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깊은 사랑(중) 지은이: 산드라 브라운 16 "지금 쯤 맨디가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테이트가 맨디의 욕실 문간에 서 말했다. 맨디는 욕조의 거품 더미 속에서 비누거품 장난을 하고 있었고, 애버 리는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자야할 시간이긴 하죠. 그렇지만 우린 거 품나는 비누로 장난 했어요." "알겠어." 대답을 한 테이트가 안으로 들어와서 변 기 뚜껑 위에 앉았다. "아빠에게 묘기를 보여드려야지." 애버리가 맨디에게 말했 다. 그 말에 아이는 거품을 한 움큼 쥐고는 세게 불었다. 하얀 거품이 여러 방향 으로 퍼지며 그 중 몇 개는 테이트의 무릎에 닿았다. 테이트가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워, 우리 맨디가 비누 장난을 했구나! 그런데 아가, 아빠한테는 그러지 말아야지?" 아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또 한움큼을 퍼올렸다. 비누방울이 애버리 의 코 속으로 들어갔다. 맨디의 장난에 그 여자는 재채기를 했다. "맨디를 꺼내 야겠어요. 또 날려보내기 전에." 애버리가 몸을 욕조로 굽혀, 맨디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은 다음 밖으로 들어냈다. "여기 맨디를 이리 데리고 와요." 테이트가 타 월로 딸을 감싸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 조심해, 젖었을 땐 미끄러우니까." 부드 러운 핑크색 타월로 아이를 감싼 아빠, 엄마가 침실로 맨디를 옮겼다. 아이가 잘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아이를 침대 옆에 앉혀 놓았다. 맨디의 통통하고 작은 발은 부드럽고 두툼한 융단 속에 감춰져 있었다. 융단의 화려한 보푸라기 가 발가락 열개를 모두 싸고 있었다. 테이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능숙한 솜씨로 아이의 물기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잠옷 어딨지?" 테이트가 애버리에게 물었다. "아, 네. 금방 가져올께요." 방엔 길쭉한 여섯 개짜리 서랍장과 옆으로 긴 세개짜리 서랍장이 있었다. "잠옷을 어디에 두었더라?......" 에버리는 옷장으로 가서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양말과 팬티가 있었다. "캐롤, 두 번째 서랍이잖 아." 에버리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속옷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렇지 않니, 아가?" 그는 맨디를 감았던 타월을 풀고 매디에게 속옷을 입히고, 에버리가 침대 를 돌아 반대쪽으로 가는 동안 맨디의 머리 위로 잠옷을 입혔다. 그는 맨디를 침대로 들어올렸다. 에버리가 옷장에서 머리빗을 가지고 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테이트 옆에 앉아 맨디의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다. "아주 신선한 냄새 가 나는데." 그 여자가 머리빗기는 것을 끝내고는 맨디의 발그레한 볼에다 키스 하면서 속삭였다. "파우더를 발라줄까?" "무슨 파우더?" 맨디가 물었다. "엄마 파우더로 발라줄까?" 애버리는 파우더가 든 조그만 뮤직박스를 가져오려고 옷장 쪽으로 다시 갔다. 조금 전에 거기서 파우더를 봐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침대로 돌아와서, 뚜껑을 열었다.차이코프스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폰지 로 파우더를 묻힌 애버리는 맨디의 가슴과 배, 팔에다 톡톡 두드리며 파우더를 발라주었다. 애버리는 파우더 스폰지로 맨디의 드러난 목에도 한 번 쳤다. 맨디 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구부리고 손을 무릎사이에 넣었다. "재미있어, 엄마." 맨디 의 이 한마디에, 애버리는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갑자기 눈물이 솟 아나왔다. 저도 모르게 와락, 아이를 껴안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순간적으로 애 버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이트가 이상히 여기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젠 정말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그렇죠 여보?" "정말 그런데? 잘자라, 아가야?......" 맨디에게 굿나잇 키스를 한 테이트가 베개 위에 맨디의 머 리를 편안하게 받쳐주고는 가벼운 여름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잘 자." 애버리는 몸을 숙여 맨디의 볼에다 가벼운 형식적인 키스를 했지만, 맨디는 애버리의 목 에 팔을 감고 그 여자의 입에다 쪽소리를 내며 앙증맞게 뽀뽀를 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옆으로 돌려, 애지중지 아끼는 곰인형 '푸우'를 끌어 안고는 눈을 감 았다. 맨디의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에 다소 얼떨떨해진 애버리는 뮤직박스를 제 자리에 갖다놓고 불을 껐다. 테이트를 앞서 문을 나온 애버리는 자신의 방 쪽으 로 향하는 홀에서 멈춰섰다. "우리의 첫날을 위해서......" 말도 다 하기 전에, 테 이트가 그 여자의 팔을 움켜잡고 캐롤의 방 침대 안쪽 가까운 벽 쪽으로 밀어붙 였다. 애버리는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그 여자의 팔을 꽉 붙 든 채로 그는 문을 닫았고, 그 여자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다른 한 손을 그 여자의 머리 쪽 벽에 붙이고 섰다. "왜 이래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애버리 가 물었다. "입 닥치고 내 말 들어." 그는 노여움으로 흥분된 얼굴을 가까이 갖 다댔다. "난 당신이 나와 무슨 장난을 하고 싶어서 이러는지 모르겠어. 더이상 당신에게 욕을 하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더이상 당신이 맨디를 혼란스럽게 하려 들면, 나는 당신 머리가 홱 돌아갈만큼 당신을 걷어 차버릴거야, 내 말 알아듣겠 어?" "아뇨, 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도대체, 뭘 모르겠다는거야." 그가 소리쳤 다. "더이상 이런 식의 거짓 상냥함과 천박한 연극은 그만 두라는 말이야!" "연 극이라구요?" "난 성인이야. 그래, 그러니 나는 괜찮지." "악당같으니라구, 무례 한! 내 팔을 놔줘요." "당신의 연극하는 속셈이 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맨디는 어린애야. 그 아이에게는 당신의 연극이 진짜로 생각될 거고 또 그 연극을 ㅂ을 거란 말이야." 그는 몸을 더 가까이 밀어붙여왔다. "그리고 나서 당신이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리고 나면, 당신은 그 아이에게 치료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되는 거야. 알겠어, 내 말?" "난......" "난 그 아이에게 그 런 일이 생기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테이트, 당신은 저를 조금도 믿지 않는군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다는 거 지?" 애버리가 격하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테이트가 무례한 눈으로 그 여자를 훑어 보았다. "좋아. 오늘 아침, 당신은 나를 위해서 기자를 현혹시켰어. 고맙군. 기자회견 내내 내 손을 잡고 있기까지 하고. 아주 다정하게 말야. 손엔 결혼반지 를 끼고서. 꽤나 낭만적이었지." 그가 비꼬았다. "적어도 당신이 병원에 있는 동 안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 정도는 알아. 적어도 그 이후 부터 당신 태도가 그렇게 변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당신 속마음을 꿰뚫 어보고 있는 가족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거야." 테이트가 애버리의 얼굴 바로 곁에까지 얼굴을 갖다댔다. 거친 호흡이 코 앞에 서 느껴졌다. "캐롤, 나는 당신을 너무나 잘 알아. 난 당신이 사람을 죽이는 마당 에도, 그 직전까지도 달콤하고 친절하게 대할 만큼 무서운 여자란 걸 너무도 잘 안다구." 그 여자의 팔을 더 세게 누르면서 그가 덧붙였다. "아직도 난 잊을 수 없어. 언제 얘긴지 기억이나 하나?" 괴로움에 못이겨, 애버리가 거칠게 말했다. "나는 변했어요. 난 달라요." "마녀 같으니라구. 당신은 계략을 바꿨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렇지만, 난 당신이 완벽한 후보자의 아내 역할을 얼마나 잘 할는 지 염려하지 않겠어. 당신은 이제 끝장이니까. 사고 전에 내가 당신에게 얘기한 것 잊지 않았겠지? 내 맘은 변하지 않았어.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당 신과 헤어지는 거야, 알았나, 이 가엾은 사람아." 쫓아내버리겠다는 테이트의 협 박은 그 여자에게 놀라울 게 없는 것이었다. 애버리 다니엘즈는 이미 모든 걸- 그 여자의 정체성 조차도-박탈당한 상태였다. 오히려 애버리를 당황하게 한 것 은, 그 여자가 자신의 삶을 걸었던 그의 완전무결함이 결국 사기였다는 것이다. "당신은 대중을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오로지 보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 로서 다루었나요?" 애버리가 비꼬기 시작했다. "당신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나 를 당신 옆에 세운 채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짓고, 나를 위해 작성된 연설문을 어 리석게 낭독하는, 당신에게 헌신적인 아내 역할을 하게 하려는 거죠?" 그의 목소 리는 한 옥타브가 올라가 있었다. "그야 물론이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후보자 보다야 이길 가능성이 더 크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의 눈은 돌처럼 딱 딱했다. "캐롤, 잘해 보자구. 책임을 내게로 돌려. 그럼 맘 편하잖아? 그렇게 해 서라도 당신이 당신 자신의 가식과 위선을 더 좋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야 뭐가 대수겠어? 이번 선거는 나 자신과 내 후손을 위해서 필요한 거야. 난 나를 지지 해주는 유권자들을 잃고 싶지 않아. 잃지도 않을거고. 나는 내 승리를 방해할지 모르는 그 어떤 일도, 그게 당신과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지라도, 절 대 할 수가 없어." 그가 애버리를 다시 한번 경멸하는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망 할 자식, 소여 박사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당신의 겉모습을 훨씬 젊고 예쁘게 바꿔놓기는 했지만, 당신의 속은 여전히 썩어 있어." 애버리는 그가 자신과는 별 개의 존재인 캐롤을 비난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 었다. 그 비난이 그의 과거의 아내에 대한 것이 아닌, 애버리 자신에 대한 것인 것처럼 그 모든 것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애버리는 '여자'라는 나약함을 무기 로, 그의 사나운 기질이 위협적인 반면, 그건 또한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테이 트가 보이고 있는 분노는, 그의 남성다움을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애프터쉐이브의 향만큼이나 강하게 발산 되었다.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풀어주 고 싶었다. 애버리는 그의 분노에 찬 시선을 무시하며 손을 올렸다. "당신, 정말 내가 예전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이지." 애버리는 그의 어깨 위 에 미끄러지듯 팔을 감으면서, 그의 목뒤로 손을 감았다. "정말이에요, 테이트?" 발꿈치를 들어, 촉촉한 입술을 그에게 던졌다. "정말이죠?" "이러지 마. 이런 행 동 하나하나가 당신을 더욱 창녀처럼 여기게 할 뿐이야." "그렇지 않아요." 그 모욕에 분개했다. 그의 말대로, 애버리는 그런 식으로 기사를 위해 다른 여자의 남편에게 자신을 내맡기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를 위한 목적이 그 여자가 이전에 경험했던 어떤것 보다도 강렬한 욕구를 일으키는 건 아니었다. 기사와 관계없이, 그 여자는 테이트에게 캐롤과의 결혼에서 맛볼 수 없었던 부 드러움과 사랑을 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난 예전의 캐롤이 아니예요. 맹 세라도 하라면 할 수 있어요." 애버리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입술을 테이트 에게 포갰다. 손은 그의 뒷머리를 받친 채, 손가락은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면, 충분히 저항을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그렇지만 그는 자기의 얼굴이 애버리 가까이로 끌어당겨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용기를 얻은 애버리는, 감각적으로 촉촉한 혀끝 으로 그의 입술을 음미해 보았다. 그의 온몸 근육이 긴장된 듯했다. 그러나 그것 은 참는 것이 아니라 약해졌다는 신호였다. "테이트?......" 애버리가 앞니로 그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살짝 깨물었다. "오!......" 벽에 기대두었던 테이트의 손의 떨어져 나갔다. 애버리가 그의 몸무게를 느끼는 다음 순간, 그와 벽사이의 샌드 위치가 되면서 뒤쪽으로 밀려났다. 한 팔로 애버리의 허리를 거칠고 강하게 휘 어감았다. 다른 한 손은 턱을 감쌌다. 그의 손가락이 힘이 어찌나 샜던지, 턱이 부서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가 굶주린 듯 키스를 해오는 동안, 애버리의 손은 그 의 등을 잡고 있었다. 그는 입술로 부드럽게 빨아들여 그 여자의 열린 입술을 봉했다. 그리고 나서 비단처럼 매끄럽고 촉촉한 애버리의 입술사이로 그의 혀를 집어 넣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그 여자에게, 그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빠르 고 능숙한 혀놀림으로 그 여자의 입술을 지나 입속까지 헤집고 들어왔다. 애버 리의 두 손이 그의 뺨으로 향했다. 손바닥을 그의 볼에다 대고는 그의 키스에 한껏 몸을 내 맡기면서 손가락 끝으로 그의 광대뼈를 어루만졌다. 테이트가 애 버리의 옷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몸이 달대로 단 애버리는 가슴으로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나 그걸로 그만이었다. 홱 몸을 튼 테이트가 애버리에게서 떨어져나간 것이다. 애버리는 두 는을 깜박거렸다. 허탈해진 애버리는 벽에 머리를 거칠게 부딪치며 벽을 타고 마루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능숙하고 세련된 행동이었다고 당신에게 시인하 겠어."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의 볼은 붉어졌고 그의 두 눈은 흥분해 있음 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흡은 빠르고 얕았다. "당신, 예전처람 천박하지는 않군. 품위가 있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달라졌어. 성적 매력은 있어. 아니 더 나아졌 어." 애버리는 그의 청바지 앞자락이 두드러져 있는 걸 보았다. 테이트는 말만 그랬다. "좋아, 난 거칠어." 그가 화가 나 거칠어진 소리로 비겁하게 인정을 했 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과 다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냐. 그만 두지." 그가 걸어나갔다. 문을 쾅 닫지 않고 열어 놓은 채로 나갔다. 차라리 그가 뛰쳐나간 것 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의기소침해진 애버리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캐롤 의 방에 덩그마니 혼자 남아 있었다. 가족 모두가 캐롤이 조금은 이상해졌다고 는 느끼고 있었지만, 애버리의 이상한 행동으로 정작 잠못들어 하는 사람은 따 로 있었다. 밤늦도록 깬 채로 어두운 뜰을 거닐며 답을 구하던 그는 집 주위를 몇 차례나 배회한 끝에, 불면증에 시달린 눈으로 달을 쳐다보며 깊은 시름에 잠 겼다. '저 음란한 여자가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캐롤에게 일어나고 있는 피상적 인 변화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성형수술을 한 덕에, 캐롤의 얼 굴은 이전과 거의 비슷하게 복원되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인상을 사뭇 다르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았다. 몸무게가 많이 줄어 전보다 야위어 보 였지만, 한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심한 것도 아니었다. 신체적으로만 보다면, 사 실상 캐롤은 사고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정작 두드러지게, 또 지독하게 당황하 게 만드는 건 신체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저 음란한 여자가 무슨 짓을 하는 걸 까?' 사고 후의 캐롤의 행동을 세심하게 비교해 본 사람은 그 여자에게 닥쳤던 죽음의 충격이 양심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캐롤은 그 말의 참 뜻을 알고 있을 만한 그릇이 못되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추측해 보아도, 그 여자가 베풀고 있는 상냥한 말이나 친절 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기 원해서라는 결론이 앞서는 거였다. 캐롤 러트리지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소지가 있는 것일까? 캐롤이 남편의 신뢰 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냐, 웃기지 말라구......' 캐롤은 지금 전술을 바꾸는 어리 석은 여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예쁘게 포장을 한 행 동만 골라하는 것 뿐이었다. 테이트 러트리지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 그의 머리 에 총을 쏠 그 시간까지, 그런 행동은 그를 기쁘게 할 것이다. 캐롤 나바로우는 그 일을 해내기에 완벽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살아온 지난 날들의 때를 벗어낸 다음. 단정하게 옷을 골라입고, 또 네 단어 이상을 조합하여 말하지 못하도록 철 저히 교육받았다. 그 철저한 시험에 완전히 합격할 수 있게 되는 동안, 그 여자 는 실로 재치와 지각, 언변 그리고 테이트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눈부신 성 적 매력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테이트는 캐롤의 재치가 모든 야비스러움 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고, 또 그 여자의 지각력이란 단지 교활함이고, 그 여자의 언변은 교육받은 것이고, 그 여자의 성적 매력은 나쁜 행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계획대로, 테이트는 그 위장술에 걸려들었다. 왜냐하면 그 위장술은 그가 여자에게서 찾고 있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롤은 맨디가 태어났을때까지도 거짓을 행하고 있었다.-그것 역시 계획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러한 위장의 모든 속박이 오랫동안 그 여자를 견딜 수 없게 만들 어 왔었다. 그 여자의 인내력은 닳대로 닳아버렸다. 그래서 더더욱 그 속박에서 일단 한 번 풀어주면 그 여자는 주어진 일을 거뜬히 해내줄 수 있게 되는 것이 었다. 응급실에 있는 캐롤에게 경솔한 방문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4년 전 테이 트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이후에 그들의 비밀동맹-결혼과, 이후로의 지속적인 협 력-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왔다. 철저히 비밀스런 계약으 로, 말이든 문서로든, 그 여자가 목적을 위해 채용되었을 ㄸ부터의 모든 증거들 을 당사자인 캐롤에게조차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사고 이후로 캐롤은 보통때보 다 더욱 가늠하기 어렵게 변해버렸다. 도무지 캐롤답지 않은 이상한 행동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듯, 그 여자는 전연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캐롤답지 않았다. 낯설 기만 했다. 그 여자다운 것. 혼자서 외고집을 피우며 심술궂은 행동을 일삼기를 즐기는 게 바로 캐롤의 본 모습이었다.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요즘처 럼 그 여자가 독단적으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매우 위 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마땅히 의논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 암캐가-캐롤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라 생각되는-테이트가 관짝에 드러 눕는 그날 받게 될 보상보다는 상원의원의 아내가 되는 게 훨씬 계산상 수지맞 는 일이라고 스스로 결정한 때문일까. 결국, 그 여자의 변신은 예비선거를 계산 에 둔 것 같기도 했다. 캐롤의 속셈이나 동기가 무엇이던 간에, 그 여자의 이즈 음의 새로운 행동양식은 위험했다. 오히려 깨끗이 사고에서 죽어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앞으로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캐롤없이 도 계획한 일은 진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어리석음 암캐가 그걸 눈치라 도 챈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총에 장진되어 있는 두 번째 탄알이 제 가슴을 향 해 날아갈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17 "러트리지 부인, 웬일이세요, 여긴?" 테이트가 형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법률 사무실 곁에 붙은 방으로 애버리가 들어가자, 비서가 일어나며 반겼다. 여기가 어디 위치해 있는지 알기 위해, 애버리는 전화번호부에 적힌 주소를 찾아보아야 만했다. "안녕? 오늘은 어때요?" 행여 실수라도 할까봐 비서의 이름을 부르지 않 고 말했다. 책상 앞의 이름판에 '매리 크로우포트'라고 적혀 있기는 했지만, 섣불 리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좋습니다. 사모님 아주 멋져보이시는군요." "고마워 요." "테이트 씨가 사모님을 두고 전보다 더 아름다워지셨다고 말씀하시긴 했지 만 뵙고 보니 정말 그러시군요." 테이트가 비서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테이트 가 그 여자에게 키스를 한 날 밤 이래, 두 사람은 사적인 대화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애버리는 테이트가 자신에 관해 칭찬하는 그 어떤 말이라도, 자기 비서 에게 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테이트는 ...... 있나요?" 그의 차가 건물 앞에 주차해 있는 걸로 보아 그는 안에 있는게 분명했다. "스폰서와 함께 있습니 다." "스폰서요? 그가 다른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뇨, 그렇지 는 않아요." 매리는 스커트 엉덩이 부분을 쓸어내리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지 금 바니 브릿지즈 씨와 함께 있어요.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죠? 아무튼 그 사람 은 이번 선거운동을 위해 엄청난 기부를 약속해왔어요. 그러니 테이트 씨도 바 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만나기까지 하시는 거죠." "글쎄요. 이렇게 한 번 나오기 도 쉽지 않은 건데......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요? 여기서 기다릴까요?" "그렇게 하세요. 앉으세요." 비서는 대기실의 자주빛과 곤색의 줄무늬 골덴 천으로 된 소 파를 가리키며 앉으라 했다. "커피라도 좀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요즘 들어 애버리는 가끔 커피를 거절하곤 했다. 캐롤의 입맛대로 마시는 들적지근한 커피를 마시느니 안마시는 게 나았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애버리는 '들과 강'이 라는 잡지의 최근호 하나를 골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매리는 애버리가 들어오기 전에 하고 있던 타이핑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테이트의 법률사무실에 이렇듯 충동적으로 방문을 한다는 게 사실 위험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갑갑함을 해결하려는 절망적인 자구책이었다. 도 대체 캐롤은 하루종일 무얼하며 산 여자였을까. 두 주일이 넘도록 목장집을 지 키고 앉아 있었지만, 애버리는 테이트의 아내가 집안에서 소일했던 단 한가지 일도 알아내지 못했다. 애버리는 자기 침실에 있는 것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 기가 드나드는 집의 다른 방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데만도 며칠 이 걸렸다. 그 여자는 자기가 무얼하고 있는지 남들이 알아 챌까봐 끊임없이 뒤 를 돌아보곤 했다. 결국 집안의 구조에 익숙해졌고, 필요한 것들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집 바깥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럴때면 그냥 산보다 나온 척하기 위해 맨디를 데리고 다녔다. 회복기에 받았던 꽃들과 위안 카드들은 가족의 친지들로부터 온 것 뿐임이 분명했다. 캐롤은 직업도 없 었고 취미도 없었다. 애버리는 이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합리 화시켰다. 만일에 캐롤이 노련한 조각가이거나 화가, 하프연주자 혹은 명필가였 다면 어떻게 디었을까. 몰래 그런 기술들을 습득하기도 분명 어려웠을 것이리라. 캐롤은 아무일도 안해도 되는 여자였다. 심지어 자기가 자고 난 침대 정리조차 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나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데다가 요리까지도 혼 자서 했다. 정원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뜰에 있는 나무를 가꾸었다. 가축을 돌보거나 로데오를 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 이미 은퇴한 카우보이가 말 외양 간을 돌보았다. 애버리에게 병원에 있던 동안 못했던 무슨 일이나 흥미거리를 다시 시작해 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캐롤 러트리지는 아주 게으른 여자였다. 애버리 다니엘즈와 달리. 테이트의 개인 사무실 문이 열 렸다. 테이트는 몸통이 술통처럼 생긴 중년의 남자와 같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따뜻한 웃음을 띤 테이트를 보는 순간 애버리의 가슴은 놀라 뛰었다. 테이트의 눈꼬리는 애버리에게는 보여준 적이 없는 유우머감에 가 득차 가늘게 주름이 잡혀져 있었다. 에디는 테이트에게 청바지에 부츠에 셔츠차 림 대신 정장 코트에 넥타이를 매도록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고, 테이트는 대중 앞에 설일이 있을 때 외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누구를 감동시켜 야 하는 거지?" 그의 복장에 대한 잔소리를 듣다못한 테이트가 에디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수백만 유권자들이지." 에디가 대답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었는가로 그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면, 내가 무엇을 입었는가로 는 더더욱 그들을 감동시킬 수 없겠지." "그게 엉터리만 아니라면." 넬슨이 익살 스럽게 꼬집었다.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결국 거기서 얘기는 끝났다. 애버리는 테이트가 그답게 입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는 건강미 넘치는 한 필 수말 같았 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느라 약간 굽어진 그의 고개를 보며, 애버리는 그가 무척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줌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낮게 드 리워져 있었다. 입은 단단하고 흰 치아를 내보이며 길게 웃음짓고 있었다. 테이 트는 애버리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서 애버리는 테이트가 아 내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아름다운 미소를 마음껏 즐기며 바라보았다. "여, 이게 웬일이시오." 우렁우렁한 베이스의 목소리가 애버리를 사랑의 단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아일랜드계 사람인 것 같은 테이트의 방문객이 짧은 다리로 재빨리 다가 왔다. 그는 왁살스런 팔로 애버리를 안아 일으키고 원기왕성한 애정에 넘치는 손으로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런, 당신은 전보다 더욱 예뻐보이는군. 도저히 그 럴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안녕하세요, 브릿지즈 씨." "브릿지즈 씨? 이 런, 그건 도대채 무슨 말이오? 내 어머니께 당신이 텔레비전에 나온걸 보고 전 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워진 것 같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도 그렇다고 하시던걸."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는 시가를 들고 있는 무뚝한 손가락 두 개를 애버리 코 끝에서 흔들어댔다. "당신, 이 바니의 말을 잘 들어요. 그 여론조 사는 아무 뜻도 없는 거요. 듣고 있어요? 아무런 뜻도 말이오. 지난번에도 우리 어머니께 말했지. 그 여론조사들은 똥만큼도 가치가 없다고 당신은 내가 돈을 여기 이 젊은 친구에게 걸거라고 생각하죠?" 그는 테이트의 어깻죽지 뼈 사이를 탁하고 두들겼다. "만일 이 친구가 선거일에 그 망할 데커녀석을 비틀어 줄거라 고 생각 안했다면 말이오, 응?" "아니오. 당신은 안그러셨겠지요, 바니." 그 여자 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말이 맞아요." 그는 시가를 입 한쪽 구석에 쑤셔 넣으 며 그 여자에 게 다가와 또 한 번 갈비뼈가 으스러질 만큼 안았다가 놓았다. "당 신들과 점심이라도 정말 들고 싶소만, 교회에서 집사들 모임이 있어서요." "우리 신경쓰실건 없어요." 곧곧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테이트가 말했다. "기부해 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바니는 그 감사를 거절했다. "어머니는 어머 니 몫을 오늘 내로 부치실거요." 테이트가 억지로 침을 삼켰다. "전 이 수표를 두 분 것으로 알았는데요." "아, 아니오. 그건 단지 내 몫이었지. 이젠 정말 가야 돼. 교회까지 가려면 한참인걸. 어머니는 내가 차를 시내에서 70마일 이상으로 올면 역정을 내시지. 그래서 안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든. 길에는 빌어먹을 미친 놈들이 너무 많아서. 잘 있어요. 알았지?" 그는 쿵쿵거리며 나갔다. 그의 뒤로 문 이 닫히자 비서가 테이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가 절반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말했어." 테이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정말로 여론조사가 똥만큼도 가치가 없다고 믿는 모양이지." 메리가 웃었다. 애버리도. 하지만 테이트의 미소는 애버리를 데리고 자기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걷혀버렸다. "여긴 웬일이야? 돈이 필요해서?" 둘만이 있을 때를 위해 준비해놓 은 듯, 이렇게 무뚝뚝하고 냉랭한 투의 목소리로 말할 때에는 마치 한마디 한마 디가 애버리의 가슴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았다. 그 여자를 가슴 아 프게 했고, 불처럼 화가 나게 했다. "아뇨. 돈은 필요없어요." 애버리가 테이트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은행에 가서 새 카드 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필체가 변했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어요." 애버리가 오른 손을 굽혀보였다. "그래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개인수표를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 그럼 여긴 왜 왔지?" "다른 게 좀 필요해요." "그게 뭔데.?" "뭔가 일할 거리요." 기대가 빗나간 듯한 이 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 여자는 이 말이 그의 관심을 얻기에 충분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의심스러운 듯이 애버리를 빤히 쳐다보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부츠를 책상 한쪽 모서리에 올려 놓았다. "일할 거 리가 필요하다고?" "그래요." 그는 허리띠 위로 손을 걸쳐놓으면서 말했다. "듣 고 있으니 계속 말해봐." "테이트. 난 정말 지루해요." 불만이 끓어올랐다. 초조 하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는 목장집에 하루종일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만 있어요. 난 정말 게으른게 싫어요. 마음이 곤죽이 되어버리 는 것만 같다구요. 이젠 심지어 모나와 연속극 따위에 대해서나 떠버리게 되었 어요." 애버리는 무심코 그이 사무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몇가지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첫째, 사무실 여겨저기에 맨디의 사진이 놓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캐롤 의 것은 하나도 없는 반면. 크레덴자(credenza, 르네상스 시대에 귀중한 식기류 를 넣어두는 찬장, 그것을 본따 만든 찬장이나 책장 : 옮긴이) 뒷 벽에는 사진과 학위증이 예쁘게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었다. 테이트의 과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애버리는 베트남에서 찍은 스냅사진을 크게 확대해 놓은 사진에 눈을 멈추었다. 테이트와 에데가 폭격기 앞에 서 있었는데, 동지애를 보여주는 듯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애버리는 테이 트가 공군에 입대할 때까지 그들이 대학의 기숙사 한방 친구인줄로만 알고 있었 다. 지금까지 애버리는 에디가 베트남 전쟁에까지 같이 간 줄은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게 된거지?" 테이트의 물음에 그 여자 는 정인을 차렸다. "뭐라도 활동이 필요해요." "에어로빅 교실에나 등록하지." "벌써 했어요. 의사가 내 다리뼈를 진찰해보고 그래도 좋다고 한 바로 그날로 등 록을 했어요. 하지만 에어로빅은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한 번에 한시간씩이면 끝나요." "그럼 또 하나 더 등록하구려." "테이트." "뭐요. 도대체 이게 무슨 빌어 먹을 소리야." "난 당신에게 얘기를 하려 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고집쟁이 처럼 들어주질 않는군요." 테이트는 문 바로 뒤에 앉아 있는 비서를 의식하며 문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목소리를 낮추어 그가 말했다. "당신은 승마를 좋아하더 니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 번도 안장 위에 앉아보지도 않더군." 그건 그랬 다. 애버리도 말타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기수로서의 캐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는데다가, 행여 캐롤보다 너무 잘타거나 너무 못타서 뭔가 이상한 낌새 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흥미를 잃었어요." 애버리가 서툴게 대답했다. "나는 당 신이 그 값비싼 승마복들에서 가격표를 떼자마자 흥미를 잃을거라고 생각했지." 애버리는 캐롤의 옷장에서 승마복들을 보았을때 그 바지며 짧은 웃옷들이 과연 입은 적이 있는 것이었나하고 생각했었다. "다시 말을 타기는 할꺼에요." 애버리 는 생각들을 줏어모을 시간을 끌면서 넬슨이 아직 하원의원이었을 때에 린든. B. 존슨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감동적이었다. 군에서의 경력을 말해주는 듯, 군복을 입은 넬슨의 모습이 연대순으로 여러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그 사 진 중 하나가 애버리의 눈을 끌었다. 마치 테이트와 에디의 스냅사진을 보는 듯 했다. 사진에서 넬슨은 다른 공군사관학교 생도와 다장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는 데 그는 젊고 아주 잘 생긴 멋쟁이었다. 배경에는 흐릿하게 괴물처럼 커다란 폭 격기가 보였다. 사진 밑에는 '넬슨 러트리지 소령과 브라이언 테이트 소령. 한국. 1951년'이라고 깨끗하게 타자가 찍혀 있었다. 브라이언 테이트. 넬슨의 친척인 가? 친구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지은 모양 이니까. 애버리는 더 이상 사징에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 것처럼하며 테이트를 향해 돌아섰다.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안돼." "왜요? 팬 시는 거기서 일하잖아요?" "그래서 더욱 안된다는거요." "팬시를 모른척 할께 요."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새로운 지원자들이 수두룩해요. 서로 발을 밟고 밟 힐 지경이지. 에디는 모두에게 일거리를 주느라고 바쁘고." "저도 뭔가에 참여 할 수 있게 해 줘요, 테이트."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애버리 다니엘즈는 억압을 느끼면서도 일을 잘해왔기 때문에 분주한 일정에 익숙해 있었고, 자신을 보호할 줄도 알았다. 테이트가 그 여자를 뒷전에 눌러두려고 하는 데 승복할 수 는 없었다. 캐롤 러트리지가 살았던 정적인 삶은, 애버리 다니엘즈를 미쳐버리게 할만한 것이었다. 그 여자는 암살로부터 테이트를 보호해주려고 한다는 이야기 를 할 수도 없었다. 테이트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애버리의 미래도, 그 여자가 얼 마나 적극적으로 그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어떻게 든 당신을 도와야 할 것 같아요." 그가 쿡하고 웃었다. "지금 누굴 놀릴 셈인 가?" "난 당신 아내에요." "한때는 그랬지." 그의 날카로운 기습에 말문이 막혀 ㅆ. 애버리의 찔린 듯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테이트가 조용히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 날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맨디에게 좋은 엄마가 돼줘. 맨디도 요즘 들어서는 차츰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요, 맨디는 많 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날마다 더 나아지도록 만들 생각을 다 하고 있어요." 애 버리는 책상을 팔로 짚고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런 일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예요. 언제까지나 맨디와 있을 수 만은 없어요. 일주일에 사흘은 유치원에 가잖아요." "당신도 유치원에 보내는 것에는 정신과 의사처럼 동의했잖 소." "그럼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맨디에게는 아주 유익한 일이지 요. 사회성 발달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맨디가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 다시 데 리러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집안만 왔다갔다해요. 또 맨디는 오후에 낮잠을 오래 자요." 애버리는 몸을 더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부탁이에요, 테이 트. 나는 덩굴에 묶여 시들어가는 느낌이란 말예요." 그가 애버리를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은 애버리의 실크스커트 벌어진 틈으로 내 려왔다가 다시 얼른 되돌아 왔는데, 짧은 순간이나마 자기 콘트롤을 잃어버린데 대해 화가 난 듯이 보였다. 테이트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좋아. 당신 이 생각하고 있는 건 뭐지?" 긴장이 다소 풀렸다. 최소한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는 건 커다란 진전이었다. 그 여자는 몸을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선거본부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안돼." 그가 결연하게 말을 잘랐다. "제발 부탁이에요." "안 된다고 했소." 테이트가 화가 나서 다리를 아래로 휙 내리더니 벌떡 일어서서 책 상을 빙 돌았다. "왜 안된다는 거죠?" "당신은 노련한 배우가 아니야, 캐롤. 그리 고 난 당신이 만들어내는 어색한 행동을 견딜수가 없어." "어떤 어색한 행동이 요?" "어떤 거냐고?" 도대체 그걸 다 잊어버렸냐는 듯한 표정으로 힐책을 하고 들었다. "지난번 같이 갔을 때 당신은 방이며 음식이며 모든 것들에 대해 불평만 늘어 놓았잖아. 그리고 에디가 시간엄수하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늘 늦기만 했지. 신문 기자들 앞에서는 주절 주절 농담만 늘어 놓고. 물론 당신 입장에서야 가며운 익살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걸 듣고 보는 사람들은 전부 품위없고 격에 맞지 않는 것 뿐이라고 했어. 게다가 그 여행은 내가 출마를 결정하려고 시험적 으로 해 본 단 3일 간의 여행이었는데." "이번엔 저번 같이 그러지 않겠어요." "난 당신을 즐겁게 해 주고 있을 시간이 없을거야. 연설을 하고 있지 않으면 연 설 준비를 하고 있겠지. 틈만 나면 당신은 내가 당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둥 할 일이 없다는 둥 하며 날 졸라 댈 게 분명해." "뭔가 나대로 일거리를 찾겠어요. 커피를 끓이고 샌드위치 주문을 해준다든가, 연필을 깍든지, 전화를 걸고 잔심부 름도 하구요." "하찮은 일들이지. 그런 정도의 일이라면, 그걸 맡아서 해줄 자원 봉사자들은 얼마든지 있어." "그래도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거예요." 애버리는 테이트가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바로 그 뒤를 열심히 바싹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멈추자 그만 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그가 돌아섰다. "지금 그 기분도 하루만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릴거야. 지쳐서 불평만 해대다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할걸?" "아니, 그러지 않아요." "왜 갑자기 그렇게 나서고 싶어하는 거야, 대체?" "왜냐하면 당신은 상원의원에 출마할 것이고 나는 아내로서 당신이 이기도록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애 버리가 화가 나서 소리를 높였다. "빌어먹을." 문에서 세 번 톡톡 두드리는 소리 가 났다. 곧 문이 열리며 에디와 잭이 들어왔다. "실례지만 들어오면서 무슨 소 리 지르는걸 들은 것 같은데. 뭐 심판을 봐야할 일이라도 있는 겐가?" "웬일이세 요, 여긴?" "테이트에게 할말이 있어서요. 아주버님만 괜찮으시다면요." 애버리가 잭에게 되쏘았다. 그리고 도전적인 몸짓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 겼다. "난 그저 물어 본 거예요." 잭은 벽에 붙여 놓은 짧은 소파에 앉았다. 애디 는 바지 주머니에 두손을 찌른 채 자신의 번쩍이는 구두 사이로 보이는 동양식 카펫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테이트도 자기 책상으로 되돌아가 앉았다. 애버리는 너무 긴장해서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레덴자에 엉덩이로 몸을 바치며 기 대 섰다. "캐롤이 다음주에 가는 유세운동에 따라가겠다는군." 잭이 탄성을 질렀 다. "하느님 맙소사. 왜, 또?" 그의 말을 들은 애버리는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가 없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모두에게 물었다. "왜, 안되나요?" 애디가 가운데로 썩 나서며 말리고 나섰다. "어디 의논해 봅시다." 테이트는 그들을 차례로 돌아 보았다. "아주버님은 왜 찬성을 안해주시는 거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잭이 한심하다는 듯,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듯한 눈빛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해 왔다. 그의 어깨가 한 번 올라갔다가 툭 떨어졌다. "집사람이 나선다는 건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지 않습니까?" 테이트의 시선이 애버리에게로 왔다. "당신도 내 가 왜 반대를 하는 건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야 어느 정도 이해는 하 죠." 그래도 다른 사람 앞이라고 내놓고 헐뜯지는 않는 테이트였다. 애버리도 그 걸 알았는지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는 건지도 알았으니까요." "에디는 어때?" 테이트가 에디 이름을 부르자 말없이 카 펫만 내려다보고 있던 에디가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남자 혼자 보다는 잘 어울 리는 한쌍의 부부가 더 보기 좋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그건 왜지?" "이미지 문제야. 부부라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모든 걸 대표하거든. 가정, 한마 디로 미국의 꿈이지. 워싱턴에 가게 되면 결혼은 더 중요해지지. 거기가면 세금 을 타이프 칠 줄도 모르는 멍청이 비서에게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이론상으로 서야 그렇지." 잭이 쿡쿡 웃으며 끼여들었다. 에디도 씨익 웃기까지 하며 인정했 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여자유권자들은 충실한 남편이자 성실한 아버지라고 자네를 존경하게 되겠지. 남자들은 자네가 동성연애자도 아니고, 일만 하는 미치 광이는 아니라고 좋아하겠고. 요즘 세간에 듣기 거북한 말들이 돌기는 한다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어쨌든 동성연애자를 뽑는 걸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게 분명하지 않겠나? 너무 잘 생긴 입후보자들을 남자들은 싫어해. 그런 점에서 아내를 데리고 가면 인상이 좋아지겠지." "다시 말해 물귀신작전이군요." 애버리 가 말했다. 별수 없쟎냐는 듯 에디는 어깨를 들어올리며 사과하듯 토를 달았다. "난 처음부터 반대를 한 건 아니예요, 캐롤." 애버리는 세 남자에게 역겹다는 표 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그래 어떤 판결이 내려진 거죠?" "한가지 제안을 할 까?" "에디에게 발언권을 주지." 조금 전처럼 테이트는 책상 한쪽 모서리에 다리 를 올려놓고 등이 높은 가죽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애버리는 책상에 서 테이트의 다리를 휙 내려뜨려 그의 자세와 무관심한 태도를 깨뜨려 버리고 싶다고 느꼈다. "캐롤을 대신해서 이번 금요일 밤에 있을 저녁파티에 참석해 달 라는 초대를 거절한 게 있거든." 에디가 입을 열었다. "오스틴에서 온 남부 주지 사의 저녁파티?" "맞았어. 난 캐롤이 많이 회복되었기는 했지만, 아직 파티에 참 석할 만하지는 않다고 얘기했었지." 에디가 애버리 쪽으로 몸을 돌리며 다음 말 을 이었다. "다시 전화를 해서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말할까 해요. 그들은 초당파 적인 그룹이기 때문에 유세하고는 상관 없거든요. 그냥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 는 정도이지요. 그러니 그날 저녁 지내는 걸 보고 나서 여행을 동반할 것인가 아닌가 결정짓기로 하지요." "말하자면 면접 시험을 보는 거로군요." 애버리가 빈정거렸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지요." 에디는 조용히 돌아섰다. 잭과 테이트를 보며 말했다. "퇴원할 때 예상외로 기자들 질문을 꽤 괜찮게 받아넘겼잖아." 에 디의 제안은 테이트의 마음을 상당히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최종결정은 아직 테이트에게 남아 있었다. 테이트는 아직도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말도 없이 소 파에 앉아있는 형을 바라보았다. "형. 어떻게 생각해?" "글세, 해될 것까지야 뭐 있겠나." 대답을 하며 애버리는 바라보는데, 눈빛이 영판 곱지가 않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시기엔 너희 둘이 앞에 나서 있는 걸 좋게 생각하시겠지만." "두 사 람 모두 충고해줘서 고마워요." 바보가 아닌 바에야 둘 다 곧 그 뜻을 알아들었 다. 잭은 한마디도 더 않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에디도 애버리에게 그냥 고개 만 까딱헤 보이고는 문밖으로 나갔디. 테이트는 애버리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 다. 그러더니 간신히 말을 했다. "좋아. 우리가 열심히 유세준비를 하는 동안 당 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기회를 줘보지." "실망시키지 않을 께요. 테이트. 약속해요."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금요일밤 정 각 일곱시에 떠날거요. 준비하고 있도록." 18 "내가 나갈께요." 현관벨이 두 번 울렸다. 애버리가 제일 먼저 현관에 나갔다. 손잡이를 돌려서 당겨 문을 열었다. 반 러브조이가 제라늄화분들 사이에 서 있 었다. 애버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람을 반기려던 미소가 돌처럼 굳어버 렸고 무릎은 마치 물에 잠긴 듯 누적누적해지는 기분이었다. 배도 팽팽하게 굳 어졌다. 마음의 동요를 느끼기는 반도 비슷한 것 같았다. 그의 엉거주춤한 자세 가 순간적으로 곧게 펴졌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담배가 땅에 떨어졌다. 그 리고 눈을 여러번 껌벅거렸다. 애버리는 반의 눈을 놀라서라기보다 마리화나를 피웠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잠깐 동안 반은 눈을 꼭 감았다가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러...러트리지 부인." "네." 반은 앙상한 손가락을 가슴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세상에 전 잠깐 동안 전 그만 당신을 ......" "들어오세요." 애버리는 그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아 얼른 말을 잘랐다. 그 여자는 하마터면 그를 보고 놀라 반가움에 소리지를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를 열렬히 껴안으며 요 즘 자신에게 생긴 일들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렇 지만 처음부터 이렇듯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에게 이 비밀을 알리 는 것은 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비밀을 함께 하는 것은 그만큼 위안이 되는 일이긴 했으나 그 정도의 호사도 할 수 없는 게 그 여자의 입장이 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반이 그렇게 까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으니까. 애버리가 옆으로 비켜서자 반이 현관으로 들 어섰다. 반으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런 호화로운 저택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었으련만 애버리의 얼굴만을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반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게 딱해 보였다. "당신은 ......?" "아, 죄송합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손바닥을 청바지에 몇차례 비비고 나서 손을 내밀었다. 에버리는 잠 깐 손을 잡고 흔들었다. "반 러브조이입니다." "전 캐롤 러트리지예요." "알고 있 어요. 당신이 퇴원하실 때도 거기 있었지요. 저는 KTEX방송에 있는 사람입니 다." "아 그러세요" 반은 평범한 대화를 하느라고 애쓰고 있으며너도 그 여자에 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가깝게 서 있으면서도 예전처럼 대하지 못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애버리는 반에게서 묻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지만 그 저 정상적인 것 하나만 하기로 했다. "방송국에서 나오셨다면, 제 남편의 성거운 동 매니저인 파스칼 씨에게서 먼저 알리셨어야지 않았나요?" "그분은 제가 오는 걸 알고 있어요. 프러덕션에서 저를 보낸겁니다." "프로덕션이라고요?" "제가 다 음 주 수요일에, 여기서 텔레비젼 광고를 찍기로 되어 있어요. 그래 오늘은 먼저 장소를 봐 두려고 온 겁니다. 제가 온다고 아무도 당신께 얘기 않던가요?" "전......" "캐롤?" 넬슨이 심한 반감을 드러내는 눈초리로 반을 쏘아보며 복도로 나왔다. 넬슨은 언제나 군인다운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옷에는 언제라도 주름살이 하나도 없었고 반백의 머리카락도 한오라기 흩어져 있는 때가 없었다. 반은 완전히 그 반대였다. 그의 더러운 티셔츠는 반쪽 굴껍데기에 굴을 내놓는 전문요리점인 카준식당에서 만든 것이었다. '껍질을 벗기고 날로 드세요.'라고 묘 한 암시를 하는 말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의 청바지는 멋으로 너덜대도록 하는 단계를 지나 거의 실밥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의 운동화에는 끈도 없었다. 애 버리는 그가 언제나 맨발로 다니는 것만 보아서 그에게는 한 켤레의 양말도 없 나보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외모는 건강하지 않고 영양실조로 쇠약해 보였다. 얇 은 어깻죽지 뼈가 티셔츠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허리를 곧게 펴고 서면 갈비뼈 하나하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래서 그런지 그의 등은 언제나 앞으 로 엉거주춤 굽어 있었다. 애버리는 반의 손톱이 갈라지고, 지저분하고, 담배 니 코틴으로 노랗게 된 손이 비디오 카메라를 다루는 데는 천재적인 소질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퀭한 두 눈은 믿을 수 없는 예술적인 심미안을 갖고 있었 다. 그러나 넬슨이 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히피의 모습-삶을 낭비해 버리는 히피의 모습-그 뿐이었다. 