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요리 " 여보게, 여기일세 " 하고 래플러가 말했다. 코스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인적이 없는 거리의 차갑고 끈적끈적한 어둠을 양쪽 에서 갈라놓은 듯 내달아지은 집으로, 그 일대에 늘어서 있는 집들과 이렇다하게 다른 점이 없는 네모진 갈색 사암 건물 앞이었다. 발 밑 지하실의 쇠창살을 끼운 창문에서 두터운 커튼 사이로 불빛이 깜박깜박 새어나오고 있었다. " 쳇! " 하고 코스틴은 말했다. " 이건 꼭 음침한 움막 같은 데요 " " 미리 말해 두지만 " 하고 래플러는 엄격하게 말했다. " 스빌로즈라는 가게는 겉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네. 악취미와 노이로제가 유행하는 요즈음에도 아직 그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있지. 버젓한 내력이 있는 자리에서 가스 등 조명을 켜둔 집은 이 거리에서 이 집하나뿐일 걸세.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옛스럽고 꾸밈없는 튼튼한 가구와 셰필드의 식기, 게다가 깊숙한 구석에는 거미줄이 있을지도 모르 네 ― 50년 전에 단골손님이 본 것과 똑같은 거미줄이! " " 어쩐지 칭찬하는 말이 신통치 않군요 " 하고 코스틴이 말했다. " ―그리고 그 다지 위생적이라고 할 수도 없겠는데요. " "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가면 ― " 래플러는 말을 계속했다. " 오늘날의 비위생 적인 세계와 인연을 끊고,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옛부터 내려오는 품위있는 분위 기에 잠깐 젖어 볼 수가 있을 걸세. 나로서는 그런 것이야말로 바로 요즈음 세상 에서 가장 부족한 일이라고 보네. " 코스틴은 어색하게 웃으며 " 그렇다면 이건 레스토랑에 온 게 아니 라 절에 온 것 같지 않습니까! " 하고 말했다. 머리 위에서 비치는 파리한 가로등 불빛을 통해 래플러는 동행자의 얼굴을 들여 다보았다. 그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어쩌면 자네를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지. " 코스틴은 기분이 상했다. 급료를 넉넉히 받고 꽤 훌륭한 직함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조금이나마 자기의 감정을 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코스틴은 쌀쌀하게 말했다. " 뭣하다면 ― 나는 오늘 밤의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뤄도 괜찮습니다. " 혈색이 좋은 보름달 같은 얼굴의 래플러는 황소 같은 눈으로 코스틴을 돌아다보 았다. 이상하게도 침착성을 잃은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 그건 절대로 안돼. 자네가 함께 식사를 해준다는 일이 중요한 걸세. " 그는 코스틴의 팔을 꽉 잡고 앞장서서 지하실로 통하는 철문으로 들어섰다. " 여보게, 우리 회사에서 음식 맛을 알 만한 사나이는 자네 하나뿐이거든. 이처럼 훌륭한 스빌로즈의 요리 맛을 알면서도 그것을 아우와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훌륭한 걸작 예술품을 어떤 방에 집어넣고 잠가버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라네. " 코스틴은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다. " 알겠습니다. 흔히 그런 사람이 있지요. " " 그런 것과는 전혀 달라! " 하고 래플러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 나는 벌서 몇 년 동안이나 그런 심정으로 스빌로즈의 요리 맛을 가슴에 접어두고 혼자만 알아왔 는데,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걸세. " 래플러가 문 옆에서 무엇을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안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잡아 당기는 식의 벨 소리가 기묘하게 울렸다. 안쪽 문이 삐꺽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하얗게 빛나는 이로 겨우 어둠과 분간할 수 있는 검은 얼굴이 코스틴의 눈 앞에 나타났다. " 네? " 하고 그 얼굴이 말했다. " 래플러 씨와 동행이 한 사람 있네. " 1 " 네 " 하고 그 얼굴은 다시 한 번 말했는데, 이번에는 분명히 <어서 들어오라> 는 말투였다. 그 얼굴이 옆으로 비켜서자 코스틴은 오늘 발에 한턱낼 사람의 뒤를 따라가다 한 단밖에 안되는 계단에 걸렸다. 문이 삐꺽 소리를 내며 뒤에서 닫혔다. 그는 눈은 깜빡거리며 작은 현관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고 있 는 것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임을 알았다. " 분위기라 … " 하고 그는 깜짝 놀란 다음 안심한 듯 말하고,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며 혼자 웃었다.코스틴은 2인용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래플러와 마주앉아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다지 넓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조 명이라고는 대여섯 개의 기둥에서 약한 빛을 내뿜고 있는 가스 등뿐이어서 그 빛 을 되비치며 흐릿하게 보이는 벽이 굉장히 멀리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되도록 손님들끼리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도록 놓여진 테이블의 수는 기껏해야 여 덟 개 내지 열 개 정도였다. 어느 테이블이나 손님이 있었으며, 몇 안되는 급사 가 조용하고도 경쾌하게 주문을 받으며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녔다. 둘레에서는 부드럽게 그릇 부딪치는 소리, 칼로 음식 자르는 소리,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코스틴은 기분좋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래플러는 상대방이 알아차릴 만큼 크게 기쁨의 한숨을 내쉬었다. " 자네는 틀림없이 나의 기분을 알아줄 줄 알았네. 그런데 알아차렸나, 여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코스틴은 눈으로 되물었다. " 이곳 주인 스빌로는 ― " 하고 래플러가 대답했다. " 부인들이 가게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네. 참으로 효과적인 방법을 써서 말일세. 얼마 전 나도 한 번 직접 그 장면을 본 일이 있다네. 그때 그 부인은 한 시간도 넘게 테이블에 앉 아 있었는데 도무지 요리를 갖다주지 않더군. " " 떠들어대진 않았읍니까? " " 떠들어댔지. " 래플러는 그때 일을 생각해내고 웃음을 터뜨렸다. " 그래서 다 른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고 그녀와 함께 온 남자를 초조하게 만들었어. 그뿐이었 네. " " 스빌로 씨는? " " 나타나지 않았네. 그가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가게에 없었는지 그건 나도 모르네. 그러나 아뭏든 일방적인 승부였어. 그 부인도, 그리 고 그녀를 데리고 와서 소동을 일으키게 한 남자 도 두 번 다시 이 가게에서 본 일 이 없네. " " 보고 있던 다른 손님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겠군요. " 하고 코스틴은 웃 었다. 급사가 왔다. 초콜렛 빛 피부, 오똑한 코와 아름다운 모양의 입술, 촉촉히 젖은 큰 눈, 비단처럼 광택이 좋고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이는 은백색의 머리카락 등으로 보아 틀림없이 동인도 근처 어딘가에서 왔으리라고 코스틴은 생각했다. 