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칼의 날(중) -포사이즈 장편추리소설 ----- 차 례 ----- 제 8 장 제 9 장 제 10 장 제 11 장 제 12 장 제 13 장 제 14 장 제 8 장 수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코와르스키는 중앙우체국으로 갔는데, 그때 아무데도 전화 걸 예정이 없었던 것이 그에게는 불운이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 시간을 끌었더라면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푸아티에 앞으로 오는 편지 다섯 통을 받아 가지고 그것을 쇠사슬로 손목에 연결된 가방에 넣어서 다급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9시 반에는 가방을 로댕에게 전해 주고 눈을 좀 붙이기 위해서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 보초 근무는 밤 7시부터이며, 옥상에서 대기하기로 되어 있었다. 방에 돌아온 그는 콜트 45권총을 꽂았다.(로댕은 시내에 나갈 때에는 절대로 권총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엄하게 일러놓았다.) 만일 그가 몸에 꼭 끼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면 총과 홀스터는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양복은 솜씨 없는 재봉공이 되는 대로 지은 듯한 것으로서, 코와르스키 같은 거구가 입어도 마치 헐렁한 부대처럼 넉넉했다. 그는 전에 사두었던 반창고와 베레모를 윗도리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6개월 동안 모아둔 리라화와 프랑화의 지폐를 안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섰다. 층계참의 책상에 앉아 있던 당번주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주임에게, "전화를 걸고 오라고 했어." 라고 말하며 kqc泳C⒯?쳰9??棹粗??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1층에 내려온 그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면서 거리로 나갔다. 거리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서 '오지'라는 잡지를 읽고 있던 남자가 잠깐 잡지를 내리고 코와르스키가 두리번거리면서 택시를 찾고 있는 것을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택시가 눈에 띄지 않자 모퉁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잡지를 읽고 있던 남자는 카페 테라스를 떠나 차도 바로 옆, 인도 가장자리에 멈춰섰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해 있던 소형 피아트가 남자 앞에 와서 섰다. 남자가 타자 피아트는 걸어가고 있는 코와르스키의 뒤를 천천히 미행했다. 오는 택시를 세워서,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하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공항에 도착한 코와르스키는 알리탈리아 항공의 창구에 가서 현금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창구의 여자에게 가방이나 짐은 없다고 한 뒤에, 11시 15분발 마르세유행에 탑승할 손님은 1시간 5분 뒤에 호명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호텔 앞에서부터 미행해 온 SDECE의 요원은 그 동안 계속 코와르스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코와르스키는 카페테리아에 들어가서 카운터에서 커피를 사가지고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보이는 창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공항이 어떤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공항이 좋았다. 그의 귀에 익은 엔진 -- 독일의 메사슈미트, 소련의 스톨모비크, 미국의 하늘을 나는 요새. 그리고 그 훨씬 뒤의 것으로는 베트남에게서 공중지원을 해준 스카이레이터며 B_26, 알제리 시대의 미스트레나 후거 등. 민간항공의 여객기는 그 맛이 조금 다르지만, 기수를 내리고 은빛 새처럼 활주로에 진입하여 엔진을 낮추면서 실에 매달린 듯이 착지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본래 여성적인 성격이지만 공항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소란스러움이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그는 몽상에 빠졌다. 만일 자기가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 공항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그 일뿐이며 이미 무엇으로도 바뀔 수가 없다. 옮겨가서 굵은 눈썹이 고통스럽게 흐려졌다. 그런 일이 어째서 있을 수 있는가 하고 그는 분노를 참으며 마음속에서 말했다. 그 아이가 죽고, 파리에서는 하릴없는 악당들이 태평스럽게 살아 있는, 그런 일이 있어도 좋단 말인가? 악당들에 관해서는 로댕에게서 여러 가지 들은 바 있다 -- 놈들은 프랑스를 부끄럽게 했고, 군을 배반했고, 외인부대를 해체했으며, 인도네시아와 알제리에 살고 있던 동포들을 테러리스트 손에 넘겨준 것이다.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코와르스키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유리문에서 희게 불타는 콘크리트의 에이프런으로 나가서 비행기로 향했다. 트랩을 올라가서 기내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베레모를 쓰고 한쪽 볼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요원 하나가 동료 쪽을 향해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윽고 터보플로프기가 이륙하여 두 요원도 데크를 떠났다. 그 중 하나가 중앙 홀에서 신문 판매대에 들르고, 다른 하나는 시내전화의 다이얼을 돌렸다. 그는 먼저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고 한마디씩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놈은 갔어. 알리탈리아 451편이야. 마리난 도착 1210. 이상." 10분 뒤 이 보고는 파리에 닿았으며, 다시 10분 뒤에는 마르세유에 전달되었다. 알리탈리아 항공의 바이카운트기는 끝없이 푸른 리용 만 상공에서 크게 귀여운 이탈리아 스튜디어스가 통로를 돌아다니면서 승객이 모두 안전띠를 매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뒷부분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아서 벨트를 채웠다. 바로 앞좌석의 승객이 희게 빛나는 론 델타의 평야를 처음 구경하듯 진지하게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손님은 노동자 같은 거구의 남자로서, 이탈리아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동구풍 사투리가 강한 프랑스어로 말했다. 짧게 깎아올린 검은 머리에 검은 베레모를 얹고, 커다란 몸에 주름투성이의 양복을 걸치고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그리고 한쪽 볼에 붙인 반창고가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생각했다. 바이카운트기는 정각에 터미널 건물 근처에 착륙했다. 승객들은 세관으로 갔다. 그들이 유리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경관 옆에 서 있던 대머리의 가냘픈 사나이가 가볍게 경관의 발목을 차면서, "거구의 남자야. 검은 베레모에 반창고." 하고 속삭이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 또 하나의 경관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승객들은 검사대 창 사이를 지나기 위해서 두 줄이 되었다. 양쪽 창 안쪽에 경관이 한 사람씩 마주앉아 있다. 그 사이의 3미터쯤 되는 통로를 승객이 지나는 것이다. 승객은 각자의 여권과 입국 카드를 제시한다. 창 안에 서 있는 인물은 입국하는 외국인이나 귀국하는 프랑스인을 코와르스키가 검사대 창 앞에 갔으나, 안에 있는 푸른 제복은 거의 그를 볼 생각도 않고 노란 입국 카드에 쾅 하고 스탬프를 찍고는, 내민 신분증명서를 한번 흘끗 보고서 다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그를 통과시켰다. 겨우 안심하고 그는 세관의 벤치 쪽으로 갔다. 세관의 담당자들도 역시 대머리 남자에게서 같은 말을 이미 들은 뒤였다. 주임 담당관이 코와르스키를 향해서 말했다. "휴대하신 짐은 저쪽에서 찾으십시오." 하고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자기 짐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승객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짐은 비행기에서 트럭으로 세관 밖까지 운반되어, 거기서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안으로 코와르스키는 담당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짐은 없소." 담당관은 눈썹을 위로 올렸다. "없으시다고요? 그럼, 혹시 신고하실 것은?" "없소." 담당관은 노래하는 듯한 마르세유 사투리에 어울리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가십시오." 그는 택시 승차장으로 통하는 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코와르스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밝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택시 타는 것에 익숙치 못한 그는 부근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공항버스를 발견하고서 거기에 올랐다. 담당관이 주임에게로 몰려왔다. "어째서 수배를 하는 걸까, 저 사나이를?" 하고 한 사람이 말하자 다른 사람이 대꾸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인상이 안 좋은 녀석이야." "저 친구들에게 심문당하면 더 무서운 얼굴이 될걸." 하고 세 번째 담당관이 턱으로 등뒤의 사무실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대머리의 일행이 숨어 있었다. "자, 모두들 일합시다." 주임이 말했다. "이래서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지." "샤를 영감을 위해서?" 하고 첫번째 담당관이 그곳을 떠나면서 중얼거렸다. 버스가 마르세유의 중심가에 있는 에르 프랑스의 지점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였으며, 시내는 로마보다 훨씬 더웠다. 마르세유의 8월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점은 있지만, 활발하게 행동할 의욕을 빼앗아가 버리는 무더위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열기가 전염병처럼 시내를 온통 뒤덮고 사지에 스며들어 힘과 에너지를 빨아들여 버리는 것이다. 덧문까지 내려 버린 방안에 틀어박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이 고작이며,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여느때는 활기에 넘치고 밤이 되면 휘황한 빛으로 소용돌이를 이루는 마르세유의 중심가, 칸비에르도 지금은 죽은 듯 고요하다. 몇몇 오가는 사람이나 없다. 택시를 잡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운전사들은 대개 공원의 나무 그늘 같은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조조가 가르쳐 준 주소는 마르세유의 중심부에서 교외의 캐시를 향해서 뻗어 있는 간선도로 쪽에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리베라시옹(해방) 로(路)에서 택시를 내려 나머지는 걷기로 했다. 운전사는 좋을 대로 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 어조에는 이 더위 속을 택시에서 내려 일부러 걷는 바보 같은 외국인이라는 듯한 빈정거림이 담겨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인도 옆 카페에 들러서 웨이터에게 길을 물은 뒤에야 종이쪽지에 써둔 좁은 비교적 새것이었다. 조조 부부의 장사가 제법 잘되고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부인이 전부터 욕심내던 가게를 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장사가 잘되어 돈을 잘 버는 모양이다. 게다가 여기라면 항구 옆보다는 환경도 훨씬 좋고, 실비아를 위해서도 좋겠지. 딸의 일이 머리에 떠오른 순간 그는 불길한 상상을 하면서 아파트의 현관 앞 층계 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조조는 전화에서 뭐라고 했더라? 1주일? 길어야 2주일? 그런 말도 안되는...... 그는 단숨에 층계를 뛰어올라 현관 홀의 벽에 두 줄로 걸려 있는 우편함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보스키'라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23호실'이다. 2층이었기 똑같은 문이 늘어서 있었다. 23호실의 문에는 '그리보스키'라고 타이프로 친 흰 카드가 초인종 단추 옆에 있는 명찰꽂이에 꽂혀 있었다. 그 플랫은 복도의 끝 쪽에 있었으며, 22호와 24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단추를 눌렀다. 눈앞에서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 도끼자루가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 그것은 피부를 찢었지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 맞고 튀어올랐다. 그의 양쪽 22호와 24호의 문이 안에서 열리고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1초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코와르스키는 화가 났다. 생각한다는 것은 질색이지만, 격투 기술만큼은 완전히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좁은 복도이고 보니 거구의 다만 다행인 것은 그는 키가 워낙 컸기 때문에 도끼자루가 완전히 내리치기 전에 이마에 맞아 버려서 완전한 타격을 줄 수가 없었던 점이다. 두 눈은 피로 흐려져 있었으나, 그는 앞문 안에 둘, 좌우에 둘씩 적이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좀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그는 23호실로 뛰어들었다. 바로 앞에 있던 남자는 충격을 받아 뒤로 비틀거렸다. 등뒤로 다가온 적은 깃이나 소매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방으로 뛰어든 그는 겨드랑이 밑에서 콜트 권총을 뽑아 돌아서면서 문을 향해 쏘았다. 그러나 그 순간 이번에는 손목에 일격을 당하여 겨냥이 밑으로 처졌다. 총알은 기습해 온 한 명의 무릎에 맞고, 그 사나이는 또다시 도끼자루가 손목을 강타했다. 손가락이 저려 오며 힘이 빠져 권총이 손에서 떨어졌다. 다음 순간 다섯 명의 사나이가 그에게 덤벼들었다. 싸움은 3분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가죽으로 감싼 곤봉으로 머리를 20회 이상 얻어맞았다고 나중에 그를 진찰한 의사가 증언했다. 한쪽 귀는 반쯤 찢어지고, 코는 부러지고, 얼굴 전체는 진홍색으로 물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거의 반사운동이었다. 격투중에 그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에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이 닿을까 말까 하는 순간에 권총이 발길에 채이며 방구석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침내 그가 기절하여 앞으로 엎어졌을 때는, 그런대로 제 발로 서 있는 적은 셋밖에 거구가 바닥에 고꾸라져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찢어진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징조이다. 세 사나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무릎을 총에 맞은 사나이는 문 옆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박살이 난 무릎을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거머쥐고 고통으로 핏기마저 사라진 입술에서는 저주의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한 명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타구니 사이에 두 손을 박고 몸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코와르스키 옆에 뻗어 있었다. 코와르스키의 강력한 펀치를 정통으로 맞은 관자놀이가 허옇게 부어올라 있었다. 굴려서 반듯이 눕혀 놓고는 감겨진 눈꺼풀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창가에 있는 전화로 걸어가서 시내 번호를 돌리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는 아직도 숨결이 거칠었다. 이윽고 전화를 받는 상대에게 그가 말했다. "해치웠어......저항이 있었느냐고? 당연하지. 미친 놈같이 날뛰었으니까...... 한 발 쏘는 통에 게리니가 무릎을 맞았어. 카페티는 급소를 맞고 앓는 중이고, 비사르트는 편히 누웠어...... 뭐라고? 아, 녀석은 살아 있어. 생포하라는 명령이었지? 없앨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큰 피해는 입지 않지...... 그야 물론 다치긴 했어.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정신은 잃었어...... 아니, 샐러드 바구니 (죄인 호송차)는 빨리." 그는 수화기를 때려부술 듯이 내려놓고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온 방안에 부서진 가구의 조각들이 땔감나무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하긴 땔감이 아니면 별로 쓸 데도 없었다.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모두들 간단히 복도에서 끝날 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가구류를 다른 방으로 옮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리더 자신도 코와르스키가 한 손으로 집어던진 팔걸이의자에 가슴을 맞아 아직도 그곳이 뜨끔거렸다. 본부 녀석들도 어떻게 된 모양이야. 저 자식이 어떤 놈인지 미리 한마디도 말해 주지 않았으니 하고 그는 속으로 욕을 퍼붓고 15분 뒤, 시트로엥 구급차 두 대가 아파트 앞에 멈추고서 의사가 올라왔다. 의사는 5분쯤 코와르스키를 진찰해 본 다음에 그의 소매를 걷고 주사를 놓았다. 거구를 실은 들것이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있던 의사가 벽 옆에서 피를 흘리면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는, 무릎에 총상을 입은 코르시카인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무릎에서 떼어 내고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휘파람 소리를 냈다. "좋아, 일단 모르핀을 한 대 놓고 병원으로 데려가지. 센 것으로 놓아 줄 테니까. 여기서는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이런 일은 다시는 못해." 주사바늘이 실을 뚫고 들어가자 게리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앉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페티는 일어나서 구역질을 참아가며 벽에 기대어 있었다. 동료 둘이서 양쪽 겨드랑을 끼고 그를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리더는 비사르트를 안아 일으켰고, 움직이지 못하는 게리니는 두 번째 구급차의 들것으로 운반되어 갔다. 복도에 나온 리더는 엉망이 된 실내를 돌아다보았다. 옆에 서 있던 의사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굉장한 난장판이군." "뒷일은 관할 경찰에 맡겨야겠군." 리더는 문을 잠갔다. 22호와 24호실의 문도 열려진 채였지만, 내부는 어질러지지 않았다. 그는 그 두 개의 문도 잠갔다. "아무도 살지 않소?" 의사를 앞세우고 리더는 아직 의식이 채 돌아오지 않은 비사르트를 부축해 가며 층계를 내려가서 차에까지 데리고 갔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파리 교외에 있는 옛날의 성까지 차로 운반된 코와르스키는 지하의 독방에 눕혀져 있었다. 유리창이라면 어디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부가 그대로 드러난 더러운 벽, 곰팡내 나고 여기저기 외설스러운 그림이나 기도문이 아무렇게나 쓰여 있었다. 그곳은 좁고 무더운 독방으로서, 소독약 냄새와 땀과 지린내가 뒤범벅된 괴상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다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아주 묻어 버린 철제 침대에 코와르스키가 반듯이 눕혀 있었다. 비스킷같이 얇은 매트리스와 돌돌 말아서 베게 대신 머리에 없었다. 그의 복사뼈, 허벅지, 그리고 손목은 투박한 가죽 띠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도 가죽 띠가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깊고 불규칙적인 호흡만 하고 있었다. 얼굴의 핏자국은 닦여 있었으며, 귀와 머리 부분의 찢어진 곳은 꿰매어져 있었다. 부어오르고 휘어진 코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고, 거칠게 숨쉬고 있는 입 틈새로 불거진 앞니가 보였다. 어쨌든 얼굴 전체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또한, 검은 털로 덮인 가슴과 어깨, 복부에도 주먹이나 구두, 곤봉 등에 의한 타박상이 생생했다. 오른쪽 손목은 두꺼운 붕대를 감고서 테이프로 고정시켜 놓았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진찰을 끝내고 넣었다. 그리고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자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곧 열리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다시 문이 닫히고 간수가 커다란 쇠빗장 두 개를 철컥 하고 걸었다. "대체 무엇으로 저 남자를 때린 거요?" 복도를 걸으면서 의사가 물었다. "여섯 명이 달려들어서 겨우 쓰러뜨렸소." 하고 롤랑 대령이 말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요. 소 같은 몸을 가졌으니까 살았지. 보통 인간이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어쩔 수가 없었소. 이쪽도 셋이나 다운되었다니까." "굉장한 격투였겠군요." "그랬다는군. 그래, 녀석의 부상은 어느 "쉽게 말하면 오른쪽 손목의 골절, X선 사진을 찍지 못했으니까 확실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말이오 -- 그리고 왼쪽 귀가 찢어지고, 머리는 터졌고, 코뼈가 부러졌소. 찢어진 상처나 타박상은 셀 수도 없고. 그리고 뇌진탕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 운이 좋으면 곧 낫는 수도 있지만. 외부 상처는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별것 아닌데, 걱정되는 것은 역시 머리요. 뇌진탕이 어느 정도 심한지 속단할 수가 없소. 두개골은 깨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은 당신 부하가 잘해서가 아니오. 그가 상아같이 단단한 두개골을 갖고 있는 탓이지. 그러나 당분간 그대로 가만 놔두지 않으면 뇌진탕이 악화될지도 몰라요." 되겠는데......" 하고 롤랑 대령은 빨아도 잘 타들어가지 않는 담배 끝을 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1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있는 곳에서 멈춰섰다. 의사의 사무실은 복도를 똑바로 계속 간 곳에 있다. 그는 불쾌한 얼굴로 액션 서비스의 보스를 흘끗 보았다. "여기는 유치장과 다를 바 없군." 의사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국가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녀석들을 가두어 두는 곳이라. 그러나 나는 의무관으로서 죄수들의 건강관리에 책임을 지고 있소. 저쪽 복도는......" 그는 방금 둘이 나온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당신 영역이오. 그쪽에서 무슨 일이 권한도 없소. 그러나 이것만은 말해 두겠소. 저 남자가 낫기 전에 당신이 하는 그런 방법으로 심문을 시작하면 틀림없이 죽고 말 거요. 설령 죽지 않더라도 미쳐 버리고 말 거요." 롤랑 대령은 의사의 엄한 경고를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럼, 얼마나 있으면......?" 의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소. 내일이라도 의식을 되찾을지도 모르고, 며칠 계속 잘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설령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최소한 2주일은 심문받을 수가 없소. 뇌진탕의 정도가 경미한 경우라도 최소 2주일 동안은 절대로 안정이 필요해요." "있지요. 있지만 나는 처방해 주지 않을 거요. 하긴 당신이라면 약을 구하는 것쯤은 문제가 없겠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으니까. 게다가 억지로 말을 하게 해봐야 나오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잠꼬대 같은 것에 불과해요. 머리가 흐려 있으니까. 그 흐린 것이 사라질지 그대로 남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설령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이 저절로 맑아지도록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소. 거기에 섣불리 약물 같은 것을 썼다가는 백치가 되어버려요. 그렇게 되면 아주 쓸모가 없지. 1주일쯤 지나면 깨어나기는 할 거요. 어쨌든 좀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는 없소." 그렇게 말해 버리고 의사는 사무실로 코와르스키는 3일 뒤인 8월 10일에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는 처음으로, 그리고 최후의 심문을 받았다. 브뤼셀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재칼은 꼬박 사흘 걸려 마지막 준비를 갖추었다. 우선 그는 알렉산더 제임스 댓건 명의로 된 새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자동차연맹의 본부가 있는 패넘 하우스로 가서 한 벌로 되어 있는 여행가방을 세 개 샀다. 그 중 하나는 페르 옌센 목사로 변장할 필요가 생겼을 경우에 대비하여 그때 입을 의상을 넣기로 했다. 런던에서 산 목사용 셔츠, 스탠드 칼라, 그리고 검은 흉배에서 상표를 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코펜하겐에서 산 석 장의 셔츠에 붙어 있던 덴마크의 상표를 옮겨 어울리는 구두, 양말, 내의, 진한 회색 양복을 집어넣었다. 그 가방에는 또 미국 학생인 마티 슐버그의 옷가지 -- 운동화, 양말, 청바지, 스웨터, 점퍼를 넣었다. 다시 그 가방의 안감을 뜯고 두 겹으로 되어 있는 가죽 사이에 외국인 두 사람의 여권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 성당에 관한 덴마크어로 된 책, 목사용과 미국인 학생용 안경, 티슈페이퍼에 싼, 색깔이 있는 콘택트 렌즈 두 벌, 그리고 머리 염색용 물건 등을 넣었다. 두 번째 가방에는 파리의 '벼룩 시장'에서 산 프랑스제 구두, 양말, 셔츠, 바지, 그리고 자락이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군용 외투와 검은 베레모를 넣었다. 그리고 위조신분증과 상이군인 증명서를 역시 안감을 뜯고 두 겹으로 된 가죽 사이에 숨겼다. 이 가방에는 저격용 라이플과 총알을 넣은 강관을 넣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넣지 않았다. 세 번째의 조금 작아 보이는 가방에는 알렉산더 댓건의 물건을 넣었다 -- 구두, 양말, 속옷, 셔츠, 넥타이, 손수건, 양복 세 벌 등. 그리고 안감에는 브뤼셀에서 돌아올 때 은행에서 찾아두었던 10파운드짜리 지폐로 1,000파운드나 되는 돈을 집어넣었다. 준비를 끝낸 이 세 개의 여행가방에 단단히 열쇠를 채우고 그는 그 열쇠를 열쇠고리에 끼웠다. 회색 양복은 깨끗이 다림질해서 옷장에 걸어 두었다. 국제면허증, 그리고 1,000파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넣어 놓았다. 짐은 세 개의 가방 이외에 아타셰 케이스가 있었다. 그 안에는 면도기구, 잠옷, 스폰지와 타월, 그밖에 자질구레한 물건들 -- 가벼운 그물처럼 짠 허리끈, 구운 석고(石膏) 한 봉지, 붕대, 반창고, 탈지면, 커다란 가위 등을 집어넣었다. 이 아타셰 케이스는 들고 다닐 생각이다. 어느 공항에서도 아타셰 케이스는 세관에서 프리패스다. 열어서 조사를 받는 일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짐을 모두 집어넣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옌센 목사와 마티 슐버그는 만일을 위해서 준비한 것으로서,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아 알렉산더 댓건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으면 것이다. 그러나 앙드레 마르탱의 신분은 그의 계획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다른 두 개는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고, 그런 경우에는 일을 끝내고 어딘가의 짐 보관소에 맡기는 것으로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다만 도망칠 때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앙드레 마르탱의 변장용 물건이나 라이플도 일을 끝냈을 때에는 버릴 생각이다. 즉, 그가 프랑스로 들어갈 때에는 여행가방 셋과 아타셰 케이스라는 적지 않은 짐이 있지만, 프랑스를 떠나올 때에는 가방 하나와 아타셰 케이스만 든 가벼운 차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그는 출발 신호가 될 두 통의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한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파리의 전화번호이고, 또 한 통은 취리히 은행에서 올 입금통지서였다.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절룩거리며 걷는 연습을 했다. 이틀 동안의 연습으로 누가 보아도 진짜 절름발이로 보이게 되었다. 첫번째 편지는 8월 9일 아침에 도착했다. 로마의 소인이 찍힌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연락처는 모리트르 5901. 암호는 "이시 샤칼(이쪽 재칼)"에 상대방은 "이시 바르미(이쪽 바르미)" 라고 대답함. 성공을 빔.' 아침이었다. 그는 입금통지서를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살아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일생 동안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일에 성공하면 더욱더 넉넉해지는 것이다. 그는 성공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패가 없도록 모든 점에서 이미 계산을 다해놓은 것이다. 즉시 그는 전화로 항공편을 점검해 보고서 다음날인 12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지하실에는 침묵이 가득 차 있었다. 들리는 것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다섯 사나이들의 무거운 숨소리와, 그 앞에 놓인 커다란 오크 나무 의자에 묶여 있는 사나이의 신음소리뿐이었다. 방의 크기나 벽의 색깔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단 둘러싸듯 비치고 있었다. 흔히 있는 독서용 전기 스탠드이지만, 전구는 광도가 높은 강력한 것이어서 지하실의 더위를 한결 견디기 어렵게 하고 있다. 스탠드는 테이블 왼쪽 끝에 고정시켜 놓았으며, 빛이 앞쪽 의자에만 비치도록 갓을 기울여 놓았다. 동그라미를 그린 빛의 일부가 더러워진 테이블 위를 비추고, 여기저기 놓인 손가락과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짧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는 모습을 희미하게 떠올리고 있다. 불빛이 강렬한 만큼 지하실의 다른 부분의 어둠이 한층 어둡게 느껴진다. 테이블 뒤에 한 줄로 앉아 있는 다섯 사나이들의 어깨와 몸통은 죄인의 위치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조금 옆으로 실루엣을 볼 수가 있지만, 그는 물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가죽 띠로 발목을 의자 다리에 고정해 놓은 것이다. 의자 다리에는 모두 L자형 쇠붙이가 앞뒤에 붙어 있고, 그것이 바닥에 박혀 있다. 또한, 죄인은 팔걸이에 두 손목을 가죽 띠로 묵이고, 허리와 털투성이의 가슴에도 가죽 띠가 매어져 있다. 모든 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은 사나이들의 손뿐이며,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장식은 놋쇠로 테를 두른 홈으로서, 이 홈에서 앞쪽 끝에 베이클라이트(합성수지) 손잡이가 달린 레버가 튀어나와 있는데, 그것은 앞뒤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옆에 간단한 스위치가 오른손이 하릴없이 그 옆에 놓여 있었다. 테이블 밑에서 코드가 두 가닥 나와 있다. 하나는 스위치에서, 또 하나는 전류조절기에서 나와 있으며, 끝에 있는 사나이의 발 밑에 놓인 소형 변압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변압기에서 고무로 코팅된 굵은 코드로 이어져서 테이블 뒤쪽 벽에 있는 커다란 콘센트에 꽂혀 있다. 심문자들 뒤쪽 한구석에 볼품없는 나무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고, 남자 하나가 벽을 보고 앉아 있다. 테이블에는 녹음기가 놓여 있었으며, 돌아가고 있지는 않았으나 'ON'의 램프에 녹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무거운 숨소리 말고는 실내의 조용함은 거의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나이들은 하나같이 셔츠의 소매를 열기와 함께 냄새도 지독했다. 땀과 담배연기와 토해 낸 음식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토해 낸 것들의 냄새만으로도 참기 어려운데, 거기에 짙은 공포와 고통의 냄새가 거들어 더욱 강렬한 혐오감을 주는 것이었다. 한가운데 있는 사나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뜻밖의 밝은 목소리였으며, 부드럽게 비위를 맞추는 듯한 어조였다. "들어 봐, 빅토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결국 끝에 가서는 말을 하게 돼. 그야 너는 배짱 좋은 녀석이지. 용감한 병사이기도 하고. 우리도 그건 알고 있어. 존경할 정도야.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자네라도 그렇게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어. 같은 값이면 어째서 지금 말해 버리지 않나? 로댕이 화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말해 버리라고 할 거야. 이 고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네를 이 이상 더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자진해서 자기 입으로 털어놓겠지. 자네 역시 알고 있을 거야, 어떤 인간이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연다는 것을 그렇잖은가, 빅토르? 