반의 재능은 애버리의 진짜 모습처럼 철저하 게 위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 이쪽은 러브조이 씨예요. 러브조이 씨 이분 은 러트리지 대령님, 제 아버님이세요." 넬슨은 마지못해 반과 잠깐 악수를 나누 었다. "이 분은 다음 주에 녹화하기로 한 텔레비전 광고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미리 둘러보러 나오셨대요." "MB프로덕션에서 나오셨나요" 넬슨이 딱딱하게 물 었다. "저는 그곳에 적을 둔 프리랜서 입니다. 최상의 것을 원할 때면 그들은 저 에게 부탁을 하거든요." "흠. 누군가 올 거라고 하긴 하더군." 분명 반은 넬슨이 기대하던 그런 류는 아니었다. "내가 안내하겠소. 집안을 보시겠소, 아니면 집 밖 을?" "양쪽 다요. 어디든지 러트리지 씨가 그의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생 활을 하는 곳이 좋겠지요. 그들은 자기네가 원하는 것을 사교적인 것이라고 하 더군요. 감상적인 거죠." "집은 어디를 둘러 봐도 좋소만, 내 가족 근처에는 가지 도 마시오, 러브조이 씨. 내 아내는 당신 셔츠에 씌여 있는 조잡한 문구에 모욕 감을 느낄 거요." "사모님이 입고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 까?" 넬슨의 파란 눈이 위로 올라갔다. 넬슨은 그가 이런 류의 열등한 족속이라 고 여기는 사람들로부터는 무조건적인 공경을 받는 데에만 익숙한 사람이었다. 만약 넬슨이 반을 바지 엉덩이 부분과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려 집어 던졌더라도 에버리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반의 일이 테이트의 유세에 직접적으로 관련되 어 있지만 않았더라도 아마 그는 그렇게 했으리라. 그래서인지 넬슨이 애버리에 게 말했다. "캐롤, 그런 말을 듣게 해서 안됐군. 우린 실례하겠다." 반이 애버리 에게로 돌아섰다. "나중에 또 뵙지요. 러트리지 부인. 빤히 자꾸 쳐다봐서 미안했 어요. 당신은 생긴게 정말 꼭......" 애버리는 재빨리 가로막았다. "이젠 사람들이 절 자꾸 쳐다 보는데도 익숙해졌어요. 모두 그런 일에는 호기심이 발동하니까 요." 넬슨은 초조하게 머리를 돌렸다. "이쪽이요, 러브조이 씨." 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흔들더니 넬슨을 따라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걸 어 나갔다. 애버리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뒤로 문을 닫은 채 그 문에 기대어 섰 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눈을 깜박거리면서 초조와 자책 때문에 나오는 눈물 을 삼켜 버렸다. 애버리는 반의 가느다란 팔을 잡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여러 가지 얘기들을 듣고 싶었다. 아이리쉬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아이리쉬는 애버리 의 죽음을 아직도 슬퍼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살아 나가고 있는 걸까? 새 일기 예보 담당은 누가 되었을까? 임신 중이던 여비서는 딸을, 혹은 아들을 낳았는 지? 판매부서의 취근 뉴스거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등. 그러나 애버리가 반을 만나 반가와하는 것만큼 반이 애버리를 반가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문득 들었다. 애버리가 살아있다고 놀라와는 하겠지. 하지만 그게 가시고 나면 그는 틀림없이 그런데, 지금 여기서 대체 뭘하는 거냐는 질문을 하고야 말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애버리도 자주 그 질문을 하곤 했었다. 그렇다. 애버리가 바라고 있긴 했지만 그 동기도 완전히 지기 만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테이 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그의 죽은 아내 자리를 대신 지켜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한가? 당연히 있어야 할 두 사람에 대한 생명의 위협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집에 온 이래 그 여자는 호기심에 가득찬 관찰자였 다. 잭과 도로시 레이 사이에는 뭔가 불협화음이 있었다. 팬시는 막무가내였다. 넬슨은 독재적이었고. 지이는 냉담했다. 에디는 결점 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 테이트에게만은 감탄과 사랑을 보여 주었다. 애버리는 주변에 숨어 도사리 고 있는 살인음모자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지난날 그릇된 판단으로 그렇듯 어리석게 잃어버렸던, 기자로서 누려야 할 존경과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 회로 삼고 싶었다. 반을 다시 봄으로써 그 의욕이 다시 되살아났다. 반의 출현은 애버리에게 자신이 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보다 오히려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 박리현상은 애버리의 경력으로 보더라도 가장 힘든 경우였다. 그것이 그 여자에 게서 결여된 유일한 저널리즘의 한가지 결정적인 요소였다. 애버리는 저널리스 트로서의 관심과 기술을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았다. 그 여자는 항상 객관적이 되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하였다. 애버리는 러트리지 가문에 개입되면서 객관적 이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 여 자의 조심스런 계획에 가장 큰 헛점은 도망칠 길을 마련해두지 않았다는 것이었 다. 진행되어 온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가 없어서, 그저 가만히 닥쳐 오는 대로 겪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옛친구의 급작스런 방문까지도. 금요일이 되었 다. 애버리는 맨디가 오후에 낮잠을 자고 난 뒤 맨디 방에서 오랫동안 함께 놀 아 주었다. 맨디가 배가 고파 모나에게로 가버릴 때까지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진흙으로 공룡 빚는 놀이를 같이 했다. 다섯시에 목욕을 했다. 화장을 하며 모나 가 가져다 준 간식을 조금 먹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가며 손질을 했다. 머리는 아직도 짧기만 했지만, 전처럼 볼썽사나울 정도는 아니었다. 윗부분은 웬만큼 자 라나 이리저리 매만질만 하기까지 했다. 큼직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로 멋지고 섹 시한 최종 마무리를 했다. 일곱시 15분전. 예정보다 15분 일찍 준비가 끝났다. 화장실에서 귀에 향수를 찍어 바르고 있는데 갑자기 테이트가 들어섰다. 전엔 본 적이 없었던 예기치 않은 그의 모습에 애버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애버리의 방 바로 옆 서재에 놓인 침대 겸 소파에서 잠을 잤다. 방 사이에는 언제나 그 쪽에서 방문을 잠그고 있었따. 서재는 신사들의 클럽을 흉내낸 듯, 단아하고 남 성적인 톤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곁에 딸린 화장실이 있었는데 세면기는 치과병 원의 양치질만한 크기 밖에 안됐고,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은 어른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테이트는 아내 방에 있는 널찍한 침실과 화장실 보다 갑갑한 자기 서재 쪽을 더 좋아했다. 아내 방에는 벽면 전체에 거울 이 있 는 커다란 드레스룸 두 개와 머리 위로 별이 보이는 이탈리아제 대리석을 깐 욕 조와 널찍한 플러시 천의 카펫이 있었다. 테이트가 들어 왔을 때, 맨처음 애버리 에게 떠오른 생각은 그가 마음을 바꿔 오늘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하러 왔나 하 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고, 단지 서두르는 듯 했다. 거울에 비친 애버리의 모습을 얼핏 본 그가 멈칫했다. 애버리는 애쓴 보람이 있 다고 만족해하며 테이트를 향해 돌아서며 팔을 양옆으로 벌려보였다. "괜찮아 요?" "드레스말이오? 드레스는 훌륭하군." "계산서를 보면 얼마나 훌륭한지 알게 될거예요." 그 여자도 그 드레스가 정말 멋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금속조각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붙어있는 검은 천이 가슴과 어깨와 등과 팔, 손묵까지 덮 고 있었다. 처음 벌어진 틈부터 무릎길이의 덮개는 까만 실크로 드리워져 있었 다. 그리고 목과 손목 둘레에는 까만 진주빛 금속조각이 둘러져 있어 더 한층 돋보였다. 섹시한 드레스이긴 했지만 야하지는 않은, 오드리 헵번을 생각나게 하 는 그런 것이었다. 자기를 돋보이려고 이런 걸 고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늘밤 은 캐롤의 것 어느 것도 입고 싶지 않았다. 테이트에게 여태까지 캐롤답지 않은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캐롤이 입던 드레스는 길게 끌리는 눈부시게 화려한 것 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애버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뭔가 가벼운 것, 그 렇지만 긴 소매의 드레스가 필요했다. 너무 피부를 드러내기에는 양심에 꺼렸다. 혹시 그 여자의 거짓 신분을 드러낼지도 몰랐다. 바로 이 드레스는 그 모든 요 건을 갖추고 있었다. "돈 한번 잘 썼군." 테이트가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뭐 특 별한 용건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늦어지지 않나 보러온 거예요?" "늦 은 것은 오히려 나요. 장식 단추를 찾을 수가 없던데. 혹시 보지 못했소?" 그가 채 옷을 다 입지 못하고 있음을 그 여자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턱에는 서둘러 면도를 하느라고 생긴 상처에서 피가 내보였다. 발은 아직 맨발이었고 머리는 대충 닦아서 아직 젖은 채 빗질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풀먹인 빳빳한 셔 츠는 채 단추로 끼워져 있지 않았고 어두운 턱시도우 바지 위로 긴 셔츠 꼬리가 늘어져 있었다. 털이 난 가슴을 보고 애버리는 입에 침이 마르는 걸 느꼈다. 배 는 마치 북처럼 탄탄하고 반듯했다. 바지 앞섶을 채 여미지 못했으므로 그 아래 까지 서슴없이 볼 수 있었다. 배꼽 그리고 팬티의 흰 고무밴드까지도. 애버리는 반사적으로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여자의 심장은 너무 두근거려 실제로 피부 위로 드레스 옷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장식 단추요?" 그 여자는 간신히 물었다. "여기에 둔 것 같던데." "그럼 찾아 보세요." 애버리는 황망하게 눈을 돌려 화장 품이나 장신구들을 보관하는 곳을 가리켜 보이며 대답했다. 그는 뚜껑이 위로 열리는 까만보석상자 두 개째를 뒤적이다 오닉스로 된 장식단추세트와 커프스 단추 한 쌍을 찾아 냈다. "도와드려요?" "아니." "도와드릴께요." 대담하게 출구 쪽을 막아서며 애머리가 말했다. "제가 해드릴께요. 팔을 구부리면 옷에 주름이 지잖아요. 이리 주세요."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단추를 끼웠다. 그 여자 의 손가락마디가 그의 빽빽한 가슴털에 스쳤다. 부드럽고 촉촉했다. 애버리는 거 기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 싶었다. "이건 다 뭐요?" 애버리는 그를 올려다 보고 그의 턱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 보았다. "아, 맨디가 그린 작품이예요." 끄적끄적 그려놓은 그림들이 스카치테이프로 거울에 붙여져 있었다. "맨디가 당신에게 안 주던가요?" "물론 받았지. 하지만 난 당신이 저렇게 붙여놓기까지 하리라고는 생 각지도 못했지. 당신은 지저분한 걸 두고 못보는 성미잖아...다 끝났어?" 그는 그 여자가 뭘 그렇게 꾸물거리나 하고 내려다 보았다. 머리를 부닺칠 뻔했다. "하나 더 남았어요. 똑바로 서세요. 당신 배가 꼬르륵 하는 거예요? 거기 스낵 좀 드세 요." 애버리는 커프스 단추를 끼우려고 그의 왼쪽 팔을 잡아당겼다. 고리를 단추 구멍속에 끼우고 서로 맞물리게끔 고리를 폈다. 그리고 손으로 탁탁 토닥였다. "하나 더요." 오른쪽 것도 끼워주었다. 단추를 끼우는 게 끝나고도 그에게서 떨 어지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혀 그를 가까이 올려다 보았다. "나비 넥타이는요?" 입 안의 것을 삼키고 테이트가 대답했다. "내 방에." "잘 맬수 있겠어요?" "그럼. 고마워." "별 말씀을." 볼일이 끝났느데도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잠시 동안 더 머물면서 그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오랫동안 목욕하느라고 생긴 부옇게 낀 습 기와 그 여자의 향수냄새가 그들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결국은 뒤로 한걸음 물 러서서 문쪽으로 다가가며 그가 말했다. "5분 후면 나갈 수 있을거요." 테이트는 자기 방으로 되돌아오며 마치 간신히 도망쳐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뜨 거운 물로 샤워를 한 ㄸ문일까? 왜 몸이 식지 않는 것일까? 그는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중요한 저녁파티에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비넥타이를 제대로 맬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번씩이나 실패하곤 했다. 양말도 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구 다 준비되는 10분이나 걸렸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그가 그 여자방문을 노크했을 때 문을 열고 나오며 늦었다고 투덜대지도 않았다. 테이트 와 애버리는 함께 거실로 들어섰다. 지이가 맨디에게 이야기 책을 읽어주고 있 었다. 넬슨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형사가 악한들을 붙잡아다 가 재판에 회부시키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엘슨은 테이트와 애버리가 들 어서는 걸 보더니 늑대 울음소리 같은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너희 둘은 마치 결혼 케이크 위에 놓인 신랑과 신부 같아 보이는구나." "고맙습니다, 아버지." 들 을 대신해서 테이트가 대답했다. "여보, 캐롤의 검은 드레스는 신부 같아 보이지 는 않는군요." 테이트는 자기 어머니가 힐난조로 얘기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 지만, 아무튼 얘기는 그렇게 들렸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지이가 그걸 깨뜨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캐롤." "고마워요." 애버 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지이는 캐롤을 만나 이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이 는 캐롤과 테이트의 사랑이 결혼도 하기 전에 식어버린 것을 기뻐하고 있었겠지 만, 결코 그 말을 입밖에까지 내지는 않았다. 캐롤이 아기를 임신하고 있을 동안 에 지이는 조금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캐롤의 모성애가 오래 가지 않자 그 런 관심도 언젯적이었냐 싶게 거도고 말았다. 비행기사고가 있기 직전의 몇 달 동안, 지이는 캐롤을 드러내 놓고 비방하곤 했다. 물론 테이트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의 부모가 바보도 장님도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들의 아들 잭 이나 테이트를 괴롭히는 것들은 아주 몹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테이트는 오 늘 밤만은 좀 부드럽게 진행되어 가ㅆ면 하고 바랬다. 그런데 벌써 긴장감이 감 돌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없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완전히 파장을 낸 것 같 지는 않았지만,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맨디가 할머니 무릎 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두 사람 앞으로 수줍어하며 다가오자 다소 분위기가 되살 아나기 시작했다. 테이트가 무릎을 꿇어 앉으며 '이리와서 아빠를 안아주렴'하고 말했다. 맨디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목에 얼굴을 묻었다. 바로 그때, 놀랍게도 -넬슨과 지이, 테이트가 보기에는 무척 놀랍게도-애버리가 그들 옆으로 얼굴을 내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맨디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목에 얼굴을 묻었다. 바 로 그때, 놀랍게도-넬슨과 지이, 테이트가 보기에는 무척 놀랍게도-애버리가 그 들 옆으로 얼굴을 내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대로 뽀 뽀해주러 네 방에 갈게, 맨디. 좋지?" 맨디는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끄덕였다. "좋아요,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해?" 맨디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트의 목에서 팔을 풀고는 에버리에게 안겼다. "빠이빠이." "안영. 자, 굿나잇 뽀뽀를 해줄래?" "지금 자러 가야 돼?" "아니, 미리 뽀뽀를 받 아 두려고." 맨디는 애버리의 입술에 대고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하고 할머니에게 로 달려갔다. 보통 때, 캐롤은 맨디가 화장한 것을 망쳐놓거나 외출복을 헝클어 놓으면 짜증을 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 캐롤은 단지 휴지로 입술을 약간 문지르 고 말 뿐이었다. 테이트는 캐롤이 오늘밤은 좋은 엄마역을 철저하게 잘 흉내내 고 있구나 하고 어리둥절하게 느낄 따름이었다. 왜 그러는지는 하늘만이 알고 있겠지. 지금 보여주는 맨디에 대한 애정은 아마도 무슨 사기극이리라. 회복기 때에 잡지를 뒤적이거나 텔레비전 좌담을 시청하다가 힌트를 받은 게 틀림없었 다. 테이트는 그 여자 팔꿈치에 손을 대고 현관으로 향했다. "늦겠군." "운전 조 심해라." 그들 뒤에 대고 지이가 외쳤다. 넬슨은 텔레비전 속의 총든 형사들을 남겨둔 채 그들을 현관까지 따라나왔다. "오늘밤 잉꼬부부 선발대회가 있어 비밀 투표를 한다면 너희 둘이 분명 뽑히겠구나. 너희둘이 이렇게 차려입고 함께 외 출하는 걸 보니 정말 자랑스럽고 기쁘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그만 다 용서해주고 잊어버리라고 아버지는 얘기하는 것일까? 테이트는 아버지가 걱 정 해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말 그런 거라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용서? 용서하는 것은 그에게는 항상 어렵게 느껴졌다. 잊는다 고? 그건 그의 성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테이트는 자기 차의 은 색 가죽을 씌운 앞 좌석에 캐롤을 앉혀주면서 문득 자기도 그럴수 있었으면 하 고 바랬다. 만일에 그가 분노와 고통과 멸시들을 지워버리고 오늘밤의 이 여인 과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은 것일까? 그는 타인에게도, 자 기자신에게도 양심적으로 솔직했다. 오늘 밤의 캐롤처럼 보이고 행동하기만 한 다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몰랐다. 그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그 여자를 원했다. 그는 캐롤이 이렇듯 조용조용 부드럽게 말하고 침착하 며 섹시하게 보일 때를 좋아했다. 그도 그 여자를 발깔개 정도로 여기고 싶지는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ㅕ자는 그가 원하는 것처럼 그저 조용하 고 얌전한 아내이기에는 너무나 왕성한 원기와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 런 아내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분노든 장난이든 불꽃을 좋아했다. 그런 게 없으면 양념치지 않은 음식처럼 너무 밋밋했다. 테이트가 운전대에 미끄러져 들 어와 앉자 그 여자가 말했다. "아버님이 옳았어요. 당신 정말 멋져 보이는군요." "고맙소." 항상 빈정대기만 하는데도 싫증이 나서 덧붙였다. "당신도 그렇군." 애 버리는 테이트를 향해 웃었다. 아주 예전 같았으면 그는 '늦었군. 마누라랑 잠이 나 자야겠는걸' 하고 말하고는 차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는 속으로 그걸 하 는 상상을 했다. 달아오른 그 여자의 가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깊고 축 축한 열기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며, 그 여자가 희열을 느낄 때 내쉬는 거친 숨소 리를 듣는 듯했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오는 것을 재빨리 기침소리로 덮어버렸 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자연스러움과 그 기쁨을 잃어 버린지 오래였다. 그이 눈가에 어린 뜨거운 불빛을 그 여자가 눈치챌까 두려워 이미 해는 저물었지만 선글라스를 써서 가렸다. 집에서 멀어져가며 그는 스스로 에게 인정했다. 분명 그는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기는 했다. 그 러나 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 록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이 뜨겁고 ㅁㄱ스럽기는 했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서 로의 사이에는 진정한 친밀감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지적인 교류라든가, 정신적 인 유대가 결혼 초기부터 이미 없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훨씬 나중에 까지도 무엇이 결여되어 있었는지 그도 깨닫지 못하긴 했었지만. 애초에 없었던 것을 그리워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직 그걸 그는 동경하고 있었다. 상원의원이 된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그가 항상 원해오던 대로 대중을 위한 봉사를 하는 평생 직업의 시작이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승리도 불행한 결혼생활 로 퇴색해버릴 것 같았다. 만일 그가 자신을 진정으로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아 내와 함께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밋질 것이고, 그의 정치적 인 장래도 더 밝아질 것 같았다. 마치 달을 따오려는 것이나 같지, 하고 그는 생 각했다. 만일 캐롤이 그런 사랑을 보인다 해도-보여준 적도 없었지만-이젠 자기 스스로가 그걸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았다. 캐롤은 벌써 오래 전에 그 가능성을 전부 말살시켜 놓았던 것이다. 신체적인 매력은 여전했다. 아니 전보다 더할 나 위없이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정서적인 유대감은 이미 죽어 있었다. 후자를 모른 척하고 전자만을 취하게 된다면 그건 저주 받을 짓이었다. 그는 아직 자신 의 결점이 그의 남근까지 오지는 않은 모양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는 곁눈으로 캐롤을 훑어 보았다. 정말 매력적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였다. 그 여자는 신부 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정되어 있었고 너무 섹시했다. 그 여자는 캐롤이라기에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는 행복한 아내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19 에디 파스칼이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재빨리 타월로 팔과 가슴과 다리를 닦 아낸 그는 수건을 어깨에 건 채 양 끝을 잡고 위 아래로 잡아당겨 가며 방안으 로 걸어 나왔다.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 발을 딱 멈추어 섰다. "아니 무슨......" "안녕하세요? 이런 저질스런 잡지를 보시는 줄은 몰랐네요." 팬 시가 그의 침대에 대각선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팔꿈치를 베개에 괴고 누운 팬 시는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던 펜트하우스 잡지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아주 도 발적인 자세의 사진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그를 올려다보며 매시시 웃 었다. "더러운 남자." "여기서 대체 뭘하고 있는 거야?" 에디가 성급히 자신의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며 물었다. 팬시는 게으른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하다가 좀 식히려고 여기 왔지요." 에디는 목장집 차고 뒤 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테이트의 선거매니저로 일하게 된 얼마 뒤, 그는 그집에 와서 살아도 좋으냐고 테이트에게 물었다. 러트리지 사 람들이 완강하게 반대했다. 지이가 말했다. "하인들 숙소에? 더 이상 그런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테이트도 반대했다. "우리 목장에 와서 살고 싶다면 가족들 과 함께 안채에서 지내도록 하게." 에디는 자신의 사생활도 보장받으면서 테이트 가 가까이도 지낼수도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고 뒤의 건물은 그 두가지 요건을 다 충족시켜 준다고 말하자, 사람들의 완강한 태도도 좀 누그러 들었다. 그래서 마침내 에디는 그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사생활 이 지금 침해된 것이다. "왜 땀을 식히는데 하필 이곳이어야 하지?" 그가 투덜대 며 물었다. "너희 집 에어컨이 고장이라도 났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팬시는 잡지를 저쪽으로 집어 던지며 일어나 앉았다. "제 알몸을 보는 게 기쁘지 않으세 요?" "기쁠 것 참 많기도 하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에디는 젖은 머리를 흐뜨렸 다. 가늘고 고운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깨끗한 그의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비키니 수영복은 반창고보다도 더 작군 그래. 그런 걸 입고 다니 는데도 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않아시던?" 풍만한 몸매가 작은 수영복 위로 비져 나와 있었다. "왜 가만히 계시겠어요? 우리 할아버지야 말로 어떤 매력적 인 것도 용납 안하시는 완고한 분이신 걸요." 팬시가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난 정말 우리 아빠나 삼촌이 여지껏 어떻게 견뎌왔는지 이해가 안돼 요. 아마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누워서 '국가의 전쟁송가'를 부르거나 아니면 '거 친바다 저편으로 우리는 간다'를 부르면서 두분을 만드셨을지도 몰라." 팬시가 애써 사려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머니가 만족하셨는지 난 상상을 못하겠어요. 아저씬 그게 상상이 돼요?" "팬시, 넌 정말 가망없는 애로구나." 화 가 나 있긴 했지만 그 여자가 얘기하는 대로의 광경이 떠올라 그도 쿡쿡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엉덩이에 손을 얹고 성난 얼굴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이젠 자리를 좀 비켜주실까, 꼬마 아가씨? 나 옷 좀 갈아입어야겠어. 테이트와 캐롤을 월러 크리크가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미 늦어버렸거든." "저도 같이 가요." "안 돼." "왜요?" "네 몫의 티켓이 없으니까." "아저씬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요."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왜 안되죠? 눈 깜짝할 동안에 준비할께요." "이건 재미 없는 어른들 모임이야. 너는 지루해서 금새 좀이 쑤실걸." "내가 따라가면 오히 려 아저씨가 딱딱하게 굳어질걸요? 절대 지루해하지 않을께요." 그에게 팬시가 음탕한 윙크를 보냈다. "여기서 나갈꺼야, 안나갈꺼야?" "뭐야, 이건 아예 무시하 고 들잖아?" 팬시가 천박하게 대답했다. 그 여자는 자기 비키니 브레지어 끈을 풀어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팔꿈치로 몸을 버티면서 말했다. "제... 볕에 그을은 모습이 맘에 안드세요?" 그 여자의 젖가슴은 까맣게 그을린 가슴과 배 사이에 아기같은 분홍빛으로 풍만하고 부드럽게 솟아 있었다. 젖꽃판은 널찍했 고, 젖꼭지는 장미빛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 보며 에디는 눈을 꼭 감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지? 그만 일어나. 웃옷을 어서 입고 여기서 당장 나 가버려." 그는 침대로 다가가 팬시를 일으키려고 손을 내밀었다. 팬시는 그의 손 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대신에 자신의 가슴으로 그의 손바닥을 가져가 솟아 오 른 젖무덤을 위에 덮이도록 했다. 그 여자의 눈이 장난끼와 성적 흥분으로 번뜩 였다.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자기 가슴 위에서 빙빙 돌도록 돌리면서 다른 손으 로는 에디의 타월을 잡아채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깜짝놀라 기쁘게 외쳤다. "흠. 에디 아저씬 정말 좋은 물건을 갖고 계시는군요." 탐욕스럽게 그걸 바라보며 그 여자는 조금씩 침대 가장자리로 움직여 왔다. 그의 남성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는 손안에 꽉 잡고는 잡아당겼다 내밀었다 했다. "아주 커요. 도대체 누굴 위해 아껴두시는 거예요? 선거본부에서 일하는 그 못생긴 빨강며리를 위해서? 아니면 캐롤 숙모를 위해서예요?" 그 여자는 고개를 젖히며 그의 몸통을 올려다 보았 다. 차가운 눈빛이 그 여자를 위협적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치 불량배 같아 보이는 그런 거친 모습을 그 여자는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난 그 둘보다도 더 멋지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선언하고는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다. 혀로 능숙하게 한 번 핥자, 에디의 무릎이 구부러졌다. 다음 순간 팬시의 몸은 침대 가운데 눕혀졌고 에디가 그 여자 위에 덮쳐왔다. 그의 혀가 그 여자의 입 속으로 밀고 들어와 목구멍까지 파고 들었다. "아, 아 그래. 그래요." 팬시가 애 무에 헐떡거렸다. 그는 팬시의 팔을 머리 위로 잡아올리고는 입으로 그 여자의 가슴을 덮쳐 열렬하게 빨고 굶주린 듯 깨물고 거칠게 핥았다. 그 여자는 그의 아래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의 난폭한 전희에 너무 정신을 잃어버려 그가 그걸 더 이상 계속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몇 초쯤이나 걸렸다. 그 여자 는 눈을 떴다. 그는 다시 침대 받침 쪽에 선 채 웃고 있었다. "왜......?" 다시 정 신을 차린 팬시가 일어서려 했다. 그제서야 그 여자는 자기 팔이 머리 위쪽에 묶어져 있는 걸 알아차렸다. 묶인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여자의 비키니 브레 지어가 그 여자의 손목에 묶어져 매듭지워져 있었다. "이 못된 자식! 당장 이 손 못풀어?" 팬시의 발버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에디는 조용히 화장대로 다가가 윗서랍에서 팬티를 꺼냈다. 그걸 입으며 쯧쯧 소리를 냈다. "말 버릇 좀 보게." "날 풀어줘, 이 불한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꾀 많은 아가씨 는 스스로 자유의 몸이 되는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는 커다란 가 방에서 빌어온 연회복을 꺼내어 입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팬시는 이루 다 열 거할 수 없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악을 썼다. "그만해둬." 에디는 지저분한 욕 지거리가 끝나자 말했다. "한 가지 알고 싶은게 있어. 캐롤과 나에 대해서 한 말 이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인 것 같아요?" 그는 성큼성큼 세 발자욱을 걸어와 팬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주먹에 둘둘 말아 거의 뽑혀질 정도로 잡아 당겼 다. "난 모르겠어. 그래서 이렇게 묻고 있는 것 아냐!" 서슬 퍼런 에디의 태도에, 팬시는 다소 겁을 먹고 도전적인 자세가 좀 누그러졌다. "아저씬 누구하고라도 그러잖아요? 캐롤 숙모라고 안 그러겠어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 그렇지만 캐 롤은 내눈에 들어오지 않아." "엉터리 소리 말아요." "왜 엉터리야?" "당신은 항 상 캐롤 숙모를 독수리 눈같이 날카롭게 바라보거든요. 특히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요." 에디는 계속 팬시를 차갑게 쏘아 보았다. "캐롤은 내 가장 친한 친 구의 아내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문제가 있어. 난 그들의 결혼생활이 이번 선 거에 무슨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그것만을 걱정하는 거야." "흥, 결혼 생활이라구요?" 팬시가 코웃음을 쳤다. "삼촌은 숙모가 자기를 형편없이 민들어 놓았기 때문에 진저리를 치고 있어요. 나의 멋진 삼촌은 그런 여자와는 함께 지 내지 못해요. 단지 선거가 끝날 때까지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는 미 소를 지었다. 목소리를 고양이처럼 그르릉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알고 계셨어 요? 당신이 캐롤 숙모와 좀 어떻게 해보고 싶으셨다면 그건 안됐군요. 숙모는 요즘 점수를 만회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숙모는 아저씨에게 관심을 보이 고 있어요. 아저씨가 그걸 원하는지 모르겠지만요. 비행기 사고가 있기 전까지 아저씨에게 보이던 그 관심을 말이죠."점차 에디는 손의 긴장이 풀어져 팬시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그럴듯한 얘기군." 그의 목소리는 냉랭하고 침착했다. 옷장 서랍으로 가서 손수건을 꺼내 바지 주머니에 넣고 손목시계를 찼다. "하지만 틀 렸어. 캐롤과 나 사이에는 아무일도 있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거야." "내가 숙모에게 물어 볼 거예요. 뭐라 그러나 보겠어요." "내가 너라면 그 질투심에 불 타는 억측은 그냥 속에만 담아 두고 있겠다." 에디가 어깨 너머로 말을 던졌다. 팬시는 손을 묶인 채 침대에서 몸을 뒤틀어가며 내려와 간신히 두발로 섰다. "이 게 점점 조여와요. 아저씨, 제발 좀 풀어주세요." 에디는 생각하는 척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그게 헐거워 지기 전 에 도망가 버려야겠어." "손을 풀기 전에는 전 여기서 나갈 수도 없어요." "맞 아." 팬시는 문까지 에디를 따라 왔다. "부탁이에요, 아저씨!......" 그 여자는 울음 을 터뜨렸다. 그 여자의 커다란 푸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저씬 정말 잔인해 요. 전 장난이 아니에요. 저도 아저씨가 이렇듯 몸을 던져오는 저를 천한 여자로 보리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저씨는 절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요. 당신을 사랑해요. 제발 절 사랑해 주세요. 제발 부탁이예요!......" 에디 는 팬시 허리에 손을 대고 꽉 조였다. "내가 어느 정도 열 올려 놓은 걸 감사할 만한 다른 놈팽이를 네가 잘 찾아 낼거라고 난 생각해." 그 여자의 뺨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개자식." 살살 녹이는 듯한 달콤함은 사라져 버렸다. "그래 맞다 이놈아. 남자를 찾을 수 있고 말고. 그리고 지칠때까지 하고 또 할거야......" "즐 거운 밤이 되길 바래, 팬시." 에디는 무례하게 그 여자를 떠밀어 버리고는 밖으 로 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차를 향했다. 팬시는 발로 문을 꽝 차서 닫아 버렸다. 여자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애버리는 공중전화기 앞에 웬 남자가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 여자는 부지런히 파티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같은 정당에 가 입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테이트를 만나 악수를 하려 는 듯이 보였다. 심지어 반대편 입후보자들까지도 친밀하게 대해왔다. 아무도 그 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의 이념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았는데 도 그를 존중했다. 그의 아내로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쭐해지는 느낌이었다. 매번 그는 아내에게 사람들을 인사시켰고, 어느 정도 자랑스러운 듯 소개시키는 것이 에버리는 정말 기뻤다. 그 여자는 아직까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캐 롤이 알고 있었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 올때면 테이트로부터 은밀한 암시를 받곤 했다. 모든 게 아주 잘 되어갔다. 애버리가 화장실에 잠깐 실례한다고 했을 때 테이트는 그 잠시 동안도 떨어지는 게 걸리는 듯 그 여자의 팔을 살짝 건드렸 다. 그런데 이제 그 여자가 막 공중전화 박스들을 막 지나가려는데 손 하나가 불쑥 나와 그 여자 손목을 가로챘다. 그 여자는 깜짝 놀라 짤막한 외마디 소리 를 지르며 자기를 끌어들인 님자를 쳐다보기 위해 빙글 돌아섰다. 연회복을 입 은 걸 보니 이 연회에 초대받은 사람들 중의 한명인 듯했다. "어떻게 지내나, 귀 여운 아가야?" 점잖을 빼며 느리게 말했다. "절 가게 내버려 주세요." 술 취한 사람인 줄 알고 그 여자는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고 했다. "그렇게 빨리는 안될 걸, 러트리지 부인?" 이름을 모욕하는 투로 짓뭉개는 듯 발음했다. "소문에 많이 들은 대로 당신의 새 얼굴을 똑똑히 봐 둬야겠어." 남자는 그 여자를 더욱 끌어 당겼다. "머리를 제외하고는 똑같은데? 그런데, 내가 꼭 듣고 싶은게 있어. 아직 도 전처럼 몸이 뜨거운가?" "절 놓으라구요." "왜 그래? 남편이 쫓아올까봐 두려 워? 그러진 않을걸. 당신 남편은 선거유세하느라 너무 바쁘시니까." "지금 당장 이 손을 놓지 않으면 째지도록 비명을 지르겠어요." 그가 웃었다. "병원에 있을 때 내가 찾아가지 않았다고 삐진 게로군. 그런데 말이지, 당신 애인들 중의 하나 가 테이트를 당신 침대맡에서 멀리 데리고 나오는 게 어디 점잖은 짓이어야지?" 그여자는 차가운 분노의 눈초리로 그를 쏘아 보았다. "이젠 모든게 달라졌어요." "아, 그래?" 그는 더욱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근 질근질대지 않아?" 미칠 듯이 화가 나고 겁도 나서 다시 손목을 풀려고 몸싸움 을 했다. 그게 더욱 그를 자극했다. 그는 그 여자의 팔을 그 여자 등 뒤로 꺽어 올려 자기 앞으로 더욱 다가서게끔 만들었다. 그의 끈끈하고 술냄새 나는 입김 이 얼굴에 느껴졌다. 얼굴을 돌려 피하려 했지만 또 다른 손으로 그 여자의 턱 을 꽉 잡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캐롤? 이제 테이트가 선거에 나서니까 너 까지 뭐 고상해지고 굉장해진 것 같아? 웃기지마. 로리 데커가 테이트 쯤 깔아 뭉개 버릴거라구."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턱이 아파왔다. 그 여자는 아프고 화 가 나서 우는 소리를 냈다. "이제 와서 넌 테이트가 워싱턴에 가게 되면 그를 속 여 먹으려고 그러지. 그렇지? 오늘 밤 당신 날 모른 척하던데. 도대체 날 그런 식으로 무시하다니 도대체 네가 뭔줄 알고 그래?" 그는 갓 바른 립스틱을 뭉개 버리며 그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진절머리나게도 그 여자의 입술 사이로 자신의 혀를 내밀었다. 주먹을 꼭 부르쥐고 그의 어깨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무릎으로 그의 가랑이를 차올리려 했으나 스커트의 통이 좁아 실패하 고 말았다. 그는 힘이 세서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의 숨을 모두 마셔 버렸다. 애버리는 기진맥진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처음엔 조그맣게 차츰 큰 소 리로 무슨 말소리가 다가 오는 걸 들었다. 그도 들었다. 그 여자를 밀어내고는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당신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더 잘 기억하고 있겠 지?" 경멸조로 내뱉고는 화장실 쪽으로 오고 있는 두여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귀 퉁이를 돌아 가라져가ㅆ. 애버리를 보자 그들은 뚝 말을 끊었다. 애버리는 급히 돌아서며 마치 통화를 하려는 척하며 수화기를 더듬어 집었다. 그들은 지나쳐 가서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이 흔들거리며 닫히자마자 그 여자는 전 화 받침대 위로 쓰러졌다. 애버리는 캐롤의 구슬백에서 휴지를 꺼내려고 서두르 다가 손톱을 하나 부러뜨렸다. 휴지를 찾아내어 입술을 세게 문질러 닦아냈다. 무개진 립스틱과 캐롤의 전 애인으로부터 받은 혐오스러운 키스를 지워내기 위 해 세게 문질렀다. 박하사탕을 꺼내 입안에 넣고 휴지로 눈물을 찍어냈다. 몸부 림을 치는 동안 귀거리 하나가 빠진 것도 다시 달았다. 두 여자가 다시 나와 속 삭으는 목소리로 얘기하며 지나쳐갔다. 애버리는 수화기에 대고 뭐라뭐라고 중얼거렸다. 웃기는 수수께기 게임이나 하고 있는 바보같다고 느끼면서. 하지만 잘 해낸 셈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캐롤의 애인 한명을 속여넘긴 셈이니까. 다시 대중 앞에 나설 만큼 기운을 차리게 되자 수화기를 걸어 놓고 돌아섰다. 바로 그때 한 남자가 귀퉁이를 돌아서서 그 여자에게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그의 옷 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캐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요?" "오, 테이트." 애버리는 그에게로 무너지며 그의 허리에 팔을 꼭 둘러 안았다. 그의 옷깃에 뺨 을 댄 채 그 남자의 영상을 지워버리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테이트는 팔로 그 여자를 감쌌다. 그리고 손으로 실크옷입은 그 여자의 등을 쓰다듬었다. "왜 그 래? 무슨 일이 있었어? 어떤 여자가 날 한 옆으로 데려가더니 당신에게 무슨 일 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 어디 몸이 불편하기라도 해?" 그가 조명이 환히 비 추는 곳에서 그 여자를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그 여자가 그렇게도 충실하지 못 한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의 남편들과 놀아나던 캐롤에 대한 분노도 그 순간에는 없었다. 애버리는 캐롤이 그의 아내될 자격이 없는 여자라고 느꼈 다. "테이트, 정말 미안해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가 말이 오?" 그는 그 여자의 어깨를 힘주어 잡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제발 무슨 일 이 있었는지 말해봐, 여보." 그에게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뭔가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한가지가 머리속에 떠올랐는데 그건 그닥 사실과 다른 얘기는 아니었다. "전 아직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만큼 회복이 디지 않았었나봐요. 너무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질식할 것만 같아요." "잘 견디 어 내는 것 같았는데?" "그랬지요. 저도 즐거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사람들 이 너무 나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다시 붕대에 감겨진 듯 했어요. 그리고 숨을 쉴수가 없었어요. 숨을......" "좋아요. 알아 듣겠어. 미리 뭐 라 얘기를 좀 하지 그랬어? 이리 와요." 그는 그 여자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 여자는 멈칫거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집에 가야 될 만큼 그런 건 아니예 요." "어쨌든 파티는 거의 끝나가는 중이니까. 복잡해지기 전에 차를 타도록 합 시다." "정말이예요?" 애버리도 가고 싶었다. 연회석상에 돌아가 그 남자의 싱글 거리는 얼굴을 대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회장은 그 여자 의 시험장이었다. 낙제해서 그가 유세를 떠나버린 후 집에 혼자 남아있기는 싫 었다. "괜찮아. 자 갑시다." 집으로 가는 동안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애버리는 발을 엉덩이에 깐 채 그를 향해 옆으로 돌아 앉았다. 그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 를 쓰다듬고 또 그의 손길을 받으면서. 하지만 그냥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이미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둘은 조용히 걸 어 맨디의 방으로 향했다. 그들이 약속했던 대로 맨디에게 굿나잇 뽀뽀를 해주 었다. 맨디는 졸음 섞인 소리로 뭐라 중얼거렸지만 밤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그들의 방을 향해 복도를 걸어오는 동안 테이트가 무심코 한마디 했다. "여행을 가면 몇번 쯤은 이같은 연회가 있을 테니까 오늘 입은 그 드레스를 갖고 가는 게 좋을 듯하군." 애버리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내가 함께 가도 좋다는 뜻인가 요?" 그는 애버리의 머리 위 허공을 쳐다 보았다.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하니 까." 그렇게 그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아서 그 여자는 그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말 했다. "전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테이트." 테이트는 대답 할 때까지 긴장되 한 순간 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나도 그게 좋 겠다고 생각해. 에디가 하루나 이틀 후면 여행일정표를 줄 거요. 짐꾸리는데 참 고하도록 해요. 잘자요." 그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쓰디쓴 실망을 맛보며 애버리 는 테이트가 자기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바라보았다. 낙심한 채 자기 방으로 혼자 들어와 잘 채비를 했다. 드레스를 잘 조사해 보았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모 르지만 아무튼 캐롤의 옛 연인에 의해 망쳐진 구석은 다행스럽게도 발견되지 않 았다. 불을 끌 때 쯤에 애버리는 기진맥진하도록 피곤함을 느꼈다. 그러나 한시 간쯤이 지난 후까지도 잠들지를 못했다.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 왔다. 팬시는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아직 일어나 앉아 거실에 있을까봐 부엌문 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문을 따고 도둑경보장치를 해제해 놓고는 조용하게 들어 와 다시 장치를 해 놓았다. "누구지?......팬시 아냐?" 팬시는 깜짝 놀라 간이 떨어 질 지경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숙모! 정말 절 놀라게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군 요." 팬시는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어머나." 애버리는 부엌 식탁의자에서 벌 떡 일어나 팬시의 얼굴을 불쪽으로 향하게 돌려 세웠다. "너 무슨 일이 있었니?" 팬시의 퉁퉁 부은 눈두덩과 피가 얼룩진 입술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숙모 의 그 성형외과의사를 좀 빌어야겠나 봐요." 캐롤은 잔뜩 비꼬았지만, 그제서야 팬시는 웃음짓기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혀로 찢어진 부분을 핥으며 애버리의 손으로부터 놓여났다. "괜찮을 거예요." 팬시는 냉장고로 다가가서 우 유병을 꺼내 한컵 가득 우유를 따랐다. "의사한테 안 가봐도 될까? 내가 응급실 에 데려다 줄까?" "맙소사. 싫어요. 끝없이 잔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도대체 무 슨일이 있었는데?" "글쎄요. 그게 대충 이래요." 팬시는 까만 초콜릿 샌드 쿠키 사이에 낀 하얀 크림을 아랫니로 긁어 먹었다. "어떤 형편없는 댄스 홀엘 갔었어 요. 아이들이 모두 취해서 흥청거리고 있더군요. 금요일이잖아요. 아시다시피 주 급을 받는 날이라 모두들 파티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그중 얼굴이 반반하게 생 긴 놈팽이가 있었어요." 팬시는 초콜릿 쿠키 두 개를 먹고, 또 하나를 꺼내려 쿠 키통에 손을 디밀었다. "그 녀석이 나를 모텔로 데려갔어요. 맥주를 좀 마시고 대마초도 좀 피웠어요. 그런데, 녀석이 좀 과하게 피웠나 봐요. 막상 그걸 하려 니까 반응이 없는 거지 뭐겠어요? 그러더니 날 보고 알아서 하라고 들이미는 거 예요." 얘기를 마무리 지으며 손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를 탁탁 털고서 우유컵을 집어 들었다. "널 때리든?" 팬시는 애버리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거짓웃음을 지었 다. 캐롤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어 '널 때리든?'하고 따라하는 거였다. "그래, 무 슨 말을 듣고 싶어요. 물론 날 때렸죠." "팬시, 너 많이 다칠뻔 했구나." "도대체 믿을 수가 없군요." 안 믿어진다는 듯 눈동자를 천정을 향해 굴리며 말했다. "숙 모는 언제나 내 사랑의 전희를 듣고 싶어 했잖아요. 대리전율이라나 뭐, 난 뭔 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느낀다면서요?" "도대체 얼굴을 때리는 게 로맨틱하단 말은 못알아듣겠는걸. 그런데 널 묶어 놓기도 했었나 보구나?" 팬시는 숙모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팔뚝에 붉은 줄이 가 있었다. "그래요. 그 망할 자식이 내 손을 함께 묶어 버렸어요." 애버리는 지금 팬시가 말하는 그 술취한 발기부전의 카우보이가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런 낯선 사 람과 모텔엘 가다니 너도 정신 나갔구나, 팬시." "날더러 정신 나갔다구요? 봉투 에 얼음을 넣고 있는 숙모는 정신이 말짱하구요?" "이건 네 눈에 대주려는거야." 팬시가 임시로 만든 얼음주머니를 쳐냈다. "맘에도 없는 친절, 사양할래요!" "네 눈이 점점 검푸르게 변하는데. 부어오르기도 할거야. 그걸 부모님께 보이고 싶 은 건 아니겠지? 그리고 내게 해준 이야기를 또 다시 해드리고 싶어?" 팬시는 어쩔줄 모르고 다시 얼음주머니를 나꿔채더니 눈두덩이에 댔다. 숙모의 말이 옳다고 느꼈다. "입술엔 과산화수소수라도 좀 발라줄까? 아니면 아스피린이라도 먹으련? 진통제라도 말이야?" "통증을 못 느낄 만큼 맥주와 대마초를 먹고 피웠 어요." 팬시는 혼란스러웠다. 왜 캐롤 숙모가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걸까? 병원 의 그 호사스러운 입원실에서 돌아온 이래, 이 여자는 좀 야릇하게 굴고 있다. 더 이상 아이에게 소리지르지도 않고, 하구종일 하는 일없이 앉아만 있지도 않 고 이것저것 일거리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테이트 삼촌을 다시 좋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팬시는 숙모가 결혼을 마치 러시아식 룰렛 게임 놀 듯 가지고 노 는게 어리석다고 생각해 왔다. 테이트 삼촌은 잘 생긴 남자였다. 모든 여자가 그 를 보고는 침을 삼켰다. 그런 분야에 대해서 스스로 일가견이 있다고 믿었지만 자기 느낌대로라면, 그는 잠자리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할 거라고 팬시는 생각했 다. 팬시는, 테이트 삼촌이 처음 캐롤 숙모에게 결혼 초기에 보여 주었던 만큼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도 있었더라면 하고 바라곤 했다. 삼촌 은 숙모를 그야말로 여왕처럼 대우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삼촌을 떨쳐 버린 숙모는 바보 중에 상 바보였다. 아마 숙모는 그걸 이제서야 깨닫고 다시 돌이켜 보려고 애쓰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럴리야 없지 하고 팬시는 비웃고 있었다. 일 단 테이트 삼촌은 거슬린 다음에는 그 마음을 돌이킬 방법은 없을 걸 하고. "그 래 어두운데 혼자 앉아서 늦게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팬시가 물었다. "잠 이 오질 않았어. 코코아나 한잔 마실까 하고 나왔지." 테이블에는 반쯤 비워진 코코아잔이 보였다. "코코아라고요? 그건 또 무슨 얼빠진 거예요?" "상원의원 부 인에게 어울리는 불면증 치료제라고나 할까?" 동경에 가득찬 미소를 띄고 애버 리는 대답했다. 그 뜻을 눈치채지 못한 채 팬시가 물었다. "숙모, 만회하려고 그 러는 거죠?" "그게 무슨 뜻이지?" "숙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실걸요. 혹시라도 삼촌이 의원에 선출되어 워싱턴에 데리고 갈까 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보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팬시는 자신만만한 '여자들끼리만'식의 자세를 취했다. "말해봐요. 숙모의 모든 애인들을 다 떨궈버렸어요? 아니면 에디 하고만 그만둔 거예요?" 애버리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얼굴이 창백했다. 아랫입 술을 이사이로 깨물더니 속삭였다. "지금 뭐라 그랬지?" "순진한 척 하지 말아 요. 처음부터 전 다 그런 줄 알고 있었어요." 팬시는 기운 좋게 말했다. "전 에디 에게도 물어 봤어요." "뭐라 그러든?" "아무 말도 않더군요. 부정하지도 않고, 긍 정하지도 않아요. 마치 신사처럼 행동하더군요." 말을 마친 팬시가 버릇없이 코 방귀를 흥 뀌더니 문쪽으로 가 다른 방으로 향했다. "걱정 말아요. 이집에는 벌 써부터도 구린내가 풍기고 있으니까. 더 이상 테이트 삼촌에게 고자질 하지는 않겠어요. 만일 숙모가......" 팬시가 가려다 말고 도전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만 일 숙모가 에디와 더 이상 가까이 지내지만 않는다면요. 에디가 따라다닐 사람 을 이제 저라구요. 숙모가 아니구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자기를 명백하게 이 해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기분이 좋아진 팬시는 재는 체하며 부엌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자기 방에 가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얼굴이 엉망이 된 걸 알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팬시는, 집안 식구들 중에 오직 캐롤 숙모만이 그 여자의 멍든 눈과 터진 입술에 대해 알고 있고, 아무에 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 반 러브조이의 아파트는 잡지 <아름다운 집>의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상극 이 되는 표본이었다. 