급사는 빳빳한 마직 테이블보를 펴더니 커다란 커트글라스에서 손잡이가 없는 두 개의 잔에 물을 따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오늘은 특별요리가 나오나? " 급사는 미안한 듯이 미소지으며 마치 동화에 나오는 왕궁의 하인장처럼 훌륭한 잇바디를 드러내보였다. "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밤에는 특별요리가 안되겠습니다. " 래플러는 암담한 실망의 표정을 띠었다. " 요전부터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벌써 한 달이 되었지 않나. 더우기 오늘 밤에 는 여기 있는 이 친구에게 … " " 알고 계시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만들 수 없는 것이라서 … " " 으음, 그건 알고 있네. " 래플러는 낙심한 듯이 코스틴을 쳐다보며 어깨를 으 쓱했다. " 자네에게 스빌로즈에서 나오는 가장 훌륭한 요리를 맛보게 해주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밤 메뉴에는 없다네 그려. " 급사가 말했다. " 요리를 가져올까요, 손님 " 래플러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랍게도 급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버렸다. " 미리 수문해 놓았읍니까? " 하고 코스틴이 물었다. " 아니 " 하고 래플러는 대답했다. " 이건 미리 설명해 둘 걸 그랬군. 스빌로즈 에서는 골라먹을 수가 없다네. 지금 이 방에 있는 손님은 모두 같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지. 내일 밤에는 또 내일 밤대로 다른 메뉴의 요리가 나온다네. 선택하 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을 잠자코 먹어야 하는 거지. " " 아주 색다르군요 ― " 하고 코스틴은 말했다. " 그렇다면 때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일도 일을 게 아닙니까? 만일 가져온 요리가 입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요? " 래플러는 엄숙하게 말했다. " 그 일이라면 걱정할 것 없네. 자네의 혀가 얼마나 고급인지는 모르지만 스빌 로즈에서 나오는 요리를 먹어보면 자네도 아마 입맛을 다시게 될 걸세. 그건 내 가 보증하지. " 코스틴의 의아해 하는 얼굴 표정을 보고 래플러는 미소지었다. " 게다가 이것은 편리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지. 여느 레스토랑의 경우, 앉아 서 메뉴를 대하게 되면 손님은 으례 난처한 물음에 부딪치게 되거든. 어떤 것으 로 할까하고 망설이다가 적당히 아무거나 주문하고 보면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곧 후회하고 말지. 그것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일종의 긴장감을 주어 식 사의 즐거움을 줄이게 되는 원인이 된다네. 거이게 비해 이곳 방식을 생각해 보 게. 다른 곳에서는 요리사가 백 종류나 되는 갖가지 주문 요리를 만드느라고 조 리장에서 법석을 떨어야 하는데, 이곳 요리장은 침착하게 자신만만한 한 가지 일 에만 몰두하면 된단 말일세. " " 그렇다면 당신은 이곳 요리장을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 " 아니, 유감스럽게도 아직 못 보았네. " 하고 래플러는 슬픔 듯이 말했다. " 내가 지금 한 말은 여기서 몇 년 동안 주워들은 것을 꿰어맞추어 멋대로 만들어낸 공상일세. 이곳 요리장을 직접 보고 싶은 기분이 나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서 이제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 " 그런 사실을 주인에게 말해 본 일이 있습니까? " " 물론 말해 보았지, 열 번도 넘게. 그러나 언제니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그 자리에서 거절할 뿐일세. " " 그래요? 그건 좀 지나친 것 같은데요? " " 아니, 아닐세! " 하고 래플러는 당황해서 부인했다. " 그 정도의 명인이 되 고 보면 쓸데없는 예의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네. 아뭏든 ― " 하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네. " 급사가 두 개의 스프 접시를 들고 다시 나타나서는 수학적인 정확성으로 적절한 위치에 놓더니 작은 뚜껑이 달린 스프 그릇에서 맑은 스프를 조심스럽게 따르었 다. 코스틴은 스푼으로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맛을 보았다. 코스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소금그릇과 후추그릇을 찾으려고 손을 내밀어 더듬어 보았으나 그런 것은 테이블 위에 없었다. 그가 눈을 드니 래플러가 자기를 보고 있었다. 자기 혀의 기호를 말살시켜 버리는 일 이 마음내피지 않았지만, 그러나 모처럼 마음먹 고 한턱쓰는 래플러에게 처음부터 실망을 줄 수는 없었다. 코스틴은 미소지은 얼굴로 스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 아주 훌륭한 맛이군요. " 래플러도 미소를 보내며 냉담하게 말했다. " 훌륭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아무래도 싱거워서 좀더 조미료를 넣었으 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 나는 다 알고 있네. "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치 켜올린 코스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 왜냐하면 몇 년 전 나의 반 응도 자네와 똑같았으니까. 첫숟갈을 입에 떠넣는 순간 지금 자네가 한 것처럼 소금과 후추그릇을 찾으려고 손을 내밀었다네. 그리고 스빌로즈의 식탁에는 손님 이 직접 맛을 맞출 수 있는 조미료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 지. " 코스틴은 깜짝 놀라며 " 소금도! " 하고 소리쳤다. " 소금도라니, 자네가 그런 것을 바라고 있다는 그 자체가 자네 혀가 거칠어졌 다는 증거일세. 어쨌든 지금부터 자네도 나와 똑같은 경과를 겪게 되리라고 생각 하네. 그 스프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이 되면 소금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완전 히 없어질 걸세. 틀림없이. " 래플러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접시 바닥이 보이기 전에 코스틴은 차츰 미묘한 맛이 나는 스프를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래플러는 다 먹고 난 빈 접시를 옆으로 밀어놓고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쉬었다. " 자아, 어떤가. 내가 한 말을 인정하겠나? " " 놀랍군요! " 하고 코스틴은 말했다. " 네, 인정합니다. " 급사가 재빨리 테이블 위를 치우고 있는 동안 래플러는 뜻있는 듯 목소리를 낮추 어서 말했다. " 이제 자네도 알게 될 걸세. 테이블에 조미료를 준비해 놓지 않는 건 스빌로즈 의 여러가지 색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좀 설명해 둘 까. 이를테면 여기서는 알콜 성분의 음료수는 일체 나오지 않네. 아니, 마시는 것이라고는 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마셨던 유일한 자연의 음료수 ― 맑고 차가 운 물밖에 내놓지 않아. " " 그보다 먼저 어머니의 젖이 있잖습니까? " 하고 코스틴은 흥미없는 듯 덧붙였 다. " 그러나 여보게, 나부터도 그렇지만 스빌로즈에 오는 손님은 대개 그런 것을 마시는 성장의 첫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인정해 주어야겠지. " 코스틴은 웃었다. " 그렇습니다. " " 좋아, 그리고 담배도 금물일세. 어떤 형태의 것이든 담배라는 이름이 붙은 것 은 일체 ― " " 아니, 그렇다면― " 하고 코스틴이 말했다. " 이 스빌로즈 가게는 미식가의 성스러운 집회소라기보다 절대 금주주의자의 비밀 집회소라고 해야겠군요. " " 그것은 자네가 혼동하고 있기 때문일세. " 라고 래플러는 엄숙하게 말했다. " 미식과 포식을. 포식이라는 것은 무턱대고 경험 범위를 넓힘으로써 이미 포만된 자기의 감각을 더욱 자극시키려고 하지. 이에 반하여 참된 미식가가 존중하는 것 은 간소함 의 감각을 더욱 자극시키려고 하지. 이에 반하여 참된 미식가가 존중하 는 것은 간소함일세. 