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칼의 날(상) -포사이즈 장편추리소설 ----- 차 례 ----- 제 1 장 제 2 장 제 3 장 제 4 장 제 5 장 제 6 장 제 7 장 제 1 장 오전 6시 45분 -- 3월의 파리는 아직 추웠다. 바로 지금 한 사나이가 총살형을 당하려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의 한기가 기분 탓인지 한결 싸늘하게 느껴졌다. 1963년 3월 11일, 이블리 기지의 병영 안 광장에서 프랑스의 한 공군 중령이 얼어붙은 땅속에 박힌 말뚝에 손을 뒤로 묶인 채 20미터 전방에 늘어서 있는 총살집행대의 병사들을 점점 더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갈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그 자리의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흐트려 놓았다. 장 마리 바스찬 칠리 중령의 얼굴에 눈가리개가 씌어지자 이 세상의 빛이 카빈 총에 실탄을 장진하고 노리쇠를 당겼다. 그 메마른 금속음은 신부의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를 한층 무력하게 만들었다. 담장 밖에서는 대형 트럭이 그 앞을 가로막은 차를 향해서 요란한 클랙슨으로 호통치고 있었다. 그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는 총살대 지휘관이, "준비!" 하는 구령 소리를 삼켜 버렸다. 이윽고 총소리가 진동했지만, 이제 겨우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시가지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고, 한 떼의 비둘기만이 놀라서 푸드덕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았을 뿐이다. 몇 초 뒤에 울린, 그의 죽음을 확인하는 총소리도 담장 밖에서 몰려오는 차의 소음으로 지워져 버렸다. ㏊?당신은 제게 OAS(Organisation Arm-e Secr-te : 비밀군사조직) 암살단의 리더인 칠리 중령의 사형집행은 그것을 끝으로 해서 그 음모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것은 하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을 뿐이었다. 왜?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이 3월의 아침, 파리 교외의 군인형무소 광장에서 한 영관급 장교가 총살형을 당하기까지의 경위를 먼저 설명해야만 한다...... 마침내 태양이 엘리제궁의 높은 담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고 기다란 그림자가 앞뜰을 덮으면서 평온한 시간을 가져왔다. 그 해 여름 들어 최고의 더위를 기록한 그날은 저녁 7시가 되었는데도 수은주는 거리마다에는 파리지앵들이 주말을 교외에서 보내자고 졸라대는 마누라와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자동차나 기차에 밀어넣고 줄을 지어서 파리를 빠져나갔다. 1962년 8월 22일, 파리 교외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무리의 사나이들은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인 샤를 드골 장군이 이날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리지앵들이 강이나 해변의 시원함을 찾아서 거리의 열기로부터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엘리제궁의 화려한 파사드(건물의 정면) 깊숙이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각료회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겨우 찾아온 땅거미에 열기가 한풀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갈색 자갈을 DS 살롱이 마치 한 줄로 엮어 놓은 것처럼 원을 그린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제일 먼저 땅거미가 찾아든 서쪽 담장의 짙은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운전사들은 콧대 높은 주인들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으며, 언제나처럼 실없는 잡담에 열을 올렸다. 각료회의는 전에 없이 장시간 계속되어서, 참석자들이 특별한 결론도 없이 회의를 끝낸 시각은 오후 7시 반쯤이었다. 황금색 쇠줄과 훈장으로 제복을 장식한 안내원이 파사드 현관의 유리문 너머에 모습을 나타내어 운전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운전사들은 피우던 담배를 자갈 바닥에 내던지고는 구두로 밟아 문질렀다. 정문 옆의 초소에 로 신법이 차림새를 가다듬고 바둑판 무늬처럼 생긴 커다란 철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운전사들은 각자의 운전석에 가서 앉았다. 장관들이 떼를 지어 현관 유리문 너머에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안내원이 문을 열자 장관들은 주말의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면서 현관 앞 층계를 소란스럽게 내려왔다. 서열에 따라서 각자의 DS 살롱이 차례차례 층계 아래에 와서 서자 안내원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뒷문을 연다. 장관들은 차례대로 자기의 승용차에 올라타고 경비원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포부르 생 토노레 가(街)로 사라졌다. 10분 뒤에는 장관들은 이미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앞뜰에 남아 있던 두 다가왔다. 대통령 깃발이 펄럭이는 첫번째 대형차를 운전하고 있는 인물은 프란시스 마르라는 경관이다. 그는 파리 외곽 사토리에 있는 경비대 본부 겸 훈련소에서 파견된 베테랑이었다. 그는 과묵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장관 차를 모는 운전사들의 신나는 수다에도 끼지 않았다. 그 얼음같이 냉정한 신경과 신중하면서도 능숙한 운전 기술은 대통령 전속 운전사로서는 필수조건이었다. 차 안에는 마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 DS 19의 운전사 역시 사토리에서 파견된 경관이었다. 7시 45분, 또 한 무리가 현관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앞뜰에 있던 담당관들은 또다시 긴장으로 몸이 굳어졌다. 언제나처럼 짙은 회색 더블 양복에 검은 너머에 나타났다. 대통령은 부인인 이본을 먼저 문밖으로 내보내고 곧 뒤따라 나와서 부인의 팔을 끼고 층계를 내려왔다. 시트로엥 앞에서 대통령 부처는 좌우로 갈라졌다. 부인은 뒷좌석의 왼쪽에서, 드골 장군은 오른쪽에서 각기 차에 올랐다. 대통령의 사위이며 당시 기갑사단의 참모장으로 있던 알랭 드 부아슈 대령이 좌우의 문이 꼭 닫혀졌는지를 확인하고는 마르의 옆자리에 앉았다. 대통령 부처를 따라서 층계를 내려온 경호원 중에서 두 남자가 재빨리 두 번째 차에 탔다. 한 사람은 알제리 카빌리아 지방 출신의 앙리 드쥐다인데, 당당한 경호원이었다. 그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고는 왼쪽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거운 리볼버 권총을 느슨하게 해놓고는 등받이에 기대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눈은 앞서가는 대통령의 차가 아니고, 인도나 길모퉁이를 끊임없이 살폈다. 또 한 사나이가 뒤에 남은 경비원 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몇 마디 귓속말을 하고서 뒷좌석에 올라탔다. 대통령 경호대장인 장 뒤클레 총경이다. 서쪽 담 옆에서 흰 헬멧을 쓴 경관 두 명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어두컴컴한 그늘에서 나와 문 쪽을 향해 갔다. 두 대의 오토바이는 정문 앞에서 2-의 간격을 두고 멈춰섰다. 마르는 첫번째 시트로엥을 층계 옆에서 출발시키고 정문을 향해 커다랗게 커브를 틀어서 선도하는 번째의 시트로엥이 그 뒤를 따랐다. 그때가 오후 7시 50분이었다. 다시 정면의 철문이 열리고 차들은 부동자세를 한 위병 앞을 지나서 포부르 생 토노레 가로 나갔다. 그리고 생 토노레 가에서 일행은 마리니 가(街)로 들어섰다. 밤나무 가로수 그늘에서 흰 헬맷을 쓴 한 청년이 스쿠터(한 발을 올려 놓고 달리는 스케이트)에 올라탄 채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서 있던 인도 옆을 출발하여 일행을 뒤따랐다. 8월의 주말 치고는 교통량이 적어서 대통령의 통과를 예고하는 무선통신은 일체 내보내지 않았다. 선도하는 오토바이의 사이렌 소리로 그것을 알아차린 교통경찰이 통과를 제지시켰다. 대통령을 호위한 차들은 가로수 그늘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큰길을 속력을 내어 통과했다. 아직은 저녁 노을로 밝은 클레망소 광장으로 들어가서 알렉상드르 3세교 쪽으로 향했다. 스쿠터를 탄 청년은 대통령 일행의 차들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그 뒤를 따를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넌 마르는 선도하는 오토바이를 따라 제네랄 가리에니 가(街)를 지나서 넓은 앙발리드 대로로 들어섰다. 이때 스쿠터에 타고 있던 청년은 결정을 내렸다. 앙발리드 대로와 바른 가(街)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그는 속력을 늦추고 모퉁이에 있는 카페 앞에 스쿠터를 세웠다. 카페에 들어선 그는 주머니에서 토큰을 汰? 좋은 장소 같구려." 신청했다. 장 마리 바스찬 칠리 중령이 무돈 시의 외곽에 있는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이는 35세, 세 아이의 아버지, 공군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고 있었으나, 샤를 드골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격렬한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드골은 1958년에 자신을 권좌에 올려놓은 조국 프랑스와 그 국민을 배신하고 알제리를 민족주의자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고 그는 보고 있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잃었다고 해서 그 자신이 무엇을 잃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의 행동에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 때문은 아니었다. 애국자로 배반한 자를 처단하는 일이 곧 조국을 위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당시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은 상당수 있었지만, 드골을 살해하고 그 정권을 무너뜨리겠다고 맹세한 OAS의 과격파에 버금갈 정도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스찬 칠리는 이 과격파의 핵심 요원이었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는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바텐더는 그에게 수화기를 건네주고서 카페의 한쪽 구석에 설치해 둔 TV를 조정하러 갔다. 바스찬 칠리는 한동안 전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이윽고, "알았어. 수고했어." 하고 조그맣게 말하고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맥주값은 아까 이미 지불해 두었다. 그는 천천히 카페를 나와 인도에 신문을 꺼내어 그것을 신중하게 두 번 펼치는 흉내를 냈다. 거리 반대편에 있는 아파트 2층에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아가씨 하나가 레이스 달린 커튼을 닫고서 방에 모여 있는 12명의 사나이들 쪽을 보았다. "제2루트예요." 그들 중에서 5명의 젊은이는 살인에 관해서는 아직 아마추어들이었는데, 그들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더니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운동을 멈추고 흥분으로 들떴다. 다른 7명은 그들보다는 연장자이며, 냉정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연장자인 알랭 부그르네 드 라 토크네 중위는 바스찬 칠리 다음가는 부지휘관이며, 시골 지주의 극우주의자(極右主義者)이다. 나이는 35세,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다. 그 방에 있는 12명의 과격분자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는 조르주 와탱이었다. 단단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어깨 위에 각이 진 아래턱이 위압감을 주는 이 39세의 OAS 광신자는 본래 알제리의 농업기술자였지만, OAS에 참가하고 나서 2년 뒤에는 조직에서 가장 난폭한 살인자로 부상했다. 한쪽 다리에 오래 된 상처가 있어서 '절름발이'로 불리고 있었다. 아가씨의 말을 들은 이 12명의 사나이들은 뒷문 층계를 내려가 골목길로 나섰다. 거기에는 여섯 대의 차가 -- 모두 훔치거나 빌린 것들뿐이다 -- 한 줄로 세워져 있었다. 시간은 오후 7시 55분. 습격할 장소를 물색하고는, 사격의 각도와 달리는 차의 속도와 거리, 그리고 달리는 차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탄약의 강도 등을 정확히 계산해 두었다. 그가 습격 장소로 택한 곳은 리베라시옹 가(街)라고 불리는 긴 직선도로로, 프티 클라마르의 교차로로 통하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러했다. 복수의 저격수를 포함한 제1그룹이 교차로에서 200미터 떨어진 도로상에서 대통령이 탄 승용차에 총탄 세례를 퍼붓는다. 이 그룹은 도로 옆에 주차해 놓은 밴의 뒤에 몸을 숨기고서 달려오는 승용차를 향해 아주 낮은 각도에서 사격을 시작하여 저격수에게 최대한 시간 여유를 준다. 바스찬 칠리의 계획에 의하면 첫번째 150발의 총알이 명중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승용차가 정지함과 동시에 제2그룹이 옆길에서 뛰어나와 아주 가까이에서 뒤따라오는 호위차에 사격한다. 이렇게 두 그룹은 몇 초 사이에 대통령 일행을 해치우고 다른 골목에 준비해 둔 세 대의 도주용 차로 현장에서 사라진다. 이 습격부대의 13번째 요원인 바스찬 칠리는 망보는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오후 8시 5분까지 두 그룹은 각기 정해진 위치에 배치되었다. 기습 지점에서 파리 쪽으로 100미터 되는 곳의 한 버스 정류장에 바스찬 칠리는 신문을 들고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밴의 옆에 서 있는 제1그룹의 지휘관인 세르주 베르니에에게 신문을 흔들어서 신호를 베르니에는 발 아래 풀밭에 엎드려 있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와 동시에 토크네가 기관단총을 가진 '절름발이'인 와탱을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도로로 몰고 나와 경호원이 탄 차를 저지하기로 되어 있었다. 프티 클라마르의 도로 한쪽에서 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가벼운 금속음이 울리고 있을 무렵, 드골 장군의 차의 행렬은 정체현상을 빚는 파리 중심가를 빠져나와 차량 통행이 뜸한 외곽 지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속력은 시속 100km에 가까웠다. 도로가 활짝 트인 지점에서 프란시스 마르는 흘끔 손목시계를 보고는 뒤에 앉아 있는 노장군의 짜증을 알아차리고 더욱 속력을 냈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뒤로 오토바이가 선도하는 그런 부산스러운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언제나 가능한 한 선도 없이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 행렬은 그러한 편성으로 프티 클라마르의 제네랄 르클레르크 로(路)로 접어들었다. 시각은 오후 8시 17분. 거기서 약 1마일 떨어진 곳에서 바스찬 칠리는 중대한 실수의 결과를 맛보고 있었다. 하긴 그는 몇 달 뒤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비로소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는 기습 계획의 시간표를 작성할 때, 달력을 조사하여 8월 22일의 일몰 시각은 오후 8시 35분이며, 설령 드골이 정상적인 스케줄보다 늦는다 해도 -- 사실 늦었지만 -- 시간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1961년의 것이었는데, 1962년의 8월 22일은 8시 10분에 일몰이 온 것이다. 이 25분의 차이가 프랑스의 역사를 오늘과 같이 만든 것이다. 8시 18분, 바스찬 칠리는 시속 약 110km로 리베라시옹 가(街)를 자기 쪽으로 질주해 오는 차의 행렬을 확인했다. 그는 미친 듯이 신문을 흔들었다. 거기서 100미터 떨어진 도로의 반대쪽에서 베르니에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흐릿한 사람의 움직임을 똑똑히 보려고 초조하게 일몰의 땅거미 속에서 신경을 온통 눈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중령이 신문을 흔들었나?" 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 전용차의 뾰족한 코끝이 버스 정류장 앞을 통과하여 그의 시선에 "쏴!" 그는 발 밑에 엎드려 있는 부하에게 소리쳤다. 시속 110 킬로미터의 고속으로 눈앞을 지나가는 목표물을 향해 그들은 90도 각도에서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전용차에 12발의 총알이 명중한 것은 살인자들의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총알의 대부분은 시트로엥의 뒤쪽에 명중했다. 타이어 두 개가 총격으로 빠져나갔다. 펑크에 대비해서 자동 튜브를 장치해 놓았지만 너무도 급격하게 공기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고속으로 질주하던 차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앞바퀴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프란시스 마르의 운전 기술이 드골의 생명을 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타이어를 총격으로 꿰뚫고 있는 동안, 다른 요원들은 어스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시트로엥의 뒤창을 향해 매거진(연발총) 탄환을 퍼부었다. 몇 발은 차체를 관통하고, 어떤 총알은 뒤창을 뚫고 대통령의 코 몇 -- 앞을 날아갔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아슈 대령이 뒤를 돌아보며 대통령 내외에게, "엎드려요!" 하고 소리쳤다. 드골 부인은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장군은, "또 시작이군!" 하고 차갑게 중얼거리며 깨어진 뒤창 너머를 돌아다보았다. 마르는 흔들리는 핸들을 꼭 잡고 악셀을 늦추면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엔진을 고속으로 회전시킨 시트로엥은 제2그룹이 대기하고 있는 옆길 달려나갔다. 그 뒤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경호차가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 아베뉴 뒤 부아에서 엔진을 걸어놓은 채 대기중이던 부그르네 드 라 토크네는 고속으로 접근해 오는 목표물을 앞에 놓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동차를 충돌시켜 대통령과 함께 죽느냐, 아니면 조금 늦게 클러치를 넣고 목표물에 접근하느냐? 그는 결국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옆길에서 차를 몰고 나가 대통령 차의 행렬 곁에 붙었으나, 그의 바로 옆에 온 것은 드골의 승용차가 아니고 경호원인 드쥐다와 뒤클레 총경이 탄 차였다. 오른쪽 창으로 상반신을 내민 와탱은 부서져 나간 유리창을 통해서 드골의 오만한 옆얼굴이 보이는 시트로엥의 뒤쪽을 향해 기관총의 "왜 반격하지 않나?" 초조하게 드골이 물었다. 드쥐다는 3미터쯤 떨어져 있는 OAS의 살인자를 쏘려고 필사적이었지만, 옆에 있는 운전사가 걸리적거려서 겨냥할 수가 없었다. 뒤클레는 운전사에게 대통령의 차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OAS의 차는 갑자기 후퇴했다. 뒤쪽에 붙어 있던 두 대의 오토바이도 한 대는 갑자기 옆길에서 튀어나온 토크네의 차에 몰려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고 뒤따라왔다. 차의 행렬은 로터리로 접어들어 그곳을 지나 비라크블레를 향해서 계속 달렸다. 습격 지점에서 기습을 다시 시도할 여유는 이미 없었다. 다음 기회를 기다릴 이용한 세 대의 차를 버린 채 도주용 차에 올라타고 짙어져 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에 설치되어 있는 통신기로 뒤클레 총경은 비라크블레를 불러내어 간단히 사건 경위를 전했다. 10분 뒤에 일행은 비라크블레 공항에 도착했으나, 드골 장군은 그대로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는 에이프런(격납고 앞의 광장)까지 차를 몰라고 했다. 시트로엥이 멈추자 수많은 장교와 담당관들이 순식간에 차를 에워싸고 재빨리 문을 열어서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드골 부인을 부축해 내렸다. 장군은 반대쪽 문으로 내려서 목덜미에 붙어 있는 유리 조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허둥대며 말을 걸어오는 장교들을 무시하고 차의 "자, 집으로 갑시다." 부드럽게 부인에게 말을 건넨 장군은 비로소 공군 장교들에게 OAS에 대한 평을 한마디했다. "녀석들은 총 하나 제대로 못 쏘는 놈들이었어." 그는 싸늘하게 이렇게 내뱉고는 부인을 헬리콥터에 태우고 자신도 그 옆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드쥐다가 올라타고 대통령 부처는 주말을 보내기 위해 시골 별장을 향해 날아갔다. 프란시스 마르는 아직도 잿빛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 앞뒤 바퀴는 완전히 펑크가 나고 시트로엥은 림(바퀴의 테두리 쇠)만으로 달려온 것이다. 뒤클레는 나직하게 마르에게 위로의 말을 한마디하고는 묵묵히 차 안을 청소하기 전세계의 저널리스트들이 이 암살미수사건을 뒤쫓았으나 정보 부족 때문에 추측 기사로 지면을 메우고 있는 동안 국가경찰을 주체로 한 프랑스 경찰은 비밀정보기관과 헌병대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경찰 역사상 최대의 수사활동을 개시했다. 그것은 마침내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던 대대적인 인간 사냥 작전으로 발전했다. 이를 능가한 인간 사냥은 나중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의 암살자를 대상으로 한 작전의 경우뿐이었다. 이 암살자의 정체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고, 지금도 경찰의 자료에는 '재칼'이라는 암호명으로만 남아 있다. 경찰이 수사 진전의 단서를 잡은 것은 9월 3일이었다. 경찰의 수사활동에서 흔히 의례적인 검문을 실시하고 있을 때였다. 리용 시 남쪽에 있는 발랑스의 변두리, 파리와 마르세유 사이를 잇는 국도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네 명의 남자를 태운 승용차가 정지 명령을 받았다. 경관들은 그날 이미 수백 대의 차를 정지시켜서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신분증명서를 조사했었는데, 그 승용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남자는 분실했다고 했지만 경관은 이 또한 관례에 따라 간단한 조사를 하기 위해 그 남자와 다른 세 명을 발랑스로 연행했다. 발랑스에서 조사해 본 결과, 다른 세 명은 문제의 남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다만 편승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세 사람은 즉시 석방되었다.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즉시 그의 지문조회가 파리로 보내졌다. 12시간 뒤에 회답이 왔다. 그 지문의 주인은 22세의 외인부대 탈영병으로서, 군법회의에 회부된 자였다. 그러나 이름은 본인이 진술한 그대로 -- 피에르 다니 마가도. 마가도의 신병은 사법경찰 리용 지방 본부에 송치되었다.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경비하던 경관이 장난삼아 물었다. "프티 클라마르 사건은 어떻게 된 거야?" 마가도는 힘없이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그래, 뭐가 알고 싶소?" 지방본부의 간부들은 뜻밖의 수확에 숨을 죽여 그의 진술에 귀를 기울이고, 속기 기록했다. 그는 장장 여덟 시간에 걸쳐서 노래하듯 진술했다. 마지막에 가서 그는 프티 클라마르 습격에 참가한 인물 전원과, 계획의 입안이나 무기 조달에 협력한 9명의 공범자 이름까지 모두 밝혔다. 모두 22명에 이르는 전용이었다. 즉각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경찰에서도 쫓아야 할 상대를 알고 하는 수사였다. 결국 경찰의 추적에서 빠져나간 자는 한 명뿐이며, 그는 지금까지도 체포되지 않고 있다. 그 인물은 누구인가? 다름아닌 조르주 와탱이며, 그는 현재 OAS의 간부들과 함께 알제리에서 철수한 다른 민간인 속에 섞여 스페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리고 여타 공동 주범에 대한 심문과 기소 준비는 같은 해 12월에 완료되어 이듬해인 1963년 1월에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OAS는 드골 정권에 재차 정면 공격을 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프랑스의 정보기관은 이에 대해 필사적인 반격을 가했다. 명랑한 파리지앵의 생활 이면에서, 문화와 문명의 평화로운 가면 밑에서 가장 격렬하고 처참한 지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비밀정보기관은 '외국자료정보대책본부'로 불리고 있는데, 보통은 그 머리글자를 따서 SDECE라고 약칭한다. 그 임무는 외국에서 하는 첩보 활동과 국내에서 하는 대첩보활동 등 두 가지로 나뉘지만, 각 부서의 일은 가끔 순전히 정보만을 취급하는 부서로서 7개의 과로 나누어져 있다. 제1과 -- 정보분석, 제2과 -- 동부 유럽, 제3과 -- 서부 유럽, 제4과 -- 아프리카, 제5과 -- 중동, 제6과 -- 극동, 제7과 -- 미국 및 서반구 전역. 제2부는 대첩보. 제3부와 제4부는 특별히 공산권을 취급하는 사무실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제6부는 경리, 제7부는 총무담당이다. 제5부는 특별한 명칭이 없으며, 다만 -- 액션(행동)이라는 표시만 붙어 있다. 대 OAS 전쟁의 핵심이 된 것이 바로 이 액션 서비스(행동부대)이다. 파리 북동쪽의 을씨년스러운 거리, 포르트 데 리라에 가까운 불바르 모르티에 변두리에 있는 낡은 2층 건물의 본부에서 액션 서비스 나갔다. 이 사나이들은 거의가 코르시카인이며, 소설 등에서 나오는 '터프 거이'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우락부락한 패거리이다. 그들은 먼저 기초훈련으로 육체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단련을 받은 다음, 사토리로 옮겨져 특별훈련반에서 온갖 전투기술을 몸에 익힌다. 소형 화기를 써서 싸우고, 맨손으로 격투, 유도 등. 그리고 무선통신, 폭파와 파괴 공작, 심문, 고문, 납치, 방화, 암살 등을 배운다.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대원도 있지만, 수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전세계의 수도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는 대원도 있다. 그들은 임무 수행중에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주어져 있어서 때때로 그것을 OAS의 행동이 점점 난폭, 잔인해짐에 따라서 마침내 SDECE의 국장인 우젠 기보 장군은 맹견에게 물렸던 재갈을 벗기듯이 그들에 대한 일부 제한을 완전히 풀어 주어 OAS와 맞붙게 했다. 그 중에서 몇 명은 OAS의 요원이 되어 간부회의에까지 침투했다. 거기서 그들은 정보를 보내어 다른 동료들의 행동에 길잡이 노릇을 했다. 프랑스나 그 밖의 감시가 엄한 나라에 잠입한 많은 OAS의 밀사들은 이 테러리스트 조직의 내부에 침투한 액션 서비스 공작원이 제공한 정보에 의해서 차례차례 검거되었다. 또 교묘한 유도작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내에 잠입하려고 하지 않는, 지명수배된 자들은 가차없이 국외에서 살해되었다. 다른 이유로 실종된 대부분은 그들이 액션 서비스에 의해서 살해되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물론 OAS도 폭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 은밀한 역할 때문에 '수염'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액션 서비스의 공작원을 경관보다도 더 증오했다. 알제 시내에서 드골파 정권과 OAS와의 사이에 펼쳐진 처참한 권력 투쟁의 최종 단계에서 OAS는 7명의 '수염'을 포로로 잡았는데, 며칠 뒤 그들은 귀와 코가 잘려져 나간 시체가 되어서 발코니며 전신주에 매달려 있었다. 지하 전쟁은 그와 같은 양상으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누가, 어디서, 누구의 손에 의해 고문당하고 죽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개개의 내막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 OAS의 조직 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암흑가에서 악명을 떨치던 프로 청부살인자도 있었고, SDECE의 대원이 된 뒤에도 옛날 패거리들과 접촉을 계속하면서 종종 더러운 일에 가담하는 자도 있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는 '비밀' 경찰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드골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인 자크 포칼의 지령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비밀' 경찰은 있지도 않았다. 비밀 경찰이 한 짓이라고 소문난 사건은 모두가 액션 서비스의 공작원이나, 일시적으로 조직원이 되었던 암흑가의 보스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파리와 마르세유의 암흑가를 쥐고 흔들며 액션 서비스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벤데타'(복수)의 전통이 있다. 그들은 모종의 임무에 종사하고 있던 동료 7명이 알제에서 학살된 뒤, OAS에 대해서 복수를 선언했다. 이렇게 1944년 남프랑스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연합군에 협력한 당시의 암흑가의 코르시카인들(물론 그들은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 전후 그들은 협력의 결과로서 코트 다쥘 일대 비합법사업의 이권을 한손에 쥐었다.)과 같은 식으로 60년대의 코르시카인들은 OAS에 복수를 맹세하고 프랑스를 위해서 싸운 것이다. OAS요원 중 대부분은 피에누아르(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인)이며, 코르시카인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서로의 싸움은 때로는 동족상잔이라는 양상을 띠었다. 진행되고 있는 사이에 OAS도 또한 작전을 개시했다. 그 조직의 기수이며 프티 클라마르 사건의 배후 조종자는 앙투안 아르그 대령이었다. 프랑스 명문대학의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이공과대학)를 졸업한 아르그는 우수한 두뇌와 정열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드골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의 소위로서 나치스의 손아귀에서 프랑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싸웠다. 나중에는 알제리 파견군의 기병 연대장으로 알제리에서 근무했다. 그는 땅딸막하고 유난히 힘이 센 남자로서, 빛나는 무공을 세운 비정한 군인이었다. 그리고 1962년, 망명 OAS의 작전 주임(사실상의 보스)이 되었다. 심리전에 경험이 많은 그는 드골 정권에 부문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작전의 일부로 그는 OAS의 정치조직과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 의장인 전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에게 서유럽 제국의 주요 신문, TV와의 인터뷰를 하게 하여 드골 장군에 반대하는 OAS의 입장을 설명케 할 계획을 세웠다. 아르그는 뛰어난 머리 덕분에 일찍이 프랑스 육군에서 최연소 대령이 되었고, 현재는 OAS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었는데, 이제 그는 그 지능을 거침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그는 주요한 TV 네트워크, 신문 특파원과의 일련의 인터뷰를 마련했고, 전 외무장관을 지낸 노정치가는 OAS의 불쾌한 활동을 능란한 말솜씨로 간단히 숨겨 버리는 데에 아르그가 기획 입안한 일련의 이 선전 공작의 성공은 프랑스 전국의 영화관이며 카페에서 폭발하는 플라스틱 폭탄이나 테러 행위에 못지않은 심리적인 충격을 프랑스 정부에 주었다. 그리고 2월 14일, 또다시 드골 암살음모가 발각되었다. 그 다음날 장군은 생 드 마르에 있는 사관학교에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 암살계획에 의하면 장군이 현관 홀로 들어선 순간, 이웃 건물에 숨어 있던 암살자가 등뒤에서 사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음모 때문에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장 비숑, 포병 대위 로베르 푸아나르, 그리고 사관학교의 영어 교사인 폴 루슬레 드 리퍄크 부인 등 3명이었다. 저격수는 바로 그 조르주 와탱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는 장치된 소총이 푸아나르의 아파트에서 발견되어 위의 세 사람이 체포된 것이다. 와탱과 소총을 사관학교 안으로 들여보낼 방법을 찾기 위해 그들은 마리우스 토라는 준위를 끌어들였는데, 그가 배반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한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드골 장군은 다음날인 15일, 예정대로 사관학교의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때 마지못해 방탄시설이 장치된 차를 타고 가기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살계획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치했지만, 이 사실은 드골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그는 내무장관인 프레이를 불러들여 테이블을 두드리며 이 국내의 치안을 책임진 장관에게 호통을 "이 암살 소동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즉시 OAS의 간부를 잡아서 본때를 보인다는 안이 받아들여졌다. 프레이 장관은 고등군사재판소에서 진행중인 바스찬 칠리 재판의 결과를 분명히 예상하고 있었다. 샤를 드골을 어째서 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근본 명제에 대해서 칠리가 세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이로서는 좀더 강력한 억제책이 필요했다. 2월 22일, SDECE 제2부(대첩보/국내치안 담당)의 부장이 내무장관에게 보낸 서류의 사본 한 통이 액션 서비스 부장 앞으로 왔다. 다음은 그것을 발췌한 것이다 -- . 사람인 전 프랑스 육군 대령 앙투안 아르그의 거처를 알아내는 데 성공. 현지에 있는 아군 기관에서 온 정보에 의하면 그는 서독으로 도주하여 며칠 동안 그곳에 묵을 예정......' '위 정보로 판단하건대 아르그에 접근하여 그를 검거하는 일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됨. 단, 본 대첩보부가 보낸 그의 검거에 대한 협력 요청은 서독 치안당국에서 거부되었으며, 또한 서독 치안당국은 아군의 공작원이 아르그 및 다른 OAS 간부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아르그 검거는 최대의 스피드와 배려로 실행함이 필요함.' 이 일은 액션 서비스에 일임되었다. 간부회의에 참석한 아르그가 뮌헨으로 돌아왔다. 그는 은신처로 가지 않고 -- 회의를 열기 위해서였겠지만 -- 방을 예약해 둔 에덴 볼프 호텔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현관 홀에 들어선 순간 그는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두 남자의 제지를 받았다. 그는 그들을 독일 경관으로 생각하고 여권을 꺼내려고 가슴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그는 억센 그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탁물 운반차 안으로 실리고 말았다.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대들었으나 그들은 이제 프랑스어로 윽박질렀다. 이어서 거친 손이 코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다른 손이 복부를 손가락으로 찔려 어이없이 간단히 쓰러지고 말았다. 24시간 뒤, 파리의 케데조르페부르(통칭 '범죄해안') 36번지에 있는 사법경찰 형사부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경사에게 거친 음성으로 '짐을 깨끗이 꾸려 놓았어.' 라고 하며 앙투안 아르그가 빌딩 뒤에 주차해 있는 밴 안에 있다고 차디차게 말했다. 몇 분 뒤에 밴의 문이 강제로 열리고 너무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경관들 앞에 아르그가 굴러 떨어졌다. 24시간이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서, 경관들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섰다. 얼굴에는 코피가 말라붙어 있고, 입은 재갈을 물리어 상처가 나 있었다. 대령인가?" 하고 물었다. "그렇다."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액션 서비스는 어젯밤 비밀리에 그의 신병을 독일 국경 너머로 운반해서 사법경찰에 통보한 것이다. 경찰 주차장에 짐이 도착해 있다는 익명의 전화는 액션 서비스 터프 거이들의 유머였다. 결국 아르그는 1968년 6월까지 석방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액션 서비스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아르그를 체포한 것은 분명히 OAS의 사기를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 일은 아르그의 부지휘관이며, 이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아르그에 못지않은 전략가인 마르크 로댕 대령을 드골 암살 작전의 총지휘관 자리에 앉게 만든 것이다. 모든 되었다. 3월 4일, 고등군사재판소는 장 마리 바스찬 칠리에게 판결을 내렸다. 그와 다른 두 명은 사형이 선고되었다. '절름발이'인 와탱을 포함해서 도망중인 세 명에 대해서도 사형이 선고되었다. 3월 8일, 드골 장군은 피고측 변호인의 감형 탄원을 세 시간에 걸쳐서 말없이 듣고는, 사형이 선고된 두 명에 대해서 종신형으로 감형할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바스찬 칠리의 경우에는 판결대로 결재했다. 그날 밤 변호사가 그에게 이 결정을 전했다. "형 집행은 11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유히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는 다시 일러 주었다. "당신은 총살당하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칠리는 미소지은 얼굴을 흔들었다.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 프랑스인이라면 설령 총살대원일지라도 나를 향해서 총을 겨눌 리가 없어." 그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처형 뉴스는 오전 8시, 프랑스 국영방송을 통해서 들려왔다. 이 뉴스는 서유럽 각지에서 청취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어느 팡숑(민박 형태의 하숙집)에서도 들린 이 방송은 나중에 드골 장군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간 일련의 계획과 행동에 불을 당기게 되었다. 그 방에 있는 사람은 OAS의 새 작전 책임자인 마르크 로댕 대령이었던 것이다. 제 2 장 마르크 로댕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스위치를 끄고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아침식사를 그대로 두고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서 연거푸 피우고 있던 담배를 다시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댕기고는, 늑장을 부리고 있는 봄기운 탓에 아직도 눈에 그대로 덮여 있는 바깥 경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조용히, 그러나 원한에 차서 그는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은 대통령과 그의 정부와 액션 서비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격렬한 분노의 욕설이었다. 달랐다. 여위고 큰 키,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증오 탓인지 뼈만 앙상한 얼굴에 평소에는 비(非)라틴적인 냉정성으로 감정을 숨기고 있다. 그에게는 이공과대학 졸업과 같은 출세로 향한 패스포드는 처음부터 없었다. 가난한 제화공의 아들이었던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는 아직 10대의 청소년이었지만, 어선을 타고 영국으로 빠져나가 '롤렌의 십자가'를 기치로 내건 자유 프랑스군에 한 사병으로 입대했다. 중사에서 준위로 승진한 것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벌어진 혈전, 그리고 루크레르크 장군 인솔하에 참가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사투 속에서 간신히 쟁취한 것이었다. 그리고 파리 해방작전의 야전근무에 의해서 없는 장교복을 마침내 입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민간인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군대에 남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민간인으로서 그에게 어떤 생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껏 생활의 수단이라고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제화공 기술뿐이었다. 더구나 조국의 노동자 계급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과거의 레지스탕스 조직과 국내에 있었던 자유프랑스군도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군에 남았지만, 그 군대 안에서 그는 자기가 야전에서 피와 땀으로 얻은 장교의 계급장을 교실의 이론학습으로 간단히 손에 넣는 사관학교 출신의 풋내기들을 보고, 비애를 맛보았다. 그들이 그를 따돌려 버리고 계속 승진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비애는 더욱더 쌓이고, 나중에는 심각한 것이 되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멋지게 차려입은 부대가 연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야전에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역전의 정예부대인 식민지군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손을 써서 그는 식민지 파견군의 공정부대로 전속이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인도차이나 파견군의 중대장이 되었다. 