그는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 위에 좁다란 매트리스를 올려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 밖의 다른 가구들도 싸구려 시장이나 창고 같은 데서 줏어다놓은 잡동사니 뿐이었다. 조명 등을 고정해 놓은 고리에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파냐타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성모독적인 초상이 달랑 걸려있었 다. 그것은 누에보 라레도에 갔을 때 가지고 온 기념품이었다. 그 안에 든 몇 킬 로그램 정도 되는 마리화나만은 기념품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 텅빈 아파트는 비디오 테이프로 가득차 있었다. 온갖 테이프들과 그걸 복사하고 편집하고 하는 여러 가지 기계장치들 이외엔 이 아파트 안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기계장치로만 보자면 반은 웬만한 비디오 프로덕션들보다도 더 잘 차려놓고 있는 셈이었다. 비디오 목록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는 미국 내에 발행되는 비디오 잡지라면 모조리 정기구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안 본 것이나 안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찾으러 돌아 다니곤 했다. 수입의 거의 전부가 이런 테이프를 구해다 쌓아 놓는데 쓰이고 있었다. 그가 수집해 놓 은 영화의 양은 웬만한 비디오 대여가게 보다도 많았다. 그는 감독기술과 촬영 기술을 공부했다. 그의 취향은 오르슨 웰리스에서 프랭크 카프라, 샘 페킨파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에 이르는 절충식이었다. 흑백이든 천연색이든 카메라의 움직임 에 그는 매료되었다. 영화이외에도 그의 수집에는 미니시리즈들과 다큐멘터리들 도 있었고, 자신이 직접 찍어놓은 테이프들까지도 모두 들어있었다. 만일 어떤 사건을 찍어놓은 테이프들까지도 모두 들어있었다. 만일 어떤 사건을 찍은 필름 이 필요한데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면, 산 안토니오의 KTEX의 반 러브조이에 게 가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였다. 그는 한가한 시간에는 테이프를 보면서 지냈다. 오늘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며칠 전 로킹 R 랜치에서 자기가 찍어온 테이프였다. 그는 그것을 MB프로덕션에 갔다 주었지만, 이미 복 사를 해 놓은 뒤였다. 그는 자신이 찍은 테이프들이 꼭 필요하고 값진 것이 될 는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모든 것을 복사해두고 있었다. MB회사에서 뒷손질을 하면서 테이프를 잘라내기도 하고 편집을 하고, 목소리를 집어 넣어 배경음악도 넣고 하여 적당한 길이의 광고물을 감쪽같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이 찍은 카 메라 작품은 광고가 방영될 쯤이면 다 표백되어지고 각색되어진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걸로 그는 보수를 받는 거니까.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단지 스냅샷들이었다. 테이트 러트리지는 카메라에 카리스마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잘생기고 부유한, 살아있는 성공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반이 근본적으로 경멸하고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만일 반이 투표를 한다면 그를 찍게 될 것 같았다. 그의 눈에도 테이트 러트리지가 심지곧은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 다.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딱히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이 아닐 때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설사 선거에 낙선될지라도 진실성이 부족했기 때문 은 아닐 것 같았다. 반은 테이트의 딸에게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 애는 예쁘 게는 생겼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어린아이들을 찍혀 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럴때면 아이들을 좀 진정시키고 얌전히 굴게끔 하려 면, 그리고 특히 몇 번이고 계속 다시 촬영하거나 다시 물어보거나 할 때 협조 적이 되게끔 하려면 윽박지르거나 살살 꼬시거나 해야만 한다는 걸 경험해서 알 고 있었다. 하지만 러트리지의 아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 여자애는 조용했 고 어떤 바보스런 짓도 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만 했다. 마치 태엽을 감아놓은 인형처럼 움직였다. 그 애가 관심을 보이는 유일한 인물은 캐롤 러트리지였다. 바로 반이 가장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반은 몇번이고 목장집 에서 찍어온 테이프와 그 여자가 병원을 떠나던 날 자신이 찍은 테이프를 돌려 보았다. 이 여자는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반은 러트리지 와 그 딸에게는 여러 가지 지시사항을 말하곤 했지만 그 여자에게는 그게 필요 없었다. 그 여자는 자연스러웠다. 어느 쪽을 보아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언제나 조명쪽을 향해 있었다. 반이 하려고 하는 걸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 보통 아마추어처럼 그 여자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지도 않았고 로봇처럼 움직 이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프로였다. 그가 오랫동안 서로 알고 함께 일해왔던 또 다른 여자와 너무도 흡사해서 등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몇시간 동안 그는 캐롤 러트리지를 연구하면서 테이프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앉아 있었 다. 그 여자는 가끔씩 어색한 동작을 하곤 했는데, 그에게는 마치 그 여자가 너 무 능숙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테이프 를 빼내고 슬로우모션으로 볼 수 있게끔 찍어 놓은 테이프를 집어 넣었다. 익숙 한 장면들이 지나갔다. 신록의 넓은 잔디 위를 세 사람이 걷는 광경이었다. 러트 리지가 딸과 아내 셋이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반은 해가 언덕 너머로 넘어간 뒤 세 사람의 모습이 검게 실루엣으로 처리되도록 이 필름을 찍었다. 효과는 훌 륭했다. 이젠 이 테이프를 열 몇 번쯤은 보았겠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보았다! 러트리지 부인이 남편을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팔을 건드렸 다. 그런데 그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굳어져버리는 걸 반은 보았다. 그는 팔을 움직였다. 아주 약간, 하지만 아내의 손길이 움추려들게 될 정도로. 만일 테이프 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지 않았더라면 반도 눈치채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편집 할 때 이부분은 분명 잘려져 나갔을 게 분명했다. 러트리지 부부는 오지와 헤리 엇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집 딸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들 부부 사이에도 뭔가 문 제가 있는게 분명했다. 반은 원래 성격이 냉소적이었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다소 흔들린다는 게 그에게는 별로 놀랄 게 못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그는 거기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를 여전히 사로 잡고 있었다. 그는 그 전날 그집에 갔을 때 그 여자가 자기를 알아 보았다고 맹세할 수 있었 다. 그 여자의 태도와 반응을 잘 느낄수 있었다. 한순간 그 여자의 눈이 크게 벌 어지고 잠시 숨을 멈추었던 걸 잘못 보았을리가 없다. 모습이 똑같지는 않고 머 리모양도 다르긴 했지만, 캐롤 러트리지와 애버리 다니엘즈와의 유사성은 기분 이 언짢을 정도였다. 캐롤의 몸짓은 초점의 대상이었고 무의식적인 익숙한 움직 임은 무서운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그 테이프를 빼냈다. 눈을 감고 관자 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아프도록 꽉 쥐고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머리속에서부 터 뭔가를 끄집어 내려는 듯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기괴한 것이 었다. 그건 마치 괴기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상념이 그 의 마음에 깊이 박혀 도저히 지워버릴 사가 없었다. 며칠 전, 반은 아이리쉬 사 무실에 들렀다. 그의 팔걸이 의자에 앉으며 자기가 준 테이프는 보았느냐는 질 문을 던졌다. 언제나처럼 그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회 색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테이프? 아, 그 러트리지네 찍은 것? 어 이, 거기 누가 코맬 카운티에서 발견된 그 사람 해골더미에 대한 걸 가지고 있 지?" 대답을 하다말고 아이리쉬의 관심이 다시 반에게로 되돌아왔다. 근간에 들 어 아이리쉬는 너무 많이 피우는 게 아니냐고 볼 때마다 닥달을 해대던 애버리 가 곁에서 떠나버리자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그간 못 피운 걸 다 채우려는 듯 보였다. 꽁초에서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당기더니 입으로 연기를 내 뿜으며 얘기했다. "무얼 말이지?" "그 테이프." 반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자 네 여론조사가로 전업이라도 했나?" "맙소사." 반이 웅얼거리며 그는 일어서려했 다. 아이리쉬는 짓궂게 손짓하며 그를 앉으라고 했다. "뭘 내가 보았어야 되는데 그래? 특히 뭘 말이지?" "여자 쪽 말이야." 아이리쉬가 기침을 했다. "여자 쪽을 잘 찍은 모양이지?" 반은 아이리쉬가 자기처럼 캐롤 러트리지와 애버리 다니엘 즈와의 유사성을 눈치 못챈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반이 생각하고 있는 게 얼마나 엉터리 같은 것인가를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아 이리쉬만큼 애버리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반이 그 여자를 만나기 20년 전부터 그는 에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리쉬의 건성건성한 태도는 반으 로 하여금 자기를 고집스레 주장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 여자,애버리하고 똑 같이 생긴 것 같아." 아이리쉬는 크레덴자에서 잔을 꺼내 뜨거운 히터 위에서 다 졸아빠진 커피를 따라붓고 있었다. 그가 반을 날카롭게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 다. "그래 그게 뭐 새로운 얘기야? 러트리지가 정치계로 뛰어든 이래 누군가도 지적했던 거 아냐? 그들 부부를 뉴스에서도 보곤했지." "난 그 자리에 없었나, 뭐?" "아니면 그걸 기억 못할 정도의 돌대가리인 모양이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 아이리쉬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털썩 자리에 몸을 던졌다.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 뉴스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얘기를 하곤 했다. 뉴스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얘기를 하곤 했다. 일은 그에게 있어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잊는 만병통치약이 었다. 천주교신자인 탓에, 드러내놓고 자살을 할 수도 없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일하고 너무 마시고 너무 피우고 너무 피로하게 되어-이 모든 것들이 애버 리가 그를 아낀 나머지 못하게 금했던 것들인데-스스로를 죽여 버리고 말 것 같 았다. "애버리의 목걸이를 누가 보냈는지 알아내기는 했나?" 반이 물었다. 아이 리쉬는 그 괴이한 일을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캐롤 러트리지 얘기를 새 삼 꺼내는 오늘까지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아이리쉬는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 다. "아니." "찾아볼 노력은 해봤고?" "몇 군데 전화는 해봤지." 그가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반은 끈질겼다. "그리고?" "아주 귀 찮아하는 사람이 걸렸지. 비행기 사고 직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 무슨 일이 생길수 있다고 하더군." 시체를 혼동해 버리는 일도 가능할까? 하고 반은 생각 했다. 그것까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반은 참았다. 아이리쉬는 애버리의 죽음 후 최선을 다해 그 슬픔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그렇게 완전하지는 않았 다. 그런데다 반의 골빈 가설이나 들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만일 애버리가 살아 있다면 애버리의 인생을 살 일이지 남의 삶을 살고 있을리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아이리쉬에게 그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차라리 지나치게 상상력이 넘쳐나는 자 신을 탓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상스런 우연의 일치들을 이리저리 짜맞추 어 괴이하고 비논리적인 가정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아이리쉬는 반이 대 마초를 과용한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할 지도 몰랐다. 그가 무 얼 알겠는가? 그렇지만 반은 또 하나의 러트리지 테이프를 비디오에 밀어 넣었 다. 첫 번째 비명소리에 에버리는 잠을 깼다.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세 번째 소리에 그 여자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뛰쳐 나왔다. 애버리는 가운을 집어 들고 방문을 박차고 나가 맨디의 방을 향해 복도를 달려 내려갔다. 침대에서 나 온지 몇 초도 안되어 맨디 침대 곁에 서 있었다. 맨디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맨디, 일어나." 애버리는 허우적거리는 주먹을 피하며 맨 디를 깨웠다. "맨디?" 테이트가 침대 저편으로 나타났다. 바닥에 무릎을 댄 채 맨디의 몸을 억압하려 했다. 그가 맨디의 조그만 손을 잡자 맨디는 몸을 뒤틀면 서 머리로는 베개를 찧으며 발 뒤축으로는 침대를 탕탕 때렸다. 그러면서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애버리는 맨디의 뺨에 손을 대고 세게 누르면서 말했다. "맨디. 일어나. 일어나라. 테이트, 어떻게 하면 좋아요?" "맨디를 깨워." 88 "맨디가 또 악몽을 꾸고 있는가 보구나." 넬슨과 함께 들어오며 지이가 물었다. 지이는 테이트 뒤로 다가섰다. 넬슨은 손녀딸 침대 발치에 가서 섰다. "복도 저 쪽 끝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리더라. 불쌍한 것 같으니라구." 넬슨이 말했다. 애버 리는 맨디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엄마다. 엄마, 아빠가 여기 있어. 넌 괜찮아 맨디야. 넌 안전하다구." 마침내 비명소리가 조용해졌다. 맨디는 눈을 뜨자마자 애버리의 벌린 팔 안으로 달려들었다. 애버리는 맨디를 꼭 껴안고 눈물로 범벅 이된 맨디의 얼굴을 자신의 목에 파묻게 머리를 꼭 잡아주었다. 맨디는 어깨를 떨고 있었고 몸 전체가 흐느낌으로 들썩거렸다.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어요." "당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매일 밤 이런 식으로 악몽을 꾸곤했어." 테이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차츰 나아지더군. 요즘 몇 주째 한 번도 그러지 않더니. 당신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 이젠 악몽을 안꾸게 되었나 했 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하나 가득 서려있었다. "우리가 뭐 도와줄 일 없 나?" 테이트가 넬슨을 올려다 보았다. "이젠 좀 진정이 된 것 같아요. 가서 주무 세요. 아버지, 고마워요." "더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무슨 조치를 좀 취해야 되겠 구나." 넬슨은 지이의 팔을 잡고 문쪽으로 다가갔다. 지이는 마음이 안 놓이는 듯 불안한 눈으로 애버리를 돌아보았다. "맨디는 이제 괜찮을 거예요." 애버리 가 맨디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맨디는 아직도 흐느끼느라 몸을 흐드득 거리고 있었으나 많이 가라앉아 보였다. "가끔 발작이 되살아나기도 한단다." 지 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제가 아침까지 여기 있겠어요." 애버리와 테이트만이 어 린애 옆에 남게 되자 애버리가 테이트에게 말했다. "악몽이 이렇게 심하다고 왜 진작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는 침대가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당신 도 당신대로 어려웠잖아. 정신과의사가 말하던 대로 매일 꾸던 악몽이 멈춰지길 래 이젠 다 나은줄 알았지." "그래도 내가 알고는 있었어야죠." 애버리는 아직도 맨디를 꼭 껴안고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얼러주고 있었다. 맨디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그대로 계속 할 참이었다. 드디어 맨디가 고개를 들었다. 테이트가 물었 다. "이젠 좀 나아졌니?" 맨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하게도 나쁜 꿈을 꾸었 구나." 애버리가 속삭였다. 그러면서 맨디의 젖은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토닥거려 주었다. "엄마에게 무슨 꿈이었는지 얘기해 줄래?" "나에게 막 달려들려고 했 어!" 할딱거리는 숨소리 때문에 더듬거렸다. "뭐가?" "불이." 애버리도 끔찍한 장 면이 생각나 몸서리를 쳤다. 그 장면들이 때때로 그 여자를 사로잡아, 거기서 벗 어나는 데도 몇분씩이나 걸리곤 했다. 어른인 자기로서도 비행기 사고의 충격에 서 벗어나는 게 어려운게 어린애는 어떻겠는가. "엄마가 널 불에서 구해냈지. 생 각나니?" 애버리가 조용히 말했다. "이젠 더 이상 불이 안나. 그래도 생각만해도 여전히 겁나 그렇지?" 맨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버리는 전에 유명한 소아정신 과를 취재한 일이 있었다. 면담 중에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는 어린이가 두 려워하는 것의 진실성을 부모들이 부정하는 것이 가장 나ㅃ다고 했다. 공포를 극복하려면 먼저 그 공포가 인지되어야한다고 했다. "시원한 젖은 수건을 대주면 좋지 않을까요?" 테이트에게 애버리가 제안했다. 그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금 방 젖은 수건을 들고 들어왔다. "고마워요." 그는 애버리가 맨디의 얼굴을 닦아 주는 동안 그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푸우 곰인형을 집어 맨디의 팔에 대주었 다. 맨디는 인형을 가슴에 끌어 안았다. "이제 좀 누울래?" 애버리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니." 맨디가 아직도 겁먹은 눈을 껌벅이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엄마 가 안떠나고 여기 있을게. 같이 누워 잘까?" 애버리는 맨디의 등을 편하게 해주 고 맨디 쪽을 볼 수 있게 맨디 베개 위에 머리를 얹으며 그곁에 몸을 눕혔다. 테이트가 이불을 둘위에 덮어 주었다. 베개 위로 팔을 버틴 채 맨디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테이트는 팬티만 입고 있었다. 야간 등의 부드러운 불빛 아래서 보니 그의 몸은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몸을 다시 일으키려다가 그의 눈이 애버리의 눈과 마주쳤다. 충동적으로 그 여자는 그의 털이 난 가슴에 손을 대고 몸을 약간 일으켜 그의 입술에 가볍게 맞추었 다. "안녕히 주무세요, 테이트."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천천히 그가 몸을 일으키 는 동안 애버리의 손이 그의 가슴에서 단단하게 굴곡진 근육들 위로, 젖꼭지를 지나 털이 북슬북슬 난 위를 지나고 부드럽고 편평한 배를 훑어 내려와 그의 팬 티의 고무줄이 손 끝에 스쳐지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곧 돌아오겠소." 그가 중 얼거렸다. 몇분 안되어 그는 돌아왔다. 그 사이 맨디는 이미 다시 평화롭게 잠들 어 있었다. 그는 가벼운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허리끈은 묶지 않은 채였다. 흔 들의자에 다시 앉으면서 그는 애버리의 눈이 아직 감겨있지 않은 걸 눈치챘다. "그 침대는 2인용이 아닌데. 불편하지 않소?" "괜찮아요." "지금 일어나 당신 방 으로 간다고 해도 맨디는 못느낄 것 같은데." "저도 알아요. 하지만 맨디에게 아 침까지 여기 있겟다고 한걸요." 애버리는 달아오른 맨디의 뺨을 손등으로 쓰다듬 었다. "당신은 뭐할거예요?" 테이트는 팔꿈치를 무릎에 괸 채 몸을 앞으로 숙이 고 앉아 엄지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눌렀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 한움큼이 이마 로 내려왔다. 턱수염이 있는 턱의 수직면이 더 튀어나와 보였다. 벌어진 가운아 래로 맨 가슴을 부풀리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 "맨디의 정신과의사 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안 그런 것 같소?" "내가 없 는 동안 당신과 부모님들이 내린 결정에 내가 다른 얘기를 할 수야 없겠지요." 그 여자는 자기가 참견해서 안된다고 느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고 애버리 다니엘즈로서는 괜히 코를 내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둔 채 어린 애의 정서적 안정이 붕괴되는 걸 마라볼 수만은 없었다. "뭐 다른 의견이 있으면 얘기해 봐요." 테이트가 강하게 말했다. "이 애는 우리 애요. 누가 제일 좋은 의 견을 냈는지를 따지지는 않겠소." "휴스턴에 있는 어떤 의사를 알아요." 애버리 가 어렵사리 운을 뗐다. 그의 한쪽 눈썹이 호기심으로 찡긋 올라갔다. "텔레비전 대담에서 한 번 봤어요. 그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지요. 거만을 떨지도 않구요. 그는 아주 직설적이고 실질적인 얘기들을 하더군요. 지금 이 의사가 별로 도움 이 안된다면 맨디를 그쪽 의사에게 보여보면 어떨까요?" "안될거 없지. 약속을 해 두구려." "그럼 내일 전화하겠어요." 애버리는 머리를 베개에 더 깊이 묻었지 만 아직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흔들의자에 뒤를 기대고 앉아 머리를 핑크색 쿠션에 기대었다. "당신 밤새도록 거기 앉아 있지 않아도 돼요, 테이트." 애버리가 부드럽게 말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래야 겠소." 애버리는 그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21 애버리가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야간등이 아직 켜 있었 는데도 방이 어두침침했다. 맨디의 조그만 손이 자기 뺨위에 놓여져 있는 걸 깨 닫고는 미소지었다. 한 자세로 오래 누워 있었기 때문에 팔다리가 쑤시고 저려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곧 다시 잠이 들었을 거였다. 몸을 좀 뻗으려고 그 여자 는 만디의 손을 얼굴에서 베개 위로 내려 놓았다. 맨디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 하면서 그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테이트는 흔들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의 머리는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거의 어깨 위에 머리를 얹은 놓고 있었다. 불 편해 보이기 짝이 없는 자세인데도 불구하고, 배는 규칙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 며, 숨쉬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가로 질러 그 여자 귀까지 들려왔다. 가운은 벌어져 몸통과 다리를 내 보이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에서 꺾여진 채였 고, 왼쪽 다리는 앞으로 쭉 내뻗어져 있었다. 종아리와 발의 모양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손은 핏줄이 불거져 있었고 털이 수북이 나있었다. 한쪽 손은 의자 팔걸 이 밖으로 늘어져 있었고 또한 손은 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눈썹에서부터 걱정 스런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었다. 눈썹이 짙게 뺨의 반대방향으로 그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긴장이 풀린 그의 입은 감각적으로 보였다. 여자에게 상당한 즐거움 을 줄 수 있는 입같아 보였다. 애버리는 테이트가 여느 다른 일을 하는 방식대 로,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도 열정적이고 열심히, 그리고 멋지게 할 것 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감정이 격해져 올라왔다. 애버리는 몹 시 울고 싶었다. 애버리는 그를 사랑했다. 자신의 직업상의 실패를 보상해 보려 고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기 전부터 이미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의 아내역을 맡고 싶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칭칭 동여맨 붕대 틈으로 내다보았을 때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의 목소 리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걸고라도 이 역을 맡게끔 결심했던 것이다. 애버리ㅡ ㄴ 그의 아내이고 싶어서 그의 아내역을 맡았다. 그 여자는 그를 보호해주고 싶 었다. 그의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아내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싶었다. 그와 같이 잠을 자고 싶엇다. 그가 부부간의 권리를 내세운다면 기쁘게 복종할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했던 것중 가장 커다란 거짓말이었다. 만일 그 여자 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그는 결코 그 여자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는 그 여자가 그를 속였다고 여길 게 분명했다. 그는 아마도 캐롤보다도 더 그 여자를 경멸하 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었다. 테이트가 눈을 떴다. 그가 머리를 똑바 로 곧추 세웠을 때, 그는 주춤했다. 그의 두 눈꺼풀에서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 다. 흠칫 놀라며,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애버리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손 이 닿을 만한 거리에 서 있었다. "몇시지?" 졸리운 쉰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아직 이른데. 당신 목 안아파요?" 그 여자는 한손으로 그의 헝클어 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고, 손으로 그의 목둘레에 둘렀다. "조금." 애버리가 그 의 목의 인대를 눌러주었다. 근육의 경직을 풀어주면서. "으음..." 잠시 후, 그가 갑자기 입고 있던 가운 자락을 확 거두어 아래쪽 섶을 가렸다. 그리고는 쭉 뻗 은 한쪽 다리를 거두고 똑바로 앉았다. 애버리는, 자기가 해 준 마사지 때문에 몸이 묘해져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공연히 거북스러워졌다. "맨디는 여전히 잠 들어 있군." 과장된 그의 목소리였다. "뭘 좀 먹을래요?" "커피가 좋겠는걸." "내 가 아침식사를 만들께요."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모나조차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부엌은 어두웠다. 테이트는 커피 끓이는 기구의 여과종이 필터 안으로 커피를 스푼으로 넣고 있었다. 애버리가 냉장고로 갔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배고프지 않아요?" "모나가 일어나면 준비해 주겠지. 기다릴 수 있어." "내가 당신에게 뭔가 요리해 주고 싶어요." 애버리의 말에 선뜻 등을 돌리면서 그가 선선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계란 두 개가 좋겠군." 애버리는 지금까지 아 침식사를 만드는 걸 대비해 식기도구가 어디 있는지 꼼꼼히 살펴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 여자가 큼직한 그릇에 계란을 거품을 내기 시작했을 때까지 모든게 잘 돼갔다. "당신 뭘하고 있는거지?"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들고 있죠. 음... 제꺼요." 애버리는 그가 당황스런 시선을 자기에게 보내고 있음을 알 았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의 달걀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기, 당신은 다른 것 말고, 내가 넣어놓은 토스트나 좀 봐줘." 애버리는 그가 계란 두 개를 후라이하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토스트 몇 쪽이 토스터 기에서 튀어 올라오자 바쁘게 버터를 바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들을 접시 위 에 놓고 그것을 그 여자가 만든 스크램블드 에그와 함께 테이블로 가져갔다. "우 린 오랫동안 아침식사를 함께 하지 않아왔죠." 애버리는 이게 그들 사이의 첫 아 침식사라는 걸 까맣게 모른채 태연하게 인사말이나 하자고 그렇게 말하고는 토 스트 한쪽을 물어뜯었다. 계란 한입을 펴서 먹은 애버리가 오렌지 쥬스컵에 손 을 뻗쳤다. 테이트는 그의 턱을 그의 두손으로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대고 버티 고는 그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우린 여지껏 한 번도 함께 아침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 캐롤. 당신은 아침식사를 싫어하잖아." 다음 순간, 애버리는 입 안의 음식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한손이 쥬스컵을 꽉 쥐었다. "병원 에선 아침식사를 꼭 먹게 했었죠.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치과 이식을 받은 후에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죠. 난 축난 몸을 다시 추스리기 위해서 먹는 거예 요." 그의 시선은 흔들릴 줄을 몰랐다. 결코 동감할 수 없다는 강한 시선이었다. "난 아침을 먹는데 익숙해졌고, 이젠 거르고 지나가면 허전해서 못견딜 정도까지 돼버리고 말았다구요..." 다음 말을 잇기 어려워진 애버리가 다급하게 한 말이란 게 이랬다. "왜 안드세요? 설마 그걸 다 남길 생각은 아니겠죠?" 테이트가 말도 없이 포크를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한 눈에도 화가 나있는 게 역력히 드러 나보였다. 그의 움직임이 전연 자연스럽지 못할 정도로 어색해보였다. 그는 화가 났다. "그 문제에 당신 몸이나 사려." 애버리는 그가 자기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걸 두고 얘기하는 것 같아 가슴이 찔끔했다. "무슨 문제요?" "내게 아침식사를 해주니 마니 하는 것조차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런 일로 해서 내 관심을 끌겠 다는 당신의 또 하나의 수작에 불과하다는 걸 내 모를 줄 알아?" 입맛이 싹 가 시는 말이었다. 음식냄새가 이젠 속까지 다 메스껍게 만들었다. "수작요?" 그도 확실히 입맛을 잃었다. 그는 그의 접시를 밀어제쳤다. "아침식사. 가정에의 애착.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내 목을 문지르는 것 같은 애정의 표시." "당신은 그것들 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렇다고 그것들이 전혀 다른 감정을 부러일으킬 걸로 생각을 하셨나? 생각 잘못 했다구."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젠장, 그 렇지 않긴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야?!" 그는 그 여자를 노려보면서 앉았고, 그의 턱은 울적한 흥분상태로 움직였다. "만약 내가 해야만 한다면 내가 참을 수 있는 당신의 애무와 달콤한 굿나잇 키스들. 만약 당신이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다정한 부부인 체 하기를 원해서 그러는 거라면, 좋아, 계속해. 당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라구. 단지 내게 엉터리 애정을 다시 잠자리에 들기를 자극하기에 충분치 않 을 것이고, 그래서 난 당신에게 단지 내가 어느만큼 당신을 경멸하는지를 말해 야만 하겠어." 그는 숨을 쉬려고 잠시 멈췄다. "하지만 나를 정말 화나게 하는 건 당신의 맨디에 대한 갑작스런 사랑의 표현이야. 당신은 어젯밤 그 애를 위해 정말 쇼를 잘 하더군." "그건 쇼가 아니었어요." 그는 그 여자의 모성본능을 무 시했다. "경고해두지. 그 애가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엄마다운 행동을 계속할거 라면, 지금부터 그만두는 게 나을 거야. 난 맨디에게 생으로 또 한 번 좌절을 겪 게할 순 없으니까!" "점잖은 체 하는 당신..." 애버리는 자신의 어긋나버린 권리 에 화가 나기만 했다. "난 당신만큼이나 맨디에게 관심을 갖고 있어요." "암. 그 렇겠지." "당신은 나를 믿지 않는군요?" "믿지 않아." "그건 옳지 못해요." "당신 이야 옳은 것에 대해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그것도 입만 열면." "난 맨 디에 관해 몹시 염려하고 있어요." "왜?" "왜?!" 테이트의 격분한 호통에, 애버리 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울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앤 우리 아이이기 때문이 죠." "당신은 우리 아이를 낙태시킨 장본인이야! 무슨 말이 많아, 이제 와서!" 그 의 이 한마디가, 그 여자를 칼로 베듯이 아프게 했다. 그 여자는 실제로 한 팔을 허리에 질러 놓았고, 신체적 주요기관들이 움쭉 못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앞 쪽으로 굽혔다. 애버리는 그를 말없이 응시하는 몇 초 동안 숨을 멈췄다. 마치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싫은 사람처럼, 그는 일어나 등을 돌렸다. 싱크대에서 그는 빈 커피잔을 다시 채웠다. "난 결국에 가서는 알아낼거요." 그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게 들렸다. 그가 그 여자를 마주 대하기 위해서 다시 돌았을 때, 그 의 두 눈은 마치 애버리를 도려낼 듯한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한번만 더 당신이 중절을 했다는 얘기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게 되는 날이 면, 그땐..."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그가 힐끗 쳐다보았다. "당신은 내 가 어떻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하나, 생생이나 해봤어, 내 표정? 맙소사! 그곳에 당신이 있었다면 난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이고 말았을 거야." 그가 머리를 뒤로 휙 치켜 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두 눈은 그 여자의 눈에 구멍을 뚫을 듯이 쏘아보았다. 애버리는 솜털같은 기억으로부터, 얼핏 들었던 목소리들을 생각해냈 다.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들었던 테이트의 첫 목소리였다. '아이는...태아에 영향이...?' 그리고 다른 어떤 이의 목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아뇨? 당신의 아내 는 임신해 있지 않았소...' 조각난 대화는 그때로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경황도 없었으려니와, 애버리 자신에 게 그 런 비슷한 일조차도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여자가 의식을 완전히 되찾 기 전에 귓결에 들었던 가지각색의 혼란시키는 대화들로 뒤섞였다. 그래서 지금 까지 그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당신이 유산을 시켰다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 나? 왜 내겐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던 거야. 당신 맘대로 그렇게 우리 아이를 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나? 대체 왜 그랬어?!" 애버리는 비참하게 머리를 흔들 었다. 그에게 할 말이 없어서였다. 변명은 없었다.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따. 왜 테이트가 왜 캐롤을 미워했는지. "언제야, 당신이 아이를 지워버린 게? 그래, 달라스로 계획적으로 여행을 가려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지? 그 며 칠 전임에 틀림없어.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괜히 여행에 지장을 받을까봐 그 런 거였지?" 테이트가 그 여자의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듯 마구 닥달을 해왔다. 화난 그가 테이블 조명을 시끄럽게 소리가 나도록 쳤다. "대답해! 뭐라고 얘길 해보란 말야! ... 부끄러운 줄 좀 알란 말이야." 애버리가 말을 더듬었다. "난... 난 그게 그렇게 많이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말을 들은 테이트가 사납게 굴기 시작했다. 애버리는 마음속으로 그가 이러다가는 자기를 때릴 거라 고 생각했다. 급하게 자기자신의 방어를 하느라고, 그 여자는 폭언을 했다. "난 낙태에 대한 당신의 정책을 알아요! 내가 당신의 그 잘난 낙태론, 그것이야말로 여성이 선택할 권리라고 부르짖는 걸 도대체 몇번이나 들은 줄 알아요? 잘났군 요? 그 빤한 소리는 당신의 아내만을 제외한 텍사스주의 모든 여성에게 능청스 럽게 떠들던 소리가 아니었냐 말이에요!" "그래, 빌어벅을!" "위선자 같으니!" 테 이트가 그 여자의 팔을 왈칵 움켜잡았다. 애버리도 두다리에 힘을 주며 완강하 게 버텼다. "대중들에게 널리 적용되는 그 원칙을 내 개인 생하ㅗ에 미치게 할 필요는 없어요. 이번 낙태는 당신과는 무관해요. 그건 나의 아기였으니까." 그의 두 눈이 잔뜩 좁아졌다. "나의 아기였다? 그럼 내게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그 여자는 캐롤이 어떻게 반응했을 것일까를 상상해 보았다. "아이를 만들기 위해선 둘이 필요해요, 테이트." 애버리가 바랬던 대로, 그 여자는 테이트의 감정에 일격 을 가했다. 그 말을 들은 즉시, 그는 그 여자의 팔을 풀었고, 뒤로 서너걸음 물 러났다. "난 그 밤을 몹시 후회해. 그 일이 벌어지자마자 난 분명히 알았지. 난 또다시 당신의 매춘행위를 하는 몸뚱아리를 절대로 만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지. 하지만 당신은 늘 눌러야 할 버튼이 어느 것인지 정확히 집어내는 여자였어. 캐 롤. 몇일 동안 당신은 암내나는 고양이처럼 내게 몸을 곰살거려왔고, 사과와 애 정 깊은 아내가 되겠다는 약속을 고양이 울음처럼 내왔어. 그날 밤 과음만 아니 었던들, 당신이 덫을 놓기 위해 그런다는 걸 잊지 않았을텐데." 테이트가 애버리 를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주욱 훑어보았다. "당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도 또다 른 덫을 놓기 위한 사전작업이겠지? 당신이 퇴원한 이후로 모범적인 아내였던 이유도 바로 그거겠지? 그래, 속시원히 말이나 해보시지." 그는 그의 두 손을 엉 덩이 위에 올려놓으며 다그쳤다. "당신, 그날 밤실수해서 우연히 임신을 한 것과 낙태를 한 것이 나를 고문하려는 당신의 계획이었나? 당신이 다시 하려고 하는 게 나로 하여금 당신을 원하게 하는 겐가? 당신 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꼐속해야 할 만큼 당신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는 것인가?" "아니요." 애버리가 쉰 목소리로 단언하듯 말했다. 애버리는 그의 증오를 견딜 수 없었다. 비록 그것 이 애버리 자신을 가리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더 이상 나에 대해 아무 런 영향을 줄 수 없을 거야, 캐롤. 이제 난 더 이상 당신을 미워하지도 않겠어. 당신은, 미워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야. 당신이 원하는 그 모든 사내들을 챙기라구.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어. 저주조차 하지 않겠어. 당신이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맨디를 통한 거야. 맘대로 하라구. 그 리고 난 당신을 지옥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될 거야." 그날 오후 애버리는 승마를 하러 나갔다. 그 여자는 생각할 공간과 야외를 필요로 했다. 어리석다고 느끼면 서 형식적인 승마복을 입고, 관리인에게 그 여자의 말에 안장을 얹어 달라고 했 다. 그 암말은 그 여자에게서 눈을 돌렸다. 나이먹은 카우보이가 그 여자를 부추 기며 말했다. "말이 당신이 저번에 자기에게 했던 채찍질을 알진 않았을텐데." 그 암말은 제 주인의 냄새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눈알을 굴리며 놀랬다. 캐롤 러트리지는 괴물이었다-그 여자의 남편, 아이, 그 여자가 접촉했던 모든 것을 학 대한 것처럼 보였다. 아침식사 때 있었던 일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았지만, 적어 도 애버리는 자기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테이트의 그의 아내 에 대한 경멸의 정도는 이젠 이해할만 했다. 캐롤은 그의 아이를 낙태시키기 위 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아니면 그여자가 부정의 씨앗을 두고 테이트의 아 이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했던 것이었던 건지도 모르지만-그 여자가 사고 이전에 그렇게 했었는지 아닌지가 영원히 남을 미스테리로 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 버리는 시나리오를 종합했다. 캐롤은 가족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제가 하는 부정을 비밀에 부칠만힌 알리바이조차도 만들 생각 을 하지 않고 사는 여자였다. 캐롤에 대한 불신은 테이트 쪽에서는 참을 수 없 는 것일테지만, 그의 정치상의 미래에 위험을 무릎쓰고 그는 선거가 끝날 때까 지는 이혼을 보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리라.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는 그의 아 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아왔던 것 같다. 아예 두 사람의 침실에서 나와버렸다. 하 지만 캐롤은 한 번 더 사랑 행위를 하자고 그를 꾀였다. 테이트에 대한 대중의 영향은 개인적 영향만큼이나 심연할 것이었다. 그 아이가 테이트의 것이든 아니 든, 캐롤의 낙태는 정치상의 논쟁점이 될 게 분명해질 것이고, 그래서 애버리는 캐롤이 낙태를 결심했다고 미루어 짐작했다. 애버리가 승마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맨디는 쿠키를 굽고 있는 모나를 돕고 있었다. 모나는 맨디에게 아주 잘 대 해 주었다. 애버리는 맨디가 만든 쿠키를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계속 같이 있도록 놔두었다. 집안은 조용했다. 얼마 전 애버리는 팬시가 무스탕 자가 용 안에 앉아 고함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잭, 에디 그리고 테이트는 낮의 이 시간엔 늘 도시에 있었다. 선거운동본부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도로시 레 이는 평소처럼 제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모나가 전하는 말로는 넬슨과 지이가 오후에 커빌로 가버렸다고 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애버리는 승마용 채찍을 침대 위에 던졌고, 장화벗는 기구로 긴 승마용 장화를 벗었다. 그 여자는 욕실 안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들어가 샤워 꼭지를 틀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엄 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애버리는 화장대 위에 있던 브러쉬가 그대로 그 자리에 내던져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또 가지런히 놓고 나갔던 로션병이 한눈에 다른 자리로 옮겨진 것을 보았을 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과 함께 말 못할 공포감이 엄습하는 걸 느껴본 적이 있었다. 애버리는 보석상자의 뚜껑을 진주 줄을 바깥에 흩뜨린 채로 놔두지 않았다. 침실 안에도 역시, 나가있는 동안 어지럽혀져 있었다. 무서웠다. 그 여자는 캐롤의 방으로 들어온 이후로, 제가 한 일이 아닌데도 방안이 변해있는 적이 적지 않았다. 애버리는 문을 잠궜다. 사 워를 하고, 두꺼운 가운을 몸에 걸쳤다. 불안감으로 일의 전후를 다시 한 번 생 각해 보자고 마음먹고 옷을 벗은 채로 잠시 동안 누워 있기로 했다. 베개 안에 머리를 깊이 묻고 눕자, 베갯잇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물감. 바삭바삭 소리가 나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이 베개와 베갯잇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애버리 는 불안해 하면서 그것을 살펴 보았다. 그 종이는 두 번 접혀있었고, 하지만 겉 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갑자기 그걸 펼쳐보기가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침입자는 무엇을 찾기를 기대했을까? 그는 무엇을 찾고 있었단 말인가? 하나는 확실했다. 그 쪽지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묘하게도, 그리고 계획적으로, 단지 애버리만이 찾아낼 수 있는 곳에 놓여진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 쳤다. 줄이 쳐있지 않은 종이의 중간 쯤에 타이프로 한 줄 친 내용이 있었다. '네가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이던 간에, 그것은 그에게 작용하고 있다. 그걸 계속 유지하도록.' "넬슨?" "으음?" 넬슨이 건성으로 하는 대답 때문에 지이는 적잖이 불쾌해졌다. 지이는 헤어브러쉬를 옆으로 놓고 화장대 의자에서 돌았다. "이건 중요한 얘기예요." 넬슨은 신문의 귀퉁이를 아래로 기울였다. 걱정스러워 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그는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는 거실 의자의 발판을 낮추었 다. 뒤로 제쳐앉았던 몸을 바로 펴며 넬슨은 물끄러미 지이를 쳐다보았다. "미안 해, 여보. 당신이 얘기하려는 게 뭐지?"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뭐 잘못된 거 라도 있소?" 그들은 침실에 있었다. 그들이 의례적으로 보는 10시 뉴스가 끝나 고, 이제 두 사람은 잠잘 채비를 해야 했다. 지이의 검은 머리카락이 빗질을 해 서인지 윤이 나고 있었다. 희끗희끗 센 은빛 머리카락이 불빛 때문인지 더욱 두 드러져보였다. 사나운 텍사스 햇빛에도 잘 손질된 그 여자의 피부는 매끄러웠다. 그 여자의 얼굴엔 그 나이답지 않게 주름이 별로 없어 보였다. "뭔가가 이상한 일이 테이트와 캐롤 사이에 일어나고 있어요." 지이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사 소한 말다툼인 것 같기도 하고..." 넬슨이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옷을 벗기 시작 했다. "하긴, 그 애들 둘 다 저녁식사 때 조용하기만 하더군." 지이는 오늘 저녁,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석연찮은 기운이 있음을 감지한 것이었다. 작은 아들이 그 랬다는 것에, 그 여자는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테이트는 단지 기 분이 안좋은 정도가 아닌 눈치던데요?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구요." "캐롤이 또 그 애 마음에 안드는 일을 저지른 모양이겠지." "아녜요, 아깐 분명..." 지이는 마 치 말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속사포처럼 신명을 내며 말을 하는 듯이 계속 얘 기를 해댔다. "캐롤은 정 반대였잖아요, 평소 때라면. 제 남편 기분이 좋건 말건, 경솔하다 생각될 정도로 제 맘대로였는데." 넬슨은 바지들이 걸려이쓴ㄴ 벽장 안 의 걸개에 그의 바지를 단정히 걸었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곱게 걸어놓은 것이 었다. "내 보기엔, 당신이 말하는 만큼 작은 아이가 경솔해 보이지 않더군. 거의 한마디도 않던 걸, 뭐." 지이가 빈의자의 뒷받침을 꽉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넬슨. 오늘은 걔까지도 테이트만큼이나 날카로왔고 화가 나 있었죠. 그 애들 싸움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어야 말이죠." 권투선수가 입는 짧 은 반바지 같은 팬츠만 입은 넬슨이 침대 커버를 단정히 다시 접고는 침대 안으 로 기어 올랐다. 그는 그의 머리 밑으로 두 손을 포개 베고 천정을 응시했다. "나도 요즈음 들어 전혀 캐롤같이 않은 몇가지 점들을 알아냈지." "하느님, 감사 합니다. 난 내가 유별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 이외에도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예요." 그 여자는 등불을 끄 고 침대 속, 남편 곁으로 들어갔다. "요즘의 캐롤을 유심히 살펴보면, 예전하고 영 딴판이예요. 천박하다거나 하는 면을 전연 볼 수가 없으니 말예요. 그렇죠, 여보?" "그런 큰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어서겠지." "글쎄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소?" "만약 그것이 이유의 전부라면, 난 그게 이유라고 생각할지 모르죠." "그럼 무슨 다른 거라도 있다는 게요?" 넬슨이 물었다. "맨디한테 하는 것만 봐도 그래요. 요즘 캐롤은 그 애에겐 영 다른 사람이라니까요. 어젯밤 일만 해도 그렇잖아요? 당신, 맨디가 악몽을 꾸고 났을 때, 보여준 행동이며 태도를 보고도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 어요? 밤새도록 맨디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구요. 난 아직도 맨디가 열이 펄펄 끓던 날을 기억해요. 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그 애를 응급실에 데려가야한다 고 생각랬어요. 헌데 캐롤은 정 반대였죠. 싫증까지 내면서 말예요. 아이 땐, 너 나없이 열병을 앓고 지나가는 걸,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이나 주고. 하 지만 어젯밤엔 얘기가 달랐어요. 캐롤이 맨디만큼이나 덜덜 떠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넬슨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뒤척였다. 지이는 왜 그런지 알 았다. 연역적 추리가 그 여자를 괴롭힌 것이었다. 지이에게 있어서 세상은 언제 나 이분법적이었다. 하느님 이외에는 천국과 지옥처럼 그여자에게 확실하게 다 가오는 것이라고 받고 있는 여자였다. 그와는 달리, 넬슨은 만질 수 없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에 회의적이었다. 그의 의 견으로는, 유능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고도 자신 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캐롤은 성인이 되고 있어. 그게 다요." 건성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캐롤이 받았던 그 호된 경험이 그 아이를 성숙시킨 걸 거야. 지금 캐롤은 세상 모든 사물들이 새롭게 느껴질 게요. 결국 제가 가진 것들-테이트, 맨디, 이 가족-에게 감사하는 거요." 지이는 넬슨의 말이 사실이기를 믿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난 그 애의 변화가 지 속적이길 바라겠어요." 넬슨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지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의 팔을 지이의 허리가 움푹이 들어간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희끗희끗해지고 있 는 아내의 머리에 키스를 해주었다. "당신이 지속되길 원한다는 게 대체 어떤 거 요, 구체적으로?" "캐롤이 보여주는 테이트와 맨디에 대한 사랑의 태도요. 겉으 로 보기엔 그 아인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여요." "좋군. 그럼 된거잖 아?" "만약 그게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라면, 허약 하기 짝이 없는 맨디나 테이트까지도 다시금 캐롤의 성미 마르고, 참을성 없는 태도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지 않겠냐는 걱정이 앞서요." 지이가 긴 한숨 을 내쉬었다. "난 테이트가 행복해지길 원해요. 그 애가 선거에서 이기든 아니든 간에 특히 그 애의 인생에 있어서의 이런 전환기에는 그 애는 행복할 가치가 있 어요. 그 앤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요." "당신은 늘 자신의 아들들의 행복을 빌어 왔어요, 지이." "하지만 그 애 둘 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넬 슨." 그 여자는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난 그 애들이 행복하길 원해왔어요." 넬슨의 손가락이 그 여자의 입술을 만졌다. 있지도 않은 미소를 지으려 애쓰면 서. "당신은 변하지 않았군. 당신은 여전히 낭만적 기질이 있어." 그는 그 여자의 부드러운 몸을 자기의 몸에 끌어당기고는 키스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 여자 의 나이트가운을 벗기고 따뜻하게 그 여자를 어루만져주었다. 22 애버리는 어떻게 하면 아이리쉬와 만날 수 있을까를 놓고 며칠 동안 고민을 했 다. 