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광고의 폐해 "나랑 놀지 않을래?" "우리 놀러 나갈까?" "이 옷 어때?" 예쁜 인형이 묻는다. 베레나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을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입이 헤벌어진 채 뚫어져라 텔레비전을 쳐 다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지금 바비인형 선전이 나오고 있다. 3명의 아역배우가 손에 인 형 하나씩을 들고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동시에 "너 알고 있니, 이 인형은 너와 진짜로 이 야기할 수 있어"라는 여가수의 감미로운 노래가 들린다. 바비인형의 입과 연결된 대화주머 니에는 "너와 이야기할게"라는 대사가 씌어 있다. 그 밑으로 '바비'라는 로고와 제조회사의 로고가 보인다. 텔레비전 앞의 어린 시청자는 넋을 잃는다. 별 것 아닌 기술(말하는 인형)이 기적처럼 느 껴진다. 텔레비전 속의 인형이 진짜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리드미컬하고 기분 좋은 키보드음악과 반짝이는 조명, 여가수의 감미로운 음성, 귀여운 여자아이들의 목소 리가 베레나의 귀를 울려댄다. 현실과 픽션이 혼합된다. 바비인형의 로고가 꼬마시청자의 기 억 속에 살며시 입력된다. 선전이 이어지는 20초 동안 아역배우들과 바비인형들이 어찌나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지, 베레나도 기꺼이 그같은 행복을 느끼고 싶다. "너는 내 친구야!" 인형이 말한다. 베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속의 인형 이 자기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형의 말은 베레나의 무의식 속에 박힌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인형은 베레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베 레나는 입을 다문 채 방으로 들어가 자기 인형을 들고 나온다. 베레나의 인형은 말을 할 수 없다. 그 인형은 최신 모델이 아니다. 베레나는 외롭고 슬프다. 자신의 바비는 벙어리이며 예쁘지도 않다. 새 옷도 없고, 베레나더러 놀자고 하지도 않는다. 베레나는 1시간만 지나면 텔레비전 '친구들'과 바비인형을 또 만날 것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1993년 11월(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즌), 열두 종류의 다양한 바비인형 선전이 반복 에 반복을 거듭하여 방영되었다. 토요일 8시에서 14시까지, 6시간 동안 바비인형 선전은 자 그마치 15번이나 나왔다. 결과는 뻔하다. 여자아이들 방에 바비인형이 줄지어 서 있는 것! 남자아이들도 다를 바 없다. 1993년 11월, 불과 3,4시간만에 닌텐도 게임기 선전은 20회나 전파를 탔으며, 1주일 동안 무려 3백65회나 방영되었다. 아이들은 비디오 게임에 홀딱 반하 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모두 획일화된다. 광고 전문가들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여자아이들을 가상 친구들의 세계로 유혹한 다. 남자아이들은 우주왕복선, 괴물, 로봇과 함께 하는 모험과 권력, 액션과 스릴의 세계를 경험한다. 선전되는 상품은 아이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비인형, 우주왕복선, 로봇이 친 구를 만든다. 선전에서는 모든 것이 간단하고 쉽다. 사건은 멋드러지게 해결된다. 미진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한 것도, 미심쩍은 것도 없다. 광고인들의 과제는 목표 집단의 구매를 조장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선전이 나오기까지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많은 정신적, 물질적 투자를 한다. 슈퍼마켓에서 쵸코바가 아이들의 입 속으로 튀어 들어갈 때까지, 선전과 어린이 프로, 쇼 프로, 퀴즈 방송은 아이들을 유혹한 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친구와 노는 것과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매체 전문가들 의 연구 결과, 6세에서 13세 아이들의 하루 평균 텔레비전 시청시간은 1백4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항간에는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길다는 보고도 있다. 모든 채널을 통합하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은 하루 평균 약 6백25편이 방영된다. 하루 2백8분이 전적으로 선전만을 위해 할애되는 시간이며, 한 해 동안 9백 시간, 즉 37일을 선전만을 위해 할애되는 시간이며, 한 해 동안 9백 시간, 즉 37일을 선전만 한다! 그리고 그 중 20퍼센트 가량이 아이들을 겨냥한 광고다. 1993년을 기준으로 민영 방송은 어린이 광고 비로 한 해 3억 1천만 마르크를 벌어들였다. 물론 한 사람이 모든 방송의 모든 광고를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만으로도 텔레비전 광고가 가하는 압력이 얼마나 대단 한지를 알 수 있다. 만 3세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금새 광고의 희생양이 된다. 취학 이 전의 아이들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현실과 픽션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선전에 나오는 장 면이 가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선전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백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1주일에 약 1만 5천 편, 평소에는 약 5천 편의 광고가 방영된다. 그 중 아이들을 겨냥한 광고는 40퍼센트에 이르며, 주로 취학 이전의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아 이들을 배우로 등장시킨다. 기업들은 자기 회사 광고를 인기 프로 사이에 집어넣고 싶어한다. 특히 토요일이나 일요 일 오전에는 광고가 넘친다. 그 시간은 주로 부모들이 쇼핑을 가거나 늦잠을 자는 시간으로 마텔, 디즈니, 닌텐도가 장악하는 시간이다. 자정 무렵 베를린의 한 주택가 거리. 5층짜리 아파트 맨 꼭대기층에서 오렌지빛 불빛과 함께 까만 연기가 솟아오른다. 다행히 바람은 잠잠하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순찰차들이 사 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을 번쩍이며 달려오고, 이어 소방관들이 분주히 뛰어다닌다. 소방대 장의 메가폰 소리에 맞춰 구명보가 매어지고, 두 개의 사다리가 위쪽으로 걸쳐진다. 맞은편 M씨네 집 가족들은 발코니에 나와 구경한다. 더 이상 불이 번질 것 같지는 않다. M씨의 아들 니코(8세)는 흥분하여 발코니 난간을 꽉 잡은 채 눈을 반짝이며 구경한다. "와 우, 정말 죽이는군.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랑 똑같아!" 엄마는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아이는 텔레비전 광고를 얼마나 똑같이 흉 내내는지. 가끔 사람을 웃긴다니까요" 매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니코에겐 매일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니코는 그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보진 않아요. 오후에 어린이 프로를 보고, 초 저녁에 동물의 세계 같은 거나 볼 따름이지요." 그렇다고 니코가 잔디밭을 뛰어다니거나, 나무를 타거나, 장난감 딱총을 모으거나, 식물의 뿌리를 캐보거나, 곤충을 찾아다니는가? 그렇지 않다. 채널 1의 "보난자"와 RTL의 연속극 "좋은 시절, 나쁜 시절"이 니코의 현실일 뿐이다. 아동산업은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은 기업들의 목표에 척척 따라온다. 만화영화들 과 연속극, 쇼 프로들도 광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상품들은 호가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며, 민영 방송에서는 브랜드명까지 명확히 거명된다. 어린이 프로가 제작되기 전에, 그 프로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케릭터로 한 상품화 계획이 세워진다. 코끼리, 수코양이, 쥐, 세인트 버나드, 곰 같은 연속 방송물 스타들은 봉제 동물완 구로, 색칠 그림책으로, 화장품과 티셔츠로, 책으로 제작되어 시장에 나온다. 그런 케릭터 상 품들은 텔레비전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독일에는 약 4백 종의 라 이선스 상품들이 있다! 가령 X방송의 만화 주인공인 수코양이가 등장하는 비디오가 Y프로덕션에서 출시될 때면, X방송을 통해 여러 번 예고된다. 또한 그 케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 Z라는 출판사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런 상품들을 굉장히 잘 알고 있는 것에 놀란 다. 독일의 라이선스 상품 매상고는 연간 20억 마르크에 달한다. 그리고 그런 상품화 계획이 없다면, 양질의 프로그램들이 전파를 탈 수 도 없을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의 제작비는 케릭 터 상품을 판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텔레비전 친구들이 광고에서, 그저 재미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아 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50마르크짜리 곰인형을 어디어디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시청 자 친구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방송국과 특허권자, 기업과 대행사들이 그 상품을 팔아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 대상 광고도 성인 대상 광고와 마찬가지로 전문화되어 있으며, 효과는 성인 광고보 다 훨씬 크다. 아이들이 광고와 드라마, 픽션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며, 한가지 광고로 비 슷한 부류의 상품들까지 선전되는 연쇄효과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리추구를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다. 텔레비전을 끄는 것은 꿈속 에서나 가능할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꿈속에서까지 텔레비전을 볼지도 모른다. 교사와 부모 와 상담가들은 신경질적이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광고를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그 모습 그대 로 노련한 광고 전략에 내맡기지 말자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매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연간 발행되는 아동잡 지의 종류만도 1백 가지가 넘고, 매상고는 1억 3천만 부에 이른다. 비디오와 컴퓨터 게임도 무시할 수 없는 매체다. 광고용 컴퓨터 게임들도 있으며, 게임에 광고 모티브를 집어넣을 수 도 있다. 컴퓨터 게임이 팔리는 양에 따라 그 게임에 삽입되는 광고료도 수천 마르크까지 올라간다. 히트한 비디오 게임 하나가 헐리우드 오락영화 한편보다 더 많은 이윤을 가져온 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도 유행과 경향을 보여주는 매력 있는 광고수단이다. 광고의 희생양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플래카드 외에도 별로 의식 없이 대하는 여러 '광고매체'들 이 있다. 고객회원제도, 텔레마케팅, 전단지, 홍보용 우편물, 팜플렛 등이 그것이다. 고객의 주소는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주소를 서로 사고팔기 때문이다. 아동잡지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도 반송률이 50퍼센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부수적으로 드는 우편료도 몇십만 마르크에 육박한다. 당신의 아이는 어떤 브랜드의 고객회원인가? 회원권, 회원엽서, 회원증명서는 무료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광고전단지, 주문장, 설명서가 밀려 들어온다. 어느 날 베레나는 바비인형들을 떠나 록 콘서트로 간다. 그리고는 무대에 등장한 록 그룹 을 향해 목이 터져라 환호한다. 베레나의 방에는 팝 매거진과 록 그룹이 발표한 최신앨범이 있으며, 그 그룹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그 그룹을 케릭터로 한 손목시계와 티셔츠, 침 대커버, 봉제 완구 이 모든 것이 시중에 나와 있다. 그 그룹을 관리하는 회사는 라이선스를 갖고 똑같은 유사품들을 추방하며, 수백만 마르크에 이르는 이윤에 침을 흘리고 있다. 베레 나 같은 아이들의 용돈으로 얻은 이윤이다. 부모들과 교사들은 대중매체가 야기한 아이들의 광기와 히스테리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면 서도 그 책임을 대중매체시장에 돌리지 않는다. 왜일까? 몰라서다. 아이들의 감수성과 동경 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한 청소년 잡지나 청소년 텔레비전 프로를 눈여겨보는 부모는 없 다. 더욱이 아이들은 그런 문제를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갑작스럽게 그런 문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억지로 대화하 려고 들면 부딪치기만 할 뿐이다. 부모가 자기 취미를 갑자기 경멸하고 나서는 것을, 아이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느끼고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또한 어른들 역시 광고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어른들은 광고문구를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버리며, 순수한 정보와 서투른 사기를 분별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충동 구매를 하거나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후회하는 사 람이 많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점점 세련된 방법으로 유혹하는 광고의 희생양이 되고 있 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온갖 '사탕발림'을 동원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 사이사이에 같 은 광고가 3백65회 이상 반복되면 더 이상 유혹을 견뎌낼 아이가 없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 물로 이 상품을 갖고 싶어하게(가져야만 하게) 된다. 