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편, 여성편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 전4권 중 제1권 저자: 제이스 레어 역자: 김만행 출판사: 삼성서적 발행일: 1992. 4. 15. @[ (머리말) 자기를 잃지 말고 살아가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철이 들고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사람은 누구나 멋있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아름답고 보람있게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염원이며 소망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멋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이것은 또한 인류가 이 세상을 태어난 이래 수 많은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사색하고 명상을 하고 연구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상가, 철학자,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세상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사는 것일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삶을 살아가는 방법 역시 다양하며, 살아가는 방향 또한 여러 갈래이다. 따라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 가지 방법만을 제시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단 한 가지 공통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제시하고 싶다. 자기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이 세상을 가장 값있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이라고. 자기를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만이 갖는 독특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신만이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자기의 사명은 무엇이며, 자기의 위치가 무엇인가, 또한 자신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남자는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자기'가 있다. 그것은 잃지 말아야 한다. 여성은 한 가정의 아내로서, 또 직장의 한 일원으로서 여성 특유의 역할이 있다. 그것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된 자기를 숨기고 가면의 자기를 나타내고 거짓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반목과 갈등이 일어나고 추하고 더러운 싸움을 하다가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고 멋있게 살고 싶은 사람들 또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야 멋있게 살고 보람있게 사는 것일까 하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을 얻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ff @[ (남성편) @[ 제1부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 @[ 1.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할 일 @[ 자신의 아이덴티티 인간의 단점은 장점이기도 하고 장점은 단점이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즉, 단점의 이면은 장점, 장점과 단점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허식, 허영심'의 문제도 그 방식을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이 외의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 보통 '허식'이라고 하면 겉치레를 꾸미는 것, 허세를 부리는 것을 가리키고 부정적인 형태로 파악되고 있다. 즉,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 이상으로 발돋음하거나, 갖고 있는 역량이나 지위 이상으로 지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을 허식이라고 한다. 그것을 또한 허영심이라고도 한다. 허영심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할 수는 있다. 허영심으로 자신을 실력 이상으로 돋보이게 하면 뜻밖에도 다른 사람은 그것을 간파해 버리고 만다. 그것에 속는 것은 지나친 호인이나 바보 정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으로 꾸미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니까 오히려 허영을 부리는 사람을 경멸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신용을 잃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허영심이나 허식을 가져서는 안 되느냐 하면, 거꾸로 나는 허영심이나 허식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유행어로 '아이덴티티'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주체성, 자기 동일성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것을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자신이 무엇이냐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20 대에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있다 해도 우스운 얘기다. 젊음이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 가능성에 건다면 어떤 허영심을 가져도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허식이라든가 허영심에 의해서 인간이라는 것이 전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좀 더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화가 나니까 손을 쳐드는 것이 아니다. 손을 쳐들면 분노의 감정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학설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허식을 가짐으로써 그 사람이 전진할 수 있다면 그 허식을 역이용하는 편이 낫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지혜이고 처세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유치하고 어린애같은 허식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과장될 것도 아닌데 과장 같은 태도를 해 보이고, 학교에서 1 등을 하지 못했는데도 1 등을 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없어서 "나는 누구 누구의 자손이다."하는 따위의 허식이 아니다. 그와 같은 어리석고 유치한 허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허영을 가져라."하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허식을 가짐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을 공개해 보겠다. ------------ @[ 벗은 모습은 보이지 말라. 그 첫째 방법은 매일 거울을 향해 "나는 잘났다. 나는 반드시 사회에서 실력자가 되겠다."는 것을 자신에게 들려 줘라. 그때 자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욕구를 강한 것으로 한다. 가령 작가 지망생이라면 나는 세계 최고의 걸작을 쓰겠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고 들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들려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달성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즉 이상 속의 자신을 영상화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매일 되풀이하면 반드시 희망대로 된다. 그것은 아직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동안에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일종의 허영심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에 대한 허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허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도 혼자서 실행해 보았고 친근한 사람들에게 권해 보았는데, 대체로 잘 해나가고 있다. 단 이것은 남에게 절대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타인에게는 비밀로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 권하고 싶은 허식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평소에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어도 좋으니까 보너스를 타게 되면 자기가 쓸 수 있는 최고 금액으로 최고급 양복을 맞춰라. 그것은 타인에 대한 허식이나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옷차림을 하게 되면 자연히 자신감이 붙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으면 흘낏흘낏 곁눈질을 하기 않게 된다. 인간이란 재미있는 존재여서, 우선 동작에서 곁눈질을 하지 않게 되면 차츰 곁눈질을 하지 않는 인간이 된다. 옛날에는 흔히 군대에서 "군화를 발에 맞추지 말고 발을 군화에 맞춰라."는 말을 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좋은 옷을 입으면 반드시 그 옷 차림에 걸맞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매우 짙어진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빚을 지라고까지는 하지 않지만 다소의 무리를 각오하고 고급양복을 맞춰라. 자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입는 것과 같은 양복을 맞춰 입어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 남아 있으면 인색하게 근처의 분식집에서 라면 따위를 먹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일류 레스토랑에서 호화로운 음식을 자기 돈으로 사 먹도록 하라. 그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 하면 어떤 기회에 누군가 그런 곳에 가더라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자신의 생활에서 무리하게 동떨어진 일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좋은 양복을 입는다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의 허영심이라 할 수가 있다. 그것을 타인에게 자랑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 까지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면 말이다. 어째서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의 허영심인가 하면, 그것은 경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인간으로 언젠가는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 간다. 마술같은 일이지만 성공하는 예가 상당히 많다. 물론, 회사에 출근할 때 최고급 영국제 양복을 입고 간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때는 활동적인 옷차림이 좋겠지만 그 밖에 한 벌이라도 좋으니까 고급 양복을 갖고 있는 쪽이 좋다. 평소에는 햄버거나 스테 을 먹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자기 돈으로 호화판 식사를 하도록 하라. 이상의 얘기를 종합해서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와 같은 허식이라든가 허영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 @[ 당신이 자랑해야 할 것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기 쉬운가 하면 그것은 한 가지 일에 대해서 정신을 집중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자기 최면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그러한 형태로 하면 반드시 최면 효과가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의 에너지를 낳는 것이다. 에너지 얘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 어떤 기업의 사장이 무슨 일인가를 하기로 계획했을 때는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는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영심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사고에서 볼 때는 우스꽝스럽고 흉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권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허식, 허영심"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낳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허영심을 갖지 않는 인간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 어떤 성인이라도 일종의 자기 만족과 허영심이 마음의 절반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나머지 절반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행위 속에도 허영심이라는 것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는 거꾸로 훌륭한 행위를 "그것은 그 녀석의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다."하고 내리깎는 것은 한 시대 전의 낡은 소설가의 사고 방식이다. 인간의 심리 가운데는 이기주의가 있으며 기껏해야 인간은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상이었다. 현재의 사상이란 인간 심리에는 허영심도 있고 자기 만족도 있으나, 그 뿐만은 아니다. 그것에 더하기 *라는 존재에 눈을 돌리고 있다. 허영심만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영심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허영심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은 우리들로서는 평생토록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허영심이라는 것을 역이용해서 인생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에너지로 전환시키자는 것이다. 허영심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부심이라고 하면 적극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그러나 그 두 가지에 공통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부심도 허영심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시할 때 가장 유효하며, 타인에게 과시하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타인에게는 될 수 있는 한 보이지 않도록 한다. 그 대신 혼자 있을 때 자부심이나 허영심을 아까 말한 방법으로 강조하라는 것이다. "밖으로는 어리석은 체, 안으로는 영리하라."는 것을 모토로 삼아야 한다. 허식을 부려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현명하게 보이려고 하면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상대방이 경계심을 갖게 되면 적을 만든 것이 된다. 그러니까, 얼핏 보기에 어리석은 체하고 틈을 보이면 사람들에게서 친근함을 받게 되며 사람들은 경계심을 푼다. 그래서 가장 나쁜 허식, 허영심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그것을 나타내보이는 것이다. 단, 그것은 개인과 개인의 경우이고, 회사나 조직의 리더인 경우는 허영심이라든가 자부심을 작전으로서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있다. 즉 일종의 카리스마성을 부하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따라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더라도 평소의 언동에 나타내 보이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연기가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자기 암시의 '거울'대신에 부하를 사용하고 있는 데 불과한 셈이다. 이처럼 허식이든지 허영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지 말고 그러한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적극적으로 역이용해보면 어떨까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매일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자신의 상황을 상상해 본다. 그러고 나서 될 수 있는 한 발돋음하여 고급 양복을 사고 호화로운 식사를 해본다. 그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믿는다. @ff @[ 2. 비밀 속의 자기 @[ 마음 속에 비밀이 있는가? 당신에게는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부모나 형제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두운 비밀을 말한다. 마사무에 하루노라는 작가는 '인간은 누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의 비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비밀이란 사실 살인을 했거나 무엇을 도둑질 했거나 한 것이 아니고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당신에게는 창피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비밀이 없다'고 당신이 말한다면 당신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거나 미련하게 살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이 누구나 마음 속 깊이 갖고 있으면서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비밀과 신과 관계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추상적인 문제는 제쳐놓고 삶의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하자. 우선 당신은 당신의 참된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지금 환경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이 처할 위치에 맞추어 자신의 얼굴을 만들고 있다. 여사원은 회사에서 여사원의 얼굴을 하고 있고 여교사는 여교사의 얼굴을 하고 간호원은 간호원다운 얼굴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예가 여배우로 여배우들은 주어진 역할에 맞는 얼굴과 연기를 한다. 나 자신도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작의 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얼굴은 사회가 우리에게 무엇으로 요구하고 있는 가면으로 당신도 그 가면을 쓰고 회사나 사회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가정에서도 딸이나 아내로서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가면을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어느 새 자신의 진짜 자신의 얼굴로 착각하게 된다. 그것은 가면을 쓰고 있는 쪽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전에 사회가 무엇으로 요구하고 있는 그 가면을 쓰고 있을 회사, 사회의 강도에 의해 가면을 쓰고 있는 당신이 참다운 당신인가 아니면 거짓된 당신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면을 쓰고 있는 당신은 참다운 당신이다. 왜냐하면 당신 쪽에서도 딸로서 또는 학생으로서의 당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신 마음 속에 당신이 딸이 되거나 어떤 남자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이상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의 위치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 가면은 진정한 당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당신은 당신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당신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당신이 어떤 남자의 아내이거나 연인이라고 할 때 그것이 당신 인생의 전부라고 마음 속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 @[ 생각하기 싫은 또 다른 나 "그렇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은 그만큼 단순하고 단세포적인 사람은 아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누군가의 추도식에 가서 다음과 같이 느낀적은 없습니까? 꽃에 둘러싸인 고인의 사진을 보고 여러 사람의 친구들이 이렇게 고인의 추억을 이야기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유우머가 있는 사람이었지." "그 사람은 머리가 좋았어." 고인에 대한 여러 가지 이미지. 잡다한 이미지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제각기 남아 있어서, 그것을 종합한 것이 죽은 사람의 생전의 모습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사람은 틀림없이 무덤 속에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이 아닐세, 나에게는 당신들이 모르는 부분도 있단 말이야." 나는 소설가가 아니지만 부탁을 받고 지금까지 두 세 사람의 전기를 집필한 적이있다. 그 사람의 자료를 수집해서 그의 출생부터 죽을때 까지의 일을 생각하며 전기를 쓴다. 그러나 끝내고 나면 항상 어떤 불만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불만은 이런 것이다. "이것은 내가 본 그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그 사람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그의 비밀의 부분을 그는 죽음과 함께 무덤의 깊은 구석으로 가지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도 바로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이외에 다른 '당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밖에 모르는 '당신'이. 혹은 어쩌면 당신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당신'이. 남이 모르는 당신의 어두운 면! 거기에는 왠지 모르게 죄 의식이 느껴질 때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일평생 결코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 주시오. 당신들 대부분이 비밀을 갖지 않았던 것은 고작 국민 학생 때까지일 것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 학교, 대학에 이르는 동안, 혹은 사회에 진출해서 반드시 한두 개의 남에게는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비밀은 생각해 보면, 현재의 해이해진 나날과 비교하면 생명이 넘쳐 흐르고 있던 충실한 시간의 그 자체, 세상의 도덕 윤리면에 있어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신 자신도 그것에 죄책감을 느껴서, 혹시 상기하고 싶지 않은, 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부터 그 일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고 해서 싫다고 뿌리치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겠나? 우선 그것이 왜 싫어지는 가를 분석해 보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의 모략과 그 추억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러한 사회의 모략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나 가정 생활, 혹은 직장생활), 그 모략에 위배된 자신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상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때는 정말 생명이 넘쳐 흐르던 것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지금의 해이해진 일상 생활에 비해 너무나 차이가 있는 다른 차원의 행위나 시간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생명이 넘쳐 흐른 것이 어째서 죄가 된단 말입니까?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란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 점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그다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비밀 속에 잠겨 있는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려고 하든가, 상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ff @[ 3. 세 개의 얼굴 @[ 가면을 벗겼을 때 누구나가 그렇지만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학교의 선생은 교사라는 가면을 쓰고, 여배우는 자기 본래의 얼굴 외에 한 발자국 밖으로 나가면 여배우라는 가면을 쓰고 생긋이 웃는다. 가면이라고 해서 굳이 사람을 속인다거나 거만하기 위해서 쓰는 마스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각자마다 직업의 얼굴이라는 것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토크 앤트 토크'라는 인터뷰 프로를 맡아 본 일이 있는데, 인터뷰할 때는 희로애락의 표정이 금방 얼굴에 나타난다. 게스트가 불쾌하면 곧 얼굴 표정에 나타난다. 나의 수양부족 탓도 있겠지만, 감동을 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머리를 숙이고 싶어지는 사람이면 자신도 모르게 말씨조차 공손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프로급 아나운서가 되면, 일률적으로 희로애락의 표정의 패턴이 정해져 있어서, 이른바 CBS적인 얼굴이 되어 버린다. 하기야 나의 경우는 아마추어니까 얼굴색이 변하는 것도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은 해 왔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면을 쓰게 된다. 그것을 융이라는 정신 의학자는 '폐르소나'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고, 진정한 자기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대단히 근엄한 한 사람의 대학 교수가 있다 하자. 자타가 모두 함께 청렴결백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가 여성이 옷을 벗는 따위의 꿈을 꾸곤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생활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꾼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한 꿈 이라기보다는 의식이 억압하고 있는 것이 꿈속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프로이트이래로 해명되어 온 심층심리라는 것이다. 즉 무의식 속에 억압된 것이 꿈 속에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쓰고 있는 가면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폐르소나'는 의식적인 것이다. 그 폐르소나와 무의식적인 자아가 합쳐진 것이 진정한 자기로서, 그 어느 쪽에 비중을 가하면 점점 그곳에 왜곡이 생기고 무리가 오게 된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진행되면 우울증이 되거나 노이로제가 되기도 한다. 가면이라는 얘기에서 우리들이 또 한가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요즘 세상에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에 열중해서 그때마다 재빨리 직업을 바꾸는 것을 '모라토리움 인간'이라고 한다. '모라토리움'이란 '유^36^예인간'이라고 할까, '동결인간'이라고 할까,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지 못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종의 현대병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은 한 가지 요소를 한 가지의 얼굴로 삼아 살아나갈 것을 강요당한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유독 한 개의 얼굴만을 갖고 살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젊은이들도 서서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즉 한 개의 얼굴만에 만족할 만큼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이 인간을 판별하는 경우, "저 사람은 정직하다." "저 사람은 일에 충실하다."고 하는 라벨을 붙이면, 매우 사귀기가 쉽고 이쪽도 안심감을 가질 수 있다. 마치 의사가 내과, 외과, 치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주위사람에게 라벨을 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구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요즘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는 자기 자신이라든가 자신의 생활태도들 그토록 단순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직업을 자꾸만 바꾸면서 "모라토리움 인간이 되고 싶다." 의식이 조금씩 싹트고 있는 것 같다. ------------ @[ 어느 쪽이 진정한 자신인가? 어째서 그런 일을 생각하느냐 하면 사실은 나도 '모라토리움 인간'이기 때문이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소설가라고 대답은 하지만, 사실 나는 아마추어 극단의 대표이기도 하다. 배우 노릇을 할 때는 진짜 배우가 된 기분으로 한다. 60 명의 조그만 조직이지만, 그래도 대표이니까 운영이나 자금에 대해서는 장사꾼으로서의 생각을 한다. 그 밖에 나는 텔레비젼의 프로도 진행한다. 작가로서도 순수문학을 하는 얼굴과 유모어 소설, 수필을 쓰는 얼굴이 나에게는 있다. 내가 대학교수로서 신문에 잡문을 쓴다고 해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잡동사니 글'을 쓰느냐는 말을 듣는다. 나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같다면서 강연회 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선생님, 분열증상이 아닙니까?"하든가, "어느 것이 진짜 선생님입니까?"하고 묻는다. 그런 질문의 밑바닥에는 무엇이든 하나의 얼굴이 아니고서는 신용할 수 없다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근무할때의 얼굴과, 저넉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의 얼굴이 같습니까?" 당연히 같은 인격을 가진 아버지임에는 틀림 없는데 말이다. 나도 칼럼 등을 쓰고 있을 때는 자기 혼자밖에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지만, '잡동사니 글'을 쓸때는 독자를 의식하니까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가 대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을 구별해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 요소 가운데는 모든 사람과 함께 사이 좋게 지내고 싶은 얼굴이 있다. 그것이 잡문을 쓰게 하고 극단을 운영하게 하고, 혹은 사교 댄스를 추게 한다. 그것과는 달리, 혼자 서재에 죽치고 들어앉아 나 혼자만의 문제와 대결하고 있는 얼굴이 있다. 그러한 얼굴이 아무리 많아도 전혀 상관이 없고, 많은 얼굴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일본 사회의 사고 방식에 따르면, 하나의 얼굴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갖고 있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이라든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흔히 신문 기사에, '고교 교사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 실린다. 고교의 선생들이 가령 도색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하자. 그것을 학부형회에서 알면, 터놓고 비난이야 않겠지만, 역시 '교사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도 인간이다. 그야 학생들에게 장난질을 치는 것은 약속 위반이니까 해서는 안 되지만, 도색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해서 특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이 학교에 있을 때의 얼굴과, 학교에서 나왔을 때의 얼굴이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얼굴을 발견하면 일반 사회에서는 분개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들도 가면을 쓰고 있다. 즉 학교 선생입장에서나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착한 학생이라는 이상적인 '폐르소나'가 있다.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 성실한 학생이라고 일컬어진다. 이와 같이 하나의 라벨, 즉 하나의 얼굴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매우 단순화 하는 생각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두 개의 얼굴이 자기 속에 있어서 두 개의 얼굴이 서로 대립하고 상화 맞당기는 긴장감이 살아 있는 충실감으로 될 때가 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하나의 직업, 하나의 업무에만 속박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 양식에 한정되거나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생활 양식이나 생활에 있어서는 하나의 얼굴이 편한 경우가 있다. 하나의 가면을 쓰고 밀어 붙이는 쪽이^5,5,5^ 하지만 정신의학이란 것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었다. 즉,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가면만을 쓰고 있으면, 무엇인가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한 꿈을 꾸거나 때로는 정신적인 병에 걸리거나 한다는 것이다. 융이나 에릭슨 같은 사람의 책이 일반인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것은, 왜냐하면 본 얼굴이란 무엇일까, 자기가 현재 갖고 있는 얼굴은 진짜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얼굴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 속에서 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갖도록 하라. 그것은 삶을 풍부하게 해 준다.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는 쪽이 오히려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간단하게 자기 규제를 하기보다는 '모라토리움 인간'이라고 불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모라토리움 인간'이 됨으로써 많은 얼굴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 @[ 자기라는 자신의 일부분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전형적인 '모라토리움 인간'이다. 직업은 대학교수라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일은 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이 있는 것에 불과하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이다. 사회의 규약에 따라서 이 사람은 작가, 이 사람은 의사, 이 사람은 샐러리맨 하는 식으로 하나의 얼굴만을 갖고 살아나갈 수 없다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해 보아도, 집에 돌아가면 남편, 아이들 앞에서는 아버지, 회사에 나가면 사원이라는 얼굴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 장소 마다에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밖에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밖에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또한 남이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저 친구는 가면을 쓰고 있다든가, 저 녀석은 종잡을 수가 없는 인간이라든가 하는 생각은 갖지 말라. 그것은 자기 자신을 오히려 단순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점점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규제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시대가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회사원이면서 소설을 쓰거나 일류급 스포츠 선수가 되거나 하니까 말이다. 옛날에는 모험가이고 은행원이면서 소설가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좀 처럼 허용되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젊은이의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 얼굴을 갖는다는 것이 아닐까? 나 같은 노인내가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으니까 젊었을때 부터 하나의 가면만으로 살아온 사람은 섭섭해 하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나의 스승으로 어느 유명한 대학 교수가 있었다. 그 선생이 텔레비젼에만 출연을 했기 때문에 순전히 학교 강단에만 서는 동료들로부터 경멸을 당했다. 대학 교수답지 않은 짓이라고 말이다. 그때 나는 어째서 나쁘냐고 생각했다. 그것이 방송에 자주 나가기 때문에 연구를 등한히 했다든가, 연구 논문을 내놓지 않았다면 경멸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선생은 그 동안에는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있었다. 오리려 다른 대학 교수는 텔레비젼에조차 나갈 수 없는 자신의 재능의 부족을 한탄해야 하지 않을까? 그 나라에서는 학자인 주제에 텔레비젼 방송에 나간다고 해서 자신의 학문적 업적은 덮어두고 남을 비난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얼굴, 하나의 색깔로 인간을 판정하거나 규정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불안한 것일까? 학생이 샐러리맨이 되고 나면 갑자기 흰 와이셔츠를 입는다. 이녀석은 충실하다, 성실하다, 그리고 근면하다는 색깔이 흰 와이셔츠 하나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들 억지라고 믿고 있다. 청색 와이셔츠를 입든 간에 일만 잘 하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청색을 입으면 어째서 불성실한 인간이냐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입되 입을 수가 없다. 현재의 사회 통념이 그것을 규정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근무시에는 흰 와이셔츠를 입으라는 식으로^5,5,5^ 그러나 조직이라는 것은 규정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면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흰 와이셔츠를 입음으로써 어떤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되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의 가면, 직업적인 가면을 쓴다는 것이 허위의 자신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즉, 그것이 자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아니다. '자기'와 '자신'은 구별해야 한다. '자기'라는 것은 자신의 일부분이다. 즉, 자신은 자기를 포함한 커다란 전체적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신의 전부가 아닌 것도 확실하다. 가면을 쓰고 있는 자기는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해서 직업을 포기하거나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직업이라는 하나의 얼굴만으로 자신을 한정짓지 말고, 또 다른 자신을 살려 나가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학교수라는 것은 나의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 나머지 부분의 자신도 소중히 해야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라는 것과 통하는 말이다. 재능이라는 면에서 말하자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만으로 한정되어 있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아마추어 극단을 해 보아서는 아는 일이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갖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로 배우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의 인생의 우연이 치과 의사를 선택하게 했거나 카펫트 장사를 선택하게 한 것 뿐이다. 배우가 되었으면 희극 배우로서 기막힌 재능을 갖고 있어서 틀림없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개중에는 있는 것이다. 아깝게도 그의 우연성과 환경이 다른 가면을 씌워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파묻힌 재능이나 무의식적인 욕구를 아마추어 극단에 참가함으로써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을 생각하면, 얼마만큼 인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인가를 잘 알게 된다. @ff @[ 4.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 당신이 하나의 인생과 만날 때 나의 본업은 대학교수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즐기고 있다. 사교 댄스의 강습을 받기도 하고,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클래식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합창 그룹에도 참가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참가하고 있는 것이 아무추어 연극이다. 아마 아마추어 연극으로서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클 것이다. 10 년전의 공연 때는 극단원도 적고 해서 시카고의 조그만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금년에 10주년을 맞이해서 시카고 대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3월 2일 하루 공연이었는데, 입장권은 날개돋힌 듯이 팔려 나갔었다. 10 년 전에는 이 연극 단체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미국 전체가 알아 줄 정도이다. 그만큼 '자기'를 모르면 인류 사회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마추어 극단이니까 모두들 직장을 갖고 있다. 샐러리맨, 직장 여성, 가정주부 등 각기 다른 일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표어를 단원들에게 강조했다. "생활 속에 인생을!" 생활과 인생은 다르다. 가정이나 사회는 여러분들의 생활의 장이고, '자기'는 여러분의 인생이라고, 인간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가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감정이 있다. 그런말을 하면, 부끄럽다든가 소질이 없다든가 하지만, 무대에 섬으로써 타인이 되어 보고 싶다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닐까? 매일 회사에 나가서 상사에게 꾸지람만 듣는 사람, 부엌에서 단무지를 자르고 있는 주부가 일단 무대에 올라서면, 베르사이유 궁전을 배경으로 왕비가 되거나 백작으로 변신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항상 입고 있는 양복과는 달리, 완전히 동떨어진 시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서 관객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게 하자는 것이 이 연극의 애당초의 발상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들도 돈이 없으니까 대략 3천불 정도를 무대의 출연료로서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를 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극은 10주년 행사니까 훨씬 많은 돈이 들었다. 약 2 만불 가량의 출연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공연물은 뮤지컬이었으니까, 연출가도 댄스도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2주일 동안 배웠다. 2주일 동안 모두들 회사가 끝나면 부리나케 연습장으로 달려왔다.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동안 충실감에 넘쳐 모든 것이 즐겁고 재미있기만 했다. 공연일이 가까워 오면 가슴이 두근 거린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일, 자신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카고 대극장의 무대에 라이트를 받고 등장하면 2주일 동안 연습한 것을 통째로 까먹고 대사도 잊어버리고, 무대 위에 장승처럼 서 있기만 한다. 그러면 손님은 그것을 또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그대로가 좋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면^5,5,5^ 우리들은 아마추어니까. 그리고 연극이 끝난 뒤가 나는 제일 즐겁다. 출연한 사람들이 화장을 지우고 어느 가게를 빌려 이별 파티를 벌인다. 모두들 그렇게 즐거웠던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또 시켜 달라고 하지만, "내년에는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하고 또 다른 단원을 모집한다. 그래서 극단원은 매년 바뀐다. 금년에는 캘리포니아 주립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150 명을 선발했다. 모두 5백명 가량 응모해왔었다. 그러나 150 명밖에는 채용할수 없어서 350 명을 되돌려 보낼수 밖에 없었다. 자격은 아무추어일 것, 고교생은 안 되고 남편의 허락이 없는 부인도 사절이다. 남편이 쳐들어 오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양친의 허가가 없는 미혼 여성도 사절이다. 금년의 공연물은 섹스피어의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내가 각본을 써서 하기로 했다. 로미오 역을 모두 주역을 하고 싶어하니까 그 역은 8 명, 그녀의 애인 줄리엣 역도 5, 6 명이 되었다. 응모한 사람 가운데 의사가 있으면 그 사람은 채용한다. 그 사람들은 주사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70세의 노인이 무대에서 기분이 나빠 지거나 혈압이 올라가서 쓰러지면 큰 일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혈압 걱정까지 해 가며 연극을 하는 극단도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 @[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생활 양식 어째서 그런 바보스러운 짓을 하느냐 하면, 현재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틀에 꽉 끼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은행원, 회사원^5,5,5^ 누구나가 하나의 패턴 속에서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점점 고통이 심해져서 독립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 그러나 독립을 하게 되면 더 큰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고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술이다. 포카다 하면서 해소하려는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타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마추어의 연극인 것이다. 그리고 노래, 그것이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나이를 좀 먹은 어머니가 아버지들이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면 모두들 흉을 보았다. 내가 '콜라파스'라는 합창단을 만들었더니, 공연날 단원 하나가 딸에게는 아무 말도 않고 나왔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울면서, "창피하니까 합창단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댄스를 하고 노래를 한다니까 못 보아 주겠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할아버지들의 합창단은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가족들이 손뼉을 치면서 듣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연극 같은 것을 했다고 대학교수로서, "이보게, 경박하게 굴지 말라구." 그래서 우리 사회속에서는 어떤 나이에 도달해도 연극을 하거나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고 있으면 몹시 그런 짓을 제약하는 경향이 있다. 경박하다든가, 주책이 없다든가, 망령이라든가 하면서^5,5,5^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제저로 연주를 하거나 합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을 이상스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문화 수준이 발달해서 그런 제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5,5,5^ 그래도 그런 사람을 보고사 경박스럽다든가, 주책이 없다든가, 나이값을 못한다고 옆에서 수근거리고, 심지어 본인을 맞대어 놓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내 의견으로는 연극을 하는 것과 골프를 치는 것과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도 수업이 끝난 뒤에는 클럽 활동이라는 것이 있다. 저쪽은 골프부이고 나는 연극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업을 빼먹고 한다면 또 몰라도, 나는 수업, 즉 본업 쪽은 실수 없이 해 놓고 취미 삼아서 연극이나 사교 댄스를 추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 나가서 즐기는 데는 나이도 경험도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 극단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가정은 모두 사이좋게 살아간다. 뮤지컬에서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아들이 조명계를 맡고 있었다. 그런 광경은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 가슴을 뛰게 하는 체험들을 가져라. 내가 가런 일을 하는 것은 작가라는 이미지만에 갇혀 있기가 싫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의 인생도 본질적인 것은 소설가이다. 그 밖에 배우나 가수라도 좋다. 하지만 나에게는 배우라는 천분, 즉 재능이 없다. 그러나 배우의 재능이 없는 인간이 배우의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절대로 없다. 가수의 재능이 없는 사람이 노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다. 나는 연극과 노래에는 재능이 없다. 천분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나 자신의 인생 속에서 몰아내는 것은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지지리 못하는, 재능이 없는 사람들만을 모아서 극단을 만들거나 합창단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열등감 같은 것은 느끼지를 않을 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은 제일 못하는 사람이 잘난 체 하는 것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채용 시험에서, "실례하지만 당신은 너무 잘 해서^5,5,5^" 하고 낙방을 시킨다. 독창을 해야 될 곳은 대개 못하는 사람이 맡게 되어 있다. 그런 시스템으로 하면 열등 관념따위는 모두가 웃으면서 해소되어 버린다. 아마추어 극단 친구들이 국립극장 무대에 선다니까, 대단히 긴장들을 했다. 우선 처음에는 넋이 나가 버렸다. 나 같은 경우는, 10 회 이상을 했는데도 출연 시간이 다가오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친다. 그 긴장감이 또 기막히게 감칠맛이 있다. 실수했다고 해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도 없고, 고함을 치는 사람도 없다. 우리 극단에서는 "당신, 꽤나 버티더군!"하고 모두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다. 가슴이 두근 거리지만 즐거우니까 충실감이 있다. 그것은 1 년에 한 번 있는 축제와도 같은 기분이다. 옛날에는 축제밖에는 아무런 오락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는 꽤나 충실한 놀이마당이었다. 요즘은 거리에 많은 오락이 널려 있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연극의 1 년 1 회 공연이라는 것은 참가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축제라고 생각한다. 2주일간의 축제 준비를 하고, 하루 동안 그 축제에 참가한다. 그날 밤 마셔라 노래해라 하며 소동을 벌이고, 안녕하고 헤어진다. 어떤 사람은 도시로, 어떤 사람은 농촌으로 떠나간다. 어제까지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충실한 한때를 보내고 나서, 제각기 추억을 간직한 채 생활의 장으로 돌아간다. 연극이라고 하는 것은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그러한 아마추어 연극을 하면서도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생활을 위해 비록 샐러리맨을 하고 있을 망정 그림이나 음악, 댄스의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다만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으로 밥을 머고 산다. 우리 극단에 입단을 하면 배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대 장치를 맡고, 음악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음악을 담당한다. 연극이란 배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각자가 갖고 있는 재능이 뭉쳐 지는 것이다. 특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춤을 연습하고, 2주일 정도 지나서 선생이 깜짝 놀랄 정도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자신의 숨은 능력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머리를 쓰면 굳어져 버린 생활속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바람을 통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지 않는 것을 하는 편이 낫다.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탄다고 해서 모두가 우르르 따라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자신의 취미에 맞는 놀이를 생각해 내야 한다. 연극이든 합창이든 좋다. 요컨대 정신을 긴장시켜 당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할 시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ff @[ 5. 마음에 아름다운 씨앗을 품자 @[ 점점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포토페밀리씨라는 실업가가 있다. 작가 한 분이 벌써 10 년쯤 전에 그와 대담을 하고, 또 그를 모델로 하여 소설을 썼다. 그는 일개의 보이에서 오늘의 백화점 왕으로까지 성공한 사람이다. 그 출세의 비밀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가 위인전을 애독하고, 자기 일생을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페밀리 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위인전을 읽고서 백화점 왕으로까지 출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선생님, 참 이상하다. 우리 백화점에는 매일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성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 주곤 한다. '아이구, 참 미인입니다!'하고 그랬더니 참 이상하더군요. 그 여자 아이들은 점차로 깜짝 놀랄 정도로 예뻐지지 않겠어?" 여성인 당신은 페밀리 씨의 말을 잘 이해하실 것이다. 여자란 남자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칭찬 받은 그만큼 예뻐진다고들 흔히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후 그것을 실행해 보니까, 여자가 더욱더 아름다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다. 그것은 내집 사람입니다만^5,5,5^ 이 이상을 두려워서 쓰지 않겠다. 왜 그럴까?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은 이제는 납득하셨을 겁니다. 그렇다 남자의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은 여자에 대하여 백번의 명상보다 훨씬 더 그녀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번에는 그녀에게 자신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녀를 아름다워지게 만든다. 페밀리 씨는 그런 방식으로 손님들의 호감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일은 확실하다. 즉, 자신이 없을 때, 여자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고. 파티 같을 때, 자기 복장에 열등감을 느낀 여성은 이목구비는 반듯한 데도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잃고 있다. 그러한 경우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질투심에 사로잡혔을 때, 여자는 추해진다. 왜냐하면 질투라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심리가 그 핵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감의 결여, 자기보다 예쁘게 보이는 사람에게 대한 자신감의 결여 때문에 그런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자신감을 자기 마음에 불어넣으면 된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나는 예뻐지고 있어. 예뻐지고 있다구." 하고 반복해서 마음 속으로 염원하는 사람과, "나는 어째서 늘 남자로부터 호감을 사지 못할까?" 하고 푸념조로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과는 1 년 후, 아니 반년 후에는 매력면에서 크나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아라야식', 즉 무의식의 활용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바로 이 점에서 인생이 나누어질 지도 모른다. ------------ @[ 무의식의 위대한 힘 최근에 한 가지 매우 재미있는 예기로 들었다. 미국 의사가 암 환자에게 실험한 항암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시고 계시는 바와 같이, 현재까지의 항암제는 어떤 것이든 절대적인 효과는 없었다.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미국 의사는 자기가 맡고 있는 한 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약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약이기 때문에 효과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 환자는 그 의사의 말을 믿고 계속 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몇 개월 뒤에 그의 암세포가 소멸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사는 그후에 큰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과오란 그 의사가 그 환자에게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았다는데 있다. "사실은 그 약은 새로운 항암제가 아니었습니다." 환자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암이 재발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의사는 같은 약을 투여했으나, 이번에는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실화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병이나 약에 대하여도 무의식의 힘이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당신에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 위의 이야기를 말해 주고 한 번 물어 보십시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이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경험상 그는 같은 약이라도 환자가 그것을 "효과가 있다."고 믿고 먹을 때와, "효과가 있을 턱이 없지."하고 생각하며 복용할 때와는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의사와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의사와는 같은 치료를 해도 치료율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병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도 관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의식의 힘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강력하고 큰 것이지만, 의식 쪽에만 중점을 두는 근대의 서구 합리주의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무의식의 힘 따위는 그다지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것이 겨우 서양에서 햇빛을 본 것은 심층 심리학의 탐구가 인간의 내부에 메스를 가했기 때문이지만, 동양에서는 서양과는 반대로 의식보다는 무의식 쪽을 계속 중시해 왔던 것이다. 예컨대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활동은 의식에서가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영위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을 상세히 쓰면 논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만두겠지만, 깨달음의 가능성을 가진 힘이 활동해서 우리들의 번뇌나 집착을 정화해 준다는 것이 대승 불교의 생각인 것이다. 또 선에서는 의식적인 것, 예를 들면 말로 생각하든가, 이성으로 생각하든가, 두뇌로 생각하는 것 따위 일체를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 이상 더 설명하면 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만두겠지만, 요컨대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무의식의 활동을 중시하고 있었다고 이해해 주시오. 그리고 합리주의가 벽에 부닥친 서양 사상가들이 지금 무의식을 다시 생각해서, 동양적인 사고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ff @[ 제2부 바르게 살아가는 비결 @[ 1.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사는 방법 내가 졸업을 한 고향의 벤트포드 고교라는 학교는 내가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 지방뿐만 아니라 콜로라도에서도 알려진 학교였다. 교훈이 '자타공영' 이것을 풀이해서 쓰면, 자기도 타인도 함께 번영하자는 뜻이다. 