 그는 파라핀 램프를 켜고 풀무를 밟았다. "이 램프는 아주 안전합니다. 램프에 산소를 많이 공급해주면 불빛이 밝이집니다. 잠수정에는 강 력한 펌프로 공기를 끊임없이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그가 풀무를 더 빠르게 밟으느까 정말 램프가 더욱 밝아졌다. "잠수부들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지요."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잠수정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부의 공기 압력은 점점 높아집니다. 잠수정의 바닥은 아래쪽으로 열려 있지요. 그래서 바다 속으로 10미터를 내려가면 잠수정 안의 공기 밀도는 대략 두 배가 됩 니다. 그리고 공기 중의 산소 압력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밝이질 겁니다." 챌린저 교수가 풀무질을 더 세게 하자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다. 램프의 불꽃이 점점 커지더니 결국은 램프 밑에 있던 파리핀에까지 불꽃이 옮겨붙어버린 것이다. 불꽃은 엄청나게도 1미터가 넘게 올라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재빠르게 생각해보았다. 램프 옆에 있는 어항에 물이 충분히 담겨 있기는 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쉬게 들어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무하마드와 산에 대한 우화가 생각났다. 나는 재빨리 램프를 들어서 어항 물에 던져넣어버렷다. 그렇지만 나 는 곧 그것이 최악의 선책이었음을 깨달았다. 파라핀은 물과 섞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보다 가 볍다는 사시을 고려했어야만 했다. 파라핀이 모두 물 위에 떠서 계속 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챌린저 교수가 큰 자루로 어항을 덮어 공기를 차단하지 불꽃이 사그러들었다. 깜짝 놀란 내가 흥 분해서 소리쳤다. "실험을 신중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경고로군요." "무슨 말입니까? 왓슨 박사. 당신의 바로 그 행동이 이번 사고에 대한 내 추측을 가장 멋지게 증명해주기 않았습니까? 나는 사고가 난 잠구정에서의 상황을 재현해보기 위해서 이 방의 문을 잠갔지요. 방안에 산소가 충분하면 불꽃이 자꾸 커지지요. 그렇지만 불꾳이 너무 커지면 빠져 나 갈 틈도 없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대처할 여유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당신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난로를 잠수정 밑에 있는 바닷물에 던져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방근 본 것처럼 파라핀은 물 위에 퍼지기 때문에 더욱 잘 타게 됩니다. 삽시간에 열이 퍼지고 연 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잠수부들이 죽었을 겁니다. 잠수정을 물 위로 끌어올릴 때까지 계속해서 펌프로 공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연기는 모두 사라져버렸겠 지요. 파라핀도 전부 소모되어버렸고, 램프 자체는 바다 밑으로 가라않아버렸을 겁니다. 뱃사람들이 불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기름, 파라핀, 지방 등과 같은 물질 1킬로그램을 태우면 400만 줄 정도의 열이 방충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물질을 몇 리터만 태우더라도 거대한 철선의 온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일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추측이로군요." 그의 설명이 완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챌린저 교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왓슨 박사, 내일 이 시간까지는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ㅎ될 겁니다. 그러면 선원 들이 믿고 있던 미신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라지겠지요." 내일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나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놀라서 잠을 깨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서 구명대를 찾아들고 갑판으로 올라갔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엔 진이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스크루는 최대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을 텐데도 피오 르드 안쪽의 잔잔한 바다 위에 있던 우리 배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선원들은 두려움 때문에 미쳐버린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나 혼자만 그런 이상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잠시 후에 갑판으로 올라온 챌린 저 교수는 양손에 촛불과 목이 좁은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 속에는 납으로 만든 탄환이 들어 있는 것 같아싿. 그는 선원들의 동요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이 갑 판 위에 무릎을 끓고 앉아서 유리병 속에 촛불을 넣고 마개를 단단히 막은 후에 뱃전에 기대어서 유리병을 바다 속으로 조심스럽게 던져 넣었다. 나도 뱃전으로 다가가보았다. 유리병이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유리병 속의 촛불 은 확실하게 보였다. 참으로 멋진 생각이었다. 챌린저 교수의 주장이 옳다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 고 있던 유리병이 뒤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만나서 배의 뒤쪽을 향해서 빠르게 흘러갈 것이었다. 실제로 한동안은 유리병이 뒤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유리병도 한 곳에 멈추어버린 것 같았고, 그 순간부터 불꽃이 희미하게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앞쪽으로 움직이더니 갑자기 촛불이 밝아지면서 내가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유리 병이 배 밑으로 들어가버려서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챌린저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아무 말도 없이 선실 로 내려가버렸다. 그를 따라서 선실로 내려가보았더니, 어제 실험을 하고 나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었던 모양인지 선실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배가 기울면서 어항 속의 내용물이 쏟아져버린 모양이고, 어항 속에 남아 있는 물 위에는 아직도 파라핀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방을 치우지도 않으셨습니까?"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랬지요. 이 어항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했답니다. 