광고가 전혀 쓸데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광고는 필요하다. 광고 자체는 생산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통독 전 동독의 회색빛 건물들, 상점도 광 고도 없는 거리들이 얼마나 황량하게 느껴졌었는가!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벽과 요란한 현수막, 네온사인, 상점도 세일 광고들을 그리워했었다. 그러나 지금 멀티미디어 광고 전문가들과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 사이에는 균형 있는 파 트너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한쪽은 가해자요, 한쪽은 희생양일 뿐이다. 아이들이 광고에 무작정 희생당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로 하여금 계속되는 광고에 비판적이고 신중하게, 자신 있게 대처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텔레비전 시 청이나 잡지 구독하는 문제로 토닥거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도와 줄 방법은 없을까? 결심과 실천 의식 있는 부모들의 결심: :취학 이전의 아이들을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하지 않는다. :하루에 어린이 프로 하나씩만 보도록 한다. :가능하면 광고가 많지 않은 공영 방송을 보게 한다. :체험적 요소가 강한 놀이와 활동 (가능하면 밖에서)을 권장한다.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한다. :어려서부터 아이를 가사노동에 참여시킴으로써, 텔레비전을 통한 수동적 오락이 아닌 다른 쪽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광고'의 의도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너의 용돈일 뿐이야!) :텔레비전이 가정의 중심에 자리잡지 않도록 한다. :독서,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실험, 정원 가꾸기 등 대안 활동을 장려한다... 좋은 결심들이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실천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코 쉽지 는 않을 것이다. 대학생이자 주부인 로레 마르비츠(24세)의 말을 들어 보자."우리 식구는 남 편 베른트와 두 돌된 아들 필리파, 나 이렇게 셋입니다. 남편 베른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광이었어요. 텔레비전 때문에 대화는 실종되었고, 남편은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서 잠들었죠. 여름에는 그래도 나았어요. 아이와 함께 정원에 나가 있으면 되었으니까요. 하지 만 겨울에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죠. 남편은 목석같이 앉아 텔레비전만 바라보고 있을 뿐 부부싸움조차 불가능했어요. 남편의 유일한 아빠 노릇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텔레비 전을 보는 것이었죠! 정말 끔찍했어요! 어느 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텔레비전을 집 밖으로 내다 놓고 현관문을 잠가 버렸죠. 저녁 무렵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곧 커다란 소란 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2시간 내내 이상한 정적 만 감돌 뿐. 그러더니 갑자기 쨍그랑 소리와 함께 뭔가를 쾅쾅 부수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 가 보니 남편이 커다란 망치로 텔레비전을 내리치고 있었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 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우리 둘은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일종의 해방 의 웃음이었죠. 그 이후 우린 텔레비전 없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구입하지 않ㅇ르 겁니다. 어차피 아이를 위해서도 잘된 일이죠!" 교사인 한네 예거의 말이다. "우리 집 거실엔 텔레비전이 없어요. 자명종 역할을 하는 작 은 텔레비전이 부부침실에 있을 뿐, 우리 아이들은 거의 텔레비전을 보지 않죠. 그렇다고 우 리 아이들이 달나라에 사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 역시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장난감들을 가 지고 놉니다. 다만 그리 많지는 않지요. 바비인형도 딱 한 세트 있습니다. 대모님이 선물해 준 거죠. 대모님이 아니었다면 바비인형을 만져보지도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늦은 나 이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사전지식이 많은 편이었어요. 매일매일 텔레비전 시청시간과 채 널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친구네를 보면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자 신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고집하고, 결국엔 부모가 지게 되더라구요. 우리는 텔레비전이 부부 침실에 있는데다, 주말에는 우리 부부가 늦잠을 자기 때문에 아 이들은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습니다. 대신 저는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시립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보게 하지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책도 보게 하구요. 뭔가를 익는 것은 적어도 머리를 쓰게 하니까요. 하지만 텔레비전은 사고력을 마비시킵니다. 입이 헤벌어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은 정말 유감입니다." 도서관 사서인 크리스티안 킨더만(43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은 기술적인 고장이 도 움이 된 케이스입니다. 안테나 고장으로 텔레비전은 다락방에서야 겨우 나오는 상태가 되었 죠. 다락방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삭막하고 협소한 방이거든요. 그러니 그래도 텔레비 전을 봐야겠다는 사람은, 옷을 두껍게 껴입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딱딱한 바닥에 앉아 있을 수밖에요. 그래요. 언젠가는 안테나를 고치겠지요. 하지만 텔레비전은 다락방에 그대로 둘 겁니다.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텔레비전을 다락방으로 옮긴 후, 거실을 다시 꾸몄 거든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거실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을 갖다 놓고 거기서 함께 먹 고, 이야기도 하고, 카드 게임도 하고, 숙제도 하고, 편지도 쓰고..... 텔레비전에 밀려 할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이 이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가정의 참모습을 되찾게 된 거죠." 어린이방...시청각실? 텔레비전, 비디오, 최신 컴퓨터, 오디오 등 멀티미디어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어린이 방 이 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교육을 중시하는 것과 다중매체를 구비하고 있는 것은 전 혀 별개다. 인문계 학생들의 방이, 제약을 받지 않고 '밤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실업계 학생들의 방에 비해 '빈약하게' 꾸며져 있다. 아이들 방을 '시청각실'로 만드는 것은 금전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과 교육적 필요의 문제인 듯하다. 광고분석 네 아이를 둔 베른트 노이만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맏이는 광고혐오증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이 있습니다. 형이 그러니까 동생도 닮아가더라구요. 우리 아이들은 광고를 보면 코웃음칩니다. 광고인들은 그 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거라고 하겠지만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 습니다. 우리 집 구매 원칙은 물건을 자주 사지는 않지만, 한번 살 때 좋은 것을 산다는 것 입니다. 네 아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동생들은 형을 따라가게 되어 있죠. 우리는 베를린 교외에 사는데 집에 작으나마 정원이 딸려 있습니다. 맏이로부터 열두 살짜리 막내 티니까 지 아이들이 관리하는 정원이지요. 손수 기른 채소들로 요리도 해먹습니다. 물론 초저녁엔 텔레비전도 조금 보지만, 주로 광고가 나오지 않는 채널을 보지요." 편집인으로 일하는 군나 제크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바쁠 때는 퇴근해서까지 일을 합 니다. 직업상 텔레비전을 많이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내 작업실에는 텔레비전이 두 대나 있지 요. 내가 집에 없을 때면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차지하기 일쑤입니다. 딸은 텔레비전이 누구 의 것이든 별 상관하지 않지만, 아들 마티아스는 자신만의 텔레비전을 갖고 싶어해요. 사주 지 않으면 자기 용돈으로도 살 거래요.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어쩌겠어요? 막는 것도 우스 운 일이죠. 이제 곧 자기 텔레비전을 사서 신물나게 보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한때라고 생각 합니다. 사춘기가 되면 어차피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될 테니까요." 텔레비전에 대한 열광이 가시면, 비디오에 대해 열광할지도 모른다. 시간에 쫓기며 저녁마 다 '가사일'에 허덕이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텔레비전 시청을 통제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한 층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월요일이면 더욱더 집중력이 떨어져 학교 선생님들의 한숨거리가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너의 용돈뿐" 수많은 광고에 굴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구매할 수 있을까? 그리 쉽지는 않을 듯하다.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몰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엔 틀림없지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없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텔레비전이나 잡지를 포 기하고 싶지 않ㅇ르지도 모른다. 또한 자기 집에서는 몰아낸다 하더라도 친구나 이웃, 친척 등,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피난처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을 거실에 그대로 두면서도,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방법 (매체 다이어트라고 부를까)을 생각해 보자. 매체 다이어트를 통해 아이들을 (부 모도) 수동적으로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상태에서, 스스로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끌 수 있는 상태로 변화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트레이닝법은 앞으로 계속 고안해 나가야 하겠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 방법 들을 제시해 본다.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는 이 방법들을 조금씩 변형해도 좋다. 먼저 광고 분석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광고를 분석하는 것으로, 소요되는 시 간은 1시간 이상이다. 아이들이 친구들을 테려올 경우 더욱 흥미진진한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네가 제일 좋아하는 광고는 뭐지? 광고를 보 고 물건을 산 적이 있니? 그랬을 때 그 물건이 광고에서 보던 것만큼 좋았니? 광고가 거짓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왜 거짓말을 할까? 네가 제일 싫어하는 광고는 뭐지? 우리가 광고 를 계속해서 보면,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은 어떤 이익을 얻을까? 다른 광고들과 달리 신선 한 느낌이 드는 광고를 하나 골라 보렴!" 그리고 초저녁 시간(아이들이 텔레비전을 가장 많이 보는 시간이며, 하루 중 광고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을 택하여 광고 분석을 해보자. 필요한 것: 스톱워치, 메모장, 필기구. 광고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을 적어 보면 대략 이런 모양이 될 것이다. 상품 광고시간 정보 평가 초콜릿 20초 우유가 들어감 멍청하고 단순한, 과장된 탈지유 20초 없음 지루한 음악, 아름다운 영상 가곡 CD 30초 가장 아름다운 무미건조한 처리 좋아할 노래 오렌지주스 30초 신선한 과즙 포장 재료가 재활용이 안 됨 봉제 하마인형 20초 보드라운 재질 터무니없이 싼 가격. 질이 나쁠 듯 아이와 함께 광고를 분석해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은 당신이 자기들의 의견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음 을 느낄 것이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는 것은 광고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광고 분석' 을 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이들은 광고 분석을 조금만 해 도 광고에 무조건 유혹당하지 않을 것이며, 텔레비전 광고를 전과는 다른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광고 분석을 하고 난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너의 용돈이야!"라는 말을 더 이상 과장된 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7세에서 12세까지의 아이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 는 돈은 연간 56억 마르크에 이른다. 그 돈을 제과업체와 자전거업체, 컴퓨터 및 비디오 게 임 제조자, 은행, 그외 많은 기업들이 서로 가지려고 한다! 로봇이냐 산책이냐? "광고는 정말 멋져요. 광고를 보고 새로운 상품이 나온 걸 알 수 있죠!" 맞는 말이다. 