거기에는 그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병사들이 있었다. 제화공의 아들이 땀을 흘리는 길밖에는 없었다.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났을 때에 그는 소령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본국에서 실의에 찬 1년을 보낸 다음, 이번에는 알제리로 파견되었다. 인도차이나에서 철수, 그리고 프랑스 본국에서 보낸 1년은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원한을 정치가와 공산주의자(그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에 대한 불 같은 증오로 바꾸어 놓았다. 군인이 프랑스를 지배하지 않는 한 국민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는 배반자와, 입만 살아 있는 무리들의 마수에서 조국을 해방시킬 수는 없다. 이 두 악마가 없는 곳은 군대뿐이다 -- . 눈앞에서 부하가 적탄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또 적의 포로가 되어 학살당하여 경험이 있는 야전장교가 모두 그렇듯이, 로댕은 자본가 계급이 고향에서 안온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피를 뿌리며 희생되는 병사들을 지상의 소금으로 숭배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인도차이나의 밀림에서 8년 동안이나 싸운 뒤 프랑스 본국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은 국민들 대부분이 전쟁터의 병사들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며, 또 적의 정보를 얻기 위해 포로를 고문하는 등의 사소한 일을 들고 나와 군부를 비난, 공격하는 좌익 문화인의 언동이었다. 이런 풍조는 마르크 로댕의 내부에서 어떤 하나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승진의 길이 막혀 있는 데에서 오는 원망과 중복되어 거의 광신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만 충분했다면 군은 베트민을 쳐부술 수 있었다고 그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도차이나의 포기는 그곳에서 죽은 -- 글자 그대로 개죽음이다 -- 몇 만에 이르는 젊은이들에 대한 배반이었다. 그런 배반은 이제 두번 다시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된다. 알제리가 그것을 실증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1956년 봄, 마르세유를 떠날 때의 그는 전과 같은 행복한 기분을 되찾았다. 그때의 그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알제리의 땅에서 자신이 일생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세계의 눈에 프랑스 육군의 영광을 보여 줄 위업이 달성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뒤 2년, 치열한 전투의 나날을 반란자들은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약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와 부하들이 아무리 반도(反徒)의 농민들을 죽여도, 아무리 마음을 쑥밭으로 만들어도, 아무리 FLN(민족해방전선)의 테러리스트들을 고문하고 죽여도 반란은 확대만 되어갔고, 끝내는 알제리 전역으로 퍼져 도시를 삼키고 말았다. 필요한 것은 물론 프랑스 본국에서 보다 많이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현지에서는 전쟁의 시비가 문제될 리 없었다. 알제리는 프랑스이며, 300만의 프랑스인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일부인 것이다. 프랑스인이라면 노르망디나 부르타뉴, 그리고 알프스 코트다쥐르를 위해서 싸웠듯이 알제리를 위해서 싸울 것이며, 또 싸워야 한다고 동시에 마르크 로댕은 들판의 전선에서 도시로 들어갔다. 먼저 본으로, 이어서 콩스탕틴으로.(둘 다 알제리 북부의 도시) 야전에서 그는 ALN(민족해방군)의 병사들, 정규군은 아니지만 용감한 병사들을 상대로 싸웠다. 로댕은 그들을 미워했었지만, 그 증오도 끔찍한 도시 게릴라들과의 싸움에서 품게 된 그것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도시에서 벌이는 전투는 프랑스인의 카페나 슈퍼마켓, 유기장(遊技場)에 설치된 플라스틱 폭탄과의 싸움이었다. 콩스탕틴에서 프랑스 민간인의 살상을 노리고 폭탄을 장치하는 쓰레기 같은 녀석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그는 철저한 거주구에서 '도살자'라는 경멸에 찬 별명으로 통했다. FLN과 그 군대인 ALN을 격멸하기 위해서는 파리에서 보다 많은 지원이 절대로 필요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결정적으로 없었다. 과격파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로댕 또한 자기의 신념이 전부이며,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볼 줄을 몰랐다. 불어나는 군사비, 그 부담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프랑스 경제, 병사들의 사기저하 같은 냉엄한 현실도 그의 눈으로 보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58년 6월, 드골 장군은 총리로 권좌에 복귀했다. 장군은 부패하고 붕괴 위기에 제5공화제를 폈다. '프랑스의 알제리'라는 그의 발언이 국민의 일반 여론으로 메아리쳐, 그것이 그를 마티뇽(총리 관저)으로 다시 데려왔고, 이어 1959년 1월 그는 마침내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었다. 그때 로댕은 감격에 넘쳐 자기 방으로 달려가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알제리를 방문한 드골의 모습은 로댕의 눈에는 마치 올림푸스에 강림한 제우스처럼 보였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로댕은 믿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추방되고, 장 폴 사르트르는 반역죄로 기소되어 총살되고, 노동조합은 무릎을 꿇고, 알제리에 있는 동포와 프랑스 문명의 프런티어를 지키는 군대에 대하여 조국의 따뜻한 지원의 손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드골이 독특한 방법으로 프랑스 부흥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무슨 착오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서둘러서는 안된다. 그분에게 시간을 주자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리고 벤 베라와 FLN을 상대로 예비교섭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그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1960년, 빅 쇼 올티스가 이끄는 거류민들이 본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로댕도 그들의 처지를 동정했지만 반란하는 현지인들을 단시일 내에 굴복시키기에는 아직 그 기회가 무르익지 않았으며, 드골은 그 때문에 전략적 양보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양반은 모든 것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양반은 '프랑스의 알제리'라고 자랑스럽게 외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샤를 드골이 부르짖는 프랑스 부흥책에 프랑스령 알제리는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사실이 명백해짐에 이르러서야 로댕의 세계는 달리는 열차에서 굴러 떨어진 꽃병처럼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다. 신앙, 희망, 신념, 신뢰가 모조리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증오뿐이었다. 국가체제, 정치가, 저널리스트, 알제리 원주민, 인텔리, 노동조합, 외국인, 모든 것이 미웠다. 그러나 증오의 최대의 대상은 그였다. 1961년 4월, 로댕은 소수의 비겁자를 제외한 대대 전원을 이끌고 반란을 반란은 실패로 끝났다. 단순하고도 교묘한 드골의 술책으로 말미암아 반란은 사실상 제대로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끝장나고 말았던 것이다. FLN과의 의논이 시작된다는 성명이 발표되기 몇 주일 전, 수천 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각 부대에 지급되었을 때 장교들은 누구 하나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라디오는 병사들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위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교나 상급 하사관들 대부분은 오히려 그 지급을 기쁘게까지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흘러오는 팝 뮤직은 끔찍한 더위와 파리와 따분함에 시달리고 있던 병사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기분전환이 되었다. 그러나 드골의 소리는 재즈처럼 시험대에 오른 이때, 알제리 각지의 수만의 병사들은 일제히 라디오를 켜고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뉴스 뒤에는 로댕이 1940년 6월에 들었던 같은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내용도 거의 같은 것이었다. "제군들에게 지금 충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다. 프랑스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제군들은 내 뒤를 이어 주기 바란다. 나를 따라 주기 바란다." 대대에서는 대대장이 눈을 떴을 때 남아 있는 것은 몇몇 장교들뿐이었으며, 하사관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반란은 어이없게도 환상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 라디오에 의해서. 로댕은 그래도 운이 다하지는 않았다. 부하 장교와 하사관들 중에서 120명이 그의 밑에 다른 부대에 비해서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가했었던 고참병과, 알제리 출신의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부대의 반란병과 합류하여 '엘리제궁의 유다(배반자)'를 쓰러뜨리기로 맹세하고 비밀군사조직(OAS)을 만들었다. 의기양양한 FLN과 끝까지 조국의 영광을 지키려는 일부 프랑스 군과의 사이에는 이미 파괴의 향연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 7주간 사이에 프랑스인 거류민들은 전재산을 헐값으로 팔아치우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을 떠났지만, OAS는 알제리를 프랑스인이 이주해 올 당시의 상태로 만들어서 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끝없이 파괴해 나갔다. 모든 것이 끝나자 있는 간부들은 일제히 망명했다. 1961년 겨울, 로댕은 망명 OAS의 작전주임 아르그 대령을 보좌하기로 되었다. 그 이후, 프랑스 본토에 대해 시작된 OAS의 공세를 북돋운 것은 아르그의 뛰어난 식견과 재능, 감화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로댕의 조직력과 교묘한 꾀와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그가 단순한 과격분자였다면 위험스럽긴 해도, 평범한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60년대 초기에는 함부로 총을 쏘아대는 패거리들이 OAS 안에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로댕은 그 이상의 존재였다. 늙은 제화공은 아들에게 기능이 뛰어난 두뇌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 것이 아니고, 그가 혼자의 힘으로 독자적인 방법으로 기르고 가꾼 것이었다. 프랑스라는 국가나 군대의 명예라는 개념에 있어서는 다른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편협했지만, 파괴나 살육이라는 실제적인 문제가 되면 그는 멋지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냉철하고 이치에 맞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 재능에는 들뜬 열광이나 무의미한 폭력보다는 훨씬 실용적인 가치가 있었다. 3월 11일의 아침, 드골 암살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가 활용한 것은 이 실무적인 재능이었다. 그 일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용이하기는커녕 프티 클라마르와 더욱더 어렵게 했다. 청부살인업자를 찾아내야 하는 일 하나만도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신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비의 벽을 뚫는 데에는 보통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불가능하며, 문제는 그 가능성을 가능하게 할 만한 인물이나 계획을 찾아내는 데에 있었다. 그는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서 문제를 정리해 나갔다. 꼬박 두 시간, 연거푸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느라고 온 방안이 연기로 자욱해진 무렵에야 그는 겨우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이번에는 그 검증으로 옮겨 갔다. 어느 계획도 모든 장애를 넘어서 실행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어느 것이나 최후의 테스트에는 합격되지 않았다. 이것만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적의 경비벽이다. 프티 클라마르 사건 이후 사태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OAS 내부에 대한 액션 서비스의 침투는 조직의 존립을 우려할 만큼 현저했고, 아르그가 납치된 예를 거론할 것까지도 없이 액션 서비스는 이쪽이 어떤 행동을 취하려고 하면, 그전에 언제나 간부에게 손을 뻗칠 정도로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었다. 서독 정부와의 마찰은 무시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마저 엿볼 수가 있었다. 아르그가 체포되고 나서 이미 14일, OAS의 간부들은 모두 각기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CNR)의 다른 지도자들도 당황하여 허겁지겁 필요한 위조서류나 항공권이 부랴부랴 조달되었다. 이런 혼란을 보고 하부 조직원들의 사기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 국내의 OAS 협조자들 -- OAS에 협력하여 그들을 숨겨 주고, 무기를 운반하고, 연락을 돕고, 정보를 제공해 주던 사람들도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변명해 가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프티 클라마르의 실패와 그에 이어진 체포자들의 심문이라는 사태에 직면하자 프랑스 국내에 있던 세 개의 조직계통이 부득이 폐쇄되었다. 경찰이 조직 내부에서 새어나간 정보에 의해서 차례차례 아지트를 기습하고 무기 은닉 장소를 찾아냈다. 드골 암살계획은 그 뒤 두 번이나 세워졌으나, 덮쳐 관계자가 모조리 체포되고 말았다.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가 위원회를 열어서 민주주의 부흥에 대해서 두서도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 로댕은 침대 옆에 놓인 서류가방의 내용물이 말해 주는 냉엄한 현실을 앞에 놓고 암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금은 부족하고, 국내외의 지지는 잃었고, 조직원 상호간의 신뢰에도 상처가 나서 OAS는 바야흐로 SDECE와 경찰의 공격 앞에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바스찬 칠리의 사형도 조직원의 적개심에 불을 지르기는커녕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었다. 이런 단계에서 협력자를 찾아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맡겠다는 인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들은 프랑스의 모든 경찰관과 수백만의 시민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다. 또 지금 이 단계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려고 해도 그 준비에는 많은 그룹의 공동작업이 필요하며, 액션 서비스의 침투를 생각하면 암살자가 드골에게 접근을 시작하기도 전에 간단히 당해 버릴 것이다. 자문자답 끝에 로댕은 중얼거렸다.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라......" 그는 대통령의 암살도 불사할 사나이들의 명단을 짜 보았다. 누구 하나 경찰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 사법경찰 본부에는 그들에 대한 자료가 성경만큼이나 두툼하게 수집되어 있다. 이름도 없는 시골 팡숑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정오가 가까워서야 겨우 해답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물러섰었으나 마침내 그는 집요한 흥미에 이끌려서 생각에 잠겼다. 만일 그런 인물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그런 인물이 있기만 하다면......천천히, 신중하게 그는 그런 인물을 기초로 한 계획을 짠 다음, 온갖 장애나 마이너스 요소들을 예상하면서 검토해 보았다. 그 계획은 모든 점에서 합격이었다. 경찰의 경비라는 난관을 멋지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시계가 정오를 치기 조금 전, 마르크 로댕은 두툼한 외투를 걸쳐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바람이 온몸에 엄습해 왔다. 엉겁결에 그는 몸을 움츠렸지만, 난방이 지나치게 잘된 방에서 담배를 너무 피워서 생긴 편두통이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그는 왼쪽 길로 해서 아드라슈트라세의 우체국으로 가서 남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각처에 가명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동지들에게 임무상 여행을 떠나니 몇 주일 연락이 끊긴다는 뜻의 짧막한 전보를 쳤다. 팡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면서, 그는 동지들 중에는 혹시 로댕 역시 액션 서비스에 의한 납치나 암살을 겁내어 조직에서 떠날 생각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녀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혼자 어깨를 움츠렸다. 좋을 대로 생각하라지. 애써 설명할 필요는 그는 팡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그날의 메뉴는 아이스바인과 누들이었다. 인도차이나의 정글이나 알제리의 황야에서 오랜 야전생활을 보낸 그는 음식에 대한 고상한 취미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점심은 얼마나 맛이 없던지 목구멍으로 넘기는 데에도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오후 2시가 지나자 그는 짐을 챙기고 계산을 끝낸 다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한 사나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사나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마르크 로댕이 오스트리아의 시골 역에서 기차에 올랐을 무렵, BOAC의 카미트 4B형 착륙하고 있었다. 그것은 베이루트에서 오는 것이었다. 도착 손님용 라운지를 지나가는 승객들 틈에 키가 큰 금발의 영국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 얼굴은 중동의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지난 두 달 동안 레바논에서 통쾌한 즐거움을 맛보고, 또한 거액의 돈을 베이루트의 은행에서 스위스의 은행으로 옮기는 더욱 큰 즐거움을 만끽한 뒤라서 흡족하고 편안한 표정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가 뒤로 하고 온 먼 이집트의 사막에는 깨끗이 척추가 꿰뚫린 세 명의 독일인 미사일 엔지니어의 시체가 분노에 떨고 있는 이집트 경찰의 손으로 장사지내져 잠들고 있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셀의 알 자피라 로켓의 개발이 몇 년은 억만장자는 지불한 액수에 합당한 결과를 얻어서 만족해 했다. 아무런 말썽도 없이 세관을 통과한 그 영국인은 렌터카를 불러 타고 메이페어 가(街)의 아파트로 돌아갔다. 90일에 걸친 탐색 결과 로댕의 손에 남겨진 것은 세 통의 얇은 문서였다. 그는그것을 한 통씩 마닐라지(紙)의 파일에 넣어 서류가방에 보관해 두고서 언제나 가까이에 두었다. 6월 중순에야 그는 오스트리아에 돌아와서 빈의 브뤼크나알레에 있는 크라이스트라는 팡숑에 방을 빌렸다. 빈의 중앙우체국에서 그는 짧막한 전보를 두 통, 한 통은 북이탈리아의 볼자노, 또 한 통은 로마로 쳤다. 둘 다 빈의 그가 급히 달려오라는 두 간부 앞으로 가는 소집전보였다. 24시간 이내에 둘 다 빈에 도착했다. 르네 몽클레아는 볼자노에서 렌터카로, 앙드레 카슨은 로마에서 비행기로. 물론 둘 다 가명을 쓰고 가짜 서류를 가지고 다녔다. 이탈리아 및 오스트리아에 상주하고 있는 SDECE의 주재원은 두 사람을 요주의 인물의 첫손가락에 꼽고 있으며, 바로 이 시간 갑자기 자취를 감춘 두 사람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 미리부터 길들여 두었던 스파이나 정보제공자들에게 보너스를 내걸고 국경의 검문소나 공항에 잠복시켜 두었다. 팡숑 크라이스트에 먼저 모습을 나타낸 7분 앞둔 시각이었다. 그는 브뤼크나알레의 모퉁이에서 내려, 꽃가게 진열창에 모습을 비추어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하면서 몇 분을 보낸 다음, 재빨리 팡숑의 현관으로 들어갔다. 로댕은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아주 가까운 동지들만이 알고 있는 20개의 가명 중 하나를 써서 방을 잡아놓고 있었다. 불려온 두 사람이 받은 전보에는 로댕이 팡숑에 들어갈 때에 쓴 슐츠라는 암호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슐츠 씨를 만나고 싶소." 카슨은 접수대에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숙박자 명단을 펴보고서 말했다. "64호실입니다. 약속이 있으십니까?" "그래요, 연락 안 해도 괜찮소." 카슨은 곧바로 층계를 올라갔다. 1층의 찾으면서 걸었다. 그 방은 오른쪽 중간쯤에 있었다. 노크하려고 손을 올린 순간, 그는 등뒤에서 손목을 잡혔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투박한 턱을 가진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마치 눈썹 같은 모양으로 이마에 늘어진 한 줌의 장발 밑에서 무표정한 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슨이 3-쯤 뒤에 있는, 벽 일부가 움푹 들어간 곳을 지날 때 그 사나이가 그곳에서 나와 바로 뒤따라 걸어온 것이다. 얇은 싸구려 융단이었는데도 카슨에게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라고 하던가?" 하고 그 거인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태도로 물었다. 그러나 카슨의 손목을 잡은 손의 힘은 늦추지 않았다. 호텔에서 아르그가 납치당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창자가 금방 뒤집혔다. 그러나 이윽고 그는 등뒤에 있는 거인이 인도차이나 시대에 로댕의 중대에 있었던 폴란드계의 외인부대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로댕이 지금도 때때로 이 빅토르 코와르스키를 특수한 임무에 쓰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로댕 대령과 만날 약속이 되어 있어, 빅토르."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상대방이 자기와 주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을 듣고 코와르스키의 눈썹 사이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나는 앙드레 카슨이야." 하고 그는 덧붙였다. 코와르스키의 표정에는 변화가 뻗어서 64호실 문을 두드렸다. "위?" 코와르스키는 문틈에 입을 갖다대고, "손님이 왔습니다." 하고 신음하듯 말했다. 문이 조금 열렸다. 로댕이 그 틈새로 밖을 내다본 다음에야 문을 열었다. "오, 앙드레, 정말 미안하네." 그는 코와르스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사, 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네." 카슨은 그제야 오른손이 자유로워져서 방으로 들어갔다. 로댕은 문턱에 서 있는 코와르스키에게 다시 한마디하고는 문을 닫았다. 폴란드인은 다시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서 몸을 숨겼다. 로댕은 카슨과 악수를 나누고는 가스 곳으로 안내했다. 6월도 중순인데 밖은 차가운 안개비가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북아프리카의 따뜻한 햇살에 길들여져 있었다. 가스 난로는 활활 타고 있었다. 카슨은 레인코트를 벗고 난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전에 없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군, 마르크."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 몸 하나쯤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가 있어. 다만 서류를 처분할 시간을 벌어야만 하거든." 로댕은 창가에 있는 책상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 위에는 서류가방과 두툼한 서류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빅토르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라네. 60초쯤의 시간은 벌어 줄 테니까. 그 사이에 저 서류를 처분할 작정이지." "아주 중요한 것인 모양이군?" "조금은." 표현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로댕의 목소리에서는 중요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르네를 기다리세. 11시 15분에 오라고 연락해 두었거든. 한꺼번에 둘이 나타나면 빅토르가 깜짝 놀라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말이야. 저 녀석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유별나게 흥분해 버리거든." 로댕은 왼쪽 겨드랑이에 우악스러운 콜트 권총을 차고 있는 빅토르가 흥분하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고는, 뼈만 앙상한 얼굴에 그로서는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다가가서 문틈에 입을 갔다대고 물었다. "위?" 르네 몽클레아의 초조하고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크,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로댕은 문을 열었다. 등뒤에서 거대한 폴란드인에게 떼밀린 몽클레아가 거기에 서 있었다. 빅토르는 왼손으로 경리 전문가의 두 팔을 붙잡고 있었다. "가 있어, 빅토르!" 로댕은 경호원에게 말했다. 몽클레아는 풀려났다. 그는 겨우 안심이 된 얼굴로 방에 들어와서는 난로 옆에 앉아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카슨에게 볼멘 얼굴을 했다. 다시 문이 닫히고 로댕이 몽클레아에게도 사과를 했다. 악수했다. 그는 이미 외투를 벗어 두었는데, 몸에 걸치고 있는 주름투성이의 검은 회색의 양복은 싸구려였으며, 그 옷매무새 또한 어설퍼 보였다. 제복에 익숙해 있는 군인 출신들은 거의 전부가 그렇듯이 몽클레아나 로댕도 평복의 차림새가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주인으로서 로댕은 두 사람에게 팔걸이의자를 내주고 자신은 책상으로 쓰고 있는 테이블 앞에 있는, 등받이가 직각이고 앉는 자리가 딱딱한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침대 옆에 있는 캐비닛에서 프랑스제의 브랜디를 꺼내어 두 사람에게 치켜들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댕은 세 개의 잔에 가득 액체를 따라서, 자신들을 영접하는 의식 때문에 섬뜩해진 간을 데우려고 두 사람은 그 술을 마셨다. 등받이에 깊숙이 앉아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 르네 몽클레아는 땅달막하고 키가 작은 체구인데, 로댕과 마찬가지로 직업군인이며 육군의 토박이 같은 장교였다. 다만 그는 로댕과는 달리 실전 경험은 없었다. 군에 들어온 이후로 거의 사무직에서 지내 왔으며, 마지막 10년 동안은 외인부대의 봉급담당자로서 근무했다. 그리고 1963년 봄 이후로 OAS의 경리를 담당해 오고 있다. 앙드레 카슨은 민간인이다. 알제리에서는 은행의 지점장을 했으며, 지금도 그 자그마한 몸을 은행원다운 옷으로 감싸고 CNR의 연락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다. 둘 다 로댕과 마찬가지로,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OAS 내부에서는 사교성이 없는 편이다. 몽클레아에게는 19살이 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마르세유 교회의 외인부대 기지의 급여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무렵 그의 아들은 일개 사병으로 알제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게릴라의 포로가 되어 어떤 마을에 감금되었으나, 외인부대의 정찰 소대가 그 마을을 덮쳤을 때에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시체는 그 마을에 묻혔다. 몽클레아 소령은 아들의 시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뒤 아들이 게릴라들에게 어떤 죽음을 당했는지 알게 되었다. 외인부대 내부에서는 어떤 비밀도 유지되지 않는다는 앙드레 카슨은 훨씬 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알제리 태생인 그는 일과 가정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가 근무하던 은행은 파리에 본점이 있기 때문에 알제리를 잃는다고 해도 실업자가 될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1960년에 거류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고향인 콩스탕틴에서 주동자의 일원으로 반란에 가담했다. 그 뒤에도 근무는 계속했었지만, 구좌수가 점점 줄어들고 사업가들이 재산을 정리하여 프랑스 본국으로 철수하는 것을 보고 알제리에서 프랑스의 존재가 마지막에 가까워 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육군부대의 반란이 있은 직후 드골 정권에 의한 새 정책과, 한 번도 본 적조차 없는 프랑스라는 조국으로 무일푼이 되어 처참한 모습에 격분하여 OAS의 한 부대를 안내하여 자기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300만 구(舊) 프랑을 강탈케 했다. 그가 OAS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을 알아차린 젊은 출납담당직원이 그 사실을 본점에 보고했기 때문에 오랜 은행 근무도 거기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페르피냥의 처가에 맡기고 OAS에 가담했다. 프랑스 국내에 살고 있는 수천의 OAS 지지자들과 개인적인 안면이 있다는 것이 그의 존재가치였다. 로댕은 책상 앞에 앉아서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지만, 굳이 아무것도 물으려 하지는 않았다. 신중하게, 또한 논리정연하게 로댕은 지난 몇 개월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두 손님은 우울한 얼굴로 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하네. 지난 4개월 사이에 세 번이나 큰 타격을 받았어. 프랑스를 독재자의 손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계획도 좌절의 연속이야. 가장 최근의 예로는 사관학교 사건이 있었지. 어떻든 우리의 암살대원이 놈의 신변 가까이까지 접근한 사례는 두 번밖에 없었으나, 그 두 번 모두 계획 입안이나 실행면에서 기본적인 오류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어. 앙투안 아르그가 납치되어 우리는 가장 유능한 지도자 한 사람을 잃었네. 물론 바친 충절의 인사이기에 결코 입을 열 걱정은 없지만, 지금은 약물 등을 이용하는 고문 수단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입을 열 가능성이 매우 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지. 현재 우리는 그런 상황하에 있다네. 조직에 관한 모든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새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 우리 세 사람이 뮌헨의 본부가 아닌, 이런 팡숑에 모인 것도 다 그 때문이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이것이 1년 전이었다면 사태는 지금만큼 나쁘지는 않았겠지. 1년 전이라면 한번 귀띔만 해놓아도 애국의 정열이 불타는 지원자들이 않아. 장 마리 바스찬 칠리가 처형당한 것으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걸세. 그렇다고 해서 나로서는 그 많은 지지자들을 책망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들에게 결과를 약속했는데, 그것을 해내지 못했으니 그들에게는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할 권리가 있어. 말로만 약속하는 게 아니고." "알았네, 알았어.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고 몽클레아가 물었다. 두 사람은 모두 로댕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몽클레아는 그의 처지로 보아 다른 누구보다도, 알제리에서 각처의 은행을 덥쳐 얻은 자금은 이미 조직의 유지를 위해 써버렸고, 우익 지지자인 사업가들로부터 오는 기부금도 날이 갈수록 와서는 대놓고 싫은 얼굴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었다. 또 암흑가와 연결된 루트도 나날이 그 힘이 약화되어 가고 자금을 숨겨둔 아지트는 차례차례 적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그가 체포된 뒤로는 지지자들 중 대부분이 지원의 손을 움츠리고 말았다. 바스찬 칠리의 처형은 이런 경향에 박차를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로댕은 이야기가 방해받은 것도 개의치 않고 다시 계속했다. "독재자를 제거하여 프랑스를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모든 계획이 새빨간 거짓말이 되며, 우리의 지상목표도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는 사실상 그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어. 우리는 그런 계획을 세우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프랑스판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애국의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희생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계획이 누설된다는 것은, 즉 우리의 조직 안에 배반자가 많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거야. 배반자와 탈락분자들이 너무 많아. 정세는 말할 수 없이 나쁘네. 이런 생활을 이용해서 비밀경찰은 교묘하게 우리 조직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으며, 이제 와서는 최고 간부들의 회의내용조차 적에게 새어나가는 형편이야. 무엇을 결정해도 며칠 뒤에는 이미 적은 우리의 의도, 계획의 내용, 참가자의 이름까지도 완전히 알게 되는 거야. 이런 상황을 똑바로 본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어리석은 자의 낙원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어. 내 생각으로는, 독재자를 제거하는 첫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 스파이 요원들의 조직망을 빠져나가 비밀경찰의 눈을 장님으로 만들고 놈들을 옴쭉달싹 못할 상태로 몰아넣는 방법이 꼭 하나 남아 있어." 몽클레아와 카슨이 흠칫 놀란 듯이 얼굴을 들었다. 방안은 정적으로 가득 차 있고, 때때로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로댕은 계속했다. "나의 정세 분석이 불행하게도 틀리지 않는다면, 독재자를 없애는 일에 동참하고, 또 그럴 능력을 갖춘 인물들에 대해서는 적의 비밀경찰 또한 우리와 같을 정도로 잘 하나같이 프랑스 국내에서는 한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어. 움직이면 좋은 먹이감으로서 경찰뿐만이 아니고 수염이나 밀고자들에게도 쫓기게 돼. 남은 유일한 방법은 외부의 인물을 고용하는 것뿐이야. 그밖에는 없다고 나는 생각해." 몽클레아와 카슨은 처음 한 순간은 어이없는 듯이 로댕을 바라보았지만, 그러나 곧 그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외부인이라면 어떤 종류의 인물을 말하는 건가?" 하고 카슨이 겨우 입을 열었다. "우선 외국인일 것, 이것이 첫째 조건이야. 다음으로는 OAS나 CNR의 요원이 아닐 것. 프랑스의 경찰에 알려져 있지도 않으며, 또한 그 기록에도 올라 있지 않을 있으며, 기록에 올라 있지 않은 인물은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거야. 암살자가 미지의 인물이라면, 그는 적어도 놈들에게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셈이지. 그는 외국의 여권으로 이동하고, 일을 끝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국민들은 즉시 반란을 일으켜 드골파의 반역분자들을 소탕하겠지. 그는 일을 끝내면 외국으로 탈출하겠지만, 그 탈출 자체는 별로 중요치 않아. 설령 잡히더라도 우리가 권력을 쥐면 즉시 석방시킬 테니까. 중요한 것은 그가 당국의 의심을 받지 않고 프랑스 국내에 들어오는 일이야. 이것만은 현재의 상태로선 우리 동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두 사람은 침묵한 채 각자 생각에 차츰 그 형체를 갖추어 갔다. 몽클레아는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프로 청부살인자를 고용하자는 말이로군." "그렇다네. 아무리 생각해도, 외부의 인물이 우리를 사랑하거나 애국심 때문에 그런 일을 맡을 리가 없으니 말일세. 이런 종류의 작전에 필요한 기술과 대담성을 찾자면 역시 진짜 프로가 아니고서는 안돼. 그리고 그런 인물은 돈을 위해서만 일하지. 많은 액수의 돈을 말일세." 로댕은 재빨리 몽클레아를 한번 쳐다보고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말일세, 그런 인물이 있기나 할까?" 하고 카슨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기에는 순서가 있네. 비약해서는 안돼. 여러 가지 따져야 할 세세한 점도 있고 말이야. 우선 알고 싶은 것은, 이 아이디어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느냐 하는 점이야." 몽클레아와 카슨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로댕 쪽을 다시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로댕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것으로 원칙에는 동의한다는 첫번째 조건이 처리가 된 셈이야. 두 번째는 기밀유지에 대한 문제인데, 이것은 이 착상에 있어서 기본적인 조건이야. 내가 보기에 조직 안에서 이 사람만은 정보를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점점 그 수가 줄고 있어. 아니, 그렇다고 내가 OAS나 CNR의 동지들을 배신자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비밀이라는 것은 그것을 아는 인물이 많을수록 불안정해지지. 이것은 옛날부터 있어 온 상식이야. 이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는 데에는 절대적인 비밀이 요구되네. 따라서 알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되지. OAS의 내부에도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스파이가 있어서 우리의 계획을 빠짐없이 비밀경찰에 통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언젠가는 그 운이 다하기야 하겠지만, 여하튼 현재는 그런 무리들은 우리에게는 위험한 존재야. 거기다 CNR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어. 무턱대고 신경질을 부리거나 겁을 집어먹기만 하고. 그런 무리들에게 우리가 고용하려는 인물의 존재를 섣불리 알려준다면 즉시 그 인물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게 돼. 르네, 그리고 앙드레, 자네들 두 사람을 이리로 부른 것은 우리의 대의명분에 대한 자네들의 충성심과 또한 입이 얼마나 굳은지를 믿고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말일세, 르네. 자네는 프로 살인자가 요구할 것으로 생각되는 보수를 치르는 데에는 경리담당자로서 자네의 협력이 필요한 걸세. 그리고 앙드레 자네는 비상사태가 생겼을 경우 그 살인자를 지원할, 소수의 믿을 수 있는 인물을 그러나 계획의 상세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세 사람의 가슴속에 묻어 두어야만해. 그래서 말일세, 이 아이디어의 계획 입안, 실행, 보수의 지불 등, 그 모두를 한 손에 담당할 3인위원회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다시 침묵. 이윽고 몽클레아가 입을 열었다. "OAS나 CNR의 간부회와도 일체 의논을 하지 않겠다는 거지? 귀찮게 될지도 모를걸." "귀찮고 뭐고, 처음부터 전혀 알리지 않을 거니까 문제도 없을 거야." 로댕은 조용히 말했다. "가령 이 아이디어를 그들에게 설명한다고 하면, 그 때문에 총회를 끌어, 수염 쪽에선 무엇 때문에 열린 총회인지 필사적으로 알아내려고 하겠지. 그러면 어느쪽인가의 간부회의에서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도 있고, 또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설명한다고 해도 원칙적인 동의를 얻기까지 몇 주일 걸릴지도 몰라.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번 계획을 털어놓으면 그 뒤의 계획 입안 단계에서도 하나하나 자세한 것까지 알고 싶어할 게 뻔해. 그 무리들은 묘한 체면이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나쁜 거야. 그리고는 술이라도 취하게 되면 섣불리 입 밖에 내고 말지. 