고문을 당하고서야 입을 여는 사람을 자네도 본 적이 있지? 누구라도 다 마찬가지야. 빨리 말해 버리면 편안해지는 거야. 말해 버리면 자고 싶은 만큼 잘 수가 있어.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의자에 묶인 사나이는 눌려 짜부러진 얼굴을 들어서 땀을 번쩍이면서 불을 들여다보는 자세였다. 두 눈은 감고 있는데, 그것이 빛 때문인지 마르세유에서 분명치 않았다. 얼굴을 전방의 어두운 공간을 향한 채로 입을 열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순간 끈적거리는 위액이 솟아나와서 더러워진 가슴을 타고 무릎에 고여 있는 토해 낸 것들 속으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축 늘어지고 턱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칼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노'라는 대답을 알렸다. 또다시 테이블에 있는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빅토르, 자네는 강한 사람이야.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어, 인정해. 이미 자네는 인내의 기록을 깼으니까. 그러나 언제까지나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야. 우리는 견딜 수 있지만 말이야. 언제까지라도. 필요하다면 며칠이나 몇 옛날처럼 정신을 잃고 편안히 지내도록 그냥 놔두지 않아. 기술이 발달했거든. 약물이 있단 말이야. 지금 제3단계가 끝났지만, 지금부터는 점점 더 괴로워질 거야.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빨리 말해 버리는 편이 좋아. 우리는 인간이니까 고통을 잘 이해하지만, 전기는 그런 것을 몰라. 얼마든지 자네를 괴롭힐 거야. 어떤가, 말하겠나? 로댕 일행은 로마의 호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턱을 가슴에 댄 채 코와르스키의 커다란 머리가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심문하고 있는 사나이의 두 손은 테이블 위에서 불빛을 받아 희고 날씬하고 평화스럽게 조용히 멈춰 있다. 그는 다시 문득 움직이더니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꺾어서 구부리고 네 개의 손가락을 넓게 펴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스위치를 맡고 있는 사나이의 손이 놋쇠 손잡이를 눈금 2에서 4로 움직여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온 오프의 스위치를 잡았다. 다시 다른 사나이가 테이블에서 떨어져, 세우고 있던 집게손가락을 살짝 앞으로 넘겨서 사인을 보냈다. 스위치가 들어갔다. 코와르스키의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조그만 구리로 된 단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어렴풋이 웅웅거렸다. 그의 거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허리를 올려 공중유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의자 위에서 차츰 위로 올라갔다. 두 손 두 다리를 뼈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부어오른 눈꺼풀에 가려져 있던 두 눈이 앞으로 튀어나와 천장을 노려보았다. 입은 놀란 듯 딱 벌어지고, 지옥의 절규가 폐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꼬리를 끌듯 두 번, 세 번......" 그리고 오후 4시 10분, 마침내 빅토르 코와르스키는 무릎을 꿇었다. 녹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울음과 신음소리에 섞여 토막토막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가운데 사나이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 한결 날카롭고 선명하게 울렸다. "왜 놈들은 거기에 있는가......그 호텔에......로댕과 몽클레아와 카슨, 이 세 놈 말이야......놈들은 무엇을 겁내고 있는가......로마에 가기 전에는 어디에 아무도 가까이 못 가나......어서 말해, 빅토르......왜 로마에......로마에 가기 전에는 어디에......왜 빈에......빈의 어디야......뭐라는 호텔인가......왜 거기에 갔었나......" 코와르스키는 50분에 걸쳐서 심문에 대답했고, 마지막에는 뜻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는 기절했다. 녹음기는 마지막 한마디까지 기록했다. 심문자의 소리는 코와르스키에게서 대답이 더 나올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몇 분 동안 더욱 부드럽게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부하에게 뭐라고 한마디 명령을 내리고는 그 참혹한 의식을 끝냈다. 녹음된 테이프는 즉시 차로 액션 서비스의 사무실로 보내졌다. 이글거리게 했던 태양이 기울고 서늘한 황혼이 찾아오자, 오후 9시에 가로등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센 강가에는 여름 저녁을 즐기는 연인들이 퇴색하기 쉬운 사랑과 청춘의 달콤한 술을 한껏 즐기면서 손을 맞잡고 산책하고 있다. 물가를 따라 줄지어 선 카페에서는 재잘거림과 술잔 부딪는 소리, 인사와 희롱하는 소리, 비꼼과 아첨 소리, 사과와 중재하는 소리로 활기에 차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인들의 대화의 재치이고, 여름 저녁 센 강가의 매력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돈을 마구 부려대는 외국의 관광객이 한몫 끼는 것도 허락이 된다. 그러나 이런 즐거운 떠들썩함도 포르트 데 리라에 가까운, 어떤 조그만 세 사나이가 책상 위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녹음기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오후 늦은 시간부터 계속 그런 모습으로 테이프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가 계속 스위치에 손을 올려놓고 두 번째 남자의 지시에 따라서 재생과 되감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두 번째 남자는 헤드폰을 쓰고 잡음 같은 소리 중에서 의미가 담긴 말을 찾아내려고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입에 문 담배의 연기로 매운 눈을 뜨면서 한 번 더 듣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했다. 가끔 10초 정도 돌아가는 부분을 대여섯 번 되풀이해서 듣고는 겨우 다음 부분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알아낸 말을 구술한다. 세 번째 남자는 젊은 금발로서, 타자기 소리는 또렷하게 들리고 의미도 분명하지만, 대답하는 소리는 아주 알아듣기 힘들다. 타자수는 인터뷰의 기사를 쓰듯이 질문은 반드시 줄을 바꾸어서 시작하고, 첫머리에 Q라는 글자를 붙였다. 그리고 대답은 다음 줄에 R이라는 자를 치고서 그 다음을 쳤다. 대답하는 문장은 계속적이며, 아무래도 앞뒤가 연결이 안되는 부분은 '......' 으로 메꾸었다. 작업이 끝난 것은 한밤중인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문을 활짝 열어 두었는데도 실내의 공기는 담배 연기로 자욱하고, 종이가 눈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세 남자는 피로로 몸이 굳어진 채 일어섰다. 그리고 각자 기지개를 켜기도 풀었다. 이윽고 한 사람이 수화기를 들어 외부로 연결하라고 하고는 다이얼을 돌렸다. 헤드폰을 끼고 있던 남자는 그것을 벗어 놓고 테이프를 되감았다. 타자수는 타자기에서 용지와 복사지를 빼내어 그때까지 타자한 것들과 합쳐서 차레대로 정리했다. 복사지를 두 장 끼워서 타자했기 때문에 자술서는 세 통이 만들어졌다. 첫번째 것은 롤랑 대령에게, 두 번째 것은 보존용, 세 번째 것은 롤랑 대령이 적당하다고 인정했을 경우 즉시 각 부장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우선 복사부터 하기로 했다. 전화는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식사중인 롤랑에게 연결되었다. 일터를 떠난 롤랑은 멋쟁이 독신자에다 품위 있는 언동으로 신사였다. 자리를 같이 한 부인들에게는 칭찬을 잊지 않으며, 그 남편들에게는 어떤지 모르지만 그녀들에게서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웨이터가 전화가 왔다고 그에게 알리자 그는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는 카운터 위에 있었다. 그는, "롤랑이오." 라고만 대답하고 상대방에서 신분 밝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미리 약속해 두었던 말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수리에 보낸 차의 정비가 끝났으니까 대령이 편리한 때에 가지러 오면 된다는 둥 옆에서 들어 보아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대화였다. 롤랑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리고 5분 뒤에는 내일은 부드러운 어조로 양해를 구하고, 10분 뒤에는 포르트 데 리라로 향해 아직도 붐비는 도로를 차로 빠져 나왔다.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지난 시각이며, 일류 양복점의 디너 재킷을 벗고서 야근하는 직원에게 커피를 시킨 다음 전화로 차장을 불렀다. 코와르스키의 자술서가 사본과 함께 도착되었다. 26페이지에 걸친 자술서를 처음에는 그 요지를 알기 위해서 죽 한번 훑어나갔다. 도중에서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는 눈썹을 찌푸렸으나 개의치 않고 끝까지 읽었다. 두 번째는 천천히, 각 패러그래프에 신경을 집중해 가면서 주의깊게 읽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펜꽂이에서 검정 인도네시아, 알제리, 조조, 코바크스, 코르시카인, 악당, 외인부대 등에 밑줄을 그어 가면서 다시 신중하게 읽었다. 그러나 이런 어구들은 그에게 아무런 흥미도 갖게 하지 않았다. 자술의 대부분은 실비아에 관한 것이며, 일부에서는 줄리라는 여자에 관해서도 언급되어 있었지만 롤랑에게는 그것이 모두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부분을 빼버리면 고작 6페이지 정도의 분량밖에 안되었다. 그 속에서 그는 의미 있는 것을 잡아내어 보려고 애썼다. 로마가 나왔다. OAS의 간부 세 명은 로마에 있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왜 그들은 로마의 호텔에 틀어박혀 있는가? 신문자는 이 질문을 여덟 번이나 했다. 납치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거야 당연할 거라고 롤랑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이유라고 한다면 온갖 고생을 해가면서 코와르스키를 잡아 온 것은 헛일이 된다. 하지만, 주의해서 읽어 보니 코와르스키는 이 똑같은 여덟 번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한 것 가운데 어떤 한 단어를 두 번 입에 담았다. 아니, 중얼거렸다고 해야 할지, '비밀'이라는 낱말이다. 형용사로 쓴 것일까? 그러나 그들이 로마에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면 명사인가? 어떤 비밀을 말하는 걸까 ? 롤랑은 열 번째 읽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OAS 간부 세 명이 로마에 있다. 그것은 납치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납치를 겁내고 있는 것이다...... 롤랑은 묘한 미소를 띠었다. 로댕은 겁먹고 달아나거나 숨을 사나이는 아니다. 그런 점은 국장인 기보 장군보다 롤랑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로마의 호텔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비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비밀일까? 모든 것은 빈에서 시작이 된 것 같다. 빈이라는 말은 앞뒤 세 번이나 나왔다. 처음에 롤랑은 리용 시의 바로 남쪽에 있는 비엔이라는 동네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빈에서 모임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납치되어 심문당해서 비밀을 토해 내게 될까 봐 로마의 호텔에 틀어박힌 틀림없다...... 시간은 흐르고 여러 잔째 커피가 운반되었다. 포탄 탄피의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그리고 몰티에 대로 동쪽에 있는 우중충한 공장지대의 하늘에 동이 틀 무렵, 롤랑 대령은 마침내 무엇인가를 잡았다. 물론 빠져 있는 부분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빠져 있는 것일까? 새벽 3시에 코와르스키가 사망했다는 전화가 왔었는데, 그를 다시는 심문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빠져 있는 부분은 영원히 메꿀 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반쯤 미친 머리에서 죽음 직전에 짜낸 지리멸렬한 진술 중 어딘가에 메꿀 수 있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 롤랑은 겉보기에 아무 맥락도 없을 듯한 크라이스트 -- 크라이스트라는 이름의 인간. 코와르스키는 폴란드인이니까 이 고유명사는 올바로 발음했을 것이 분명하다. 롤랑도 전시중의 경험에서 독일어를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철자로 써넣었다. 자술서를 타자로 친 것은 프랑스인이라, 그가 철자를 잘못 쳐놓았다. 이것은 사람의 이름일까? 어떤 장소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롤랑은 교환대를 불러내어 빈의 전화번호부를 조사해서 크라이스트라는 사람이나 장소를 빼내어 달라고 일렀다. 10분 뒤에 대답이 돌아왔다. 빈에는 크라이스트라는 이름의 전화등록자가 전화번호부에 두 단이나 나와 있고, 장소 이름으로는 두 군데 -- 에발드 크라이스트 남자국민학교와 브뤼크나알레에 롤랑은 뒤의 두 개를 메모하고 팡숑 쪽에 밑줄을 그었다. 다시 그는 읽기 시작했다. 어떤 외국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코와르스키는 그 남자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지, 어떤 곳에서는 '봉' -- 좋다는 의미의 말로써 언급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파슈르' -- 싫은 자식이라고 불렀다. 5시가 좀 지나서 롤랑은 녹음기와 테이프를 갖고 오라고 해서 한 시간쯤 반복해서 그것을 들었다. 그는 스위치를 끄고 화난 듯이 끙끙거렸다. 그리고 타이프로 친 진술서를 몇 군데 펜으로 고쳐 놓았다. 코와르스키는 그 외국인을 '봉'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블론드'라고 한 것이다. 또 '파슈르'는 '포슈르', 즉 여기까지 알게 되자 분명치 않은 자백에서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찾아내기는 쉬웠다. 재칼(프랑스어로는 샤칼)이라는 말은 코와르스키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려서 고문을 당하게 한 녀석들을 저주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롤랑은 그것이 나올 때마다 지워 버렸지만, 이것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떠오르는 것이다. 즉, 재칼은 블론드(금발)의 외국인 살인청부업자의 암호명이며, OAS의 간부는 로마의 호텔에 틀어박히기 직전에 빈에서 그 살인청부업자와 만난 것이다. 롤랑은 그제야 비로소 과거 8주일에 걸쳐서 프랑스 전국을 뒤흔든 일련의 은행-보석강도의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블론드는 OAS에서 어떤 일거리를 돈을 요구할 수 있는 일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다. 갱들의 싸움에서 거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전 7시. 롤랑은 통신실을 전화로 불러서 야근 교환수에게 SDECE의 빈 지부에 긴급명령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빈은 제3부(서유럽 담당)의 관할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명령은 분명히 월권행위였지만, 그걸 알고서도 관할 의식을 무시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코와르스키의 진술서 사본을 모두 회수하여 자기 금고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보고서 작성으로 들어갔다. 수령자는 단 한 사람이며, '타인이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는 펜으로 초안을 썼다. 먼저 책임하에 행한 작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가까운 가족이 병으로 입원중이라는 편지에 이끌리어 마르세유로 돌아온 코와르스키를 액션 서비스의 요원들이 체포, 심문하여 그의 진술을 받아낸 일, 또한, 체포 때에 그가 저항하여 난투가 벌어져서 요원 두 사람이, 부상당하고 그는 또한 자살을 기도하여 중상을 입어 부득이 입원시켜서 감시하는 일. 그리고 이 진술은 병원의 침대에서 행해졌다는 것. 이상이 서론이며, 보고서의 알맹이는 진술의 내용과 롤랑의 해석으로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쓴 그는 펜을 쥔 손을 잠시 쉬고 아침 햇살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리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없는 지극히 리얼리틱한 성격이었으며, 부서 안에서도 역시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절을 신중하게 작성했다. "이 음모를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도록 현재 조사를 진행중임. 그러나 그 조사에 의해서 위에서 언급한 일들이 사실이라고 판명되었을 경우, 위의 음모는 본인의 견해로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대통령 암살기도로서 가장 위험하다고 아니할 수 없음. 만일 위의 음모가 현실로서, 존재하고, 그들에게 고용당한 재칼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외국인 살인청부업자가 현재 그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지 않으면 안됨." 자신이 직접 타자로 쳐서 그것을 봉투에 넣고는 직접 봉인을 해서 최고기밀의 도장을 스탬프로 찍었다. 그리고 펜으로 쓴 원고는 불에 태워서 방 한구석에 있는 세면대 배수구에 그 재를 떠내려 보냈다. 작업을 끝낸 그는 얼굴과 손을 씻었다. 그리고 타월로 닦으면서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을 문득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얼굴은 지난날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청년 시절 그처럼 활기에 넘치고 나이를 먹어도 그토록 여성을 매료시켰던 갸름한 얼굴은 이미 지쳐 버린 중년의 검은 기미로 얼룩져 있었다. 생존경쟁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잔혹성을 진저리나게 경험하고, 음모나 배반에 앞장서고, 부하를 죽음으로 고문으로 괴롭히며 울려 온 반평생은 54세라는 나이 이상으로 그를 늙게 했다. 코 양옆에서 입 가장자리까지 뻗어 있는 두 가닥의 주름은 늙은 농부의 얼굴을 연상시키고, 눈 밑에는 언제나 검은 기미가 끼어 있으며, 품위 있는 회색을 하고 있던 귀밑털은 윤기 없는 흰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금년까지만 하고 이젠 정말 이 일을 그만두자." 마음속에서 중얼거렸지만 초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의 얼굴에는 이 결심에 대한 불신과 단념이 분명히 떠올라 있었다. 얼굴은 마음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거야. 어떤 일이건 오랜 세월 해오게 되면 도중에서 발을 씻기가 어떻게도 변할 수는 없는 거야. 레지스탕스 조직에서 경찰로, 그리고 SDECE로, 그리고 액션 서비스로 -- .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왔는가, 몇 명이나 죽여 왔는가 하고 그는 거울 속의 얼굴에게 물었다. 그 모든 것은 프랑스를 위해서 해온 일이다. 그럼, 프랑스는 나를 위해서 무얼 해준다는 것인가? 거울 속의 얼굴은 말없이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양쪽이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롤랑은 연락담당인 오토바이 대원에게 사무실까지 오라고 전화로 명령했다. 올 때에 달걀튀김, 롤빵과 버터, 밀크커피(큰 컵에 가득), 그리고 출두한 연락담당에게 봉인을 한 봉투를 건네주고는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달걀과 빵을 다 먹어치운 창으로 다가서서 커피를 마셨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붕들 너머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 다시 그 너머, 아침 안개가 낀 센 강 멀리에 에펠 탑이 보였다. 시간은 이미 8월 11일 오전 9시를 지나, 시내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가죽 점퍼를 입은 연락담당은 아마도 붐비는 차에 혀를 차고는 사이렌을 울리면서 제8구 쪽으로 서둘러 달리고 있겠지. 그 보고서에 기록한 위협을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연말까지 현직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가 정해질 거라고 생각하며 롤랑은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제 9 장 그날 아침 느지막히 내무장관은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서 침통한 얼굴로 밝은 햇살이 비치는 창밖의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쪽으로 난 곳에 프랑스 공화국의 문장을 장식한 아름다운 연철로 된 문이 있다. 그 너머는 부보 광장이며,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경찰관 주위를 포부르 상 토노레 가(街)와 마리니 가(街)에서 흘러들어온 차가 소용돌이처럼 돌고 있다. 역시 이 광장으로 통하고 있는 미로메스닐 가(街)와 소세 가(街)의 차는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서 광장을 가로질러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져 간다. 경찰관은 다섯 가닥의 차의 흐름을 투우사가 소를 느끼게 하는 동작으로 처리하고 있다. 로제 프레이 내무장관은 경찰관 임무의 단순함과 자신에 가득 찬 그 동작이 부러웠다. 문 안쪽에서 두 명의 경찰관이 광장 한가운데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단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연철의 문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은 문에 의해서 속세의 소란에서 지켜지고, 월급과 지위와 직장을 보장받고 있다. 그들의 하루하루 또한 단순하고, 야심도 크지 않다. 그러므로 장관은 그들에게도 선망을 느꼈다. 문득 정신을 차린 프레이 내무장관은 등뒤에서 들리는 서류의 소리로 회전의자를 정면으로 다시 돌렸다. 책상 너머에 있던 남자가 파일을 접어서 그것을 조용히 책상 마주쳤다. 집무실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맨틀피스(벽난로 장식 선반) 위의 앉은뱅이 시계가 째각거리는 소리와 부보 광장에서 전해 오는 어렴풋한 차의 진동이 오히려 정적을 더욱 깊이 느끼게 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 경호대의 지휘관 장 뒤크레 총경은 경비문제, 특히 암살방지에 대해서는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가 현직에 취임하게 된 것은 그 솜씨를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며, 사실 그는 오늘까지 드골 암살을 노린 여섯 건의 음모를 어떤 경우에는 실행단계에서, 또 어떤 경우에는 준비단계에서 모두 막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롤랑의 해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로 그는 딱 잘라 말했다. 마치 축구 시합의 결과에 대해서 예상을 장담하는 듯한 태도였다. "만일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위기가 되겠지요. 치안당국이 자랑하는 자료나, OAS 내부에 침투해 있는 요원들의 조직도 완전히 단독으로 행동하는 외국인 제3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할 뿐입니다. 더구나 상대는 돈으로 고용된 살인청부업자입니다. 롤랑의 표현을 빌린다면 -- " 그는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펴서 소리내어 읽었다. "'대통령 암살 기도로서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프레이는 짧게 깎은 회색 머리칼을 돌렸다. 그는 쉽게 초조해지지 않는 남자였지만, 이날 8월 11일의 아침만은 어쩔 수 없을 만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긴 세월 샤를 드골의 대의에 몸바쳐 온 그는 지적이고 세련된 외모 뒤에 어떤 만만찮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내무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위를 차지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투명한 푸른 눈은 때에 따라서는 따뜻하고 매력적이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도록 차가워지기도 하며, 가슴과 어깨는 강한 힘을 느끼게 하고, 단정한 얼굴 모습은 권력자와의 교제를 자랑으로 삼는 부인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프레이는 이런 특징들을 단지 선거에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의, 영국의 차디찬 무관심, 지로 장군파의 야심, 그리고 공산주의자의 증오를 상대로 고통스러운 싸움을 해왔다. 프레이는 그 싸움 속에서 정치항쟁의 기술을 배웠다. 어쨌든 그들은 그런 싸움을 이겨 냈고, 그들이 신봉해 온 인물은 18년 사이에 두 번, 한 번은 망명자의 처지에서, 또 한 번은 실의와 굴종에서 최고권력의 자리로 복귀했다. 그리고 과거 2년 사이에, 이번에는 장군을 두 번이나 권좌에 앉히는 데 공헌한 집단인 군이 공공연히 대적해 왔다. 겨우 몇 분 전까지도 내무장관은 군의 반란분자들과의 싸움은 이제 종말에 가까웠으며, 적은 힘없이 몸부림치며 사라져 가고 있다고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것을 충격적인 방법으로 알게 된 것이다. 로마에 있는 삐쩍 마른 광신자가 한 인물을 없애서 모든 체제를 붕괴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예를 들면 28년 전의 영국이나, 그 해의 세밑 미국처럼 대통령의 죽음이나 국왕의 폐위에 의해서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기구를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1963년의 프랑스는 국가가 확립된 근본을 생각해 볼 때, 대통령의 죽음은 곧 폭동과 내전의 서막이 될 뿐이라는 것을 프레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앞뜰을 내려다보면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대장에게 말 안 할 수가 없겠군." 총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는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되니까 홀가분하다면 홀가분하다. 그는 대통령에게 사태를 고하는 역할을 자진해서 떠맡을 생각은 없었다. 장관은 방향을 바꾸어 그를 보았다. "좋아. 당장 오후에라도 대통령을 만나서 말씀드리지." 팔팔하고 힘찬 소리였다.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다짐을 해둘 것도 없겠지만, 내가 대통령에게 사태를 설명하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일체 비밀로 해주기 바라네." 뒤크레 총경은 일어나서 물러갔다. 그리고 광장을 가로질러 바로 그 앞에 있는 엘리제궁으로 돌아갔다. 집무실에 혼자 다시 돌려놓고 또 한 번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 보았다. 롤랑의 추론이 옳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뒤크레가 그것을 재확인한 지금, 잔재주를 부릴 여유는 없었다. 위험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중대한 위기다. 책략으로 피할 수 없는 이상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인터폰의 스위치를 누르고서 버저로 대답하는 통화구에 대고, "대통령 관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게." 하고 말했다. 곧 인터폰 옆에 있는 빨간 전화가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포카르를 부탁해."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 프랑스 최고권력자의 한 사람인 자크 포카르의 프레이는 면회하려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되도록 빨리 부탁하네, 자크...... 그야 물론 시간을 조정해야겠지만. 응,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되도록 빨리 대답을 듣고 싶네." 한 시간 뒤에 회답이 있었다. 면회는 대통령이 시에스타(낮잠)를 끝낸 바로 뒤인 오후 4시로 결정되었다. 순간 프레이는 낮잠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고 항의하려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측근은 모두 그렇지만, 프레이 또한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문관의 의향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불리한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포카르는 말하자면 대통령의 귀이며, 그가 쥐고 있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날 오후 20분 전 4시, 재칼은 런던 제일을 자랑하는 생선요리 전문점 커닝검에서 일급 런치를 즐기고 밖으로 나왔다. 사우스 오드리 가(街)로 나가면서 그는 당분간은 이제 런던과는 이별일 뿐만 아니라, 실컷 맛있는 것을 먹을 이유도 있다는 생각으로 충만한 기분이 되어 있었다. 바로 같은 시각, 검은색 시트로엥 DS19가 프랑스 내무부의 정문에서 부보 광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관은 문안에 있는 동료에게서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트로엥의 모습을 보자마자 모든 시트로엥은 100 미터쯤 도로를 내려가서 엘리제궁의 포치 쪽으로 구부러졌다. 여기서도 내무장관의 도착을 통보받은 당번 경찰관이 차의 행렬을 중간에서 막고 시트로엥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포치의 양쪽에 있는 위병초소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경찰관이 자동소총인 기관단총에 흰장갑을 낀 손을 척 갖다붙여서 경례를 했다. 내무장관의 차는 엘리제궁의 앞뜰로 들어갔다. 문 안쪽 아치에 낮게 쳐놓은 쇠사슬 앞에서 차가 일단 정지하자, 뒤크레의 부하인 당번경감이 재빨리 차 안을 보았다. 그는 내무장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으며, 내무장관도 따라서 끄덕였다. 경감의 신호로 사슬이 땅에 떨어지고, 시트로엥은 광대하게 자갈이 깔린 그 너머로 궁전의 정면이 보인다. 운전사인 로베르는 일단 차를 오른쪽에 붙였다가 거기서 좌회전하여 정면 현관으로 통하는 층계 밑에 옆으로 갖다댔다. 은색의 사슬로 장식한 검은 프록코트로 위엄을 갖춘 안내원 하나가 문을 열었다. 내무장관은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층계를 뛰어올라가서 정면 현관의 유리문 앞에서 주임 안내원의 영접을 받았다. 두 사람은 목례를 나누고, 내무장관은 안내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원이 문 왼쪽에 있는 대리석 테이블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내무장관은 높은 천장의 황금색 사슬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 밑에서 한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잠깐 미소짓고는 언제나처럼 우아한 걸음으로 양탄자를 깔아놓은 대리석 층계를 올라갔다. 이층에 올라간 두 사람은 짧막한 층계참을 가로질렀다. 안내원은 층계참 왼쪽에 있는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안에서, "들어오십시오." 라는 분명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안내원은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내무장관을 '대기실'로 들여보냈다. 내무장관이 방에 들어가자 등뒤에서 문이 닫히고, 안내원은 침착한 걸음걸이로 입구로 들어섰다. '대기실' 안쪽에는 남향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고, 거기서 들어오는 햇빛이 양탄자를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진 커다란 창 하나가 완전히 비둘기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창에서 300-쯤 저쪽에 있는 샹젤리제 대로는 상쾌한 향기로 무성한 보리수와 너도밤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고, 오가는 차 소리는 비둘기 울음소리보다도 작게 들린다. 도시에서 자란 프레이는 엘리제궁의 이 방에 올 때마다 수풀 우거진 시골의 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궁전의 반대쪽을 달리는 포부르 상 토노레 가를 지나가는 차 소리 같은 것은 먼 꿈만 같았다. 대통령은 시골이 좋은 것이다. 그날의 당번 부관은 투사르 대령이었다. 그는 책상에서 일어나서 프레이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대령 -- ." 프레이는 왼쪽으로 보이는 황금색 손잡이가 달린 문 쪽을 턱으로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령이 문으로 다가가서 가볍게 노크하고 한쪽 문을 열고서 그 자리에 섰다. "내무장관께서 오셨습니다." 알았다는 뜻의 분명찮은 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대령은 한 발자국 물러서며 내무장관에게 미소를 보냈다. 프레이는 대령 앞을 지나서 샤를 드골의 서재로 들어갔다. 이 방에는 장식이나 비품을 갖추도록 지시한 사람의 개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프레이는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오른쪽으로 높고 고상한 세 개의 창이 나란히 있고, '대기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원 쪽으로 나 있었다. 여기도 역시 창 하나가 완전히 열려 있고, 무성한 보리수와 너도밤나무 사이에는 20보 떨어진 거리에서 트럼프의 스페이드 에이스의 그림을 정확히 맞출 만한 솜씨를 가진 사격의 명수들이 자동소총을 안고 숨어 있을 것이다. 하긴 그들은 대통령의 눈에는 띄지 않도록 엄중한 명령을 받고 있다. 경호원의 열의는 어찌되었거나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신변경비를 극히 싫어했으며, 경비상의 이유로 자기의 프라이버시가 침범당하게 되면 불같이 화를 냈다. 경호대장인 뒤크레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무릇 경비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그 모두가 자기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경호하는 일만큼 어려운 임무도 없다. 