하 지만 그 말은 뭔가 부족하다. 아주 좋은 장난감이지만 제조회사가 텔레비전 광고를 할 여력 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상점 진열대에서도 좋은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영되는 장난감 광고는 (가령 멋진 카 레이싱을 보여 주는 슈퍼카 같 은 장난감 ) 아이들의 기호를 획일화시킨다. 당신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집 아이나 저 집 아이나 사달라는 선물이 거의 똑같은 것을 보아왔을 것이다. 어린이 프로나 초저녁 프로 를 시청하면서 그런 광고를 피해 갈 수는 없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텔레쇼핑리스 트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면)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법하다. 아이에게 물어보라. 작년엔 왜 이 선물을 샀었지? 이 장난감을 가지 고 재미있게 놀았니? 이번에도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장난감을 사고 싶어하는데, 그것으로 뭘하며 놀 거니? 다른 선물도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으련? 아들 하나를 둔 엔지니어 구드룬 슈톡(28세)은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 나는 여러 남매 와 어울려 자랐습니다. 부모님도 우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셨구요. 두 분 다 공무원이셨 기에 오후 5시면 집에 들어오셨는데, 그때까지 우리들은 집안 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했 지요. 집안일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딸기나 버섯을 따러 가기도 하고, 아빠가 낚시하는 데 따라가기도 했지요. 숲 속에서 딸기를 따는 일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그보다 맛있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물론 버섯 요리도 근사했지요!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좀 나은 편이지만, 도시아이들은 매일매일 상당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멍하니 있기 일쑤이지요. 푹신한 소파에 달라붙어 텔레비전 속의 배우들과 함께 인 조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광고하지 않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지요. 부모가 산책 나가자고 해도 들은 체 만 체예요. 맹숭맹숭한 산책은 뭐하러 가느냐는 거예 요. 텔레비전 프로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지요. 하지만 주변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우린 다행히 도시 근교에 사는데, 숲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어도 아름다운 잔디 밭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벌레를 잡으러 다니기는커녕, 딱정벌레나 나비의 애벌레 따위도 못 보고 큽니다. 태어나서 여태껏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한번도 못 들어봤다는 아이들도 있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죠." 여성지 육아 파트 편집인인 엘렌 하이머는, 선전하는 상품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와 실망 을 이야기한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조카 (언니의 아이들) 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 지요. 걔네들은 내 친자식이나 다름없어요. 큰조카 그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에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에 불과한데두요. 광고에서 로봇들은 비현실 세계 를 누비고 다니지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아이들의 눈앞에 모험의 세계가 펼쳐져요. 하지만 장난감을 산다고 모험까지 배달될 수는 없죠. 장난감은 구입한 지 1주일도 안 되어 구석자 리에 놓여 있었고, 조카는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어요. 언니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요. 아이들의 장난감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니까요. 아이들은 그것을 인 신공격으로 받아들여요. 그 때 다행히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는 그벤에게 긴장감 넘치는 사이언스 픽션 동화책을 사다 주었고, 그 생각은 적중했어요. 조카는 그 책을 읽도 또 읽었지요. 친구들이 오면 다시금 로봇을 꺼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새 모델들을 사내들을 사내라고 조르지는 않았지요. 그벤의 여동생 카트린은 일곱 살인데, 얼마 전부터 바비인형만 갖고 싶어해요. 물론 광고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카트린의 상황과도 관련 있어요. 카트린은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아요. 엄마는 병원에서 늦게 오고, 이모인 나도 초저녁이 되어야 놀아 줄 수 있으니까요. 오빠도 동생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구요. 카트린은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요. 언니는 이제 곧 병원을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로 휴가를 떠날 거예요. 거기서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충만히 누릴 수 있을 거고, 카트린은 다시금 명랑한 아이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바비인형을 선물로 받아서가 아니라, 든든한 가족 사랑을 맛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광고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건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건 가수이건간에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지요. 억지로 그것들을 멀리하도록 하면, 아이들은 마음문을 닫게 되고 기업들만 도와주는 꼴이 되죠.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광고가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법적으로 행위 능력이 없으므로 상품의 질을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행위 능력이 없 다는 것은 물건 구매 능력(지불능력)이 없다는 의미이구요. 하지만 우리는 어린이를 위한 광 고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므로 아이들에게 광고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를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무척 다양한 매체로부터 광고를 광고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카트린 같은 아이들은 잡지를 볼 때 광고 와 일반기사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광고와 판매의 실제 비가 와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오후를 택해, 과월호 잡지들을 모아 광고 분석을 해보자. 아이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잡지의 철을 풀어 보자. 광고 분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모든 광고들을 오린다. 무엇에 관한 광고들인가? 모 음반회사에서 출시된 모 그룹의 최신 앨범 선전과, 그 그룹의 사생활을 취재한 르포르타주를 같은 호에 싣지는 않았는가? 이것이 광고의 수법이다. 이 잡지를 읽는 모든 아이들은 구매 충동을 갖게 되고, 그것을 이용하여 잡지사와 기업들이 돈을 번다.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물론 아이들 이 원하는 것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런 메커니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하 지만 아이들이 그들의 '돈'을 빼내는 수법에 대해 무지해서는 안 된다. 벼룩시장을 통해 유치원생들에게 광고와 판매의 실제를 가르쳤던 유치원 교사 구드룬 바 르디히의 말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우리는 7세반 아이들을 위해 벼룩시장을 개최했어요. 행사의 취지는 이제 초등학생이 될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고,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우 리는 아이들과 함께 다섯 개의 가판대를 만들었지요. 봉제 동물인형을 파는 곳, 군것질거리 를 파는 곳, 레고와 퍼즐, 게임 등을 파는 곳, 손수 만든 미술작품(그림과 도자기 등)을 파는 곳, 카세트와 음반, 책을 파는 곳으로 분류했죠. 상품마다 조그만 가격표를 붙이고, 커다란 간판을 내걸고, 작은 칠판에 상품의 가격을 써서 세워 놓았어요. 2,3주 전에 그려 놓았던 커 다란 광고 포스터도 붙이구요. 아이들은 구두 상자를 이용하여 계산대도 만들었지요. 다섯 팀으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다 른 팀보다 더 잘하려고 열을 올려썽요. 드디어 장날이 돌아왔고 벼룩시장은 대성공을 거두 었죠. 어머니 한 분이 아이스크림 코너를 만들어 손수 만든 아이스크림을 팔았는데, 그것이 그날의 히트 상품이었어요. 벼룩시장 문제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회의를 열어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토의를 했지요. 그리고 수입의 10퍼센트는 유치원에 장소 임대료로 내고, 10퍼센트는 인건비 명목으로 서로 나누어 갖고, 나머지 80퍼센트는 후배 원아들에게 장난감과 문구류 등을 사주도록 기증했답니다. 유치원이 아니라도 이웃끼리, 거리에서, 또는 가족 모임에서 이런 벼룩시장을 열 수 있어 요.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판매와 광고의 상관관계도 피부로 느끼며, 노동의 기쁨 또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유치원에서는 매년 벼룩시장을 개최하기로 했답니다." 아이들에게 광고와 판매의 상관관계를 알려 줄 또 다른 방법으로, 카탈로그를 이용한 벼 룩시장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하면 된다. 아이들이 쓰지 않는 물건 중 다른 친구들이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장난감, 옷, 스포츠 용품 들을 한데 모은다. 다음으로 과월호 잡지들을 들추어 모아 놓은 물건을 선전할 만한 광고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으면 오려둔다. 그 다음 모은 물건들을 컴퓨터 게임, CD, 책, 만화책 등의 멀티미디어류, 의류, 스포츠 및 여가 용품류 등 종목별로 분류한다. 첫 번째 카탈로그는 노트로 만들면 충분하다. 노트를 이 용하여 진짜 상품 카탈로그처럼 상품을 묘사하고, 광고 문구를 써넣고, 가격을 매기고, 주문 번호를 쓴다. 철지난 잡지들을 뒤적이다 보면 알맞은 광고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붙이면 된다. 잡지 광고를 오리는 일, 그림 그리는 일, 사진을 찍어 붙이는 일, 광고 문구를 생각해 내 는 일을 아이들 각자의 소질을 고려하여 분담시킨다. 그렇게 하여 카탈로그가 완성되면 주 문과 판매가 시작된다. 누가 카탈로그를 관리 (대여하고 반납받고) 할 것인지, 누가 전화로 상품 주문을 받을 것인지, 누가 상품을 배달하고 수금을 할 것인지를 정한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다음번 카탈로그에는 성인 코너도 만들어 볼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노트 한 면을 4등분해서 한 광고당 2마르크를 받는다든지 하여) 상품을 실어 주는 대가로 광고비를 받을 수도 있다. 부모가 쓰지 않는 낡은 소파나 작은 램프, 목욕 가운 등, 상품이 될 만한 것들을 카탈로그에 집어넣으면 좋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광고 및 판매 전략을 짜면서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배울 것이다. 카탈로그 는 한 번 활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1년 내내 주문과 판매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므 로 벼룩시장을 개최할 장소나 여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더없이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 다. 11,2세의 여러 '베레나'는, 구매자들을 속이거나 유혹하지 않고도 자신의 물건을 벼룩시 장에 내놓거나 카탈로그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 광고들을 비판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6. 여가시간, 집안일, 아르바이트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쾅 하는 거친 문소리에 벽이 울리고 전등 갓이 흔들린다. 창문턱에서 장식장으로 뛰어내 린 고양이 밍키가 놀란 눈으로 주인들을 쳐다본다. 여느 때 같으면 자기 접시에 먹이를 담 아 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을 주인 아줌마와 아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엄마:"방 청소 조금 한다고 20마르크를 달라는 게 말이나 되나?" 아들:"10마르크는 되고 20마르크는 안 된다는 건 왜죠?" 엄마:"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야. 지난번 10마르크를 준 게 뭐 네가 잘해서 준 것인 줄 알아. 그거 받고 더 잘하라고 준 거지." 아들:"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청소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엄마를 위해서건 누구를 위해서건, 10마르크를 주건 20마르크를 주건 이제 안할 거라구요!!" 쾅! 탁! 문이 닫힌다. 아들은 밖으로 나가 버리고, 엄마는 지쳐 소파에 털썩 주저 앉는다. 분노가 끓어오른다. 제 방 청소 조금 시키는 게 이리도 어려운가! 항상 똑같은 상황의 반복 이다. '체, 돼지 우리에 처박혀 버리라지!' 하지만 며칠 못 가 이런 상황은 되풀이될 것이다. 집안일 의무인가, 교육인가?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집안일 돕는 문제로 가족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남매간 다툼의 가장 흔한 원인도 집안일을 돕는 문제, 정확히 말하면 집안일을 돕지 않는 문제이다. 