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출장 상인의 모험 엘러리 퀸은 영국제 스코치 양복을 입고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대학의 저 호화스러운 교양 회관 8층의 복도를 엄숙하게 걷고 있었다. 멋부리기 좋아 하는 엘러리 퀸이었기 때문에 입고 있는 스코치 양복은 영국의 본드거리에 서 지어 온 것이었지만 사상의 내용은 아메리카에서 교육받았기에 그 귀는 젊은 대학생들의 그 독특한 사투리에 완전히 익숙해 있었다. 엘러리는 함성을 질러대는 것처럼 떠들석한 학생들의 무리를 스틱끝으로 헤 치다시피 하고 걸으면서, 이래도 뉴요크에 있어서의 최고학부인가 하고 엄 격하게 비판해 보았다. 엘러리는 한숨을 쉬고 있었으나 은빛으로 반짝이는 눈은 코안경렌즈 속에서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엘러리는 범죄 현장을 연구하려면 없어서는 안될 예리한 관찰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통로에 떼지어 있는 여학생들의 장미빛 볼이며 깜찍한 눈초리며 버들가지 같은 자태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 다. 엘러리의 모교는 모든 교육적 미덕의 전형으로 생각되고 있었으나, 만일 이와 같은 그윽한 분위기를 무뚝뚝한 남학생들만의 교실에다 뿌릴 수 있었 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우울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런 교수답지도 않은 회상을 뿌리치는 것처럼 엘러리 퀸은 소리 죽여 웃어 대고 있는 여학생들 틈을 점잖게 걸어나가 위엄있게 목적인 제 824호 교실 로 다가갔다. 엘러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키가 큰 아기사슴 빛깔의 눈을 한 젊은 여성 이 닫혀 있는 문에 기대어 분명히 엘러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러리는 몸에 꼭 맞는 스코치 양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 당황했다. 그녀는 <응용범죄학. Mr 퀸>라고 쓴 자그마한 표찰 앞에 기대서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더할 나위도 없이 학문의 신성(神聖)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기사슴 빛깔의 눈을 한 여성은 감탄과 외경(畏敬)의 표정 마저 띠고 엘러리를 반가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당혹했을 경우 다른 교수 여러분들은 대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엘 러리는 알고 싶었다. 모르는 척하고 무시해 버려야 할 것인가, 단호하게 꾸 짖어야 할 것인가? 그 결심도 엘러리의 손에서 빼앗기고 말았다. 아니, 말하자면 그 팔안에 놓 여졌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엘러리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에 그 산적같은 아가씨는 엘러리의 왼쪽 팔꿈치의 근육을 꽉 잡으며 구슬같은 목소리로 말 했다. [엘러리 퀸씨, 퀸 선생님 아니세요?] [나는-] [전 다 알고 있어요. 멋있는 눈이시군요. 야릇한 빛을 띠고 있고요. 아아, 정말이지 굉장히 스릴있을 것 같아요, 퀸 선생님] [뭐라고 했지요?] [제가 뭐라고 했냐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여자는 엘러리의 눈에는 좀 이상할 정도로 작아보이는 손 을, 꼬집혀서 아파하는 엘러리의 팔꿈치 근육으로부터 늦추었다. 그리고 엘 러리에 대한 평가를 조금 낮춘 것처럼 딱 잘라서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유명한 탐정이시라지요? 흐음, 조금 환멸인데요--실은 이키의 분부로 왔어요.] [이키라니요?] [그것도 모르세요? 세상에 -- 이키란 아이크소프 교수를 말하는 거예요. B.A(학사학위), M.A(석사학위), Ph.D(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밖에도 여 러 가지 있음니다만.] [이제 알겠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말했다. [아실만할 때도 됐지요] 하고 젊은 여자는 야무지게 말했다. [그리고 이키는 저의 아버지예요. 아셨어요?] 여자는 갑자기 매우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혹은 엘러리 쪽에서 여자의 까만 속눈썹이 깊은 다갈색 눈동자를 싹 가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착각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알았소, 아이크소프양] 아이크소프! [너무 알만큼 알았소. 나는 아이크소프교수님으로부터 --네, 정말이지-- 이 색다른 강의를 떠맡았지요. 그래서 아가씨는 교수님 따님이라 해서 날 속이 고 나의 그룹에 참가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건 잘못 된 논리인데요.] 엘러리는 이렇게 말하고 바닥에다 스틱을 깃대처럼 세워서 짚었다. [그렇게는 안되지요, 안되고 말고] 아이크소프양이 느닷없이 스틱을 구둣발로 차는 바람에 엘러리는 하마터면 쓰러질뻔 했다. [너무 교만하게 굴지 마세요, 퀸 선생님--이제 이걸로 만사해결이에요. 자 아, 강의실로 들어가지요. 퀸 선생님. 근사한 이름이군요] [하지만--] [이키는 모든 수속을 끝내 놓았어요. 고맙게도 말이죠] [아니, 난 절대 거절이요--] [회계에도 돈을 다 치러 놓은 걸요. 전 학사란 말이에요. 하긴 현재 석사과 정을 게을리하고 있지만요. 이래뵈도 근본은 영리하답니다. 네, 선생님--너 무 그렇게 교수님 티를 내지 마세요. 선생님은 지나칠 만큼 훌륭한 신사예 요. 그리고 소름이 쪽 끼칠 만큼 아름다운 은빛눈은 정말이지--] [아아. 좋소. ] 엘러리는 갑자기 집히는 데가 있어 만족스럽게 말했다. [따라오시오] 그곳은 길다란 책상과 둘레에 의자를 놓은 조그만 세미나 실이었다. 두 청 년이 일어섰다. 어딘지 모르게 경의를 품고 있다고 엘러리는 생각했다. 두 사람은 아이크소프양의 모습을 보고 좀 놀라는 것 같았으나 그다지 실망 한 눈치는 없었다. 아이크소프가 어떤 의미에서 유명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중 하나가 앞으로 달려나와 엘러리와 악수를 했다. [퀸 선생님, 전 버로우즈, 존 버로우즈입니다.. 저와 클레인을 수많은 탐정 지망자 가운데서 뽑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엘러리는 존이 밝은 눈에 이지적인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이 친구 는 좋은 젊은이라고 판단했다. [버로우즈씨, 그건 나보다 당신 교수님께 말씀드리시오. 당신의 성적에 감 사해야 할거요.--그리고 당신은 물론 월터 클레인 씨겠죠?] 두 번째 천년은 마치 의식(儀式)에 나온 것처 럼 딱딱한 태도로 엘러리와 예 의바르게 악수를 했다. 키가 크며 어깨가 넓으며 공부벌레같은 용모를 한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화학에서 학위를 땄습니다. 전 선생님과 아이크소프 교수 님께서 하시려는 일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소? 아이크소프양은-- 실은 뜻밖인데 --우리들의 조그만 그룹의 네 번째 멤버가 되었소] 엘러리는 말했다. [정말 뜻밖의 일이요. 그럼 우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시다] 클레인과 버로우즈는 각기 자기자리에 앉고, 젊은 여자도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엘러리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구석에 스틱을 세우자 테이블위에서 두손을 마 주잡고 흰 천장을 쳐다보았다. 