그 여자는 결국 아무래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그 여자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들을 객관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결정을 내 리자마자, 자신이 398기 사고에서 죽지 않았고, 지금은 애버리 다니엘즈가 아닌 캐롤 러트리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리쉬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 가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 여자가 그것을 어떻게 얘기하건 간에, 그것은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만약 그 여자가 느닷없이 그의 문앞에 나타난다면, 그는 그 충 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 그래서 애버리는 몇주 전에 자신의 보석들을 우편으 로 부쳤던 우체국에서 짧은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분명히 그는 아무런 설 명이 없는 그 우편물을 받은데 대해 당황했을 것이다. 이미 그는 그 여자의 죽 음을 둘러싼 어떤 미스테리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지 않을까? 그 여자는 그 러한 미증유의 편지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숙고했다. 그 여자가 이미 죽었다고 믿는 그 어떤 사람에게 사실은 살아있다고 말하기란 생각보다 어 려운 일이었다.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믿게끔 할만한 적당한 말도 없었거니와, 첫머리의 인사말을 뭐라고 해야할지부터 난감했다. 그 여자는 결국 있는 그대로 의 사실을 짧게 알리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이리 쉬, 난 비행기사고에서 죽지 않았어요. 내가 다음 수요일 밤 6시 당신의 아파트 로 가서 사건의 기괴한 전후를 설명하겠어요. 애버리가.> 그 여자는 왼손으로 그것을 썼다. 아이리쉬가 즉시 그 여자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 다. 그리고 봉투에는 되돌아올 주소를 쓰지 않고 그것을 부쳤다. 테이트는 토요 일 아침의 말다툼 이후로 애버리에게 다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 여자는 오 히려 기뻤다. 그의 반감이 그 여자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긴 했지만, 애버리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어쩔 수 없이 뒤집어 쓸 수 밖에는 없었던, 즉 캐롤-를 위 해서 그 반감과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이럴 때는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견디 가 쉽게 해주었다. 애버리는 테이트가 이 모든 사실들을 알아버렸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캐롤에 대한 그의 증오는, 그가 애버 리 다니엘즈에게 느낄 것에 대해선 그래도 덜한 것이 될 것이다. 애버리가 기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자기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였다. 그때까지 그 여자는 다만,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행동해야 했던 동기들이 얼마 나 이타적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을 만들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애 버리는 휴스턴의 아동 심리학자인 제랄드 웹스터 박사와 약속을 했다. 그는 예 약화자로 연중 스케줄이 꽉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약속을 얻어내는 데 별 어려 움이 없었다. 그 여자는 박사의 꽉 짜여진 시간 중 한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테이트의 명성을 이용했다. 맨디를 위해서, 떳떳한 마음으로 지위를 이용한 것이 다. 애버리가 테이트에게 약속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그저 차갑게 고개를 끄덕 일 뿐이었다. "내 달력에 메모를 해놓겠소." 어쨌든 애버리는 그들이 휴스턴에서 선거운동을 할 동안의 하루를 택해 약속을 받아놓았다. 의례적인 부부 간의 대 화 이외엔, 그들은 서로 거의 얘기조차 하지 않고 지냈다. 차라리 애버리에겐 그 런 시간들이 주어지는게 나았다. 아이리쉬를 만났을 때, 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요일 밤, 애버리가 차를 아이리쉬 집앞의 정류장에 대었을 때, 그 여자는 여전히 그에게 무엇을 얘기할지 또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생각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보도를 걸어 올라가고 있는 애버리의 심장박동은 목까지 차오도록 가삐 뛰고 있었다. 특히 창문 블라인드 뒤로 거뭇거뭇한 사람의 그림자를 봤을 때 가슴은 금방 터 져나올 것처럼 뛰었다. 애버리가 현관 앞에 도달했을 때, 문은 열려져 있었다. 아이리쉬가 성난 표정으로 걸어나와 애버리의 앞에 서서 그 여자를 노려 보았 다. "젠장,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애버리는 그의 광포한 태도가 자기를 위협하 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조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 고 걸어갔다. 아이리쉬는 그 여자보다 키가 조금밖에 더 크지 않았다. 하이힐을 신고 있는 애버리가 마주 서자 두 사람의 눈이 바로 마주보게 되었다. "나에요, 아이리쉬." 애버리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애버리의 손길이 그의 끝에 닿자, 그 의 거친 태도는 자취를 감췄다. 격노한 아일랜드 남자는 갑자기 연약한 꽃입처 럼 풀이 죽어버렸다. 몇 초 상간으로, 그는 호전적인 권투선수에서 당황한 늙은 사내로 바뀌었다. 그의 푸른 두 눈이 의심과 당황한 기쁨의 눈물로 갑자기 흐려 졌다. "애버리, 맞아?...어떻게?...애버리?..."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제가 모든 걸 말씀드릴께요." 애버리가 그의 팔을 잡고 방향을 돌렸다. 그는 마치 발과 다리를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아예 잊어버린 사람처럼만 보였다. 옆구리를 부드럽게 팔 꿈치로 슬쩍 문간으로 그를 밀었다. 그 여자는 그들 뒤의 문에 가까이 갔다. 애 버리가 다시 찾은 그 집은 난파선 안을 방불할 정도로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있 었다. 집안과 똑같은 꼴인 아이리쉬의 모습 또한 애버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안 본 사이, 그는 허리둘레에 살이 쪄 있었다. 반대로 얼굴은 수척했다. 그의 두 뺨 과 턱은 맥이 풀린 듯, 핏기가 없어 보였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코와 광 대뼈를 가로지른 곳엔, 숨기려해도 숨길 수 없는 붉은 모세관의 파열흔적이 있 었다. 미친 듯이 폭주를 해온 게 틀림없었다. 이제껏 아이리쉬는 최신유행의 옷 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품위를 잃지않을 만한 옷을 골라입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의 차림새를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이 보였다. 그의 봉두난발은 동정심을 자극할 정도를 넘어서서 혐오감을 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예민한 성격을 가 진 사람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 여자가 그를 봤던 마지막 때, 그의 머 리카락은 반백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완연히 백발에 가까웠다. 그 여자가 그 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오, 아이리쉬, 아이리쉬, 용서해줘요." 흐느끼면서 애버 리는 그에게 맥없이 쓰러졌다. 애버리의 두팔을 그의 굳은 몸에 감고 단단히 안 으면서. "얼굴이 다른데..." "네." "그리고 목소리도 쉰 목소리야." "알아요." "하지 만 눈은 애버리의 눈이야. 난 네 눈을 보고 비로소 넌 줄 알아봤다." "고마워요... 그래요, 난 아주 다 변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아이리쉬가 애 버리를 떼어놓았고, 그의 크고 거친 두 손으로 애버리의 두 팔을 서투르게 문질 렀다. "잘 지내고 있어요." "어디에서?...아이구, 성모마리아 님, 난 도저히 이 상 황을 믿을 수가 없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를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기 뻐요." 다시 한 번 서로 붙들고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애버리의 인생을 통틀어 적어도 천번 쯤은, 위안을 얻으려고 아이리쉬에게로 달려갔었다. 애버리의 아버 지가 없을 때, 아이리쉬는 애버리의 다친 팔꿈치에 키스해 줬고, 부러진 장난감 들을 고쳐주었고, 학교 숙제도 도와주었고, 무용 발표회에도 참석해줬고, 때로는 매질도 하고 벌도 주고, 축하도 해줬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 은, 애버리는 거꾸로 아이리쉬를 달래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이 바뀌었다. 그는 애버리 앞에서 위로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늙은 아버지와도 같았다. 두 사람 은 비틀거리며 소파로 걸어갔다. 둘 다 나중에 어떻게 그들이 그곳에 갔는지 기 억할 수 없었긴 하지만, 울고불고 하는 법석이 가라 앉았을 때, 그는 활기있게 그리고 조급하게 두 손으로 젖은 얼굴을 닦았다. "전 아저씨가 화 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애버리는 크리넥스로 아무렇게나 코를 푼 뒤 말했다. "난!... 그래, 제기랄. 화가 났어. 만약 내가 널보고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면, 난 너의 궁둥이 를 쳤을텐데." "아저씬 딱 한 번 저를 때려주었죠. 그때 난 우리 엄마를 추한 이 름으로 불렀어요. 절 때려주시고도 아저씬, 도리어 저보다 훨씬 더 서럽게 울었 죠. 내가 울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애버리는 그의 뺨을 만졌다. "아저씬 바 보, 바보 아이리쉬 맥케이브예요."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아이리쉬가 다그 쳐 물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게냐? 너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렸었니?" "아니요." "그럼, 뭐야?" 그는 애버리의 얼굴을 살피면서 물었다. "난 네가 그렇 게 생긴데 익숙치 않아, 넌 마치..." "캐롤 러트리지." "맞아. 테이트 러트리지의 부인!" "그 여자는 제 옆자리에 타고 있었어요. 아저씬 시신을 확인해 보셨어 요?" "그럼, 네 로킷도 함께 확인했지." 애버리가 머리를 함께 가로저었다. "아저 씨가 신원확인을 한 건 캐롤의 시신이었어요. 사고 직전에 그 여자가 내 로킷을 손에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심하게 화상을 입어 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네 머리카락이었고, 네..." "우린 이륙하기 바로 몇분 전까지 승무원들에게 자매로 오인 받을 정도로 많이 닮았었죠." "어떻게..." "들어봐요. 아저씨께 차근차근 설명해 드릴께요." 애버리는 그의 두 손을 감싸쥐었다. 일단 말을 멈추고 자기 말을 들어달란 무언의 표시였 다. "사고가 난 지 며칠 뒤에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전 머리에서 발까지 붕대로 감겨져 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었죠. 전 한쪽 눈으로도 볼 수가 없었어요. 말을 할 수도 없었구요." 다음 날을 이으려 애버리가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러트리지 부인이라고 불렀어요. 처음에 전 내가 러 트리지 부인인지 다른 어느 누군지 전혀 기억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전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고, 어리둥절했 어요. 그리고나서, 제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을 ㄸ, 전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깨 달았죠. 아저씨도 알다시피 자리가 바뀌었다는 걸 말이에요." 애버리는 그에게 단지 애버리만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애쓰는데 고민하던 시간들을 주욱 얘기했다. "러트리지 집안은 소여 박사에게 캐롤의 사진 들을 주고, 제 얼굴을 그 여자의 얼굴과 똑같게 성형수술을 하도록 했어요. 제 가, 그들이 실수하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는 그의 두 손을 애버리의 두 손 밑에서 빼내어 풀린 턱아래로 끌어 당겼다. "난 한 잔 해야겠어. 너도 한 잔 하겠니?" 그는 잠시 후 스트레이트 위스키를 3/4쯤 채 운 컵을 들고 소파로 되돌아왔다. 애버리는 그 잔을 의미있게 바라보긴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단 한모금에 그걸 탁 털어넣었다. "좋아, 난 그때까 지는 널 이해해. 네가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동안 엄청난 실수가 이루어진 거 야. 그런데 네가 의사전달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고 나서도 그 얘기를 그 들에게 하지 않은 이유는 뭐냐? 왜 넌 여전히 캐롤 러트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 애버리는 어지러운 방안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애버리의 몸짓으로 나타내는 말이 그에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정당함을 얘기하기에도 뭔 가 개운찮은 구석이 있기는 했으니까. 그 배후의 연유들을 당장 이 자리에서 아 이리쉬에게 알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말투란 언제나 보도기자 가 뉴스를 보도하는 것 같았다. 직업상의 기자라는 소성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그들의 역할은 관찰하는 것이지,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은 그와 애버리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와 계속적 인 논쟁도 그칠 날이 없었다. 지금 애버리는 죽은 아버지와 다시 대면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가 테이트 러트리지가 상원의원이 되기 전에 죽이려 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아이리쉬는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의 손이 위스키잔을 들어올리다가 테이블과 입 사이 중간쯤에 멈춰졌다. 술이 그의 손위 로 컵 가장자리를 넘어 튀어올랐다. 그는 말없이 바지에 흘린 위스키를 손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뭐라고?" "누군가가 계획하고 있어요..." "누가?" "몰라요." "왜?" "몰라요." "어떻게?" "몰라요, 아저씨." 애버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난 어디서인지, 언제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건 묻지 말아주세요. 제말을 듣기 만 해주세요." 그는 애버리에게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건방지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으면 널 때려줄지도 몰라. 어릴 때처럼 말이다. 공연히 내 인 내력을 시험하려 들지는 말거라. 넌 이미 나를 지옥에까지 보냈던 아이야. 끔찍 한 지옥에 말이야." "저한테도 소풍 같은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쉬운 일이 아니 었어요." 애버리는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지금껏, 내 자신을 억누르며 얘기를 들 어준 이유도 바로 그거야." 아이리쉬 역시 소리를 질렀다. "네가 생각했던 게 뭐 든 그게 옳은 판단이었고 옳은 행동이었다고 우길 생각은 말아라, 애버리." "그 럴 생각은 없어요, 아저씨." "그러면, 러트리지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그 누 군가에 대한 얘기는 다 뭐지? 제기랄, 네가 어떻게 알아?" 이런 식으로 보이는 아이리쉬의 노기는 오히려 오랜만에 보는 애버리에게는 고향같은 따뜻함을 전해 주었다. 애버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아이리쉬는 그가 몇분 전에 보였던 슬픔에 잠긴 모습일 때보다도 훨씬 대하기가 편했다. 그런 그와 말다툼하기를 몇 년 동 안 연습해 온 애버리였다. "우군가가 내게 자신이 테이트가 당선되기 전에 죽일 거라고 말했어요." "누가?" "몰라요.." "젠장." 그가 심술궂게 한마디 내뱉었다. "또다시 그런 장난은 할 생각도 말아." "만약 아저씨가 내게 기회를 준다면, 설 명하겠어요." 그는 또 한 잔을 했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소파의 등에 몸을 기대 고 앉았다. 계속 들어준다는 표시였다. 그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심하 게 화상을 입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 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네 머리카락 이었고,, 네..." "우린 이류가기 바로 몇분 전까지 승무원들에게 자매로 오인받을 정도로 많이 닮았었죠." "어떻게..." "들어봐요. 아저씨께 차근차근 설명해 드릴께 요." 애버리는 그의 두 손을 감싸쥐었다. 일단 말을 멈추고 자기 말을 들어달란 무언의 표시였다. "사고가 난 지 며칠 뒤에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전 머리에서 발까지 붕대로 감겨져 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었죠. 전 한쪽 눈으 로도 볼 수 없었어요. 말을 할 수도 없었구요." 다음 말을 이으려 애버리가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러트리지 부인이라고 불렀어요. 처음에 전 내가 러트리지 부인인지 다른 어느 누군지 전혀 기억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 에,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전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고, 어리둥절했어요. 그리고나서, 제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을 때, 전 무슨일이 벌어 졌는지 깨달았죠. 아저씨도 알다시피 자리가 바뀌었다는 걸 말이예요." 애버리는 그에게 단지 애버리만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애쓰는데 들였던 고민하던 시간들을 주욱 얘기했다. "러트리지 집안은 소여 박사 에게 캐롤의 사진들을 주고, 제 얼굴을 그 여자의 얼굴과 똑같게 성형수술을 하 도록 했어요. 제가, 그들이 실수하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는 그의 두 손을 애버리의 두 손 밑에서 빼내어 풀린 턱아래로 끌 어 당겼다. "난 한 잔 해야겠어. 너도 한 잔 하겠니?" 그는 잠시 후 스트레이트 위스키를 3/4쯤 채운 컵을 들고 스파로 되돌아왔다. 애버리는 그 잔을 의미있게 바라보긴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단 한모금에 그걸 탁 털어넣었다. "좋아, 난 그때까지는 널 이해해. 네가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동안 엄청난 실수 가 이루어진 거야. 그런데, 네가 의사전달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고 나서 도 그 얘기를 그들에게 하지 않은 이유는 뭐냐? 왜 넌 여전히 캐롤 러트리지 역 할을 하고 있는거지?" 애버리는 어지러운 방안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 썼다. 애버리의 몸짓으로 나타내는 말이 그에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정당함을 얘기하기에도 뭔가 개운찮은 구석이 있기는 했으니까. 그 배후의 영유들은 당장 이 자리에서 아이리쉬에게 알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말투란 언 제나 보도기자가 뉴스를 보도하는 것 같았다. 직업상의 기자라는 속성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그들의 역할은 관찰하는 것이지, 참여하는 것 이 아니었다. 그 점은 그와 애버리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사람사 이의 계속적인 논쟁도 그칠 날이 없었다. 지금 애버리는 죽은 아버지와 다시 대 면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 누군가가 절 찾아왔어요. 캐롤이라 믿었던 거겠죠. 전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제 눈이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게다가 그가 제 어깨 너머에 서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거든 요." 애버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 남자의 협박을 그대로 따라하며 사건을 자세히 얘기했다. "전 겁에 질렸어요. 제가 의사전달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내가 정말은 캐롤이 아니라 애버리라는 것을 밝히기가 두려웠어요." 아이리쉬는 애버리가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조용히 했다. 애버리는 소파로 되돌아와 그의 곁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네가 내게 얘기하고 있는 건 결국, 네가 러트리지 부인의 자리보전을 하고 있으면 테이트 러트리지가 암 살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거라는거지." "맞아요." "하지만 누가 그를 죽이려고 계 획하는지도 모른다면서?" "아직은요. 하지만 캐롤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과 그 여자의 관계를 알지 못하긴 하지만, 캐롤이 가담되어 있는 게 분명해요." "으 음..." 아이리쉬는 생각 깊게 그의 턱 밑의 흐늘흐늘한 피부를 끌어 당겼다. "그 방문객은..." "가족 중 한명임에 틀림없어요. 그 외엔 아무도 응급실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거든요." "누군가가 몰래 들어왔을 수도 있지." "가능해요.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만약 캐롤이 암살자 하나를 고용했었다면, 그는 캐롤이 그 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졌을 때 조용히 자취를 감췄을 것 아니겠어요? 그는 캐롤에게 계속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기 위해 오지 않았을 거예요. 안그래요?" "그는 너를 죽이려 들거야." "아저씨는 절 믿지 않죠?" "난 널 믿는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게 제 상상 뿐일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게 분명해요." "넌 그때 마취 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이었어. 게다가 어리둥절해 있었다구, 애버리." 그가 덤덤 한 태도로 다음 말을 이었다. "네 스스로 분명히 그렇게 말하기까지 하지 않았 니. 그때 네 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고. 자세히는커녕 분간할 수도 없었던 그런 상황이었단 말이지. 넌 그 사람이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여자일 수도 있었어. 넌 그게 러트리지 가족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다른 어떤 사 람일수도 있었다구." "뭘 말하고 싶으신 거죠, 아이리쉬?" "넌 필경 악몽을 꾼거 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한 게 아니예요." 애버리는 배 갯잇 안에서 찾아낸 종이르 자기의 지갑에서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는 그 타이프로 쳐진 메시지를 읽었다. 그의 당황한 두 눈이 애버리의 두 눈과 마주쳤 다. 좀 더 자신감을 얻은 애버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그걸 어디서 찾 아낸 줄아세요? 바로 제가 베고 자는 배갯잇 안에서예요. 그는 실체예요, 허깨비 가 아니라구요. 그는 여전히 절 캐롤이라고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의 공범자와 함께, 아직도 원래 계획했던 짓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뭐겠어요?" 그 쪽지 하 나로, 아이리쉬도 생각을 바꿔먹기 시작했다. 그가 불안하게 헛기침을 했다. "이 게 네가 입원해 있던 그날 밤 이후로 그와 가진 첫 번째 접촉이니?" "네." 그는 그 메시지를 다시 읽은 다음 말했다. "내 판단으론, 이게 그가 테이트 러트리지 를 죽일거라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애버리는 그를 지친 시선으로 쳐다 보 았다. "이건 철저하게 계획된 암살음모예요.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생긴 게 아 닌 장기적이고 은근한 계획이란 말예요. 그런 바에야 일을 치루기 전부터 공연 히 위험을 무릎 쓸 생각이겠어요, 어디? 자연히, 글귀 역시 모호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것이 도중에서 가로채어질 경우 때문에, 그 보기엔 결백한 말들이 캐롤에겐 전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도록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을 거라구 요." "집 안에 타자기를 누가 사용하지, 대개?" "모두 다요. 집안에 모두가 쓸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타자기 한 대가 있어요. 그것도 제가 확인하고 난 뒤라구 요." "이 '네가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이던간에'가 의미하려는 게 뭘까." 애버리는 떳떳치 못하게 눈길을 돌렸다. "잘 모르겠어요." "애버리?" 애버리는 아이리쉬에 게 그 사실을 절대로 속일 수 없었다. 그는 매번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털어놓 는 수밖에 없었다. "난 그의 아내가 했던 것보다 테이트와 더 잘 지내려고 노력 해왔어요." "어떤 이유로?" "그 두사람 간에는 문제가 이만저만 있는 게 아니예 요. 전 그걸 고쳐주고 싶었어ㅛ. 어차피 제가 그 여자의 역할을 맡기로 결심한 이상, 그런 대우를 계속 받으며 지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넌 어떻게 그 역할 을 해낼 생각이지?" "그가 캐롤을 대하는 건 아주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러는 것 뿐, 속마음으로는 그렇게 경멸 할 수가 없어요. 항상 예의 바르게, 점잖게 대해주지만, 그 뿐이예요, 애정이란 게 있을 수가 없죠." "으음. 넌 그게 왜인지 아니?" "캐롤은 낙태를 했거나 하려 고 계획하고 있었어요. 저도 겨우 지난 주에야 그 사실을 알아냈구요. 전 이미 캐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죠. 그 여자는 테이트를 기만했고 그 여자의 딸에겐 불행스런 부모였죠. 의심을 제게할 필요도 없이, 전 그와 그의 아내사이에 있었던 벽을 뚫어보고 싶었어요." 다시 아이리쉬가 물었 다. "왜?" 아이리쉬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으로, 애버리는 하고 싶은 얘기만 계속 했다. "그래서 전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돼오고 있었는지 점점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 제가 살인자에 대한 동기나 윤곽을 잡기 전에, 먼저 그들 두 사람에게 있었던 갈등의 뿌리를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해보이고자 하는 제 노력이 그들에게도 전해지기 시작했죠. 살인음모자의 눈엔 제 그런 행동들이 테이트의 경계를 늦추 려는 캐롤의 새로운 계획이라고 받아들여졌을 거예요." 애버리는 갑자기 무서움 증을 느끼며 손을 비벼 긴장을 풀려 했다. "이 음모는 실체예요. 아저씨. 전 그걸 알아요. 그 증거가 여기 있잖아요?" 애버리는 아이리쉬가 손에 들고있는 쪽지로 시선을 주며 고개를 끄덕했다. 아이리쉬는 커피 테이블 위에 그 종이쪽지를 던 져 내려놓았다. "우리, 살인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구. 자, 과연 누가 그를 얼게 할 수 있을까?" "몰라요..." 애버리가 맥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 보기에도, 그 집안은 크고 행복한 가족이예요. 물론, 겉으로 쁜이긴 해도. 아저씨 생각엔 누굴 것 같아요?" 그렇게 물은 애버리는 아이리쉬에게 그들 집안의 가족 구성원 하나 하나에 대해 테이트와 상호관계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각각은 마음속에 다 른 속셈이 있지만, 그들 중 아무도 테이트와 이해관계가 엇갈린 사람은 없이 보 여요. 그게 문제란 말이예요. 그의 부모도 테이트를 몹시 사랑해요. 넬슨은 가족 의 확실한 가장이죠. 그는 엄격함과 다정함을 지닌 만점 가장이예요. 지이는 정 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아요. 그 여자야 말로 좋은 아내이며 다정한 어머니예 요. 그런데도 저와는 되도록이면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나 봐요. 물론, 겉으로야 다정스럽기 그지 없는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사람이지만. 아마 자기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 떻더냐?" "캐롤은 에디와 밀애를 즐긴 게 틀림없어요." "에디 파스칼, 러트리지 의 선거매니저?" "대학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죠. 저도 아직 확실히는 몰라요. 단지 그를 짝사랑하고 있는 팬시의 말만 듣고 생각한 거니까요." "그런 게 어딨 어? 이 파스칼이란 인물은 너를 어떻게 대해 주니?" "정중하게요. 그 이상은 없 어요. 물론, 난 캐롤이 했음직한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아요. 만약 그들이 밀애를 즐겼던 사이라면, 사고를 겪은 다음 에디 쪽에서 스스로 그 관계를 정리할 생각 을 한 거겠죠. 요즘은 전연 추파 같은 걸 던져오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간에, 그 는 테이트의 선거만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이예요." "그 팬시라는 여자 에는?" "애버리 머리를 저었다. "팬시는 열오른 매춘부보다도 윤리의식이 없는 아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살인음모에 가담해 있다고 생각될 만큼 속이 있는 아 이는 아니예요. 경솔하기 짝이 없죠. 걘 그런 일을 해낼 능력이 없는 아이예요. 그리고, 그런 일에 정력을 쓸 아이도 아니구요." "그의 형은? 잭, 맞나?" "그 역 시 극도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죠." 애버리는 생각에 잠기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테이트는 그런 형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어요. 비록..." "비록?" "잭은 오히려 동정적이예요. 서로 너무나 다른 성격임에도, 형제 간의 우애가 보이지 않게 끈끈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능력 면에서 볼 때 테이트가 태양이라면 잭은 달이예요. 그는 테이트의 빛을 반사하지만 자기 자신 의 것은 없어요. 그는 선거운동에 에디만큼이나 열심히 일하지만 만약 무언가가 잘못되면, 그는 대개 비난을 받는 입장이죠. 안타깝고, 동정이 가요, 잭한테는." "그 자신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더냐? 자기 동생을 죽일 정도로?" "모르겠 어요. 그는 항상 자기 영역 안에서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 어요. 저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걸 느꼈어요. 그 시선 속에서 끓어오 르는 적개심 같은 감정을 언뜻언뜻 느낄 수도 있구요.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는 무관심한 척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의 아내는 어때?" "도로시 레이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강한 질투심을 가진 여자이긴 하지만, 가만히 보면 테이트를 죽 인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먼저 캐롤부터 죽여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할 거예 요. 그런 여자죠."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뭔데?" "제가 가족사진 앨범을 보고 있을 때였어요.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요. 도로시 레이가 술을 마시려 고 거실로 들어오더군요. 그때도 그 여자는 이미 취해있었어요. 저녁식사 때 외 에는 그 여자를 거의 볼 수도 없고, 말도 거의 안하는 여자거든요. 어쨌든, 그 여자가 절 보고 잭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걸 알고 있으니 그만 손을 떼든지, 아 니면 이제와서 잭을 괴롭히지 말라는 폭언을 했어요. 사고 이전에 캐롤이 잭에 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었던 건지는 몰라도 말예요." "자기 시숙을?!" 아이리쉬 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 것처럼 보여요. 적어도 제 판단으 로는." 사실, 그 일로 애버리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자기 시숙까지. 애버리는 도로시 레이로부터 들은 그 얘기만은, 제발 도로시 레이가 알콜중독으로 얼토당토 않은 망상을 한 것이기를 무척 바랬다. "정말 터무니 없 는 ㅇ;예요." 애버리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테이트와 결혼을 했으면 됐 지, 어떻게 감히 시숙을 탐할 생각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야 네가 흥분할 일 은 아니지. 사람마다 취미는 가지가지니까." 애버리는 생각에 빠져 그만 해야할 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제 입장에선, 잭도 그 음모에 가담해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 도로시 레이는 나를 암캐, 매춘부, 가정 파괴자, 뭐 그런 따 위로 불렀어요." 아이리쉬는 한쪽 손으로 그의 깔쭉깔쭉하게 깍은 머리를 대충 훑었다. "캐롤은 정말 대단한 여자였음에 틀림없어." "저도 캐롤이 잭이나 에디 를 원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캐롤 쪽에서도 추파를 던지지 않 았던 건 아닐걸. 그들 말고라도 그 여자의 유혹에 다들 넘어갔다고 했지 않니?" "불쌍한 테이트." "그래, 그 불쌍한 테이트는 자기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지?" 애 버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캐롤이 아기를 낙 태했다고 생각해요. 테이트 역시 캐롤이 자기 말고도 부정을 즐기는 남자가 있 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고요. 그는 캐롤에게 무관심한 엄마라는 것과 그의 딸에게 감정적인 상처들을 입혔다고 화를 냈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 생각을 뜯 어고치는 것도 쉽지는 않을걸요?" "네 짐이 무겁겠구나. 아주 대단한 역할을 맡 았다는 생각을 하는 거겠지, 지금?...그렇지?" 아이리쉬의 핀잔섞인 말에, 애버리 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아저씨?" 애버리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도 않고, 그는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조금 후, 그가 청량음료를 들고 되돌아왔다. 그는 발을 벌린 채 버티고 서서 애버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애버리, 너 지금 테이트의 살인음모를 두고, 이 아저씨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있는 게야?" "어떻게 아저씬 그것조차 의심하실 수가 있죠?" 아이리쉬가 허탈한 듯 혀를 다 시고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얘기를 해주 지. 그래, 네 말대로 난 오히려 네게 의심이 간다고 솔직히 말을 하마. 2년 전에 네가 날 찾아왔을 때를 되돌이켜 볼까. 너는 그때 기가 팍 죽어서 아무일이나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었니. 그만큼 너 자신이 다급했다는 말도 되는 게고. 방송국에서 막 해고를 당했을 그때 얘기 말이다." "전 그 기억이나 되새기 려고 오늘 아저씨를 찾아온 게 아니예요." "글세, 난 그렇지만 받아들여지는 걸 어쩌겠니? 생각을 곰곰히 해봐라. 내 말이 근거없는 건지. 적어도 내보기엔 그 래. 자, 넌 그때 권총으로 자살하기 직전, 제 아내를 먼저 죽인 버지니아 출신 하원의원에 대한 얘기를 세상에 폭로해야 한다며 열을 올렸어." 애버리는 사건의 끔찍한 전후 상황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때의 일. 머리가 아 파오는 것 같았다. 두 손을 관자놀이에 갖다대고 듣지 않으려는 듯 머리를 흔들 었다. "그 사건의 담당기자, 애버리 다니엘즈." 아이리쉬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냉랭하고 큰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었다. "언제나 특종기사감만을 골라 그 뒤로 바짝 쫓았지. 넌 그때도 신선한 피냄새를 맡았던 거야." "맞아요, 난 그랬어! 아 저씨 말대로예요!" 애버리가 허리로 손을 가져자며 소리를 질렀다. "전 그 시체 를 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 애들이 시체를 보고 겁에 질려 소 리지르는 것도 봤어요. 난 그애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의 범행에 치를 떨며 울부 짖는 것도 다 봤어요." "소문대로였지. 빌어먹을. 넌 이성을 잃었던 거야, 애버 리." 아이리쉬가 위스키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성을 잃은 넌 방성인의 의 무를 저버리고 그걸 생방송으로 보도하는 우를 범해버렸어. 객관성을 무시한 채, 그 끔찍한 장면을 보도하며 줄줄히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짐승이 아 니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있겠냐는 등, 쓸데 없는 얘기만 늘어놓았어." 더 이 상 듣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애버리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들었다. 도전적 인 눈빛으로 아이리쉬를 쏘아보면서. "그렇게 말로 하지 않아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아요.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지 말란 말예요! 2년 동안이나 그 사 건을 잊으려 노력해 왔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그래요, 그건 순전히 제 실수였 어요. 전 그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구요." "빌어먹을!" 그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넌 또다시 그 똑같은 실스를 범하려 하고 있단 말이다! 네겐 그럴 권리가 없는 데도 스스로 자신을 죽여가며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거야! 좋은 기사거리. 넌 네 스스로 뉴스를 만들고 있어. 그걸 보도하는 기자도 아니면서. 이렇게 해서 다시 제자리를 찾겠다는 게냐? 이게 널 다시 정상으로 올려줄 좋은 뉴스라고 생각하 는 게 아니냐구!" "맞아요!...네!" 애버리가 팔까지 흔들며 거칠게 대답했다. "그 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 한 부분일 뿐예요!" "그래, 네 자신 안에서 꿈 꾸어왔 던 욕심이 있으니 어디 네 맘대로 자제하고 말고, 그럴 수가 있겠니." "뭘 말하 려 하시는 거죠?" "넌 아직도 네 아빠의 뒷꼭지를 쫓아가려 안달을 부리고 있어. 네 능력 이상의 일도, 네 아빠의 명예를 이어가겠다는 욕심 때문에, 차마 그걸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안달을 부리고 있는거야." 아이리쉬가 애버리에게로 움직 여왔다. "내 본심을 얘기해 줄까? 네가 듣기 싫어하리라는 걸 내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입바른 소리는 하고 살아야겠다. 네 아버지가 대체 네게 어떤 사람이 길래 그러니?" 그는 자신의 머리를 흔들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는 그럴 가 치가 없어." "그만 하세요, 아이리쉬." "물론, 그는 네 아버지다, 애버리. 내 소중 한 친구이기도 했다. 네가 아는 아버지보다, 내가 아는 네 아버지가 훨씬 객관적 이고 정확해. 또, 나이가 주는 만큼, 너보다는 훨씬 많은 부분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를 사랑했지만, 난 그를 너나 네 어머니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 씬 더 객관적으로 그를 볼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는 한손을 소파의 팔걸이에 버 티고, 애버리 위로 몸을 구부렸다. "클리프 다니엘즈는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기 자였어. 내가 볼 때, 이세상에선 그가 최고였지. 네 아버지의 카메라에 대한 재 능은 놀라울만한 거였다. 하지만, 가장 사랑해야 하고, 아껴줘야 할 가족에 대해 서 만큼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빵점인 가장이었다." "난 행복했어요.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그것은 네 어린시절의 한 기억의 편린일 뿐이지. 편린... 넌 네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마다 우울해 했어. 난 네 엄마 로즈마리가 혼자서 살 아가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심지어 네 아빠가 집에 있을때조차 엄마는 외로와 했지. 어차피 만남은 짧고, 이별이 길다는 걸 시간을 두고 뼈저리게 배워온 사람 이었으니까. 네 아빠가 집에 있다해도, 그건 또다른 이별을 위한 잠깐 동안의 휴 지기에 불과했으니까, 이제나 저제나 떠날 것을 아쉬어 하면서 말이다." 아이리 쉬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네 아빠야 말로 '위험' 덕에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위험이야말로 삶의 에너지이기도 했고. 네 어머니에게 그건, 젊음과 생기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리는 천형같은 거였다. 결국 네 어머니를 죽음까지 몰아간 것도 바로 그거였다. 엄마의 죽음은 괴롭고도 느렸어. 몇 년이나 걸렸으 니까. 알약 한병을 통째 삼켜버리고 죽던 그 날 이전, 아주 오래 전부터 사실, 엄마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넌 어째서 그런 아버지의 삶을 쫓 아 맹목적인 숭배와 결심으로 살아가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구나. 대답 해 봐라, 애버리. 네 아버지가 받았던 가장 가치있는 상은 그 망할놈의 퓰리쳐상 이 아니었어. 그건 너의 엄마였단 말이다. 다만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그 사실 을 깨닫지 못했던거야. 너무나 어리석게도." "아저씬 정말로 우리 아버지를 질투 하시는군요." 아이리쉬가 뚫어져라고 애버리를 쳐다보았다. "난 네 엄마가 그를 사랑했던 방법을 질투했어. 그래, 어쩌면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색한 기운 이 감돌았지만, 아이리쉬의 본심을 안 애버리는 오히려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애버리는 그의 손을 더듬어 찾아, 자기 뺨에 대고 얼굴로 부볐다. 눈물 방울이 손등으로 떨어졌다. "난 아저씨와 싸우기를 원하지 않아요, 아이리쉬..." "미안하 구나, 주책없는 말만 늘어놓아서. 애버리, 난 네가 그 위험스런 일에 계속 관여 하도록 놔둘 순 없어." "난 해야만 해요. 난 책임이 있어요." "언제까지?" "누군 가 테이트를 죽이려고 위협하고 있고, 그를 위험 속에 내버려둘수는 없어요. 그 게 누군지 내가 알아내야 해요." "그리고 나서 네게 돌아오는 건 뭔데." "모르겠 어요." 애버리가 슬프게, 신음하듯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하는 그 암살자가 정 말로 일을 저질러버리고 나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냐? 그때도 그냥 러트리지 부인 으로 주저앉아버리고만 있을 거냐? 아니면?"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도 않 았어요. 저 자신의 도피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선 생각보지도 않은 게 사실이니까 요." "러트리지는 알아야만 해, 애버리." "아녜요! 아직은 안돼요. 그의 꿈, 그의 야망을 이제와서 포기하게 할 수는 없어요! 아저씨, 도와주세요. 그 사람에게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주세요!" 아이리쉬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애버리의 격렬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런, 맙소사!..." 진실이 그의 마음 속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아이리쉬도 이젠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젠 알 겠구나...넌 남편이 필요했던 거야... 러트리지 부인으로 자처하게 된 이유도... 넌... 넌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게야..." 23 애버리가 창가 쪽으로 다가가 등을 보인 채로 섰다. 밖이 이미 완전히 어두워 있다는 것을 까달은 애버리는 츰잇 놀랐다 이시간 쯤이면 목장 식구 들은 이미 저녁식사를 끝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저녁 때까지 쇼핑을 하겠다고 하고 나온 것이었 다. 너무 늦었다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애버리...." 아이리쉬가 그 여자를 불렀다. "이제서야 내 얘기를 하마. 난 사고 이후로 지금까지 네 생각이 날때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단다. 그런 밤은 셀 수도 없을 정도야. 집주인의 말도 있고, 또 나도 한시도 더 이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해서, 이 집안에 있는 물건을 되다 팔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까 도 생각을 해봤어." 애버리는 천천히 이성을 되ㅊ았고,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아저씨,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은 제발 말아주세요." "젠장, 내가 살아온 인생이 과연 뭘까, 하는 생각도 해봤단다. 새삼스레 내 인생에 대해 웃기지 도 않는 평가를 하자는 건 아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만약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난 기회 를 놓치지 않을 거야. 난 클리프와 로즈마리를 잃었어. 너도 마찬가지지. 하느님께 물어도 봤다. '대체 이런 시련을 내리는 이유가 뭐냐고'말이다. 꺼뜨리고 싶어도 까지지 않는 사랑의 불을 두려 워하는 마음만 들지 않았던들, 난...." 아이리쉬가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버리는 그에게 다 가가 살며시 팔을 감으며 뺨을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소리고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를 사랑해요. 아저씨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저씨가 믿든 안믿으시든. 전 제 죽 음이 아저씨에게 얼마나 충격을 주고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하는 생각도 아주 많이 했어요...." 아이리쉬가 그 여자를 끌어당겨 포옹했다. 하지만, 그건 애버리를 정말고 자신의 딸처럼 여기고 하는, 그런 포옹은 아니었다. "나도 널 사랑한다. 그게 바로 널 계속 이런 혼란스럽고 위험한 일에 빠져들게 놔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 애버리." 잠시 후, 애버리가 몸을 뺐다. "그래도 이젠 어쩔 수가 없어요...." "만약, 러트리지가 죽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정말 있는 거라면...." "있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런 네가 얼마난 위험해지는 게냐?" "저도 알아요. 그리고, 사실 저로서야 테이트와 맨디에게 또다른 아내, 이전과는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너무 갑작스레 달라지면 캐롤의 공범자는 캐롤이 갑자기 자기를 배반했다고 여길 거예요, 아니면," 애버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제가 정말 캐롤이 아니라고 여기겠죠. 그런 점 때문에, 전 늘 제 신분이 탄로날까 하는 마음으 로 조심하며 살아요." "넌 이미 실패했을지도 모르고, 또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 여자가 바짝 긴장을 하며 몸을 떨었다. "저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요." "반이 눈치챘어." 애버리가 흠칫 놀랐다. 조금이 지난 후에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저도 놀랐어요. 제가 현관문을 열었을때 그가 밖에 서 있는 걸 보고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했 을 정도니까요." 아이리쉬는 반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바빠서 그에게 그다지 많이 주의를 집중하진 않았어. 난 그가 평소에도 그렇듯이 자기혐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 그렇지만 이젠 좀 다르구나. 그가 뭔가를 애기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 . 만약 , 그가 다시 찻아와 애기를 꺼내기라고 하면 ,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아무말도 하지 마세요.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요. 절 위해서라도 그게 좋아요. 러트리지 사람들은 아무도 이전의 캐롤과 지금의 저를 비교하려들지 않아요. 단지 요즘의 변화를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쇼크 때문일 거라고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야 아직 단언할 수 없지. 피상적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니까." 아이리쉬가 걱정되는 투로 말했다. "만약 암살계획이 근거없는 애기라면, 그리고 난 지금도 네가 애기한 암살계획이 사실무근이 기를 하늘에 기도하고 있다만. 네가 이일에서 빠져나올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 로 네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저도 아직은 확실한 근거나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이기는 해요. 제가 지금 그 일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살아나온다면 , 전 테이트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준 당사자가 될 거예요." 아이리쉬가 손가락을 들어 애버리의 턱을 가볍게 문질렀다. "넌 그를 사랑해. 안 그래 ?" 애버리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미워했어. 지금도 그럴 거야. 다시 말하면 , 널 미워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는 애기야. 그런 그에게 뭘 바랄 수 있다는 게냐?" "맞는 말씀이긴 해요. 그렇지만 .......... " 애버리가 서글프게 웃어보였다. 채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리쉬가 말을 가로막았다. "너희 둘 사이는 어떻지?" "아직은 잠자리 한번 같이 한 적도 없어요." "난 그걸 묻지는 않았어." "하지만 알고 싶어서 물으신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해?" "네." 애버리도 더이상 얼버무리지만은 않고 떳떳하게 대답했다. "제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부터 떠나는 날까지, 그의 보살핌이란 정말 감동할 만큼 대단한 거였 어요. 절대적이고 헌신적이었죠. 하지만 , 나중에 와서야 그게 본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치 욕스럽기 짝이 없었죠." "바깥에서 말고 , 안에서는 어떻니?" "냉담해요. 마치 배반당한 남편처럼 행세를 해요. 캐롤이란 여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급해질 정도로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게 걱정이다. 만약 그가 마음을 돌이켜먹고 너와 잠자리라고 같이 하려들면 , 과연 자기 아내가 그전 같지 않다는걸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을까? 넌 그런 걱 정도 안되니?" "그럴까요?" 어색해진 애버리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애써 웃어보이려했다. "남자들이란 , 어떤 여자든 어둠 속에선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면서요?" 아이리쉬가 꾸짖는 듯한 눈으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가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고 치자 , 넌 그가 잠자리 안에서 널 다른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게 될 것 같니 , 설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는 하지못할텐 데?" 아이리쉬의 지적을 박고나서야 애버리는 왜 여지껏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나 했다. 애버리거 얼굴을 찌푸렸다. "저 역시 그에게 내 본모습을 알리고 싶을 거예요. 그를 속이는 게 나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 애버리의 목소리가 아직은 답을 찾지 못한 질문과 씨름하는 듯이 점점 사그러들었다. 잠시 후 , 에버리는 방금의 질문에 대해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한 채로 맨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 맨디가 있어요. 전 병원에서부터 그 애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 앤 엄마를 너무도 필 요로 하는 아이라구요." "음 .........그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구나. 네 소기의 목적이 끝나고 네가 캐롤의 신분 에서 벗어나면 그땐 그 애가 어떻게 되겠니?" "전 절대로 그 아이를 버리지 않아요." "그리고 , 네가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걸 폭로하면 그땐 러트리지가 어떻게 생각할 것 같니?" "난 네가 그에게 이 모든 걸 밝히고 설명하게 될 때가 아무래도 걱정이구나. 