내가 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닌데, '자타공영'이란 그 다지 나쁘지는 않은 말이라고 최근에 이르러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자기 주장을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밀어 붙이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신념 관철한다거나 하는 것은 나의 성격으론 질색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심약한 기절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5,5,5^ 그러나 여러분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 아닌가 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저돌적으로 자신을 관철하는 악발이 주의하고 하는 것은 웬만큼 강한 신경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해내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남이 뭐라고 해도 상관 없지 않느냐 하고 말하기는 쉬워도, 남들이 전부 비난을 하면 불쾌해질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고 생각한 하지만 할 수 없는 그러한 성격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강자의 생활 방식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자타공영'이라는 사고 방식이 필요하게 된다. 나는 겁쟁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극히 평범한 신경의 소유자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강자가 득실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강자와 어깨를 겨루고 살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좋으나 하는 얘기다. 내가 실천해온 그러한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당신도 내일부터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을 훈련하고 엄격하게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굳은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가, 굳은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즉 금욕주의라는 것은 나는 성격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지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서 물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도박도 하지 않는 다는 식의 금욕주의는 나로서는 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논외로 하겠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팔방미인이지만, 인생에도 팔방미인적인 데가 있어서, 이것도 즐기고 싶고, 저것도 즐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은 지겹고 불쾌하고 그리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 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즐기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인생 긍정파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도 프로 야구 시합 같은 것을 텔레비젼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텔레비젼만 보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만 하고 야구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도 재미가 없다. 그런 남성이 꽤나 많지 않을까? 될 수 있으면 즐기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한 방법을 나는 고안해서 실천해 왔다.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공부만 하고 살아온 것도 아니다. 즉 즐기는 것을 공부의 방해가 된다고 해서 잘라내지는 않는 것이 나의 인생을 사는 방법의 근본이라 할 수가 있다. '자타공영'이라는 생각도, 인생이나 타인과의 교제 방법도, 팔방미인적으로 해 나가자는 것도, 모두 인생을 충분히 즐기자는 데서 나온 것이다. ------------ @[ 적을 만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싸움을 하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평화적 공존'쪽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일본인적인 방법이다. 외국인이었다면 나쁜 것은 잘라 버리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양자 택일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종교에서도 그리스도교는 이단이라는 것은 잘라 버린다. 그러나 그 외의 종교에서는 선과 악이 다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인생 속에서도, 인간 관계에서도, 팔방미인이 되라, 모든 것을 잘라내지는 말라는 것은 일본인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우리들의 생각은 흑백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백을 잘라 버리고, 오로지 흑을 선택하는 신념을 관철하는 강함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인의 사고 방식을 옳다고 전제하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일본인의 지혜에서 볼 때, 회사의 사장이라는 것은 밸런스를 잡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중역인 A씨와 B씨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을 경우, 사장은 "A군의 견해가 옳다"고 단정하지 않고, A와B의 중간 위치에 서서 밸런스를 취하기 위해 존재한다. 즉 흑백을 구별짓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사장의 역할이 밸런스를 취하는 존재인 경우는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화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할 때의 '화'는 평화라는 의미가 아니고, 밸런스를 어떻게 취하느냐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불교에서는 본지수적설(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남)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컴퓨터가 있는 근대적 빌딩의 옥상에 성황당이 있고, 그 사장이 성황당에 절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은 어리둥절하겠지만 말이다. 심리학의 데이비드 시베리 박사는 '중용적 존재'를 중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신화나 전설을 분석해 보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모를 인물이 등장한다. 그것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느냐 하면 밸런스를 잡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온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대립해 있을 때, 남편이 중용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부하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을 때, 상사는 밸런스를 취하기 위한 중용적 존재가 되는 방법은 없는가 하고 생각한다. 즉 양자가 상처를 입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서는 중용적 존재가 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외국의 경우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독재자가 되거나 하지만, 미국에서는 거꾸로 밸런스 감각이 없으면 높아질 수 없다고도 할 수가 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재능주의, 개성주의니까 30 대에 중역이 되는 경우도 있다. ------------ @[ 고생해 본 사람이 그렇게 잘났는가? 지금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밸런스'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평생 계속해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되지만, 기왕 배우려면 즐기면서 배우는 방법은 없는가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구나가 고생하며 공부를 할 수 있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는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의 약함을 한탄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알맞은 것이 지금부터 말하는 나의 독특한 방법이다. 즉 배우는 자세, 방법 등의 관점을 바꿔 보는 것이다. 항상 정면으로 대결하려고 하면 고통만 커질 테니까 말이다. 우선 나의 체험을 얘기해 보겠다. 옛날에 수술을 해서 왼팔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병원의 의사는, "근육이 굳어서 손이 움직이지 않게 될 테니까, 체조를 하십시오."라고 권했다. 미국의 병원에서는 캐치볼을 시킬 정도로 스파르타 방식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해보았는데, 아파서 이내 그만두었다. 1개월이 지난 뒤 다시 의사가, "선생님 당신은 전혀 체조를 하러 나오지 않으니까, 아직 팔을 들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들어 보시지." 하는 것이었다. 해보니까 아주 쉽게 팔이 올라갔다. "허,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묻길래, "네, 매일 화투를 쳤지." 나는 병원의 입원실에 있는 환자들을 상대로 매일 화투를 치며 왼팔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체조를 하지 않아도 훈련을 한 셈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을 즐기면서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식으로 즉시 머리를 써야 한다. 열심히 시키는 대로 노력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닌 것이다. 언젠가 의사가, "Y선생, 당신은 자동차만 타고 다니지 말고 걸어다녀야 한다. 허리와 다리가 약해지니까 자꾸 걸으세요." 하고 만보계를 건네주었다. 시계 같은 것을 차고 터벅터벅 걸으라는 것이다. 전혀 재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즐기면서 허리와 다리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 방법이 바로 사교 댄스였다. 나 정도 나이가 되어 공공연히 젊은 아가씨를 끌어안을 수 있고, 더구나 다리의 훈련도 된다. 더 이상 즐거운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다크닥스' 4중 창단의 멤버를 보고 있으면 언제까지나 젊기만 하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나보다 1, 2 학년 아래일 텐데, 젊게 차려 입어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하고 여러 가지로 물어 보았더니, 심호흡이라고 했다.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합창단을 만들어야지 하고 '콜파파스'라는 아마추어 중년 합창단을 만들어야지 하고 '콜파파스'라는 아마추어 중년합창단을 만들었다. 나의 독특한 삶의 지혜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지나치게 심각해 하거나 피를 토하는 기분으로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성격에 맞지를 않는다. 될 수 있는 대로 힘을 들이지 않고 배우는 방법을 나는 이용하고 있다. 피를 토하는 비장한 각오로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의지의 훈련일 것이다. 나는 의지의 훈련을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의 훈련이 아니라, 즐기면서 세상 일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말이다.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이 어학 공부를 필사적으로 하고 있다. 나는 불문과에 다녔지만 그것을 공부할 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하면, 동사의 변화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빼먹고 한다. 동사의 원형만 암기하고 나면 곧장 쉬운 추리 소설이나 에로 책을 읽곤 했다. 줄거리가 재미있으니까 사전을 한 손에 들고 읽지 말래도 읽게 된다. 어느새 동사 변화같은 것은 갓난애가 기억하듯이 쉽사리 머리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 이번에는 다시 문법의 동사 변화를 배운다. 그 다음은 마무리만 지으면 되니까 누워서 떡먹기였다. 필사적으로 무미건조한 단어를 암기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훌륭하다. 하지만 나의 방법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즐기면서 할 수가 있으니까^5,5,5^ 노력과 정진을 다해서 배우는 자세를 나는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갖고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의지의 박약함을 한탄하고 있는 약한 인간들이다. 그러한 인간이 강자와 겨루어 살아나갈 수 있는 지혜나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는 것이다. @ff @[ 2. 한 인간에게 주어진 절대적 법칙 언젠가 나는 점에 열중한 적이 있었다. 내 자신이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점쟁이 다섯 사람 가량을 차례차례로 찾아갔다. 같은 질문을 준비해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 보고 다녔다. 수상이나 대나무점, 접시트럼프 점쟁이, 그리고 자주 텔레비젼에 나오는 여자 점쟁이라든가 여러 종류의 점으로 감정을 했다. 그랬더니 전부 대답이 달랐다. 그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들어 맞든가(호의로 생각을 하면 말이다), 아니면 전부가 틀리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때,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는데 나는, 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필요는 없지만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라든가, 어느 것인가를 선택하고 싶지만 결단이 서지 않을 때 제3자에게서 보증이나 안심을 얻고 싶어진다. 마음먹은 대로 하라든가, 해서는 안 된다든가 자신의 소망의 보증을 얻고자 할 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매년 연말이 되면 점에 관한 잡지를 사 보고는 한다. 금년은 운이 쇠하다든가 운이 성하다든가 하면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쓸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 경우는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맞았다고 하면 맞았다고 할 수도 있고 꽤나 애매한 점이 많다. 옛날에 어느 프로 야구의 감독이 있었다. 치장으로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감독은 운이라는 것을 매우 소중히 생각해서 어제 히트를 친 선수를 핀치때 핀치이터로 세워 중대 국면에 내보내고는 했다. 그와 대담을 했을 때, "운이라는 것을 정말로 믿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감독은, "나는 역시 운이라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하고 대답했다. 그 감독의 얘기로는 마작을 하기 전날 단골 술집에 가서 옆에 호스테스를 앉힌다. 그 호스테스 중에서도 A양이 앉으면 이튿날 반드시 마작에 진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런 경우는 있다. 그녀와 만나면 그날 재수가 없다는 그런 여자가 있는 법이다. 이튿날 도박에 진다든가 사업에서 실수를 한다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전에 20 명 가량의 사장들과 대담을 했을 때 매번 "당신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할까?"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대답을 한 사장이 있었다. 그것은 슬럼프같이 자신에게 운이 없을 때는 운이 따르는 사람을 좇아간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경마에 가서 2, 3레이스를 샀다고 하자. 그러나 전혀 맞지를 않았다. 그럴 때는 함께 간 운이 좋은 사람이 사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경마를 하러 갔을 때 풋나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혀 맞지를 않았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우연히 마주친 것이 지금은 고인이 된 시바다 렌사부로였다. "제스선생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세번 연속으로 맞았다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사장과의 대담에서 운이 좋은 사람이 하는 대로 좇아가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옆에 앉아도 될까?" 하고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에 무엇을 사느냐고 물었더니 1-7의 마권을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재빨리 달려가서 1-7의 마권을 두장 샀다. 그때 투자금액이 4천엔이었다. 그 레이스에서 나는 16 만엔을 벌었다. 그후로는 경마에 재미를 붙여서 1 년 동안 줄기차게 경마를 좇아 다녔다. 그때 느낀 일이지만 운이 없는 날은 무슨 수를 써도 그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크게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면 확실히 운이 없는 해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액년이라는 것이 나의 인생에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참담했다. 42세의 액년에는 세 번씩이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그런가 하면 그후에는 억세게 재수 좋은 해도 찾아왔다.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보면 확실히 운이 좋을 때와 운이 없을 때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것은 미신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런 대로 좋은 것이다. 의지가 강하고 마음이 돌덩이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처럼 그다지 의지가 강하지 못한 사람은 이번에는 억세게 운이 좋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소설을 쓰고 있어도 자신의 것이 아닌 힘까지 가세해서 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 차례 차례로 멋진 영감이라든가 착상이 떠올라 와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엇에 씌운 것 같이 된다. 그러한 해에는 문학상이나 무엇인가를 타게 된다. 내가 문학상을 탈 때는 대개 운이 좋은 해였다. 그 운이 좋은 해라는 것이 나의 경우는 대충 4 년에 한 번쯤 된다. 그래서 순수 문학은 4 년에 한 번, 3 년에 한 번씩 밖에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운이 없을 때는 그러한 힘이 전혀 솟아나지 않는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노트 하나 가득 메모를 해놓아도 작중 인물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되어 버린다. "우향우"하면 우측을 향하고 "좌향좌"하면 좌측을 향하는 것처럼 내 생각대로만 된다. 그러한 상태가 나쁜 것이다. 소설의 작중 인물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게 되어, 무엇인가 자기 이외의 힘이 가해져서 작중 인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소설로서 성공을 한다. 운이 없을 때는 그러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재작년 같은 해는 내 인생에서 운이 없는 해 중의 한 해였다.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집 가정부가 죽고 나는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다^5,5,5^ 차례차례로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그러한 슬럼프 상태, 운이 없을 때, 어떻게 해서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돌파해 나가는 사람, 조용히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 제각기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령, "고난이 인간을 옥으로 만든다."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운이 없을 때 초조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꼼짝하지 않고 죽치고 있어야만 한다. 전진하겠다든가, 크게 한탕 해보고 싶다든가 하면 안된다. 풍파가 일어나지 않도록 통속적인 사고 방식을 채택해서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고 사귄다. 새롭게 무엇인가 일을 일으키지 않는 쪽이 피해가 적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이 끝나면 기회가 오는 것이다. 즉, 운이 억세게 좋은 해가 반드시 온다. 그 운이 좋은 해에 5밖에 붙잡지 못하는 사람과 10을 붙잡는 사람이 있다. 10을 잡는 사람이란 운이 없는 해에 움직이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것을 준비해둔 사람이다. 보다 많이 준비해둔 사람이 결실의 가을에 수확량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운이 없는 해라고 하는 것은 운이 좋은 해를 위한 도약대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일은 좋은 일로, 좋은 일은 나쁜 일로 변하는 수가 있다. 운이 없는 해를 도약대로 삼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에서도 실패하기가 쉽다. 그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할 수가 있다. ------------ @[ 플러스 체험, 마이너스 체험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운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이 좋은 해를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닐까. 즉, 자기가 운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운이 좋았던 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고 놓쳐 버렸거나 운이 없을 때 준비를 해두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기껏 운이 좋은 해가 찾아왔는데도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운이 좋은 해는 사람마다 각기 리듬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A씨는 3 년 마다 오는데 B씨는 5 년마다 찾아온다. 그것은 대개 정해져 있다. 그 운의 리듬이라는 것을 20 대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 때까지의 인생 경험에서 이다음에는 언제쯤 운이 돌아오는가를 추측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운이 좋은 해가 찾아와서 한껏 그것을 활용할 수 있으면 사장이나 상사의 눈에 들어 계장으로 발탁되거나 한다. 그때 "뉴욕으로 가서 이 일을 처리하고 오라."고 하는 기회가 있어도 준비가 없어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면 모처럼의 운을 놓쳐 버리는 일도 있다. 인생에는 비약할 때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때를 위해서 준비를 해두는 것이 지식과 친구이다. 그러나 친구라는 것은 운이 없는 해에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면 선의로 한 일까지도 역효과를 내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지식만은 틀림없이 흡수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운이 없는 것 가운데는 사업의 실패뿐만 아니라 육체의 실패, 즉, 병이나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정말 하찮은 것이 원인이 되어서 말이다. 넘어져서 뼈를 부러뜨리거나 교통 사고로 타박상을 입거나 한다. 그 중에는 방지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것은 반드시 섭생을 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병이나 부상을 입으면 그것이 이익이 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도 쓴 것처럼 나쁜 일은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쁜 일을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병에 걸리거나 실패를 하거나 하면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 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식이다. 가령 내가 병으로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는다. 그때 수술광경과 주위의 환자들을 면밀히 관찰해 둔다. 그것은 내가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병에 걸렸기 때문에 옆 침대에 있는 사람에게 소설을 쓰라는 권유를 받고 추리 작가가 된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도 희곡을 쓴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같은 병원에 작가 헨리 씨가 입원해 있다가 희곡을 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만일, 병에 걸리지 않았었더라면 나는 희곡 따위는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병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덕을 보았는지 모른다. 3 년간의 입원 생활에서^5,5,5^ 극단적인 얘기지만 너무나 환경이 비참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해서 좋은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는 남성도 있다. 그와 같이 인생에는 반드시 마이너스 상태를 찾아오는 법이지만 그것을 플러스로 전환하는 것이 운이 없을 때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운이 없을 때를 견디어 내는 방법이라는 것은 결코 운이 없을 때는 운이 좋은 사람에게 기대는 것, 운이 없을 때는 지식의 비축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시점을 달리해서 운을 역이용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36,36^이 세가지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ff @[ 3. 인생을 망치는 한 순간 "남자란 꼭 필요할 때는 화를 내야 한다."고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그러나 나의 제1원칙이라는 것은,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령, 화를 낸 다음에 금방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굉장히 용감하구나 싶을 정도로 화를 벌컥 내놓고는, 그 다음에는 주체를 못해서 우물우물하며 후회한다는 것은 정신 위생상 나쁘니까, 그런 성격의 사람은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편이 좋다. 회사 같은 곳에서 부당한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화를 낸다. "그만두겠소."하고 뛰쳐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독신이라면 별문제이다. 그러나 처자가 있는 경우, 화를 낼 수 없지 않는가 하며 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내고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나온 사람은 처자를 노상에서 방황하도록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화를 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회사에 들어가도, "나는 화가 나면 화를 낼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살겠다."하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낸다는 것은 곧 싸움을 하는 것이다. 싸움이란 곧 개인적인 전쟁이다.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병력을 비축하고, 공격을 가할 때의 타이밍, 패했을 경우의 후속 조치를 고려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옛날의 일본군이다. 그렇다면 회사에 들어갔다가 사표를 내던지고 뛰쳐나온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패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전사를 한 셈이다. 그래도 좋다는 사람은 회사를 그만둔 다음의 일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라면 괜찮지만 아내와 자식이 먹고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 두어야만 한다. 그래서 젊을 때부터 자본이 들지 않고 당분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제대로 습득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가령 극단적인 표현을 빌면, 이발 같은 것을 배워 두는 것이 좋다. 그것은 외국에 갔을 때도 통용되는 기술이다. 당장 굶게 되면 이발사라도 할 수가 있다. 빗 한 개와 가위 한 개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사와 싸우고 회사를 그만두어도 여하간 밥을 먹을 수는 있다. 미국처럼 곧장 그만두고 다음 회사로 옮겨갈 수 있는 시스템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그만둘 때마다 객이 한 단씩 떨어진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보통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재취직의 면접에서, "왜 전번 회사를 그만두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 "사실은 상사와 다투고^5,5,5^" 하는 이유는 가장 재고용을 기피당하는 원인이 된다. 그것은 사회에는 '장의 윤리'라는 것이 있어서, 장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속의 원만한 인간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조직에서 쫓겨난 인간은 어디를 가나 따돌림을 당할 성격을 지녔다고 판단을 받는다. 그것이 일본인의 사회에 대한 견해로서, 미국과 전혀 다른 점이다. 즉 사회에서는 조직 속에서 화를 내거나 싸움을 하려면, 그 뒤의 조치를 생각해 두지 않고서는 화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계획이 없이 싸우는 자는 어리석은 인간인 셈이다. ------------ @[ 여자에게 화를 내라. 화를 낸다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어떤 효과를 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관록을 붙이는 것과 동시에 상대에 대한 효과를 계산해 놓아야 한다. 즉 화를 냈기 때문에 이 녀석을 얕잡아 보다가는 큰 일날 인간이라고 생각하느냐 않느냐, 이것은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이쪽에서 화를 내면 더 미워할 사람, 보복을 하려는 사람, 음험스럽게 못살게 굴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화를 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성격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싸울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동료들이 있는 앞에서 상사와 싸우는 것이 좋은가 어떤가, 그 경우에 동료들이 앞으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계산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하를 나무라는 경우, 모두의 면전에서 핀잔을 주는 것보다는 조용히 주의를 주는 쪽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상사를 향해 화를 낼 때도 상사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말을 하느냐, 아니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듣게 하느냐는 효과의 계산 위에서 정해야 한다. 화를 내려고 해도 상대방의 성격과 장소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어떤 때에 화를 내느냐 하는 타이밍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후퇴 방법이 있다. 화를 냈을 때, 어디서 중단을 하면 효과가 있을까 하는 판단이 당연히 필요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쟁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다. 언제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가, 싸움터는 어디로 정하는가, 적은 어떤 인간인가, 그리고 언제 싸움을 그만두는 것이 좋은가, 이 4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절교할 수밖에는 없다고 판단했을 때^6,36^절교란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36,3^자기가 그것에 의해 입는 피해를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가는 화를 낼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대로 무리하지 말고 꾹 참고 회사에 다니면 되는 것이다. 가장 처지 곤란한 경우가 남자는 화를 낼 때에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번 해 보았다가, 나중에 "아뿔사!"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후회하며 투덜거리고 있는^5,5,5^ 2, 3일이 지나면, "과장님, 지난번에는 폭언을 해서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한다. 정말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그런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 편이 낫다. 애당초 조직 속에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화를 내지 말라. 그러니까 조직에 들어갔다는 것은 일종의 장거리 달리기 경쟁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 직업과 다른 점이다. 우리들은 가끔 스피드를 내거나 화를 내거나 소리치거나 하지만, 조직에 속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화를 낸다는 행위 자체가 단거리 경쟁의 전법인 것이다. 장거리라는 것은 호흡을 가다듬어 좀처럼 빨리 숨을 쉬지 않으며 집단으로 화를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정에서는 화를 내도 괜찮다. 가정은 조직이 아니니까 말이다. 자녀들의 교육에서도 그들이 독립을 할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해서는, 역시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 것 같다. 어느 나이까지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자유를 인정해 주도록 하라. 실제로 화를 내는 아버지 쪽이 자식에 대한 애정도 깊다. 화를 낸다고 해서 무턱대고 내는 것이 아니다. 1 년에 2, 3 회 아이들이 벌벌 떨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이 '무서운 존재'로서의 아버지의 지위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화를 내라. 여자에게는 어린애와 같은 구석이 있다. 여자와 어린애는 같은 점이 있으니까, 여자에게 화를 내라! 하지만 여자 모두가 어린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자에게는 훌륭한 점이 너무나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떤 점에 있어서는 어린애와 꼭 같은 점이 있다. 여자를 어리석다거나 경멸해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가 미치지 못할 훌륭한 점이 있지만, 그러나 아무리 해도 남자에게는 알 수가 없는 어린애 같은 점이 확실히 있다. 그것은 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여자는 야단쳐 주었으면 좋겠다, 꾸짖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잠재적 욕구를 갖고 있다. 여자라는 것은 자신이 일단 감정에 휘말려 들어가면 브레이크가 듣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남자가 호되게 꾸짖어 주었으면 하고 여자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 남자답지 못한 점 "부하나 후배에게는 화를 내지 말라. 충고를 하라. 여러 사람 앞에서 꾸짖는 것보다 별도로 불러서 충고하라. 화를 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그쪽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싸움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대해서 부당한 모욕을 가하는 사람을 마침내는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그것은 전쟁과 마찬가지니까, 총격을 나누어 싸우기보다는 교전을 하지 않고 적을 자기 편으로 삼는 것이 최대의 승리다. 그러니까 우선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심약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명한 D씨의 전기를 요즘은 모두 우습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읽으면 그는 주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항상 연구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장거리 경쟁이니까, 그 나름대로의 작전을 세워야 한다. 그러니까 화를 내는 것을 반드시 남자답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남자답다고 하는 것은 결국 상대를 설득해서 자기 편으로 만들어 최종적으로 이기는 것을 말한다. 그 장소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5,5,5^ 바그다드를 기습 공격해서 이겨도 최종적으로 지고 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이른바 미학의 문제는 아니다. 남보기에 멋있으라고 일부러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이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화를 내는 것이다. 상사에게 대드는 것은 그 당시는 멋이 있겠지만, 나중에 후회하느냐 않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아아, 나는 바보짓을 했구나."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상 사납다. 더 불상 사나운 것은 3, 4일 지나서, "상사에게 대들었다는 것에 사과를 드린다."하는 것이다. 사과를 하면 그것으로 전쟁에 패배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보복을 당해 애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은 멋을 부린 대가 치고는 너무나 계산이 맞지를 않는다. 요컨대 자신에게 부당한 모욕을 가한 사람에게 이기면 되니까, 그 당시 화를 내고 대들기보다는 2 년이나 3 년이 걸려도 꾹 참고 견뎌 최후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즉 상대방보다 더 출세하면 되는 것이니까. ------------ @[ 쉽게 눈물을 보이는 남성 '화내는 것'의 반대 표현으로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 있다. 다정하다는 것은 남자다운 행위다. 그러나 여자를 어디까지 데려다 준다든가, 여자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 준다거나 하는 다정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다정함이라는 것은 남자답고 얼마만큼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다. 다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상상력이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은 좀처럼 가기 힘든 것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러한 다정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정말로 존재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남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거나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남자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불같이 화를 내는 것보다는 멋이 없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을 가질 수는 없지만^5,5,5^ 그리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 "아아, 불쌍하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정함이 아니다. 그것은 본능이다. 내가 말하는 다정함이라는 것은 그 본능이 일어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쉽게 눈물을 흘리니까. 그러나 두 가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다만 "눈물이 많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눈물이 많다는 것과 다정하다는 것을 비교해보면, 눈물이 많거나 성격이 나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눈을 돌리려고 한다. 그것을 우리들은 때때로 "당신은 참으로 다정다감한 사람이군요."하지만, 그것을 다정한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정하다는 것은 그곳에서 시작해서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다정함을 실천하고 있는 남자다운 사람이 있는 법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온순함이라는 것에는 세 가지의 심리가 포함되어 있다. 첫번째는, 다투어도 의미가 없다는 사고 방식이다. 그것이 우리들 세대와는 다르다. 우리들은 무의미한 싸움을 하는 것을 남자답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부족한 것은, 그렇다면 의미가 있는 싸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워 보았자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정지해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다투는 것의 손해도 우리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손해가 안 가는 싸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번째가 온순함이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온순함이라는 것이다. 이상 세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면적으로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들 세대처럼 무의미한 오락을 즐기거나 일시적인 체면을 생각해서 다투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는 훨씬 전진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곳에서 일보 전진해서, 그렇다면 의미가 있는 싸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해 보면 어떨까? 의미있는 싸움이라면 결국 "최후에 승리할"테니까 말이다. 이쪽이 개미새끼일 때 사자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쪽이 개미새끼인데도 사자와 대항하는 것을 멋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도, 대드는 것도 결국은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ff @[ 4. 독립할 때의 위험 모든 삶의 자체가 위험을 나타내면, 우리가 삶을 충실하게 살수록 더 많은 위험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일생 동안에 수천 번의 위험, 아니 수만 가지의 위험을 당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성장할 때의 위험이다. 성장이란 소년이 청년이 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성장은 단계라기보다는 도약이며, 이 도약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 외적으로는 어른같이 보이지만, 또 성공하여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지라도 정신은 성장하지 못하여 부모로 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아직도 부모들의 그늘 밑에 있는, 정신 연령이 낮은 어른들이 수 없이 많다. 나 자신도 성장할 때의 위험을 경험했으므로 성장의 요소와 성장을 위한 거보를 내디딜 때의 위험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과정을 매우 일찍이 즉 열 다섯 살에 경험했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결단을 내려 그 위험을 극복했으나 그 당시에는 내가 성장하고 있는 과정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다만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열 세 살에 집을 떠나 필립 엑세터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이 학교는 대학 예비고로 정평이 있는 학교였으며, 나의 형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그 학교를 가게 된 것이 기뻤다. 그것은 그 학교를 다니게 되면 최고의 명문 아이비리 그 대학교 입학은 보장되고, 또 그 대학만 졸업하면 앞날은 탄탄대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최고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 것을 행운으로 느꼈으며, 앞날이 보장된 데 대해 기뻤다. 문제는 엑세터 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그때부터 불행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은 학교에 입학한 다음 불행을 느끼게 된 이유를 몰랐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이유는 신비로 남아 있다. 여하튼 그 학교가 내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학교의 시설, 학생들, 학교방침, 사회 생활 그리고 전체 환경이 내게 맞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모든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나의 불완전한 점을 보완하고 내 앞에 놓인 상황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2 년 반 동안은 그럭저럭 그 학교를 다녔다. 그렇지만 학교 생활이 매일 의미없이 느껴졌고, 내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1 년 동안은 잠도 자지 못했다. 잠을 자도 항상 불안에 쫓겼던 것이다. 그렇게 보내고 3 학년이 되어서 봄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서는 급기야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아버지는 놀라서 '너는 그만 두면 안 된다.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줄이나 아니? 그 학교를 그만 두면 너는 얼마나 큰 손해를 보는 줄이나 알고 있느냐 말이야?' 하고 말했다. '예 알아요. 그러나, 학교에 다시 가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했다. '왜? 적응을 못하니? 다른 학교에 갈래?' 하고 아버지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왜 그 학교가 싫은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싫어요. 가지 않겠어요.' '좋다. 그러면, 무얼 할래? 학교를 그만 두면 무얼 하겠니? 계획이라도 있니?' '글쎄요. 아직 계획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 뿐이에요.' 나의 아버지는 놀라면서도 이해하여서 나를 상담소에 데리고 갔다. 상담소에서는 내가 극도로 우울하니 한 달 가량 병원에 입원하여 휴양을 한 다음 학교 문제를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그 날 밤 자살까지도 생각하면서 그 날 밤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보냈었다. 나의 형도 그 학교를 졸업했는데, 내가 다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큰 결점임을 나는 알았다. 또한 나 자신이 무능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적인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지 않았는가! 아버지는 '네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좋은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말할 수가 있겠니?' 하고 말했다. 내가 학교에 복학만 한다면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내 길인가? 만일 학교에 돌아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미지수이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고 나의 앞날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길을 택하는 사람을 보고 누구든지 미쳤다고 할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무의식으로 부터 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왔다. '삶에서 진실로 확실한 것은 삶에서 불확실한 것을 맛볼 때 얻어진다.' 비록 미친놈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나 자신이 되기로 그날 밤에 결정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생각에 저항을 느꼈다. 그래서 저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사에게 가서 학교로 결코 돌아가지 않겠으며, 계속 입원하겠다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한 것이다. 나는 나의 운명을 내 손으로 잡은 것이다. 성장의 과정이란 항상 점차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미지의 세계로 도약한다. 건강한 어린이를 관찰해 보면, 한편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른들과 같은 움직임을 해 보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린이로서 부모를 의지하려는 옛날 습관을 고수하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신은 어른이 되었지만 이처럼 옛날의 친숙한 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또 새것을 찾아서 미지의 세계로 나가려는 경향^36,36^이 양면성이 있음을 당신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취하게 되는 도약에는 내가 학교를 그만둘 때, 나의 결정에 따라 모든 삶의 가치와 패턴을 포기하는 일과 같은 거대한 도약이 있다. 이러한 거대한 도약의 단계를 취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진실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들은 외형에 관계없이 정신적으로는 매우 어린 단계여서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가치로, 즉 현재에 알려진 가치로 생활하며, 부모가 인정하는 것에만 자극을 받아서 움직이며,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개척하지 못한다. 이런 큰 도약은 거의가 사춘기에 있으나 어른이 되어서도 연령에 관계없이 있을 수 있다. 35세의 어떤 부인은 무능하고 정신적으로 약간 이상이 있으며, 방랑벽조차 있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그런데, 그녀는 남편과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부부생활이 그녀에게는 죽는 것 만큼이나 괴로웠다. 그의 남편은 그들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무참히도 짓밟았다. 그녀는 마침내 이혼하기로 결정하고 합의하에 이혼을 했다. 그녀는 이웃의 비난과 세 자녀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혼한 후 처음으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된 것을 느꼈다. 변화와 독립을 향한 자기 결단과 도약은 나이에 관계없이 매우 고통스러우며 최고의 용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위험 의식을 줄이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정신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사랑 속에 내포되어 있는 자아 확장은 곧 자아를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별도로 하고 성장의 이런 일들과 사랑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첫째, 앞에서 말한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주요한 변화는 곧 자기 사랑의 행위이다. 나 자신을 예로 들면 나에게 맞지 않는 학교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가치가 있으므로 나는 그 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35세된 부인이 세 자녀를 거느리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존중했으므로 지겨운 가정 생활을 포기하고 이혼하였던 것이다. 둘째, 그런 큰 변화의 동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므로 그런 변화의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나의 양친은 나를 사랑했으므로 부모들이 제시한 패턴을 떠나서 그런 패턴과 다른 길을 택하여 부모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큰 위험이었다. 내가 비록 무능하고 그렇게 부모에게 도전하는 것이 미친 행동으로 보일지라도 깊은 내면 속에서는 나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을 걸을지라도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멸과 냉대를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자유롭게 되어서 정신적인 성장의 고도에서 자유를 느끼며 가장 넓은 세계에서 자유사랑을 하게 될 때, 미지의 자아로 도약하게 되며,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독특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거느리게 될 때, 필연적으로 책임이 수반된다. 사랑의 최고 형태는 자유로운 선택이며, 일치된 행동이 아니다. ------------ @[ 책임의 위험 크고 작은 사랑의 관계에서 기초는 책임이다. 무거운 책임의식은 사랑의 관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요소보다도 사랑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초에는 책임 의식이 희박하지만 점차적으로 커진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끊어지거나, 깊은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무거운 책임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의식하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현상은 신비의 망토를 쓰고 결혼할 때 느끼는 위험을 맹목적으로 돌진하게 한다. 사랑에 빠졌다가 순수한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책임 의식이다. 책임 의식은 순수한 사랑의 관계에서는 본래적으로 존재한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그이(녀)의 발전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만이 그이(녀)의 발전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다. 커플들은 커플 사이의 일반적인 문제를, 즉 의지하는 것과 독립, 지배와 복종, 자유와 맹종의 문제를 이 문제에 대한 논쟁만으로는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확신 없이는 건전한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없다. 책임 의식의 문제는 정신적인 불안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정신 자세를 바로 하게 하는 정신 요법의 코오스에는 필수적이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항상 책임 의식이 희박하며, 불안 의식이 심할 때는 모든 일에서 책임을 지려는 의식이 전혀 없다. 그들이 책임 의식이 없는 것은 책임을 두려워하거나 책임이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어렸을 때 그들 부모들이 책임을 가르치지 않아서 책임을 져보는 경험이 없이 성장한 탓이다. 그들에게 책임 의식이란 하나의 추상적인 현상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노이로제는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종종 책임을 너무나 두려워한 끝에 마비 현상까지 일으킨다. 그들은 어려서 부모들이 그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웠다. 부모들이 죽거나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부모의 사랑이 끊어진 것은 그들에게 벗을 수 없는 책임을 지워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게 했다. 그 결과 새로운 경험은 자연히 두려운 것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처는 후에 보다 만족을 느끼는 책임을 경험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 @[ 만남의 위험 마지막으로 사랑의 위험 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힘을 비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 위험의 가장 공통적인 예는 사랑하는 사이에서 만나게 될 때 나타난다. 우리가 어느 누구를 만날 때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의 요점은 '당신은 나쁘고, 나는 옳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면할 때도, '이 못난 놈아!' 하고 욕하는 일이 수없이 많다. 이것은 사실은, '너는 못난 놈이고, 나는 잘난 사람이므로 너 보고 못난 놈이라고 말한다.' 고 하는 뜻이다. 남편이 아내의 냉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보자. '당신은 왜 그렇게 냉담하고 무반응이요. 좀더 멋지게 섹스가 되도록 반응을 나타낼 수 없소. 섹스가 그 모양이니 다른 일에도 그 모양이 아니오. 나는 섹스도 열성적으로 하니까 다른 일도 잘 하는 거요.' 남편의 사업이 잘 안될 때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당신 사업을 보지 않아도 뻔해요. 이제 다른 방향에 투자해야 될 것 같아요. 그 사업은 희망이 없어요.' '나는 옳고, 당신은 잘못이므로 당신이 고쳐야 한다.' 고 하는 식은 사람들이 특별히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는 식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 배우자 사이에 그리고, 여러 가지 인간과의 관계에서 극한적인 흑백 논리요. 흑이 아니면 모두 백이라는 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일상생활에서 수 없이 많다. 비판으로 사람을 대면하는 것은 사람을 충동시키기 보다는 혼동만 가중시킨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비평하면서 대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비평하는 것은 거만이 잠재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 이 순간에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순수한 사랑은 그이(녀)의 개성과 주체성을 존중한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이(녀)의 개성과 차이점을 높이 평가하며, '나는 옳고 당신이 나쁘며,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쁜 것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르며 능력과 지혜중에서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하는가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그이(녀)가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울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그이(녀)가 사랑의 지도력이 필요할 때, 사랑으로 지도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때가 종종있다. 이 딜레마는 뼈아픈 자기 성찰에 의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는데, 이 자기 성찰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그이(녀)의 지혜를 철저히 조사하여서 지도 해 줄 필요성이 있는 지 없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내가 진실로 사실을 보았는가? 아니면 음침한 가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랑하는 그이(녀)를 진실로 이해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그이(녀)가 걷는 길이 현명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본 것은 내 입장에서 제한된 비전으로 바라본 결과가 아닌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계속 스스로 해 보아야 한다. 가능한 객관적인 자기 성찰은 겸손의 핵심이다. 14세의 영국의 위대한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겸손이란 자기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진실로 알고 느끼는 사람은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다.' @ff @[ 5. 악의 냄새와 행복의 즐거움 @[ 또 한 사람의 자신의 참모습 아마 독자들은 내가 붙인 '악의 냄새, 행복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이상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악의 냄새'와 '행복의 즐거움'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해서는 잠시 눈을 감아 주자. 사실은 이 수필은 봄날 오후의 산책처럼 저쪽에서 개나리 냄새가 풍겨오면 그쪽 방향으로 발을 돌리고, 이쪽에서 아름답게 벚꽃이 피어 있으면 그곳에도 발걸음을 멈추는 식으로 매일 생각나는대로 쓰는 그러한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가려는 방향만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떤 '무엇'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마음 속 깊고 깊은 곳, 당신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동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가? 그 동굴은 너무나도 어둡고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기 때문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당신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당신은 그것을 알고 싶지 않는가? 알고 싶은 사람은 나와 함께 같이 가 보자. 같이 가려는 사람은 '자신을 알려고 하는'일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가를 재확인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보여 주려는 자신, 사람들 사이에서 잘 보이려고 꾸미는 자신, 사회나 가정에서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는 자신^5,5,5^ 그러한 자신이 아니라 자칫하면 그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인지도 모르는 얼굴,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 수필을 읽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참모습 따위에는 흥미가 없고, 그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있는 현재의 자신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다음페이지를 보실 필요가 없다. 