모두들 뒤크레를 동정은 할 망정 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유리문을 한 붙박이 책장 앞에 루이 15세풍의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루이 14세풍의 앉은뱅이 시계가 올려져 있다. 바닥에는 1615년에 샤이요의 왕실 양탄자 공장에서 만들어진 비누공장 양탄자가 깔려 있다. 그 공장은 언젠가 대통령이 설명해 주었는데, 본래 비누공장이던 것을 양탄자 제조공장으로 바꾼 것이며, 그래서 거기서 만드는 양탄자는 모두 사봉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방에는 단순한 것, 경박한 것, 악취미적인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프레이의 생각에 의하면 언제나와 같은 은근함으로 그를 맞기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프레이는 문득 해럴드 킹이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킹은 파리에 주재하는 영국의 원로 저널리스트로서, 드골과 친교를 맺고 있는 유일한 앵글로색슨이지만, 그는 드골의 행동을 평하여 그것은 20세기의 것이 아니고 18세기의 궁정풍이라고 놀렸다. 그 뒤 프레이는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를 하는, 비단과 화려한 단자에 몸을 감싼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도무지 그 이미지가 연결이 안되었다. 비슷한 점은 있지만 분명하게 떠오르지는 않는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궁정인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프레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무슨 일엔가 화가 군대용어로 냅다 소리치는 바람에 그 너무도 거친 모습을 보고 측근이나 관료들이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은 적이 있었다. 프레이도 잘 알고 있듯이 대통령을 가장 화나기 쉽게 하는 것은 신변 경비에 관한 문제다. 더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내무장관으로서 그는 프랑스의 국가기구, 특히 대통령의 신변안전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두 사람이 모두 정면에서 받아들인 적은 없고,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도 프레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표 안 나게 일을 해나갔다. 지금도 그는 서류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보고서와, 그로 말미암아 해야만 할 요청들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장신을 짙은 회색의 양복으로 감싼 대통령은 책상 옆을 돌아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는 내민 손을 잡았다. 적어도 지금은 이 노인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는 책상 앞에 놓인 보베 직조의 천으로 씌운 등받이가 곧은 의자 하나에 앉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끝낸 드골은 책상 뒤로 돌아가서 벽을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반들거리게 닦아 놓은 책상에 두 손의 손가락을 올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슨 긴급한 용건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인가?" 프레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어쨌든 남의 장광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짧고 간결하게 용건을 설명했다. 프레이 자신도 이야기는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말수 많은 부하가 당혹해 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드골은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점점 몸이 늘어나듯 차츰 깊게 뒤로 등을 넘기면서, 믿고 있던 하인이 불쾌한 오물을 가지고 온 것을 책망하듯이 높이 솟은 코 양옆에 있는 눈이 프레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프레이는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의 모습이 몽롱한 그림자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은 근시인 것이다. 하긴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연설 원고를 읽을 때를 빼놓고는 공개된 장소에서는 절대로 프레이는 1분도 채 안되어 설명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롤랑과 뒤크레의 의견을 알리고서 이렇게 덧붙였다. "롤랑의 보고서는 여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대통령은 한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는 보고서를 꺼내어 그 손에 건넸다. 대통령은 가슴에 달린 호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어 쓰고 책상 위에 보고서를 펴놓고서 읽기 시작했다. 비둘기조차도 조심이 되는지 우는 소리가 멎었다. 프레이는 창밖의 수목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놋쇠 스탠드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왕정복고시대의 아름다운 촛대를 전기 스탠드로 바꾸어 만든 것으로서, 드골이 이 방의 주인이 서류를 비쳐 온 물건이다. 드골 장군은 읽는 것도 빠르다. 3분에 다 읽고는 그것을 꼼꼼하게 접고서, 그 위에 두 손을 마주잡아 올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건가?" 프레이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조치에 관해서 요령 있게 설명을 했다. 그 중에서 그는, "저의 판단으로는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이 필요합니다......" 라는 식으로 두 번 말했다. 그리고 33초째에 '프랑스의 국익'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을 때 드골은 그를 막았다. 대통령의 잘 울리는 목소리에서는 프랑스라는 한마디에 어떤 신성한 느낌마저 주는 마력을 지니고 드골만큼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비열한 살인청부업자의 위협에 떨지 않는 일이야말로 프랑스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야." 드골은 여기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미지의 살인청부업자에 대한 모멸의 느낌이 무겁게 방에 가득 찼다. "고용된 외국인 살인청부업자 같은 걸 겁내어서는 안돼." 프레이는 만사 끝나 버렸음을 깨달았다. 드골 장군은 그가 두려워한 정도로 화내지는 않았다. 장군은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하는, 자신에 넘치는 말투였다.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은 옆방에 있는 투사르 대령의 귀에도 띄엄띄엄 들렸다. 하는......비열한 살인청부업자에게 손상당한다는 것은......단연코 용서할 수 없는......" 그로부터 2분 뒤에 프레이는 대통령의 방에서 물러나왔다. 그는 우울한 얼굴로 투사르 대령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기실'을 나와 층계를 내려갔다. 물러나온 내무장관을 현관 앞의 시트로엥까지 안내하고 그가 사라져 가는 것을 배웅하면서 안내원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떠맡게 된 모양이군. 대체 대장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20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주임안내원답게 그 표정은 궁전의 석벽처럼 요지부동의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내게 단단히 다짐을 했어." 프레이는 창밖을 보고 있다가 돌아서면서 책상 앞에 서 있는 사나이를 보고 말했다. 엘리제궁에서 돌아오는 즉시 그는 보좌관을 불렀다. 알렉상드르 송기네티는 코르시카인이다. 과거 2년 동안 전 프랑스의 치안기구의 운영이 내무장관에게 위임되어 그것을 실질적으로 총괄해 온 송기네티는 각 방면에서 좋고 나쁜 갖가지 소문의 대상이 되어온 터이다. 그는 필요하다고만 생각되면 CRS의 폭동진압부대 동원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데모가 거칠어지면 가차없이 잡아들였다. 그래서 극좌익에서는 뱀처럼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 공산주의자는 그를 가리켜 치안유지 방법이 철의 장막 너머에 있는 노동자의 천국인 그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로부터 파시스트로 낙인찍힌 극우의 무리들 역시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억압한다고 해서 그를 증오했다. 다만 극우의 경우, 민주주의 운운은 명분에 불과하고 정작 본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의 가차없는 조치가 사회질서의 붕괴를 겨우 막고 있었기 때문에 질서회복의 기치를 들고 있는 우익의 공격을 무익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그들 노여움의 근본적인 이유였다. 일반 시민의 대부분도 그를 싫어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가혹한 법령이나 포고에 매일같이 시달림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CRS의 곤봉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데모대원의 사진 보도 등 불만의 이유는 한이 없었다. 보도기관은 그에게 '무슈 앙티 OAS'라는 별명을 붙였으며, 골리스트파의 심문을 빼놓고는 모두가 합세해서 몰매를 때리고 있었다. 이렇게 그는 프랑스 제일의 악역을 맡고 있지만, 그 고충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가 신앙하는 신은 엘리제궁에 있었으며, 그의 대리인으로서의 지위에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그는 롤랑의 보고서를 철한 누런 겉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장난이 아닙니다. 대통령도 어떻게 되신 모양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데, 당사자인 본인이 그것을 잡아들일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취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대체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그 녀석이 습격해 오도록 기다리고만 있자는 겁니까? 팔장을 끼고 보고만 있을 겁니까?" 내무장관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보좌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예상이 적중했다고 해서 어깨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책상 뒤에 앉았다. "알렉상드르, 들어 보게. 현재로서는 아직 롤랑의 보고서가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네. 이것은 어디까지나 코와르스키......인가 하는 녀석이 고통에 못 이겨 내뱉은 말들을 롤랑의 개인적인 아직 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중이야. 아까 SDECE의 기보 장군에게 연락해 보았더니, 오늘밤 안으로는 조사결과가 판명된다고 하더군. 그러나 어쨌든 말일세, 현 단계로서는 암호명밖에 모르는 외국인을 잡기 위해서 전국적인 수사를 전개한다는 것은 좀 비현실적이야. 그런 의미로는 나도 대통령과 같은 의견일세. 게다가 이것은 대통령의 지시......아니, 절대적인 명령이네. 만에 하나라도 잘못 듣는 일이 없도록 다시 말해 두겠네. 공표는 절대로 해선 안되며, 전국적인 규모의 수사도 안돼. 소수의 관계자 이외에는 알아서는 안돼. 만일 비밀이 새나가면 보도기관은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것이고, 여러 외국은 조소를 보낼 것이며, 우리 경계조치는 도망쳐서 숨어 있다는 인상을 국내외에 주게 된다는 생각인 거야.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사태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야. 대통령은 말일세......" 프레이는 집게손가락을 세워서 강조했다. "분명히 말씀하셨어. 만에 하나 우리들의 조치가 새나가 비밀이 조금이라도 공개된다면, 아니 막연하나마 그런 인상을 일반에게 주게 되면 전원 즉시 파면이라고. 나도 그처럼 결연한 장군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야." "그러나 공식일정은 -- ." 하고 보좌관은 장관을 설득하려는 듯이 말했다. "변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놈을 체포할 때까지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시는 -- ." "공식 일정의 변경은 없어. 한 시간, 1분의 변경도 안된다는 말씀이야. 수사는 완전히 비밀리에 진행되어야만 해." 지난 2월 육군사관학교를 무대로 한 암살계획 때 관계자들을 미연에 체포해서 방지한 이후로 알렉상드르 송기네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 두 달 동안, 은행강도와 보석상 피습의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 그것을 마지막으로 최악의 상태에서는 벗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OAS의 조직은 내부에 침투한 액션 서비스와 외부에서 공격하는 경찰과 CRS의 양면 공격으로 괴멸되어, 일련의 강도사건은 망명자금을 마련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몇 안되는 잔당의 최후의 그러나 롤랑의 보고 내용은 무정한 것이었다. OAS의 고위층에까지 침투해 있는 롤랑의 부하들도 상대가 로마에 숨어서 꼼짝 않고 있는 간부 세 사람밖에 정체를 모르는 익명의 살인청부업자와 만나서 일을 꾸미는 데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또 OAS와 관련 있는 모든 인간에 관한 그 많은 자료 -- 정보가 필요할 때 내무부는 언제나 여기에 의존했다 -- 도 재칼이 외국인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로 그 모두가 한낱 쓰레기 더미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행동을 못하게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무엇을 못하게 한다고 말한 적은 없네." 하고 프레이는 고쳐 말했다. "공공연한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으면 안돼. 그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야. 극비리의 조사로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고, 국내외 어디에 있든 그 소재를 찾아내어 신속히 없애버리는 거야." "......신속히 없애버려야만 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내무장관은 자신의 말에 대한 효과를 확인이라도 하듯이 회의실 테이블 앞에 줄지어 앉아 있는 관계자들을 둘러보았다. 내무장관은 장방형 테이블 상석에 서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 보좌관인 송기네티, 왼쪽에 프랑스 경찰의 행정면을 대표하는 경시총감인 모리스 파퐁 장군이 앉아 있다. 송기네티의 오른쪽, 테이블의 긴 변을 따라서 SDECE 국장인 기보 장군, 다음에 앞에 놓여 있는 보고서의 사본을 작성한 롤랑 대령, 대통령 경호대 지휘관 뒤크레 총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 관저 무관인 공군 대령 생클레아 드 비로방. 생클레아는 열광적인 골리스트로서도 유명하지만, 자기의 야심에 관해서도 열광적이라는 평이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자하게 나오고 있다. 이 네 명과 마주앉아 있는 것은 국가경찰국장 모리스 그리모와 국가경찰에 속하는 5개 부문의 각 책임자들이다. 이 국가경찰은 범죄 소탕의 기수로서 소설가들의 애호를 받고 있지만, 국가경찰 그 자체는 소수의 스탭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기구로서, 실제 일을 하는 것은 그의 통제를 받고 있는 다섯 개의 그렇게 오해되고 있지만 국가경찰의 기능은 순수한 행정적인 것으로서, 스탭에는 한 사람의 경찰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리스 그리모 다음에 앉아 있는 것은 프랑스의 사법경찰을 쥔 마크스 페르네, 케데조르페부르에 있는 사법경찰의 본부는 내무부의 옆, 소세 거리 11번지에 있는 국가경찰의 그것에 비하면 몇 배나 크다. 사법경찰은 프랑스 전국의 17개 경찰관구에 각각 하나씩 있는 17개 지방경찰을 통제하고 있다. 이 지방관구경찰의 밑에 지구경찰이 있다. 이것은 총 453개에 이르고, 74개의 중앙공안위원회와 253개의 지방공안위원회, 그리고 126개의 경찰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찰망은 2,000개에 이르는 시, 구, 동을 커버하고 있다. 시골이나 고속도로의 치안유지는 헌병대와 기동경찰대가 주로 맡고 있다. 많은 지방에서는 능률을 고려해서 헌병과 기동경찰대가 같은 시설과 장비를 쓰고 있다. 1963년 현재, 마크스 페르네의 지휘하에 있는 사법경찰의 인원은 2만 명을 넘고 있다. 페르네의 왼쪽에는 다른 4개 부분의 책임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보안경찰(BSP), 통합정보부(RG), 국토감시국(DST), 그리고 국가보안공화부대(CRS). BSP는 주로 국가가 관장하는 건물, 통신시설, 고속도로, 그 밖에 사보타주나 파괴공작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을 임무로 하고 있다. 다음의 RG는 다른 존재로서, 팡테옹에 있는 본부의 자료 센터에는 부 창설 이래 경찰의 눈에 걸린 인간의 개인적인 자료가 450만 통이나 수집되어 있다. 전장 81 킬로미터에 이르는 선반에 가득 차 있는 이들 자료는 이름순으로, 또는 범죄의 종류에 따라서 색인이 붙어 있다. 또, 각 사건의 증인이나 참고인의 이름도 리스트로 작성하여 보관되어 있다. 이 자료 시스템은 당시 아직 컴퓨터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예를 들어 10년 전에 시골의 한구석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의 자세한 내용이나, 신문의 기사거리도 되지 않았던 사소한 사건의 재판에 나온 증인의 이름일지라도 불과 몇 분이면 찾아낼 수 있다고 언제나 자랑하고 있다. 채취된 지문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것까지도 포함해서 모아 두고 있다. 또 국경을 통과하는 관광객의 입국 카드나 파리 교외의 그 지방 호텔에 묵은 손님의 숙박 카드도 포함해서 각종의 카드가 1,050만 장이나 보관되어 있다. 다만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이런 카드는 차례에 따라서 소각되고 새로 모인 카드와 교체된다. 또한, 파리 시내의 호텔 숙박 카드는 RG에 가는 것이 아니라 팔레 대로에 있는 경시청에 신고하기로 되어 있다. DST는 국내에서 대 간첩활동을 주임무로 하고, 공항이나 국경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 프랑스에 입국하는 사람의 입국 카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인물'을 체크하기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은 다음, RG의 자료 센터로 보내기로 되어 있다. 가장 마지막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CRS의 책임자이다. 45,000명의 진용을 자랑하는 CRS는 과거 2년 동안 송기네티의 지시로 빈번하게 출동하여 일찍부터 악평을 들어 오고 있다. CRS의 지휘관은 위치관계상 테이블의 말석에서 내무장관과 마주보는 곳에 앉아 있다. 그의 왼쪽, 생클레아가 앉은 자리에서 보자면 바로 오른쪽 자리에 거구의 우람한 사나이가 앉아 있다. 그는 연신 파이프를 빨아대고 있으며, 까다로운 생클레아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그가 회의에 참석한 것은 내무장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마크스 페르네가 그를 데려온 것이다. 그는 "우리기 놓인 처지는 이상과 같네." 하고 내무장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롤랑 대령의 보고서는 이미 여러분들이 읽은 바와 같다. 그리고 대통령이 프랑스의 권위를 고려해서 우리에게 과해진 제약에 대해서는 방금 내가 설명한 바와 같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겠는데, 모든 수사활동은 극비리에 진행되어야만 해. 그리고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일은 절대로 비밀로 해주어야겠어.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여러분에게 이 자리에 참석을 요구한 것은 언제고 모든 부서의 협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각 부서의 책임자로서 이 문제가 다른 어떤 임무보다도 우선하는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필요한 경우에는 여러분들 스스로 자진해서 지체없이 움직여 주기 바라네. 진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조그만 일은 별문제이지만, 이번 일은 부하에게 맡겨선 안되네." 내무장관은 여기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테이블의 양쪽에 나란히 앉은 몇몇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과 내무장관은 눈앞의 보고서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테이블의 말석에 앉아 있는 부비에는 인디언이 봉화를 올리듯 입가에서 단속적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공군 대령은 얼굴을 돌렸다. "그럼 -- ." 하고 내무장관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의견을 말해 주게. 롤랑 액션 서비스의 부장은 보고서에서 고개를 들고 SDECE의 보스를 옆눈으로 보았지만, 기보 장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무시했다. 장군은 롤랑이 제마음대로 제3부의 관할인 빈 지부를 쓴 일로 해서 제3부장이 불평을 해대는 바람에 그것을 달래느라고 진땀을 뺀 뒤였다. 그는 그 생각을 떠올리면서 똑바로 앞쪽을 보고 있었다. "예." 하고 대령이 대답했다. "빈의 공작원이 크라이스트라고 하는 브뤼크나알레에 있는 조그만 팡숑에 마르크 로댕, 르네 몽클레아, 그리고 앙드레 카송의 얼굴 사진을 가지고 탐문해 보았습니다. 코와르스키의 사진은 빈 지부에 없었으며, 이쪽에서 전송으로 보낼 호텔의 프런트 직원이 세 사람 중에서 적어도 두 사람의 얼굴은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누구인지는 식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좀 쥐어 주고 6월 12일부터 18일까지의 숙박부를 조사해 보도록 했습니다. 6월 18일은 세 사람이 로마의 호텔에 틀어박힌 날입니다. 그래서 결국 프런트 직원은 6월 15일에 슐츠라는 이름으로 방을 예약한 남자가 로댕이라고 그의 얼굴 사진을 지적했습니다. 로댕은 그날 오후 무슨 흥정 같은 것을 하고는 하룻밤 잔 뒤 다음날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슐츠에게는 인상이 고약한 거한의 동행이 있었습니다. 프런트 직원은 그것 그런데 점심 전에 슐츠에게 두 남자가 찾아와서 세 사람이 회의를 한 모양입니다. 이 두 사람은 카슨과 몽클레아겠지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두 사람 중 한쪽은 전에 얼굴을 본 기억이 있다고 프런트 직원이 말했다고 합니다. 또, 그의 증언에 의하면 그 남자들은 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모양이며, 다만 아침 늦게 슐츠와 거한 -- 슐츠는 그를 코와르스키라고 불렀답니다 -- 이 30분쯤 외출을 했습니다. 남자들은 낮에 점심 먹으러 내려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남자가 찾아온 것도?"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송기네티가 물었다. 롤랑은 그의 질문을 무시한 듯이 사무적인 어조로 계속했다. 나타났습니다. 그 남자는 재빨리 현관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순식간에 층계를 올라가 버려서 프런트 직원은 얼굴을 볼 틈도 없었던 모양이며, 열쇠를 프런트에 맡기지 않고 직접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숙박객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다만 그때 프런트 직원은 층계를 올라가는 남자의 윗도리 옷자락을 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곧 다시 밑으로 내려온 모양인데, 프런트 직원은 그 윗도리를 보고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프런트의 전화로 64호실, 즉 슐츠의 방을 대달라고 해서 슐츠와 두세 마디 프랑스어로 말을 주고받은 다음 다시 층계를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30분쯤 지나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먼저 슐츠를 방문했던 두 사람이 따로따로 호텔을 나갔습니다. 슐츠와 거한은 그대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끝내고 출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손님의 특징에 대해서 프런트 직원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대강 다음과 같은 정도입니다 -- 연령 미상, 키가 크고, 얼굴 모양에는 특징이 없으며,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며, 프랑스어가 유창하고, 조금 긴 듯한 금발을 이마에서 뒤로 빗어넘겼음." "그 프런트 직원에게 부탁해서 블론드의 몽타주 사진 작성에 협조를 구할 수는 없겠나?" 경시총감인 파퐁이 물었다. 롤랑은 고개를 저었다. 경찰의 사복형사로 위장하고 탐문을 갔었습니다. 다행히 빈 출신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연극은 하루가 고작이지 오래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프런트 직원의 심문도 호텔에서 한 정도이고, 어디로 데리고 나가서 어떻게 해보기는 힘듭니다." "블론드의 특징도 그것만으로는 아무 도움도 안돼." RG의 책임자가 주의를 주었다. "이름을 묻지 않았었나, 그 프런트 직원은?" "예, 방금 말씀드린 것은 세 시간이나 걸려서 심문한 결과입니다. 모든 점을 두번 세번 되풀이해서 확인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이 프런트 직원이 기억하고 것도 아니니, 그런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지요." "아르그처럼 납치하여 파리에서 몽타주 사진을 만들 수는 없었나?" 하고 생클레아 대령이 화가 나서 말했다. 내무장관은 그것을 막았다. "납치는 더 이상은 할 수 없어. 아르그 사건으로 아직도 서독 외무부로부터 공격당하고 있어. 그런 방법은 한 번으로 끝내야지 두번 다시 할 짓은 못돼." "하지만 이만저만 중대사가 아닙니다. 아르그 사건 때보다는 은밀하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DST의 국장이 말했다. "설령 납치에 성공한다고 해도 -- ." 하고 마크스 페르네가 반대 의견을 말했다.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 두 달이나 지난 잠깐 동안의 기억을 근거로 작성된 몽타주 사진으로는 인상과 특징을 확정짓기가 도저히 불가능해. 다시 말하자면 그와 비슷한 인간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니 오히려 수사를 혼란케 할 뿐이야." "코와르스키는 알고 있는 것은 몽땅 털어놓고, 하긴 결정적인 것은 무엇 하나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미 죽어 버렸으니, 그 밖에 재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인간은 넷뿐입니다." 뒤크레 총경이 끼어들었다. "한 사람은 재칼 본인이고, 다른 세 사람은 로마의 호텔에 있는 녀석들입니다. 어떨까요, 세 사람 중 하나라도 좋으니 파리에 데리고 오는 것이?" "몇 번이나 되풀이하지만, 납치는 절대로 안돼. 그건 의논의 여지가 없어. 수상 관저의 코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탈리아 정부는 광분해 할 거야. 절대로 무사히 끝나지는 않을걸. 게다가 현실적으로도 실행 불가능해. 자네가 설명해 주지 않겠나, 장군?" SDECE 국장인 기보 장군은 일동을 둘러보고 말했다. "호텔을 감시하고 있는 현지 요원의 보고에 의하면, 로댕 일행은 신변에 엄중한 경계망을 둘러치고 있어서 이쪽에서 손을 쓰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전에 외인부대 소속이었던 총잡이 8명, 코와르스키가 빠졌으니까 7명이지만, 그들이 엘리베이터, 층계, 비상계단, 옥상 하나라도 생포하려면 가스 수류탄이나 기관총을 써서 대규모의 총격전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더구나, 설령 누군가를 체포할 수 있다고 해도 미처 날뛰는 이탈리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국경까지 500--나 신병을 운반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SDECE에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있는데, 그들이 단언하고 있소. 이것은 군의 특공작전에 필적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이오." 회의실은 침묵에 싸였다. 내무장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때, 그밖에 다른 의견은 없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재칼을 찾아내야 해요. 그것만은 절대적입니다." 생클레아 대령이 말했다. 테이블을 다른 사람들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상석의 내무장관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도 남는 일이야. 지금 우리가 머리를 짜내려는 것은, 주어진 제약하에서 어떤 방법으로 놈을 찾아내는가 하는 일이야. 그러자면 어떤 부서가 가장 적합하겠는가? 그것이 당면 과제야." "대통령의 보호에 대해서는 다른 부서에서 모두 실패했을 경우, 최종적으로는 대통령 경호대와 대통령 비서실이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장관님, 우리는 반드시 그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참석자 중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지겹다는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뒤크레 총경은 찌르는 시선을 잠깐 대령에게 던졌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기보 장군은 조그만 소리로 롤랑에게 말했다. "독선은 그쯤 해두시지. 대장도 녀석이 하는 말은 문제도 삼지 않는데, 그것을 모르니 불쌍하군." 프레이 내무장관은 눈을 들어 엘리제궁의 무관에게 시선을 보내면서 장관으로서의 무게를 보이는 발언을 했다. "생클레아 대령의 말은 물론 옳아. 다만, 대령도 알고 있겠지만 어떤 부서에서 암살저지의 중책을 떠맡을 때, 만일 실패하거나 일이 공개되어 버릴 방법을 섣불리 채택하여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게 될 경우, 그 부서의 장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돼." 위협의 감정이 부비에의 파이프에서 테이블 주위를 둘러쌌다. 앙상한 생클레아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띄게 긴장하고, 눈에서는 걱정과 근심의 빛이 배어나왔다. "대통령 경호대에는 제약이 너무 많습니다." 뒤크레 총경이 냉정한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대통령의 신변 가까이에 있어야만 하고, 그곳을 떠날 수가 없어요. 이 수사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것으로서, 경호대로서는 본래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뒤크레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서, 그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진해서 그 임무를 떠맡으려는 자신에게 멈추는 것을 피하고 싶어했다. 프레이는 참석자를 둘러보다가 말석에서 연기에 싸여 있는 부비에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형사 출신으로 거친 그는 입에서 파이프를 빼고, 자기를 향해 방향을 바꾼 생클레아 대령에게 짙은 향기의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듯이 조용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정리하면 대개 이런 것이 되겠군요. 먼저 SDECE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칼의 정체는 OAS도 모를 정도니까 OAS 내부에 침투시킨 요원을 그러니까 액션 서비스도 공격의 상대를 모르니까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지요. 다음에는 DST입니다. 국경에서 놈을 잡으려고 해도 누구를 잡아야 좋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지요. RG도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정보 제공이 안되고요. 또한, 경찰은 누구를 체포해야 할지 모르니 놈을 체포할 수도 없으며, CRS도 추적할 상대를 모르고서는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프랑스의 전 치안기구가 재칼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놈의 이름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이름을 모르고서는 어떤 명안이나 묘책도 무의미하니까요. 얼굴을 알게 되면 여권을 알 수 있으며, 여권을 알면 신병을 확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찾아내는 일, 더구나 그것을 은밀하게 하는 일, 이것은 바로 형사의 일입니다." 단숨에 여기까지 이야기한 부비에는 다시 파이프를 물고 입을 다물었다. 일동은 그의 말을 조용히 분석했다. 아무도 결함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송기네티는 내무장관의 옆자리에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프랑스에서 가장 유능한 형사는 누구인가?" 하고 내무장관은 조용히 물었다. 부비에는 잠깐 생각한 다음 파이프를 입에서 뺐다. 우리 차장, 클로드 르베르 총경이지요." "곧 이리로 불러다 주게나." 내무장관이 명령했다. 제 10 장 그로부터 한 시간 뒤, 클로드 르베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내무장관의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는 50분에 걸쳐서 내무장관으로부터 임무의 내용에 관한 브리핑을 받았다. 갑자기 소환되어 내무부에 출두한 르베르는 회의실로 불려가서, CRS의 책임자와 그의 상사인 부비에 사이에 앉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14명의 참석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의 가치를 점치고 있는 속에서 그는 롤랑의 보고서를 읽었다. 다 읽고 난 보고서를 테이블에 도로 올려놓은 그는 지극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기가 이리로 불려온 것일까 --? 의논도 요청도 아닌, 분명한 지시이고 명령이었다. 긴 설명이 계속되었다. 