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친구. 사로잡힌 코끼리들을 통해 인간은 코끼리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잇고, 코끼리가 온순하고 지혜로우며 인간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루타르크나 아일리안이 이야기한 다정다감한 코끼리들은 서커스단의 코끼리나 키플링이 소개한 코끼리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코끼리의 친밀성. 플루타르크의 책 속에는 수많은 고대 일화들이 들어 있다. 그중에서 꽃 파는 아가씨의 일화는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다. 코끼리는 온순하고 상냥한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꽃 파는 아가씨를 사랑했던 코끼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코끼리의 애정 표현은 인간 못지 않았다. 코끼리는 시장을 산책하다가 과일가게에서 가져다 주곤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녀 앞에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목 아래로 해서 그녀는 가슴속으로 코를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은 마치 사람이 손으로 젖가슴을 더듬는 것 같았다. 플루타르크 <윤라론집> 로마의 숙련된 코끼리들. 2세기 말에 태어난, 그리스-로마 시대의 마지막 저술가 중의 하나인 C.E. 아일리안은 자신이 쓴 <동물들의 자연사>의 세세한 이야기 대부분을 선인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플루타르크에 이르기까지)에게서 빌려 왔다. 그리고 거기에다 자신의 개인적인 관찰내용과 당대의 사건들을 덧붙여 놓았다. 아일리안이 기록해 놓은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19세기와 20세기의 저술가들에 의해 폭넓게 인용되었다. 나는 여기서 코끼리의 음악적 본능에 대해서, 그의 온순한 성격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들도 어렵게 배우는 것을 쉽게 습득하는 그의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맹수나 야생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길들여진 코끼리는 여럿이, 혹은 혼자서 춤을 출 수 있다.그리고 박자에 맞추어 걸을 수도 있다. 플루트의 멜로디에 민감한 귀는 음의 차이를 식별해 낸다. 박자가 느려지면 그에 맞추어 발걸음도 늦춰지고 박자가 빨라지면 발걸음도 빨라지는데, 대단히 정확하게 박자를 맞추고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코끼리는 자연으로부터 거대한 육체뿐만 아니라 쉽게 배울 수 있는 재능을 함께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나는 에티오피아나 리비아에 사는 코끼리의 온순한 성격과 쉽게 배우는 천부적 재능을 기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자칫 이 동물의 탁월한 성질을 찬양하기 위해 내가 꾸며 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거짓된 내용을 지껄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짓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는 철학자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부끄럽고 비열한 짓이다. 따라서 나는 내 두 눈으로 보았던 것, 로마에서 실제로 있었던 것, 다른 저자들이 나보다 앞서 기술해 놓은 것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길들여진 코끼리는 가장 유순한 동물이며, 사람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동물이다.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가 로마인에게 구경거리로 코끼리를 보여 주었던 당시, 이미 로마에는 다 자란 암 수 코끼리들이 있었고, 이 코끼리들이 그 후 이 지방 코끼리들의 조상이 되었다. 어린 코끼리들이 자라서 점차 다리에 힘이 붙으면, 이 거대한 짐승을 다루는 솜씨가 있는 사람이 조련사가 되어 사육을 맡았다. 조련사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경이감과 공포감을 이용했다. 조련사는 먼저 온화한 모습으로 코끼리들에게 접근했다. 훈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코끼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목적은 코끼리가 플루트 곡조에 화를 내지 않으며, 요란한 북소리에 놀라지 않고, 갈대피리 소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조련사들은 코끼리가 입장객들의 발자국 소리나 뒤죽박죽 된 노랫소리 같은 불협화음을 인내를 갖고 참아 내고,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도 놀라지 않도록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을 코끼리가 매질을 당한다고 느꼈을 때에도 화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한족 다리를 구부리도록 강요받았을 때나, 몸을 돌려 도약을 하거나, 우아하게 춤을 주도록 강요를 받았을 때조차도 그 막강한 힘을 이용해 반항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도록 조련사들은 코끼리를 훈련시켰다. 마침내 조련사가 무대에서 재주가 뛰어난, 숙달된 코끼리들을 소개하면 코끼리들은 그동안 배운 내용을 사소한 실수도 없이 그대로 되풀이했다. 게다가 의무감과 분위기가 코끼리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과시하도록 부추겼다. 코끼리 가무단은 12마리로 구성되었다. 코끼리들은 무대양면에서 느릿느릿한 걸음거리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무대 의상은 꽃으로 장식된 무도복이다. 춤을 지휘하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코끼리들은 조련사에게서 배운 대로 열을 지어 행진했다. 그리고 다음 신호에 다라 원을 만들기도 하고, 다시 흩어져 대오를 형성하기도 했다. 때로는 박자에 맞추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관람석 앞자리에 꽃을 뿌리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보조를 맞추어 춤을 추면서 쿵쿵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구르기도 했다. C.E. 아일리안 <동물들의 자연사> 코끼리 각하. 동물의 왕인 코끼리는 그루터기를 제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대농장주는 코끼리를 두세 마리씩 세내어 작업에 착수한다. 코끼리들 중 가장 뛰어난 코끼리는 '모티 구이(Moti Guj)'라는 코끼리였는데, 그 코끼리의 주인은 몰이꾼들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사람인 디자였다. 모티 구이는 전적으로 그의 소유였는데, 왕처럼 당당하고, 기품 있는 코끼리가 별 볼일 없는 몰이꾼의 소유라는 것은 그 지방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인 경우였다. '모티 구이'라는 이름은 힌두어로 '코끼리들의 중의 진주 ' 라는 뜻이다. 디자는 기분 내키는 데로 방탕한 삶을 살았다. 자신의 코끼리와 함께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받으면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모티 구이의 민감한 앞발굽을 천막용 말뚝으로 때리곤 했다. 그러나 모티 구이는 결코 디자를 발로 짓밟아 죽이려 하지 않았다. 때리고 나면 디자는 언제나 눈물을 흘리면서 코를 어루만져 주고, 모티 구이를 '내 사랑, 내 생명, 내 영혼' 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술을 주기도 한다. 모티 구이는 술을 몹시 좋아하는데, 특히 아락주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종려나무 열매로 담근 술을 탄 토디(위스키나 브렌디 같은 독한 술에 설탕, 레몬, 더운물을 섞어서 만든 음료수: 역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면 디자는 모티 구이 앞발 사이에서 잠이 들곤 했다. 디자가 술에 취해서 도로 한가운데에서 잠이 들면 모티 구이는 그를 감사 보호하면서 보행자나 차가 그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막았다. 결국 디자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교통이 막히곤 했다. 농장주의 개간지에서 작업할 때는 하루 중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다. 급료가 비싼 만큼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모티 구이가 그루터기를 뽑아 내는 동안, 디자는 모티 구이의 목 위에 앉아서 지시를 내렸다. 모티 구이는 멋진 한 쌍의 상아를 이용해서, 혹은 강한 어깨로 밧줄을 끌어 당겨서 나무 밑동을 뿌리째 뽑아냈다. 디자는 '너는 코끼리의 왕이야' 라고 치켜세우면서 모티 구이의 귀 뒷부분을 찔러주곤 했다. 저녁이 되면, 모티 구이는 140kg의 싱싱한 꼴과 1L의 아락주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 디자는 잠자러 갈 때까지 모티 구이의 다리 사이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1주일에 한 번씩 디자는 모티 구이를 강가로 데려갔다. 모티 구이는 물이 별로 깊지 않은 곳에서 기분 좋게 옆으로 드러누웠고, 그러면 디자는 모티 구이의 몸을 씻어 주기 위해 삼베 뭉치와 벽돌 한 장을 들고 그 위로 올라갔다. 모티 구이는 벽돌로 둔탁하게 두드리는 것과 젖은 삼베로 철썩 때리는 것을 혼동한 적이 없었다. 젖은 삼베로 때리는 것은 일어나서 반대편으로 돌아 누으라는 신호였다. 뒤이어 디자는 모티 구이의 발을 살펴보고, 눈을 검사하고, 커다란 귀를 안팎으로 뒤집어 가면서 살펴봤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는지, 혹은 안질에 걸릴 기미는 없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몸단장이 끝나면 까맣게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모티 구이는 나무에서 꺾은 나뭇가지를 코로 흔들면서, 그리고 디자는 젖은 긴 머리카락을 머리 위로 묶고서, 함께 그들의 야영지로 돌아왔다. 러드야드 키플링 <코끼리 각하> 그럴싸한 이야기, "당신들도 오늘 아침 포병대를 보았죠?"하고 오르테리스가 말했다. 그는 방금 도착한, 코끼리들이 대포를 끄는 부대를 포병대라고 했다. 각 대포에는 마구를 갖춘 코끼리들이 세 마리씩 매여 있었다. 이처럼 거대한 코끼리들이 끄는 이동식 대포를 여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경탄을 자아낼 만한 광경이었다. 선두에 선 코끼리가 훈련 도중 말을 잘 듣지 않자, 그 코끼리를 끌러 낸 다음 가차없이 주둔지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열의 맨 끝에 있는 코끼리가 울부짖으면서 코를 사방으로 내둘러댔다. 그러자 그 코끼리의 몰이꾼은 코에 가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몇 발짝 물러선 채 코끼리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손가락으로 말썽 피우고 있는 코끼리를 가리키면서 오르테리스가 말했다. "훈련을 받기 싫어 난동을 피우는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머스트가 발산될 때 나타나는 발작현상인 모양이야. 머지않아 주둔지에서 한바탕 일이 벌어지겠군. 저 코끼리는 어쩌면 도망치려 할 것이고, 그러면 총으로 쏴서 죽여야 할지도 모르지." 그러자 몰바네이가 쏘아 붙였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저 코끼리는 자신에 대한 대접에 몹시 화가 나 있는 거야 저 코끼리는 포병대에 새로 들어온 코끼리인데, 천성적으로 짐을 끄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어. 선생님, 몰이꾼에게 한번 물어 보세요." 나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코끼리를 달래고 있는 몰이꾼에게 물었다. 그러자 몰이꾼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지금 이 코끼리는 머스트를 발산하는 게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했던 거죠. 줄을 묶어 짐을 끌도록 하다니, 코끼리가 뭐 소나 노샙니까? 코끼리의 힘은 머릿속에 있어요. 자자, 진정해. 오늘 아침 너에게 굴레를 씌운 것은 내가 아니란 말이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대포를 끄는 일은 가장 신분이 낮은 코끼리들이나 하는 일이죠. 이 코끼리는 둔의 쿠메리아 혈통이란 말입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잃어 가면서 1년 동안 길들였는데 짐이나 나르게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대포를 끄는 신분이 낮은 코끼리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하자 포병들이 이 코끼리를 자기 부대에 편입시켰습니다. 이 녀석이 이토록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죠!" "신기하군! 정말 신기해! 코끼리가 몹시 화가 나 있다니! 그렇다면 말뚝에 매어 놓으면 될 텐데." 오르테리스의 말을 듣고, 몰바네이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몰이꾼에게 코끼리가 묶인 사슬을 끊어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건 코끼리를 창조하신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죠 당신들 세 사람을 모두 죽일 수도 있고, 분노가 진정될 때까지 멀리 도망칠 수도 있죠. 그러나 갑작스럽게 머스트를 발산해서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발작을 하게 되면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나를 죽일 겁니다. 