단 한마디만 내뱉어도 작전이 위험해질 수가 있다네. 따라서 그 친구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백해무익이야. OAS와 CNR의 간부회의 동의를 얻는다고 해도, 계획 수행에는 조금도 보탬이 될 것도 없으며,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의 타격은 조직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돼. 더구나 30명 가까운 사람이 계획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성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도 되고. 그러나 우리 셋만으로 일을 끌고 나간다면, 설령 실패해도 사태가 지금 이상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 적의 경계가 강화되고 보복의 희생자도 나오겠지만,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니까. 그리고 성공한다면 우리가 권력을 잡게 될 것이며, 그 단계가 되면 뭐라고 트집을 잡을 녀석도 없을 거야. 독재자를 제거한 방법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등등 오히려 아카데믹한 연구과제가 지금 설명한 아이디어의 계획입안자 겸 조직자 겸 실시자로서 내게 협력해 주겠나?" 또다시 몽클레아와 카슨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로댕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이렇게 만난 것은 3개월 전 아르그가 체포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아르그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 로댕은 언제나 조용히 그늘에 숨어 있었지만, 이젠 마침내 강력한 리더로 부상한 느낌이었다. 지하운동과 재정의 두 책임자는 남모르는 감명을 받았다. 로댕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미소지었다. "좋아. 그럼, 구체적인 이야기로 아이디어는 바스찬 칠리가 처형되었다는 뉴스를 라디오에서 듣던 날 문득 머리에 떠올랐어. 그때부터 줄곧 그런 인물을 찾아다녔지. 아주 힘든 일이더구먼. 그런 녀석들은 자기선전 같은 것은 안 하니까 말일세. 여하튼 3월 중순부터 계속 찾아왔는데, 그 결과는 이 안에 정리되어 있어." 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서류철을 들어올렸다. 몽클레아와 카슨은 다시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로댕은 계속했다. "먼저 이 자료를 검토해 보기 바라네. 그런 다음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의논하세. 자료는 한 통씩밖에 없으니까 그는 클립에서 세 통의 얇은 서류철을 꺼내어 한 통은 몽클레아에게, 또 한 통은 카슨에게 건네주고 자기도 나머지 한 통을 손에 들고 있었으나, 그것을 읽으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 통의 자료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읽는다고 해도 별로 많은 분량은 아니었다. 로댕은 '간단한' 자료라고 말했지만, 그 내용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했다. 먼저 카슨이 건네받은 한 통을 다 읽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로댕의 얼굴을 보았다. "이게 전부인가?" "그런 인물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그럼, 이번에는 이것을 보게." 로댕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서류를 카슨에게 건네주었다. 몇 분 뒤에 그것을 로댕에게 돌려주었다. 로댕은 카슨이 읽은 한 통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몽클레아가 먼저 다 읽었다. 그는 로댕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말이야...... 이것만으로는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런 정도의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본래 프로 살인자란 어차피 돈 때문이니까 --- ." 카슨이 가로막았다. "좀 기다려, 이건 좀 달라." 그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서 거기에 있는 세 문단 쪽으로 부지런히 시선을 옮겨갔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읽고는 서류를 접고서 로댕을 바라보았다. OAS의 리더는 자기의 견해를 조금도 입 밖에 내지 몽클레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카슨에게는 세 통째를 건네주었다. 두 사람이 4분 뒤에는 모두 다 읽었다. 로댕은 서류를 클립으로 꽂아서 책상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등받이가 직각인 식탁용 의자를 반대방향으로 난로 가까이 갖다 놓고서 등받이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말을 타듯 앉았다. 그는 그런 자세로 두 동지의 표정을 살폈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좁다. 이런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은 많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경찰 기록에도 오르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어. 일류라면 어느 기록에도 오르지 않았겠지만. 방금 읽어 본 세 사람 말인데, 편의상 여기서는 독일인, 남아프리카인, 영국인이라고 부르기로 카슨은 어깨를 움츠렸다. "내게 묻는다면 의논할 여지도 없어. 지금 그 자료로 보아서,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면 영국인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 "르네는......?" "나도 동감일세. 독일인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쫓기는 나치의 잔당을 살려내기 위해서 실행한 몇 건의 예를 빼버리면, 정치적인 일을 하지도 않았더구먼. 게다가 유태인에 대한 그의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니까, 진정한 의미로는 프로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남아프리카인 말인데, 루문바 같은 조그만 나라의 흑인 정치가를 없애는 일이라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프랑스 힘에 부칠 거야. 하지만 그 영국인은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로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네. 자료를 정리하는 단계에서 이미 두드러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앵글로색슨의 자료는 확실한가?" 하고 카슨이 물었다. "정말로 그런 일을 하긴 했나?" "실은 나도 그의 경력을 알고 놀랐어. 그래서 시간을 더 들여가면서 조사해 보았다네. 절대적인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말해서 하나도 없어. 그러나 증거가 있다면 오히려 솜씨가 없다고 보아야겠지. 어느 나라에 가도 버리거든. 어쨌든 단지 소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그는 눈처럼 깨끗해. 설령 영국 정부가 그를 리스트에 올려놓았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다는 정도가 고작일 거야. 따라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파일에도 올라 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영국 정부는 설령 SDECE로부터 공식적인 조회가 가도 그런 인물에 관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겠지. 자네들도 알고 있듯이 영국과 프랑스는 견원지간이야. 영국 당국의 관계자는 작년 1월, 조르주 비드가 몰래 영국에 가 있을 때에도 프랑스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거야. 어떻든, 그 영국인은 이런 종류의 일에는 꼭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게 뭔데?" 즉시 몽클레아가 물었다. "즉, 보수가 비싸다는 점이야. 하긴 그와 같은 프로라면 그것이 당연하기는 하겠지만. 돈 사정은 어떤가, 르네?" 몽클레아가 어깨를 움츠렸다. "좋지 않아. 최근 지출은 조금 줄었지만, 아르그 사건 이후로 CNR의 선생들이 모두 싸구려 호텔로 숨어들었다네. 일류 호텔이나 TV 인터뷰에는 완전히 흥미를 잃은 것 같더군. 하긴 지출이 줄기는 했지만, 수입 쪽도 엉망이야. 자네도 언급했듯이 지금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자금부족으로 조직이 깨어지고 말 걸세. 사랑과 키스만으로 조직을 운영할 순 없으니까." 로댕은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아야만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모르고 모금할 수도 없고 --- ." "그러니까 말이야 --- ." 하고 카슨이 이야기를 떠맡았다. "먼저 그 영국인과 접촉해서 일을 맡아 줄 것인지, 맡아 주면 보수는 얼마나 되는지 그것을 물어 봐야겠지." "자네 말이 맞네. 그럼, 당장 준비를 갖추고 싶은데, 이의는 없나?" 로댕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댕은 흘끗 시계를 보았다. "지금 1시가 조금 지났어. 런던에 잠입시켜 놓은 에이전트에게 전화해서 그 영국인과 접촉하여 이리로 와주도록 손을 먹은 뒤에 여기서 만날 수 있어. 여하튼 그가 오고 안 오고는 에이전트에게서 곧 연락이 오겠지. 옆방을 둘 잡아놓았으니까 쓰도록 하게.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 것보다는 한곳에 모여서 빅토르의 보호를 받는 게 안전하니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조치야. 조심하는 것 이상은 없어." "결국 이야기가 이렇게 낙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더라고 준비가 꽤 잘되어 있군." 카슨은 멋지게 로댕에게 당할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로댕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의 정보를 모으는 데에도 꽤 힘들었으니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짐작하고 있었어. 게다가 앞으로는 바에야 빨리 움직이는 것이 제일이니까." 그는 일어났다. 두 사람도 따라서 일어났다. 로댕은 빅토르를 불러, 밑에 내려가서 65호실과 66호실의 열쇠를 받아오라고 명령했다. 빅토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몽클레아와 카슨에게 말했다. "나는 빅토르를 데리고 중앙우체국에 전화를 걸러 갔다가 올 테니까, 그 동안 자네들은 둘이서 어느 한 방에 모여 절대 밖에 나가지 않도록 하게나. 물론 방문도 잠그고 있게. 내가 돌아오면 문을 노크해서 신호를 하겠네. 세 번 두드리고 멈췄다가 다시 두 번이야. 알겠지?" 이 신호는 '알제리 프랑세즈(프랑스의 알제리)'라는 말의 '3 플러스 2'라는 반대하는 파리 시민들이 과거 이 리듬으로 클랙슨을 울려서 대통령에 항의했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 ." 로댕이 말을 계속했다. "총을 가지고 있나?"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로댕은 책상으로 걸어가 호신용으로 간직해 두었던 짤막한 모양의 MAB(구경 9--)를 꺼냈다. 그는 탄창을 살펴보고는 찰칵 하고 그것을 총 뒤에 꽂고서 몽클레아에게 내밀었다. "사용법은 알고 있지?" 몽클레아는 끄덕이며, "물론." 하고 말하고는 그것을 받아쥐었다. 빅토르가 와서 두 사람을 몽클레아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자, 하사, 일을 해야지." 그날 저녁때 황혼의 어스름이 밤의 어둠으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 브리티시 유러피언 항공(BEA)의 뱅거드기가 런던에서 빈의 슈바하트 공항에 도착했다. 꼬리날개에 가까운 뒤쪽 객실의 창 옆 좌석에 몸을 파묻은 그 금발의 영국인은 뒤로 스쳐가는 진입등의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내려갈 때, 이대로 가다가는 활주로 못 미쳐서 있는 언더슈트 에리어의 풀밭에 착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의 속도와 각도로 진입등이 다가오는 것을 볼 때면 그는 언제나 전율 같은 환희를 느꼈다. 최후의 순간에 어슴푸레한 조명 있는 번호판, 그리고 진입등이 차례로 뒤쪽으로 사라지며 검고 매끄러운 콘크리트 활주로가 나타나더니 바퀴가 마침내 내려앉는다. 이 착륙이라는 작업의 정밀함이 그의 감각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는 정밀성을 좋아한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런던의 피카딜리에 사무실을 가진 프랑스 정부 관광국 런던 지국의 젊은 프랑스인이 초조하게 그의 표정을 살폈다. 점심 휴식시간에 전화를 받은 뒤로 그는 신경증에 걸린 듯이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1년쯤 전, 휴가로 파리에 돌아갔을 때 자원해서 OAS에 들어갔으나 그대로 런던에서 근무를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그 뒤 아무런 명령을 받은 게 없었다. 편지나 그것이 '오, 피에르!'라고 시작하는 명령일 경우에는 즉시, 그리고 정확히 그 명령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6월 15일인 오늘까지 아무런 연락이나 명령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교환에게서 빈으로부터 지명전화가 걸려 왔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때 교환은 프랑스에 있는 같은 이름의 고장과 구별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라고 덧붙였다. 누구에게서 온 걸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수화기를 든 그의 귀에, "오, 피에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뛰어들어왔다. 그것이 자기의 암호명이라는 것을 생각해 내는 데에는 몇 초가 걸렸다. 생겼다고 꾸며대고 사무실을 조퇴하여 사우스 오드리 가(街)의 외곽에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서, 노크 소리에 문을 연 영국인에게 말을 전했다. 그 영국인은 세 시간 이내에 빈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라는 전갈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차분한 태도로 여행용 가방에 일용품을 챙기고,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히스로 공항으로 갔다. 프랑스의 젊은이는 현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여권과 수표책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영국인은 그것을 알고도 아무 말 없이 자기 돈을 꺼내서 왕복표를 두 장 샀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거의 대화가 없었다. 영국인은 빈의 어디로 가는지도, 누구를 만나는지도, 또 어떤 용건인지도 일체 묻지 그가 물어 와도 자기가 모르고 있으니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가 받은 지시라고는 런던 공항에서 빈으로 전화를 걸어서 몇 시 도착 BEA기에 타는지를 보고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엇다. 그리고 빈에 전화한 그는 슈베하트 공항에 도착하면 종합안내소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런 그믐밤에 홍두깨 같고 수수께끼 같은 지시나 내용이 그를 안절부절못하게 했으며, 옆에 있는 영국인이 침착하게 잘 견디는 것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했다. 공항 건물의 메인 홀에 있는 안내소에서 그는 귀여운 오스트리아 아가씨에게 자신의 이름을 댔다. 그녀는 등뒤에 있는 선반에서 메모지를 찾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찾으라'고만 써 있었다. 그는 홀 한쪽 구석에 죽 설치되어 있는 공중전화 쪽으로 갔다. 그때 갑자기 영국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전'이라는 글씨가 보이는 부스를 가리켰다. "동전이 필요할 텐데요?" 하고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말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전화를 무료로 걸게 해줄 정도로 인심이 후하지는 않소." 프랑스인은 얼굴이 화끈해서 환전 카운터로 걸어갔다. 영국인은 벽가에 놓인, 등받이가 있는 긴의자 중 하나에 앉아서 영국제 킹사이즈의 필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얼마 뒤에 그의 안내원이 몇 장의 오스트리아 지폐와 동전 한줌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공중전화 코너에 가서 빈 돌렸다. 전화에 나온 슐츠 씨는 그에게 간단명료하게 지시했다. 겨우 몇 초 사이에 전화는 끊겼다. 젊은 프랑스인은 긴의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영국인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지금 곧 갑니까?" "예, 안내하겠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려고 프랑스인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바닥에 버렸다. 영국인은 그것을 주워 가지고 다시 펴서는 라이터 불을 켜서 갖다댔다. 그것은 순식간에 타오르고, 품위 있는 수에드 가죽(새끼 양이나 소의 소가죽을 부드럽게 보풀린 가죽) 구두로 문질러 검은 재가루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세웠다. 시가지의 중심부는 빛과 차의 홍수였으며, 택시는 40분이나 걸려서 겨우 팡숑 크라이스트 앞에 닿았다. "여기서 헤어져야겠습니다. 당신을 여기까지 안내하고, 저는 이대로 타고 가다가 어디 다른 곳에서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64호실로 가십시오.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영국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택시에서 내렸다. 운전사가 궁금한 얼굴로 돌아다보았다. "계속 갑시다." 하고 프랑스인이 말했다. 택시는 이윽고 거리에서 사라졌다. 영국인은 팡숑 크라이스트의 출입문 위쪽에 박혀 있는, 고딕체로 거리 이름을 써넣은 번지의 숫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반쯤 피운 담배를 버리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프런트 직원은 출입문이 삐걱거렸을 때 등을 바깥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영국인은 카운터에 기척도 없이 다가가서 곧바로 층계 쪽으로 갔다. 프런트 직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려는 순간, 처음 보는 방문자는 흘끗 그를 보면서 고용인에게라도 대하듯 가볍게 끄덕이고는 마치 늘 그래 온 것처럼, "구텐 아벤트.(안녕하시오.)" 하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엉겁결에 그는 그렇게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그의 그 말이 끝났을 때 영국인은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었는데 층계를 한꺼번에 두 개씩 올라서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층계를 훑어보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이 68호실이다. 그는 복도를 따라 방의 수를 세어서, 방 번호는 볼 수 없어도 64호실로 생각되는 문에 시선을 멈추었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64호실 출입문까지의 거리는 대략 7미터이며, 복도의 오른쪽에는 그 사이에 다른 방의 문이 두 개 있고, 왼쪽 벽은 중간에 움푹 들어간 곳이 있으며, 싸구려 커튼 레일에 매달린 붉은 빌로드 천이 그 앞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는 벽의 움푹 들어간 곳을 주의해서 살폈다. 커튼 자락 끝은 바닥에서 10cm쯤 위에 있었으며, 그 사이로 검은 구두의 앞부분이 조금 보였다. 영국인은 뒤돌아서 현관 홀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프런트 않고는 어쩐지 어색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영국인이 먼저 말했다. "전화로 64호실을 불러 주겠소?" 그는 잠깐 손님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몇 초 뒤에 그는 조그만 교환대에서 손님 쪽으로 몸을 틀어, 카운터에 놓여 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서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15초 이내에 그 고릴라를 벽의 그 자리에서 치워 주시오. 싫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소." 금발의 영국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층계를 올라갔다. 층계 위에서 그는 64호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쪽을 잠깐 보더니, 이윽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빅토르." 하고 벽의 움푹 들어간 곳을 보고서 말했다. 거구의 폴란드인이 나타나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괜찮네. 이분을 기다리고 있었어." 하고 로댕이 말했다. 코와르스키는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다. 영국인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로댕은 그를 침실로 안내했다. 그 방은 징집위원회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책상 위에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 테이블 뒤에, 그 방에는 하나밖에 없는, 등받이가 직각인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양옆에는 다른 방에서 가져온 비슷한 모양의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고, 거기에는 몽클레아와 어린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책상 앞에는 의자가 놓여 있지 않았다. 영국인은 주위를 둘러보고 팔걸이의자를 발견하자, 그것을 책상 쪽으로 돌려 놓았다. 로댕이 빅토르에게 새 지시를 내리고 입구의 문을 잠그고서 방으로 들어오니, 영국인은 팔걸이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서 몽클레아와 카슨을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로댕은 책상 뒤에 자리를 잡았다. 몇 초 동안 그는 런던에서 온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을 보는 눈에 자신이 있었는데, 영국인의 인상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금발의 그 손님은 키가 180cm, 나이는 30은 넘어 보였고, 운동선수처럼 근육에 탄력이 있었다. 그 몸은 유연성이 있었으며, 햇볕에 그을린 의자 팔걸이에 두 손을 올려놓고 여유 있게 앉아 있는 모습이 로댕의 눈에는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로댕의 마음에 걸리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로댕은 겁쟁이의 부드럽고 촉촉한 눈을, 정신병자의 초점이 뚜렷하지 않은 굼뜬 눈을, 병사의 조심스러운 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국인의 눈은 밝고 맑으며, 아무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마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안구의 홍채(紅彩)는 회색으로 어둡고, 겨울날 아침의 유백색 안개처럼 흐려 있다. 그리고 그 눈에서는 아무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로댕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데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그 연막의 그늘에서 어떤 생각이 움직이고 있어도 로댕은 거기에서 어떤 불안을 느꼈다. 조직과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로댕도 예견할 수 없는 것, 즉 컨트롤할 자신이 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소." 하고 그는 무뚝뚝하게 말을 꺼냈다. "먼저 나부터 소개를 하겠소. 나는 마르크 로댕 대령이오." "알고 있소." 영국인이 곧바로 말했다. "당신은 OAS의 작전주임이지. 르네 몽클레아 소령, 당신은 경리 책임자고. 그리고 당신은 프랑스 국내에서 지하운동의 책임을 맡고 있는 앙드레 카슨." 그는 정확히 지적하면서 세 남자를 차례차례 쳐다보고는 담배를 꺼내어 붙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카슨이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꽤나 잘 아시는 것 같군." 영국인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첫번째 연기를 한 모금 뿜어냈다. "여러분, 터놓고 의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당신네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고, 당신네들도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소. 우리 둘 다 상식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소. 그런데 당신네들은 당국에 쫓기고 있지만, 나는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가 있소. 또, 나는 돈을 위해서 일하고, 당신네들은 이상을 위해서 일하지.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있어도, 구체적인 일에 들어가면 우리는 둘 다 가면을 쓰고서 상대방을 견제할 필요는 없소. 당신네들이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물으며 돌아다녔던데, 그런 것은 반드시 조사당하는 사람의 귀에 들어오게 마련이라오. 그래서 당연히 나도 누가 나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졌소. 그것이 내게 복수하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를 고용하려는 사람인지 그 부분을 분명히 알아야만 하니까. 그래서 내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조직의 이름을 알아내고는 곧바로 대영박물관에 이틀간 다니면서 프랑스 신문의 파일을 열람했소. 그것을 통해 당신네 조직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소. 그래서 오늘 당신네 부하가 찾아왔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았던 거요.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내게 무엇을 해 달라는 것인가 하는 점이오." 몇 분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카슨이나 몽클레아는 먼저 말하라는 듯이 로댕을 보았다. 공수부대 대령과 청부살인자는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마주보았다. 폭력을 일삼는 인간을 잘 알고 있는 로댕은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나이야말로 자기네들이 원하는 자질과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부터 그의 눈에 몽클레아와 카슨은 가구의 일부로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연구를 한 모양이니 우리 조직을 지탱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언급하지 않겠소. 방금 당신은 그것을 이상이라고 독재자에게 지배당하고 있소. 그는 조국에 상처를 입히고, 그 명예를 더럽혔다고 믿소. 그리고 또한 그의 정권을 쓰러뜨리고 프랑스를 진정 프랑스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없애야 한다는 것도 굳이 설명하지 않겠소. 우리는 이미 6번에 걸쳐서 그의 암살을 계획했으나, 그 중에서 세 번은 계획 단계에서 탄로가 나고, 한 번은 실시 전날 적이 알아차렸고, 나머지 두 번은 기습에는 성공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소.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프로를 고용해서 이 일을 시켜 볼까 하는 생각을 현재로서는 갖고 있소. 그러나 소중한 자금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소. 그러니까 우선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로댕은 교활하게 카드를 늘어놓았다. 마지막 질문 --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 을 받고 영국인의 회색 눈에 어떤 표정이 얼핏 지나갔다. "암살자의 총탄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되어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소." 하고 영국인은 말했다. "더구나 드골은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가 아주 많소. 그렇기 때문에 그를 죽일 수는 물론 있소. 다만 문제는 달아날 기회가 적다는 점이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독재자를 없애는 데는 자기의 생명을 던지는 광신적인 인물이 있어야 하는 법이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 ." 그는 비꼬듯 덧붙였다. "당신네들은 아직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소. 퐁 드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기습을 성공시키겠다는 결의를 가진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거요." "아니오, 애국심에 불타는 프랑스인들 중에는 지금이라도 -- ." 카슨이 얼굴이 벌개져서 입을 열었지만, 로댕은 손을 흔들어 그것을 막았다. 영국인은 카슨을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프로는 어떻소?" 하고 로댕이 재촉했다. "프로는 일시적인 열광만 가지고는 행동하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냉정할 수 있고, 또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소. 또 그는 이념이나 주의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망설이지도 않소. 일에는 우발적인 착오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프로는 그것을 끝까지 계산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누구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프로는 임무를 달성하고, 더구나 그 일에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는 절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소." "독재자를 살해하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계획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영국인은 몇 분 동안 조용히 담배만 피우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칙적으로는 가능하오. 충분한 시간이 있고 준비가 완벽하다면 틀림없이 거요. 다른 목표와 비교하면 훨씬 힘들지." "어째서?" 하고 몽클레아가 물었다. "드골 쪽에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오. 개개의 계획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전반적인 의도 그 자체를 항상 경계하고 있으니까.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거물은 모두 보디가드나 경비요원을 갖추고 있지만, 오랫동안 암살의 위험을 느끼지 않게 되면 자연히 조사가 형식적인 것이 되고, 경비하는 방법도 기계적이 되어 무엇보다도 경계심 그 자체가 허술해지고 맙니다. 그런 때에 암살자가 나타나면 단 한 발의 총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기에 패닉(갑작스런 공포)이 일어납니다. 암살자는 그 틈에 도망치는 거요. 그러나 드골의 경우엔 없고, 또 경비도 기계적인 것이 아니오. 설령 암살자의 총탄이 그에게 명중했다 하더라도 경비진은 어리석은 패닉은 일으키지 않고 즉시 암살자의 체포에 들어갈 거요. 그러니까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가장 어려운 모험 중 하나가 아니겠소? 상대방은 당신네들이 세운 계획을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계통을 통한 시도 또한 모두 저지하고 있으니까." "우리들이 만일 프로 살인자를 고용할 경우에는 -- ." 하고 로댕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영국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것을 가로막았다. "프로를 고용하지 않을 수 없을 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순수한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소, 우리의 조직 안에는." "물론이오. 확실히 와탱과 키리체가 있긴 하지." 하고 금발이 대꾸했다. "그리고 드겔드레나 바스찬 칠리 같은 인물이 하나둘이 아닐 거요. 그러나 당신네들이 나를 이리로 부른 것은 일부러 정치적인 암살 이론에 대해 의논이나 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고, 방금 한 이야기 중에도 나왔듯이 암살 지원자가 갑자기 동이 나버렸기 때문도 아니오. 당신네들의 조직에 비밀경찰의 첩자들이 다수 침투해 들어와서 최고의 기밀사항이라도 금방 새어나가기 때문이며, 더구나 당신네 조직 요원들은 모두가 다 전 프랑스 경찰이 얼굴을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외부 인물이 그것은 분명히 옳은 생각이오. 외부 인물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남은 문제는 누가 얼마를 받고 맡을 것이냐 하는 것뿐이지. 적어도 나에 대한 것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소?" "드골을 암살해 주겠소?" 로댕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말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질문은 방안 가득히 긴장을 감돌게 했다. 영국인의 시선이 로댕의 얼굴로 다시 갔지만, 그 눈엔 아무런 표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럴 수야 있지. 하지만 비쌉니다." "얼마?" 하고 몽클레아가 물었다. "먼저 이해해 주시기 바라는 것은, 이것은 일생에 한 번이라는 점이오. 이 없소. 체포되지 않고, 더구나 정체도 탄로나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소. 이 한 번의 일로 일생 동안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고, 드골파의 복수로부터 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돈을 받지 않고서는 수지가 맞지 않소." "우리가 권력을 잡으면 -- ." 하고 카슨이 끼어들었다. "당신에게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 ." "보수는 현금으로 받겠소." 영국인은 그의 말을 가로막듯이 그렇게 말했다. "받은 착수금으로 먼저, 나머지 반은 일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총액은?" 하고 로댕이 물었다. "50만." 로댕은 몽클레아 쪽을 보았다. "그건 거금인데. 50만 신 프랑이라면......" "달러요." 영국인은 태연하게 고쳐 주었다. "50만 달러?" 몽클레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당신, 돌지 않았소?" "아니오." 조용히 영국인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프로로서는 최고요. 따라서 보수도 제일 비싸지." "훨씬 싼값으로도 프로를 고용할 수 있소." 카슨은 비꼬아 주었다. 하지만 영국인은 감정 없는 소리로 대꾸했다. "물론 더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프로도 있을 거요. 그러나 그런 자들은 착수금만 대한 변명이나 하거나, 어쨌든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거요. 최고의 프로를 고용하면 결과는 보장될 것이고, 돈을 낸 보람도 있을 겁니다. 보수는 50만 달러. 그 이하로는 이야기가 안되겠소. 당신네들은 프랑스를 수중에 넣으려 하고 있소. 50만 달러라면 오히려 나라를 아주 싸게 평가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 이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로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50만 달러나 되는 현금이 없소." "압니다." 영국인은 표정도 바뀌지 않았다. "내게 일을 부탁하고 싶으면 어디서든 돈을 구해야겠지. 내게는 이 끝냈으니까, 앞으로 몇 년 놀면서 지낼 정도의 돈은 있소. 다만 이 시점에서 은퇴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들어온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매력적이오. 그러나 그래봤자 당신네가 얻게 될 보수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지 -- . 당신네들 쪽에서는 프랑스라는 대국을 수중에 넣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당신네들은 내 요구를 듣고 꽁무니를 빼고 있소. 애석한 일이지만, 돈 마련이 안된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당신네들 손으로 그 일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소. 어차피 모든 계획이 당국에 의해서 수포로 돌아가게 되기 십상이지만." 그는 담배를 끄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로댕이 먼저 일어났다. "앉으시오. 돈은 틀림없이 준비하겠소." "좋소. 하지만 그 밖에 또 조건이 있소." "말해 보시오." "당신네들이 외부 인물을 고용하려는 것은 당신네들의 비밀이 계속 경찰에게 새어나가기 때문이오. 그래서 묻는 것인데, 외부 인물을 고용한다는 아이디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조직 내부에 몇이나 있소?" "지금 여기 있는 세 사람뿐이오. 바스찬 칠리가 처형되던 날 이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그 뒤로 조사도 일체 내가 혼자서 해왔소. 여기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시기 바라겠소. 절대로 다른 데로는 새나가지 않게 해주시오. 이 모임의 기록이나 자료 같은 것은 모두 불태워 주십시오. 당신네들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저는 2월에 아르그 대령도 그런 꼴이 되었지만, 당신네들 중 하나라도 체포될 경우에는 즉시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해주어야겠소. 그러니까 당신네들은 일이 끝날 때까지 어디고 안전한 곳에 가서 엄중한 경계 속에 숨어 있으란 말이오, 아시겠소?" "좋소, 그 밖에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도 모두 내가 혼자 하겠소. 자세한 것은 누구에게도, 당신네들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다시 말하자면, 지금부터 나는 행방불명이 되는 거요. 일체의 연락을 끊겠소. 런던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당신네들이 알고 있긴 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는 대로 그 동안에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지금의 주소로 연락해 주시오. 하지만 아주 중대한 사항일 경우에 한해서만 하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그리고 스위스 은행의 이름을 알려 주고 가겠소. 그 은행에서 25만 달러의 입금통지가 오는 대로 행동을 시작하겠소. 그러나 그때까지 내 준비가 모두 끝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소 늦어질지도 모르겠소. 어쨌거나 나는 내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행동을 시작할 거요. 당신네들 형편에 따라서 간섭당하지도 않겠소, 물론 지시도 받지 않겠소, 좋습니까?" "이의 없소. 하지만 정부 안에 우리의 요원들이 숨어들어가 있는데, 그들의 정보수집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오. 있으니까." 영국인은 잠시 이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알겠소. 그럼, 그쪽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전화번호만 하나 편지로 알려 주시오. 프랑스의 어디에서도 즉시 걸 수 있는 파리의 전화가 좋겠소. 대통령 신변의 경비 상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할 때에는 그 전화번호를 돌리겠소. 물론 그때는 내 거처를 가르쳐 주지는 않을 거요. 그리고 전화의 주인에게도 내 임무를 알리지 마시오. 내가 OAS를 위해서 일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르면 모를 수록 좋기 때문이오.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둘수록 말이오, 중요한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고위급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소. 신문에서도 알 수 있는, 휴지 같은 정보는 원치 않으니까. 이 점도 동의하시는 거지요?" "좋소, 알겠소. 그러니까 당신은 동료든 다른 것이든 필요없고, 혼자서만 행동하겠다는 거로군. 자신의 머리만을 믿고, 서류 위조 같은 것은 어쩔 셈이오? 우리 조직에는 우수한 위조 전문가가 둘이나 있는데." "나 스스로 해결하겠소." 카슨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독일 점령하의 레지스탕스와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원한다면 그 조직을 총동원해서 당신을 돕겠소." 힘으로 행동하겠소. 그것이 나의 최대의 무기요." "그러나 만일 일이 잘못되어 도망쳐야 할 때에는 --- ." "잘못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소. 만일 일어난다면 당신네들 쪽에서 실수를 했을 때뿐이오. 나는 당신네들의 조직과는 완전히 무관한 상태에서 행동하고 싶소. 당신네 조직에는 스파이나 배신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단 말이오. 