특별 사무실을 설치할 것, 필요한 정보는 무제한으로 제공하겠다는 것, 각 참석자가 대표하는 각 부서의 전 조직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것, 경비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 그러나 절대로 비밀을 지킬 것, 이것은 대통령의 명령이라는 뜻의 말이 도중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르베르의 마음은 깊숙히 가라앉았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의뢰, 아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의 단서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무엇보다 아직 범죄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실마리도 참고인도 없다 -- . 로마의 세 사람은 손이 닿지 않는 존재이다. 수상한 암호명 하나에 의지하여 클로드 르베르는 좋은 경찰관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그저 말없이, 남의 눈에 띄지도 않는 인기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좋은 경찰관이다. 때로는 좋은 경찰관을 대단한 형사로 변신시키는 어떤 번득임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의 일이란 99퍼센트까지가 틀에 박힌 무던한 수사로서, 검증에 검증을 되풀이하면서 부분과 부분을 부지런히 이어나가, 그렇게 해서 꿰어맞춘 전체가 하나의 그물이 되고, 그 그물로써 범죄자를 칭칭 얽어매어, 신문의 화려한 표제가 되지 않아도 좋은, 공소를 유지할 수 있는 케이스로 간추리는 -- 그런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사법경찰의 내부에서 그는 말없이 착실히 그는 정성껏 일하는 수수한 존재로서 선전을 싫어하며, 동료 중에는 그것을 이용해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었다. 기자회견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의 유죄를 입증하면서 착실히 승진해 왔다. 3년 전에 형사부 살인과의 과장 자리가 비어 그가 후보로 추천되었을 때에는 다른 유자격자들도 모두가 거기에 찬성했다. 살인과에서도 착실히 성적을 올려 3년 동안의 재임중에 꼭 한 건 용의자가 법규상 문제로 석방된 예를 젖혀 두고는 사건을 빠짐없이 해결하고 범인을 체포했다. 살인과장이 되고부터 그는 전보다 더욱, 그 역시 구식 경찰관인 형사부장 모리스 3주일 전에 형사부 차장이 갑자기 죽어서 부비에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사법경찰 내부에서는 이 인사를 평하여, 부비에는 정치적인 활동에 오로지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눈부신 활동으로 자기의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을, 퇴직이 임박한 부하를 택하게 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비판은 너무 짐작이 지나쳐서 중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내무부에서 진행된 회의가 끝난 뒤, 롤랑의 보고서 사본은 모두 모아서 장관실의 금고 속에 넣었다. 르베르만이 부비에가 가지고 있던 사본을 건네받고, 그 사본의 소지가 허락되었다. 그가 회의에서 요청한 것은 단 한 가지, 재칼 같은 프로 외국의 경찰 간부에게 은밀히 협조를 요청하고 싶으니까 그 점을 허락해 주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이런 협조 없이는 조사를 시작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송기네티는 그런 무리들이 비밀을 지켜 줄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거기에 대해서 르베르는 자신이 접촉하는 사람들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이고, 더구나 그의 요청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고 서유럽 각국 경찰의 간부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무장관은 한동안 생각한 끝에 르베르의 요청에 동의했다. 르베르는 회의실 앞의 복도에 서서 돌아가는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쌀쌀맞게 고개를 끄덕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간단히 인사까지 하면서 동정 어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부비에는 아직도 회의실 안에서 마크스 페르네와 무엇인가를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다른 참석자들보다 가장 뒤에 나온 것은 엘리제궁의 대통령 비서실을 대표해서 나온 귀족적인 공군 대령이었다. 참석자 일동을 소개받을 때, 그 대령이 생클레아 드 비로방이라는 이름이었다는 것이 르베르는 생각났다. 생클레아는 키가 작고 뚱뚱한 총경 앞에 멈춰서서 드러내 놓고 불쾌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사의 성공을, 조속한 성공을 바라겠소. 엘리제궁은 수사의 진전에 찾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그때는 각오해야 될 게요...... 다시 말하자면, 그 충격이 클 것이라는 이야기요." 거기까지 말한 대령은 홱 돌아서서 현관 홀을 향해 층계를 내려갔다. 르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몇 차례 바쁘게 눈을 깜박였을 뿐이다. 클로드 르베르라는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 중의 하나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어서 무엇이든 말하게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제4공화국 때 노르망디에서 형사생활로 들어간 이후 20년간 범죄수사에 성공해 온 것도 이 재능 덕분이었다. 그는 부비에와 같이 경찰관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구의 소유자는 아니다. 또, 타입의 형사처럼 용의자를 겁주거나 달래어 눈물을 흘려 가며 자백하도록 이끌어가는 매끄러운 구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특별히 자기의 약점이라고 생각지는 않고 있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대부분은 시정의 장사꾼이나 월급쟁이나 우체국원, 은행원 같은 소시민이 주인공이며, 범인이 되고 피해자가 되고 목격자가 되는 것도 그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소시민이 상대라면 입을 열게 할 수가 있고, 자신도 있었다. 이것은 우선 그의 몸 치수가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땅딸막하고 키가 작은 남자로서, 만화가가 그리는 공처가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직장 안에서 아무도 모르는 깔려 있는 신세다. 촌스러운 옷차림에 언제나 구겨져 있는 양복과 레인코트. 태도나 몸가짐은 부드러워서 오히려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증인에게 정보를 얻고자 할 때에도 그 태도는 먼저 심문하고 간 형사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자연히 증인도 형사들의 푸른 서슬에서 구원된 기분이 되어 르베르에 대해서 태도를 누그러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르베르의 재능이 이것만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살인과를 3년이나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 유명한 프랑스 사법경찰의 형사부에 10년이나 재직하고 있는 형사다. 온화한 언동과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 뒤에는 교활한 두뇌와 어떠한 공격이나 있다. 언젠가 그는 암흑가의 거물급 보스에게 협박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보스는 그가 다급하게 눈을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협박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 보스는, 온화한 갈색 눈과 칫솔 같은 콧수염을 지나치게 얕보았다고 형무소 안에서 후회했었다. 그 밖에도 르베르는 지금까지 두 번, 이른바 유력자라고 불리는 인물에게서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어떤 재계의 인물이 사원을 횡령죄로 고발했을 때, 또 한번은 사교계의 거물이 어떤 젊은 여배우가 약물로 사망한 사건의 수사를 중지하도록 요구한 때이다. 전자의 경우, 그 재계 인사의 신변을 조사한 결과 고발된 사원과는 무관한, 보다 큰 배임 사실이 스위스로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사교계의 거물이 실은 고급 아파트에서 난교(亂交) 파티를 연 사실이 들통나서 그 역시 형무소로 갔다. 생클레아 대령의 악의에 찬 말에 대해서 르베르는 꾸지람을 들은 국민학생같이 눈만 껌벅이며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위임받은 일의 수행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윽고 부비에가 페르네와 함께 회의실에서 나왔다. 페르네는 르베르의 건투를 빌면서 잠깐 악수하고 층계를 내려갔다. 부비에는 커다란 손으로 르베르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대강 그런 일일세, 클로드. 잘 부탁하네.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지는 말게. 어쩔 수가 없잖나. 녀석들에게 맡겨 두었다가는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백날 의논만 할 뿐이지 결말이 안 나. 자, 차 안에서 이야기하세." 두 사람은 뜰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트로엥에 탔다. 시각은 이미 오후 9시를 지나 뇌이 쉬르 센(불로뉴의 숲 가까이에 있는 고급주택지)의 하늘 위에 걸려 있는 짙은 남빛 구름만이 아직 저녁임을 알릴 뿐이었다. 차는 마리니 가를 내려가서 클레망소 광장을 가로질렀다. 르베르는 오른쪽을 흐르고 있는 샹젤리제의 빛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여름밤의 샹젤리제의 아름다움은 시골을 떠나온 지 10년이나 되는 지금도 르베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부비에가 입을 열었다. 버리는 거야. 책상을 깨끗이 정돈하고, 지금 손대고 있는 사건은 파이에와 말크스트에게 시키도록 하게. 새 사무실이 있어야겠나?" "아니, 지금 것을 쓰겠습니다." "그것도 좋겠지. 지금부터 거기가 '재칼 탐색작전'의 본부가 되는 셈이야. 다른 일은 쳐다보지도 말게. 알겠지? 누구 조수로 쓰고 싶은 사람이 있나?" "예, 카롱을......" 카롱은 살인과에서 함께 일한 젊은 경감으로서, 형사부 차장으로 승진한 르베르가 자기 있는 곳으로 끌어와서 새 자리를 만들어 앉혔다. "좋아, 카롱이라면 쓸 만하겠지. 그 밖에는?" 쓰자면 임무의 내용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부비에는 잠깐 생각하고서 말했다. "그야 어쩔 수가 없겠지. 자네도 혼자서 일할 수는 없을 게고, 아무래도 조수가 필요하니까. 그러나 그 녀석에게 말하는 것은 한두 시간 기다려 주게. 장관에게 전화해서 정식으로 OK를 받아낼 테니까. 그러나 다른 녀석에게는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알겠나? 한마디만 뻥긋하면 순식간에 신문에 나 버리니까." "걱정 마십시오. 카롱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부탁해.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해 둘 것이 있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송기네티가 오늘밤의 참석자 전원에게 수사의 상황을 제안을 했는데, 장관도 거기에 동의했어. 페르네와 나는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앞으로 매일밤 10시에 자네는 내무부에서 모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돼." "그게 무슨 뜻이지요......?" "명분은 아주 그럴듯해." 부비에는 비꼬듯이 말했다. "자네의 설명을 듣고 의견이나 충고가 있으면 말하겠다는 것이 이유야. 그러나 걱정할 건 없어. 늑대들이 구박하면 페르네와 내가 구해 줄 테니까." "그 설명회는 앞으로 계속해야 하나요?" "장관이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는 계속되겠지. 그것보다 문제는 이 작전에는 시간적인 스케줄이 없다는 점이야. 어떻게 찾아내야만 해. 저쪽이 시간표를, 어떤 내용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곤란하단 말이야.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고, 한 달 뒤일지도 몰라. 어쨌든 놈을 체포하거나, 적어도 정체를 밝혀내고 소재를 확인할 때까지 전력투구해 주기 바라네. 그 다음은 액션 서비스의 녀석들이 손을 써줄 테니까." "그들은 불량배 집단인데." 하고 르베르는 중얼거렸다. "사실이야." 부비에도 태평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써먹을 데가 있어. 지금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시대야. 보통 범죄도 늘어나고 있지만, 거기에 정치적인 범죄라는 신종 범죄까지 일이 있는 걸세. 그것을 녀석들이 해주는 거지. 어쨌든 재칼의 건을 부탁하네." 차는 게데졸페부르로 들어서서 사법경찰본부의 문으로 들어갔다. 10분 뒤 클로드 르베르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는 창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열고 센 강 건너 왼쪽 강가의 그랑 조귀스탕 쪽을 한참 바라보았다. 시테 섬을 감싸듯이 흐르는 강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강가를 따라서 점점히 늘어선 레스토랑의 손님들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고, 유쾌하게 웃어젖히는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까지도 들릴 것 같았다. 르베르가 별종의 인간이었다면, 권세욕이 강한 야심가였다면 오늘밤 주어진 권한의 지대함을 생각하고 일시적이나마 자기는 되었다는 감개에 젖었을 것이다. 대통령과 내무장관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일지라도 그가 이러이러한 시설이나 조직을 쓰고 싶다고 요구하면 그것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밀하게 할 수만 있다면 군대를 동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것도 분명하다 -- 강력한 권력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임무를 완수해야만이 그 타당성이 보증되는 것이므로, 성공하면 경력에 빛나는 업적으로 남겠지만 실패하면 생클레아 대령 말마따나 비참한 꼴로 사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르베르는 역시 르베르이고, 또 야심가도 아니므로 이런 생각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내인 아메리에게 전화로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공처가다운 걱정뿐이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크스트와 파비에 두 경감이 그날 밤 르베르가 내무부로 불려가기까지 그가 취급하던 네 가지 사건의 자료를 가지러 온 것이다. 르베르는 두 사람에게 각각 두 건씩 나누어 주고 30분에 걸쳐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두 사람을 내보내고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뤼시앵 카롱이었다. "부비에 부장님이 이리로 출두하라고 해서." "알고 있어. 실은 이번에 일상적인 일을 모두 집어치우고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되었네. 자네가 내 조수로 임명되었어." 것이 자기라고 밝혀서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자랑도 해볼 만한 일이지만, 르베르에게는 그런 신경은 아예 없었다. 책상 위의 전화가 울리자 그는 수화기를 들고서 한동안 듣고만 있었다. "부장님에게서 온 거야. 자네에게 임무의 내용을 말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네. 먼저 이것을 읽어 보게." 카롱이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롤랑의 보고서를 읽는 동안에 르베르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나 메모류를 등뒤의 장 속에 쑤셔넣었다. 이런 사무실을 보고서 사상 최대의 맨헌트(사람 사냥) 작전의 신경 중추라고 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다. 경찰의 사무실이란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서, 대개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넓이는 20 평방미터 정도이고, 남쪽으로 창이 둘 있으며, 강 건너 생 미셀 대로 주변에 밀집한 카르티에 라탱의 활기 넘치는 길거리가 바라다보인다. 그 창을 통해서 밤의 소리와 여름의 열기가 흘러들어온다. 실내에는 책상이 둘 있다. 하나는 르베르가 쓸 것으로서 창을 등지고 있었고, 또 하나는 비서용으로 동쪽 벽에 붙여서 놓여 있다. 문은 창과 마주보고 있었다. 두 개의 책상과 그에 따른 의자 이외에 실내에 있는 가구라고 한다면 등받이 자리와 직각 의자가 하나, 문 옆에 팔걸이의자가 하나, 서쪽 벽을 거의 다 메우고 있는 여섯 개의 커다란 자료정리장 -- 그 위에 참고서와 법률서가 죽 놓여 -- 그 안에는 연감과 자료가 들어차 있다 -- 이 놓여 있었다. 조금이나마 가정을 생각케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르베르의 책상 위에 있는 가족 사진이 있을 뿐이며, 살찐 체격에 성깔이 있어 보이는 부인 아메리와, 금속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를 땋아내린 못생긴 소녀, 그리고 아버지를 꼭 빼닮은 호인형 얼굴의 소년이 찍혀 있다. 카롱은 보고서를 다 읽고 나서 얼굴을 들었다. "엄청나군요." "그래, 미친 녀석이 발광하는 모양일세." 절대로 거친 말을 쓰지 않는 르베르가 전에 없이 험한 말을 입에 담았다. 사법경찰의 간부는 대개 부하들에게서 불리지만, 르베르는 술이라야 아페리티프가 고작이고 담배는 피우지도 않으며 큰소리를 낸 적도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부하들은 저절로 학교 선생님이 영상되는지, 살인과는 물론 형사부 안에서도 '교수'라는 별명을 붙여 놓았다. 일에 관해서만 그 솜씨가 대단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자, 그거야 어떻든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네. 앞으로는 그럴 시간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30분 동안 그는 카롱에게 프레이 내무장관이 대통령을 만난 것에서부터 내무부에서 열린 회의, 부비에 부장의 추천으로 급히 소환된 일, 그리고 그의 사무실이 재칼 수색의 작전본부가 된 카롱은 묵묵히 듣고 있었으나, 르베르의 설명이 끝나자 정말 억울한 듯이 말했다. "너무하군. 그들은 차장님에게 멋지게 올가미를 씌웠군요." 그리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상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차장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떠맡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차장님에게 억지로 떠맡긴 겁니다. 만일 그 살인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모두들 몰려와서 물러나라고 할 겁니다." 르베르는 슬픈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네, 뤼시앙.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명령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바에야 이제는 해보는 수밖에 없지." "하다니, 어디서부터 시작할 겁니까?" 주어져 있다네. 그것을 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세." 르베르는 오히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은 자리에 앉아 주게.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메모하는 걸세. 내 비서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다른 부서로 옮기든지, 유급휴가를 줄 것. 자네가 비서 겸 조수가 되는 거야. 관리부에다 간이침대와 침구, 세면도구, 그리고 면도용품을 준비시킬 것. 그리고 커피포트와 우유와 설탕을 갖다 놓으라고 할 것. 커피는 많이 필요하게 될 거야. 틀림없이. 그리고 전화교환실에 가서 외선의 직통전화선 열 개와 전속 교환수를 한 사람 배치해 달라고 하게. 여러 말이 나오면 그 밖에 어느 부서라도 좋네만, 내가 의뢰하는 것을 가지고 갈 때에는 직접 그 부서의 책임자를 만나서 내 이름을 들먹이게. 내무장관의 명령으로 내 요청은 최우선적으로 취급해 주기로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밤의 회의에 참석한 각 부서의 책임자에게 배포해 줄 메모를 준비해 주게. 서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자네는 내 유일한 보조자이며, 내가 없을 때에는 내 대리인으로서 필요한 요청을 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는 내용의 메모일세. 알겠는가?" 메모를 끝낸 카롱은 얼굴을 들고 대답했다. "예. 오늘밤 안으로 모두 해놓겠습니다. 제일 먼저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사람이라야 되겠어. 총무부장의 집에 연락해 주게. 부비에 국장의 이름을 대고." "예. 먼저 어떻게 시작할까요?" "되도록 빨리 다음에 말하는 7개국의 경찰 살인과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다행히 인터폴의 회의를 통해 개인적으로 모두 아는 사람들뿐이야. 상대방과 연결이 안될 때에는 차례차례 다른 곳으로 걸어 주게. 7개국 중에서도 먼저 미국이며, 워싱턴의 FBI일세. 다음이 영국 런던 경시청의 형사담당 부총감. 그리고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서독, 마지막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야. 자택도 좋고 사무실도 좋아. 여하튼 찾아내게. 그리고 내일 아침 7시에서 10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인터폴의 통신실에서 전화를 걸 테니까, 그것이 끝나면 인터폴에 가서 각각 약속한 시간의 통화를 예약하는 거야. 전화는 모두 UHF에 의한 지명통화일세. 각국의 담당관에게는 내 이야기의 내용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고, 이것은 프랑스만이 아니고 그들 나라에게도 중요한 일이라고 못을 박아 주게. 그리고 나서는 내일 아침 6시까지 통화를 예약한 순서에 따라서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나는 지금부터 살인과로 가서 프랑스에서 움직이고 있는 의심스러운 외국인 살인업자 중 검거되지 않는 녀석이 있는지 만일을 위해서 조사하고 오겠네. 그런 살인자는 솔직히 말해서 생각나지도 않고, 로댕도 그런 녀석을 고를 정도로 바보가 아닌 줄은 알지만...... 자네, 할 일은 알고 있겠지?" 어이없는 얼굴로 카롱은 휘갈겨쓴 메모에서 고개를 들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당장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르베르는 방을 나가서 층계로 갔다. 그때 마침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이 12시를 치고, 시간은 8월 12일의 오전이 되었다. 제 11 장 라울 생클레아 드 비로방 대령은 한밤중인 12시 조금 전에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그때까지 세 시간 동안 내무부에서 열린 회의에 관한 보고서를 타이프치고 있었다. 그 보고서는 아침에 제일 먼저 대통령 비서실장의 책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보고서의 작성에는 세밀하게 신경을 써서 원고를 두 번이나 찢어 버리고 세 번째에야 겨우 거의 만족스러운 것이 완성되어, 그것을 자기가 직접 타이프쳤다. 타이프 같은 것은 손에 익지 않아서 짜증이 났지만, 보고서 안에서도 일부러 지적해 두었듯이 자기가 직접 함으로써 그 비밀이 비서의 눈에 띄지 것이다. 비서실장이 그것을 읽어 보고 한 시간 뒤에는 대통령의 책상에까지 가게 되겠지. 그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바이다. 그는 글귀의 선택이나 문장의 구성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대통령의 안전에 관계되는 중대사를, 오로지 하찮은 조무래기 악당들을 잡아내는 임무를 맡아온 한낱 총경에게 맡긴다는 것에 반대한다는 취지를 넌지시 비쳤다. 이렇게 해두면 르베르가 그 암살자를 찾아냈을 경우에도 비판을 받을 리 없고, 또 실패했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이미 르베르의 기용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되니까 점수를 딸 수 있다는 속셈이다. 그는 르베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호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생각 없는 작은 남자라는 '분명히 현저한 기록을 남겨 온'이라고 꽤나 신중한 표현으로 그를 묘사했다. 펜으로 쓴 두 통의 원고를 다시 읽어 보고서, 생클레아는 르베르의 기용을 정면으로 반대하게 된다면 그것이 회의에서 합의된 일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묻게 될 것이므로 유리한 계책이 아니며, 그보다는 대통령 비서실을 대표하여 수사의 추이를 감시하다가 실수가 생겼을 때에는 제일 먼저 냉정한 태도로 그것을 지적하는, 그런 작전이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르베르가 하는 일을 감시하자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에 송기네티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내무장관이 매일밤 10시부터 경과보고를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알려 주었다. 이 소식은 생클레아를 기쁘게 했다. 첫번째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낮에 조금만 공부해 놓으면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할 수가 있고, 그렇게 하면 적어도 대통령 비서실은 일의 중대성과 긴급성에 언제나 유의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무리들에게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견해는, 설령 암살자가 가까이에 와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변에 둘러쳐진 경계망은 세계 제일의 밀도와 효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공개석상에 참석할 때의 준비나 그곳으로 가는 루트의 선택은 모두 그가 책임지고 외국인 살인자에게 허물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파트로 돌아가서 자기의 플랫으로 들어간 그의 귀에 새로 사귄 정부가 침실에서 말을 걸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에요?" "그래, 나야. 쓸쓸했나?" 정부가 침실에서 달려나왔다. 목 언저리와 옷깃에 레이스를 곁들인, 필름 같이 얇은 검정 베이비돌(영화 '베이비돌'의 여주인공이 입은 짧은 잠옷)풍의 잠옷을 입고 있다. 열어젖힌 문으로 새어나오는 침대 옆의 스탠드 불빛을 받아서 젊은 여체의 곡선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생클레아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이 여자는 떨리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을 맺어준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은 무시해 버리고, 오로지 자기가 바라는 현상만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려는 것이 그의 성격의 특징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드러난 두 팔을 뻗어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길고 탐욕스럽게 입술을 빨았다. 그는 서류가방과 석간신문을 손에 든 채 한껏 반응을 보였다. "자 -- ." 입술을 떼며 그가 말했다. "침대에서 기다려, 곧 갈 테니까." 빨리 가라는 듯이 그는 정부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그녀는 팔딱팔딱 뛰듯이 침실로 달려가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반듯이 누워서 발을 아무렇게나 가슴을 내밀었다. 서류가방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침실로 들어간 생클레아는 만족스러운 듯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도전하듯 마주 쳐다보았다. 2주일 동안의 동거생활을 거친 그녀는 생생한 행위를 전제로 한 노골적인 유혹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 바짝 말라 버린 엘리트의 욕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클린은 처음 만난 날부터 이 남자를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의 약한 정력은 그의 수다스러운 달변과, 특히 엘리제궁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의 무게로써 메꾸면 된다고 생각하고 참아 왔다. "빨리 해줘요." 그녀는 속삭였다. "빨리! 당신을 갖고 싶어." 생클레아는 욕정을 얼굴에 드러내면서 나란히 놓았다. 다음에는 윗도리를 벗어서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씩 단정하게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바지를 꼼꼼하게 접어서 왜건의 가로대에 걸었다. 셔츠 자락 밑으로 드러난 가늘고 긴 다리가 윤기 없는 흰 뜨게질 바늘 같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난 기다리다가 죽을 뻔했는데." 생클레아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골치를 썩을 문제는 아니야." "어머, 심술쟁이." 그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돌아누우면서 무릎을 구부렸다. 밤색 머리칼이 어깨를 덮고, 말려올라간 잠옷 밑에 있던 히프가 넥타이를 풀었다. 이윽고 그는 실크 파자마에 단추를 채우면서 침대로 다가갔다. 그녀 옆에 몸을 눕힌 생클레아는 잘록한 허리에서 높이 솟은 히프를 향해 손을 옮겨 갔다. 손가락은 무슨 곤충처럼 따뜻하고 둥근 히프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또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섹스를 원하지 않았었나?" "이렇게 늦었으면서도 이유는 한마디도 설명해 주지 않는군요. 사무실에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나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으로 몇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지금까지는 늦어지면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주었는데, 정말 너무 그녀는 반듯이 누워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팔베개를 하고 한 손을 잠옷 밑으로 넣어서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주 바빴어. 긴급사태가 좀 발생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내 손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전화를 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사무실에서는 모두들 일하고 있는 데다가, 사람들의 출입도 빈번해서 그럴 기회가 없었어. 게다가 집사람이 시골 별장에 가 있다는 것을 아는 녀석도 있고 해서 말이야. 교환을 거쳐서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도 수상쩍게 생각할 테고." 그녀는 파자마 속으로 손을 넣어서 시들은 그의 페니스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나타내기 시작했다. "늦어지는 이유를 저에게 알릴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란 있을 리가 없어요. 정말 저는 내내 걱정만 했단 말이에요." "돌아왔으니까 이젠 됐잖아. 위로 올라가, 평소처럼." 그녀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내려서 귓밥을 살짝 물었다. "안돼요, 아직 요 얘기가 준비가 되지 않는걸요." 그녀는 나무라듯 늦게 일어나는 페니스를 문질러댔다. 생클레아의 숨소리가 차츰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클린의 입을 힘껏 빨면서 한 손으로 좌우의 젖꼭지를 번갈아가며 찝었는데, 그만 힘이 너무 "빨리 위로 올라가." 그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녀는 몸을 조금 틀어서 파자마의 앞을 벌렸다. 그는 밤색 머리칼이 자기의 배에 와 닿는 것을 보고 반듯이 몸을 가라앉히고서 희열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OAS가 아직도 대통령을 노리고 있어. 오늘 그 음모를 찾아냈거든. 그 처리를 하느라고 늦어지고 말았어." 자클린은 갑자기 얼굴을 들었다. 그 바람에 페니스가 입에서 그만 튀어나와 버렸다. "그런 건 거짓말이 뻔해요. OAS 같은 것은 벌써 옛날에 뿔뿔이 다 흩어져 버렸다던데." 그녀는 다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리지 않았어. 이번에는 외국인 살인자를 고용해서 대통령을 죽이려 하는 거야. 아 -- 물면 아파." 그로부터 30분 뒤, 라울 생클레아 드 비로방 대령은 지친 듯 가볍게 코를 골면서 얼굴을 반쯤 베개에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옆에 누워 있는 자클린은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불빛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천장을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생클레아가 잠꼬대로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움찔했다. 그런 음모가 있었다는 것은 몰랐지만, 코와르스키가 자백한 내용의 중요성을 그녀 나름대로 이해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침대 옆 시계의 글자판이 2시를 가리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살그머니 소켓에서 뽑아 버렸다. 침대를 빠져나오기 전에 그녀는 대령이 자는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에게는 여자를 끌어안고 자는 습관이 없어서 그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완전히 잠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침실을 나온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을 지나서 그곳 문도 꼭 닫았다. 그녀는 홀의 테이블 위에 있는 전화로 모리트르의 어떤 번호를 돌렸다. 신호음을 들으면서 몇 분 동안 기다렸다. 이윽고 조는 듯한 소리가 대답했다. 그녀는 2분 간 숨쉴 틈도 없이 말했다. 알았다는 상대방의 말을 확인한 다음에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살그머니 침실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정말로 잠들려고 눈을 감았다. 그날 밤, 유럽 5개국과 미국 및 아프리카공화국 경찰의 형사담당 책임자들은 잠자다가 파리에서 걸려 온 국제전화로 일어났다. 