보잘것없는 옷을 입고 익은 올리브 열매의 맛을 본 고대 그 리스 인이라든가,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한 송이 꽃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선에 정신을 잃는 일본인이라든가 ― 미식가의 진수는 그런 데 있는 걸세. " " 그러나 이따금 적시는 한 잔의 브랜디라든가, 한 대의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 든가 ― " 하고 코스틴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 그 정도의 일은 지나치다 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 " 자극성이 있는 것과 마취성이 있는 것을 번갈아 섭취한다는 것은 ― " 하고 래플러는 설명했다. " 미각의 섬세한 밸런스를 시소처럼 움직여서 가장 중요한 능력 ― 음식을 맛보는 순수한 능력을 손상시키게 되지. 스빌로즈의 단골이 된 뒤 몇 년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네. " " 실례입니다만 " 하고 코스틴은 말했다. " 왜 그런 일에 그토록 심오한 미학적 동기를 갖다붙이십니까? 그보다 유흥 음식점의 허가세가 비싸기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이렇게 좁고 꽉 막힌 방에 담배연기가 차게 되면 손님이 도망쳐 버리기 때 문이라든지 ― 이런 속된 이유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래플러는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 스빌로를 만나면 자네도 그 자리에서 상대방이 속된 동기에서 그렇게 할 사람 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걸세. 사실 지금 자네가 말한 <미학적>인 동기를 나에 게 처음으로 인식케 한 것도 스빌로일세." " 대단한 인물이군요. " 하고 코스틴은 때마침 가져온 요리를 보면서 말했다. 래플러는 커다란 고깃조각을 우물우물 씹어서 삼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 나는 과장하여 말하는 것은 싫어하는 편이지만 " 하고 그는 말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스빌로는 인류문화의 정점에 이른 사람일세! " 코스틴은 어이가 없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야채며 파란 것이라고는 전혀 곁 들이지 않은 짙은 소스에 담근 불고기를 보았다. 솔솔 피어오르는 김은 사람을 애타게 하는 미묘한 향기를 띠고 콧구멍을 간지럽혔으며 입 속에 침이 괴게 했 다. 그는 그 한 조각을 마치 모짜르트 작곡의 복잡한 교향곡을 분석하듯 천천히 생각하면서 씹었다. 바짝 탄 바깥쪽의 짙은 맛에서부터 시작하여 물어뜯은 턱의 압력으로 설익은 중심부에서 스며나오는 담백하고 기묘하며 영혼을 녹이는 듯한 피의 맛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는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맛이었다. 그것을 씹어삼키자 굶주린 짐승처럼 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또 한 조각 …… 이런 식으로 먹게 되어 상당히 애쓰지 않으면 빨리 또 한 조각을 먹고 싶어 모처럼의 진미를 천천히 맛볼 겨를도 없이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접시의 바닥이 보이기까지 완전히 입 속에 휩쓸어 넣었을 때, 비로소 그는 자기도 래플 러도 단 한마디 말 없이 숨도 쉬지 않고 그날 밤의 식사 뒤 코스까지 다 끝마쳤음 을 알았다. 코스틴이 그 점을 지적하자 래플러가 말했다. " 이런 요리를 앞에 놓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 코스틴은 초라하고 어두운 방 안과 조용하게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새삼스러운 듯이 다시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 네, 정말 그렇습니다. 처음에 여러 가지로 의심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 겠습니다. 스빌로즈를 칭찬한 당신의 말에는 한 마디도 과장이 없었습니다. " " 물론이지! " 하고 래플러는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러나 자네는 아직 내가 입 밖에 낸 말의 겨우 일부분밖에 맛보지 못한 걸세. 아까 내가 오늘 밤에는 특별요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오늘 밤에 먹은 것은 그 특별요리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걸세. " 뭐라고요! " 하고 코스 틴은 소리쳤다. " 그 특별요리라는 게 뭡니까? 나이팅겔의 혀인가요, 아니면 우 니코른(외뿔짐승)의 고기인가요? 무엇입니까? " " 그런 게 아니네 " 하고 래플러는 말했다. " 양고기야. " " 양 …… " 래플러는 몇 번이나 자기 혼자 줄곧 감흥에 잠기는 것 같았다. " 만일 ― " 하고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 내가 자신을 전혀 억누르지 않 고 그 요리에 대해 느끼고 있는 대로 말한다면, 자네는 나를 아마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걸세. 그러나 사실 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네. 기 름진 갈비도 아니고, 질긴 닭고기도 아닐세.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진기한 종류 의 양고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고리야. ― 원산지의 이름을 따서 아밀스턴 양 이 라고 하지. " 코스틴은 미간을 찌푸렸다. " 아밀스턴 …… " "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의 경계에 있는 조그만 황무지일세. 스빌로가 우연히 한 이야기들을 듣고 내가 상상하건대, 아밀스턴은 조그마한 고원으로, 그곳에서 얼마 안되는 희귀한 양떼가 풀을 뜯고 있는 모양일세. 스빌로는 재주껏 그곳에 왕래할 수 있는 허가를 얻어, 아밀스턴 양을 메뉴에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레스토 랑을 꾸려나가고 있는 셈이지. 그러나 특별요리가 나오는 일은 좀처럼 드물기 때 문에 그날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네. " " 하지만 ― " 하고 코스틴이 말했다. " 그날을 미리 알려주어도 좋을 것 같은 데요 " "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네 " 하고 래플러는 설명했다. " 이 고장엔 많이 먹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어. 그러므로 만일 그런 이야기가 잘못되어 그런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들은 호기 심에서 그 요리를 맛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곳 테이블에 않아 있는 우리 들이 쫓겨나게 되지 않겠나. " "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 " 하고 코스틴은 이의를 주장했다. " 지금 이곳 에 와 있는 이 사람들이 이 고장에서 ― 이것을 결국 이 넓은 세계에서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만 ― 스빌로즈라는 가게를 알고 있는 손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 을 텐데요? " " 맞는 말도 아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닐세. 단골 손님 가운데 한두 사람은 뭔 가 까닭이 있어 얼굴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 " 설마! " "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네 " 하고 래플러는 얼마쯤 협박하듯이 말했다. " 손님 들이 각각 비밀을 굳게 지키는 것을 의무로 알고 있어. 오늘 밤 나를 따라온 새 로운 친구로서 자네도 자연히 그 의무를 지게 된 셈이지. 