이렇게 나를 이리로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오?" 카슨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몽클레아는 단시일내에 50만 달러라는 현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방법만을 생각하면서 어두운 얼굴로 창을 너머로 영국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하게, 앙드레. 이분은 혼자서 행동하고 싶은 거네. 모두 맡겨 버리기로 하세. 그것이 이분의 방법이니까. 게다가 우리 조직의 암살지원자들같이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바꾸어 말해서 50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내고 고용할 가치가 없는 거지." "그러니 남은 문제는 -- ." 몽클레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단시간 내에 50만 달러라는 거금을 모으는 방법 말인데......" "조직을 써서 은행을 터는 방법은 어떻소?" 태평스러운 얼굴로 영국인이 제안했다. "어떻든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문제요." 돌아가기 전에 마무리지어 둘 점은 이제 없나?" "당신이 착수금 25만 달러를 챙기고 행방불명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나는 이 일을 끝내면 은퇴하고 싶소. 당신네들 조직의 암살자들에게 쫓기는 것은 싫소.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 돈의 액수 이상을 써야만 할 거요. 25만 달러 정도는 금방 없어져 버리지." "그럼, 반대로 -- ." 카슨은 집요했다. "당신이 일을 끝낸 뒤에 이쪽에서 잔금 지불을 거부하면?" "처지가 바뀔 뿐이오." 영국인은 거리낌없이 대답했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당신네 세 분을 노리게 될 거요. 그러나 않겠지. 그럴 거요." 여기서 로댕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막았다. "더 이상 없으면 이것으로 의논은 끝내기로 하세. 이 이상 손님을 잡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야. 아, 그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호칭에 대한 것인데, 익명으로 통하고 싶다면 암호명이 필요해. 적당한 것이 떠오르지 않소?" 영국인은 잠깐 생각하고서 말했다. "이 일은 일종의 사냥이니까 '재칼'이 어떨까?" 로댕은 동의했다. "좋소. 아니, 정말 좋은 이름이군." 그는 영국인을 문까지 앞장서 데려가서 열어 주었다. 빅토르가 벽의 오목한 은신처에서 나타나서 다가왔다. 살인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능한 한 빨리 당신이 지정한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겠소. 그 동안에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계획을 착수해 주겠소? 좋소. 그럼, 봉수아르, 미스터 재칼." 손님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라졌다. 코와르스키는 그것을 묵묵히 배웅했다. 영국인은 그날 밤 공항 호텔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런던으로 돌아갔다. 팡숑 크라이스트의 한 방에서 로댕은 카슨과 몽클레아가 퍼붓는 불만과 질문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둘은 완전히 실성한 사람 같았다. "50만 달러......" 몽클레아는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대체 무슨 수로 50만 달러라는 거금을 모으겠다는 건가?" "결국 재칼 말대로 은행을 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하고 로댕이 대답했다. "나는 그자가 마음에 안 들어." 카슨은 입 속의 것을 뱉어내듯 말했다. "놈은 동지를 거부하는 독불장군이야. 그런 상대는 위험해. 이쪽 컨트롤이 불가능하니까." 로댕은 항의를 막듯이 말했다. "들어 보게, 둘 다. 우리는 이 계획을 생각해 냈고, 그것에 동의했으며, 돈을 위해서는 프랑스 대통령을 살해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인물을 찾아냈어. 나는 저런 친구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그 친구라면 해낼 거야. 이미 계획은 실천 하세. 그의 일은 그에게 맡겨두면 돼." 제 3 장 1963년 6월 중순부터 7월 한 달간에 걸쳐서 프랑스 전국의 중요 은행, 보석상, 우체국이 무장강도단에게 피습되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범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각지의 은행이 권총, 총신을 짧게 자른 숏건,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한 강도단에게 습격당했다. 보석상의 피해는 거의 모든 상점마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서, 지역경찰이 부들부들 떨거나 피를 흘리고 있는 주인이나 점원에게서 조서를 받고 있는 사이에도 같은 시간에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여 그리로 출동하는 상황이었다. 사살된 예가 두 건이나 보고되는 등, 7월말에 가서 사태는 극도에 달해 마침내 내무부 직속의 국가보안공화부대 -- 프랑스인에게는 CRS로 알려져 있는 치안유지 전문의 국가경비대 -- 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출동하게 되었다. 어느 은행에서나 손님은 반드시 현관 홀에서 자동소총을 가진 푸른 제복의 CRS 대원에게 몸수색을 당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이 범죄에 대해서 은행이나 보석상들은 날카롭게 정부를 비판했다. 그들의 항의에 굴복하여 경찰은 야간경비를 강화했지만, 이 조치는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들은 밤의 어둠을 틈타 은행의 금고 문을 강제로 여는 정통파 프로가 아니고, 저항하면 용서없이 쏘아 버리는 폭도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오히려 대낮이었다. 전국 각지의 은행이나 보석상은 영업중인 대낮에 복면을 하고 총을 든 여러 명의 범인들이 뛰어들어 무조건, "손들어!" 하고 외치는 살기 어린 고함소리에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7월 말에 범인 셋이 부상당한 채 체포되었다. 그 중 하나는 OAS를 구실삼아 나쁜 짓을 일삼는 조무래기 악당이었다. 다른 둘은 외인부대의 탈영병으로서 OAS의 요원임을 자백했다. 그러나 아무리 혹독한 신문을 당해도 그들은 이 격류와 같은 범행의 파도가 어째서 갑자기 프랑스를 덮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것이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빼앗은 금품 중에서 얼마 안되는 액수를 보수로 받기로 하고 오로지 명령에만 따른 잔챙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직당국은 마침내 이 소란의 배후에 있는 것이 OAS이며, 어떤 이유에서 OAS는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국에서 정작 그 이유를 알아낸 것은 8월 초순이 되어서였으며, 더구나 그것도 소름끼치는 사태에 직면하고 나서부터였다. 6월 말이 되자 사태는 점점 중대한 양상을 띠게 되어, 마침내 그 처리가 사법경찰 형사부 국장 모리스 부비에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게데조르페부르 36번지에 있는 사법경찰 본부 안에 있는, 숨막히게 현금과 보석류(이 경우는 시가로 환산된 금액)의 그래프가 작성되었다. 7월 말까지 피해 총액은 200만 신 프랑, 40만 달러를 넘어섰다. 범행에 쓰인 비용이나 범인들에게 준 보수를 뺀다고 하더라도 부비에의 짐작에 의하면 막대한 금액이 남아야 한다. 6월 4주째인 어느 날, SDECE 국장인 기보 장군 앞으로 로마 지부장에게서 온 보고서가 도착되었다. 그것은 OAS의 최고 간부 3명인 마르크 로댕, 르네 몽클레아, 그리고 앙드레 카슨이 로마 시내 콘도티 가(街) 외곽에 있는 모 호텔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그 보고서는 또한, 그렇잖아도 호텔 생활은 비싸게 먹히는데 세 사람은 맨 위층 전부를 자기들 전용으로 각각 빌려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밤낮 약 8명의 외인부대 출신의 사나운 녀석들에게 경호를 받으며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SDECE는 그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들은 앙투안 아르그와 같이 납치당하는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특별히 조심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기보 장군은 테러리스트 조직의 최고간부들이 로마의 호텔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이러니컬한 미소를 지었을 뿐, 특별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그 보고서를 파일로 작성했다. 지난 2월 에덴 볼프 호텔에서 있었던 아르그 납치사건은 분명히 서독의 주권을 침범한 것으로서, 그 외무부와 본의 서독 외무부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기보 장군은 납치를 수행한 액션 서비스의 부원들에게 만족하고 있었다. OAS의 최고간부들이 겁을 먹고 호텔에 숨어 산다는 것 자체가 그 일에 대한 무엇보다도 뚜렷한 성과였다. 장군은 마르크 로댕의 파일을 보면서 일말의 불안을 느끼긴 했지만, 억지로 그것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래도 로댕쯤 되는 녀석이 어째서 그렇게 겁을 먹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SDECE에서 오랜 경험도 쌓았고, 무엇보다도 정치와 외교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기보는 두번 다시 외국에서 아르그의 경우와 같은 강경수단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OAS 간부 세 명이 밝혀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런던으로 돌아간 재칼은 6월 말과 7월 초를 신중하게 작성한 스케줄에 따라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돌아간 그날부터 그는 무엇보다 먼저 샤를 드골에 관한 기록문서며 책, 그리고 드골이 직접 쓴 저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대영백과사전의 프랑스 대통령 항목을 펴 보니 끝부분에 참고서의 리스트가 나와 있었다. 그것만 보면 충분했다. 그는 가명을 써서 수신처를 패딩턴 구(區) 플리드 가(街)의 모처로 지정하여 유명한 서점에다 책을 주문하고, 필요한 참고서의 우송도 의뢰했다. 그런 책을 그는 매일 밤 새벽 동틀 무렵까지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모습을 마음속에서 그려 나갔다. 책에서 얻은 정보의 대부분은 이용 가치가 없었으나 간혹 눈에 뜨이는, 성격적 특징을 나타내는 구절을 꼼꼼하게 노트에 기록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대통령의 회고록인 <칼날>이었다. 그 안에서 드골은 인생과 조국,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태도를 화려한 필치로 기술해 나갔다. 재칼은 치밀한 사람이었다. 탐욕스럽게 책을 찾아 읽고, 소심할 정도로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현재는 필요치 않아도 장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정보도 대량으로 머릿속에 넣었다. 이것은 직업상의 습관이기는 하지만, 역시 하나의 샤를 드골의 저서와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쓴 책에서 재칼은 높은 긍지와 오만한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 볼 수가 있었지만, 6월 15일 빈에서 드골 암살에 대한 일거리를 맡은 이후로 그의 골치를 가장 아프게 해온 최대의 문제점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7월의 첫째 주가 지나도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저격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대영박물관에 간 그는 늘 그랬듯이 가명을 써서 자료열람 신청을 하여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르 피가로'의 백넘버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답이 나왔다고나 할까,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대강 7월 7일 전후의 3일 사이였던 것은 틀림없다. 어떤 하나의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을 드골이 대통령에 취임한 1945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의 기록과 대조해 본 결과, 간신히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샤를 드골은 어떤 특정한 날에는 몸이 아프거나, 날씨가 나쁘거나, 자신에게 닥칠 위험 같은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반드시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밝혀낸 다음, 재칼의 준비는 연구단계에서 실제의 계획을 세우는 단계로 들어섰다. 아파트에 누워 뒨굴며 크림색 천장을 바라보면서 킹사이즈의 필터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며 오랜 시간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계획이 세부적인 데까지 정리되었다. 최종적으로 이 계획대로 실천하자고 면밀하게 검토했다. '언제'와 '어디에서'는 이미 결정해 두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를 해결한 것이다. 1963년 현재, 드골 장군은 단지 프랑스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 있어서도 가장 엄중하고, 또한 교묘하게 경호되고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재칼은 그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드골의 암살은 나중에 증명되었듯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재칼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미국의 배려로 케네디의 신변경비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프랑스의 담당관은 미국의 시크릿 서비스가 취하고 있는 경비태세의 안이함에 얼굴을 찌푸리고 귀국했다. 프랑스 담당관이 미국의 방식을 채택하지 1963년 11월 케네디는 댈러스에서 미치광이 같은 아마추어의 손에 암살된 반면, 드골은 그 뒤에도 살아남아서 평화적으로 은퇴하여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무대 뒤에서 있었던 이런 일들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재칼의 현상 인식은 정확했다. 그가 상대하려는 프랑스의 경비진은 세계에서도 최고에 속한다는 것, 더구나 그를 고용한 조직은 기밀누설로 산산조각이 나 있는 점 등. 그에게 유리한 점은 혼자의 힘으로, 더구나 익명으로 행동한다는 작전과, 목표로 하고 있는 인물이 경비진과 협력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 인물은 어떤 특정한 날에 그의 천성인 높은 긍지와 완고한 성격과, 명색이 대통령인데 자기 신념에 따라서, 설령 어떤 위험이 가까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의 카스트라프 공항에서 날아온 SAS 여객기가 런던의 히스로 공항의 터미널 건물 앞에서 마지막 커브를 꺾고, 몇 미터 더 가서 멈춰섰다. 그래도 엔진은 몇 초 동안 계속 울렸으나 그것도 곧 정지되었다. 이윽고 트랩 차가 기체 옆에 와서 붙게 되자 승객들이 제일 꼭대기의 승강구에 서서 미소를 뿌리는 스튜어디스에게 눈인사를 해가며 한 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터미널 건물의 가장 위층에 있는 송영장으로 쓰이는 테라스에서는 그 금발의 사나이가 짙은 선글라스를 이마에 모습으로 도착하는 여객기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관찰하는 것은 벌써 오늘 아침 들어 여섯 번째가 되지만, 따뜻한 햇살이 넘치는 테라스는 여객기의 도착을 기다리다가 승객들이 트랩을 내려오기 시작하면 자기가 찾는 상대를 빨리 찾아내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거동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덟 번째의 승객이 기내에서 나와 햇살 속에 나타나서 기지개를 켰을 때, 테라스의 사나이는 조금 긴장해서 트랩을 내려오는 그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쫓았다. 세워진 칼라의 회색 사제복을 걸친 것이 목사이거나 신부였다. 나이는 40대 후반쯤으로서, 회색 머리를 중간 정도의 얼굴보다는 젊은 것 같았다. 큰 키에 어깨가 널찍하고 아주 단단해 보이는 체구라서, 테라스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나이와 같은 몸매였다. 승객들이 여권 검사와 통관을 위해서 도착 승객용 라운지를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재칼은 옆에 놓여 있던 가죽 서류가방에 망원경을 집어넣고는, 찰칵 하고 닫고서 조용히 뒤에 있는 유리문을 빠져나가 중앙 홀로 내려갔다. 15분 뒤에 덴마크의 목사는 손가방과 여행용 가방을 들고 세관에서 나왔다. 누구 마중나온 사람도 없는 모양인지, 목사는 그대로 버클리스 은행에서 설치해 놓은 환전소 창구로 걸어갔다. 조사를 받을 때 목사는 옆에 금발의 영국인이 서 있었던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영국인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척하면서 선글라스 밑으로 몰래 이 덴마크인의 외모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목사에게는 적어도 그런 사나이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목사가 크롬웰 가(街)행 BEA 버스를 타려고 중앙 홀에서 나왔을 때, 영국인은 서류가방을 들고 그의 몇 발자국 뒤를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버스로 런던 시내로 들어갔다. 크롬웰 가의 터미널에서 목사는 버스를 뒤따라온 수하물 운반용 트레일러에서 자기의 여행가방을 내려 줄 때까지 몇 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여행 가방을 받아든 그는 화살표에 '택시'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출구를 향했다. 그 사이에 재칼은 버스 뒤를 돌아서 버스 주차장을 가로질러 종업원용의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자기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픈식 스포츠카 뒷좌석에 서류가방을 던져 놓고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서 엔진을 걸고 터미널 왼쪽 벽 가장자리로 차를 옮겼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면 아케이드 밑에 줄줄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의 기다란 줄이 보인다. 목사는 세 번째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크롬웰 가를 나서자 나이츠브리지 쪽으로 향했다. 스포츠카가 그 뒤를 따랐다. 택시는 하프문 가(街)에 있는 조그맣고 지내기에 편할 듯한 호텔 앞에서 목사를 몇 분 뒤에 바로 옆인 카즌 가(街)의 길가에 있는 주차요금기 옆에 세워놓았다. 재칼은 서류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잠그고서 셰퍼드 마켓의 신문 파는 곳에서 '이브닝 스탠더드'를 한 부 사가지고 호텔의 로비로 돌아왔다. 그 동안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5분 뒤, 목사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방 열쇠를 접수대 여자에게 맡겼다. 그녀는 그것을 못에 걸었다. 열쇠는 한동안 흔들렸다. 친구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로비의 의자에 앉아 있던 재칼은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 목사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맡긴 열쇠가 47번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몇 분 지나서 접수대 여자가 투숙객이 부탁한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재칼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모르게 층계를 올라갔다. 47호실의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2인치 폭의 부드러운 운모(雲母) 끈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팔레트 나이프를 밀어넣자 스프링 자물쇠가 찰칵 하고 열렸다. 목사는 점심을 먹으러 갔을 뿐이라서 여권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였다. 재칼은 그것을 가지고 30초 뒤에는 복도에 나와 있었다. 여행자 수표에는 일부러 손대지 않았다. 방에 도둑이 든 흔적이 없으면 경찰은 목사가 여권을 어디 다른 곳에서 분실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목사에게도 그렇게 설득하려고 하겠지. 그렇게 기대하고 한 짓이다. 사실, 결과는 재칼이 주문하기 전에 재칼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호텔에서 사라졌다. 목사가 여권 분실을 알게 된 것은 오후 늦게였으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온 방안을 찾다가 결국 단념하고 호텔 지배인에게 알렸다. 지배인은 방안을 샅샅이 찾아보고는 여행자 수표를 비롯해서 다른 소지품이 모두 그대로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호텔에 경찰을 부를 필요는 없으며, 여권은 이리로 오는 도중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거라고 당혹해 하고 있는 목사를 온갖 말로 타일렀다. 사람좋은 목사는 이곳이 외국이며, 또한 자기가 불 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자각도 있었으므로 할 수 없이 지배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덴마크 동안의 런던 체재 후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데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아 놓고서 그 뒤 여권에 대한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권을 대신할 서류를 발급해 준 총영사관의 사무직원은 코펜하겐 시 산크트 엘드스키르크의 페르 옌센 목사의 이름으로 여권 분실을 기록하고, 그 역시 그대로 잊어버렸다. 7월 10일의 일이었다. 이틀 뒤, 뉴욕 주 시라큐스 시에서 온 미국 학생이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그는 뉴욕에서 런던 공항에 도착하여 오셔니크 빌딩 안에 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창구에서 여행자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여권을 꺼냈다. 현금으로 교환한 그는 그것을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고, 여권은 지퍼가 달린 대형 지갑에 도로 넣고서 넣었다. 몇 분 뒤, 그는 포터를 부르려고 가방을 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3초 뒤에는 이미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에 그는 포터에게 항의를 했으며, 포터는 그를 팬아메리칸 항공의 상담소에 데리고 갔고, 상담소 직원은 그를 가까이에 있는 공항 경비원에게 넘겼다. 경비원과 함께 대기소로 간 그는 거기서 사정을 설명했다. 누군가가 자기의 것과 바꿔 들고간 것이 아닐까 하는 추리도 있었지만,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은 아닌 것으로 판정이 나고 결국 절도사건으로 보고하게 되었다. 경비원은 이 장신에 근육질의 체격을 가지고 있는 미국 청년에게 소매치기나 절도범이 설치는 데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외국인 손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여러 가지로 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미국 청년도 사람이 좋아서, 자기 친구도 한번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비슷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으며, 대도시는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고 오히려 경비원을 위로했다. 이 피해보고서는 도난당한 가방의 모양과 그 내용물, 신분증과 지갑 안에 든 여권의 기재사항 등을 적은 메모지를 달아서 런던 경시청의 관계 각 부서에 통상적인 순서를 거쳐서 회부되었다. 당연히 이것은 파일로 작성되고 형식적이나마 수사도 진행되었지만, 몇 주일이 지나도 단서 하나 잡히지 않아서 그대로 사건은 잊혀지고 한편, 미국인 학생 마티 슐버그는 글로브너 광장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도난당한 것을 신고하고, 귀국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는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이용해서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사귄 영국의 걸프랜드와 둘이서 스코틀랜드의 고지를 두루 여행할 예정이었다. 영사부에서는 여권의 도난을 기록하여 워싱턴의 국무부에도 보고했으나, 양쪽이 모두 당연한 일처럼 그 일을 잊고 말았다. 런던의 히스로 공항에는 국제선 전용 건물이 둘 있는데, 송영을 위해 쓰이는 테라스에서 재칼이 망원경으로 관찰한 도착 승객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 중 여권을 분실한 두 사람은 나이는 다르지만 다 키가 약 180cm, 어깨가 넓고, 근육질의 날씬한 몸매에, 눈빛은 청색, 그리고 그 얼굴의 생김새는 그들을 미행해서 여권을 훔쳐 간 점잖은 외모의 영국인 얼굴과 아주 비슷했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을 들자면 옌센 목사는 48세, 머리칼은 회색이며, 글씨를 볼 때에는 금테 안경을 끼는 데에 비해, 마티 슐버그는 나이 25세, 밤색 머리칼, 언제나 굵은 테의 안경을 끼고 있는 점이다. 이 두 사람의 얼굴을 재칼은 사우스 오들리 가(街) 외곽에 있는 아파트에서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연구했다. 그리고 하루를 잡아 무대화장 전문가, 안경점, 주로 뉴욕에서 만든 미국 타입의 의복을 취급하고 있는 웨스트사이드의 남성복 도수 없는 안경알을 넣은 금테와 검고 굵은 테의 안경을 각각 하나씩, 뉴욕제의 검은 가죽 구두, T셔츠와 팬티, 오프화이트(회색이 도는 흰색)의 슬랙스(헐렁한 바지), 소매 끝과 깃을 빨간색과 흰색 털실로 짜고 앞에는 지퍼가 달린 나일론 점퍼, 그리고 목사용의 흰 셔츠에 풀기가 빳빳한 칼라와 검은 흉배 등을 사들였다. 목사용 의류에 붙어 있는 상표는 깨끗이 떼어냈다. 그날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첼시(런던 시내 남쪽의 한 구(區)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두 사람의 호모가 경영하는 남성용 가발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회색과 밤색의 염색약과, 단시간 내에 가장 자연스러운 색깔을 내는 염색약을 바를 때에 쓰는 조그만 헤어브러시도 몇 개 샀다. 이런 물건과 미제 의복 말고는 그는 한 상점에서 한 가지 이상의 물건을 사지 않았다. 다음날인 7월 18일, '르 피가로'지의 한쪽 구석에 난 작은 기사를 그는 읽었다. 그것은 프랑스 사법경찰 형사부 차장, 이포리트 듀퓌이 총경이 파리의 케데조르페부르 본부 내에서 집무하다 심장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호송 도중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후임에는 살인과의 과장 클로드 르베르 총경이며, 여름에 접어들어 형사부의 각 파트가 일에 쫓기고 있을 때이기도 해서 르베르 총경은 즉시 새로운 임무의 중책을 떠맡지 않을 수 없을 매일 런던에서 구할 수 있는 프랑스의 각 신문을 빼놓지 않고 사 보고 있었는데, 그때도 표제 속에서 '형사부'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 그 기사를 읽어 보았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별로 관심을 끄는 것이 없었다. 런던 공항에서 관찰을 시작하기 전에 재칼은 이번 일을 마무리지을 때까지는 계속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에서 가짜 여권을 구하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는 살인청부업자나 밀수업자 등이 가명을 댈 때에 쓰는 수를 쓰기로 했다. 그는 우선 조그만 마을을 찾아 런던 주변의 시골을 차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세 번째로 찾아간 마을의 묘지에서 그의 의도에 합당한 반으로 죽은 알렉산더 댓건이라는 사람의 무덤이었다. 만일 댓건이 살아 있다면 1963년 7월 현재 그보다는 몇 달 연상인 셈이다. 그가 목사관을 찾아가서 자기는 족보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마추어인데, 지금 댓건 가문의 족보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하자 노인인 목사보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옛날에 분명히 그 마을에 옮겨와서 정착한 댓건이라는 가족이 있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재칼은 교회의 과거장(過去帳 ; 교회에서 죽은 사람들의 속명, 세례명, 죽은 날짜 따위를 기록해 두는 장부)을 보여 주면 조사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것을 목사보에게 부탁했다. 노인은 바로 친절 그 자체였다. 교회로 건축된 교회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보수비를 모으는 헌금함에 지폐를 밀어넣으니 목사보의 태도는 더욱더 우호적이 되었다. 과거장에 의하면 댓건 부부는 모두 지난 7년 여 사이에 사망했으며, 가엾은 외아들 알렉산더는 30여 년 전에 이 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재칼은 1929년의 출생, 혼인, 사망 페이지를 별로 흥미도 없는 듯이 넘기다가 4월 항에 달필의 목사다운 필적으로 댓건이라는 이름이 기입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렉산더 제임스 ㅋ틴 댓건, 1929년 4월 3일, 세인트 마크 교구(敎區) 샘번 피실레이에서 출생. 재칼은 자세히 메모하고서 목사보에게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교회를 떠났다. 런던에 돌아온 그는 출생, 혼인, 사망신고를 일괄해서 관리하고 있는 중앙등록소를 찾아갔다. 젊은 서기는 그가 내민 슈로프셔 군(郡) 마켓 드 레이턴 시에 있는 법률사무소의 공동경영자라는 명함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받았으며, 최근에 사망한 노부인으로부터 부동산을 손자들에게 물려준다는 취지의 유언장을 맡아 가지고 있기에 지금 그 손자들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자 가운데 한 사람은 이름이 알렉산더 제임스 ㅋ틴 댓건이며, 1929년 4월 3일 세인트 마크 교구 샘본 피슐레이에서 출생한 것까지는 알고 있다고 영국의 공무원들은 정중한 문의에는 아주 친절히 대응하는, 장점인지 결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특징이 있는데, 이 서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문제의 아이는 분명히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났으나, 1931년 11월 8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했다. 재칼은 규정된 수수료를 지불하고 출생증명서와 사망증명서를 각각 한 통씩 작성해서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노동부 지부에 들러서 여권 신청용지를 받고서, 다음에는 장난감 상점에서 아이들이 쓰는 인쇄 세트를 사고, 마지막으로 우체국에서 1파운드짜리 우편환을 샀다. 아파트에 돌아온 그는 여권 신청용지에 넣고, 다른 난에는 자신의 것을 그대로 써 넣었다. 예를 들면 키, 머리카락, 눈의 색깔 등. 직업란에는 단지 '비즈니스맨'이라고만 썼다. 부모의 이름은 출생증명서에서 보고 베꼈다. 그리고 신원보증인 난에는 그날 아침에 만난 세인트 마크 교구의 목사보인 제임스 엘더리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목사보의 이름은 교회의 문에 못박아 둔 명패에 문학박사 칭호와 함께 써 있었던 것을 보고 알았던 것이다. 목사보의 사인은 희미한 잉크와 가느다란 펜을 가지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서체로서 누가 봐도 목사의 글씨다운 면이 느껴지도록 위조했다. 다음에는 인쇄 세트를 써서 '샘본 피슐레이, 세인트 마크 교회'라는 스탬프를 단정하게 눌러 찍었다. 그리고 출생증명서의 사본과 여권 신청서에 우편환을 첨부하여 페리 프랑스에 있는 여권발행국으로 우송했다. 사망증명서는 찢어 버렸다. 4일 뒤의 아침, 그가 그날의 '르 피가로'지를 읽고 있을 무렵 깔깔한 새 여권이 지시해 놓은 곳으로 우송되어 왔다. 그는 점심을 마친 다음 그것을 찾으러 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 아 파트를 잠그고 차로 런던 공항으로 가서 수표 사용을 피하고 현금으로 항공료를 지불하고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의 여행가방은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보통 잡지 정도의 두께여서 웬만큼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는 들키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 안에 그는 두었던 손금고에서 꺼낸 2,000파운드어치의 지폐를 숨겨 넣었다. 코펜하겐에서는 예정대로 순조롭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카스트라프 공항에 도착하자 곧 다음날 오후의 사베나 항공의 브뤼셀행 비행기 좌석을 예약했다. 시내에서 쇼핑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에 콩스 니 토르브에 있는 호텔 당글테일에 방을 잡고 세븐 네이션에서 왕족 같은 저녁을 먹고는, 티볼리 공원을 산책하면서 금발머리 둘과 함께 진한 대화를 즐기고 밤도 늦은 새벽 1시에 호텔에 돌아와서 침대에 파고들었다. 다음날, 코펜하겐의 중심부에 있는, 이 나라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남성복 전문점에서 춘추용 목사복, 검은 구두, 셔츠를 석 장 샀다. 모두 덴마크 상표가 붙은 것만을 골랐다. 흰 셔츠는 별로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상표를 성직수임식을 앞둔 신학생이라 칭하기 위해 런던에서 사 모은 사제복에 입은 셔츠와 흉배에 옮겨 붙이기 위해서 일부러 산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야 할 물건은 덴마크어로 쓴 프랑스의 저명한 교회와 사원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티볼리 공원의 연못가에 있는 을씨년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15분발의 사베나 항공기로 브뤼셀을 향해 날아갔다. 제 4 장 폴 구상스 같이 재능이 풍부한 인간이 어째서 중년에 되어서 인생의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것은 몇 안되는 그의 친구들이나, 꽤 많은 고객이나, 벨기에 경찰에게도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는 리에주(벨기에 서부의 도시)에 있는 파블리크 나시오날에 30년이나 근무했으며, 정확성이 절대적 조건이 되는 기술부문에서 정밀성의 화신이라고 불렸었다. 또, 성실성이라는 점에서도 그는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30년 사이에 여자용 소형 권총에서부터 중 기관총까지, 회사가 제작하는 모든 화기에 있어서는 회사 내에서 제일가는 전문가가 되어 전시중의 행동 또한 눈부신 것이었다. 벨기에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을 때, 그가 근무하는 총기공장도 접수되어 독일군을 위한 총기를 만들기 시작하여 그는 공장에 남아서 일을 계속했는데, 전후의 조사에서 그 동안의 그의 행동이 밝혀졌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비밀요원이 되어 활약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도 격추당한 연합군 조종사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아지트망을 만들어서 협력하고, 또한 공장에서는 사보타주를 이끌었던 것이다. 당시 리에주에서 운반되어 온 총기의 상당 부분이 정확히 발포되지 않기도 하고, 총알을 50발 정도 쏘고 나면 폭발을 일으켜 독일병을 사상케 했다고 한다. 그는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이런 나중에 그가 죄를 지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변호사가 어디에선가 찾아내어 법정에서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재판관도 오랜 의논 끝에 형의 경감에 동의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전시중의 행동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해방 후 훈장이다 표창이다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 싫었다고 하는 그의 겸손해 하는 진술에 배심원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후 50년대의 초기에 막대한 분량의 무기 거래로 직원 중 누군가가 외국의 거래선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혐의가 당시 부장 자리에 있었던 그에게로 돌아갔으나 그의 상사는 경찰에 그 신용 있는 구상스를 의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경하게 항의했다. 변호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이토록 대단한 신뢰를 배신했다는 것은 더욱 용서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형은 항소로 5년이 되었고, 형무소에서는 복역태도가 좋아서 3년 반 만에 석방되었다. 출소했을 때 아내는 이미 이혼수속을 끝내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나가 버린 뒤였다. 리에주 교외의 아름다운 주택지(그런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에 화단으로 둘러싸인 주택에서 살았던 과거의 생활은 이미 흘러간 꿈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론 회사와의 인연도 끊어져 버렸다. 그는 브뤼셀에서 조그만 아파트를 빌렸다. 그리고 비합법적으로 무기를 손에 넣어서 암흑가의 조직에 팔기 시작했다. 그 장사는 고객으로 갖게 될 만큼 번창하여 브뤼셀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집을 갖게까지 되었다. 60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총장사'라는 별명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존재가 되었다. 벨기에에서는 벨기에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증명만 보이면 누구라도 스포츠용품점이나 총포사에서 리볼버 권총이든 라이플이든 자유롭게 살 수가 있다. 다만, 총기나 거기에 쓰는 탄약을 상점에서 팔았을 경우 사간 사람의 이름과 신분증명서의 번호를, 총기나 탄약의 종류와 함께 매상 장부에 기재해 놓지 않으면 안된다. 구상스는 반드시 훔쳤거나 위조한 신분증을 구해서 그것을 썼다. 그는 그 도시에서도 솜씨 좋기로 이름난 소매치기는 국가의 귀빈으로 형무소 생활을 할 때는 별문제지만, 도시로 돌아오면 지갑 한둘 소매치기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로 하였다. 구상스는 그가 소매치기한 지갑에 들어 있는 신분증명서를 현금으로 사 주었다. 구상스는 또한 위조의 명수와도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40년대 말에 대량의 프랑스 프랑을 위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Banque de France'(프랑스 은행)의 'u'자를 멍청하게도 빠뜨린 채 인쇄하는(당시는 그 정도로 미숙 했었기 때문이지만) 실수를 저질러서, 그 뒤로는 여권의 위조로 직종을 바꾸어 성공하고 있었다. 구상스는 최근엔 손님에게서 무기의 부탁을 받아도 자기가 직접 총포사에 사러 가지는 않게 되었다. 배역을 못 맡은 3류 배우들에게 교묘하게 위조한 신분증을 들려서 사러 보내고 있다. 그 '스탭들' 중 그의 진짜 내력을 알고 있는 것은 소매치기 명수와 위조전문가뿐이다. 또, 고객들 중에서는 벨기에의 암흑가 간부들만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와 그의 스탭들을 보호해 주고, 체포되었을 때에도 무기의 출처는 절대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그런 녀석들에게는 그만큼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긴 벨기에 경찰 당국에서도 그의 동태를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현장을 덮치거나, 공소를 유지하여 그를 유죄로 몰아넣을 정도로 유력한 증언을 도저히 서류를 위조하거나 총을 개조하는 데 쓰이는 기계류가 갖추어져 있다는 낌새를 채고 가끔 덮쳐 보았지만, 언제나 거기 있는 것은 연철의 금속이나, 브뤼셀의 유명한 조각 작품을 모방한 토산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설비뿐이었다. 아주 최근에 덮쳤을 때에도 그는 경찰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면서 '오줌싸개 소년'의 모형을 지휘자인 경감에게 정중하게 증정한 적이 있었다. 1963년 7월 21일 고객 중의 하나인,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카탕가(아프리카 자이르 공화국 남단부에 있는 샤바 주(州)의 옛 명칭) 정부에 고용되어 일했으며, 현재 브뤼셀의 적선지대(赤線地帶)를 한 손에 틀어쥐고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그 영국인을 기다리면서 아무런 의구심도 느끼지 않았다. 손님은 약속대로 정오에 나타났다. 구상스는 그를 조그만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손님을 보면서 말했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안되겠소?" 장신의 영국인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그가 말했다. "거래를 할 때에는 되도록이면 서로 믿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마시겠소?" 