그럼 먼저 나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내가 사는 집은 벤트포드 시의 교외에 있으며, 연구를 하고 작업을 하는 방은 맨션에 따로 있다. 나는 매일 여느 샐러리맨처럼 집에서 그 작업장으로 출근을 한다. 일에 흥이 오르면 작업장에서 자는 경우도 종종있다. 작업장에는 출판사 사람들이나 신문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 옆에 좁게 항상 커튼을 닫아 두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커튼을 둘러친 그 작은 방은 항상 어두컴컴하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서가가 있고, 다른 쪽 벽에는 옛날 프랑스 유학 시절에 산 싸구려 지도나 리용의 풍경화가 걸려 있는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한낮에도 조용해서 외부의 소음은 희미하게나마 들리지를 않는다. 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의자에 걸터앉으면,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안정감과 평화가 마음을 지배하여 이상스럽게도 마음 속으로부터 아이디어가 샘솟거나 이미지가 떠오르고 해서 소설이 잘 진척된다. 다른 방에서 일을 하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내 집에서 일을 하거나 호텔에 틀어박혀서 작품을 쓴 적이 종종 있었지만, 이방처럼 느긋하게 평화로운 안정감속에 잠길 수가 없었다. 이 방은 마치 마법의 방처럼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나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아서 눈앞에 있는 커다란 서가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때, 돌연 계시처럼 머리를 흘끗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이 방안에 있는 감각은 어머니 자궁 속의 이미지다." 어째서 그러한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어둡고 좁은 방, 그뿐만 아니라 약간의 습기가 있는 방이 나의 마음에 기묘한 안정감과 평화로운 안식을 부여해 주는 것은 옛날 어머니의 태내에 있던 때와 같은 감각을 되살려 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친구인 심리학자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그는 그럴 것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러 가지 기억이 혼돈 상태로 잠복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에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던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안심한 채, 아니 무심히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태아시절, 그 시절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들의 무의식속에 남아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를 들면 말일세, 우리들이 행복감이라고 말하는 감각은 그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네. 커다란 것에 보호되어 평화롭고 무심했던 그 태내의 기억과 닮은 감각을 우리들은 행복감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네." 친구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자신의 조그맣고 어두운, 그리고 약간의 습기가 있는 작업장에 어째서 마음이 끌리는가, 어째서 그곳에서 안심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알았다. 역시 그 방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태내에서의 기억을 불러낸 것이었다. ------------ @[ 자신도 깨닫지 못한 자기의 본심 또 하나의 경험을 말하겠다. 몇 개월 전에 나는 한 여자 중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이 빨갛고, 웃으면 아직도 애티가 남아 있어서 어린애와 처녀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그 표정. 그녀는 나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잡문'의 팬으로 책에 사인을 받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 자신이 같은 나이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아이에게는 나와는 달리 아직도 길고 긴 인생이 남아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부러워졌다. 나는 이미 이 아이와 같은 탄력있는 육체, 새하얀 이, 천진스러운 웃음은 오래전에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몇 주일 뒤의 일이다. 나는 어떤 꿈을 꾸었다. 꿈 속에 그 여자 중학생이 나타났다. 그녀는 생시에 만났을 때처럼 제복을 입지 않고 마치 북부 유럽의 처녀들처럼 흰 의상을 입고, 챙이 넓은 여름 모자를 쓴 채 꽃밭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꽃의 요정 같구나, 너는." 하고 내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앳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녀는 꽃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그녀를 부르며 찾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나는 골목 대장처럼 주위의 꽃을 짓밟고 손으로 헤집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어머니로서의 소리 이외에, 아내로서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여자로서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당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어린애가 태어나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여자,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머니로서의 소리를 제일 먼저 울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아내로서의 소리를 조금 울리고, 여자로서의 소리는 마치 울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억제하고 또 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아내, 그리고 여자로서의 순위인 셈이다. 여담입니다만, 이에 대해 남자 쪽은 어떨까? 남자 쪽은 결혼해서 어린애의 아버지가 되어도, 아버지라는 의식이 그의 마음 속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나의 관찰로는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가 남자라는 기분을 평생 미련없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이 되어도, 아버지가 되어도 남자라는 소리가 다른 두 개의 소리를 압도하여, 끊임없이 높게 울려 퍼지고 있다. 남자란 무엇일까? 투쟁하는 남자, 여성을 쫓아가는 남자^5,5,5^ 이에 대한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남자라는 소리가 울린다. 내 자식이 귀엽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송한 말이지만, 평상시에 있어서는(요컨대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든가, 병에 걸렸다든가 하는 비상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남편이라는 의식의 소리이다. 여자가 화를 내도 할 수 없었다. 진실을 속이고 거짓 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 아버지, 남편의 순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위의 차이를 잘 주의를 해 보면, 당신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아내와 남편과의 감정 차이는 늘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러한 감정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위에서 본 순위의 차이가 근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아내는 늘 남편에게 무언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도 어린애가 생긴 후로는 어머니라는 의식을 제일로 삼고 매일매일 살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남자라는 의식보다, 먼저 아버지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 보자." 또는, "나는 결혼하고 나서 여자라는 의식을 제일 마지막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현모양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 역시 남자라는 의식을 억제하고 좋은 아버지, 훌륭한 남편이 되어 주기 바란다." 이러한 무언의 주문은 그녀로부터 일종의 압박감을 가지고 남편에게 강요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가정에서나 가정 밖에서나 가리지 않고 자기 남편을 '아빠'라고 부른다.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내들의 무언의 요구이다. 혹은 무의식의 요구이다. 그것은 아내들만의 특징이라고까지 나는 생각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아내가 결코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남편의 이름을 부르든가, '여보'하고 부른다. 그것은 외국의 아내들은, 결혼 생활을 해 가면서 모자간의 관계보다 부부 관계 쪽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 여자의 소리는 어디로 얘기가 좀 길을 벗어났다. 탈선하는 것이 나의 나쁜 버릇인데, 다음 부터는 주위하겠다. 그래서 앞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어머니로서의 의식을 제일 우선으로 삼기 위해 아내라는 의식과 여자라는 의식을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우선 시장 바닥에서 파는 싸구려 속옷을 입게 된다. 남자가 신는 막신같이 보이는 허술한 신발을 신고 퇴색하고 올이 풀린 팬티 스타킹을 입고, 두 다리를 벌리고 곤히 잠들어 버린 여자와 전철 안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엉겁결에. "수고가 많다."라고 인사하고 싶게 되지만, 동시에 이 여자의 남편은 그녀에 대한 불만을 꾹 참고 있겠지 하고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 속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어머니'라는 의식이지, 아내의 부분이나 여자의 부분은 그 밑에 조그맣게 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여자로서의 소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면 그녀는 깜짝 놀라 이렇게 대답하겠지. "여자의 소리? 결혼해서 어머니가 된 이상 그런 생각은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이러한 대답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이겠지. "결혼한 이상,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의식은 인정하지만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여자로서의 부분은 될 수 있는 한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여자의 소리 같은 것은 버리는 것이 '좋은 아내'가 되는 길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나는 틀렸다든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겠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도덕론이 아니다. 여자들의 그러한 생각이 크게 틀렸다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은 그녀들이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최대한으로 억제한 여자들로서의 소리는 결코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 소리는 깊은 연못 바닥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지금 무의식이라는 저장고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쓰면서 재미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불교의 유식론으로써, 이 인간의 마음의 심층^36,36^즉 무의식이라는 것을 '아라야식'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라야식'의 '아라야'라는 것은 괴어 있는 장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히말라야 산맥의 '히말라야'라는 말은 '하마'가 한 곳에 쌓여 있는 '아라야'장소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와 동시에 무의식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의식적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남에게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억제하고 감추려고 하는 욕망이나 염원이 남모르게 괴어 있기 때문에 '아라야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아라야식' 즉 무의식 속에 여자들은 여자로서의 소리를 숨겨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수필의 독자들 중 여성 독자는 결혼해서 어머니가 된다면, 반드시 위와 똑같이 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 남편을 '아빠'라고 부름으로써 그를 남자나 남편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식의 아버지로 봄으로써 자기도 완전한 어머니가 되자,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여자로서의 소리는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꾹 참으면서 기회를 노리고 출구를 찾아 어떻게 해서라도 밖으로 나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리는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본래 그대로가 아닌, 모양을 바꾸어서 당신 마음 속에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는 어떤 때는 밤에 꾸는 꿈으로 나타난다. 혹은 여자로서의 소리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다른 여성에 대한 질투나 마음이 되어서도 나타날 때가 있다. 예컨대 집단 주택지에서 몇 사람의 주부가 화려한 여성에 대해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지? 그런 때는 그 주부들에게도 똑 같이 화려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와 같이 다른 여성에 대해 질투나 마음을 느낀 당신 마음속에는, 사실은 그 여성과 같은 부분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 제3부 두 사람의 사랑을 기르는 지혜 @[ 1. 에로스적인 사랑 이제부터 연애를 할 때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는 육체적인 정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물론 에로스란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 말은 보통 아카페라는 말과 비교가 되는데, 이것은 정신적인 사랑을 가리키지만, 에로스는 일반적으로 육체적 정열, 즉 성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필자도 에로스를 이 육체적인 사랑에 한정시켜서 이야기할까 한다. 요즈음에는 매우 드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체적인 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연애의 순수한 감정 속에 그러한 육체적인 욕망에 섞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작년에 내가 가르치고 있는 여학생들로부터 '연애의 순수성에 대해서'라는 제목을 리포트로 쓰게 한 적이 있다. 그때 제출된 보고서 중에 "육체적인 욕망은 연애의 아름다움을 더럽힌다."라고 써낸 여학생들이 의외로 많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청년들과는 달리 젊은 여학생들이 본능적으로 육욕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첫째로 여러분들은 흔히 청년들처럼 태풍과도 같은 거친 감정이나, 어두운 욕망에 몸부림치는 일은 거의 없을 줄 안다. 현재 연애를 하고 있는 분들은 어쩌면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당신은 결혼할 때까지 보다 정신적인 결합을 바라고 있는데 상대방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신의 육체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때로 당신은 그의 애정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때는 다음의 일에 대해서 기억해 두시기 바란다. 당신이 육체적 욕망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 것은 당신이 아직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은 생리적으로 관능에 빨리 눈을 뜨게 되어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때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라는 말은 아니지만 당신은 자기 자신의 입장 자기 자신의 주관만을 내세워 그를 경솔하게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언젠가는 당신들도 정신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사랑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대들이 그 문제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다 해도 내일은 어차피 마음의 준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제부터 여러분과 이 에로스의 세계를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이 원고를 어떤 고원에서 쓰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구름 사이로 보랏빛 산봉우리가 보이고, 방울 단 하얀 소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이 한 고원에 있으려니까 내용이 딱딱한 책보다도 목가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 읽어 보고 싶어져서 어제 진종일 그리에라는 프랑스 사람이 번역한 '다프니스와 크로에'를 읽었다. 여러분 중에는 이 책을 읽은 분도 계시겠지만, 그 소박한 삶의 목동의 양치기의 딸과의 연애 이야기가 그리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은(룽큐스)라는 그리스 사람이 기원3, 4세기 경에 쓴 작품이란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 보면, 옛날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은 아름다운 운하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섬 안의 미테이레에느라는 고장에 라몽이라는 산양치기가 살고 있었다한다. 어느 날 그는 등나무가 어우러진 숲 속에서 한 마리 암산양의 젖을 빨고 있는 귀여운 사내 아기를 발견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아기였지만 옷은 잘 입혀져 있었고 금단추까지 달린 분홍색 망또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칼자루가 상아로 된 단검이 놓여 있었다. 라몽은 이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다프니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키웠다. 그로부터 2 년쯤 지나서 그 부근에 사는 도리아스라는 다른 양치기가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동굴 속에 버려진 여자 아기를 발견했다. 그 여자 아기 옆에는 역시 금실로 짠 모자와 금박을 한 나무신과 양말 등이 놓여 있었다. 도리아스는 그 갓난애를 크로에라고 이름 지어 자기 집에서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다프니스와 크로에는 그렇게 하여 각각 양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같은 운명과 같은 처지 때문인지 어려서 부터 둘이는 매우 사이가 좋았고 함께 양들을 지키며 친해졌다. 자연 속에서 자라 자연 그대로 성장한 그들에게 아무도(연애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그들은 서로 육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양을 쫓다가 구덩이에 빠져 흙투성이가 된 다프니스는 옷을 벗어 크로에에게 건네 주고 샘에서 몸을 씻었다. 목욕을 하고 있는 다프니스의 몸이 태양빛에 번들거렸다. 그 머리칼은 윤기가 흐르도록 검고, 그것을 본 크로에는 그 육체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만약 그가 보지 않았다면 그 살갗을 만져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부터 그로에의 마음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목욕하는 그의 육체를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크로에의 심정을 원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그녀로서는 자기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랑이란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 후 그녀는 하루 종일 다프니스만 생각하느라 식사도 거를 때가 많았고, 밤에는 한숨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몽상에 빠져 가지고 혼자 중얼거렸다. '다프니스는 정말로 멋있구나. 그 사람의 볼은 꽃처럼 빨갛고, 그 사람의 노래 소리는 새들의 지저귐같이 아, 어째서 나는 피리가 되지 못하였을까. 피리라면 그 사람의 입술에 닿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 사람의 새끼 산양이 되지 못하였을까. 그랬더라면, 그 사람은 나를 그의 품에 꼭 안아 주었을 텐데^5,5,5,456^'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크로에뿐만이 아니었다. 다프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그는 도르콩이란 친구와 크로에의 키스를 걸고, 자기를 두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멋있는 청년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에 이긴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입맞춤을 받았지만 그날부터 그는 독에 쏘이기나 한 것처럼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때로는 적적하고 때로는 한숨이 새어 나오고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크로에를 만나면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수치심이 일어나곤 하였지요. 그도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하느님, 크로에의 키스는 나의 가슴에 무엇을 심어 주었지? 그녀의 입술은 장미처럼 향기로웠고 그 입은 꿀처럼 달았다. 나의 가슴은 어째서 이렇게 두근거리고 맥박은 파르르 떨려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또 키스해 주었으면 하는지 대관절이 고통이 무엇인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프니스와 크로에는 자기들이 어째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를, 마음 속에 일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아인 두 사람은 연애라는 말조차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 이름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이처럼 연애의 실상을 전혀 모르면서도 연애의 심리로 발전해 가는 것고 괴로워하는 사실이다. 그 심리의 발전이나 그것을 둘러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원문을 직접 읽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마음은 괴로워하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를 몰랐다. 더더욱 연애의 기술이나 애무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언제나처럼 산양을 지키면서 즐겁게 어울려 놓고 있을 때,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나무신을 신고 낡은 빵주머니를 맨 한 노인이 나타나 아무르라는 사랑의 신의 얘기를 들려 주었다. "진정 마음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란 무엇이냐?" 하며, 말을 꺼냈다. '노래도 속삭임도 아니다. 사람을 끄는 힘은 약도 아니고 그저 포옹과 키스, 그리고 발가벗고 같이 자는 거란다.'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자기들의 고통을, 그 말과 비교해 보고 비로소 연애의 실재를 알았다. 그리하여, 노인의 말처럼 들판에서 서로 팔을 꽉 끼고 꼭 껴안아 보았다. 그러나 최후의 치료법인 발가벗고 자는 것만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은 다프니스 같은 젊은 청년이나 크로에 같은 처녀로서는 좀 대담한 행위였으니까. '그러나, 다음날 밤이 되자,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몸부림치며 그 밤을 잠들지 못했다.'라고 원문에 씌여 있다. '우리들은 키스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들은 포옹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지를 못했다. 그러면, 함께 자는 것만이 연애의 유일한 치료법이란 말인가. 어떻든 그것을 시험해 봐야겠다. 그것은 키스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발가벗고 어떻게 자야 하는 것인지 방법을 알 수도 없었고, 그것보다도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을 누구한테 물어 보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뒤 두 사람에게는 큰 사건이 일어나고 때로는 한 동안 따로 따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 닥쳐오기도 합니다만 마침내는 결혼하게 되어 행복해진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의 묘미는 자연아인 다프니스와 크로에가 차츰 성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성에 대해서 이럭 저럭 배워 가며 귀진다는 점에 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프랑스의 작가(프로벨)의 (감정교육)이란 소설이 있다. 그 속에 이런 말이 있지. 이(다프니스와 크로에)는 성교육 소설이라고. 그러나, 다프니스와 크로에는 나의 간단한 소개로도 알 수 있듯이 목가적인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두 사람의 젊은 남녀의 사랑은 물론 그 성적인 각성도 우리들에게는 음탕한 감정이나 더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내가 소개한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 보자.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노인은 두 사람에게 사랑의 고통을 잊으려면 꼭 껴안고 발가벗고 자라고 권한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노인이나, 그 말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다프니스와 크로에의 모습을 잠시 머리 속에서 그려 보세. 조금도 천하다거나 음탕한 인상을 주지 않잖습니까! 마치 그들은 노인에게서 양치는 방법이나 포도를 심는 방법, 또는 병을 고치는 방법 같은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때처럼 솔직한 태도로 성의 지식을 배웠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지. 드디어 다프니스는 리세니온이라는 중년 여인한테서 성의 기술을 실제로 배우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술책을 써서 다프니스를 속여 사랑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그의 동정을 빼앗아 버린다. 그 뒤 다프니스는 리세니온에게 배운 것을 시험해 볼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역시 키스와 포옹의 이외의 것을 크로에에게 요구하지 못한다. 그는 크로에가 고함이라도 지르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울리는 행위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출혈케 하는 일은 순진한 그로서는 두려웠고 상처를 내지 않는 데도 피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라고, 원문에는 씌여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들의 마음에 불쾌감을 주거나 더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다프니스의 무구한 순진성이 우리들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다프니스와 크로에가 성에 대해 죄의식이나 거리낌 같은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그리스의 푸른 하늘처럼 밝고 맑은 마음의 눈으로 섹스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프니스의 나체를 보고 난 뒤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멋있는 육체를 생각할 적마다,그것에 자기의 살을 대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크로에의 마음이 조금도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냄새를 맡아 보고 싶은 그러한 충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인으로부터 배운 순서에 따라 목장의 푸른 잔디 위에서 서로 껴안고 뒹굴며 키스를 교환하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꿀벌이 꽃을 찾아 오듯이 자연적인 욕구였을테지. 이 조그만 목가적인 얘기가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아득히 잃어 버린 꿈 같은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의 옛날 이야기여서만은 아니다. 그 당시의 성은 어두운 그늘도 또한 죄의 냄새도 풍기지 않았고, 다만 밝고 순진무구하게만 생각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성은 조금도 고통스럽거나 일그러지지 않았었다. 육욕이란 것에서 무엇인가 천하고 더럽게 느껴지게 되어 연애의 순수성을 상처내기 시작한 것은 그 뒤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그것은 외국에서는 기독교가, 동양에서는 불교나 유교가 인간의 본능인 육욕의 그와 같은 순수성을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종교에서 육체는 인간을 방황케 하고 몹쓸 함정으로 빠뜨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문제는 다음 장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순수성을 빼앗은 것은 종교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 그 당시에는 성이나 육욕은 그토록 고통을 인간에게 주지 않았고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했기 때문이다. 다프니스와 크로에가 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그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고민하는 것은 자기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감정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까부터 이 소설을 목가적인 이야기라고 자주 말한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연애, 즉 성이나 육욕을 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 후부터는 인간의 마음이나 체험이 한층 더 복잡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그 같이 성을 순진한 것으로만 방치해 두지를 않았다. 그들은 다프니스나 크로에보다 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른에게는 말 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고뇌로 느껴지게 되듯이 섹스도 또한 목가의 세계로부터 비극의 세계로 옮아 가고 만 것이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는 지금 당장 생각지 말기로 하자. 분명한 것은 성에 대한 감정의 변화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다프니스와 크로에)로부터 오늘 이 시점까지 우리들이 함께 생각하고자하는 것은, 그 순수한 성에서 어두운 성에 이르기 까지의 의식 변화에 대한 검토이다. 다음 장에서는 후자에 대해서 보다 깊이 분석해 보기로 하자. @ff @[ 2. 에로스와 아가페 앞 장에서는 '다프니스와 크로에'의 아름다운 전원소설을 분석해 보면서 거기에 그려진 소박한 육욕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다프니스와 크로에^36,36^이 청년과 이 아가씨의 눈에 비친 남녀의 성은 소설의 배경인 그리스의 세계처럼 끝없이 맑게 개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 즉 인간의 육욕에 대해서 그들은 현재의 우리들처럼 부끄럽다거나, 천박한 죄의식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이를테면 육욕의 세계, 즉 에로스의 세계는 이 두사람의 자연아에게 있어서는 마치 벌이 아름다운 꽃의 꿀을 찾아 드는 것 같은 자연적이며 순수한 그대로였던 것이다. 육욕을 그처럼 솔직한 눈으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그들이 우리에게는 선망의 정념마저 불러 일으키고야 만다. '그리움을 진정시켜 주는 건 노래도 속삭임도 아니다. 사람을 끄는 힘은 약도 아니며 그저 포옹하고 키스하고 발가벗고 같이 자는 것 뿐이다.'라고 노인이 가르쳐 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다음 날 아침 목장에서 당장 실천해 보고자 했던 다프니스와 크로에가 아니니까. 그렇듯 육욕에 대해서 그처럼 귀엽고 순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할 뿐이다.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그와 같은 순진무구한 감정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들이 순결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듯이, 다프니스와 크로에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잘못된 일인지 판단하는 일은 지금 보류해 두자 성에 대한 감정의 변화는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은 또한 관습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성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 변화 그 자체이다. 성에 대한 의식이 인류 역사 이래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검토해 보자는 것 뿐이다. 성이란 것, 즉 에로스라는 것에는 다소나마 어둡고 꺼림칙한 감정이 섞이게 마련이다. 자유분방하게 성의 세계를 멋대로 희롱하는, 소위 태양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매우 태연스레 성에 도취하고 있지. 그러나, 그들의 그와 같은 무분별한 성적 자유주의는 어떤 불쾌감을 주위에 뿌리고야 만다. 태양족들은 다프니스와 크로에 같은 그 어떤 미소의 감동을 우리들에게 불러 일으키지를 못한다. 우리들은 그들을 그렇듯 순수하게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들의 육욕에 대한 이와 같은 편견을 반드시 옳다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다프니스와 크로에)의 시대에는 없었던 성에 대한 혐오감이나 죄악감 같은 것은, 오랫동안의 사회적인 억압이나 종교적인 영향 또는 청춘의 결백증 같은 것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인데, 만약 그것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 쥬리앙 그린이라는 현대 작가가 있다. 그 사람의 소설에 '모일라'라는 작품이 있지. 이 '모일라'의 주인공 조제프는 방금 말한 의미의 인간의 성과 육욕을 다프니스처럼 순진무구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청년이다. 조제프는 미국인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도 또한 장래 기독교의 목사가 되려고 결심한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성격의 사나이였다. 대학의 신학부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이상과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부모와 헤어져 북아메리카의 어떤 도시로 갔다. 그러나, 즐거워야 할 학교 생활은 첫날부터 환멸과 혐오감만을 안겨 주고 말았다. 같은 하숙의 학생들이 말하는 음탕한 화제나 무궤도한 성생활은 조제프를 실망시켰다. 여기가 견딜 수 없는 죄악의 온상처럼 여겨지기만 했던 것이다. 그가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에도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의의 교재로 씌여진 '세익스피어'의 희곡의 연애장면이 그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같은 희곡을 읽는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죄악처럼 생각되었던 것이지. 조제프는 매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같은 성의 세계에서 눈을 돌리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성에 대한 것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침대에 들어갈 때 자기의 발가벗은 몸조차도 보지 않으려는 남자였다. 다프니스나 크로에와는 달리 조제프에게 있어서 나체는 더러운 것이었고 인간의 혼을 상처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대학 학생들은 그 같은 조제프의 태도를 보고 조소하거나 놀리기도 했다. 그 조소나 놀림을 참으면 참을수록 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기의 몸에 달라붙는 어두운 충동에 괴로워했다. 그의 하숙집 여주인에게는 모일라라는 요염한 딸이 있었다. 모일라는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분방하고 매력적인 이 처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집은 크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 보이는 조제프를 본 순간 그녀는 그저 허영심과 장난기만으로 그를 유혹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모일라를 봤을 때 왜 그런지 조제프는 겁을 먹기 시작했지. 그녀의 열린 갈색 살갗이나 검은 머리, 짐승처럼 반짝이는 눈, 그런 것들이 성경에 나오는 악녀 에바를 연상케했기 때문이다. 이 처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악과 죄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조제프는 모일라를 멀리 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멀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모일라는 쫓아오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 날 조제프가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방에 모일라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며 혼자 앉아 있었다. 도어 앞에 주춤 멈춰 선 조제프는 몸이 떨리는 것을 누르며 말했지요. 왜 남의 방에 들어왔어? 당신과 놀려고. 나가 줘. 내보내고 싶으시다면^5,5,5^ 모일라는 발쭉 웃으며, 이 열쇠를 꺼내 보지. 하며, 그녀의 옷깃 사이로 살며시 들여다 보이는 불룩한 가슴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방의 열쇠를 유방사이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누르고 눌러운 충동을 일시에 폭발시키며 조제프는 모일라를 와락 껴안고 침대에 넘어 뜨렸다. 다음날 아침 조제프는 침실에서 자고 있는 모일라를 보고 움찔 놀랐다. (이거 내가 큰 일을 저질렀구나. 큰 죄를 범하고 말았구나.)하고 깊은 후회와 죄에 대한 공포가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 여자 때문이야, 이 여자가 나를 그렇게 타락시키고 만거야.) 그의 손은 모일라의 하얀 목을 엉겁결에 졸랐다. 그녀를 벌하기보다 차라리 자기가 범한 죄의 공포를 지우기 위해 조제프는 그녀를 죽여 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모일라'라는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면, 이 '모일라'와 '다프니스 와 크로에'를 비교하며 생각해보자. 조제프는 다프니스와 달리 인간의 성을 불결한 것, 더러운 것, 아니 그 이상의 죄악의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한 남자이다. 이 남자가 지금 말한 것처럼 육욕이나 성을 앞에 두고 잊어 버리려고, 거부하려고 안간힘을 다한 후 결국은 그 성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고만다. 이 소설에서 그 대목을 읽을 때에 우리들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책을 다 일고 나서 우리들은 조제프의 과실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하고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너무도 지나치게 인간의 육체나 성에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에로스의 세계를 경멸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은 이 조제프처럼 극단적인 육욕공포증 환자는 없을 줄 안다. 조제프의 경우, 그는 목사가 되고자 했던 신교도였었고 또한 그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육체와 죄의 근원적인 안목이 그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현대인으로서 그의 그 같은 공포심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조제프의 비극의 요인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그가 인간이란 마음과 정신만으로 형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육체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인간이 완성된다는 지극히 자명하고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과실이지. 만일 그 사람처럼 오로지 정신과 영혼만이 우수한 것,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육체를 악의 근원, 죄의 장소로 여기고 인간은 부단히 자기의 성을 증오해야만 하겠지요. 조제프라는 청년은 그래서 자기와 타인과의 교섭으로 이루어지는 육욕의 세계를 시종 증오하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등에 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에 대한 증오는 급기야는 파괴를 초래한다. 그 파괴는 우선 자기의 육체를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것이지. 미국 작가 (포크너)의 작품에도 역시 같은 청교도의 목사가 나오는데 그는 매일 자기의 몸을 채찍으로 때렸다. 채찍으로 죄악을 지니고 있는 자기의 육체를 파괴하고자 했던 것이지. 조제프의 경우는 자기의 육체를 지우려고 한 의지보다도 타인의 육체까지도 파괴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가 겨울 아침 모일라의 목을 졸라 버린 것은 그와 같은 충동이 초래한 결과겠지. (모일라)라는 소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육체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심, 즉 성을 멸시한 데서 비롯된 비극이라 하겠다. 성이란 것을 너무도 경멸하고 죄악시한다는 것은 마음고 육체 두 가지로 형성되어 있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 밖에는 안된다. 파괴라는 말이 좀 지나치다면 인간의 평행을 잃어 버린다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 내가 아는 어떤 부인은 조제프 같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부인은 한 청년을 처녀 시절에 지극히 사랑하고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부부의 성생활에 견디지 못해 결국 집을 나와 버렸다. 이 같은 이야기는 우리들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사건이다. 그녀의 비극은 조제프 같지는 않지만 극단적으로 성을 왜곡시켜 생각하는 점에는 유사성이 있다. 거기서 부터 그녀는 평행감을 잃은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성과 육체에 대한 극단적인 죄악감이 초래한 위험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분명코 성과 육체를 너무 혐오하거나 극단으로 죄악시해서는 안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성과 육체를 마음에서 떼어 내어 남용해도 좋다는 그런 얘기는 결코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기로 하겠지만 성과 육체는 본래 슬픈 것이라고 생각된다. 프랑스 작가 '프랑소와 모리악'의 소설을 읽어 보신 분은, 거기에 쓰이어진 육체의 세계가 만약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단절되어 혼자 걸어가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고 암담한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가를 알았을 것이다. 아침길에 호텔의 커텐이 바람에 살며시 흔들린다 커텐이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뜬 사나이, 여자는 칠이 벗겨져서 못쓰게 되어 버린 인형처럼 초췌한 꼬락서니로 그의 옆에서 노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녀의 땀이 밴 이마에는 머리카락이 엉켜붙어 있었다. 그같이 육체를 교환한 뒤의 환멸적인 아침의 묘사를 '모리악'은 즐겨 다루고 있는데, 성을 통해 인간의 사랑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육체의 한계를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이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 육체나 성은 그 자체로써 극렬한 도취를 가져다 주기는 하나 결국 그 도취가 순간적임을 생각해 볼 때 곧 알 수 있겠지요. 육체의 기쁨, 육체의 희열은 본래 감각적인 것이다. 감각적인 기쁨이란 것에는 두 가지의 결점이 있다. 하나는 지속력이 없다는 것, 둘째는 그것을 되풀이하면 곧 시들해진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로 당신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해도 항상 같은 것을 되풀이해서 먹게 되면 곧 물리게 되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육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것을 남용한다면 마침내는 신선미를 잃어 도취도 차츰 약해져서 단조로움과 무의미한 기교만 남게 된다. 그 때 인간은 또 다른 극렬한 자극을 더욱 육체에서 구하게 되는 것이지. 그 자극에도 시들해지면 또 다른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이러한 점은 다음 장에서 상세히 말하겠지만), 인간이 생각해 내는 육체의 자극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육체나 성이 가지는 본래의 비애를 이른바 육체주의자들은 거의 생각조차도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이 경우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보다도 육체의 감각이나 육체가 갖는 생명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근본적인 생각의 잘못은 육체의 도취를 중시하고 도취 뒤의 비애 같은 데에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 점이다. 여기까지 우리들은 너무도 지나친 성이나 육체에 대한 공포, 그 죄악감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서 보았다. 그렇다고해서 육체를 남용하는 경우는 포만, 피로, 비애가 기다리고 있다. 그같은 두 가지 함정의 사이에서 육체나 성에 대해 대관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이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ff @[ 3. 육체적인 욕망에 대하여 지금 어떤 독자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를 읽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침 좋은 기회군, 오늘을 이 편지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선생님, 최근 저는 어떤 잡지를 읽다가 어떤 독자가 상담자에게 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발견했다. 여인들은 연애도중성의 세계에까지 들어가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어떤 여류 작가 한 분이 연애 중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대답해 주었어. 그러나,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만일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도 주어 버리는 것이 결코 나쁘다거나 불결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몸을 허락한다는 종래의 생각보다도 그 편이 보다 순수하고 성실한 것이 아닐까 해. 진정으로 둘이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만이 아니라 육체까지 송두리째 모두 다 바쳤다는 그 후련함이 진실한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여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한 질문을 해 올 때가 더러 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러한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이 많으리라 여겨진다. 이러한 것을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남성은 연애중 여성보다도 성급하게 금단의 나무 열매를 따먹고 싶어한다. 연인과의 애무나 키스만으로는 못 마땅해 하고 그 이상의 것, 최후의 선까지 몰고 가려고 한다. 격렬한 정열이나 초로한 욕망에 져서 말이다. 사랑하는데 왜 안돼? 우리들은 어차피 결혼하게 되는 거 아냐. 시간이 늦다 빠르다 그 차이뿐인데 뭘 그래. 그럴 때 보통 남성이 사용하는 세리프도 거의 비슷하지. 그런데도 그냥 상대편이 거부할 때는 그는 비통하게 부르짖는다. 그럼 넌 진정으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렇게까지 거절해야 해? 그러면 역시 여성들의 대부분은 마음이 약해져서 흔들리고 마는 기분도 거의 비슷하다. 연인이 그것을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차라리 주어서 충족케 할까 하는 여성 특유의 헌신적인 본능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또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면 어느때든 상관이 없잖는가 하는 자기 설득도 해보겠지. 솔직히 말하면 그러한 때에 분명코 이 세상의 모든 남성들은 자기의 연인을 '시험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그것이 본능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남자들은 여성이 어디까지 자기에게 정복되어 가고 있나, 과연 굴복할 것인가를 알고 싶은 마음과 그 충동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정복했다. 그녀의 하얀 육체만은 소유하지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성급한 정복욕이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육욕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종의 이기적인 남성의 정복욕을 대개의 경우 여성들은, 남성이 자기에게 쏟아 내는 필사적인 애정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리고는 애처롭도록 그들은 자기의 연인을 선의로 해석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뿐만이 아니라 육체까지도 바치고 싶은 생각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라고, 독자의 한 사람이 써 보낸 것처럼 이미 그러한 경우 여성의 선의나 애처로움 같은 것에 여러분도 공감이 가리라 생각한다. 확실히 그러한 경우,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주려는 여성의 애정은 순수한 것만은 틀림 없다.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결혼할 때까지 몸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성실하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절대로 불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써 보낸 그 독자의 말에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독자분도 조금은 다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그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마음과 몸을 결혼전에 바친다는 것이 불결한 것은 아니지. 다프니스와 크로에의 이야기는 현대의 경우에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금전이나 물질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육체를 주는 사람도 허다하다. 때로는 결혼이 그 같은 물질적인 동기에서 성립되는 경우도 있기는 한다. 그러한 사람들에 비하면야 이 무상의 자기 헌신은 불결은 커녕 성실에 가까운 것에는 틀림없는 것이지. 그러나, 육체의 교섭은 앞 장에서 기술한, 종교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죄악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성 그 자체만 가지고 볼 때는 슬픈 것이다. 에로스라는 것은 그 자체는 슬픈 것^36,36^그렇게 표현하면 여러 분들은 고개를 좀 갸우뚱할지 모른다. 그러나, 즈김 난느이(슬픈 것)이란 말 밖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된다. 육체의 교섭은 연인들끼리는 절대로 불결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슬픈것)을 동반하게 되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육체가 슬픈 것은 그것이 인간이라는 자의 슬픈 것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교섭이 스포츠의 그것처럼 상쾌하기만 한다면야 그와 같은 슬픔은 일어나지가 않겠지. 다프니스나 크로에의 시대라면 모름지기 그같이 뒤가 없는 손수한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한 번 육체의 세계를 체험한 이상 여러분은 분명코 변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날 밤의 흔적은 오로지 육체 위에서 만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도 언제까지나 자국을 남길 것이다. 아니 마음만이 아니다. 때로는 인생길에도 또렷이 남겠지. 생각 좀 해 보자. 여러분이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상, 처음으로 순결을 바친 사람에 대해서는 일평생 마음으로부터 지울 수는 없겠지. 만약에 그 사람이 당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모습을 지웠거나 당신이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계에 산다 해도 그의 그림자는 살며시 당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모습을 지웠거나 당신이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계에 산다 해도 그의 그림자는 살며시 당신의 삶의 터전 위에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애무의 자국, 그가 빼앗아 간 육체의 순결은 언제까지나 당신의 마음속에서 지워질 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아가씨나 드라이한 여성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성의 세계, 즉 에로스의 세계는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볍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여성의 인생에 너무도 아픈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아는 어느 아가씨의 예를 여기서 말해볼까. 그 아가씨는 매우 쾌활하고 활발해서 언제나 많은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매우 야무진 데가 있었고 총명해서 자기에게 애정을 속삭여 오는 청년이 여럿 있었지만 결코 결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같이 현명한 그녀를 멀리서 보면서 가벼운 호감조차 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 여러 명의 청년 중에 T군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솔직한 말로 T군은 그렇게까지 우수한 남성은 못 되었고 오히려 난폭하고 뻔뻔한 면까지 있었다. 그녀도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나고 오래간만에 내가 그녀가 속해 있는 그룹의 한 사람인 A군을 만났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다. T군, 그녀석 그녀와 약혼할 걸. 라고, A군이 말했다. 그것도 그녀가 먼저 신청했다나봐, 아니 그게 정말인가? 야 믿기지 않는데^5,5,5^ 그래서 내가 머리를 갸우뚱했더니 A군도 못 마땅한 표정을 하며, T군 그녀석 순 배짱이라구. 여름에 모두 산중호수로 캠핑 갔을 때 거의 폭력으로 그녀를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렸거든. 처음에 그녀는 T군과 절교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다나봐. 나는 쾌활하고 야무졌던 그 아가씨의 표정을 상상해 보았지. 아, 그게 그렇게 되어서^5,5,5^ 어쩔 수 없었던 그녀의 경우를 좀 생각해 보았다.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동양의 여성들은 외국의 여성에 비하면 육체나 생리에 대해서 아직 약하다. 그 아가씨의 예가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가. 결국 동양 여성은 한 번 몸을 주어버리면 그 남자에게 어처구니없이 무저항이 되어 버리는 연약함이 남아 있다. 그녀는 다른 청년과 비교해서 T군을 자기의 연인이나 결혼 상대로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T군에게 육체를 정복당하고 나자 그녀는 마음마저 T군에게로 집착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가령 그 집착이 세상 체면이나 자기의 앞으로의 운명에 대한 우려를 품었다 해도 집착에는 틀림 없는 것 아닙니까. 그녀는 자유를 잃고 예전의 냉정한 입장을 버리고 T군과 약혼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의 육체는 그녀의 일생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만 것이다. 이 아가씨의 예에서 일반적인 결론을 돌출해 내는 것은 물론 위험한 일이겠지. 그러나, 적어도 다음의 말은 분명히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아직도 이성이나 지혜로 자기의 진리를 결정짓기보다 자기의 생리나 육체에 이끌리기 쉬운 것이다. 동양 여성은 순결이나 육체를 상대방에게 바칠 때까지는 매우 꿋꿋하지만 한 번 몸을 허락하면 놀라울 정도로 정신까지 몽롱해지고 약해져 버리나 보다. 이 같은 사실을 소개함으로써 여러분을 당혹케 하려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육체를 주었다 해도 정신의 강인함과 자유를 잃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여성은 그의 연인에게 몸을 주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안이하게 육체를 던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연애중 몸을 허락한다는 건 불결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편지를 보낸 독자분도 이것을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연애하는 기간을 단지 정열의 도취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한 부단히 자기와 그가 과연 앞으로 인생을 같이 할 수 있는가를 여러 각도로 냉철하게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중대한 시기에 상대에게 몸을 준다는 것은 결코 불결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것 때문에 그 냉정함과 자유를 잃을 위험이 있는 게 아닐까. 여성으로서의 본능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허락했다는 자기 헌신의 기쁨 뒤에는 그에 대한 집착이 너무도 강해져서 그것 때문에 판단력까지도 흐리게 되어 눈이 멀게 된다면 어쩌겠는가. 여성에게 있어서 육체는 최후의 것으로 가장 귀중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감각이나 본능은 아직 남아 있다. 위험한 것이란 그런 감각이나 본능 때문에 육체를 준 상대방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집착을 하게 된다는 그 점이다. 그리고, 그 집착 때문에 자기의 앞으로의 인생을 냉정히 생각하는 눈이나 자유를 상실하고 말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는 아까 육체는 슬픈 것이라고 말했다. 육체의 슬픔은 방금 쓴 경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가 슬픈 것은 인간이 안게 될 사랑의 슬픔, 즉 사랑의 한 계를 상징하기 때문이지. 그 이유는 다음의 장에서 찬찬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앞 장에서 나는 섹스의 기쁨도 만일 그것이 되풀이되면, 시들해져 마침내는 빛깔이 바래지고 쇠퇴해져 버린다고 했다. 결혼 전에 몸을 허락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역시 그런 점도 고려해 주기 바란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의 심리 중에는 아직 미래의 신선한 것, 신비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비상하게도 강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성의 본능인 정복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연인이 몹시도 당신에게 깊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직 모든 것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자. 그 호기심이나 정복욕을 너무 빨리 충족시켜 버리면 어떠한 남성도 포만감을 느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는 것을 알아두세. 가령 육체를 사랑하는 남성에게 준다는 것이, 불결하거나 불성실한 것은 아니라 해도 너무 빨리 주어 버린다는 것은 연애의 지혜가 없다고 본다. 아무리 성실하다 해도 그것은 바보에 가까운 성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 중에는 수수께끼와 같은 미지의 부분을 서로가 남겨둠으로써 즐거운 도취도 생기는 법이다. 이 도취와 호기심을 그렇게 쉽사리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또한 자기의 냉철한 눈과 자유를 언제까지나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결혼전에는 에로스의 최후의 세계에까지 가지 말기를 원하고 싶다. 이것은 연애의 한 가지 지혜이다. 정열과 성실만으로 연애를 깨끗이 성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을 풍부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한다. @ff @[ 4. 성의 불가사의 얼마 전 나는 산에 올라갔었다. 아직 날이 새기 전 산기슭의 숙소를 나와 젖빛 안개가 자욱이 낀 산 속을 깊이 들어갔었지. 나와 나의 친구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가니 무섭도록 조용하고 나무와 바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파란 이끼기 습기찬 지면에도 가득 덮여 있더군. 안개에 젖은 어두운 침묵의 숲 속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왜 그런지 나는 이 어둡고 깊은 숲속에서 육욕의 세계를 연상했다. 깊고^5,5,5^ 그리고 불가사의한 육욕의 세계를 생각케 하는 것이었다. 앞장에서도 나는 여러분에게 에로스가 가지는 슬픔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그러나, 이 육욕의 숲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볼까. 