믿어도 되겠나? " 코스틴은 얼굴을 붉혔다. " 어쨌든 나는 당신의 고용인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 다만 나는 이런 훌륭 한 요리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게 해주지 않는지 그게 의문스럽습니다. " " 그런 자선사업 같은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나? " 하고 래플러는 엄 격하게 되물었다. " 바보 같은 녀석들이 잔뜩 몰려와서 구운 오리고기를 초콜렛 소스에 먹게 하다니, 듣지도 못한 일이니 어떠니 하며 매일 밤 투덜댈 걸세. 그 런 일을 상상해 보게, 참을 수 있겠나, 자네는? " " 아니오 " 하고 코스틴은 그 말을 인정했다. " 옳은 말씀이라고 인정할 수박에 없군요. " 래플러는 피곤한 듯 의자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분명치 않은 동작으로 손은 눌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 나는 고독한 사람일세. 그것도 결코 스스로 좋아해서가 아니지. 자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니, 틀림없이 이상하게 여겨질 터이지만 나는 진심 으로 이 레스토랑을, 모든 것이 차갑기만 한 이 세상에서 이 따뜻한 은신처를 친 구처럼 가족처럼 느끼고 있다네. " 코스틴은 이 순간까지 폭군적인 고용주, 거만한 주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던 상대방에 대해 저항하기 힘든 동정심이 기분좋게 뿌듯해진 뱃속에서 움직이기 시 작하는 것을 느꼈다. 2주일째 끝무렵쯤에는 코스틴이 래플러를 따라 스빌로즈의 저녁식탁에 참석하는 일이 이미 정해진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매일 5시가 조금 지나면 코스틴 은 복도로 나가 자신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작은 간막이 방을 잠근다. 코트를 멋 지게 왼쪽 팔에 걸쳐든 다음 도어의 유리에 비춰보아 홈버그(테가 좁은 중절모 자) 모자가 적당한 각도로 머리에 얹혀 있는지 확인한다. 예전 같으면 그리고 나 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을 터이지만 얼마 전 래플러의 말을 들었으니만큼 잠시 금연의 효과를 시험해 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복도를 걷는다. 그러면 래플 러가 어깨 너머로 다가와서 헛기침을 하는 것이었다. " 저어, 코스틴, 오늘 밤에 무슨 특별한 계획이 없겠지? " " 네 " 하고 코스틴은 대답한 다음 " 정처없는 떠돌이 입니다. " 라든가, " 무 슨일이든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라든가, 아뭏든 그 비슷한 농담을 한다. 왜 이따금 거절하거나 좀더 임기응변으로 빠져나오지 못할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지만, 눈에 띄게 뜨거운 래플러의 눈빛과 팔을 잡은 그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탁 터놓은 친근감이 그로 하여금 아무 말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요즈음 세상에 고용주와 우정으로 맺어지 는 일만큼 확실한 보신의 발판이 어디 있겠느냐고 코스틴은 생각했다. 안쪽 사무 실 상황을 직접 아는 여비서의 말에 의하면 래플러가 코스틴에 대해 칭찬이 대단 하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도 벌써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뭏 든 좋은 징조이다. 게다가 요리까지! 비할 바 없는 스빌로즈의 요리! 말라서 뼈가 앙상했던 코스틴 은 생전 처음 몸무게가 늘어난 것을 알고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겨우 2주 일밖에 안되었는데, 부드러워진 뼈가 탄력있는 살 밑으로 묻혀버리는 등 아무래 도 전체적으로 비만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어느 날 밤 욕실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잘 살펴보고 코스틴은 어쩌면 지금 투실투실하게 살찐 래플러도 스빌 로즈의 단골이 되기 적에는 마르고 뼈가 앙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래플러의 권유를 받아들임으로써 잃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얻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자랑하던 아밀스턴 양고기의 맛을 보고, 아직 모습을 보이 지 않은 스빌로를 한 번 본 다음 한두 번 거절하는 편이 오히려 관심을 그는 데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거절하지 않은 편이 좋을 것이다. 그날 밤, 즉 그가 처음으로 스빌로즈에 발을 들여놓았던 날부터 세어 꼭 두 주 일이 되던 날 밤에 드디어 코스틴의 소원 두 가지가 다 이루어졌다. 그는 아밀스 턴 양고기를 맛보고 스빌로도 보았다. 그런데 두 가지 다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 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곧 급사가 허리를 굽혀 " 오늘 밤에는 특별요리입니다 " 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코스틴은 이 갑작스러운 일에 대한 기대로 가슴 이 두근거리는 것을 의식했다. 눈 앞 테이블 위에 놓인 래플러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건 제정신을 가진 사 람들이라고 말살 수 없겠군) 하고 코스틴은 정 신이 번쩍 들었다. (사려도 있고 교양도 있는 당당한 두 사나이가 하나같이 언제 고깃조각을 던져줄까 애태우고 잇는 두 마리의 고양이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니!) " 당연하지!" 래플러의 목소리에 놀라 코스틴은 자리에서 벌떡 뛰어일어날 뻔했다. " 고금을 통한 요리의 걸작 중에서도 걸작! 드디어 그것을 눈 앞에 놓고 자네가 감격에 가슴을 설레는 것도 당연하고말고. " "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 하고 코스틴은 숨이 넘어갈 듯이 물었다. " 어떻게 아느냐고? 약 10년 전에 나도 자네와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세. 그 기억과 지금 자네가 취한 그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인간이 아직도 고기에 굶 주려 정신을 못 차리는 본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자네가 스스로 굴욕을 느꼈으리라는 것 간단히 알 수 있네. " " 그런데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말입니다만 " 하고 코스틴은 소곤소곤 말했다. "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까요? " " 자네 스스로 판단해 보게. " 코스틴은 가까운 데 있는 테이블을 살짝 둘러보았다. " 과연 ― "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대체적으로 얼굴 들이 환하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 래플러는 머리를 약간 한쪽으로 갸웃하며 말했다. " 저기 저 사람은 나중에 아마 실망할 걸세. " 코스틴은 그쪽을 보았다. 그곳 테이블에 백발의 사나이가 혼자 앉 아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맞은쪽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코스틴은 눈살을 찌 푸렸다. " 아아, 그러고 보니 저 자리에는 언제나 작달막하고 머리가 벗어진 사나이가 앉아 있었지요? 2주일 동안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오늘 밤이 처음이군 요. " " 2주일이 아니라 요 10년 동안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지 " 하고 래플러는 가엽 다는 듯이 말했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이 있거나 괴로움이 있어나, 내 가 이곳에 차음 왔을 때부터 단 하루도 스빌로즈에서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 았던 날이 없었네. 