테이트는 네 가 자기를 이용했다고 생각할거야." "만약 제가 그 과정에서 그의 생명을 구했다면요? 그렇다면 사정은 달라지죠. 아저씨는 그가 마음으로 절 용서해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세요?" 아이리쉬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부아를 참을수가 없었다. "넌 네자신이 할일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걸 다 이루려면 아마 넌 법관 이 되어야 할 거다." "아저씨 제 경력이 저질렀던 실수에 대한 배상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제 사회적인 신뢰를 다시 얻어야만 해요. 아저씨가 보기엔 제가 아빠의 명성, 그 뒤꼭지만 쫓는 사람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 어쩔 수가 없어요." 애버리의 두 눈이 그에게 이해를 호소했다. "전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요. 처음 시작이야 제의자가 아니었지만 , 그래도 전 일단 뛰어들게 된 이상, 최고의 결과를 이뤄내고야 말겠어요." "넌 절못된 길에 스스로 발을 깊이 들여놓고 있어." 아이리쉬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 여자의 턱을 그의 집게 손가락으로 기울이면서. "넌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엔 너무 감정적으로 뒤얽혀 있어. 애버리. 넌 지금 객관적이지 못한 생태라고, 이것저것 널 혼란스럽게 만드는 감정들에 휩싸여 있는 거야. 오직 너 혼자만의 생각으 로 넌 이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어 .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거라구." "모근 것이 내겐 이유가 돼요. 누군가가 테이트를 죽이고 싶어하고 맨디를 고아로 만들고자 해 요 . 만약 그것이 나의 능력안에 있는 거라면 , 난 그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야만 해여." 그의 침묵은 항복의 백기를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애버리가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가겠어요. 아저씨, 혹시 사고 때 제 소지품을 가지고 계세요?' 일분이 채 안되어 애버리는, 로킷을 목에 걸었다. 화폐가치로 따져보면 그다지 가치있는 물건 은 아니었지만 , 애버리가 여기기로는 그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애버리의 아버지가 이스라 엘과의 분쟁을 취재하기 위해 뉴스위크지 특파원으로 이집트에 근무했을 때인 1967년에 애버리 에게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애버리는 용수철로 나뉘어진 두 개의 평원반을 내리 눌렀다. 사진 두 장. 하나는 그 여자의 아버 지 사진이었다. 전투복 차림에 , 35mm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생애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뒤, 채 몇주도 지나기 전에 아버지는 죽고 말았다. 반대편엔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랑스럽고 고상한 모습의 로즈마리가 사진 안에서 웃고 었었다. 그러나, 그게 슬픈 미소라는 걸 애버리는 모를 리가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애버리의 눈망울을 가득 채웠다. 로킷을 닫고 , 애버리는 손바닥 안에 그걸 꽉 쥐 었다. 모든 것이 그 여자로부터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 로킷이 있고, 또한 믿음직한 아 저씨가 있다. "아저씨가 꼭 갖고 계실 줄 알았어요." 애버리가 쉰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것 때문에 난 그 죽은 여자를 너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애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맨디, 테이트의 꼬마아이 말예요. 그 아이가 제 목에 걸려 있는 이 로킷에 관심을 보였어요. 아이가 귀엽게 생겨서 , 전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놔눴어요. 아이는 이걸 만지작거리다가 줄을 비비꼬아 놨아요. 은근히 귀찮아지기도 해서 , 아이를 타이르려는데 애 엄마가 - 캐롤 말예요.-아 이를 막 야단치면서 못하게 말리기 시작했어요. 아이 손에서 로킷을 뺏는다는게 그만 확 잡아당 겨서 줄을 끊어지게 했어요. 그 여자가 로킷을 손에 쥐고 있는 바로 그때 사고가 났던 ㄱ예요." 아이리쉬가 애버리에게 캐롤의 보석들을 보여주었다. "봉투를 받아 열었을때 , 가슴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네가 보낸 게 맞지?" 애버리는 그 일에 대한 전후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왜 그걸 내게 보낼 생각을 했지?" "아저씨와 어떻게든 연락을 하고 싶었어요. 그 방법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였죠." "캐롤의 보석도 여기 있는데 도로 가져가련?" 그 여자는 아니라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 여자는 왼쪽 약손가락에 끼고 있느 평범한 반지로 시 선을 떨구며 대답했다. "지금 이 보석들을 다시 가져가면 분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남에게 줘버렸다고 했었거든 요 아이리쉬가 성급하고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버리, 제발 이 일에서 그만 손을 떼거라. 지금 오늘밤." "그럴순 없어요." "이런 빌어먹을 ! .... 넌 네 아버지의 야망과 네 어머니의 동정심을 가졌어. 그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야. 이런 상황들하에선 치명적으로 당할 수도 있다구. 넌 그 두 사람의 완강한면들만 골라서 닮아있는 성격이야." 그러나 아이리쉬는 곧 고개를 떨구고 불만스러운 투로 물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 그의 이 말 한마디로 , 애버리는 그가 완전히 자신에게 자신에게 뜻을 굽혔음을 알 수 있었다. 애버리가 현관문 안을 들어섰다. 테이트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애버리는 그가 거기 서 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 그냥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 넘겨버리려 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당신 ?" 테이트가 애버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물었다. "어머님이 말씀 안하시던가요?" "당신이 이렇게 늦을 줄 몰랐지." "쇼핑해야할 게 많아서 늦은 거예요." 애버리는 바닥에 쇼핑백들을 내려놓았다. 그 여자가 아이리쉬를 만나러 가기전에 알리바이를 위해 미리 사두었던 것들이었다. "이 믈건들을 침실로 옮겨야겠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테이트는 쇼핑백 몇 개를 받아들고는 그 여자를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맨디는 어디있죠?" 그 여자가 물었다. "자고 있어 ." "개가 잠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려고 제 시간에 돌아요려고 그랬는데 ."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 일찍 들어왔어야지." "누가 잠자리 동화를 읽어줬죠?' "어머니가. 난 그 애가 잠들때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곁에있었고." "잠깐만요, 맨디를 보고 와야ㄱ어요." 복도 창문들을 지나치면서 애버리는 넬슨과 잭, 그리고 에디가 안뜰안에 있는 야외 탁자에 앉 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보았다. 지이는 잡지를 읽고 있었다. 팬시는 수영장 안에서 테이트의 개 셰프와 놀고 있었다. "왜 당신은 저기서 빠졌죠?" "에디가 또 여행일정을 애기하고 있어서 , 이미 귀에 못이 박힐만큼 들었던 거야." "이 백들은 침대 위에 놓기만 해요." 애버리는 린넨 자켓을 가만히 벗어서 쇼핑백 옆에 던져 놓았다 . 그리고는 가벼운 신을 벗고 발을 내딛었다. 테이트가 가까이 붙어다녔다. 달려들 준비를 하는것처럼. "어디에서 쇼핑했지?" "보통 하던 곳에서요." 그는 반짝반짝하는 가방들이 그들에겐 친숙한 쇼핑센터의 이름이었는데도 어리석은 질문을 했 다. 정적이 흐르는 잠시 동안 , 애버리는 그가 아이리쉬의 집에까지 자신을 미행한 게 아니었나, 하고 궁금해 했다. 물론, 그럴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 아이리쉬의 집에 가는 길에서 , 에버 리는 혹시라도 미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쉴새 엇이 백미러로 살피며 우회 도로를 타고 갔던 것이다. 몇달 전에 방영됐던 황당한 멜로드라마와 같은 요즘의 그 안전수단들은 애버리도 모르는 새에 어느덧 그 여자의 제 2의 천성이 되었다. 천성적으로 애버리는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였다. 오늘 밤, 특히 , 아이 리쉬를 방문한 것으로 어느 정도 억눌렸던 감정들을 해소한 애버리의 신경은 상대적으로 몹시 허 탈감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테이트로서는 그런 애버리를 캐보기엔 마땅찮은 밤을 고른 셈이었 다. 애버리를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당신 , 지금 내가 쇼핑한 것에 대해 경찰이 취조를 하듯하는군요?" "아니." "아녜요, 그러고 있어요 . 마치 사건냄새를 맡은 탐정처럼 코를 킁킁거리고 있어요." 애버리가 그 가까이 한걸음 다가갔다. "당신 , 도대체 내게서 뭘 기대하는 거죠? 담배연기? 술냄새? 아니면 무슨 부정을 저질렀나 사소한 거라도 잡아내고 싶은 건가요? 내가 어떤 애인과 함께 오 후를 보냈을거라는 당신의 역겨운 의심들을 확인시켜줄 어떤 것?"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 그가 사뭇 딱딱한 어조로 나왔다. "더 이상 날 모욕하지는 말아요!" "당신은 날 아예 멍청이로 생각을 하는 모양이구만 . 그래 , 내가 얼마나 더 멍청이로 행동해 줬으면 좋겠어? 당신 얼굴이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 다시금 당신을 믿음직한 아내로 여겨주기를 바라는 거야?" "당신 맘대로 생각하세요." 애버리도 만만치 않게 되받아 소리쳤다. "당신 맘대로 생각해도 좋아요 . 대신 ,날 혼자 내버려두란 말예요!" 획 몸을 튼 애버리는 벽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있는 대로 화가난 그 여자가 힘껏 문을 밀어ㅈ 혀 여는 바람에 , 여닫이 문이 문틀에서 떨어져나올 뻔했다. 두 손이 몹시 떨려, 애버리는 등 뒤로 나있는 블라우시 단추를 풀 수가 없었다. 잘 풀리지도 않 는 단추를 애써 제손으로 풀려는 애버리는 혀를 차며 짜증스런 소리를 냈다. "내가 해줄께." 테이트가 사과의 뜻을 담은 어투로 , 그 여자 뒤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애버리의 머리를 앞으로 숙이게 했다. 그 여자의 노출된 목이 하얗다. 테이트,는 애버리의 두 손을 잡고 가만히 그 여자의 옆구리쪽으로 내려 놓았다. 그런 다음 블라 우스 단추를 풀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단추를 플어준 거지?" 마지막 단추를 풀면서 그가 물었다. 블라우스는 그 여자의 어깨를 미끄러져 내려 그 여자의 두 팔로 내려왔다. 애버리는 가슴을 움켜잡고 그에게 마주서기 위해 돌았다. "난 심문에는 대답하지 않아요. 테이트." "내가 간통에 책임을 지는 것보다 나을건 없지." 애버리는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그런 심문에 대답할 정도로, 가치없는 여자가 아니예요, 난 ." 잠시 동안 그 여자는 그의 목과 그곳에 뛰고 있는 강한 맥박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테이 트에게 눈을 치켜떴다. "비행기 사고가 난 뒤로 , 내가 별스럽게 당신에게 의심이 갈만한 행동을 한 게 있어요? 그리 고 , 그 이후에 내가 보였던 가족들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생각없는 것들로 보였나요?" 그 여자의 입술 언저리가 가벼운 경련으로 씰룩거렸다. "아니." "그런데도 당신은 날 전혀 신뢰하지 않아요." "일상적인 신뢰를 말하는 거라면 , 그야 많이 나아졌지." "일상에서라면 , 다른 부분에 관한 한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애긴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 그는 그의 한손을 올려 집게 손가락으로 그 여자의 목둘레의 금 줄을 좇았다. "이건 뭐요?" 그의 손길이 애버리를 녹아들게 했다.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노출을 하고 있었으므로 , 애버리는 블라우스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흐늘흐늘한 블라우스가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 목엔 로킷이 달려있었다. 애버리는 그가 들으키는 숨소리를 들었다. "중고 보석상에서 산 거예요." 애버리는 거짓말을 했다. "예쁘잖아요?" 테이트는 지구상에 마지막 한입 분량의 음식을 탐하는 굶주린 사람처럼 그 정교한 금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열어봐요." 애버리의 말에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인 테이트는 손바닥 안 에 쥔 로킷의 걸쇠를 가만히 눌렀 다. 그 안에 있는 두 개의 작은 액자는 모두 비어있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 지의 사진을 꺼냈고 그것들을 아이리쉬의 보관함에 두고 왔다. "당신과 맨디의 사진을 그 안에 넣고 싶어서 산 거예요." 그는 그 여자의 두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곤 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금합 을 문지르면서 그 여자의 입을 오래동안 쳐다 보았다. 잠시 후 , 그가 찰칵소리를 내며 로킷을 다시 닫았다. 애버리에겐 그 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들 렸다. 애버리의 가슴께로 로킷을 돌려놓은 그의 손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의 손가락 끝이 부드 러운 곡선들을 그리며 머물고 있었다. 그것들이 닿은 곳에서 그 여자는 불탔다. 그 여자를 만지면서도, 테이트는 이성을 ㅊ자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그건 마음 속 으로 전쟁을 치루는 것만 같았다. 구부러진 그의 턱과 그의 두 눈이 흔들리는 걸로만 봐도 알았 다. 얕은 호흡이 그의 코에서 쌕쌕 소리를 냈다. "테이트" 애버리가 끝으로 테이트의 입술을 건드며 말했다. "난 낙태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도 아기는 없었어요. 낙태는 근거가 없는 얘기였어요" 난데없는 말이었지만 , 그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그럼에도 그 여자는 그에게 그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대야만 했다. 며칠을 두고 고민 끝에 만들어낸 애기였다. 사실, 애버리로서도 캐롤이 정말로 아이를 갖고 있 었는지 아닌지, 알 도리는 없었다. 테이트도 정확한 건 모를 것이었다. 캐롤이 어떤 이유로든 거 짓으로 꾸며댄 애기였다 하더라고 , 테이트 입장에서는 아이가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을 테고 , 그 때문에 다른 말을 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바로 그 일 이 , 두 사람의 화해에 가 장 두터운 장벽처럼 보였기 때문에 한마디의 거짓말이 낙태를 계속해서 믿게 하는 것보다는 그에 게 용서받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그가 자기 바램대로 믿어주기만 고대하 고 말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애버리는 캐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거짓말이란 한번 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 그 다음엔 좀 더 쉬워지는 법이다. "며칠 전에도 , 당신이 말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짓으로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말을 했 던 거예요. 뽐내고 싶었고 , 다시금 당신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어요. 당신을 들뜨게 하고 싶었 어요." 애버리는 두 손을 그의 뺨 위에 얹었다. "그렇지만 , 지금에 와서까지 당신의 아이를 낙태시켰다고는 사실무근의 애기를 믿게 하고 싶 지는 않아요. 당신이 계속 충격을 받고 고민하게 놔둘 순 없으니까요." "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는 화요일 7시 정각에 떠나 . 문제 없겠어?" 조금도 용서해주지 않을 것 같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테이트가 말을 해왔다. 애버리는 실망한 빛을 감추며 물었다. "어떤 거요? 이른 시간이라는 거요 , 아니면 비행기를 다시 탈수 있겠느냐는 거요?" "둘 다 ." "난 괜찮아요." "나도 그러길 바래." 테이트가 문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에디가 걱정하더군. 모두들 시계처럼 정확히 준비를 해야 할텐데, 하고 말야......." 월요일 저녁, 아이리쉬는 KTEX의 정치부 보도기자를 그의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자네, 이번 주에 맡을 일에 대해 준비는 잘 된 건가?" "예 , 리트리지 쪽에서 오늘 여행일정을 보내왔어요. 그런데 , 우리가 이렇게 저쪽에서 요구하 는 대로 다 해주면, 데커에ㄱ도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할 거예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 어쨋든 자네는 여행기간 동안 러트리지의 선거운동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취재해와야 하는 거야. 매일매일 취재한 걸 나한테 보내야 하네. 그리고 카메라멘으 로는 러브조이가 따라가게 될거야." "맙소사, 아이리쉬." 보도기자가 우는 소리를 했다. "뭐,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전 그 사람하고는 취재를 같이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악취!........" 그는 반대하는 이유를 이것 저것 대며 탄원을 계속했다. 그는반 러브조이만 아니라면, 어느 누 구와 함께 가도 절대로 군소리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아이리쉬는 말없이 애기를 다 들어 주었다가 . 기자의 말이 끝나자 ,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러브조이가 가게 될 걸세." 기자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아이리쉬가 어떤 것을 두번 말했을땐 , 더이상의 논 쟁은 쓸데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리쉬도 며칠 전에야 그 결정을 내렸다. 아이리쉬는 애버리가 다분히 충동적이고 고집이 센 여자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 그 리고 , 나중에야 어떻든 설령 그 대가가 엄청난 것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판단을 우선 하는 결점을 가진 여자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애버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혼란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 하나님 ' 이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듯 외쳤다. '그 애가 다른 여자가 되었다고 !......... ' 그 가 애버리에게 캐롤 러트리지의 신분인 체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애기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 그 는 애버리가 자신의 인생을 이런 '대역으로 더이상 허비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 자기 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른 것이었다. 아이리쉬와 애버리는 만약 전화 통화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됐을 경우에는 , 아이리쉬의 우 체국 사서함을 통해 연락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그 여자에게 사서함의 여분 열쇠를 주었다. 만약 그 여자가 즉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도와 주겠다고도 했고 , 필요하다면 권 총을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애버리는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살인음모극이란 말이 주는 위압감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아이리쉬는 어느덧 심하게 예민해져 있었다. 그 일은 생각만 해도 그를 제산제 병에 손을 뻗치도록 만들었다. 요즈음 그는 위스키를 마치 물마시듯 마셔댔다. 몸 생각 않고 술을 퍼마시기에는 너무 늙은 나 이였지만 ,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면서 애버리를 저대로 위험 속에 놔두자니 조바심이 나 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애버리의 수회신이 될 수 없는 거라면 , 그 바로 아랫단계의 최선의 도움은 돼주고 싶었다. 그는 반을 딸려 보내기로 했다. 주위에 반이 따라붙는 것이 애버리를 신경쓰이게 할 것은 의 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이번 러트리지의 유세여행 기간 중 무슨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 그 여자에게는 급히 뛰어가라 누군가가 있는게 나을것이란 생각에서 였다. 반 러브조이로 충분치는 않다는 생각이 없잖아 들기도 했지만 , 당분간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리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24 에디가 빈틈없이 계획한 유세일정에 차질이 생긴것은 셋쨋날의 일이었다. 그들은 휴스턴에 있었다. 그날 아침 일찍 테이트는 거친 부두노동자들을 상대로 감동적인 조찬연 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잘먹혀 들어갔다. 시내에 있는 호텔로 돌아온 그 길로 , 에디는 자기 방으로 가서 외출 중에 들어온 전화메모에 회 답전화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테이트의 방으로 몰려들었다. 잭은 조간신문에 실린 상태후보와 테이트에 관계된 기사 와, 또 선거에 관계된 이런저런 기사들을 훑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애버리는 방바닥에 맨디와 함 께 앉아있었다. 맨디는 미키마우스 그림을 그림 책에다가 무언가 끄적거리고 있었다. 테이트는 침대 위에서 베개를 등에 대고 발을 쭉 뻗고 누워있었다. 그는 텔레비전를 켜고 운동 경기 프로그램을 보았다. 멍청한 질문들만이 쏟아지고, 경쟁자는 점점 비열해져가기만 했다. 온통 비위상하는 일들 천지였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조용히 침착할 시간을 가지면 멋진 아 이디어들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생각이 떠오른 것은 무엇엔가 골몰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넬슨과 지이는 함께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 고 있었다. 에디가 그들의 휴식을 방해했다. 그는 갑자기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테이트는 그가 그렇게 흥분해 있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테이트, 텔레비전를 끄고 내 말 좀 들어보게 ." 테이트가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껏다. 기대에 찬 웃음을 띠며 테이트가 말했다. "자 , 말해보게, 에디." "이 주에서 가장 큰 로터리 클럽 사람들이 오늘 정오에 모인다는군. 오늘 모임이 바로 정기 총 회라는 거야. 새 임원을 선출하고, 거기다가 부인도 동행해서 모이는 자리라는군. 나오기로 한 강 사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연락을 해왔대 . 아파서 못나오겠다고 말야. 그래서 대신 테이트 자네더 러 강연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네." 테이트가 상반신을 일으켜 침대 가장자리로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서 물었다. "얼마나 많이 모인다던가?" "이백 오십, 아니 삼백명 정도." 에디가 손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내어 두손으로 주루룩 훑어넘기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이 지역 유지에 해당하는 기업가들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지. 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로터리 클럽이란 말일세.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고 , 아마리 불경기인 이즈음도 바 람을 타지 않는 확실한 사람들이야." 그렇게 말한 에디는 서류뭉치 하나를 테이트에게 불쑥내밀었다. "이건 지난 달에 자네가 아마릴로에서 했던 연설문이야. 빨리 훑어 보게. 젠장, 그 야한 옷과 칙칙한 겉옷 좀 벗어버릴 수 없나? 모으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오늘은 정장을 입어야한다구." "이 사람들, 데커 사람들 같은걸?" "그래 . 그러니 자네가 꼭 가야하는 게지. 데커 입에서 나오는 자네에 관한 애기는 , 뜬 구름잡 는 몽상가 격이 되면 고작이고 , 멍청이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니 더더욱 이런데 가서 자네가 결코 몽상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 거야 . 뿔달린 고집쟁이도 아니고 간교하 게 꼬리 감추는 자도아니란 것을 확인시켜 줘야만 하는 걸세." 에디가 어깨너머로 애버리를 힐끗 보며 말했다. "케롤, 당신도 가야 해요. 당신의 매력을 보여주세요. 여성 유권자들이란 ........" "저는 갈 수가 없어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에디에게서 케롤에게로 옮겨갔다. 애버리는 맨디와 방바닥에 털썩 앉아 서 크레용을 몇 개 손에 쥐고서 자기 무릎 위에 놓인 도널드 덕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맨디와 함께 웹스터 박사를 만나기로 했어요. 오늘 한 시예요." "아 참." 테이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맞아, 깜빡 잊었군." 에디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떻게 할 건가 묻듯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캐롤,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어요. 이 주간에 승패가 달려 있는 거예요. 안그 런가. 테이트? 우린 여지껏 데커에게 약세를 보이며 질질 끌려만 왔어. 이번에 나가서 연설하게 되면 유세비용도 많이 벌고 , 표도 든든해지는 거야. 텔레비전 광고시간을 사는 돈과 맞먹는 예산 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잭이 접어쥐고 있던 신문을 옆으로 던지며 말했다. "의사와 다시 시간약속을 하면 되잖아." "무슨 애기예요, 형 ?" 테이트가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 "이런 기회는 한번 얻기가 힘든 것 아니니? 다시는 이런 좋은 기회는 없을 거야. 기회가 있다 치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면 오히려 우리가 공격당하는 꼴이 될수도 있어 . 그러니 ...." 테이트는 형과 아버지, 그리고 에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들어보고 싶어 일부러 가만 히 있었다. 로터리 클럽 회원들의 모임에서 연설하기를 권유하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들의 의견이 옳았다. 보수성이 강한 데커 지지자들이 대부분인 로터리 회원들 에게, 테이트가 유력한 후보라는 것, 결코 고약한 성미의 신출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할 필요 가 있었다. 그러나 자기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아내의 표정에서 강한 힘이 감돌고 있음을 알았다. 테이트로서는 어떻게 결정되든 간에 지겨운 일이었다. "제기랄." "멘디는 내가 데리고 가마." 지이가 말했다. "테이트,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 " "그게 선거에 도움이 될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에디가 목청을 돋우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잭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마치 결투를 하려는 사람처 럼 혁대를 추스려 고쳐 맸다. "나도 에디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단 한 차례의 연설로 사람들의 생각을 뒤바꿔놓을 수 있지는 못할 겁니다, 아버지." "나도 네 어머니 생각에 동감이다. 맨디의 상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니? 그러니 당장 만나지 못한다 해서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 게고." "당신 생각은 어때. 캐롤?" 테이트가 아는 한 캐롤은 무슨 애기든지 논점을 흐려서 자기이야기로 유도해 들이는 성격이었 다. 자기 견해를 어떻게 해서든지 피력하고야 마는 버릇이 있었다. " 테이트, 맨디도 대단히 중요 해요. 제 생각대로 할수 있게 해줘요." 에디가 짜증어린 눈빛을 그 여자에게 보냈다. 마치 아름다운 동화를 애기하는 듯한 어투로 말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테이트도 같은 느낌이었다. 캐롤이 고집스럽게 핏대를 올리며 떠들때에는 그 여자의 말을 부인 하기가 오히려 쉬웠다. 이윽고 그 여자는 말로 하지 않고 눈빚을 가지고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테이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동의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결정권자는 사실상 맨디였다. 테이트는 맨디의 조그맣고도 진지한 얼굴을 살폈다. 애버리는 현재의 사태가 어떻게 뒤엉킨 것 인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 문제가 이토록 야기된 상황에 대해서 사과할 의사가 있었 다 "에디, 그들을 다시 만나서 정중히 거절하도록 해보세요." 캐롤이 한층 누그러진 투로 말했다 .마치 그건 에디의 응수를 기다리고 있는 자세처럼 보였다. 테이트가 말을 받았다. "그래 나나 이사람이나 다른 선약이 있었다고 전해주게." "하지만 ." 테이트는 손을 들어 누구든 반발하는 말을 못하게 저지하는 듯했다. 그는 이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말했다. "내 첫째 의무는 내 가족에 대한 의무야. 이전에 이 얘기를 할때. 모두들 날 이해해 주겠다고 했잖습니까?" 에디는 굽힐 수 없는 결심이라도 한듯한 눈길을 주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테이트는 에디에게 진절머리가 났지만 , 그렇다고 말 할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 앞치레만 하면 그뿐이었다. 지금 와서 마음이 변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테이트, 너도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뭔지나 좀 알아라." 넬슨이 벌떡 일어서서 지이의 손을 찾았다. "자 ,우리 에디에게 갑시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소?" 그들은 함께 나갔다. 잭은 에디만큼이나 화가 나있었다. 그는 캐롤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그 마음 변하지 않겠니?" "물론이지 , 형." 테이트가 다짐하듯 말했다. 화가 난 잭이 손가락으로 캐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수씨는 지금 , 어진 어머니인 척 해가면서 널 맘대로 조종하고 있어 !" "그게 무슨 말이오, 형?! 아무리 그래도 형 제수한테 . 그리고, 캐롤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는 신경을 쓰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그야 물론이지 . 그러나 지금 후보로 나선 마당에는, 너한테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서 오로지 개인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어 . 유세에 관계된 것은 모두 다 내개 관여할 수 있는 것 아니 냐? 난 여러 해 동안 테이트 너 하나만을 바라보고 일해왔어 ..""형의 노고를 내가 모르는 게 아 니야. 그렇지만 여지껏 내가 맨디에게 해왔던 게 있잖아 ? 그리고 맨디는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 이야 . 아무리 공적인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 게다가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일도 아니고 느닷없이 생긴 일인데, 그 일 때문에 오래전부터 잡아놓고 있던 약속을 깨야 옳단 말야? 맨디를 먼저 생각 해야지, 그 일이 우선이어야 해 ? 형이라고 그럴 수 있었을까? 여하튼 이 일로 해서 형하고 괜한 말다툼을 할 생각이 없어 , 그만둡시다. ." 잭은 또 한번 적의에 찬 눈초리를 캐롤에게 던지고는 문을 쾅닫고 방을 나가버렸다. "테이트. 당신도 잭의 말에 동감하는 건가요?" 방안에 두 사람만 남자 , 애버리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는 뭐가 뭔지 도통 종잡을수가 없었다. 나이 열다섯에 처음으로 성경험을 한 이래로, 지금껏 여자관계에 있어서는 스스로 잘 통제해 온 그였다. 늘 여자들이 먼저 그에게 다가왔다. 그도 결국 에 가서는 그 여자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역시도 그 여자들을 원했다. 그러나 쉽게 연애관계로 들어가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 테이트는 많은 여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친구로 지내는 여자와 연애감정을 가지는 여자를 명확하게 구분을 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머리속에 친구관계로만 규정해두고 있는 여자들 쪽에서는 속으로 애태우는 일이 많았다. 제일 심각하게 말려든 게 바로 산 안토니오에 있는 이혼녀와의 관계였다. 그 여자는 자기 소유 의 부동산을 아주 비싼 값으로 매각했었다. 물론, 테이트는 그 여자를 도와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시간과 관심을 쏟을 만큼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여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 여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데서 증명이 되었다. 2년 동안의 연애 끝에 그들은 결국 친구관계로 끝이 났다. 잭은 법률사무소의 인사권을 혼자 맡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캐롤 나바로가 입사할 때만은 테이 트에게 의견을 물었다. 살아있는 건강한 남자라면 캐롤을 무심히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여자의 검고 큰 눈은 그의 주의를 사로 잡았고 , 그 여자의 몸매는그가 꿈꾸던 이상형이었으며, 그 여자 의 미소는 그의 마음을 붙들었다. 그는 대번에 승인 싸인을 했고 , 잭은 그 여자를 법률사무소좌 역으로 채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 테이트는 자기 자신이 세운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맡은 소송사건 의 의뢰인이 승소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 캐롤을 초대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매력이 넘 쳐 흘렀고 기분도 들떴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그 여자의 아파트 문 앞에서 악수를 나누는 것으 로 끝났다. 몇 주 동안을 그들은 사이좋게 데이트를 했다. 테이트가 용케도 친구관계를 잘 유지해 오던 어 느날 저녁, 그는 캐롤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그 여자도 그의 키스를 받자 정열이 불타 올랐다. 그들은 자연히 침대를 찾게 되었고, 서로는 서로에게 깊은 쾌락을 맛보게 되었다. 3개월만에 캐롤은 법률사무소를 그만 두게 되었으나 , 대신에 테이트의 부인으로 신분이 바뀌 었다. 그 여자가 임신했다는 것은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테이트로서는비록 계획된 임신은 아니었 지만 별로 반감이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그러나 캐롤은 그렇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의무가 그 여자에게 족쇄를 채워놓은 듯 그 여자 는 심하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특유의 장기인 우아한 미소나 , 남을 웃기는 익 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성생활에 있어서도 그 여자는 언제나 마지못해 응하는 형식이었으므로 , 테이트로서도 구태여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거나 그닥 연연해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종종 말다툼이 일었다. 테이트는 캐롤에 대해서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시간과 정열을 선거에다 퍼붓게 되었고 이 일로 수년 간을 보내게 되었다. 맨디가 태어나자, 캐롤은 자신의 몸매를 회복하는 일에 부심했다. 그 여자는 꽤나 부지런을 피 우면서 미용체조를 했다. 테이트는 그것이 잘 이해되질 않았다. 그러나 캐롤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는 점차로 명확해졌다. 그 여자에게 첫번째 연인이 생긴것을 알았을때, 그 이유를 알게 된것이다. 그 여자는 그것을 비밀로 하고자 하지도 않았고 , 사랑의 배반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테이트는 애당초부터 캐롤의 애정행각에 대해서 아랑곳하 지를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본다면 , 테이트는 다만 선수를 쳐서 그 여자와 이혼하려고 한 것이었 다. 깨끗이 헤어지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었을 것이었다. 몇 달 동안은 비록 한지붕 밑에 살아도 서로 다른 방을 쓰는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발 그 여자는 테이트의 방으로 기어들었다. 요염한 교태를 부리면서 , 그 여자가 그날 밤 왜 그에게 로 왔는지는 잘 짐작이 되질 않았다. 무슨 심사로 그러는지 몰랐다. 캐롤의 평소 심술로 볼 때, 테이트의 완강한 거부를 일부러 꺾어버리려는 걸로 생각했다. 그 여자의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 그는 너무도 오랫동안 금욕생활을 했고 또 친척들과 저녁에 포카를 하면서 마신 술김에 , 그 여자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다. 두 사람이 소원해진 관계에 있는 동안 , 테이트는 부동산 중개업자와의 관계를 다시 가지는가 하 면 , 다만 몸의 컨디션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쾌락을 탐하는 일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기혼자들에게 있어서는 성적유희의 탈출구는 늘 열려있다. 정치 지망자에게 그건 엄청난 함정이었다. 이 함정에 빠지면 결국 자살을 하는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혼인서약이라고 하는 것은 , 비록 그것이 아내에게는 이젠 아무런 효력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남편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진실하게 이해되어야 할 서약의 사항으로 남아 있다. 테이트는 캐롤에 대해서 , 그리고 혼인서약에 대해서 멍청하리 만큼 성실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 이래로 몇 주간이 지나고 나서 캐롤은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 테이트는 그 아이가 자기의 아이인지 아니지를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여자의 말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또다시 아이 때문에 당신에게 묶여 살 생각은 없는데." 그 여자는 투정을 부렸다. 캐롤에 대한 애정은 다 식어버렸고 , 더이상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침태 테이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 주 후에 그 여자를 398호 비행기로 달라스로 보냈다. 테이트는 불쾌한 옛기억을 털어버리기라고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캐롤이 다른 남자의 애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을 해도 테이트가 믿지 않듯 , 캐롤이 현모양처의 도리에 관해서 묻고 있을 때에도 그 물음을 묵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 미끼를 ㅉ다가 덫에 걸리게 만드는 옛 수법에 자기가 당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 근에 이르러 캐롤이 완전히 변신을 했음이 드러나게 되기까지 테이트는 결코 어떤 결정적인 태 도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화제를 바꾸어 이렇게 제안했다. "뭘 들겠어요?" 그 여자 역시 그 문제는 그만 집어치우고 싶어하듯이 보였다. "아무거나, 로스트 비프 샌드위치가 좋지 않을까? 그 여자는 침대에 않아 전화를 걸 때면 자동적으로 다리를 꼬고 앉곤 했다. 캐롤의 스타킹이 서로 맞비비면서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테이트는 구역질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지금도 그 여자를 불신하고 있다면, 도대체 그 여자와 섹스를 하고자하는 까닭이 무 언가? 그 여자의 노력 점수는 단연 A였다. 테이트도 그건 인정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 날부터, 아 니 그 전부터도 그 여자는 테이트와의 화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왔다. 캐롤은 성질을 내지 않 으려고 꽤 노력을 했다. 캐롤은 시집 식구들과도 잘 지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을 하는 듯했고 , 시집식구들이 드나들 때마다 신경을 써주고, 그들의 습관과 그들의 하는 일들에 대해 세세히 살 펴주었다. 그 여자는 과거의 성미 사납고 인내심이 없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좋아요, 피넛 샌드위치로 할께요." 그 여자는 수화기에다 대고 말하고 있었다. "포도 젤리도 좀 넣어 주세요. 메뉴에는 없더군요. 하지만 점심에는 그걸 좋아한다구요. 피넛 버터 제리샌드위치에 얽힌 맨디의 애정사연은 지금도 우스개 소리로 함께 기억하곤 하는 일이었다. 캐롤은 곁눈질로 테이트를 향해 싱긋 미소를 보냈다. 젠장, 테이트는 그 여자의 미소를 기다리는 듯 싶었다. 최근에 테이트는 그 여자를 안았다. 캐롤의 입술은 더이상 거짓과 신실하지 못한 입술로 느껴 지지 않았다. 그 여자의 키스는 달콤하고 짜릿하며 별다른 느낌을 주었다. 구태여 그 키스의 느낌 을 분석해서 설명하자면 그건 마치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여자와 첫키스를 하는 것 같은 느 낌이었다. 익숙하게 경험하던 것이었는데도 지금은 전혀 다른 감흥으로 오고 있었다. 몇번의 키스가 그토 록 그를 흔들어 놓았고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는 수도자처럼 자기억제를 잘 해오다기 그만 몇번의 접촉으로 허물어져서는, 이젠 틈만 나면 그 여자의 입술을 찾았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납득하기 힘든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았 다. 그건 현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더 있었던듯 싶기도 했다. 그 여자의 머리카 락이 전보다 짧게 컷트를 했다든가 성형수술을 해서 전혀 다른 여자의 얼굴로 보이게 했다든가 한 것처럼 되었다. 그건 좋은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확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들의 말이 맞아요." 캐롤이 남편에게 말했다. "맨디, 크레용을 줏어서 통에다 넣어야지? 점심 먹을 시간이다. " 그 여자가 맨디를 도월 허리를 굽혔다. 몸을 구부리니까 좁은 스커트라서 엉덩이 부분이 팽팽 히 드러났다. 테이트의 욕정이 일어났다. 그는 그 이유를 재빨리 알아챘다. 그는 지겹도록 오랜 동안을 여자의 몸을 멀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는 여자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 단순히 전화 한 통으로도 그런 문제는 해 결 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캐롤, 바로 이 여인이 그에게는 필요했다. 그 여자의 눈을 응시하 고 있으면, 마치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여자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적대감마저도 언제 있었더 냐 싶게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도, 그는 캐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그는 자신 안에서마저 극구 부인하고 있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테이트에게 슬쩍 미소를 보내며 애버리가 말했다. 웹스터 박사 사무실의 안내원이 상담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건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정이었어." 정신과의사는 증상을 맨디와 더불어 약 한 시간 동안을 있었다. 맨디에게서 어떤 증상을 찾아 내는데 걸린 모든 시간이 다 치료비에 가산되었다. 아무 뜻없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뭔가 그 의 신경질환을 찾아 치료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에디는 남은 여행기간 동안 나한테 계속 그렇게 미친 놈처럼 굴 작정인지 모르겠군."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애길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 맨디의치료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 를 하던데요. 내 생각엔 어머님 아버님이 뭐라고 한말씀 하신 것 같아요. 어쨋든 정말로 미친것 같진 않으니까 안심하세요." "이상하지 않아?" 테이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거야, 제기랄." 그는 육중하게 닫혀진 문을 바라보면서 눈을 흘겼다. "좀전에 당신이 뭐라고 말했지?" "에디가 정말로 미치치는 않았다구요." "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만 성질이 가끔 괴팍해져서 그렇지." "아이스맨( 속어로 , 당황할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고단수의 도박사나 선수 , 연애인 등 을 말함 ) 이죠." 그 여자가 중얼거렸다. "뭐?" "아녜요. 아무것도........" 애버리는 자기 핸드백 손잡이 끈을 허공에 휘두르며 화제를 바꾸려 했다 그 여자는 아일랜드 사람에게서 이런 류의 사람으르 다루는 방법을 일찌기 배웠다. 그 여자의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은 , 입장이 난처할 때에는 전혀 다른 화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화제로 옮기는 것 이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슬며시 질문을 던져서 더 많은 정보 를 꺼내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자기 재능이 아직도 살아있는가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여자 문제예요?" 테이트는그가 집어들었던 잡지를 옆으로 치웠다. "무슨 여자 ?" "에디의 여자친구들 말이예요." "난 몰라 . 그 친구는 나한테 여자 얘긴 하지도 않아." "자기 성생활에 관해서 자기와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상의를 할 수 없을까요? 남자들은 자기 자랑애기를 곧잘 털어 놓는다는데 ." "어린애들이야 그럴테지. 우리 같은 어른들이야 어디 그런가. 그럴 필요가 없지. 나도 남의 성생활을 염탐하는 사람도 아니구. 에디 역시 과시욕 환자는 아니야." "그가 동성연애자가 아닌건 사실이죠?" 테이트가 차가운 시선을 그 여자에게 던졌다. "왜? 당신에게 어물쩡거리던가?" "집어치워요." 이때 ,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원이 말했다. "의사선생님과 맨디와의 상담이 끝나셨습니다. 금방 나오실거예요." "감사합니다." 안내원이 물러간 뒤 , 에버리는 다시 그 여자가 않았던 걸상에 기대어 않았다. "전 다만 팬시가 에디에게 너무 푹 빠져 있어서 그에게 관해서 물어 봤던 것 뿐이예요. 그 아 이가 상처 받으면 안될텐데......" "팬시 ?" 그는 의심에 찬 표정으로 웃었다. "팬시가 에디를 따라 다닌단 말이야?" "어느 날 저녁 팬시가 다 망가진 얼굴로 집에 와서는 나한테 그 애기를 하던걸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맞아요, 여보. 팬시가 빠에서 카우보이를 만났대요. 아마 갈데까지 간 모양예요. 남자구실을 하 지 못하면 그게 팬시 책임이라면서 때리기까지 했대요." 그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런 젠장!...." "팬시의 멍든 눈과 터진 입술을 보고도 몰랐어요?" 그는 머리를 저었다. "내가 이런 애기를 한다고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지는 마세요. 당장 그 애 부모도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 갠 집안에 있는 오래된 가구나 다름이 없 어요. 그냥 거기 놓여있을 뿐이지 , 누구도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주지를 않죠. 그 아이가 정작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말예요. 여하간 팬시는 지금 에디만 바라보고 사는 거예요. 팬 시를 좋아할 것같아요?" "팬시는 아직 어린애야." 애버리가 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삼촌이 되가지고서 엄연한 일을 알고도 모른 척 하실수가 있어요?" 그는 어깨를 움추려뜨렸다. "학창시절, 에디는 남녀공학에 다녔었지 . 에디는 그때 나암이라는 동네에 창녀촌에 다녔었다구 . 못 말리는 녀석이야." "그사람 요사이도 여자관계가 있어요?" "아마 본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자들과 외출을 하곤 하는 모양인데, 여럿이서 다니거나 , 아 니면 그냥그냥 만나는 정도인가봐 . 그 여자들 중에 아무개하고 같이 잤다는 소문은 한번도 못들 었거든 . 아마 에디가 원한다면 같이 잘 여자들도 꽤있을 걸" "그렇지만 팬시는 ." 테이트는 의심에 가득차서 그의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에디가 팬시에게 성처를 주지는 않을거요. 그친구 , 그렇게 허술하고 생각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테이트, 당신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생각하며 침묵히 흐르고 나서 그 여자는 테이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에디에게 내가 무슨 큰 관심이 있어서 묻는 건 아니었어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의사가 문을 열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25 "너무 괴로와하진 마세요, 러트리지 부인. 당신이 과거에 보여줬던 것들이 있는데, 한순간에 그 게 극복이 되겠습니까, 어디 지금의 맨디를 하루이틀에 원상태로 만들수는 없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웹스터 박사님 당신은 맨디의 뒤떨어진 사회성 발달 에 대한 책임이 저에게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착각이십니다.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지요. 하지만 당신과 러트리지 씨는 이미 돌이켜보려는 시 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맨디와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데, 아이를 위해서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부인은 맨디의 아주 작은 성취들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있고,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가벼이 여겨줍니다. 그 애는 당신으로부터 그런 긍정적인 칭찬을 필요로 합니 다," 테이트가 찡그리며 말했다. "그건 별로 대단하게 들리진 않는군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대단한 것이죠. 당신은 부모들이 아이를 인정해 주는 일이 얼마나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달리 우리가 해야 할 일은요? "그애의 의견을 자주 물어보세요,'맨디야, 바닐라를 먹겠니, 초코렛을 먹겠니?' 이런 식으로 말입니 다. 그 아이에게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나서 그 결정을 칭찬해 주세요. 아이로 하여금 자기의 생각 을 말로 표현하게 해야합니다. 내 생각엔 아이가 지금까지 용기를 잃어왔던 것 같아요" 웹스터 박사는 아동심리학자의 은근한 태도로서라기 보다는 6연발 권총을 허리에 차고 있는 소 도둑에게나 더욱 어울릴만한 사람이었다. "두분의 어린 딸은 자신에 대해 매우 낮은 자신감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하시키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애버리는 입술에 주먹을 대고 누르면서 입술을 안쪽으로 감았다. "어떤 아이들은 못된 행동으로 쓸데없는 자존심을 드러내서 주위를 집중하려 하죠. 맨디는 자 기자신 속에 숨어있어요. 자기자신을 작게, 혹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어요" 테이트의 머리가 그의 양 어깨사이로 숙여졌다. 그는 침울하게 애버리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그 여자의 양볼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속삭였다. "미안해요"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었어. 나도 똑같았어. 오히려 내가 더 아이를 그 지경으 로 몰아간 건지도 모르지......" "불행하게도." 웹스터 박사는 그들의 주위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말했다. "그 비행기 사고는 맨디의 불안감만 더하게 했습니다. 이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 때 아이의 행동이 어땠습니까?" "우리가 그 애를 자리에 앉히고 벨트를 채우려고 했을 때, 한바탕 법석을 떨었죠" 테이트가 대답했다. "저만해도, 제자리의 벨트를 채우는 데도 힘겨웠어요" 애버리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해합니다. 