싸우기만 하지 돕지는 않는다. 생활 수준이 높아감에 따라 더욱 그러하다. 아이들 은 가사일에 대한 의무감이 없으며, 자기 방이 더러워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또한 교육적 동 기만으로 일관성 있게 가사일 훈련을 시키는 부모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교육적 모티브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켜 보려고 온갖 동기부여를 하다가 실패한 엄마는, 마지막 수단으 로 돈이라는 미끼를 던진다. "시간당 얼마를 줄게." "우아, 그럼 할게요!" 아이는 재빨리 금 액을 산출한다. 매일 2시간씩 시간당 12마르크면 하루에 24마르크, 5일이면 1백20마르크. 굉 장한 돈이다. 용돈보다 10배는 많다. 하루이틀은 마음먹고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다. 청소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수영장 간다 며 몰려 간다든지, 바람이 불어 연날리기에 좋은 날씨가 되면 모처럼의 결심은 물거품으로 변한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돈 버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엄마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 잖아도 엄마는 그 약속에 대해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시간당 12마르크면 너무 과한 금액이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가 일을 해야 돈도 주겠지만 말이다. 또한 집안일을 하기로 한 아이가 성적이라도 떨어질 경우 썩 좋은 핑계가 생긴다. "청소하 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하루 일과는 꽉 짜여져 있 다. 스포츠, 악기 레슨, 교내 합창단 활동, 서클, 워크숍, 학교 숙제, 공부 등. 13세인 프라이아 만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내게 청소 좀 시켜 보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시지만 소용 없어요. 내 핑계는 바쁘다는 거예요. 월요일엔 오후 3시 무렵에나 수업 이 끝나요. 그러면 집에 와서 뭐 좀 먹고 옷 갈아입고 피아노 연습 좀 하다가, 5시 40분에 피아노 레슨을 가지요. 그리고 정확히 7시에 집으로 돌아와서 숙제하고, 공부하고,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그러면 하루가 끝나요.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오후 2시쯤 수업을 마쳐요. 그러면 화요일에는 2시간 동안 테니 스를 하고, 수요일에는 우리에서 말을 돌보지요. 또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교내 합창단 연습 이 있어요. 조금 있으면 발표회가 있거든요. 그리고 금요일에는 수영을 하러 가야 해요. 요 즘엔 왜 이렇게 수영이 하기 싫은지 몇 번이나 꾀병을 부리고 빠졌어요. 그리고는 친구와 시내를 돌아다녔지요. 들리는 말에 수영 코치가 날 제명하겠다고 했다던데요. 아무튼 그러다 가 주말이 오면 나는 잠잘 생각밖에 없어요. 토요일엔 정오까지 잠을 자고, 일요일에는 친구 와 함께 말 타고 숙제하고 공부하고 텔레비전 보고...텔레비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 지 않아요.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요. 나는 문을 닫아 버려 요. 그러면 엄마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고, 나는 방안에서 귀를 틀어막고 아예 신경을 꺼버리지요. 그리고 나서 조금 있으면 엄마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게로 와서는 날 이해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럴 거면서 그 난리는 왜? 아빠는 벌써 여러 차례나 마치 기 계 작동시간 프로그램을 짜는 공창책임자처럼 우리의 일일생활계획표를 짜주셨지요. 한 마 디로 쓸데없는 노력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나의 하루는 이미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짜여 있으니까요." 이것은 비단 프라이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많은 10대들의 하루는 빡빡한 일정으로 들어차 있다. 집안일을 도울 '시간'도 '마음'도 없다. 가사일 돕기는 어려서부터 "언니네 가정을 보면서 나는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도리스 바이너르 트는 말한다. "언니는 입버릇처럼 아이들이 어린 동안은 자기가 모든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할 거라고 말했었지요. 먼지 훔치고 , 유리창 닦고, 걸레질하고....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하고, 아이들은 그저 정원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야 한다나요. 조카들은 이제 열두살, 열네 살이 되 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요. 그렇게 큰 집도 아니어서 현관이나 계단 청소쯤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고, 더 이상은 시키지도 않을 텐데 말이에요. 피아 노다 테니스다 농구다 재즈댄스다 보충수업이다 너무너무 분주할 뿐이지요. 그런 조카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가사일 돕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요즈음 아이들이 있을 때면 방을 혼자서 휙 닦아 버리지 않아요.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게 하지요. 아이들과 함께 주방을 닦다가 물바 다가 되고, 마른 행주질을 하다가 그릇을 깰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매우 재미있어하 고, 나도 가사노동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좋습니다. 내게 걸레질은 더 이상 빨리 끝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수단이지요. 나는 남 자아이나 여자아이나 똑같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딸 카트린도 자기가 여자라서 집안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또한 어릴 적 카트린이 조그만 일 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을 했다고 돈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식탁차리기, 꽃에 물주기, 자기방 침대 정리하기, 계단 청소등이 카트린의 몫이죠. 남편은 저녁이면 피곤해합니다. 저 도 마찬가지이구요. 저녁은 우리 모두의 휴식시간입니다. 대신 주말엔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아침과 점심을 준비하지요. 아이들에게 아빠도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합니 다. 집안일 조금 했다고 돈을 주는 것은 말도 안 되구요. 집안일 돕는 것이 뭐 특별한 일인 가요. 집안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은 아이를 파출부처럼 대하는 것이다. 다름없습니다. 아 이들도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고, 처음부터 집안일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했다! 그러나 아이들 수준을 고려하면서 집안일에 대한 흥미를 유발해 주는 것은, 엄마가 전업 주부일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다. 맞벌이 엄마는 힘들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집에서는 아이의 유치원이나 학교, 여가 활동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양육기관의 보살핌을 받 으며 잘 커주는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즐겁 게 가르칠 방법은 없을까? 마케팅 에이전시의 홍보담당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크리스틴 괴덱케의 경우는, 그런 문제 점을 바람직하게 해결한 예이다. 이혼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자기와 같은 상황에 처한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집 한 채를 빌렸다. "일을 조정하여 우리 중 한 사람은 늘 집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여의치 않았어요. 1주일에 두 번 외할머니가 오시고, 아르바 이트 여대생을 쓰더라도 하루 정도는 방과후에 아이들끼리 있어야 했죠. 하지만 우리 아이 들은 잘해 나가고 있어요. 큰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간단한 음식은 스스로 해먹을 수 있 게 했지요. 골목 모퉁이만 돌면 상점들도 많아서 자기들이 장을 봐오기도 하구요. 하지만 집 안일을 했다고 돈을 주진 않아요. 큰아이들은 작은아이들의 공부를 도와 주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연한 일이에요. 아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 지요. 우리는 애들에게 엄마들을 도와 주어서 고맙다고 하지요. 그리고 잘했을 땐 칭찬을 많 이 해주고, 잘못했을 땐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 줘요. 돈은 세차를 한다든지, 주말 에 손님이 왔을 때 서빙을 돕는다든지 하는 특별한 일을 할 때만 줘요. 열다섯 살 팅카는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 주고 한 사람당 10마르크를 받는데, 종종 내 머리도 맡긴답니다." 아르바이트는 언제부터? 집안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안일을 한다고 돈을 주면 집안일을 당연한 일로 생각지 않는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돈을 안 받고 안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 문이다. 또한 돈을 받았으니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가뜩이나 시간 없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아이들의 오후가 숙제, 운동, 음악 레슨등으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일을 했을 때는 돈을 주어도 좋을 것이다. 엄마의 자전거를 고쳤다든가, 잡 초를 뽑았다든가, 잔디를 깎았다든다, 방을 도배했다든가, 계산서를 철해 놓았다든가, 울타리 를 만들었다든가 할 때 말이다. 아이들에게 다른 집일을 도와 주라고 하면 더 잘한다. 당신 의 딸이 이웃집 울타리 치는 것을 도와 준 대가로 이웃 아줌마로부터 30마르크를 받는다면, 아이는 좋은 일을 하고서 돈을 벌었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시키려고 마음만 먹으 면 시킬 일은 얼마든지 있다. 지하실이나 옥상, 또는 차고 청소, 낡은 주방 장식장 닦기, 관 상용 나무의 분갈이, 간단한 선반 제작, 복도에 새 그림을 거는 일 등, 당신이 하려고 했지 만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을 시키면 될 것이다. 단 "옥상 좀 청소해!"라든가. "잡초 좀 뽑아!"라고 가부장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명령은 부담스럽고 막연하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지난번에 심은 무가 전혀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잡초가 기운을 막아서 그런 것 같은데. 무밭에 잡초 좀 뽑 아 주겠니? 그러면 그 대가로 4마르크를 주마!" 이런 식으로 하라. 옥상, 지하실, 차고도 마 찬가지이다. ("차고에 유리컵과 유리병, 그리고 깡통들이 있거든. 그것들을 분류하여 박스에 넣어 주겠니?") 아이가 언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그때그때의 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한다. 제한은 없다. 9세짜리가 차고 문에 신나게 페인트칠을 하는가 하면, 12세짜리는 '그런 냄새나는' 일 대신 팬 케이크 굽는 일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아동노동보호법에는 아이들에게 허용된 노동 의 양이 공식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EU 지침에 따르면, 아이들은 13세부터 주당 5일간 하루 2시간씩 신문배달이나 추수돕기 등의 가벼운 노동을 할 수 있다. 베이비시터, 전단지 돌리 기,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공식적인 고용허가가 나는 것은 15 세 이후이다. 또한 아동에게 금지된 노동을 시킬 경우 3만 마르크(지금까지는 2만 마르크)의 벌금이 부과된다. 시민법 제1619조는 "아동이 부모의 분양을 받는 한 능력과 형편에 맞게 부모를 도울 의무 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했던 12세 미만의 아이들 중 부모의 생업을 돕고 돈을 받거나, 규칙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15세부터 현격히 달라진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로는 할머니네 집 잔디를 깎거나, 이 웃집 아기를 봐주거나, 연금으로 살아가는 병든 노인을 위해 장을 보는 일 등이 있었다. 그 리고 스스로 번 돈은 저축하거나, 스케이트 보드, 롤러 블레이드, 록 콘서트 티켓, 알루미늄 도금 자전거 등을 구입하거나 여행비로 쓴다고 답했다. 올해 13세인 헤트비히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가끔 베이비시터를 해요. 저녁시간에 아기 를 보면 10마르크를 받지요. 아줌마는 항상 더 주시려고 하지만 난 됐다고 해요. 그 일을 하 는 것은 꼭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죠." 시골에 거주하는 남학생 프란츠(19세)의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은 스트레스받는 일이기도 해요. 나는 여가시간만큼은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싶어요. 조용히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도 하 고, 그냥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유흥비로 날릴 거라면 뭐하러 그렇듯 아등바등하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친구들과 돈을 합쳐 공동으로 비싼 컴퓨터를 마 련했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지금 모니터 앞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지요.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말이에요. 전에는 함께 놀면서 재미있게 지냈었는데 다 옛날 일이 되어 버렸어요. 