희미한 어두움, 그리고 깊은 이 숲 속에는 각 가지 수수께끼 같은 여러 가지의 불가사의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남녀들이 어째서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것일까. 어떠한 기분으로 정신적인 애정으로부터 육체적인 애정으로 옮아 가게 되는 것일까. 이 남녀가 소로 몸을 섞는 심리를 잘 좀 분석해 보자. 물론 그것은 성의 본능이 시키는 것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만이지. 성욕을 충족케 하기 위해서라면 말은 다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이상, 가령 동물과 마찬가지로 성행위를 할 때라도 결코 성욕이나 본능적인 충동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실례인 줄 알지만 만일 언젠가 여러분이 자기가 사랑하는 남성에게 당신의 몸을 바치려고 한다면, 그 때 어떠한 기분을 갖게 될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잠시 상상해 보자. (모든 것을 바친다) (마음도 몸도 바친다)라는 얘기가 되겠지. 그것이다. 그 기분이다. 모든 것을 바친다. 마음만이 아니라 육체고 무엇이고 사랑하는 청년에게 주어 버린다는 기분을 바꾸어 말하면 연인으로부터 (소유당하고 싶다)라는 감정이다. 연애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지. 일부분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충동이다. 애정이 깊어 가면 갈수록 그 충동은 강해진다. 상대방의 마음만으로는 부족해서, 마음만이 아니라 그 육체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 사람으로부터 모든 비밀을 없애 버리고 싶다. 다른 남자는 어찌 되었던 나만은 그 여성의 구석구석까지 전부 소유하고 있다 라는 기쁨을 갖고 싶다^36,36^그 같은 욕망이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소유의 욕망이야 말로 에로스의 세계의 시작이겠지. 이야기가 힘들어지지만 잠깐만 참고 들어주자. 연애 심리 속에 배어 있는 이 소유욕과 소유코자 하는 과정을 보다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나는 좀 노골적인 예를 두 가지만 들겠다. 첫번째 예는^5,5,5^ 육체적인 사랑을 충족코자 할 때 남자가 취하는 행위를 생각해 보자. 남자는 여인의 옷을 차례차례 벗겨 갈 것이다. 그 옷을 벗길 때 남자의 심리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을 차례로 만져 본다는 희열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여성이 옷을 입고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고 있던 그녀만의 비밀, 그 맨살, 절대로 허락치 않고 지켜온 것 그것을 자기만이 지금 소유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가 구하고 있는 것은 연인과의 섹스뿐만이 아니다. 섹스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의 비밀이나 고독이나 개성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섹스를 앎으로써 남자는 그녀의 비밀이나 고독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정복의 기쁨이 육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에는 한층 더 극단적인 것이지만, 여러분들은 가끔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사디즘이라든가 매저키즘 이라는 어휘를 보았을 것이다. 시디즘이든 매저키즘이든 이것은 변태 성욕의 두 가지 형이지만, 이것은 결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변태만은 아니고 연애 심리가 육욕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디즘이라는 것은^36,36^좀 기분이 나쁜 말이지만, 자학적 성욕이라고나 할까, 자기의 연인을 정당한 형태로 사랑하지 않고 폭력을 부리거나 학대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충동이다. 매저키즘은 그 반대인데 상대방으로부터 매우 학대받거나 모욕당하고 싶은 욕망이다. 건전한 여러분에게는 그 같은 무서운 이상 심리는 절대 없을 것이라 생각도 되지만, 그러나 정신분석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그 같은 심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인간의 마음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것은 별개로하고 그 사디슴과 매저키즘을 너무 혐오만 하지말고 좀 적극적인 성적인 심리는 바꾸어 말해서 상대를 완전히 지배하려는 기분의 표시이다.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치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되는 물건처럼 만들려는 욕망이다. 이 절대적인 지배욕이 육욕에 나타났을 때 사디즘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 이상의 소유욕이 그렇게 극렬한 감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매저키즘은, 그와는 반대로 상대방으로부터 완전히 지배 당하고 싶은, 즉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매를 맞아 학대당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화를 내겠지. 상대방이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라고 할지라도 염증이 생길 것이다. 그 분노하는 마음, 혐오감조차 갖지 않고 상대방의 뜻대로 마치 생명이 없는 물체나 도구처럼 취급당하기를 원하는^36,36^그 감정을 매저키즘이라고 한다. 사디즘이나 매저키즘은 분명히 우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성적 심리지만,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밑바닥에는, 사랑하는 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모두 소유당하고자 한다'라는 연애의 감정이 극단한 형태로 나타났다 하겠지. 그것이 육욕이 되어 가지고 모습을 보인 것이^36,36^사디즘이라든가 매저키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한 것은 여러분들은 대강 이해하리라 믿는다. 육욕이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며, 또한 상대방에게 전부를 주고자하는 욕망이다. 인간은 마음과 몸으로 성립되는 존재이므로 상대방의 마음만을 소유한다 해도 마침내는 불만이 생겨 무엇인가 모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육체로부터도 확증을 잡고 싶다. 그 바람이 결국 두 사람의 연인을 껴안게 하고 그리고 어둠 속에서 육체의 교섭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36,36^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여러분에게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진정 마음과 육체로서만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까? 왜냐하면, 인간의 애정이란 본래 심술궂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연인의 모든 것을 원하겠지. 이 정도면 좋다 라고는 생각지 않겠지.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의 증거를 포착했다 해도 언젠가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더 갖고 싶고 더 강한 증거를 원하게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의 연인에 대한 소유욕은 본능적으로 한이 없는 것이다. 연인들은 처음에는 정신적인 사랑의 증거만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지. 마음뿐만이 아니라 육체와 육체를 서로 대어 보고 싶은 소유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육체의 소유욕이 충족되면 우리들은 또한 만족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의 탐욕이 포식되는 것일까? 슬픈 일이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육체 관계를 맺은 뒤의 허탈 속에는 (아직 상대방의 모든 것을 소유하지 못했다.)라는 사랑의 쓸쓸함이 항상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야 시초부터 그렇지야 않겠지만, 그러나 육체의 사랑을 되풀이함에 따라 조금씩 어두운 그늘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 적막함을 거꾸로 말하면 인간 속에서 생기는 애욕의 심술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적적한 것은 그런 때문이다. 육체의 한계와 그 불만 등을 연인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쓸쓸함은 아니지, 생각해 보면 여기 에로스의 세계내에 있는 불가사의한 점을 우리들은 알 것도 같다. 현대인들로 부터 때로는 멸시당하고, 때로는 가볍게 희롱당하는 그 육욕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인간의 불완전함과 인간의 한계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정신적인 사랑, 즉 마음의 사랑만으로 연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육체적 사랑을 실천해 봐도 어딘가에 깊은 불만이 남아 있다. 공허한 구멍이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육체의 그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대관절 우리들은 그럴 때 어찌 해야 하는 걸까. 자, 그 문제를 다음 장에서 생각해 보리고 하자. @ff @[ 5. 남성에 있어서의 성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아가씨가 이런 불평을 하고 있었다. - 남자란 불결해. 어째서 좀 알게 되면 금방 몸을 요구해오는지 몰라. 남자란 정신적인 사랑을 못 하는거 아냐? '남자란 불결해^5,5,5^' 여러분 중에도 가끔 그러한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 줄 안다. 잠깐만 눈을 밤의 거리로 옮겨 보자. 거기에서 여성의 몸을 돈으로 사려고 방황하고 있는 남자들의 무수한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짐승처럼 음탕하게 빛나는 눈을 보게 되면 틀림 없이 여러분들은 혐오감을 일으킬 것이다. 어째서 남자들은 그 처럼 정욕에 사로잡히는가. 당신 내처럼 젊은 아가씨들은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환멸감과 비애감 같은 것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멸을 느낀다 해도, 아무리 비애감을 품는다 해도 당신들은 사랑의 대상으로서 그 같은 남성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땅에는 단지 두 가지 성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남성과 육욕)이라는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당신네들 아가씨들과도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남자는 여자보다 청춘 시절을 정욕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족속이다. 이것이 (남성과 육욕)에 있어서 제일이지. 여러분의 남동생을 잠깐 생각해 보자. 자기의 남동생을 언제까지나 귀여워해 어린애나 순진한 소년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 누나의 기분이기는 하나, 오늘은 누나의 입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객관적으로 그를 관찰해 보자. 만약 남동생이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고 목소리도 점차 형성이 되어 어른처럼 되었을 때, 남자인 그가 돌연 괴로워하게 되는 것은 자기의 육체를 꿰뚫고 지나가는 어두운 폭풍^36,36^즉, 정욕이란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같은 연령의 여자들에겐 가령 몸의 변화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어른이 되기 위한 전조일 뿐 육욕으로 괴로워하는 감정은 그리 짙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자는 다르다. 그가 어른이 되는 전조는 우선 그 육욕의 충동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낮이든 밤이든 그같이 갑작스럽게 몸부림을 쳐야만 하는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욕망을 그가 어떻게 억제해 나가야 할지 안타깝기만 할 것이다. 나이가 차면 소녀들은 점차 육체적으로도 아름다워지는 데 비해, 소년들은 여드름이 나고 변성이 되고 점차 추해져 간다. 불행한 것은 남자 애들이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태까지 귀여운 소년이었던 자기가 어느새 얼굴도 몸도 보기 흉하도록 변한 것에 놀라게 되지. 그들은 이 열등감과 수치심, 이 모두를 자기의 육욕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버린다. 몸 속에서 꿈틀 거리고 있는 정욕은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들은 이 굴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난폭한 짓을 하기도 하고 같은 연령의 여학생을 놀려 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의학적으로도 남성의 정욕이 가장 왕성해지는 때가 17, 18세에서 22, 23세라는 설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여성이 진정 육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나이는 27, 28세 이후라고 한다. 남성은 10 대에 이미 그같은 정욕의 어둡고 광폭한 폭동으로 괴로워 하게 되지. 여성은 그 연령에 비교적 평화롭고 조용한 계절을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이제부터 연애를 하려고 하거나 또한 현재 연애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잘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만일 여러분들이 '남자는 불결해. 어째서 정신적인 연애를 할 수 없는지 몰라.'라고 비난한다해도, 그것은 마치 건강한 사람이 병자의 마음 약함을 비웃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분들이 남자들에 비해 불결하지 않고 정신적 연애만을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는 입장이라 해도 그것은 당신네들의 마음이 훌륭해서라든가, 이성이 강하다는 증거와는 별개인 것이다. 그것은 생리적으로 전혀 다른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니만큼 비난을 하거나 오해는 하지 말자. 바꾸어 말해서 그같은 단순한 사실로 인해서 남자를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둘째로, 남자의 육욕을 애정을 느끼지 않는 여자한테서도 일어날 수 있으나, 여성의 그것은 정신적으로 애정을 느끼는 남성에 대해서만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다 쉽게 설명해 드리기 위해 어떤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 하겠다. 이 청년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 어떤 저명한 작가의 집에 자주 출입하는 남자였다. 청년은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한 여성이 있었지만, 그 아가씨에게 그는 약혼 시절에 절대로 몸을 요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것을 굳이 말씀 드리는 것은 그 아가씨와 사랑을 속삭인 뒤 그는 솟구치는 육욕을 억제 할 길이 없어 창녀를 찾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애정과 정욕과의 기묘한 분리^36,36^이것을 젊은 여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나 모든 남성은 생리적으로 그 같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청년의 경우에는 그는 자신의 약혼녀를 아끼는 나머지, 그 몸이 자기의 정욕으로 하여 결혼 전에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을 창녀로 하여금 배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여자를 차별하는 그 청년의 이기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그다지 좋게는 생각 하지 않지만 그의 마음만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여성인 당신네들은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필경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어머, 불쾌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하고 그런 짓을 어떻게 태연히 할 수가 있담? 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36,36^곤란한 얘기지만 있을 수 있는 사실이니 어쩌겠는가? 남자는 사랑하지 않는 여성한테도 얼마든지 정욕을 느낀다. 정욕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사랑과 상관이 있는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까. 가까운 예로 누드 쇼를 보러 가는 남성들을 한 번 생각해보자. 무대에서 춤추거나 몸을 이리저리 꼬고 있는 벌거벗은 여자는, 그것을 보고 있는 남성의 연인도 아무 것도 아니잖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기만 해도 육욕을 느낄 수가 있다. 어떤 스트립퍼가, "관객중에는 우리들을 추한 여자로 보는 사람이 많죠."하고 불평을 늘어 놓고 있었지만 그것은 불평을 늘어 놓는 쪽이 잘못이지 남자는 별로 사랑하지 않는 여성일지라도 육체적인 욕망의 대상으로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스트립퍼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유부녀들은 자기의 남편이 파티 뒤에 나쁜 친구의 유혹에 빠져 창녀와 바람 피운 사실을 알았을 때 자기들의 결혼 생활은 물론 자기의 전 생애까지도 배신당하기나 한 것처럼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남자의 생리 그 자체를 안다면 그 같이 절망할 필요는 없을 줄 안다. 남자에게 있어서 바람기라는 것은 정신적 애정과는 별로 관계 없는 것이다. 바람기는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가령 남편이 하루 저녁 바람을 피웠다 해도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일시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의 육체를 가까이 했을 뿐이니까. 거기에 비하면 바람기 있는 여성의 경우는 별로 없다. 어쩌다 엉덩이가 가벼운 여성을 제외하고, 유부녀가 자기의 남편이외의 남성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그것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연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은 사랑하지 않는 남성하고는 육체적인 교섭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편 이외의 남성과 접촉할 때는 '남편과 이 남자 둘 가운데 어느 쪽을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절실한 문제에 대하여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여성이 바람을 피운 경우에는 최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스러운 운명이 가로 놓여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도 감수해야 하겠지만 남성의 경우의 바람은 여성처럼 절실한 중압감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남자는 여성보다 육체적인 사랑의 문제가 가볍게 처리되게끔 생리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 셋째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육체적인 욕망으로 하여 운명까지도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육체적인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이 여성보다 많지만, 그 육체적인 행위로 하여 그의 운명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남자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돈으로 사서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켰다고 한다. 욕망이 충족된 뒤 그는 그 사실을 잊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잊을 수가 있다. 만약, 그가 성실성도 없고 비양심적인 탕아라면 그같은 행위조차 일종의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육체적인 욕망을 그같은 놀이로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은 그같은 행위의 결과와 전 책임을 혼자 등에 져야 하기 때문이다. 수태하는 것도 그녀, 임신의 괴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그녀, 그리고 출산의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맛보는 것도 그녀이다. 이처럼 관계를 맺은 후 그 뒷처리는 전부 여성이 도맡아 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 놓고도 남성은 그 일과는 상관 없는 세계로 도망치려고 생각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네들은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인 욕망이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남녀 동등권이란 그 같은 경우에는 절대로 없는 것이니까. 최근 어떤 여류 작가가 육체적인 욕망은 남녀 동등이라고 말한 데 대해 나는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육체적인 욕망에 대해서 보다 절실한, 보다 중대하고도 엄숙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함께 생각하고, 있는 이 바람끼라는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금방 수긍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네들 아가씨들은 결코 육체적인 욕망을 경솔하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인 측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득실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라는 존재는 때로는 순진하고 귀여운 면도 있지만 대부분은 독단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가령 당신의 연인이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육체관계를 요구하더라도 당신은 입맞춤이나 애무 정도는 몰라도 최후의 선만은 넘지 않는 것이 당신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성은 불결해.'라고 경멸하거나 환멸을 느낄 것까지는 없겠지. 다시 말해서 당신네들 여성이 정신적으로 순결할 수 있는 까닭은 아직 정욕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일이 남성에 비해 강하지 않은 생리적 이유 때문이지 결코 남성보다 자제력이 강해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ff @[ 6. 여성에게 있어서의 성 일반적으로 여러분의 남자친구나 연인들이 갈구하는 육체적인 욕망은 여성의 그것과는 다르며, 남성의 성적 욕구는 정신적인 애정과 반드시 일치된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의 연인 아닌 여성과 육체적으로 교섭하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그런 행위를 거부하는 순수한 청년도 있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나 이성의 힘을 빌리게 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연인을 위해서, 즉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자기의 순결을 간직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거기에 비해 젊은 여성이, 자기의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겠지. 왜냐하면, 여성들은 정신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육체적인 욕망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니까. 가까운 예로, 버스나 영화관 같은 데서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몸이 닿게 되는 경우, 그 혐오감과 불쾌감은 말로 다할 수가 없음을 여러분들도 더러 경험하고 있을 줄 안다. 여태까지는 단순한 보이프랜드에 지나지 않던 남성에게서 갑자기 육체 관계를 강요당했을 때 치미는 분노를 억누른 채 몸을 떤 적도 있겠지. 그와 같은 혐오감이나 분노는 남성의 경우에도 생길 수는 있지만 그 분노의 정도는 여성과는 비교가 안 되게 약할 것이다. 남성은 그런 점, 육체적으로는 여성에 비해 불결하다고 여기에 쓰면 세상의 남성쪽으로부터 배신자라고 욕먹겠지만 그러나 그게 사실이니 어쩌겠는가! 젊은 여성의 결벽증은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욕망의 일치에서 생겨 나는 것이다. 창녀들을 보자. 그녀들의 세계가 이를 테면, 고통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 생활의 고역스런 것만이 아니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몸을 섞어야 하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하는 역겨움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진해서 많은 남성과 육체 관계를 맺는 여성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여성도 성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분위기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남성이 사랑의 고백을 흉내라도 내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 행위에 도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 그러한 연출이나 분위기는 아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 대해선 갖가지의 설명이 있어야겠지.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는 육체를 교환할 때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육체적인 고통을 받을 때가 많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성에 의해서 비로소 육체적인 욕망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여자는 정신적인 애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그 고통과 희생을 참아낼 수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혐오감과 증오감 밖에는 느끼지 못한다^36,36^라고 그 여성 철학자는 말한다. 어쨌든 이유야 구차하게 갖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다음의 사실만은 확실하다 하겠다. 남성은 육체적인 욕망을 일시적으로 충족시킬 뿐 그 행위로 인해서 자기의 운명이나 장래까지도 큰 영향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여성이 상대방 남성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은 자기의 운명이나 장래까지도 맡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육체적인 행위는 남성처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신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여성의 육체적인 욕망에 대허서 지나치게 결벽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겠지. 일종의 자기 방어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성이 몸을 바친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그 남성을 사랑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런 것은 이미 우리도 다 알고 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설명하는 자체가 쓸데 없는 일일는지 모르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가볍게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여러분은 흔히 정에 있어서의 남녀 동등권이란 말을 입에 자주 올릴 것이다. 좀 개방적인 사람 중에는 성적으로도 남자와 같은 자유를 주장한다. 젊은 아가씨들 간에도 의외로 그와 같은 동등권설을 실천하려는 사람이 많더군. 그런데, 방금 내가 말한 성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떠올려 주시기 바란다. 에로스의 세계에 대해서 남녀는 결코 같은 자질이나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인하자. 현대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성에 있어서의 남녀 동등권은 남녀의 구조적인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온 행동이 아니겠는가! 육체적인 욕망에 대한 남성과 이성의 본능이나 감각의 차이점은 아무리 여성이 남성과 같은 사회적인 권리를 갖게 되는 시대가 온다 해도 결코 변함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여성으로서의 일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은 여성을 남성 밑에 두려는 봉건주의자의 횡포 같은 생각이라고 공격하고 싶겠지. 아닌게 아니라 저번 날 어떤 여학교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 호되게 공격을 받은 일이 있다. 용감한 여학생 몇 사람이 나를 둘러싸더니, 말씀 중에는 반동적인 냄새가 있어. 생각이 고루해. 지나치게 보수적이야. 그래서 난 쩔쩔 매다가 줄행랑을 치기는 했지만 - 누가 뭐래도 나의 주장은 옳다. 조금도 양보할 수 없어. 그러면, 에로스의 세계에서는 남녀 동등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그야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동등권이란 우리가 흔히 부르짖고 있는 그런 남녀 동시론이 아니고, 남녀의 성에 대한 확실한 차이를 인정한 뒤라야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능력이나 결과를 존중하고, 그 여건에 순응하는 일만이 남녀의 성에 동등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성에게 있어서 남성과 다른 성의 힘이란 대책에서만은 맥을 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알고 계시겠지만 여성이 큰 소리를 칠 때는 바로 그때란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성은 에로스의 세계를 통해서 완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의 세계에서 여성이 도생을 갖게 되는 엄숙한 그 사실 말이다. 여러분들 중에는 어머니나 언니가 병원에서 해산하는 장면을 보신 분도 계실 줄 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두 손으로 받아 안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아무리 미련한 남성이라 해도 그 순간에 그 여성의 얼굴은 아름답다고도 위엄에 차 있는 것에 흠칫 놀랄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병원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의 무력하고도 엉성한 모습은 성의 세계에 있어서 힘없는 남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는 결과가 이니겠는가! 여성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완성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아가씨는 나이 30이 가깝도록 여성과 남성의 자질이나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를 않았다. 여자 대학을 나와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남성처럼 즐기고 사회에서도 같은 자격을 인정받으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가씨는 전에 없이 쓸쓸한 얼굴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더군. 저는, 어린애가 갖고 싶어. 결국 여성의 행복은 어머니가 되는 것 아니겠어. 나는 그때 그녀의 하소연을 들으며 이는 여성의 본능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성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더욱이 그녀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성의 세계, 즉 에로스의 세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떤이들이 말하는 죄의 상징이기도 한 성이 여성에게는 가장 아름답고도 복된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 점을 여러분들도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남성에게 있어서 에로스는 여성의 경우와 같이 완성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물론, 남성도 에로스의 세계를 통해야만 아버지가 되는 길이 열리기는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되는 것과 어머니가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남성도 아버지가 되는 일이 무엇보다도 기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나 행복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태내에 아기의 생명을 여물게 하고 마침내 아기를 낳아 젖을 물려서 자라게 하는 여성들처럼 어린애와 함께 살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다르지 않는가. 그대들은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거의 인생 최대의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에로스의 세계 속에서 남성보다 더 본질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은 대부분의 남성에게는 일시적인 쾌락의 대상에 지나지 않지만 여성은 모성으로서 완성되기 위한 보다 필연적 발판인 것이다. 이 발판을 소중하게 취급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은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연애를 하게 되는 여러분들에게 있다. 내가 이 에로스의 신비의 열쇠 속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인 데도 잘못 생각하기 쉽다는 그 점이다. @ff @[ 7. 사랑의 장식품 @[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 섹스가 끝난 다음에 밀려오는 공허감과 권태감 때문에 절망감과 허무감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 두 번씩 했을 것이다. 특히 그 선을 넘은 애인들이라면 더욱 심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망감은 사실 남자 쪽이 더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뜨겁게 끓어 오르던 욕망은 싸늘한 재로 변해 버리고, 끌어안아도 오히려 부족할 것만 느끼던 사랑하는 사람이 전혀 매력 없는 여자로 보이게 된다. 이런 섹스의 후유증은 비록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타고난 민감성에 의해서 예감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자신을 통제하거나 주체하지 못하는 소녀들이 섹스를 잘못 탐닉하여 이런 쾌감과 절망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런 악순환에 대한 막연한 예감과 이성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서 사춘기의 마음은 머뭇거리게 되어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에 더 큰 기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성적 에너지가 없다면 아예 육체적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성이 서로 접촉하게 되면 성적에너지는 더욱더 상승하게 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소녀들은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육체적인 사랑 뒤의 공허감과 허탈감이 없었다면 인간은 그것 때문에 중요한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사랑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왔고, 그 결과 본인은 물론 주변의 수많은 이들을 파멸시켜 왔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조물주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사랑으로 깊게 맺은 사람 사이에서는 육체적.성적 에너지가 썰물처럼 밀려간 자리에 정신적 사랑이 가득히 그 공백을 채우게 되어 섹스의 후유증이 없다. 부드러운 애무나 감미로운 속삭임, 그리고 일체감이 남긴 충족된 느낌들이 섹스의 후유증을 앞설 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육체적인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육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천한 것으로 일컬어왔으며, 정신적인 사랑으로부터 성적 에너지를 따로 떼어 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적인 사랑은 지금의 시대에선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아직도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정신적인 사랑을 생각하고 있다. 때로는 성숙한 남녀가 정신적인 사랑에 집착하게 되는데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으로 성큼 들어설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라든가, 성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 결혼에 있어서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에서 정신적인 사랑을 생각하기도 한다. 정신적인 사랑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사랑이 마음 속으로부터 깊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왠지 정감이 가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에 놓여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보기에 따라서는 따뜻한 체온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 사이에는 리듬이 있다. 정신만을 고집하는 정신적인 사랑은 육체라는 것을 도외시하는 나머지 반쪽의 사랑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 에너지는 분출될 곳을 찾고 있다. 이성과 접촉하고 싶은 욕망이란 성적 에너지가 발산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인들은 물론 물질 문명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만이 가능하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냥 서로 마주보고 말로만 이야기하면 어쩐지 피가 도는 것 같지가 않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손을 맞잡는다든지 부드럽게 애무한다든지 하는 접촉을 통하여 사랑의 매진함을 해소하기도 한다. ------------ @[ 아가페적인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 사랑은 아낌없이 자기를 표시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심취하는 인간 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인간이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주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랑에는 아가페적인 것과 에로스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연애에 있어서의 사랑이란 결코 종교적인 박애나 가족간의 친애와는 다른 에로스적인 것으로 그 사랑 속에는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랑이 갖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숱한 번민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생긴다. 연인들은 흔히 많은 말로써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하룻밤 지나고 나면 그 맹세조차 안심이 되지 않아서 다시금 맹세를 되풀이 한다. 한 번의 키스가 백마디의 말보다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은 이때이다. 한 번의 따스한 접촉에 그동안 '뿌옇게 가져왔던 의심의 안개가 걷혀버리면 젊은 연인들은 이제 마음의 연애로부터 육체의 연애로 옮아가게 되는 것이다. 육체적 접촉이 주는 기쁨이야말로 사랑에 대한 최고의 보수 가운데 하나이며, 사랑의 대답이 있을 때, 서로의 사랑은 매가 되어 점점 강화된다.' ------------ @[ 짝사랑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되풀이 생각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는 사고력이 동물과 다른 점의 하나로 인간의 기쁨과 보람, 슬픔과 고통이 시작된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감미로움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연애 중에서 최고의 연애는 짝사랑이다. 짝사랑이란 실체가 거세된 상상력만의 사랑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이미지와의 사랑으로서 온갖 미화작용의 위력 속에 아련한 안개와 같은 모습으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유혹한다. 아무리 상상력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전부' 그것만은 아닌 것이다. 최소한 그 무엇을 유발시키고 강화시키는 계기가 있고 사랑이 있다. 짝사랑이 이미지와의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찬란한 이미지와의 혼합작용이기 때문이다. 그 혼합작용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해 낸다. 그래서 실제로는 자기를 보아주지도 않았는데 미묘한 눈길을 보냈다고 상상하고 자기가 이미 그녀와 친숙한 사이가 되어 어깨를 감싸고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는 듯이 느낀다. 그러나 성숙한 연애로서는 상상력이 급격히 줄어든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중심에 들어서고 모든 판단이 조리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제거된 이성적 사랑은 낭만이나 매력이 있을 수 없다. 사랑의 감미로움이나 끝없는 매력은 대부분이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짝사랑이 연애라고 주장되는 이유도 공상력이 순수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짝사랑이란 대개 빙산의 일각을 보듯이 상대방을 보는 것이다. 짝사랑은 연모의 대상이 되는 소녀들이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듯이 반드시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선한 천사는 아니다. 짝사랑이란 상대방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며, 그 아름다운 면을 극도로 높여주는 심리상태이다. 상상력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사람은 현실의 사랑을 무시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연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상력은 여성보다는 남성쪽이 더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오랫동안 소리, 세탁, 청소 등 집안일에 매어 살아왔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현실 문제를 떠나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남자는 대외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고, 계획을 세우고, 비전을 제시하거나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들이 꼭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남자보다 더 많이 공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게 여자다. 공상은 상상과 약간 다른 뉘앙스인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경우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공상에 빠지는 수가 많다. 공상이 일으키는 가상과의 연애야말로 위험한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잘못 포착되는 이미지와의 싸움이란 결국 이것도 배로 불행하기 때문에 차라리 경쟁과 싸우는 편이 더 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 속에 나에 대해서 잘못 이미지를 가지고 나를 사랑할 때 사태는 심각한 것이다. 또는 연인의 마음 속에 현실로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어떤 인물이나 이미지가 그려진다면 이것 또한 곤란한 문제다. 사랑과 연애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게 연애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담배와 술을 끊기도 하고, 심지어 신앙까지 바꾸고 부모 형제와 이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연인이 격려를 받는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지금 현재의 연인에 대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그려보는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다. 그러나 사랑은 요술이 아니며,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다. 숨어 있는 가능성의 사랑이라면 이루어질 것이다. 씨도 뿌리도 없는 곳에서는 사랑의 싹이 돋아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감미로운 사랑의 상상력은 근거가 없을 때는 아주 위험하다. 오직 튼튼한 현실의 바탕 위에서 자라나는 사랑만이 믿음직스럽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은 결코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상대방의 가능성에 대해서 격려하고 또 상대방의 바람에 따라 자기 자신도 노력해 나가는 사랑만이 진정으로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고 북돋아 주는 그런 사랑이라야 한다. ------------ @[ 사랑의 줄다리기 사랑은 줄다리기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가끔 여자들은 남자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숨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역시 사랑을 성공으로 이끄는 한 방법이 된다. 사랑에 관해 조언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여자가 꽁무니를 빼면 남자는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여자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건 아름다운 자세로 해야 한다. 어떤 두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현재의 남편이 독신일 때 미친 사람처럼 그들을 따라 다녔다고 한다. 여자가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남자들은 그만큼 더 찾아 나서더라는 것이었다. 한 여자는 영화배우였고, 그를 찾아나선 남자는 보통 사람이었다. 또한 여자는 아들을 가진 직업 여성이었고, 그녀를 찾아 나선 남자는 약사였다. 그들 두 여인은 확실히 추적의 대상이 됨직도 했다. 그러나 남자와 동등한 정도의 여자, 혹은 남자 보다 좀 부족한 여성들도 그렇게 숨바꼭질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때에는 누가 찾아나서게 될 것인가? 사랑에서는 항상 위엄과 자존심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주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여자 노^36^예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파멸의 길 일 뿐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계획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성과 적응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젊은 여성이 사랑을 하기 위한 필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 @[ 사랑의 장식품들 일단 사랑이 길어지면 더욱 더 깊은 방향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것은 사랑의 재미이고 아름다운 함정이기도 하다. 한 밤중의 데이트, 두 사람만의 여행, 그이를 위한 옷차림, 매달리고 둑길을 사각사각 소리내어 걷는 것^5,5,5^ 이 모든 것들은 사랑의 행위이고 이곳 저곳에서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몇 번 정도는 유명한 배우나 탈렌트가 되어야 사랑을 멋지게 할 수가 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농구 경기의 결정적이고 극적인 순간의 반복으로 구성된 사랑도 있다. 아름다운 젊은 날의 사랑은 온갖 장식을 갖춘 멋진 사랑이다. 크리스마스가 왔을 때 멋진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놓는다면 것은 그 크리스마스가 더욱 멋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왔는데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장식이나 카드 한 장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장식들은 당신의 낭만적인 사랑의 강도를 더해 준다. 사랑에 있어 두 사람의 역할이 각각있게 마련이고 그 역할이 사랑을 한층 육감적으로 만든다. 연령상의 차이나 개성의 차이에서 그런 역할도 물론 있다. 예를 들어서 결혼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밀하게 동의한 계약 같은 것이 있듯이 사랑하는 사이에도 어떤 역할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가 연인사이에 존재한다면 그것도 섹시한 관계를 창출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노련하고 세상 경험이 많은 여자와 풋내기 같은 남자와의 사이에도 그렇게 될 수 있으며 같은 연령, 같은 관심, 같은 이상의 소유자들끼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오누이 관계도 있을 수 있다. 요리할 때 각각의 재료가 하는 역할이 있듯이 사랑에서도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찾아서 충실해야 한다. ------------ @[ 사랑에도 불안이 따른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그이의 마음을 꽉 붙잡고 있을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이 있다. 불안은 어딘가로부터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이따금씩 찾아오는 현상이다. 사랑과 불안은 종이의 앞뒷면이다. 어느 하루, 그이와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 다음날이면 까닭없이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함을 느낀다. 프로스토와 세익스피어는 사랑이 귀신보다 무섭다고 했다. 사랑은 인생이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시작하여 인생이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끝난다. 사랑의 불안은 사랑하는 사람과 부분적으로 대등하는 느낌을 가지지 못한 데서 생겨난다. 그이가 자신만큼 사랑에 적극적이지 못한다거나 그이는 마음만 먹으면 속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불안이 싹튼다. 그이는 너무 미남이거나 섹시하게 생겼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따를 것이라는 망상에서 불안이 또한 싹튼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증이라 할 수 있고 불필요한 불안이기도 하다. 불안을 벗어나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위치를 속절히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그이와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 별로 뒤떨어지지 않은 인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소망의 부족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초기 단계, 즉 정열과 로맨스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 사이엔 아마도 평등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둘 중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더 사랑하게 된다. 한쪽이 다가서면 다른 한 쪽은 뒤로 물러선다. 서로 끝내 타임이 맞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그이를 보고 싶어하는 시간은 그이가 보고싶어 하는 시간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열광적인 여자는 그렇지 못한 여자 보다 사랑을 더 잘한다. 불안은 가장 순수한 종류의 성적 매력을 낳을 수가 있다. 불안에 젖어 있을 때 침대에서 한층 더 적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앞날의 불안조차 느끼지 못하는 여성은 결코 섹시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애인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할 경우, 사랑의 행위는 보다 무르익고 보다 침착하게 된다. ------------ @[ 사랑, 비참한 실망에 빠질 때도 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거부한다면 하늘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남자 문제로 실의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는가! 여행을 떠나는 여성도 있다. 그러면 그가 우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사랑에서 비참한 실망을 느꼈을 때 많은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제하고 상냥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누구를 원망하지 말라. 절망적인 몸짓으로 호소하지 말라. 여자들은 울음이 많다. 그러나 울어서는 안 된다. 우는 것은 자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줄 뿐 화내는 것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남자에게 지나치게 하소연 하지 말라. '당신이 허락한다면!'이렇게 매달리는 것은 추해 보일 뿐이다. ------------ @[ 사랑과 질투 질투심이 없는 여자는 없다. 질투할 줄 모르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말은 거짓말이다. 자기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침대에 들어간다는데 상처받지 않을 여자가 있겠는가! 이제 끝장이라는 절망감이 당신을 휩쓸 것이다. 한 번 실수하는 남자도 있고 아^36^예 타고나기를 '돈 판'인 남자도 있다. 돈판과 같은 호색한이라면 당신은 물론 그와 필연적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당신이 아무리 정숙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런 남자의 사랑을 당신에게로 되돌릴 수는 없다. 평생에 한 번 쯤은 그 애인의 여자친구 때문에 속을 썩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주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것 때문에 크게 스스로를 탓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에게 대해서 너무 알려고 하지 말라.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찬성하라. 어떠한 트릭도 좋다.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바로 그 남자이기 때문이다. ------------ @[ 사랑의 항로에는 이별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의 항로에는 항상 이별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고 최선의 길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일찍 관계를 청산하는게 좋다. 언제 헤어지는 것이 현명한가! 사랑의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심할 때가 바로 헤어져야 할 시각이다. 한시간도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되면 이제 이미 이별은 피할 수가 없다. 또한 이별은 전혀 얘기치 않게 오는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유부남과 사랑을 나누다가 그 남자가 변심을 했다. 그녀는 울면서 내게 와서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호소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그 남자와 헤어질 때입니다. 당신에게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날 겁니다.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그런 가능성이 있으니까요^5,5,5^' ------------ @[ 이별 뒤에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남자와 여자 사이에 누가 먼저 퇴짜를 놓든 그것이 우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별을 한다는 것은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을 견디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율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앉아서 담배 피우며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둘째, 이별 직후의 고통과 싸우지 말 것, 만약 처음부터 싸우게 되면 녹초가 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별의 순간부터 고통이 파고드는 법인데, 고통이 나중에 나타나는 수도 있다. 이것은 더 나쁜 현상이다. 셋째, 우는 것도 괜찮다. 눈물이란 자연이 준 회복제이다. 고통과의 싸움은 때때로 당신을 마비시킬 정도로 괴로울 수가 있다. 필요하다면 실컷 우는 것도 좋다. 넷째, 괴로움을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친구는 무슨 이야기든지 다해 줄 것이다. ------------ @[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새로운 출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은 과거의 쓰라림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생각되면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라.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당신의 마음을 괴로운 과거로부터 깨끗하게 씻어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과거의 그 남자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당신을 위해 노력하거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너무 지나치게 새로운 남자에게 매달리지 말라, 흡사 절망에 빠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한 번의 파탄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쾌활하고 친절한 사람이라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차근차근히 서두르지 말고 새로운 세계를 걸어가노라면 언젠가는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생활은 새로운 정열과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사랑은 개방적인 것이다. 따라서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ff @[ 제4부 결혼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지혜 @[ 1. 왜 결혼하는가? @[ 결혼의 이유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결혼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우리 주변에 어떤 각별한 사람이 없으면 살아가지를 못한다. 남편이나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때로는 참기 어려운 독신 생활의 지겨움이 우리를 결혼하도록 유혹하기도 한다. 마침 그런 지겨움을 느끼고 있을 때 결혼의 가능성을 가진 남자는 바로 당신의 곁에 있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한 남자를 소유했다는 충족감을 공적으로 승인 받고자 결혼식을 한다. 결혼식이란 다름 아닌 한 남자의 '소유'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며, 과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결혼의 이유는 아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나 섹스, 서로 의지할 상대 등도 그 이유에 포함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결혼하게 되는 까닭이란 모두 그렇고 그런 것들이다. 문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좋은 결혼 생활은 상호 협조의 마음가짐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마치 부신 작용에 대한 얘기와 같다. 부신(도울 부, 신경 신)은 제가 해야 할 일을 제 스스로 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다. 다만 우리의 비뇨기관이 여전히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그 자율신경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미루어 판단하게 된다. 결혼 생활도 이와 마찬가지다. 평온하게 아무런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남편과 아내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상호간의 부드러운 협조야말로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한 모든 것이다. '결혼이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그곳에 찾아내어 전화해 주는 남자를 갖는 일이다. 이 말은 곧 아내는 남편을 위해, 남편은 아내를 위해 더 노력한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는 늘 그이의 곁에 있어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라. 결혼이란 일종의 모험이다. 그것도 일생 일대의 모험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꼭 권해 볼 만한 모험이기도 하다.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혼과 함께 오기도 가기도 한다. ------------ @[ 결혼하는 마음 자세 반드시 마음에 맞는 남자가 있어야만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 또는 여자가 그렇게 썩 내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어쩌면 결혼하는 남녀가 대부분 그럴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은 사랑을 유의하고 결혼했으면 한다. 이것은 결혼하게 되는 동기 인지도 모른다. 첫째, 결혼할 때는 '나는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암시가 필요하다. 둘째,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양보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결혼할 상대가 사소한 약점 정도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늘 양보할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셋째, 반드시 어느 한 남자만이 당신의 결혼 대상자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이 결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유일한 결혼 상대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넷째, 단지 결혼 그 자체만을 위해서 결혼하게 된다면 어떤 죄의식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대체 일생에 단 한 번의 결혼도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기회를 잡아 결혼을 하라. 