러트리지 부인" 그가 동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륙했을 때 맨디는 어떠했지요?" 그들은 서로 쳐다봤다. 이윽고 애버리가 대답했다. "뭐 별로 ......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보세요 아이는 당신이 자기를 의자에 고정시켰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 다. 러트리지 부인, 하지만 사고 이후에 대해선 아무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이는 당신이 자기를 구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애버리는 한 손을 가슴에 갖다댔다. "아이가, 내가 자기를 사고 속으로 몰아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어느 정도는요." 그 여자는 몸서리를 치면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오 하느님!" "폭발사고가 다시 일어나서 아이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때만이 이 일이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당신이 자기를 구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그건 아이에게 지옥과도 같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한 치료를 위해선 어떨 수 없는 일입니다. 러트리지 씨. 아이는 자신의 기억과 싸 우고 있어요. 제 생각엔 아이의 반복되는 악몽이, 사고가 일어난 당시의 상뢍으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불에 타고 있었다고 말했었죠" 애버리가 맨디의 지난 악몽을 회상하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 애의 기억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게 없을까요?" "최면술이라면 가능하겠지요." 박사가 말했다. "제 생각엔, 아이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하는 게 낫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으로 는," "젠장!......" "러트리지 씨. 무자비한 말로 들릴줄 압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다른 면을 알기 위해서, 또 아 이가 엄마 품속의 평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는 사고를 다시 경험해야 합니다. 공포를 몰아내 야 해요. 그러기 전까진 잠재의식 속의 두려움과 당신의 아내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 내지 못할 겁니다" "박사님 말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테이트가 말했다 "그러나, 그게 또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줘야하는 것일지......" "저도 압니다" 웹스터 박사는 그들과의 시간이 다 되었음을 눈짓으로 알리며 일어섰다. "난 아이의 곁에 있으면서, 아이의 소름끼치는 경험을 되살려내는 일이 나의 일이 아니고 당신 들의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정이 허락된다면, 난 아이를 두달 만엔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능하도록 해보죠" "그리고, 그러기 전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전화를 주십시오." 테이트는 웹스터 박사와 악수한 다음, 애버리를 의자에서 부축해 일으켰다. 그 여자는 맨디가 느끼고 있는 잠재의식적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바로 그 엄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캐롤의 죄를 그 여자에게 물으려 한다. 테이트가 손으로 팔 밑을 받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행운을 빕니다" 박사가 테이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박사가 애버리의 두 손을 감싸쥐었다. "죄책감이나 후회 때문에 스스로 아파하지 말아요. 전 당신이 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걸 확 신합니다." "그래요? 맨디가 박사님께 절 미워한다는 말을 하던가요?" 그 질문은 정말 부질없는 것이었다. 웹스터의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열두번 정도는 잘못을 회 피하고자 하는 엄마들로부터 듣는 질문이었다. 이 경우에는 그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친한 친구처럼 정답게 웃었다. "아이는 자기의 엄마에 대해 아주 좋게 말해요 . 다만 내개 당신에게 애기 해 줘야 할 사고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아이가 말할 때는 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 "뭐죠?" "당신들은 이미 부모로서 훌륭해 보인다는 것이죠." 그는 그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당신의 끊임없고 , 부드러운 사랑이 담긴 보살핌으면 맨디는 극복해 낼것이고, 아주 밝고 말 잘 듣는 아이가 될 겁니다. ." "그렇게 되길 빌어요. 웹스터 박사님 " 그 여자가 절박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 그는 그들을 문까지 바래다 주고 문을 열어주었다. "러트리지 부인 ,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때 , 난 너무도 깜짝놀랐습니다. 한 일년 쯤 전에 어 느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나온 젊은 여기자와 인터뷰를 했었지요. 그 여자와 이미지가 너무도 똑 같습니다. 듣고보니, 당신과 같은 지역출신이더군요. 혹시 그 여자를 아십니까? 이름이 다니엘즈 데?"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테이트가 군중을 뚫고 연단을 향해 가고있는 동안 , 군중은 그여자의 이름을 노래하고 있었다.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어디에나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 애버리는 넘어지는 바람에 테이트와 멀어졌다. 그는 군중 속으 로 파묻혔다. "테이트!........" 그 여자가 소리쳤다. 그는 그 여자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애버리 , 애버리. '저게 뭐지?....... 총성!.......' 테이트는 피투성이가 됐다. 테이트가 넘어지면서 그 여자를 향해 돌아섰다.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애버리 다니엘즈.' 그는 조롱했다. "캐롤?" "캐롤? 일어나요/" 애버리는 달아나듯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그 여자의 입은 벌어진채 메말라 있었다. 그 여자는 헐떡이고 있었다. "테이트" 애버리는 그의 벗은 가슴에 안겨 그를 껴안았다. "오 , 하느님 . 끔찍했어요." "나쁜 꿈을 꿨나보군." 애버리는 털이 난 그의 가슴의 따스함에 얼굴을 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아 주세요. 제발 잠시만이라도 ." 그는 애버리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애버리의 애원에 , 테이트는 조금씩 더 가까이 다 가가 그 여자를 감쌌다. 애버리는 계속 바싹 붙어서 그를 놓지 않았다. 그 여자의 가슴은 뛰고 있 었다.그 고동소리가 테이트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애버리는 , 자기를 향한 경멸과 비난으로 눈을 부릅뜬 테이트의 피투성이 모습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그 여자는 거짓말을 했다. "웹스터 박사가 애버리 다이엘즈에 대해 말했을 때부터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었어." 애버리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테이트는 그 여자의 머리를 헤치고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난 그 여자가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그가 몰랐다는게 믿기지 않아 . 그 애기를 했을때 그는 오히려 내가 미안해할 정도로 당황해 했어. 그는 그 비교가 당신을 얼마나 당황하게 할지도 모르 고 무심코 말을 꺼낸 거야." "내가 바보같이 행동했나요?" 애버리는 박사가 자기의 이름을 말한 후에 기억나는 것은 귓속의 시끄러운 소리와 아찔한 현기 증뿐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정신을 잃고 테이트에게 쓰러진 것이다. "바보같지는 않았지만 , 당신은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 "난 그의 사무실을 나온것 조차도 기억나질 않아요." 테이트가 그 여자를 밀어 몸에서 떨어지게 했다. 애버리의 손이 그의 팔근육으로 미끄러졌다. "당신이 그 다니엘즈라는 여자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는 건 무척이나 기이한 우연의 일 치로군. 낯이 선 사람들이 당신을 그 여자로 착각을 하는 것도 그렇고 , 그 여자, 나도 기억나는 군. 이제까지 가족 중 , 아무도 당신에게 그 여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소" 그는 애버리 다니엘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여자의 기분을 약간 낫게 해 주었 다. 그가 텔레비전화면에 비치는 자신을 즐겨봤는지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군요. 난 다만 ......." 애버리는 그가 좀 더 안아주기를 바랬다. 그의 눈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이 더 쉬웠다. "뭔데?" 테이트가 부드럽게 물어왔다. 애버리는 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얹었다. "난 사람들이 항상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것에 지쳐 있어요. 이제 난 그저 호기심의 대상일 뿐 인 것 같아요. 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 말하자면 수염이 난 여자나 된 기분이예요" "무슨 그런 말을 . 아무도 그런 고약한 뜻은 가지지 않을 거야." "알아요 . 하지만 전 그 때문에 사람을 무척 꺼려요. 어떤 때에는 내가 아직도 붕대를 감고 있 는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애버리의 눈가에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려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당신, 아직 꿈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는가 보군? 신경쓰지 말아요." 애버리를 위로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테이트가 말했다. "뭘 좀 마시겠어? 아일랜드 크림이라도 좀 갖다줄까? 좀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좋은 생각이예요" 잠시 후, 그는 두 개의 잔에 아일랜드 크림을 따라 침대로 되돌아왔다. 그는 벗은 채로 내의만 걸치고 있었다. 부끄럼을 탔더라면, 침대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가위눌렸다 는 것에 그가 내의바람으로 애버리에게 달려왔다는 사실이기뻣다. 침대 사이의 공간은 무척 좁았 다. 멕시코만처럼. "당신의 승리를 위해,테이트" 애버리가 잔을 그에게 부딪혔다. 그 여자의 목을 타고 들어간 술은 단숨에 복부전체에 따뜻하 게 퍼져 나갔다. "음!...아주 좋은데요? 고마워요, 여보." 애버리는 이 고요한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서로가 본래 가지고 있던 문제들로 이 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여전히 친밀감은 없는 채였다. 부부라는 것 때문에, 그들은 항상 대중적인 관점과 계속되는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가진 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것이 가뜩이나 어려운 두 사람의 관계에 긴장을 더했다. 그들은 서로 긴장을 풀 아무런 즐거움도 나누지 않았다. 정식으로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사 이지만, 그것이 결코 진실된 결혼이 아니었기에, 같은 공간 안에서 살고 있는 부부였을지라도 서 로 넘나볼 수 없는 각자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밤까지, 맨디는 그들의 호텔방 같이 제한된 사이의 완충자의 역할을 해왔다. 맨디는 애버 리와 함께 잤다. 그러나 오늘밤엔 맨디가 이곳에 없었다. 그들은 외로왔다. 한밤중이었다. 그들은 함께 아일랜드 크림을 홀짝이며 개인적인 문제들을 의 논하고 있었다. 다른 부부들에 있어선, 그 장면은 성애행위의 결과였을 것이다. "난 벌써 맨디가 그리워요" "그야 웹스터 박사와 했던 아이에 대한 약속이었잖아. 두 분이 맨디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기로 한 것도 우리가 계획했던 일이고." "박사에게 다시 말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으면 안될까요?" "웹스터 박사가 말했잖아? 며칠 떨어져 있는다고 해서 아이에게 그닥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 고. 그 역시 당신이 뭘 해야할지 잘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한게 분명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애버리가 큰 소리로 심각하게 말했다. "어떻게 그 애가 그토록 내성적이 됐고, 심정적으로 그토록 상처를 입게 된 거냐구요." 애버리는 대답을 바라지도 않고 웅변하듯이 물었다. 그러나, 테이트는 질문들을 곧이 곧대로 받 아들였고, 그 여자에게 대답했다. "당신도 그가 말하는 걸 들었잖아. 당신, 박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이제껏 맨디에게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어. 그리고, 같이 있던 시간 들마저 맨디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엔 차라리 혼자 노는 것만 못할 정도로 해악만 끼친 거라고. 왜 그걸 착각하려 드는거지?" 애버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러한 경우 캐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것이고, 애버리는 그 여자의 편을 들어야 할것처럼 느꼈다. "그러면 당신은 그 시간동안 어디 있었죠? 만일 내가 엄마 노릇을 잘 못했다면, 당신은 뭘 했 어요? 왜 관심 한번 가져주지 않았냔 말예요! 맨디가 어디 의붓자식이예요 아니면 결손가정 아 이예요? 엄연히 아빠, 엄마가 살아있는 아이 아니냐구요? 어떻게 그런 말을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거죠?" "나도 다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내가 아주 작은 제안이라도 할라치면 당신은 늘 부정 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나왔었지. 꼭 지옥에 빠진 사람들같은 우리의 싸움을 맨디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아빠로서, 낙제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난 당신 이 있을땐 그 방에 들어갈수 없었던 거야." "당신의 접근방법이 잘못됐겠지요" 애버리답지 않게, 이번에는 캐롤을 두둔하는 마음으로 테이트를 힐책하고 들었다. "그럴까? 아주... 그런데, 난 당신이 이렇게 객관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건 처음인걸? 전연 몰 랐어. 이런 능력이 당신한테 있는지는." "그래요?" 그는 침대 곁의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고, 스텐드 스위치에 손을 가져갔다. 애버리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요. 아니...... 아직 침대로 돌아가지 말아요. 오늘은 길고도 피곤한 날이었어요. 우린 서 로 긴장하고 있어요, 난 당신을 비난할 뜻은 없었어요" "당신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거였는데." "아녜요" 애버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예요" "오늘은 지금부터 11월 사이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하나의 예에 불과할 뿐이오, 캐롤. 점점 더 어려워질거라구." "어떻게든 해보겠어요" 애버리가 웃음을 띠며 충동적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 여자의 손가락이 그의 턱의 갈라진 틈 에 닿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었다. 집게손가락에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었다. 애버리가 부드럽게 웃어주었 다. "우리가 웹스터 박사를 만났던 것과 맨디에게 작별인사를 했던 일을 생각하면, 난 갤러리아를 방문한 동안 우리가 잘 참아낼 것으로 믿어요" 그들은 박사의 사무실로부터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맨디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 려보냈다. 그 애가 비행기 타기를 너무도 싫어했기 때문에 그들은 차로 떠났다. 어둡기 전에 도착 해야 한다며 그들은 서둘러 출발했다. 애버리와 테이트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마자, 에디가 그들을 차 속에 밀어넣고는 예정 된 대로 상점가로 급히 차를 몰아갔다. 에디의 신호로,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인사가 있었고, 테이트는 높은 연단에서 짧은 연설을 했다. 모여있는 군중에게 그의 아내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 서 군중사이의 돌아다니면서 악수를 하고 표를 부탁했다. 로터리 클럽의 초대에 거절하는 일로 언짢해 하던 에디를 진정시키는 일은 잘 끝났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 단체에서, 월말에 있을 그들의 회합 중 하나에 연사로 테이 트를 초대하고자 하는 뜻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에디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당신의 오늘 활동을 체크하고 있었어요. 아주 열심이던데요." 애버리가 말했다 "여섯시 정각 뉴스에서 우리기사를 20초나 내보내줬대요" 애버리는 .KETX의 정치부 기자 하나가 항만 노동자들의 아침식사에 온 것을 보고 깜짝놀랬다. 하루종일, 테이트의 뒤를 바싹 따라 다니고 있었다. "저 사람들, 산 안토니오에서부터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왔어요." "자연그런 선전이니 마음쓸 것 없어. 사진을 찍는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웃어 보여줘." 그러나, 거기엔 반의 얼굴도 있었다. 애버리는 반의 카메라 앵글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의 얼굴을 필름에 담는 데 온 신경을 다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 여자는 날마다 반과 고양이와 쥐의 숨바꼭질을 벌여야 했다. 결국 그 여자는 귀걸이 한쌍을 잃어버렸다. 애버리의 마음속엔 그게 그 사람들의 소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경질이 바짝났다. "그들은 내가 여기를 떠나기 전까진 이곳에 머물거라는 걸 난 알아요" 애버리는 테이트에게 소리쳤다. "다시 한번 봐요" 그 여자는 더 찾아보았다. 비단 주머니를 뒤집어 놓고 그 속의 내용물들을 샅샅이 뒤졌다. "없잖아요, 내 귀걸이 . 분명 그사람들 짓일 거예요. 내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그러는 걸거라구요." 그들은 시외의 부유한 목장주인이 베푸는 자금조달을 위한 바베큐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옷 을 다 입은 테이트가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애버리는 뒤늦게 뛰어나왔다. "큰 은 귀걸이가 없어졌어요." 테이트가 주위를 대강 훑어봤다. "그렇게 찾아서는 나오지도 않을 거예요." 짜증섞인 애버리의 말이었다. "아직 한번도 안해본 거였는데. 분명히 여행가방에 잘 넣어뒀단 말예요." "다른 걸로 대신할 순 없어?" "할 수 없죠, 뭐......" 그 여자는 화장대 위에 흩어놓은 장신구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어지나 당화애 있었던지 등단추를 꽤 힘들게 채웠다. 세개가 잘못 채워졌다. "젠장!......" "제발 진정해." 테이트가 소리질렀다. 화가 나면 아예 말을 않다가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테이트였다. "그깟 귀걸이 하나를 잃었다고 호들갑을 떨 건 없잖아! 당신은 귀걸이 한쌍을 잃었지, 그게 세 상의 전부는 아니잖아" "내가 이번에만 이런 줄 알아요?! 애버리가 한숨을 쉬고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물건이 이상스럽게 없어진 게 이번이 처음 이 아니니까 하는 소리죠."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호텔 카운터에 신고를 해야겠군." 그가 수화기를 들기 전에 , 애버리가 그의 팔을 잡았다. "여기서만이 아니예요. 집에서도 그랬어요. 누군가가 내 방에 몰래 들어와 내 물건들을 가져가 곤 했어요" 그 여자가 생각했던 대로 그가 반응했다. "우스운 일이군! 당신 미쳤소?" "아뇨. 지금 황당한 애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예요 . 가끔씩이지만, 제 소지품 몇몇을 계속 잃어 버리고 있었어요. 이 귀걸이처럼 꽤 좋거나 내가 즐겨 쓰는 것들만 골라서요 ,. 그래서 이번 여행 직전에도 난 내 장신구들을 여행가방에 넣기 전에 확인하고 또 했어요." 테이트가 팔장을 꼈다. "그렇다면 당신 , 의심 가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 "내가 문제시 하는것도 잃어버린 물건보다는 내 생활에 대한 참해예요."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때 한번 잘맞추는군요!" 애버리가 성미급하게 말했다. "왜 우린 항상 사적인 대화를 끝내지도 못하고 , 방해만 받아야 하는거죠?" "목소리를 낮춰, 에디일텐데, 듣겠어." "에디하고나 살아요. 그럼 !" 그 여자가 언짢게 말했다. 테이트가 문을 당겨 열자 에디가 큰 걸음으로 들오왔다. "준비됐나" 그들이 늦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테이트가 말했다. "캐롤이 귀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 애버리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한번 쏘아보고는 자신이 그것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똑똑히 말했다. "자 다른 것을 걸든지 하고 그냥 갑시다. 우린 아랫층으로 가야해요." 에디가 문을 연 채로 두었다. "잭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차를 타고도 족히 한시간은 가야하는데."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고맙게도 다른 호텔손님들이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친절하 게 양보해주었다. 현관에서 서 있던 잭이 잰걸음으로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줄곧 그들은 투표와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의논했다. 애버리는 모든 주의 를 기울였음에도 , 모를 말들 뿐이었다. 딱 한번, 그 여자가 자발적인 의견을 냈다. 그 뒤를 이은 세개의 무뚝뚝한 시선 , 다음엔 전면적인 무시였다. 파티는 재미있었다. 기자출입을 허용하지 않은 모임이었기에 , 반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여자는 긴장을 풀고 마음껏 즐겼다. 듣기좋은 텍사스 풍의 음악도 많이 있었고 , 테이 트를 젊은 존 ,F. 케네디에 비유하는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생음악이 있었다. 그 여자는 테이트와 춤까지 췄다. 에디가 그를 그러게 하도록 권했던 것이다. "이리와요, 사람들에게 좋은 효과가 될거예요." 테이트가 그 여자를 품에 안고 돌 때까지 , 그 여자는 그것이 테이트가 자청해서 그러는 줄로 만 알았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 그들은 생음악의 박자를 발로 맞추고 마주보고 웃었다. 애버리는 그가 정말로 즐기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음악이 점점 빨라질수록, 그는 모든 사람들 의 화려한 시선의 갈채 앞에 그 여자를 올려 안고 돌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몸을 굽히고 그 여 자의 뺨에 키스했다. 다시 그가 당겼을때, 그의 얼굴엔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자발적인 행동에 놀란 듯했다. 그러나 시내로 돌아오는 중에는 테이트, 잭 그리고 에디가 그날 참석했던 연회의 일정에 대해 분석하고 선거 결과에 끼칠 영향에 대해 평가하는 동안, 애버리는 유리간막이 뒷자리에 앉아 엷 은 빛깔의 유리창의 어두운 커튼 너머로 보고만 있었다. 애버리는 이렇게 테이트와의 훼방받지 않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 에 둘러싸여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자기들의 거실에 있을 때라도 그들은 둘만 있어 본 적이 드 물었다. "아일랜드 크림에 취한 것 같아요." 그 여자가 자신의 빈 잔을 그에게 넘겨주고 베개에 대고 누웠다. "졸려요?" "음 ........" 그 여자는 손바닥을 펴고 , 손가락을 안쪽으로 구부리고 , 유혹적이고 무방비한 자세로 양손을 머리 양옆에 올릴 수 있도록 팔을 흔들어 올렸다. 테이트의 눈이 그 여자의 얼굴로부터 몸으로 움직여갈수록 그의 눈은 점점 흐려졌다. "춤춰줘서 고마워요." 애버리가 졸린듯이 말했다. "당신이 내게 박자감이 없다고 말해왔잖아." "내 생각이 틀렸어요." 그는 그 여자를 잠시동안 쳐다봤다. 그리고나서 등을 껐다. 그 여자의 손이 허벅지를 잡았다. "테이트" 테이트가 침대를 벗어나려 하자 , 그 여자가 불렀다. 그는 얼어붙은 듯 멈췄다. 그의 움직임 없는 그림자가 주차장쪽 커튼을 통해 새어들어오는 푸 른빛에 비춰졌다. 유혹하듯이 속삭이는 숨결로 그이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는 자기 침대로 갈 고 집을 꺾고 , 애버리에게 몸을 굽혔다. 부드러운 절규와 함께, 그 여자는 그들 사이에 가로막힌 덮 개를 차버리려고 발을굴렀다." "테이트, 난......." "아니, 아무 말도 하지마......." 테이트가 강하게 말을 끊었다. "내 마음이 변하지 않게 , 아무 말도 하지 말아." 그의 머리가 애버리의 입술에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까지 그 여자에게 가깝게 다 가왔다. "난 당신을 원해 , 아무 말도 하지 말아." 거친 몸짓으로 , 그의 입술이 그 여자를 빼앗았다. 그의 혀는 당황한 그 여자의 입술 속으로 깊 이 들어갔다. 애버리는 손에 가득 그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 그이 키스를 온 입술로 받아들였다. 그가 가슴 을 주욱 펴고 점점 그 여자의 몸을 따라 몸을 뻗었다. 탄탄한 테이트의 허벅지가 그 여자의 엉덩 이를 밀고 들어왔다. 애버리도 보조를 맞추며 테이트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이젠 애버리도 달대 로 달았었다. "당신, 몸이 뜨겁군." 애버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그의 대담한 행동에 말없이 응했다. "당신이 아무 말도 말랬잖아요....." 애버리가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엉덩이 밑으로 가져갔다 . 그리고 유혹하듯 그를 더 가까이 당겼다. 얕은 신음소리를 내는 애버리를 보며 그는 거친 키스를 했다. 테이트의 입술이 그 여자의 목을 따라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 여자의 젖가슴을 양손으로 가득 히 잡으면서 코로 애무했다. 가슴을 애무하던 그의 입술이 마침내 가운 속에 있는 애버리의 유두를 찾아냈다. 거추장스러운 가운을 이로 질근 물고, 그는 거칠게 그걸 당겼다. 유두가 그의 혀 움직임에 반응하며 구슬처럼 동그래졌다. 반사적으로 , 그 여자는 침대 위에서 몸을 휘였다.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양 엄지 손 가락으로 그 여자의 턱을 받치고 , 그이 손이 그 여자의 머리와 베개사이를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는 그 여자의 얼굴을 위로 기울이고 그 여자의 입술을 잠갔다. 그 여자의 펄쳐진 허박다리 사이에 눕기 위해 움직이며 타는 듯한, 스며드는 듯한 키스를 했다 . 그의 충분히 팽창한 남근이 애버리의 음부를 스쳤을때 두사람은 동시에 황홀한 느낌에 낮은 비 명을 질렀다. 심지어 그의 팬티가 애버리의 부두러운 내의를 미끄러지는 자잘한 마찰에도 , 강한 자극을 받았다. 더운 열기가 애버리를 휘감았고 ,그 열기는 그 여자의 피부를 통해 그에게로 전달 되었다. 그의 키스는 더깊게 들어왔고 , 그이 몸 움직임은 점차 속도를 더했다. 어느 순간은 거칠 게 , 또 어느 순간은 부드럽게 마찰해오는 그의 움직임에 , 애버리는 더이상은 참을 수 없어 그의 매끄럽고 유연한 등을 꽉 쥐었다. 그 여자는 그의 남성을 살 사이에 둔 채로 힙의 각도를 높였다. 단단하기만한 테이트가 습하고 부드러운 애버리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그의 손을 움추렸다. 그러나 그 여자는 여전히 그의 밑에 누워 애태우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꼼짝없이 무거운 숨을 쉬는동안,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결국 침대가로 나간 그가 수화기를 확낚아 챘다. "여보세요?" 잠시 후에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 형." 그는 호통을 쳤다. "잠이 다 깨버렸잖아, 무슨 일이야 , 대체?!" 애버리는 작고 괴로운 소릴 질렀고, 그에게 등을 밀려 침대 저쪽으로 움직여갔다. 26 "계세요?" 에디가 호텔방 의자에서 일어나 의자 주위를 돌았다. 컴퓨터에서 뽑아낸 갖가지 정보데이터와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들, 그리고 여러가지 종류의 도표더미가 탁자 위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룸 서비스가 왔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문구멍으로 누군지도 확인하지도 않고 아무 생각없이 문 을 열었다. 문 밖엔 팬시가 서 있었다. 팬시는 에디의 노기띤 표정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안으로 들 어오려 했다. 에디가 문설주에 팔뚝을 짚고 팬시를 가로막았다. "왜 그래요?" "왜 왔지 ?" "퉁명스러운 건 여전하군요!....." 팬시가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나서 그 여자는 푸른눈은 어두워졌다. "누구이리라고 기대했어요?" "그야 네가 알 바가 아니지, 그렇게 먼곳까지 찾아와서 뭘하자는 거지?" 엘리베이터의 벨울림이 복도에 퍼지고 ,어깨위에 음식쟁반을 울려들고 운반하는 룸 서비스 웨 이터가 나타났다. 그는 소리였는 걸음걸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파스칼 씨이십니까?" "그렇소." 에디가 그를 방에 들이기 위해 몇발짝 옆으로 비켜서자. 팬시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 여 자는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에디가 계산서에 싸인을 휘갈기고 문에 서 있는 웨이터에게 보였다. "좋은 밤 되십시요." 영문을 모르는 웨이터가 그에게 씨익 웃고 , 음흉하게 윙크를 했다. 에디는 소리가 나도록 문을 세게 닫았다. "팬시!" 그는 욕실문을 두드렸다. 변기에서 물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팬시가 몸에 꽉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를 추스리며 나왔다. 그 옷은 스판덱스 천으로 만들어서 살결처럼 그 여 자의 몸에 딱 달라붙었다. 넓은 아랫도리에서 어깨로 점점 올라갈수록 점차로 좁게 죄어드는 옷 이었다. 색깔은 붉은 것이었다. 입술을 보니 립스틱 색깔도 그랬다. 굽높은 구두에, 그 여자의 팔 을 둘러 싸고 있는 굵직한 플라스틱 팔찌색깔도 그랬다. 가만히 보니 , 금발인ㄴ 머리칼도 평상시보다 더 야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거리의 여 자라 해야 딱 맞을 성 싶었다. "뭘 주문하셨어요? 배고파요." "너 먹으라고 시킨 게 아냐." 에디가 안락의자 옆의 음식 쟁반이 놓여 있는 테이블로 가려는 팬시를 가로 막았다. 그는 그 여자의 팔을 잡아 당겼다. "너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뭘 하느냐구요? 네 , 여기 오자마자 전 소변을 봤어요. 그리고 이젠 , 아저씨가 무얼 먹는지 보려고 해요." 팬시의 팔을 쥔 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 악 문이 사이로 팬시의 이름을 으깨듯 , 불렀다. "여기 , 휴스턴엔 뭣 때문에 왔느냐고." "집이 따분했어요." 팔을 풀려고 몸을 뒤틀며 팬시가 대답했다.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집구석이라고 , 모나와 엄마 외엔 아무도 없단 말예요. 엄마는 반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고 , 반은 요즘 엄마를 사랑해주지 않는 것 때문에 울면서 지내요. 솔직히 말해서 , 아빠가 정 말 그랬는지 의심스러워요. 아저씨도 아세요? 정말 우리 아빠하고 엄마하고 결혼할 때 엄마가 절 가지고 있었나요? 그래서 두 분 사이가 안좋은 거예요?" 팬시는 탁자 위로 다가갔다. 갖다놓은 은뚜껑 하나를 들어올리고는 샌드위치에 장식되어 있던 체리 토마토를 집어들었다. "이게 뭐지?....... 음 , 초콜릿 시럽 아이스크림?" "어떻게 한밤중에 이런 것들을 먹어요? 그러고도 아저씬 어떻게 배가 안나오는지 몰라." 팬시는 보기 좋게 풀어헤친 셔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에디의 부드러우면서도 근육질로 잘 다 듬어진 가슴을 능숙한 눈놀림으로 보고 있었다. 외설적인 암시로 , 그 여자는 자기의 입술을 핥았 다. "어쨌든, 엄마는 아빠가 캐롤 숙모에게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내 생각엔 아무래도 그건 좀 곤란한 일 같은데..... 안그래요. 아저씨?" 팬시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런 유쾌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 오히려 기쁨의 표현 같았다. "한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를 탐낸다는 건 정말로 구약성서에나 나올 애기 아녜요?" 애기를 더이상 듣지 못하겠는지, 에디가 비꼬인 어조로 말했다. "보시다시피 난 피곤해 . 너하고 말장난이나 할 기분이 아니란 말이다. " 그의 짜증섞인 말에도 아랑곳 없이 , 팬시는 그가 앉아있던 안락의자에 털썩 앉아서 토마토를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과즙이 찔끔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팬시의 입술색깔처럼 빨간 색이었다. "사랑하는 에디 아저씨. 돈이 다 떨어졌거든요. 자동응답기로 조회를 해봤더니 제가 하도 계좌 에 넘치게 돈을 빌어다 쓰니끼 더이상은 인출을 해줄 수가 없다지 뭐예요?" "그래서 ?" 팬시가 양팔을 머리에 올리고 , 울적하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그래서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돈을 좀 빌릴까 해서 온 거예요." "얼마나?" "100달러. 아저씨를 만나러 오는 데만도 20달러나 들었는걸요?" 잠자코 에디는 바지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팬시의 무릎에 던졌다. "20달러다. 이거면 집으로 돌아갈 여비는 충분히 될 거야." "쳇 아무것도 남는 게 없잖아요." "더 필요하면 , 네 삼촌에게 가서 달래. 1215호실에 있으니까 ." "삼촌이 날 보면 반갑다고 잘도 반겨주겠네요 ! 그리고 아저씨 방에서 막 나왔다고 말할 건데 요?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요." 에디는 대꾸할 생각도 않고 시계를 들여다 봤다. "내가 너라면 , 더 늦기전에 집으로 출발하겠다. 그만 가보거라. 운전 조심하고 ." 에디는 팬시를 내보내기 위해 문으로 갔다 . "배가 고파요, 아저씨가 준 돈으로는 겨우 기름값이나 될까말까 해요 . 저녁도 안먹었단 말예 요, 여기서 샌드위치라도 조름 먹게 해주세요." 팬시는 3단짜리 샌드위치 한 조각을 접시에서 집어들고 한입 먹었다. "그럼 , 요기나 하고 가거라." 에디는 곧은 의자를 탁자 밑에서 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팬시와 함께 샌드위치 한 조각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물을 씹으면서 , 그는 컴퓨터에서 뽑아낸 자룔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던 팬시가 그걸 손으로 쳐내더니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날 무시하지 말란 말예요!" 그의 눈빛이 번뜩 빛을 냈다. "누가 이리로 오라고 한마디라도 했니? 쬐끄만 계집애가 당돌하긴. 난 네가 여기 있는 걸 원치 않아 ! 너 싫으면, 가면 될것 아니냐! 나도 그게 훨씬 홀가분해 !" "오 에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팬시가 의자에서 내려와 카펫트 위에 무릎을 끓었다. 갑자기 뉘우치는 시늉을 해보이며 팬시는 무릎으로 겅정겅정 걸어 그에게로 왔다. 그러더니 팔을 뻗쳐 그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드러난 가슴을 쓰다듬었다.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만둬, 팬시." 에디의 말은 공중에 의미없이 떠다니는 꼴이 돼버렸다. 그의 무릎 사이에 기어든 팬시가 그의 가슴에 키스를 했기 때문이다. "난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그 여자의 입과 혀가 매끄러운 그의 가슴과 복부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아저씨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구요." 에디는 팬시가 긴 손가락으로 그의 젖꼭지를 가볍게 긁자, 자극을 이지기 못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이제 팬시는 그의 벨트를 풀고 , 바지를 느슨하게 했다. "젠장!....." 팬시가 팬티 속으로 손을 뻗어 에디의 남성을 꽉 쥐자 , 그가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그의 손가락은 그 여자의 숱 많은 금발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그는 손마리로 거칠게 머리다발을 비틀 었다. 내려다 보니 팬시의 붉은 입술이 딱딱한 남성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 탐욕 스러워 보이는 입술이었다. 절제나 수줍음이라고는 없는, 부도덕한 입술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 다. 그는 그 여자의 이름을 숨차게 불렀다. 그 여자는 고개를 들고 그를 유혹했다. "날 사랑해줘요, 에디 제발!........" 에디가 양 다리에 힘을 주면서 팬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올렸다 . 그들은 육감적인 키스를 했다. 팬시의 손이 미친듯이 그의 셔츠를 벗기는 동안 , 그의 손은 그 여자의 꽉 끼는 치마 밑에 이르 렀다. 물렁한 감촉, 그것은 그의 손에 무너졌다. 그가 두 손가락을 팬시에게 밀어넣자, 팬시는 놀람 과 아픔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곧 원색적인 즐러움에 몸이 타들어갔다. 그 여자는 이미 그의 바지와 팬티를 그의 무릎까지 밀어 내렸다. 무릎에 걸터앉은 팬시를 안고서는 그는 걸어나왔다. 그들은 함께 침대에 누웠다. 그는 팬시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으려 발버둥치는 걸 도와 옷을 벗겨내버렸다. 팬시가 옷에서 머리를 완전히 빼내기도 전에 , 그는 팬시의 가슴을 꽉 쥐고 입술을 가져갔다. 빨고 깨물고 , 젖꼭지를 비틀어대는 에디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 팬시는 난폭한 전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손톱으로 그의 등을 긁고 , 그의 엉덩이를 핏자국이 나도록 팠다. 그는 팬시의 추하고 냄새나는 이름을 부르며 깊이깊이 공격해 들어갔다. 팬시가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바 람에 , 구두의 스파이크힐이 침대커버를 갈기갈기 찢었지만 , 그걸 느끼기는 커녕 더욱 거칠게 파고들기만 했다. 에디는 팬시의 허벅지를 넓게 벌리게 하고 그 여자를 침대머리까지 가게할만큼 거세게 밀어냈다. 그 여자가 양다리로 그를 감싸고 , 그의 격한 돌격에 보조를 맞춰주었다. 어느 새 두 사람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미끈거렸다. 그들의 몸은 함께 쿡쿡 소리를 냈다. 그리고 , 다시 ....... 또다시....... 에디의 얼굴은 환희의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허리를 구부리면서 , 그는 그의 모든 힘을 마지막 동작에 쏟아넣었다. 동시에 팬시도 절정에 다다랐다. "대단했어요. 정말 대단했어요." 잠시 후, 떨어져 누우며 팬시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팬시가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허벅지 한쪽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있었다. 팬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여자는 자기가 가지고 온 작은 지갑을 찾기 위해 침대에서 나왔다. 그 지갑에서 콘돔을 한봉지 꺼내 그에게 던졌다. "다음에는 이걸 쓰도록 하세요." "다음이라니, 이걸로 소원은 푼것 아닌가 ?"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움 없이 화장대 거울에 비춰보면서 팬시는 그에게 교활한 웃음으로 답했 다. "내일은 다시 암담하고 우울해질 거예요." 팬시는 작은 전리품처럼 그 여자의 가슴에 난 이빨자국들을 자랑스럽게 만졌다. "난 이미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요." "괴로와하는 척 그만 하시지? 너나 나나 ,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몰라 ." "그런 소린 앞으로 듣지 않겠어요. 파스칼 씨." 팬시는 구두와 팔찌만 몸에 걸친 채 스스럼 없이 탁자로 다가가더니 쟁반에 남아있는 나머지 음식물을 맛보았다. 체리가 위에 떠있는 채로 초콜릿 시럽과 뒤섞인 흰 거품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 , 이런 !........" 팬시가 투덜냈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어요." 에디가 침대위에서 웃기 시작했다. 에버리는 테이트보다 먼저 일어났다. 방안엔 아직 깊은 어두움이 깔려 있었다. 아직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애버리는 다시 잠이 들것 같지도 않고 해서 발끝으로 조심 조심 걸어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그 여자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까지도 그는 잠이 들어있었 다. 애버리는 옷을 갈아입고 얼음그릇을 들고 방문을 나섰다. 비록 낯선 도시에서 아침을 맞게 되더라도, 테이트는 조깅만을 꼬박꼬박 했다. 그는 돌아오면 언제나 뒤집어쓸 얼음물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을 호텔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 가 조깅에서 더ㅇ고 , 탈수된 채로 돌아오기 전에 얼음이 적당히 녹게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는 아랫층복도의 얼음기계로 가서 얼음으로 양동이를 가득 채웠다. 팬시는 나와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팬시는 애버리와 마주치고는 얼어붙 듯 그 자리에 걸음을 멈췄다. 애버리는 팬시의 흐트러진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화장을 한 채이긴 했지만 , 얼룩얼룩 지워져 있었고 , 함부로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맥빠진 표정은 그 여자가 방금 전에 방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나왔는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목덜미에서 가슴가지 이어져 있는 할퀸 상처를 그 여자는 가리려하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애버리를 발견한 처음이야 어안이 벙벙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 팬시는 곧 다시 정신을 차린듯, 대담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자기의 상처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가슴을 디밀어보이는 것이었다. "긋모닝, 캐롤 숙모." 팬시의 달콤한 웃음은 타락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면서 애버리는 복도 벽에 기댄 채 서있었다. 씻지도 않았는지 땀냄새 비슷한 고약한 냅새 가 팬시에게서 났다. 애버리는 구역질로 몸을 떨었다. 팬시가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자, 금방 문 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기 전, 팬시는 자신의 벗겨지고 멍든 어깨너머로 애버리에게 힐끗 웃 어보였다. 몇초 동안 애버리는 엘리벼이터의 닫혀진 문을 멍청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고나서 그 방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팬시가 나온 방을 바라보았다. 테이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에디라는 점은 테이트에게는 하나의 결점이었다. 에디는 믿는 대로 그렇게 주도면밀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영리하지도 않았다. 27 선거운동은 휴스턴에서 와코로 옮겨갔다. 그곳 스페인계 유권자 사이에는 테이트의 당선은 결 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러트리지 일행은 가는 곳마다 왕족처럼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공항에 내 리자마자 , 크고 신선한 꽃다발을 선사받았다. "러트리지 부인, 여행이 힘드시지는 않았나요?" 환영객 중의 하나가 애버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뇨,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이곳 분들은 모두 무척 친절하시군요." 애버리는 진심어린 환영에 대해 밝게 미소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테이트의 눈길과 마주쳤다. "스페인 말은 언제 배워둔 거지?" 잠깐 동안 , 심장이 멎어버릴 만큼 두근거렸다. 애버리는 어떤 그럴싸한 거짓말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스페인어를 대학에서 배웠고 아직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만약 테이트가 스페인 말을 할줄 모른다면, 애버리로서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겠지만 , 테이트 역시도 스페인 말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전 ........전 당신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요." "정말 놀랄만한 일이군." "스페인계 유권자들의 표는 우리에게 중요하잖아요." 느릿느릿 더듬으며 그 여자는 말했다. "난 적어도 농담이라도 주고 받을 정도만 돼도 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서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시간은 많고 해서 재미삼아서 익혀뒀 지요." 그때 애버리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감사했다. 그 렇지 않았다면, 테이트는 분명 그 여자에게 , 어디서 , 언제부터 스페인 말을 배워왔느냐고 캐물 었을 것이다. 고맙게도 , 아무도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는 않았다. 그 여자가 가장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테이트 뿐이었다. 잭, 에디, 그리고 시에서 시로 여행 다니는 동안 줄곧 붙어다니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도 캐롤의 공범자는 숨어있을 수 있었 다. 애버리는 아직 그게 누구일거라고는 작은 단서조차도 찾지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 그 조심스러운 궁금증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 했지만 , 테이트가 에디나 잭과 의견이 충돌할 때면, 그들은 모두 선거에 서 테이트의 승리에 자신을 바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선거운동에 내는 기부금을 대신해서 , 한 개인 사업가는 자기소유의 비행기를 테이트의 수행원 들에게 빌려 주었다. 엘 파소에서 테이트가 독립 자유업자에게 연설하기로 계획한 오뎃사로 날아 가는 비행기 안에서 ,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적어도 그쪽에다 대답은 해줘야 해 , 테이트." 에디가 최선을 다해 설득력있게 말했다.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게 표를 긁어모으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난 그들을 좋아하지 않아." 직업적인 선거운동 전략가를 고용할것인가 말것인가 대한 논쟁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몇주 전에 에디는 관공서에서 추천한 선거운동 전문가들을 고용하자고 강력히 제안했다. 테이트는 그 의견에 격력하게 반대했고 , 계속 그렇게 생각했다. "테이트, 넌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잘못된 거라고 말 할 수 있는 거냐?" 잭이 물었다. "유권자들이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표를 던질 수 없다면............" "유권자들, 유권자들." 에디가 비웃듯이 되풀이했다. "유권자들은 쉬놀라 출신의 바보녀석을 알지 못해. 더우기, 그들은 원하지도 않을 거야. 그들은 게으르고 냉담해. 그들은 누구에게 표를 줘야할지를 말해줄 사람을 원한다고 . 그들은 자신들의 저능하고 좁은 마음에 잔소리를 자꾸해서 그들이 직접 자신들의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 길 원하는 거야." "미국의 관공서에 대한 자네의 믿음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군, 에디." "난 이상주의자가 아니야, 테이트. 그건 자네 역시 마찬가지이고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날 비판하려드는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난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 일거라고 믿어. 그리고, 이건 분명 선겨야! 자네가 말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말이 그 사람들에게 먹혀들거라고 생각지 말란 말일세 ! 그들은 내 확고한 의지표명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 감정에 호소하는 유세가 아닌, 논리정연한 연설을 기대할 거야. 난 허풍선이 같은 선전쟁이들에게 맡기지 않고 , 내 살아있는 말한다디로 유권자들에게 내 입장을 밝히고 싶은거야!" 에디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문제가 극도에 이르렀으니 , 이제 그 애긴 그만두고, 스페인계 사람들에 대해 의논해 보자구." "또 뭘 말인가 ?" "자넨 좀 있으면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해 . 그들의 우리사회에 대한 통념에 너무 강하게 매달리지 말란 말야." "우리 사회? 난 지금 그들을 우리와 꼭 같은 앵글로족 유권자라고 생각해." "그들이 미국사회로 흡수되게끔 하는 문제도 중요한 거야." 테이트가 강하게 주장하고 나왔다. "이제 우리 사회는 내 것, 네 것을 따질만한 사회구조가 아니야. 그건 다만 사회구조를 붕괴시 키려 드는 위험한 생각일 뿐이야. 여지껏 유세장을 돌면서 , 내가 한 말을 자넨 뭘로 들었나?" "자네, 분명히 소수민족들이 자기들의 문화를 고집한다고 문제를 삼았잖나?" "그랬지. 내가 그렇게 말한 건 사실이야. 내 말이 틀렸나?" 좌중에 있는 모두를 바라보며 테이트가 물었다. "그래요, 그건 테이트의 말이 맞아요." 애버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에디는 그 여자를 무시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 그들은 결코 영국계 미국인의 사회를 위해 그들의 문화를 포기 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지 ." "그들이 이곳에 마음을 붙이고 살 수 있게 된다면 , 에디, 잘듣게 . 그렇게만 사회적으로 보장 이 된다면 , 그들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수용하게 될 걸세 . 자연스럽게 말야." 에디가 승복하지 않고 말했다. "이것 봐 , 영국계미국인들 중에 어느 누가 그들의 사회에 스페인 문화가 퍼지게 되는 걸 환영 해주겠나? 차라리 , 새로운 언어를 포함한 앵글로 문화를 자꾸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은 거야. 그러니까 , 문화적 통합에 대한 언급은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고 , 차근차근, 조금씩 나타내 게 . 일단은 선출되고 나서 볼 일이 아닌가 , 알겠나? 그리고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약 밀수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할 생각을 말게 금기야 , 금기 ." "나도 에디의 말에 동의한다. " 잭이 말했다. "상원의원이 된 후엔 뭐든 할 수가 있잖니? 왜 지금부터 쓸데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느냔 말 이다. 마약문제는 특히 조심해야 할 사안이야. 그 애기를 꺼냈다간 , 유권자 모두에게 비난받을 여지를 주는 거야." 엉뚱한 소리 말라는 듯, 테이트는 두 손을 크게 내저었다. "난 미국 상원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이야. 그런 내가 , 우리 주에 마약이 흘러들어오는 불법행위 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말이나 될 법한 애기야?" "물론 , 없지는 않았겠지." 어린애를 달래듯, 잭이 말했다. "다만 그 문제를 바로잡을 네 계획에 대해서 , 특별히 질문받지 않은 이상은 언급하지 말라는 거지 알겠나, 자네? 자 , 이 오델리아 지방 사람들로 말하자면...." 자신의 노트를 참고해 가며 에디가 브리핑을 했다. 에디는 노트를 안가지고 다니는 적이 없었 다. 그가 노트를 정리하는 것을 보며 애버리는 그의 손을 관찰했다. 저 손이 팬시를 유혹해 상처 와 멍을 입힌 걸까, 아니면 팬시가 다른 깡패에게 곤욕을 당할 뻔 하다가 제발로 찾아간 것일까 , 하고 "제발, 우리가 계획한 제시간 안에 모든 일이 끝나주기를 하느님께 빌고 있겠네." 신의 가호를 빌며 에디가 브리핑을 마쳤다. 테이트가 다음 말을 받았다. "오늘 아침에 우리가 왜 조찬연설에 늦었는지 부모님께 전화로 설명을 드렸어. 캐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군. 그래서 결국, 가기로 했지. 두분 모두 우리 일이 어떻게 돼가는 건지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 , 맨디도 돌봐야 하고 ." 에디와 잭의 시선이 동시에 애버리에게 돌려졌다. 여행을 해오는 동안 , 비록 애버리가 그들에 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진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 늘상 그래왔듯이 그 여자는 그들로부터 무언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껴왔다. 그래서 분풀이로 , 애버리는 잭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과 팬시가 아주버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더군요." "아 , 예. 