난 친구들이 너무 돈을 밝힌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도 너무 많이 쓰고요." 15세 이상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져, 15~20세 청소년들이 쓰는 돈의 57퍼 센트는 불규칙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번 돈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세만 되면 월수입 의 절반은 용돈, 절반은 아르바이트로 이루어진다. 여가시간이 너무 많아서 아르바이트를 하 는 것인가? 여가시간을 보내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돈 쓰지 않는 여가시간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바쁘다 바뻐 16세 소년의 말이다. "여가시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죠! 그러나 우습게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가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여타 청소년들의 감정을 대변하 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에는 여가시간이 턱업이 부족하다. 여가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은 거의 없으며. 여가시간을 진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낸다는 청소년도 없다. 잡지 '청소년과 사회'에서 토마스 보데는 이렇게 지적한다. "오늘날 여가시간의 특징은 분주함, 스트레스, 시간 부족이다. 소비는 거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텔레비전 시청부터 쇼핑까지 소비와 관련된 일들이 여가시간을 가득 채우며 일을 만든다."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가는 곳마다 돈이 들지요! 돈이 없으면 카페도, 극장 도, 축구장도 못 가고 한턱 낼 수도 없습니다!"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을 돈 들이지 않고도 창 조적으로 보낼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아이들을 손아귀에 넣고 조종하기 때문인가? 마치 모두가 쇼핑중독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옛 서독 지역엔 최소한 3백만의 성인이 쇼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다.) 여가시간 연구가인 오파쇼프스키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기가 여가시간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청소년들만 그런 게 아니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시간과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한다! 시간 활용과 구 매에 있어 주체성을 잃어버렸다. 소비 사회의 조작에 대항하지 못하며, 주어진 가치체계 안 에 묶여 있다. 거기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판적인 자기 관찰만으로 충분하다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행동을 비판적인 눈으로 분석해 보는 것은 자기 인식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가시간 전문가는 "주어진 상황 에 동의하지 말고 그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며, "어떤 원칙 으로 돈을 쓸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렵게 생각되는가? 도리스 바이너르트는 자녀가 태어나면서 구매 원칙을 바꾼 경우이다. 그녀는 백화점을 들락거리게 만드는 기업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녀에게 눈높이를 맞 추면서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 이제 그녀는 고급 도자기나 정교한 크리스탈 대신, 망가져도 괜찮은 사기나 놋쇠,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한다. 꼬마 토마스는 부엌을 깨끗이 정돈된 엄마 의 '중앙 통제실'이 아니라, '남자도 함께 어울리는' 자연스런 놀이 공간으로 생각한다. 토마 스가 10대가 되어도, 엄마와 고양이는 온 집안을 진동시키는 문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임 에 틀림없다. 7. 세련되고 멋지게 "난 메이커에 약해!" 패트릭은 진짜를 좋아한다. 어두운 빛깔, 고상한 디자인, 부드러운 질감, 브랜드 표시... 유 사품이라구? 아니다. 그는 유사품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안다. 이음새가 정교하고, 맵시가 나 야 한다. 7호에 사는 여자아이도 패트릭이 켈빈 클라인을 입은 걸 알아볼 것이다. 패트릭은 그 아이와 함께 다니고 싶다. 같이 숙제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가 원한다면 수영장에도 같이 갈 텐데... 13세 소년은 아직 꿈꾸고 있다. 유년기를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기준은 '누군가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는 것'과 '자 기 옷을 자기가 고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살펴보면 서로 짜고 사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이다. 내 가 만난 아이들도 모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모자 달린 스웨트 셔츠에 청바지. 그 위 에 날씨가 좀 쌀쌀하면 패딩조끼나 점퍼(등에 폴로 등의 브랜드 표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를 겹쳐입는다. 여자아이들은 8세까지는 엄마가 사오는 꽃무늬 옷을 입지만, 좀더 크면 공주 패션을 거부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나 모자달린 스웨트 셔츠를 입는다. 파스텔 톤이 주 류를 이룬다. 물론 사춘기가 되면서는 특별한 때엔 특별한 것을 입는다. 미쏘니 니트, 꽈배 기 무늬의 카프리 바지, 짧은 원피스와 쫄바지, 꼭 달라붙는 바지에 검정이나 하얀 티셔츠, 그물망 조끼. 조금 더 크면 폭 좁은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입고 싶어하는 옷은 거의 비슷하 다. 물론 주로 도시아이들이 비싸고 세련된 옷을 입는다. 시골에서는 카탈로그를 통해 유행 의 경향을 파악한다. "옷 사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 드는 것을 사고 싶어요!" 청 소년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옷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런 사실은 입증되지 않는다. 전국 청소년들을 대상으 로 조사한 결과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새 옷도, 자기 컴퓨터도, 돈도 아니었다. 학 자들이 청소년들에게 또래 친구들 중에서 어떤 아이들이 가장 매력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 문한 결과, 정직하고 믿음이 가는 아이들과 자신있고 친절한 아이들이 인기 있는 것으로 나 타났다. 전국 청소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서열을 제시해 본다. 1.믿음직하다. 2.자신감 있다. 3.친절하다. 4.이성에게 호감을 준다. 5.리더십이 있다. 6.예의가 바르다. 7.예쁘다(잘생겼다) 8.운동을 잘한다. 9.옷을 잘 입는다. 10.공부를 잘한다. 11.신체가 건장하다. 12.어른 앞에서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13.자기 컴퓨터가 있다. 14.주먹이 세다. 15.돈이 많다. 16.좋은 오디오를 가지고 있다. 17.금지된 행동을 한다. 이런 결과는 전국 공통이었다. 믿음직스럽고 친절하면서도 자신감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친구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단지 6위와 10위에서만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였는데, 옛 서독 지역 아이들보다는 동독 지역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과 예의바른 것을 더 중요시하였다. 자기 컴퓨터를 가지 고 있는 것 역시 동독지역에서 더 인기가 있었다. 디자이너 브랜드나 켈빈 클라인 속옷, 또는 좋은 오디오가 친구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나는 딕키즈(청바지)를 입어요. 그냥....좋으니까요!" "난 리바이스를 입어요. 잘 맞으니까 요!" "나는 야구복만 입어요, 편하니까요." 아이들은 옷에 관한 질문을 귀찮아했다. 별로 할 말이 없다는 태도다. 여자아이들은 옷을 사러 갈 때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가서 판매대를 재빨리 훑으며 마음에 드는 걸 여러 벌 입어 본 다음 '기막히게 어울리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혼자 가서 가게 점원에서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그 옷을 입음으로써 누구에게 잘 보일까 라는 생각보다는) 자기만 마음에 들면 산다. "그 옷은 구닥다리야. 그걸 입고 가면 다른 애들이 비웃는단 말이에요." "다른 애들은 다 그런 신발에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데 나만 이게 뭐야."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 부모들은 당황한다. 이런 말들은 사실이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쨋든 아이가 옷을 사려고 마음먹 었다는 것이다. 성적이 나쁘거나, 외롭거나, 다른 실망스런 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부분의 부모들은 그 원인을 알 재간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매달 일정액의 의류구입비를 받는 아이들은 쉽게 아무 옷이나 사 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옷을 살 때면 옷감의 질과 바느질을 꼼꼼이 살핀다. (안달복달 하는 판매원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여유 있고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한다. 이런 구매는 재미 도 있다. 아이에게 의류구입비를 책정해 주어 보라. 부모들은 도리어 자녀들에게 배울 것이 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잘 안다. 전제는 단 한 가지, 책임지고 자신의 돈 을 관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10대들은 계절당 의류비로 평균 2백 마르크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돈이다. 의 류구입비는 가정의 수입, 가치관,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여름보다 겨울이 더 많이 들고, 나이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가 커갈수록 성장 속도가 둔화되긴 하지만, 유 행을 따지는 경향이 생긴다.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어도 자기 티셔츠는 자기가 고르려고 한다. 구입하고 나서 실망했 을 경우 그 이유 또한 재빨리 알아차린다. 용돈은 주당 지급하더라도 의류구입비는 한달을 기준으로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용돈과 의류구입비는 어렵더라도 따로 분 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류구입비 명목의 저금통을 만들면 좋을 것이다. 의류구입비를 책정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보자. 1.겨울옷? 2.장화, 신발? 3.속옷 4.원피스, 바지, 스타킹, 스웨터? 5.운동장비? 겨울 외투나 부츠 같은 비싼 물건을 살 때는 아이가 먼저 상점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것을 고른 다음, 판매원에게 물건을 보관해 달라 하고는 엄마와 함께 가서 돈을 지불하고 찾아오 는 것이 좋다.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 아이가 호주머니에 몇백 마르크를 넣고 상점을 기웃 거리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메이커를 따지는 편이죠."라고 벤야민(13세)은 말한다. "하지만 정품을 사지는 않아 요. 501(청바지)을 50퍼센트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산 적도 있구요. 이 자전거도 특별가로 구입한 거예요." 그의 친구인 시몬도 이렇게 말한다. "나도 보통은 메이커를 사요. 나는 옷에 꽤 신경을 쓰 는 편이거든요. 남보다 튀어보이고 싶어 세련된 옷들만 찾지요. 난 내 취향에 맞는 옷가게를 알고 있어요. 보통은 혼자서 옷을 사지만, 돈이 모자랄 때는 계약금을 내고 물건을 보관시키 기도 해요. 그러면 엄마가 가서 나머지 금액을 지불하고 찾아오시죠." 프리랜서 번역가로 9세인 딸과 12세인 아들을 둔 프라우케 쉼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옷에 전혀 신경을 안 써요. 딸아이는 그렇다치고 알렉산더는 정말 끔찍해요. 청바 지는 다 해어지고, 운동화는 어디서 빌어먹고 다니는 애 같아요. 하지만 나는 되도록 간섭하 지 않으려고 해요. 사춘기가 되면 좀 달라지겠지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옷에 관심이 없는 건 분명해요. 유행을 따라가기는커녕 그런 아이들을 비웃는다니까요. 내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생전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옷을 사준 적이 없었거든요. 주로 중고매장이나 이월상품을 이용했죠. 아이들에게 옷을 사라고 돈도 주어 보 지만 쓰질 않아요. 알렉산더는 그냥 가지고 있고, 딸아이는 그 돈으로 추리소설이나 화구통 을 사지요. 사춘기가 되면 멋도 좀 부릴 줄 알아야 할 텐데." 튀어 보이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히려 튀어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한다. 하지만 겉치레는 싫어한다. 아이들의 옷장이 가득 차 있는 현상은 아이들 책임이 아니라 엄마의 책임인 듯하다. 아이들은 신뢰감과 자신감, 친절심을 중요시한다. 옷을 잘 입는 것은 아홉번째에 머물렀 다. 사춘기가 되어 외모에 신경을 쓰더라도 우리는 아이들을 신뢰해 주어야 할 것이다. 13세 가 되면서부터 아이들의 요구가 부쩍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모를 구워삶는 법 졸라댄다구요? 타니아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럴 필요 없어요. 갖고 싶은 것을 말하면 언 제든지 사주시니까요. 하지만 갖고 싶은 것이 별로 없어요." 갖고 싶은 것이 없다고? 그럴 만하다. 