그들은 거의 모두들 쏟아지는 졸음으로 짜증스러웠다. 서유럽 각국은 파리와 시차가 없어서 어디나 한밤중이었다. 워싱턴에서 파리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후 9시였는데, FBI의 살인과 책임자는 디너 파티에 참석중이었다. 카롱은 세 군데 전화한 끝에 마침내 그를 찾아냈지만, 옆방의 파티장 소음으로 인해 이야기가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는 카롱이 의뢰하는 내용을 알아듣고서, 워싱턴 시간으로 새벽 2시에 FBI의 통신실로 들어가서, 파리 시간으로 오전 8시에 인터폴에서 르베르가 이탈리아, 서독 및 네덜란드의 각 담당관은 모두들 가정에 충실한 사람들인 모양인지 각자 자택에서 자고 있었다. 차례차례 깨워진 그들은 카롱의 의뢰에 따라서 지정된 시간에 각각 그들의 통신실에서 긴급한 용건으로 르베르에게서 걸려 올 지명전화를 받기로 승낙했다. 남아프리카의 반 루이스는 출장중이며, 다음날 아침까지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카롱은 차석인 앤더슨에게 이야기했다. 뒤에 이 말을 들은 르베르는 오히려 좋아했다. 앤더슨은 잘 알고 있지만, 반 루이스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 루이스는, 말하자면 정치적 배려에서 임명된 사람임에 비해서 앤더슨은 르베르와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단련을 받아가며 그 런던 경시청의 형사담당 부총감, 앤터니 매린슨의 베이크슬레이 자택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전 4시 조금 전이었다. 침대 옆에서 끈질기게 울어대는 전화 벨소리에 짜증스럽게 끙끙거리던 그는 수화기를 들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예, 매린슨이오." "앤터니 매린슨 씨입니까?" 하고 상대방에서 물었다. "그렇소. 나요." 그는 어깨에 걸려 있는 시트를 몸을 흔들어서 밑으로 내려 보내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저는 프랑스 사법경찰의 뤼시앙 카롱이라는 사람입니다. 클로드 르베르 총경의 대리로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영어가 분명하게 들린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전화의 회선은 비어 있겠지. 매린슨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걸다니, 어째서 낮에 걸어 주지 않는 거야 -- . "그래서?" "르베르 총경을 아실 줄 압니다만." 매리슨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르베르? 아, 그렇군, 사법경찰 살인과 과장으로 있던 그 조그만 친구. 풍체는 볼 것 없지만, 솜씨는 좋은 사람이던데. 2년 전, 영국의 관광객이 살해된 사건 때에는 여러 가지 신세를 졌었다. 그가 범인을 즉시 체포해 주어서 다행이었지. 그것이 오래 끌었더라면 프랑스에 대한 국민감정으로 보아서도 곤란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래요, 르베르 총경이라면 알고 있소만,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옆에서는 아내 릴리가 잠자다가 이야기 소리에 짜증이 나는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다. "실은 긴급사태가, 비밀을 요하는 중대사가 발생해서 르베르 총경님이 그 처리를 맡고 있습니다. 중대한 비상사태라서, 그 일에 관해 르베르 총경님이 오늘 아침 9시에 런던 경시청의 통신실에 당신 앞으로 지명통화를 신청하려고 합니다만, 받아 주시겠습니까?" 매린슨은 잠깐 생각했다. "그것은 통상적인 조회전화요?" 만일 그렇다면 인터폴의 네트웍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오전 9시는 본청도 바쁠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르베르 총경님이 개인적으로 은밀한 협조를 요청하시는 겁니다. 런던경시청에 영향을 미칠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며, 또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린슨은 생각에 잠겼다. 본래 그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며, 외국의 경찰에서 오는 은밀한 협조의뢰 같은 것에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범죄가 일어났다거나, 범인이 영국으로 도망쳤다든가 하는 것이라면 사정은 다르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비밀을 요하는 것일까? 여기서 그는 몇 년 전의 어떤 사건이 떠올랐다. 핸섬한 건달과 사랑의 도피행을 떠난 어떤 장관의 딸을 다시 찾아 데리고 오는 역할을 그때 그는 유괴죄를 적용할 수도 있는 케이스였다. 그러나 장관은 신문이 절대 눈치채지 못하도록 사태를 처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 경찰의 간부에게 은밀하게 의뢰하여 협조를 구했으며, 배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놀이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군, 좋아. 르베르는 베테랑 클럽의 정으로서 협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베테랑 클럽이 있는 것이니까. "알겠소, 전화를 받지요. 9시라고?" "예,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주무시오." 매린슨은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고서 괘종시계를 7시에서 6시 30분으로 다시 파리가 아직 날이 새기 전 졸음 속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어느 조그만 아파트의 플랫에서 한 중년의 전직 국민학교 교장이 거실 겸 침실 안을 불안한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방안은 한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책과 신문, 잡지, 원고가 테이블 위,의자와 소파 위 가릴 것 없이, 심지어 벽에 바짝 붙어 있는 좁다란 침대 위에까지도 흩어져 있었다. 또 한쪽 벽의 움푹 들어간 곳에는 개수대가 있고, 거기에는 더러워진 식기가 넘쳐나올 듯이 쌓여 있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방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어지럽혀진 방안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시디벨라베스의 국민학교 교장에서 둘이나 딸려 있는 관사에서 쫓겨난 뒤로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터이지만, 어지럽혀진 방에는 이제 이골이 나서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실은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아침 노을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그는 겨우 자리에 앉아서 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벌써 몇 번째나 외신 전용의 페이지에 나와 있는 그 기사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OAS의 간부 로마의 호텔에 투숙.' 이것이 그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야 마침내 결심을 한 모양인지, 그는 아침의 냉기에 대비해서 가벼운 레인코트를 걸치고 아파트를 나섰다. 가까운 거리에서 빈 택시에 올라탄 그는 그리고 북부역의 역전 광장에서 택시를 내려 차가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역전을 지나서 거리를 건너 밤새 영업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커피를 주문하고 전화에 쓰는 토큰을 받아들고서 커피를 카운터에 놓아둔 채 안쪽의 전화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국제전화의 번호안내원을 불러서 로마 시내에 있는 호텔의 번호를 물었다. 1분도 채 안되어 번호를 알게 되자 그는 전화를 끊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100-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카페로 들어가서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야간영업을 하는 우체국이 가까이에 없는지 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역 바로 옆에 그런 우체국이 하나 있었다. 않고 전화번호만을 말하고 국제전화를 신청했다. 초조하게 20분쯤 기다리자 겨우 전화가 통했다. 그는 전화에 나온 이탈리아인 같은 목소리에게 말했다. "시노르 푸아체와 이야기하고 싶소." "시노르 누구라고요?" 하고 상대방이 다시 물었다. "프랑스인이오. 푸아체라는 사람입니다." "누구라고요?" "프랑스인, 프랑스인으로서......" "아, 알았습니다, 프랑스인을 말씀하시는군요.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전화의 스위치를 바꾸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친 듯한 프랑스어가 대답했다. "예." "잘 듣게." 파리의 남자가 재촉하듯 그대로 메모해 주게. 알겠지? '바르미가 푸아체에게. 재칼의 존재가 발각. 되풀이한다. 재칼의 존재가 발각. 코와르스키가 잡혀 가서 죽기 직전에 자백. 이상' 썼나?" "알겠소." 졸린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위로 올려 보내겠소." 바르미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고 다급히 요금을 치르고서 우체국을 나왔다. 그리고 곧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근객들 속으로 섞여 버렸다. 그제서야 겨우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 그 얼굴을 내밀어 인도에 머물러 있는 밤의 냉기를 쫓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30분만 지나면 크루아상과 커피 향기 어린 아침의 냄새가 배기 가스와 바디 로숀과 담배 연기 속으로 사라져 뒤에, 차 한 대가 우체국 앞에 멈추고 DST의 관계관 두 사람이 우체국 안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교환수에게 그의 인상이나 특징을 물었지만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이날 아침 7시 55분 마르크 로댕은 로마의 호텔에서 자고 있다가 밤에 아래층에서 당직을 맡고 있던 부하가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뜬 그는 반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베개 밑 권총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그리고 부하의 얼굴을 보고서야 긴장을 풀고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흘끗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꽤나 늦잠을 잔 것이다. 8월의 태양은 이미 높이 솟아 있었다. 밤에는 몽클레아와 카슨을 상대로 트럼프를 하면서 싸구려 붉은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고,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하는 것이 없으니 몸이 완전히 둔해져서 생활 또한 절도가 없었다. 늦잠도 그 한 예이다. "전갈이 왔습니다, 대령님. 아까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외인부대 병사였던 보디가드는 바르미의 전갈을 받아쓴 메모지를 내밀었다. 로댕은 그것을 재빨리 훑어보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시절부터 밴 버릇으로 언제나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사롱(말레이족의 옷으로서, 일종의 치마)을 허리에 감고는 다시 한 번 그 전갈을 "알았어. 가도 좋아." 보디가드는 방에서 나가 아래층으로 돌아갔다. 로댕은 메모지를 움켜쥐면서 속에서 분노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바보 자식, 바보 자식, 바보 자식, 코와르스키, 이 자식 ! 코와르스키가 자취를 감추고 이틀쯤은 로댕도 단순히 녀석이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부하들 사이에서 OAS는 드골을 살해하고 현정부를 넘어뜨리려는 목적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패배적인 바람이 일면서 도망치는 녀석이 몇 명인가 있었다. 그러나 로댕은 코와르스키만은 최후까지 그들의 대의명분에 충성을 다할 것으로 믿고 그런데 이 전갈은 그가 어떤 이유로 프랑스에 돌아가서 체포되었거나, 또는 이탈리아 안에서 납치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고문을 당하고 입을 연 듯하다. 로댕은 살해된 코와르스키에 대해서 참으로 슬퍼했다. 로댕이 병사로서, 또는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떨친 그 이면에는 부하에 대한 깊은 헤아림이 있었다. 이 헤아림은 야전의 병사들에게 있어서는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군사평론가들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것이다. 가장 사랑하던 부하 코와르스키가 마침내 가버렸다. 남자다운 최후였을 거라고 로댕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에 대한 감상보다는, 그가 어떤 일을 알고 있었으며 중요하다. 빈에서 있었던 회의, 호텔 이름. 이것은 물론 알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세 사람의 이름. 이것은 SDECE에게 있어서 뉴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재칼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엿듣는 인물은 아니다. 그것은 틀림없다. 세 사람을 찾아온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무기판매업자일지도 모르고, 스폰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름 같은 것은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입에 담은 적이 없다. 그러나 바르미의 전갈은 재칼이라는 암호명을 지적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코와르스키는 어떻게 암호명을 알게 되었을까 ? 광경이 떠올랐다. 그때 로댕은 영국인과 함께 문 있는 곳에 서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조금 떨어진 복도에 있었다. 그는 벽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숨어 있다가 영국인에게 들킨 일, 즉 프로가 프로에게 한방 먹은 것이 불쾌했던 모양인지 일이 터지기만 하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서 로댕은, "안녕히 가시오, 미스터 재칼." 하고 영국인에게 작별인사를 했었다. 그랬었군, 제기랄 ! 다만 재칼의 본명은 코와르스키도 모르고 있었다. 몇 번 기억을 되풀이해서 생각해 보아도 이 결론만은 변함이 없었다. 본명은 로댕과 몽클레아와 카슨 세 사람밖에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재칼이라는 이름은 알려지고 말았다. SDECE가 코와르스키를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팡숑 -- 회의......그들은 이미 프런트 직원을 심문했겠지. 인상, 모습, 암호명을 알고 있다. 코와르스키가 추리한 것처럼 금발의 사나이를 살인자라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드골의 신변에 둘러쳐진 경계망은 더욱 엄중해지고, 암살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모든 공식일정은 취소되고, 드골은 엘리제궁에 틀어박혀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겠지.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작전은 실패다. 즉시 재칼에게 작전중지를 알리고 이미 건네준 돈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그가 쓴 경비와 수수료를 제하고 나머지를 되돌려달라고 해야만 한다. 먼저 무엇보다도 급선무는 작전중지를 대지급으로 그에게 알리는 남에게 강요할 정도로 로댕은 아직까지는 지휘관으로서 타락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코와르스키의 실종 이후 우편물 심부름이나 전화 거는 일 등 그가 해오던 일상의 일을 대신 해온 보디가드를 불러서 간단히 명령을 전했다. 오전 9시, 우체국에 나타난 보디가드가 런던의 어떤 번호를 대고 국제전화를 신청했다. 20분 뒤 전화가 연결되어 교환수가 그에게 전화박스에 들어가서 수화기를 들라고 손짓으로 알렸다. 그가 수화기를 들자 교환수는 자기가 들고 있던 교환수용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그의 귀에 영국의 전화벨이 울리는 따르릉......따르릉......따르릉......하는 소리가 덧없이 전해질 뿐이었다. 그날은 할 일이 많아서 재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세 개의 여행가방은 전날 밤 그 속에 든 것을 한 번 더 검토해서 챙겨 두었다. 이제는 아타셰 케이스에 목욕용 스폰지와 면도용품을 넣기만 하면 된다. 잠에서 깨자 언제나 그렇듯 커피를 두 잔 마신 다음 얼굴을 씻고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다. 그리고 세면도구의 나머지를 케이스에 집어넣고서 네 개의 짐을 문 옆에까지 갖다놓았다. 다음에 그는 아담하면서도 쓰기에 편한 부엌에서 재빨리 달걀을 스크램블해서는 오렌지 주스와 블랙 커피를 곁드려 아침을 먹었다. 천성이 깔끔해서 남은 우유는 개수대에 부어 버리고, 두 개의 달걀도 깨뜨려 개수대에 버렸다. 오렌지 주스의 남은 것은 내친 쓰레기통에 버리고, 빵과 달걀 껍질과 커피 찌꺼기는 디스포저로 처분했다. 이로써 집을 비운 사이에 썩을 만한 물건은 모두 없앤 셈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얇은 명주로 된 폴로네크의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댓건 명의의 여권과 면허증, 100파운드짜리 돈다발 등을 호주머니에 넣은 회색 양복을 입었다. 발에는 짙은 회색 양말에 날씬한 모양의 검은 가죽 단화 차림이었다. 여기에 선글라스를 쓰면 앙상블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셈이다. 9시 15분, 그는 좌우 양쪽 손에 두 개씩 짐을 들고 플랫을 나와서 자동자물쇠가 달린 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걸어서 바로 옆인 사우스 오드리 세웠다. "런던 공항. 제2공항 청사까지 갑시다." 택시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플랫에서는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보디가드가 우체국에서 호텔로 돌아온 것은 오전 10시였다. 그는 로댕에게 가르쳐 준 번호를 대고 런던으로 전화연결은 되었는데, 30분이나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무슨 일이야?" 보디가드의 보고를 옆에서 듣고 있던 카슨이 그가 방에서 나간 다음에 로댕에게 물었다. OAS의 간부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로댕은 안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어 카슨에게 건네주었다. 카슨은 사람은 해답을 요구하며 리더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해답은 없었다. 로댕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고서 폭염 속에 이글거리는 로마 시가의 지붕들을 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왔나?" 카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하고 로댕은 짧막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을 막아야만 해." 몽클레아가 항의하듯 말했다. "프랑스 경찰이 조직을 총동원해서 그를 찾고 있어."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을." 로댕이 조용히 말했다. "8월이 되면 프랑스에는 백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몰려와. 더구나 적은 그의 아는 것이 없어. 그도 프로니까 가짜 여권을 쓰겠지. 녀석들이 그를 찾아내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려. 게다가 그가 바르미에게 전화를 걸면 사태를 알 수 있게 돼. 그때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프랑스에서 빠져나가겠지." "바르미에게 전화를 걸면, 즉시 작전을 중지하도록 바르미가 얘기하겠지." 몽클레아가 말했다. 로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르미에게 그럴 권한은 없어. 그는 다만 여자에게서 정보를 듣고 그것을 전화로 물어 보는 재칼에게 전해 주는 역할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이상의 권한도 책임도 그에게 주지 않았어." "그러나 재칼은 이것으로 일이 끝났다고 첫번째 전화를 거는 즉시 프랑스를 떠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이 곤란해지겠는걸." 몽클레아는 여전히 같은 의견이었다. "옳은 이론이야. 틀림없이." 하고 로댕은 조용히 말했다. "중지하면 돈을 돌려받아야만 해. 하지만 어쨌거나 그도 포함해서 우리들 전부가 중대한 승부에 직면해 있는 셈이야. 그것은 오로지 그가 자신의 계획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어."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그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나?" 카슨이 물었다. "분명히 말해서, 없네. 그러나 그는 프로페셔널이야. 나도 프로페셔널을 사고방식이 있어. 자기가 애써 계획한 작전을 포기하기는 좀처럼 어렵지." "그럼, 이쪽에서 직접 연락을 하세." "안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그는 이미 출발했어. 바라던 대로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거야. 따라서 그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려 하는지 우리는 전혀 몰라. 이쪽과는 완전히 연락을 끊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으니까. 바르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계획을 중지하도록 전달하는 것도 이제 와서는 할 수가 없게 되었어. 그런 전화를 걸었다가는 대번에 바르미의 존재를 적에게 가르쳐 주게 되니까. 여하튼 이미 재칼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어. 지금으로서는 벌써 너무 늦어 버렸어." 제 12 장 클로드 르베르 총경은 오전 6시 전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카롱 경감은 지친 얼굴로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무엇인가를 갈겨쓴 메모가 몇 장 놓여 있었다. 방안의 사정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서류를 넣는 캐비닛 위에서 전에 퍼콜레이터(여과장치가 달린 커피포트)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커피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 옆에는 종이 컵이 쌓여 있고, 깡통에 든 우유, 그리고 설탕 주머니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이것들은 모두 밤 사이에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가져오게 한 것이다. 두 개의 책상 사이에 간이침대가 놓여 쓰레기통도 비워서 팔걸이의자 옆에 놓여 있었다. 창은 아직 열린 채였고, 카롱이 피우는 담배의 파란 연기가 아침의 신선한 공기 속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창 너머에서는 새벽의 여명이 생 쉴피스 성당의 첨탑을 얼룩지게 물들이고 있었다. 르베르는 자기 책상으로 다가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24시간밖에 깨어 있지 않았는데, 카롱과 마찬가지로 초췌해 있었다. "실패였어. 과거 10년 동안의 기록을 조사했지만 말이야. 프랑스 안에서 정치에 얽힌 암살을 시도한 외국인 살인자는 도겔도르뿐인데, 그 녀석은 이미 죽었어. 게다가 놈은 OAS의 일당이며, 우리 파일에도 빠짐없이 올라 있었어. 아마도 골랐을 테지. 그 점에서는 정말 현명한 방법이야. 그리고 과거 10년 사이에 프랑스 국내에서 일을 저지르려 한 살인청부업자는 네 명이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은 체포되고 나머지 하나도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종신형을 받았어. 게다가 그 녀석들은 모두 암흑가의 살인자들로서, 프랑스의 대통령을 노릴 정도로 간이 큰 놈들이 아니야. RG의 자료 센터에 한 번 더 재조사를 부탁해 두었지만, 재칼의 재료는 없을 것 같아. 로댕은 그를 고용하기 전에 그 점을 충분히 확인해 보았을 거야." 카롱은 새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뿜어 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외국 쪽에서 조사해야만 되겠군요." 어딘가에서 훈련과 경험을 쌓아야만 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여러 차례 일을 성공시켜서 그 솜씨를 증명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톱이 될 수는 없어. 상대는 대통령급은 아니었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요인물이었겠지. 암흑가의 보스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눈길을 끌었을 게 틀림없으니까. 반드시 말이야. 전화 연락은 준비가 되었나?" 카롱은 메모해 놓은 종이를 손에 들었다. 이름들이 적혀 있고, 왼쪽에는 시간이 기입되어 있다. "7명 모두 OK입니다. 먼저 7시 10분에 FBI의 국내정보부장입니다. 워싱턴 시간으로 오전 1시 10분입니다. 저쪽 옮겼습니다. 그리고 브뤼셀이 7시 반, 암스테르담이 15분 전 8시, 본이 8시 10분,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가 8시 반이고, 런던 경시청이 9시, 마지막이 로마인데 9시 반입니다." "모두 살인담당의 책임자들인가?" "아니면 그와 동등한 인물입니다. 런던 경시청에서는 형사담당 부총감인 앤터니 매린슨 씨입니다. 그곳에는 살인과라는 부서는 없는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또 한 사람, 남아프리카의 반 루이스 씨와는 아무래도 연락이 안되어서 차장인 앤더슨 씨가 전화에 나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르베르는 잠깐 생각해 보고 나서 말했다. "잘했어. 오히려 앤더슨이 나도 좋아. 한번 일을 함께했었던 적도 있고. 그보다 언어의 셋은 영어야.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것은 벨기에뿐일 거야. 그 밖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영어를 할 생각이네 -- " "서독의 디트리히 씨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압니다." 카롱이 말했다. "그래? 그럼, 그 두 사람과는 직접 프랑스어로 하기로 하지. 나머지 다섯 명은 직접 전화로 자네가 통역을 해주어야만 되겠군. 그럼, 슬슬 가보기로 할까?" 두 사람을 태운 공용차가 당시 폴 발레리 가(街)에 있는 인터폴 본부에 도착한 것은 10분 전 7시였다. 그로부터 세 시간, 르베르와 카롱은 지하의 통신실 전화에 매달려서 각국의 담당 간부에게 협력을 의뢰했다. 옥상에 있는 꼬이고 헝클어진 공중선에서 발신되는 극초단파는 되돌아오지 않도록 성층권(成層圈)과 또 그 위를 달려서 각지의 안테나로 수신되었다. 그 주파수에 의한 무선통신은 그 부근 다른 곳에서의 수신도 불가능하고, 수신 교란도 불가능하다. 세계가 아침 커피나 취침 전의 나이트캡(잠자리에 들기 전의 한잔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형사와 형사가 미묘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느 통화나 르베르의 요청은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아니, 현단계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레벨에서 협력을 요청할 수는 없습니다......물론 저 자신은 공식적인 처지에서 행동하고 있습니다만......그러니까 현재로서는 범행 의사가 구체화되었다든지 준비단계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도 확인이 안된 중 하나로 부탁드리는 겁니다......실은 지금 어떤 남자를 수색중에 있습니다만, 단서가 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이름도 모르고, 인상, 특징도 분명치 않습니다......" 르베르는 자기가 알고 있는 특징 같은 것은 빠짐없이 말했다. 각국의 담당관은 한결같이 어째서 협력을 구하는지 그 이유와, 조사의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어색한 공기가 쌍방을 감쌌다. 상대방은 모두들 정해 놓고 거기서 입을 다물곤 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 남자가 어떤 자이든 분명한 조건을 하나 갖추고 있습니다...... 즉, 암살청부에서는 톱 클라스의 프로라는 점이지요...... 아닙니다. 갱 살인자가 있는 정치암살의 프로입니다. 그런 남자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자료가 없으면 혹 그런 자에 대해서 들어본 정보 정도라도 좋습니다. 귀국에서 일을 저지른 일이 없는 자라도 좋습니다." 르베르가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반드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돌아오는 소리는 여느때의 목소리보다는 착 가라앉은 낮고 긴장된 것이었다. 각국의 담당관은 르베르가 표현하는 의미를 확실히 읽고 있는 것이다. 일류 정치암살 청부업자의 대상이 될 만한 목표라면 프랑스에는 단 하나밖에 없다. 상대의 대답은 예외없이 똑같았다. "물론 협력하겠습니다. 기록을 모두 있도록 노력하지요. 르베르 씨, 행운을 빌겠습니다." 각국과의 통화를 모두 끝내고 수화기를 놓았을 때, 르베르는 지금부터 7개국의 외무장관, 아니 총리가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마 십중팔구 즉각일 것이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다. 은밀한 협조를 부탁해 오긴 했지만 경찰관으로서는 역시 정부 고위층에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장관급의 인물들이라면 비밀을 지켜 줄 거라고 르베르는 확신했다. 권력자들 사이에는 정치적인 입장이나 사상적인 문제를 초월한 강한 연대감이 있다. 그들은 같은 클럽의, 권력자 클럽의 회원이다. 공통의 적에 대해서는 단결한다. 암살자는 눈앞에 있는 한편으로는 만에 하나 그의 조회가 보도기관에라도 새어나간다면 뉴스는 한 순간에 세계로 퍼져 나가고, 즉시 그는 해고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걱정되는 것은 영국인이었다. 매린슨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 정보는 오늘 중으로 상부에 전달될 것이다. 거기서부터가 문제다. 드골이 영국의 EC 가입을 간단히 거절해 버린 것이 겨우 7개월 전의 일이다. 1월 14일 드골이 그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뒤, 교활하기로 유명한 영국 외무부는 교묘히 보도기관을 다루어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비난 캠페인을 벌였다.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드골 장군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닐까? 르베르는 눈앞에 있는 발신기의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 돌아가세." 작은 몸집의 총경이 스툴에서 일어나서 문으로 갔다. "아침을 먹고 조금 자기로 하세.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없으니까." 형사담당 부총감, 앤터니 매린슨은 눈썹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고서 근무교대를 위해 들어온 경관의 거수경례에도 답하지 않고 통신실에서 나갔다. 그는 템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지만 살풍경한 자기의 방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르베르의 의뢰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 또 의뢰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런 점은 확실이 알고 있었다. 프랑스의 경찰은 톱 클라스의 눈치채고서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르베르가 생각했듯이 그런 종류의 암살자의 표적이 되는 인물을 1963년 8월의 프랑스에서 찾아내는 데는 특별히 깊은 통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같은 경찰관으로서 르베르가 놓인 곤란한 처지를 동정했다. 창 밑 둑 너머로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그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불쌍하게도 됐군." "예?" 아침 우편물을 가지고 온 비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비서가 나간 뒤에도 매린슨은 창 너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공식적인 지켜야만 하는 르베르의 처지에 동정은 하지만, 자신에게도 상사가 있다. 조만간 르베르의 요청을 상부에 보고해야만 한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부서장 회의가 열리는데 -- 이제 30분 남았다 -- 그 자리에서 발표해야만 될까 ?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그는 그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르베르가 요청해 온 내용의 개요를 적어 공식적으로 총감에게 제출하기로 했다. 왜 부서장 회의에서 발표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비밀을 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서도 당분간은 그 이유나 목적을 숨겨 두자고 그는 생각했다. 책상 뒤에 앉은 그는 인터폰의 버튼을 "예?" 옆방에 있는 비서가 대답했다. "잠깐 와보게, 존."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젊은 경감이 노트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범죄기록센터에 가야겠네. 부장인 매컴을 직접 만나서 부탁하게. 나의 개인적인 의뢰로서, 이유는 지금 밝힐 수는 없다고 미리 말하고, 현재 생존해 있는 프로급 암살자의 기록을 조사해 달라고 하는 거야." "암살자라고요?" 비서는 상사가 화성인의 기록을 조사해 오라는 명령이라도 내린 듯한 아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살인자야. 단, 암흑가에서 아니야. 돈에 고용되어 경비가 삼엄한 정치가들을 노리는, 말하자면 정치암살의 전문가 말일세." "그러니까 오히려 특별국의 손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나중에 가서는 완전히 특별국으로 넘겨 버릴 생각이지만, 그 전에 일단 우리 쪽에서 조사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일세. 아, 존, 매컴에게 점심때까지 조사의 결과를 알려 달라고 하게."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15분 뒤에 매린슨은 아침의 정례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우편물을 대강 훑어보고는 그것을 책상 한옆으로 밀쳐 두고, 비서에게 천천히 경시총감 앞으로 짤막한 보고서를 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그는 한밤중 그의 집으로 걸려온 전화, 인터폴을 통한 오전 9시의 지명전화, 그리고 르베르의 요청해 온 내용의 성격 등에 관해서 간단히 기술했다. 