슬슬 시작해야 한다. [아는 바와 같이 이건 아주 하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뭔지 모르게 확실한 근거가 있소. 아이크소프 교수님께서 아까 어떤 아이 디어를 가지고 나에게 오셨는데, 그것은 순수한 분석에 의해 범죄를 해결 한 나의 조그마한 업적을 들으셨기 때문이었소. 교수님께서는 젊은 대학생 들 사이에 추리에 의한 탐지능력을 발전시키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셨 던 거요. 나도 전에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 그다지 확 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말이요.] [요즘 저희 대학생들은 아주 두뇌적이예요] 아이크소프양이 말했다. [글세, 그간 어던지 잘 모르지만--] 엘러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건 규칙위반이 아니가 싶은데...아뭏든 난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어서 말이오. 여러분도 피워도 좋소. 한대 안 피우겠소, 아이크소프양?] 아이크소프양은 건성으로 한 개피 뽑아서 자기 성냥으로 불을 부치고는 엘 러리의 눈을 빤히 보고 있었다. [물론 실제적인 공부도 하는 거겠지요?] 화학자인 클레인이 물었다. [암, 하고 말고요] 엘러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이크소프양, 잘 주위를 해요--적어도 이 일을 하는 이상은 모든 일을 실수없이 해야 하니까---알겠소? 우리는 일상의 뉴스속에서 범죄를 연구하 는 거요--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특수한 탐정방법을 필요로 하는 범죄 말 이오. 우선 우리는 다같이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할 것---선입관은 빼기로 하 고. 알겠소?--- 내 지시대로 움직여서 그 결과를 보기로 합시다] 버로우즈의 열성적인 얼굴이 홍조를 띠었다. [이름은요?---우선 처음에 알아두어야 할 원리를 안 가르쳐 주십니까? 먼 저 강의를--] [원리고 뭐고 다 소용없소. 이거 실례했소, 아이크소프양....헤엄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오. 버로우즈씨---이 터무니없는 강의에 63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있었는데, 나는 두서너 명밖에 뽑고 싶지 않았소. 수가 많아지면 내가 의도하는 바가 실패되고 마니깐. 잘 알겠지만, 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뽑았소. 클레인씨. 당신은 어느 정도 분석적인 머리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과학적인 훈련에 의해 관찰안(觀 察眼)이 발달되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오. 버로우즈씨, 당신은 건전한 학문 적 배경--분명히 최상급의 것을 지니고 있소] 두 청년은 얼굴을 붉혔다. [아가씨는 말이오, 아이크소프양] 엘러리는 어색하게 뒤를 이었다. [당신은 불청객이니까 스스로 책임을 져 줘야 할 것 같소. 이키 교수님의 청이 있건 없건, 만일 어리석은 짓을 하는 날에는 당장 나가 줘야겠소] [하지만 선생님, 아이크소프 집안에는 결코 멍텅구리가 없어요] [나도 그렇기를 바라오--진심으로--그렇게 되질 않기를..... 그럼, 문제로 들 어가기로 할까요. 1시간 전에 내가 막 대학으로 오려고 하는데 경찰본부 전 화로 급보가 들어왔소. 아주 우연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무튼 일단은 감 사를 해야겠지. ........극장 지역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스파고라는 자가 희생자요. 경찰의 테이프에 실린 대충의 사실로 미루어 보건데, 아주 기괴 한 사건이오. 나는 아버지에게--퀸 총경 말인데, 다들 알고 있을 거요.-- 범행 현장을 발견한 때 그대로 놓아두도록 부탁해 놓았소. 자아, 지금 당장 현장으로 출동하기로 할까] [신나는데!] 버로우즈가 소리쳤다 [범죄와 맞붙는 거야. 이거 근사해 지는걸. 하지만 퀸 선생님, 현장에는 쉽게 못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아 무도 쉽게는 못 들어가지요. 여러분을 위해 나처럼 경찰의 특별 패스포 트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 놓았소. 아이크소프양에게는 나중에 받도 록 해주겠소. .....범행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 해야 하오--무슨 일이든 적어도 나한테 의논하고 나서 하도록. 그리고 절대 신문기자들이 넘겨짚는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살인이 낫군요] 아이크소프양이 갑자기 겁나는 것처럼 은근한 투로 말했다. [아아, 벌써 기분이 나빠졌나요? 하지만 이 사건은 여러분의 테스트 케이스가 될꺼요. 난 실지에 임해서 여러분들이 어떤 식으로 머리를 작용시킬 것인지 그걸 알고 싶소 ---아이크소프양, 모자나 뭐 안 가졌소?] [선생님, 뭐 말이예요?] [옷차림 말이요, 옷차림. 그 모양으론 갈 수 없으니까. 알겠소?] [네] 아이크소프양은 얼굴을 붉히곤 중얼거렸다. [살인현장에 스포츠한 옷차림으로 가서는 안될까요?] 레어리가 노려보자 아이크소프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거라면 아래층 제 로커속에 있어요, 퀸 선생님. 1분도 안걸릴꺼예요] 엘러리는 모자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5분 뒤에 교양회관 앞에서 만납시다. 5분 뒤에. 알겠소? 아이크소프양?] 스틱을 다시 집어든 엘러리는 세미나실에서 나오는 어느 교수나 다 그렇듯 이 점잔을 빼며 걸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도중에도, 큰 복도를 걷고 있을 때도, 바깥의 대리석 돌층계위에서도 엘러리는 깊숙히 숨을 쉬었다. 근사한 날이다. 엘러리는 교정(校庭)으로 눈길을 보냈다. 아아, 정말 근사한 날이다. ***** 아프리카 출장(出張) 상인(商人)의 모험 엘러리 퀸 2 펜윅 호텔은 타임즈 스퀘어로부터 몇백 야드밖에 안 되는 곳에 있었다. 호텔 휴게실은 경관이며 형사며 기자들, 그리고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숙박객인 듯한 사람들로 혼잡을 빚고 있었 다. 퀸 총경의 심복으로 덩치가 동산 만한 벨리 형사부장은 구경군들의 친입 을 막은 시멘트 멱처럼 입구에 우뚝 서 있었다. 벨리 부장 곁에는 걱정스 러운 얼굴을 한 키가 큰 사나이가 수수한 푸른빛 사아지 양복과 흰 모시 셔어츠에 검은 나비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호텔 지배인인 윌리엄즈 씨입니다.] 형사부장이 말했다. 윌리엄즈는 악수를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군요. 경찰에서 오신 분 입니까?] 엘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고 온 그 학생들은 근위병처럼 --분명 겁을 먹고 기가 죽은 근위병들처럼 엘러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보 호라도 원하는 것처럼 엘러리에게 바짝 다가붙어 있었다. 주위에는 뭔 지 모르게 불길한 것이 감돌고 있었다. 제복이며 셔어츠며 한결같이 회색 인 호텔 종업원들까지 난파되어 가고 있는 배의 급사처럼 어리둥절한 표 정을 띠고 있었다. [아무도 출입을 허용하고 있지 않소, 퀸씨] 벨리 부장은 버럭 소리를 지르다시피 말했다. [총경님의 명령입니다. 시체가 발견되고 나서는 퀸씨가 처음입니다. 이 세 사람은 누굽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소. 아버지는 현장에 계십니까?] [위층에 계십니다. 3층 317호실. 이제 좀 조용하겠군요.] 엘러리는 스틱을 수평으로 쳐들었다. [따라와요, 여러분. 