코끼리가 히스테리를 일으키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죽이죠. 그것이 코끼리들의 습성입니다. 러드야드 키플링 <코끼리 각하> 자유의지를 가진 코끼리, 케릴라(Kerala, 인도 남서부에 있는 주:역주) 지방 숲에는 야생 코끼리떼가 많이 살고 있다. 때때로 코끼리가 함정에 빠져 사로잡히기도 한다. 코끼리가 사로잡히면, 오랜 시간과 꾸준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힘든 조련작업이 시작된다. 보통 길들여진 코끼리는 사원이나 왕에게 팔려간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인 칸다코란은 트라방코르에 위치한 수브라마니아 사원으로 팔려 갔다. 이 거대한 코끼리는 케랄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코끼리들 중의 하나였는데, 큰 키는 육중한 체구와 멋진 조화를 이루었으며, 몸매는 균형이 잘 잡혔다. 구부러진 긴 상아는 좌우로 비뚤어지지 않고 아주 곧게 앞으로 뻗어 있었다. 머리 모양은 당당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특이할 정도로 커다란 두 귀는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이마의 양쪽에 드리워져 있었다. 체구는 거대했지만 칸다코란은 대단히 온순했다. 그 긴 생애 동안 발정기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조차 결코 인간을 해치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코끼리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는데, 칸다코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하려 했다. 이러한 성격을 잘 아는 칸다코란의 조련사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데로 내버려두었으며, 다른 코끼리들과 달리 칸다코란은 매어 놓지 않았다. 칸다코란은 사원의 북쪽을 흐르는, 근처의 강가에서 목욕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다. 그 코끼리는 가능한 한 더위를 피하려 했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가장 깊은 물 속에서 무더운 낮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강가를 따라가며 풀을 뜯거나, 근처 웅덩이 속에서 흙탕물을 튀기며 장난치는 물소들의 충실한 친구가 되었다. 간혹 가뭄이 들어 물소들이 뜯어먹을 수 있는 목초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면 칸다코란은 친구들이 굶주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특히 강을 따라 나 있는 사탕수수 밭이 눈에 띄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사탕수수 밭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기 때문에 물소들은 사탕수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칸다코란에게는 그런 울타리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 코끼리는 물소떼를 이끌고 사탕수수 밭으로 가서 즉각 울타리에 구멍을 냈다. 그런 다음, 친구들이 배를 다 채우기를 기다렸다. 밭주인들이 겁을 주어 물소떼를 쫓으려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급히 달려왔다. 그러나 칸다코란은 밭주인들을 보자마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칸다코란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했지만, 겁에 질린 농부들은 도망쳐 버렸다. 물소들이 마음껏 배를 채우고 나자 칸다코란은 그들을 강가까지 호위한 다음, 잠시 중단했던 목욕을 다시 즐겼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칸다코란은 자신을 위해서는 사탕수수 줄기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칸다코란이 강물 속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생강과 코코야자 열매와 바나나를 실은 배가 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하류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그 배는 짐을 너무 많이 실어서 금세라도 물이 배 안으로 넘칠 것 같았다. 칸다코란은 배를 보았지만, 뱃사공들은 칸다코란은 즉시 코를 들어 올려 배를 붙들었다. 공포에 질린 뱃사공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강둑으로 헤엄쳐 나왔다. 칸다코란은 그 배를 산산조각 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 뱃사람들은 칸다코란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반감은 반감을 낳는 법이므로, 남은 일생 동안 칸다코란은 자신이 강물 속에 있을 동안에는 결코 배들이 지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배가 우연히 나타나면 그 코끼리는 악착같이 쫓아가서 박살을 내 버렸다. 강을 오르내리며 장사하는 배들은 칸다코란을 피하기 위해 수킬로미터를 우회해야 했다. 뱃사공들이 장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날 때는, 출발에 앞서 강까지 걸어와서 칸다코란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칸다코란이 물 속에 있으면 출발을 연기해야만 했다. 많은 뱃사공들이 수브라마니아 사원에 제물을 바치면서 자신들이 강을 지나갈 때 칸다코란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원했다. 그 사원에는 오늘날까지도 당시 뱃사람들이 봉헌한 연등이 줄지어 걸려 있다. 칸다코란은 사원에서 제일가는 코끼리로 꼽혔기 때문에, 축제날 행진 때 신상을 운반하는 코끼리로 선발되었다. 축제날 칸다코란은 행진할 시간이 되자 강에서 나와 자진해서 사원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날에도 조련사들은 별다른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사원에 도착한 칸다코란은 금박을 입힌 정자의 커다란 지주 아래에 서서, 사원의 하인들이 와서 전통적인 머리장식을 해줄 때까지 참을성 잇게 기다렸다. 칸다코란은 뒷발을 들어올려 하인 한 사람이 등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그 하인은 기어서 등 위로 올라가 신상을 단단히 붙들어맨 다음, 올라갈 때와 같은 방법으로 다시 내려왔다. 칸다코란은 어느 누구도 앞으로 해서 등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자그마한 비단양산을 받쳐든 사람, 공작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흔드는 사람, 그리고 야크 고리로 만든 파리채를 빙빙 돌리는 사람도 뒷발을 타고 등 위로 올라갔다. 행진은 사원 경내에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정해진 시간에 펼쳐졌기 때문에 따로 칸다코란에게 길을 안내할 필요가 없었다. 이 코끼리는 적절한 걸음걸이로, 적당한 장소에 멈추어 서기도 하면서 행진했다. 이 코끼리를 이용하면 불편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어떤 이유가 생겨서 행사 주관자들이 행진을 빨리 끝내기로 결정해도, 칸다코란은 그 결정에 잘 협조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떠한 강제력을 동원하더라도 그가 가려고 하는 코스를 변경 시킬 수는 없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칸다코란이 행렬을 이끌 때는 행진에 소요되는 시간이 언제나 정확했기 때문에 연등에 사용되는 기름의 양을 속일 수 없었다고 한다. 행사 마지막 날, 밤늦게까지 의식이 연장 될 때에도 칸다코란이 다른 코끼리들과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칸다코란은 다른 짐승처럼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소란을 피워 군중을 불안하게 하지도 않았다. 이 코끼리는 오락을 즐기듯이 커다란 귀를 흔들면서,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게 행동했다. 축제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칸다코란은 평소 습관처럼 잠잘 곳을 찾아 홀로 걷고 있었다. 그가 불빛이 별로 없는 외딴 도로 위를 걷고 있을 때, 반장님인 한 노부인이 그를 보지 못하여 부딪치고 말았다. 겨우 코끼리를 알아본 노부인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더니 의식을 잃고 그의 발 앞에 쓰러졌다. 노부인을 뒤따르던 하인들은 기겁하여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쳐 버렸다. 길이 너무 좁아서 칸다코란은 노부인을 피해 우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침내 노부인이 의식을 되찾고, 기어서 길가로 비켜났다. 그러자 칸다코란은 노부인이 길바닥에 떨어뜨린 양산을 뛰어넘어 가던 길을 계속해 갔다. 이처럼 지혜로운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보다 더 훌륭한 코끼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케랄라에는 상당히 큰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지만, 칸다코란은 아무리 무거운 나무라도 거뜬히 운반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막대기 하나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칸다코란을 작업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가가 정해져야 했다. 대가의 일부는 사원의 몫이었고, 나머지는 칸다코란의 차지였다. 조련사들이 코끼리에게 운반해야 할 나무의 크기와 옮겨 놓아야 할 장소, 그리고 작업의 대가로 받게 될 품삯을 알려 주었다. 흥정의 결과가 마음에 들면, 그 코끼리는 승낙의 표시로 울음소리를 낸 다음, 통나무 있는 곳으로 가서 그것을 지정된 장소로 옮겼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뒤 즉각 자신의 몫인 바나나나 코코야자나 사탕을 주지 않으면, 통나무를 다시 들어다가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사원으로 찾아와 거대한 통나무를 운반하는 데 그 코끼리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품삯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지고 난 뒤, 조련사들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칸다코란에게는 무엇을 주실 생각입니까?"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바나나 10송이, 코코야자 열매 10개, 당밀 10kg을 주겠소." 그러한 제안을 전해들은 칸다코란은 만족의 표시로 큰 울음소리를 냈고, 열심히 맞은 일을 끝마쳤다. 그런데 일을 맡겼던 사람이 칸다코란에게 줄 음식은 며칠 후에 주겠다고 했다. 칸다코란은 즉시 옮겨 놓은 통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통나무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도로 가져다 놓았다. 별수 없이 그 사람은 여러 마리의 다른 코끼리들을 고용했지만,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도 소용이 없었다. 통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혹해 하던 그 사람은 결국 다시 수브라마니아 사원을 찾아왔다. 다시 품삯이 결정되었고, 평소처럼 강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던 칸다코란도 다시 불려왔다. 그러나 그 코끼리는 아무리 후한 대가를 약속해도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케랄라의 코끼리들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코끼리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과 개성을 갖고 있지만, 칸다코란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코끼리는 없었다. <남인도 전설집> 음악이 박물관의 두 코끼리 한스와 마거리트에게 미친 영향, 시민 여러분은 목월(프랑스 혁명력 아홉 번 째 달로 태양력으로 치면 5월 20일부터 6월 18일까지에 해당된다:역주) 10일 개최되었던 코끼리들을 위한 음악회의 상세한 내용을 나에게 문의해 왔다. 여러분은 이 코끼리들을 위한 음악이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먼저 음악가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먼저 음악가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메스나 고문도구가 아니라 오보에. 플루트,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을 들고 와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두 마리 코끼리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매혹시켰다. 그리고 속박상태에서 억눌려 있던 그들의 천부적인 재능을 일깨워 주었다. 때로는 흥분시켰다 진정시켰다 하기도 하고, 숲 속에서 살던 때의 야생적 본능을 일깨우기도 했다. 결국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코끼리에게 애정과 기쁨을 느끼게 했고, 마침내 사랑의 환상으로까지 이끌었다. 사랑의 환상에 빠지면, 상대의 애정 표시가 없어도 완전한 만족을 느끼는 법이다. 콘서트는 삼중주로 시작되었다. 두 개의 바이올린과 하나의 첼로가 나장조의 다양한 소곡들을 연주했다. 