그 사람이 처음으로 나오지 않은 날 밤에 아밀스턴 양고기의 특별요리가 나왔다고 말해 주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코스틴은 막연한 불안을 느끼면 다시 그 빈자리를 쳐다본 다음 중얼거렸다. " 전혀 없었던 일이라고요? " " 래플러 씨, 그리고 친구분, 잘 오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정말정말 잘 오셨습니다. 아니, 일어서지 마십시오, 자리를 만들라고 이르지요. " 갑자기 마치 기적처럼 자리가 하나 테이블 옆에 선 사람 밑에 나타났다. " 아밀스턴 양고기는 멋진 걸작이지요. 내가 직접 나서서 하루 종일 습기찬 부 엌에서 시원찮은 요리사가 잘못없이 제대로 할 수 잇도록 총지휘를 했답니다. 제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당신 친구는 잘 모르겠군요.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그는 마치 매끄러운 물의 흐름이 소용돌이 치듯 지껄여댔다. 그 목소리는 잔물결 을 일으키며 고양이의 목에서처럼 가릉가릉 울렸으므로 코스틴은 깜짝 놀라 잠자 코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도 아닌 혼잣말 같 았다. 그러나 아주 폭이 넓고, 한 음절이 나올 대마다 젖혀지고 일그러지면 잘 움직이는 얇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납작한 코, 그 밑에 성긴 수염이 한 줄로 나 있었다. 간격이 넓은 동양적으로 보이는 두 눈이 가스 등 빛을 받아 반 짝이고 있었었다. 주름 하나 없는 이마 윗부분에서 뒤쪽으로 넘겨빗은 길고 매끄 러운 머리털은 빛깔을 잃어 희끄무레했다. 참으로 이상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도 언젠가 어디에서 본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 코스틴을 괴롭혔다. 금방 머리에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아무래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래플러의 목소리가 코스틴이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일을 중단시켰다. " 이쪽은 스빌로 씨, 이 사람은 코스틴 씨요. 서로 잘 친해보시오. " 코스틴은 일어나서 스빌로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했으면 돌처럼 딱 딱했다. " 잘 오셨습니다, 코스틴 씨.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하고 스빌로는 가릉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렇게 누추한데도 마음에 드셨습니까? 정성껏 대접하겠습니 다. " 래플러는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 코스틴은 벌써 2주일이나 계속해서 왔다오. 당신의 요리에 이제 슬슬 길들여 져가고 있을 거요. " 스빌로의 시선이 코스틴 쪽으로 돌아왔다. " 그렇게 칭찬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와주시는 것이 칭찬해 주시는 게 아니 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에 요리로 보답하는 거지요. 아밀스턴 양고기는 지금 까지 손님이 잡수신 어느 요리보다 고급입니다. 자신있습니다.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고, 요리하기도 힘들지요. 그러나 그만한 값어치는 있답니다. " 코스틴은 그 얼굴의 인상을 물리치려고 애쓰며 다른 말을 꺼냈다. " 나는 한 가지 모르는 점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애써서 힘 들게 구한 아밀스턴 양고기를 왜 가게에 오는 손님 누구에게나 내놓습니까? 가게 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늘 내놓으시는 메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 " 스빌로는 마음껏 미소지었으므로 얼굴이 거의 동그래졌다. " 그것은 심리학적인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훌륭한 것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누어주고 기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 면 이쪽도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지요. 아니면 ― "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 다만 좋은 장사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그럼, 그건 그렇다 하고 ― " 코스틴은 계속 끈질기게 물었다. " 당신이 손님 에게 지키게 하고 있는 습관에 대해 묻는 겁니다만, 왜 찾아오는 손님을 거절하 지 않고 받아들이는 레스토랑이 되거나 아니면 회원제의 클럽으로 만들지 않습니 까? " 상대방의 눈이 갑자기 날카로운 빛을 내며 코스틴의 눈 속을 들여다보더니 외면 했다. " 옳은 말씀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손님을 적게 받는 클럽이 누구다 다 받아주는 레스토랑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캐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가게에서 당신의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하는 일은 그 냥 먹는 일뿐입니다. 우리는 손님의 이름과 주소는 물론 왜 왔는지, 또는 왜 오 지 않게 되었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오시면 누구든지 언제나 반갑게 맞 이합니다. 그러나 오지 않게 되어도 전혀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대답이 되었을까요? " 코스틴은 상대방의 태도에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 나는 무엇을 캐물을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 " 스빌로는 혀 끝으로 얇은 입술을 핥았다. " 아니, 괜찮습니다. " 그는 열심히 부정했다. " 손님이 무엇을 캐물었다는 것 은 아닙니다. 다만 나로서는 그런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러니 무슨 말이라도 사양 말고 물어보십시오. " " 여보게, 그만 해두게, 코스틴. " 하고 래플러가 말했다. " 스빌로 씨를 겁낼 건 없어. 나는 이 사람과 벌써 여러 해 동안 사귀어왔지만, 말솜씨는 요리솜씨만 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나는 자네를 알기 전인 옛날부터 아낌 없이 이 가게의 모든 은전을 받아왔다네. 물론 중요한 요리장을 보여주는 일반은 다르지만 말일세. " " 그렇습니다. 그것은 ― " 스빌로는 미소지었다 . " 다음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 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밖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 래플러는 유쾌한 듯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 자아, 보시오! 어떻소, 스빌로 씨. 툭 털어놓으란 말이오! 누구든 당신이 쓰 고 있는 사람들 외에 성스러운 요리장에 들어가본 자가 있소? " 스빌로는 눈을 들고 열띤 어조로 말했다. " 당신의 머리 위에 있습니다. 나는 그 초상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주 친한 친 구로서 가장 오랫동안 가게를 아껴주시던 분. 그분이 우리 가게의 요리장에는 절 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 코스틴은 그 그림을 보고 새삼 생각나는 일이 있어 깜짝 놀랐다. " 저건 …… " 하고 그는 흥분해서 말했다. " 유명한 작가로 ― 당신도 아시지 요? ― 아주 신랄하고 아이러니컬한 단편소설을 썼으며, 갑자기 멕시코로 간 다 음 행방불명된 작가 말이오! " " 알고말고! " 하고 래플러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 몇 년 동안이나 그 초상을 바로 밑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다니! " 그는 스빌로 쪽을 보았 다. " 친한 친구라고 하셨지요? 