타니아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타니아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가 지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타니아는 하노버 교외에 살며 말을 타고 숲과 들을 누빈다. 그녀의 방은 상대적으로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텔레비전과 오디오 대신 몇몇 댄스 그룹의 브로마이드와 말 그림이 걸려 있다. 타니아는 액세서리를 수집한다. 수집한 것들을 사람 크기만한 스치로폴 인형에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 양의 액세서리들이 하얀 색 스치로폴 몸에 물결치듯 매달려 있다. 11세짜리가 그것을 가지 고 무엇하느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한다."그냥 보는 거지요. 엄마와 친척들로부터 선물받아 모든 것들이에요. 너무 많다 싶을 때는 친구의 생일날 선물하기도 하지요. 친구도 액세서리 를 좋아하니까요." 옷이오? "옷은 엄마 옷 사러 나갔을 때 얻어입어요. 엄마와 쇼핑하는 것은 재미있어요. 어 른 옷들은 정말 멋지지요. 나도 그런 옷을 입고 싶어요. 엄마는 엄마 옷을 고른 다음 내 옷 도 사주지요." 13세인 슈테판은 이렇게 말한다. "가지고 싶은 게 있는데 부모님이 안 사주실 것 같으면 나는 조르고 조르고 또 조르지요. 그게 다예요. 항상 그런 식이죠.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 요. 드럼을 샀는데 너무 커서 내 방에 들여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하실에 있는 자전 거를 치우고 그곳에 들여 놓으려 했죠. 그러자니 자전거를 넣을 창고가 하나 있어야 했어요. 내가 하도 졸라대니까 아빠는 드럼을 지하실에 넣어 주시고, 자전거를 넣을 창고는 따로 지 어 주셨죠. 이제 나는 지하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드럼을 쳐요. 친구의 신시사이저도 갖다 놓았어요. 바라는 거요? 한가지 말하라면 우리 자동차에 커다란 텔레비전을 설치하는 거예요. 여행길에 아주 지루하거든요. 안해 주시면 차 안에서 또 졸라대겠죠." 14세인 니콜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류구입비를 타지 않아요. 의류구입비를 타면 다 른 데에 금방 써버릴 걸요. 내 통장엔 2천 마르크 정도가 들어 있어요. 그것으로 옷을 살 수 는 있겠지만, 아빠는 그 돈으로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라고 하세요. 옷은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옷은 보통 엄마가 쇼핑하는 데 따라갔다가 얻어입어요. 옷 사달 라고 졸라대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디스코텍에 갈 때는 달라요. 엄마는 디스코텍 가는 걸 싫어하셔서 돈을 주지 않으려 하세요. 나는 조르다가 안 되면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지요. 그렇다고 엄마를 넘어가게 할 만한 작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돈을 받으면 가고 안 주면 할 수 없지요. 어떤 때는 엄마가 돈을 안 주면 친구에게 빌려서 가기도 해요." 15세인 세바스찬은 이렇게 말한다. "조르는 거요? 그건 어린아이나 하는 짓이지요. 각자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해요. 우리 부모님은 공부에 관계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해 주 겠다고 하시죠. 그래서 나는 그 점을 이용해요. 요전에도 친구들과 돌로미텐(알프스의 일부) 으로 스키를 타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어요. 부활절 휴가를 이용하여 체력을 단련시 키겠다고 했죠. 그리고 이번에는 최신 오디오를 얻어낼 참이에요. 오디오도 어떻게 보면 공 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 대리점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들을 모아 가서 함께 상의해 보자고 하면, 부모님은 (오디오를 잘 모르시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겠지 요. 물론 괜찮은 걸로 골라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 목표는 소형 오토바이예요. 오토바이 역 시 조른다거나 속임수를 쓴다거나 해서 되는 건 아니죠.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적절히 설명하여야 해요.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틀림없이 좋은 방안이 떠오를 거예요." 13세인 사브리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방 카페트는 너무 낡아서 항상 새것을 사고 싶었 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게 얼마나 비싸게 주고 산 건데....'라고 말씀하셨죠. 어느 날 나는 내 친 김에 친구와 함께 내 방 천장을 다른 색으로 페인트칠하기 시작했어요. 짙은 감색 바탕 에 별이 떠 있는 멋진 하늘을 그리려고 했죠. 그런데 부산하게 난리를 피우다가, 내 페인트 통이 넘어지면서 그만 페인트가 바닥으로 흘러나왔어요. 카페트는 완전히 엉망이 됐고, 엄마 는 굉장히 화가 나셨죠. 내가 좀 비열했나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집에 중요한 손님이 오 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카페트를 새로 사주실 수 밖에 없었어요. 이거랍니다. 예쁘 죠?" 사브리나의 친구 리지는 이렇게 말한다. "사브리나와 나는 미국 여행을 하고 싶어요. 고래 가 보고 싶거든요. 엄마 아빠도 뉴욕과 플로리다에 가보고 싶어하시니까 조르면 될 법도 한 데... 서해안을 따라 오리건으로 가다 보면 수염고래와 혹고래들이 바다에서 뛰노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보고 싶어요. 하지만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생일도 지나고,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허락을 해주시지 않아요. 얼마 전엔 내게 '원하는 것 을 다 가질 순 없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 다음 봄에도 그곳에 가지 못한다면 나는 울며 떼를 쓸 거예요. 허락할 때까지요." 8세인 올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소원은 고양이를 키우는 거예요. 아주 작은 고양이요. 나는 벌써 고양이 먹이값을 저축하고 있어요. 태어나는 데는 돈이 들진 않지만 먹여야 사니 까요. 엄마는 내 의견에 반대예요. 카페트에 털이 묻는다고요. 하지만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되잖아요.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11세인 아드리안의 말이다. "내 소원 역시 미국 여행이에요.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어요. 허락을 받아내기 위한 작전 같은 건 없지만 우린 기필코 갈 거예요. 미국 전역을 횡 단하면서 동물들을 많이 보고 싶어요. 나는 동물학자가 되고 싶거든요. 그렇지 않다 해도 어 쨋든 유익한 경험일 거구요." 마리나(14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바라는 것을 부모님이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 으면, 나는 그보다 훨씬 큰일을 생각해 내요. 이를테면 친구와 둘이서 승마 목장에 놀러 가 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을 안해 주실 것 같으면, 나는 한참 부풀려서 말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요. 내 말을 타고 달려 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며, 말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요. 며칠간 계속해서 말을 사달라고 조르면, 엄마는 조금 누그러져서 우리집엔 말을 키울 만 한 데도 없다는 등 나를 달래기 시작하시죠. 그러면 나는 그 틈을 타 큰 양보라도 하는 듯 이렇게 말해요. '그럼 소냐와 둘이 승마목장이라도 가게 해주세요.'라구요. 멋진 방법이죠." 아이들 각각 바라는 것도 다르고, 바라는 것을 손에 넣는 방법도 다르다. 확실한 유년기를 벗어나는 데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8. 동전, 지폐, 은행 아리아네는 최신 CD와 워크맨을 가지고 있으며, 메이커옷만 입고, 매주 연예잡지를 사본 다. 아리아네의 오빠 카를로 또한 성능 좋은 오디오와 PC, 그리고 최신 슈퍼 닌텐도 게임기 를 가지고 있으며, 리바이스를 입고, 유명메이커 운동화를 신는다. 카를로는 요즈음 스포츠 코너에 어떤 브랜드가 뜨고 있는지 아빠에게 조언까지 한다. 아리아네는 10세이고, 카를로는 12세이다. 아이들이 브랜드 이름을 더 잘 안다. 그들은 비판적이고 솔직하며 까다롭고 질을 따지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들의 연구에 의하면, 학업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 에 비해 브랜드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업계 학교의 아이들이 인문계 학교의 아이들보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는 통계 역시 이런 사실을 뒷 받침하고 있다. 브랜드 선전은 보통 텔레비전과 비디오, 컴퓨터 게임에 나오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거나 용돈이라도 올리고 싶을 때면, 아이들은 어찌 그리 말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거기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은행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은행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이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이 상상외로 무 지하다는 데 놀랄 것이다. 심리학자 아네테 클라는 학술 논문 '청소년의 경제 관념 발달'에 서 이렇게 쓰고 있다. "10세가 넘는 아이들도 은행이 자선을 베푸는 곳인 줄 안다. 도둑맞지 않도록 돈을 금고에 보관해 주는 곳으로 말이다. 또한 은행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사람들 을 도와 주고,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은행에는 항상 돈이 넘치는 줄 안다. 은행은 국가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공 급받으며, 은행 직원들의 봉급도 국가가 주는 줄 안다. 아네테는 위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 다. "많은 아이들은 은행이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설립한 기관으로 안다. 사람들의 돈을 맡아 안전하게 보관해 주고,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돈을 빌려 주는 곳으로 말이다." 10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은행이 돈으로 돈을 버는 이윤추구형 기업이라는 것을 꿈 에도 생각지 못한다. 중학교에서도 은행의 운영방식과 화폐 및 대출제도에 대해 전혀 배우 지 않는다. 15세 이후에야 은행이 사회봉사단체라는 이미지가 서서히 깨지고 이윤을 추구하 는 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함정은 이미 닫힌 상태이다. 아이들은 보통 14세에서 16세 사이에 은행을 선택하여 구좌를 개설한다. (고객들의 과반수가 한번 선택한 은행과 계속해 서 거래한다.) 직장인이 되면 수입 전체를 '어릴 때 선택한' 은행에 맡기게 된다. 은행은 어린이 고객을 유치하려고 노력한다. 2000년이 되면 아동 인구수는 1980년의 절반 으로 줄어든다. 각 은행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아동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젊은 세대를 얻는 자만이 향후 대차대조표에서 고객의 증가를 기록할 수 있다! 청소년 연구소는 14세의 30퍼센트, 16세의 50퍼센트, 19세의 90퍼센트가 거래구좌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18세까지는 대부분 특정한 금융기관과 연결된다는 말이다. 이제 백화점도 슈퍼마켓도, 구두점도, 청바지 가게도, 병원이나 자동차 거래상도 금융기관 만큼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저축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각종 금융기 관들은 소비 사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갖가지 대출을 조장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광고를 보면서 얼마나 구매 충 동을 느끼는지, 1주일을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에 내맡겨져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11세의 쌍둥이 엄마인 일로나(35세)는 자신의 어려움을 이렇게 피력한다. "어떤 땐 굉장히 화가 납니다. 오늘날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어요. 매일매일 텔레비전과 잡 지, 광고와 싸우는 동시에, 다른 부모들의 무덤덤한 태도와도 맞서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잡지를 읽건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나는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보고 있 으면 참지 못합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광고가 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돈이며, '너희들 의 주머니나 돼지 저금통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용돈을 끌어낸다'고 설명해 주지요." 이러한 '용돈'으로 1년에 3만여 개의 유치원을 지을 수도, 국가의 빚을 갚을 수도, (아동담 당관이 한 명도 없는) 국회를 위해 배부른 건강식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들의 용 돈에 많은 힘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용돈을 아끼고 사려 깊게 사용 할 것이며, 내일이면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것들을 위해 돈을 아무렇게나 지출해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솔직하고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소비자로 키우는 것은 시간이 갈수 록 더욱 중대한 사안이 될 것이다. 자율적 소비라는 말은,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모든 것 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소비 행위를 말한다. 잡동사니 나라의 앨리스를 신기한 나라로 되 돌려야 한다! 