그리고---] 엘러리는 상냥하게 덧붙였다. [너무 신경과민이 되지 않도록. 곧 이런 일에 익숙해지겠지만 말이오. 아 무튼 기운을 내요.] 세 사람은 일제히 꾸벅하고 머리를 숙였으나 눈에는 조금 생기가 없었다. 모두들 경찰에게 관리되고 있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적에 엘러리는 아이 크소프양이 직업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음을 눈치챘다. 정말이지 아이크소프양 답다. 하지만 이제 곧 울상을 지을 것이 틀림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쥐죽은듯이 조용한 복도를 걸어 열어젖혀진 문 쪽으로 갔다. 백발에, 아들과 똑같이 새 같은 날카로운 눈을 한 몸집 작은 리처드 퀸 총경이 문 앞에서 그들을 맞았다. 엘러리는 아이크소프양이 시체가 있는 방을 겁먹은 눈으로 힐끔 보더니 덜덜 떠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총경에게 젊은 세 사람을 소개한 다음 겁에 질려 침착성을 잃고 있는 세 제자 뒤 의 문을 닫고 침실을 둘러보았다. 죽은 사람은 연한 갈색 양탄자위에 두팔을 다이빙하는 모양으로 한껏 뻗 은 채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머리는 누군가가 질퍽한 심홍색 페인트 양 동이를 뒤집어엎은 것처럼 갈색머리가 빳빳하게 엉겨붙었고 양어깨 위에 검붉은 것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이크소프 양은 조그맣게 목을 울리고 있었는데, 분명한 것은 그 자리의 광경이 마 음에 들어서가 아니었다. 엘러리는 조그만 손을 꽉 움켜진 여학생의 작은 요정같은 얼굴이 시체가 배를 깔고 누워있는 바로 옆 침대의 시트보다도 더 창백해진 것을 병적인 만족감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클레인과 버로우 즈는 거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크소프양, 클레인씨, 버로우즈씨, 여러분은 처음 시체를 보겠지요?] 엘러리는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아버지, 시작할까요? 일단 대체적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퀸 총경은 한숨을 쉬었다. [이름을 올리버 스파고. 42살, 2년 전에 아내와 이혼. 큰 잡화 수출상(輸出 商)의 출장원. 남아프리카에 1년 머물렀다가 최근에 귀국. 해외식민지의 원주미들에게 악평이 자자함---구타, 폭행, 속임수 거래 등등으로. 이번 귀국도 시끄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령(英國領) 아프리카로부터 추 방당한 셈이야. 최근에 뉴욕 신문에도 났었지......사흘간 예정으로 펜윅호 텔에 투숙---방은 역시 3층이었어---그 뒤 시카고로 가기 위해 떠났었 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하고 퀸 총경은 마치 이자가 살해된 것은 천벌이라는 듯이 술술 이야기 했다. [오늘 아침 비행기로 뉴욕에 도착, 9시 30분에 또다시 투숙. 그 뒤 방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았어. 11시 30분에 보는 바대로 시체가 되어서 3층 담 당인 혼혈(混血) 하녀 애거스 로빈스에 의해 발견된 거지] [단서는요?] 노인은 어깨를 움찔했다. [있다고도 할 수 있고---없다고도 할 수 있어. 신원을 조사해 보았는데 보고에 의하면 상당한 수완가였던 모양이야. 교제도 꽤 넓어. 적은 없는 것 같고. 배가 입항 한 뒤부터 모든 행동은 백지야. 그건 이미 조사가 끝 났지만 바람둥이였더군. 마지막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내를 버리고 그 뒤로는 멋들어진 금발 여자와 줄기고 있었지. 두달쯤 그 여자와 화려 하게 놀고 돌아다니다가 그녀도 버렸더군. 요즘 그 여자와 함께 있지 않 았어. 여자쪽은 둘 다 손을 써 놓았다] [용위자로서 말입니까?] 퀸 경감은 시체가 된 여행자를 우울한 듯이 바라보았다. [글쎄....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오늘 아침에 한 방문객이 있었는데 ---지금 말한 그 금발 여자야. 이름은 제인 테릴--일정한 직업은 없는 모 양이더라. 아마 그 여자는 2주 전에 스파고가 도착했다는 것을 신문의 선 객왕래란(船客往來欄)을 보고 알았던 모양이야. 사방으로 찾아다니던 끝에 일주일전 스파고가 시카고에 가 있는 동안 아래층 프런트에 와서 이자에 대한 것을 문의 했는데 그때 여자는 이자가 오늘 아침에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다는구나---스파고가 프런트에 일러 놓고 갔던 거야. 그 여자는 오늘 아침 11시 5분에 여기 와서 방 번호를 알아 가지고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위층으로 안내되었지. 그런데 여자가 돌아간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 고 있어. 그러나 여자는 노크를 했으나 대답이 없어서 그냥 돌아간 뒤 호 텔에는 다시 오지 않았으며, 그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 어] 아이크소프양양은 무서움을 억누르고 시체 곁을 지나 침대에 걸터얹아 백 을 여고 분첩으로 콧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럼 부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퀸 총경님?] 하고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아기사슴 빛깔의 눈 속에서 무엇인가 불꽃을 튀기고 있는 듯 했 다. 아이크소프양은 분명히 뭔가 짚히는 것이 있으나, 그것을 억누르려고 일부로 새침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파고의 부인 말인가요?] 총경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하느님이나 아시겠지요. 내가 말한 것처럼 부인과 스파고는 이미 헤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부인은 스파고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것조차 몰랐다 고 주장하고 있소. 부인은 오늘 아침에 시내에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말 하더군요] 방은 침대, 옷장, 서랍장, 나이트 테이블, 책상과 의자뿐인 흔해빠진 자그 마한 호텔 방이었다. 가스록(장작개비를 본뜬 가스꼭지)을 속에다 넣은 모 조품 난로, 욕실로 통하는 열어 젖혀진 문--그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엘러리는 시체 곁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크레인과 버로우즈는 긴장된 얼 굴로 그 흉내를 냈다. 총경은 앉아서 재미없다는 듯이 히죽이 웃으며 지 켜보고 있었다. 엘러리의 손은 사후경직으로 인해 뻣뻣해진 시체를 조사 하고 있었다. [클레인씨, 버로우즈씨, 아이크소프양] 하고 엘러리는 날카롭게 물었다. [그럼 시작하는 게 좋겠소. 여러분의 관찰부터 들어보기로 할까요--아이 크소프양부터] 아이크소프양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시체곁으로 달려갔다. 엘러리는 목 덜미에 뜨거운 불규칙한 호흡을 느꼈다. [뭔가 모르겠소, 아이크소프양?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아이크소프양은 붉은 입술을 축이고 나서 목을 졸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실내복을 입고 있군요. 슬리퍼와 그리고--- 실크 속옷을 입 고...] [맞소. 그리고 검은 실크 양말과 양말대님 또한 실내복과 속옷에는 제품가 게의 상표가 붙어 있지요. <존슨 상점. 요하네스버그. 아프리카연방(聯邦) >이라고 말이요. 