행방불명되어 충격을 받으셨겠군요. " 스빌로의 얼굴이 갑자기 길다래진 것 같았다. " 네, 그야 뭐 ……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 사람의 사는 방법보다도 죽는 방법이 더 멋지다고 말입니다. 아주 가엾은 사람이었지요. 즐거 움이란 우리 가게의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뿐이라고 곧잘 말했었답니다. 불쌍하 지요? 그런데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우리 요리장을 보여준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보고 나면 다른 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보통 요리장이 랍니다. " " 확실히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 " 하고 코스틴이 말참견을 했다. " 그러나 증거가 하나도 없겠지요? " 스빌로는 초상을 자세히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 요리가 나오자 스빌로는 벌떡 일어나 손수 시중을 들었다. 불타는 듯한 눈초리 로 그는 쟁반 위에서 뚜껑이 덮여 있는 남비를 들더니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향기 를 느긋하게 맡았다. 그리고 단 한 방울의 소스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소 스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두 개의 접시에 나누어 담았다. 마치 아까부터 이 일을 하여 지친 것처럼 헐떡이면서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어서 드십시오. " 코스틴은 신경을 집중하여 한 입 깨물어 삼켰다. 그는 포크 끝을 멍한 눈초리로 바라 보며 숨을 죽여 말했다. " 아니, 이건! " " 맛있지요 ― 생각했던 것보다? " 코스틴은 황홀함을 참으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 처음으로 아밀스턴 양고기의 맛을 본 자는, 사람이 자기 영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 " 그럴지도 모르지요. " 스빌로는 냄새가 나는 뜨뜻한 숨결이 그의 콧구멍을 간 지럽힐 정도로 얼굴을 바싹 갖다댔다. " 정말 자신의 영혼을 슬쩍 들여다본 건지 도 모릅니다 ― " 코스틴은 상대방이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슬쩍 몸을 빼려고 했다. " 그럴지도 모르지요. " 하고 그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 아니, 이렇게 되고 보니 ― 엄니와 손톱을 드러낸 야만인과 다름없군요. 욕설이라고 오해하시 면 곤란합니다만, 아밀스턴 양이 이 세상에 있는 한 사람들은 교회를 짓고 하느 님을 모시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갖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빌로는 일어나서 코스틴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다. " 좋은 생각을 해내셨군요. 언젠가 전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잠시 어두 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이렇게 이 세상 일을, 현재의 일이나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 조금은 종교에 나타난 양의 의미에 마음이 쏠리는 수도 있겠지요. (그리스도교에서 <양>이란 희생물, 사람의 자식을 가리키 는 상징으로 되어 있다.) 꽤 의미심장 ― 하지요? 아니, 이거 ― " 그는 두 사람 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숙였다. " 오랫동안 모처럼의 식사를 방해했군 요. 하지만 아주 유쾌했읍니다. " 그는 코스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 그 럼, 꼭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 이가 빛나고 눈이 빛나는 스빌로는 케이블 사이를 누비며 가버렸다. 코스틴은 몸을 돌려 스빌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 내가 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요? " 래플러는 접시에서 눈을 들 어 그를 쳐다보았다. " 기분을 상하게 했느냐고? 천만의 말씀! 저 사람은 그런 말을 주고받는 일을 굉장히 즐기지. 아밀스턴 양고기를 내놓는 것은 그에게 있어 축제 의식 같은 거 라네. 그렇게 정색하도록 만들어놓으면 앞으로 누군가를 개종시키려고 마음먹은 목사보다도 끈질기게 이야기하러 올 걸세. " 코스틴은 아직도 눈 앞에 스빌로의 얼굴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끼며 접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굉장히. " 그 얼굴에서 받은 인상의 근원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다 가까스로 기억해 낸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그때 그는 갑자기 침대 속에서 큰 소리로 웃어 댔다. 아아, 그랬었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사람을 잡아먹고 싱 글싱글 웃는 그 체셔 고양이와 스빌로의 얼굴이 똑같았던 것이다! 다음날 저녁 차갑게 불어치는 바람을 안고 레스토랑을 향해 거리를 걸어가며 코 스틴은 그 사실을 래플러에게 털어놓았다. 래플러는 그런 시시한 생각은 하지 말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자네 말이 옳을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에게는 판정자의 자격이 없네. 아뭏 든 내가 그 이야기를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니까. 정말이지 아주 멀 곳 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가물가물 생각날 뿐이네. " 래플러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길 저쪽에서 째지는 듯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 와 두 사람은 발길을 멈추었다. " 누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군 " 하고 래플러가 말했다. " 저 걸 보게! " 스빌로즈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앞뒤로 비틀거리다가 한덩어리가 되어 몸부림치더니 보도 위로 쓰러졌다. 다시 또 외쳐대는 가련한 소리가 들리자 래플러는 뚱뚱한 몸집치 고는 재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갔고, 코스틴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거리에 길게 뻗어 있는 것은 검은 피부빛과 흰 머리카락으로 보아 스빌로즈의 급 사인 듯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죄려드는 두 개의 큰 사나이를 밀어내 기위해 힘없이 무릎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래플러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갔다. 그는 소리쳤다. " 그만두시오! 대체 왜들 이러시오! "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이 애원하듯 래플러 쪽으로 향했다. " 살려주십시오 …… 이 사람이 …… 취해서 …… " " 취했다고? ― " 상대방이 몹시 더러운 선원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코스틴은 알아보았다. 그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가 지독했다. " 남의 주머니에 손을 처넣으면서, 뭐 취했다고, 이 자식! " 사나이가 손가락에 한층 더 힘을 주어 목을 죄었으므로 스빌로즈의 급사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래플러는 선원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 놓아! 