가장 확실한 힌트를 바로 눈앞에 두고 무식 한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나는 정말 멍청이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정말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다. "이 어항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보시오." "분홍색의 파라핀 층이 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고 있군요." "다른 층은 어떻습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어항을 옆에서 바라보았더니 파라핀과 물 사이의 경계면이 보였다. "파라핀 층보다는 그 밑에 있는 물이 더 심하게 출렁이고 있군요. 경계면의 진동도 상당히 심하 고요." "왜 그런지 짐작이 가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파동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까? 운동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운동 에너지 이외에도 지구 중력에 의한 위치 에너지도 바뀌게 되지요. 파동의 골이 생기려면 바다 표면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마루가 생기려면 올라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제 이해가 됩 니까? 파라핀의 밀도는 물의 90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벼운 파라핀은 쉽게 골을 채우고 마 루를 피해서 옮겨갈 수 있게 때문에 작은 양의 에너지가 공급되더라도 경계면에서 파동이 생길 수 있지요." 내가 잠에서 막 깨어나서 멍청하게 보였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챌린저 교수의 이야기가 이번 사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서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내 선실로 되돌아가서 다시 잠 이 들어버렸다. 한참 후에 다시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판으로 올라갔더니 배는 이미 마틸다 브릭스호 옆에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마틸다 브릭스호에서는 사람 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우리 배는 텅 비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갑자기 무서워진 나는 두 배를 연결한 통로를 건너가서 배를 지키고 있는 선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어보얐다. 그 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과 함께 온 교수님 때문이지요. 지금 즉시 잠수정을 바다 속으로 내려보내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은 육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겠답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군요." 나는 배의 뒤쪽으로 가보았다. 성당의 종처러머 생긴 녹슨 잠수정이 높은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챌린저 교수가 잠수정 밑에서 기어나왔다. "왓슨 박사, 마침 잘 왔군요. 이제 곧 잠수정을 바다 속으로 내려보내려고 합니다. 다시는 지난 번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장을 설득히켰스빈다. 잠수정을 타게 될 두 사람의 자원자가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시을 내 스스로 확인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허가받 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잠수정으로 반입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잠수하는 동안에 고약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런 일을 맡을 적임자인 것 같군요. 내가 가지고 온 쌍안경을 빌려줄 테니 책임을 완수해주시오." 나는 잠수정을 지켜보기 좋ㅇ느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쌍안경으로 바다 속을 살펴보았다. 그곳 의 바닷물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3미터 정도의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작은 고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주 투명한 바다로군요." "왓슨 박사, 이곳의 물이 이렇게 투명한 이유는 알고 있겠지요?" 챌린저 교수는 작은 물통이 매달린 로프를 찾아서 반 통 정도의 바닷물을 길어올렸다. "맛을 한 번 보시오." 그의 말에 따라 물을 마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물은 민물이군요?" "지금은 피오르드 부근이 전부 민물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정박하고 있는 곳이 바로 피오르드 해안의 한 가운데로군 요." 챌린저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 "왓슨 박사,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침 육지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 수정을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챌린저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왓슨 박사,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침 육지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 수정을 잘 지켜주기 바랍니다." 잠시 후에 노가 달린 작은 보트가 물 위로 내려지는 것이 보였다. 보트의 앞쪽에는 챌린저 교수 가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세 사람의 선원이 함께 타고 있었다. 보트에는 압축 공기를 넣은 튜브를 사용하는 현대판 자전거도 실려 있었다. 나는 눈을 돌려 갑판 위의 선원들이 회전축의 손잡이를 돌려서 잠수정을 받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다 쪽으로 내려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잠수정의 위쪽에는 "수마트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기중기를 조작하고 있는선원에게 그 말의 뜻을 물었다. "저 잠수정을 만들어서 처음 몇 년 동안 사용했던 인도네시아의 도시 이름이죠. 그런데 저 잠수 정이 마치 쥐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세요? 그래서 우리는 저 잠수정을 '수마 트라의 큰 쥐'라고 부르죠." 잠수정을 내려보내는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수면에 닿을 때까지 그렇게 느린 속도로 내려보 낼 모양이었다. 모든 선원들이 갑판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잠수정에 공기를 불 어넣는 대형 펌프의 무거운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잠수정이 바다 속에 들어가 있 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잠수정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끔찍 한 사고가 일어났을까? 