그 밖에는?] [왼 손에 손목 시계가 있습니다.--- ] 그녀는 몸을 구부리고 조심조심 손끝으로 시체의 팔을 건드렸다. [아아, 시계 유리가 깨져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10시 20분을 가르키고 있 군요.] [좋소.]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엘러리는 말했다. [아버지, 플라우티선생께서 검시를 하셨습니까?] [으음, 끝났어.] 총경은 담담함 목소리로 말했다. [스파고는 11시에서 11시 반 사이에 살해되었다고 검시관은 증언하고 있 어. 내 생각으로는 ---] 아이크소프양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엘러니는 말을 가로막았다. [허어, 아이크소프양, 짚이는 데가 있더라도 마음속에 담아 두어요. 단번에 결론으로 비약하지 말 것, 아이크소프양은 그거로 되었소. 자아, 클레인 씨?] 젊은 화학자는 이마를 찌푸리고 가죽 밴드가 달린 큼직한 고급시계를 가 리키며 말했다. [남자용 시계. 쓰러질 때의 진동으로 기계가 멎어 잇습니다. 가죽줄의 두 번째 구멍에 늘 쓰던 자국이 있고, 지금도 그 구멍에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국보다 더 뚜렷한 것이 세 번째 구멍에도 나 있습니다.] [훌륭하오. 클레인씨. 그리고?] [왼손에는 말라붙은 피가 더덕더덕 묻어 있군요. 왼쪽 손바닥에도 묻어 있 으나, 피투성이 손으로 뭔가를 쥐었기 때문에 피가 닦였던 모양으로 피가 덜 묻어 있습니다. 방 어딘가 피묻은 송으로 쥐어서 뻘겋게 물든 것이 있 을 겁니다........] [클레인씨, 나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오. 아버지, 혹시 피묻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총경은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자네 제법 훌륭한데. 그러나, 엘러리 전혀 아무 것도 없었다. 양탄자 위에 도 피는 묻지 않았어. 뭔가 가해자가 가지고 간 것이 분명해] [총경님] 엘러리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말했다. [총경님께서 조사하신 묻고 잇는 게 아닙니다. 버로우즈씨, 뭐 덧붙일 것 이 있소?] [머리의 상처는 무슨 무거운 것으로 여러번 얻어맞았음을 나타내고 있군 요. 양탄자가 쭈글쭈글 한 것은 분명 결투를 한 흔적이겠지요, 그리고 얼 굴은---] [아아, 얼굴에 대해서도 느끼고 있었구면. 얼굴에 대해서는 어떻소?] [갓 면도를 했습니다. 털컴 파우더가 아직도 볼과 목에 묻어 있군요. 욕실 을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퀸 선생님?] 아이크소프양이 뿌르퉁해서 말했다. [저도 알고는 있었지만, 기횔 주셔야지요. .....톨컴 파우더가 아주 골고루 발라져 있군요. 뭉치거나 얼룩지고 않고 말이예요] 엘러리는 벌떡 일어낫다. [당신한테는 셜록 홈즈의 소질이 꽤 있구먼. 그런데 흉기는요, 아버지?] [조잡하게 만든 무거운 돌망치---아프리카의 골동품이나 뭐 그런 걸 거라 고 전문가는 말하고 잇는데, 스파고가 가방속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이겠 지---트렁크는 시카고에서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으니깐] 엘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위에는 뚜껑이 열린 돼지가죽 여행가방이 있었다. 그 옆에는 야회용 옷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턱시도우 웃옷과 바지, 조끼, 거북 등껍질 같은 무늬의 예장용(禮裝用) 셔츠, 커프스 단추, 빳빳한 칼라, 꺼먼 바지 멜빵, 하얀 비단 손수건. 침대밑에는 스포츠용과 야회용의 까만 구두가 두 켤레 있었다. 엘러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침대 가까운 의자 밑에 는 때묻은 셔츠 한 벌과 때묻은 양말 한 켤레, 그리고 때묻은 아래 위 속 옷이 놓여 있었다. 그 어느 것에도 피자국은 묻어 있지 않았다. 엘러리는 한참 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망치는 증거품으로 가지고 갔어. 피와 머리카락이 잔뜩 묻어 있더군] 총경은 말을 이었다. [지문은 아무데도 없었지. 자네들 무얼 만져도 상관없네. ---사진은 다 찌 었고, 지문조사도 다 끝났으니까] 엘러리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로우즈와 클레인이 시체위에 몸을 구부리고 시계에 열중되었음을 깨달았다. 엘러리는 주위를 왔다갔다 하였는데, 아이크소프양이 그 뒤를 따라서 돌아다녔다. 버러우즈의 마른 얼굴이 엘러리를 보고 빛났다. [여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버로우즈는 신중하게 스파고의 손목에서 시계를 벗기어 뒤쪽 뚜껑을 열었 다. 엘러리가 보니깐 케이스 안쪽에 보풀이 인 동그란 흰 종이가 붙어 있 었다. 보아하니 떼려다가 떼지 못한 것 같았다. 버로우즈는 신이 났다. [뭔가 짚이는 데가 잇습니다] 하고 버로우즈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시계의 얼굴을 찬찬히 조사하고 있었다. [그럼 크레인 씨는?] 엘러리는 흥미로운 듯이 물었다. 청년 화학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확대경을 꺼내어 시계의 기계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말씀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클레인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선생님, 이 시계를 제 연구실로 가져갔으면 하는데 어떨까요?] 엘러리가 총경 쪽을 보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좋소, 클레인씨. 그러나 틀림없이 돌려주어야 하오. ....아버지, 물론 이 방 은 물론 빈틈없이 조사를 하셨겠지요? 난로나 그 밖에 모두.] 총경은 갑자기 껄걸 웃었다. [나는 어제 그 점에 애해 말해 올까 기다리고 있었어. 저 난로 속에는 참 으로 흥미진진한 것이 잇거든] 총경은 얼굴을 숙이고 조금 언짢은 듯 코담배갑을 꺼내어 조금 집어서 코 끝으로 가져갔다. [거기에 대한 해석은 지금으로선 말할 수 없어] 엘러리는 마른 두 어깨를 펴고 곁눈질로 난로를 들여다보았다. 세사람이 그 둘레에 모였다. 엘러리는 또 난로를 들여다보며 무릎을 꿇었다. 가스 록 뒤의 작은 재받이 속에 잿덩어리가 있었다. 정말 기묘하여, 분명히 나 무나 석탄이나 종이 재와는 다른 재였다. 엘러리는 잿덩리속을 휘젓고 나 서 숨을 들여 마셨다. 한참 뒤 엘러리는 재속에서 열 개의 기묘한 것을 찾아냈다. 여덟 개의 납작한 조개 단추와 두 개의 금속제품인데, 그 중 한 개는 삼각형의 안구(眼球) 같은 것이고, 또 한 개는 갈고리와 같은 것이었 다. 둘 다 조그맣고 값싼 합금(合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덟 개의 단 추 가운데 두 개는 깐 것들보다 조금 더 컸다. 단추는 찌그러져 있고, 가 운데에 모두 오목한 네 개의 실 구멍이 있었다. 열 개 다 불에 타 있었다. [그래, 너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총경이 물었다. 엘러리는 단추 를 만지작 거리며서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총경에게 직접 대답하지는 않고, 그 대신 세 학생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봐 주시오............아버지, 이 난로를 맨 마지막으로 청소한 게 언제지요?] [오늘 아침 일찍 혼혈 하녀 애거더 로빈즈가 했어. 먼젓번 손님이 7시에 이 방을 비웠기 때문에 스파고가 닿기 전에 청소한 거야. 난로의 재도 오 늘 아침에 치웠다고 그 하녀가 말하더구나.] 엘러리는 단추와 쇠로 만든 것을 나이트 테이블 위에다 놓고 침대 쪽으로 갔다. 