놓아주라니까! " 그러나 다음 순간 래플러는 떠밀려서 코스틴에게 부딪혔으며, 그 여세로 두 사 람이 한꺼번에 뒤로 비틀거렸다. 선원이 자기 몸에 손은 대자 래 플러는 곧 맹렬하게 반격했다. 아무 말도 않고 그는 선원에게 덤벼들어 무방비상태인 얼굴이며 옆구리를 마구 때리고 걷어찼다. 상대방은 조금 어이없어하는 것 같더니 후다닥 일어나 래플러 쪽으로 마구 덤벼들 었다. 한순간 두 사람은 서로 힘껏 휘어잡고 있었는데, 거기에 코스틴이 합세하 여 세 사람이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윽고 래플러와 코스틴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두 사람 앞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를 내려다보았다. " 너무 취해서 정신을 잃었나? ― " 하고 코스틴이 말했다. " 쓰러질 때 머리를 찧었나? 어쨌든 경찰을 불러야겠군. " " 아니, 안됩니다! " 급사는 불안정한 다리를 짚고 일어서더니 비틀거렸다. " 경찰이라니요, 그러면 스빌로 씨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제발 부탁이니 …… " 그라 코스틴을 붙잡고 애원하였으므로 코스틴은 래플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아아, 부르지 않겠네 " 하고 래플러는 말했다. " 경찰의 손이 닿지 않을 걸 세. 내버려둬도 머지않아 이 돼지 같은 살인자 녀석을 잡아갈 테지.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 " 아주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해 있었지요.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걸어오기 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받쳐주며 피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느닷없이 도둑놈이라 고 소리치면서 덤벼들었습니다. " " 그럴 줄 알았네. " 래플러는 부드럽게 급사의 등을 밀며 걷기 시작했다. " 자 아, 어서 가서 일을 하게. " 검은 사나이는 너무 감격해서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 목숨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엇이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 래플러는 스빌로즈의 문으로 통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이런 일쯤은. 가서 스빌로 씨가 야단치거든 우리에게 로 보내게, 변명해 줄 테니까. " " 목숨을 바쳐서라도 ― " 이것이 안쪽 문을 닫을 대 뒤에서 두 사람의 귀에 들린 마지막 말이었다. "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코스틴! " 하고 2,3분 뒤 테이블을 향해 의자를 끌어 당기며 래플러는 말했다. " 소위 문명인이라는 사람이. 알콜 냄새를 물씬 풍기 며,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을 정도로 두들겨패다니 …… " 코스틴은 어떻게든 그럴 듯한 말을 하여 이 사건으로 흥분한 기분을 달래려고 했 다. " 알콜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노이로제에 걸려 있지요. 그 선원이 그렇게 된것도 틀림없이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 " 이유? 물론 있겠지. 인간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온 잔인성! " 래플러는 크게 무엇을 끌어안는 듯한 몸짓을 해보였다. "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앉아서 정신없이 고기를 먹어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만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닐세.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본능이 해 방시켜 달라고 외치기 때문이지. 생각 좀 해보게, 코스틴. 내가 언젠가 스빌로 씨는 문명의 정점에 이른 사나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나? 이젠 그 뜻을 알겠 지. 멋진 사나이야, 그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잘 알고 있네. 흔히 볼 수 있 는 하찮은 사람들과는 달라. 그는 우리 인간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야성을 죄없 는 제삼자에게 해를 미치지 않고 만족시켜 주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는 걸세. " " 아밀스턴 양고기를 처음으로 먹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 " 하고-코스틴은 말했다. "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그럭 저럭 그 맛을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벌써 한 달이 넘었으니까요. " 급사가 물을 따르며 망설이듯 말했다. " 죄송합니다, 오늘 밤에는 특별요리가 없습니다. " " 들었나? " 하고 래플러는 신음하듯 말했다. " 이거 아무래도 이번의 특별요리 는 내 입에 들어올 것 같지 않군. " " 설마,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그건! " 코스틴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며 말했 다. " 에이, 가버릴까 …… " 래플러는 단숨에 물을 반쯤 마셨다. 급사가 곧 물잔을 가득 채웠다. " 나는 회사의 남미 출장소에 예고없이 시찰여행을 떠나게 되었네. 1월이나 2원 에 말이야. 일정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 " 반드시 가봐야 할 정도로 출장소의 성적이 떨어졌습니까? " " 아니 실적이 떨어졌다기보다 좀더 성적을 올리고 싶어서 그러네. " 래플러는 갑자기 싱긋 웃었다. " 그리고 스빌로 씨에게 지불할 많은 식사 대금을 잊어서는 안되겠지. " " 사무실에선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었는데요. " " 자네가 알고 있을 정도라면 갑작스러운 출장이라고 할 수 없겠지. 나 말고는 ― 아니, 나하고 자네 말고는 아무도 모를 걸세. 출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가고 싶은 거야.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알 아보기 위해서 말일세. 이쪽 사무실에는 어디 휴양하러 가는 것으로 해두겠네. 피로를 풀기 위해 어딘가 요양소에라도 간 줄 알게 해두는거야. 아뭏든 주요인물 들이 든든하니까 이쪽 일은 걱정없네. 이를테면 자네 같은 실력가가 있으니까. " " 내가요? "하고 코스틴은 놀라서 말했다. " 내일 출근하면 승진 사령을 받을 걸세. 유감스럽게도 내 손으로 줄 수는 없지 만. 알겠나? 그것은 이번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네. 자네의 일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크게 감사하고 있네. " 코스틴은 칭찬을 받고 얼굴을 붉혔다. " 내일 사무실에 나오시지 않는다면 ― 오늘 밤에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 래플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좌석 예약으로 좀 복잡한데, 그것이 잘되면 ― 뭐랄까 ― 이 식사가 한 동안 헤어지는 송별회 자리가 되겠군. " " 뭐라고 할까요 …… " 하고 코스틴은 천천히 말했다. " 나는 진심으로 그 자 리의 예약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함께 식사한다 는 것은 나에게 있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뜻을 지니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급사의 목소리가 말을 중단시켰다. " 요리를 가져올까요. 