알렉산더 댓건 명의의 여권을 지닌 영국인은 짙은 선글라스를 벗고 맥주를 따르는 왜소한 총기상을 이상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구상스는 탁자에 앉아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무슨 용건인지요?" "내가 온다는 것을 루이에게서 들으셨을 텐데?" "물론." 구상스는 시인했다. "여기 이렇게 와 있지 않소. 무슨 용건인지 루이가 말 안 합디까?" "못 들었소. 단지 그 양반은 당신과는 카탕가에서 사귀게 되었으며, 당신의 입이 무거운 것은 보증하고, 총을 필요로 하고 있고, 대금은 파운드의 현금으로 지불할 것이라는 정도밖에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영국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나는 이미 당신이 하는 장사를 알고 있으니까 공평을 기하는 의미에서 내 필요한 총은 특수한 부속품이 달린 전문가용 총이오. 나는 그......뭐라고 할까, 강대하고 재력 있는 적을 가진 인간을 없애는 일이 전문이오. 그런 인간은 그 역시 힘과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요. 편한 일은 아니오. 상대방도 전문가를 고용해서 자신을 지키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런 일에는 면밀한 계획과 거기에 적합한 무기가 필요하단 말이오. 현재 일거리가 하나 있어서, 그 때문에 라이플이 있어야겠다는 이야기요." 구상스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멋진 일이지. 나와 마찬가지로 스페셜리스트(특별주의자)로군. 어쩐지 의욕이 생기는데. 그래, 어떤 종류의 "타입은 중요하지 않소. 일의 성질상 여러 가지 계략이 있기 때문에, 그 제약하에서도 충분히 기능을 발휘할 라이플이 필요하오." "알았소." 구상스는 신난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즉, 어떤 상황하에서 특정한 인간이 특정한 일을 위해서 한 번만 쓰는 특별 주문의 총이라는 이야기로군.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나 말고는 그런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인간이 없지. 흠 --- 꼭 하고 싶소, 그 일은. 당신, 정말 내게 잘 왔소." 영국인은 구상스가 프로 기질답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지었다. "나도 이리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래, 그 제약이라는 것이 어떤 거요?" "우선 첫번째로 그 제약은 크기요, 길이가 아니고. 움직이는 부분의 크기지 노리쇠 뭉치와 총신 뒤쪽 끝의 굵기가 이 이하라야겠소." 그는 오른손을 올려서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직경 6cm 정도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노리쇠 뭉치가 그 정도 굵기로 제약이 된다면 연발식은 무리라는 애긴데. 거기에 스프링 메카니즘을 짜넣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단발식 라이플이 되지 않을 수 없지." 구상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국인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는, 노리쇠 뭉치가 극도로 가느다란 "그리고,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단발식이라고 해도 모제르 7.92나 리 엔필드 303처럼 노리쇠 손잡이가 옆으로 튀어나오면 안되겠소.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잡고서 가볍게 뒤로 당길 수 있어야만 하오. 그리고 방아쇠의 안전장치는 필요없고, 방아쇠 자체도 사격 직전에 달 수 있는, 탈착이 가능한 것으로 할 필요가 있소." "왜?" "총을 몇 개로 분해해서 원통형 용기에 넣어 보관하고 운반할 필요가 있으니까, 돌출된 것이 있으면 불편하단 말이오. 용기 자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모양이어서는 안되고, 또 원통형 용기에 넣자면 총의 곤란하다는 이야기지. 어째서 원통형 용기에 넣으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소. 자, 어떻소? 탈착이 가능한 방아쇠는 만들 수 있겠소?" "물론이오. 방금 말한 조건은 거의 전부 실현이 가능해. 신탄총식으로 뒤에서 둘로 꺾이는 단발 라이플이라면 별로 힘 안 들이고도 만들 수 있지. 그런 식이라면 노리쇠는 없어도 되지만, 대신 경첩이 필요하게 되니까 전체의 중량이 별로 변하진 않겠지. 그런 라이플을 설계해서 제작하자면 내 손으로 직접 쇠토막을 가공하여 노리쇠 뭉치를 만드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 손으로 만들어야겠는걸. 조그만 공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하자고 들면 못할 것도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소?" 구상스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두 팔을 벌렸다. "2~3개월쯤은 잡아야겠는걸." "그렇게는 기다릴 수 없소."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 놓은 총을 사와서 개조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그 밖의 조건은?" "중량은 되도록 가볍게, 구경은 크지 않아도 되고. 총알의 위력으로 보완이 되니까. 총신의 길이는 최대한 30cm 정도." "사격 거리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130m쯤." "노리는 것은 머리, 아니면 가슴?" "머리, 가능하다면. 그게 효과가 "명중된다면야 그야 머리가 훨씬 효과적이지. 확실하게 죽으니까. 그러나 노리기 쉬운 것은 가슴 쪽이야. 총신이 짭고 가벼운 총으로 여러 가지 장해를 받으며 130m 거리에서 쏘자면 아무래도 가슴이 쉽지. 당신이 머리를 쏠지 가슴을 쏠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한 것은,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오?" "그렇소. 바로 그래요." "그럼, 두 발을 쏠 기회가 있다고 보시오? 첫번째 탄피를 약협에서 뽑아내고 새 탄환을 넣고서 약실을 닫고 다시 조준이 완료될 때까지 몇 초 걸린다고 보오." "기회는 없다고 보는 것이 좋겠지. 하긴 소음기를 써서 첫번째가 엉뚱한 곳으로 사격을 눈치채지 못했을 경우라면 모르지만. 그러나 처음 한 발로 관자놀이를 꿰뚫었다고 해도 현장에서 도망치자면 역시 소음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겠지. 주위에 있는 녀석들이 총알이 어디서 날라온 것인지를 알아낼 때까지 적어도 몇 분의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구상스는 탁자 위에 있는 메모지로 시선을 옮기더니 계속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작약탄(炸藥彈)을 쓰는 게 좋겠는걸. 총과 함께 준비해 주겠소. 작약탄은 아시겠지?" 영국인은 끄덕였다. "글리세린을 쓰나, 아니면 수은을 쓰나?" "수은이 좋을걸. 뒤도 깨끗하고, 우선 있소?" "있소. 총을 될 수 있으면 가늘게 하고 싶으니 총신 아래쪽에 붙어 있는 나무덮개는 전부 떼어내 주시오. 개머리판도 떼어내고. 그 대신 영국제 기관단총처럼 쇠로 된 개머리를 붙여 주시오. 그리고 아래위의 틀과 어깨받이, 이렇게 세 부분을 분해할 수 있게 해주시오. 마지막으로 고성능의 소음기와 망원 조준기. 둘 다 모두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하게 탈착이 가능하도록 해주시오." 구상스는 조금씩 맥주를 홀짝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영국인은 차츰 초조해졌다. "어때요, 할 수 있겠소?" 구상스는 그제야 꿈에서 깨어났다. "오! 미안, 미안. 하나같이 어려운 주문이지만, 물론 가능하지. 이래봬도 주문받은 물건을 못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당신이 지금 얘기한 건 말하자면 사냥이오. 더구나 그 무기는 검문을 당해도 추호의 의심도 받지 않을 방법으로 운반될 수 있어야만 하는 거겠지. 사냥이라면 사냥총이 필요하게 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말하자면 그거요. 구경 22로는 너무 작아. 토끼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그렇다고 레밍턴 300처럼 크면 당신의 주문에 맞출 수가 없고. 그래, 꼭 알맞을 듯한 총이 떠오르는군. 더구나 이 브뤼셀의 스포츠용품점에서 간단히 손에 들어오기도 하고. 정밀하기로는 그 이상이 없는 비싼 총이오. 가볍고도 가늘어서 주로 영양을 사냥할 때 쓰지만, 작약탄을 쏜다면 더 큰 사냥감도 쓰러뜨릴 수 있소. 그런데 과녁이 되는......신사는 천천히 움직이나, 빨리 움직이나, 아니면 전혀 움직이지 않나?" "정지되어 있소." "그럼, 문제없소. 세 개의 쇠막대기를 조립한 개머리와 조립식 방아쇠는 따로 연구하지 않아도 만들 수 있소. 또, 총신을 20cm 짧게 하고, 그 끝부분에 소음기를 끼워넣기 위해서 깎아내는 작업도 내가 직접 할 수 있소. 그런데 총신을 20cm나 줄이면 명중율이 훨씬 떨어진단 말이야. 안됐지만 총이 아까워. 당신, 저격훈련은 받았소?" 영국인은 끄덕였다. 거리에서 망원조준기를 써서 노리는 데에는 문제없겠지. 소음기는 내가 만들어 주겠소. 별로 복잡하진 않은데, 기성품이 아주 드물어서 말이오. 대체로 라이플은 사냥에 별로 쓰지 않으니까, 라이플용의 긴 소음기는 더구나 구하기 어렵지. 그런데 아까 당신은 총을 분해해서 가지고 다니는 데에 원통형 용기를 쓴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것을 쓸 생각이오?" 영국인은 일어나서 탁자에 다가가서는 왜소한 벨기인을 내려다보듯 그 앞을 막아섰다. 천천히 그는 윗도리의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벨기에인의 눈에 공포의 그림자가 스쳤다. 이때 그는 이 살인전문가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든, 그것이 절대로 눈에는 모든 표정을 덮어 버리는 자욱한 연기처럼 잿빛으로 흐려 있었다. 영국인이 안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은빛 샤프 펜슬이었다. 그는 구상스의 메모지를 자기 쪽으로 돌려 놓고 재빨리 스케치했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총기상 쪽으로 돌려서 보여 주고는 물었다. "이러면 알겠소?" "물론." 하고 벨기에인은 정확한 스케치를 흘끔 보고는 대답했다. "이것은 모두 알루미늄제 원통으로서, 돌려서 박으면 전체를 짧게 만들 수 있게 되어 있소. 여기에는 -- ." 하고 도면의 한 곳을 샤프 펜슬 끝으로 두드리면서 영국인이 말했다. "개머리 일부를 넣을 거요. 그리고 알루미늄 관을 조립하면 이 부분이 되는 거요. 어깨받이는 이거......여기요...... 즉, 알루미늄 관 자체가 어깨받이가 되는 셈이지. 그리고 여기 -- ." 그는 도면 위, 다른 한 곳을 두드렸다. 벨기에인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 가장 큰 부분은 직경이 가장 큰 알루미늄 관이고, 이 안에 장전 손잡이를 짜넣은 노리쇠 뭉치를 넣을 거요. 그리고 여기는 총신의 모양과 같이 끝이 가늘게 되어 있소. 총신에는 가늠쇠를 달지 않소. 망원조준기를 쓰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게다가 가늠쇠가 없으면 꺼내고 넣기에도 간단하니까 부드럽게 넣고 뺄 수가 있소. 나머지 두 군데......여기와 여기에는 망원조준기와 소음기를 넣을 거요. 볼록한 곳에 꽂아 넣으면 되겠지. 이 전체를 조립하면 분해된 라이플이 안에 들어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거요. 분해한 7개 부분, 즉 탄환, 소음기, 조준기, 라이플의 몸체, 그리고 긴 삼각형의 개머리를 만드는 세 개의 쇠막대기 -- 이것은 언제라도 곧 꺼낼 수가 있고, 그것을 조립하면 즉시 사격이 가능한, 그런 것이 아니면 안된단 말이오. 알겠소?" 왜소한 벨기에인은 한참 더 도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무슈." 그는 경의의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오. 이거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 틀림없이 만들어 보겠소." 영국인은 기쁜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불쾌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부탁하겠소. 그런데 시간 말이오, 대강 14일 뒤에는 총이 필요해. 가능하겠소?" "물론. 우선 시중에서 파는 총을 손에 넣는 데에 3일, 개조하는 데에 1주일쯤 걸리겠지. 망원조준기도 간단히 구할 수 있소. 어떤 모양의 것으로 하는가는 내게 맡기고. 사정 거리를 130 미터로 하고서,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테니까. 눈금 조정은 당신이 직접 시험사격을 해보고 나서 당신이 하는 것이 좋겠군. 그 밖에 소음기를 만들고 실탄을 개조하고...... 서두르면 약속한 날까지 될 수 있겠소. 다만, 이번에 여기 올 때에는 마지막에 가서 의논할 게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12일 뒤에는 다시 한 번 더 왔으면 하는데, 어떻소?" "알겠소. 7일에서 14일 뒤 사이라면 언제라도 올 수 있소. 그러나 14일이 최대의 한계요. 8월 4일에는 런던으로 돌아가 있어야만 하니까." "8월 1일 여기에 와서 최종적인 의논이 되면, 4일 오전중에는 당신 주문에 딱 들어맞는 총을 넘겨주겠소." "좋소. 그럼, 경비와 수수료는 얼마나 되겠소?" 벨기에인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수공, 기계 사용료, 거기에 내 전문지식, 그 모두를 통털어서 1,000파운드는 받아야지. 고작 라이플 한 모르지만, 이건 보통 라이플이 아니오. 예술품이지.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 만들 자격이 있는 인물은 유럽이 넓다고는 해도 나밖에 없으니까. 최고의 것에는 최고의 보수를 주어야 해. 그리고 수수료 이외에 소재가 되는 총, 실탄, 조준기, 그 밖의 물건 구입비로서 200파운드는 필요하고." "알겠소." 영국인은 여러 말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5파운드짜리 지폐 다발을 꺼냈다. 20매씩 작은 다발로 나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다섯 다발 접어서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선금으로 500파운드 내겠소. 나머지 700파운드는 하면 되겠소?" 벨기에인은 돈다발을 주머니에 챙겨넣으면서 말했다. "역시 프로페셔널, 그것도 신사 프로페셔널과 하는 거래는 기분이 좋군." "또 하나 부탁이 있소." 하고 손님은 구상스의 말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자기 말을 계속했다. "앞으로는 이번 일로 인해서 루이와 접촉하거나, 또 그나 다른 누구에게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마시오. 그리고 또 내가 누구에게 고용되어 누구를 노리고 있는가에 대한 것도 일체 알려들지 마시오. 탐색하면 반드시 내 귀에 들어오고, 그때는 죽어야 하니까. 이번에 내가 여기 올 때를 노려 경찰에 연락하거나 함정을 파도 역시 구상스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영국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는 공포로 창자를 도려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갖가지 총을 찾아서 벨기에 암흑가의 패거리들이 그에게 꽤 많이 온다. 하나같이 보통 수법으로는 어림도 없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사나이들이지만, 도버 해협을 건너온 이 손님에게서는 여느 악당으로부터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것,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이 영국인은 신변경비가 엄중한 어떤 중요인물을 암살한다고 한다. 암흑가의 보스 정도가 아니고 좀 다른 종류의 거물, 아마 정치가겠지. 구상스는 차라리 생각을 바꾸도록 충고할까 했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의 처지를 잘 분별하고 있는 "무슈!" 하고 그는 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나 당신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소. 당신에게 건네줄 총의 번호도 깎아버릴 생각이오. 나로서는 당신에 대한 것을 캐는 것보다 당신이 하는 일로 내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도록 신경쓰는 편이 훨씬 중요한 일이지. 봉주르 무슈." 재칼은 밝은 햇빛 속으로 나갔다. 그리고 길을 둘 건너서 빈 택시를 잡아타고 브뤼셀의 중심부에 있는 호텔 아미고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위조 전문가를 찾아야만 했다. 구상스라면 총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신분증명서를 갖추기 위해서 위조전문가를 고용하고 있겠지만, 자신이 직접 협조를 구했다. 위조 전문가를 찾아내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브뤼셀은 유럽에서는 신분증명서의 위조 센터로서 긴 전통을 가지고 있고, 별로 귀찮은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어서 편리하게 여기는 외국인이 많은 형편이다. 60년대 초 콩고 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외국인의 용병 공급기지의 역할까지 했다. 하긴 나중에 프랑스 및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영국 부대가 콩고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그 역할도 자연히 소멸되었지만, 카탕가가 비틀거리자 구(舊) 촘베(1919~1919, 콩고(현재 자이르)의 정치가) 정부에 기식하던 300여 명의 '군사고문'이 실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브뤼셀로 다시 돌아와 환락가에 종류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 루이의 중계로 재칼은 누브 가(街) 외곽에 있는 술집에서 그 사나이와 만났다. 그가 자기를 소개하고서, 두 사람은 안쪽 벽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기 명의의 운전면허증을 꺼내 놓았다. 그것은 2년 전 런던에서 취득한 것으로서, 아직 몇 달은 유효기간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 ." 하고 그는 벨기에인에게 말했다. "지금은 이미 죽은 어떤 남자의 것이었소. 나는 영국에서 운전정지처분을 받아 면허증을 몰수당했으니까 이 첫 페이지를 내 이름으로 바꾸어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소." 재칼은 댓건 명의의 여권을 위조업자 앞에 놓았다. 위조업자는 흘끔 그것을 발행된 것이라는 것까지 확인하고 교활한 눈으로 영국인을 보았다. "알 만하군요."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빨간 면허증을 폈다. 그리고 이윽고 면허증에서 얼굴을 들고는 말했다. "이거라면 어려울 것 없지. 영국의 공무원 나리들이란 모두 신사들뿐이라서, 관공서에서 발행한 서류가 위조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요. 그러니까 위조를 막기 위한 대비책 같은 건 거의 없어요. 이런 거라면 -- ." 그는 면허 번호와 소유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면허증 첫 페이지에 붙어 있는 조그만 종이쪽지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있어요. 비밀 무늬도 코딱지만 하니까 문제없겠는데요. 그럼, 일이라는 건 이것뿐이오?" "아니, 이것 말고 두 가지 더 있소."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렇게 말하긴 좀 뭣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일을 부탁하자고 일부러 이 나를 골랐다면 내 솜씨가 아깝지. 이런 정도라면 두세 시간이면 해낼 인간이 런던에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래, 다른 두 가지라는 것은 뭐요?" 재칼은 자세히 설명했다. 벨기에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담배갑을 꺼내어 재칼에게 권했지만, 그가 사양하자 자기만 한 대 빼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건 좀 어렵겠는데. 프랑스의 진짜 견본이 잔뜩 있으니까. 그래요, 좋은 것을 만들자면 진짜를 옆에다 두고 보면서 해야만 되거든. 그런데 말이오, 또 하나 그것은 본 적도 없으니. 우리 동업자 중에서도 손대 본 녀석이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여기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재칼은 옆을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맥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웨이터가 가고 나자 다시 위조업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진 말인데요, 그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오. 나이, 머리칼의 색깔과 길이에 차이가 있어야만 된단 말이오. 신분증명서를 위조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보통 자기 사진을 가지고 특징을 약간 흐리게 해서 붙여 달라고 하거든. 그런데 당신은 지금의 그 얼굴과 닮지 않은 그는 영국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맥주를 반쯤 마셨다. "그런 사진을 만들자면 위조하는 신분증의 소유자와 대체로 같은 나이에다 얼굴 모양이나 머리 모양이 거의 당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어, 머리칼을 당신이 희망하는 길이로 잘라내지 않으면 안돼요. 그 사진을 신분증에 붙이는 거지. 실제로 그 신분증을 쓸 때에는 그 사진과 비슷하게 위장하지 않으면 안되고. 아시겠소?" "물론." "그러니까 이 일은 시간이 좀 걸린다 그 말이오. 브뤼셀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요?" "한가하지가 못해. 내일이라도 떠냐야만 되는데, 8월 1일에는 다시 돌아와서 사흘쯤 머물 생각이오. 4일에는 런던으로 돌아가야 또다시 벨기에인은 눈앞에 있는 여권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천천히 호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서 알렉산더 제임스 ㅋ틴 댓건이라는 이름을 적고는, 여권을 접어서 영국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종이쪽지와 운전면허증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그 날짜에는 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당장 당신의 사진을 찍어야겠는데요. 정면과 옆에서. 사실 이런 일은 시간도 잡아먹고 돈도 들어요, 경비도 여유가 있어야 되고...... 그 증명서를 만드는 데는 아무래도 진짜를 견본으로 쓰지 않으면 안되니까, 프랑스에 있는 소매치기 명수인 친구에게 연락해야 될지도 모르고. 물론 브뤼셀에서도 짐작되는 곳에 녀석에게 부탁하게 될 것 같다 이 말이오." "요금은?" "전부 합해서 2만 벨기에 프랑." 재칼은 머릿속에서 파운드를 환산했다. "약 150파운드로군. 좋소. 선금으로 100파운드 주지. 나머지는 현물과 바꾸기로 하겠소." 벨기에인은 일어났다. "그럼, 사진을 찍으러 가실까요? 우리 스튜디오가 있으니까." 두 사람은 택시로 달려 1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의 지하실로 갔다. 거기는 아주 평범한 사진관의 스튜디오로서, '여권용 사진을 기다리는 동안에 완성해 드립니다' 라는 뜻의 간판이 밖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진열장에는 사진사의 보란 듯이 나붙어 있다 -- 굉장히 수정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 신성한 결혼이라는 개념을 모욕하는 듯한 인상 나쁜 커플의 결혼사진, 그리고 갓난아기의 전신을 찍은 사진. 벨기에인은 앞장서서 층계를 내려가,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손님을 안으로 안내했다. 촬영은 두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위조업자는 진열장의 사진을 찍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기술을 발휘했다. 스튜디오의 구석에 놓여 있는 대형 트렁크를 열어보니 고급 카메라와 플래시, 그 밖에 머리 염색약, 가발, 온갖 종류의 안경, 무대용 화장품 등으로 가득했다. 촬영을 반쯤 하다가 위조업자는 신분증 쓰지 않고도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30분쯤 재칼의 얼굴을 매만지던 그는 트렁크에서 가발을 하나 골라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색 머리칼을 텁수룩하게 커트한 가발이었다. "손님의 머리를 이런 식으로 커트해서 이 색으로 물들이면 이 가발과 같은 인상이 되겠는데요." 재칼은 가발을 받아들고서 살펴보았다. "써보고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군." 그 착상은 성공이었다. 여섯 가지 사진을 찍어서 현상실로 뛰어든 위조업자는 30분쯤 지나서 여섯 장의 인화지를 손에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은 그것을 탁자 위에 있는 것은 늙어빠진 남자의 얼굴이었다. 피부는 회색이며, 눈밑이 고생 탓인지 질병에 시달린 것처럼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콧수염이나 턱수염은 없지만, 회색 머리칼은 적어도 50대에다, 나이보다도 훨씬 늙어 보이는, 애처로운 초로의 남자 같은 인상이다. "이거면 되겠는데." 하고 위조업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화장하는 데 30분이나 걸려서는 안되지. 더구나 가발도 사용해야 하니,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되겠는데. 게다가 이것은 실내에서 라이트를 비추고 촬영한 것이지만, 내가 신분증을 내밀고 사진과 비교될 때는 바깥의 햇빛 아래에서란 말이야." 하고 위조업자가 반대했다. "본인의 얼굴이 사진과 똑같지 않더라도, 또 반대로 사진의 얼굴이 본인과 꼭 닮지 않아도 그 점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신분증을 조사하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이란 그런 겁니다. 먼저 얼굴을 보고 나서 신분증을 보자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 다음에야 사진을 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그것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요. 사진과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을 찾으려 하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이 사진은 가로 20cm, 세로 25cm짜리의 대형이지만, 신분증에 붙이는 사진은 3~4cm짜리입니다. 인상이 아주 다르지요. 사실 하나에서 열까지 아주 신분증이 3년 전에 발행된 것이라면 소유자가 그 뒤로 조금도 변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 사진에선 손님은 줄무늬의 노타이 셔츠를 입고 있어요. 가령 이 셔츠 대신에 와이셔츠에 넥타이, 또는 스카프를 목에 감거나 터틀넥 셔츠(자리목 스웨터)라도 입는다면 완전히 느낌이 달라지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화장은 급하게는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머리 말인데요. 아무래도 미리 텁수룩하게 커트해서 사진보다 약간 진한 듯하게 물을 들여 놓아야지요. 그리고 한물간 초로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2~3일 수염을 제멋대로 자라게 놔두었다가 거친 솜씨로 면도를 하는 겁니다. 일부러 흔히 보았을 겁니다. 바로 그런 모습으로 하는 거지요. 다음은 얼굴색인데, 이게 또 중요합니다.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역시 회색으로 까칠해진 환자처럼 기름기가 싹 빠져 버린 느낌이 아니면 효과가 없지요. 손님, 무연화약(無煙火藥)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재칼은 그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위조업자의 설명을 듣고는 내심 탄복하고 있었다. 총기상도 그랬지만, 이 위조업자도 자기의 일에는 정통해 있는 프로페셔널이다. 두 사람을 소개해 준 루이에게 일이 끝난 다음에 적당한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위조업자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글쎄,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을 거요." 그것을 십어서 넘기면 30분쯤 지나 구역질이 나지요. 아주 심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렇게 되면 얼굴색도 새파랗게 되고 진땀을 흘리게 되지요. 이 수법은 전에 군대에서 많이 썼던 겁니다. 잡역이나 행군에서 빠지기 위해 그런 수법으로 꾀병을 앓는 거지요."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고맙소. 그런데 부탁한 물건은 틀림없이 약속한 날까지 되겠소?" "기술적으로는 절대 자신 있습니다. 다만, 또 하나의 프랑스 신분증 진짜가 빨리 구해지느냐 하는 것만이 걱정입니다. 하지만 그쪽도 빨리 손을 써서 8월 초까지는 모두 갖추어 넘겨드릴 수 있도록 해놓겠습니다. 그......선금을 주시겠다고 재칼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5파운드짜리 지폐 20장 다발을 하나 꺼내어 벨기에인에게 건네주었다. "다음에는 연락을 어떻게 하지?" "오늘밤과 같은 방법으로 해도 좋습니다." "그건 안돼. 그 친구가 행방불명이 되거나 일 때문에 이곳을 떠날 때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당신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해." 벨기에인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8월 1일부터 사흘 동안 아까 그 바에서 매일 밤 6시에서 7시까지 손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오시지 않으면 이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하지요." 재칼은 이미 가발을 벗고, 화장 지우는 그것이 끝나자 그는 말없이 넥타이를 매고 윗도리를 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위조업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둘 게 있소." 조용한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의 친근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상대방을 응시하는 두 눈은 도버 해협의 안개처럼 차갑고 음산했다. "일이 끝나면 약속대로 그 술집에 와야 해. 그때 새 운전면허증과 함께 아까 맡긴 것에서 오려 낸 페이지도 돌려주어야 하고. 방금 찍은 사진의 원판과 현상한 것도 모두. 댓건이라는 이름과, 그 면허증 소유자의 이름은 잊어버려. 그리고 위조하는 프랑스의 신분증 두 장에 기입하는 이름은 그쪽에서 적당한 것을 아무것이나 좋으니까. 서류를 내게 넘겨주면 그 이름도 잊는 거야.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돼. 이상의 조건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당신은 죽는 거야. 알겠소?" 위조업자는 한동안 말없이 재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영국인을 그저 영국에서 차사고를 냈거나, 아니면 무슨 개인적인 이유로 프랑스에서 중년 남자로 둔갑하려는 흔히 있는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마약이나 다이아몬드를 브루타뉴 부근의 한적한 어항에서 영국으로 운반하는 일수업자 정도겠지 하고. 그렇더라도 기분좋은 녀석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겠소." 그리고 다섯 블록쯤 걷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 아미고로 돌아왔다. 이미 한밤중이었다. 그는 룸서비스를 불러 냉동 닭고기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서 공복을 채우고, 샤워로 화장을 완전히 씻어 낸 다음 침대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을 체크아웃한 그는 파리행 브라반 급행을 탔다. 7월 22일의 일이다. 같은 날 아침, SDECE의 액션 서비스의 책임자인 롤랑 대령은 책상에 놓인 두 통의 문서를 훑어보았다. 두 통 모두 다른 부서의 에이전트가 제출한 통상적인 보고서 사본이었다. 청색 복사지의 상단에 그것이 배부된 부과장의 이름이 나란히 기재되어 되어 있었다. 그 보고서들은 그날 아침 본부에 도착한 것으로서, 여느때 같으면 롤랑은 죽 한번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서 불유쾌한 기억들로 가득 찬 머리 한구석에 간수하고 그것으로 끝내 버리겠지만, 이 두 통의 보고서에 공통으로 나타나 있는 한 가지 내용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첫번째 보고서는 제3부(서유럽 담당)가 내보낸 회람용 메모 형식이었으며, 로마 지부에서 온 속달 공문의 개요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로댕, 몽클레아 및 카슨은 여전히 호텔의 가장 위층에 틀어박혀 있으며, 8명의 경호원이 경비하고 있음. 그들은 6월 18일 그 호텔에 들어간 이후로 한 번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3부에서 파견된 인원이 24시간 감시중. 파리에서 간 지시 -- 건드려서는 안된다. 감시를 계속하라 -- 는 그전과 같음. 그 호텔에 머물러 있는 세 명은 3주일 전에 외부에 대한 연락방법을 확립(6월 30일자 로마발 보고서를 참조)하여 현재도 여전히 그 방법을 유지. 연락원은 빅토르 코와르스키. 이상. 롤랑 대령은 책상 위 오른쪽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담황색 파일을 집어들어서 폈다. 그 재떨이는 105mm 포탄 탄피를 잘라서 만든 엄청나게 큰 것이지만, 이미 꽁초가 반이나 차 있었다. 그는 6월 30일자 로마발 제3부의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찾고 있던 문장을 발견했다. 매일 -- 보고서에는 이렇게 지시되어 있었다 -- 경호원 하나가 호텔을 나가 로마 푸아티에라는 인물의 명의로 우체국까지만 배달되는 우편물용 정리함 하나가 확보되어 있다. 열쇠가 달린 사서함을 빌리지 않은 것은 뜯기거나 내용물을 탈취당할 것을 겁내고 있다고 보여짐. OAS의 세 간부에게 가는 우편물은 모두 푸아티에 앞으로 되어 있으며, 우체국까지만 배달되어 우편 담당직원이 보관하게 된다. 그 직원을 매수하여 우편물을 우리 쪽 에이전트에게 넘겨주도록 해보았으나 그 시도는 실패했다. 직원은 우리 쪽의 접근을 상사에게 보고했으며, 그는 상급 직원과 교체되었다. 푸아티에 앞으로 오는 우편물은 당연히 이탈리아 공안경찰의 검열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제3부는 이탈리아 당국과 접촉하여 협조를 의뢰하는 실패했지만, 어떤 주도권을 잡을 필요는 있다. 전날 밤 안에 도착된 우편물은 다음날 아침 경호원에게 건네주는데, 그의 이름은 빅토르 코와르스키라고 하며, 전 외인부대의 하사이고, 인도네이시아에 로댕이 지휘하는 중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푸아티에 명의의 가짜 신분증이나, 아니면 이탈리아의 권력층에서 발행한 신원보증서 같은 것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코와르스키가 우편물을 부칠 경우에는 우체국 중앙 홀 안에 있는 우편함 옆에서 수집시간 5분 전까지 기다렸다가 집어넣으며, 또한 우편함 내의 우편물을 모아서 분류장으로 가져갈 때까지 그것을 감시한다. 이 사이에 그 우편물을 탈취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는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은 파리에서 온 지시를 어기는 것이다. 간혹 코와르스키는 국제전화 창구에서 장거리전화를 걸 때가 있으나, 그가 신청한 번호를 알아내거나 대화를 엿들어 보려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상. 롤랑 대령은 파일의 겉장을 덮고 그날 아침 도착한 두 번째 보고서를 손에 들었다. 이것은 국가사법경찰인 메츠 경찰서에서 보내온 것이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즉, 메츠 경찰서에서 시내의 술집을 단속할 때 도주하는 사나이를 체포하려고 난투극이 벌어져 경찰관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서에 연행하여 지문 조회를 해본 결과, 그 사나이는 헝가리 출신의 산도르 1956년 헝가리 사태 때 서방 쪽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국가사법경찰본부가 그 보고서에 첨부한 메모에 의하면, 코바크스는 1961년 알제리의 본 및 콩스탕틴 두 구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테러 살인사건에 관계하여 지명수배된 OAS의 악명높은 테러리스트로서, 당시 그는 같은 OAS의 암살자이며 현재 수배중인 전 외인부대 하사 빅토르 코와르스키의 파트너로 행동했었다고 한다. 롤랑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한 시간 이상이나 생각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이 눈앞에 있는 인터폰의 버저를 눌렀다. "예, 부르셨습니까?" 하는 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렸다. 줘. 지금 곧." 10분 뒤에 문서창고에서 파일이 오자 롤랑은 다시 한 시간이나 그것을 검토했다. 어떤 특정한 부분을 그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다. 내려다보이는 거리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할 무렵, 롤랑 대령은 그의 비서, 문서과의 펜글씨 전문가, 그리고 직속부대에서 민첩한 요원 둘을 불러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는 일동에게 말했다. "어떤 남자의 이름으로 편지 한 통을 써야겠어." 제 5 장 재칼이 탄 급행열차는 정오 전에 파리 북부역에 도착했다. 그는 택시로 마들렌 광장으로 통하는 쉬렌 가(街)에 있는 조그맣고 지내기 편할 것 같은 호텔로 갔다. 코펜하겐의 호텔 당글테일이나 브뤼셀의 호텔 아미고와 비교하면 격이 훨씬 떨어지지만,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 호텔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파리 체류는 좀 길어질 것이니 경비도 절약이 되고, 또 7월에는 파리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큰 호텔에 묵으면 런던에서부터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코펜하겐이나 조그만 호텔이 마음이 놓였다. 시내에 나갈 때는 반드시 짙은 선글라스를 썼다. 이것은 그가 늘 애용하는 것으로, 밝은 여름 햇볕이 넘치는 큰길에는 선글라스 차림이 드물지 않았고, 인상을 감추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호텔의 복도나 로비는 위험했다. 준비가 여기까지 진행된 단계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누군가가 반가운 목소리로, "오! 뜻밖이군! 이런 데서 만나게 되다니!" 하고 그의 본명이라도 입에 담게 되어, 그를 댓건이라고만 알고 있는 프런트 직원이 의심하게 되는 불상사라도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방에서 먹고, 그 이후는 조용히 지냈다. 다만 한 가지 그래도 꼽아 보라면, 아침식사에 따라나오는 검은딸기 잼이 싫어서 건너편 식료품 가게에서 마멀레이드를 한 병 사가지고 와서, 아침식사에 잼 대신에 그것을 곁드려 달라고 호텔 종업원에게 부탁한 정도이다. 호텔 종업원에 대해서도 조용한 언동으로 예의바르게 처신하고, 영국인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프랑스어를 어쩌다가 한두 마디 애교삼아 입에 담고서 인사를 하면 상냥한 미소로 답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경을 써주는 지배인에게 아주 쾌적한 호텔이며, 여러 가지로 신세가 많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무슈 댓건은 -- ." 하고 어느 날 호텔의 정도였다. "아주 친절한 분이야. 저런 모습이 진짜 신사지."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낮에는 파리 시내를 구경하고 다녔다. 도착한 날 시내 지도를 사가지고 메모를 보면서 가보고 싶은 곳에 표를 해두었다. 그는 그 명소들을 찾아가서 놀랄 정도로 열심히 연구했다. 어떤 곳에서는 그 건축비를 마음속에 새기고, 또 어떤 곳에서는 그것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도 음미했다. 그는 사흘이나 걸려서 개선문 주변을 돌아보고, 샹젤리제 거리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에투알 광장(현재의 드골 광장)을 둘러싼 기념비와 건물의 옥상 같은 것을 있었다면(물론 그런 건 없었지만) 화려한 오스만식 건축을 이토록 열심히 구경하고 찬미하는 관광객을 보고 틀림없이 놀랐을 것이다.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몇 시간씩 말없이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조용하고 기품 있는 영국인 관광객이 사실은 마음속으로 사격의 각도와 개선문 위쪽에서 아래로 타고 있는 '구원의 불'까지의 거리, 뒤쪽의 비상계단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뛰어내려가서 군중 틈에 섞일 수 있는 기회의 유무 등을 계산하고 있을 줄은 설령 옆에서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사흘 동안 에투알 광장을 계속 돌아본 전몰자의 성당을 찾아갔다. 그는 꽃다발을 올렸다. 그곳 안내원은 과거 레지스탕스의 전사였는데,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영혼에 대한 영국인의 태도에 감동하여 납골당 안은 말할 것도 없고 묘지의 구석구석까지 정중하게 안내했다. 그러나 안내원은 이 낯선 방문객의 시선이 끊임없이 납골당의 입구에서 옆에 붙어 있는 형무소의 높은 담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높은 담장은 주변의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성당의 안뜰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그는 안내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팁까지 건네주고 나갔다. 다음으로 그는 앙발리드(戰傷兵收容所) 광장을 찾아갔다. 광장 남쪽에는 프랑스 커다란 성당을 갖춘 앙발리드 건물이 있다. 서쪽은 파베르 가(街)이며, 여기에 그는 가장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내내 파베르 가와 '칠레의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좁은 삼각형 광장 모퉁이에 있는 카페에 계속 앉아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그르넬 가(街)가 90도 각도로 파베르 가와 교차하는 그르넬 가 146번지이며, 머리 위로 솟아 있는 건물의 7층인가 8층에 오르면 앙발리드의 앞뜰, 안뜰의 입구, 그리고 앙발리드 광장의 대부분과 그 밖에 거리 두셋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러나 구경하는 장소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지만, 저격에는 마땅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위층의 창에서 통로(그 밑에는 양쪽으로 전차(戰車)가 놓여 있는 층계가 있고, 거기에 차를 갖다댈 수 있다)까지의 거리가 200 미터 이상 된다. 