그리고 열려 있는 가방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세 개의 길다란 넥타이, 두 장의 깔끔한 셔어츠, 양말, 속옷, 손수 건등이 있었다. 그것들에는 모두 같은 상표가 붙어 있었다. ---아프리카 연방, 요하네스버그. 존슨 상점. 엘러리는 만족한 듯이 다음에는 옷장 쪽 으로 걸어갔다. 그 속에는 스코치로 된 여행복과 갈색 톱코우트와 펠트 모자가 들어 있었다. 엘러리는 만족스럽게 장롱 문을 닫았다. [빠짐없이 잘 살폈소?] 하고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클레인과 버로우즈는 어쩐지 의아한 듯이 고 개를 끄덕였다. 아이크소프양은 거의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얼굴의 황홀 한 듯한 표정으로 보아 그녀는 우주의 음악에 넋을 잃고 있지도 않았다. [아이크소프양] 아이크소프양은 흠칠한 듯이 미소지었다. [네, 퀸 선생님] 그녀는 공손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큼직한 다갈색 눈이 눈망울을 굴 리기 시작했다. 엘러리는 중얼대며 성큼성큼 서랍장 쪽으로 가 보았다. 그 위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서랍을 빼 보았으나 모두 비어있었다. 엘러리가 책상 쪽 으로 가자 총경이 말했다. [빈 책상이야, 엘. 스파고는 짐을 챙길 겨를이 없었어. 욕실만 빼고는 다 조사를 끝낸 셈이야] 그 신호를 은근히 기다리고 이었던 것처럼 아이크소프양은 욕실로 달려갔 다. 욕실 내부를 탐색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던 모양이다. 클레인과 버로우 즈도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엘러리는 학생들이 먼저 욕실을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아이크소프양의 손은 세면대 가장자리로 날아갔다. 돼지 가죽으로 된 세면도구 가방이 열린채로 대리석 위에 놓여있고, 씻지 않은 면도칼, 아직도 젖어 잇는 솔, 크리임이 든 튜브, 털컴 파우더 통, 치약튜 브 등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솔을 넣는 셀룰로이드 통이 뚜껑 이 열린 채 세면 도구 가방 위에 놓여 있었다. [여긴 이상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월터, 자넨 어떻게 생각해?] 버로우즈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클레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죽기 직전에 면도를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이크소프양은 긴장되고 조금 우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들은 모두 박쥐처럼 눈뜬 장님이라니깐.....난 이미 볼걸 다 봤어요.] 침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던 총경과 함께 엘러리가 들어왔다. 엘 러리 혼자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엘러리가 옷상자 뚜껑을 열어 보았으나 속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솔을 넣는 동그란 것이 솔 안쪽에 채워져 있었 다. 엘러리는 또 빙그레 웃고는 방밖에 있는 아이크소프양의 우쭐해 하는 듯한 등에 웃음 띤 눈짓을 던지고는 뚜껑과 솔 통을 본디대로 해 놓고 침 실로 돌아갔다. 엘러리는 호텔 지배인인 윌리엄즈가 경관 옆에서 흥분하 여 총경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이 이상은 무리입니다. 총경님] 하고 윌리엄즈는 말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어요. 저녁 교대 시간도 되었으니 저도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밤새도록 여기 붙들어 둘 생각이십니까? 요컨대---] 노인은 [흐음]하며 뭔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들쪽을 보았다. 엘 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제해서 안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 이제 알만한 것은 다 알았습니다....그렇소, 여러분] 세사람의 열심스러운 눈동자가 엘러리에게 모였다. 마치 끈으로 맨 세 마리의 강아지 같았다. [충부히 조사는 끝냈겠지요?] 세 사람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밖에 더 알고 싶은 것은 없소?] 버로우즈가 빠른 말씨로 [전 주소를 알았으면 싶은데요] 하고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그 생각을 했었는데, 존은 정말 심술꾸러기야] 아이크소프양이 말했다. 클레인은 스파고의 시계를 꼭 쥐고 중얼거렸다. [저도 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 호텔에서 알고 있겠 지요] 엘러리는 웃다가 말고 어깨를 움찔하며 말했다. [아래층에 있는 벨리 형사부장--문앞에서 만난 그 카로사스(거인)를 만나 시오. 여러분이 알고 싶은 것은 뭐든지 그 사람이 가르쳐 줄 테니까. 그럼 이제부터 할 일을 지시하겠소. 당신들 세 사람이 명확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오. 여러분에게 시간의 여유를 줄 테니, 그 동안 자가 이론을 정리해서 뭐 생각나는 게 있거든 거기 대한 조사를 하는 거요] 엘러리는 시계를 보았다. [6시 30분에 서(西) 87번지 거리의 내 아파트에서 만납시다. 거기서 여러 분의 이론을 하나하나 검토하지요. 그럼 잘 들 해보시오] 엘러리는 빙그레 웃으면서 해산을 선고했다. 세 사람은 앞을 다투어 문으 로 향했다. 아이크소프양은 터어반 모자를 조금 삐뚜름하게 쓰고는 두팔 로 앞을 헤치는 듯하며 나갔다. [그러면....] 하고 세 사람이 복도로 사라졌을 때 엘러리는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어투 로 말했다. [이리 잠깐 오세요, 아버지.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 아프리카 출장 상인의 모험 3 그날 저녁 6시 30분, 엘러리는 가슴에 담은 보고를 하고 싶어서 조바심 치고 있는 세 젊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사회석(司會席)에 앉았다.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저녁 식사에는 상보가 덮혀 있었다. 아이크소프양은 호텔을 나와서 87번 거리에 있는 퀸의 아파트에 오기 전 에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레이스처럼 부드러운 드레스가 그 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대로 갈색 눈동자와 장미빛 볼에 아주 잘 조화 를 이루고 있었다. 세 젊은이는 열심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럼 여러분,] 하고 엘러리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발표회를 시작할까요] 세사람은 얼굴을 빛내며 똑바로 고쳐 앉아서 입술을 축였다. [여러분은 각각 최초의 범죄 조사 결과를 결론짓기 위해 약 2시간의 시간 을 얻었소. 비록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지금까지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것이 없으니깐 그것을 내 공으로 삼을 수 없소. 그러나 이 조촐한 간담회가 끝 날 무렵에는 내가 어떤 자료로 일을 추진해 왔는지 대강 짐작이 가리라고 믿소] [알았어요, 선생님] 아이크소프양이 말했다. [존---형식을 빼기로 하고, 당신 이론은 어떻소?] 