대중매체들의 일방적인 정보가 아이들의 의식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반대편의 정보 와 계몽, 제도가 없으면 아이들은 거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10세 정도까지의 아이들은 거 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10세 정도까지의 아이들은 다른 어떤 사람의 말보다 부모의 말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대중매체나 학교나 기업보다 부모의 영향이 더 지대한 시기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적절한 '반대 정보'를 알려 주어야 한다. 은행이 사람 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돈을 도둑맞지 않도록 금고에 보관해 주는 공공기관이라고 믿는 무 지 가운데 있게 해서는 안 된다. 혹은 우리 어른들조차 이런 유아적인 믿음의 '잔여분'을 가 지고 있지는 않는가? 대출의 유혹 좀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 이것은 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의 목표이다. 그들은 소비를 조장하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강조하면서 돈을 쓰게(은행의 경우 돈을 대출받게) 만든다. 젊은이들의 소비욕을 자극한다. "돈 자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비싼 오디오와 세련된 옷을 살 수 있다.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나 자 동차를 살 수 있으며,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학생이나 직업 초년생이 어 디서 쓰고 싶은 만큼의 돈을 얻는단 말인가? 부모가 아무리 관대하더라도 용돈은 한계가 있 다. 또한 수습기간의 보수는 매우 적다. 그리고 돈이라는 게 버는 건 어려워도 쓰기는 얼마 나 쉬운지, 여기서 필요한 것 몇가지를 사고, 저기서 추동 구매 몇 번 하다보면 도능ㄴ 금방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경기용 자전거와 성능 좋은 PC, 새 스키 장비, 꿈에도 그리던 여행을 생각하며 우리 아이 들은 머리를 굴린다. '아르바이트를 할까, 장학금을 탈 수 있을까, 어떻게 돈을 모을까?'에서 대학생쯤 되면 '신용대출을 받을까?' '조금 있으면 형편이 나아질 거야. 그렇다면 대출을 받 자!' '지불 유예기간이 가장 긴 곳은 어디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부정적이고 윤리 적인 통념은 사라진다. 아무도 대출에 따른 비용과 위험성을 경고해 주지 않는다. 무방비 상 태로 갈고다듬은 판매 전략에 내맡겨진다.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면 자동적으로 캐시 카드가 발급된다. 현금자동지급기가 있는 곳에 는 밤에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젊은이들은 마음대로 돈을 빼낼 수 있다. 캐시 카드는 어 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현금이 바닥나 서비스를 받을 때도 돈을 언제 갚 을 거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곳곳에 현금지급기와 현금서비스기가 서 있다. 카드만 밀어넣으면 1분도 안 되어 1천 마 르크를 손에 쥘 수 있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다. 프리랜서 엔지니어인 페터 멩거(43세)의 말이다. "우리는 큰애 하이코 때문에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코는 바이에른에서 토목공부를 시작했지요. 우린 슈투트가 르트에 살고 있었어요. 혼자 떨어져 공부한 지 1년이 지났을까, 우리는 정말 우연히 아이가 4천 마르크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빚 을 갚아 나가려고 했지만,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란 쉽지 않았지요. 주말에는 여자친 구가 찾아왔구요. 그래서 빚은 점점 쌓여갔던 겁니다. 아내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 나 그래 봤자 소용이 있나요? 저도 적잖이 유감스러웠습니다. 어떻게 그렇듯 짧은 기간에 그 많은 빚을 질 수 있었던 건지. 갑자기 혼자 떨어져 공부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 주어야 할 것인지...... 우리는 공동의 '타개책'을 강구했습니다. 아들은 더 싼 집으로 옮겨갔고, 우린 은행 빚을 완전히 갚아 버린 후 빚의 절반은 아이 스스로 매월 조금씩 나누어 우리에게 부치라고 했습 니다. 또한 우리 역시 그동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아들의 생활비를 너무 적게 주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들아이는 생활비가 모자랐고,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저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거 하나는 좋게 봐줘야겠지요." 직업훈련생 토마스(21세)의 말이다.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르고 난 후, 나는 곧바로 병역 대체 근무에 들어갔습니다. 지금보다 월급은 더 많았지요. 하지만 내가 돈을 아무렇게나 쓰 는 바람에 1천 마르크의 현금 서비스를 받게 되었어요. 1천마르크에다 14.8퍼센트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어요. 결국 내가 갚아야 할 총액은 1천5백 마르크에 가까운 액수였지요." 청소년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상태로 성년이 되었을 때, 부모도 모르는 상태에서 빚 을 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해변가에서 휴가의 기쁨을 만끽하시지 않겠습니까? 섬은 어떨까요? 망설이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여행비는 할부로 조금씩 상환하시면 됩니다! 노리스멀티에서 는 모든 것이 간단합니다!" 이 회사의 중견 나리(!)들은 어려서부터 경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젊은이들이, 이런 광고 때문에 쉽게 빚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음을 알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광고주들은 광고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청소년들이 그런 광고를 보고 어떤 충동 에 사로잡힐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조촐한 예산은 광고에 의해 달구 어진 소비욕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많은 청소년들은 소비에서 정체성을 찾고 있다. 가지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자는 아무 데도 속할 수 없는 'Nobody'가 된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떤 아이도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 을 수' 없다. 스포츠에 열광한다거나, 이재에 밝다거나, 예술적 재능이 있다거나, 인색하다거 나, 명랑하다거나, 겸손하다거나, 관대하다거나, 솔직하다거나, 여행을 좋아한다거나, 그 어떤 특성을 가진 아이든 그것이 어느 정도 부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받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엄마라면, 나중에 자기 딸이 자라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쳐도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기업과 은행으로부터 굉장히 쉽게 조종당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경제 감 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경제 용어를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별세계의 암 호로 여긴다. 미래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경제관념을 국제적으로 비교한 결과,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유럽의 아이들보다 이윤추구의 원칙을 빨리 이해하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생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사업 감각이 뛰어난 것은 당연 한 일일 것이다. 홍콩의 아이들도 미국과 스코틀랜드의 아이들보다 은행의 진모를 훨씬 더 빨리 파악하고 있었다. 홍콩에 사는 10세의 중국 아이는 은행이 돈으로 돈을 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 었던 것이다. 경제가 중요시되는 나라일수록, 아이들이 조기에 경제 질서에 편입될수록 경제 관념도 빨 리 생성된다. 홍콩 아이가 유치원 시절부터 벌써 모노폴리(판돈을 걸고 주사위로 여럿이 참 여하는 게임의 일종)를 하고 18세에 첫 생선요리체인 점을 여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러나 대학 신입생이면서 자동이체도 대출이자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미국 가정의 물품 구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아이들은 자기들이 받는 용돈의 2배 이상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옛 서독 지역에서는 그 액수가 자그마치 연간 약 2백70억 마르크 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의식적이고 비판적인 소비를 가르치는 것 은 과제(특히 아빠들의 과제)일 것이다. 사실 광고를 만들어 내면서, 자기 아이들은 그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 활동을 하는 아빠들이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앨리스를 (앨리스와 함께 신기한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의 아들딸들을) 잡동사 니의 나라로 보낸다. 9. 실습을 통한 도움 "사람들은 동물들을 남김없이 잡아먹었지요. 동물과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사냥할 동 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만들어 냈지요. 돈으로 먹을 걸 사려구요. 돈이 밀보다 더 나 았어요. 밀은 질질 끌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에 비해 작은 동전과 지폐는 운반하기가 쉬웠 고, 그래서 모두 밀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돈은 편리하고 밀보다 오래 가니까 요." 돈이 생겨난 이유를 묻는 질문에 10세의 어린이가 답한 내용이다. 자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라.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은행과 돈, 구매와 광고에 관해 가르쳐 주면 당신과 아이들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아이 들은 굉장히 재미있어 할 것이며, 당신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은행, 돈, 소매가게, 인플레 이션, 대출, 상거래. 저축, 화폐와 화폐 위조..... 이런 주제의 대화는 그동안 어른들만의 몫이 었다. 아이들은 이런 '메마른' 대화를 지루해하고 재미없어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 론 맞는 말이다. 10세의 어린이에게 대출 조건들이 깨알 같은 글자로 인쇄된 전단을 내밀거 나, '우리 시대의 경제'라는 책을 읽어 준다면 얼마나 지루해할까? 첫문장을 읽기도 전에 하 품이 나올 것이다. 지루할 뿐 아니라,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왜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돈이 생겨난 이유와 과정을 정확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만화책은 어찌하여 한 권도 없는 것일까? 12세 어린이도 대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산뜻 한 은행 안내책자는 왜 없을까? 대출의 위험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서는? 쉽게 빚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구는 왜 보이지 않을까? 금융기관의 이러한 위장전술에 대해, 우리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대비시켜야 한다. 광고 와 마케팅 전략이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굉장한 고용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우리의 아이들을 가장 중요한 목표 그룹으로 설정하여 조종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에게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시해 주는 기관은 한 군 데도 없다. 6세에서 9세까지의 아이들에게 "광고를 왜 만들었을까?" 하고 질문했더니, 약 반 수에 이르는 아이들이 "우리를 웃게 하려구요!"(독일 Media Perspektiven지 6/96)라고 답했 다. 좋은 대답이다. 하지만 부모가 옆에서 "광고하는 물건을 사게 하려구요!"라고 보충해 주 면 좋을 것이다. 인생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영향려을 가지고, 일상속에서 아이들의 (광고를 통한) 혼란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 유일한 존재는 바로 부모이다. 아이들이 매우 공격적인 광고나 대단한 은행 광고전, 극도로 세련된 마케팅 전략에 넘어 가지 말았으면 하는가? 아이들에게 당신의 시간과 창의성을 투자하라. 그러면 아이들은 자 라서 당신에게 '행운의 당첨제비'가 되어 줄 것이다. 다음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 해 놓았다. 이 방법들은 아이들을 의식있는 소비자로 기르는 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이를수록 좋다 작은 시작 아이가 아직 취학 이전의 연령이라면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가게놀이부터 시작하고, 나중에 커다란 슈퍼마켓으로 무대를 옮기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제일 먼저 할 일은, 아이에게 여러 종류의 화폐와 그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5세인 꼬마 발레리는 1백까지 셀 수 있으며, 색연필로 종이에 1이라 쓰고 동그라미 2개를 붙일 수 있다. 다른 숫자는 아직 모른다. 발레리보다 6개월 빠른 안드레아도 아직 숫자를 쓸 줄 모른다. 안드레아에게 아직 돈은 장난감에 불과하다. 