게다가 146번지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산티아고 광장의 울창한 보리수로 가려져 있는 것이다. 나무 사이에서 날개를 쉬는 비둘기의 똥으로, 그 밑에 버티고 서 있는 보반(17세기의 명장) 동상의 어깨가 희게 더럽혀져 있었다. 실망한 그는 차값을 치르고 그곳에서 나왔다. 노트르담 대성당 내에서도 그는 하루를 보냈다. 시테 섬에 있는 이 대성당의 주위는 좁은 골목이며 통로가 종횡으로 나 있고, 대성당의 입구에서 차가 세워져 있는 층계 아래까지의 거리는 몇 -밖에 안되며, 옥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인접한 샤를마뉴 네거리 공원 주변의 건물이 너무 가까워서 경찰이 잠복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렌 가(街) 남쪽 끝에 있는 십자로 공원이다. 그날은 7월 28일이었는데, 전에 렘 광장이라고 불리던 이 십자로 공원은 드골파가 정권을 잡은 날을 기념해서 '1940년 6월 18일 광장'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재칼의 시선은 건물의 벽에 박아넣은 새 거리의 명판으로 옮겨가서 멈췄다. 예비준비를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읽어 두었던 자료 중에서 발견한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1940년 6월 14일, 런던에 망명해 있던 오만한 지도자는 마이크 앞에 서서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 진 것은 아니라고. 남쪽에 몽파르나스 역의 건물을 옆에 둔 이곳, 전중파(戰中派)에게 추억 어린 이 광장에는 암살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넓은 아스팔트를 멀리까지 둘러보았다. 몽파르나스 대로(大路)와 렌 가에서 합류해 오는 차로 광장은 마치 차의 소용돌이 같았다. 그는 렌 가의 양쪽에 줄지어 서 있는, 폭은 좁아도 높이 올라간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광장의 끝을 돌아 남쪽으로 가서 울타리 사이로 몽파르나스 역 광장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은 하루에도 몇 만이나 되는 통근자가 타고 내리는 파리의 중요 역 중 하나이며, 승용차나 택시로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오기 전에 이곳에 얽힌 갖가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기억들을 안은 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몽파르나스 역은 철거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구 몽파르나스 역은 도시재개발을 위해서 1964년에 철거되었다. 새 역은 선로를 따라 약 500미터 내려간 곳에 지었다.) 재칼은 울타리를 등지고 렌 가를 오가는 차의 행렬을 내려다보았다. 그 저쪽에 '1940년 6월 18일' 광장이 있다. 프랑스의 제5공화국 대통령은 그날 반드시 여기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살펴본 다른 곳도 제각기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만은 절대로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가까운 장래에 몽파르나스 역은 사라져 버린다. 수많은 베를린의 굴욕을, 파리의 해방을 목격한 역전 광장은 카페테리아가 되겠지. 그러나 그전에 전투모에 황금 별을 단 그 사나이가 다시 한 번 틀림없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렌 가의 서쪽 모퉁이에 있는 아파트의 가장 위층에서 역전 광장의 중심까지는 약 130 미터이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재칼은 훈련이 잘된 눈으로 머릿속에 새겼다. 렌 가가 광장과 맞닿는 곳에 있는 양쪽의 건물은 저격장소로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누구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거기서 길을 따라 늘어선 3채는 역전 광장을 노리기에는 시계(視界)가 좁지만, 일단 후보지점으로 꼽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는 문제도 안된다. 한편, 광장을 나 있는 첫번째 3채도 역시 후보지로서 생각해 볼 만하다. 그 너머는 시계도 좁고 거리도 너무 멀어서 문제 밖이다. 거리도 알맞고 역전 광장을 내다볼 수 있는 위치의 건물로는 이들 말고는 역 건물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고려의 대상이 안된다. 역전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이라는 창문에는 모조리 경찰이 잠복하겠지. 재칼은 우선 렌 가의 서쪽 모퉁이에 늘어선 첫번째 3채의 건물을 연구하기로 하고, 동쪽 모퉁이에 있는 '앙 공작부인'이라는 카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는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고, 거리의 반대쪽에 있는 3채의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거기서 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거리의 반대쪽에 있는 앙시 점심을 먹고 동쪽의 건물들을 연구했다. 오후에는 그 3채의 아파트 앞을 왔다갔다하면서 현관 안을 들여다보며 내부 사정을 살폈다. 다음에 그는 몽파르나스 대로 쪽으로 난 건물을 살펴보았지만, 모두 비교적 새로 지은 사무실용 빌딩으로서 사람의 출입이 잦았다. 다음날 그는 렌 가로 가서 동서 양쪽에 각각 3채씩 있는 아파트 앞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인도의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는 척하면서 위층의 동정을 살폈다. 모든 건물이 다 5층이나 6층짜리로서 검은 타일을 붙인 급경사의 지붕에 다락방의 창문이 튀어나와 있었다. 다락방은 옛날에는 하인들의 방이었지만, 빌려서 살고 있다. 지붕도, 그리고 그 다락방의 창문도 그날은 엄중하게 감시당하겠지. 아니, 지붕 위에 감시원이 배치되고 굴뚝 뒤에 숨어서 건너편 창이나 지붕을 감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락방 바로 아래층이라면 높이도 충분하고, 또 길 건너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방구석에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저격장소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사격을 위해서 창문을 열어 놓아도, 무더운 파리이고 보면 별로 수상히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건너편 건물에서 보이지 않도록 창 앞에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역전 광장의 표적에 대한 사격 각도가 좁아진다. 그래서 재칼은 동쪽과 서쪽의 모퉁이에서 건물은 모퉁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잖아도 사격 각도가 좁았다. 남은 것은 동서 각각 두 채의 건물인데, 이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날의 저격시간은 오후의 중간쯤이 될 것이므로,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은 했더라도 아직 높은 위치에 있고 햇볕은 역 건물의 지붕을 넘어서 거리 양쪽에 있는 건물의 창문 속으로 비쳐들 것이리라. 그래서 그는 서쪽에 있는 두 건물을 선택했다. 그리고 햇살의 형편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 7월 29일 오후 4시까지 거기서 기다려 보았다. 그 결과, 서쪽에 있는 두 건물의 가장 위층 창은 겨우 햇빛이 들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같은 시각, 동쪽에 있는 건물은 아직도 다음날 그는 관리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곳을 살피기 시작한 지 사흘째의 일이다. 그는 노리고 있는 두 아파트의 중간, 양쪽 현관 가까운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의 바로 뒤,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 너머로 보이는 입구에 관리인 노파가 앉아서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꼭 한 번 가까이에 있는 카페의 심부름꾼이 잡담을 하러 왔다. 그는 노파를 마담 베르트라고 불렀다. 그것은 보기에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따뜻하고 밝은 오후여서 역 건물 상공 남동쪽에 떠 있는 태양이 어두운 현관 안에까지 햇빛이 비추었다. 그녀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으며, 가끔 아파트를 들락거리는 하고 인사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또 명랑한 소리로, "봉주르, 마담 베르트." 하고 인사를 받는 것을 훔쳐보고 있던 재칼은 노파가 세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라 불행한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동정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천성을 가졌을 것이다. 오후 2시가 지나서 어디에선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그녀는 1층 안쪽에 있는 관리인실로 달려가서, "나비야!" 하고 부르고는 그 도둑고양이에게 접시에 우유를 담아서 갖다주었다. 4시 조금 전, 그녀는 뜨게질거리를 뭉쳐 원피스에 달린 커다란 호주머니에 밀어넣고는 빵집으로 무엇인가를 사러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재칼은 얼른 들어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층계를 소리도 없이 뛰어올라갔다. 층계는 엘리베이터 구멍을 나선형으로 돌면서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고, 건물의 뒤편에는 층마다 좁은 층계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층계참 쪽으로 난 벽에는 문이 있고, 그리로 해서 철제 비상계단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가장 위층으로 통하는 층계참에서 그는 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비상계단은 뒤뜰로 통하게 되어 있고, 그 광장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몇 채의 건물 뒷문이 그리로 나 있었다. 그리고 뒤뜰과 인접해 있는 건물 사이로 지붕이 달려 있는 좁은 골목이 북쪽으로 뻗어 있었다. 재칼은 조용히 문을 닫고 빗장을 건 다음 복도 막다른 곳에 다락방으로 통하는 엉성한 층계가 보였다. 복도를 따라서 좌우로 둘 씩 문이 나 있었다. 한쪽은 뒤뜰 쪽으로 보고 있는 두 개의 플랫(아파트 형식의 넓은 방)을 위한 것이고, 다른 두 개는 건물의 바깥쪽으로 나 있는 플랫을 위한 것이다. 그는 그의 독특한 방향감각으로, 바깥쪽으로 난 플랫의 어느쪽인가에 렌 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창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면 '1940년 6월 18일' 광장과 그 너머에 있는 역전 광장이 보일 것이다. 그가 바깥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창문이었다. 바깥쪽으로 난 플랫의 초인종 옆에 명판이 걸려 있고, 하나에는 '마드무아젤 써 있었다. 그는 벨을 누르고 귀를 기울었으나 어느쪽 플랫에서도 반응이 없었다. 그는 자물쇠를 살펴보았다. 두 쪽이 모두 단단한 문틀에 박혀 있다. 자물쇠의 구멍을 막는 침은 조심성 많은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두툼한 강철로 된 것 같았다. 더구나 이 자물쇠는 이중으로 걸리게 되어 있다. 열쇠 없이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여벌 열쇠는 마담 베르트의 방에도 있을 것이다. 몇 분 뒤에 그는 층계를 뛰어서 내려갔다. 아파트 안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일 것이다. 관리인이 돌아왔다. 관리인실에 들어간 그녀의 모습이 우유빛 유리를 통해서 보였다. 그는 얼른 고개를 외면하면서 아치형 현관을 걸어나왔다. 이웃하여 같은 모양의 아파트가 두 채 늘어서 있고, 그 다음에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옆은 리트르 가(街)라는 좁은 길이 있다. 그는 우체국 건물을 따라서 그 길로 들어갔다. 우체국 건물이 끝난 곳에 지붕이 있는 골목이 있었다. 재칼은 멈춰서서 담뱃불을 붙이며 재빨리 골목을 들여다보았다. 골목 쪽으로 우체국의 뒷문이 있고, 야근의 전화교환원들은 그리로 해서 우체국을 드나든다. 그리고 터널 같은 골목 막다른 곳에 밝은 햇살이 든 뜰이 있다. 그 뜰의 한구석 그늘진 곳에 방금 나온 아파트에 달린 비상계단의 마지막 발판이 멀리 보였다. 재칼은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빨고는 걷기 시작했다. 도주할 수 있는 길이 발견된 것이다. 꺾여 보지라르 가(街)로 들어간 그는, 그 길이 몽파르나스 대로와 교차되는 지점까지 걸어갔다. 교차점의 모퉁이에 서서 대로의 앞뒤를 둘러보며 빈 택시를 찾고 있는데, 경찰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점에 들어와서 멈추고, 그 한가운데에서 경관이 차의 흐름을 막기 시작했다. 경관은 날카롭게 호루라기를 불어서 보지라르 가에서 나오는 차와 역 쪽으로 대로로 흘러들어오는 차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뒤로크 지하철 역에서 대로로 달려오는 차는 도로의 오른쪽으로 보냈다. 경관이 미처 차를 통제하기도 전에 뒤로크 역 쪽에서 순찰차의 사이렌이 울려왔다. 재칼은 모퉁이에 선 채 몽파르나스 대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앙발리드 대로에서 온 차의 행렬이 가로질러서 그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선도하는 것은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는 두 대의 흰 오토바이이며, 검은 가죽 점퍼로 당당하게 위엄을 갖춘 경관이 흰색 헬멧을 햇빛에 번쩍이고 있었다. 바로 뒤에 상어의 코 같은 모양을 한 두 대의 시트로엥 DS19가 따르고 있다. 재칼의 앞에 있는 경관이 빙글 돌아 그에게 등을 보인 채 꼿꼿이 선 자세로 왼손을 교차점의 남쪽에 있는 메인 로(路) 를 가리키며 오른손으로 손바닥을 밑으로 향해서 가슴에 대고 달려오는 그 차들을 최우선으로 통과시키려 동작을 취했다. 먼저, 선도하는 흰 오토바이가 차체를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오른쪽으로 꺾어 메인 로로 들어섰다. 바로 뒤를 따르는 첫번째의 운전사와 부관의 등을 노려보듯이 잿빛 양복을 입은 장신의 사나이가 똑바로 앉아 있었다. 재칼은 비록 순간적이었지만 오만하게 쳐든 얼굴과 특징 있는 코를 분명히 보았다.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 ."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망원조준기의 렌즈 속에서요." 이윽고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뒤로크 지하철 역 가까이에서도, 거기서 금방 나온 한 여성이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대통령의 통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길을 건너가려 하다가 경관에게 제지당했는데, 그 직후에 대통령 일행의 차들이 앙발리드 대로를 나와 몽파르나스 대로로 들어섰다. 그녀 역시 첫번째 시트로엥의 뒷좌석에 앉은 그 독특한 이상하게 빛났다. 일행의 차들이 사라져 버린 뒤에도 그녀는 그 방향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경관이 수상한 눈으로 훑어보자 부랴부랴 길을 건너갔다. 자클린 뒤마는 26세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살려 샹젤리제의 뒤편에 있는 고급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날 7월 30일의 저녁때, 그녀는 밤의 정사를 위해서 부르토유 광장 끝에 있는 아파트로 서둘러 돌아가는 중이었다. 몇 시간 뒤에는 증오하는 정부의 팔에 알몸으로 안긴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위해서도 한껏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애인과 다음 데이트를 언제나 하게 될까 하는 것만이 인생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녀는 원만한, 애정으로 굳게 아버지는 착실한 은행원, 어머니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 그녀 자신은 미용학교의 졸업반, 그리고 남동생인 장 클로드는 군에 입대해 있었다. 사는 곳은 르 브자네 교외의 일급지는 아니라도 주택지에 있었고, 가족은 거기서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1959년의 저물어가는 어느 날,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자리에 국방부에서 전보 한 통이 날아왔다. 그것은 아르망 뒤마 부부에게 알제리 파견군 제1공수사단 소속의 병사 장 클로드가 알제리에서 전사한 사실을 알리는 국방장관의 전보였다. 장 클로드의 사물은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유족 앞으로 보내겠다고 덧붙여 있었다. 넋나간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말았다. 무엇을 보고 들어도 느낄 줄 몰랐다. 미용실에서 아가씨들이 이브 몽탱이나 새로 미국에서 들어온 록 음악에 대해 귀가 아프게 수다를 떠는 데에도 끼어들지 않았고, 르 브자네에서 지내는 평온한 가정생활에서도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끝없이 돌아가는 테이프처럼 계속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토록 사랑하던 남동생 장 클로드에 대한 것뿐이었다. 상냥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었고, 전쟁과 폭력을 증오하고, 오로지 학문을 사랑하던 남동생.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그 장 클로드가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듯이 알제리의 겨울 골짜기에서 전사한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증오가 싹트기 비겁한 야만인이 남동생을 학살했다고. 그리고 어느 날 프랑수아가 나타났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아주 느닷없이, 어느 겨울 일요일 아침, 마침 부모님은 친척집에 가고 없었는데 프랑수아가 르 브자네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12월이어서 마을은 눈에 덮여 있고, 사람들은 모두 창백하게 여윈 모습이었다. 프랑수아는 늠름한 얼굴이 갈색으로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현관에 선 그는 마드무아젤 자클린이 있느냐고 물었다. "전데요. 무슨 일이신지요?" 그는 자기가 장 클로드가 소속되어 있던 소대의 지휘관이며, 장 클로드에게서 부탁받은 편지를 전하러 왔다고 신분과 용건을 말했다. 자클린은 그를 안으로 그 편지는 전사하기 몇 주일 전에 쓴 것으로서, 장 클로드는 그것을 안주머니에 넣은 채 어떤 프랑스 거류민 일가를 학살한 게릴라 부대를 수색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색대는 게릴라를 발견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민족해방군(ALN)의 정규 대대와 우연히 맞부딪쳤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 전투가 한창일 때, 장 클로드는 총알을 가슴을 맞고 쓰러졌는데, 숨을 거두기 전에 이 편지를 소대장에게 맡겼다는 거였다. 자클린은 편지를 읽고 조금 울었다. 편지 자체는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고, 콩스탕틴의 부대에서 있었던 훈련이며 일상생활에 관한 두서없는 이야기였다. 통하여 듣게 되었다 --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ALN의 공격을 받으면서 소대는 저지대로 6킬로미터 후퇴하였고, 그 동안 계속 공군기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군의 전투폭격기가 날아온 것은 오전 8시였다.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단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연대에 지원하여 거기에 배속된 그녀의 남동생은 어느 바위 그늘에서 분대장의 무릎에 안겨 마지막 피를 토하고 남자답게 죽어갔다고 한다. 프랑수아는 자클린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그는 4년 동안의 야전생활에서 직업군인으로 단련된, 정말로 남자다운 남자였지만, 부하의 누나에 대해서는 자상한 마음씨를 보여 주는 상냥한 갖게 되었고, 파리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물거리다가는 부모님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 전보를 받고서 두 달 동안 슬픔을 참으며 겨우겨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 그들의 아들이 죽던 모습을 들려준다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동생에 관한 것은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중위에게 말했고, 그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녀의 호기심은 지칠 줄 몰랐다. 알제리 전쟁에 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전쟁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또 정치가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전쟁을 종결시키고 알제리를 프랑스의 알제리로서 유지할 인물은 그 이외에는 없다는 국민의 열광적인 기대 속에 수상직에서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프랑수아는 그녀의 아버지 같은 이가 존경해 마지 않는 그 장군을, 프랑스에 대한 배반자라고 단정했다. 두 사람은 프랑수아의 휴가중 매일 밤 함께 지냈다. 매일 저녁, 미용학교를 졸업하고서 곧 근무하기 시작한 미장원에서 일을 끝내면 그는 서둘러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프랑스 육군을 배반한 것, 투옥되어 있는 FLN의 지도자 벤 베라와 프랑스 정부 사이에 있었던 비밀교섭에 대한 것, 그 결과 알제리를 야만인의 손에 넘겨주려 이야기했다. 1월 중순 그는 알제리로 돌아갔으나, 그 뒤 8월에 그가 1주일 간의 휴가를 받았을 때 두 사람은 마르세유에서 짧은 만남을 즐겼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프랑수아는 프랑스 청년에게서 볼 수 있는 착함, 청결함, 남자다움 등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존재로 뿌리박혀 있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내내 그녀는 프랑수아의 사진을 침대 옆에 놓아두고, 오로지 그를 기다리면서 밤에는 언제나 잠옷을 벗어서 그것을 배에 안고 잠들었다. 다음해인 1961년 봄,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린 휴가 때에 다시 그는 파리에 왔다. 그녀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제복 차림의 그와 거리를 걸으면서 그만이 파리에서 가장 미덥고, 핸섬한 남자 같아 사람의 모습을 보자, 다음날 미장원은 자클린의 핸섬한 애인에 대한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그녀는 한시도 그와 헤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그날 유급휴가를 받고 그와 함께 지냈다. 프랑수아는 흥분해 있었다. 정세는 갈수록 긴박감이 더해 가고 있었다. 정부와 FLN 사이의 비밀교섭은 이미 공공연하게 화젯거리가 되어 있었다. 육군은, 진정한 프랑스 육군은 그런 정세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실전에서 단련된 27세의 청년장교와 그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있는 23세의 아가씨에게 있어서 알제리는 프랑스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하나의 신념이 되어 있었다. 채 알제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4월 21일 알제리 파견군의 일부가 본국 정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제1공수사단은 거의 전원이 반란에 가담했다. 얼마 안되는 극소수의 신병만이 기지를 빠져나가 총독부에서 드골파의 부대에 합류했다. 반란파는 굳이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리고 1주일 뒤, 반란군과 정부측 부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5월초, 프랑수아는 격전중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4월에 앞으로 당분간은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는 편지를 받은 자클린은 7월 들어서 통지를 받기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파리 교외의 싼 아파트를 빌려 혼자 그 비통함을 견디려고 했지만, 괴로움은 너무도 큰 것이어서 마침내 부모님은 그녀를 데리고 여름 휴가에 함께 갔다. 휴가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도 그럭저럭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그녀는 OAS의 지하공작원이 되었다. 그 동기는 단순했다. 먼저 프랑수아, 다음으로 남동생 장 클로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복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뿐이었다. 그 복수의 정열을 빼고 나면 그녀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야심도 없었다. 다만 심부름이나 하고, 연락이나 하고, 때로는 빵 속에 숨긴 플라스틱 폭탄을 장바구니에 넣어서 운반하는 등 보조적인 임무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 유일한 불만이었다. 자신은 좀더 중요하고 큰일을 할 수 있다고 그녀 들면, 가끔 그랬듯이 카페나 극장에서 플라스틱 폭탄이 폭발한 뒤, 거리에서 통행인들에게 직무상 질문을 하고 있는 경관들도 그녀가 긴 속눈썹을 들어 윙크만 해도, 예쁘게 생긴 입술을 조금 내밀기만 해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통과시켜 주는 것이었다. 프티 클라마르 사건이 있은 뒤, 자칭 프로 살인자 하나가 피신 도중 블루토유 광장 변두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사흘 동안 숨어 있었던 적이 있다. 마침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그녀는 기뻐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사흘 뒤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한 달 뒤에 그 남자는 체포되었는데, 그녀의 아파트에 한때 숨어 있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그녀가 속해 있는 세포조직의 리더는 안전을 고려해서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몇 달 동안은 OAS의 일은 하지 말라면서 일체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다시 그녀가 레포(연락원)로서 일을 시작한 것은 1963년 1월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7월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 세포조직의 리더가 데리고 왔는데, 그는 그 남자에게 대단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거침없이 질문을 했다. 조직을 위해서 특별한 임무를 맡아줄 수 있는가? 네, 물론이죠. 위험하고 싫은 일인데도......? 상관없습니다. 3일 뒤, 그녀는 남자 하나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안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의 이름과 정부 안에서의 지위를 알게 되었으며, 임무의 내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7월 중순, 그녀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우연인 척 가장하고 그 남자의 옆 테이블에 앉았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테이블 위에 있는 소금병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계속 말을 걸어 왔다. 그녀는 적은 말수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노리던 대로 그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품위 있는 침착성에 끌린 것이다. 어느 틈엔가 그가 리드하고 그녀가 얌전히 따르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2주일 뒤에 이미 두 사람은 몸으로 맺어져 있었다. 정도의 남성 경험은 있었다. 이 새 애인은 쉽게 정복되는 경험 풍부한 여자에게 익숙해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자신의 이 멋진 몸뚱이를 이대로 썩힐 생각은 없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그래도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얌전하고 수줍은 듯이 처신했다. 이 작전은 성공했다. 그 남자로서는 그녀를 끝까지 정복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7월 하순이 되어 세포조직의 리더에게서 이제 슬슬 동거생활로 들어가 보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남자의 아내와 두 아이가 장애물이었다. 그런데 7월 29일, 부인과 아이들끼리만 루아르 계곡의 별장으로 출발했다. 남자는 일 때문에 파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장원으로 전화를 걸어서 다음날 밤 그의 아파트에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아파트로 돌아온 자클린은 흘끗 시계를 보았다.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 오늘밤은 정성을 다해서 꾸며볼 생각인데,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녀는 옷을 벗고서 샤워를 한 뒤 옷장 문 안쪽에 붙어 있는 거울에 알몸을 비춰 가며 타월로 몸을 닦았다. 그러나 타월의 감촉에도 자극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두 손을 올려 장미빛 젖꼭지가 숨쉬는 풍만한 가슴을 들어올려도 그전에 프랑수아를 만날 때 언제나 느꼈던 그 황홀에 가득 찬 기대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멍청하게 밤의 일을 생각했다. 하복부가 이상하게 어떤 애무를 해 오든지 참고 받아들이자고 그녀는 자신에게 맹세했다. 책상 서랍에서 프랑수아의 사진을 꺼냈다. 그는 사진틀 속에서, 역으로 그를 마중나간 그녀가 플랫폼을 날듯이 뛰어오는 모습을 발견할 때 늘 보여 주던, 그 겸연쩍어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 언제나 그녀가 거기에 얼굴을 묻고 황홀감을 느끼던 두툼한 가슴을 감싼 가죽 제복, 달아오른 볼에 차갑게 느껴지던 공수대원의 날개 모양의 흉장 -- 그 모두는 아직 거기에, 그 유리 속에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프랑수아의 사진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마치 섹스할 때처럼 그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몸은 아직도 분명히 그를 기억하고 힘이 체내에서 느껴지고, 부드럽게 신음하는 환희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뜨고 따뜻해진 사진틀의 유리를 가슴에 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프랑수아." 하고 그녀는 나직히 속삭였다. "부탁이에요, 오늘밤 나를 지켜봐 주세요." 7월의 마지막 날 재칼은 바빴다. 오전에는 '벼룩 시장'에 가서 허술한 부대를 한 손에 들고 노점상 앞을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곳에서 산 것은 기름때가 묻은 검은 베레모, 뒤축이 닳아빠진 구두, 때묻은 바지, 그리고 긴 군용 외투였다. 이것들은 구석구석 헤매고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찾아낸 것으로서, 사실은 좀더 가벼운 여름용은 눈에 띄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프랑스 육군의 것은 모두가 거친 모직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투 자락의 길이는 지나치게 넉넉해서, 그가 입어도 무릎 훨씬 밑에까지 내려갔다. 그에게는 그 점이 중요한 것이다. '벼룩 시장'을 나오려다가 그는 헌 훈장만을 팔고 있는 노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훈장 한 벌과, 그리고 빛바랜 기장의 사진과, 갖가지 훈장이 어떤 작전의 어떤 전공에 대해서 주어지는가 하는 설명이 되어 있는 소책자를 샀다. 그는 호텔로 돌아와서 계산을 끝내고 짐을 꾸렸다. 새로 사들인 물건은 여행가방 가장 밑바닥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소책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적에 대한 비롯하여 제2차대전중 자유 프랑스군에 참가한 인물에게 주어진 해방훈장과 종군훈장 등을 골라서 하나의 세트를 만들었다. 종군훈장으로서 빌하카임, 리비아, 튀니지, D데이, 그리고 르클레르크 장군 휘하 제2기갑사단의 각 종군훈장을 골랐다. 그리고 호텔의 프런트에서 브뤼셀행 급행 '북방의 별'호가 오후 5시 15분에 북부역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기차에 타고 차 안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그날 12시 전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제 6 장 그 다음날 아침, 빅토르 코와르스키 앞으로 가는 편지가 로마에 도착했다. 우체국에서 그날의 우편물을 넘겨받은 거한의 하사가 호텔로 돌아와서 로비를 막 지나려는데 보이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하사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에게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제나 현관과 엘리베이터 사이를 앞만 보고 걷는 그에게 보이의 모습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검은 눈의 보이는 편지 한 통을 손에 들고 코와르스키에게로 다가왔다. 코와르스키라는 분에게...... 어느 손님인지 몰라서......아마 프랑스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코와르스키는 보이가 이탈리아어로 말하자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대강 어떤 뜻인지 직감이 갔다. 더구나 자기의 이름은 그 발음이 엉망이었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는 보이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어 휘갈겨쓴 이름과 주소를 보았다. 그는 가명으로 호텔에 묵고 있는데, 대체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수상했다. 그는 글씨를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5일 전에 파리의 한 신문이 OAS의 최고 간부 셋이 그 호텔의 가장 위층에 틀어박혀 있다는 특종을 캐낸 일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적어도 그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 편지는 그를 당혹케 했다. 여느때도 그는 편지 같은 것은 거의 받아 본 적도 없었으며, 또 그런 단순한 인간들이 모두 그렇듯이 어쩌다 편지를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대사건이 일어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보이는 코와르스키야말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듯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프런트에 있는 녀석들도 그런 이름을 가진 투숙객을 몰라서 그 편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참이었다. 코와르스키는 보이를 내려다보고는, "좋아, 알아봐 주겠소." 하고 프랑스어로 거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인의 "알아보겠소, 알아본다니까." 코와르스키는 위층을 가리키면서 되풀이했다. 이탈리아인은 그제야 웃었다. "아, 알겠습니다. 물어봐 주시겠다고요?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거창한 몸짓으로 감사를 나타내며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는 보이를 뒤로 하고 코와르스키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8층에 도착해서 밖을 내다본 그는 복도를 감시하고 있던 당직 반장이 들이대는 자동권총 앞에 우뚝 섰다. 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반장은 곧 안전장치를 걸고서 총을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을 살펴보고 코와르스키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 위에 붙어 7층을 지나서 위로 올라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의례적인 절차다. 당직 반장 이외에도 복도 막다른 곳에 있는 비상구 앞에도 한 사람, 층계 있는 곳에도 한 사람 감시원이 있다. 이 비상구와 층계에는 호텔측 몰래 폭약이 장치되어 있으며, 복도에 놓인 책상 밑의 스위치를 도화관과 연결된 전류를 끊어 버리지 않는 한 그 폭약은 시종 살아 있었다. 낮 감시원은 지붕 위에도 한 사람 배치되어 있었다. 밤에 지키는 세 사람은 지금 방에서 자고 있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9층으로 간다는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면 그때는 그것이 곧 일이 꼭 한 번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는데, 룸서비스의 마실것을 나르는 보이가 실수로 9층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물론 보이는 기절할 정도로 혼이 났고, 두번 다시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게 되었다. 당직반장은 9층에 전화로 우편물이 도착했음을 보고하고서, 코와르스키에게 올라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코와르스키는 이미 자기 앞으로 온 편지는 안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다. 간부 앞으로 가는 우편물은 철제 가방에 넣어서 왼쪽 손목에 쇠사슬로 매어 있다. 가방과 사슬의 자물쇠는 스프링식이며, 열쇠는 로댕이 보관하고 있다. 몇 분 뒤, 로댕에게 우편물을 건네주고 코와르스키는 8층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오후 늦게 당직반장과 한다. 방에 돌아온 그는 이윽고 편지를 뜯고서 보낸 사람의 사인부터 보았다. 그것이 코바크스라는 것을 알고 그는 놀랐다. 코바크스와는 이미 1년이나 만나지 못했는데, 그가 읽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듯이 코바크스는 글솜씨가 아주 형편없었다. 그러나 코와르스키는 고생한 끝에 간신히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별로 길지 않는 내용이었다. 우선 첫머리에, 편지를 쓴 날 신문에 로댕, 몽클레아, 그리고 카슨, 이렇게 새 사람이 로마의 호텔에 숨어 있다는 기사를 읽고는 (친구가 읽어 주어서) 그렇다면 옛날 동료인 코와르스키도 세 사람과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보게 될지 설명이 있었다. 이어서, 최근 프랑스에서는 어디를 가도 경찰의 눈이 번득이고 있으며, 한편 보석강도에 대한 지령은 지금도 상부에서 계속 내려오고 있어서 사정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코바크스도 네 번 강도질에 참가했는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빼앗은 것들을 상부에 넘겨줄 때에는 정말 싫을 때가 있다. 옛날 부다페스트에서 했을 때에는 2주일밖에 계속되지 않았는데, 그때는 훨씬 더 보람이 있었다 -- 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몇 주일 전에 미셀을 만났는데, 그 녀석이 조조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실비아가 루크 뭐라나 하는 병에 걸렸다는 모양이라고 했다. 잘은 하루라도 빨리 좋아지도록 빌고는 있지만, 자네도 너무 걱정 마라 -- . 그러나 코와르스키는 걱정이었다. 그 귀여운 실비아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36년의 거칠기만 한 인생에서 코와르스키의 마음에 사람다운 인정미를 느끼게 한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폴란드가 독일에 침략당했을 때 그는 겨우 12살이었으며, 그 1년 뒤에는 부모가 모두 독일군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그에게는 누나가 하나 있었는데,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성당 뒤의 호텔에서 일을 했다. 그녀가 그 호텔에서 적의 장교 녀석들을 상대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소년인 그에게도 분노하여 군정장관에게 항의했다. 그런데 오히려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진 것이다. 그는 즉시 빨치산에 가담하여 15살 때에 처음으로 독일병을 죽였다. 독일군이 가고 러시아병이 왔을 때, 그는 17살이 되어 있었다. 부모는 생전에 언제나 러시아인을 미워하고 겁내면서, 옛날 그들이 폴란드인에게 어떤 방법으로 보복했는가를 들려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곧 빨치산에서 빠져나와서 마치 쫓기는 야수처럼 체코 쪽으로 도망쳤다. 그가 속해 있던 빨치산 조직의 투사들은 나중에 인민위원회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는 체코에서 다시 오스트리아로 달아나서 난민촌에 수용되었다. 그때, 이 폴란드어밖에 모르고 뼈와 가죽만 남은, 때로 쇠약해 있었다. 수용소에서는 전후 유럽이 낳은 불쌍하고 죄 없는 떠돌이 한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보급하는 식량 덕분에 나날이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1946년 봄의 어느 날 밤, 그는 수용소를 탈출하여 남쪽인 이탈리아로 가서, 거기서 다시 수용소에서 알게 된 폴란드인 -- 이 남자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 -- 과 함께 프랑스에 숨어들었다. 마르세유에서 그는 어떤 상점에 침입하여 반항하는 가게 주인을 죽여 버렸다. 동료는 그에게 외인부대로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얘기해 주고 그에게서 떠나갔다. 