버로우즈는 천천히 말했다. [저의 이론은 가설 이상의 것입니다., 퀸 선생님. 저의 것은 사건 해결입니 다] [해결이라고, 존? 너무 자만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꺼요. 그래, 어떤 것이오? 당신의 해결이란?] 하고 엘러리는 말했다. 버로우즈는 뱃속으로 깊이 숨을 빨아들였다. [해결로 저를 인도한 열쇠는 스파고의 손목시계입니다.] 클레인과 아이크소프양은 깜짝 놀랐다. 엘러리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기운을 북돋우듯이 말했다. [어서 말을 계속해 보구료] [시계의 가죽줄에 나있는 한 두개의 자국은] 하고 보로우즈는 설명했다. [의미가 있는 겁니다. 스파고가 시계를 차고 있었을 때는 두 번째 구멍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구멍에 자국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나 더 뚜렷한 자국이 세 번째 구멍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말입니 다, 그 시계는 팔이 더 가는 사람을 위해서 습관적으로 구멍이 나있는 것 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시계는 스파고의 것이 아니었다---이런 말이지 요] [훌륭하오!] 하고 엘러리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스파고는 왜 남의 시계를 차고 있었던가? 거기에는 훌륭한 이 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의(警察醫)는 스파고가 11시에서 11시 30분 에 죽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계 바늘은 분명히 10시 20분에 서있었습니다. 이 모순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파고가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것을 본 범인인 여자가 자기 시계를 풀어 유리를 깨고 기 계를 멎게 하여 10시 20분에다 맞춰서 범행 시에 있어서의 알리바이를 성 립시키고자 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은 11시 20분쯤 범행이 벌어 진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당신은 <여자>라고 했는데, 그 시계는 남자용이에요, 존---당신은 그걸 잊고 있어요] 아이크소프양이 신랄하게 말했다. 버로우즈는 싱긋 웃었다. [여자가 남자용 시계를 차선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소? 그렇다면 누구의 시계였던가? 간단합니다. 케이스 안쪽에 떼버린 것 같은 보풀이 인 동그 란 자국이 있었지요. 시계 케이스 속에 흔히 붙이는데, 종이로 된 것은 무 엇이었을까요? 사진입니다. 그럼, 어째서 떼었을까요? 분명 가해자의 얼굴 이 속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2시간 동안 나는 이 문제를 추구 했습니다. 나는 신문기자를 가장하여 용케 용의자를 방문하여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사진 앨범을 대충 보았습니다. 그 사진의 남은 부분으로 판 단할 때, 오려낸 동그란 부분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는 것 이 분명합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은 해결된 것입니다.] [정말 놀랬는데] 엘러리는 중얼거렸다. [그래, 당신이 말하는 여자 살인범이란---] [스파고의 부인입니다.---동기는 ---증오, 혹은 복수, 아니면 배반당한 애정 등등이겠지요] 아이크소프양은 콧소리를 냈고, 클레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하고 엘러리는 말했다. [우리는 찬성 못하겠는데.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오. 존..... 월터, 당 신쪽은?] [저도 시계가 스파고의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가해자가 알리바이를 만 들기 위하여 시계바늘을 10시 20분에다 맞춘 점은 존과 동감입니다. 그러 나 저는 범인이 누구냐 하는 점에서는 견해를 달리 합니다. 저도 시계를 중요한 단서로 삼아 활동을 했음니다만, 전혀 다른 방향에 걸었습니다. 이 것을 보십시오] 클레인은 화려한 시계를 꺼내어 깨진 유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에 여러분께서 깨닫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시계도 말하자면 숨을 쉬 고 있습니다. 즉 시계도 사람의 체온에 의하여 내부의 공기가 팽창되어, 케이스의 안쪽이나 유리의 조그만 틈이나 구멍으로부터 공기가 밀려나옵 니다. 시계를 벗어두면 안의 공기는 차게 수축됨으로, 먼지 낀 공기가 내 부로 흡수되지요] [내가 과학 연구를 해 두어야 한다고 그랬지] 엘러리가 말했다. [그건 새로운 방법인데요, 월터. 자아, 계속 하시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빵장수 시계에는 밀가루 먼지가 끼어 있을 거고, 벽돌공의 시계로부터는 벽돌가루가 채집되는 법입니다] 클레인의 목소리는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이 시계 속에서 무엇이 발견되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여자의 분가루입니다] 아이크소프양은 미간을 찌푸리고 뿌루퉁했다. 클레인은 엄숙한 목소리롤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분은 매우 특수한 것입니다, 퀸 선생님. 이런 종류는 특수한 피 부색의 여자만이 사용하는 것이지요. 어떤 피부색이냐 하면 흑인의 색입 니다. 그분은 백인과의 혼혈인 여자의 핸드백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힐 문도 해보았고, 그 여자의 화장 케이스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여자는 끝내 자백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스파고를 죽인 여자는 그 시체를 발견했다는 혼혈하녀 애거더 로빈즈가 틀림없습니다] 엘러리는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훌륭하오, 월터. 훌륭한 연구요. 그리고 물론 당신 견해에 따른다면 그 여 자가 일단 시계의 소유주임을 부정하겠지. 당신 의견은 내게도 크게 참고 가 되오만.... 그러나 동기는 ?] 클레인은 자신 없는 눈치였다. [그 점입니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종교적인 복수---인 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파고는 아프리카의 토인들을 몹시 혹독하게 다루었다고 신문에도 나 있었으니깐요] 엘러리는 장난기 어린 빛을 숨기려고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이크소프 양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질 적으 로 찻잔을 툭툭 치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숨기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고 있었다. [자아, 드디어] 하고 엘러리는 말했다. [대망의 마지막 발표로 들어가기로 할까요. 아가씨의 설은 어떻소, 아이크 소프양? 오늘 오후 내내 그 추리를 빨리 말하고 싶어서 좀이 쓰셨던 모양 인데, 자아, 말해봐요] 아이크소프양은 입술을 긴장시켰다. [당신들 두 사람은 자기가 똑똑한 줄만 알고 있어요. 퀸 선생님도 특히 그 렇구요---특히 ....