음아고리가 울리자 한스와 마거리트(두 코끼리의 이름임)는 먹는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불안한 기색을 보였으나, 주위가 평온하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진정되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음악에 넋을 빼앗겼다. 이러한 상태의 변화는 삼중주가 끝날 무렵에 특히 두드러졌다. 연주자들은 글루크의 무곡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로 연주를 끝냈다. 야성적이고 대단히 강렬한 이 곡의 모든 박자 변화가 두 코끼리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걸음을 빨리했다 느리게했다 하다가는 갑자기 몸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점잖게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이는 그들이 음악의 리듬과 박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사육장 울타리의 창살을 물어뜯기도 하고, 그 창살을 코로 껴안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 육중한 몸으로 밀어붙이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휘파람소리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조련사에게 이유를 묻자, "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반주 없이, 다단조의 <오, 나의 사랑 아코디언>이 바순 독주로 연주되자, 코끼리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감미로우면서도 애조 띤 연가, 처량한 바순의 음색으로 더욱 애처롭게 들리는 연가가 두 코끼리를 매혹시켰다. 코끼리들은 몇 발짝 걷다가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이더니, 관현악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그 감미로운 음악소리를 호흡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를 부드럽게 휘저었다. .... 그러나 음악의 효과가 두 코끼리에게 똑같이 전달 된 것은 아니었다. 한스가 평소대로 신중하고 수줍은 듯이 뒤로 물러서려 한 반면, 마거리트는 정열적으로 길고 부드러운 코를 이용해 한스의 등과 목을 쓰다듬기도 하고, 때로는 코끝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누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마거리트가 간절하고 열정적인 감정에 사로 잡혀 있음을 역력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마거리트는 자신의 입 속으로 가져갔던 손가락으로 한스의 귓속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한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거리트의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또다시 음악이 바뀌자 무대는 갑자기 흥분과 무질서 속에 빠져들었다. 관현악단이 라 장조의 쾌활하고 발랄한 곡조의 <잘될 거야>를 연주했는데, 특히 플루트의 날카로운 소리가 효과를 증폭시켰다. 두 코끼리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환희의 소리를 외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낮아졌다가 갑자기 높아지는 변화무쌍한 곡조가 끊임없이 두 코끼리에게 감정을 고조시켜 주는 듯 했다. 역시 암컷이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그의 애무는 자신의 감정을 좀더 직선적으로 드러냈다. 암컷의 교태가 점차 자극적으로 되었다. 마거리트는 갑자기 수컷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뒷걸음질로 접근하면서 뒷발로 한스를 툭툭 쳤다. 마거리트는 온갖 아양을 떨었으나 가엾게도 마거리트의 노력은 아무런 반응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음악소리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마거리트는 여전히 그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관현악단 쪽에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 왔고, 신기하게도 그 노랫소리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빗줄기처럼 마거리트의 흥분을 가라앉혀 주었다. 흥분이 절정에 달해 있던 마거리트는 갑자기 감정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점차 욕정에서 깨어난 마거리트는 코를 땅에 떨어뜨린 채,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마거리트를 진정시킨, 내림 나장조의 그 노래는 다르다쉬의 오페라에 나오는 아다지오였다. J. B. 우엘 <박물관의 두 코끼리의 자연사> 신성한 코끼리, 신격화된 코끼리, 시암이 타이로 바뀌면서 국기의 중앙에 있던 흰코끼리의 상이 국기에서 빠졌다. 대단히 희귀한 흰코끼리는 시암 왕국에서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미얀마와 라오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85년에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살았던 한 흰코끼리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약 1년 전부터 미얀마 황제의 흰코끼리는 황족들에게 가장 심각한 걱정거리였다. 그 코끼리는 식욕을 잃고, 점차 성마르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느리게 진행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노쇠현상 때문에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세 차례에 걸쳐 축성된 이 코끼리는 80여 년 전부터 종교, 군대, 시민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숙명적인 노쇠현상으로부터 이 신성한 코끼리를 구해 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그 코끼리는 왕족들처럼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영지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은 그 코끼리를 돌보는 데 충당되었다. 그의 룬(roon, 그 코끼리의 대리인, 즉 집사를 이렇게 부름)은 조금이라도 속임수를 쓰거나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면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비리가 발각되면, 스헨- 음행(s`hen-Mheng, 그 영주 코끼리의 이름)은 코끝으로 경멸하듯 냄새 맡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코로 룬을 들어올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다음, 거대한 발로 룬의 머리를 반숙한 달걀을 으깨듯이 바스러뜨렸다. 그 코끼리에게는 보석들이 박힌 금안장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루비와 사파이어가 빙 둘러 박힌 목장식까지 달려 있었다. 어느 날 언제나 그에게 후한 대접을 내려 주는 황제가 그와 비슷한 안장을 또 하나 하사했다. 커다란 루비와 멋진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주홍빛 머리장식 천도 더 멋진 것으로 교체되었다. 황제는 손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새 머리장식을 그 코끼리 머리에 씌워 주었다.... 불행을 쫓는 '아홉 개의 보석이 박힌 둥근 테 장식'은 한시도 그의 이마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양쪽 상아에도 그러한 장식물이 추가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화려한 장신구들로 그 코끼리를 치장시켰다. 머리에는 황제나 귀족들을 본떠서, 신분을 표시하는 휘장을 달았다. 양 눈 사이에는 귀금속으로 만든, 초생달 모양의 장신구가 타오르는 불처럼 빛을 발했으며, 양쪽 귀에는 금으로 된 커다란 귀고리가 흔들렸다. 비단과 금이 한데 어우러진 주홍빛의 띠로 이루어진 멋진 의상에는 진주와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태양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몰이꾼들이 위에 올라타 금으로 된 네 개의 자그마한 양산을 받쳐들었다. 또한 코끼리가 화려하게 장식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자신의 부를 만끽할 수 있도록, 금으로 만든 사료통 뒤에 특별히 주문해 온 커다란 거울을 설치했다. 거울의 구입뿐 아니라 운반에도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었다. 금으로 만든 사료통에는 언제나 부드럽고 맛있는 풀과, 갓 돋아난 감미로운 여린 새싹과 맛있는 과일이 가득했다. 게다가 황제는 그 사료 위에다 보석들을 뿌려 주도록 했는데, 이는 동양의 한 군주가 누렸던 광적인 사치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많은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키가 4m가 넘는 스헨-음헹의 거대한 몸통은 기력을 상실한 채, 서 있던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긴 코는 커다란 상아 사이에서 애처롭게 흔들거렸다. 예전에 그토록 강렬하고 매서웠던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보기 흉하게 변해, 굳어버린 듯 멍하니 한곳만을 응시했다. 요컨대 모든 감각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하인, 사육사, 코끼리의 녹봉으로 살아온 신하, 심지어 황제까지 나서서 갖가지 진기한 음식을 가져다 주었지만, 코끼리는 기운 없이 이따금씩 찔끔찔끔 먹는 시늉만 할 뿐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큰 불행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스헨-음행 전하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버마에서 이 코끼리가 갖는 중요성이나 영향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코끼리를 대체할 다른 흰코끼리를 미리 찾아 놓지 못한 상태에서 그 코끼리가 죽는다는 것은 분명히 끔찍한 대재앙의 징조로 여겨졌다. 황제나 그의 가족들이 엄청난 불행과 끔찍한 재앙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르고, 미얀마 제국전체가 페스트나 지진이나 홍수나 기아에 휩쓸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황제에서부터 가장 최하층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중 이러한 일련의 끔찍한 재난들을 예방하기 위해서, 모든 관료들은 서둘러 스헨-음행의 뒤를 이을 흰코끼리를 찾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그들은 황제와 그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흰코끼리를 찾아낸 사람에게 주어질 막대한 재산을 얻는 행운을 잡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흰코끼리를 찾았다. 그래서 흰코끼리가 있을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는 곳이 알려지면 막대한 경비를 들여가며 수색대를 파견했다. L. 부세나르 <한 파리 청년이 호랑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체험한 모험담> <여행신문> 1885년 11월 1일 세계의 기둥, 인도의 종교적인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는 몇 세기에 걸쳐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이 서사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B.C. 5세기경에 살았던 위대한 시인 발미키에 의해 쓰였다. 이서사시는 라마(비슈누신의 일곱 번 째 화신:역주)의 모험담을 주로 다루고 있다. 서사시의 첫머리에 에이요디아시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불처럼 열정적인 코끼리들, 태산처럼 크고 막강한 힘을 지닌 코끼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사르가(Sarga, 찬가) 12.사가라(왕)의 6만 아들들은 라사탈라(지옥)을 향해 달려갔네. 13.그곳에 구멍을 뚫고 들어갔을 때, 그들은 광대한 지면을 떠받치고 있는, 태산과도 같은, 그 지역 코끼리 비루파크샤를 보았네. 14. 오, 라구(라마의 아버지)의 기쁨이여! 거대한 코끼리 비루파크샤는 산과 숲을 비롯한 지구 전체를 머리로 떠받치고 있었네. 15. 오, 카쿠트샤여! 피로에 지친 거대한 코끼리가 한순간 피곤한 머리를 흔들자, 지진이 일어났네. 16. 오, 라마여! 사가라의 아들들은 그 지역 수호신인 거대한 코끼리에게 프라다크시나를 한 다음, 구멍을 뚫고 라사탈라에 이르렀네. 17. 동쪽지역을 파헤친 뒤, 그들은 남쪽을 탐험하였네. 남쪽지역에서도 또다시 거대한 코끼리를 발견하였네. 18. 그것은 머리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높은 산과도 같은, 고결한 마하파드마였네. 그들의 놀라움은 극도에 달했네. 19. 프라다크쉬나를 한 후에, 영웅들은 용기를 내서 서쪽지역을 파 들어갔네. 20. 서쪽지역에서도 태산처럼 거대한 코끼리 소마나사가 영웅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네. 21. 영웅들은 그에게 프라다크시나를 하고 행운을 물은 다음, 구멍을 뚫고 소마가 있는 지역에 도달했네. 22. 북쪽에서도 영웅들은 그곳을 떠받치는 거대한 코끼리 힘판두라를 보았네. 발미키<라마야나> 아프리카의 전설. 아프리카의 수많은 전설들은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동물을 묘사하고 있다. 