안드레아는 동전을 수북이 쌓아올렸 다가 부수는 놀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두 소녀는 슈퍼마켓에 가서 1마르크짜리 은화를 내면, 속에 장난감이 든 계란 모양의 초콜릿 1개와 2개의 10페니히짜리 동전을 돌려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는 것을 작은 동전이나 한 장의 종이 를 먹을 것과 초콜릿으로 가득 찬 바구니로 바꾸는 멋진 일로 생각한다. 5,6세의 아이들은 1백 원짜리 동전과 5백 원짜리 동전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대부 분은 5백 원짜리가 조금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안다. 5백원 짜리가 좀더 크고 묵직하기 때문 이다. 이 나이에 거기에 새겨진 숫자를 보고 가치를 평가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다음에 집에서 화폐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 작은 활동을 소개한다. 테이블 위에 갖가지 동전과 지폐를 늘어놓아 보라. 1백원은 10원짜리 몇 개와 같은가? 5백 원짜리 동전은 1백 원짜리 몇 개와 같은가? 1천 원짜리 지폐는 1백 원짜리 몇 개와 같은가? 5천원 짜리 지폐는 1천원 짜리 몇 개와 같은 가? 1만 원짜리 지폐는? 숫자와 양의 개념을 알게 하기 위해 동전과 성냥, 단추, 작은 돌을 이용해도 좋다. 그 다음 실제로 물건을 구입하는 놀이를 통해 돈의 실제적인 구매 가치를 알도록 해보자. 1(2,3)마르크로 어떤 물건을 살 수 있을까? 집에서 사과, 노트, 연필, 머리핀, 껌등에 포스트 잇을 이용하여 가격을 붙여 보라. 사과나 노트를 사기 위해 어떤 종류의 돈이 얼마만큼 필 요한가? 슈퍼마켓에 다녀온 후 포장 용기를 버리지 않고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다음, 물건에 해당 하는 돈을 세어 각각의 포장 용기 앞에 놓아두는 식의 가게놀이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재 미있어하면서 다음번에 슈퍼마켓에 가면 물건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게 될 것이다. 아 이가 어느 정도 자랐다면 쇼핑 후에 구입한 물건들의 가격을 영수증과 비교해 보고, 계산기 로 물건값을 더해 보며 가격이 맞는지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인 헬렌 벨저는 딸에게 일찍부터 물건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우 리 딸은 가게놀이를 매우 좋아해요. 다른 남매가 없기 때문에 어른들을 귀찮게 하지요. 집에 누군가가 오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사야만 해요. 무게 달고 포장하는 일을 특히 좋아하지 요. 처음에는 물건값 받는 것에는 거의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러더니 여덟 살쯤 되니까, 그러 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슈퍼마켓에서 가격과 상품을 차례대로 적어 오더군요. 얼마 전에는 조용히 앉아 자신이 구입할 물건들을 적고 있더라구요. 거의 노트 2장 분량에 달했지요. 왼 쪽에는 상품명을 적고, 오른쪽에는 물건을 사온 후 가격을 적기로 했죠. 슈퍼마켓에 간 우리 는 각자 한 라인씩 분담하여 물건을 구입했어요. 양카는 굉장히 재미있어했고 나도 일상적 인 장보기에 신선함을 더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딸아이는 실제 상황에서 물건을 구입하 고 가격을 비교하는 일을 배웠고 같은 양의 설탕이라도 파는 곳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것 을 알게 되었죠. 양카는 슈퍼마켓에 가서 군것질거리들을 사달라고 찡얼대지도 않았어요. 정 말 열심이었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의 아이라면 가격 형성과 생산비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쉬운 경제 세미나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집에서도 아이와 함께 가게놀 이를 하면서 몇몇 중요한 용어들을 가르칠 수 있다. 생산비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합쳐져 결정된다. 1.인건비 2.야생 원료, 가동용 원료(예를 들어 전기세), 가구, 기계, 토지(경작지나 공장 또는 사무실), 건물비 3.자본 조성비, 즉 이자 아이와 함께 어떤 상품을 만들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 상품을 '제조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은 공장을 세운다고 생각해 보라. 가령 종이배를 만들어 소매상인들에게 판매한다고 해보 자. 그럴 경우 최종 소매가격은 상인이 부담해야 할 다음과 같은 요인이 합쳐져 결정된다. 1.상품구입비 2.판매원 고용 등에 따른 인건비 3.임대료, 전기, 기구, 설비 등의 가동비 4.광고비 5.자본조성비(이자) 이런 딱딱한 용어들도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서 전달된다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가령 다음번에 있을 축제에 아이와 함께 자두 케이크를 판매한다고 해보자. 아이와 함께 위 의 견본에 따라 생산비 산출 계획을 잡아본다. 아이들이 생산자, 아빠가 노동자가 되어 모든 개별 항목들을 계산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노동자인 당신이 시간당 얼마의 임금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다면, 아이들은 수당을 많이 받기위해 자두씨 빼는 작업을 되도록 느리게 하려 할 수도 있다. 그 경우 그렇게 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단가가 올라가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설명해 주어야 g나다. 완성된 자두 케이크를 30조각 정도로 분할하여 놓고 한 조각당 생산비를 산출해 본다. 그 리고 케이크 한 조각을 팔아서 얼마의 이윤을 낼 것인지(낼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광고와 이윤, 수요와 공급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이다. "자두 케이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까?" "자두 케이크를 선전하는 현수막을 하 나 그릴까?(비용은?)" "남는 케이크는 어떻게 처리할까?" 아이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종이에 '손님', '제과업자', '광고인', '노동자', '판매원' 이라고 서서 아이들의 모자에 붙여 주면 좋을 것이다. 비단 거리축제일이 아니라도 괜찮다. 할머니가 오실 때 이런 행사를 마련하여 깜짝 놀라게 해줄 수도 있다. 그때는 진짜 카페처 럼 한 조각에 2마르크 50페니히를 받아도 될 것이다. 탐정활동: 질과 가격 비교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시장에 나가서, 진열대 이곳저곳을 돌며 물건값을 비교해 보 는 것도 좋다.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아이는 마치 탐정처 럼 물건과 가격을 수첩에 적는다. 1번 진열대(배 1킬로그램에 3마르크 80페니히. 2번 진열대 (배(약간 흠이 있는 것)) 1킬로그램에 4마르크. 당신은 아이가 살펴본 물건을 구입한다. 그 리고 그 목록을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번에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 갈 때 들고 간다. 여기서 는 배 1킬로그램이 얼마인가? 질은 똑같은가? 어디어디가 더 싼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 비교, 이윤, 상품 판매, 계산 등의 개념도 아이들 입맛에 맞게 제시되면 잘 알아듣는 다. 아이들에게 시장을 취재하여 작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오게 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로 하여금 목에 카세트 녹음기를 걸고, 손에는 손에 작은 마이크를 들고, 핵심 사항이 기록된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꽂고 시장에 나가게 하라. 당신은 집에서 아이가 취재해 온 것을 듣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그런 활동을 재미있게 마친 아이들에게 제시할 다음 과정은 컴퓨터를 매개로 이루어질 수 있다. 돈과 가격, 생산과 판매등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백화점놀이'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나와 있을 것이다. 또한 일상 속에서 "농구화는 왜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니?" "자전거를 자전거 전문점에 서 사는 것이 좋겠니, 백화점에서 사는 것이 좋겠니?"와 같은 질문으로 '상업적인' 대화를 유도하여 할인, 고객 서비스, 품질 등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돈, 구매, 상거래, 판매, 이윤 등의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등장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보다 쉽게 그런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가지 무관심했던 세계가 열리게 될 것이다. 모던 뱅킹 소비 위주의 사회속에서 아이들을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일부 부 모들은 새로운 대안으로서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근검절약'을 철저히 습관화시키자고 주장하 고 있다. 옮은 말이다. 하지만 무지한 상태에서 '절약'이라는 단어만 외치는 것보다 정보를 주고 계몽하고, 미래의 요구에 대처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더 좋을 터이다. 여러 기업과 광고회사는 아이들의 돈주머니를 손에 넣기 위해 수백만 마르크를 투자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이 꽤나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구매자인 줄 착각하고 있다. 아이 들이 우리도 잘 모르는 운동화나 자전거, 또는 메이커들을 그리도 잘 읊조리고 있다는 이유 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능수능란하게 아이들의 시장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기업과 광고와 은행의 일방적인 영향에 다름 아니다. 아주 지적이고 말 잘하는 소년(13세)에게 장래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았느냐고 하였더니, 그는 딱잘라 아니라도 대답했다. "나는 직업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나의 부모님처럼 그저 앉아서 끼적거리는 일 외에는요"(그의 아버지는 세무사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이다.) 이와 비 슷하게 이미 유치원 때부터 은행을 들락거리는 아이들도 은행이라는 기관을 막연하게 여긴 다. 5,6세의 어린이들은 은행을 돈이 없을 때 돈을 만들어 주는 곳으로 생각한다. 아네테 클라 는 앞에서 언급했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은행이 나누어 주는 돈이 미리 저금해 두었 던 것임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또한 10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이윤추구 개 념과 가격 형성의 과정을 알고는 있지만, 그런 개념을 은행에 적용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은 행은 공공기관으로 사람들의 돈을 관리하고, 필요할 때 돈을 대출해 주며, 공공에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은행 직원들의 월급은 어떻게 주지?' 하는 의문을 품지만 금방 국가나 화폐주조소, 또는 다른 외부 기관들을 떠올리며 '아! 그런 곳에서 돈을 대주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은행을 알게 하고, 대출의 위험에 대해서 알려 주는 활동을 시작해 보자. :다음번에 아이와 함께 은행에 가면 은행의 입금, 송금, 인출양식 견본을 가져온다. 또한 그외 (여러 은행의) 정보책자도 모아본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입금, 송금, 계좌송금, 인출, 계좌이체 등의 양식을 기입해 본다. 잘된 다면 다음에 아이에게 은행 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은행 창구에 가서, 아이가 저축한 돈에 몇 퍼센트의 이자가 붙는지 문의한 다. 그리고 통장에 기록되어 있는 액수와 비교해 본다. :아이와 '은행'놀이를 해본다. 미르코가 새 스키복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 대출받고자 한 다고 하자. "6백 마르크를 대출받으면 얼마를 갚아야 하죠?" 당신은 은행 직원을 가장하여 아이에게 매달 얼마씩 몇 달에 나누어 갚을 수 있는지를 계산해 준다. 매달 내는 상환금은 원금과 이자가 포함된 금액이다. 미르코가 6백 마르크를 꾸면 실제로 갚아야 하는 금액은 얼마가 되는가? :미르코가 할부 상환금을 내지 못할 경우 은행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이런 방법이 너무 어렵게 생각되거든 은행을 직접 찾아가서 아이와 함께 배우는 것이 좋 다. 아이들과 함께 얼마를 대출받을 것인지 가정해 보고 은행에 가서 고객상담 직원을 찾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대출금에 따른 상환금액을 계산해 보이도록 하라. 은행은 모든 절 차에 대해 고객에게 설명해 주고 정보를 줄 의무가 있다. 찾아간 은행 직원이 별로 친절하지 않거든 다른 은행으로 가라.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런 활동이 아이들을 위한 놀이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런 일들에 개해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거부할지도 모른다. 하 지만 지금은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해도, 나중에 필요할 때 어디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 알려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취학 이전부터 모든 현존하는 시장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마부르크 필립스대학 교육학 교수인 페터 뷔히너 박사는, 자신의 논문 '테디베어에서 첫키스까지'에서 이렇게 말 한다. "아이들은 그들을 겨냥한 소비 및 매체 시장에 노출되어 있으며, 성공과 업적을 지향 하는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와 위험에 맞서야 한다. 아이들을 시장 메커니 즘 전략에 무기력하게 넘겨 주지 않으려면, 먼저 자본주의 시장이 그들을 작은 성인으로 취 급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한다면서 자신들의 '소박했 던' 유년시절을 그대로 전수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처사는 아이들이 변화된 현대 세계 에 적응할 수 없도록 발목을 붙잡고 있는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끄으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