단지 그 결혼 자체만을 위해서 결혼했다 하더라도 괜찮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기대에 맞는 남자가 없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라. 자기의 떡은 언제나 작아 보인다. 그렇지만 누가 과연 당신의 기대에 차는 파트너일까?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고 그런 수많은 남성들과 결혼한다. 그들도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당신도 또한 한 번의 기회를 활용하라.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남자난 여자가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첫째, 그는 미혼이어야 한다. 기혼자와 하지 않아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둘째, 결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때때로 남자란 자기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마침 그가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을 때 그곳에 있던 유일한 여자가 당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 @[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가? 남편을 고르는 지침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의 지침을 여기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착하고 성실한 남자와 결혼하자는 것이다. 인생이란 바로 당신에게 수없이 많은 공포를 강요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공포가 남편이라면 당신이 무슨 능력으로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둘째, 당신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발돋움을 하게 만드는 경탄할만한 일이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근심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셋째,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하도록 하라.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내에게 있어서는 그 이상 나쁜 일이 있을 수 없다. 남편이 아내를 아낀다는 것처럼 여자에게 소중한 일은 없다. 그러한 경우 아내는 그 값진 선물에 보답하기 위해 남편의 시시한 약점이나 결함을 견딜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하라는 것이다. 자기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남자라야 한 가장으로서도 훌륭한 자격이 있는 남자이다. '일'이 남자의 거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ff @[ 2.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지혜 @[ 남편이나 아내가 위대한 인물이 아니다. 당신의 남편은 나폴레옹도 링컨 대통령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던 남편이지만 차츰 살다보면 단점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아마도 남편에 대한 당신의 존경심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기 아내로부터 심하게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당신은 자기 밖에 몰라요. 조금도 남을 생각할 줄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은 1 년에 2백만 달러씩 버는 유명한 사업가였다. 그런 유능한 사업가와 살아보고 싶은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가 막상 자기 남편이 되면 조금씩 매력이 줄어들고, 그렇고 그런 남편이 될 것이다. 아내들이나 앞으로 아내될 사람들은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사항이 있다. 즉 '남편을 몰아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이혼하는 여성들은 대개 이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대중 앞에서 그를 끌어내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은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당신의 남편이 설사 바보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당신은 늘 침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당신의 남편이다. 늘 남편을 돕고 감싸주어야 한다. ------------ @[ 항상 남편을 존중한다. 세상이 두 조각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이 당신을 보고 싶어 할 때나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또는 당신과 침대에 가고자 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존중해야 할 요구인 것이다. 당신이 남편의 일을 이해하고 또 남편의 성취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문제는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남편의 요구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루 24시간 가운데 8시간은 잠을 잔다고 해도 꼭 해야할 일이나 친구들, 파티 등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함께 남편을 제일로 할 시간은 16시간이나 있다. 남편보다 아이를 제일로 생각하는 주부들이 있다. 그러나 원만한 가정 생활을 위해서는 남편을 1급 대우해야 한다. 집에 있을 때면 항상 남편 중심으로 생활해야 한다. 남편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일이나 약속도 뒤로 미루어야 한다. 아무리 바쁜 여자라 해도 남편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일을 해낼 만큼의 시간 여유는 있게 마련이다. ------------ @[ 남편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 자기의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남편을 칭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칭찬이 거짓말에 가까우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 좋은 남편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친구들은 당신이 남편 칭찬을 하는 것을 듣기 원한다. 세상이 부부들을 서로 공격하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남편 칭찬은 그런 공격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당신도 아마 전화에 대담하듯이 그의 말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들었을 것이다. 이제 결혼하고 나서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은 그렇게 하기가 귀찮은 것이다. 센스있는 여자라면 영패당한 다저스팀의 야구 경기나 기름 파동 따위를 토론하기 보다는 일간지를 읽거나 목욕탕에서 오이 맛사지나 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야구에 취미가 없다면 남편과의 그런 대화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이 관심있는 화제거리에는 당신도 즐겁게 참여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시한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당신 남편이 대화를 하고자 할 때에는 당신은 무엇이 되었건 하던 일을 중단하고 그의 눈을 쳐다 보면서 시시한 화제든 훌륭한 화제든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 될 것이다. ------------ @[ 남편을 잘 구슬려야 당신의 힘으로 남자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안 된다 하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남자의 행동을 바꾸어 볼 수동 있다. 여자들이란 남자를 인색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도 한다. 우리 모두는 남편과 함께 살게 됨으로써 남편을 지극히 믿고 받드는 경우가 많다. 결혼과 더불어 태도가 좀 좋아진 여성들을 우리 주위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또 부부간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결국 서로 서로 불신을 조장하는, 즉 변화는 그에게도 좋은 것이고 당신에게는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남편의 태도를 바꾸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 되면 다음 몇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 모범을 보여라. 당신이 만약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며 남편이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그대로 하라. 일단 그런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하고 싸움을 부추긴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아주 가까이서 감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은 모두 불행한 부부들이다. 둘째, 비판을 하지 말라. 비판이란 방어자세를 취하게 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셋째, 조종하라. 조종이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좋은 결과를 위한 시도인 것이다. 그러면 남편 조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한 가지 주제를 제기해 놓고 그이에게 반복하여 주지시킨다. @ff @[ 3. 주체성을 지켜라.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로부터 무엇을 얻어냈느냐 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당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키 위해 예의와 겸양과 외교를 활용해야 한다는 데 관해 이야기하였지만 어떻든 당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해야 한다. 설령 그가 당신의 말에 불쾌감을 나타내더라도 계속해서 당신의 입장을 여러 가지 대화 방법으로 설명하여야 한다. 당신은 이웃과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한 더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것들을 갖고 싶기도 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거든 성취하도록 해보자. 여기서 언급한 남편의 치유법에 대한 충고는 오직 행복한 결혼생활, 즉 남편과의 평화공존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그렇다고 당신의 영혼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여야 한다. 당신도 당신의 주체를 가지고 있다. 당신 또한 독립된 한 인간이다.  @[ (여성편) @[ 제1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 1.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수없이 많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아름다우며,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 송이 장미꽃도, 또한 어린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도 아름답다. 그뿐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시인의 시(글귀 시)도 아름다우며, 좋은 음악을 켜는 바이올린의 선율도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이론이나 사고(생각할 사, 상고할 고)의 끝에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느낌은 우리 마음의 기쁨과 만족감에 연결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 키이츠는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노래 했던 것이다. 또한 스티븐슨은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것은 5 파운드의 금화를 줍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라고 했는데, 이 재미있는 말 속에는 우리에게 여성의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의 대상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가장 소중한 것이다. 티없이 맑은 소녀의 웃음, 따뜻한 아내의 정성, 자애로운 어머니의 손길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여성의 아름다움은 내재(안 내, 있을 재)하는 가치이며, 겉으로 표현되어 자신과 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여인을 꽃으로 비유하여 표현할 때, 어떤 여인은 백합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국화 같은 소박함을 지녔다고 하고, 또 어떤 여인을 일러 코스모스 같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표현하게 되는데, 이처럼 여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외부로 나타내는 방법과 경우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무엇인가를 빨리 포착하고 그것을 더욱 개발하여 남보다 돋보이게 할 줄 아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육체적인 아름다움, 정신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사회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육체적인 아름다움이란, 외부에 드러나는 용모와 자태가 지닌 아름다움을 말한다. 둘째, 정신적인 아름다움이란, 내면에 간직된 여성의 고상한 인격과 여성다운 품성을 말한다. 셋째, 사회적인 아름다움이란, 인간관계속에서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되는 교양미를 말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며 종합 되어진 상태야말로 가장 완전한 여성미로서의 표본이라 하겠으며, 모든 여성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덕(덕 덕)이란 단순히 영리하고 똑똑함을 말함이 아니었고, 말씨란 언변(말씀 언, 잘할 변)이 좋음을 이르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몸맵시란 곱게 치장하는 것을 이름이 아니었으며, 일솜씨란 교묘한 손재주만을 이름이 아니었다. 덕, 즉 마음씨란 정순(곧을 정, 순할 순)한 인품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니, 이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말함이라 하겠다. 몸맵시란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자태(모습 자, 태도 태)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니, 이는 곧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품위와 교양을 겉으로 표현하는 말씨와 솜씨는 사회적인 아름다움을 이르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ff @[ 2. 육체적인 아름다움 고대 희랍인들은 아름다움의 이상적인 원형을 여인의 육체에서 찾았다. 젊은 여성의 나체의 아름다움을 신이 창조한 최대의 걸작이라고 여겼던 그들은, 그리하여 미의 여신 비너스를 낳았다. 현대까지도 미인의 기준으로 일러지는 팔등신(여덜 팔, 등급 등, 신체 신)이란 비너스와 같은 미적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여하튼 여성이라면 어느 누구나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좀더 아름다움에 접근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게 된다. 미모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여성이라면 그에 관해서 다소간의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는 것은 실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치장과 가꿈이 없이도 남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하나의 자랑이며, 축복받은 일임에 틀림없다. 평범한 용모의 여성들은 빼어난 미인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동경과 찬사와 선망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더불어 그만큼의 시기심을 느끼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모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거나 결정 짓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흔히 일단은 외모로써 그 사람을 판단한다. 바로 이 점이 미모를 지니지 못한 여성을 속상하게하는 일이며, 용모가 좋지 못한 사람들의 심각한 고민거리인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미모의 여성들이 기억해 두면 좋을 위안거리가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미인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남성이 여성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점이 모두 공통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빼어난 미인이 못 된다고 해서 남성의 관심 밖에서 서성거리게 되는 일은 결코 없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이 타고난 용모를 아름다움에 좀더 접근시킬 수는 있다.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많은 부분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도 얼마간 얻어지는 게 사실이다. 선천적으로 미모를 부여받은 여성이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며, 미모를 타고나지 못한 여성이라면 부족한 자신의 미를 가꾸고 다듬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할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발휘하고 싶어하는 여성 특유의 미에 대한 집착은 나이가 들어도 퇴조하지 않는다. 구미의 여러 여성들이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의상을 입으며 치장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도, 그들의 미에 대한 신념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이미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아무리 부정해도 미인은 역시 미인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미인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육체적 아름다움에 관한 한 여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 후에는 자신이 마음을 위안하는 길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용모에 대한 주관을 가지게 되는 지름길임을 여성들은 알아야 한다. @ff @[ 3. 정신적인 아름다움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첫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것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리 중요하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상한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은 쉽게 퇴색되어지지 않는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단절적인데 반해,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지속적이며 창조적이다. 또 육체적 아름다움의 많은 부분이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여되어진 것에 반해,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개인의 의지와 비례한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이루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냉철한 이성, 부드러운 정서,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도량, 꿋꿋한 의지, 뚜렷한 지성, 반성하는 성찰력 등^5,5,5^ 이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충일(가득할 충, 넘칠 일)한 정신상태는 완전한 육체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숭고한 기쁨을 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회한과 고뇌, 슬픔과 절망의 국면에서 가장 최선의 길을 찾게 해 주는 것은 지혜로운 정신력이다. 신념의 관철, 목표의 달성, 의로움에 대한 용기도 훌륭한 정신력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삶을 보람있고 빛나게 만드는 것도 역시 정신의 힘이므로 정신의 수양은 육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며, 그것이 곧 행복한 삶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인격은 단시일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의 풍부한 인생 경험 속에서 사려깊은 이성의 작용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정신으로서의 품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면, 마음깊은 곳에서 끊임없는 성찰과 아울러 정신의 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ff @[ 4. 사회적인 아름다움 대부분의 여성을 살펴보면 특별히 못생겼거나 혐오감을 주는 용모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조금 더 예쁘거나 그렇지 않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용모와 관계없이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혼자서 생각하고, 즐기고, 만족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확인받고 싶어한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듯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외부로 나타나는 여성미는 용모 이외의 여러 가지 보수적인 요소에 의해서 그 느낌을 다르게 할 수가 있다. 얼굴의 생김새나 몸매 외에 외양적 심미적(살필 심, 아름다울 미, 적실할 적)가치를 좌우하는 요소로서는 의상이나 머리모양, 장신구 등과 몸짓, 걸음걸이, 태도를 들 수 있으며, 또한 표정이나 언어, 음성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리라 생각된다. 이 모든 것을 칭해 (교양)이라고 규정해도 좋으리라. 여성은 어떠한 기회나 수단으로든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 화장이라든가 헤어스타일,액세서리, 미용정형, 의상 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집념을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은 쉽게 변형시키고 모방할 수 있지만, 사고방식이나 정신에서 나오는 생활태도, 습관 등은 변형시키고 교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아무리 깊은 학문이라도 그것이 정확하게 전달 되어지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듯이,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나 화려한 의상이라도 격에 맞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귀한 정신력과 높은 인품을 지녔어도 그것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그 값어치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격에 맞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그 머리 속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돈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것이며, 생각과 마음이 정돈될 때, 그 생활의 자태가 정돈되는 것이다.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아름다움이 세련된 교양미와 어울려 사회속에서 균형있는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최고의 가치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균형있는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긴 시간에 걸친 지적 훈련과 인간적인 각성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ff @[ 5. 아름다움과 마음자세 아름다움에는 기쁨이 함께 하며, 추함에는 불쾌감이 함께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성은 추한 것은 피하고 아름다움은 동경한다.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갈망은 다른 무엇보다도 큰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동경과 집념은 본능적이라고 하겠으며, 따라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환경에서도 그 집념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소의 희생까지도 감수하면서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이유로는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과, 남성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후자, 즉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욕구가 여성의 미에 대한 노력에 더욱 채찍을 가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이 진실로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자신 스스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에 따른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많든 적든간에 자신의 어느 부분에 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많은 여성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콤플렉스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손해를 가져올 뿐이다. 용기있는 여성이라면, 그러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개인이 가진 미와 추의 차이는 크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적 장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은 보다 아름답고 좋게 가꾸며, 단점은 하나하나 손질해 보완, 교정해 나가려는 마음의 자세이며 그 행동력이다. 여성은 누구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할 수 있다. 자만을 하든, 실망하여 체념을 하든, 또는 올바른 인식을 하든, 그 평가는 자기나름의 기준에서 오는 것이다. 용모에 관한 주관적인 판단은 일단 굳어지면 좀체로 변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미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진 여성은 무조건 그 관념에 따라 생각하거나 행동하게 되기 쉽다. 자신이 미인이라는 생각에 빠진 사람은 자칫 오만한 태도를 가지기 쉽고, 스스로 못생기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행동이나 태도마저도 추하게 전락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미에 대한 판단 중에서 가장 위험한 오류는 자기 기준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제일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성실하지 못한 태도는, 사회적 불균형조차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악덕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어쨌든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임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커다란 의무이다. 여성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한계를 느껴 너무 급히 체념한다든가, 미적 성취를 위한 향상심을 버리는 것은 곧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되어 버린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안목을 가지기 위해서 여성은 끊임없이 관조하고 노력하는 생활을 영위해서 할 것이다. 인간생활에서 미에 대한 추구와 미를 향유하려는 정열이 없었다면 세상은 아마도 보다 큰 고뇌와 암흑에 의해 지배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의 세계에 도취할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훌륭한 미모를 갖춘 여성은 모든 남성을 사랑으로 인도한다. 여성의 뛰어난 용모는 이성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첫째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평범한 여성들에 비해 자신있는 미모를 가진 여성은 보다 행복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 가지쯤 더 부여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든 여성들에게 훌륭한 미모를 갖추는 것이 최후의 소원이 되어 왔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오늘날까지 무한한 여성미의 보이지 않는 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재미있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만인이 우러러 볼만한 훌륭한 미모의 기준은 무엇일까? 언 정도의 미모를 갖춘 여성을 미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일까? 사실 여성미에 대한 절대적인 척도는 없다. 미인대회에서 미인을 뽑을 때의 기준도 주최자 측에서 임의로 육체적인 몇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삼았을 뿐이다. 실제로 탤런트 선발이나 미인 콘테스트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온유함보다는 요염함을, 정숙미나 풍만함보다는 관능미나 날렵함을 더 높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그런 기준이 여성미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용모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은 자신의 미모를 유지하려는 자의식을 의미한다. 여성은 자의식이 없어지면 급속도로 늙어간다. 연애시절의 그 섬세한 배려, 긴장감, 그리고 결혼하여 새로운 살림을 시작할 때의 감격과 의지,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때, 여성의 삶은 윤기를 잃고 그 생활의 미적가치는 생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미모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판단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노력과 손질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결점은 있게 마련이다. 아름다움을 슬기롭게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결점은 미인일수록 더 드러나기 쉬운 것이다. 자신의 선천적인 미모만을 믿고 전혀 손질할 줄 모르는 자기도취형의 여성은 그 본래의 아름다움마저 손상시킬 뿐 아니라, 머지 않아 타인에게 불쾌감까지 주게 될 것이다. 미모의 여성일수록 불필요한 자만심을 버리고 아름다움을 간직할 줄 아는 지혜를 길러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면서 가장 약한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여자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질그릇이다.'라는 소설가 스위프트의 말은, 여성의 미모는 그만큼 손상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생명이 짧은 것이다. 그 매혹적인 눈동자도 오래지 않아 평범해지고, 아름답던 웃음도 매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여성의 육체적 미모에 이끌려 이루어진 사랑은 일시적인 성애(성별 성, 사랑 애)로 끝나기 쉽다. 여성의 미모에 남성은 쉽게 끌리지만,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지니지 못한 여성에게서는 더 쉽게 멀어져 간다. 용모의 아름다움은 반드시 아름다운 품성의 힘이 뒷받침될 때 오랜 생명과 향기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여성 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용모로 태어난 사람도 많다. 그런 여성에게 겉으로 표현되는 용모나 스타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내면의 아름다움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동정심이나 연민에서 위로하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여성은 있을지라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여성은 없다. 여성은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여자가 똑똑하면 지성미(알 지, 성별 성, 아름다울 미)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며, 여자가 바보스러우면 백치미(일백 백, 수치스러울 치 아름다울 미)를 가졌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상냥하다고 칭찬받는 성격이 헤프다고 비난받을 수 있으며, 쌀쌀하다고 비난받는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매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름답지 않다고 단정될 수 있는 여성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관한 지나친 자만심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실망이다. 자신의 용모에 대해서 그릇된 평가를 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준다. 외모에 대한 수치심과 절망은 실제로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게다가 빨리 늙게 한다. 진실로 추한 여성이 있다면, 정직하지 못한 눈초리, 사악하고 경박한 태도와 탐욕으로 빚어진 얼굴, 험담에 길들여진 입술을 가진 여성뿐일 것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그 아름다움 자체에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그 아름다움이 여성으로서의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 매체가 된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인은 미인으로서,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현명하다. @ff @[ 제2부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것 @[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 여성은 본능적으로 미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 있다. 여성이 아름다운 것은 여성만이 예지를 가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처럼 여성의 아름다움은 외모 뿐만 아니라 건강, 성품, 교양, 능력, 취미 등의 모든 인간적인 요소가 종합.조합되어진 곳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요소를 우선 알아야 하며, 그 후에 그 성격을 파악하여 자신에게 조화시킬 줄 아는 세련된 감각을 길러야 할 것이다. ------------ @[ 1. 매력 여성의 아름다움이 그 가치를 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선 매력이다. 매력이란 문자 그대로 사람을 끄는 힘이다. 우리가 성적(성별 성, 적실할 적)매력이니, 지적(알 지, 적실할 적)매력이니 하는 말을 할 때의 그 말의 의미는 성적으로 또는 지적으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을 지닌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매력이란 여유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평범한 상태보다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한 가지쯤 지님으로써, 보는 이의 미의식을 자극하여 끌리게 할 때, 우리는 (매력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미인이 아닐지라도 매력은 지닐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력)이 곧 아름다움의 생명이 될 수 있고, 또 아름다움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매력은 눈에 잘 띄고 마음을 쉽게 사로잡는 반면, 물리기 쉽고, 싫증나기 쉽다. 매력이 퇴색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것이 생활 속에 뿌리내려 자연스러움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대를 현혹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매력은 일시적으로는 빛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기쁨도 역시 순간에 끝나는 것이다. ---------- @[ 2. 개성미(낱 개, 성별 성, 아름다울 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다른 모습을 태어난다. 외모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언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인격적 가치가 다르다. 그래서 남과 다름, 즉 자기다움은 무엇보다도 귀중한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외모란 근본적인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눈의 위치, 코의 위치, 입의 위치 등이 비슷하면서 각각 조금씩 차이를 지닐 뿐이다. 그 차이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별 되어지고, 그 차이점에 인해 미인이 되기도 하며,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어느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를 빌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것을 예측한 과학자들은 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해 최고의 미남과 미녀의 종족보존을 위해 최고의 미남과 미녀의 유전인자를 기계장치하여, 인류가 멸망한 뒤에 저절로 탄생 되어질 수 있도록 대비해 둔다. 그후 전쟁이 발발하여 인류는 멸망하고 과학장치에 의해 수천 수만의 똑같은 미남,미녀들이 탄생되어 다시 지구를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한결같이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미남,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은 것처럼 모두 똑같은 그들에게서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모양도 음성도 성격도 동일한 미래의 인류를 보여 준 그 이야기는 물론 극단적인 예이며, 과장된 공상소설에 불과하지만, 과학의 발달과 획일화된 문명에 의해 몰개성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침울한 미래가 잘 시사되어 있다. 개성미를 지닌다는 것은 자기다움을 살리는 것이다. 유행에 휩쓸려, 같은 모습,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멋을 살려 자기다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편이 더 쉽게 매력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돋보이는 모습을 원하고, 남과 다른 독특함을 지니기 위해서 상식밖의 엉뚱한 모습이나 별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곤란하다. 개성의 참다운 의미는, 남과 다른 자기만의 특성이면서 동시에 그 특성이 타인 속에 섞여들 때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자, 전체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개발하는 슬기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 @[ 3. 유행 인간은 종족 보존을 목적으로 한 섹스로부터 쾌락을 위한 섹스를 찾아냈고, 공복을 채우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로부터 맛을 음미하고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여러 가지 요소를 만들어 냈다. 또 몸을 가리고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입던 옷에 멋을 첨가시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요소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호신용 무기나 권위의 상징으로 패용했던 도구들이 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드러내는 액서세리로 변모하였다. 이와 같은 문화의식의 변호와 발달을 우리는 흔히 (유행)이라는 말로써 표현하고 있다. 유행이란 넓게는 사회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의 하나이며, 인간 의식의 변천 과정을 나타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사회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변천을 이끄는 유행의 범위는 한없이 넓고, 그 종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언어의 유행, 의상의 유행, 건축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은 유행의 물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유행은 의상과 머리모양 그리고 액세서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관련되는 유행은 다른 유행에 비해 빠른 시일 안에 넓은 범위를 장악하는 힘이 있다. 그 이유는 여성이 그만큼 유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여성이 유행의 추종을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폭넓게 한 시대를 점유했던 유행이라 하더라도, 유행은 지나가 버리게 마련이고, 한 유행의 뒤에는 또 다른 유행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흥행했던 유행일수록 지나간 뒤에는 새로운 유행과의 구별이 현격해져서 그 지나간 자리가 뚜렷해지는 법이다. 대부분의 유행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에서, 여성이 유행에 발맞추는 것은 자칫 사치와 연결되어지기 쉽다. 뚜렷한 주관 없이 유행에 맹종하다 보면 허영과 사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유행에 알맞게 적응하는 것 또한 미적 감각이자, 미를 가꾸는 능력에 속하는 것이다. 실리와 알뜰함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유행을 전혀 무시하는 여성이 있다면, 주관없이 유행을 좇아 동분서주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현대의 유행은 일부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되고, 유도되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행이라 함은 특정한 사람에 의해 고안되어지기 보다는 사회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것이라 하겠다. 여성에게 있어서 유행이란 그것을 자기 개성과 조화시킬 수 있는 미적 감각이 겸비되어 졌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 @[ 4. 화장 여성의 아름다움은 자신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이성(이치 이, 성별 성)을 만족시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여성이 화장으로 얼굴을 다듬는 것은 피부를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화장 속에는 이성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물론 화장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군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끄는 데는 화장이 유용한 역할을 해낸다. 화장한 얼굴은 일단 남자로 하여금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남성 중에는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의 화장을 일종의 사치로 여겨 달갑잖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차츰 퇴색해 가는 아름다움을 보완하고 손질하는 작업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빙자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허황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악덕이지만, 타고나지 못한 것을 보충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은 미덕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젊음 그 자체가 아름다우므로 화장할 필요가 없고, 나이가 들면 아무리 꾸며도 소용이 없으므로 또한 화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한 여성으로서의 모든 준비를 갖춘 완숙한 인간임을 보여 주는 일인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상식적인 에티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곧 여성의 화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화장에 있어서도 여성미를 이루는 다른 모든 요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 때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알맞는 화장술을 익혀 두는 것이 필요하다. 능숙하게 화장한 얼굴은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거부감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거부감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의 요령을 익히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부를 청결히 하고, 피부를 가꾸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 5. 에티켓 인간의 사회생활의 양상은 그 사회의 구조와 시대의 변천 등에 따라 다르다. 각 민족과 국가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생활양식이 있고, 문명사회와 비문명사회, 추운지방과 더운지방은 각각 그에 맞는 생활규범이 있는 것이다. 장례식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미덕인 문화권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미덕인 문화권이 지구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생활 환경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규범도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다. 에티켓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생활규범이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지켜야 할 에티켓은 더욱 섬세한 배려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여성의 사회활동이 급격히 확대되고 또한 여성의 능력이 인정되는 환경이 조성된 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에티켓은 사회가 요구하는 생활규범의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장소, 어느 환경에서든지 알맞는 에티켓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그녀를 돋보이게 하며, 더욱 매력있는 여성으로 만들 것이다. 흔히들 에티켓은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형식은 모방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선 그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에티켓이 어떠한 것인지를 의도적으로 파악하지 않고는 원만한 에티켓 생활을 하기 어렵다. 센스있는 여성이라면, 어떤 공식석상에 나갈 때라든가, 특별히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처해질 때에는 미리 책을 통해서 나 주위 사람의 조언을 받아 그 분위기에 조화되는 에티켓을 익혀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상황에 알맞는 에티켓을 미리 알지 못했을 경우에는 스스로 행동을 삼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분수에 넘치는 행동으로 야기되는 실수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원의 불길 같은 여권운동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 사회의 일각에서는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구습이 존재하는 우리사회에 속해 있는 여성들의 경우 탄력성 있는 에티켓을 지키는 일은 몹시 까다로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든지 에티켓의 근본정신을 기억한다면 큰 실수는 없을 것이다. 에티켓의 근본정신은 상대에게 편한 마음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함과 동시에 자신의 에티켓으로 인해 상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상태는 없다. 친절한 마음과 양보심, 겸손 그리고 미소, 호의 등의 미덕을 베푸는 것은 한결같이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에티켓 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지나친 양보나 호의, 부자연스러운 격식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라면 아무리 지나쳐도 나쁠 것이 없다. 여성의 에티켓은 여자다운 미덕에 그 근본이 있다. 공손한 태도와 함께 세련된 교양미를 갖춘 여성이 티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 6. 웃음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만 베풀어 주신 은총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녀라 하더라도 고통으로 찡그린 얼굴로 일관한다거나 심각한 고민에 쌓여 침울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지낸다면, 그 얼굴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다. 미인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밝고 화사한 웃음을 띤 얼굴이 있다면, 그 표정이야말로 어느 미인의 매력보다도 돋보이게 된다. 웃음 중에도 비웃음이나 허탈한 웃음 등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웃고 있을 때의 인간의 마음은 최고로 좋은 상태이다.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아름다운 모습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의 경계심이나 투쟁본능도 웃을 때 만큼은 없어진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교분을 원하는 마음이 표정에 나타나게 되며,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닿을 때, 그들은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웃음이 만국의 공통어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말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를 원한다면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을 하도록 권하고 싶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면 되도록 마음의 불편함이나 고민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이 다양한 국면을 가진 까닭에, 그 생활이 즐거운 일만으로 연속되어 질 수는 없다. 따라서 그만큼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정신적인 여유와 도량을 가지고 생활하고자 스스로 노력한다면 불쾌감을 야기시키는 일도 자연히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그만큼 웃음의 표정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맑은 웃음과 부드러운 눈빛, 삶에 대한 의욕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여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웃음은 미용에 반드시 필요하다. 웃으면 입 가장자리가 위로 올라가서 즐거운 표정을 만들고, 얼굴의 윤곽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여자다운 귀여움이 강조되어 보이는 것이다. 웃음이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작용을 촉진시킨다는 의학보고도 있다. 산소 공급이 촉진되면 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여지며, 그것은 또한 뇌하수체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몸 전체를 지휘함으로써,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쨌든 잘 웃는 사람은 비교적 건강하며 쉽게 늙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 될 수도 있겠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웃음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건강한 사람은 웃음으로써 용모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웃음을 이용한 아름다움의 창조를 권하고 싶다. 용모가 어떻든 상냥하고 온화한 미소를 간직한 여성을 밉다고 평하는 남성은 없다. 건강하고 정결한 여성의 웃음은 남성을 매료시킬 수 있는 값진 무기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웃음,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표정이다. ---------- @[ 7. 부끄러움 세기(세상 세, 해 기)의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이 극작가 버나드 쇼를 연모하여, '나와 당신이 결혼하면 당신의 그 훌륭한 두뇌와 나의 이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겠지요.'라고 유혹하며 말했을 때, 버나드 쇼는 그 말을 받아서 ;아마 그 아이는 당신의 나쁜 머리와 나의 못생긴 얼굴을 닮게 될 것입니다.'라는 독설로 응수했다는 일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적당한 오만은 여성의 매력으로 보일 수 있을 지 모르나, 지나친 자만심은 스스로 천하고 경박한 사람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여성은 어느 정도의 부끄러움을 가졌을 때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남성의 용맹하고 패기에 찬 모습을 남성답다고 한다면, 여성을 여성답게 하는 것은 역시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지닌 모습일 것이다. 스땅달은 그의 (연애론)에서 '수치심은 연애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고 강조했는데, 부끄러워하는 여성의 모습이 그만큼 남성의 마음을 끌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한다는 것은 바보스럽다거나 열등의식으로 인한 자신 없는 태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진정한 수줍음은 겸손과 겸허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줍음은 여성의 숨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수줍어하는 여성에게서는 아직 남성이 발견하지 못한 더 많은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부끄러움을 잃었을 때, 그녀는 이미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포기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을 잃음과 동시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퇴색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나이가 들면 수치심이 적어진다. 삶의 폭에서 오는 다양한 인생 체험들이 부끄럽다는 감정을 둔화시킬 수도 있겠으나, 지혜로운 여성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고수하는 일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남성에게 있어서는 비난받아 마땅한 부끄러움, 수줍음이야말로 여성이 독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사람과 미의 여인 아프로디테가 다른 여신들과 달랐던 점은, 바로 (부끄러움의 허리띠)를 하고 있었던 점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여성에게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아름다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겸허한 자세야말로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는 향기처럼 은은한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 8. 언어 한 인간의 교양과 지식의 넓이와 길이는 그가 쓰는 언어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표현이다. 그가 쓰는 언어가 곧 그 사람의 인품과 교양과 지식과 성격을 나타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약간의 대화를 해보면 곧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속이려해도 속일 수 없는 일이다. 여성에게 있어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교양의 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의 교양이다. 여성의 말씨가 고와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여성의 요청이다. 여성에게 웅변가처럼 말을 잘 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여성의 본성일지는 모르나 수다스러운 여성이 아름다워 보일 리는 없지 않은가! 언어라는 것은, 보통은 말을 해서 효과를 얻게 되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욱 적절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바꿔 말하면 침묵하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강한 의사표시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언어가 가지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세련된 언어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침묵의 효과를 십분 발휘 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두는 것이 좋다. 사람에게 누구나 표현 본능이 있다. 자기 주변의 사물이나 상황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면, 그 느낌과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이때 의사전달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곧 언어이다. 인간의 언어는 어떠한 사상(일 사, 모양 상)에 대한 올바른 생각, 정당한 사고를 전제로 한다. 무의식중에 한 말이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 이성(이치 이, 성별 성)을 잃고 감정이 복받쳐서 나오는 욕설 등과 같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언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를 통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그 사람의 이성적 사고, 올바른 마음가짐, 지적인 판단, 여유있는 포용력 등의 내면적 깊이가 총체화 되어 외부로 표현되는 것이다. 교양있는 언어와 적절한 침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성의 매력이란 오랜 시일에 걸친 지적 훈련과 인간적 각성에서 닦이고 다듬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지성이 품위있는 말씨로써 외면화 되어질 때 여성의 아름다움은 한층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 @[ 9. 지성미(알 지, 성별 성, 아름다울 미) 앞 장에서 분류한 여성의 세 가지 아름다움 중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즉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최고봉은 지성미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은 도리(도 도, 이치 이)를 감각하는 힘이요, 참과 거짓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이다. 고등교육을 받았다거나 세련된 매너를 익혔다고 해서 지성미를 갖추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학문적 척도만으로 여성의 지성미를 규정하는 것은 분명 넌센스이다. 여기 자기 자신의 지식만을 고집하여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위를 일삼는 여성이 있다고 하자. 그 여성의 지적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그녀의 지식은 아름다움이기 보다는 추함에 가까울 것이다. 육체적 아름다움이나 외모는 첫인상에 보탬을 주거나 젊은 시절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마지막까지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내면적 성숙, 즉 지성인 것이다. 미모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자주 만나고 점차 친숙해지면 외모에 관한 인상은 오래 가지 않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때에는 곧 상대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바라 보게 되고, 인생의 제반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느냐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지성있는 여성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문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학문적 깊이와 실력을 겸비한 여성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위엄을 갖추게 하는 힘이 된다. 셋째,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겠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고, 자신과 관련된 일에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는 지성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여하튼 지성은 일시적인 꾸밈으로 쉽사리 가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성찰하는 사람에게만 신의 선물로 주어지는 고귀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 @[ 10. 건강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의 요소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어떠한 요소도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그 가치를 다할 수 없다. 그만큼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간디의 명언 중에 '인간의 첫째 의무는 자신의 심신(마음 심, 육체 신)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창조력과 높은 학문이 있는 사람이 원대한 꿈을 가졌다 할지라도 건강을 잃은 다음에는 그가 가진 능력과 지혜가 소용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몸매, 강건한 체력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그 정신이 병들어 사회의 악으로써 활약한다면, 인생의 보람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건강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눈부신 것이다. 