전 존과 월터는 단순하게 피상적인 지식을 나타낸 데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아이크소프양, 좀더 분명하게 말해주실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문제의 시계는 범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두 청년은 멍하게 입을 벌렸다. 엘러리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렇소. 나도 아이크소프양과 동감이오. 자아, 설명해 주실까요--] 아이크소프양의 갈색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뺨이 빨갛게 홍조되었다. [그건 아주 간단해요] 하고 그녀는 콧소리를 내었다.. [스파고는 살해되기 2시간 전에 시카고에서 돌아왔어요. 일주일 반을 시카 고에서 있었던 셈 이예요. 시카고의 시간은 뉴욕의 시간보다 1시간이 빠 르니까,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스파고가 오늘 아침 뉴욕에 도착했을 때 시계를 1시간 당겨놓는 것을 잊어 버렸다고 한 다면, 스파고가 살해되었을 때 바늘이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도 이상할 건 없어요] 클레인은 목구멍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버로우즈는 얼굴이 빨개졌다. 엘러리는 슬픈 듯이 보였다. [지금으로 봐서는 아이크소프양의 승리라고 생각하오. 확실히 지적한 대로 요. 그래, 그밖에 또 뭐가 없소?] [물론 전 범인을 알고 있어요. 그것은 스파고의 아내도, 그 야만스러운 혼 혈 하녀도 아니에요.] 아이크소프양은 듣는 이를 애태우는 것처럼 말했다. [들어보세요.--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는 스파고의 죽은 얼굴에 털컴 파우 더가 뭉친 데 없이 매우 골고루 발라 있던 것을 보았어요. 스파고의 뺨이 며 욕실의 면도 도구들의 모양으로 보아 범행은 면도를 한 직후에 일어났 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면도를 한 후 남자분들은 대체 어떤 식으로 털 컴 파우더를 바르는지 모르겠어요. 퀸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 바르세요?] 하고 아이크소프양은 부드럽게 엘러리를 흘겨보는 듯한 눈을 하였다. 엘러리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손가락으로 바르지요] 클레인과 버로우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이크소프양은 의기양양한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전 본디 찬찬히 관찰하는 성질인데다 아버지께서 아침마다 면도하신 뒤에 저더러 <잘 잤느냐>는 키스를 해주실 적에 늘 느끼는 일인데, 아직 덜 마른 뺨에다가 손가락으로 바르면 분가루가 줄이 지거나 뭉쳐서 얼룩이 생기게 떱쳄結×?. 하지만 제 얼굴을 보세요.] 모두들 저마다 감탄하는 태도로 아이크소프양의 얼굴을 보았다. [제 얼굴에 분가루의 얼룩이 보이나요? 물론 안 보일거에요. 왜냐하면 여 자들은 분첩을 쓰기 때문이에요. 스파고의 침실에도 욕실에도 분첩은 없 었어요] 엘러리는 미소지었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서 아이크소프양은 스파고와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사람, 아마도 가해자는 여자로서 스파고가 면도를 끝내는 것을 보고 있다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자기 분첩을 꺼내어 얼굴에 분가루를 발라주고--그리고 나서 몇 분 뒤에 돌망치로 사나이의 머리를 내리쳤다--는 말인가요?] [네---지도 일단 그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하지만 그래요, 심리학에서도 그런 특이한 여성 심리의 예를 들고 있어요. 퀸 선생님, 아 내는 결코 그런---애정의 표현을 하지 않는 법이지만, 이른바 정부(情婦) 로서는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스파고의 애인 제인 테릴 을 약 1시간 전에 찾아갔습니다만, 그 여자는 스파고의 얼굴에 분가루를 발라주었다고 자백하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실제로는 발라주었을 지도 몰라요. ---그 여자가 죽인 거에요]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담배꽁초를 난로 속에 휙 집어 던졌다. 세 사람은 제각기 무언가를 기대하며 엘러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선] 엘러리는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이크소프양, 애인의 심리에 관한 아가씨의 지식의 예리함에 대한 찬사 는 뒤로 미루고] 아이크소프양은 슬그머니 화난 듯이 조그맣게 목을 울렸다. ---[나는 이야기를 추진해 나가기 전에 한마디 해두고 싶소. 여러분 세 사람 다 아주 유능하고 매우 준민(俊敏)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소. 나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멋진 클래스가 될 것 이라고 생각하오. 여러분, 정말 훌륭한 성적이었소] [하지만 퀸 선생님] 하고 버로우즈가 항의했다. [세 사람 중, 대체 누가 옳습니까? 각각 다 틀리는 해답이 나왔는데요] 엘러리는 손을 내저었다. [누가 옳으냐는 것은 아주 지엽적인 이야기요. 이론적으로 말해서 요긴한 것은 여러분이 훌륭한 일을 했으며,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미숙 하나마 원인과 결과를 잘 결합시켰다는 점이오. 그러나 사건 그 자체에 관해서는 유감스럽지만---여러분은 다 틀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소] 아이크소프양은 조그만 주먹을 꼭 쥐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은 잘 알고 있었어요. 전 선생님이 너무 지 독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전 아직도 제가 옳다고 믿고 있어요] [여러분, 여기에 여성 심리의 비정상적인 견본이 하나 있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싱긋 웃었다. [자아, 날 들어보도록 해요. 여러분의 결론이 다 틀렸다고 한 것은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소. 그것은 단 한가지 단서에 집착하여, 일련의 추리를 너무 믿는 나머지 문제의 다른 요소를 완전히 등한시했기 때문이오. 이를테면 존, 당신은 너무 단순하게 앨범 속에서 남녀의 얼굴 부분이 동그랗게 오 려진 사진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스파고의 부인을 범인으로 단 정하고 있소.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신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소 다음은 월터, 당신이 그 시계의 소유자가 혼혈의 하녀라고 희한하게 추정 (推定)한 점은 진상에 대한 일보 전진이었소. 그러나 스파고가 그것을 시 카고에 가지고 갔다-- 이렇게는 추정할 수 없겠소? 이것은 있을 법한 일 이오. 피해자가 하녀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살인범으 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아이크소프양, 아가씨는 시차(時差)라는 요인에서 시계 문제를 해 명하였는데,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항을 빠트리고 있소. 당신의 해결은 오로지 스파고의 방에 화장용 분첩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었소. 범행 현장에 분첩이 없으면 자신의 이론에 편리하다고 믿고 엉성한 조사를 한 결과, 방에는 분첩이 없다고 냉큼 결론을 내렸던 거요. 