그리고 보고서의 가장 아랫단은 일부러 공백으로 남긴 채, 그것을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잠그고 평소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12시 조금 전에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방금 매컴 부장님이 전화했습니다. 하지만 그 조건에 일치하는 암살자의 기록은 없는 모양입니다. 살인자로서 기록되어 있는 자가 17명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암흑가 출신으로서 그 중에서 10명은 현재 복역중이고, 다른 7명은 두목에게 고용되어서 런던, 또는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정치가를 노리는 그런 종류의 살인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부장님 역시 특별국에 물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런가? 수고했네. 그런 정도만 알았으면 됐어." 비서를 물러가게 하고 매린슨은 서랍에서 아까 쓰던 보고서를 꺼내어 타이프라이터에 끼웠다. 그 가장 아랫단에 그는 이렇게 덧붙여 썼다. "기록센터에 조회한 결과, 르베르 총경이 알려 준 조건에 일치하는 인물은 기록에 없다는 보고임. 따라서 앞으로의 조사는 특별국장의 손에 일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그는 보고서에 사인하고서 사본을 세 통 남겨 두고 나머지는 기밀서류용의 휴지통에 버렸다. 이것은 뒤에 처리기에 넣어 가루처럼 만들어서 버리게 될 것이다. 그는 사본 한 통을 봉투에 넣어서 총감 앞이라고 기재했다. 다음의 한 통은 '극비통신'의 파일에 철해서 벽에 붙어 있는 금고에 넣었다. 그리고 세 통째를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고, 책상 위의 메모장에 다음과 같은 전문을 갈겨썼다. 수신인 -- 파리, 사법경찰 형사부 차장 클로드 르베르 총경. 발신인 -- 런던 경시청 형사담당 부총감 앤터니 매린슨. 내용 -- 조회하신 바에 따라서 해당하는 인물이 없음. 그러나 계속 특별국에서 조사 예정. 필요한 정보 입수 즉시 보고하겠음. 매린슨. 발신 일시 -- 8월 12일 ○○○○시. 시간은 12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들어 응답하는 교환수에게 특별국의 딕슨 부총감을 대달라고 했다. "여보세요, 알렉? 나야, 토니 매린슨이야.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고맙지만 갈 수가 없네.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고 있다네. 언제고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보세. 아니, 그러니까 자네가 점심 먹으러 나가기 전에 한 2~3분이면 되네. 미안. 그럼, 지금 가겠네." 사무실을 나갈 때, 그는 총감 앞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잠깐 특별국의 딕슨을 만나고 올 테니까, 미안하지만 이것을 총감의 사무실에 전해 주게. 슬그머니 말일세. 그리고 이 전보를 깨끗이 타자쳐서 전신실로 보내 주고." "알았습니다." 비서가 전문을 훑어보는 것을 매린슨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비서는 다 읽고 나서 눈이 동그래졌다. "존." "예?"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되네." "예." "절대 비밀이야." "예,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비서는 전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그것과 기록센터에 조회한 내용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대단한데." 매린슨은 딕슨의 방에서 20분 동안이나 이야기했다. 그 바람에 특별국장은 클럽에서 점심 먹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매린슨이 그에게 보고서 사본을 건네주고 방을 나오려다가 문의 손잡이를 쥐고서 돌아다보았다. "미안하네, 알렉, 하지만 이건 역시 자네의 영역이야.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우리 영국에는 그런 위험인물은 없어. 결국 르베르에게 그런 회답을 보내게 될 걸세. 정말 그의 처지에는 동정이 가지만." 딕슨이 이끄는 특별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의 정치가를 암살하려고 노리는 요주의 인물들의 감시를 첫번째 임무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딕슨은 르베르가 놓여 있는 처지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매린슨 이상으로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국의 요인이나 외국에서 방문하는 정치가를 과격분자로부터 지키는 일도 큰일은 틀림없으나, 그들은 대개 아마추어여서 역전의 프로들만으로 구성된 특별국에서 전력을 다하면 비교적 쉽게 막을 수가 있다. 여기에 비하면 군인 출신의 용맹한 자들 중에서 골라뽑은 자국 내의 테러 조직으로부터 총리를 지키는 일은 훨씬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프랑스 당국은 OAS를 쳐부수고 말았다. 같은 프로로서 딕슨은 그들에 대한 칭찬을 프로페셔널을 고용했다고 하면 문제는 다르다. 다만 딕슨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즉, 정치암살을 청부맡을 프로라는 조건이 붙으면 거기에 합당한 인물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적어도 특별국의 기록에 의하면 영국인으로 그런 조건에 알맞은 자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매린슨이 가고 난 다음 딕슨은 보고서의 사본을 훑어보았다. 이윽고 그는 비서를 불렀다. "토머스 총경에게 이리로 오라고 전해 주게. 시간은, 그래......" 그는 흘끗 시계에 눈을 주고 점심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정각 2시가 좋겠군." 재칼이 탄 제트기는 12시 조금 지나서 브뤼셀 나시오날에 착륙했다. 그는 세 개의 여행가방을 터미널 건물의 자동 라커에 맡기고서 석고, 탈지면, 붕대 등이 들어 있는 아타셰 케이스만을 가지고 시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중앙역 앞에서 택시를 내려 수하물 보관소로 갔다. 총이 들어 있는 여행가방은 1주일 전에 그것을 맡겼을 때 직원이 밀어넣어 둔 선반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그는 보관증을 주고 여행가방을 되찾았다. 역 가까이에 조그맣고 더러운 호텔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중요한 역 부근에는 반드시 한두 집은 있게 마련인 싸구려 호텔이며, 아무것도 묻지 않는 대신에 사기당할 각오를 해야만 하는 하고 방을 잡고서, 요금을 공항에서 환전한 벨기에 프랑으로 선불하고 자기의 짐을 가지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단단히 잠그고 냉수를 세면대에 채우고 석고와 붕대를 침대 위에 내놓고서 일을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석고가 굳기까지 다시 두 시간이나 걸렸다. 그 사이에 그는 석고로 둘러싼 무거운 다리를 스툴에 올려놓고서 담배를 여러 개비 태우며 창밖의 그을린 지붕의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엄지손가락으로 석고를 눌러 보고, 그때마다 좀더 굳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시간을 늦추었다. 총이 들어 있던 여행가방은 빈 채 나뒨굴고 있었다. 남은 붕대와 석고는 아타세 케이스에 넣어두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 빈 여행가방을 침대 밑으로 밀어넣고 재떨이의 꽁초를 창밖으로 버리고서 방을 나섰다. 다리를 석고로 굳히고 나니 이제는 싫어도 쩔룩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층계를 내려가니 다행히도 졸린 얼굴을 한 꾀죄죄한 프런트 직원은 재칼이 호텔에 처음 찾아왔을 때도 그랬지만, 카운터 안쪽에 있는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점심때라서 뭔가 먹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카운터 쪽으로 난 반투명 유리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문을 재빨리 살피고서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칼은 가방을 가슴에 안고 엉금엉금 기어서, 가로질렀다. 그리고 여름 더위 때문에 활짝 열어놓은 현관문을 지나서 인도로 내려가는 층계 위에까지 나와서야 일어섰다. 그곳은 프런트 직원의 시선으로부터는 사각이 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칼은 층계를 애를 먹어가며 내려가서 쩔룩거리면서 큰길과 마주치는 모퉁이까지 갔다. 곧 택시가 다가왔다. 그는 그것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터미널 건물로 들어간 그는 여권을 손에 들고 알리탈리아 항공의 카운터로 갔다. 여직원이 빙긋 웃으며 그를 맞았다. "이틀 전에 댓건이라는 이름으로 밀라노행 좌석을 예약해 두었소만." 여직원은 밀라노행 오후편 예약장부를 살펴보았다. 그 비행기는 한 시간 30분 "예, 예약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댓건 씨지요? 요금은 아직 지불되지 않았군요. 지금 지불해 주시겠습니까?" 재칼은 현금으로 지불하고서 항공권을 받았다. 그러자 한 시간 뒤에 탑승 어나운스먼트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석고로 굳힌 다리를 보고서 다친 사람이라고 생각한 친절한 포터의 부축으로 그는 세 개의 여행가방을 라커에서 꺼내어 알리탈리아 항공에 맡기고 무사히 세관도 통과했다. 담당관은 국외로 나가는 여행자라고 생각하고서 형식적으로 여권을 조사했을 뿐이다. 재칼은 탑승하기까지의 시간을 이용해서 출발용 라운지에 부속되어 있는 레스토랑에서 즐겁게 늦은 점심을 쩔룩거리는 그에게 항공회사의 직원은 최대한의 동정심을 보였다. 버스에서 트랩으로 옮길 때에도, 또 트랩을 오를 때에도 직원이 도와주었다. 귀여운 이탈리아 스튜어디스는 판에 박힌 미소로 그를 맞아들여서 기체의 중심부가 마주보이는 자리 하나에 앉혀 주었다. 거기라야 다리를 뻗을 여유가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다른 승객들은 석고로 싸맨 다리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 가면서 건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재칼의 앞을 지나 자리에 앉았다. 4시 15분, 여객기는 이륙했다. 그리고 기수를 남으로 하고 밀라노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심정으로 딕슨 국장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고약한 여름감기에 걸려서 그것이 벌써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 탓도 있었지만, 새로이 주어진 일이 더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월요일에는 언제나 이 모양이다. 먼저 꼭두새벽부터 소련의 통상대표단 하나를 미행중이던 부하가 보기좋게 놓쳐 버렸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이어서 M15로부터 그 대표단에 대해서는 손을 떼라는 간섭이 들어왔다. 즉, 그 대표단의 일은 모두 M15에게 일임하는 것이 좋다는 노골적인 야유였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더욱 골치아픈 일이 생겼다. 경찰관에게 있어서 특별국이든 아니든 그 신분이나 직종에 관계없이 토머스가 방금 국장으로부터 위임받은 케이스는 피의자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이다. "이름은 몰라. 그러나 이것은 수사 기술의 훈련이 될 거야." 라고 딕슨이 평을 내렸다. "내일까지 끝내 버리게." 사무실로 돌아온 토머스는 불쾌하게 중얼거렸다. "기막힌 훈련이군." 피의자로 지목되는 인물의 수는 적지만, 그래도 하나하나의 기록을 조사해서 정치적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전과의 내용은 어떤지, 다른 사건으로 혐의를 받은 일이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조사하는 데에만도 몇 시간이나 걸린다. 딕슨의 설명 중에서 단 한 가지 단서가 될 만한 자료라면 피의자가 영국을 방문하기 전과, 영국에서 머무는 동안 특별국을 가장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은 무슨 짓을 하게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유형무형의 사건들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토머스는 현재 별로 긴급을 요하지 않는 수사에 매달려 있는 두 경감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두 사람에게 해준 설명은 딕슨이 자기에게 한 것보다도 더 간단했다. 이러이러한 인물을 찾아야만 한다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이러한 인물이 드골 장군의 암살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프랑스 경찰의 걱정은 런던 경시청 특별국이 없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책상 위를 정리하고 앉았다. 알리탈리아 여객기는 오후 6시 지나서 밀라노의 리나테 공항에 착륙했다. 재칼은 친절한 스튜어디스의 도움을 받아가며 트랩을 내려서, 거기서부터는 그라운드 호스티스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 건물로 들어갔다. 분해한 총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다리 부상으로 위장하여 석고로 싸맨 것은 이곳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여권 검사는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컨베이너로 운반되어 온 여행가방이 세관의 벤치에 올려졌을 때가 말하자면 승부처인 것이다. 그는 고용한 포터에게 세 개의 여행가방을 한 줄로 케이스를 그 옆에 놓았다. 그가 쩔룩거리면서 벤치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세관의 담당관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것은 모두 선생의 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여행가방 세 개와 이쪽의 조그만 가방이 내 것입니다." "혹시 신고하실 것은?" "없습니다." "사업상 오시는 겁니까?" "아니, 휴가입니다. 다친 다리도 회복시킬 겸해서요. 산속의 호수로 갈 생각입니다." 담당관은 표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권을 보여 주십시오." 재칼은 여권을 건네주었다. 담당관은 면밀하게 그것을 살펴보고는 말없이 "그럼, 이것을 열어 주십시오." 담당관은 여행가방 하나를 가리켰다. 재칼은 열쇠 꾸러미에서 하나를 골라내어 그것으로 여행가방의 자물쇠를 열었다. 포터가 그것을 옆으로 넘겨서 양쪽으로 열었다. 다행히 그것은 덴마크의 목사와 미국 학생의 의류를 넣어 놓은 가방이었다. 물론 담당관으로서는 그 옷가지들이 갖는 의미 같은 것은 알 리가 없다. 덴마크어의 책에도 그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표지는 샬트로 성당의 컬러 사진이며, 제목은 덴마크어였지만, 그것은 영어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그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모르는 외국인이 영어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담당관은 또 교묘하게 봉합해 놓은 안감을 뜯었던 자국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철저하게 조사를 한다면야 당연히 들통나겠지만, 이것은 사실 형식적인 조사이고 보면 수상쩍은 물건이 나오지 않는 한 대강대강 끝내 버리는 것이 상식이다. 분해한 저격용 총은 1미터도 안되는 곳에 있었지만, 담당관은 물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가방을 닫고 자물쇠를 잠그라고 재칼에게 신호했다. 그리고 분필로 재빨리 네 개의 짐에 OK라고 사인을 했다. 여기서 비로소 담당관은 미소를 지었다. "지체하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십시오." 택시를 잡아 준 포터에게 팁을 쥐어주고 재칼은 공항을 뒤로 했다. 밀라노의 거리는 언제 와도 소란스럽다. 때마침 저녁의 샐러리맨들의 차가 거리에 넘치고, 그것이 또 대중없이 경적을 울려대기 때문에 시가지가 온통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느낌이었다. 그는 중앙역에서 택시를 세웠다. 여기서도 그는 포터를 사서 짐 보관소로 갔다. 이미 택시 안에서 그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가위를 꺼내어 호주머니로 옮겨 놓았다. 짐 보관소에는 가방과 여행가방 두 개를 맡겼다. 프랑스의 군용 외투를 넣은 것 -- 이것은 아직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 은 그대로 들고 있었다. 그는 포터를 돌려보내고 나서 남성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 보는 곳 왼쪽에 죽 늘어 서 있는 세면대는 하나밖에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가방을 남자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큰 볼일을 보는 곳으로 얼른 들어가서 안으로 문을 잠갔다. 변기에 다리를 올려 놓고 그는 가위로 석고를 풀기 시작했다. 10분쯤 걸려서 겨우 석고를 떼어내자 그 밑에서 탈지면이 나타났다. 보통 골절한 다리를 석고로 굳히는 경우 굵어지기 때문에, 그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솝을 쑤셔박아 놓았던 것이다. 완전히 석고를 떼어낸 그는 장딴지에 석고로 숨겨 두었던 양말과 구두를 꺼내어 신었다. 석고와 탈지면의 나머지는 변기 속에 버렸다. 첫번째 물을 흘려 보냈을 때는 막혔지만, 두 번째는 깨끗이 흘러가 버렸다. 다음에 그는 여행가방을 변기 위에 올려놓고 열어서 총을 넣은 강관을 하나씩 찔러 넣었다. 그렇게 하자 가방이 하나 가득히 되었다. 안쪽에 있는 잠금 고리가 팽팽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흔들어도 내용물이 튀어나올 걱정은 없다. 그는 가방을 닫고 문밖의 동정을 살폈다. 세면대에 두 사람, 소변기 앞에서 두 사람이 있다. 그는 그곳을 나가서 재빨리 화장실을 빠져나가 층계를 뛰어올라갔다. 그는 역의 중앙 홀로 들어갔다.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서 화장실 안에 있었던 사람들도 미처 알지 못했다. 불과 10여 분 전에 쩔룩거리던 부상자가 맡긴 짐을 건강한 모습으로 찾으러 갈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포터를 불러서 외환을 바꾸고 어쩌고 하자면 바빠서 그러니, 대신 짐을 찾아서 되도록 빨리 택시를 잡아 지폐를 쥐어주고는 보관소를 가리켰다. 그리고 자기는 영국 파운드를 리라로 바꾸기 위해서 환전소에 있겠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인은 싱글벙글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하물 보관소 쪽으로 갔다. 재칼은 남아 있던 20파운드를 리라로 바꾸어서 그것을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있는데 포터가 짐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2분 뒤, 그는 택시에 올라 호텔 콘티넨털로 향하고 있었다. 멋진 현관 홀에 있는 접수대에서 그는 안내하러 나온 담당자에게 말했다. "이틀 전에 런던에서 전화로 댓건이라는 이름으로 방을 예약해 두었는데." 방으로 안내된 것은 8시 조금 전이었다. 그는 느긋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면도를 넣고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또 하나, 그의 옷가지가 들어 있는 것은 침대 위에 열려 있고, 밤에 입을 양복, 네이비블루의 하복은 옷장의 문에 걸려 있다. 회색 양복은 다리미질을 맡겼다. 지금부터 칵테일로 목을 축이고 호화스러운 저녁을 먹고서 일찌감치 잘 생각이다. 다음날인 8월 13일은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제 13 장 "아 무것도 없군요." 젊은 경감 하나가 브린 토머스의 사무실에서 배당받은 서류철의 마지막 한 권을 덮으면서 상사 쪽을 보았다. 그의 동료는 이미 조사를 끝내고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토머스 자신도 5분 전에 조사를 끝내고 창가로 걸어가서 부하에게 등을 돌리고 저녁 노을 속에서 흐르듯 가고 있는 차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매린슨의 사무실과 달리 1층의 그 방은 강을 향해 있지 않아서 호스페리 로(路)를 오가는 차의 흐름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아주 기분이 나빴다. 담배를 너무 피워서 목구멍이 아릿하게 제대로라면 금연을 해야만 할 처지이지만, 정신적인 중압감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다. 두통도 심했다. 담배 연기로 탁해진 공기 탓만은 아니었다. 기록이나 자료 파일에 나오는 인물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계속 조회 전화를 걸어 그때마다 부정적인 대답이 가져다 주는 그 대화가 오히려 더 두통의 원인을 만들고 있었다. 모든 인물이, 거주지나 행동이 명확하게 나와 있거나, 아니면 프랑스의 대통령을 암살하는 일에는 적합치 않다고 판정되었다. "좋아. 그럼, 이것으로 끝이야." 창에서 돌아서면서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지만, 지정된 "영국인 중에서 그런 일을 하는 인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감 하나가 말했다. "단지 우리의 파일에 나와 있지 않을 뿐이지." "파일에 올라 있지 않은 녀석이 있을 리가 있나!" 토머스는 화가 난 소리로 말했다. 프로 암살자가 어느 파일에도 올라 있지 않으면서 자기의 '영역'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이 도대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이 불쾌감은 감기나 두통에 의해서도 얼버무려지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지면 웨일스 사투리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시골을 떠난 지가 3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시골 사투리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겁니다." 또 한 경감이 말했다. 거지요. 이 나라에는 아마 그런 족속은 없는 게 아닐까요? 잉글랜드의 기질에 맞지 않으니까요." 토머스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대영국제국의 국민을 말할 때는 영국인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부하가 잉글랜드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듣고는, 그럼 웨일스인이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아일랜드인 중에는 그런 인간이 있다는 말이냐고 곡해하고 싶기도 했다. "이젠 됐어, 파일을 전부 돌려주고 오게. 철저하게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인물은 없었다고, 보고할 테니까. 이것으로 책임은 다한 거야." "누구의 조회였습니까?" "누구라도 상관없어. 수상한 낌새를 우리와는 상관없어." 두 부하는 자료를 그러모아 가지고 문으로 갔다. 그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가정이 있고, 한 사람은 머지않아 처음으로 아버지가 될 예정에 있다. 그가 먼저 문으로 다가갔다. 뒤따르던 동료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상사를 돌아다보았다. "저, 총경님, 파일을 조사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건데요, 만일 영국인 중에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국내에서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즉, 영국은 일종의 작전기지, 아니 그보다는 휴식의 장소, 피난처일 테지요. 자기 나라에서는 오히려 착실한 시민으로서 얌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종의 지킬과 하이드라는 말인가?" 조사해 달라고 한 그런 타입의 프로 살인자가 정말로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수선을 떠는 것을 보아 상당한 거물이 틀림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만한 실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렇잖으면 문제가 안되니까요." "그래서?" 토머스는 진지하게 그를 지켜보면서 다음 말을 재촉했다.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그런 인물은 외국에서밖에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라의 경찰에게는 주목을 받지 않는 거죠. '서비스'에서는 한번쯤은 그런 소문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만......" 토머스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테니까. 그리고 이 조사에 대한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거야." 그러나 혼자가 되고 보니 경감이 한 말이 토머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았다. 보고서를 쓰는 것은 간단하다. 해당자 없음 -- 그것이면 된다. 조사의 결과는 의심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의뢰한 조회 이면에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프랑스 당국이 대통령에 관한 풍문에 단순히 과잉반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말했듯이 수사의 단서도 거의 없고 살인자가 영국인이라는 증거도 없다고 한다면 전세계의 경찰에 같은 내용의 조회를 했을 것이다. 그런 살인자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만에 하나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프랑스의 의심이 정곡을 찌른 것이라면 어찌되는 걸까? 그리고 살인자가 영국인, 아니 출생지만이라도 이 영국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 토머스는 런던 경시청, 특히 특별국의 실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의 요인을 영국 안에서 죽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스캔들의 냄새조차 풍긴 적이 없다.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 -- 비밀경찰)의 보스인 이반 세로프가 후루시초프 영국 방문의 사전 준비를 위해서 런던에 왔을 때, 토머스가 직접 그의 호위에 나섰었다. 세로프의 목숨을 노리는 폴란드나 헝가리의 망명자들이 기회만 노리고 가는 곳마다 대기하고 쓰다듬으면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토머스는 끝내 총격 소동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퇴직까지 앞으로 2년, 그때가 오면 브리스톨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시골집에 틀어박혀 사랑하는 아내 메그와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이런 때에 확고하게 일해서 나쁠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점검하는 것이다. 청년 시절 그는 유명한 럭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그라모건의 윙으로서 활약할 때 그 질풍 같은 돌진은 상대 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물론 이미 플레이를 할 수는 없지만, 런던 웰시의 팬이며, 틈이 나면 리치먼드의 올드 데어 파크로 시합을 보러 간다. 선수들과는 모두 낯익은 사이이며, 시합 뒤에는 흔히 그는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였다. 선수 중에 외무부에서 일하는 청년이 있었다. 동료들은 모두 그 친구를 외무부의 관리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토머스는 그 이상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청년, 배리 로이드가 속해 있는 조직은 외무장관의 감독하에 있지만, 외무부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밀정보부가 바로 그것이다. 약칭을 SIS라고 하고 단지 '서비스'라고만 불리기도 한다. 일반에게는 M16이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조직이다. 토머스는 수화기를 들어서 어떤 번호를 댔다. 두 사람은 오후 8시, 템스 강가의 조용한 퍼브(서민적인 술집)에서 만났다. 토머스는 맥주를 주문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럭비 특별국의 총경이 자기를 불러낸 것은 시즌까지 아직 2개월이나 남아 있는 럭비 이야기나 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맥주가 나오고 서로 건배를 한 다음에 토머스는 부두로 이어지는 테라스로 나가자고 턱짓을 했다. 밖은 조용했다. 여느때는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아베크족들이 저녁식사 때라 그런지 한 쌍도 없었다. "문제가 좀 있어서 말이야." 토머스가 말을 꺼냈다. "자네의 힘을 빌리고 싶은데." "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토머스는 파리의 의뢰를 설명하고서, 범죄기록센터와 특별국에서 한 조사 결과에 관해서도 말해 주었다. 그것이 영국인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손을 더럽힌 적이 없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만. 외국에서만 일을 하는 녀석이고, 만일 자취를 남겼다면 서비스의 눈에는 띄었을 것이 아닌가?" "서비스?" 로이드가 조용히 되물었다. "시치미떼도 안되네, 배리. 다 알고 있으니까." 토머스는 속삭였다. 어두운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 강 건너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그날 시티(런던 금융-상업의 중심지)에서 있었던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금융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브레이크 사건 때에 파일을 모두 쏟아놓고 조사를 했었는데, 그 중에는 있었어. 자네 파일도 구경했다네. 브레이크의 용의점이 짙어졌을 때 자네가 그의 부서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네의 소속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 "그랬었군요." "럭비 경기장에서는 한낱 팬에 불과하지만 이래봬도 특별국의 베테랑일세. 내게 신분을 숨기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될 걸세." 로이드는 맥주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공식적인 조회입니까?" "아니, 공식적인 것은 아닐세. 프랑스에서 들어온 문의도, 르베르에게서 매린슨에게 보내는 비공식적 의뢰였다네. 매린슨은 기록센터에 조사를 시켰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그렇게 회답을 한 마지막으로 확인을 의뢰한 것일세. 그래서 내가 그 조사를 맡게 된 거야. 모두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 때로는 이런 방법도 필요하다네. 아주 미묘한 문제이니까. 보도기관으로는 절대로 새어나가서는 안되네. 지금으로서는 르베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영국에서는 얻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더욱 만전을 기한다는 의미로 모든 방면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네. 자네가 그 마지막이 되는 셈이지." "그 인물은 드골을 노리고 있군요." "프랑스 쪽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서는 틀림없는 것 같네. 다만 무슨 일이 있어도 비공개로 하고 싶은 모양인지 굉장히 조심하고 있는 것 같네." 우리에게 직접 접촉해 오지 않는 걸까요?" "두 나라 경찰 간부의 개인적인 친분에 기대를 걸고서 르베르가 매린슨에게 직접 의뢰해 온 걸세. 프랑스의 정보기관과 자네 부서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없잖나? 모르긴 하지만." SDECE와 SIS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감정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어서 토머스는 은근히 그것을 비꼰 것이었지만, 로이드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조금 지나서 토머스가 물었다. "이상한 일이 있어서요." 하고 로이드는 강을 바라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필비 사건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안에서는 뼈아픈 패배로 기억하고 있지요. 그가 철의 장막 너머로 달아난 것은 1961년 1월, 베이루트에서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가서야 안 일입니다만, 당시 서비스의 내부는 큰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이동도 많았었지요. 하긴 아랍 담당 부서의 요원들은 거의 전원이 저쪽에 정체가 알려지고 말았으니까요. 다른 부서도 물론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만. 그래서 첫번째로 이동명령이 떨어진 것은 카리브 해 연안지구의 톱 에이전트였던 친구였습니다. 카리브 해로 옮기기 6개월 전까지 베이루트에서 필비와 함께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도미니카 장군(1891~1961)이 시우터드 트루히요(당시의 수도로서, 지금은 산토 도밍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서 암살되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빨치산(민간인 유격대)에 살해당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독재자이기에 적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 직후에 도미니카에 주재해 있던 한 동료가 런던으로 귀국하여 한동안 함께 일을 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트루히요의 차는 저격수가 쏜 총알 한 발로 그 자리에 서 버리고, 그 순간 빨치산들의 습격을 받아서 장군이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현지에서 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차를 150미터의 거리에서 겨누어, 더구나 그곳만은 방탄 삼각창을 통해서 운전사의 목을 정통으로 맞춰 즉사시켰다고 하니까 놀라운 솜씨지요. 그런데 기묘하게도 저격수는 영국인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겁니다." 두 사람은 비어 버린 맥주잔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어두운 템스 강의 수면을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에는 머나먼 열대의 섬의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바위들을 잘라내어 만든 도로를 달리는 차, 30년 동안이나 혹독하게 지배해 온 역전의 노군인이 망가진 차에서 끌려나와 길가에서 사살당하는 광경 -- . "그......소문의......