플로지스톤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플로지스톤이 보존될 수 없는 양이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플로지스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챌린저 교수도 내 가 지금 보고 있는 파도가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는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렇짐나 자유 플로지스톤 구름이 쉽게 만들어져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현상은 벌써부터 확인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에너지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열 에너지였을까? 그러나 열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뜨 거운 곳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학 에너지? 챌린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잠수정에는 가 연성 물질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계속에 들이 있는 스프링이 그런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큰 에 너지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계적인 에너지? 배에는 강력한 엔진이 있었지만 잠수정에는 아무런 기계장치도 없었다. 더욱 이 사고가 나던 순간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배의 스크루도 멈추어 있었고, 엔진에 증기를 공급 해주던 보일러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 배에 다른 기계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어 떻게 잠수정까지 전달될 수 있었을까? 배와 잠수정은 쇠줄과 속이 비어 있는 고무 튜브만으로 연 결되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챌린저 교수는 이미 해안에 도착해서 자전 거를 내려놓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챌린저 교수가 자전거를 내려놓고 있었 다. 잠시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챌린저 교수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작은 펌프로 뒤쪽 타이어 에 바람을 넣고 있는 모습을 쌍안경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바다 밑에 잠겨 있는 잠수정을 잠시 살펴본 후에 다시 해안을 바라보았을 때는 챌린저 교수가 보트를 향해서 손을 크게 흔들면서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선원도 우습다는 듯이 그 못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한 과학자가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인 모양이로군요.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모양이지요?" 보트가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자 챌린저 교수느 보트에 훌쩍 뛰어올라서 보트 키잡이에게 급하게 무슨 말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키잡이가 혼자서 육지로 뛰어내리더니 정신 나간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수신호로군요." 기중기를 조작하던 선원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쌍안경을 주었다. 그는 쌍안경으로 키잡이의 수 신호를 잠시 바라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다른 선원들에게 서둘러 지시를 했다. "잠수정을 끌어올려라! 또 사망 사고가 생길 수 있단다!" 그리고는 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시을 알아냈을까?" 10여 분이 지나서 잠수정이 갑판 위로 끌어올려졌을 때 챌린저 교수는 벌써 내 옆에 돌아와 있 었다. 잠수정에 타고 있던 잠수부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아무 상처도 없이 잠수정 밑으로 기어나 왔다. 챌리저 교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왓슨 박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적절한 순간에 힌트를 알려주는 신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답니다. 내가 펌프질을 하고 있던 모습을 보았겠지요. 당신도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 니까?" "타이어에 바람을 넣기 위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금속으로 만든 밸브의 연결 부분에서 이사 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상한 일이라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결 부분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왜 뜨겁게 될까요? 바로 운동의 힘으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 뒤쪽에 있는 큰 펌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일의 크기는 힘과 거리의 곱으로 주어지지요. 피스톤이 내려가면 피스톤은 공기에게 일을 하게 됩니다. 압축이 가능한 공기를 압축시키려면 스프링을 누를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해주어야 합니 다. 그런데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렇게 주어진 에너지는 어디로 갈까요? 그것이 바 로 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잠수정이 바다 속으로 깊이 내려갈수록 공기르 압축하기 위해서 더 많은 힘이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많은 양의 열이 발생하게 되지요. 잠수정에 공급되는 공기는 처음에는 미지근하지만 점점 따뜻하게 되고 마침내는 아주 뜨겁게 됩니다. 손으로 작동하는 펌프로는 잠수정을 뜨겁게 할 정의 열이 생길 수 없지만 몇 마력짜리 증기 펌프라면..." "훌륭핱 발견이로군요. 그것도 아주 적절한 순간에 알아내서 사고를 방지하게 되었다니 말입니 다!" 나는 정말 감탄해서 말했지만, 챌린저 교수는 긴 한숨을 쉬었다. "진작에 그것을 몰랐다니! 바보였여요. 그래도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이 다행입니다. 왓슨 박사, 앞으로 기술자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을 얻은 것 같군요. 우리 기술자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대장장이에게는 근육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롱운 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기술자들은 물리법칙에 대한 깊은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챌린저 교수는 그 정도의 성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보트를 타고 다 시 해안으로 갔다. 나는 그가 해안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해 가 질 무럽이 되어서 유리병을 잔뜩 들고 배로 돌아왔다. 