창백한 피부색보다는 혈색이 넘치는 건강한 피부색이 아름다우며, 상한 치아보다는 건강하게 빛나는 치아가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움의 어떠한 요소도 건강에 비교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하지 않았는가!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건강을 헤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건강한 몸이야말로 우리의 최후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 @[ 11. 여성미의 완성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문호가 발달할수록 여성의 미에 대한 욕구는 더욱 증가되며, 그에 쏟는 노력과 정성도 더 커질 것이다. 여성들은 유행에 민감한 한편 자신의 개성을 개발하여 최고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기를 희망하게 되는데, 아름다워지려는 욕구,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심리는 곧잘 비약되기 쉽다. 그래서 정도에 지나친 사치와 허영으로 치닫게 되고, 한계에 부딪쳤을 때는 좌절과 비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좀 더 가벼운 기분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것은 아무리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다고 해도 조금도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음으로 해서 가치를 다하게 될 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이 그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루어 한 세계를 꾸며 주고 있다면 그것으로써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 얼굴과 재능에 어울리는 각각의 모습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모습을 동경하게 될 때 그는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신이 원하는 용모를 허락하지 않은 것과 미모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것은 미모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이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가를 알아내야 하고, 그 밖으로 탈선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되도록 수용하여, 주어진 스스로의 바탕을 출발점으로 해서 저마다 자신의 미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이것이 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며 추구이자 창조인 것이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말한다. '젊은 여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늙은 여인은 더욱 아름답다.'고. 인생이란 아름다움의 상실이 아닌, 아름다움의 축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과일이 익어가듯이, 여성미는 끊임없는 미의 축적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 @[ 12. 용모 여성의 대부분은 미모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아름다움은 인간을, 특히 여성들을 매혹시킨다. 우리 여성들은 아름다운 여자들에 대해서 열렬한 찬미와 선망의 눈길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행운에 독살스러운 질투를 느낀다. 우리들 평범한 외모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미모야말로 거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좋을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표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자기와 같은 사람은 차라리 냉동실에 처박아 두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있다. 미인이란 미인이 아닌 여자들과는 어쨌든 다르다. 어찌하든 그들은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별로 예쁘지 못한 여성들은 그녀들에 비해 스스로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결코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인)이라고 할 때 모든 사람이 (같은)모습의 여자를 연상해 내는 것은 아니다. 즉 사람마다 미인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다르다는 말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시대가 변하면서 미의 기준도 함께 변해간다. 그런가하면 국가에 따라 미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외모가 그 사람의 전부를 나라내주는 것이 아님은 재삼 말할 것조차 없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모로 먼저 그 사람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이 점이야말로 우리들처럼 미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인식은 꽤 어린 나이에 벌써 깨우쳐 진다. 미인은 누가 뭐래도 미인이며, 미인이 아닌 사람은 누가 뭐래도 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므로 아마도 일찍부터 스스로 미인인지 아닌지를 자각하게 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별로 예뻐보이지 않는 내 친구 하나는 지금까지도 자기가 미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부모가 '너는 예뻐.'라는 식으로 키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어머니로서 딸이 예쁘지 않을 때 무어라고 말해줄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얘, 너는 무릎이 예쁘구나.'라든지 '웃는 모습이 천사 같구나!' 또는 '다리가 날씬한 아이'라는 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야말로 예쁘다는 것의 강박관념의 포로였다. 사실 어머니는 못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수수한 미모였으나 이모가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늘 당신의 여동생과 비교하셨던 것이다. 동생의 미모를 영영 잊을 수 없었던 어머니는 딸인 나에게 그 피해를 끼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늘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면서 깊이 한숨을 쉬셨는데, 한 번도 내게 예쁘다는 칭찬을 해 주신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사내들이란 예쁜 여자에겐 영 바보가 되고 마는 거야^5,5,5^'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그 말의 뉘앙스 속에는 내가 남성들을 뇌쇄시킬 만한 미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때때로 어머니는 내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시면서 '내겐 네가 매일매일 조금씩 나야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구나^5,5,5^'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얘야, 미안하지만 넌 아직 멀었구나^5,5,5^'라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미모에 대한 그런 강박관념을 제외한다면 어머니는 아주 훌륭한 분이셨다. 의지가 굳고 관대하며, 나에게 언제나 지적인 관심을 갖도록 격려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좋은 어머니도 드물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며,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모에 대한 강박관념은 끝내 극복하시지 못하고 마침내 딸인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런 어머니의 강박관념 덕분으로 자신의 외모를 개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여고시절 여드름에 시달리면서 그런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들은 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존재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여성들로 하여금 미모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바로 그들이, 여성들에게 있어서 외모란 자신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장본인인 것이다. 내 친구이며, 영화 제작자인 로보트 에반스는 미녀들하고만 네 번 결혼했다. 그런가하면 워렌 비리, 존 테릭, 라이언 오닐, 로제 바딘 등도 전형적인 미인 숭배자였다. 그런 남자들은 우리같은 여자는 숨막힐 듯 아름다운 여자와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들은 우리를 예의 바르게 대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석고상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우리는 어떤 남자가 시라도 써서 바칠 그런 대상이 결코 못 된다는 것이다. 내 친구 알만도 멋진 남자이다. 어느 날 웨이트 56번가의 이태리 식당에서 나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알만도가 부르짖었다. '저기 창가에 앉은 아가씨! 야! 멋진데!' 그 때 내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물론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맹세할 수 있다. 우리들이라면 남자와 식사하면서 어떤 다른 남자를 보며 소리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 저 남자 좀 봐! 마치 그리이스 조각품 같애!'라고. 결국 이런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미인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우리 여자들끼리 하는 말이지만 어떤 남자가 당신의 미모에 빠져서 당신을 쳐다보며 오다가 의자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하는 것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굉장한 미인들과 우리같은 평범한 여성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한 가지의 특징은 미인들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뭐라구요! 내가 미인이라구요!'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깜짝 놀래 보이곤 한다. 그러면서 모든 남자들을 뇌쇄시킬 듯 차가운 눈초리로 돌아다 보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에게 돈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과 같이 당신이 아름다움의 부자라면 미 또한 당신에겐 그리 대수로운 것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지만 때때로 그들의 차갑고 도전적인 눈초리가 떠올라 우리는 문득문득 움츠러든다는 뜻이다. 우리는 결코 소피아 로렌, 라켈 웰치, 파라 파세트 같은 여성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헬렌 걸리 브라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우리들 각자의 몸매를 변형시킨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는 노력하는 자체에서 의의를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상생활 중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내가 눈수술을 하고 한달동안이나 눈화장을 할 수 없었을 때 내게는 화장도구들이 더없이 그리웠다. 그것들을 이용해 나를 가꾸던 시간들이 환상적인 매력으로 나를 자극했던 것이다. 남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남자들은 면도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하루에 한 번씩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자네, 아주 핸섬하군!' 남자들이 그렇다면 여자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거울 속의 자신을 이모저모 살펴보며 기뻐하기도, 우울해하기도 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런 모든 행위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완벽한 미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차라리 가꾸고 다듬을 여우가 있는 정도의 얼굴이나 몸매를 갖고 태어나는 쪽을 찬양하겠다. 어쨌든 미모가 여자의 (전부)는 아니다. 이것은 결코 미녀들을 질투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많은 실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5 년동안 미인인 내 친구와 교제해 오던 남자가 결혼을 거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설사 결혼에 성공했더라도 문제는 우리의 마찬가지로 남편 때문에 늘 속을 썩기는 매일반인 것이다. 직업에 대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40 대 정도 되어서 직업도 없고 가정 외에는 별 관심사도 없는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미모 때문에 일찌감치 남자에게 붙들려서 자기 자신을 개발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이다. 미인들은 대개 심각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모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 중의 하나가 자살을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무가치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자문해 보았다. 너는 누구지? 네가 이루어 놓은 것이 뭐지? 네 가치는? 그러자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역시 그렇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다. 미모가 남성들의 사랑을 획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인이 아니면서도 사랑받는 여자들도 많다. 누구나 한 두가지 정도의 미^6,36^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36,3^는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그런 한 두가지의 장점만으로도 당신이 필요로 하는 한 남성의 사랑을 불붙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나는 요오꼬 오노를 생각해 보곤 한다. 죤 레논^6,36^그는 얼마나 위대한 스타였던가!^36,3^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는 흥미로운 여성이었을진 몰라도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연상의, 더구나 미모가 아닌 여성도 그처럼 남성에게 매력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남편들이란 어차피 곧 아내의 외모에 익숙해진다. 그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자기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아내일 뿐이다. 내 남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남편은 내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것은 맹세할 수도 있는 확실한 일이다. 내가 지난 여름 머리를 잘랐을 때에도 남편은 남들이 지적해 주자, 그때서야 '머리를 자랐던가?'하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미인들은 정착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녀들에게는 수많은 남성들이 구^36^애해 오기 때문에 실상 정착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남성의 품속에 정착한다는 아늑함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나는 당신에게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당신이 여배우나 패션모델이 아닌 이상 외모가 당신의 성공의 길을 열어준다. 당신의 보람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미모가 첫인상을 강렬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차 친숙해지면 외모에는 서로 익숙해져서 거의 잊고 지내게 마련이다. 그때에는 서로의 관심도 인생의 제반문제로 전환되어 외모하고는 상관없는 것들이 큰 이슈로 등장하게 된다. 바로 이때가 미인들에게는 위험한 것이다. 평범한 외모의 여성들이 배우고 생각하는 동안 자신의 아름다움에 너무 취해 지낸 여자들이 내면적으로는 빈 껍데기였다는 사실이 탄로나게 되므로 그때 그녀의 미모는 결코 아무런 격려도 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적 성숙만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또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지성적인 여성이라면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건 극히 적은 숫자에 그치기 마련이다. 결국은 아름답거나 지성적이거나 어느 하나가 되는 법이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양자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지성쪽을 택하겠다. 독특하다는 말을 바꾸면 돋보인다는 말이 될 것이다. 평범한 외모의 여성들이 특히 개성을 가꾸어야 한다는 것은 개성이 당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개성적인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나는 상면으로 된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였다. 역시 나는 미인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더욱 친절하라. 애정을 간직한 여자가 되라. 테레사 수녀,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헬렌 켈러를 생각하라.'당신도 나처럼 하라. 결국 개성있는 사람이란 책임감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당신이 하겠다고 말한 일은 실천하고, 친구와의 우정을 지속하고, 능력있는 여자가 되는 것이 개성있는 여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당신의 장점을 발견하라. 당신의 소질을 발견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키우고 격려해 주어야 하다. 당신은 차츰 스스로의 개성적 매력에 자신을 갖게 될 것이다. ---------- @[ 13. 피부 피부관리의 첫 번째 지침은 깨끗하게 씻고 닦는 것이다. 그것은 피부건강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사람은 날마다 땀구멍을 막고 있는 노폐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여성들 중 어떤 이들은 피부를 보다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 미용실을 이용한다. 그러나 미용실은 너무 많은 돈이 필요시 되는 곳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부지런함만으로도 신선하고 윤기있는 피부를 간직할 수 있다. 건강과 피부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음식을 조절하라. 가급적 술을 마시지 말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 술고 담배가 아름다운 피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적이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도 빼놓을 수 없다. 1.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얼굴을 씻어라. 화장을 모두 지워라. 씻을 때는 비누와 물을 사용한다. 건성 피부를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특수한 비누를 골라 쓸 필요가 있다. 2. 완전히 헹구어 내어라. 2번 이상 헹구어야 비눗물이 걷힌다. 그리고 난 후 면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는다. 3.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약간의 모이스춰라이저나 혹은 아이크림을 눈 주위와 코와 입 사이 그리고 목부분에 바른다. 외출을 할 때에는 화장을 했거나 안한 것에 상관없이 얼굴에 고루고루 모이스춰라이즈를 아주 엷게 바른다. 화장을 하는 경우 그 위에 한다. 4. 피부에 적당한 정도의 습기를 유지한다. 나는 분사기를 이용하여 물방울 안개처럼 내 얼굴에 뿜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겨울에는 물을 담아 난로 위에 올려 놓으면 공기의 습도가 조절된다. 5. 얼굴 맛사지를 하라. 나는 아침마다 20분간 크림을 바른 내 얼굴을 문지른다. 주름을 없애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얼굴에 작은 원을 그리듯 부드럽게 문질러라. 양손을 이용하는 데 셋째와 넷째 손가락을 쓴다. 이렇게 10분정도 문지른 다음 크림을 닦아낸다. 다음에는 면수건으로 얼굴을 깨끗이 닦고 만약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런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한다. 이때 면수건이 청결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6. 얼음찜질을 한다. 7. 실리콘 주사를 놓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 @[ 윤택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내가 쓰는 방법을 간단히 다섯 가지로 정리하겠다. 1. 머리를 자주 감는다. 너무 자주 머리를 감는다 해서 머리카락이 상하지는 않는다. 비누칠을 한 번만 하면 충분하다. 2. 비눗물을 완전히 제거한다. 충분히 헹구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카락이 비눗물 때문에 미끌미끌하다면 절대 안 된다. 3. 머리카락을 다 헹군 다음 차가운 물을 뿌리며 다시 한 번 더 헹군다. 그렇게 하면 머리결이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4. 머리 스타일을 자주 바꾸어 보라. 새로운 기분이 될 것이고 당신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결정하게 된다. 이상이 머리결을 더욱 원기있게 하는 방법들이다. 다음에는 내 경험 몇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미용하기엔 아주 부적합한 머리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이가 꽤 들어서였다. 그때까지 나도 내 머리가 남들과 크게 다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 여섯 살 때였다.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머리를 하려고 미용실에 갔었다. 미용사는 내 주문에 따라 머리를 손질하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왜 그림처럼 되지 않죠?' 그러자 미용사의 대답. '노력하고 있어요.' 맙소사! 내 머리 모양 자체가 그런 스타일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차마 말해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마치 걱정 많은 부모가 자기아이를 이 의사 저 의사에게 보이면서 자기의 아이가 지진아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자 하듯이 나는 내 머리를 여기저기에 보이고 묻고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온갖 샴푸로 머리를 감아보기도 했다.) 유능한 피부병 전문가. 머리카락만 다루는 사람들로부터 내 머리카락도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피부병 전문학자가 새로 돋아나는 머리카락을 세어 보라 충고했다. 어떤 전문가는 양 다리 사이로 고개를 굽혀 보는 훈련을 하고 하루에 100번씩 빗질하도록 조언하였다. 그런가하면 그런 방법은 연한 머리카락을 누더기처럼 만들 뿐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른 전문가는 말하기를, 내게 보이지 않는 피부병이 있다고도 하였다. 나는 온갖 방법을 다하였다. 물구나무서기도 해 보고 맛사아지, 안마, 손질 등 갖가지 수를 모두 다 써 보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머리는 아주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런 어리석은 짓으로 몇 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내 고민을 코스모 지의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머리를 잘라야 해요.'하고 말레느는 말했다. '자르다니?' '사람을 추천해 드리지요.' 그래서 말레느가 추천해 준 미용사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 그러나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때때로는 아주 총명한 사람도 개선의 가능성보다는 허황된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력해서 조금씩 좋아지려 하기보다는 어떤 (비법)에 의해 단번에 눈부시게 변모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당연하다. 그 (비법)이 제시하는 청사진이 너무도 찬란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착실한 조언자의 충고를 따라 꾸준히 노력하는 쪽이 더 바람직하다. 조금씩 조금씩 변모하라. 조금씩 조금씩 개선하라. 일시에 눈부신 변모를 가능케 할 비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 @[ 예쁜 발 예쁜 발에 대한 최고의 적은 낡은 신발이다. 발가락이 편한 신발을 신어라. 뒷굽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당신 발에 못이 박히게 하는 신발은 값이 얼마든 간에 버려야 한다. 새 신을 고를 때에는 발이 조이거나 너무 헐거워서도 안 된다. 가까운 거리를 걸을 때에는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보를 하거나 인근 가게에 갈 때에는 보다 편한 신발을 신는다. 불편한 신발일 경우 레스토랑이나 영화관 같은 장소에서는 벗어 두도록 한다. 가능한 한 발을 깨끗하게 하라. 깨끗하며, 발톱이 잘 다듬어진 발은 섹시하게 보인다. 맛사지용 바셀린이나 로션을 발가락에 바르고 면양말을 신고 자면 부드러운 발이 된다. 피곤할 때에는 발을 씻는 것이 효과적이다. 냉수와 온수로 번갈아 가며 발을 씻는다. -------------- @[ 지름길이란 없다. 다만 노력한 만큼 거둘 뿐^5,5,5^ 모든 일에는 시간이 들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하루에 네 시간씩 화장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샤워, 화장, 머리손질, 아침식사까지 합쳐 20분이 걸리는 것이 3시간 반 걸리는 것보다 나은 사람도 있다. 어떤 점에서는 당신이 화장시간을 줄이는 것이 그만큼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하든 우리들은 시간을 귀중하게 여겨야만 한다. 당신은 외모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동시에 또 다른 일에도 시간을 써야만 한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즉 화장을 잘하기 위해서는 너무 성급하거나 서두를 게 없다는 말이다. 다만 꼭 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 침착하게 하는 것 뿐이다.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이 부분에 배당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부분 이외에도 건강, 사랑, 직장, 친구 등의 많은 과제가 있으니만치 자기에게 알맞는 정도의 치장시간을 결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되고 할당된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라. 당신도 마침내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타인들의 선망을 받게 될 것이다. ------------ @[ 화장 우선 나는 여성의 화장에 대한 남성들의 느낌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남자들은 화장한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일단 당신에게 빠진 남자는 당신의 눈이 어떻다든지 입이 어떻다든지 하는 것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자가 아직 당신의 포로가 아닐 때는 어떤가? 물론 화장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군가를 사로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목을 당신에게 집중시키는 데는 화장이 유용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화장한 여성의 얼굴은 일단 남자로 하여금 접근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화장한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매력있는 여성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의 모든 준비를 완비한 여자입니다.' 능숙하게 화장한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교묘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섀도우는 세 단계의 명암으로 되어 있어서 거의 구별이 되지 않고 립글로스도 원래의 윤기인 것처럼 보이는 정도에 그친다. 발그스름한 두 볼은 화장술 때문이 아니라 수줍음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화장만이 남성의 주목을 끄는 방법은 아니다. 아직은 앳된 어린 소녀들은 단지 그 나이만으로도 남자들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데 충분하다. 어떤 여성들은 머리를 잘 다듬음으로써 남성들의 주위를 끌기도 한다. 하긴 그것도 일종의 화장이긴 하지만. 화장품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언제나 화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세탁소에 가면서까지 화장품으로 온통 몸을 감쌀 필요는 없다. 나도 집에서 빈둥빈둥 놀게 되는 날은 그냥 맨 얼굴로 지내는 수가 많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서도 화장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그 화장품과 화장술이라는 것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어떤 죄의식의 찌꺼기 같은 걸 가지고 있지나 않은지. 아니면 경제적인 낭비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화장품을 잘 다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위축감 같은 걸까? 그 어떤 경우에서든지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다. 특히 화장품을 다루지 못한다는 경우는 심각한 것으로써 나는 제발 배우라고 충고하고 싶다. 배우지 않고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 어떤 화장품을 쓸 것인가?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모든 화장품은 근본적으로는 예외 없이 동일한 것이며 모두가 같은 정도로 피부에 좋은 것이라고, 이것은 수년동안 화장품을 사용해 보고 또 많은 연구를 한 나의 결론이다. 크고 작은 거의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들은 외부의 실험실에서 상품을 공급받고 있다. 자체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화장품들은 유지가 좀더 들어가 있던가. 수분이 좀더 함유되어 있다는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 뿐 기본적인 성분은 거의 같다. 화장품이 대개 다 비슷한 것이라는 나의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비싼 화장품과 그렇지 않은 화장품이 있느냐고. 그 한 가지 이유는 포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속을 채워 넣은 호박단 화장품 케이스가 금속 통속에 든 화장품보다 값이 더 비싼 것이다. 그런가하면 향기를 내는 데 얼마나 투자했느냐의 차이도 있다. 향기있는 화장품은 질적으로는 상관없이 제조비가 많이 들게 마련이고, 그 때문에 값이 비싼 것이다. 광고비의 문제도 있다. 광고를 많이 하려면 비싼 정가를 붙여야만 한다. 그러나 많은 광고를 하는 상품이라고 해서 질 자체가 상승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건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물론 아주 질나쁜 화장품도 있다. 그러나 별로 값이 비싸지 않은 선에서 잘만 고른다면 구태여 아주 비싼 제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화장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새로 시판되기 시작하는 상품들은 대개 비싸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개 재래의 것보다는 상품의 질이 높다. 그런 상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기다리는)것이다. 머지 않아 그 신제품은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하게 개발될 것이고, 그때에 가서는 우리는 보다 싼 값으로 그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 향수 향수도 화장품들처럼 모든 제품이 다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향수의 화학 구조식은 화장품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향수의 값은 대단히 비싸다. 자기의 돈으로 향수를 구입할 정도가 되려면 엄청난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에게 다소나마 격려가 될 만한 소식이 있다. 향기는 꼭 향수에서만 풍겨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향기를 가진 여러 가지 오일을 혼합함으로써 우리는 향수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진짜 향수는 대개 값비싼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생화기들(장미, 붓꽃, 수선화, 전륜화, 오렌지꽃, 히아신스 등에 들어있는 아마드)이나 혹은 다른 성분들(나무뿌리, 잔디, 이끼, 콩, 나무껍질, 열매, 풀잎 등)로 되어 있는데, 이런 성분들을 추출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사향노루에서 만들어내는 향수는 이제 너무 귀해져서 다른 인공향수로 대치되었다. 지금의 향수 회사들은 예전처럼 많은 진짜 꽃이나 천연재료를 거의 쓰지 않는다. 1930--1950 년대의 프랑스 향수까지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도저히 천연재료로는 수요에 따를 수도 없고, 수지타산도 서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놀라운 기술로 천연향수에 가까운 효과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런 향수는 오래 보존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향수들은 30 퍼센트의 향기^6,36^인공적 기본성분에 자연적 기본성분을 배합한^36,3^와 70 퍼센트의 용액^6,36^향기를 전하는 알코올^36,3^으로 배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것은 12 퍼센트의 향기와 88 퍼센트의 용액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향기는 하루 종일 유지 된다. 향수도 부패하기 때문에 너무 오래 가지고 있으면 변질된다. 막아놓은 채로 1 년이면 최대한의 기간이다. 일단 뚜껑을 열게 되면 6개월밖에는 쓰지 못한다. ------------ @[ 성형 수술 어느 누가 자신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려 하겠는가? 물론 아무도 말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형수술에 대한 경험있는 충고를 듣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방면에 대해서 알아두지 않으면 안되므로 이 문제는 꽤 까다롭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난 18 년 동안에 세 차례의 성형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나면 아주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50세가 넘어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기가 쉽다. 다음 몇 가지를 유의하라. 1. 수술비용이 굉장히 비싼 것을 각오해야 한다. 2. 대개의 수술절차는 매우 불쾌하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통증은 하루 내지 이틀 정도 계속되지만 곧 괜찮아지게 된다. 회복기간은 수술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며 당신은 수술 후 2--3주 후엔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수술받은 흔적이 다 없어지기까지는 6개월 정도 걸린다. 코와 눈이나 안면수술 뒤에 오는 신경마비는 길면 6개월 정도 계속되는 데 그 뒤에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3. 수술이 실패할 경우가 있다. 그런 불행한 사태의 경우가 꼭 당신에게서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탁월한 의사에게서는 그런 실수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성형수술은 선불이다. 4. 수술을 받았다고해서 인생이 변화되거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정신적인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수술 받은 기분이 아주 불쾌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기분을 실감나게 묘사한 경우를 아직까지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경험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나는 18 년 전에 매부리코의 교정수술을 받았다. 그 당시의 기분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첫날의 기분은 흡사 악몽 그자체였다. 눈과 코의 통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났고, 얼굴은 두 배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숨도 거의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고통은 점차 줄어들었고 2주일 정도가 지나자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름제거 수술의 경우 우선 진찰실에서 피부를 마취시킨다. 이어 의사는 힘이 고르게 작용하도록 유의하면서 연마용 강철솜으로 가볍게 피부를 문지르게 된다. 이때는 피부가 마취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통증은 느끼지 않는다. 약 1시간 정도 문지르게 되면 얼굴에 피가 맺히고 끈적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끝나면 통증을 견딜 수 있는 연고를 바른다. 며칠이 지나면서야 겨우 우유로 세수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딱지가 생긴다. 그 딱지가 떨어지고 나면 피부는 보드라워지게 된다. 최근에는 눈 밑에 생기는 주름과 윗 눈꺼풀을 일부 제거하는 수술도 받았다. 그것도 역시 불쾌한 수술이다. 그러나 긴장하지 말고 침착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피부를 마취시킨 후 2시간 동안이나 짜내고, 이어 봉하게 된다. 2시간이라면 꽤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수술이 끝나면 마치 더덕더덕 기워진 것 같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기가 내리고 멍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얼음찜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술 받고 며칠간은 아주 지루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라디오를 듣는 것만이 유일한 것으로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0일 후 다시 출근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시침을 떼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다른 용무 때문에 결근한 것으로 알 것이다. 그리고 '얼굴이 훤해졌군요!' 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자. 이쯤에서 용모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용모에 관한 한 우리는 부지런히 가꾸고자 노력한 뒤,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쾌활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외모와 함께 내적인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한 누구도 용모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클레오파트라라 하여도 늙게 되면 자연스럽게 퇴색되어 지는 것이 이 용모라는 것이다. 자, 쾌활한 마음으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 제3부 여성과 우정 @[ 1. 우정의 가치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그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당신의 친구야말로 애인이나 남편보다도 더 자주 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인이나 남편이 없어도 얼마동안은 살아 갈 수 있으나 친구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자신들이다. 더구나 당신이 남들보다 돋보이는 여성이 되고자 원한다면 친구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 되어야 한다. 가끔씩 우리는 친구가 없는 사람을 대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에게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우울해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자신은 숨쉬는 방법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나 같다. 물론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데에는 몇가지 원칙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쉽다. 원칙은 기하학과 같은 난해한 것도 아닐뿐더러 지극히 단순하고 분명한 것이다.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라. 자신과 기호와 취미가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친구란 서로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대개 형성하는 관계이다. 이성에게서 애정을 획득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녀간의 애정에는 성적인 매력이 상당부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성간의 사랑은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정은 그렇지 않다. 우정은 사랑보다 화려하지는 않을지라도 더 견고한 인간정신의 교류인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당신이 만약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 사실상 가족보다는 친구가 더 많은 도움을 준다. 친구는 당신과 혈연이나 계약을 맺지 않고도 당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실패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창피해 할 수도 있으나 친구는 그렇지 않다. 가족이 당신의 실패에 함께 슬퍼하고 분해할 때 친구는 당신의 실패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이 친구와 상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뿐만 아니라 대단한 도움이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당신에게 친구와 의논한다는 것 이상의 지혜로움이란 다시 없는 것이다. 당신의 모든 문제를 가족들에게보다는 오히려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친구라함은 당신의 아주 소중한 친구 한 두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친구라 해서 아무나 다 친구는 아니다.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당신을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소중한 친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필리스 그린나크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사람이 모두 외로운 상황에 오래 있게 되면, 그들 사이에 서로 정신적인 유대가 생겨난다.' 이 말이 우정의 한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친구는 일이나 일상생활과도 관계가 있다. 당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말이다. 예를 들면 당신과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라든가 또는 남편이나 애인의 친구이거나 등등. 아무튼 인간생활이란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닌 많은 친구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인 것이다. 당신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될 것이다. 직장동료, 의사, 재정 조언자, 직업상의 친구, 미용사, 디자이너, 실내장식가 등등. 그들은 당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돌면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당신의 미래는 분명 좋아지게 될 테니까. 앞의 장에서 우리는 불과 일 년도 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친구란 거의 모두가 평생의 친구가 된다. 대개 여자 친구는 정신적인 문제점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여자들만의 세계는 달콤하고 따뜻하며 편안하고 안락한 세계인 것이다. 신은 우리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멋진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당신의 삶에 아직 (우정)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당신의 인생은 불완전한 것이다. 내 친구 샤롤케 켈리에 대해서 나는 언젠가 이렇게 쓴 일이 있다. '나는 우울할 때는 샤롤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나는 눈보라치는 무서운 겨울밤에, 외출하고 돌아와 따뜻한 침대에 눕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되지요. 혹은 몇 달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손톱손질을 직업 미용사에게 맡기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에나 비할까요? 샤롤케는 내게 있어서 배멀미할 때는 잘 듣는 특효약과 같은, 또는 속이 거북할 때의 큰 트림과 같은, 그리고 어지러움증이 생겨도 돌지 않는 방과도 같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면 그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를 기꺼이 도와줍니다.'좋은 친구란 모두 샤롤케와 같다. @ff @[ 2. 우정은 서로 주고 받는 것 두 종류의 친구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와 당신에게 나쁜 일이 있을 때 위로하고 충고해 주는 친구, 당신은 당신이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서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이다. 샤롤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친구란 서로에게 유익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필요성을 교환하라.' 이 경우의 (유익하다.)는 말을 굳이 계산적인 의미로 생각하지는 말자. 그러나 어찌되었든 우리가 친구를 사귀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 주고 싶고 동시에 받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가 친구라면 주는 것도 기쁨이며 보람이고 받는 것 역시 아름답다. 극소수의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 후 무한한 신뢰를 바치도록 하라. 물론 아무런 사심없이 그를 위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심없다라는 말을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고 그를 도와주기도 할 것이며, 친구 또한 당신을 여러모로 위해 줄 것이다. 우정은 상호적인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친구로부터 절교를 당했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판단해 볼 필요가 마땅히 있겠다. 당신은 (받기만)한 친구는 아니었는지, 물론 한 친구와의 헤어짐이 당신의 일생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다음의 우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이 그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더욱 더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친구)라고까지는 할 수 없이 다만 (알고 지내는)정도의 사람이 당신에게 무언가 요구해 온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들어 줄 수 있을까? 군소리없이 가능한 한 열심히 그를 도와라.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 다음에야 늘 남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하지만 그 요구가 너무 힘에 벅찬 것일 때에는 일찍부터 포기하는 쪽이 더 현명한 것이다. 가끔은 좀 색다른 요구의 경우가 있다. 내가 머리 염색을 하는 집에서 귀여운 어린 미용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브라운 부인, 아주 피곤해 보이시는군요^5,5,5^ 저^5,5,5^ 저희 교회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5,5,5^' 그리고는 그녀는 제 칠일 그리스도 재림교회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당신의 짐을 벗고 평화와 갱생을 찾을 수가 있어요^5,5,5^' 나는 말했다. '고마워. 셀리아, 하지만 안되겠는걸' 6주 뒤 다시 그 미용실에 들렀더니 그녀가 말했다. '브라운 부인, 하시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교회가 당신의 안식처가 되어 줄 거^36^예요.' 나는 감격하였지만 역시 사양하였다. 그 다음에 또 그곳에 갔더니 셀리아는 그녀에게 있어서의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있어서도 교회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도 설명해 주었다. '우리 교회에는 외국인을 초대하는 특별한 모임이 있어요. 한 시간만 시간을 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셀리아가 나에게 부탁했다. 한 시간 정도라면 특별히 거절할 핑계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셀리아. 내가 교회에 나가고픈 마음이나 필요가 생기면 네게 말 할께.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해. 고마워 셀리아.' 그러자 마침내 그녀의 본심이 드러났다. '브라운 부인, 부인께서 우리 교회에 나와서 전도를 하시게 된다면 아주 굉장할 거^36^예요. 일개 미용사인 제가 전도하는 것하곤 아주 다를 게 아니^36^예요? 부인은 (저명한)분이시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도 교회에 대해서 큰 일을 하는 셈이 될거구요!' 그러니까 결국 나를 개종시켜서 교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나를 전도하려는 참 목적이 내 영혼의 구원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자 나는 그녀에게 쌀쌀하게 말할 수가 있게 되었다. 나는 무신론자이며 셀리아와 함께는 그 교회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모든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그리고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당신에게 알맞는 정도의 투자 대상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와라. 그러나 당신을 완전하게 모두 다 바칠 필요까지는 없다. ------------ @[ 친한 친구일수록 예의를 지킨다. 우정에는 예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교양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교양미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며, 허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친구, 특히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교양있게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점이므로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할 일을 다하는 데서 당신의 교양은 드러난다. 우아한 제스처란 아주 값비싼 것이다. 책임을 다하라. 코스모 지의 어느 한 여기자가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표지 모델의 사진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실기를 반대했었다. 사진은 아주 훌륭했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녀 개인의 기호문제가 개입되어져 있었을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녀의 요구에 응해 주었다. 대신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 갈 비행기 표와 호텔 숙박비를 수표로 발행하여 건네 주었다. 이것이 교양미이다. 내가 아는 한 아가씨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문가의 아들로부터 파혼을 당하자, 그녀는 아주 가난했기에 그 반지를 꼭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에게 받은 귀한 보석 반지를 되돌려 주었다. 이것도 교양미이다. 하루는 마침 잔돈이 없어서 수위에게 75센트를 빌린 적이 있었다. 이튿날 그 돈을 돌려 주려고 하자, 수위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브라운 부인, 참 친절하시군요. 제가 하루 버스를 태워 드린 셈 치죠.' 이것도 멋진 교양미이다. 유모스럽게 자기를 약간 낮추는 데서 교양미는 우러난다. 고집스럽게 성내는 얼굴이 교양미를 지닌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늘상 무엇인가를 부탁만 하던 사람에게 이번에는 아무 부탁도 없이 전화하는 것, 이것도 교양이다. 교양있는 사람은 2 년간 받지 못한 빚을 독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더 이상 꾸어주지 않으면 될 것이다. 다음의 몇 가지는 교양인을 위한 수칙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것을 지키고 있다. 1. 약속을 준수해라. 2. 값싼 여자가 되지 말라: 친구들과 더치페이를 할 때 값싼 여자는 쉬이 치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3.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를 위로하라: 실직을 했거나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이 있다면 함께 걱정해 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처음에는 한결같이 그렇게 하지만, 대부분은 곧 그를 잊고 만다. 그러나 교양있는 사람은 항상 그가 회복될 때까지 관심을 갖는다. 4.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을 기억하라: 언제 누가 당신에게 호의를 보여주었는지를 항상 기억하라. 당신의 형편이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그들을 쉬이 잊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5. 비방하지 말라: 당신이 고십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없는 데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떠드는 것은 나쁘다. 그 친구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칭찬할 수 있는 그런 폭 넓은 여성이 되라. 6. 무조건 받기만 바라지 말라: 당신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받기만)해서는 안 된다. 7. 항상 웃는 사람이 되라: 늘 밝은 표정이 되도록 노력하라. 상대방이 유쾌한 농담을 했을 때 당신이 목석처럼 서 있는다면 그는 당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러시아 찻집에 간 일이 있다. 마침 저녁식사라서 주인은 차 마시는 사람보다는 식사할 사람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일행 중 어느 한 사람이 주인^6,36^주인은 내 친구였다.^36,3^을 마치 웨이터 다루듯이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매너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그 남자 주인을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나는 힘들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파티에 대해서 한 마디의 찬사도 듣지 못한 씁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애써서 며칠 간이나 그들 여섯 쌍을 위해서 음식과 술과 꽃을 준비하였는데도 그들은 이튿날 전화 한통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잔뜩 약이 올랐다. (갈채가 있어야 마땅한 시간의 침묵)이란 이만저만 약이 오르는 일이 아니다. 남의 수고를 칭찬해줄 줄 아는 교양인이 되라. 매너 없는 성공적인 삶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매너를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누구나 응답을 기다린다. 전화와 편지를, 수고에 대한 인사를 말이다. 나는 응답이야말로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 이상의 큰 덕목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음은 굴뚝 같지만 시간이 없었노라고. 그러나 당신이 그 응답을 기다리는 쪽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형식적인 말은 자칫 상대방의 적의만 북돋을 뿐이다. 꼭 명심해 두라. 특출난 칭찬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꼭 그의 노고에 대해 응답하라. 그것이 교양미이고 예절인 것이다. @ff @[ 3. 믿음과 용서의 덕(덕 덕) 이타적인 사랑의 표본은 모성애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만의 이타적인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참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못지 않은 이타적인 우정을 간직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아주 너그러운 심성을 소유한 자일 것이다. 일전에 코미디언 하케트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 원한은 간직하지 않습니다. 왠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내가 원한을 간직한 채 끙끙 앓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춤추고 기뻐하며 인생을 찬미하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원한을 갖는 힘으로 생을 즐기겠습니다.' 내 남편 데이비드는 아주 너그러운 심성의 소유자이다. 그 때문에 나도 남편과 함께 있는 동안은 좀 더 너그러울 수가 있다. 내가 어떤 일로 극도의 흥분상태를 지속하고 있을 때에도 남편은 나를 설득하여 간단하게 평정시켜 주곤 한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난 후 그 화풀이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것을 나는 자주 보아 왔다. 그 화풀이는 돌고돌아 마침내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 보이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가리켜 (섭리)라 해도 좋다. 화내는 사람에게는 화가 돌아가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역시 용서가 주어진다. 무엇보다도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 누군가가 당신을 비방할 때는 어떨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악담을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된다면 당신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해 질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에 대해서 늘 불평하면서 산다. 사람이란 각각이 지닌 색깔과 기호가 사로 다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은 가장 친한 사람들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하물며 평범한 관계의 사람들끼리 불평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감추며 이해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등 뒤에서 하는 말에 신경쓰지 말라. 당신이 없는 곳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가에 관심 갖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그들이 당신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는다면 그것이 그들이 당신을 질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그들은 결국 당신을 선망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교양인이다. 당신은 결코 누군가를 헐뜯지 않는다. 당신은 남을 옹호한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늘 그를 칭찬하며 필요하다면 남과 다투면서까지도 친구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친구를 칭찬하는 사람이 되라. @ff @[ 4. 돈과 친구 물론 당신의 친구 또한 당신 못지 않게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그는 하루 8시간 또는 10시간씩 꼬박꼬박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도한 금전적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그를 도울 필요가 있을까? 좋다. 그를 믿고 돈을 빌려 주었다고 하자. 그러나 내 지론은 이렇다. 나는 내가 가난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로부터 결코 빚지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라고 해서 나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여유있는 돈을 궁핍한 친구에게 주느니, 차라리 더 유용한 다른 곳에 투자 하겠다. 돈 때문에 우정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우정이라면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고해서 멀어지지 않는다. 남자 친구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저축한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려 주지 않아서 멀어지게 되는 남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남자에게 돈을 꾸어줘 보라. 당신은 결국에는 돈과 함께 친구까지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 @[ 나쁜 소식을 전할 책임 새로운 친구는 생의 기쁨을 더해준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새로운 친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보는 주위가 필요한 것이다. 한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그녀는 점심, 저녁, 그리고 주말마다 나를 부르곤 하였다. 