인물 말인데, 이름은 알고 있나?" 내에서 잠깐 입에 오르내린 정도의 이야기라서요. 당시에는 여러 가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카리브 해의 독재자 사건 같은 것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었으니까요." "자네에게 그 이야기를 한 동료는 보고서를 썼었나?" "썼을 겁니다. 의무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입니다. 단지 풍문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외에는, 즉 뒷받침이 있는 정보밖에는 취급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 보고서는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현지에서도 소문이었습니다. 도대체가 소문이 많은 땅이니까요." "하지만 정확성을 기하고 싶으니, 그 파일을 조사해 주지 않겠나? 소문의 남자 이름이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까." 로이드는 철책에서 물러났다. "돌아갈까요?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발견되면 전화하겠습니다." 둘은 술집으로 돌아가서 술잔을 돌려주고 출구로 향했다. "부탁하네." 악수하며 토머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나올지도 몰라. 그러나 만에 하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토머스와 로이드가 템스 강가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무렵, 재칼은 밀라노의 식후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클로드 르베르가 내무부 회의실에서 열린 첫번째 경과보고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참석자는 24시간 전의 그것과 같은 얼굴들이었다. 내무장관이 상석에 앉고, 관계 각 부서장이 테이블 양쪽으로 줄지어 있다. 내무장관은 쌀쌀맞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먼저 첫번째로 말을 꺼낸 것은 내무장관의 보좌관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밤에 걸쳐서 프랑스 전 국경검문소의 세관에게, 입국하는 장신의 금발머리 외국 남성의 짐을 철저하게 검사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그는 보고했다. 특히 여권 검사를 엄중히 하여 위조품에 주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DST의 국장은 고개를 끄덕여 그것을 인정했다.) 프랑스에 입국하는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은 국경에서 경계가 갑자기 엄중해진 것을 알고 놀랄지도 모르지만, 이 경계조치가 장신의 금발머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것까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눈치빠른 신문기자 정도가 물어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언제나 으레 하는 임시조치라고 설명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문의는 아마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 내무장관 보좌관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로마에 있는 OAS 간부 하나를 납치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이 지난번 회의에서 있었지만, 외무부는 외교상의 있으며, (그들에게는 재칼 사건을 알리지 않았음) 대통령도(당연한 일이지만) 외무부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도 고려의 대상 밖인 것이다 -- . SDECE의 기보 국장은 모든 자료를 조사했지만, OAS 내부나 그 지지자들 중에도 정치암살의 프로페셔널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정체는 전혀 잡을 수가 없다고 보고했다. 또 RG의 국장도 전 프랑스의 범죄기록을 뒤져 보았으나 결과는 SDECE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서, 프랑스인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국내에서 행동하려 한 적이 있는 외국인 살인자 중에서도 해당자는 없다고 보충 설명을 했다. 다음으로 DST의 국장이 발언하면서 그날 오전 7시 30분, 북부역 가까이에 있는 건 전화를 도청했다고 보고했다. 8주일 전, 그들 세 사람이 그 호텔에 틀어박힌 이후, 국제전화의 교환수는 그 호텔로 가는 전화를 빠짐없이 체크하여 DST에 통보하도록 명령을 받은 것이다. 마침 그날 아침 당번 교환수가 깜박 잊어서 그 번호가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전화를 연결한 뒤였다. 그러니까 그가 DST에 통보했을 때, 전화는 이미 통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치빠르게 통화를 도청했다. 통화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바르미로부터 푸아티에에게. 재칼의 존재가 발각. 반복함, 재칼의 존재가 발각. 코와르스키가 잡혀 죽기 직전에 자백. 이상."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테이블 끝에서 르베르가 조용히 말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다만 롤랑 대령만은 깊은 생각에 빠져 정면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대령이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마르세유야." 느닷없이 그가 말했다. "코와르스키를 로마에서 꾀어 내기 위해서 미끼를 썼던 겁니다. 그는 조조 그리보스키라는 녀석의 오랜 친구입니다. 그 녀석은 부인과 딸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코와르스키를 잡을 때까지 그들 셋을 보호해 두었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뒤에 집에 돌아가게 했지요. 코와르스키를 체포한 것은 그들 간부 세 사람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으며, 못하고 있었지요. 어쨌든 조조와 그 가족들은 우리가 코와르스키를 체포한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요. 물론 그 뒤로 피차 쌍방의 사정이 바뀌었습니다만. 여하튼 바르미라는 스파이와 내통한 것은 조조가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책입니다." "DST는 우체국에서 바르미를 체포했습니까?" 하고 르베르가 물었다. "아니, 교환수의 부주의로 불과 몇 분 차이로 놓치고 말았어." DST가 대답했다. "서툴기 짝이 없군." 하고 생클레아가 단정해 버렸다. 차가운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기보 장군이 잔뜩 비꼬는 투로 반박했다. "현재 우리는 모든 점에서 수세에 몰려 나아가고 있는 꼴이니까 서툰 일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 대령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임무를 맡아 줄 생각이라면......" 생클레아 대령은 SDECE 국장이 겁주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큰일이기라도 한 듯이 서류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도 방금의 말이 서툴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무장관이 어색한 공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녀석들도 살인자의 존재가 발각된 것을 알았으니까 작전을 중지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들 보나?" "동감입니다." 생클레아는 태세를 정비할 양으로 내무장관의 말에 편을 들었다. "장관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녀석들도 바보가 아니죠. 즉시 재칼과의 "녀석의 존재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이릅니다." 르베르가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모두 그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아직 그의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로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또 더욱 세심하게 준비하겠지요, 가짜 신분증, 변장......" 내무장관의 말로 싹트기 시작한 낙관적인 공기가 갑자기 식어 버렸다. 프레이는 존경의 눈으로 작은 몸집의 총경을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르베르의 보고를 들어 보기로 하지. 어쨌든 그는 이 수사의 총괄책임자이고, 우리는 모두 그를 돕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거니까." 온 조치에 대한 개요를 설명했다. 외국인의 기록은, 만일 있다고 한다면 어느 외국 경찰의 파일에밖에는 없을 거라는 점, 국내의 파일을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로 그런 판단의 근거가 더 확고해졌다는 점, 여러 외국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의뢰가 허락되었으므로 인터폴을 통해서 7개국 경찰 간부에게 지명전화를 건 일 등. "오늘 각국에서 회답이 도착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네덜란드, 해당자 없음. 이탈리아, 프로 살인자는 몇 명 있지만 모두 마피아의 수하에 있는 자들임. 로마의 두목에게 은밀히 조회한 결과, 마피아의 살인자는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정치적인 살인은 하지 않으며, 마피아는 외국 않는다는 회답을 받았음." 르베르가 메모에서 얼굴을 들었다. "이 이야기에 거짓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영국, 해당자 없음. 단,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특별국에 조사를 의뢰." "여전히 슬로 모션이군." 생클레아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르베르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일은 철저히 합니다. 런던 경시청을 얕보아선 안됩니다." 그는 다시 메모를 읽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미국, 여기엔 두 개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본거지를 둔 국제적인 무기상인의 한쪽 팔이라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해병대 요원을 지낸 적도 있는 인물로서, 픽스 만(만) 사건 직전에 반(反)카스트로파의 쿠바인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 쿠바인은 픽스 만 침공작전에서 한 부대의 지휘관이 될 예정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뒤 그 인물은 앞에서 언급한 무기상인에게 고용됩니다만, 그 상인은 CIA의 은밀한 요청으로 픽스 만 진격부대에 무기를 공급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 상인의 경쟁자 두 사람이 누군가에게 살해되었습니다만, 이것은 문제의 인물이 한 짓으로 믿고 있습니다. 무기장사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인 모양이더군요. 그 인물의 이름은 찰스 아놀드. 별명은 '귀염둥이.' 현재 FBI가 거처를 조사중에 있습니다. 마피아의 보스인, 앨버트 애나스타셔의 경호원이었던 마르코 비텔리노입니다. 애나스타셔는 1957년 10월, 이발소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총에 맞았는데, 이때 비텔리노도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미국으로 탈출하여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다가 그 지방 조직의 협박을 받고 물러났습니다. 현재 그가 돈이 아쉬운 처지라면, 보수 여하에 따라서는 외국의 조직에 고용되어 살인을 청부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FBI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방안은 완전히 침묵 속에 있었다. 14명의 참석자는 서로 소곤거리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벨기에, 가능성은 하나. 카탕가의 촘베 1962년 국제연합군에 체포되어 추방처분. 두 건의 살인용의로 기소되어 있기 때문에 벨기에로 귀국 못하고 있음. 프로 살인자이고 간교함이 뛰어나다는 겁니다. 이름은 쥘 베란저. 중앙아메리카로 달아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벨기에 경찰은 지금도 계속 그의 거처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서독. 가능성은 하나. 한스디터 카셀. 전 친위대 소령이며, 전범 용의자로 2개국에서 지명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전후 가명으로 서독에 잠복, 구 친위대의 지하조직인 '오데사'의 살인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정부의 후원에 의한 전범자 색출 활동을 강화하라고 외치던 좌익의 정치가 두 명의 살해에 관계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때 어느 경찰간부와 있었던 관계를 밀고하여 그 간부는 퇴직당했습니다.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르베르는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이 인물은 이미 그런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57세니까요. 마지막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능성은 하나. 프로 살인자로서 이름은 피에 슈이퍼. 역시 촘베에게 고용되었던 총잡이 중 한 사람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아무 죄로도 수배당하지 않고 있으나 탐탁치 않은 인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격의 명수이고, 살인이 있었던 카탕가 제2차 정권 붕괴 때 콩고에서 추방된 뒤로 소식 불명입니다만, 아직도 서아프리카 어딘가에 잠복중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찰의 특별수사대가 자세한 것을 조사중에 있습니다." 르베르는 설명을 끝내고 얼굴을 들었다. 참석자는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 ." 하고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모두가 모호하다는 비난은 면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으로선 가장 가능성이 있는 7개국에만 조사를 의뢰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칼은 스위스인일지도 모르고 오스트리아인일지도 모릅니다. 7개국 중에서 3개국이나 해당자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액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재칼은 이탈리아인일지도 모르고, 네덜란드인이나 영국인일지도 모릅니다. 또는 남아프리카나 벨기에, 서독, 또는 미국인으로서 각국 관리의 눈을 피해 있는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즉, 용의자를 특정지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광명이 비춰 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믐밤에 손으로 더듬어 가고 있는 것이 현상황입니다." "기대만으로는 안돼." 하고 생클레아가 단정하듯 말했다. "무슨 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르베르는 조용히 물었다. 생클레아는 차디차게 말했다. "놈은 이미 손을 뗐다고 생각해. 계획이 들통난 지금에 거라고 적들도 단념하고 있겠지. 로댕이 얼마의 보수를 약속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된 상태에서는 이젠 계획을 중지하고 돈을 되돌려받는 방법밖에 없겠지." "손을 떼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 ." 르베르는 반론을 제기했다. "단순한 추측은 기대와 오십보 백보입니다. 역시 제 생각으로는 당분간 조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조회 말인데, 그 뒤의 상태는 어떤가?" 하고 내무장관이 물었다. "이미 각국의 경찰이 완전한 자료를 텔렉스로 보내오고 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는 모두 갖추어질 겁니다. 얼굴 사진도 전송이 될 겁니다. 몇 나라에서는 있으며, 그것이 판명된 시점에서 우리가 그것을 인수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각국에서는 비밀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하고 송기네티가 물었다. "비밀을 누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폴에 가입해 있는 각국 경찰의 간부는 매년 수백 건에 달하는 극비의 조사를 서로 의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비공식적인,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 의한 것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어느 나라에서나 체제에 관계없이 경찰은 범죄 저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정치의 입장에 있어서와 같은 대립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간의 협력관계는 대단히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무장관이 물었다. "경찰관에게 있어서는 그것도 범죄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외무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상대방의 경찰과 접촉한 것입니다. 물론 이쪽에서 의뢰가 있었다는 것은 상부에 보고되겠지만, 그 때문에 비밀이 누설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정치암살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대한 범죄니까요." "그러나 녀석들은 조회하는 이유를 눈치채고 속으로 드골 대통령을 비웃겠지." 생클레아가 화가 나서 말했다.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일은 자신들이 당할지도 모르니까요." "미안하지만 자네는 정치라는 것을 프랑스의 대통령을 살인자가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할 녀석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어.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일반이 알게 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거야." "일반이 알게 된다는 표현은 정확지 않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전해질 뿐입니다. 그들은 정치의 중추에 있으며, 나라의 정치를 좌우할 만한 비밀을 알고 있어도 결코 그것을 밖으로 누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특히 서방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치안기구의 내면까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알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그리고 알게 된 정보를 감추어 두지 않으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알고도 남는 "그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겠지만, 어느 정도는 어쩔 수가 없겠지요.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고 부비에가 화난 듯이 말했다. "우리는 벌써 2년 동안이나 OAS와 싸우고 있어. 대통령은 신문잡지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태를 피하라고 하셨으니, 바로 그 점을 조심하면 되는 거야." "여러분, 잠깐만." 내무장관이 가로막았다. "그런 의논은 이제 그만하면 됐소. 여러 외국의 경찰 간부에게 협조를 의뢰해도 좋다고 르베르에게 허락한 것은 바로 나요." 그는 흘끗 생클레아를 보았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서 말이오." 태도에 대해서는 참석자 모두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밖에 할말은?" 내무장관이 일동에게 물었다. 롤랑이 손을 들었다. "스페인에는 OAS의 망명자가 많아서 마드리드에 우리의 지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카셀인가 하는 나치의 잔당에 관해서는 서독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아도 우리가 조사할 수 있습니다. 본의 외무부와는 아직도 유대가 긴밀하지 못하니까요." 아르그 납치사건과 그 뒤의 본의 분노를 떠올리고서 일동은 쓴웃음을 지었다. 프레이는 눈썹을 올려서 르베르를 보았다. "액션 서비스 쪽에서 카셀을 조사해 준다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나머지 것들은 이후로도 계속 관계부서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러분, 오늘밤은 이 정도로 합시다." 내무장관은 시원스런 어조로 그렇게 말하고 서류를 챙기면서 일어섰다. 일동은 흩어졌다. 바깥 층계를 내려오면서 르베르는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으로 파리의 달콤한 밤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마셨다. 그때 시계가 12시를 치고 8월 13일, 화요일이 되었다. 12시 조금 지나서 치즈위크의 토머스 자택으로 배리 로이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토머스는 그에게서 전화가 생각하고 막 자려던 참이었다. "그 보고서를 찾았습니다." 하고 로이드가 말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당시 섬에서 떠돌던 소문에 대해서 형식적으로 보고했을 뿐이더군요. 보고서 제출과 거의 동시에 '조사 불필요'라는 도장이 찍혔습니다. 그 무렵엔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으니까요." "그래, 이름은 나왔나?" 토머스는 자고 있는 아내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한 소리로 물었다. "예, 섬에 있던 영국인인데 사건이 있은 뒤로 사라져 버렸답니다. 사건에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소문과 함께 이름이 들먹여졌었던 것 같습니다. 찰스 칼스로프라는 이름입니다." 즉시 조사해 보겠네." 그는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들었다. 꼼꼼한 로이드는 토머스에게 한 요청과 그의 답변에 관해서 짧막한 보고서를 써서 문서과에 제출했다. 당직 담당관은 의아한 얼굴로 잠깐 내용을 훑어보고는 파리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외무부 프랑스국(局)으로 가는 문서 운송배낭에 집어던졌다. 이 운송배낭은 프랑스 국장에게 직접 건네주도록 되어 있다. 제 14 장 재칼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오전 7시 반에 기상하여 침대에까지 가져다 준 차를 마시고서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한 뒤 면도를 했다. 그리고 옷을 입은 다음에 여행가방 안감 속에 숨겨 온 1,000파운드의 돈다발을 빼내어 그것을 안주머니에 넣고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전 9시, 그는 호텔 앞 만조니 로(路)로 나가서 은행을 찾아 걸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은행에서 은행으로 다니면서 파운드화를 바꾸었다. 200파운드는 이탈리아의 리라로, 나머지 800파운드는 프랑스의 프랑으로. 점심 전까지 이 일을 끝낸 그는 카페테라소에서 에스프레스 커피를 두 번째의 탐색 여행을 떠났다. 물어 물어 돌아다닌 끝에 포르타 갤바르디의 외곽에 있는 캘바르디 역 가까운 초라한 거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가 찾고 있는 세놓는 차고가 줄지어 있었다. 그는 그 중 하나를 같은 거리에서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고 있는 주인에게서 빌렸다. 이틀 동안의 요금이 1만 리라로서, 사실 터무니없는 금액이지만,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이라 비싸게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그는 가까이에 있는 철물점에서 아래위가 붙은 작업복, 펜치, 가느다란 철사, 납땜용 인두, 그리고 땜납을 사들였다. 이 물건들을 같은 상점에서 산 마직 가방에 집어넣어 빌린 차고에 던져 두었다. 그리고 차고의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고 한길가의 오후 일찌감치 미리 레스토랑에서 전화를 걸어 두었던, 조그맣고 별로 손님도 없는 렌터카 회사로 택시를 타고 갔다. 거기서 그는 1962년형 알파 로메오 스포츠카를빌리기로 했다. 회사 사람에게는 2주일의 휴가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돌아다니고 싶으니 차는 2주일 뒤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여권과 영국의 운전면허증, 그리고 국제면허증 등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가까운 곳에 그 렌터카 회사의 보험을 취급하는 보험회사가 있어서 한 시간도 못되어 계약수속을 마칠 수가 있었다. 공탁금으로 100파운드나 맡겨야 했지만, 여하튼 그것으로 알파 로메오는 그의 손으로 건너오고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이미 그는 런던의 자동차 연맹에 조회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모두 EC의 가맹국이므로 운전면허증, 렌터카의 등록증, 거기에 보험계약서가 갖추어져 있으면 이탈리아 번호의 차를 프랑스에서 운전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두었다. 렌터카 회사를 나온 그는 코르소 베네치아에 있는 이탈리아 자동차 클럽에 가서 국외 드라이브 여행 전문의 보험을 취급하고 있는 어느 믿을 만한 보험회사를 소개받았다. 즉시 그는 프랑스 여행에 특별 보험을 들고 현금으로 보험금을 지불했다.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 회사는 프랑스의 큰 보험회사와 제휴하고 있으며 프랑스 내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에는 그쪽 했다. 수속을 마친 그는 알파 로메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차를 호텔의 주차장에 두고 방으로 올라가 분해한 저격용 총을 넣은 여행가방을 옷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티타임 뒤에 아까 빌려 놓은 차고로 되돌아갔다. 입구의 문을 꼭 닫고 납땜 인두의 코드를 머리 위 전구 소켓에 이은 그는 강력한 라이트로 차의 밑을 비추면서 일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걸려서 그는 강관을 자동차 섀시의 플랜지(튀어나온 부분)에 갖다 붙였다. 알파 로메오를 고른 것은 이탈리아의 차 중에서 알파의 섀시가 특히 깊은 플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동차 잡지에서 읽어 알고 있었기 함석으로 싸두었었다. 그것을 철사로 플랜지의 안쪽에 묶고, 철사가 섀시에 접촉되어 있는 부분을 납땜한 것이다. 작업을 끝낼 쯤에는 작업복은 바닥에 흘린 기름으로 시커멓게 더러워지고, 손은 철사를 힘껏 섀시에 감아 매느라고 쑤셔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하튼 이것으로 준비는 갖추어졌다. 강관은 차 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찾아보지 않는 한 들킬 염려는 없다. 게다가 곧 먼지와 흙탕물을 뒤집어쓰면 더욱 찾아내기 힘들게 된다. 그는 작업복, 납땜 인두, 철사의 나머지 등을 가방에 넣어서 차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걸레 밑에 숨겼다. 펜치는 대시보드(운전석 옆 사물함) 속에 넣었다. 여행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알파의 운전석에 내리고 있었다. 그는 차고를 잠그고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고서 호텔로 돌아왔다. 밀라노에 도착하여 그는 샤워로 하루의 땀과 먼지를 씻어 버리고 욱씬거리는 손을 찬물에 담가서 식혔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 양복을 입었다. 즐겨 마시는 캄파리소다를 마시러 바에 가기 전에 그는 프런트에 들러서, 저녁을 마치고 나오며 지불을 끝낼 테니까 계산을 해놓으라고 일러놓고는, 다음날 아침 5시 반의 모닝콜과 아침 차의 룸서비스를 부탁했다. 그리고 두 번째의 호화판 저녁을 마친 다음, 남은 리라로 숙박료를 치르고서 11시 조금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재스퍼 키그레이 경은 뒷짐을 지고 외무부의 사무실 창문 앞에서 호스 가드 종대를 이룬 근위기병이 빠른 걸음으로 몰(세인트 제임스 공원 북쪽의 산책로) 쪽으로 나아가서 거기서 다시 버킹검 궁전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행진해 나아간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인상깊은 광경이다. 재스퍼 경은 거의 매일 아침 이 가장 영국적인 광경을 사무실의 창문 앞에서 보고 있다. 이 창가에 서서 기병대의 퍼레이드를, 아침 햇빛의 찬란함을, 목을 빼고 구경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말발굽 소리, 말의 울음소리, 관광객들의 탄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멋없는 외국에서 지내는 대사 근무의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조차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묘하게도 언제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랑스럽게 턱이 들리며 목덜미의 주름이 펴지는 것이었다. 때로는 책상 앞에 앉아서 집무중에 자갈을 박차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일부러 창가로 가서 기병대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또 때로는 도버 해협을 떼지어 건너와서 그 박차의 소리를 파리의 군화나 그 못마땅한 베를린의 장화 소리로 지워 버리려 한 대륙의 독재자들을 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황급히 서류로 눈을 돌리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은 그렇지는 않았다. 불 같이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윤기라곤 없는 얇은 입술을 꼭 다문 바람에 입안으로 감춰져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 정말로 재스퍼 경은 격노해 있었다. 안에 있는 것은 경 혼자였다. 재스퍼 경은 영국 외무부 프랑스국의 국장이다. 도버 해협 너머에 있는 그 나라와의 사이에는 옛날부터 진정한 우호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담당국의 책임자조차도 우호적인 감정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그 혼란한 나라의 인물, 동태, 야심, 그리고 때로는 그 책략을 연구 분석하여 사무차관에게 보고해서 외무장관의 귀에 들아가도록 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첫째 임무로 되어 있었다. 물론 경은 외교관으로서 요구되는 온갖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잖고는 외무부의 국장 같은 요직을 차지할 수는 없다. 프랑스 이외의 중요 각국에서 활약한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사들의 그것과 멋지게 일치하는 정치적 판단의 건전성 등등. 훌륭한 경력과 자랑스러운 업적들. 지금까지 한 번도 공적으로는 결정적인 과오를 저지른 적도 없으며, 타이밍 나쁘게 자기 혼자만 옳았던 적도 없었다. 또, 혼자서 유별나게 지지를 하거나, 외무부 고관들 사이에서 주류를 이루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의견을 주장하는 그런 실수를 한 적도 없다. 나중에 외무차관보가 된 주독 대사관 1등서기관의 혼기를 놓친 딸과 결혼한 일도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았다. 1937년에 그가 베를린에서 외무부에 보낸, 독일의 재군비는 서유럽의 장래에 정치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불운한 각서가 덕분이었다. 전시중 외무부에서 한때 발칸 반도 담당으로 배속되어 있을 때, 유고의 빨치산인 미카이로비치 일파를 지원하도록 강력히 진언한 일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수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서 실정을 탐사하고 온 피츠로이 매클린이라는 일개 대위가 제안한, 티토라는 가엾은 공산주의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권고 쪽을 채택했다. 그 결과 젊은 재스퍼는 프랑스국으로 전속되어 버렸다. 프랑스국에서 그는 알제리의 지로 장군을 지원해야 된다는 의견을 설명하고 다녀서 주목을 받았다. 분명히 그것은 뛰어난 정책이긴 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당시 런던에 망명해서 자유 프랑스군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던 또 한 사람, 공작 때문에 어이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어째서 처칠 수상은 그 오만한 남자의 편을 들었는지 외교의 전문가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도움이 되는 대상은 물론 아니고, 재스퍼 경(오랜 외교계 생활의 공적에 의해서 1961년에 나이트(騎士) 작위를 받았다)이 외무부 프랑스국장으로서 지낸 자격에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경에게 있어서는 프랑스와 프랑스에 관련된 모든 것이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1963년 1월 14일, 드골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영국의 EC가입을 거부하는 바람에 재스퍼 경은 면목없이 되어 외무장관 앞에 나가서 입도 열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사건으로 증오를 느끼게 되었다. 그 미움에 비하면 그때까지 지녔던 프랑스 일반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재스퍼 경은 창가에서 홱 돌아섰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지금까지 읽고 있었던 것처럼 손에 들었다. "들어오시오." 거기에 나타난 것은 아직 젊은 사무관이었다. 그는 손을 뒤로 하고 문을 닫은 다음 책상으로 다가왔다. 재스퍼 경은 안경 렌즈에 넣은 반달형 근시 렌즈 위로 흘끗 청년을 보았다. "오, 로이드. 방금 자네가 어젯밤에 철해 놓은 보고서를 읽고 있던 참이야.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어. 프랑스의 협조 요청 말일세. 그것이 특별국의 총경에게로 돌려지고, 총경은 SIS의 젊은 사무관에게, 물론 비공식으로 의논해 왔다는 거지,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로이드는 창가에 서서 지금 처음 보는 듯한 태도로 보고서에 눈을 주고 있는 늙은 외교관의 깡마른 몸을 응시했다. 