그 유리병은 어제 밤에 바다 속으로 던 져넣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기는 했지만 크기가 조금 더 컸다. 챌린저 교수가 말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서멀리 교수가 스키피오호를 타고 올 갑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우리 경험 했더너 이상한 일들이 우리가 무식해서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전부 거짓말인지를 확싷하게 밝혀 줄 겁니다. 그런 훌륭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왓슨 박사, 나와 함께 서멀리 교수를 맞이하러 갑시다?" 나는 그와 함께 보트의 노를 저였다. 그러나 챌린저 교수의 우스운 모습 때문에 노를 젓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싿. 보트에는 배 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기 위한 물통이 있었고, 가로 받침대 위에는 유리병들과 작은 석탄 난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난로에서 불이 붙은 작은 석탄 덩어리를 집게로 집어서 유리병 속에 넣은 다음에 물통 속에 담갔다. 그리고는 병 속에 납 덩어 리를 넣어서 유리병의 목 부분이 수면에 올라오도록 한 다음, 유리병의 마개를 막고 바다 속으로 던졌다. 훌륭한 학자인 챌린지 교수가 그런 장난 같은 일으 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우스웠다. 그는 유리 병이 바닷물 위에 떠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유리병은 모두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아버 렸다. 아마도 병 뚜껑의 무게를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싶기 도 했지만 그에게도 약간의 모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마지막 병을 준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문제점을 지적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챌린저 교수는 내 말에 콧웃음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우선 뒤를 한 번 돌아본 다 음에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보시오." 그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았더니 놀랍게도 바다 속에 오렌지색의 점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 다.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병들이 모두 수면에서 일정한 깊이에 머물러 있군요. 수면에서 10피 트 정도 됩니까?" "10피트라면 3미터 정도이겠군요. 왜 그렇까요?" "아하! 물 속으로 내려갈수록 물이 압축되어서 밀도가 커지기 때문이겠군요." "그렇지는 않지요. 물은 압축성이 아주 작기 때문에 바다의 수면과 바닥에서의 밀도 차이는 수 천 분의 1퍼센트도 안 됩니다. 병이 이처럼 수면에서 일정한 깊이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지요. 바닷물이 민물보다 밀도가 대략 2퍼센트 정도 더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그 렇다면 민물을 바닷물 위에 서로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으면 어떻게 될까요?" "파라핀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 생기겠군요. 눈으로 경계면을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바닷물 위 에 민물층이 떠 있게 됩니까?" "그렇지요. 물론 경계면을 눈으로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밀도가 민물보다는 조금 크 고 바닷물보다는 조금 작은 부표를 사용하면 그 경계면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일 까? 스키피오호가 예정보다 빨리 착하는 모양이군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스키키오호가 빠른 속력으로 피오르드 안으로 미끄러져 들 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키피오호가 멈칫거리기 시작하더니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물 속에서 석탄이 타는 불빛들이 줄을 맞추어서 출렁거리는 것 같아싿. 나는 놀 라서 소리쳤다. "맙소사. 전설의 괴물인 크라켄의 존재를 믿는 어부가 저 모습을 보면 놀라서 줄행랑을 치겠군 요." 챌리저 교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었다. "놀라지 말아요. 배의 스크루를 돌리는 에너지는 어떤 일을 할까요?" "처음에는 배의 속력을 증가시키는 데 쓰이겠지요." "배의 속력이 최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물을 양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겠지요. 맞습니까?" "그렇지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 속에서 파동을 만드는 데 쓰이게 됩니다. 배가 지나간 다음에 수면에 나타나는 흔적도 사실은 스크루의 회전 때문에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파동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파라핀과 물이 담긴 어항에서 본 것처럼 액체의 표면에서보다는 내부에 존재하는 경계면 에서 더 큰 파동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사실은 두 액체의 밀도가 비슷하면 내부의 경계면에서 생 기는 파동의 진폭은 상당히 커지게 됩니다. 만약 두 액체의 밀도의 차이가 2퍼센트에 불과하다 면..." "경계면에서 만들어지는 파동이 수면에서보다 훨씬 더 크겠군요." 나는 감탄했다. 챌린저 교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요. 바다 속에 만들어진 경계면에서 생기는 파동이 엔진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모두 흡 수해버리기 때문에 스크루가 아무리 세게 돌아가더라도 배의 속도가 더 빠라지기는커녕 그 자에 거의 정지해버리게까지 됩니다. 학식이 높은 서멀리 교수는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 다. 그렇지만 미신에 빠진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서멀리 교수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기 전 에 빨리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노 젓는 법은 학교에서 배웠나요?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건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왓슨 박사. 에너지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찮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유능 한 수사관 앞에서 플로지스톤이나 주전원 같은 엉터리 생각은 맥을 출 수가 없지요. 겉으로 보기 에는 에너지가 방출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도록 신비롭게 감추어진 힘이 있을 수도 있다 는 뜻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라는 개념은 분명히 믿고 신뢰할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