그것이 오랜 시간 계속 되자, 마침내 나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게 되었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할 때에 내게는 그녀가 그다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 시간에 그녀를 초대한다면 그는 나의 초대에 응했을까? 그녀는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상대방에게 선약이 있는 경우, 당신의 초대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선약이 없는 사람을 선택하라. 친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다.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하는 점은 나쁜 소식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래 나쁜 소식이란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몽땅 뒤집어 쓰게 된다. 중세에는 왕에게 불쾌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어떤 식당 주인에게 그 집 숙녀용 화장실이 망가졌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 왜냐하면 계속 유쾌하던 그 사람이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마구 화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피차간에 그 일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쾌한 내용의 편지는 보내지 말라. 최근에 코스모 지와 플레이 걸 지를 비꼬는 야비한 기사를 오려 붙인 한통의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알고보니 어떤 친구가 내가 내는 잡지에 관해 언급한 기사이므로 내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게 보낸 것이었다. 천만에! 그런 친절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다. 그 기사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나에게 필요없는 기사라면 모르고 지나가게 될 터인즉 그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 부스럼을 긁을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좋지 않은 뉴스라면 친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으로 숨겨주는 배려를 나는 바라고 싶다. 그리고 그런 심정은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ff @[ 5.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라. 내가 에크하르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서부 로스앤젤레스의 한 친구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항상 늦잠 자던 그녀가 출근시간에 늦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보답은 엉뚱한 푸념뿐이었다. '맙소사! 벌써 8시 30분이잖아! 10분 후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되는데!' 내가 뭐라고 말하려 하자 그녀는 마구 소리쳤다. '제발 전화 좀 끊어. 나 늦었단 말야!' 그리고는 꽝! 전화기 놓는 소리. 내가 그때 전화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꿈 속에서 헤매이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던 그녀는 괜히 나한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아무리 바쁘더라도 침착하게 수습하라. 힘든 때일수록 자제력이 필요한 것이다. 자제할 수 있는 힘이 우정을 지속하기 위한 첫 번째 구비조건이라 하겠다. 우리는 예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예의라는 것은 한 인간과 인간사이에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명 인사들이 때때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아주 놀라게 된다. 그런 광경을 보고 난 후라면 아무도 그 저명한 사람을 다시는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예의를 차리지 못하게 하는 교양인의 적은 피로감이다. 이를테면 운전사나 웨이터들의 무례함은 그 피로가 주 원인이다. 그들은 늘 긴장된 상태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솜처럼 지쳐있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나 나처럼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그들과는 어딘가 다른 점을 확인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지쳐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친절과 공손함을 가지고 예의를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들이 참다운 교양인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의를 지킴으로써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교양인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늘 감사하며 미안해 할 줄 아는 점이다. 실수를 했을 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을 호도하거나 무마하려는 위장된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솔직하게 과오를 시인하는 것이야말로 교양인을 교양인답게 한다. 실수를 한 것 자체가 잘못인데다가 그 실수를 위장하려는 또 하나의 실수를 더하려 하지 말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항상 사과할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을 가져라. 때로는 당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당신이 사과할 수 있다. 어쨌든 '내 실수^36^예요. 미안해요.'라는 평범한 말 한마디가 실수의 곤경으로부터 당신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과야말로 그 얼마나 상큼한 일인가! ------------ @[ 친구의 부부생활에 대한 상식 친구의 부부생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신은 조심해야 한다. 그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귀담아 들어주고 함께 생각하며 열심히 도와주는 것이 좋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하는 전부이다. 하지만 쉽게 어는 쪽을 편들지 말라. 그 부부가 다시 결합하게 되었을 때 어느 한 쪽을 책망했던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책망을 기억하고 있게 됨으로 결국 당신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친구를 동시에 잃게 될 것이다. 그 커플이 아주 영영 헤어져 버린 뒤라면 좀더 솔직하게 조언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너무 깊게 개입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이 그들의 문제는 결국 당사자 본인만이 다 져야 할 짐인 것이다. 친구는 그 짐진 친구를 단지 곁에서 도와줄 수 있을 뿐 그 짐을 나누어 주지는 못한다. 당신에겐 당신 몫의 짐이 있으므로. 친구의 하소연을 귀기울여 들어 주는 것만이 그를 돕는 길이다. 단순히 어느 한쪽 편을 책망하지 말라. ------------ @[ 친구의 성공을 칭찬하는 마음의 여유 가끔 바보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즉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그러한 푸대접이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따위 짓이란 정신착란증 환자나 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허튼 행동이다. 친구가 성공했을 때 가장 먼저 축하해 주는 친구가 되라. 가능하다면 그의 남편이나 애인보다도 먼저 칭찬해 주는 것이다. 첫 번째로 축하해 주는 사람의 이미지는 말할 수 없이 좋은 법이다. 이 말을 바꾸어보면, 당신이 나쁜 소식을 첫 번째로 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우월한 사람들만이 남을 칭찬할 줄 아는 방법이다. 사실 남의 기쁨을 함께 즐거워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서는 큰 도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그의 성공은 곧 당신의 성공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아낌없이 칭찬하라. 다만 칭찬이 너무 길 필요는 없다. 간단하게 하라. 편지일 경우에도 한두 소절 정도, 전화는 한 통화 정도의 것이면 족하다. 특히 상대가 아주 높은 지위에 있거나 유명한 인사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길고 장황한 논평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ff @[ 6. 당신의 기력을 소모시키는 사람들 당신의 친구 중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늘 문제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문제는 여간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악질적인 것이기가 쉽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당신까지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초기에는 조금 도와주던 것이 차츰 더 도와주어야 할 필요를 증대시켜서 마침내 그는 당신을 모두 짜내어 탕진해 버리고 만다. 그는 괴물이다. 괴물을 키우면 더 큰 괴물을 얻을 뿐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당신의 삶이 완전히 침식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도울 가치가 있는 사람만을 돕는다. 무언가 해결 될 실마리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꾸준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전혀 가망성이 없는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투자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해 준 일이 있다. '당신은 아무에게나 연민과 동정을 느껴서 마침내는 그들을 돕느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은 누구를 돕기보다는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 먼저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라. 당신이 그처럼 실패로 가득 찬 사람들과 교류를 계속하는 한 그 압력 때문에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능한 한 정도에서 남을 도와라.' (실패자들)만이 당신의 기력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다. 상사나 파출부나 어떤 친구들, 심지어는 당신의 어머니까지 당신의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신은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조바심으로 끙끙거리지 않는가? 용기를 내라. 그리고 정신적인 협박자들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라. 그들을 당신의 인생권 밖으로 내몰거나 무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삶을 살 뿐이므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전진하라.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 @[ 상대가 적대적일 때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헐뜯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때때로 영민하고 유쾌한 경우도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심하라. 그처럼 고십거리를 많이 알고 있으면서 영리해 보이는 여자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빌리 프리드킨은 그런 류의 한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마치 온몸에 코올타르를 잔뜩 묻힌 아이를 다룰 때와 흡사하다. 그가 밉다고 그를 때려보아야 오히려 당신에게 더러운 코올타르를 묻힐 뿐이다.' 언젠가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나머지 7 명의 손님이 모두 듣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즉 '당신은 포르델리니(음식 이름)나 무스(디저트용 과자)엔 손도 안 대시겠죠? 하지만 나는 무엇이나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녀는 자기 멋대로 나를 편식주의자로 몰아놓고는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셈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쉽게 화를 낼리가 있겠는가! 그를 욕해본 들 그 욕이 내게 튈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더구나 어느 때를 막론하고 늘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우리들의 특권이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나중에는 작별의 키스까지 해 주었다. 브라보! 그런데 그 정도를 지나쳐 아^36^예 적대적인 사람이 있다. 즉 면전에서 면박을 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최근에 어떤 사람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었다. 코스모 지의 발행인이 나를 그에게 소개했던 것이다. 즉 헬렌 걸리 브라운 여사는 '세계연감'이 뽑은 미국의 영향력 있는 25명의 여성중의 한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웃지도 않고 내게 물었다. '그래 당신은 25위입니까? 아니면 24위입니까?' 가끔 보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파티에 1시간 늦게 도착하고서는 오히려 빨리 가야한다고 수선을 떠는 종류의 인간들도 있다. 완전한 훼방꾼인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내쏘는 독소는 아주 맵다. 비행기에서 어떤 남자와 같이 앉게 되었는데 그는 내가 다른 생각에 열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는다고 분개해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 선량한 나머지 누구에게 적의를 가져 본 일이 없다. 우리들은 그런 적의가 상대방에게 줄 필요를 알고 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대신 우리는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도 않다. ------------ @[ 유명인사를 경계하라. 유명인사는 어찌하든 당신이나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상대는 물론 아니다. 나는 유명인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세워 놓고 있다. 나는 이 규칙을 당신에게도 권고 하고 싶다. 1. 조용하게 말한다. 경박스럽게 떠들지 않는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이야기한다. 흥분하거나 너무 수다스럽게 굴지 않는다. 2. 그에 대해서 많이 알수록 유리하다. 그들은 저서나 연극, 영화, 연설 등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존중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예비지식을 사용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바심내지 않는다. 나중에 빈축을 사게 된다. 3. 당신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적게 하라. 자기 스스로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게 되면 의아해 할 것이다. 소위 유명인사치고 소탈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이 좌중에서 너무 돋보이는 것도 좋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유명인사라는 것과 당신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4. 유명인사를 도와주는 사람을 경시하지 말라. 어쨌든 그들은 유명인사의 주위에 항상 있는 사람이며, 유명인사들은 대개 자신의 미용사나 안마사 등의 사람들을 아낀다. 그들을 통해서 유명인사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5. 유명인사와 가까워졌다고 생각되더라도 너무 귀찮게 굴지 말라. 예를 들어 당신은 당신의 친구 한 부대를 우르르 데리고 가서 그에게 소개시킨다는둥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명인사들은 평범한 여자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당신이 특출나게 아름답거나 큰 부자가 아니라면 그는 당신과 결혼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유명인사와는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무대나 TV 등등에서와 같이 멀리서 보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유명인사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으므로 나의 이런 충고를 이해하자면 한 두 명의 유명인사와 교제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 @[ 부끄러움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는 브랜드 아모리씨의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 부끄러움이란 수줍음이란 의미와 같은 것이며, 수줍음은 너무도 지나치게 자기 속으로 숨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심해지면 당신은 마침내 자신의 벽 속으로 기어들어가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나 또한 만성적인 수줍음의 피해자였다. 체험적으로 안 것인데, 그것은 선천적인 것으로써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잘 조절할 수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부끄러움, 즉 수줍음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의 하나로 나는 어느 장소에서건 누구에게나 말을 걸어보곤 한다. 몇 분동안 버스나 또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당신도 나처럼 하라. 극장에서도 좋고 식당에서도 상관없다.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한 두 마디의 말을 건네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지나치게 편벽한 사람을 만나 무안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정도는 대수로울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려라. 처음에는 서툴고 세련미가 부족한 자신이 원망스럽겠지만 곧 익숙해진다. 그리고 지속적인 당신의 그러한 노력이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과 그로 인한 수줍음을 고쳐 주게 된다. 나는 가능하다면 칼럼니스트 리즈 스미스씨를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그에게는 쑥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누구에게나 말을 건네고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된다. 화석(화할 화, 돌 석)에게라도 말을 건네어 그 대답을 들을 것만 같다. 도대체 스미스씨의 그런 활달함의 비밀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아주 궁금했다. 그래서 스미스씨를 계속 관찰해 보았더니, 그 비밀의 해답은 (마음을 활짝 여는)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확트인 마음은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할 것이고, 서로 어색하지 않게 자유스런 대화와 교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건 내 에피소드이다. 한 20세 가량의 금발 미녀가 수십켤레나 되는 구두를 놓고 고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딸을 너무도 위하는 미녀의 어머니가 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침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문득 외쳤다. '맙소사! 지네만큼 많은 발을 가졌어도 이 신발들은 다 신지 못하겠어요.' 그러자 그곳에 있던 엄마와 딸과 구두가게 주인은 마치 미친 여자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런 말을 함으로써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그것도 나의 자기 훈련, 즉 수줍음을 조절하기 위한 훈련 중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 @[ 소외감을 극복하자. 수줍음보다 더 나쁜 것, 그것은 소외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고도(외로울 고, 섬 도)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한 소외감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주 오래 계속될 때 결국 당신은 일생동안 그 무게에 짓눌리면서 살아갈 것이다. 자! 우리 함께 무섭고 큰 병인 소외감을 이겨내 보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당당하고 자신에 찬 사람이라는 신념을 확고히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가 있다. 누구나 소외감을 느끼는 어떤 상황에 부딪치게 마련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우리가 그 소외감에 너무 집착해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그런 정도의 일로 심각해 하지 않는다. 내 남편 데이비드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어느 날 나와 데이비드는 패션계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데이비드가 패션 같은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패션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데이비드가 잘 알아 듣지 못하리라는 점도. 그런데도 데이비드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다. 데이비드는 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 것뿐이지 심각하게 그들의 문제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낯선 곳에서는 그만 나 자신이 무너져 버리곤 하는 것을 경험한다. 예를 들면, 내가 자식이 없으므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잘 상대하지 못한다. 또 유명한 연예인이나 내 분수에 넘치는 화려한 보석들도 나를 기죽게 만든다. 뉴욕의 일급 모델들의 그 날씬함과 완벽한 육체! 그 앞에서 그만 코가 납작해져 버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겠지만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을 때가 있다. 절대로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축복받은 사람도 있고, 남을 안심시켜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남을 편안하게 안심시켜 주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상대이다. 때로는 아주 저명한 인사이면서도 그처럼 스스럼 없는 소탈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기적같이 있다. 남편과 함께 친구집에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만난 일이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쯤 되는 유명인사라면 나같은 평범한 수줍음쟁이는 기가 죽어있어야 마땅할텐데도 그날 나는 아주 우아한 태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나의 우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스스럼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고인이 된 졍폴 비터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된다.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와 우리 부부 그리고 그를 따르는 도사견 한 마리뿐이었다. 고기가 섞인 음식과 차가 나왔다. 그런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였다. 그때 비터는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헬렌, 당신은 숙녀시니까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시겠지요?' 이런 세심한 배려가 나 같은 수줍음쟁이를 구제해 주는 것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소녀시절에 한 번 정도의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가 은근히 짝사랑하던 소년이 자기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참담함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여자 아이에게 가버렸던 것이다. 몇년 동안이나 나는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사실 내가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기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도 그 아픔 때문이었다. 그 뒤 고향에 가서 다시 그 소년^6,36^이제는 중년남자인^36,3^을 보았다. 그는 아^36^예 나를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나는 제법 이름있는 여자가 되어 있었지만 그는 뚱뚱하게 배가 나온 평범한 속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문제도 어찌보면 결국 이런 것일지 모른다. 너무 위축되지 말라. 굳은 마음가짐으로 앞을 향해 나가라. 내가 경험으로 얻은 다음의 몇 가지에 유의하도록 하자. 이 원칙들이 당신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외로움은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 여자들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와 같이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한 우리는 감정이입에도 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런 소식을 소양을 이용하기로 하자. 즉 예민한 감수성으로 상대방의 변화를 즉시 파악한 후, 그가 당신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즉각 이야기를 중단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감정이입을 활용하여 자신을 콘트롤 하는 것이다. 다만 감수성의 활용은 여기에서 그쳐야 한다. 사교상에서의 실패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든지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2. 외로움이란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끔씩 느끼는 마찬가지의 감정임을 생각하자. 당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다. 그리고 그 상처가 비록 고통스럽기는 해도 결국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 활발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그들 중에는 사람들과는 잘 어울릴지는 몰라도 그 밖의 면에서는 거의 바보같은 여자들도 많다. 반면에 당신은 좀 내성적이긴 하지만 그 점만 제외한다면 그들보다 백배는 뛰어난 여성이다. 자신을 가져라. 4. 비록 당신이나 나와 같이 쑥스러움을 잘 타는 사람들이라 해도 대중 속에서 때때로 (스타)가 될 수가 있다. 즉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에만 해도 그렇다. 외로움의 오랜 기간이 지나자 나는 '성과 독신녀'로써 유명인이 될 수 있었다. 출판기념회장에서 나는 여왕처럼 대우를 받았다. 5. 자연스럽게 조크를 던져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어들은 멋진 농담을 이용해 보겠다고 너무 의식하지는 말자. 때때로 그것의 억지스러움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6. 당신보다 더 문제투성이의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당신에게 시시콜콜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불안한 태도와 서먹서먹한 말씨를 보며 당신은 자신이 너그럽고 여유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7. 불편할 때는 누구든지 침묵할 자유가 있다. 자칫 당신은 당신의 침묵이 서투름의 소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재미없을 때에는 침묵할 배짱을 가져라. 8. 상점의 여자 판매원들이 당신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저희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당신이 들어서면 마치 귀찮다는 듯이 상대하게 된다. 그럴 때는 당신은 당신의 일만 보라. 그런 부류의 인간들의 비위를 맞추어 줄 만큼 우리의 너그러움이 풍족해야 할 필요는 없다. 9. 모임에서의 대화가 낯선 주제로 흐르고 있는 동안은 그냥 침묵하고 있어라.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가 당신과의 대화를 원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모나리자와 같은 미소말이다. 그리고 긴장을 풀고 그들의 말에 동조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로 그들의 눈동자를 주시하라. 10. 사소한 상식들이 당신을 구해 줄 수도 있으므로 당신은 중요한 잡지나 신문들을 수시로 읽어두어라. 대충 이런 정도이다. 당신은 이제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여성이 된 것이다. @ff @[ 7. 친구의 애인 친구의 애인에게 멋진 여자로 보이기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남자들이란 자기 애인의 친구에 대해서는 보통 아주 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자기 사람이 되어 버린 자신의 애인보다는 자기 애인의 친구에게 관심이 쏠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쉽게 그에게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 흔히 어느 연속극이나 영화에서처럼 그에게 쉽게 말려 들어가다가는 당신의 일생을 그릇 되게 하기가 쉽다. 조용히 거절하라. 그는 당신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자신의 애인에게 매달려 있는 것에 싫증을 느꼈을 뿐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한편 당신은 그 남자의 호의를 절대로 당신의 친구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당신의 애인이 당신의 친구에게 접근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너무 질투하지 말아라. 그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애인 또한 당신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만약 당신의 친구가 그이의 애인이었다면 이번에는 거꾸로 당신이 그이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테니까. 당신은 조심스럽게 주의하기는 하되 지나치게 질투하는 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 @[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 루이스 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매력이란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연습과 반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매력이 몸에 배어든다.' 나는 매력이란 상대방을 염두에 두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에서 우러난다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말은 유모어 감각을 수반하게 된다.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리는 전혀 없다. 지혜로우며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가히 천재적이라 할 사람도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최근에 영국의 어느 작가의 방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녀는 겸허함과 온화함 그리고 다정함이 갖추어진 말씨였다. 그녀의 태도에 매료된 나는 코스모 지의 캔버스 휴대용 가방을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 선물은 사실 참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진심으로 맘에 든다며 나를 칭찬하고 자신의 소지품 모두를 그 새 가방에 챙겨 넣는 등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분명 호감이 가는 여자였다. 매력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바로 감정의 문제이다. 가령 8월의 어느 날, 당신은 필링(치과에서 쓰는 충전제)이 떨어져서 치과를 찾아갔다고 하자. 간호원이 나와서 의사 선생님은 휴가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이 이 지독한 한여름 날 시내에서 일에 쫓기고 있음을 깨닫고 새삼 울컥 울화가 치밀 것이다. '맙소사! 이런 날 일하고 있는 건 나뿐이잖아!' 그러나 당신 앞에 간호원이 있음을 상기하라. 당신 뿐이 아닌 것이다. 그녀 또한 지금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좀 더 우아한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당신과 나만 남았군요! 이런 여름날에 말이^36^예요.' 그리고는 살며시 웃어 보이도록 하라.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50 퍼센트는 천성에 속하고 나머지는 노력과 훈련과 자제의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에 살펴 보았듯이 아주 (우아한)품성의 소유자들이다. 조금만 신경 써서 노력하면 당신은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ff @[ 8. 대화법 @[ 신중히 듣고 성심껏 얘기한다. 열심히 잘 듣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매너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을 쌓아보면 이 말이 진실임을 믿게 될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열심히 귀기울여 듣는 사람이라면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롭게 풀려나가게 마련이다. 사람들이란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태도보다는 대개 자기를 드러내려는 욕망이 앞선다. 그런 소중한 경청의 능력은 그다지 천부적 재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남다른 기술도 필요없이 다만 겸손한 마음만 기지면 되는 일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청은 얼마나 쉽고도 기가 막힌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경청하는 것이 반드시 이타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경청에는 몇 가지 까닭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 화자에게 존중받기 위해서 2. 상대방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3. 상대방의 비난이 두려워서 4. 귀찮고 게으르니까 등등 그런데 가끔은 아주 곤란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즉 상대가 아주 필요없는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그리고 장황하게 지껄이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는 지체없이 그 곳을 떠나라. 그런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총명의 표시가 안 된다. 멤피스에서 아틀란타로 가는 동안에 만났던 사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쉴새 없이 지껄여댔다.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 그리고 뉴욕 포스트 지를 읽고 나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3시간 동안 내내 떠들어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려고 노트를 꺼내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한 달 뒤에 그는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는지 편지를 보내왔다. 그 내용은 자기가 내게 이야기했던 것들이 언제 출판되느냐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런 종류의 극성스러운 사람이 아닌 이상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라. 당신은 어쩌면 뛰어난 화술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기가 막힌 이야깃거리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심하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화술이나 경험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정녕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처럼 두려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대화는 (동등하지) 않다. 즉 은 편은 좀더 많이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또 다른 한편은 아주 조금만 말하게 된다. 그가 많이 말하는 쪽이라면 당신은 조금 참아두는 것이 좋다. 그가 지쳐 버린 다음에 당신 차례가 온다. 오히려 당신이 먼저 다 말하여 버리고나면 화제가 바닥나서 고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나는 당신에게 훌륭한 경청자가 되는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상대에게 기회를 주어라. 그의 이야기 도중에 당신에게 기발한 새 이야깃거리가 갑자기 생각난다고 하더라도 참는 것이 좋다. 중간에 참견하는 사람은 못나보이는 법이다. 2. 이야기의 줄기를 놓치지 말라. 쉽게 다른 화제로 대화의 줄거리를 옮기려 하지 말라. 3. 이야기가 끝난 것 같아 보이더라도 잠시 기다려라. 그가 아직 미진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금 충분히 이야기 할 기회를 주라. 그리하면 당신은 아마 (놀랄 만큼 훌륭한 대화상대)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4. 당신이 다른 생각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버렸을 경우 솔직하게 고백하고 정중히 사과한 다음 다시 이야기를 부탁한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당신을 성실하며 총명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5. 긴장을 풀고 이야기에 전념하라. 6. 겸손하라. 물론 당신이 그보다 우수하며 아는 것이 많다할지라도 겸허해야 한다. 7.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욱 신경을 쓰기로 하자. 즉 그와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두는 것이다. 그의 아이들의 이름, 직업, 생일 등 그렇게 하면 만날 때마다 물어보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50명분의 메모 노우트를 가지고 있다. 8. 결코 아름답거나 멋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도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미인일 경우에는 오히려 칭찬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미인임을 알고 있을테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칭찬받아야 한다. 남을 칭찬하도록 하라. 당신은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이야기해 버리고마는 그런 바보는 아닐 것이다.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당신의 처세술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상대방과 의견을 달리할 줄 알만큼의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잠시 유보할 줄도 아는 여유 또한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친구들이라면 전자, 당신의 고용주라고 하면 후자가 그 상대들이다. 코스모 지의 편집자인 보비 애쉴리는 내가 이야기할 때는 약 90%의 시간 동안 열심히 듣는다. 그것은 순전히 인내심임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상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태도는 마지못해 듣는 것 같지가 않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하다. 그러한 태도가 상관을 기쁘게 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50:50의 대화가 있는 반면 이처럼 90:10의 대화도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당신의 일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마구 이야기하고 다닐 이유가 없다. 여자들은 비밀을 잘 간직해 두지 못하는 성질이 있어서 중요한 기밀조차 쉽게 털어버릴 때도 있다. 중요한 국가간의 기밀이 새어나가는 통로는 대부분 고위직 남편을 가진 여자들을 통해서라는 통계까지 나와 있다. 입을 조심하라. -------------- @[ 전화 에티켓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전화이다. 전화 없이는 거의 하루도 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전화에 관한 에티켓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 전화를 할 때에는 언제나 상대방의 형편을 물어 보라. 통화를 오래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면 이처럼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미처 묻지 못했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그의 은근한 메시지에 유의 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통화의 계속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 당신에게 걸려 온 전화를 끊고 싶을 때는 '의사와 약속이 있어.'라든지 '해리가 아래층에 와 있어.'라는 식으로 거절하지 말고 보다 부드럽게 하라. 즉 '신디, 아주 재미있었어.'라고 해도 좋고 '그래. 그래^5,5,5^ 나중에 또 듣기로 하자.' 등도 좋다.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당신의 심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둔감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이 직접적인 말을 해야할 것이다. 그건 실로 난처한 일이다. 당신은 제발 그런 전화 상대자가 안 되기를 빈다. 3. 정보를 알기 위한 목적으로 전화했는데 상대방이 잘 응해주지 않을 때는 이렇게 말하라. '알겠습니다. 이제 두가지만 더 묻고 끝내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통화가 얼마나 걸릴지를 눈치채고 응해 올 것이다. 4. 전화 용건을 속이지 말라. 그처럼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일은 없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라. 괜히 장시간 주위만 돌지말고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라. ------------ @[ 초대와 방문은 이렇게 하라. 친구를 초대한다는 일은 즐거움이다. 파티는 집안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준다. 그때 당신은 주인이며, 아주 바빠진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 아름다운 꽃들, 은은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 얼음 달그락 거리는 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5,5,5^ 파티는 당신과 친구를 더욱 가깝게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음은 파티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이다. 1. 초대할 손님을 신중하게 선택하라. 초대 될 손님들끼리의 관계도 고려해야만 될 문제다.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간을 엄수하도록 부탁하라. 도착 시간과 파티 개최 시간, 끝나는 시간, 귀가 시간 등을 예정해 두고 사전에 알려 주어라. 함께 초대된 사람끼리 서로 알게 하면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개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당신의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즉 뒷바라지만 할 것인가, 아니면 손님들과 섞여 파티를 즐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혼자서 두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는 없다. 또한 손님들 측에서 직접 음식을 갖다가 먹는 것인지, 아니면 초대한 측에서 갖다 주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 4. 손님들을 주의깊게 보살펴라. 혼자 외톨이로 떨어져 있는 손님을 격려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어느 파티에서도 그런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5.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렇다면 당신이 손님으로 초대되어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는 어떨까? 우선 당신은 기우를 버려야 한다. 즉 초대장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뿐 실제상으로는 나의 참석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라는 등의 전혀 쓸데없는 생각은 버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결정은 당신 스스로 해야 한다. 다만 미리 연락을 하라. 못 가게 되었을 때, 또는 가고 싶지 않을 때에도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을 만큼 성실한 태도로 말이다. 일단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 당신의 특징인 소외감이 들 수도 있으나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라. 그리고 대화할 상대를 찾는다. 어느 파티이건 당신과 비슷한 상황으로, 누군가 대화할 사람을 찾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재미있게 어울리고 있는 그룹속에 억지로 끼어들려고 하지 말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움과 우아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반대로 어떤 지겨운 상대에게 장시간 매여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조심스럽게 그로부터 빠져 나온다. '이제 주인을 좀 도와 드려야겠는데요^5,5,5^' '죄송합니다. 나중에 조용히^5,5,5^' 등등의 공손한 태도로. 파티가 끝나고 돌아오게 될 때^6,36^또는 파티 중에라도^36,3^꼭 주인에게 인사와 함께 칭찬을 건네라. '멋진 밤이었어요!' 그때를 놓쳤다면 귀가 후 또는 그 이튿날쯤 전화를 걸어 주어라. 혹은 꽃이나 엽서를 보내는 것도 좋다. @ff @[ 9. 선물 정다운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선물만큼 아름다운 것이 다시 있을까? 당신은 자주 선물을 주는 친구가 되도록 하라. 그 선물이 비싼 값의 것이든, 싼 것이든지 상관없다. 오히려 값 비싼 것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실용적인 선물이 더욱 좋을 경우도 있다. 선물을 받으면 답하라. 편지나 전화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보낸 쪽에서는 선물이 무사히 도착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늘 엽서를 사 두었다가 엽서를 이용한다. 자!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거의 다 한 셈이다. 아무튼 친구란 평생의 보물이다. 목숨까지 걸고 우정을 지킨 로마인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널리 사귀고 깊이 이해하라. 성실과 끈기와 사랑만이 그리고 너그러움과 겸허함과 관용이 우정을 깊고 오래 유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ff @[ 제4부 여성과 직업 @[ 1. 직업은 남성을 매료시킨다. 매력있고 사랑받는 여성이 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역시 당신의 직업에 있다. 돈과 성공 그리고 당신의 옷은 당신의 직업으로부터 파생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이야말로 당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주며, 인생을 윤택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또한 당신의 직업의 종류에 따라 곧 당신이 어떤 남자와 만나게 될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가에 대한 문제도 당신의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여비서라면 데이트 신청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회계직 간부라면 데이트 신청을 받을 때 남자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줄 것이다. 설령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때문에 훌륭한 남자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안정되고 매력있는 남자들^6,36^내가 말하는 좋은 남자^36,3^은 당신이 그들과 동등한 직업의 여성이거나, 적어도 중요한 직업을 갖고 있을 때 더욱 깊은 인상을 갖게 된다. 실제적으로 여성의 성공에 냉소를 보내는 남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요즘 남자들은 소극적인 여자보다는 적극적이고 실천력있는 여자와의 사랑을 즐기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비서를 깎아 내리는 것인가? 천만에! 나 또한 비서직으로 13 년간 근무했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비서로 출발하는 길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다른 자리로 이동할 때에는 많은 보수와 좋은 남자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처음에는 직업상의 수준에서 그를 대한다. 그 후엔 그의 주위에 머물면서 그를 매혹시키고, 성적으로 그를 사로잡는다. 물론 섹스도 우리에게 만족감과 생의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현재보다 더욱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며, 바다의 수달처럼 우리의 생을 만끽할 수도 동시에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당신이 만나게 될 남자에 초점을 맞추어 당신에게 훌륭한 즉 중요하고도 어려운 직업을 권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훌륭한 직업을 권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훌륭한 직업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직업이 가져다 주는 생활의 질적 향상과 정신적 행복에 있다. 일(그리고 일의 즐거움)과 사랑(그리고 사랑의 즐거움)이 두가지는 정상적인 사람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이들, 즉 나의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여하튼 무기력한 남자보다는 야심있고 성취력이 강한 남자와 함께 있을 때 당신은 훨씬 만족스러운 사랑과 인생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당신 역시 활동적인 여자라면 그러한 남자들은 당신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 @[ 멋진 남성과 인생의 행복의 발견처 일반적으로 대개의 여자들은 좀더 평이한 길, 즉 이를테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생을 멋지게 장식하고자 한다. 하기야 적령기의 여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괜찮은) 남자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싱싱한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섹시하고 아름다워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힘든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그 상큼한 젊음 하나만으로 (좋은) 남자를 구할 수도 있고, 또한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에서 인생의 바람직한 모든 것을 얻고 난 후, 훌륭한 남편의 사랑받는 아내로서 병원 자선위원회나 자선단체 기금 모금에 참석하고 일주일 중 하루는 박물관에서 보내는 생활을 못하란 법은 없다. 아직도 많은 여성의 인생 목표가 바로 이런 생활인 것 같다. 이들은 자신의 남편은 중요한 직업을 갖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은 그저 남편의 정신처인 내조자의 길만 걷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따금 지루함을 달래고자 요리강습소나 사소한 직업을 가져볼 뿐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재클린 오나시스, 재키의 여동생인 리 라드지윌 그리고 그레이스왕비 등을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 어리석고 불쌍한 여성들이여! 재키조차도 나이 마흔 여섯에 이르러서야, 부자가 되고 존경받는 아름다운 여성이 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지 않았는가! 7 년 전 편집인으로서 직업대계에 뛰어 들었다. 그녀의 여동생 리 라드지윌도 역시 실내 장식가로 일하고 있다. 그녀들에게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크리스티 해프너와 크리스티나 오나시스는 아버지의 기업체를 운영하거나 운영을 돕고 있다. 그렇다면 그레이스 켈리는 어떤가? 아마도 그녀가 모나코의 왕비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그녀의 직업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계의 스타였기 때문에 모나코의 왕의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레이스는 연기 생활을 계속하려했는데 왕이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나코의 사업에 그녀의 모든 힘을 쏟았다고 한다. 6 년 전 그녀는 20세기 폭스나^6,36^이 영화사가 민영화 되었을 때 그녀는 떠났다^36,3^에 중역으로 들어갔다. 그 밤에도 그녀는 미국에서 시집과 책을 출간하였다. 그만큼 왕녀들에게도 왕녀로서의 일이나 궁중생활보다는 그들을 조금씩 줄이고 스스로의 직업에 몰두하는 것이 곧 행복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지적하지만 죤 케네디나 레이키에 왕자 같은 남자들은 당신이나 나와 같이 자격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유명하지 않은 여자들과는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우나 모델, 부유한 집의 딸, 돈 많은 여자들과 결혼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의 아내는^6,36^여기에 내 말의 주제가 있다^36,3^단순히 아내나 엄마의 역할 만으로 행복해 하지는 않는다. 최근 굿 모닝 아메리카 지에서 로렌베이칼 씨가 데이비드 하트만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당신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곧 일하는 것임을 말해준 겁니다.' 그리고 F. 스코트 피츠제럴드는 그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는 일이 존엄하다는 것을^5,5,5^ 유일하게 존엄한 것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단다.' 존엄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취한다는 것 이상 좋은 것은 없다. 남자들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아마 당신이 슈퍼맨을 잡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함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슈퍼맨 즉 아름답고 훌륭한 남성은 바라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너무도 사랑한 그 사람과 결혼한 후 그는 계속 성공을 거듭하게 되고, 마침내 그 멋지고 아름다운 남자는 당신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어 당신 곁을 떠나갈 수도 있다. 또는 결혼 후 점차 실패를 하게 되어 마침내 중년기의 위기나 직업상의 혹은 그밖의 불안정으로 인해 당신이 그에게 염증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내가 관찰해 보건대, 남편과 비슷하게 좋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비율이 낮다. 그리고 헤어졌을 때에도 사태를 잘 수습한다. 당신의 경제적인 상태가 어떻든지간에 당신의 남자 이외의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남편을 계속 잡아둘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당신이 계속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렇다 집에만 틀어 박혀있다면 결코 멋진 남성도, 인생의 행복도 찾을 수 없다. 멋진 남성은 직장에 있으니까 말이다. @ff @[ 2. 시작이 중요하다. @[ 여하튼 직업을 가져라. 자! 이제 출발하자. 당신이 비록 어떤 특별한 인물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의 재능을 묻어버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당신은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그 직업이 어떤 것이냐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꼭 그 직업이 마음에 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어떤 하찮은 직업은 당신에게 성공을 약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직은 당신에게 그 분야에 발을 내딛게 해 준다. 일단 그 분야에 들어 섰다면 당신은 성장하여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몇 살인가? 19세? 21세? 30세? 몇 살이든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이 직업을 필요로 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면 당신이 젊든지, 나이가 들었든지간에 가장 미미한 곳에서부터 출발하여 점차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계속 그 직업 머물러 열중하기만 하면 당신은 점점 발전하여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사실이다. 어느 회사의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출발 그 자체이며, 그리고 계속 근무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내가 처음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해 보겠다. 그 직업은 아주 초라해 보였고 나도 몹시 비참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로스엔젤레스의 KHT라디오 방송국의 아나운서 비서로 근무했다. 비서학교에서 속기와 타이핑을 배우면서 일 주일에 6 달러를 지불했다. 아직도 그 남자가 새로 채용된 비서직 지망의 멍청이들에게 소리 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부수어 버릴듯한 고함이었다. 18살에 그 직업으로 시작하여 그 후 16번이나 옮겨다니면서 계속 비서직으로 근무했었다. 모두 하찮은 것이었다. 25세가 되어서야 좋은 비서직을 구하게 되었으며 그 일에 익숙해졌었다.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했던 8 년이었다! 당신은 첫 직장에서 얼마나 열심일 수 있는가? 시간당 5 달러를 받는 직업이라면 굉장한 열성을 보일 기분이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은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일은 아마 몹시 고될 것이다. 그런 한가지 직업으로 당신이 직장을 옮기게 되기도 하고, 그 분야에서의 재능^6,36^누구나 어떤 재능을 갖고 있다^36,3^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당신도 이른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ff @[ 3. 동료와의 성관계 섹슈얼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섹슈얼하다는 것은 곧 여자의 육체를 사랑하고 여자임을 사랑하는 것이며, 아울러 남자를 사랑하고 남자의 몸과 당신의 몸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 중 당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남자들은 섹슈얼한 것과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할까? 이것은 비교할 수 없다. 즉 둘 다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도 동시에 남자들 사랑하고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승진을 하게 되면 점점 남성화 되거나 돌처럼 냉철해지기 쉽다. 하지만 당신이 관리가 된다거나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해서 당신의 내면조차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며 당신의 생각과 모습까지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사람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쓰면서 감독할 필요는 없다. 대개는 직장의 남성들보다는 남편에게 언성을 높여 쇳소리를 내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보다 무너진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돈이 더 많이 투자됨을 명심하고 행동하라. 매력이나 섹시한 모습만 두고 말한다면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여자들이 직장 여성보다 가꿀 시간도 많고 해서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다. 남편이 저녁에 일찍 귀가하지 않고 직장에 오래 앉아 있거나 여성 교제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에 성공한 여자들이야말로 가장 섹시한 여자들이다. 그녀들은 발랄하고 적극적이며 또한 남자만큼이나 바람직하고 숭배받는 인물이 됨으로써 남자에게 도전한다. 직장은 당신으로 하여금 아름답고 섹시하지 않으면 감히 대할 수 없는 남자들과 접하게 해 주기도 한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섹스 행위에 관해서 말하자면, 일에 대한 정열과 남자에 대한 정열은 완전히 연관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열정과 정력이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깊은 사랑을 함과 동시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장이나 상사 또는 고객이나 동료사원 등 지장에서 접하는 뭇남성들과 이야기할 때도 그들의 눈을 쳐다보며, 당신의 섹시한 모습을 한껏 보여 주라. 물론 남성들에게 눈꼬리를 치며 유혹함으로써 성적인 것을 당신의 일에 이용한다는 어느 정도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의치 말라. 성적인 것도 당신이 해야할 일의 일부분이다. 성과 일을 구분하지 말라. 나도 수년동안 그렇게 해 왔다. 여성과 남성이 세상에 존재한 까닭에 섹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실에서 서로 접촉한다든가 감정이 불붙는다는 것은 좀 곤란하다. 당신은 남자를 만날 때 저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난 그렇다. 차고 수리공이든 모로코호텔 지배인이든 아무에게든 나의 호기심은 고개를 든다. 사무실에서 맞은 편에 앉아 일을 하는 남자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반대의 생각이다. 즉 오히려 사무실 내의 남녀간의 성적인 긴장과 흥분상태가 직업을 완수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나는 성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고 일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ff @[ 4. 