고마워요....." 팬시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 애버리는 에디의 얼굴을 쳐다봤다. 에디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여자를 쏘아보고 있다가 ,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테이트에게 눈을 돌려버렸다. "착륙하기 전에 그 거추장스러운 것 좀 풀게 , 테이트." "왜?" "눠야, 색깔이 ? 칙칙해 보이잖아." 테이트가 매고 있는 넥타이는 뭐 ,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것으 아니었으나 , 신경질적으로 말하 는 에디의 폼을 보아하니 적잖이 신경질이 난 듯 보였다. "나하고 같은 걸 매라 , 테이트." 자기 넥타이의 매듭을 당기면서 잭이 말했다. "아뇨, 당신 것도 틀렸어요, 잭." 에디가 여전히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맞는 말이었다. "별 걸 가지고 다 그러는구만 !..... 자네 , 왜 이렇게 신경과민인가?" 테이트가 말했다. 그는 비행기 뒤쪽의 의자에 가서 쓰러졌다. "좀 쉬어야겠어. 날 방해하지 말게." 저쪽으로 간 테이트는 머리를 쿠션 위에 누이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애버리는 마음 속으로 그가 잭과 에디를 야단친 것에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하기 위해 가까이 했던 휴스턴에서의 그 밤부터, 테이트는 눈에 띄게 애버리를 멀리하는 눈치였다. 침대가 아니라도, 그들은 욕실을 함께 써야했기 때문에 결굴 힘겨운 건 테이트 쪽이었다. 그들은 옷벗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우스운 노력을 했다. 그들은 서로 접촉하지도 않 았다. 대화할 때, 그들은 같은 우리를 너무 오랫동안 함께 쓰는 두 짐승들처럼 서러 헐뜯었다. 비행기의 윙윙거리는 엔진소리 너머로 테이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곧 들려왔다. 그는 곧 잠이 들었다. 몇분을 그렇게 잔 후 , 활기를 되ㅊ아 깨어나는 것- 이것은 그가 베트남에 있을때 개발해낸 기술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여자는 그의 자는 모습을 보기 좋아했고, 그 여자의 마음속 갈등이 너무 심해서 잠을 이룰수 없었던 많은 밤 동안 자주 그런 모습을 봤었다. "뭐든 해요." 에디가 비행기의 좁은 통로를 통해 몸을 기대며 멍하나 상태에있던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에디와 잭의 눈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뭘 말니죠?" "테이트에게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란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죠? 그의 넥타이 골라주는 일부터 시작할까요?" "그 광고를 보류하도록 그가 마음을 돌리게 해줘요, 제발." "당신은 당신이 고집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서 켕기기 때문에 나더러 다른 방법으로 그를 졸라달라는 말인가요, 에디?" 그 여자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자 ,에디가 싸울듯 애버리의 얼굴 앞으로 자기 얼굴을 바짝 디 밀었다. "당신은 내가 눈치도 없는 머저리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당신이 더 켕기는 게 많을 텐데?" "뭘 말하고 싶은 거죠?" 그 여자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잭이 대신 대답을 했다. "테이트가 밤에 전화를 못받도록 하는 것 말이오." "지난 밤 일이라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주버님이 전화했을 때, 그는 정말 잠이 들어있었어요. 그는 휴식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는 지쳐 있었어요." "내가 그에게 말할게 있을 땐 , 언제가 됐든, 테이트와 애기할수 있어야 합니다. 난 그이 형이 니까." "알아들었어요, 케롤? 자 , 이 전문가들에 대해서 ......." "그는 그들을 원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이 가짜, 인공적인 인상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하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수씨한텐 물은 게 아니예요." 잭이 말했다. "내가 내 남편의 선거운동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면, 난 뭐든 남편에 게 말해주고 전해줄 수도 있죠. 싫다면 권두세요." "당신은 상원의원의 아내가 되고 싶은 거요, 아니요?" 그들 모두 냉정을 되찾기까지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에디가 타협적인 어조로 부드럽게 나왔다. "어쨌든,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테이트를 건집시다. 캐롤, 이건 스스로 파멸하는 거요." "군중들은 그가 불쾌한지 어쩐지 알지 못해요." "그러나 지지자들은 압니다." "잭의 말이 옳습니다." 에디가 말했다. "이전부터도 , 사람들의 입에 그런 테이트의 문제점들이 지적되어 왔어요. 이건 전체적인 사기 를 저하시키는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영웅이 전세계 꼭대기에 서서 바보짓거리가 아닌 열정 을 발산하길 바래요. 그를 세상사람들 마음에 들도록합시다. 캐롤.'" 에디는 격려하는 말을 맺고 , 자리로 돌아가 그의 공책들을 뒤자기 시작했다. 잭은 그 여자에게 눈쌀을 찌푸렸다. "그를 이 우울한 비겁합에 몰아넣은 것은 바로 제수씨요. 그를 그 비겁함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캐롤 당신 뿐이요. 그러니 더이상은 어떻게 할지를 몰라하는 것 같은 우수꽝스런 연극 은 하지 말아요." 잭의 격앙된 말 한마디로 애버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도와줄 사람조차 없는 이 상황에서느 변론ㅇ르 할 아무러한 구실도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갑갑한 비행기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애버리는 그들을 만나 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에게 웃음의 가면을 썼다. 그러나 사진가자들 틈에 끼어있는 반 러브조트 러트리지가 가는 어느 곳마다 나타나곤 했다. 그의 출현은 애버리를 항상 신경쓰이게 했다. 적당한 때를 틈타서 , 애버리는 카메라 렌즈가 자 기를 잡지 못할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다 보이는 유리한 자리에 선 애버리는 이 사람 저사람 바꿔가며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하나 같이 러트리지의 호응자들과 호기심 많은 구경꾼둘 로 ,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애버리는 왠지 낯이 익어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의 시선은 사람들의 무리 뒷편에 서있는 키 큰 남자에게 사로 잡혀 있었다. 그는 서부식 양복과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처음에 그를 테이트가 가서 연설해야 할 유류업자 중 한사람으로 생각했다. 그 여자는 이전에 어디선가 그를 만난 적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생각나는건, 그가 지금처럼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가 쓰고 있는 카우보이 모자는 기억이 났다. 그것도 최근에 그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스턴으 바베큐파티에서 ?..... 애버리가 채 기억을 더음어내기도 전에 , 그는 군중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고 , 마침내 시야에 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애버리는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에 탔다. 그 여자 옆에서는 , 시장 부인이 샘에서 물이 나오듯이 쉴새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 그 여자 의 마음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잠시 눈이 마주친 다음 순간, 교묘하게 사라진 회색 머리 남자에 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 지역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이 끝나자마자 그의 참모와 보도기관에서 나온 사람들, 잘 차려입 은 카우보이들이 테이트에게 몰려들었다. 그 사람들도 모두 키가 컸지만, 그 중에서도 테이트는 눈에 띄었다. 몸집이 큰 테이트는 공손함과 친근함으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의 몸가짐은 그와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렌트카 센터에서 나온 직원은 친절이 좀 지나쳤다. 팁을 요구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테이트는 그에게 크레디트 카드로 지불을 했다. 여자종업원이 꼬리표 붙은 열쇠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이 지역의 지도가 필요하십니까, 선생님?" "아뇨, 괜찮아요. 난 내가 갈곳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공항은 미드랜드와 오뎃사 사이의 도로 중간에 있었다. 러트리지 일행은 안전하게 리무진을 타 고 서극단 도시를 향했다. 28 "난 텍사스에서도 여성문제가 심각하다고생각합니다. 다른 모두 주의 여성들처럼, 텍사스 주의 여성들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만 할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과 관련된 문제들 입니다. 자녀교육의 질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 직업여성들과도 함께 오찬회합에서 연설을 길게 하면서도 , 테이트의 마음은 호텔 객실에 있는 큰 침대에 가 있었다. 러브필드에 도착한 후 , 수속을 하고 , 여독을 풀고, 제 시간에 오찬을하기 위해 그들은 분주하게 준비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밤 그는 캐롤과 함께 침대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곳 달라스에 위치에 있는 몇몇 주식회사들이 드디어 그들의 직원들을 위한 전용 탁아소를 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 그렇나 통찰력과 혁신적 생각들을 가진 이 회사들도 그 활동이나 실적면에서 본다면, 아직까지는 무척 저조한 양상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강구되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습닌다. "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도 , 테이트는 마음 속으로 숙박담당 직원의 질문을 떠올리고 있 었다. "뭐 바라시는 다른 것은 없으십니까,러트리지 씨?" 적어도 그ㄷ, 그는 말했어야 했다. '네, 침대가 떨어져 있는 방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박 수소리가 잦아들고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잠시 멈췄다. 그의 시선 가장자리에 , 앞자리 에 앉아 호기심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캐롤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캐롤의 자 태는 그가 시간관계상 거절했던 디저트보다 더 유혹적이었다. 그는 그 여자 또한 거절했다. "그래서 본인은 , 일한 만큼만 지급해야한다는 고정관념과 제도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 마이크에 입을 바짝 대고 그가 다음 말을 이었다. "정부는 그 말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방금 했던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피곤 해서 쓰러질때까지 그 말을 계속 되뇌이겠습니다. 지워질 것입니다. 사라질 것입니다. " 박수갈채는 천둥소리 같았다. 테이트는 안심하고 웃으면서, 앞자리에 않아 고혹적인 자태로 앉 아 있는 캐롤을 , 그 여자의 치마를 보지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제한된 시간 동안 준비를 끝내려고 서두르고 있을 때, 테이트는 우연히 조금 열려진 욕 실을 통해서 그의 아내를 보았다. 그 여자는 파스텔조의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파스텔조의 스 타킹에 파스텔조의 거들. 그 여자의 섹시한 엉덩이를 봤다. 매끄럽고 부드럽게 뻗어내려오는 허벅 지. 그 여자는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코에 분을 바르고 있었다. 그는 흥분했다. 그런 채로, 시든 샐러드, 고기, 차가운 완두콩 사이에 서 있었다. 목을 추기고 그가 말했다. "난 여성들에 대한 폭력에 지대하나 관심을 가집니다. 강간의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기소 되어 감옥으로 보내지는 범죄자의 수는 통탄할 정도로 적습니다. 가정에 대한 범죄는 가족이 있 는 한 계속되어 왔습니다. 고맙게도, 이 범죄는 결국 우리 사회의 도덕관념에 다가옵니다. 좋습니 다. 그러나 증가되는 이 추세를 충분히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요?" 좌중들의 쏟아지는 듯한 시선을 의식하며 테이트가 계속 말을 이었다. "테커 후보는 이 문제를 두고 계속적인 타협과 협상만이 문제해결의 지금길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만이 문제 해결의 마지막 방법이라면, 좋습니다. 그 의견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인간적인 해결방법의 첫단계로, 저는 경찰의 대응태도를 들고 싶습니다. 관계당국으로부터의 법적인 분리와, 피해자들에 대한 안전보장이 그때그때마다 협의와 조절이 되 어야 합니다." 또 한차례의 박수가 터져나오고, 다시 가라앉았다. 테이트는 연설의 마지막 흥분된 문단으로 옮 겨갔다. 회합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근처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의 공장지대에서 노동자들과 만나 그들 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계획을 했다. 호텔로 돌아온 후에 그들은, 저녁뉴스를보고, 신문을 대강 읽은 다음, 사우스포트에서의 그의 선전을 위한 저녁만찬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밤 늦게, 돌아왔다. "11월에 있을 선거에, 여러분의 지지를 기대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여러분!" 그는 열렬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칸막이 벽 건너에 있는 캐롤에게 연단으로 오라는 시늉 을 했다. 애버리가 그의 옆에 섰다. 테이트가 그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여자를 그처럼 가까이 안았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작고 여성적인 전율이 느껴졌다. 애버리 는 머리를 들어 그에게 존경과 사랑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여자는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 다. 에디가 그들이 가는 것을 막아서고 있던 열렬한 지지자들 사이에 길을 낼때까지는 거의 30분이 란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9월의 열기는 응접홀에서의 그들의 열광으로 폭발하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저 뒤에 잭한테서 전화가 걸려와 있다는군." 연회장 밖의 주차된 곳으로 그들을 이끌고 가면서 애디가 설명했다. "오늘 밤에 좀 이상했어.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심각한건 아니니 걱정은 말게. 자넨 지금 바로 공장지대로 가야 하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제시간에 닿지 못할거네. 그게 어딘지 아나?" "오프 아이-30 지역, 맞지?" 테이트가 양복 자켓을 벗어 렌트카 뒷자리에 던지며 되물었다. "맞아." 에디가 그 지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주의사항 잊지 말게. 자네의 승패가 달려있는 곳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나서 에디는 캐롤에게 눈길을 주었다. "당신이 호텔로 들어가시도록 택시를 부르겠어요." "테이트와 함께 가겠어요." 테이트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내 생각엔......" "괜찮아. 에디. 같이 가도 되지 뭐." 테이트가 말했다. "캐롤이 거기 있으면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거긴 여자들이 있을만 한 곳이 못되거든." "테이트는 내가 같이 가길 원하고 있어요. 나도 가고 싶어요." 애버리가 지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좋아요." 어쩔 수 없다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테이트는 에디의 표정을 보고, 그가 전혀 달가와하 고 있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뒤따라가겠네." 에디가 차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두 사람은 속력을 내서 목적지로 향했다. "항상 저래요, 에디는 언제나 날 군더더기 천덕꾸러기취급이잖아요. 기회만 생기면 날 떼어놓을 궁리만 하고." 에버리가 볼멘소리를 했다. "당신과 내 결혼을 찬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그땐 그럴 여유가 없었잖아. 당신 우리 결혼할 그 당시가 기억도 안나나?" 애버리가 심술궂게 대답했다. "난 다만, ...... 아녜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저 내가 에대와 말을 안하면 그만인걸......" "나도 당신이 에디를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건 알아. 나까지도 어떤 때는 그의 잔 소리가 넌덜머리가 나는 적이 있을 적이 잇을 정도인데, 뭘.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는 언 제나 사리 분별을 정확히 하고 얘기를 하곤 한다고. 천성적으로 상황을 잘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 진 친구야."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그렇지만, 당신이 믿는 만큼은 아녜요." "당신이 그렇게 말할 만큼 에디가 실수한 적이라도 있었나, 당신한테?"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뭐 별달리......어쨌든 그래요........" 마음이 언짢아진 애버리는 안전벨트를 있는 대로 늘어뜨린 채로 한껏 몸을 굽혀 윗옷을 벗었 다. 겉옷에 딱 어울리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 옷 속으로 테이트가 욕실문으로 언뜻 보았던 레이스 달린 노란 브래지어가 비치고 있었다. "아까 당신 말씀 참 잘하셨어요. 테이트. 지나친 겸손도, 선심 공세를 펴지도 않고, 논리적인 주장 을 펴는 걸 보니, 과연 내남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듣는 사람들 모두가 당신얘기에 흠 뻑 빠져든 표정들이었어요." 그 여자는 그를 존경어린 눈으로 봤다. "특별히 앞줄의 밝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 여잔 완전히 당신을 우상처럼 생각하는 눈빛으로 듣고 있었어요. 봤어요, 그 여자?" "아니." 그의 무뚝뚝한 말대꾸에, 애버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애버리는 그가 그렇게 무시하고 들줄은 몰랐다. 애버리의 얼굴에 잡혀있던 웃음이 일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애버리 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고, 앞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버리가 머쓱해하는 걸 보며 테이트는 내심 고소해 했다. 말한마디로 보기좋게 상처를 준 것 이었다. '이건 정당한 거야. 이래야 고평해지지. 왜 나만 일방적으로 이 여자에게 상처를 받아야만 하는거지?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여지껏 방탕한 아내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기만 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것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닌거야, 잘 했어.' 마음 속으로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딱히 악의는 없었지만, 괜한 심술이 나서 그 여자에 대해 좀 더 심한 말을 하도록 스스로를 부추기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아이를 지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요? 그래서 이렇게 퉁명스ㄹ게, 한 마디 한마디 비꼬아서 말을 하는 건가요?" "아니. 당신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난 그것에 관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 어. 그리고, 당신이 무슨 말을하든,난 내가 생각해왔던 대로, 또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 할 거야. 아이를 지울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나와 상의를 했어야 옳은 일이 아니었나?" 애버리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다 나왔다. "난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처음부터 아이 같은 건 없었다고 말예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것마저 거짓말인지 누가 알아? 당신이 언제 이건 거짓말이다, 하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 나? 언제나 진심이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했지. 어디 한 두가지 잉ㄹ이었어야 믿어주든 말든 할것 아닌가?" "왜 말 한마디를 해도 꼭 그렇게 하는 거냐구요?" "그걸 몰라서 물어? 오늘부터 우린 한 침대를 써야 해. 당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밤으 지낼지, 어떤 말로 날 꼬이려들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내가 당신이 누워있는 그 침대 안에 들어가려 들 때, 정작 아무 생각없이 잠자리에 들려다가 도, 날 유혹하려는 당신의얼굴을 보면, 그게 진정으로 날 사랑해서라기보다 날 경멸하고 조롱하려 는 계산에서 나온 거라는 걸 금방 알 수 잇게 돼. 더이상, 날더러 어쩌라구.' 애버리의 옆얼굴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테이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밖으로 내 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스피드를 내며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 입채교차로로 진입했다. 얼마 후, 직선도로가 다시 나왔다. 그는 더더욱 세게 엑셀레이터를 밟아댔다. 옆에서 달리고 있던 차들이 가로수마냥 스쳐지나갔다. 타고난 운동감각과 민첩한 신경이 아니었던들, 공장지대로 들어가는 큰 문에 들이받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자동차 공장지대로 들어가는 문엔 대표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중들 앞에 서기 전에 자기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해 테이트는 좀 떨어진 거리에다 차 를 세웠다. 끝까지 싸워보고 싶었다. 자신의 부부관계조차도 제대로 해결 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공장노동 자들의 문제들을 해결할 약속ㄸ위를 할 마음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동물적인 배설욕구 만 채워줄 수 있는 여자, 그런 여자가 바로 자기 아내인 것이다, 개운치가 않았, 아무래도 씁쓸 하기만 했다. "윗옷 다시 입지." 있는 대로 풀어헤친 넥타이와 걷어부친 셔츠소매를 바로하며 테이트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도 그럴 작정이예요." 말을 받는 애버리 역시 곱지만은 않았다. "뭐야, 그게? 젖꼭지가 블라우스 밖으로 드러나 보이잖아? 무슨 점잖치 못한 생각을 했길래 또 그래?" "당신하고 같이 지옥에 떨어지는 생각을 했어요, 왜요?......" 차 문을 열고 나가며 그 여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테이트는 그런 아내를 인정해야만 했다. 멋지게 한방먹인 아내는 밖으로 여유있게 걸어나가 그 들을 마중하러 나와있는 공장 경영주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에디와 잭은 한참 지나 공장문에서 노동자들이 꾸역꾸역 나올 때쯤에야 도착했다. 두 사람은 주 차장 쪽에서부터 사람들을 모으며 오고 있었다. 테이트는 손이 닿는 누구하고나 악수를 했다. 저만큼 떨어져서, 자신만큼이나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캐롤을 얼핏 보았다. 그 여자는 누군가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에디가 말한 대로 그 여자는 군중속에서 버텨나가고 있었 다. 그 여자의 검은 머리결은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여자의 흠없는 얼굴은 거리감을 주지 않았고,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까지도 사로 잡았다. 그런 캐롤에게서 테이트는 흠잡을 만한 구석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 다. 그 여자는 기름때 묻은 손도 마다하지 않고, 친전하게 악수를 나눴다. 거친 군중들과 , 참을 수 없을 만큼 찌는 더위 속에서도, 그 여자의 웃음은 시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엔가 머리를 얻 어맞고 그가 쓰러졌을 때, 그에게 달려간 첫번째 사람도 바로 그 여자였다. 29 애버리는 테이트각 갑자기 뒤통수를 강타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반사적으로 그는 손을 이마로 치켜들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안돼!" 그들은 겨우 몇 야드 정도의 거리에 있었지만 군중이 밀집되어 있어서, 좀체로 앞으로 나가기 가 힘들었다. 테이트 옆에 가까이 온 애버리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를 싸안았다. 그여자 의 스타킹은 찢어져 무릎이 나와있었다. "테이트! 테이트!" 그의 머리 옆쪽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의사를 불러와요. 누구든지! 에디! 잭! 누구든 좀 해요! 테이트가 다쳤어요!" "난 괜찮아!" 정신이 든 테이트가 일어나 앉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리면서도 의지할만한 것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애버리의 가슴이 손 에 닿자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 잡았다. 테이트가 아직 말할 수 있고 일어나 앉으려고 애쓴다는 것을 확인한 애버리는 총알이 단지 그를 스쳤을 뿐 그의 머리를 관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 했다. 그 여자가 총알이라고 생각한 건, 늘상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암살음모가 다시금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애버리는 그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받쳤다. 그의 피가, 애버리의 옷 앞섶을 따뜻하고 촉촉 하게 적셔들어 갔지만, 정작 애버리는 그런 걸 살필 계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마침내 에디가 팔꿈치로 군중을 헤치고 그들을 향해 왔다. "테이트?" "난 괜찮아..." 테이트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애버리는 천천히 그의 머리는 감쌌던 팔을 풀었 다. "손수건 좀 줘." "앰블런스를 불렀어." "이봐, 그럴 필요없어. 그냥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데..." 테이트가 주위를 ㅎ어보았다. 눈앞에 발과 다리들의 빽빽한 숲이 있었다. "저거였어!" 도로 위에 떨어져 깨진 맥주병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감히 ㅜ가 전런 걸로?...누군지 봤어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오른 애버리가 범인을 찾아낼 각오를 하고 물었다. "아니, 난 아무것도 못봤어. 손수건 좀 줘." 테이트가 되풀이 말했다. 에디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애버리가 그것을 에디에게서 빼 앗듯 낚아채서 테이트의 머리선 가까이에 피흘리고 있던 깊이 베인 상처를 눌렀다. "됐어. 이제 내가 일어날 수 있게 부축해줘." "일어나지 말아요, 테이트. 얼마나 심한지도 모르는데 괜히 일어났다가 더 안좋으면 어떡하려구 요?" 애버리가 걱정스럽게 말렸다. "괜찮다니까..." 테이트가 어설프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괜찮으니까, 일어날 수 있도록만 해줘. 어서, 이 당나귀야." "한번만 더 농담하면 목을 조를 수도 있어. 가만히 있어." "누군지 자넬 쳤어야 하는 건데." 애버리와 에디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있을 때 숨이 턱에 닿은 잭이 달려왔다. "노동자들 중 두명이 테이트의 연설을 저지하려고 한 짓이었어. 경찰이 체포했어." 주차장 한켠에서 일대 소란이 일고 있었다. '반대-러트리지'라고 쓴 피켓이 용수철이 달린 죽마 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러트리지는 빨갱이 동성연애자다!' '피흘리는 자유에 출마해? 넌 피흘리는 미친 놈이다!' '러트리지는 발정난 공산주의자다!' 이런 따위의 글귀들이 피켓들마다 씌여있었다. "가지." 에디가 말했다. "안돼." 테이트의 입술은 노기와 고통으로 굳어져 아예 하얗게 질려있었다. "난 악수하고 표를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여기에 왔어. 목표가 정해진 이상, 이렇게 포기할 수 는 없는거야. 맥주병이 아니라, 더한 거라고 난 그만 둘수 없어." 애버리가 그의 가슴을 단단히 붙잡으며 애걸했다. "경찰이 체포를 한 이상, 이젠 그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요. 제발." 이제껏 애버리는 그를 향한 마음 속 깊은 감정을 셀 수 없을만큼 짓밟혀왔다. 헌데, 지금 벌어 진 일이야 말로, 이전의 것은 아무것도 아닐만큼 심각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거야!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일이란 말야. 그런데 실제로 그 무섭고 엄청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어!...' 애버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여자는 방금 벌어진 사건 하나 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쉽게 노출 되어 있는 사람인지를 알았다. 과연 에버리가 어떤 방법으로 그에게 닥치는 위험을 막아내줄수 있다는 것일까. 만일 누군가가 그를 잔인하게 죽이고 싶었다면 그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 었을 것이다. 그가 누가 됐든지 간에, 에버리로서도 완전히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미국 상원의원에 출마한 테이트 러트리지입니다..." 고집불통인 테이트는 그에게 가까이 서있던 남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전미국 자동차 노동조합 회원은 테이트의 내민 손을 내려다 보고는 주위에 있는 그의 동료들을 의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결국, 그는 테이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11월에 당신의 귀중한 선택에 감사하게 될겁니다. 테이트 러트리지입니다." 에디도, 잭도 마다한 채 오른손으로는 악수를, 왼손으로는 피묻은 손수건을 관자놀이에 대고, 테이트는 군중 속을 뚫고 들어갔다. 애버리가 이토록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를 그토록 두려원한 적도 없었다. "나 어때 보여?" 자가용 백미러에 반사된 자기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본 테이트가 에버리애게 물은 말이었다. 그는 연설을 마치고, 나머지 두 사람이 뒷일을 다 마칠 때까지 공장지대의 주차장에 그대로 남 았었다. 그제서야 그는 에디와 그 여자가 그를 차 뒤좌석에 싣고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레지던트 외가의사가 세바늘을 꿰메고 작은 정사각형의 거즈붕대로 감싸고 있을 때, 잭이 다음 차로 병원에 뒤따라왔다. 애버리는 넬슨과 지이에게 전화하려고 응급실에서 나왔다. 그들이 사고 소식을 들으면 걱정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상했던대로, 그들은 테이트와 통화하겠다고 난리를 피워댔다. 조금 지나자, 간호사 하나가 복용할 약을 가지고 왔다. 받아든 진통제를 먹으면서도, 테이트는 여전히 상처에 대해 농담을 했다. 그들이 호텔로 돌아오자, 로비엔 일단의 기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떼를 지어서 앞으로 몰려왔다. "저들이 자네 옷에 묻은 피를 찍으려 들거야. 내 말이 틀리는지 보라구. 기자들이란 워낙 그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지." 에디가 입을 삐죽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에디에게 에버리는 화가 났다. 기자들 전체에 대한 모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너무 성이나서 말대꾸도 할 수 없었다. 거리다 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들은 몰려든는 기자들 틈사이를 비집고 엘리베이터에까지 가야했다. 아니크와 카메라들과 싸우듯이 앞으로 헤쳐나갔다. 그들의 방문 앞에 이르러서 그 여자는 안으로 따라 들어오려는 잭과 에디를 막아섰다. "테이트는 안정을 취해야만 해요. 진통제가 효과를내도록 말예요. 그러니 들어오지 말아주세요." 잭과 에디가 하는 어떤 얘기도 애버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화 교환수에게도 전화를 연결하지 마라고 하겠어요." "아직도 작성해야 할 연설문이 많아요. 캐롤, 일단 맥이라도 같이 잡아놔야..." "아주버님이 쓰시면 되잖아요." 애버리가 잭에게 말했다. "어찌됐건, 연설문이라봐야 테이트가 말하는 걸 받아적는 식이잖아요. 우리에게 했던 말들을 기 억해봐요! 그는 폭력을 혐오해요. 그래도, 병을 던진 그 사람에 대해선 책임을 불으려하지 않았어 요. 또 그는 자동차 노동조합을 욕하지 않았어요. 그 정도면 연설문 몇 개 정도는 나올 것 아니예 요? 잘 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만." "6시 30분에 자넬 데리러 오겠네." 방 저쪽으로 돌아서며 듣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말한 에디가 어깨너머로 한마디를 거 만하게 덧붙였다. "빈틈이 없군." 꾸벅꾸벅 졸던 테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려다 말고 뉴스를 봤다. 그는 옷장에 붙어있는 거울에 상처난 부분을 한참 살펴보더니 손을 양쪽 옆구리에서 떼면서 그 여자를 마주보고 물어왔다. "너무 흉해보이나?" 에버리는 고개를 들며 사려깊게 대답했다. "멋진데요, 뭘." 그의 머리결이 상처 위를 매력적으로 덮고 있었다. "반창고가 당신의 야회복에 아주 잘 어울리는 걸요." "그래, 그럼 된거지 뭐." 그도 웃음이 나는지 피식 웃으며 반창고를 만져보았다. "빌어먹을 피의 상처니까." 애버리는 더 가까이 다가가서 걱정어린 표정을 하며 그를 잡았다. "가지 말아요, 여보..." "에디 혼자서 감당하려면 벅찰거야, 그러니 가야 해." "그냥 두세요. 다들 이해해줄 거예요. 마이클 잭슨이 위장병 때문에 공연을 취소한다면 몇천 명 의 팬들을 한꺼번에 실망시키는 거겠지만, 저녁식사 한끼 못간다 해서, 그런 만큼 큰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한사람 당 20달러씩은 지불했잖아." 그가 빈정댔다. '그가 취소를 하든 말든, 난 가야해.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그럼, 약이라도 더 먹고 가요." 테이트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약은 무슨, 거길 가면, 난 온 정신을 그 모임에 쏟아야 해. 공연히 진통제를 먹으면 머리만 더 아파질 거라고." "세상에, 어쩜 이렇게 고집장이예요, 당신은? 머리가 터지고서도 오후 내내 공장에 머물렀던 미 련스런 짓과 다를 게 뭐가 있어요?" "하지만, 저녁뉴스에 얼마나 멋지게 비쳤어, 그 장면이?" 애버리가 인상을 잔득 찌푸렸다. "에디가 똑같은 얘기군요. 당신은 상원의원이 되려고 출하만 사람이지, 당신 생각에 반대해서 악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 되자고 자청한 건 아니예요. 단지 뉴스시간에 좋게 비치는 걸 기대하는 것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모험에 걸지 말아요." "들어봐. 병을 던진 놈을 내 손으로 직접 붙잡지 않고 경찰의 손에 가만히 둔 이유도 바로 거 기에 있는 거란 말야. 상원의원이 될 사람이, 그렇게 앞뒤도 없는 사람이어서야 되겠어?" "방금 한 말,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에요."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그들의 웃음은 멎었다. 테이트의 따듯한 눈빛이 애 버리를 감쌌다.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옷, 내가 꽤 좋아하는 옷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고마워요." 애버리는 그가 일전에 칭찬했던 검정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야, 난 오늘 오후에 꼭 얼간이처럼 행동했어." "당신은 대단한 일들을 해낸 거였어요." "그건 나도 모르는 게 아니야..." 함숨을 크게 내쉬며 그가 인정했다. '당신 말이 맞는게, 난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여섯시 삼십분일세!" 에디가 문너머에서 불렀다. 말을 하다 만 테이트가 문쪽을 바라보고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 어보였다. 잔뜩 불안해진 애버리는 여행가방을 학 잡아채어 들고는 문을 향해 갔다. 애버리의 감각은 온통 끓고 있었다. 신경은 몹시 지쳐 있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전에 미드랜드 오뎃사 공항에서 본 적이 있던회색머리 남자를 사우스포크의 군중들 사이에서 다시 찾아내었을 때, 애버리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텔리비전 시리즈 '달라스'로 유명해졌던 관광목장의 집은 조명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이때 는 특별한 밤이었기 때문에 집은 열려 있었고 연회참석자들은 들어가도록 허락되었다. 실제로, 저 녁만찬은 큰 파티에 자주 이용됐던, 인접해 있는 휑뎅그렁한 헛간같은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참석자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았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장내를 꽉 채운 사람들이 테이트의 말을 듣고 싶어 성화를 바쳤다. 이 파티에 참석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그들은 200달러보다 더 많 은 대가를 치루려 했다. "오늘 일어났던 사고가 에상외로 좋은 인상을 준게 틀림없어.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일이야." 애디가 탄성을 질렀다. "모든 방송망과 지방방송들이 여섯시 뉴스시간을 우리 기사로 거의 다 꾸며주었으니 말이야." 에디가 온화한 웃음을 띠며 애버리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에게 있어서 테이트는 어떤 뉴스 이 야기나, 심지어 선거자체보다 긍게 팔짱을 꼈다. 에디의 미소는 다만 의레적인 것일 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애버리는 점점 에디를 못마땅하게만 여기게 되었다. 팬시화의 온당치 않은 행위 하나만으로도 그의 보이스카웃적 청결정신을 의심해 도 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이트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용했다. 태이트가 애버리에게 말할 기회를 줬지만, 팬시가 에디의 방에서 나오는 걸 두눈 뜨고 똑똑히 봤노라고 테이트에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 다. 애버리는 자신에 대한 테이트의 태도가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였다. 그 여자는 이런 상승세를 공연히 그가 가장 신용하는 친구와 좋지 않게 지냄으로 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애버리는 에디의 시선이나 다른 모든 위험들을 감수하려고 했다. 테이트와 함께 동굴 같은 집 에 걸어들어가면서, 아무쪼록 그에게 오늘 밤 아무 사고가 없기만을 빌었다. 상처는 그가 말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임에 틀림없는 듯했다. 그의 안면근육이 뻣뻣해지는 것만 봐도 그랬다. 열광적인 지방 지지자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애버리의 뺨에 입을 맞추고 태이트와 악 수했다. 그가 한 말에 고개를 젖히고 웃음으로 답하는 순간, 애버리는 군중들 가장자리에 서있는 큰 회색머리 남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자세히 찾아보았으나, 거의 순간적으로 그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애버리는 자기가 착각을 일 으킨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며친 전, 공항에서 봤을 때는 분명 서부식 양복과 카우보 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예복정장을 하고 있었다. 애버리는 아주 비슷하게 닮은 사람을 그 사람으로 잘못 본 게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두기로 했다. 여기 저기서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애버리의 시 선은 계속해서 그를 찾고 있었다. 가장 뒷자리의 식탁에서, 큰 연회장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살피 기는 어려웠다. 별로 특별한 순서랄 것도 없을 일반적인 저녁만찬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리저리 움 직여 다니고 있었다. 텔레비전 카메라 조명이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비추며 기사화면을 찍고 있었 다. 그 빛에 닿을 적마다, 그 여자를 어지럽도록 산란한 불빛을 의식했다. "당신, 배고프지 않아?" 데이트가 그 여자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전혀 손도 안대고 있는 애버리의 접시를 내려다 봤다. "왠지 긴장이 돼서요..." 애버리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테이트를 둘러싼 위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지쳐있었다. 그의 이마에 감싼 붕대가 계속 그 여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번이야 빈 맥주 병이었다지만, 다음 번에는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총알일게 분명했다. 그리고, 단 한발의 탄환에 도, 사랑하는 테이트에겐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테이트" 애버리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 혹시 키가 큰 회색머리의 남자를 본 적이 있어요?"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봤지, 한 오십명쯤." "그런 것 말고요. 한명이예요. 아무래도 그 사람, 낯이 익어요." "신경쓰지 말아요. 언젠가 한 번쯤 만난 사람인데, 기억이 금방나지 않는 거겠지." "말해봐, 괜찮아." 의아해하는 그에게 웃어보이려 해를 쓰면서, 애버리는 그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대고 속삭였다. "화장실에 다녀오겠어요. 괜찮겠죠?" "그렇게 해. 힘들게 참고 있는 것보다야 낫지." 테이트가 의자에서 일어서는 애버리를 도우려고 일어섰다. 그에게 괜찮다고 하고는 혼자 빠져 나왔다. 식탁 가장자리에 연결되어 있는 흔들거리는 이동식 계단을 내려갈 수 있도록 웨이터가 그 여자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조심조심 해가며 비상구로 통하는 길로 가는 동안 그 여자는 군 중 속에서 회색머리 남자를 두리번대며 찾았다. 문을 나왔을 때, 그 여자는 실망감과 안도감을 함께 느꼈다. 애버리는 그가 공항에서 봤던 그 남자이리라고 거의 확신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은 차림이나 머리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자신의 과대망상에 대한 약간의 우스움을 느끼면서, 그 여자는 스스로를 딱하게 생각하며 웃었 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애버리의 입가에 돌던 미소가 일순간 굳어버렸다. 애버리 바로 뒤에 누군 가가 다가와서는, 위협조로 속삭였던 것이다. 30 한밤중, 달라스의 도심에 상공회의소와, 독수리상 쪽에 있는 맥도날드 식당은 금붕어 어항처럼 보였다. 그곳에선 광채가 날정도로 밝은 빛이 나고 있었다. 통유리창을 통해서,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대 중앙에 서있는 연극배우들처럼 뚜렷하게 밖 에서 볼 수 있었다. 지배인이 한 우울한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술주정꾼 하나가 자다가 긴의자에서 떨어졌 다. 두 쌍의 들뜬 십대 커플이 떠들면서 케첩을 짜내고 있었다. 호텔로부터 세 불럭이나 걸어온 후 숨 돌릴 새도 없이, 애버리는 조심스럽게 식당쪽으로 걸어 갔다. 입고 있는 예복 때문에, 애버리는 바깥이나 주위의 모든 사람과 달리 눈에 띄였다. 어쨋든 이 시간에 여자가 혼자서 도심가를 걷는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거리 저쪽에서, 애버리는 응접실처럼 잘 꾸며진 상가의 쇼윈도우를 보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 자마자 하이힐이 도로에 긁혀 찰칵찰칵 소리를 낼 정도로 그 여자는 넓은 가로수길을 서둘러 가 로 질렀다. "음, 음, 아주 섹시해 보이는걸?...." 한 흑인 젊은이가 음흉하게 혀를 놀렸다. 곁에 있던 흑인의 친구 둘이 장난스레 주먹질을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길 모퉁이에서는 오렌지 색과 적포도주 색으로 반반씩 섞어 염색을 한 머리 카락의 여자가 꽉 끼는 가죽바지를 입은 남자와 열심히 무슨 얘기인지를 주고 받으며 마주 서 있 었다. 애버리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따분해 하면서 신호등 기둥에 기대어 있던 그 남자가 흘끔거리며 그 여자를 훔쳐보았다. 그러자, 마주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다보고는 자기 엉덩이에 양손을 턱 걸치고 애버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창녀! 당장 꺼지지 않으면 죽여버릴꺼야!" 벤치가 놓인 쪽을 향해 길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애버리는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을 무시했다. 맥도날드 가게 앞에 도착한 애버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반 러브조이가 초콜릿 밀크 쉐이크를 먹다가 눈을 돌려 그 여자를 보았고, 씽긋 웃었다. 그는 긴 의자의 다른 곳을 가리켰다. 화난 표정으로, 애버리는 안된다는 표현을 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검정구두 밑의 지 저분한 길가를 손가락으로 연신 가리켜보였다. 애버리으 마음을 알아챘는지, 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싫지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반 이 식당을 가로질러, 문을 나오고, 모퉁이를 돌아 애버리가 서 있는 곳까지 오는 동안, 그 여자는 마음 속으로 안달을 하며 기다렸다. 반이 그 여자 앞에 서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지레 부아를 받 쳐대고 있었다. "대세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애버리가 물었다. 짐짓,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은 두 손 을 가슴에 모아 팔짱을 꼇다. "뭘?" "내가 뭣 때문에 이런 곳에서 당신을 만나야 하는 거죠?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러면, 네가 다른 여자의 남편과 함께 쓰는 그 방에 찾아가는 게 더 나았을까, 애버리?" 그 한마디에, 애버리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아이리쉬가 얘기를 했구나!...'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애버리의 뇌가 몸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결국, 아이리쉬가 말을 했건, 안했건 하는 문제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였다. 기왕 반이 사정을 알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이런 장소에서 길게 얘기를 끌고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반도 알고 그 여 자도 알고 있는 상황의 전제하에 필요한 얘기를 나누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반이 그의 특유의 제스처를 쓰며 담베에 불을 붙였다. 두 모금을 빤 다음 그는 그것을 애버리에게 권했다. 그 여자는 그의 손을 밀었다. "오늘 밤 아저씨가 이렇게 한 일이, 나를 얼마나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건지, 반 아저씨는 아마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반이 무표정하게 큰 창유리를 몸을 기댔다. "나도 모르지는 않아." "반!...." 두통 때문에 애버리가 머리를 감싸쥐고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더욱이 이런 곳에서는." 길 모퉁이에서는 아까의 그 여자가, 가죽바지의 남자가 주머니 칼로 그의 손톱을 다듬을 동안 혼자서 주절주절 음탕한 말을 던지고 있었다. "난 연회장에서 몰래 빠져 나온 거예요. 테이트가 이 사실을 알면 그야말로 끝장이예요." "애버리가 자기 아내가 아니라는 걸 테이트도 알고는 있어?" "아뇨, 알았다면 난리가 났어도 벌서 났겠죠. 그는 알아선 안돼요."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하려면 길다니까요?" "난 시간 제한이 없어." "전 있어요." 애버리가 그의 가슴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나즈막하게 말했다. "반, 이 사실.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알겠죠?"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니까요" "그래? 그런데, 내보기엔 러트러지가 그 사실을 알면, 널 죽일만큼 화를 낼 것 같던데? 정작 몸 을 사려야 할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니라 애버리 바로 너야." "반, 난 지금 테이트의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장난이 아네예요. 난 확신해요. 목숨 걸 일들이 너무 많아요.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 가서 모든 얘기를 다 해줄께요. 그렇지 만 지금으 그럴 수가 없어요." "이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추리놀음이 아니야, 애버리. 이건 활실한 과실이라구.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던거지?" "병원에 있을 때부터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캐롤 러트러지로 뒤바뀌어버린 거예요. 제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제 얼굴은 바뀌어버렸어요." "그렇다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 사실을 털어놓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왜 말을 하지 않았지?" 애버리는 정신이 없었다. 그에게 뭐라 설명을 해야할지, 짧게 설명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 다. "난 이미 말을 다 했어요! 아이리쉬 아저씨가 그건 말 안하던가요?" 마리화나 연기에 숨이 막혀서 목쉰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 제길헐 쫌생이 같으니! 말조심을 하더라도 사람은 가려가면서 해야지...그가 알고 있단 말이 지?" "아이이쉬에게서 들은 게 아니었어요?" 애버리는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 까?" "얼마 전까지는 아이리쉬도 몰랐어요. 제가 찾아가서 얘기를 하고서야 알게 되었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이리쉬가 날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영문조 모르고 이제껏 그가 왜 특별히 러트리지에게 유리하게 방송편성을 하는 건지 궁금해 하기만 했었지. 네가 아이리쉬를 찾아갔던 것도 얼마간은 내가 가까이 접근하는 걸 견제하기 위해서였지? 괜히 비밀이 새어나가게 될까봐 서." "그걸 아신다면 너무 언짢게는 생각지 마세요. 그리고, 저 역시 아이리쉬가 이런 세부적인 일을 당신에게 맡길 줄은 짐직도 못했어요.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당신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기절 할 뻔 했어요. 그날 목장에서 내가 문을 열어주고 현관에 당신이 서 있는 걸 보고 말예요. 당신이 날 처음 알아 볼 때가 그때였나요?" "네가 병원에서 퇴원해 나오던 날, 네 모습을 찍으면서 나도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 널 쏙 빼닮아 있었으니 말이다. 입술을 축이는거나 움직일 때, 머리를 돌리는 태까지도 애버리의 모습과 너무고 똑같았지. 나중에 무섭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 목장에 다녀온 다음날로, 난 거의 확신을 하게 됐다. 결국 오늘밤, 내가 추측해온던 게 눈으로 확인이 됐어....이 젠, 네 혼자 가지고 있던 비밀은 더 이상 네 혼자만의 비밀이 아닌게 되어버렸구나." "아, 하느님!..." "왜그래, 애버리?" 반의 어깨너머로, 애버리는 경찰이 그들에게 접근해오는 것을 보았다. "좋아, 무슨 얘기인데, 형?" 테이트가 잭에게 성급하게 물었다. 잭은 호텔방 벽 쪽에 붙어서서, 예복 웃옷을 벗고 있었다. "뭐라도 좀 마시겠어요?" "아니, 난 괜찮아." 그들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잭이 테이트의 팔을 잡고는, 따로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고 속삭였다. "무슨 얘긴데 꼭 지금 해야 해요?" "지금 해야 돼" 테이트는 적어도 오늘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싶 은 유일한 사람은, 사우스포그에 도착한 이후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그의 아내였다. 