그 다음날 당장 그는 원서를 제출하고, 전쟁으로 황폐한 마르세유에서 경찰의 수사가 겨우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지중해에 면한 항만도시 마르세유는 그 무렵 미국에서 오는 보급물자의 양륙항구로서 붐볐으며, 물자를 둘러싼 살인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코와르스키 사건도 용의자가 짐작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며칠 사이에 수사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외인부대의 한 병사가 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당시 그는 19살, 처음에는 고참병들에게 '프티 보놈'(귀여운 호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살인을 비롯해서 무슨 일이든 태연히 해치우는 광포성을 보이자 어느새 알아주는 존재가 되었고, 코와르스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6년은, 그때까지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 뒤 그는 알제리로 보내졌는데, 그 사이에 6개월쯤 마르세유 교외에 있는 총기조작훈련기지에 배속받게 되었다. 이 마르세유에서 보내는 동안에 그는 줄리와 만났다. 그녀는 변두리의 술집에서 일하는, 가냘픈 몸집에 성미가 고약한 여자였는데, 그 무렵 그녀는 기둥서방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술집에서 그 남자를 날려 버렸다. 가엾은 기둥서방은 단 한 주먹에 6미터나 나가 떨어져서 10시간이나 의식불명이 되었다. 그는 그 뒤로도 몇 년 동안이나 절룩거리고 걸었으며, 깨어진 아래턱 때문에 고생했다. 줄리는 거구의 외인부대 병사가 마음에 들었고, 그 역시 '보호자' 같은 처지가 부포르트의 싸구려 아파트까지 바래다 주었다. 두 사람 사이 -- 특히, 그녀 쪽 -- 에는 육체적 욕망은 있었으나 애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으며,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는 더욱 냉담해졌다. '당신 아이예요.' 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는 그것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며, 그런 것을 전문으로 하는 할머니를 알고 있으니까 그녀에게 부탁해서 아이를 지워 버리겠다고 했다. 코와르스키는 그녀를 때려 주고, 그런 소리 다시 했다가는 죽여 버리겠다고 겁을 주었다. 3개월 뒤, 그는 알제리로 가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역시 폴란드 출신의 외인부대 병사였던 조셉 조조는 인도네시아에서 부상당하여 제대했으며, 중앙역의 플랫폼에서 가벼운 요기를 할 수 있는 간이매점을 끌고 다니는 명랑한 과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한 것은 1953년인데, 그 뒤 두 사람은 열심히 장사했다. 마누라가 매점을 끌고 다니면서 가벼운 음식을 손님에게 팔고, 조그만 다리를 쩔둑거리면서 그 뒤를 따라다니며 돈을 받기도 하고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함께 애썼다. 밤이 되면 조조는 가까운 기지에서 놀러오는 외인부대 병사들로 붐비는 술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옛날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외인부대 병사들은 거의 젊은 녀석들뿐이고 인도네시아 전쟁에 참전한 녀석들은 없었는데, 어느 날 밤 그는 우연히 코와르스키를 만난 것이다. 의논했다. 조조 역시 낙태에는 반대였다. 둘 다 과거에는 카톨릭 신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없애고 싶다는 거야." 하고 코와르스키가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히는 갈보로군." 조조가 말했다. "정말이야." 코와르스키도 맞장구쳤다. 두 사람은 술집의 벽에 걸아놓은 거울울 불쾌하게 쳐다보면서 술잔을 거듭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불쌍하잖아?" 하고 코와르스키가 말했다. "좋지 않은 짓이야." 하고 조조도 동의했다. 그러자 코와르스키가 침울하게, "나는 아이 같은 것은 가져 본 적이 없단 말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말이야." 이것은 조조의 쓸쓸함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날이 샐 무렵까지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어떤 한 가지 계획을 생각해 내고는 주정꾼 특유의 그 진지한 얼굴로 실행을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조조는 코와르스키와 한 약속이 떠올랐으나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감했다. 그는 사흘 동안 끙끙대며 걱정했다. 그리고 한두 번 넌지시 아내의 심중을 떠본 뒤에, 마침내 침대에서 큰맘 먹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는 기꺼이 찬성했다. 즉시 준비를 서둘렀다. 얼마 뒤, 코와르스키는 알제리로 가서 당시 소령이었던 로댕의 대대에 편입되어 그의 아내가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임신한 줄리를 지켰다. 코와르스키가 마르세유를 떠날 때에 그녀는 이미 임신 4개월이라 낙태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조조는 다시 따라다니기 시작한 기둥서방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쫓아 버렸다. 코와르스키에게 턱이 박살난 그 기둥서방은 외인부대 병사를 보면, 설령 그것이 의족을 한 상이군인이라도 그 앞을 피해서 지나갈 정도로 겁먹고 있었기 때문에, 조조가 협박하자 옛날 수입원이었던 줄리에게 더러운 욕지거리를 퍼붓고는 완전히 손을 끊어 버렸다. 1955년도 저물어 갈 무렵, 줄리는 푸른 눈에 금발인 딸을 낳았다. 즉시 조조와 그의 아내는 줄리의 동의를 얻어 이렇게 되어 줄리는 또다시 그전의 타락한 생활로 되돌아가고, 조조 부부는 실비아라고 이름지은 딸을 얻게 된 것이다. 부부는 그 일을 편지로 코와르스키에게 알렸고, 그는 막사의 침대에서 그것을 읽고는 기묘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면 반드시 자기에게서 떠나 버린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 장기간에 걸친 어떤 전투임무를 맡고 기지를 출발할 때, 종군 신부가 유언장을 만들어 두라고 일러 주었다. 유언장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인 급료는 어쩌다 나가는 휴가 때에 시내의 술집이나 남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약간의 소지품도 본래는 군대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외인부대의 병사의 것이라도 사물(私物)은 사물이며, 유언장이 있을 때에는 그대로 처리된다고 보증하여, 코와르스키는 신부의 조언을 들어가며 모든 사물을 마르세유에 살고 있는 전 외인부대 병사인 조셉 그리보스키의 딸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만들었다. 이 유언장의 사본은 그의 다른 서류와 함께 파리에 있는 국방부 문서보관소에 보존되었다. 그 뒤 1961년의 본 및 콩스탕틴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의 용의자로 코와르스키의 이름이 떠올랐을 때 이 문서들이 드러나고, 급기야 액션 서비스에서까지 알게 되었다. 즉시 실비아에 관한 사정 일체가 판명되었다. 그러나 코와르스키는 그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코와르스키는 평생에 겨우 두 번 딸을 만난 적이 있다. 한번은 1960년, 군사법정의 증인으로서 출정하는 로댕의 호위병으로 마르세유에 돌아왔을 때였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두 살이었으며, 두 번째는 네 살 반 때였다. 코와르스키는 조조 부부에게 줄 선물과 실바아에게 줄 장난감을 양손에 가득 안고 찾아갔다. 두 사람은 -- 조그만 소녀와 곰 같은 빅토르 아저씨는 금방 마음이 통해서 친해졌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로댕에게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실비아가 지금 루크 뭐라나 하는 편지를 읽고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그는 다시 9층으로 우편물용 가방을 받으러 갔다. 지난 달까지 카슨이 지배하는 지하조직이 일련의 강도사건으로 빼앗은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을 알리는 편지가 이제 도착할 때가 거의 되었기 때문에 로댕은 한 번 더 코와르스키를 우체국에 보내기로 했다. "저 -- ." 갑자기 하사가 입을 열었다. "루크 뭔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손목에 사슬을 매고 있던 로댕은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그런 사람은 모르는데." "사람 이름이 아니고 피가 나빠지는 병이라는데요." 방의 반대쪽에서 잡지를 읽고 있던 "그것은 류키미아(백혈병)를 말하는 거겠지." "어떤 병입니까?" "암이야. 혈액암이야." 코와르스키는 로댕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빌리안은 믿을 수가 없었다. "고칠 수 있겠지요?" "아니, 안돼. 불치의 병이야. 치료법이 없어. 백혈병이 뭐 잘못되기라도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코와르스키는 우물거렸다. "책에서 잠깐 읽어서요." 그는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로댕은 간단한 명령서 이외에는 글자 같은 것은 읽은 적이 없는 보디가드가 책을 읽고 백혈병 같은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달라질 정도는 아니었으며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기다리던 편지가 오후 우편으로 도착한 것이다. 그것은 OAS가 스위스의 은행에 가지고 있는 예금구좌의 잔고가 마침내 25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보고였다. 로댕은 만족한 얼굴로 그 돈을 살인청부업자의 구좌에 넣도록 의뢰서를 은행 앞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나머지 25만 달러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드골 대통령만 없애버리면 그전에 OAS가 강대한 세력으로 효과적인 활동을 했을 무렵 자금 지원을 해주던 우익의 실업가나 은행가들이 25만 달러 정도의 돈이라면 언제라도 준비해 줄 것이다. 겨우 몇 주일 전 로댕의 기부 의뢰에 대해서, "요즘 애국 못하고 있소. 이렇게 되면 과거에 투자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어쩌고 하면서 속보이는 구실을 내세우며 거절의 전화를 해오던 녀석들이 그때가 되면 앞을 다투어 신생 프랑스의 새 지배계급이 될 군인에게 원조의 손길을 내밀게 되겠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로댕은 불입의뢰서를 썼다. 그러나 25만 달러를 재칼에게 지불하라는 로댕이 쓴 의뢰서를 보고 카슨이 반대했다. 그들이 영국인과 한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행동과 신변경비 상황에 대해서 최신의 정확한 정보를 어느 때고 제공할 수 있는 연락원을 배치한다는 점이며, 이것은 재칼의 일을 성공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성공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이 단계에서 돈을 넘겨주면, 준비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행동하게 만든다. 언제 사냥감을 덮칠 것인가는 그의 자유이지만, 2~3일 늦어진다고 해서 전체의 계획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실패한다면 두번 다시 암살계획은 세울 수 없겠지)는 살인청부업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 카슨은 아침 우편으로 파리의 책임자에게서 드골 측근에 요원 하나를 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 그 요원이 드골의 행방, 그 중에서도 그의 여행이나 공개석상에 나가는 예정 -- 그 어느쪽도 최근에 와서는 미리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되자면, 아직 며칠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재칼이 그 임무에 불가결한 정보를 언제라도 알 수 있는 전화를 파리에 설치하기까지 앞으로 며칠 간 돈의 지불을 늦추자 -- 이것이 카슨의 주장이었다. 로댕은 한동안 생각한 끝에 결국 카슨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재칼의 의사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은행에 대한 지불의뢰나 파리의 전화번호를 알리기 위해서 런던으로 보내는 편지가 며칠 빠르든 늦든 상관없이 재칼의 스케줄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그날을 정해 놓고 시계처럼 정확하게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냉온방용의 환기장치 뒤에 웅크리고 있는 코와르스키는 콜트 45권총을 손에 쥔 채, 마르세유에서 루크 뭐라나 하는 병에 걸려 누워 있는 딸의 일로 가슴을 앓고 있었다. 동틀 무렵이 되어 그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번 조조와 만났을 때 아파트에 전화를 놓는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코와르스키가 그 편지를 받은 날 아침, 재칼은 브뤼셀의 아미고 호텔을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구상스가 살고 있는 거리의 모퉁이까지 가서 내렸다. 이미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그는 댓건이라고 말하고 -- 구상스는 그의 이름이 댓건인 줄 안다 -- 전화를 걸어서 11시로 약속을 해두었었다. 그 거리의 모퉁이에 도착한 앉아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를 지켜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는 11시 정각에 문을 노크했다. 구상스는 그를 맞아들이고서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잠그고 사슬까지 걸었다. 그리고는 그를 조그만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총기업자 쪽을 돌아보면서 갑자기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소?" 총기업자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재칼은 차갑게 상대방을 보았다. 눈을 반쯤 감은 그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8월 1일 이리로 오면 4일에는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총을 준비해 주겠다고 "알고 있소.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총에 대한 것이 아니오. 총은 이미 준비되어 있소. 내 걸작 중의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멋진 것이지. 문제는 다른 곳에 있소. 모든 것을 내가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뜻밖의 일이 생겼소. 아무튼 총부터 구경하시지." 책상 위에 길이 60cm, 폭 45cm, 깊이 10cm의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구상스가 뚜껑을 열었다. 재칼은 들여다보았다. 케이스 안에는 분해한 총의 각 부품이 그 모양에 따라서 몇 개의 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것은 총을 살 때 가지고 온 케이스가 아니오. 그건 너무 길거든.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었지. 꼭 맞도록." 들어맞는다. 위쪽에는 총신과 노리쇠 뭉치가 들어 있으며, 전체의 길이는 약 18인치. 재칼은 그것을 손에 들고 살펴보았다. 아주 가볍고 기관단총의 총신과 비슷하다. 노리쇠 뭉치에는 가느다란 장전 손잡이가 들어 있는데, 이것이 닫힌 상태로 되어 있다. 노리쇠의 뒤쪽 끝에는 동그랗고 볼록한 돌기(突起)가 달려 있다. 재칼은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그 돌기 부분을 잡고 홱 왼쪽으로 돌렸다. 노리쇠의 자물쇠가 풀리고 고랑 안에서 회전했다. 노리쇠를 후퇴시키니까 총알이 들어가는 약실과 총신의 검은 구멍이 보인다. 그는 노리쇠를 제자리로 갖다놓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부드럽게 본래의 장소로 들어가 노리쇠 뒤끝 부분의 바로 밑에 강철제 디스크가 용접되어 있다. 그것은 두께가 반 인치, 직경이 1인치가 채 못되고 노리쇠 후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위쪽을 초생달 모양으로 깎아놓았다.그리고 뒷부분에 깊이 반 인치의 구멍을 뚫어 놓았으며, 그 안쪽에는 나사로 되어 있다. "그것은 총대의 프레임을 꽂아 넣는 구멍이오." 하고 벨기에인이 조용한 소리로 설명했다. 개조하기 전에 달려 있던 개머리판의 나무로 된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노리쇠 뭉치의 아래쪽에 가느다랗게 조금 나와 있는 부분만이 개머리판의 나무 부분이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무 부분을 막아 놓았다. 재칼은 라이플을 뒤집어서 뒤쪽을 보았다. 노리쇠 뭉치의 바닥과 반듯하게 되도록 짧게 절단한 방아쇠의 잘라낸 자리가 보였다. 거기에 조그만 금속 조각을 용접하여 한가운데에 나사를 자른 구멍이 뚫려 있다. 구상스는 아무 말 없이 길이 1인치의, 한 쪽 끝이 나사로 되어 있는 약간 휘어진 쇠막대기를 재칼에게 건네주었다. 재칼은 나사로 되어 있는 쪽을 구멍에 꽂고 집게와 엄지손가락으로 재빨리 돌려 박았다. 새 방아쇠가 노리쇠 뭉치 아래쪽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옆에 있던 벨기에인이 케이스 안에서 한쪽 끝을 나사식으로 만든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꺼냈다. "총대 프레임 중 하나요." 있는 구멍에 대고 돌려가며 박았다. 옆에서 보면 그 쇠막대기는 총의 뒷부분에서 밑으로 30도 각도로 튀어나와 있다. 나사 홈을 파놓은 쪽에서 5cm 되는 곳이 약간 납작하게 되어 있고, 그 중앙부에 거의 총신과 평행되는 각도로 구멍이 나 있다. 즉, 구멍은 똑바로 뒤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구상스는 두 번째의 약간 짧은 강철봉을 꺼냈다. "위쪽 프레임이오." 그것도 꼭 들어맞았다. 아래쪽 프레임보다 훨씬 낮은 각도에서 두 개의 강철봉은 밑변이 없는 삼각형의 두 변처럼 뒤로 튀어나와 있다. 다음으로 구상스는 밑변을 케이스에서 꺼냈다. 이 어깨받이, 즉 총대 끝의 양쪽에는 조그만 구멍이 "이것은 나사식이 아니고, 아래 위 프레임의 끝을 이 두 개의 구멍에 찰칵 밀어넣게 되어 있소." 재칼은 두 개의 강철봉 끝을 각각 구멍에 넣어 찰칵 하고 밀어넣었다. 이렇게 조립한 총을 옆에서 보니 방아쇠가 노리쇠 뭉치 아래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세 개의 강철봉이 개머리판의 윤곽을 그려내어 비로소 라이플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재칼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왼손으로 총신을 받치고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는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총신의 앞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전방의 벽에 과녁을 정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노리쇠 뭉치 속에서 찰칵 하는 금속음이 부드럽게 울렸다. 그는 구상스 정도의 검은 원통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소음기로군." 재칼은 건네주는 원통을 받아들고 총신의 끝을 살펴보았다. 아주 가늘게 나선형 홈이 파여 있다. 그는 소음기를 굵은 쪽부터 총신에 씌우고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재빨리 돌려가며 박았다. 소음기는 긴 소시지처럼 총신 끝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구상스가 그 손바닥에 망원조준기를 올려놓았다. 총신 윗부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쌍의 홈이 길게 파여 있다. 이 홈에 조준기 아래쪽에 붙어 있는 스프링식 클립이 들어 있어서, 조준기는 총신과 평행으로 고정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망원조준기의 오른쪽과 위쪽에 각각 나사가 달려 있어서, 재칼은 다시 한 번 라이플을 사격 자세로 들고 목표를 겨누었다. 얼핏 보기에는 고상한 체크 무늬의 양복을 입은 영국 신사가 피카딜리 근처의 총포상점에서 스포츠용의 총을 고르고 있는 그런 그림이다. 그러나 10분쯤 전까지만 해도 기묘한 모양을 한 부품을 모아둔 것에 지나지 않았던 이 총은 예사 스포츠용 라이플은 아니다. 고속탄을 발사하고 사정거리가 긴, 완전히 소음장치가 되어 있는 암살용 흉기이다. 재칼은 총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벨기에인 쪽으로 돌아서며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어. 정말 멋있어. 고맙다고 해야겠군. 나무랄 데라곤 없어." 구상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조정해서 시험사격을 해보는 것뿐이야. 총알은 있소?" 구상스는 서랍에서 100발이 들어 있는 통을 꺼냈다. 통의 봉한 자리가 뜯어져 있고 여섯 발이 모자랐다. "이것은 연습용이오. 작약탄으로 개조하기 위해서 여섯 발을 빼냈소." 재칼은 한 웅큼 손에 쥐고 그 총알을 살펴보았다. 사람을 일격에 쓰러뜨리기에는 구경이 너무 직지만, 구경에 비해서는 총알의 길이가 유난히 길었다. 그것은 그만큼 화약의 양이 많아지고 총알에 가속도가 붙어 명중율과 살상력이 증대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총알 끝부분이 보통 사냥용의 것은 뭉뚝하게 깎여 있는 데 비해서 이 총알은 날카로울 납인데, 이것은 백동(白銅)이다. 시판되는 총알 중에서 이것과 같은 것을 든다면 경기용 라이플 총알밖에 없다. "개조한 실탄은 어디에 있소?" 하고 재칼이 물었다. 구상스는 다시 책상으로 걸어가서 티슈페이퍼에 싸둔 것을 꺼냈다. "물론 보통때는 안전한 곳에 숨겨두지만, 당신이 온다고 하기에 꺼내 놓았소." 그는 티슈페이퍼를 펼쳐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언뜻 보기에는 방금 재칼이 통 속에 도로 넣은 총알과 똑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총알을 통 속에 모두 넣은 재칼은 천천히 개조탄을 하나 집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총알 끝 껍질을 줄칼로 밀어서, 그 드러나게 했다. 이렇게 되면 끝이 약간 평평하게 된다. 다음에는 거기서 내부로 5mm만큼 조그만 구멍을 뚫고서 수은을 부어넣고는, 그 구멍을 납을 녹여서 막아 버린다. 납이 굳으면 줄칼과 사포(砂布)로 본래대로 끝이 뾰족해지도록 다듬는다. 재칼은 그때까지 그런 종류의 실탄을 써볼 기회가 없었지만, 그에 대한 지식은 물론 가지고 있었다. 공장 생산의 규격품 이외에는 제네바 협정에 의해서 일반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 작약탄의 위력은 단순한 덤덤탄(명중하면 상처를 확대시키는 총알)에 명중하면 소형의 수류탄처럼 폭발한다. 이 탄환을 발사하면 탄두에 넣어 놓은 수은이 탄환이 전진하는 힘에 의해서, 마치 차를 난폭하게 속력을 뒤로 밀리게 된다. 그리고 탄환이 인체의 살이나 뼈에 맞으면 급격하게 감속된다. 그 충격으로 안에 들어 있던 수은이 탄환의 앞쪽을 향해 굉장한 힘으로 밀리게 된다. 그 힘에 의해서 앞쪽이 터지며 펼친 손가락이나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납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 납 조각들은 홍차 잔의 받침접시 정도의 면적으로 방사선 모양을 이루면서 확산되어 그 범위 내의 신경이나 세포조직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예를 들어 머리에 명중했다고 하면 그대로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굉장한 압력을 뿜어내어 뇌 조직을 엉망으로 파괴시켜 두개골을 박살내 버린다. 재칼은 그 실탄을 가만히 티슈페이퍼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것을 만든 중년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멋지군. 당신 기술은 정말 일류급 프로요. 그런데 그 문제라는 것이......?" "실은 분해한 총을 넣을 원통에 관한 거요. 생각처럼 간단치가 않아서. 처음에는 당신 말대로 알루미늄을 썼지. 아니, 일의 순서상 물론 총의 개조를 먼저 했소. 다른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겨우 2~3일 전부터요. 그 원통은 내 기술과 공작기계라면 별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말이오, 원통을 가능한 한 가늘게 하려고 얇은 알루미늄 관을 사왔더니, 이게 너무 얇은 거요. 조립할 수 있도록 나선형 홈을 파려고 해보니까, 하긴 티슈페이퍼처럼 얇고 보니, 조금이라도 압력을 가하면 구부러지거나 가령 폭이 넓은 노리쇠 뭉치가 들어갈 정도로 큰 관에다가, 더구나 두께가 두꺼운 것을 쓴다면 그건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각될 물건이 되고 말지. 그래서 부득이 스테인리스를 쓰기로 했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재료가 있긴 하지만, 쓴다면 역시 스테인리스가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소. 조금 무겁기는 해도, 보기에도 알루미늄과 같고, 또 튼튼하니까 얇아도 되고. 홈을 파도 휘어질 염려도 없고. 다만 단단한 재질 탓으로 일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어제부터 시작했지......" "알겠소. 당신 말이 모두 옳아. 나로서도 완전한 것이 아니면 쓸 수 없지. 그럼, 완성은 언제?" 구상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가 없소. 물론 재료는 모두 갖추어져 있고, 기술적인 문제도 없긴 하지만. 음, 5일이나 6일......넉넉잡아 1주일쯤이면......" 재칼은 당혹한 표정을 짖지 않았다. 사정을 설명하는 벨기에인을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말을 마친 뒤에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좋소." 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행 예정을 변경해야 하지만, 지난번 여기에 왔을 때 생각했었던 것처럼 큰 장애가 되지는 않겠소. 지금부터 어떤 곳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 결과 여하에 좌우되기는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 총에 익숙해지려면 사격연습이 필요해. 그러자면 총과 총알, 개조한 것도 한 발 필요하고. 있어야 하고. 벨기에 내에서 전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사격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가 좋겠소? 150 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는 곳이라야만 되는데." 구상스는 잠깐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아르덴 고원지대가 좋을 것 같은데. 거기는 짙은 숲이 많고, 네댓 시간 정도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 않는 곳이 많이 있지. 하루면 갔다 올 수도 있고. 오늘은 목요일이라 내일부터는 주말 휴가를 들어가서 피크닉으로 사람들이 몰릴 테니까 좋지 않군. 그러니까 5일 월요일이 좋겠소.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는 내 일도 끝낼 거고." 재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총과 총알은 지금 가져 또다시 연락하겠소." 기선을 빼앗긴 벨기에인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재칼은 그것을 막아 버렸다. "아직 700파운드 빚이 있는데, 그것은 -- ." 그는 돈뭉치 몇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중에서 500파운드요. 나머지 200파운드는 물건을 다 받고 지불하겠소." "감사합니다, 무슈." 총기업자는 돈다발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총을 분해해서 황녹색 천으로 안쪽을 바른 케이스 안에 하나씩 소중하게 집어넣었다. 재칼이 요구한 작약탄 한 개는 티슈페이퍼에 싸서 총기청소용 걸레와 브러시 옆에 총알이 든 통과 함께 재칼에게 내밀었다. 재칼은 총알 통을 호주머니에 넣고서 케이스를 손에 들었다. 구상스는 정중하게 그를 배웅했다. 재칼은 호텔에 돌아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총을 넣은 케이스는 옷장 깊숙이에 숨긴 다음, 문을 잠그고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오후가 되자 그는 어슬렁어슬렁 중앙우체국을 찾아가서 취리히에 있는 번호를 대고 기다렸다. 전화가 통하기까지 30분쯤 걸렸고, 마이어 씨가 전화를 받기까지 다시 5분이 걸렸다. 재칼은 먼저 구좌번호를 말하고, 자기 신분을 대고는, 이어서 이름을 댔다. 마이어 씨는 일단 수화기를 내려놓고 2분 뒤에 다시 돌아와서 수화기를 들었지만, 그 어조에는 전과 같이 스위스 프랑에 의한 예금이 눈에 띄게 불어난 고객에 대해서는 그 대응도 정중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재칼은 한 가지만 물었다. 스위스의 은행원은 다시 수화기 옆을 떠났다가 이번에는 30초도 안되어 돌아왔다. 손님의 예금 원장과 출납장을 갖고 와서 대조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없습니다. 새로 입금된 것이 있으면 속달우편으로 알려 달라고 하신 손님의 편지도 여기에 있습니다만, 그 뒤 어디에서도 입금된 것은 없습니다." "지난 2주일 동안 런던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입금된 것이 있는가 해서 물어본 것이오." "아, 그러시군요. 어디에서고 입금이 항상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이어 씨의 소리를 들으면서 재칼은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나왔다. 그날 저녁때 6시가 좀 지나서 재칼은 누브 로(路)의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로 갔다. 위조업자는 이미 와 있었다. 재칼은 한 구석에 빈 자리를 발견하고 위조업자에게 그리로 오라고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자 위조업자가 그 자리로 왔다. "됐소?" 하고 그가 물었다. "예, 전부 다됐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아주 근사해요." "내놔 보시지." 하고 재칼은 말했다. 위조업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게다가 그 프랑스의 것은 밝은 곳에서 자세히 봐야 합니다. 스튜디오에 놓아두었어요." 재칼은 차가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리로 가서 보기로 하지." 몇 분 뒤에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와서 스튜디오가 있는 거리의 모퉁이까지 택시로 갔다. 아직 남은 노을빛으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으며, 재칼은 밖에 나갈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짙은 선글라스를 써서 인상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는 좁고, 그곳에는 이미 어둠이 깔려 오고 있었다. 노인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는데, 관절염이라도 앓고 있는지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리가 달린 열쇠로 문을 열었다. 스튜디오 안은 밤같이 어두웠다. 문 옆의 창에 붙여 놓은 사진 사이에서 새어들어오는 몇 줄의 희미한 빛으로 사무실의 의자와 테이블을 간신히 식별할 수가 있었다. 위조업자는 두 겹으로 쳐놓은 빌로드 커튼을 지나 스튜디오로 들어가서 라이트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는 천천히 호주머니에서 갈색 봉투를 꺼내어 속에 든 것을 인물 사진 찍을 때 소도구로 쓰는 둥근 마호가니 나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테이블을 방 한가운데 라이트 밑으로 옮겼다. 스튜디오의 안쪽에 설치해 놓은 조그만 무대의 위쪽에 있는 한 쌍의 아크등은 꺼진 채 어둡고 조용했다. 위조업자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테이블에 펼쳐 놓은 세 장의 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재칼은 첫번째 카드를 집어들고 라이트 밑에서 비춰 보았다. 운전면허증이다. 첫번째 페이지에는 다른 종이가 한 장 붙어 있고, 거기에 다음과 같은 활자가 보였다 -- '면허취득자 이름 알렉산더 제임스 ㅋ틴 댓건. 주소 런던시 W1, 운전 차종 1a, 1b, 2, 3, 11, 12, 13. 유효기간 1960년 12월 10일~1963년 12월 9일'이라는 글씨가 위쪽에, 그리고 면허증 번호(물론 가공이지만)와 '런던시 교통위원회' 및 '1960년의 도로교통에 의함'이라는 글씨가 있고, 다시 '운전면허증' '교부료 15파운드 영수필'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물론 충분하고도 남는다. 두 번째 카드는 콜마르에서 출생하여 현재 파리에 살고 있는 앙드레 마르탱(53세) 명의의 신분증명서이다. 첨부된 사진은 재칼 자기의 것이지만, 다만 현재의 그보다 20년쯤 늙어 보이고, 잿빛 머리카락은 부스스하며, 기운 없고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신분증 자체도 하급 노동자의 것에 어울리게 때묻고 귀퉁이가 구겨진 상태다. 그가 가장 흥미를 가진 것은 세 번째 카드이다. 붙어 있는 사진은 신분증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두 장의 카드가 만일 진짜라면 발행일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것을 몇 개월 늦추어 놓은 것이다. 이 카드의 것인데도 신분증과 비교하면 인화지가 훨씬 빛바랜 느낌이고, 또 사진의 얼굴 자체도 턱 부근에 텁수룩한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있어서 인상이 좀 다르다. 이런 효과는 교묘한 수정 솜씨에서 나온 것이며, 이 두 사진은 다른 시기에 다른 모양을 하고 찍은 동일인물의 두 가지 모습의 사진이라는 느낌을 준다. 양쪽 모두에서 위조업자의 기술은 뛰어난 것이었다. 재칼은 얼굴을 들고 카드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잘되었군. 내가 기대한 그대로요. 고맙소. 잔금이 50파운드 틀림없지?" "예, 그렇죠." 위조업자는 기대에 찬 얼굴로 웃었다. 재칼은 5파운드짜리 지폐 10장 한 다발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위조업자에게 사이에 끼운 돈다발이 상대방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말했다. "더 있을 텐데?" 위조업자는 못 들은 척 하고 시치미를 떼려고 했다. "뭔데요?" "진짜 운전면허증에 붙어 있던 종이 말이야. 돌려 달라고 해두었을 텐데." 위조업자가 좋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은 이미 분명했다. 그는 이제야 그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허풍스럽게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잡았던 돈다발을 도로 놓고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진 채 두세 걸음 재칼을 등지고 걸어갔다. 그러나 곧 방향을 바꾸어서 다시 돌아왔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재칼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약간 의문을 나타내는 것 같기는 했지만, 단조롭고 무표정했다. 얼굴에도 표정은 없었다. 눈은 자기 자신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반쯤 감고 있었다. "실은 말이오, 당신의 본명 -- 이라고 생각되지만 -- 이 붙어 있는 그 면허증의 첫번째 페이지는 여기에 없어. 아니, 뭐 -- ."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찬 사람을 안심시키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아주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어. 은행의 대여금고 속. 그건 나밖에는 열지 위험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조심성이 많아지지. 언제나 보험 같은 것을 들어 두고 싶어하거든." "원하는 게 뭐야?" "어떻소, 그 종이를 살 생각은 없소? 약속한 요금과는 별도로 말이오." 재칼은 훅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은 어째서 자기의 인생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듯이.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은 위조업자의 제의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소, 손님?" 아첨하듯 위조업자가 물었다. 마치 리허설을 한 것같이 매끄러운 연기였다. 조금씩 빙빙 돌려서 넌지시 속을 내보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재칼의 눈으로 보자면 "나는 협박에는 이골이 나 있는 편이라서." 하고 재칼이 받아 주었다. 그러나 힐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보통 소리이고, 말투도 역시 그랬다. 위조업자는 움찔했다. "뭐라고, 손님, 협박? 이 내가? 말도 안돼. 내 제안은 협박 같은 것이 아니야.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이지. 나는 다만 거래를 하자고 했을 뿐이야. 어느 정도의 돈을 준다면 물건은 고스란히 넘겨주겠다는 거지. 어쨌거나 내 쪽에서 손님의 면허증, 신분증의 필름, 그리고 이건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 ." 정말 미안한 듯이 그는 얼굴까지 찌푸렸다. "손님이 화장하기 전 맨 얼굴로 아크등 사진도 은행 금고 속에 들어 있거든. 그것들이 모두 영국이나 프랑스 경찰 손에 넘어가면 손님도 좀 곤란해지는 게 아닐까? 손님 같은 분이라면 그런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줄 아는데?" "얼마나 받고 싶소?" "천 파운드만 받지." 재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천 파운드야 어쩔 수 없겠지." 하고 위조업자의 요구를 인정했다. 위조업자는 거보란 듯이 활짝 웃었다. "역시 손님하고는 말이 통하는군." "그러나 대답은 노야." 소리로 말했다. 위조업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서? 아무래도 알 수가 없군. 이제 방금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천 파운드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했잖아? 서툰 흥정은 사양하겠어. 우리는 서로 이런 거래에는 도가 터 있을 줄 아는데?"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 하고 재칼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사진의 필름이 복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거가 없어. 따라서 앞으로도 두번 세번 등칠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지. 또 자네가 그 물건을 동료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고. 그 녀석은 물건을 내놓기가 좀 아까워서 자기도 천 파운드 받지 않고는 넘겨줄 수 없다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런 걱정을 하셨군. 그렇다면 그건 지나친 걱정이지. 도대체 소중한 그 물건을 동료에게 맡길 바보 짓을 이 내가 할 리가 없지 않겠나? 만일 돌려주지 않겠다면 본전이고 이자고 없어지니까. 첫째, 손님은 물건과 맞바꾸지 않으면 천 파운드나 되는 돈을 낼 리도 없겠고. 그러니까 나도 내가 직접 갖고 있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지. 한 번 말해 두지만 물건은 틀림없이 금고 안에 들어 있어. 그리고 두번 세번 돈을 뜯길 염려도 전혀 없지. 가짜 면허증의 사진판을 영국 경찰에 가져가 본들 상대해 줄 리도 없고, 설령 손님이 가짜 면허증을 쓰다가 경찰에 끌려가 봐야 큰 죄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내게 몇 번씩이나 돈을 뜯길 바에야 차라리 신분증 역시 비슷하고. 프랑스의 경찰도 어떤 영국인이 앙드레 마르탱이라는 가공의 프랑스인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또 실제로 손님이 그 이름을 써서 프랑스에 들어갔을 때에는 체포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만일 내가 그것을 미끼로 몇 번씩 돈을 뜯는다면 손님은 그 신분증을 버리고 다른 위조업자에게 다른 것을 만들게 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하면 이미 앙드레 마르탱이란 인간은 없어지고 마니까, 프랑스에 간다고 해도 겁날 건 없는 거지." "그럼,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이득이 되는 게 아닌가? 어차피 150파운드만 내면 새것을 한 벌 갖출 수 있으니까." 으쓱했다. "그런데 손님은 그렇게 느긋할 여유가 없어. 지금 곧 앙드레 마르탱의 신분증이 필요한 거야. 누군가 다른 위조업자에게 만들게 하자면 시간도 적잖게 걸릴 것이고, 또 만들어 봤자 내 작품과는 비교가 안되지. 내 작품은 손님도 보았듯이 어디 한 군데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 요는 손님에겐 그 물건과 내 침묵이 지금 당장 필요한 거야. 물건은 이미 손님에게 건네주었으니까, 내 입막음으로 천 파운드 있어야겠다는 이야기지." "그렇군. 그 나름대로 사리에 맞는 이야기로군. 그러나 나는 천 파운드나 되는 큰돈을 이 벨기에에 가져 오지는 않았어. 당장 내놓으라고 해봐야 소용없어." 것인가는 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원한다면 그것을 털어놓아도 좋다는 여유 있는 미소였다. "손님, 누가 보아도 손님은 당당한 영국 신사야. 그런데 손님은 중년의 프랑스인 노동자로 위장하고 싶어해. 손님의 프랑스어는 유창하고 거의 사투리가 없어. 그래서 앙드레 마르탱의 출생지를 콜마르로 해놓았지만. 알자스 지방 출신이 하는 프랑스어에는 꼭 손님의 프랑스어와 같은 사투리가 있거든. 그러니까 앙드레 마르탱으로 변장하면 영낙없는 프랑스인으로 통할 거야. 정말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해낸다는 건 탄복할 일이지. 아무리 의심 많은 경찰이라도 설마 마르탱 같은 가난뱅이 중년 남자를 수상하게 생각지는 모르지만, 손님, 상당히 값나가는 것이겠지. 마약인가? 요즈음은 영국에서도 꽤 유행하는 모양이던데. 그리고 마약의 공급지라면 그야 마르세유이지. 아니면, 다이아몬드인가? 그 어느 것이든 손님의 장사는 돈이 너무 남아서 처치곤란할 그런 것 아닐까? 영국 신사쯤 되는 분이 경마장에서 남의 지갑이나 노리는 치사한 짓은 할 수 없을 테고. 그것보다, 손님, 우리 이제 서로 연극은 집어치우시지, 안 그래? 런던에 전화해서 이쪽 은행에 전보환으로 천 파운드 보내라고 해. 