표범은 잔인하고 교활하며, 하마는 우둔하고 덤벙대는 동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명하고 힘센 동물의 왕으로 간주되는 코끼리는 때때로 교활한 짐승들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온순하고 착한 성격, 희생을 감수하는 '페어플레이'정신, 교활한 짐승들은 코끼리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다. 흔히 토끼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코끼리에 대한 노래. 이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실제로 아프리카 구전가요의 이미지와 동일하다. 불안의 창조자인 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무거운 발자국 소리, 기필코 획득해야하는 고기에 대한 매력... 저녁바람에 울어대는 숲.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 칠흑의 밤. 하늘에는 별들이 떨면서 사라지고, 창백한 달빛은 구름에 가려 사라지고 정령들이 떠돌고 있네.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합창)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불안에 떠는 숲 속에서 나무는 잠이 들고, 나뭇잎은 움직이지 않는다.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원숭이들은 못 본 체 눈을 감는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싱싱한 풀을 뜯던 영양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리를 치켜 든 채. 겁에 질린 모습으로 귀를 기울인다. 독수리는 울음소리를 삼킨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합창)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세찬 빗줄기가 몰아치는 숲 속에서 코끼리 아저씨가 굼뜬 발걸음으로 걷고 있다. 바우! 바우! 힘에는 자신 있어 근심걱정 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코끼리 아저씨, 아무도 당할 자가 없네. 커다란 나무를 꺾어 놓은 채, 멈추어 섰던 걸음을 다시 옮기네. 먹고, 울고, 나무를 쓰러뜨리고, 짝을 찾는 코끼리 아저씨. 멀리 코끼리 아저씨 소리가 들려 온다.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합창)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숲 속에서 너를 당할 자 누가 있을쏘냐. 사냥꾼이여, 용기를 내라, 슬그머니 다가가라. 뛰어라. 덤벼들어라. 고기가 앞에 있다. 거대한 고깃덩이가. 움직이는 산 같은 고깃덩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고깃덩이. 너의 집 화로에서 굽게 될 고깃덩이. 너의 이빨 사이에 끼이게 될 고깃덩이. 붉은빛의 맛있는 고깃덩이와 따끈할 때 마실 수 있는 피.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합창) 요요! 코끼리 사냥꾼이여, 활을 들어라! 오고우에강 지류인 아방가 유역에서 R.P. 트리예가 수집한 노래 A. 자냉 <아프리카코끼리> 꾀와 힘의 대결. 아프리카의 동화 속에서 토끼와 코끼리는 흔히 적대관계로 묘사된다. 토끼는 동물의 왕인 코끼리에게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밀기도 하는데, 지는 쪽은 언제나 코끼리이다. 모시족의 한 동화에는 코끼리가 자기를 '꼬마'라고 부른 것에 화가 난, 튀르 라와라는 토끼가 등장한다. "왜 자꾸만 내가 작다는 것을 환기시키려는 거지? 더구나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도 센데 말이야. 원한다면 그걸 증명해 보일 수도 있어. 내가 원하기만 하면, 널 때려눕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둬!" 그러자 숲 속의 현자인 코끼리는 대단히 재미있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뭐, 뭐라고? 방금 말한 것을 다시 한번 되풀이해 봐. 잘 듣지 못했거든." "넌 분명하게 알아들었어! 네가 원한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널 때려눕히겠다고 했어." "나를 때려눕힌다고? 나를? 나는 발바닥으로 토마토 짓이기듯 너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석궁으로 돌멩이를 쏘는 것처럼 코로 너를 숲 너머로 날려보낼 수도 있어." "좋아, 그럼 일요일에 근처에 있는 숲 속의 빈터에서 만나자. 그곳에 오면, 케이폭나무 숲에서 내가 고함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너에게 도전하겠어." 결전의 날이 오자, 마을사람들은 꾀와 힘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서둘렀다. 토끼는 코끼리 음바 오그보가 거대한 케이폭나무의 갈라진 틈으로 접근해 오도록 조처를 취해 두었다. 토끼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케이폭나무의 갈라진 틈으로 접근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케이폭나무의 도깨비가 음바오그보의코를 붙잡고서 쥐어짜듯 비틀었다. 그러자 코끼리는 무너져 내리듯 쓰러졌다. M.콜라르델 디아라수바 <아프리카 동화속에 나오는 토끼와 거미> (1975) 음그보티강의 요정, 음그보티강을 창조하면서, 그 강에게 제물을 받을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한 것은 위대한 하늘신이 있는 권능을 부여한 것은 위대한 하늘신이 아닐까? 아그니족은 이암라보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죽이고 숲으로 떠났다. 그 코끼리는 음그보티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그 위로 총을 쏘았고, 뒤이어 물 속으로 들어가 코끼리를 해체하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100여 명 정도였다. 맨 먼저 강물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들을 내밀며, 솟아올라 피를 뿌리고 다시 강물 속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거기 있니?"라는 물음과 함께 같은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었고, 99명이 사라졌다. 한 사람만 더하면 100명이 될 참이었다. 바로 그 100번째 사람이 주저앉아 속으로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어, 마을로 돌아가야겠어.' 마을사람들은 사람들이 죽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점쟁이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때부터 점쟁이의 말을 따라 음그보티강에 제물을 바쳤다. 이것은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일요일과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강에서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들려 온다. 테오필 오벵가 <음보치족의 구전 문학><아프리카의 현재> 어떻게 토끼가 동물의 왕인 음웨느(mwene)에 임명되었는가?, 동물들에게는 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 중의 하나를 왕으로 뽑기를 결정했다. 왕을 뽑기 위해 동물들은 사자의 집 뜰에서 집회를 열었다. 몇몇 동물들은 표범을 지목했다. 그러나 표범은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기떄문에 두터운 지지를 얻지 못했다. 또 다른 몇몇 동물들은 무서움을 줄 수도 있고 위엄도 있으니까 사자를 왕으로 뽑자고 했다. 그러나 모든 동물들의 만장일치로 코끼리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대관식 날은 공휴일로 공포되었다. 대관식은 모든 동물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자 마을에서 거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코끼리는 이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 코끼리는 길을 가던 도중 토끼와 마주쳤다. 퀭한 눈을 한 채, 배를 움켜쥐고,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토끼의 모습은 단단히 병이 난 것처럼 보였다. 죽는시늉을 하던 토끼가 코끼리에게 말했다. "내 상태가 어떤지 알겠지. 그런데 아무도 날 데려가려 하지를 않았어. 그래서 집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러자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코끼리가 대꾸했다. "내 사랑하는 친구 토끼야, 너도 알다시피 난 언제나 널 믿어. 난 지금 모든 동물들의 왕이 되기 위해 가는 길인데 네가 혼자 여기 남아 있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야. 자. 가자. 내가 너를 등위에 태우고 갈게. " 이렇게 해서 토끼는 코끼리 등에 올라탔고, 산과 계곡을 건너 이윽고 사자의 마을에 당도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환자 흉내를 내고 있던 토끼가 코끼리에게 말했다. "이제 좀 폼을 잡고 천천히 걸어." 코끼리가 마을에 들어서자 모든 동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때까지도 토끼는 여전히 코끼리의 등위에 있었다. 이제 병이 다 나았는지, 토끼는 모든 동물들이 충성을 맹세할 때마다 코끼리등 위에서 미소지으면서 그 맹세에 화답했다. 이윽고 왕을 상징하는 기장이 공식적으로 수여되려는 순간, 토끼가 코끼리에게 말했다. "그걸 받아야 할 동물은 바로 나야. 네가 나를 등 에에 태우고 왔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난 네 등위에 있는 동안 모든 동물들과 인사를 나눴어. 네 말이 틀렸어?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 봐!" 모든 동물들이 토끼의 말이 맞다고 선언했다. 코끼리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코끼리는 자격을 잃고 말았고, 코끼리를 속인 토끼가 음웨느에 임명되었다. 테오필 오벵가 <음보치족의 구전문학> <아프리카의 현재> 전쟁터에서. 19세기와 20세기 서구인들의 기억 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코끼리의 모습은 한니발의 돌격대 역할을 했던 전쟁터의 코끼리이다. 이 코끼리들은 한니발을 통해 후세에까지 길이 이름은 날리게 되었다. 242년 카르타고는 용병들의 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폴로베르의 소설을 통해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밀카르 바르카 <카르타고의 유능한 장군이자 한니발의 아버지>가 반란을 진압하고 카르타고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천재적인 전략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그가 갖고 있던 70마리의 코끼리 덕분이었다. 용병들이 결국 패하게 된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는 코끼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포로가 된 많은 용병들은 코끼리 앞에 끌려와 승리에 취한 그 짐승들의 발에 짓밟혀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에 되돌아온 하밀카드는 자신의 코끼리 사육장이 끔찍스러울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을 확인해야 했다. 코끼리는 카르타고 귀족가문의 자랑거리였다. 그 중에서도 메가라 가문의 코끼리들이 가장 힘에 셌다. 하밀카르는 출발에 앞서, 압달로님에게 코끼리들을 잘 돌보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 코끼리들은 다리가 잘린 채 모두 죽었고, 단 세 마리만이 살아 남았다. 살아 남은 코끼리들은 안뜰 중앙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고, 사료통에는 먹다 남은 찌꺼기들이 널려 있었다. 코끼리들이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한 마리는 끔찍할 정도로 양쪽 귀가 찢겨져 있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무릎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으며, 또 한 마리는 코가 잘려 나가고 없었다. 그 코끼리들은 이성을 지닌 인간처럼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가 잘려 나간 코끼리는 거대한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서, 잘려 나가고 남은 그 흉측스러운 코끝으로 부드럽게 그를 쓰다듬으려고 애섰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하밀카르의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쏟아졌다. 히말카르의 포위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일부 용병부대는 하밀카르의 동맹군인 나르 하바스가 이Rm는 누미디아의 코끼리들에게 걸려들었다. 굴곡을 이룬 언덕 사이로 은빛 다발들이 반짝였다. 용병들은 다발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검은 덩어리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검은 덩어리들을 모았다. 꽃잎이 피어나듯 다발들이 일어섰다. 그것은 코끼리 위에 설치된 망루 속의 창들이었다. 코끼리들은 가공스러울 정도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미늘창이 달려 있고, 상아는 송곳처럼 뾰족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옆구리에는 청동판이 씌워져 있었고, 갑옷의 정강이받이에는 단검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다. 코끝에 끼워진 팔찌 모양의 구리 고리에는 날이 넓은 칼자루가 달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용병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들은 이미 포위되어 있었다. 