손님? "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라 두 사람 다 그쪽을 쳐다보았다. " 부탁하네 " 하고 래플러가 엄숙하게 말했다. "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나? 난 몰랐네. " " 내가 염려하는 것은 ― " 하고 그는 급사가 저쪽을 보자 코스틴을 향해 말했 다. " 이 번의 아밀스턴 양고기를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인데, 솔직히 말해 오 늘 밤에는 그 요리를 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벌써 1주일이나 출발을 미뤄 왔으므로 더 이상은 도저히 연기할 수가 없네. 자네가 여기서 그 요리를 먹게 되 거든 내가 없는 것을 딱하게 생각해 주게. " 코스틴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는 가져온 요리 앞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 네, 그야 물론이지요. " 그가 접시 안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갈 때 급사가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그것 은 언제나 그 테이블을 담당한 급사가 아니라 아까 격투를 벌인 피해자였다. " 여어! " 하고 코스틴이 말했다. " 어떤가, 기분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나? " 급사는 코스틴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다지 서두르지도 않았으며, 아주 긴장된 것 같은 태도로 그는 래플러 쪽을 보고 있었다. " 손님 " 하고 그는 속삭였다. " 당신은 내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손님 덕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은혜를 갚아드리겠습니다! " 래플러는 깜짝 놀라며 세게 머리를 저었다. " 아니, 은혜를 갚겠다니, 그럴 필요 없네, 알겠나 ? 그처럼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자아, 일이나 열심히 하고, 그런 말을 이제 그 만하게. " 급사는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 손님이 받드는 하느님 앞에 맹세하고 말씀드립니다. 비록 손님이 원하시지 않 더라도 나는 손님을 살려드려야 합니다! 요리장에 오시면 안됩니다. 이것은 손님 이 살려주신 내 목숨과 손님의 목숨을 바꾸는 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오늘 밤 이든,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동안의 어느 날 밤이든 스빌로즈의 요리장에는 결코 들어가지 마십시오! " 래플러는 너무 기가 먹혀 의자 속에서 몸을 뒤로 젖혔다. " 요리장에 가지 말라고? 왜 가면 안되지? 물론 스빌로가 허락해 줘야 되겠지 만, 대체 그게 어떻다는 건가? " 억센 손 하나가 코스틴의 등에 놓이고 또 하나가 급사의 팔을 잡았다. 급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내리깐 채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손님? " 하고 가릉거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 마침 잘 왔군요. 이 가게의 일이라면 나는 무엇이든지 다 대답해 드릴 수 있습 니다. " 래플러는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아아, 스빌로 씨, 마침 잘 와주었소. 이사람이 나보고 절대로 요리장에 가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요? " 여유있게 웃는 흰 이가 보였다. " 그거야 뭐 …… 이 사람은 진심으로 친절한 마음에서 한 말입니다 . 성질이 과 격한 요리사 우두머리가 소중한 요리장으로 내가 누구를 안내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답니다. 말할 수 없이 화가 났다는군요!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빌로즈는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지요? 나는 잘 달래어, 훌륭한 신분의 손님 앞에서 솜씨를 발휘해 보이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가를 납득시켜서 이제 완전히 기분이 풀렸습니다. " 스빌로는 급사의 팔을 놓았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자네 담당은 여기가 아니야. 다시는 틀리지 않도록 하게, 알겠나? " 급사는 눈을 제대로 쳐들지도 못하고 슬금슬금 가버렸다. 스빌로는 테이블 앞으 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더니 손으로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 깜짝상자에서 벌써 고양이가 튀어나갔군요. 오늘 밤에 요리장을 보여드리겠다 는 말을 불쑥 해서 깜짝 놀라게 해드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깜짝 놀랄 일은 이제 끝났고, 남은 것은 안내하는 일뿐입니다. " 래플러는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신나는 듯 물었다. " 진심이오" 우리에게 정말 오늘 밤 당신 가게의 요리 만드는 현장을 보여주겠 소? " 스빌로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테이블보에 선을 그어서 그 위에 흐릿한 직선의 손 톱자국을 남겼다. " 아아, 그것은 좀 어려운 문제인데요. " 그는 테이블보에 난 선을 자세히 들여 다보았다. " 래플러 씨, 당신은 10년의 오랜 단골입니다. 그러나 여기 계신 이 친구분은 ― " 코스틴 손을 들어 다음말을 막았다. " 네, 오늘 밤에는 당연히 래플러 씨만을 초대하는 것이므로 내가 있으면 거치 적거린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실은 오늘 밤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었지요. 따지고 보면 벌써 나갔어야 하는 건데 …… 걱정할 것 없습니다. 조금도. " " 아니 " 하고 래플러가 말했다. " 그건 안되네. 그렇다면 불공평해. 지금까지 죽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왔는데! 코스틴, 그렇게 기다리던 소원을 모처럼 풀어준 다 해도 혼자서야 기쁨이 반으로 줄어들겠지. 이번만은 아마 스빌로 씨도 특별히 허락해 줄 걸세. " 두 사람은 동시에 스빌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빌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어 깨를 으쓱했다. 코스틴은 벌떡 일어났다. " 아닙니다, 여기에 더 이상 오래 잇다가는 모처럼의 당신 즐거움을 망쳐버리게 되겠군요. 더우기 ― " 하고 그는 농담삼아 말했다. " 화를 잘 내는 요리사 우두 머리가 당신에게 식칼을 들이댈 장면을 상상하니 나는 아무래도 그 자리에 없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그는 래플러가 미안한 듯이 잠자코 있자 기운을 북돋아 주듯이 말을 계속했다. " 그리고 당신은 스빌로 씨에 게 맡기겠습니다. 틀림없이 멋진 구경거리를 보여주시겠지요. " 그라 손을 내밀자 래플러는 아플 정도로 꼭 쥐었다. " 정말 미안하이, 코스틴. 다시 만날 때까지 저녁은 언제나 여기서 먹으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주게. 그렇게 오래 비우지는 않을 걸세. " 스빌로는 코스틴이 나가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 또 오십시오, 손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코스틴은 잠시 현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목도리를 두른 다음 홈버그 모자를 알 맞은 각도로 비스듬히 썼다. 그는 만족한 듯 거울에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미 요리장으로 통하는 문 앞에 가 서 있는 래플러와 스빌로에게 마지막으로 눈길을 던졌다. 스빌로의 한쪽 손은 어서 들어가라는 듯 문을 활짝 열고 있었고, 또 한쪽 손은 아주 부드럽게 래플러의 살집좋은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