그러나 실상 분첩 은 스파고의 방에 있었지요. 만일 스파고의 수염깎는 솔 통 뚜껑을 살펴 보았더라면, 요즘 같은 멋부리는 시대에 남자용 세면 도구에 끼워져 있는 동그란 분첩을 발견했을 겁니다.] 아이크소프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 다. [그렇다면 옳은 해답은 뭘까요?] 엘러리는 다정스러운 표정을 띄고 말했다. [하나같이 여러분이 여성을 범인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소. 그러나 그 전제들을 검토한 결과 나는 살인범이 분명히 남자라고 생각하 는 바이오] [남자라구요?] 세명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소. 당신들은 어째서 단 한사람도 이 여덟개의 단추와 두 개의 금속 물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못했을까요?] 하고 엘러리는 웃었다. [아마 이 열개의 물건이 당신들의 선입관적 추리에서 뭔가 느껴지는 게 없었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정확한 해결에는 모든 것이 딱 들어맞지 않으 면 안되오.... 이 점은 충분히 질책을 들어 마땅할 거요. 다음 번에는 잘 들 해 나갈 수 있겠지요. 여섯 개의 납작한 작은 조개 단추와 조금 큰 두개의 단추는 분명히 나무 도 석탄도 종이도 아닌 것의 재 속에서 발견되었소. 유일한 일반적 특징 이라고 하면, 남자용 셔츠류라는 사실뿐이오. 남자 셔츠로서 여섯 개의 앞 단추와 좀더 큰 두 개의 커프스 단추가 달렸다면, 잿덩어리는 모시나 빌 로오드가 탄 것일 거요. 누군가가 단추는 타지 않는 다는 것을 미처 생각 하지 못하고, 남자용 셔츠를 난로 속에 집어넣고 태운 거겠지요. 또 큼직한 갈고리며 눈알 모양의 금속 제품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셔 cm와 관련되는 부속물로서 갈고리와 눈알 모양의 물건이 시사하는 유일 한 것이라면 미리 매어져 있는---자기 손으로 매지 않아도 되는---값싼 나비 넥타이로 추정할 수 있소] 세 사람은 유치원 어린아이처럼 엘러리의 입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클fp인씨, 당신이 관찰했던 대로 스파고는 피묻은 왼손으로 무언가를 쥐 었기 때문에 손바닥의 피가 거의 닦여 있었소. 그러나 피로 더럽혀진 것 은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소---그런데 남자용 셔츠와 타이가 불태워져 있소. 가해자와 격투하는 도중 이미 머리가 깨져 피를 쏟고 있던 스파고 가 가해자의 칼라와 타이를 움켜잡고, 그것을 피로 더럽혔으리라고는 것 은 방안의 흔적으로 봐서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오. 스파고는 죽었다, 범인의 칼라와 타이는 피투성이가 되어있다, 과연 살인 범은 누굴까---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 살인범은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소. 즉 외래자나 호텔에 묵고 있는 손님, 혹은 호텔 종 업원의 세 종류로 말이오. 그런데 범인은 무엇을 했는가? 범인은 자기 셔 츠와 타이를 불태워 버렸소. 그런데 만일 범인이 외래자라면 외투 깃을 세워 그 핏자국을 감추고 호텔로부터 천천히 나갈 수가 있었을 거요.--- 그러므로 그런 귀중한 시간에 셔어츠나 타이를 태울 필요가 없지요. 범인 이 호텔에 묵고 있는 손님이라면 자기 방에 돌아가 태울 수 있었을 게 틀 림없소. 따라서 범인은 호텔의 종업원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셈이오. 확증? 물론 있지요. 범인은 종업원이기 때문에 근무 중에는 호텔을 떠날 수 가 없소. 쉴새없이 사람들 눈에 뛰니깐.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범인은 셔츠와 타이를 바꾸지 않을 수 없소. 스파고의 가방은 열린 채로 있었고---셔츠 가 그 속에 있었소. 범인은 그 속을 들추어서---여러분이 본 대로 가방은 뒤죽박죽이었지요---옷을 꺼내 바꾸어 입었소. 그런데 문제의 셔츠를 그 대로 두느냐, 마느냐---물론 그렇게 해 둘 수는 없소. 거기서 단서가 잡 힐 테니까 말이오. 그래서 그것을 당연히 불태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 요. 그러면 타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잘 생각해 보시오. 스파고는 침대위에 야회복을 모두 펼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속에도 방 아무데서도 나비 넥타이는 보이지 않았소. 그래서 분명히 살인범은 턱시도우용 나비 넥타 이를 훔쳐 매고 자기 것은 셔츠와 함께 불태워 버린 것이오] 아이크소프양은 한숨을 쉬었다. 클레인과 버로우즈는 현기증이 나는 것처 럼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해서 난 살인범이 호텔의 종업원 가운데 하나로서 남자라는 것, 게다가 그는 스파고의 셔어츠와 검정 또는 흰색의-- 십중팔구는 검정색이 겠지만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음을 알았소. 그러나 우리가 펜윅 호텔 입구에서 본 바로는 이 호텔 종업원은 모두 회색 셔츠와 회색 타이를 착 용하고 있었지요] --엘러리는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단 한사람을 빼고서 말이오. 여러분도 그의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거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제각기 떠나고 난 뒤 아버지인 총경에게 그를 취조할 것을 제안했소. ---그가 제일 수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오. 과연 우리는 그가 입고 있는 셔츠와 타이에서 스파 고의 다른 소지품과 마찬가지로 요하네스버그의 상표를 발견하게 되었소. 나는 그 증거를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요. 왜냐하면 스 파고는 남아프리카에서 꼬박 1년을 머무르고, 옷은 거의 다 그곳에서 맞 춰 입었기 때문에 도둑맞은 셔츠나 타이도 그곳에서 만든 거라고 추정할 수 있었던 거요] [그렇다면 이 사건은 저희들이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을 때 이미 해결이 났었던 거로 군요?] 하고 버로우즈가 원망스러운 듯이 말했다. [하지만 ---대체 범인은 누굽니까?] 클레인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엘러리는 크게 한번 담배 연기를 뿜어 올렸다. [그의 자백은 3분도 못되어서 들을 수 있었소. 그 얄싹하게 생긴 스파고는 몇 년 전부터 그의 부인과 밀통(密通)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버렸다더군. 스파고가 2주일 전 그 호텔에 투숙했을 적에 그는 스파고를 발견하고 복 수할 생각을 했다는 거요. 벌써 지금쯤 그는 시의 구치소에 갇혀 있을 걸 --- 범인은 윌리엄즈, 그 호텔의 지배인이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버로우즈는 고개를 앞뒤로 가볍게 끄덕거렸다. 그리 고는 [잘 알겠습니다. 무척 공부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놀랍습니다.] 클레인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건 정말 근사한 강의인데요] 엘러리는 흐음 하고 코를 울렸다.. 그리고 나서 친구 두 사람과 마찬가지 로 아이크소프양도 찬사를 보낼 줄 알고 그쪽으로 눈을 보냈으나, 그녀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갈색 눈을 촉촉히 빛내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한번도 제 퍼스트네임을 물어주시지 않으셨어요]