코끼리들은 밀집된 적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쇠가 달린 가슴팍으로 적진을 갈라놓고, 땅을 쟁기질하듯 상아로 적진을 휘저어 놓았다. 그리고 코에 달린 낫처럼 생긴 칼로 난도질을 했다. 창을 가득 꽂은 망루는 걸어다니는 화산 같았다. 모든 것이 한데 뒤얽혀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었다. 그 속에서 인간의 육체는 흰 얼룩 같았으며, 회색 청동 조각이 번쩍일 때마다 피분수가 솟아올랐다. 그런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그 무시무시한 짐승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밭고랑 같은 검은 자국이 생겼다. 용병들은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었고, 기력을 상실한 그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이윽고 코끼리들을 벌판의 중앙에 집결했다. 그들에게는 공간이 부족했다. 상아가 서로 맞부딪칠 정도로 좁은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그들은 앞발을 들고 뒷발로서야 했다. 한편, 두 무리의 용병들이 오른쪽 습곡지대에 피신해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카르타고 진영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팔을 들고서 용서를 빌었다. 카르타고 병사들은 그들의 팔다리를 묶고, 땅바닥에 나란히 눕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끼리들을 데려왔다. 코끼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용병들의 가슴은 상자갑이 부서지듯 뿌드득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고, 한꺼번에 두 사람씩 발아래 짓밟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살람보> 샤나메.(Shab-Nameb,페르시아의 피르다우시가 35년에 걸쳐 지은 장편 서사시로 <왕자의 서>로 번역됨: 역주)에서 인용된 것으로 터키 군대를 이끄는 사웨흐왕이 페르시아왕 바흐람과 전투를 시작하기 앞서 바흐람에게 보낸 전갈. "나의 군대가 진격하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요. 난 갑옷을 입힌 코끼리를 수천 마리나 보유하고 있소. 기병대의 말들은 코끼리 냄새만 맡아도 도망칠 거요. 싸움을 단념하고, 나에게 오시오. 당신을 내 앞에다 오랫동안 세워 두지는 않겠소. 당신에게 권력과 함께 내 딸을 주겠소." 바흐람의 거뷰 의사가 전달되기도 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처음에는 페르시아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사웨호왕은 휘하 장수들에게 지시했다. "군대의 맨 앞에 코끼리들을 배치시켜라.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일제히 코끼리떼를 진격시켜라. " 멀리서 코끼리떼를 본 바흐람왕은 불안해졌다. 그가 칼을 빼어 들고 장수들을 호령했다. "오. 용맹스런 전사들이여! 머리에 투구를 쓰고, 활을 쏘아라! 원로들에게 선출되었고, 선인들에게 왕관을 수여받은 나는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내 목과 생명을 걸고 명하느니, 활을 가진 자들은 당장 활시위를 당겨라! 포플러나무로 만든 화살로 저 피에 굶주린 코끼리들의 코를 쏘아라! 적들을 몰살시켜라! "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들이 코끼리 코를 꿰뚫었고, 벌판과 계곡이 피로 강물을 이루었다. 상처를 입은 코끼리들은 등을 돌려 자신의 군대를 짓밟고, 전쟁터를 가로질러 도망쳤다. 병사들도 그뒤를 따라 도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거대한 코끼리발에 짓밟혀 목숨을 잃었다. 그들 가운데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해 되지 않았다. 피르다우시 <왕자의 서> 아프리카 여행. 프랑수아 르바이양은 1781년에서 1794년 사이 아프리카를 두루 여행했다. 그는 특히 국왕의 정원에 처음으로 기린을 데려왔던 사람으로 유명했다. 박길 닿는 대로 대모험을 하면서 그는 틈틈이 코끼리 사냥에 몰두했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우리가 추적하는 동물들이 남긴 자취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사방이 완전히 트인 숲 속의 빈터에 도착했다. 제법 넓은 그 공간 안에는 몇 그루의 관목과 덤불밖에 없었다. 우리는 멈추어 섰다. 내가 고용한 호텐토트족 중의 한 명이 주위를 살피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방을 둘러본 후, 그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조용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여러 차례 손바닥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발견한 코끼리들의 수를 우리에게 알렸다. 그가 나무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회의를 했다. 코끼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우리는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접근해 갔다. 호텐토트족은 덤불을 가로질러, 거대한 짐승들 중 한 마리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우리는 서로 더듬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것은 코끼리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는 신호이다. 나는 그 코끼리 너머의 자그마한 언덕에 있었다. 그 용감한 호텐토트족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코끼리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되풀이해서 소리쳤다. "저기 좀 보세여~ 저기, 저기 있어요!" 나는 여전히 코끼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시선은 훨씬 멀리서 코끼리를 찾고 있었는데,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코끼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결국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나는 그곳으로 눈을 돌렸다. 거대한 머리통과 상아를 내가 있는 쪽으로 돌린, 불안한 모습의 코끼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멋진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아마 한가운데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코끼리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총소리에 놀란 30여 마리의 코끼리들이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나는 코끼리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기쁨을 맛보았다. 그중 한 마리가 우리 곁을 지나가다가 우리 중 한사람이 쏜 총에 맞았다. 그 코끼리가 여기저기 피를 뿌려 놓은 것을 살펴본 후, 나는 그 코끼리가 치명상을 입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코끼리를 추적했다. 그 코끼리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그러다가 다시 쓰러지곤 했다. 총소리에 놀라 다시 일어선 그 코끼리는 높게 자란 덤불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였다. 그곳에는 뿌리째 뽑혀 말라 죽은 나무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14발째 총을 맞은 그 코끼리는 격노해서 호텐토트족에게 덤벼들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15발째 총을 쏘았지만. 그것은 코끼리의 화를 더욱 돋우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그 사람은 옆으로 피하면서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나와 코끼리 사이는 스물다섯 걸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14kg이나 나가는 총을 들고 있었고, 게다가 탄약통까지 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몸을 날려 위험에서 벗어났다. 나는 도망쳤다. 그러나 그 코끼리는 줄기차게 나를 쫓아왔다. 꼭 죽을 것만 같아 겁이 났다. 나는 쓰러져 있는 거대한 나무 뒤에 엎드려 몸을 웅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책이 없었다. 거기에 당도하여 그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거기에 엎드리자마자 코끼리가 그곳에 당도하여 그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앞에서 들려 오는 내 일행들의 고함소리에 그 코끼리도 역시 겁을 집어먹고 멈추고 서서 귀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숨어 있는 곳에서 그 코끼리에를 향해 총을 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총에는 장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짐승은 그렇게 총알을 많이 맞고도 끄떡이 없었다. 나에게 잔득 적의를 품었을 그 코끼리를 한 방에 쓰러뜨리지 못한 것에 나는 낙담했다. 그리고 닥쳐올 운명을 기다리며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신의 우두머리의 안부가 걱정된 고용인들이 사방에서 나를 불렀다. 그러자 고함소리에 겁을 먹은 코끼리는 즉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순식간에 내가 숨어 있는 나무를 뛰어넘었다. 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그러자 나는 호텐토트족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다시 일어서서, 반바지 속에 넣어 두었던 총을 꺼내 코끼리에게 총알을 한 방 날렸다. 코끼리는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길에는 우리에게 입은 상처의 핏자국이 도처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밤이 다가왔고, 우리는 내가 운 좋게 단 한방으로 죽였던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되돌아갔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우리가 나타나자 독수리와 자그마한 육식동물들이 도망쳤다.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들이 벌써 그 코끼리를 먹어 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총을 쏘았다. 우리에게는 식량이 부족했다. 고용인들이 여러 사람 몫의 불고기를 만들기 위해 코끼리의 살을 잘라 냈다. 나에게는 코에서 잘라 낸 몇 토막의 고기를 요리해서 가져왔다. 코끼리 코를 먹어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내가 먹어 본 요리 중 가장 맛있었기 때문이다. 클라아스는 다리 요리를 먹고 나면, 코 요리는 잊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다음날 대단히 맛있는 점심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한 뒤, 즉각 준비를 시켰다. 코끼리의 네 다리를 잘라내고, 정방형으로 약 1m 가량 땅을 팠다. 그리고 거기에다 불이 붙은 숯을 채우고, 잘 마른 장작으로 그 위를 덮었다. 상당시간 동안 크게 불을 피운 다음. 구덩이가 충분히 달구어 졌다고 판단되자 구덩이를 비워 냈다. 그리고 클라아스는 그곳에 코끼리의 네 다리를 넣은 뒤 따뜻한 재를 다시 덮고, 숯과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날이 밝을 때까지 다시 불을 지폈다. 그 날 밤 내내 잠을 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내 고용인들은 밤샘을 했다. 밤새 많은 물소와 코끼리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다. 숲에는 항상 그런 동물들이 많았다. 그러나 밤새 피운 그 큰 불 때문에 짐승들은 우리를 괴롭히지 못했다. 코끼리 다리 요리, 불에 구운 고기는 놀라우리만큼 부풀어올랐으나,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감미로운 냄새를 풍겼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맛을 보았다. 임금님의 식사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곰 발바닥 요리를 찬양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코끼리처럼 크고 육중한 짐승의 요리가 어떻게 그토록 섬세하고 감미로운 맛을 낼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최고급 식당들도 결코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고기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 나는 빵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코끼리 다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많은 독자들이 이러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돌아다녔던 신기한 나라들에 대해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과, 엉터리로 지어낸 이야기만 접해 온 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는 꼭 해둘 필요가 있다. 