재스퍼 경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 이 차디찬 태도는 포즈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리고 그 사무관은 자기의 권한 밖의 일을 상사에게 한마디 양해도 없이 특별국 담당관에게 알려 주었고. 더구나 있을 수 없는 것은, 그 내용의 근거는 비즈니스맨으로 생각되는 한 영국인이 실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풍문이야. 맞나?" 이 노인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 . 로이드는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경이 노리고 있는 것은 다음의 말로써 곧 명백해졌다. "나는 너무 뜻밖일세, 로이드. 아무리 비공식적인 것일지라도 어제 아침 우리 나라로 요청되어 온 것이 직접 관계되는 우리 국에 보고된 게 24시간 뒤라니 대체 어찌된 것인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나?" 로이드는 경의 말을 이해했다. 요컨대 그의 세력권에 양해 없이 들어선 것에 대해 화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20년 이상 관료조직 속에 있으면서 것이다. 관료들은 국사(國事)보다는 그러한 싸움에 더 정력을 쏟게 되며, 거기에 정통한 경을 화나게 하면 어떤 보복이 있을지 모른다.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만, 토머스 총경으로부터 그......비공식적인 요청이 있었던 것은 어젯밤 9시이고, 그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랬었군. 하지만 자네는 토머스의 요청에 대해서도 12시간 전에 대답을 해주었잖나. 그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총경이 저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은 조사상의 단순한 지표를 구하기 위해서이고, 각 부서간의 협조라는 의미로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자네가?" 버렸다. 노여움이 역력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서간의 협조라고 했는데, SIS와 프랑스국 사이에는 그런 것이 없단 말일세." "저의 보고서를 손에 들고 계시지 않습니까?" "좀 늦었어.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로이드는 반격해 주려고 마음먹었다. 토머스에게 협조하기 전에 상사와 의논을 했어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사란 SIS의 상사이지 재스퍼 경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SIS의 책임자는 부하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외무부의 늙은 너구리들에게는 미움을 사고 있다. 부하가 그들에게 질책당하는 것을 "무엇에 늦었다고 하시는 겁니까?" 재스퍼 경은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토머스의 요청에 응하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이 보고서의 내용은 한 영국 시민의 명예에 관한 문제야.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 같은 것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이름을 퍼뜨려 살인에 관계되는 풍문을 활자화하는 것이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특별국의 요청에 응하여 이름을 밝혔다고 해서 그것이 퍼뜨린 것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재스퍼 경은 분노를 누르려고 입술을 꼭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앞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어 -- . 그는 간신히 터지려는 분통을 참아냈다. "그렇군. 특별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자네의 생각은 훌륭하지만, 그전에 한마디라도 의논이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 "어째서 경과 의논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재스퍼 경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그래, 바로 그것을 묻고 있는 거야." "재스퍼 경,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실례인 줄 압니다만, 저는 SIS의 직원입니다. 저의 어젯밤 행동이 마음에 안 드시면 그에 대한 불만은 저에게 말씀하실 것이 절차상 옳지 않습니까?" 절차라고? 이 애송이는 프랑스 국장에 대해서 절차에 대한 것을 가르칠 셈인가? "물론 그렇게 하겠네." 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히 그렇게 하겠어." 로이드는 이만 물러가겠다고도 않고 유유히 그 방에서 나왔다. 나중에 보스에게 꾸중 들을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때의 토머스의 요청은 긴급을 요하는 것이었으며, 일각의 유예도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보스가 적당한 채널을 통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면 책임을 혼자서 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일지라도 질책을 당하는 것은 보스로부터이지 재스퍼 경에게서는 아니다. 토머스 씨는 정말 그러나 재스퍼 경 쪽은 문제를 삼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그의 주장대로 칼스로프에 관한 정보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파일에 묻혀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상사의 재가를 얻은 다음에 내보내야만 한다. 그 상사란 반드시 그 자신이 아닐지라도 상관없지만. 프랑스국장은 SIS의 정보 보고를 받는 한 사람이지만 SIS의 관리자는 아니다. 물론 그는 SIS를 좌지우지하는 그 성질이 고약한 천재(이것은 누군가가 SIS의 보스를 촌평한 말이다)에게 불만을 터뜨려서 로이드를 호통칠 수는 있다. 적어도 그 애송이의 경력에는 흠이 생기겠지. 그러나 동시에 자기 사람을 자기의 양해 없이 오라 가라 펄펄 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우울했다. 게다가 SIS의 보스는 정부 고위층에 아주 가깝다는 소문도 있다. 브레이드스에서 함께 트럼프를 했다거니, 요크셔로 사냥을 갔다거니. 더구나 지금은 글로리어스 투엘프스(영국에서 뇌조(雷鳥)의 사냥이 시작되는 8월 12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그때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려고 각 방면에 공작하고 있었다. 이런 때이니 이 문제는 내버려두는 편이 좋아 -- . "어쨌든 체면에 상처는 입었어도 피는 흐르지 않았으니." 그는 근위기병의 퍼레이드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흐르지 않으니까요." 오후 1시 지나 클럽에서 있는 점심에 초대한 손님에게 그는 말했다. "앞으로는 그들도 프랑스국과 협력하겠지요. 그러나 SIS가 일을 너무 많이 하는군요. 큰소리로 할 이야기는 못됩니다만." 그는 이 농담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불운이었던 것은 손님의 신분을 좀더 철저히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손님은 수상 주변과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경시총감의 보고서와 재스퍼 경의 SIS에 대한 촌평은 의회에서 답변을 끝내고 오후 4시 전에 다우닝 가(街) 10번지의 수상 관저로 돌아온 수상의 눈과 귀에 거의 동시에 들어갔다. 그리고 4시 10분, 토머스는 이날 아침부터 계속 이름밖에 모르는 어떤 남자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있었다.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먼저 페티 프랑스의 여권발행국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9시의 집무 시작과 동시에 그리로 뛰어든 그는 찰스 칼스로프가 제출한 여권 신청서를 복사해서 받았다. 그런데 찰스 칼스로프라는 이름의 신청자가 여섯이나 있었으며, 서류도 여섯 장이나 나왔다. 더구나 미들 네임이 모두 틀리므로 여섯 명이 모두 다른 사람인 것이 된다. 그는 또 각자의 사진을 열람했다. 이 사진은 복사하지 않고 반환해야 된다고 했다. 여권 중 하나는 1961년 1월에 신청된 것이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보아서 사건과 그 찰스 칼스로프가 다른 신청서를 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그가 다른 이름으로 여권을 얻어 도미니카에 입국했을 가능성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도미니카에서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면, 트루히요 암살을 둘러싼 소문 중에서 칼스로프라고 지명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토머스는 일단 이 남자는 제외시키기로 했다. 다른 다섯 명 중에서 하나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 1963년 8월 현재 65세였다. 문제는 남은 네 사람이다. 르베르가 알려 준 큰 키에 금발이라는 특징과 일치하고 안 하고에 관계없이 토머스는 제거법을 쓰기로 했다. 만일 여섯 명 전원이 제거되어 재칼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르베르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으니까. 신청서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는 런던 시내의 것이 둘, 지방의 것이 둘. 그러나 그저 불쑥 전화를 걸어서 찰스 칼스로프 씨를 대달라고 해놓고는 1961년에 도미니카에 갔었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령 간 적이 있었어도 아니라고 하면 그뿐이니까. 또 이 네 사람은 하나같이 직업란에 '비즈니스맨'이라고 기입해 놓았지만, 이것도 아무런 증거나 단서가 될 수는 없다. 당시 도미니카의 술집에서 수군거리던 소문에 의하면 분명히 비즈니스맨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틀렸을 가능성도 이날 오전중, 토머스의 의뢰를 받은 지방의 두 경찰서에서는 각각 관할 내에 주소를 둔 두 사람의 카스로프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한 사람은 근무처에서 형사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주말을 이용해서 가족과 간단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점심시간에 형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여권의 조사를 받았지만, 1960년에서 61년 사이에 도미니카 공화국에 출입국했다는 기재는 없었다. 여권은 두 번밖에 쓰지 않았다. 한번은 마조르카, 또 한번은 코스타 브라바로 여행했을 때이다. 다시 근무처인 비누공장으로 조회해 본 결과 그는 10년 전부터 경리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1961년 1월은 정기휴일 이외에는 하루도 쉰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블랙풀 시의 호텔에 묵고 있었다. 여권은 집에 있다고 하기에 옆집 사람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하고서 책상 서랍 가장 위쪽에 들어 있는 여권을 형사가 조사했으나, 도미니카 경찰의 스탬프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근무처에 알아보았더니, 그는 타이프라이터의 수리공으로 1961년 중에는 여름 휴가 이외에는 회사를 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증이나 출근부도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런던 시내에 사는 두 사람의 찰스 칼스로프 중에서 하나는 캐트퍼드에서 채소가게를 하고 있었다. 대인관계가 능수능란한 두 명의 사복형사가 찾아갔을 때에 그는 마침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여권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둘과 마찬가지로 도미니카에 갔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채소가게 주인은 그 섬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네 번째의, 그리고 최후의 칼스로프는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는 않았다. 4년 전의 여권 신청서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는 하이게이트의 아파트였다. 그곳을 관리하고 있는 부동산사무소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1960년 12월에 그 아파트에서 나갔으며, 이사간 곳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미들 네임은 알고 있었기에 토머스는 그것에 의지해서 조사를 계속했다. 전화번호부에는 올라 있지 않았으나 특별국의 권위를 내세워 체신부에 조사시켜 CH 칼스로프라는 인물이 서런던에 머리글자는 찰스 해럴드라는 이 마지막 칼스로프의 그것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토머스는 서(西) 런던 구청에 문의했다. 전화를 받은 구청 직원은 분명히 찰스 해럴드 칼스로프라는 인물이 그 주소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선거인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즉각 그 아파트에 형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그 플랫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고,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아파트의 주민은 칼스로프가 어디를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헛걸음을 한 순찰차가 본청으로 돌아왔기에 토머스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세무서에 찰스 해럴드 칼스로프의 세금 환부금에 대한 기록을 조사해 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그가 근무처이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토머스는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이 나에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아, 물론 가지. 5분 뒤? 그럼, 나중에." 토머스는 경시청을 뛰어나가 거칠게 코를 풀면서 의사당 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감기가 낫기는 고사하고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광장에서 화이트 홀 가(街)로 나아가 첫번째 모퉁이를 왼쪽으로 돌아서 다우닝 가로 들어섰다. 수상 관저가 있는 이 조그만 막다른 골목은 언제나 햇볕이 들지 않고 음침하고 좀 없이 불평이나 해대는 하릴없는 무리들이 우악스러운 경관 두 사람에게 밀려 한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문서를 가지고 오는 공직자들을 바라보면서 혹시 수상의 모습을 창 너머로라도 살짝 볼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서 언제까지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좁은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앞뜰을 가로질렀다. 거기에 다우닝 가 10번지의 뒷문이 있었다. 그는 문 옆에 있는 버저를 눌렀다. 곧 문을 연 거구의 경사가 그를 보자 경례를 붙였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즉시 드시도록 할로비 경호대장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임스 할로비는 몇 분 전에 그에게 경호대장이다. 41세 치고는 젊게 보이는, 핸섬하고 아직도 퍼블릭 스쿨의 넥타이를 매고 있는 감상적인 사람이지만, 경찰관으로서는 발군의 실적을 남긴 인물이다. 계급은 토머스와 같은 총경이다. 그는 일어나서 토머스를 맞았다. "오, 브린, 오랜만이군." 그는 부하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이젠 됐어." 경사는 물러가면서 문을 닫았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고 토머스가 물었다. 할로비는 깜짝 놀라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묻고 싶다네. 15분 전에 수상께서 전화를 했는데, 자네 이름을 대면서 곧 일을 하고 있나?" 토머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지만, 이렇게 빨리 수상의 귀에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수상이 경호대장에게도 밝히지 않았다면 자기의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글쎄, 전혀 짐작도 안되는군." 할로비는 수화기를 들고 수상 집무실을 대달라고 했다. 교환대에서 연결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 "할로비입니다. 토머스 총경이 왔습니다...... 예, 지금 곧."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곧 방으로 와 달라고 하시는군. 역시, 자네,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지? 아까부터 아니야. 그럼, 가세." 할로비는 앞장서서 방을 나가 복도 막다른 곳에 있는 베이지색 문 쪽으로 걸어갔다. 마침 안에서 나온 남자 비서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열린 문을 잡은 채 한 발 물러섰다. 할로비는 토머스를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분명한 소리로, "토머스 총경입니다, 수상 각하." 하고 말하고는 물러났다. 토머스는 손을 뒤로 돌려서 문을 닫았다. 그곳은 천장이 높고, 내부장식이 차분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여기저기에 책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고, 파이프 담배와 내장재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상의 집무실이라기보다는 대학의 학장 서재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불러서 미안하네. 앉게나." "실례합니다." 책상 앞에 있는 등받이가 직각인 의자에 토머스는 앉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수상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1 대 1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축 늘어진 눈꺼풀 밑에 슬픈 듯한, 풀죽은 듯한 눈이 있었다. 아니, 장거리 경주를 뛰고 난 경주견 같은 인상이었다. 수상은 말없이 책상으로 돌아와서 그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화이트홀(중앙관청가)에서는 수상의 건강이 좋지 않으며, 그것은 바로 그 킬러 사건의 진구렁에서 간신히 정권을 지켜온 고생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킬러 사건은 간신히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여기저기서 그 화재가 끊이지 않고 초췌감과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애를 본 토머스는 놀랐다. "토머스, 어제 아침 프랑스 사법경찰의 간부에게서 온 협조 요청 때문에 자네가 그로 말미암아 조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수상 각하." "프랑스의 치안당국은 어떤 인물, OAS에 고용되었다고 생각되는 프로 암살자가 가까운 장래에 프랑스 국내에서 임무를 수행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여 우리 나라에 협조를 요청해 왔다...... 그런 이야기지?"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 온 요청은 그런 프로 살인자로서 정체가 판명되어 있는 인물이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이고, 왜 그것을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청의 배후에 있는 것은 당연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네는 어떻게 해석하나?" "수상 각하의 상상과 같습니다" "당연하지. 프랑스의 당국자가 그런 인물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유일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천재가 아니라도 쉽게 추측할 수가 있어. 그래, 그 인물이 노리고 있는 상대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살인자는 대통령 암살을 위해서 고용된 것이라고 프랑스 당국에서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일세. 암살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 "예, 이미 6번이나 그런 시도가 있었다고 수상은 눈앞에 있는 서류를 쳐다보았다.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닥친 이 사건의 단서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토머스, 자네의 조사가 좀더 미지근하고 지지부진한 것이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인물이 우리 나라의 고관 중에 있는 모양이야. 알고 있나?" 토머스는 놀랐다. "모르고 있습니다." 대체 수상은 어디서 그런 것을 들었을까 ? "현재까지의 경과를 들려주게나." 토머스는 조사가 범죄기록센터에서 특별국으로 옮겨진 경위, 로이드와 접촉한 것, 칼스로프라는 인물의 일,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다 듣고 난 수상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밝은 햇빛을 받으며 정적에 싸여 있는 잔디밭 뜰 쪽으로 나 있는 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수상은 오랜 시간 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토머스는 의아했다. 아마도 현재 300마일 저쪽, 그의 나라를 통솔하고 있는 그 오만한 프랑스인과 지난날 함께 산책했던 알제리의 해안을 생각하고 있겠지. 20년 전 두 사람은 한창 일할 장년의 나이였으리라. 그 뒤 실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두 사람 사이에도 갖가지 일이 있었다. 어쩌면 화려한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위에 군림하는 바로 그 인물이, 자신의 꿈을 이룬 충만한 가입을 실현시켜 정치생활의 마지막 꽃을 피우려고 한 영국 수상의 기대를 잘 계산된 야한 언사로 무참히 짓밟아 버린 8개월 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한 매춘부와 뚜쟁이에 의해서 영국 정부가 붕괴의 위기에 빠졌었던 고뇌 속의 지난 몇 개월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상은 싫든 좋든 하나의 규범을 가진 세계에 태어나서 그 규범을 믿고 그것에 따라서 살아온 노인이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새 인종이 그 새로운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에도 새로운 규범이 이미 생겨났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알아도 원치 않을 것이다. 지금 해가 잘 들어오는 뜰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수술은 이미 더는 늦출 수가 없고, 수술과 함께 수상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세상은 새로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 이미 많은 것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 있다. 그러나 뚜쟁이나 매춘부, 스파이...... 암살자에게도 넘어가는 것일까 ?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토머스의 눈에 수상의 어깨가 문득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상은 돌아섰다. "토머스, 드골 장군은 나의 친구야. 장군의 신변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닥치고, 더구나 그 위험이 영국인에 의해서 진행시켜 주기 바라네. 관계 부처의 책임자에게는 각 조직이 최선을 다해 협조하도록 내가 특별지시를 해두겠어. 그러니까 협조가 필요할 경우에는 즉시 의뢰하면 되네. 또, 조사의 진행에 필요한 자료는 어느 부서에 있는 것이라도 마음대로 써도 좋아. 모든 권한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프랑스 측과는 자유롭게 협조하게나. 이것은 수상의 명령일세. 그리고 프랑스 측이 쫓고 있는 인물이 누구이든, 영국 시민이 아니거나 또한 영국을 기지로 행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 판명되었을 경우, 그때는 조사를 끝내도 좋네. 그리고 직접 내게 보고해 주게. 그러나 만일에 이 칼스로프가, 또는 영국의 여권을 소지하고 인물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자네가 그 인물을 막아야만 하네. 어떤 자든 절대로 막지 않으면 안되네. 알겠는가?" 이 이상 명확한 지시는 있을 수 없다. 어떤 정보인가가 수상의 귀에 들어가서 이런 지시가 내려진 것이라고 토머스는 추리했다. 그 정보란 조사의 빠른 진전을 바라지 않는 인간이 있다고 하는 수수께끼 같은 말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물론 확신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수상은 고개를 끄덕여서 면담이 끝났음을 알렸다. 토머스는 일어나서 문 있는 곳까지 가더니 거기서 갑자기 멈춰섰다. "저...... 수상 각하." "뭔가?" 도미니카에서 있었다는 그 칼스로프에 관한 소문에 관한 겁니다. 그것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에 알려도 괜찮을지요." "그 남자의 과거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프랑스에서 찾고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현시점에서 발견되었는가?" "아닙니다. 2년 전의 소문 말고는 찰스 칼스로프를 의심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그 거처를 뒤쫓고 있는 칼스로프 역시 과연 1961년 1월에 카리브 쪽에 있었던 칼스로프와 동일인물인지 아닌지도 판명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동일인물이 아닐 때에는 조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상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2년이나 지나 버린, 아무런 뒷받침도 측을 공연히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좋지 않아. '뒷받침이 없는'이라는 내 말을 잘 음미하도록 하게. 어쨌든 조사를 진행해 주게. 어느 칼스로프라도 좋아. 트루히요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소문을 뒷받침할 정보를 얻는 대로 즉시 프랑스에 그 사실을 연락하고, 어디에 있든 그 인물을 잡아내도록." "알겠습니다." "미안하지만 해로비에게 이리로 오라고 해주게나. 즉시 자네의 권한을 보증하는 명령을 내리고 싶으니까." 그 뒤 저녁때까지 토머스의 사무실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특별국에서 가려뽑은 6명의 경감으로 기동부대를 편성했다. 한 사람은 휴가마저 취소되어 기밀정보를 훔쳐 동구의 어느 나라 대사관 소속 무관에게 팔아넘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의 자택을 감시하고 있던 두 사람은 그 임무가 취소되고, 또 다른 두 사람은 지난번 토머스와 함께 이름 없는 살인자를 찾기 위하여 특별국의 자료를 조사한 이들이고, 마지막 하나는 마침 비번이라 자택의 온실 손질을 하고 있는 것을 전화로 불러 즉시 사무실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토머스는 전원을 모아 놓고 자세하게 임무의 내용을 설명하고는 누설 금지를 맹세케 하고, 그리고는 끊임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응답했다. 오후 6시 지나서, 찰스 해럴드 칼스로프의 세금 환부에 관한 서류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세무서에서 받으러 갔다. 그리고 칼스로프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그의 아파트 부근으로 탐문수사를 나갔던 또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은 전화에 매달려서 일에 정신이 없었다. 4년 전의 여권 신청서에 첨부된 사진은 사진반에서 복사하여 각자 한 장씩 호주머니에 넣었다. 용의자의 납세 기록을 보니 작년에는 계속 실업자였으며, 재작년은 외국에 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부터 61년에 걸친 회계연도에는 그 대부분을 영국 유수의 소형화기(小型火器) 제조회사의 수출판매를 맡고 있는 조그만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다. 토머스는 곧 그 회사의 전무 이름을 조사했다. 전무는 서리 군(郡)의 별장에 묵고 있었다. 곧 전화로 면담 공용차로 버지니아 워터 마을로 향했다. 패트릭 몬슨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이미지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풍모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흥청거리게 돈이 벌리는 죽음의 상인이 죽음의 신에 둘러싸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몬슨의 입을 통해 칼스로프가 1년 못되게 그 회사에 다녔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중요한 것은 1960년 12월부터 61년 1월까지 육군에서 불하된 기관단총을 트루히요의 경찰대에 팔기 위해서 도미니카의 수도인 시우더드 트루히요에 파견되었었다는 사실이다. 토머스는 불쾌한 얼굴로 몬슨을 보았다. 그런 무기가 뒤에 어떻게 쓰였던지 관계 없다고 억지로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칼스로프는 어째서 허둥지둥 도미니카를 떠났나?" 몬슨은 이 질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쎄, 그것은 트루히요가 살해되었기 때문이지, 말할 것도 없이. 몇 시간 뒤에 그의 정권이 무너졌으니 말이다. 구정권에 무기와 탄약을 팔기 위해서 있던 사람을 신정권에서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는 말 안 해도 알 일이니, 칼스로프가 즉시 국외로 탈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토머스는 생각에 잠겼다. 그럴듯한 핑계다. 나중에, 칼스로프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장군이 매복중이던 자에게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그는 경찰대의 대장실에서 흥정중이었다고 하며, 경찰대장은 파랗게 질려서 언제라도 탈출할 영지로 허둥지둥 돌아갔다. 몇 시간 뒤에는 구정권의 추종자들을 피로 제사지내려는 폭도의 무리가 거리를 메웠다. 칼스로프는 어부를 매수하여 가까스로 섬을 탈출했다는 거였다. 다 듣고 난 토머스는 물었다. 칼스로프는 어째서 회사를 그만두었나? 해고시켰다. 왜? 몬슨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총경님, 중고 무기 장사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정말 먹느냐 먹히느냐이지요. 경쟁자가 무엇을 팔려고 하며, 또 값은 얼마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같은 고객을 잡고 있는 이들에게는 사활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점에서 칼스로프는 회사에 충실치 못했다고나 런던 시내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토머스는 그의 설명을 되십어 보았다. 도미니카에서 허둥지둥 도망쳐 나온 이유에 대해서 당시 칼스로프가 했다는 설명은 이치에 맞는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트루히요 암살을 둘러싸고 거론되고 있다는 SIS 요원의 보고와 모순되며,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한편, 몬슨의 이야기에 의하면 칼스로프는 배신행위를 서슴지 않는 악당인 모양이다. 그는 무기회사의 대표로서 무기를 팔러 섬으로 건너가긴 했지만, 동시에 혁명군 쪽과도 통했었던 것은 아닐까? 몬슨이 한 말 가운데 토머스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칼스로프는 입사했을 때에 라이플에 사격의 명수라면 라이플의 전문가라야 한다. 물론 입사 후에 사격을 익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년이 채 못되는 시간이라면 풋내기와 다를 바 없다. 반(反) 트루히요의 빨치산이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단 한 발로 저지할 것을 기대하고 풋내기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을 고용할까? 고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칼스로프의 설명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닐까? 토머스는 혼자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으로는 아무런 증명도, 또 반증도 될 수 없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니 토머스는 입맛이 썼다. 그러나 사무실에 돌아가자 그의 기분을 일시에 바꾸어 놓을 만한 뉴스가 탐문수사를 나갔던 경감에게서 전화연락이 들어온 것이다. 종일 일하느라고 밖에 나가 있던 이웃 여자가 귀가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여자의 증언에 의하면 칼스로프는 며칠 전 스코틀랜드에 놀러 간다고 하면서 아파트를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문 앞에 세워놓았던 차의 뒷좌석에는 낚싯대 비슷한 것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낚싯대? 더운 사무실 안에서 토머스는 갑자기 전신에 오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른 경감이 돌아왔다. "총경님." "뭔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만." "총경님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아십니까?" "아니, 자네는?" "그런대로 하는 편이지요. 어머니가 프랑스인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프랑스의 사법경찰이 찾고 있는 그 살인자에게는 재칼이라는 암호명이 붙어 있었다지요?"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예. 프랑스어로는 재칼을 '샤칼'이라고 하거든요. 철자로는 'CHACAL'입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녀석은 말장난이라고 할까 엉터리 농담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좋아하는 놈일지도 모릅니다. 이 CHACAL은 찰스(CHARLES)의 처음 석 자와 칼스로프(CALTHROP)의 처음 석 자를 -- ." 토머스는 사무실이 떠나갈 듯한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황급히 수화기 쪽으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