저녁식사 후에, 캐롤은 회색머리의 남자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어디고 가던 간에, 그림자처럼 나타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사람에 대해서, 과거에 캐롤과 그가 어떤 사이였던 간에 그 여자가 식탁 앞머리로 창백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을 보면, 그는 즐림없이 그 여 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 저녁의 기억들에 대해 고양이처럼 신경질적이었다. 신경질적으 로 아랫입술을 깨무는 그 여자를 테이트는 몇번이나 보았다. 그런 캐롤이 웃음이라고 웃을라치면 얼굴표정이 엉망으로, 묘하게 이지러지는 것이었다. 테이트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망연히 웃어 대 는 캐롤을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캐롤과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잭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그 여자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형이 잠깐 날 좀 보자는군." 애버리는 잭에게 '5분 이상은 안된다'는 뜻으로 의미있는 눈짓을 보냈다. "야, 지금요?" 그렇게 말한 애버리가 짐짓 딴청을 부렸다. "그러세요. 호텔문구센터에 들러야하는 걸 깜빡 잊었네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조금 후에 방으로 올라 갈께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여자가 급하게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는 잭과 에디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에디는 밤인사를 하고 두 사람을 남겨둔 채 자기 방으로 갔다. 테이트는 잭이 야회복 속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는 걸 지켜보았다. 거기 엔 손으로 쓴 테이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테이트가 집게 손가락을 집아넣어 윗부분을 찢어냈다. 내용을 두 번 정도 읽은 후에, 그는 눈썹을 위로 치켜올리며 잭을 건너다보았다. "이거, 누가 전해달라고 한 거야?" 잭이 버릇대로 자기 전에 마시는 술인 브랜디병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오늘 오찬 연설장에서 네 가까이 있던 사람들 중에 그러리라고 여겨지는 여자가 없었니? 기억 해 봐. 우울해한다거나, 널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자라거나 하는..." 테이트가 턱을 술병 쪽으로 가져가며 손을 모아받쳤다.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아, 형." 잭이 테이트에게 한 잔 따라주었다. 술을 마시며 테이트는 편지를 길게 펼쳐 다시 읽어내려갔 다. "왜 내게 직접 건네주지 않고, 형 속주머니에 몰래 넣어둔걸까?" 테이트가 물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겠지." "이유?' "편지에 씌여진 뻔뻔스런 말들을 다시 읽으며 테이트가 차갑게 웃었다. 그런 동생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웃음을 흘리며 잭이 물었다. "그 내용이 뭘 말하고 있는 건지 내가 알아맞혀볼까?" "이겼다라니, 이게 무슨 뜻이냔 말야." "그러게, 내가 알아맞혀본다니까." "관둬." "누군지, 그 여자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또 모르잖아? 네게 실질 적인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내가 결혼한 사람이란 걸 잊었어, 형은?" "아니, 난 네 결혼이 지금 당장에 끝장날만하다고 말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진 않았어. 하기는, 네가 결혼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한다는 걸 아니까, 이런 일로 네 마음이 흔들리리란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 그 여자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겠지?" "말해 뭣하겠어? 나 받아들일 수 없어."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부러 방어하는 태도를 내보이자는 말아라. 내가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난 네 심정을 알아. 그러니, 이 여자의 제안을 완전히 버릴 생각은 말란 얘기다. 이용을 하면 되 는 것 아니야? 게다가, 내 보기엔 캐롤과 너와의 관계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구나." 잭이 한쪽 눈 꺼플을 찡긋 했다. "형이 뭐라고 말하든, 난 변하지 않아. 우리 둘 사이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뭔지도 알고 있 고." "네 경험 하나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게냐?" 잭이 머리를 낮추어 잔의 중심부에 눈을 집중시키며 물었다. 테이트가 관자놀이에 꿰멘 상처를 더듬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미안해, 형. 이 얘긴 없었던 걸로 해두자구." "그래, 미안하구나, 괜한 얘기를 꺼내서." "형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가 그걸 알아. 기운내요, 형. 사실은 나도 벅차다는 생 각, 많이 하고 있어. 특히 요즘 들어서..." "테이트,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네가 정식으로 의원 일을 시작하고 나면 이런 일은 아예 일 상적인 게 될 정도로 많이 생기게 될거야. 의연하게 극복을 해내야 해." 테이트가 화장대 의자에 털썩 내려앉았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잭은 말없이 발 밑의 카펫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작은 소리로 쿡쿡 웃기 시작하더니 멈 추지 않고 계속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왜 그래, 형?" 테이트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리 오래는 아니고, 얼마 전에 에디가 우리 셋이 스트레스를 풀만한 여자를 찾아보자는 말을 하더구나. 그 말이 생각나서 말야..." 잭이 비뜰어지게 웃었다. "그땐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요즘 곰곰 생각해보면 그때 에디의 말대로 그래보느 거였는 데, 하는 생각이 들어. 너만 해도 그래보여. 꽉 짜여진 일정에 정신 못차리고 다니는 걸 보면, 육 체적으로도 굉장히 긴장하고 있구나 싶거든. 한 번쯤 그래보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 각이 들기는 했지만, 네가 좋다고 할 것 같지도 않아서 말도 못꺼냈지. 너도 좋다고 했다면, 그렇 게 해보고도 싶었는데 말야...." "그랬겠지....하지만, 난 사양하겠어." 테이트가 문으로 걸어가며 역양없이 대답했다. "술 고마웠어, 형." 문고리를 잡은 채로 다시 생각난 듯 테이트가 물었다. "요즘엔 형수하고 얘기는 좀 하고 살어?" "술마시는 얘기?" "별수 없는 사람들이로군...." 유감스러운 듯 테이트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런 걱정을 말아. 그래도, 오늘은 ㄷ로시 레이와 이런저런 얘기까지 했는걸? 뭐, 불편함 없이 잘 지낸다더구나. 팬시 모르게 뭘가 좋은 일을 꾸미고 있다는데, 그게 뭘지 말은 않더라만." "잘자요, 형." 방문을 나서는 형에게 테이트가 작별인사를 했다. "아, 테이트?" 그가 돌아섰다. "아니다. 흥미조차 못느껴하는 네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니..." 테이트는 그의 손에 아직 펼쳐진 채 들려있는 편지를 넘겨다 보았다. 잭이 어깨를 으쓱했다. "읽어보니 꽤나 네게 빠져있는 것 같던데." "잭에게서 편지를 빼앗은 테이트는 그걸 둘둘 말아서 다시 잭에게 돌려줬다. 받아든 잭이 맥없 이 웃어보이더니 되돌아 나갔다. 테이트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켓, 멕타이, 그리고 허리띠를 풀었다. "5분이 넘었는데?...왜 안돌아오는 걸까?..." 그 여자는 그곳에 없었다. 경찰이 걸어오고 있는 걸 본 애버리는 고개를 돌려 딴청을 부렸다. 애버리의 옷에 달린 쇠붙이 장식이 식당 불빛을 받아 어두운 길에 있는데도 금처럼 빛나보였다. "천만 다행이었어요. 담배를 용케도 겄군요. 그런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애버리가 반에게 말했다. "그만 잊어버려, 애버리." 변변치 못하게 웃으면서, 반이 말을 가로 막았다. 그는 타다 만 마리화나 담배의 끝을 잘라내고, 그의 셔츠 주머니에 다시 집어 넣었다. 경찰이 저쪽 구석에서 사람들을 검문하느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애버리는 골목으로 접 어드는 길로 가자고 눈짓으로 반에게 신호했다. 그 길로 가면 호텔 쪽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반은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그 여자의 옆을 걷고 있었다. "반, 정말 아무에게도 내 정체를 폭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세요. 다음 주 중으로 우린 집 으로 돌아갈 계획이예요. 그때까지 다시 만날 약속을 해드리죠. 아이리쉬도 내가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턱 궁금해 할 거예요. 겸사겸사 해서 같이 만날 자리를 만들어볼께요. 못다한 얘기는 그때 다 하기로 하고요." "데커가 이 정보에 대해 돈 지불할거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애버리가 발길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 여자는 반의 팔을 거칠게 거머쥐었다. "안돼요! 반, 제발, 오, 하느님! 그럴순 없어요." 그는 그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갔다. 한참을 걸어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다시 만나, 애버리." 이미 호텔까지 와 있었지만, 길을 건어야 했다. 그 여자는 그에게 총총걸음으로 좇아가서 그를 뒤로 돌리려고 그의 팔을 다시 잡았다.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반, 친구로서 빌께요." "난 친구하곤 없는 사람이야." "제발, 내가 나중에 설명을 한다잖아요. 그러니 다음 번 만날때까지,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는 다시 팔을 뺐다. "생각해보지. 그렇지만 한가지라도 빼놓으면 안돼. 안그러면 그에 응당하는 돈으로 해결하든지." 애버리는 반이 길가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세상일에 아무 관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그 여자의 일엔 굴을 파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곤봉으로 얻어 맞은 듯한 기분으로 그 여자는 호텔을 향해 길을 건넜다. 맞은편 모퉁이로 다가 간 순간, 그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테이트가 호텔 현관 앞에 서서 그 여자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었다. 31 그의 표정은 무시무시했다. 머뭇거리면서 몇걸음 걷고는, 애버리는 만사가 다 틀렸다는 것은 알 지만 자백은 하지 않으려는 범죄자처럼 그에게 기죽지 않고 나아갔다. "저기 계시네요, 러트리지 씨." 호탤 직원이 밝게 말했다. "제가 금방 돌아오실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직원을 의식해서인지 테이트는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했잖아, 캐롤." 그의 손가락이 바단뱀같이 애버리의 어깨를 감쌌다.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그는 어깨에 걸친 팔 을 풀리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 서 있는 동안,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이트의 노기는 점점 불꽃이 튀었다. 방문을 연 테이트는 애버리를 먼저 들어가게 했다. 안전자물쇠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자, 맑 은 금속성의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아무도 등을 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ㄹ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조명이라고는 단지, 침대 옆 스텐드의 약한 불빛 뿐이었다. "도대체 당신, 어딜 돌아다니다 오는 거야?!" 테이트가 앞뒤 없이 물었다. "저쪽 모퉁이의 맥도날드 식당이요. 저녁을 굶은 바람에 허기가 져서....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당신이 아주머님과 함께 있을 동안 요기나 하려고...." "그 작자는 누구야?" 입을 열기 전에 애버리는 잠시 둘러댈 생각을 해보았다. 반과 함께 있는 걸 똑똑히 보았지만, 어두워서였는지 그를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할까하고 생 각을 했다. 그가 다시 물어왔다. "그 사람 장사꾼이었나?"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애버리가 턱을 들었다. "마약 장사꾼이었소?" "....." "나도 당신과 팬시가 가끔 마리화나를 피운다는 걸 알고 있었어. 오늘은 그 정도였기에망정이 지. 상원의원 후보의 아내가 거리에서 낯모르는 마약밀매꾼에게 마리화나를 산다는 게 말이나 돼? 천만다행으로 그가 비밀로 한다면야 모르지만." "그건 반 러브조이였어요!" 애버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렸다. 분명히 그 이름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잘 모르겠 다는 눈빛으로 그 여자를 쳐다 보았다. "KTEX의 카메라맨이요. 당신의 텔레비전 광고용 비디오를 찍은 사람 말예요. 기억도 안나나보 죠?" 애버리는 그를 밀어 제치고 화장대로 갔다. 그리고는 값비싼 보석들을 조심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 뜨리며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 사람하고 뭘 했는데?" "걸었어요." 거울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애버리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희미한 불빛속에서 그는 어둡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그 여자는 겁먹기 싫었다. "맥도날드 식당에 그가 있는 걸 보고 뛰어갔어요. 기자들이 홀리데이 인에 있다며 조심하라더 군요. 난 그사람 말을 믿었어요." 거짓말이 점점 더 쉬어졌다. 자연스럽게, 애버리는 그와 있었던 얘기를 둘러대기 시작했다. "어쨋든, 그는 내가 혼자 걸어온다니까 투덜댔고, 호텔로 함께 돌아오자고 고집을 부렸어요." "멋진 친구로군.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 밤중에 혼자서 나간건 왜 그런거요?" "배가 고팠다고 말했잖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그 여자가 대답했다. "룸 서비스는 뭐에다 쓰려고 안불렀어?" "바람도 쐬고 싶었어요." "창문을 열면 되잖아." "내 참 기가 막혀서! 내가 나간 건 그렇다 치고, 그 동안 당신은 대관절 뭘 하고 있었죠? 아주 버님하고 같이 있었잖아요? 에디나 잭이나 다 똑같은 사람들이예요. 자기가 할 말이 있으면 시간 을 가리지 않고 남의 방에 들이닥치는 사람들이죠. 그래놓고 나중에 뒤에서 궁시렁거리기나 하면 서." "그 얘기는 또 왜 꺼내는 거야? 내가 묻는 건, 형이나 에디가 아냐. 난 당신이 뭘 했는지 묻는 거라고." "나에 대해 뭘요?" "오늘 밤 내내, 당신은 짜증투성이었어!" "그렇지 않았어요." 애버리가 그를 지나쳐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았다. 테이트가 그 여자의 길을 막고 그 여자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뭔가가 잘못됐어. 느낌안으로도 그걸 알 수 있어. 당신, 요즘 뭘 하고 있는 거지? 공연히 내가 먼저 날게 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솔직히 털어놓은 게 나을 거야" "왜 당신은 항상 날 사고뭉치, 폭탄덩어리로만 생각을 하려드는 거예요?" "남 탓하지 마. 당신, 들어와서 지금껏 내 눈을 한 번도 보지 않았어. 왜 날 보기를 꺼려하는 거지? 당신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할 밖에." "그래요. 난 당신을 피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걱정하듯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 마음이 편치 못해서기 때문이라구요." "늘 그래왔지. 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당신 감정대로였어, 캐롤. 바로 그게 당신이 살아가는 방 식이야." "날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애버리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어떻게 부르지 말라구?" "아무것도 아니예요." 애버리는 그에게 자신을 캐롤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금방 자기 가 말한 것을 후회했다. "날 거짓말장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이예요." 그 여자가 말을 고쳤다. 그리고 도전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듣기 전에 다 말해주죠. 반러브조이는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었어요. 심지어 그걸 나한테 권하기까지 했죠. 난 거절했어요. 자, 이제 검열에 통과했나요, 상 원의원 나리?" 테이트는 극히 신경질적으로 발밑의 공을 앞위로 흔들었다. "다시는 혼자서 나다니지 말아." "날 좁은 틀에 가둬둘 생각은 말아요!" "난 당신이 뭘하든 신경씨지 않아. 염병할!" 그 여자의 어깨를 더 세게 잡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다만 당신이 혼자 돌아다닌다는 건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지." "혼자?" 거칠고, 기분 나쁜 목소리로 그 여자가 대답했다. "그래, 우린 따로 있어선 안되는 거야." "지금도 따로 떨어져 있잖아요." 동시에 그들은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섰다. 두 사람 다, 상대 방만큼이나 흥분한 채로 숨을 쉬 었다. 그들의 피는 더워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체온은 높아졌다. 애버리는 신경이 비가 내려 미끄 러운 길 위에 꿈틀대는 뜨거운 전선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양팔이 그 여자를 감아 등 뒤를 안았고, 급히 끌어 안았다. 애버리는 욕망으로 몸이 더워졌다. 그리고나서 한몸이 되어 움직이며, 그들의 입술은 함께 뜨거운 키스를 시작했다. 애버리는 양팔을 펴서, 그의 목을 감았다. 자극을 유발하도록 그의 몸쪽으로 자기의 몸을 휘었다. 그는 두손을 그 여자의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 거칠게 그 여자를 들어올려 그의 몸쪽으로 세게 안았다. 그들의 숨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들의 잠옷이 떨리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들은 입을 마주 대고 비틀었고, 그들의 혀는 탐욕스럽게 움직였다. 그 여자를 자기 몸에 붙여둔 채, 손을 자 유로 움직일 생각으로 그는 그 여자를 벽쪽으로 몰아 걸었다. 그는 손으로 그 여자의 머리를 와 락 감쌌다. 그리고 갈망하는 듯한 키스를 퍼부었다. 키스는 육감적이었다. 처음으로 키스했던 남자의 불타는 듯한 혀의 느낌만큼이나 애버리에게 흥분을 주는 것이었다. 많은 열기와 기대를 담은 것이었다. 그 여자는 그의 주름잡힌 셔츠의 장식용 단추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 카펫 위 에 소리없이 떨어졌다. 그의 셔츠를 넓게 벌리고, 앞 가슴을 벗겼다. 그 여자의 입이 그의 가슴을 찾았다. 그는 쾌감으로 신음하며 그 여자의 후크를 풀려고 그 여자의 뒤로 돌아갔다. 더듬는 손가 락에 후크가 힘없이 풀렸다 애버리의 블라우스가 찢어졌다. 목걸이 구슬이 흩어졌다. 금속장식들 이 떨어져 나갔다. 두 사람 다 그런 것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의 어께에서 옷을 벗겨냈고, 그 여자의 위쪽 가슴에 뜨거운 키스를 하고 나서 그 여자의 어깨끈이 없는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려했다.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리자 애버리는 당황했다. 캐롤과의 차이를 그가 알지도 모 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의 눈이 아니라 입이 그의 감지기관이었다. 혀로 끝을 더듬고 입으로 당기면서 그는 그 여자의 앞가슴에 키스했다. 그는 그 여자를 원했다. 애버리도 간절히 그를 원했다. 그 여자는 충분히 그를 반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여자는 단추들을 풀지도 않고 그의 옷을 힘껏 당겼다. 그는 셔츠에서 팔이 완전 히 빠져나올 때까지 팔을 세게 흔들었다. 그리고나서 그 여자 아래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의 두 손이 애버리의 가랑이를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팬티를 움겨진 채 밑으로 내렸다 그 여자는 거친 흐느끼는 듯한, 바라는 듯한 소리를 내며 숨을 헐떡였다. "당신은 내 아내야." 그가 그 여자의 몸에서 떨어져나왔다. 몇 초 사이로, 그는 신발과 양복을 벗고, 카펫 위의 옷 쌓아둔 곳 위에 바지를 벗어 놓았다. 애버리도 옷을 벗고 침대로 올라갔다. 그 여자는 초콜릿 박하 사탕을 베개에서 치우고 이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테이트가 다 가왔다. 그가 뜨겁고, 털많은 그의 나체로 그여자를 끌어 당길 때 그여자는 자진해서 따라갔다. 그들의 입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그의 남성은 탄탄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유 두를 비비며 반대쪽을 빨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는 그 여자를 공격 했다. 그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애버리는 짧은 숨을 토해내며 경련을 일으켰다. 애버리의 몸은 갑자기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탔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그렇게 되어갔다. 그의 힘이 약해졌다. 반대로 그 여자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테이트의 반전에 놀랐 다. 그것은 공격적이었지만 달콤했고, 부담스럽지 않고 열망하는 듯했다. 완전히 정복된 채 그 여 자의 등과 목이 휘었다. 그는 더 멀리 왔고, 더 깊게 만졌고, 그 여자가 가능하리라 생각했건 것 보다 더 높이 도달했다. 그 여자 위에서, 그는 절정을 억누르려고, 쾌감을 지속하려고 바짝 긴장을 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스스로 너무 과한 금욕 속에 갇혀 있던 그의 몸에, 그것은 너무 무리였다. 시작되는가 싶더니 이내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벤 배개 위에 놓인 그의 손목시계 초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그 여자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를 만잔다는 것조차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여자는 그대로 누워서 그의 숨소리가 평상시대로 돌아오는 것을 들었다. 그의 가슴이 위아 래로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곤 그는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끝이 났다. 결국 그와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그 여자는 몸을 굴려 자기 자리로 갔다. 그 여자는 베개에 빰 을 파묻고 무릎을 가슴가지 끌어올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몇분이 흘렀다. 그 여자의 허리로 그의 손이 파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은 그 여자의 허리 곡선에 와 서 멈추더니, 힘을 줘서 그 여자의 몸을 돌려놓았다. 그를 바라보는 그 여자의 눈은 불안으로 커 졌다. "난 참도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속삭였다. 그는 굵은 손마디를 그 여자의 뺨으로 가져갔고, 그 다음엔 그 여자의 입술에 댔다. 그의 짧게 깎은 수염자리가 그 여자의 입술을 문질렀다. 그의 부드러운 애무를, 그 여자는 감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 여자의 입술을 열려있었지만, 장작 마음 속에 무엇을 느끼는지는 소리내서 말할 수가 없었 다. 데이트는 고개를 굽혀 그 여자에게 브드럽게 키스했다. 잠깐 멈췄다가 또 다시 부드럽게 키스 했다. 그 여자는 그의 양 뺨이 아주 뜨겁다고 느꼈다. 본능과 저항할 수 없는 욕구에 따라 움직이 다가, 그 여자는 그의 반창고를 건드렸다. 애정어린 손으로 그 여자는 그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 락으로 빗어 주었다. 그 여자는 그의 턱에 갈라진 부분을 손톱으로 따라 그었다. 그 여자는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그 여자의 입술 위에 오래 머물렀다. 그의 혀가 그 여자의 입술 사이를 탐했다. 그 여자는 작고, 끊어질 듯한 소리를 냈다. 그가 온몸이 붙어버릴 정도로 밀착해왔다. 그 여자의 가 슴에서 입, 목, 양 어깨로 쉬지 않고 입술이 오갔다. 그는 그 여자의 가슴, 물결치듯 움직이는 배, 골반 뼈 사이의 민감한 부분들에 키스했다. 애버리는 자신의 피부에 닿는 그의 입의 느낌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꽉 쥐었다. 그 여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여자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그 여 자의 온 몸에 작은 떨림이 퍼져 나갔다. 반사적으로 그 여자는 무릎을 세웠다. "이젠 다시 살아났어." 놀라움으로 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테이트 자신도 자기가 다시 그 여자를 찾게 도리라고 는 기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지금처럼 격렬하게 그 여자를 필요로 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의 도취는,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좀전보다 훨씬 나았다. 그 여자 안으로 들어갔을 때 드는 그 여자의 목에 얼굴을 대고 그의 이 사이로 그 여자의 살갗을 부드럽게 물었다. 애버리의 몸은 곧 반응했다. 그 여자의 안쪽 근육은 좁아졌고, 그를 꽉 죄었다. 낮은 소리를 내면서, 그는 아무 생각없이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그 여자는 그를 꽉 잡았다. 각 각의 리듬있는 어울림이, 그 여자를 어두운 터널 끝의 희미한 불빛쪽으로 더 가까이 몰고가는 듯 했다. 그 여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여자는 더 단단하게 그리고 더 빨리 달렸다. 빛이 그 여 자 주위에 밝게 작렬했고, 그 여자는 수축했다. 테이트는 길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온몸 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는 기운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왔고 왔고 또 왔다. 뜨겁고도 사납게. 그 여자의 몸에서 몸을 떼면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 등을 보이고 땀이 난 어깨에 시트를 끌어올리면서 그는 몸을 돌렸다. 애버리는 울음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반대쪽 벽을 향해 돌아누워 있었다. 육체적으 로, 그 여자가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들로부터도 몇번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상의 사랑이었다. 슬프 게도 몇번에 불과했다. 그들과의 관계는 대개 시한이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대부분 을 자신으 출세에 대한 추구로서 만족해왔었다. 이번에 명백히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여자가 상대 방에게 느끼는 사랑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테이트에게 있어선 그것은 생물학적인 방출의 처음과 끝일 뿐이었다. 사랑이나 또는 애정이 아닌 분노의 변형이었다. 그 여자에게 절정을 느끼 게 해준 것도 책임을 충분히 다하기 위함이었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희 역시 기술적으로는 대단했지만 생각해보면 아내에게 표현할 수 있는 애정어린 것이 아닌, 거리의 여자에게나 어울렸을 추잡한 것이었다. 그 여자가 온 몸으로 그를 받아준 것에 반해, 그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이야기도 속삭여주지 않았다. 아무런 사랑의 맹세도 오가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아니, 아직까지도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이 었다. 32 "테이트. 잠깐 시간 좀 내줘요." 목장집의 큰 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애기를 막으며 애버리가 닫혀진 문에 대고 그를 불렀 다. 그 여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 말하는데 열중해 있던 잭이 손짓을 해가며 말하던 팔 을 그대로 멈추고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귀찮다는 표정을 하며 테이트가 물었다. 에디는 신경질이 나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잭은 숨소리 같은 작은 소리로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넬슨은 표정을 보아하니 불쾌해하는 얼굴이인데 애써 감정을 감추려는 게 역력했다.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게냐? 맨디 때문에 그러니 ? "아뇨. 아버님 , 맨디는 유아원에 갔어요." "네 어머니한테 가보지 그랬니? 어머니가 도와줄 수없는 문제냐?" "그렇지는 않아요............... 아범과 단둘이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지금 한창 애기가 진행되고 있었어, 캐롤 , 나중에 하면 안되겠어?"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중요한 일이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면 , 말씀 나누시는데 이렇게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 우리 애기가 다 끝 낼때까지 기다리든지, 당신 혼자서 처리하든지 하는 게 좋겠어." 애버리는 자신의 뺨이 분노로 더워오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에 빈에 돌아온 이후로, 그는 항상 그 여자를 피하기만 했다. 애버리가 자는 노란침대로 그가 돌아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닥 놀 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 그 여자는 마음 속으로 적잖이 실망했다. 그는 옆방인 서재에서 혼자 잤다. 몸으로 하는 사랑이 두 사람의 간격을 더이상 좁혀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머쑥한 관계로 만들어버린 꼴이 된 것만 같았다. 아침엔 , 그들은 거의 눈을 맞추지 않았다. 자연 .대화도 적어졌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양쪽 모두 서로를 원치 않는 거처럼 분위기가 날로 머쑥해졌고 , 할수 없이 애버리는 테이트가 원하는 대로 따랐다. 그 넓은 침대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척 했지만, 태연하려고 하면 할수록 테이트는 신경질적이 되었다. 애버 리가 그런 테이트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텔종 업원이 짐을 갖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지난 밤에 우린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어." 다라스의 지평선을 응시한 채로 그는 낮고 ,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어요." 표면적으로만 그가 태연한 척하고 있는다는 것을 찔러줄 요량으로 ,애버리가 일부러 비꼬는 듯 이 응수했다. 예상대로, 그가 발끈하며 돌아섰다. "나도 알아 , 그랫다면 당신이 병원에 있으면서 각종 검사를 했을 때 왜 안나타났겠어." "그럼 당신은 왜 나와 잠자리를 같이 했죠? 내가 병에 걸려있지 않아서인가요?" "내가 알고 싶은 건 !" 발끈 화를 낸 그가 주위를 의식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이 임신할까하는 염려에서야." 무뚝뚝하게 그 여자는 머리를 저었다. "가임기가 아니예요, 요즘은 , 그럴 염려는 없으니 괜한 걱정말라구요." 적어도 테이트에게 있어선 그 기간이 실제로 아이에 대한 염려를 하지않아도 된다는 안심으로 일단락되는 것이었지만, 애버리가 받아들이기엔 그 반대였다. 그렇게 , 그들의 잠자리에 대한 대 화는 묵살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여자는 돈만 받고 하루밤 지내게 된 매춘부가 된 기분이 었다. 어떤 여성의 몸이라도 그에게는 필요했을테니까. 당분간, 그는 만족했다. 그리고 만족한 정 도만큼, 앞으로 얼마간은 아내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렇게 마음대로 취급되 는 것에 화가났다. 한번 쓰고 실제로 잘하면 두번정도나 될가 . 그리고 나면 또 버려지는 거였다. 그건 아무래도 일상에 대한 캐롤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인 것같았다. 애버리는 테이트가 상원 의원이 되겠다는 머리속의 생각들을 , 섹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쉽게 내던져 버리진 않 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아내와의 성적관계에 쓸 시간보다는 상원의원이 될 수 있 는 일에 열중하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멀뚱히 서 있는 애버리를 곁눈질하며 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하죠." 그 여자는 큰 방의 문을 당겼다가 쾅하고 닫았다. 일분 후에 그 여자는 다른 문을 쾅하고 쳤다. 그 방은 팬시의 침실이었다. 팬시는 침대 위에 앉아 불자동차처럼 빨간색으로 자기 발톱을 칠하 고 있었다. 스텐드 등 앞의 재털이 위엔 담배가 생으로 타 들어가고 있었다. 재털이 옆에 놓아둔 음료수 켄에는 얼음 같은 응결물들이 붙어 있었다. 스테레오 헤드폰으로 두 귀를 막고 음악을 듣 고 있는 팬시가 박자에 맞춰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정신없이 록음악이 귀에서 울리고 있으 니 쾅하고 문닫히는 소리를 들었을리 없겠지만, 껌종이를 손에 들고 숙모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 는 것을 보고는 , 의아해 하면서도 불안해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팬시는 메니큐어 병에 붓을 넣고 헤드폰을 목으로 내려서 걸었다. "내 방엔 왠 일이세요?" "난 내 물건을 다시 가지러 왔어." 팬시가 채 다음 말을 하기 전에, 애버리는 장홍으로 다가갔다. 통풍용 틀을 거칠게 잡아챘다. "잠깐만요......" 팬시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헤드폰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가까이 왔다. 얼굴을 보아하니 영 곱 지가 않은 눈치였다. "이건 내꺼야." 옷걸이에서 브라우스를 훽 잡아 채면서 애버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 치마, 그리고 이것도!" 애버리가 고리에서 허리띠 하나를 꺼냈다. 옷장에서 더 찾을 것이 없어서 그 여자는 사탕 껍데 기, 껌종이, 향수병등, 가게를 차려도 될 정도로 많은 화장품들이 어수선 하게 널려있는 팬시의 옷 탁자로 갔다. 거기서 애버리는 칠기보석상자 뚜껑을 열고 귀걸이, 팔찌, 목걸이, 그리고 반지 따위가 잔뜩 들 어있는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애버리가 잃어버렸던 건 거기에 다 있었다. 휴스턴에서 잃어버렸던 은 귀걸이들과, 그리고 팔찌 와 시계를 찾았다. 생각해보면 하나 같이 비싸지도 않은 시계나 보석이었지만, 모두 테이트가 그 여자에게 사줬던 것이었다. 성의있는 선물은 아니었지만. 선거둔동을 하던 와중에서도. 그들은 자투리 시간이 나면 곧 잘 백화점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 곤했다. 애버리는 매력적인 푸른색 악어가죽 줄이 돋보이는 시계를 골랐고, 테이트가 크레디트로 선뜻 사주었던 것이었다. 캐롤이 아닌 애버리 자신에게 사준 물건이란 생각 때문에, 그 여자는 무 척이나 감사해 하며 그걸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보석상자 안에 있어야 할 시 계가 없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날 애버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테이트와 말다툼까지 벌였다. 그가 팬시의 도벽에 대해 어떻 게 대해야 할지를 충고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자는 자기 손으로 물건을 챙긴 것이었다. "넌 지독한 도벽이 있구나, 팬시." "왜 이래요? 나도 숙모 물건이 어떻게 내 방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팬시가 당돌하게 말대꾸를 했다. "이젠 거짓말까지 하려는구나." "모나가 숙모 물건을 갖다가 내 방에 놨는지도 모르잖아요?" "팬시!" 애버리가 소리쳤다. "넌 몇 달 동안이나 내 방에 몰래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갔어. 난 알아! 공연히 아니라고 잡아떼려 하지 마. 이렇게 증거가 엄연히 있는데도 아니라고 할 셈이 니?" 그때까지 뻗대던 뻗대던 팬시도 제 죄를 인정했음인지 말없이 침대위에 있는 껌종이만 내려다 보았다. "그래서요, 이젠 쪼르르 달려가서 삼촌이랑 할아버지에게 이걸 떠벌일 생각이예요? "천만에, 그렇지 않아." 팬시가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아 메니큐어병을 세게 흔들었다. "숙모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구요......" 기왕 할거면, 내 방 옆에서 큰소리로 하세요. 가족들이 다 들을 만큼 큰소리로요. 다른 데서 하지말고......" 애버리가 방을 나가려다 말고 되돌아 들어와서는 팬시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은 귀걸이를 팬시 의 손에 쥐어주고 두 손으로 잡아주었다. "아예 가질 생각은 아니었겠지? 네가 원한다면 빌려 줄 수도 있어." 팬시가 비웃으며 귀걸이를 냅다 집어 던졌다. "난. 그런 빌어먹을 관용은 바라지 않아요!" 팬시의 예쁜 푸른 눈이 신경질로 일그러졌다. "숙모가 쓰다 남은 물건을 왜 나한테 주려고 해요? 난 숙모가 쓰다 남은 걸 달라고 한 적 없어 요." 속으로는 부아가 끓었지만, 애버리는 애써 진정을 했다. "난 팬시 널 믿는다. 넌 이런 귀걸이 따위가 필요한 게 아니었어. 숙모는 네 맘을 알아." 애버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을 흔들면서 말했다. "네가 원하는 건 네 손에 잡혀주는 거야. 그렇지?" 팬시는 냉소했다. "아무래도 작은엄만 햇빛 속에 너무 오래 나가있었던 것 같군요. 그 프라스틱 얼굴에 태양이 얼마나 해로운지 모르고 있어요? 햇빛에 녹아버리게 돼요." "지금은 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야, 팬시. 내가 네 뒤까지 다 알고 있으니까 말야." 애버리가 온화하게 대답했다. 팬시가 심술이 난 투로 애버리를 쳐다봤다. "그건 무슨 뜻이죠?" "넌 내 주의를 끌고 싶어했어. 내 물건을 훔치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은 없었겠지. 내 부모님이 용납하지 않는 일만 골라 해서 그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처ㄹ." "에디와 잔 것처럼요?" "그래, 에디와 잔 일처럼 말이다." 팬시는 애버리의 고요한, 그리고 대담한 말에 당황했다. 그러나, 영악한 팬시는 재빨리 감정을 회복했다. "난 숙모가, 그의 호텔방에서 나오는 날 봤을 때, 기겁으 할 정도로 놀ㄹ다는 걸 알아요 내가 휴스턴 근방에 어디간에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그렇죠?" "그는 너에겐 어울리지 않아. 너무 나이가 많아. 그걸 생각해야지, 팬시."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휴스턴까지 오라고 에디가 먼저 네게 말하든?" "어쩌면 그렇고, 어쩌면 그렇지 않아요." 팬시는 주홍색으로 칠한 발톱에 고정액을 뿌리고, 자신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발가락들을 움직 이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뛰듯 일어나 서랍으로 가서 투피스 수영복을 꺼냈다. 머리 위로 잠옷을 걷어벗은 팬시는 잘 생긴 엉덩이를 애버리에게 내보였다. 팬시의 엉덩이에 눈 에 보이게 상처가 나 있었다. 그걸 쳐다보면서, 애버리는 ㅁ움 속으로 아픔을 느꼈다. "난 에디 같은 애인은 전엔 둔적이 없었어요." 팬시가 비키니 수영복을 몸에 걸치며 꿈꾸듯이 말했다. "그래. 너하고 그 사람. 어떤 종류의 애인관계지?" "몰라요?" 애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캐롤이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에디와 팬시가 정말로 함께 잤는지 안잤는지도 사실 몰랐었다. "그는 최고예요." 팬시는 비키니 브래지어의 고리를 걸고,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는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골라 입술에 발랐다.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 그들은 거울 속으로 눈을 마주쳤다. 팬시는 믿어지지 않는 듯이 보였다 "테이트 삼촌과 각방을 쓰고 있으면서도요?"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지?" "네게는 문제될 게 없죠." 팬시는 악의에 찬 눈웃음을 지으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숙모가 에디와의 관계를 시도하지 않는 한은 나하고는 상관없죠." "꼭 에디를 네 애인처럼 말하고 있구나?" "그는 나외에는 아무하고도 자지않아요." 팬시는 허리를 굽혀서 머리가 앞쪽으로 넘어오게 한 다음 숱이 많고, 어두운 금발의 머리카락 을 빗어내렸다. "그걸 뭘로 장담으 한다는 거니?" "확신해요. 난 그가 다른 여자와 잘 수 있을만한 기운을 남겨놓지 않았거든요." "에디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겠니?" 팬시는 머리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였다. 기울인 채로 애버리를 음흉한 눈초리로 쳐다보았 다. "팬시, 이건 질투가 아니야. 그, 그래. 호기심 쯤이라고 해두지." "대체 어떤 부분에 관해서 알고 싶다는 거예요?" "넌 에디와 잘 때 그 사람과 잡담을 나누곤 하니?" 애버리의 질문에 팬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어제꼈다. "말해봐. 마리화나를 피운 일은 없었겠지, 그렇지?" "아뇨 ...... 상상하지 말아요." 똑바로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며 팬시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싫증이 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뗐다. "삼촌이, 숙모랑 내가 둘이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막 화를 낸 적이 있었죠? 기가 막혀요 그 냥 담배였을 뿐이었는데, 왜 우리가 마리화나를 피우는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건지 지금도 모르겠 다니까요." 애버리는 창백해져서 눈을 돌렸다. "요즘은 난 그런 것 안해, 팬시. 끊었단다." "안한다고요? 정말로요?" 팬시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똘망똘망 뜨고 빤히 쳐다봤다. "정말이야."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숙모는 병원에서 퇴원해 온 다음부터, 사람이 아주 달라져 있 었어요. 처음엔 그저 그러는 척 해보는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갑자기 착한 척을 해보였으니까 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사고 이후로 숙모는 정말 변했어요. 무슨일이예요? 죽어서 지옥에 갈 까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왜 그래요?" 애버리는 화제를 바꿨다. "정말로 에디가 네게 자기얘기를 해주고 그랬니? 그가 어디서 자랐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라 하고?" 팬시는 양 손을 엉덩이에 받치고 서서, 애버리를 이상하게 여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숙모 정말 왜그래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면서 말예요. 알잖아요? 팬핸들의 어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그에겐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잊었어요? 정말 기 억이 안나서 묻는 거예여? 이상하네? 삼촌이랑 월남에 가 있는 동안에 죽은 할머니 한사람으 빼 곤 사고무친이란 것, 정말 기억 안나요?" "테이트와 일하기 전에 그는 뭘 하던 사람이었니?" 팬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캐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정말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 건지,아니면 일부러 골릴 생각에서 그러는 건지 몰라 답답하고 골이 나기 시작했다. "숙모! 우린 그저 잠을 잔 거지 무슨 옛 얘기나 하자고 밤을 지새우는 건 아니라구요, 알았어 요? 우리 사인 말이 필요치 않아요. 내 말 뜻은, 그는 정말로 알 수 없는 사람이란 거예요!" "예를 들자면?" "그는 내가 그의 물건을 만지는 것을 싫어해요. 어느날 밤엔가는 내가 셔츠를 입으려고 그의 서랍을 뒤지니까 그는 정말로 화가 나서 다시는 자기 물건을 만지지 말라고 했고, 난 그렇게 했 어요, 이후로 난 그를 엿보지 않아요. 우린, 우리의비밀을 지켜야 해요, 알겠어요?" "그가 월남전에서 뭘했는지, 언제 텍사스로 돌아왔는지 하나도 얘기해주지 않았니?" "내가 물어본 건 그가 결혼했었는지 하는 것 뿐이었어요. 그는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어요. 농담조로 나는 '잃어 버렸어요?'하고 말 했었지만, 그는 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그래' 거기 있을동안은......'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 었어요." "넌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니? 무슨 뜻인 것 같았어?" "오 , 난 그가 전쟁 뒤에 변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팬시가 아무렴 어떻느냐는 식으로 쾌활하게 얘기했다 "왜?" "아마 삼촌이 비행기 사고에서 그를 구해줬기 때문이 거예요. 내 기억으로는 에디가 상처입은 채로 낙하산으로 탈출했고, 헬리콥터가 그를 데려갈 때까지 테이트 삼촌이 그를 정글에서 데리고 다녔대요. 숙모도 언제고 에디의 벗은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의 등에 있는 흉터를 알아보게 될 거예요. 무척이나 무시무시해요. 아마 베트콩들에게 사로잡힐 때 다친 흉터일 꺼예요. 에디는 삼 촌에게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했지만, 아다시피 삼촌은 그렇게 하지 않았대요." "물론 에디도 테이트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던 걸테지." 애버리가 말했다. "음 전 전투기 조종사들의 금언을 알고 있어요. '비참해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있다.' 에디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을 거예요. 삼촌은 영웅이었어요. 에디는 그저 다른 부상 자들과 같았어요. 그것이 그의 마음 속에 아직도 작용하고 있을 거예요." "이 모든 것을 넌 어떻게 알았지, 팬시?" "오 그런 것 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어야죠. 어렸을 적부터 삼촌이 자랑 겸. 무용담을 얘기해줬 으니까요. 그런데, 숙모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너무 많이 알고 싶어하는 것 같네요." "난 그저 네 얘길 듣고 싶을 뿐이었어. 그리고,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는 것 뿐이 고." 팬시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애버리 가 따라 갔다. "팬시, 다음 번엔 너하고 내가 좀 더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나나 너나. 서로에게 좀 더 새롭게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 팬시가 듣기 거북한지 눈을 딴 데로 돌렸다. 애버리는 팬시의 거만한 태도를 무시하기로 했다. 팬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그 여자가 덧붙였다. "그리고 조심해." "뭘요?" "에디를." "숙모가 날더러 아저씨를 조심하라고 했어요." 싸구려 모텔 방안은 더럽고 습했다. 그러나 프라이드 치킨을 뜯어먹고 있는 팬시는 그런 게 다 뭐냐는 듯 전연 신경쓰지 않았다. 지난 몇주동안 그 여자는 이런 초라한 환경에 익숙해져있었다. 그 여자는 에디와 만날 장소를 더 좋은 호텔로 하기를 바라고는 있었지만, 그 모텔은 선거운동본 부와 목장 사이의 고속차도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들이 집에 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가장 은밀하 고 적당한 곳이었다. 그 모텔은 부정한 연인들에게는 안성마춤 인 곳이었다. 방은 시간 당으로 빌리도록 되어있다. 직원들은 무관심하거나 감정적이지 않고 친절했다. 오늘 저녁에는 내내같이 일을 했기때문에 , 지금 이시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옷을 벗은 채로 구겨진 이불 한가운데 앉아서 튀긴 닭을 먹으며 케롤 러트리지에 대해 의논하 고있었다. "날 조심하랬다구?그건 왜지?" 에디가 물었다. "그렇게 늙은 남자와 함께 하면 내가 만족하지 못할거라고 애기했어요." 고기 조각을 찢으며 팬시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닌 것 같은데?" 에디가 닭 날개를 찢었다. "이유가 다 뭐예요? 봐요. 숙모 소원이 뭐게요? 삼촌이 선거에서 이겨서 워싱턴으로 건너가 폼 나는 상원의원 아내노릇을 하는게 꿈이라구요. 그렇지만 삼촌은 꿈에도 그럴 생각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 숙모는 가슴 속에 품어줄 누군가를 원해요. 물론, ㄱ으로야 안 그런척 하지만, 캐롤 숙모 는 아저씨의 몸을 갈망하고 있는 걸 난 알아요." 장난을 치듯이 ,팬시가 그의 가슴을 닭다리로 툭툭쳤다. 에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찡그린 채로 멍하게 허공을 쳐다봤다. "난 아직 캐롤이 우리 사이를 알지 못했으면 해 , 그러니 공연히 그 여자한테 허튼소리는 하지 마." "그 애긴 이제 그만 하죠? 괜히 싸움만 날 것 같으니까. 난 그날 일을 참을 수 없어요. 내가 아 저씨 방에서 나왔을때 , 왠 거지 같은 얼음통을 가슴에 껴안고 말을 잃은 채로 숙모가 터억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도 그게 의심스러워요." 누런색 닭껍질 한 조각이 팬시의 벗겨진 배 위에 떨어졌다. 그 여자는 손가락 끝으로 건져올리 더니 그 작은 조각을 집어들어 낼름 집어먹었다. "그리고 말예요, 이건 아저씨한테만 하는 애긴데?" 그 여자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에디에게 속삭였다. "숙모, 아무래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무슨 뜻이지?" "아무리 충격 때문에 고생을 했다지만 , 그래도 어떻게 남아있어야 할 기억들마저 까맣게 잊어 비릴 수가 있어요? 내가 애기해줬는 걸요?" "뭘?" "좋아요. 애기해 드릴께요." 자기 입술에 닭다리를 가까이 갖다대면서 , 팬시는 천천히 애기를 시작했다. "한참 전에 , 다른 목장에 있는 말 몇마리를 할아버지가 사온적이 있었어요. 그때 말을 몰아다 준 카우보이가 있었는데, 그가 마굿간으로 한마리씩 말을 몰아 집어넣을때, 주위엔 아무도 없었어 요. 바로 내가 그에게 마굿간 있는 곳을 알려줬기 때문에 나도 거기 있었죠. 숙모가 그를 보더니 절보고 집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일단 알았다고 그 자리에서 나와서는 몰래 숨어서 지켜봤죠. 카우보이가 굉장히 귀여게 생긴 사람이었거든요." "흥미진진한 애기겠군." 에디가 익살맞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캐롤이 왜 혼자 남은 거지 ?" "조금 있으려니까 , 숙모가 몸을 비비꼬며 카우보이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겠어요? 들어봐 요 , 난 그때 기절을 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내 나이가 그때 몇이라고, 내가 열일곱도 안됐을 때 였어요. 숙모는 카우보이와 일을 벌였어요. 갑짜기 달려들어서 쾅쾅 . 그 짓을ㄹ 하는 거지 뭐겠 어요? 다음 일은 나도 알아요. 그는 우리처럼 옷을 벗고 . 우리처럼 건초더미 주위를 굴러다녔어 요." 그 여자는 과정되게 표정을 밝게했다. "세상에 , 그때 그 장면이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오후의 일이었어요.......그런데 어제 내가 우연 히 숙모에게 그 애기를 하니까,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구역질을 하려 고 하지 뭐예요? 웃겨서 원 !....닭고기를 좀 더 드실래요?" "아니 괜찮아." 팬시는 다 뜯어먹고 난 닭뼈를 상자에 던져 넣고 , 마지막 남은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에디는 튼튼한 손으로 그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내 비밀에 대해선 아무 애기도 하지 않은 거겠지?" 팬시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맨발로 그의 엉덩이를 쿡쿡찔렀다. "난 아저씨의 비밀이라곤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 , 나에 대해선 뭐라고 애기해 줬는데? 무슨무슨 애기를 했어?" "난 아저씨가 , 내가 만난 사람 중엔 최고였다고 말했을 뿐이예요." 팬시가 그에게 기대어 기름투성이 입으로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아저씬 정말 대단한 사람이예요. 아저씨 같은 남자는 정말 처음이라고요. 아 참 , 그리고 , 옛 날 월남전에서 있었던 삼촌과 아저씨 간의 무용담 몇 가지도 애기해줬어요. 음 ......그것 뿐이예요. 그게 다예요." 에디가 안심한듯 웃었다. "닭고기나 빨리 먹어.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팬시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천천히 키스를 했다. " 난 이전부터 콘돔 따위는 거추장스러워 했어." "그럴 것 같았어요." 팬시가 고개를 똑바로 뒤로 젖혔다.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했나요?" "사용하라고는 했지. 그렇지만 넌 놀라울 정도로 불같은 아이야 . 정말 놀라웠어." "전 원래 충격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이예요." 에디는 팬시의 머리를 감싸안고 그 여자의 온 몸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키스를 했다. 그들은 ㅅ콤한 냄새가 나는 베개위에 함께 누웠다. "다음번에도 캐롤이 나에 대해 질문들을 해오기 시작하면 , 딴생각 말고 혼자 수음이나 하라고 말해줘버려, 알겠지?" 에디가 팬시에게 파고 들며 그렇게 말했다. "알았어요. 에디, 알았어요." 아직도 한손에 쥐고 있는 닭다리로 그의 등을 때리며, 그 여자가 되풀이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