오전 중 나머지 시간에는 상아를 뽑았다. 그 코끼리는 암컷이었기 때문에, 상아의 무게는 10kg밖에 나가지 않았고, 키는 약 2.5m 정도였다. 우리는 나를 살려두고 떠났던,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잔인하게 못 살게 굴었던 코끼리의 종적을 뒤쫓기로 했다. 그러나 밤 동안 새로 생겨난 자취와 뒤섞여 그 코끼리의 자취를 식별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몹시 지쳐 있었고, 이 가엾은 사람들이 짜증을 낼까 봐 걱정스러웠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희망봉을 거쳐 아프리카 내륙을 편력한 F.르바이양의 여행> 제 1권 바스티유의 코끼리, 몽파르나스가 다시 물었다. "지금 도대체 어디 가니?" 가브로슈는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두 아이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아이들을 재우러 가는 중이야." "어디에다 재울 거야?" "우리 집에." "우리 집이라니?" "우리 집에." "거처를 구한 거야?" "응, 그래." "그래! 그곳이 어디야?" "코끼리 안이야." 가브로슈가 대꾸했다. 가브로슈의 확고한 눈길을 바라보자, 마침내 몽파르나스는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가브로슈가 자기 집이라고 한 데가 어떤 곳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옳아, 그 코끼리 말이지... 그래, 그곳은 지낼 만 하니?" 몽파르나스가 물었다. "아주 좋아. 정말로 최고야. 다리 밑처럼 외풍이 불지도 않아." 가브로슈가 대꾸했다. "그곳에는 어떻게 들어가니?" "그냥 들어가지." "그러면 구멍이 있니?" "물론이지.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면 안 돼. 그 구멍은 앞다리 사이에 있어. 개새끼(경찰을 가르킴:역주)들도 그 구멍이 있는지 모르고 있어." "그러면 기어서 올라가니? 그래, 그렇겠지?" "그거야 식은 죽 먹기지. 우지끈뚝딱, 그걸로 끝이야. 사람들이 하나도 없거든."... 비록 모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은 기념물이다. 이 모형의 설계 자체는 대단히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거창한 계획은 연이은 두세 차례의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때마다 이 모형은 우리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으나, 그 자체는 역사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은 일시적 건조물처럼 보였으면서도 그 어떤 영원성을 지니게 되었다. 목재와 돌로 제작된 이 코끼리는 높이가 13m 정도이며, 등 위에는 집과 흡사한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예전에는 칠장이가 그 망루를 초록색으로 칠해 놓았지만, 지금은 비바람과 세월에 씻겨 망루는 검은색으로 변해 버렸다. 방치된 채 광장의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이 거상의 넓은 이마, 코, 상아, 망루, 거대한 엉덩이, 기둥 같은 네 다리는 밤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위에 놀랍고도 끔찍한 윤곽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 건조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민중의 힘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어둡고 불가사의하며 거대하다. 그것은 바스티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 곁에 서 있는, 눈에 보이는 강력한 힘을 지닌 유령이었다. 이 건조물을 보러 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으며, 지나가는 행인들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건조물은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옆구리에서 회반죽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려 흉측한 흉터를 남기고 있었다. 시청의 토목 담당관들도 1814년 이후로 이 건조물을 망각한 채 방치해 두고 있었다. 그 코끼리는 방치 된 채, 활기를 잃고 병들어 쓰러져 가고 있었다. 이 코끼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도 부스러지고, 술 취한 마부들에 의해 끊임없이 더럽혀지고 있었다. 배에는 균열이 생겼고, 꼬리에는 가느다란 나무뼈가 드러나 있으며, 다리 사이에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30년 전부터 대도시의 지면이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상승하고 있고, 광장의 지면도 높아졌기 때문에, 지금은 이 건조물이 움푹 들어간 곳에 세워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마치 그 지대가 코끼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움푹 꺼진 것처럼, 불결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거대한 모습의 이 코끼리는 부르주아의 눈에는 추한 몰골로 비추어졌으며, 사색가에게는 애조 띤 서글픈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그것은 쓸어 내야 할 쓰레기나 참수형에 처해야 할 국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밤이 되면 코끼리의 모습은 변했다. 밤은 정말 모든 그림자들의 세계이다. 황혼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그 낡은 코끼리는 변모했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그 코끼리는 조용하지만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변했다. 과거는 어둠의 세계이다. 그래서 어둠이 그에게 웅장한 모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투박하고 뚱뚱하고 육중하며 거칠고 눈에 거슬리는, 거의 기형적인 모습의 이 기념물, 그러나 분명 위풍당당하고 야생적인 당당한 기품이 깃들여 있는 이 기념물은 사라졌다. 그 대신 아홉 개의 탑이 달린 성채를 대체하여, 굴뚝이 달린 거대한 난로와 같은 모습의 그것이 평화롭게 그 지역에 군림했다. 마치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제도를 대체했던 것처럼... 거대한 코끼리 근처에 이르자 가브로슈가 말했다. 그는 무한히 큰 것이 무한히 작은 것에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알고 있었다. "꼬마야, 무서워하지 마라." 코끼리 안에서, 그곳은 모든 문이 닫혀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열려 있는 은신처였다. 해충에게 침해를 당하고, 망각 속에 버려진 이 가련한 늙은 코끼리. 무사마귀와 곰팡이가 뒤덮여 있고, 병들고 벌레 먹고 버림받은 코끼리. 광장의 한가운데서 호의로운 시선을 구걸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쳐다봐 주는 사람이 없는 불쌍한, 거대한 걸인 같은 이 코끼리. 그러나 코끼리는 신발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집도 없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며, 누더기를 걸치고, 손가락을 호호 불어 가며 사람들이 던져 준 것으로 먹고 살아가는 걸인들을 오히려 측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바스티유 코끼리의 역할이다. 인간들에게 멸시 당했던 나폴레옹의 구상이 신에 의해 다시 수정되었다. 단지 유명한 데 불과했을 것이 숭엄해진 것이다. 나폴레옹 황제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실현하기 위해 반암, 청동, 철, 금, 대리석이 필요했을 테지만, 신은 널빤지와 들보와 회반죽의 낡은 구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황제는 천재의 꿈을 품고 있었다. 무장을 하고 코를 들어 올리고 망루를 싣고 있는 코끼리, 즐겁고 생기를 불어넣는 물줄기를 사방으로 내뿜는 이 코끼리 속에, 나폴레옹은 민중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은 그 코끼리를 한결 대단한 것으로 만들었다. 한 소년에게 그곳을 거처로 제공했던 것이다. 가브로슈가 드나드는 구멍은 밖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갈라진 틈이었다. 코끼리의 배아래 숨겨진 그 구멍은 고양이나 어린애들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좁았다. 가브로슈가 말했다. "문지기에게는 아무도 없다고 일러두자." 그는 자기 집에 들어서는 사람처럼 자신 있게 성큼 어둠 속으로 들어서더니, 판자를 집어 들고서 그 구멍을 막았다. ... 가브로슈의 두 손님들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이델베르크의 커다란 맥주통 속에 갇힌 사람이나, 성서에 나오는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느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하늘의 뿌리, 1980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직전, 로맹 가리는 자신의 책 <하늘의 뿌리> 결정판을 출간했다.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이 책에서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코끼리를 보호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렐이나, 투쟁자금을 얻기 위해 상아를 지닌 거대한 짐승을 대량학살 하려고 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우두머리인 와이타리에 대해 저자가 한 말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차드에서 희망봉에 이르기까지, 항상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고기에 대한 열망은 대단히 강렬하다. 이는 대륙 전체에 공통된 것이다. 고기는 그들의 꿈이자 향수이고, 끊임없는 갈망의 대상이었다. 생명체의 생리적 욕구는 성적 본능보다도 더 강렬한 것이다. 고기 그것은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실제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갈망의 대상이다. 그는 모렐을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백인에게 코끼리는 오랫동안 단지 상아를 제공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흑인에게 코끼리는 오로지 고기, 그것도 운이 좋으면 독을 바른 투창 하나로 가장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코끼리에 대한 '미'나 '귀족적 기품'의 개념은 배부른 인간들, 고급 식당의 식탁 앞에 앉은 사람들,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사람들, 박물관에서 추상적인 예술품이나 즐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다.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추악한 사회현실에 맞서지 못한다. 그리고 '미'라는 뜬구름 속으로 도피하면서, '아름답다' 거나 '고상하다' 거나 '우정어리다' 거나 하는 막연하고 모호한 관념들에 도취해 버린다. 역사가 그들에게 허용해 준 것은 순전히 시적인 태도뿐이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타락해 가는 자신들의 사회에 코끼리를 떠맡으라고 요구했다. 파멸을 피하자는 것이 그 유일한 이유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사시대부터 살아온 이 짐승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고 성가신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서받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동정에 호소하는 길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모렐이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보기 드물 정도로 전형적인 경우였다. 실제적인 내용을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생각을 정치적으로 설명해 내는 것보다는, 코끼리들을 자유와 인간존엄성의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편리했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로 편리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코끼리 사냥의 금지를 요구했고, 멀리서 코끼리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실질적 행동은 회피하고, 그저 시늉만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서구의 관념론이 취해온 전형적인 태도이며, 모렐이 완벽한 본보기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코끼리 고기가 중요할 뿐이지 코끼리의 '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도 배가 채워지고 난 다음의 문제였다. 아프리카인도 배가 부르게 되면, 코끼리의 미적 측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곰곰이 생각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지금 당장에 그들에게 코끼리 배를 가르고, 그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도록 충고했다. 