그렇게 하면 내일 밤이면 거래를 끝내고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 재칼은 과거의 잘못을 슬픈 마음으로 떠올리듯이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띄우며 위조업자를 쳐다보았다. 위조업자는 그가 미소짓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이 부드러운 영국인이 사태를 냉정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다. 이런 거래는 늘 우여곡절이 따라다니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최후에는 결국 무사히 끝나게 되는 것이다. 위조업자는 긴장이 풀리는 것을 역력히 느꼈다. "좋아. 자네가 이겼어. 내일 정오까지 천 파운드 준비하지.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 갑자기 위조업자의 얼굴이 떫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이야." 위조업자는 당혹스러웠다. 조용하고 남의 눈에도 안 띄고." "내 처지로는 여기만큼 위험한 곳도 없어. 조금 전에 자네는 여기서 나 모르게 내 사진을 찍었다고 했잖아. 자네 같은 친구들이 어딘가에 숨어서 돈과 물건을 교환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위조업자는 마음이 놓였다. 얼굴에도 그것이 나타났다.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 점은 걱정 없어. 여기는 내 성이야.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으니까, 내가 부르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또 싫어도 조심 안 할 수가 없지. 생각해 봐. 관광객의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명목상 하고 있는 장사고, 뒤로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편이니 말이야. 이건 한길에다 스튜디오를 차려 놓고 당당하게 할 일은 못되니까......" 그는 왼손을 올려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그 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섹스 행위를 암시했다. 재칼의 눈이 빛났다. 그의 표정이 움직이더니 마침내 웃기 시작했다. 위조업자도 따라서 웃었다. 재칼은 그의 두 팔을 때리듯이 거머쥐고 몸을 고정시켰다. 그는 아직도 손으로 에로틱한 흉내를 되풀이하면서 웃고 있다. 그때 갑자기 그는 급소에 무시무시한 충격을 느꼈다. 머리가 헤엄치듯 앞으로 나오고, 두 손은 외설스러운 무언극을 하는 대신에 방금 재칼의 오른쪽 무릎이 왔다간 사타구니 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어 구역질하듯 목구멍이 울었다. 반쯤 의식을 잃은 그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이어서 앞을 향해 옆으로 쓰러져서 고통을 참으려고 했다. 재칼은 가만히 그를 일으켜 무릎을 꿇게 하고, 뒤로 돌아가서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른쪽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손목으로 자신의 왼쪽 팔을 잡았다. 왼손은 그의 뒤통수 부분을 눌렀다. 이윽고 재칼은 갑자기 힘을 주어 위조업자의 목을 앞으로 뒤로, 그리고 옆으로 세게 꺾었다. 목뼈가 부러졌다. 별로 큰소리는 아니었지만, 좁고 조용한 스튜디오 안에서 그것은 소형 권총의 발사음처럼 울렸다. 위조업자의 몸은 마지막으로 한번 브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 뒤로는 못쓰게 된 인형처럼 안고 있다가, 이윽고 앞을 향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시체는 얼굴은 옆으로 하고 손은 아직도 사타구니를 잡은 채 악물고 있는 이빨 사이로 깨물어서 반쯤 잘린 혀가 조금 나와 있고, 부릅뜬 두 눈은 리놀륨의 지워져 가는 무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칼은 빠른 걸음으로 커튼 쪽으로 걸어가서 완전히 쳐져 있는지 살펴본 다음, 시체를 반듯하게 눕히고 호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져서 바지의 왼쪽주머니에 들어 있던 열쇠다발을 찾아냈다. 스튜디오 안쪽 구석에 옷과 화장품 따위가 들어 있는 커다란 트렁크가 있다. 네 번째 열쇠로 트렁크가 열렸다. 그는 10분쯤 걸려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꺼내어 바닥에 쌓았다. 위조업자의 시체를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어 안고는 트렁크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시체를 안에 넣기는 쉬웠다. 힘없는 사지는 트렁크의 모양에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꺾여졌다. 몇 시간 지나면 사후경직이 되어 시체는 트렁크의 바닥에 고정되어 버릴 것이다. 재칼은 조금 전에 꺼낸 것들을 트렁크에 넣기 시작했다. 가발, 여자의 속옷 등 조그맣고 부드러운 것은 팔다리의 틈새에 채웠다. 그 위에 화장용 브러시며 화장품 튜브 등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림 병, 잠옷, 스웨터, 청바지, 드레싱 가운, 검은 망사 스타킹 등을 트렁크에 가득 채워서 시체를 완전히 감추었다. 뚜껑을 닫을 때에는 약간 힘을 주어 눌러야만 할 자물통을 걸었다. 이 작업중에 재칼은 트렁크 안에 있던 천 조각으로 손을 감싸고서 병이나 그 밖에 지문이 남을 만한 물건을 만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의 손수건으로 자물통과 트렁크의 표면을 닦고서, 테이블 위에 있던 돈다발을 호주머니에 넣고 테이블도 깨끗이 닦아서 본래대로 벽에 갖다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불을 끄고 벽 옆에 나란히 세워놓은 의자에 앉아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몇 분 뒤, 그는 담배갑을 꺼내어 남아 있던 열 개비의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고는 빈 갑을 재떨이삼아 한 대를 피웠다. 위조업자의 실종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물론 재칼도 하지 않았지만, 건 하고 나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지하로 잠적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있을 것이므로, 갑자기 그가 단골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도 같은 패거리들은 그 녀석 또 한 건 한 모양이군 하는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겠지 -- 하는 계산을 재칼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신분증의 위조나 포르노 사진의 일거리 때문에 그와 관계가 있는 녀석들이 찾기 시작하겠지. 스튜디오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녀석들은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입구가 잠겨 있어서 안에는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다.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와도 시체를 찾자면 스튜디오 안을 온통 다 뒤지고 트렁크의 자물통을 부수고서 허접쓰레기를 꺼내야만 된다. 위조업자는 두목에게 말썽을 일으켜서 살해된 것으로 생각하고 경찰에는 알리지 않을 것이다. 보통 포르노 사진광이었다면 순간적인 발작으로 살해했다고 해도 이렇게 꼼꼼하게 시체를 숨길 여유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언젠가는 경찰이 냄새를 맡게 되겠지. 그 시점에서 피해자의 얼굴 사진이 발표되고, 그 술집의 바텐더는 8월 1일 저녁때 위조업자가 체크 무늬의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키가 큰 금발의 남자와 함께 술집에서 나갔다는 생각을 해내겠지. 그러나 위조업자가 빌린 대여금고 -- 설령 본명으로 빌렸다고 하더라도 -- 의 존재에 생각이 미치고 내용물을 조사해 보는 일은 적어도 몇 달 사이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재칼은 바텐더와는 한마디도 주문한 것은 두 주일 전의 일이니까 웨이터가 천재적인 기억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의 프랑스어에 있을까 말까 한 외국 사투리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은 키가 큰 금발의 남자를 우선 수색하겠지만, 설사 알렉산더 댓건까지는 용케 찾아낸다 하더라도 재칼까지 찾아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렇게 모든 가능성을 고려에 넣고도 줄잡아 한 달의 여유는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위조업자를 없애는 것은 바퀴벌레를 밟아 버리는 것처럼 간단했으며, 또한 기계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재칼은 느긋한 기분으로 두 개비째의 담배를 마저 피우고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에 싸여 있었다. 그는 입구의 문을 잠그고 슬그머니 스튜디오를 떠났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반 마일쯤 가서 하수도 맨홀에 열쇠 꾸러미를 집어넣어 버렸다. 한참 밑에서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길로 호텔에 돌아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금요일, 재칼은 교외에 있는 노동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주택지로 물건을 사러 갔다. 캠핑용품 전문점에서 등산용 구두, 등산용 긴 양말, 작업복 바지, 체크 무늬의 셔츠, 그리고 배낭을 샀다. 그 밖에 엷은 폼 러버(스폰지 고무)로 된 시트 몇 장, 그물 부대, 삼베 실, 사냥칼, 가느다란 페인트 붓 두 자루, 핑크와 갈색 페인트 한 깡통씩, 그리고 살까 했으나 월요일까지 놔두면 썩어버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물건 사는 것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그는 알렉산더 댓건 명의의 여권과 일치하는 새 운전면허증을 보이고서 다음날 아침부터 쓰기로 하고 렌터카를 빌리고는, 프런트 주임에게 어디 해안의 관광지 호텔에 샤워실이나 욕실이 딸린 방을 하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8월의 여행 시즌이라 어느 호텔이나 모두 붐볐지만, 여기저기 많이 알고 있는 프런트 주임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제브뤼헤 어항이 굽어보이는 아담한 호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주임은 바다에서 잘 쉬라고 인사했다. 제 7 장 재칼이 브뤼셀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무렵, 빅토르 코와르스키는 로마의 중앙우체국에서 국제전화를 거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모르는 그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해서 프랑스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직원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애타게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살고 있는 어떤 남자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데, 그 번호를 모른다고 그 직원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주소와 이름은 알고 있소. 이름은 그리보스키요." 직원은 '그리보스키'라는 발음에 당황해서 종이에 써서 보여 달라고 그에게 말했다. 건네주었지만, Grzyb......와 같은 철자로 시작되는 이름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탈리아인은 코와르스키가 Z라고 쓴 글씨는 사실은 i일 거라고 생각하고서 국제전화의 교환수에게 Grib......라고 철자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조셉 그리보스키라는 이름은 마르세유의 전화번호부에는 올라 있지 않았다. 교환수는 그 말을 직원에게 전했다. 직원은 코와르스키 쪽으로 돌아서서 그런 분은 없다고 하며 설명했다. 그러나 이 직원은 마침 외국인에게는 친절하게 해야 된다고 믿고 있는 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일을 위해서 철자를 써서 보여 주었다. "이런 이름을 가진 분은 "아니오, 틀려. GRZ요." 하고 코와르스키는 고쳐 주었다. 직원은 놀랐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 GRZ? GRZYB입니까?" "그래요, GRZYBOWSKI요." 직원은 어깨를 움츠리고는 교환을 불러냈다. "국제전화의 번호안내를 바꿔 줘요." 그리고는 10분도 채 안되어 조조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30분 뒤에는 전화가 통했다. 어찌된 일인지 조조의 소리에 언제나와 같은 탄력이 없고, 코박스가 편지로 알려 준 나쁜 뉴스를 인정하는 데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전화를 잘 걸었네. 벌써 3개월째 실비아가 병들었다는 것은 사실일세. 차츰 약해지고 바짝 말라서 의사에게 데리고 갔을 때는 이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어. 지금 옆방에서 자고 있네. 아니, 옛날 그 아파트가 아니야. 좀더 깨끗하고 넓은 곳으로 옮겼어. 뭐라고? 주소? 조조는 천천히 주소를 말했다. 코와르스키는 입술을 빨아가며 종이에 적었다. "얼마나 견딜 수 있는 건가?" 하고 그는 고함치듯 물었다. 네 번째에 겨우 질문의 의미가 조조에게 통했다. 그러나 조조는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답이 없어서 코와르스키는 소리를 질렀다. 겨우 조조의 소리가 들려왔다. "1주일쯤일까, 길어도 2주일이나 3주일일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코와르스키는 손에 거머쥔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그것을 제자리에 놓고 전화박스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다. 넋나간 얼굴로 그는 통화료를 치르고 우편물을 받아서 가방에 넣고, 그것을 쇠사슬로 손목에 달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그는 마음으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지시해 줄 사람도 없었다. 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마르세유의 아파트에서 조조는 코와르스키가 전화를 끊는 소리를 듣고 자기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문득 돌아보니 액션 서비스의 두 사나이가 콜트 45권총을 손에 쥐고 아까 조조를, 또 한 사람은 새파랗게 질려서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의 아내를 각각 겨누고 있었다. "개 같은 자식." 조조는 욕을 퍼부었다. "이젠 꺼지시지." "놈은 오나?" 하고 하나가 물었다. "아무 말 않고 끊었어." 코르시카인의 검은 두 눈이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와야 해. 이건 명령이란 말이야." "나는 시키는 대로 모두 말했어. 옆에서 다 들었겠지. 그 녀석은 충격을 받았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어. 말릴 틈도 없었어." "여기로 오는 게 더 좋은데 말이야. 조조, 자네를 위해서도." "녀석은 올 거야." 조조는 단념한 듯이 말했다. "올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올 거야. 아이 때문에 말이야." "좋아. 이제 자네 역할은 끝났어." "그럼, 이젠 돌아가시지." 코르시카인은 총을 손에 든 채 일어섰다. 또 한 사람은 아내를 지켜보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돌아가겠지만, 자네들도 함께 가줘야겠어. 동네에 떠들고 돌아다니거나 로마에 전화를 걸면 곤란하니까. 그렇지, 조조?" "어디로 데리고 가겠다는 거야?" "산에 있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게 해주지. 공기는 신선하고 햇빛은 가득해. 자네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넋빠진 소리로 될 대로 되란 듯이 조조가 물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조조는 창문으로 가서 복잡한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처마 끝에 그림엽서를 달아맨 생선가게 판매대가 죽 늘어서 있다. "지금은 관광 시즌이 한창때라 모든 기차가 손님으로 초만원이야. 8월 한 달 내내 버는 것보다 더 벌 수 있지. 지금 장사를 쉬면 손해를 메꾸는 데 2~3년은 걸려." 그거 재미있다는 듯이 코르시카인은 웃었다. "그것도 자네의 새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야.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뻐해도 좋을 정도지." "정치 같은 것은 내 알 바 아니야. 누가 정부를 만들거나 어느 당파가 정권을 잡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그러나 말이야, 나는 너희들 같은 녀석들만은 아주 질색이야. 나도 잘 알고 있어, 너희들이 어떤 인간이란 것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히틀러든 무솔리니든 OAS든 꼬리를 흔들고 따라다니지. 아무리 정부가 바뀌어도 너희들 같은 쓰레기는 언제까지고 달라질 것이 없어." 그는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의족을 끌면서 코르시카인에게 다가갔다. 코르시카인의 손에 쥐어진 콜트 권총의 총구는 꼼짝도 않는다. "조조!" 아내가 소파에서 소리쳤다. 어쩌려고 그래!" 조조는 멈춰서서 비로소 그녀의 존재가 생각난 듯이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방안을 둘러보며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내는 애원의 눈길을 보냈으나, 액션 서비스의 두 녀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은 이런 욕에는 익숙해 있는 몸이다. 아무리 울고불고 법석을 떨어도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상관인 듯한 녀석이 침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짐을 챙겨. 먼저 자네, 다음에 부인이야." "실비아는 어떻게 되나요! 4시면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요?" 하고 아내는 사정하듯 코르시카인은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도중에 학교로 가서 조퇴시키도록 되어 있어. 준비도 다되어 있어. 교장에게는 할머니가 편찮아서 가족들이 모두 가게 되었다고 말해 두었어. 그러니 상관없어. 자, 빨리 해." 조조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아내 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코르시카인이 뒤따랐다. 아내는 두 손으로 손수건을 비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소파 끝에 앉아 있는 또 하나의 요원 쪽을 보았다. 코르시카인보다 젊은 가스코뉴인이었다. "그 사람을......어쩔 셈이에요?" "코와르스키 말인가?" "그래요, 빅토르 말이에요." 싶다는 거야. 그것뿐이야." 한 시간 뒤, 한 가족 세 사람은 대형 시트로엥에 실려서 앞좌석에 앉아 있는 두 요원을 따라 벨코르의 산속에 있는 호텔로 갔다. 그 주말을 재칼은 바닷가에서 보냈다. 수영 팬티를 사온 그는 토요일은 제브뤼헤 해안에서 일광욕을 하고, 북해에서 수영도 몇 번하고, 조그만 항구도시를 찾아가기도 하고, 그 옛날 영국군이 피와 총알의 파도 속에서 악전고투했다는 방파제를 따라서 산책을 하기도 했다. 방파제에 앉아서 농어를 낚고 있는 해마 수염의 노인들 중에는 45년 전의 격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굳이 없었다. 겨우 몇몇 가족이 해안에 흩어져서 일광욕을 하며 아이들이 파도가 밀려오는 물가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그는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와 느긋하게 차를 몰면서 플랑드르의 시골을 드라이브하고 제브뤼헤와 헨트 마을을 구경했다. 그리고 점심은 단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숯불구이 스테이크의 기막힌 맛을 보고, 오후 2시 좀 지나서 브뤼셀로 돌아왔다. 그날 밤 브뤼셀의 호텔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는, 다음날은 아르덴 고원에 드라이브를 가서 2차대전중 발지 전투에 참가하여 바스토뉴와 말메지의 중간에서 전사한 형의 무덤에 찾아간다며 모닝콜과 아침식사의 룸서비스, 그리고 도시락 준비를 부탁했다. 주겠노라고 했다. 로마에 있는 빅토르 코와르스키는 재칼처럼 우아하게 시간을 보낼 처지는 아니었다. 할당된 시간에 따라서 8층의 층계참에서 경비주임으로 근무하고, 밤에는 지붕 위에서 버티었다. 비번 때에도 거의 잠을 못 이루고 8층의 방 침대에서 뒨굴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1갤런짜리 큰 병으로 가져오는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면서 지냈다. 이탈리아산의 싸구려 붉은 포도주는 알제리 시대에 즐기던, 위 속을 휘저어 놓는 피나르하고 비교하면 시원찮고 감칠 맛도 없었으나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상관으로부터 명령이 없이 자기 혼자의 판단으로 무슨 일이거나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는 언제나 어물어물 시간이 결론을 내린 뒤였다. 로마를 떠난다고 해도 하루뿐이다. 비행기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이틀이면 된다고 그는 판단했다. 어쨌거나 이 행동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대장에게는 나중에 사정을 설명할 생각이었다. 화를 내기는 하겠지만, 대장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48시간의 휴가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긴 로댕은 곤경에 빠진 부하를 외면해 버리지 않는 훌륭한 지휘관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무래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저히 실비아에 대한 것을 이해해 주지 않을 것이고, 코와르스키 자신도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말로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재주는 전혀 임하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외인부대에 입대한 뒤로 처음 무단외출을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시각, 재칼은 브뤼셀의 호텔에서 잠을 깨어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수염을 깎고, 침대 옆에까지 날라다 준 멋진 아침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분해한 라이플이 들어 있는 케이스를 옷장에서 꺼내어 부품을 하나하나 폼 러버 시트로 싸서 삼베실로 묶었다. 그것을 배낭 바닥에 넣고, 그 위에 페인트 깡통, 붓, 작업복 바지와 체크 무늬의 셔츠, 하이삭스와 부츠를 집어넣었다. 그물로 된 주머니는 배낭의 왼쪽에 달려 있는 포켓에, 총알이 든 통은 또 다른 포켓에 다음으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세로 무늬의 셔츠와 언제나 애용하고 있는 우스테드 체크 무늬 대신에 비둘기색의 가벼운 상하복을 입고, 구치제의 가볍고 검은 가죽 스니커(고무창 운동화)를 신었다. 여기에 검은 실크의 니트 넥타이를 매어 앙상블을 이루었다. 그는 한 손에 배낭을 들고 호텔의 주차장에 넣어두었던 차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배낭을 트렁크에 넣고 다시 로비로 돌아와서 도시락을 받아들고 프런트 직원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전 9시에는 국도 40호선을 타고 나뮈르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기복이 없는 전원은 이미 햇볕에 닳아오르기 시작하여 한낮의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도로망 지도를 보니 마일 되는 곳의 삼림지대 안에 조용한 마을이 있다. 정오까지는 너끈히 160km를 주파할 수 있다고 본 그는 와론 평원을 가로지르는 평탄한 직선도로로 심카 아론드를 타고 달렸다. 태양이 머리 위에 오기 전에 그는 나뮈르와 마르슈 마을을 지났다. 마침내 1944년 겨울 독일의 하스 폰 만트이펠 장군 휘하의 티게르 전차사단에 의해 쑥밭이 된 조그만 마을인 바스토뉴를 지나고, 거기서 남쪽 길로 꺾어 산으로 들어갔다. 차츰 삼림이 울창해지며, 구불구불한 도로는 꽉 들어찬 느릅나무나 너도밤나무의 거목들로 그늘이 져서 완전히 하늘이 가려졌다. 마을을 지나 5마일쯤 간 곳에서 삼림으로 몰고 1마일쯤 가니까 다시 다른 산길이 나왔다. 그는 그 산길로 접어들어 조금 간 다음, 그늘 밑의 우거진 잡초 뒤에 차를 숨겼다. 그리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며 식어가는 엔진 소리,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산비둘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그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어 보닛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옷을 하나씩 갈아입었다. 비둘기색 양복은 차곡차곡 접어서 뒷좌석에 놓고 작업복 슬랙스(헐렁한 운동용 바지)를 입었다. 따뜻해서 윗도리는 필요치 않을 것 같아 와이셔츠를 벗고 체크 무늬의 스포츠 셔츠만 입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스니커를 신고 작업복 자락을 그 속에 밀어넣었다. 그는 폼 러버로 싼 라이플 부품을 하나씩 꺼내어 조립했다. 소음기와 망원조준기는 바지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탄환을 20발 통에서 꺼내어 셔츠의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넣고, 티슈페이퍼에 싼 작약탄은 종이에 싼 채로 다른 쪽 호주머니에 살며시 넣었다. 조립이 끝난 라이플을 차의 보닛에 올려놓고 그는 다시 트렁크 쪽으로 가서, 며칠 전 호텔로 돌아오다가 시장에서 사서 그대로 트렁크에 넣어 두었던 물건을 꺼냈다. 사람의 머리 만한 멜론이다. 그는 트렁크를 닫고 페인트, 붓, 사냥칼과 함께 멜론을 배낭에 넣고서 차를 잠그고 숲으로 들어갔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빈터를 발견했다. 끝에서 끝까지 15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총을 나무 옆에 세워 두고 150보 똑바로 걸어가서, 총을 세워 둔 곳이 보이는 나무를 골랐다. 그는 배낭 속의 것을 땅 위에 펼쳐 놓고 페인트 깡통을 열고서 멜론을 칠하기 시작했다. 위와 아래 부분을 갈색으로, 중앙 부분은 핑크색으로 재빨리 칠한 다음 페인트가 마르기 전에 집게손가락으로 두 눈, 코, 콧수염, 그리고 입을 그렸다. 얼굴을 다 그린 그는 손가락으로 칠이 지워지지 않도록 멜론 꼭지에 칼을 꽂아서 들어올려 살그머니 그물 부대에 넣었다. 실이 가늘고 그물코가 커서 멜론의 윤곽과 거기에 그린 얼굴이 분명하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높이 약 2미터 되는 그물 부대를 달아매었다. 핑크색과 갈색으로 나누어 칠해 놓은 멜론은 나무의 짙은 녹색을 배경으로 해서 인간의 살아 있는 얼굴처럼 보였다. 그는 두세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솜씨를 살펴보았다. 150미터의 거리라면 그것으로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는 페인트 깡통은 뚜껑을 덮어서 숲속에 던져 버렸다. 두 개의 깡통은 풀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붓은 손잡이를 밑으로 해서 땅에 꽂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발로 밟아서 박아 버렸다. 그리고 배낭을 가지고 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소음장치를 다는 것은 간단했다. 총신에 끼우고 나사처럼 돌려서 고정시키면 된다. 조준기는 총신의 윗부분에 끼워 넣었다. 약실에 밀어넣었다. 한 눈을 감고 조준기를 통해서 빈터 저쪽에 매달려 있는 표적을 찾았다. 망원 렌즈에 잡힌 멜론의 모습은 놀랄 만큼 크고 선명하여, 고작 3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멜론을 싸고 있는 그물 부대의 그물코나 인간의 얼굴을 그린 손가락의 선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다리의 넓이를 약간 바꾸고 조준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나무에 기댄 뒤에 다시 조준기 속을 들여다보았다. 십자선이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에 그는 오른손을 뻗어서 조정나사를 돌려 완전히 중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멜론의 한가운데를 겨냥해서 쏘았다. 반동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소음장치의 조용한 거리에서 쏘아도 조금만 떨어져 있으면 안 들릴 것이다. 총을 겨드랑이에 끼고 그는 멜론을 달아매 둔 곳으로 갔다. 총알은 멜론의 우측 상단의 껍질을 스치고서 그물코를 찢고 나무의 줄기에 가서 박혀 있었다. 그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조준기의 세팅을 바꾸지 않고 두 발째를 쏘았다. 결과는 총알이 가 박힌 지점이 반 인치 빗나가 있을 뿐, 첫번째와 같았다. 다시 두 발 시험사격을 해본 결과, 그는 겨냥은 옳았지만 조준이 약간 우측 상단 쪽으로 벗어나 있다고 판단하고 나사로 조절했다. 이번에는 왼쪽 밑으로 벗어났다. 좀더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 그는 다시 멜론 있는 그것은 입의 왼쪽 아래쪽 구석을 꿰뚫었다. 그는 같은 조준으로 다시 세 발째를 시험사격했으나 모두 같은 위치에 명중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조금 조준을 원래의 자리 쪽으로 옮겨 놓았다. 9발째에는 겨냥한 자리인 이마를 꿰뚫었다. 세 번째에는 멜론으로 다가가서 총알이 맞은 지점을 분필로 동그랗게 표시했다 -- 오른쪽 위 구석, 입의 왼쪽 아래 구석, 그리고 이마의 중앙.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는 연거푸 두 눈, 콧날, 윗입술, 그리고 턱을 쏘았다. 다음에는 멜론을 옆으로 돌려 놓고 나머지 여섯 발을 관자놀이, 귓구멍, 목, 뺨, 턱, 두개골을 보고 쏘았다. 단 한 발만이 조금 빗나갔을 뿐이다. 조절나사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호주머니에서 접착제를 꺼내어 끈적거리는 액체를 나사 못에 발랐다. 30분쯤 담배를 두 개비를 피우는 사이에 접착제가 완전히 굳었다. 사정거리 130 미터로 이 총의 조준이 정확히 고정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가슴 호주머니에서 티슈페이퍼에 싼 작약탄을 꺼내어 약실에 꽂았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써서 멜론의 중앙부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의 끝에서 파란 연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총을 나무에 기대어 세우고 빈터 저쪽 끝에 매달려 있는 그물 부대를 향해 갔다. 그것은 박살이 나서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 총알을 20발이나 맞은 멜론은 무참하게 찢겨 버리고 말았다. 위에 흩어져 있었다. 씨앗과 액은 나무 줄기에 달라붙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다. 남아 있는 레몬의 살은 그물 부대 바닥으로 한데 모여, 자루는 마치 축 늘어진 고환처럼 나무에 꽂아둔 칼에 매달려 있다. 그는 부대를 벗겨 근처 풀밭에 던져 버렸다. 표적이 되었던 멜론은 물컹한 살 덩어리가 되어 본래의 모양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칼을 나무에서 뽑아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라이플을 가지고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총을 분해하여 하나씩 폼 러버로 싸고서 부츠, 하이삭스, 셔츠, 바지 등과 함께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올 때의 옷으로 갈아입고 배낭은 트렁크에 넣고서 천천히 점심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국도로 나가 바스토뉴, 마르슈, 나뮈르를 지나 브뤼셀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가 지나서였으며, 일단 배낭은 방에 올려다 놓고 프런트로 내려가서 렌터카 요금을 계산해 주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기 전에 한 시간에 걸쳐서 라이플의 각 부분을 꼼꼼하게 닦아낸 다음, 케이스에 넣어서 옷장에 숨겼다. 그날 밤 늦게 배낭, 실베실, 그리고 폼 러버 등, 이제는 쓸모없게 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21발의 탄피는 운하 속에 던져 버렸다. 같은 날 8월 5일 아침, 빅토르 코와르스키는 다시 로마 중앙우체국에 나타나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직원에게 안내소에 전화를 걸어서 그 주 안에 로마를 떠나 마르세유로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편의 시간표를 물어봐 달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다. 월요일에 떠나는 것으로는 한 시간 뒤에 출발 예정이라 이것은 아무래도 안되었다. 다음 비행기는 수요일에 있었다. 다른 항공회사에는 로마에서 마르세유로 직행하는 비행기편은 하나도 없었다. 우회해서 가는 비행기는 몇 편 있었다 -- . 손님, 우회하는 비행기편은 안됩니까? 안돼요? 수요일 편은? 그거라면 11시 15분발이며, 정오 조금 지나서 마르세유의 마리난 공항에 도착합니다. 돌아오는 편은 그 다음날 있습니다. 예약하시겠습니까? 편도입니까? 아니면, 왕복? 알겠습니다. 성함을 말씀해 종이를 꺼내어 이름을 썼다. EC(유럽공동체) 안에서는 여권이 필요치 않으니까 신분증명서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요일, 이륙 한 시간 전에 피우미티노 공항에 있는 알리탈리아 항공의 창구로 가면 된다는 거였다. 직원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코와르스키는 우편물을 찾아서 가방에 넣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재칼은 구상스의 집으로 갔다. 아침식사 때에 전화를 걸자 총기업자는 밝은 목소리로 다되었다고 말했다. 11시에 오시겠소? 그럼, 총을 잊지 마십시오. 재칼은 이번에도 30분 전에 그 거리로 갔다. 총을 넣은 아타셰 케이스(네모난 사온 투박한 천으로 된 가방에 들어 있었다. 그는 11시까지 30분 동안 거리를 슬며시 살핀 다음에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구상스가 문을 열어 주자 그 뒤로는 거침없이 성큼성큼 사무실로 들어갔다. 구상스는 현관을 잠그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제는 문제없겠지?" "그래, 이번에는 잘되었소." 책상 뒤로 돌아간 구상스는 삼베실로 말아 놓은 몽둥이 모양의 것을 몇 개 꺼냈다. 그리고 삼베실을 풀면서 두께가 얇은 강관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모두 번쩍거리게 광택을 내어 알루미늄같이 보인다. 마지막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는 아타셰 케이스를 달라고 손을 총기업자는 라이플의 부품을 하나씩 강관에 넣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꼭 알맞게 들어갔다. "시험사격은 어땠소?" 그는 손은 움직이면서 물었다. "두말할 나위 없었소." 구상스는 망원조준기를 손에 들고 조절나사가 접착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사가 작아서 조작하기 어려울 줄 알았지. 본래 달렸던 나사는 너무 커서 걸리적거리기에 하는 수 없이 이 조그만 것을 썼는데. 강관 속에 안 들어가서 말이오." 그는 조준기를 스테인리스 강관에 집어넣었다.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부분을 각각 강관에 모두 넣고서, 그는 철사 같은 방아쇠와 다섯 발의 작약탄을 손에 들었다. "이 두 개는 특별한 곳에 감출 필요가 있어서." 그는 검은 가죽을 대어 놓은 총 개머리의 어깨받이를 꺼내어 가죽 부분에 달려 있는, 면도칼날로 흠집을 낸 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에 방아쇠를 집어넣고, 틈새를 검은 테이프로 막았다. 완전히 흠집이 가려지고, 그런 흔적도 없어졌다. 다음에 그는 책상 서랍에서 검은 고무 덩어리를 꺼냈다. 직경 약 1인치 반, 길이 2인치의 원통이다. 그 한쪽 끝의 중심부에서 나선형 홈이 파인 볼트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다. "이것을 강관의 마지막 것에 박는 거요." 있다. 그는 그 구멍에 작약탄을 한 발씩 꽂았다. 놋쇠로 된 뇌관만 보인다. "고무를 강관에다 붙이면 총알은 깜쪽같이 안 보이게 되어 있소. 이 고무는 그러니까 지팡이의 물미(땅에 꽂기 위해 지팡이 끝에 끼우는 뾰족한 쇠)가 되는 셈이지." 재칼은 말이 없었다. "어때, 이 정도면?" 총기업자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재칼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강관을 손에 들고서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했다.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강관의 내부에 이중으로 발라 놓은 천이 충격이나 소리를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강관 중에 제일 긴 것이 20인치이며, 거기에는 총신과 하나가 1피트 정도로서 개머리의 상하 프레임, 소음기와 조준기가 각각 들어 있다. 방아쇠를 숨겨 놓은 개머리의 어깨받이와, 총알을 박아놓은 고무 원통은 관 속에 넣을 필요가 없어서 이 두 개는 따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각 부분을 집어넣어 버리니 암살용 저격총은 고사하고 사냥용 라이플로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무랄 데가 없군." 재칼이 조용히 끄덕였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어." 구상스는 기뻤다. 총기의 전문가로서 그는 무엇보다도 찬사를 바랐다. 또 그는 눈앞에 있는 손님 역시 총에 관해서는 일류 전문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칼은 분해한 총을 넣은 강관을 소중하게 싸서 하나씩 가방 속에 넣었다. 원통을 넣고 가방을 잠그고서 아타셰 케이스를 총기업자에게 돌려주었다. "이건 이제 필요없소. 총은 실제로 쓸 때까지 관에 넣은 채로 두겠소." 그는 잔금 200파운드를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젠 거래가 끝난 셈이오." 구상스는 돈을 호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말했다. "그렇군요. 그 밖에 뭐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서슴지 마시고 말하시오." "그럼, 하나만. 2주일 전에 침묵은 생명이라고 말씀드렸소만. 그걸 잊지 마시도록." "물론 잊지 않소, 나는." 조용히 대답하면서 구상스는 겁먹고 살인청부업자는 내 입을 막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일 작정일까? 설마? 그런 일을 하다가는 애써 손에 넣은 총을 써보기도 전에 경찰에 쫓기게 된다. 재칼은 그의 마음속을 읽고 있었던 모양인지 빙긋 웃었다. "걱정 마시오. 당신에게 손댈 생각은 없소. 당신같이 머리좋은 사람이라면 손님에게 기습당할 경우를 생각해서 적절한 조치를 해두었을 거요. 한 시간 이내에 전화가 걸려온다든지, 전화를 해보고 받는 사람이 없으면 친구가 찾아온다든지, 또는 사망했을 때에는 펴보라고 변호사에게 편지를 써서 맡겨 둔다든지. 입을 막기 위해서 당신을 없애는 것은 좋지만, 대신 그 이상의 문제를 만들게 될 거요. 나는 부스럼이지." 구상스는 깜짝 놀랐다. 사실 그는 죽었을 때에 펴보라고 변호사에게 편지를 맡겨 두었던 것이다. 그 편지에는 뒤뜰에 있는 돌 밑을 찾아보라고 적어 놓았다. 그 돌 밑에는 상자가 묻혀 있는데, 그날 그날 찾아오는 사람의 이름을 쓴 종이가 들어 있다. 그리고 매일 종이를 바꾼다. 오늘의 종이에는 댓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키가 크고 돈이 많은 영국인이 찾아올 예정이라고 써두었다. 그것도 일종의 보험인 것이다. 영국인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맞았어. 당신은 안전하다는 거로군. 그러나 만일에 내가 여기에 온 일이나 당신에게서 총을 사간 일을 당신을 없애겠소. 내가 여기서 나가면 그 순간부터 나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오." "알고 있소. 내게 오는 손님은 모두 똑같은 약속을 하라고 하니까. 총신에 새겨져 있는 총의 번호를 산(酸)으로 지워 버린 것도 실은 그런 생각 때문이지. 나도 나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니까." 재칼은 다시 미소지었다.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구상스는 현관까지 그를 배웅했다. 총이나 살인청부업자에 대해서는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구상스도 재칼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관문 저쪽으로 그의 모습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돈을 세어 보았다. 재칼은 싸구려 가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호텔 종업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점심이 늦어지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택시로 중앙역에 가서 수하물 보관소에 그것을 맡기고 보관증을 도마뱀 가죽의 지갑 속 비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시뉴라는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및 벨기에에서 사전준비를 무사히 끝낸 것을 자축하여 호화판 점심을 먹고는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꾸리고 계산을 끝냈다. 호텔을 출발할 때에는 체크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특제품의 체크 무늬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침착하고 여유가 보이에게 들게 하고는 기다리고 있는 택시로 다가갔다. 지금까지 한 준비에 1,600파운드나 썼지만, 그 대신 라이플과 세 종류의 위조 카드를 수중에 넣었다. 런던행 제트 여객기는 오후 4시 지나서 브뤼셀을 출발했다. 런던공항에서는 짐 조사를 받았지만, 물론 조사에 걸릴 만한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7시에는 오랜만에 웨스트 엔(런던 시내 서부지역으로, 부호들이 많이 산다.)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파트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