사장이나 상사와의 섹스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승진이나 좋은 자리를 목적으로 상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설사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 한 그들이 당신에게 높은 자리를 허락했다 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두뇌와 재능 없이는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진심으로 그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별 문제이다. 사장이나 상사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정도를 벗어나 지나치게 섹스에 대한 요구만으로 당신을 괴롭히고 그래서 당신이 이치에 맞게 설명이 계속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50 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는 구직란이 아주 심각했기 때문에 거절할 처지도 못 되고 사장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쉽게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좀 언짢은 일은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각하거나 몹쓸 상황이 벌어졌던 일은 듣지 못했다. 내가 음악회사에 근무하던 때에 어느 상사가 처리하지 못한 일을 끝내기 위해 일요일날 회사에 나오기를 청한 적이 있다. 그는 굉장한 골동품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그의 사무실로 나를 안내해서는 때때로 나를 안아보고 키스도 했다.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곤경에 빠진 것도 아니다. 해마다 수많은 남성 고용주들이 비도덕적인 제안들을 무방비적인 여성 근로자에게 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TV인터뷰에서 5 년 전 일어났던 부도덕한 성행위를 이유로 고용주를 고발한 여성을 보았다. 그녀의 정당성은 이해하지만 증오와 소송, 벌금을 물리는 행위로 고용주를 파멸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5 년동안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 사장이나 상사가 당신이 원하지 않는 섹스를 요구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럴 경우 화를 낸다거나 너무 딱딱하게 대하면 오히려 매력 없는 여성이 되고 만다. 유머스러한 기지로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매력 있는 거절)을 할 줄 아는 여성이 되도록 하라. (신입사원 시절) 지금까지 나는 여성에게 있어서의 직업의 의미와 직업이 당신 일생에 미치는 영향, 여성의 진정한 행복 등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 했다. 이제 당신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직업전선에 뛰어들 것이다. 성공과 행복과 매력적인 남성을 만날 수 있는 직장생활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말하자면 직장 초년병, 즉 햇병아리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바람직한 처신이 될 것인가? 이제 그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ff @[ 5. 직장일에 능숙하기 위하여 당신이 첫 직장에서 비참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경우보다 훨씬 빨리 밝아질 수 있는 출발상태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 집안 사정은 참으로 절망상태였다. 소아마비인 내 동생 메어리는 휠체어에 앉아 사람들에게 무슨 TV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지를 전화를 통해 알아보는 닐슨 회사의 시청률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불과 시간당 40 퍼센트를 받고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시어즈로빅 백화점의 상품 티켓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다. 따라서 나의 주급 18 달러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마 나에게 평생토록 아픈 흔적을 남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전혀 조급하게 처신하지는 않았다. 나는 20 대일 때 직장을 6번씩이나 옮겼는 데 한 번은 라디오방송국의 스티립트 걸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10 대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본 중에서 변동된 부분을 등사실로 갖다주는 도중 NBC 방송국의 복도를 조용히 지나가면서 빙 크로스비의 쇼 연습 광경을 보곤 하였다. 한 번은 직속 상사인 어느 프로듀서가 음향효과에 들어 갈 목록을 작성하라고 시켰는데, 나는 거기서 자갈 밟는 소리 삐그덕 거리는 문소리 문에 못박는 소리 등 가장 중요한 것 3가지를 빼먹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쇼에 나오는 여러 초대 손님들에게 리허설을 하러 NBC 방송국에 나와 주십사 하고 부탁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리허설은 연기 되었고, 난 그만 가장 중요한 초대손님 한 명에게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그 유명인사 한분이 리허설 하기위해 스튜디오에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크나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1941 년 12월 7일 진주만 폭격의 날 KHJ라디오 방송국과 나와 같은 부서에 있는 다른 비서들은 그 엄청난 뉴스를 듣고 급히 서둘러 곧장 방송국으로 달려갔었다. 나도 그 뉴스를 듣기는 들었다. 그러나 진주만이 우리 KHJ방송국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몰라서 그냥 다시 자버렸다. 그 밖에도 근무하는 날에 독 있는 담쟁이 덩굴에 찔려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산이나 바다로 도망갔던 적도 있다. 그 다음 날은 진짜 아픈 듯이 보이려고 마그네시아 유를 팔과 다리에 바르고 출근 하는 것이다. 맙소사! 내가 그런 일을 했다니^5,5,5^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맨 처음 직장생활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안절부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로 28세 30세 정도는 되어야 회사에서 가치있는 인물이 되어 높은 급료를 받고 여자로서의 모든 기회가 활짝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에 서투르거나 능숙하지 못하다고 해서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일하면 점차 경력이 생겨 익숙해질 것이다. ------------ @[ 값싼 부탁으로 성공 할 생각은 버려라. 영화사 사무실 급사가 제작자를 최면에 걸어 그의 비서와 함께 그 제작자가 만든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에 등장하게 된다는 식의 30 년대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꿈을 가로채는 류의 뻔뻔스러운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달리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직 햇병아리 사원인 당신이 큰 기회를 포착하고자 경영자의 사무실에 접근한다든가 또는 그의 여름 별장에서 함께 잔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명심하라. 당신은 당신의 상사가 당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등 그들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윌리암 모리스 대행 업체에 비서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콜리스아커 라디오 쇼의 진행을 담당할 여배우에 지망하기 위해 상사에게 부탁 했다. 여배우! 휘황찬란한 조명! 명성! 난 출연 준비를 한답시고 이틀도안 부산을 떨고 잠을 못잤다. 그러느라고 결국에는 오디션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 볼 여유 조차 없게 되었다. 나의 온갖 노력의 결과는 굴욕적인 창피뿐이었다! 대사는 물론이고 전화연락도 못할 정도였다. 친구나 상관 또는 모르는 사람에게 강제로 부탁해서 당신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것을 통해 성공의 기회를 얻으려는 행동은 그 어떠한 것도 아^36^예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일자리 또는 밑바닥 일자리보다 좀 나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는 당신의 가족이나 친지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그때 실제로 당신이 아직 배우지 않은 일에 자격을 갖추자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초기의 노^36^예와 같은 직업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연줄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볼 만한 친지들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나는 좋지 않은 일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남에게 값싼 부탁 하지 말고, 당신의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라. 당신이 해야할 분량보다 더 많이 일하라. 공부하라. 차근차근 순서대로 밟아 올라가라. 선행을 쌓아라. 그러면 마침내 당신은 발전되어 누구나가 알아주게 되며, 또 어느 누구도 당신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ff @[ 6. 직장의 필요성 34살 때 여성으로서는 첫 감독관이 되어 거친 선원을 다루는 뉴욕 항만청의 감독관인 수잔 헤일 브론은 이렇게 말한다. '10 대 시절 당신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갈 때 당신은 여름내내 빵집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아무도 그리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나로 만들어 준 것이다. 나는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일해야 했던 것이다.' 당신의 가정, 건강, 용모, 경제적인 여유 어느 것 하나 변변치 못하고 배경 또한 별 볼일 없으면 누가 당신을 도와줄 것인가? 인생에서 일찍 문제에 부딪치는 것은 당신의 발전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바바리 윌터즈와 유능한 에이젠트 슈멩거즈 두 사람의 예를 들어 보자. 그들은 말하기를, '당신이 남다른 특권을 누리고 젊은이로서 고통을 당하지 않은 편이라면 당신은 인생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뉴욕 타임즈의 여성 지도자에 대한 기사에서 게일 쉬헤이는 인터뷰 대상자 모두가 어렸을 때 한쪽 부모의 사망 또는 자포자기한 상태, 아버지의 실패에 따르는 만성적인 생계의 불안정 등의 위기를 겪었다고 말한다. 한 예로 제인 폰다의 아버지는 잠시 헤어져있는 것으로써 가정을 등졌다. 그녀가 사랑했던 아버지는 갓 10 대를 넘은 여자와 사귀었고 어머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폰다 부인은 죽었고, 제인은 당분간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음을 알았다. 로빈 듀크는 국립 낙태의 권리를 위한 행동연맹 회장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훌륭한 골퍼였으나, 실제로 생활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만성적인 생활의 불안정은 내게서 항상 떠나지 않았고, 내게 강한 책임관념의 열쇠가 되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조안 리버즌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요약해서 이야기했다. '완전한 행복으로 생활이 보장된 아인 후에 자라서 호감가는 깔끔한 사람이 될지는 몰라도 제네랄 엘렉트릭 사(회사 사)의 총수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용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신만이 아는 일이다. 멋지게 생긴 여자는 평범한 인생의 길에서 다른 길로 빠지곤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부호, 유명인, 또는 중요한 위치의 인간들에게 매력적인 용모 때문에 눈에 띄어 일찍 결혼하게 되고 임신하고 이혼할 때까지 어머니로서 여주인으로서 행세하며 살아가지만 이혼 후에는 인생 초기보다 진지한 일생을 살아가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여성은 일생 동안 어린 자식과 함께 보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인가에 보람을 느끼고, 그러한 삶을 창조하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멋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 @[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킨다. 누구에게나 뛰어난 소질이 몇 가지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젊었을 때는 그 징후만이 약간 나타난다. 아마 30 대쯤 되어야 자신의 전문적 재능이 나타나고 직업으로 택할 수 있을 만큼 형성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증권시장의 동향을 예측할 수도 있고, 훌륭한 연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전문적 재능은 모두 서로 각기 다른 것이다. 나의 재능은 사업관계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 어쨌든 당신의 재능은 직업을 가진 후에야 갈고 닦여져 빛을 볼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일찍부터 알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떤 직업에 적합한가를 알기 위해 적성검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내 생각엔 그 검사가 크게 도움을 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당신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곰곰이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끝내는 지쳐 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직업을 가지고 자신을 시험해 보면 당신의 직업에 관한 결정이 쉬어질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당신이 직업을 갖고,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의 재능이 확인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어떤 재능들이 있을까? 당신의 재능은 무엇일까? 나는 재능을 4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즉 (딱딱한 사색가)로 분류되는 기술자, 은행가, 천문학자등이 첫째이고, 다음은 변호사, 대학교수, 생물학자 등등의 (부드러운 사색가) 그리고 세일즈맨, 정치가, 점원 등의 (남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네 번째의 재능은 (창조적인 사람)으로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작가.사진작가.작곡가 등이다. 물론 이들은 서로 중화되므로, 이렇게 범주화된 재능이란 없다. 의사들도 매우 창조적일 수 있으며, 사진작가도 카메라 속도와 렌즈를 이해하려면 (딱딱한 사색가)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직업과 그 잠재적 재능이 서로 일치하고 있지 못하다가도 그 잠재적 재능이 주업무로 바뀔 때에는 그 역량은 확실하게 발휘될 것이다. 당신 역시 당신 자신의 조그만 재능을 갖는 것이 좋으리라. 난 사실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으며 깊이 사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과 인터뷰를 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그가 말한 많은 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특색 없는 연설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 머리가 그 복잡한 주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때때로 나는 남편 데이비드와 함께 실업계의 거물과 식사를 한다. 그때마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까 염려한다. 그들은 재정 문제와 기업경영의 문제를 논의하고 뉴스를 분석한다. 물론 잡지 출판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난 출판의 그런 측면에 대해서 사실 아는 바가 없다. 내 전문 분야인 글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느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그 작은 재능을 닦아 폭을 넓히려고 노력한 결과 탓인지 지금은 그 누구와 만나 어떤 화제가 이야기의 중심이 돼도 두렵지 않다. 당신도 그 정도의 재능은 분명히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재능을 닦아서 그 폭을 넓힌다면 무의식중에 당신의 무한한 잠재적인 재능이 발견될 것이다. @ff @[ 7. 비서직에 자부심을 가져라. 타임 주식회사의 그룹 부회장인 죤 메러는 이같이 말한다. '야망있는 모든 젊은 여성들은 비서로 출발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비서직은 대부분 입사 초기의 업무보다 당신을 높은 지위의 업무와 연결시켜 주므로 많은 것을 듣게 되며,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비서로 출발했다. 오랫동안 로버트 레드포드의 대행인이었으며 브로드웨이의 히트작 '텍사스의 호어 하우스'의 제작자인 스테파니 필립스는 (방랑적 비서)에서 일년만에 ABC방송국의 부제작자로 변모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밤 10--11시에도 기꺼이 일 했으며 제작업무가 생겼을 때는 과거에 내가 비서로 있었을 때의 모든 상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갈 수 있었다. 그들은 매우 훌륭한 조언을 해 주었다.' 일을 배우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 비서직만큼 더없이 좋은 자리는 없다. 요즈음은 괜찮은 회사의 비서 자리를 구해보려고 해도 구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요즘 대개의 비서들은 속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타이핑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학창시절에 알지 못했던 당신의 재능이 나타날 것이다. 내 비서 중에서도 4 명이나 코스모폴리란 지의 편집업무로 자리를 옮겼다. 수많은 맹렬사원들이 자신의 승진가도의 출발점을 비서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알고 있겠지만 비서직에도 종류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는 당신이 계속 지속하고 싶어 할 만큼 굉장한 것들도 있다. 지난 32 년간 로우 기업의 회장인 로봇 더쉬의 경영 보좌관으로 일했던 잔 안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내가 비서 세계로 들어간 것은 다른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속 근무하는 동안 그 업무가 나의 대학교육이었으며, 정치, 사회 그리고 거물급 사업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나가 부띠끄나 여행사 같은 것을 차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을 내가 다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6 년간 뉴욕 타임즈의 발행인 아더슐츠버거의 경영 보좌관이었던 낸시 핀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이 수준에서는 당신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젠 나에게도 전용 보좌관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세좌픽 소사이어티^6,36^뉴욕에 있는 최고 경영자의 비서들과 보좌관들로 구성된 모임^36,3^의 200여명이나 되는 회원 중에서 자기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력의 핵 주위에 있으면서 출세욕에 차 있고 일급 비밀을 노리는 젊은 간부 직원들로부터의 아첨도 불쾌하지는 않다.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는 스튜디오의 여비서하고만 데이트를 즐겼다. F. 리 메일리, 우수푸 카쉬, 알렌 푼트, 그 외 재능있고 부유한 많은 남자들이 그들의 비서와 결혼했다. ---------- @[ 대학졸업장과 성공 물론 의사, 변호사, 교수 그리고 과학계 등에 종사하려면 대학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인사관리자들은 당신의 입사원서에 학사, 석사, 심지어는 박사의 학위가 기재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는 데 대학졸업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교육을 받고, 사유방식을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 하지만, 세상사를 배우고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일을 해 보아야 한다. 당신의 대학 학위가 당신을 최초의 직업에서 수완가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 중 몇몇은 전혀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구문제 위원회의 전국 공동 위원장이며 유엔 인구문제 자문의면서 동시에 거대한 기업체의 중역이자, 전국 임신중절권 투쟁연맹의 총재인^6,36휴우!^36,3^로빈 듀크 여사도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물론 대학교육을 받은, 최초의 영국의 여수상인 마가렛 대처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스스로 교육하는 것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보다 훨씬 중요하다.' 또한 전 영국 수상이었던 헤롤드 맥밀란은 옥스포드에서 그의 스승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열심히 일해서 경험적 지식을 쌓으면, 누군가의 어리석은 말을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참되고 바른 주된 목적이다.'라고. ------------ @[ 행운을 잡아라. 누구에게나 운명, 즉 행운과 불행이 따르게 되어 있다. 난 19세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여동생보다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자들, 즉 케더린 그레함의 딸이나 랠리 웨이마우스와 같이 부유한 가정의 딸보다는 운이 좋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없다. (행운아)가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행운을 잘 움켜잡고, 이를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재산이나 행운은 잘 이용하면 할수록 더 많이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난 '성(성별 성)과 독신녀'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는 나에게 그것을 쓰라고 격려해 준 남자와 결혼했다. (책 다루는 남자)와 결혼한 것은 나에겐 큰 행운이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내가 그 책을 과연 볼 수 있었을까? 아마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 데이비드는 그의 일생에서^6,36^나를 만나기 전의^36,3^중요한 몫을 차지하던 다른 여자가 책 쓰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모든 격려는 그녀도 받았으며, 나보다 더 나은 작가가 되리라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활동력이나 요령 그리고 (행운)이 그녀에게는 따르지 않았다. 하기야 만약 데이비드가 나에게 집필의 동기를 부여한 그런 행운이 없었더라도 난 언젠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책을 썼을지도 모르며, 또는 작가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에도 난 (행운)과 (일)을 갖고 있었음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유명 작가가 되었거나 독자적인 사업체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 행운이든 간에, 그 행운을 움켜 쥐어라. 그리고 잘 사용하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행운은 활동력으로 획득해야만 한다. ------------ @[ 프라이버시는 지킨다. 직장생활을 하는 데, 성공의 50%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잘 어울리는 것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구한테나 털어놓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슬픔을 친한 동료와 함께 나누는 것은 좋지만, 다만 고용주에게는 하지 말라. 고용주가 당신에 관해 알아야 할 중대한 생활문제도 있겠으나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고백할 필요는 없다. 내게는 한 때 지루하리만치 나를 슬프게 했던 조수가 있었다. 즉 그녀 시아버지의 끝없는 무용담, 원만하지 못한 가정, 성형수술에 대한 불만 등 그녀의 넋두리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사무실은 어느정도 가정과 같은 것이다. 당신이 하루하루 매일 지내는 곳이다. 그러면 동료가 당신의 사생활을 몰라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내 말은 당신 슬픔으로 모든 사람을 궁지에 빠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을 선택해서 이야기하라. @ff @[ 8. 일감에 대해 너무 고르거나 따지지 말라. 휴일에도 근무하러 나올 용의가 있는가? 집에까지 일감을 가져갈 수 있는가? 당신 고용주의 개인적인 일까지도 해줄 수 있는가? 너무 이것저것 따지면서 일을 피하지 말라. 자청해서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 설사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행동에 당신의 상사는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크고 아름답고 보람된 일을 원하고 있음에도, 이 작고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일에 매달려있는 자신에 대해 어리석다고 비참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어리석은 생각이다. 당신은 인생을 멋있게 살고 동시에 돈도 벌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당신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하여 일감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다른 여성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당신 자신이 어리석음을 반증하는 것뿐이다. 머리가 좋은 여성만이 자기 일을 먼저 끝내고 타인을 도와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당신이 받은 일감에 대해서 너무 째째하게 고르거나 따지지 말라. 그것은 곧 당신 인생을 할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과잉투자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람들이 당신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오히려 당신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고용주나 동료들의 일을 당신이 자율적으로 거들어주는 것에 대해 너무 인색하지 말라. 그리고 신용을 얻도록 노력하라. 특히 신입사원 시절에는 더욱 중요하다. 당신이 신입사원일 때 심어 주는 당신의 이미지야마로 당신이 그 직장에 계속 몸 담고 있는 한 변함없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모저모로 너무 인색하게 따지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임을 기억하라. (중견 사원 시절) 드디어 당신은 힘들고 짜증스러운 신입사원 시절을 끝내고, 중견사원으로서 당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감상적인 소녀의 꿈 대신에 성공을 위한 현실에 집착해야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직장여성으로서의 행복을 찾아나서야 할 적극적 자세의 시기가 된 것이다. 남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참다운 여성의 힘을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 상사를 만족시켜라. 당신이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당신에게는 아직도 윗사람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일이라는 것은 항상 그 일에서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는 만족감과 동시에 당신 윗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당신은 윗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려 애쓴다. 이것은 비단 비서직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신 윗사람이 당신 하는 일에 대해 평가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라. 당신이 일을 잘하면 고과 점수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무능한 사람이나 점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혹시 상관이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당신을 믿고 승진시켜 주려고 하는 현명한 상관도 많으니까. 미시건 주립대학의 경영학 교수이신 유진 제닝스 교수는 성공한 많은 사람들을 조사한 후 이렇게 말했다. '유능한 상관의 중요한 부하로서, 상관의 능력을 보충해 주고 뒷받침해 주는 사람이 회사에서 가장 먼저 성공하게 된다.' 문제는 당신을 좋게 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신이 좋게 보이도록 애쓸 기회도 주지 않는 그런 상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과 당신은 단지 뜻이 맞지 않는 것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상관은 한 두명씩 있게 마련인데 흔히 사람들은 그것을 참아 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들이 아니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할 그것만이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면 아마 그들도 당신을 제정신으로 쳐다볼 것이다. ------------ @[ 일이 잘 안되면 쉬운 일부터 먼저 하라. 내가 코스모 지에 쓰는 칼럼 '나의 거실로'는 항상 나를 화나게 만든다. 나는 매월 첫 토요일 아침이면, 상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타자기 앞에 앉아 칼럼을 쓰려고 한다. 한 시간이나 고심해도 글이 써지지 않으면 나는 칼럼을 잠시 접어두고 다른 쉬운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편집하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편집을 성공적으로 마쳐 힘이 생기면 나는 타자기 앞에 다시 앉아서 칼럼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일이 꽉 막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쉬운 일부터 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귀중한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돋우는 의미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만 한다. @ff @[ 9.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라. 한 번에 오로지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교외에서 뉴욕으로 월요일 아침마다 통근하는데 그는 운전하면서 전기 면도기로 면도도 한다. 그는 뉴스를 들으면서 옆자리에 높여 있는 뉴욕 타임지를 대강 훑어 보고 차가 차선을 위반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교외 풍경을 감상한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심미적인 사람인 동시에 사업을 하는 백만장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나는 원고지와 연필을 항상 함께 가지고 다닌다. 택시를 탈 때나 치과에 갈 때, 점심식사 약속을 기다릴 때, 그리고 극장에 갈 때도 항상 그것들과 함께 한다. 시사회에 초대한 손님들이 조금 늦을 경우 나는 데이비드의 영사실에 있는 손전등으로 독서를 한다. 귀찮은 사람과 전화로 통화할 때는, 얘기하면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목록을 작성하거나 혹은 적어도 가려운 곳을 긁거나 한다. 그렇게 바쁜 것이 미친 것이거나 생활을 파괴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 가지 일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차 안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신문을 보고, 화장을 한다. 휴가 중에는 침대에 오래 누워있거나 혹시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두 사람 몫을 하도록 하라.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바로 조직적인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일에 부딪치기 전에 미리 생각하라. 잡화점이나 백화점 또는 어딜 가든지 간단한 목표를 가지고 가라. 사람을 만나지 않고 전화로 대신하고, 말 많은 전화보다 편지로 대신하며, 다음 주에 할 일을 주말에 메모하라. 또한 당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점심식사나 가고 싶지 않은 모임의 요청을 재치있게 거절할 줄 아는 요령도 터득해야 한다. 당신은 혹시 (조직화)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처음에는 그럴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당신이 점차 능숙해질수록 더 숙달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화된 사람들 주변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는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 당신은 일의 선후를 파악하라. 바쁘게 일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회사가 왜 당신을 고용했으며,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으며, 또한 가장 큰 의미가 있겠는가를 세밀하게 생각해 보라. 그 일이 어떤 일이든 간에 당신은 항상 그 일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 날에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시간 조정 전문가인 알란 라킨은 당신이 해야만 될 중요한 일들은 책상 앞에 써 붙이라고 제안한다. 내가 하는 일중 가장 중요한 일은 코스모폴리탄 지에 실릴 원고를 쓰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잊어버릴 경우에 대비해서 잡지 복사판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바쁘게 일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일에 똑같은 주위를 기울인다. 퇴근 무렵 즈음이면 그들은 피곤한 자신의 몸을 그들이 해놓은 일에서 위로받는다. 그러는 동안 중요한 일이 지체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중요한 경영자^6,36^대부분은 남자^36,3^들이 아직도 이런 식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회사 일을 할 때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하급직원의 넋두리나 리셉션룸을 장식하고 있다. 넋두리는 그들이 아닌 다른 하급직원이 들어야만 하며 사장 의자에는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한다. 알란 라킨은 또 당신 책상에 메모를 놓아 두는 것 외에도 책상 서랍을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A. B. C로 분류할 것을 제안한다. 당신이 C급의 일을 하려고 할 때면, 당신에게는 그 일외에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당신이 알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주장이다. 여하튼 당신은 가능한 한 많이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 @[ 전화사용법 당신 일의 많은 분량이 전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전화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아냈다. * 누군가가 당신의 전화에 응답해오면 우선 그가 바쁘지 않은가를 확인하여라. '지금 말씀드려도 괜찮습니까?'하고 말이다. 당신은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는 그가 당신의 긴 설명에 지루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에 반하여, 편리한 시간에 그에게 전화 할 것을 부탁한다면 당신은 이해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당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면 감사하다라고 말하라. 그들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라. 당신이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은 그들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 전화를 걸었으면 당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 주어라. 비록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다 할지라도. *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에 두가지 일을 다루려고 하지말라. 고마운 일을 해 준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후 즉시로 다른 일을 부탁하지 말라. 때때로 당신은 같은 사람에게 두 번의 전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중 한 번은 단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야만 한다. * 한가한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대하라. 수다에만 신경을 쓰는 가정주부나 일이 바쁘지 않은 사무실에 있는 친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는 이렇게 말하면서 끊도록 하라. '게리. 지금 손님이 오고 있어.' '통. 전화 걸어줘서 고마워 곧 전화 할게.' * 또한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법도 배워라.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일할 때는 근무시간 이후의 전화는 받지 않도록 하라. 전화 벨 소리를 무시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쨌든 당신이 거기 없다면 당신은 대답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럴 때는 당신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라. ------------ @[ 편지를 즐겨하라. 회사 밖의 사람에게는 전화를 하는 대신 편지를 즐겨 이용하라. 편지에는 세세한 일까지 적을 수 있다. 전화를 하면 잡담하기가 쉽고 과장하기도 쉽다. 편지는 짧게 쓰되 중요한 사람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칼럼니스트인 리즈 스미스는 친구와는 짧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우리는 항상 그녀의 가까이에 있지만 그녀는 전화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용 메모만 쓰도록 하라. 자칫 편지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기 쉬우며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자기 변호용으로 쓴 흔히 긴 편지들보다 당신이 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짧게 써라. 많이 쓰게 되면 그만큼 여백도 많게 하라. 편지에는 슬프고 잔인하고 빈약하고 불행하고, 기분 나쁘고, 비평적인 내용은 쓰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을 꼭 행해야만 한다면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도록 하라. 이것은 하나도 빗나감이 없는 중요한 원칙임을 기억하라. 만일 당신이 좋지 않은 말을 써야만 한다면, 가장 이성적이고 회유적이며 이해심 있는 용어를 골라 표현하도록 하라. 불평을 하면서도 찬사를 늘어놓도록 하라. 군스모 지의 유명한 기고자는, 비난과 비평으로 가득찬 4--5장짜리 편지를 보내곤 한다. 그녀는 굉장한 사람이다. 하지만 누가 이 비난의 덩어리를 읽은 후 아침 혹은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겠는가? 나는 그녀의 편지 중 몇몇은 전혀 읽지 않았으며, 몇 개는 전화 번호부책 사이에 끼워놓고 읽을 용기가 생기는 날까지 며칠씩이나 기다리곤 했다. 사람들이 당신의 편지를 어떻게 취급하기를 바라는가? -------------- @[ 겸손해라.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조금 성공하게 되면 우쭐해서 교만하게 된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은 의기양양해 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당신의 성공 가능성은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얼마나 침묵하는 가에 정비례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아는 한 여배우는 내셔널 스타지의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아름답고, 재능을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 영원히 스타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요.' 그것은 1975 년의 일이었다. 그녀가 비록 육체의 미와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는 아직 그녀가 스타가 된 걸 보지 못했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우리 대부분에게 채찍을 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상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 아님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본래 아름다운 자기 자신이나 자기업적에 대해 사랑받고 또한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멋있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나를 보아라. 나에게 아부해라. 내게 멋있다고 말해라.'하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당신에게 두 권의 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 한 노트에는 진실, 즉 사실을 기록한다. 당신이 정말로 얼마나 잘했는가! 이 노트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진실된 그리고 비밀스러운 것이다. 다른 노트에는 좀더 겸손한 사항과 말을 적는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와 이 노트에 적힌 것은 정반대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속으로는 자신이 정말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공공연히 과장되게 말한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과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람들은 당신이 잘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거나 혹은 당신의 바쁜 모습을 통해서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얼마나 잘 해 나가는지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조용히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리를 치거나 박수를 쳐 달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 @[ 사람들은 당신의 성공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다.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새로운 계약을 맺었거나 혹은 연봉이 5천달러 올랐을 때 당신은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그러나 사실은 당신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기쁘지 않다. 당신은 친구의 성공에 시기해서 정말로 화를 내거나, 성공을 빼앗으려 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당신과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성공해서 명성과 부를 얻는다면,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떤가?'라는 당신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 당신의 남편 연인 어머니 혹은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당신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당신이 그들보다 성공하였을 경우, 착잡한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 몇몇 옛 친구는 아직도 나에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내 건강을 염려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성공이 그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 아랫 사람에게 친절하라. 상관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를 하며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일은 물론 현명한 행동이며 당신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이 완전한 성공을 이루려면 전보 배달 소년이나, 전화 교환수나 엘리베이터 걸이나 당신보다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좋게 대해야만 한다. 칭찬하고,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나는 어떤 몸매가 좋은 잡지 편집인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윗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였으나 아랫사람들은 천대하였다. 그녀는 회사에서 승진의 승진을 거듭하는 듯 하였으나 결국은 해고당하고 말았다. 재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아랫 사람들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일 경우 해고당하는 사람을 돕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모든)사람이 등을 돌리고는 앨리스를 해고 당하게 방치해 두었다. 아랫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경멸하면 그들이 당신과 함께 일하는 동안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러면 마침내 그들이 당신을 해고시키는 간접적 역할을 도울 것이다. 당신과 동일한 직위의 사람들을 모욕하고 비난하고 경시하는 것도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성공을 막을 수도 없고 당신의 성공만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 @[ 조용하고 위엄있는 자세로 당신은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화를 낼 때마다 사람들은 당신을 점점 덜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당신을 제어하고자 할 것이다. 당신이 화를 냄으로써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 결정적인 해를 입히게 된다. 물론 사람들에게 당신의 주장을 내세워야만 한다. 하지만 조용히 그리고 위엄있게 대하라. 화를 내는 것은 당신에게는 사치품이며, 당신은 그럴 여유가 없다. -------------- @[ 성공한 사람과 완전한 사람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자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공격받을 수 있다. 물론 가장 성공한 남자도 마찬가지다. 연예계의 슈퍼스타들도 평론들에 의해서 심할 정도로 비판을 받으며, 그 비평은 스타에게 상처를 입힌다. 대통령들도 뉴욕 타임즈나 위싱턴 포스트에 실린 비판을 읽고는 스스로 찔끔하게 된다. 아이들, 가족, 연인, 직업 등 당신은 어떤 것에 대해 열정을 품을 수 있으며, 동시에 이것들에 의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앞으로 당신은 여러번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당신에게 심각할 만큼의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는 못한다. 당신은 상처를 극복하고, 그 상처가 앞으로의 계획의 실천에 더 큰 성공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를 이용하라. ------------ @[ 사랑을 받으려면 실망하지 말라. 모든 사랑은 낭만적이다. 당신은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내가 근무하는 아르고노트 빌딩의 엘리베이터 맨을 사랑하고, 블레어 호텔의 교환양을 사랑하며, 개와 고양이도 사랑하고 (그중 몇마리는 특별히 사랑한다.) 내 우상인 작가와 화가와 가수와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몇몇 선생님과 가정주부와 미용사를 사랑하며 그리고 가족 남편, 친구들을 사랑한다. 사랑은 어디에 있든 아름다운 것이며, 당신이 당신 사무실 직원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나는 확실히 내 사무실 직원을 사랑한다. 그러나 꼭 명심해야 할 바가 있다. 당신의 사무실 직원도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라는 점이다. 당신이 거기에 근무하기에 그들은 당신을 동료로서나 선후배로서 사랑하는 것뿐이지 일단 회사를 그만 두면, 당신이 그들을 보고싶어 찾아간다 해도 아무도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해고 당한 경우라면 확실히 더 쌀쌀해진다. 사무실에서의 호의는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며 매일매일을 더 즐겁게 해주는 사람에게만 해당될 뿐이다. 광고 디자이너와 카피라이터, 편집인과 작가처럼 서로에게서 좋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그런 관계는 다른 곳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당신의 사무실 동료를 사랑하라. 사무실에서의 사랑으로 다른 사랑을 보충하려 하지 말라. 또한 직장을 떠난 후에도 그런 사랑이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말라. -------------- @[ 한가지 일에도 최선을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요즈음도 요리나 장식하는 일, 또는 숫자나 기계와 관련된 일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하고서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은 남들에게 시키고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하기야 몇몇 다재다능한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의 여러 가지 전문기술이 있다. 글로리아 반더빌트는 작가에서 디자이너가 됐고 베스 마이어슨은 TV토론 사회자에서 소비자 운동가와 정치가가 됐으며, 다이애너 브리랜드는 편집인에서 박물관 고문이 됐고, 셰리 랜싱은 모델에서 편집인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당신이 현 직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가 닥치면 전직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한 가지 재능만 특출하다면 여기에 연관된 일로 성공할 수 있다. 윌헤미나는 멋있기는 했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모델을 할 수가 없었는데도 그녀는 자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모델 중개업을 시작했다. 한 때는 재능있는 무용가였던 죠지 발랜친은 지금은 안무와 기획을 맡고 있다. 나는 우수한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지루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빈 미첼슨과 F. 리 베일리는 아직도 변호사이고 케더린 그래함은 여전히 신문사 여기자이고, 버지니아 매스터즈는 계속 성 과학자이고, 캐롤 바이어 새거는 언제나 작곡가이며, 조안 디시온도 시종일관 작가이고, 로버트 드니로는 지금까지도 배우이다. 당신은 서로 다른 여섯 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한가지 재능만으로 탁월하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 더 많은 시간을 더 열심히 일하라. 당신이 만일 시간을 낭비한다면 어떻게 빨리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당신이 계속 자리에 앉아 있는다면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면 곧 성공하게 된다는 확신이 당신에게 있다. 일자리에서 종종 오랜 시간을 빠져 나와있는 사람들이나 열심히 일하지도 않으면서 성공한 사람을 나는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내가 푸트에 있는 콘 앤드 벨딩 회사의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 내가 오후 6시 30분이 되어도 타자기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있으면, 6명의 남자 보조원들은 빨리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그들 중 하나는 심지어 내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집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쉬는 시간을 이용한다고 사장에게 불평을 했다. 나쁜 녀석 같으니! 나는 최근에 그를 보았는데 그는 아직도 오후 6시만 되면 가정에서 아버지 구실을 하려고 했다. 그의 자식들이 지금은 서른 다섯 살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아마 영원히 보조원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 @[ 봉급 인상에 대해서 얼마 동안 직장에 근무하다 보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며, 그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될 때가 올 것이다. 봉급 인상을 꼭 요청해야겠다고 느끼면 청하라. 그들이 당신의 능력을 인정해서 당신에게 보상해 주기를 기다리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은 그들은 당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당신이 요청할 때까지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알아둘 것은 당신이 그 직장에서 많은 일을 하며, 그들이 당신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을 때에만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요청할 때는 가족 부양이나 차값 지불과 같은 것에 당신의 돈이 필요함을 말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스쳐지나가듯 말하고 당신이 이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며, 회사를 사랑하고 더 열심히 공헌하고 싶다는 말에 중점을 두어라. 당신이 이미 한 일이고, 요청한 봉급에 적당하도록 당신이 할 일들에 대해 대강 말하라. 최고액을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실수할 때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맙소사! 이렇게 많은 월급을 주고 있다니!' 그들이나 당신이 적당하게 주고 받고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봉급이란 것은 당신과 그들에게 합당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회사로부터 전직 요청을 받은 것은 봉급 인상에 있어서 종종 최선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6,36^이 (하지만)이 중요하다^36,3^이 수단은 당신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떠날 준비도 하지 않고 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사직을 위협으로 한 봉급 인상은 한두번 정도만 효력이 있다. 그 후에는 회사도 이 협박에 진력이 나서 가버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른 데서 전직 요청이 들어오면 설사 옮길 의사가 없더라도 또한 당장 봉급 인상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사장에게 말하는 것이 좋다. 다른 회사에서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 @[ 당신도 고위간부가 될 수 있다. 자! 이제 당신은 꿈 많은 신입사원시절! 의욕적인 중견사원시절을 거치는 동안 당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드디어 고위간부의 자리에 들어섰다. 그동안 5 년, 10 년 아니 20 년이나 걸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신은 이제 당신을 규정지어 강인하게 해주며 또한 깊이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은 무거워지고 당신의 결정 하나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당신과의 면담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미리 알아내라. 그래서 면담시간을 최소화 시켜라. 이제 당신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찾아오는 방문객들에 일일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되도록 면담시간을 줄이고 보다 큰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 면담 대신에 전화를 이용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당신은 방문객에 대해 강인해야 한다. 또한 방문객의 의도를 미리 알아내야 한다. 무례하지 않고서는 30분 혹은 한 시간 내에 사람들과의 면담을 마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래야만 한다. 그것도 상대방의 기분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말이다. ------------ @[ 결정은 신속하게 하라. 고위간부로서 당신은 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들을 결정해야만 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는 안 된다. 2주일 만에 내린 결정이라 해서 하루만에 내린 결정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겪은 것 중에 가장 무능하고 사람들의 비판을 가장 많이 듣는 사장들은 당신에게 어떤 결정도 내려 주지 못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더군다나 당신이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 대답이나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쉬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당신이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결정해 버려라! ------------ @[ 위계질서가 중요하다. 위계질서란 말은 따분하고 관료적인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담당업무가 있으며 비록 당신이 사장이라 할지라도 이 업무를 뒤섞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비서에게 명령할 수 없다. 만일 그녀가 상관을 제치고 당신에게 오면 집으로 쫓아 버려라! 이것은 당신이 거만하다든가 무섭다거나 아니면 직원들을 격려하지 않는 뻣뻣한 성격에서가 아니다. 어느 조직이든 즉 가장 형식을 따지지 않는 사무실에도 조직이 있게 마련이다. 즉 (기구표)라 한다. 당신은 그것을 지켜야만 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누구에게 보고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당신 주위에는 화난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고, 기분이 상하며, 아무도 좋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너무 친절한 탓으로 작업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계속 그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 전화는 이렇게 당신이 직접 전화를 받아 응답하는 것이 호의적일 수는 있으나, 당신이 중역급이 된 다음에는 어리석은 일이다. 일단 전화로 이야기하게 되면, 무례해 지거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전화에 파묻혀 기진맥진해질테니까 말이다. 훌륭한 비서가 당신이 받아야 할 전화와 그렇지 못한 것을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이다. 당신의 비서는 당신에게 만큼이나 전화 거는 사람들에게도 친절 해야만 된다. ------------ @[ 경영자가 되려면 젊은 중역을 잘 안내해 줄 책은 많지 않다. 당신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경영적 재능 외에 다른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안내서가 없어도 무관하다.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경영자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만일 공정하고, 단호하며, 또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이 여자라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경영자가 되는 데에는 몇가지 준칙이 있다. 1. 일을 맡길 때는 당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맡겨라. 2. 그들이 일에 대해 생각 할 여유를 주고, 이후엔 그들을 격려하라. 3. 당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설사 당신이 더 잘할 수 있다해도 그들에게 맡겨라. 당신은 대표적인 일만 하라! 나는 여기서 몇 년이나 실패했다. 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과로를 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젊은 여자 경영자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을 제어하라! 4. 당신이 언제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말하라. 5. 고용인끼리 싸우게 하지 말라. 6. 일을 잘했을 때는 감사와 금전과 친절로써 보답하라. 7.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고하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라. 8. 능력있는 사장 주위에는 늘 천재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그들은 좀 광기가 있고, 뻔뻔한 사장에 대해서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증오를 보낼 때도 있지만 그들은 쓸 만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9. 특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지금까지 나는 18살에 비서직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래 30여년 동안이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터득한 내 나름대로의 직장생활의 준칙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했다. 이 준칙들이 당신의 경우에도 그대로 잘 적용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몇가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장 여성에게 많은 참고가 되리라는 것은 장담한다. 나에게 좀 더 일찍 그 누군가가 이런 준칙들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나는 좀 더 빨리 그리고 좀 더 쉽게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것들이 당신의 직장생활, 즉 직장을 갖고자 하는 여성이나 지금 신입사원인 여성, 그리고 중견사원, 고급간부의 위치에 있는 여성, 이 모든 직장 여성들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