언제 다시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계속 먹으라고,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코끼리 보호운동과 코끼리에 대한 '경외심'과 모렐의 활동 등을 하나로 연결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서구 대중의 감상주의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했다. 따라서 와이타리는 세계의 이목으로부터 자신의 힘을 감추기 위해 취했던 모호한 태도를 이제 끝내야 했다. 그리고 좀더 강력한 조직체를 조직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자금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는 무기와 장비를 갖춘 20명의 부하를 세 대의 트럭에 나눠 태웠다. 그들 중 임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맹 가리<하늘의 뿌리> 보호를 향한 움직임, 1905년 12월 6일, 코끼리 애호인 협회가 파리에서 결성되었다. 자연사 박물관장을 위시해서,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카미유 생상 같은,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이 단체에 참여했다. 본 협회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끔찍한 코끼리의 대량학살을 막고, 상아의 거래를 규제하며, 아프리카 내 우리 영토에서 코끼리 길들이기 작업을 확대할 것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짐승들에게도 도도새(17세기까지 모리셔스 제도 등지에서 살았던 새, 너무 살이 쪄서 날 수 없었던 비둘기과의 새이다:역주)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최근 멸종된 몇몇 종들처럼 코끼리도 머지 않아 멸종되고 말 것입니다. 페리에, 코끼리 애호인 협회 회장 1906년경 아프리카 코끼리의 문제, 먼저 폴 이포 씨가 본협회의 첫 번째 축하연의 흥을 돋울 수 있는 노래를 하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코끼리의 친구>라는 노래인데, 서투른 시처럼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이 노래가사에는 우리의 목표와 생각과 의도가 대단히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식민지주의자와 자본가들이 시대의 주도세력인 지금, 우리 모임의 중요한 논지는 코끼리를 위한 캠페인의 효용성과 수익성 부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유력인사들과 정치인들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행히 현재 서구는 우리가 제시한 논거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상아 거래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점차 고치고 있습니다. 코끼리의 친구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게다가 서두르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을 막을 것인가? 코끼리는 인간의 친구, 개 보다 훨씬 더 변함이 없네. 결국 이제는 인간들이 코끼리의 친구가 될 차례라네.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에서, 코끼리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네. 콩고에서 모잠비크에 이르기까지 흑인들은 코끼리에 대항해서 뭉쳤다네. 상아를 밀매하기 위해서라면 잔인하게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네. 이제는 프랑스의 우리가 코끼리의 친구가 되어야 할 때라네. 광포한 흑인들이 코끼리들을 잔인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 인도제국에서는 코끼리들의 힘과 온순성을 높이 평가한다네. 옛날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는 전투에서 정말 뛰어났다지. 로마인 죽음을 당했다네. 이 코끼리들의 충실한 벗에게. 지혜로운 이 후피동물을 잘 활용할 수도 있다네. 밭을 가는 황소처럼 코끼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네. 무게가 어마어마한 이 코끼리는 어린아이를 즐겁게 할 수도 있고, 하인들의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네. 우리 모두 코끼리의 친구가 되세. 지식이 풍부한 지성인들이 이 문제를 오랫동안 숙고했네.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했네. 그리고 마침내 해결책을 찾았네. 여러분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된 것 같네. 이 식탁을 떠나면서 수락하라고, 코끼리의 친구가 될 것을. 우리 함께 코끼리의 운명을 지켜나가세.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세. 그렇지 않으면 기니에서 더 이상 코끼리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네. 자연의 왕들 중의 하나인 이 흥미로운 짐승의 미래는 당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네. 당신들은 코끼리의 친구. 키미유 생상의 보호활동, 여기에 제시된 글에는 당시의 말투나, 코끼리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잘 드러나 있다. 비전문가 회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인, 학사원 회원 카미유 생상의 발언(1909)내용에서도 당시의 그러한 특색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상아로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벌었고,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과일을 얻기 위해 과일 나무를 쓰러뜨리는 야만인처럼 행동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흥미로운 동물의 멸종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제 미천한 생각으로는 지성인이라면 온 힘을 다해 그 멸종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활기를 띠는 매머드의 사용,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 거래 금지 후, 제조업자들은 매머드의 상아를 수입하려 하고 있다. 1989년 10월 로잔에 모인 103개국 대표들은 회원 2/3의 찬성을 얻고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효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여러 해를 끌다가 간신히 채택된 이 역사적 결의안은 세계시장에 즉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어 파리에는 상아제품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가게가 드문 편인데, 이들 가게의 총 매상고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파리 제6구에서 3대 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피에르 에크만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아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상아를 가져와 고쳐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손님들은 심지어 상아에다 자신의 흉상을 새겨달라고 주문합니다. 저는 주당 60시간씩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골동품 가게에서도 상아 가격이 급등했다. 1년 전에 8,000달러 하던 오래된 상아 장기알이 런던의 소더비에서 최근 8만 달러에 팔렸다. 반면에 아프리카에서의 상아 시세는 폭락했다. 예전에 kg당 240달러 하던 가공하지 않은 상아의 가격이 지금은 자이르에서 80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특히 홍콩에서 수십 혹은 수백 톤의 상아를 보유하고 있는 상인들은 앞으로 그 많은 상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민 하고 있다. 타이완과 코트디부아르처럼 로잔 협정의 '103 회원국'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며, 이들의 상아 거래는 각별한 감시를 받게 될 것이다. 수 만 명의 전세계 상아세공인들이나 상아거래상들은 자신들의 장래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상아의 대용물을 잘 알고 있으며, 그 대용물들 중 몇 가지는 대단히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몇 십 년 전부터 갈랄리트와 셀룰로이드 같은 합성수지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일본 사슴의 뼈나 뿔, 그리고 아마존강의 종려마무에서 추출한 '식물성 상아'인 코로조(상아종려의 열매에서 추출한 단단한 백색 물질:역주) 등이 상아 대용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용품들로는 약간 흰 코끼리 상아의 뛰어난 재질을 대신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화석화된 매머드의 상아이다. 2만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레스퓌그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머드의 상아는 그때부터 이미 자그마한 상들을 조각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귀한 후피동물이 기원전 1만 년경에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동굴벽을 장식하는 벽화, 혹은 땅 속에 묻힌 유해들뿐이다. 시베리아의 영구 결빙지대의 얼어붙은 진흙 속에서는 수십 마리의 매머드 유해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발굴된 매머드 중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앉은 자세로 동결된 매머드인데, 이 매머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의 자랑거리이다. 파리 박물관도 쭈글쭈글해진 매머드 머리 조각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를 본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시베리아 매머드의 무덤들, 매머드의 잔해 중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은 뼈들이며, 물론 그 속에는 상아도 포함된다. 시베리아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발굴이 행해졌다. 선사시대의 우크라이나인은 매우 단단한 이 유골들을 움막을 짓는 데 다량으로 이용했다. 그보다 훨씬 뒤, 알렉산드 대왕은 당시 코끼리의 상아와 구별하기 위해 매머드의 상아를 '흙 속에서 뽑아낸 상아' 라고 불렀다. 시베리아 부족들에게는 이 '천연자원'의 채굴과 가공과 거래가 수세기 전부터 그들 경제활동의 일부였다. 타타르족의 한 황제의 옥좌는 전체가 매머드 상아로 조각되기도 했다. 17세기 카자흐인의 시베리아 정복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상아거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파리의 장인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러시아의 상아를 가지고 작업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매머드 상아는 아프리카 상인의 값싼 대용물이었다. 영구 동결된 상태로 보존된 매머드 상아는 수천 년을 거치는 동안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매머드 상아를 습기가 많은 장소에 보관하면, '껍질'이 좀 두껍고, 결이 약간 더 거칠며,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코끼리 상아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니면 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피에르 에크만의 설명이다. 오늘날 구소련 땅에 묻혀 있는 화석화된 상아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가 없다. 소련(구소련이 붕괴되기 전의 기사에서 발췌:역주)도 그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벌써부터 터무니없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몇 달 이내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매머드 상아 값이 kg당 300달러에서 800달러로 치솟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련은 그 엄청난 보물을 현금으로 바꾸려는 유혹을 더 느낄 것이며,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는 만큼 상아 가격을 더 높이려 할 것이라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다. 가공하지 않은 상아의 수출을 금지하는 그들의 정책은 일대 전환을 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3년 전, 그들은 핀란드인을 중개인으로 내세워 몇몇 프랑스 상인들에게 수 톤의 상아를 제시했다. 그리고 몇 달 전, 폐업 위기에 직면한 독일 오덴발트 지역의 상아세공인들에게 매년 다량의 상아를 공급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거래를 제안했다. 일본인은 즉각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일본은 1988년 106톤의 아프리카 상아를 수입하여, 피아노건반과 도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특히 상아 도장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200만 개의 상아도장이 만들어졌다. 통상적인 상아 거래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러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량을 어떻게 확보 할 것인가? 시베리아의 매머드 상아를 대량으로 구입해야만 하지 않는가? 시세가 오르기 전에 물량을 확보하려는 일본인의 주문이 쇄도하자, 소련인은 생각을 바꾼 것 같다. 그들은 도쿄를 출발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일본 대표단에게 상아도장을 만드는 합작회사의 설립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공장은 소련 야쿠트 지방에 설립하여 그 지역의 장인들을 고용하도록 하고, 설립자본만 부분적으로 일본인이 출자하도록 한다는 것이 그들의 복안이다. 벌써부터 코끼리 보호론자들은 분개하고 있다. 화석화된 상아는 어떤 국제협약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아거래는 실제로 아프리카 상아의 불법적인 거래를 은폐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인류의 공동자산인 고대 동물의 상아 남용이 현재 살아있는 동물의 상아 남용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1950년 3월 12일 발표되었고, 그 후 완전히 잊혀졌던 농업장관의 시행령을 다시 들추어냈다. 프랑스에서는 코끼리 상아만이 상아제품이란 사표를 붙인 채 판매될 수 있으며, 매머드 상아에는 그와 같은 상표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이 시행령의 내용이다. 마르크암브루아즈 랑뒤 <르 몽드> , 1990년 1월 10일 아웃 오브 아프리카, 지난 10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어떻게 하면 코끼리들의 학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나라들은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짐바브웨는 거래를 조직화하여 그에 맞서고 있다. 홀로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코끼리 수컷이 근처의 강으로부터 불러오는 습한 바람에 커다란 귀를 부채질하듯 나풀거리면서, 긴 코를 이용해서 능숙한 솜씨로 자신이 좋아하는 열매를 따고 있다. 야생적이고 자유로운 아프리카의 한 단면이다. 그렇지만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대규모 옥수수농장들이 있고, 거대한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짐바브웨가 유럽공동체에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임을 환기시켜준다. 아프리카의 또 다른 일면이다. 짐바브웨는 이 두 모습을 함께 지켜 나가조가 하는 것 같다. 전세계가 발벗고 나섰고, 아프리카는 코끼리들리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고 있으며, 상아를 탐내는 밀렵꾼들에 의해 학살되고 있다. 그러나 짐바브웨는 예외이다. 그곳에는 10년 전 3만여 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그 수가 5만 2,000마리에 달한다. 마나 풀 국립 공원 안에서 수렵여행 주최자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는 35세의 구트는 평생을 수풀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구증가와 새 농장주에게 농토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동물들은 제한된 구역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 그는 인공적으로 생태계 균형을 복원시키기 위해서도,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가능한 한 빨리 적정량을 초과한 짐승들을 도살해야 한다는 '가축선별작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서구의 동물애호가들은 그러한 작업을 언제나 야만적인 행위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구트는 관광과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이 자기 나라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끈기 있게 되풀이해서 서명했다. 사냥도 세심하게 통제를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감상적인 태도와 환경보호운동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영국 식민주의의 유산인 국립공원들이 짐바브웨 전체 면적의 1/10을 차지하고 있다. 짐바르웨는 국립공원들이 짐바르웨는 국립공원들을 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지면상 경계가 그어진 제한된 인공낙원 속에서 동물의 왕인 코끼리들을 법률과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수렵여행의 주최자들, 윤택한 삶을 누리는 대농장주들, 전현직 사냥꾼들 같은 짐바르웨의 다른 백인들처럼 구트도 자기 나라에 산재해 있는 국립공원과 광대한 수렵지구, 그리고 코끼리드레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상아가 가치를 상실하게 되면, 코끼리들이 아프리카에서 살아 남지 못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보츠와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는 코끼리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1979년에서 1989년 사이에 코끼리의 수는 134만여 마리에서 62만 5000여 마리로 줄어들었다. 번식기에 이른 수컷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 수컷들은 커다란 상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 밀렵꾼들의 표적이 된다. - 코끼리의 번식 자체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암컷 한 마리를 죽이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두 살 이하의 새끼코끼리도 함께 죽이는 셈이 된다. 학살의 원인이 되는 상아. 인간들은 수천 년 전부터 조각을 했고,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소재로 알려져 신화적인 것이 되어 버린 상아, 준보석처럼 간주되는 이 상아에 대한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인의 탐욕이 매년 수천 마리의 코끼리를 죽이고 있다. 1976년 워싱턴 협정에 서명한 나라들은 코끼리를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로 규정했다. 그 협회에서는 코끼리의 수에 따라 각 나라에 할당량을 지정해 주었다. 그러나 그 할당량이 준수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협회의 사무국인 시트(CTTES)는 밀렵을 제어할 능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국제적인 거래망을 갖고 있는 상아 거래조직은 통제를 조직적으로 피하고 있다. 상아의 판매경로는 계속 바뀌고 있다. 타이완과 싱가포르와 마카오를 거쳐, 이제는 두바이가 중간 경유지로 이용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부패한 고위관료와 군대장교와 경찰 간부들이 가짜 서류를 발급 받아 상아의 반출을 돕고 있다. 상아 수출을 장려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들의 경우는 국가의 방조하에 공공연하게 상아의 반출이 이루어진다. 다른 몇몇 국가들의 경우는, 정치투쟁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코끼리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오늘날 앙골라에는 코끼리가 불과 1600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상아 가격은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다. 1979년 kg당 63달러였던 상아 가격이 1986년에는 260달러에 달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상아 거래액은 연간 5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아프리카가 얻은 것은 그 수입금의 극히 일부인 10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한줌도 안 되는 수출업자들, 즉 홍콩과 도쿄의 사업가들 주머니 속에로 들어갔다. 지난 봄 대량학살에 위험을 느낀 서구 국가들은 그것이 가공된 것이든 가공되지 않은 거시든, 혹은 땅속에서 나온 것이든 가리지 않고 상아의 거래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결정은 국제야생생물기금 같은 많은 민간 환경보호 단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또한 코끼리가 격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경각심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없어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못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지난 6월 케냐, 탄자니아, 소말리아를 포함한 7개국들은 모든 상아 거래를 금지시켜 달라고 시트에 요청했다. 그러나 그 일로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분열되었다. 케냐와 탄자니아가 앞장선 동아프리카는 코끼리의 완전한 보호를 위해 싸웠으며, 이들은 유럽공동체와 미국, 대부분의 자연환경 보호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수량을 속이는 것으로 의심을 받아 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개임으로 난처한 입장에 빠진 남아프리카는 예외적인 조항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남아프리카의 선봉장 역할을 한 짐바브웨는 서구 환경보호론자들의 논거를 반박했다. 관광과 야생동물을 관장하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케냐나 탄자니아가 그들의 동물을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짐바르웨는 결국 이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워싱턴 협정에 서명한 103개 회원국들을 10월 17일 로잔에서 상아 거래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최종적인 희망사항은 조만간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남아프리카의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패와 밀렵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국제자연보존연맹의 판단이다. 그러나 짐바르웨에서는 농부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시골 농부들에게 코끼리는 밤사이에 자신들의 수수밭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한낱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코끼리들이 여기서 자리를 차지하고 살려면 공물을 바쳐야 하오." 잠베지강 유역의 구루브 지역 족장인 에프라임 사페수카의 말은 단호했다. 짐바르웨는 국립공원의 인근 마을에 야생동물의 관리를 맡기고, 그곳에서 나는 수익도 전적으로 그들에게 일임했다. 풀어놓은 짐승들이 해를 입히는 것도 바로 그들의 경작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년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적정량을 초과한 동물의 수를 산정했다. 그리고 직업적인 사냥꾼들을 고용하여 초과분의 짐승을 죽이고, 그 고기는 마을사람들이 나눠 갖는다. 상아는 경매에 붙여 팔고, 고기는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고, 가죽은 무두질을 해서 수익을 올린다. 특히 외국인 사냥꾼들을 위해 사냥여행을 알선하는 일을 통해서 - 한 여행객이 사냥이 금지되어 있는 코끼리 한 마리를 죽이고자 한다면, 3만 달러 정도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 그 지역주민들은 1988년 15만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 그것은 반성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거액이다. "예전에 우리 마을사람들은 밀렵을 했고, 야생동물한 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동물들이 국가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금은 우리의 공유재산입니다. 이 지역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죽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압니다. 밀렵은 불가능해졌습니다. " 이렇게 사페수카는 단언했다. 생태환경 보호론자들은 짐바르웨를 그대로 두면 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항의한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나머지 국가들에게도 금지되어 있는 상아의 유통을 허용하는 틈을 열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동물보호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마쿠티에서 카리바에 이르는 도로 위에, 잠베지강 유역에 드넓은 초원지대에 거대한 코끼리들리 남겨 놓은 파괴의 흔적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상아가 가치를 상실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곳 사람들이 코끼리들이 번식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둘까? 코린드니 <렉스프레스> 1989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